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 191

from 소설 2021. 9. 15. 17:06

    1

    즐거움은 부재중. 기쁨은 외출중? 아니다. 좌 재미없음 우 심심함이 그 얼마나 다행인가! 그나저나 오늘은 비둘기가 첩보를 가져오지 않는다. 오늘은? 그게 다 커피를 마시지 않기 때문이라며 변명하는 녀석. 지금 어떤 대회에 출전을 준비 중인지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 허영심 대회는 열리지 않기 때문이다. 정말로? 아니다. 그러지 말란 법도 없다. 그렇지만 누가 모일지 뻔하다. 시간낭비에 지쳤거나 욕망이 이상해진 친구들이겠지. 근데 그게 갑자기 왜 궁금하지? 그러게 말이다. 말도 안되는 헛생각은 말할 것도 없다. 말 같지도 않은 농담 그게 뭐가 웃기다고. 그런데 말은 느는 반면 철은 없고. 돈도 없고. 사랑도 없고. 정작 있어야 할 건 없고 남는 건 다변이라니 (절레절레)! 자, 무작정 저 푸른 바다로 떠나자? 집나가면 고생이다. 그래. 솔직히 말해서 nb는 주인공감이 아니다. 조연에서도 낙마. 심지어 이젠 병풍역마저 딱 끊겼다. 터놓고 말해서 그는 뭘 해도 재미없을 것이다. 더 이상 젊음의 행진과 친하지 않거든. 허나 이럴 때일수록 미지의 이상에 긍정적이어야 한다. 그래서 NB는 희망을 결코 의심하지 않았다. 물론 뻥이다. 그래서 찬란함과 아름다움과 매혹은 멀어져가고 남은 건 허접함 뿐. 뿐만 아니라 새로운 손님은 다름 아니라 가난? 짜증 계기판은 오늘도 쉬지를 않는구나. 그럼 또 진공청소기처럼 여심을 빨아들이던 그때를 회상하겠지. 왕년에 안 그랬던 늑대들도 있나? 놓친 고기는 다 크다. 게다가 속옷 상표가 비너스요 피로회복제 이름이 박카스면 뭐 하나. 행운의 여신은 멀리 떠나셨는데. 이래서 빈센트 반 고흐처럼 그림 그리는 재주가 유별나지 않으니까 걔는 거울을 보겠지. 그런데 거울 속의 도플갱어가 자길 비웃네? 이젠 냉소에서도 패배. 그렇지만 이제라도 낭만과 사랑과 대망에 도전해볼까? 행운아 후보군조차 마감되지 옛날. 그러게 좌 조롱꾼 우 호사가 같은 공상은 하지도 말라니까 녀석은 자꾸 왜 그러지? 알 수 있어야지. 이제 보니 투정만 예술이구만. 지가 뭘 안다고 이제 와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에 기초하여 환상기계를 만들겠다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하라 그래. 혹시, 어릴 때 별명이 꼴통? 에잇 설마... 아니 진짜? 이러니 날이면 날마다 어디 쥐구멍 없나. 유혹하는 그녀의 응큼한 상상력을 눈치채고서 중년운을 봐주고 싶어도 주위에 사람이 없어. 그런데 손금을 어떻게 봐줘? 못해. 다 도망갔으니까. 하긴 아는 동생들도 바보는 아니니까. 지들도 지 인생 살아야지 허당 뒷바라지를 왜 해. ~라는 잡생각은 도무지 끝나지를 않으므로 그는 일단 퇴근하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별장으로 떠났다. 각본에 대한 아찔한 착상은 딱 멈춰버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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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어느 바람 많이 불고 경치 좋은 휴양지에 도착했다. 입수한 정보를 바탕으로 내가 쉴 별장도 찾았다. 들어가서 짐도 풀었다. 씻고 쉬고 먹고. 이제 남은 건 놀기와 일하기 뿐이었다. 둘 중에 뭘 먼저 하지? 무작정 놀기 시작하면 웬 허당이 우리 동네에 나타나 물을 죄다 흐리고 다닌다는 비난을 파히기 힘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일단 일을 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고 나야 뿌듯한 기분으로 마음 편히 오픈카를 타고다니면서 해변가 비키니를 구경해도 괜찮을 것이다. 물론 나는 평범한 남자들처럼 막 눈이 아무 때나 아무한테나 돌아가지는 않는다. 그분들과 우리는 목표가 다를 따름. 물론 나도 남자다. 내가 여잔가? 아니다. 우리는, 아 지금 일을 해야 하는데 또 퇴근 시간만 기다리며 인터넷 쇼핑하는 것처럼 시간만 떼우고 있구나. 이래서는 안된다. (오른손 검지와 중지를 모아 왼쪽 팔뚝을 치는 시늉) 시간이 없다. 바쁘다 바뻐. 안 그래도 내 인생을 돌아보니 시간낭비한 총량과 허망한 경험과 정력의 막대한 손실, 솔직히 말해서 후회할 만 할 것이다. 그래서 그거 밑천 삼아 칼럼 쓰면서 저속한 표현마따나 입에 풀칠이나 하고 사는데. 아무튼 여기까지 와서 넉살 자랑할 일 있나? 그래서 나는 노트북을 펴고 일을 했다. 그런데 어떻게 했을까? 그렇지. 일단 음악을 튼다. Andreas Romberg / Violin Concerto no.9 둘째로 커튼을 친다. 정체성 의심스러운 도플갱어를 뱀파이어로 착각하게 하기 위해서다. 그 다음 셋째로 엑셀 파일 켜서 발상들을 열심히 기록하고. 또 인터넷에서 자료 찾고 정보 탐색. 그런데 자꾸 아까부터 웬 개소리가 들리지? 그냥 지나칠 단계를 훌쩍 뛰어넘었으므로, 따라서 나는 옆 방으로 가봤다. (별장인데 오피스텔식 별장으로 구조가 이상한데 그건 영화로 나오면 감상하기로 하고). 그렇게 딱 옆 별장에 도착. 
    나는 정중히 노크해서 개가 어디 아프지나 않은지 물어볼려고 했다. 그렇다고 저 그런 여자 아니에요... 이미 들은 셈치고, 또 내가 발정기란 말은 아니니 안심하쇼 라는 공상은 잘 타이른 체 말이다. 그렇게 딱 노크를 하려는데 문이 살짝 열려있네? 왠지 모르게 느낌이 차가웠다. 뭐랄까 겨울잠에 빠진 호기심이 되살아났다고나 할까? 나는 궁금함을 참고 돌아가서 손실과 이익 사이에서 떨떠름하냐, 아니면 의구심을 해소하여 어떤 불이익이 발생할지도 모를 위험을 감수하냐. 전자와 후자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기왕 이렇게 된 거 이걸로 이번 연재편을 때우자 라는 생각은, 나를 자동적으로 그곳으로 들어가도록 만들었다. 들어가기 전에는 비글일까 코카 스파니엘일까 설마 그레이트 데인은 아니겠지 라면서 은근 설렜는데. 들어가서 보니 그건 강아지 인형 가슴에 장착된 소형 라디오 같은 데서 재생되는 개소리였던 것이다. 뭐야! 그때 인기척을 느꼈다. 돌아봤다. 여자다. 왜 갑자기 아리따운 숙녀가... 설마 주인? 
   「뭘 쳐다보시오?」
   「네? 아, 저는 주인이 아니라 웬 개소리가 들려서 찾아온 옆 별장 사람입니다.」
    그런데 내가 잘못 들었을까? 숙녀가 날 보자마자 다짜고짜 저렇게 말할 리는 없다. 웬만해선 그러지 않을 텐데 숙녀가 억센 할머니 같은 화법으로, 심지어 거친 아저씨 억양으로라니. 나는 잘못 듣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 나는 시간이 정지된 것처럼 그녀의 말 한마디에 이처럼 잡념에 시달리고 있으니까.
   「방금 뭐라 하셨소? 아, 오빠가 주인이 아니라고 하셨죠. 알아요. 개소리가 들려서 찾아오셨겠죠. 나도 처음엔 그랬으니까요.」
   「네?」
    설마 저 여자의 선행 경험을 나는 그대로 똑같이 답습하는 건가? 그럼 다음 단계는 뭔데!
   「귓구멍이 막혔소? 아, 내 정신 좀 봐. 안녕하세요. 저는 영화배우인데 새 영화 배역을 연구하고 연습하다 보니 이처럼 남자 목소리로 자꾸 말하게 되는군요. 이해해주세요.」
   「그럼요. 이해하다마다요.」
   「정말요?」
   「네?」
   「그럼 외로운 절 즐겁게 해주시겠어요? 농담이에요. 근데 우리 어디서 본 거 같지 않아요?」
   「네? 그건 대체로 남자 대사로 심심치 않게 사용되는 건데. 뻔하지만 뭐랄까 질리지 않는 팝콘 같은 느낌에 걸리나 보자라는 목적일까요? 근데 그렇게 막 던지는 대사를 왜 제게...」
   「농담도 못합니까? 오빠 어디 소속이오? 그러든 어쩌든 여자한테 나이는 묻지 마세요. 아시겠소?」
   「모릅니다. 제가 아는 게 뭐 있다고 감히...」
   「그런데 거기 계속 서 있을 거요?」
   「」
   「그 집 빈집이란 말이오. 그리고 그 인형은 제가 갖다뒀어요. 들개들이 자꾸 찾아와서 거기 살길래 녀석들을 쫓아내려고 말이에요. 그런데 오빠 제 얘기 듣고 있어요?」
    그러면서 어느새 그녀는 내게 다가와 내 볼에 손을 갖다대었다. 그러면서 윙크를 하는데. 나는 그만 부드러운 손길을 느끼면서 어딘가 모르게 작품 줄거리 구상과 흑심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정신을 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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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깨어나 보니 내 별장 소파였다. 아니 어떻게...! 뭐지? 별 이상한 여자랑 기묘한 대화를 나누다가... 그녀가 나한테 최면을 걸었나? 대체 내게 뭔 짓을 한 거야! 드라마처럼 막 날 침대에다 묶고 어쩌고 최소한 그러지는 않았군. 어쨌든 별일 아니었다.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개소리가 또 들렸다. 옆 별장에 다시 가보는 게 좋을 것만 같았다. 안 그럴 수가 없었다. 뭐랄까 그곳이 자꾸 날 이끄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럼 아는 동생들 다 떠나버리고 내가 외로운 남자인 건 여자들이 날 멀리하는 척력 때문인가? 몰라. 그러거나 말거나. 관심없다. 그렇게 나는 소파에서 일어나 옆 별장으로 가봤다. 
    도착해보니 웬 들개들이 몇 마리 보였다. 얘네들은 또 뭐야! 아, 맞다. 앞서 그녀의 얘기가 생각났다. 그럼 그녀가 (자동 재생) 개인형? 곰인형을 가져다 놓기 이전으로 시간이 앞당겨진 건가? 시간 여행은 무슨. 타임머신은 나다. 내가 걸어다니는 환상머신임. 샤워하고 수건으로 물기를 닦으며 나오면 그게 터미네이터고. 판타지랑 스릴러와 미스테리 별거 없다. 웬만한 건 다 뻥이다. 또 스릴러도 죄다 시간 배열을 짜집기해서 간질간질 장난치는 거다. 알고 보면 다 나중 신경질 나도록 시간만 허비해서 짜증나게 만든다. 또 어디 가나 (자기 얘기는 뻔한 것과 쓰잘데기 없고 쓸모 없는 내용들만 요만큼 꺼내놓고 반면) 듣기만 해서 정보만 빼내고, 담아두고, 언제 터질지 모르는 고양이 같은 배역. 그리고 중간중간 계기판 압력을 해소시켜서 풀어버리는 불여우. 그리고 이따금 레깅스가 자주 보이다가 또 웬 장화 신기가 유행한다. 뭐든지 돌고 돈다. 한동안 잠잠하다 싶다가도 고전주의처럼 마술사 모자는 못 쓰고 다니니까 복고풍 숙녀옷이 인기를 끄는 것처럼. 그런데 내가 왜 여기 서서 궁상을 떨고 있지? 내가 왜 여기 벌서듯 서서 잡생각한테 얻어맞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모르면 단가? 아하! 그게 다 개소리 때문이구나. 이제 알았으니 나는 그만 돌아가서 일을 해야 한다. 그렇게 딱 거기에서 빠져나왔는데 웬 숙녀들이 내 옆 별장으로 걸어가서 들어갔다. 저 미녀들은... 오직 나를 위한 기쁨조? 그런데 그 가운데 한 명은 나랑 아까 대화했는데... 정말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건가? 나는 무중력 공간을 둥둥 떠다니는 우주복처럼 내 별장으로 돌아갔다. 





    3

    다음 날. 별장에서 할 일이 없었다.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렇다고 호박이 제 발로 내게 찾아온다? 그런 우연 바라지도 않는다. 행운도 너무 쉽게 찾아오면 재미없다. 그렇다고 별장에서 있었던 모든 일을 기록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실토하기엔 은근 떨리는 실화들은 나한테 (몸짓) 비밀 엄수를 애원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1주일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영화가 잊혀진 다음 감독판에만 조용히 담기로 하고. 나는 그렇게 동네 아가씨들을 울리지도 않고, 술집에서 떠들지도 않은 체 조용히 지냈다. 그러다 친구도 몇몇 사겼다. 걔네들이 나보고, 늬가 우리 동네 여자들 다 따먹고 다닌다면서 그게 바로 너냐 라는 겁박도 기쁘게 들었다. 그게 아마 여기 여자들과 또 나처럼 놀러오거나 쉬러온 숙녀들이 헛소문을 퍼트렸기 때문일 텐데. 실속없이 나는 방패막이요 달콤한 연애, 짜릿한 불륜극, 극적인 사극은 죄다 다른 사람들이? 병풍만 몇 년인데. 내 주제를 잠시 잊은 것이다. 그게 다, 아니다. 나까지 남 탓과 투정과 짜증 부리기에 익숙해져서는 안된다. 그래서 나는 근처 관광지를 여행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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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관광지에서 그녀를 만났다. 저번에 자기가 들개들 쫓느라 곰인형을 가져다 놨다던 그녀 그리고 걔 친구로 보이는 매력녀. 그런데 뭐랄까 그녀는 내숭미 때문에 일부러 내게 괴팍하게 눈길을 도도한 척 흘기는 듯 했고. 그녀의 친구는 대놓고 내게 적극적으로 유혹하며 눈빛으로 요염히 날 꼬시려고 최선을 다하는 것만 같았다. 
   「여기서 또 보네요.」
   「와, 너 이 오빠 알아? 나 소개시켜줘.」
   「소개랄 게 뭐 있지. 신경쓰지 마. 허당이니까.」
   「아 왜? 너 나 몰래, 혹시...」
   「뭐가 혹시?」
   「설마...」
   「너 자꾸!」
   「늬 비밀 그럼 내가 오빠한테 다 얘기해줘도 돼? 그러는 걸로 알고 있을께.」
    나는 굳이 그녀들과 말 길게 할 필요 없다는 것처럼 돌아섰다. 점잖게 그녀들 다변에 껴들지 않는 게 좋을 듯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녀들은 내가 멀어지지 않았는 데도 불구하고 벌써 내 험담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말도 없이 그냥 가버리네. 정말 허당 맞구나.」
   「내가 뭐랬니. 마른 장작이 잘 탄다지만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알만 하다」
   「그러니까 여태 혼자겠지. 설마 모태솔로?」
   「신경쓰지 마.」
   「그러면서 넌 나 안심시키고 몰래...」
    나는 며칠전 자는 개는 깨우지 않는다를 실천했다. 그럼 지금은 그 차례일까? 가는 여자 잡지 않고 오는 여자 막지 않는다. 에잇 재미없다. 그래서 나는 여기서 어떤 어르신들끼리 하는 얘기를 나도 몰래 엿듣게 되어 안 사실. 그 배경지식이 정말일지 아닐지는 가봐야 아는 건데. 일단 그 일반상식을 알게 된 이상 나는 잔지식의 노예가 되어버렸기 때문일까? 근처 영업 중단된 놀이공원에 놀러가보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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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멈춰버린 놀이공원에는 멈춰진 회전목마가 있었다. 바이킹도 있었고 대관람차도 보였다. 그렇게 여기저기 둘러보긴 했으나 별다른 건 없었다. 그런데 어디서 고라니 소리가 들리네? 그쪽으로 가보니 웬 나체로 남녀 몇 명이서 맷돼지를 뜯어먹고 있었다. 뭐야? 저건 뭐 나체 동호회 회원들이야 뭐야! 그리고 맛이 하나도 없을 맷돼지를 뭐 하러 생식? 게다가 이런 엽기 사건을 왜 하필 코앞에서 것도 내가 목격해야 할까. 그러다 누가 내 어깨를 탁 짚었다. 그녀와 그녀 친구였다. 
   「우연처럼 자꾸 동선이 겹치는데 우리 통성명이나 합시다.」
   「형씨. 난 실비아 얜 신시아.」
   「안녕 오빠. 둘 중에 누구야?」
   「너 이 오빠 꼬시지 마라.」
   「저는 나쁜 남자가 아닙니다.」
   「그럼 우리가 말괄량이 할까?」
   「오빠 설마 내 친구한테 첫눈에 반했어?」
   「넌 뭐 그런 걸 물어보고 그러니. 그런데 오빠 내 첫인상이 어땠어?」
    나는 그녀들과 대화를 나눴으므로, 고로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즉 좀 전에 봤던 나체맨들이 맷돼지를 막 뜯어먹던 장면은 내가 잘못 봤던 거였다. 다시 말해 들개들이 웬 마네킹을 막 핥아먹고, 빨고, 물고, 비비고, 킁킁킁 냄새 맡는 장면이었던 것이다. 
   「오빠 나랑 결혼할 거야? 아니면 얘를 데리고 살 거야! 그러지 말고 오늘 우리 별장에서 파티하니까 거기나 오시지. 드레스코드는 알아서 생각하시고.」
   「이 오빠 정말 올까?」
   「혹시 속았다고 짜증내지는 않겠지?」
    그러면서 그녀들은 가버렸다. 쟤네들은 지들 맘대로 왔다 가버리네. 도대체 뭐 하는 애들이지? 일부러 날 따라다니는 거 보면 썩 질나쁜 애들 같지는 않은데. 쟤네들 하는 거 봐서 괜찮은 남자 소개시켜주는 거 생각 좀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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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의 별장에 도착. 파티를 즐기는 사람들은 하나도 없었다. 분위기가 뭐 이래? 안에는 마네킹들만 가득했다. 그럼 그렇지. 난 설마 했는데 결과는 '역시나'였다. 어차피 애초에 나는 기대하지도 않았다. 때문에 빈정상하지도 않았음은 물론이다. 그래서 나는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내 별장으로 돌아가서 곧바로 일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미련한 상심을 극복하지 못했다. 그러니 마음의 상처를 어떻게 모면하나. 그 때문인지 몰라도 왠지 모르게 나는 엉덩이가 근질근질했다. 허나 누구나 알다시피 내가 꼭 어딘가로 떠나고 싶어 안달난 건 아니다. 그런데 왜 이처럼 싱숭생숭하지? 그러게 말이다. 허나 시원찮은 애마가 없어 아쉽지는 않다. 사랑이야 도망가든 말든 관심없으니까. 그래서인지 몰라도 난 최근 전업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생각해보니까 괜찮은 영화가 흔치 않으니까. 그런데 영화감독으로 직업을 바꾸면 희곡이 또 문제인데. 하여튼 젊어서는 신용카드 돌려막기요 일상적으로 돌려입기, 칼럼도 알고보면 돌려까기? 잘한다 잘해. 그럼 뭐 마감일에 쫓기는 소설은 말 지어내기네. 난감하다. 한심하구만. 하긴 언젠 안 그랬나? 굶주린 늑대가 진한 사랑의 무대로부터 멀리 있으니 딱하단 말은 아니다만. 정말 왜 나는 절망과 가난과 무정에 대해서 지역방어만 해야 하나. 그럼 아는 동생들도 다 떠난 마당에 새로운 숙녀나 사귈까? 제발 한번만 만나달라며 애원하는 여자가 몇인데. 귀찮다. 뿐만 아니라 풍차도 멈췄다. 이대로 젊음은 썩었을까? 아니다. 미소만 썩었다. 침대를 준비하는 사람 따로 있고, 침대에 눕는 사람 따로 있다만. 패배주의 증후군이라는 형기는 가혹할 따름. 그러나 나는 불곰이 아니다. 때문에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를 사냥하지 않아도 된다. 좌우지간 이렇게 응석부리느니 차라리 무작정 집 밖으로 나가볼까, 하면 한다면 한다 좌우명도 소용없다. 이상은 멈췄다. 좋은 징조네. 역시나 잡념에 쩔쩔매는 중. 대체 이 일을 어쩌면 좋지? 뭘 어째. 어쩌지 않아도 된다. 그 누구도 날 유혹하지 않으니까. 그러니 얼마나 편해. 괜한 축제에 들러 아닌 척 눈을 희번덕거릴 필요도 없고 말이야. 그러나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남자. 허나 그런다고 뭐가 바뀌나. 이래서 사람들은 청춘으로 돌아가면 얼마나 좋을까 라면서 뻔한 타임머신 드라마를 보는 건가? 그래도 마음을 달래면 된다. 아울러 사랑에 대해 탁월한 학식을 자랑할 마음도 없다. 뿐만 아니라 금단의 열매를 따먹으라고 은근히 부추겨봐야 통 말길을 못 알아먹음. 속편하네. 아님 속이 없나? 솔직히 말해서 음탕한 상상을 억제하기 전에 벌써 동심부터 회복됐는데 어쩌란 말인가. 더더군다나 세계마초협회로부터 감시를 받지도 않는다. 그런데 허당들이 왜 날 추격해? 보아하니 마지못해 허영심이라는 왕좌에 앉아버린 거다. 실상 블로그에 너무 많은 비밀을 누설해버려서 기력이 소진됐을 것이다. 기왕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솔직히 말해서 재미없음과 심심함과 권태와 가난에 만족하지 않으면 안될 형편. 허나 모험과 호기심과 감수성에게는 문을 열어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날 찾지 않는다. 그런데 어떻게 탄력을 받나. 고전주의는 잊혀졌다. 복고풍도 더럽다. 그래. 풍운아가 되긴 글렀다. 그건 그렇다만 나는 대체 누구일까 라는 생각이 쓱 고개를 드는 걸 보면 어느새 철학자. 더더군다나 나는 사랑을 아름답다 말한 적 없다 라는 착상? 일찍이 시인. 아무리 그래도 가난한 예술가. 그런데 왜 하필 개 풀 뜯어먹는 소리를 내가 전담해야 하는지. 이처럼 나는 지독한 슬럼프에 직면했다. 그나저나 징을 치는 것은 토끼를 잡는 방법이 아니다. 헌데 뭘 잡으려는 줄도 모르면서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고? 아마도 난 좀 더 멍청해진 것만 같다. 무슨 개뼉다귀 같은 공상은 끊이질 않는 걸 보니 말이다. 그럼 언젠 영특했나 하면 것도 아니다. 더불어 정체성 역시나 예전 같지 않기 때문인가? 옛날에는 그랬다. 잔소리든 잔지식이든 한 귀로 들어갔다가 다른 쪽 귀로 빠져나갔는데. 뭐든 한 귀로 들어갔다가 다른 쪽 귀로 빠져나가지를 못하는 실정 (절레절레). 이래서 세상의 비밀을 어떻게 탐구하나. 여심조차 엉뚱하도록 추측하기 마련. 물론 숙녀의 감성이 결코 만만하다는 말은 아니다. 다시는 사랑을 얕잡아봐서는 안될 테니까. 인생은 영원할 수 없는데 멜로드라마한테 또 농락당하라고? 그래서는 안된다. 그럼. 품위 유지비가 부족하고 지성이 메말랐다는 얘기 더 해서 뭐 하냔 말이다. 
    그래서 나는... 그래서 나는...>





    4

    내가 이 낯선 휴양지에 온지 며칠째인지는 벌써 잊어버렸다. 어떤 들뜸과 설렘에도 무감각해졌다. 그런데 여기까지 와서 또 권태한테 발목잡히는 건가 싶을 때. 바로 실비아&신시아가 찍는 단편영화에 조연으로 참여하게 됐다. 
   「오빠. 영화 찍어봤어?」
   「아니.」
   「그럼 주연이나 조연 경험은?」
   「영화판에서 날 불러주지 않는다고 나는 슬퍼하지 않았어.」
   「그럼 이 오빠 우리 영화에서 데뷔하는 거야?」
   「너네들이 영화에 대해 뭘 알아?」
   「이제 알았다. 오빠 농담은 바로 이런 식이구나.」
    그녀들이 찍는 영화는 웬 난장이가 어린이들을 만나 비밀스러운 UFO 생산기지를 염탐 및 침투한다는 내용이었다. 즉 장편을 드라마 40부작으로 늘리는 것과 달리, 장편영화를 단편 시리즈로 나누는 방법을 간택했다고 할 수 있는데. 
   「오늘 실비아는 일체복에 하이힐을 신었구나. 신시아는 멜빵에 숏팬츠와 스타킹 그리고 빵모자? 너가 예술가니! 아, 지금 영화 찍는 중이니까 틀린 말도 아니네.」
   「오빠가 우리 칭찬하는 거니?」
   「그런 거 같은데. 놀리는 걸로 들리지는 않으니까 말이야.」
   「그나저나 각본을 읽어봤는데 난쟁이와 어린이가 주연이고 나머지 등장인물은 없는데. 난 대체 무엇을 해야 하지?」
   「그걸 왜 우리한테 물어?」
   「미안. 내가 알아서 할께. 아하, 그런 걸 바란 거구나. 원하는 그림이 바로 그런 거였어. 내가 모를 줄 알았어?」
    참고로 말하자면 그녀들이 챙겨온 장비는 매우 간단했다. 다만 옵션이 비싼 자동차처럼 정작 주카메라는 핸드폰에 불과했으나 나머지 악세사리들이 전문가용이라는 점. 예사롭지 않았다. 그녀들이라면 나를 흔치 않은 신부들러리로 꾸며줄 수 있을 것만 같은데. 이런 느낌 처음일까? 그럼 처음이지 내가 뭐 냉동 참치인가! 나는 백곰도 불곰도 팬더도 아니다. 나는 남자니까 말이다. 
    필름 빨리 감기.
    필름 빨리 감기.
    필름 빨리 감기.
   「그런데 이 오빠 내 핸드폰 동영상에서 보이지가 않는데. 왜 이러지?」
   「그게 무슨 소리야?」
   「봐 봐. 다른 건 다 정상이야. 다른 사람들은 다 보이잖아. 저 까마귀 떼까지. 그런데 저 오빠는 왜 화면에 나타나지 않지?」
   「너 대체 카메라한테 뭔 짓을 한 거니?」
   「넌 지금 카메라를 악기로 비유한 거니? 그 말은 날 남자로...! 내가 아무리 굶주렸기로서니 얘. 나는 굶주린 늑대가 아니야.」
   「뭣이 어째? 누가 너한테 굶주릴대로 굶주린 늑대라고 했니? 누가 그랬어? 어? 내 이년을 당장, 대체 언년이 우리 실비아를 놀려? 얘 마음의 상처 치유하자. 오빠한테 맛난 거 사달라 할까? 오빠. 왜 오늘 빈 손으로 왔어?」
   「내가?」
    나는 자켓 안주머니에서 꽃 한송이가 귀엽게 포장된 꽃다발을 그녀들에게 하나씩 나누어줬다.
   「와! 이 오빠 은근 감동인데. 오빠 여자를 알아?」
   「이 오빠 혹시 마술사 아니니? 근데 생긴 게 왜 이래.」
   「혹시 우리한테 모자를 선물로 받고 싶어서일 수도 있어. 지켜보면 알겠지. 언제 흑심을 드러낼지 말이야.」
   「너도 그렇게 생각하니? 나는 이미 보이지 않는 군침을 읽었어.」
    뭐가 어쩌고 어째? 지들끼리 아조 그냥... 허허허. 지들이 내게 눈독들였으면서. 또 영화배우로 날 스카웃한 것도 지들이고 말이야.
   「아무튼 늬 핸드폰이 맛탱이가 간 거 같아. 새로 나온 최신품들 많잖아. 바꿔. 아니면 저 오빠가 사줄 거야. 그치 오빠?」
   「나는 여자한테 돈 쓰도록 허락하지 않아.」
   「뭐가 어쩌고 어째? 그럼 여자한테도 돈 못 쓰게 하고 오빠도 안 쓰고, 어? 그럼 어쩌자는 거야! 이 오빠가 증말... 허허허. 농담이야 오빠. 그런데 가만 보니 오빠는 지갑 없는 거 같은데, 왜지? 무슨 사연이라도 있어? 줄거리 있으면 귀뜸해줘. 우리가 영화 찍어줄께. 잠깐만. 그러면 손수건도 없는 거야? 하긴 넥타이 맬줄 아냐 모르냐를 따져서 뭐 하겠니. 좌우지간 그건 그렇고. 내 핸드폰으로 찍을께. 그럼 됐지? 게다가」
    그녀는 핸드백을 열어서 그 안에 가득 담긴 핸드폰 여러개를 보여주었다.
   「역시 너다. 호호호. 넌 너라구! 역시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아.」
    잠시 후.
    실비아 다음으로 신시아 핸드폰 동영상 화면에도 나는 나타나지 않는다고 했다.
   「뭐야? 정말이야?」
    나와 실비아는 서둘러 신시아의 핸드폰을 봤다. 
   「뭐야? 정말 내가 없잖아?」
   「이 오빠 봐 봐. 오빠가 저쪽에서 내게 왔으니까 당연히 없지. 그렇지만 신시아는 확인했지?」
   「응. 그럼. 난 혹시 늬 핸드폰 화면에서도 오빠가 없을까 봐 쫄았잖아. 이게 무슨 공포영화도 아니고 말이지. 그렇지만 난 겁먹지 않았어. 뭐야, 오빠 표정이 왜 그래? 설마... 바지에... 그러지 말고 내면연기 신경 좀 써. 이거 장난 아니야. 세계적인 영화제는 물론 넷플릭스가 우리한테 러브콜을 보내는 중이니까. 이미 계약했어. 수많은 소속사들이 거액을 제시하는 중이란 말이야. 오빠 나중 우리한테 고마워해야 할 거야.」
    장면 전환.
    장면 전환.
    장면 전환.
    우리가 머문 공원에서 원하는 구간을 모두 찍었다. 커피, 빵, 음료수를 먹으며 쉬기 위해 장소를 옮겼다. 도착해서 좀 전에 찍은 동영상을 함께 감상했다. 그런데... 그런데... 화면에 내가 보이지 않았다.
   「뭐니?」
   「글쎄. 뭘까!」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는데. 너 뭐 아는 거 없어?」
   「내가 하고 싶은 말이구나. 이걸 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하지!」
   「오빠가 설명해 봐.」
   「응?」
   「뭐해? 우리가 알 수 있도록 뭔가 말해달라고. 응?」
   「나는 여자의 마음을 훔치지 않았어.」
   「뭐? 오빠가 우리 나체를 훔쳐보는 상상을 했다고? 하긴 나 아까 봤어. 오빠가 신시아 엉덩이를 찬찬히 엿보는 걸 말이야.」
   「내가 언제!」
   「농담이야. 근데 왜 발끈해? 더 수상한데.」
   「내가 언제!」
   「(따라하기) 내가 언제!」
   「아니 근데 왜 동영상에 오빠는 없는 거지?」
    우리 셋은 벙쪘다. 모두 말수가 부쩍 줄었다. 
    그렇게 오늘, 내일, 내일 모레... 만나는 횟수도 줄었고. 연락도 끊겼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들은 떠났다. 
    그렇게 또 일주일이 지나갔다.





    5

    찬란한 황금빛 미래를 앞당기고자 주도하는 일은 무엇일까? 모른다. 이상적인 환상이 우리를 매혹하지 않기 때문에 알 수 없을 따름. 하긴 장밋빛 인생은 유행가 가사에 다 있다. 반면 아름다운 사랑은 내게 없나? 있는지 없는지 관심은 딴 데 있을 뿐이지. 결국 흑심의 사냥개일 것이냐 사랑의 포로일 것이냐 사이에서 고민할 수도 있는데. 정작 달콤한 당근은 어디 가고 남은 건 채찍만이 (절레절레)! 보아하니 좋은 개뼉따귀가 착한 개한테 꼭 돌아가는 것만은 아니라는 격언. 다 큰 어른이 그런 말에 꼭 감동받아야 하나? 개 풀 뜯어먹는 헛소리는 웬만한 바보들도 안한다. 이처럼 더럽게 재미없는 일상에 신나는 전개가 임박했다는 암시, 이젠 기다리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신비스러운 기쁨이 종적을 감췄든 숨었든 만족과 불평을 구분하지 못할 지경이니까. 그래서일까? 우리는 보면 특별함에 실망하고 평범함에 안심하는 측면이 없잖아 있다. 하긴 우리 나이 정도 되면 열띤 질투심도 탐욕스러운 욕망을 더 이상 부채질할 수 없다. 그렇다고 그걸 꼭 농담 반 진담 반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그건 그래도 다정한 행복과 치명적인 쾌락을 뒤늦게 일망타진하지 말란 법도 없다. 말하자면 우리는 막살자 별칭과 과도하도록 친하지 않은데. 내가 벌레 먹은 사과가 될 수도 없고 타락해서도 안될 것이다. 허나 건전한 관심사만 추종하다가는 꽉 막힌 어른이 될 여지가 없는 것도 아니므로. 자, 이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거지? 놀면 된다. 아니면, 놀면 뭐 해? 자, 뭔지는 잘모르겠다만 걷잡을 수 없는 흥분감은 자제시키고. 좌우지간 새 구두가 손에 들어올 때까지 헌 구두를 버리지 말라 하지 않나. 근데 탐스러운 열매가 제 발로 걸어온다는 보장도 없을 뿐더러 내 손에 호박은 없다. 그러게 낭만적인 로맨스는 생각도 말자. 지금은 전심을 다해 회전목마를 탈 때가 아니다. 어디서 보물을 찾고 어떻게 로얄제리를 따먹을 것인가? 그러든 어쩌든 자유를 만끽하다 실망할 것이다. 하오나 미리 실망할 시간낭비를 사전에 방지하니 다행히긴 한데. 그렇다고 병풍 배역에 싫증났단 말은 아니다. 일단 아침에 일어나서 꿈과 사랑을 노래하지 않는 것만 봐도 그렇다. 그 뿐만이 아니라 허풍은 더럽다. 다변이 뭐가 유쾌하나. 물론 그렇다고 희망이 땅에 떨어졌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미련한 열망은 뭔가 가엾다고나 할까? 그게 대체 뭔 얘긴지 하나도 모르겠다. 누가 아나? 아무도 관심없을 따름. 뿐만 아니라 가진 돈 전부를 털어도 고급스러운 애마를 살 수 없다. 하긴 만약 가져도 금새 지겨워질 수도 있다. 그럼 또 바꿔야 하는데 귀찮아질 따름. 그렇긴 하다만 돈 쓰는 재미가 지겹지는 않을 것이다. 아니면 사는 낙이 진부해진 건가? 아무래도 생각이 낡아버린 것만 같다. 그에 대한 꽤 괜찮은 처방은 다름 아니라 새로움일 텐데. 그나저나 난 왜 웃지 않을까? 쾌활함을 잃어버렸으니까 그렇겠지. 그게 뭐 놀라운 일인가. 좀처럼 재밌지 않을 뿐. 그렇다고 뭐 울어? 만약 울어도 옆에서 말릴 사람도 없다. 설마 더 따분할 수 없는 현재는 아마도 언젠가 신기해서 마치 꿈을 꾸는 것만 같은 미래에 대한 전조인가? 그러든 아니든 고전주의는 늙었다. 낭만파의 젊음도 가버렸다. 혹시 너 나 할 것 없이 웬만한 어른들 기분은 다 이러나? 알 게 뭐야. 나도 한땐, 아니다. 여기서 이럴 게 아니란 말이다. 
    그래서 나는 집으로 돌아갈까 생각해봤다. 그러다가 동네 산책이나 하고 오자 라면서 별장을 나갔는데. 실비아와 신시아가 내 앞으로 지나갔다. 시간이 잠깐 정지됐다가 슬로우 모션으로... 그때 나는 보았다. 실비아와 신시아가 아닌 증거를 발견한 것이다. 즉 실비아는 눈 옆 살짝 밑에 점이, 신시아는 입 옆 살짝 아래에 점이 있었다. 그리고 매력적인 몸매는 예전 그녀들보다 약간 어땠고. 뭔가 달랐으며. 상당히 젊어졌다고나 할까? 그렇다고 일주일 전에 실비아와 신시아가 늙었다는 말은 아니다만 이건 뭔가 이상했다. 그때 그녀들이 행군하는 군인처럼 뒤돌아서서 내게 돌아왔다. 그리고 로보트처럼 내게 물었다. 
   「오빠. 우리한테 할 말 없어요?」
   「너는 처음 보는 남자한테, 아저씨 죄송해요. 신경쓰지 마세요.」
   「아니.. 그게...」
   「왜요? 우리를 아세요? 모르시죠? 그렇지만 우리는 오빠를 알아요.」
   「그치? 뭐 자세한 얘기는 차차 하기로 하고. 오늘은 여기까지! 안녕 오빠 (윙크)」
    둘이서 돌아서서 걸어가는데 윙크한 실비아는 돌아보지 않았다만, 윙크하지 않은 신시아는 뒤돌아보며 입술을 살짝 깨문 표정을 내게 보여주었다. 저것이...!
   「실비아랑 신시아 맞는데. 아닌가? 그럼 누구지? 설마 시간이 필름을 빨리 돌린 것처럼 흘러서... 걔네들 딸이야? 그건 아니잖아. 그럴 수는 없으니까 말이야.」
    그 후 나는 그녀들을 당분간 볼 수 없었다. 또 일도 하기 싫고 돌아다니기도 귀찮아 별장 소파에 자빠져 TV를 봤다. 바닷물이 사라지는 드라마가 종료된 다음 볼 만한 작품이 없었는데 때마침 괜찮은 걸 발견. 내용은 이랬다.
    (A) 영화 파일에서 어떤 배역만 감쪽같이 사라짐. 거짓말처럼! 데이터베이스는 물론 흩어진...아니 어떻게?
    (B) 졸업 앨범에서 누군가 지워짐. 탄소 기반 종이임에도 불구하고...어떻게 모든 졸업자들 앨범에서..?
    (C) 음악 앨범에서 처음엔 제2바이올린 파트 몇몇. 다음엔 목관악기 다음엔 더블베이스...! 처음에는 황금귀 1단 2단들만 의구심..쉬쉬하며 알려지다가. 나중엔 아마추어 1급 2급들도 모두 알게 되어 소문남.
    그런데 재밌는 점은 또 있다. A는 사후세계, B는 미래세계, C는 외계인 관련설. 그렇게 A + B + C = 드라마 장편 시리즈. 
    그렇지만 한꺼번에 몰아서 잠자는 시간만 빼고 이틀만에 다 봐버렸으므로, 또 심심해졌음. 





    6

    어느 날 나는 멈춰버린 놀이공원에서 나체로 요가하는 4명을 보게 되었다. 아니 어떻게... 저 가운데 2명은 실비아와 신시아고. 그런데 왜 전체 모습은 내게 안 보이는 거지? 쭈삣쭈삣 의도치 않게 나는 막 몸을 비틀고 그랬는데. 나머지 2명은 입 옆 눈 옆에 점이 있는 실비아와 신시아. 그런데 뭐 한다고 나체로 요가를. 내가 딱히 그녀들 근황을 궁금해하지 않았건만 아니 어떻게 여기서 그녀들 모습을 다 함께 보게 되지? 설마 꿈인가? (딱)~! 나는 그날 늦잠에서 깨어났다. 역시나 그럼 그렇지. 그렇다고 실망한 건 아니다. 난 그녀들 속살을 보고 싶어한 적이 없기 때문에. 그게 왜 궁금해? 관심없다. 그건 그렇고. 
    실비아&신시아를 닮은 그녀들은 나를 바베큐 파티에 초대했다. 
    장면 전환.
    장면 전환.
    장면 전환.
   「차린 건 없지만 많이 먹어, 오빠.」
   「정말 차린 게 없네.」
   「그래서, 실망이야?」
   「아니. 번잡하지 않아 좋단 얘기야.」
   「그럴 줄 알았어. 이 오빠 우리랑 통한단 말이야.」
   「그런데 오빠. 우리한테 뭐 할 말 없어?」
   「내가? 너네한테? 내가 뭐 잘못한 거 있나... 없지?」
   「우린 아직 통성명도 안 했잖아.」
   「아, 내가 숙녀한테 나이를 묻지 않는다면서 이름도 안 물어봤구나. 그렇지만 둘 다 물어보느냐, 아니면 누구를 먼저 물어보느냐. 난 플레이보이가 아니란 거만 알아두자.」
   「뭐야, 정말이었어?」
   「뭐가?」
   「오빠가 이 동네 숙녀들 다 따먹고 다닌다는 소문이 있던데?」
   「너네 그런 헛소문 또 어디서 들었니?」
   「뭐야 오빠도 아는 얘기야?」
   「그럼 오빠가 개뼉따귀 같은 추측성 염문으로부터 썩 자유롭지 않단 말인데.」
   「뭔 소리야. 말도 안되는 얘기 너넨 믿니?」
   「그러든 어쩌든 오빤 우리를 조력자로 보면 안돼.」
   「오빠 그런 사람 아니라니까 글쎄.」
   「근데 있잖아. 오빠 우리한테 뭐 부탁할 거 없어? 우리는 오빠 업어보고 싶은데.」
   「(딱)! 생각났어.」
   「그게 뭔데?」
   「검지에 침 묻혀서 네 눈 옆에 점, 네 입 옆에 점. 지워봐도... 안되겠지? 안 될 걸 난 왜 말했을까. 그러고 보니 너네 유도심문에 일가견이 있구나?」
   「못 할 건 또 뭐야! 어서 해.」
    잠시 후.
   「안 지워지지?」
   「내 그럴 줄 알았어.」
   「알긴 뭘 알아. 그러지 말고 바베큐나 먹자. 베고픈데 말만 너무 많이 하지 말잔 말이야.」
   「근데 이거 바베큐 맞니?」
   「와, 오빠 눈썰미 좀 봐. 오빠 바베큐에 대해 알아?」
   「내가 왜 몰라! 내가 바베큐만 지금까지 1,000마리를 먹은 사람이야. 알아?」
   「뭐 흑돼지 10,000마리를 오빠가 생으로 먹었다고?」
   「그런데 왜...」
   「그럼 이거 혹시... 바베큐 아니니?」
   「아니지. 아직도 모르겠어?」
   「바베큐가 아니면 뭔데? 설마...」
   「하이에나.」
   「하, 뭐?」
    왜일까 나는 갑자기 밖으로 나가 토하고 싶어졌다. 뭐랄까 그와 같은 충동이 뜻밖에 발생했다기 보다는 어딘가 울렁울렁한 느낌은 생전 처음 느껴보는 묘한 신체 현상이라고나 할까? 그렇게 나는 서둘러 밖으로 나가 정원에 토했다.
   「오빠. 농담이야. 오빠한테 농담도 못하겠네.」
   「근데 이 오빠 비위 상해서 토하는 게 아닌 듯한데. 이 오빠 뭔가 이상해.」
   「오빠 대체 왜 그래?」
    내가 한참을 헛구역질하는 동안 그녀들은 뭔가 낌새를 눈치챘던 것만 같다. 왜냐하면 그 즉시 나는 새끼 하이에나를 입으로 토해냈기 때문이다. 뭐야 이거! 말도 안돼. 이게 어떻게 가능해? 설마 얘네들이 내게 무슨 약을 먹였나? 이건 환각 증상이 아니라 진짠데.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이게... 이거... 아니...」
   「오빠... 괴물이구나.」
   「무서워.」
   「나 오줌마려워.」
   「얘 근데 그게 문제가 아니야.」
    그녀 말마따나 새끼 하이에나는 우리와 다른 물리적 시간을 겪고 있었다. 때문에 급속도로 하이에나 성체로 성장하는데. 그렇게 순식간에 다 커버리자마자 하이에나는 나를 투명인간 취급하더나 그녀들에게 눈독을 들였다. 물론 그게 단순한 흑심에 불과한지 야성적인 맹수 본능인지는 더 두고 봐야만 확실해질 것만 같았다. 그러다 어쩌다 하이에나는 실비아&신시아를 닮은 그녀들 쫓았고, 실비아&신시아를 닮은 그녀들은 하이에나한테 쫓겨서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정말로 내 육안에서 사라지는 건 금방이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 왜 지금... 물론 분위기가 좋든 말든 이게 다 뭐냔 말이다. 
    그리고 그날 나는 그녀들을 볼 수 없었다. 물론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기 때문에 취기도 올랐겠다 바베큐도 남았겠다 혼자 먹다 뻗었다. 





    7

    그 일이 있은 후 내 일과는 완전히 뒤바껴버렸다. 오전에는 하이에나를 찾아서 헤매고, 오후에는 실비아&신시아를 닮은 그녀들을 방방곡곡 찾아다녔다. 그러나 허탕만 치기 일쑤. 그렇게 딱 3일 경과! 
    나는 뒷산 동굴까지는 아닌 웬 구덩이에서 실비아&신시아를 닮은 그녀들이 나체로 멧돼지를 뜯어먹는 장면을 보고야 말았다. 아니... 저건... 지들이 좀비야 뭐야? 게다가 멧돼지는 TV로 동물의 왕국처럼도 아니고 거의 산 체로 죽은 듯 산 듯했다. 나는 가서 감염될지 모른다 맛은 있냐 라면서 뜯어말리기 위해 그녀들한테 접근했다. 
    장면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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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빠 지금 우리 앞에서 발가벗고 뭐해?」
   「오빠 제정신이야?」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 이게 어떻게 된 거냐 하면. 내가 스스로 옷을 벗은 게 아니야. 저기서 내가 너희들을 봤을 땐 분명 나는 멀쩡했고 너네들이 나체로 멧돼지를 뜯어먹고 있었어.」
   「멧돼지? 무슨 멧돼지?」
   「반 죽은 멧돼지. 근데 멧돼지 어디 갔니?」
   「무슨 멧돼지 개뼉따귀 같은 소리야 그게!」
   「와, 근데 저 오빠... 봤니?」
   「넌 무안하게 너무 빤히 쳐다보는 거 아니니? 근데 너도 잔근육 좋아하니?」
   「하긴 그게 잔소리보단 낫지 않을까?」
    물론 그녀들은 텐트 쳐놓고 캠핑을 즐기고 있는 중이었다. 이게 다 어떻게 된 일이지? 나는 정신사나워서 서둘러 도망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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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개떼에 쫒겨 들어간 외딴 집. 그 외딴 집에 나는 들어가선 안되었던 것일까? (그걸 왜 나한테 물어보슈? 일단 들어보셔 형씨) 그 안에서는 뭔가 어떤 심각한 분위기 가운데 머리에 동물 마네킹 입체가면을 쓴 사람들이 무엇에 빙 둘러 서 있었다. 그걸로 판단컨대 걔네들은 어떤 집단 모임원인 것 같았고, 그들이 빙 둘러선 그 원 안에 대체 뭐가 있는지 몹시 궁금해 미칠 지경이라는 점. 때문에 나는 엉덩이가 근질근질하여 실례합니다 저기요...같은 인사말은 속으로 쏙 들어가버렸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그들에게 쓱 접근하여 기웃기웃 그 안에 대체 뭐가 있길래 느낌 세한 것인지를 알게 됐는데. 대관절 그 원 안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그들이 원형으로 둘러서 내려다보는 침대에는 다름 아니라 내가 누워 있었다. 다만 차이점이라면 누워 있는 나의 눈 코 끝에 조그만 점이 있다는 게 다르다면 달랐을 것이다. 지금 와서 얘기지만 나는 손에 침을 묻혀 그걸 지워보려고 시도라고 해봤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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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비아&신시아를 닮은 그녀들은 나를 흔들어 깨웠다. 
    그리고 나는 그녀들과 퍽 흡족한 캠핑을 즐기게 되었다. 





    8

    별장 근처를 지나다니는 여자들과 더불어 인근 휴양지에서 흔히 보이는 패션. 그건 다름 아니라 호피 무늬 패션이었다. 꼭 그 때문은 아니겠으나. 또 최면이라는 퍽 타당하지 못한 동기를 탓할 수도 없겠으나. 나도 예전에 한 번쯤 그런 옷을 입어보고 싶기는 했다. 아마 혼자 있을 때만 말이다. 아니면 여자친구랄지 애인한테 어떤 복장을 입는 깜짝 이벤트를 선물받는 건 꿈도 못 꾸었으나. 어찌 됐든 주변에서 하도 호피 무늬가 자주 보이길래 나도 보르게 비슷한 옷을 거리에서 구입했다. 별장에서 일할 때 즉 오직 노트북 앞에서만 입기 위해서. 그렇게 정작 입어봤더니 느낌이 색다르기는 했다. 그런데 그 이후가 문제였다. 노트북 앞에서 속옷도 입지 않고 딱 호피 무늬 복장만 즐겨입었더니 그때부터 이상하게 나는 생식을 먹고싶어졌다. 익은 소고기보다 생고기. 육회. 돼지고기 요리보다 생돼지고기. 또 조류, 생선, 기타 등등. 뭐 거기까진 괜찮다. 그런데 또 다시 그 다음. 
    내 헤어스타일이 지 혼자 변했다. 옆머리에 듬성듬성 보이던 새치. 그게 싹 다 없어졌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왜냐하면 옆머리가 다 빠져버린 다음 짐승처럼 뻣뻣한, 멧돼지 털 같고 진짜 하이에나 같은 털이 자라났기 때문이다. 또 눈탱이가 밤탱이나 된 것처럼 다크써클이 짙어졌다. 그렇게 점진적으로 동물화가 진행되더니 마침내 나는 한마리 하이에나가 되어버렸다. 다시 말해 나는 숙주를 빼앗겨버린 것이다. 앙탈은 통할 수 없었다. 게다가 대비할 여유도 없었는데 마음의 준비를 어떻게 하나! 그러니까 반격을 어떻게 해. 심지어 눈에 보여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훑어보든 말든 할 건데. 이건 뭐... 애시당초 나는 상대도 되지 않았구만 그래. 이처럼 도저히 덤빌 수 없는 상대의 정체조차 나는 몰랐다. 
    그런데 대체 누구한테 내 원래 육신을 빼앗겼을까? 그걸 알면 아마도 애초에 나는 내 숙주를 빼앗기지 않았을 것이다. 대략 언젠가 뺏기긴 뺏기더라도 최소한 훨씬 그 예상 기간을 늘릴 수 있었을 거란 말이다. 육체강탕일을 그처럼 미루든 사전에 방지하든 그랬어야 했는데 이미 불어진 일. 없지러진 물. 그럼 이 경험을 어떻게 다시 살렸나? 그 뒤로 내가 계속 하이에나처럼 산과 들과 숲을 떠돌아만 다녔다만 당연히 사연 많은 인생에 대해 세상에 알릴 수 없었을 것이다.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내가 몸둥이를 빼앗겼던 것처럼 새로운 숙주를 탈취했기 때문에 이와 같은 줄거리를 고백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 노트북 앞에서 일어나 잠깐 거울을 보니... 잘생겼다. 물론 뻥이다. 왜 하필 영화배우나 모델처럼 멋진 숙주를 탈취하지 않은 채 허접한 허당 속으로 들어간 다음, 내가 당했던 것처럼 녀석을 짐승으로 둔갑시켜 발로 뻥 차서 숙주에서 쫓아내버렸나. 왜냐하면 그거 저거 가릴 처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난 정말 걸핏하면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닌 인생이구만. 재미없다. 그럼 나에게 숙주를 강탈당한 녀석은 나한테 배우긴 배운 걸까? 하긴 나야 도플갱어한테 당할 만큼 당했으니 이와 같은 육체 뺏기가 가능했던 거고. 도플갱어든 유령이든 귀신이든 그런 신기한 경험을 전혀 겪어보지 못한 사람이 뜬금없이 육신 탈취를 스스로 깨우치기는 힘들 것이다. 그나저나 나는 나를, 즉 원래 나를 쫓아가서 설득하든 때리든 나를 되찾아야 한다. 그런데 걔가 어디로 가버렸지? 위치추적이라도 가능하면 좋을 텐데. 설마 또 뭇여성을 냅다 꼬셔서 만나자마자 신혼여행을 떠나버린 걸까? 만약 그렇다면... 나는 다 된 밥상에 숟가락만 올리면 되잖아? 그게 아니라 지금 그런 말을 하자는 게 아니라. 혹시 그렇게 삼자대면을 하더라도 만약 내가 실패하면 내 숙주를 빼앗은 신비스러운 마귀는 날 가만두지 않을 것 아닌가. 왜냐, 나 때문에 다 된 밥에 코 빠트렸을 테니까. 그럼 나라고 뭐 뻔뻔히 닭 쫓던 개처럼 지붕만 쳐다보며 아쉬움을 달랜다?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도망가도 부족할 것이다. 그래서 생각했다. 섣불리 녀석한테 덤비면 절대로 안된다는 것을 말이다. 그럼 어떡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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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면 전환.





    9

    나는 드디여 드라마에서 봤던 그 흔한 장면. 벽면 전체에 포스트잇을 덕지덕지 붙이는 걸 따라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중간중간 거울을 봤다. 일단 새롭거든. 너무 낯설기 때문에 거울을 중간중간 안 볼 수가 없었다. 타인을 못생겼다 평가하거나 내 주변에 죄다 단춧구멍들 밖에 없다는 숙녀의 푸념을 조용히 경청만 하거나. 그게 아니라 일단 이 숙주는 지금 내 것이니까. 감상해도 된다. 그래야 한다. 환생한 기분이니까. 일단 부활했는데 생판 처음 보는 육신이네? 이 정도면 뭐랄까 늬가 어디 여자들 다 따먹고 다닌다며? ~라는 놀림을 받아도 썩 억울하지 않을 것이다. 뭔가 가당키나 하던가 쌍방 농담을 인식할 형편이라면 또 모를까 날 없신여기는지조차 구분 못 할 위인인가는 잘 모르겠다만. 새로운 숙주의 성격을 이어받지 않을 걸로 보건대. 한마디로 나쁘지 않다. 하긴 생각해보니 지금의 제2숙주라면 또 모를까 그 전 제1숙주. 즉 최초 숙주 상태에서 저 오빠가 (지명) 여자들 다 따먹고 다닌다며? ~라는 말이 일부러 들리도록 흘려지면 그건 누가 봐도 멕이는 것이다만. 지금은? 아, 잠깐! 그럴 게 아니라 이승에서 제1 숙주에서 제2 숙주로! 그걸 연구해서 자본주의의 꿀맛을 보면 되잖아? 어차피 사후세계는 모르니까 궁금한 게 당연한데. 소멸, 환생, 천국, 연옥, 지옥, 환생주기가 길어지면 방황, 패자부활전, 또는 불교의 윤회를 비롯해 우리가 상상도 못할 방정식에 따라...... 논란은 분분하다만 누구도 모른다. 아무도 확신할 수 없다. 다만 뭔가 은그할 뿐! 이걸 현생에서 증명했으므로 이제 돈방석에 앉는 건 시간 문제잖아? 농담이고.
    한편 내 원래 숙주는 대체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아마도 여자 뒤꽁무늬나 쫓아다닐 게 뻔하다. 분명히 군침은 흥건할 테니까. 왜 아니겠어? 녀석은 내가 잘 아는데 그야말로 흑심이 질펀한 걸로도 모자른다. 찌질한 녀석. 분명 방탕과 타락 사이에서 흔들릴 거야. 때문에 녀석은 블로그를 그냥 방치할 테니까 나라도 일단 업데이트는 해야 한다. 하던 일 해야 하니까. 그런데 녀석이 옛날의 나처럼 굶주릴 대로 굶주린 처지가 아니면 어떡하지? 그야 만나봐야 알든 모르든 할 텐데. 가만 있자 (몸짓) 녀석을 어떻게 골탕먹이지? 꼼꼼히 작전을 수립하지 않으면 안된다. 안 그러면 역으로 당할 테니까. 따라서 나는 감정적으로 녀석처럼 환장하지 않으려고 조심했다. 안 그래도 우리는 원래 여자 보기를 돌맹이 보듯 한다. 숙녀? 관심없다. 우리가 뭐 웬만한 허당들처럼 아무한테나 첫눈에 반하는 줄 알면 오산이다. 그럴 일 없다. 근데 사랑도 없을까? 그걸 알아서 뭐 하나. 좋든 싫든 당사자들이 알아서 하는 거지. 좌우지간 우리는 미녀라면 사족을 못 쓰는 그런 남자 아니다. 딸아 아빠만 빼고 이 세상 남자들은 모두 늑대이니라, 라는 전제에서 바로 그 아빠가 우리다. 근데 어째서 우리는 오빠라는 말만 들으면 미쳐버리지? 알 게 뭐야! 그런데 뭐라고나 할까 그 그게 그러니까 어떤 격언이 떠오른다. 그건 대체 뭘까? 꽃도 꺾을 때 꺾어라. 뭐, 뭐? 뭐가 어쩌고 어째? 아, 흥분하면 안된다. 지금 그럴 때가 아니니까. 나는 일단 새로운 숙주의 뚜껑 없는 오픈카를 타고서 휴양지 호텔로 떠났다. 일 먼저 하려다가 일을 뒷전으로 미뤘냐, 가 아니라.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 위해서. 가서 일도 하고 놀기도 하고. 임도 보고 뽕도 따고 얼마나 좋나. 그렇게 나는 벌렁벌렁 들떴다기 보다는 희망찬 기대를 품고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체 떠났던 것이다. 





    10

    엄살은 남 얘기다. 유난 떨기도 지겨우니까. 그런데 어떻게 사교계에서 플레이보이로 복무하는 게 재밌겠나. 부질없다. 그러니까 여심을 간파하는 데 기복이 심한 게 아니라 녀석은 깨달았다. 멜로드라마에 복귀할 수 없다는 것을. 왕년에 아는 (여)동생들한테 지 맘대로 빽넘버 부여하고, 아는 (남)동생들한테 뭇여성들 꼬셔준다면서 떠벌린 허풍. 그 때문에 NB는 결정적으로 지금 지갑도 없었다. 그런데 무슨 수로 허영기 발랄한 숙녀한테 고상한 연애를 가르쳐주나! 게다가 말로는 영화감독으로 전업한다면서 맨날 소파에 자빠져 그게 뭐 하는 거야? 허구헌 날 여자만 자빠트릴 생각은 안 할랑가 몰라. 자빠트리긴 뭘 자빠트려! 탐탁치 않은 연애사 전적 탓을 해서 뭘 하나. 소용없다. 좋게 뚜껑 열리는 데 순종하는 수 밖에. 보아하니 기쁨이 넘치는 진공청소기 같은 행복은 잡히지 않는 나비요, 짜증으로 가득찬 커피포트 같은 불쾌지수라는 나방만 남은 득점판인가? 결국 그 인간은 지식노동과 지적 허영심을 분간 못하는 갱년기에 도달하려는 중.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몽정기? 그는 애써 부정하므로 하늘을 쳐다봤다. 그런데 통 별이 보이지 않네? 설마 미래도? 낮인 걸 깜빡했음. 근데 그는 어쩌다 마감일을 놓쳐버렸다. 그런데도 아무일이 없네? 그럼 그냥 이참에 확, 아니다. 그처럼 딴청만 피우며 엄살이나 떠는 주제에 뭘 하겠다고. 고로 녀석은 또 다시 도플갱어한테 숙주를 내어주고 말았다. 자, 이제 나는 무엇을 할까? 평소에 NB 녀석이 얼마나 숨어지냈는지 알만 하다. 보아하니 바쁘지도 않고, 잘 보일 사람도 없으며, 그 때문에 뭇여성들 마음에 들기 위해서 인터넷 쇼핑이나 했구만 그래. 그렇게나 즐거운 인생은 잡히지 않았던 건가? 행복한 사랑이 대체 뭐 어렵다고 말이야. 옛말에 그랬다. 열려 있는 문으로 개가 들어온다고. 허나 다리 떨면 복 달아난단 말이 왜 갑자기 떠오르지? 가뜩이나 개구멍도 보이질 않고 쥐구멍조차 막혀버렸는데. 이제 정말 저 그렇게 꽉 막힌 사람 아닙니다 라는 너스레 떨 기회조차 박탈당했단 거야 뭐야. 그러거나 말거나 이럴 때 애인이 나타나 오빠를 위해 준비했어 라고 속삭여주면 좋을 텐데. 놀러가자는 친구는 커녕 돌아가는 세상사가 결코 심상치 않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기 전에 일이다. 아직은 말이다. 그건 그렇긴 하다만 젊음과 꿈과 기쁨은 다 어디로 가버렸을까? 그걸 지금 왜 궁금해 하는데. 이러지 말고 유쾌한 일을 하나 만들까? 그런데 어떻게, 그게 문제다. 그렇지만 뭐랄까 설마 설마 하니 이대로 사교계와 영영 등돌리고 살 것인가? 아니다. 그러면 안되니까. 언젠가 때 되면 사랑은 또 온다. 너무 많이 와서 걱정일지도 모를 일. 물론 말이 그렇고. 하다못해 맘 먹으면 당장 어디든 떠날 수 있음. 다만 그대를 기다리는 숙녀가 (손차양) 썩 거론하기에 속상하다만. 어차피 한 발에 두 신을 신을 수 없다. 그래서 혹시 그분들께서 신발만 무려 100켤레? 알 게 뭐야. 그러든가 말든가. 아무튼 이번 연재 분량은 이 정도면 됐다. 더 했다가는 여기저기 커피포트 바빠질 일만 남았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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