'2021/07'에 해당되는 글 3건

  1. BLOG ─ 190 2021.07.30
  2. 칼럼: 역사학 3 2021.07.15
  3. 칼럼: 역사학 2 2021.07.04

BLOG ─ 190

from 소설 2021. 7. 30. 21:36

    1

    탁월한 새로움은 우연처럼 우리에게 찾아올까? 행운을 이해하려고 하지 말자. 아니면 운명을 믿어보든가. 적어도 사랑에 대해서는 잘 알지 않나. 그러나 정작 가난한 쉐도우복싱이 꺼내들 수 있는 뒷패는 단 몇 개 되지 않음. 이와 같은 형편에서 판단했을 때 인생은 아름답지 않고 사랑은 더럽다고 예단할 수도 있는데. 타인의 삶을 부러워하는 건 썩 좋은 해법이 아니라는 거. 결국 녀석은 권태에 복종한 셈인가? 그러든 어쩌든 젊음에서 멀어졌다는 건 분명하다. 벌써 마음부터 늙어버렸겠지. 그래서 미소가 썩을 수 밖에. 허나 막살자 좌우명에게 포섭되면 안된다. 하긴 어쩌면 대충 사는 게 다행스러운 건가. 살다보니 커피는 에스프레소, 사랑은 진한 사랑, 술은 독주가 좋긴 좋으나 누가 그걸 모르나!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란 말이 아니라. 귀중한 삶 투정만으로 보내버리면 쓰겠나. 요정을 만나 남몰래 사랑한 추억이라도 지어내든가 해야지 말이야. 어차피 뜨거우면 식는 게 수순 아닌가? 그러면 애초에 연하고 옅으며 풋풋하게 시작할 일. 물론 말이 그렇단 말이고. 아무튼 NB는 전망이 더 좋아지지도 나빠지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 전망이란 대체 무엇에 대한 전망인가? 그걸 알아서 뭐 하게. 알아 봤자 시간낭비다. 왜냐하면 그는 오늘도 팔랑귀처럼 남의 말에 액면 그대로 혹할 테니까. 그렇게 부추김을 받아 이번에는 또 어떤 잡념에 사로잡혔을까? 아 글쎄 보나마나 잠깐 헛생각 하다 마는 것임. 찬란한 젊음, 반짝이는 짝사랑복, 지칠 줄 모르는 열정. ~이 아니라 후보군엔 대타 없음. 그래서 비현실적인 희망을 포기했으나 착찹한 마음에 블로그 업데이트를 기대했는데. 벌써 바보가 되어버렸는데 그게 또 잘될 리 있나. 유행가 몇 번 들으면 질리는 것처럼 결국엔 싫증과 변심과 권태만이. 그러던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났는데 NB의 머리카락은 새파랗게 변해버렸다. 이걸 어쩌면 좋지? 믿을 수 없어. 그러나 거울 속의 저 멍청한 녀석은 어떻게 설명할 건데. 그러게 말이야. 어떡해야 하지? 어쩌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그건 녀석의 일시적인 착시였기 때문에. 여기서 잠깐! 어쨌든 녀석은 아무리 잘 봐줄려고 해도 너무 허접했으므로, 그냥 녀석을 내가 움직이기로 했다. 자, 한번 시작해볼까?
    나는 사무실에서 인터넷 쇼핑을 했다. 고전미가 돋보이는 감성. 옷감은 흠잡을 수 없고 은은한 색채감은 거의 아찔할 지경. 얘만 입으면 한마디로 여자들이 줄줄 따르겠구만 그래. 아무리 싫어도 바텐더한테 독보적으로 손꼽힐 수 밖에 없을 테니까. 정말로 얘만 입는다면 이건 뭐 거의 마술사로 변신할 수 있기 때문에, 따라서 이제부터 숙녀깨나 줄줄 울릴 걱정부터 앞서니. 고민하고 자시고 시간끌 필요 뭐 있어! 당장 구입. 그렇게 엇그제 쇼핑했는데 오늘 사무실로 웬 디자이너가 직접 나를 찾아왔던 것이다. 
   「안녕하세요. 저는 본 제품 디자인 책임자 지아니 도나텔라라고 해요. 선생님이시군요. 제 디자인의 고급스러움을 눈치채신 형씨가 말예요.」
    형씨? 이 여자가 어법이 많이 이상한데? 게다가 지가 디자이너면 디자이너지 왜 여기까지! 심지어 차림새가... 섹시하잖아? 나는 유혹에 넘어가기 싫었다. 그러나 내가 그처럼 매정한 남자였으면 왕년에 그녀들이 어떻게 나만 좋다면서 따라다닐 수 있었겠나. 하여 내가 뭔가 그녀의 마음을 다치지 않도록 답변을 하려던 찰나, 이미 그녀와 나는 소파에 함께 앉아 있었다. 
   「제가 패션계에 미쳐서 사랑도 모르고 살았던 탓에 이처럼 말투가 어색해요. 이해하시죠? 그럴 거예요. 딱 봐도 촉이 둔한 남자가 아닐 거라며 직감이 은근 뭔가를 알려주거든요.」
   「아니 근데...」
   「너무 많이 알려고 하진 마세요. 때로는 모르는 게 좋을 때도 있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여기까지...」
   「고객 행사 서비스에서 우연히 당첨되셨기 때문이겠죠. 싫진 않죠? 그런데 제가요 아니면 이 옷이요! 저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그때 핸드폰 메시지 알람 소리가 울렸다. 아마도 택배 배달인 듯 한데... 그러면 저 문을 열면 내가 주문한 옷이? 그럼 이 여자는 누구지? 벌써 그걸 알아차린 것 같은데. 
   「당신 누가 보냈어?」
   「당신, 방금 오빠 나보고 당신이라고 했어요? 우리.. 어쩌면 너무 일찍 친해지는 거 아녜요? 서두르지 말아요. 시간은 많아요. 저는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됐거든요.」
   「그럼 내가 당신의 연인이 되야 한단 얘기요?」 ~라고 어떻게 말할 수 있나. 아니면 내가 글을 너무 막 쓰느라 지금 나는 헛것을 보고 있는 걸까? 이게 정말 환각이라면 나는 그녀의 언변에 녹아들어서는 안되는데. 왜 갑자기 마음이 약해지는 걸까?
   「있잖아요. 음 몇번 동안은 흰색을 포함한 연한색상의 의류와는 가급적 함께 착용하지 마세요. 아시겠죠?」
    일단 나는 칵테일을 대접하기 위해 간이 탁자로 다가갔다. 마티니를 내려놓으면서 잘 타일러 상태가 많이 안 좋은 듯한 그녀를 되돌려보내기 위해서 말이다. 
   「오빠. 오빠가 보기에 저는 내일이 없는 여자일 거 같아요? 아니예요. 저도 조용할 땐 조용해요. 누가 뭐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입에서 화염방사기를 뿜는 줄 아세요? 저도 다 세침하고 내숭떨며 지적 허영심이 무언지 정도는 알고 있거든요.」
    그렇게 칵테일을 준비한다는 게 그만 그녀의 설변에 그만 나는 정신이 나가버렸기 때문인가? 나는 나도 모르게 음악을 틀었다. 
    Rossini /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 2막 - 백작의 노래 “더 이상 저항해봤자” 
    그때 마침 노트북에 메세지가 떴다. "친구, 도망가. 그녀는 가짜야!"
    가짜? 뭐가 가짜. 그럼 나도 가짜가 되어볼까? 그러든 어쩌든 나는 그녀를 달래서 돌아가게 만들려고 칵테일을 그녀 앞에 내려놓았다.
   「왜요, 이거 마시고 가라구요? 저 여기서 살 거예요. 왜 그렇게 놀라세요? 그런데 우리 어디서 만난 거 같지 않아요? 내가 하나 재밌는 사실을 말해줄까요? 그러지 말고 제 친구들부터 소개하고 시작하죠.」
    시작해? 뭘 시작해! 시작하긴 뭘 시작하냐고, 어? 그런데 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문을 열고서 그녀의 친구들이 왕창 사무실로 들어왔다. 뭐랄까 대학교 패션학과 한 학년 전부. 또는 유명 패션학원 몇 기생 전부? 그렇게 사무실이 꽉 차게 되었다. 숨쉴 틈도 없었다. 때문에 TV에서 영상을 봤든가 인터넷으로 사진을 봤던가. 소형차에 사람 많이 타기 기네스북 기록. 그처럼 그녀의 가슴에 내 홍조 띤 볼에 닿았고. 또 다른 숙녀의 엉덩이는 이미... 그러므로 난 벌써... 바로 이때! 나는 제정신을 차리게 됐다. 왜인지는 몰라도 뭔가 산뜻한 효과음이 들렸던 것도 같고 잘 모르겠다. 그래서 정신을 차리고 보니... 사무실 안에는 여자들이 아니라 웬 개들이 몽땅 들어차 있었다. 얘들은 대체 뭐지? 잠시 황당한 공상을 사실로 딱 믿었던 난 또 뭐고! 그리고 얘네들은 여기 대체 어떻게 들어왔어? 일단 나는 녀석들을 바깥으로 내보내기 위해서 문을 열었다. 그럼 지들이 양떼인 줄 알고서 목장이든 어딘가로 갈 테니까. 그렇게 문을 열었더니 너 잘 만났다...그걸 기다렸다는 듯이 녀석들은 혼신의 힘을 다해서 뛰어갔다. 몇 마리인지도 모르는 개떼들이 전부 다. 그래서일까? 나도 마치 아프리카 들개랄지 킬리만자로의 하이에나인 것처럼 녀석들을 쫓아갔다. 
    그래서 도착한 곳은 어디냐? 웬만한 도시 면적 만한 크기의 UFO 앞이었다. 그렇게 내가 초거대 원반형 UFO 안으로 딱 들어갈려할 때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왜냐하면 침대에서 떨어졌기 때문에. 





    2

    앞뒤가 맞지 않는 공상은 우스꽝스럽기만 하다. 그렇다고 하여 NB가 나이먹고 뒤늦게 친외계인적 성향을 고백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다 갑자기 뜻밖의 발단이 제 발로 찾아왔다? 그럴 리는 없다. 현실은 드라마가 아니니까. 그래서 녀석은 더더욱 영화에 집착하는 건가. 모를 일이다. 알아도 별로 중요하지도 않고 말이다. 결국 뭘 해도 재미없는 일상은 어려서 꿈꾸던 어른의 삶이 아니란 거네. 훨신 기대에 못 미치는 환상감마저 올 뻔하다 말았으니 이해는 되는데. 그 때문에 녀석은 알게 됐다. 자기가 신나는 인생의 목표값을 너무 낮게 설정했다는 걸 말이다. 허나 뒤늦게 그걸 알았다고 어떡할 건데! 고로 새로운 야망을 선뜻 수락하지 못한 체 또 망설이기 일쑤. 고로 녀석에게 신비스러운 인생이란 감당하기에 너무 벅찬 그대일 수 밖에. 그렇지만 사랑과 대망과 행복이란 너무 막연한 대상. 그래서 나비와 나방마저 착각하기 쉬운 것. 그 때문일까? NB는 참기 힘든 욕구 가운데 하필 식탐에 더더욱 빠져들었다. 그런 실정이니만큼 이런 생각 아니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바로. 내 이처럼 따분할 줄 미리 알았다면 진즉 사교계와 친분을 돈독히 해놓을 걸. 그러나 그는 자신에게 오지도 않은 전성기가 끝났다는 사실에 결코 동의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긴 그도 그럴 것이 NB는 사랑에 속고 인생이 불행하기 위해서 블로그를 운영하는 게 아닐 테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주장할 게 뻔하다. 자긴 난봉꾼 기질을 절대로 타고나지 않았다고 말이다. 그럼 뭘 해! 동경하는 사랑의 아름다움 그 비밀스러운 정체는 다름 아니라, 쉿. 재미없다. 그러든 어쩌든 그게 뭐가 중요한가. 순수한 애정이냐 더러운 사랑이냐, 인생이란 거기서 둘 중 하나를 택하는 게임이 아니다. 근데 그게 뭔 말이냐? 몰라. 알 필요없으니까. 하긴 어떻게 아름다움이 모두 만족스러울 수 있을까. 그러니 기쁨도 불완전해도 되나? 허나 그러면 흠모하는 그대가 실망할지도 모를 일. 그처럼 NB는 놀기를 포기하고 일에만 매달렸는데. 그런데 성과가 없단 말이지. 이를 어떡하지? 그렇게 다정함도 부드러움도 포근함마저 모두 그에게서 멀어져가는데. 뭐랄까 결국 새로움이란 유독 내게만 너무 불친절하기 때문이라고나 할까? 그는 뻔트라는 카드를 만지작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뭐야 소망도 야망도 아니고 또 뻔트? 사랑이란 축복받은 몸매한테 한눈파는 게 아닌데. 걘 대체 언제 철들까! 형편없는 찐따 녀석 같으니라고. 이미 어른이기 때문에 꿈과 희망도 모른다는 건가? 알 수 없다. 그래서 녀석은 그냥 짜증과 친해진 것만 같다. 그는 그렇게 사무실에서 뚜껑 없는 차를 구경하다가 퇴근하기로 했다. 
    퇴근길에 나는 공원 놀이터에 들렸다. 거기 조그만 운동장이 있는데 이따금 단일 견종들이 떼거지로 모이거나, 여러 종들이 함께 놀거나 구경하기 좋았으니까. 그렇게 거기에 딱 도착했는데. 기대를 져버리지 않은 채 녀석들은 날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걔네들한테 나는 그냥 이방인에 불과했지만 기분이 그랬으니까 아무래도 좋았다. 그렇게 나는 풀밭과 여기저기를 오가면서 개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녀석들은 사람들로 바껴버렸다. 그래서 나는 인파 한가운데서 넋을 잃을 수 밖에. 그때 누가 지나가면서 내게 한마디 툭 던지고서 그냥 그대로 지나갔다. 
   「우리들 꿈에서 빠져나갈 생각 마시오.」
    뭐라고? 여긴 대체 어디지! 그때 어딘가 내 하체가 어색했기 때문에 나는 아래를 쳐다봤다. 그랬더니 내 신발은 반투명한 무지개빛으로 빛나고 있었고, 내 하체도 투명인간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이걸 어떡하지? 그러다 사람들 얼굴이 동물로, 또 사찰 입구를 지키는 사천왕처럼 보이는 환각 증상에 나는 시달리게 되는데. 제정신이 아니라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는 미쳐버릴 것만 같아서 나는 그곳에서 도망갔다. 
    장면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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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지만 나는 멀리 도망가지 못했다. 왜냐하면 도망갈수록 원근감은 나를 속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어딘가에서 서성이던 중 난 나와 비슷한 3명의 사람을 만났다. 그들과 얘기를 나눠보니 나와 비슷한 줄거리에 따라 나를 만났다고 하더라. 다만 나는 도망갈려다가 그들을 만난는데, 그들은 도망가기에 중간의 성공을 했다가 그러다 다시 미로에 빠져 나를 만났다는 점이 달랐다. 일단 그 3명은 옥수수밭, 안개, 꽃밭을 헤매다가 겨우겨우 그곳을 탈출했는데. 그때 어딘가에서 노랫소리가 들려 우리들은 그쪽으로 저절로 이동하게 되었다. (지금이니까 미리 말한다만 나는 그 음악이 무슨 노래인지 알고 있었다. 내가 그 쉬운 걸 모를 줄 아나? 그건 바로, Il Cielo In Una Stanza - Gino Paoli) 그는 도중 우리는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눴다. 
   「형씨. 형씨는 어떻게 이곳에 오게 되었소?」
   「아까 말씀드리지 않았나요?」
   「그랬군요. 그런데 잊어버렸소. 다시 말씀해주시면 안되겠소?」
   「안되오.」
   「알겠소. 그럼 그댄 내 달콤한 열정이 무엇인지 알아보겠소?」
   「기분이 씁쓸하군요.」
   「알겠소. 미안하오. 설마 내 눈빛이 애욕에 가득찾다고 오해하지 말아주었으면 좋겠소. 왜 대답이 없소? 답하지 않아도 좋단 말이오.」
   「그런데 저 언니는 원래 저렇게 말이 없소?」
   「내 친구 원래 조용해요. 궁금하죠, 왜 좀전에 소리소리 지르며 뛰어다녔는지? 상태가 안 좋아요. 왜, 더 알고 싶으세요? 알고 나면 후회하실 텐데두요?」
    그때 우리 앞에 세 방향으로 옥수수밭, 안개, 꽃밭이 나타났다. 
    그러자 말없이 내가 만난 3명의 인물은 자기들이 이미 경험해봤기 때문인지 앞서 다녀왔던 옥수수밭, 안개, 꽃밭을 향해 자연스럽게 나아갔다. 나는 말릴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분들은 정신이 나간 듯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나만 가만히 있어야 하나? 그렇지만 그들을 따라가면 왠지 다시 돌아오기 힘들 것만 같은 느낌 때문에 매우 찝찝했다. 또 저 세 명 가운데 누구를 따라간단 말인가. 옥수수밭? 안개? 아니면 꽃밭? 대체 여기서 나는 어떻게 탈출하지! 바로 그때 우리가 걸어왔던 행로를 따라 네 명의 사람들이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나는 직감했다. 분명 녀석들은 우리처럼 1명은 남고 세 명은 옥수수밭, 안개, 꽃밭으로 향할 거라고. 뻔한 거 아닌가.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도움을 요청해볼까? 그래서 나는 외쳤다. 여보시오, 여기까지 어떻게 왔소? ~라고 소리쳐 물었는데 당연히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 했다. 그러면 내 모습까지 보이지 않는다는 걸까? 저분들의 세계관과 연애 전적과 심성까지 모두 꿰뚫어볼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 내가 만약 여기서 벗어날 수 있다면 나는 돌아가서 점쟁이로 전업해야 하나 마나를 걱정하게 만드는데. 그렇지만 나는 너무 가엾었다. 왜냐하면 헛생각에 빠져 우리 뒤로 우리랑 똑같이 왔던 4명 가운데 3명이 옥수수밭, 안개, 꽃밭으로 들어가는 뒷모습까지는 목격했으나 뭐랄까 내 대역이라고나 할까? 그분이 어디로 가는지는 깜빡 놓쳤기 때문이다. 오오 이렇게 미련할 수가! 그럼 난 이제 정말 어떡하지? 나는 부쩍 당황했다. 그 때문에 너무도 오줌이 마려웠다. 그렇지만 대충 어딘가 풀숲에다... 아니다. 이상하게 누가 날 보고 있는 것만 같았기 때문에 난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그래서 저기 보이는 저 오두막집에 들어가기로 했다. 언제부터 저게 저기에 있었지? 나는 또 그걸 어째서 이제야 발견한 거고. 그나저나 저 집은 사람이 살지 않는 듯 한데. 설마 저기에 들어가면 막 돼지머리...아니면 젊은이들이 나체 파티를 열고 있는 건 아니겠지? 만약 그렇다면 같이 놀자고 해야 하나, 아니면 나보고 그저 관찰자로써 동영상만 찍어달래며 부탁하면 사양해야 하나. 너무 앞서 나갔다. 이러다 바지에 오줌싸겠다. 나는 뛰어서 저기 보이는 오두막집으로 들어갔다. 여기까지만 기억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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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조실.
   「정말 그분들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 게 맞습니까?」
   「네. 정말이에요. 제가 왜 거짓말을 하겠어요!」
   「그런데 그분들 가운데 몇몇은 예전에 당신과 안면이 있었다고 하던데요?」
   「누가요? 우린 통성명도 나누지 않았어요. 그 몇몇이 무엇 때문에 거짓말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그분들과 친교를 나눈 기억이 전혀 없습니다.」
   「맞습니까?」
   「네. 대체 몇 번을 물어보세요? 당신 내가 누군지 알아?」
   「당신이 누구신데요?」
   「그러는 당신은 누구십니까?」
   「여보세요. 지금 장난해요?」
   「제가 지금 당신과 장난할 기분인 줄 아십니까?」
   「거 참 말씀 이상하게 하시네. 왜, 심문 담당관을 교체라도 시켜드릴까요?」
   「그래주라면 그렇게 하시겠소? 아니지 않소. 허허허.」
   「그러지 말고 어서 보고서 작성하고 일찍 끝냅시다. 저도 이 일만 잘 완수된다면 곧장 바캉스 떠날 거거든요. 형씨도 시간 아끼고 좋지 않소.」
   「아는 걸 다 말했는데 그럼 저보고 뭘 지어내서 말하란 말입니까? 그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럼 사실만 말씀하셨다는 건 잘 알겠는데 블로그에 지어낸 얘기들은 다 뭡니까?」
   「블로그?」
   「네. 혹시 블로거 아니시오?」
   「나는 칼럼니스트입니다. 아재는 심문관이죠?」
   「그렇죠.」
   「그런데 형씨는 왜 미리 계획한 결론에 도달하도록 저를 설득시키지 못하는데요!」
   「혹시 우리 계획이 뭔지 아십니까?」
   「관심없소.」
   「정말 이렇게 비협조적으로 나오실 겁니까?」
   「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소. 형씨야 말로 이제 내게 자유를 선물해주시면 좋겠소. 좋은 말로 할 때 말이오.」
   「좋은 말로 할 때?」
   「지금 나한테 덤비는 거요?」
   「제가 어떻게 감히!」
   「그나저나 그 사람들은 어떻게 됐소? 듣자하니 몇몇은 아직 행방을 모르는 것 같고, 몇몇은 다단계 사업과 연관된 거 아니오?」
   「어떻게 그렇게 잘 아시오?」
   「앞서 그렇게 단정짓도록 단서를 쓱 흘리시지 않았소. 내가 무슨 요정도 마녀도 아닌데 뿐만 아니라 난 왜 내가 여기 앉아있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소. 아시겠소?」
   「제가 선생님 마음이 흑심으로 가득찼는지 아니면 딴맘 품고 어딘가로 떠나고 싶으신지 어떻게 알겠소. 일단 저는 형씨와 달리 굶주릴 대로 굶주린 늑대가 아니란 것만 알아주시기를 바라겠소.」
   「그건 대체 뭔 말이오?」
    그렇게 소득 없는 대화에 지쳤는지 그들은 나를 풀어주었다. 
    이제 나는 어디로 가야 하지? 나는 대체 무엇을 하고 싶은 건가. 생각이 없었다. 





    3

    왜 그녀들은 바들바들 떨며 내게 애걸하는 걸까? 어째서 그러냐 라는 공상부터 잘못됐다. 난 아마 세상을 우습게 보며 까불고 혼잣말하는 게 벌써 취미라니.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정말 뭐라도 해야 할까? 그렇다고 지금 와서 힙합과 로보트춤을 배울 수도 없지 않나. 그러지 말고 그냥 예쁜 영화배우나 자빠트려서 결혼이나 할까? 나는 막살지 않는다. 사석에서 막말로 여자는 쎄고 쎘다고 말해주는 친구도 없다. 나는 벌써 시인이네. 하여간에 밤이고 낮이고 잡생각만 요동을 치는 구나. 이래서 어떻게 행복과 사랑과 희망에 대해 말할 수 있을까. 하긴 뭐 누가 좋아서 투정을 일삼나. 왕년에 내 발에 채이는 게 여자들이었는데 뭐 하러 잡념을 서슴없이 고백하겠나. 일부러 바보 중의 바보로 공인받기 위해서? 말도 안되는 소리! 어쨌든 개뼉따귀 같은 신랄한 잡담 또 시작됐다. 그러니까 그만하자. 재미 하나도 없으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옛날에 말이야 내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처럼 카페에서 즉흥적으로 숙녀를 도화지에 담으면, 내게 넘어오지 않는 여자는 단 1명도 없었다. 또 이상하게 내가 사진만 찍어주면 그녀들은 무슨 요술에 걸린 것처럼 내게 빠져버렸는데. 근데 내가 이런 비밀을 왜 털어놓는 거지? 물론 아는 동생들 명단에 여자만 있는 건 아니다. 내가 키운 남동생들 가운데 카사노바 교습소는 물론 각종 아카데미도 운영하는데, 거기에 특급 초빙하고 싶은 명사가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뭐? 그래서 나는 돈주앙 학원 전화번호를 핸드폰 수신거부 목록에 올려놨다. 큐피트 마술사 별명을 내려놓은지 언젠데. 귀찮아서 살 수가 있어야지. (절레절레) 할 말은 아니지만, 아니다. 아니지. 굳이 이런 말까진 하지 않으려 했는데, 하지 않으려 했으면 그냥 하지 말자. 그걸 듣고서 정말 놀라 자빠질 지경이든 아니든 일단 듣고 봐야, 아니다. 왜냐하면 들어보나마나 뻔한지 아닌지 몰라도 먼 얘기를 하려고 했던지 까먹었으니까. 그래. 놈팡이가 뭘 알겠어. 게다가 허당은 남잔데 내숭을 왜 떨어. 나는 식어버린 피자, 먹다남긴 파스타, 김 빠진 콜라 같은 남자가 아니다. 그런데 남들이 특히 여자들이 그걸 알아주나? 타인의 인생과 숙녀들의 취향이야 존중하면 그뿐. 그러게 신나는 모험을 부흥하기가 어디 쉽나. 뭇여성들은 미모가 물이 오른 반면 난 그냥 권태라는 독이 오른 셈. 어쩌지? 뭘 어째. 오픈카와 펜트하우스는 내 것이 아니다. 그건 그런데 이제 좀 쉴 때도 안 됐을까? 절간의 쥐 같이 배고픈 건 또 뭘까. 마술쇼는 마술사의 마음대로 되는 줄 알았는데. 알고봤더니, 아니다. 쓸 만한 카드는 하나도 없이 악수들에 빽빽히 둘러싸인 형세. 이렇게 젊음은 도망가는 건가? 툭하면 잔소리. 그래서 나는 일찍 퇴근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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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아지트에 도착. 
    별다른 일 없던 중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녀석들이 그랬다. 최근 각자 어디를 다녀왔는데. 하필 그곳이 안개, 옥수수밭, 꽃밭이래나. 나는 느낌 세했다. 얘네 뭐지? 설마 날 미행했나... 아닌데. 그럼 엇그제 걔네들이 얘네인가? 것도 아닌데. 그때 갑자기, 
   「내가 거기서 웬 오뚜막을 발견했는데 나도 모르게 거기 들어갔어.」
   「그래서 어떻게 됐어?」
   「좀 기다려 봐. 그런데 있잖아 오두막 안으로 들어가니 누가 사는 것 같아서 나올려고 했지. 그런데 웬 숙녀가 나타나서 나보고 가지 말래. 나는 지나가다 버려진 집 같아서 잠깐 둘러본다는 게 그만, 그러면서 죄송하다면서 가려고 했어.」
   「그런데?」
    나는 녀석의 말을 더 들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다시 엇그제 멤바를 구성해서 그곳으로 다 함께 가자고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기분 묘해지는 순간 그래서 나는 말없이 조용하게 그곳을 빠져나왔다. 이제 어디로 가지? OK~ 결정했다. 최근 봐뒀던 장소가 있지. 거긴 어디냐? 담배밭이었다. 술 끊은 친구한테 술 권하는 게 아니라 뭐랄까 그냥 담배밭일 뿐. 거기 가면 버려진 카페가 있고 또 운영하지 않던 모텔이 있었다. 그렇다고 무슨 탐방할 뭔가가 있지는 않겠으나 최소한 유튜버들 탐사지 목록에 오를 정도는 아니니까 고로 나처럼 적당히 기분 전환하기에 딱인 목적지였다. 그 담배밭도 농부가 중간에 그냥 포기한 듯 했다. 게다가 코카인 밭도 아니고 담배밭인데 가서 쓱 한번 둘러보고 오는 게 뭐 책 잡힐 과거 만드는 일도 아니었기에. 나는 곧장 그곳으로 떠났다. 
    장면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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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착했다. 그런데 담배 식물은 보이지 않고 전망에 보이는 거라곤... 이게 뭐지? 포도...는 아닌데. 설마 코케인? 그때 누가 내 어깨를 툭 짚으면서 얘기했다. 
   「형씨. 혹시 저기 저 식물이 무엇인지 아시오?」
   「네? 아니요. 모르겠어요. 만약 아신다면 가르쳐주실 수 있을까요?」
   「싫소. 알지만 싫단 말이오.」
   「네?」
   「농담이오. 왜 썰렁했소? 내가 원래 안 이랬는데 세상사에 많이 닳아졌기 때문인 듯 하오. 재미없었다면 미안하오. 허나 조금이라도 웃겼다면 형씨는 내게 빚진 셈이오. 자, 그럼 그 빚을 어떻게 갚을 생각이오. 그냥 입 싹 닫고 몰래 도망치실 양반처럼 보이진 않소만. 보아하니 하시는 일이 지식노동으로 고통받는 듯 하므로 지금 당장 지갑을 꺼낼 생각이오? 그럼 난 뭘 꺼내지. 그렇다고 내가 가죽점퍼 안에 찬 멜빵에서 물총을 꺼낼 거란 상상은 하지도 마시오. 아시겠소? 내가 잡담만 늘어놔서 어딜 가나 웃겨주라던 개그맨 명성에 금이 갔으니. 형씨가 내게 빚진 것과 뭐 퉁칩시다. 그럼 되겠소? 아, 내 소개가 늦었군요. 그런데 오다가다 만난 사람들끼리 격식 차리고 굳이 통성명할 필요 있소? 우리가 지금 드라마를 찍는 것도 아닌데 말이오. 그나저나 내가 봤을 땐 저기 저 식물들은 코카인이 아니오. 단위면적당 최고로 비싼 식물이 뭔지는 모르겠으나 어딘가 모르게 저 녀석들은 잘만 변화시키면 어떻게 다이아몬드에 필적할 만한 영양 식품으로 생산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근데 형씨는 저 식물이 아직도 뭔지 모르겠소?」
   「네. 몰라요.」
   「저건 커피요.」
   「커피요?」
   「근데 혹시 담배밭을 구경하려고 여기까지 온 거요?」
   「그게 그러니까... 그게 말이오... 아니 난...」
   「만약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는 이만 헤어져야 하오. 담배밭은 저기 보이는 무지개 쪽으로 쭉 가다보면 나오니까 말이오. 가다가 마음 바뀌면 다시 돌아오시오. 그땐 내 아리따운 숙녀들을 소개시켜드리겠소. 그럼 형씨는 내게 뭘 해주겠소?」
   「네?」
   「그만 떠나지 않고 뭐하시오? 내 말 듣다보면 그 끝은 없다는 걸 꼭 내 입으로 말해야겠소? 아직도 안 떠났소?」
   「아, 네. 지금 가려고 했어요. 그럼...」
    그렇게 나는 웬 이상한 아저씨가 은근 뭔가를 암시하는 담배밭을 향해 차를 몰고 갔다. 근데 저 아저씨는 뭐지? 뭐 하는 사람인데 나보고 커피나무도 모르냐, 담배밭은 왜 찾느냐. 지가 뭔데 나한테 너도 영화를 많이 봤냐는 식으로 추궁대는데. 가만 생각하니까 마음에 안 드네. 차를 확 돌려? 아니다. 참자. 별일도 아닌데 그럴 것까지야. 내가 안 참으면 누가 참는데. 그래도 거 어째 자꾸자꾸 생각난다 말이지. 기분 언짢아지게 말이야. 그렇게 차를 몰면서 나는 짜증을 가라앉히기 위해 차분한 음악을 틀었다. 
    Vivaldi / 오페라 ‘그리젤다’ RV.718 ‘신포니아’
    그렇게 내가 찾던 담배밭에 도착했다. 그런데 내가 여기 왜 온 거지? 그러게 말이야. 무슨 담배에 고기를 싸먹을 일이 있는 거도 아니고. 어디서 뭐 개뼉따귀를 찾아서 발견하면 동네 똥개한테 갖다주게? 근데 그 똥개가 하필 내 거기를 물면 어떡하지! 그게 뭔 소리야? 개 풀 뜯어먹는 헛소리 지겹지도 않다. 날씨가 더우니 그럴 만도 하니까 말이다. 그러다 나는 저기 보이는 폐업한 카페에 들어가서 구경이나 하기로 했다. 딱히 뭔가가 없어도 그냥 한번 둘러보는 재미가 있긴 있으니까. 그렇게 딱 그 카페에 들어갔는데. 뭐야 이거! 거긴 망하지 않은 카페였다. 운영 중이란 얘기다. 그래서 그냥 나올려고 했다. 





    4

   「왜 그냥 가시오?」
   「네? 모텔이 아니니까요.」 (이렇게 변명하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속칭 대충 떨어질 줄 알았단 얘기가 아니라 나도 모르게 그만... 그랬다는 뜻)
   「나는 숙박업도 겸한다오. (손가락으로 가르키며) 저쪽으로 가시오. 잘해줄 거요.」
    뭘 잘해줘? 모텔 이름은 피아첸자였다. 피, 뭐? 근데 나는 왜 저분한테 모텔 어쩌고저쩌고 그렇게 말했지? 그나저나 일단 마음이 바꼈다. 내가 모텔을 왜 가? 그래서 변심은 나를 자동적으로 공원 쪽으로 드라이브하도록 만들었다. 근처 경치도 둘러볼 겸 고독이 싫증나면 바로 돌아갈 수 있을 테니 괜찮은 선택이었다. 그렇게 둘러보면서 웬 자판기 앞에서 멈췄다. 나는 자판기에서 콜라를 뽑았다. 그때 웬 청순한 미녀가 내 차에 탔다. (조수석이 아니라 운전석) 뭐야 저 여자는?
   「저기, 아니 왜,」
   「뭡니까?」
   「네? 이거 제 차인데요.」
   「그래요?」
   「네.」
   「그걸 누가 몰라요?」
    그런데 이 여자는 왜 상남자처럼 얘길 하는 거지? 목소리랑 외모만 여자지 마치 드라마에서 성별이 바뀐 듯 내게 말하고 있잖아? 누굴 바보로 아나?
   「혹시 모르실까 봐...」
   「나는 그 정도도 모르는 숙녀는 아니니까 안심하시오.」
    그러면서 그녀는 눈빛으로 저쪽을 가르켰다. 뭐야 저건? 최고급 오픈카였다.
   「설마 저거랑 이걸 바꿔 타자는 뜻입니까?」
   「(끄덕끄덕)」
    그녀는 곧장 가버렸다. 이건... 처음 봤는데... 나 잡아봐라? 파라솔과 비키니와 푸른 바다와 시원한 바람. 해변가에서 그녀와 나는 연인? 나는 직감했다. 이건 아마 꿈일 거라고. 그런데 꿈이 아니다. 그때 내 손가락이 오그라들기 시작했다. 등이 굽어질려고 했고 발과 종아리에 쥐가 났다. 필경 이건 도플갱어가 내 책상에서 글을 쓰다가 막히니까 종이를 찢어서 구긴 다음 뭉쳐서 집어던질려고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그걸 몇 번 당하고 보니 이제는 나도 대처법을 알게 됐다. 따라서 나는 구부려지려는 손가락에 힘을 줘서 폈다. 쥐가 오른 종아리도 힘을 빡 줘서 꾹 참았다. 막 그러니까 상상 드라마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심지어 잘만 하면 그녀와... 그냥 이걸 현실로 굳히고 내 본분이든 숙주든 도플갱어가 원하는 거 줘버리지 뭘! 그렇게 나는 그녀를 따라갔다. 그렇게 인적이 없는 도로에서 나는 그녀의 옆으로 달렸다. 그때 그녀는 내게 윙크했다. 설마... 그러면서 그녀는 내 오픈카 안으로 웬 명함을 던졌다. 우리는 뮤직드라마라도 찍는 것처럼 슬로우 모션 상태였기 때문에 나는 그 명함에 씌여진 글씨를 읽을 수 있었다. 예지몽 주식회사 누구누구? 뭐야 말단 경리 아가씨잖아. 그럼 더 좋지? 나는 이게 자각몽이든 악몽이든 끝까지 가보고 볼 일이라고 판단했다. 그때 반대편에서 또 옆 교차로에서 내 차랑 똑같은 자동차 동호회원들이 떼거지로 몰려들어 우리와 합류했다. 그래서 나는 누가 누구인지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런 젠장! 좋다 말았잖아? 그럼 이제 어떡한담...! 일단 나는 사무실로 돌아가기로 했다. 
    장면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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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사무실로 가던 중 뒤에 누가 따라오는 걸 감지했다. 그래서 차를 세웠다. 그랬더니 뒷차도 멈췄다. 안에서 경찰이 내렸다. 그런데 복장이... 우리나라 경찰이 아니라 외국 드라마에서나 보던 모습이었다. 
   「신분증 제시해주세요.」
   「네?」
   「귓구멍이 막혔소?」
   「내 귓구멍은 막히지 않았소.」
   「그럼 어디가 막혔소?」
   「꽉 막힌 당신이 나보고 지금 어디가 막혔냐고 물었소?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소?」
   「흐흠. 농담이 지나쳤소. 인정하오. 미안하단 말이오. 일단 신분증 좀 봅시다.」
    그러는 당신부터 관등성명 대시오. ~라고 말할려다가 나는 기세에 눌렸다. 그래서 신분증을 찾는 척했는데. 바로 그때 진짜 경찰차가 사이렌을 울리면서 내 차 앞에 멈췄다. 그렇게 외국 경찰 복장을 한 아저씨를 잡아서 미란다 원칙 읊고, 수갑 채우고, 차에 태워 연행해갔다. 보아하니 임의동행이 아닌 게 분명했다. 긴급체포...면 이미 영장을 받았단 얘기잖아? 그 정도는 나도 안다. 
   「선생님. 뭐 뺏긴 거 없어요?」
   「네. 신분증을 보자길래 지갑을 찾던 중, 아까 그녀와 사랑을 했어야 하는데. 딴년들 다 따먹고 다지지 말고 나랑 연애합시다 라고 말하는 듯하던 그녀의 표정.」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아무튼 긴급수배범은 우리가 체포해갑니다. 우리쪽도 경쟁 붙었거든요. 그럼 이만.」
    그 경찰이 경례하길래 나는 나도 모르게 왼손으로 경례를 받았다. 이건 뭐지? 오늘 참 이상한 날이다. 숙녀를 놓쳤지 가짜 경찰도 보냈지. 진한 사랑 때문에 힘을 빼도 모자른데 힘 빠지게 이 무슨 삼류드라마도 아니고. 내가 지금 여기서 뭐 하는 거지? 바로 그때! 떠나려던 경찰은 내게 다시 돌아왔다. 
   「저기 혹시 모르니까 신분증 좀 봅시다. 의례적인 절차니까 불편해도 협조해주시죠. 우리도 웬 쥐새끼 같은 잡법 때문에 요즘 골치가 아파요. 자세한 얘기는 말씀드릴 수 없지만,」
    그때 저쪽에서 나와 얘기하는 경찰의 하급자로 보이는 경찰관이 다가오더니 서로 귓속말로 쑥덕쑥덕. 그러다 말겠지 그러면서 뭔가 의심은 착오로 판명나겠지 예상했는데. 남은 경찰 1은 무전기 답신을 기다리고 핸드폰 화면으로 자료 결과를 검토. 그때 또 돌아갔던 동료는 저쪽에서 달려오더니 냉큼 경찰 1을 날라차기로 퍽~! 정말로 강타했다는 게 아니라 자기들끼리 어떤 신호인 듯. 아니 잠깐만... 날라차기? 설마, 얘네들도 술값 서로 낼려고 경쟁하다 딱 결판 짓는 특별한 기술이 다름 아니라 뭐, 날라차기? 하여간에 그놈의 날라차기 정말 징글징글하다. 하여튼 징하구만 그래. 도대체 "형 저도 날라차기 맞고 싶어요"~라는 명대사는 어떡해야 잊을 수 있을까?! (절레절레) 그렇게 자기들끼리 진지한 협의와 심각한 대화가 끝나자마자 나는 마지막 말을 듣고야 말았다. 그 어떤 얘기가 내 귓가에 들려버렸다. 이 뚜껑 없는 차가 도난신고 당한 차래나 뭐래나!
   「서까지 같이 가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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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면 전환.
    나랑 똑같은 수법에 차를 빼앗긴 사람들 여기 나까지 총 3명. 1명은 옥수수밭, 1명은 안개 속에서, 1명은 바로 나. 이때까지 또 거기서 풀려날 때까지 나는 그녀가 내게(만) 전해준 명함을 깜빡 잊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신분 확인됐고 수사도 어느 정도 진척되던 중 풀려나게 되었다. 





    5

    나는 집에 와서도 그 명함을 기억해내지 못했다. 그건 내 옷 주머니에 있었는데. 그걸 왜 뒤늦게... 만약 일찍 발견했다면 나는 그녀와 여행을 떠났을 테고, 여행을 떠났으면 그럼... 첫날밤에 단지 샴페인만 터트렸을까? 그럴 리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왜 그걸 일찍 생각해내지 못했지? 일단 너무 앞서나가면 안되니까 순서에 따라 차근차근 얘기하자면 나는 다시 심심함이라는 올가미에 걸려들었다. 재미없음이라는 발찌는 반경 얼마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나를 협박했다. 나는 그렇게 권태의 노예가 되어 가짜로 막 희망과 꿈을 지어내고 있었는데. 또 경찰서에서 만난 나까지 3인방. 안개, 옥수수밭, 꽃밭. 목록에서 빠진 인물을 찾아 수사하고 뭔가를 찾아내면... 그분들과 헤어지는 것도 아니었는데. 난 바보다. 다 놓쳐버렸다. 사랑과 열정도 바닥났다. 그럼 어떡하지? 어떡하긴 뭘 어떡하나. 일이나 해야지. 
   <신나는 모험과 아름다운 절정에 혼미할 지경, 마침내 우리는 개꿈에서 깨어난다. 그 우리가 대체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NB는 탐미주의자이기를 포기했다. 왜냐하면 절망과 상심과 체념과 상처에 된통 당할 뿐이기 때문에. 결국 사랑에 실패하니까 인생에 패배한 느낌 짙은데. 그러나 미리 실망할 필요는 없다. 역전승이라는 게 있거든. 세상사가 그렇다. 말하자면 육식동물은 초식동물을 잡아먹는 반면 그 반대는 성립될 수 없는 법. 그래서 초식동물은 트로이의 목마가 될 것인가, 아니면 회전목마 근처에서 숙녀를 꼬실 것인가. 꼬, 뭐? 지긋지긋하다. 사랑론이라면 징글징글 왜 안 그러겠나. 그처럼 녀석은 TV를 너무 많이 봤기 때문에 멍청해진 건가, 아니면 영화를 너무 좋아해서 허접한 건가. 뭐가 됐든 사랑의 성적표가 영 초라했으므로 그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하긴 비너스와 모나리자와 아르테미스가 어떻게 제 발로 그에게 찾아오겠나. 산이 오지 않는다면 우리가, 아니다. 보아하니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에게 알맞는 격언이 생각났다. 바로, 지갑이 무거우면 마음은 가볍다. 그 말이 뭐겠나. 지갑이 가벼우니까 마음이 무겁지! 게다가 그녀를 자빠트리지 못하니까 지 혼자 소파에 자빠져 TV나 보지. 그러면서 혼잣말은 젊음을 희생했는데 신비주의로부터 구원받지 못했대. 그게 뭐야? 순 엉터리 낭만주의자. 그렇게 공상할 동안 욕망을 만족시킬 기회는 점점 줄어들 수 밖에. 결국 좋건 싫건 항상 권태와 직면. 제발 한번만 만나달라던 그녀들의 애원에 순순히 응할 걸 그랬나, 아직도 그런 생각. 오, 저런! 푼돈은 아꼈을지 몰라도 청춘을 허비했군. 게다가 이제 와서 어떻게 여자 꼬시는 방법을 독학해. 못해. 누가 말리지도 않을 거야. 근데 정작 전례 없는 슬럼프라는 걸 본인만 몰라. 그러니 멜로드라마로부터 버림받지. 그렇다고 타락하여 방탕에 젖을 수는 없는 일. 그래서 막살지는 않는데. 고로 싫어하는 기색없이 대충 살게 되는데.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운명적인 사랑이 시작됐다? 그럴 리 있겠나. 그처럼 물 오른 미모와 굶주린 늑대는 정녕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란 말인가! ~라고 걸핏하면 몽상에 잠기니까 여태 혼자지. 놀고 있네. 가련한가? 미련하다. 멍청. 허접. 결국 사랑의 의미마저 더러워짐. 그러다 마침내 그는 허영기를 불신하기로 했다. 허나 지켜질 수 없는 약속처럼 변심에게서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데. 
    그래서 그는 무턱대고 소풍을 떠났다>
    말 나온 김에 진짜 소풍이나 갈까?  
    그때 나는 생각했다. 내 차는 어떡하지? ~라고 말이다. 그러자 갑자기 차를 바꿔 탄 그녀한테 받은 명함이 기억났다. 아차, 그걸 까먹고 있었네. 서둘러 명함을 찾았다. 다행히 옷은 빨지 않았으니 주머니에 들어있었다. 그 명함에는 달랑 웹사이트 주소만 적혀 있었다. 주소는 www.wearealiensinearth.com 뭐야 이거? 인터넷 창을 띄어 그 주소를 입력해보니. 커피밭으로 와 달라! ~라는 문장 딱 1개만 보였다. 뭐지, 정말 이거 뭐지? 그럼 또 난 그 숙녀가 오란다고 정말로 가야하는 걸까? 이게 운명인지 아닌지 장난일까 사랑일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가지 않았을 때 불이익과 진한 사랑의 예감을 무게 저울 양쪽에 올려놓을 수는 없었다. 다만 남몰래 혼자 영화를 찍는 기분이었다고나 할까? 그렇게 나는 커피밭에 가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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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피밭에 도착. 정말로 저기에 내 자동차가 있었다. 지금 와서 말이지만 탈 만큼 탄 저 똥차. 굳이 애써 찾지 말고 저속한 표현마따나 뽑아먹을 만큼 뽑아먹었으니 딴 차를 사도 괜찮을 텐데. 딱히 정들었다는 느낌도 그다지...그래도 반갑긴 했는데. 뭐야? 자동차에 타서 딱 사무실로 돌아갈려는데 하필 조수석에 또 메모장이 붙어있다니. 
   "담배밭에 가보시오."
    뭐야 지금 나랑 사랑하자는 거야? 아니면 뭐 똥개 훈련시켜, 어? 이 여자가 증말 보자 보자 하니까... 흥분할 때가 아니다. 게다가 담배밭까지 가보는 게 어려운 일도 아니다. 심지어 늑대의 본분을 잊어먹어서도 안된다. 또 혹시 보물을 잠깐 보관만 해달라 랄지 지폐 가득한 007 가방이 날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니까. 그렇게 인근 담배밭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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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배밭에 도착했다. 그리고 나는 그녀의 가방을 발견했다. 도시에서라면 이 가방에 손대지 않는 게 상책일 텐데 지금 나는 드라마를 찍는 주인공이기 때문에 서둘러 그녀의 가방을 열어봤다. 별다른 내용물은 없었다. 다만 어떤 좌표값이 적혀 있는 종이 쪽지가 가방 안에 있었다. 이건 또 뭐지? 설마 나보고 이 좌표값으로 와달라는 건가? 안 가볼 수 있나! 따라서 내가 그 좌표값까지 가봤더니 어떻게 됐더라? 
    내가 그 좌표값에 가봤더니, 거긴 다름 아니라 옥수수밭이었다. 이게 뭐야? 좀 더 면밀히 탐색 후 알게 됨. 옥수수밭 내부에 꽃밭이 있는데 그게 대마밭이었음. 그렇지만 그마저 위장! 즉 양귀비꽃밭이긴 하나 이를 테면 양귀비꽃 300종 가운데 마약성 금지 목록은 단 몇에 불과. 그럼 여기서 끝일까? 그 지하로 들어가는 작동 버튼을 찾는 게 급선무인데. 근데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내가 여기서 왜 이래야 하는데! 내가 정말 허수아비도 아니고 꼭두각시처럼 보물찾기 놀이를 이 나이 먹고 해야 하는지 정말 모를 일이었다. 그러다 나는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이건 둘 중 하나일 테니까. 첫째 똥개 훈련, 둘째 덫! 왜냐하면 일단 원맨쇼는 아닐 테니까. 그렇지 않나! 이러니까 여기에 엮이면 나중 골치아파질 게 뻔하므로 절대로 말려들어서는 안된다. 그렇게 나는 집으로 도망갔다. 





    6

    오늘 나는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더위에 지쳤나? 그럴 수도 있는데 꼭 다람쥐 챗바퀴 도는 삶에 싫증났단 게 아니라. 뭐랄까 이건 사춘기 아니면 갱년기 같은 증상일 수도 있는데. 아마도 번아웃 증후군이 의심되는 상태. 그럼 무작정 도망갈까? 갈 데는 많은데 오라는 데가 없다. 많이 놀아봐서 자유도 재미없다는 걸 모르는 나이도 아니다. 근데 나이 얘기를 왜 하나. 그렇다고 날씨가 짜증난단 말은 아니다. 근데 내가 뭔 얘기를 하고 있지? 이럴 게 아니라 오늘 같은 날은 그냥 일찍 퇴근하는 게 상책이다. 그래서 나는 일단 밖으로 나왔다. 그렇게 동네를 한 바퀴 돈 다음 집으로 가려고 했다. 그런데 내 옆으로 웬 오픈카가 지나가다가 멈췄다. 
   「저기요 아저씨. 괜찮으시면 이 근처 오리배 타는 공원이 어딘인 줄 알려주시겠어요? 어! 오, 오빠다. 오빠 맞지? 그치?」
   「네?」
    그녀는 갑자기 마스크를 벗었다. 그녀였다. 며칠 전... 우리끼리 뭔 일이 있긴 있었는데. 그게 딱히 드라마 같은 일도 아니었을 뿐더러 그걸 꼭 우리가 친해졌다고 판정하기에도 상당한 무리수가 있었다. 그런데 이 여자는 내게 너무 살갑게 구는데, 왜일까? 도대체 그 꿍꿍이가 뭐길래...!
   「오빠 왜 말이 없어? 설마 내게 벌써 반한 거야? 아니면 우리 아직 친해지지도 않았는데 날 어떻게 한번 해보겠다는 흑심이 발동한 거야, 응? 뭐야? 오빠 지금 당황했어? 허를 찔렸구만. 혹시 진짜로 그렇게 생각한 건 아니지?」
   「아니 그게. 아, 좀 전에 오리배 어디서 타나 물어보셨죠?」
   「오빠. 실망이야. 서운하게 왜 이래? 왜 갑자기 존댓말 하는데! 우리가 그런 사이였어?」
    그럼 우리가 몰래 사랑하는 사이였니? ~라는 말이 딱 목구멍까지 올라왔다마는 차마 할 수 없는 말. 왜냐하면 수다쟁이 그녀를 자극했다가는 내 귀에서 피가 나올지도 모르기 때문.
   「오빠. 그러지 말고 일단 타. 응?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그렇다고 헤어질 수도 없잖아. 안 그래?」
    나는 어정쩡하게 오픈카에 탔다. 또 왠지 심심한 날 바람도 불지 않는데 무턱대고 선풍기 앞에만 앉어있는 것도 모냥새가 좀 그랬기 때문이라고나 할까?
   「오빠. 나 안 기다렸어? 우리 처음 만난 날 좀 그랬지? 그게 다 우리가 영화 주인공 같은 만남이기 때문에 그런 거야. 그게 뭔 줄 알아? 뭐겠어 운명이지. 그럼 나는 이미 사랑에 빠진 걸까? 부끄럽게 그런 얘긴 하지 말자. 오빠 요즘 어떻게 살았어?」
   「응?」
   「아, 우리가 서로 아는 게 별로 없구나. 뭐 차차 알아가면 되는 것 아니겠어? 나는 내 친구들 오빠한테 전부 소개시켜줄 수 있어. 오빠는?」
   「나?」
   「아, 오빠 친구 없구나. 괜찮아. 내가 오빠를 친구 많은 남자로 만들어주면 되잖아. 나는 할 수 있어. 왜 부자가 되고 싶어? 내가 만들어줄께. 왜, 내가 사기꾼처럼 보여? 이렇게 이쁜 사기꾼이 어딨니. 오빠도 참! 그러지 말고 우리 함께 능청 대회에 나가보는 건 어떨까? 그렇다고 오빠 혼자 세계 마초협회에서 심부름이나 하도록 내가 내버려둘 수는 없는 거잖아. 안 그래? 엇그제 우리가 영화 같은 데이트를 할려다가 뭔가 일이 틀어진 건 다 오늘을 위해서였어. 응? 내려갔다가 올라오고. 잡어한테 농락당하는 날이 있으면 대어를 낙는 행운도 있는 법. 이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고. 몰라? 왜, 오빠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남자야? 만약 그렇다면 그래도 괜찮아. 왜냐하면 내가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닌 여자가 되어 오빠를 재밌게 만들어드리면 되니까. 다 그런 거 아니겠어? 그러지 말고 이리 가까이 와 봐. 아니다. 이따 차에서 내려서. 그럴 게 아니라 일단 커피나 마실까? 오빠 뭐 마실래? 오빠 뭐 먹고 싶어? 뭐, 여자? 이 오빠가...!」
   「내가 언제...」
    대체 얘는 뭐하는 애지? ~라고 생각하자마자 그녀는 검지로 내 입을 막았다. 그런데 운전 중에 돌맹이를 밟았기 때문일까? 그녀의 손가락은 하필 내 입으로 들어가버렸다. 그렇게 그녀의 손가락은 막대사탕이 되어 나는 그녀의 손가락을... 손가락을... 이게 대체 뭐하는 상황이지? 
   「오오, 오빠 섹시한데? 근데 오빠 계속 그러고 있을 거야? 오빠 영화를 너무 많이 봤다고 생각하지 않아? 나는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어. 그나저나 오빠 뭐 바쁜 일 있는 건 아니지? 있으면 어쩔 건데. 내가 다 처리해줄께. 그럼 되고. 바쁜 일 없으면 나랑 데이트하면 되고. 좋지? 나는 못이긴 척 바쁘나 안 바쁘나 고민 좀 할려고 했는데. 뭐야, 이 오빠가 벌써 나를 꼬셨잖아? 오빠 학교 다닐 때 공부 안했구나. 와, 오빠 여자 금방 꼬신다. 설마 오빠도 아는 동생들한테 막 그랬어? 내가 저년들 싹 다 꼬셔줄께~! 요즘도 그런 바보들이 있을까. 그렇다고 오빠가 바보란 말은 아니야. 만약 오빠가 바보일지라도 내가 오빠를 천재로 만들어줄 자신 있어. 응? 오빠, 날 한번 믿어봐. 나야 나. 응? 나 알지?」
   「저기... 당신, 아니 난 네 이름 아직 모르는데.」
   「뭐?」
   「」
   「내가 왜 오빠한테 내 이름을 가르쳐주지 않았는지 알아? 모를 거야. 그럼 내가 가르쳐줄께. 왜 내가 오빠한테 내 이름을 가르쳐주지 않았냐. 나는 이름을 바꿨거든. 하긴 내 친구들 가운데서도 내 진짜 이름 아는 애들 거의 없어. 나는 정말 알 수 없는 여자거든. 호호호. 아, 오빠한테 멋진 숙녀로 보이고 싶은데. 유행가 이거 너무 촌스럽지 않아? 그런 의미에서 내가 최근 깜짝 놀란 음반이 있는데 들어볼래?」
   「」
   「Johannes Brahms / Violin Concerto in D major op.77
    바이올린은 Michele Auclair. Wiener Symphoniker/Willem van Otterloo 1958 
    내가 이 음반 어떻게 구했는 줄 알아? 그걸 말해주면 오빠가 따라할지도 모르니까 알려주지 않겠어. 다만 내가 이 음반을 구하기 위해 장장 5년 6개월을 쫓아다녔다는 건만 알아둬. 왜 듣기 싫어? 들어봐. 그녀가 왜 후진 양성에만 노력했는지 얄미울 지경일 테니까. 그런데......」
    나는 침을 흘릴 뻔 말 뻔 졸지는 않았는데. 정신이 없었다. 그래서 그 다음 그녀가 어떤 얘기를 하는지 하나도 몰랐다. 간혹 뭔 얘긴인지 알아채어도 다 한 귀로 들어갔다가 한 귀로 나가버렸다. 그렇게 우리는 오리배 타는 공원에 도착했다. 
    장면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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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빠. 남자가 왜 그처럼 비실비실해? 농담이야. 근데 오빠 맥없는 남자야? 오빠. 남자는 하체야. 알아? 모르진 않겠지. 그럼 좀 힘차게 굴려. 왜 날씨가 너무 더워? 하긴 오늘 같은 날 오리배 타는 사람이... (손차양) 덥긴 덥네. 그렇지만 나중 후회하지 않을 걸. 호호호. 그런데 오빠가 날 꼬신다고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넘어가버린 난 또 뭘까? 허허허. 뭐야, 저 옆에 오리배는... 손에 미니선풍기를 들고 있잖아? 오빠는 저런 것도 챙기지 않고 뭐했어? 아, 내가 오빠한테 잔소리하려는 게 아니다. 그렇지만 쟤네들은 오렌지 쥬스를 들고 있고. 근데 쟤들 옷차림이 저게 뭐니? 촌스럽게 말이야. 저 촌년 화장도 이상하게 했어. 지랑 안 어울리는 멀쩡한 남자 또 어떻게 꼬셨나 몰라. 멍청한 년. 진짜 그렇단 말이 아니라. 오빠가 날 좋아하는 표현을 잘 하지 않으니까 그렇지. 왜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아? 오빠 뭐 좋아하는데! 서두르지 말자. 시간 많잖아. 인생 길다 오빠! 그런 의미에서 피카소 소품 저렴하게 나온 거 있는데 하나 선물해줄까? 오빠는 렘브란트보다 뒤피 쪽인데. 이따 우리집에 들려서 아무거나 찍어. 걸려있는 거 다 진짜니까. 찍어서 오빠 가져. 오빠가 어디 내 마음만 가졌나? 근데 나는 이렇게 다 주려고 하는데 왜 오빠는 말을 안 하는데? 왜, 내가 겁나? 도망갈 생각 꿈도 꾸지 마. 오빠는 내게서 멀어질 수 없어. 나한테 찍혔거든. 허허허. 그게 무슨 말인지는 두고 보면 알게 될 꺼야.」
    그런데 내가 아무리 환상머신 별명 챔피언벨트를 빼앗겼을지언정 왜 하필 수다머신한테 농락당해야 하는 거지? 알 수 없었다. 왜냐하면 정신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근데 오빠 여자 만날 때만 말수 없는 거야? 아니면 아직 여자한테 환상이라도...! 만약 그렇다면 내 그대를 만족시켜드릴 수 밖에. 호호호. 딱 걸렸어. 기다려.」
    그렇게 나는 그녀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 하나도 모를 사이에 우리는 왠 이상한 통로로 들어와버렸다. 
   「들어와. 내 별장이니까. 오빠를 위해 준비했어.」
   「넌 정말 거짓말이 입에서 자동적으로 나오는구나?」
   「어? 잘 못 들었어.」
   「아무 말도 아니야. 너 이쁘다고.」
   「어머 오빠는. (그러면서 여지없이 그녀는 내 팔을 툭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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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나보고 씻으라고 했다. 그럼 뭐 내가 못 씻을 줄 알았나? 날씨가 너무 더웠기 때문이라고 핑계대는 게 아니라. 이상한 분위기 탓에 그냥 그렇게 됐다. 그렇게 다 씻고난 다음 그녀는 다짜고짜 나를 침대에 눕혔다. 그리고 내 양팔과 양다리를 수갑채워 침대에 X자로 날 결박했다. 뭐야 이거? 그러면서 그녀는 어디서 배웠는지 최면술로 나를 기절시켰다. 





    7

    내가 잠에서 깨어났을 때 장소는 바뀌지 않았다. 다시 말해 꿈도 아니었고 도플갱어의 수작 역시나 아니었다. 그리고 손과 발이 자유로운 걸 보니 그녀가 일시적으로 묵는 척만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여기는 대체 어디일까? 또 나는 대체 몇 시간을 잔 거지? 아, 핸드폰이 있구나. 앗, 깜짝이야. 겨우 30분 잔 거잖아? 난 것도 모르고. 나는 이 창고인지 비밀 기지인지 모를 장소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여기는 햇볕이 들지 않는 대신 매우 깨끗했다. 또 곳곳에 잠망경 같은 게 있는데 그걸 들여다보니 무슨 침대가 보였다. 나는 직감했다. 여긴 놀이공원 사장의 별장을 (직접) 염탐할 수 있는 비밀 공간이라는 것을. 또 각 방에 CCTV 장면을 비춰주는 화면들이 가득했다. 옛날에 언제던가 나이트클럽 사장실은 가봤는데, 오늘은 놀이공원 사장실을 원격으로 보게 되다니. 이런 날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그렇지만 나는 순진하게 그걸 모두 믿을 수는 없었다. 때문에 이건 아마 모두 정밀히 가공된 설정이라고 단정했다. 그렇지만 지금 생각하니 그때 데스크탑만 살펴본 게 아니라 소파 앞 탁자에 놓여진 노트북을 열어본 게 오히려 행운이었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일단 데스크탑에 펼쳐진 상황들은 모두 그걸 보고 속아넘어가는 누군가를 위해서일 테고. 그걸 신뢰하지 못하는 나 같은 허당들은 마저 맥북으로 정신차리도록 만들려는 속셈이 작전계획일 수도 있는데. 그런데 거기서 본 걸 왜 나는 모두 발설하지 않느냐? 왜냐하면 나는 아직, 아니 어쩌면 영영 그녀의 정보망을 벗어날 수 없을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 때문에. 그러든 어쩌든 나는 데스크탑 설정들을 믿지 않았다. 다만 맥북에서 본 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인 걸 말할 수 없는 심정. 아마 끝까지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느낌. 기분 세하다만 그래도 조금만 맥북에서 봤던 걸 얘기하자면 이렇다. 
    맥북에는 동영상들과 어떤 특이한 엑셀파일이 있었다. 동영상들은 웬 폴더별로 나눠져 있었는데. 그걸 하나씩 열어봤더니 나처럼 그 비밀 기지로 오기까지 친해진 과정. 함께 나눈 얘기들. 그게 모두 초소형 카메라로 찍어서 기록되어 있었는데. 다른 폴더를 열어보니... 이게 바로크 이전 음악인가 아니면 미사곡? 오페라? 뚜껑 없는 차를 타는 그녀. 그녀가 혼자서 티본스테이크를 먹는 장면인데. 설마... 그 스테이크는...? 나는 갑자기 인도네시아 훈제족이 생각났다. 그럼 나는 왜 풀어주는 거지? 바로 그때 다른 동영상 파일을 열어봤는데 그녀가 비키니를 입고서 햄버거를 만듦. 이어서 햄버거가 완성되자 비키니마저 모두 홀라당 벗음. 곧이어 그 나체 상태로 직접 만든 햄버거를 먹었고(그 모든 과정들을 정성스럽게 동영상으로 만듬). 그러고 나니 막 그녀의 얼굴에서 눈, 코, 입, 귀, 눈썹...이 자유자재로 온 몸을 떠돌아다는 것이었다. 코가 꼬리뼈 쪽으로 옮겨가고 눈은 이마 가운데를 거쳐서 배꼽 옆으로 또 이어서 손 바닥으로. 귀도 피부 바깥을 이동하다가 뭐랄까 창자 안쪽을 헤엄치다가 다시 피부 바깥으로 부상. 뭐야 이거... 컴퓨터 그래픽이기를 바랬는데... 정말이야? 나는 다음으로 엑셀파일까지 열어보고 나서 알게 됐다. 무엇을 알게 됐는지는 말해서는 안된다. 어쨌든 나는 그렇게 그곳에서 도망쳤다. 물론 중간에 아무런 일 없이 무사히 집으로 왔다. 그럼 그녀는 날 가지고 노는 건가? 아니면 혹시 내 애독자...! 에잇, 설마... 아닌가? 아닌 게 아닌가? 모르겠다. 알 수 없으니까 말이다. 
    장면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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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이 지났다. 어느 날 나는 사무실로 출근해서 그녀에 대한 희곡을 쓸려다가 마음을 바꿨다. 혹시 그게 내 마지막 작품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 농담이고. 그냥 나는 평소처럼 다음과 같은 낙서를 컴퓨터 메모장에 끄적거렸다. 
   <나는 꿈 속에 살고 있는 몽상가가 아니다. 제정신이다. 난 미치지 않았다. 시원찮은 돈벌이 때문에 투정하는 게 아니다. 솔직히 말해 기 막힌 팔자의 꼭 다문 입은 아마도 응큼한 상상과 친하지 않을까 라는 시상도 지겹다. 환상기계의 거물이 되고 싶다는 희망의 끈은 옛날에 놨다. "대체 뭘 꾸물대는 거야?" 라는 도플갱어의 추궁마저 한 귀로 들어와서 한 귀로 나간다. 이런데 미지의 이상을 탐구하려는 열망이 다 뭔 소용인가. 슬럼프 극복 다음 곧바로 대망 충족한다는 보장이 있나? 관심없다. 그럼 악마적인 신비감이 느껴지는 카리스마가 돋보이는 주인공을 상상해서 대리만족? 들뜬 권태에 굼뜬 행복이다. 눈에 띄도록 인생이 부쩍 재미없어진 기분. 왜일까? 느낌 세하지 않을 수 없음. 이러니 미적대는 발단과 꿈쩍도 않는 전개만 일쑤. 그러니 흥미로운 절정부터 상쾌한 쾌감, 해피 엔딩까지 그 모두는 정체될 수 밖에. 이해할 수 없는 신비와 납득 못 할 환상? 넉넉히 받아줄 수 있는 불손한 앙탈일 뿐이다. 그런데 최근 꿈자리도 뒤숭숭하고 어쩐지 뭔가 갑자기 나타날 것만 같은 예감은 또 뭐지? 그러지 말고 점집에나 가볼까! 가지 말자. 혹시 모르는 막후의 비밀스러운 음모, 다 드라마 속 얘기니까. 나는 결국 사랑의 패자다. 그런데 밀애의 행운을 어떻게 수소문하겠나. 혹 있을지 모를 어복은 생각도 않는 게 좋다>





    8

    어느 날 나는 왠지 모든 게 싫증났다. 무력감한테 당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어떻게 권태는 져줄 줄을 모르는 걸까. 지적 허영심도 바닥났다. 자기 합리화가 뭔지도 모른다. 그런데 허세를 어떻게 아나. 내가 뭐 잘났다고 투덜거리겠나. 이거 혹시 번아웃 증후군? 그래서 나는 기분 전환을 핑계로 잠깐 드라이브나 하고 오기로 했다. 
    장면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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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호 대기 중! 뭐야? 옆에 오픈카가 서 있는데...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얼굴이네? 
   「그대여 얼굴을 들라!」
    라는 대사부터 떠올랐다. 아니 야 너, 당장 선그라스 벗어. 라고 명령할까도 생각해봤다. 당연히 실행하진 못했으나 뭔가 찜찜한 기분은 마침내 쟤가 누군인가를 알도록 만들었다. 걔네. 최근 잊을 만하면 나타나는 그녀. 이때 신호가 바꼈다. 그녀는 쏜살같이 앞서 나갔다. 놓칠 순 없지! 나는 곧장 추격하기 시작했다. 어느새 내 귓가에는 낭만적인 영화 OST가 들리고 있었다. 물론 가상으로 말이다. 그렇지만 그야말로 흥미진진했다. 만약 내가 저년을 잡으면 아니, 말이 심했다만 그건 다 우리가 친하다는 가정 하에 아무도 듣지 않기 때문에 하는 말이지만. 저 아리따운 숙녀를 따라잡아 오늘 우리가 커피를 마실지 뜨겁게 키스할지 몰라도 나는 일단 물어볼 것이다. 왜 자꾸 날 헷갈리게 하냐고! 근데 그건 너무 여자 같잖아? 그렇다고 다짜고짜 뺨을 때릴 수도 없지 않나. 그래? 옳지! 그녀의 가면을 벗겨야 겠다. (옷을 벗기겠단 말이 아님) 그래야 한다. 정말로 얼굴 팔리는 거 좋아하지 않는 허당처럼 팔리지 않는 허구이기 때문에 하는 말이지만. 터놓고 말해서 막말로 말해서 라는 대사마따나. 어? 그동안 그녀의 정교한 화장발에 속아줬으면 할 만큼 한 거 아닌가? 그렇지만 중요한 건 그거다. 우리는 갈 데까지 간 게 아니라는 점. 응? 마침표든 느낌표든 찍어야 한다는 거. 하긴 살면서 장미 가시에 이 정도 찔려봤으면 그만해도 될 것이다. 게다가 장미만 꽃인가? 튤립은 일단 가시가 없다. 알고 보면 이름 모를 꽃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데. 심지어, 아니 어떻게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정말 조금만 더 힘을 내면 그녀를 따라잡을 거 같은데.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저 예쁜 천도복숭아를 따먹든 나쁘지 않은 능금을 정복하든.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마침내 나는 그녀를 놓쳤다. 대략 한 30분에서 1시간 정도 따라갔나? 모르겠다. 근데 여기는 어디지? 뭐야! 여긴 영화에서나 봤던 사막이잖아? 내가 알기로는 이 근방에 이런 장소는 없었는데. 있을 수가 없는데. 어떻게 된 거지? 그녀야 나중 오다가다 보면 보는 거고, 못 보면 마는 건데. 허나 그건 여기서 무사히 탈출한다는 가정 하에 나중 생각해도 늦지 않을 텐데. 어떡하지? 그때 갑자기. 저쪽에서 아프리카 개떼들이 떼거지로 이동하는 게 보였다. 무슨 철새들 이동도 아니고 양떼 무리들 대이동도 아닌데 저건 또 뭐야? 그때 또 갑자기! 
    저쪽에서 뚜껑 없는 차가 내 쪽으로 맹렬히 질주해오고 있었다. 다가온다 다가온다. 내게 온다 내게 온다. 그럼 이제 우리는 우리는, 아니. 그게 아니라. 다시 말해 오픈카는 엄청 빠른 속도로 내 앞을 지나갔고 그녀를 쫓는 차도 지나갔다. 이제 보니 뚜껑 없는 차를 모는 사람은 그녀였다. 그리고 그 뒤를 쫓는 사람은 다름 아니라 나였다. 그럼 나는 4차원으로 튕겨나간 건가? 밑도 끝도 없이 어떻게 내가 유령이야! 드라마에서라면 나는 쟤들을 쫓아가야 한다. 그래야 개연성은 흥분과 눈꼽 만큼일지라도 감동을 불러오니까. 그러다 저속한 표현대로 반전이 얻어걸리든 아니면 누군가 만만한 구멍을 조지든지, 그도 아니면 개구멍부터 쥐구멍까지 이야기를 풀어갈 방법은 많다. 그렇지만 나는 드라마의 주인공이 아님. 그런데 내가 영화를 왜 찍어? 기름값 아깝다. 따라가기도 귀찮다. 심지어 만약 내가 쟤들을 잡는다 해도 걔들도 순순히 내게 항복하진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잘 타일러서 녀석들을 감화시킨다고 할지라도 초정밀 마스크를 벗기면 엉뚱한 조연들일 게 뻔하다. 따라서 나는 녀석들의 속임수에 걸려들지 않는 게 상책일 따름. 근데 대체 여기는 어디지? 아, 우리들이 진행했던 방향과 빗대어 저쪽에 무지개가 보이는구나. 저쪽까지 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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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10분 가다가 포기했다. 마음이 바꼈으니까. 우리는 변심에게 그토록 매정하지 않다. 우리가 괜히 여심을 들었다 놨다 하는 건 아니거든. 그런데 웬 사막에 요트가 보이고, 테트라포트 중소형과 대형까지. 또 몇몇 선박. 나룻배. 파라솔. 버려진 수영복. 튜브. 설마 여기가 바다였나? 아니면 유원지 호수인데 지금 극심한 가뭄이라서 물이 빠진 건가? 그때 저쪽에 모텔이 보였다. CROWN MOTEL! 나 혼자 저기 숙박할 일은 없다만. 뭐 저기 가면 바에서 콜라 한잔을 마시든지, 아니면 카페에서 잠시 쉬어가든 할 수 있겠지. 그래서 그쪽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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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에 착석. 손님으로 여자 2명과 남자 1명. 그럼... 내가 쫓던 여자. 그리고 내가 추격을 포기한 다음 내 앞을 지나갔던 남녀 1조. 그럼 얘네가 걔들이잖아? 처음 바에 들어왔을 땐 보사노바, 재즈, 유행가, 아카펠라... 괜찮았는데. 갑자기 음악이 바꼈다. Handel / DIXIT DOMINUS, HWV 232 뭐지? 기분이 왜 이래!  근데 쟤들이 나를 알아보고서 아까 왜 쫓아왔냐고 추궁하면 어떡하지? 
   「형씨. 이 누추한 곳까지는 웬일이시오?」
   「네?」
   「보자마자 형 동생 하잔 말은 아니니 안심하시오. 그렇지만 인적 드문 곳에서 몇 마디 말 섞는 거도 다 사는 재미 아니겠소.」
   「아, 저는 그냥 바람 쐬러 드라이브를 하다 보니 어쩌다가...」
   「그럼 딱히 목적 없이 오셨단 얘긴데. 오면서 누가 돌아가라 얘기 안 합디까?」
   「네? 인심 좋던 걸요 뭘.」
   「그럼 눌러 사시는 건 어떻소? 왜냐하면 백 년에 한 번 지옥문이 열리는 때를 빼곤 여기서 나갈 수 없기 때문이라오. 정 붙이고 살면 다 살만 하다오. 허허허.」
   「네? 제가 지옥에서 온 머리 셋 달린 개라구요?」
   「거 형씨 유머가 참 남 다른 게 인상적이군요. 허허허.」
   「그런데 여긴 어디죠?」
   「여기요? 여긴 알라스카라오.」
   「알라스카요? 알라스카는... 저는 연어가 아닙니다.」
   「그럼 뭐 우리는 그리즐리 곰으로 보이오?」
   「제 말은 그게 아니라,」
   「정말이오. 알라스카.」
   「네?」
    그때 저 양반 옆에 있던 숙녀들은 둘이 가위바위보를 했다. 마치 이긴 사람이 나를 차지하는 행운을 얻기 위해서인 듯. 
   「아저씨는 여기 사신지 오래되셨소?」
   「저 말이오? 저는 여기서 태어나서 지금까지. 정말로 하는 얘긴데 여기 사시는 건 어떻소?」
   「좋소.」
   「거 호쾌하시구만. 허허허.」
   「그런데 난 돈이 없어요.」
   「그야 있다가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게 다 돈 아니겠소?」
   「형씨는 철학자시군요.」
   「내가요? 그럼 그대는 혹시 영화감독이오?」
   「네.」
   「정말이오?」
   「아마추어입니다.」
   「그게 어디요. 허허허. 그럼 우리도 찍어주실 수 있소? 우리 셋 멜로드라마는 어떻소, 그림 나오요? 에로...도 생각이 없진 않소. 허허허.」
   「」
   「뭐라고?」
    그들은 생필품 운반선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바텐더까지 모두 그쪽으로 가려고 했다.
   「아, 아까 어떻게 돌아갈 수 있냐고 물었지요? (북쪽을 가르키며) 저쪽으로는 산을, 여기서 산은 고만고만한 언덕이 아니라 산맥을 뜻하오. 산을 한 대여섯 개 넘어서 쇄빙선을 타고 떠나면 되오. 그리고 저쪽은 길이 없소. 그리고 반대쪽은 절벽에다가 풍수지리학적으로 여긴 요새 중의 요새라오. 지금 정신이 살짝 아리송 하시죠? 극너 남아메리카 축구 대회에서 막 고산지대 원정경기에서 맥을 못 추는 증상과 비슷하다오. 곧 적응되실 테니 걱정 마시오. 허허허. 그럼 우리는 삐삐차가 와서 거기 갔다와야 하니 잠깐 헤어지는 걸로 합시다. 아, 형씨도 같이 가면 어떻겠소?」
    그렇게 나는 그들을 따라갔고 잠시 후 웬만한 도시 크기의 원반형 우주선을 코앞에서 보게 되었다. 
    나는 정신을 잃지 않으려고 했는데 웬 초음파, 원적외선, 오로라 가시광선, 무진동 바람소리, 잔잔한 배경음악...화이트소음인지 뭔지. 기타 등등 분위기를 비롯해 몇몇 환경으로 인해 나는 정신을 잃고 쓰러지게 되었다. 





    9

    나는 CROWN MOTEL에 갖혔다. 처음에는 단지 풍습에 따라 외지인 어쩌고저쩌고 그런 통과의례인 줄 알았다. 그런데 나중 알고 봤더니 관여한 부족들이 꽤나 많았다. 그래서 알라스카족은 내게 경전을 써달라고 부탁했다. 저번에 나랑 대화한 알라스카인은 그 모두를 내게 통역해주었다. 또 필요한 물품에 관해 내게 쪽지를 받든가, 감옥 면회처럼 1주일에 한두 번 매면 면회는 그 남자와만 가능했다. (조용조용히) 지금이니까 또 우리끼리니까 하는 말인데 저번 바에서 봤던 2명 여인. 그 숙녀들이 조용히 밤 중에 또는 새벽에 내 숙소에 왔다 가곤 했다. 그리고 다음으로 인디언족은 인문교양서를 요구했다. 그런데 내용은 무엇에 관해서? 
    1922년 이집트에서 고대의 파라오 투탕카멘의 무덤 발굴 당시, 직간접 인원 약 2만명 됐나? 그 가운데 나중 자연사 또는 의문사 비율 몇 퍼센트. 그건 버뮤다 삼각지대처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다 쳐도. 투탕카멘? 이집트 신왕국 제18대 왕조 제13대 파라오! 재위기간은 기원전 1333년부터 1323년으로 추정. 크고 작은 약 1,300여점 유물들 보면 황금빛에 눈이 돌아갈 수 밖에 없는데. 캬~ 기가 막힘. 응? 끝장! 또 기자의 대피라미드! 이집트 카이로에 있는 대피라미드로 건립 연대는 기원전 2500년대. 중력계나 전자파 레이다, 비파괴 엑스선 기타 등등 특수 장비로 탐지하지 못했던 비밀들 아직도 그 끝을 잘 모르는데. 이집트에서 3,500년 전 미라와 4,400년 전 무덤이 발굴되는 건 보통에 불과한데. 그와 같은 세계 7대 불가사의 외에도 기원전 246년에서 208년까지 38년간 공사했던 진시황릉. 또 멕시코 유적들. 그리고 백제왕과 신라왕릉들, 이집트에 비할 바는 못돼지만 지금으로부터 1,500년 전 묻혔던 당시에 정황이 어땠는지... 지금을 흡사 예상이나 했다는 듯이. 옛날 사람 뿐만 아니라... 통과. 그런데 왜... BC 660년에 있지도 않았던 일들을 억지로 연결해서 가짜 귀신이자 현인신까지 만들고. 계보가 몽땅...자기 밖에 모르는 아마존 원시부족에 대해 연구서 써달라는 청탁. 처녀분과 도굴분의 차이 등등. 나는 여기까지 와서도 일복에 시달렸던 것이다. 간략히 무슨 내용인가 들여다보자면 다음과 같다. 





    10

    이집트의 스핑크스. 기원전 그리스 제국이 몇 백년, 기원전 그리스 제국과 기원후 로마 제국까지. 유럽에 즐비한 그리스-로마 유적과 그 영향을 받은 흔적들. (가까운 역사로 넘어와서는 합스부르크 왕조가 프랑스를 제외한 전유럽을 600년 동안 쥐락펴락) 페르시아 제국들을 살펴보면 메디아는 기원전 728년 - 기원전 550년까지. 다음으로 아케메네스 왕조는 기원전 550년부터 기원전 330년까지. 그게 진짜 기원전인데. 그럼 가짜 기원전도 있다? 일본 천황가 계보를 다 가짜로 날조했으니 전국에 쫙 깔린 신사들 안내판들은 몽땅 가짜 기원전 기원전...!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굴 두껍기 대회 1인자이므로 Ctrl+C / Ctrl+V! (절레절레) 저 예시들은 모두 진짜 기원전, 천황가 초대신은 가짜 기원전! 천황도 가짜 현인신, 그렇지만 천황 폐하 만세 만세 전통. 인도네시아 훈제족 / 북부 태평양의 인소바비 족 / 코로와이족 / 중앙고산지대의 다니족 / 아프리키 피그미족 / 바누아투 원주민...... 코코넛 전쟁 등등. 진짜와 가짜는 너무 비교됨. 우리는 더글라스 맥아더를 슈퍼스타로 떠받들어 공경하며 사랑했는데, 너네는 왜 우리처럼 신사참배하며 천황을 존경하지 않냐? 최소한 전에는 잘 하더구만 뭘! 점령군 사령관 더글라스 맥아더는 천황 제도를 살려주었던 건 다 사람 대 사람이니까 그랬던 거고. 반대로 大일본제국이 조선 전국민 이름을 바꾸고, 전국민을 신사참배시키며, 전국민을 군함도를 비롯해 노예로 전락시킨 건 사람 VS 혐오곤충이기 때문. 그래서 더글라스 맥아더는 천황과 우정을 나눈 반면, 조선의 왕비는 발가벗겨져 불태워죽임. (정확히는 칼로 베어 1차로 죽인 다음 태워서 2차로 죽임. 또 관련 지식으로 명성왕후는 부모묘던가 조상묘를 28년 동안 4번을 옮김. 즉 평균 7년에 1번씩 최상의 묘터를 찾아 계속 옮겼는데 후대의 최후는 참극으로 결론남) 그러니까 더글라스 맥아더는 경제도 부흥시켜주고 일본어도 자유롭게, 반면 한국어 폐지는 물론 민족 말살정책. 다 사람 대접 해주면 안되니까. 일본은 다 서구사회와 동격이기 때문에 일본어를 폐지시키지 않았음. 일본은 아시아의 유일한 유럽이기 때문에, 연합군은 일본 전국민의 성씨 개명을 시도는 물론 생각조차 않았음. 다만 천황의 부인 즉 황후, 그 황후의 아버지던가...가 전범으로 사형당한 건 유감. (그 때문에 황족의 범위도 대폭 축소된 것임) 물론 엑셀파일도 유감이면 끝난 거지 더럽게 짜증냄. 단! 원자폭탄 얻어맞은 건 원래 전쟁이란 그런 것일 뿐에서 딱 예외.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에 몇몇이 해당할지 아니면 SF 드라마들 내용을 피타고라스 원리, 수학 방정식, 상대성 원리처럼 딱 공식에 따라 단죄할지. 나중 올라가보면 알게 됨. 그러나 야만인들은 아무리 힌트를 줘도 줘도 모름. (오히려 악용 / 적반하장 / 날조 / 왜곡 / 거꾸로 / 야만......) 아니, 왜? 무조건 자기들만 옳기 때문. 듣기 없이 말하기 밖에 모르는 이치. 들어도 이해해도 교양은 싫음. 악녀의 인생을 찬미해주고, 관심 가져주고, 칭찬해주기만 바람. 만약 AD 700년 기기(고사기+일본서기) 집필 준비 기간에 그리스 로마 문명, 멕시코 등 세계 유산들, 이집트 기원전 문명을 알았다면. 만약 그랬다면 일본 초대신으로 기원전 660년으로 설정했을 리 없음. 아마도 0을 하나 더 붙여 기원전 6660년으로 했겠지. 그런데 그건 뻥이고 투탕카멘과 미라들과 피라미드는 진짜인데 이걸 어쩌나... 철면피 그래 봐야 꿈쩍도 않음. 더 뻔뻔해짐. 더 독해짐. 결국 이게 바로 문명과 야만의 차이점이다. 
    (A) 일본 ↗: 삼광작전/조선왕비능멸/강간/대량학살/인종청소/언어말살/창씨개명/관공서처럼 전쟁성노예
    (B) 일본 ↘:            /천황기사회생/                                                        /관공서처럼 전후성노예 운영(미군부대를 위한 공무원)
    여기서 정반대로 극명히 대비되나, 대비되지 않은가? (A) 일본 ↗에서는 야만성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B) 일본 ↘에서는 문명성을 여지없이 대우받음. 동그라미(○) 바깥으로는 야만, 동그라미(○) 안쪽에게는 문명 대우해달라. 만약 유럽으로 인식해주지 않으면? 하와이 진주만 기습과 동남아시아 묵사발. 호주와 캐나다 일부도 묵사발. 가능하다면 전세계인의 천황 숭배가 목적! 물론 1차 시도에서 짜릿함을 참 오래도록 맛 봤기 때문에 늑대새끼는 죽어도 피 맛을 잊을 수 없음. 아시겠소? 야생동물에게 어떻게 문명의 굴레를 뒤집어 씌울 수 있는지 (절레절레)! 그럼 시선을 돌려 유럽사를 놓고 봤을 때 자국민 혁명에 의해 군주제가 종료된 예시는 빼놓고. 타국 군대에 의해 자국 왕과 왕비와 그 일가가 몰살된 예는 많을까 적을까! 진짜 조물주라는데 알고 봤더니 짝퉁이요 괴상한 사이비 종교. 교주도 다 뻥인데도 불구하고 Ctrl+C, V 해서 최신판이 그대로 교주 행세. 교서 즉 경전은 있나? 없음. 신도라는 종교도 다 짜집기. 초대 교주도 다 뻥. 초대부터 10대까지는 소설이고 제일 윗대와 상당 부분 모든 것은 다 옆동네 일색. 그래서 결국 1500년 내내 신분세탁, 역사왜곡. (A)는 전쟁이란 원래 그런 것일 뿐 유감스러우면 그뿐이요 지나가면 그만. 희망찬 내일로 나아가면 그만이지 뭔 말이 많아. 반면 (B)는 야만인이 문명인 대접을 받다보니 눈에 뵈는 게 없음. 정말로 멜로드라마 시점에서 보자면 눈에 뵈는 게 없는 치정극. 막장드라마. 사극.
   앞서 "A는 밖으로 야만성 뽐냄, B는 안으로 문명성 존중받음" 라는 중요한 얘기가 나왔는데. 그 때문에 속된 말로 기고만장이란 얘기가 절대로 아니다. 거기서 오해하면 죽도 밥도 안됨. 만인이 거기서 오랑우탄과 고릴라를 이해하지 못하니까 그래서 칼럼이 길어지는 것임! 즉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감정적으로 따질 사안은 절대 아님. 냉철한 이성으로 판단컨대 원시부족 습성이 원래 그럴 뿐! 비감정적 관습 + 비인간적 문화 = 답은 뭐다? 원시부족 야만성! 그러니까 밖으로 야만성 무참히 과시, 안으로 문명성 대우 톡톡히 그 때문에 그런 게 아니라. 그게 아니라 현지 학자들 말하기로 탈도덕 즉 부도덕, 비윤리, 살쾡이 기질과 완벽히 일치한다고 보면 됨. 즉 문명성 대우를 받았기에 그 정도에 그쳤지 야만성 잔치와 축제를 벌였던 걸 똑같이 거울로 되갚아줬다면 다른 원시부족처럼 멸종. 실제 사이판과 괌에서 몽땅 떼죽음 또는 마지막 1명까지 자결. 오키나와 떼죽음. 그게 다 천황폐하를 위해서, 근데 나중 오키나와를 비롯해 죄다 천황한테 뒤통수 맞음. 해군함은 떠다니는 육지이기 때문에 무조건 상시 국기를 걸어야 하는데, 전시니까 당연히 일장기+욱일기! 그 깃발이 가라앉게 생겼는데 항공모함 가라앉는 동안 항공모함 전부대원 갑판으로 부대 차리엿, 천황폐하 만세~! 단 1명도 도망가지 않고 그 상태로 천황폐하를 위해서 당당히 죽겠다며 실행. 살아서는 천황폐하를 위해서, 죽어서는 야스쿠니 신사에 묻힐 수 있다! 금메달처럼 승전보에 전국이 들썩들썩 으쌰으쌰. 근데 나중 천황한테 뒤통수 맞음. 책임자는 아무도 없고 거의 다 면책. 오히려 피해자로 탈바꿈. 절레절레! 교양권 기준으로 문명인일 수 없는 이치. 딱 불가능. 이래서 자기 밖에 모름. 뒤통수? 아직 시작도 안 했음. 지금보다 억조배 더 고급스럽게 길게...길게...! 뒤끝으로 그 누구도 따라갈 수 없음. 1500년 내내 앙심 품었으니까 기원전 기원전 영원히 그럴 거라는 점. 또 망언? 엑셀파일 슈퍼데이터조차 천문학적으로 계속될 전망. 물론 그게 현지 기준으로 절대로 나쁜 것도 아님. 고로 아돌프 히틀러가 제대로 꿰뚫어봤음. 이를 테면 종 자체가 다른데 말이 어떻게 통해? 안 통함. 그래서 다음 칼럼 개봉 박두!
    개봉 박두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당시 모든 게 천황 허락과 직인에 따라 군국주의는 실행됐는데. 단순히 천황만 77년 중후반부 내내 언제나 군복입고 지휘했으면서, 이상하게 천황의 장인어른은 사형당하고 천황은 지만 비겁하게 면책받아 인간선언하고. 나중에도 무책임이자 무병장수. 바로, 그래서 무사의 철칙 중의 철칙은 아무도 믿지 말라임. 속고 또 속고... 이용당하고 이용당하고... 그래서 <음흉함/교활함/야비함>이 기본값. 문명권에서야 그게 죄악이지만 원시부족 사회에서는 안 그러면 죽음 뿐이니까. 이러니까 세계평균을 보자면 "우리나라"라는 낱말은 공통되나 일본에서는 "우리나라"라는 말 자체가 없거나 거의 드묾. 왜? 아무도 믿으면 안되거든. 천황도 언제든 뒤통수 칠 만반의 준비, 무사가 전면에 나서 무사시대를 펼치거나, 아니면 그림자 무사가 뒤에서 조종하거나. 바로 이래서 전국민은 거의 다 겉으로만 사귐. 그래서 태생자 아니면 오래 살아도 보이지 않는 벽에 딱 막힘. 실제 애사심과 충성과 복종 지수는 놀라울 정도인데 가업을 물려받는 장인 정신은 좋은 반면, 얼토당토 않도록 기원전 660년 뻥에 대해서는 완전 진지함. 서구사회 개인주의와 겉만 봐서는 친절친절 비슷한데, 벗기면 벗길수록 괴상망측. 아무도 안 믿어! 풀 베듯 쓱. 무사 윗계급인 사무라이가 새 칼 장만하면 밖에 나가 시험삼아 쓱. 그냥 쓱. 그런데 속마음을 어떻게 말해? 아무도 안 믿음. 일본사에서 칼 수집이 크게는 3번 작게는..넘어가고. 그래서 일본사를 보면 180도 전환이 틈틈히 발생. 이걸로 보자면 세계 평균의 혁명과 비슷해보이지만 오직 겉만 비슷할 뿐. 그러니까 앞에서는 천황을 신격화요 천황교 신봉일지라도 일본인이 존경하는 위인 1위는 탈번해서 일본 체계를 개혁했던 인물. 그러므로 언젠가 사극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다 함께 빨간불을 건너갈지도 모를 일.
    우리 주위를 둘러봤을 때 사교계든지 친구든지, 통상 살면서 너나 나나 상식과 교양이 일치하나? 요컨대 대체로! 그럼 세계 평균과 다르다면? 너와 나 사람들의 지식에 대한 의견과 감정과 판단 등에 대해서, 대체로
    도표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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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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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식                같음       다름
타인                앎         모름
언행                솔직      겉마음 (가식/위선/착한 척/떠보기/간보기/.../기본은 겉마음/속마음√은 본인도 모름)
마음                투명      불투명
욕                   발달     비발달
"우리나라"표현   익숙      없음/희박
국명 대체         비발달    발달
감정 표현         보통       감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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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와 같은 차이는 뭘 뜻한다? 비일본만 우수하다는 게 아니라. 그게 아니라 단지 잉글랜드&웨일즈 섬문화까지는 괜찮다만. 거긴 여왕도 독일계요 영국왕 족보를 따져도 합스부르크를 비롯해 비영국적일 수 밖에 없는데. 그래도 영국왕 계보 연구를 금지시키지도 않고, 오락산업에서 비꼬며 조롱해도 됨. 또 자발적으로 왕족이 살아남기 위해서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전 성을 갈아치웠음
    반면 일본은 초대 일본왕이 전부 다 백제왕이었음. 진씨 → 부여씨 → 사택(沙宅)씨 → ......소가, 후지와라, 미나모토, 아시카가, 도쿠가와......그러다 천황가 성씨를 없애버렸음. 왜? 현인신이기 때문에. (그래서 720년 일본서기가 거의 천황교의 교전으로 칭송됨. 그 교전에서 일본의 초대신을 귀신으로 연결시켰기 때문) 그렇게 초대 천황도 하느님이요 현천황도 하느님. 그럼 현인신의 나라는 뭐다? 신국. 또 현인신인데 인간과 결혼한다? 유럽 합스부르크 왕조 600년처럼 근친혼만 했음. 또 현인신의 나라인 신국이 미국한테 진다? 패전이란 말도 없었고, 책임도 당연히 없으며, 큰 아량 베풀어서 종료. 큰 선심 써줘서 세계평화를 이룩한 걸로! 오히려 항공모함 위에서 물 한 컵 안 줬다고 왕삐짐,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면서. 중국에서도 상대하지 않겠다 선언! 웃김, 정말 웃긴가 웃기지 않은가요? 반면 문명권인 영국은 일본과 근본부터 다른데 섬문화 특성상 비슷한 부분이 매우 많음. 예를 들면,
    국명 발달도 UK, Great Britain, ENGLAND, 웨일즈, British.... 현지인들도 모르는 사람 태반. 헷갈림. 그래도 거긴 괜찮음. 일단 국교가 문명권이고 국기도 잉글랜드는 십자가, 유니언잭도 "십자가 + X"이기 때문. 여자의 NO는 YES다? 넌센스와 농담과 진심이 구분됨. 다 가능. 
    반면 겉으로 보면 일본도 비슷 겉만 보면. 일본이라는 국명을 달리 부르는 용어, 겁나게 복잡함. 야마토, 닛폰, 니뽕, 닛폰햄, 니혼... 겁나게 복잡. 연도 표시도 겉으로는 서기를 따르는데. 이슬람교한테 천황교가 질 수 있나? 천황교는 이슬람교한테 무릎 꿇을 수 없음. 고로 신의 데뷔를 불인정. 그래서 연도도 쇼와 20년(123대 천황 재위부터 몇 년), 헤이세이 헤이세이 23년 (=서기 2011년)... 겁나게 복잡. 이분들 속마음은 전세계에서 사용하는 서기를 "현천황 재위 몇 년"으로 바꾸기를 원함. 절실히 바람. 시도 전력 있음. 성과도 훌륭. 뭘로 봐도 야만족. 이렇듯 원시부족은 최신판이 현인신이요 교주. 그래서 아주 살발함! 일단 천황부터 뒤통수는 보통이고 사회 전반적으로 뒤통수는 기본값이기 때문에, 따라서 앞에서는 간이고 쓸개고 뭐든지 다 내어줄 것처럼 수줍수줍 악의 없이 부끌부끌 친절친절. 허나 등 돌리면? 우리도 NO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극우 서적 출판. 그 후 번역 거절, 번역자 명단에서 빼버림. 이득은 취해야 하니까 고마워하면서, 울면서, 옆동네 애국가도 함께 불러주는데. 그런데 돌아가면 손가락질, 험담, 혐한 서적 앞장섬. 뭐든지 뒤통수가 기초요 기본값. 설정 자체가 뒤통수로 되어 있음. 남의 마음을 도저히 알 수 없는데, 그런데 우리나라? 그런 말 없음. 타인을 믿을 수 없는데 믿어서도 안되는데, 그런데 우리나라? 주인 바뀌면 곧바로 적응. 주군 잃은 사무라이 만큼 서러운 것도 없는데, 그런데 우리나라? 기사가 새 주인을 찾든가, 연고팀을 바꾸면 됨. (그래서 현 연고팀 일본을 우리나라라고 지칭하지 않는 것임) 또 짜증지수를 중간중간 풀기가 절대로 아님. 완전히 금기시되는 터부! 곧 인내력..참을성..끝까지 참음. 그러다 마지막에 무너짐. 폭발. 터짐. 그게 극단적으로 치다르면 야만. (이건 영국과 똑같음) 즉 문명권 문화에서 멀지 않으면 개인적으로만 오스트랄로피테쿠스던가, 아니면 중간중간 스트레스를 풀 텐데. 야만성 문화에서는 끝까지 참아서 오스트랄로피테쿠스로 돌변할 가능성은 낮을지언정 중간중간 풀지 않기 때문에, 또 원시부족 인습 때문에 제2차 세계대전 엑셀파일이 가능하게 됨. 물론 그건 자기합리화, 역사도 안 가르침. 오히려 정반대로 죄다 남 탓으로 돌려버림. 또 당한 건 뒤끝 오짐. 따라서 불리한 건 전부 다 궤변에다 억지. 그래서 가해자와 엑셀파일은 없어져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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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 한번 생각을 해봅시다. 그토록 미칠듯이 천황교를 맹신하는데 왜 "우리나라"라는 표현이 없거나 발상 자체가 그걸 허락치 않는 걸까? 여자세계 원리만 봐도 뻔함. 나 잘났다 잘난 척하면 여자들이 그걸 예쁘게 봐주나? 얼마나 꼴보기 싫은데. 그래서 겸손 겸손 겸손...나를 낮출수록 뭐 어쩐다, 신부들러리들이 알아서 칭찬해줘야 속 시원함. 그런데 "우리나라"라는 표현이 어떻게 자연스러울 수 있어? 없음. 못해. 안해. 싫거든. 잘난 척? 솔직하면 죽음. 솔직하면 사회에서 매장. 왕따돌림 각오하고서 라는 단서가 붙어야만 직언. 그 예외에 해당하는 예시 그게 180도 전환이요 탈번임. 조슈&사쓰마 파벌이 77년 90% 장악이 뭘 뜻하냐? 앞에서는 절대 복종. 굽힘. 충성. 그러나 어떻게 잘만 하면... 조용히 머리꼭대기로 올라감. 이래서 천황교는 최신판이 교주가 되어야 하고, 따라서 천황이라는 얼굴마담은 붙박이이지 않으면 안되는 이치. 일단 700년 이전은 자세히 얘기하는 걸 싫어하는 이유 분명하고, 천황교 만인의 교주인 천황가 계보의 최고 윗대도... 그런데 하필 천황이 어떤 발언을 서슴없이 한다? 아무리 천황이라도 참지 않음. 2번 경고는 없음. 그런데 "우리나라"라는 낱말이 어떻게... 종이 1장 차이는 설명하자면 한도 끝도 없음. 지금도 천황은 1년 내내 귀신한테 제사지내고 경제-정치-사회...총리 권한 위에 모든 건 천황의 직인과 임명장 수여가 있어야만 일본이 돌아감. 그 직인 무게, 크기, 모양이 특별한데 넘어가고. 이처럼 뭐든지 천황 위주인데 총리가 길게 하면 어쩌고 단명하면 무슨 소용있나. 다 필요없음. 다만 고이즈미처럼 부시한테 큰절해주면서 북한도 갔다오고 노무현한테도 굽히는 대신에, 야스쿠니 참배하는 정도만 사회지도층이 뒤에서 흐뭇해함. 나머지는 그냥 별볼일 없는 중간보스요 임시직일 뿐임. 원시부족 수장인 천황의 인생도 백분율로 따져 순위 1번은 접대, 또 2번 뭐... 황족은 총 30명 되던가... 구조도와 모든 게 투명함. 다만 막사는 황족도 있는데 사회지도층이 다 오락산업에서 걸러줌. 걸러주니까 TV는 또 원자폭탄 타령과 피해자 코스프레만 내보냄. 계속 악순환. 천황교만 신봉하던가/그냥 존중하던가/무관심이던가. 사극을 위한 최적의 조건임. 다만 최신판이 교주니까 일단 선을 넘지 않는다면 신성함이요, 선을 넘지 않기만을 바랄 뿐. 그렇게 됨. 
    털어놓고 대드는 적이 숨기는 벗보다 낫다. 근데 숨기는 적은? 느와르 영화가 괜히 재밌는 게 아니다. 우리 일본이 믿고 있는 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天照大神)가 세상에서 제일 위대한 신이므로, 뭐 하나 경배하지 않고? 전국민은 물론 전세계인의 오직 신사참배뿐 아니면 죽음. 둘 중 하나뿐. 그걸 위해 엑셀파일 통계 쑤두룩. 123대 천황 죽을 때 막 옆에서 정(正), 십(十), 사(士), 일(一) 자 쫙 옆에서 뒤에서 도와주고. 레고 머리를 리본으로 묶어서 케익상자에 담고 어쩌고. 현천황도 나중 모든 천황도 자기 아버지 시신 옆에서 목욕하고 신복으로 갈아입고 현인신 되기. 나중 그 아들도 똑같이. 무수한 제사들과 궁내청만 지낼 수 있는 정기 제사들에서 우주신임을 꼬박꼬박 확인. 단, 전세계에서 황제라 불러주기는 하는데 단지 그뿐. 그 뿐만이 아니라 Ctrl+C / Ctrl+V, 부수고 다시 짓고, 하늘에 제사지내고...? 현천황 = 현인신! 무슨 짝퉁 명품 옷, 시계와 판박이야? 여담이 길었다만 여기서 줄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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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도 CROWN MOTEL 생활이 썩 나쁘지는 않았다. 불쾌하지도 않고. 상당히 쾌적. 별 3개~4개 정도 호텔급. 부족한 것도 없고. 다만 자유롭지 못한 대신 누릴 수 있는 게 많긴 한데. 굳이 날 덥거나 추운데 바깥으로 나갈 필요 있을까? 나는 이제 CROWN MOTEL에서 벗어나기 싫어졌다. 나가봐야 금방 싫증날 거도 충분히 예상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톰(내가 붙여준 별명)과 연락이 되질 않아 망원경으로 밖을 살폈다. 그런데 원시인이랄지 원주민 등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에 웬 돼지들과 양떼들만 보였다. 물론 아프리카 개떼들도 보였다. 그래서 느낌 세하길래 혹시 몰라 모텔 문을 열어봤는데 어머 열리네? 그런데 이거 정말 나가야 돼 말아야 돼! 고민인데. 그래도 용기 내서 나갔다. 나가보니 괜찮았다. 다음으로 주차장에 있는 내 차가 궁금했기 때문에 그곳으로 가봤다. 
    장면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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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탈까, 말까? 탔다. 그렇게 그곳을 탈출했다. 얼마나 간지 모르겠다. 한 2시간 운전했나? 나갈 수 있는데 무슨 산맥을 몇 개 넘고 막혀 있고 그거 다 거짓말이었잖아? 아, 저기에 안내판이 보였다. 헤비메탈 페스티발! 저거만 잠깐 구경하다가 집으로 돌아가면 되겠네. 그렇게 헤비메탈 페스티발 장소에 도착. 구경꾼들은 별로 없었다. 그러다 나는 크라운 모텔 바에서 봤던 3인방을 보게 되었다. 쟤들이 왜 저기... 날 쫓아오면 어떡하지? 나는 조용히 그곳을 빠져나왔다. 일단 여기까지가 간략한 줄거리고. 지금은 차마 밝힐 수 없다만 또 비화가 있다. 아무한테나 팔 수 없는 얼굴이 기원전 언제적 투탕카멘 어쩌고저쩌고인 것처럼. 한정판이라는 게 또 있거든. 그 숨겨진 이야기가 설마 몰래한 사랑? 그건 너무 일찍 말하면 나 뭐 먹고 살게! 그래서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됐어? 잠 좀 자자. 개 좀 그만 짓게 해라. 오빠 달려? 쉬어야 또 달릴 거 아닌가. 뭐 오빠가 아니라 토끼? 하긴 플레이보이의 상징이 토끼니까. 





    12

    멜로드라마가 묘사하는 사랑을 액면 그대로 믿을 수는 없다. 동시에 짝사랑 받기를 마다할 수야 있나. 그런데 아무도 내게 말을 걸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공포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에 간다. 그럼 그는 벌써 사랑의 시로써 여심을 설득시키기를 포기했다는 건데. 참 납득하기 힘든 녀석이군. 그래 봐야 환상기계는 복원하기 힘들었다. 대안으로 잔치를 생각했는데 초대장은 구경도 못해봤으니. 약속없음은 참으로 감탄할 지경. 하긴 어쩌면 진한 사랑을 꿈꾸는 것부터 부적절할 수도 있다. 하오나 벌이 꽃을 좋아하는 게 죄는 아니다. 결국 그렇게 NB는 추접스러운 낭만주의자임을 인정할 것인가? 불인정하니까 자꾸 예술가에서 삼류 허당으로 변신하는 거겠지. 왜 아니겠어. 구태여 이런 사실까지 알려드려도 되나, 굳이 이런 말까지 꼭 해야 하나... 차마 하지 않으려고 했으나. 우리끼리니까 하는 얘기지만. 멋쩍은 듯 그것도 모자라.. 쉿! 됐다. 재미없으니까. 심심하다보면 언젠가 정신차릴 것이다. 그러다 혹시 우선 저질러놓고 보는 게 사랑이다 라는 사랑론을 쓰면 어쩌나. 허나 힘빠졌다. 지쳤어. 지가 무슨 아르키메데스도 투키디네스도 플라톤도 아니고 말이지. 그 때문에 그는 냉철한 이성에 따라 오락산업을 질투하지 않기로 했다. 즉 소소한 행복에 만족하는 걸로. 그런데 문제는 험담가 자격이야 예전에 박탈당했을지언정 조롱의 재능이 물거품처럼 사라졌다는 거. 그래? 그러든가 말든가! 관심없어. 그게 뭔 소용인데? 필요없다고. 어쨌든 그래가지고 어떻게 모든 여자의 마음을 빨아들이겠어. 그런 의미에서 못생긴 여자와 연애나 해볼까? ~라고 설마 생각하는 건 아닌가 몰라. 예쁜 숙녀에게 공식적인 구애를 할 바에야 차라리...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기고 말겠다. 한편 난봉꾼을 대만족시키는 첫인상은 좀처럼 보기 드물었는데. 왜냐하면 죄다 마스크를 쓰고 다니기 때문.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는 동생들은 틈틈히 그를 찾아왔다. 이따금 전화했다. 오빠 제발 한번만 만나주세요 데이트 딱 1번만 해주시면 다시는 귀찮게 하지 않을께요! ~라면서 말이다. 그런데 그건 사실일까 그의 공상일까? 그게 지금 왜 궁금하나. 그러다 오늘은 어떤 칼럼을 쓸까 고민하면서 그는 동네 카페로 향했다. 아마도 왠지 모르게 호감가는 웨이트레스를 보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물론 먼발치서 안 그런 척하면서 말이다. 허나 수상쩍은 눈빛에 민감한 그녀는 미리 눈치채고 아르바이트를 그만 둠. 그런다고 NB가 마음의 상처를 받을 인물인가? 그럴 리 있겠나. 세상은 넓다. 미인은 많다. 꽃은 지고 또 시드는 법. 사랑은 요술도 아니고 여자가 벼슬일 리도 없다. 대타도 화려하다. 멋쟁이들 계속 대기중이다. 그런데 왜 내 선수진만 두텁지 않지? 그렇게 덕망은 멀어져만 간다는 건데. 고로 우리는 이미 늙어버린 걸까? 그 우리에서 제발 나는 빼달라는 외침, 듣지 않고도 귀청 따가울 지경. 그러니까 단물 빠진 개뼈다귀를 쳐다보지 않는 똥개 심정 같은 얘기 그만 좀 하자니까 증말! 아니 진짜 우리가 난봉꾼에게 마음을 빼앗겨버린 숙녀의 인생까지 걱정해야 하나? 우리는 그렇게 한가하지 않음. 한편 오늘도 녀석은 퇴근길에 낯선 여인에게 첫눈에 반해버리는데. 그럼 그녀도 동등하게 NB에게 홀딱 반했냐? 그러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던 어느 날 옛사랑이 날 찾아왔다, 그런 건 일일드라마에서도 썩 애용하지 않는 설정. 이거 이거 그러고보니 녀석은 유행지난지 한참된 복고풍 같은 남자구만. 고전주의 좋아하시네. 다 들통났어. 호색한에다 색정꾼이라고. 말이 심했다만 농담마저 남발할 기회가 없는 이때. 그는 하다 하다 스타벅스에 취직하려고 도전했는데. 거긴 뭐 아무나 뽑아주나? 당연히 낙방. 인생이 노잼. 지적 허영심이라는 순풍에 힙입어 칼럼 남발하며 그나마 입에 풀칠이라도 했는데. 이젠 일감마저 싹 끊겨버림. 그는 슬슬 전업을 해야 하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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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역사학 3

from 칼럼 2021. 7. 15. 22:59

    1

    A: (고대) 일본 천황은 백제인이다.
    B: 여자는 남자한테 잘보이기 위해서(만) 화장을 한다. 
    A&B에서 괄호를 빼고 읽으면 어떻게 될까? 여자들이 B문장을 듣고 일부(?)가 발끈하듯이, 또 누군가는 A 문장에서 생략된 게 뭔지 알면서도 흥분한다. 반면 다혈질이 정작 중요한 일은 외면한 채 (몸짓) 요만~한 일애만 분개! 역사왜곡은 관심도 없어. 국민세뇌의 대가는 나중 어떻게 부메랑이되어 돌아올지 생각해 볼 수 있나? 못한다. 왜냐하면 하냐 마냐에 앞서 사고체계가 원시부족처럼 작동하기 때문. 보아하니 과거 왜 북미 산업계에서 일본 주식회사라며 조롱했을까? 그게 다 원시부족 문화, 관습, 관례, 습성 때문 아닌가. 이 세상에 사이비 종교국이면서 잘사는 나라, 그런데 역사 관계된 것 만큼은 날조와 거짓만 통용되는 나라가 있나? 많을까? 딱 1개 빼고는 없다. 곧 국교 = 천황교 = 사비비 종교 = 교황 = 교주 = 천황! 그런데 Ctrl+C  Ctrl+V는 뭐다? 최신판에 열광. 따라서 現직위는 최초직과 동일하게 되기 때문에, 고로 現천황은 곧 천황교 교주인 것. 아닌가? 그래서, 바로 이 때문에 그분들께서는 역사에 그렇게나 민감한 것이다. 
    전세계 성씨야 문명의 흐름과 거의 비슷하다. 체코 성씨 1-2-3위, 브라질 성씨 10~20위, 퀘벡 성씨 기원. 또 서유럽 지명과 일상 낱말들 어원 분석. 그걸 알고보니 어떻다 라는 배경지식은 공통적이다. 지성도 일반적이다. 상식도 너와 나 아는 게 썩 다르지 않다. 그런데 왜 누구한테 그렇게 칼럼을 많이 쓰라고 할까? 불리한 부분만 관계됐다 싶으면 전국민을 세뇌시켜서 좀비로 만들어버리니까. 가까운 역사에서 속으로는 우월감, 겉으로는 착한 척 또는 외면. 먼 역사에서는 속으로는 열등감, 겉으로는 왜곡해서 불리한 거 아무한테도 안 가르쳐. 숨겨. 거꾸로 우겨. 바꿔. 예를 들어 한국 성씨 대부분이 중국으로부터 유래했다는 사실, 누가 불인정하나? 아니다. 인정! 사실은 사실. 내국어 즉 말은 있어도 그 말을 종이에 옮길 문자가 없던 시절, 다 아는 일반상식일 뿐. 또 현-중국의 최동쪽 일부를 옛날 백제가, 만주 일대를 한동안 고구려가. 허나 말은 자국어일지언정, 그 말을 문자로 옮길 수 있는 언어는 없던 상태였으므로 중국어(한자)를 사용했다는 점. 하나도 창피하지도 않고 오직 사실일 뿐. 그런데 그와 같은 상식과 교양이 일절 통하지 않는 그 어떤 신비로운 동네가 아마 있다지? 대체 그곳은 어디일까! 누가 한국 몇 대 몇 대 대통령이 중국 성씨가 기원이라고 하면, 얼마든지 OK. 왜? 사실이니까. 허나 한국 대통령은 한국인. 반면 일본 총리도 일본인 천황도 일본인. 다만 일본 지명, 단어, 성씨 상당수는 대륙과 반도계. 천황 역시나! 그러나 그걸 알면서도 발끈.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사실 위주로 잘못된 걸 바로잡기 위해서 A에서 괄호를 떼고 책 제목으로 정할 수는 있다. 허나 잘못된 걸 바로잡을 근거도 없는데, 옆동네 혐오산업이 발전한 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 둘의 차이를 정말 모르겠나? 인정 불인정의 문제가 아닌 게 지식이고 역사며 사실인데. 언어학, 고고학, 역사학, 인류학...뭘로 봐도 사실인데 전국민한테 거짓만 가르킨다라, 이게 대체 뭐지? 
    사고체계가 구시대적이면 문명인의 상식에서 멀어질 수 밖에 없다. 일본계 페루인이 페루에서 대통령 됐을 때 일본은 전폭적인 지지를 했다더라? 뭐가 사실인지는 잘 모르겠다만. 일본과 페루는 지구 정반대편에 위치한 나라로써 상호 얽힌 배경이 거의 없다. 그런데 그것을 비유해서 한국 성씨들은 중국 기원이기 때문에 모두 중국인이다? 무슨 논리가 그런가. 그럼 그런 비약에 따르자면 독일 + 이스라엘 = (결혼해서 자녀를 낳아) 2세가 이스라엘 총리를 해도 된단 말이네? 구시대적 사고체계가 그렇다. 바보도 그런 바보가 없겠지. 무슨 북미에서 피부색 다른 대통령이 최초 탄생했다 해서 뭐 금새~ 이 세상이 아름다워질 줄 아시나 보지? 천만의 말씀. 응? 아직 멀었다. 가능하기도 어렵다. 그걸 대체 누가 모를까. 이게 뭐냐? 착한 척이다! 다른 게 아니라 바로 이게 위선이다. 차라리 솔직하게 말하고, 가식적이지 않는 게 낫다. 즉 진담과 농담을 구분하듯이, 숲과 나무도 가릴 줄 알아야 한다 그 말이다. 가짜로 상대방 기분 좋으라고 하는 말과 진짜로 호감에 바탕한 칭찬을 누가 구분 못하나. (남자가) A 문장을 읽으면 왜 그런 문장이 발생했는지 배경지식 뻔히 알면서, 여자들만 B 문장에 너무 과도하게 예민하다고 조롱한다? 말이 안된다. 그건 고추를 달고 살 자격이 없는 일! 더군다나 그런 억지스러운 착한 척을 다 큰 어른이, 심지어 한국어 사용자가 말이다. 그러니까 보수가 뭔지도 헷갈리지. 한국만 봐도 몽고와 중국의 DNA가 수도 없이 섞였다는 점 어찌 부인하겠나. 막 북방계 남방계, 다만 전체적인 맥락을 알아야지 맥락을! 역사만 봐도 (일시적으로 또 때때로, 오직 엑셀표에 근거하여) 몽고+한국=한국 왕가. 중국+한국=한국 왕가. 그게 역사. 부정 안해! 근데 누군가는 대체 왜? 원시부족이니까. 이러니까 구시대적 사고체계랑은 말이 통할 래야 통할 수가 없다. 한국도 1000년 전에는 딱 그랬다. 중국 황제 취임식에 사신을 보냈는데, 저번에 그 얘기 했네. 사고체계들이 죄다 봉건적이니까 그땐 그럴 수 밖에 없었다고 치더라고. 지금 세상에도 그런다? 그게 말이 되나 말이! 편 들어줄 게 있고 이해해 줄 사안이 따로 있지. 무슨 상식이 꼬마들께서 씹다 버린 풍선껌인가? 아니면 길바닥에 버려진 콜라캔인가! 무슨 교양이 떼쓰고 우기고 내 꺼는 내 꺼 늬 꺼도 내 꺼라는 (속된 말로) 땡깡인가? 도대체 어떤 사고체계면 칼럼을 써도 써도 끝이 없도록 생각이 자연스러울 수 있을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게 뭐 자랑인가? 
    세계사로 건너가서 아르헨티나 성씨 순위 9위인 고메즈씨한테, 족보 따지고 도표가 어디로 연결된다. ~라고 말하면 별로 기분 나빠하지 않는다. 오히려 고려계(한국계) 중앙아시아인처럼 자기들 출신을 자랑스러워한다. 매년 행사 꼬박꼬박 지낸다. 어디 신사 주지처럼 한국인들끼리만 결혼한 순수성을 유지하는 사람들도 전세계에 꽉 찼다. 유대계 ½, ⅓, ⅔, ¼, ¾, ⅛....그거 모르시나? 그런데 어떻게 現천황이 초대 천황과 동격인가. 아니 어떻게 천황가가 만세일계일 수 있나. 패전했으니까 큰 선심써서 베풀어주는 식으로, 우리나 되니까 세계평화를 위해서 전쟁 종료해준다! ~라면서 인간선언하니까 또 이어지고 이어지고. 신국은 질 수 없으니까, 신국은 인간들 나라(따위)한테야 져서는 말이 안되니까 하는 수 없이 인간선언? 황가를 구경하려다가 유대교 행사처럼 압사한 사람들이 1950년대에 몇 명인데. 또 인간선언 해 봤자, 어차피 다음 대에서 다시 신격 회복 이미 했다. 그냥 자기들 마음대로 너는 터미네이터 나는 제우스. 막 난리도 아니다. 또 불리하니까 일반인과 결혼한 거지, 전쟁에 이겼고 환경이 도와줬으면 절대로 천황가는 일반인 황후를 얻지 않았을 것이다. 황후의 친아들이 천황이 된 사례는 1900년 윗 대로 10대에 걸쳐 단 1번도 없었다. 그리고 과거 천황가에서 15명 후손을 낳았는데 12명이 죽었고, 또 약 1960년 이후로 40~50년 동안 아들을 코빼기도 못났다. 그게 다 근친혼 때문인데. 그와 같은 불리한 사정 + 전쟁 패전 = 일반인 짜잔~! 그렇게 된 거지. 무슨 교양과 상식? 역사를 대체 몇 번을 말하게 만드나. 이러니 태평양 원시부족이 천황교 국가라 부를 수 밖에. 바로 그 때문에 서기 1,000년 이전 역사에 대해 죽어도, 아마 영원히 함구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메이지 유신 전후로 무슨 명분도 없지, 한자를 쓰면서도 은혜를 원수로 갚았지... 인정하면 그건 야만인보다 더한 금수가 되거든. 지금까지 일관되도록 그랬는데 어떻게 전국에 쫙 깔린 신사들 안내판을 바꾸나. 절대로 안될 일. 그 전국에 쫙 깔린 20~30만 신사에 거의 다 있는 개 석상, 그게 고구려개라는 사실도 발언하고 아는 척하면 개인 인생의 미래는 각오 단단히 해야 하는데. 아니 외부인인데 어떤 사고체계여야만 그걸 감싸고 돌 수 있지? 그럼 그분 생각대로라면 영국왕실이 아일랜드인을 모셔서, 아일랜드 왕비의 아들이 차기 영국왕을 맡으면 되겠네? 답답한 양반 같으니라고. 그게 말인가? 그러니까 남 일 내 일 구분도 못하지. 그래서 남 일이라면 스포츠 조롱꾼, 내 일이라면... 내가 언제 그랬어? 그처럼 (몸짓) 생각 제대로 못하다가는, 역사는 한두 번도 아니고 계속 반복된다. 아마 분명 그럴 것이다, 어? 두고 보면 안다니까요 글쎄. 괜히 지금 전세계가 이 난리중이간디? 무슨 겉으로만 점잖고 옷 차려입고 교양인인 척하지, 알고보면 사고체계는 순 야만인들 천지구만 그래. 어? 도대체 생각이 있나, 없나? 뭐 아침에 일어나면 생각을 베개 옆에다 놔둔 채 이런 주제에 대해서도 아는 척 못해서 안달인가? 착하다와 위선도 분간 못하면서 기준선은 고무줄인지 알루미늄 철선인지도 분간 못하면 어떡하나. 어른이 그래서 쓰나? 애들이 뭐 보고 배우겠나. 안 그래도 팔랑귀들 천지요 바보들은 더 많은 세상. 이 험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데 일조는 못할 망정. 더 더러워지도록 만드는 뭐 대회라도 있나? 그럼 유리할 땐 폼잡고 '하면 된다'를 가르치다가, 안되겠으니 또 좌우명을 바꿔. "아니면 말고" 로! 응? 이게 뭡니까, 네?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이건 아닙니다. 이건 아니라구요. 것 참 아실 만한 분들께서... 쯧쯧쯧. 
    자, 다시 앞서 2개 문장을 살펴봅시다. 평소에는 관용어 잘 구사하고, 말발 어디 가서도 안 빠지는데. 그렇게나 똑똑한 양반들께서 저 쉬운 간접화법도 아닌 넌센스를. 왜 직접화법으로 인식하는 걸까? 도대체 왜! 전생에 착한 척 못해 한 맺힌 귀신이라도 씌인 걸까? 그런 건가? 굳이 듣고 싶지는 않으나, 어떻게 변명할지 참... 안 봐도 훤하다. 그럼 만약에 저게 어렵다면 다음 문장들조차 구분 못하시지는 않겠지요? 
    (1) 옷을 잘 입는다.
    (2) 옷도 잘 입는다.
    (3) 옷만 잘 입는다. 
    설마, 어려울까? 그럼 이거!
    문명 vs 야만
    교양 vs 비교양 
    상식 vs 고급지식
    혹시, 내가 왜 이런 핀잔까지 들어야 하는 거지? 이해할 수 없어. ~라고 생각하시기에 앞서 그러니까 왜 뭘 잘 알지도 못하면서 비꼬기 대회 우승감처럼 구시냔 말이다. 안 그렇습니까, 여러분? 제 말이 틀렸습니까? 네? 듣는 귀 없습니까? 아니면 떠들 수 있는 입이 없습니까! 아니지 않습니까, 네? 아 글쎄 그래요, 안 그래요? 네? 왜 반응이 없어? 힘빠지네. (절레절레) 말이 나온 김에 묻는다만 정말 궁금해서 여쭤보는 거니까, 누가 꼭 좀 알려주셨으면 좋겠다. 도대체 어떤 인생을 살아야 저처럼 신통방통한 생각을 할 수 있는지를! 뭐 그 얘기는 다음에 더 자세히 하기로 하고. 다음으로 넌센스가 아니라, 농담 반 진담 반도 아니고. 진지하게 직접화법으로. 
    현 독일 총리는 프랑스인이 아니다. 푸틴이 뭐 몽고 사람인가? 즉 이건 현재. 그러나 옛날에는 달랐다. 프랑스인들이 영국왕들을 연임하고, 임명하며, 겸임했다. 그런데 그런 적 없었대. 응? 짜증나거든. 개인적으로 지는 비교에 대해서 기분 나빠하는 거도 아니고. 역사요 세계사인데... 싫으니까 싫다? 그렇다니까요 글쎄. 그럼 뭐 딴 동네는 뭐 좋아서 불쾌한 국사, 슬픈 시대, 짜증나는 지식을 가르치나? 그런 거 단지 기분 나쁘다는 이유로 쏙 빼버리고, 왜곡하며, 유리한 것만 가르치다가는 나중 분명코 언젠가 제값 톡톡히 치를 것이다. 경고했다. 응? 기대하시라. 두고 보면 아니까. 이 사람들이 정말 칼럼이 뭐 장난인 줄 알어? 어? 이거 정말 보자 보자 하니까 가난뱅이라고 뭐 보자기인 줄 아냐고. 어? 누군지 몰라도 너 잘걸렸다. 거 누가 하도 말 더럽게 많길래 묵묵히 버티고만 있었는데. 마침 잘만났어. 응? 심심하던 참이었거든. 잠깐이라도 재밌어진 거지. 허허허. 뭐 도전자가 제 발로 찾아온 건 아니나 어렵게 만만한 상대를 만난 거지. 허허. 그럼 환상기계가 뭐라는 걸 보여드려야지. 응? 그렇게나 원하신다면야. 겉으로야 져드릴지언정 신선초를 잘근잘근 씹어먹어드리겠다 그 말씀. 네? 도망가지 말고 딱 기다려, 어? 아니다. 시간없다. 시간 끌지 말고 한꺼번에 싹 다 덤벼. 뭐야 근데 다 어디 갔어? 알고 봤더니 어디서 몰래몰래 숨어서 덤비네. 캬, 잘한다 잘해. 잘났어 정말. 아니면 대체 여긴 어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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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용문
   "혈통주의에 매달려 '일본천황이 백제인'이라고 주장한다면 노무현 대통령도 중국인이다 / 메이지천황 1250년 만에 조상의 땅을 되찾다 / 일본 천황이 한국인이라면 어떻게 되나. 일본 태생으로 페루 대통령에 당선됐던 알베르토 후지모리가 비슷한 사례가 되겠다. 우리 친척이 일본에서 천황 노릇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면 우리는 어떡해야 하나. 당시 일본 전체가 후지모리와 페루를 물심양면으로 적극 후원했다... 고려의 왕씨들은 자신들의 나라를 무너뜨리고 모진 핍박을 가했던 조선왕조의 이씨들을 원망했야 할까... 성씨의 유래를 살펴보면 현재 우리나라에 많은 김, 이, 박, 최, 정, 손, 배, 장씨 등은 모두 신라의 성씨다. 그래서 대한민국은 국민 대부분이 신라 사람들이지만 중국인 대통령이 다스리는 나라가 된다..."

   

    팔랑귀 / 줏대 없는 사람 / 주관 약한 허당 / 세계관과 안 친한 현대인 / 역사를 잘 모르는 학생 / 잔지식에 관심없는 그대 / 일반상식에 약한 어른....! 그분들께서 저 인용문을 읽고서 올바른 가치판단을 할 수 있으면 좋은데. 이때 머머할 수 있다, 가 아니라 어머머 그런가 보구나 라면서 설득당하는 일. 그래서 코 묻은 돈마저 오락산업이 좌지우지하는 것. 그 때문에 누군가는 정말 일복이 축복받은 것. 듣고보니 틀린 말도 아니구나 옳구나 라면서 그냥 100% 찬성. 그러면 OX만 존재하는 문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드라마에서 봤듯이 유리할 땐 OX 불리할 땐 먼산 쳐다보기! (이래서 우리들이 그분들 구워삶는 건 일도 아니라는 거다. 쥐락펴락 바로 그래서 우리는 아무 숙녀나 마음만 먹으면 싹 다 꼬신다. 농담이고) 더더군다나 과학이 발전하므로, 소비제는 점점 우리들의 사고력을 방해하는 쪽으로 발전한다. 그게 좋게 보면 인공지능인데 또 달리 보면 인간의 사고체계란 게으름을 너무 좋아한다는 점. 그러므로 인용문을 읽으면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라면서 끄덕끄덕. 다 그렇다는 게 아니라 꽤 그렇지 않나? 천동설 사고체계가 친구들끼리 수다떠는 시간에 "남들도 다 그렇지 않나?"~라는 건 괜찮다. 친구끼리 담소니까. 그러나 그게 아니라 뭐든지 남 탓이라는 논리, 원시부족 문화는 대체 어떡할 건데. 그렇다고 배경지식을 나이와 비례해서 습득하려고 노력하냐, 졸업하면 자연스럽게 책과 멀어짐. (몸짓) 그럼 플라톤이 옛날 옛날에 말했듯이 그렇게 된단 말이다. 그래서 영화 대사는 흔하디 흔하게 그걸로 귀결된다. 즉 민중을 개, 소, 돼지, 말로 비유하는 것. 자, 그럼 저 인용문에 대해 간략히만 반박을 해볼까? 

   

    마크 롱 대통령이 프랑스인이 아니라고 누가 부정하나? 딴 때는 간접화법 그렇게나 좋아하고, 말귀도 잘 알아듣는데. 어째서 위선과 관계되니까 뜬금없이 직접화법을? 뭐 또 여자는 남자한테 잘 보이기 위해서 화장을 한다 그 토론하고 싶다는 건가! 답답한 어른들 좀 보소.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사람이라는 걸 도대체 누가 모를까? 이란&이라크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2세가 양국 아무 나라 대통령을 해도 된단 말인가? 멍청해도 정도가 있지, 한국 성씨들 족보를 따져서 중국 관련 뿌리를 불인정하는 사례는 거의 없다. 그런 반면 일본 천황가는 어떤가? 입만 뻥끗해도 全일본이 난리난다. 참을성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월지언정 그땐 안 참는다. 응? 그 차이에 대해서 말하고, 1,300년인지 1,500년인지 일관된 역사왜곡을 지적하는 것이지 무슨 말 꼬리잡고 늘어지는 코메디인가? 700년 이전 계보가 억울하니까, 영국왕이 부모 성씨를 버렸던 것처럼 600년대 후반부터 800년대에 일본에서 많은 일들이 있었고, 그로 말미암아 자연스럽게 임진왜란이 발생했으며, 거기서 끝나지 않고... 계속... 계속... 전국민을 세뇌하는 흐름은 먼 미래 어떤 일을 예견토록하는데. 그런 예언을 뭐 할 일 없어서 할까? 뭔 말꼬리잡고 늘어지며 원리도 모른 체 착한 척만 하는지. 위선이 그렇게나 좋을까! 좋든 싫든 그건 개인의 자유나 이와 같은 주제는 전혀 다른 문제다. 저분도 사고체계를 보니까 자기 생각 밖에 안하시네. (꼭 그렇지는 않고 알게 모르게 착한 일 많이 하시겠지만) 지만 잘먹고 잘살면 그만이라는 심보. 왔다 갔다! 직접경험과 간접경험의 차이가 그거다. 안 겪어보니까 몰라. 남 일이니까 막말해. 뿐만 아니라 가난할 때는 착하게 살아야지 그랬는데, 부자가 되고 보니 생각이 바껴서 졸부 중의 졸부로 앞장서. 응? 몽고 왕 또는 왕비 + 고려 왕 또는 왕비 = 고려 왕 또는 왕세자. 고려왕이 중국에서 원격 정치, 기타 등등 그런 모두 한국사에서 불인정하나? 대체로 인정한다. 허나 일본은 거꾸로 임나일본설에다가 불리한 건 싹 다 빼고 가르쳐요. 네? 그건 뭘 뜻하냐? 근대사는 정당성을 부여받고, 불리한 지식도 면책받으며, 대의를 위해서 얼마든지 역사는 반복되어도 좋다는 걸 뜻한다. 안 그런가? 자, 봅시다. 
    (1) 1,500년 동안 일관되도록 역사왜곡하는 게 문제인가? 아니면,
    (2) 1,500년 동안 일관되도록 역사왜곡하는 걸 바로잡자는 행위가 문제일까? 
    달걀과 닭도 구분 못하나? 스포츠 조롱꾼 말마따나 우리는 (심한 말로) 닭대가리가 아니다. 그런데 왜 새(대가리)라는 값싼 낱말을 연상하도록 만들까. 시간이 정말 귀중한 자원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데 뭣 때문에 남들 시간낭비 하도록 앞장서는데. 1,500년 장구한 세월 내내 일본의 역사왜곡! 그걸 지적하는 게 중요할까, 아니면 그 옳은 행동에서 간접화법을 직접화법으로 트집잡는 게 중요할까! 필자가 증말 이런 거까지 꼬치꼬치 지적해야 하나? 이거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하지 않나. 누가 좀비 아니랄까 봐 대체 생각을 할 줄 모르니까 그러시나들? 1,500년 연속 끊임없이 역사왜곡하는 목적이 뭔지 생각 안해보셨나? 도대체 원시부족 문화와 전통과 관습에 대해서 몇 번을 반복하게 만드나요, 네? 인문교양서의 제목을 넌센스로 설정한 건 그와 같이 심각하고, 심각하며, 더없이 심각한 사안에 대해서 꼬집는 의미인데. 무엇 때문에 그걸 직접해석하는데? 또 어디서 돈봉투 받았기 때문인가 아니면 바보 중의 바보임을 공인받기 위해서인가! 당최 이해를 할 수 없는 일. 뉴질랜드는 잘 모르겠다만 일단 여성적인 문화에 대해서라면 대표적으로 잉글랜드와 웨일즈를 들 수 있다. 허나 거긴 교양과 상식이 세계와 공통된 문화권. 게다가 적어도 여왕과 조물주는 구별할 줄 안다. 더불어 최소한 국교로써 양다리 걸치지 않음. 보아하니 역사를 따져봤을 때 종교적으로 교황청의 천주교에서 기독교로 독립한 셈. 프랑스와의 백년전쟁으로 영어라는 언어 역시나 독립! 그런데 어딘가는? 거긴 한마디로 국왕 = 교주! 나라가 사이비 종교국. 그러니까 그토록 1,500년 내내 역사왜곡을 하지. 왜 1,500년 내내 역사왜곡을 할까? 목적이 全세계인의 천황숭배니까. 실제 시도한 전력도 뚜렷! 혁혁한 성과로써 실현시킨 전례는 참으로 아름다울 지경. 바로 그 목적 때문에 Ctrl+C   Ctrl+V 하는 것. 그래서 20만~30만 신사 안내문에 적혀있기로, 기원전 기원전.... 싹 다 거짓말! 그런데 이상하게 심각해. 응? 완전~ 진지해. 죄다 연기력 최우수상감. 게다가 천황 죽으면 충신 가운데 하나의 머리를 레고처럼 떼서 볏집으로 어떻게, 또 수평으로 수직으로, 막 다음 천황이 全천황 시체 옆에서 목욕한 다음 신의 옷으로 갈아입어. 응? 그게 정녕 무슨 뜻인지 아직도 모르실까! 자, 만약 잘 모르시겠다면 교육을 알아보자. 길게 설명할 것도 없이 간명한 비교만으로 이치를 깨닫게 될 테니까 말 그대로 짧게만 비교해봐도 된다. 

도표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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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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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     책사/간신배/세력을 비롯해 나치와 아돌프 히틀러가 재차 나타나지 않도록 교육. 왜 그게 잘못됐나 똑똑히 가르침!
    일본     아돌프 히틀러는 신이다/신국은 인간국한테 질 수 없다, 고로 선심써줘서 큰맘 먹고 종료시켜준 일? 그게 일본의 전쟁종료일. 죽어도 패전일이 아님. 결과적으로 졌던 신국은 그럼 왜 전쟁을 시작했을까? 첫째 끌려들어갔다 즉 원인제공은 저쪽이자 모든 건 남 탓, 둘째 세계평화를 위해서! 그러므로 Ctrl+C   Ctrl+V 그렇게 20년 주기로 내궁을 뿌수고 또 짓고 끝없이 반복. 고로 제1대 교주 = 최신판 교주와 동일하게 됨. 그게 뭐냐? 천황교=민도=신도=황국=황민! 정상적인 종교와 사이비 종교의 차이점 딱 1개만 꼽자면 이거다. 정상적인 종교는 교주 있고, 나중 교황부터 신부 그 중간에 계급표 다분. 그러나 사이비 종교는 일단 자기가 교주, 또 자리 물려받은 사람들이 계속 교주(또는 교주급). 치밀하게 설계한 100년 전 황국사관, 무섭도록 오만했던 150년 전 식민지 사관은 따라서 어디까지나 정의를 위해서인 것. 절대로 가식이 아님. 그게 바로 절대선! 때문에 아돌프 히틀러는 우리 일본을 그냥 단순히 질투함에 지나지 않았고. 그러므로 일본의 제3 도전은 필경 이 세상을 위한 재도전이 될 것. 이 세상을 아름답도록 만들고자 한다는 데 그게 어디 나쁜 일인가? 절대로 나쁜 일이 아님. 두고 보면 알게 될 것이다. 이처럼 일본의 교육은 (대략) AD 700년부터 지금까지, 또 미래까지 절대로 변할 수 없다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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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표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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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왕 지위/ 권위  / 의미 / 국명 / 국민 /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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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국왕     / 왕족   / 인간 / 국명 / 주권 / 천주교-기독교......
일본  천황     / 현인신/ 교주 / 황국 / 황민 / 천황교-신도-불교-사이비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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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말해 1문단의 A 문장의 목적은? 잘못된 걸 바로잡기 위해서, 그러므로 말 뿐인 평화가 아님. 허나 일본의 교육은? 얼마든지 재도전은 정당하다, 1,500년 역사왜곡도 충분히 합당하다, 따라서 일본의 세계제패는 극히 타당하다 라는 논조. 맞을까, 틀릴까? 적어도 사실만 따졌을 때 (약) 1,500년 동안 단 1번도 변치 않았다는 점. 세계 자동차 회사들 주식 보유&비율이 거미줄보다 더 촘촘히 얽히고 설켜 있다는 사실, 어른들은 다 안다. 그런데 이 얘기를 왜 했지.. 뭔가 이유가 있었는데. 넘어가고. 어쨌든 미시마 유키오 같은 사람이야 잠깐 착오가 있었던 것이고, 또 인간선언도 단지 일시적으로 위기 모면 차원에서 벌인 수단과 방법에 다름 아니었던 것. 따라서 그 다음 천황은 당연히 신격에 복귀했다는 점. 물론 외부에서 인정하든 말든 상관없다는 걸 전통이라 부를 수도 있다만, 역사가 인정 불인정의 문제인가? 승자의 역사가 곧 세계사라지만 이건... 불행한 미래를 예견케 한다는 점. 나중 두고 보면 알게 된다. 다음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과열되는 목적에 대해서 알아보자. 자, 다음 2가지의 차이점이 무엇인가 스스로 곰곰히 생각해보자. 
    첫째, 혐한산업
    둘째, 인문교양서를 통한 역샤왜곡 바로잡기 운동
    이건 한마디로 하늘과 땅 차이다. 첫째는 싫으니까 싫은 것. 1,500년 역사왜곡을 원위치로 복귀하라고 하니까 짜증나서, 되돌리는 건 억울하거든. 모든 걸 악녀한테(만) 다 맞춰주라는 심보. 허나 둘째는 그게 아니다. 잘못된 걸 바로잡자는 게 왜 잘못인가? 잘못 아니다. 절대로 아니다. 그럴 수는 없는 일. 그런데 저 첫째가 잘못된 걸 바로잡자는 건전한 심성에서 비롯된 산업일까? 그럴 리 있겠나. 그랬다면 어떤 칼럼 무수히 반복할 리가 없단 말이다. 이게 바로 문명과 야만의 차이점이니까. 1,500년 동안 얼마나 일관됐는지 누가 엑셀파일로 정리 좀 해주시겠수? 기준선 이상에 해당하는 성과만 봐도 알 수 있다. 임진왜란. 코무덤 귀무덤만 봐 보자. 동그라미(○) 바깥의 희생양을 억압해서 코무덤 귀무덤 전리품을 획책해가는 것 기뻐서 미칠 것만 같은데, 그 반대는 싫거든. 고로 임진왜란 만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점. 아시아 정벌! 그마저 엑셀파일을... 연상만 하는 걸로. 그럼 거기서 끝이냐? 말 말자니까요 글쎄. 





    3

    기원전 그리스 제국이 유럽 일대에 문명을 전파한 사실, 전유럽이 그걸 부인하나? 아니다. 그럼 로마제국이 전성기 때 얼마 하락기에 얼마, 그와 같은 영향력에 따라 지명과 유적에 따른 근거가 현재 남아있다는 점. 유럽에서 제각각 그걸 유리하게, 불리하게 막 소설 쓰듯이 가르치나? 아니다.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이 어떻게 지어졌다에 대해 거짓말을 하나? 아니다. 기원전 8세기 중엽부터 발달하여 기원전 5~4세기 그리스문명의 증거를 불인정하나? 아니다. 그런데 어디는! 그래서일까? 
    2010년 3월 11일 일본 산케이 신문: "일본에서 강제 동원된 한인 수는 245명" (불과 그뿐/나머지는 모두 자의-애걸)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 발생
    ......

   [문장]
    1875년에 일본에 명자필칭의무령이 발령되기 전까지 피라미드 최상층을 제외하고는 모두 성씨가 없었다? 사실. 그렇다면 모두 야만인인가? 아니다. 그래서 피라미드 최상층에게는 성씨에 따른 족보라는 게 있고, 나머지에게는 비공식적인 어떤 방법이 있었을 것. 지하경제와 탈법 세계가 없지 않듯. 다만 공통적으로 피라미드 전체에 동일한 기준이 뭐냐, 이게 중요한데. 그 때문에 현재든 고대든 일본에서는 위로는 천황가 아래로는 서민에 이르기까지(천민은 모르겠음) 모두 가몽이 있었다. 가몽이란 가문의 문장. 왜냐하면 이 가몽이 묘지(성씨) 대신 쓰였기 때문. 예를 들면 유럽 축구 구단들 문양, 소비제 브랜드들 상표, 각종 로고, 벨기에 시청들 깃발, 포르투갈 관공서들 고유 상표. 
    663년 백강전투 / 710년─784년─792년 수도 이전 / 720년 일본서기 / 710년 이후 일본 종교건축 양식 180도 전환 / 752년 세계최대 금동불 완성 / 800년 간무왕, 한왜 동종 서적 분서사건... 요컨대 600~800년 그렇게 대혁신 발생. 180도 전환! 다시 말해 혁명은 약 697년 일본이라는 이름으로 국가가 시작. 그런데 그 일본국은 그때부터 황국으로 점진적으로 발전한다는 점. 대충 700년을 기점으로 (마라톤) 반환점을 완벽히 돌아버렸으니 그 이전으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는 점. 그 방향성이 지금까지 바뀐 적 있나? 없다. 한결같음. 완전히 일관됨. 자, 반대? 없음. 있을 수 없으니까. 모두 사실 뿐이니까. 일단 180도 전환 계기는 그렇고 앞서 말했던 문장(紋章)에 대해서.
    가문의 문장은 왜 필요했나? 왜냐하면 무사계급 외에는 묘지(성씨)를 쓰지 못하게 했기 때문. 그래서 서민은 묘지 대신에 가문을 쉽게 구분하기 위해서 가망과 옥호를 사용. 옥호는 가령 점포명과 브랜드명, 가문의 문장은 유럽 축구구단과 북미와 전세계 스포츠구단들 로고. 즉 브랜드 상징! 즉 성씨 쓰지 말라는 봉건제를 우회하여 성씨만 쓰지 않으면 될 따름이요 나머지는 다 됨. 베니스의 상인처럼. 여기까지는 인류학, 교양학 감안하면 전세계 동일. 다만 평민 성씨 사용만 사용과 금지로 나뉨. 여기서 경우의 수 몇 가지로 나뉜다. 작위 / 성씨 / 족보 / 가문 문장... 다름 아니라 이게 바로 전세계 공통적인 봉건제도. 원시부족만의 고유한 특징이 절대로 아님. 여기서 역사적으로 중앙집권제냐 연방제냐가 중요하다. 어떤 형식에 치우쳤냐 그에 따라 1방에 180도 전환은 단순히 국가 단위에서만 혁명적이지 않고, 세계대전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 역사적으로 연방제 성격이 중앙집권제보다 훨씬 강했던 독일&북유럽권역에서 비스마르크와 히틀러 출연으로 어떻게 됐나? 일본은 700년 이전은 부여와 백제계가, 700~800년에 혁신, 다시 나중 무사제로, 메이지 유신 때 다시 천황제로, 그렇게 군국주의로. 모두 오직 180도 전환만! 그렇게 앞서 말한 일관된 흐름으로 말미암아 문양의 전통은 임진왜란까지 변함없도록 단 1번의 오차없이 유지되었음. 비둘기파가 반대한 예시는 언제나 있었으나 663년 이후 일본에서 비둘기파가 득세한 전례는 지금까지 0에 귀결됨. 즉 있어 봤자 성과를 기대하지 못함. 그러므로, 
    도요토시 히데요시 가문의 문장 = 풍신수길 관련 신사들 문양 = 풍신수길이 등장하는 사극에서 흔히 보이는 장면에서는 바로 그 <오동잎> 문장을 보여줌. 그럼 거기서 끝이냐? 그럴 리 있겠습니까! 조선총독부 문장과 대만총독부 문장도 <오동잎> 문장 동일. 뭐 상식이니까 그럼 거기서 끝이겠지? 이래서 지식과 지성은 다른 것임. 현재 일본 내각총리대신의 문장이 무엇이냐? 똑같이 <오동잎> 문장. 풍신수길과 똑같음! 700년, 800년 이후부터 지금까지 많은 게 변했으나 정작 최고로 중요한 핵심과 영혼은 단 1도 변치 않았다는 점. 풍신수길 관련 신사들은 물론, 풍신수길 기념탑, 풍신수길 기념관 박문관. 귀총 비총(귀무덤 코무덤)의 안내문을 읽어보면? "공의 이런 넓은 마음은 금일의 적십자사의 뜻을 (이미) 300년 전에 발현하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좋을 것이다." 바로, 전세계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듯 독재자 미화랄지 작은 히틀러 출신고교들의 자화자찬과 같은 이치. 700~800년 180도 전환 이후 지금까지 일관된 흐름, 바로 그 때문에 역사왜곡을 원위치한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이치. 백강전투 패배 이후 약 1,500년 동안 변한 게 없는데. 그런데 지금 와서 모두 바꾼다? 말이 안됨. 전국에 쫙 깔린 신사들 안내판에 씌여진 기원전...기원전...만세일계 억지 주장은 영원한 것. 전국의 축제와 안내판과 신사와 풍습과... 전부 알맹이를 알면 까무러침. 
    그 초지일관 때문에 비교적 과거에는 서일본이 극강, 현재는 권위는 중앙에. 1900년 전후 황족과 귀족을 빼고 공작 작위를 받은 건 조슈&사쓰마 출신 딱 5명이 전부. 당시 수상(현재 총리), 대장, 육해공 별들, 총독, 사회지도층 등 권력의 70~80%를 조슈&사쓰마 출신이 (반올림하면) 1세기 내내 독점. 그래서 깡촌 마을에서만 100여년 동안 총리만 15명인가...배출된 것임. 그게 뭐냐? 세습제. 신분제. 계급제. 봉건제. 흑백TV. 그래서 고려 불화들과 고대 문화재와 국보들...을 누가 만들었냐, 안내문에 절대로 근원을 밝히지 않음. 세계 최초 목조건물 세계 최초...호류지 머 머 머...그러나 절대로 뿌리 발언 금지. 궁내와 황거를 구경하다가 30~50명 압사하더라도 현인신 황가 계보를 연구랄지 발언은 절대 금지. 단, 원주민은 겁만 주고 이주민은 죽임. 아니면 영구히 차별. 임진왜란의 명분은 663년 패전과 그 이전 약 300년간의 기억을 뒤짚은 일본서기. 한일합방의 목적도 임진왜란 정신. 히틀러와 극명히 대비되는 히로히토 천황. 벗꽃이 지는 모습이 아름다운 건 사실이나, 여왕벌 빼고 나머지들이나 그러라 하고. 본진과 1인자는 외면이요 책임회피이자 남 탓이 진심. 속마음 속의 속마음은 가해자-피해자 뒤바꾸기. 
    예를 들어 도쿠가와 막부의 마지막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 그 역시나 히틀러의 최후와 완벽히 정반대. 프랑스 공사 레옹 로슈는 막부가 사쓰마-조슈 번의 군대를 진압하는데 프랑스군으로 지원하겠다고 했으나 요시노부는 이를 거절. 이때 영국과 프랑스는 군사 개입할 틈을 노리고 있던 중 내전이 길어지면 패망 모양새만 망가질 게 뻔하던 전세. 그럼 여왕벌이 초라하게 굽힌다? 목표는 인류 발전, 목적은 세계제패였던 제2차 세계대전 군국주의.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에서 일본의 역할은 연합군측 가담이었으나, 아시아에서는 이미 악마의 역할.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 측에 서봤자 별 이익 없으니까, 또 1급으로 인정해주지 않아 자존심 상하자 국제연맹 탈퇴. 가면을 제대로 벗어버림. 그렇게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짐. 폐막식은 물론 신국이 선심써서 세계를 위해 전쟁종료해주는 걸로! 여자만 토라지면 침묵이자 고개 돌리나? 상대하지 않겠다 선언부터 여왕벌 심보가 반복된 예시를 엑셀파일로 정리하면... (절레절레)! 
    고려시대는 말미에 부패하고 어째서 멸망했다, 보통은 그걸 숨기지 않는다. 조선시대에 쇄국정책으로 시대를 못 따라가 세계 평균과 멀어지고 어쨌다, 고로 말년운이 안 좋았다 라면서 사석에서 너와 나 의견이 썩 다르지 않다. 통일신라가 무엇 때문에 국명이 바꼈다 대충은 다 안다. 그런데 뻔한 배경지식을 뭐 하러... 미화하는지. 왜일까? 그게 바로 구시대성인데. 고려시대에 원나라던가 어디로 사신을 보냈는데, 황제 즉위식에서... 사극에 보면 긴장되는 장면들. 그걸 모두 이겨내고, 목숨걸고서 이겨낸 채 귀국했는데 그런데 현장에서 받자마자 찢어버리지 않았다고 또 유배 보내. 그게 구시대성! 그런 비율이 많냐 적냐, 그걸로 원시부족 문화냐 그나마 상식과 교양이 세계 평균에서 썩 동떨어지지 않았냐도 알 수 있는 것. 구시대성 말이 나와서 말인데, 다른 분 말씀을 인용하자면. "겨우 30대 밖에 안되는 젊은 사카모토가 무슨 수로 당시 거물인 사이고와 키도를 만나 대업을 성사시킬 수 있었겠는가? 이는 사카모토 뒤에 영국의 무기상인 글로버와 그 이면에 있는 영국세력의 자금과 후원이 있었기 때문". 즉 크게 작게 자신감과 자긍심에 힘 실어주는 거야 전세계 공통일 텐데 정도 지나친 예시들. 한둘일까? 구시대성 얘기 나오니까 참지 않고 하나 언급하자면 이런 장점도 있다. 
    말하자면 구시대성이 평균이 됐을 때 장점, 그리고 그에 따라 자유가 없고 가식만 남는 단점에 대해서! 즉 서기 300~600년에 (현재 일본) 당시 왜나라에서는 부여제와 백제 제품이 최고급 상품이었다. 말하자면 정치인과 체계와 모든 걸 수입한 셈. 반면 왜나라에서 직접 만들고, 현지인들이 생산한 물품들은 값싼 비지떡. 속된 말로 환장을 했고 너무 차이가 나니 부글부글 싫은 감정, 지는 비교는 쌓이고 쌓이고 쌓이고...사회지도층까지 백제&부여계가 싹쓸이? 그래서 800년에 한왜 동종 서적을 전국에서 수거하여 불태우는 사건을 계기로 대전환. 그런 게 바로 혁명! 즉 문단 주제는 구시대성이니까 곁길로 빠지지 말고, 구시대성 장점 하나를 들자면 일본이 그래서 지금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는 점. 즉 외양은 대등, 내면은... 통과! 300~600년에 무슨 보따리상과 대규모 큰 상인이 있으면 있었지 수입 제도와 무역상이 어딨겠나. (때문에 수입이 아니라 이전이요 이입, 식민지 지배가 아니라 약한 결합이자 통치요 전국통일도 아닌 상태에서 백제&부여계만 신분상승 조건) 다만 당시 300~600년에 백제 제품과 부여제만 찬양 찬양. 그러다 700~800년에 대전환! 그때부터 지금까지 수입품 사용금지는 일본에서 단 1번의 오차도 없이 일관되도록 유지됐다. (단, 수입품을 내수화하는 데는 국가 지원 또는 국가가 나서서 주도적으로) 물론 700~800년 계기 때문에 지금에 이르른 건 맞지만 그게 단박에 쉽게 가능하지는 않았다. 고려 문화재와 고려 불화들, 조선놈들이 또 도자기를 오죽 잘만들어야지...뺏고 훔치고 그러다 단물 빠지니까 이제 서양 문화를 복사하고 훔치고 응용하고. 그렇게 지금에 이르름. 그게 곧 전통일 수도 있으나, 정신분석을 해보자면 천동설은 남 눈에 민감하기 때문. 어, 쟤 수입품 쓰네? 쟤 따돌려. 어, 쟤 나보다 좋은 옷 입었네? 백제옷이구나... 사극에서 원성을 들끓음. 그래서 백제-왜-부여 관련 서적은 모조리 불태워버림. 그때 이후로 뭐든지 복제하고, 응용하며, 더 잘 만들어서 현지 것만 쓰는 게 불문율이 됨. 안 그러면? 쟤 죽여. 쟨 때려. 저놈은 내보내. 쟤 가둬. 야 너 떠나. 넌 꺼져. 너 나가. 누구? 지구를 떠나라 그래. 넌 빠져! 하여 멜로드라마에서 대사들 흔히 들리는 게 머머해줘야겠어, 라면서 대세에 동조해라. 이탈리아제 옷이 좋고 독일차가 멋지다는 걸 왜 모르겠나. 그러나 그거 애용하는 게 입길에 오르고 눈총받는다? 그러면 죽는다 라는 원칙이 약 1,500년 동안 끊임없이 누적됐기 때문에 지금도 여전한 것임. 그냥 아무 이유없이 남들이 내 뒤태를 어떻게 볼까, 타인이 나보고 뭐라고 했다 내가 어떤가 나보고 뭐라는데... 모든 게 다 그 천동설 때문. 자, 여자 세계에서 쥐꼬리 만한 월급받고 사는 형편 뻔한데, 에르메스 샤넬 루이뷔통 가방만 들고 다니는 영심이. 신분상승하고 싶어서 멋쟁이한테 교태부리고 아양떨고 여드름 짜서 대체 얼마나 번다고 에르메스 샤넬 루이뷔통. 정말 그게 좋다면 거기까지는 괜찮을 수 있는데 또 자기 인생이요 자유다만. 허언증에 사람이 좀 그렇다? 전문용어는 물론 세상 사람들 다 아는 얘기. 그게 그냥 문화가 된 것으로 보면 된다. 
    한편 세상사를 보면 통상 0에서 1로 급변하는 예는 많지 않다. 다 0.00001...다시 모래알...다시 먼지...재차 영향...그게 1만년 5만년 이어지면 아시아가 죄다 평지였다가, 다시 동해(일본해)는 작은 호수에서 큰 호수로 바꼈다가. 지금으로 지형이 변하게 되는데. 그처럼 점점 유입...유입...땅덩이는 대륙으로부터 미세하게 멀어지고 멀어지고. 언젠가 언급했듯이 옛날 유럽 왕조가 장남의, 장남의, 장남의.... 그게 누적되어 어떤 특징을 보인다 지적했듯이. 솔직하면 죽음...죽음...따돌림...각오...벌칙...지도...죽음...그게 천년 만년 온전히 누적되니까 지금의 원시부족 문화가 탄생한 것. 그래서 숭불파 대 배불파, 결과는 누구 승. 그걸 감정 빼고 지식으로 대화가 되는데. 그렇다고 필자처럼 너무 감정적으로 칼럼을 써도 써도 끝이 없는 것도 좀 뭐하다만. 그렇다고 감정 없이 비인간적 로보트는 될 수 없으니 뭐든지 이퀄라이저가 기반이 되어야 하는데. 뭐든지 미화요 나쁜 건 다 남 탓이다? 그래서 1,500년 내내 역사왜곡. 하나도 변치 않음. 그 모든 것은 역사학, 인류학, 정신의학, 정신분석학, 토속신앙, 종교학, 고고학, 신학, 지리학, 언어학, 천문학, 풍속학, 민속학...철저한 배경과 고증을 바탕으로 토론했을 때. 내 말이 과연 틀렸나? 그런가? 어디 한번 얘기 한번 들어봅시다, 네? 말귀 못 알아듣는 양반도 아닐 텐데 뜬금없이 직접화법, 간접화법을 거꾸로 해. 응? 그게 뭐지? 뭘까? 대체 뭐냐고요! 
    에도막부의 마지막 순간만 봐도 그렇다. 최후의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가 성문을 열어 전화를 피한 일. 포장하자면 위신과 존엄을 지켰다고 치켜세울 수도 있는데. 지면 진 거지 뭔 말이 많을까? 성문을 연 사람은 쇼군이 아니고 전권을 위임받은 육군총재 가츠 가이슈니까 마지막 쇼군은 자존심을 지켰다는 말이잖아! 그래 봤자 쇼군이 충신한테 전권을 위임하지 배신자에게 위임할 리도 없었고. 그 둘의 마음은 완벽히 일치! 미국-영국-프랑스의 배경 탓에 하는 수 없이 쇼군 체제 폐막한 건 아름다운 퇴장인가? 반면 미국-영국-프랑스 외세의 압력을 똑같이 Ctrl+C - Ctrl+V 해서 한반도를 접수. 그러나 조선왕조는 비굴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라? 이것 봐라! 굽히지 않네...야만스럽게 왕조 대우해주지 않음. 지면 앞에서는 충성, 시간 지나면 미화? 물 한 컵 주지 않았다는 사실과 함께 복수심을 전국민에게 복사시킴. 
   (여자가) 내 손으로 어쩌고 싶으나 어떻게 남자한테 껄떡거려? 톡~ 톡~! 이게 바로 천황교─여왕벌교─살쾡이 문화─사이비 종교라는 점. 천동설 원리 뭘로 봐도 뚜렷하다. 아름답게 대미를 장식한다? 유종의 미가 아니라, 끝만 있고 아름다움은 없다? 아름다움만 없으면 그나마 나은데 그 대신에 그 자이를 핑계가 차지! 응? 따라서 변명만 길고 좋고 많게 됨. 내 말이 틀렸나? 좋은 건 다 우리가, 나쁜 건 다 남 탓. 이건 뭘 뜻하냐? 무조건 봉건제 문화는 다 나쁘다는 게 아니라. 천황교와 교주와 교도 등 모든 것은 개개인 전부 다 미시마 유키오거나, 또는 싹 다 그림자 쇼군! 우리가(애독자 평균)이 아는 남자는 단 1명도 없다는 뜻. 임진왜란 이전에 무수한 탐정과 염탐꾼과 현장요원들을 조선에 파견해서 캐낸 정보 가운데서 어째서, 대체 왜 충청도 사투리를 편애했을까? 어조와 리듬도 한몫하지만 중요한 건 정신! 현재도 마찬가지. 겉으로는 부끌부끌 수줍수줍 친절친절... 속으로는 응큼 교활 비열. 물론 좋게 말하면 또 얼마든지! 그래서 야마토 일반인들 상당수도 충청도 사투리를 좋아함.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이국적인 느낌과 부드러운 분위기에 떠밀려, 충청도 (나도) 충청도 알아요 좋아요~! 와줘서 고맙다 플랑카드 플랑카드. 건너가서 애국가 불러주고, 돌아와서 혐한시위 앞장서고. 앞에서는 일말의 악의도 없는 것처럼, 속에서는 앙심과 복수심과 틈만 보이면 머리 꼭대기로 올라가고자 때를 기다림. 


 

 
    4

   [천황가 팔각릉]
    도표 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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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덤 형식    특징/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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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대 서명(舒明)    팔각릉       익산 쌍릉은 무왕의 가묘, 서명천황릉은 진묘? 
35대 황극(皇極)    팔각릉 
36대 효덕(孝德)    원분          무왕 부인인 사택왕후의 남동생/35대의 남동생
37대 제명(齊明)    팔각릉       35대 = 37대 동일인물
38대 천지(天智)    팔각릉       궁내청은 1987년에 이미 팔각릉 인지, 허나 오래 숨김
39대 홍문(弘文)    원분?         중간에 퇴출당함/1870년에 공인받아 족보 오름
40대 천무(天武)    팔각릉       군주 스스로 자신을 천황으로 명칭한 게 40대가 최초!
41대 지통(持統)    팔각릉       40대&41대는 부부 합장
       초벽황자     팔각릉
42대 문무(文武)    팔각릉

이후 43,44,45......황릉부터는 다른 형식을 띰. 즉 전방후원부, 방분, 원분 순서로 사례가 많은데 42대 이후로 팔각릉은 미발견. 완전히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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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편 2010년 9월 10일 일본 주요일간지들은 대서특필했다. 제37대 제명 천황 능이 당시까지는 논란만 분분했는데. 8각형 봉분 발견 때문에 나라현 아스카촌에 있는 무덤을 제37대 제명 천황 능으로 (공식)확정! 천황 무덤은 주로 전방후원분인 전통과 달리 매우 이례적인 발견. 즉 전방후원분이 대세였는데 37대 제명천황능이 발견됨에 따라 아스카 시대 약 100년 동안 모든 왕릉이 팔각으로 만들어졌음이 밝혀짐. 34~42대 천황릉이 모두 팔각릉이라는 건 무얼 뜻하나? 그걸 알려면 가장 최근 고고학 성과를 옅보면 답이 나옴. 
    2010년 9월 10일 37대 제명천황능 발견보다 1년 앞서. 2009년 1월 14일 (한국 익산) 미륵사지 서쪽 석탑 해체보수 현장에서, 1층 심초석 윗돌을 들어올리는 순간 사리와 금판 등이 발견됨. 그에 따라 복수 왕후론이 제기되는 등 아직까지 속시원히 비밀이 밝혀지지 않았는데. 이게 중요한 대목! 제34대 서명천황이, 서명천황 11년 서기 639년 12월에 9층탑을 세웠다는 사실은. 639년 백제 미륵사 서탑의 건립연도와 일치! 발굴된 미륵사 금판 명문에 기록된 날짜와 일본서기 9층탑 기사는 약 12달 차이가 나지만, 같은 해에 9층탑 주조는 놀라운 공통점. 게다가 왕릉 외에 팔각릉은 다수 발견. 즉 팔각릉은 언제부터 언제까지 집중적으로 발생했다가 중단됐다는 점. 
    그럼 팔각릉이 뭐가 문제냐? 요컨대 일본 전통식 무덤이 아니기 때문! 그래서 궁내청은 40대&41대 합장릉이 팔각릉이라는 사실을 1959년과 1961년 이미 확인했지만 무려 50년 이상 그 사실을 꼭꼭 숨겼음. 무려 반올림 1세기를 숨겼다고? YES! 그러다가 2011년에야 겨우겨우 요미우리 신문이 폭로해서 밝혀짐. 물론~ 요미우리 신문이 어떤 언론사인데... 그러고 싶어서 그런 게 절대로 아님. 단언컨대 마지 못해~ 할 수 없이, 방법이 없으니까, 등떠밀려서 차마 외면할 수는 없기 때문에 늦추고 늦추고... 짜증나도 더 늦었다가는 망신살만 더 사기 때문에. 따라서 겨우겨우 뒤늦게 지각해서 2011년에 의도치 않게 폭로한 것임. 다시 말해 1988년 일본 황실의 무덤을 관리하는 궁내청 서룽부가 (국방백서처럼) 해마다 보고서를 발간하는데. 요미우리 신문 문화재담당 요자와 코타로 기자가 8각형 내용을 발견. 그게 1988년도. 그로 말미암아 요자와 코타로 기자는 이를 계기로 문헌을 뒤져 1696년 전왕묘릉기, 1808년 문화산릉도를 근거로 200년 전부터 팔각이란 인식을 확인. 다만 혼자만 알던가 학계에서 쉬쉬 (몸짓). (돈봉투랄지 007가방까지는 모르겠음) 그러다 마지못해~ 2011년에 요미우리가 터트림. 그럼 50년 이상을 궁내청이 그 사실을 왜 숨겼을까? 알려지면 짜증나니까! 유리하면 즉각 공개했지 왜 안 했겠나. 불리하니까, 응? 팔각릉은 일본식이 아닌데? 물론 학계에서는 그 이전에 서로서로 다 알고 있었음. 어떻게 모르겠어요. 또 1972년 3월 아스카에서 다카마쓰고분이 발견되었을 때, 일본의 역사소설가이자 역사연구가인 마쓰모토 세이초는 이렇게 밝힘. 
   "게다가 이번 것이 원분이라는 것도 중요한 점인데 한국의 묘는 다 원분이다. 그러니까 이것은 일본황족은 아니다. 일본황족 관계자라면 전방후원분이 된다."
    그런데 나중 34~42대가 모두 8각릉이라니! 앞서 언젠가 말했듯 2001년 천황의 (저렴한 표현으로) 정신나간 발언 때문에 전일본이 들려졌다 놔졌다가, 全사회지도층이 약속이나 한듯이 광분하며 바빴던 사태처럼. 극히 유감스러운 사건. 극도로 짜증나는 사실. 그럼 명시적으로 밝혀지기만 50년 이상, 추정컨대 최소 100년, 문헌 자료를 총합하면 이미 500년 전부터 다 알고 있었으면서 일본서기처럼 뭔가를 숨겨왔다는 말은 뭘 뜻하냐? 바로 바로 38대 천지 천황릉을 모범으로 삼아 122대 명치(明治) 천황릉도 축조했는데. 뭐야 이제 와서 8각릉? 일본 궁내청이 숨기고, 감추고, 쉬쉬하며, 손바닥으로 해를 가릴 동안 우물쭈물 엉망진창 모든 게 꼬여버림. 보아하니 역대 일본에 천황이라는 타이틀을 최초 안겨준 제38대 천황. 일본이라는 국명도 그때쯤 시작했는데. 그 거룩한 분 왕릉이 8각릉인데. 그걸 상원하방으로 알고서 이미 명치(122대), 대정(123대) 두 천황릉을 지금처럼 만들었다라...! 그걸 인정하면 그 후에 죽은 소화(昭和)천황릉은 또 어쩔 건데? 그래서 끝까지, 끝까지 숨기고 감추고 어물쩍. 34~42대가 팔각릉으로 확인된 이상 만약 후대 천황들 무덤 상부를 그냥 원분으로 만든다면, 그것은 천황의 무덤이 아니라 천황을 모시던 수장급인 소가씨나 물부씨 정도 또는 일개 삥바리 무덤 정도로 격하시키는 일. 불경도 그런 불경이 없음. 그럼 현천황 무덤은 어떻게 만들건데? 고민 깊어짐. 비밀 탄로남. 뻔뻔함으로 그 짝을 어디서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얼굴 두꺼운데... 극히 당황함. 난리도 아님. 이미 2001년에 대동단결해서 얼굴마담을 허수아비이자,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로 만들었으며. 전례는 전례는... 1,500년 내내 역사왜곡을 일삼았는데. 이제 와서... 이제 와서... 이래도 탈 저래도 탈! 
   (A) 2009년 (한국) 미륵사지 금판&사리 등 발견*
   (B) 2010년 9월 10일 37대 제명 천황능 8각형 봉분 발견
    * 미륵사를 건립한 무왕의 왕후를 선화가 아닌 당시 백제 최고 관직이었던 좌평 사택덕적의 딸로 기록 (금판 명시)
    * 참고로 미륵사 석탑에서 발견된 금판은 제작이 금은동 모두 포함. 곧 86.05wt.%의 금에 13.95wt.%의 은이 함유. 앞면 99자 뒷면 94자 전체 193자. (금빛)금강경판 제작과정은 (1) 먼저 청동으로 만든 금속판에 글자를 뒤집어서 새기고 (2) 그 위에 은판을 대고 작은 망치로 두드려 글씨를 새겨 넣은 다음   (3) 최종적으로 수은아말감 기법을 이용해 금도금. 
    이게 아마 A&B가 아니었으면 영원히 숨기고도 남았을 것이다. 안 그런가? 백제 사람처럼 입고, 말하고, 행동하며, 살았던 제38대 천지 천황. 뿐만 아니라 모든 게 백제식이었던 천황가 전통. 무려 1,500년 동안 신분세탁해줬는데... 이제 와서? 이제 와서? 충격! 엽기! 왕짜증! 수치! 울분. 격분. 당시 음악도 백제 악기도 백제. 제사도 백제. 모든 게 백제. 국가 체계도 백제. 정치인도 전부 백제. 그보다 더 앞서는 부여계가 또 100년인가 150년인가. 그런데 이제 와서? 세계 최대라는 자부심으로 全일본인에게 자긍심을 뜸뿍 안겨줬는데... 세계 최고 호류지를 비롯해 국보와 무수한 문화재에서 백제인 출처를 싹 다 숨겼는데... 이제 와서? 자존심 구김. 심하게 구김. 망신살만 망신살만...! 표정 이상해짐. 아마도 똥씹은 표정? 전세계 피라미드 많기로 1등인 멕시코. 질 수 있나? 전세계에서 무덤 많기로 아마 일본이 1등. 고분의 나라라고 할 만큼 무덤이 많은데 그 무수한 고분 가운데 팔각 무덤은 지금까지 겨우 15기 정도. 그러나 그 핵심은 아스카 시대의 천황 4대라니! 때문에 일본 학계, 정계, 재계......全사회지도층은 관련 자료가 없거나 인정하기 싫은 사료는 있어도, 불리한 건 속시원하게 극복해줄 만한 뭔가는 없기 때문에. 따라서 극도로 당황. 이걸 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 도대체 뭘로 역전시키지? 없는데? 어떻게 할 수가 없음. 칼럼은... 아니 어쩌자고 저렇게 한꺼번에 쏟아져나오는지 미쳐버릴 지경. 그냥 돌아버리는 거지 (절레절레)! 





    5

   [일본내 팔각 양식]
    자, 변명대회 바빠진다. 불교에다 팔각릉을 연결할까? 그러나 불교에서의 팔각원당 창건 시기를 고려하면 그게 8각릉에 영향을 주었다고 주장하는 건 애들 장난. 일본서기에 8이 또 많은데 그걸... 지나친 비약. 것도 설명이 안됨. 그럼 중국 쪽에서 근거를 찾을까? 마땅한 게 없음. 등에 식은땀 쭉남! 그러다 일본의 노래집인 만엽집을 들여다보는데. 이렇다 할 해법이 없네. 그렇다고 도교에서 영향을 찾는다? 한마디로 어거지. 중국 제사 양식을 흉내내어 중앙집권제 강화로써 접근하면 어떨까... 중국에서 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경우 명당을 세우는데. 이때 원과 네모난 언덕, 팔각의 단을 만드는 건 하늘로 향하는데 그걸 또 땅 속 무덤으로 연결한다는 것도 영 뒷맛이 개운치 않음. 결국 억지! 고로 역공당할 우려 매우 큼. 팔백만의 신들을 빙자하자니 34대 서명(舒明) 천황보다 80년 늦은 훨씬 후대에 채록됐고, 수차례 편집에다... 것도 아니란 말이야. 도대체 어떻게 부정해야 할까? 오사카 시립박물관에 있는 나니와궁 모형에 팔각형이 있지? 근데 추정하는 건물 완공 시기가... 서명천황이 죽은 후 11년도 넘은 일인데. 그 팔각분을 설명하면서 왜 그 지역이어야만 하는지 역시나 꼭꼭 숨기는데 것도 안돼. 더더군다나 나니와궁은 중대형황자와 중신겸족이 쿠데타를 성공시키고, 35대 황극천황의 남동생을 36대 효덕천황으로 앉혀서 뒷맛인 씁쓸. 왜냐하면 백제 무왕 부인인 사택왕후의 남동생이 바로 36대니까. 35대의 남동생이 36대 효덕천황....나니와궁 얘기만 나오면 덮기에 급급한 이유. 일본 고대 팔각형 건물 가운데 제일 크고 제일 오래됐지만,,, 짜증나도 나니와궁이 34대 팔각릉과 거의 동시에 만들어졌다는 걸 아니까 더 짜증. 그럼 당연히 나니와궁과 34대 팔각릉이 같은 형식 같은 시기였다면, 발주자는 당연히 중대형황자(나중 34대)와 중신겸족. 요컨대 살아 생전 34대가 팔각릉을 미리, 이미 설계했단 얘기? 일단 34대 서명(舒明) 천황부터 살아생전 백제천 옆에 백제대사를 세우고, 죽은 다음에도 백제식 빈소, 살아있을 때도 백제옷에.. 죽어서도 팔각 무덤에다 궁전에 팔각건물. 부글부글 짜증만 증가. 결국 구백제 세력에서 새로운 백제 세력의 상징이 바로 첫째 34대 팔각릉, 둘째 나니와궁! 물론 그 둘을 거의 동시에. 아스카 궁전들 가운데 팔각 형식이 일부 있어도, 백제 익산 왕궁리 유적과 판박이니까 (절레절레)! 그러므로 나니와궁 발주자가 34대면, 나니와궁과 아스카 궁전들 설계자는 백제 무왕 계파들이군. 
    다음으로 일본 최고(最古)의 목조건축물이며, 일본 최초로 유네스코 인류문화유산으로 선정된 호류지. 그 내부에 벽화... 완전 백제란 말이야. 성덕태자를 묘사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원래 이름은 허공장보살로써 백제에서 만들어진 것. 그 호류지 동원에 있는 몽전이 팔각형 건축물이고, 백제에서 보낸 구세관음상도 이 몽전 안에 있다가 발견됐는데. 우선 호류지 몽전부터 일본 내에서, 한국식(조선식)으로 만든 가장 오래된 건물. 뭘로 봐도 짜증난단 말이야. 어떡하지? 어떡하지? 근데 괜히 호류지 몽전을 말했잖아? 왜냐하면 성덕태자가 가공의 인물일 가능성을 일본학계가 끊임없이 말하는데, 그럼 그걸 주도한 사람이...그 때문에. 즉 일본서기 편찬 당시 실력자였던 등원부비등(후지와라노 후히토)가 위조작업을 설계했다는 것까지 밝혀지면 곤란한데. 등원부비등은 등원겸족의 둘째 아들. 등원겸족은 천지천황(중대형황자)를 도와 그의 집권을 가능토록 한 중신겸족으로서. 사극으로 치면 개국공신 1번타자. 그가 죽기 전에 천지천황이 그에게 등원(후지와라)라는 새로운 성씨를 수여! 후지와라? 이런~ 젠장! 단순히 신하&충신...이 아니라 겉으로 드러낼 수 없는, 곧 등원부비등이 천지천황의 아들? 등원부비등이 일본서기 제작팀 팀장급이니... 그럴 만도 하겠네. 천지천황이 아들(?) 등원(후지와라)에게 새로운 성씨를 수여했는데, 하필 그 성씨가 향후 일본 천황가와 사회지도층을 1300년 동안 쥐락펴락. 다시 주제로 돌아가서.
    그리고 1954년 유적지 조사에서 팔각 기단이 나옴. 일본 역사상 처음으로 결혼하지 않은 처녀의 몸으로 황태자가 되어 먼저 효겸천황으로 재위, 다시 두 번째로...! 어쨌든 발굴 당시 27미터에 달하는 8각 기단. 중간에 변경되어 팔각7층탑 건립은 중단되고, 그 대신 보다 건립하기 간편한 사각탑으로 축소해서 5층만 만들었다가 전소됐는데. 일본 최초의 불교설화집인 일본영이기는 822년 출간. 거기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옴. 
   "좌대신 등원영수가 서대사의 탑을 팔각에서 사각으로, 7층에서 5층으로 변경하였기에 지옥으로 떨어졌다."
    그러니까 왜 칭덕천황은 그 어려운 팔각탑 건립에 사력을 다했을까? 답은 뻔하니 넘어가고. 아무튼 팔각탑 건립에 대한 시도들은 집요했음. 쿄토 법승사에 높이 81미터에 달하는 팔각구층탑. 1208년에 벼락을 맞아 타버렸으나 5년 후 재건, 그러나 또 1342년에 소실. 또 후제호천황(재위 1318~1339)이 잠시 의탁했던 요시노 금봉산사 팔각삼중탑. 그러나 이 절에 들어가는 문부터 일본식이 아니라 한국식. 게다가 관련 전설도 백제쪽. 심지어 거기 아름다운 벗꽃을 심은 사람조차... 신경질 파팍. 이렇듯 중신겸족과 천지천황 이후에도 계속 팔각에 대한 집요한 열의. 끈질긴 집착. 추모. 영생 기원. 의식. 제사. 일본서기처럼 몇몇 팔각 천황릉조차 후대에서 다시 조성했던 근거들 다수. 천황이 못되면 팔각 전각이나 탑을 세워 사후 그들을 위로. 그건 곧 등원부비등(후지와라 후히토)가 천지천황의 아들이라는 얘기가 단지 속설이 아니라는 건데. 곧 팔각은 (새로운 왕권과 분위기 쇄신과 민심 안정을 위한) 천지천황과 중신 집안의 상징격! 남자의 경우에는 팔각릉으로, 여성의 경우에는 팔각탑이나 팔각전으로 만드는 게 전통. 그럼 왜 팔각릉이 42대에서 끊겼을까? 마지막 팔각릉에 묻힌 문무천황은 천무천황의 손자이면서, 천지천황의 딸인 지통천황이 후견인이었기에, 당연히 팔각릉에 묻힐 수 있었겠지만, 그 뒤에는 고모들이 이어받게 되다보니 이제 팔각릉에 대한 신앙과 전통은 희박해졌기 때문. 즉 권력이 바뀌니 전통도 바뀜. 구식은 팔각탑과 팔각전으로만 대신하고 제사만 지내면 됨. 
   자, 여기서 얘기를 교토 천용사라는 절로 돌림. 황실에서 죽은 천황에 대한 명복을 비는 절인데. 이 절의 영명전에는 천지천황부터 효명천황, 소화천황에 이르는 역대 천황들의 위패가 봉인되어 있음. 그런데 여기에 40대 천무천황부터 46&48대 칭덕천황에(46&48대 겸임) 이르는 천무계 천황 8대 7명에 대해서는 위패가 없음. 즉 일본 황실에서는 천무계는 자신들의 직계조상이 아니라 별도계열로 본다는 뜻. 요컨대 직계로 불인정! 그래서 팔각릉 조성 전통 명맥이 끊겼다는 설명도 가능. 그러니까 칭덕천황도 천지천황 직계임을 강조하고 싶어서 팔각탑 건립을 극구 노력했다는 점. 다음으로, 
    2000년 전후에서야 찾으면 많겠으나. 그걸 왜? 1900년 전후도 상관 없고. 아하~ 법륭사 몽전과 함께 팔각건물로 유명한 게 영산사 팔각원당도 있지? 그런데 이 팔각원당은 등원부비등(후지와라노 후히토)의 아들인 등원무지마려가, 아버지 돌아가시기 1년 전에 세운 원당. 일본서기 제작팀장이자 후지와라 성씨 부여받은 것도 그렇고. 결국 동북아시아 최초의 팔각건물지인 고구려 환도상서에까지 소급되니까 알려지면 왕짜증. 아하! 나라 전철역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흥복사가 있지? 거기도 팔각건물. 뭐야! 이 절은 등원겸족의 부인인 경왕녀가 남편 병환 치유 기원을 목적으로 한 거잖아? 즉 부비등 죽은지 1년이 되는 721년 축조. 그 위로는 아예 없어. 아예 없다고! 그건 뭐야? 팔각이라는 형식이 등원(후지와라) 집안에서 표상으로 전해져 오는 걸 보면, 일본에 팔각릉이 처음 만들어진 서명천황의 팔각릉 그걸 만든 주역이...쉿. 이러면 정말 각종 가문들을 비롯해 일본에 산재한 각종 문양들을 또 분석하게 만들면... 절대로 안돼. 안된다고. 임금님 귀는 당나귀귀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귀다~! 
    아무리 그래도 부정할 수 없으니 딱 일본서기 이전까지만 백제가 (속된 말로) 다 해먹었다고 쳐. 응? 열등감으로 똘똘 뭉친 불상한 것들 많이 봐줘서, 너그롭게 그냥 그렇다고 가정해. 왜냐하면 상대하지 않는다 이미 써먹었으니까. 아니 사실이지만 일단 그렇다고 하자고. 응? 그럼 등원부비등(후지와라 후히토)는 720년에 사망하지만 등원 가문은 천황가의 외척으로서 계속 1300년 동안 권력을 독점. 천무천황의 손자인 장옥왕을 모략에 의해 자살하도록 하고. 등원(후지와라) 집안 피가 섞이지 않은 후계자들은 완벽히 배제. 그야말로 독재요 철옹성이며 철권통치. 이후 천황가(천지천황계)와 등원 집안 사이에서만 천황이 나오도록 그 살벌한 카르텔을 유지함으로서 등원(후지와라)가의 장기적인 영화가 무려, 몇 년? 그럼 등원부비등이 정말로 천지천황의 아들이란 말이잖아? 신분세탁이란 신분세탁한 과정이 비밀스러운 판도라의 상자 안에 있을 때 얘기고. 그 상자가 열려져버리면? 그래도 끝까지 우김. 영원히 빡빡 우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바로 (딱), 어? 그래서 일본 고대사 전문가인 세키 유지는 학계에서 대우가 어쩔지 모르겠는데. 그분 말씀이 재밌다. 뭐라고 했을까? 
   "일본서기는 별명이 백제서기라고 할 정도로 전체의 7할이 백제 것으로 쓰여있다"






    6

   구마모토현 기쿠치성의 팔각건물? 일본 내 고대 산성은 29개 정도가 확인됐는데. 이 가운데 백제식 산성은 6개. 그 중 4개가 규슈지역에 집중. 게다가 660년 백제 멸망 이후 축조. 2008년에 출토된 청동 보살입상도 백제귀족이 가지고 온 것. 팔각 무덤의 원류나 발생과정을 유추해볼 수 있는 자료는 전무한 실정. 팔각무덤에 관해 일본 안에서는 설명한 그 무엇도 없다니, 이럴 수가! 그럼 일본 밖으로 시선을 돌려야 하네? 즉 고고학적 근거를 요약하면,

    도표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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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각형 무덤양식                  8각형 건축형식
        0년~300년 / 300~600년      0년~300년 / 300~6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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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0               0                  0               0 
중국  0               0                  드묾           보통
한국  0               0                  보통           많음
세계  0               0                  보통           많음
* 집단지성과 슈퍼데이터 돌려보면 세계적으로 0까지는 아닐 수 있으나, 적어도 한중일에서는 딱 사실과 부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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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에서 34대 서명(舒明)릉이 팔각조성된 게 처음이므로, 다름 아니라 처음이니까 그를 분석해보는 게 좋을 듯. 참고 서적은 927년 초 발간 연희식, 연록연간(1688~1704) 조사. 유독 돋보이는 점은, 최초 팔각릉 무덤의(아래는 사각 위는 팔각) 주인공인 서명천황의 등극 과정부터 복잡. 요약하면 황통에서 멀어진 집안에서 갑자기 등장해 당대를 호령하던 소아 씨 세력을 누르고 왕좌에 등극. (물론 소아씨 집안도 백제계 집안) 일본서기에서 특별히 눈에 띄는 기록은 재위 3년 3월에 백제 의자왕이 자기 동생인 풍장 왕자을 왜 인질로 하였다는 것과 여러 온천 기행이 전부. 백제식 옷, 전통, 궁 건립, 장례식 등 외 일본서기에 별다른 내용 없음. 다만 일본서기 외의 자료들을 모아보면 재위 3년 3월 백제 의자왕이 왕자 풍장을 보내 인질로 하였다 라는 일본서기 기록은 어패가 있다는 게 뚜렷해짐. 이 때 백제는 의자왕이 아니라 무왕이 다스리던 시절인데 어떻게? 실권이냐 형식이냐 차이로 추정. 참고로 이 왜나라 정치제제는 왕이 있지만 재정은 소아씨, 군사는 물부씨, 외교는 대반씨 등 한반도에서 건너 온 호족들이 집단지도체제를 이루던 시대. 천황 호칭도 훨씬 후대에 확립되었으므로 그 역시나 왕이었을 것. 

    도표 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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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덤 형식    백제왕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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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대 신공(神功)                 백제 13대 근초고왕   천황계 비공식
15대 응신(應神)                   백제 13대 근초고왕   칠지도 하사 (응신=근고수태자?)
15대 응신(應神)                   백제 14대 근구수왕
16대 인덕                          백제 15대 침류왕
~
일본 25대 무열왕          ←    백제 24대 동성왕     (양국 겸임? 동일인물)
일본 26대 계체(繼체)             백제
~
33대 추고여왕                     백제 30대 무왕       무왕 권력 상실때 서명 즉위
34대 서명(舒明)    팔각릉       백제 31대 의자왕     백제30대 무왕이 죽자 서명도 7개월 차로 죽음
35대 황극(皇極)    팔각릉 
36대 효덕(孝德)    -        
37대 제명(齊明)    팔각릉
38대 천지(天智)    팔각릉
39대 홍문(弘文)    -        
40대 천무(天武)    팔각릉
41대 지통(持統)    팔각릉
       초벽황자     팔각릉
42대 문무(文武)    팔각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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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서 "칼럼: 역사학 2"에서 백제왕과 왜왕을 겸임했던 근거에 대해 말했는데. 상시 겸임이냐, 백제에서 권력을 잃었기 때문에 왜나라로 옮겨가서 정권을 잡았느냐. ~라는 슈퍼데이터는 전문가들께서 정리하시기 바람. 일단 백제왕과 왜왕의 비교 자료는 너무도 많은데 그 가운데 이번에는 백제30대 무왕과 왜34대 서명천황에 대해.

    도표 F 삼국사기에서 무왕, 일본서기에 서명천황이 등장한 시기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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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         백제30대 무왕     왜34대 서명천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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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0년       7월                   10월
631년       2월,7월              9월,12월
632년       7월
633년
634년       2월,3월
635년
636년       3월                   6월
637년       
638년       3월(마지막 기록)   10월
639년       1월(미륵사 관련)   1월,7월,12월(대건축의 해)
640년                              4월,10월
641년       3월 죽음            10월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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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그렇다면 백제왕이 바다를 건너서 왜왕이 됐다면 그의 무덤은? 당시 백제 내에서도 계파가 갈렸듯이, 백제와 왜도 친할 때 아닐 때 구분 있었을 것. 또 백제왕이 현직에서 건너갔냐, 권력에서 밀렸기 때문에 건너갔냐 역시나. 뿐만 아니라 왕 말고 권력자도 건너갔다는 점. 대좌평과 내좌평은 당시 백제에서 서열 1위와 2위에 해당하는 고위직. 의자왕이 등극함에 따라 밀려난 (의자왕 아버지) 무왕, 무왕의 세력에는 (무왕 아들로써 의자왕과 이복형제인) 교기왕자가 정점일 텐데. 그렇다면 의자왕과 배다른 형제라고 보아야 합당. 그렇게 반란 실패 세력은 왜국으로 추방. 즉 사실은 의자왕의 계모가 왜나라로 건너가 권력자가 됐는데, 일본서기는 사실을 왜곡하여 본국에서 죽었다고 전했을 수 있음. 왜? 그걸 감춰야 하니까. 이런 부분들에서 책과 비석에서 연도 차이가 10년 20년 기본으로 차이난다는 게 그 무언가를 증명. 이와 같은 슈퍼데이터를 모두 참고해보니 다음과 같은 결론 발생. 
    37대 제명(齊明) = 백제에서 왜로 옮겨간 무왕의 왕후 (왕후가 1명 아닐 수 있다는 단서는 뒤늦게 2009년에 나옴)
    의자왕 반대세력인 교기왕자가 권력투쟁에서 졌기 때문에 엄마와 왜나라로. 그럼, 
    백제에서 왜나라로 건너온 왕후라면.... 미륵사를 세우는데 큰 시주를 한 사택적덕의 딸일 공산 큼. 즉,
    무왕의 왕후 1 = 선화공주(의자왕의 어머니)
    무왕의 왕후 2 = 사택공주(교기왕자의 어머니, 사택적덕의 딸)
    여기서 권력에서 밀려난 왕후와 왕자가 딴 나라로 망명하자마자 어떻게 왕이 될 수 있을까? 그래서 "칼럼: 역사학 2"를 비롯해 여러 자료를 기고하는 것임. 이래서 전문가들은 인생을 걸고서 직관력, 판단력, 추리력, 가설, 증명의 기술이 발달하는 거다. 그러니까 일본서기에서 사실/비사실/과장을 모두 구분할 수 있다는 것. 그건 뭐냐? 모두 알지만 단지 아는 건 모두 말할 수는 없다는 거. 따라서 아는 전부를 말할 수는 없다는 거. 그럼 그걸 일부만 대신 해볼까? 일본서기에 따르자면 34대 서명천황조에는 왕후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다. 그렇지만 이렇게 저렇게 따졌을 때 친아들, 동생등을 추정할 수 있고 그래서 약 2명으로 예단하기도 하는데. 그럼 서명천황은 아들이 2명이나 있음에도 아들이 아니라 왕후가 왕위를 계승했다? 게다가 일본서기 특징을 꼽자면 태자 임명을 관습적으로 기록하는데, 서명천황조는 그런 기록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왕자들 이야기가 전무. 그럼 서명천황 다음으로 천황에 여자 성별로 2번이나 올랐고, 나중 일본서기에서 가장 중요한 2명으로 손꼽히는 왕의 왕자일 때 기록이 아예 0이다? 따라서 그들이 왕자일 때 당시 왜국에 없었기 때문으로 추론할 수 있음. 즉 그들은 서명천황이 죽은 뒤에야 일본서기에 나타나는데 그 이유는 서명천황이 죽은 다음에 물리적으로(실제로) 왜국에 등장했기 때문. 만약 그게 아니라 왜국에 계속 상주했다면 소아 씨들이 가만 뒀을까? 무엇보다 일본 사학자들이 더 잘 아는 진실. 그 깐깐하고 꼼꼼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現일본 사회지도층, 그 가운데 대표주자 요미우리 신문. 그분들께서 어떤 분들인데 2011년에 궁내청이 모든 걸 걸고서 감추는 사실을 폭로했을까? 절대로 좋아서 그랬을 리는 없다는 거. 미치지 않는 이상! 벌거벗은 임금님 꼴로 판결된(판결될) 상황이니까 울며 겨자 먹기로! 그걸 정녕 원해서 그랬다면 2001년에 싹 다 대동단결해서 격분했을 리 있겠나. 이로써 다음과 같은 방정식도 반박하기 곤란하므로 아마도 외면 일색. 즉, 
    백제 30대 무왕                      = 왜 34대 서명천황                (← 동일인물)
    백제 30대 무왕의 왕후 사택공주 = 왜 35대 황극천황(37대 겸임)  (← 동일인물)
    겸임이나 동일인물이 과연 한두 명인가? 
    백제왕이 권력을 읽고 건너와서 왜왕이 되면, 과거 백제왕 때 업적을 일본에서의 행적으로 편입. 편입한 증거는? 일본서기. 그럼 완벽한 신분세탁. 그래서 1,500년 내내 일관성 잃지 않음. 이거 완전 대성공 아닌가? 물론 주도자는 38대 천지(天智), 설계자는 40대 천무(天武)! 행동대장은 백제계들. 이렇게 새로운 역사서와 함께 궁짝을 맞췄던 게 바로 앞서 말한 팔각무덤! 새롭게 팔각 무덤양식을 채용함으로써 모든 걸 새롭게. 즉 팔각양식을 비롯해 일본서기 등장으로 인해 자신들의 (쿠데타를 비롯해 혁명과 권력 승계의) 정당성이 강조되면, 작용 반작용 원리로써 기존 세력의 사악함이 부각됨. 즉 소아 집안의 과도한 권력욕과 과시욕을 벌하기 위해 팔각릉으로써 하늘의 신탁을 받았다 라는 그림. 이건 뭘 뜻하냐? 모든 걸 빠삭하게, 소상히, 전부 다 알면서 알지만 말할 수 없다는 거. 
    다음으로 35대 황극(皇極)을 살펴보자. 이 황극천황도 출신이 애매함. 그의 아버지인 모정왕이 언제 태어나고 언제 죽었나 기록이 전혀 없음. 단지 민달집안이라는 것만 고시. 황극천황의 아버지 모정왕의 배다른 동생은 서명천황 이라는 사실까지만. 그외 여러 사연을 옛날 옛날 수도 없이 일본사학자들이 백제계 라고 증명. 그 다음으로 백강전투까지 이어지고, 국장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계속 달림. 총력전. 승산도 없음. 이걸 모두 35대 황극(皇極)천황이 37대를 겸임할 때 주도. 물론 그의 왕릉도 팔각릉. 참고로 35대 황극(皇極)천황은 37대 제명(齊明)과 동일인물. 이걸 모두 합산하여 영특한 어느 학파의 결론은 무엇일까? 바로, 
    35대 황극천황(37대 겸임)은 백제에서 활약하던 귀족인 사택적덕의 딸! 
    35대 황극천황(37대 겸임)은 백제 무왕의 왕후였다가 일본(왜나라)로 망명.
    35대 황극천황(37대 겸임)은 일본(왜나라)로 망명해 권력잡았으니 38~40대에서 신분세탁해줌. 
    앞서도 말했지만 일본 천황가 계보에서 천(天)자 시호 받은 천황은 딱 2명. 바로 38대 천지 39대 천무! 
    그런데 35대(37대 겸임) 황극천황의 중국식 이름 말고 일본식 이름이 천풍재중일족회천황. 뜻풀이하면 하늘 개념 포함.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천황가 계보는 쿠데타의 연속이요 권력투쟁의 연속. 다른 왕조들처럼 말 그대로 사극이라는 뜻.
    일본서기가 우회적으로 간접화법으로 알려주는 것도 많다. 암호문 굳이 어렵게 만들지도 않았다. 일본서기 태반이 왜 백제 얘기겠나. 백제에서 망명한 교기왕자 이야기가 나오는 대목에서. 그러다 뜬급없이 그가 사라지고 '중대형황자'라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644년 중대형은 어떤 날 소아입록이 온다는 걸 미리 알고, 중신겸자련 등과 매복해 있다가 자신의 친모(황극천황) 앞에서 소아입록을 급습하여 죽임. 암살 성공! 죽기 전 소아입록이 자신을 죽이려는 이유를 묻자 뭐라고 답했나? "안작진멸천종". 풀이하면 '안작, 곧 소아입록이 천종의 씨를 다 말렸다'라는 뜻. 즉 자신들이 천종(天宗), 곧 하늘을 이어오는 핵심이라는 것. 이건 서명천황이 왜국의 왕족이 아니었음을 추정케하는 대목. 이 광경을 본 사람이 뛰어나가 외치기를 "한인들이 안작신을 살해했다"라고 기록. 그러므로 중대형이 왜국사람이 아니고 한반도에서 건너온 사람임을 알려주는 일본서기 대목. 즉 관찰자, 목격자, 소가씨 집안, 다른 권력자들도 전부 다 백제계지만 한인이라는 표현을 쓴 건 정착한지 오래된 백제계가 자기들보다 나중 온 세력들을 견제하려는 목적에서 그렇게 말한 것. 다시 말해 어차피 모두 다 건너온 해외파이지만 먼저 왔냐 늦게 왔냐 차이. 여기서 칼럼은 천황가 계보 비밀에서 다시 천황가 34~42대 팔각릉으로 주제 전환 또는 복귀.
    참고로 이게 모두 A&B라는 빼도 박도 못하는 증거가 발견됨으로 인한 성과. 
    (A) 2009년 (한국) 미륵사지 금판&사리 등 발견*
    (B) 2010년 9월 10일 37대 제명 천황능 8각형 봉분 발견
    즉, 그 이전은 후보군만 많았단 얘기이자 동시에. A&B 발견이 없었다면 거짓 주장은 영속할 거라는 점. 단정하기 결코 어렵지 않음.





    8

    서기 688년 중국 측전무후는 사람들 의견을 배척하고 건원전을 없애고 그 자리에 명당을 지음. 자기 출신도 정통파는 아니니 이거 저거 다 따져 뭔가 기념하고자 건립. 역사서인 구당서(940년~945년) 기록에 보면 3층 건물인데 여기에 8각이 등장. 즉 신축 시작은 688년이요 증축으로 요란하다는 이유로 철거하려던 때가 737년. 그때 8각형이 등장하는데. 당나라 건축에서는 가장 큰 목조건축. 원래 명당의 기본구조는 상원하방. 곧 중국 명당의 경우 당나라 때 기준으로 한다면 8각의 기반 위에 상원하방의 건축물을 세우는 것. 뜻풀이 생략. 1층은 사각, 2층은 팔각, 3층은 원! 
    허나 34대 서명천황릉이 만들어진 시기가 사후 2년만인 634년으로 가정했을 때 측전무후 명당은 688년 이후이므로 관련성 부족. 앞서 말했듯이 중국에서 무덤 양식에 8각을 사용한 전례는 0. 전세계로 봐도 거의 0. 이래서 일본 사학계와 사회지도층계는 완전 짜증나면서 인상 팍 쓸 수 밖에 없는데. 왜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해서... 부글부글 뚜껑 열림! 닫힐 수도 없음. 이때 중요한 점이 무엇이냐, 바로 천황 몇 대를 암살했던 희대의 인물이 바로 이토 히로부미. 全일본인이 존경하고 사랑해 마지 않는 그. 그분 손에 명을 달리한 무사가... 몇 인가는 몰라도. 일본서기만 천황가 족보를 신분세탁했나? 무려 1,500년 동안 고스란히 일관됐음. 고로 백제에 팔각문화가 별로 없다는 선입견은 물론 식민사학관이 개입하여 있는 건 없는 걸로, 안 좋은 건 있는 걸로. 수도 없이 조작! 결국 34~42대 천황릉 8각 양식은 무왕과 왕후, 사택지적, 사택덕적, 왕자 교기 등 백제에서 밖에 근거를 찾을 수 밖에 없다는 거. 참고로 이토 히로부미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그마저 표로써 구분할 수 있다. 곧 테러리스트 라는 용어부터 굉장히 막연하다는 뜻. 
    한편 중대형황자! 일본서기에서 한인이라 외쳤던 기록을 놓고 중대형황자와 중신겸직을 신라계로 본 학설도 있는데. 신라전설을 옮긴 건 의심가나 이후 중대형황자가 제38대 천지 천황으로 즉위한 후 백제를 돕는데 전력했던 점으로 보아 틀린 학설로 보여짐. 다시 말해 중대형황자는 일본서기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로 손꼽을 수 있는데. 왜냐하면 일본이라는 국명을 만든 천황이기 때문. 당시 국왕일 때 아울러 40대 천무(天武)에게 최초로 천황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게 만들도록 교육한 것도 다 38대 천지. 어쨌든 그 근방 소아씨 집안이 절대 권력자였는데. 소아 집안으로서는 자신들이 왕에 준하는 권세를 누려왔지만 정식으로 왕에 올라설 혈통은 되지 않았으므로 백제에서 온 왕족들에게 대왕(천황)의 자리를 맞긴 형세. 그로써 배후에서 팔짱 / 상왕 노릇 / 또는 권력 투쟁. 재차 반복하자면 환경이 그랬는데 뜬금없이 소가 씨 집안과 돈독한 사이가 아니라 먼 혈통이 등장. 34대 서명(舒明)이 등극한 게 여러 권력 암투 과정의 결과인데. 그 권력 암투를 놓고 현재까지 여러 해석이 다분. 그러든 어쩌든 결과는 34~42대 천황릉은 8각릉. 즉 사실은 그렇고 편집은 또 다름. 일본서기에서 유리할 땐 한일(백제&왜) 행적이 겹치거나 다르게, 또 불리할 때도 한일(백제&왜) 행적이 겹치거나 다르게! 그렇지만 당시 60살이 넘은 여자, 지금으로 치면 95살 노인에 해당할 왜여왕 35대 황극(=37대)이 국운을 걸고서 도우러 오기까지의 과정. 요약하면 겸임이 오래도록 반복되다 아니다가, 선임자 백제계 후임자 백제계 등등이 권력암투로 달아오르고. 그 가운데 백제와 극히 친밀했다가 일시적으로 멀어졌다가. 기점은 결국 백강전투. 그럼 당나라가 백제 잔존 세력을 치러 왜나라까지 오면 어떡하지? 그래서 백제는 끝났고 열도는 왜나라이자 천황국이다. ~라고 하여 그 시초에 해당하는 34대 무덤부터 42대까지 팔각 조성. 당연히 직계 자손만 팔각분 가능하고, 외삼촌인 효덕천황은 안됨. 다만 팔각릉 설립 주체는 중대형황자였다가 나중 천황이란 이름을 처음 쓰도록 했던 38대 천지천황, 그를 도와 집권을 하게 만든 중신겸족(등원겸족, 사택지적), 그리고 옹립한 황극(제명)천황 즉 사택왕후라는 말 밖엔 안됨. 그 팔각모양은 중국에서 뚝 떼어받은 게 아니라, 고구려에서 백제로 이어지는 불교의 팔각신앙의 재현이 믿음직한 원인. 





    9

[테러/테러리스트란?]
    도표 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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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토 히로부미        안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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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하급 무사
직업        무사/암살자/정치인   독립운동가
암살대상   안(고위급)              
              안(중위급)
              밖(고위급 지시)       이토 히로부미
              밖(대량학살 지시)*
              밖(대량약탈 지시)
              밖(대량학대 지시)
암살실적   직업 암살자
주요실적   일본 천황               
사망배경   암살당함
직위        총리(1,5,7,10대 총리)
              한국통감(1대)
근방 평판  위인전/지폐인물/전국민 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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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러/테러리스트란 불특정 다수냐 뚜렷한 목표가 있냐. 즉 유럽사에서 흔히 보이듯 결투처럼 목표가 단일하냐 아니냐.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무수한 예시를 찾을 수 있듯 무분별하게 어쩌냐 아니냐. 유럽 제국주의가 중동과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에서 기록 남겼던 아름다운 대량 학살 사건들. 그건 말 그대로 대량학살. 그런 게 진짜 테러고. 전쟁 영화에 나오듯 1인자를 목표로, 사석에서 말하기로 대가리만 조진다 그건 테러라는 의미가 다름. 베트남 전쟁에 관한 배경지식, 즉각 연관되어 떠오르시지 않나? 이토 히로부미는 일본 내에서 하급-중급-고급 무사들 다수를 암살. 천황도 암살. 천황 바꿔치기도 성공. 또 권력투쟁에서 반대세력을, 반란 등등 잠재우는 동안 기타 등등. 그야말로 풍신수길의 1등 수제자감! 일본 바깥에서도 법치주의에서 자유롭도록 적든 많든. 도대체 뭐가 테러인지 사람들이 잘 모르기 때문에, 그래서 지금 코로나 19로 전세계가 헤로헤롱 난리도 아닌 것임. 알겠습니까? 이토 히로부미가 과연 영화 레옹에 나오는 주인공과 동급일까? 긴가 아닌가는 몰라도 최소한, 적어도 일본에서는 유치원생인가 초등학생 100% 란도셀 가방만 멤. 그걸 이토 히로부미가 만듬. 전부 황민, 가미카제(결사 특공대)으로 육성하는 이치. 더군다나 그걸 누가 싫어해? 남 일에 신경 끄라 주의. 반면에 반성과 굽힘과 인정은 절대 금물.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원자폭탄 사과하라~ 사과하라~! 그래서 상반되거나 유사한 것임
    히틀러 VS 히로히토 천황
    독일    VS 일본
    이슬람교 ≒ 천황교
    전쟁범죄 처단 VS 전쟁범죄 면책
    전쟁범죄 처벌 VS 전쟁범죄...피해자 탈바꿈
    전쟁범죄 반성 VS 전쟁범죄...추모/존경/감사
    전쟁 재발방지 VS 전쟁미화...적극적 평화주의/마조히즘적 세계관 등등 말 만들어내기
    무슨 3대 담화? 고분고분하지 않은 총리는 직위 물러나면 역적일 뿐. 이미 현직에서 제 분수 모르면 매국노. 뭐 관방장관의 유감성 발언? 관방장관에게 뭘 기대할 수 있는데. 그런 직위는 피라미드 위에서 (손차양) 보이지도 않음. 해수욕장들이 과연 몇 개인데 모래알이 무슨 의미가 있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제대로 된 반성이 있었나? 단 1번도 없음. 100년 내내 일관된 거 보면 모르시나들? 1,500년 내내 역사왜곡을 왜 하겠냐고요! 1,500년 뒤끝을 만만히 봤다가는 나중 댓가 제대로 치를 것이다. 물론 그땐 늦음. 이미 끝남. 보아하니 공무원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지위, 장관! 그러나 러시아 인형처럼 까면 또 까도 또... 까도 까도 끝이 없는 흑심인지 뭔지. 원시부족에 대해 얼마나 더 설명해야 끝을 볼 수 있을까.
    예를 들어 1995년 5월 3일 무라야마 (全)총리가 중국에 방문해서 뭐랬나. 단어 1개로 축약하자면 "유감". 끝. 유감? 그럼 무라야마 (全)총리가 일본의 평균이냐? 고급이 딴 게 아니다. 져주기, 견제구, 버리는 패, 바둑의 팻감 등. 무라야마의 겉마음과 일치하는 일본인은 거의 없다. 또 무라야마의 속마음을 믿는 일본인이 있을 수 있나? 단 1명도 없음. 이래서 내가 칼럼을 쓰는 거다. 일단 간접화법에 밥 먹듯이 속거든. 내가 그걸 강조하는 이유? 피터 드러커를 읽으면 읽기 전과 달라야 하는데 아니거든요.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 = 너 그럴려고 머머됐냐?!
    (딱~)! 세상사는 바로 이거란 말이다. 종이 1장 두께 차이. 멜로드라마와 사극의 차이는 옛날 옛날 과거와 현재인데. 그게 어딘가에서는 겹치네? 인디언 부족들은 인디언끼리도 믿지 않았다. 그래서 거국적인 체계가 성립될 수 없었으므로, 지금의 북미와 오스트랄리아가 탄생할 수 있었다. 태평양 원시부족을 비롯해 전세계 원시부족들은 완벽히 그렇다. 예전 "유감"에 대해 무라야마 총리가 말하고 쓰기로, 나는 어떻게 생각한다 라고 했는데. 그럼 간접민주주의에 따라 순진하게 그게 모든 일본인의 의사와 부합한다? 앞서 괄호를 왜 얘기했나. 옷을 잡입는다, 옷도 잘입는다, 옷만 잘입는다... 오빤 옷도 못 입냐? 똑같은 말을 누가 하냐 똑같은 옷을 옷걸이가 걸치냐 아니면... 통과. 나는 어떻게 생각한다? 간접민주주의는 곤충의 보호색일 뿐. 그럼 그 간접화법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냐? 나(만) 어떻게 생각한다. 그럼 속마음 속의 속마음은? 내가 봤을 때 진심은 혐한산업이다. 왜냐하면 감정적으로 참아야 하는데 (원시부족으로 신분이자 민족성으로써) 못 참을 게 바로 그거니까. 그럼 이성적으로 친절하고 부드럽고 부끄러운 건 뭐냐? 뭐겠나 착한 척이지. 통념의 뭐래더라...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물어보나마나. 얼굴 표정에 다 드러난다. 전설적인 포커페이스일지언정 딴 사람들은 몰라도 필자를 어떻게 속이나 이마에 다 써 있는데. 800만 신들이 보호해주기 때문에 가능하다? 불가능. 남아메리카 원시부족한테 방문해서 어떤 반응을 촬영했다 라는 내셔널지오그래픽 다큐멘터리. 필자 칼럼이 그보다 못할수는 있어도 어차피 같은 얘기라고 자신한다. 딴건 몰라도 거기에 내 이름과 목숨과 하늘과 모든 걸 걸 수 있단 말이다. 필자는 세계적인 도박사 뺨치듯 단언할 수 있다. 만약 1995년 1월 17일 한신대지진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무라야마 (전)총리도 1995년 5월 3일 중국을 방문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기왕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보자. 다비드 석상과 아그리빠를 비롯해 그리스-로마 문화유산. 또 유럽의 무수한 벽화, 천장화, 성당 장식들. 그 다비드 석상 얼굴을 깎아서 더 잘생기게 만들고, 다비드 석상 고추를 더 크고 길게, 응? 캬~ 우람하게 만들어서 국보 1호로 못 박고. 그걸로도 모자라 그 사실을 전국민에게, 영원히 꼭꼭 숨기는 게 그게 말이 되나? 또 그리스-로마 유적지들은 실제 기원전이 많으니까 있는 그대로 기원전 표시. 이집트 피라미드 역시나 맘모스보다 일찍이니까 과장을 왜하겠나. 그런데 언제적 황국사관이 지금까지 변한 게 하나도 없어. 전세계에서 기록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나라가 하나 있는데 뜸들이지 않고 곧장 말하자면 중국. 그 중국에서 과장이 아니라 실제로 역사서들과 문화재들을 100만권 1000만점 그거 곱하기...그걸 불태우거나 가져가거나. 그래서 모든 걸 밝혀냈는데, 밝혀내고 보니 죄다 불리한 거네? 속된 말로 짬시킨다. 필자가 언제 지적하기로 괜히 이대로 가는 수 밖에 없다고 말했겠나. 지리학적으로 그래서, 다행스럽게도 대륙에서 점점 멀어져가는 게 금년 올림픽 개최지다. 겉으로는 문명과 똑같은데 한꺼풀 또 한꺼풀 벗기면 벗길수록 끝없이 원시부족. 응?
    그럼에도 불구하고 멜로드라마라는 게 참 양날의 칼인 걸까? 지구를 포기하기 싫은데 끈질기도록 망하도록 내버려두라 싹싹 빌며 기도하는 모습. 나쁜 남자한테 당하고, 속고, 또 속고, 맞고, 계속 뚜들어패고... 어쩌다 딱 1번 잘해주면 우리 오빠? 그렇게 길들여지니까 히틀러가 유명해졌지. 현실과 멜로드라마에서, 폭행당하는 걸 옆에서 말리면 오히려 왜 말리냐 참견 말라는 예가 얼마나 많나. 오히려 식민지 사학관을 100년 유지시킬려고 목숨 걸었던 분들 한국내에서 있다, 없다? 많음. 겁나게 많음. 어? 뭐 어쩌다~ 가뭄에 콩 나듯이 한 번 유감...불운...유감...! 허나 그건 찔끔찔끔 악어의 눈물일 뿐이고. 진짜는 망언 엑셀파일만 방대한 슈퍼데이터. 어? 막말로 나 죽으면 어쩔 건데? 어? 실패 사례 2번이면 충분. 다음엔 아예... 말 말자. 말 말어.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아마추어들 데리고 내가 대체 뭘 하겠다고 말이야. (부디 곡해하지 않기를 바람. 왜냐? 이유 대신 하나 묻자. 앞서 의문문은 과연 직설법일까 완곡어법일까? 것 봐 봐 이거 이거 이거 보라고 글쎄~! 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여자만 잘 웃기면 뭐 하나. 안 그렇습니까?) 또 속고 당하고 이용당한 사례들 엑살파일로 정리되며 공유한 일. 100년 동안 몇 번이나 되는데? 내가 알기로는 1번도 없음. 노력은 했다만 단합이 안돼든가 정리가 부족. 자료도 흩어져 있어. 아니면 내부에서 지들이 히틀러 흉내내고 나폴레옹 되고 싶어해. 안 그래? 그러니까 망언이 평균인게 오히려 자연스럽고 안심되지. 어쩌다 착한 척하면 급-당황! 아니.. 저분께서 왜 저러시지? 또 무슨 꿍꿍이를. 그분들께서 뭐 미쳤다고 세계 정상들 다 모인 자리에서 부시한테 큰 절을 하겠나. 누가 그 직위에 앉혀줬는지 잠깐 잊어서? 도대체 뭐가 좋다고 기쁘다고 신난다고 요미우리 신문이 2011년에 폭로다운 폭로한다면 착한 척하겠냐고. 지친다 지쳐. 어? 1,500년 한치의 오차도 없이 달려온 거 알고 싶지도 않잖아? 무엇보다 내부에서 그걸 어떻게 반대해, 오히려 좋아해. 그러니까 최신판에 열광하지. 사이비 종교에 빠진 사람들 특징이 어떤지 대충은 아시지 않나. 좀비 영화 정말 한 번도 본 적 없나? 근데 좀비가 완벽한 괴물들로 겉은 멀쩡. 고로 알고 보면 야금야금, 표면적으로만 찔끔찔끔, 속마음은 부글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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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교로 문명과 야만의 차이점을 설명하자면]
   자, 여기서 종교에 대해 조금만 아는 척 좀 하자. 로마제국이 유럽은 물론 동쪽 끝까지 진출하기 전에 페르시아 제국이 있었다. 페르시아 제국의 전성기는 일반적으로 기원전 550년 ~ 기원전 330년,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점령 시대는 기원전 330년 ~ 기원전 250년. 다음으로 사산 제국(226년 ~ 651년)은 로마제국과 뺏고 뺏기는 영토 전쟁을 계속했는데. 그에 앞서 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는 사막기후 발원지가 트로이카 지대로써 밀집. 또 불교/힌두교도 온대-사막-열대기구로써 발원지가 인접지역. 그 얘기를 자세히 논하자는 게 아니라. 천주교가 영국으로 넘어가서 신교로 바뀌듯, 불교가 일본으로 넘어가서 종교의 천국으로 거듭나듯. 교황 아래 추기경/총대주교/상급대주교/관구장 대주교/대주교/주교..신부는 결혼하지 않는 게 규율인데. 영국에서 교황 허락받기 싫어 실시한게 1500~1600년 동안의 종교개혁. 그로써 잉글랜드 국교는 지금까지 기독교. 곧 천주교를 비롯해 종교의 자유는 보장되나 국가적으로 성모마리아는 불인정. 그리고 목사님은 결혼 가능. 그처럼 불교가 동쪽 끝까지 전파된 끝에 일본에서 스님도 결혼. 

  • 영국: 천주교 → 기독교 (교주는 영국왕 또는 여왕 아님) ← 문명
  • 일본: 불교   →  천황교 (교주는 국왕 / 일본식으로 천황) ← 야만

    숭불파와 배불파의 다툼 또 불교 우대정책이냐 억압정책이냐. 그러다 문명에 다다렀을 텐데. 문제는 누누이 강조했듯이 불교가 분파되면서 스님이 결혼한다는 것까지는 천주교/기독교 원리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는데. 그런데 불교 → 천황교로 스르륵 자연스럽게 교주가 바껴. 어? 불교는 단지 문화이자 기반만 제공했으니 넌 빠져! 그렇게 됨. 단물 빨리고 그냥 기틀과 문화로만 흡수됨. 그렇게 Ctrl+C  Ctrl+V = 현교왕은 초대 교주와 동일. 그게 바로 천황교의 본질. 대륙까지야 스님이 파계하지 않는 이상 여러 계파들은 모두 동일. 그런데 섬으로 건너가자 바뀜. 기독교도 교황을 비롯해 신부님들은 속세와 거리를 두는 게 규칙인데, 분파 분리되더니 목사님이 결혼하고 아메리카로 넘어가자 막 산업도 되고 몰몬교와 더 다양해짐. 거기까지는 좋아. 왜냐하면 교주와 별개로 역사적으로 교왕, 천주교도 교황, 그리고 목사든 신부든 다 문명적이니까. 그런데 천황교에서는 현인신이 교주다? 말이 안됨. 자기들끼리만 그렇다면야 모르는데 전세계인들한테도 숭배를 받기를 원한다는 게 문제. 이러니까 원시부족은 바깥으로 나오면 화근이라는 원리다. 아마존 밖으로 나오면 단물만 빨아먹으려하니까 시장만 더러워진다. 생태계만 추접스러워질 수 밖에. 내 꺼는 내 꺼 늬 꺼도 내 꺼! 응? 아니면 뭐든지 남 탓! 앞에서는... 또 뒤에서는...!
    게다가 영국 역사는 저 종교개혁이 기점이다. 어떤 칼럼이 수도 없이 쏟아지게 된 계기가 뭔고 하니, 720년 일본서기의 탄생인 것처럼. 식민지를 하나둘 늘리면서 영국제국이 시작된 건 종교개혁 완수 다음인 제1제국 (1583-1783)부터. 그럼 그 이전은? 로마제국이 증말 오래도록 놔주지를 않았음. 또 게르만한테 여자들 뺏기고, 바이킹족한테 짓밟히고, 바이마르공화국부터 그 근방이 죄다 원수들. 만만한 포르투갈한테 쨉쨉 스페인제국한테 쨉쨉. 그러다 노르망디가 오래도록 왔다 가니까 영국 본토인들은 물론 영국왕부터 프랑스어만 고집. 심지어 프랑스에 살면서 원격으로 정치. 죽기까지 프랑스에서. 하다 하다 백년전쟁도 패배. 그렇게 영국은 유럽한테 안되니까 눈을 바깥으로 돌린 게 바로 영국제국의 시작! 동급들한테는 안되거든. 그처럼 1500년 1600년 이전 영국사는 굴욕의 역사. 그럼 제국 전성기 뒷북의 대명사인 일본은? 일본 역시나 1200년 1300년 이전은 언급하기 짜증남. (중국은 1900년 전후 대략 100~150년만 굴육의 역사지만 그와 끕이 다름. 영국이 1600년 전까지 숱하게 당하고 더럽게 당하니까, 에라~ 그렇게 중국도 속된 말로 뽕으로 조진 것임. 유럽한테 당한 걸 되갚을 수는 없으니까 나머지한테 몇 갑절로 되돌려준 것임. 다시 말해 영국이 유럽한테 당하지 않았다면 영국제국도 지금보다 훨씬 보잘 것 없었을 게 뻔함) 국보들 태반은 물론 1200~1300년 이전 문화재는 고유한 일본의 것이 거의 없음. 전부 다 백제 꺼. 아니면 신라, 또는 중국. 속이는 것도 한계가 있음. 허나 뻔뻔히 우기는 게 뭐다? 만세일계. 그게 바로 천황교. 즉 영국은 여왕 위에 하늘, 일본은 천황이 아니 천황(만) 하늘! 이래서 자성이니 반성이니 그런 게 말도 안되는 이치. 오히려 우리가 피해자요 전쟁범죄자는 국가를 위해 희생하신 거룩한 분들, 또 귀신들 영령을 달래드려야 해. 안 그러면 그분들이 노하시거든. 응? 이해되십니까 아닙니까?
    그래도 감이 올 듯 말 듯 이해가 될 뻔 말 뻔? 바꾸어 말해 아돌프 히틀러가 교주라고 생각하면 쉽다. 히틀러 1탄이 물러간 다음 그 왕좌에 히틀러 2가 앉음. 그런데 상징적 기념물을 20년 주기로 뿌수고 다시 짓고. 독일 전역에 나치교 성당과 나치교 예배당이 없는 데가 없이 쫙 깔렸고. 나치교 만자 상징 로고 앞에서, 미국 대통령과 영국 대사까지 불러다 절하게 만듬. 그럼 또 스페인 총리가 가서 아돌프 히틀러 3세한테 좋다고 90도 인사 꾸뻑. 또 따지고 보면 아돌프 히틀러의 족보를 살펴보니 조상님들은 죄다 북유럽 바이킹족과 야만족들. 그래서 아돌프 히틀러 족보를 싹 다 개조. 신분세탁. 전국민 정신세뇌. 문화로 꽁꽁 묶음. 다시 주제로 돌아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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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제의 팔각양식]
    하남시 / 이성산성 팔각건물지
    하남시 / 인근 동사지 / 팔각초석(목탑지 혹은 팔각의 불상좌대)
    하남시 / 민가에서 발견된 돌로 된 팔각좌대 부분
    안성망이산성 팔각건물지
    이천 설봉산성 팔각형 계단
    충남 부여 / 왕실이나 민가의 우물들 팔각 형태
    남한 산재한 석등 280기 / 팔각 (불교 관련 타국 석등: 인도 0기, 네팔 2기, 중국 2기)
    북한 산재한 석등 ?               (고구려 일대 석등 포함)
    전북 익산 미륵사지 / 미륵사 석탑 기초
    전북 익산 왕궁리    / 왕궁리 5층탑 기초 (건립시기는 650년 전후)
    강원도 금강군 내강리 / 정양사 팔각전    (당시 신라 영토일 가능성 있지만, 백제 승려 관륵이 만든 게 사실. 관륵은 그후 왜나라로 건너갔다고 일본서기에 기록됨)
    ......이마저 엑셀파일로 정리하시기 바람.

    (일본 호류지 옥충주자는 백제 위덕왕 때 왜나라에 파견된 백가 제작품인데, 그 테두리 투각금구 장식이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금제사리함 장식과 동일 →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을 만든 사람이 38대 천지(天智)천황이 되기 전, 즉 실권자인 중대형천황의 명을 받아 제작한 걸로 추정할 수 있음. 이래서~ 아사히 신문 구독자들은 궁내청에 머머발굴 허락하라 허락하라, 어째서 뭐는 비공개냐 비공개냐 따지고. 이래서~ 요미우리가 싫지만 등떠밀려서 뭔가를 폭로하고, 산케이 애호가들은 심심하면 궁내청에 협박전화. 사회지도층에 협박편지. 웬만한 실무자와 책임자들 생명의 위협. 더더군다나 인터넷 시대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먼저 알고, 기관이 나중 핑계대는 것처럼 꼴불견인 모냥새도 많지 않듯. 인터넷 시대 특성상 또 법치주의 때문에, 궁내청은 정보공개청구 소송도 상대해야 하지 아랫것들 착한 척도 상대해줘야 하지 걸핏하면 협박전화는 들끓지. 아주 그냥 골머리를 앓음. 물론 1,500년 내내 비둘기파는 연패요 완패라는 사실만 알면 됨. 때문에 차마 공개할 수 없는 사료는 대체 얼마나 될까? 무엇을 생각해도 상상초월! (일례로 남한 내에 전방후원분이 13개쯤 되던가.. 그 가운데 하나인 광주 월계동 장고분도 도굴됐는데. 대체 거기 누가 묻혔냐... 그 도굴 자료들 비밀 리에 조사하고, 일본내 한국형 무덤도 이미 옛날에 조사됐으니 비교해보면 되겠네!) 이래서 일본은 절대로 바뀔 수 없고, 바껴서도 안됨. 만세일계가 아니라고 이제 와서 착한 척? 말이 되나 말이! 일본 교육계, 역사학계... 뭐든지 들어엎어야 할 정도로 대폭 개혁하라고? 미쳐도 안됨. 절대로 안됨. 죽어도 불가능. 반대로 싫음. 극히 유감! 오히려 더 달림)
   * 1997년부터 5년간 일본 나라현 사쿠라이시 길비지폐사에서 발굴된 금당흔적. 일본 학계는 이걸 백제대사인 걸로 추정. 옮겨지고 바뀌어 마지막에는 대안사가 되었다고 주장하며, 역사서 기록을 근거로 대는데. 그러나 고대 왕실이 위치한 아스카에서 너무 먼 지역이며, 사원의 유구도 없고, 관련 자료가 나와야 하는데 그 역시나 전혀 없음. 곧 일본서기처럼 현재도 서명천황 때 기록을 짜맞추기 위해 궁내청 비위만 맞추는 식으로 모든 게 진행됨. 이건 뭘 뜻하냐? 백제에서 있었던 일을 왜나라에서 있었던 일본 각본 짜고, 겸임 또는 동일인물들도 모두 신분세탁. 그 완성품이 바로 일본서기! 도표로 재차 정리.

    도표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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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30대 무왕                      = 34대 서명(舒明)                      (← 동일인물)
백제 30대 무왕의 왕후 사택공주 = 35대 황극(皇極)천황(37대 겸임)  (← 동일인물)
교기왕자(무왕&사택공주 아들)   = 38대 천지(天智)(중대형왕자)      (← 동일인물)  
사택지적                               = 중신겸족                              (← 동일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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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맥 정리
백제 30대 무왕 + 선화공주(첫째 왕후) = 백제 제31대 의자왕 (백제 마지막 국왕) *
백제 30대 무왕 + 사택왕후(둘째 왕후) = 일본 제38대 천지 (이복형 의자왕에게 밀려 백제 교기왕자는 일본천황 등극)
                      사택왕후(둘째 왕후)  = 일본 제35대&37대 황극(皇極)천황
    * 의자왕 아들은 본명 부여풍/별칭 풍장. 그는 왜국에 있던 도중 백강전투에 참여하게 됨. 즉 37대 제명齊明(35대 겸임)은 의자왕의 새엄마니까, 풍장에게는...그렇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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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제에서 왜로 건너갔거나 양국 겸임했거나 다수 사례에서, 무왕계만 보자면 백제→왜로 건너간 사람에서, 
    백제 30대 무왕 + 왕후 사택공주 , 사택지적(사택공주 아버지)
                        ↓
                   교기왕자

    ~이 외에 망명자 명단에 공주 4명도 백제에서 추방되었다는 기록이 있는 걸로 봐서는. 공주 4명은 교기왕자의 이복 여동생들이고, 이들이 당시 일본 실력자인 제40대 천무천황에게 결혼동맹의 상징으로 바쳐진 걸로 추정. 이른바 혼맥! 다시 말해 망명한 공주 4명은 제35대 황극천황(37대 겸임)의 배다른 딸.  그럼 여기서 인물관계도가...! 40대 천무는 38대 천지(天智)의 남동생. 그리고 38대 천지의 여동생이 공주 4명. 고로 38대 천지가 남동생 천무한테 이복 여동생 4명을 줬다? 이래서 41대 지통천황은(40대의 부인) 천지의 딸이 아니라 여동생이라는 얘기. (남동생과 딸, 즉 삼촌과 조카의 결혼이 아님) 그래서 그만큼 천지천황에 대해서 자신의 아버지로서가 아니라, 오빠로서 혈연관계가 끈끈했고 직접 백제왕가 직계인 공주이기에 남편이 죽은 후에 아들과 손자를 천황으로 세우기 위해 애를 썼다는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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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신겸족(등원겸족, 사택지적) 무덤]
    지금까지 확실히 판명난 것은 없다. 다만 1934년 고분시대 종말기의 고분 1기가 원분 형태로 발굴됐는데. 천황 34~42는 팔각릉(사각 1단에 위가 팔각릉이자 주변부는 다르게. 즉 핵심만 팔각릉)이니까 팔각릉으로 묻힐 권리는 없었을 테나 발굴 자료를 살펴보니 천황에 준하는 고위 인사의 무덤으로 추측. 그래서 당시 곧장 발굴 금지, 출입 금지, 동시에 출토품들을 모두 다시 묻어버림. 
    그러다 반세기가 흘러 1982년. 교토대 지진연구소의 한 사무실에서 우연히 그 발굴 당시 비밀리에 촬영한 사진들 수십 장이 발견됐는데. 고분 피장자의 X선 사진과 여러 사진들로 보건대 유체에서 채취도니 두발과 함께 수년간 분석. 피장자가 등뼈와 늑골이 골절된 것이 사망 원인이고 금실은 모자에 자수를 위해 쓴 것으로 추정. 즉 금실로 수놓은 금모는 곧 중신겸족이 죽기 하루 전에 천지천황으로부터 받은 등원(후지와라)라는 성씨와 함께 받은 "대직관"이 틀림없다는 분석이 학계의 중론. 곧 34~42만 예외로 하고 나머지는 장례 개혁, 왕가도 무덤 형식과 전통 변경. 
    끝으로 이로써 첨언하자면 한국 역사학계는 물론 문화재청 등등 할 일 겁나게 많다는 점. 일본이 공산주의랑 똑같이 전국민을 어떻게 세뇌시켰는데(과거-현재-미래). 1500년 내내 바뀐 건 대체 뭔데? 왜 일본이 저처럼 초딩처럼 말도 안되는 주장들만 지속하는 건가. 다 그럴 만 하니까. 일례로 한국에서(남한에서) 가장 오래된 탑은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지금도 잘 모를 테고 과거에는 더 몰랐을 것이다. 일단 현재 연구 성과에 따르자면 최고 오래된 석탑은 익산 미륵사 탑과 부여 정립사 탑이라는 게 정설. 허나 둘 중 뭐가 더 오래됐냐... 아직은. 즉 일제강점기에 식민지 사관에 의해 그 2개 탑을 고려시대 건립이라고 세뇌시키니까, 그걸 무려 학계에서는 1970~1980년까지 철저히 신봉! 즉 학계가 아니라 그냥 동네축구와 다름 아님. 그러다 1980년 가까와지면서부터 겨우겨우 그게 고려시대 것이 아니라 백제 건립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1980년~1990년만 봐도 열형광측정보다 훨씬 값싼 탄소연대측정? 장비 자체부터 없었음. 뭐 CSI 드라마에서 어쩌고저쩌고? 그건 드라마고. 대충 때려 짐작해서 발표하고, 일 많으면 다시 덮고, 백제 때문에 뒤짚을 학설들 더 많다 싶으면 막 그냥 때려덮었음. 그래서 학계 원로가 제발 죽기만을 기다렸던 게 불과 얼마 전! 어? 즉 출발부터 늦었던 만큼 그야말로 쉼 없이 장족의 발전을 하는 건 좋은데, 뒤짚어보면 그만큼 아직도 할 일 많다는 뜻. 임진왜란, 식민지, 천황가 계보 등 때문에 지금 할 일이 과연, 필자만 많은 건가? 그럼 질문을 바꿔서 태평양 원시부족 문화가 변하는 게 빠를까, 원시부족 전통을 아름답게 이어가는 게 쉬울까. 일단 당사자가 원치 않고, 가능할 수도 없음. 그동안 천시받았던 백제 권역 문화재 발굴은 물론, 역사학계 구식탱탱묵은 꼰대들부터 정신차려야 함. 할 일은 산더미처럼 많고 정신차리지 않으면 어떻게 된다는 교훈도 살벌하다는 점 바로 알지 않으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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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왕) 복수 왕후론]
    첫째 왕후는 약 500년 후 발간된 역사서를 근거로 30대 무왕의 왕후는 1명이라는 게 2009년까지의 역사계 사실이었는데. 2009년 미륵사 금판이 발견되므로써, 그 모든 게 싹 다 뒤집혀버림. 그걸 서동요 드라마까지 만들고 영화에서도 써먹었는데, 그동안 코끼리 뒷다리 짚고서 토론한 셈. 일본서기는 사실을 바탕으로 뒤집고 바꾸고 역사서라기보다 코란 같은 소설과도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을 바탕으로 쓴 소설. 그럼 선화공주가 무왕의 유일한 왕후라고 볼 수 있는 한국 역사서 삼국유사라고 하여 100% 사실? 이래서 동네 축구 같은 우를 범하기를 조심해야 함. 신라 으쌰으쌰 하느라고 식민지 사관의 권위만 눈치보다가, 고구려 유적이 반짝 우르르르.... 백제 유적이 최근 뜬다 또 우르르르... 아니다 신라가 그래도 어쩐다 우르르르. (다 출발이 늦었고 꽉 막힌 악역들이 막강했으니까 나아지는 과정으로써 타산지석 삼으면 됨) 결국 2009년까지 전국민에게 거짓을 가르쳤고 전국민에게 사실과 다른 영화와 드라마로 감동시켰음. 고대사로 넘어가면... 판을 갈아엎어야 할 정도! 역사가 이래서~ 재밌음. 하긴 2009년 현존 국내 최고(最古) 미륵사지 석탑에서 느닷없이 타임캡슐이 발견될지 누가 알았을까!
    즉 첫째든 둘째든 셋째든지 "사택왕후"는 명백한 무왕의 왕후라는 게 증명됨. 2009년까지... 학계가 뒤늦게 깨달았다고 쳐도 일반인들은 지금 현재도... 무왕의 왕후는 오직 선화공주 1명 뿐이라고 지식 자랑하기 바빴는데! 아니... 어떻게? 그러나 선화공주가 무왕의 또 다른 왕후인가는 무엇으로도 확실히 증명할 수 없고, 사료를 바탕으로 추측하는 것일 뿐. 다만 백제&신라가 존망을 다투는 관계였다고 할지언정 혼맥의 예가 있었다, 또 다른 사료에 따르자면 고구려 몇 대 왕이 왕후를 1명이 아니라 3명 둔 전례도 있다는 근거가 뒷받침. 그 때문에 복수 왕후론이 제기됐는데, 동네 축구처럼 우르르르 그럴 뻔하다가, 또 선화공주는 실존 인물이 아니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경우의 수를 검토한 결론은 복수 왕후 또는 복수 이상 왕후로 결론지어짐. 왜냐하면 익산 일대 쌍릉(대왕묘&소왕묘)에서 소왕묘에 묻힌 사람은 선화공주일 가능성이 높거나, 또는 공식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제3의 인물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 따라서 지금까지 연구하기로는 복수 왕후론까지만~ 설득력을 얻고 있으나. 그러나 사택왕후는 실존 인물로 증명 완료, 선화공주는 역사 사료에서 꾸며진 이야기 등장인물로 아직까지 실존인물로써 증명이 전혀 안됨. 당연히 조사와 연구는 지금도 나중도 계속. 일단 여기까지만 하고 나중 부언설명할 기회가 생기면 그때 추가하는 걸로. 
    설명이 들쑥날쑥하니 조금만 덧붙이고 정리까지. 즉 선화공주가 실존인물이냐 아니냐를 따지기에 앞서, 삼국유사에서 분명히 서동설화는 내용 출처가 차전이라고 밝혔다는 점. 때문에 선화공주가 실존인물이냐 아니냐에 앞서 만약 선화공주가 실존인물이더라도, 선화공주의 남편인 서동. 그 서동이 무왕이라고 단정지을 수도 없는 실정. 왜냐하면 상식적으로 장인어른 나라와 대규모 전쟁을 한다는 건 이치에 맞지 않기 때문. 더더군다나 그럼 장인어른이 자진해서 미리 자기 딸을 인질로 보낸 거잖아? 즉 선화공주를 왕비로 삼아 의자왕을 낳아 단란한 왕가를 이뤘는데, 그런데 장인어른의 나라인 신라와(신라왕은 장인어른) 대규모 전쟁을 한다? 말이 안됨.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 즉 역사적으로 친한 사이가 절대로 아니라, 당시는 적대적인 사이. 그런데 신라에서 먼저 공주를 인질로 보낸다....이상함. 이해가 안됨.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제 동성왕 시기에 적국인 신라와 국혼한 예를 삼국사기는 기록함. 또 백제 동성왕은 백제에서 태어나 자란 게 아니라, 왜나라에서 태어나 자란 다음 나중 백제의 왕이 된 경우인데. 여기서 겸임의 예를 확정하기 어렵듯, 일부 학설이 등장. 
    일부 학설: 서동요 설화가 왜나라(현일본)에도 거의 똑같은 예가 있음. 그걸로 보건대 "서동=무왕"라고 단정하면 서동요와 비슷한 일본 설화보다 연대가 훨씬 낮아지는 모순 발생. 따라서 일부 학파는 서동요의 서동을 동성왕으로 보기도 함. 
    반면 일부 학설 반박: 미륵사가 창건된 시기와 발굴된 여러 사료로 보건대 "서동=동성왕"은 성립될 수 없는 억측. 그건 미륵사 창건 시기와 여러 사료가 증명.
    요약하면 
    a) 삼국사기 / 서동요에 나오는 서동이 누구인지 아직까지 모름
    b) 삼국사기 / 서동요는 설화 & 출처는 차전. 고로 선화공주 실존설 신뢰도 0
    c) 삼국사기 / 서동요: 만약 선화공주를 실존인물로 보더라도 그녀를 무왕의 왕후로 단정하기 애매함
    d) 삼국사기 / 서동요: 만약 선화공주를 실존인물로 보더라도 서동이 누구인지 불확실
    e) 반면에 무왕의 왕후로 지금까지 증명된 건 사택공주 오직 단 1명뿐. 나머지는 모두 가설일 따름! 
    f) 선화공주의 실존을 증명할 수 없으므로, 선화공주가 의자왕 어머니라는 것도 단지 가설일 뿐
    g) 백제 마지막 왕인 31대 의자왕. 의자왕 자체가 미스테리! 출생일 불분명, 친모도 불분명





    13

   [직접화법 VS 간접화법]
    비교적 과거에 일본 역사학계가 한국 역사학계를 얕잡아봤던 건 왜일까? 지금이라고 그분들 속마음을 알 길이 없다 라는 비꼬기 만큼은 사양한다. 일단 사실인가, 아닌가? 긴 설명 생략하고. 그럼 무엇 때문에 그랬을까? 아니 어째서 문명을 공유하는데 뭔가 착오가 발생하는 걸까! 왜냐하면 그게 다 많은 부분 직접화법 대 간접화법 같은 양식 차이 때문이다. 다른 말로 문화! 관습을 비롯해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게 다르니까 그마저 비례할 수 밖에. 더더군다나 근대사가 불쾌하다는 점도 대단히 큰 몫을 하나, 그러나 다른 무엇보다 직접화법&간접화법은 보통 문제가 아니니만큼 그러므로 필자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이거 정말 보통 문제가 아니거든요, 네? 똑똑한 전문가, 알고 봤더니 때로는 멍청하고. 존경받아 합당한 권위자, 이따금 허접해지는 이유가 뭔고 하니 그게 바로 간접화법과 직접화법 때문이라는 것. 앞서 1문단에서 뭐랬나? 평소에는 말 주도권 뺏기, 말머리 가로채기, 말 맞받아치기, 떠보기, 간보기, 이간질, 아부, 앵무새 따라하기, 헛바람넣기, 살짝만 띄워주기 부추기기, 말 아끼며 맞짱구만 치고 절대로 정해진 대사 이상은 말하지 않기. 그와 더불어 화려한 언변까지 토론에 최적화된 분들과 더불어 말발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그분들. 왜 하필 직접화법 VS 간접화법만 나오면 당황할까? 꼭 그렇지도 않고, 언제나 그렇지도 않을 테지만. 저 1문단만 봐도 대체 여자들한테 짝사랑 못받아봐서 억울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남자들 세계에서 덕망이 두텁지 않아 불만족스러운 영문에 근거한 건가! 응? 대체 뭘까 그 이유가? 그렇게나 (속된 말로) 이빨까는 걸로 봐서는 아무 여자 다 꼬실 수 있을 걱 같은 양반들께서, 아니 왜? 1문단에서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혼자 위선떠는 위선자께서도 평소 대체로 착하고 선량할 텐데. 인지체계가 왜 갑자기 맥락 다 무시하고 직접화법만 편애할까? 그런데 여기서 이상한 점. 그건 뭘까? 지 이득과 직결된 사안이면 절대로 그럴 일 없다는 것! 안 그런가? 그땐 그야말로 자기 명석한 두뇌 100% 1000% 풀가동이자 초능력까지 인지능력을 발휘함. 다만, 이건 착한 척해서 입바른 소리 좀 해도 되겠다 싶으니까 말 같지도 않은 논리 전개. 그게 뭔가, 네? 뭐 1절만 하라구요? 알겠습니다. 허허허. 서론이 길었다만 이제 살짝 몸 풀렸으니 2절을 꺼내자면 이렇다. 일본서기 천지천황 2년 9월조에 이렇게 나온다. 
   "......주유가 항복하였다. 이 일을 어찌할까. 백제란 이름은 오늘에 끊어졌다. 조상의 묘소가 있는 곳을 이제 어찌 다녀올 수 있으랴. 다만 저례성에 가서 일본의 장군들과 만나 이 사태의 기밀한 부분을 논의하자..."
    이게 바로 백촌강 전투 패배의 그 장면. 이 문장을 놓고 한국측 사학자들은 과거 (일부?) 그걸 앞뒤 쏙 떼고 조상의 묘소 부분만 강조. 그것만 놓고서 그걸 빌미로 백제와 일본이 한뿌리이고, 백제 사람들이 일본황실을 세웠다는 증거로 자주 인용했다는 점. 물론 결코 OX 문제는 아니다. 다만 전후좌우 살피고 역사학 뿐만 아니라 언어학, 고고학, 경제심리학, 심리응용학, 인류학 등등까지 감안해야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다는 점. 일본서기에 등장하는 저 발언은 풍장도, 일본군 총대장도, 그 수하가 발언한 내용은 아닐 것이다. 즉 백제쪽 비전투 인력이 말했다고 보아야 설득력 있다. 전투중대와 본부중대는 관례도 군기도 자연히 다를 수 밖에. 실무자와 관계자가 같나? 불미스러운 근대사에 기인한 열등감을 왜 하필 이걸로 해소해야 하나, 라면서 이따금인지 항상인지 양국 역사학계는 평소에 말이 잘 통하지 않았다는 점. 즉 속국 개념이라기보다는, 칼럼 설명이 길어지듯 길고긴 일본의 독립이자 일본국의 (최초)탄생에 얽힌 몇 백년 대하드라마라는 점이 중요하다. 1776년 7월 4일 미국이 독립할 때 여러 과정과 수많은 사연과 극적인 줄거리가 함께 했을 테나. 그러나 그 연대표에서 미국은 일관되도록 독립을 추구했지, 프랑스 식민지로써 그냥 적당히 연명해야 하겠다? 제발 그러고 싶다? 간절히 그것만을 원한다? 그런 마음은 없었다. 미국은 독립이라는 유일한 목표로 달려갔을 뿐 뭐 적당히 영국의 속국으로 남아서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 라는 속셈? 없었다. 그게 역사다. 다만 체계와 모든 게 유럽이 뿌리이기 때문에 미국은 <윌슨의 국제자유주의>, 새 국제질서에서 위싱턴 역할은 기존의 유럽제국주의가 전세계를 일방적으로 착취했던 방식과 노선을 달리했다는 점. (최소한 의도와 시작은!). 즉 (역사라는 과정에 따른 의미로 봤을 때) "국제법의 출발점"이라고 일컫는 1648년 웨스트팔리아 평화회의. 베스트팔렌 조약를 낳았는데 그렇다고 유럽에 당장 평화가 찾아왔나? 전혀 아님. 베스트팔렌 조약 때문에 全유럽은 천사로 거듭났을까? 전혀 아니라니까요 글쎄. 그만큼 윌슨 평화주의는 유럽 제국주의와 또 다른 출발점이었으니. 물론 그게 초심대로 나중 실현되기는 힘들었으나 적어도 세계라는 동네에서 전임자 골목대장과는 달랐다는 점만큼은 역사가 증명했다. 그래서 백제가 위기에 처했다? 돕자, 아니다, 국력을 총동원 해야 한다, 싫다... 그러다 조력파가 이긴 것. 지고 이기고가 아니라 만장일치라는 분위기로 모든 관료는 거의 100% 1세대 백제인이던가 1.5포인트...방계까지만이고. 아니면 출세가 불가능한 시대였으니 어쩌면 당연하긴 한데. 그만큼 모국과 분국 개념보다는, 모국과 독립국(또는 최초 탄생국? 신생국)으로 발전하는 과정의 개념이 훨씬 강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문명을 비롯한 모든 체계가 이입된 모국이니만큼 인간적으로든 원론적으로든 뭘로 봐도 국운을 걸고 도와주는 게 옳다, 그래야 한다, 아니면 금수다! ~라면서 실제로 그랬다는 점. 그때 물론 반대파는 39대던가 40대던가 기타 등등. 즉 하도 일본이 1,500년 내내 역사왜곡을 하고 식민지 역사관을 심어놓고, 또 한국 역사학계도 짧은 시간 풀어야 할 과제와 바로 잡을 숙제가 산적해있었기 때문에 그 만큼 고대사 연구가 어려웠을 거라는 점 충분히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렇긴 하다만 비교적 과거에 일본 역사학계가 한국 역사학계를 깔봤던 원인은 분명하다. 비전투 인원이 했던 대사를, 전투요원 중에서도 수장급이 했을 걸로 무리하도록 추정했기 때문. 즉 열등감, 자존심, 자긍심과 너무 심하게 얽히지 않았다면 가치판단에 큰 무리 없이 올바르게 해석했을 것인데. 하필 1,500년 내내 역사왜곡이요 근대사도 얽히고 당장 현세대만 해도...그랬으니 오판했다는 점. 거기서 직접화법 VS 간접화법은 또 우리를 들었다 놨다 가만두질 않는다. 바로 그게 중간에 개입해서 요술로 우리 혼을 쏙 빼놓는 것만 같다. 자, 그런 의미에서 1문단에서도 언급했듯이 또 다른 속세의 격언을 떠올릴 수 있다. 그러지 않으면 안되니까 말이다. 
   「내가 오빠 이럴려고 만나?」
    이럴려고... 평소에 말길 잘 못알아듣지 않는 상남자. 이때 그걸 직접화법으로 해석하는 남자. 있을 수도 있는데 웬만하면 없다. 그럼 여자는 남자가 그걸 직접화법으로(만) 해석하기를 바랄까? 또는 결과적으로 남자가 그 명대사를 직접화법으로 받아들이면 그 얼마나 좋아할까! 안 그렇습니까, 여러분? 네? 제 말이 틀렸습니까? 저 대사 들어보신 분 살짝 저만 볼 수 있도록 거수해보시겠습니까? 네? 저 천리안이니까 안심하시고 말입니다! (손차양)~! 캬, 어? 이렇다니까요 글쎄. 네? 그런데 말입니다 저 대사는 멜로드라마이자 실생활이고, 본 칼럼 주제는 진지한 학문이고. 물론 호주가 내전 때문에 3개로 쪼개진다 해서, 우방국 뉴질랜드가 전국민 5~10%는 물론 예비군까지 총동원해서 도와주지는 않는다. 어디까지나 문서에 근거하고, 기구간 미리미리 그럴 땐 어때야 한다를 정해놓기 때문. 즉흥적으로 행동할 사안이 아니니까. 즉, 한국의 과거 국가 중 하나인 고려, 고려의 왕 몇 대가 중국와 혼례 또 몽고와 혼례. 그러다 현왕인데 중간에 중국에 가서 돌아오지 않고 그냥 중국에서 사망. 또 노르망디 왕조가 유럽에서 승승장구할 때 영국 역시나 쥐었다 폈다 손바닥에 올렸는데. 당시 영국왕 몇 대, 프랑스에서 태어났거나 죽기를 프랑스로 고집했거나 영어는 일평생 단 1마디도 입에 담지 않았던 영국 왕 누구. 그런데 그와 달리 미국처럼 일본 국호가 없을 때 왜나라는 그게 몇 백년 지속되니까 신생국 탄생을 바랐다는 점. 다만 그게 일본서기 이전부터 역사왜곡이 시작됐고, 일본서기를 위해 철저히 고증하고 연구하다가 암호문 같은 일본서기를 만들어냈으니. 나중 수도 없이 편집 편집 고치고 바꾸고 넣고 빼고. 그래서 지금까지 초지일관! 그게 역사학까지 짙디짙게 영향을 미친다는 점. 
    물론 당시 왜나라(현 일본)이 노르망디 왕조의 후예이나 프랑스말만 고집했던 영국왕 사례와 똑같지 않고, 미국식을 고집한 건 좋은데. 문명이 전수되고 체계가 이입됐다는 점을 700~800년 사이에 모두 제거. 대표적 사건은 한일동종 서적 분서 사건! 영국영어가 미국영어로 자연스럽게 옮겨갔다는 점까지 부인하고 싶어서, 거꾸로 미국이 근대는 물론 고대까지 영국을 식민지배했다고 미화. 즉 왜나라가 영국왕 사례와 똑같지 않았다는 게 아니라, 다들 백제계와 백제식 밖에 없으니까 좋든 싫든 몇 백년 백제&부여산만 고집하다가 점점, 점점 독립으로 옮겨갔다는 얘기다. 자연스럽게 말이다. 자, 필자의 의견에 썩 마음에 들지 않는 분들이 아마도 적지 않을 걸로 예상하여 미리미리 번호표 발부기도 준비했다. 시간없으니까 한꺼번에 싹 다 질문해보시라. 들어와. 들어와요! (몸짓) 시간없으니까요, 네? 





    14

    쥐도 궁지에 몰리면 문다는 속담이 있다. 그럼 고양이가 쥐구멍에 몰리면 어떡할까? 역사를 무려 1,500년 왜곡하는 걸 계속했는데... 기원전 660년까지 끌어올렸는데. 그래서 전국에 쫙 깔린 신사 안내판에 명시했고. 전국민에게 150년 내내 미개한 일본 바깥의 역사와 문명 대비, 일본의 우수함과 왜곡 역사만 교육시켰는데. 이제 와서... 말이 안된다. 말도 안되지. 그게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상상? 아직 입도 뻥끗 안했다만 벌써 이렇다. 잘잘못이 한두 개면 말도 안한다. 그런데 어떻게 이처럼 예술적으로 뻔뻔할 수 있을까? 원시부족이 그렇다니까요 글쎄. 그러니까 문명인인 척 아는 척, 옳은 척, 잘난 척하면 그 꼴 어떻게 보나. 대동단결하여 대노! 이와 같은 현상을 저번에 필자가 당해봐서 조금은 알 것 같다. 즉 고등학교 친구들 모임 곗돈 횡령 사건! 친구들이 이러쿵저러쿵 그러다 필자가 입만 뻥끗 했는데 글쎄, 너 빠지래! 잘못은 누가 했는데 손만 까딱한 게 뭔 잘못? 방구 낀 놈이 성낸다는 말이 딱 맞다. 다만 맞은 놈은 발 뻗고 자고...그건 좀 다름. 게다가 매파만 득세할 수 있는 문화 특성상 하필 악녀 기질이 관습의 기반이 되네? 남자는 단 1명도 없음. 이래서 남자 대 남자로 말이 통할까? 똥싼 년은 도망가고 방구낀 년만 남는다 라는 말과 대체 뭐가 다를까? 네? 안 그렇습니까? 고로 이건 소꿉장난도 아니고 용의 역린을 건드린 걸로도 모자라 하늘이 웃을 수 밖에. 그러면서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면서 우리가 만약 참배를 하지 않는다면, 그 존경하는 귀신들께서 분노하실 것이므로 고로 전쟁범죄자 참배는 옳다 문화다 그게 다 평화를 위해서다? 뭐든지 뭐가 됐든 문명과 상극. 따라서 몇 대에 걸쳐 혐한, 옆동네 멸시, 겉으로 존중 속으로...그걸 극명히 반영하는 현상으로 다음을 지목할 수 있다. 
    너 여기서 빠져라 = 일본에서 나가라! 
    다만 바깥으로 진출한 일본인들이 차별받는 건 싫음! 뭐지? 뭐야? 어? 뭐냐고! 
    2008년 일본 TBS에서 방영된 드라마 <도쿄대공습>에서 조명발을 어디에 집중했나? '얼마나 더 우리를 죽여야 속이 후련하겠냐!'. 즉 동그라미(○)가 바깥에 피해끼치는 건 얼마든지 좋고, 그 반대는 안되고! 뭐야? 자업자득이니까 그랬을 뿐. 시도 때도 없이 뭐든지 언제나 남 탓! 도대체 그 사고체계는 어떻게 작동하는 것일까? 미군만 악마로 그리고, 대공습 알고 있어도 도망가지 못하게 묶어놓고, 볼링공이랑 삼광작전이랑 전쟁 성노예는 아무것도 아니다잖아? 늬가 좋아하는 돈, 라는 대사처럼. 뭘 줘도 결코 좋게 주지 않는 아름다움처럼. 우끼시마배에 실어서 고국으로 돌려보내주는 척하면서, 자국민 선장 및 선원들은 대를 위해 희생되는 소 원리로써 전원 몰살. 오키나와? 버려. 더러운 것들. 동일본과 이누이족? 추접스러운 것들 가까이 오지 말라 그래. 드물게 착한 척한다고 제2차 세계대전 강제 노동 때문에 죽은 사람들을 위한 위령비? 바깥에서 생각하는 위령과 전혀 다름. 천황교이자 신도에서 말하는 위령은 일왕을 위해 죽은 영령을 위로하는 것. 곧 천황을 위해 잘 가셨다 부디 어쩐다...! (절레절레) 악마의 섬 사할린을 비롯해 전쟁노예만 과연 몇 명이었는데? 그럼 그 가족과 친구와 친분들은? 그러면서 몽땅 외면한 체 희망찬 내일로 나아갑시다. 어차피 열도는 점점, 서서히 태평양으로 멀어져가는 중. 혼자만 고고하거든. 

    도표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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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  일본어 발음 : 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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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빨리          바리바리
동쪽/서쪽         히가시/니시 : 해가 곳는곳, 해가 누우신곳
남쪽               미나미        : 문(門)냄→무내미→무나미→미나미
북쪽               기타          : 귀(歸)터. 북쪽으로 돌아감
앞에               마에         :맏이 맏→마에. 앞에→아페→마에
해돋이            히다리       :해는 히, 돋이는 도디. 히도디→히다리
나(I)               와따시      :나따위→와따시  
작다               찌이사이   :전라도 사투리 쬐까나하이→→찌이사이
깊다               후까이      :푹 까인→후까이
얕다               아사이      :얕으이→아사이
귀엽다            가와이      :귀여우이→가여우이→가와이
교활하다         주루이      :스르륵 빠져나간다→주르륵 흘러내린다→주루이
터무니없다      토호우모나이: 터무니없다→토호우모나이
헛되다            무다다       :허무하다→무하다→무다다
아주 적다        와주까다    :(전라도 사투리) 아! 쬐까나다→와주까다
좋아한다         수끼다      :죽인다→쑥! 하다→수끼다
싫다              까라이다    :싫다→꺼린다→끼라이다
쩨쩨하다         게찌다      :쩨쩨하다→깨지락거리다→깨지다→게찌다
측은하다         후빈다     :가엾다→(속을) 후빈다→후빈다
참는다           가만다     :참는다→가만있다→가만다
헤메다           헤메구루  :헤메다→헤메구→헤메구루
열다              아게루    :아~하게 하라우→아가리(아게루 명사형)→아게루
이해하다        와카루     :이해하다→알겠어라우→와카루
담그다           쯔게루    :담그다→젖게 하우→쯔게루


일본어를 보아하니 어감이 남한 사투리, 북한어와 완전 흡사. 옛날 백제어, 신라어가 그대로 변했으니 대부분 일본어 사전을 통채로 설명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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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전) 미국 안에서 인디언을 아이누족이라고 비유하자면. 
    백제    = 영국,프랑스,스페인
    신라    = 네델란드
    고구려 = 벨기에?
    원나라 =
    ...
    이 비유가 마음에 드냐 안드냐는 문제가 아니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사실이야 거짓이냐가 중요하다. 그런데 1,500년 내내 일관됐을 텐데 이걸 어쩌지? 이래서 칼럼을 써도 써도 끝이 없다는 거다. 안 그런가? 누가 아는 척 못해서 안달난 건 아닌데. 이거 정말 지식노동 신물이 다 난다. 어? 쓴물이 올라온다구요. 이걸 어쩌면 좋지? 미쳐버리겠네. 돌겠다구요. 그렇다고 일각에서는 언제까지 경계해야 하냐, 얼마를 더 미워해야 하냐,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냐 라고 하실 수도 있는데. 임진왜란 배경지식을 알면 답은 굳이 생략해도 될 것이다. 100면 1000명 탐정과 중간책 파견해서 정보를 캐내보니. 이건 완전 바보들이거든. 이용해먹기 딱 좋네? 한마디로 단순(무식). 그럼 뭐 이용해드려야지. 압승, 대승, 연승 뭘로 봐도 확신 100%. 그래서 고양이가 쥐를 가지고 놀 듯이 알려주고...알려주고...대놓고 날짜까지 알려주고...그림까지 보여주고...! 그래 봤자 구시대성이 뭐라고 앞서 말했듯이. 뭐 그랬음. 만화영화에서나 육식동물이 당하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죽냐 먹냐 속고 당하냐 밖에 없다. 큰 물고기는 작은 물고기를 잡아 먹고, 작은 물고기는 새우를 잡아먹는 것. 뭐 언제까지 민감해야 하냐? 거울을 비춰보자. 언제까지 저 토끼들 징징거림 들어줘야 하냐. 훤히 보인다. 사람 사는 덴 다 똑같듯 어딘가도 분명 좋은 사람들 많고 어쩐다? 문명 기준을 엄정하게 설정하면 비교적 훨씬 적을 수 밖에. 왜냐하면 원시부족 기준으로야 동등할 테나, 문명 기준은 다르니까. 따라서 문명인인 척 교양스럽게 착한 척 입바른 소리한다? 동그라미 안에서 살 자격이 없다만 알면 된다. 그걸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스포츠가 뭐냐? 스모다. 지면 끝!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고 가르치는 게 문화. 남한테 피해를 끼치지 말라? 800만 귀신과 온갖 굴레가 천문학적인데, 남한테 함부로 부담감을 안기면 안되기 때문. 그럼 결국 거울─반사─에코처럼 똥물은 내게 튀기는 것. 그럼 크고 작은 뒤통수 기록들은 엑셀파일로 정리되어 그 메타데이터 공유되나? 대체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제발 만들지 말라고 누가 물 떠놓고 기도하시나 보다. 안 그런가? 딴 건 몰라도 저 도표. 설마하니... 혹시... 저 화살표를 반대로 바꿔야 할까? 묻는 나도 능청스러워서 짜증난다. (절레절레)! 다 알면서, 응? 다 알면서 근데 정작 저 화살표가 반대라고 1,500년 내내 우기는 식 아닌가. 그게 어디 보통 일인가? 정녕 저 아름다운 분들께서 원해서 궁내청 비밀을 폭로하겠냔 말이다. 
    끝으로 나도 질문 하나만 하자. 네? 좀 그럽시다. 각설하고 즉각 말하자면 이렇다. 
    익산 미륵사지 서탑 출토 사리장엄구, 2009년 익산 미륵사지 서탑 심주석에서 발견된 사리. (A) 그 사리는 정녕 누구의 사리일까? (B) 그리고 그 사리가 발견된 미륵사의 미륵은 무엇을 뜻할까! 





    15

   [한국 흑백지수 A]
    (2001년 천황의 백제 관련 발언에 비추어)
    내용은 익히 아실 테니 생략하고. 역사학을 논하다보니 어쩌다 현대사, 아니 현실까지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단적으로 말해서, 2001년 저 언급 때문에 열도의 사회지도층은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지진과 해일을 미리 읽는 곤충과 동물들처럼 일사분란하게 행동. 98%에서 예외인 2%도 편집해서 100%면 공산주의니까 모냥새만 적당히. 그게 언론과 정치-사회-경제계가 잘 소통하는 예일까? 그런데 정작 중요한 점은 오히려 그건 그나마 낫다는 점. 왜냐하면 1,500년 내내 일관됐으며, 축척된 기법, 난보쿠초 시대 (1333년 ~ 1392년)에 기타바타케 지카후사가 쓴 "천황 정통 기록"으로 시작하여 지금으로부터 약 150년 전에 확립된 황국사관을 아름답고, 부드러우며, 자연스럽게 표현한 사건으로 별 특별할 게 없는 사안이기 때문. 즉 77년간 존속했던 대일본제국(1868년~1947년)의 상징. 지금이라고 다른가? 반면 시선을 반도로 돌리면. 
    고려시대 외교관련 구시대성, 지금 생각하니 그게 정말 예쁜 정치관인가? 빙고! 그럼 조선시대 쇄국정책을 지금 똑같이 반복하면 어떨까? 말이 안되는 소리. 일본만 2001년 어떤 사건으로 정신 똑바로 차리는 계기가 되었던 게 아니라. 한국도 똑같았다. 아니 출발이 현저히 늦었던 만큼, 동시에 변하지 않으려는 구시대성 때문에 더 어려웠다는 점. 예를 들어 정권과 언론이 매우 사이 좋지 못했던 시대인 2001년 한국. 동아일보에 대한 세무조사 당시 反김대중 선봉에 섰던 동아일보가 DJ에게 (기득권층이 보기에) 정치적 보복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는 세무조사를 당했는데. 그 때문인지 동아일보 회장 자택 압수수색을 당하는 과정에서 김병관 회장 부인인 안경희씨가 투신자살. 회장 부인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동아일보 김회장 구속. 서기 600년대 후반 천황이 죽었는데 국장도 미룬 채 모국을 돕기 위해 국력을 총동원해서 전쟁준비과 해외 참전을 감행했던 모습과 참 비교됨. (아무리 동맹국이어도... 그건 말이 안됨. 아무리 극우방이어도... 이상함. 태어났기를 죄다 그쪽이니까 그랬지. 또 그 즈음에 왜나라는 자국 사신을 위나라던가 당시 중국으로 직접 보낼 해군&해상 교통 기반이 없었기 때문에 현아이슬란드처럼 옆동네 배 타고 사신을 중국으로 보냈는데. 그래서 백제가 위험에 처하자 배 400척 만들다가 당시 35&37대 천황 서거) 
    그러니까 왜? 어떻게 0이 갑자기 1이 되겠나! 그럴 리는 없다. 김영삼 정권이 하나회 척결과 금융실명제 같은 혁혁한 성과도 이뤘으나. 군복 3연타 후유증을 단박에 어떻게 바꾸나. 절대로 안 될 일! 사회지도층이 제발 그래주라고 어디 애원할 사람들인가. 그럼 혁신은 꿈도 못 꿀 환경이었다 라는 뜻인데. 그 대가는? 당연히 IMF! 과거 군복 3연타 다음에 등장한 정치인 대통령으로써 하는 데까지만 했을 뿐. 개혁은 불가능하기 때문. 그런데 과거 40년 업보가 IMF라는 선물을 김대중 정부에 안겨주네? 全언론사들은 쾌재를 부르며, 발가벗고 춤이라도 추고 싶다는 듯, 신나게 대동단결하여 때림. 전부 DJ 탓이라는 것처럼. 몽땅 DJ 때문이라면서! 싹 다 DJ가 책임질 일이라는 듯이. 그렇게 실제로 DJ는 굴욕적으로 IMF가 요구하는 강도높은 서류에 일일이 서명 다했음. 즉 재주는 곰이 부리고 달콤한 과일은 누가 따먹은지도 모르도록 사라져버렸을까? 40년 누적 결과 IMF라는 굴육을 선물하니 그걸 DJ정부 2년 만에 다 갚았음! 그러나~ 어? 그러나~ 모든 건 DJ 탓. 실상 금융위기는 60년대, 70년대, 80년대 계속 있었음. 그냥 40년 낸 아슬아슬하다가 DJ가 바톤을 넘겨받으니 딱 터졌을 뿐. 도대체 사회지도층들이 얼마를 빼먹었길래! 당시 만신창이가 됐던 거지. 해방 전후 모두 악인과 배신자와 비열한 사람들은 계속 부자로 재산은 알아서 늘어나고. 또 서민들은 속고 속고 뭐가 뭔지도 모르고. 기록 엑셀파일로 정리해볼까, 말까? 말하자면 출발부터 늦고 선진 사회보다 50년 100년 늦은 데도 불구하고 사회지도층들은 조선사회랑 똑같이 만들지 못해 안달. 그냥 타임머신 타고 뒤로만 가는 데 (저렴한 표현으로) 환장? 부끄러운 줄 모르는데 어떡하나. 심지어, 그러는 언론사들이 군복 3연타 몇 십년 동안, 과연 얼마나 정의로웠을까! 기록이 하나도 안 남아있나? 또 먼산 쳐다보기! 뭔 책잡힐 과거가 뭐 그렇게나 많아? 그게 정녕 언론사가 할 일인가? 어? 그러고서도 글쟁이? 놀고 있네. (절레절레) 그 때문일까, 어떤 영화 대사가 연상된다. "(부패 형사가 전업해서 현직 형사 동료를 만나서 하는 말) 나만 먹었냐? 어? 나만 먹었냐고!" (그 말 듣고) "그러니까 작작 좀 먹으라 그랬잖아, 어? 아 글쎄, 됐다! 그러지 말고......" 여기까지. 이러니 혁신을 어떻게 해. 응? 좋은 건 다 우리가, 나쁜 건 다 남 탓! 똑같잖아? 응? 하나도 다를 거 없다고! 오히려 한쪽은 프로 한쪽은 아마추어. 안 그래? 그런 핀잔 듣기 싫으면 마피아 게임만 하면서 골목에서만 폼잡지 말던가. 코흘리개 초딩도 아니고 그게 뭡니까, 쪽팔린 줄도 모른 채 말입니다. 노벨평화상도 받았으니 그거 저거 쌤쌤 퉁쳐서 독박쓰면 되겠네, 그건가? 아닌가? 안 그렇습니까? 할 말 없으니까 또 맞춤법 트집잡지 않을랑가 모르겄소!
    고수는(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전쟁범죄자를 추모하자 영령을 달래줍시다 국가를 위해 희생하셨는데 독박이 웬말입니까! 하수는(한국은) 노벨평화상이 죄다 독박쓰면 되겠네 아닌 말로 그게 최고로 간편하잖아 왜 대를 위해 소를 희생못해 지만 살겠다고? 40년 발전한 성과를 한방에 IMF로 망신살 톡톡히 샀으니 全언론사 대동단결! 자, 나를 따르라~! (주위를 보면) 아무도 없어. 다 어디 갔지? 좋을 때 으쌰으쌰 어려울 땐 싹 다 개인 플레이! 안 그런가? 나랑 별 관계없으니까 입바른 소리하던가 착한 척, 내 재산과 직결되니 눈에 쌍심지를 켬. 의료드라마처럼 지 잇속 안 챙기고 고지식허니 일 밖에 모르는 천재 응급센터장을 곱게 볼 리도 없고. 대학병원내 천재 외과의 견제하느라, 그게 그렇게 난위도 높은 기술이 아니다 어쩐다. 무대체질 시켜만 주면 누가 못해? 사극이면 사극 멜로드라마면 멜로드라마. 그게 아니라 (언론사와 이상한 방송사가 애용하는 표현처럼) 잡탕? 어? 여자 만날 땐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고. 여자만 없으면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하이에나 군침, 아프리카 들개떼 껄떡? 이래서 내부의 적이 더 무서운 법. 안 그렇습니까 여러분? 제 말이 틀렸습니까? 네? 이건 아닙니다~ 이건 아니라구요. 자, 여러분 들고 일어섭니다~ 우리 모두 젊음의 행진을 시작합시다~! 워 워 워. 흥분을 가라앉히고 할 말 마저 하자면. 
    그런 반면 2000년 초반 한국은, 저게 누가 봐도 정치적 보복이다? 한국 16대 대통령 노무현이 행정수도 건립, 왕조시대처럼 집중된 체계를 분산하자. ~라고 했을 때 전언론은 뭐랬나? 그걸로 판단했을 때 2001년 천황 백제 관련 발언에 대한 일본 사회지도층의 반응은 지극히 예스러움에서 한치도 벗어났다 할 수 없다. 당시 법조계는 어땠나? 돈봉투면 다 됐다. 그거 개혁하자고 지금도 2021년도 고심하며 입씨름하는 거 아닌가? 2001년에 007가방이면 존경하는 재판장님들 거의 다 양심을 팔았다. 히포크라테스와 나이팅게일 선언이 웬말인가. 그럼 현직에서 실망스러운 정도를 벗어났을 때, 물러난 전직의 책임이 그냥 넘길 수 없는 선을 넘어간 건. 조용히 묻어야 할까? 그러니까 (나쁜) 쿠데타를 찬양만 하라고? 그냥 밥먹듯이 쿠데타만 하라고? 흑백TV 마음에 드는 건 개혁이자 발전이고, 흑백TV 마음에 들지 않는 건 정치보복? 1,500년 내내 역사왜곡은 좋고 전임자를 평가 정도에서 못 그치는 건 정치보복? 150년에 정점에 달았던 황국사관 때문에 치른 고역은 옳고 아름다우며, 그걸 바로 잡는 건 싫고! 전세계적으로 이런 사례를 모아보시라. 말도 못한다. 그걸로 반박을 하면 흑백TV는 일단 기준부터 달라진다. 집안단속에서는 왕조시대 기준으로 판단하고, 좀 더 거국적인 표준에 대해서는 사익과 연관되지 않는다면 하급자한테 맡기고, 내 재산과 밀접히 연관되면 눈동자부터 커짐. 너 그럴려고 칼럼니스트 됐냐? 노코멘트! 응? 그럼 언론의 평균이 어땠을까! 그런데 언론 개혁하자, 라고 하니 저 놈 봐라 장난하네 지가 누구 땜에 그 자리에 앉았는데 정신 못차려? 그렇게 된 것. 그게 바로 구시대성이자 흑백TV 사고체계. 대통령 기록물 열람을 비롯해 1950년 이후 대통령들 성과를 일장일단 엑셀파일로 구분해보시라. 구시대성과 흑백TV 사고체계일수록 바깥에 아쉬운 소리만 했다. 그럼 단지 일시적으로 말끔히 끝나냐? 두고 두고 뒷감당은 후세대가 감당해야 함. 돌아버림! 그렇다고 세계언론지수 순위에서 2002년이나 2020년이나 한국은 변함없이 약 40위! 20년 동안 뭐가 바꼈을까? 적어도 세계언론지수를 비롯한 언론계만 보자면 바뀐 건 거의 없다. 안 그런가? 그런 뭘 뜻하냐? 변치 말자, 그냥 옛날처럼 흑백TV들이 군림하는 체계로 살자 라는 얘기. 법조계에서 못된 인성과 돈만 밝히는 능력자들만 승진시키는 건, 늬들이 뭔 상관인데. 그래서 뉴욕 교육과 부동산 1번가 중학교 교장은 쟁쟁한 학부모들을 겁박했다. 장관이든 어디든 웬만히 찌르라고, 우리는 꿈쩍도 하지 않으니까. 라고 말이다. 메이저 언론사 거의 100%가 이명박 정권 때 뭐랬나, 이 나라가 역사상 최고로 잘 돌아가는 것처럼 광고했다. 마치 전언론사가 대통령 대변인이나 된다는 듯이. 그런데 그분 지금 어디 계시나? 네? 그게 언론의 사명감이자 역할일까? 2001년 천황 발언 관련 대응은 그나마 프로페셔널이라니까요 글쎄. 그럼 아마추어는 어디일까? 프랑스가 제2차 세계대전 전후 처리를 어떻게 했나? 변절자와 간신배들을 단두대로 보냈다. 그렇지만 지구 반대편은 정반대. 그냥 1900년대 초반의 사회지도층이 2020년까지 별다른 변화없이 그대로! 내 말이 틀린가? 그런데 그거 바로 잡자, 최소한 어떤 숙제는 해결하자 ~라고 하니까 전언론사들이 어떻게 반응했나? 全사회지도층이 우리가 바라던 바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바로 그거다! ~라고 했을까? 기록 다 남아있지 않나. 안 그런가? 그러고서도 그게 언론사인가? 흑백TV들이 그렇다. 다른 건 다 옳고, 사람 좋고, 뭘로도 똑똑한데 유독 구체제를 개선하자 어떻게 발전합시다 무엇을 바꾸자 일단 논의라도 하자! ~라고 하면 절대로 틀린 걸 인정하기 싫은 구시대성. 싫은 건 안 바꿔. 그러면 보수가 아니라 그냥 왕조시대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야스쿠니 신사에 전쟁범죄자들과 일반인이 합장되어 있다 라는 소송 패배만 뭐라 할 게 아니다. 한국 국립묘지에 있어서는 안될 위인들은 또 뭔데! 그러니까 사극에 보면 3대를 어떡한다 라는 상식이 나오는데, 지금도 북한에서는 정치범이면 7대인가 8대까지 무엇이 예정된다. 
    도대체 뭐가 정치보복일까? 흑백TV 기준으로 (보수가 아니라) 경제적이자 체계적으로 야그야금 조금만 나아지면 그만이니까 사회지도층 만큼은 절대로 건드리지 말자, 다만 사회지도층 만큼은 건드리는 거 못 본다. 그게 정치보복일까? 아니면 경기장에서 뛰는 건 정작 선수인데, 선수에 앞서 코치진부터 살찌고 지휘자가 관현악단 임금보다 100만배 챙기는 건 당연한데, 그거 바로 잡자 옳게 개선하자! ~라는 게 정치보복일까? 도대체 정치 보복이란 낱말의 의미는 뭘까? 뭐든지 흑백TV의 비위만 맞춰드려야 하나? 미래세대의 영역까지 죄다 선불로 땡겨서 흑백TV 원로가 꽉 막혔든 아니든 챙겨드려야 할까. 그러지 않으면 그게 정치 보복일까? 일단 사고체계부터 구시대성이 흔치 않을 때, 그러면 사극은 현실이되므로 정치 보복 같은 꺼림칙한 표현이 일상적이게 되는 건 맞다. 옳고 틀리고는 몰라도 그건 분명하다. 그런가, 안 그런가? 역사학 주제에서 또 흑백TV 주제 때문에 더러워지니까 기분 착찹하네. (절레절레) 군복들이 대통령 자리물림 3연타 하다가, 최초로 정치인이 2연속 대통령. 그 다음에 하필 진보 성향이 대통령(그건 실상 진보도 아니고 그냥 보수요 평균). 즉 군복 3연속이 물러나니까 점점, 점점 개선-개혁-혁신...사회지도층 짜증나네? 그래서 옛날엔 상상도 못했을 혁신적 행보를 이어가니 전언론이 2001년 일본 천황 발언 (개)무시처럼 뭐든지 비꼬아서 상대. 사설도 기사도 논조도 방송도 헤드라인도 뭐든지! 그래서 궁지에 몰리다 몰리다 전임 대통령도 자살. 그럼 동아일보 회장 부인 자살은 정치보복이고, 5년 내내 언론사를 비롯해 전사회지도층이 광분한 결과 全대통령 자살까지 몰린 일은 정치보복 아닌가? 그것조차 구분 못할 어른은 많지 않다. 초딩도 찬찬히 설명하면 다 이해함. 그게 또 거기서 끝나면 좋은데 한국 17대 대통령이 말단 사원부터 사장, 회장, 서울시장, 대통령까지 신화를 쓰는데. 말년운은 꽝! 그게 건설회사 부사장 당시, 하필 사장 부인과 20살 가수지망생의 불륜으로 그 딸이 자살. 그때 회장이 나중에 후회할 판단을 내림. 즉 17대를 사장에 발탁. 그래서 회장은 저주를 내림. 그 저주는 나중 이루어짐. 이게 말단 사원에서 사장-회장까지야 그렇다 쳐도, 제2차 세계대전 독일이 유럽을 식민지로 거느렸을 때 베를린 태생 프랑스인이 나중 프랑스 대통령 당선되서 결말 망한 것과 동일. 토종 아프리카인인데, 유럽 식민지 총통 집안 근처도 아니고 총독 건너뛰고 유럽으로 건너간 부모가 유럽에서 태어나도 나중 사리판별 잘하는 어른으로 성장하면 그만인데. 더 나은 국적만 있으면 계속 갈아타도 좋을까? 2번 갈아탔다가 3번 갈아타느니 눌러앉아 영구 집권해도 좋겠군 그럴까? 곧 당선 전에는 말로만 우리 모두 잘살자, 그런데 결과는 나만 또는 사회지도층만 잘 살자! 도대체 정치 보복의 기준이 뭘까? 정치 보복에 해당할 일은 아예 하지 않는 게 평균이 되면 그런 말을 사용하고 싶어도 못 사용할 텐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니까 발생하는 거 아닌가. 그러게 누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래? 그렇다고 또 나쁜 남자가 날이면 날마다 뚜들어패고 막 그러다가 딱 1번 어쩌다 잘해주면... 그런 원리처럼. 1,500년 내내 역사왜곡에다 말도 안되는 억지가 평균에다 전국민 세뇌에 날조대국이라는 현실 가운데, 어쩌다 뭐 일본의 양심? 도대체 그게 평균이 되어야 정상이지 무슨 어디의 양심이라니. 그건 바꾸어 말하면 그만큼 썩었단 말이잖아? (겉은 화려하고 윤택한 환경일지언정 속으로) 도대체 얼마나 사고체계가 썩었으면 무슨 양심이 대단한 별명이자 멋진 수식어로 애용되는지 (절레절레)! 개선과 발전과 다수의 행복이 당연한 의무인데, 흑백TV만의 유일한 업적이요 전매특허라도 되나? 흑백TV만 全언론사로부터 칭찬받아야 한다는 법이라도 있냔 말이다. 안 그런가? 당연하디 당연하고 그게 평균이 되어야지 뜬금없이 양심이 왜 튀어나오나? 어? 다시 틀을 좁혀서 정치 보복. 뭐 사회지도층이랄지 사회지도층 동조파는 정치보복 해도 되고, 比사회지도층과 개혁파는 정치보복 하면 안된다 라는 관습법이라도 억지로 만들어야 하냐 그거다. 
    고인은 작은 비석 하나만 남기라 했는데, 어쩌다 생전 바램과 달리 무덤은 커졌고, 더더군다나 거기다 오물까지 투척. 육군사관학교 불문율이 뭔가, 옳든 그르든 이기면 장땡이라고 가르치면서 쿠데타로써 상급자들한테 개기라고 가르친다. 성폭행과 성희롱도 발생하면 당한 놈 당한 년만 병신이라는 관례는 개선되기 더디다. 심지어 하극상으로 역대급인 1인자를 존경, 하극상으로 최소한 시대의 소임을 맡았던 배역은 창피해한다. 뭐가 거꾸로 됐나? 현역 장성이 자랑스럽게 조명발 받으면 직접적으로 권유요 간접적으로 명령한다, 군번줄 평소에 가지고 다니지 말라고. 전시에만 챙기라고. 그럼 그분들께서 실전을 평생 경험할 수 있나? 거의 없다. 그럼 그냥 군번줄 지나가는 동네 똥개한테나 던져주라는 말과 똑같다. 게다가 전부 다 쿠데타용 군인으로 교육시킨다. 그게 뭔가? 지금도 특급 경호 든든! 심지어 옳은 역할을 한 배역은 (베이징을 전직 때 갔다오거나 현임 때 언론에 고분고분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호적 파버린다. 매장시켜버린다. 별명도 화려한 걸 붙여준다. 두고두고 무덤까지 아름다운 꼬리표를 선사한다. 역대 한국에서 진보적인 대통령이 나온 적 있나? 근대사가 짧기는 해도 간결히 말하자면 단 1번도 없다. 물론 유럽 기준의 진보로 말이다. 그럼 세계 평균에 해당하는 보수는? 불과 1번 많아야 2번 또는 2.5번. 나머지는 전부 흑백 TV. 그럼 사회지도층은? 대법관 100%가 혁명 짜증난다, 혁신도시 더 신경질난다, 돈봉투가 웬말이냐 007가방 말고 황금바로 주라는 식. 좋은 판사 내보내는 데 최적의 환경을 만드는 셈? 좋은 인재들이 꾸준히 유입되어도 각계각층에서 구식탱탱먹은 관례 때문에 못 버티고 늦게 나가냐 변질되냐. 수질 안 좋은데 초심부터 괴상한 걸 배움. 그럼 결국 선도브랜드는 자기 브랜드가 아니라 해당 카테고리를 홍보할 마음도 없고, 단기이익만 쥐어짜게 됨. 그럼 리그 평판은 더러워지고 결국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게 됨. 맞나? 불과 10년 전 20년 전이 이렇다. 마피아 + (   ) = 먼피아! 저 괄호로부터 자유로운 업계요 학계 있나? 내가 알기로는 없다. 그래서 구시대성이 압권인 분야일수록 피라미드 아래에서 1/n으로 모아서 위에게 에르메스백을 상납하는 게 관례. 이런 예시들 집단지성을 모아보시라. 그게 반대로 되기를 바라는 게 아니라 그냥 너는 너 나는 나! 다시 말해 개선과 차근차근. 이래서 프랑스에서는 혁명기념일을 기린다. 그런데 개선도 싫다 차근차근 짜증난다 뭐 어쩌자고요! 굽실굽실 대충대충 반짝반짝. 그걸 제발 바꿉시다 라고 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비열한 책략으로 끄집어내리기. 아니면 무대에 그냥 영구히 남기. 대일본제국의 77년 존속기간처럼 조슈&싸스마 파벌이 직접적으로 최소 70%, 영향력 감안하면 90% 독점. 그와 대체 얼마나 다른가? 세계 발간부수 1위인 요미우리는 그나마 낫다. 한국 발간부수 1위인 조선일보의 평판은 어떤가? 말 말자. 물론 지금이니까 그나마 뭔 얘기인지 안다, 듣기 싫다 짜증난다 하실지 모르지만. 지금이 아니라 10년 전이면! 20년 전이면 대체 얼마나 긍정적인 무대였는지 얼마나 희망찬 나라였느지 어른들 아시는 거 참 많지 않나. 불과 언제적 연예계 성상납과 방송가 PD들의 살벌한...뭐라 해야하지? (나머지가 그 카르텔과 정비례는 아닐지언정 비례했던 게 불과 얼마 전) 나머지 모든 분야와 상당 부분 비례했을까, 아닐까? 잘 아시지 않나. 또 지금이니까 그냥 고개 돌리거나 헛기침만 하시겠지만, 만약 당시라면 으쌰으쌰 부글부글 지금처럼 절대로 조용할 리 없었겠지. 안 그런가? 왜 말이 없나. 언제부터 그렇게 조용하셨다고. 거 참 더럽게 말 많은 사람들이 진짜 누구인데 왜 지금은 정반대로 바꼈지? 아니 왜? 모를 일이다. 알 길이 없으니까 말이다. 
    말 나온 김에 몇 마디 더하자. 그러는 게 좋겠다. 그런데 기자실 폐쇄하고 총리 VS 기자 간담회, 대통령 담화 발표. 대통령과 언론이 의사소통하는 게 아니라, 너넨 듣기만 해 띄우라면 띄우고 어떤 사안 무시하라면 무시해, 또 기자들한테 돈봉투와 기타 이익 듬뿍. 그게 세계언론지수 기준으로 보자면 꽝인데, 왜 언론은 그걸 좋아하면서 역대 최고의 성군으로 치켜세우는 거지? 그러니까 칼럼이 안 멈추는 거지. 그러니까 미얀마 세계 뉴스와 아프리카, 남아프리카 공화국 사태 등을 보면서 저건 저거, 평범이자 보통으로 돌아가는 현시국은 독재래. 이런 걸로 봐선 아직 정신 하나도 차리지 못했다는 얘긴데. 불과 언제적만 봐도 얼마나 도청을 해대면 귀때기 정권. (대선 선거에 이기기 위해서 휴전 중인 적국 관계자와 제3지대에서 접선하여, 국지전을 부탁했으니 그랬지. 독재정권일 때 뒷산까지 위협받고, 졸부정권 집권 위해 국지전 부탁. 뭐지? 언어와 인종으로 동일 민족이라지만 졸부 만을 위하냐 아니냐 이분법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니까 옛날에 마피아 관습 아닌 게 드물었음. 100년 전에 나라를 판 전력이 있으니 내내 보수적이었다 돌아보더라도, 집권을 위해서라면 내부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사고체계. 졸부랑 똑같음. 그게 다 영화계와 오락산업 소재를 위해서?) 또 왠지 경제를 일으킬 거 같은 인물이 당선됐는데 뜬금없이 CIA가 하라는 일은 안하고 댓글 알바 30개팀 3500명 운영. 뭐지? 그럴려면 코메디를 해야지 아니 왜! 이래서 전유럽이 세계 90% 꿀꺽할 때 이탈리아는 마피아를 탄생시킴. 머시기한 1인자를 배출한 원죄 때문에 뒷감당이...대국민 사과. 근데 일시적으로만 찔끔. 매번 뒤통수. 말로는 나라 걱정 정국 구상. 거기서 끝날 리도 없음. 직접화법 대 간접화법만 해도 앞서 말했듯 금새 동네축구되는데. 직접경험 대 간접경험 ~까지 감안하면? 똥볼찰까 괴로워짐. 저쪽으로 우르르르 이쪽으로 우르르르! 민영화 작전 진행시킬 때만 천국을 실현시킬 것처럼 광고하다가, 나중 뒷감당이 지옥으로 판명날 때 온데간데 흔적도 없음. 





    16

   [한국 흑백지수 B]
    대통령이 특정 역사연구 지시하는 나라가 어디 있나 (2017년 6월 6일 조선일보 대제목)
    으잉? 어딨긴 겁나게 많음. 과거에도 엄청나게 많았음. 또 대통령이 특정 역사연구 지시하면 절대로 안된다 ~라는 의도로 대제목을 뽑았네? 그러니까 구시대적 사회지도층한테 이래라 저래라 지시하지 말고 뭘 바꿀려고도 하지 말아라? 놀고 있네. 그럼 알려진 역사 현황과 교육과 배경지식이 잘못되어 있어도, 죽어도 새롭게 고쳐서는 안된다는 말이잖아! 그런 게 어딨어, 억지도 그런 억지가 대체 어디 있을까. 이건 뭐 초딩도 아니고 꽉 막힌 것도 정도가 있지 그게 뭡니까. 개혁의 '개'짜도 상상하지 말라라니. 망언제조기는 결코 멀리 있지 않다는 뜻. 최고로 가까이 아니 있는지 없는지 잠식한다는 얘기. 내부의 적이 더 무섭구만 그래. 와, 살벌하다 증말!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보자. 사학계가 잘 돌아갈 때, 건드리지 않으면 됨. 교육계가 엉망진창일 때, 차근차근으로 되냐 혁신해야 하냐를 따지면 좋음. 그럼 검찰계도 우군으로 나서서 뭔가를 바로 잡아야 한다? 검찰계부터 150년 이상한 관례가 여전하면 그건 또 뭔데! 물론 역사학계가 잘 돌아갈 때 괜히 참견했던 예들을 몇몇 거론했듯이, 엉망진창 구습이 도저히 신식으로 바뀌지 않아도 방관만 해야 하냐. 그럼도 일관성 없이 왜 조정, 중재, 지도하지 않느냐고 대제목 달 게 뻔함. 상왕 노릇 못하면 그냥 뭐든지 반대로! 흑백TV 사고체계는 그야말로 상상 초월. 희망의 나라로 나아갈려는데 바지끄댕이잡고 흑백tv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 미침. 많은 역사책과 상당 부분 역사 교과서를 확 다 들어엎어야 할 정도로 잘못되어 있는데? 필자가 역사 분야에 대해서 몰랐을 땐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나갔겠으나, 알고 나니 죄다 바보들이잖아? 
    도표 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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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 개입 (참견?)             정부 진상조사  결과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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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시장경제        중간 (짠물&민물파 참고)        O△X
깡촌 집단 암발생   늦냐 빠르냐 (떼죽음인데?)       O
사학계를 비롯....    환경/생태계 검토 후 결정        O△X
미네르바 별명       장막에서 경제분석가 활동       O△X        자유 억압     민주주의 퇴보/세계언론지수 빵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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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금리를 올린다, 내린다, 유지한다. 부동산 과열을 중재한다 어쩐다. 그런데 뜬금없이 미네르바로 불리는 어떤 경제분석가를 불러들여 협박하고 혼쭐을 내준다? 물론 평소에는 미술계 음악계 오락산업계 자율 기능에 맡겨둠. 그런데 얼토당토 않은 상황이라면 정부가 대체 왜 있는데. 역사학계가 엉망진창으로 돌아가는데 팔짱만 끼면서 방관한다니 그건 말이 안됨. 따라서 당장 옛날 수사방식대로 아무나 잡아들이고 누구나 대충 범인 지목해서 때려잡으란 말이 아니라. 저 순서와 과정에 따라 현황을 파악한다 그게 왜 나쁠까! 응? 그런데 언론사 큰 제목에 뭐, 대통령이 특정 역사연구 지시하는 나라가 어디 있나? 말이 되나 말이. 그러니까 엄한 미네르바나 잡아다가 곤장을 냅다 때려치는 식이지. 뭘 해도 툭하면 반대로. 뭘 하든지 심심하면 거꾸로! 어? 해야 할 본분은 망각한 체 밑도 끝도 없이 민영화로 좋은 기관들은 싹 다 시장에 팔아버림. (물론 중간 체급이 적당한데 모든 걸 통제하는 식으로 공산주의 비슷하게 슈퍼헤비급 되어도 문제지만 그건 옛날 얘기고. 거꾸로 법칙은 민영화와도 관련된다. 대표적으로 수도/전기/의료는 절대로 민영화하면 안되는데 그건 딱 민영화. 반대로 자, 만약 지금 당장 포르쉐랑 벤츠랑 BMW를 민영화했다고 가정하자면 그건 뭘까? 국영기업 르노가 됨. 물론 르노도 합리적이고 좋다만 페라리와 자동차 명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경쟁력은 포기해야 하는 걸 뜻함. 전기차를 비롯해 테슬라-애플-어디..같은 신식 브랜드, 구식 상표와 달리 신식 브랜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기동력과 창의력 뭐든지 굼뜰 수 밖에 없게 됨. 즉 뭘 공영화 범위에 넣느냐 아니냐 라는 건 시급히 몰아붙일 일이 아니라는 거. 간척 한번 해버리면 역간척은 꿈도 꿀 수 없다. 전세계 사례를 엑셀파일로 논문과 10년 이상 장기간에 걸쳐서 4대강 정비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급한 문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물고기 종류 95% 멸종. 멋도 없음. 차별화도 안됨. 한국 사례에서 섬진강과 작은 강 몇몇 빼고는 다 똑같아져버렸다. 이미 선발주자들이 선험적으로, 천문학적인 대가를 치러서 선례를 엄청나게 남겼는데. 굳이 좋은 길 말고 험지로 가서 피라미드 최상층만 배불리고 나중 나 몰라라. 이게 과연 모범적인 정치인가?). 만약 그렇게 되면 나중 체급 떨어질 대로 떨어져서 정부가 뭘 할 수 있는 게 없음. 응? 괜히 경제학 독학자를 족쳐. 트집잡을 일과 대중이 심심하도록 놀리면 안되기 때문인지 그분들 시선을 돌릴 관심사, 좋은 먹잇감 찾기가 만만치 않기 때문인지. 괜히 엄한 경제분석가만 불러다 조져! 응? 이 세상이 아름답도록도 아니고 그냥 잘 굴러가도록 가만히 보고 있지를 못하나? 분위기 흉흉하니까 진짜 범인은 잡기도 힘들고, 그냥 비리비리한 놈 때려잡아서 가짜로 범인 사진 찍고 사건 종결. 응? 다른 분야는 아직도 그런 식이잖아? (속된말로) 군대에서 삥바리들 가만 놀리면 정신 헤이해지니까 무조건 심심하면 풀 뜯게 만들어. 언제적 황국식민, 식민지사학관에서 많이 벗어난 논문과 학설이 쓱 고개를 든다? 야, 쟤 따시켜!
   "(엑셀파일을 쓱 보더니) 경제계에서 이거 밖에 못 걷었어? 여기 여기 여기. 싹 다 구속시켜. 죄목 없으면 만들어. 뭐? 좌하귀가 앞으로 출세는 커녕 무대에 얼씬도 못하게 만들어. 모든 분야에서 싹 다 지원조차 못하게 만들어. 한 삼 대 지나면 조금은 정신차릴려나. 걔네들 정신 못 차려. 뭐? 장학회 뺏어. 뭐 하러 말로 사람 대접해? 그냥 구실 대서 적당히 뺏어. (여기 언론사 엑셀파일입니다) 이건 또 뭐야? 전부 불러들여. 지금 당장! 개 돼지들이 뭘 안다고. 더 몰아붙여."
    (a) 어떤 분야가 잘 돌아감/분위기 좋음: 공적 위력 비개입 
    (b) 어떤 분야가 잘 안돌아감/사기..공갈: 공권력 개입
    여기서 (b)에 해당하는데 공권력이 모른 체한다? 그러면 비판하는 게 옳다. 당연히 그래야지. 그게 언론의 사명이자 역할. 그 의무를 게을리 하면 두고 두고 오명. 그런데 반대로 (b)인데 공권력 개입했다고 비판한다? 연예인병 걸렸음. 오만방자! 사극에서 간신배던가, 아니면 고려시대 구시대성 때문에 목숨 걸로 사신 역할 톡톡히 하고 왔는데, 서류 받자마자 그 자리에서 찢어버리지 않았다고 유배보내는 이치. 즉 뭐든지 왜 반대로 하냐? (검지를 구부려 귀 위쪽을 똑똑똑) 사고체계가 흑백tv던가, 사고방식이 구시대성 기반이던가 그 때문. 자, 한번 생각을 해보자. 만약 그걸 반대로 하면 어떻게 될까? 보아하니 전례가 풍성하다. 그걸로만 봐서는 완전 풍년! 예를 들어 (a)에 해당하는데. 가만둬도 잘 돌아가는데 개입해서 뺏던 예는 뭐다? 그런 살벌한 시대가 아니기 때문일까! 뜬금없이, 밑도 끝도 없이 (b)를 놓고서 깐죽. 깐족.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 ~라고 자문해보면 연예인인 줄 아니까, 아니면 만인의 뚜껑을 열기 위해. 나는 이 사회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가? 깐족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하기 위해서, 무슨 기여는 기여. 
    뭐야 이게? 응? 무슨 언론사 문관들이라는 양반들이 마피아랑 구분이 안돼. 형님 형님 으쌰으쌰 자기들끼리만 카르텔 형성해서 먼저 굽히지 않는다 하면 지도. 고문. 음해. 조작. 게릴라 마케팅. 노이즈 마케팅. 협박. 응? 실력으로 안되니까 다 함께 더러워지자는 식. 내가(우리만) 못 먹을 바에야 아무도 못 먹게 만들어버림. 제삿밥에 재 싹 뿌려버림. 아니면 남들이 고생고생해서 차린 잔칫상에 쓱 숟가락만 올림. 아직도 이런 꼰대님들이 많다고? 이래서 빅맥지수만 있으면 안되고 흑백지수도 있어야 함. 응? 정작 개입해서 진상조사부터 해야 할 일은 내팽개쳐두고. 언론사 입맛 맞춰주고, 기자님들 일 많이 하시지 않도록 귀찮게 해드리지 말 것이며, 사회지도층 비위만 눈치봐야 한다니.. 쯧쯧쯧! 깡촌에서 집단 암발생으로 30% 떼죽음이자, 나머지 70%는 골골골 겔겔겔 약으로 겨우겨우 연명하며 살고 있는데? 필자가 봤을 땐 코메디계가 쫄딱 망한 이유가 다 있다. 왜냐하면 개그맨과 오락산업 우수 인재들을 죄다 빼앗아가버렸으니까. 러브콜 하기도 전부터 젊은이들의 꿈이 그건가? 이러니 유머계가 안 망하고 어떻게 버티나. 응? 언론사 주필들은 뭐 죄다 멍청이 밥통 미련곰탱이들만 자리에 앉히나? 그런가? 어? 그분들 기록은 하나도 안 남는다는 건가 뭐냐고. 제발 꽉 막힌 자기들한테 관심 좀 가져주라는 힌트일까? 이러니 창작개그 프로그램들이 명맥을 유지할 수 없지. 코메디언들이 죄다 언론사로 다 가버렸거든. 뭐, 대통령이 특정 역사연구 지시하는 나라가 어디 있나? 필자가 최근에 심도 깊게 그 분야를 파헤쳐보니... 저런 멍청한... 저런 허접한... 이러니 누군가 더럽게 일 많이 할 수 밖에. 저게 어쩌다 실수하면 그럴 수 있음. 허나 그게 아니라 일관되도록 50년 내내 저러니까 문제! 캬~ 어? (절레절레)
    삼양라면 1989년 공업용 소뼈 사건을 주도한 인물이 누군가? 김기춘과 농심의 관계를 아직도 우리가 떠올려야 하다니. 조명발 아래에서는 "하면 된다", 음습한 구석지 작전 회의에서는 "아니면 말고". 불과 10년 안쪽만 봐도 국정화 교과서 총책임자 김정배는 고대사학계 최고 원로로써 그분이 죽기만을 기다린 염원이 과연 어땠는데. 고대사 담당자 서영수는 또 어떻고! 신형식? 황국사관 Ctrl+C  Ctrl+V. 한국학 중앙연구원장 이기동은 타임머신 태워서 중세로 보내버려야 할 인간. 인간? 지구를 떠나면 더 좋음. 꽉 막힌 그 고대사학 집단 때문에 100년 내내 희망찬 미래로 나아가지를 못해. 뿐만 아니라 관련하여 수많은 부분은 퇴보. 시간낭비는 시간낭비대로 손해는 손해대로! 다음 생에 바퀴벌레로 환생해야 할 분들! 더더군다나 일본에서 황국사관을 극복한 건 아니라 적어도 임나일본부설이 쏙 들어가는 데 무려 수십 년에서 100년이 족히 걸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황국사관은 공부하러 온 한국 학생들을 구워삶았는지 먼저 저자세로 숙이고 들어갔는지, 궁짝이 딱딱 맞는 예도 있다. 가령 고대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라는 주장. 진보적으로 올바른 연구를 감행한 역사학자들과 영 딴판으로 황국사관에만 매달린 일본 역사학자 가운데. 미즈노 유, 후쿠이 도시히코 라는 두 교수는 김현구 씨의 학위논문을 지도하고 통과시키고 출판까지 도와줌. 출판된 학생 논문에 황국사관 복귀에 관한 서문까지 써줌. 그러니 비전공자가 발로 뛰고 인생 내내 매달려 집필한 책들과 여러 성과에는 통 조명이 비추질 않지. 필자처럼 아마추어한테도 (속된 말로) 발려. 그런데 학계에서는 권위 튼튼! 대체 그건 어떤 나라일까? 또 그런 엉터리 교수를 고용했는지 계약했는지 집무실을 내준 대학교는 또 뭐고! 그럼 그분들 밑에서 교육받은 학생들은 옆동네랑 똑같이 좀비만 양산하는 거잖아? 그래서 황국사관 기준에 반대하는 제의, 학설, 논문, 주장 등은 아예 상대조차 안해주는 식. 
    A. (쿠바인 생각) 도대체 어떡해야 쿠바를 미국한테 팔 수 있을까?
    B. (아일랜드인 인생) 어찌 해야 영국령 아일랜드로 남을까, 어떻게 되돌아갈까! 
    국가 부채에서 2위와 인상적인 차이로 1위를 유지하는 일본. 그 부분에서 단독 1등인 일본이 여러 위기 예고 지표에도 불구하고, 왜 하락하지 않는지 그 이유를 아십니까? 일단은 체급 때문에 절대로 급락할 수 없단 말도 틀리지 않은데. 더 솔깃한 까닭을 말씀드리자면 이렇다. 즉 일본은 여러 장치와 기법으로써 경제적으로 미국과 동기화됐기 때문에, 그러므로 절대로 망할 수가 없는 것이다. 즉 만약 미국이 망한다면 일본도 위기일 텐데, 미국이 그럴 일은 없다? 뭘 해도 연승이자 대승뿐만 아니라 공룡 1번만 야위어 가는 식. 옆에 있으면 단물 빨리고, 불리하면 물귀신 작전이고. 뭘 해도 탈! 워낙 귀신을 숭상하는 문화이기 때문에 한국이 150년 내내 비리비리했던 이유로, 귀신들이 모두 한국에서 일본으로 옮겨와버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그쪽 어르신들 겁나게 많음. 또 호류지와 천황릉 유적을 발굴할 때 1000년 1500년 동안 무탈했던 유적을 벗기려고 하니, 승려들이 공포영화랑 똑같이 기겁을 하고 도망갔다는 진실. 한마디로 귀신들린 나라! 얘기가 곁으로 샜다만 돌아와서. 반면, IMF 빌린 나라들은 비동기화 관계이기 때문에 망해도 (일시적으로) 혼자(만) 망한다. 또 나랏일 핑계로 공룡기업을 헐값에 외국계 기업사냥꾼한테 손쉽게 넘기고 개인만 주머니 두둑히 불렸던 예시들도 여기저기. 그것과 (드물게 나쁘지 않은 과체중 줄이기 빼고) 민영화는 차이가 없는 이치! 양심 지켜서 뭐 하게? 지조없이 문란한 년 되는 것임. 한때 비굴 평생 부자일 테니까. 그럼 다음으로 망할 가능성 완벽히 0이라는 건 뭘 뜻하냐? 착할(착해질) 필요가 없고, 이따금 착한 척이야 눈감아주거나 지도하든가 그럼 그만이며, 오히려 황국사관으로만 더더욱 그때 그 시절로 되돌아가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 즉 오직 과거 회귀 명분만을 위하여! 
    그러니까 여러 칼럼 주제를 보건대 반도와 달리 열도에서는, 요미우리&산케이와 싸우지 말라고 충고를 애초에 할 필요가 없다. 그걸 누가 몰라? 바보도 아니고 옆에서 뭐 한다고 말리나. 그 앞에서 굽실굽실 굽힌다고 퍽 예뻐하지는 않을지언정 거의 누구도 튀지 않는다. 반면 반도는 2001년 국세청이 중앙 언론사 스물세 곳을 대상으로 세무 조사 시작.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이 74일, 김병관 동아일보 명예회장이 70일,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이 82일, 조희준 국민일보 회장이 84일 동안 구속 수감. 그렇다고 나중 뭐가 바뀌었나? 더 독해짐. 응? 조슈&사쓰마 군벌이 정식으로 77년이지만 나머지 감안하면 150년 독점? 1500년 일관성 만큼은 알아줘야 한다고 하여, 하필 반도는 그걸 배우네? 우하귀가 조슈&사쓰마 따라해서 0.5세기 못 채우니까 어땠나? 군복 3연타 때 얼마나 착한 배역을 떠맡았냐고. 도대체 어느 만큼 기세등등 왕조시대의 권위를 누렸길래 사회지도층 1세기 독과점하려는 거지? 그걸로 봤을 때 1당제이자 사회지도층 몽니는 판박이다. 세계 기금으로 신간센 만들고, 일본 자금으로 경부고속도로 만들고. 그런데 신간센은 현재까지 사망자 0, 경부고속도로는... 아아 넘어가자. 언론사가 무슨 스포츠 조롱꾼한테 지기 싫어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게 바로 인터넷 이전과 이후로 나뉘어 그나마 정신차리면 나은데. 과연 어느 정도나 점차점차 발전했을까? 어른들 잘 아시질 않나. 무슨 방송국 PD들만 성상납 천국을 누렸나? 언론사 고위층들을 비롯해 사회 전분야가 그와 정비례. 뭐든지 돈봉투. 그럼 저런 언론사 세무조사를 계기로 자성을 하나? 자성은 개뿔. 더 삐툴어짐! 그러다 나중 후회하면 늦는다. 졸부들이 막대한 재산 물려준 조부모와 배신자들과 악마들 제사 지내봐야 싹 다 소용없단 말이다. 지금 이 시간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 SF 영화는 상상도 못할 정도의 근거로 차곡차곡 쌓일 테니 저 세상으로 건너가보면 안다. 그때 全언론사들이 뭐랬더라? 무슨 뭐, 법관들 평균이 007 가방이던 20년 전, 대법관 별명으로 뭐 대쪽 판사? 지금은 지나가는 개도 웃는다. 1762년 5월 21일 아버지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은 이후, 정조가 집중해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언론사를 비롯한 사회지도층은 만들어주었을까? 아마도 아닌 듯. 상왕한테 말 잘 듣는 배역이자 퇴근 일찍 시켜주는 지휘자 선호 경향은 별로 바뀌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아니면 원래 그렇기 때문인지 미사일 쏴달라는 사실은 영화로까지 만들어지는 셈. (대통령 당선을 위해 미사일 쏴주라, 아니면 대통령 당선된 다음에 천안함 사태 터졌는데 또 미사일? 이건 어떡할 수 없음. 업보가 무슨 뜻인데?!) 즉 5월 13일에 뒤주에 갖혀서 5월 21일에 열어보니... 사망일을 몰라요 그처럼 너네도 너무 많이 알려고 하지 말라, 뭘 너무 열심히 바꾸려고 하지 말라인가? 노태우가 사관학교 연설차 갔을 때 경례도 안하고 (개)무시했던 게 시간차로 뒷맛이 씁쓸했는데. 노무현이 국회 들어설 때 반말하고 무시하던 국회의원들은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지? 어제는 금감위원장이 감옥에 수감되고, 오늘은 全감사원장이 대권에 도전한다. 또 이상하게 출임금지 시켜주면 기자들은 쌍수들며 좋아하고, 소통하지 않으면 언론사들은 더 열광한다. 불과 15년 전, 2004년 10월 행정수도특별조치법 위헌 확인 소송에서 재판관 아홉 중 전효숙 재판관만 유일하게 각하. 그런데 곧 있다가 재판관 직 사직. 그럼 개혁은 고민한 필요도 없는 낱말에 불과한 걸까? 감기야 대체로 쉬면 낫는다. 그러나 전염성 높은 질병은 내가 아팠을 때 남한테까지 옮길 가능성이 크다. 사고체계가 구시대성이라면야 체급만 줄여도 뒷탈은 커다낳고 뒤끝마저 차마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는 양심마저 팔아버려야 할 시대를 살고 있는 건 아닌지 이 글을 쓰는 것조차 뭐 하는 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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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역사학 2

from 칼럼 2021. 7. 4.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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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나일본부설 등장 계기]
    뜬금없이 섬나라가 로마제국을 지배했다, 그리스-로마신화는 EU(유럽연합) 비회원국이 심어준 것이다. ~라는 헛소리가 왜 뜬금없이 튀어나왔냐. 그에 대해 앞에서 또 다른 칼럼에서 사고체계 때문이라고 누누이 밝혔는데. 그래도 더 자세한 근거를 조목조목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다. 사실 유무와 엑셀파일 목록에 넣고 빼고는 차후 미래의 숙제로 남기는 걸로 하고. 참고로 한중일 일본 최고(最古) 역사서에 대해서.
    일본 최고(最古) 역사서: 712년 고사기     / 720년 일본서기
    한국 최고(最古) 역사서: 414년 광개토대왕릉비* / 1145년 삼국사기 / 1281년 삼국유사 
    중국 최고(最古) 역사서 : BC 500년경 서경(상서尙書) - 작가는 공자(BC551~479) / **
    * 한국 역사서 가운데 "백제기"가 있었다고 일본서기에서는 나와 있음. 일본서기 내에서 그 백제기를 인용했다고 인정. 즉 지금은 남아 있지 않으나, 일본서기의 편저자들은 백제기를 많이 인용했다는 뜻. 백제기는 600년 전후에 씌여졌을 것으로 추정. 더불어 일본서기가 백제인과 신라인에 의해 씌여졌다는 증거는 역사학계에서 부정할 수 없도록 내용 즐비. 즉 일본서기의 저자는 순수한 백제인 주류와 일부 비백제계.
    * 1938년 6월 발행된 "조선사편수회 사업개요"에 따르자면 1910년부터 1년 2개월 동안 수거된 서적은 51종 20여만 권. 1923년~1937년까지  15년 동안 차입한 조선 역사 사료가 무려 4,950종. 그 두 기간 빼고 나머지는 집계에서 제외. 그 두 기간만 해도 한국-중국-일본 일대에 분포한 한국 역사서를 닥치는 대로 수거해 불태움. 그 외 고문서와 지도와 고기록류 들을 포함하면 (기록에 남아있는 것만 따져도) 10만 ~ 100만 종 자료를 불태웠음. 그럼 기록에 남아있지 않은 것은? 그 모두에도 불구하고 현존하는 자료로만 감안했을 때, 그것만 가지고도 본 칼럼은 여실히 증명됨. 물론 불태운 자료가 100만점이면 당연히 해외 반출 자료 역시나 100만 1000만 점이라고 보면 됨.
    ** 그외 기원전후 자료 즐비. 그건 뭘 뜻하냐? 첫째 전성기, 둘째 나중 거짓말을 할 래야 할 수가 없음. 금수가 아닌 이상! 

    * 광개토대왕릉비: 청의 봉금제도가 1880년대에 해제된 뒤에야 광개토왕릉비를 비로소 발견.  1888년에 일본인 학자 요코이 다다나오가 쌍구가묵본(雙鉤加墨本)을 바탕으로 한 비문의 내용을 공개함으로써 세상에 알려짐. 그외 최고(最古)를 제외한 비최고 역사서는 숱하게 많은데. 거기다가 각종 비석, 문화재, 유적지 자료들을 합산하면 엑셀파일은 방대해짐. 더더군다나 일본왕실서고에 비공개로 숨긴 한국 역사서만 해도 상당함. 물론 일본궁내청도서관 비공개 자료 외에도 일본과 세계에 흩어진 한국역사서를 추산보면? 집단지성만 모아봐도 임나일본부설 같은 거짓말은 할 래야 할 수가 없음. 인간은 달에 가지 않았다... 천문학은 가짜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인 천동설이 진짜다...라는 말과 똑같음. 여전히 100~150년 나치 독일시대와 동일한 게 바로 일본. 평화니 과거 반성이니 그런 말 모조리 다 뻥. 개 뻥. 
    광개토대왕릉비는 414년 완성. 총 1,802자 중 260여자가 판독 불가 → 이걸 빌미로 침략 정당성을 부여하는 임나일본부설을 만듬 → 비문 내용 삭제/변조/왜곡/창작. 학계 연구부족과 당시 어법에 관한 자료도 부족. 이래서 필자 조카 이름이 서경으로 지어진 것이구만. 필자가 친구랑 아르바이트했던 호프집, 그 호프집 이름이 WAVE. 거기서 V 빼면 왜(wae)! 천하의 악마들이 바로 걔네들이었어. 일본서기에 따르면 10대 왕 수진(崇神). 본 이름은 '하쯔구니 시라수 수메라 미고도' → 가야-드라비다어의 어원으로 뜻은: 첫 나라를 열어 통치하신 국왕 → 일본 역사책에도 '미마기 수메라 미고도'로 쓰여 있음 → 해석하면: 가야의 김해성의 왕이었던 하늘의 아들. 물론 수진은...필자가 괜히 대타로 소개팅 나갔다가...통과. 
    뿐만 아니라 동경대 에가미 나미오 교수는 저서 '기마민족국가'에서 이렇게 주장. "왜의 출발점은 가야국 '임나가라'였으며 그곳에서 수진(숭신)을 주역으로 한 외래민족인 천신들이 한반도에서 북구주로 진출하여점령한 가야인이 '미마기 수메라 미고도'였다". 이 발음 수진은 앞서 말했고, 숭신 발음도... 통과. 역사학자들 연구 결과도 똑같음. 3세기말~4세기초 실존 인물로 수진 5년에 수진이 '야마도'로 와서 이미 이주한 신라계 '이즈모'의 기성세력과 충돌...먼저 외지인으로 터잡고 산 신라계와 상호간 알력 해소 및 화해. 반면 학자에 따라 왜의 출발점은 수진(숭신)이 아니고 백제계 16대 인덕왕으로 보기도 함. 곧 백제유민은 2세기 구주 휴가에 침입 → 구야국(國) 창건 → (열도 전체에 부족 많은 상황에서) 구야국은 점점 커짐 → 결국 구야국은 히미코 여왕국을 멸망시켜 구주를 통일 → 구야국의 왕인 응신이 5세기초 난파(오사카)로 들어갔으며 → 16대 인덕왕이 대화(나라) 야마토에 들어가 기마민족 출신자들과 통일국가를 건설. ~라는 게 일부 학파의 주장. (다만 일본 인덕왕릉의 무덤형태가 한국 전라도에서 발견되니, 고로 일본이 한국을 당시에 지배했다...그게 임나일본부설임. 그건 백제 수도 부여의 정림사지 5층 석탑에 소정방이 새긴 백제 정벌비만 봐도 뻔함. 그런 예는 한마디로 엑셀파일. 손바닥을 태양을 가리는 일. 곧 누워서 침 뱉기에 불과)
    다음으로 고대 왜(倭)의 발음이 야마도, '왜'나 '야마도'는 고대 한반도 남쪽 국가명인 가야(伽倻)의 이름. 그러다 562년에 대가야를 마지막 신라에 병합되자, 멸망한 가야는 왜로 진출(물론 이미 전성기 때부터 진출). 즉 본국 가야(伽倻)의 별칭 '왜'가 가야 멸망과 함께 본격적으로 열도의 나라명이 됨. 그 뿐만이 아니라 백제 역시나 국력을 총동원할 정도의 역사였던 "백강전투" 때 결과를 보듯. 全일본을 좌지우지하다 결국 40대 진무 천황이 조카였던 39대 고분 천황을 죽임.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리한 건 싹 다 감춤...이 아니라, 역으로 짜잔~ 임나일본부설! 
    또 712년 고사기에 따르자면 <천황은 또한, 백제국에 "백제에 현자가 있으면 보내라"고...>명령한 것처럼 나와있는데. 신라에 패망한 백제를 모국이자 본국으로 아는 문화권에서. 왜 하필 자국 국사가 아니라 외국 역사에 집착했냐. 당연히 그 까닭 때문에 과장과 역술이 섞였는데. 실제는 왜왕 응신의 요청으로 왕인이 일본으로 건너간 것임. 즉 백제 14대 근구수왕(서기375~384)때 32살이던 왕인은 일본으로 건너가 문명 전파. 당시 왕인은 왜나라 태자의 스승이 됨. ← 물론 이건 일본서기 해석에 의한 추정이고. 실제로는... 흐름에서 벗어나니까 다음 문단에서 자세히 설명하는 걸로.
    고대사 비교언어학으로 따져도 사실뿐. 왜나라 발음은 가야어와 드라비다어로 '거북'을 뜻함 → 고대 가야시대를 상귀국(上龜國)이라 부르며 '거북의 나라'란 뜻을 가졌던 것에서 유래 → ...... → 3세기 고대일본에 있었다는 히미꼬 여왕의 후계자인 '이요'를 ...로 표기 → 야마이는 거북의 나라였던 가야. → '칸나다'어에서 거북을 아베(ave)라 했는데. 이 'ave'가 전와되어 'wae'인 倭가 됨. 정리하면 ave → awe → oe → we(wae). 다시 말해 가야도 일본으로, 백제도 일본으로! 그냥 모국도 아니고 본국 정도가 아님. 그런데 은혜를 원수로 갚음. 결과는 개새끼인 줄 알았는데 호랑이 새끼. 맹수들한테 산닭을 제물로 주어 야성을 잃지 말라면서 문명 전파한 결과가 결국 역사 이래, 한국인 1,200만명을 사살. 한국인 제외하면 800만명에서 5,000만명 사상? 우키시마호 침몰 사건만 봐도 야비하기가 이를 데 없음. 그런데 창피함을 몰라! 거꾸로 떼씀. 유럽인 4,000만명을 살해한 독일은 규칙적으로 사과와 사죄하며 보상-배상, 또 분쟁지역 영토를 폴란드와 프랑스에 조건없이 양보. 근데 내 땅은 내 꺼 늬 꺼도 내 꺼? 사고체계 분석하면 세계평화 다 뻥. 건국 신화까지 단군신화와 가야 근방 신화들을 죄다 베껴쓰고 응용. 일본 신도랑 똑같구만. 경도대학 사학과 교수 상전정소씨도 옛날에 지적했음. 거의 모든 게 이런 식. 일본 신화에 대해 재차 말하지만, 그건 절대로 독자적으로 만들 수 없는 게 왜냐? 왜냐하면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천손강림 신화는 원래 북방계(기마유족민)의 고유한 특징이기 때문. 한국에서도 특히 신라가 일본과 비슷한 점은 바로, 난생신화와 천손강림이 섞여있다는 점. 즉 이들이 남방계와 북방계 민족이 융합된 집단이었음을 뜻함. 
    다음으로 일본서기에 나오듯 15대 응신왕이 270~310년까지 재위하였다는 기록도 거짓. 왜냐하면 백제 13대 근초고왕(또는 백제 20대 비유왕)이 백제 후왕인 백제인 야마도 왕 응신에게 하사한 칠지도 칼(74.9cm), 거기 명시된 금석문에 나온 내용 때문. "태화4년(429년) 5월 11일 병오날 정양 때에 무수히 담금질한 쇠로 칠지도를 만들어 모든 적병을 물리치도록 후왕에게 주노라(칼 앞면)". "선대 이래로 아직 볼 수 없었던 이 칼을 백제왕 및 세자(나중 개로왕, 455~475년)는 성스러운 말로써 왜왕을 위해 만들었도다. 후세에 까지 잘 전하라(칼 뒷면)". 그럼 칠지도도 공개, 비공개? 당연히 비공개. 물론 초기에는 공개되어 고의로 깎아낸 자취도 고고학자들한테 다 들킴. 고의로 훼손한 장본인은 이소노카미 신궁의 총책임자였던 궁사 스가 마사토모(1824~1897). 이래서 비공개 자료가 쑤두룩. 이건 뭘 뜻하냐? 실제 왜 역사의 시작은 위례성 백제왕 응신(백제 곤지왕)이 야마토 왜를 열도에 건국한 270년이 아니고, 곤지가 왜에 건너간 5세기부터 시작된 것! 그러다 '일본'이라는 국호는 서기 670년경부터, '천황'이라는 칭호도 668년부터 사용하기 시작. 이와 같은 사실과 또 날조와 거짓과 뻥을 일본 전문가들은 죄다 알고 있음. 전부 거의 모든 걸 알고 있음. 단, 그걸 말할 수 없는 게 대부분의 운명이요, 직과 명을 걸고서 말하는 극소수도 있긴 있다는 거. 
    이걸로 봤을 때 15대 응신왕 재위기록부터 거짓이란 말인데, 대체 왜! 무엇 때문에? 왜냐하면 다음과 같은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날조하게 됨. 즉 일본측에서는 응신왕의 망명 사실을 감추기 위하여 앞서(또는 왕국 국왕 겸업, 백제가 양국 동시 운영) 신공황후가 세운 야마타이국이 멸망하는 년도(AD 269년)에 연결시켰고, 그래서 응신을 신공황후의 아들로 편입시켰고(실제로는 남매지간으로 추정). AD 270년에 일본에서 왕위에 오른 것으로 역사를 왜곡. 각각 연도가 맞지 않는다는 것은 일본서기 외 수많은 자료들과 병합하여 검토해보면 자명해짐. 다시 말해서 실제 응신 원년(AD 390년)보다 120년 앞선 인물로 조작함으로써 광개토대왕에게 패하여 왜열도로 도망간 사실을 감추려 함. 참고로 광개토왕릉비와 삼국사기 같은 역사서를 견주어 특정 연도가 1년 차이가 발생할 때, 고고학계에서는 비문을 신뢰하는 게 관례. 더더군다나 왕릉 비문이라 함은 곧 왕의 공적을 찬양하는 게 목적. 그런데 광개토왕릉비 비문을 얼토당토 않토록 태평양 섬나라 '공적'을 주로 받들기 위한 목적이다? 말도 안됨. 동네 꼬마들도 그런 장난은 않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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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인 박사] 
   왕인(王仁, ? ~ ?)은 일본의 《고사기》와 《일본서기》에 등장하는 인물로. 백제(百濟)에 살고 있었다고 전해지는 학자로서, 왜국에 건너가 《천자문》과 《논어》를 전했다고 전해지는데. 일본서기에 나오기로 "...... 아직기에게 뛰어난 학자에 대해 묻자 왕인을 추천했다." 라는 구절에 따르자면 아직기와 왕인이 동시대 인물인가? 일본서기와 고사기가 오직 사실만 기록했다면 동시대 인물이 맞겠으나. 그러나 사실을 기반으로 만든 소설이기 때문에, 따라서 아직기와 왕인은 동시대 인물이 아니라고 학계는 말한다. 아무리 오래된 옛날일지언정 집단지성도 우리 편이고, 고고학은 거짓말을 할 수 없고, 거기에 언어학이 든든한 뒷받침이 되므로. 고로 필자 같은 아마추어도 역사학에 대해 아는 척할 수 있지 않나! 뭐가 사실이고 뭐가 거짓인지 아는 사람은 다 아는데. 문제는 완전된 허구가 너무 많다는 점. 그런데 왜 한국에서는 왕인 박사가 위인전에도 나오고 누구나 알도록 유명해졌을까? 왜냐하면 그게 다 (150년 전 치밀히 설계되고 시작된) 식민지 정책이었기 때문!
    다음으로 일본서기는 왜 왕인이라는 인물을 창작해냈을까? 왜냐하면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 일단 일본서기에서 15대 응신왕이 270~310년까지 재위했다고 가짜로 설정했으므로, 응신 원년(AD 390년 또는 405년)이라는 사실을 기록하면 안되기 때문에, 고로 왕인이라는 조연을 만들어냄. 즉 전혀 엉뚱한 배역이 나타남. 그렇게 근구수왕=쇼토쿠 태자, 응신=왕인... 꼬고 꼬고 꼬고... 그렇게 뭐가 사실인지 모르도록 뒤죽박죽되고 오히려 거꾸로 임나일본부설이 등장하게 됨. 그런 와중에 역사학자 김영달이 일본에서, 왕인이 일본서기에서 조연이요 전혀 사실무근인 허구라고 밝히자. 김영달은 2000년 5월 8일 효고현 아마가사키시[泥岐市]의 자택에서 살해당함. 즉 일본계 사학자는 파면, 벌금, 미행, 감금...에 그치는 반면 한국계 사학자는 또 다른 양상. 김영달 사학자는 전라남도 영암군에 만들어진 왕인 탄생지 조성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음. 또 하나 첨언하자면 필자가 태어난 곳, 바로 옆동네가 왕인박사 유적지임. (손차양) 불과 승용차로 5분 10분, 아니 산책삼아 걸어서 얼마! 다음으로 역사적 배경에 대해서.

    □ 역사적 배경
    전제부터 말하자면 당시 백제는 백제&왜나라 그렇게 양국을 운영. (이게 사실인데 일본에서 이거 말하면 왕따돌림. 역사적으로 솔직하면 그냥 죽었음. 성씨 없던 대부분 일본 전국민, 그래도 1800년대에 봉기와 반란이 많았음. 백제&왜나라 양국 운영? 다른 칼럼 참조) 또 서기 300년대에 백제는 온조계파와 비류계파 등 왕권다툼 파벌이 나뉘던 실정. (침류왕만 봐도 엄마와 왕비가 모두 진眞씨)
    (A) 온조계파: 백제 13대 근초고왕/14대 근수구왕/15대 침류왕/침류왕의 아들 아신태자
    (B) 비류계파: 백제 12대 계왕     /계왕의 아들 진정(眞淨)      /진정의 아들 응신! 
    현왕 근초고왕을 비롯해 온조계파한테 밀려서 비류계파인 진정&응신은 한반도 남부로 밀림 → 그렇게 진정은 가야왕이 됐고, 응신은 現전라남도 영암지역에서 담로왕이 됨 → 이때 (A) 온조계파에서 근구수 태자가(왕좌에 오르기 이전) 남부에 정착한 (B) 진정&응신을 추적하고 위협 → 그에 쫒겨 369년에 진정&응신은 바다 건너 왜나라로 도주
    * 당시 배경: 온조계 VS 비류계 다툼은 왜나라 왜열도 담로섬(현 아와지 섬)과 난파(현 오사카)를 사이에 두고 수년간 승패없이 공방전을 치르던 시기
     → ...치열하던 공방전 가운데 분투하던 15대 침류왕을 구하기 위해, 백제에서 아신태자는 17,000명 병력을 이끌고 담로섬까지 건너감 (이걸 일본서기에서는 은유적으로 아직기...등 관련 내용으로 변조) → 그 후 어떻게 어떻게... 백제15대 침류왕이 사망하자, 그의 아들 아신태자가 왕위에 올라야 하나 어리다는 이유로 숙부가 16대 왕좌에 오름(침류왕 친동생인가 이복동생인가 그럼) → 그에 분노해 AD 390년 담로섬&난파 일대에 있던 아신태자와 응신은 결탁 → 일본에 있던 응신은 군대를 이끌로 다시 한반도로 진출 → 그렇게 응신을 한반도로 불러들여서, 결국 아신태자는 숙부(또는 작은아버지)인 16대 왕을 죽이고 백제 17대 왕이 됨 → 그러다 백제 17대 아신왕은 고구려를 공략하다가 광개토태왕에게 연패당하고, 함께 참전했던 응신은 AD 396년 결국 일본으로 또 도주 → 그렇게 일본 나라 지역에 강원궁을 짓고 AD 405년 경 야마토 왜국(大和倭)을 세우는데. 그 시기가 일본서기에서 말하는 왕인 박사가 천자문과 논어를 건네준 시기와 일치. 
    이와 같은 사실 + 일본서기에서 그려낸 허구 = 왕인이라는 비사실적 배역이 새롭게 등장? 일단 응신만 봐도 왔다 갔다 왔다 갔다 정신없음! 자, 보자. 응신은 처음에는 백제 본진에 있었는데 한반도 남부로 밀려내려갔다가 → 왜나라로(일본으로) 건너갔다가 → 다시 백제로(한국으로) 복귀했다가 → 광개토왕한테 연패당해서 다시 왜나라로(일본으로) 건너가서 야마토 왜국 건립! ↘↗↘↗. 천황가 족보는 그렇게 시작됨.
    곧 천황가 성씨는 (매우 중요) 계보가 명확해짐. 다음 화살표는 편의상 표시한 거고 그보다 자동차 산업 주식보유 거미줄처럼 정리가 필요. 또 중국의 사서인 수서, 신당서, 북사, 통전 등에 나오듯이 백제의 대성팔족(大姓八族). 곧 백제 7대 귀족 성씨가 천황가의 기원. 후지와라, 미나모토는 다 나중...묻어간 성씨들. 다시 말해 백제 대성팔족은 중국 성씨 조상이 일부 망명, 이주, 이민도 했을 테고 또 성씨만 부여받았을 테나. 일본은 백제인들이 전부 다 천황가에 그대로 상류를 차지했다는 점.
    진씨 → 부여씨 → 사택(沙宅)씨 ......소가, 후지와라, 미나모토, 아시카가, 도쿠가와...!

도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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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인 실제/허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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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1900년 ~ 현재      실존인물
일본 700년 ~ 1870년    허구인물
일본 1870년~1945년    실존인물
일본 1945년 이후         허구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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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일본에서 갑자기 왕인에 대한 학식이 정반대로 바꼈을까? 왜냐하면 이용가치가 없어졌기 때문. 허구였다가, 다시 실존인으로 바꿨다가, 다시 허구로 원위치! ↘↗↘. 한국에서 왕인을 실존인물로 알도록 조장하고 뒤에서 조정한 게 바로 총독부. 곧 어디까지나, 천황폐하 만세 → 황은(皇恩) → 황민(皇民) 이라는 가치 사슬을 위해서 그랬던 것임. 그렇게 조선인을 아프리카 동물처럼 먹이사슬로 옭아매고, 지배자 집단인 일본은 다큐멘터리를 찍음. 물론 기간 제한없이 영원을 위해서 그렇게 치밀한 작전이 시작됨. 그건 역사 기록만 봐도 증명된다. 
    A. 1899년 왕인묘역 확대정화공사 
    B. 1927년 왕인신사봉찬회의 결성 
    C. 1930년 왕인신사 건설 봉고제 및 지진제 거행
    D. 1938년 5월 오사카 사적 제13호로 지정
    E. 1940년박사왕인비 건립         
    F. 1941년 왕인신사건설의 제일보로서 왕인묘에 담장 조용
    G. 1941년 도쿄 '우에노'공언에 박사왕인 부비 건립
    H. 1942년 오사카부 협화회가 왕인신사 건설 결정
    그러므로 왕인 관련 자료를 10개 국어로 조사해서 논문을 써보면 알 수 있다. 세계3대 과학잡지에서 공인받을 정도로, 10국어로 철저히 조사를 해보시라. 일본에서는 그럴 수도 있다...라는 정도로만 사당 부수지 않고, 인터넷에서는 허구 인물로 알고. (즉 일본서기에서 유리한 건 사실, 불리한 건 허구). 즉 당시 식민지 통치관, 역사관, 지배관...을 위해 치밀히 진행된 정책. 영혼말살, 사상지배를 위해서 일종의 당근 책략에 해당했던 일이 왕인 박사 띄우기. 121대 고메이 덴노 천황도 암살하고, 이미 600~700년대부터 역사 왜곡은 멈추지 않고 메이지 유신까지 달려왔는데. 일본서기에 등장한 조연, 왕인 박사 하나쯤 만들어내는 게 무슨 대수. 일본의 고대 문명에서 한국 영향을 제외하면 거의 전무인데. 전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도록 급속히 성장한 배경은 곧 180도 전환을 비롯한 칼럼 내용들인데. 그처럼 서양의 모든 걸 따라하고 베끼며 추종하는데 (서양의) 비밀결사대를 어떻게 빼먹을 수 있겠나. 관련된 슈퍼데이터는 그야말로 눈부심. 그래서 1900년대 초반에 착착 진행했던 왕인박사 띄우기에는, 천황부터 정치계 군부계 학계 행정계 귀족계...모든 계통의 최고 수장들이 전부 다 전폭적인 지지를 했던 기록 다 남아있다. 그러니까 그 당시 왜 그랬을까? 총독부, 육군 별4개, 동경시장, 구청장, 궁내대신, 문부대신,후생대신, 한국내 시장 도지사 권력자.......건립 후원자 명단 1번은 바로 당시 일본 수상. 천황 빼고 일본 1인자. 또 축사를 남작이 읽고 동경시 교육국장이 병풍 맡고 학교교장에 박수치고. 일본 식민지였던 대만에서도 많은 축전들이 쇄도했는데. 도대체 왜 그랬을까? 조선어 폐지, 일본어 상용, 창씨개명, 국민징용령, 성노예, 대량학살, 인간 취급 미만....그와 정반대로 왜 갑자기! 아니 갑자기가 아니지. 모르긴 몰라도 만약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이겼더라면... 그러면 아마도 여전히 왕인 박사를 훌륭한 위인으로 존경했을 것이다. 왜? 좀비를 길들이기 위해서. 일본이 실존인물로 떠받들다가, 갑자기 정반대로 태도가 바뀌지는 않았을 것이란 말이다. 그 말은 다 가짜로 그랬다는 뜻. 만약 진심으로 떠받들려면 이순신을 띄우면 되지 뭐 하러 일본서기 허구 인물인 왕인을? 상식적으로 말이 안됨! 그래서 지금도 일본 내 이순신 입지는 튼튼. 이순신 깎아내리면... 이순신한테 당했던 대상들을 더 깎아내리는 이치 때문에 절대로 할 수 없음. 이해되심?
    그러나 세계사는 패자에게 야속했다는 점. 따라서 패전으로 소멸된 왕인의 이용가치에 따라. 가짜로, 의도적으로 헛바람을 주입시켰던 연기를 계속 이어갈 필요는 전혀 없어져버렸다는 점. 돼지 꿀꿀 농축산 가축들 꿀꿀꿀 식사하듯이 배급 줘서 먹고살게끔(만) 만들어주고. 단 효율적으로 국통 1개에 숟가락 10개가 동시에 첨벙! 다 그렇게 세뇌받으니까 그게 100년을 가도 씻겨지지 않음. 그래서 왕인 박사를 가리켜 일본 일부 지식인들은 이렇게 비꼰다. "한국과 일본 합작의 가짜역사"라고. 한일합작은 웬만하면 끝이 좋지 않음. 2002 월드컵? 공동 개최까지는 좋았는데. 한쪽은 예선 탈락 한쪽은 승승장구 그러다 결승전까지 진출할 동 말 동...속만 뒤집어짐. 그때부터 더더욱 혐한 기승 탄력받음. 게다가 왕인이 천자문과 논어를 들고 일본에 가서...? 천자문(千字文)은 중국 남조 양(502~549)의 주흥사가 쓴 책인데 책이 씌여지기도 전에 어떻게... 왕인 박사가 뭐 미래에서 왔나! 그러게 자국 역사서인데 대체 왜 남의 나라 역사로만 절반을 할애하냐고. 역사서가 아니니까 그렇지. 그게 다 서기 300~660년 동안 한국의 일본 지배를 없던 일로 만든 일본서기로부터 지금까지 이어져온 1,500년간 역사 조작 때문. 

도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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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민사학 학맥 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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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랑케
               ↓
              리스        나카 미치요
                      ↓
               시리토리 구라키치
                      ↓
          (A) 쓰다 소우키치/이케우치 히로시        (B) 스애마쓰 야스카즈        (C) 이마니시 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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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대   이병도(와세다대-조선사편수회-서울대)                                         신석호(경성제국대-조선사편수회-고려대)
2세대   이기백/김철준/최몽룡/한우근 등            김원룡(경성제국대-서울대..)   김정배 등
3세대   노태돈/이기동(이병도 수제자)/조인성 등  배기동/안휘준/이선복/조유전..  최광식(신석호 수제자)..
4세대   송호정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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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내용을 어째서 말할까! 왜 수도 없이 반복할까? 무려 1,500년 연속 역사왜곡을 뭐 심심해서 할까! 원시부족의 특성에 대해서 대체 몇 번을 말하도록 만드나. 왜냐하면 원시부족 문화는 절대로 문명화될 수 없기 때문. 저 하늘이 괜히 무시무시한 악마를 배정했을 리는 없다. 조선 초대총독 데라우치 마사다케. 일본 군부에서도 뱀으로 통했고, 지모가 구렁이를 닮았고, 처세가 살모사와 비슷하다는 그분. 비정함이 독사와 같다고 붙여진 별명. 그럼 원숭이 빼닮은 풍신수길이라고 빠질까? 독일 나치 아돌프 히틀러가 노란 원숭이새끼들이라고 꼬집자 → 조선 총독왈, 인도를 다스리는 영국 식민정책을 '어리석은 짓'이라고 비웃음 → 러시아 군함을 기습으로 박살내자, 영국언론은 광분하면서 격찬! 러일전쟁으로 알려진 전쟁, 실상 전투와 비슷했는데. 러시아가 하도 넓으니 지원군을 보낼 수도 없고 전투가 역사적으로 전쟁으로 과장되니, 그래서 지금처럼 러시아 핵잠수함이 몸을 푸는 것임. 실존 인물도 아닌데 쇼토쿠 태자가 아무 이유도 없이 일본 고액권 중액권 지폐에 괜히 7번 등장했을까? 조작된 일본서기대로만 알고 살며 우기는 일. 
    300년 백제 영토 → 중간에 가야 지배 → 사회지도층 100% 백제 독점 → 그러다 백제 멸망을 기점으로 대전환 → 받기만 했으니 이제는 뺏어야 속이 시원함 → 역사를 정반대로 조작한 일본서기 탄생 → 헤이안 시대(794~1185)에 궁정강의와 세뇌와 섬세한 대조작 시작 → 석일본기(1274년)로 집대성 → 천황가 족보는 신분세탁에 완벽 성공/지금도 만세일가 황통으로 인식 → 임진왜란 → 한일합병 → 원자폭탄 사과해라 사과해라~ → 성노예는 없었다 없었다~ → 난징대학살도 없었다 없었다 → 全총리가 착한 척하면 역적/매국노 → 천황도 착한 척하면 협박/위협 → 일본 사학자가 옳은 소리하면 겁주고, 한국계 사학자가 직언하니까 결국 살해 → 기타 등등.
    한번 생각을 해보자. 제발 제대로 존엄한 인간으로서 찬찬히 생각을 해보자구요. 이게, 과연, 사람이 할 일일까? 만약 사람이라면 그렇게 비인간적일 수는 없다.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그럴 수 있는 것. 그럴 수 있다 정도가 아니라... 야만인이라는 게 이렇다. 그게 다 원시부족 문화 때문! 한두 번 말하나? 이건 말이 안된다! 응? 말도 안되다고. 이게 꼭 일일이 조사하고, 연구하고, 지적해야 할 일일까? 말 같지도 않은 일이지 않나. 안 그런가? 오죽하면 너 그럴려고 머머됐냐 라는 떠밀림. 멜로드라마에서 등떠밀려 차마..그런 짐작을 할 수는 있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등떠밀린 거고, 이건 원래부터 자발적으로 식인종인 거고. 사극처럼 전쟁은 할 수 없다고 하여 스포츠 같은 대리전 성격만으로 만족? 역사전쟁부터... 말 말자니까요 증말.
    그걸 근거로 지금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나, 안 가리나? 따라서 식민지국 마지막 총독이 조선을 떠나면서 했던 말을 기록할 필요가 있다. 그걸 없었던 일로 반박할 수는 있으나. 그렇게 되면 신의 지구 데뷔도 없었던 것이고, 인간은 달에 가지 않았으며, 뭐든지 머머설만 남게 되기 때문. 
   "우리 대일본제국은 패전하였지만 조선은 승리한 것이 아니다. 장담하건대, 조선인들이 다시 제정신을 차리고 찬란하고 위대했던 옛조선의 영광을 되찾으려면 100여년이라는 세월이 훨씬 걸릴 것이다. 우리 일본은 조선인들에게 총과 대포보다 더 무서운 식민교육을 심어 놓았다. 
    결국은 조선인들은 서로를 이간질하며 노예적인 삶을 살 것이다. 보아라! 실로 옛 조선은 위대하고 찬란했지만 현재의 조선은 결국은 식민교육 노예들의 나라로 전락할 것이다. 그리고 나 아베 노부유키는 100년 뒤 다시 돌아올 것이다."
    물론 신빙성 없는 소문에 지나지 않을려나 몰라도. 충분히 그런 각오를 했을 것 같지 않나? 미항공모함에서 물 한 컵 주지 않았다며 속으로 앙심을 품었는데. 결국 모든 걸 남탓으로 돌리는 데 대성공하지 않았나? 1,500년 내내 노력한 끝에 어디 천황가 족보만 신분세탁에 성공했나? 아니다. 역사는 망가졌고, 가해자와 피해자는 뒤바껴버렸다. 결국 문명인 위에 야만족이 올라간 것이다. 왜냐하면 고양이는 야성을 잃으면 살 가치가 없기 때문. 기회만 보이면 머리꼭대기로 올라가는 동물은 사람과 다르다. 초식동물 코끼리, 기린, 코뿔소, 하마한테 맹수가 당하는 다큐멘터리 영상도 많지만. 결국 초식동물은 육식동물을 먹지 않는다. 먹을 수도 없다. 허나 그 반대는 성립한다는 점. 제2차 세계대전의 연승을 일본 전국민이 올림픽 금메달, 월드컵 우승, 세계 스포츠 대회 석권...처럼 들썩들썩 승전보를 들으면서 얼마나 좋아했는데. 천황폐하 만세 천황폐하 만세~! 하지만 단박에 패전 선언. 심지어 인간선언? 그 굴욕감이...... 과연 어느 정도였을까? 그건 상상불가! 미시마 유키오는 왜 할복했을까? 그래서 원시부족 사고체계로 봤을 때 경제로써 세계를 제패한 全SONY 회장처럼. 고국으로 돌아가 극우서적을 출판하면서 제목을 이렇게 정하는 것. 우리도 NO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도 NO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미 1,500년 전부터 그랬는데? 그럼 또 너네는 NO라고 말하지 말라 → 우리만 YES다 → 내 꺼는 원래 내 꺼 늬 꺼도 내 꺼 → 나는 되고 너는 안되고 →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사랑 → 무능한 남편이 다 원인제공했으니 부인 바람나도 다 남편 탓......계속 이어짐. 





    3

   [부여기마족의 일본 정벌설]
    앞서 임나일본부설은 역사적 근거가 없음과 동시에 날조에 기인한 억측인 반면. 부여기마족의 일본 정벌설은 엑셀파일 목록에 따라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한, 고고학적 증거에 따른 학설이라는 점. (역사적 자료를 총망라한 역사학과 달리, 물증이라는 고고학 자료에 기반한 학설) 그 둘은 하늘과 땅처럼 확연히 구분되는 걸 전제로 하고 본 주제를 시작한다. 일단 미국 컬럼비아 대학 개리 레저드 교수의 학설에 따르자면 가야는 바다 건너 일본을 정벌하고 369년부터~505년까지 100년 이상 일본의 왕위를 계승했다고 하는데. 존 카터 코벨(1910~1996) 학자 같은 경우는 약간 다르다. 
    세계 역사적 근거:

  • 기원전 1만 5000년에서 기원전 1만 년에 이르는 구석기시대에 지금의 베링해협은 대륙으로 연결. 그 통로를 따라 아시아에서 미대륙으로 이동
  • 15세기 코르테스 기병대는 단250기 말로써 멕시코 전역 정복
  • 피자로는 그보다도 훨씬 적은 50기만으로 페루 정복
  • 기원전 102년에 암종마 3000필이 한나라에 귀속되어 부대 예속됨
  • 기원전 141년 재위에 오른 한 무제의 영토 확장. 곧 말의 전파에 따른 영향
  • AD 120년과 136년 부여국의 왕 위구태가 중국 황제를 만난 기록......패망한 부여가 남하하여 기존 부여족과 합류

    일본 문화재 근거:

  • 도쿄국립박물관 소장 하니와 토기 배 
  • 규슈 후쿠오카현 다케하라 고분벽화 그림
  • 부여족이 도래한 다음인 400년 이후 일본 고분에서 마구 집중 출토 (대구 근교 가야 출토품과 완벽히 동일)
  • 윤색된 일본서기를 고고학, 유적지, 문화재 자료와 비교해서 합리적인 해석 결과
  • 6~7세기 일본 아스카 문화의 지도자들 대부분은 한반도에서 건너온 사람들 또는 가야인 조상 후세

    부여기마족의 일본 정벌설은 무엇을 뜻하냐? 
    첫째, (엑셀파일) 고고학적 자료가 뒷받침된 사실
    둘째, 일본서기처럼 윤색하거나 역사학계 평균이 날조와 가까운 것과 달리. 고고학은 거짓말을 못한다는 점. 
    한편 일본서기에 이렇게 나온다.
   "우리 백제와 임나(가야)는 예부터 부자, 형제 관계임을 굳게 약속한 사이다."
    이 말은 백제와 임나(가야)의 외교관계도 뜻하지만. 역으로 (오래전부터) 왜나라는 친백제-친가야인 반면, 신라를 적국으로 설정이라는 뜻. 물론 백제가 멸망하기 훨씬 전에 신라가 가야를 합병하기도 했음. 
    참고로 고고학을 빼고는 먼 역사일수록 역사학을 논할 수는 없는 법. 만약 고고학을 제외한 체 고대 역사를 얘기한다면 그건 역사가 아니라 딴 게 되버림. 즉, 왜 고대사 유물이 동일본보다 서일본에서 집중적으로 출토되는가? 왜냐하면 육지에서 문명이 건너왔기 때문. 그 증거에 따라 옛날 (현)도쿄 일대는 아이누족과 야만인들이 거주했을 게 뻔하다. 일본 내 발굴된 고대 유물을 봐 보자. 대부분 쓰시마, 규슈 등 동쪽보다 서쪽이 전부. 그 동진이라는 흐름에서 독자적으로 전환된 계기, 다른 문단에서 설명하겠지만 약 800년 경 일본에서 금광이 최초로 발굴된 시점. 그 훨씬 이전에는 신라처럼 금광도 없고, 제조기술도 제한적이며, 대부분 수입에 의존한 문명. 그런데 으쌰으쌰 독자적 노선이 1000년 동안 탄력을 받으니, 고대사를 거꾸로 왜곡 및 날조. 미술사에서 용의 손가락과 발가락만 봐도 훤하다. 중국은 5개 한국은 4개 일보은 3개.
    그런데 그런 세뇌가 절정에 달했던 20세기 후반. 일본에서 일한문화교류전 같은 전시회를 열면. 한국에서 출토된 금관 중에서 하필 우주수목 가지가 3,4개 달린 금관만 전시하고, 일본 금관은 꼭 5개 가지의 우주수목 달린 것을 전시했음. 그건 대체 뭘 뜻하겠나? 가령, 불교도 정통파에서 점점 시대적으로 분파됨은 어느 정도 자연스러우나. 극적으로 말도 못하게 변형되는 사례, 그래서 스님들이 결혼하고 첩을 거느리니까 일본 천황도 아들과 첩을 공유했던 역사. 그게 바로 사이비 종교의 천국이니까 가능 정도가 아니라 지극히 당연한 일. 그 모든 게 외부에서 섬으로 유입됐는데 하필 원시부족이 그걸 이상하게 변형, 국보 1호도 원본이 기괴하니까 성형, 전국민 사고체계부터 기형적으로 못 변하도록 고정. 그것에 반항하며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한다? 한마디로 그게 태평양 원시부족 문화. 
    과거 유럽이 아메리카로 서진했고. 기원전 1100년경부터 기원전 146년까지 고대 그리스가 이탈리아 남부를 포함한 유럽 여러나라를 직접 식민지 지배, 또는 분국 운영했다. 당시 그리스는 지금의 터키를 포함해 일종의 그리스 제국이었는데 중요한 건 그 다음에. 그 다음 타자로 등장한 게 바로 로마제국. 물론 그리스는 뺏는 지배가 아니라 문명을 전파한 지배. 실제 뺏을래야 뺏을 것도 없었던 시대. 그런데 그렇게 그리스-로마 문명을 유럽에 심었는데. 그게 화근이었을까? 나중 터키제국, 오스만제국, 게르만 나치... 막 제국 제국 계속 등장함. 무대도 전세계로 넓힘. (이 때문에 필자 중학교 농구단 이름도 제국, 나중 친구 이름도 제국). 그게 아시아에서는 인도의 불교가 동쪽으로, 몽고 기마족도 동남쪽으로, 중국 문명도 동쪽으로. 그게 사실인데. 어떻게 된 게 거꾸로 태평양 원주민이 무려 200년 동안이나 과거에도 한국을 지배했다니. 아 글쎄 이게 뭐지? 500년대에 백제에서 왜로 금동석가불상, 번개(의례용 장식깃발), 한문으로 쓴 불경, 성왕이 친히 쓴 불교예찬론, 불교용품, 달력, 언어, 건축가, 화가, 장인, 박사... 모든 게 동쪽으로 갔는데. 삼국유사에 따르자면 그래서 백제 건축가들이 그토록 뛰어난 사람들이기 때문에 신라 최고의 절 황룡사도 백제 건축가를 초청해 지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 당시에 일본에서는 제조 불가능한 물품들이 근대 일본에서 발굴되었는데. 연구해보니 죄다 고대 한국산 아니면 중국산. 20세기 후반 일본에서 일한비교유물 전시회에서, 한국 유물은 회색 비단에 좀 허접한 유물들을 추려서 전시. 그 옆에 일본 유물은 베이지색 비단에 다양,화려,고급만 선정해서 전시. 그럼 거꾸로 일본 문명이 반도로 건너간 것처럼 인식. 사고체계가 변한 건 하나도 없고. 오히려 좀비 세뇌는 나날이 발전하기만 하니. 설마, 그래서 주기적으로 틈틈히, 꼬박꼬박, 자주자주, 끊임없도록 지진과 태풍과 해일과 화산폭발과 기상이변이 어딘가에 끊이질 않는 건가? 아마도 그런 듯. 그리스 로마 문명은 듣기도 싫고 짜증나니까. 뭔 반도를 빼놓고는 얘기도 뭐도 아무것도 안되니까. 그래서 전국에서 한국 관련 동종 서적을 모두 모아 800년 당시에 몽땅 불태워버렸던 감정이, 지금과 하나도 다를 게 없는 실정. 
    그래도 6~7세기에 백제의 왕궁이나 절 건축은 한국 땅에 하나도 남아있지 않고. 백제 역사서도 전해지다가 소실되어버린 점 등등. 혹시 지금을 위해서인가? 
    아무튼 고고학과 역사학에 기반하여 왕릉과 귀족 무덤은 철저히 궁내청 소유로 옛날부터 지정되었던 것만 봐도 너무도 예절바르다. 과거 한국인 왕들이 편히 쉬시게끔 배려한다고 볼 수도 있는데. 그런데 역사적으로 사실은 그렇다. 당시 왕 뿐만 아니라 귀족, 관리, 사회지도층, 권력자, 기타 모든 중요한 직책은 전원 한국인. 그게 100%에서 점점 낮아지다가 1868년 메이지 천황 때 수도 이전. 이게 사실이기 때문에 역사를 왜곡하는 것이고. 또한 그 때문에 일본 정부와 궁내청은 고고학자들이 규슈나 도쿄 북부지역 정도를 파보는 것은 허락하나, 에도로 수도를 옮기기 이전의 지역을 발굴하는 건 철저히 금지시키는 것. 서기 500년 대만 해도 한국계가 아니면 거의 출세 자체가 불가능했다는 점 뿐만 아니라, 무려 몇 백년...아니 천년 내내 백제계가 천황가 자체라니. 더불어 14세기에는 왕권 다툼이 가장 치열했고, 오사카 한국인 거주지역에서 가난하게 살던 왕실 가계에서 적손 찾기도 외면받았던 사실. 그걸 어떻게 인정하고 싶겠나. 중국 문명을 1천년 이상 자연스럽게 받아들였고, 서구문명도 놀랍도록 습득한 건 모두 인정하나. 유독 한반도에서... 그거 만큼은 왕짜증. 자존심 훼손. 그리스가 이탈리아 남부&터키&유럽 상당수 지배. 다시 로마제국이 전유럽과 영국지배. 오스만 제국도 으쌰으쌰. 그런데 사실은 일본이 고대사까지 한반도를 지배했다? 그래야 속이 시원함. 아니면 속뒤집어짐! 





    4

   [일본의 초대신]
    왜에서는 아마테라스가 처음에는 오히루메노무치(大日靈貴)라 했는데 이는 무녀로 오히루메노무치(大日巫女)가 오히미코가 된다. 아마테라스 = 태양신, 히미코는 그 태양신을 제사지내는 무녀로써 태양신의 메신저 역할을 하는 존재. 즉 히미코는 야마타이국의 히미코로 아마테라스=히미코=신공왕후. 그렇게 됨. 정리하자면 태양신을 섬기는 무녀에 불과했는데 토속신앙으로 유명해져서, 처음에는 태양신을 섬겼다가 나중에는 태양신이 된 격. 
    근거는? 송나라의 범엽(398년 ~ 445년)이 정리한 역사서인 후한서! 후한서에 따르자면 '한나라 환제와 영제 연간(132~189)에 왜국에 서로 싸워 주인이 없는데 히미코라는 여자가 나이가 들어도 결혼을 하지 않고 귀신도를 숭상하고 요술로 능히 대중을 현혹할 수 있어 히미코는 왕이 되었는데 시비는 1천명이요 음식을 시중드는 남자 1인이 있었다'라고 함. 
    그 외에 알고보면 아마테라스는 원래 가야의 신. 언어학적으로도 
    히(고대 한국어로 해) + 미코(님 또는 무녀) = 히미코! 야마토는, 
    야마(고대 한국어로 '하늘' '산' 또는 '신성한 마을') + 토(터 또는 밑) = 해 뜨는 하늘 밑 마을
    그런데 여기까지는 신화적인 해석일 뿐이고. 역사 연구로 세밀히 들어가면 얘기는 또 다름. 어떻게 다르냐? 
    자, 또 다음과 같은 분석을 해볼 수 있다. 그에 앞서 아주 중요한 2가지를 먼저 알려드리고 출발한다. 
    (A) 일본 역사에 있어 신(神)자가 사용된 왕(천황)은 총 4명
    (B) 일본 역사에 있어 가야인(또는 신라) 왕(천황)도 총 4명
    일본 역사에 있어 신(神)자가 사용된 왕은 1대 신무(神武)왕, 10대 숭신(崇神)왕, 신공(神功)왕후(14.5대 즉 정식 왕으로 인정해주지 않음), 15대 응신(應神)왕 이렇게 단 4차례에 불과. 이들은 모두 건국자 또는 정복자를 의미. 그리고 중국의 삼국사기를 보면 나와 있음. 참고로 중국 삼국사기는 BC 109년 ~ BC 91년 편찬 역사서로써 일본서기와 속된 말로 끕이 다름. 어디... 그렇게 됨. 그렇듯 삼국사기 <남사>와 <양서> 왜전에 보면 “진 안제 때 왜왕 찬이 있었고, 찬이 죽자 동생 미가 섰고, 미가 죽자 아들 제가 섰고, 제가 죽자 아들 여가 섰고, 여가 죽자 동생 무가 섰다.(晋安帝時 有倭王讚, 讚死 立弟彌, 彌死 立子濟, 濟死 立子與, 與死 立弟武)”는 기록이 있다. 더불어 진안제의 재위기간은 AD 396~418년이다. 따라서 왜왕 찬은 응신왕을 뜻함. (참고로 맨 마지막 立弟武의 무는 무녕왕을 지칭) 
    또 <일본서기 신대 하의 제11단 신황승운>에 보면 신무왕의 어릴 때 이름이 협야(狹野)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협야는 ‘사노’로 발음되며 바로 찬(讚)의 음인 ‘산’에서 온 것이고, 이 찬(讚)을 훈독하면 응신의 이름인 호무다(譽田)의 ‘호무(譽)’와 일치한다. 즉 왜왕 찬(산)이란 이름을 음으로 읽으면 1대 신무왕의 협야(사노)가 되고, 훈으로 읽으면 호무다의 호무 즉 응신이 되는 것이다. 참고로 응신(應神)의 일본식 이름은 호무다(譽田)로 815년 왕실에서 편찬한 <신찬성씨록>에 보면 진(眞 또는 眞人)씨의 시조가 된다. 
    따라서 <일본서기>의 1대 신무왕은 바로 15대 응신왕으로 보아야 한다. (아니다, 10대로 보아야 한다...는 하단에 서술). 상게서에 따르면 숭신왕은 담담허존이고, 신공왕후 이후 120년은 공백기(실제로는 백제왕의 직할통치기)이며 응신왕이 곧 시조인 천무왕이라는 추론은 반론의 여지가 거의 없을 정도로 왜(일본)의 고대사 역사는 매우 짧다. 중국 고대 역사서와 비교해서 일본 역사서가 가난한 이유와도 일맥상통. 결국 일본서기의 응신 이전의 9명 또는 14명의 왕은 허구의 왕이던가, 아니면 조그만 부족의 부족장이었기 때문에 <일본서기>를 편찬하면서 일본(왜)의 역사를 길게 하기 위해 조작된 걸로 추정. (충분한 사료 검증에 따르자면 14명보다는 1대부터 9대까지가 허구인 쪽이 믿음직)
    응신(應神) = 호무다(譽田) = 진(眞)씨의 시조! 
    ~라는 부분을 집중해서 볼 필요가 있다. 아주 중요하니까. 
    요컨대 왜 왕실 연구자들은 15대 응신(應神)의 성을 진(眞)씨 라고 하는데, 이는 백제 왕실의 외척 가운데 주요 성씨의 하나이고 대고구려 강경파의 대표적 세력이기 때문. 근초고왕의 직계 후계자들은 배우자를 진씨 집안에서만 선택하여 진씨왕후시대를 열었을 수 있다. 이건 뭘 뜻하냐? 이때부터 백제는 왜(倭)에 왕자를 파견. (고려왕이 현직인데도 불구하고 중국 거주하며 편지 정치했던 것처럼). 요컨대 백제와 왜는 대왕국과 후국 즉 황제와 제후의 정치적 관계. 그 모두는 온전히 일본서기에 나와있는대로. 그래서 백강전투에 국력을 총동원하여 무리한 모험을 감행했던 것임. 즉 당시 백제와 왜와의 명령체계는 백제대왕 → 백제왕자 → 실권자 소가씨(또는 왜왕). 
    참고로 소가씨도 한국계. 한국계 소가노 에미시는 당시 왜의 실권자였는데. (일본서기에 앞서) 620년 최초의 역사서를 쇼도쿠태자와 그의 삼촌이자 권력가인 소가노 우마코가 시도했으나 결과물은 미완성이자 극히 일부만 전해짐. 소가노 우마코가 당시 왜국의 최고 군사권력자이자 한국계이기 때문에, 당연히 관련 자료는 비공개. 극비리에 불리한 걸 감추기 위한 목적 때문. 한편 645년 6월 12일 한반도 3국에서 온 사신들을 영접하는 궁의 연회석상에서 살해당했는데. 그걸 645년 소가노 이루카가 살해당한 뒤 다음날 소가노 에미시가 자살한 것으로 윤색된 것으로 세간에 알려진 상태. 왜냐하면 소가노 우마코는 가야계인데, 소가노를 살해한 세력은 한국 삼국(고구려-백제-신라)와 일본 내 삼국 친세력이기 때문. 소가노가 백제계인가 가야계인가는 몰라도 일단 한국계. 그렇게 소가노 우마코라는 강력한 실권자이자 총사령관은 반란군과의 전쟁에서 힙겹게 승리. 그게 587년 7월. 소가노 우마코 대신과 카시키야히메 황후가 하필이면 왜 반역자들의 동생을 새 천황으로 옹립했을까? 살해당한 아나호베 왕자의 생모를 위안하려는 뜻도 담겨있다는 게 사가들의 통설. 그러다 스슌을 천황으로 옹립시켜준 게 소가노 우마코인데, 스슌 천황이 그만 자기도 모르게 실언을 하자, 스슌 천황은 소가노 우마코의 충복에 의해 살해당함. 그리하여 소가노 우마코는 왜나라 최초의 여왕, 즉 백제 여인 스이코를 천황으로 등극시킴. 여기서 소가노 우마코가 당시 얼마나 최고 실권자였는지를 알아볼까? 즉 일본 33대 여왕 스이코(추고여왕)이 사망할 때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소가 가문 사람들이다. 어르신께서 분부가 있으시면 비록 밤이라 해도 낮에 하는 것처럼 그 분부를 따라야 할 것이며, 또한 낮에 내리신 말씀은 어두워지기 전에 그대로 지켜야 한다."
   "부상략기"에 따르자면 당시 그분들 의복은 죄다 백제 의복. 조선과 흡사. 즉 당시 왜에서는 한국계가 모조리 최상층을 장악했는데 당파간 세력 다툼이 매우 치열했던 걸로 추정. 그리고 그들을 살해한 뒤 정권을 잡았던 사람들이 후지와라 천황가의 먼 조상. 1985년 6월 소가의 무덤으로 추측되는 일본 나라현 호류지 남쪽의 후지노키 고분이 발굴되었음. 여기서 수많은 한국식 유물들이 부장돼 있다가 드러나자, 당황한 일본 당국은 궁내청에 통보. 일본 왕가 계보의 시조는 지금의 후지와라 가문이 아니라 한국인이었음을 극비리에 지적. 따라서 많은 증거물들에 대해 대응할 시간을 벌기 위해서 이 무덤을 1년간 폐쇄. 물론 증거들은 비밀 리에 추려서 감춤. 
    더 자세히 말하자면 646년 때까지 왜를 지배하던 소가 가문은 순수 한국인 혈통. 반면 후지와라 성씨는 절반의 한국인 혈통. 그렇게 후지와라 가문이 소가 가문을 살해하고, 왜국 정권을 탈취했음. 그리고 후지와라란 이름은 현 일본 왕실의 성씨. 당연히 사이호지(西芳寺)의 원소유자도 원래 한국인이었음.





    5

   [왜 일본서기는 거짓이 많이 섞였나?]
    첫째, 기반/기원이 죄다 한국이니까 윤색
    둘째, 신라에 대한 원한과 복수심이 기반
    셋째, 672년 진신의 난에 대한 미화/합리화/죄의식/역사왜곡을 위해 682년 3월 아들 천도에게 역사조작 명령*
    * 그렇게 탄생한게 바로 720년 일본서기. 즉 왜국 최초 역사서를 40대 천무왕이 기획, 41대 천도에게 명령.
    * 당연히 과거 일본사 기록은 전무. 또 자국어 없다보니 중국 포로(속수언과 살홍각)과 망한 백제 관료 출신 이주민을 동원. 물론 대부분 백제계. 백제 빼고 일본 고대사에서 아무것도 논할 수 없음. 전국에서 각종 자료 수집하여 짜집기. 요점은 쿠데타 정권의 정당성, 명분을 위해 탄생한 역사서. 

도표 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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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서기 작성 이전          일본서기 작성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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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국(종주국)        백제 (가야...)                 일본       
분국(번국)           왜                              신라 (통일신라)
국호                  왜                              일본 (정확히는 율령체제 구축인 690년경 이후부터)
왕격                  왕                              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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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서기 사실 왜곡 예시 (712년 고사기 포함)]

  • 신공황후의 신라정복설은 허위
  • 역대 일본 천황가 족보 연구 절대 금지
  • 역대 일본 왕릉, 귀족릉 발굴 절대 금지
  • 중세시대 유럽처럼 왕실 모독에 관한 헌법과 불문법 등등
  • 간지(60년간) 2바퀴(120년)을 윗쪽으로 늘리고 바꿔, 왜국 역사를 실제보다 길게 변조 
  • 백제 13대 근초고왕부터 19대구이신왕 시대까지 치세에 뜯어맞추기 위해...조작..처음부터 계획
  • 초대부터 9대왕까지는 허구. 조작. 학파에 따라 20~30대까지 허구다 들쑥날쑥. 공통점은 일단 1부터 40대 상당 이전까지
  • 역대 일본서기를 비판하고 (불리하게) 분석한 학자를 금고역과 벌금-감시-지위 박탈 예시들 다수. 3대 재산 몰수
  • 백제 성왕의 왜국왕 겸임 사실을 거꾸로 뒤집기 위해서, 백제 성왕이 역으로 금동불상을 바쳤다...등으로 기술
  • 백제 불교 전파가 서기538년인 것을 은폐하기 위해, 흠명(킨메이) 등극을 1년 뒤인 539년으로 조작
  • 각종 고대 문헌들과 엑셀파일들이 양 나라 동시 경영을 뒷받침하는데. 거꾸로 식민지 지배 명분을 위해 조작
  • 신라왕이 80척에 이르는 조공을 바쳤다...이미 서기 200년에 한국을 침략했다...지배했다...정사 포함한 소설
  • 칠지도를 바치고 칠자경도 바치고, 여러 진귀한 보물은 물론 황해도 곡성군 철광석산까지 바침
  • 사실 기반 + 가짜로 꾸며진 역사서 일본서기. 그걸 명치유신시대 왜 통치자들은 존왕양이를 내세우며 세뇌 시작. 그렇게 일본은 정신과 사고체계가 지금까지 거의 변한 게 거의 없는 실정
  • 당시 왜 조정 실정은 한문 해독자 거의 없었음. 가능자는 죄다 백제인. 즉 조정과 사회지도층 그 모든 걸 백제계 장악. 물론 이때 이후로 문인 → 무인으로 국가 체계 중심이 바뀜. 가령 조선은 그걸 반대로 해서 뒤끝이 안 좋았음. 또 당시 일본서기를 편찬하기 위해서 참고한 자료는 백제 3서와 여러 씨족기, 묘기, 사찰기 등이었음. 다시 말해 수많은 집필진, 향후 넣고 빼고 화려한 편집본. 그 당사자들은 분명히 여러 역사서들을 읽고 또 읽고 빠삭히 참고하여 일본서기를 수없이 편집했다는 증거. 일례로 사기, 한서, 후한서, 삼국지, 양서, 수서, 예문유추, 문선, 금광명최승왕경, 회남자, 당고조실록 등을 읽고 알고 연구한 다음에 일본서기를 수없이 편집. 특히, 임진왜란의 명분 목적으로 풍신수길 명령 하에 무수히 편집됐을 거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만약 원본에 손을 대지 않았다면 대륙 정벌이라는 목적은 무색해지고, 구실도 없으며, 위신만 망신살 게 뻔하니까. 보아하니 백제인 주도로 씌여졌다는 사실은, 일본 국사는 쓸 거리가 부족하여 한국쪽 자료를 대거 복사 및 응용. 일본 바깥 해외사는 과거 신라 복수심 바탕으로 과장
  • 일본서기는 다른 일반적인 역사서와 다름. 통상 역사서는 정치, 군사, 외교, 내정, 자연현상, 사회...가 주요 내용임. 그러나 일본서기는 왕족의 연애, 왕위 계승을 둘러싼 갈등과 암투. 유력 씨족의 시조 전승 등 왕가 족보를 열등감 배제, 지는 비교 빼고, 나머지를 부풀리도록 작성됨. 그마저 몇 백년 동안 퇴고하여 완성됨. 몇 백년 동안 퇴고? 아니 어떻게! ↓
  • (매우 중요) 일본 서기는 단1권으로 인쇄된 책자가 아니라, 붓글씨로 쓴 필사본. 필사본이라는 말은 원하기만 하면 통치자 마음대로 내용을 언제라도 바꿔 쓸 수 있다는 뜻. 마음에 안드는 부분? 삭제. 흡족한데 약하다? 추가로 부풀림 얼마든지 가능. (참고로 1234년 고려가 《상정고금예문》을 금속활자로 찍어내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발명했는데, 왜 나중 국력이 쇠퇴했냐? 좋은 하드웨어를 일찍 발명하면 뭘 하나, 소프트웨어인 소설 배포 발간 금지요, 컨텐츠를 왕성히 만들어내지 못하는 환경이었기 때문) 
  • 붓글씨로 쓴 필사본이라는 말은 편찬 연도는 712년, 720년일지언정. 일본이 국보 1호를 얼굴 조작하고 성형해서 공개 후, 그 사실을 비공개로 감추는 것처럼. 그 이후 숱하게 고치고...고치고...또 고치고...불리한 거 빼고 유리한 거 추가하고...그랬다는 뜻임. 따라서 고사기-일본서기는 애초에 인쇄본이 없었음. 인쇄기계도 인쇄기술도 없었음. 그래서 고사기 필사본으로 최고 오래된 것은 1371년판, 일본서기 고활자본이 가장 오래된 것은 1610년판. 그후 목판 인쇄본으로 최고(最古)는 1644년판임. 물론 필사본과 목판 인쇄본은 내용 상에 별 차이가 없음. 그럼 일본 사학자들이 이런 내용을 다 아느냐? 100% 앎. 빠삭히 꿰고 있음. 거의 100% 일본 사학자들은 초대부터 9대,10대까지는 허구라는 거 죄다 앎. 다만. 1~10대까지는 허구, 11~30대까지도 허구냐 아니냐 등등은 의견 분분
  • 15대 응신왕의 아버지인 14대 신공(神功). (물론 일본 천황 족보에서는 신공神功을 정식 천황으로 쳐주지 않음. 이유는...... 아마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 14대 신구왕후의 업적은 백제 13대 왕인 근초고왕(近肖古王, 300년대 초~375년)과 거의 동일. 그게 Ctrl+C ~ Ctrl+V 마치 복사한 것처럼 똑같다는 건 무엇을 뜻할까? 단언컨대 일본 14대 신공(神功)왕 = 백제 13대 근초고왕! ~라는 얘기임. 물론 백제 13대 근초고왕이 현역 왕인데 일본으로 건너가서 겸임을 어떻게 하느냐? 그래서 파견직을 보냄. (3141이라는 죄수번호...이제야 불가사의가 섬세해짐). 근거는? 가야사를 검토하면 답이 나옴. 왜가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임나일본설의 근거는, 모조리 백제의 역사가 왜 야마토 왕조의 역사로 개변된 것에 불과하다는 명백한 증거. 神功은 4세기 중반 사람으로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를 정벌하는데 4세기 중반에 신라, 가야, 고구려를 정벌한 유일한 사람은 바로 근초고왕(300년대 초~375년). 이로써 근초고왕 업적인 신공의 업적으로 둔갑한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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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이 역사를 왜곡하는 이유 Ⅰ]
    손바닥을 태양을 가리는 행동을 1천년 지속했기 때문. 손바닥으로 태양을 가리는 행동에 반기를 들면 안되는 문화이기 때문. 특히, 일본서기의 근간이 된 역사였던 약 700년 이전. 즉 200~700년 동안 왜나라를 좌지우지했던 실권은 교묘히 이동했는데. 어떻게 이동했나? 
    가야계에서 → 백제계로, (백제가) 종주국에서 지원국으로! 전자와 후자가 무려 몇 백년에 걸쳐 全열도를 좌지우지했기 때문. 그래서 백강전투가 아주 중요한 역사적 사료라는 것임. 왜냐하면 300, 400년 본국이자 모국인 백제는, 500년을 넘어가면서부터 그래프가 오르락내르락, 즉 고구려&신라와의 관계에서 힘에 붙일 때 왜에서도 파워가 오르락내르락한 걸로 보여지니까. 즉 때에 따라, 
    백제 위상(位相)↗ 대화왜(大和倭) 위상(位相) ↘
    백제 위상(位相)↘ 대화왜(大和倭) 위상(位相) ↗
    (그렇지만 300~700년은 백제계가 모든 것이고. 800년 이후도 상당) 그와 더불어 백제 내에서도 온조백제계가 집권하냐 구태백제계로 교체되냐, 에 따라 오르락내르락. 그러다 의자왕(義慈王) 20년(A.D 660년)에 백제는 위기에 처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화왜(大和倭)가 국력을 총동원할 정도로 백제는 그만한 존재였는데. 그때 이후로 서서히~ 점점~ 그러다 역사왜곡은 1,500년 동안 계속된 정도가 아니라 코메디가 됨. 바로 그 때문에 일본이 역사를 왜곡하는 것임. 무려 1,500년 동안 치밀하게 꾸며댔는데, 그게 싹 다 밝혀지면 얼굴 들고 어떻게 살아? 아무리 뻔뻔해도...그래도 잘 삶. 그게 바로 원시부족 문화와 관습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가야계와 백제계가 전부냐? 하면 또 아님. 드물지만 신라계와 고구려계도 비교적 초중반에는 힘 깨나 썼던 형세. 그래서 더더욱 과거사를 꼭꼭 숨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임. 더더욱 당시 신라가 어정쩡하니 삼국을 통일한 형세가 되자, 지금까지 한국사학계는 신라 위주로 역사를 포장했고. 일본도 역사적으로 친백제였기 때문에 일본서기부터 反신라적 기술이 상당했는데. 이상하게 임진왜란과 한일합방을 계기로 가야, 백제, 나머지 한국계의 영향을 모조리 꼭꼭 감추고 숨기는 방향으로 돌변한 것임. 관련하여 신사의 기원도 연관되는 배경지식. 신라 15대 기림 이사금(298~310년)시대에 신라의 신궁제도와 보물은 왜로 전파됨. 신사가 모시는 보물과 신의 정체는 신라신. 오사카에서 발굴된 금석문등 증거는 비일비재. 당시 한국계가 왜를 분할 점령한 걸 구분해보자면 이렇다. 
    신라계: 시네마현 이즈모, 오우미, 교우토, (당시) 야마시로
    백제계: 구주를 정복한 다음 → 왜 내해의 세도나이카이 지역으로 동진 → 4세기경 하내(카와치/오사카)의 나니와에 정착 → 이때 왕이 백제계 응신왕
    부여계:
    고구려계: 
    다음으로 천황가 제사, 일반 제사들에도 한국계 신들을 모시는 경우가 즐비하기 때문. 가령, 백제 성왕을 신주로 모시는 4월 2일 히라노신사. 이 사당의 첫 번째인 제1신전의 신주는 바로 백제 성왕. 거기에 성왕의 위패가 처음으로 봉안된 것은 794년이요, 봉안한 사람은 50대 환무 천황. 근거는 797년 편찬한 속일본기. 물론 제1 신주 뿐만 아니라 제 2신전은 백제인 온조왕, 제 3신전은 백제 비류왕이며, 또 백제 5대 초고왕도 있고, 제 4신은 비매신으로 백제 공주신이며 무령왕 손녀이자 환무의 어머니인 고야신립이 신주. 그때부터 지금까지 천황가는 1,200년 동안 끊임없이 제사지냄. 그런 예시들을 궁내청은 당연히 비공개, 사회지도층도 극히 민감. 역대 천황들은 거의 빠짐없이 직접 제사 지냄. 왜냐하면 천황가만의 특권이자 의무이기 때문. 심지어 일제치하 1940년에도 123대 다이쇼 천황도 직접 히라노 마쓰리 제사에 참석. 당시 현인신 자격인데도 불구하고! 그때 히라노 신사의 경내에다 직접 소나무를 기념식수하기까지 했음. 
    더불어 3대 신기. 또 나라현 천리시 이소노카미 소장 중인 일본 국보 칠지도. 칠지도에 새겨진 음각 글씨가 무엇을 말하느냐? 당시 막강한 군사력을 가진 백제왕이 후왕인 왜왕에게 보내준 것을 밝힌 것이며, 칼에 새겨진 글투는 윗분이 아랫사람에게 전하는 하행문서. 칠지도에 각인되었기로는 369년에 백제의 왕세자가 왜왕을 위해 만들었다 라면서 하사한 기록이 남아있었는데. 아마 1910~1945년 사이에 이 칼의 명문을 의도적으로 파괴. 당연히 파괴 전 명문 역시나 비공개로 남음. 일본은 거꾸로 속국은 백제로, 종주국은 야마토로 해석하고 싶으나. 수많은 사료가 그걸 결코 허락치 않음. 일단, 
    첫째, 369년 백제는 군사&정치적으로 정점에 오른 시절. 백제 근초고왕(346~375년)은 평양에 쳐들어가 고구려 고국원왕을 죽임
    둘째, 남제서(537년에 소자현이 편찬한 것으로, 남조 제나라(479년~502년)의 역사를 담음) 기록에 따르자면 백제가 당시 5개의 속국을 거느렸다고 명시됨. 그 5개 속국에 왜도 물론 포함. 
    일본이 역사를 왜곡하는 이유? 그걸 숨기고자! 또 응신왕의 신주 하찌만신을 제사 모시는 스다하찌만 신사. 화상경에 세겨진 글씨를 판독하면, 백제왕이 왜를 지배한 사실을 입증. 인물화상경도 제작 연도가 503년경인데 일본 사학자가 263년으로 날조. 왜나라 계체왕이 무령왕의 친동생이라는 걸 숨기기 위해서, 타카하시는 연대를 240년(60십자 4바퀴)이나 고대로 끌어올림. 곧 날조의 날조의 날조의...역사조작 역사만 무려 1,500년~2000년. 것도 오차없이 일관되도록. 
    또 810~823년에 씌여진 홍인사기弘仁私記에 보면, 환무왕(50대 간무 천황)은 당시 왜 각지의 관가에 칙명을 내림. 한왜 동종 관계의 모든 책자들을 불태우도록! 일단 분서사건에 대한 고증만 있고 이유는 없는데. 왜 불태웠냐 라는 영문을 추리하자면 이렇다. 50대 간무 천황은 수많은 농민들의 조정에 대한 저항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큰 일을 지시했음. 그건 784년, 794년 두 번씩 왕도를 옮기면서 백성들 원성이 높아졌으므로. 785년 도성 축성 때문에 전국 각지에서 징발되어 온 농민은 자그마치 31만 4천명. 대략 전체 인구 10%에 근접? 그래서 784년 왕도 옮김, 785년 도성 축성, 794년 왕도 옮김... 해도 해도 너무한 거 아냐~라면서 원성은 들끓음. 세계사에서 이런 예는 흔하디 흔함. 이집트 피라미드는 물론 중국의 만리장성도 그렇다. 607년 여름 만리장성을 쌓던 200만 명 부역자들 중 절반이 더위로 사망. 중국사 기록에 보면 수 양제(569~618) 때 대운하 걸사 때 무려 550만 명이 투입됐는데 200만명 넘은 인원이 행방불명 처리됨. 그처럼 환무왕(50대 간무 천황)은 그걸 가라앉히기 위해 몇 가지 정책을 추진했을 테고,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한왜 동종 서적 분서사건>을 성공시킴. 또 속일본기에 따르자면 제50대 간무천왕은 백제왕족들과 백제계를 중심으로 조정 인재 발탁. 50대 간무천황이 현직에 백제계만, 전직 백제신만 추종한 사실은 스가와라노 미치사네가 892년 편찬한 "유취국사"에도 여실이 기록됨. 심지어 간무 천황 후궁 가운데 7명 역시나 백제계 후궁. 백성이 백제인 천황가의 통치를 받으며 위화감과 열등감 등으로 불만 고조, 고조...그걸 억제하고자 한왜 동종  관계의 모든 책자들을 불태우도록 지시. 지금 요약하면 한왜 관련 서적 분서사건! 그건 무엇을 뜻하냐? 50대 간무 천황 시절만 해도 660년 백제가 망한지 무려 백여년이 지났다는 얘긴데. 물론 이 분서사건에는 50대 간무천황 관련 서적도 포함되는데. "일본후기"의 (50대) 간무 천황조는 모두 13권임에도 불구하고 4권만 전해지고 나머지 9권이 결권이란 말은 <한일동족론 분서사건>에 나머지 9권도 포함되기 때문으로 추정. 학자에 따라 진신의 난 때 분실됐을 걸로도 보는데, 어쨌든 불리한 현재 일본정신에게 역사인 건 분명하고, 과거 일본 백성들도 적개심을 품었던 자료인 것 역시나 분명. 당연히 이와 같은 사실은 810~823년 홍인사기, 892년 유취국사 외에 14C 발간된 신황정통기에도 명백히 나와 있음.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모순일 발생한다. 즉, 
    천황가와 조정 요직은 모두 백제계가 지배! 그렇게 사회지도층 백제계는 (통일)신라와 (통일전)신라를 싫어함. 그런데 피라미드 최상층을 제외한 나머지는 일본 피라미드 최상층을 백제계가 지배한 데 대한 원성이 드높다? 따라서 제50대 간무천황이 지시한 분서사건을 계기로, 바로, 그때부터 피라미드 전체는 옆동네 전체를 싫어하기로 작정하기 시작. 물론 어느 날 갑자기 그와 같은 응력이 뜬금없이 생겼을 리는 없으니까, 15대부터~50대까지 내내 그랬다는 게 반증됨! 아울러 15대부터~50대까지 내내 그랬다는 얘기는 또 무엇 뜻하냐? 당연히 15대부터~50대까지 뜬급없이 갑자기 그랬을 리는 절대로 없다는 말. 요약하자면 BC 3세기 ~ AC 3세기 내내 점진적으로, 서서히 한반도 세력이 넘어가서 국가 체계 없는 원시사회 상층부를 장악했고. 그게 결실을 맺어 15대부터~50대까지 내내 천문학적 증거를 남기게 됨. (일본)국립민속학박물관 교수의 말에 따르자면 죠오만 말기에서 야요이 시대로 즉, BC 3세기~ AC 3세기 그 동안 인구가 5만에서 50만으로 폭발적 증가했다고 밝힘. 기원후 3세기 중반에 50만이었다가 일본서기 제작 연도인 약 700년쯤에 500만으로 폭발적 증가는 뭘 뜻하는냐? 단순히 언어, 체계, 의복, 무기, 도예 뿐만 아니라 문명과 인구등 모든 게 이주됐다는 뜻. 그처럼 이와 같은 피라미드 최상층과 나머지의 물리고 물리는 접전은 지금까지 이어진다는 게 뭐냐? 바로, 당시 피라미드 최상층은 역사 왜곡을 감행했고, 그게 지금까지 이어짐은 물론, 피라미드 최상층 나머지는 지금까지 천황가의 신분세탁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함. 그런데 그런 합심하는 과정에서 누군가 지 혼자만 착한 척을 한다? 궁짝 안 맞도록 옳은 얘기를 한다? 물론 그게 끝이 아님. 
    헤이안시대(794~1192년) 중기인 10세기경 이루어진 율령의 시행세칙을 연희식이라 부르는데. 연희식에 따르자면 왕실에 관계하는 신은 모두 285명의 신이 있으나, 왕이 직접 제사를 받드는 것은 3분의 한국 천신 뿐. 연희식에 다 기록됨. 물론 지금도 큰 변화는 없음. 왜 왕실의 한 왕자인 조향선언은 아키히토의 허락을 받고 2004년 8월 3일 한국에서 백제 제25대 무령왕 왕릉에 찾아와서 제사를 드리고 돌아감.
    근데 왜? 무령왕은 곤지의 친아들이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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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이 역사를 왜곡하는 이유 Ⅱ]
    물론 이유는 찾아도 찾아도 끝이 없다. 엑셀파일을 뒤져보니 기원전 2,333년이 한국의 시초임을 일본이 역사적 배경지식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래서 기원후 369년 부여 기마족의 일본 정벌을 → 기원전 660년 신화로 윤색함. 다음으로 일본 천황가의 만세일계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어떡해야 하냐? 15대 이전을 막 짜맞추고 조작하고 그러지 않으면 안됨. 일본이 역사를 왜곡하는 이유? 이런 역사적 배경을 모두 숨기기 위해. 또 만세일계라면 총 125 무덤 가운데 35대 황극과 37대 제명은 합장되었고, 40대 지통은 39대 천무의 부인으로 합장되었는데. (정확한 통계에 앞서 대략) 그 125개 다 열어봐서 탄소연대측정 해 보면 될 거 아닌가? (없어진 거... 알려지지 않은 거... 빼고도 많음. 더구나 왕가, 왕족, 귀족...너무도 많음. 그러나~ 절대 금지! 왜? 아니 왜?) 내전 없기로 세계 1급이요 식민지 수탈 없기 역시나 말끔히 0. 그런데 안 해. 응? 바로 그처럼 죽어도 해서는 안될 일이 바로 그것. 왜냐? 왜냐하면 9대 또는 15대 이전은 허구로 만들어냈으니까 없고, 10대 15대 이후는 캐내봐야 죄다 불리한 것만 나오기 때문에. 물론 그걸 전국민에게 가르치냐? 전부 다 숨김. 싹 다 감춤. 오히려 임나일본부설 같은 거 만들어냄! 다시 말하지만 (정확한 통계에 앞서 대략) 그 125개 다 열어봐서 탄소연대측정 해 보면 될 거 아닌가. 근데 안 해! 왜일까? 무덤형식과 무덤내 보존품이 불리한 증거로써 매우 불쾌하기 때문. 
    더불어 원시부족 특징에 대해 숱하게 칼럼을 써댔는데. 그걸 읽어보시니까 어떻습디까? 옆은 없고 수직만 있다는 점. 그건 명백히 일본서기에도 기록되어 있다. 요컨대 호족의 신들을 모두 중앙권력의 천황이 갖게 되는 것. 심지어 한반도에서 새로 건너온 신기까지 중앙권력이 수탈. 또 이즈모의 신보를 강탈. 그 다음 천황 숭인도 나머지 신기를 빼앗음. 그래서 천황 이외의 누구도 신기를 못 가지도록 했다는 기록. 현재 천황가 만이 지낼 수 있는 제사는 비공개인 것처럼. 일본이 꼭꼭 숨기고 알면서도 극구 떼쓰면서 외면하는 사실들. 철면피로써 극구 부인하는 역사. 극렬히 만세일계만 주장하는 특징들. 바로 그래서 일본은 곧 사극 지상천국. 그렇다고 얼굴마담이 쫌만 경거망동해 봐라. 궁내청에 협박 전화 들끓는다. 좀비들 미쳐버리니까. 실제로 일본사를 통틀어 그렇게 명을 달리한 사건들. 엑셀파일로 기록을 해 보면 안다. 
    자, 원시부족이 광분할 수 밖에 없는 이유. 그게 뻔하니까 그분들께서 역사를 왜곡하는 것 아니겠나. 즉 백강전투 이전에는 일본에 한국인/일본인 구별이 없었거나 크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한국인이 일본을 지배했다. 일본인은 일본 내 사회지도층도 될 수 없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질 거 뻔한 전쟁에서 후방 부대 역할마저 맡고. 국운을 거는 전투까지 참전해야 했다. 당연히 통역도 필요없었지. 왜 언어 수순이 비슷하고 언어학적으로 95% 똑같은데. 죄다 한국계 한국..이거든. 그럼 원시부족이 그걸 인정하라고? 속 뒤집어짐. 그래서 약 800~1000년 사이에 일본은 독립한 것이나 마찬가지. 독립 뿐만 아니라 1500~1600년 임진왜란과 향후 기타 등등. 그런데 결과는 당하고 당하고 엉망진창 엄청나게 당했기 때문에 해군을 강화한 영국은 전세계에 연방을 많이 거느렸는데. 영연방과 극우방이 많은 반면 일본은? 그게 바로 뒷북. 문명인 대 원시부족. 그런데 원시부족은 뭐라고 말한다? 우리는 겉은 황인종이지만 속은 백인이다. 아시아의 유일한 유럽. 짜잔~! 
    그리고 일본 10 천황의 이름이 무슨 뜻인지 아시나요? 다름 아니라 "처음 나라를 다스린 왕"~라는 뜻이다. 그건 뭘 뜻하냐, 1대 = 10대 천황! 라는 의미.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국에 쫙 깔린 신사들, 표지판을 읽어보면 기원전... 기원전...! 죄다 뻥. 나폴리는 기원전 470년경 그리스 정착민들이 네아폴리스라는 도시로 건설되었으니까, 나폴리를 비롯한 유적지 안내판은 사실. 그냥 말 그대로 사실일 따름. 그런데 일본 신사 표지만에 있는 기원전... 기원전...? 죄다 뻥. 오스트리아, 벨기에, 포르투갈... 성당과 벽화와 조각상과... 그 안내판들에서 말하는 기원전. 그냥 온전히 사실. 그런데 일본 신사들이 말하는 기원전? 그걸 전부 다 대공사해서... 안한다. 싫다. 짜증낸다. 외면하지. 방관. 거꾸로 우김. 임나일본부설. 역사 왜곡. 백제계...발언하면 1차 협박. 2차는 죽임. 아예 조용히 마이크 꺼버림. 조용히 실종. 소련 스탈린 공포통치부터 레닌주의...별의별 몽땅 짜집기 통합되어 있는 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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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이 역사를 왜곡하는 이유 Ⅲ]
    이처럼 일본 역사에서 38~40대 천황도 중요하지만 더 거슬러 올라가 15대~30대도 중요한데. 무엇을 봐도 어떻게 해석해도... 죄다 불리한 역사. 그래? 정말 그래? 그러므로 에라 모르겠다 라면서 초대를 BC 660년으로 끌어올림. 뭘로 봐도 불리하니까, 죄다 뒤집을 수도 없고.... 따라서 역사 = 만화영화가 됨. 이걸 제50대 간무천황을 기점으로 구분해서 얘기하는 거 얼마든지 가능하다. 간무천황(737년 ~ 806년) 집권기에 <한일동족론 분서사건>. 한일동족론...말이 좀 그렇다만. 한국계가 왜나라 사회지도층 점령...쯤으로 해석하면 되는데. 일단 그걸 기점으로 삼으면 된다. 즉 대략 700년을 기준선으로 끊고. BC 300~ AC 700년. 그렇게 무려 1,000년 동안 일본 민초는 짜증의 끝을 경험했기 때문에, 고로 그 후 1,400년 동안 또는 완충지대 포함하여 1,500년 일관되도록 내내 합심하는 것. 무려 15세기를 내내 초지일관 복수! 응? 일본 고대사에 기록으로 다 남아있는 사실이 뭔가. 불상을 처음 일본 땅에 들여왔고, 일본 내에 처음으로 절 건축을 준공한 것도 한국에서 온 건축가와 건축자재, 언어를 전파하고 문명을 알려주며... 그 모든 것. 허나 은혜를 원수로 갚아야 속이 시원한 걸 어떡하나. 단언컨대 필자의 분석이 무슨 말도 안되는 억측인가? 정말 그런가? 진심으로 그렇게 느끼심? 진짜로? 네? 참고로 덧붙이자면 식민지란 두 가지로 나뉠 수 있다. 
    (A) "수탈/지배" (예: 유럽의 세계지배를 비롯해 지구촌 식민주의 역사)
    (B) "문명전파" (예: 백제의 왜나라 장악)
    첫째인 (A)는 누구나 알다시피 주권 상실, 제국주의 팽창, 영구 집권을 위해서. 그리고 (B)는 그와 달리 수탈이 아니라 문명의 전파! 여기서 A&B 모두 앞선 문명을 전파한다는 점을 맞지만 A&B의 가장 큰 차이점이 무엇일까? 그건 아프리카 부족의 명언이 알려준다. "처음에 그들이 올 땐 그들이 성경을 들고 있었고 우리가 이 땅의 주인이었답니다. 그런데 나중 보니 우리가 성경을 들고 있고 저들이..." 성경만 쥐어주고 그 외 모든 걸 가져갔다 라는 사실. 사실일까, 거짓일까? 100% 사실. A는 B와 달리 토속민에게 거의 모든 실권 박탈, 탄압, 자유 억압, 수탈. 속된 말로 단물 빨아먹을 만큼 빨아먹고 더 빨릴 단물이 없으면 철수. 그렇다고 철수해서 깔끔하게 끝나냐? 그럴 리 있겠습니까. 그건 지금 아프리카를 보면 된다. 유럽 열강이 원탁회의해서 반듯하게 줄 긋고, 현지에서 측정해서 나눠서 갖고. 민족, 언어, 문화 구분 없이 그때 정해진 국경선. 그거 때문에 지금도 아프리카는 싸우는 중! 영국이 철수하자 인도 근방이 나라 5개로 조각났나, 10개로 찢어졌나? 근데 또 재밌는 게 일본이 A를 따라했다는 점. 모방의 천재들은 하필 좋은 점보다 나쁜 걸 배우기 좋아하는데. 그래서 하필 과거 모국에 해당했던 나라들부터 정복해나감. 그러던 중 1945년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하자 정부 부처에서 긴급히 채권 발행하고, 어음 무더기로 찍어내서 이미 쥐어짤 만큼 짜냈는 데도 불구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인플레이션을 비롯해 경제 망하는 조건으로 모든 걸 빼내감. 그 뿐만이 아니라 그렇게 50년 심어놓은 식민지 사관, 잘못된 사상과 노예근성, 뿌리깊은 구시대성 봉건주의와 원시부족 문화. 그 더러운 땟물을 빼는데 아무리 빨라도 완벽히 제거는 불가능. 지구 상에서 그걸 완전 깨끗하게 제거한 사례는 완전무결하도록 딱 0. 즉 개선조차 무려 100년이 걸림. 개혁은 꿈도 못 꿈. 단, 번갯불에 콩 구워먹을 정도로 노력하면 가능하긴 가능. 그렇듯 A가 아니라 B로써 BC 3세기부터 ~ 약 700년까지. 1천년간 빼앗고 약탈해간 게 아니라 주기만 하며 사회지도층을 장악했는데. 물론 뺏어갈래야 뺏어갈 뭣도 없으니까 그랬겠지마는. 사실만 따져서 주기만 했음! 그런데 화장실 들어갈 때 나올 때 사람 마음을 다른 법. 따라서 받기만 원없이 받았는데 받을 만큼 충분히, 더 못 받을 정도로 죄다 받아버렸기 때문일까? 이제는 (피라미드 최정상층에 있는 백제계) 그 자리를 원시부족이 차지하고 싶네...?! 그래서 서기 700-800년년 이후 지금까지에 이르게 됨. 이 모든 원리와 이치는 입도 뻥끗해서는 안될 살벌한 불문율이 된 것임. 내 말 틀렸나? 틀렸으면 당당히 나와서 반박하시든가. 네? 
    반복하건대 저 A&B가 보통 차이일까? A는 제국주의의 이름으로 10만명~1,000만명. 기본으로 대량 살상. 임진왜란만 봐도 전국민 1/3 ~ 1/4에 해당하는 몇 백만명을 대량학살. 무기가 발달하는 19세기 20세기로 들어오면 100만명 기본으로 5,000만명을 서서히 대량학살. 단박에 최대한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듯이 볼링공 놀이도 펼침. 또 스탈리 시대처럼 그게 안에서 이루어지면 그냥 조용히 실종...최소 500만명 가버림.
    전세계 잘사는 나라들을 봐보자. 예외 없이 100년 통계 국민총생산 전부 늘었다. 200년 통계 인구도 전부 몇 갑절 늘었다. 300년 통계 수명 역시나 당연히 늘 수 밖에. 그런데 예외인 러시아? 1991년 소련연합이 해체되면서 유대계 러시아인 200만명인가 300만명 대거 이주. 또 러시아인들이 대거 남아메리카로 이주. 또 비유대계 러시아인들이 북미로 대거 이민. 그래서 러시아는 150년 통계 인구가 그냥 수평선. 그거면 끝? 수명까지 지평선. 심지어 알래스카도 돈 받고 팔아버렸음. 그런데 연금은 간당간당할 때 준대. 왜냐하면 세계적 추세가 그렇기 때문. 세계적 추세가 그렇다면 평균 연령도 세계와 발맞춰 나갈 때 얘긴데. 그러든가 말든가 평생 (저렴한 표현으로) 연금을 부었는데 하라는 대로 믿고 따르고 그랬는데, 간당간당 해도 안 줘? 이게 뭡니까? 그래서 러시아 마초들이 이따금 들고일어서든가, 아니면 들고 일어서봤자 바뀌는 건 없으니까 일상적으로 소극적으로(만) 으쌰으쌰하는 것임. 다혈질이 알고 보면 재밌음! 또 배경지식 알면 이해할 수 있다. 러시아 땅덩이로 세계 1등인데 그래 봐야 지형과 기후 감안하면 도시화 가능하고, 실제로 거주하는 지역은 국토 최좌측에 몰림. 또 러시아 부자들은 런던으로 파리로 다 빠져나감. 물론 러시아 정부를 못 믿으니까 어차피 연금 간당간당할 때 줄지 안줄지도 모르니까 막 빼돌림. 그런데 정치를 보면 또 세계언론지수 상위권으로 올라가기를 기대하기는 힘들고. 나발니는 밀리고 제2의 푸틴, 푸틴 주니어, 푸틴 뉴차르, 푸틴 7세...계속 기다림. 아예 KGB가 나중 상왕 노릇하는 걸 점치는 점쟁이도 있음. 좌우지간, 1900년에 못살던 나라들이 지금은 잘 살게 변했는데. 인구도 2배 3배 막 늘어나고 윤택한 삶이 평균이 되어 행복하게 오래도록 잘사는데. 그런데 러시아는 인구도, 수명도, 삶의 질도 수평선. 왜? 러시아 국사를 보면 답이 나옴. 그런데 아직도 레닌사상에 따라 사고체계가 움직이고, 스탈린 향수에 젖어서 사는 권위자와 전문가들이 많다, 적다? 독재자 무솔리니를 사랑하는 꽉 막힌 분들이 어디 한두 명이어야 말이지. (절레절레) 언제 어느 시절이 혁명의 시대라고 평하는 건 틀리지 않은데. 사실을 신화에다 연결하면서 창피함도 모름. 그럼 단지 어떤 데뷔와 중고신인 때문에 연예계가 단지 일시적으로 신화의 시대냐? 그걸 위해 각본과 모든 건 그냥, 미리 정해져 있는 대로! 어쨌든 러시아 사람들한테 다 물어보시라. 필자 말이 맞나 틀리나를! 어? 옆길로 잠시 샜는데 돌아와서. 
    물론 저 B도 이윤 추구, 사익 추종, 권력욕 만족을 누렸으나. 적어도 B는 A가 아니라는 점. 그 증거가 무엇이냐? 고대 일본 문화재는 전부 다 한국산이거나, 제작자가 한국인이라는 점. 그래서 더더욱 일본은 1900년쯤 일본 국보 1호를 원판 그대로면 짜증나니까 통째로 깎아서 성형조작해버렸음. 국보 1호만? 1000년 내내 그 이상 역사 왜곡은 물론 왕가를 신화화. 역사도 신화화. 그냥 문화 자체를 만화영화화. 원시부족의 끝판왕.
    받기만 원없이 받았는데 받을 만큼 충분히, 더 못 받을 정도로 죄다 받아버렸기 때문 변심한 사례. 요컨대 백강전투 때 OX로 완벽히 갈림. 즉 500년대만 해도, 500년대까지만 해도 조정요직과 사회지도층은 거의 100% 백제계 또는 한국계였는데 그 이후로 점차 비율이 낮아졌을 걸로 추정. 그 후 사이메이 천황은 당시 연로한 데도 불구하고 백제 지원군 전투단 위원회를 설치하고. 400척 배를 건조하는 3년 동안 중간에 사망. 그때 백강전투를 기점으로 장조는 단조로 완벽히 전환했다고 볼 수 있음. 백강전투가 역사적으로 그렇게 중요한 사건이라는 점. 단순히 내전이 아니라 근방 모든 나라, 강대국-중간국들 그 모든 나라들이 다 참전했던 역사적 전쟁. ~의 하나가 백강전투! 그런데 백강전투에 대한 배경지식을 민초들이 알면 알수록 구식탱탱묵은 기득권(기득권이란 말도 나쁜 게 아니라 그냥 만들어낸 것만 같음...아무튼 흑백TV). 그 흑백TV들한테 불리하니까 백강전투 같은 지식은 최소화. 더 불리한 배경지식은 싹 다 빼버림. 아예 거꾸로 왜곡. 
그런가, 안 그런가? 
    현재 뿐만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일관되게 왜 뭐든지 바꾸고, 왜곡하며, 날조하는가? 1900년 전후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 사관은 당시 뿐만 아니라 과거-현재-미래 모든 것에 공통되기 때문. 즉 약 1,400~1,500년 전에 한국과 일본은 통역사가 필요없을 정도로 대화를 나눌 정도였는데. 당시 백제어와 신라어가 건너간 후 그거에 더해 한자를 복합시켜 "일본어"가 창시된 다음. 드디여 1900년 전후 현일본의 사고체계는 완성됐다고 보면 된다. 그 1900년 전후 식민지 사관이란 무엇이냐? 
   "먼저 조선 사람들이 자신의 일, 역사, 전통을 전혀 알지 못하게 만들어서 조선의 민족혼과 민족문화를 상실시키도록 만들자.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의......"
    그때와 지금, 과연 바뀐 게 뭐가 있을까? 많다. 고대 문명사 전파는 없애고 깎아내리며 감추는 반면, 천황가 족보는 신화와 연결시켜버렸음. 그 때문에 전국에 쫙 깔린 신사들 태반은 기원전... 기원전... 죄다 뻥만 남음. 이 모든 게 에도시대(1603~1867년)부터 빚어진 일 때문. 기원전부터 700년 전후 1000년 전후까지는 천황가는 백제가였으며, 그렇게나 존중했는데. 에도시대에 왜 갑자기? 한국은 신화가 BC 2333년인데 일본은... 무려 차이가 1,673년 차이가 난다고? 실제 일본의 역사가 시작된 지점은 에도시대(1603~1867년), 또는 분서사건 즉 800년부터로 봐야하기 때문. 즉 에도시대(1603~1867년) 바로 이전에 도요토미 정권기인데. 일본 중세인 1185년~1568년. 그 일본 중세시대 이전을 일본인들이 독자적으로 이룩한 문명이냐? 거기에 답할 수도 없고, 대답하기는 더더욱 싫은 게 사실이기 때문. 바로, 그래서 역사를 왜곡하는 것임. 
    그러니까 1985년 7월 6세기에 지어진 후지노기 고분을, 현립 가시와라 고고학연구소가 발굴하다가. 그러다가.... 이런 젠장 막 그러면서 서둘러 발굴 중단이요 석관을 다시 흙으로 덮어버림. 당연히 아무런 언론 발표 없음. 그러다 왕실 주무 관청인 나라국립문화재연구소는 고분을 공개하라는 여론에 떠밀려 마침내 1988년 10월 8일 덮었던 흙을 걷어내고 크레인으로 2톤 무게의 돌관 뚜껑을 개관하기에 이름. 그러나 언론 발표문은 통상 "한반도와 중국에서 현재까지 출토된 예가 없다는 점에서......" 어쩌고저쩌고. 그 후 1988년 일반에 공개됐는데. 석관 외관만 보여주고 내부는 일절 비공개. 이런 예는 숱하디 숱하게 많음. 
    더더군다나 한자 뿐만 아니라 일본어에서 한자를 뺀 가나. 일본 고대어 역시나 백제어와 신라어에 기반하여 현대 일본어까지 이르렀는데. 그럼 일본 독자적으로 만든 게 뭐가 있지? 물론 옛날에는 '히라가나'도 여자 글씨라고 천시 당했음. 달력도 모르고 살았는데 600년대에 그마저 일본으로 전수됨. 즉 서기 1000년 이전은 순전히 한국문화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게 일본 역사인데. 그런 가운데 1000년을 넘어서면서부터 서서히 중국 문화를 수용하고. 그때부터 신라인들은 철저히 배척, 백제계도 서서히 배척. 그러다 사회지도층을 제외한 국민 대다수, 즉 19세기 말에 들어 처음으로 일본 국민 대다수는 자기 집안 성씨를 만든 평민들인데. 사회지도층이 아시아를 정벌하자 그러자 나머지도 죄다 좀비가 됐음. 1875년 2월 성씨를 지으라는 명자필칭의무령을 포고 하자마자 일본 국민 대다수는 마침내 성씨를 최초로 갖게 되는데. 그게 하와이 진주만 기습까지 이어지고, 경제가 세계 2위로 부흥하니 저런 미개한 것들...지금까지 속마음은 그렇게 됨. "조선과 중국은 악우......일본은 아시아를 떠나서 유럽에 들어가야 한다......나쁜 친구와 사이 좋게 지내는 자는 함께 악명을 받는 것을 면할 수가 없다...". 그처럼 여전히 천황폐하 만세요 사회지도층한테는 암말도 못하면서, 밖을 향해서는 거꾸로 쟤네들 또 우리 험담하는 거야...! 근데 임나일본부설, 신라정복설...죄다 거꾸로 날조. 현천황도 현인신, 초대 천황도 우주신. Ctrl+C, Ctrl+V! 
    (1875년 명자필칭의무령 발령으로 일본인 대부분이 성씨를 최초로 갖기 이전에는, 일본인 대부분은 성씨가 없었음. 고대 한국인 지배자들을 주축으로 사회지도층, 왕족, 귀족, 무사들만이 자기 가문의 성씨가 있었는데 천황가도 한국계이기 때문에 모두 성씨가 있었음. 다음 A-B-C를 연구해보면 또 신기한 논문 주제에 해당할 수도 있음. 물론 이미 연구 성과를 확인했으나, 사정 상 배포하지 못하거나. 즉, 
    (A) 815년 왕실 편찬 신찬성씨록
    (B) 1875년 2월 명자필칭의무령
    (C) "근친혼&4촌 이내 결혼"으로 일본은 세계에서 상중하의 상 또는 최상급
    다시 주제로 돌아가서)
    무엇보다 일본이 역사를 왜곡하는 이유는 700년대에 일본서기를 백제계가 썼기 때문. 물론 일본 신화 역시 고구려-백제-부여-신라 신화가 많이 내포해있는 것 또한 백제계 사학자들이 옆나라들 신화를 염두에 두고 작성. 천황가 기원도 옆나라. 모든 게 옆나라. 물론 한국 신화도 어원 분석해보면 몽고어 기반 등등이 추정되는데. 그걸 거짓으로 꾸미고, 반대하거 싫어하지 않는 반면. 태평양 원시부족은 광분한다는 점. 그게 가장 큰 차이점이다. (참고로 포르노 애니메이션으로 전세계에서 유일무이한 게 일본인데 그마저 일본 신화와 매우 흡사한 장면들이 등장한다는 점. 진짜로 일본 포르노 애니메이션은 일본 신화와 판박이! 더불어 천황가가 만세일계가 아니듯, 천황가 성씨도 백제인들과 부여인과 신라인들 성씨가 다 있었는데. 일본서기부터 ~ 메이지 유신 전까지, 그 중간에 다 없애버림. 하긴 중국의 정사를 기록한 수서 신라전에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오는데. "신라왕의 조상은 백제인이며 바다로 도망, 신라에 들어가 신라왕이 되었다". 그게 썩 유쾌하지 않다고 해서 그걸 부정도, 왜곡도 하지 않는다는 거)
    자, 질문 받겠습니다. (손차양) 왜 아무도 없지? 긍정도 부정도 하기 싫다는 말인가! 무조건 외면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얘긴데. 그처럼 반론받을 수 없는 주제를 건드렸다 그 말인가? 이건 뭐 거의 잠자는 사자의 꼬리를 밟은 게 아니라, 낮잠자는 고양이의 코털을 건드린 셈이네. (절레절레)





    9

   [임진왜란 정탐]
    임진왜란을 위한 사전 작업. 즉 100% 완승을 위해 면밀히 추진한 자료 조사, 그건 바로 탐정 타견이었는데. 그마저 탐정들은 책으로 그 기록을 남겼다. 거기에도 보면 300~700년 백제를 주축으로 他한국계 국가들의 영향을 최소화&역전화했던 일본서기에 대한 내용이 나오는데. 그렇게 약 700년 이후 全일본은 720년 편찬된 일본서기를 사이비 종교의 경전처럼 여기게 됨. 코란 경전 창시 년도 추정은 610년~632년. 일본서기는 최초 기획 단계는 682년 3월 시작하여 720년 완성. 단! 금속 또는 목판인쇄가 아니라 손글씨 작업. 그러므로 넣고 빼고, 유리하게 윤색 불리한 거 삭제 등등 숱하게 작업. 그래서 임진왜란을 위한 탐정도 이렇게 남김. 
   "가야라는 국호: ......바다를 낀 이 지역은 우리나라(일본)에서 가장 가까운 곳으로, 진구(神功)황후가 삼한을 정벌하기 위해 보낸 군대는 틀림없이 여기에 상륙했을 것이다....한국은 비록 쇠미해지기는 했지만, 4천 년이나 된 오랜 나라다(집필 시기가 1800년대 후반). 우리나라 상대의 개화를 이끈 나라라고 하면......(1800년대 후반에 4,000년으로 알고 있었다는 말은 곧, 200~600년대에 문명 전파해서 배경지식을 알게 된 걸 뜻함. 한국에서 일본으로 넘어간 삼국 세력들에 의해 단군이 BC 2333년 시작이라는 걸 알게 됐으니, 고로 15대 응신왕 재위 기록 위로 계산기 두드려 무려 약 1,000년을 끌어올려 일본의 기원을 허구로 창설) 한인은 정직하다기 보다는 오히려 단순하다고 할 수 있는 인종이다. 그들의 희로애락은 자못 현금적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눈앞에서는 은혜에도 감동하고 또 위엄에도 복종한다. 그렇지만 조금 있으면 모두 잊어버려 알지 못하는 것 같다...매우 제어하기 힘든 인종이라고 할 수 있다......국운이 망할 징조이다......"
    혼마 슈스케(1869~1919)가 쓴 조선잡기라는 보고서 양식의 책인데. 진짜 무엇으로 보든 엑셀파일 무색해지도록 1,500년 내내 역사왜곡 및 세뇌는 완벽! 가히 놀라울 정도. 그 외 신황정통기, 우관초, 독사여론 같은 3대 사론서를 보아도 역사 왜곡은 1,500년 일관됐다는 건 확실. 아니,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신기할 지경. 굳이 탐정 통계까지 엑셀 파일화하지는 않았음. 
    그런데 이와 같은 명탐정이 차마 얼굴을 들지 못하는 뼈아픈 실수 그건 무엇일까? 그렇지요 하와이 진주만 기습. 100% 대승이 전제되지 않으면 절대로 꿈쩍하지 않는 국민성인데. 민족 전통이 임진왜란처럼 완벽의 완벽이 보장되기 때문에 미리미리 (임진왜란) 기습 날짜를 1차례, 2차례, 우회적으로 3차례, 직접적으로 4차례, 외교관을 통해서 5차례, 무역상인을 통해서 6차례, 귀족을 통해 7차례, 대마도 사신을 통해 8차례... 수도 없이 귀뜸하고 알려줬음. 왜? 왜냐하면 쟤들이 원정경기 날짜를 통보해줘서 만반의 준비를 하더라도 무참히 대패할 게 뻔하기 때문. 압승이 전제되지 않는데 장난감 데리고 놀듯이 알려줄 수 없는 이치. 괜히 대마도 사회지도층이 중간에서 자신들이 왜 정부와 천황가인 것처럼 사기를 쳐 조선통신사를 이용해먹은 일. 나중 그걸 알고서도 일본 정부와 천황가는 손해본 게 없었기 때문에 관대. 다만 2등 국민 이하, 미만 취급받다가 급기야 자존심 훼손을 보다 보다 못해서 장기전 승산이 보장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진주만 기습. 왜냐하면 단기전으로 협상 걸어올 거라 분위기상 예단했기 때문. 판을 키워서 길게 가봐야 쌍방 손해는 당연하니까. 이처럼 무려 1,500년 동안 천황가를 위해 완벽히 신분세탁을 해주었는데. 그런데... 백제와 어쩌고저쩌고? 돌아버림. 속 뒤집어짐. 일본이 역사를 왜곡하는 이유? 사고체계를 한두 번 말하나. 사람이 될래야 될 수 없는 문화라는 걸 대체 몇 번을 말하게 만드냐고요. 
    끝으로 일본이 역사를 왜곡하는 이유 중에 극히 중요한 하나는? 천황의 혈통이 1번도 단절된 적 없이 2,000년~3,000년 이어져 왔다고 억지쓰기 위해서. 학계에서 기본적으로 9대까지 거짓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단 1명도 없다. 그 뿐만이 아니라, 천황가 계보는 거짓이 많이 섞여 날조된 연도가 들쑥날쑥한 반면. 주변국 계보는 최소한 그렇게 역사를 날조하지는 않는다는 것. 더더군다나 그 당시 천황가 계보만 계보일까? 
    고구려 왕조 계보: BC 37 ~ 668년 (시작을 BC 277로 보기도 함)
    백제 왕조 계보   : BC 18 ~ 663년 
    신라 왕조 계보   : 
    춘추전국시대     : BC 771년 ~ BC 221년
    진나라 황제 계보: BC 9세기 ~ BC 206년 (나라 연대/자세한 황제 계보는 따로)
    한나라 황제 계보: BC 202년 ~ AC 220년 (나라 연대/자세한 황제 계보는 따로)
    당나라 황제 계보:
    ......자료 모으면 천문학적임. 속일 걸 속여야지! 근방 다른 나라들도 왕조를 신화와 연결하나? 15대 응신 이전의 고분 가운데 인위적으로 조작한 빈 무덤이 과연 있을까, 없을까? 역사적으로 일본이 일본 바깥의 고분을 한국만 전국적으로 최소 2000여기, 대동강변에 1400여기, 중국에 1만여기? 기타 등등 1백만~1천만 보물을 수집해가서 분석을 해보니. 이거 이거 이거 우리 꺼(일본 거) 열어보면 절대로 안되겠나! ~라는 게 결론. 일본 내 왕족들 무덤만 3,400~ 몇 만기가 있을지 몰라도. 답은 뻔함. 

   [고사기와 일본서기의 가장 큰 차이]
    712년 고사기 작가는 태안만려다. 성씨는 태 이름은 안만려. 그리고 출신은 백제. 결국 고사기 작가는 어쩔 수 없이 백제계였기 때문에 그 암호문에 애증을 담지 않을 수 없었을까? 고사기는 정격한문으로 기술된 게 아니라, 정격한문과 이두문을 혼합한 형태인 것. 그건 뭘 뜻하냐? 중국어와는 전혀 다른 한국어를 기재했다는 말. 대표적으로 신라의 향가. 반면 일본서기는 전체가 정격한문! 또 초판 이후 변조의 흔적도 두 역사서는 상반된다. 즉 일본서기는 빼고 넣고 바꾸고...편집이 너무 많았을 테나. 고사기는 아니라는 점. 왜? 왜냐하면 고사기는 8세기 만엽가나로 된 부분이 많은데, 후세인은 만엽가나로 글을 짓는 게 힘들기 때문. 즉 편집을 하면 전체가 엉망이 될 소지가 다분했기 때문. 그처럼 변작이 불가능하니까 넣는 건 못해도 빼는 건 가능. 그래서 인현왕부터는 아무런 행적 없이 단순히 가계만을 기재. 그리고 일본서기 첫머리 = 회남왕 유안(기원전 179년 ~ 기원전 122년)이 쓴 회남자에 나오는 내용 그대로 베낀 건 물론 여기까지. 





     10

   [칠지도 하사 배경]
    결론부터 말하자면 백제왕&왜왕이 겸임이냐, 따로냐 차이! 

  • 겸임일 때       : 왜나라에서 총독과 왕의 구분 없음
  • 겸임이 아닌 때: 왜나라에서 총독과 왕의 구분 있음

    도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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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왕                             왜-총독                            왜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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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13대 근초고왕        → 왜 총독에 근구수태자 임명 / 왜왕은 14.5대 신공(神功) (천황계보 비공인)*
백제 13대 근초고왕        → 왜 총독은 근구수태자       / 왜왕은 15대 응신(應神), 이때 칠지도 하사**
                                                                       / 왜왕 15대 응신(應神)은 백제 13대 근초고왕 처남
                                    왜 총독-왜왕 구분에서 단일화로 바뀜. 고로 근구수태자 = 왜 15대 응신왕
                                 ↙
백제 14대 근구수왕(응신) → 왜왕에 침류태자 임명 (왜15대왕이 백제 14대로 갔으니 왜왕 자리 공석이니까)
                                ↙
백제 15대 침류왕          → 왜왕에 아신태자 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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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왜 총독과 왜왕이 구분이자 공존 상태. 그건 뭐냐? 백제왕&왜왕은 겸임이라는 뜻. 
    * 그 때문에 총독과 왜왕이 구분된 시기임. 따라서 백제 13대왕 = 일본 14.5대 신공(神功)
    ** 칠지도 하사일: 태화4년(429년) 5월 11일
    ** 아무리 양국을 운영하던 실정이더라도 격식과 예절을 벗어나 하사하는 문장이 새겨진 건 왜냐? 왜냐하면 친한 혈족이기 때문. 즉 기본적인 예의를 생략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을 정도로 친근한 관계라는 뜻. 다만 왜왕 15대 응신이 백제 13대 근초고왕의, 친동생인지 처남인지 조카인지...등등은 사료를 더 모아봐야 함. 이게 바로 일본동경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칠지도의 사연. 
    ** 칠지도 뿐만 아니라 백제 13대 근초고왕이 일본 15대 응신왕에게 삼종신기를 하사했을 가능성은 매우 높음. 신빙성 완전 듬직. 이 때문에 일본서기에서 그걸 거꾸로 바꾸어 암호문처럼 조작한 것임. 
    왜 15대 응신왕 이후에도 겸임 사례는 적거나 많거나. 일단 그 가운데 하나로, 백제 24대 동성왕이 백제왕과 왜왕을 겸임했음. 즉, (A) 또는 (B)
    (A) 백제 24대 동성왕 = 일본 25대 무열왕(489~507년).
    스다하치만[隅田八幡] 신사에 보관된 보물, 백제 무령왕이 왜왕에게 보낸 구리거울에 명시된 문장을 비롯해 근거는 많음. 이걸 일본 사학계에서 남제왕을 계체왕으로 잘못 인식. 허나 그건 근거가 없음. 왜 그렇게 잘못 인식하냐? 왜냐하면 계체의 왜풍시호가 남대적이기 때문. 한자로 적혀 있다고 해서 '남제왕'으로 읽으면 안 되고, 이두식으로 풀이를 해야 함. 일단 두 사람 성씨가 '남'으로 일치하고, 계체천황의 이름인 '대적大迹'과 남제왕男弟王의 이름인 '제弟'를 일본식으로 발음해 보면 발음이 똑같기 때문에 오해할 수 있는데. 하지만 대벅大迹'은 '오-도'로 발음되고, 제弟는 '오토-토'로 발음되어 발음이 같지 않음. 일단 왜 남자동생과 여자동생을 구분하여 쓸 필요도 없는 고대에 굳이 '사내男'를 더 붙여서 남제왕으로 해야 했을까? 여기서 직관력을 학자는 마다하면 안된다. 눈치 빠른 학자는 그걸 이렇게 판단한다. 바로 '男'이 부여의 왕 성씨라고 말이다! 백제의 왕성인 여餘는 '남을 여'이니까 男의 음독인 '남' 내지는 '나믈'에서 '여'를 챙김. 제弟를 지금 우리들은 '제'로 발음하지만 구개음화가 일어나기 전에는 '데' 내지는 '대'로 발음되었을 것으로 예상. 그러므로 男弟는 '남제'라고 읽으면 안 되고 '여대'로 읽어야 하는 것. 이렇게 되면 백제의 왕성인 '부여' 또는 '여'에 '대'라는 이름을 가진 인물만 찾아내면 되는데, 그럼 그게 많냐? 딱 1번 빼고 없음. (딱~) 그게 바로 동성왕! 
    (B)  백제 24대 동성왕 ≠ 일본 25대 무열왕(489~507년) 즉, 무열왕은 동성왕 친동생!
    아니다. (A)는 503년에 백제 25대 무령왕이 (백제 24대왕이었다가 일본 25대왕인) 무열왕에게 장수를 축원하면서 (현재 隅田八幡 신사에 보관중인) 인물화상경을 선사한 게 아니다? 왜냐하면 무령왕이 동생인 왜왕에게 하사한 것이기 때문. 요약하면 사마는 바로 무령왕의 휘 즉 이름임. 공주의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지석에 새겨진 왕의 휘와 그 표기가 완벽히~ 일치!  무령왕은 서기 523년에 서거하였으므로 계미년은 503년이 됨. 그런데 '일십대왕년'이라는 구절의 해석이 무척 난해함. 이 때문에 온갖 학설이 난무하게 됨. 고로 여태 정설이 없음. 후일 성과를 기대하게 만드는 게 이 부분인데. 물론 이와 같은 전후사정을 예리한 일본학계가 절대로 모를 리 없음. 다만 솔직하면 안되는 문화이기 때문에 단지 꿀 먹은 벙어리처럼 말 못할 사연만 애석할 따름. 한자 문화권에서 역사 전공인데 훈독과 음독을 모른다? 말이 안됨. 거울의 남제(男弟)와 일본서기의 '남대적(男大迹)'은 일견 비슷해 보이나 사실은 전혀 다름. 이건 고대어 분석, 언어학 연구가 개입하면 빼도 박도 못함. 그래서 일본서기에 남제왕이 등장하지 않는 것임. 이렇듯 (B)에서는 당시 왜왕을 무령왕의 동생으로서 백제의 담로였던 걸로 추정. 
    그 외에 백제왕 또는 백제왕족이 일본으로 건너가 왜왕이 된 사례는 굳이 거론할 필요 없을 정도. 일례로 곤지 역시나 백제에서 건너가 왜왕이 된 사례. 수많은 문화재로 판단컨대 어쩌든지 겸임, 친동생, 조카, 아들......그 중에 하나로 무조건 걸림. 고고학, 지리학, 역사학, 언어학...뭘로 봐도 죄다 백제로 낙찰. 





     11

   [일본 분국 Ⅰ]
    서기 0년 전후에 일본에 국가 체계가 없었다는 사실. 일본 고대사를 지칭하는 용어만 봐도 알 수 있는데. 그러면 기원전은 빼고나도 0년부터 ~ 700년까지. 全일본이 1개로 통일된 국가였는가? 아니다. 여러 여러 부족의 총합 형태라는 사실을 부인하며 왜곡할 정도로 일본 역사학계가 학자의 의무를 방기한 것은 아님. 그것은 일본에서 제사가 일본 천황가 만이 지낼 수 있는 제사와, 천황가 외에도 재낼 수 있는 제사로 구분된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음. 즉 천황가에서는 백제와 신라계의 신을 따로 모심. 
    후한서-동이전 AD 25년의 기록에 따르자면, 왜노국이 조공해 오기에 인수를 주었다." 일본 서쪽 일부 바다신을 모시는 아쓰미족과 무나카타족이 연합한 세력이었을 것. 또 0년~300년 내내 전란은 틈틈히 있었고. 문명을 감안하자면 당시 비교적 넓은 땅이었기에, 인디언들처럼 개별 종족들이 듬성듬성 포진하여 생활. 중국왕이 왜왕에게 사대한 나라 임을 인증한 인장, '한위노국왕'이라고 새겨진 인수 등 증거는 엑셀파일임. 또 송나라 때 범엽(398년 ~ 445년)이 정리한 후한서에도 나와 있음. 2세기 중엽 왜에 전란이 발생하고 남자 왕으로는 도저히 수습되지 않아 여왕 히미코가 등장함으로써 평화를 되찾았다고. 그게 히미코를 여왕으로 삼은 가야계의 연합국가가 성립됨. 물론 지역적으로 일부분에만 해당. 다른 지역으로 시선을 돌려보면 당연히 신라계 세력인 나가쓰내족도 위세가 무시할 수 없는 실정. 특히 이들 지역에는 초기 남방계 농민 특유의 지석묘 유적이 없는 것으로 보아 북규슈지역보다 시간차를 두고 뒤늦게 정착한 것으로 추정. 이들 신라계 무리는 농산물로 식량이 풍부한 반면, 가야계는 다른 사정 때문에 나중 천황가 족보에 오를 수 없었을 것임. 
    당시 야마토국이 규슈에 있었냐, 기내에 있었냐 라는 논쟁은 일본에서 이따금 논란이 되는데. 전체적으로 보면 규슈설이 설득력 큼. 이동거리, 이동경로, 발견된 유적, 역사적 사료만 봐도 확실. 바이킹족처럼 규슈 해변 위주로 해적이 활동했던 때가 BC 1세기경이면. AC 3세기 초 부족연합체인 야마토국와 구노국이 각각 형성되고 이들은 가야와 백제의 분국 성격을 지니기 시작. 물론 야마토국의 히미코와 그의 양녀 토요가 중국 북조의 위에 3번이나 조공사를 왜 보냈냐? 왜냐하면 이미 중국 남조와 맥을 같이하는 백제, 구노국을 견제하기 위해서. 중국 사서에 기록이 남지는 않지만 결국 야마토국은 구노국에 패망한 것으로 판단됨. 그래서 AD 270년 경 그 패전세력 일부가 일본 1대 진무 천황을 앞세워 중원에 진출하여 선착했던 신라세력을 타도하고 또 다른, 또 하나의 야마토국을 수립한 것으로 보여짐. 여기서 일본 1대 진무 천황이 BC660년이라는 것은 뻥연비처럼 거짓이고. 일본 10대 천황을 뜻함. 일반 신(神)자 돌림은 단 4번 등장하는데 이름만 분석해봐도 훤함. 즉 270년부터 약 100년간 부여계가 족장에 해당했고, 300~400년부터~ 서기 1000년까지 백제계가 천황가와 사회지도층을 지배. 이래서 일본 고대사 명칭이... 애매한 것임. 인정-불인정의 문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국가 체계와 권력이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 
    여기서 백강전투처럼 중대한 사건이 뭐냐? 바로 <한왜 동종 서적 분서사건>. 이건 머머설이 아니라 명백한 사실. 역사. 간무왕(50대 간무 천황)이 주도한 <한왜 동종 서적 분서사건>을 기점으로 독립적인 일본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됨. 그게 서기 800년 전후! 그 후 무사집권 즉 무사가 전면에 나섰다가, 나중 천황을 전면에 내세우게 되고, 그 후 지금까지 사회지도층이 상왕노릇을 하게 된 흐름. 보아하니 일본중심주의 노선 서서히 시작된 거 다시 말해 800년 한왜 동종 서적 분서사건. 그리고 270년경 원시부족 형태로 듬성듬성 사는 일본에 부여계/백제계가 진출한 것은 세계사에서 찾을 수 있음. 
    가령, 1066년 프랑스 노르만족에 의한 영국 정복! 제2차 세계대전 때야 아이젠하워 총사령관을 필두로 연합군이 프랑스 노르망디에 상륙했으나. 그보다 약 천 년을 거슬러올라가면 사정이 다름. 1066년에는 노르망디에 있던 기마민족 출신 프랑스 귀족 노르망디공이, 노르망디에서 영국 섬에 침입해서 모두 점령. 싹 다 정복. 그렇게 영국 왕으로 군림. 서양사상 가장 큰 사건 가운데 하나로써 앵글로색슨의 나라에서 프랑스 노르만이 지배하는 나라로 변한 계기. 지금 영국 왕가도 그래서 족보를 따지면... 영 뭐하다는 거. 1066년 이후 영국왕들이 죄다 프랑스어만 사용했던 것처럼 300,400,500년 당시 백제왕자들이 왜나라에 거주했던 건 극히 자연스러운 이치. 또 영국군과 유럽 열강들이 미국에 진출했기 때문에. 그래서 미국 지명들에 뉴잉글랜드, 뉴욕...다 그래서임. 그런데 노르망디가 영국을 지배한 게 단순히 이벤트였느냐? 1066년부터 시작해서 14세기가 되어도 요지부동. 프랑스계 영국왕들(백제계 일본왕)은 프랑스에 지분 소유. 그러다 프랑스 여왕이 후사 없이 죽자 영국왕 에드워드 3세는 죽은 여왕과 인척관계라는 명분으로 로마교황에게 프랑스 왕위를 인정해주라며 요구-요청. 그렇게 시작된 게 백년전쟁! 일본 일본 26대 계체왕에서 대가 끊겼으나 평화적으로 여전히 백제계가 대를 이어간 것과 약간 다름. 물론 이탈리아 교황청을 당시 중국 황제로 비유해볼 수도 있음. 그게 영국과 프랑스에 명확한 국경 개념이 생긴 건 백년전쟁 이후의 일인데. 한반도와 일본열도 사이에 이와 비슷한 일이 무엇이냐. 수차례 말하지만 백강전투, 또 한일동종 서적 분서사건. 그럼 프랑스가 정말로 영국을 500년 지배했다고? 모른 사람들 태반. 대충 알긴 알아도 무관심. 오히려 일본 천황가 계보가 증명하듯이 고대 일본을 대충 500년 장악했던 게 사실인데, 역으로 임나일본부설을 만드는 게 바로 원시부족 습성임. 물론 500년 지배는 세계사를 따져보면 결코 드물지 않다. 스웨덴이 노르웨이를 400년 놔주지 않았던가? 터키는 그리스를 700년 부려먹었음. 그 외 예시는 엄청나게 많음. 
    역사학자 아놀드 조셉 토인비가 뭐랬나. "외국과의 관계를 제외한 영국사는 의미가 없다"라고 기록했다. 영국이 왜 全세계에 식민지를 만드는데 앞장섰을까? 왜냐하면 다른 이유들도 많겠으나 그에 앞서 영국부터 선험적으로 식민지배를 수도 없이 받았기 때문. 로마제국이 영국을 전성기 감안하면 200년, 기타 사항을 고려하면 그 이상 식민지배. 그럼 바이킹족이라고 빠질 수 있나. 바이킹족이 런던과 웨일스를 비롯해 심심하면 쑥대밭을 만들고, 강간하며, 죽이고, 고문에, 전리품들 수거해 감. 물론 돌아가지 않고 남아서 지배. 그럼 프랑스 노르망디 왕조가 영국을 겨우 500년 지배? 정말로 중요한 점은 그렇게 지배당할 당시 전후로 영국왕들은 영어 쓰기를 극혐했다는 점. 왜? 자기들은 낭만적인 프랑스어만 써야 하거든. 나폴레옹이 다녀가든 말든 전유럽이 역사적으로 프랑스병을 앓았다는 사실. 현재 세계 관광객 1등이 프랑스인 이유. 인구야 중국이 1등이지만 스페인어만 알아도 유럽과 아메리카에서 전혀 불편할 일 없다는 점. 어족 연관되니까 당연히 스페인어 알면 공부 전혀 안해도 일단 50% 먹고 들어감. 손만 까딱 조금만 학습해도 금새 통역까지 가능. 그게 바로 언어학! 어원 분석하면 빼도 박도 못함. 그런데 어떻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지? 누군가 필자한테 일 많이 하라고 다 그림을 그려놓은 것만 같음. 도대체 사후세계에서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길래... 도무지 모르겠음. 





    12

   [일본 분국 Ⅱ]
    어쨌든 일본 1대 천황부터 ~ 50대 천황까지 연속 백제계 지배이기 때문에. (정확히는 1~9는 날조, 10~50은 사실) 그래서 125대 천황이 인터뷰에서 실수하면 全일본이 격분하는 것임. 뿐만 아니라 50대 천황에서 깔끔하게 끝나냐? 그러니까 미시마 유키오가 천황이여 왜 인간임을 선언하셨습니까 ~라면서 할복했던 것임. 짙냐 옅냐, 겉으로 드러나냐 아니냐 차이만 있다 뿐이지. 사회지도층은 몽땅 미시마 유키오와 판박이. 단, 할복은 하지 않음! 사회지도층만? 사고체계와 주입된 상식과 세뇌시키는 방식으로 봤을 때. (일본식 이름으로 바꾸지 않고 한국 이름을 고집스럽게 유지하는 한국계랄지 일부 양심적인 역사학자등을 제외하고) 全일본인은 미시마 유키오와 사고체계가 별 차이가 없다고 보면 된다. 다음으로 일본사 요약! 

    고대: 쉽게 말해 10~100개 부족 형태에서 분국으로 형식을 갖춰나감
    270년 제1대 천황(실제로는 10대 천황) 집권기 ← 이게 일본 시초!
    369년 백제 왕세자가 왜왕에게 칠지도 하사
    400년 백제 왕자들이 왜에서 기거. 백제 양국이자 분국이기 때문
    663년 백강전투: 백제계...
    710년 수도 이전: 후지와라쿄(藤原京) → 헤이조쿄(平城京) (710년~784년 수도)
    710년 이후부터 일본 종교건축은 백제식에서 → 중국식으로 180도 전환 (무조건 중국식으로 바뀜)
    752년 세계최대 금동불 완성 (물론 백제계 주도에 의해/일본 독립 의미)
    784년 수도 이전: 헤이조쿄(平城京) → 나가오카(長岡市)   (784년~792년 수도) 
    792년 수도 천도 / 나라 → 교토 / 1,200백년 교토 시대 시작됨 *
    800년 간무왕, 한왜 동종 서적 분서사건 **
    1000년 천황가 족보는 여전히 백제계
    1200년 무사집권 시작

    (다르게 정리하면)
    366~391년 약 26년간 백제 영토 (전국통일이 아니라 가야계가 동쪽으로 밀려남)#
    392~478년 약 87년간 가야 영토 ("찬왕/진왕/제왕/세자 흐/무왕"라는 왜5왕이 중국기록)#
    479~660년 약 182년간 백제 영토#

    # 진안제의 재위기간은 AD 396~418년이니까 왜왕 찬은 응신왕이요, 무왕은 무령왕을 뜻함.
    # BC 300~ AD300은 수많은 세력들 분파로 나뉜다 치고. 대략 366~660년을 백제가 양국을 운영한 셈인데. 백제가 그처럼 양국 운영이자 예술 부흥정책 탓에 군사력에 소홀한 탓으로 멸망. 근데 366~660년 백제&가야 제국 치하 기간을 거꾸로 천황가 1대를 BC 660년으로 날조. 물론 AD 660년에서 깔끔하게 끝날 수 없다는 점. 그 때문에 일본학자에 따라 천무 천황을 668년 멸망한 고구려의 장군인 연개소문으로 보는 학설도 많음. 664년에 연개소문이 일본으로 망명했고, 672년에 쿠데타로 정권을 잡아 문무천황이 되었다는 학설. 근거는 다카마쓰 고분벽화와 고구려-백제의 고분벽화에서와 같은 사신도가 발견되는 점을 들어 다카마쓰 총은 고구려 고분의 양식이고, 이 무덤 피장자는 고대 일본의 왕족일 개연성이 크다는 뜻. 곧 뭘로 보든 어떻게 따지든, 고구려-백제-신라-부여. 궁내청이 무조건 발굴 불허하고 어떻게든 숨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이치. 

    * 천도 이유는? 나라 지역은 죄다 백제인-백제계였기 때문. 이전은 서쪽 중심이었다면 이때부터 동쪽 개척 시작됨(아이누족 정벌). 즉 일본 독립이자 통일이며 중국 황제와 동등한 중국언어 '황'자 돌림 전통 확립.
    ** 간무왕이 대의를 위해 자신의 혈통 부정. 모국 관련 서적을 모두 불태운 건, 영국왕이 1900년쯤에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성씨를 단박에 바꾼 사건과 흡사. 그땐 러시아왕이 옆나라 왕한테 도와주라...꺼져 그랬던 시기임. 서기 800년 이전에 이미 천황이 출신과 혈통을 부정하니, 당연히 따라서 귀족들도 똑같이 성씨를 바꾸는 계기. 그런데 나중 보니 완전히 독립에서 멈추지 못하고, 세계정복까지 꿈꾸게 되어버림. 그래서 "천황=백제계"에서 천황은 현인신으로 바뀌게 된 것임. 이게 바로 사극의 최고봉. 그래서 일본에서는 지금도 전 천황이 죽으면 죽은 천황의 시신 옆에서 후계 천황은 목욕제계를 마친 후 신의(神衣)를 입고 누워 그 영을 인계받음. 12...몇 대던가. 장례 관련 행사에서 옆에서 무엇을 하니까, 또 뒤와 옆에서 도와주고, 돼지머리처럼 그걸 떼어서 어떻게 한 후...레고가 그냥 보통임. 묘지를 봐도 제사 음식을 평등하게 놓는 게 아니라. 고구려 장군총의 상부에서 거행한 의식을 일본에서는 고분 전방부에 옮겨놓는 식. 전방후원의 전방부는 한국묘의 상석에 해당되는데, 전방부에서 신인동식(神人同食) 의식을 일본에서는 집행 전통. 그 때문에 전방부 규모가 점점 커질 수 밖에 없었고, 세계 최대 무덤에 포함되며, 결국 전방후원형으로 굳어짐. 멕시코에 피라미드가 많은 것처럼 일본에 대형 무덤이 많은 건 그 만큼 원시부족 문화가 그대로 현재까지 이어져온다는 걸 증명함. 즉 같은 세계인과 똑같은 시간과 공간에서 살지만 사고체계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점. 현재도 오직 천황가 만이 독점적으로 지낼 수 있는 제사가 많은 것처럼. 궁내청이 절대로 공개하지 않는 제사. 그건 곧 특정 제사에 대한 독점권, 대형무덤 주변으로 물이 흐르는 걸 봐도 물에 대한 왕권의 독점. 이집트 피라미드 시대와 하나도 다를 것 없는 이치. 
    다시 말해 752년 세계최대 금동불 완성 (물론 백제계 주도에 의해/일본 독립 의미), 800년 간무왕, 한왜 동종 서적 분서사건. 그 즈음에 일본 최초 금광이 발견되면서 그래프는 달라졌으므로, 1900년대 초반 소나무 송진까지 강제노동 시켜서 전쟁물자를 빼내간 것임. (자원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배경지식 때문) 역사적으로 고대 한국&일본 출토품의 가장 큰 차이 가운데 하나는 바로 금! 한국 출토품은 금이 풍부하게 쓰인 반면 일본 출토품에는 금이 드물다는 것. 이 때문에라도 궁내청은 점잖은 척하는 것임. 본 문단의 연도표가 왜 중요하냐? 단언컨대 몇 백년 동안 피라미드 정점을 장악하던 한국계가, 800년 이후 서서히...서서히...그렇게 피라미드가 뒤집어졌다는 점. 800년 이전에는 일본 전국민은 성씨 자체가 없었고, 귀족층만 성씨가 있었는데. 그 피라미드를 뒤집기 위해서 815년에 성씨편찬록도 편찬한 것인데. 그렇다고 한국계가 지금만 고집스럽게 일본식 성씨로 바꾸는 걸 거부하느냐? 당시에도 그랬다. 800년 이후 1900년대 초반까지도 무려 1,200~1,300년 내내 그랬단 말이다. 물론 다는 아니겠지만 예를 들면, 
    668년 고구려 패망 후, 일본 나라 시대에 사이타마로 정착한 고구려 왕족 고약광. 그의 후손인 일본 고려신사의 당주 코마 스시오씨가 1970년쯤인가에 한국을 방문했는데 이렇게 인터뷰함. "우리는 같은 한국인끼리만 결혼함으로써 혈통을 지켜왔다." 다름 아니라 이런 게 관습. 태평양 원시부족 야만적 문화 속에서 그게 어디 쉬운 일이었을까? 당연히 모두 그럴 수는 없으니 마치 유대인처럼 유대인끼리만 결혼파, 그냥 포기파, ½, ⅓, ⅔, ¼......로 나뉘게 됨. (물론 ½, ⅓, ⅔, ¼...걸 따져 독일 나치가 유대인 학살도 실행시켰던 것임) 당연히 일본 밖에서만 박해와 강압과 망동의 역사를 만든 게 아니라. 일본 내에서도 그랬다. 가령, 1800년대와 그 이전 1,000년 동안은 물론이요 1900년대 내내 그랬다. 일본 정부는 한국과 관련된 지명을 없애버리기로 하고 고마군을 이루마군(入間郡)에 편입시켜 히타카마치로 부르게 했고, 약광에 대한 제사도 금지시켜 '천황신'에게 제사지내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마 신사는 일본 각계의 거물들이 이 신사를 참배를 하고 난 다음에 출세했다는 소문이 퍼져, 출세 신사(出世神社)로 더 알려져 역효과를 나중 일으킴. 일본 내 고구려 후손들은 역시나 실향민임에도 자부심이 강하고 지금도 고향을 위해 제사를 꼬박꼬박지내며 행사도 규칙적임. (행정구역상 도시 이름을 기업명과 사이비 종교명으로 바꿔주기까지 하는데, 외부 혈통에게 유독 냉대하는 게 원시부족 인습). 손바닥으로 태양을 가릴래야 가릴 수 없는 이치. 물론 탄압과 박해와 차별은 지금도 마찬가지. 싫어? 싫으면 떠나라 주의. 겉으로는 예스럽게 수줍수줍 부끌부끌 적극적 검토 어쩌고저쩌고, 속으로는 꺼져!





    13

   [백제왕 (일부) 계보]
    백제 13대 근초고왕 → 파견 보낸 총독 근구수태자 VS 일본 14.5대 신공(神功)왕 (공존)
    백제 14대 근구수왕 → 왜왕 또는 왜 총독에 침류태자 임명
    백제 13대 근초고왕/14대 근구수왕이 왜의 응신(응神)과 결전하다 현지에서 붕어? 둘 다 백제인 고로 와전된 지식
    백제 15대 침류왕    → 왜왕 또는 왜 총독에 아신태자 임명
    백제 15대 침류왕이 붕어하자, 백제에서는 아신태자가 아직 어리기 때문에 숙부가 왕위에 오름
    참고로 아신태자는 백제15대 침류왕 아들, 왜의 응신(응神)은 백제 13대 근초고왕의 처남
    왜 현지에서: 이에 격분한 아신태자는 응신(응神)과 결탁 = 왜의 군대를 이끌고 백제(모국) 침략 (침략? 지원)
    만약 성공하면 아신은 백제의 왕에, 응신은 왜의 왕에 오른다는 밀약 공고
    결국 아신왕은 숙부인 진사왕을 죽이고 17대 왕위에 오름
    그 후 백제 17대 아신왕은 고구려를 공략하다가 광개토태왕에게 연패당함
    당시 백제군에 남아있던 응신은 전세가 자기한테 불리하게 돌아가자, 변복하여 가야로, 다시 왜로 돌아감. 
    일본서기에서는 이걸 16년 왕인이 왔다. 태자의 스승으로 하였다. 여러 전적을 왕인에게서 배웠다. 통달하지 못한 것이 없었다. 왕인은 서수(書首) 등의 시조다.”라고 남기는데. 여기서, 응신(應神)과 왕인(王仁)을 동일 인물로 추정하는 학자도 있음. 곧, 응신(應神) = 왕인(王仁) ( ? ). 응신은 백제로 돌아갈 꿈을 접고(광개토대왕 때문), 아신왕이 붕어하는 해 인 405년 왜 땅에서 독자적으로 야마토국 건립. 각종 머머설과 사실로 밝혀진 배경지식들이 산만한데, 전문가들이 정리하기 바람.

   [천황가 계보]
    도표 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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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신     재위 기간        출생~사망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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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1대~9대:              허구
일본 10대 숭신(崇神)왕   가야(또는 신라)
일본 11대 수인(垂仁)왕   가야(또는 신라)
일본 12대 경인(景行)왕   가야(또는 신라)
일본 13대 성무(成務)왕   가야(또는 신라)                      천황가 계보에서 非백제계는 10~13대까지 총 4명뿐
* 백제와 가야의 지배계급은 같은 진왕계 출신/뭐든지 기원이 중요/이때부터 백제&가야는 일본의 모국
일본 14대 중애(仲哀)왕   백제인
일본 15대 응신(응神)왕   백제인 390~402년?  ? ~ 410년?  일본 14.5대 (비공식왕인) 신공과 친족관계
일본 15대                   백제인                                    백제13대 근초고왕의 처남 (조사 필요/한국계는 분명)
일본 15대                   백제인                                    진(眞)씨의 시조 (단, 일본 내에서만)
일본 16대 인덕(인덕)왕  백제인                                    응신왕의 아들 
↑ 인덕왕은 지금 닌토쿠천황이라고 호칭하는데. 이 왕릉이 바로 진시황릉과 피라미드와 함께 세계 3대 무덤. 그 가운데 최고로 면적이 넓음. 전세계에 현존하는 세계 최대 면적 무덤. 백제계인 16대 인덕왕을 위해 뭐 하러 그렇게 크도록 지었을까? 당시 추정 연 140만 인구가 동원될 정도로 대공사였는데, 당시 인구를 300~400만명으로 잡아도, 총인구 가운데 대충 1/2~1/3 가 매달려야 할 정도의 대공사. 바로 이 인덕(닌토쿠)왕이 백제인이기 때문에 왕릉 소유자인 궁내청은 발굴과 조사를 일절 금하는 것. 더더군다나 닌토쿠왕릉에서 과거 일부 발굴된 유품들은, 1971년 한국 공주에서 발굴된 무녕왕릉에서 출토된 물품들과 거의 복사판. 이건 뭘 뜻하느냐? 백제 무령왕이 6세기 후반(523년) 사망이니까 닌토쿠천황릉 축조는 600년일 수도 있고, 닌토쿠 왕릉에 잠자는 그분은 결국 닌토쿠가 아닐 가능성도 매우 크다는 것. 물론 전문가들은 전부 아는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철저히 함구. 그냥 쉬쉬하는 배경지식일 뿐. 그래서 문화시설 안내문에서 흔히 보이는 설명도 "...신사는 숭신천황 7년(기원전 90년)에 창건된 것으로...". 그리스와 이탈리아 등등에 가면 그런 설명이 사실인데. 지구 반대편에서는 이게 뻥. 1700~1800년대에 이미 전국 신사 10만개? 지금 전국에 100만개 되나 모르겠는데 그 전국 방방곡곡에 쫙 깔린 신사가 100% 저처럼 기원전 건립, 기원전 어쩌고저쩌고 다 유리하도록 거짓. 반면 문화유적지에서 불리한 건 모조리 빈칸. 역사 교육도 똑같음. 결국 지어낸 게 진지하게 사실이 된 예. 뭐가 사실이고 아닌지 구분이 안됨. 전국 모든 문화재, 역사서, 전국민 사고방식에 입력된 지식...그 모든 걸 바꾸는 게 쉽겠나, 아니면 그대로 사극을 유지하는 게 기쁘겠나. 전자가 쉽다면 애초에 그렇게 하지도 않았을 것이라는 점. 
일본 18대 반정(反正)왕  고구려계
일본 19대 윤공(允恭)왕  백제계                                       신라계라는 학설 있음
일본 20대
일본 21대 웅략(雄略)     백제계                                       백제를 건국한 온조왕(BC 18 ~ AD 27) 제사를 지냄
일본 22대
일본 23대
일본 24대
일본 25대
일본 26대 계체(繼체 백제인. 백제24대 동성왕 아들/백제25대 무령왕 친동생/곧 26대 계체=곤지! (쿠데타 왕조)
일본 27대
일본 28대
일본 29대 흠명(欽明)    백제인                             백제 무령왕 친조카? 친왕자/왕궁 명칭을 백제궁으로 명명
일본 30대 민달(敏達)    백제인                                         백제 무령왕 외손/백제 대정 땅에다 새 왕궁 건립
일본 31대 용명(用明)    백제계                                         백제 무령왕 외손
일본 32대 숭준(崇峻)    백제계                                         백제 무령왕 외손
일본 33대 추고여왕      부여계                                         백제계? 부여계?
일본 34대 서명(舒明)    백제인                                         30대 민달왕 친손자
일본 38대 덴지 (天智)   백제인
37~40대 국력을 총동원해서 백제 지원군단을 추진...백강전투까지 참전. 나중 쿠데타 발생*

* 40대 진무 천황이 조카였던 39대 고분 천황을 죽이고 왕위에 올랐는데. 이게 또 의미 깊음. 일본서기에 나오는 40명 왜왕 중 중국풍 시호에 하늘을 뜻하는 '천(天)' 이라는 한자가 사용된 것은 38대 천지와 39대 천주, 딱 2명 밖에 없음. (중국풍 시호가 아니라 일본풍 시호로 따져도 저 둘 외에 29대 흠명왕 밖에 없음) 그런데 백제 구원군 파견 반대파였던 40대 진무 천황이...(상징적 의미로) 하늘을 죽였다? 주다스 프리스트네. 일본서기의 마지막 왜왕인 40대 진무 천황의 중국풍 시호는 지통(持統), 왜풍시호는 고천원광야희. 고천원광야희는 무얼 뜻하냐? 고천원은 높은 하늘 벌판이니까 백제를 뜻함. 일본서기 저작자들이 아무리 반대로 바꾸고, 거꾸로 꾸몄어도 비밀 들을 후세에 캐내라고 다 암호문에 암암리에 힌트를 내포시켰음. 이와 같은 기록의 총체인 일본서기. 그런데 일본서기를 쓴 목적은? 바로, 백제에서 건너간 백제왕들이 왜국을 통치하였던 사실을 철저히 은폐하기 위해서!
.................모두 기록하기 귀찮을 정도...........................50대 간무천황은 물론이요............
    * 제21대 유랴쿠 천황이 죽은 후 혈통이 끊기는데. 기록에 보면 전 왕조 주아이 천황의 5대손 야마토히코를 왕으로 모시려 했지만, 야마토히코는 자기를 잡으러 온 줄 알고 도망가버렸다는 기록. 물론 이 또한 만세일계를 주장하기 위해 만들어낸 거짓. 주아이 왕조는 이미 오진 천황에 의해 무력으로 타도되었기 때문에 혈통을 생각한다면 오진 천황계를 선택하지 굳이 멸망시킨 전 왕조의 주아이 천황 혈통을 찾을 일은 없음. 상식적으로 말이 안됨. 그 후 후보에 오른 게 오진 천황의 5대손 게이타이 천황이라는데 직계의 5대손이 아니라 한성 백제계. 게이타이 천황은 이름 뜻이 '체제를 계승한다'. 곧 뜻을 보니 오진 천황의 5대 손이라는 것도 허구. 왜냐? 왜냐면 만약 혈연으로 이어진 것이라면 '게(繼)'가 아니라 '사(嗣)'자를 적용했을 것이기 때문. 
    즉 게이타이 천황이 왕에 추대되기 전가지 근 10년 동안 왕통이 끊겼다는 건데. 천황의 존재가 후세처럼 절실하지 않았고, 한편으로 호족들 사이의 이해가 엇갈려 천황 선출이 쉽지 않았음을 시사. 또 백제와 왜나라는 당시 본국와 분국 형태였으므로 국경 개념조차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따라서 혈통이 분명치 않은 인물보다 가까운 문명국의 혈통인 백제왕자를 천황으로 추대하는 데 큰 거부감이 없었을 것임. 그게 정통성. 게이타이 천황 이후 5백년 이상이 지난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온 건 진왕계의 핏줄이라는 가치 때문. 당연히 중간에 열도 내에 적당한 인물이 없으면 백제왕계 인물을 택하는 건 지극히 합당. 또 당시 왜왕들은 10명 정도의 왕비와 후궁을 거느렸기 때문에 많은 후손들이 기내에 살아 있었을 텐데. 왜 굳이 백제왕자를 추대했느냐? 그 특별한 이유는 재차 반복하지만 모국 백제와 분국 왜의 관계 때문. 미국 독립전 뉴잉글랜드 지역 명망 높은 가문이 영국 귀족출신을 선호했던 것과 같은 이치. 더더군다나 인근 지방조차 제대로 다스리냐 못 다스리냐 그보다, 중국 북조 남조와의 관계까지 부드럽게 조율하고 주변국 정세에 밝은 인물을 추대하는 건 지극히 합당. 
    그로 말미암아 옛날에 소가 가문에서는 배우자를 한국 땅에서 직접 데려오거나 왜국 내의 다른 한국인 가문에서 선택했다. 이 역시 고대사 문명은 수입이 아니라 이입이란 뜻. 더불어 일본역사를 통틀어 손꼽는 쇼토쿠 태자, 길이길이 숭상받는 스이코 여왕 역시나 순수 한국인 혈통. 근데 쇼토쿠 태자의 얼굴이 1만엔 권 지폐에? (지금은 어떤가 잘 모르겠는데 과거) 1백엔, 1천엔, 5천엔, 1만엔 등 일본에서 지폐 도안에 들어간 횟수가 가장 많은 사례로 기록됨. 결국 모순으로 대체 어떻게 꼬인지 모를 지경. 
    참고로 쇼토쿠 태자에 대해서! 그리고 일본서기에 나오는 쇼토쿠 태자는 백제 14대 근구수왕을 그대로 베껴 이름만 바꾼 것이 분명. 또 일본 학자들도 수도 없이 그렇게 검증. 1939년 쓰다 소키치/1992년 이시와타 신이치로/2001년 오야마 세이치/2004년 다니자와 에이이치...... 모두 쇼토쿠 태자는 허구의 인물이라고 판단하는 학파가 제일 많지만... 더 자세히 말할 수 없는 문화이기 때문에 차마 자기들 입으로 백제 14대 근구수왕을 입에 담지는 못함. 거의...거의...목구멍까지 넘어왔던 쇼토쿠 태자의 정체는, 거기까지만 밝힘. 다음으로 드물게 쇼토쿠 태자를 소가노 우마코로 추정하는 학설도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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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1158년 대초자, 1648년 원본 '대초자'를 필사했다는 히라노어가의 해설문에 따르자면,
    일본 29대 흠명(欽明) = 백제 성왕. 즉 백제 성왕이 왜29대 흠명왕을 겸임했다는 걸 지적. 당연히 나중 일본서기는 백제 성왕의 왜왕 겸임을 은폐하기 위해서, 흠명이 즉위 연도를 8년 윗대로 끌어올림(조작). 이로써 백제 불교의 왜 전파와 포교도 장장 14년이나 나중으로 끌어내려짐. 일본 고대사학자의 연구에 따르자면, 성왕 18년(540년)에 고구려의 우산성을 공격하다 패한 백제 성왕은 곧장 왜국으로 망명하였다고 주장. 물론 당시가 숭불파와 배불파, 작은 종교 전쟁의 참상이 발생했고 왕위 계승이 치열했던 점, 또 다른 역사서를 참고해보면 충분히 설득력 있는 주장. 더더군다나 당시 권력자였던 소가노 이나메가 숭불파였다는 점. 이어서 그의 아들 소가노 우마코도 숭불파, 그때 마침 천연두 창궐에다 배불파가 상소문 올린 다음 왕 허락도 없이 절을 불태우는 사건 발생. 그런 배경을 바탕으로, 그렇게 백제 성왕은 야마토 왜 29대 흠명왕이 됨. 단, 백제 성왕은 백제왕을 포기한 게 아니라 겸임. 또 일본 15대 응신(응神)왕 아들이 바로 동성왕자(5째 아들). 동성왕자는 일본 21대 웅략(雄略) 치하 왕실에서 백제 22대 문주왕의 친동생. 일본 15대 응신(응神)왕이 죽자, 동성왕자는 21대 웅략왕 시대에 5백명 왜병의 호위를 받으며 귀국하여, 그렇게 백제 동성왕이 됨. (혜왕자가 백제로 귀국시는 1천명 호위). 참고로 백제 동성왕 다음이 무령왕인데, 무령왕의 아버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음. 즉 1145년 삼국사기에는 무령왕이 동성왕의 아들, 720년 일본서기에는 무령왕이 백제 개로왕의 동생 곤지의 아들이라고 나오는대. 자, 그럼 무엇이 옳냐? 여러 가지 정황상 아마 <일본서기>쪽이 사실에 가까울 걸로 보여진다는데, 단순히 OX 문제가 아닌 건 분명. 그리고 드디어 감격의 증거들은 무더기로 쏟아져나오게 된다. 즉 1971년 7월 8일 무령왕릉 발굴. 그날은 1448년간의 오랜 침묵이 깨진날. 발굴 결과 무령왕의 휘가 '사마'라는 사실을 고고학적으로 확인하는 쾌거, 빛나는 성과를 얻음. 발굴 결과 무령왕이 동성왕보다 나이가 많았으므로, 또 무령왕의 휘호가 사마라고 증명됐으므로 곤지의 아들이 아닌 것은 확실. 따라서 일본서기는 무령왕의 아버지가 동성왕(모대왕)이 아니고, 한 대(代) 올려서 무령왕의 할아버지를 아버지로 바꿔놓았음이 증명됨. 
    (여기서 역대 천황 가운데 독살로 죽은 배경지식 잠깐 언급. 일본사에서 천황 암살 사건은 크게 3가지.
    32대 숭준(崇峻) (소가노 우마코 대신이 지시)
    110대 고코우묘우 천황
    121대 고메이 덴노 천황)
    이것만 봐도 한일 고대사는 지금까지 코끼리 뒷마리를 만지고서 추측만 했던 셈. 저속한 표현으로 들어엎어야 할 정도. 관련하여 488년 편찬된 송서(宋書)에도 곤지는 등장. 일단 곤지 즉 부여곤지(扶餘昆支, ? ~ 477년 7월)는 백제의 왕자이자 왕족, 정치인인데 백제&왜 모두에서 비중있는 인물인 건 분명. 예를 들면 곤지는 백제나 일본 어디에서도 왕으로 즉위한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서기에서는 곤지를 일관되게 곤지왕으로 언급. 결국 학계에서는 곤지를 수수께끼 
같은 존재로 변신시킴.
    모 일본 역사학자는 곤지 = 일본 15대 응신(응神)왕이다...
    모 한국 역사학자는 곤지 = 일본 21대 웅략(雄略)왕이다...
    뭐지? 아니 대체 왜 곤지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야! 곤지는, 어? 곤지 즉 부여곤지(扶餘昆支, ? ~ 477년 7월)는 백제의 왕자이자 왕족, 정치인인데 백제&왜에서 또 옛날에나 지금이나 왜들 그러냔 말이다. 일단 알면 알수록 일본 역사학계는... 全일본은 1,500년 내내 그랬듯 감추는 거 말고는 답이 없다는 것만 알면 됨. 그런 의미에서 천문학적 슈퍼 컴퓨터를 돌려보면... 정답이 나올까, 안 나올까? 그 말은즉슨 전문가들은 알면서 모른 척한다 그 말 밖에 안됨. 
    참고로 <응신왕 = 백제인>라는 사실을 철저히 숨기기 위해 일본은 한국 드라마 "태왕사신기"에 엄청난 투자! 그런 이유로 드라마 "태왕사신기"에서 응신왕 부분은 완전히 누락됨. 백제의 전성기를 이끈 대왕을 꼽으라면 단연 13대 근초고대왕(초고대왕)과 24대 동성대왕인데. 4세기 중반에 신라, 가야, 고구려를 정벌한 유일한 사람은 바로 근초고왕. 그런 사실을 일본서기는 왜곡하여 응신왕이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를를 정벌한 것으로 씀. 허나 알고보면 응신왕의 정체는 백제 13대 근초고왕임. 그처럼 근초고왕의 업적에는 당연히 왜(倭)를 식민지화에 성공. 끝으로 전체적으로 봤을 때 필자는 일본 천황가의 윗대 즉 15대 전후를 백제계라고 통칭했는데. 무수한 문화재를 바탕으로 연구한 고고학 고증에 따르자면, 일본 천황가의 윗대 즉 15대 전후를 부여족으로 추정. 
    또 참고로 <게이타이 = 곤지>라는 사실을 철저히 숨기기 위해 일본은 일본서기에 연도를 조작. 결국 곤지가 백제에서 건너왔다는 시실 만큼은 어떻게든 숨기고 싶었다는 뜻. 당시에도 그랬는데..... 지금은? 통과. (반면 신라 입장에서 기술한 역사서에도 곤지는 나오지만. 신라 입자에서 곤지는 존재감이 미미할 뿐. 고로 신라 위주로 과장해서 기술하는 게 중요하지, 타국을 위해서 자국 역사서를 당시 기술하지 않았다는 점. 그건 지금도 열도 역사 교육을 보면 일맥상통)

   [천황가 계보 요약]
    도표 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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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조         계통      영토            중심지                시조                 왕조 성격         무력 기반   기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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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착세력   신라계   나라            야마토                나카스네히코       무당적/주술왕   청동기
2   스진        가야      기내(나라)     야마토(이하레)      스진=진무           정복왕조         철기
3   오진        백제      기내 일대      기내(가와치/나라)  오진                  정복왕조         철기/기마
4   게이타이   백제     기내/서일본    아스카               곤지=게이타이      쿠데타
* 게이타이는 한성 백제계인데 웅진 천도후 일본으로 건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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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일본 역사계/고고학계/사회지도층의 방기(외면)]
    이유는 논외로 치고 마치 완벽하도록 짠 것처럼 전체가 외면하는 사항들 일부만 추리자면 다음과 같다. 

  • 일본서기─신찬성씨록─충구발(1700년대 고증학자의 저서)에 따르자면 왜왕과 사회지도층은 모두 백제인 의복을 입음 
  • 일본의 불교 도입 이전 무속적 통치자들의 백마 숭배 사상과 관련하여 연구 논문은 0 (뭐가 두려워서?)
  • 천황가 족보 연구 엄금 / 왕릉 귀족릉 발굴 금지 엄금 / 국보 성형 조작 및 그런 사실들 은폐
  • 국사와 자국사 관련 세계사를 도대체 얼마만큼 왜곡하여 교육하는지...포기함
  • 일본 최고(最古) 신사인 이즈모 신사에서 한국 관련 배경지식은 절대 언급 금지
  • 일본 신사 서열 no.1인 이세 신사. 한국의 무속신앙 복사판이냐... 함구도 불분율
  • 영국영어가 미국영어로 분화된 특징으로 스타카토 발음이 유연함으로 바뀐 걸 들 수 있는데. 약 1,500년 전후 백제말/고구려말/신라말/부여말 등이 일본에 전해졌을 텐데. 그래서 통역자 없이도 의사소통이 원활했을 테고. 그렇게 현재 일본어에서 한국말의 원형을 무수히 찾을 수 있는데. 영국영어 → 미국영어 변천 특징처럼. (고대)한국어 → (현대)일본어 특징도 뚜렷. 즉 대표적으로 '게으른 현' 현상! 북미 영어가 발음을 영국영어처럼 똑똑 끊지 않고, 술술 부드럽게~! 그처럼 고대 한국말이 일본어에 녹아들면서 발음 없어지는 특색이 발생. 또 "영국영어/미국영어"는 교류가 많고 영국과 유럽은 가까웠던 반면, 교류 적고 쇄국도 많았고 기술 감안 훨씬 멀었기 때문. 일본서기에도 통역이 있었다는 언급은 없음. 이런 배경지식은 절대 배포 금지
  • 약 170만년 전부터~1만년 전까지. 즉 기원전 1만년 전후하여 빙하기와 간빙기. 그 즈음에 아시아 대륙과 일본은 육로로 연결되어 있었음. 해수면이 지금보다 약 100미터 낮았으므로 지금 더 깊은 바다는 곧 육지 내 호수였음. 즉 그때 육로로 대륙 문명이 전파된 것만 인정. 그 뒤 기원전후로 넘어온 건 불인정. 그래서~ 천황가 계보를 신화로 억지로 끌어올려 연결시킴. 단, 전국민이 알면 안됨. 일절 발설 금지. 말 했다간 뺨 맞음. 침 뱉음. 왕따돌림시킴. 줬던 지위와 재산도 박탈
  • 일본인 스스로 만든 고대 유작이나 유물이 거의 없다는 점. 교육 절대 금지. (해적/전쟁/구입/식민 수탈 등 입수 경로도 빈칸)
  • 7세기 이전 백제 및 한국계 문명 전파에 대한 사실 누락. 일절 없음
  • 본 칼럼에서는 백제를 유독 가장 비중 높게 언급하는데. 실상을 따지고 보면 왜나라, 즉 고대 일본에서는 크게 여러 세력권으로 나눠진 분국 형태임이 분명하다. 즉 고대 일본 내 원시부족 족장계, 이누이족처럼 더 원시부족 족장, 각각 부락 단위 족장을 신으로 모시는 촌락들. 그 외 신라계, 백제계, 고구려계, 부여계가 가장 큰 세력권을 형성. 거기서 결국 백제계가 가장 큰 영역과 영향력을 거머쥐었기 때문에 본 칼럼에서 백제를 비중있게 다루는 것임. 즉 나머지 신라계, 고구려계, 부여계도 고대 일본 내에서 막강한 실세를 누렸음
  • 일본 최대 자료집인 〈군서유종〉,〈속군서류종〉에 기록된 자료를 전국민이 알면 안됨. 참고로 〈군서유종〉,〈속군서류종〉는 1700년대 후반 완성. 왜냐? 일본서기와 달린 신뢰도가 훨씬 순수한 〈군서유종〉,〈속군서류종〉에 따르자면. 당시의 신라왕이 훗날 세습지방관이 되고 지방행정관이 되었다고 나와 있음. 그 말은 곧 신라계 도래인 집단거주지도 많았고 당시에 이미 신라인들이 (지금 용어로) 시장, 주지사, 군단장, 추기경, 대주교, 지방법원장을 숱하게 연임했다는 증거. 가령, 1970년대 말 발굴허가가 떨어져 시작한 다카마쓰 고분. 그곳 양식은 거의 100퍼센트 고구려 양식에 따른 무덤. 이 고분은 재위 697~707년의 일본 42대 몬무 왕릉과 인접. 그걸로 보아 왕의 비빈이나 후궁들 중 막강 실세로 추정. 8세기 정도면 일본은 당나라 영향권에 들어간 상태인데 일본 고고학계는 8세기에도 무덤조차 한국식이란...짜증은 극에 달함. 뭐든지 조작하고 거짓으로 곡해할지언정 이미 발굴된 외국 양식 무덤을 어떻게 할 수도 없고 왕짜증..속 뒤집어짐
  • 일본서기에서 명시한 사료를 바탕으로 검토하면 서기 500년경 26대 계체왕은 5만 병력으로 신라에게 빼앗긴 가야의 땅을 되찾으려했다는 점. 그 말은 곧 현일본이 당시에 신라 영토, 백제 관할, 가야계...등으로 분할되어 있었다는 걸 증명. 쓰쿠시(규수 북부 후쿠오카 근처)의 호족 이와이가 신라의 분국 형태였는데, 그걸 진압했다고 일본서기는 '이와이의 반란'으로 과장해서 표현
  • 자국과 인접국들의 굴욕감, 자존심 훼손, 사실 무근, 인본주의와 다른 야만성을 통합하여. 근거 없는 원한(さかうろうみ)...도덕적 우위...같은 말 만들어내기 바쁘니까. 상대하지 않겠다(相手にせす) 라고 선언하고 싶은데. 실상 상대하지 않을 수 없거든. 인정하기도 싫어. 늬 꺼는 내 꺼 내 꺼는 원래 내 꺼니까. 물론 이걸 자국민들이 모르냐? 절대로 모르지 않음. 단, 솔직하면 죽음 뿐이라는 인습이 1만년 동안 DNA에 각인됐을 뿐. 고로 이대로 지구 멸망 때까지 그대로 가는 방법 말고는 없음. 빙하기, 간빙기는 가버렸을지언정 그분들께서 아시아 싫어하니까, 자기들 만큼은 유럽인이니까 진짜로 땅덩이도 아시아로부터 점점 밀려나는 중. 뭐든지 조작하는 거 싫어? 너 일본에서 나가. 이와 같은 원리를 인정한다고? 너 여기서 빠져. 그래도 착한 척 어떻게 안되겠냐? 꺼져!
  • 장장 1200년 이상 이어온 유서 깊은 명소, 쿄우토시에 있는 히라노 신사. 그곳에 모셔진 신사의 제신들이 백제신이라는 건 절대 발언 금지. 매해 4월 2일이면 역대 천황가의 황태자며, 공주, 조정 대신 이하 고관들이 총집합. 물론 그게 1900년 후반 때까지 1200년 이어졌는데. 지금은 어떤가 모름. 









    16

   [태왕사신기]
    태왕사신기는 판타지 역사 드라마다. 방영기간은 2007년 9월 11일부터 ~ 2007년 12월 5일까지. 그런데 무엇 때문에 태왕사신기가 본 칼럼에 끼어드는가?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중차대하기 때문. 태왕사신기는 광개토태왕의 일대기를 중심으로 멜로드라마 요소를 극적으로 사극 반영하여 흥미진진하게 그렸을 텐데. 하필 그게 일본 천황가/일본 역사와 연관되었으므로, 어딘가에 아주 민감한 사안이 아닐 수 없었는데. 따라서 한국 드라마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이례적으로 일본 자본력이 대거 투입되었음. 물론 각종 산업계를 보면 세계 자동차업종 주식 보유가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게 실정이나. 말 그대로 매우 이례적으로 발빠른 움직임이 두드러졌다는 건 뭘 뜻하냐. 숨길 게 많다는 얘기. 그건 곧 무려 150년 전으로 거슬러올라 중국 농부에 의해 발견된 광개토대왕비부터 일본에 불리한 사실이 많았다는 걸 뜻하는데. 즉 광개토왕릉비 비문 훼손, 곡해, 역사왜곡... 본 칼럼을 비롯해 배경지식이 무더기로 연결됨. 참고로 광개토왕릉비는 1880년 중국 농부가 발견/1881년 일본군이 비공개 1차 탁본 뜸/참모본부 해독...시찰...재검토...대책 강구/1895년 일본군이 공개적으로 최초 탁본 떴다면서 언론 공개(언론 공개전 이미 조작할 가능성 농후/나중 일본역사계에서도 1900년 전후에 이미 조작했을 걸로 인정)/1907년 프랑스 학자 샤방느가 현지에서 입수해 사진 찍음/1913년 일본 학자가 조사했을 때 이미 비문 조작. 즉 광개토왕릉비에서 불리한 건 석회로 바르고, 그 위에 유리한 한문 새김. 물론 증거는 겁나게 많음. 그래서 광개토왕릉비가 왕의 업적 요약이 아니라 먼 섬나라 역사왜곡을 변호하는 내용으로 일부 변조됨. 그렇다면 단순히 광개토왕르비만 조작했느냐, 하면 아님. 예를 들어 한국사 최고(最古) 역사서 2권 중 하나인 삼국유사. 현존하는 삼국유사의 원본은 2가지로 나뉨. 
    (1) 고려시대 정덕본(正德本): 고려 충렬왕 1년(1275년)에 일연이 쓴 고려시대 원본
    (2) 조선시대 정덕본(正德本): 조선 중종 7년(1512년) 경주부윤 이계복이 중간행
    여기서 (2)는 동경대학교 사료편찬소에 있는데 그걸 열람 및 검토해보면 원본과 일부가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음. 당연히 불리한 거 빼고 유리한 내용으로 조작했음. 그리고 일단 드라마 제작 당시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해 언급하자면 다음과 같다. 
    고구려의 광개토 대왕, 야마토 왜국의 응신왕. 전자와 후자가 밀접한 관계이므로, 일본에 금기시된 천황가 족보 즉 응신왕에 대한 부분을 드라마에서 쏙 빼버리게 압력을 가함 → 그래서 최초 백제 아신왕 역으로 캐스팅되었던 송일국씨가 도중하차됨 → 18회에서 직접적으로 임나일본부설과 관련된 대사가 방영됨 → 그런데도 언론계든 오락산업계든 길들여진 좀비들은 뭘 모름 → 그래서 드라마에서 광개토왕은 역사와 사실에서 멀어지고, 신의 힘과 연결됨 → 그건 곧 천황가 족보처럼 신화와 연결되는 이치(주인공도 그래서 배용준이 맡게 됨) → 한중일 삼국에서 고대사는 일본이 제일 후달리니까 먼 역사는 무조건 신화로 연결시켜야 됨 → 당연히 역사가 가깝든 멀든 죄다 왜곡. 날조. 뻥 → 태왕사신기 드라마에서 백제 아신왕과 왜왕 응신 내용을 전부 빼버림 → 근초고왕에 의해 전성기를 이룬 해양제국 백제를 깎아내림 → 끝이 없음.
    역사 배경: 고구려는 427년 평양으로 수도를 옮겼음. 한때 강국이었던 것 옳지만. 실제 고구려가 중국 북남조를 넘볼 정도 국력은 전혀 아니었음. 당시 중국 북남조도 북조 남조 통일이 본 목적이니까, 고구려를 굳이 적으로 몰아붙일 이유가 없었음. 실제 고구려가 때로는 조공을 바치고, 때로는 우월한 입장에 있는 등 들쑥날쑥. 중국사를 보면 왜 긴 왕조가 1번도 없고, 어째서 당시에도 5호16국등으로 분열되어 있었을까? 왜냐하면 크니까. 고구려도 마찬가지. 더불어 내부 분열. 부패. 국경도 길고 넓으면 그 반대보다 절대적으로 불리. 인접국도 적은 게 절대 유리. 그래서 고구려는 수나라를 대적해 승리하는 전투에서는, 정면 대결이 거의 없었음. 식민지배 당한 역사와 (통일)신라 업적을 부풀리기 위해 드라마 뿐만 아니라 과장된 게 너무 많음. 석굴암의 수학적 비례미 역시나, 무슨 버뮤다 삼각지대처럼 날조. 그 정도 황금비? 유럽만 봐 봐. 응? 천황가 족보에서 BC 660년과 억지로 연결됐다고 우기는데, 이집트에서는 맘모스가 걸어다니던 시절보다 무려 1000년 일찍 피라미드를 지었음. 그냥 공룡과 사람이 공존했다고 봐도 될 지경. 유럽사만 봐도 성당들 벽화, 천장, 조각상... 비교가 되나? 물론 원시부족 문화도 좋긴 좋다만... 해도 해도 너무하지 않냔 말이다. 해도 해도 너무한 증거, 자료, 방만한 게 아니라 천문학적? 그분들은 좋겠다. 별명만 계속 늘어나니까. 하여 이번에는 뭐다? 조작대국!
    역사 왜곡: (한국사 왜곡) "고구려-신라-백제"라는 삼국이 통일된 후, (통일)신라는 주변국에 비해 약소국으로 살아남았는데. 그게 역사 기록에 수도 없이 기록되어있는데도 불구하고 흑백TV 세력에 의해 (통일전)신라&통일신라를 띄우기 위해 무려 100년 동안 역사학계마저 괴상하게 발전이 없었음. 또 당시 역사에 따른 열등감과 여러 이유 때문에 <삼국사기>같은 역사서 역시 일본서기처럼 많은 부분이 들쑥날쑥. 일본에서 인디애나 존스 사건이 발생했던 것처럼, 한국에서도 1992년 거북선에 장착했던 총포라며 언론을 들었다 놨던 총통사건. 결국 최근에 만든 가짜였던 것으로 순천지검이 밝혀냄. 그리고 <삼국사기>에서 김부식은 고구려, 백제, 신라를 유난히 '우리'라고 끊임없이 표현했는데. 과연 왜 그랬을까? 그건 흡사 오늘 날 한국역사학계에서 100년 발전 및 개선을 더디게 만드는 구식탱탱묵은 흑백TV와 판박이처럼 똑같은 현상이다. 그분들은 엑셀파일 목록들을 바탕으로 철저한 고증, 치밀한 분석, 신들린 연구를 거치지 않고. 자기 입맛에 유리한 대로 역사를 해석했으니 필자만 더럽게 일복이 넘칠 수 밖에. 더불어 한국 고대사 역시나 대폭 수정이 필요. 국가 체계가 한반도에서 기원 0년에 약했을 테고, 그 말은 중국쪽에서 삼국(백제-신라-고구려)일 밀려서 내려왔다는 해석도 가능함. 일본사를 캐면 캘수록 한국이듯, 한국사 역시나 캐면 캘수록 중국과 통하는데. 이 말은 곧 삼국 고대사를 통채로 
들었다 놨다 들어엎어야 한다는 얘기. 
    역사 왜곡 정말 심각하다. (일본사 왜곡) 일본은 350~400년 쯤에 역사가 시작된 게 사실. 그 이전은 국가 체계가 없었다는 뜻. 그런데 한중일에서 역사 주제로 일본이 꼴등이다? 꿇린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음. 따라서 첫째 천황가 족보를 BC 660년으로 끌어올리고, 둘째 천황가 족보를 신화와 연결시킴. 그 때문에 전국민도 잘못된 지식이 진짜인 줄 알게 됨. 가령, 태왕사신기 드라마의 역사 배경을 이렇게 인식했을 것이다. 광개토태왕 당시 중국은 5호16국으로 잘게 쪼개져 있어 고구려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고. 태왕사신기 드라마에 일본이 맹수처럼 조심스럽고, 먹잇감에 달려드는 식으로 최선을 다한 것 왜일까? 왜냐하면 25명의 왜왕의 혈통 문제이기 때문. 2001년 당시 125대 천황의 백제 관련 발언 때문에 全일본 매스컴은 물론 열도의 모든 사회지도층이 들썩거린 일. 그와 판박이처럼 닮은 게 바로 태왕사신기 제작 개입 사건. 일본서기에 따르자면 1대부터 14대까지 나오고 다음에, 15대 응신왕 집권으로 고대국가 야마토왜를 세우는 것으로 되어있는데. 이와 같은 천황가 족보가 알려지면 날조된 그림은 모두 드러나고. 그러면 임나일본부설도 탄로나고. 1500년 역사왜곡도 들통날 뿐만 아니라. 백제의 분국이었던 왜가, 혹시, 당시 일본이 아니라 지금 중국 내 어딘가는 아닐까? ~라는 연구 분야까지 만들기 때문에 골치아파짐. 자, 딱 1개 질문을 생각해보자. 과학적인 가설을 단 1문장으로 간결히 정리해보잔 말이다. 일본은 지진으로 그 어디서도 둘째가라면 서러운 나라다. 그래서 일본 역사서, 문화재, 유적지 비문들에 지진 관련 내용들도 많다. 그런데, 
   「도대체 왜 일본서기에는 지진에 관련된 내용이 단 1번도 등장하지 않는 것일까?」 
    왜냐, 왜냐하면 혹시 일본서기에서 말하는 일본(왜)은 현재의 일본 땅이 아니라, 다른 곳을 가르키기 때문에? 의혹은 깊어질 수 밖에. 즉 당시 백제는 본국이자 모국 개념이었고, 일본(왜)는 백제의 분국 형태였는데. 일본서기에 지진 내용이 일언반구도 없단 말은... 백제가 오른쪽 분국(일본=왜) 외에도 왼쪽 분국도 운영했다는 뜻? 정답은 <삼국지 동이전>과 <진서> <남제서> 등등 역사서 엑셀파일을 분석해보면 아마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건 곧 이미 다 알면서 모른 척하거나, 왜곡한다는 말 밖에 안됨. 앞서 말했듯 왜 일본서기에는 지진에 관련된 내용이 단 1번도 등장하지 않는 것일까? 그런 반면, 일본서기에 일식 기록 분석은 수도 없이 등장한다. 가령, 
    ㄱ) 709년 이전의 야마토시대의 일식 10개
    ㄴ) 710 ~ 792년의 나라시대의 일식 36개
    ㄷ) 794 ~ 1,183년의 헤이안(平安)/후지하라(藤原)시대의 일식 132개
    ㄹ) 1,189 ~ 1,326년의 카마쿠라(鎌倉)시대의 일식 38개
    ㅁ) 1,343 ~ 1,599년의 일식 80개
    ㅂ) 1,600 ~ 1,899년의 일식 119개
    이 6개의 시대구분 중 ㄱ)의 결집 위치는 남지나해상인가? 일단 결집도가 매우 높아 실제로 관측된 자료로 보임. ㄴ) 일본의 전 역사기간 중 가장 결집도도 낮고, 결집 위치도 일본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실제 관측에 의한 자료로 보기 어려움. ㄷ) 만주 지역에 약간의 집중이 되고 있으나 결집도가 아주 낮음. ㄹ) + ㅁ) + ㅂ) 시대는 결집도도 높고, 정확히 일본 열도나 가까운 곳으로 결집위치가 나타남. 
    지진과 일식 얘기는 집중력 떨어질까 봐 꼭 꺼낸 얘기는 아니다만 그냥 그런 게 있다 정도로 넘어가고. 어쨌든 응신왕이 광개토대왕한테 패배한 다음, 일본으로 도망 및 망명가는 게 역사요 사실인데. 그걸 만인이 알게 되면 일본한테 뭐가 좋겠나. 그래서 태왕사신기 드라마에 일본이 적극 개입하게 된 것임. 가까운 역사만 봐도 전쟁성노예와 전쟁남자노예들이 1천만 명 끌려갔는데, 그런 일 없었다 외면 일색. 가끔 유감스럽다 등등. 그런데 옛날 옛날...역사를 신화로 연결시킴. 
    자,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보자. 중국 국적인이 현재 독일, 프랑스, 영국, 벨기에, 스페인, 포르투갈에 가서 국왕과 총리와 대통령 직무를 수행할 수 있는가? 없다. 절대 불가능. 그런데 옛날에 일본은 백제인이 무려 몇 백년 동안 그랬다. 그 뿐만이 아니라 쿠바계가 현 미국 대통령은 물론 주요 정부 요직과 사회지도층 태반을 장악하는 일. 지금 상식으로는 말도 안되지만, 옛날에 일본에서는 한두 번도 아니고 몇 백년 내내 그랬다는 것. 그게 바로 본 칼럼의 주제다. 국가 체계가 없던 시절 정치, 사회, 경제, 문화, 예술, 교양, 토속신앙 등 모든 것을 전파는 물론 바이킹족이 영국 고대사를 몇 백년 내내 장악. 그러니 500년 내내 스칸디나비아 왕족들 무덤을 영국 내에 100기, 200기 등을 전국민 총동원해서 건립. 뿐만 아니라 스칸디나비아의 모국이 위기에 처했다 해서 국력을 총동원해서 3년 내내 군수품 생산해서 화살 10만정, 배 400척 만들어 거기에 전국의 군인을 총동원해서 출동. 그렇지만 아아 옛날이여, 그걸 거꾸로 해석하고 전국민을 좀비처럼 속이기만. 세뇌의 끝판왕도 이걸 보면 항복하고 기권할 게 뻔한 일. 얘기가 곁가지로 흐를 수 있으니 돌아와서. 결국 앞서 언급한 내용들을 살펴보니 일본서기가 만들어질 당시 왜는 현재의 일본 지역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인데. 또는 일본열도에 살지 않았던 사람들이 만들어낸 허구일 여지도 있다는 얘기고. 그처럼 일본은 기원후 350~400년 이전의 역사가 없는 게 사실이고(물론 역사는 있는데 국가 체계 없음), 대만도 1,600년 이전 국가 체계가 원시부족 형태에 지나지 않았다는 뜻. 허나 일본은 아시아 정벌과 세계대전을 일으켰는데 그걸 어떻게 인정해? 자존심 팍 상함. 그러므로 역사를 왜곡할 수 밖에. 이와 같은 사정 때문에 태왕사신기는 한국드라마임에도 불구하고 실속은 일본드라마가 되어버린 결과라는 것. 이래서 일본이 일개 드라마에 사력을 다해서 달려들었던 것임. 마치 파리가 송장에 달려들듯이! 그런다고 똥파리가 산짐승에는 달려들지 않느냐? 아님. 절대로 아님. 닥치는 대로!





    17

   [일본 국보에서 非일본 제작]
    도표 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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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칭                                                        공개/비공개         제작자/제작지               모셔진 신 또는 보관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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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기                                                     나고야/보생원      백제 왕족 안만려 (판본: 1644년판)
일본서기                                                                          백제/신라계 (안만려 포함)/향후 몇 백년 동안 편집
국보 1호 보관미륵보살 반가사유상                공개(제작..비공개)  신라인/신라
칠지도                                                     비공개                백제13대 근초고이 왜15대 응신천황(근구수태자)에게 하사/백제
인물화상경                                               비공개                백제인/백제 
와카야마현/하시모토시/스다하치만 신사
호우류우지/백제관음상**                              공개                  백제인/백제
호우류우지/구세관음상***                                 1년중 1달       백제인/백제
성덕태자의 초상화                                      비공개                백제의 아좌태자
토우다이지의 대불전/비로자나대불 금동 불상                            백제인 국마려
호우류우지 금당 벽화 12면 글미                                             (왜나라로 건너온) 고구려 학승 담징
호우류우지 오중탑                                                             
호류지 한국 미륵불상                                                         
호류지 사천왕                                                                   
호류지 옥중추자 
호류지 금당벽화
호류지 금동석가삼존불
호류지 금동약사여래불
호류지 소형 미륵반가상
호류지 소형 금동보살입상
호류지 소형 미륵삼존불
코류지 목조미륵반가사유상
사이호지(西芳寺) 선(禪)정원                                                  설계:백제인
호코지 대불                                                                      
신라선신당                                                                                                       신라명신
나라/아스카/아스카베 신사                                                                     백제 개로왕의 동생 곤지왕
사이타마현/이나리야마 고분/쇠칼                           칼 주인을 비롯 7대 조상이 백제를 섬긴 명문새겨짐
(수많은) 불화들                                                                  백제/고려
코마견(고구려개) 조각상*          

*코마이누(고구려개)는 시베리아 늑대와 개의 혼혈/이걸 고대에 한국을 지배한 증거라고 세뇌
** 백제관음상의 조성 연대를 상당기간 뒤늦춰 공개함으로써 일본인이 제작한 것처럼 보이게 함. 사실은 백제인 제작! 곧 완곡히 왜곡, 아니면 통채로 빼버리거나, 거꾸로 등등. 물론 유물 이름이 백제인 건...그거까진 못 바꿔서 아쉬움. 극히 유감! 이걸 뻔뻔히 일본 제작이라고 우겼던 기록이 얼마나 많았을까? 허나 이름부터 백제관음상이기 때문에 말 못할 사연만 많을 뿐. 
*** 호우류우지/구세관음상은 제작자 뿐만 아니라 모델도 백제인. 모델은 쇼토쿠 태자인데, 쇼토쿠 태자=백제 성왕=순수 백제인. 불상 외양만 봐도 북방계 특징이 뚜렷, 전형적인 일본 (평균) 남방계와 뚜렷히 대비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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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신화                                                                         단군 신화 + 삼국 신화 베껴씀
그 외 A~Z까지
* 코우류우지(廣隆寺)를 세운 신라의 진하승을 일부 일본 학자들은 그가 한국 살마이 아니라 중국인으로 날조.
* 토우다이지의 대불전 건립 당시 일본 전체 인구는 약 500만명. 그 가운데 절반이 투입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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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교과서, 안내문, 유적지에서 이걸 명시하냐? 한번 생각을 해보십시요. 만약 그렇다면 이런 칼럼을 왜 쓰겠는지를. 

   [지명(地名)]
    도표 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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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 명칭들(일본어)                            어원 분석                 기원(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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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상 낱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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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일본어)                                    어원 분석                 기원(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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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미(神)                                          곰=고미                  곰
오오기니(감사하다는 교토 방언)                                         오지다(크다는 전라도 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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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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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                                              어원 분석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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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사 모시는 신/신사 내 모셔진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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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계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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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마견(고구려개) 2마리                             일본의 모든 신사 (희박한 예외만 빼고)
* 모든 신사를 지키는 개가 고구려개라는 사실을 대부분 일본인은 모름. 극히 일부 아는 사람들도 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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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보의 시대와 전화가 일상화된 시대. 적잖은 차이처럼 TV 탄생 전후 차이가 보통 일인가. 말탄 부족이 전세계를 휩쓸 때 몽고족이 세계 최고였으나. 무기의 발달로 말미암아 판도는 전혀 딴판이 되었듯이. 대략 2000년 기점으로 인터넷이 점점 발달해가는 세상에 살고 있다면 그 장점을 최대한 살려야 하지 않을까? 집권당이 바뀌면서 무슨 행정 파일 양식을 모두 지워버리고 가면, 새로 오는 사람들은 그 양식 만드느라 일도 제대로 못 할 거 아닌가. 구식탱탱묵은 기수 문화처럼 언제까지 흑백TV들 관례대로 그분들 응석에 병풍서드려야 하냔 말이다. 집단지성이 저와 같은 엑셀파일들을 누구나 쉽게 보고, 찾고, 관리하며, 업데이트 기록도 투명하고. 그래서 그에 따라 취미에 그칠 것인가 그 정도 관심사로는 만족 못한다, 그러므로 인생을 걸자! ~라는 결정이 다른 말로 꿈 아닌가? 그런데 시간낭비는 시간낭비대로... 고지식한 것 자체만으로 나쁜 건 아닌데 꽉 막힌 학계 원로가 죽기 전에는 아무것도 못한다니! 요즘 세상에도 그래야 하나? 위키리스트가 뭐 하러 있나! 논문도 그냥 혼자 최선만 다해서는 어렵다는 게 사석에서 말하기로 일머리 라고 하듯이. 어떤 가설이 문득 떠오르면 그에 따른 검색어 10만개 추려서, 그거 10개국어로 검색결과 PPT, WORD, EXCEL...파일들 양식을 업체로부터 받아. 집단지성들이 노력해서 모아놓은 자료와 비교해보고. 그러면 이런 칼럼 훨씬 쉽게 나오지 않을까? 이미 이처럼 허접한 칼럼 애초에 쓸 필요가 없지 않겠냔 말이다. 안 그렇습니까, 여러분? 본 문단에 양식 대충만 끄적거려놨는데 꼭 전공 분야 전문가들끼리만 공유하는 양식 말고, 아마추어들도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Google DOCS가 무슨 비밀이도 되냐 그 말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아무리 훌륭하고 좋은 것이라도 다듬고 정리하여 쓸모 있게 만들어 놓아야 값어치가 있단 말이다. 서기 1,234년에 세계 최초 금속활자를 만든 공적이야 귀감이며 좋은 일이지 왜 아니겠나. 그러나 그러면 뭘 하나! 당시 악용될까봐 저작물 출판 자유는 최소화됐고, 그와 비례하여 다른 분야가 발맞추어 발전하는 거 더뎠는데. 뛰어난 하드웨어도 좋다만 소프트웨어를 어떻게 무시하겠나. 더더군다나 환상기계를 만들면 그걸 써먹어야지, 환상기계 만들어만 놓고 아무것도 못하는데? 인터넷도 마찬가지다. 잇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데, 필자만 봐도 본 칼럼 자료 찾느라고 속된 말로 개고생. 대상, 연도, 최초 발견자, 차기 출판 연도, 필사본인가 인쇄본인가, 판본의 신뢰성, 학계 신뢰도, 중간에 훼손-조작 여부, 반대론, 반대론자들 파일, 연관 자료, 인용 지수, 관련 파일, 날조 이유, 근거 합리성......그걸 모두 모아놓은 자료를 만인이 공유하면 안된다는 무슨 이상한 불문율이라도 있나? 최소한 내가 알기로는 없다. 적어도 그래서는 안되니까. 고로,  
    비문 목록_버전_업데이트 날짜.xlsx
    역사서 소실 파일_버전_업데이트 날짜.xlsx 
    역사서 분실 파일_버전_업데이트 날짜.xlsx 
    적극적 역사 왜곡 슈퍼데이터 (Public API and Database)
    소극적 역사 왜곡 슈퍼데이터 (Public API and Database)
    역사 관련 협박.탄압.파직.방화.고문 슈퍼데이터 (Public API and Database)
    일본 보물과 문화재 관련 비공개/이유/사실 목록  (Public API and Database)
    일본인 대부분이 알고 있는 잘못된 상식/세뇌받은 배경지식 목록  (SUPER DATA)
    일본 내 문화재 표지판에서 소극적으로 숨기는 사실 목록 (SUPER DATA)
    일본이 학생들에게 교육시키는 거짓 사실 목록 (SUPER DATA)
    일본 내 문화재 표지판에 명시된 거짓 목록  (SUPER DATA)
    이와 같은 파일들을 손쉽게 찾고, 보고, 연구하며, 업데이트 하면서 시간낭비를 최소화해야 하는 거 아닐까? 그런데 왜 마치 그런 불합리한 묵시록인지 율법이 있는 것처럼 인터넷을 활용하지 않는 건데! 당최 이유를 알 수 없을 따름. 안 그런가? 더더군다나 중복된 내용들을 헤치고, 모순을 조사하고, 꼬인 거 비교하고, 찾고, 추리고... 시간 다 가버림. 토끼와 거북이 우화에서, 거북이가 시간낭비하면서 근처만 배회할 동안, 토끼는 벌써 저 멀리... 보이지도 않게 되는 이치. 1위 그룹과 펠로톤 후미 3진 4진...골인 지점에 가까와 갈수록 왜 점점 격차는 벌어져만 가는 걸까? 왜냐하면 당장 생각해봐도 다음과 같은 3세가 이유 때문. 그 명징한 까닭 때문에 필자 칼럼이 이처럼 써도 써도 한도 끝도 없는 셈. (앞서 어떤 칼럼에서 세계적 제약사가 자국인 나라와 아닌 나라를 비교한 도표, 그거 읽고서 뭘 느꼈을까?)
    첫째, 전공 기초를 튼튼히 다지는 게 기본...이 아니라, 시간낭비(빅데이터 정리-공유가 기본인데...)
    둘째, 공사(公私)구분과 우수 교습법 뒷받침...이 아니라, 시간낭비(꽉막힌 원로 심부름,이삿짐,접대,뇌물,아부...)
    셋째, 새로운 학설을 반기고 실력위주&논문...이게 아니라, 꽉막힌 권위자가 정한 100년전 학설만 고집. 조금만 새로운 걸 제시해도 쟤 따시켜! 건너건너 재계 정계 오락산업까지 불이익. 심지어 꽉 막힌 꼰대와 병풍들만 승승장구인데 반면 신선한 학설, 양심적인 학자는 후세까지 가난과 빈곤과 불행. 
    이것 말고도 넷째 다섯째...이유는 많고도 많음. (물론 비교적 과거에 그랬다는 말인데 여러 분야를 놓고 봤을 때 유독 뒤쳐지는 분야가 없지 않으니 하는 말). 악기 배워봤으면 누구나 경험해봤을 것이다. 악보에서 막히는 부분에 충분한 시간을 투입해서 집중적으로 연습하면 30분이면 되는데. 그게 아니라 처음부터 막히는 부분까지, 다시 처음부터 막히는 부분가지. 또 정말 악기를 잘 다루고 싶은 열의가 있냐 없냐, 확고한 목표가 있냐 없냐에 따라 천차만별. 게다가 학교 다닐 때 공부 못한 이유는 의자에 앉아만 있지 늘상 딴짓하니까. 참고서도 보면 표지부터 앞부분만 닳아지고 중간 근처에도 못감. 바로 이래서~ 필자 칼럼이 길어지는 것 아니겠나. 안 그렇습니까? 역사학계, 고고학계만 봐도 제 말이 무슨 얘기인지 모르는 관계자들 있습니까? 단 1명도 없다. 우리끼리 얘기지만 가마 속의 콩도 삶아야 먹는다. 그렇다고 잘난 분들 천지인 세상인데 밥을 떠먹여줄 수도 없고, 그건 당신이 옳고 내가 틀리요 라는 말하는 거 좋아하지도 않고. 어쩌라는 겁네까, 네? 안 그렇습니까, 여러분? 이게 뭡니까, 네?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네? 워 워 워. 워 워 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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