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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소설 2018. 7. 15.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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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스러운 그대들 요정이시여, 내가 너에게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줄께요. 천사님들아 복음과는 또 다른 무척 신나는 이야기를 이제 들려주마. 그러니 잠시 귀를 기울여주지 않겠니? 궁금한 기분에 따른 경청의 대가는 결코 실망스럽지 않을 테니 말이야. 나중 기쁜 마음이 은근 오래도록 지속된다면 그건 정말 그 얼마나 짜릿하겠냐고. 안 그런가, 응? 설혹 기묘한 몰입의 열매가 기대 이하일지라도 섣불리 낙담하지 말 것을 미리 당부하네. 흥미로운 보너스는 즐비하고, 뜸 들인 결실이 새콤할 2탄은 충분히 상상 이상일 테니까. 그러니까 달콤한 예감이 합당하며 지극히 유익한 이유를 여기서 알려줄까? 뭐, 그러자고. 못할 것도 없지 않은가! 그건 바로 이 때문이지. 왜 줄을 서서 대기중인 2탄 3탄이 기대되서 참을 수 없는가 하면, 그건 시간 낭비가 아닌 걸로도 모자라 내게 마음을 한번 빼앗기고 나면 몸은 저절로 따라올 수 밖에 없기 때문이라네. 허허허허허.
    자, 어떤가? 비밀스런 요술 상자의 뚜껑을 열까, 열지 말까? 정녕 마술 모자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궁금하지 않단 말인가? 하지만 미리 걱정하진 마시게. 과욕은 금물일 수도 있지만 야망까지 갈 거도 없고, 어? 뻔트로 홈런을 칠 수도 있는데 대체 뭐가 걱정이란 말인가! 뭘 계약하고, 사고, 사인하며, 가입할 필요가 전혀 없단 말일세. 그러니 일단 들어보란 말일세. 헤헴. 그처럼 선생께서, 어 그래 신사 양반은 물론이고, 어이쿠야 나리님마저 야수에게 딱 발목 잡히거나 그대가 갑자기 괴물이나 요괴로 변하지도 않을 테니까. 허허허!
    어머나 저런, 이걸 어떡한담? 솜사탕 같은 환상을 잠깐 소개만 했는데, 벌써 이렇게 관객이 구름처럼 운집해버렸다니. 이걸 어쩌면 좋아! 안되겠군 안되겠어. 서둘러야겠군 그래. 아님 그냥 다시 비밀을 조용한 숲 속에 은글슬쩍 은닉시켜버릴까? 그럴까요? 허나 몇몇 도끼눈을 외면할 만큼 난 그렇게 매정하지도 담력이 용맹하지도 못하네요. 허허허. 그러니 이제 그만 우리는 신기한 꿈나라로 떠나가-봅시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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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망 찬 의욕은 행복한 전개를 부른다. 그런데 갈망은 새롭지 않을 수도 있고, 전개는 심심한 발단 2.0으로 대체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난한 청춘도 아름다운 사랑도, 따분한 일상마저 인생의 절정을 맞이할 수 밖에 없는 운명. 때문에 열정에 들떠 우왕좌왕하는 야생마도, 권태와 싸우고 목표 없음에 낚이거나 병풍에 절망하는 경주마도 밝은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나 삶은 천상 재미없고, 일하기는 더 재미없으며, 그렇다고 놀기만 하면 놀다 지치기 마련이다. 따라서 우리는 행동해야 한다.
    우리는 봄바람이 불면 꽃씨를 뿌리고, 썰을 풀며, 사랑을 해야 한다. 여름이면 에메랄드빛 해변이 당신에게 손짓한다. 그렇지만 떠나지 않은 채 집에서 낮에는 TV 밤에는 NC, 틈틈이 인터넷과 술잔으로 고독한 인생을 달래도 괜찮다. 그리고 가을이 오면 연애 편지를 써야 하고, 겨울비가 내리면 가죽점퍼를 입어야 한다.
    어머머머! 그런데 지금은 행운아의 엉덩이가 근질근질하고, 요조숙녀가 로맨스를 상상하는 바캉스-철? 젊어서는 놀아봐야 하고, 인생은 유행을 선도해도 되며, 늦바람이 무섭든 어쩌든 마음이 젊으면 그만이다. 그래서 나는 혼자서 무작정 바닷가로 떠났다.
    그런 다음 결과만 말하자면 나는 실망했다. 호텔 생활도 그저 그랬다. 글도 잘 안 써졌다. 완전 재미없었다. 더군다나 무서운 공포영화를 원해서 봤는데, 그 결과 기분이 영 아니게 됐다. 그렇게 해서 나는 2박 3일 일정을 급히 마무리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뭐야! 그런데 집으로 오자마자 존티에게 연락이 왔다. 뭐라고? 떠나자고! 나는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곧바로 은빛 백사장, 원숭이가 매달려 있는 야자나무, 청순한 비키니─고급 요트─연분홍빛 암청색 낭만이 가득한 그곳으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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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줍은 과일─부끄러운 꽃─아름다운 숙녀여. 나도 모르게 그 향긋함에 감탄하여 그대 고운 화사함을 절로 칭송하게 만드는구료. 처음부터 찐한 애정을 논할 수는 없고 자, 나와 함께 낭만적인 연애를 한번 해 보지 않겠소? 화답은 그 눈흘김만으로 충분하다오. 허허허. 왜냐하면 내가 진짜로 원하는 건 나의 인생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그런 뭐랄까, 어떤 미약한 욕구의 실현이기 때문이라오. 물론 보너스는 사랑론이겠죠. 들어볼까 들어보지 말까, 그 망설임이 문제라면 낭자께서는 이미 로맨티스트에게 절반쯤 넘어온 거나 다름없소. 그 환한 웃음이 명백한 증거이지 않소이까. 보아하니 우리가 만난 건 아마 운명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소. 그러나 아가씨께서 나 같은 예언가를 만난 걸 일종의 행운으로 받아들인다면 그때 비로소 우리 만남은 숙명적인 인연으로 발전할 것이오. 낭자는 말이오 미묘한 첫인상에 대한 섬세한 느낌, 저 놈이 사기꾼인가 아닌가 설마 날 한 번 어떻게 해 보겠다는 건가, 어쩜 내 속마음이 들통난 건 아닌가 싶도록 독심술이 대단한 듯 하오. 아니 그렇소? 따라서 나는 애초에 그런 말일랑 듣지 않을 걸 미리 알고 있었소. 그게 대체 무슨 말이냐구요? 무슨 말이겠소,
    어딜 넘봐? 겠지!
    그렇다고 여자 마음을 빼았았으면 이러쿵저러쿵, 벌써부터 다그치진 말기 바라오. 다짜고짜 요술로 시작할지 고급스런 농담을 선보일지 숙녀의 의중을 간파함이 먼저일 테니 말이오. 그러니까 우리의 신비한 여심은 소신의 관상 보는 재주가 뭐 그런대로 봐줄 만 하니까, 아무나 미인을 귀찮게 하면 더없는 결례일 테니 이처럼 더없이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소이다. 어머 어머머머, 이 코 끝에 땀 좀 보시오. 내 말 했잖소. 허허허. 그러니 내게 기회를 주시는 너그로움을 베풀어주시지 않겠소? 보아하니, 그대는 금전운보다 연애운을 더 알고 싶은 모양이로구만. 혹시 내가 헛다리 짚지 않았나 모르겠소만, 날 속일 생각일랑 품지 말기를 바라오. 왜냐하면 이미 우리는 마음이 통했기 때문이지요. 허허허. 그런데 경치가 멋지고 분위기도 좋고 뜻밖의 구애도 기쁜데, 우리는 죄송하지만 그대의 이상형과는 거리가 멀다구요? 그렇다고 우리가 나이트클럽에서 우연히 만나 급하게 친해진 사이도 아닌데, 못 이긴 척 서로를 알아가느니 확실한 게 좋지 않을까요? 부드럽고 섬세하고 포근하며 다정함도 좋지만, 서론이 너무 어려우면 관객이 하품하는 법.
    따라서 저기 보이는 S바에서, 아니 O카페에서 우리 함께 청춘과 사랑과 저 하늘의 아름다운 별 그리고 바람...」
    「이 아저씨들 뭐니?」
    두 명 중 한 명은 반틈은 넘어왔는데, 나머지 한 명이 까칠한 그녀라...! 얘는 성격이 별로 그러지 않아도 될 관상인데...! 그러니까 그 왈가닥 말괄량이는 이어폰을 끼고서 못 들은 척 하다가 이제야 나선 것이다. 이어폰 끼고 있어도 볼 건 다 보고, 들을 건 다 듣는데도 말이다. 정말로 그렇다. 헤비메탈을 이어폰으로 듣고 있어도 실제로도 들리고 상황 파악도 다 될 테니까. 상황을 요약하자면 우리가 에너지를 제대로 소모하니까 뭐, 이제 와서? 참 나!
    「그러니까. 듣자 듣자 하니까 뭔 얘긴지 하나도 모르겠네. 넌 알겠니?」
    「......」
    「야. 가자. 뭔 대낮부터 횡설수설이니? 늬가 여기 미남들 많다며? 다 어디로 숨은 거야? 흥!」
    「내가 언제!」
    1차 시도는 여지없이 실패했다. 그래서 우리는 2차 시도를 감행할 수 밖에 없었다. 1차와는 정반대로 곧 대사를 짧고 세련되게. 그러나 2차도 역시나-였다. 여기서 우리는 기로에 서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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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기쁨을 탐구하고, 행복을 예감하며, 젊음을 추구했다. 그래서 잡을 듯 잡을 듯 도전자의 미망에 부채질하는 환상이라는 나비를 사로잡았을까? 그랬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니까 우리는 '즐길 수 없다'라는 고귀한 관점, '만족하면 끝이다'라는 지고의 목표 같은 건 아마도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무슨 밝은 미래로 행진하는 이상주의자도, 심오한 비밀을 애타게 연구하는 몽상가도 아닌데, 그런데 전문가의 자세와 고수의 태도를? 그건 우리에게 어쩌면 부적절한 편협함이고 어울리지 않는 옷이었다. 그러므로 나와 존티는 추리력, 호기심, 상상력, 감수성, 허영심과 질투 같은 평범한 심리학 대신 대타를 믿어보기로 했다. 우리는 감독과 코치와 1.5군 2진들이 앉아있는 벤치의 표정들을 모르는 게 아니다. 사람인 이상 어떻게 모를 수 있겠나! 그나저나, 신나는 해변에서 백방으로 노력해봐야 모두 남의 집 잔치일 뿐이었던 것이다. 연인들의 다정한 속삭임, 최소한 기타 반주와 함께 연가를 부르고, 수영복을 입은 채 바차타를 추며, 저 공원 너머에서는 청춘의 특명이라며 캠프파이어가 한창이었다. 마성의 허풍꾼과 누굴 만나든 모두 신부들러리로 만들어버리는 신기한 능력의 숙녀는 이미 타인에게 아름다운 연인이었다. 때문에 별들이 웃고, 바람이 노래하며, 분위기가 고혹적인 해변가에서 우리는 생음악으로 유행가조차 부를 수 없었다.
    그러니까 다 됐고 그 대타란 무엇인가, 우리는 저기 보이는 저 V 바에 들어가기로 했다. 우리는 심심한 발단에 체념하고 무정한 전개에 실망했으므로, 따라서 우리는 방자한 직감에 기댈 수 밖에 없었다. 우리가 무슨 비정한 문제아도 아니고 말이다.



   5

    그런데 어찌 이런 우연이! 우리가 찾은 V 바에서 정말 기적처럼 마라를 만나고 말았다. 그래서 합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조용조용)야 마라가 여기 어쩐 일이야? 안 온다며?」
    「(조용조용)내가 어떻게 알아? 산으로 간다고 했는데... 어떻게 된 거지?」
    「오빠. 다 들려. 산으로 가면 오빠를 너무 풀어주는 것만 같아서 다시 바다로 왔지. 나 잘했지? 실은 여기 사는 친구한테 연락와서 오게 된 거야. 나도 오빠들이랑 거리를 두고 싶었지 왜 아니겠어? 안 그래? 아 저기 온다. 쟤들이야. 여기 사는 내 친구들. 미모 끝내주지? 어머머머! 벌써부터... 욕심내지 말기다. 응?」
    이러쿵저러쿵. 어쩌고저쩌고. 그녀들끼리 인사를 나눴고 또 나와 존티와도 통성명을 나눴다. 그런데 문제는 마라의 친구들은 바로 우리가 푸른 해변에서 실례했던 바로 그녀들이었다. 아니 어찌 이런 일이... 어떻게 이런 일이!
    「와! 오빠 또 뵙네요?」
    「뭐? 너 우리 오빠들 알아? 벌써 구면이라고? 얼마나 친한 건데? 어떤 사인데? 어서 말해봐. 응? 뭐하고 있어?」
    「하나씩 물어봐 얘. 적어도 초면은 아니지. 심지어 운명적 만남이었을 테고. 호호호. 그렇죠?」
    마라의 친구들이란 다름 아니라 여자 꼬시기 1차 시도하며 만난 숙녀들이었다. 그럼 그녀들은 먹잇감이 아니라 트로이 목마였나? 아닌가! 몰라. 복잡하다. 괜히 1번 실패하고 2번째에 성공할 뻔 하다가 또 실패. 그러다 3차로 망신! 우리는 기분이 말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 만남은 길지 않았다. 마라네는 일정이 빽빽했는지 어디로 가기로 했단다. 그래서 우리는 헤어졌다.



   6

    존티와 나는 바를 나와서 정처를 정할 수 없었다. 1번은 연습이고 2번째는 기분이었다. 다시 말해서 첫 번째는 장난이었고 두 번째는 그저 분위기만 파악한 거였다. 그러나 아직 여유는 있었다. 1차 실패 2차 실패, 그러다 딱 연패의 절망감을 딱 날려버린 채 3차 시도에 성공할 테니까. 그래서 우리는 마라네와 합류할 마음은 전혀 없었다. 그러다 결국 우리는 저기 보이는 조용한 카페에 들어가기로 했다. 왜냐하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기필코 어느 애처로운 여심을 꼬시기로 작정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천혜의 휴양지에서 아름다운 이 시절, 낯선 만남이라는 희망을 절대 포기할 수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조금은 촌스런 찻집에 들어가서 자리를 잡았다. 존티가 내게 말했다.
    「저기 보이는 언니들 외로워 보이지 않니? 뭐랄까 허영심은 미래지향적이고, 욕망은 슬픈 로맨스를 꿈꾸는 듯 하며, 저 청초한 눈망울엔 질투심 풍성한 애교가 가득하잖니. 안 그래? 우리는 아마 사랑을 하게 되지는 않겠지만 내일의 우정을 약속할 수 있는 것 아닐까?」
    「그래? 그럼 갔다 올께!」
    잠시 후. 나는 숙녀 두 분을 모시고 존티에게 왔다. 녀석은 이게 뭐냐는 표정을 지었다. 완전 의외였고 완전 깜짝 놀랐으니까. 그런데 존티는 프로였다. 최소한 빙그레 하면서 입이 귀에 걸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곧바로 존티는 씩 웃었고 슥 인사말을 건넸다.
    「이름은 모르는 게 좋겠죠? 나이는 묻지 않겠어요. 문학과 헤어진지도 오래됐으니 운명이니 뭐니 간지러운 말은 일기장에나 쓸 생각입니다. 물론 저는 비밀이 꽤 많은 남자랍니다. 허허허. 아니 그런데, 대체 얘는 어떻게 아시죠? 딱 봐도 초면인 것 같은데.」
    「내가 먼저 여쭤봤거든. 저기 저 주크박스에서 우리가 마치 멜로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부딪혔을 때 말이야.」
    「뭐라고... 뭐라고 살며시 물었는데?」
    「우리, 구면 아니냐고!」
    그녀들과 나는 구면이 맞았다. 왜냐하면 방금 전 바에서 카페로 올 때, 중간에 아이스크림을 사기 위해 푸드 트럭 앞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 동안 빛나는 눈빛을 교환했으니까. 바로 그때 아가씨 1이 아가씨2를 내 쪽으로 밀었다. 그런데 아가씨2는 운동신경이 뛰어난 숙녀였다. 그래서 우리는 아무 일도 없었고, 각자 아이스크림을 사기 위한 임무에 충실했다. 물론 세한 분위기, 싸한 기대감, 약간 설레는 기분은 내버려둔 채. 이런 긴장감이 선행된다면 이건 잔칫상이 거의 차려진 거나 마찬가지다. 그녀들은 신데렐라의 유리구두를 신었고, 나는 동화를 썼고. 그녀들은 치즈요 나는 줄만 잡아당기면 그만인 거지. 바로 이런 걸 호박이 제 발로 굴러온다고 하는 것이다. 이를 테면 이런 식이지. 나는 시내에서 걷고 있는데 갑자기 카페에서 아는 누나가 뛰어나와서 내게 인사해. 여행 동호회에서 만나 얕은 친분이 쌓인 그분이 반갑게 아는 체 하면서 말한다.
    「와, 어디 가요? ...(저기 안에 있는 누군가를 암시하며) 내가 여자친구 소개시켜줄까요?」
    기여도는 미미하겠지만 이런 확률 때문에라도 창가 자리의 선호도는 높을 수 밖에 없다. 물론 이 비유는 내 체험이었다. 더구나 기묘한 우연처럼 비슷한 시기에 바로 그 자리에서 중학교 때 잠깐 불타는 우정이었다가 내 말실수로 멀어졌던 친구를 마주쳤던 장소이기도 했다. 아울러 여자1이 여자2를 미는 경험을 받아 본... 받아보지 않은 사람 처지에서는... 이러니까, 바로 이래서 나는 자랑이라는 인간의 자연스런 행위에 대해서 민감할 수 밖에 없다.
    뭐 그건 그렇고, 그런데 존티는 심술을 차마 참을 수 없었다.
    「저기 언니들! 얘 약혼녀 있대요.」
    「이 친구가 원래 이렇게 싱겁죠. 허허허. (조용조용히) 늬 여자친구한테 들킬까 봐 겁나지 않니?」
    허허허허허. 그렇다고 우리가 섭섭하게 알게 된지 얼마 되지도 않아 벌써 남남이 되기로 합의할 수는 없었다. 더 친해지도록 협의하지는 못할망정. 그래서 우리는 벌써 친구가 되어버린 것이다.
    말하자면 카페 내부에 구름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달님이 웃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그녀는 하늘을 쳐다본다. 이때 고개가 시선을 따라가지 않은 채 부동이다? 아울러 표정이 바빠진다? 심지어 우아한 목선을 고고히 유지하며 원래 그런지 긴장해서 그런지 음료를 마시는데 심상치 않다? 그러니까 음료를 마시는데 시선이 자유롭다니! 첫인상이 어쨌나는 몰라도 최소한 첫눈 오는 날 만나고 싶은 남자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존티의 핸드폰에 에밀리와 로즈마리는 사뿐히 저장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7

    「얘 영! 쟤들 보내고 우리끼리 나이트클럽이나 갈까?」
    「뭐 영? 나 지금부터 영이니? 가만 있어봐. 내 친구 중에 영이란 녀석이 있나 없나? 아 맞다. 야 존티! 너 전에 그랬자나. 나이트클럽 이제 다시는 가지 않겠다고.」
    「아 나 이거 정말. 내 진짜 이름을 말하면 어떡해? 그리고. 늬가 어딜 봐서 영이야? 얘가 또 은근 친구를 가지고 노네. 너 날 방금 들었다 놨니? 어? 내가 동네 북이니 아님 축구공이니?」
    「오빠들. 다 들린다. 그러고 보니 저 오빠는 혼잣말이 습관인가 봐 얘. 안 그러니? 그 있잖아, 전에 알던 그 오빠.」
    「빙고! 그 이상한 허세남 말하는 거지? 약간 비슷하네. 어쩜 생긴 거도 비슷한 거 같지 않니?」
    「어머 어머! 어머머, 어머머머! 진짜 진짜. 웃으니까 완전 똑같다. 혹시 그 오빠의 형 아닐까?」
    「아님 빚쟁이?」
    「호호호. 그런데 오빠. 오빠 춤 잘춰?」
    「나 춤 잘 추냐고? 말하는 본새를 보아하니 (딱)! 착한 여자네. 왜, 오빠 춤 잘출 거 같니, 못 출 거 같니? 궁금하진 않겠지. 그럴 꺼야. 하지만 미안하게도 말이야 오빠도 그 답을 썩 듣고 싶진 않네. 왜냐하면 나는 순진한 여자랑 일행이 되서 함께 나이트클럽에 가는 건 딱 질색이거든.」
    「늬가?」
    「넌 왜 그렇게 엇박자니? 설마 일부러 그러는 거니? 너 진짜! 너 아직도... 날 버리지 마. 같이 가자! 응? 허허.」
    「와! 둘이 많이 친하나보다. 얘 얘. 사랑과 닮은 우정의 느낌이 아니라 애증의 그림자가 보이지 않니?」
    「그러게. 어쨌든 우연히 만난 인연치고 오랫만에 말이 통하는 것 같지 않니?」
    「뭐야? 그럼 우릴 꽉 막힌 아저씨로 예상했단 말이야?」
    「그게 아니라, 좋은 말이야. 응? 좋은 평이라고. 아무튼 우리 이만 헤어지자. 오빠 안녕.」
    「어 음 그게 아 허허, 신데렐라도 아니고 모범생 숙녀였군. 그럼 일찍 일찍 들어가셔야지. 부모님 기다리시겠네.」
    「어머머. 어떻게 알았어? 진짜로 엄마 아빠 기다리시는데.」
    「뭐야 그럼. 여기 살 리는 없고 가족 여행?」
    「휴양지에서 허랑방탕한 남자 만날지도 모르니까 조심하라며 걱정하시거든.」
    어제 우리는 이처럼 헤어졌다. 2 대 2. 무슨 청춘 드라마도 아닌데, 해피엔딩도 열린 결말도 아닐 텐데 어중간한 구도로 말이다. 어쨌든 어제 우리는 건전하게 만나서 건전하게 헤어졌다. 그리고 영과 존티, 즉 나와 존티는 나이트클럽에 가지 않을려고 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왠지 분위기 때문인지 기분 때문인지 가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았으니까.



   8

    오늘 우리는 다시 만났다. 나, 존티, 에밀리 그리고 로즈마리. 이렇게 넷이서. 사이좋게. 오손도손. 흐흐흐흐흐. 허허허허허.
    「안녕. 와! 밤에 보는 거랑 완전 다르네. 야 오빠들 연예인이구나. 완전 몰라보겠는데.」
    「이건 칭찬이니 조롱이니? 왜 그런지 난 자꾸 뭔 낯선 얘기를 들으면 생각이 많아져. 혹시 사춘기일까?」
    「갱년기가 아니기를.」
    「뭐?」
    「외국어도 아닌데 의역할 필요 있니? 그냥 들리는 대로 들어. 괜히 듣는 사람 혼자서 어감을 꼬지 말고.」
    「그런데 오라버니들 어제 나이트클럽은 들르셨어요?」
    「허허허. 갔을까 가지 않았을까? 맞춰봐.」
    「저 오빠가 춤을 잘출까 잘추지 않을까? 미안. 추측하기 싫으네요. 안 봐도 알겠네. 딱 보니 선호하는 자리는 미러볼 밑이나 스피커 근처. 살짝 핑~ 돌면 높은 데 올라가는 유형. 안 그래?」
    「뭐야! 어떻게 알았어? 아니, 어떻게 알았지!」
    「어떻게 알긴 뭘 어떻게 알아! 그냥 보면 아는 거지.」
    「그러니까 이 오빠도 술 마시면 주목 받고 싶어한다고? 그래도 나은 거네. 평소에도 그러는 건 아니란 말이자나.」
    「음. 맞다. 그렇게 해석할 수 있겠다야. 그래도 클럽에서 샴페인 취향에다 자꾸 무대랄지 높은 데 올라갈려고 하는 습성은 말이야. 내가 봤을 때 그건 옛날 우리집에서 키우던 개가 그랬어. 완전 딱 그랬어. 뭐야? 이 오빠, 얼굴은 말상인데 개과라고!」
    「아 정말!」
    「워─워─워! 왜들 그러시나 살살 하자. 살살, 응? 그런데 해변에 왜 이렇게 이상한 무늬가 많이 보이지? 요즘 저게 대세인가?」
    「오빠 몰랐어? 요즘 기저귀 무늬가 유행이자나. 야자수에 원색에 과감한 무늬, 고급스런 패턴, 깔끔한 모양, 무난한 디자인? 요즘 누가 그렇게 입니. 지금은 누가 뭐래도 기저귀 무늬가 최고야. 설마 모르는 거 아니지?」
    「어....어. 그럼. 깜빡 하다 챙겨오는 걸 잊어서 그렇지, 우리도 그거 완전 좋아해. 그럼. 오빠들을 뭘로 보고 말이야. 안 그러니? 허허허.」
    「아 나 이거 진짜. 또 혼잣말할 수도 없고. 아 답답해.」
    「어?」
    「왜? 왜?」
    「저 오빠는... 이제 알겠다. 약간 삐딱한 타입이네. 어떻게 그런 하늘이 주신 재주를! 오오! 놀라워라.」
    「뭐야 아까는 연예인에 지금은 베베 꼬인 아저씨라... 미안하네 미안해. 우리가 영화배우 뺨 치게 생기지 못해서. 아 정말! 그치만 우리는 막 뭐냐, 생긴대로 노네, 그런 말까지는 하지 않아. 그럼. 지킬 건 지킨다고. 못해서 안 하는 게 아니니까.」
    「그건 그렇고. 에밀리와 로즈마리는 어제 뭐했니? 그냥 새근새근 잠들었을 것 같진 않은데... 아마도 축구를 보지 않았을까?」
    「와, 대박! 오빠 어떻게 알았어? 우리 진짜로 축구 봤어. 정말이야. 와, 딱 맞추니까 기분 좋은데. (일일이 손가락을 세는 시늉을 하면서) 새로운 만남, NC, 쾌락, 환상, 추억 만들기, 나중 달콤하게 회상할 수 있는 전적등 그 모두를 다 놔두고 스포츠 관람을 선택한 여자라... 우릴 괜찮게 봤다는 거네. 안 그러니?」
    「그러니까. 오오 기분 좋은데. 어떻게 알았지? 우리가 가끔은 3부 리그 경기장에 가서 소리지르는 취미가 있다는 걸 말이야.」
    「왜, 전에는 무슨 가짜 이름이나 푼수니 뭐니 그런 이름표라도 달고 다녔나 봐?」
    「우와! 그건 또 어떻게 알았어, 오빠? 대박! 완전 신기해.」
    「어떻게 알기는 뭘 어떻게 알아? 그냥 찍었지 뭐. (그런데 뭔 말이야?) 축구 시청도 그렇고, 너네는 그런데 왜 그렇게 우리를 용한 점쟁이처럼 띄워주니? 내가 무슨 입만 뻥끗하면 어떻게 알았녜! 참 나! (아니 내가 먼저 띄워줬나? 헷갈리는데!) 산과 바다, 둘 중에 어디로 갈래? 하나, 둘, 셋 하면 말하기. 자, 하나 둘 셋! ~해서 간발의 차이로 뒤늦게 말해놓고 어쩜 우리는 이렇게 잘 통할까? 이제 보니 얘네들 수다 스타일이 뭔지 알겠네.」
    「그러니까 오라버니 말씀인즉슨, 우리처럼 흔들고 베팅하며 말꼬리 잡고 늘어지는 화술에는 '우리는-화법'이 잘 통하지 않는다. 뭐 그 얘긴가?」
    「어머머머. 너네 그거 어떻게 알았니? 별꼴이야 정말! 흥! 그런 거 좀 모른 체 하면 안되니? 우리 있잖아 너무 갑자기 친해지면, 그럼 얘, 곤란해. 정든단 말이야. 뭐야 뭐야. 너네들 속으로, 그럼 정분나지 뭐! 라고 생각했지?」
    「어쩜 정말, 치! 심지어 원만한 진행이 아니라 원맨쇼? 이렇게 2 대 2로 도시에서 만나서 만약 이랬다고 생각해봐. 저 오빠 당장 우리 집까지 쳐들어오겠네! 아아, 각자 손을 펴서 손바닥을 지면과 수평으로 하여 손차양을 하겠군. 각자 생각들 참 많을 꺼야. 허허허. 정말 그랬던 적이 누가 누가 있을까?」
    「그런 애정은 오래 못가! 설령 있었어도 재미도 없고, 추억도 없고, 완전 기분만 꽝일 테지. 남는 게 없어. 휙~!」
    「맞어 맞어. 진짜 그래. 그치만 아닐 수도 있고. 호호호.」
    키득키득 여자들끼리 웃는다.
    「아 뭐야? 자기들끼리 신났다 정말. 이대로 끌려가면 어? 정말 그러다가는 돈 쓰고 욕 먹고 독박쓰는 수가 있어. 그럼 안돼. 그렇지, 영?」
    「화제를 돌리려면 늬가 돌리지, 왜 리모콘을 내게 주니? 나보고 악역을 맡으라고? 내가 그러라면 못할 줄 아니? 그런데 있잖아. 어디서 얘네들 부모님께서 우리 얘기를 모두 듣고 계신 건 아닐까?」
    「아니야. 아마도 아닐 꺼야. 아니기를 바래. 다만 이 친구들 부모님이 아니라, 그분이 누구시든, 오오, 다만 마라만 아니기를!」
    「이러니 내가 채널을 돌릴 수 밖에. 내가 필요하면 전화해!」  
    내가 필요하면 전화해, 는 그녀들이 대동한 책 제목이었다.
    「전화하긴 뭘 전화해? 이렇게 같이 있는데.」  
    존티는 못 말려!



   9

    「존티 넌 좀 이럴 때 가만히 있지 않으면 안되니? 그러니까 늬가 항상 마... 편집장한테 구박을 받는 거 아니냐고! 아 쫌! 응? 얘네들이 눈부신 해변에서 하루종일 내내 일광욕만 하겠니? 그럼 우리는 하루종일 매끈한 피부에 뭐, 앞 아니 등? 허허허. 우리가 무슨 돌쇠도 아니고 내내 선크림만 발라주고, 음악 선곡하고, 음료수 사가지고 와서 대령하며, 이혼한 친구 얘기나 들려줘야 하겠니? 정말 그러고 싶어? 클림트나 에곤 쉴레 또 뭐야, 아직도 마네와 모네의 값비싼 화보집을 간직하라고? 벌써 스무 살 때 뗐는데? 봐 봐! 그러니까, 응? (눈썹 위로)! (쉭─쉭─쉭)! 저 보라고. 그래서 저 무늬 저 그림이 유행하는 거 아니냐고. 그러니까 뭔가 살짝 애매한 친구들이 은근슬쩍 플레이보이의 3요소를 선취하는 거야. 그러니까 대체 왜, 어? 그게 다 너 때문 아니니! (쯧쯧쯧) 이 자식이...! 그러니까, 그 어떤 응큼함과 미화로 포장된 사심, 어중간한 컨셉, 신비주의 취향으로 시작했다가 푼수과로 탈바꿈한 바로 그런 애매한 친구들에게 토크쇼와 잡지의 러브콜은 폭주할 수 밖에. 그게 바로 오락산업이 선호하는 최적의 먹잇감이라고. 왜? 그게 다 너 때문이란 말이지. 허허허허허. 모른 척 하지 말아 이 친구야. 능청도 재미없어. 어리광도 안 통해. 앙탈은 늬 꺼 아니라고. 응? 유년기에 일기도 귀찮아서 안 쓴 주제에 뭐 이제 와서 뒤늦게, 어? 밥 먹듯이 취미를 바꾸겠다고? 장비병은 허세 아니면 허영인데. 그런데 얘는 뭐지? 그걸로 인맥에 활용하던가, 작품 소재로 쓰던가, 뭐라도 해야 된단 말인데. 가만 있질 못하는 타입이군 그래.」
    「아 그만해 어? 그만! 야, 영! 너는 이미 내 본명을 밝혔어. 난 훌러덩 발가벗겨졌다고. 아, 부끄러워라! 누구도 뭘 더 궁금해하진 않지만 말이야. 하지만 봐 봐. 난 널 지켜주고 있다구. 어? 그게 너와 나의 차이점이야. 그렇다고 늬가 하수란 말은 아니야. 우리끼리 이러지 말자 친구. 잘나가다가 왜 그래? 친구여, 그러니까 유명한 콤비들이 슬럼프에 빠지고 사춘기 소년들이 그런 거나 공부하잖아. 막 록그룹 1기 2기 3기 누가 들어가고 누가 나오고, 그런 거나 달달 외우고 말이야. 그래서 나중 그분들이 20년 30년 40년 지나서도 두고두고 지식 자랑하는 거 아니냐고. 왜, 내 말이 틀려? 너도 딱 그 꽈야! 어? 그러니까 말하자면, 나도 다 알아. 에밀리는 레이먼드 카버를 들고 나왔고, 로즈마리는 레이먼드 챈들러를 선택했다는 거. 뿐인가? 레이먼드 카버는 하트퍼트 대학원 문학 박사 출신이자 대표작은 대성당, 제발 조용히 좀 해요,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들. 수식어는 리얼리즘의 대가, 체호프 정신을 계승한 작가요 그가 타계한 날짜에는 정확히 8이 세 개 들어가고, 시간에는 완벽하게 7이라는 숫자가 3개 들어갔으며, 이미 살아 생전 일~찍 거장의 반열에 올라간 작가였어. 때문에 그의 추종자들 상당수가 7번 결벽증에 빠졌다는 것까지. (끄덕끄덕)! 내가 왜 몰라? 나보다 20세기 세계 문학에 대해 더 잘 아는 있는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감히 나는 큰소리 치지 않겠어. 난 그럴 깜냥이 못되니까 말이야. 어때 나 좀 겸손해 보여?」 
    「존티 오빠. 제발 조용히 좀 해요! 가당 택도 없는 소리, ~까지는 아니겠지만 말이야.」  
    「네 오빠. 플리즈~! 응? 게다가 오빠가 표지를 착각했다는 거. 로즈마리는 레이먼드 카버를 골랐지만 내가 여기 들고 온 건 레이먼드 챈들러가 아닌데 어떡하지? 어머 미안해라! 내가 어쩌다 이런 실수를 했지? 보란 말이야, 내가 들고 온 건 SF계의 수다쟁이라고 불리는 코니 윌리스의 그 뭐야, 역사상 가장 낭만적이고 유쾌한 시간 여행 이야기! 곧 제목은 이름하여, 개는 말할 것도 없고! 그러고 보니 내가 괜한 짓을 했네. 그럼 또 저 오빠 그 말 하고 싶어하는 거 아니야? 아이언 메이든의 어떤 노래하며, 어느 가문의 문양이 어떻고 어떤 국기의 모양에 얽힌 사연들을 솰라솰라! 아아 (설레설레)! 오빠는 정말 시대를 막론하고 2인자 호칭을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전무후무한 연설자시군 그래. 안 그러니?」
    「그럼 오빠가 바로 그 스토아 학파? 오오 세상에나, 맙소사!」
    「헤헤헤. 실은 우리 있잖아. 오빠야. 우리가 이 책을 가지고 온 건 말이야 일부러 그런 게 아니야. 실은 있잖아, 저기 카페에서 어쩌다가 정말 우연히, 영화에서 007 가방이 바뀌듯 진짜로 우리가 원래 가지고 올려던 책이 딱 바껴버렸어. 우리 꺼 일회용 백이 그렇게 흔한지 어디 미처 생각이나 했겠니?」
    「그렇다니까. 그런데 마라가 누구야? 누구지?」
    「그러게. 누굴까? 그런데 있잖아 오빠. 오빠 혹시 힙스터 아니야? 아 촌스러워! 뭐야, 오빠 X 세대였어? 오오, (우웩)! 정말 구려 완전 손가락 오그라든다, 윽윽, 아뿔사! 오빠 갑분싸 알아, 갑분싸? 관종은? 하긴 발음부터 약간 이상하다 했다. 뭐야? 그러고 보니 우리 아빠랑 말하는 게 완전 똑같잖아? 워워, 저런! 족보 따져봐야 하는 거 아닌가 몰라. 정말로 우리 아빠랑 동창이면 어떡하지! 그렇지만 농담이 심한 건 맞지만 우리 벌서 그처럼 친해진 거 아니야? 아무튼 우리가 오빠 좋아하는 거 알지? 몰라주면 서운하다 오빠.」
    상황은 급작스럽게 이상해졌다. 그래서 존티는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할 말은 많지 않았고.



   10

    「영. 너한테 리모콘 맡겼다간 정말 큰일나겠다. 아아 이거 정말 창피해서 어떡하나. 사태가 도무지 수습이 안되네. (설레설레)! 그건 그렇고, 어제 축구는 어떻게 봤니? 에밀리는 딱 보니까 분석적으로 봤을 것 같고, 로즈마리는 좋아하는 선수한테 집중해서 본 듯 한데, 어때?」
    「안 보다가 축구를 보게 되니까 처음에는 할 말이 엄청 많았는데, 본지 얼마나 됐다고 금새 재미없어졌어. 벌써 싫증났나봐. 난 이게 문제라니까. 넌 어때 에밀리.」
    에밀리가 다음과 같이 말을 시작했다.
    「프리미어 리그 뻥축구를 이제 어떻게 무시하나, 그 생각했지. 이미 대세이자 기준이며 모범이 되어버렸으니까. 것두 오래 전에! 자본의 흐름이 그러니까. 인류 역사상 천재의 절대다수는 중류층과 중상류층이었어. 그렇듯이 메이저리그 통계를 보면 대충 총 자본 순위 10에서 3위 정도 팀의 성적이 제일 좋았다는데, 축구도 딱 그래. 축구도 스포츠니까 거의 대부분 과학이라고. 그렇지만 나도 프리미어 리그가 많이 좋은 건 아니야. 경기 패턴이 항상 비슷하거든. 그래서 경영자들이 딱 좋아할 리그이기는 하지. 군더더기 없고, 속도는 굉장히 빠르며, 힘이 넘치니까. 그렇지만 뭐랄까 거긴 너무 범생이들의 리그 같아서, 그래서 인생이랑 다르니까, 풍운아의 시각으로 보자면 재미가 없다는 거야. 한마디로 재미없는데 재미있어. 그게 뭐냐고? 보면 알아. 자본이 그쪽으로 다 몰리고 있어. 그러니까 완전 각박하지. 변수를 허용하지 않는다고. 그럴 꺼면 차라리 게임을 하는 게 낫지 않을까? 거긴 좀비처럼 무조건 뛰어야해. 오차가 없어. 내가 축구선수면 아아, 아마 축구를 하기 싫어질지도 모를 정도로 말이야. 야구는 벤치클리어링이 있고, 아이스하키는 아예 특별 시간에다 전담 요원이 정해져 있어. 그런데 축구는? 반칙을 어느 정도 포용하는 스포츠야, 그런데 모순되게도 스피드는 절대 포기하지 않아. 그러니까 2부 리그 3부 리그 보면 1 대 1 상황에서 시원스레 돌파하는 경우가 거의 없어. 그래서 드물게 개인기가 돋보이면 짜릿하지. 그렇지만 뻥 차고 뻥 넣으면 그게 뭐야? 그걸 바로 뻥축구라 하는 거라고. 응? 일반인들도 축구를 직접 해보면 알아. 수비, 미드필더, 공격. 크게 셋으로 나눠서 제일 힘든 게 뭐야? 미드필더거든. 일반인 입장에서 말이야. 조금 열심히 해야 한다 치면 미드필더는 거품을 물 수 밖에 없으니까. 그런데 선수들은 또 다르겠지. 그런데 프리미어 리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누구든지 거품을 물어야 해. 그래서 딱 경기가 끝나면 평점 몇. 여지 없어. 딸리면 밀려나는 거라고. 그래. 냉정하지. 효율에 최적화되어 있으니까. 그래서 뭔가 심심해. 어쩌면 비열해야 할지도 몰라. 살아남을려면 말이야. 남미계 스타 선수들이 가도 적응하기 꽤 힘든 시장이지. 어쨌든 축구를 볼 게 아니라 차라리 배구를 볼 걸 그랬어.」
    에밀리의 말을 듣고 로즈마리 왈,
    「에밀리. 그럴 꺼면 차라리 축구 얘기 책을 하나 내지 그러니? 정말로 그 수준이면 책 한 권 얘기 금방 나오겠네. 그거 대충 재미있게 정리해서 뚝딱 출판하면 뭐야? 베스트셀러! 당장 유명인에 등극하는 거라고. 스타가 뭐 별거니? 재능이 돋보이고 인성이 됐으며 끼가 있으면 유명해진다? 아니야 아니야. 딸랑딸랑─뿌잉뿌잉─새콤달콤! 응애응애 삐악삐악을 누가 누가 잘하나야. 운도 좋고 재능도 중요하지만 절반은 노력이라고. 그러니까 그 노력이 뭐냐, 예술성? 아니야. 연기력? 열심히 하면 대충 될 수 밖에 없어. 일반인에게 몸무게와 비례하는 스포츠인 마라톤에 도전하라고 해서 정해진 각본대로만 실험하면 95퍼센트가 완주해. 그게 뭐 대단하다고! 자랑을 누가 누가 잘하느냐, 얼마나 나대느냐, 어떻게 튀느냐, 쉬지 않고 빨빨대며 돌아당기느냐, 결국 얼마 만큼 설치느냐의 문제라고. 물론 일정선 이상의 재능은 기본일 테고. 그래서 수십 년 내내 최고의 자리를 유지했던 연예인에게 물어 보면 그래. 간혹 보면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이 있어. 만약 자녀가 향후 연예인이 되고 싶다고 한다면 어떻게 생각하시냐고. 토크쇼에서 물어보면 자기는 반대하는 부류라고 명확히 밝힌다고. 바로 앞서 말한 이유 때문에 말이야. 1번 만류하면 다시 생각해도 그 길이 내 길이다, 2번 말렸는데 다시 생각해도 하고 싶다, 그럼 3번 째도 자기는 말리겠다 쩜쩜쩜. 그거라고. 그래서 흔히 들리는 신인의 각오를 떠올리게 된다니까. 초심을 잃지 않겠다는 둥, 뻔트든 홈런이든 길이길이 무대에 남는 예술가를 존경한다는 둥, 자기는 롱런하는 게 꿈이라서 언제까지라도 예술만 하며 살고 싶다는 그 흔한 다짐들. 하도 들어서 입만 뻥긋하면 뭔 얘기를 할지 전부 다 알어. 안 들어도 알아. 그래서 연예계 소식을 모아서 전하는 방송이 재밌기도 하고, 한편 그걸 대체 왜 보지 라는 생각도 자아내게 한다네. 안 그렇겠어?
    일류대 나와서 인문교양적 소양이 뛰어나고, 상식과 교양미 넘치며, 어디에 살고 누구를 만나며 어떤 생활 반경을 벗어나지 않는 상류층 남자의 얘기를 사석에서 들어봐 봐. 어설프게 1.5군이나 2범주로 친한 게 아니라 매우 가깝게 사석에서 얘기를 들어보라고. 그럼 그분들께서 뭐라고 얘기하겠어? 물론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그 뭔가를 배울려고 학습하고 흉내내며 화장술을 연습하는 숙녀들과, 또 처세술을 연마하며 솔깃한 인생의 비밀들이 가득한 얘깃거리를 찾고 수다에 관하여 단연 최고의 사연들에 목말라 하시는 여인들. 전자와 후자에게 진짜 바이블이 뭐야, 여성잡지1과 여성잡지2 아니냐고! 라~고 말씀하시겠지. 그런데 응당 드라마와 책을 챙겨볼 만큼 한가한 분들은 많지 않으니까, 짤막한 동영상 위주로 보면서 정보와 요점만 중요시 되니까 그걸 보지 않는 분들도 많지. 요컨대, 그분들의 생활 철학은 이래. 잔지식만 챙기고 나는 길들여지지 않겠다! 뭐라고? 얍삽하게 TV를 제멋대로 켜고 끄겠단 말이지? 어디 가만 두나 보자, 라면서 전문가들께서는 또 채널을 돌리는 초능력을 선사하시겠지. 어떻게? 배보다 더 큰 배꼽 같은 사은품으로! 햄버거를 사면 뭐가 딸려온다? 비매품 장난감! 그 옛날 마이클 잭슨처럼 음반을 팔 수 있는 가수가 어디 또 나오겠어? 아니면 U2나 누구 누구처럼 티켓 팔아서 먹고 살 수 있는 예술가가 대관절 몇이나 되겠냐고. 그래서 음반을 사면 복권처럼 번호가 고유한 소장용 뭔가가 함께 팔리지. 그거 살려고 똑같은 앨범을 팬들은 사고 또 사게 되니까. 그걸 상술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어. 하지만 달리 보면 마케팅 기술이자 예술의 원동력인 협업과 모방, 아이디어일 뿐이야.
    잡지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지성인이 볼 때 솔직한 심정은 그래. 너와 나의 마음이 썩 다르지 않다는 점, 너도 알고 나도 안다는 것! 그러니까 지성인이 무엇을 볼 때? 여성잡지1과 2의 애독자를 볼 때 말이야. 하지만 장광설이 특기인 허풍꾼과 답도 끝도 없는 허세남이 있다면 또 그녀들 세계라고 그런 예가 왜 없겠나. 가만 있는 주위 사람들을 모두 신부들러리로 만들어버리는 푼수과, 보는 사람 듣는 사람 아는 사람 입을 딱 닫게 만들어버리는 영심이! 있다니까. 에이, 알면서! 난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면서 손사래를? 어림 없는 표정은 한번 더 놀래야하지 않을까. 내가, 내 친구가, 내 동생이, 그 누가... 우와 어떻게 연예계 소식이라면 모르는 것이 하나도 없을까, 완전 연예계통이네! 그 업계 관계자라면 미덕일 테지만, 일반인께서? 그 역시 악덕이 아니라 자유이자 취미이듯 그분의 천생연분은 말수가 적고 삐딱한 시선 일색인 낭군님일지도.
    그렇지만 말이야 이런 관점도 있겠지. 운동선수, 연예인, 예술가, 정치인을 모두 함께 유명인이라고 통칭하는 건 틀리지 않아. 하지만 오락산업이 이 세상을 좌지우지 한다고 나까지 아티스트의 자존심을 포기한다? 뭔가 다를 수는 있어. 생각해볼 만한 문제니까. 가령 단연 1인자로 손꼽히는 축구 스타가 나이가 들면서 밀려나는 이유는 체력 때문이야. 힘 그리고 속도! 실력이 수준 이상이라는 전제에서 말이야. 그래서 주전으로 뛸 수 있는 절충선을 유지하면서 점점 자본력이 내려가는 곳으로 건너가는 거지. 그건 한마디로 모범이야. 당연히 귀감이라고. 그러니까 월드컵 같은 단기전에서 감독의 역량에 대해서 왈가왈부할 수 밖에 없어. 주전 위주, 전성기 감안해서 오름세 위주, 무조건 포지션 위주로 선수단을 구성해야 돼. 그런데 축구 인생 전반기에 아무리 명팀이라지만 벤치에만 주로 앉아있던 브랜드라... 이름값도 좋지만 하락세 명단들 위주라... 포지션을 수비만 왕창 공격만 왕창? 축구는 원래 속도 게임인데, 것도 단기전인데 과학적 통계로만 봐도 열세면 지는 건 당연해. 그러니까 프리미어 리그와 변방의 3부 리그를 보면 제일 큰 차이 중 하나가 그거야. 그것은 단연코 첫째 패스의 속도, 둘째 체력! 학교 다닐 때 농구-야구-축구를 많이 해 봤으면 알 꺼야. 우리는 일단 폼이 좋아. 폼만은 선수와 거의 동급이지. 그런데 멋지고 기술도 좋고 동네에서 알아주는 팀인데도 불구하고, 정말 이상하게 꾀죄죄하고 상당히 이상한 아저씨들 동네팀과 만났는데 대패한 경우. 복장도 그렇고 장비도 그렇고 호감 가는 인상도 아닌데, 뭘로 봐도 허접하지 않은 우리와 붙어서 대승을 하다니. 당시에는 참으로 이해되지 않는 일이었지. 패인을 분석하며 뭘 추정하고 싶지도 않았어. 그저 운 나빠서 우리가 그냥 몸만 푸느라 대충 했기 때문에 그럴 꺼라면서 잊어버렸다고. 정말 그런 이해되지 않는 일이 있다니까. 폼으로 최고인 우리와 완전 못생기고 촌스런 동네 아저씨들 간의 대결. 그런데 우리가 대패! 왜, 무엇 때문에? 거긴 멋이 없거든. 폼이 꽝이야. 재미까지 없을 수도 있어. 그런데 속도는 빨라. 특히 패스. 간결한 패스가 일품이지. 패스의 100가지 방법 가운데 딱 최적의 패스가 반복돼. 그런데 당시 우리가 어떻게 이길 수 있었겠어? 패스라는 기본기가 지켜지면 그럼 체력도 아끼고 실리도 얻고 잇점이 완전 많아. 옛날이 아니라 지금, 현대 축구에서 그동안 유행했던 용어들대로만 했다가는 뒤쳐질 수 밖에 없어. 최고의 미드필더진을 자랑해서 10년 동안 전성기를 누렸던 스페인 대표팀, 청소년 축구선수에게 완벽한 모범이야. 그렇지만 황금 세대는 늙어. 비교적 젊은 친구보다는 덜 빠르겠지. 게다가 요즘 대세가 뭐야? 뻥축구와 원터치 슛&원터치 패스야. 과학적으로 다른 스포츠의 장단점을 축구에 많이 차용한다고. 그럼 또 수비는 지역방어와 대인방어를 혼용하는 방법이 있겠지. 포지션에 대해서 축구는 엄준한 규정 자체가 없으니까 말이야. 작전1은 미드필더 건너 뛰면 되고, 작전2는 미드필더 막으면 돼. 그런데 미드필더를 건너뛰기가 쉽나? 당연히 어렵지. 그래서 관건은 공수 전환이라는 절호의 찬스를 살려야 한다는 것. 특히! 축구는 작전 타임이 제일 적은 종목이라는 점. 때문에 작전 변경이 잘 안 먹히는 것처럼 경기가 진행중일 때는 우리가 하고자 하는 전술 역시 잘 통하지 않아. 그럼 어떻게 하냐? 다 방법이 있지. 곧 흐름이 잠시 멈출 때! 반칙이나 코너킥 같은 세트피스 말이야. 물론 그것도 원터치 슛과 원터치 패스지. 당연히 그거만 반복되면 재미없어. 채널 돌아가. 사랑처럼 인기도 식으면 어떡하나? 고로 자본도 따라서 빠져 나갈 공산이 크다고. 그러니까 막는 방법도 다 있겠지. 어떻게 없을 수가 있겠나. 골퍼가 공을 치면 대충 그 공의 구질은 10개야. 그처럼 축구공이 중앙으로 옆으로 넘어오는 궤적도 몇 개 안돼. 그러니까 점유율 80퍼센트에 멋진 쇼와 페어플레이니 뭐니 다 이겨도, 점수가 지면 진 거야. 졌는데 무슨 말이 필요하겠나. (딱) 한방! (쉭─쉭─쉭!)  그래서 결과는 이미 처음부터 정해진 거나 다름없어. 그러니까 챔피언스 리그에서 명감독들이 울상을 지으며 껌이나 쩍쩍 씹으면서 어떻게 해볼 수가 없기 때문에 정말로 보기 불쌍하게 되는 이유가 뭐야? 이미 처음부터 절반은 승부가 정해진 거니까 그렇다고. 감독 얼굴을 차마 못봐주겠네? 따라서 압박이니 전원 공격에 전원 수비니 아트사커니 뭐니, 내가 이번에 선정한 현대 축구의 슬로건은 이거야. 축구는 게임이다, 축구는 시뮬레이션이다, 축구는 과학이다! 어지간한 전술이니 작전이니 선수단 구성이니? 애들이 게임에서 이미 다 해 봤어. 별별 구성을 다 경험했다고. 뭐야, 그런데 현대 축구 슬로건이 지금 왜 나왔지? 다시 돌아가서,
    그처럼 축구계에서는 슈퍼스타가 A지역 1부리그 명팀, 다시 B지역 1부, 또 C지역 2부, D지역 3부 이렇게 차츰 소속이 변하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점이야. 물론 그걸 역순으로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경우도 있고, 일부러 출신지 리그가 아니라 세계를 돌며 C급 D급에서만 돌아다니는 것처럼 몇 가지 경우의 수가 있겠지. 그러나 그건 스포츠! 또 고전음악을 전공했다가 재즈랄지 유행가 시장에서 활약하는 예술가도 있는데, 그 반대는 드물어. 가령, 한 시대를 풍미했던 유명 록그룹의 드러머가 나중 성직자로 변신하는 일. 유명 예술가가 뒤늦게 학사-석사-박사 과정을 공부하는 일. 그렇지만 희박한 예를 제외하고 사람은 유명세를 싫어할 수 없는 법. 그러니까 '돈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라는 전제를 비꼬지 말던가, '없어'를 남발하는 허세꾼으로 살지 말던가, 유명하면 장땡이라며 밥 먹듯이 슬로건을 변용하지 말던가! 어쩜 그래야 하지 않을까? 시시각각 변덕에 변심에 그러면서 자긴 또 여자의 마음을 좋아하네 재밌네? 굳이 오락산업에 일조한다는 걸 광고하는 의미로 은퇴하고 은퇴번복하고, 은퇴하고 은퇴번복하고! 사랑은 변하고, 팬심도 변하며, 유행도 시대따라 바뀌는데 변신이라고 왜 무죄이면 안되는가? 안되지! 안되도 한참 안되지. 왜냐하면 <막살자─막살라> 웨이터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산다>라는 포지셔닝은 적잖이 다르기 때문. 코메디언이 글을 써서 작가라는 타이틀을 얻은 다음 계속 작가에 전념할 수도 있어. 식당 주인이 될 수도 있고, 숙박업계에 진출할 수도 있어. 그걸 대관절 누가 뭐라 하겠나, 뒤늦은 꿈의 실현이자 개인의 자유일 텐데. 그런데 예술가가 잘나가다가 중간에 유명인으로 활약해서 나는야 합리주의자 대스타, 마에스트로 아티스트? 그 둘의 차이점이 대체 뭘까? 그건 나도 잘 모르겠지만 그 순서에 따른 불편함이란 게 있단 말일세. 광대는 아마데우스가 아닐 테니까 말이야. 그러니까 십대에게 요절한 천재는 멋져보일 수 밖에.
    달리 보자면 말이야 이를테면 이런 예가 있겠지. 꼭 자타공인 가왕으로 불리지는 않을지언정 오랫동안 한 장르를 꾸준히 주름잡았던 컨츄리 가수. 물론 그분도 엄연히 마에스트로야. 왜 아니겠나. 그런데 그분께서는 연예계에서 다방면으로 활약하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주업은 노래지. 고전음악을 애호하던 어쩌던 무대에서 노래 부르기는 내 천직이니까. 그런데 어느 날 그분이 어려워지지. 한마디로 끔찍한 빚더미에 올라앉아 구설수에 오르는 일. 그래서 인터뷰랄지 지인을 만나던지 사석에서 이렇게 말하겠지. 아아 하늘은 딴따라에게 크나큰 부는 허락치 않는구나, 오오 너는 그냥 즐겁게 노래나 부르면서 살라는 뜻이구나 라고. 그럼 또 삐딱한 시선들이 좀 많나? 어? 뭐라 뭐라 뭐라,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세상. 이 세상사는 말이야 그처럼 그 어떤 뭔가 애매한 순서, 차례라는 게 있더란 말일세. 그냥 무조건 나는야 종합예술가, 나는야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유일한 후계자요 내 애인이 진정한 모나리자 미소의 승계자다? 뮤지컬의 원조인 오페라의 본 고장 유럽에서는 이미 옛날부터 그랬어. 오페라 공연 도중에도 잡답하고 떠들고 돌아다니며 잠자고 코골고, 그러다 갑자기 대스타의 아리아? 언제 그랬냐는듯 떠들썩한 열광을! 그러다 요즘 평판이 별로 탐탁지 않은 배우가? 아주 신난다구, 야유 하느라 말이야. 이미 몇 백 년 전부터 그랬단 말일세. 그러니까 팬들도 그 모냥이니까 아티스트까지? 내게 유리할 때는 아티스트의 자존심, 또 적당히 불리할 때는 요트가 안 팔리니까 여기서 웃고 저기서 웃기고? 그래서 나는 말이야 괴물 신인이든 연예계의 귀여운 초보자든지 초심에 대해서 한마디할 때, 뭐랄까 유독 신경 쓰인다고나 할까? 솔직히 지겹고 지긋지긋하고 판에 박은 듯 식상하지 않을 수 없는 포부! 그래서 발라드 가수의 일부 팬은 그렇게 말하지. 오빠 여기서 깐족 저기서 깐죽, 어제는 누굴 깎아내리고 내일은 누굴 놀리며, 오빠 그냥 노래만 하면 안되요? 라고! 그리고 또 작가 줄리언 반즈는 E.M. 포스터를 보고서 그랬어. 뭐라 그랬더라, 적당한 시점에 절필을 했다는 뜻으로 말했는데. 다작과는 거리가 있었지만 E.M. 포스터가 동성애자라서 그랬을까? 그 양반 인품에다 점잖은 성정에 웬만하면 그렇게 논평하지 않을 텐데 말이야. 그럼 음악계에서도 차이코프스키를 몹시 꺼려하는 분들도 틀림없이 계실 테군. 그러니까, 농부가 꽃을 언제 따고 과실을 어느 시기에 수확한다? 그렇지. 상품 가치가 제일 높을 때! (딱) 그처럼 바람둥이는 숙녀에게 마음에도 없는 감언이설을 늘어놓는 건 단지 습관이자 예의며 생활일 뿐. 뭐 아무튼, 때문에 난 정말 그 어떤 불쾌감이라는 가시 방석에 앉아 있는 기분이야. 물론 어려서부터 삐에로가 되고 싶어서 유명해진 사람들도 있겠지. 재능을 뽐내면 반기고 돈도 벌고 유명해지고 기분도 좋은데, 안 될 게 뭔가! 어디 유명인만? 유명인과 친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일반인은 든든하다랄지 어깨가 무거울 수도 있겠지. 적어도 기분은 좋다고.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자, 내가 어디 숟가락을 얹을 만한 꽤 괜찮은 잔칫상 어디 없나? 워매 좋은그~, 아이 참말로 환장하겠시유~, 완전 끝짱 거 마 미쳐버리는거래요, 그처럼 심하게 좋을 정도로 거저인 다 차려진 잔칫상 어디 없나 이 말일세!
    아무튼 결론은 그래 오빠. 오빠. 내가 말을 너무 많이 해서 미안해. 그렇지만 입이 트였는데 어떡해? 나도 자주 이러지는 않아. 그렇지만 내 이번에 오빠한테 큰 빚을 진 셈치고, 나중 한턱 거하게 낼께. 막 점쟁이들이 그래. 그분들이 딱 그러더라니까. 나랑 친해지면 자기들은 뼈도 못추린다고. 단, 내가 이처럼 입이 한번 트였을 때만! 뭐 어쨌든 결국 사람은 시시때때로 자주 변하든 안 바뀌든 처음부터 지향점은 뭐다? (딱), 그렇지 트로피지! 목표는 트로피다 행복도 트로피다, 그 말이라고. 그거라고. 바로 그거라니까. 그 트로피를 거머쥘 천부적인 소질을 타고나지 못했다, 게다가 천운도 따라주지 않는다, 아울러 천직은 재미없다, 뿐만 아니라 천성은 단조다, 하오나 대망은 귀찮고 야심마저 날 가만 놔두질 않는다, 아 나 정말 이거 참 허허 뭐가 이렇게나 많아? 그러니까 관상? 말할 것도 없고 별자리운은 따질 것도 없으며 타로점마저 별로다, 심지어 친구의 허세로도 모자라 (드물지만) 여자친구의 허영심까지? 뚜껑도 그냥 뚜껑이 아니라, 그건 바로 왕뚜껑이라고 해야 하겠지. 그렇게만 보자면 삐딱한 시선은 얼마간 정당해보이지 않니? 그렇게 보니까 또 설득력 있어 보이는군. 허허허. 어때, 벌써부터 커피포트 끓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지 않아? 허허허허허. 딸랑딸랑~ 왜 갑자기 어디서 웬 방울 소리가 들리지? 간질간질~ 어머어머 왜 등판이 이렇게 가려운데! 삐악삐악, 내가 무슨 병아리야? 이건 또 뭐야, 눈을 비비고 아무리 봐도 저기 보이는 저 물개박수는 환각이 아니란 말이네! 오오 반짝반짝, 아아 반짝반짝, 드디어 워워, 마침내 저 45도 각도에서 그분이 내려오시는구나! 두둥~! 음하하하하하하. 푸하하하하하하. 으하하하하하하. 짜잔~!
    농담이고, 그러므로 연말의 스포츠 시상식은 애교야. 타격왕, 타율왕, 타석왕(있나?), 홈런왕, 방어율왕, 득점왕 등등등. 그러니까 못 먹는 감 찔러나 본다고 막 던져서 얻어걸리는 것처럼 인생은 똑딱이 카메라일 수도 있고, 순정-순애보-최고의 사랑처럼 인생은 최적의 타겟팅일 수도 있어. 뭐야 그런데, 먹기 싫은 밥에 재나 뿌리지 말지 라는 반칙왕은 뭐냐고? 그걸 내가 어떻게 알겠나! 각자 자기 인생 사는 거지. 나 잘난 맛에 사는 거도 바쁜데 거기다 남의 인생까지? (설레설레)! 아하, 바로 그래서 남자들이 '없다'를 좋아하는구나. 왜냐하면 나는 자존심은 세지만 그에 반해 인기-성적-황금으로 최고일 리는 없고, 얄미운 건 많고, 심지어 부러우면 지는 거니까.
    따라서 교훈은 아마도 홈런보다 뻔트겠지? 아닐 수도 있고. 어쩌면 그럴 수도 있고. 선택은 내가 책임도 내가. 시대는 바뀌고 오락산업뿐만 아니라 시장경제는 품위보다 자본의 논리가 우선이니까. 고로 타인의 인생을 깎아내려서 내 인생이 아름다워질 수 있다면 얼마든지! 하오나, 그래도 싫은 건 싫은 거고, 샘통이다 뭐다 전문용어는 건재함.」
    「로즈마리. 너 지금까지 그렇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대체 어떻게 참았니? 와! (엄지척)」
    「그럼 오빠는 흑심을 어떻게 참는데? 무슨 특별한 비법이라도 있으면, 부디, 내게 한수 가르쳐주지 않겠수!」



   11
 
    나는 마네킹과 정서를 공유했다. 천사의 허영심을 상상해봤다. 그로써 나는 현실적 환상주의를 창시할 수 있을까? 그럴 리가, 그랬으면 얼마나 좋을까! 결국 나는 내 마음 속에 가득한 헛바람을 냉정히 측정했다. 때문에 나는 내 인생의 숙명, 그것의 변화를 한발 앞서 어느 정도 추측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도시의 허세와 환상머신에 대한 헛된 예감 때문에 미스테리아 사무실에 들락거렸다. 또 해변의 낭만과 여행의 들뜬 분위기, 광란의 전개를 찾기 위해 이렇게 마라의 남자친구인 존티와 단짝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약간 안 어울리는 우정이었다. 서로 선호하는 슬로건도 다르고, 좋아하는 포지셔닝도 정반대였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른가는 생각하기도, 말하기도 귀찮을 뿐이다.
    어쨌든 존티의 애마는 도시마, 곧 그는 사랑을 키우고 문화를 즐기며 향락을 소비하기 위해 도시로 돌아갔다. 그러나 내가 거칠게 올라탄 유니콘의 이름은 모험마. 즉 나는 로즈마리와 에밀리의 빈말을 잡고 늘어졌다. 그럼으로써 그녀들이 사는 동네로 출발하기로 했다. 그것도 함께 말이다. 세상을 알 만큼 알면서, 허허허, 이 오빠 앞에서 넙쭉 빈말을? 그녀들의 단순한 실수인지 나의 어설픈 최면 요법에 따른 성과인지는 몰라도, 결과적으로 보자면 나는 인생이랄까 여행의 동반자를 갈아치운 꼴이 되었다. 로즈마리의 애교와 에밀리의 내숭이 살짝 마음에 흔쾌히 괜찮은 인상을 남기지는 못했지만, 뭐 그런대로 참신한 '발단의 탈출'이었다.
    그러고 보니 존티와의 작별 인사가 꽤 어색했다. 꼭 어딘가에 끌려가는 동물 마냥 녀석의 안색이 영 봐줄 만 하지 않았으니까. 그래도 그렇게 못 이긴 척 마라의 수하로 돌아갈 꺼면 내 허름한 웨건과 너의 그 매끈한 컨버터블을 바꿔줄 것이지...! 라~고 푸념만 하면 안된다. 마침내 지루하고 길고 따분했던 발단을 벗어났으니 흥분을 가라앉히고 나는 그 다음을 생각해야만 한다.
    아아, 내일은 어떤 행복이 내 앞에 펼쳐질까! 그것은 꺼뻑 매료될 만큼 고혹적일까? 아니면 그 얼마나 기쁘고 즐겁고 한없이 재미있을까! 아무튼 나는 쓸쓸한 절망에 관한 일말의 가능성 같은 건 까맣게 잊은 채 꿈 같은 새 희망을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12
 
    나는 존티를 떠나보낸 후 짐을 챙겨 그녀들과 합류했다. 아마도 두 아가씨는 유복한 성장 환경에서 자랐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혼자서 공상에 취해 그녀들의 행복한 부모님을 뵈면 뭐라고 인사말을 건네야 하나를 생각했다. 그런데!
    「부모님은...?」
    「도시에 계시지.」
    「같이 왔다며?」
    「뻥이었어! 설마, 그걸 믿진 않았지?」
    「어? 어! 그럼. 다 알고 있었어. 에이 속기는.」
    처음에 시원한 바람을 맞이하며 상쾌한 전경에서 즐거웠던 여행은 목적에 충실해야만 했던 것일까? 어째 새롭게 시작된 '친구네집 놀러가기'라는 떨리는 전개가 어째 시작부터 뭔가 불안불안했다. 기분은 조마조마하며 누군가 내 귓볼 근처 머리카락을 잡아 끄는 듯했던 것이다.
    한편 그녀들이 타고 온 차는 이름이 크레도스였다. 크레도스1. 내가 견적을 예상하고 전망을 살피고 다망함을 추론하는 데는 일가견이 있다고 자부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나름 대충 사람 보는 눈은 있는 편이다. 그래서 난 대충 그녀의 차, 사는 동네, 옛 남자친구들의 약력 하며 뭘 좋아하고 무엇을 즐겨 보고-입고-먹는지 예상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애당초 벌써부터 남의 다리를 긁는 격이라니! 그럼 앞으로 즐거운 여정과 흥미로운 절정으로 치닫는 게 아니라 아예 장르가 바껴버리는 건 아닌가 심히 걱정되기 시작했다. 크레도스라... 아 맞다. 내 친구 척키가 그 옛날에 그 차를 몰았다. 이건 딱 봐도 한마디로 위장술이 분명했다. 으리으리한 사유지에 들어갔다 나오는데 광고하기는 싫었던 거지. 으하하하하. 누굴 속일라구? 그래서 괜히 나는 또 과거가 연상됐다. 추억도 직업체험도 뭐도 아닌데 딱 1달 택시 드라이버를 했던 기억. 당시 내가 몰던 차는 크레도스2였다. 그 일을 그만둘 당시 하필 같은 회사 동료가 모는 소나타3의 뒤를 내가 박았던 사고가 있었다. 그리고 나중 직업이 틈틈히 바뀔 때 아르바이트로 대리운전을 잠시 했었다. 그때도 일이 있었다. '무슨 포터'라는 픽업트럭이 내가 운전 중이던 손님의 차 '세라토'를 옆에서 부딪히고 도망간 일. 그외 자잘한 건 생략하고, 그럼 순서가 나온다. 크레도스2로 내가 백허그, 무슨 포터 트럭이 세라토의 볼에 (기습)키스, 그럼 이제는... C2에서 C1이었으니까 마침내 -C의 차례일까? 망상도 재미없다. 차라리 비타민 C를 먹고 놀이공원에 가서 범퍼카나 탄다면 몰라도! 그러니까 나는 여태 환상머신1도 못 만들었는데, 그런데 그녀들은 미완의 신비와 행복의 추구니 천상의 사랑을 모두 품어 안은 환상머신2를 혹시 벌써? 영화 1탄도 나오기 전에 2탄이라니 거 무슨 개 풀 뜯어 먹는 소리인지, (설레설레)!
    우리는 그처럼 새로운 일정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에게는 여행2일 테고 말이다.



   13
 
    나는 에밀리와 로즈마리가 사는 동네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녀들은 뭔가 일정이 있다면서 초원에서 뛰노는 양마냥 날 내버려둔 채 어디론가 떠나갔다. 그곳은 딱히 흠 잡을 데 없는 별장이었다. 와, 얘네들이 이런 데 사는 구나 라고 생각했다. 여기서라면 명작을 절로 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니까 그녀들은 무책임한 방임자가 아니었고, 나는 피노키오가 아니었다. 이제 나는 위대한 작가였던 것이다. 그렇지만 처음부터 글이 잘 써질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동네도 돌아다니고 사유지도 돌아다니며 핑핑 놀았다. 집사와는 친하지 않았다. 그럭저럭 하루를 보내고 이틀 째가 됐다. 그녀들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나도 썩 관심도 없었다. 이 집이 내 집 같았으니까. 그러다 나는 뭔가 할 일을 해야 하니까 일을 하기 시작했다. 우선은 칼럼을 썼다. 먼저 에밀리가 말했나 로즈마리가 속삭였나, 그녀들의 수다에 영감을 받아서 다음과 같은 칼럼을 썼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14
 
    제목: 러브콜
    내용: 여러분, 스포츠 선수가 은퇴 후 꼭 감독을 해야 한다는 사랑법은 그 어디에도 없답니다. 그분들이 은퇴한 다음 전혀 다른 일을 하거나 유명인으로 활약한다고 보통은 특별히 비난 받지는 않죠. 같은 논리로 과학자가 부업으로 모험가를 병행해도 무방하겠죠. 역시 작곡가가 그림 그리는 일에 양다리를 걸쳐도 썩 손가락질 받을 일은 아닐 테죠. 하오나 선생님이 조류학이라는 전공과 동물론이라는 본업을 취미나 사랑 때문에 지나칠 정도로 소홀히 한다면 그건 다른 문제예요. 다시 말해 법관이 조각가로 전업한다면 모를까 윤리학자가 밤에 화류업까지? 그건 생각 좀 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법복을 벗고 애정 고백을 번복하며 사랑의 맹세가 깨진다면 모를까, 야구 선수가 축구장에 놀러가서 한다는 응원이... 오오 저런!
    어머머머머머 세상에나!
    과거가 전남편이 되고, 방황 때문에 전직이라는 인생 경험이 소중하다면 그건 얼마든지 타당한 일이다. 그러나 조강지처와 전-여자친구가 양립한다는 건 결코 아름답지 않은 일. 따라서 철들지 않는 건 개인의 자유일 테지만, 바람둥이와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뭐가 다르냐고 따지는 일만은 꾹 참자! 꿈, 인기, 황금, 사랑─대타는 행복 아님 주색과 재미?─라는 플레이보이의 4대 요소에 근접했다고 해서 인생은 다가 아니니까. 이기고 지며 좋아하고 미움 받는, 승패의 네 가지 경우의 수 뿐만 아니라 지는 게 이기는 일도 있으니까. 루저 마인드로 대성하는 일도 드물게 존재할 테니까 말이다. 그처럼 속궁합만이 아니라 어울림과 친밀감, 조화, 화음에 대해서 이 세상은 우리에게 참으로 많은 걸 가르쳐준다. 쉬운 예로 우정은 멀티태스킹이 권장되며, 단짝은 어차피 단짝이 깨질 날을 생각해서 당시 애틋했으면, 그리고 사랑은 유일하기를! 하나 더. 말하자면 지금의 행복에 무조건 감사하라, 그래야만 한다 같은 설교문을 훔치지는 않겠다. 다만 인생에서 몽정기와 권태기, 직업, 전성기와 어려운 시절의 소원과 좋아하는 무엇과 대망 및 생각은 그때 그때 다름을 충분히 감안할 것. 아울러 타인 뿐만이 아니라 내게도 야망과 시기심, 질투심, 이타심,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내고 또 받고 싶은 마음이 공존한다는 걸 스스로 인정했으면! 그러면 정말 거짓말처럼 탁월한 원리도 보이고, 타인을 이해하며, 무엇보다 나를 바로 알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 당장... 늦었으면 내일 나는 아는 오빠한테 E.M. 포스터의 '전망 좋은 방'을 선물하면 어떨까? 딱 그렇게 실행했어, 그런데 오빠왈 이미 봤다는 둥 그런 영화 완전 짜증난다는 둥 내가 제일 싫어하는 어쩌고저쩌고? 워─워─워! 그래서 나는 오늘 투잡이 다 뭐야, 큐피트이자 디오니소스 심지어 프로메테우스가 되어 내 친구 난봉꾼과 술꾼을 만날 약속을 잡았다. 결국 나에게 우정은 꽉 막힌 수다쟁이뿐이요, 사랑은 모르는 게 원체 많은 푼수라도 스쳐지나간 게 다행인 것일까? (진짜로 그렇다는 말이 아니라!) 아무튼 후자의 마음씨가 고웁다면 전자라고 왜 심성이 착하지 않겠나. 다만 기복이 심한 게 탈이겠지만. 어쨌든 답답한 상남자를 뺀다면 친구의 50퍼센트.. 60? 70? 어쨌든 대다수가 사라지고, 누구나 신부들러리로 만들어버리는 푼수가 아니면 아는 여자는 0으로 수렴된다? 아아 (설레설레)! 심지어 넌 너 밖에 몰라 라며 여자친구와 헤어졌는데, 위로 받을 사람이라고는 남의 말을 통 듣지를 않는 친구라... 심지어 조증에 걸린 숙녀를 만나서 에너지까지 빨린다? 총체적 난국이 따로 없군 그래.
    추신. 나약한 인간의 일례가 이렇다면 다만 그대의 삶은 훨신 아름답기를 기원합니다.



   15
 
    칼럼을 하나 완성한 다음 나는 핑-하며 반짝였던 착상이 퐁-하며 발동이 걸리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래서 내친김에 칼럼을 하나 더 쓸 수 밖에 없었다. 이번에는 좀 더 심오한 글쓰기를 시도했다. 결국 나는 어느새 정들었기 때문일까? 나는 칼럼니스트라는 조금은 무료한 직분에 언제까지나 소홀하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아무튼 칼럼의 제목은 신은 있을까, 없을까! 였다. 그런데 그와 같은 주제와 내용을 쉽게 정한 건 아니었다. 빙빙 돌다 돌다 겨우 깨달았다. 아하 이번 주제는 바로 그것이구나 라고. 곧바로 내용을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제목: 신은 뭐하시나, 허풍꾼을 혼내주시지 않고.
    내용:
    첫째, 신화의 시대
    둘째, 소비의 시대.
    첫째에서 어떤 직접 증거는 많고도 많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첫째와 둘째의 중간에서!) 크리스마스와 칸타타 외에도 익히 아는 지식들. 그 옛날에는 한마디로 신들의 세상이었다. 때문에 먼 옛날에는 공룡과 영장류가 함께 살았듯이, 신과 인간이 공존했다고 가정할 수도 있다. 물론 신화적인 의미로 말이다. 그러나 이 세상은 원래 인간의 세상인 법. 따라서 인간이 신의 영역에 근접하던가, 아니면 신은 신들의 세상으로 돌아가던가, 둘 중 하나만을 원하게 됐다. 그것이 올바른 질서일 테니까. 그 결과 인류 역사는 인간들끼리의 역사로 남았다. 첫째는 말 그대로 신과 인간의 공존, 첫째와 둘째의 중간은 누가 누가 어떤 성자와 신이 왔다 갔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교양이 되었다. 왜 그래야만 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 후 과학이 발달하고 문명이 발전했다. 그런 결과 신화적인 설화와 전설과 문화는 그것대로, 또 인간은 무인 우주선을 태양계 밖으로 내보냈다. 나도 내가 뭘 말하고자 하는지 몰랐는데, 아하, 이제야 알겠다. 주제는 뒤늦게 정해졌다. 그것은 바로 신이다. 다시 말해, 신은 있냐 없냐!
    <신은 있을까 없을까>
    주제가 은근히 출연했는데, 아아, 본론은 얼마나 길지 아득하다. (설레설레)! 신은 있냐 없냐, 곧 주제가 주제인지라 따질 게 많다. 그래도 부딪혀 보면 된다. 하면 된다. 하는 데까지 해서 최대한 정리하면 대충 요점은 나올 테니까. 가 보자. 자, 일단 먼저
    1.왕.
    2.왜 신은 세상의 불합리함을 모른 체 하는가.
    3.문명은 이처럼 여러 문제점과 함께 발전할 수 밖에 없었는가 라는 의구심.
    먼저,
    1.왕. 이름이 왕인 사람도 있지만 여기서는 왕이라는 신분을 뜻한다. 지금은 몰라도 옛날 세상은 정말 좁은 세상이었으니 만큼 인정해주는 명성이라고 해 봐야 '신분' 딱 하나였다. 못 올라갈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는 속담은 피라미드 시대에는 일반적이었고, 지금은 냉소주의자한테나 어울리는 투정일 것이다. 옛날에는 알아주는 직업도 한 손으로 꼽았다. 그 외 나머지는 딴따라, 민초, 하층민과 집시, 한마디로 평민 끝. 그래서 옛날에는 왕과 피어가 최고였다. 그러나 그건 그때 얘기. 그래도 왕이라는 전통과 문화는 신화의 시대가 아닌 소비의 시대에도 일부 공존되고 있다. 그러나, 그건 얼마든지 가능하나 왕권 주도적이라는 그림은 현대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오락산업에서만 일컫는 왕이 대체 몇 가지인데! 그러니까 지금은 존중할 형식과 재밌는 사극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한마디로 왕은 신이 아니다. 신처럼 경원하며 신처럼 찬미할지언정 말 그대로 왕은 단지 머머-처럼일 뿐이다. 문단의 요점은 이렇다. 왕은 신이 아니고, 신이 있다면 하늘의 관점은 왕을 비롯한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 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왕이 이승을 떠나게 되면 하늘나라에서도 왕은 아니라는 것. 다음으로 소-주제로 넘어가서,
    2.왜 신은 세상의 불합리함을 모른 체 하는가! 신은 죽었다 라는 철학자의 말은 말 그대로 철학적 담언이고, 그보다 현대에 훨씬 걸맞는 표현은 그것이다.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하지만 <막살라-막살자-막산다>와 <하고 싶은 걸 하고, 좋아하는 걸 즐기면서 마음껏 인생을 향유하다>의 차이는 우선은 인간 각자가 알아서 판단할 문제다. 개인의 자유이자 각자의 인생이다. 그런데 드물게 어떤 생태계의 문제라거나 뭔가 경종을 울려야 한다거나 라는 이유로 이 둘의 차이에 대해서 물음을 던지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 만약 그런 계기가 있다면 당연히 인간의 몸은 신의 숙주로 활용될 것이다. 만화영화나 마블 코믹스 영화처럼 그렇게 나타날 리는 없다. 그건 새와 네발짐승과 물고기만 봐도 쉽게 이치를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만약 뭔가 신성함의 힌트를 하늘에서 땅에게 알려줘야 한다면, 그건 기적적으로 은밀하게 탄생해 은근히 출연하여 알려지며 신성을 띄지 않을까? 물론 직접적으로 딱 나타나서 확실히 알려주면 얼마나 좋겠나. 당연히 옛날에는 그랬을 것이라고 추정해 볼 수 있다. 곧 옛날에는 간접 보다 직접이라는 방법이 선호됐다. 몇 번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 차이는 첫째와 둘째만큼이나 시대에 좌지우지되기도 한다. 첫째와 둘째의 중간쯤에 기적으로 기록된 성모 마리아의 기적이 지금은 더 이상 기적이 아니다. 당시는 기적이었겠지만 지금은 과학일 뿐이다. 왜냐하면 첫째는 피라미드가 대세였고, 둘째는 과학을 필두로 오락산업이 왕좌에 올랐으니까. 물론 첫째와 둘째의 중간은 종교일 테고. 따라서 첫째일 때는 일종의 직접 증거가 가능했을 거라고 가정할 수 있다. 가령 세계 7대 불가사의랄지 무수한 과학의 빈틈들 말이다. 신이 있든 없든, 함께 했든 아니든 우리의 삶에 커다란 의미는 없다. 먹고 살기도 바쁘고, 인생을 아름답게 포장하기는 더 바쁘니까. 설령 그럴지라도 왜 그렇게 누군가는 의심할 수 밖에 없는지를 유추해봐도 괜찮을 것이다. 그걸로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신을 오해하게 만들지는 않을 테니까. 그래서 만약 저 둘째인 지금과 미래에 그 어떤 전설과 기적이 가능하다면 그건 그 옛날처럼 직접 증거가 아니라 간접 증거의 현현이어야 합당한 이치이지 않을런지! 왜냐하면 경제만 해도 상도덕이 있고, 정치만 해도 권력 분립이 존재하며, 사랑이 인생의 전부냐 아니냐고 진짜로 심각하게 따지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이 정도면, 왜 신은 대체 세상의 불합리함을 모른 체 하는가에 대해서 속 시원한 설명으로는 어림도 없겠다.
    그러니까 왜 신은 세상의 불합리함을 비정하게 모른 체 하느냐고? 일단 질문을 거꾸로 생각해보자. 궁금하지만 도저히 정답을 모르겠다, 그래도 알고 싶다? 그러면 여러 방법이 있을 테지만 지금 사용되는 방법은 질문에게 반문하기다. 친구의 궤변은 절반쯤 우정의 결례가 아니다. A가 말한다. 내가 먼저 물어봤자나 라고. 그럼 B는 너가 먼저 물어봤으니까 너가 먼저 대답해야 한다구, 라고 답한다. 연령층을 더 낮춰도 된다. 그럼 애들 사이에서 억지에는 거울이 특효약이다. 심술에는 반사요 심통에는 에코다. 그래서 어른들은 애들처럼 게임의 규칙을 바꾼다면서 인생관의 틀을 바꾸지만 매번 돌아오는 건 대체로 과도한 카드값이다. 그건 뭐 그분들 소관이고, 우리는 질문의 모래시계를 뒤집어 봅시다. 곧,
    왜 신은 도대체 세상의 불합리함을 알은 체 하면 안되는지를!
    그렇게 한번 가정을 해봅시다. 자, 신이 세상사의 수많은 모순을 만약 알은 체 한다면, 그래서 신이 수시로 개입하며 끼어들고 중재한다면! 만약 그렇다면 애초에, 처음부터 인간을 지금보다 더 완벽하게 만들지 뭐하러 이처럼 불완전하게 만들었을까! 신은 인간을 사랑하기 때문에 개입을 안해야 옳지, 신화의 시대처럼 막 그냥 막 어쩐다면 그것은 말 그대로 신화가 되는 것이다. 즉 신이 비정하기 때문에 신은 없기 때문에 개입을 안하는 거라고 보는 시각이 있으면, 반대로 신은 오히려 인간을 사랑하기 때문에 개입해서는 안된다는 견해도 있을 수 있다. 개인의 의견이야 어떻든 인간이 절반쯤은 놀랍도록 완벽하고 절반쯤은 답답할 정도로 불완전한 것은, 인간의 생태계로 보자면 매우 자연스러운 일임에 틀림없다. 실제 유사한 비유는 수없이 증명됐다. 동물의 세계에 인간이 개입하는 일은 동물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신이다. 얄짤없다. 동물에게는 말이다. 그래서 인간이 동물의 세계에 관여한 결과 동물들이 행복했을까? 그럴 리가 있나, 동물님들이 행복하기는! 북극곰을 살리며 동물 구호 단체의 활동도 갸륵하기는 하나, 전체적으로 봤을 때 동물들은 시선을 떨굴 수 밖에 없는 일이다. 아니 그런가? 아기 돼지로 시작해서 대물을 잡고 싶은 상남자들의 꿈은 공통되며, 대체 몇 마리의 애완동물이 버려지는가! 차마 끝이 없다. 그 구체적인 예는 이루 말도 못한다. 그러니까 동물-중심적인 관점에서만 보자면 동물 농장에 신적인 인간은 개입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동물 뿐만이 아니라 유전자 조작 기술은 미래가 아니라 엄연히 현재다. 벌써 자동차는 하이브리드가 있고, 식물은 GMO가 있다. GMO가 무엇인지 굳이 의인화하지는 맙시다. 그처럼 우리는 일상적으로 햄버거나 스테이크를 먹고, 의약품 생산을 위해 하늘색 피를 가진 갑각류를 괴롭히며, 점점 보금자리를 잃어가는 것으로도 모자라 로드킬을 당하는 동물의 명복은 기원 받기도 어렵다. 동물에게는 미안하지만 인간으로써 일부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때문에 동물의 행복만 놓고 보자면 인간은 동물계에 관여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동물의 생태계를 위해서 말이다. 그러므로 신의 무소식은 곧 전능함의 실수도 아닐 테고, 신성함의 방임도 아닐 것이다. 그 어떤 뭔가 이유가 있을 테니까. 고로 <신은 인간 세상에 개입해서는 안된다> 라는 명제는 설득력을 얻는다. 단, 그 인간 세상이라함은 이승을 뜻하니까 저승은 또 다를 거란 추론은 결코 무논리가 아닐 테고. 그러나 드물게 신이 조용조용히 몰래 인간계에 왔다 갔다거나, 또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알도록 딱 한 번 왔다 갔을 수도 있다. 그럼 그렇게 신성한 존재가 지구에 강림하는 경우가 드물게 존재한다면 그건 두 가지로 나뉠 수 있다. 그 두 가지는 이렇다. 신이 인간의 몸으로써 인간과 사귀는 직접적인 초능력자던가, 아니면 인간의 몸으로써 간접적인 초능력자던가. 다시 말해서 X맨 영화에 나오듯이 그 초능력 즉 신의 일반적인 힘을 레이저를 막 쏘고 염력을 쓰며 얼리고 불을 뿜고 하늘을 나는 형태로 선보일 것인가, 아니면 신의 마음을 인간의 언어로 구현할 것인가. 전자던가 후자던가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전자가 무엇이었나를 우리는 상식으로 알고 있고 교양으로 공인됐다. 그외 성선설에 대해서 후세에 알려졌을 텐데 직역과 의역 및 실천 또는 마음가짐에 대해서 개인차가 있을 뿐이다. 곧 신화의 시대는 훨씬 옛 시대이자 전설이라고 가정하고, 기원전이었던 Anno Domini 곧 기원후였던지 당시는 지금의 과학에 준하는 기적과 현재의 만화영화와 살짝 비슷한 초능력이 일부분 함께 했을지도 모른다. 그처럼 인류사의 문맥을 살펴보니 다음과 같은 3단 논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 1번 신은 인간 세상에 개입하지 않는 게 옳다, 2번 그런데 천사 같은 인류애와 요정 같은 애인이 있듯이 드물게 인간의 몸을 숙주로 삼아 현현할 수는 있다, 3번 고로 만약 그렇다면 모세랄지 그런 어떤 기적적인 우연들과 수많은 사연은 만화나 마블류 영화와 똑같아서는 안될 것이다. 왜냐하면 어떤 브랜드는 우선 온전한 인간의 몸이어야 할 테니까. 이마에 눈이 하나 더 있거나, 탄소 기반인가 의심스러운 백안의 거인을 아름답다고 여기긴 힘들 테니까 말이다. 따라서 지구인이 우주에 나갈 때는 반드시 우주복을 입듯이, 외계인이 지구에 방문한다면 그래야 하지 않을까? 개미의 부지런함을 동화로, 꿀벌의 맹목적 규율은 생물학적 속담으로, 동물들의 건강한 생태계는 다큐멘터리로 보전하기를! 지구의 주인은 원래 동물이었는데, 세상의 주역으로 인간이 대두되면서부터 멸종 위기 동물은 점점 늘어만 간다. 나아가 북극곰은 생존을 걱정하며 남극 얼음마저 녹고 지구는 점차 더워져간다. 동물의 입장을 모르지 않는 인간은, 신이 인간 세상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주기를 바랄 수는 없는 것이다. 신─인간─동물! 신과 인간의 관계, 인간과 동물의 공존이라는 맥락을 이해하고 원리를 무시하지 않는다면 신이 어쩌고저쩌고 같은 불만은 응석과 투정쯤으로 치부됨은 어쩌면 그저 당연한 일. 지구의 역사에서 몇 번의 대멸종과 몇몇 신비를 모두 함께 일컬어 종교에서 '전지전능'이란 수식어를 붙이지, 무조건 X맨 영화처럼 뭐 어떤 상상력을 갖다붙일 수 있기 때문이 아니다. 예를 들면 신은 어디서 뭐하고 있나, 그 어떤 모순을 보고도 가만 있는 걸 보면 신은 없는 게 분명하다, 늬가 신이면 난 신 할아버지다 등등. 의역과 직역 같은 이치가 그래서 더더욱 설득력을 얻는다는 점. 땅의 개미들과 실험실의 쥐들만 생각해봐도 쉬이 지나칠 수 없는 일리다. 그렇다면 지금에 어느 영화2편이 개봉한다면, 다시 말해 먼 훗날 그분께서 재림한다면? 만약 그렇다면 인간과 외계인의 기적적 첫 만남과 거룩한 재회가 똑같아서는 안될 것이다. 아니 왜! 어째서 그 둘이 똑같아서는 안될까? 왜냐하면 첫째 인간이 어느 만큼 신성함의 성과를 자발적으로 이미 이룩했기 때문이고, 둘째 신은 인간의 육신으로 현현하여 인간을 (완곡하게 말해서)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면 그건 아름다운 일일 것이기 때문이다. 곧 간곡하게 표현하자면 신은 인간을 이해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칸타타 가사의 화답으로 말이다. 그러니까 신은 인간의 무엇을 이해해야 할까? 일단 떠올려봐도 그분은 다음과 같은 일들을 이해하면 좋을 것이다.
    인간의 구강이 언제 화염방사기처럼 작동하는지를.
    남자가 언제 변신하고 여자가 왜 유체이탈을 하게 될지도 모르는지를.
    신비를 알며 환상을 믿고, 애호하는 무언가에 퐁~ 빠지면 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지를.
    자존심과 부러움은 대관절 어떻게 다른지를.
    모든 문화-예술-교양에서 만고불변의 1등은 왜 사랑인지를.
    인간은 언제 삿대질을 참고 어떻게 뚜껑이 열리는지를. 그리고
    핑~ 그 오묘한 신호음의 단추는 어떤 육하원칙에 의해서 눌려지는지를.
    어디서 진공청소기를 편애하고, 커피포트는 무슨 생각으로 인생을 사는지를.
    도대체 왜 나이트클럽의 이름은 호박이고, 인기 초특급 웨이터의 1-2위는 에르메스와 막살자인지를.
    그러나 인간은 앙증맞은 이타심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까지.
    누군가 이해했으면 좋을 일은 작심하고 찾지 않아서 그렇지 간략히만 선출해도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온다. 가령,
    여러 불충족들. 우선 운명(가난, 빈곤, 불행, 불운, 필멸, 재난...), 사회 부조리(불의, 불화, 불결, 불법, 무법, 범죄, 악덕, 악연, 악역, 비양심, 희생, 타임머신 즉 후진성, 분쟁, 저질, 불량, 열악한 환경...), 감정-재능-본성(억울함, 원통함, 혐오감, 슬픔, 분노, 무례, 방종, 야만, 비윤리, 부도덕, 추남, 선녀, 촌스러움, 눌변, 불만족, 무능, 무명, 가학성&피학성, 사디즘&마조히즘, 원죄 또는 샤덴프로이데, 쌤통, 비관, 열등감, 자만심, 오만함, 시기, 질투, 재수 없음, 투정, 시건방, 뻔뻔, 황금만능주의, 물욕, 식욕, 색욕, 명예욕, 사리사욕...), 병(불편, 질병, 장애, 트라우마, 꾀병, 머머증, 신드롬...) 그리고 배보다 배꼽이 더 커서는 안된다는 것까지.
    그래야 너와 내가 재차 놀라는 것 아닐까? 인간이 프랑켄슈타인이라는 괴물을 만들긴 만들었구나, 아아 고 기특한 녀석 참 물건이로구나! 라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인간은 신기한 존재다. 우주는 신비하다. 시간마저 휘어진다. 사랑은 고체가 아니고, 행복은 기체와 다르며, 재미는 액체로 스며들 수 있다. 고로 어쩌면 인간과 신은 양측이 서로 <있다-없다> 따지며 다툴 것이 아니라, 우주 바깥에 무엇이 있을까 같은 철학적 상상을 매끄럽게 다듬으면 더 멋질 것이다. 왜 인간과 외계인의 첫 만남과 거룩한 재회가 똑같지 않을까, 이런 연유로서 조금은 알 듯 모를 듯 하다. 시간의 탄생까지 추정한 인간인데, 왜 신은 세상의 불합리함을 비정하게 모른 체 할 수 있냐고, 골 세러모니만 할 게 아니라. 아마도 과학적 현상으로 규명할 수 있을 테지만 그 우연, 어쩌면 어느 성모 마리아상이 바로 그래서 피눈물을 흘리지 않았을까?
    치킨을 먹든 안 먹든 내가 키우는 강아지와 교감하고, 집사가 고양이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하는가 하지 않는가? 그것이다. 그렇다. 인간만 신을 찬양하고, 인간만 신을 공경하며, 인간만 신을 찬미하라는 법은 원론적으로 인간 생태계에 어울리지 않는다. 물론 인간의 야성만 따졌을 때 말이다. 그 무엇이 필요할 수는 있지만 주객이 바뀌면 인간이 옛날처럼 신을 위해 살게 된단 말이다. 겉으로 신을 위해 사는 간악한 위선자와, 자기 인생을 사는 선량한 무신론자랄지 그냥 단지 무소속 촌부라던지, 그 둘 중에 뭐가 낫고 누가 누가 좋은가는 말할 필요가 없는 일이다. 종교의 목적은 선의 실천을 위한 것이고, 두 마리 토끼의 대상과 무슨 3박자니 4 뭐니 그 목표 역시 개인의 자유인 것이다. 인간은 신을 사랑해야 한다 라는 좌우명을, 인간은 응애응애 태어나면서부터 노래를 부르나? 아니다. 절대 아니다. 어림없는 얘기다. 그렇게 태어나도록 인간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신이 인간을 만들었나 아닌가, 그건 확답할 수 없지만 인간만 보자면 인간은 그렇게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는다. 그건 곧 처음부터 그렇게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얘기다. 인간이 현재와 같이 이 모양 이 꼴이라면 그건 분명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인 것이다. 모태신앙은 있을 수 있지만, 그건 얼마든지 유익하다만 그것과 이건 주제 자체가 다른 거다. 그렇듯 신이 인간을 온전히 이해함으로써 고귀한 인간성과 거룩한 우주와 신기한 예지를 우리 인간이 납득할 수 있는 문자로써 그 뭔가가 새롭고 신비하게 구체화될 수 있다면 그 만한 미덕은 더없이 값질 것이다. 형언할 수 없을 만큼 고귀할 것이다. 바로 이와 같은 이유 때문에, 신은 세상의 불합리함을 모른 체 하는 것 아닐까? 바로 이와 같은 이유 때문에, 아주 먼 훗날 외계인이 지구에 나타난다면 그 2편은 1편과 똑같아서는 안될 것이다. 그러나 사랑처럼 미래는 모르는 것이다. 1차 다음에 2차가 완전 다를 수는 있는데, 그런데 또 뜬금없이 3탄에서 갑자기 복고풍으로 1번 방식을 아예 초특급으로? 우리는 드라마와 영화를 너무 많이 봤다. 정말 너무 많이 봤다. 자, 이 정도면 저 2번의 답변에 대해서 어느 만큼 구색을 갖췄을까? 나름 자신하기는 어렵다. 그래도 일단 넘어가자. 그 다음으로는 문명은 이처럼 여러 문제들과 함께 발전할 수 밖에 없었는가, 그 차례다.
    (휴~)
    (쉬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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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문명은 이처럼 여러 문제들과 함께 발전할 수 밖에 없었는가! 일례로 옛날에 강자는 제국주의를 찬성했고, 약자는 제국주의를 극렬히 반대했다. 한마디로 약육강식의 논리일 테니까. 그런데 완전하게 소비의 시대로 넘어와서는 어떤가? 시대가 바뀌면 세상도 바뀐다. 그 흐름에 자연스럽게 편승했다면 그건 OK! 인간의 일이 동물과 똑같아서는 안되겠지만 문명사라는 건 그런 거니까. 그러나 그 흐름에 부자연스럽게 후발주자로 나섰다면? 그건 왜 세계 제패의 흐름을 멈추게 만들었냐는 주장이 부각되는 것처럼 주객이 전도되는 일이다. 그건 곧 왕도 신이고 나도 신이고 너도 신이며, 신이 아닌 사람은 이 세상에 하나도 없다는 말과 도대체 뭐가 다르단 말일까. 우리는 법치국가, 다만 우리가 바깥을 향할 때는 무법 국가? 오 세상에나! 선점과 발명의 시대에는 옳고 통용되는 논리였다. 단, 그때에만! 그래서 옛날에는 다 그림을 만들었다. 너네들이 우리에게 뭔가를 요청한 걸로 하자 라며. 내부자를 길들이는 건 일도 아닐 테니까. 문명사를 따졌을 때 라디오도 TV도 인터넷도 없던 세상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밖에서 오든가 안에서 일어서든가, 의 차이일 테니까. 그처럼 <문명의 발달이 어느 능선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창안-발전-개혁등과 함께 그 어떤 불미스러움도 같이 가야 했다>. 그러다 지금은 대체로 안정기에 접어든 것일 텐데, 지구는 타임머신이니까 아직 현재진행형인 곳도 있다. 어쨌든 생각의 다양성 때문에 발생하는 극단적인 어불성설은, 지금도 제국주의의 전성기란 말과 대체 뭐가 다르다는 말인가, 말을 바꾸자면 그와 똑같다.
    그렇지만 꺼림직한 사안은 그 뿐만이 아니다. 민간인 학살은 국제법 위반이자 비윤리적 사태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전쟁이란 참혹의 극치를 뜻하는 것. 때문에 민간인이 군인의 요청이든 명령이든 자발적이든 어쩔 수 없던지, 민간인이 확실하게 난민이 되거나 아니면 확실하게 군복을 입던가 그래야 옳다. 달리 보자면 아무리 어려워도 국가를 버리고 도망만 가는 게 능사가 아니라, 국가 안에서 국가의 재건을 위해 싸우던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 게 옳음으로 보자면 그 정의가 더 앞선다. 일례로 베트남은 옛날에 그랬다. 그 뿐만이 아니라 그런 예는 수없이 많았다. 그런데 지금은 국제 뉴스에 난민이 단골이다. 규모도 장난이 아니다. 정말 어쩔 수 없어서 고향을 떠난 사례도 있겠지만, 너무 일찍 조국을 져버린 일은 없을까? 희망이 없으니 등을 돌릴 수 밖에 없었을까? 단지 잠시 떠나서 관망 후 복귀를 꿈꾼다면, 그렇다면 가까운 곳으로 가도 되지 않을까? 가까운 곳에 평화로운 곳은 없을까? 꼭 험난한 경로를 통해서 문명의 선두주자 쪽으로만 가야 하는 것일까? 네? 정말 그것만이 정답일까? 아프리카는 어떨까? 중동 연합은 대체 왜 후보군에도 들지 못할까! 괴테가 사석에서 아담과 이브의 직계 후손 뭐라 뭐라고 옛날에 그랬다. 그가 말한 그곳에서는 지금 국방의 의무에 대해서 남녀가 평등하다. 아기는 여자만 낳을 수 있으니까, 또 논점을 벗어난 거니까 넘어가자. 그쪽 이야기면 아랍 연맹과의 불화에 대해서 논해야 하는데, 그걸로만 최소 3년을 공부한 다음에 조심스럽게 입을 떼야 하기 때문에 넘어간다. 그러니까 그 대신에 여기서는 남녀 이야기가 어쩔런지.
    옛날에 요한 볼프강 폰 괴테가 그랬다. 그분 말마따나 아담과 이브의 직계 후손, 어, 직계 후손이 뭐 어떻다고 했다. 당시부터 여러 일들이 있었는데, 최근만 보자면 그 직계 후손들이 사는 곳에서는 여자도 군복을 의무적으로 입는다. 특정 지역의 남녀가 그러한데, 어른들이 느끼는 세상은 썩 그렇지 않다. 남자가 썰을 풀고 씨를 뿌리듯 부풀리고 과장한다고, 여자도 똑같이 만인에게 공평하게 꼬리를 흔든다? 적당히 그러는 건 좋다만 지나치게? 쉬쉬, 소문난다 소문나. 애들이 알까 무섭다. 왜 남자와 여자의 성-그래프가 다른지, 왜 우리의 엄마는 내가 어렸을 때 나를 데리고 외간남자를 만났는지, 한번쯤 생각해 볼 문제다. 남자는 내가 걸출한 플레이보이가 될 수 없다는 무의식적 슬픔이 있을 수 있는 반면, 여자는 자기가 좋아하는 남자에게 그렇게 고백하는 게─하고 싶다거나 못하는 게─일반적이다. 내가 만약에 남자로 태어났으면 이 여자 저 여자 다 따먹고 다녔을 거라고! 그러니까, 남자의 갈비뼈를 떼어서 여자를 만들었는데, 왜 남자는 여자의 꽁무늬를 쫓아다녀야 할까? 제 발로 아무 데나 막 굴러다니는 호박 같은 숙녀의 눈빛은 대관절 어떠할까? 시대의 비교로 시작해서 신의 의미를 차분히 논해야 하는데, 그런데 난민 얘기가 나오더니 뜬금없이 무슨 뒤꽁무늬? 거 참 나, 참말로 산만하구만 그래. 어쨌든 돌아가서,
    국가 안에서 도저히 피할 데가 없을 때, 국가의 질서가 말도 못하게 흐트러지기 전에, 그 어떤 노력이 선행되는 게 먼저다. 그렇다면 거슬러 올라가서 여러 원인들까지 따져봐야 하지만 일단은 그렇다. 그럼 전쟁이 끝나서 비둘기가 돌아오면 바깥으로 나갔던 민간인도 비둘기처럼 다시 고향으로 돌아올까? 가령 A 지역을 민간인이 떠나 B 지역에서 난민으로 정착한다, 그런데 B 지역에서도 내전이 발생한다, 그러면 그 민간인은 다시 C 지역으로 옮겨가야 하는가? 아님 또 D로 옮겨가야 할까! 그럴 가능성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쉽게 말해 난민은 (비교적이 아니라 제일) 잘사는 나라로 입국을 시도하는 게 일반적이다. 종교가 사람을 위해 생겼는데, 타임머신의 관점 때문에 또 이권이 얽히고 구시대적 체제에 부딪히고... 저런! 크게 봐서 해법은 쉽지 않다. 지구촌 민주주의의 백분율 증가, 화석연료 고갈(약 50~200년 예상), 종교적 안정─지역 안정─경제적 안정등 요구되는 조건은 많고도 어렵다.
    난민? OK, 난민! 난민이라는 어려운 주제가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진보와 보수에 치우치지 말고 거대한 시각으로 살펴보는 게 정의로울 것이다. 왜냐하면 현재 국가라는 단위로 봤을 때 빈부의 격차가 크듯이 세계라는 단위로 볼 때 타임머신처럼 문명의 격차는 엄청나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인류애와 세계관과 이기주의를 교훈으로 교화하는 지구 학교에서 교장도 없고, 학칙도 없으며, 존경스런 교권 즉 모범스런 교육적 권위도 기대만큼은 아니다. 뿐만 아니라 학생들은 각양각색이다. 문제아도 있고 반항아도 드물지 않으며 펑크족에 훌리건과 휴학생도 있다. 뿐인가? 전학생도 있고 어떻게 보면 퇴학생감은 없나 모르겠다. 이래가지고는 문제 해결은 쉽지 않다. 엄청 오래 걸릴 게 뻔하다. 일단 왜 그렇게 일이 복잡하게 얽혀버렸는지 간략히 살펴보자. 대충 1900년을 기점으로 그때까지 약 몇 백년 동안 유럽은 세계의 90퍼센트를 지배했다. 1900년을 기점으로 유럽은 그동안 대단한 전리품과 함께 엄청난 이득을 챙겼다. 물론 문명의 발전에 막대한 기여도 했다. 한마디로 유럽은 진취적인 학생이었다. 노예제도도 (완전 대충만 따져서) 1900년으로 종료됐다. 모든 이권과 실속하며 문화-예술의 전성기마저 유럽이 온전히 독점했다. 유럽의 식민지 개척이라는 그 진취적 기상이 없었다면 가전제품의 발명도, 산업혁명도, 원소기호도, 의학이니 사회니 정치니 모든 문명의 발전은 이토록 과거에 비해 현격하게 발전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딱 1900년을 넘어서면서 고전음악의 전성기가 거의 끝나가는 것처럼 제국주의 전성기도 끝났다. 그런데 그 끝물에 하필 제1차-제2차 세계대전이 발생한다. 독일-일본-이탈리아, 또 줄을 잘못 서서 몇몇 협업자로 인해 세계가 시끄러웠다. 그 999개의 참상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이라는 국가도 탄생했다. 물론 진짜인지 연기인지 개인의 자유이기 때문인지 999에서 1을 더하지 못하게 왜 막았냐며 일각에서는 시위를 하기도 한다. 그것까지 말릴 수는 없다. 자유의 시대이자 소비의 시대이니 말이다. 어쨌든 중동의 시끄러움이 그때부터 꼬였다. 중동은 잠시 후에 얘기하고, 현재의 난민처럼인가는 몰라도 어떻게 어떻게 해서 유대인은 세계로 퍼졌고, 주로 유럽에 흩어져 살았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유대인은 약 2천만명에서 1천만명으로 줄었고, 그 1천만명의 절반은 세계로 흩어졌고 절반은 현재의 이스라엘에 정착했다. 문화-예술-교양을 잘 아는 지성인이라면 유대인에 대해서 옛날부터 왜 그토록 얘기가 많았냐는 걸 모르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렇다고 해도 재주가 좋다, 수완이 뛰어나다, 영리한 친구들이다 정도면 되는데 그렇게 문제가 크게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데 대충 1950년쯤 제2차 세계대전이 종료되면서 승전국들이 결정한다. 무엇을? 세계로 퍼진 유대인 말고 유럽에 남은 유대인들을 그들의 고향으로 이주시키자 라고. 그래서 굴러온 돌은 박힌 돌을 빼내게 된다. 여기서 굴러온 돌은 유대인이고 박힌 돌은 팔레스타인이다. 물론 아주 아주 옛날은 유대인의 고향이 현재의 이스라엘인 것은 맞다. 그러나 그건 아주 아주 옛날. 그래서 현재까지 시끄럽다. 중동연합에서 이스라엘을 국가로 흔쾌히 인정하는 나라가 있나, 없나? 없다!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말하자면 그들끼리 사이가 안 좋다. 화목하지 않단 말이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은 기독교-카톨릭과도 친하지 않다. 더군다나 2000년 전에 자신들을 국제적 난민으로 만들었던 로마제국의 후손인 로마는, 카톨릭-기독교를 박해했다가 다시 카톨릭이 국교가 됐다. 그 후 지금은 공식 국교가 아니지만, 교황과 추기경을 쑤두룩하게 배출하는 암묵적 카톨릭 국가이자 카톨릭 명가다. 왜 유대교와 구교-신교가 구약성서 빼고는 남남일까? 왜냐하면 쉽게 말해 옛날에 당한 게 있기 때문. 십자군 전쟁만 해도 언제-언제-언제 학살도 있었고 축출도 있었다. 그건 먼 옛날이고 2차 세계대전 때 홀로코스트도 종교와 민족을 떼놓고 말하기는 힘들다. 원론적으로 기원 0년이 태동한 당사자를 보는 관점이 정반대. 즉 기원 0년을 한쪽은 강림, 한쪽은 불인정. 그건 그렇고, 다시 말해 유대인은 옛날에 고향에서 세계로 특히 유럽으로 흩어졌다가, 다시 현재의 이스라엘로 모이게 됐다. 최선은 없고 차선도 어려우니 가능했던, 일종의 타협이었고 모종의 해법이었다. 그러나 이슬람교권 국가에서 봤을 때는 어떻게 보자면 차악일지도 모를 결정이었다. 그러나 역사로써 이미 정착이 됐다. 유대인을 난민으로 보자면 역사적으로 참 오랫동안 멀리 떠났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격에 해당하는 난민이다. 어렵고도 어려운 문제지만 인도주의적으로 그들의 원래 고향에 정착했으니, 괴테가 말한대로 아담과 이브의 직계 후손은 지금 사는 곳을 에덴으로 만들면 된다. 자, 이처럼 난민의 가장 대표적인 예시라고 할 수 있는 유대인 사례를 겨우 어렵싸리 설명했다. 그럼 현재의 난민은 어떤가? 현재의 난민은 제2차 세계대전 그 이후에 발생한 난민이다. 유럽이 세계에서 취득한 이권이라는 역사적 사실이 분명하니 만큼 그들의 행동은 인도적이었다. 지구상에서 진보적 견해는 유럽에서 제일 먼저 꽃을 피웠으니까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어머나! 시간이 점점 흐를수록 그 규모가 장난이 아니네? 당연히 문을 좁힐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 규모가 되고 보면 우리가 듣고 말하며 읽을 때는 난민이지만, 규모로만 보자면 후천적으로 내 국적을 선택할 수 있다는 뜻으로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솜방망이에 가까울지도 모를 국제법적으로 난민을 어느 정도 만큼 받는 건 말 그대로 인도주의다. 그러나 그 인도주의는 한마디로 어느 정도까지다. 어느 정도를 넘어서면 정치권에서 소란스럽게 이르기를 난민과 이민의 구분은 모호해져버린다고 할 것이다. 망명을 막론하고 이민의 경우 일정 조건 이상이라는 기준선이 있다. 또 난민의 경우 극단적으로 유대인의 사례가 있었다. 그런데 시대적으로 엄청난 규모의 지속적 발생이라는 국제적 난민 문제가 새롭게 대두된 것이다. 이민─망명─난민에 대해 인문교양서를 쓸 만큼에 준하는 연구가 선행되지 못한 체 어쩔 수 없이 시간에 쫓겨 칼럼을 쓴다마는 잔지식만 총동원하자면 이와 같다. 현재의 난민 문제는 옛날의 이민이랄지 수용 가능 범위에 해당하는 난민의 범위를 넘나든다는 점. 실제 그렇다. 제1차-제2차 세계대전으로 말미암아 발생한 난민은 세계 각지로 퍼졌다. 그런데 그건 수용 가능했다. 또 필요로 했다. 당시는 각국에서 이민도 많이 받아야 했고 나라별로 경제성장률이 지금과는 비교도 못했으니까. 대충 19세기와 20세기를 기점으로 유럽의 세계 장악력이 반대쪽으로 넘어오면서 미국과 일본만 해도 경제성장률이 20%, 30%, 50% 막 그랬다. (지금은 몇 퍼센트인가!) 대충, 불성실하게 대충, 정말 터무니없이 대충 따졌을 때 말이다. 하지만 썩 틀린 말도 아님을 우리들이 왜 모르겠나. 불미스러운 일 뿐만 아니라 나의 가난함과 심심함까지 감정적으로 대처하지 않는 어른이라면, 자고로 역사적 사실을 건조하게 원리로써 살필 줄 알아야 한다. 아닌 말로, 그거 다 조상님들이 하신 일들 아니냐 그 말이다. 아니 그렇소? 흐흠, 네네, 유럽이 그렇게 세계의 패권을 반대쪽에 넘겨준 이유는 한마디로 말해서 인구 때문. 프랑스 + 영국 = 일본 X 3 = 미국. 그리고 지금 중국은 후발주자로써 분발하고 있다. 줄을 선 공룡들을 제외하고도 말이다. 인구만 보자면 천재의 비율이 조금 실망스러울 수도 있는데, 말 그대로 중국은 후발주자다. 이미 끝나버린 제1차 미술의 전성기와 흡사하게 세계에 기여할 수는 없으니 향후 뭔가 다른 걸 기대할 수 밖에. 그래도 저번에 어느 전문가께서 알파고한테 연패이자 완패한 건 조금 낙심할 만한 일이다. 뭐 그럴 수도 있다. 아무튼 유럽이 1900년 이전에 누렸던 달콤한 이권이 풍부했던 것과 별개로, 현재의 난민을 받아주는 건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고 합리적으로 인도주의에 해당한다. 하지만, 하루 이틀도 아니고 언제까지나 무한대로 받아줄 수는 없는 일이다. 난민을 인도적으로 대하는 건 옳은데 난민 문제 역시 그거다.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면 곤란하다는 것. 난민을 수용하고 배려하는 건 좋지만, 난민 천국이라! 뭔가 잘못된 천국이다. 그래서 난민 난민 하면 그냥 단순히 뭐 나는 어떻게 생각한다, 그 이전에 왜 이렇게 일이 복잡해졌는지, 어떻게 더욱 사태가 심하게 꼬여버렸는지, 그렇다고 앞으로 낙관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우선 아는 게 먼저다. 그걸 알고 난 다음에 깨닫는 게 합리적인 순서다. 아하, 그래서 이 일이 이만저만한 그런 어중간한 난제가 아니구나 라고.
    1차로 나는 너무 일찍 국가를 버리지는 않았는지
    2차로 피치 못할 사정이라면 주변국은 안되는지
    3차로 중세의 집시랄지 현대의 까다로운 조건에 부합하는 이민처럼 난민 천국의 기준선이 낮춰지는 건 아닌지
    4차로 일이 커진 데 가장 책임이 중차대한 종교에서 응분의 역할은 했는지, 앞으로 할지
    5차로 그 종교는 현대적인지 아니면 타임머신처럼 아직 그 뭔가가 과거에 머물러 있는지
    6차로 여러 이권이 어떻게 얽히고설켰는지
    7차로 분파가 세세하다면 서로 존중은 몰라도 너는 너 나는 나, 가 되는지
    8차로 내부에서 다수가 원하는 민주화와 자유와 행복을 왜 누군가 나서서 반대하고 협력하는지
    9차로... 그만 그만
    지금은 국적도, 이름도, 사랑까지 내 의지로써 원한다면 바꿀 수 있는 세상이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함이 비교적 우세했던 중세가 아니다. 신분의 굴레, 없거나 약하다. 가고 싶은 데는 어디든 갈 수 있다. 어디로 여행 가지 마라, 구시대적 체제다. 일시적 불매운동, 단순한 해프닝이자 초보적 발상이다. 1인자를 풍자할 수 없고, 정책에 군소리할 수도 없으며, 지금은 오직 왕만 떠받들어야 하는 그런 세상이다? 그게 과연 현실일까 문학일까 아니면 타임머신일까! 그래프로 따졌을 때 자유의 가치는 무엇보다 존중 받고 있다. 우리에게는 의사 표현의 자유가 있다. 직업도 내 마음이다. (막살라는 뜻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은 뭐든지 할 수 있다. 나중 절망할 수도 있지만 꿈은 자유다. 야망도 무료다. 행복도 내 맘이다. 가방을 고르듯 친구를 선택하고, 우정에서 배우며 희망을 기도 드리고 나는 사랑할 자유가 있다. 짝사랑하는 그녀가 내 마음을 받아주지 않을 수도 있는데, 연가를 부르고 사랑의 시를 짓는 것 역시 자유다. 현대는 자유의 시대란 말이다. 노예의 자유를 제한했던 옛 시대가 아니란 거다. 교양도 좋지만 무식해도 괜찮다. 정치적 자유 또한 보장된다. 적절한 쾌감은 몰라도 타락에 빠지고, 방탕에 물들며, 재산을 탕진해도 되냐고? 얼마든지! 그걸 말리는 업종도 따로 있다. 그게 꿈일 수도 있고, 그로써 먹고 살 수도 있으니까. 타고난 한계는 있지만 남녀라는 성까지 바꿀 수 있다. 유인선은 태양계내 무인선은 태양계 바깥까지 갔는데, 마녀사냥이 지금 어딘가에서? 14세기에서 17세기에 유럽의 여러 나라와 교회가 이단자를 마녀로 판결하여 화형에 처하던 일. 마녀사냥. 현재 어딘가에서 종교의 자유가 금기시된다면 그건 곧 자유의 지옥이다. 그러면 난민의 천국이 대중매체의 헤드라인을 날이면 날마다 장식하게 되는 것이다. A에서 B까지 가는데 길을 막고 종교가 돈을 받는다? 그건 둘 중 하나다. 워렌버핏이 찬양하는 사업 방식이던가, 아니면 산적이던가! 신앙이 비즈니스이자 산업과 닮을 수 밖에 없는 건 불가피하다. 하지만 시대착오적인 설교랄지 부조리에 대한 종교계의 방관, 종교계의 폐해에 대한 뒷짐, 종교가 시대보다 선행하지는 않아도 괜찮다만 관망도 아니고 심하게 뒤쳐진다면 그건 뭔가 잘못되도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종교는 물론 사람도 마찬가지고 세상사가 오락가락하는 건 괜찮다. 이기주의와 이타주의, 존중과 비방─박수와 야유─너는 너 나는 나. 다양성이 바람직하다면 끼리끼리도 존중 받아야 한다. 패셔니스타가 화려하듯 바흐 스폐셜리스트도 나쁜 게 아니다. (개)허세가 적당하면 나쁘지 않은 것처럼 산뜻한 허영심도 괜찮은 것이다. 아니 뭐 바쁘면 그럴 수도 있지 라면서 의복에 대한 격식을 생략하는 친구와 대망을 실현한 친구가 장례식에서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눌 수야 있지만, 그 우정이 꼭 영원해야 하는 건 아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심하게 뭔가가 일방적이라는 건 시계가 거꾸로 돌아가 마녀사냥은 현실이다, 라면 그건 심각하게 생각 좀 해봐야 한다. 우리는 알아야 한다. 빠삐옹이 왜 그렇게 자유를 갈망했는지를!
    괜히 난민 때문에 세계의 패권까지 언급했는데, 어차피 논해버린 까다로운 주제 조금만 더 얘기해보자. 제국주의의 호시절과 발명-선점-창조의 제1전성기를 유럽과 미국이 모두 누려버렸기 때문에 후발주자인 중국 같은 경우는 달리 옛날 같은 만찬을 기대할 수 없다. (고전음악의 제1 전성기만 강조하고 과장해서 그렇지 그때 창시가 있었다면 지금은 창업도 있고, 또 그 중심으로 틀을 바꾸면 지금과 같은 논조의 빛은 약해진다) 그건 기정사실이다. 당연히 후발주자 입장에서는 억울하다. 유럽은 전성기에 세계의 90퍼센트를 꿀꺽했는데, 미국도 영역과 선점과 동맹을 합하면 세계 반틈과 일정 수준 이상의 지구 전지역에 직업인을 주둔시키는데, 아니 글쎄 후발주자는 어떡하라고? 생각해보자, 그 어마어마하게 남아도는 힘을 도대체 어디다 써야 할까? 그렇다. 꼭 어디서 폄하하고 깔보고 그래서 하는 말이 아니라 어차피 남은 가능성이라고는 넷 밖에 없다. 첫째 아프리카, 둘째 중동, 셋째 남미, 넷째 소-개체 국가. 그렇다고 동맹도 교류도 아닌 M & A? 직접 식민지를 경험해봤기 때문에 그 아픔이 어느 정도라는 걸 그 누구보다 잘 아는데, 그런데 그 서러움을 되돌려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남은 건? OK, 우주 밖에 없다는 말이다. 경제적으로 장악해서 사극에 나오듯이 속국의 형태가 재현될 수도 있는데─역사적으로 옛-중국은 그 방법을 선호했다─그건 아마도 한계가 있다. 왜냐하면 인문경제학자들이 연구를 하고 또 해서, 민족과 전통과 인습과 언어가 일관된 공동체끼리 사는 게 그 모두가 가장 합리적이라고 결론 내렸기 때문이다. 무수한 통계와 연구로써 말이다. 어쨌든 1900~1950년을 기점으로 선험자와 후발주자의 차이는 너무나도 크다. 영국 여왕은 신이 아닌데도 영국 여왕에게 충성한다는─적어도 이론적으로라도 받드는─나라가 지구상에 몇 곳이다. 그런데 후발주자, 중국은 왕이 없는 채 근대로 넘어왔으니 논외로 치고, 일본은 자국 내에서만 왕을 하늘의 왕으로 존경하며 충성하는 형국이다. 최소한 형식적으로는. 무슨 발명이니 기원이니 그 또한 유럽에서 전부 다 선취해버렸다. 그처럼 고전음악의 제1전성기는 완벽하게 끝나버린 것이다. 앞으로는 또 모른다. 앞서 말한 왕에 대한 의미를 따졌을 때 캐나다와 호주와 뉴질랜드가─이미 남부럽지 않고 또 필자 역시 많이 부러워하는 독립국이지만─앞서 말한 의미로 완전무결하게 독립할지 어쩔지를. 그러든 어쩌든 분명한 건 두 가지다. 첫째, 왕은 신이 아니라는 점. 둘째, 전통을 아끼고 왕실이라는 가문을 존중하는 것과 별개로 왕권은 시간에 비례하여 줄면 줄었지 절대 늘 수 없다는 것. 그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 정도도 모르는 푼수는 그다지 썩 많지 않다. 푼수라... 지나친 표현임을 인정한다. 그래도 푼수과가 재밌기는 재밌다. 허허. 흐흠 그건 그렇고, 선험자와 후발주자의 차이를 간략히 비유하자면 한껏 과장하자면 보나파르트 나폴레옹과 아돌프 히틀러의 차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 정도다. 진짜로 딱 그 정도다. 인간이 신의 영역에 근접해서 문명이 이 만큼 발전한 것은 좋다면, 그런 반면 그늘도 결코 만만치 않았다는 뜻이다. 그런데 철들지 않는 어른들이 좀 많나. 한쪽에서 왜 99에서 1을 더 채우지 못했음을 성토하는 규탄이 있으면, 다른 한쪽에서는 또 초딩 같은 어른들도 있다. 그러니까 뭐라고? 우리는 제국주의의 전성기처럼 바깥으로 진출하여 타국을 수탈하고 억압하지 않았다 라고. 그렇게 생각하는 견해는 일견 옳은 듯 보이지만, 사실만 따지자면 타당하지만 지극히 초보적인 역사적 사실 접근 아닐까? 왜냐하면 사실만 놓고 보자면 사실은 사실이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그건 안한 게 아니라 못한 것이기 때문이다. 조상님들이 뭔가를 하고 안하고는 지금 사람들이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뿐만 아니라 조상님들 시대에서도 조상님들의 리더만이 안이냐, 밖이냐를 결정할 수 있었다. 심지어 에너지가 차고 넘칠 때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것이지, 에너지가 그만그만한데 밖으로 나간다? 어림도 없는 일이다. 시도 자체라는 포부도 품지 못하는 거다. 꼭 진취적 본능이네 어쩌네 솔직히 말해서 그건 그냥 뭔가 있어 보일려고 꾸민 말이다. 그런데 소 뒷걸음질 치다 뭔가를 잡았을 수도 있고. 글쎄요, 인간의 본능은 역량이 되면 창을 들고 역량이 부족하면 방패를 든다. 바로 그게 사람의 본성이고 인간의 본능이다. 사랑의 묘약으로 말미암아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고, 후라이팬이 꼭 요리하는 데만 쓰이라는 법도 없다. 펜, 포크, 요술봉, 마법 수정구슬, 삐에로복, 리모콘 그리고 기저귀 등등. 오늘 우리는 무엇을 집어들고 그걸 어떻게 사용해야 할까! 일단 구시대의 성과에 대해서 결과적으로 현재를 내게 유리하도록 합리화하기만 하는 것은 역사학자─문화인류학 선생─교양인─상식─지성인의 자세가 아니라 여리고 순진한 학생의 태도다. 구시대의 성과가 많으면 많은대로 박물관에 쌓인 건 많은 데 비해 적으면 적으니까 도덕적 고결함을 취한다? 어떻게 보면 허세고 어떻게 보면 초딩에 가까운 좁은 시각이다. 미녀를 선점하면 좋고 아니면 허풍! 숙녀들의 인기를 독차지하면 겸손이요, 숙녀들은 쏙 빠지고 어중간한 유명세라면 따따부따! 내가 표준어와 3개 국어 구사 가능하면 하늘에 감사하며 재능을 선용하여 인생을 누리겠지만, 난 겨우 표준어조차 아무리 해도 안된다? 일평생 방언 딱 하나만이 내가 검집에서 뺄 수 있는 짜리몽땅한 명검이다? 그러면 그렇게 말할 수 밖에 없다. 살아보니 그럴(표준어를 구사할) 필요가 전혀 없더라고 말이다.
    (휴~)
    (쉬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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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미의 국가 가사들을 면면히 살펴보면 하나같이 비슷한 패턴이 많다. 밝은 멜로디를 바탕으로 어쩌자 어쩌자 하늘의 태양, 희망을 어쩌자 어쩌자! 그럴 수 밖에 없는 역사 때문일 것이다. 그건 곧 인류의 세상사는 인간의 생애와도 흡사하다는 반문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오락산업의 변천사는 세계사의 축소판이고, 세계사의 축소판은 인생의 줄거리인 것만 같다. 만약 내부의 에너지 총합이 예상 결과에 불리하다면 무지개 너머의 보물섬으로 모험을 떠나서는 안된다. 이미 가능성 없는 게임이니까. 때문에 문명사를 보면 오랫동안 일관되게 확장 정책에 국력과 국운을 걸었던 제국은 대체로 승산이 허락한다는 조건 하에서 역사를 바꿨다. 그처럼 나 자신이 영웅의 탄생도 아니고, 천재의 활약과도 연을 맺지 못했을 때 내가 탄 말은 관광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조랑말로 판명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기 싫고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내가 탄 말은 거포마가 아니라, 처음부터 나의 애마는 오직 뻔트마일 테니까. 따라서 우리의 조상은 비밀결사단을 안 한 게 아니라 못한 거였고, 우리는 슈퍼스타가 될 수 있는데 마다한 게 아니라 단지, 못된, 것 뿐이다. 애초에 조연감으로도 어중간할 테니까 말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지. 나는 유명해지고 싶은 마음 없어, 라는 선언은 호사─풍요─행복이라는 인간의 궁극적 목표에 대해서 행운도, 재능도, 운명마저 날 피해 간 다음에 딱 말하기에는 뭔가 막 쪼잔하고, 뭔가 막 비겁하며, 하지만 뭔가 막 귀여운 변명이다. 대패─연패─참패로도 모자라 패배주의의 금자탑을 쌓은 다음 좋아하는 그녀 앞에서 망신을 당하니까, 포커페이스도 실패했겠다 최소한의 여복마저 간당간당하겠다, 그래서  「나는 이기고 싶은 마음 전혀 없었어. 어차피 그냥 놀아준 것 뿐이었으니까. 내가 그거 이겨서 뭐한다고!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얻겠다고 말이야. 의미 없어! 안 그래?」 ......뭐지? 뭐야! 어라~ 뭐라고? 정말 뭐야! 이건 대체 뭘까! 아아 (설레설레), 오오 결국 그 말 밖에는 할 말이 없다. 야 야 떴어 떴어, 피해 피해, 고개 숙여 고개 숙여, 딴 데 봐 딴 데 봐! 어라~ 그러니까 갑분싸 갑분싸라고? 뭐야 이거, 지들이 언제부터 그렇게나 일을 열심히 했다고! 그러니까 뭐 부러우면 지는 거다? 그거 너무 유치하지 않나. 뻔트~처럼 짧아서 좋은 게 있듯이, 속마음 뻔하면서 너무 간결하게 뭐 어쩐다라.. 그건 너무 속 보이는 일이다. 그래서 살짝만 늘려보자. 어떻게? 부러우면 지는 거다, 지는 게 이기는 거다, 이기면 부러움에 관한 명언을 읊지 않아도 되고 부러우면 어쩐다며 뚱할 필요마저 없는 거다 라고. 어차피 언제 어디서 어떻게 태어난다는 걸 내 의사로 선택하여 태어나는 것도 아닌데, 굳이 자기 합리화의 격을 필요 이상으로 심하게 낮출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단, 농담이나 으쌰으쌰라면 몰라도 무계획으로 열정을 내세우는 게 좋을 때가 있는 것과 별개로, 자유가 좋긴 좋다만 너무 막사는 건 아닐까 싶은 것처럼 오직 튀는마만 선호하겠다면─물개박수라도 대만족이라면 또 몰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아직 저 3번에 대해서 명쾌히 수긍하기 힘들다, 이성은 알겠는데 감성은 약간 갸우뚱하다? 다르게 또 짧게 재차 설명하자면 이와 같다. 넌 왜 그것도 모르니 야 임마 그 쉬운 걸 이해하지 못하면 어떡하니, 라면서 면박을 줄 수야 없지 않겠나! 만약 누군가 그와 같은 단계라면 두 가지만 바로 알면 된다.
    첫째 숲과 나무. 둘째, 가치 판단의 틀을 정물화로 제한할 것인가. 셋째, 시대의 차이. 첫째에서는 이렇게 볼 수 있다. 난민이니 뭐니 현재의 인류애적 관점에서 봤을 때 제국주의는 참극이었다, 그러니 그건 인간의 야만성이 표출된 걸로 가정하고. 그럼 발명, 탐험, 창안, 인상주의, 오페라, 피타고라스의 정리, 세계 위인전은? 난민에 대한 인류애적 관점에서 봤을 때 그건 천사들의 축제에 필적하는 성과다. 문명은 그 둘을 따로 떼서 발전시키지 않았다는 게 첫째의 요점이다. 그리고 둘째. 둘째는 표집 틀을 어떻게 볼 것인가의 차이다. 현재로부터 100년이나 몇백 년 전까지만 놓고 판단할 것인가, 아니면 인류사를 통틀어 고찰할 것인가! 전자로 보면 카드게임처럼 뒷면만 보이는 추가 패를 1개 받았을 때는 다이아몬드요, 또 1개 받았을 때는 하트다. 그런데 후자로 봤을 때 지금은 한마디로 기적이자 평화의 시대다. 응애응애 삐악삐악. 지금도 기저귀를 찬 건 똑같지만 이제는 걸음마를 시작한 셈이다. 인류가 싸우지 않은 시기가 거의 없이 99.99퍼센트를 살아오다 드디여 두 발로 일어섰으니까. 앞으로 기저귀를 뗄지 다시 옛날로 돌아갈지는 쉽게 장담할 수 없지만 말이다. 식인종과 야만인도 인류의 조상이었고, 세계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다큐멘터리 동물의 세계와 완전한 판박이였다. 올림픽이 다시 시작된 이후로 판이 새롭게 바꼈는데 뒷북이 문제됐듯이, 여전히 정서적 시간이 물리적 시간을 못 따라가는 경우는 썩 귀하지 않은 실정이다. 그래서 둘째의 요점은 이렇다. 의식과 무의식을 오르내리는 음성적인 본성을 일평생 제어해야 하는 건 인간의 운명. 아울러 이성과 감성은 남자와 여자처럼 뗄래야 뗄 수 없는 사람의 성질. 내게 유리하냐 불리하냐, 로보트처럼 건조하게만 행동할 것인가 예술가처럼 촉촉하게 볼 것인가, 우리는 그 균형과 조화를 잃지 않기. 그러니까 우리는 문명사에서 독립해서도 안되고 지구의 역사와도 이별할 수 없다. 그러므로 박물관이라는 인류의 기원을 상식에서 제외하지 않은 채 전공을 선택하고, 교양을 논하며, 즐거운 인생과 함께 할 것.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우리는 천사와 악마의 숙주도 될 수 있고, 이 세상마저 천국과 지옥의 식민지가 될 수 있을 테니까. 마지막으로 셋째. 셋째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한마디로 1900~1950년을 기준으로 봤을 때 그 이전은 노예제, 그 이후는 난민에 대한 인도주의. 지금 기준으로 노예제는 받아들일 수 없고 말도 안되는 일이지만, 당시는 달랐다는 점. 당시의 노예제는 현재의 은행, 부동산, 증권, 정당정치, 오락산업과 하나도 다를 게 없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질서였다는 점. 그러니까 당시라면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인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적 세상인가. 지금도 애첩을 총애하니 어쩌니 농담하는데, 시녀를 짝사랑했다는 광대의 운명을 논함은 뭔가 너무 애잔하지 않을까? 그 시녀는 끝끝내 광대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은 채 궁녀로 뽑혀간 걸로도 모자라 암투, 음모, 책동이 흉흉했던 시국이었을 뿐더러 산적과 해적마저 직업인 세상이었을 테니. 하물며 타임머신이 발명되어 벌써 상용화되었어. 그래서 뭘 좀 아는 남자들은 미래로 떠나지만 플레이보이에게 명함도 내밀지 못했던 우리까지 그럴 수야 있나. 너만 가냐 나도 간다, 가 아니라 우리는 거꾸로맨. 따라서 내 친구는 가서 300명을 거느렸다길래, 뭐야 그 허접한 놈이 뭐라고? 나는 3000을 목표로? 아니지 아니지 그건 아니지. 소수정예로 30을 위해 딱 돌아가. 먼 과거로 딱 돌아간다고. 그런데 타임머신의 오류! 그걸 타고 과거로 딱 돌아갔는데 하필 내가 하사 받은 숙주는 그 뭐야, 막 모비딕에 몇 장면 비추지 않았던 그분이라고? 저런, 오오 이럴수가! 
    얘기가 너무 길어졌다만, '신은 있냐 없냐' 를 따졌을 때 합리적으로 어떻다는 결론은 앞서 나왔다. 따라서 난민이라는 정말 까다로운 난제에 대해서도 인간은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꼭 해법을 찾아야만 할 것이다. 세계의 패권은 말이다, 어느 정도 인구와 비례했다. 그렇다면 현재 후발주자와 벤치의 잠룡들이 훗날 야욕을 착하게 발현하면 좋겠지만 미래는 모르는 것. 유럽에서 GDP 대비 군사비가 2퍼센트를 넘는 국가가 한 자리수에서 두 자리 수로 왔다 갔다 했다는 걸 미래에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추세만 봐도 남자들은 고개를 끄덕끄덕한다. 미래를 무턱대고 긍정만 할 수는 없지만, 만약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다고 가정했을 때 어떻게 보자면 지금의 난민은 그나마 다행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필자가 딱히 지성인은 아니니까, 게다가 헤라클라스의 도움도 받지 못하므로, 따라서 앞서 말한 해법 외에 달리 뾰족한 묘안 그 신의 한 수는 제시하지 못하는 바이다. 딱 하나 첨언하자면 이렇다. 대체로 보수적 관점보다 근소하게 진보적 관점을 편들지만, 개인적으로 말 그대로 근소하게 그럴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차근차근은 현실 안주와 혁명의 아마도 중간일 테니까. 흔히, 언론에서 보편적 관점으로 경제를 말할 때 국가 안과 밖에서 빈부의 격차를 가끔씩 얘기한다. 실제 사실만 따지고 보자면 말도 안된다. 하지만 가난해도 행복하고, 빈곤해도 마음이 여유로우며, 지금의 평민은 그 옛날 옛적 왕의 머리 꼭대기에서 문명의 이기를 누린다. 동화 주인공은 물론 만화영화처럼 살고 있다. 그건 그렇지만, 경제적 관점에서 빈부의 격차가 말이 안된다면, 세계 200여개 나라라는 관점에서 타임머신도 말이 안된다. 그래서 시리아 난민 문제 같은 경우는 단순히 힘으로써, 정의만으로 해결하기 어렵다면 좀 더 보수적 관점에서 생각해보는 게 좋지 않을까 라는 의구심이 생긴다. 예를 들면 러시아든 누구든 모두 손을 떼는 게 제일 좋은 해법이지 않을까 그런 의견 말이다. 하지만 꼬여도 어떻게 그렇게 꼬이다니...!
    나는 이슬람교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어차피 이슬람교도 유대교, 카톨릭교, 기독교, 또 불교와 똑같은 종교일 뿐이다. 그렇다면 수니파니 시아파니 다 좋다. 다만 유럽에서 이미 옛날 옛날에 시행착오를 겪었던 일들을 되풀이하지 말기를 기원한다. 모방은 예술의 시작이지만 구태를 답습함은 설혹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가는 일일지도 모르니까. 몇 세기 전에 이미 수없이 실험해봤던 대운하를 21세기에 느닷없이 이상하게 흉내냈다가(그 때문은 아니지만) 현재 죄수복을 입게 된 어느 정치인처럼 굳이 선험자의 과오까지 답습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얘기다. 뭘 본받고 벤치마킹하며, 이건 따라하고 저건 흉내내지 않는 게 좋겠다는 충분한 과정은 싹 다 무시하고, 선험집단의 과정을 전부 따라하면 분란은 엄청나고 공분은 식을 줄 모를 수도 있다. 그러니까 이슬람교의 교황과 이슬람교의 존경 받는 고관대작들은 대체 무엇 때문에 남의 종교도 아닌 내 종교가 얽힌 사태를 수수방관하실까! 네? 아니 그렇소? 그러고서도 이슬람교의 교황과 이슬람교의 존경 받는 고관대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의견을 외부로 알릴 수 있는 입이 있으면 말씀을 좀 해 보십시요. 그렇게 딴청 피우지 마시고 말입니다. 물론 표현이 거칠고 말이 심했다만 중동의 종교적 안정이 꼭 유럽의 옛날처럼 흘러가는 것만 같아 뭔가 마음에 걸려서 하는 말이다. 적어도 말이다, 종교 순위 TOP 3에 드니까 노파심 같은 기우에서 하는 얘기라는 거다. 어찌 되든 뭔 상관이냐고 최소한 '관심도 없다'라는 입장은 아니라는 얘기다. 그렇지만 이건 또 다시 인간이 신성함을 실현할 시기가 될 수도 있다. 위기는 곧 기회인 것. 왜냐하면 중동 연맹은 이슬람교가 절대 나쁜 종교가 아니라는 걸, 중동도 그런대로 사람 살기 좋은 곳이라는 사실을─이미 현재도 낙원이겠지만─앞으로 똑똑히 차차 여실히 증명하면 되기 때문이다. 하면 된다. 그런 노력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절대적 선이다. 신의 할아버지도 반대 안한다. 해서 나쁜 일도 아니다. 그렇지만 말일세 거 왜 꼬여도 어떻게 그렇게 꼬여버렸지? 대체 왜 하필 어떤 우연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는가는 몰라도, 출생지 번지수─음력생일─전화번호─육각별─C2─죄수번호─어떤 시점... (911은 관계가 있나 없나, 노아의 방주는 또 뭐고) 이스라엘만 해도 말 한마디 꺼내기도 어려운 실정인데... 오오, 헤라클래스여! 넌 도대체 어디서 무얼하고 있는 게냐, 이 무정한 놈아!
    (휴~)
    (쉬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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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이 나왔으니 하는 얘기인데, 언뜻 끼여든 '종교' 라는 소-주제까지 이왕 이렇게 된 김에 좀 더 알아보자. 명색이 칼럼인데 뭔가 애매한 일부 종교의 차이에 대해서 간략히 집고 넘어가잔 말이다. 소-주제는 이것이다. <유대교, 기독교-카톨릭교는 과연 어떻게 다른가!> 자, 출발한다. 유대교는 '구교-신교'의 모태인 서기 0년을 신의 인간계 데뷔로 인정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단적으로 그대들이 찬송했고, 그대들이 동경하며, 그대들이 원하던 그런 멋진 강림이 아니었기 때문. 이처럼 서기 0년을 신의 강림으로 인정할 수 없기 때문에 각자 보는 시각 자체가 다르다. 서기 0년이라는 발단을 유대교는 신성 모독, 이슬람교는 신의 강림이 아니라 성자 또는 예언자 즉 다시 말해 2인자로 보고, 동시에 2인자들 중에서도 서열은 그 후세 예언자에 밀림, 그리고 기독교-카톨릭교는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앞서 말한 2번과 3번에 대해서도 유대교 입장에서는 2000년 전에 봤을 때 그리고 그 후 지금까지도 내내 결격 사유가 많았다는 일관된 교의는 결코 변치 않는다. 2000년 전 당시 문제의 인물을 보아하니 외모도 볼품 없고, 어떻게 봐도 그만그만한 인간에 가깝다. <유대교>와 <기독교-카톨릭교>의 가장 큰 차이점은 단연 그거다. 후자는 기원 0년 때문에 강림을 (아마도) 1번으로 보는 거고, 전자는 기원 0년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강림을 0번으로 본다는 점. 그러니까 당시 곧 지금으로부터 약 2000년 전인 기원0년의 상황이 좀 그랬다. 기원전 0년쯤 그조차도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제국의 식민지였다. 그래서 신의 데뷔에 대해서 기대감이 팽배했다. 로마제국의 압제도 벗어나고 전성기를 되찾고, 한마디로 인간도 영웅급이 있는데 신의 강림이라면... 오오, 아아, 저기 저 45도 각도에서... 그렇게 된 것이다. 그러나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곧 사실만 봤을 때 기원 0년이라는 결과는 꽝! 완전 꽝! 강림이라면서 해 준 게 하나도 없다. 자신들을 위해 뭐 하나 대단찮은 업적을 선물하지 않았다. 이렇다 할 지원은 커녕 도움이 하나도 안됐다. 말로는 사랑과 자유와 평등 같은 입바른 소리만 반복됐겠지. 딱 봐도 그렇거든. 무엇이? 당시 로마제국의 식민지였던 지금의 이스라엘에서 보기에, 그분의 외형이. 지금의 이탈리아 남자처럼 로마제국 기사들은 미남이었을 텐데, 딱 봐도 비교되거든. 유대인 남자는 물론이요 여자들부터 좋아라 했겠네. 퍽이나? 뭐야 이거, 아니다. 절대 아니다. 우리가 원하는 신성함이 아니라고. 일단 이마 정중앙에 눈부터 우리랑 똑같이 2개잖아. 이마 중앙에 하나가 더 있어야 하는데. 그래서, 참 내 이거 영... 그렇게 된 거다. 그래서 유대교의 이스라엘은 대-실망함. 당연히 신으로 인정을 못하게 됐다. 그래서 유대교의 입장으로 보자면 실제 강림은 아직까지 전무. 지구에서 신은 보도 듣도 못했음. 그래서 구교-신교의 기준선도 높지만 유대표의 율법은 잘 아시다시피 더더욱 훨~씬 험준하다. 뿐인가? 자그마치 1000년 2000년 동안 난민이었는데 하늘로부터 이렇다 확증은 단 한 번도 없고, 선택 받은 민족의 특혜도 없고... 십자가 모양도 크리스마스도 부활절도 싫고... 구교-신교와도 안 친한데 서력이랄지 12라는 기준이나 일주일 단위 같은 표준은 따를 수 밖에 없고... 록그룹 주다스 프리스트는 또 뭐야... 워워 헤라클레스 인기 좋네, 그 어딘가에서 헤라클레스를 간절히 바랄 테니까. 2000년 전에 유대교는 그렇게 봤다. 그분이라, 선량할 테지만 초능력을 발휘할 신격이 아니라 무능한 인격에 지나지 않다고 봤다. 한마디로 루저! 그런데 그분께서 오히려 유대교 교리와 다른 설교까지 하시네? 그러므로 땅땅땅 십자가행! 그리하여 알다시피 십자가 모양이 지금처럼 유명해졌고, 2000년이 지난 현재 이스라엘에서 십자가 모양은 거의 금기시됐다. 반대로, 유럽에서 십자가 문양을 국기로 만든 데는 몇 곳인가! 그렇다면, 신이 유대교의 마음에 들려면 과연 어때야 하는 것일까? 유대인이 신을 찬양하는 것과 별개로, 신도 유대인의 눈높이에 맞춰야 할까? 익히 공감하듯이 어느 레스토랑에 가면 물리적인 눈높이를 맞춘다면서 주문을 받을 때 점원은 자세를 낮춘다. 그렇지만 눈높이는 물리적인 게 다가 아니다. 꿇다의 피동사격인 꿇린다 라는 뜻이 뭔가, 심리적인 눈높이를 뜻한다. 그처럼 신은 스스로 알아서 인간 특히 유대 민족에게 심리적인 눈높이를 맞춰야 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그건 곧 신은 이땅에 나타날 때 비리비리하고, 허접하며, 찌질하게 나타나면 절대 안되고 거의 SF처럼 나타나야 된다는 논리인 것일까? 앞으로 그랬으면 얼마나 좋을까! 따라서 A-1, A-2, A-3......는 각자 소 닭 보듯 닭 소 보듯 하는 것이다. 아니, 유대교 대 기독교-카톨릭의 대립처럼 보인다. 아니, 그냥 다 각자도생일 뿐이다. 여타 분파는 논의에서 제외하고도 말이다. 중요한 건 이거다. 논리적으로 보자면 그 가운데 1개만 맞을 수도 있고, 1개도 맞지 않을 수 있고. 그리고 하늘의 관점을 추론해본다면 딱히 논평하기 곤란하다. 왜냐하면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딱1개 찍어서 너를 진정한 후계자로 인정하겠다, 적어도 그러지는 않을 듯 하니까. 과학자는 말했다.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고. 일반인도 사석에서 논한다. 신은 초딩이 아닐 거라고! 선택 받은 민족은 하늘이 정한 게 아니라 인간이 만든 이론 아닐까? 오스트리아에는 캥거루가 없고, 신의 은총이라는 뜻의 미들네임으로 유명한 모차르트는 잘스부르크에서 태어나 빈에서 영면했다. 하늘로부터 선택 받은 민족과 음악 천재의 탄생, 그건 좀 다른 문제인 듯 하다. 적어도, 만약 신이 있다면 모두를 사랑하지 초딩처럼 누구만 편애하고 딸랑딸랑─뿌잉뿌잉─응애응애─반짝반짝, 한쪽만 특혜를 주시지 않기를 바란다. 옛날 이 고장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 악덕 건설회사 회장님이 허허허, 한마디로 난놈이었다. 부장의 인상이 마음에 안 드니까 그분왈, 사원한테 늬가 오늘부터 부장해. 야, 너 부장! 내일부터 너 사원해 라고 말이다. 그렇게 하루 아침에 부장과 사원은 뒤바꼈다. 고로 신이 아닌 인간은 자기가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는 결론을 자각할 수 있다. 요약하자면,
                                       유대교                   카톨릭-기독교                  이슬람교 
종교별 탄생 순서:                  1                               2                               3
경배하는 신의 대상:            하느님                   하느님 & JC                      하느님
신의 인간계 데뷔 인정:           X                               O                               X *
신의 인간계 데뷔 횟수:           0                               1                                0
신의 인간계 데뷔 시각:   강림을 기다림              재림을 기다림                기다리지 않음
경전(공통):                       구약성서                    구약성서                      구약성서
경전(차이): **                   탈무드                      신약성서 ***                  코란
*   2인자 자격의 강림은 인정
** 그 외에도 많은데 대표적으로
*** 카톨릭은 몇 가지가 추가됨
    와, 뭐가 이렇게 복잡하나. 이러니까 A-1, A-2, A-3............ B-1, B-2, B-3............ 무신론이나 무소속을 고집하거나 신성함의 신자만 들려도 고개를 돌리는 사람은 없을 수가 없다. 문명사가 그렇게나 시끄러웠으니까. 하오나, 종교계에서 추구하는 이상이 서로 너무 다르다고 했을 때 그 모두를 슬기롭게 판가름하는 기준은 간단한다. 더없이 간단한다. 지극히 상식적으로, 이성적으로, 합리적으로 제3자가 봤을 때 자유와 평등과 사랑이라는 이념에 위배되는지 아닌지를 따져보면 된다. 의역과 직역도 그런 의미다. 자성은 쏙 빠진 채 오직 내 믿음만 신성하다면 그건 과학도 부정하고, 일주일─12달─서력 기타 등등, 나 믿고 싶은 것만 믿고, 나 좋아하는 것만 신성함을 고집하면 그게 무슨 신의 가르침인가? 내게 유리한 과학과 표준과 기준은 다 받아들이고, 불리한 건 전부 다 배척한다? 그건, 말이, 안된다. 상식적으로 봤을 때 뭔가 이상하다. 이성적으로 생각해도 뭔가 이상하다. 합리적으로 따져봐도 뭔가 이상하다. 가령 종교의 자유는 좋다만 배교를 처단함은 예외다? 마녀사냥처럼 중세에는 그랬다. 그런데 이 또한 타임머신이다. 이 역시나! 종교라는 것은 한마디로 그런 개념을 위한 거다. 자유, 평등, 사랑, 행복, 도덕, 윤리, 상식, 교양, 미덕, 선행등! 그 뭘로 따지더라도 제일 중요한 건 각 종교만의 독특한 교리가 아니다. 절대 아니다. 왜냐하면 진정 최고의 가치는 바로 이런 개념일 테니까. 자유, 평등, 사랑, 행복, 도덕, 윤리, 상식, 교양, 미덕, 선행등! 어차피 그게 그거라고?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소리다. 제3자가 상식적으로, 이성적으로, 합리적으로 봤을 때 그 무언가는,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안된다? 그건 문제가 있다는 거다. 무언가가 또는 더 많이 분명 문제가 있다는 거다. 하늘에서 저런 일반적인 관념과 부합하지 않는 일을 위해서 신성함이니 뭐니 그런 수식어가 사용되는 것을, 만약 당신께서 그대가 신이라면 좋아하시겠습니까? 그건 말이 안된다. 하지만 인간의 입장에서는 그 역시 자유다. 다시 그 자유 안에서 배교를 불인정하기도 하고. 종교사는 곧 희생과 순교와 전쟁의 역사였으니까. 그러나, 신은, 초딩이, 아니다! 신의 인간계 데뷔 횟수에 대해서만 따져봐도 그렇다. 0─1─0! 이건 뭘까? 여기서 1은 말이 된다. 그러나 0은 말이 안된다. 왜냐하면 신은 단 한 번도 확실하게 내가 신이다 라고 지상에 출연하지 않았는데, 그런데 인간이 신의 계시를 받아서 이러이러한 사연이 신의 마음이다 라고 주장하는 건 말 그대로 인간만의 주장이기 때문이다. 그건 견자나 성자보다는 예언자나 예술가에 비교적 더 가까운 일이다. 저 0과 1의 차이는 단순한 차이가 아니다. 하나의 신앙이 저 1을 근거로 하면 다른 건 몰라도 신학에 대한 명분이 생긴다. 그런데 하나의 종교가 오직 저 0에 기반한다면 그건 신학이라는 근거보다는 신-업에 가까워지는 일이다. 그 다음으로, 종교의 총체적 근간을 이루는 경전을 따졌을 때 공통된 절반은 모두 종교적이다. 그런데 나머지 절반은 각자 지향점과 목표층 및 추구하는 이상이 다르다. 그래서 기원 0년 이후 나머지 절반에 대해서 각자 다른 길을 간다. 그 나머지 절반에 대해서 제3자의 블라인드 테스트를 거치자면 그건 우화, 신학, 문학, 율법, 무슨주의의 성격이 짙어 보일지도 모른다. 곧 사람으로 따지자면 출신은 같은데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아가는 듯 하다. 때문에 제3자 시점으로 보자면 이와 같다. 신의 강림이 0이기 때문에 지극히 보수적인 관점에 머물렀거나, 신의 인간계 데뷔 때문에 기원 0년이라는 신학적 근거가 타당해지므로 종교가 현대적으로 발전했거나(물론 폐해도 함께일 테고), 아니면 예언자 관점으로 시작해서 사회운동처럼 종교화됐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이 모두는 종교이기 때문에 교도는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무조건 믿음. 그래서 결론은 모두 신앙이라는 거다. 물론 이성적으로 따졌을 때 여기서 집단지성의 활용도는 일부분 차이가 있다. 그리고 무엇이 내 마음에 드는지는 개인의 몫이자, 역시나 한 발짝만 걸치는 것 또한 개인의 자유다.
    대충 1500년쯤의 마녀사냥과 대충 1990년에 발표된 살만 루시디의 소설 악마의 시! 여기서 그 둘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는 따지지 말자. 자유와 물리적 시간이 항상 동기화 된다고 볼 수는 없으니까. 신데렐라의 유리구두가 누구에게나 맞지는 않을 테니까. 그런 개인차가 아니라 규격 같은 표준을 따져보자면 이렇다. 현재 최소한의 기준은 법이고, 과거 피라미드의 정점은 종교인 지역이 많았다. 문명사에서 식민지와 자유는 정확히 반비례했으니까. 그리고 카톨릭-기독교가 현대의 기초, 문명의 기준이 되기까지 말도 못할 값을 치뤘다. 그런데 타 종교에서 의식-문화-상식 및 교양에 대해서 아직 서력 현재 시점보다 뒤쪽에 치우쳐 있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종교의 기원이 앞서는 쪽에서 무조건 이해해야 하는가, 아니면 이슬람교 그것도 교파 알력 다툼이 안정되지 않는 상태에서 누군가 앞서 중세적 시간에 해당할지도 모르는 의식을 개선시켜야만 하는가, 이도 저도 아닌 제3자는 자기 마음대로 뭘 보고 듣고 읽지도 말하지도 말아야만 하는가! 그것에 대해서 다른 건 몰라도 지나친 간섭만은 자제해야 한다. 내가 잘나고, 내가 떳떳하고, 내가 착한 데다, 나는 대인배이자, 나는 종교의 목적이 말하는 선의를 실천하는 교양인인데 그런데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내가 믿는 신성함이 모독됐다고 행동에 나선다? 그렇게 따지자면 개인 이기주의라는 인구수 모두가 충돌할 수 밖에 없다는 논리다. 요컨대 서력이라는 물리적 시간은 일치하는데 정서적 시간은 일치하지 않는다는 뜻일까? 그렇다. 딱 그렇다. 때문에 일반적 의식의 격차가 생기는 건 당연한 이치. 따라서 A에서는 아직 노예제도, B에서는 난민에 대한 인도주의. (때로는 소 뒷걸음질 치다 쥐를 잡을 수도 있다. 여기서 소의 뒷걸음질은 과장이고, 쥐는 원리다) 그러므로 A에서는 살만 루시디의 '악마의 시'를 비롯한 여러 사례를 당사자 입장에서는 일부분 합당하게 여길 수도 있다. 그런데 문제가 무엇이냐, A에서 문명의 이기와 인류의 축복 같은 풍요로움까지 모두 아직도 노예제도의 시점에 머물러 있지는 않다는 것. A에서 그럴 리는 절대 없다. 따라서 B-C-D에서 이해하며 받아들일 수 없는 A의 폭거-야만-비윤리는 결코 정당하지 않다, 라는 판정은 명백히 옳다. 만약 그 타당함이 싫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면 A에서는 정서적 시간이 앞서는 B-C-D의 미래적 잇점을 절대 취하면 안된다. 그건 정의롭지 않은 일이자 남자답지 못한 일이다. B-C-D에서는 A를 후진적이라고 치부하지 않는데─무의식과 의사 표현의 자유에 따른 개인차는 있을지언정─A에서 물리적 시간과 정서적 시간의 차이에 따른 권리만 주장한다? 그건 정확히 어린아이에 해당하는 관점이다. 국제 사회의 일원이라는 의무는 소홀히 하며, 더딘 정서적 시간의 권리로써 앞선 물리적 시간의 잇점만 취하는 일이다. 동물농장에서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라는 표어를 진짜로 직역하며 인생을 산다, 실수라면 몰라도 매번 그 방식이 반복된다? 그러면 그건 기저귀 모양이 유행할 수 밖에 없다는 정당성을 부른다. 그러니까 A에서는 (물론 일부겠지만) 유독 뒤쳐진 정서적 시간을 끌어올려야 하고, BCD에서는 그런 A의 사정을 조금은 참작하여 설득하려는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 라~는 생각을 만약 포샤라면 발표하지 않았을까? 왜냐하면 물리적 시간과 정서적 시간의 차이 뿐만 아니라 그 어떤 괴리와 모순은 결코 적지도 않고, 공동 2위랄지 패자-부활전 명단조차 차마 우열을 가리기 힘들기 때문. 허나 포샤는 포샤고 허풍대회는 허풍대회. 고로 샤일록이라면 대체 다수결의 원칙과 선착순방식에 대해서 언제 이기주의자인가, 그러나 그 역시 피가 초록색이나 파란색은 아니므로 샤일록도 우리와 똑같이 선량한 이타주의자임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라~는 문제는 헤라클레스조차 벅차하지 않을까? 아니다. 헤라클레스 정도면 전혀 아니다. 그래서 헤라클레스의 그 신통방통한 솜씨 때문에 아직까지도 어디선가 헤라클레스 대회의 명맥은 유지된다. 물론 여기서 샤일록은 진짜로 육각별 도형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러든 아니든 신이 인간계 데뷔를 했든 안 했든, SF가 영화든 전설이든 현실이든 우리의 할 말과 할 일은 아마도 훨씬 구체화된다. 어디서라는 지역, 왜라는 영문, 어떻게 그렇게 꼬여버렸냐 라는 사연, 그럼 우린 과연 무엇을 해야 하는가 라는 동기 부여, 그리고 내가 언제부터 일을 그리도 열심히 했냐 라는 세계관, 누가 내 치즈를 옮겼냐 라는 인생론까지 어쩌면 몽땅 일망타진해야 하지 않겠냐 이 말이다! 그건 그거고 나는야 모르겠다 에라 오늘도 놀자, 라면서 물개박수나 바라고 남의 다리나 원없이 긁겠다면 몰라도. 허나 철들면 재미없다고 진짜로 속 시원하게 남의 다리나 긁으면서 평생을 산다면 그 역시 개인의 자유. 그런데 그게 농사꾼─난봉꾼─술꾼─도박꾼─해결사─행운아처럼 일개 개인의 삶이라면 괜찮은데, 그게 아니라 파급이 커지면 바로 2001년 911 사건이랄지 전쟁까지 발생할 수 있다는 점. 안 그러면 재미없으니까 철들지 않음, 응애응애 삐악삐악! 전자와 후자는 구분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된다.
    그런데 남녀만 해도 마음의 결이 다르고 사랑은 변하기 일쑤인데, 톰과 제리라고 말이 (쉽게) 통할 리는 없다. 하지만 지금이 어려운 시절도 참혹한 시대도 아닌데 굳이 부정과 비관과 불행만 추구해야 하는 건 아니다. 좋아하는 걸 추구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랑하며 인생을 살기에도 바쁜 세상. 인간이 1000년을 사는 것도 아닌데 오늘도 일희일비를? 물론 이론은 그렇겠지만, 여심은 신비하고 그런 여자의 꽁무늬를 좇는 남자의 마음이 진짜 미스테리. 그래서 신이 만약 있다면, 신은 SF처럼 인간계에 나타나면 인간을 절대로 이해할 수 없다. 신이 인간을 이해하지 않는 건 괜찮다만, 신이 인간을 애틋하도록 이해하지 않는다면, 그럼 혹시 인류가 도퇴될지도 모른다. 아니 대체 이거 뭐야, 걸작이라고 힘들게 만들어왔더니 글쎄 이렇게 조잡하고 쪼잔하며 제멋대로다? 인류는 공룡처럼 멸종할 수도 있다. 그래서 공룡처럼 멸종하지 말아라 하면서 진짜로 공룡처럼 강림이랄지 재림할 리는 없고─뭐 인간 주제에 감히 신에게 걸리버 여행기를 따라하라고 명령해?─똑같은 형상으로 암행어사처럼 슥~ 왔다가 넛지의 강도를 달리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막사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 의식이 뒤쳐지고 비윤리적인 후발주자, 망나니 같은 인간이랄지 불량배처럼 행동하는 선험자들에게 단지 힌트만 알려줄 테지. <이승에서 원 없이 막 사시고, 저승에서 봅시다> 라고. 인간의 육신으로 태어났으니 인간에게는 최소한 지구가 난장판이 되지 않을려면 <두고 봅시다>라는 암시가 요구되어야만 하는 것 아닐까? 또 신이 아예 신비주의 포지셔닝으로 일관하여 영원히 일절 그 어떤 어중간함과 애매함도 비치지 않는다면 그 또한 무심하고 비정한 일일 것이다. 그러니까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미리미리 주의하자. 내 친구가 신의 책사인지, 내 마누라가 천사이자, 저 비리비리하고 허접한 지인이 요정일지도 모르니 그 말만은 우리끼리만. 여편네와 북어는 이틀에 한 번 씩은...! 옛말에 펜은 칼보다 강하다 라는 말이 있다. 이 또한 직역과 의역으로 나뉜다. 직역하면 틀리고 의역하면 맞다. 예술은 긴데 반해 짧은 인생, 오늘도 누군가는 천국행-지옥행을 예약할지도 모른다. 그것도 칼이 아니라 펜으로! 그래서 우리는 실컷 인생을 누리고, 마음껏 개인의 자유를 즐기며, 속 시원하게 현실과 허구를 누려야 한다.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내 기분이 꽝이라며 자칫 울컥할 수야 있지만, 무조건 타인을 미워하고 억지로 얄미움만 받기만을 추구하지 않아도 된다. 종교도 그와 똑같은 이치다. 종교의 목적은 무엇일까? 한마디로 도덕이자 윤리다! 그렇지만 미켈란젤로의 조각상을 가르키면서도 우리의 생각은 어딘가로 떠날 수 있으며, 흑심은 동하기 마련이자, 종교는 물론 종교인마저 살면서 흔들리고 헷갈릴 수도 있다. 안 그러면 거짓말이다. 종교를 빙자하여 문명사에서 슬픔-야만-비윤리를 양산해냈던 예가 좀 많더냐. 일단 오락산업만 해도 거느린 추종 세력이 결코 만만치 않다. 경제, 학문, 예술, 허당계, 삼류 친구들, 동화, 기분파, 무신론 그리고 교양과 상식 등등등. 아무리 그렇다고 인격이 떠받들어 신격으로 기원 0년이라는 기준을 만들었던 종교는, 화가와 음악가와 작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던 신앙은, 돈은 돈이고 인기는 인기일 테지만, 그것의 목적을 망각하면 안된다. 내가 사랑에 빠졌던 찰나, 내가 인생을 멋지게 살기로 결심한 초심. 같은 얘기다. 교왕이 국왕과 동격이었던 옛날 세상에서는 종교가 피라미드의 최정점에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전혀 아니다. 현재는 법이라는 최소한의 보호망 안에서 사랑, 행복, 자유, 이상, 화합, 평화 이런 걸 추구해야 한다. 신에게는 개개인이 모두 똑같은 사람이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러면 신은 그 개개인의 자유를 다만 존중할 뿐. 그저 개개인이 사랑스러울 뿐. 부디 개개인이 행복했으면! 따라서 A도 존중 B도 존중. 그런데 A는 종교인 B는 무신론자. 그렇다면 B의 무신론도 그럼 A에게는 신성 모독일까? (엄밀히 따져서 A는 적어도 그렇게 받아들인 예가 적지 않았으나, 인격이 아닌 신격도 그와 같을까? 설레설레!) 혹시 A의 구시대적 관점은 B와 C 뿐만 아니라 D에게 누는 아닐까? 이미 기준과 표준을 비롯한 문명의 기반은 B와 C쪽에서 다 닦아놨다. A쪽에서 그게 싫다고 몰상식이랄지 어떤 야만성을 실현한다면 그건 전-예술계가 찬양하고, 수많은 일반인들이 우러르며, 고전음악 제1전성기의 특혜까지 한몸에 받았던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이 아니라 아돌프 히틀러가 되는 것이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나 요한 세바스찬 바흐가 아니라! 더더군다나 A의 경전을 근거로 A는 평화, 관용, 자유, 행복, 이상, 사랑 등 좋은 내용이 전혀 어렵지 않게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굳이 법리 해석 공방처럼 티격태격할 필요가 전혀 없이. 그런데... 왜...? 물론 전부가 아니라 일부일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 세상에 황금 왕좌에 왕이 앉았나? 영국 여왕이 세계의 여왕일까? 아니다. 전혀 아니다. 관심도 없고, 무슨 일을 하는지 알고 싶지도 않다. 슈퍼스타 소식도 안 보는데, 그 무슨! 규칙적으로 손님 맞고 기념사진 찍으며 행차하는 게 전부인데, 사극을 본다면 또 모를까 나까지 물개박수를? 그러든 어쩌든 지금은 오락산업이 명명백백한 1인자인 세상이다. 그래서 일부가 소란스러우면, 언론은 역할에 충실할 뿐이며, 이제는 소셜 네트워크가 거들고, 그래서 소란스러움을 발생시켰던 일부가 아니라 언제나 선량한 편인 나머지 교파에 대한 오해를 살 수도 있고, 그렇다면 남은 건 복잡해지는 일만 남은 셈이다. 한편, 기원 0년 로마제국의 식민지였던 이스라엘에 신의 인간계 데뷔가 있었나, 없었나 확답은 못하겠다. 내가 그걸 어찌 알겠나. 다만 이 미천한-못나고-허접하며-거렁뱅이 같은 서술자 뿐만 아니라 지극히 상식적인 제3자에게 당신이 만약 신이라면 A에서 태어나면 어떻겠냐 라고 묻는다면! 만약 그런다면 그분의 아량이 넓다면 또 모르지만 이성적으로 따졌을 때 그건 아니 될 일이다. 왜냐하면 인류 역사상 딱 1번이라는 신이 영험함이 있다는데, 겉으로 봐선 비리비리하고 그 어떤 영험함도 들쑥날쑥하고, 뭐야 어떻게 이런 허접한 루저가 무슨 신이라고, 신이 이 모냥일 리는 없어! 라면서 어떤 문양이 지금처럼 유명해질 수 밖에 없었던 전력이 있으니까 말이다. 일례로 카톨릭-기독교는 그런 일들을 이미 옛날 옛적에 많이도 겪었다. 그 경험이 (아직은?) 불충분한 타 종교계라면 어쩌면 그런 일들이 현재-진행형일 수도 있다. 그들이 무조건 착하고, 아름답고, 예쁘고, 영리하고 뛰어나서 일찍 뭔가를 싸우고 숙달하며 깨달았다는 게 아니라 한마디로 살만 루시디의 소설 '악마의 시' 같은 사례에 대해서 응당 선험자들이란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프로테스탄트가 대체 어떤 길을 걸어왔는가를 간략히라도 알 필요가 있다. 이미 무수한 예술로써 증명된 사안 아니냔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학교에서 과목을 배운다. 또 모든 덕목에는 역사라는 게 있다. 종교? 종교사! 미술? 미술사! 세계? 세계사! 상식적으로 지금 시대에 마녀사냥은 말이 안되는 일이다. 난민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그 가운데 일부는 자기는 비둘기가 돌아와도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돌아가면 뭐 어떻게 될 게 뻔하기 때문이니까. 이걸로 봤을 때 타임머신 문제가 이럴진데 한 단위 안에서 빈부의 격차라... 어쩌면 그건 행복한 비명인 듯 하다. 그러니까 교양은 우리에게 묻는다. 신과 인간의 사귐으로 발생했던 일들은 무엇이 있는지 아느냐고. 몰라도 된다. 그걸 내가 왜 알아야 하는데? 왜 안 되겠나! 모른다고 불이익을 받지도 않고, 조용히만 있으면 대체로 무식이 탄로날 일도 없다. 그보다 사람은, 중간은 가는 게 더 중요하다. 나아가 신학을 체계적으로 공부하는 건 전문가의 역할이고, 구도적으로 학습하지 않더라도 자기가 종교인이라면 적어도 종교의 목적을 바로 안 다음에 종교적 행동에 나서야 한다. 존엄한 인간의 태도와 상식적인 현대인의 자세를 몽땅 내버리고서 감정적으로 흥분만 할 게 아니라. 종교에서 말하는 신! 그 신이 있나 없나는 몰라도 현재까지 신의 인간계 데뷔를 0으로 보는 종교는 최소한 그건 알아야 한다. 신은 초딩이 아니라는 신격을! 만약 신이 있다면 그 신은 종교의 목적을 실천하기를 바라지 내 종교만을 위한 비상식적 행동을 좋아하며 기다리지는 않을 것이다. 딱 원하는 구원자상으로 선택 받은 민족과 무던히 모독에 민감했던 종교계 앞에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신이 진짜로 막 헤라클래스처럼 나타나면 딱 만화영화지 그게 무슨 신인가. 일어서면 구름 위로 머리가 나타나는 모습으로 강림? 재림할 리도 없다. 까치발을 디디면 오존층보다 더 크고, 실례를 하면 용암이 춤을 추면 태풍이, 입김을 불면 오로라가 노래를 부르니까 동물들이 때로 모여들까? 그럴려면 애초에 병풍들만 선발하고 신부들러리만 키우지 지구 생태계를 이렇게 만들었을 리는 없다. 그걸로도 모자라 태평양 마리아나 해구 바닥에 용궁이 있고, 호수와 바다에 빠진 보물이니 뭐니 타이타닉까지 건져줄까? 심지어 탄소 기반으로 만들어진 생명체가 아니니까 제2, 제3, 제4의 지구를 왔다 갔다 하며 우리의 심부름꾼을 자처할까?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정말 과학적인 지구의 역사를 몰라서 하는 얘기일까? 그러니까 45억년 동안 완전 심심했다가 이제야 달콤한 문명과 같이 놀 만큼은 똑똑한 영장류가 출연했다고 좋아하실까? 최소한 그렇다고는 말 못하겠다. 그러나 단언컨대 <시간의 탄생마저 추정한 99.999...무한대의 과학> + <천문학적인 확률로써 일종의 우연이랄지 외부의 간섭> = 윈윈, 아마도 이렇지 않을까? 어쩌면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종교가 과학의 힘을 부정하지 않듯이 과학도 신의 부재를 증명할 수 없으니까. 종교마저 SF 같은 신을 바라는데 과학이라고 왜 무신론을 옹호하면 안되겠나. 그러나 무신론자의 글을 읽고 말을 들어봐도, 단지 남자처럼 말이 세고 여자처럼 말만 길 뿐이다. 알맹이는 없다. 허나, 시도는 좋다. 다양성이란 건 다른 게 아니니까. 그런 철학적 시도를 할 수 있다는 건 재능이다. 아무나 못한다. 내 인생을 잘 산다는 뜻이고, 엄밀히 따져 현대적 교육의 은혜를 입었으니까 가능한 일이다. 더 나아가 사고 방식이, 어디식이 아니라면 기대하기에 수월하지 않은 성과일 수도 있다. 이처럼 각자 개인의 생각이 다르듯 종교도 마찬가지다. 각자 자기 영역만 지키면서 소 닭 보듯 닭 소 보듯 하는 식이다. 그처럼 양측은 상대의 무용함을 자신만만하게 입증할 수 없다. 게다가 그 논쟁이 그렇게 재밌지도, 그다지 생산적이지도 않다. 과학도 우주라는 범위 바깥에는 무엇이 있고, 시간의 탄생 보다 앞서는 그 뭔가를 확실히 밝힐 수 있다면 굳이 유신론과 척질 필요는 없다. 다시 말해 인간이 충분히 도덕적이라면 종교는 필요 없다. 전혀 필요가 없다. 오직 과학이면 충분하다. 법 없어도 살 사람들만 모인 인간계라면 대관절 뭐가 문제일까. 하늘나라는 혹시 심심할지도 모른다며 공상하고, 재밌는 시절이 있는 반면 일부 슬픈 소식도 우리네 인생과 함께 함이 인간의 운명인 것처럼 세상은 요지경이라면서, 이 땅은 설마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것 아닐까 같은 명상이라고나 할까? 하오나, 그건 단지 사색가의 걱정은 팔짜일 뿐! 법 없어도 살 사람들만 모인 지상이자 성선설이라는 가정법은 세상사를 절대 책임져주지 않는다. 원리가 그렇듯 순서도 이렇다. 신화가 먼저였고, 그 다음 종교가 인류사의 주역이었다. 그 결과, 교리는 영역을 물리적으로 넓혔으며 교세를 시간적으로 확장하여 문명의 기틀까지 마련했다. 그러나 인기상은 오락산업에게 빼았겼고, 신인상은 허당에게 세상사의 이치는 과학에게, 라틴어 경구 같은 정신마저 자본의 논리에 밀려 교리는 더없이 너그로워질 수 밖에 없었다. (법을 어기면 처벌 받고 교리를 어기면 처벌 받지 않아야 정상인데, 아직인 곳은 논외로 하자) 그래서 최소한에 해당하는 인간의 존엄성은, 율법의 여신 테미스와 대신 제우스 사이에서 태어난 정의의 여신 디케에게 그 상징성이 부여됐다. 그러나 그건 말 그대로 최소한의 지침일 뿐. 그래서 도덕-인성-예의-가정교육-인습-신앙-예술-문화-교양 및 상식은 과학과 한 팀인 것이다. 그처럼 대타들이 쟁쟁하지 않다면 과학 혼자 활약하는 원맨쇼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라는 논리는 충분히 타당하다. 그러니까, 인간이 충분히 도덕적이라면 진정 종교는 필요가 없다. 전혀 필요가 없다. 만약 그렇다면 오직 과학이면 충분하다. 법 없어도 살 사람이라는 선인은 만나봤어도(꿈에서!), 교리 없어도 살 사람이라는 말은 못 들어봤다. 지금은 종교의 시대가 아니라 소비의 시대이니까. 교양은 물론 사회-경제-정치-문화 등등 모두 과학은 필수고 종교는 선택인 세상이다. 곧 실정마저 과학과 예법이랄지 그에 준하는 개념과의 혼인이고, 신앙은 뒷전으로 밀린 모습이다. 하나의 공동체랄지 이익 집단이 옛날에는 국가로 발전했고 종교로 승화됐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전혀 아니다. 그처럼 종교는 이미 과목이 아니라 교양이랄지 상식 또는 선택 사항이다. 제 2의 도약이 발생한다면 몰라도 일단 사회가 과학적이고 우리가 도덕적이면 뭘 믿지 않아도 얼마든지 괜찮다. 인생 역시 무신론으로 충분하며, 세상 또한 과학으로 충분하다. 우승 트로피의 기원이 왜 컵인지, 13일의 금요일이라는 영화 제목과 캐롤송의 들뜸을 모른 체 즐겨도 된다. 그래서 진짜로 과학만 알면, 학교의 정규 과정만 대충 알고 이해할 수만 있다면 인생을 사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물론 행복한 인생의 최저점이 그렇다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종교를 믿느냐 안 믿느냐, 의역이냐 직역이냐, 과학이냐 아니냐가 진정 중요한 문제일까? 아니다. 그 보다도 전체적인 원리에 대한 이해가 교양에 스며드는 것. 이기주의와 이타주의의 균형. 착한 사회와 개인의 자유, 그 전자와 후자의 조화. 그 모두를 먼저 알고서 그 다음에 '나는 어떻게 생각한다'가 나와야 한다. '나는 어떻게 생각한다'가 먼저 조명 받고 유명해지면 나중 챙피하며 손가락이 오그라들지도 모른다. 그 차례 때문에 교육 방식에 대해서도 인생의 전반기 때 불만은 많을 수도 있다. 그 차례 때문에 이 세상은 바보들의 잔치인 듯 느껴진다. 그처럼 다니는 교회를 옮기고, 종교를 바꾸며, 취미도 갈아치우고, 사랑이 변하는 것은 물론, 주거지를 옮기며, 직업을 교체하는 것. 모두 자연스러운 일일 뿐이다. 그렇다고 진짜로 뭐든 한발짝만 걸치고, '막살라'와 '하나 뿐인 인생 나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산다'를 혼동하라는 말이 아니라! 그와 함께 법은 최소한이어야 할 테고, 될 수 있으면 법은 제일 나중에 만나는 게 좋다. 이처럼 동전의 양면처럼 상반되는 과학과 종교, 그렇지만 인간이 신성함에 근접하는 갸륵한 능력으로 이처럼 문명이 발달했는데, 그 순기능만 있을 리는 절대 없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 두 개념은 상호보완적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적어도 동물의 세계 같은 다큐멘터리만 봐도 답은 나온다. 상호배타적이어서는 안될 것이라고. 그래서 이해는 하고 납득이 된다. 허나, 아무리 그렇다고는 해도 오락업도 모자라 신까지 기저귀를 차라고? 아니다, 그건 정말 아니다! 제3자 관점으로만 봐도 그걸 대체 누가 좋아하겠나.
    다시 과연 0이냐 1이냐로 돌아가서. 실제로 기원0년 이전, 곧 기원전의 주장들은 겹치는 구전과 기록들이 유독 많았다. 여러 신화들, 설화, 전설, 민간신앙. 한두 개가 아니다. 딱 그 후에 거기서 신의 인간계 데뷔 1을 기반으로 하면 신성의 증거와 신학적 근거까지 얻게 되는데, 신화 다음에 신의 인간계 데뷔가 전무하다면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다는 게 된다. 확실한 게 있나? 하나도 없다! 단지, 인간의 주장을, 신의 말씀이라고? 그건, 말이, 안되는 일이다! 알에서 태어난 사람이 대체 몇 명인데, 자기는 외계에서 왔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또 얼마고! 기원 0년 이전까지 딱 그것만 인정하거나, 기원 500년 1000년 후의 인간의 예언만 믿는다면 샤머니즘에서 신학으로 발전하다 중간에 맥이 끊겨버린 것과 같은 이치다. 달리 설명할 수도 있다. 신의 인간계 데뷔가 0이냐 1이냐 그 한 끗발 가지고 아웅다웅인데, 그럼 신을 외계인으로 비유해보면 이해가 쉽다. 그러면 아주 간명하게 납득이 된다. 외계인이 지구에 0번 나타났냐, 1번 나타났냐! 0인가 1인가는 몰라도 최소한 인간과 외계인이 신호를 교환할려면 천문학과 물리학등 과학의 힘이 그 근거가 되야 한다. 그래야 천동설은 허구라는 걸 알 수 있고, 우주는 확장중이며 나이가 젊다는 것까지 알게 되며, 외계의 신호를 기다리기만 하기보다 외계로 신호를 보낼 수도 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단지 주술과 레인메이커와 점쟁이의 점지만으로 알에서 태어난 사람과 외계에서 왔다고 주장하는 자칭 외계인을 믿어야만 하다니! 그런 중에도 틈틈히 천문학을 따르고 물리학을 애용하는 건 또 뭘까! 신은 그 누구도 아무도 듣도 보도 못했는데, 나는 알에서 태어났다 나는 신의 계시를 받았다 나는 외계에서 왔다? 신학을 넌센스 퀴즈와 동일시할 만큼 현대인은 순진하지 않다. 그러면 신성함이라는 근거 자체가 없다는 뜻이다. 공룡학─공룡업─공룡론도 모르겠고, 공룡의 화석이니 뭐니 진짜 공룡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는데, 공룡은 어떻다? 그건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아니 대체, 납득이 되야지 납득이! 아니 그런가? 무슨 논리적으로 말이 되던가, 합리적으로 이해가 되던가, 직관적으로 일리가 있던가, 이성적으로 충분히 타당한 이치로써 제3자를 명쾌히 만족시켰나? 하나도 아닌데 그걸 대관절 어떻게 받아들이라고! 괜히 살짝 흥분한 감이 없잖아 있다만, 모두 그 긍정적인 의미와 유익한 효과와는 별개로 이치에 대해서만 논하느라 이처럼 부득이 떽떽거린 점 깊이 사과 드리는 바이다. 여기까지 듣고 나면 유대교에 대해서 좋게 봤는데...... 그럴 수도 있다. 그렇지만 유대교-이슬람교를 깎아내리고자 일부러 어떤 차이점을 부각한 게 아님을 밝힌다. 왜 견해 차이가 클 수 밖에 없는가, 를 간략히 올바르게 알자는 의도에서 얘기가 길어졌을 뿐 다른 의도는 전혀 없음을 이해해주시길. 설명이 썩 난해했거나 부득이 허접했다면, 그런데 어쩌다 읽었기 때문에 시간 낭비까지 그 손해가 막심하다면 온화한 용서를 청하옵니다. 상감마마 통촉하여주시옵소서! 전하─독자는 곧 전하다─성은이 만극하옵나이다!
    (휴~)
    (쉬는 시간)



   19
 
   종교와 신에 이어 문명사 가운데 껄끄러운 예시를 좀 더 알아보자. 누구나 과학을 옹호하지만 인간이 야만인이 아닌 이상 근대사의 무질서를 아는 것은 교양이니까. 그 상식은 다시 신이 있냐 없냐 라는 고찰에 대하여 도움을 줄 테니까 말이다. 우선, 민간인은 만약 전쟁 범죄를 싫어한다면 전시에 확실함을 선택하는 게 천 번 만 번 옳다. 일단 전쟁의 논리만 보자면 그렇다. 구시대의 사례를 보면 이런 예도 있다. 일반인의 그 어떤 불확실함은 또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그것도 엄연한 반칙이다. 사랑만 양다리가 있나! 게다가 여러 모순 가운데 그래도 뭔가 걸려서 예술계에서 패자가 승자를 찾아가 사죄한다? 모양새도 이상하고 승자도 썩 그렇게 탐탁스레 여기지도 않는다. 남녀의 사랑에 대해서도 내 마음 편허자고 작별의식을 꼭 거창하게 해야 하는 건 아닐 테니까. 그래서 사례는 인용되고 연구되며 기억되는 게 맞지만, 어떤 형식은 반복되지 않는 게 나아보이기도 한다. 사과를 하는 측, 사과를 받는 측, 누구나 꺼림직한 건 사실이니까. 까마득한 옛날 일이니까 말이다. 그러니까 남자들은 술 한 잔 먹고 풀고, 또 영 어울리지 않는 우정은 자연스럽게 멀어진다. 그런 순리 때문에 내게 유리한 건 기억하고 내게 불리한 건 까마득히 잊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여자들은 옹졸하다는 말이 아니다. 구도가 어쩌건 그래도 시민단체는 옳은 일을 해야 하고, 환경단체도 사안의 경중을 따질 줄 알아야 한다. 1인자의 잘못 하나 때문에 최소 100년간 100 X 100가지가 참 길게도 떠들썩할 수도 있으니까. 그것으로 말미암아 후손들은 (미미하게 심리적으로) 꾸부정하고, 또 다른 후손들도 나란 놈이 뭐 그렇게 잘났다고 겉으로는 태연해도 속으로 미세하게 께름직하며... 물론 과장해서 하는 얘기이자 어디든 크고 작게 역사의 굴레에 엮여 있겠지만 말이다. 한편, 몇백 년 전에 서구 열강들의 식민지였던 미국이 독립하기 전에도 시끄러웠다. 진취적 기상이라는 유럽 정신이 온전히 옮아갔기 때문에 식민지의 후손일지라도 미국인은 화성 식민지라는 표현을 아낌없이 쓴다는 사실, 결코 쉽게 간과할 수 없는 일이다. 괜히 남의 대륙에서 영국군과 프랑스군과 스페인-네델란드가 싸우고, 탐험가를 비롯해서 사방팔방 꼿힌 깃발은 말도 못했다. 그 후 덴마크 탐험가가 발견한 알라스카는 구-러시아가 미국에게 팔았다. 그 다음에 미국은 일본에게 알라스카를 빼았겼다. 다시 미국은 잃었던 알라스카를 되찾았고. 하오나, 어딘 안 그렇겠나! 각 나라의 국사책을 보면 사정은 다들 비슷비슷하다. 지금도 잠재적으로 분리와 독립에 대해서 미묘한 갈등의 사례는 바람둥이의 전적처럼 저 멀리까지 줄을 서서 대기중이다. 물론 타임머신은 그 역시 관장하기 때문에 언어와 민족, 종교, 문화권에 민감한 것이다. 때문에 공룡과 고래 사이에 위치한 돌고래의 입장은 더더욱 다를 수 밖에 없다. 가령 이와 같은 다큐멘터리에서 공룡과 고래는 EU와 러시아고, 돌고래는 동유럽이다. 그처럼 빈부의 격차는 타임머신의 격차로 이어진다. 그러니까 학생들이 공부해라 공부해라 라는 부모님 말씀을 잘 실천하기 어려워하는 것이다. 그런데 근대만 그랬냐? 아니다. 그 말은 곧 기원전 27년부터 시작했던 로마제국을 불과 얼마 전까지 따라했다는 얘기다. 세상에나! 물론 로마제국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도 마찬가지였을 테고. 그럼 이제 앞으로는 좀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고 지금 미식축구를 보는 사람들이 앵글로색슨족이나 샹송을 부르는 사람들을 보면 울컥하나? 그럴 리는 없다. 치를 떠나? 아니다. 그쪽을 보고서는 오줌도 누지 않을까? 다 아니다. 캐나다 총리의 농담이 왠지 모르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래서 캐나다 여행 금지? 아니다. 외교는 괜찮지만 대국만 가져야 할 장난감을 쿠바가... 쿠바 관광 금지? 아니다. 전혀 아니다. 왜냐하면 지금은 그런 세상이 아니니까. 또 대충만 봐도 비슷비슷하게 생겼다. 그래서 우리가 학교에서 과목을 배우고, 부모님과 박물관에 가며, 애인과는...... 어디를 가면 좋을까! 동물원? 미술관? 이상한 모텔 이름만은 말하지 말아주시라. 캘리포니아 호텔 같은 유행가 제목은 괜찮지만, 그러나 다른 건 안 됩니다! 쉿! 그러나, 그 외에도 미심쩍은 문제와 껄끄러운 모순들은 차고 넘친다. 두더쥐는? 산업 스파이는? 제1차-제2차 세계대전 때 줄을 잘못 서서 곤혹스러워진 경우도 많다. 그리고 또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는 대체 왜 파리에 있을까?(인문교양에 대한 관심은 이런 데서 싹틀 수도 있다. 현재는 그렇고 먼 미래에는 또 다를 테고) 만인이 부러워하는 캥거루의 나라에서 연간 실종자 숫자는?(인구밀도가 낮은데 사막에 신기루를 세울 수는 없다) 남미 곳곳에서 국경 분쟁은? 나는 거기까지 모두에 대해서 안다-박사님이 될 수는 없다. 내 일을 못하니까. 도저히 시간이 없으니까. 산책도 해야 하니까 말이다. 그래도 가택감금은 재밌다. 그러나 사실은 다름쥐 쳇바퀴를 도느라 쫓고 또 쫓긴다. 신은 있냐 없냐, 를 따지면서도 이렇게 갈팡질팡하는데. 그러므로 내가 만약 제우스라면 인류 최악의 12 난제를 해결했다는 바로 그 헤라클레스를 부르고 싶다. 그래. 정말 그렇다. 진짜로 그렇다니까. 혼자는 힘들다. 혼자는 외롭고 혼자로는 벅차다. 그야 어쨌든, 그런 애매한 현대성의 빈틈과 모순과 별개로 적기라는 흐름은 극단적으로 냉엄할 뿐이다. 문명사가 냉혹하지 않다면 올림픽도 다시 시작될 필요도 없었고, 다시 제국주의의 경쟁 시대로 되돌아가던 인간이 이 세상에서 야만적으로 살든 어쩌든 모두 상관 없을 테니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그 어디를 가든 언제가 되든 최소한의 불행은 불가피했다, 불가피하다, 앞으로도 일정 부분 그럴 것이다 라는 말인데...! 그럼 그 불행조차 2.0으로 틀고 줄이며 감수해야 하는 운명적 자세를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다시 소-주제인 왕으로 돌아가자. 옛날까지만 해도 왕이 최고였으니까. 지금은 너도 나도 다 최고일 테고, 뒤늦게 어떤 간접 증거가 존재한다면 그건 아마 역피라미드의 지혜를 제시할 테니까 말이다.
    그처럼 옛 시대의 왕은 권력의 최정점에 위치했다. 통치권자─국왕─교왕이라는 3요소가 중복되기도 했고, 거기에 추가로 교황도 있고 교주는 물론 꼭두각시가 된 왕도 얼마든지 가능했으며, 미켈란젤로나 아마데우스와 보나파르트 같은 천재들도 꾸준히 탄생했다. 그러니까 대하드라마에 나오는 왕은 신일까? 아니다. 왕은 신이 아니다! 단, 신이시여 여왕을 지켜주옵소서, 라는 건 얼마든지! 인간의 일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일일 테니까. 그래서, <신화의 시대>가 아닌 <소비의 시대>에 국왕이란 명성 그 과거의 영광은 절대로 쇠락하지 않았다, 라고 한다면 대관절 어느 누가 찬탄하며 좋아할까! 내 인생은 내 것인데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아직도 제국주의의 관념으로 살 수는 없다. 물론 그래서 세상이 바껴도 너무 바뀌니까 뭔가 애잔할 수도 있다. 제왕 전성기에 어땠는지를 대관절 왜 모를까 라는 시각을 뒤틀면, 저 신화의 시대에 인간 군상을 어떻게 취급했나는 왜 모를까다! 그처럼 세상이 바껴도 너무 바뀌니까 왕은 곧 일종의 뭐랄까, 그래, 최고의 가문에 다름 아니라는 사정으로 인지하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사석에서 하는 말뿐만이 아니라 이성적으로만 봐도 썩 틀린 말도 아니다. 무엇보다 그러냐 안 그러냐, 를 넘어서 아예 관심도 없다. 이 세상에 물개박스의 종류가 도대체 몇 개인데 말이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유럽 연합에서 각 국가의 수장들은 함께 모인다. 세계의 통치권자들도 만나고, 친하며, 교류한다. 그걸 한마디로 외교라고 한다. 그리고 국왕이 존재하는 국가가 있고 없는 나라가 있다. 그 유무는 별개로 하고, 예부터 유럽에서는 왕실과 왕실의 혼맥이 드물지 않았다.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일 테고. 그러나 지금도 그럴까? 지금은 아마도 훨씬 덜할 것이다. 아니면 카메라를 돌려보면 그렇다. 달리 표현하자면 왕은 외로워보인다는 것. 그럴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고고함은 오드리 헵번 같은 영화배우의 것일 테니까. 왜냐하면 인기는 유행따라 바람따라 바부낄 테니까. 왕관은 귀공자의 몫일지 모르지만 왕좌는 오히려 오락산업 마음대로일 테니까. 그래서 드물지만 저 혼맥의 생리는 지금 세상에 가문끼리, 기업가끼리, 계층끼리 대신한다. 또 통치권자는 하늘이 내린다고도 하지만 그건 말이 그렇다는 거다. 단지 말이. 왜냐하면 신은 인간 세상에 개입해서는 안되는 것이니까. 논리적으로도 그렇고, 도의적으로도 그렇고, 신성함으로 봐도 그렇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에도 누가 누가 잠룡이 될까 눈치 싸움은 사방팔방 각별하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막살자로 인생 포지셔닝을 바꾸고, <어차피 이렇게 된 거...>라는 시절에 안주하기도 한다. 아예 '에라 모르겠다' 라는 슬로건조차 기분파는 슥 도난당한지 오래일 수도 있다. 봐봐 벌써 누군가는 빙그레 웃고 있지 않냔 말이다.
    그러나! 바로 그 무-개입 원칙이 존엄하니까, 그래서 그 어떤 무분별함의 기준선이 위험에 직면할 때 그러면 신은 인간 세상에 드물게 개입할지도 모른다. 타임머신은 영화가 아니라 현실일 테니까. 그래서일까? 어떤 종교계에서는 여전히 신의 SF 같은 인간계 데뷔를 기다린다. 또 다른 데서는 아예 기다리지 않는다. 그 어디서는 1600년대에 현실이었던 주홍글씨가 21세기와 동기화되기도 한다. 그것으로 인하여 평행이론이랄지 머머설이라며 인터넷은 우리들의 놀이터가 된다. 다시 누군가는 자유와 행복과 생존을 위해 고국을 버리고 선험자들의 나라로 떠난다. 그 버려진 고국은 애국심을 고취시키려고 노력했을 테지만 구시대적 이해관계가 얽히고설켜서 언제 비둘기가 돌아올지 예상하기 힘들다. 또 입헌군주제가 현대로 순탄하게 계승된 일부 국가에서는 형식과 전통을 위해 왕실 행사를 주기적으로 매스컴에 노출한다. 우리가 하는 일은 이게 전부예요 라면서 광고를 하더라도, 물개박수를 누구나 반기지 않더라도, 그것은 국가의 할 일이자 국격의 의무다. 이승에서 단위 바깥까지, 저승에서까지 왕일 수는 없을 테니 지극히 합당한 인습이다. 그리고 UN이니 EU니 국제적인 협력 체제는 구색이 갖춰졌고 실제 많은 활약을 한다. 그렇지만 그건 미래인이 봤을 때 얼핏 절반쯤만 기능적으로 보여질 수도 있다. 그래서 과거 언제부터 현재까지 국제적 질서는 개별 국가의 안위를 완벽하게 보장해주지 못한다. 때문에 각자 제2, 제3의 방책은 현존할 수 밖에 없다. 인간에게는 운명이, 점쟁이에게는 직업의식이라는 소명이 있다. 곧 동물의 세계에는 다큐멘터리라는 생태계 질서가 존재하는 법. 고로 우리 모두가 뉴턴식으로 만류인력의 법칙을 착안할 수는 없다. 따라서 우리는 사과나무 밑에서 사과가 운 좋게 떨어지기만을 기다려서는 안될 일이다. 머머하는 법을 알고, 장미꽃밭을 찾고, 그 어느 새로움을 상상해야 한다. 신이 나타나서 모든 것을 해결해줄 것이다? 꼭 믿거나 말거나는 아니지만 모든 것을 해결해줄 수 없었다 라는 사례는 있었다. 단, 이승에서는! 그처럼 신앙은 믿을지언정 그와 같은 순진한 발상을 믿으면 곤란하다. 신학을 공부하며 신업의 종류가 발전함과 별개로, 인생과 세상사는 신을 믿는 것과 엄연히 별개의 문제다. 신이 강림해서 모든 것을 해결해줄 것이다, 만 믿고 있었다면 이스라엘은 아마도 현재와 같지 않았을 것이다. 신화의 시대에서조차 최고신은 사이 좋게 3부분으로 나뉘어 이 세계를 관장했다. 그러면 소비의 시대에 어떤 가상의 존재가 이승과 저승을 모두 좌지우지한다 라는 가설은 어쩌면 너무 픽션인 것만 같다. 하지만 우리가 꼭 기적을 바라고 당첨을 확신하여 복권을 사지는 않듯이, 구태여 과학적이지 않은 개념을 무조건 반겨하지 않거나 수학적이지 않은 미신에 내 인생을 온전히 맡겨서도 곤란할 일이다. 러시아 속담에 이런 게 있다. 이왕 취할거면 여왕을 취해라! 실제 사례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드물지도 않을 것이다. 그리고 신은 인간계에 일반적으로 개입하지 않는 게 원칙이다. 그래야 한다. 인간이 원하는 대로, 하라는 대로, 시키는 대로 신이 꼬붕처럼 행동할 꺼라면 애초에 인간을 이렇게 만들지도 않았을 테고, 개입하더라도 적어도 SF처럼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루저에 가깝다면 몰라도. 따라서 인간의 일은 단지 인간의 일. 그런데 문제는 세상사를 보는 시각과 상식적인 의식, 각자의 시간 개념이 물리적으로 공통되지 않았다는 점. 또한 미래는 모른다는 것까지. 신이 있든 없든 신은 초딩이 아닐 테니까, 고로 설령 은밀히 놀러왔다가 인간을 은은하게 이해하며 넌지시 물음표와 느낌표를 전달할지도 모른다. 몇 천 년에 한 번이든 어쩌든, 그때가 되면 하늘은 인간 세상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는 않겠지만, 어떤 식으로든 경고할 수도 있다. 그러면 땅은 하늘의 뜻을 알아야 할 테고. 그야 어쨌든 인간의 본능은 스스로에게 유리함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고의 제1원칙은 이기주의다. 그것은 달리 말해서 자유다. 그런데 자유와 자유의 만남은 우정과 사랑도 있지만 갈등도 있다. 그래서 법이 있고 도덕도 있으며, 인성을 배양하는 예술과 가정교육도 있고, 윤리 과목과 종교까지 있다. 그런데 앞서 논했듯이 구시대적 정서와 물리적 시간이 충돌할 수도 있다.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신성 모독의 경우만 따지자면 이렇다. 신이 신성 모독에 대해서 무방하다는데, 무슨 느와르 영화도 아니고 중간 보스 건너뛰고 괜히 쫄따구와 삥발이가 인상 팍~? 신학과 영화라... 다큐멘터리라면 몰라도 엄한 장르를 부여하기엔 적잖이 찜찜한 일이다. 내가 응애응애 하며 태어나기 전에 인간의 형체로 완성된 곳은 자궁이냐 알이냐, 나는 외계인이냐 지구인이냐, 우리는 사랑하기 위해 태어났냐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났냐. 그 외에도 알쏭달쏭한 질문은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다. 그처럼 역발상의 도움을 빌리자면 이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십자가가 한 번 있었다면, 나중에 그건 X자일 수도 있을 거라고. 신이 인간의 모습으로 강림하지 않는다면 그건 신도 아니고 인간도 아닌, 한마디로 괴물이다. 그걸 누가 신으로 보겠나! 인간만 해도 무슨 증후군 그런 예는 많다. 2명의 사람이 그 어딘가를 공유해서 한 사람으로 태어난 예는 꽤 된다. 그런데 인터넷이나 TV라면 몰라도 그런 실 사례를 직접 본다면 사람은 누구나 멈칫할 수 밖에 없다. 그 역시 그러한데 말도 안되는 이상적인 신의 형상이 현존한다면, 그러면 아마도 우리가 그 생명체를 과연 신으로 볼까? 절대로 그럴 리는 없다. 신도 그렇게 나타날 리도 없다. 인간과 인간의 사랑이 아니라 약간 이상한 사랑을 다룬 영화만 나와도 일부에서는 그런다. 무슨 삐리한 생선 같은 놈 하나 나와서 여자랑 연애하는 이야기였다나 뭐라나! 뿐인가? 아직도 동성의 사랑마저 인간의 일이냐, 법이냐, 인도주의냐. 말도 많고 탈도 많다. 그마저도 신은 괜찮다는데? 그러면 어떻겠나, 짜잔~, 하며 뚜껑이 열릴 차례다. 괜히 우리끼리 잘 살고 있는데 뭐하러 여기까지 와서 훼방을 놓느냐면서, 그 단계로 보자면 원론적으로 신의 인간계 데뷔를 아예 기다리지도 반기지도 않는 어떤 종교계의 교리가 설득력을 얻는다. 아무튼 마블 만화처럼 진짜로 레이저가 나가고, 얼리고, 입에서 화염방사기처럼 불을 뿜는 건 말이 안되는 얘기다. 그래서 영광과 찬양의 총량으로 따졌을 때 피라미드의 꼭지점은 한 번 찍었으니, 또 하나의 가정법을 상상한다면 어차피 같은 방식이 아니면 괴물 밖에 안되느니 이번에는 구도를 바꾸는 방법 뿐이다. 역삼각형 말이다. 그 두 개의 삼각형을 겹치면 육각별이다. 그런데 현재의 별이라 함은 오각별을 뜻한다. 나중은 몰라도 지금은 그렇다. 또 두 삼각형을 달리 겹친다면 모래시계랄지 미술 교과서에 나오는 이중적 그림일 테고. 이와 같은 의미로 말미암아 신은 신성 모독에 대해서 인격과 동일하게, 어디서 감히 인간 주제에..., 라고 하시지 않을 것이다. 아하 그게 바로 인간의 감정이로구나 라고 느낀다면 몰라도. 따라서 신이 SF다운 모습으로 현현하지 못한다면 그건 이기주의도, 이타주의도, 사랑과 환상과 신비함마저 모두 놓치는 어리석음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재차) (조금은) 루저에 가깝게?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신마저 그럴진대 나는 왜 막살면 안될까! 신마저 신성 모독이 아무렇지 않다는데, 왜 자유와 방종이 같으면 안될까! 논리의 함정에 빠지기 보다, 우리는, 차라리 웨이터와 친하고 바텐더에게 별명을 붙여주자. 분명한 건 우리는 그런대로 중간만 가면 되고, 적당히 착하게만 살면 그만이라는 것. 어찌 됐든 인생은 한시적인 것. 또 사람은 일종의 피조물인 것. 그런 의미로 보자면 개나 양이나 말과 소, 새, 돼지는 인간과 하등 다를 게 하나도 없다. 하나도! 피라미드는 삼각형인데 모든 사람이 내가 최고라면 그게 역피라미드지 무슨 스포츠 토너먼트 그래프란 말인가. 따라서 어른은 초딩이 아닌 이상 <신은 있다 없다, 직접증거 간접증거>의 경우의 수를 굳이 따져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꼭 해야겠다면 그건 어디까지나 개인의 자유. 왜 안되겠나! 다만 굳이 거기다 피도 눈물도 없는 법률의 논리를 적용시킬 필요가 있을까? 우리는 알몸으로 태어나서 흙으로 돌아갈 뿐일 텐데! 무엇보다, 왜냐하면 인간 생애 그 다음에 대해서는 아는 게 별로 없을 테니까. 다만 육신은 그럴 테고 나머지는 잘 모르겠다.
    사람들은 누구나 이런 상상 해 봤을 것이다. 이 드넓은 우주에서 지구와 비슷한 행성이 있을까, 없을까? 내 생각으로는 있다. 제2, 제3의 지구는 분명 있을 것이다. 없을 수가 없겠지. 뭐 한 70개 있을지도 모른다. 알고 봤더니 70억개? 아직까지는 확인할 길이...! 또는 그쪽에서는 우리를 그렇게 볼 수도 있을 테고. 그렇다면 종교에서 말하는 예를 들어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일들이 100퍼센트 구현된다 구현되지 않는다, 그건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만약 신이 인간 세상에 개입하지 않을 정도로 인간계가 잘 유지된다면 우리가 아는 의미로 지옥은 이 우주의 어떤 제2의 지구에서 태어나는 일일 수도 있을 테니까. 물론 패자부활전에서 뒤쳐졌을 때 말이다. 자, 그럼 우리는 내 인생에서 윤리─인성─행복─사랑 즉 의무방어전의 의미를 새롭게 수정해봐야 하지 않을까? 세상사를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이 말이다.
    끝으로 딱 하나만 부연 설명하자면 이렇다. 원래 주제는 <신은 있을까 없을까>였다. 그런데 끝날 때 되서 딱 보니 아이고머니나! 아 글쎄 주제에 대해서 반쪽짜리 논술 답안지만 제출한 셈이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논리의 전개는 어쩔 수 없이 유신론을 전제로 진행됐기 때문이다. 하여 결론은 낙제점. 그래서 본인 스스로도 아쉽고, 독자님께도 더없이 송구스럽다. 그게 왜 그렇게 됐냐면 그건 아마도 이 죄인이 그 둘을 헷갈렸기 때문일 것이다. 그건 바로, <막살라 막살자> 그리고 <좋아하는 놀기에 집중하고, 하고 싶은 일하기에 몰입하기. 즉 적당한 범주 안에서 마음 가는 대로 뻔트 대며 인생을 즐겁게 살기!>. 후자가 너무 길면 이렇게 바꿀 수도 있다.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하기! 뭘 좋아하는지 하고 싶은지 모르면 탐구하기! 한마디로 욕망에 솔직하기! 일단 전자와 후자가 꿈의 대화를 나누고, 협업하여 아름다운 이상으로 행진하기를 꼭 바라는 건 아니다. 전자는 과학이요, 후자는 입바른 소리란 말도 아니다. 역시나 전자가 상남자의 결과론도 아닐 테고, 후자도 꼭 윤리이자 예술이며 종교인 것도 아니다. 게다가 억측과 망상의 방법을 빌릴 필요도 없이 다큐멘터리 동물의 세계는 우리에게 이렇게 얘기한다. 전자는 게임의 법칙일 뿐이요, 후자는 소년의 꿈─한량의 시─낙관주의자의 노래일 뿐이라고. 내가 그렇게 생각한다는 말이 아니라 말 그대로 다큐멘터리의 주역들인 사자, 치타, 표범, 재규어, 하이에나 그리고 호랑이 같은 육식동물 뿐만 아니라 초식동물과 식물의 유전자까지 마음대로 편집하는 어떤 영장류가 사석에서 가르쳐주는 인생의 비밀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 어른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그 억지스런 농담이 도무지 말도 안되는 궤변이라고 어떻게 무시할 수 있단 말인가. 하오나 이왕이면 후자가 전자를 포용하고, 전자가 후자를 배척하지 않기를. 좀 더 꾸미고 포장했을 때 그 둘은 어떻게 보자면 최고의 명콤비일 수 없는 것일까? 어쨌든 타인의 사랑을 지지하고 그대의 행복을 응원한다만 웨이터 에르메스씨와는 이미 우정을 나눴고, 웨이터 막살라씨와는 친해진지 불과 얼마 되지 않았으므로, 따라서 나는 반쪽짜리 논술 연습 밖에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오늘만 날인 건 아니다. 때문에 무신론에 대해서 나름 고민하고 게으르게 학습할 계획은 있다. 그 독학이 반의 반틈이라도 순조롭게 이루어진다면,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본 주제로 칼럼 2를 발표할 날이 아마도 있을 것이다. 대타 등장을 반길 팬이 과연 몇이나 되겠냐마는. 아무튼 그러기를 바란다.
    그런데 내가 대체 어쩌다 이 밑도 끝도 없는 주제를 건드렸지? 감당할 자신도 없고 깜냥도 못되면서! 누가 아니래? 그건 어쩜 내가 아마도 어제 가짜 뉴스에 낚였기 때문일 것이다. 익살끼 넘치는 농담이든 그저 번득이는 말장난이든, 아마도 사적인 유머에 나 혼자 월척인 척 한 거지. 아닌가? 아니다. 그럼 뭐지? 아하! 난 또 다시 예언가의 영역이 궁금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애초에 연구할 만큼 연구했던 위인들 꽤 된다. 아테네로 시작해서 피렌체도 있고, 음악 도시 빈에 몇 명, 지금은 실리콘밸리까지. 구체적으로 스웨덴보리즘, 니콜로 파가니니, 니콜라스 테슬라, 아인슈타인 또 발명가와 예술가와 탐험가와 더불어 마젤란 은하를 관측할 수 있는 기술들 하며. 아차 중요한 걸 빠트렸다. 하나 더. 곧 (딱) 조르주 심농까지! 그와 더불어 이제는 노스트라다무스까지 연구해야 하다니! 그걸 해, 말어? 일도 안 풀리고 놀기도 바쁜데, 품위 유지는 어렵고 관망은 타인의 팔짜이므로, 따라서 나는 어복이 아니라 일복 때문에 이처럼 로즈마리와 에밀리한테 딱 달라붙게 된 것이다. 것도 싸구려 본드처럼 말이다.
    뭐 어쟀든 나는 그래도 그녀들이 운영하는 소셜 네트워크의 소개말이 '미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일지도 모르니까 긴장감의 끈을 놓지 않았다. 의심의 고삐를 바싹 당길 수 밖에 없었으니까. 뭐 아무리 그래도 기상학-기상업-기상캐스터도 좋지만 레인메이커라...? 내 화법이 잘 먹이질 않는다면 로즈마리와 에밀리를 용한 점집에 데려가 보는 수 밖에.
    어쨌든 우리는 그렇게 녀석들의 아지트로 출발했다.



   20
 
    나는 이미 발동이 걸려버렸기 때문에 2루 돌고 3루를 돌아서 홈으로 뛸 수 밖에 없었다. 홈에서 멋지게 아웃이 되던 어쩌던 말이다. 그래서 작성한 일기는 다음과 같다.
    제목: 일기
    내용: 권태로운 일상은 날 환상의 세계로 데려다주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다. 가만히 앉아서 판도라의 상자를 선물 받고, 밑도 끝도 없이 행운의 파랑새와 친구가 되는 일은 꼬마들도 재미없어 할 테니까. 그러니까 나는 고기 잡는 방법을 독학하고, 청초한 숙녀들과 상큼한 미녀들이 제 발로 다가오도록 최면술을 연마해야 할까? 미남들의 러브콜이 폭주한다는 공상가는 내 본분이 아니다. 한껏 꾸민 요정과 예쁜 천사와 발가벗은 아가씨들이 내게 막 때로 달려오는 상상에도 난 일절 취미 없다. 전혀! 하지만 숨겨진 보물이 가득한 곧 나만 알고 있는 알라스카의 어느 계곡 탐사를 포기한 건 아니다. 그러나 지금 내게는 초정밀 척키 인형도 없고, 여태껏 최고급 할로윈 축제에 단 한번도 초대 받지 못했다. 그렇다고 마법사의 부엉이와 말하는 갈매기가 등장하는 영화를 보고 싶은 것도 아니다. 말하자면 낭만적인 욕망과 숙녀의 변덕, 청춘의 대망까지 다 잊어먹은 것이다. 저런, 어쩌다가? 그걸 내가 알겠수 형씨가 알겠수! 그러니까 그게 다 삶의 그래프 때문일까? 요컨대 우리는 잔소리를 듣고 또 들으며 성장하고, 애인의 감미로운 속삭임에 기쁨을 감추지 못하다가, 마누라의 들들 볶는 잔소리를 피해 집을 나서며 어느 옛 속담을 생각한다는 그런 인생론! 그러다 어떤 신비감을 추론하기 위해 최신판 미스테리아를 읽었는데, 애독한 결과 히스테리아로 그 어떤 애칭을 변경하게 되는 일? (설레설레)! 행복관이라는 어느 고풍스런 술집에서 뭔가 있어 보이는 (여)바텐더와 친해졌고, 나는 허울 뿐인 한량으로 보이지 않기 위해 사심을 고이 내려놓고서 단골이 되어 그녀와 어떤 뭔가 농밀한 친밀감을 쌓았는데, 어느 날 행복관에 떡하니 붙여진 안내문!
    「여-바텐더 없습니다. 바텐더 남자입니다.」
    심지어 오늘은 뚜뚜뚜뚜─, 내일은 잘못 거신 번호거나 번호의 주인이 바꼈거나. 뭐라고? 노노노노노노노!
    그래서 나는 분위기 괜찮은 철 지난 유행가를 듣는다. 잡지계의 추종과 오락산업으로부터의 구애를 피해서 말이다. 맙소사! 그런데 그 노래는 요절한 천재가 작곡한 연가였다. 매일 같이 하루에 커피 40잔 - 담배 4갑과 함께, 메피스토펠레스와 결별한 살리에리를 애태우는 심정으로 생애를 불태웠던. 결국 나는 매마른 감성이 너무 갑자기 촉촉해진 것일까? 그 무슨 영화로운 낙원과 희망의 나라를 바란다고. 참 나! 아무튼 미지의 그대는 사랑이 인생의 전부일 것이다.
    뭐야! 그러면 나는 인생에 대한 용병술과 예술을 향한 열정을 모두 여심에게? 저런! 그런데 왜 우리는 오빠라는 말만 들으면 미쳐버리는 것일까? 고로 여자의 마음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 미스테리다.
    그러니까 나는 거짓말쟁이요, 우린 모두 질투의 화신이자, 나의 정체성 2.0은 욕심쟁이가 틀림없다. 좌우지간, 이처럼 다 큰 어른이 그저 재밌고 좋아서 혼자 숨어서 일기 쓰는 일이 얼마나 되겠나. 좋아한다 라는 미명 하에 하나 같이 돈 벌고, 유명해지고, 자랑하고 싶어서 만방에 이름을 알릴 뿐이지. 만약 그게 안되거나 못할 때 딱 그 시점에 우리는 <없다!>를 남발하는 것이다. 외국어는 몰라도 표준어조차 하면 좋고, 내가 못하면 그러는 것이다. 난 나다 이 세상을 살아보니 그럴 필요가 전혀 없더라, 라고. 그러니까 열등감과 자존심이 비례하는가는 몰라도 최소한 친한 건 맞다. 그럼.
    하지만 인생은 그렇게 보내기엔 너무 짧지 않을까? 재미없는 친구에게 발전을 독촉하며 기를 살려주고─너나 잘해?─내내 삼류들 병풍에, 허당들 신부들러리만 고집하는 것 말이다. 한마디로 기를 받기 위해 어떤 젊음과 어울렸는데, 오히려 기 빨리고 활기 잃고 주늑 들며 거금까지 워워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돈 쓰고 욕 먹고 독박 쓰는 친구나 나나! 그러므로 이제 드디여 정신을 차릴 때도 됐다. 그럼. 나도 다 알고 있다. 그 모든 세상의 비밀을 다 알고 있다. 단지 모른 척 연기하느라 무척 힘들었을 뿐이다. 자, 따라서 이제야말로 찬란한 꿈의 환상극을 써볼까?
    아니다. 오늘까지만 더 방황하자. 아예 며칠 더 놀자. 왜 안되겠나. 진공청소기 발명가의 오묘한 생애를 이미 연구할 만큼 했고, 환상머신의 완성을 코앞에 두고 있는데! 무엇보다 자유는 거룩한 거니까 말이다. 그러니까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나는 차 욕심이 없는 남자다. 진짜다. 나는 차 욕심 없다. (뭐시여? 또 없다 잖아!) 아니다. 잘못 말했다. 나는 욕망이 적당히 있다. 나는 욕구에 적당히 충실하고, 욕심을 적당히만 실현한다. 관건은 솔직함과 윈윈과 적당히-니까. 그래서 나는 테슬라 주식을 샀다. 나는 마이크로소프트를 쓰고 있지만, 맥이라...! 나는 인터넷에서 애플사 임직원의 뒤를 캤다. 뒷조사를 열심히 했다. 그런 결과, 와~ 오오! 이거 이거 완전 난봉꾼에다 영심이 하며 어떻게 살았고 속으로 뭔 생각을 하시는지... 와 아조 말도 못한다. 말도 못해. 아무튼 그건 그거고, 내가 찾는 단골 카페는 시애틀. 나는 마르크 샤갈의 어떤 작품을 사기 위해 돈을 모으는 중이다. 또 나를 애주가이자 위스키 매니아 반열에 올려놓은 술은 발렌타인 21년산. 리투아니아에 내 개인 별장이 있고, 자카르타에는 친구가 시드니에는 애인이, 토론토에는 내 팬클럽이 살고 있다. 그리고 나는 스위스에서 영화배우 누구와 사진을 찍었고, 네델란드 시인협회에서 공식 초청을 받았다. 좋아하는 감독은...
    뭐라고? 이런, 젠장! 뻥이다. 다 거짓말이다. 죄다, 싹 다 (개)구라다. 허영심 놀이도 짜증난다. 이젠 완전 지겹다. 뜬구름 잡는 몽상은 지긋지긋하다. 가난이라면 신물이 난다. 진짜 그렇다는 말이 아니라 어 음 아, 그건... 예술의 원동력일 수도 있다. 나 좋다는 여자도 많았고 돈 버는 방법도 아는데, 고집스럽게 헝그리 정신만? 두 마리 토끼는 호박처럼 제 발로 찾아오고, 플레이보이의 7공주까지 따논 당상인데, 굳이 득도의 길을 고집하시겠다라...! 순정만화의 고객층은 순수하고, 사극에 중독될 시기는 내 통제권을 일부러 저쪽으로 떠넘기지 않아도 된다. 순진한 우유를 좋아하고 달짝지근한 초코우유를 애정하는 건 얼마든지 괜찮지만 말이다. 뭐 어쨌든 나란 인간은 그 뭔가를 당해도 싸다. 아직 인생을 더 배워야만 한다. 에딘버그바에 밀린 외상값이나 갚아야 한다. 포트 엘리자베스가 고향인 어느 숙녀와의 친교는 냉정히 끊어야만 한다.
    아, 그럴 게 아니라 좋게 나도 유행을 따르고 대세에 합류하는 게 좋겠다. 그게 편허겠단 말이다. 그래서 나는 코끼리 팬티에서 애용품을 기저귀 무늬 팬티로 바꾸게 된 것이다.



   21
 
    위대한 캐츠비에 나오는 대저택과 비등비등한 별장에서의 생활은 기대 만큼 떠들썩하며, 신나고 재밌지는 않았다. 그래도 딱히 불만족스럽지는 않았다. 나름 수영도 하고 일광욕은 물론이요 사진도 찍고, TV도 보며, 잡지도 읽고 글도 쓰고... 그래 봐야 집에서 하던 일과와 다를 게 별로 없었다. 뭐야 이거!
    그런데 셋째 날이 되어서 나는 식사 후 혼자서 산책을 다녀왔다. 그렇게 내 방에 딱 들어섰는데, 아무래도 뭔가 분위기가 이상했다. 그리고 내 노트북 앞에서 그녀들은 서성거렸다.
    「너네 내 일기 봤지?」
    머뭇머뭇. 눈빛 왔다 갔다. 속마음을 들킨 듯한 조금은 수줍은 표정.
    「봤네 봤어. 어때 어때? 별로야 별로야? 말 좀 해 봐. 응? 말 좀 해 보라구. 재밌지 재밌지? 다른 거도 보고 싶지 않니? 그 다음이 궁금하지 않아? 아니라고? 어쩜 그럴 수 있니! 아니지? 아닐 꺼야.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게 생긴 건 아니니까. 너네는 매정한 그런 비련의 여주인공 스타일이 아니란 말이지. 그러니까 내가 봤을 때는 말이야, 아마도 살짝 궁금할 꺼란 거지. 어쩌면 많이 그럴 수도 있고. 나 같으면 보고 싶어서 잠을 설칠 텐데. 응? 하긴! 그래서 그래서, 그 다음에 그 다음에, 어떻게 됐어 어떻게 됐어? ~같은 수다도 드라마가 아니라 꽤 근사한 소개팅이나 밀월여행 정도나 되야 궁금하겠구나. 그것도 단짝이 있을 때! 그러므로 너무 부담 같진 마. 응? 빈말이 아니라구. 오빠도 다 눈치가 있어요. 네? 그게 무슨 대수라고. 나 이래 봬도 호탕해. 상남자들 세계에서는 덕망이 두텁다고. 응? 배짱도 두둑하고 가난한 편 치고는 의리도 있어, 얘! 그래도 편지를 들킨 것보단 낫네. 안 그래? 그렇긴 해도 말이야 이거 영 찜찜한데. 정말 그렇단 말이 아니라, 오빠가 마음이 넓어서 그렇지 속좁은 남자라도 됐어 봐. 만약 아량이 요만~한 소심-남이 이런 상황이라면...」
    그러면서 나는 촌스런 장난처럼 손바닥을 펴서 그녀에게 내밀었다. 그런데 이건 또 뭐야! 그녀는 이미 속옷의 위와 아래를 사전에 치밀히 준비하기나 한 것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내게 봉투를 내밀었다. 오히려 두툼하지 않네? 이걸 어쩐담...! 그래서 나는 일단 그 봉투를 받았다. 그 위압감과 호기심과 말려드는 흐름, 난 그만 딱 엮여들고 말았던 것이다. 그 다음 나는 저절로 봉투 속에 뭐가 들어있을까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막 알고 싶어서 미칠 것만 같았다. 선물을 야생 동물처럼 자기만의 공간으로 가져가서 몰래 확인할 수는 없으니, 따라서 나는 슬쩍 조심스럽게 봉투 안을 엿봤다. 그녀들 앞에서 말이다. 물론 실눈을 뜨고서. 마치 중간에 추가로 받은 카드패를 슬로우비디오 기술처럼 살피듯이. 원하는 패가 아니면 일주일을 쫄딱 굶겠다는 눈빛으로. 일주일이 다 뭐야!
    그런데 어머나! 그 안에는 큰 거 한 장이 들어있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눈이 똥그래졌다. 뭐야 이거! 손이 떨렸다. 그냥도 아니고 부들부들! 또 발가락 사이에 땀이 났다. 어떻게 이런 일이... 세상에나! 그것도 살짝이 아니고 많이 큰 거? 이게 웬 떡이야!
    물론 이때 또는 어떤 상황에서 그럴 수도 있다. 현찰을 예상했는데, 손편지가 들어있다? 때에 따라 또 사람에 따라 그 편지를 확 찢어버리거나, 옆에 있으면 그냥... 농담이고, 현찰과 손편지는 바뀌면 곤란하다는 것이다. 현찰의 힘이란 게 그런 거니까.
    아무튼 나는 덜컥 겁이 났다. 그래서 나는 하마터면 이렇게 말할 뻔 했다.
    「너 뭐냐, 천문학자라도 돼냐?」 라고.
    그러나 나는 임기응변에 능숙하지 않았다. 하지만 또 썩 서툴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는 다음과 같이 응답했다.
    「이건... (으쓱)?」
    「(으쓱)!」
    「(따라하지 말고 말을 해, 말을!)」
    「(원고료를 요구한 당사자는 당신이자나. 누가 모를 줄 알아? 우리 보고 보게끔 방치한 거! 이거 왜 이래? 누굴 바보로 아는 거야?)」
    「(뭐가 어째?)」
    「(그러니까 말을 해. 본색을 드러내라고. 뭐야? 뭐냐고! 많아서 거북해 아님 적어서 실망이야? 전자야 후자야!)」
    「(그걸 꼭 내가 내 입으로 말을 해야겠니? 우리 사이가 정말 이 정도 밖에 안 되니? 솔직히 하나 고백하자면 난 말이야. 진짜 이런 구성은 도저히 자신이 없어. 아예 개인전이던가, 아님 단체전이던가. 내가 제일 까다로운 구성비에 아 나 정말 이거 원 참, 응? 기가 막혀서... 아 글쎄 거기 딱 걸려버렸지 뭐니?)」
    그러나 우리는 그처럼 계속 눈빛으로 무언의 대화만 나눌 수는 없었다. 바로 그때!
    「우리는 한번 준 건 돌려받지 않아. 응? 오빠!」
    워워 뭐야 워워 이거... 카리스마 끝짱! 나는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아무래도 이건 말이다, 내가 잘못 걸린 것만 같았다. 아니면 내가 상대를 잘못 골랐거나. 그게 그건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뭐 두고 보면 알겠지. 그나저나 천국에서 뚝 떨어진 이 품위-유지비를 어떡한담? 어떻게 해야 어른스러운 행동일까! 보통 영화 주인공들은 이 상황에 어떻게 처신하더라? 천재들이라면 과연 어떻게 할까! 무엇보다 우선 얘네들은 날 뭘로 본 거지? 조수? 비서? 이방? 애인감? 보디가드? 아니면 뭐 내시? 아 나 이거 정말 보자 보자 하니까 누굴... 차분해야 한다 차분해야 한다. 이런 뜻밖의 전개일수록 나는 신중해야 해. 진짜, 신중해야 해. 신나는 절정이랄지 심심한 불가사의는 커녕 짜증나는 발단으로 되돌아간다면 무척 곤란할 테니까. 그 섭섭한 패턴을 또 다시? 아아 (설레설레)! 지금 지난 날의 으쌰으쌰를 회상하거나 다가올 으쌰으쌰를 상상하며 흥분할 시기가 아니다. 그건 정말 아니다.
    아무튼 다 모르겠고. 눈 딱 감고 챙겨? OK! 그게 좋겠다. 빙고! 복잡하게 생각할 게 뭐 있어? 그래도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인데, 아차-싶지만, 아직은 기분이 리더다.
    좌우지간 필름을 몇 구간 당기자.
    (영차영차) (영차영차)
    사람은 재력이 생기면 지력도 덩달아 커지는 것일까? 그보다는 아마 통이 커질 것이다. 때문에 나는 환희의 영감을 깨달을 수 없는 대신 모든 걸 잊고 이 시절을 즐길 수 밖에 없었다.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도록 4차원을 뒤흔들어버리는 재미를 만끽했다. 우리 모두 함께 말이다. 이건 진짜 우연처럼 내게 당도한 행운의 염력이었으니까. 심지어 그건 마력이었다. 숫자는 의미없었다. 나는 여성잡지1과 여성잡지2를 양쪽에 끼어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바로 그런 옴짝달짝할 수 없는 풍운아가 됐다는 판정만이 거의 유력한 분석일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일단 셋이서 함께 하이틴 드라마를 찍는 것처럼 즐겁게 또 정신없이 놀러다녔다. 먹고, 마시고, 구경하며, 영화 보고, 돌아다니다가, 나이트클럽에 입성하기까지. 그것도 단 하루에 신비와 호박이라는 이름의 NC를 1차 2차로 들렸다. 도저히 체력 때문에 사람 뿅-가게 만드는 인기 최고의 돈텔마마 클럽까지는 갈 수 없었고.



   22
 
    나는 벌써 그녀 집에서 일주일을 보냈다. 나도 이렇게 낯선 휴가가 길어질 줄은 미처 몰랐다. 큰맘 먹고 그녀들과 한 달을 지내봐야겠다고 생각치도 않았고, 마음 단단히 먹고 놀라운 절정을 기다리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비밀스런 모험을 소망한 결과가 이거란 말인가, 그러면서 나는 점점 집으로 가고 싶어졌다. 그때였다.
    로즈마리의 집에 압류 통보문을 붙이러 담당 사무원들이 들이닥쳤다. 드라마에서 익히 봤고 실제로도 한두 번 겪은 일인데, 이렇게 뜻밖의 장소에서 그 일을 경험하니 왠지 기분이 이상했다.
    그러다 태양은 중천에 떠올랐고 점심을 훌쩍 지나서 나는 그녀의 아빠를 만나게 됐다. 차분한 대화를 나누던 중 나는 알게 됐다. 곧 그녀가 나에게 준 봉투에서 봤던 그 한 장. 그 한 장의 고액권에서 0의 숫자를 아마도 그녀가 착각한 듯 했다는 걸. 내가 그녀의 아빠와 나눈 대화가 자세히 기억나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줄거리만 간추리는 걸 독자님께서는 너그러이 양해해주시기를. 마치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신나는 절정으로 치닫지 못함을, 칠칠맞지 못하게 말썽꾼에 지나지 않게 된 결과를 용서해주시기를 바란다. 아, 이 찜찜한 기분이란! 차라리 좋게 집에서 세 가지 소원과 무인도에 데려가고 싶은 3순위나 공상할 걸 그랬나? 그러니까 나는 심심한 인생에 참신한 재미를 알선해주는 뚜쟁이 역할에 여지없이 실패한 것이다. 당시를 회상해보면 나는 실은 그때 정신이 핑~하면서 살짝 돌아서 내가 어떻게 대처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쩐지, 어딘가 모르게 이상하게 돌아간다 그랬다. 그럼 셋이서 함께 신나게 놀았던 품위 유지비와 그 유흥비는 모두 내 주머니에서 나간 셈이네. 아무리 대궐 같은 집이라지만 압류 통보문이 붙여지고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지 나도 모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렇다 할 내색도 할 수 없었다. 이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그렇다. 나는 어른스럽게 행동해서 내가 말이 통하는 뭐랄까, 어떤 신사다운 남자임을 그녀의 아빠에게 증명해보이는 일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마라에게 전화 해서 급전을 요청할 수 밖에 없었다.
    요약하자면 로즈마리인지 에밀리인지 그녀 가운데 한 명이 부모님 심부름을 잘못 수행한 결과일 뿐이었다. 아, 맞다! 존티와 함께 해변에서 2 대 2로 즐겁게 대화할 때 어떤 책이 들어있는 손가방이 007 가방처럼 바꿔치기 되었지? 맞네, 그렇네. 아하, 그렇구나. 뭐야 그럼! 이번에는 그녀들 엄마-아빠가 맡긴 2개의 봉투가 뒤바뀐 건가? 알 게 다 뭐야!
    다음 날 아침 나는 집에 갈려고 그녀 가족과 인사를 나눴다. 그녀의 아빠가 보이지 않길래 먼저 로즈마리와 말을 나눴다.
    「그런데 에밀리는 어디 갔니?」
    「글쎄 어디 갈 데가 있다고 얘기한 것 같은데. 기집애. 어디로 갔지? 혹시 오빠는 에밀리의 행방에 대해 뭐 아는 거 있어?」
    그걸 나한테 물어보면 어떡하니, 이... 이... 로즈마리야! 아무리 생각해도 이제 보니 얘도 좀 이상한 숙녀인 듯한 느낌이 든다. 그렇든 어쩌든 나는 어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그녀의 아빠에게 인사했다.
    「그동안 신세가 많았습니다. 나중 참치 낚시 한번 같이 가시죠. 그럼 전 그만 돌아가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로즈마리! 나 갈께. 에밀리에게 인사 못하고 간다고 전해줘. 그럼.」
    그렇게 우리는 헤어졌다. 그런데 로즈마리 아빠의 심상치 않은 인사말이 왠지 마음에 걸렸다.
    「난 멀리 나가지 않겠네. 자네도 아마 그리 멀리 가진 못할 걸세. 그래도 한번 시도는 해봐야겠지? 그래도 나쁠 건 없을 테니까. 흐흠.」
    뭔 말이지? 아무리 생각해도 아리송하기만 했다. 그렇게 나는 그 고장을 벗어났다.
    난 정말 애들처럼 너무 철없이 놀아버렸다. 너무 많이 돌아다녔고 괜히 빈말을 물고 늘어져서 그녀들의 일상에 폐를 끼쳤다. 이제 다시 내 생활의 본 궤도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그러니까 내가 바란 건 무엇이었을까? 빠라면 집 근처에도 있고, 술집은 많고도 많은데. 하물며 해변이라면 당일치기도 얼마든지 가능했다. 해변에서 만난 그녀들에게 난 무엇이었나. 고수? 하수? 유혹자? 모사꾼? 풋내기? 궤변가? 장사꾼? 다 아니고, 아마도 아는 오빠일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난 그냥 말이 통하는 바텐더와 독대하며 차분한 대화를 나누고 싶었던 거네. 허허허. 그녀의 옛-남자친구를 딱 맞추고, 결혼운도 봐주고, 기분 괜찮으면 혹시 손금까지? 그건 아니야 아니야. 아무튼 그 쉬운 걸 이제야 깨닫다니! 그렇지만 바텐더와 말을 섞다 보면 난 또 감정의 교감에 흔들려서 그녀의 과거를 감지할 수 밖에 없는데...!
    참 나 내가 무슨 허당계의 초보자도 아니고 어찌 단골로써 점원에게 정직히 찬란한 미래를 예언할 수 있겠나. 울상을 짓건 교만해지던 정답만 읊어주면 오히려 역공이 거세질 수도. 그보다 내가 반가운 손님이 아닐 수도 있을 테고 말이다. 오히려 무난한 손님이면 그나마 다행이게? 그런데 내가 죄락펴락 할려고 했는데 어쩌다 난 들려졌다 놔지면? 저런 저런! 그래서 자고로 타인의 운수를 봐줄 때는 말이다 꼭 이래야 한다. 불길한 슬럼프를 살짝 예고해주며, 오늘의 심복과 내일의 충복은 다를 수도 있다는 귀뜸을 살짝 흘려야 재밌는 법. 인복을 관측하고 사랑운을 추정함은 독이 될 수도 있으니, 당사자 입장에서 때로는 모르는 게 약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천재 보고 바보 친구들만 파도타기 해서 사랑을 만나라고 추천해서는 절대 안됨. 인생이란 자고로 변수를 예측하며, 궁합을 따져보고 불행이 날 스스로 피해가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 그런데 더없이 심심하던 시절 다행스럽게도 왕-호박이 제 발로 걸어서 나에게 오네? 그러니 행운아는 운명을 지지하고, 플레이보이는 3가지 기본 공식의 성과를 과장하며, 로맨티스트는 숙명적인 누군가를 사랑할 수 밖에. 그러니까 일절만 하시라, 요점이 뭐냐구요? 허세와 허영심과 허풍과 젊음 말고도 우리가 아끼며 애정해야 할 건 많고도 많다는 점. 동경심, 감수성, 호기심, 질투, 통찰력, 선망, 소원, 새 희망, 헌 꿈, 잊혀진 대망, 고개를 떨군 야망까지. 그러니 불쾌한 여건은 핑계에 불과하고 상쾌한 기분으로 일하기에 집중하세나!



   23
 
    나는 산골 도로를 지나던 중 검문소 앞에서 멈추게 됐다. 아니 이런 데 왜 이게 있지?
    나는 성실하게 검문에 임했고, 검문은 끝났다. 그래서 나는 출발할려고 했다. 그런데 검문소의 문이 슥 열리더니 웬 상급자로 보이는 사람이 손짓을 했다. 그래서 나는 잠깐 멈칫했다. 그러더니 그 사람이 사무실을 나와 내게로 다가왔다. 그런데 알고 봤더니 그는 나의 옛 친구인 레너드였다. 와, 누가 봐도 모범생이었던 그 친구가 왜 여기에? 하긴 두더지는 나비가 못 되라는 법 있나. 뭔가 사연이 있을 테지. 그렇게 우리는 감격적인 해후 다음에 통상적인 대화꽃을 피웠다. 나는 아예 차를 저쪽에 주차시킨 다음 녀석과 뭔 꿍궁이를 꾸밀 작정이라도 한 것 마냥 이러쿵저러쿵 수다 삼매경에 빠졌다.
    내 기분은 옛날로 돌아갔기 때문에 나는 집에 갈 생각일랑 새까맣게 잊어먹었다. 그래서 둘이서 녀석의 작전 구역에서 거닐며 그럭저럭 시간을 보냈다. 비밀 작전이니 뭐니 특수 장소도 알려주고, 알고 보니 녀석은 아는 것도 많고 재밌기까지 하니까 그야말로 완전 달변가였다.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변할 수 있지, 그럴 정도로 말이다. 그래도 나는 돌아가야 하고, 따라서 우리는 이별해야 했다. 그래서 나는 딱 돌아갈려고 했다.
    그런데 저쪽에서 우르르 우르르 보디가드 병력을 대동하고서 웬 중년 여인이 내게로 다가왔다. 대화를 나눠본 결과, 그녀는 로즈마리의 엄마였다. 대화의 중요 대목만 요약하자면 이와 같다.
    「그 양반이 가끔 좀 그래요. 내 대신 사과하리다. 많이 언짢았수? 이거 정말 신수 훤한 예술가 양반에게 결례를 범했다니. 안되겠구만.」
    그러더니 그녀는 (딱) 하면서 비서에게 사인을 보냈다. 물론 그녀는 사복 차림이었고 비서로 보이는 사람은 군복을 입고 있었다. 잠깐만! 비서로 보이는 분의 계급이...... 뭐야? 내가 알기로는 그게 그거고 저게 이렇다면... 뭐야 이 아줌마는 별이라는 말인데? 맙소사! 뭔가 느낌이 세했다. 기분이 이상했고, 이건 그거였다. 일명, 갑분싸!
    사인을 받은 비서가 우리쪽으로 007 가방을 들고왔다. 그러다 로즈마리 엄마는 비서에게 한마디 했다.
    「부담스러워 할까?」
    원래는 내 귀에 안들려야 할 말 같은데, 내 청력이 좋은 건지 아님 바람의 방향 때문인지 나도 모르게 그 말을 듣고야 말았다. 그러더니 그녀는 007 가방을 돌려보냈고 내게 흰 봉투를 내밀었다. 오오, 카리스마! 나는 하는 수 없이 봉투를 열어봤고 거기 들어있는 한 장의 액수를 확인하고야 말았다. 그건 로즈마리가 처음 내게 주었던 한 장에 0이 하나 더 붙어있었다.
    「젊은이. 내 성의라고 생각해주었으면 좋겠소. 어떻게, 로즈마리와 약혼식을 정식으로 올리면 어떻겠소? 그야 뭐 그저 그런 흔한 사랑은 아닐 테니, 그건 차차 생각해봅시다.」
    뭐라고?
    난 뭐가 뭔지 하나도 알 수 없었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차에 탔다. 그런데 차가 시동이 안 걸리네? 바로 그때 로즈마리가 저쪽에서 멋진 최고급 컨버터블을 몰고서 내게로 질주해 왔다. 저런! 난 이제 꼼짝없이 여기 정착해서 그녀에게 사랑은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행동하며 살아야 하는 것일까? 얼씨구! 저기 보이는 내 옛 친구 레너드를 비롯해서 군인 아저씨들은 복장을 훌러덩 벗더니 로즈마리 엄마에게 모두 봉투를 하나씩 받고서 재빨리 흩어졌다. 나는 이거 정말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그나저나, 로즈마리 엄마가 내게 줄려던 007 가방에는... 설마 제일 첫 장만 진짜일 리는 없고, 만약 내게 준다면 난 하나도 부담스러워 하지 않았을 텐데. 좀 전에 설레발 좀 떨 걸 그랬나 싶었다. 아 맞다. 그런데 007 가방에 화폐가 아니라 만약... 밀가루가? 게다가 그걸 나보고 가지란 말이 아니라 날 심부름꾼으로 알면... 안돼 안돼. 어쨌든 나는 다시 로즈마리의 집에 복귀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나는 아니 우리는 일단 셋이서 함께 하이틴 드라마를 찍는 것처럼 즐겁게 또 정신없이 놀러다녔다. 에밀리는 중간에 어디로 갔다가 오다가,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었다. 그처럼 우리는 먹고, 마시고, 구경하며, 영화 보고, 돌아다니다며 시트콤 주인공이 되었던 것이다.



   24
 
    그러나 우리의 인연은 거기까지-였다.
    내가 로즈마리를 떠난 이유를 심각하게 설명하는 게 좋겠다. 왜냐하면 로즈마리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인가는 몰라도, 나는 <이 바보 같은 녀석 - 이런 머저리 같은 놈>이 확실할 테니까. 허허, 농담이다. 아무튼 왜 그럴 수 밖에 없었는가, 를 충분히 검토할 만큼 그 동기가 내 장담하지만 아마 재미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입식 교육을 졸업한 내가 대체 왜, 스위스로 떠난 아인슈타인도 아니고 사춘기 소년처럼 논술 답안지에 아무 얘기나 막 쓰는 기분이지? 그건 나도 모르겠고 누구도 알고 싶지 않는 문제이므로, 따라서 넘어가자.
    자, 내가 로즈마리를 떠난 이유! 왜 그랬을까? 왜 나는 그녀의 애정을 배신했을까? 어느 추남이 그녀를 너무도 좋아했는데, 그녀의 가시 때문에 그녀는 곧 배반의 장미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그야 에밀리가 어디로 갔건 그건 에밀리의 자유고, 로즈마리의 애정사야 로즈마리의 인생이다. 우선 내가 로즈마리를 떠난 이유를 바로 알려면 왜 우리가 친해졌는지를 알면 된다. 그러니까, 왜 우리가 친해졌을까? 왜 우리가 친해졌는지를 알려면 왜 우리가 만나게 되었을까를 알면 된다. 왜 우리가 만나게 되었을까? 우리는 운명론자이기 때문에? 최근에 운명주의라는 동기 부여가 인기이기 때문에? 왜 우리가 만나게 되었을까를 알려면...... 이런, 젠장! 이런 고약한 능청꾸러기 같으니라고. 것 참 무슨 망나니의 후원자도 아니고, 지금은 궤변의 황금기라고 광고라도 하는 건가? 타락─탕진─방탕의 길로 빠질 수는 없고, 마키아벨리적 뭔가도 없는 데다, 플라톤을 읽어도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으니, 그래서? 손가락 끝에서는 레이저가, 입에서는 화염이, 다시 전망을 살폈으면 손바닥을 펴서 그녀를 공중에 띄우고 여심을 읽어 한발 앞서 나간다? 이런 젠장, 또 또 여심 여심 아 쫌! 휴~ 다시 처음부터 정리해 보자.
    왜 로즈마리와 에밀리라는 그 찰떡 콤비를 알게 됐고, 이상한 일과 따사한 호사와 고혹적인 낭만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을까? 우리가 만나게 된 건 존티와 내가 그녀들을 꼬셔서고, 이상한 전개는... 그건... 설마 내가 빈말을 물고 늘어졌기 때문에? 그래서 일부러 끝까지 가 보자! 라며 전진도 후퇴도 없이 전개라는 미로에 갖혀버린 것 아닐까? 혹시 진짜로...! 맙소사, 세상에나! 진짜, 진짜로 그랬을 수도 있다. 무슨 미스테리 TV 프로그램에 보면 새벽 2시에 날마다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7년 내내 전화가 걸려오는 일, 7년 내내 그 어떤 방식으로든 내게 행운의 편지가 전달되는 일. 있다. 그런 일이 정말 드물게 있다. 그런데 알고 봤더니, 범인을 잡고 보니 어떻게 그처럼 허무하다니. 같이 술을 먹어주지 않아서랄지 같이 놀아주지 않아서 삐졌다라나 뭐라나. 정말 사소한 일에 빈정상해서 그래서 그 황당한 일을 꾸민 사건. 여기, 저기, 거기서 잘 찾아보면 있다. 전수조사해서 모아보면 적지도 않다.
    그러니까, 그처럼... 내가 빈말을 잡고 늘어졌다고 그녀가 오기를? 어쩌면 진짜로 그랬을 수도 있다. 와, 등에 식은땀 쭉 나는데! 워워, 소름 돋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뭐 어쩐다더니... 워워 이런 내가 잘못 걸린 거 아니야? 내가 대어를 낚은 줄 알고 있었는데, 반대로 내가 낚인 건가? 그럼 낚시꾼 입장에서는 나의 이 비리비리한 허접함을 보고서 실망이 정말 말이 아니었겠군 그래. 그 어부가 그러니까 에밀리와 로즈마리 일당이라니! 하긴 처음부터 나는 그녀의 내면을 읽었다. 그녀들의 영혼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나는 다 알고 있었다. 그런 애처로운 순정과 가슴 절절한 사랑이라면 어쩌면 일이 이처럼 꼬이고 또 꼬일 수도 있는 것 아닐까? 라고 추론하며 억측하는 단계에 접어들어 난 이미 발을 뺄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따라서 나는 그녀의 마음을 작게나마 공감할 수 있고, 조금이나마 그 떨리는 여심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좋아한다고 먼저 말할 수 없는 사람도 있을 테니까. 아니 흔하니까. 어떻게 여자가 먼저 대놓고 구애에 나선단 말인가. 꼬리를 먼저 흔들지도 않고 다짜고짜 먹잇감을 물어? 뭐! 그게 여잔가? 어? 농담이고. 그러니까 물론 뉴스에야 나올 수도 있지만 숙녀가 발가벗고 돌아다니면 오 땡큐, 내 여자가 만약 그런다면 오오오 제발, 또는 남자가 그런다면 변태? 바나나는 벗겨먹어야 제맛이지만, 굳이 호박이 제 발로... 그걸로도 모자라 심지어 부록과 사은품과 고대 궁중 연애술까지? 만약 그런다면 극구 마다할 남자가, 어? 그게 남잔가? 그러니까 뭘 좀 아는 남자를 좋아하는 여자는, 아무리 푼수 같은 여자도 맹추나 쑥맥보다는 여심을 요리할 줄 아는 남자를 선호하게 마련이다. 첫사랑인가,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인가, 사정은 그때 그때 다를 테지만 말이다. 여자를 다루는 재주, 숙녀를 배려하는 태도. 전자와 후자는 앞에서는 다를 테지만 등 돌리면 똑같아진다. 와!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누가 아니래! 좌우지간 호박이 제발로 굴러온다라... 벌레 먹은 사과가 더 맛있을 수도 있다. 몰래한 풋사랑이 오히려 찡할 수도 있으니까. 하늘이 주신 사랑에 눈물이 핑 돌면 좋겠지만 나비는 커녕 파리도 날리지 않을 수도 있을 테니까. 그러든 어쩌든 썩은 과일은 먹으면 탈난다. 그 중에는 동화처럼 독사과도 있다. 선악과에 준하는 미끼도 흔하다. 나이키는 상표고 주피터는 이름일 뿐이다. 판도라라는 머신명도 이미 어디서 선점한지 오래다. 아무리 그래도 남자가 여자 마음을 빼았았으면, 그녀의 마음을 휘저어놓았으면 그 다음 순서가 뭔지 모른 체 하면 안된다. 마님과 돌쇠의 불륜을 과연 사랑으로 볼 것인가는 논외로 하고, 사극에서 양반은 첩을 거느렸듯이 이 시대에 우리는 낭만적 사랑을 다스릴 줄 알아야 하니까. 남자는 그래야 한다. 동성애를 지지함과는 별개로 말이다. 그렇듯, 우리는 만나면 금새 친해진다. 우리는 누구든지 만나면 금방 친해진다. 우리는 누구든지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다. 우리는 선녀를 좋아할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단 말이다. 자, 숙녀들이여 컴온? 워─워─워! 어중간한 나이트클럽의 오픈발에 과연 내가 선발대가 될 것인지, 아니면 의전으로써 친구를 먼저 보내본 다음 행차를 고려할 것인지, 그때 그때 다르다. 아무리 그래도 우리라고 무조건 오빠라는 말만 들으면 미쳐버리는 게 아니다. 남자는 무조건 밖에 나가야 한다, 남자는 폼이다, 아무리 그런다고 진짜로 밤에 잘 때도 양복을 입고 자는 건 아니란 말이다. 무슨 나비가 뉴튼도 코페르니쿠스도 아니고 사과나무 밑에서 입 벌리고서 낮잠 자겠다고? 호박이 제 발로 굴러오기를 바란다면 최소한 입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을 할 줄 알아야 한다. 꽃밭이 어딘가는 알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양의 탈을 쓴 늑대가 되어야 한단 말이다. 달리 말하자면 우리는 여심을 실망시키는 짓은 여간 해서는 싫어한다는 말이다. 그녀가 애타게 몸과 마음과 통장과 사연과 사랑까지 나에게? 그걸 모른 체 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는 굴러온 호박을 발로 걷어차는 건 남자의 본분이 아니다. 안 그런가? 안 그렇다! 드문 사례는 없을 수 없을 테니까. 그래도 보통은 그렇다. 어디 그게 남자냔 말이다! 덜렁덜렁 고추 달린 남자가 할 일이 아니단 말이다. 밥 먹듯이 정말로 밥 먹듯이, 일생을 커졌다 작아졌다 커졌다 작아졌다, 그런 남자가 철들지 않는다면 몰라도 그게 아니라 치졸하다? 쪼잔하다? 비열하다? 극악무도하다? 야금야금 야심도 아니고 깐족깐족 유머도 아닌,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뭐야! 그런데 이도 저도 아니다가 대체 왜 나왔지? 아무튼,
    내가 눈치가 없어도 너무 없었다. 그녀의 좋아함이란 감정은 커지고, 퍼지고, 확산되고, 많아져서 날 옴짝달싹 못하도록 사랑의 포로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돌이켜봐도 내가 먼저 꼬리를 흔들었고, 멍멍멍 멍멍멍멍 짖었으며, 그녀의 인사말과 빈말이라는 바지가랭이를 으르릉컹컹 흡사 개처럼 물고 늘어졌다. 누가? 내가! 아하, 오오, 이런 이런! 그거로구나. 이제야 알겠다. 오오 그거였구나 그거였다. 와 그거였다니. 그러니까 요컨대 이런 식이지. 단, 완벽하게 널 붙잡지는 않겠다, 왜냐하면 사랑의 완성을 위해 그대도 이만큼 다가와주어 최소한의 성의는 보여야 하니까.
    (딱)! 이거다. 이거라고. 바로 이거였어. 이거라니까~!
    왜 몰랐을까. 나는 이 쉬운 사건의 전개를 대체 왜 몰랐을까! 내 마음이 약해서도 아니었고, 내가 너무 이기적이었기 때문도... 아니었으면 좋겠고, 아마도 진짜로 내가 사랑에 빠져버렸기 때문은 정말 아닐 것이다. 아아 바로 그래서 그런 거구나. 따라서 이제 나는 그녀와 사랑의 행복에 골인할 수 없다면, 함께 인생 드라마를 즐기며 뻔트도 대고 반칙도 하며 골 세러모니를 연습할 수 없다면! 그러면 내가 먼저 조용히 떠나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바로 이래서 나는 짧은 인사말이 담긴 엽서와 (돈?)봉투를 책상 위에 남긴 채 이른 새벽 조용히 그곳을 떠난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이번에는 진짜로 집에 도착하기에 성공했다. 진짜로 내 집에 도착한 것이다.



   25
 
    농사꾼의 성실함과 어부의 부지런함은 청새치에 필적할 만한 대물을 잡고 싶은 욕심에 근거한다. 나는 결국 일할 때는 농심이고 놀 때는 흑심이었다. 다듬어 말하자면 사랑과 자유와 환상과 신비를 갈망하는 일, 상상과 현실을 결합하여 행복의 모티브를 구성하며 놀기. 나는 전자에 성공했는데 성과가 볼품없었고, 후자에 실패했지만 여심을 이해하고 사랑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게 된 것이다. 그러든 어쩌든 벌거벗은 숙녀들이 우연을 빙자해 내게로 막 달려올 일은 만무하다. 그렇다고 내가 직접 목동의 마음으로 양떼를 몰며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래서 릴리도 비비안도 오빠의 이런 본심을 알게 되면 실망할 수도 있다. 날이면 날마다 기뻐할 여복과 좋아할 어복만 상상한다니, 그럼 그렇지 이 오빠 좋게 봤더니 오빠 안되겠네? (그래서 결국 그 자리를 로즈마리와 에밀리가? 아아, 오오, 이런!)
    따라서 늑대는 절묘한 시기와 최적의 상황이 아니면 본색을 드러내면 안된다. 그러나 내내 관망만 하다가는 연극이 시작된 줄도 모르게 막을 내릴지도 모른다. 더더군다나 전망에 먹구름이 잔뜩 끼는 일도 드물지 않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양의 탈을 써야만 하는 것이다. (진짜로 꼭 그러라는 의미가 아니라!) 저 하늘의 별을 따다 드리고 꽃 길만 걷게 하겠다는 달콤한 세레나데는, 적어도 지금은 진심인 것이다. 여자의 마음과 절친한 변덕은 그저 애교로 볼 수 있듯이, 사랑은 권태를 길들이고 변심을 극복하느냐 마느냐, 그건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심을 간직한 야생마는 푸른 들판을 신나게 달리고 싶어한다. 왜냐하면 즐거움과 부러움의 분위기 가운데 선망이란 잔풀을 마구 뜯어먹고, 허영심이라는 수다의 본능에 충실한 숙녀들의 첫인상에 대한 잔상으로 인하여 너무도 이 가슴이 찡하기 때문. 그러나 명화는 비싸고, 방랑벽은 유목민에게나 어울리며, 세상은 아무한테나 눈부신 플레이보이의 4대 요건을 허락하지 않는다. 고로 사랑은 모르는 것처럼 인생은 내 마음이다. 애첩을 총애함은 사극에나 나오는 것. 그런데 이와 같은 건실한 세계관은 그렇다쳐도 못내 아쉬운 사랑론은 대관절 어쩌란 말이더냐. 그러니 인생은 진공청소기와 커피포트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남녀의 마음은 뫼비우스의 띠가 아니고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아니다. 꼭 그런 건 아니다. 왜냐하면 대망은 우리에게 명령하니까. 뭐라고? 익숙한 행복도, 새로운 행운도, 놀라운 우연과 처녀의 마음 같은 숙명도 일단 먼저 내 걸로 만들고 보라고! 말하자면 우선 사랑이 앞서고 변심은 나중 문제라는 것. 따라서 인생을 낭비하지 아니함은 뭐가 됐든 일단 뻔트를 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방망이가 솜방망이면 어떡하지!
    좌우지간 문제가 무엇인고 하니, 나는 에밀리와 로즈마리 그 명콤비의 수작에 놀아난 다음 슬럼프에 빠져버렸다는 것이다. 난 정말로 뭘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집에서 단돈 얼마 즉, 중고 노트북─최신 핸드폰─마음에 쏙 드는 CKC 양복 1벌─괜찮은 운동화 1켤레만 딱 살 수 있는 금액만으로 영화가 뚝딱 완성된, 그런 저예산 영화를 한 편 감상했다.
    제목은 The Batt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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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의 마음은 변심과 친하다. 때문에 남자는 여자의 변덕 하면 특유의 몸짓을 보인다. 단, 포커페이스에 일부러 실패할 때만. 그러나 천부적인 독심술을 타고난 농심에게 여자의 심리는 결코 미스테리가 아니다. 그래서 때로는 플레이보이가 여자를 유체이탈시키고, 때로는 은근 허당이 숙녀를 공중부양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세월은 야속해서일까? 상큼한 꽃은 시들기 마련이며, 잘난 척 일색인 험담가의 달변은 녹스는 걸로도 모자라 너저분한 사기에 연루되어 일인의 왕뚜겅이 만인의 유쾌함에 일조할 수도 있다. 그러니까 욕심이 크면 배당률도 높기 마련. 따라서 우리는 눈살을 찌푸리면서까지 재능의 부재에 절망하지 않아도 된다. 기쁨은 잔재주를 편애하며 행복은 가까이 있는 법. 그러므로 유행은 변하고 사극에서 왕은 업적도 업적이지만 새로움을 그렇게도 극진히 총애하는 것이다. 고로 나는 거포가 아니네, 스트라이커감도 못되네, 페이스메이커나 리베로 근처에도 못 갔으며, 홈런타자는 꿈도 못 꾼다며 낙심하지 않아도 된다.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옛말에 틀린 거 하나 없다지만 그건 새로운 진리의 발견, 위대한 법칙의 창안일 수는 없다. 구식과 신식은 다른 거니까. 뭐와 뭐는 개 패듯 어쩐다랄지, 개 눈에는 뭐만 보인다, 사자는 파리로부터도 제 몸을 보호할 줄 알아야 한다, 개 팔자가 상 팔자다 등등. 때와 상황에 따라 딱 좋기도 하고 꽤 부적절한 경구들은 수없이 많다.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고, 그렇게. 그러든 어쩌든 너무 길다. 그래서 짧게 가자. 상남자는 대망과 친해야 한다? 너무 길다! 그러니까 줄이자. 이렇게 말이다.
    뻔─트!
    마법에 걸린 듯 뭐든 한 발짝만 담그고, 어디 숟가락만 슥 얹을 잔칫상 있나 없나 항상 희번덕거리기만 하라는 말이 아니라, 한마디로 관망. 예상. 관측. 측량. 추리. 탐지. 취미냐 업이냐. 독학이냐 아니냐. 일하느냐 노느냐. 그래도 시작은 뻔트! 그래서 나는 오늘 미스테리아 사무실에 방문하기로 했다.
    영차 영차, 어기어차 어기어차, 이영차 이영차! 나는 벌써 미스테리아에 도착했다. 그런데,
    뭐야 이거!
    원래 미스테리아의 경리는 샐리다. 그런데 샐리의 자리에 지금 에밀리가 앉아있네? 그러니까, 뭐, 선수 교체? 참 나! 별개 다 날 가지고 노네. 별꼴이야 정말! 잘한다 잘해!
    심지어 에밀리는 대체 어디서 배웠는지, 마라의 가슴 안으로 손을 넣는 마술을 선보이고 있었다. 뭐, 가슴 안으로 관통하지 않아도 좋으니 나도 따라서 시연을? 이런, 젠...아 이제는 말할 힘도 없다. 지친다 지쳐! 그러든 어쩌든, 여기서 밀리면 끝이다. 말리면 헤어나올 수 없다. 엮이면 망하는 거다. 감기면 난 최면에 빠져버리는 거니까. 멈춰야 한다. 멈춰야 한다. 그런데 입이 떼지지 않는다. 입이 떼지지 않는다. 잘 들리지도 않는다. 잘 들리지도 않는다. 도저히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도저히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서 그녀에게 물어봤다.
    「에밀리. 너 그거 어디서 배웠니?」
    「어, 왔어? 오랫만이네. 이거 아직 완성되지 않은 마법이라 들키면 안되는데. 그런데 들켰네?」
    「오빠. 나 오늘 취직했어. 샐리가 알고 봤더니 명문 어디를 나왔네? 나랑 동문이지 뭐니! 동창 = 친구, 까지는 따지지 마세나. 허허. 아무튼 나 오늘부터 미스테리아 경리니까 오빠 나한테 잘 보여야 한다는 거 알지?」
    「아아, 올 게 왔다!」
    「뭐라고?」
    「아니야. 아니야.」
    탐문은 필요하지 않았다. 나는 정체불명의 감시망을 벗어날 수 없었다. 인생이란 게 원래 뛰어봐야 부처님 손바닥 위인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신비머신에 갇혀버린 건 뭐랄까, 내가 그동안 거짓말을 너무 많이 했기 때문 아닐까? 물고기를 너무 많이 잡았을 리는 없을 테니까. 따라서 나는 아침에는 피노키오, 낮에는 예언가, 저녁에는 플레이보이, 밤에는 아르키메데스? 거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말장난이란 말인가. 응큼한 상상력과 번지르르한 말솜씨는 써먹을 데도 없을 뿐더러, 이미 애초에 비리비리했고 제대로 써먹지도 못하고 녹슬어버렸다. 이런 능글맞은 표정을 겸비한 방탕아 같으니라고. 그야 어쨌든 이 일을 과연 어쩌면 좋단 말인가! 이 착잡한 기분을 도저히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달리 뾰족한 묘수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뭘 꼭 멋진 말을 하며 특별함을 선사하고 그렇게 대처해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한껏 고양된 천상의 느낌이 썰물처럼 쑥 빠져버렸기 때문에, 미묘한 갈등에 따른 의뭉스러운 전개가 밀물처럼 날 가만 놔두질 않았던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그래서 나는 다시 관망하며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지 않을 수 없었다.



   27
 
    꿈을 추론함은 행운을 좋아함만 못하다. 왜냐하면 꿈은 상상하기를 애정하며 마음은 몸보다 선행하고 싶어하는데, 꿈과 논리라... 그건 너무 짠하고 찡하며 가슴이 뭉클해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소원을 키우고 야망을 탐지하여 성공을 성취할 재능이 풍부하다면, 그 반대일 수도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존심에 민감하고 가만 있는 부러움을 귀찮게 하는 것일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왜냐하면 현실에 만족하고 내일의 행복을 기대함은 각자 생각이 다를 테니까. 그러니까 우리는 허영심의 친구인 선망과 친하고, 새로움을 지망하며, 유복함을 사랑해도 된다. 그런데 자존감에게 미안해지는 일은 종종 발생한다. 뿐만 아니라 유혹은 도처에 널려있다. 심지어 낙천적인 삶의 자세는 쾌락을 편애하는 인생의 태도와 왕왕 불화를 일으킨다. 그러나 찬란한 미래를 꿈꾸는 새 희망을 미워해서는 안되는 것.
    따라서 타락한 삼류도, 가난한 플레이보이도, 재미없는 허당도 탐욕을 제어해야 한다. 사랑의 환상을 믿어야 한다. 또 허풍 대회에 출전하면 좋을 것이다. 하지만 내게 부적절한 인생론을 싫어할 수는 있다. 그래도 된다. 그러든 어쩌든 우리는 좋은 말로 공상과 멋과 낭만, 어중간한 의미로 눈독과 군침과 사심에서 무한정 멀어지면 곤란하다. 그래야만 우리는 미녀를 정복... 아니 아니, 건전하며 다정한 행복에 지각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러므로 나는 꿈 깨, 난 또, 겨우─고작, 말도 안돼, 같은 몽상에 지레 겁먹지 않기로 했다. 그렇다고 막살지도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이번에 선택한 미지의 이상이자, 다정한 꿈꾸기는 바로 파티였다. 그처럼 이번에, 무모한 베팅의 대항마인 뻔트가 엄선한 이름은 바로 파티였다고. 뭔가 대단한 방책도 장르도 아니고 고작 파티라니, 라고 의아해 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 단계에서 나는 뭔가 심란한 마음을 진정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친구들과 만나 기분을 풀기 위해 파티에 가기로 했다. 그런데 파티는 파티인데 이번에는 포커 파티였다. 진 사람이 이긴 사람의 소원 들어주기. 우리는 가끔 인생이 재미없을 때 그런 게임을 한다. 그처럼 타이틀이 걸렸기 때문에 풍운아에게 중간은 없는 법. 따라서 올인은 운명이었고, 전망은 선명해졌다. 그런데 그 화창한 결과는 내 마음을 과연 흡족히 찬양했을까?
    아니다. 뭔가 잘못 됐다. 왜냐하면 파티장에 도착한 다음 뭔가를 알게 됐으니까. 너무 갑자기 줄거리를 건너뛴 점은 무척 송구스럽다. 아무튼 나는 파티장에 도착했다. 그런데 남자애들은 하나도 없고 모두 여자뿐이었다.
    아하!
    나는 느꼈다. 편 가르기에서 녀석들에게 나는 밀린 거라고. 하지만 인기를 마다할 수도, 그녀들한테 날 좋아하지 말라고 야단칠 수도 없는 느릇이다. 내 품행 때문인지 아니면 극심한 편파성 때문인지, 결국 남자친구들끼리 으쌰으쌰를 기획해서 어디로 떠난 거네. 대체 어디로 떠났을까? 나만 쏙 빼놓고! 뭐하고 있을까? 나만 쏙 빼놓고! 약간 외람되지만 뒤늦게 나도 합류할까? 나만 쏙 빼놓고! 그러면 날 받아줄까? 내가 무슨 떨이도 아니고, 나도 별로 마음 없다! 이처럼 행복은 예고되었는데, 한편 으쌰으쌰에 끼지 못했기 때문에 그녀들은 내 불편한 감정을 눈치채버렸다. 그처럼 허공을 응시하는 내 표정을 보며,
    「오빠 뭐해?」
    「저 황홀히 뭔가를 추측하는 눈빛. 심하게 그 어떤 이상을 갈구하는 인상. 전형적인 예술가의 시선이지. 내가 알아. 그럼. 알아도 아주 잘 알지. 나도 한때 그랬으니까. 허허허. 인생이라는 그림에서 풋사랑은 대망의 동반자인 걸 내가 왜 몰라. 그걸 내가 모르면 대체 누가 아는데! 허허허 농담이고. 그런데 저건 말이야, 뭐랄까, 그래. 예술가는 예술간데 가난해.」
    「게다가 무명이야.」
    「심지어 늙었어.」
    「못생겼다고까지는 하지 말자.」
    「OK!」
    「옳소이다.」
    「얼씨구.」
    「어디 그 뿐이겠어? 그런데, 영감은 바닥났어.」
    「호호호호호.」
    「흐흐흐흐흐.」
    「결론은 아티스트가 아니라 늑대의 눈빛이구만 그래. 너네들 잘한다 잘해. 그렇지만 약해. 아직 아니야. 뭔가 좀 더 끌어올려야 하는 것 아니니?」
    「오빠. 우리도 그럴려고 했는데, 그냥 구경꾼으로 남기로 했어. 왜? 가냘퍼보이자나. 우리에게 매가리없이 잘생김은 1.5군 그것도 대타감이거든. 감독이 중용하지 않으면 끝까지 그냥 대타로 대기하기만 해야 하는 거라고. 허허허. 더군다나 우리가 하이에나의 혼탁한 욕망을 어떻게 모를 수 있어? 그렇다고 오빠 보고 하는 얘기는 아니야. 그렇게 멋쩍어 할 것까진 없다고. 실은 말이야, 달콤한 꿈과 야릇한 상상은 우리 전공일지도 몰라. 엄밀하게 보자면 환상적인 향응이 무엇인지 우리도 다 알고 있거든. 어떻게 모를 수 있겠어. 그러니까 오빠 빼고 다른 오빠들끼리 어디 간 줄 알어? 아아, 안타까울 지경. 우리가 또 정보망이 좀 좋니? 정말로 남자들의 열광적인 꿈과 음란한 공상, 그 끝은 어디일까?」
    로즈마리의 얘기를 들은 에밀리는 두 손을 들어, 30도 40도 각도로 한 손은 뻗고 한 손은 덜 뻗어, 어떤 경배 드리는 손짓으로 날 가르켰다.
    허걱! 나 보고 어쩌라고! 나는 그래서 지갑을 꺼내서 손가락에 살짝 침을 묻혀서 몇 장 꺼내는 걸로 시작해서, 눈을 살짝 가늘게 뜨며 인상 슬쩍 찡그리며 아예 뭉칫돈을 그녀들한테 전달하는 시늉을 선보였다. 그... 그... 한 장을 가져왔다면 단지 시늉만은 아니었을 텐데, 뭐 아쉽다는 건 아니다. 오오! 그런데 뭐야 이거? 리액션 완전 좋은데! 정말로 반응이 꽤 괜찮았다. 의외로 말이다.
    아, 로즈마리와 에밀리는 이미 시트콤 군단에 이름을 올려버렸다. 이쯤 되면 뭐 비밀결사단이라도 만들자는 건가? 그렇지만 나는 여기가 아니라 비키니 파티에 갔어야 했다. 그런데 누가 그런 데로 날 불러줘! 누가 아니래. 꿈 깨자. 어쨌든 저 말하기를 좋아하는 성격들. 천성이 밝군. 너무도 발랄해. 뭐가 저렇게 좋을까? 이건 또 뭐야! 아니, 벌써 나는 그 옛날 어느 교수님의 대사를 따라하고 있다니! 오오 이럴 수가! 아아 세상에나! 맙소사! 아무튼 그녀들은 자기들이 상대방에게 기 받도록 만드는 재주가 각별하다고 내게 주장했다. 그런데 내가 봤을 때 그 반대인 듯 했다. 나만 봐도 벌써 기를 빨리고 있으니까. 기를 받기는 뭘 받어! 그런데 그 순간,
    「오빠. 내가 단편영화 하나 찍었거든. 물론 감독은 나. 조연출도 나. 촬영과 편집도 다 나야. 그래 원맨쇼. 재기 발랄함과 즉흥적인 천재성은 내 편이니까. 언제까지, 어? 나풀나풀 나비 같은 사랑에 혹해서 좋았다가, 싫었다가, 다시 공연히 걱정했다가, 또 다시 들떴다가 마지막에는 변해버린 애정에 체념한 숙녀 역할? 그건 내 성에 차지 않아. 그건 아니야. 그건 아니라고. 그래서, 어때? 오빠는 내가 만든 영화가 궁금하지 않아? 얘네들은 다 봤어. 물론 극찬했고 말이야. 여기서 오빠만 안 봤어. 그런데 제목은 없어. 내용은 있고. 그런데 이 영화를 본 사람은 말이야......」
    「얘 얘. 그만 그만. 쉿! 쉿! 안 돼. 안 된다고. 응?」
    「뭐야? 아 뭔데 그래?」
    「아무것도 아니야. 그거 보면 오빠랑 얘랑 결혼하게 된다는 예언도, 신기한 초능력이 생긴다는 가설도, 광란의 모험에 빠져 허우적대며 마법의 구두를 신게 된다는 저주도, 모두, 없어. 다만 이건 있다. 맞네. 그러네. 인생이 바뀔 듯한 신비감. 기꺼이 환상머신을 사랑할 테다 라는 소망. 현실을 망각하게 되는 미지의 최면. 그리고 요술 공주가 천명하는 궁극의 행복감까지. (딱)! (쉭─쉭─쉭)! 어때? 응? 보고 싶어, 보고 싶지 않어?」
    「너의 그 단편영화에 대한 애착은 이미 다정해버렸는데, 그런데 어떻게 내가 보고 싶지 않을 수 있겠니? 그러니까 그걸 보면 경망스런 회상을 씻을 수 있다고? 활기찬 의욕의 부품과 천재적인 착상의 바쁨은 덤이고? 나도 다 알고 있었어. 벌써 소문이 자자하더구만. 각종 영화제에서 벌써부터 초청 받은 거 아니니? 나중 말이야, 오빠가 어디 가서 막, 어? 그런데 대실망했지 뭔가! 라~고 추문을 퍼트리고 다니지는 않을 테니, 마음 놓으시게. 응. 그래. 일단 보자. 먼저 보게. 어서 보자고. 아 대체 뭐길래......」
    나는 파티장에서 노트북을 들고 구석지의 구석지를 찾아갔다.



   28
 
    수상쩍은 직감은 불길한 모험의 시작을 예감했다. 하지만 추측되는 불행은 감수할 정도를 훨씬 상회했고, 다행스러운 재미는 기쁘게 측량할 만큼이었다. 따라서 나는 우연찮은 탐방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망설임은 잠시였고 행동은 결연했다. 미지의 쾌감을 연상시키는 향수는 뭔가를 캐내고자 하는 욕망을 자극했으니까. 그러나 내가 봤던 단편영화는 꿈의 호텔도 낙원의 이상향도 아니었다. 처음에는 뭔가 있을 듯 해서 좋았는데, 결국 괜히 혼자 좋다 말았다.
    한마디로 그녀의 단편영화는 그랬다. 제목은 있었고, 내용은 없었다. 재미도 더럽게 없었다. 또 없다-였다.
    그렇지만 기존의 머머하는 법을 전혀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꽤 신선했다. 퍽 새로웠다. 솔직히 많이 흥미로웠다. 내 친구들 얘기와, 내 주변의 장소와, 내 친구의 목소리로 나레이션에 뭐에 뭐에, 그랬으니 재미가 없을 수 없었다. 그래도 평점을 후하기 주기는 아까웠다. 그러나 나는 그녀들한테 거짓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영화 완전 재밌다, 내가 지금까지 본 단편영화 가운데 단연 최고다, 라고 말하면 조롱으로 받아들일 테니 적당하게 칭찬했다.
    그 후 우리의 파티는 괜찮았다. 나는 호강했고, 나는 남자들의 으쌰으쌰로 좌천되지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경솔한 일이...! 왜냐하면 에밀리의 그 요상한 마술을 어느새 로즈마리는 물론 다른 친구들도 따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끝까지 믿지 않을려고 했다. 그럴 수는 없으니까. 그런 말도 안되는 속임수로 내가 막 놀라고, 흥분하며, 신기해 한다라... 어떻게 보면 그건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마술적 신비주의는 내 분야인데, 그런데 그녀들이? 아니 될 말이다. 그 대단함을 딱 인정하는 순간 난 비 맞은 생쥐가 되어버리는 거니까. 어디 그 뿐인가? 얌전한 인생 내내 어떤 기회를 기다렸다가 깡총거리며 참지 못한 채 신비 속으로 뛰어들었다가 절망한 토끼로 전락하는 거다. 그런데 문제는 난 어느 때부턴가 벌써 그녀의 마술을 부러워하고 있었다는 점.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앙코르~!」
    「뭐, 앙코르?」
    「오빠한테도... 통할까?」
    「정말! 그래도... 될까?」
    「아니야. 우리 그건, 하지 말자.」
    「그래. 그건 정말 아니다. 거기까지는, (손짓 노노노노노) 아니야 아니야.」
    「아니긴 뭐가 아니야? 나 기분 상했어. 주제 넘게 보이고 싶지 않아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난 괜찮다구. 내가 괜찮다는데, 아니 왜? 왜 나한테는 안 통할까 봐 겁나? 그런 거야? 어? 허허허허허. 그런 거네. 정말 그런 거네. 푸하하하하하. 으하하하하하. 음하하하하하하하. 내 그럴 줄 알았다. 그럼 그렇지. 난 또 뭐라고!」
    「오빠 지금 우리 놀렸어요?」
    「놀리기는. 아니야 아니야.」
    「그게 그거잖아요.」
    「아 아니라니까. 크크크크큭. 키키키키킥. 호호호호호.」
    일은 그렇게 시작됐다. 난 완전 말려버린 것이다. 처음부터 엮여들도록 작전이 치밀하게 구상됐을 테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그렇게 착착 감겨버릴 수 있지? 게다가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고. 그런 밑도 끝도 없는 속임수를... 아니 어떻게!
    잠시 후. 나는 로즈마리의 손이 내 가슴을 통과하여 그녀의 어떤 손동작을 거울로 본 순간! (딱) 막 에밀리의 허벅지가 대리석으로 보였고, 누구의 얼굴은 말 머리로 보였으며, 또 누구는 꼬리가 아홉개라며 내가 막 숫자를 세게 되었다. 심지어 평소의 내 흑심 때문이었을까? 누군가는 새의 머리, 개의 몸, 소의 꼬리를 결합한 체로 날 보고 있었다. 자길 안아주라는 거야 어쩌란 거야! 그처럼 나는 정신을 잃고 쓰러지고 말았다. 나는 쓰러진 줄도 모르게 쓰러진 거였다. 환각은 꿈으로 스르르륵~ 연결되어버렸으니까.



   29
 
    나는 최근 친구들을 만나 사랑가를 부르고 이별주를 마셨다. 그러나 타인의 연애사가 내 삶의 주된 관심사일 수는 없었다. 친교의 정다움으로 우정의 의무를 다할지언정 때로는 가식이 최선일 때도 있을 테니까. 때문에 나는 유난히 연애소설을 애독하거나 멜로드라마를 즐겨 보지는 않았다. 단지 어느 삼류 인생의 한량 은퇴식에 갈 것인가, 아니면 사교적인 가면무도회에 얼굴을 비출 것인가, 둘 중 무엇을 선택할까 고민했을 뿐. 하지만 그 둘 다 별로일 거라고 나는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즐거운 인생 행복한 기쁨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해봤다. 재밌게 사는 법을 알려주는 동기부여 강연회에 가볼까, 아니면 바람둥이의 3박자를 완성하도록 도와주는 학원에 등록해볼까. 미래를 점성술에 의탁하고 순진한 여-바텐더를 꼬시기 위해 기를 쓰느니, (그건 또 그 나름의 의미는 있겠지만) 차라리 이러는 게 나을 것이다. 조류학을 공부하고, 환상론을 연구하며, 오락산업의 한 지류에 도전하는 일. 그렇게 나는 아마추어 대회에도 나가보고, 프로 세일즈맨도 해 봤으며, 허풍 대회까지 주최해 봤다. 그러나 다 소용없었다. 그러니까 만화책을 읽으며 일광욕을 하기 위해 해변으로 떠나봐야, 별은 쏟아지지 않고 여복은 쭉지를 펴며 전성기를 맞이하기 어렵다. 귀빈관이라는 이름의 술집에 단골이 되고, 르누아르와 모네-마네가 걸려 있는 골프장에 들락거려도, 스타벅스와 버거킹 점원은 날 짝사랑해주지 않았다. 새침한 기집애 얄미운 그녀! 그렇다고 이제 와서 내가 직접 유니폼을 입을 수도 없었다. 심지어 뒤늦게 게임에 취미를 붙이고 소비에 중독되어 봐도 재미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나는 이처럼 심난한 내 마음을 글로 써봤을까? 써도 너무 많이 써서 문제였다. 괜히 속으로 흐뭇하게 만드는 그 '다'자로 시작하는 낱말들을 떠올리기도 이젠 귀찮다. 일기도 질렸다. 가택감금도 짜증난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건 여행 밖에 없단 말인가? 만약 그렇다면 그건 너무 시시하다. 왜냐하면 진짜로 그렇다면 그건 둘 중 하나일지도 모르니까.
    헛살았거나 막살았거나!
    따라서 나는 이제야말로 드디여 기발한 신비주의를 창시하기로 했다. 새로움의 끝, 색다름의 무한함, 신기함의 마지막, 놀라움의 무궁무진함을 위하여!
    그러나 환상적인 새로움은 푼수끼 가득한 여주인공이자 어떤 상남자의 짜디짠 인색함마냥 나에게 다정하지 않았다, 라~고 체념하면 어떡하지? 그건 그때 가서 보기로 하고 나는 일단 무엇을 할 것인가 생각만 할 게 아니라, 뭐라도 저지르고 행동하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행동하기로 딱 마음을 정하고서 눈을 떴는데, 나는 로즈마리네 집에서 도망칠 때 만났던 레너드의 작업실에서 눈을 떴다. 이상한 마술에 걸려서 반나절의 반쯤인지 아닌지 그 시간이 통채로 날라가버린 것이다.
    그 다음에 레너드의 인기척이 들려서 나는 아무런 생각없이 뒷문으로 도망갔다. 왠지 들키기 싫었기 때문에 몰래 도망쳤다.
    그리고 나는 전화로 존티를 불러냈고 집으로 돌아갔다.



   30
 
    오늘 아침에 나는 늦잠을 잤다. 그렇게 일상을 시작한 다음 커피를 마시며 생각했다. 내가 사무실에 들린지가 오래 됐음을. 그래서 나는 사무실로 출발했다.
    사무실에 도착했다. 저번에 누구더라 이름이 잠시 떠오르지 않는데, 그 친구 때문에 괜히 헛바람 들어서 나는 이미 일을 저질러버렸다. 그 파란색 레이저 설비, 완전 최저가 저급 설비를 내 사무실에 설치한 것이다. 그래서 버튼을 누르면 저처럼 파란색 레이저가 보이게 된다. 물론 그걸로 지켜야 할 입이 떡-벌어질 만한 뭔가는 없다. 전혀 없다. 이걸 대체 뭐라 그러냐? 바로,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일이라고 한다! 그래도 괜히 나는 흐뭇했다. 그 다음에 그 다음에, 그래서 그래서... 뭐 어떻게 되지는 않았다. 목 부분이 늘어진 허름한 티셔츠와 애기 기저귀 무늬 팬티, 실크 블라우스, 체크무늬 면바지. 그것이 죄수복인가 아닌가는 몰라도 내가 하는 일은 그랬다. 외계인이나 좀비가 나오는 영화를 보고, 타임머신이 등장하는 미스테리아를 읽으며, 환상머신을 특별하게 꾸밀 거짓말을 쓰고 있었다.
    세상은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A는 독학해도 되고, B는 학원이 좋으며, C는 경험자의 조언이 최고라고. 때문에 나는 어렸을 때 그렇게 생각했다. TV는 내게 어떤 막연한 내일의 행복을 예고해주었고, 따라서 나는 푸른 바다 위의 분홍색 보트 같은 다가올 장밋빛 인생을 추리했다. 그 후 내가 습득한 건 두 가지로 나뉘었다. 첫째 그동안 습득한 예술-문학-오락산업의 가르침 - 어른 흉내내기 및 잔지식, 둘째 바람둥이의 허풍과 한량의 농담. 그 결과 나는 전자와 후자는 큰 차이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나 세상은 저절로 인생의 비밀을 터득하게끔 내게 결코 인자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분위기 좋은 NC의 황홀한 쾌감과 친구 파도타기, 그리고 운명적인 사랑을 위한 방황을 지속할 수 밖에 없었다. 재밌는 미래를 예측함과 숙녀를 향한 탐구심만으로 즐거운 인생은 이루어질 수 없을 테니 말이다. 그렇게 해서 나는 지금 플레이보이의 4대 요소를 어느 정도 이루었을까? 그랬으면 얼마나 좋겠나! 그렇다고 썩 불만족스런 성적표라며 딱히 불쾌해 하는 건 아니다. 그런데 세상사를 쥐락펴락하는 인생론을 논하면서 무슨 3박자니 뭐니 그 얘기가 왜 나왔지? 허허허. 아 글쎄 내가 그 이유를 진작에 통달했다면 지금 그랬을지도. 즉 직접 칼럼을 쓰는 게 아니라 자서전을 대필시킨다랄지, 아마도 동기 부여 비디오도 찍고, 어쩌면 에로... 아니 멜로영화나 시민-환경 단체를 이미 후원하고 있었겠지.
    그래서 하는 말인데, 나는 이미 순서가 틀려버렸다. 그러니까 나는 듬직한 학력도, 출중한 경력도, 아찔한 지성과 눈부신 미녀와의 찐한 연애 등등 저 3인지 4인지를 모두 놓쳐버렸다. 안타깝게 라고 거짓말도 차마 못하겠다. 그렇지만 남은 건 있다. 이를테면 잔재주와 인생 경험, 배우 수업 같은 것들. 이처럼 나는 투정 어린 수다도 아니고, 소망이 귀여운 취미 바꾸기도 아니며, 억측과 불만으로 가득 찬 일기도 아닌 뭔 이상한 글을 쓰는 작가가 되어버린 것이다. 왠지 모르게, 어딘가 모르게, 뭔지도 모르게 말이다. 하지만 나는 내가 쓴 인문교양서가 나오면 자필 사인을 기다리는 친구와 동생들도 있고, 멋진 연애소설의 탄생을 애원하는 단 몇십 명의 팬클럽도 거느렸다. 흐흠, 흐흠! 그러나 팬클럽 회장 롭과 나는 어느새 술친구가 되었고, 그 간사한 우정으로 판단하건대 고 앙증맞은 인기마저 나의 허망한 착각임을 알게 됐다. 거 참 나! 그래도 나는 아직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게 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정녕 어떻게 살고 싶은지조차 아직도 잘 모른다. 그러나 나는 뭔가를 어떻게 생각하고 인생이란 무엇이다, 정도는 말할 수 있다. 빙고!
    그러므로 나는 이제 정말로, 진짜 본격적으로, 장난이 아니라 심각하게 환상론이라는 누보 로망을 쓰기로 했다. 하다 하다 스포츠 칼럼계에 기웃거리고, 너네들 진짜 가지 가지 한다면서 또 타인의 부탁을 넙죽넙죽 잘도 들어줄 게 아니라. 말하자면 나는 여자들에게 사랑의 완성을 묻기 위하여, 남자들에게 행복의 정복을 따지기 위해서 새로운 장소로 떠나기로 했다.
    또?
    아무튼 이번에는 그 어떤 신기루를 만날 것인가, 과연 기대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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