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 102
구글 캘린더에 기록된 일정은 없었다. 받고 싶은 상이 아동문학상으로 바뀌지도 않았다. 환상 문학지 미스테리아는 책상 위에서 주인님께 사랑 받지 못한 채 먼지만 쌓여갔다. 새로운 진공청소기가 출시되었고, 아직 그 인기는 미풍에 불과했으며, 따라서 나는 무슨 나이저가 품절이라는 어떤 동향에 힘입어 새로운 진공청소기를 사기 위해 어느 판매점 앞에서 텐트를 치고 기다려야 했다. 왜냐하면 신제품 진공청소기의 인기를 미풍에서 선풍으로, 선풍에서 강풍으로 드높여야 하기 때문이다. 마치 보이지 않는 풍선이 허공에 떠다니는 헛것을 본 마냥. 그러나 그건 얼핏 스쳐지나간 생각이었다. 나는 그렇게 문학적 상상력이 뛰어나지도 않고, 그런 쓰잘 데 없는 공상에 꽤 타산적인 어른도 아니니까. 그러니 나는 차라리 이야기꾼보다 장사꾼을 해야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흥정의 재미를 채 터득하기도 전에 폭삭 망하고서, 아 사업은 결코 쉬운 게 아니로구나 라며 정신을 차릴 테니까. 어쨌든 글이 잘 써지는 것도 아니고, 어울리지 않게 혼자서 어리광에 투정에 혼잣말만 늘어서 큰일이었다.
곧 이 전형적인 일련의 패턴은 떠남을 의미해야 마땅하나, 이번에는 내가 미처 만반의 준비를 갖추기 전에 나를 여기서 꼼짝도 못하게 만드는 예사롭지 않은 일이 발생한 것이다. 궁금하고 알고 싶고 어쩌면 보고 싶기까지한 어떤 신비로운 분위기를 간직한 여자가 우리 동네에 출연했던 것이다. 그러나 저번처럼 내 옆집이나 앞집으로 이사오지는 않았다. 그래서 서운하다는 뜻은 아니고 그냥 그렇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여자가 몰지각하지 않고 매우 예의 바르며, 차갑거나 도도하지도 않고, 무척 다정하며 매혹적인 기운을 내뿜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여기 온지 얼마 되지도 않아 거의 모든 동네 청년과 우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아버렸다. 즉 내가 3년간 각고의 노력으로 어떻게 겨우 일구고 겨우 확보한 남자들만의 친교와 뭇여심을 뒤흔드는 교우까지 모두, 그녀는 단 3일만에 거뜬히 거머쥔 것이다. 그러니 내가 기쁠 리가 있겠나. 얘 뭐지 라면서 나는 탐구 과제가 생겼다면서 좋아했고, 우리 동네의 올해의 신인상과 깜찍상─아차상─인기상과 우수상까지 한꺼번에 그녀가 독점할까 봐 난 바싹 신경이 곤두섰다.
다행스럽게도 그녀는 나와 같은 업계에서 일하고 있었다. 이름은 로잔나. 나이는 대충 30. 장르는 SF였고, 지식은 나보다 아는 게 많은 느낌이 들었다. 대적하기 부담스러운 감이 없잖아 있었으니까. 본업은 소설가에 영화부터 작사에 화가에 코메디 극작가, 방송인에 뭐 뭐 정말 다방면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었다. 요즘 나와 친한 사이먼과 머큐리와 가펑클과 브랜든까지 모두 그녀의 고혹적인 모습에 홀딱 넘어갔다. 그녀는 재주도 많고 웃기고 돈까지 많았다. 활동 무대도 넓었고, 활기와 열정과 정력까지 출중한 걸로도 모자라 몸매까지 풍만했다. 어머나 어머나.
나는 솔직히 따지고 싶었다. 그렇게 요조숙녀처럼 굴지 말고 본색을 드러내라고. 우리한테 왜 접근했냐고. 그러나 아직은 로잔나의 숨겨진 의도에 대해 반의 반도 예측할 수 없었다. 따라서 지금은 하는 수 없이 관망해야 할 시기였고, 때문에 나는 일단 그녀를 지척에서 지켜보기로 했다.
2
로잔나가 어떤 행성 충동설에 대해서 얘기하면 녀석들은 상식과 과학은 뒷전인 체 모두 호응하며 환호와 갈채를 준비하고 있었다. 나는 녀석들의 그렇게 열성적인 모습은 처음 봤다. 미세 중력장을 조절하네 어쩌네, 자기가 쓴 책을 나눠줄까 물어봤고, 동네 청년들은 극구 사양하며 직접 서점에서 로잔나가 쓴 책을 구입하기까지 했다.
로잔나는 세례명이 안데르센이라고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자기를 부르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 타락한 거네. 어쩐지 처음부터 수상하더라.
「위선이란 악이 덕에 바치는 찬사인 거죠.」
나만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시인인지 철학자인지 어느 옛 사람이 했던 말이란 걸 지적하고 싶은 욕구가 목젓에 턱 하고 걸렸던 점. 그런데 그녀를 알게 된지 얼마나 됐다고 내 친구들은 모조리 그녀의 꾀임에 빠져 로잔나의 본가에 다녀왔다. 나만 쏙 빼고. 물론 일정 때문에 난 자연스럽게 외면 받았지만, 설사 같이 가자고 애원했더라도 난 거절했을 것이다. 녀석들은 사유지가 어떻다는 걸 처음 알았네, 어떤 건물을 대학교로 착각했네, 분수대의 조각상은 대체 얼마나 오래된 어떤 기법으로 누가 만든 작품이냐며 동네 청년들은 모두 꼭 넋을 잃은 듯이 오직 찬양 일색이었다. 저러다 한번에 훅 넘어가는 수가 있는데 모두 정신을 차리기 싫어하는 듯 했다. 물론 나는 그 어떤 핀잔도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었다.
「넌 왜 미운 오리 새끼처럼 혼자 놀고 그러냐? 꼭 일부러 바쁜 척 하는 거 같은데 말야. 너 사춘기도 아니잖아? 만나는 여자, 없잖아. 그런데 너 요즘 왜 혼자 노는데? 대체 왜 우리랑 어울리지 않냐고. 우리가 뭐, 챙피하냐? 어?」
어떤 날은 단체로 분홍색 옷을 맞춰입었다. 나 말고 모두 다. 촌스럽게 말이다. 그런데 그날 나만 하필 우중충한 색깔의 옷을 입고 있었고, 고의는 아니었으나 한숨과 아쉬움과 섭섭한 눈초리는 피할 수 없었다. 난 원래 그녀의 사이비 교주 같은 느낌이 왠지 꺼림직했는데 우린 어쩔 수 없이 영영 멀어질 수 밖에 없는 운명인 것만 같았다.
이제 나는 거의 당연스럽게도 왕따였다. 누가 같이 놀자고 찾지도 않았다. 하지만 딱히 경쟁 구도까지는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슬슬 조바심이 일었고 걱정 돼기 시작했다. 친구를 빼앗긴 건 아니지만 녀석들이 이 시절을 나중 회상할지 후회할지 그게 염려될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로잔나 일당은 1박 2일로 여행을 떠났다. 당연히 마을은 텅텅 비었다. 그래서 나는 홀가분했고, 친구들 가게를 대신 봐 주면서 동네의 모든 술집과 빵집과 찻집과 아이스크림 가게를 내 손으로 쥐락펴락했다. 그러다 아이스크림을 너무 많이 먹어서 배탈이 났다. 하지만 나는 쉴 수 없었다. 왜냐하면 로잔나의 정체를 알아내야 하니까. 그래서 나는 로잔나의 집으로 갔다. 그녀의 집 앞에는 웬 스핑크스 모형이 있었다. 지가 무슨 클레오파트라야 비너스야? 그렇다고 무단 침입은 감행할 수 없었다. 혹시 친구들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모를까. 물론 로잔나파는 다음 날 돌아왔고 나는 뒷일을 도모하기로 했다.
3
나는 소설을 쓰기 위하여 일부러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바깥에 나가 동네에서 마른 오징어 취급을 받느니 오히려 집에서 혼자 대학생도 되었다가, 청춘을 부담스러워도 했다가 흔해 빠진 독서를 하는 게 더 나을 테니까. 그러나 나는 인내심이 부족했다. 그래서 나는 집을 나섰다.
역시나 밖에서 날 기다리는 사람은 없었다. 오늘은 로잔나파가 해변에서 무슨 단체로 춤을 추면서 괴상한 작품을 찍는다는데 나도 따라할 걸 그랬나? 아니다. 일없다. 난 나다. 난 괴짜도 돌아이도 아니다. 처음부터 로잔나가 선녀였다면 모를까, 처음부터 로잔나가 선녀였다면 나의 어떤 강직함이 더욱 고고해보였을 텐데 그건 그거고, 안되는 건 안되는 거다.
그러나 오랜 외출에 따른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걷고, 먹고, 아는 사람을 마주치면 간단히 인사만 하고, 공원에 갔고 호수를 봤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딱 한 가지 좋은 소식을 들었다. 바로 로잔나파가 누드 자전거 타기 라는 행사에 다녀온다는 소식을 알게 됐다. 도심 한복판에서 모두 옷을 벗고 자전거를 탄다고? 그럴 수도 있겠다. 웃고 놀자는 행사니까. 존중하면 그뿐. 그러나 그 날은 내게 놓칠 수 없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날 나는 로잔나의 집에 들어가서 로잔나의 정체를 샅샅이 파헤치고 말 테다 라고 다짐했다.
그런데 좀 섭섭하긴 하지만 과정은 생략하고 결과만 말하자면 몇 일이 지나서 그날이 됐고, 내가 로잔나의 집 문을 따고 있을 때 나는 듣게 됐다. 누군가 뒤에서 나를 부르는 상냥한 목소리를. 그녀는 바로 로잔나였다. 이번에도 실패였다. 다음을 기약하는 수 밖에.
난 괜히 초등학교 때의 어느 기억이 떠올랐다. 초6때 우리 반 공금이 사라졌고, 선생님은 모두 눈을 감고 가만히 당사자만 손을 들라 했다. 손을 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수소문 끝에 유력한 용의자는 둘로 좁혀졌다. 나도 거기 포함됐다. 난 집에서 용돈을 아마 거짓말로 타 내서 비자금을 조성했고, 내 소비 행위가 애들에게 유달리 평소와는 달리 보였던가 보다. 결국 담임 선생님은 수업이 끝난 후 셋이서 면담의 자리를 마련하셨다. 그러다 나보고 운동장 저 끝에 있는 데다 쓰레기통을 비우고 오라고 하셨고, 나는 거기까지 갔다 오는 길이 무척이나 울적했으며, 나와 친했던 다른 친구가 뭐 어떻게 됐고 그랬다. 그렇게 기분이 몹시 나빴던 적이 있다. 완전 꽝이었던 기억이다. 꼭 공금을 횡령한 친구보다 내가 더 나쁜 소년범이 된 듯 했으니까.
아 또 있다. 초등학교 3학년 쪽지 시험 시간. 옆반 선생님이 1번부터 5번까지 답을 칠판에 먼저 썼다. 그리고 당연히 이걸 악용하면 안되겠죠, 그런 말씀을 하셨겠지. 그리고 시험을 보다가 선생님께 들켰다. 그런데 문제는 당시 동네에서 같이 놀고 학교도 같이 다녔던 삼인조인 JH형, 나, JH동생 가운데 JH형이 그 소식을 알게 됐다는 점. 그건 아직까지도 미스테리다. 진짜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가나? 어떻게, 정말 어떻게 알았냐고. 그날이던가 다음 날이던가 JH형이 짧게 에이 어쨌냐 그렇게 지나가는 말을 잠깐 해서 알았다. JH형은 한 학년 위였고 학급도 몇 개 나뉘어 있을 텐데, 범인이 나라는 걸 서로 모두 알았다고? 맙소사! 교육학에 그런 교습법이 아마도 있을 테니까 나와 비슷한 경험을 했던 친구들 잘 찾아보면 있을 것만 같다.
나는 로잔나의 집앞에서 뭔가 꼼지락꼼지락하는 모습을 들켰기 때문에 어딘지 그때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그러나 고맙게도 로잔나는 내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의중을 내비추었다. 의뭉스러운 가시내, 멋진 척 하기는!
4
그러던 어느 날 나는 혼자서 관람회에 갔다. 내가 만들 수 있는 범작과 수작은 불가능한 듯 보였고, 구상도 떠오르지 않는 데다 착상 역시 아리송하기만 해서 명화들을 감상하고 오기로 했다. 당연히 혼자서.
나는 가서 전시회를 봤다. 감상 끝났다고.
그림 하나당 이렇게 보고 저렇게 보며 또 보고 오래 보고, 그건 전문가나 애호가들에게 어울리는 일이다. 그러나 나 같은 미술 문외한이라 할지라도 대충 보든 작정하고 보든 나름의 감상법이 있다. 그건 무엇이냐면 그림을 오래 보지 않는 것이다. 통과 통과 통과 또 통과. 멈추어야 할 때는 직관이 알려준다. 17세기 18세기에 미술 대전이 열리면 그랬다. 황태자가 공주와 함께 슥 지나가면서 눈길을 줄 듯 말 듯도 아니고 진짜 슥 지나간다. 샤르륵 그렇게. 그러다 한마디 툭 던지지. 옆에서 관료는 귀를 기울인다. 작가에겐 미안한 일일 수도 있지만 간택과 감정도 결국은 사람과 비슷하게 한 사람에게 주목받는 일이다.
어쨌든 나는 작품 감상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로잔나가 우리 집 문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크나큰 마음의 빚을 갚는 기분이 들었다. 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간다는 말은 바로 이런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이란 걸 알게 됐다. 그러나 나는 섣불리 로잔나를 정답게 부르지도 않았고, 비방하지도 않았으며, 그녀의 뒤통수를 빡 하며 때리지도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숫제 그때 그냥 속 시원하게 빡 하며 그녀의 뒤통수를 때릴 껄 그랬나 라는 생각도 가끔 든다. 솔직히 고백하는 바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난 그녀의 뒤통수를 빡 하며 때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상대가 돌아서면서 날 발견하며 깜짝 놀라 눈이 똥그래지고 어찌할 바 몰라 하는 장면을 꼭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나는 로잔나의 남모르게 키워 온 소원 같은 건 무엇일까를 생각했다. 바로 이 순간 만큼은 앳된 요정이 아리아를 부르고 수줍은 천사는 나비처럼 내 앞에서 춤을 추는 것만 같았다.
하하하하하. 으하하하하하하. 음하하하하하하하.
그런데 사람 힘 빠지게 로잔나는 뒤돌아서며 날 발견했는데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하나도 놀라지 않았던 모양이다. 오히려 전세는 역전됐다. 나는 괜한 심상 때문에 응큼한 속마음을 들킨 듯 했고, 로잔나는 남자가 뭐 그렇게 쪼잔하냐며 잔뜩 약을 올릴까 말까 망설이는 듯 했다. 로잔나는 은밀한 기쁨 때문에 살짝 턱을 앞으로 머리는 뒤로 기울였다. 얘가 원래 이렇게 목이 길었나 나는 그런 생각이 들었고 이때 그녀의 목을 손날로 빡... 그러다 말았다. 나는 사정이야 어쨌든 수모를 당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외 별다른 일 없이 서로 인사하고 안부를 묻고 헤어졌다. 모두들 분위기 좋은데 내가 유독 혼자 놀길래 안스럽다나 뭐라나. 꽁꽁 언 마음은 더 꽁꽁 얼어버렸다.
뿐인가? 어정쩡한 느낌은 또 다시 재현됐다. 동네에서 오다가다 친구들끼리 담소를 나눌 때 우연히 내가 로잔나 옆에 앉게 되었다.
「와, 잘 어울리는데!」
「쟤 부끄러워하는 것 좀 봐. 저런 표정 얼마만이니?」
「이참에 둘이 사귀는 건 어때?」
나는 듣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잘 어울리긴 뭐가 잘 어울려! 뭐 난봉을 부릴 일 있니? 당치 않은 일! 어림도 없는 일이라고. 지금 무슨 동물의 세계를 찍는 거도 아니고 이게 뭐니? 흡사 마법에 걸린 듯 내가 청혼이라도 해야 하는 거니? 어? 오, 로잔나, 난 완전히 넋을 잃은 채 그대의 매력에 풍덩 빠져버렸답니다? 난 차라리 동네 벽면에 그려진 동화 속 주인공에게 구애를 하고, 도시로 가서 아무 여자한테나 원없이 찝쩍대는 게 낫겄다. 난 할 수 있어. 다 꼬실 수 있다구. 마음만 먹는다면! 내가 못해서 이처럼 조용히 사는 게 아니라구. 이거 왜 이래, 사람을 뭘로 보고? 너네들도 사실을 알아차리고 나면, 생각이 달라질 걸 아마? 아 말 말자!」
「넌 농담으로 한 마디 던진 걸 가지고 왜 그렇게 정색하고 그래? 얘가 정말 분위기 이상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네. 그쪽으로 아주 소질이 탁월해. (박수 짝짝) 야, 로잔나는 뭐 숙녀도 아니니? 아 심하다.」
「음 너무 했다.」
「그래. 심했다.」
「정말로.」
모두들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내가 대체 뭘 잘못했다고? 약간 지나치기는 했다. 속으로만 생각했던 장난인데 진짜처럼 속마음이 그대로 노출돼버린 듯 해서 나도 놀랐다. 안 그래도 그 어떤 미미한 대립 구도는 와해되기는 커녕 더욱 공고해져만 갔으며, 나는 고독을 자초했고, 오랜 우정과 인심 좋은 친구들은 술렁이며 날 외면하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난 그 뭔가를 도저히 멈출 수는 없었다. 암만 해도 돌아서지지가 않았다.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딱 하나 절대 나에게는 지기 싫었고, 뭔가 결코 쉽게 가서는 안될 것만 같았다. 양해를 구하고 타협하고 구애와 열애와 사랑의 기쁨과 사랑의 슬픔에 대해서 녀석들과 일말이라도 공유하게 된다면 앞으로 나는 꿈이 없는 삶으로부터의 탈출은 꿈도 꾸지 못할 듯 했다. 왜 그런지는 몰랐다. 하여튼 괜히 로잔나가 얄밉고 꼴 보기 싫고 재수 없어서 그랬던 건 확실히 아니다. 절대 아니다. 그러나 결과는 내가 바라는 이상은 모조리 안개처럼 사라지고, 꾀병처럼 허기와 회개를 불러올 게 뻔했다. 꿈꾸던 인생 동경하던 사랑 기도하는 미래 좋아하는 풍경 심심한 오늘 내일의 기대, 사랑을 측정하고 꿈을 관측하다? 왜 그런지는 정말 모르겠으나 그것과 저것을 바꿀 수는 없었던 거다. 내 마음이 대체 왜 이러지? 알 수 없었다. 차라리 자기선전광이 될 껄 그랬나? 그건 아니다. 정말 아니다. 제발!
5
나는 반성했다. 내가 로잔나에게 너무 했다는 걸 깨닫는 건 전혀 어렵지 않았다. 처음부터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내가 너무 어린애처럼 탐애하고, 그녀에게 너무 박대한 느낌이 없잖아 있었다. 아니 많았다. 내가 상과 벌을 주면서 그녀와의 거리를 유지하는 행동을 그녀는 괴팍한 친절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내 선의를 그녀는 놀림으로 인지할 공산이 컸다. 그렇다고 자기소개부터 우리 관계를 다시 시작할 수는 없기 때문에 나는 친구들한테 전화해서 물어봤다. 로잔나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그래서 어떻게 됐을까? 녀석들이 순순히 유용한 정보를 알려주었을까? 그럴 리가 있나! 로잔나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아냐고 물어보니 하나같이 공통된 반응을 보였다. 우선 주위를 빙빙 돌다가, 전형적인 패턴으로 녀석들의 대응은 일치했다. 자기는 무엇을 좋아하고, 자기는 어떤 걸 하고 싶고, 자기는 어떻게 살고 싶고, 자기는 누구를 만나고 싶으며, 그런데 넌 불가능한 미스테리와 신들린 초현실주의가 궁금하지 않냐고. 그건 곧 내 영혼을 좀먹는 논리적 귀결이었다. 혹시라도 녀석들의 귀가 막혔을지도. 사이먼과 가펑클과 머큐리와 브랜든, 비숍과 마리사는 모두 남의 일에는 큰 관심이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재기발랄한 친구들 같으니라고.
나는 내 잘못이 명백한 만큼 한치의 오차도 없이 주저하지 않고, 화사한 꽃다발을 들고서 로잔나에게 찾아갔다.
결과만 말하자면 우리 사이에 사무치는 그리움이 있을 리도 없고, 좋지도 싫지도 않은 사랑에 대한 진지한 대화를 나눌 수도 없어서 용건만 간단히 끝마쳤다. 간지러운 대화 내용을 모두 옮길 수는 없고 결론은 이랬다. 로잔나와 나 사이에 울화가 치밀 일은 없었다는 걸 확인했고, 그런 의미에서 내가 로잔나의 부탁을 하나 들어주기로 했다. 그래서 마무리는 둘 다 멋쩍은 웃음이었다.
로잔나의 부탁은 이랬다. 자기 친동생한테 자신의 친필 서신을 직접 전달해달라는 것이었다. 편지로 보내면 될 것이지 뭐 그런 사소한 일을 이렇게나 유난... 자매끼리 좀 심하게 다퉈서 불가불 그런 격식이 필요하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나는 예복을 갖춰 입고 로잔나의 동생을 만나기 위해 출발했다. 그런데 자꾸 어리석은 예감이 동하는 걸 계속 모른 체 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예측 불허일 수도 있는 추측은 둘째였고, 처음은 여지껏 느껴보지 못한 욕구였다. 대체 이 거창한 서신에는 어떤 비속한 내용이 적혀 있을지 궁금했던 것이다. 실로 하이틴 드라마의 주인공이 따로 없었다. 이를 어쩌면 좋아, 라면서 편지를 몰래 열어봤는데 설마 그 모두를 로잔나가 내다보고 이렇게 전언을 남겼을 수도 있다.
비너스의 아들 큐피트, 아폴론에게 꾸중 듣다. 난 큐피트 넌 아폴론. (로잔나를 얕잡아봤다라...!) 잘 아시다시피 큐피트의 화살은 두 종류. 하나는 사랑에 빠지게 만드는 것. 둘째는 사랑으로부터 영영 도망치도록 만드는 것. 넌 날 영원히 쫓아다니게 될 것이니라.
아흐흑! 난 음험한 상상을 물리치고 몹쓸 유혹에 빠지지 않기로 했다. 비록 이런 고행의 대가로 신종 사업의 번창이 주어지지 않을지라도. 때로는 호기심이 큰 값을 치를 수도 있으니까. 로잔나가 미리 손을 써놓았을 테니까 나는 어떤 기미가 엿보이기 전에 선수를 쳐서 그녀의 머리 꼭대기에서 놀기로 했다. 모처럼 만에 나는 득의양양해졌다. 로잔나의 편지가 특급 비밀이건 어쩌건, 로잔나의 동생이 실제로는 그녀의 애인이건 어쩌건 난 관심없었다. 그들의 사랑이 지고하고 지순하든, 불결하며 오직 물욕으로만 똘똘 뭉쳐있든 어쩌든 그건 내 알 바 아니었다.
나는 1인 다역으로써 전조를 읽는 자 테이레시아스도 됐다가 에르메스도 입었다가 박카스를 마시면 그만이었다. 그나저나 디오니소스는 제우스의 적자가 아니나 태생의 사연이 꽤나 특별하던데 현대 과학을 당시 미리 예견했던 것일까? 디오니소스 별명이 그렇게나 많은 걸 보면 말이다.
아무튼 나는 바람직한 일을 하는 만큼 로잔나의 편지만 그녀의 동생에게 전해주고 딱 깔끔하게 돌아오기로 했다.
6
꼬리를 감추는 사람이 있으면 꼬리를 흔드는 사람도 있다. 나는 로잔나의 동생이 어떤 여인인지 궁금했다. 막 만나고 싶어졌다. 나도 모르게 분위기는 차츰 고조됐고, 기분은 붕 떠올랐다. 물론 낯선 숙녀에 대한 궁금증은 성욕 과도증처럼 비합리적인 욕망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청춘의 문턱에서 나풀대는 호의에 다름 아닌 일이라서 크게 걱정할 건 없었다. 그래서 나의 공명심은 낭만감으로, 여타의 예감은 조증으로 뒤바뀌는 탄력을 받았다. 사뿐하게 말이다. 더구나 로잔나 동생의 집은 거리도 가까웠다. 우리 동네에서 옆-옆-옆 동네였다.
그러나 이 모두가 헛고생임을 눈치까는 데는 그 어느 절묘한 통찰도 필요치 않았다. 나의 설렘은 무익한 열정이었고, 들썩였던 비밀스러운 복음은 열악한 무상함으로 돌변하고 말았다. 왜냐하면 로잔나의 동생은 처음에 코빼기도 비추지 않았고, 그 다음에 내가 로잔나의 어설픈 책략에 허수아비처럼 고스란히 놀아났다는 것을 알게 됐으며, 로잔나의 동생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난 겨우 이해했기 때문이다. 내가 너무 로잔나를 믿었던 게 문제다. 나는 로잔나에게 하수 애칭을 붙여주고 함부로 나만 고수로 진급했는데, 알고 보니 로잔나는 내 머리 위로 어느새 껑충 뛰어올랐던 것이다.
나는 로잔나의 편지를 열어보고 결국 모든 상황을 파악했다. 로잔나는 선녀가 아닌 만큼 악녀이자 마녀였고, 나는 악역도 목동도 아닌 그냥 행인1에 불과했다는 것을. 편지 내용은 길지도 않았다. 동생 같은 건 없고 어서 돌아오라나 뭐라나. 아예 메롱이란 말조차 없을 정도로 그녀는 불친절하기만 했다.
이 일을 어쩔꼬! 나는 나이를 먹는 일이 무색해지며 로잔나 그 수선화 같은 갸륵한 아가씨에게 기쁨의 사냥감이 되어준 것이다. 아 기쁘다. 랄랄랄랄라라! 랄랄랄랄라라! 난 너무도 행복했다. 빙긋 웃고 또 웃고 아예 실성을 했다. 만류하는 사람도 없겠다 나는 그야말로 미소 짓는 커피포트가 되었다.
7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난 차라리 어떤 불가해한 오해에 의해서 이런 어이없는 허탕이 벌어진 것이라고 믿고 싶었다. 아마 로잔나는 나를 골탕먹이려는 게 아니라 내가 자기 여동생과 어쩜 천생연분인 것처럼 느꼈기 때문에 우연을 가장해서 소개를 시켜주기 위한 의도를 품고 있었을 것이고, 단지 일이 좀 꼬였을 것이다. 뭐 아닐 수도 있지만 나도 로잔나와 대면하게 되면 할 말은 있다. 처음부터 이미 다 알고 있었다고. 누굴 바보로 아냐고. 그래 나 바보다. 됐니? 예측한 그대로 바보라고. 이제 만족하니 라고. 난 원래 그런 데서 이상한 쾌감을 느끼는 쾌남아니까. 그렇지만 속으로 한 1퍼센트쯤의 괜한 기우도 없지는 않았다. 돌아갔는데 만약 마을이 텅텅 비어버렸으면 어떡하냐는. 그러면 난 투덜거릴 테지 별수 있겠나. 그런다고 내가 너네들을 찾아나서기라도 할 줄 알았니 라며. 보통 극중에서는 평범한 인물이 불세출의 탐정으로 거듭나지 않나 왜! 그러나 그건 픽션이고 이건 냉엄한 현실이었다. 어쩜 가혹할 수도 있는.
그런데 마을에 도착했더니 진짜로 조용했다. 하지만 그건 평소에도 그랬다. 그래 봐야 로잔나를 필두로 한 골목대장 놀이와 추종 세력 단합대회 때문에 원정 경기를 떠났을 게 뻔하다. 이 밤중에 로잔나한테 찾아가서 거침없이 기습 키스를 하던 자초지종을 따지던 담판을 지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냥 집에 가서 잤다.
8
1일째. 마을에 나 혼자만 있으니 홀가분하고 기분 좋았다. 녀석들 있어 봐야 시끄럽기만 하고 하나하나 그 정신 연령에 맞추어 놀아줄 수도 없는 일이니까 난 좋았다.
2일째. 지올라의 음악 감상실에서 고전음악을 감상했다. 오디오가 워낙 좋다 보니 이건 어쩌면 생음악보다 더 환상적이지 않을까 그런 의문이 생겼다. 그리고 조지의 카페를 청소해줬고, 마틴의 작업실에서 나름 내 일도 했다. 동네가 조용해진지 얼마나 됐다고 무턱대고 자발없이 로잔나의 집으로 쳐들어갈 수도 없었다. 만일 그녀에게 찾아간다고 해도 답안지에 선택될 객관식 보기는 대략 두 가지일 것이다.
첫째, 로잔나 집 초인종을 딱 누르는 순간 로잔나가 어딘가에서 짠 나타나 내 엉덩이나 뒤통수에 겨자 쏘스를 찍 뿌린다. 아니면 전처럼 이름만 부르거나 어깨를 톡톡 건드릴 수도 있다. 또는 연기력 출중한 개님이 등장하실 수도 있고. 그리고,
둘째. 어떻게 내가 로잔나의 집에 들어갔다고 가정하고 딱 로잔나 로잔나 부르다가 무슨 이상한 소리가 들려서 방에 막 들어섰는데 못 볼 껄 본 거지. 그래서 나는 화급히 뛰쳐나오고, 하루가 지나서 다시 찾아가고, 그 모두는 이불 속에서 마네킹 둘이 단순 작업중이며 이상한 음원이 무한 반복중이란 걸 알게 되는 장면.
뻔했다. 속아넘어갈 수는 없다. 어림 없지. 흥!
아니 아니. 속아넘어가는 척 한번 가볼까? 아니다. 그건 별로다.
3일째. 슬슬 심심해졌다.
4일째. 엉덩이가 근질거렸다.
5일째. 로잔나가 보고 싶어졌다.
6일째. 나는 고민하기 시작한다. 어떻게 내가 좀 굽혀서 녀석들 무리에 인턴으로 들어갈까 말까, 한참을 고민한다.
그리고 7일째. 보고 싶은 공포 영화가 있었는데 볼 수 없었다. 왠지 모르게 저 하늘의 구름이 가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마을을 순찰하고 정해진 산책로를 걷고, 특이 사항은 없나 하면서 동네를 둘러보다가 나는 꼭 해야 할 일을 했다. 주인이 출장간 틈을 타서 자유로운 한때를 보내는 강아지와 고양이들에게 밥을 주고 물도 주며, 주변을 청소하는 일. 하지만 나는 괜한 공상은 쉬지 않을 수 없었다. 최근 길에서 우연히 봤던 분홍색 가화는 몇 개, 평소에 보지 못한 벽면 광고가 왜 하필 그곳에 붙여져 있는지, 동네에서 짝수─홀수─소수 번지 집들의 공통점과 연관성등. 그 가운데 묘한 우연과 신기한 점도 있을 수 있으나 모두 속임수에 불과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다 8일째. 나는 TV를 보며 깜짝 놀랐다. TV에서 지역 뉴스를 방영하는데 우리 동네에서 한 명이 실종 상태라는 것이다. 인적 사항을 보니 그건 나였다. 취재 기자와 대화를 나누는 사람도 동네 주민이었다. 나는 동네에서 날 빼고 나머지가 모두 여행을 떠난 줄로만 알았는데, 실제로는 동네에서 나만 사라졌다는 말인가? 그럼 여긴 어디고, 동네 친구들은 왜 날 찾지 못하는 거지? 이게 혹시 일종의 배경 복사 현상이라도 된단 말인가?
나는 급히 차를 몰고 동네 입구로 가서 확인했다. 이정표는 이상 없었다. 그래서 로잔나의 동생 집으로 갔다가 다시 돌아왔다.
나는 마을에 도착했고, 친구들은 모두 나의 귀환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가, 환호하던가, 서운했던 일에 대해 토로하는 친구도 있고, 그저 말없이 지긋이 바라보기만 하는 친구도 있었다. 시간이 제자리걸음을 했던 게 아니라 나의 7일간 행적이 설명할 수 없는 불가사의로 되어버린 것이다.
그 틈에 먼발치서 꽤 애매한 옅디옅은 미소를 띄우며 돌아서는 로잔나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그에 괘념치 않고 어리둥절한 채로 친구들과 회포를 풀며 너스레를 떨기에도 그날이 바쁘다는 걸 알게 됐다.
9
그건 혹시 밀랍 인형 괴기 영화에 나오는 마을에서의 한때였을까? 밀랍 인형은 발견하지 못했으니 그건 아니다. 그럼 좀비의 마을? 좀비는 보도 듣도 못했으니 그 역시 아니다. 어떤 원리 때문에 발생한 일인지 알아낼 수도 없고, 어쩌면 만화 영화에서나 가능한 일일 수도 있는 황당한 체험 때문에 나는 흥분을 가라앉히려고 애쓸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집에서 오랜 잠을 잤고, 꿈을 꾸었으며, 다음 날부터 다시 정상적인 삶을 이어갔다. 굳이 말하자면 현실을 초월했던 경이로운 경험을 <여기서 이러시면 안됩니다>라는 말을 들을 기행이나 말취담 정도로 치부해버렸다. 그럴 수 밖에 없었으니까. 그리고
아, 전날 꿈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꿈에서 나는 전쟁 영화에 나오는 용사였다. 그러나 주인공은 아니었다. 조연인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꿈이니까 당연히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됐고 나는 화자였다. 그러므로 주연인가 조연인가 관객인가는 의미없는 궁금증일 것이다. 어쨌든 나는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거인 아틀란스가 맹주로 있는 거인족에 항거하기 위해 만들어진 대형 선박에 탑승한 소인 해병이었고, 우리는 어딘가로 출격했다. 아틀란스고 거인족이고 그건 과장법이고, 시대 배경은 현재였고 배는 항공모함이었다. 원래대로라면 나는 후방에서 일해야 할 수병인데 어떻게 복장이 비슷하거나 어떤 착오 때문에 거기에 휩쓸렸을 수도 있다. 우리는 운행을 이어갔다. 그런데 하필 나는 제일 선봉에 위치했다. 그러다 뭔가 낌새가 이상했다. 그래서 선발대를 꾸려서 작은 배를 띄워 우리는 거기에 타서 뿌연 안개 속으로 나아갔다. 분위기는 지옥의 묵시록이었고, 본선에서는 멀어졌으며, 게다가 거기서도 난 어떻게 된 게 제일 앞자리였다. 당연히 총을 들고 있었다. 그러다 전방에 무언가 나타났다. 이때 경우의 수는 세 가지다. 첫째, 자 돌격 앞으로 라고 외친 후에 나는 상황을 알리기 위해 본부로 급히 피신하는 것. 둘째, 이 선발대에 애초에 아무도 자원하지 않을 꺼면서 말로만 으쌰으쌰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아야 하네 어쩌네 난리길래 내가 나서서 나 혼자 선발대로 돌격하는 일(이건 복장이나 규율이 다른 단체에서 드물게 일어날 법한 일이므로 이미 물건너 갔음). 셋째, 실제 상황이고 상대와 마주쳤고 하필 내가 제일 앞자리 즉 최악의 상황 즉 주어진 자리에서 현실과 부닥치기. 역시나 여기서 세 번째 경우에 해당됐다. 그때 빠방빠방 따다다다 뚜두두두 뭐가 막 파닥파닥했고, 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뭐야 이렇게 가는 거야 하면서 자꾸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생각은 그렇고 겉으로는 즉답성에 부응해서 정말 뭔가를 맞은 것처럼 으악으악 찡그리고 몸부림치고 그랬다. 그런데 그 시간이 길어졌고, 그러다 기억을 잃었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 골짜기에서 일행 몇 명과 함께 깨어났고, 나는 총을 잃어버렸고, 우리는 걸어서 어느 사거리까지 갔다. 거기서 같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탄 차가 보이길래 그들을 세워서 차에 탔고 어디까지 갔다. 다음 장면은 취조실. 어두컴컴한 방에 달랑 조명 하나만 있고 어쩌고저쩌고. 그러다 꿈은 끝났다.
복기하자면, 세상 사람들 말로는 꿈에서 케찹을 봤으면 길몽이고 아니면 개꿈이라고 하는데, 이번에는 개꿈이었다. 전율은 현실감 가득했는데 개꿈이라니. 이런, 젠장!
10
다음 날이 됐다. 나는 로잔나가 무서워졌다. 어쩐지 우리 동네에 로잔나가 처음 그 오묘한 기운을 끄는 듯한 모습을 나타낼 때부터 난 썩 반갑지 않았다. 지금 세상에 귀신은 없을 테고, 그녀에게 신비한 능력도 없을 테지만 그 어떤 영험한 일이 내게 닥치지 말란 법도 없다. 그러므로 난 멋대로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다. 더군다나 최근 7일간의 그 불가해한 시공의 부재가 일상에 대한 불신을 증명하고 있었다. 심지어 벌써 나는 이름까지 붙였다. 신비 2.0이라고! 왜냐하면 새로운 소설을 위한 괜찮은 소재일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뚜껑은 열어 봐야 알겠지만 그저 그런 흔한 일은 절대 아닐 거란 감이 왔다. 물론 나 혼자만의 잘못된 추론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미 승부는 시작됐다. 성급한 일반화? 두고 보면 안다. 제7의 감각을 믿고 가는 거다. 로잔나는 내 탐구욕에 불을 붙였고, 내 호기심에 발동을 걸었으며, 애처로운 이 비-로잔나의 가슴에 결코 엄살로 끝낼 수 없는 뜻 모를 모험심에 대한 연민을 자극했던 것이다. 로잔나는 로잔나고, 환상은 혼자가 아니었다. 엉뚱한 순환 논리의 끝은 어디일까? 가 봐야 알지 그걸 벌써 어떻게 알겠나. 도박사의 오류도 잘못된 추정도 모두 불확실했고, 퇴로는 차단됐다. 나중 기발하냐 재미없냐, 신기하냐 짜증나냐, 놀랍냐 실망이냐로 나뉠 수는 있지만 게임은 이미 시작됐고 조건은 모두 갖추어졌다.
어찌되었든 나는 동네에서 로잔나를 잘 피해다녔다. 나는 그런 틈틈히 인터넷 검색으로 시간을 보냈다. 쏠쏠한 재미와 톡톡한 흥미는 많지 않았으나 따분한 영화를 감상하는 것과 지루한 업무 회의를 하는 것보다는 훨씬 괜찮았던 시간이었다. 검색은 주로 과학쪽에 집중했다. 왜냐하면 얼마 전에 겪은 그 이상한 일 때문이었다. 빙하기, 빙기, 간빙기와 다가올 빙하기 그리고 시간이 오래 지나면 대륙의 움직임이 어떻게 변할 것인가 까지 찾아보았다. 그와 더불어 밀란코비치 주기도 검색해봤다. 그건 쉽게 말해서 하나의 가설이긴 하지만 관측되는 기후의 주기성이 궤도 주기와 상당히 잘 맞는 덕분에 압도적인 지지를 받는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 이론이고 실재와의 사이에 잔존하는 문제점은 남아있다고 한다. 요지는 이랬다. 첫째 지구의 자전축은 도는 팽이처럼 요동을 하면서 약 26,000년마다 한 바퀴 세차운동을 하고, 둘째 지구의 자전축이 41,000년을 주기로 21.5도에서 24.5도 사이를 오르내리는데 현재의 각도는 23.44라는 것. 또 나는 지구 자기장의 방향 전환 주기도 검색해봤다. 신기했다. 인간의 수명이 지금과 같아서 그걸 지식으로 알고 영화로 보고 웃고 수다를 나누지, 오래 살아서 그 일을 실제 다 겪는다면 참 고독하고 쓸쓸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와 더불어 무거운 주제에 대해서 찾아보고 생각하고 의문도 떠올려봤다. 그 다음은 얘기가 길어서 문단을 나눈다.
11
나는 집에서 인터넷 검색을 했다. 영국이 한번도 침입하지 않은 국가들에 관한 (색상 구분) 세계 지도도 봤고, 성비 불균형에 관한 블로그 게시물도 구경했다. 과거는 과거고 스타워즈는 스타워즈다, 라고 간략히 정의하면 말은 간단하지만 실상은 이 세상이 결코 그렇지 않다.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이 작은 반경에서 조용하고 편안히 살았더라면' 이랄지 '어떤 역사상의 폭군이 없었다면' 이랄지 몇몇 가정과 상상은 다양할 테지만, 수많은 분쟁과 잘잘못을 모두 과학자 탓으로만 돌릴 수도 없다. 아임 유어 파더, 다스바이더가 역사상 어떤 불운 때문에 건재했기 어려웠을지라도 나중 그 비슷한 인물은 어떻게든 나오기 마련이었을 것이다. 역사와 실화에 대해서 간단히 사실만 말한다면 주관과 세계관이 무르익지 않은 젊은이 입장에서는 적지 않은 의문이 들 수도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비유를 하고 시에서는 은유를, 문학에도 상징이란 게 있다. 입장 바꿔 생각해 봐라, 늬가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제국! 제국 하면 한두 개가 아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아주 많다. 그 모두를 지금 다시 또 매일 재평가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수많은 사례는 전문가와 학자에게 맡긴다쳐도 제일 가까운 근대에 대해서는 권위자와 언론과 상업에만 맡겨서는 곤란하다. 왜냐하면 그러면 지구의 미래는 너무나 어두울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이렇다. 근대에 들어서서 은하계의 평화는 무너지고, 악당이 이끄는 은하 제국의 독재 체제가 은하계를 집어삼킬 위기에 봉착했다. 즉 냉전에 직면했다. 물론 악당은 H고, H 악당을 제외한 지식인과 시민은 어쩔 수 없었다. 칼이 펜보다 강한 세상이었으니까. (그러나 지금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음. 오히려 지금도 펜은 인기와 돈을 주로 추구하지 바른 말과 옳은 소리 별로 못함. 하더라도 음 글세요) 그때 착한 편은 다행스럽게도 권선징악의 교훈을 현실에 적용했고, 그렇게 합심하여 악당 무리에게 치명타를 가해서 평화를 되찾았다. 기존 은하계의 일원은 아시다시피 제다이와 C-3PO, R2-D2와 착한 친구들이고, 악당은 대표적으로 다스 베이더다. 결론은 착한 편이 이겼고 악한 편이 졌다. 그런데 간혹 뉴스에 나온다. 과거 다스 베이더측에게 치명타를 가했으니 사과하라고. 어머나 맙소사! 다스 베이더측에게 치명타를 가했으니 사과하라고? 누가 누구에게, 그게 대관절 무슨 얘기인지... 설마 코메디는 아니겠지만 뭐 퍼포머스라도 되는 걸까... 왜 그렇게 되었는지... 가해자쪽에서는, 내부에서 다 해결되었다는데? 아돌프 히틀러의 영을 기리기까지 하는데? 그런데 가해자측에서 새롭게 사과를 받고 싶다고? 이렇다. 시민 따로 정부 따로다. 많은 부분 노력하고 고생하며 시민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힘쓰지만 정부와 시민의 마음이 똑같을 수는 없다. 그 A와 B가 어디 한두 가지던가. 불미스러운 일이 하나 생기면 작게는 하루면 묻힌다. 방송과 지면에서 다루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작게나마 보도되어도 이틀이 지나면 잊혀진다. 사흘을 넘기면 또 다른 일이 층층이 쌓여서 사건 사고는 그냥 과거가 된다. 그러다 기억에서 멀어진다. 사과는 하는 것도 받는 것도 둘 다 껄끄럽다. 그렇지만 부조리와 딜레마와 모순과 크고 작은 오해는 차마 셀 수가 없다. 그렇다고 연례 행사나 축제처럼 매번 반복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되지만 깔끔하기가 도통 쉽지가 않다. 제국이라는 단어가 나왔으니까 하는 말인데 에르메스나 페라리라는 개념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을 손꼽자면 대표적으로 공자(BC 551 ~ BC 479), 석가모니(BC 463 ~ BC 383 혹은 BC 563 ~ BC 48), 소크라테스(BC 469 ~ BC 399), 예수(BC 4 ~ AD 33)를 들 수 있다. 제국이라는 단어가 나왔으니까 하는 말인데 영토 야욕이 없는 국가는 없다.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와 그것이 어떤 관계가 있는가에 대해서 아이가 아빠한테 물을 수도 있지만 그것은 어른이 되면 스스로 깨달아야 하는 문제일 것이다. 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신물이 날 정도로 듣고 읽고 보고 살았다. 최근 기준으로 세계 경제 61%를 생산하는 세계 18% 인구가 사는 지역의 어느 경계선에 위치한, 그래 정확히 말하자. 위도 어디 경도 어디 해서 <독도>라는 콩알 만한 섬이 우리 땅이라는 표어와 노래와 경구와 논설과 소설과 영화와 드라마와 행사와 뉴스와 온갖 컨텐츠를 신물이 날 정도로 듣고 보고 읽고 자랐다. 그런데 문제는 앞으로도 죽을 때까지 그럴 것이고, 그 후까지도 영원히 계속될 것이라는 점. 왜 그래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왜냐하면 에르메스와 페라리를 싫어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처럼 영토 야욕이 없는 국가 역시 없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의 올림픽이 명맥이 끊겼다가 세계 올림픽이 다시 시작된 시점 전의 어떤 문제에 대해서 마음 아파하는 사람을 나는 지금껏 만나본 적이 없다. 잘 찾아보면 있겠지만 일단은 그렇다. 보나파르트 나폴레옹과 아돌프 히틀러. 그외에 스탈린, 무솔리니, 프랑코등 누구 누구 많다. 지역과 시대를 넓혀서 논하자면 아이고, 날새겄다. 어느 세월에! (학생: 저는 국사 과목을 좋아하지 않아요. 어두운 내용이 많고 마음에 들지 않거든요. 춘부장: 괜찮아요 괜찮아요. 한 지역에서만 그런 게 아니랍니다. 어디든지, 국사만 놓고 보면 어디든지 한숨이 나온답니다. 어디든지요. ─ 설마 쟤가 나보다 많이 알지는 않겠지. 난 노인이고 쟨 애송인데 그러면 안되지 흐흠. 그런데 자꾸 꺼림직한 게 옷 입는 거 하며 뭔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 노인은 술꾼 학생은 천재였으니까) 나는 새도 떨어트린다는 무소불위의 권한을 만천하에 행사하셨던, 그걸로만 보자면 신격화에 가까운 분들 정말 쑤두룩하다. 물론 지구와 사람이 타임머신이지만 지금이 얼마나 좋은 세상인지, 어떤 걸로 봐서 어떻고 뭐라 뭐라? 지금이니까 신간 편헌 말씀하시는 거다. 그때로 돌아가서 산다면 아아아, 오오오 답 없다. 답 없어! 사람 목숨은 파리와 개미와 하루살이 목숨만도 못했으니까. 진보는 공짜가 아니었다. 절대 아니었다. 그 언제든지 인간이 지구에 존재하는 이상 지구의 자전 방향에 대해서 불만 있는 사람이 많았다. 것도 매우. 게다가 힘과 황금은 그분들이 다 가졌다. 과거에는 그랬다. 인류의 문명이란 게 다 어마어마한 대가를 치른 거다. 차마 세세히 들여다 보기가 겁날 만큼. 그 모두를 뜻하는 단어가 무엇이냐, 역사다. 그러니까 지금은 보나파르트 나폴레옹과 아돌프 히틀러만. 나폴레옹과 아돌프 히틀러! 전자는 미술의 전성기는 물론 다른 예술계에서도 크나큰 호응을 얻었으나, 반면에 후자는 악명으로 첫손 꼽힌다. 그 중간에 뭐가 있냐 하면 바로 올림픽이 있다. 옛날 옛날에 멈췄다가 근대에 새로 시작된 올림픽. 올림픽이 나왔다고 약물이니 축구 올림픽이라는 피파의 비리라는 곁가지로 빠지지는 말자. 크고 작은 이권 다툼은 인간이 사는 세상인 이상 없을 수가 없으니까. 기원전 776년 또는 기원전 876년쯤에 처음 올림픽이 시작됐고, 명맥이 끊겼다가 1896년 아테네에서 올림픽이 다시 개최되기까지, 그리고 그 이후로도 세계 지도의 색상은 수없이 변했다. 대표적으로 예를 들자면 이렇다. 첫째, 스페인 영토에 있는 영국령 해외 영토인 지브롤터 국제 공항. 둘째, 영국 연방 국가 중에서 대표적으로 캐나다. 셋째 홍콩, 넷째 (남한 영토) 독도.
첫째 <지브롤터 국제 공항>. 자치의회와 자치 정부가 설립되어 있고 EU에 가입되어 있다. 즉 속된 말로 성공한 알박기. 만년 후는 몰라도 지금은 엄연히 영국 땅이다.
둘째 <영연방>. 그에 해당되는 여러 국가에서 하나의 예로서 캐나다는 법에 명시되어 있다. 영국 여왕을 어쩌고저쩌고. 그 조항의 삭제를 요구했다가 시기상조로 결론난 전례가 있다. 그 조항이 없는 대표적인 국가가 미국이다. 일명 식민지였다가 독립했고, 모종의 제국으로 불릴지도 모르는. 뉴스에서 보면 어른들은 안다. 외교적으로 국가의 수장이 가고 오고, 왕이 있는 나라와 없는 나라가 있으니까, 영국의 황태자가 미국까지 와서 국가 수장을 만난다는. 또는 다른 쪽 수장이 어디를 방문해서 왕과 1대1로 마주보며 악수를 나누는 장면. 왕이 현존하는 나라에서야 그 나라 시민에게는 왕이지만, 왕이 현존하지 않는 나라의 사람에게 다른 나라의 왕은 단지 그냥 외국인일 뿐이다. 존중하지만 똑같은 사람. 신이 아닌 인간. 예우와 품위와 명성은 하늘과 땅 차이일 수 있으나 존엄성과 자존감은 엄밀히 따져서 동격이다. 사람 대 사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남자 대 남자로써 하는 말이 아니다. 태어나고 보니 어떻다는 유대감과 더불어 피라미드 도형에 대한 발상 자체가 지금 세상에서는 제한이 없다는 뜻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거나 어디에 가거나 누구를 만나거나 사랑에 발목잡히거나 발목잡히지 않거나, 즉 자유로만 따진다면 그냥 그만그만하게 사는 게 정말 최고의 행복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화려한 삶은 일단 멋지다. 그러나 멋진 만큼 책임도 따르고, 소소한 행복은 포기할 수 밖에 없다. 그것이 (비록 절반일지라도) 아름답다면 귀감이라 하고, 보통은 숙명, 불미스럽다면 비운이라고 한다. 우와 저처럼 되면 정말 좋겠다 그러다 진짜 그렇게 되었는데, 막상 살아보면 클라우드 나인의 삶은 놀랍도록 제한적일 수 있다는 것. 일반인의 자유를 헌납한 다음에 무대 위의 인생에 집중할 수 밖에 없다는 것. 누구나 아주 드물게 경험한다. 정말 정말 웃겨서 미칠 듯이 웃다 보면 안면 근육이 혼자 논다는 걸. 그게 직업인 사람도 있다. 때로는 드물게 억장이 무너져도, 가슴이 미어져도, 속에서 피눈물이 흘러도 웃어야 하는 웃겨야 하는 운명도 있을 수 있다는 것. 무조건 다람쥐 챗바퀴를 돌려야 하니까. 게임이 시작되면 당신은 웃어야 살 수 있고, 반드시 웃겨야만 살 수 있다. 그런데 그 게임이 인생이다? 오오, 그럴 수도 있겠다. 전진 전진 또 전진 항상 전진, 계속 전진 쉬지 않고 전진 막 전진, 앉으나 서나 전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전진, 자도 전진 깨도 전진 꿈에서도 전진. 아 또 생각난다. 전진뭐라는 친구와의 우정이 있기 전에(전인가 후인가 헷갈림) 인터넷 채팅으로 전진뭐라는 숙녀의 이름이 웃기길래 딱 만났는데, 그랬는데,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클 수 있다는 점. 아아아 수증기 푸쉭! 멋드러진 진공청소기 박스를 딱 열어 보니 글쎄 그 안에는, 뭐야 이거 아 나 또 뭐야 이거, 커피포트가 들어 있더라? 뭐 그 정도는 아니겠지만 보통 높은 자리라는 게 쉽지 않다. 남녀의 사랑이야 보통은 둘만 좋으면 그만이지만 다수의 이익이 공통적으로 만족된다는 건 어떻게 보면 그건 정말 꿈 같은 목표다. 잘 하면 잡을 것 같은데 간발의 차이로 잡히지 않는, 잡힐 듯 잡힐 듯 잡는 사람 약을 올리는, 짜증도 나겠으나 그러다 마침내 톰과 제리가 정 들게 되는, 그런 어떤 신기함과 놀라움과 경이로움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공동의 이익이라는 목표는 말이다. 경영학이 딴 게 아니라 그게 경영학이다. 하여간 남자 대 남자가 있으면 상사와 하급자의 개념은 어디서든 불가피하고 절실히 필요하기까지 한다. 차라리 서열이 불분명한 것보다 삼각형 구도가 안정적이라는 걸 우리 남자들은 잘 안다. 어릴 때부터 괜히 다큐멘터리 동물의 세계를 보는 게 아니니까. 신 밑에 왕, 왕 밑에 인간, 인간은 다시 신을 만들었다가 없앴다가 평가했다가 또는 나를 인간을 신격화했다가 아니면 채식주의자로 살다가 끝끝내 포기하고 미친듯이 소와 돼지와 닭과 칠면조와 참치를 막 날마다 미친 듯이 폭식하는 바로 인간! 인간은 간단히 말해서 한 남자와 한 여자. 그 남자와 여자는 플라토닉이 먼저일 수도 있고 육체적 사랑이 선행될 수도 있음. 헉! 밖에서 뼈 빠지게 돈을 버는 남자 위에 여자, 그 여자 위에 그레고르 잠자, 그레고르 잠자 위에는 다시 남자. 남자? 남자! 캬, 남자! 남자는 집에서 곤충학과 조류학을 공부하다 이쁜 우리 아가의 과학과 우주와 동화와 신화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해주는 것으로도 모자라 무거운 짐까지 들어서 옮기다 어머나 또 출근 시간, 다시 뼈 빠지게 일하는 남자. 그래서 우리 남자들은 뻥과 거짓말과 립서비스와 아부와 농담과 장난과 허언증에 도가 트고, 그러므로 허풍 대회 출전을 벼를 수 밖에 없는 남자. 남자? 남자! 그처럼 교황도 교도들에게 교황이고 옛날 시대에나 교왕의 힘이 셌을 뿐, 도저히 식을 줄 모르는 인기는 오직 황금이시다. 그러나 지금도 교황 밑에 뭐 뭐, 서열은 튼튼하다. 옛날에는 신 밑에 인간, 바라건대 앞으로는 신 위에 인간 그와 같은 착상처럼.
셋째 <홍콩> 잘 아시다시피 영국령이었다가 중국에 반환됐고, 향후 언제까지 홍콩 정부의 독립을 유지하기로 약조됐다.
넷째 <독도>. 넷째는 첫째-둘째-셋째와 달리 유명하지 않다. 그러나 속된 말로 알박기에 실패한 사례인 건 분명하다. 역시나 A지역에서는 정부에게만 유명하고 보통 사람들은 대부분 털끝만큼도 관심이 없고 거의 100퍼센트 알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B지역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단 1명도 없이 100퍼센트 안다. 과거-현재-미래까지 100퍼센트로. 그럴 만한 이유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A와 B의 외교 관계? 딴 거 없다. 과장하자면, 그거 하나가 거의 유일하다. 그 문제로 조용하면 이때만큼 좋은 시절이 없다고 하며, 그 문제로 정치권이 요동치면 남극보다 더 급냉기에 들어간다. 그 땅은 많이들 잘 모르시다시피 역사적으로 국제법상으로 누구땅이라고 나는 정말 신물이 날 정도로 듣고 읽고 봤다. 그런데 일본은 독도가 자기땅이라고 한다. 근거 없이. 제2의 홍콩을 전쟁 패전(종료?) 직후 승전국 미국에 요청했다가 거절당했으니 제2의 홍콩은 옛날에 물 건너갔고, 세계2차대전 종료가 100년이 가까와 오니 일본 정부는 타국가의 영토인 독도를 자국 땅으로 이미 편입시켰고, 그처럼 명시적으로 학생들에게 교육을 한다. 이마저도 들쑥날쑥. 겉으로는 세계 평화, 좋다. 그런데 세계 지도상에 있는 무슨령 어디섬 아주 많은데, 그곳을 우리땅이라고 100년 1000년 우긴다고 가정해보자. 100년 1000년 후에는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다. 겉으로는 세계 평화, 물밑에서는 야금야금. 꺼림직한 거 빼놓고는 다 좋은데 그 얘기라면 아주 신물이 나서 그런다. 한쪽에서는 사람 미치는 건데, 다른 한쪽에서는 알고 싶지도 듣고 싶지도 않고 껄끄러운 소식은 기피되며 관심도 없는 실정이다. 그것은 연기가 아니라 현실이다. 제2차 세계대전 종료 시점부터 지금까지 계속 있어온 역사이자 현실이니까. 그때부터 지금까지 반올림 1세기를 그랬는데, 앞으로의 전망? 그건 넌센스다. 국방백서에 넣다 뺐다 넣다 뺐다, 국방백서에 넣다 뺐다 넣다 뺐다, 학생들에게 가르쳤다 가르치지 않았다, 지금은 13년 연속 등재중이다. 그렇다고 지금에 와서 냉전 때처럼 싸우겠나 어쩌겠나, 명백히, 현재에 시행 가능한-조용한 침략의 한 방법이다. 더군다나 한쪽에서는 히로시마의 원자폭탄 투하에 대한 사과를 미국에게 요구한다. 실제 매해 8월 15일이 되면 그런다. 세계에서 유일한 피폭 국가라고. 원인과 선전포고의 유무와 침략과 종전에 대한 반성과 자성? 찾아볼 수가 없다.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왜일까? 왜냐하면 최고의 인기 스타는 엄중히도 극우파이기 때문이다. 또는 극우파가 태반일 수도 있고. 지식인들은 냉전 시대나 지금이나 돈과 인기만 쫓는 동물이 되버린 것일까? 모르겠다. 돌아가는 걸 봐서는 그런 것 같다. 냉전 시대야 시대가 그랬다 쳐도, 지금도 설마? 역시나다! 동시에 루돌프 아 아돌프 히틀러는 길이길이 헌화 받고 기도 받고 영을 모신다. 문화라는데 그걸 그냥 문화로만 봐야할지 난 도무지 모르겠다. 당대 최고의 지식인과 유명인과 거장들은 모두 입 닫았다. 벙어리가 따로 없고 귀머거리인지조차 의심스럽다. 관심이 없다는데 할 말이 없는 거지. 과거인데 어쩌라고, 그건가? 그건 과거라 쳐도 제2차 세계대전의 발상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거북한 점 빼놓고는 다 좋은데, 다윗과 골리앗도 아니고 헤비급 옆에 있는 라이트플라이급 스파링파트너는 정말 지겹고, 신물이 나고, 울분도 터지고, 인생 내내 견디고 참고 버텨야 한다. 잉글리쉬 페이션트만 참을성이 아니다. 하늘나라에 계시는 이분 저분 그분들이 모두 까무러치고 일어날 일인데, 정작 멀쩡히 살아있는 이 시대의 양심들과 인기와 덕망과 자본을 챙기시는 유명인들은 아무렇지도 않은가 보다. 만약 천벌이라는 게 있다면 사후에 값을 치러야 마땅할 것이다. 일반 시민들조차 뭐가 문제인지 모른다. 왜냐하면 당연한 걸 당연하다고 말하면 안되는 시대이기 때문일까? 지금이 아직도 냉전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조용한 냉전? A에 사는 일반인 입장은 그렇다. 관심 자체가 없다. 문제가 있는지조차 모를 수도 있다. 정말 털끝만큼도 관심이 없다. 거의 항상 일반인이 털끝만큼도 관심이 없는 것처럼 때에 따라 대표자 역시 털끝만큼도 관심이 없다. 거의 100%. 지구 반대편에 존속하는 먼지 만큼도 관심이 없다. 일단 문화적으로 그렇다. 식사할 때 금기해야 하는 주제는 단연 정치니까. 뭐가 문제입니까 우리는 친구입니다, 아무 문제 없다는 거다. 맞는 말이다. 일반 시민이야 인지상정 말과 마음을 나눠보면 아무 문제 없다. 문제는 정부와 뉴스가 만드니까. 그러나 B에 사는 일반인 얘기는 그렇지 않다. 절대 그렇지 않다. 나, 바로 나! 태어나서 지금까지 지겹도록 듣고 읽고 봤다. <독도>는 우리네 땅이라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것이다. 그럴 필요가 없는데 뭘 잘못 아시는 것 아니냐구요? 천만에요. 전혀 그렇지 않답니다. 원리를 살펴보면 된다. 페라리와 에르메스를 싫어할 이유가 없는 인간처럼 넓은 땅과 풍요와 안락과 성대함을 싫어하는 정부는 정부가 아니니까.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찬미했던 그 나라는 돈도 있을 만큼 있고, 땅도 넓을 만큼 넓고, 문화적 우수성은 물론 규모만이 아닌 그 뭘로 따져도 세계 상위 1퍼센트다. 아니 그런데 왜? 달랑 사람 몇 명 상주하는 콩알 만한 섬에 그 무슨 비밀이 있다고? 왜 그런지 잘 모르겠다면 가정을 해 보면 된다. 못 먹는 감 찔러나 본다는 속담처럼 담장으로 넘어온 감을 우리 꺼라고 했다가 남의 꺼라고 했다가, 일관성도 포기했고 줏대도 피도 눈물도 없을지라도 계속 주장하면 미래 세대는 그게 진짜인 줄 알 수도 있다. 그 담장은 누가 정했는지 모르겠지만. 자, 그렇게 되면 그 다음에는? 그렇다면, 그 다음은 없을 수가 없다. 어디에서 최고의 전략적 요충지가 누구에게는 어디인데 누구에게는 거기일 수도 있으니까. 그러다 정치적으로 잠잠해지면 양측에서 병 주고 약 주고. (한쪽의) 민중들만 일상적인 수증기를 감내할 수 밖에. 그것도 일평생. 정치가 무슨 내수용이었다가 손바닥 뒤집 듯이 국제용도 되고 막 그러는 것만 같다. 시민을 대변하는 정부가 아니라 정부 따로 시민 따로다. 제일 윗선 극소수의 참으로 대인배다운 집요함 때문에 어느 100퍼센트는 아주 돌아버리겠다. 미쳐버리겠다. 해도 해도 너무 한다. 해도 해도 너무 했는데 앞으로는? 묵비권을 행사하겠다. 그 어느 낭설이 대체 왜 생겼겠나. 세계에서 일본을 어떻게 보고 어떻게 대하는 나라는 하나 밖에 없다고. 아 정말 너무나도 답답한 일이다. 유치원에도 규칙이 있고, 동네 꼬마들도 지킬 건 지킨다. 껄그러운 거 빼고는 다 좋은데 말이다. 다스 베이더에게 사과를? 예를 들어보자. 왕호는 엄청 기니까 생략하고 지금의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알렉산드라 메리 윈저>가 조선에도 있었다. 1895년 10월 8일 조선의 여왕 명성황후를 일본의 한 병사가 장칼로 무참히 베어 죽인 일이 있다. 현재의 영국 여왕에 해당하는 어느 왕국의 여왕을. 그래서 그곳은 현재 프랑스나 미국처럼 왕이 없다. 그 칼을 모신 성전은 물론 코 무덤과 귀 무덤 등등도 어디에는 있다. 물론 국가를 위해 희생하셨고, 따라서 매년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 다수로부터 헌화와 절과 예우를 받는 다스 베이더 몇몇 분들에 관한 성전도 있다. 그러나 그건 그거고, 그러면 그 일의 사과를 요구하는 게 맞을까 맞지 않을까? 맞지 않다. 1900년 이전이고, 사과를 요구한다고 받겠나? 순진한 발상. 그런데 문제는 그런 역사가 대충 반세기다. 그 반세기 동안의 차마 구체적으로 밝힐 수 없는 참상을 가지고 일개 개인은 사과를 요구하고 싶지 않다. <와 너무 많네, 그냥 덮자>다. 인생을 살아 보니 사과란 형식에 불과할 수도 있고, 세상을 겪어 보니 그게 그렇게 큰 의미는 없을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됐으니까. 물론 개인적 의견이다. 그래도 남자들과 으쌰으쌰 우정을 나눈 경험을 통틀어서 봤을 때 사과는 귀찮은 일인 경우가 많다. 의미? 없다! 절대 없다. 의미는 있을 수 있는데 귀찮다는 말이다. 술 한잔 마시고 털면 되지 가시내들처럼 그 무슨. 왜 남자들이 살면서 단 한번도 친구와 사랑에 대해서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살다 보니 그렇게 됐다. 그냥 그러더라. 의미를 찾는 건 다른 분들이 하면 되고, 나는 다른 의미 부여에 곧 내 할 일에 집중하면 그만이다. 바로 내 방식에 말이다. 당연히 그건 개인사고 저건 역사니까 다른 얘기긴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껄끄러운 인사말이 반복되면 피곤한 것 역시 사실이다. 아무튼, 제2차 세계대전의 침략국 즉 전범국가인데 다스 베이더측에 손해를 입혔기 때문에 사과를 받아야 한다? 개인이 아니라 개인이 많이 모여서 으쌰으쌰? 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요구한다? 그게 대체.... 허허허! 껄그러운 거 빼고는 다 좋은데 말이다. 그러나 이쯤 되면 둘 중 하나다. 첫째 입국금지, 둘째 입국하든 말든 먼지 만큼 일고의 관심도 가치도 없는 존재. 이미 블랙리스트에 오를 가망성이 먼지 만큼은 존재하는 거, 나는 어차피 엠마누엘 칸트처럼 달라스에 평생 살면 된다. 뿐더러 돈도 없다. 무슨 먼지 만한 존재도 못되는데 수입불허에 입국금지에 상영금지에다 뭐 대단하다고 금서로 지정되겠나. 그러든 아니든 시골에서 조용히 살면 되지 뭐가 걱정인가. 큰 재주는 없어도, 내가 다른 건 몰라도 주제 파악은 좀 한다. 속 편허게 변방에 머물러야지 괜히 어디 기웃 저기 기웃 해 봐야 물만 흐린다. 나라고 평균 연령 깎아 먹으면 기분 좋겠나.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없는데 뒤통수 먼저 긁적거릴 잔머리를? 가관이다. 꽃 들고 쫓아다니며 쫄망쫄망 선물 들고 여기서 저기서 거기서 기다리는 성격이 아닌 이상 나 싫다는 데 엄한 멘트 날릴 수는 없는 법이다. 하긴 거절할지라도 그런 제의 들으면 여자들도 기분은 좋겠다. 들어본 여자와 들어보지 않은 여자로 나뉠 테니까. 아가씨 아름답소, 나의 헌팅을 받아주오! 왜냐하면 남자인 나도 썩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으니까. (내 부인) 늬가 데리고 살래? 인류는 지금까지 그랬다. 신 밑에 왕, 왕도 국왕과 교왕과 통치권자, 그 밑에 사람. 사람도 무신론자와 교도와 있든 없든 관심 없는 사람과 교주도 여기에 속하나, 아무튼 사람도 쉽게 말해 옛날에 간혹 지금도 9단계. 상상 상중 상하─중상 중중 중하─하상 하중 하하. 일명 신분. 그 체계만이 아니라 하나의 종교에 대해서도 분파는 수없이 많고, 신조차 셀 수가 없다. 그러나 겉으로는 그런데 속으로는 이미 옛날부터 신 위에 사람이 있었다. 괜히 피라미드 역발상 아이디어가 나온 게 아니다. 겉과 속이 다르단 말이다. 옆 나라가 그렇다. 제일 친하게 지내야 할 나라가 그 언제나 겉과 속이 다르다. 낚시꾼들은 안다. 잘 안다. 자주 찾는 자리에서 가슴이 뛰는 깜작 놀랄 만한 대물을 잡을 뻔 하다 놓쳤다면, 반드시 그 자리를 다시 찾게 된다는 것을. 꼭 그러고 싶다는 것을. 한 단위 바깥에서 먼 과거의 여왕이 잘 죽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어디에 불상사가 발생하면 박수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는 것처럼.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론이다. 즉 인간의 본성에 위배된다. 왜냐하면 인간의 마음 속에는 천사도 악마도 공존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연관된 이야기니까 각 나라별 비하 얘기를 이어 갈까? 뭐 이렇게 된 거 가 보자. 못할 게 뭔가. 자, 시작한다.
<토끼> 급하다. 바쁘다. 금새 좋았다가 금새 싫었다가 금새 사랑했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헐뜻는 일도 다반사다. 열은 좋은데 대체로 열만 좋다. 주방기구로도 비유된다. 끓었다 식었다 끓었다 식었다. 솔직하고 형식에 얽매이지 않음(그걸 좋게 보면 쿨한 건데, 나쁘게 보면 질서가 아쉽고 단합이 어렵거나 주관이 강하고 제멋대로의 소지가 있음) 그래도 역시 인심은 후하다. 멍멍멍 개다. 아니 닭인가. 그런데 유럽 일부에서 말을 먹는 사례처럼 일부 개를 먹는 구시대 문화 있음. 낙지도 먹음. 돼지 발도 먹음. 닭 발도 먹음. 소의 꼬리도 먹고 소의 피도 먹음. 소의 피? 두부나 달걀찜처럼 소의 피를 굳혀서 스프에 첨가하여 먹는 식. 너무 짧나. 순박하고 열정도 있고 시원시원하다. 너무 짧다. 강아지라... 바깥에서 보면 야만적인데 안에서도 그렇고 아직은 (일부) 구습. 진짜냐고? 사실이다! 구습? 구-구습은 토끼, 꿩, 자라, 그만 그만! 아무튼 모두 사실이다. 숨길 게 뭔가 사실인데. 쉬쉬할 거 없다. 진실이니까. 더불어 구시대에서 신시대로 넘어오는 간격이 매우 짧았으니까 그런 관습이 남았을 수도 있지만 핑계가 될 수도 없고, 엄정한 현실일 뿐 픽션도 연극도 아니다. 그렇다고 모든 토끼가 모든 개를 먹는다는 건 아니고. 하여간 동네의 구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구태의연함이 싫다면 충분히 밝힐 수 있는 일이고, 자진 납세하겠다는데 문제될 게 뭐겠나. 자성이 먼저지 하다 하다 시기를 놓치면 뒷북 치고 싶어도 못칠 수도 있다. 모양새가 그렇다. 일단 안에서 먼저 내 흠을 꺼내는 게 순서다. 많은 경우 그게 어려우니까 그 반대가 당연시되는 세상이지만. 완전하든 상대적이든 내 잘못을 들추는 게 차라리 낫지 나 외의 불합리를 들추는 게 기분 좋을 리는 없다. 너무나도 신나니까 거리에서 발가벗고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은 심정인가 아닌가, 그에 대한 추정은 입장 바꿔 놓고 생각해 보면 된다. 돈과 인기가 좋지 돈과 인기를 베팅했다가 두 마리 토끼도 뭐도 다 놓치고 싶어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사석에서나 소극적으로 의견을 주장할 수는 있어도 대외적으로 나 외의 불합리를 들추는 게 기분 좋을 리는 절대 없다. 서로 미루고 외면하며 넘어가고 그렇게 달콤함만 추구하다가는 지구는 거꾸로 돌아갈 수도 있다. 누군가는 총대를 멜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백경에 나왔던 식인종이 여관에 터벅터벅 들어올 때 뭘 들고 들어왔나? 누군가는 단순히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며 허먼 멜빌의 백경과 코엘 매카시의 카운슬러를 떠올릴 수도 있다. 메두사의 머리를, 커피포트의 뚜껑만 떼서 드는 것처럼 들었을 때 그걸 보면 어떻게 되더라 라는 신화 속 이야기. 지금도 있다. 많다. 대부분 내 삶을 살아서 그렇지 그에 상응하는 강렬한, 그러나 무뎌진 부조리와 딜레마와 모순들 조금씩 비슷하면서도 다르게 어디에나 존재한다. 어디는 그 난제가 자연재해일 수 있고, 제도나 인습이나 인위적인 환경일 수도 있다. 일단 의식주만 놓고 봐도 얘기 길어진다. 범위를 좁히면 영화에서 닭싸움과 새 점이 나온다. 그런데 그 뿐이겠나 싸움, 상업, 음식의 대상에 대해서 지식으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하시는 척척박사님께서는 오히려 거꾸로 없는 걸 꼼꼼히 지적해주실 것이다. 알면서 모른 체 하고 싶고, 쉬쉬하며, 고개를 돌리고 싶지만 한 하늘 아래 어쩔 수 없이 우리와 공존하는 현실일 뿐. 어쩜 그럴 수 밖에 없는. 영화에도 악역이란 게 있듯이 누군가, 누구도 하기 싫어하는 천사의 임무는 맡아야 한다. 더럽고, 힘들고, 어렵고, 재미없고, 억울하고 위험하기도 하며, 표도 안나고, 보상은 적고, 보장된 돈과 인기와 호사와 행복은 포기해야 할 수도 있고, 보람도 적고, 바뀌지도 않고, 오히려 구박만 받을 수도 있는 일. 꽝은 무수한데 비해 1등은 독보적으로 하나인 건 무엇일까? 복권이다! 그러면 그걸 뒤집으면 된다. 누구나 하기 싫어하는 일, 총대 메고 어쩔 수 없이 누군가는 해야 한다. 이 세상은 그 비율이 무너지지 않았기 때문에 돌아가지 않을까 그런 생각 해 볼 수 있다. 한번쯤이라도. 직장 상사가 악마 같으면 대체 얼마나 악마 같겠나. 드라마에 나오는 얘기는 대체로 과장. 왜냐하면 작품은 극적이어야 하기 때문. 악역을 상사라고 가정하고 아아 그 인간 히스테리 아 뚜껑 열려, 그 인간 정말 너무하는 거 아니니, 넉살이 좋은 거야 눈치가 없는 거야, 지가 무슨 저능아야 정신 박약이야 지 돌아이인 줄 우리가 뭐 그거까지 알아줘야 해? 아, 아니다. 이건 아니다. 이건 정말 아니다. 마침내 한 사람이 빡 돌아서 휙 결심하고 딱 나간다. 상사한테. 이게 뭡니까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이건 정말 아니지 않습니까, 뭐라 뭐라 입에서는 화염방사기가 눈에서는 레이저가 나간다! 그런데 결과는 효과음 또 효과음! 뭐야 왜 이렇게 조용해? 원래대로라면 전부 다 같이 일어서서 으쌰으쌰해야 하는데, 그와 정반대네? 왜 나 혼자 밖에 없어! 그게 뭐야. 눈치 없는 인간은 다름 아니라 바로 그분이었더라, 그럴 수도 있다. 정의의 사도 흉내내는 건 애들 전문이고, 어른은 그럴 수 없다.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른은 그럴 수 없다. 어두운 시대상일 때야 못했다면 변명이나 가능하지만 지금은 그런 변명도 할 수 없는 세상이니까. 용돈은 아빠한테 타고 왜 그런지는 엄마한테 물어보자. 어차피 아빠한테 물어봐도 엄마한테 여쭤보라고 하실 테니까. 엄마는 천재, 귀재, 수재이자 재간둥이로도 모자라 아마도 대천사일 테니까 말이다. 알렉스 퍼거슨경이 그랬다. '제가 봤을 때 월드 클래스는 단 두 명뿐입니다. 메시와 호나우두. 나머지는 모두 잠깐 월드 클래스를 연출할 뿐입니다.' 완벽하게 맞는 말이다. 언제부터 언제까지랄지 업계 소식은 잘 모르지만 행사성 경기가 끝난 다음 서로 내가 옷을 바꿔 입겠다고 상대편 선수끼리 치열하게 다투는 대상은 그 2명이 맞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다. 그러면 왜 호들갑과 찬사는 끊이지 않는 것일까? 왜냐하면 오락산업도 먹고 살아야 하니까. 그게 뭘까? 돈이다, 경제! 경제는 경제학에서 말하는 경제가 있는 반면 지하 경제도 있다. 예를 들면 코카인. 인류는 한번 어떤 식물의 쾌락을 알게 된 이상 알기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절대 못 돌아간다. 그러면 방법은 뭘까? 나름의 기준을 개선하는 것뿐. 그런데 그게 한번에 또 쉽게 되겠나. 그럴 수는 없다. 그렇다고 포기해서도 안된다. 한걸음 한걸음 앞으로 나아가고 합심하고 얘기를 하고 그럴 수 밖에 없다. 무엇보다 생각을 하는 게 먼저다. 그게 최선이다. 그러나 생각, 생각을 한다는 게 어디 쉽던가?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기업의 제품 때문에 수많은 소비자가 하늘나라로 떠난 전례가 있을 것이다. 여기 저기 어디, 그렇게. 그런데 문제는 사람의 생각이란 게 균형적이고 상당히 이성적이기를 바란다는 건, 그럴 것이라고 무구하게 믿는다는 건 너무 애들 같은 생각이다. 때문에 하나의 말이 나오면 있던 생각은 흔들리고, 없던 생각은 표류하게 된다는 것이다. 꼭 사이렌이라서 대중의 귀가 얇은 게 아니라 근본적으로 생각을 하며 사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뜻이다. 생각하는 인간이란 조각상을 괜히 만든 게 아니란 말이다. 수많은 영혼들은 저 세상으로 떠났지만 브랜드는 굳건함으로 모자라 오히려 사과까지 받아야 할지도 모른다. 보수적이네 선수들이 무슨 애도 아니고, 차라리 웨딩드레스 입고 경기를 해라 뭐라 뭐라. 한쪽에서는 기쁨과 환희와 호사로 즐거운 것으로도 모자라 불난을 즐기지만 한쪽에서는 왜 세상이 그렇게 돌아가야 하는지 이해를 못한다. 아니 정말 그렇지 않소? 그러게 말이다. 그렇다고 채식만 할 수도 없고, 그게 완벽한 정답일 수도 없다. 그러므로 이제는 급기야 지글지글 지글지글 고기 굽는 환청이 들린다. 그러니 이만 토끼에서 개구라에게 바톤을 넘겨야겠다.
<개구리> 어디로 튈 줄 모른다. 정작 뛰어야 하는데 안 뛰고, 뛰지 말아야 하는데 뛰며, 엄한 데로 뛰기도 한다. 중요한 돈 계산을 해야 하는데 자고 있다. 꿈나라에서 마왕과 싸운다나? 웃고 떠들고 신나고 분위기 좋다가 차례가 와서 재밌는 얘기를 해야 하는데 당사자는 운다. 잠깐 한눈 팔았더니 그 친구는 다시 화낸다. 왜 관심을 가져주지 않냐고. 그러다 뜬금없이 싸운다. 그런데 그 싸움은 사랑 싸움으로 변한다. 그러다 백년해로할 수도 있고 물론 바람날 수도 있다. 그러다 틈틈히 밑도 끝도 없이 따진다. 호박NC 갈 꺼냐 신비NC에 갈 거냐고.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 다 예술가다. 숟가락을 아예 들고 다니며 발상 자체가 자유로우니 예술가일 수 밖에 없음.
<헤비메탈 롹커> 나이 들지 않아도 나이 들어도 인생 직진이다. 철들지 않는다. 철들어서는 안된다. 안되는 거는 안되는 거다. 하고 싶은 일은 해야 한다. 남자는 나이가 들면 힘이 밑에서 위로 올라온다. 숟그락을 들 수만 있으면, 방 문턱을 넘을 수만 있다면 숙녀에게 자상하다. 잡은 물고기에게는 먹이를 주지 않는다. 잠깐만... 뭔가가 들림... 그분이 오셨음... 네? 왜 잡은 물로기에게는 먹이를 주지 않냐구요? 원래 그렇다. 나만 그런 거 아님. 헤밍웨이도 그랬음. 피카소도 그랬음. 슈베르트도 똑같음. 셰익스피어라고 아마도 다를 것 같지는 않음. 왜냐하면 여자를 모르면, 일평생 한 여자만 알았다면 명작은 탄생할 수 없으니까요. 무엇보다 그 질문은 이쪽이 아니라 내 남자한테, 세상 남자들에게 물어야 함. 아니 대체 그게 뭔 소리냐, 잡은 다음에 먹이를 주면 되지 않냐, 하면 된다 할 수 있다, 계속 잘 해주면 되지 안될 게 뭔가? (고개를 설레설레 검지 설레설레) 안된다. 그럴 수는 없다. 밀림의 왕자인 사자가 촐삭맞게 하루 종일, 일주일 내내 방방, 한 달 내내 미친듯이 날뛰는 거 봤나! 그처럼 쉬지 않고 날뛰다간 정작 좋은 기회가 나타나면 힘 못 쓴다. 그렇게 되면 나이트클럽의 웨이터인 미스터 에르메스가 되고, 벌거벗은 임금님이 된다. 임금님은 돈이나 많지. 먹이감을 눈 앞에서 놓치면 돈도 명예도 인기도 풍요도 다 날아간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볼 정도면 그나마 고수게? 하루 종일 한 달 일 년 내내 평생 날뛰는 야수, 그건 돌아이다. 먹이감을 잡을 때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 먹이감을 잡을 때만. 그건 한마디로 생사의 문제니까. 개 팔짜가 상 팔짜라고 개처럼 베짱이처럼 인생은 미완성이라면서 내내 핑핑 놀다가, 절호의 찬스를 살리는 것, 다른 게 아니라 그게 바로 로맨티스트다. 물고기를 잡을 때는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 그런데 잡고 난 다음에는 과연 물로기를 어떻게 잡을 것인가 라는 주제로 동기부여 강연회를 열어야 함. 왜냐하면 물고기는 이미 잡았으므로 새롭게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도전해야 하니까. 진짜로 잘 하면 인기와 돈은 물론 기쁨과 새로운 황금 물고기까지 만날 수 있으니까. 어찌 됐든 물고기를 잡은 다음은 힘 썼으니 어? 고생했으니 어? 쉬어야 한다. 푹 휴식을 취해야 함. 물론 애초에 물고기를 잡고 나서 먹이를 줄 생각이 없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말은 잘해줄께 사랑할께 아낄께, 그러면서 마음을 녹여주고 기분을 띄워주며 아이스크림도 먹고 반지를 주며 분위기를 슥 잡고서 고백했겠지. 그러나 이미 전력 질주는 끝났는데? 메달 따든 못 따든 경기 끝났는데 경기장 바깥에서 또 경기를 하라고? 아니다. 그건 아니다. 대회가 끝났으면 휴가를 가고 친구도 만나고 책도 봐야 한다. 그게 인생이니까. 원래 세상이 그렇다. 뿐인가? 물고기도 속으로 뭔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 말은 사랑한다고 하지만 말이다. 또 있다. 호랑이가 배고프다고 풀 뜯어먹더냐. 단지 개는 간혹 풀을 뜯어먹는다. 그렇다고 여자는 물고기 나는 개란 말이 아님. 그게 다 공주님께서 아름답고 착하고 고결하기 때문. 한번 생각해보세요. 그 얼마나 그대가 사랑스러웠으면 당시 주군께서 그처럼 뜬구름 잡는 명대사를 속삭였겠어요? 딸랑딸랑! 그러니까 지금은 둘 중 하나겠죠. 첫째 그때 뭔 얘길 했는지 통 기억이 안난다거나, 둘째 사랑의 고백은 기억하긴 하는데 잡은 물고기에게 밥을 주지 않는 것. 첫눈에 반했으니까, 애초에 운명이었으니까, 딸랑딸랑, 처음 만나 홀딱 빠졌는데 뭔 얘긴들 못했겠어요! 아니, 아니 그러니까 대체 왜 잡은 물고기한테 밥을 주지 않냐구요? 왜, 왜냐, 왜일까, 왜냐하면 잠깐 슬럼프였기 때문입니다. 단지 잠시 주춤했을 뿐, 이제 다시 하트 뿅뿅 그대는 사랑받을 꺼에요. 딸랑딸랑! 걱정마세요. 걱정을 마시라니깐요. 딸랑딸랑! 연애할 때야 저 하늘의 별이라도 따다 바치겠소 어? 으쌰으쌰! 그런 다음 나중에? 비리비리, 시무룩 끙끙! 사냥이 그렇다. 관찰과 집중. 스포츠도 그렇다. 만약 그러지 않으면 스트라이커는 금새 퍼진다. 힘 빠져서 은퇴식도 못하고 쫓겨날지도 모른다. 엉덩이 뻥 차여서. 전문가 뺨 치는 혜안과 아르고스의 안목을 지닌 관객께서 언제까지 기다려주실 만큼 한가하지 않음. 승부의 세계는 그렇게 녹록하지 않다. 참지 못하고 외치신다. 당장 한말씀 하신다. 야 등번호 몇 번, 너 그래 너 너 말야 들려 안 들려 어? 고무신 거꾸로 신은 옛 애인 생각하냐 어? 이, 이, 어? 이 선수야! 정신 못 차리지? 어? 그렇지? 잘한다 잘해. 너는 자세부터가 틀렸어. 좋게 가서 유니폼에 광고 된 거 그래 들리긴 들리구만 그래 그 회사 맥주나 팔아라. 뭐 이미 그럴 생각이었다고? 몸은 둔한데 눈치는 빠르군. 그건 마음에 든다. 그래도 실력은 너무 아쉽다. 늬가 선수면 난 선수 할아버지다. 야 얘들아, 도대체 쟤 누가 영입했어, 어? 라~고 하신다. 바로 그렇게. 그 뿐만이 아니다. 선수 교체 명단엔 쟁쟁한 새내기와 걸출한 노장들 즐비하다. 물고기를 잡기 직전은 기회고, 물고기를 잡은 다음은 평안이다. 물고기를 잡기 직전은 인상 쓰고, 잡은 다음은 요리할 궁리를 해야 한다. 물론 (나 같은) 진정한 낚시꾼은 방생도 하긴 하지만, 그건 이별이자 파혼이니까 자세히 논하지는 말자. 물고기를 잡기 직전은 모든 정력을 집중, 잡은 다음은 한눈 팔기. 잡기 직전은 왕성한 원기, 잡고 나서는 아 피곤해. 잡기 직전은 혼신의 노력을 다하기, 잡고 나서는 귀여운 토끼 예쁜 요정 요염한 고양이를 상상하기. 원리가, 원리가 그럴 뿐이다. 그러나 당신의 남자는 영원히 당신만을 사랑할 것이다. 하지만 책임은 못진다. 그걸 내가 왜 책임져야 하나. 복채라도 두둑이 내놓은 것도 아니면서. 거 왜 너무 하신다고 생각하지 않소? 안 그렇수? 내 남자 바람기를 뭣땀시 엄한 데다 따지냔 말이요. 와 그라노? 혹시 집이도 그라요? 아니제 그건 아니제, 그라믄 안되제. 홍조를 띈 거 보니 여전히 부군을 사랑하시네. 와, 멋지다. 아름답다. 대단하다. 너무 애틋해. 난 다변, 그대는 다정, 그이만 과묵이군 그래. 허허허, 아니면 음흉? 어쨌든 난 흑심 같은 거 없으니까 안심하시고. 그래도 보아 허니 그 남자는 당신만을 영원히 사랑할 것이오. 믿어도 좋소. 예언이란 말이오. 허허허, 허허허허허! 아가씨의 오빠는 잡은 물고기에게 먹이를 주는 사람이란 말이오. 허허허, 허허허허허! 아 나 이거 정말 괜히 물고기 타령 때문에 얘기가 길어졌음. 다시 가자. 가는 여자 잡지 않고, 오는 여자 마다하지 않는다. 여기서는 의무방어전, (혹시라도) 저기서는 패자부활전. 물 들어올 때 노를 젓는다. 즉 꼬리를 흔들 때와 감출 때를 안다. 그런데 첫 끗발이 개-끗발인 경우가 적지 않다. 여기도 열이 좋다. 그러다 나이가 든다. 계속 든다. 배가 나온다. 배가 많이 나왔다. 팔도 짧아졌다. 뭐야 올챙이야 외계인이야? 이런, 젠장! 비켜 비켜 비키란 말이야, 걸리적 거리지 말고 비키라고 어 알아들어? 어? 너 뭐야? 너 뭐냐고. 그런데 거울을 보는 것 같은 존재와 마주친다. 완전 판박이다. 바빠진다. 견적을 내야 하니까. 때로는 이쪽 숫자와 저쪽 숫자를 세어보기도 한다. 간혹 밖에서 따로 바텐더를 만나야 직성이 풀리는 경우가 있을 수도 있다. 저번에 왜 그 허접하고 꺼벙한 녀석을 첫손 꼽았냐며 따져야 하니까. 그걸로도 모자라 아예 술집을 사버리는 일, 구단을 통재로 인수하는 일, 상상이 아니라 그저 일상이다. 우리는 오빠라는 말만 들으면 미쳐버린다. 여자를 다루는 기술에 최적화된 여자가 오빠라고 불러도, 그 우스꽝스런 이론에 중간쯤 호응하는 여자가 오빠라고 불러도, 그 얼마나 부질없는(?) 환상에 잘 부합하지 않는 여자가 오빠라고 불러도. 우리는 오빠라는 말만 들으면 미쳐버린다. 포기도 모르고 한계도 없고 누구나 인기 스타다.
<고양이> 겉과 속이 다른 경우도 있다. 겉은 천동설 속은 지동설. (허나 달리 보면 이건 장점도 됨. 왜냐하면 겉과 속이 같은 경우, 인사도 안 받아주거나 안 보이는 데서 감정 소모에 힘쓰는 경우도 있기 때문) 속마음 안에 또 속마음이 있고, 다시 그 속마음을 열면 봉투가 있다. 물론 봉투를 열면 열쇠가 있다. 열쇠로 코인락커를 열면 지도가 있다. 보물지도인지 뭔지는 몰라도 거기에 찾아가서 최고급 VIP 카드를 발견한다. 그 카드를 가지고 클럽에 간다. 클럽에 가서 친구를 만나고 우정을 키우다가 단짝이 된다. 그런데 친교를 이어가다가 어느 날 알게 된다. 나는 친구한테 90퍼센트 열었는데 친구는 10퍼센트였다는 걸. 친구 맞나? 물론 과장이다. 그래도 어쨌든 믿을 수가 없다. 참말? 없다. 다 빈말이고 다 예의다. 너무 깍듯하다. 과도하게 친절하다. 우직하고 정확하고 조용함. 질서 있고 규칙을 잘 지킴. 여간, 여간해서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음. 대충이란 없음. 엄격에 준법에 완벽! 누구나, 독일은 소크라테스 일본은 예스맨. 사생활은 자유이자 존중이지만 공적이라면 다름. 극장에서 영화가 최고건 최하건 끝맺음자막 다음에 화면이 꺼진 다음에 스탠딩. 독일인과 매우 비슷한 반면 대비되는 점이 많음. 독일은 기차 연착 많지만, 일본은 천재지변이 아닌 이상 100% 완벽. 독일인이 놀랍도록 이성적인데 반해서 이쪽은 분란 자체를 싫어하거나 있어도 멀리함. 보이지 않는 상하관계 뚜렷. 사람 대 사람은 개인적이지만 사람 대 사회는 절대적으로 숲이 우선. 시위가 없는 걸로 세계 최고. 유럽과 아메리카 시위 정도가 아니라 바로 옆만 봐도 시위의 나라라고 까무러침. (일장일단 있음. 시위 필요 없도록 이상적이면 좋은데, 그게 아니면 시위 해도 효과는 미지수에 그외의 옵션 애매함) 문화적으로 개인보다 조직, 수평보다 수직, 여자보다 남자 곧 삼각형 구도가 확실함. 남자와 권력자에게 유리. (군사적으로 보면 역사적으로 로마제국과 현재의 해군이 발달한 영국 외에 공룡들과 잠룡들이 많지만, 문화와 특징으로만 본다면 일본과 독일이 최적의 조건) 인도와 영국보다 약한(?) 신분제. 무사 문화. 불가피한 불미는 숨기는 게 미덕. 가령 다스 베이더 행적이랄지 성형외과의 위치, 숙녀가 흡연하는 모습은 부끄러워요. 로버트 같은 정확함과 천사 같은 배려에 대한 그늘이 있을 수도 있음. 그렇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배울 점이 훨씬 많음! 자세한 수치는 찾아보지 않았고 전후좌우 사정은 있겠으나 듣기로는, 위증 사례만 해도 어디에 비해 반틈이 아니라 무려 뒷자리에서 0이 하나 빠진다고 함. 아무튼 그러니까 고양이 또는 여우. 그러나 가면을 벗으면 닭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음. 결론은 친해지기 어려워서 그렇지 한번 친해지면 평생 갈 수 있다.
<곰> 대륙적 기질, 안되는 일도 없고 되는 일도 없다. 통이 크다. 그래도 대인배다. 정이 많음. 가식적이지 않음. 불의를 보면 못참음. 호탕함. 찡그렸다 풀어졌따 웃을 락 말 락 했다가 다시 화냈다가, 끝은 해피엔딩이다. 웃는다. (지식이 딸려서 간소히 적은 게 아님. 절대 아님)
<베짱이> 시간 개념. 세계적으로 문화적 차이는 있겠지만 대략 중간은 있다. 예를 들어 1시에 만나기로 약속을 했어, 늦을 수도 있다. 피치 못하게 불의를 못 참거나 무언가에 휘말릴 수도 있고 핑계도 있다. 그러나 보통은 5분 전이든 후든 만나야 한다. 10분 늦은 건 괜찮다. 15분... 이해 한다. 그러나 더 늦을 수도 있다. 20분 25분 기다리면 얼굴이 어두워지고, 30분 지나면 뚜껑이 열리고, 1시간 오오 2시간 기다려도 애타게 기다려도 오지 않길래 우정은 끝나고 사랑을 잃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것이 애교에 해당하는 곳도 있다. 어느 정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또 친한 사이에 해당하고 뭐 그런 게 있겠지만 그걸로 특화된 곳도 있다. 마세라티 행사에 누군가 가 봤는데 기다려도 기다려도 아무리 기다려도, 6시간 기다려도 시작하지 않길래 토라져서 돌아왔다는 사람도 있다. 마세라티식을 몰랐던 거지. 그래도 잘생겼으면 용서된다. 여기도 닭? 개? 오리? 어찌 되었든 분명 지역 정서라는 게 있긴 하지만 전적으로 그렇지는 않고, 생각은 다양하며, 때와 장소와 시간에 따라 바뀜. 심리학도 있고 본능도 있음. 현지 입장만 놓고 보면 위 내용이 (대체로) 당연하고, 뭐한 부분은 나중 개선될 여지가 있음. 뭐든 보기 나름, 표현하기 나름, 이해하기 나름. 사람은 사람이니까 다른 점 빼고는 다 똑같음. 세계가 그렇다. A와 B의 기준선 자체가 다르다. A에서는 환상적─마술적─세계적이란 수식어는 겨우 졸작을 면하고 악평을 피했다는 뜻인데 반해, B에서는 부정적 평은 거의 드물고 대부분 긍정 일색. A에서는 중간이 귀하고 표현이 실제보다 주가지수처럼 선행되고 수다처럼 과장되는 관성이 당연한데, B에서는 기준선 자체가 내려가서 부정1에 긍정9다. 절대 긍정이 기본이고, 기본이 절대 긍정이다. 곧 부정 1은 예의에 어긋남에 가깝고, 그러므로 부정1이 무엇이건 터부시될 소지가 다분할 가능성은 잔존한다. 하지만 고전음악의 재연이 아닌 초연에서 반응이 거북했던 사례가 꽤 있었듯이 아마데우스홀에서 어설픔은 절대 통하지 않는다.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니까. 거긴 중간이 없을 것이다.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 도무지 중간이 없다. 굳이 말하자면 같이 본 친구는 재밌다는데 난 잤다? 푹 잤다? 중간은 어렵다. 어쩌면 제일 어려운 게 중간이다. 망하거나 흥하기보다 더 어려운 게 중간이라고. 그러니까 관객의 기립박수 아니면 공연자의 식은땀과 눈물과 콧물과 비탄 정도? 좋아서 광란하거나 형편없어서 야유하는 공연 문화에서 쓴 맛을 많이 봤던, '고작'에 실망하고 '기껏'에 절망했던 예술가라면 지금 당장 어디로 가시라! 손만 까딱 해도 입만 뻥끗 해도 박수는 기본이고, 탄성은 예의에 덤으로 열성팬까지 형성되는 행운이 찾아올지도 모르니까. 그렇다고 청순하게 마음을 놓으면 곤란함. 1차 성공에 흥이 북돋아 음반 발매에 들어가는 거냐, 현재 분위기 괜찮다 검토하자 뭐 어쩐다, 라고 하길래 딱 믿고 기다렸다가 그때가 언제라고 아직도 기다리는 일이 있을 수도 있다. 산전수전 다 겪은 대장부까지는 아니겠지만, 제 앞가림하고 신수 훤한 젊은이가 어쨌다더라? 완곡한 탈락 결과를 못 알아듣고 바보처럼 여전히 채용 소식을 기다린다는 투정, 들린다. 로맨티스트의 부드러운 거절에 여태 떨리는 감정을 떨쳐버리지 못한 채 미련한 사랑을 못 잊는 사연, 전해질 것이다. 허나 가끔은 YES or NO! 차라리 개방적인 연애와 달콤한 풋사랑이 인상적이었다는 지인의 아련한 회상, 기억난다. 문화가 그렇다. 예술도 그렇다. 괜히 사극에서 그런 게 아님. 민중이 글을 깨우친다? 말도 안되는 일일 테지. 전 세계 언어는 13개 어족으로 나뉘지만 대체로 탄생의 기원이 불분명하다. 그런데 드물게 문자의 기원이 분명한 곳에서는 그랬다. 삼각형 구도는 외국어 때문에 가능했다. 그러다가 내국어의 탄생 때문에 도형의 구도가 바뀌지는 않았지만 많은 변화가 있었다. 백조도 그렇다. 오리와 까마귀가 파울로를 들고서 백조야 놀자? 친구가 될 수는 있다. 북극곰을 살립시다 라는 아카펠라 그룹에서 만나 사랑에 빠질 수도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는 <어림 없다>가 정상이고, 북극곰을 살립시다가 비정상이다. 백조는 흩어지면 흩어졌지 절대로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어디 백조만? 촌닭왕도 그런다. NDJM! 놀고 있네! 웃기고 ...! 라고. 일반인과 유명인도 그렇다. 촌닭 일반인에서 부자 유명인으로 발전할 수는 있지만, 동물의 종이 탄생하거나 소멸할 수는 있지만 죽었다 깨어나도 바뀔 수는 없다. 그러나 이종은 실존한다. 쉬운 예로 동성애자가 있고, 멀리는 미래 생활 사전이 대기중이며, 비현실적으로는 괴물 같은 프랑켄슈타인이 있다. 그렇지만 과거에는 동성애도 TV도 인터넷도 예측은 커녕 상상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가까운 예는 이종이 아니고 틀린 게 아니며 너도 알고 나도 알다시피 다른 거다. 다양성이 그렇다.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여우와 두루미는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 그걸 알면 편하고, 모르면 고생하며, 좋아하면 사랑을 얻는다. 지적인 남자를 좋아하는 미녀도, 선녀도, 요정과 천사까지. 요사스런 술법으로 세계, 문화, 예술, 인생, 동물, 광대까지 머머론 머머관으로 포장한 듯하여 괜한 소란만 피운 것 같아서 귀빈께 송구스럽고, 서술자인 돌쇠한테는 어깨 뽕 들어간 그 촌스런 블라우스는 제발 참아주란 말이 목젓에 턱하니 걸린다. 물론 틀렸을 수도 있고, 과거 기준일 수도 있으며, 웃음과 교훈 둘 다 놓쳤을지 모른다. 그런데 말이야 가만 보니 뭔가 이상하지 않소? 언제는 비하하네 분석하네 어쩌네, 지가 무슨 인문학자라도 된다는 양 분위기 슥 몰아가더니 아 글쎄 듣고 보니 순전히 아첨꾼이구먼! 돌팔이에 약장수가 따로 없어. 병 주고 약 주고 북 치고 장구 치고 아조 난리도 아니야. 하여간 깐족하고는 정말, 허허허. 이런 인간이 말까지 잘했으면 딱 사기꾼인데 아아 그러면 곤란해. 말까지? (피식, 어렵쇼) 글쎄요. 아무튼 그처럼 사람은 누구나 개나 고양이와 닭으로, 물론 곰으로도 의인화할 수 있음. 이쯤 되면 마침내 관상론이 등장하실 차례인데 그러면 얘기 길어지겠다, 그만하자. 이래가지고는 허풍 대회 출전은 어림도 없으니까.
그렇다. 나는 뭐랄까 불행하게도? 꼭 그렇지는 않겠지만 어쩌다 저 1퍼센트가 아니라 100퍼센트에 속했다. 이미 몸과 마음도 다 커버렸다. 그러나 죽을 때까지 그 어느 뜻을 끊임없이 보고, 듣고, 읽고 그래야 한다. 정말 양자의 그 집요함은 거의 신적이다. 종교도 도덕도 다 필요없다. 돈과 힘이 최고인 세상이니까. 합리적인 역사적 근거와 증거와 물증이 지구상의 모래알 만큼이나 많은데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는 국방백서에 <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명시한 것으로도 모자라 학생들에게 가르친다. 그랬다 안그랬다 무슨 사춘기 연애도 아니고 수시로 그런다. 기다 아니다 기다 아니다, 국방백서에 넣었다 뺐다 넣었다 뺐다, 이게 대체 뭘 뜻하는지 통 모르겠다. 국경이 바다인 곳도 이 정도인데 육지에 보이지 않는 선을 그은 곳은 오죽하랴. 나아가 뉴스에도 잊을 만 하면 간혹 나온다. 제2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왜 학생에게 가르치냐는 극우파의 항의가 있다고. 현대판 사이렌인 오락산업의 말만 듣자면 인기 스타는 누가 뭐래도 (쉭-쉭-쉭) 극우파다. 지식인들? 암 말 못한다. 암 말도 못한다. 벙어리가 따로 없다. 아 말은 한다. 극우파에게 시달린 적 있다고. 딱, 그 정도. 그러다 인기와 돈만 챙긴다. 그러다 인터뷰하고 사진 찍어주면 좋다고 폼을 잡고 조명을 받는다. 때 되면 사진과 이름을 알리고, 때 되면 자본을 챙긴다. 대체 누가 그분들을 지식인이라고 하는지 묻고 싶다. 그게 모두 현대의 신 때문이다. 바로 돈! EU에서 누구의 목소리가 제일 클까? UN에서는? 유네스코는? 당연히 돈을 많이 내는 순서로 목소리가 클 수 밖에 없다. 원리가 그러니까. 목소리가 크다고 박수만 치면 끝나는 게 아니다. 회사에서도 친구끼리도 상대편 기분 맞춰주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다. 세상사가 그렇다. 기준은 힘과 체급과 돈이다. 살면서 누가 하와이를 자기네 땅이라고 하는 소리를 들어본 적 있나요? 없다! 일절 없다. 있을 수가 없다. 먼저 선점되었고 그 뒤로는 의문의 여지가 없으니까. 그러나 힘과 체급과 돈이 급격한 차이가 나거나 조지 오웰식으로 빅 브라더에 의해서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유럽에 사는 사람들은 안다. 독일 내에 사는 내국인과 외국인들도 잘 안다.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영화와 드라마와 책과 노래와 전시회가 발표되었을 때 독일 정부가 급박하게 나서서 성명을 발표하기 급급한 사례가 과연 있었는지, 없었는지를. 있는지 없는지를. 법으로도 정해졌고, 법은 잘 지켜지며, 인습으로도 굳건하다. 유럽 사람들은 잘 아신다. 그러나, 그러나 절대 처음부터 그랬을 리는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간의 본성에 반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본성에 반하는데 그 에너지가 뭉친다면 더 하면 더했지 결코 덜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데 그와 반대로, 그 반대편에서는 상황이 정반대다. 제2차 세계대전에 관한 작품이랄지 전시물이랄지 무언가 쟁점이나 기념작이나 예술이 발표되면 각자 정부가 나서서 성명을 발표하기 바쁘다. 최고로 바빠진다. 왜, 도대체 왜 그럴까? 왜냐하면 전부 다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가해자는 없다. 가해자는 사라졌다. 그렇다. 제2차 세계대전이 종료된 지는 한참 지났지만 침략국과 패전국은 홀연히 사라져버렸다. 아니다. 아예 가해자와 피해자는 확 뒤바뀌어버렸다. 최고의 인기 스타는 누가 뭐래도 다스 베이더니까. 책임도 끝났고, 그것은 고리타분한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심지어 오히려 다스 베이더 측에 사과를 해야 한다고 한다. 서구인 여행가가 관광차 독일의 정반대편인 일본에 방문하면 의구심이 하나 생긴다. 몇 년 뭐뭐 몇 년 뭐뭐, 그렇게 옛 유명인들도 연대기라는 게 있는데 여기는 몇 년부터 몇 년까지는 통채로 아예 빈칸이니까. 문화적인 이유가 있겠으나 내 문화가 중요하면 다른 문화도 중요한 법. 그 문화의 옆이 아니라 위에 세계관과 인생관이 있는 법. 유럽과 비유럽의 차이는 잘 드러나지는 않아도 뭔가 있다. 왜냐하면 유럽은 세계에서 제일 먼저 모든 시행착오를 두루 겪었기 때문이다. BBC만 봐도 그렇다. 1982년 4월 2일 포클랜드 전쟁이 발발한 다음 BBC는 먼곳으로 달려갔다. 눈물을 취재하기 위해서. 그 일을 다른 쪽에서는 일부분 개인이나 시민단체가 대신 한다. 그럼 정말 아직도 미래에도 물밑의 분쟁은 멈출 수 없는 것일까? 아마도! 꺼림직한 거 빼놓고는 다 좋은데 그런 뭔가가 있다. 나는 군복을 입던 시절에 내가 입던 군복 측면에 붙은 사단 마크가 이스라엘 국기와 비슷했다. 하던 일도 특수 임무인 땅굴 탐지였다. 엇그제 뉴스에 나왔다. 이스라엘에서 지하 국경을 만든다나 뭐라나. 그건 진짜일까 가짜일까? 답변은 통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은 거의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반면에 왜 그렇게 골이 깊은지를 세세히 잘 아는 사람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자료는 쉽게 찾을 수 있는 반면에 큰 관심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이 그렇다. 이기주의와 사익과 돈이 먼저니까. 그 뿐만이 아니라 중동 하면 뭐라 말할 수 없이 멈칫하는 그런 어중간한 느낌이 있다. 그래서 중동 하면 그냥 사우디아라비아 (석유 캬, 돈과 황금 우와, 슈퍼카 워워), 중동 하면 세계적인 대재벌 만수르 정도만 많이들 떠올릴 것이다. 세계 지도를 보면 어느 곳이던지 국경선이 꼬부랑인데 딱 하나 캐나다와 미국 국경은 상쾌할 만큼 반듯하다. 그런데 그 역시 세세히 들여다 보면 막 어떻다는 사진을 인터넷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디스토피아에서 유토피아로 가는 그래프도 그와 똑같다. 매끄러운 직선과 유려한 곡선인 듯 하지만 알고 보면 거칠기도 하고 슬프기까지 한다. 찰리 채플린의 어떤 말처럼.
대체 왜 다스 베이더측이 사과를 받아야 할까?
대체 왜 아돌프 히틀러의 명복을 기원해야 할까?
그러면 지금 현재, 그 화려한 전성기의 영국처럼 전세계를 침략해도 된다는 논리네?
그 질문에 맞다고 가정하고 이유를 들어보자. 이유는 뭘까? 전세계를 침략하는 악역을 자처해도 되는 이유. 그 이유는 이렇다. 왜냐하면,
첫째, 성공하면 제국이 되기 때문이고
둘째, 실패해도 나중 사과를 요구할 수 있기 때문이며,
셋째, 실패해도 전범국이라는 표시는 스르륵 희미해지다가 결국 피해자로 남게되며,
넷째, 절반의 성공과 절반의 실패일지라도 어디 그 뿐이겠나, 갖은 보물과 노예와 상대적으로 만행이겠지만 당사자에게는 더없는 최고의 행복까지 덤으로 딸려오기 때문이고,
다섯째, 법적으로 나라는 나라를 침략할 수 있기 때문이며(개인 대 개인과 달리 보통 국가라는 게 그렇다. 그 국면에 들어간다면, 종교? 아무런 쓸모도 필요도 없다. 휴지와 쓰레기 1장만도 못하다. 그게 종교다. 그런데 종교니까 세금 내기 싫다? 허허허! 종교니까 민법과 상법과 형법에서 자유로우시겠다? 그건 코메디다! 미안하지만 지금은 종교가 피라미드의 제일 위였던 시대가 아니다. 그게 다 왕좌에 그분이 앉아계시니까 발생하는 뚱딴지 같은 논리 때문이다. 그건 곧 교주가 신이 아니라 교도 각자가 다 신이라는 말도 안되는 말이다)
여섯째, 역사는 반복된다는 경구처럼 앞으로─나는 러시아를 좋아하시만 어쩔 수 없이 톨스토이의 작품 때문에 그냥 불가피하게 러시아를 예로 든다. 이걸로 지탄받아야 한다면 나는 응분의 처분을 달게 받겠다─러시아가 세계를 장악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킨다면 역사는 반복되어 더 먼 훗날 상트페테르부르크 일각에서는 지금처럼 전 세계에 사과를 요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세계를 침략한 러시아가 반대로 피해자가 되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앞으로 자성과 반성은 스윽 게눈 감추듯 감추다 아예 없애버리고, 피해의 사실만을 기념할 것이기 때문이다.
자, 1900년 이전을 보자. 서로 티격태격 다툼이 많았다. 노예만 끌려갔겠나 금은보화가 얼마나 많은데. 그러나 낙장불입, 가져가면 가져오면 끝이다. 정의와 도덕과 윤리라는 게 그렇다. 인도적으로야 제자리를 찾아가는 게 맞지만, 그러면 수많은 유수의 박물관과 미술관들 텅텅 비게 될 일 뻔하다. 그럴 일은 만무하다. 그래서도 안된다. 왜인 줄 아십니까? 대체 왜 그래서는 안되는 줄 아시냐구요? 이렇게 물어보면 십중팔구 모른다. 어른도 십중팔구는 대답 못한다. 하물며 젊은이야 오죽하랴. 듣고 나면 알고 있는 얘기라고 하시겠지만 당장은 말문이 막힐 수 밖에. 벼는 익으면 고개를 숙이지만, 빈 수레와 일명 지식인들께서도 고개를 숙일지는 미지수다. 당연히 그러기 싫으시겠지, 인간의 본성이니까. 뭐 어쨌든 이제 그만 봉투를 열고 답변이 적힌 종이를 읽자. 왜냐하면 인간은, 인류는 둘 중에서 단 하나만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체 그 둘은 뭐냐? 첫째 과거를 표현이야 어떻든 다시 생각하는 것, 둘째 미래의 문명을 보호하는 일. 우리는 그 둘 중에서 하나만 골라야 한다. 그럴 수 밖에 없다. 둘 다를 선택하는 건, 다시 말해서 둘 다를 놓치는 일일 수도 있다. 다행스럽게도 그게 최선이고, 안타깝게도 그럴 수 있어서 그나마 축복 받은 일일 것이다. 그처럼 지금처럼 과거는 과거대로 놔두고, 차라리 미래를 걱정하는 게 낫다. 그 모두가 다 인간에게 신이 시키신 일일까? 아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일은 인간의 일이니까. 신이 무슨 초딩인가! 그러고서 돌아서서는 신에게 기도를 드린다. 나는 좋으니까. 침략하고 식민지배를 받는 사람은 그들 입장이 있겠지만 나만 좋으면 그만이니까. 더군다나, 만약 그러지 않았다면 인류는 이렇게 발전할 수 없었기 때문에. 신이 있는지 없는지는 간과하고 만약 신이 있다면 신은 인류의 역사를 보고서 참담함을 금치 못할 것이다. 아니 정말 그렇지 않겠나? 신을 위하여 그렇게나 떠받들고 노래하고 칭송하며 기도를 드리는데, 돌아서서 으쌰으쌰 난리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역사상 강대국과 강대국이 싸운 일은 있었다. 그러나 시간의 축을 놓고 보면 현대에 가까울수록 줄어들다가 거의 없다가 0으로 수렴된다. 왜? 왜긴 왜겠나 같이 둘 다 파국을 맞이하니까 그렇지. 그렇다면 귀결되는 논리는 무엇일까? 남은 건 하나다. 체급이 딸리는 플라이급, 라이트플라이급, 주니어급, 밴텀급만 괴로워지는 거다. 그냥 아주 죽 쑤는 거지. 물론 역으로 밑에서 위로 뭐 어쩐다면 전혀 다른 얘기지만 말이다. 하이틴 드라마에서는 덩치 크고 억세고 입이 험한 친구들이 가녀린 범생이를 귀찮게 하지만, 역사적-국제적으로는 그와 정반대다. 범생이는 다 가졌고, 저 뒤쳐진 친구는 공부를 놔버린 걸로도 모자라 가냘프기까지 하는데 항상 조심해야 한다. 왜냐하면 범생이가 예기를 뽐내는 동안 그는 소꿉놀이나 몽상으로 만족해야 하기 때문이다. 공룡─새우─공룡이 있으면 중간에 낑긴 새우만 죽어나는 거다. 물론 역으로 밑에서 위로 뭐 어쩐다면 전혀 다른 얘기지만 말이다. 공룡과 공룡끼리는 서로 조심하니까 만만한 건 새우 밖에 없다. 공룡들은 서로 천리안도 광선검도 모두 가지고 있다. 것도 많이 가지고 있다. 성능도 최고다. 그런데 공룡이 아니라 새우가 광선검이 아닌 방어를 위해서 애들 장난감 같은 미니 천리안을 들여놓으면 공룡들은 성명을 내기에 바빠진다. 그것이 즉시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문제가 된다. 이미 다른 공룡들은 다 가지고 있으며, 서로들 천리안으로 항상 주시하고 있는 게 현실인데 그건 자유고, 불문율의 불가침조약이자, 남의 일이다. 역사적으로 인류가 내내 그랬다. 현재도 그렇다. 게다가 지금은 과학 기술이 인류 역사상 최고로 발달한 시기다. 앞으로는 더 할 것이다. 지금도 다스 베이더는 존재한다. 작은 다스 베이더는 존재하는데, 그런데 큰 다스 베이더 곧 빅 브라더는 애매하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으르렁으르렁, 오락산업의 소식을 듣고 읽고서 최소한의 얘깃거리가 생긴다. 지루한 일상에 영화처럼 없던 악당이 생겨난다고! 외교든 정치든 쉬쉬하는 골자는 하나다. 딱 하나! 바로 남을 믿지 못한다는 것. 믿을 수 없다. 믿다가 뒤통수 맞으면 끝인데 남을 어떻게 믿겠나. 속고 속이는 세상인데 말이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그 뿐이겠나, 평화는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는다! 상상 가능한, 상상 불가능한 그런 거 다 있다. 몰라서 그렇지. 3급-2급-1급-무급 비밀. 사춘기에 우정을 배우고 애정기에 사랑을 하듯이 전시는 싸움이고, 평시는 외교다. 그런데 인류는 유독 전자를 편애했고, 겉으로는 후자를 총애했다. 외교라는 게 정말 그 얼마나 냉혹한 낱말인데! 외교는, 그 흔한 친분이랄지 우정이나 사랑과는 얘기가 다르다. 전혀 다르다. 외교의 세계에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다고 하지 않나. 피도 눈물도 없는 진정한 분야 가운데 하나는 바로 외교다. 대외적으로야 웃고 부드럽고 말끔하며 신사답고 정중해 보이지만, 또는 특유의 몸짓과 눈빛으로 외교 대표자는 예절과 격식과 엄격함까지 챙기지만 외교는 바로 다큐멘터리 동물의 세계다. 인류가 지금처럼 덜 싸우게 된 원인이 과학 기술의 발달도 있지만 TV와 인터넷 때문이기도 하다. 외교적 한계를 바로 TV와 인터넷이 매꾼다는 점, 쉽사리 허튼소리로 치부하기에는 뭔가 뒷맛이 개운치 않다. 절대로 미래를 쉽게 쉽게, 좋게 좋게 낙관만 할 수는 없다. 절대로! 일생을 한 분야에 바치는, 모든 것을 다 거는 군사전문가들이 기나긴 장황한 논평을 기고하더라도 결론은 하나다. 게다가 짧다. 그러나 그것은 헤드라인에 슥 한다리만 걸친다. 결국 2는 1를 믿지 못한다는 것. 전문가는 그렇게 글을 쓰고, 비전문가는 사석에서 말을 한다. 2는 언젠가 1에게 등을 돌릴 거라고. 사과? 반성? 자성? 큰 의미는 없다. 절대 없다. 있어도 시류에 따른 일이거나 온도차 때문일 수도 있고, 있어도 가짜일 수도 있다. 더구나 지금 사람들이 한 일이 아니고, 게다가 시대가 변했으며, 심지어 누구나 시간과 지역과 가문을 골라서 태어나지도 않았을 뿐더러 말과 속마음이 같다는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다. 과거와 현재가 천양지 차이듯이 현재와 미래도 역시 그럴 것이다. 거론하는 단어가 양호하다면 표면적으로야 모양새는 좋다. 바로 그래서 더욱 더 의미가 없다. 아무 의미 없다. (일단은 비관의 논조를 이어가자. 비관도 필요한 때가 있고 들어봐야 알게 되기도 하니까) 그건, 별 의미 없다. 절대 없다. 외교의 세계에서 앞과 뒤는 절대 같을 수가 없다. 빈말과 참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예의가 다른 게 예의인가, 거짓말이 예의다. 그래 (딱) 립서비스! 그에 비해 종교는 힘 없다. 역사적으로 오히려 종교 때문에 더 싸우기만 했을 뿐. 호시절 태평시절에야 분위기 따지고 재미와 낭만과 멋과 풍류며 예절를 따지지 돌아가는 기운이 험악하고 죽고 사는 문제인데 기도 드립니다가 웬 말인가. 그건 차원이 다른 얘기일 뿐이다. 앞에서 웃는다고 순진하게 속마음도 미소일 거라고, 입장 표명이 있다고 아무런 계산 없이 한말씀이 툭 튀어나올 수는 없다. 우울하게시리 왜 그렇게 냉소적이냐구요? 인류의 역사가 그 모두를 증명하니까요. 백분율이나 수치는 넘어가자. 그러면 진짜 슬퍼지니까. 그처럼 공동체에 대한 이익의 충돌이었던 문명의 발전도 있지만 개인의 선이라는 미래의 희망도 있다. 쉬운 예로 버려지는 버려졌던 반려동물이 얼마인데 그런 소식을 듣기 쉽던가요? 나는 같이 살던 개를 버렸다, 나는 기르던 고양이를 몰래 버렸다 라는 회오! 사람은 사랑을 고백하지만 대개 사랑만 고백한다.
자 여러분, 한번 생각해보세요. 세계 평화라는 어휘가 드물게랄지 간혹 쓰이기 시작한지가 대체 얼마나 되었는지를. 희곡 한 여름 밤의 꿈이 발표된 시기였을까? 돈키호테나 칼맨이 공연된 즈음일까?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이 초연될 때였을까? 잘은 모르겠으나 그 용어가 일반화된지가 반올림해서 불과 1세기나 되었을지 의문이다. 겨우? 기껏? 라는 환청이 다 들린다. 다스 베이더가 가장 큰 수혜를 입었던, 조지 루카스 사단이 만들었던 영화 스타워즈를 현실로 가져와서 기업의 리콜 같은 문제로 비유해봐도 된다. 세계적 기업이 잘못된 물품을 팔았는데 엄청난 역풍을 맞았다고 가정해보자. 소비자의 피해가 일파만파로 퍼졌다. 세계적 기업이 물의를 일으키든 국가의 잘못이 시대를 넘어서서 화자되든 누구나 그런 소식이 반가울 리는 없다. 그런데 문제는 잘못이 큰 쪽에서 선을 긋는다는 것이다. 한번 굽히면 끝까지 굽혀야 하니까. 많은 경우 문제가 발생해도 가해자측의 최고 직권층도 사과는 이미 다 끝난 일이라는데? 기업의 잘못 때문에 빚어진 중차대한 사태에 대해서 기업은 할만큼 했다, 피해 본 소비자는 하늘이 무섭지도 않냐 그게 대체 무슨 말이냐, 그러므로 기업에서 소비자에게 사과를 받아야겠다? 그게 정말 어떻게 된 일이냐고 어린이가 어른께 묻는다면 어른은 쉽게 설명하기 어려울 수 밖에 없다. 간혹 나타나는 불매 운동, 그거 그냥 잠깐이다. 어른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세상에서는 딱 그 만큼이 최선이니까. 그런데 도대체 왜 다스 베이더측에게 사과를 해야 하는 것일까? 진짜 다스 베이더측에게 사과를 하는 게 맞는 것일까, 아니면 다스 베이더측은 모든 책임을 다했을까? 입장이 바껴도 많이 바꼈다. 이때 적용될 속담은 두 가지다. 첫째 주객전도, 둘째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 어허 이거 정말 장난꾸러기들과 호사가들 좋아할 일일 수도 있겠구나. 세상 이렇게 된 거, 소비자가 기업에게 사과하자. 모든 잘못은 소비자에게 있고 영화 스타워즈에 나왔던 착한 편에게 있다. 모든 잘못은.
사실을 간출이자면 이렇다. 주객이 바뀌어 사과를 요구하는 일은 첫째 당시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고, 둘째 다스 베이더를 위시한 악의 무리의 은하계 침략에 따른 결과였다. 사과를 받을려면 다스 베이더에게 받아야 하는데, 그런데 오히려 다스 베이더에게 절을 한다. 가해자가 가장 큰 폐해를 입고 피해를 입었다고 딱 그것 하나만 기념한다. 더불어 국가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의 명복을 빌기 위해서라고. 논리가 그렇다. 국가를 위해 희생하신 다스 베이더와 아돌프 히틀러 무리가 작고하셨으니 또 어떤 피해를 입었으니, 우리는 다스 베이더에게 헌화하며 영을 기리고, 스타워즈의 선량한 무리들은 사과를 해야 마땅하다 라고. 만약 당시에 먼 미래를 예측할 수 있었다면 이랬을지도 모른다. 도리어 다스 베이더를 위시한 악의 무리에게 먼 미래에 사과해야 할지도 모르니까 해리슨 포드도 빠지고, 누구도 모른 체 하고, 그래서 다스 베이더측이 은하계를 장악하게 되는 시나리오! 또는 먼 미래에 사과를 요구할지도 모르니까 사이좋게 말로써, 차분한 협의로써 종전을 요구했다가 거절당하고(그러면 아이고 그러십니까 하면서 웃으며 응수하겠다), 그래서 다스 베이더측이 은하계를 장악하게 되는 결과! 그렇게만 일이 착착 진행되어서 성공했다면 침입 대비 장악이 균등하지 않았던 영국의 전성기 정도가 아니라...... 아 그건 그만! 그러나 그렇게 진행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실제로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이 호주도 일부 식민지화하는 데 성공했고, 아시아는 물론이요 태평양도 반틈은 장악했다. 설마 나중에 다스 베이더측이 사과를 받아야 하니까 아예 호주를 꿀꺽 했더라면 차라리 더 나았을까? 그 무슨 망언 같은 소리인가. 그래도 오락산업도 먹고 살아야 하니까 오히려 다스 베이더측은 사과를 요구하고 착한 편은 사과를 거절하고, 그게 낫겠다. 어른들도 이상한 뉴스가 나오면 자칫 갸우뚱하는데 어린 영혼들과 젊은 친구들과 여린 심성의 소유자들이야 오죽하겠나. 이제는 누가 누구에게 사과해야 하는지 진짜, 정말로, 의문이 든다. 세월이 100년 지나서 딱 여기서 여기까지를 뚝 떼서 보면 당연히 잘못이고 과오이자 슬픔이다. 당연히 그렇지 왜 아니겠나. 단, 뚝 떼서 딱 그것만 본다면! 우리 모두는 다스 베이더와 악의 축에게 사과해야 마땅한 것이다.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문학? 좋다. 왜 나쁘겠나. 그러나 현실을 보시라. 사실을 직시하자. 다스 베이더가 사용했던 레이저검이 지금 현재 이 지구상에, 대체 이 세상에 몇 개나 실존하는지를. 다스 베이더라고 광선검이 왜 없겠나. 무슨 소리를. 오히려 광선검 분야까지 다스 베이더는 언제나 세계 1퍼센트다. 그러면 지구상에 광선검이 자그마치 총 12개일까? 에게, 라니요! 그 개념은 무시무시하지만 말이란 게 이렇다. 말은 쉽다. 글은 더 쉽다. 말로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그 정도는 아닐지라도 말과 글도 약간 그런 측면이 있다. 수박 겉핥기와 마지막 잎새, 그게 과연 어디 종이 한 장 차이인지 난 도통 모르겠다. 아무튼 시간이 오래 지나서 결과를 따지고 보니 그렇다. 제일 큰 일로 대표적인 것만 언론에서 작품에서 간혹 다루고 넘어간다. 그게 다다. 심지어 그에 따라 인기와 돈은 어떤 호박처럼 제발로 걸어서 엄한 쪽으로 갔을지도 모른다는 점. 전쟁은 호혜주의도 무역주의도 종교적 자비와 선량한 인심이 다가 아니라 일방적으로 이상하게 가해자에게 노른자가 가는 것은 아닐까, 역사적으로 전쟁을 일으킨 나라가 나중 잘 살더라 아니면 잘 살기 때문에 전쟁을 일으킨 것일까, 떵떵거리며 얼굴을 알리고 떼돈을 벌고 인기를 구가하는 세간의 말로 대가라는 위인들께서는 왜 이런 의문점을 단 한 번도, 많이 다루셨을 테지만 그래도 왜 정말 멋질 정도로 제시하기는 싫어하시는 것일까? 설마 못해서? 악역은 맞기 싫으니까? 그건 아니겠지. 아니기를 바란다. 부디! 부끄럽지도 않으시나 보다. 이런, 젠장! 그게 무슨 대가야 뒷골목 약장수 만큼도 못되네. 완벽한 합리주의! 아, 장난이다. 그러고도 일류라고 폼 잡고 좋아하시다니, 물론 농담이다. 상인과 농부와 기술자들은 성실히 일하고 가정의 평화를 지켰다쳐도, 예술가는 뭐했나? 예술가의 자존심은 대체 어디에 숨겨뒀냔 말이다. 지금이 아직도 냉전의 시대인가? 그러고서도 챙피한 줄도 모르신다. 조명발은 언제나 진리니까. 남의 다리나 긁으면 그나마 다행이고. 물~론, 극소수 일부만 그렇다는 말이다. 지레 도둑이 제 발 저리지 않아도 되고, 실로 그러지 않는다. 너 촌닭 나 촌닭 우린 모두 최고니까. 인기와 돈을 챙겼는데 위대한 거장이신데 건드리면 안된다. 훌륭하시니까. 뛰어나시니까. 아름다우시니까. 올치~! 존엄하시니까 말이다. 으잉, 개구멍을 잘 찾아보면 있다고? 뭐가, 예술가의 존엄성이? 아, 뻔트? 그러면 뭐 하나. 팔이 안으로 굽는데! 다, 모두 다 자기가 피해자래. 가해자는 어딨어? 한 명도 없다. 시대도 바꼈다. 다 어디로 가버렸을까? 감감무소식이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제 다 잊어버렸단 말인가? 정녕 사과를 받고자 하는 사람만 남았고, 지난 일은 지난 일이기 때문에 그냥 잊자, 그게 다인가? 정말 그런가? 아니 당연히 희망찬 미래를 향하여 우리 함께 밝고 자신있게 나아갑시다, 이거 싫은 사람이 어디 있겠나. 아 정말 이거 나 원 참, 맙소사! 호메로스가 펜을 놓은 게 언제고 고대 그리스-로마의 웅변가들이 어떤 철학을 남겼는데 아직도 살살 간지럽히고, 슬슬 아부하고, 딸랑딸랑 좋은 말만 듣고자 하시는가. 요컨대 실제로 시대의 비극과 참상과 비창과 만행 99 다음에 1의 역사적 사건이 있었다. 그런데 매번 반복되다시피 불미스런 사실은 굳이 들출 필요가 없고 미래에 도움되지 않으니까 침묵하는 게 옳다, 그러므로 99는 묻고 덮고 1은 만천하에 알리고 기념하고 사과를 받자? 그건 아니다. 그건 아니지. A부터 Z까지 곳곳의 식사 예절이랄지 문화가 다 다른데, 딱 하나의 식습관과 단 하나의 인습이 세계관보다 위에 있다는 논리니까. 뿐만 아니라 부정 99는 부정 999까지 갈 수 있었다. 실패하지만 않았다면! 게다가 사실 99는 잊혀져가고, 99에서도 99만큼의 아픔에 대한 복원은 불가능하다. 아무리 선을 말하고 신에게 기도를 하며 예술이 반복될지언정 그 모두는, 시간만 끌면 끝난다. 그게 다다. 딴 거 없다. 어차피 시대의 비극과 참상과 비창과 만행 99는 상식이 되고, 역사적 사건 1이 제일 유명해지며(99를 아시나요? 그렇다! 99는 쉬쉬 1은 모르는 사람이 없음), 비운이긴 하지만 다스 베이더만 기리기리 화자된다. 더군다나 공식적으로 99는 쉬쉬하는 분위기에 오히려 1은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되는 경도된 윤리, 그냥 책과 박물관과 다큐멘터리 속으로 들어갈 뿐, 그 모두는 기억과 사실보다는 점점 문자와 기록으로 각인될 것이다. 어쩔 수 없다. 왜냐하면 시간은 앞으로 흐르고 예술과 오락뿐만 아니라 자유와 방종조차 그 구분이 희미해져갈 수 밖에 없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인간이 구현하는 논리는 두 가지다. 첫째 그 모두를 법으로 규제하던가(실제 얼마만큼 제지하는지 아는 사람은 안다), 둘째 조지 오웰식으로 SF 영화처럼 부도덕을 생각만 해도 계획만 해도 처벌하는 것. 첫째와 둘째가 공존하는가는 잘 모르겠지만 1과 2는 이미 일부에서 엄정히 현행되고 있는 실정이다. 무언가 쉬쉬하는 느낌과 잔잔한 분위기가 없잖아 있었던 99에 비해 1의 비중이 큰 것은 미래에 대한 걱정의 취지가 원대한 것이지 1의 슬픔만 기억하고 간직하자가 아니다. 조용히 하늘나라로와 생지옥의 비율과 그 발단이 있었으니까. 그렇긴 하지만 99에 대해 매해 내내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사과를? 날새겠다! 단, 1에 대해 묵념하고 다스 베이더의 명복을 기리는 건 절대로 빠트릴 수 없음. 팔은 안으로 굽으니까. 그럼 화합은? 9번 교향곡 있잖아요. 공연장 많고 연주단은 물론 거장까지 많은데 대체 뭐가 문제입니까. 원주율 같은 수학 법칙은 시간이 해결해 줄 수 밖에. 알카트라즈에서 죄수 번호가 파이였기 때문에 원주율을 소숫점 세 자리까지만 기억하는 사람이 생각했을 때는 그렇다. 정치권의 모양새나 온도 차이 때문에 일반인의 주관과 인지상정 다 같은 사람의 온정이 시달릴 일은 사는 동안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걸 감안하지 않으면 안된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하는데 라며 아 또 그 얘기, 100년 안쪽의 근대사긴 하나 조상들의 일이니까 난 상관없어 라면 선긋기, 격에 맞지 않는 태도, 어떤 불균형에 대한 불합리, <처음부터 끝까지>에 대한 비이성적 판단등에 대해서 시간은 되돌릴 수 없는 만큼, 참혹한 불상사가 반복되어서는 안되는 만큼 할 말은 해야 옳다. 어버버버, 말을 못하거나 귀가 들리지 않는 이상은! 딸랑딸랑 응애응애 참새 짹짹 병아리 꽥꽥, 애가 아니라 어른인 이상! 감추고 숨기고 모른 체 하는 게 능사가 아니라 그럴수록 정면돌파를 하면 된다. 왜 그럴까 생각을 하면 된다. 그렇다고 정면돌파만은 피해야 하는 상황에 청개구리가 되서는 곤란하고. 그러므로 왜 역사적 사건 1이 있었는가를 알아야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라는 명제를 내게 유리하게 쓸 것인가 말 것인가, <처음부터 끝까지>라는 명제에 해당하는 사안인가 아닌가, <처음부터 끝까지>에 얽매이지 않아도 되는 일인가 아닌가, 그걸 먼저 아는 사람이 되야 한다.
여러분. 존경하는 여러분. 생각을 한번 해보세요. 세월이 흐르니까 비록 악명일지라도 정녕 다스 베이더가 제일 유명해진 것 같지 않나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솔직히 그렇다. 난 스타워즈 하면 무조건, 무조건 다스 베이더다. 아 그리고 광선검. 영화 스타워즈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인물은 단연, 단연코 다스 베이더다. 장난꾸러기들도 그렇다. 무슨 미스테리 어쩌고저쩌고 그쪽에서 제일 구닥다리 인기 최고 가운데 하나는 히틀러의 남극인가 남미던가 실존설이다. 엄한 낭설은 이미 옛날에 인기 하락했겠지만 그 유명도는 끝없는 특급이다. 오명일지라도 유명세는 유명세고, 지금은 어디까지나 오락 산업이 대세이니 우리는 그냥 대세에 따르자. 그러면 된다. 뿐만 아니라 어른들과 현재의 아동과 미래 세대까지 오히려 다스 베이더에게 사과하고 뭔지 모를 명복까지 빌어야 한다. 이왕 그렇게 된 거 그럽시다. 뭐 어쩌겠수! 그게 어디 제 허물이유 형씨 잘못인가유, 그게 모두 세상탓 아니냔 말이에유! 실제로 일부 정치인들은 루돌프, 앗 아돌프 히틀러의 명복을 기리기리 기리신다. 더군다나 생각이 자유로운 철없는 마초도 적지 않다는 것은 물론 모든 인간의 본성과 그늘과 원죄와 두뇌 과학과 한두 가지 단어나 어떻게 부르든 음성적인 구석이 있다는 건 모르는 사람이 없다. 무엇보다 현재는 자유와 예술과 오락산업과 그리고 1인칭 시점이라는 나, 이기주의자라는 나, 인기와 돈도 모자라 존경까지 바라는 내가 최고이자 최선인 세상이니까. 이쯤 되니 9개인지 10개인지 교향곡을 썼던 구스타프 말러에게 내가 다 미안하다. 미래에 나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하셨는데, 왜 하필 교향악을 녹화했던 방송 카메라는 청중쪽을 비춰서 관중들의 뚱한 표정을 남겨놨는지 지금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아주 울기 직전이었는데 설마 내가 잘못봤을까? 미천한 이 내 몸이 잘못 봤기를 바래야지 별수 있나. 내 눈이 삐었는갑다. 진짜로!
오오, 신이시여! 왜 인간의 일은 인간의 일이어야만 합니까. 아아, 인간이시여! 인간은 상대적으로 모종의 신에 해당할 만한 영장인데 언제까지 서로 다퉈야만 하는 겁니까. 꼭 그렇지는 않겠지만 기도문 성격의 노래 제목 같은 게 생각 났을 뿐 다른 뜻은 없다.
어쨌든 요점을 몇 개 간추려볼까. <처음부터 끝까지>에 얽매이지 않아도 되는 게 있으면 <처음부터 끝까지> 알아야 하는 사안도 있다는 점. 정부는 어디까지나 최우선적으로, 태생적으로 울타리 안의 이익(만)을 추구하기 위해 존재하기 때문에─그 목적만 충족해도 낙점인데 그마저도 얼마나 어려운 일이란 말인가─이상과 윤리와 소수와 민심을 균등히 또 보편적으로-이상적으로 지향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 사람 사는 곳이라면 그 어디나 보통 사람의 마음이야 이심전심이라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건 리더의 관점이라는 점. 승선원은 따라갈 수 밖에 없으니까, 안 그러면 배가 산으로 가는데? 그게 모두 총괄적으로 어떤 요인의 총합이 그렇지 않을까 추측하게 된다는 점, 곧 한쪽과 반대쪽의 서구화의 총량과 2000년 이상 지속된 문화의 일반화와 그것에 대하여 후발주자라는 점, 더불어 경제적 지표의 총량도 월등히 차이가 난다는 점, 나아가 지형적으로 또 시대적으로 교류가 유럽보다 덜 원활할 수 밖에 없다는 점 등등. 그리고 미래를 내다보기가 쉽지 않은 것처럼 과거 시점과 이타적인 관점과 거시적인 <처음부터 끝까지>를 살펴보기에 이 세상에서 악역은 불분명하다는 것. 왜냐하면 그런 작품상의 악역은 나일 수도, 너일 수도, 오락산업일 수도, 아직 없다면 만들어야 하나 의구심이 들 만큼 낙원도 지옥도 아닌 이곳은 천태만상 요지경 세상이기 때문이다. 하나 더. 우리 남자들의 로망 스타워즈의 다스 베이더 군단을 구현한 레고 인형 세트만 봐도 우리는 가슴이 울렁울렁한다는 점. 그러나 여자라고 면죄부는 없다. 대표적으로 아마존을 생각하면 되니까. 암울한 시대에 펜은 시퍼런 총칼에 억눌려 말할 수 없었고, 지금처럼 좋은 시대에도 역시 다른 이유로 특별한 말 하지 않는다. 지식인의 옳은 소리는 고리타분하게 들릴 수도 있으니까. 괜히 어설프게 오락적 예술가가 순수예술가와 학자를 흉내내다간 손가락 빨기 딱 좋기 때문에. 그렇게 파리 날려 봐야 뭔가를 깨닫고 다시 전공으로 돌아간다. 핑핑 놀다가 영감이 딱 떠오르거나 영감이 떠오르지 않아도 주머니가 궁하면 뭐 어떻게 작품 내서 우량 배당주식을 살 수 있는 돈을 벌고, 인터뷰 몇 번 해 주고 사진도 같이 웃으면서 찍어주고, 사인? 못할 게 뭔가. 나 좋다는 데 인기와 황금을 주겠다는 데 호응하지 않으면 손가락질 받지 않겠나. 똑똑한 양반 뿐만 아니라 말만 많고 타율만 높은 작가들도 명색이 작가지만 그분들도 주로 돈과 인기를 신봉하는 게 현실이다. 바디랭귀지가 세계의 공통 언어라고? 단, 돈 다음이다. 만국 공통어인 음악이랄지 표정이랄지 그런 가치? 단, 돈이 먼저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다. 작가라고 다 같은 작가가 아니다. 물론 대체로 그렇다는 뜻이다. 한 여자가 말한다. 우린 사랑이었는데 그때 그 오빠가 왜 아무런 말없이 날 떠나갔는지, 나는 지금도 알 수가 없다고 도저히 모르겠다고. 모르신다 모르신다? 정녕 모르시겠다? 자, 자, 새겨들으시라. 기억하세요. 다만 원하는 답이 아니라면 잊읍시다. 잊혀질지 모르겠지만 말이에요. 그 남자가 왜 떠나갔을까요? 별명이 진공청소기였던 그 남자가 대체 왜? 그 남자는 바로 어떤 이유로 그녀를 떠나간 것이다. 그것은 둘 중 하나다. 첫째 사랑이 아니거나, 둘째 그녀가 들고 다니는 책은 파울로 코엘료였기 때문에. (파울로 코엘료의 작품은 진리지만 일단은) 삐삐─ 삑삑─ 워워 커피포트 바빠지겠네. 것 보세요. 어두운 시대에는 압제 때문에 할 수 없었다쳐도, 밝은 시대에는? 밝은 시대에 이처럼 사랑을 노래하고, 이와 같이 사랑법의 설을 풀고, 이렇듯 사랑업의 씨를 뿌린다면 실연 당한 그녀께서 퍽이나 좋아하겠네요. 듣고 싶은 답이 아니기 때문에 말할 수 없다 없다 안된다 안된다, 아니다 아니다 알려주라 알려주라, 떼쓰고 우기던 끝에 투정을 도저히 잠재울 수 없고 닦달은 해도 해도 끊이질 않길래, 아무리 그래도 말을 듣지 않길래 부득불 어쩔 수 없이 원치 않는 정답을 떡하니 가르쳐줬는데, 어머나 세상에나 점성술사를 쥐잡듯이 잡네그려! 뭐 사랑의 본질에 관해 자상히 응? 소상히 알려줬는데 그녀가 화를 내? 뭐 지는, 어? 자기는 고고한 숙녀라면서 말투하며 막 그랬는데, 겪어 봐도 딱 봐도 촌년이네 촌년! 그런데 상담자가 만일 남자라면 그는 희대의 난봉꾼으로 돌변하지 말란 법도 없다. (딱─골 세러모니)! 실정이 이렇다. 인간 세상의 실정이 딱 이 만큼 친절하시다. 솔직한 점쟁이와 시대를 앞서 가는 누군가는 당대에 인정 받기가 어렵다는 점, 너도 알고 나도 아는 상식일 뿐이다. 지식인과 유명인과 예술가들이 절대 못해서 그러는 게 아니란 말씀. 아니 그런가요? 그런데 유명인과 지식인만 그런 게 아니라 일반인도 똑같다. 옛 시대에 지식인은 어쩔 수 없이 바른 소리를 못했고, 지금 시대에 지식인이 그런 작품을 발표하면 대중은 싸늘히 외면한다. 실익과 정보와 쾌락과 오락과 합리와 잔잔한 기쁨을 원하는데 이따 만한 두꺼운 책? 이걸로 누굴 때리란 거야 베고 낮잠이나 자라는 거야? 그래서 잤다 일어나서 냉수 마시고 속 차리라고? 이 양반이 지금 나랑...... 워─워─워! 그처럼 일반인께서 오해하시기 십상이다. 현실이 그렇다. 그래서 누구나 어쩔 수 없이 황금과 인기를 쫓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가령 인생이란 무엇인가, 무엇이 나인가, 나는 나를 안다고 할 수 있을까 없을까, 나는 나에게 문제적이다, 나는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 내가 천국에 못 가는 이유, 내가 원하는 천사,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 등등 이런 작품을 쓴다? 지금은, 이런 작품을 쓸거라면 당연히도 가난을 각오해야 할 수 밖에 없는 세상이다. 가난한 남자와 싫증난 여자? 말만 들어도 기쁘고 설레며 들뜨지 않나요? 가끔 가난한 사랑도 있고 순수한 사랑도 있긴 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어쩔 수 없다. 먹고 싶은 거 못 먹고, 비리비리하게 살고, 쥐꼬리 만한 월급에 벌벌 떨고, 우울한 인생이지만 하지만~! (쿵) 쉿? 쉬쉬하지 않아도 된다. 당당히 밝힐 수 있고,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비교적 도덕적이고 비교적 떳떳하니까. 지킬 건 지키니까. 나는 외우는 시도 한편 있고, 외워서 부를 수 있는 노래도 몇 편 되며, 나름대로 누구에게나 할 말 하고, 잘 들어주며, 생긴 거 그래도 이만 하면 아주 빠지지는 않고, 교양도 있고 인정도 두텁고, 잘 찾아보면 나에 관한 미담도 꽤... 아마 없지는 않을 것이고, 어디 가도 내 존재감 있으며, 뭇여성들에게 깊은 인상을 자주 남긴다? 게다가 전직 화가였다? 어, 예술가? 그런데, 그런데 가난하다? 그러나, 그러나 난 좋다? 행복하시다? 세상은 아름답다? ...... ...... 그것은 기쁜 우리 젊은 날이다. 어머 어머 세상에나 아니 글쎄 어쩜 나와 그렇게 똑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지? 완전 똑 닮았다. 나도 그렇다. 나도 완전 그렇다. 나도 딱 그렇다. OK! 그대는 하고 싶은 일을 하시면서 근근히 먹고는 사신다? 와우! 세상에 이보다 더한 기쁨이 그 어디 있단 말인가! 아니 그렇소? 그것은 어디서 언제라도 그 짝을 찾아볼 수 없는 완벽한 행복일 것이다. 거짓말이 아니라 내 솔직한 마음이다. 증명할 수 있다. 근거 있다. 왜냐하면 난 지금까지 살면서 단 한번도 거짓말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승부사, 해결사, 도박사, 로맨티스트, 사색가, 몽상가, 만담가, 신비주의자, 예언가, 호색한, 괴짜, 모험가, 구경꾼, 황금만능주의자, 초현실주의자, 환상가, 고전주의자 등등 그렇게나 별명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별명 다 내가 지었고 스스로 수여했어. 피식! 여러분, 어두운 시대에 살아남은 글을 한번 읽어보세요. 요즘 세상에 그런 글이 나올 수 있을까요? 있겠죠 왜 없겠어요. 실제 훨씬 더 훌륭하고 재밌는 작품은 쉬지 않고 끊임없이 나오지 않나요. 고품격 예술 전성 시대니까요. 그렇긴 해도 아무래도 그 어떤 뭔가는 좀처럼 어렵지 않을까요? 왜냐하면 너무나 풍족하고 아름답고 즐거운 시대니까요. 그런데 내가 원래 추구하는 이상형은 이런 게 아닌데... 정말 아닌데... 요점이 간명한 동시에 감동적이어야 하는데... 그래, 강렬하게 임팩트 빡! 아 글쎄 결론이 도무지 끝날 줄을 모르네. 원래 내가 추구하는 글쓰기는 이렇다. 그것은 바로 역피라미드형 글쓰기. 뭔가 있는 듯이 분위기 잡고 상황 몰아가고, 기분을 붕붕 띄워주고 살살 간지럽히면서 좌중을 모아서 휘어잡고, 기대와 예감과 궁금증과 호기심은 물론 감수성까지 아 꿈과 희망과 선망까지 쥐락펴락 쥐락펴락, 그러다 막판에 내가 홀연히 연기처럼 딱 사라지는 마술! 그런데 요즘 그게 잘 안되서 그냥 쥐꼬리 만한 동시에 허무한 결론만 내놓기. 일명 허당. 은근 이란 수식어에 무던히도 목말라 하는. 다른 말로 기승전결 없고 발단만 있는 글쓰기. 누군 뭐 전개로 가기 싫어서 발단에만 머무를까, 내가 뭐 못할 줄 알아? 들린다 들린다. 막상 해보니 안되더라. 입만 살았네. 사람들은 안다. 그 말은 곧 안하겠다 못하겠다는 뜻이라는 걸. 그러나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할 수 있다. 기나긴 발단에 이어 파격적인 전개로 발전하기를. 그런데 말이다, 해도 해도 안되더라 라는 말씀은 차마 못드리겠다. 그렇다. 송구스럽게 됐다. 그래도 일단 시작한 거 끝까지 가야 한다. 그러니 칸을 띄어서 나머지 요점을 정리하자.
사람들은 말한다. 살다 보니 와 저분은 정말 천사가 아닐까 라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어떻게 자기 잇속 하나 챙기지 않고 무식할 만큼 이타적으로 사는 사람이 있다고. 정말 있다. 하지만 꼭 그렇게까지 어려운 길을 가지 않아도 기본적으로 중간만 가면 나중 낙원에서 천상의 기쁨을 누릴 것이며, 이승에서 못다 이룬 꿈을 이루고 말 못할 슬픔의 한을 풀 수 있을 것이다. 천국에서는! 따라서 어지간하면 패자부활전은 모면할 것이다. 다만 시대가 시대인 만큼 과거 기준의 신화와 전설과 신성한 어떤 진리는 당시에는 미처 지금 만큼의 현재와 다가올 미래를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란 점. 상상하기 어려웠으리라는 점, 십분 이해해야 한다. 잘 아시다시피 지동설이 받아들여지기까지, 어느 어느 법칙이 공식적으로 일반화되기까지 정말 까마득하게 장구한 세월이 흐른 다음에야 겨우 받아들여졌다는 점, 그것과 함께 생각해야 한다. 명백히 부정할 수 없는, 부정해서는 아니될 착오와 잘잘못은 있을 수 있다는 점. 오늘의 완벽함과 정의가 내일은 풍선과 솜사탕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 그런 모종의 착오를 가정하거나 상상하는 건 절대 나쁜 것도 아니고, 어느 선행이나 일련의 신앙들에 결코 먹칠하는 게 아니다. 절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신이 있든 없든 많든, 일관성이란 기준을 만족시키는 예는 보기 힘들다. 종교는 보험이 아니다. 토속 신앙에 대한 정성도 저승에서의 부귀영화를 장담은 할 수 있으나 아직까지 확인된 적은 한번도 없다. 그래서 신이 있든 없든 많든 교양과 상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인생을 즐기는 것 역시 좋은 방법이라 할 수 있다. 하루에 착한 일 1가지를 기록하는 어린이의 그림일기처럼. 신이 있든 없든 많든 관심 없든 어느 가설이든 모두 일리 있고 존중할 만 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개념은 역시 뭐니 뭐니 해도 선이다. 신이 있든 없든 많든 관심 없든! 좌우지간 보수적이든 진보적이든 제일 경계해야 할 개념은 지구를 거꾸로 돌리는 일. 무엇보다 지구와 사람이 바로 타임머신이라는 점. 누가 봐도, 정말 너무 안타깝도록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지 않는 분들처럼 노력하지 않더라도, 중간만 가면 낙원은 그대를 반길 것이다. 전후좌우 사정 역시 참작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중간이라는 기준선이 썩 고정적이지 않다는 것. 더구나 개인의 잘잘못과 과오야 있을 수 있지만 개인 대 개인이 아니라 쉽게 말해 파급력이 큰 사람의 잘못된 악행은 단순히 개인만의 과실일 리 없다는 점, 결코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물론 그 모두가 단순한 희망 사항일 수도 있다. 하지만 뚜껑은 열어 봐야 안다. 뚜겅을 열어 봐야! 제우스가 모든 죄악과 재앙을 넣어 봉한 채로 판도라를 시켜 인간 세상으로 내려보냈다는 상자, 바로 판도라의 상자! 처음의 주문이 이행됐든 이행되지 않았든, 중간의 내용이야 어찌 됐든 판도라의 상자는 열렸다. 그런데 역으로 그와 비슷한 예가 하나 있다. 즉 언젠가 관 뚜껑은 닫힌다는 점. 아이언메이든? 오오 존엄한 인간이시여 위대한 인간이시여! 그의 인생은 불행했다? 중차대하게 물의를 일으키지 않는 선에서 행복을 추구하시기를. 사랑을 실천하시기를. 진정한 사랑을. 개인의 행복과 단위의 이상이 잘 어울리기를. 다운증후군의 그 순박한 미소처럼 무언가 조화롭기를 바란다. 보너스. 살다 보니 소신이 찾아가지 말아야 할 고장이 생기고, 방문해도 괜찮은지 입국을 거절당할지도 모르는 나라도 생기며, 어쩌면 누군가는 주홍글씨와 금서와 소문과 파란과 미래파의 주인공도 모자라 어쩔 수 없이 악역으로 어쩌다 굳혀지고, 만나서는 안될 만날 수 없는 멀리서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만 할 사람이 점점 늘어나는 것만 같은 인생도 존재할 수 있다는 점. 에르메스와 페라리는 요원한데 아예 블랙리스트에 일치감치 올랐으니 참으로 경축할 일이 따로 없구나. 아이 좋아라 아이 좋아라. 형씨, 지는 뭐 이 일이 좋아서 헌 일인 줄 아시유? ...... ...... 좋아서 했시유. 지가 좋아서 헌 일이구먼유! 선생도 참말로 천진하시기는.
아아 들린다 들린다. 오오 보인다 보인다. 와와 진짜다 진짜다. 네, 뭐라구요? 두고 봅시다? 우리 저승에서 만납시다? 이거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당신은 하데스요 누구요? 냉큼 대답하시오. 어 조용하네. 누가 방금 말했는데. 그대는 정녕 누구신가요? 네 뭐라구요, 단테 알리기에리가 쓴 연옥편이 모두 진짜라구요? 대표적으로 요한계시록도 실제 어떤 곳인지 곧 있으면 알게 될 거라구요? 뭐에요 정말요? 쫄기는! 뻥이다. 그러나 진짜인지 아닌지는 정녕 가 봐야 안다는 것. (딱)!
끝으로, 우리는 신나치주의에 대해서 알아봐야 할까? 아니다. 차라리 우리는 독일 정부에 사죄해야 한다. 뿐이냐? 기업은 어제 소비자를 천대했건 우대했건, 오늘은 소비자를 우롱하고 학자를 천시하며, 내일은 그 모두를 희롱하고 농락하며 끝끝내 소비자로부터 사과를 받자. 그러면 정말 좋겠네 정말 좋겠네! 선과 악, 죄와 벌. 인간은 현대 문명의 혜택을 입는 만큼 인류의 어떤 과오를 상쇄하는 최소한의 노력을 해야 하리라. 만약 그러지 않는다면 죄는 내가 짓고 벌은 타인이 받을 수도 있다. 이승에서 운 좋게 벌을 피해 갔다면 저승에서 외상값은 충분히 이해타산될 것이다. 용케, 이승에서 승승장구했을지라도 저승에서도 그럴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만약 다스 베이더가 저승의 신이라면 모를까 다스 베이더가 신이 아닌 이상, 이승에 계신 인간께서는 생각 잘 해야 할 것이다. 지옥행 티켓이 무엇인지 모른 체 해 봐야 소용없다. 우리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직전에 그러셨다. 사는 동안 내내 우리 엄마한테 못되게 박정하게 대하시다가 돌아가시기 직전에 사과하셨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미안하다고. 그래서 우리 엄마는 뭐라고 하셨을까? 좋게 좋게 호응하셨을까? 아니다 절대 아니다. 서슬퍼런 저주를 선언하셨다. 종교가 그렇다. 언젠가 귀의 하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그건 우리 할머니의 우리 엄마에 대한 과오와 똑같다. 종교는 완벽하지 않다. 종교의 틀린 점 가운데 하나는 대표적으로 그것이다. 회개하면 된다는 점. 좋은 의미지만 쉽게 악용되거나 오용될 소지도 크다는 점. 그것은 인생을 99.99% 막 살고 죽기 직전에 회개하면 천국행이라는 뜻이다. 그건 아니다. 그건 말도 안된다. 그건 틀렸다. 하지만 그건 직역했을 때 오해의 소지가 크다는 것이고, 의역하자면 이런 의의가 담겨 있는 것 아닐까? 인문-교양서처럼 머머해라 머머하지 않으면 안된다 머머할 수 있다, 그처럼 넘어져도 게으름에 빠져도 지쳐도 포지셔닝을 점검하고 슬로건을 검토하며 인생 모토를 잊지 말라는 뜻. 그건 곧 후세에서 각고의 노력으로 만들어서 남긴 뜻을 따르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아니라, 의역하라는 뜻이고, 때문에 오뚜기처럼 실패와 좌절과 허물을 범했을지라도 이겨내라는 의미를 뜻할 것이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하면서 악마의 길로 들어서지 말고, 오뚜기처럼 일어나 뚜벅뚜벅 내일로 나아가라는 뜻이다. 세상이 하늘과 땅 차이 만큼 변한 이상 옛날 기준으로 설정된 직역만 고집해서는 곤란하다는 말이다. 물론 100퍼센트 나쁘게 사는 것보다야 나을 수도 있다. 그나마 우리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직전에 엄마한테 진심으로 펑펑 우시며 사과하셨으니까. 사는 동안 인간은 그 삶이 자기의 인생이니까 자기 마음대로 살면 된다. 마음대로 살라 마라 말할 권한은 누구에게도 없다. 단 이승에서만! 단 저승에서도 마음대로-일 수는 없을 것이다. 절대 그럴 수 없을 것이다. 내 입장이 아니라고 인간 이하, 인간 미만의 삶을 사는 것은 인간으로 사는 의미가 없다는 뜻이니까. 줄은 어디에 서도 좋고, 뭘 해도 자유고, 다스 베이더의 영을 기리고 그분께 기도하며 절을 해도 괜찮다. 인간은 최소한의 도덕률을 지키며 살면 그만이다. 다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다스 베이더와 똑같은 생각을 품고 있는 사람, 즉 양을 탈을 쓴 늑대─실제로 늑대는 어떻다고 하지만─는 사후에 응분의 처우를 달게 받게 될 것이다. 좋든 싫든. 늦게나마 그때에 가서야! 지옥에 당도해서 그때야 깨닫는다면 늦다. 그건 몰라서 늦은 게 아니다. 왜냐하면 이미 알았지만 뭔가가 싫었기 때문이고, 애초에 그렇게 태어났기 때문이다.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 그리고 인간은 영원히 살 수 없다. 아시다시피 어느 교주도 요절했다. 과거의 다스 베이더도 이승을 떴고, 현재의 다스 베이더는 어떤 숙명으로 어디서 잘 살 테지. 신은 믿어도 믿지 않아도 좋다. 중요한 건 선이니까. 다만 신이 인간의 죄를 모두 사하여 줄 것이라는 순진무구한 직역은 권하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2000년 동안 지켜봤더니 신이 인간의 죄를 사하여 주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 뚜렷하게 증명됐기 때문이다. 무엇을 믿고, 속지 않고, 직역하고 의역하고 번역하고, 상대의 숨겨진 속마음을 추측하며, 생각하고 판단하고, 그 모두는 자유다. 그러나 이승에 법이 있는 것처럼 이승 다음에도 무언가는 있을 것이다. 그것은 인간도 신도 초딩이 아닌 이상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원리다. 인류는 그간 놀이터에서 즐겁게 아름다운 나비와 뛰어놀았고, 공원에서 신나게 오리배도 탔고, 소풍 가서 사랑의 보물찾기도 했다. 슬플 때도 있었지만 많이 기뻤고, 흥미진진했으며, 행복했다. 그래서 인류는 이제 유아기를 졸업하고 걸음마를 마친 만큼 아장아장 걸어야 한다. 자장가도 행진곡도 환상 장난감도 풍요롭다. 그러므로 이제는 4사원을 발견하고 외계인도 만나야 한다. 그게 맞다. 옛날에 달나라에 갔다 오신 분들이 괜히 미지의 존재를 믿었던 게 아니다. 우주의 신비함에 할 말을 잊어을 테니까. 어쨌든 인간이 상상했던 온갖 유령과 귀신과 천사와 악마들이 하늘나라에 실존할 수도 있다. 우리는 과학으로써 그 모두를 알게 됐지만 그 이상으로 하늘나라에서 우리를 지켜볼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그건 두고 보면 안다. 두고 보면! 따라서 우리는 현생에서 인류의 어떤 과오를 상쇄하는 최소한의 노력을 해야 하리라. 그런데 패자부활전으로는 도저히 부족한 귀신감이다? 별수 있나. 흡혈귀든 좀비든 유령이든 동물이든, 뭘로든 변해서 이승에 내려가서 그 값을 톡톡히 치르는 수 밖에. 그러지 않는다면 인간이 이 세상에 사는 의미가 없다. 꼭 없는 건 아니겠지만 부족하단 말이다.
단조는 서운하니 그래도 기쁨의 팡파르를 울립시다. 해피엔딩을 원한다구요. 진짜, 이제 찐짜 끝나간다. 자 빠져 봅시다. 개를 먹는 토끼. 오빠라는 말만 들으면 미쳐버리는 토끼. 잡은 물고기한테는 먹이를 주지 않는 토끼. 의무방어전을 열망하는 영원한 아마추어 토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비중 있는 역할을 맡았고,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에서는 당당히 주연을 꿰찼던 토끼. 그런데 토끼의 친구들은 왜 개를 버릴까, 어른들은 왜 술을 마실까. 전자는 우리 반성합시다, 후자는 우리 그렇게 살지 맙시다. 또는 매정하게 우리 그러지 맙시다? 두 마리 토끼는 물론 시대를 풍미했던 어느 개구리. 그것의 상징적인 동물은 닭. 닭을 먹는 개. 개 위에 고양이. 고양이 위에 그레고르 잠자. 동물농장을 읽고 동물농장2를 고민하는 백조. 백조의 친구는 원숭이.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가면 정열 정열은 사랑. 사랑은 커피와 함께. 커피를 마시는 독수리 독수리의 마누라는 비둘기, 고이 숨겨둔 첩은 파랑새? 아무리 그래도 아이들의 인기 스타는 곰과 사자와 호랑이 그리고 늑대까지. 그러다 어린이가 사춘기를 맞이하면 헤비메탈을 듣고, 어른이 되면 고전음악을 듣는 베짱이가 된다네. 왜냐하면 베짱이는 숙녀를 꼬시기 위해서. 그나저나 베짱이에겐 두 가지 재주가 있지. 스스로 날아오르던가, 타인의 기분을 붕붕 뜨게 만들던가. 그런데 문제는 그런 베짱이는 대체로 허당이라는 것. 그냥 허당 또는 은근 허당. 전자가 대다수고 후자는 보기 힘듬. 뭐 무슨 보호종 천연기념물? 무엇보다 만물의 영장은 일단 얼굴과 몸이 다르더라는 점. 얼굴은 개 몸은 새, 개새. 얼굴은 양 몸은 말, 양말. 그처럼. 뭐 어찌 됐든 왕좌에는 물고기를 앉히는 걸로. 왜냐하면 우리 남자들은 고수이니까. 그런데 알고 봤더니 몸과 마음도, 어제와 오늘도, 오늘과 내일도 다르더라는 것. 따라서 고수는 여자 나는 하수인 걸로!
12
괜히 집에서 검색 몇 번 해보다가 제국이란 단어 하나에 헤롱헤롱한 듯 해서 어지럽다. 모두 아시는 얘기로 또 뒷북을 쳤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생각을 왜 해, 가 아니라 모두 속속들이 아시는 내용인데 말이다. 그래도 판도라의 상자에서 이것 저것 튀어나오긴 했어도 희망도 나오셨으니 기쁜 미래를 기원하자. 하긴 나도 중학교 3학년 때 교내 명맥이 이어져온 농구 서클 사이클원을 탈퇴한 다음 우리끼리 따로 농구단을 결성했는데, 그 이름을 짓는다는 게 이제와서 기억해보니 바로 '엠파이어'였다. 제국! 오오 저런. 당시 농구단 무명과 시합하기 위해 인근 중학교를 방문했고, 제국이라 씌여졌나 아마 다른 글씨가 씌여졌고 앞면은 민 무늬에 전체 흰색에 뒷편 그림이 요란한 나이키 티셔츠를 우리는 입었고, 게임을 했고, 우리는 완패를 당했음. 그 뒤로 그 티셔츠 별로 입어보지도 않게 됨. 학창 시절에 책과 TV로 그 단어를 알고난 다음 어른이 되어 새삼스럽게 그것을 다시 아는 것은 또 다를 것이다. 아무튼 그 외에 내가 했던 다른 일은 이랬다.
여름이니까 나는 추리소설을 탐독했고, 시원한 칵테일 만들기에 몰두했으며, 가택 감금이 지겨워져서 여행 계획을 짰다. 일정은 특별하지 않았고, 곧바로 출발했다. 그것은 가까운 시골로 차를 몰고 가서 이름이 웃긴 모텔에 짐을 풀고, 딱 3일만 쉬었다 오기. 가서 할 일은 복잡한 생각을 간단히 정리하는 것이었다. 로잔나는 로잔나다웠을 뿐 내 청춘과 내 젊음은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뭘 모르는 남자가 많을까, 뭘 모르는 여자가 많을까. 진짜 판타지를 현실에서 체험하기, 과연 당대에서 가능하겠나. 그런 것들. 착상도 떠오르지 않고 영감도 딴 나라 얘기일 뿐이라면 하다 하다 해변으로 달려가서 무작정 참한 숙녀라도 꼬셔볼 테다.
그렇게 3일을 보내고 나는 우리 집으로 돌아왔다.
13
「어. 왜 문이 안 열리지?」
나는 열리지 않는 우리 집 문을 열려고 재차 시도했다. 이랬던 적이 없는데 하면서 계속 문을 열려고 하던 찰나, 뒤에서 누가 말했다.
「선생께서는 누구시죠?」
대화를 나눠 보니 자기가 집주인이란다. 결과적으로 나는 문을 못 열었고 그는 문을 열었다. 결론은 그분은 집에, 우리 집에 들어갔고 나는 쫓겨났다. 그분은 아마도 기쁨을 맞이했고, 나는 어쩌면 떠돌이 신세로 전락했다. 이거 정말 한두 번도 아니고, 나는 번지수를 잘못 찾기 일쑤였다. 그러나 뚝 뚝 눈물을 떨구지는 않았다. 그 다음에 어떻게 됐을까? 말할 필요도 없이 나는 기억에 의지해서 로잔나의 동생 집을 찾아갔다. 그 방법 말고는 없었다. 그런데 나는 즐거웠을까? 천만에요. 그렇지만 왠지 모르게 그곳에 찾아가는 동안 시간 가는 줄 모르며 홀가분한 기분이 느껴졌다.
그러다 결국 중간에 길을 틀어서 우리 동네에 도착했다. 진짜 우리 집. 태어나 처음으로 천상의 왕국에 도착한 듯한 안도감을 느꼈다. 그렇게 나는 우리 집에 들어가서 씻지도 않고 곧바로 침대에 쓰러졌고 잠이 들었다.
14
집에서 일어났을 때 SF 영화처럼 전혀 낯선 곳에서 깨어나지는 않았다. 게다가 내가 나를 발견하여 그의 뒤를 쫓는 심리 스릴러도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익스트림토네이도투어 닷 컴에 들어가서 예약을 했다. 지킬 수 있을 계획일지는 몰라도 일단 등록은 해 놨다.
그리고 나는 텅 빈 동네를 혼자서 싸돌아다니며 마음껏 활보했다. 혼자서 술집 사장도 했다가 제복도 입었다가 거리에서 눕기까지 했다. 물론 소리를 질러도 뭐라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난 자유다! 소리치고 또 소리쳤다. 어찌나 크게 외쳤던지 메아리가 울렸다. 말 없는 사람은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 에코 즉 앵무새 따라하기가 주특기인 사람. 둘째, 동조가 아닌 무조건 반대 곧 때로는 혐오스럽다거나 불편한 내용을 위주로 짧은 논평만 일삼는 사람. 첫째는 기분이 좋으면 말이 많아질 수도 있다. 그러나 둘째는 기분이 좋아도 말은 많아도 논조는 똑같다. 비관! 둘째는 돈이 아무리 많아도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긍정 대 부정의 비율이 어떻다는 건 학문에서는 명문화했고 어른은 살면서 깨닫는다. 그래서 사람들의 교분은 가까와졌다가 멀어졌다가 이합집산은 반복된다. 제목만─결론만─핵심만─댓글만 말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관심이 없거나, 주변만 내내 빙빙 돌거나, 말을 아끼거나, 뭐가 뭔지 통 모르겠다거나, 전체를 조망하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어쨌든 난 지금 우리 동네에서 에코와 단둘이 존재하는 환영에 빠져들었다. 왜 그런지는 몰라도 아니라고 할 수 없는 행복이었다. 이건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인데 하면서 하루 이틀, 일주일 이 주일, 그렇게 나는 피안에서나 가능한 일을 경험하고 있었다. 나는 번듯한 대표작은 없었지만 이 분위기라면 박봉에 시달릴지라도 괜찮은 환상 소설을 잘 하면 쓸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때로는 아동문학인 구스범스를 필사하며 정혼에 대한 소망은 뒤로 한 채 때로는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다 동네에 하나 둘 사람들이 돌아왔다. 사이먼, 가펑클, 머큐리, 브랜든, 비숍과 마리사 그리고 마지막으로 로잔나. 그렇게 우리는 옛날로 돌아갔고, 나는 결국 로잔나의 수하로 들어가서 한 마리 개가 되었다. 멍멍 멍멍멍 컹컹 컹컹컹컹컹! 나는 개였다. 멍멍 멍멍멍 컹컹 컹컹컹컹컹! 그러나 사냥개는 아니었고, 매도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린 모두 로잔나의 집에 놀러가게 되었다. 난 그때 알게 되었다. 눈치를 챘다. 로잔나가 우리 동네와 똑같은 복사본을 만들었다는 것을. 아직 확인해보지는 않았다. 아직은 로잔나가 동네에 나타나기 전에 나는 옆 마을과 옆-옆 마을에 가 보지 않았다. 그런데 그녀가 대체 왜 그 모든 일을... 진짜로 로잔나가? 다른 이유라면 모르지만 난 일전에 잘 속아넘어갔다고 생각했다. 로잔나의 심중을 파악할 수는 없었으나 그것은 차차 알아가기로 했다.
아아, 이게 바로 환상이구나! 누누히 말했듯이 난 고수가 아니었고, 뭔가 멋진 말을 하기 위해 멈칫했다.
「비평가들이 말하기를......」
나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그러나 아무튼 나는 계속 모른 체 할 것이며, 금욕적 생활이든 퇴폐주의든 뭐가 됐든 마음을 사로잡는 어떠한 탐구심이 발동하는 걸 느꼈다.
그 후 나는 로잔나와 친구들이 비밀을 알려주기 전에 우리 마을의 복사본으로 틈틈히 혼자서 놀러다녔다.
15
나는 갈망한 다음 실망했다. 소망했고 절망도 했다. 나는 자주 욕망을 희망으로 착각했다. 그러나 막연한 대망은 언제라도 지망한다. 닿을 수 없는 신비는 최고의 로망이기 때문이다. 도망가는 꿈을 쫓는 삶은 곧 청춘이고 젊음이며 인생이다. 전망은 어두울 수 있다. 하지만 밝은 미래를 조망하면 된다. 그곳에는 어쩌면 환희와 행복과 사랑이 당신을 기다릴 것이다. 오오 애타게! 아마도 풍요와 쾌락과 기쁨도 풍족할 것이다. 살다가 절망에 익숙해지면 때로는 어렴풋한 희망과 순결한 탐구욕과 만족스런 탐험심을 염원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새로움에 대한 열망 때문에. 따라서 불행은 극복될 것이다. 잠시 뒤돌아보자면 무시로 환상에 대해 생각했던 습관적인 공상은 아주 헛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과연 소망이 사랑을 따라잡을 수 있을까? 그게 대체 무슨 우스꽝스런 상상인가. 글쎄 사랑이란 무엇일까 도무지 모르겠다. 차라리 어떤 복고풍 야망을 지망해야겠다. 그러는 게 좋겠다. 그런데 설레는 기대는 패망했을까. 모르겠다. 그러니까 가슴이 뭉클하고 코끝이 찡하며 눈물이 핑도는 사랑은 대관절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알 수 없다. 괜히 예감만 고조되고 덧없이 단꿈만 고양됐다. 비망의, 이 무슨 비망의 그 얼마나 대단한 청춘소설이라고 말이다. 그래서 결국은 머머하고 싶다 라는 어망에는 아무 것도 걸려들지 않았다. 도저히 낚을 수 없었다. 아무것도. 마침내 촉망 받던 예술적 착상은 엉망이 됐다. 어쩌다 보니 경망스럽게도 그렇게 됐다. 그러나 원망 같은 건 없다. 순전히 나의 책망인 것만도 아니다. 그것은 그냥 까망에 가까운 타성일 수도 있다. 황망한 변명도 이젠 지겹다. 맞다. 신물이 난다. 부푼 개꿈만 다망했을 뿐이니까. 그래도 언제까지라도 초현실에 대한 경외감은 사양하지 않겠지만 현실로부터 도망갈 수도 없다. 꿈을 쫓는 열망이 첫째고 인기에 대한 명망은 둘째다. 여심에 대한 여망과 무분별한 선망, 여러 별명들로부터 믿음직한 덕망까지 후보군은 많고도 많지만. 무엇보다 나 자신으로부터 신망을 얻는 게 먼저일 것이다. 좌우지간 마음이 습관적으로 약해질지언정 민망한 미망은 발설하지 말 것. 돌아보니 삶이란 게 그렇다. 좋아함은 약간 희미했으나 꿈은 항상 다망했다. 허영과 허세와 허풍을 앞세우는 허당의 성과란 이처럼 허무와 패배감을 남긴다. 그것은 곧 몽상가의 직업 섬망일 수는 있으나, 잠깐 재미는 있겠지만 그게 문제다. 크고도 중요한 문제다. 애잔한 로맨티스트의 선망이라는 게 늘 이렇다. 그래서 결론은 항상 갈망과 소망에 대한 새로운 열망과 놀라운 희망이 필요하다는 건가. 아마도. 그러나 조심해야 한다. 시시때때로 실망과 미망과 절망에 빠져 살색 탐욕에 괴로워할지도 모른다는 것, 그것을 과연 모험이라고 할 수 있을까 없을까? 없다! 가망없는 얘기일 뿐이다. 뭐라고 노망했냐고? 아니다. 왜냐하면 난 아직 늙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노로함이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그저 젊은 미소가 요망할 뿐. 그러므로 이 가운데 제일 유망한 덕목은 아무래도 소망과 열망쯤일 것 같다. 사춘기를 기억한다. 일기장을 생각한다. 소설을 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