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 190

from 소설 2021. 7. 30. 21:36

    1

    탁월한 새로움은 우연처럼 우리에게 찾아올까? 행운을 이해하려고 하지 말자. 아니면 운명을 믿어보든가. 적어도 사랑에 대해서는 잘 알지 않나. 그러나 정작 가난한 쉐도우복싱이 꺼내들 수 있는 뒷패는 단 몇 개 되지 않음. 이와 같은 형편에서 판단했을 때 인생은 아름답지 않고 사랑은 더럽다고 예단할 수도 있는데. 타인의 삶을 부러워하는 건 썩 좋은 해법이 아니라는 거. 결국 녀석은 권태에 복종한 셈인가? 그러든 어쩌든 젊음에서 멀어졌다는 건 분명하다. 벌써 마음부터 늙어버렸겠지. 그래서 미소가 썩을 수 밖에. 허나 막살자 좌우명에게 포섭되면 안된다. 하긴 어쩌면 대충 사는 게 다행스러운 건가. 살다보니 커피는 에스프레소, 사랑은 진한 사랑, 술은 독주가 좋긴 좋으나 누가 그걸 모르나!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란 말이 아니라. 귀중한 삶 투정만으로 보내버리면 쓰겠나. 요정을 만나 남몰래 사랑한 추억이라도 지어내든가 해야지 말이야. 어차피 뜨거우면 식는 게 수순 아닌가? 그러면 애초에 연하고 옅으며 풋풋하게 시작할 일. 물론 말이 그렇단 말이고. 아무튼 NB는 전망이 더 좋아지지도 나빠지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 전망이란 대체 무엇에 대한 전망인가? 그걸 알아서 뭐 하게. 알아 봤자 시간낭비다. 왜냐하면 그는 오늘도 팔랑귀처럼 남의 말에 액면 그대로 혹할 테니까. 그렇게 부추김을 받아 이번에는 또 어떤 잡념에 사로잡혔을까? 아 글쎄 보나마나 잠깐 헛생각 하다 마는 것임. 찬란한 젊음, 반짝이는 짝사랑복, 지칠 줄 모르는 열정. ~이 아니라 후보군엔 대타 없음. 그래서 비현실적인 희망을 포기했으나 착찹한 마음에 블로그 업데이트를 기대했는데. 벌써 바보가 되어버렸는데 그게 또 잘될 리 있나. 유행가 몇 번 들으면 질리는 것처럼 결국엔 싫증과 변심과 권태만이. 그러던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났는데 NB의 머리카락은 새파랗게 변해버렸다. 이걸 어쩌면 좋지? 믿을 수 없어. 그러나 거울 속의 저 멍청한 녀석은 어떻게 설명할 건데. 그러게 말이야. 어떡해야 하지? 어쩌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그건 녀석의 일시적인 착시였기 때문에. 여기서 잠깐! 어쨌든 녀석은 아무리 잘 봐줄려고 해도 너무 허접했으므로, 그냥 녀석을 내가 움직이기로 했다. 자, 한번 시작해볼까?
    나는 사무실에서 인터넷 쇼핑을 했다. 고전미가 돋보이는 감성. 옷감은 흠잡을 수 없고 은은한 색채감은 거의 아찔할 지경. 얘만 입으면 한마디로 여자들이 줄줄 따르겠구만 그래. 아무리 싫어도 바텐더한테 독보적으로 손꼽힐 수 밖에 없을 테니까. 정말로 얘만 입는다면 이건 뭐 거의 마술사로 변신할 수 있기 때문에, 따라서 이제부터 숙녀깨나 줄줄 울릴 걱정부터 앞서니. 고민하고 자시고 시간끌 필요 뭐 있어! 당장 구입. 그렇게 엇그제 쇼핑했는데 오늘 사무실로 웬 디자이너가 직접 나를 찾아왔던 것이다. 
   「안녕하세요. 저는 본 제품 디자인 책임자 지아니 도나텔라라고 해요. 선생님이시군요. 제 디자인의 고급스러움을 눈치채신 형씨가 말예요.」
    형씨? 이 여자가 어법이 많이 이상한데? 게다가 지가 디자이너면 디자이너지 왜 여기까지! 심지어 차림새가... 섹시하잖아? 나는 유혹에 넘어가기 싫었다. 그러나 내가 그처럼 매정한 남자였으면 왕년에 그녀들이 어떻게 나만 좋다면서 따라다닐 수 있었겠나. 하여 내가 뭔가 그녀의 마음을 다치지 않도록 답변을 하려던 찰나, 이미 그녀와 나는 소파에 함께 앉아 있었다. 
   「제가 패션계에 미쳐서 사랑도 모르고 살았던 탓에 이처럼 말투가 어색해요. 이해하시죠? 그럴 거예요. 딱 봐도 촉이 둔한 남자가 아닐 거라며 직감이 은근 뭔가를 알려주거든요.」
   「아니 근데...」
   「너무 많이 알려고 하진 마세요. 때로는 모르는 게 좋을 때도 있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여기까지...」
   「고객 행사 서비스에서 우연히 당첨되셨기 때문이겠죠. 싫진 않죠? 그런데 제가요 아니면 이 옷이요! 저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그때 핸드폰 메시지 알람 소리가 울렸다. 아마도 택배 배달인 듯 한데... 그러면 저 문을 열면 내가 주문한 옷이? 그럼 이 여자는 누구지? 벌써 그걸 알아차린 것 같은데. 
   「당신 누가 보냈어?」
   「당신, 방금 오빠 나보고 당신이라고 했어요? 우리.. 어쩌면 너무 일찍 친해지는 거 아녜요? 서두르지 말아요. 시간은 많아요. 저는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됐거든요.」
   「그럼 내가 당신의 연인이 되야 한단 얘기요?」 ~라고 어떻게 말할 수 있나. 아니면 내가 글을 너무 막 쓰느라 지금 나는 헛것을 보고 있는 걸까? 이게 정말 환각이라면 나는 그녀의 언변에 녹아들어서는 안되는데. 왜 갑자기 마음이 약해지는 걸까?
   「있잖아요. 음 몇번 동안은 흰색을 포함한 연한색상의 의류와는 가급적 함께 착용하지 마세요. 아시겠죠?」
    일단 나는 칵테일을 대접하기 위해 간이 탁자로 다가갔다. 마티니를 내려놓으면서 잘 타일러 상태가 많이 안 좋은 듯한 그녀를 되돌려보내기 위해서 말이다. 
   「오빠. 오빠가 보기에 저는 내일이 없는 여자일 거 같아요? 아니예요. 저도 조용할 땐 조용해요. 누가 뭐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입에서 화염방사기를 뿜는 줄 아세요? 저도 다 세침하고 내숭떨며 지적 허영심이 무언지 정도는 알고 있거든요.」
    그렇게 칵테일을 준비한다는 게 그만 그녀의 설변에 그만 나는 정신이 나가버렸기 때문인가? 나는 나도 모르게 음악을 틀었다. 
    Rossini /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 2막 - 백작의 노래 “더 이상 저항해봤자” 
    그때 마침 노트북에 메세지가 떴다. "친구, 도망가. 그녀는 가짜야!"
    가짜? 뭐가 가짜. 그럼 나도 가짜가 되어볼까? 그러든 어쩌든 나는 그녀를 달래서 돌아가게 만들려고 칵테일을 그녀 앞에 내려놓았다.
   「왜요, 이거 마시고 가라구요? 저 여기서 살 거예요. 왜 그렇게 놀라세요? 그런데 우리 어디서 만난 거 같지 않아요? 내가 하나 재밌는 사실을 말해줄까요? 그러지 말고 제 친구들부터 소개하고 시작하죠.」
    시작해? 뭘 시작해! 시작하긴 뭘 시작하냐고, 어? 그런데 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문을 열고서 그녀의 친구들이 왕창 사무실로 들어왔다. 뭐랄까 대학교 패션학과 한 학년 전부. 또는 유명 패션학원 몇 기생 전부? 그렇게 사무실이 꽉 차게 되었다. 숨쉴 틈도 없었다. 때문에 TV에서 영상을 봤든가 인터넷으로 사진을 봤던가. 소형차에 사람 많이 타기 기네스북 기록. 그처럼 그녀의 가슴에 내 홍조 띤 볼에 닿았고. 또 다른 숙녀의 엉덩이는 이미... 그러므로 난 벌써... 바로 이때! 나는 제정신을 차리게 됐다. 왜인지는 몰라도 뭔가 산뜻한 효과음이 들렸던 것도 같고 잘 모르겠다. 그래서 정신을 차리고 보니... 사무실 안에는 여자들이 아니라 웬 개들이 몽땅 들어차 있었다. 얘들은 대체 뭐지? 잠시 황당한 공상을 사실로 딱 믿었던 난 또 뭐고! 그리고 얘네들은 여기 대체 어떻게 들어왔어? 일단 나는 녀석들을 바깥으로 내보내기 위해서 문을 열었다. 그럼 지들이 양떼인 줄 알고서 목장이든 어딘가로 갈 테니까. 그렇게 문을 열었더니 너 잘 만났다...그걸 기다렸다는 듯이 녀석들은 혼신의 힘을 다해서 뛰어갔다. 몇 마리인지도 모르는 개떼들이 전부 다. 그래서일까? 나도 마치 아프리카 들개랄지 킬리만자로의 하이에나인 것처럼 녀석들을 쫓아갔다. 
    그래서 도착한 곳은 어디냐? 웬만한 도시 면적 만한 크기의 UFO 앞이었다. 그렇게 내가 초거대 원반형 UFO 안으로 딱 들어갈려할 때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왜냐하면 침대에서 떨어졌기 때문에. 





    2

    앞뒤가 맞지 않는 공상은 우스꽝스럽기만 하다. 그렇다고 하여 NB가 나이먹고 뒤늦게 친외계인적 성향을 고백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다 갑자기 뜻밖의 발단이 제 발로 찾아왔다? 그럴 리는 없다. 현실은 드라마가 아니니까. 그래서 녀석은 더더욱 영화에 집착하는 건가. 모를 일이다. 알아도 별로 중요하지도 않고 말이다. 결국 뭘 해도 재미없는 일상은 어려서 꿈꾸던 어른의 삶이 아니란 거네. 훨신 기대에 못 미치는 환상감마저 올 뻔하다 말았으니 이해는 되는데. 그 때문에 녀석은 알게 됐다. 자기가 신나는 인생의 목표값을 너무 낮게 설정했다는 걸 말이다. 허나 뒤늦게 그걸 알았다고 어떡할 건데! 고로 새로운 야망을 선뜻 수락하지 못한 체 또 망설이기 일쑤. 고로 녀석에게 신비스러운 인생이란 감당하기에 너무 벅찬 그대일 수 밖에. 그렇지만 사랑과 대망과 행복이란 너무 막연한 대상. 그래서 나비와 나방마저 착각하기 쉬운 것. 그 때문일까? NB는 참기 힘든 욕구 가운데 하필 식탐에 더더욱 빠져들었다. 그런 실정이니만큼 이런 생각 아니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바로. 내 이처럼 따분할 줄 미리 알았다면 진즉 사교계와 친분을 돈독히 해놓을 걸. 그러나 그는 자신에게 오지도 않은 전성기가 끝났다는 사실에 결코 동의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긴 그도 그럴 것이 NB는 사랑에 속고 인생이 불행하기 위해서 블로그를 운영하는 게 아닐 테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주장할 게 뻔하다. 자긴 난봉꾼 기질을 절대로 타고나지 않았다고 말이다. 그럼 뭘 해! 동경하는 사랑의 아름다움 그 비밀스러운 정체는 다름 아니라, 쉿. 재미없다. 그러든 어쩌든 그게 뭐가 중요한가. 순수한 애정이냐 더러운 사랑이냐, 인생이란 거기서 둘 중 하나를 택하는 게임이 아니다. 근데 그게 뭔 말이냐? 몰라. 알 필요없으니까. 하긴 어떻게 아름다움이 모두 만족스러울 수 있을까. 그러니 기쁨도 불완전해도 되나? 허나 그러면 흠모하는 그대가 실망할지도 모를 일. 그처럼 NB는 놀기를 포기하고 일에만 매달렸는데. 그런데 성과가 없단 말이지. 이를 어떡하지? 그렇게 다정함도 부드러움도 포근함마저 모두 그에게서 멀어져가는데. 뭐랄까 결국 새로움이란 유독 내게만 너무 불친절하기 때문이라고나 할까? 그는 뻔트라는 카드를 만지작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뭐야 소망도 야망도 아니고 또 뻔트? 사랑이란 축복받은 몸매한테 한눈파는 게 아닌데. 걘 대체 언제 철들까! 형편없는 찐따 녀석 같으니라고. 이미 어른이기 때문에 꿈과 희망도 모른다는 건가? 알 수 없다. 그래서 녀석은 그냥 짜증과 친해진 것만 같다. 그는 그렇게 사무실에서 뚜껑 없는 차를 구경하다가 퇴근하기로 했다. 
    퇴근길에 나는 공원 놀이터에 들렸다. 거기 조그만 운동장이 있는데 이따금 단일 견종들이 떼거지로 모이거나, 여러 종들이 함께 놀거나 구경하기 좋았으니까. 그렇게 거기에 딱 도착했는데. 기대를 져버리지 않은 채 녀석들은 날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걔네들한테 나는 그냥 이방인에 불과했지만 기분이 그랬으니까 아무래도 좋았다. 그렇게 나는 풀밭과 여기저기를 오가면서 개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녀석들은 사람들로 바껴버렸다. 그래서 나는 인파 한가운데서 넋을 잃을 수 밖에. 그때 누가 지나가면서 내게 한마디 툭 던지고서 그냥 그대로 지나갔다. 
   「우리들 꿈에서 빠져나갈 생각 마시오.」
    뭐라고? 여긴 대체 어디지! 그때 어딘가 내 하체가 어색했기 때문에 나는 아래를 쳐다봤다. 그랬더니 내 신발은 반투명한 무지개빛으로 빛나고 있었고, 내 하체도 투명인간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이걸 어떡하지? 그러다 사람들 얼굴이 동물로, 또 사찰 입구를 지키는 사천왕처럼 보이는 환각 증상에 나는 시달리게 되는데. 제정신이 아니라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는 미쳐버릴 것만 같아서 나는 그곳에서 도망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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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지만 나는 멀리 도망가지 못했다. 왜냐하면 도망갈수록 원근감은 나를 속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어딘가에서 서성이던 중 난 나와 비슷한 3명의 사람을 만났다. 그들과 얘기를 나눠보니 나와 비슷한 줄거리에 따라 나를 만났다고 하더라. 다만 나는 도망갈려다가 그들을 만난는데, 그들은 도망가기에 중간의 성공을 했다가 그러다 다시 미로에 빠져 나를 만났다는 점이 달랐다. 일단 그 3명은 옥수수밭, 안개, 꽃밭을 헤매다가 겨우겨우 그곳을 탈출했는데. 그때 어딘가에서 노랫소리가 들려 우리들은 그쪽으로 저절로 이동하게 되었다. (지금이니까 미리 말한다만 나는 그 음악이 무슨 노래인지 알고 있었다. 내가 그 쉬운 걸 모를 줄 아나? 그건 바로, Il Cielo In Una Stanza - Gino Paoli) 그는 도중 우리는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눴다. 
   「형씨. 형씨는 어떻게 이곳에 오게 되었소?」
   「아까 말씀드리지 않았나요?」
   「그랬군요. 그런데 잊어버렸소. 다시 말씀해주시면 안되겠소?」
   「안되오.」
   「알겠소. 그럼 그댄 내 달콤한 열정이 무엇인지 알아보겠소?」
   「기분이 씁쓸하군요.」
   「알겠소. 미안하오. 설마 내 눈빛이 애욕에 가득찾다고 오해하지 말아주었으면 좋겠소. 왜 대답이 없소? 답하지 않아도 좋단 말이오.」
   「그런데 저 언니는 원래 저렇게 말이 없소?」
   「내 친구 원래 조용해요. 궁금하죠, 왜 좀전에 소리소리 지르며 뛰어다녔는지? 상태가 안 좋아요. 왜, 더 알고 싶으세요? 알고 나면 후회하실 텐데두요?」
    그때 우리 앞에 세 방향으로 옥수수밭, 안개, 꽃밭이 나타났다. 
    그러자 말없이 내가 만난 3명의 인물은 자기들이 이미 경험해봤기 때문인지 앞서 다녀왔던 옥수수밭, 안개, 꽃밭을 향해 자연스럽게 나아갔다. 나는 말릴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분들은 정신이 나간 듯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나만 가만히 있어야 하나? 그렇지만 그들을 따라가면 왠지 다시 돌아오기 힘들 것만 같은 느낌 때문에 매우 찝찝했다. 또 저 세 명 가운데 누구를 따라간단 말인가. 옥수수밭? 안개? 아니면 꽃밭? 대체 여기서 나는 어떻게 탈출하지! 바로 그때 우리가 걸어왔던 행로를 따라 네 명의 사람들이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나는 직감했다. 분명 녀석들은 우리처럼 1명은 남고 세 명은 옥수수밭, 안개, 꽃밭으로 향할 거라고. 뻔한 거 아닌가.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도움을 요청해볼까? 그래서 나는 외쳤다. 여보시오, 여기까지 어떻게 왔소? ~라고 소리쳐 물었는데 당연히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 했다. 그러면 내 모습까지 보이지 않는다는 걸까? 저분들의 세계관과 연애 전적과 심성까지 모두 꿰뚫어볼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 내가 만약 여기서 벗어날 수 있다면 나는 돌아가서 점쟁이로 전업해야 하나 마나를 걱정하게 만드는데. 그렇지만 나는 너무 가엾었다. 왜냐하면 헛생각에 빠져 우리 뒤로 우리랑 똑같이 왔던 4명 가운데 3명이 옥수수밭, 안개, 꽃밭으로 들어가는 뒷모습까지는 목격했으나 뭐랄까 내 대역이라고나 할까? 그분이 어디로 가는지는 깜빡 놓쳤기 때문이다. 오오 이렇게 미련할 수가! 그럼 난 이제 정말 어떡하지? 나는 부쩍 당황했다. 그 때문에 너무도 오줌이 마려웠다. 그렇지만 대충 어딘가 풀숲에다... 아니다. 이상하게 누가 날 보고 있는 것만 같았기 때문에 난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그래서 저기 보이는 저 오두막집에 들어가기로 했다. 언제부터 저게 저기에 있었지? 나는 또 그걸 어째서 이제야 발견한 거고. 그나저나 저 집은 사람이 살지 않는 듯 한데. 설마 저기에 들어가면 막 돼지머리...아니면 젊은이들이 나체 파티를 열고 있는 건 아니겠지? 만약 그렇다면 같이 놀자고 해야 하나, 아니면 나보고 그저 관찰자로써 동영상만 찍어달래며 부탁하면 사양해야 하나. 너무 앞서 나갔다. 이러다 바지에 오줌싸겠다. 나는 뛰어서 저기 보이는 오두막집으로 들어갔다. 여기까지만 기억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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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조실.
   「정말 그분들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 게 맞습니까?」
   「네. 정말이에요. 제가 왜 거짓말을 하겠어요!」
   「그런데 그분들 가운데 몇몇은 예전에 당신과 안면이 있었다고 하던데요?」
   「누가요? 우린 통성명도 나누지 않았어요. 그 몇몇이 무엇 때문에 거짓말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그분들과 친교를 나눈 기억이 전혀 없습니다.」
   「맞습니까?」
   「네. 대체 몇 번을 물어보세요? 당신 내가 누군지 알아?」
   「당신이 누구신데요?」
   「그러는 당신은 누구십니까?」
   「여보세요. 지금 장난해요?」
   「제가 지금 당신과 장난할 기분인 줄 아십니까?」
   「거 참 말씀 이상하게 하시네. 왜, 심문 담당관을 교체라도 시켜드릴까요?」
   「그래주라면 그렇게 하시겠소? 아니지 않소. 허허허.」
   「그러지 말고 어서 보고서 작성하고 일찍 끝냅시다. 저도 이 일만 잘 완수된다면 곧장 바캉스 떠날 거거든요. 형씨도 시간 아끼고 좋지 않소.」
   「아는 걸 다 말했는데 그럼 저보고 뭘 지어내서 말하란 말입니까? 그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럼 사실만 말씀하셨다는 건 잘 알겠는데 블로그에 지어낸 얘기들은 다 뭡니까?」
   「블로그?」
   「네. 혹시 블로거 아니시오?」
   「나는 칼럼니스트입니다. 아재는 심문관이죠?」
   「그렇죠.」
   「그런데 형씨는 왜 미리 계획한 결론에 도달하도록 저를 설득시키지 못하는데요!」
   「혹시 우리 계획이 뭔지 아십니까?」
   「관심없소.」
   「정말 이렇게 비협조적으로 나오실 겁니까?」
   「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소. 형씨야 말로 이제 내게 자유를 선물해주시면 좋겠소. 좋은 말로 할 때 말이오.」
   「좋은 말로 할 때?」
   「지금 나한테 덤비는 거요?」
   「제가 어떻게 감히!」
   「그나저나 그 사람들은 어떻게 됐소? 듣자하니 몇몇은 아직 행방을 모르는 것 같고, 몇몇은 다단계 사업과 연관된 거 아니오?」
   「어떻게 그렇게 잘 아시오?」
   「앞서 그렇게 단정짓도록 단서를 쓱 흘리시지 않았소. 내가 무슨 요정도 마녀도 아닌데 뿐만 아니라 난 왜 내가 여기 앉아있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소. 아시겠소?」
   「제가 선생님 마음이 흑심으로 가득찼는지 아니면 딴맘 품고 어딘가로 떠나고 싶으신지 어떻게 알겠소. 일단 저는 형씨와 달리 굶주릴 대로 굶주린 늑대가 아니란 것만 알아주시기를 바라겠소.」
   「그건 대체 뭔 말이오?」
    그렇게 소득 없는 대화에 지쳤는지 그들은 나를 풀어주었다. 
    이제 나는 어디로 가야 하지? 나는 대체 무엇을 하고 싶은 건가. 생각이 없었다. 





    3

    왜 그녀들은 바들바들 떨며 내게 애걸하는 걸까? 어째서 그러냐 라는 공상부터 잘못됐다. 난 아마 세상을 우습게 보며 까불고 혼잣말하는 게 벌써 취미라니.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정말 뭐라도 해야 할까? 그렇다고 지금 와서 힙합과 로보트춤을 배울 수도 없지 않나. 그러지 말고 그냥 예쁜 영화배우나 자빠트려서 결혼이나 할까? 나는 막살지 않는다. 사석에서 막말로 여자는 쎄고 쎘다고 말해주는 친구도 없다. 나는 벌써 시인이네. 하여간에 밤이고 낮이고 잡생각만 요동을 치는 구나. 이래서 어떻게 행복과 사랑과 희망에 대해 말할 수 있을까. 하긴 뭐 누가 좋아서 투정을 일삼나. 왕년에 내 발에 채이는 게 여자들이었는데 뭐 하러 잡념을 서슴없이 고백하겠나. 일부러 바보 중의 바보로 공인받기 위해서? 말도 안되는 소리! 어쨌든 개뼉따귀 같은 신랄한 잡담 또 시작됐다. 그러니까 그만하자. 재미 하나도 없으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옛날에 말이야 내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처럼 카페에서 즉흥적으로 숙녀를 도화지에 담으면, 내게 넘어오지 않는 여자는 단 1명도 없었다. 또 이상하게 내가 사진만 찍어주면 그녀들은 무슨 요술에 걸린 것처럼 내게 빠져버렸는데. 근데 내가 이런 비밀을 왜 털어놓는 거지? 물론 아는 동생들 명단에 여자만 있는 건 아니다. 내가 키운 남동생들 가운데 카사노바 교습소는 물론 각종 아카데미도 운영하는데, 거기에 특급 초빙하고 싶은 명사가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뭐? 그래서 나는 돈주앙 학원 전화번호를 핸드폰 수신거부 목록에 올려놨다. 큐피트 마술사 별명을 내려놓은지 언젠데. 귀찮아서 살 수가 있어야지. (절레절레) 할 말은 아니지만, 아니다. 아니지. 굳이 이런 말까진 하지 않으려 했는데, 하지 않으려 했으면 그냥 하지 말자. 그걸 듣고서 정말 놀라 자빠질 지경이든 아니든 일단 듣고 봐야, 아니다. 왜냐하면 들어보나마나 뻔한지 아닌지 몰라도 먼 얘기를 하려고 했던지 까먹었으니까. 그래. 놈팡이가 뭘 알겠어. 게다가 허당은 남잔데 내숭을 왜 떨어. 나는 식어버린 피자, 먹다남긴 파스타, 김 빠진 콜라 같은 남자가 아니다. 그런데 남들이 특히 여자들이 그걸 알아주나? 타인의 인생과 숙녀들의 취향이야 존중하면 그뿐. 그러게 신나는 모험을 부흥하기가 어디 쉽나. 뭇여성들은 미모가 물이 오른 반면 난 그냥 권태라는 독이 오른 셈. 어쩌지? 뭘 어째. 오픈카와 펜트하우스는 내 것이 아니다. 그건 그런데 이제 좀 쉴 때도 안 됐을까? 절간의 쥐 같이 배고픈 건 또 뭘까. 마술쇼는 마술사의 마음대로 되는 줄 알았는데. 알고봤더니, 아니다. 쓸 만한 카드는 하나도 없이 악수들에 빽빽히 둘러싸인 형세. 이렇게 젊음은 도망가는 건가? 툭하면 잔소리. 그래서 나는 일찍 퇴근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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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아지트에 도착. 
    별다른 일 없던 중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녀석들이 그랬다. 최근 각자 어디를 다녀왔는데. 하필 그곳이 안개, 옥수수밭, 꽃밭이래나. 나는 느낌 세했다. 얘네 뭐지? 설마 날 미행했나... 아닌데. 그럼 엇그제 걔네들이 얘네인가? 것도 아닌데. 그때 갑자기, 
   「내가 거기서 웬 오뚜막을 발견했는데 나도 모르게 거기 들어갔어.」
   「그래서 어떻게 됐어?」
   「좀 기다려 봐. 그런데 있잖아 오두막 안으로 들어가니 누가 사는 것 같아서 나올려고 했지. 그런데 웬 숙녀가 나타나서 나보고 가지 말래. 나는 지나가다 버려진 집 같아서 잠깐 둘러본다는 게 그만, 그러면서 죄송하다면서 가려고 했어.」
   「그런데?」
    나는 녀석의 말을 더 들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다시 엇그제 멤바를 구성해서 그곳으로 다 함께 가자고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기분 묘해지는 순간 그래서 나는 말없이 조용하게 그곳을 빠져나왔다. 이제 어디로 가지? OK~ 결정했다. 최근 봐뒀던 장소가 있지. 거긴 어디냐? 담배밭이었다. 술 끊은 친구한테 술 권하는 게 아니라 뭐랄까 그냥 담배밭일 뿐. 거기 가면 버려진 카페가 있고 또 운영하지 않던 모텔이 있었다. 그렇다고 무슨 탐방할 뭔가가 있지는 않겠으나 최소한 유튜버들 탐사지 목록에 오를 정도는 아니니까 고로 나처럼 적당히 기분 전환하기에 딱인 목적지였다. 그 담배밭도 농부가 중간에 그냥 포기한 듯 했다. 게다가 코카인 밭도 아니고 담배밭인데 가서 쓱 한번 둘러보고 오는 게 뭐 책 잡힐 과거 만드는 일도 아니었기에. 나는 곧장 그곳으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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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착했다. 그런데 담배 식물은 보이지 않고 전망에 보이는 거라곤... 이게 뭐지? 포도...는 아닌데. 설마 코케인? 그때 누가 내 어깨를 툭 짚으면서 얘기했다. 
   「형씨. 혹시 저기 저 식물이 무엇인지 아시오?」
   「네? 아니요. 모르겠어요. 만약 아신다면 가르쳐주실 수 있을까요?」
   「싫소. 알지만 싫단 말이오.」
   「네?」
   「농담이오. 왜 썰렁했소? 내가 원래 안 이랬는데 세상사에 많이 닳아졌기 때문인 듯 하오. 재미없었다면 미안하오. 허나 조금이라도 웃겼다면 형씨는 내게 빚진 셈이오. 자, 그럼 그 빚을 어떻게 갚을 생각이오. 그냥 입 싹 닫고 몰래 도망치실 양반처럼 보이진 않소만. 보아하니 하시는 일이 지식노동으로 고통받는 듯 하므로 지금 당장 지갑을 꺼낼 생각이오? 그럼 난 뭘 꺼내지. 그렇다고 내가 가죽점퍼 안에 찬 멜빵에서 물총을 꺼낼 거란 상상은 하지도 마시오. 아시겠소? 내가 잡담만 늘어놔서 어딜 가나 웃겨주라던 개그맨 명성에 금이 갔으니. 형씨가 내게 빚진 것과 뭐 퉁칩시다. 그럼 되겠소? 아, 내 소개가 늦었군요. 그런데 오다가다 만난 사람들끼리 격식 차리고 굳이 통성명할 필요 있소? 우리가 지금 드라마를 찍는 것도 아닌데 말이오. 그나저나 내가 봤을 땐 저기 저 식물들은 코카인이 아니오. 단위면적당 최고로 비싼 식물이 뭔지는 모르겠으나 어딘가 모르게 저 녀석들은 잘만 변화시키면 어떻게 다이아몬드에 필적할 만한 영양 식품으로 생산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근데 형씨는 저 식물이 아직도 뭔지 모르겠소?」
   「네. 몰라요.」
   「저건 커피요.」
   「커피요?」
   「근데 혹시 담배밭을 구경하려고 여기까지 온 거요?」
   「그게 그러니까... 그게 말이오... 아니 난...」
   「만약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는 이만 헤어져야 하오. 담배밭은 저기 보이는 무지개 쪽으로 쭉 가다보면 나오니까 말이오. 가다가 마음 바뀌면 다시 돌아오시오. 그땐 내 아리따운 숙녀들을 소개시켜드리겠소. 그럼 형씨는 내게 뭘 해주겠소?」
   「네?」
   「그만 떠나지 않고 뭐하시오? 내 말 듣다보면 그 끝은 없다는 걸 꼭 내 입으로 말해야겠소? 아직도 안 떠났소?」
   「아, 네. 지금 가려고 했어요. 그럼...」
    그렇게 나는 웬 이상한 아저씨가 은근 뭔가를 암시하는 담배밭을 향해 차를 몰고 갔다. 근데 저 아저씨는 뭐지? 뭐 하는 사람인데 나보고 커피나무도 모르냐, 담배밭은 왜 찾느냐. 지가 뭔데 나한테 너도 영화를 많이 봤냐는 식으로 추궁대는데. 가만 생각하니까 마음에 안 드네. 차를 확 돌려? 아니다. 참자. 별일도 아닌데 그럴 것까지야. 내가 안 참으면 누가 참는데. 그래도 거 어째 자꾸자꾸 생각난다 말이지. 기분 언짢아지게 말이야. 그렇게 차를 몰면서 나는 짜증을 가라앉히기 위해 차분한 음악을 틀었다. 
    Vivaldi / 오페라 ‘그리젤다’ RV.718 ‘신포니아’
    그렇게 내가 찾던 담배밭에 도착했다. 그런데 내가 여기 왜 온 거지? 그러게 말이야. 무슨 담배에 고기를 싸먹을 일이 있는 거도 아니고. 어디서 뭐 개뼉따귀를 찾아서 발견하면 동네 똥개한테 갖다주게? 근데 그 똥개가 하필 내 거기를 물면 어떡하지! 그게 뭔 소리야? 개 풀 뜯어먹는 헛소리 지겹지도 않다. 날씨가 더우니 그럴 만도 하니까 말이다. 그러다 나는 저기 보이는 폐업한 카페에 들어가서 구경이나 하기로 했다. 딱히 뭔가가 없어도 그냥 한번 둘러보는 재미가 있긴 있으니까. 그렇게 딱 그 카페에 들어갔는데. 뭐야 이거! 거긴 망하지 않은 카페였다. 운영 중이란 얘기다. 그래서 그냥 나올려고 했다. 





    4

   「왜 그냥 가시오?」
   「네? 모텔이 아니니까요.」 (이렇게 변명하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속칭 대충 떨어질 줄 알았단 얘기가 아니라 나도 모르게 그만... 그랬다는 뜻)
   「나는 숙박업도 겸한다오. (손가락으로 가르키며) 저쪽으로 가시오. 잘해줄 거요.」
    뭘 잘해줘? 모텔 이름은 피아첸자였다. 피, 뭐? 근데 나는 왜 저분한테 모텔 어쩌고저쩌고 그렇게 말했지? 그나저나 일단 마음이 바꼈다. 내가 모텔을 왜 가? 그래서 변심은 나를 자동적으로 공원 쪽으로 드라이브하도록 만들었다. 근처 경치도 둘러볼 겸 고독이 싫증나면 바로 돌아갈 수 있을 테니 괜찮은 선택이었다. 그렇게 둘러보면서 웬 자판기 앞에서 멈췄다. 나는 자판기에서 콜라를 뽑았다. 그때 웬 청순한 미녀가 내 차에 탔다. (조수석이 아니라 운전석) 뭐야 저 여자는?
   「저기, 아니 왜,」
   「뭡니까?」
   「네? 이거 제 차인데요.」
   「그래요?」
   「네.」
   「그걸 누가 몰라요?」
    그런데 이 여자는 왜 상남자처럼 얘길 하는 거지? 목소리랑 외모만 여자지 마치 드라마에서 성별이 바뀐 듯 내게 말하고 있잖아? 누굴 바보로 아나?
   「혹시 모르실까 봐...」
   「나는 그 정도도 모르는 숙녀는 아니니까 안심하시오.」
    그러면서 그녀는 눈빛으로 저쪽을 가르켰다. 뭐야 저건? 최고급 오픈카였다.
   「설마 저거랑 이걸 바꿔 타자는 뜻입니까?」
   「(끄덕끄덕)」
    그녀는 곧장 가버렸다. 이건... 처음 봤는데... 나 잡아봐라? 파라솔과 비키니와 푸른 바다와 시원한 바람. 해변가에서 그녀와 나는 연인? 나는 직감했다. 이건 아마 꿈일 거라고. 그런데 꿈이 아니다. 그때 내 손가락이 오그라들기 시작했다. 등이 굽어질려고 했고 발과 종아리에 쥐가 났다. 필경 이건 도플갱어가 내 책상에서 글을 쓰다가 막히니까 종이를 찢어서 구긴 다음 뭉쳐서 집어던질려고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그걸 몇 번 당하고 보니 이제는 나도 대처법을 알게 됐다. 따라서 나는 구부려지려는 손가락에 힘을 줘서 폈다. 쥐가 오른 종아리도 힘을 빡 줘서 꾹 참았다. 막 그러니까 상상 드라마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심지어 잘만 하면 그녀와... 그냥 이걸 현실로 굳히고 내 본분이든 숙주든 도플갱어가 원하는 거 줘버리지 뭘! 그렇게 나는 그녀를 따라갔다. 그렇게 인적이 없는 도로에서 나는 그녀의 옆으로 달렸다. 그때 그녀는 내게 윙크했다. 설마... 그러면서 그녀는 내 오픈카 안으로 웬 명함을 던졌다. 우리는 뮤직드라마라도 찍는 것처럼 슬로우 모션 상태였기 때문에 나는 그 명함에 씌여진 글씨를 읽을 수 있었다. 예지몽 주식회사 누구누구? 뭐야 말단 경리 아가씨잖아. 그럼 더 좋지? 나는 이게 자각몽이든 악몽이든 끝까지 가보고 볼 일이라고 판단했다. 그때 반대편에서 또 옆 교차로에서 내 차랑 똑같은 자동차 동호회원들이 떼거지로 몰려들어 우리와 합류했다. 그래서 나는 누가 누구인지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런 젠장! 좋다 말았잖아? 그럼 이제 어떡한담...! 일단 나는 사무실로 돌아가기로 했다. 
    장면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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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사무실로 가던 중 뒤에 누가 따라오는 걸 감지했다. 그래서 차를 세웠다. 그랬더니 뒷차도 멈췄다. 안에서 경찰이 내렸다. 그런데 복장이... 우리나라 경찰이 아니라 외국 드라마에서나 보던 모습이었다. 
   「신분증 제시해주세요.」
   「네?」
   「귓구멍이 막혔소?」
   「내 귓구멍은 막히지 않았소.」
   「그럼 어디가 막혔소?」
   「꽉 막힌 당신이 나보고 지금 어디가 막혔냐고 물었소?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소?」
   「흐흠. 농담이 지나쳤소. 인정하오. 미안하단 말이오. 일단 신분증 좀 봅시다.」
    그러는 당신부터 관등성명 대시오. ~라고 말할려다가 나는 기세에 눌렸다. 그래서 신분증을 찾는 척했는데. 바로 그때 진짜 경찰차가 사이렌을 울리면서 내 차 앞에 멈췄다. 그렇게 외국 경찰 복장을 한 아저씨를 잡아서 미란다 원칙 읊고, 수갑 채우고, 차에 태워 연행해갔다. 보아하니 임의동행이 아닌 게 분명했다. 긴급체포...면 이미 영장을 받았단 얘기잖아? 그 정도는 나도 안다. 
   「선생님. 뭐 뺏긴 거 없어요?」
   「네. 신분증을 보자길래 지갑을 찾던 중, 아까 그녀와 사랑을 했어야 하는데. 딴년들 다 따먹고 다지지 말고 나랑 연애합시다 라고 말하는 듯하던 그녀의 표정.」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아무튼 긴급수배범은 우리가 체포해갑니다. 우리쪽도 경쟁 붙었거든요. 그럼 이만.」
    그 경찰이 경례하길래 나는 나도 모르게 왼손으로 경례를 받았다. 이건 뭐지? 오늘 참 이상한 날이다. 숙녀를 놓쳤지 가짜 경찰도 보냈지. 진한 사랑 때문에 힘을 빼도 모자른데 힘 빠지게 이 무슨 삼류드라마도 아니고. 내가 지금 여기서 뭐 하는 거지? 바로 그때! 떠나려던 경찰은 내게 다시 돌아왔다. 
   「저기 혹시 모르니까 신분증 좀 봅시다. 의례적인 절차니까 불편해도 협조해주시죠. 우리도 웬 쥐새끼 같은 잡법 때문에 요즘 골치가 아파요. 자세한 얘기는 말씀드릴 수 없지만,」
    그때 저쪽에서 나와 얘기하는 경찰의 하급자로 보이는 경찰관이 다가오더니 서로 귓속말로 쑥덕쑥덕. 그러다 말겠지 그러면서 뭔가 의심은 착오로 판명나겠지 예상했는데. 남은 경찰 1은 무전기 답신을 기다리고 핸드폰 화면으로 자료 결과를 검토. 그때 또 돌아갔던 동료는 저쪽에서 달려오더니 냉큼 경찰 1을 날라차기로 퍽~! 정말로 강타했다는 게 아니라 자기들끼리 어떤 신호인 듯. 아니 잠깐만... 날라차기? 설마, 얘네들도 술값 서로 낼려고 경쟁하다 딱 결판 짓는 특별한 기술이 다름 아니라 뭐, 날라차기? 하여간에 그놈의 날라차기 정말 징글징글하다. 하여튼 징하구만 그래. 도대체 "형 저도 날라차기 맞고 싶어요"~라는 명대사는 어떡해야 잊을 수 있을까?! (절레절레) 그렇게 자기들끼리 진지한 협의와 심각한 대화가 끝나자마자 나는 마지막 말을 듣고야 말았다. 그 어떤 얘기가 내 귓가에 들려버렸다. 이 뚜껑 없는 차가 도난신고 당한 차래나 뭐래나!
   「서까지 같이 가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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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랑 똑같은 수법에 차를 빼앗긴 사람들 여기 나까지 총 3명. 1명은 옥수수밭, 1명은 안개 속에서, 1명은 바로 나. 이때까지 또 거기서 풀려날 때까지 나는 그녀가 내게(만) 전해준 명함을 깜빡 잊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신분 확인됐고 수사도 어느 정도 진척되던 중 풀려나게 되었다. 





    5

    나는 집에 와서도 그 명함을 기억해내지 못했다. 그건 내 옷 주머니에 있었는데. 그걸 왜 뒤늦게... 만약 일찍 발견했다면 나는 그녀와 여행을 떠났을 테고, 여행을 떠났으면 그럼... 첫날밤에 단지 샴페인만 터트렸을까? 그럴 리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왜 그걸 일찍 생각해내지 못했지? 일단 너무 앞서나가면 안되니까 순서에 따라 차근차근 얘기하자면 나는 다시 심심함이라는 올가미에 걸려들었다. 재미없음이라는 발찌는 반경 얼마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나를 협박했다. 나는 그렇게 권태의 노예가 되어 가짜로 막 희망과 꿈을 지어내고 있었는데. 또 경찰서에서 만난 나까지 3인방. 안개, 옥수수밭, 꽃밭. 목록에서 빠진 인물을 찾아 수사하고 뭔가를 찾아내면... 그분들과 헤어지는 것도 아니었는데. 난 바보다. 다 놓쳐버렸다. 사랑과 열정도 바닥났다. 그럼 어떡하지? 어떡하긴 뭘 어떡하나. 일이나 해야지. 
   <신나는 모험과 아름다운 절정에 혼미할 지경, 마침내 우리는 개꿈에서 깨어난다. 그 우리가 대체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NB는 탐미주의자이기를 포기했다. 왜냐하면 절망과 상심과 체념과 상처에 된통 당할 뿐이기 때문에. 결국 사랑에 실패하니까 인생에 패배한 느낌 짙은데. 그러나 미리 실망할 필요는 없다. 역전승이라는 게 있거든. 세상사가 그렇다. 말하자면 육식동물은 초식동물을 잡아먹는 반면 그 반대는 성립될 수 없는 법. 그래서 초식동물은 트로이의 목마가 될 것인가, 아니면 회전목마 근처에서 숙녀를 꼬실 것인가. 꼬, 뭐? 지긋지긋하다. 사랑론이라면 징글징글 왜 안 그러겠나. 그처럼 녀석은 TV를 너무 많이 봤기 때문에 멍청해진 건가, 아니면 영화를 너무 좋아해서 허접한 건가. 뭐가 됐든 사랑의 성적표가 영 초라했으므로 그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하긴 비너스와 모나리자와 아르테미스가 어떻게 제 발로 그에게 찾아오겠나. 산이 오지 않는다면 우리가, 아니다. 보아하니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에게 알맞는 격언이 생각났다. 바로, 지갑이 무거우면 마음은 가볍다. 그 말이 뭐겠나. 지갑이 가벼우니까 마음이 무겁지! 게다가 그녀를 자빠트리지 못하니까 지 혼자 소파에 자빠져 TV나 보지. 그러면서 혼잣말은 젊음을 희생했는데 신비주의로부터 구원받지 못했대. 그게 뭐야? 순 엉터리 낭만주의자. 그렇게 공상할 동안 욕망을 만족시킬 기회는 점점 줄어들 수 밖에. 결국 좋건 싫건 항상 권태와 직면. 제발 한번만 만나달라던 그녀들의 애원에 순순히 응할 걸 그랬나, 아직도 그런 생각. 오, 저런! 푼돈은 아꼈을지 몰라도 청춘을 허비했군. 게다가 이제 와서 어떻게 여자 꼬시는 방법을 독학해. 못해. 누가 말리지도 않을 거야. 근데 정작 전례 없는 슬럼프라는 걸 본인만 몰라. 그러니 멜로드라마로부터 버림받지. 그렇다고 타락하여 방탕에 젖을 수는 없는 일. 그래서 막살지는 않는데. 고로 싫어하는 기색없이 대충 살게 되는데.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운명적인 사랑이 시작됐다? 그럴 리 있겠나. 그처럼 물 오른 미모와 굶주린 늑대는 정녕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란 말인가! ~라고 걸핏하면 몽상에 잠기니까 여태 혼자지. 놀고 있네. 가련한가? 미련하다. 멍청. 허접. 결국 사랑의 의미마저 더러워짐. 그러다 마침내 그는 허영기를 불신하기로 했다. 허나 지켜질 수 없는 약속처럼 변심에게서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데. 
    그래서 그는 무턱대고 소풍을 떠났다>
    말 나온 김에 진짜 소풍이나 갈까?  
    그때 나는 생각했다. 내 차는 어떡하지? ~라고 말이다. 그러자 갑자기 차를 바꿔 탄 그녀한테 받은 명함이 기억났다. 아차, 그걸 까먹고 있었네. 서둘러 명함을 찾았다. 다행히 옷은 빨지 않았으니 주머니에 들어있었다. 그 명함에는 달랑 웹사이트 주소만 적혀 있었다. 주소는 www.wearealiensinearth.com 뭐야 이거? 인터넷 창을 띄어 그 주소를 입력해보니. 커피밭으로 와 달라! ~라는 문장 딱 1개만 보였다. 뭐지, 정말 이거 뭐지? 그럼 또 난 그 숙녀가 오란다고 정말로 가야하는 걸까? 이게 운명인지 아닌지 장난일까 사랑일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가지 않았을 때 불이익과 진한 사랑의 예감을 무게 저울 양쪽에 올려놓을 수는 없었다. 다만 남몰래 혼자 영화를 찍는 기분이었다고나 할까? 그렇게 나는 커피밭에 가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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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피밭에 도착. 정말로 저기에 내 자동차가 있었다. 지금 와서 말이지만 탈 만큼 탄 저 똥차. 굳이 애써 찾지 말고 저속한 표현마따나 뽑아먹을 만큼 뽑아먹었으니 딴 차를 사도 괜찮을 텐데. 딱히 정들었다는 느낌도 그다지...그래도 반갑긴 했는데. 뭐야? 자동차에 타서 딱 사무실로 돌아갈려는데 하필 조수석에 또 메모장이 붙어있다니. 
   "담배밭에 가보시오."
    뭐야 지금 나랑 사랑하자는 거야? 아니면 뭐 똥개 훈련시켜, 어? 이 여자가 증말 보자 보자 하니까... 흥분할 때가 아니다. 게다가 담배밭까지 가보는 게 어려운 일도 아니다. 심지어 늑대의 본분을 잊어먹어서도 안된다. 또 혹시 보물을 잠깐 보관만 해달라 랄지 지폐 가득한 007 가방이 날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니까. 그렇게 인근 담배밭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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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배밭에 도착했다. 그리고 나는 그녀의 가방을 발견했다. 도시에서라면 이 가방에 손대지 않는 게 상책일 텐데 지금 나는 드라마를 찍는 주인공이기 때문에 서둘러 그녀의 가방을 열어봤다. 별다른 내용물은 없었다. 다만 어떤 좌표값이 적혀 있는 종이 쪽지가 가방 안에 있었다. 이건 또 뭐지? 설마 나보고 이 좌표값으로 와달라는 건가? 안 가볼 수 있나! 따라서 내가 그 좌표값까지 가봤더니 어떻게 됐더라? 
    내가 그 좌표값에 가봤더니, 거긴 다름 아니라 옥수수밭이었다. 이게 뭐야? 좀 더 면밀히 탐색 후 알게 됨. 옥수수밭 내부에 꽃밭이 있는데 그게 대마밭이었음. 그렇지만 그마저 위장! 즉 양귀비꽃밭이긴 하나 이를 테면 양귀비꽃 300종 가운데 마약성 금지 목록은 단 몇에 불과. 그럼 여기서 끝일까? 그 지하로 들어가는 작동 버튼을 찾는 게 급선무인데. 근데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내가 여기서 왜 이래야 하는데! 내가 정말 허수아비도 아니고 꼭두각시처럼 보물찾기 놀이를 이 나이 먹고 해야 하는지 정말 모를 일이었다. 그러다 나는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이건 둘 중 하나일 테니까. 첫째 똥개 훈련, 둘째 덫! 왜냐하면 일단 원맨쇼는 아닐 테니까. 그렇지 않나! 이러니까 여기에 엮이면 나중 골치아파질 게 뻔하므로 절대로 말려들어서는 안된다. 그렇게 나는 집으로 도망갔다. 





    6

    오늘 나는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더위에 지쳤나? 그럴 수도 있는데 꼭 다람쥐 챗바퀴 도는 삶에 싫증났단 게 아니라. 뭐랄까 이건 사춘기 아니면 갱년기 같은 증상일 수도 있는데. 아마도 번아웃 증후군이 의심되는 상태. 그럼 무작정 도망갈까? 갈 데는 많은데 오라는 데가 없다. 많이 놀아봐서 자유도 재미없다는 걸 모르는 나이도 아니다. 근데 나이 얘기를 왜 하나. 그렇다고 날씨가 짜증난단 말은 아니다. 근데 내가 뭔 얘기를 하고 있지? 이럴 게 아니라 오늘 같은 날은 그냥 일찍 퇴근하는 게 상책이다. 그래서 나는 일단 밖으로 나왔다. 그렇게 동네를 한 바퀴 돈 다음 집으로 가려고 했다. 그런데 내 옆으로 웬 오픈카가 지나가다가 멈췄다. 
   「저기요 아저씨. 괜찮으시면 이 근처 오리배 타는 공원이 어딘인 줄 알려주시겠어요? 어! 오, 오빠다. 오빠 맞지? 그치?」
   「네?」
    그녀는 갑자기 마스크를 벗었다. 그녀였다. 며칠 전... 우리끼리 뭔 일이 있긴 있었는데. 그게 딱히 드라마 같은 일도 아니었을 뿐더러 그걸 꼭 우리가 친해졌다고 판정하기에도 상당한 무리수가 있었다. 그런데 이 여자는 내게 너무 살갑게 구는데, 왜일까? 도대체 그 꿍꿍이가 뭐길래...!
   「오빠 왜 말이 없어? 설마 내게 벌써 반한 거야? 아니면 우리 아직 친해지지도 않았는데 날 어떻게 한번 해보겠다는 흑심이 발동한 거야, 응? 뭐야? 오빠 지금 당황했어? 허를 찔렸구만. 혹시 진짜로 그렇게 생각한 건 아니지?」
   「아니 그게. 아, 좀 전에 오리배 어디서 타나 물어보셨죠?」
   「오빠. 실망이야. 서운하게 왜 이래? 왜 갑자기 존댓말 하는데! 우리가 그런 사이였어?」
    그럼 우리가 몰래 사랑하는 사이였니? ~라는 말이 딱 목구멍까지 올라왔다마는 차마 할 수 없는 말. 왜냐하면 수다쟁이 그녀를 자극했다가는 내 귀에서 피가 나올지도 모르기 때문.
   「오빠. 그러지 말고 일단 타. 응?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그렇다고 헤어질 수도 없잖아. 안 그래?」
    나는 어정쩡하게 오픈카에 탔다. 또 왠지 심심한 날 바람도 불지 않는데 무턱대고 선풍기 앞에만 앉어있는 것도 모냥새가 좀 그랬기 때문이라고나 할까?
   「오빠. 나 안 기다렸어? 우리 처음 만난 날 좀 그랬지? 그게 다 우리가 영화 주인공 같은 만남이기 때문에 그런 거야. 그게 뭔 줄 알아? 뭐겠어 운명이지. 그럼 나는 이미 사랑에 빠진 걸까? 부끄럽게 그런 얘긴 하지 말자. 오빠 요즘 어떻게 살았어?」
   「응?」
   「아, 우리가 서로 아는 게 별로 없구나. 뭐 차차 알아가면 되는 것 아니겠어? 나는 내 친구들 오빠한테 전부 소개시켜줄 수 있어. 오빠는?」
   「나?」
   「아, 오빠 친구 없구나. 괜찮아. 내가 오빠를 친구 많은 남자로 만들어주면 되잖아. 나는 할 수 있어. 왜 부자가 되고 싶어? 내가 만들어줄께. 왜, 내가 사기꾼처럼 보여? 이렇게 이쁜 사기꾼이 어딨니. 오빠도 참! 그러지 말고 우리 함께 능청 대회에 나가보는 건 어떨까? 그렇다고 오빠 혼자 세계 마초협회에서 심부름이나 하도록 내가 내버려둘 수는 없는 거잖아. 안 그래? 엇그제 우리가 영화 같은 데이트를 할려다가 뭔가 일이 틀어진 건 다 오늘을 위해서였어. 응? 내려갔다가 올라오고. 잡어한테 농락당하는 날이 있으면 대어를 낙는 행운도 있는 법. 이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고. 몰라? 왜, 오빠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남자야? 만약 그렇다면 그래도 괜찮아. 왜냐하면 내가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닌 여자가 되어 오빠를 재밌게 만들어드리면 되니까. 다 그런 거 아니겠어? 그러지 말고 이리 가까이 와 봐. 아니다. 이따 차에서 내려서. 그럴 게 아니라 일단 커피나 마실까? 오빠 뭐 마실래? 오빠 뭐 먹고 싶어? 뭐, 여자? 이 오빠가...!」
   「내가 언제...」
    대체 얘는 뭐하는 애지? ~라고 생각하자마자 그녀는 검지로 내 입을 막았다. 그런데 운전 중에 돌맹이를 밟았기 때문일까? 그녀의 손가락은 하필 내 입으로 들어가버렸다. 그렇게 그녀의 손가락은 막대사탕이 되어 나는 그녀의 손가락을... 손가락을... 이게 대체 뭐하는 상황이지? 
   「오오, 오빠 섹시한데? 근데 오빠 계속 그러고 있을 거야? 오빠 영화를 너무 많이 봤다고 생각하지 않아? 나는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어. 그나저나 오빠 뭐 바쁜 일 있는 건 아니지? 있으면 어쩔 건데. 내가 다 처리해줄께. 그럼 되고. 바쁜 일 없으면 나랑 데이트하면 되고. 좋지? 나는 못이긴 척 바쁘나 안 바쁘나 고민 좀 할려고 했는데. 뭐야, 이 오빠가 벌써 나를 꼬셨잖아? 오빠 학교 다닐 때 공부 안했구나. 와, 오빠 여자 금방 꼬신다. 설마 오빠도 아는 동생들한테 막 그랬어? 내가 저년들 싹 다 꼬셔줄께~! 요즘도 그런 바보들이 있을까. 그렇다고 오빠가 바보란 말은 아니야. 만약 오빠가 바보일지라도 내가 오빠를 천재로 만들어줄 자신 있어. 응? 오빠, 날 한번 믿어봐. 나야 나. 응? 나 알지?」
   「저기... 당신, 아니 난 네 이름 아직 모르는데.」
   「뭐?」
   「」
   「내가 왜 오빠한테 내 이름을 가르쳐주지 않았는지 알아? 모를 거야. 그럼 내가 가르쳐줄께. 왜 내가 오빠한테 내 이름을 가르쳐주지 않았냐. 나는 이름을 바꿨거든. 하긴 내 친구들 가운데서도 내 진짜 이름 아는 애들 거의 없어. 나는 정말 알 수 없는 여자거든. 호호호. 아, 오빠한테 멋진 숙녀로 보이고 싶은데. 유행가 이거 너무 촌스럽지 않아? 그런 의미에서 내가 최근 깜짝 놀란 음반이 있는데 들어볼래?」
   「」
   「Johannes Brahms / Violin Concerto in D major op.77
    바이올린은 Michele Auclair. Wiener Symphoniker/Willem van Otterloo 1958 
    내가 이 음반 어떻게 구했는 줄 알아? 그걸 말해주면 오빠가 따라할지도 모르니까 알려주지 않겠어. 다만 내가 이 음반을 구하기 위해 장장 5년 6개월을 쫓아다녔다는 건만 알아둬. 왜 듣기 싫어? 들어봐. 그녀가 왜 후진 양성에만 노력했는지 얄미울 지경일 테니까. 그런데......」
    나는 침을 흘릴 뻔 말 뻔 졸지는 않았는데. 정신이 없었다. 그래서 그 다음 그녀가 어떤 얘기를 하는지 하나도 몰랐다. 간혹 뭔 얘긴인지 알아채어도 다 한 귀로 들어갔다가 한 귀로 나가버렸다. 그렇게 우리는 오리배 타는 공원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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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빠. 남자가 왜 그처럼 비실비실해? 농담이야. 근데 오빠 맥없는 남자야? 오빠. 남자는 하체야. 알아? 모르진 않겠지. 그럼 좀 힘차게 굴려. 왜 날씨가 너무 더워? 하긴 오늘 같은 날 오리배 타는 사람이... (손차양) 덥긴 덥네. 그렇지만 나중 후회하지 않을 걸. 호호호. 그런데 오빠가 날 꼬신다고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넘어가버린 난 또 뭘까? 허허허. 뭐야, 저 옆에 오리배는... 손에 미니선풍기를 들고 있잖아? 오빠는 저런 것도 챙기지 않고 뭐했어? 아, 내가 오빠한테 잔소리하려는 게 아니다. 그렇지만 쟤네들은 오렌지 쥬스를 들고 있고. 근데 쟤들 옷차림이 저게 뭐니? 촌스럽게 말이야. 저 촌년 화장도 이상하게 했어. 지랑 안 어울리는 멀쩡한 남자 또 어떻게 꼬셨나 몰라. 멍청한 년. 진짜 그렇단 말이 아니라. 오빠가 날 좋아하는 표현을 잘 하지 않으니까 그렇지. 왜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아? 오빠 뭐 좋아하는데! 서두르지 말자. 시간 많잖아. 인생 길다 오빠! 그런 의미에서 피카소 소품 저렴하게 나온 거 있는데 하나 선물해줄까? 오빠는 렘브란트보다 뒤피 쪽인데. 이따 우리집에 들려서 아무거나 찍어. 걸려있는 거 다 진짜니까. 찍어서 오빠 가져. 오빠가 어디 내 마음만 가졌나? 근데 나는 이렇게 다 주려고 하는데 왜 오빠는 말을 안 하는데? 왜, 내가 겁나? 도망갈 생각 꿈도 꾸지 마. 오빠는 내게서 멀어질 수 없어. 나한테 찍혔거든. 허허허. 그게 무슨 말인지는 두고 보면 알게 될 꺼야.」
    그런데 내가 아무리 환상머신 별명 챔피언벨트를 빼앗겼을지언정 왜 하필 수다머신한테 농락당해야 하는 거지? 알 수 없었다. 왜냐하면 정신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근데 오빠 여자 만날 때만 말수 없는 거야? 아니면 아직 여자한테 환상이라도...! 만약 그렇다면 내 그대를 만족시켜드릴 수 밖에. 호호호. 딱 걸렸어. 기다려.」
    그렇게 나는 그녀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 하나도 모를 사이에 우리는 왠 이상한 통로로 들어와버렸다. 
   「들어와. 내 별장이니까. 오빠를 위해 준비했어.」
   「넌 정말 거짓말이 입에서 자동적으로 나오는구나?」
   「어? 잘 못 들었어.」
   「아무 말도 아니야. 너 이쁘다고.」
   「어머 오빠는. (그러면서 여지없이 그녀는 내 팔을 툭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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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나보고 씻으라고 했다. 그럼 뭐 내가 못 씻을 줄 알았나? 날씨가 너무 더웠기 때문이라고 핑계대는 게 아니라. 이상한 분위기 탓에 그냥 그렇게 됐다. 그렇게 다 씻고난 다음 그녀는 다짜고짜 나를 침대에 눕혔다. 그리고 내 양팔과 양다리를 수갑채워 침대에 X자로 날 결박했다. 뭐야 이거? 그러면서 그녀는 어디서 배웠는지 최면술로 나를 기절시켰다. 





    7

    내가 잠에서 깨어났을 때 장소는 바뀌지 않았다. 다시 말해 꿈도 아니었고 도플갱어의 수작 역시나 아니었다. 그리고 손과 발이 자유로운 걸 보니 그녀가 일시적으로 묵는 척만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여기는 대체 어디일까? 또 나는 대체 몇 시간을 잔 거지? 아, 핸드폰이 있구나. 앗, 깜짝이야. 겨우 30분 잔 거잖아? 난 것도 모르고. 나는 이 창고인지 비밀 기지인지 모를 장소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여기는 햇볕이 들지 않는 대신 매우 깨끗했다. 또 곳곳에 잠망경 같은 게 있는데 그걸 들여다보니 무슨 침대가 보였다. 나는 직감했다. 여긴 놀이공원 사장의 별장을 (직접) 염탐할 수 있는 비밀 공간이라는 것을. 또 각 방에 CCTV 장면을 비춰주는 화면들이 가득했다. 옛날에 언제던가 나이트클럽 사장실은 가봤는데, 오늘은 놀이공원 사장실을 원격으로 보게 되다니. 이런 날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그렇지만 나는 순진하게 그걸 모두 믿을 수는 없었다. 때문에 이건 아마 모두 정밀히 가공된 설정이라고 단정했다. 그렇지만 지금 생각하니 그때 데스크탑만 살펴본 게 아니라 소파 앞 탁자에 놓여진 노트북을 열어본 게 오히려 행운이었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일단 데스크탑에 펼쳐진 상황들은 모두 그걸 보고 속아넘어가는 누군가를 위해서일 테고. 그걸 신뢰하지 못하는 나 같은 허당들은 마저 맥북으로 정신차리도록 만들려는 속셈이 작전계획일 수도 있는데. 그런데 거기서 본 걸 왜 나는 모두 발설하지 않느냐? 왜냐하면 나는 아직, 아니 어쩌면 영영 그녀의 정보망을 벗어날 수 없을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 때문에. 그러든 어쩌든 나는 데스크탑 설정들을 믿지 않았다. 다만 맥북에서 본 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인 걸 말할 수 없는 심정. 아마 끝까지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느낌. 기분 세하다만 그래도 조금만 맥북에서 봤던 걸 얘기하자면 이렇다. 
    맥북에는 동영상들과 어떤 특이한 엑셀파일이 있었다. 동영상들은 웬 폴더별로 나눠져 있었는데. 그걸 하나씩 열어봤더니 나처럼 그 비밀 기지로 오기까지 친해진 과정. 함께 나눈 얘기들. 그게 모두 초소형 카메라로 찍어서 기록되어 있었는데. 다른 폴더를 열어보니... 이게 바로크 이전 음악인가 아니면 미사곡? 오페라? 뚜껑 없는 차를 타는 그녀. 그녀가 혼자서 티본스테이크를 먹는 장면인데. 설마... 그 스테이크는...? 나는 갑자기 인도네시아 훈제족이 생각났다. 그럼 나는 왜 풀어주는 거지? 바로 그때 다른 동영상 파일을 열어봤는데 그녀가 비키니를 입고서 햄버거를 만듦. 이어서 햄버거가 완성되자 비키니마저 모두 홀라당 벗음. 곧이어 그 나체 상태로 직접 만든 햄버거를 먹었고(그 모든 과정들을 정성스럽게 동영상으로 만듬). 그러고 나니 막 그녀의 얼굴에서 눈, 코, 입, 귀, 눈썹...이 자유자재로 온 몸을 떠돌아다는 것이었다. 코가 꼬리뼈 쪽으로 옮겨가고 눈은 이마 가운데를 거쳐서 배꼽 옆으로 또 이어서 손 바닥으로. 귀도 피부 바깥을 이동하다가 뭐랄까 창자 안쪽을 헤엄치다가 다시 피부 바깥으로 부상. 뭐야 이거... 컴퓨터 그래픽이기를 바랬는데... 정말이야? 나는 다음으로 엑셀파일까지 열어보고 나서 알게 됐다. 무엇을 알게 됐는지는 말해서는 안된다. 어쨌든 나는 그렇게 그곳에서 도망쳤다. 물론 중간에 아무런 일 없이 무사히 집으로 왔다. 그럼 그녀는 날 가지고 노는 건가? 아니면 혹시 내 애독자...! 에잇, 설마... 아닌가? 아닌 게 아닌가? 모르겠다. 알 수 없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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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이 지났다. 어느 날 나는 사무실로 출근해서 그녀에 대한 희곡을 쓸려다가 마음을 바꿨다. 혹시 그게 내 마지막 작품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 농담이고. 그냥 나는 평소처럼 다음과 같은 낙서를 컴퓨터 메모장에 끄적거렸다. 
   <나는 꿈 속에 살고 있는 몽상가가 아니다. 제정신이다. 난 미치지 않았다. 시원찮은 돈벌이 때문에 투정하는 게 아니다. 솔직히 말해 기 막힌 팔자의 꼭 다문 입은 아마도 응큼한 상상과 친하지 않을까 라는 시상도 지겹다. 환상기계의 거물이 되고 싶다는 희망의 끈은 옛날에 놨다. "대체 뭘 꾸물대는 거야?" 라는 도플갱어의 추궁마저 한 귀로 들어와서 한 귀로 나간다. 이런데 미지의 이상을 탐구하려는 열망이 다 뭔 소용인가. 슬럼프 극복 다음 곧바로 대망 충족한다는 보장이 있나? 관심없다. 그럼 악마적인 신비감이 느껴지는 카리스마가 돋보이는 주인공을 상상해서 대리만족? 들뜬 권태에 굼뜬 행복이다. 눈에 띄도록 인생이 부쩍 재미없어진 기분. 왜일까? 느낌 세하지 않을 수 없음. 이러니 미적대는 발단과 꿈쩍도 않는 전개만 일쑤. 그러니 흥미로운 절정부터 상쾌한 쾌감, 해피 엔딩까지 그 모두는 정체될 수 밖에. 이해할 수 없는 신비와 납득 못 할 환상? 넉넉히 받아줄 수 있는 불손한 앙탈일 뿐이다. 그런데 최근 꿈자리도 뒤숭숭하고 어쩐지 뭔가 갑자기 나타날 것만 같은 예감은 또 뭐지? 그러지 말고 점집에나 가볼까! 가지 말자. 혹시 모르는 막후의 비밀스러운 음모, 다 드라마 속 얘기니까. 나는 결국 사랑의 패자다. 그런데 밀애의 행운을 어떻게 수소문하겠나. 혹 있을지 모를 어복은 생각도 않는 게 좋다>





    8

    어느 날 나는 왠지 모든 게 싫증났다. 무력감한테 당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어떻게 권태는 져줄 줄을 모르는 걸까. 지적 허영심도 바닥났다. 자기 합리화가 뭔지도 모른다. 그런데 허세를 어떻게 아나. 내가 뭐 잘났다고 투덜거리겠나. 이거 혹시 번아웃 증후군? 그래서 나는 기분 전환을 핑계로 잠깐 드라이브나 하고 오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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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호 대기 중! 뭐야? 옆에 오픈카가 서 있는데...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얼굴이네? 
   「그대여 얼굴을 들라!」
    라는 대사부터 떠올랐다. 아니 야 너, 당장 선그라스 벗어. 라고 명령할까도 생각해봤다. 당연히 실행하진 못했으나 뭔가 찜찜한 기분은 마침내 쟤가 누군인가를 알도록 만들었다. 걔네. 최근 잊을 만하면 나타나는 그녀. 이때 신호가 바꼈다. 그녀는 쏜살같이 앞서 나갔다. 놓칠 순 없지! 나는 곧장 추격하기 시작했다. 어느새 내 귓가에는 낭만적인 영화 OST가 들리고 있었다. 물론 가상으로 말이다. 그렇지만 그야말로 흥미진진했다. 만약 내가 저년을 잡으면 아니, 말이 심했다만 그건 다 우리가 친하다는 가정 하에 아무도 듣지 않기 때문에 하는 말이지만. 저 아리따운 숙녀를 따라잡아 오늘 우리가 커피를 마실지 뜨겁게 키스할지 몰라도 나는 일단 물어볼 것이다. 왜 자꾸 날 헷갈리게 하냐고! 근데 그건 너무 여자 같잖아? 그렇다고 다짜고짜 뺨을 때릴 수도 없지 않나. 그래? 옳지! 그녀의 가면을 벗겨야 겠다. (옷을 벗기겠단 말이 아님) 그래야 한다. 정말로 얼굴 팔리는 거 좋아하지 않는 허당처럼 팔리지 않는 허구이기 때문에 하는 말이지만. 터놓고 말해서 막말로 말해서 라는 대사마따나. 어? 그동안 그녀의 정교한 화장발에 속아줬으면 할 만큼 한 거 아닌가? 그렇지만 중요한 건 그거다. 우리는 갈 데까지 간 게 아니라는 점. 응? 마침표든 느낌표든 찍어야 한다는 거. 하긴 살면서 장미 가시에 이 정도 찔려봤으면 그만해도 될 것이다. 게다가 장미만 꽃인가? 튤립은 일단 가시가 없다. 알고 보면 이름 모를 꽃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데. 심지어, 아니 어떻게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정말 조금만 더 힘을 내면 그녀를 따라잡을 거 같은데.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저 예쁜 천도복숭아를 따먹든 나쁘지 않은 능금을 정복하든.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마침내 나는 그녀를 놓쳤다. 대략 한 30분에서 1시간 정도 따라갔나? 모르겠다. 근데 여기는 어디지? 뭐야! 여긴 영화에서나 봤던 사막이잖아? 내가 알기로는 이 근방에 이런 장소는 없었는데. 있을 수가 없는데. 어떻게 된 거지? 그녀야 나중 오다가다 보면 보는 거고, 못 보면 마는 건데. 허나 그건 여기서 무사히 탈출한다는 가정 하에 나중 생각해도 늦지 않을 텐데. 어떡하지? 그때 갑자기. 저쪽에서 아프리카 개떼들이 떼거지로 이동하는 게 보였다. 무슨 철새들 이동도 아니고 양떼 무리들 대이동도 아닌데 저건 또 뭐야? 그때 또 갑자기! 
    저쪽에서 뚜껑 없는 차가 내 쪽으로 맹렬히 질주해오고 있었다. 다가온다 다가온다. 내게 온다 내게 온다. 그럼 이제 우리는 우리는, 아니. 그게 아니라. 다시 말해 오픈카는 엄청 빠른 속도로 내 앞을 지나갔고 그녀를 쫓는 차도 지나갔다. 이제 보니 뚜껑 없는 차를 모는 사람은 그녀였다. 그리고 그 뒤를 쫓는 사람은 다름 아니라 나였다. 그럼 나는 4차원으로 튕겨나간 건가? 밑도 끝도 없이 어떻게 내가 유령이야! 드라마에서라면 나는 쟤들을 쫓아가야 한다. 그래야 개연성은 흥분과 눈꼽 만큼일지라도 감동을 불러오니까. 그러다 저속한 표현대로 반전이 얻어걸리든 아니면 누군가 만만한 구멍을 조지든지, 그도 아니면 개구멍부터 쥐구멍까지 이야기를 풀어갈 방법은 많다. 그렇지만 나는 드라마의 주인공이 아님. 그런데 내가 영화를 왜 찍어? 기름값 아깝다. 따라가기도 귀찮다. 심지어 만약 내가 쟤들을 잡는다 해도 걔들도 순순히 내게 항복하진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잘 타일러서 녀석들을 감화시킨다고 할지라도 초정밀 마스크를 벗기면 엉뚱한 조연들일 게 뻔하다. 따라서 나는 녀석들의 속임수에 걸려들지 않는 게 상책일 따름. 근데 대체 여기는 어디지? 아, 우리들이 진행했던 방향과 빗대어 저쪽에 무지개가 보이는구나. 저쪽까지 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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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10분 가다가 포기했다. 마음이 바꼈으니까. 우리는 변심에게 그토록 매정하지 않다. 우리가 괜히 여심을 들었다 놨다 하는 건 아니거든. 그런데 웬 사막에 요트가 보이고, 테트라포트 중소형과 대형까지. 또 몇몇 선박. 나룻배. 파라솔. 버려진 수영복. 튜브. 설마 여기가 바다였나? 아니면 유원지 호수인데 지금 극심한 가뭄이라서 물이 빠진 건가? 그때 저쪽에 모텔이 보였다. CROWN MOTEL! 나 혼자 저기 숙박할 일은 없다만. 뭐 저기 가면 바에서 콜라 한잔을 마시든지, 아니면 카페에서 잠시 쉬어가든 할 수 있겠지. 그래서 그쪽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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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에 착석. 손님으로 여자 2명과 남자 1명. 그럼... 내가 쫓던 여자. 그리고 내가 추격을 포기한 다음 내 앞을 지나갔던 남녀 1조. 그럼 얘네가 걔들이잖아? 처음 바에 들어왔을 땐 보사노바, 재즈, 유행가, 아카펠라... 괜찮았는데. 갑자기 음악이 바꼈다. Handel / DIXIT DOMINUS, HWV 232 뭐지? 기분이 왜 이래!  근데 쟤들이 나를 알아보고서 아까 왜 쫓아왔냐고 추궁하면 어떡하지? 
   「형씨. 이 누추한 곳까지는 웬일이시오?」
   「네?」
   「보자마자 형 동생 하잔 말은 아니니 안심하시오. 그렇지만 인적 드문 곳에서 몇 마디 말 섞는 거도 다 사는 재미 아니겠소.」
   「아, 저는 그냥 바람 쐬러 드라이브를 하다 보니 어쩌다가...」
   「그럼 딱히 목적 없이 오셨단 얘긴데. 오면서 누가 돌아가라 얘기 안 합디까?」
   「네? 인심 좋던 걸요 뭘.」
   「그럼 눌러 사시는 건 어떻소? 왜냐하면 백 년에 한 번 지옥문이 열리는 때를 빼곤 여기서 나갈 수 없기 때문이라오. 정 붙이고 살면 다 살만 하다오. 허허허.」
   「네? 제가 지옥에서 온 머리 셋 달린 개라구요?」
   「거 형씨 유머가 참 남 다른 게 인상적이군요. 허허허.」
   「그런데 여긴 어디죠?」
   「여기요? 여긴 알라스카라오.」
   「알라스카요? 알라스카는... 저는 연어가 아닙니다.」
   「그럼 뭐 우리는 그리즐리 곰으로 보이오?」
   「제 말은 그게 아니라,」
   「정말이오. 알라스카.」
   「네?」
    그때 저 양반 옆에 있던 숙녀들은 둘이 가위바위보를 했다. 마치 이긴 사람이 나를 차지하는 행운을 얻기 위해서인 듯. 
   「아저씨는 여기 사신지 오래되셨소?」
   「저 말이오? 저는 여기서 태어나서 지금까지. 정말로 하는 얘긴데 여기 사시는 건 어떻소?」
   「좋소.」
   「거 호쾌하시구만. 허허허.」
   「그런데 난 돈이 없어요.」
   「그야 있다가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게 다 돈 아니겠소?」
   「형씨는 철학자시군요.」
   「내가요? 그럼 그대는 혹시 영화감독이오?」
   「네.」
   「정말이오?」
   「아마추어입니다.」
   「그게 어디요. 허허허. 그럼 우리도 찍어주실 수 있소? 우리 셋 멜로드라마는 어떻소, 그림 나오요? 에로...도 생각이 없진 않소. 허허허.」
   「」
   「뭐라고?」
    그들은 생필품 운반선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바텐더까지 모두 그쪽으로 가려고 했다.
   「아, 아까 어떻게 돌아갈 수 있냐고 물었지요? (북쪽을 가르키며) 저쪽으로는 산을, 여기서 산은 고만고만한 언덕이 아니라 산맥을 뜻하오. 산을 한 대여섯 개 넘어서 쇄빙선을 타고 떠나면 되오. 그리고 저쪽은 길이 없소. 그리고 반대쪽은 절벽에다가 풍수지리학적으로 여긴 요새 중의 요새라오. 지금 정신이 살짝 아리송 하시죠? 극너 남아메리카 축구 대회에서 막 고산지대 원정경기에서 맥을 못 추는 증상과 비슷하다오. 곧 적응되실 테니 걱정 마시오. 허허허. 그럼 우리는 삐삐차가 와서 거기 갔다와야 하니 잠깐 헤어지는 걸로 합시다. 아, 형씨도 같이 가면 어떻겠소?」
    그렇게 나는 그들을 따라갔고 잠시 후 웬만한 도시 크기의 원반형 우주선을 코앞에서 보게 되었다. 
    나는 정신을 잃지 않으려고 했는데 웬 초음파, 원적외선, 오로라 가시광선, 무진동 바람소리, 잔잔한 배경음악...화이트소음인지 뭔지. 기타 등등 분위기를 비롯해 몇몇 환경으로 인해 나는 정신을 잃고 쓰러지게 되었다. 





    9

    나는 CROWN MOTEL에 갖혔다. 처음에는 단지 풍습에 따라 외지인 어쩌고저쩌고 그런 통과의례인 줄 알았다. 그런데 나중 알고 봤더니 관여한 부족들이 꽤나 많았다. 그래서 알라스카족은 내게 경전을 써달라고 부탁했다. 저번에 나랑 대화한 알라스카인은 그 모두를 내게 통역해주었다. 또 필요한 물품에 관해 내게 쪽지를 받든가, 감옥 면회처럼 1주일에 한두 번 매면 면회는 그 남자와만 가능했다. (조용조용히) 지금이니까 또 우리끼리니까 하는 말인데 저번 바에서 봤던 2명 여인. 그 숙녀들이 조용히 밤 중에 또는 새벽에 내 숙소에 왔다 가곤 했다. 그리고 다음으로 인디언족은 인문교양서를 요구했다. 그런데 내용은 무엇에 관해서? 
    1922년 이집트에서 고대의 파라오 투탕카멘의 무덤 발굴 당시, 직간접 인원 약 2만명 됐나? 그 가운데 나중 자연사 또는 의문사 비율 몇 퍼센트. 그건 버뮤다 삼각지대처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다 쳐도. 투탕카멘? 이집트 신왕국 제18대 왕조 제13대 파라오! 재위기간은 기원전 1333년부터 1323년으로 추정. 크고 작은 약 1,300여점 유물들 보면 황금빛에 눈이 돌아갈 수 밖에 없는데. 캬~ 기가 막힘. 응? 끝장! 또 기자의 대피라미드! 이집트 카이로에 있는 대피라미드로 건립 연대는 기원전 2500년대. 중력계나 전자파 레이다, 비파괴 엑스선 기타 등등 특수 장비로 탐지하지 못했던 비밀들 아직도 그 끝을 잘 모르는데. 이집트에서 3,500년 전 미라와 4,400년 전 무덤이 발굴되는 건 보통에 불과한데. 그와 같은 세계 7대 불가사의 외에도 기원전 246년에서 208년까지 38년간 공사했던 진시황릉. 또 멕시코 유적들. 그리고 백제왕과 신라왕릉들, 이집트에 비할 바는 못돼지만 지금으로부터 1,500년 전 묻혔던 당시에 정황이 어땠는지... 지금을 흡사 예상이나 했다는 듯이. 옛날 사람 뿐만 아니라... 통과. 그런데 왜... BC 660년에 있지도 않았던 일들을 억지로 연결해서 가짜 귀신이자 현인신까지 만들고. 계보가 몽땅...자기 밖에 모르는 아마존 원시부족에 대해 연구서 써달라는 청탁. 처녀분과 도굴분의 차이 등등. 나는 여기까지 와서도 일복에 시달렸던 것이다. 간략히 무슨 내용인가 들여다보자면 다음과 같다. 





    10

    이집트의 스핑크스. 기원전 그리스 제국이 몇 백년, 기원전 그리스 제국과 기원후 로마 제국까지. 유럽에 즐비한 그리스-로마 유적과 그 영향을 받은 흔적들. (가까운 역사로 넘어와서는 합스부르크 왕조가 프랑스를 제외한 전유럽을 600년 동안 쥐락펴락) 페르시아 제국들을 살펴보면 메디아는 기원전 728년 - 기원전 550년까지. 다음으로 아케메네스 왕조는 기원전 550년부터 기원전 330년까지. 그게 진짜 기원전인데. 그럼 가짜 기원전도 있다? 일본 천황가 계보를 다 가짜로 날조했으니 전국에 쫙 깔린 신사들 안내판들은 몽땅 가짜 기원전 기원전...!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굴 두껍기 대회 1인자이므로 Ctrl+C / Ctrl+V! (절레절레) 저 예시들은 모두 진짜 기원전, 천황가 초대신은 가짜 기원전! 천황도 가짜 현인신, 그렇지만 천황 폐하 만세 만세 전통. 인도네시아 훈제족 / 북부 태평양의 인소바비 족 / 코로와이족 / 중앙고산지대의 다니족 / 아프리키 피그미족 / 바누아투 원주민...... 코코넛 전쟁 등등. 진짜와 가짜는 너무 비교됨. 우리는 더글라스 맥아더를 슈퍼스타로 떠받들어 공경하며 사랑했는데, 너네는 왜 우리처럼 신사참배하며 천황을 존경하지 않냐? 최소한 전에는 잘 하더구만 뭘! 점령군 사령관 더글라스 맥아더는 천황 제도를 살려주었던 건 다 사람 대 사람이니까 그랬던 거고. 반대로 大일본제국이 조선 전국민 이름을 바꾸고, 전국민을 신사참배시키며, 전국민을 군함도를 비롯해 노예로 전락시킨 건 사람 VS 혐오곤충이기 때문. 그래서 더글라스 맥아더는 천황과 우정을 나눈 반면, 조선의 왕비는 발가벗겨져 불태워죽임. (정확히는 칼로 베어 1차로 죽인 다음 태워서 2차로 죽임. 또 관련 지식으로 명성왕후는 부모묘던가 조상묘를 28년 동안 4번을 옮김. 즉 평균 7년에 1번씩 최상의 묘터를 찾아 계속 옮겼는데 후대의 최후는 참극으로 결론남) 그러니까 더글라스 맥아더는 경제도 부흥시켜주고 일본어도 자유롭게, 반면 한국어 폐지는 물론 민족 말살정책. 다 사람 대접 해주면 안되니까. 일본은 다 서구사회와 동격이기 때문에 일본어를 폐지시키지 않았음. 일본은 아시아의 유일한 유럽이기 때문에, 연합군은 일본 전국민의 성씨 개명을 시도는 물론 생각조차 않았음. 다만 천황의 부인 즉 황후, 그 황후의 아버지던가...가 전범으로 사형당한 건 유감. (그 때문에 황족의 범위도 대폭 축소된 것임) 물론 엑셀파일도 유감이면 끝난 거지 더럽게 짜증냄. 단! 원자폭탄 얻어맞은 건 원래 전쟁이란 그런 것일 뿐에서 딱 예외.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에 몇몇이 해당할지 아니면 SF 드라마들 내용을 피타고라스 원리, 수학 방정식, 상대성 원리처럼 딱 공식에 따라 단죄할지. 나중 올라가보면 알게 됨. 그러나 야만인들은 아무리 힌트를 줘도 줘도 모름. (오히려 악용 / 적반하장 / 날조 / 왜곡 / 거꾸로 / 야만......) 아니, 왜? 무조건 자기들만 옳기 때문. 듣기 없이 말하기 밖에 모르는 이치. 들어도 이해해도 교양은 싫음. 악녀의 인생을 찬미해주고, 관심 가져주고, 칭찬해주기만 바람. 만약 AD 700년 기기(고사기+일본서기) 집필 준비 기간에 그리스 로마 문명, 멕시코 등 세계 유산들, 이집트 기원전 문명을 알았다면. 만약 그랬다면 일본 초대신으로 기원전 660년으로 설정했을 리 없음. 아마도 0을 하나 더 붙여 기원전 6660년으로 했겠지. 그런데 그건 뻥이고 투탕카멘과 미라들과 피라미드는 진짜인데 이걸 어쩌나... 철면피 그래 봐야 꿈쩍도 않음. 더 뻔뻔해짐. 더 독해짐. 결국 이게 바로 문명과 야만의 차이점이다. 
    (A) 일본 ↗: 삼광작전/조선왕비능멸/강간/대량학살/인종청소/언어말살/창씨개명/관공서처럼 전쟁성노예
    (B) 일본 ↘:            /천황기사회생/                                                        /관공서처럼 전후성노예 운영(미군부대를 위한 공무원)
    여기서 정반대로 극명히 대비되나, 대비되지 않은가? (A) 일본 ↗에서는 야만성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B) 일본 ↘에서는 문명성을 여지없이 대우받음. 동그라미(○) 바깥으로는 야만, 동그라미(○) 안쪽에게는 문명 대우해달라. 만약 유럽으로 인식해주지 않으면? 하와이 진주만 기습과 동남아시아 묵사발. 호주와 캐나다 일부도 묵사발. 가능하다면 전세계인의 천황 숭배가 목적! 물론 1차 시도에서 짜릿함을 참 오래도록 맛 봤기 때문에 늑대새끼는 죽어도 피 맛을 잊을 수 없음. 아시겠소? 야생동물에게 어떻게 문명의 굴레를 뒤집어 씌울 수 있는지 (절레절레)! 그럼 시선을 돌려 유럽사를 놓고 봤을 때 자국민 혁명에 의해 군주제가 종료된 예시는 빼놓고. 타국 군대에 의해 자국 왕과 왕비와 그 일가가 몰살된 예는 많을까 적을까! 진짜 조물주라는데 알고 봤더니 짝퉁이요 괴상한 사이비 종교. 교주도 다 뻥인데도 불구하고 Ctrl+C, V 해서 최신판이 그대로 교주 행세. 교서 즉 경전은 있나? 없음. 신도라는 종교도 다 짜집기. 초대 교주도 다 뻥. 초대부터 10대까지는 소설이고 제일 윗대와 상당 부분 모든 것은 다 옆동네 일색. 그래서 결국 1500년 내내 신분세탁, 역사왜곡. (A)는 전쟁이란 원래 그런 것일 뿐 유감스러우면 그뿐이요 지나가면 그만. 희망찬 내일로 나아가면 그만이지 뭔 말이 많아. 반면 (B)는 야만인이 문명인 대접을 받다보니 눈에 뵈는 게 없음. 정말로 멜로드라마 시점에서 보자면 눈에 뵈는 게 없는 치정극. 막장드라마. 사극.
   앞서 "A는 밖으로 야만성 뽐냄, B는 안으로 문명성 존중받음" 라는 중요한 얘기가 나왔는데. 그 때문에 속된 말로 기고만장이란 얘기가 절대로 아니다. 거기서 오해하면 죽도 밥도 안됨. 만인이 거기서 오랑우탄과 고릴라를 이해하지 못하니까 그래서 칼럼이 길어지는 것임! 즉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감정적으로 따질 사안은 절대 아님. 냉철한 이성으로 판단컨대 원시부족 습성이 원래 그럴 뿐! 비감정적 관습 + 비인간적 문화 = 답은 뭐다? 원시부족 야만성! 그러니까 밖으로 야만성 무참히 과시, 안으로 문명성 대우 톡톡히 그 때문에 그런 게 아니라. 그게 아니라 현지 학자들 말하기로 탈도덕 즉 부도덕, 비윤리, 살쾡이 기질과 완벽히 일치한다고 보면 됨. 즉 문명성 대우를 받았기에 그 정도에 그쳤지 야만성 잔치와 축제를 벌였던 걸 똑같이 거울로 되갚아줬다면 다른 원시부족처럼 멸종. 실제 사이판과 괌에서 몽땅 떼죽음 또는 마지막 1명까지 자결. 오키나와 떼죽음. 그게 다 천황폐하를 위해서, 근데 나중 오키나와를 비롯해 죄다 천황한테 뒤통수 맞음. 해군함은 떠다니는 육지이기 때문에 무조건 상시 국기를 걸어야 하는데, 전시니까 당연히 일장기+욱일기! 그 깃발이 가라앉게 생겼는데 항공모함 가라앉는 동안 항공모함 전부대원 갑판으로 부대 차리엿, 천황폐하 만세~! 단 1명도 도망가지 않고 그 상태로 천황폐하를 위해서 당당히 죽겠다며 실행. 살아서는 천황폐하를 위해서, 죽어서는 야스쿠니 신사에 묻힐 수 있다! 금메달처럼 승전보에 전국이 들썩들썩 으쌰으쌰. 근데 나중 천황한테 뒤통수 맞음. 책임자는 아무도 없고 거의 다 면책. 오히려 피해자로 탈바꿈. 절레절레! 교양권 기준으로 문명인일 수 없는 이치. 딱 불가능. 이래서 자기 밖에 모름. 뒤통수? 아직 시작도 안 했음. 지금보다 억조배 더 고급스럽게 길게...길게...! 뒤끝으로 그 누구도 따라갈 수 없음. 1500년 내내 앙심 품었으니까 기원전 기원전 영원히 그럴 거라는 점. 또 망언? 엑셀파일 슈퍼데이터조차 천문학적으로 계속될 전망. 물론 그게 현지 기준으로 절대로 나쁜 것도 아님. 고로 아돌프 히틀러가 제대로 꿰뚫어봤음. 이를 테면 종 자체가 다른데 말이 어떻게 통해? 안 통함. 그래서 다음 칼럼 개봉 박두!
    개봉 박두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당시 모든 게 천황 허락과 직인에 따라 군국주의는 실행됐는데. 단순히 천황만 77년 중후반부 내내 언제나 군복입고 지휘했으면서, 이상하게 천황의 장인어른은 사형당하고 천황은 지만 비겁하게 면책받아 인간선언하고. 나중에도 무책임이자 무병장수. 바로, 그래서 무사의 철칙 중의 철칙은 아무도 믿지 말라임. 속고 또 속고... 이용당하고 이용당하고... 그래서 <음흉함/교활함/야비함>이 기본값. 문명권에서야 그게 죄악이지만 원시부족 사회에서는 안 그러면 죽음 뿐이니까. 이러니까 세계평균을 보자면 "우리나라"라는 낱말은 공통되나 일본에서는 "우리나라"라는 말 자체가 없거나 거의 드묾. 왜? 아무도 믿으면 안되거든. 천황도 언제든 뒤통수 칠 만반의 준비, 무사가 전면에 나서 무사시대를 펼치거나, 아니면 그림자 무사가 뒤에서 조종하거나. 바로 이래서 전국민은 거의 다 겉으로만 사귐. 그래서 태생자 아니면 오래 살아도 보이지 않는 벽에 딱 막힘. 실제 애사심과 충성과 복종 지수는 놀라울 정도인데 가업을 물려받는 장인 정신은 좋은 반면, 얼토당토 않도록 기원전 660년 뻥에 대해서는 완전 진지함. 서구사회 개인주의와 겉만 봐서는 친절친절 비슷한데, 벗기면 벗길수록 괴상망측. 아무도 안 믿어! 풀 베듯 쓱. 무사 윗계급인 사무라이가 새 칼 장만하면 밖에 나가 시험삼아 쓱. 그냥 쓱. 그런데 속마음을 어떻게 말해? 아무도 안 믿음. 일본사에서 칼 수집이 크게는 3번 작게는..넘어가고. 그래서 일본사를 보면 180도 전환이 틈틈히 발생. 이걸로 보자면 세계 평균의 혁명과 비슷해보이지만 오직 겉만 비슷할 뿐. 그러니까 앞에서는 천황을 신격화요 천황교 신봉일지라도 일본인이 존경하는 위인 1위는 탈번해서 일본 체계를 개혁했던 인물. 그러므로 언젠가 사극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다 함께 빨간불을 건너갈지도 모를 일.
    우리 주위를 둘러봤을 때 사교계든지 친구든지, 통상 살면서 너나 나나 상식과 교양이 일치하나? 요컨대 대체로! 그럼 세계 평균과 다르다면? 너와 나 사람들의 지식에 대한 의견과 감정과 판단 등에 대해서, 대체로
    도표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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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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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식                같음       다름
타인                앎         모름
언행                솔직      겉마음 (가식/위선/착한 척/떠보기/간보기/.../기본은 겉마음/속마음√은 본인도 모름)
마음                투명      불투명
욕                   발달     비발달
"우리나라"표현   익숙      없음/희박
국명 대체         비발달    발달
감정 표현         보통       감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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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와 같은 차이는 뭘 뜻한다? 비일본만 우수하다는 게 아니라. 그게 아니라 단지 잉글랜드&웨일즈 섬문화까지는 괜찮다만. 거긴 여왕도 독일계요 영국왕 족보를 따져도 합스부르크를 비롯해 비영국적일 수 밖에 없는데. 그래도 영국왕 계보 연구를 금지시키지도 않고, 오락산업에서 비꼬며 조롱해도 됨. 또 자발적으로 왕족이 살아남기 위해서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전 성을 갈아치웠음
    반면 일본은 초대 일본왕이 전부 다 백제왕이었음. 진씨 → 부여씨 → 사택(沙宅)씨 → ......소가, 후지와라, 미나모토, 아시카가, 도쿠가와......그러다 천황가 성씨를 없애버렸음. 왜? 현인신이기 때문에. (그래서 720년 일본서기가 거의 천황교의 교전으로 칭송됨. 그 교전에서 일본의 초대신을 귀신으로 연결시켰기 때문) 그렇게 초대 천황도 하느님이요 현천황도 하느님. 그럼 현인신의 나라는 뭐다? 신국. 또 현인신인데 인간과 결혼한다? 유럽 합스부르크 왕조 600년처럼 근친혼만 했음. 또 현인신의 나라인 신국이 미국한테 진다? 패전이란 말도 없었고, 책임도 당연히 없으며, 큰 아량 베풀어서 종료. 큰 선심 써줘서 세계평화를 이룩한 걸로! 오히려 항공모함 위에서 물 한 컵 안 줬다고 왕삐짐,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면서. 중국에서도 상대하지 않겠다 선언! 웃김, 정말 웃긴가 웃기지 않은가요? 반면 문명권인 영국은 일본과 근본부터 다른데 섬문화 특성상 비슷한 부분이 매우 많음. 예를 들면,
    국명 발달도 UK, Great Britain, ENGLAND, 웨일즈, British.... 현지인들도 모르는 사람 태반. 헷갈림. 그래도 거긴 괜찮음. 일단 국교가 문명권이고 국기도 잉글랜드는 십자가, 유니언잭도 "십자가 + X"이기 때문. 여자의 NO는 YES다? 넌센스와 농담과 진심이 구분됨. 다 가능. 
    반면 겉으로 보면 일본도 비슷 겉만 보면. 일본이라는 국명을 달리 부르는 용어, 겁나게 복잡함. 야마토, 닛폰, 니뽕, 닛폰햄, 니혼... 겁나게 복잡. 연도 표시도 겉으로는 서기를 따르는데. 이슬람교한테 천황교가 질 수 있나? 천황교는 이슬람교한테 무릎 꿇을 수 없음. 고로 신의 데뷔를 불인정. 그래서 연도도 쇼와 20년(123대 천황 재위부터 몇 년), 헤이세이 헤이세이 23년 (=서기 2011년)... 겁나게 복잡. 이분들 속마음은 전세계에서 사용하는 서기를 "현천황 재위 몇 년"으로 바꾸기를 원함. 절실히 바람. 시도 전력 있음. 성과도 훌륭. 뭘로 봐도 야만족. 이렇듯 원시부족은 최신판이 현인신이요 교주. 그래서 아주 살발함! 일단 천황부터 뒤통수는 보통이고 사회 전반적으로 뒤통수는 기본값이기 때문에, 따라서 앞에서는 간이고 쓸개고 뭐든지 다 내어줄 것처럼 수줍수줍 악의 없이 부끌부끌 친절친절. 허나 등 돌리면? 우리도 NO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극우 서적 출판. 그 후 번역 거절, 번역자 명단에서 빼버림. 이득은 취해야 하니까 고마워하면서, 울면서, 옆동네 애국가도 함께 불러주는데. 그런데 돌아가면 손가락질, 험담, 혐한 서적 앞장섬. 뭐든지 뒤통수가 기초요 기본값. 설정 자체가 뒤통수로 되어 있음. 남의 마음을 도저히 알 수 없는데, 그런데 우리나라? 그런 말 없음. 타인을 믿을 수 없는데 믿어서도 안되는데, 그런데 우리나라? 주인 바뀌면 곧바로 적응. 주군 잃은 사무라이 만큼 서러운 것도 없는데, 그런데 우리나라? 기사가 새 주인을 찾든가, 연고팀을 바꾸면 됨. (그래서 현 연고팀 일본을 우리나라라고 지칭하지 않는 것임) 또 짜증지수를 중간중간 풀기가 절대로 아님. 완전히 금기시되는 터부! 곧 인내력..참을성..끝까지 참음. 그러다 마지막에 무너짐. 폭발. 터짐. 그게 극단적으로 치다르면 야만. (이건 영국과 똑같음) 즉 문명권 문화에서 멀지 않으면 개인적으로만 오스트랄로피테쿠스던가, 아니면 중간중간 스트레스를 풀 텐데. 야만성 문화에서는 끝까지 참아서 오스트랄로피테쿠스로 돌변할 가능성은 낮을지언정 중간중간 풀지 않기 때문에, 또 원시부족 인습 때문에 제2차 세계대전 엑셀파일이 가능하게 됨. 물론 그건 자기합리화, 역사도 안 가르침. 오히려 정반대로 죄다 남 탓으로 돌려버림. 또 당한 건 뒤끝 오짐. 따라서 불리한 건 전부 다 궤변에다 억지. 그래서 가해자와 엑셀파일은 없어져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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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 한번 생각을 해봅시다. 그토록 미칠듯이 천황교를 맹신하는데 왜 "우리나라"라는 표현이 없거나 발상 자체가 그걸 허락치 않는 걸까? 여자세계 원리만 봐도 뻔함. 나 잘났다 잘난 척하면 여자들이 그걸 예쁘게 봐주나? 얼마나 꼴보기 싫은데. 그래서 겸손 겸손 겸손...나를 낮출수록 뭐 어쩐다, 신부들러리들이 알아서 칭찬해줘야 속 시원함. 그런데 "우리나라"라는 표현이 어떻게 자연스러울 수 있어? 없음. 못해. 안해. 싫거든. 잘난 척? 솔직하면 죽음. 솔직하면 사회에서 매장. 왕따돌림 각오하고서 라는 단서가 붙어야만 직언. 그 예외에 해당하는 예시 그게 180도 전환이요 탈번임. 조슈&사쓰마 파벌이 77년 90% 장악이 뭘 뜻하냐? 앞에서는 절대 복종. 굽힘. 충성. 그러나 어떻게 잘만 하면... 조용히 머리꼭대기로 올라감. 이래서 천황교는 최신판이 교주가 되어야 하고, 따라서 천황이라는 얼굴마담은 붙박이이지 않으면 안되는 이치. 일단 700년 이전은 자세히 얘기하는 걸 싫어하는 이유 분명하고, 천황교 만인의 교주인 천황가 계보의 최고 윗대도... 그런데 하필 천황이 어떤 발언을 서슴없이 한다? 아무리 천황이라도 참지 않음. 2번 경고는 없음. 그런데 "우리나라"라는 낱말이 어떻게... 종이 1장 차이는 설명하자면 한도 끝도 없음. 지금도 천황은 1년 내내 귀신한테 제사지내고 경제-정치-사회...총리 권한 위에 모든 건 천황의 직인과 임명장 수여가 있어야만 일본이 돌아감. 그 직인 무게, 크기, 모양이 특별한데 넘어가고. 이처럼 뭐든지 천황 위주인데 총리가 길게 하면 어쩌고 단명하면 무슨 소용있나. 다 필요없음. 다만 고이즈미처럼 부시한테 큰절해주면서 북한도 갔다오고 노무현한테도 굽히는 대신에, 야스쿠니 참배하는 정도만 사회지도층이 뒤에서 흐뭇해함. 나머지는 그냥 별볼일 없는 중간보스요 임시직일 뿐임. 원시부족 수장인 천황의 인생도 백분율로 따져 순위 1번은 접대, 또 2번 뭐... 황족은 총 30명 되던가... 구조도와 모든 게 투명함. 다만 막사는 황족도 있는데 사회지도층이 다 오락산업에서 걸러줌. 걸러주니까 TV는 또 원자폭탄 타령과 피해자 코스프레만 내보냄. 계속 악순환. 천황교만 신봉하던가/그냥 존중하던가/무관심이던가. 사극을 위한 최적의 조건임. 다만 최신판이 교주니까 일단 선을 넘지 않는다면 신성함이요, 선을 넘지 않기만을 바랄 뿐. 그렇게 됨. 
    털어놓고 대드는 적이 숨기는 벗보다 낫다. 근데 숨기는 적은? 느와르 영화가 괜히 재밌는 게 아니다. 우리 일본이 믿고 있는 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天照大神)가 세상에서 제일 위대한 신이므로, 뭐 하나 경배하지 않고? 전국민은 물론 전세계인의 오직 신사참배뿐 아니면 죽음. 둘 중 하나뿐. 그걸 위해 엑셀파일 통계 쑤두룩. 123대 천황 죽을 때 막 옆에서 정(正), 십(十), 사(士), 일(一) 자 쫙 옆에서 뒤에서 도와주고. 레고 머리를 리본으로 묶어서 케익상자에 담고 어쩌고. 현천황도 나중 모든 천황도 자기 아버지 시신 옆에서 목욕하고 신복으로 갈아입고 현인신 되기. 나중 그 아들도 똑같이. 무수한 제사들과 궁내청만 지낼 수 있는 정기 제사들에서 우주신임을 꼬박꼬박 확인. 단, 전세계에서 황제라 불러주기는 하는데 단지 그뿐. 그 뿐만이 아니라 Ctrl+C / Ctrl+V, 부수고 다시 짓고, 하늘에 제사지내고...? 현천황 = 현인신! 무슨 짝퉁 명품 옷, 시계와 판박이야? 여담이 길었다만 여기서 줄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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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도 CROWN MOTEL 생활이 썩 나쁘지는 않았다. 불쾌하지도 않고. 상당히 쾌적. 별 3개~4개 정도 호텔급. 부족한 것도 없고. 다만 자유롭지 못한 대신 누릴 수 있는 게 많긴 한데. 굳이 날 덥거나 추운데 바깥으로 나갈 필요 있을까? 나는 이제 CROWN MOTEL에서 벗어나기 싫어졌다. 나가봐야 금방 싫증날 거도 충분히 예상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톰(내가 붙여준 별명)과 연락이 되질 않아 망원경으로 밖을 살폈다. 그런데 원시인이랄지 원주민 등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에 웬 돼지들과 양떼들만 보였다. 물론 아프리카 개떼들도 보였다. 그래서 느낌 세하길래 혹시 몰라 모텔 문을 열어봤는데 어머 열리네? 그런데 이거 정말 나가야 돼 말아야 돼! 고민인데. 그래도 용기 내서 나갔다. 나가보니 괜찮았다. 다음으로 주차장에 있는 내 차가 궁금했기 때문에 그곳으로 가봤다. 
    장면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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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탈까, 말까? 탔다. 그렇게 그곳을 탈출했다. 얼마나 간지 모르겠다. 한 2시간 운전했나? 나갈 수 있는데 무슨 산맥을 몇 개 넘고 막혀 있고 그거 다 거짓말이었잖아? 아, 저기에 안내판이 보였다. 헤비메탈 페스티발! 저거만 잠깐 구경하다가 집으로 돌아가면 되겠네. 그렇게 헤비메탈 페스티발 장소에 도착. 구경꾼들은 별로 없었다. 그러다 나는 크라운 모텔 바에서 봤던 3인방을 보게 되었다. 쟤들이 왜 저기... 날 쫓아오면 어떡하지? 나는 조용히 그곳을 빠져나왔다. 일단 여기까지가 간략한 줄거리고. 지금은 차마 밝힐 수 없다만 또 비화가 있다. 아무한테나 팔 수 없는 얼굴이 기원전 언제적 투탕카멘 어쩌고저쩌고인 것처럼. 한정판이라는 게 또 있거든. 그 숨겨진 이야기가 설마 몰래한 사랑? 그건 너무 일찍 말하면 나 뭐 먹고 살게! 그래서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됐어? 잠 좀 자자. 개 좀 그만 짓게 해라. 오빠 달려? 쉬어야 또 달릴 거 아닌가. 뭐 오빠가 아니라 토끼? 하긴 플레이보이의 상징이 토끼니까. 





    12

    멜로드라마가 묘사하는 사랑을 액면 그대로 믿을 수는 없다. 동시에 짝사랑 받기를 마다할 수야 있나. 그런데 아무도 내게 말을 걸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공포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에 간다. 그럼 그는 벌써 사랑의 시로써 여심을 설득시키기를 포기했다는 건데. 참 납득하기 힘든 녀석이군. 그래 봐야 환상기계는 복원하기 힘들었다. 대안으로 잔치를 생각했는데 초대장은 구경도 못해봤으니. 약속없음은 참으로 감탄할 지경. 하긴 어쩌면 진한 사랑을 꿈꾸는 것부터 부적절할 수도 있다. 하오나 벌이 꽃을 좋아하는 게 죄는 아니다. 결국 그렇게 NB는 추접스러운 낭만주의자임을 인정할 것인가? 불인정하니까 자꾸 예술가에서 삼류 허당으로 변신하는 거겠지. 왜 아니겠어. 구태여 이런 사실까지 알려드려도 되나, 굳이 이런 말까지 꼭 해야 하나... 차마 하지 않으려고 했으나. 우리끼리니까 하는 얘기지만. 멋쩍은 듯 그것도 모자라.. 쉿! 됐다. 재미없으니까. 심심하다보면 언젠가 정신차릴 것이다. 그러다 혹시 우선 저질러놓고 보는 게 사랑이다 라는 사랑론을 쓰면 어쩌나. 허나 힘빠졌다. 지쳤어. 지가 무슨 아르키메데스도 투키디네스도 플라톤도 아니고 말이지. 그 때문에 그는 냉철한 이성에 따라 오락산업을 질투하지 않기로 했다. 즉 소소한 행복에 만족하는 걸로. 그런데 문제는 험담가 자격이야 예전에 박탈당했을지언정 조롱의 재능이 물거품처럼 사라졌다는 거. 그래? 그러든가 말든가! 관심없어. 그게 뭔 소용인데? 필요없다고. 어쨌든 그래가지고 어떻게 모든 여자의 마음을 빨아들이겠어. 그런 의미에서 못생긴 여자와 연애나 해볼까? ~라고 설마 생각하는 건 아닌가 몰라. 예쁜 숙녀에게 공식적인 구애를 할 바에야 차라리...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기고 말겠다. 한편 난봉꾼을 대만족시키는 첫인상은 좀처럼 보기 드물었는데. 왜냐하면 죄다 마스크를 쓰고 다니기 때문.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는 동생들은 틈틈히 그를 찾아왔다. 이따금 전화했다. 오빠 제발 한번만 만나주세요 데이트 딱 1번만 해주시면 다시는 귀찮게 하지 않을께요! ~라면서 말이다. 그런데 그건 사실일까 그의 공상일까? 그게 지금 왜 궁금하나. 그러다 오늘은 어떤 칼럼을 쓸까 고민하면서 그는 동네 카페로 향했다. 아마도 왠지 모르게 호감가는 웨이트레스를 보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물론 먼발치서 안 그런 척하면서 말이다. 허나 수상쩍은 눈빛에 민감한 그녀는 미리 눈치채고 아르바이트를 그만 둠. 그런다고 NB가 마음의 상처를 받을 인물인가? 그럴 리 있겠나. 세상은 넓다. 미인은 많다. 꽃은 지고 또 시드는 법. 사랑은 요술도 아니고 여자가 벼슬일 리도 없다. 대타도 화려하다. 멋쟁이들 계속 대기중이다. 그런데 왜 내 선수진만 두텁지 않지? 그렇게 덕망은 멀어져만 간다는 건데. 고로 우리는 이미 늙어버린 걸까? 그 우리에서 제발 나는 빼달라는 외침, 듣지 않고도 귀청 따가울 지경. 그러니까 단물 빠진 개뼈다귀를 쳐다보지 않는 똥개 심정 같은 얘기 그만 좀 하자니까 증말! 아니 진짜 우리가 난봉꾼에게 마음을 빼앗겨버린 숙녀의 인생까지 걱정해야 하나? 우리는 그렇게 한가하지 않음. 한편 오늘도 녀석은 퇴근길에 낯선 여인에게 첫눈에 반해버리는데. 그럼 그녀도 동등하게 NB에게 홀딱 반했냐? 그러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던 어느 날 옛사랑이 날 찾아왔다, 그런 건 일일드라마에서도 썩 애용하지 않는 설정. 이거 이거 그러고보니 녀석은 유행지난지 한참된 복고풍 같은 남자구만. 고전주의 좋아하시네. 다 들통났어. 호색한에다 색정꾼이라고. 말이 심했다만 농담마저 남발할 기회가 없는 이때. 그는 하다 하다 스타벅스에 취직하려고 도전했는데. 거긴 뭐 아무나 뽑아주나? 당연히 낙방. 인생이 노잼. 지적 허영심이라는 순풍에 힙입어 칼럼 남발하며 그나마 입에 풀칠이라도 했는데. 이젠 일감마저 싹 끊겨버림. 그는 슬슬 전업을 해야 하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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