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할 것인가
굳이 알맞는 제목을 붙이자면 '어른들의 여가생활'쯤 되겠지만 그러면 왠지 고루하고 심심한 먼지쌓인 고풍스런 가구 느낌이 나서 제목만 바꿨다. 똑같은 제목의 러시아 소설까지 있다. 정말 무엇을 해야할지 아득한 사람은 먼 섬나라로 날아가서 띠기딕띠기딕 조랑말을 타거나 그냥 강남스타일 노래 틀어놓고 말춤을 춘다거나 이런 이상한 얘기를 보기만 해도 된다.
사람들은 미술관에서 작품을 감상하다 말고 영화관에 가기도 한다. (영화 500 Days of Summer) 사람들은 극장에서 영화를 보다 중간에 나오기도 한다. 사람들은 연애를 하다 헤어지기도 한다. 또 사람들은 사랑을 혹은 결혼을 해서 살다가 헤어지기까지 한다. (이거 예전에 한번 썼던 것 같다) 그리고 사람들은 책을 읽다가 중간에 끝까지 읽기를 포기한다. 최근에 어떤 책은 끝까지 읽고 어떤 책은 읽다가 중간에 재미가 없어서 그만 읽었다. 그래도 된다. 그럴 나이가 되었다는 뜻이다. 아마추어의 특권이 무엇인가? 재미없으면 나에게 맞지 않으면 그만두어도 된다는 것이다. 일요일 TV에 나오는 출발 비디오 여행에서 영화를 소개해 주는 평론가가 영화를 보다 중간에 그만둔다?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소리다. 고품격 문학상 심사위원인 소설가가 좀 덜 재미난 작품을 중간에 그만 읽는다? 꿈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메이저리그 야구선수가 아이스하키나 농구만 하고 논다? 직업을 때려치우겠다는 심산이다. (물론 골라서 보기도 하고 개인 취향도 있겠지만..) 즉 어른들은 어느 정도 이상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만 즐기면서 살 권리가 있고, 어른이 아닌 소년소녀보다는 경험해 볼 수 있는 세상사의 범위가 더 넓고 깊다는 것이다. 물론 공식적으로만!
일본 소설들의 공통점 가운데 하나는 제목이 참 고상하다는 것이다.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뭔가 궁금증을 불러일으켜서 눈길을 잡아 끌어 책을 나도 모르는 사이에 펼쳐보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그래도 일본 소설을 많이 읽어보지 않아서 그런지 일본 소설을 읽는 것보다는 개패에서 일본 사람들의 대화를 엿듣는게(?) 더 재미있다. 왜냐하면 일본드라마나 일본영화를 느긋하게 감상하는 기분에서 더 나아가면 일본 사람과 연애하는 상상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중간한 나이라서 그런지 김수현 작가 드라마는 재미없다. 또 김난주 번역가의 일본 소설도 읽기에 겁이 난다. 거꾸로 말하자면 평판이 훌륭해서 대중에게 인기있다는 것이다. (별로 안봤겠지만... 세월이 지났으니 또 다르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이런 타입 결코 적지 않다. 당신의 친구들 가운데 2명중 1명은 이런 꽈다. 그들에게 물어봤을 때 아니라고 한다면 맛난거 사주면서 잘 구슬리면 눈물을 흘리면서 실토할 것이다. 숨기고 살아오는 동안 힘들었다고!
차분하고 이성적이면서 상당히 수준 높은 단문을 원하는 아저씨라면 Bertrand Russell을 읽으면 된다. 만약 당신이 뉴욕타임즈와 아마존 베스트셀러 또는 전 세계 유수의 언론사들이 동시에 광분하는 책 가운데서 자기 마음에 쏙 드는 정도의 밑줄 긋기 문장만 딱 그 부분만 개인 수행비서가 읽어주기를 바라는 아가씨라면 (시간 때문이랄지 귀찮아서랄지 아무튼) 고민하거나 괴로워 할 필요가 전혀 없다. Magazine이 있기 때문이다. Magazine의 재미난 글들과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의 차이는 뻥을 좀 보태면 종이 한장 차이다. 실제 그렇기도 하다. 왜냐하면 슈퍼맨의 Kryptonite는 희귀할지 몰라도 개패에서 사람들이 얘기하는 콤플렉스는 비슷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남녀가 이성을 (또는 동성을) 보는 기준은 대개 비슷하다. 동네 야구에서 아이들은 투수와 타자를 선호하지 허수아비처럼 외야 수비만 하고 싶지는 않아 한다. 학교에서 체육시간에 학생 절반은 메시고 나머지 절반은 호나우두다. 그래서 나와 남의 교집합은 큰 의미가 없다. 따라서 우리는 내가 남과 다른 지점을 잘 알아야 한다. (말이 그렇다는 소리다)
직업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들은 이런 주제만 가지고도 너끈히 원고지 5,000장 분량의 글을 식은 죽 먹기로 쓸 수 있다. 그분들에게 이 정도는 정말 누워서 떡먹기다. 하지만 아무래도 이쪽은 그런 빼어난 재주가 없다보니까 또 SF영화처럼 어딘가로 사라질 수는 없으니까 괜찮은 영화를 애써 찾아보고 희미한 기억도 떠올려보고 뜬금없이 소설도 막 읽으면서 연결 안되는 이야기들을 모아서 도르레와 도미노 이미지의 3류 B급 스토리를 만들어낸다. 교집합 바깥 변두리 영역을 뚜렷하게 밝히려 하기 위해서라면 절반은 거짓말이겠지만 그렇다고 해두자. 내 맘이다.
각 언어들에도 남성명사, 여성명사가 있듯이 운동화와 자동차, 핸드폰, 예술 작품등에도 Sex, Gender, Period, Genres, Color등 다양한 성격이 있다.
Alain Robbe-Grillet? 뭔가 너무 심각하다.
Marguerite Duras? 안그래도 잠을 많이 자면서 살고 있다.
Franz Kafka? 중년을 앞두고서 읽기에는 좀 그렇다.
그렇다고 그리스 로마 신화를 다시 읽을 짠밥도 아니다.
지금 이 순간 시를 읽기에는 이제 보는 눈도 많아서 쉽사리 마음도 안내키고 좀 슬플 것 같다.
Fantasy 영화? 이건 피곤하다. 미래에는 각 나라의 고전동화가 전부 다 영화로 나올 것이다.
그래서 최근 읽은 작품이 '대기 불안정과 그 밖의 슬픈 기상 현상들'이다. 약간 남성적이면서 다른 형식의 변화로운 모습을 담고 있는 여자 작가 Rivka Galchen의 소설을 보니까 작가의 서술이 독자의 생각과 또는 환경과 약간 맞물린다는 느낌이 좋은 것 같다. (책 딱 1권 보고 작가를 잘 아는 척ㅎ) 특히 중간에 그 얘기 괜찮았다. 수없이 많은 탐정, 추리 소설을 모두 던져버리고 영화 실종자의 해리슨 포드의 마음을 비유한 부분! 또 개의 이름도 그렇고 보이지 않는 세일러문의 요술봉에 의해 발생했을지도 모르는 거대한 어떤 알 수 없는 사건의 전개와 그걸 마주하는 참을 수 없지만 끝까지 코믹으로 넘어가지 않는 진지함까지. 그래도 얼빵한 신삥 가짜 고릴라가 아닌 어른들은 세계 어딜가나 비슷할 것이다. 특히 코가 빨간 루돌프 아저씨들 말이다. 사실 이건 잘 모르지만 Kagemusha처럼 능청스럽게 아는 척 해보는 것이다. 다음에는 남극 지하 비밀기지 주변처럼 얼어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심하게 설레이게끔 들었다 놨다 떨릴 수 있도록 만드는 작품을 읽어봐야겠다.
한국 어느 야구장에서 자연산 도다리에 소주를 드시는 아저씨, 야채 크래커를 경기장 안으로 던지면서 "야 외야수 안되겠다. KIA 자동차 디자인 연구소 낙하산 알아봐줄께."
미국 Cowboys Stadium에서 칠면조 그리고 개인 조제 위스키를 수통에 담아 몰래 마시는 아저씨 "거기 Dallas Cowboys 몇번 가서 밀러 식스캔이나 팔지 그래."
영국 Stamford Bridge에서 폭탄주(Guinness + San Pedro 1865)를 콜라 피트에 담아 마시는 아저씨 "어이 미드필더 아저씨, Samsung 회사 아마추어 팀에 자리 알아봐줄께."
굿바이 동물원/강태식
바나나를 던져주는 관람객들을 보면서, 관람객들이 원하는 게 뭘까? 생각했다. 바로 결론이 나왔다. 사람들은 동물원에 오면 자기중심적으로 변한다. 그러니까 관람객은 자기중심적인 동물이다. 지구가 자기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동물원에 온 관람객들은 생각한다. 그래서 동물들이 자기를 봐주기를 바란다. 자기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자기가 던져준 바나나를 먹기를 원한다. 진짜 고릴라라면 그런 건 당연히 신경 쓰지 않는다. 뭘 봐, 시끄러워, 배불러 등의 반응을 보이면서 관람객들의 바람을 저버릴 수도 있다. 그게 진짜 고릴라다. 관람객들이 실망하건 말건, 그래서 관람객들의 수가 줄어들건 말건, 그 여파로 동물원의 경영에 지장을 초래하건 말건, 진짜 고릴라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진짜 고릴라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