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 189

from 소설 2021. 6. 30. 16:52

    1

    본의 아닌 청빈은 운명일까? 아직까지는 그런 셈. 그렇지만 뭘로 보나 가난은 NB 책임이다. 아니면 타인의 행복을 부러워하지 말든가. 대책없는 이상주의자군 그래. 아름다운 상상력은 불만족만 자꾸 부채질하고 말이야. 그러므로 녀석은 깜작 놀랄만한 발상에 덤빌 수 없었다. 일단 지 편이 아니거든. 그럼 용케 덜 깜짝 놀랄만한 줄거리를 가늠할 수 있었냐. 그럼 얼마나 좋겠나. 못했다. 하여 그는 혼잣말을 내뱉었다. 바로, 바캉스! 그래? 그래 봐야 안 갈 거 뻔하다. 영 거북한 가정은 여지없이 무성과로 판명날 테니까. 고로 다음과 같은 가정은 아마도 꽤 예리한 추론일 것이다. 그건 뭐냐! 바로, 뭘 해도 재미없기 때문에 아예 뭘 하지 않는 게 최선의 이익일 거라는 점. 틀린 말은 아닌데. 거 어째 듣기에 썩 상쾌하진 않음. 하긴 잡생각이 퍽 가상할 리는 없다. 허나 그럴수록 오히려 남자의 열망을 잊으면 안되는 건가? 그러든 말든 모르겠고. 당장 오늘 심심하니까 내일은 더 따분할 걸로 예상되는데. 벌써 이런 발상부터 그는 미지의 환상으로 전진하는 게 아니라 점점 바보가 되어가는 형세. 애초에 정서적으로 좀 모자른 건가? 정체성부터 흐리멍텅이요 말수부터 없음. 좌우지간 핑계 대회 도전이 의미없는 이 마당에 사랑의 시를 써서 뭐 하나. 필요없다. 애인은 있나? 사랑 싸움 안 해서 편하다. 이처럼 나는 자유롭다. 그럼 이제부터 적자색 너구리를 키워볼까 아니면 흰 족제비를 한마리 만들어낼까. 얍~ 막 주문을 외우면서. 덜 떨어진 소리 하지도 말자. 근데 왜인지 밖은 유난히 어둡다. 대낮인데 말이다. 바람도 곧잘 부는데 베스킨라빈스에 들려 아이스크림이나 먹을까? 그러든 어쩌든 나는 던킨도넛 유니폼 입고 싶지 않다. 그래도 나른한 오후 겨우 권태한테 질 수는 없으니까 산책을 해야 한다. 그러지 않을 이유도 없다. 그렇다고 단골 커피숍 웨이트레스의 밝은 미소를 보고 싶어서는 아닐 것이다. 아닌가? 모르겠다. 최근에는 칼럼도 조용하다. 하긴 내가 뭘 안다고! 게다가 어느 파티에서도 나를 불러주지 않는다. 조촐한 축제에도 초대받긴 글렀다. 심지어 또 통장잔고는 바닥이다. 뭐 그게 자랑이냐? ~라는 핀잔 느낌의 환청도 뚝 끊겼다. 그래도 비위가 상하지는 않았다. 나는 빈정상한다는 게 뭔지를 모른다. 그 무엇에든 들들볶여져도 아무렇지도 않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누가 나한테 뻔뻔해지라고 시켰나? 아니다. 나는 능청떨기 위해 태어난 게 아니니까. 그렇다고 하여 거짓말쟁이라고 입길에 오르내릴 것 같은 예감도 아무 걱정없다. 핑계대회 1등감과 조롱꾼 야유들도 모두 한 귀로 들어가서 한 귀로 나가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니 무엇이라 딱 꼬집어 말할 수 없는 애석함 그런 게 어딨나. 그냥 생각이 없는 거지. 그나저나 내가 흔치 않은 바보임을 결코 부인할 수 없는데. 집에만 있다가는 더 바보가 되어버릴 것만 같은 느낌. 찢어버려야 하나? 말이 심했다만. 
    그래서 나는 일단 밖으로 나갔다. 그렇게 나는 아지트로 갔다. 꼭 갈 데가 없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장면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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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는 아지트다. 오늘은 손님이 없다. 바텐더는 아예 공석. 근데 하필 옷 갖춰입고 왔는데... 거울을 보니 왜 난 웨이터 같지? 남들이 턱시도 입으면 명사요 난 다른가? 내가 그래서 제비복을 입지 않는다. 우리는 옷걸이가 좋거든. 그게 대체 뭔 말이야? 뭐 그래서 여자를 꼬시지 않는다 또 그 말 하려는 건 아닐 것이다. 그때 놀란이 내게 말을 걸었다.
   「왜 혼자 있어?」
   「그러는 넌?」
   「나야 아는 동생들이 하도 귀찮게 하니까 도망온 거지. 설마, 너도?」
   「이젠 하이파이브 하기도 귀찮다.」
   「그러지 말고 멧돼지 사냥이나 갈래?」
   「멧돼지를 왜 사냥해? 그냥 피해.」
   「멸종위기 야생동물이 점점 줄어가는데. 그런데 넌 이 세상의 슬픔을 모른 체하겠다고? 너 너무 능청스럽다고 생각하지 않니?」
   「그러는 넌! 넌 뭐가 잘났는데?」
   「그래. 나 못났다. 넌 잘나서 좋겠다. 그러니까 난 뭐 잘난 척하면 안되냐? 나도 말 좀 하자!」
   「누가 말하지 말래? 너 많이 컸다.」
   「내가 너만 하겠냐.」
   「근데 이런 퉁명스러운 분위기. 너 혹시 여자친구랑 헤어졌냐?」
   「어떻게 알았어? 헤어진지 1년 됐는데. 친구야 듣자하니 거 적잖이 섭섭하네. 응? 허허허.」
   「서운해하지 마. 내가 괜찮은 애들 소개시켜줄께. 너 내 별명 뭔 줄 알지? 이거 꼭 내 입으로 말 해야 하나! 터미네이터? (몸짓) 옛날 얘기. 우머나이저? 징글징글하다. 내 새로운 애칭은 바로 그거야. 줄줄이 비엔나 소세지!」
   「그 줄줄이 비엔나 소세지 원산지는 어딘데? 뭐 늬 입으로 늬가 뭐 다비드는 다비든데 어디산 다비드다, 그 말이냐?」
   「하여간에 비꼬는 걸로 내가 널 어떻게 이기냐. 두손 두발 다 들었다.」
   「넌 나 같은 친구 둔 걸 고마운 줄 알아야 해.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 바로 그거거든.」
   「아니 근데 내가 그걸 왜 축복으로 여겨야 하지? 그 이유를 말해줄 순 없겠니?」
   「왜냐하면 내가 웬만한 숙녀들쯤은 죄다 꼬셔줄 수 있으니까. 말만 해! 싹 다 꼬셔줄께. 어?」
   「너 아직도 이러고 다니냐? 늬가 이래서 안되는 거야. 늬가 이러니까 여자가 없는 거라고. 답답하다 증말!」
   「근데 나도 나다만 너도 상태가 만만치 않아. 결코 만만치 않다고.」
   「알아. 나는 최소한 부정하지 않지.」
   「그래서!」
   「그래서? 그래서긴 뭐가 그래서!」
   「뭐가 어쩌고 어째?」
   「너 말 다 했어? 그 말 다시 말해봐.」
   「뭘 입 아프게 다시 말해. 안 들었으면 잘 생각해봐. 분명 들었으니까 알 거 아냐.」
   「너 정말 나한테 혼나고 싶냐?」
   「너나 잊어먹지 마. 내가 널 업어키웠으니까. 내가 또 3 대 3 소개팅 껀수 물어오면 은근슬쩍 묻어갈 생각 말고.」
   「내가 너한테 왜 업혀가냐. 싫다. 됐거든!」
   「되긴 뭐가 돼. 안돼.」
    바로 그때 조지가 나타났다. 
   「가자. 멧돼지 사냥. 가서 토끼를 잡든가 고래밥이 되든가. 여기서 말로만 끝낼 거야?」
   「나 내일 출근해야 하는데.」
   「그럼 넌 가지 마.」
   「너도 휴가 다 썼잖아.」
   「난 때려칠 거야.」
   「그럼 얘 빼고 우리끼리만 갈까?」
   「내가 언제 안 간댔어?」
    그렇게 나, 놀란, 조지 그렇게 세 친구는 멧돼지를 사냥하러 떠났다. 





    2

    멧돼지 사냥터. 
   「그런데 멧돼지가 어디 있는데? 여기 멧돼지 농장 맞냐?」
   「영화처럼 우리가 멧돼지 탈 쓰고 막 우리가 멧돼지가 되어 쫓기게 되는 거 아냐?」
   「우와 재밌다! 너 못 보던 새에 유머가 늘었는데?」
   「하여간에 멧돼지는 커녕 토끼도 거북이도 안 보인다.」
   「야, 저기 저거. 혹시 멧돼지 아니냐?」
   「맞네. 아닌가?」
    그렇게 우리들은 긴가민가 약간 알쏭달쏭 불확실한 무리들을 쫓아갔다. 그때부터 우리는 한참 동안 녀석들을 따라갔다. 
   「얘들아. 근데 저거 멧돼지 맞냐? 멧돼지가 뭐 저렇게 빠르냐?」
   「그러게. 우리가 탄 지프가 느린 건가!」
   「지금 우리가 웃고는 있는데. 이게 웃을 일인지 뭔가 느낌 세하네. 너넨 안 그래?」
   「그럼 늬 말은 저게 무슨 괴물 멧돼지라도 된단 말이냐?」
   「저게 정말 공룡 멧돼지면 어쩔 건데. 너 나랑 내기할래?」
   「그냥 내가 진 셈치고 너가 나 여자친구 소개시켜주기로 하자.」
   「누구 맘대로! 아니 근데 왜 거리가 좁혀지지가 않냐.」
   「설마...저... 안에 무슨 모터 장착되고 막 로보트 아냐?」
   「넌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봤어. 그래가지고 너가 여자를 만족시켜줄 수 있을 거 같냐?」
   「여자 얘기가 지금 왜 나와? 넌 그러니까 안되는 거야. 알아?」
   「뭘 알아? 몰라. 그런데 지금 우리가 잘하는 거 맞을까?」
   「글쎄. 뭔가 잘못 되는 것 같기도 하고. 약간 이상하게 엮여든다는 기분 들지 않니?」
   「하긴. 좀 말려들고 있다는 징조. 없잖아 있는 둥 마는 둥. 허나 결코 무시할 수 없어.」
   「그래? 혹시 우리가 쟤네들 꾀임에 빠져드는지도 모르게 빠져버린 걸까?」
   「만약 그랬다면 누군가 리모콘을 눌렀겠지. 적어도 멧돼지가 우리보다 더 영리하진 않잖아.」
   「그럼 우리가 지금 누구한테 속는다는 말인데. 그 말은 곧 우리만 멍청하다는 거잖아?」
   「그럼 뭐 여자들이 남자한테 잘 보이기 위해서-만 화장을 하는 줄 알았냐?」
   「너 자꾸 아까부터 여자 얘기하는데. 정말 계속 할래? 너 정말 나한테 혼나볼래?」
   「그래. 혼나자. 대신에 넌 3 대 3 소개팅에서 빠져. 너 말고도 대타들 많아. 겁나 많아. 응?」
   「이 자식이... 우리 사이가 겨우 이 정도 밖에 안되냐? 어?」
    그러다 우리들은 알게 모르게 늪으로 빠져든다는 걸 왜 그땐 몰랐을까! 
    결국 멧돼지 사냥을 하러 왔는데 우리들은 누구도 모르도록 옥수수밭으로 제 발로 걸어들어간 것이다. 
    장면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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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야 이거! 여긴 옥수수밭이잖아?」
   「그러게. 태풍의 눈처럼 사하라 사막처럼 큰 옥수수밭에서. 마치 태풍의 눈 같은 평평한 지반에 우리가 도착한 셈이지.」
   「그걸 늬가 어떻게 알아?」
   「봐도 모르겠냐?」
   「믿기 싫으니까 그러지. 지금 이게 장난이냐? 장난이면 좋겠으니 하는 말이잖아. 넌 사람이 뭐 그렇게 꽉 막혔냐?」
   「뭐? 나 그렇게 꽉 막힌 사람 아니다. 너나 친구를 너무 하대하지 말라. 사람 빡빡하게 친구끼리 이러기냐? 여자들 앞에서 내가 너 흉보면 좋겠냐?」
   「짜증난다 여자 얘기.」
   「내가 더 짜증난다.」
   「얘들아. 그러지 말고 해결책을 내나 봐.」
   「무슨 해결책? 그런 거 없어. 대책이 어딨냐!」
   「근데 무대책은 곧 뭘 뜻하지? 지금 안심할 때가 아니야.」
   「누가 그걸 모르냐.」
   「그러게 내가 그냥 낚시 하는 척 폼만 잡다가 고기나 꿔먹자고. 말 했어, 안했어?」
   「그 제안 내가 제일 먼저 했는데. 너가 처음에 찬성했다가 멧돼지 사냥으로 튼 거도 너고.」
    바로 그때 갑자기! 멀쩡하던 평지가 쑥 꺼지면서 마치 우주선이 들어갈 수 있도록, 비행기에서 화물이 내리듯 막 그렇게 지하로 들어갈 수 있는 통로가 나타났는데. 
   「들어가 볼까?」
   「하긴 안 들어갈 수도 없잖아.」
   「차 기름도 떨어지고. 걸어서는 나갈 수 없고. 그럼 들어가는 거 말고는 없네.」
    그렇게 우리는 내부 비밀기지로 들어갔다. 미로 같은 공간을 정탐하던 끝에 우리는 어떤 출입금지 방을 발견했다. 
    어떻게 어떻게 들어갔다. 그런데 그 안에는...... 석상... 두상... 뭐야 저거!
    바로 그때 친구들은 증발하거나 옅어지다가 수축되어 소실됐고. 나는 마구 종이장처럼 찌그러지다가 구겨져서 종이가 됐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보다 훨씬 이전 쓱 굽히고 다니던 도플갱어. 녀석이 드디어 나를 연습장으로 몰아낸 것이다. 
    마침내 녀석은 깨어나자마자 공책에 신들린듯 아찔한 착상을 써내려가는 날 못 봐주겠다는 듯. 
    그렇게 공책을 찢고, 구기고, 뭉개서 집어던졌던 것이다. 





    3

    그런데 도플갱어는 탁월한 착상이 잘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일까? 마음이 바껴서 지금은 그냥 녀석한테 모험을 즐길 자유를 선심써서 선물해주기로 마음먹었음. 따라서 막 종이조각처럼 구개졌던 내 몸은 스르르 자연스럽게 풀어졌다. (물론 당시에 내가 그걸 알 리는 만무했다) 그래서 다시 멧돼지 사냥 → 옥수수밭 지하 비밀기지 → 미스테리 영화를 이어서 찍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건 애독자만 알고 있는 사실이요, 그냥 독자는 신경질 내고 짜증나며, 작은 nb에겐 죽을 동 살 동 그건 안중에도 없는 일. 아울러 나는 이와 같은 사정을 알 길이 없었다. 그렇지만 뭔가 일이 심상치 않게 돌아간다는 걸 어떻게 알게 되었냐, 하면 그건 조지와 놀란이 정밀한 안면 마스크를 찢어서 벗어버렸기 때문이다. 저속한 표현마따나 이 밤을 찢어버리자 어쩌자 막 그러고 놀기 시작할 때가 좋긴 좋다. 왜냐하면 첫 끗발이 개 끗발이니까. 밤새 놀면 피곤하고 중간에 다 퍼진다. 자긴 막 센 척 아닌 척 하지만 다 거짓말. 모두 뻥. 극히 일부 야행성 맹조류만 빼고 나머지는 몽땅 뻥. 내가 택시운전할 때 클럽 앞에서 밤을 새워 놀던 젊은이들 한두 명 태워봤겠나. 아침에 클럽에서 나온 친구들 태워서 터미널로 가는데 그냥 접힌다. 뻗는다. 사람은 잠 안자고 못 산다. 고문과 훈련 가운데 혹독한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잠 안재우기! 근데 그 배경지식이 왜 갑자기 툭 튀어나왔지? 그건 멧돼지 사냥 → 옥수수밭 지하 비밀기지 → 미스테리 장르는 현실이란 걸 강조하기 위해서.
   「야 놀란. 늬 정체가 스톰트루퍼였어?」
   「」
   「말을 할 줄 모르는 거야, 아니면 하지 말라는 지령이야!」
   「」
   「조지. 너 조지 맞냐? 늬가 무슨 다스베이더야, 어? 그게 너한테 어울린다고 생각하냐?」
   「」
   「정말 말이 없네. 그럼 얘네는 조지와 놀란이 아니란 말이잖아. 앞서 멧돼지 사냥할 때까지는 프로그래밍된대로 단지 읊었을 뿐이고. 그럼 지금은? 날 잡아먹겠다고? 쟤네들이 불여우도 아닌데 늑대를 뭐 하러 잡아먹어. 어? 내 말이. 내가 무슨 영양가가 있다고. 근데 얘네 배후에는 대체 누가 있고, 또 여긴 대관절 어디야? 뭐지 여기는!」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나는 이렇게 물어봤다. 
   「너네 혹시 도플갱어가 보냈냐? 대답 없다라...! 너네 영화 찍니? 나랑 장난하자는 건 아닐 테고. 그럼 뭐지? 난 집에 어떻게 가란 말이야. 응?」
    바로 그때 사이렌이 울렸다. 아마도 긴급 상황인 듯 했다. 
    설마... 침입자가 발생했을까? 주변에 보이던 스톰트루퍼들 전원이 신속히 어딘가로 뛰어갔다. 당연히 스톰트루퍼와 구분되지 않는 조지와 놀란도 그쪽으로 달려갔다. 
    이때 나는 저들을 따라가야 하는 걸까, 아니면... 그들을 기다리는 게 좋을까. 
    나는 결정했다. 그들과 반대로 가기로 라고 말이다. 
    그렇게 슬금슬금 내빼다가 작정하고 도망갔다. 
    그랬더니 내가 들어왔던 출구, 아니 입구가 보였다. 
    나는 곧장 그곳을 빠져나왔다. 
    장면 전환.
    장면 전환.
    장면 전환.
    바깥은 조금 전 그곳이었다. 다만 해가 약간 기울어 덜 환하다는 거 말고 변화는 없었다. 
    바로 그때 저쪽에서 지프 랭글러가 내쪽으로 달려왔다. 이런! 
    젠장, 그 차에 타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니라 놀란과 조지였다. 
   「너 대체 어디 갔었어?」
   「그게 무슨 소리야, 방금 너네들 나랑 같이 있었잖아.」
   「장난치지 마. 우리가 널 얼마나 찾아헤맨지 알기나 하니?」
   「아니 근데 너네 방금 저 밑에 있다가 사이렌이 울려서 긴급출동했는데. 어떻게 저쪽에서 나타나니?」
   「우리가 왜 저기서 나타났냐고? 널 찾아헤매고 다녔으니까 그렇지.」
   「무슨 소리야? 방금 전에 멧돼지를 쫓아가다가, 길을 잃었고, 다음으로 우리는 옥수수밭 한가운데 남겨졌어.」
   「옥수수밭? 옥수수라...」
   「그래 옥수수밭. 지금 농담할 기분 아니란 말이야. 응?」
   「옥수수밭이랑 우리랑 뭔 인연이 있을까.」
   「그 옥수수밭 밑에 비밀기지가 있었어. 갑자기 땅이 꺼지더니 비밀 통로가 나타났다구.」
   「그래서 우리들은 그곳으로 들어가서 갑자기 조지랑 내가 가면을 벗었다? 너 아직도 그런 영화에 빠져살고 있니? 한심하다. 대책이 없네.」
   「아, 정말이라니까. 왜 날 안 믿어? 너네 방금 나랑 같이 있었잖아.」
   「뭘 같이 있어? 같이 있었으면 우리가 널 찾아러 다닐 필요가 없었을 거 아냐. 그런데 어떡하니, 우린 방금 똥개 훈련 제대로 했는데. 안 그러냐, 놀란?」
   「말도 말어. 난 제가 혹시 멧돼지로 변한 줄 알았잖아. 통 찾을 수 없으니까 말이야.」
    그렇게 우리는 말도 안되는 실랑이를 벌이다가 결국 나는 포기했다. 
    이게 정말 녀석들을 설득해야 하는 일도 아니고, 나도 녀석들 말을 믿지 못하는 건 똑같았으니까. 
    뭐 그래서 일단 후퇴. 그렇게 우리는 다시 멧돼지 사냥을 계속하기로 했다. 멧돼지가 당최 보이지 않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한참을 멧돼지를 찾으러 다니다가 우리는 서로 눈빛을 보며 알게 됐다. 
   「너네들 마음도 나랑 같냐?」
   「너도?」
   「난 한참됐어.」
   「갈까?」
   「진작 갈 걸 그랬다. 아니 오지 말 걸 그랬나? 어떻게, 가서 3 대 3 소개팅이나 할까?」
    그렇게 우리들은 도시로 철수했다. 그리고 가던 길에 녀석들은 나를 우리집 인근 동네에 내려주고 그대로 녀석들은 집으로 갔다. 





    4

    녀석들이 나를 집근처에 내려줬는데 거긴 하필 감자밭이었다. 뭐야 왜 하필 걔들이 날 깡촌에 내려준 거지? 일부러 그랬을 리는 없는 거 같은데. 설마 아직 제정신이 들지 않은 건가? 전화해서 물어보면 됨. 그렇게 전화를 했는데 둘 다 받지 않았다. 그때 저쪽에서 또 지프 랭글러가 내쪽으로 다가왔다. 조지와 놀란이었다. 
   「어디갔었어? 한참 찾았잖아!」
   「(검지를 귀옆에 붙이고 빙글빙글)!」
   「아 글쎄 어디 갔었냐고. 말을 해야 알 거 아냐.」
   「너네 방금 전까지 멧돼지 사냥 중이었냐?」
   「그러면?」
   「그러니까 오늘 우리가 여기 함께 온 뒤로 줄곧?」
   「그렇지 않으면!」
   「그럼 아까 옥수수밭 못 봤니?」
   「무슨 옥수수밭? 넌 봤냐?」
   「아니. 아, 차에 콘푸레이크는 있어. 어떻게, 배고프면 그거라도 먹을래?」
   「장난 아냐.」
   「그럼 우린 장난이냐?」
   「」
   「그러지 말고 저기 저쪽까지 딱 한 번만 돌아보자. 그런 다음 집에 가는 걸로.」
    그렇게 우리들은 어딘가에 도착했고 차에서 내려 한참을 걸어다녔다. 
    그런데 이상하게 걷는 발걸음이 이상해지고, 어디가 막 가렵다가, 피부가 딱딱해졌다. 
    또 안면이 새처럼 앞쪽으로 쭉 길레 튀어나오고, 두 발로 걷다가 어느새 우리는 네 발로 걷고 있었다. 
    나는 조지와 놀란을 보면서 깜짝 놀랐다. 녀석들은 언제 바뀐지도 모르도록 자연스럽게 멧돼지가 되어 있었다. 
   「너네 왜 그래?」
    오, 이런 젠장! 나는 녀석들한테 이게 무슨 일인지를 물어볼려고 했는데. 그런데 내 입에서는 멧돼지의 꿀꿀꿀 소리 밖에 나오지 않았다. 
    난 그때 헤롱헤롱 멍하더니 결국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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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신을 차리고 개꿈 복기하기를 멈췄다. 
    어떻게 된 일인지 그 동안 기억을 되찾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알고 봤더니 내가 깨어난 곳을 병원이었고 내 옆에는 놀란과 조지가 있었다. 
    녀석들도 마침 깨어났고 서로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할 뿐. 
    나중 여기저기 수소문하고 물어봤더니 웬 오두막 옆에 남자 셋이 쓰러져 있었다고 한다. 
    어떻게 된 일일까? 외계인이 우리한테 혼을 쏙 빼놓은 체 자기들 필요한 정보를 모두 몽땅 빼내간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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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면 전환.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 뒤로 내게는 2가지 큰 변화가 생겼다. 그건 무엇일까? 
    첫째, 놀란과 조지는 처음에 나를 슬슬 피했다. 다음으로 도망다녔다. 마침내 우리는 멀어졌다.
    둘째, 이상하게 주위 사람들이 내게 긴밀히 접촉해왔다. 자기들과 멧돼지 사냥을 함께 가줄 수 있는지 조심스레 물어보는 일. 한두 명이 아니라 이젠 만나는 사람마다 족족! 대체 그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나도 알 수 없다. 아니 알고 싶다. 그런데 어떻게 방법이 없다는 거. 어떡하지? 뭘 어떡하나. 어쩌지 않는 게 정답일 따름. 





    5

    어제 나는 음악을 틀어놓고 잠이들었다. 
    Joseph Haydn / Missa in tempore belli(PaukenmesseHob.XXII9)
    오늘 소풍을 갈까 아는 여동생들한테 커피나 실컷 사줄까 고민하면서. 
    그렇게 개꿈도 꾸고 피로를 풀면서 깊은 잠에서 깨어났는데. 여기는 어디일까? 
    취재실에서 듣고 나서 알게 됐다. 세계 멧돼지 협회와 밀접한 관련성을 부인하기 힘든, 어느 정보단체 취조실이란 걸 나는 직감으로 깨달았다. 
   「말하시오. 당신은 어떻게 하여 멧돼지 사냥을 떠나게 된 것이오?」
   「네? 그건... 제가... 아, 맞다. 옛날에 가긴 갔어요. 그런데 그냥 근처만 배회하다 온 걸요.」
   「말 돌리지 마시요. 나한테는 통하지 않을 테니까. 곧 이어 당신은 내게 모든 걸 실토할 것이라 내 장담한단 말이오.」
   「실토요? 뭘 실토요?」
   「잡아떼지 말라니까 거 참! 도대체 어떻게... 아니 일단 자료를 보여드리겠소. 아니, 준비되지 않았다 하오. 그럼 내 곧장 묻겠소. 멧돼지 사냥터, 옥수수밭. 전자와 후자의 거리를 당신은 어떻게 줄인거요? 대체 무슨 요술로 그 거리를 단축시켰소. 우리가 당신을 미행하면서 관찰하기로는 당신은 결코 빠른 속도로 그 둘 사이를 오가지는 않았소. 그러면 어떻게 멧돼지 사냥터에서 옥수수밭으로 순간이동을 할 수 있느냐? ~라는 의문은 지당할 텐데. 여기서 합리적인 의문에 대한 추리력과 의뭉스러운 호기심이 입씨름할 동안. 당신은 우리한테 정밀한 사고력이 꽤 타당한 가설을 도출해내기도 전에. 넌 곧장 옥수수밭 지하에 기지를 만들어냈단 말이야. 알겠어? 아, 내가 잠시 흥분했소. 사과하리다. 아직 기분이 풀리지 않았다면, 내 여동생을 소개시켜드릴 용의도 있소. 내 여동생 이뻐 이 양반아. 어때, 만나보고 싶지 않아? 그녀의 섹시함 앞에서 당신은 다리에 아마 힘이 풀릴 텐데. 그러니까 어서 보고서 작성하고 취조 끝마치자 그 말이란 말이오. 아시겠소?」
   「모르겠소. 무슨 말이지 하나도 모르겠단 말이오. 옥수수밭...은 알겠는데. 그걸 무슨 심시티 게임도 아니고 어떻게 멧돼지 사냥터 옆으로 옮긴단 말이오. 당신이 생각하기에 그게 말이 되오? 말이 안되지 않소.」
   「말 같지도 않은 변명 그만하는 게 좋을 거요. 아시겠소? 그러니까 좋은 말로 할 때 말하시오. 어떻게 요술을 부렸는지를 말이오.」
   「아 글쎄 난 대체 무슨 얘기 중인지 하나도 모르겠다니까요. 여긴 대체 어딥니까? 당신은 뭐 하는 사람이구요.」
   「안되겠소. 당신은 나랑 맞지 않아. 오늘은 나도 상태가 좋은 않은 듯 하니. 따라서 심문관을 교체하겠소. 딱 기다리시오.」
   「누가 기다리라면 못 기다릴 줄 알아? 이거 왜 이래, 어?」
    잠시 후.
   「안녕하시오. 앞서 심문관은 허당이었소. 난 딱 봐도 호락호락해 보이진 않죠? 그럴 줄 알았소. 허허허허허.」
   「당신 돈 많소?」
   「돈이요? 돈은 왜 갑자기... 그건 뭣 때문에 묻는 거요?」
   「그냥 던져본 질문이오. 당신이 대답을 하나 안 하나 궁금했으니까.」
   「그게 왜 궁금하오?」
   「물론 당신이 부자인지 아닌지 나에겐 중요하지 않소. 그러므로 그건 내 관심사 밖에겠죠. 그건 뭘 뜻하냐? 당신도 여지없이 허당이라는 말이지요. 허허허허허.」
   「이 사람이... 당신 매운 맛을 봐야 정신을 차리겠소?」
   「나는 이미 제정신이오. 당신이나 미친 척하지 마시오.」
   「뭐 미친 척? 거 말이 너무 심하잖아 이 양반아. 안되겠네. 단단히 각오하시오.」
   「뭘 각오해! 내가 먼저 말하겠소. 나는 당신 같은 삥바리는 상대하지 않아. 당신 최윗선을 데려오시오.」
   「내가 대장이오. 아시겠소?」
   「모르겠소.」
   「뭐 몰라? 알게 만들어드려?」
   「그런다고 내가 모르는 걸 알게 될 거 같소? 헛고생하지 마시오. 좋은 말로 할 때!」
   「당신 지금 나 협박하는 거요?」
   「나는 그럴 의도도 없고 그런 행위를 하지도 않았죠. 허나 당신 스스로 지금 바보가 되버린 것 같다고 생각하지 않소?」
   「뭐, 바보?」
   「그렇소 바보. 바보가 되기 싫으면 내게 3장을 건네시오. 그럼 내 당신에 대한 모든 걸 말해드리겠소. 당신이 누구와 결혼할지 궁금하지 않소? 나는 그대의 미래가 보인다오. 물론 형씨 재물운의 그래프도 내게 훤히 그려지지요. 좋다. 기분도 그러니까 인심 썼소. 2장만 주시오.」
   「이거 이거 말이 안 통하는구만. 본때를 보여줘야겠어.」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오. 당신 정말로 나한테 혼나고 싶소?」
   「설마, 당신 정신분열증을 앓은 적 있소?」
   「정신, 뭐요?」
   「솔직히 말해도 좋소.」
   「내가 언제 가식적이었단 말이오? 우리 남자 대 남자로 대화합시다. 그런데 우리가 무슨 얘기 중이었더라?」
   「허허허. 날 자꾸 말려고 하는데. 내가 무슨 카페트인 줄 아시오? 나는 결코 두루마리 화장지 같은 남자가 아닙니다.」
   「그럼 난 뭐 길바닥에 버려진 빈 깡통 같은 남잔 줄 아시오?」
   「거 듣자 듣자 하니 화법이 이상하시네. 어? 자꾸 내 짜증을 돋구어서 결코 좋지 않을 텐데.」
   「그건 내가 할 소리. 당신이나 내 부아를 돋구지 마시오. 알겠소?」
   「그나저나 당신은 세계 멧돼지 협회랑 무슨 관계요?」
   「세계 멧돼지 협회? 그런 거도 있단 말이오? 처음 들어보는 얘깁니다.」
   「그럼 혹시 세계 마초협회에서 당신을 보냈소?」
   「이 사람이 지금 심각한 위기에 처한 걸 영 인지하지 못하는데. 꼭 현장요원을 불러줘야 정신차리겠소?」
   「현장요원?」
   「그럼 당신은 실내요원이요?」
   「나 당신이랑 말장난할 기분 아니오. 이렇게 시간 끌면 당신한테도 손해란 말이오. 아시겠소?」
    그렇게 한참을 입씨름하던 끝에 그들은 결코 나를 돌려보내주지 않았다. 
    처음에는 적당히 그러다 말겠지 오해가 생겼을 거야 라면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런데 시간이 자꾸자꾸 지나고 피곤해지며 정신마저 몽롱해지던 끝에. 마침내 그들은 나로부터 원하는 답변을 듣지 못했기 때문일까? 나를 잠재우지 않았던 것이다. 
    그 다음부터는 나도 잘 생각나지 않는다. 거기서 1주일을 견뎠는지 1달이 지났는지 하나도 기억할 수 없었다. 
    그렇게 된 다음 어떻게 어떻게 나는 풀려났다. 물론 눈을 가리고 어디부터 어디는 걸어서 이동, 또 차를 옮겨타고, 배타고, 비행기 타고, 말 타고. 그렇게 집 근처에 다 와서 눈을 가린 안대를 풀어줬다. 
    그 다음 1달이 지났다.





    6

    나는 별 생각없이 아지트에 들렸다. 
    아지트 도착. 아니 어떻게... 저기 보이는 저 친구들은 다름 아니라 놀란과 조지였다. 
   「얘들아. 그동안 너네 어디갔었던 거니?」
   「가긴 어딜. 난 아무 데도 안 갔어.」
   「나도. 그나저나 너 어디 갔다온 거니?」
   「모르겠어.」
   「우리가 아는 건 뭘까?」
   「있잖아. 너 혹시 세계 멧돼지 협회에서 연락오지 않았니?」
   「멧돼지, 뭐? 아니 근데 너네들 얼굴이... 이런 말 해서 미안하지만. 너네들 왜 갑자기 겉늙었니?」
   「그럼 넌 젊어진 줄 아니? 솔직히 말해서 그래. 우리는 겉늙었어. 그게 다 너 때문이야?」
   「그게 나 때문이라고?」
   「그래. 저번에 멧돼지 사냥 갔다온 뒤로 우리는 이렇게 됐어. 누가 보면 우리를... 많이 알려고 하지 마.」
   「설마... 그래서 사람들이 나한테 찾아온 건가?」
   「사람들이 너한테 찾아왔다고? 찾아와서 뭐랬는데?」
   「나랑 멧돼지 사냥을 함께 가자던데.」
   「그럴 만하니까 그러겠지.」
   「그게 무슨 소리야? 너네들 뭔가 아는 게 있구나.」
   「그럼 넌 아직까지 몰랐니?」
   「뭘 말이야?」
   「모르면 그냥 끝까지 모르는 게 나을 거야. 날 봐. 날 보라구!」
   「뭘 봐? 어? 그러니까 그게 뭔데?」
   「나도 몰라.」
   「모르긴 뭘 몰라. 뭔가 아는 눈친데.... 왜 내게 말하지 않는 건데! 응?」
   「넌 알면 안되니까.」
   「그 말은 곧 넌 알고 있다는 얘기잖아.」
   「나도 몰라.」
   「너네 정말 이러기냐?」
   「그래. 이러기다. 왜냐하면 우리 사이는 이 정도에 불과하니까.」
   「뭐가 어쩌고 어째?」
   「실은 우리도 이러고 싶어서 이러는 게 아니다. 너가 이해해라.」
   「도대체 뭘 숨기고 있는 거야?」
   「그만 갈께.」
   「야, 같이 가.」
   「안돼. 우리 2 대 2 소개팅 있어.」
   「그럼 내가 그냥 병풍 맡으면 되겠네. 너네 나 알지? 나 병풍 전담만 평생 했던 거.」
   「알든 모르든 그건 딴 데 가서 해.」
   「뭣이 어째? 너네 소개팅하러 가는 거 아니지? 그치?」
   「그만 물어봐.」
    그때 아지트에 심문관이 나타났다. 나는 곧바로 알아보지 못했다. 뭔가 기억일 날 듯 말 듯...그러다 제대로 기억해냈다. 그 순간 녀석들은 도망갔다. 그러자 심문관이 내게로 다가왔다. 알고 보니 녀석은 심문관 중의 에이스였다. 그런데 녀석은 내게 뭔가 용건을 말할 것처럼 다가오더니 그냥 옆을 스쳐지나갔다. 얜 또 뭐야? 역회전볼이야 슬라이더야! 그럼 난 포크볼인가? 그 뒤로 나는 지금까지 세계 멧돼지 협회의 연락을 기다리는 중이다. 





    7

    아지트에서 심문관이 내게 말을 걸 뻔하다 말았던 것처럼. 멧돼지 사냥터에 봤던 마초가 언젠가 시내에서 날 알은 척했는데... 여자를 소개시켜 줄 것처럼 분위기를 잡다가 도망가버린 일이 있었다. 서로 연락처도 교환했는데 나중 걸어보니 없는 번호래나 뭐래나. 그날 함께 술도 마시고 나이트클럽도 가기로 했는데, 걔가 부른 아는 동생들. 날 들뜨게 만들어서 술값만 괜히 나한테 덤탱이 씌워서 난 지금 긴축재정에 허덕이는 중. 그 뒤로 백화점에서 또 옥수수밭 근처에서 봤던 예쁘장한 아줌마. 그녀를 백화점에서 봤는데 어머 우리 봤죠, 오빠 근데 저보다 나이 많아요? ~라면서 접근하길래 살짝 설렐 뻔하다 말았던 적도 있었는데. 뭔가 갑자기 친해질 뻔하다가 화장실 갔다가 돌아오는 그녀의 남편. 무섭게 생겼다. 그 뒤로 나는 밤에 꿈에서 멧돼지한테 쫓기는 꿈을 꾸고, 낮에는 웬 승용차들이 가끔 멧돼지로 보이는 환청을 겪고 있다. 차마 이런 말까지는 애써 참아왔다마는, 하다 하다 지인 얼굴이 말(대가리)로 보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수상쩍은 웹사이트를 하나 발견했다. 
    제목: 멧돼지 로봇 사냥에 참가하세요.
    내용: 멧돼지 로봇 사냥은 태평양 원시부족 후원, 대서양 어디어디...섬처녀들과 데이트 기회 제공... 그랑프리는 상금 얼마! 
    조건: 단, 혼자만 와야 함. 또 핸드폰 없이. 위치 추적기 없이. 누구한테 어디 간다 말하고 와서도 안됨.
    이건 설마 날 표적 삼아 만든 웹사이트? 나는 구미가 당겼다. 
    구간 빨리돌리기.
    구간 빨리돌리기.
    구간 빨리돌리기.
    멧돼지 로봇 사냥에 참가한 사람들은 좀 그랬다. 사람들은 착해보였다. 또 내게 호의적이었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조금은 찐따 같았다. 솔직히 말해서 나랑 많이 비슷한 사람들처럼 보였다. 남자들은 뭐랄까 여자친구가 없는 듯 했고. 여성 비율도 아주 낮지는 않았으나 성격이 괴팍하지 않을까 뭔가 의심스럽기는 마찬가지. 그렇게 적당히 인사도 나누고 사냥 후 파티에 대해 얘기로 분위기는 좋아졌다. 걔중에 일부는 막 처음 봤는데 평생 친구할 것처럼 전화번호 교환하고 으쌰으쌰! 아, 핸드폰을 몰래 밀반입한 사람들은 적발되어서 퇴장시까지 본부에 보관시키기로 했다.
    화면 전환.
    화면 전환.
    화면 전환.
    우리는 신나게 멧돼지 로봇을 사냥했다. 그런데 멧돼지 로봇이 턱없이 부족했다. 뭐라 뭐라 변명을 하더니 이번에는 인터넷 게임으로 멧돼지 사냥을 하라고 했다. 우리는 모두 참가했다. 그러다 멧돼지 로봇을 충분히 공수해왔기 때문에 다시 사냥을 하자고 부추겼다. 시작됐다. 그런데 이때 영화 같은 일이 발생했다. 누군가 재빠른 외부 인원이 몰래 나타나 케찹을 뿌리질 않나, 크게 다치지 않을 정도로 때리고, 막 모래를 뿌리며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그러다 중간중간 또 육식동물을 풀기도 하고 사냥개가 나타나기도 했는데. 그렇게 당황하던 순간 안내방송으로 우리를 저기 보이는 저 옥수수밭까지 달리라고 했다. 처음에는 긴가민가했는데. 막 영화처럼 그러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었기 때문에 모두 전력질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다 힘빠지고 지치고 퍼졌다. 그렇게 중간중간 쉬다가, 이번에는 훨씬 강력한 멧돼지 로봇들이 나타났다. 즉 우리보다 3~4배 큰 멧돼지 로봇! 덩치 비슷한 멧돼지도 있었고 막 5배 큰 녀석들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뭐라고? 그렇게 우리 참가자들은 모두 멧돼지 로봇 군단한테 쫓기니까 옥수수밭까지 도망갈 수 밖에 없었는데. 그 중간에! 
    누가 나를 낚에 채더니 수풀 사이로 숨겨주었다. 놀란과 조지였다.
   「너네 여기 웬일이야?」
    쉿!
   「아무 말도 하지 마.」
   「너무 많이 알려고 하지 말라구.」
    그러면서 녀석들은 나를 비밀통로로 데려갔고, 어떻게 어딘가로 빠져나와 대형 RV 차량에 탑승했다. 
    그렇게 우리가 탈출하려던 순간 비상벨이 울렸다. 
   "긴급상황 긴급상황. 실제상황입니다. 
    쥐새끼 침입 쥐새끼 침입. 
    지금 이 시간부로 불독을 풀겠음. 불독을 풀겠음."
    저건 또 뭐야? 그럼 톰은 어딨는데. 
    그 때문에 우리는 도시로 갈려다가 할 수 없이 옥수수밭 중간, 지하 비밀기지로 향하게 됐다. 
   「여기 지도.」
   「나중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절대 뒤돌아보지 마. 연락도 하지 말고.」
   「나가서 절대 우리를 만나다고 하면 안돼. 알지?」
   「그럼 우리 간다. 다음에 보자! 잘가. 뭐 해 안 가고!」
    나는 촉박한 상황에 쫓겨 그곳에서 탈출하는 데 급급했다. 





    8

    나는 쾌활함을 잃어버렸다. 젊음이 도망갔기 때문인가? 모르겠다. 행복과 환희와 소망도 알 수 없다. 난 정말 노래하고 춤추는 것도 다 잊어먹었다. 허나 그렇다고 뭘 해도 재미없는 건 아니다. 그런데 마침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아니, 그럴 뻔하다 말았다. 새로움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의욕도 자취를 감추었지. 나는 뭔가 변화를 시도할 생각을 못했다. 무심함은 나를 더욱 절망케 했다. 권태는 절정에 이르렀다. 사색과 모험과 호기심마저 나를 버린 것이다. 어떡해야 할까? 어떡할 필요없다. 그러든 어쩌든 나는 가난한 예술가의 생애를 지망하지 않았다. 그럼 타인이 나의 그런 삶을 원한건가? 알 게 뭐야. 괜찮다. 불운을 만회할 구원투수는 언제든 등판할 수 있으니까. 그 쥐구멍에 볕 들 때까지 일복이야 선용하면 그만. 근데 속마음도 정말로 그렇냐 하면 아니겠지요. 허나 어쩔 수 없다. 그래도 실은 일하기 싫다. 싫은 건 싫은 거다. 놀지도 못한다. 왜 일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욕(만) 얻어듣기 위해 태어난 건가? 뭘 알 수가 있어야지. 하긴 좋아하는 일만 하며 살 수 없는 게 인생. 그래서 뭐! 저리 비켜. 저건 또 뭐야? 소용없어. 다 필요없다고. 뭔 보람이 있어야 말이지. 뭘 해도 재미없기만 해. 그렇게 심심하기도 해서 나는 방사성 탄소(C14) 연대측정 기구와 (탄소 연대측정보다 훨씬 비싼) 열형광 연대측정 도구를 구해서 내 나이를 측정해봤다. 그랬더니 1만살. 뭐? 뻥이다. 그래도 UFC에서 지금 잘나가는 애들을 옛날에 흠씻 뚜들어패며 교육시켜주던 때가 즐거웠다. 근데 또 전화가 오네? 맨날 만나주라며 애원하는 여자들 증말 짜증난다. 연애라면 징글징글하니까. 지겨워서 전화번호 바꿔도 어떻게 귀신처럼 알아낸다. 또 만나서 교제해도 걔네들 말이 이상하다.
   "오빤 꼴통이 아니야 오빠가 개판과 도대체 뭔 관계인데, 오빠가 언제 깽판부린 적 있어? 근데 그런 말을 내게 왜 하는 거지! 누가 오빠 보고 쩜팔이라 그래 내가 가만두지 않겠어. 누가 오빠한테 백판 자빠져 놀고먹기나 하는 주제에 어쩌고저쩌고 막 그렇게 놀려? 내가 가만 두지 않겠어. 딱 기다리라고 해. 그렇다고 그거 다 오빠가 지어낸 말 아니지? 아닐 거야. 왜, 찔려? 내게 뭘 잘못했는데 그러지. 알 수 없네. 그러나 딴 오빠들한테 또 질 수도 없잖아. 안 그래?"
    대체 뭔 소리를 하는 거야. 멍청한 년. 물론 누구를 콕 찍어서 하는 말은 아니다. 말이 심했다만 그러니까 그런 말을 내게 왜 하는 거냐고. 기집애. 아름다움을 예찬해줘도 말귀도 못 알아먹기나 하고. 헛바람 잔뜩 들어 허영심한테 끌려가기만 해. 애쓴다 애써. 그렇다고 걔네들이 미친년이란 말은 아니다. 단지 내가 사랑에 무관심할 뿐. 다정할 수는 있는데 난 아마 무심한가 보다. 적어도 지금은 그렇다. 좌우지간 제 복(福) 개(犬) 줄까. 무슨 개똥 같은 말 쉬지를 않는다. 개 풀 뜯어먹는 공상은 죄다 흑심한테 져버렸기 때문일까? 그게 지금 왜 궁금한데. 다 부질없다. 어차피 인생은 짧다. 물론 우주의 나이에 비하면 말이다. 그런데 이런 개뼉따귀 같은 얘기를 내가 왜 해야 하는 거지? 알 수 없군 그래. 알고 싶지도 않아. 그러든가 말든가. 그나저나 세상사란 곧 돈이다. 물론 돈이 전부라는 말은 아니다. 그렇지만 돈 빼고 뭘 논할 수도 없다. 백날 칼럼 써제끼면 뭘 하나. 수중엔 공기 밖에 잡히지 않음. 두손 두발 다 들었다. 그렇게 소망은 가고 야망도 포기요 꿈도 접었다. 아주 옛날에 말이다. 이럴 땐 아이스크림? 살만 찐다. 그냥 잠깐 좋다 마는 거다. 그런 거 말고. 그래서 나는 사무실 그림을 바꿨다. 진주 귀걸이를 하는 소녀로! 물론 진품이다. 당연히 껌값이지. 안 그래도 저 정도면 나도 쫌만 배우면 금방 따라할 거 뻔하다. 저거 일도 아님. 식은 죽 먹기지. 우리는 독학의 대가거든. 뭐든지! 그럼 별명도 아무거나로 바꿀까? 그러지 말자. 너무 뽐내면 왠지 미안해지니까. 그렇지만 나도 자랑 좀 하자. 근데 어째 가난한 게 억울해서 억지로 과시욕에 헛바람 넣는 거 같은데. 어딘가 모르게 지는 거 같으니까 그러지 않기로. 그러지 말고 나는 집에서 당근를 포함하여 각종 채소, 야채가 들어간 빵을 만들어먹기로 했다. 그렇게 만들다 만들다 포기했다. 그냥 사먹으면 될 걸 뭐 하러...물론 말이 그렇다는 거다. 하여 나는 사무실에서 좋아하는 음악이나 실컷 들었다. 허나 그게 품위유지비 부족을 해결해줄 수는 없었다. 그렇게 나는 세계 멧돼지 협회가 내게 건넨 은밀한 제안을 수락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게 무엇이냐고요? 그걸 벌써 알려드리면 난 대체 뭘 먹고 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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