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칼럼: 누가 시간이라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리는가.

Spafinale 2018. 12. 22. 14:39

    풍요로움은 기하급수적으로 발달했는데. 그런데 왜! 왜 고전음악, 고전미술, 문학을 비롯해 예술은 현대에 접어들어 타율이 정반대로 바뀐 것일까? 왜냐하면 오락산업 때문이다. 자본주의 라는 규모 때문에. 옛날에는 보고 듣고 논하는 교양미가 그만그만했을지언정 한마디로 고상했다. 사교계도 격식이 준엄하고. 비록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이 정식으로 인정 받기까지 장장 100년이 걸렸을지라도 시대를 앞서가는 거 빼고는 대체로 그랬다. 그렇지만 과거는 그랬고, 오늘은? 교복에서 사회, 학계와 상업, 동화와 유행가, 야생마와 마권업등등 A와 B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낭만적인 사랑과 아름다운 인생의 X-Y-Z는 알고 봤더니 어설픈 사랑의 3박자라니, 뭐 더티러브? 저런 저런 저런! 뿐만 아니라 우주산업과 천문학에다, SF 영화는 시간 여행이요 엉뚱한 소설은 걸핏하면 환상머신을 잡고 늘어진다. 곧 넓고 다양하며 심원해지기만 한 게 아니라 뭐든지 몰입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상큼한 숙녀에게는 지독한 사랑을. 로맨티스트가 즐비하니까 드라마퀸이지 않을 수 없고. 그리고 애청자의 관심을, 팬들의 열망을, 구독자의 호의는 필수인 것이다. 넓고 다양하며 심원한데, 그런데 그 모두가 내게, 그대에게 열정으로 똘똘 뭉친 몰입을 갈망한다고? 하루가 48시간이라도 부족하겠네. 나는 아니라고 해도 얽혀 있는 세상 그럴 수 밖에 없다. 변심은 정해진 수순이다. 상술도 과학이니까. 예술, 농담, 장난이면 뭐든지 절반은 먹고 들어간다.
    그 때문일까?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몰입이 강렬하면 쾌감도 강렬하다. 세상사는 절제를 권하지만 중독이라는 마성도 내 편인 것이다. 그러니까 소비제의 품질은 소비제를 만드는 인력의 생산력 및 품위와 비례한다. 쾌락마 명예의 전당에는 그것이 있다, 돈 쓰는 재미! 플레이보이계의 수많은 명언 가운데도 그것이 있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나는 놈 위에 하는 놈! 취미도 몰두가 강렬한, 즉 시간을 죽이는 취미가 최고다. 물론 부인들 표정은 좋을 수가 없겠지만. 어디 그것만? 책 제목에도 벌써 옛날부터 죽이기가 들어갔고, 작품들에서 죽음은 일상일 뿐이다. 1세기 전에 알베르 까뮈의 칼럼이던가, 거기에 나오는 말. <세상은 언제나 옳다>가 1세기 후에 단편 <나는 언제나 옳다>로 바꼈을 뿐.
    결론은 방대한 세상사요 천문학적인 관심사, 속고 속이는 세계에서 나의 주인은 내가 되어야 한다는 것. 내 인생이 문명의 발전에 희생될 수도, 그 어떤 대의에 일부 기여할 수도 있겠지만 일단은 그렇다는 것이다. 보이저2호가 태양계 바깥으로 진출한 것처럼 영면한 선인의 넋에게 삼가 명복을 기원함이 마땅하다. 그러니까 내 코끼리 귀, 내 의지, 내 마음, 내 심성, 내 성격, 내 시간, 내 돈, 내 꿈! 시나브로 어쩌다가 하나둘 바깥으로 내 것을 이양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다. 나중 결과적으로 양이 새가 되던가, 표범은 곰이 되던가, 배가 산으로 가던가! 물론 시간을 돈으로 사는 것처럼 바깥으로 이양하는 게 유리할 때도 있다. 예는 생략하고. 곧 1차적으로 내 일의 결정권자는 나인 만큼 기수가 열정마에게 재량권을 심하게 부여하면 녀석은 유혹에도 혹해야 하고, 놀이공원에 가서 회전목마도 만나야 하니까 녀석이 광마가 될지 광견이 될지는 모르는 것. 유행가, 드라마, 소셜 네트워크, 베스트셀러, TV시간표등 멍하니 오락산업이 정해놓은 인생만 사는 수 밖에. 말하자며 현대인은 12명의 애첩을 총애하는 로마의 제5대 황제 네로가 아니니까 기수는 정신을 차려야만 한다. 탐스런 1개의 사과를 따먹으면 사랑스런 1개의 연분홍 장미는 포기해야 하는 것. 그게 인생이니까.
    하지만 이론과 실제, 프로와 아마추어가 같을 수야 있나. 아마추어 레슬링이 경제학이라면 프로 레슬링은 오락산업이다. 그래서 우리는 어복도 1등, 여복도 1등, 재물운도 마다하지 않고, 뭘 해도 풍년이자 1등을 원한다. 촌닭&뱁새 지수가 높을수록 말이다. 허풍 대회에서 예선 탈락하고서 신부들러리 대회에 기웃거리는 거지. 심지어 하다 하다 가난해서 천만다행인 경우까지 드물게 있을 테고. 어쨌든, 뭘 좀 알건 뭘 좀 모르건 그건 그분들 인생. 미개하든 우수하든 무대가 어떻네 라는 의사는 내 마음이지만, 불미스럽든 교양적이든 타인의 일은 남의 일. 단, 내 생각이라는 범위 안까지만 관여하고 작든 크든 내 구체적인 행동으로 개입하는 건 성문헌법 및 사회적 합의, 인성, 예의, 상식, 도덕과 윤리의 기준에 따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