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Blog - 104

Spafinale 2017. 9. 15.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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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어떻게 생각한다 라는 짧은 사설 분량의 글을 읽었는데 뭔가 꺼림직했다. 뭐랄까 어떤 뭔가가 마음에 들지 않으니까 너무 불편해서 도저히 생각을 털어놓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고나 할까. 왜 그런가 생각해 봤더니 아하 하면서 그 이유가 선명해졌다. 왜 그럴까, 그것은 왜냐하면 첫째 남성중심적인 시각이고, 둘째 논평의 끝을 <머머 하고 싶다>로 끝냈기 때문이며, 셋째 글의 구조가 역삼각형 구조였기 때문이다. 인용문 전부를 발췌할 수는 없고 그에 대한 요약과 내가 왜 기분이 찜찜했나를 따져보자면 이와 같다.
   인용문 요약.
   서론: 내부 승진이 옳냐 외부 영입이 맞냐, 전자가 옳다. 관료의 분야니까 관료의 최고봉은 관료가 적임자.
   본론: 교수의 권위, 직업 선호도 그래프, 교수의 하는 일이 어떠함. OB는 구시대적 사고방식에 익숙함. 따라서 OB & 교수는 관료로 부적합.
   결론: YB의 활약상이 필요함. 그러므로 OB&교수가 장관이 되는 기현상은 이제 그만 보고 싶다. (이건 결론이라 할 수 없는데... 서론으로 회귀인가?)
    거북한 원인.
   첫째, 남성중심적인 시각. 뭐가 문제다 단점은 뭐다 라는 관점은 성공적이다. 그러나 반틈짜리다. 그래서 그건 사설이 아니라 반쪽짜리 촌평이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에 대한 진단 역시 반틈만 맞았다. 그러니까 댓글은 댓글만 부르게 된다. 어디 출신 감독이 아니네? 썩 (냉큼) 내쫓아다. 대학교에서 영화를 배우지 않았는데 영화감독? 챙피한 줄 알아라다. 뭐시여 회사원 하다가 뜬금없이 예술을 하겠다고? 미친놈이다. 관료 출신이 아니라 어디서 굴러온 시장이라? 입이 근질근질하게 생겼다. 아이쿠 총리인데 정치학 학위가 없다, 다른 분야 출신이다? 호호호! 어머나 순수쪽에서 대중쪽으로 넘어왔네? 텃새도 그런 텃새가 없다. 아이고 이런, 법조계에서 정치계로? 이 양반이 지금 장난하는 거야 뭐야다. 새로 온 사장이 나이가 많다는데, 그런데 하필 여자래? 안돼 안된다고 꼰대라고 난리일 꺼 아냐 게다가 하필 뭐 여자라고, 안돼 안돼! 나이 많으면 안돼? 그건 정확히, 승진 한계 연령이 정해진 계급 방식이다. 태양은 가득히에서 알랭 드롱이 잡았던 운전대를 맡겨서는 안돼, 응, 알어?, 페이스북 봐봐 안되겠다 마크 주커버그 데려와 뭐 머이 바쁘다고?, 그럼 어떻게 마크론... 아무튼 YB를 영입하자고, 이참에 그냥 아예 법으로 정해버릴까? 동창 모임도 아니고 누가 곗돈 갖고 튀었다가 나중 뭐한 놈이 성질 내겠군, 너 여기서 빠져라 라고. 대체 OB의 연륜은 언제 필요한 거야? 아니면 아예 한 분야에만 매달리라는 거야 뭐야. 장인 정신 뭐 그거처럼? 옛날처럼 고향에서 태어나 고향에서 음 그렇고, 목수 아들은 평생 목수로 살아야 하고,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라는 논리다. 지금이 어디 평생 한 분야에만 몸담았던 사람만 최고가 되는 세상이던가. 정통성 없는 사람 정말 서러워서 살겠나. 장관 자리는 차라리 정치가가 낫다? 그렇게 따지자면 관료 출신 정치가가 아닌 이상 정치가도 기피 대상 1호다. 정치가 중에 정치학과 출신이 대체 몇이고, 신문방송학과 학생들이 나중 전부 신문방송쪽 일만 하던가? 좀 쓸 만하게 되면 YB는 OB에게 자리를 물려주라는 건가, 그럼 무대에서 쓰러지고 싶다는 개그맨과 예술가들은 다 뭐야. 바보야 어중이떠중이야? 뭐 축구대표팀 세대 교체인가? 휴~! 내부 승진의 최고봉은 군인과 경찰이다. 그건 곧 사회도 그처럼 완벽하게 피라미드 구조로 돌아가야 된다는 말이고, 예술은 물론 스포츠 역시 연고지 팬들의 의리를 무시하고 딴 구단으로 가지 말라는 논리다. 그래 봐야 군인과 경찰도 입구와 출구는 물론 출신과 정치성등 따질 거 따지자면 한도 끝도 없다. 그 수장을 혹시 연예인 같은 대표가 임명할 수도 있다. 게다가 선수일 때 빠짝 벌어야 하는데 은퇴 후에 대해서는 난 모르겠고 평생 한 개의 유니폼만 입어달라는 요구가 응석인지 섭섭한 희망인지 통 분간이 안된다는 말이다. 글쓴이는 40년 동안 보이저호를 관리해온 팀에 대해 한 분야에 정진하는 모습을 잘 이해하기 어렵다고 하시는데, 40년 한 길만 달렸던 사람만 오직 관료를 해야 한다는 논리다. 앞뒤가 안 맞네. 안 맞어도 많이 안 맞다. 만약 그분 말씀대로만 되면 시간이 오래 지나서 당연히 다음에 하실 말씀은 뻔하다. 바로, 관료주의! 또 예를 하나 들겠지. 과거 영국 식민지가 줄어듬과 동시에 관료는 반대로 점점 가파르게 늘어났다고. 할 일이 많은 세상, 할 말도 많다. 많이 컸다! 나 클 동안 넌 뭐했냐! 철 들어서(늙어서?) 좋겠다! 이게 글이 아니라 말이라면 문맥은 그쪽으로 들어설 수도 있겠다. 내부 승진,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1부터 10까지 모든 단계를 거쳤든 고위직만 거쳤든 관료주의에 대해서 알아보자. 고위직만 거쳐서 최고위급이 된 사람의 말이 아니라 밑바닥을 박박 기고 슬슬 눈치 보며 살금살금 걷다가 위태위태하면 자세를 낮추며 그러다 끝끝내 살아남아서 최고가 된 예를 찾아보잔 말이다. 지금 달라스에 택시 회사가 80에서 100개가 있다. 그 택시 회사의 사장은 대부분 택시 운전수 출신이다. 이른바 (정확한 수치는 모르겠으나) 관료주의 100퍼센트. 나는 옛날에 택시 운전수로 일할 때 교통사고가 났다. 꽤 빠른 속도로 달리다가 멀쩡히 서 있는 차를 박았다. 앞 차 운전수는 뒷목을 잡고 내렸다. 그런데 묘하게도 그분은 나와 같은 택시회사에 다니는 동료였다. 차이점이라면 그분은 베테랑 나는 신참. 그때 어쩌고저쩌고 해서 나는 우리 택시 회사 사장과 대판 싸웠다. 멱살 잡고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다방을 난동판으로 만들었다. 완전 못된 인간이었으니까. 택시 운전수를 하면 정치를 알고 사회를 읽으며 미래를 예견하는 사상가가 된다. 비약이나 풍자가 아니라 그만큼 실물경제에 민감하다는 뜻이고, 택시운전수도 택시회사 사장도 좋은 사람은 좋다는 말이다. 그런데 젊었을 때 택시운전수를 했던 사람이 뭐가 문제고 세금은 어떻고 체계가 불만이다 뭐다, 그 모든 걸 다 깨달았던 사람이 장래 택시 회사 사장이 되면 실무자가 행복한 일터, 모두가 기쁨과 화합에 춤을 추는 회사, 돈이 먼저가 아니고 일을 사랑하며 친절과 봉사까지 솔선수범하는 꿈의 회사를 만들까? 진짜 그럴까? 과연? 밑바닥을 모두 경험해서 택시 회사의 사장이 되면 정말 그래야 하는 거 아니냐구요? 감히 인간이 낙원을 꿈꾸고 그 꿈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사람이 파라다이스를 동경하고 이승을 천국과 흡사하게 만들려는 노력은 가상하다. 왜 아니겠나. 그렇지만 인간과 천사 사이에 등호가 성립될 수 있는가를 먼저 따져야 할 것. 연예인이 국회의원이 되고 주지사가 됐으나 선례가 그만그만했던 사례, 많이 알려졌다. 건설회사 말단 사원으로 시작해서 중기업과 대기업의 대표로 발탁되고, 승승장구 하다가 시장도 되고 국민의 대표까지 되었지만 쉬쉬해야 할지 어떡해야 할지 난감하고 동네 챙피한 사례, 멀리서 찾을 필요 없다. 모두, 관료주의다. 그래서 언제 어디서나 제일 대접받는 건 위대한 업적보다는 소소한 중간이다. 그건 진리다. 혁명이 그렇고 혁신 또한 그렇다. 실제 그런 건 몇 번 없으니까. 택시회사 업주로 돌아와서, 자기 젊었을 때보다 더 나쁜 악덕 업주가 되는 사례는 아마 없지 않을 것이다. 자세히 어느 정도인가는 모르겠지만 아는 사람은 다 안다. 택시회사 사측에서 정치권으로 또 뭐가 흘러가지 않을 리가 없다. 그게 뭐냐, 관료주의다! 관료주의의 양지가 있으면 음지도 있다. 의식이 앞서지 않는 이상 그늘이 양지보다 더 클 수 밖에 없다. 내 친구는 법원에서 일한다. 시험 보고 들어갔냐고? 아니다. 그럴 리가 있나. 아버지가 법원에서 일하시다 은퇴하셨기 때문에 그 직업을 물려받은 거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항상 열심히 일해도 별로 티도 나지 않고, 험담이나 듣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인 직업이 몇몇 있다. 업무 특성상 불가피하게 불미스런 일의 매듭을 지어야 하는 일 같은 거. 그 정도 중차대한 업무에 대해서는 아니겠지만 미미한 자리라면 좋게 좋게 조용조용 넘어가는 일들이 적지 않다는 것, 외면해버리기엔 좀 그렇다. 아무리 지역-사회라지만 지방자치니 뭐니 의식이, 의식이 못따라가는데 그게 과연 잘될지 어떨지 걱정이 앞선다. 군청에서 오랫동안 일했던 친구 말을 들으니 거기도, 아직도 관건은 돈이다. 대하드라마에서만 매관매직이 나오는 게 아니라 시대만 바꼈지 정도는 달라도 뭐 비슷하다. 지금이 뭐 중세인가? 또 다른 내 친구는 공기업에서 일한다. 시험 보고 들어갔냐고? 재주라고는 오직 난봉꾼과 노름꾼의 재주 밖에 없다. 술도 노는 것도 취미도 멋과 낭만과 다른 오락은 다 싫어한다. 오직 여자와 도박 딱 2가지 밖에 없는 초라한 인생이다. 그런데 시험을 보고 공기업에 들어갔냐고? 지나가던 개가 웃겠다. 녀석과 나는 이런 말 해도 되는 사이의 친구다. 그 친구는 시험 보지 않고 어떻게 들어갔다. 그 친구 아버지는 상중하에서 직급 상에 근접하셨기 때문에 아들 둘과 딸 하나가 모두 그렇게 사회생활을 한다. 나도 어떻게 그렇게 안될까 많이 기웃거려는 봤으나 실패했다. 시도 했으나 실패 했으니 나도 똑같은 사람이란 뜻이다. 똑같은, 사람?
   나는 놈 타인은 그분! 나는 뻔뻔 남은 자성!
   나는 비겁한 패배주의자요 그대는 정의의 사도!
   그러나 미완의 광시곡은 새로울 것. 가능하다면,
   허락된다면 끝없이 재미있을 것. 언제라도 젊을 것.
   하지만 원숙한 지혜와 노을빛 슬기도 포기 못함.
   놀라운 신기와 미지의 환희 그 아름다운 꽃밭을 상상한다.
   쨍 하며 해뜰 날 만국기를 두르고서 그곳을 뛰어다닐까,
   다채로운 싱그런 과일을 마구 따먹을까.
   나는야 돈과 인기는 싫다. 사랑과 이상만이 살길이고 유망한 희망이다.
   뭔망? 그러니까 사랑은 유일하지 않아도 되고 영원할 필요도 없다?
   돈과 인기는 진짜, 정녕 싫다? 어디 정말 그런가 지켜보자. 허허허 흐흐흐!
   삼천포란 개코는 또 뭘 눈치챗길래 엄한 신비를 탐하는 거야.
   돌아가자 돌아가자, 돌아왔다 돌아왔다. 그리고 옛날에 달라스에서 다 쓰러져가던 자동차 회사를 큰 회사가 인수한 일이 있었다. 거기도 그런다. 아버지가 정규직이었으면 자식이 정규직을 고용 승계한다. 한번도 거르지 않고 매해 파업을 하는데 피라미드의 투명성과 건강함을 위해서 파업을 하는지 무척 의구심이 생긴다. 물론 견해차가 크면 필요할 것이고, 어떤 발전을 위해서는 불가피할 수도 있다. 그런데 매번 협상의 결과는, 그 결과를 밖에서 자세히 안다면 어쩜 실망스러울 수도 있을 것이다. 노동이 어쩌고저쩌고 좋은 말도 많은데, 말도 안되는 체계는 또 이상하게 다 갖고 그대로 미래로 간다. 마치 국회의원에 대한 조촐한 혜택처럼.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 하지만 자연계는 그런데 인간계는 자연과는 약간 다르다. 평균률의 법칙 때문에 위와 아래가 조금은 비례한다. 그게 뭐냐 하면 단계고 과정이다. 3급수 2급수 1급수 이렇게 점차 맑아져야 정상인데 3급수에서 대충 겉으로나면 모양새만 1급수로 뚝딱 바뀌면 탈도 많고 말도 많다. 나는 진짜로 스승의 그림자를 밟지 않았는데, 순리대로라면, 제자들 역시 내 그림자를 밟지 않아야 하는데 날 밟고 올라서라고 해야 된다니. 어머나 세상에나! 난 개구멍으로 들어왔고 상석에 오를 때 적지 않은 값을 치렀는데 이제 투명하게 공정한 게임을 하자고? 스포츠 룰이 바꼈어? 언제 바꼈어? 왜? 난 개구멍이든 자리 배치든 나도 뭔가를 받아야 공평한 건데 그럴 수 없다니. 세상에나 맙소사! 아아 뚜껑이 열리겠구나! 그러면 멀뚱히 하늘만 올려다 볼까? 그럴 리가 있나. 친구도 성격 좋은 친구가 한명 있으면 약 올리고 놀리며 어디서든 깐족으로 둘째 가라면 서러워 할 친구도 있다. 피자배달부의 경험에서 배웠듯이 아랫 동네에서는 아저씨의 입에서 화염방사기가 발사되고 아줌마들의 눈에서 레이저가 나갈 수도 있다. 사회 체계는 그렇고, 가족에서 아빠 만큼 성공한 자식은 둘러보니까 결코 쉬운 게 아니더라. 그런데 교육비와 최적의 환경만 최고의 최고로 30년간 자식 농사에 투자했어. 그런데 결과는? 둘 중 하나일 수 있다. 평범한 월급쟁이 아니면 아들 녀석이 개그맨이 되겠다고 하네? 투자 대비 수익률, 꿈의 실현 및 대망과는 거리가 있겠지만 내 소망에는 그런대로 부응하는 반면 주위의 기대에 다소 모자를 수도 있다. 행복하면 그만이라지만 뭐 좀 그런 게 있다. 이론이야 질서와 이상이 당연한 거지만 본전 생각은 인간의 본성이다. 가족 내에서는 그렇고, 친척이나 지인으로 범위를 넓히면 바램이야 오손도손 정분이 두터우면 좋겠지만 빈번한 왕래 없이 큰 불화가 없는 것이 어쩌면 친교의 으뜸이자 친족의 중간 정도 원만함이고 그것이 곧 화목일 것이다. 친구야 티격태격 으쌰으쌰 한다지만 바텐더 마음 따라 웃기도 울기도 하는 우정이 아닌 이상 서먹서먹한 게 좋을 수도 있고 많은 경우 그게 정상이다. 혹시라도 속 좁은 여자의 마음이나 옹졸한 남자의 성정이 끼여든달지 어떤 사연에 따라 날씨는 달라질 소지도 있지만 말이다. 많은 경우 싸우지만 큰 소란을 일으키지만 않으면 중간이다. 남성중심적인 시각이 어떡하다가 관료주의로, 중간에 뜬금없이 가족 친척 동료 사이에 중간이란, 관료주의가 어쩌다가 노동조합까지 와버렸으니 이왕 이렇게 된 거 노동조합, 말이나 꺼내 보자. 노동운동 뭐라 하면서 투쟁은 하는데 노동조합이 깨끗할지 투명할지 건전할지, 정녕 피라미드의 하층을 위해서일지 다소나마 우려스럽다. 알고 보면 관건은 경제적 줄다리기가 전부다. 그러면 노동조합이 없어도 잘 돌아가는 회사는 뭘까? 노동조합이 있는데 투쟁과 파업이 없는 브랜드는 뭘까? 비상장 기업인데 인기도 좋고 평판까지 좋은 기업은 대체 뭐란 말인가! 노동조합이 있든 없든 노동자는 노동조합원 명부에 이름을 올릴지 말지를 스스로 선택할 권리가 있다. 마치 한 나라의 국민이 특정 정당의 당원일 의무가 없는 것처럼. 내 친구 중에서 내가 알기로는 정당 당원 후원비나 연회비를 내는 당원은 한 명도 없다. 정당은 무소속을 포함해서 다수인데 반해 큰 기업의 노동조합은 하나 아니냐구요? 겉은 하나요 속은 분파가 갈리지 않을까? 밖이냐 안이냐, 그 차이 아니냐구요. 세계사처럼요. 노동조합에 소음이 없을 리가 없다. 알력 다툼 왜 없겠나. 정당 당원과 노동조합을 직접 비교하는 건 부적당하니까 일단 이건 잘 모르는 사안이니까 넘어가는 게 좋겠다. 노동조합 가입 비율에 대해서 최소한의 지식은 갖고 출발해야 하니까 그쪽 지식에 대해서는 난 문외한이니까. 그렇지만 나는 한 명의 선거권자인 동시에 피선거권자이자 정당 당원이 아닌 사람의 입장으로써 생각할 때는 최소한 그게 중간이라고 생각한다. 정당 당원이면 정당이 잘하든 못하든 어쩌든 대부분 정당편으로 기울게 되어 있으니까 이건 중도적으로 보자면 명백히 불합리한 처사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완전 비이성적인 처사다. 그러니까 정치 뉴스가 나오면 매번 하는 말은 그게 그거다. 다 똑같다. 지겹지도 않은지 매번 똑같은 말만 한다. 차라리 그럴려면 말을 아껴주세요, 네? 다 그런 건 아니다. 보면 보인다. 모처럼 바른 말을 하시는군, 정치인이 정치를 하네, 귀감이야. 보면 보인다. 여기는 현대식, 저기는 아 진짜 대체 어떤 선거권자들이 저분을 뽑아주시는 거지? 내가 이해력이 부족한 건가 몰라도 이해를 하고 싶어도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따따부따가 언제 어디서나 건재할 수도 있다는 건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정치와 오락산업과 예술이 무슨 빛의 삼원색도 아니고 일평생 저 포지셔닝으로 일관하겠다는 건데 할 말이 없는 경우가 있을 수도 있다. 그게 다 선거권자들 때문이다. 보면 보인다. 이쪽은 괜찮네, 그런데 저쪽은 아아 TV꺼 오오 당장 꺼! 정치가는 연예인 흉내를 내면 이미 게임 끝난 거다. 운 좋게 그 바닥에서 오래 버틸 수는 있지만 주피터도 하데스도 포세이돈도 웃으며 재롱을 보시겠지만 뭔지 모를 회한과 쓸쓸함은 길이길이 남을 테니까. 그게 다 남의 떡이 커보여서 그러는 것일까? 예술가는 때로는 연예인을 부러워하고, 연예인은 이따금 정치인을 꾸짖고, 정치가는 간혹 코메디를 선보인다. 가끔이라면 다행일 테고. 뭐 어쩌든 다 포기해도 미몽에서만은 깨어날 수 없다라, 정 원한다면! 지금 당장 봐도 글쓴이의 문제가 뭔가, 그 직업병은 혹시 연예인병? 꿈도 야무지다! 그 뿐만이 아니다. 타성? 권태? 투정? 궤변? 익살? 계속 나온다. 멈추지 않는다. 허영. 농. 능청. 판타지. 미스테리. 모험. 괴씸죄. 흑심. 할아버지가 됐다가 아이도 됐다가 뭐 하나 피해 갈 수 있는 게 없다. 이럴 줄 알았다면 차라리 처음부터 오락산업을 목표로 정진할 걸 그랬나 싶은 생각도 든다. 정치만 그렇다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정치! 그래서 정치에 대해서 해결책은 하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첫째 국민을 정치인 만큼 살게 만들어주던가, 둘째 정치가가 국민 만큼 스스로 낮추든가. 상식적으로 봐도 둘째는 어림없으니까 첫째를 만족시켜야 한다. 매번 똑같은 얘기만 하지 말고. 둘 중에서 둘째는 어려우니까 첫째를 목표로 내일로 나아가는 게 옳다. 아무튼 정당 당원은 그렇고 노동조합원으로 돌아와서 노동조합원이 사측의 입장에서 생각을 한다, 사측이 노동조합의 의견에 100퍼센트 동의한다, 둘 다 어려운 얘기다. 그래서 객관적인 지표가 필요하다. 이때 중요한 게 사원이 회사의 주주인가, 복지는 어떤가, 주식시장에 등록되어 있으면 회사의 정보가 공개되는 만큼 노동조합의 투명성도 그에 걸맞게 따라가는가, 공장이 있는 도시의 평균 임금과 회사의 근로 수준과 비교한다면 어떠한가, 연평균 1회 파업과 투쟁의 목적과 결과가 과연 피라미드의 하단과 건강한 구조를 위한 것인가 등등. 최대주주 구조가 불만이다 그래서 그 체계를 모두 바꾸자? 그건 조금만 부풀리자면 사기업을 공기업으로 바꾸자는 말과 같다. 공기업이 사기업이 되는 사례는 실패한 사례가 많다지만 그 반대는 글쎄 작았을 때는 몰라도 커지면 감당할 수 없다. 어차피 말만 많지 주인만 바뀌는 거다. 그게 뭐냐? 전문가들의 영역이다! 한 도시의 환경을 기준으로 거대한 노동조합 개개인이 어느 만큼 버는가에 따라 조용하냐, 들쑥날쑥하냐, 파업이 방학처럼 연례 행사냐에 대해서 그걸 바라보는 도시인과 주위의 시선은 곱지 않을 수도 있다. 그걸 모두 제도의 시행 그 첫단추를 잘못 끼웠기 때문에 악순환은 반복되는지 모르겠지만 쉽게 말해 고급 브랜드들도 그런지 그걸 정말 알고 싶다. 만약 내가 한 도시에서 노동조합이 있는 회사에 다니는데 벌 만큼 벌고 업무 만족도가 중간은 되며 퇴근 후에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작곡을 해야 한다 라면 나는 노동조합 명부에 이름을 올리지 않을 것 같다. 물론 그건 이론이고 실제 당사자가 되면 또 다를 것이다. 하지만 회사의 대표가 회사를 이상한 방향으로 끌고 간다? 내내 조용했는데 심하다 심하다 많이 심하다 이건 정말 아니다 싶어서 파업을 한다? 파업 하는 게 옳다. 그건 반대를 해야 옳다. 대체로 문제는 뭐고 원인은 무엇이며 왜 일이 커졌다에 대해서 생각을 하고 찬찬히 알아보면 대부분 알 수 있다. 아무튼 이상한 관행을 비롯해서 선순환이 어려워 보이는 구조, 그 일례가 뭐냐? 관료주의다! 관료주의의 단점이 뭔가? 권한이 막중한 역할은 정작 밑바닥 생활을 겪어보지 않았거나 알아도 요원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최하단에서 시작해서 어느 세월에 최고위급이 되나? 못된다. 절대 불가능하다. 그런 예는 극소수다. 장발장 같은 사람이 나서서 시장이 된다? 지금 시대에 글쎄요, 낙관만 할 수는 없다. 내부 승진해서 중간만 해도 좋은데 중간은 못하는 일도 많으니까. 물론 업적이 수긍할 만한 도약이면 귀감일 테고, 신기루에 도전했다 실패하면... 오오 그건 쉿 그만! 당연히 외부 영입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외부 영입이 아닌 사례를 찾아보면 그걸 찾기가 그리 쉽지 않다. 그리 쉽지 않다고. 딴지와 비판과 주장에 대해서 일가견이 있는 남성적 사고를 바탕으로 업계에 종사하는 증권분석가가 뭐 사지 마라 뭐 어째라 하면서 개미에게 워렌 버핏처럼 보고하는 증권 분석 보고서는 쉽게 찾아보기 어렵더라. 그분들이 솔직하고 정의로우면 증권회사는 문 닫아야 한다. 보험회사도 마찬가지다. 주식회사는 다 그런다. 창업 역시 일단은 풍요와 이상 두 마리 토끼를 쫓기 위해 시작하는 거다. 차라리 장사치가 낫다. 덩치가 크면 그럴 수 밖에 없다. 앞뒤가 다르다. 과장하자면 다른 데서 500년이 걸린 시스템을 50년만에 대충이나마 규모와 형식을 비슷하게 만들었으면 그 그늘의 골이 깊을 수 밖에 없다. 거기서 끝이 아니고 이미 가속력이 붙었고 시장의 법칙이 정통에서 약간 벗어난 면이 없잖아 있다. 따라서 사람으로치자면 그 인생은 기본보다 성과가 중요시 된다. 인생의 보람과 의미가 아니라 이력서와 통장 잔고를 위한 인생이 된다. 변화가 심하니까 인생으로치자면 파란만장한 거다. 다시 인생을 세태로 바꾸면, 그래서 나중 세대뿐만 아니라 다 같이 내내 생각한다. 대체 문제가 뭐냐고, 왜 이렇게 풀 수 없게 꼬인 거냐고, 대체 왜 이래야만 하냐고! 그러나 답은 없다. 중요한 단계와 꼭 필요한 연습과 필요한 과정을 다 뛰어넘어버렸으니까. 그래서 답은 시간이고 표준이다. 선수와 코치와 감독과 팬의 생각이 각자 다 다르니까. 그게 다 바닥에서 시작했고, 구시대적 정치와 묵묵한 희생이 있었고, 군대와 비슷했던 사회 문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군인이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그런데 시대가 바꼈다. 멈출 수도 없다. 시대는 계속 바뀐다. 대충 형식과 규모는 갖췄는데 인생을 돌아보니 문제점이 많았고, 살아갈 날을 보니 결코 수월할 것 같지 않아 보인다. 대표적인 문제는 이렇다. 기준이 없거나, 기준이 있어도 잘못됐거나, 기준이 있어도 지키지 않거나! 그게 뭐냐? 기본이다 기본! 그러므로 실전에서 활약한 장수와 프로 리그에서 맹활약하는 명망 높은 선수보다 때로는 학자와 전략가가 기본에 대해서 뭐가 문제인가를 점검해 볼 필요가 있지 않겠냐 라는 결론이 나올 수도 있다. 그래서 특정 업계에서 한눈팔지 않고 일하는 사람의 결심을 불렀을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기본! 응? 기본. 나는 사람을 처음 만나면 그의 신발을 본다? 어쩜 기뻐서 춤이라도 추고 싶군요!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뭐라 뭐라 비트겐슈타인이 그랬다? 그분이 오시는군요! 데미안이 어떻고 지드를 생각한다? 그러니까 진공청소기와 커피포트를 놔두고 무슨나이저만 날개 돋힌 듯 팔리는 겁니다. 또 하나 덧붙이자면 무엇이 있을까요? 남자는 어른이 되기 전에 운동을 뭐 하나 해야 한다, 자기가 다룰 줄 아는 악기 하나가 있어야 한다? 솔직해 고백하고 자기만 알자. 악기를 다룰 줄 아는 사람 가운데, 독학을 했던 학원에 다녔건, 메트로놈과 함께 연습했는가를! 피아노 학원 0~10곳, 11~100곳 가운데 후자에 다녀본 결과 나는 알게 됐다. 왜 사람들이 피라미드의 위로 올라가고자 하는지를. 아마추어는 아마추어다. 많은 사람과 많은 대화를 나누거나 수필을 상당량 읽어보지 않아서 타인의 경험은 모르겠으나, 모르긴 몰라도 메트로놈과 철저히 어떤 경지에 오르기 전까지 연습한 사람은 아마 많지 않을 것이다. 천리안에 천리마에 온갖 요술과 신기한 재주로 놀랍기만 한데 뭐 기본기? 메트로놈? 연애교본 집어던지고 당장 소개팅을 하던 운명적으로 만나던 실전에서 진짜 사랑, 플라토닉과 육체적 사랑을 하고 싶어하지 누가 읊었고 어떻게 노래했던 사랑의 경구를 고집하며 한 사람만 영원히 사랑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메트로놈, 자세, 마음가짐, 철학 그게 다 뭔가? 기본이다 기본! 그 어떤 천재든 재주꾼이든 요행과 행운과 기발한 자질도 튼튼한, 탄탄한 기본기를 당할 수는 없다. 그래서 나중 미다스는 후회를 했던 것이다. 재능과 기교가 수준급인데 기본을 생각한다? 재능과 기교가 최고인데 전후좌우 사정을 고려한다? 어쩌면 그걸 바라는 게 어리석을 수도 있다. 사람은 살면서 어쩔 수 없이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서기도 한다. 하는 수 없는 경우도 있지만 자발적으로 부담을 떠안는 경우도 있다. 이를 테면 공격적인 투자가 있고, 좀 더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사랑과 우정, 사랑과 야망, 잘하는 일과 좋아하는 일, 애정과 조건, 꿈과 현실, 이상주의와 007가방을 들 수 있다. 그 순간, 무엇과 무엇에서 이상하게도 지킬이 아니라 하이드가 결정권자가 되기도 한다. 공격적인 투자로 돈 좀 잃는 건 그나마 낫다. 그런데 야망을 택했는데 사랑을 잃었다? 까딱 잘못하면 빠삐용이 될 수도 있다. 그게 뭐냐, 기본이다. 히포크라테스 선서 같은 거. 알지만 잘 알았지만 나중 박사님은 지극히 현실적인 박사님으로 살게 되는 점. 법원에 가면 볼 수 있는 표식 같은 거. 재산 목록 1호 같은 거. 그게 다 기본이다. 자칫 잘못해서 딱 한 번 뭐 어쨌는데 다시 기본으로 돌아간다? 어려울 수도 있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마음은 돌아가고 싶어도 이미 루비콘 강이 아니라 어떤 강을 건너서 하데스의 용안과 마주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게 다 뭐냐? 기본이다! 그처럼 남성중심적인 시각은 어디까지나 남성적인 시각이다. 남자는 배짱이 좋고 주관이 뚜렷하고 열이 좋다. 그런데 열만 좋을 수도 있다. 훌륭한 사업가의 열정이 기교만 남았고 혹시라도 비열할지도 모르는 업자가 되는 것, 한순간이다. 천동설에 기반한 여성적 시각이 아니니까 내 생각이 중요하지 왜 상대방이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할까는 절대 중요하지 않다. 일절 관심 없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에 대한 분석에 대해서 남성적 사고와 여성적 사고 두 가지가 있다면 남자는 남성적 사고 밖에 할 수 없다. 반쪽짜리다. 아동과 어른 곧 생각의 유연성까지 감안하자면 반의 반쪽짜리도 어려울지 모른다. 비전문가는 그래도 된다. 비전문가는. 그러나 전문가는 그러면 안된다. 그런데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중간에 뭐가 있는가? 오락산업이 있다. 선거권도 있고 피선거권도 있으며 각종 술수와 어쩜 반칙까지 난무한다. 그 말은 곧 반쪽짜리 전문가한테 돈과 인기가 몰릴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거 무슨 이탈로 칼비노의 반쪼가리 자작도 아니고 말이다. 모든 것을 반쪽으로 보는 것은 반쪼가리 자작만 그랬던 게 아니었구나. 내가 행복하면 세상 사람 모두 행복한 거다. 내가 가난하면 이 세상 같은 지옥이 따로없다는 거다. 나는 백문백답을 완전 좋아한다, 남들도 모두 그렇지 않나? 허허허 웃기고 자빠졌네! 웃자고 쓴 글에 죽자고 달려드냐는 씁슬한 환청은 모르는 사람이 없겠지만 그렇다고 그냥 보아넘기기에 그건 너무 생각이 짧다는 거다. 군중의 우둔성에 관한 명언이 전해지고, 비이성적 인간의 행동에 관한 가설을 실험으로 증명하는 일을 괜히 하는 게 아니다. 아 그건 내가 잘못했다 그건 내가 틀렸고 당신이 옳다 당시에는 내가 무책임했다, 에 대해서 과도하게 부끄럽고 챙피해 하면 인생과 사회 분위기는 아름답지 못한 합리주의로 흐를 수 밖에 없다. 내가 틀렸다 내 생각이 짧았다에 대해서 인정하고 계획을 수정하는 데 대해서 그에 합당한 반성과 성찰이 따라야 하긴 하겠지만 말도 안되는 굴욕과 통렬함 또는 아집이 수반되어서는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그게 인습으로 굳어지면 먹고 살기 각박한 세상이 된다. 반쪽짜리라는 남자의 생각은 따라서 여성적인 시각을 포용하고 수긍하고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온전히 균형잡힌 생각이 된다. 여자의 생각 구조인 천동설에 비해 남자의 생각 구조는 좀 더 이성적이고 논리적이긴 한데, 하지만 그게 너무 내 생각을 합리화하는 방식으로만 작동하는 경향이 없잖아 있다. 나만 옳다는 함정에 빠질 수 있다. 아니, 그런 성향이 매우 강하다. 그러니까 남자는 내 생각을 바꾸고 꺾고 접는 게 쉽지 않다. 사랑에 있어서야 말로는 접고 꺾는다고 하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내부 승진만 놓고 봐도 내부 승진 100퍼센트도 정답은 아니다. 조직이 어느 규모를 넘어섰을 때 말 없고 탈 없는 완벽한 내부 승진 방식은 불법적인 다단계 방식뿐이 없다. 출신과 입구와 출구와 중간 과정의 변화와 정치적 영향이 다를 뿐 관료계에서도 최말단에서 최고봉의 꽃까지 모든 과정을 다 거친 경우 그건 신화라고 한다. 인용문에서 이상이 무엇인가는 밝히지 않았지만 유추해봤을 때 아마도 그럴 것 같다. 장관은 오직 최하급으로 시작했으면 최하급부터 높은 자리까지 모든 직급을 다 경험해야 하고, 고위급 시험을 봐서 들어왔으면 솔선수범해서 최하급부터 시작해서 모든 직급을 거쳐야 최고 직급에 접근 가능하고 모든 직급을 거치지 않았으면 스스로 옷을 벗어야 하고, 그것을 만족했을 때 모든 과정을 초고속 승진만 해야 하고, 사고 방식은 젊은이이면서 대사상가 수준에, 최첨단 기기의 사용은 물론 고급 프로그래머 수준의 코딩 능력까지 겸비한 전설적인 공무원을 뜻한다고 밖에 볼 수 없다. 그런 사람이 누가 있을까? 어디 숨어 계실까? 있다면, 제발, 한번만 알려주시라!
   둘째, 논평의 끝을 <머머 하고 싶다>로 종료. 머머하고 싶다 라는 욕구는 두 가지로 나뉜다. 개인적이냐 개인적이 아니냐. 진담이냐 거짓말이냐로. 혼자 있을 때 머머하고 싶으니까 머머를 한다? 누가 뭐라 하겠나! 온전히 내 권리에 대해서 머머 하고 싶다 라고 의견을 당당히 밝힌다, 왜 안되겠나. 사랑을 한다 그런데 연인이지만 뭐뭐 하고 싶다 라고 투정할 수 있고 말장난 해도 된다. 그러나 개인적이고 사랑이고 예술에 장난에 농담이 아닌 사안에 대해서 머머 하고 싶다? 그것이 보편타당하고 합리적이며 뛰어난 혜안으로 머머하고 싶다고 그렇게 결론을 내리면 수긍할 수 있다. 그런데 보편타당하지 않고 갓난아기 오줌 누고 있는데 멈추게 하고 바지를 입히는 것처럼 뭔 말을 하다 만 듯하면 그건 무책임하다거나 어쩜 막말에 가까운 폭거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말하면 멋모르고 끄덕끄덕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내가 무심코 던질 돌에 연못의 개구리는 뭐 어쩔 수도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멋진 영화배우가 말하지 않나, 내 말 한마디에 청소년이 받을 영향을 잘 아니까 무척 조심스럽다고, 바로 그렇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개인적이고 농담에 장난에 허풍이야 머머 하고 싶다는 둥 뭐라는 둥 다 괜찮지만, 대안과 성찰과 형식과 글발로 포장된 머머 하고 싶다와 악성 댓글은 큰 차이가 없어 보이게 된다. 그게 대체 뭐가 다를까, 일시적으로는 그런 생각이 든단 말이다. 게다가 어머나 경력이 출중하고 뭐 어쩌네? 말을 아끼는 줄도 모르고 뭐든지 쉽게 쉽게 말하네? 다방면으로 활동하며 왕성한 정력을 뽐내며 설을 풀고 글로 유명하다? 일부 사람들은 천재로 떠받든다. 세계적인 천재로 말이다.
   셋째. 글의 구조. 모래시계 구성의 논조가 아니고 반쪽짜리 역삼각형이다. 다른 글은 모르지만 일부분만 놓고 보면 대안은 모르겠고, 내가 제일 잘하는 건 댓글식 분석이고(철저한 조사와 진지한 탐구는 생략된 채), 창작은 관심없고 내 별명은 에코다? 글쎄요! 불만과 분석과 타당한 근거 제시는 좋았다. 머머해서 머머하니까 나는 머머가 싫다 나는 머머를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딱 거기까지는 합리적이었다. 딱 거기까지만! 때문에 글을 읽고 뒷만이 개운할 수 없었고, 그러므로 역삼각형에서 끝날 게 아니라 그에 이어서 삼각형 논조를 갈때기처럼 제시해서 역피라미드 구조로 전체를 끝맺어야 옳은 일이었다. 곧 일리 있는 역삼각형으로 문제 제기를 했으면 그에 이어지는 삼각형으로 결론은 뭐다 그것을 분명히 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듬. 그런데 다행히도? 슬프게도? 어쩔 수 없이 대개 글쓴이는 물론 관객과 독자가 대부분 여기까지다. 대세는 합리주의니까. 왕권은 오락산업이 쥐락펴락하니까. 그러나 그러면 밑 빠진 독에 물 붙기가 된다. 와 재밌다 볼 때는 그런대로 괜찮았는데, 또는 혹시 뭐 있나 했는데 끝나고나니까 뭐 하나 남는 게 없다 돈 아깝다 어쩐다 등등. 예술과 사상이 아니라 그 모두가 쾌락과 유희와 게임에 가깝다. 사안에 대한 적합한 구조가 모래시계였는데 역삼각형만 꺼내 놓고 돌아서는 모습인 듯 하다. 꼼꼼한 듯 하더니 무슨 일을 하다 마나. 할려면 끝까지 해야 하는데 뭘 하다 만 느낌이다. 발단은 매우 뛰어났다. 그런데 발단으로 시작해서 발단으로 끝났다. 소설은 그래도 된다. 그러나 픽션이 아닌데 그러면 곤란하다. 발단 다음에 뭔가가 있어야 한다. 외부 출신이 특히 어디쪽이 많다라, 그러면 결과는 셋 중 하나다. 독불장군이냐, 중간이냐, 얼굴 마담이냐. 현대인은 모를 수 없다. 지구가 거꾸로 돌지 않는 이상 대부분 결과는 중간이라는 것을. 물론 애매한 부조리와 불합리에 대해서는 회피하지 않는 게 옳지만 말이다. 너도 알고 나도 알다시피 어떤 청량음료가 더 상쾌하다는 건 알지만 많은 경우 당장은 시끄럽지만 시간이 지나서 돌아보면 많은 경우 그래도 중간에 해당하는 사례가 훨씬 많다. 그래서 정작 심리적으로 이리 휘청 저리 휘청하지 말고 진짜 문제에 더 많은 시간을 할당해야 하고, 생각 무엇보다 생각을 해야 한다. 저 역삼각형이 꼭 모래시계 구조이지 않아도 된다. 32─24─36이든 음료수병이든 아니면 그냥 드럼통처럼 일자여도 괜찮다. 쥐꼬리만한 봉급에 해당할지라도 결론은 공과 사가 구분되야 마땅하다. 나는 머머를 좋아한다 나는 머머하고 싶다, 그 표현이 어디에 어떻게 쓰여도 좋다. 다만 이타주와 이기주의가 같지 않듯이 글과 말은 다르듯이 욕구와 논리의 결합은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인용문 요약이 사실과 다르거나 내 기분이 왜 상쾌하지 못했나에 대해서 남의 다리를 긁었을 수도 있으나 지나칠 수 없는 몇 가지에 대해서는 적어도 실패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즉 결론은 이렇다.
   하나, 인용문을 왜 썼는가와 시작에 대한 논조는 매우 훌륭함.
   첫째, 남자의 시각 그 논리적 한계.
   둘째, 개인의 사회적 욕망은 왜 비전문적일 수 밖에 없는가.
   셋째, 글의 구조 곧 왜 글은 말과 비슷해서는 안되는가.
   끝으로 글쓴이는 어떤 사고 체계를 지닌 사람인가를 알아보기 위해서 소셜 네트워크에서 그분의 다른 글들을 살펴봤다. 왜냐하면 하나를 보면 열을 아는, 십년에 한 번도 아니고 한 달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내가 그런 천재는 아니지만, 최소한 관찰은 할 수는 있고 어떤 사고 구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가 그것이 궁금했고, 또 그것을 알고 나면 더 이상 그와 비슷하거나 똑같은 글을 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시간 낭비라면 차고 때리고 넣고 야외로 나가도 괜찮고, 차라리 TV가 나으니까. 대략 살펴보자면 인용문의 글쓴이는 이런 심상의 소유자로 보여졌다. 물론 틀렸을 수도 있음.
   자, 역삼각형은 마쳤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삼각형 구조를 시작해볼까? 남의 다리는 많이 긁었으니 이제 어여쁜 내 님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자.
   (전혀 다른 어족의 언어로써) 최소 2개국어 능통. 학벌 최고 IQ 최고. 인용문 분야에 대해서 비전문가지만 발단은 전문가 수준. 그런데 발단만. 이론과 실제, 이상과 현실이 왜 다를 수 밖에 없냐에 대한 의견을 더 듣고 싶은데 그런 글을 못찼았고, 소설과 드라마가 시작하자마자 끝난 느낌. 글쓴이가 박학다식하고 감은 좋은데 주장이 너무 강함. 요즘 시대 감 좋은 사람 결코 드물지 않음. 자료야 조사하면 다 나옴. 약간 어중간하면 좀 더 자세히 알아본 다음에 말하겠다는 태도는 눈 씻고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 없음. 내가 좋아하지 않거나 나와 다르면 이해할 필요 없음. 모 아니며 도. 무엇보다 말이 많음. 다른 사람 글을 읽으면서 상대방 입장 좀 생각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하는데, 본인이 제일 상대방 입장을 생각하지 않는 부류. 내가 좋아하면 찬양하고 내가 싫어하면 깔아뭉갬. (그건 누구나 똑같지만 여기서 품위가 드러나고 촌닭과 백조가 갈림. 표현이 셀 때 대체 왜 표현이 센가, 단순히 싫어하니까 좋아하지 않으니까냐 아니면 다른 어떤 뭔가 영롱한 이유가 있단 말인가. 잘 보면 곧 관찰하면 알 수 있다. 그냥 따따부따인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인가를. 그 차이는 결코 경시할 수 없음). 능력은 출중한데 개인적으로는 완전 피곤한 스타일. (기분이 나쁠 때) 동조성 제로. 여자들 참 좋아하겠다. 가장 큰 재주는 뻔한 말을 어렵게 말하는 능력. 이런 분이 산업쪽으로 진출해서 그렇지 정치계나 예술계로 왔으면, 아아 그만! 본인은 다른 전문가를 폄하할 생각이 없다는데, 정작 그걸로 알고 보면 자타공인 최고임. 의사 표현이 너무 쉽다. 와 어떻게...! 자존심 최고. 너무 똑똑해서 그런가 신중함이라곤 도저히 찾아볼 수 없음. MBA 출신들이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말을 너무, 정말 너무 쉽게 한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인데 구태여 꼭 활자화를 할 필요가...! 모르겠다 궁금하다 알고 싶다 꿈꾸다 좋아한다 기도 드린다, 는 여간해서는 어울리지 않는 완벽하게 딱딱한 고체다. 물음표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생각과 말 사이에 오직 등호만 존재하는 건가? 생각을 정제하고 꾸미고 다듬고 가린 다음에 기표로 전달할 수는 없단 말인가. 그러니까 젊은이와 어린 친구들은 고리타분한 늙은이와 친구가 되기는 좀처럼 어렵다. 사석에서 같이 차와 술을 마실 수는 있으되 무슨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도 아니고 15분을 넘어가면 슬슬 인내력의 한계가 다가오는 것이다. 노인이 되면 어쩔 수 없기는 하다. 듣기 싫은 게 아니라 잘 안들리니까. 노인과 살아보면 알게 된다. 그게 뭐냐? 인기다. 노인도 함께 하고픈 노인이 있다. 노인뿐만 아니라 젊은이도 숙녀들이 좋아하는 사람이 따로 있듯이. 내가 소년과 인사를 나누던 미녀와 사랑에 빠지던, 인기 많든 인기 없든 중견 예술가가 한달에 1곡씩 꼬박꼬박 꾸준히 발표하는 성실함을 존경하든, 동네에서 마주치는 노인에 대한 인상이든 어디를 가든 무엇을 보던, 쉽게 구분해서 세 가지로 나뉜다. 좋다, 그냥저냥, 싫다로! 상중하로! 그런데 내적으로 감흥하는 느낌에 대해서 그 세 가지를 표출하는 방식 또한 각자 다르다. 노인 역시 그렇다. 노인이 다 그런 게 아니다. 단계를 모두 거치고 낭만과 함께 느긋하게 연애를 해볼까? 내일 모레도 아니고 오늘 갈지 내일 갈지 언제 갈 줄 모르는데, 오히려 청춘의 사랑보다 노년의 연정이 더 급하다. 잘은 모르는데 그런 면이 없잖아 있다고 한다. 전화 통화를 하면서 용건을 확인했고 이제 안부랄지 인사로써 여유롭게 통화를 끝낼려는데, 갑자기 뚝 끊는다. 갑자기 뚝. 뭐야 이거! 우리 마누라도 그래요? 갑자기 뚝 끊는다. 자기 할 말만 하고 뚝. 목적 지상주의다. 황금만능주의는, 통과. 윤리학에서 뭐 어쩐다는, 수단이 목적이 되어버리지 않았으니까 최소한 꽝은 아니다. 내가 가냐 늬가 오냐 지리를 설명하는데, 어떻게 어떻게 잘 설명을 해 드릴려고 하는데 어머나 글쎄, 통 듣지를 않으시네? 이 양반 연세 많이 자셨구만! 흐흐흐. 스핑크스의 퀴즈에 나오듯이 노인과 닮은 아바타는 애다. 똑같다. 그런데 차이는 있다. 노인은 거친 파도를 넘고 험난한 야전을 누볐던 백전노장이자 이 세상을 꿈과 희망과 기쁨으로 보자면 그 모두를 알고 두루 경험했던 낭만파이자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이면서 지혜로만 보자면 천재가 따로 없는 신비주의자, 그분은 바로 노인이다. 응애응애 아이는 놀아주면 끝난다. 그야 물론 힘들긴 하지만 아이는 그렇다. 그러나 노인은 아이 더하기 노인이다. 연장자와 노인에 대한 예의와 공경이 심한 지역도 있지만 지구상에 연장자와 노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와 공경심이 없는 곳은 단 한 곳도 없다. 언어를 예로 들면서 어디는 반말이니까 뭐 어쩐다? 모르는 소리! 그 어디나 연장자와 노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완벽하게 백 퍼센트다. 그걸 감안할 뿐더러 만물박사에 요구와 지적이 많으시고 응애응애 아이와 닮으셨다면 대처가 쉽지 않을 수도 있다. 노신사가 되서 어디 자기보다 더 연세 드신 노신사를 보좌하며 딸랑딸랑 빠릇빠릇 굽실굽실 행동하시기를 좋아하는 노신사가 대체 몇이나 될까. 늙은이란 말은 그렇다 뭔가 약간 짠하다. 그러나 꼭 그렇지만은 않다. 무엇을 보든 어디를 가든 누구를 만나든 다 그 나름의 특색이 있을 뿐이고 생각하기 나름이니까. 그런데 진짜 진짜 중요한 점은 생각에 새로움이 들어설 수 없는 사고 방식의 소유자를 그냥 대충 노-책사랄지 모사꾼 줄여서 쉽게 노인이라고 가정하자면(일단은 잠시 한 단어를 약간 부정적으로 사용하겠음), 젊은 사람들 가운데도 노인은 많다는 것. (딱) 이거다! 겪어보고 속을 알고 친해지면 좋겠지만 일단은 이 분과도 적지 않다. 소시오패스, 냉소주의자, 비판적 이성주의자, 험구가, 호사가, 속으로 뭔 생각을 하는지 모르고 통 말이 없는데 입을 열었다 하면 여간해서는 좋은 소리 듣기 힘든 과묵한 사색가? 몸은 젊어도 정신은, 마음은 완전 노인이다. 따따부타 따따부따 완전 노인이다. 이미 노인이다. 젊은데 그런데 우리 동네에 공원이 있는데 뭐하러 놈의 동네까지 가서 논데? 이미 노인이다. 말은 많지 않아도, 따따부따 떠들지 않아도 완전 노인이다. 에게~ 땅꼬마처럼 옹졸하고 앵앵~ 모기처럼 조잡스러우며 윙윙~ 파리처럼 꾀죄죄한 기상은 절대 아니고, 오히려 참으로 잘나시고 회전 반경 넓고 심원한 인생관을 지니신 마음은 노인 몸은 젊은이시다. 그 야망 워워 장난 아니다. 겪어보면 알게 된다. 연애할 때는 모른다. 절대 알 수 없다. 크아 워워 이야 캬, 가히 대장부답다. 특정 타입의 노인, 이를테면 기분이 어땠을 때 아줌마, 말과 글과 뭐든지 쉬운 모르는 게 없는 냉소적인 분석가 유형, 뭘로든 보통의 일반인도 기분이 처졌을 때, 그 역시 똑같다. 나는 SF 소설을 좋아한다? 그럼 뭐하나! 고상하지 못한 범속한 표현으로 이런 양식을 꼬다 까다 꼿다 나댄다 발르다 까칠하다 꼰대 라고 하지 않나. 내 귀는 꽉 막혔는데, 남 귀는 피나게 만들어도 좋다? 듣거나 말거나 그러거나 말거나 나만 좋으면 그만인가? 기교와 주관은 정점에 달했는데 유독 회의적인 측면으로만 바라보는 것만 몹시 좋아한다? 내 맘에 들지 않는 건 다 꽝이다? 그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가! 반칙왕이 스타가 되고 합리주의가 득세하는 세상이라지만 좀 심했다. 여자에게 특유의 횡설수설이 있다면 남자에게는 고유한 비관주의가 있다. <여자는 횡성수설 남자는 비관주의>. 다 그런 건 아니지만 타고난 생물학적 성에 따른 천성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다. 그런데 비관주의가 횡설수설을 만난다면! 횡설수설이 비관주의까지 겸비한다면! 것도 아니면 횡설수설이든 비관주의든 꿋꿋이 포장을 잘하고 의연하게 인생을 걸고 철옹성을 쌓는다면! 그만큼 극단은 드물겠지만 재주꾼은 세상에 차고 넘친다. 당연히 여자의 횡설수설을 남자가 흉내낼 수 있고, 반대로 여자가 남자처럼 비관주의에 일가견일 있을 수도 있다. 물론 자제하고 웃음으로 승화시키며 농담으로써 마침표를 물음표로 바꿔서 안델센과 볼보와 스피노자를 연상시키는 사람도 있으니까, 이 역시 상중하로 나뉜다. 만약 남자가 여기서 상에 해당한다, 그런데 말발의 특징이 표독한 댓글과라면 완전 기분 나쁠 한마디를 툭툭 던지는 식인데, 어머나 글쎄 말을 잘한다? 그러면 모든 기교와 지식을 총동원해서 비관주의의 금자탑을 쌓는다. 내 마음에 들지 않는 무언가에 대해서. 말이든 글이든. 게다가 기분 나쁠 때는 최악이다. 또 만약 여자가 여기서 상에 해당한다? 잘 아시다시피 온갖 일들이 막 튀어나오며 갖은 신경질과 심술을 부린다. 질투가 예의인가 그것은 넘어가자. 그건 그나마 낫다. 그런데 그 가운데는 드물게 악녀도 있다. 음악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20대 초반의 천재적인 힙합 뮤지션이 자기의 사랑을 받아주지 않는다, 자기를 스토커로 여긴다? 남자에게 주사기로 독약을 주입해서 잠들게 한다. 영원히 잠들게 한다. 사랑으로 꿈꾸게 하는 것이 아니라. 포근히 잠들다라...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고 했는가! 그러고서 1심에서 무기징역, 2심은 무죄 3심은 황당하게도 공소기각으로 종료되어서 성형수술 후, 어디 숨은 것도 아닌 채 뉴욕의 번화가이자 부자 동네에서 수십 년간 행복한 삶을 누리며 잘 먹고 잘 산다. 당당하게 그리고 꿋꿋이! 그래도 할 말은 많다. 누군 뭐 그 생활이 좋았는 줄 아냐고. 주객전도다. 그만 좀 해라? 이번에 처음 알았다. 그 힙합이 왜 들리지 않았나 큰 관심 없었지만 난 글쎄 수십 년 동안 자살했던 비운의 천재 뮤지션으로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것이다. 가족들은 수십 년을 슬픔으로 살아왔을 텐데 여태 난 그것도 모르고... 어머나! 이번에 처음 알았다. 당시 사회가 그랬다. 인터넷이 일반화되지 않아서 거의 무인터넷이었던 시절, 일부 사업가만 겁나게 커다란 핸드폰을 드물게 사용하던 때 멀쩡한 다리가 무너지고 백화점이 붕괴되고 그 후로도 많은 일들이 있었다. 세계를 보면 역사적으로 거의 초기화되었다가 새롭게 시작한 사례는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구습에서 근대기와 산업혁명의 적용을 건너뛰고 현대로 넘어온 사례는 거의 없다. 그걸 건너뛰면 많은 문제가 생긴다. 그 문제에는 사람들의 인식과 의식도 포함된다. 반쪽짜리는 커녕 반의 반쪽짜리가 평균이 되는 일도 어쩌면 겪어야 할 수도 있다. 그걸 뭐라 하냐, 단계라고 한다. 껑충 그런데 따따부따! 껑충의 문제를 보는 시각의 차이가 그래서 발생한다. 늬가 반쪽이냐 내가 반의 반쪽 사상이냐로. 힙합 뮤지션은 물론 힙합 팬과 사회의 공분을 사서 존엄한 어떤 사회적 체계와 정의가 무너지는 사례, 그것도 혹시 주홍글자 아니냐고? 그건 단계를 건너뛰었기 때문에 미래 세대가 감당해야 할 주홍글자 맞다. 마녀사냥의 마녀도 시대가 지나서 주홍글자로 인정된다. 그러나 그냥 악마와 분명한 악녀는 주홍글자 아니다. 그럼 아무나 주홍글자되라고! 그러면 주홍글자 아닌 사람은 하나도 없겠다. 여자 덱스터인데 덱스터처럼 악인을 향하는 그게 아니라 뭐 그런 건가? 모세의 기적이 하루도 아니고 날마다 연출되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옛날에 전설로야 모세의 기적이 있었다지만 과학적 의미 부여와는 따로 생각하더라도 그건 정녕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되버린 건가? 일단은 그렇다. 이런 일이 한둘도 아닐 테고, 현실적으로 모세의 기적이 재현되는 일이 적지 않을 테니 말이다. 기적은 더 이상 기적이 아닌지도 모를 지경이다. 행복한 가정도 사랑도 풍요로움도 모든 것을 얻었을 텐데! 남의 얘기를 안 듣고 사회적인 선과 악 인도적인 죄와 벌에 대한 개념과 단절한 채 내 말만 내 신호만 내 삶만 앞세우면 그만이라는 식이다. 모세의 기적이 신화든 전설이든 사실이든 아니든 그게 대체 뭐가 중요한가? 모세의 기적 같은 일이 옛날 옛날에 몇 개 있었는지 지금 탄소 뭐 측정이라도 해야 하나? 정작, 정작 중요한 건 어디서든 언제든지 모세의 기적이 실존할 수 있다는 사실, 그게 진짜 중요한 거 아니냔 말이다. 현대판 모세의 기적을 놔두고 사생활은 지동설 이론에 대해서만 천동설식으로 말하는 신도는 백퍼센트 그런 식이다. 내게 유리한 부분은 의역, 내게 불리한 부분이랄지 어떤 권세와 찬양에 대해서는 직역! 그게 뭔가? 일관성은 가출했나 출가했나 아니면 뭐 환속했나? 정말 그런가? 그게 무슨 자연의 섭리인가 천사의 눈물인가? 청자와 화자, 작가와 독자, 관객과 배우, 친구와 친구, 사랑의 연인, 유명인과 일반인 사이에서도 그렇고 개인이라는 단위 즉 나와 나 사이에서도 그 구분은 나뉠 수 밖에 없다. 대부분 참고 넘어가고 접고 꺾고 무시에 무관심등 내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 회피할 방법은 많다. 그걸 대부분 잘한다. 그러나 롱테일의 법칙은 여기에도 적용된다. 그 어디에나 무엇이나 누구라도 상극은 있다. 상극! 그건 피할 수 없다. 가령 TV에서 아니면 학교에서 유독 싫은 사람. 딱히 이유가 타당하지 않지만 괜히 싫은 사람. 있긴 있다. 우리가 인간인 이상 그건 없을 수 없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만약 그렇다면 그러면 친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아니면 그로써 자극을 받아 그걸 오히려 내게 유리하도록 내 꿈에 도움이 되도록 역이용할 수도 있다. 그런데 불가피한 예도 있다. 일 때문에 그런 경우. 돈 버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 또 이를 테면 형제자매끼리 싸우는 것. 대부분은 잘 지내지만 하지만 해도 해도 상극인 유형도 있다. 그런 경우 몇몇 사례를 주위에서 보게 된다. 아예 인연을 끊는다, 얼굴은 보는데 말은 섞지 않는다, 아니면 인연을 끊지도 서로 외면하지도 않은 채 사는 동안은 살아만 있다면 고인이 아니라면 끝까지 싸우는 경우, 끝까지 싸우는데 사이가 좋은 경우와 심각한 경우. 부모 재산 문제로 그렇게 됐든 부모 재산 문제가 아닌데 그렇게 됐든, 문제는 문제다. 이 또한 상중하로 나뉜다. 똑같이 잘못하고, 똑같이 악순환이 반복된다지만 잘 보면 심한 쪽이 있다. 심한 쪽의 심리를 분석하고 그 마음을 치유하는 건 당사자의 문제니까, 무엇보다 당사자가 당연히 인정하기 싫을 테니까 넘어가고, 그에 앞서 이론적인 처방은 어쩜 이렇지 않을까? 일단 원인은 확실하다. 원인은 있다. 서로 상극인데 귀가 막히고 남의 귀 피나게 하던가, 사람 참 못됐다 싶도록 마음이 착하지 못한 쪽이 꼭 있다. 쉽게 말해 6 대 4든, 7 대 3이든, 8 대 2든. 이런 경우 아무리 중재를 하고 2와 3과 4가 아무리 노력해도 관계 개선은 불가능하다. 방법은 하나다. 져주는 수 밖에 없다! 의학적으로 검진하고 심리학자가 진단하면 어디서 어떻게 무슨 원인으로 그렇게 됐다 라는 분석이 도출된다. 그런데 문제는 그 처방전을 갖고 관계 개선이 되느냐, 사람이 바뀌는가, 그건 둘 중 하나다. 네 또는 아니요! 어느 시점을 넘어서면 대체로 아니요고, 사람을 놓고 봤을 때 많은 경우 아니오에 무게가 실린다. 조련사의 도움으로 우리 강아지가 변했어요? 동물 감정 교정가의 처방 덕분에 우리 고양이가 밝아졌어요? 사람은 동물이 아니다. 사람과 동물은 다르다. 흔히 말하는 다양성과 달리 틀림과 다름이 모두 적용되는 사항이다. 전문가 얘기는 거의 같다. 사람이 변할 수 있는가? 사람이 변할 수 있냐 없냐에 앞서든 다음이든 사람 대 사람의 관계가 개선의 여지가 있는가? (사춘기든 성년기든) 어느 시점 전에는 가능하나 어느 시점 이후에는 불가능하다고 한다. 또는 처음부터 어울리는 인연이라고 하거나 아무리 노력해도 어려운 궁합이라고 한다. 물 한컵을 생각하면 된다. 일단 비관을 전제하고 간혹 낙관으로 볼 것인가, 그 반대로 볼 것인가. 딱 떠오르지 않는 전문용어, 그거다. 사람의 생각도 그와 똑같고, 사람의 인성도 똑같은 이치다. 완곡어법으로 말하자면 여간 해서는 사람은 바뀌기 힘들다는 뜻이다. 안 그러면 사랑의 맹세가 깨질 걱정을 왜 하겠나. 황금만능주의와 외모지상주의, 오락산업의 빛과 그늘, 전-남자친구과 현-남자친구에 대한 무의식적 비교, 전처와 후처 사극으로치자면 그냥 첩과 애첩이 왜 나뉘겠나. 말과 행동이 다를 필요도 없고, 호박이 제발로 걸어다니고, 씨를 뿌리기 위해 설을 풀고, 잡은 물고기에게 밥을 주냐 마냐 어쩐다는 둥, 그게 다 뭔 필요가 있겠는가! 사람이 쉽게 바뀌고 개인이든 관계든 개선이 손쉽다면 말이다. 아니 그렇소? 동물을 예로 들어보자. 겉은 개 속은 고양이, 곧 개고양이. 겉은 양, 속은 말, 곧 양말. 개고양이와 양말이 어울리는가. 어울릴까? 각자 생각합시다! 겉과 속을 나누면 어려우니까 하나만, 여우와 두루미? 백조와 촌닭? 독수리와 비둘기? 방법은 하나다. 그렇다. 방법은 하나! 져주는 수 밖에 없다. 답은 없다. 져주는 수 밖에! 지는 게 이기는 거고, 참는 것도 이기는 거다. 앞에서 이겨 봐야 모양새만 엉망이 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그걸 뭐라 하냐, 소탐대실이라고 한다. 남자들이 괜히 져주고 꺾고 접고 술값 늬가 내라, 그러는 게 아니다. 내 귀는 피가 나도 좋다. 다만 남의 귀에 피가 나든 어쩌든 남자들은 대체로 각자 마이크 잡고 따따부따 자기 얘기만 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어째서 음 뭐랄까, 왜 져준다는 말이 싫으신가? 그러면 다른 말도 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이타적인 삶. 어렵게 역위임. 고급스럽게 호혜주의! 그외에도 여기서 져주고 다른 데서 기쁨을 찾아면 된다. 당장은 마음이 아파도 슬플지라도 말이다. 완전 져주기 싫으면 2만큼 3만큼 4만큼 한발짝 만큼 더 져주고 양보하면 훨씬 나을 것이다. 물론 말은 쉽고 행동은 어렵겠지만 말이다. 나는 악마다 나는 악녀다 내가 최고다 또는 너는 악마다 너는 악녀다 너는 중간이지만 꽤 심했다, 라는데 뭐 할 말이 없지 않나. 방법도 없다. 전문가도 두손 두발 다 들었다. 아무리 그럴지라도 그건 그래도 더 낫지 않을까? 9 대 1 보다. 10 대 0보다. 사랑을 받아주지 않는다고 그분을 영원히 잠들게 하는 것보다는 말이다. 피를 나눴으니까 피는 물보다 진한 게 맞지만, 처지가 영 불가피하다 그러면 쫌팽이 쪼다 머저리 얼간이가 왕좌에 앉도록 져줘야 한다. 그 쫌팽이 쪼다 머저리 얼간이가 잘생겼건 손윗 사람이건 어쩌건.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 아니면 피는 물보다 진하다지만 진짜 그런가 의역을 직역으로 해석해서 실험하고 확인을 해 봐야 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무엇이든지 약점을 찾아서 파고 들고 어떻게든 비판적으로 볼려는 태도, 언제 어디서나 최악에 대비하는 자세, 그 역시 꼭 필요하다. 반드시 필요하다. 이 세상 모든 일에 대해서 그 모든 가능성에 대해서 최악을 생각하는 버릇, 꼭 필요하다. 그렇지만 그건 될 수 있으면 자기 분야에서만 사적으로만 개인적으로만 또는 비판이되 건강할 것. 크고 멀리 넓게 볼 것. 어쩌다 퇴폐주의에 빠졌을지라도 선풍적인 재기에 성공하여 즐거운 시절로 도약할 것. 그런데 어떤 사안에 대해서든 최악의 경우의 수를 참고하는 게 아니라 그걸로 자질이 특화된다? 따따부따 웃기지도 않는데 따따부따 방면을 가리지도 않고 따따부따 그 뭐든지 따따부따? 그건 정확하게 판타지를 상상하는 학생들이 좋아하고 친해지고 싶은 선생님 유형이 아니다. 그건 전형적인 타석 지상주의다. 최고의 코치야 승부욕을 자극하게 만들고, 협상가는 담판을 장사꾼은 흥정을, 난봉꾼은 노력을? 뻔뻔함을? 여자를 다루는 기술을? 경영학도는 말싸움을?, 백조야 고품격을 추구한다지만 말도 쉽고 포기도 인정도 브랜드도 (단기?) 이익 창출도 지속 성장도 산업 동향과 전망과 분석도 성과도 끈기도 그 모든 게 다 쉽다면 그건 대체 어떤 인생 철학일지 궁금함. 받아들이고 설득하고 이해하며 시간을 갖고 생각을 한다, 곧 숙고한다? 아마도 불가능할 수도 있다. 즉시 생각해서 즉각 겉으로 표출하는 기술로는 세계 최고니까. 모든 게 가위바위보처럼 명쾌해야지 애매하면 끝이다 라는 인식에 기반하는 사고의 소유자인 듯 하다. 하지만 공학도 인문학이 뭐 어쩐다, 에 대해서는 또 말이 많을 것이다. 아는 게 많으니까. 그러나 새로움은 별로 없다. 많든 드물든 다 남이 아는 것 위주다. 생각에 대한 발표의 기준이 새롭냐 새롭지 않냐가 아니라 내 생각이기 때문에 그것은 고유한 것이고, 따라서 그런 낡은 관점에 얽매일 필요가 전혀 없다는 사고 체계에 따른 결과인 듯 하다. 정녕 새로움은 각광받지 못하고, 정말로 새로움을 추구하지 않는다. 그건 곧 굳이 내가 아니라도 남이 다 할 수 있는 내용이란 뜻이다. 대체 불가능한 능력이 아니라 얼마든지 대체 가능한 재주다. 얼마든지. 예술이든 뭐든 모든 것을 게임과 승부의 관점으로만 판단한다? 진정한 고수는 아니다. 비평가지만 비전문가다. 스포츠로 치면 인상 험악한 관중이다. 훈수는 잘두는데 웬만하면 모든 수를 악수로 본다.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옆에 있어도 시끄럽고 승부사로 나서도 시끄럽다. 말로 체스 두는 양반이니까. 호랑이로 치면 풀 뜯어먹는 호랑이다. 덩치에 맞지 않게 다람쥐만 추격하는 사자다. 설마 험담가로써 이름을 날리려고 MBA를? 그건 아닐 것이다. 그런데 행색을 보면 꼭 아닌 것 같지도 않다. 실전에서 일을 배우지 않고 공장에서, 아카데미에서 기계적으로 일하는 기술을 연마한 기계 같은 사람의 생각처럼 느껴진다. 그야 어쨌든 우려되는 점은 무엇이고 어떤 점이 중요하다 할지라도 그보다 더 중요한 것도 있다. 바로 그와 같은 사고방식의 시점! 돈과 인기를 표준으로 따졌을 때 그것에 대해서 당사자가 흡족할 만한 성취감과 눈에 또렷이 보이는 성과가 기준선 위냐 아래냐, 명쾌히 아래다. 기준선 아래이기 때문에 통쾌하다는 뜻이 아니라 현상태가 그 아래라는 사실을 근거로 막중한 명제를 도출할 수 있다는 거다. 돈과 인기에 대해서 현 시점이 엄지 척의 반대라는 건 절대 부정할 수 없다. 스스로야 내가 최고가 맞지만 객관적으로 따지자면 기준선을 넘지 못했다. 돈과 인기의 기준선을 넘지 못했는데 지금 이 정도라면, 만약 돈과 인기의 기준선을 넘어서게 되면? 만약 그렇게 되면? 그에 대한 전망과 예측은 이미 그처럼 세계적인 거장이 되신 수많은 분들을 참고하면 된다. 세계적인? 반쪽짜리라도 세계적이라는 성의 없는 수식어는 얼마든지 가능하니까 나도 너도 누구도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의미도 있다. 자, 아무 데나 가리지 말고 숟가락 얹어봅시다. 올려지면 좋고 아니면 말고! 그런 반면, 그와 동시에 자신감 자존심 자존감 자부심에 자의식 과잉 역시 허세와 허영과 허풍처럼 그것이 알카리성인가 산성인가를 가늠할 수 있는 능력이 더욱더 절실히 요구된다. 호호호 짝짝짝, 거 참 MBA답다! MBA가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하기사 분석─관측─측정─추정─연구─예측이 전문인데 만사 해결과 예언─상상─관망─추측─만담과 유머에 창조까지 죄다 능통하면 정치계든 연예계든 그 어디든지 MBA 출신은 인기 폭주할 꺼다. 물론 실제 그렇지는 않고 말만 봐서는 이 분야 저 분야 뭐 하나 망설이지도 않고 마다하지도 않는다. 안다박사니까. 그리고 실상 박사가 맞음. 그렇지만 이성적 사고로 최고인 사람은 현시대에 절대 귀하지 않다. 계속 쌓이고 영원히 쌓인다. 그야 어쨌든 아무리 그래 봐야 반쪽짜리다.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 아마존, 구글, 애플등 유명 회사의 창업자들이 인기와 돈은 월등하지만 MBA 학위가 없기 때문에 MBA 출신보다 아마도 한 수 아래가 아닌가 그렇다는 뜻으로 알아야겠다. 누구 누구는 하수 MBA는 고수, 그렇게.
   바이올린 여제가 제자를 떠나보내며 말한다. 모든 것을 잊으세요. 당사자가 아닌 이상 어디까지 잊어야 할까 애매하다. 수년간 수발들고 시중드느라 무술은 커녕 암것도 못배운 문하생한테 스승이 어느 날 그런다. 넌 이미 마술사이니라. 그런데 진짜 마술사가 됐어. 어쨌든 경영학스쿨은 어떤 혹독한 수련을 치르게 만드는지 모르지만(대충 수박 겉 핦기식 귀동냥이야 있지만) 놀랍게도 스포츠와 닮은 구석이 크다. 모든 걸 근육이 기억하고 본능으로 숙달하고 직감으로 움직이며 완벽한 기량을 갈고 닦아라 그런 것만 같아서. 아는 게 너무 많으니까 생각이 절대로 틀을 벗어날 수가 없다. 나는 아니다 절대 아니다 난 그래서 SF 소설을 즐겨 읽고 뭐 어쩐다? 완벽한 어른이다. 이런 어른이라면 차라리 응애응애 스무 살이 낫다. 만약 말로 진다면, 자기 주장을 굽히라고 압박 받으면 참 좋아하시겠다! 더군다나 이런 이성주의자는 절대 말로는 지지 않는다. 삶이 곧 논쟁이니까. 자기 생각 바깥은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 내가 결정하고 판단하기 애매하네, 그러니까 자세히 알아보고 나중 말씀드리리다? 하수에게 그런 자상한 답변을 기대할 수는 없다. 어른과 아이의 차이점이 그거다. 어른은 꽉 막혀 있다. 앞뒤가 꽉꽉 막힌 존재가 바로 어른이다. 때로는 귀까지 막혔을 수도 있다. 어른은 주장한다. 어른은 우긴다. 어른은 내 생각을 굽힐 수 없다. 어른은 생각이 바뀌지 않는다. 이해할 수 없는 건 이해할 수 없는 거다. 공감을 못하겠으면 관심 없다고 한다. 넌 나의 단짝이지만 하지만 넌 내게 넘버 투라고 한다. 내가 최고다. 드물게 모두 최하도 있다. 고리타분하고 구태의연하지 않으면 그건 어른이 아니다. 앞뒤 꽉꽉 막혀 있지 않으면 그건 대체로 어른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건 곧 사회성이란 말로도 바꿀 수 있고, 자존심이라는 단어로도 치환 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그런데 말까지 많다? 아는 건 나만 알든 나만 모르든 전부 다 말과 설로 풀어야 한다, 그래야만 직성이 풀린다? 그건 그냥 기계다. 내 귀가 막혔지만 이 세상의 모든 지식을 쉼없이 습득하며 남의 귀를 피나게 하는 기계. 만화 캐릭터만 떽떽거리는 캐릭터가 있는 게 아니라 꽥꽥 꼬끼오 꼬꼬꼬꼬댁, 사이코패스만 흔한 게 아니라 촌닭도 어디든지 여러 분야에 차고 넘친다.
   고품격 브랜드는 값에 상응하는 물품을 생산하고, 장인은 이름과 인생을 걸고서 명품을 만든다. 나아가 풋사랑의 기대는 어쩔 수 없이 체념으로 결판나고, 사랑의 예감 역시 그 행복은 짧을 수도 있다. 그러거나 어쩌거나 약력이 출중하면 그 약력에 걸맞는 혜안을 내놔야 하는데 그냥 쉽고 간편하게 따따부따?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만사 따따부따? 애들 장난하나! 어? 애들 장난하냐고! 오스트리아에는 뭐 캥거루가 있다야 뭐야? 기교만 봐서는 장난 아닌데 다 거품이다. 껍데기! 생각이 귀찮거나 모르는 사람이야 포장과 내용이 비례하는가 비례하지 않는가를 잘 분간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이건 명백히 가짜다. 그래서 난 스무 살인가 19살인가 진짜 당첨된 줄 알고 즉석복권을 들고서 은행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그런데 복권을 당첨금으로 바꿔줄 줄 알았는데 은행원은 그랬다. 얼마 라고 써진 건 맞는데, 위 숫자와 아래 숫자가 같을 때만 당첨금을 지급한다고. 은행원이야 옅은 미소였겠지만 그분께서 뭐 얼마나 날 한심하게 여기셨겠냐마는 난... 내 복권은 물론 내 기분도 완전 꽝이었다. 이러니까 난 어제 개꿈을 꿨다. 친구 소개로 호화로운 혜택이 풍성한 대학교에 방문했고, 온갖 부귀영화를 소개하며 신입생으로 들어와달라 러브콜이 폭주했다. 물론 계약금 연봉 퇴직금을 모두 대학에서 제공. 그런데 난 왠지 이 대학에 다니면 안될 것만 같아서 같이 온 옆 친구에게 한마디 했다. 실은 이곳이 전에 유치원이었다고. 유아원을 대학교로 개조한 거라고. 그런데 그 순간 대학교 고위 관계자께서 뒤에 갑자기 나타나서 앉아있던 내 어깨를 두손으로 턱 짚으시면서 그러셨다. 선생께서는 아니 대체 그걸 어떻게 아셨냐고!
   고로 허풍 대회, 열어도 될 꺼 같단 말이다. 나 원래 그렇게 꽉 막힌 사람이 아닌데, 뭐에 낚였는지 모르겠지만 따따부따 말 많은 소음 기계가 되어버린 듯 해서 착찹한 기분 도저히 잠재울 수가 없다. 소원은 환상머쉰 희망은 진공청소기 현실은 만화캐릭터? 주방기구? 여러분, 부디 통촉하여주옵소서! 오락산업의 노비도, 백정도 육식주의도 채식주의자도 아닌 어중간한 소비자에, 만인을 웃기는 재주 하나는 똑부러진 광대도 못되는 주제에 이 미천한 것이 일부러 그러고자 하는 의도는 없었으나 결과적으로 방정맞게 잘난 체를 했사옵니다. 피터 드러커는 발가락 사이에 낀 때만큼도 못하리마치 훌륭하신 경영학자이자 사업가와 지성인들 앞에서 내가 무슨 경영학 원로라도 된다는 듯이 어? 어느 안전이라고 허튼 소리가 많은 채 수다를 뽑냈습니다. 맞다. 나도 심했다. 하오나 문제는 뭐다 중요한 점은 무엇이다 현실은 어떻다를 똑똑히 아뢰었고, 이미 뻔데기 앞에서 주름을 잡았는데 어쩌겠습니까. 허허허. 이 내 마음 바텐더에게 위로를 받아야 할까요, 아니면 무언극 1인 다역으로 원숭이나 피에로 연극 공연에 나서기라도 해야 한단 말입니까? 이 참담한 심정을 대관절 어떻게 달랠꼬! 일기를 쓰든 NC를 가든 반성해야겠다. 나는 판돈은 없고 말만 많은 구경꾼일 테니까.


   2

   머머 하고 싶다.
   나는 미스테리아 편집장 마라에게 위 제목으로 기고문을 하나 보냈다. 아, 미스테리아 편집장 실비아는 주류 언론으로 진출했고, 우리 집 근처에 있던 미스테리아 사무실은 연구실로 바꼈다. 미스테리아 편집장 실비아가 도시로 떠나가면서 미스테리아 연구실 실장 마라를 소개시켜주었다. 나는 그렇게 마라를 알게 됐고, 마라는 부동의 불행이든 줄기찬 재미든 뭐라도 좋으니 단편 분량의 수필을 하나 부탁했고, 나는 흔쾌히 수락했다. 그렇게 해서 내가 마라에게 보낸 글은 위와 같다. 내가 왜 욕구에 민감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하나의 욕망을 놓고 그것의 시작점을 파헤치기 좋아하기 때문에, 그래서 마라가 잡지 뒷면에 실릴 기고문을 주문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렇게 일은 일단락됐고 나는 마라 사무실에서 원고료도 받았다. 그렇지만 마라는 온라인으로 붙인다고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누가 우리 집에 찾아왔다. 딩동. 딩동. 딩동!
   나는 뜨끔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은 몰라도 비판 받은 당사자는 그 무언가를 알고, 느꼈고, 깨닫든 무시하든 어떤 생각을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역으로 보자면 나는 저지른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맞다. 나는 최근 같이 노는 친구들도 없고 누구 하나 날 만나러 찾아올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누가 갑자기...? 이건 백퍼센트 작품 주인공이다. 그래서 나는 뜨끔했다. 그런데 그분은 남자일까 여자일까? 혼자일까 여럿일까? 그렇지만 그 글이 픽션도 영화도 아니고, 유명하지도 않았으며, 기분이 좋든 나쁘든 당사자가 알아챌 리가 없다. 멀리 전달될 가능성은 거의 전무했다. 그런데 어떻게...! 나는 충분히 이해가 되고 절실히 공감했다. 어느 블로거가 연예인 싸움 순위 10이라는 글을 발표하니, 그 순위의 1위 연예인은 2위 연예인이 언제 별안간 들이닥칠까봐 두 발 뻣고 집에서 마음 편히 잠을 이룰 수 없었다는 심경 고백을. 내가 너무 어리석었나? 그분의 고귀한 성품과 천재적인 재능에 대한 2탄 글을 실어달라고 미스테리아 연구실장 마라에게 부탁이라도 할까? 아니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 나는 큰 죄를 짓지 않았고, 누군가의 괜한 명예를 실추시키지도 않았다. 겁 먹을 필요도 없고 쩔쩔매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나는 당당히 나가서 방문자가 누군인가 확인했다. 물론 내 속옷은 이미 식은땀으로 흥건했다.
   「안녕하세요. 저 먼저 이걸 받으시고. 네. 업다이크경께서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럼 업다이크경의 비서인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뭐? 물러가? 뭘 물러가? 내가 상전이었어? 나는 받은 물품을 돌려주거나 자세한 사정을 듣기 위해 그분을 쫓아가야 했으나 미처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모두가 검정빛 일색이었기 때문이다. 저 수상한 인물도 검은색 양복, 구두는 세무, 검은색 넥타이. 내게 전한 물품도 검정색 007 가방. 이건 심상치 않은 분위기였다. 저 인간이 뭐 카이저 소제야? 그럼 난 뭐야? 어머, 별꼴이야! 대체 이 가방 안에 뭐가 들어있길래... 나는 귀를 쫑긋 세우며 어쩜 유체이탈이라도 발생하여 육신이 정신을 환송하는 게 아닌가 걱정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업다이크경? 경은 무슨!
   아마도 가방 안에는 거액 곧 현금 다발이 들어있을 것이고, 그것은 어쩌면 원고료일 것이므로, 따라서 나는 이미 정당한 원고료를 받았기 때문에 당사자가 다시 찾으러 올 때까지 007 가방을 건드리지 않기로 했다. 뭔가 착오가 있을 것이다.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으나 어찌 어찌, 어떻게 어떻게 잘못 전달된 거금일 거라고 추측했다. 물론 여기까지는 나의 공상이다. 바램이고 애원이자 공상이었다. 즉 나는 가방을 열어보지 않았다. 원래 주인이 따로 있겠지 그러면서 나는 저 구석에다 가방을 쳐박아 뒀다.
   언제나 그렇듯이 불새 같은 사랑은 그 정체를 노출하지 않았고, 번뜩이는 행복과 전율감의 극치 같은 건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내가 미래를 미리 알 수 있었다면 돌이킬 수 없는 전개 같은 건 바라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미래를 알 수 있는 재주가 없었고, 장미와 잔꾀와 더불어 뭔가 재미있는 새로운 일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직은 미래를 알 수 없다는 것. 그것이 시작이라면 시작이었다.


   3

   순결한 사랑과 불결한 사랑에 대해 고민하던 중 나는 미스테리아 연구소에서 실장 마라와 약속이 있다는 걸 기억해냈다. 나는 연구소로 갔다.
   「안녕, 마라.」
   「오! 표정이 좋아보이네 오빠. 무슨 좋은 일 있어?」
   「좋은 일은 무슨. 그런 거 없어.」
   「혹시 누가 찾아오지 않았어?」
   「누가 찾아왔냐고?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대체 왜 모든 일을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얘길 할까?」  이걸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라면서 나는 살짝 유도 심문에 넘어갈 뻔 했다.
   「신경쓰지 마. 그냥 물어본 거니까. 아 맞다. 원고료는 잘 받았지?」
   「원고료? 무슨 원고료? (난 원고료 이미 받았는데... 혹시 잊어먹고 또 주겠다는 건가? 그게 아니라 보너스? 그럼 그 가방? 대체 얼마를 줄려고 그렇게 큰 가방에다가...) 그럼. 그럼. 그런데 말이야. 내가 할 일은 픽션을 쓰는 건데, 거 어째 점점 컬럼니스트가 되가는 것 같단 말이야. 눈시울이 뜨거워질 만큼 감동해야 할지 천부당만부당 하옵니다 하면서 일을 거절해야 할지 잘 모르겠단 말야.」
   「오빠는 습관적으로 초현실을 꿈꾸는 사람이니까 지금처럼 우리 관계를 유지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그런데 있잖아 오빠. 나 할 말 있어.」
   「할 말? 무슨 할 말? 날 사랑한다고? 슬픔과 기쁨이 교차하는 인생에 대해서 묻지만 않는다면 오빠가 성심성의껏 답해주리다, 낭자. 자, 여쭤보세요. 아, 질문이 아닐 수도 있겠구나. 그렇다면 숙녀처럼 주저하지도 처녀처럼 망설이지도 말 것이며, 여신처럼 신비롭고 요정처럼 아이로 변하는 요술을 까먹은 듯이 말해보렴. 응, 마라!」
   「오빠는 넘치는 엉뚱함이 특기인 남자구나. 아무튼 할 말은 이거야. 우리가 오빠한테 환상 문학 잡지 성격에 맞지 않는 단문을 요청한 건 다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야. 듣고 놀라지나 마셔. 오빠. 정말 그러기 없이다? 응? 알았지? 약속해! (윙크)
   실은 있잖아. 우리가 주기적으로 오빠한테 연애 상담이나 논평이나 환상론 같은 글을 주문한 이유는 따로 있어. 일단 오빠 글이 실리기 전에 우리 잡지는 꽤 괜찮았어. 그래, 잘나갔다고. 환상 문학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애독자 위주로 정기구독 비율이 높았고, 작가들 쪽에서도 작품을 실고 싶다는 요청이 많았으니까. 그런데 어느 때부턴가 그래프 선이 꺾이게 되었지. 왜? 선주가 바꼈으니까. 그런데 어쩜 그 모양일지 몰라, 선주가 괴팍한 건지 꺼벙한 건지 돌아이였어. 그래서 만선을 싫어했나 봐. 돌아이 맞네. 그리하여 우리는 그 시점부터 서점에 판매하는 책에 열어볼 수 없게 완품 포장을 시작했고, 판매처를 줄여나가다가 결국 오프라인 판매는 중지시켰어. 그리고 월간 발매하던 주기를 격월간으로 바꿨지. 게다가 다른 성격의 글도 싣고, 가짜 광고도 넣고, 이윽고 오빠의 기고문도 등장했고 말이야. 그러면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겠지? (딱) 정기 구독자 수가 점점 줄어들다가 드디여 우리가 원하는 수치에 드디여 도달했어. 그래 맞아. 우리는, 미스테리아는 비상장 회사니까 시끄러울 일도 없고 우리가 원하는 건 소수 정예였거든. 아, 우리가 누구냐고? 그건 새로운 경영진이지. 물론 대외적으로는 실비아 언니가 사장이고, 전면에 나서지 않는 실권자는 나야 나. 오빠. 나라고. 오빠 있잖아. 내가 돈이 좀 많거든.」
   「많아? 마라가 (돈을 나타내는 몸짓을 선보이며) 이게 많아?」
   「응. 많아. 오빠 한번 맞혀봐.」
   「작은 빌딩 하나?」
   「좀 더.」
   「집에 동물원이 있고, 너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동기 부여 비디오 그거 있어?」
   「어떻게 좀 더 상상력을 발휘할 수는 없겠니, 오빠? 응?」
   「구단? 하나? 둘?」
   「구단은 관심 없어.」
   「뭐야 그럼. 천문학자시네!」
   「아 그건 농담이고 어쨌든 중요한 건 환상 문학 잡지 미스테리아의 미래야. 오빠 있잖아. SF 같은 판타지, 어차피 가짜인 줄 알면서 읽는 환상 문학, 히야신스 꽃다발과 바꿀 수 있는 신비한 이야기는 이제 진력이 났거든. 그래서 실비아와 나는 다짐했어. 시대를 앞서가자고. 가짜 예견과 허황된 허구를 멀찌감치 따돌리자고 말이야. 그래서 우리는 최소한의 신실한 독자 100에 도달하는 데 성공했고, 그분들께 모두 초대장도 발생했고, 개별적으로 만나서 서명도 받았어. 그건 바로 우리의 환상촌에 입주하는 거야. 어때 오빠? 뭉클한 궁금증이 꿈틀대지 않아? 발전하는 욕망 같은 거 그런 거 없어? 하지만 말이야, 예상치 못한 행운이 예측되지 않는다고 용납될 수 없는 운명을 핑계로 삼는다면 거절해도 좋아. 억지로 갈 필요는 없다는 뜻이야.」
   나는 마라의 얘기를 듣는 즉시 그곳으로 떠나고 싶다는 걷잡을 수 없는 충동을 느꼈다. 난 원래 변심만큼이나 누군가에게 첫눈에 반하고, 변덕처럼 막연한 허언증에 나도 모르게 습관처럼 빠져드는 남자니까. 그래서 나는 마라의 얘기를 나 좋을 대로 각색해서 듣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그것은 첫째 오빠 사랑은 큰맘 먹고 시작하는 건가요 였고, 둘째 오빠 더할 수 없는 기쁨의 낙원으로 우리 단둘이서 어서 떠나요 였다. 나중 일은 모르겠고, 그래서 내가 답한 말은 이랬다.
   「오 마라! 더 고민하고 말고 할 게 뭐가 있겠소.」
   이거 뭔가 일이 너무 잘 풀리는 거 같았지만 그래도 이건 분명 나도 모르게 빠져들고마는 발단임이 틀림없었다. 게다가 집에 가서 확인해본 결과 007 가방에는 진짜로 돈다발이 들어있긴 했는데, 각 다발의 제일 앞 장만 진짜 돈이고 나머지는 다 백지였다. 왜 추가 원고료가 이 모양 이 꼴인지는 나중 자초지종을 듣던지 잠자코 기다리던지 할 테고, 따라서 나는 낙원인지 환상촌인지 또는 신세계일지도 모를 그곳으로 떠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4

   처음에는 설렘이 거의 전부였고 걱정은 터럭만큼이었는데,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컸다. 그럼 그렇지. 어쩐지 잘 돌아간다 했다. 순진하게 무슨, 다 커서 황홀한 예감에 다 들뜨고 말이야. 내가 어리석었다. 많이 어리석었다. 나는 속상했다. 그러나 다른 어디에서 절망의 원인을 찾을 수는 없었다. 어쩜 뜬구름잡는 얘기에 난 너무 쉽게 속아넘어갔던 것이고, 더군다나 완전한 탈락이 아니라 완성의 시점만 약간 미래로 당겨진 것 뿐이었다. 딱히 손해본 것도 없었다. 오히려 환상촌은 미완성이었기 때문에 나름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고 볼 수도 있다. 어차피 미스테리아 연구소인가 뭔가 그 실장 마라를 나는 절반만 신뢰했기 때문에 무슨 포춘 쿠키 점괘만도 못한 일에 상심한다는 것은 이성적으로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환상이니 신비니 다 부질없는 춘몽에 불과하고 나는 내 길을 가고, 할 일을 하며, 할 말이 떨어졌음을 완강히 부인하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그래서 나는 몽환적인 호사에 대한 염원이 앞날의 번영을 눈독들이지 못하게끔 영을 맑게 하고, 짜릿한 도취감 같은 헛꿈은 아예 불신하기로 마음먹었다. 환상촌? 환상촌은 무슨.
   하지만 내가 미라와의 교분을 아예 포기한 건 아니다. 새로운 경험에 대한 조커는 남겨두어야 했고, 그녀와 나는 어디까지나 사업상 동반자였으니까. 그래서 나는 틈틈히 환상 문학지 미스테리아 연구소에 들렸고, 색다른 소식이 있는지 산뜻한 풍문이 떠도는지 탐색했고, 어엿한 어른으로써 내가 달리 도와줄 일이 있는지 막 호기롭게 마라의 주변에서 서성거리기도 했다.
   그 다음으로 내가 한 일은 인터넷 쇼핑이었고, 새로운 척키 인형이 발매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래서 나는 새로운 척키 인형을 즉시 주문했다. 그런데 5분 후에 문자가 왔다.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인기 폭주로 물량 공급이 어렵기 때문에 상당 기간 기다려달라는 문자였다. 그래서 나는 주문을 취소했고, 극장에 가서 어느 SF 영화를 봤다. 물론 혼자 갔고, 물론 영화를 보다 중간에 잤다. 그러다 직원이 깨서 영화가 끝난 줄 알게 됐다. 비이성적인 소비 때문에 돈만 날아갔다. 그렇다고 나의 방황이 계속 이어질 수는 없었다. 운동으로 도파민을 분출시키든 일광욕으로 엔돌핀과 멜라토닌 분비량을 끌어내든 어떻게든 기분 전환이 필요했다. 그러나 문제는 의욕이 없다는 것이다. 왠지 나는 환락도 탐욕도 타락도 모두 싫고 방전된 전지도 아니고 박살난 핸드폰 마냥 집으로 돌아갔다. 갈 데는 집 밖에 없다는 듯이.
   그렇게 집에 거의 다 갔고, 서점에 들렸다 올걸 그랬나 라는 생각을 할 무렵 낯선 방문객이 우리 집 앞에서 서성이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나는 사기가 고무되는 현상과 정반대로 겁이 덜컥 났다. 또 누굴까? 아 이제 처음이구나, 그런데 누구지? 혹시 내가 지은 죄가 많아서 나는 코끝을 스치는 가을 바람에도 노랗게 물드는 나뭇잎에도 마음 졸여야 한단 말인가, 그러면서 뜨끔했다. 저분은 대체 왜 날 찾아왔을까? 누구 올 사람이 없는데 전혀 없는데, 기다리는 사람과 이상형과 첫눈에 반하기 대회가 만약 있다면 거기에 먼저 나갈지 허풍 대회에 먼저 출전할지 꽤 진지하게 고민해봐야겠지만 낯선 방문자는 너무 뜬금없었고 한없이 수상했다. 그렇다고 다짜고짜 당신 누구냐, 뭐하러 왔냐, 그러면서 골 세러모니를 연기할 수도 없었다. 바로 그 순간,
   「혹시 이곳이 미스테리아 연구소입니까? 선생께서는 그 마라? 아닌데. 내가 알기로 마라씨는 여잔데... 그러면 마라의 남편? 아니면 숨겨둔 애인? 그도 아니면 오빠인 그 방탕한 마수? 허허허 농담이고, 환상촌 이주 문제 때문에 상의드리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글렌이라고 합니다.」
   글렌? 나는 글렌에게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면서 미스테리아 연구실이 어디인지 친절하게 가르쳐줬고, 우리는 작별했다. 글렌과 대화할 때 나는 은근슬쩍 그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살펴봤다. 특별한 단서랄지 의심의 기미는 전혀 발견할 수 없었으나 다만 한 가지, 셔츠 가슴 주머니에 100이라고 씌여진 작은 브럿지가 돋보였다. 100? 뭔 백? 그야 어쨌든 글렌은 그가 원하는 행복의 나라로 갔고, 나는 바로크 오르간 협주곡이 울려퍼지는 모험과 신비와 희망의 세계인 즐거운 우리 집에 도착했다.
   허세 지수가 내려가면 허영이 앞장서고, 허영심이 잠잠하면 다시 허풍 대장을 위한 위풍당당 행진곡이 울려퍼진다. 때문에 아마도 내 허욕은 어느 때고 들뜨지 않을 수 없는 것일까? 몰라서 묻는 건 아니다. 그냥 혼잣말이니까. 그래서 나는 지칠 줄 모르는 공상을 가라앉히고 다시 잔잔한 일상으로 돌아갔다. 근사한 건수가 생기든 예측 불가능한 팬클럽이 창단되든 나는 새로운 걸작을 탄생시키기 위해 구상에 몰입했고, 스르르 꿈나라로 빠져들었다.


   5

   꿈에서 나는 이런저런 다사다난한 활약을 펼치다가 운동화인지 구두를 빨았고 신발끈을 매고 있었다. 그러나 환상적인 꿈 속의 오늘은 현실적인 내일의 불청객 때문에 그 달콤했던 환희는 뿔뿔이 흩어져버렸다. 신데렐라야 밤 12시가 운명에 관련된 중요한 시각이지만 보통 사람들은 동화 속에 살지 않는 이상 잠자는 시간을 내일이라 부르기는 썩 애매하다. 때문에 정신없이 비현실을 부정하는 꿈나라는 엄밀히 따져 내일이라고 볼 수 없고, 따라서 아침에 눈을 떠서 흑심으로 출발하든 의식이 깨어서 동심으로 시작하든 그 시점을 새로운 오늘의 서두로 볼 수 있을 것이며, 그러므로 나는 단꿈을 침해당했기 때문에 찌푸둥한 하루를 시작할 수 밖에 없었다.
   쾅쾅쾅 딩동딩동. 쾅쾅쾅 딩동딩동~!
   아침부터 누구야? 누가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리는 거야 그러면서 나는 한마디 할려다가 참았다. 먼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소, 환영합니다, 인생 연구를 같이 시작해볼까요 라고 한마디 꺼낼려다가 멈칫 생각했다.
   누굴까? 누구지? 왜 나를? 내가 대체 뭘 잘못했다고? 그런데 남자일까 여자일까? 그냥 모른 체 할까? 하긴 꼭 내가 연예인 싸움 순위 1위에 등극한 건 아니지만 옛날에 실제 그런 일이 있었다. 인생의 어두운 시절 호색적인 인터넷 일을 하던 때였는데 YAHOO 같은 포털 사이트 내에 포럼을 새로 자꾸자꾸 만들어서 마케팅하는 게 유행이었다. 그런데 그쪽 업계가 좀 음습하고 야했고 뭐했는데 또 거기에도 약삭빠른 친구들이 있었다. 그들이 새로 개설된 포럼을 YAHOO에 신고하면 YAHOO에서 개설자의 권한을 빼앗았고, 그 포럼의 주인은 공석이 된 상태가 되니까 누군가 포럼 권한을 상속받고 싶다고 신청하면 쉽게 받아들여지는 기현상이 몇몇 있었다. 그래서 어느 열 받은 분이 생쥐를 잡으러 신상 정보를 잘못 알고서 우리 집까지 찾아온 일이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 그건 비밀이다.
   더욱이 나는 미스테리아에 몇몇 기고문을 발표했고, 그 글이 어디에 게재되고 어떻게 퍼졌으며, 무슨 일이 있는지 하나도 모르는 처지였기 때문에 낯선 방문? 가슴이 뜨끔했고, 이미 혼난 거나 마찬가지였다. 불안감이 훅 들어왔고 어떤 뜻모를 자책감에 위와 아래가 찔끔했다. 설마 머 묻은 개가 머 묻은 개를 나무라지야 않겠지만 내가 놀라지도 않고 겁나지도 않았다면 그건 거짓말일 것이다. 어쨌든 대결은 코앞이고 결전은 임박했으며 나는 숙명을 피하고 싶지 않았다. 결과야 어떻든 그와 내가 정서가 다르면 얼마나 다를 테고, 가죽 점퍼를 입었든 혼자 오지 않았든 나도 다 수가 있다. 그건 무엇이냐면 옛날에 앞집 아저씨가 딴 살림 차려서 앞집에서 살고 있었는데, 그분의 본처와 아주머니들께서 으쌰으쌰 우리 집에 찾아온 일이 있었다. 와, 기세 장난 아니었다. 나는 사실대로 번지수는 우리 집이 아니라고만 말했다. 이번에도 그때처럼? 그때와 지금은 다른가? 마주쳐서 좋을 것 하나 없는 사람 인연이란 것도 있을 테니 꿇릴 거 없다 하얀 거짓말이니까. 그러므로 이번에 혹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간다면, 여차하면 나는 엇비슷한 방법을 쓸 계획이었다.
   변죽은 그만 울리고, 주위는 그만 맴맴 돌며, 뜸 들이지 말고 신속 정확하게 결과만 말하자면 이렇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하나 없더라, 바로 그런 결과였다.
   날 찾아온 이방인은 나를 만나러 온 게 아니라 미스테리아 연구실을 찾아왔던 것이다. 게다가 뭐 이번에는 여자, 것도 숙녀, 어쩌면 미모와 지성은 물론 사랑과 야망까지(여자가?), 심지어 투피스 재킷에 작은 브럿지까지 달고 있었다. 씌여진 글씨는 99번. 뭐 99번? 뭐가 99번? 99번의 성공 1번의 남의 다리 긁기? 그녀는 99 나는 그럼...? 이런 젠장!
   나는 그녀를 보냈고 묵상에 잠겼다. 이미 달콤한 인생은 물 건너갔을까? 키스하는 소리는 정녕 소음이란 말인가? 끝끝내 포기할 수 없는 젊음은 또 어떡하라고.
   그러나 며칠이 지나서 나는 알게 됐다. 98, 97, 96 계속 왔다. 더불어 나는 계속 지쳤다. 긴장했다가 김빠졌다가. 뜨끔했다가 안도했다가. 겁 먹었다가 한시름 덜었다가. 전전긍긍 근심하고, 전전긍긍 떨었고, 전전긍긍 두려워하며, 계속 전전긍긍 이랬다 저랬다? 나는 시름시름 풀이 죽어갔다. 완전 침울해졌다. 그러니까 대체 누구야, 이번에는 또 뭐야, 왜 나야, 언제까지 이럴 꺼야 라면서 불안에 초조에 근심에 뜨금하고 겁먹은 감정이 나를 온전히 지배했다. 어차피 맞을 매면 빨리 맞고 싶었으니까. 그런데 내가 매를 왜 맞어? 입장이 바꼈다. 그럼.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나는 뜨끔했고, 전전긍긍 불안감과 안도감은 팽팽하게 기우뚱거렸던 것이다. 그러다가 상황이 바뀌어버렸다. 전전긍긍 뜨끔하고 쫄고 겁먹고 그러다가 정반대의 기분을 느끼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나는 어쩌다가 어느 때부턴가 그분들을 기다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완전 괴로웠던 시기를 지나고 나니 그건 흡사 U자 곡선처럼 다시 날 달콤한 솜사탕 같은 꿈의 궁전으로 띄워보내고 있었다. 누가? 무엇이? 왜? 나도 모르겠다. 그러나 사실이 그랬다. 정확하게 어느 시점부터인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나는 막 기다려졌다. 만나고 싶어졌다. 다음에는 누굴까 막 궁금해졌다. 혹여 설렜던가 들떴던가 사랑처럼 가슴 조렸던가 확신할 수는 없지만 꼭 그렇지 않다고 딱 잡아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다 나는 살아났다. 어째서?
   바로 96번 방문객 다음에 95번을 건너뛰고 94번 방문객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왜 95를 건너뛰었지? 설마 나에 관해 누군지 모를 상대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단 말인가? 그렇다마다. 나는 방법은 딱 하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미스테리아 연구소로 찾아갔다. 마라를 만났다. 하지만 마음이 바꼈다. 마라를 만나서 다짜고짜 따지던 어쩌던 결판을 낼려고 했는데 마라의 얼굴을 마주하니 그런 결심은 눈 녹듯이 사라져버렸다. 나는 내 속마음을 모두 노출할 수는 없었고 어쩌면 그게 현명한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불안불안, 위태위태, 조마조마. 조마조마? 그 친구들은 잘 지내는지 궁금했다. 아무튼 나는 탐색전에 돌입했다.
   휴, 한숨 돌리고 가야겠다.


   6

   나는 마라를 찬찬히 관찰했다. 내가 안 좋게 볼려고 또는 신묘한 시선으로 봤으니까 약간 밉상으로 보였다 뿐이지 마라는 알고 보면 꽤나 매력적인 숙녀였다. 그러나 내 흑심이 절정에 도달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절망의 유혹과 고혹적인 선망 가운데 뭘 선택하느냐, 가 아니라 우여곡절 끝에 어떤 새로움을 찾아내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나는 마라의 책상 밑에 붙여진 지도를 우연히 보게 됐다. 일부러 동전을 떨어트리고 그걸 주으면서... 뭐 그런 꼬맹이 호기심 같은 일은 없었고, 마라가 없는 틈에 나는 재빨리 사무실 탐색에 들어갔던 것이다. 그래서 어엿하게 그 비밀 지도를 발견했다. 나는 일단 나의 새로운 지각을 마라에게 비밀로 했다.
   다음 날이 되었다. 마라는 출장을 갔다. 나는 미리 미스테리아에 몰래 들어가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아직은 빈 사무실에 내가 있어도 될 정도의 친분을 쌓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창문을 하나 열어놨던 것이다. 나는 연구실로 들어갔다. 제일 먼저 한 일은 마라가 앉는 의자에 앉아서 책상에 발을 올리고 거만한 자세를 잡는 일이었다. 혼자 그런다고 누가 뭐라 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 외에 다른 할 일은 없었고 나는 책상 밑으로 기어들어가서 지도를 봤다. 이제부터 그 비밀 지도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내 애정의 대상이었으니까. 지금 내 행동이 이런 내 이상 욕구가 사랑의 종말일지 풋풋한 사랑일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도저히 이런 내 탐구욕을 멈출 수 없었다. 갈 데까지 가보는 수 밖에. 나는 마침내 뛰고 싶어 환장한 강아지처럼 지도를 탐했고, 주인에게 배를 보이며 드러눕는 듯 편안한 자세를 취했다. 이 순간 마라가 들어온다면 참 난감하겠지만 마라가 돌아오는 일은 없었다.
   지도에는 홍일점과 청일점 그리고 회색점으로 동그랗고 작은 스티커가 붙여져 있었다. 지도는 가까운 도시인 것도 같고, 알 것도 같은데 어딘지 모르게 낯설었다. 또 스티커는 총 100개가 붙여져 있었고, 그 모양이 마치 별 모양인 듯 했다. 당장 그 삼원색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낼 수는 없었고, 시간이 오래 걸려도 알아내기는 힘들 것으로 추측했다. 더불어 이런 현황판이 있다는 것은 분명 엑셀 파일로 그 백 명에 대한 신상 정보를 관리할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했다. 하지만 거기까지 내가 사실이냐를 밝혀낼 수도 없고, 마라와 그 정도로 곧 마라가 자기의 모든 지식을 내게 공개할 정도로 단기간에 가까와 지는 것도 불가능해 보였다. 그래서 나는 판단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두 가지라는 것을. 첫째, 94번 이후 날 찾아오는 사람이 뚝 끊겼다는 것은 그들이 마라의 연구실로 직행한다는 것이기 때문에 어설프게 마라와 회원의 미팅 자리를 엿보느니 내가 그들을 탐문하고 정찰하며 탐색하는 게 더 재미있을 것이고, 둘째 그것으로 어느 정도 감을 잡는다면 나는 어쩌다 도발을 감행할 것이다. 즉 마라의 책상 밑 지도에 표시된 별표의 중심부로 찾아가리다. 그래서 나는 혹시 모르니까 일단 지도를 사진 찍었다. 그런 다음 내일부터 회원들을 내가 직접 탐방하기로 했다. 이윽고 사랑에 빠진 듯한 초롱초롱한 눈망울이 빛나고 있었다.


   7

   그런데 내가 아무 근거도 없이 무작정 미스테리아의 열혈 회원을 찾아나섰을까? 그럴 리는 없다. 그럴 수도 없고. 그건 바로 확실한 첩보를 입수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특종이란 무엇이냐? 그 믿기 힘든 증거라는 것은 저번에 업다이크경의 비서가 남기고 간 007 가방에 부착된 USB였다. 물론 그것은 숨겨져 있었는데 내가 발견해냈고, USB 안에는 아무런 파일도 없었으나 그 또한 내가 지워진 파일을 특수 기술로 복구해낸 것이다.
   나는 완전 보통의 인간인지라 친구들처럼 뭐 재미난 일 없나 괜히 두리번거리고, 동네 아저씨들처럼 어제와 같은 오늘을 사는 평범한 남자였다. 그런 내가 영화 속 주인공이나 된다는 듯이 진짜 그런 것처럼 막 참을 수 없는 환상에 빠져들고 있었다. 지금 가능한 추론은 대략 몇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환상 문학 잡지가 자본의 힘에 넘어가서 그것이 다른 목적을 위해 이용된다는 점. 즉 최종 목표가 종교가 아닌가 그런 의심이 발생함. 둘째, 전문가 집단에 의한 고도의 작전에 따라 미스테리아는 일부러 최저점을 찍고 실화 같은 일들을 바탕으로 신작들을 쏟아내어 그 파격적인 뛰어난 재치로 문학계는 물론 상업과 연예계까지 주름잡는다, 즉 돈과 꿈! 1번은 사익 및 신앙, 2번은 상업과 야망! 내가 아마 헛다리 짚었을 수도 있지만 은밀히 엿듣거나 어설프게 도청하거나, 물론 할 수도 없고 마음 먹을지라도 그 귀찮은 걸 어떻게 다 할 수도 없고, 다 필요없고 나는 오직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기로 결정했다. 또는 어쩌면 그냥 마라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는 것이 최선의 방법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일단은 여기까지가 내 유쾌한 상상력이고, 그 다음은 능력 밖이며, 혹시나 믿는 구석은 역시나 밑도 끝도 없는 드라마적 전개다. 곧 우연한 행운에 이은 제2의 신비 제3의 환상을 아이 같은 순수함으로 아낌없이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우선은 앞으로 어떤 흥미진진한 전개와 가슴이 뭉클하고 코끝이 찡하며 눈물이 핑도는 절정에 이어서 이름 모를 환한 행복감으로 가득찬 해피엔딩이 기다리고 있을지 예측이 어려운 실정이다. 따라서 이제부터 소설이 나아갈 길은 자명해졌다. 그것은 등장인물이 점차 늘어나야 하고, 이제는 뜸 좀 그만 들이고 본격적인 사건이나 구체적인 절정이 무르익어야 하며, 그 모두를 놓치고 포기한다고 하더라도 둘 중 하나는 기필코 획득해야 하리라. 그것은 무엇일까? 언제나 이런 식이야! 즉답성은 항상 연기되거나 생략된다고. 그것은 바로 돈과 인기, 아니면 사랑과 우정! 이참에 그냥 두 마리 토끼는 물론 세 마리 너구리와 고양이 카페와 개 운동장 아니 그냥 동물원을 사버릴까? 밤하늘 별이 빛나건만 선물 먼저 상상하고 상금 타면 뭘 할까, 맛난 음식 먹고 싶은 요리 명단부터 떠올리는 습관, 극구 칭찬할 만하다. 브르르르르르르!


   8

   나는 파일 내용을 근거로 미스테리아 회원을 찾아갔다. 당연히 내가 입수한 파일이 속임수일 수도 있고, 거기 숨겨진 함의에 대해서, 또 내 생각과 동선을 모두 예상하고 추적하며 기록한 다음 그것을 어디에 보고할 수도 있다는 가정을 떠올려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러나 내가 달리 알아낼 수 있는 사연은 저 멀리 있을 뿐더러 어떤 충격적인 사실이 없을지라도 나는 이런 낯선 탐사를 꼭 한번 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표본을 보고 괜찮다 싶으면 계속 하고, 아니면 멈추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왜 이런 밑도 끝도 없는 탐정 흉내내기를 하고 있는 것일까? 왜냐하면 나는 작가이기 때문이다. 산 경험이 필요했던 것이지.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고 하지 않나. 무지개 너머는 바로 여기고 지금이다. 거리에는 화사한 꽃이 피어 있고, 그 주위에는 나비와 꿀벌과 바람이, 어... 음... 그게 그러니까... 뭔가 멋진 말을 해 볼려고 했는데 생각이 막혔다. 이런 때는 솔직하게 고백하고 멈추는 게 최선이다. 안 그러면 억지로 분량이야 때우겠지만 그러면 기교만 남고, 좌우에 미모와 몸매가 좋은 여자를 꿰차는 것처럼 방긋 웃으며 관능미와 형식미를 앙편에 보듬겠지만 그래 봤자 고전적인 마지막 잎새가 아니라 세계적인 따따부따 밖에 더 되겠나. 아, 생각났다. 보너스가. 술꾼이 뭐라 그러나? 자긴 술 취하지 않았다고 하지 않나. 행복에 겨운 현대인을 생각해본다. 그래 나 말이다. 또는 그대일 수도 있고. 행복에 겨워 보라. 행복에 겨워 보라고. 사랑이, 행복이, 꿈이 인생의 전부가 아닐 수도 있다며 여자친구를 설득하며 그 행복에 안주하지 않고서 행복2를 추구하고, 다시 여자친구를 훈계하거나 세뇌 후 환상론을 탐구하고, 동기 부여 영상을 본 다음 환상론2를 창시할려고 하지 않겠나. 그럴 수도 있다는 뜻이다. 어쨌든 이건 모두 내가 93번 회원의 집 앞까지 오면서 떠올렸던 쓸데없는 공상이었다.
   「안녕하세요. 견딜 수 없는 환희, 저는 미스테리아의 연구 위원입니다. 까마득한 옛날부터 환상 문학을 탐독하시며 각별한 애정으로 오래오래 고결하신 애호가로 남아주신 데 대해서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어서 실례를 무릅쓰고서 이렇게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저희쪽에서 달리 여성잡지 1이나 2를 창간했기 때문에 그걸 알리고자 방문하지는 않았습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제가 그렇게 유들유들한 위인도 못될 뿐더러 무턱대고 넙죽 꿈틀대는 환희와 푹신한 안락과 고객님의 즐거운 일상을 깨트릴 의도는 추호도 없답니다. 네 전혀요. 그러니까 좀 더 심층적으로 용건에 대해서 상세히, 그리고 조곤조곤 설명을 드리자면 이럴 것입니다. 우리 미스테리아는 진심 어린 매혹의 경험을 보장할 것이라는 점. 다시 못 올 추억은 물론 지겹지 않은 회상까지 잡지 말미에 수필로써 챙겨드린다는 점. 무엇보다 미스테리아는 아낌없는 사랑에 목말라 한다는 점.」
   그런데 갑자기 93번 회원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내 말을 빼았았다. 그 거부할 수 없는 카리스마에 나는 내 선공 즉 말로써 뿐이 그를 설득하고 납득시킬 수 없는 내 최면술을 빼앗겨버린 듯 했다.
   「형씨!」
   「네?」
   「하고 싶은 말이 뭐요?」
   「하고 싶은 말이요? 하고 싶은 말이라면 에 음 어 가만 있자, 그러니까 그게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시구요. 이런 상상을 한번 해봅시다. 꽃 피는 봄날 청춘의 사과나무는 불순해졌다 라고. 설마 사랑을 큰맘 먹고 시작한다고 생각하시지는 않겠죠?」
   「선생. 선생은 어디 소속이요?」
   「네? 소속이요? 저는 그게 그러니까 무소속... 아니 미스테리아죠. 네. 그렇죠.」
   「선생은 숙녀에게 꽃을 선물한 적이 있소? 보아하니 없구만. 그대는 누군가에게 꽃다발을 받고서 기분이 날아갈 듯 기뻐해본 적은 있소? (딱) 없구료. 사랑을 한다 편지를 쓰다 책을 읽다 커피를 마신다, 그 가운데 선생이 한 일은 운수 좋게도 번지수를 잘 찾아오셨단 말이오. 그래요. 나는 한때 환상 문학에 빠져 살았소. 미스테리아? 한때는 경쟁 잡지를 창간해볼까, 그런 생각도 해 봤소. 그런데 내가 원대한 대망을 위해 별짓 다 해 봤지만 내 사업은 번창할 수 없었고, 내 꿈은 번번이 고배를 마셨소. 실패에 실연에 낙방에 낙선에 낙오는 물론 좌절과 낭패로 점철된 아주 암울한 인생을 살고 있었단 말이오. 오래 전에 말이외다. 난 말이오 그렇게 족히 30년간 바닥을 기었수다. 아아, 아무리 동분서주 노력해도 그 그 어두운 암흑기의 끝은 보이지 않더란 말이오. 지지리 운도 없고 한없이 복 없는 숙명 때문인지 당시에 난 정말 개팔짜를 참으로 부러워했소이다.
   나는 좀 전에 선생을 보고서 생각했소. 어쭈 요것 봐라, 라고 말이오. 혹시 무엇을 팔러 왔소? 아니면 얼굴만 뵙고 싶어서 뭐 그런 변명을 준비한 거요? 설마 나와 연애하러 이 누추한 곳까지 행차하시진 않았을 테고. 음 가만 있자. 누가 보냈소? 선생을 누가 이곳으로 보냈냔 말이오. 그리고 뭐하러 왔소? 괜히 왔단 생각은 들지 않소? 젊은이는 혹시 3대 영업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 계신가? 사랑, 환상, 신비에 대해서 말이오. 너무 그렇게 경직된 자세는 그다지 좋지 않다오. 긴장을 풀게나 이 양반아. 자네를 보니 꼭 내 젊은 날을 보는 것만 같아서 그렇다네. 허허허. 허허허허허. 자, 먼저 이걸 받으시게 형씨.
   (그는 원 네트워크라는 의미심장한 브랜드에 대해 설명된 투자설명서인지 사업계획서인지를 내민다)
   혹시 일이 꼬이는 건 아니오? 친구, 미친 여자를 만나본 적 있소? 사랑한다고 말해본 적은? 속없던 청춘 시절이 후회되는 건 아니오? 안타까운 일은 끊이지 않는다거나 뭐 그런 사연 말이오. 오오 오늘은 날씨가 이렇게나 쾌청한 걸 보니 복된 운수의 기운을 탈 것 같은데, 이왕 이렇게 된 거 내 그대의 팔짜를 봐주겠소......」
   이때부터 나는 정신이 혼미해졌다. 나는 마치 거부할 수 없는 매서운 주문에 걸려버린 것처럼 청각을 비롯한 지각 현상이 둔해졌고, 슬퍼하지 말라는데 정말 슬퍼하지 말아야겠다고 속으로 되뇌었으며, 철없는 사랑에 대해서 뜻모를 꿈을 꾸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서 나는 집으로 돌아왔고, 내 손에는 원 네트워크라는 사업설명서가 쥐어져 있었다. 내가 거기 왜 갔지? 왜 하필 그 인간을 만나서 본전도 못찾은 거야? 누군가 혼쭐을 당하긴 하겠지만 왜 하필 그게 나냐고! 나는 정녕, 과학과 황금 만능의 시대에 풍요를 누리며 독보적인 인기를 구가하다 바나나 껍질을 밟고서 그만 미끄러지고 마는 운명이란 말인가. 아니다.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다. 나는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해서 나는 줄기차게 92, 91, 90번 회원까지 탐방한 끝에 결론을 내렸다. 업다이크경의 비서라는 작자가 남기고간 가방에서 발견한 파일은 헛된 미끼였다는 것을. 값싸고 흔한 먹밥만도 못한 장난스런 파일이라니, 오 저런! 헐레벌떡 뛰어가서 운 좋게 행운의 의자에 철썩 앉았는데 엉덩이와 의자 사이에 겨자소스가 흥건한 느낌. 나는 망했고 그 모두는 헛수고였다. 그러나 그것이 모두 헛소동이 아니란 걸 나는 미스테리아 연구실로 어느 날 찾아가서 알게 됐다. 내가 찾아가서 만난 네 명의 인물들이 연구실장 마라와 담소를 나누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내가 찾아갈까 말까 망설이다 찾아가지 않은 미스테리아의 회원이었다. 그렇게 해서 나는 조셉과 펜과 팝콘과 앤과 친구가 됐다. 장래 나와 이 친구들의 우정이 어디까지 발전할지는 미지수지만 뭔가 느낌이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했다.
   청춘의 끝은 어디일까. 사랑의 완성은 있을까. 어쩌면 나는 멍멍멍 컹컹컹 아무한테나 마구 짓는 개였고, 마라는 혹시 내 주인이 아닐까 그런 의구심에 나는 몸서리치고 말았다.


   9

   등장인물이 적다고 어딘가에 적을 두어 막 50명의 친구에 대해서 설명하는 건 지금 큰 의미가 없다. 더군다나 조셉의 재산이 얼마인지, 펜은 지금까지 몇 번의 사랑을 했는지, 팝콘은 과거에 인기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앤이 이룬 소망은 무엇이고 춤추고 노래하는 데 자질은 뛰어난지, 그 모두를 묘사하고 설명할 수는 있다. 그건 가능하다. 그걸 모두 친절히 설명하고 소상히 전하옵고 신비롭게 쓰고 낫낫히 보고할 수는 있는데, 나는 지금 미스테리아가 나아갈 방향에만 온 신경이 곤두서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친구들과의 교분을 발전시키지 않았다. 그렇다고 당장 마라와 데이트를 하고 밀월 여행을 떠날 수도 없었다. 하지만 나는 궁리에 궁리를 거듭한 끝에 마라를 물고 늘어질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딱 보니까 조셉은 허당, 펜은 허세, 팝콘은 허영, 앤은 허풍의 대명사라는 견적이 산출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하루는 제비꽃 한송이를, 때로는 연분홍색 머리핀을, 비가 내리는 날에는 기분이 이상해지는 정신을 혼미하게 만드는 은은한 향이 절묘한 향수를 선물했고, 미스테리아 연구실에서 마라에게 들릴락 말락할 정도로 유명 아리아를 불러렀다. 막 불러댔다. 쉬지 않고 불러댔다. 테너도 가능했고, 메조 소프라노라고 거절할 수 없었던 데다 콘트랄토까지 도전했다. 예상 결과야 있었지만 다가올 결과는 관심없었다. 자신감 때문일 수도 있지만 만용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나는 마라를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작전을 멈출 수 없었다. 더더군다나 나는 그녀와 대화할 때 발성에 신경썼고, 스타카토 같은 발음에도 유의했다. 그러면서 나는 미스테리아 특별판을 준비하는 그녀를 위해 어깨 마사지를 독학으로 연습했다. 그러나 막상 스스럼없이 그녀의 부드러운 그 뒷머리카락 근처에 내 마음대로 손을 올릴 수는 없었다. 다만 허허실실 기회만 엿보았을 뿐.
   그러다 그녀는 본사로 출장을 떠났고, 나는 황급히 그녀의 책상 밑으로 기어들어갔다. 비밀 지도의 변화를 파악하기 위해서. 그런데,
   어머나, 맙소사!
   지도는 사라졌다. 그건 곧 마라가 뭔가 눈치를 챘다는 뜻이다. 또는 내가 미끼를 덥썩 물었고, 마라가 OK~ 하면서 앞으로 펼쳐질 그림을 상상했을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마라는 혹시 내가 상대하기에는 너무 높은 곳에서 놀고 거닐며 날아다니는 존재가 아닐까 라고. 그녀는 황금빛과 청록색깔 큐피트 화살도 쏠 수 있고, 풍문을 퍼트리는 건 식은 죽 먹기에, 미남을 꼬셨다가 원하는 정보를 습득한 후 그 남자 보기를 돌맹이나 나무 보기처럼 하는 건 장기이자 전공일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불현듯 느껴졌다. 그런데 감히 내가 멋도 모르고 그녀에게 도전장을? 차라리 우정으로 다가갔다가 일부러 흑심이 발각된 듯 연기라도 해 볼까? 아니면 정공법으로 그냥 막 허둥대면서 그녀가 보고 싶었다고 고백이라도 할까? 그러다 난 정말 사랑에 빠지고 그녀가 날 가지고 놀기라도 하면 어떡하지? 이건 실로 진퇴양난이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돌아가는 분위기는 딱 좋은 밀착 감시인데 그녀는 한치의 빈틈이 없었고, 나는 미스테리아의 미래가 궁금해서 정신을 못차렸으며, 난 아마 마라의 신비감에 혹했고, 그녀의 권위에 미혹된 채 파르르 떨면서 내 기분의 참을 수 없는 허허로움에 대해서 부정도 긍정도 할 수 없었다. 한량이 따로 없었고, 그 별명 누가 지어준 것인지는 몰라도 환상가란 애칭은 포기한 거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그야 어쨌든 조금만 기다리면 비밀이 밝혀질까? 어느 세월에! 또 무슨 비밀? 내 말이!
   그런데 말이다, 인간의 불완전함에 대해 고민하던 순간 뜻밖의 행운이 찾아와서 궁금증은 해소됐다. 바로 마라가 내게 직접적으로 제의를 건넨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그녀에게 또는 미스테리아에 내가 얼마 정도 존재감이랄지 어느 정도 이용 가치가 아주 없다고는 볼 수 없기 때문인 듯 했다. 출장 갔다 돌아온 마라는 이처럼 말했다.


   10

   「오빠. 무섭지 않아? 뭔가 느껴지지 않냐고. 혹시 오빠 실비아와 계속 연락하고 지내? (마라야 하나씩만 물어보지 않으렴?) 그러든 아니든 그야 뭐 오빠 마음이니까 내가 뭐라 할 것까진 없는데, 다만 하나 걸리는 점은 이거야. 오빠가 언제부턴가 우리 미스테리아의 내부에 너무 깊숙이 관여해버린 듯한 느낌. 더 심하게 개입할 수 없을 정도로. 여기까지는 호기심 다음부터는 장면 전환, 지금까지는 장난 반 진심 반 이제부터는 모험. 아마도 그럴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아? 오빠, 응? 앞으로 의심할 여지가 없는 신비를 조우할 수도 있겠지만 침울한 악영향과 무뚝뚝한 불이익을 감수해야 할지도 모른다구. 오빠, 괜찮겠어?
   아, 이게 다 무슨 업보란 말인가. 막 눈앞에 큐피트의 화살을 맞은 자주색 꽃잎이 떠다니는 것만 같네. 그건 꼭 동화책 표지에 표시된 문구 같아. 경고. 한번 빠져들면 절대 헤어나올 수 없음. 그런 거. 오빠 설마 나 없을 때 내 책상 몰래 훔쳐본 건 아니지? 아니면 됐어. 그냥 한번 해 본 말이야. 내... 숙녀의 엉덩이나 몰래 엿보지 않으면 된 거지 뭐.
   환상촌이네 D-day네 해서 오빠는 그 모두를 애들 놀이처럼 여길지도 모르지만 맞아. 그건 신나게 뛰어놀다 돌아서면 엄마 심심해 라고 말하는 애들의 투정과 푸념 같은 장난일지도 몰라. 그런데 중요한 건 말이야, 그 모두가 꿈처럼 느껴지든 동경하는 대망을 떠올리게 하든 어쩌든 한번 지나가면 돌이킬 수 없다는 점이야. 우리네 인생처럼.
   저번에 업다이크경의 비서란 사람이 찾아온 일 있었지? 실은 그 사람 내가 보냈어. 혹시 그 가방에 숨겨진 파일은 열어봤을까? 내 책상 밑에 붙여졌던 지도를 볼 때 어떤 생각을 했어? 미스테리아가 격월간 잡지가 아니라 미스테리아는 설마 실화나 어떤 희귀 현상이랄지 고고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모인 한 집단의 행동 방침이랄지 마케팅 기법 같은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한 건 아니지? 오빠가 환상 문학 잡지 미스테리아의 편집장 실비아로부터 구원의 편지를 받는 일, 있었을까 없었을까? 오빠 같은 작가 입장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고 실토하고 싶을까, 아닐까? 만약 아직이라면 곧 있으면 그런 일이 발생할까, 발생하지 않을까? 그런 단계가 과연 필요할까? 감히 무리한 요구에 억측에 사치에 호사요 단꿈이자 그 모두는 억측에 불과한 것일까?
   오빠. 조셉도 그렇고 펜과 팝콘 그리고 내 화법이 좀 낯설지? 괜찮아. 곧 나아질 꺼야. 시간이 지나면 적응될 수 밖에 없으니까. 그래도 아직은 무슨 얘기를 하는지 하나도 종잡을 수 없겠지만 조만간 다 깨닫게 되어 있다네. 그럼.
   어쨌든 내가 그 모든 배경과 처지를 하나하나 속시원히 알려줄 수 없다는 점은 나도 답답하게 생각해. 이렇게 밖에 운을 띄우는 수 밖에 없어서 착찹한 심정 뭐 어쩌겠나. 그래도 어쩌면 우리도 중간에 위치한 존재니까 어쩔 수 없어. 우리의 모든 일거수일투족은 다 모두 기록으로 남게 될 꺼야. 당연히 그 전부는 자기 DNA에 저장되고 말이야. 인류가 발전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 가운데 하나도 그거야. 사는 동안 모든 인생사를 DNA에 기록하고, 넘어지면 스스로 DNA가 복구되고 치유된다는 점. 아무튼 우리는 아직 인간이야. 그리고 미스테리아의 최소 회원이 기다리는 그날, 100명의 회원이 100일을 기다리는 이유는 그분만 알 수 있으니까 그건 나중에 알면 되고. 그날이 되면 우리는 요정으로 변신하는 거야. 그저 그런 요술이나 신기한 둔갑술이 아니라 쉽게 말해 화학 변화 같은 원리로 바뀌는 거라고. 우리는 탄소 기반 생명체이기 때문에 다 가능한 일이라구. 오빠 설마 모르는 건 아니지? 그렇게 되면 인간은 요정을 볼 수 없고, 요정은 인간을 볼 수 있어. 오빠 어깨 쪽에 모기 물리지 않았어? (끄덕끄덕) 보아하니 오빠 어깨를 밟고 악령이 서 있네. 그런데 그게 다 이유가 있어. 일부러 마귀를 부른 거지. 왜냐하면 오빠 등쪽 근육이 찌푸둥해야 하니까. 어때, 어깨 뒤쪽으로 좀 뻐근하지 않아? 응? (끄덕끄덕) 날개가 돋을려나 봐.
   오빠. 999일을 참아온 여우의 전설을 알아? 알 꺼야. 오빠는 알고 있어. 분명코. 카운트다운이 0이 되기 직전 그러니까 3일 2일 1일 전에 각각 선물이 전달될 꺼야. 일단은 3일 전 선물만 미리 알려줄께. 3일 전에는 오빠한테 007 가방이 전달될 꺼야. 저번에는 업다이크경의 비서가 장난쳤지만 이번에는 업다이크경이 진짜를 건네줄 꺼라고. 제일 앞장만 진짜인 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 응 오빠. 알겠어?」
   얘 뭐래니?
   나는 마라로부터 이런 얘기를 듣고서 생각했다. 얘가 뭘 잘못 먹었나? 무슨 밑도 끝도 없이 요정에 악령에... 얘가 남자의 사랑에 애달파하는 걸 설마하니 이런 식으로 표현하는 건 아닐까 라고. 물론 그와 동시에 안개가 서서히 걷히는 느낌도 들었다. 깨져버릴지 이루어질지 꿈의 그날이 가까와 온다고 하니 딱히 싫지는 않았던 것이다. 남자는 포크를 들 수만 있으면 어쩐다는데 경주마에 올라탈 수도, 말로나마 종마가 될 수도 종마를 영입할 수도 없고, 오늘 밤 회전목마를 같이 타며 웃음으로 대화를 나눌 숙녀는 어제의 그녀가 아닐지도 모른다. 즉 어제의 마라와 오늘의 마라가 다를 수도 있으니 내일의 마라가 어떤 모습일지 장담하기 어렵고 섣불리 속단하고 앞서서 예견하는 건 조심스럽게 경계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나저나 마라 때문에 나까지 영 상태가 이상해진 듯 했다.
   그렇게 나는 매일 집과 미스테리아 연구실을 오가면서 다시 누군가를 기다리게 됐다. 올 꺼면 빨리 와라, 대체 누구냐 왜 날 만나려고 하느냐, 막 그런 생각도 들었다. 나는 허구만 쓸 걸 괜히 시사 평론이나 수필쪽에 고개를 내민 것만 같아서 몹시 후회스러웠다. 그래도 궁금했다. 남자일까 여자일까, 알고 싶어졌다. 그분은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까? 막 상상이 되고 각본도 구상했고, 숨겨진 비밀까지 떠올리게 됐다. 누굴까? 언제 올까? 진짜 날 찾아올까? 그분은 어디에 살고 어떤 인생을 살았던 사람일까? 찾아올지도 모를 그분은 알고 보면 잔망스러운 사람일까, 다정한 사람일까? 설마 사람이 아니라 좀비나 유령은 아닐까? 그런데 왜 찾아올까? 뭐하러? 만나야 할 이유는 타당하고 그렇게 절실할까? 만난다면 우리가 만나서 뭘 할까? 설마 키스? 혹시 포옹? 단, 여자라면! 아니지. 뜨끔해야 정상인데 난 지금 비정상적인 몽상을 하고 있다니, 이런 세상에나! 그러니까 뭐하러 꼭 만날 필요까지 있냐는 거지. 대체 왜? 오긴 올까? 한달, 혹시 1년, 설마 30년을 기다려야 하나? 그러니까 왜 나냐고! 왜 어째서? 왜냐고!
   나는 어쩌다가 마라의 화법을 말로 따라하는 게 아니라 생각으로 본뜨고 있었다. 오, 저런! 그럼 난 속은 앵무새 겉은... 쉿!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졌기 때문에 없던 버릇이 생겼다. 도저히 생각을 잠재우고 멈출 수도 없었기 때문에 밤에 TV를 켜놓고 잠을 자게 됐던 것이다. 원래 어둡고 조용한 상태에서 잠이 드는 편이지만 상황이 그렇게 됐다. 다가올 그분이 신사든 숙녀든 환상촌이 진짜 있다고 믿었고, 요정이 되든 어쩌든 그날을 기다리게 되었다. 나도 모르게 말이다.


   11

   한편 미스테리아 관련하여 특집 기사를 취재 중인 기자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중도에 포기했다. 왜냐하면 조사해도 뚜렷한 성과가 없었고, 더 붙잡고 있어도 별다른 내용은 기대할 수 없었으며, 무엇보다 극소수의 애호가가 전부인 미스테리아에 관해 알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D-day는 점차 가까와 오고 있었다. 내 생활이 특별히 변하지는 않았다. 게다가 마라에게 궁금한 세부 사항을 모두 물어볼 엄두가 나지 않았고, 뭔가 미심쩍고 엉성하게 일이 진행된다는 점 그게 더 나를 미치게 만드는 것만 같았다. 만약 환상촌이 계획대로 건립되고, 나는 특별회원 자격으로 입주하고, 그랬는데 바라던 이상이 아니다? 그러면 탈출하면 된다. 오는 건 마음대로였지만 가는 건 마음대로일 수 없다? 그에 대해서 나는 1차, 2차, 3차 안전 대책을 마련해놨다. 진작 비상 계획은 강구해놨던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말할 수 없고 극비는 극비로 남아야 한다. 그리고 준비물은 필요없었다. 사실 나는 헛된 낙원 같은 동화는 그리 신뢰하지 않으니까. 이 시대에 영웅이 웬말이고, 비밀의 보물섬이 설혹 있다고 해도 실망할 게 뻔하다. 나는 그렇게 큰 바램없이 마라를 따라가서 놀다 오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D-day 3일 전에 업다이크경으로부터 007 가방을 건네받기 전까지는.
   그렇게 3일 전이 됐고, 나는 뜬금없이 업다이크경으로부터 007 가방을 받았다. 그는 우리 집에 찾아온 낯선 방문자였고, 우리는 서로 할 얘기가 없었다. 그러므로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나는 그에게 말없이 가방을 건네받았고 그는 곧바로 돌아갔다. 이때부터 내 가슴은 엄청 두근거렸다. 오묘한 공포심과 기이한 경외심은 날 들었다 놨다 하고 있었다. 대체 이 가방 안에 뭐가 들어있길래...! 정말 이 안에는 뭐가 들어있을까? 만약 저번처럼 첫 번째 지폐만 진짜 돈이고 나머지는 하얀 종이라면 조소라기 보다는 단비 같은 안심이자 한숨 돌리는 다행일 것이다. 오히려 놀라움 가득한 번영의 전주곡일 것이다. 그런데 만약 그렇지 않다면? 전부 다 고액권 현찰? 내가 무슨 영화 주인공도 아니고 덜컥 겁이 나기 시작할 것이다. 막상 기다렸던 낯선 이방인은 아직까지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고, 나는 미스테리아 사태에 중요한 용의자로 발이 묶여버렸으니 그때부터는 진짜 장난이 아니게 될 것이다. 차라리 그냥 열어보지 말까? 그래도 그렇지 받았는데, 누가 보낸건지는 몰라도 준 사람 성의가 있지 않나. 더구나 어디에 돌려줘야 할지도 모르고, 이에 상응하는 나의 할 일이랄지 할 말, 또는 어떤 가치 역시 불분명했다. 곧 이건 이미 멈출 수 없는 게임인 것만 같았다. 잘은 몰라도 이 시기만 힘겹게 넘기고 나면 아마도 밝은 내일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혹시라도 일이 틀어져도 내게는 환상촌이 있고, 그마저도 실패로 판명난다 할지라도 그 모두를 원작으로 만들어서 영화사에 거액에 넘긴다고 상상하니 적이 안도감이 들었다.
   나는 참지 못하고 즉시 가방을 열었다. 남다른 로망은 날 절망으로 몰아가지 않았고, 나는 콧노래를 불렀다. 심지어 못 추는 춤까지 막 추고 싶어졌다. 그것도 야한 저질 댄스로. 그렇다. 007 가방 안에는 제일 위 1장만 진짜 돈이 아니라 전부 다 진짜 돈이었다. 설마 이건 돈벼락? 그런데 속없이 마냥 기뻐해도 괜찮은 건가. 무슨 대가가 있을 거 아니야. 그건 혹시 저번에 마라가 말한 요정이 이러쿵저러쿵? 헉! 순간 내 기분은 섬뜩해졌다. 마라는 괴물 난 희생양? 염소는 어디 있고 늑대는 누구인가, 추리할 정신도 없었고 이제부터 진짜 손에 땀나는 수싸움이 시작되는 듯 느껴졌다. 이 극도의 흥분감, 나는 짜릿함이 좋긴 했으나 갑자기 심심함이 그리워졌다. 왜냐하면 내가 꺼낼 수 있는 카드는 몇 개 되지도 않고 그마저도 별 볼 일 없는 듯 했으니까. 모험이냐 사랑이냐, 차라리 무작정 헌팅을 시도하다 뺨을 얻어맞을 걸 그랬나. 그리하여 나는 느꼈다. 내가 시간여행을 싫어한다는 것을. 환상이니 신비니 다 농담에 허세고 평온함에 안주하고 싶어하는 난 현실주의자라는 것을.
   나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떠올려봤다. 결전의 날까지 얌전히 기다린다. 무심코 정처없이 도망간다. 마라에게 찾아가서 가방을 돌려주며 나는 그만 게임에서 빠질께 라고 말한다. 또는 마라에게 선공을 펼친다. 그런데 어떻게? 그러게 말이다. 나는 점점 현실과 상상이 구분되지 않는 지경에 이르고야 말았다. 서포터즈 조마조마 애들에게 연락해볼까? 형이 잠시 피신할 데가 있냐고. 너무 뜬금없을 것이다. 그건 아닌 듯 했다. 그러면 이틀 동안 이 돈을 다 써버릴까? 그러다 체포되면 어떡하라고. 와, 이제 정말 어떡하지! 내가 원래 이렇게 잔꾀와 잔기술과 잔재주가 영 부족한 사람이었나? 뿐만 아니라 소심하기까지? 그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아아, 이걸 대체 어쩐담? 오오, 이제 진짜 어떡하지?
   (딱) (쉭─쉭─쉭)!
   나는 방법은 하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환상촌으로 떠나지 않는 이상 나는 미스테리아와 협업자이자 동반자, 일종의 의뢰인, 미스테리아 연예기획사의 넘버 쓰리 소속 작가이고, 환상촌으로 떠난다면 내가 선발대로 간다고 해도 큰 문제는 없어보였다. 설령 그렇게 되어도 별다른 물의를 빚지는 않을 듯 했다. 그렇다. 맞다. 지금이다. 다음은 없다. 절호의 찬스다. 떠나자. 당장 떠나자. 이만한 새로움은 사는 동안 자주 찾아오는 게 아니다. 절대 아니다. 놓칠 수 없는 행운의 길일이자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이다. 분위기는 뜨겁고 가슴은 쿨하다. 아니 그 반대인가? 어쨌든 지금 내가 할 일은 샤워도 여행도 쇼핑도 아니고, 바로 그곳으로 즉각 떠나는 것이다. 내가 이럴 줄 알고 마라의 책상 밑에 붙여진 지도를 다 사진으로 찍어놨던 것이다. 하하하! 음하하하하하하하! 시간이 없다. 쫓길 수도 있다. 나는 발을 동동 구르며 신나서 어쩔 줄 몰라했고, 마음은 이미 몸을 떠나버린 듯 황홀한 열락의 경지에서 발가벗은 채 헤매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마라의 책상 밑에 붙여졌다 사라진 지도에 나타난 표식, 꼭지점 몇 개짜리 별의 중심부를 향해서 떠났다.


   12

   나는 별의 중심부에 해당하는 지점에 도착했다. 별달리 특별한 분위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니 나의 몰입감도 별로였고, 분위기도 그만그만했다. 맞다. 여기는 저번에 마라와 같이 왔던 환상촌인가, 아직 한창 공사중이던 그곳과 비슷해보였다. 난 당시 마라가 장난치는 줄 알았기 때문에 주의깊게 살펴보지 않았는데 이제야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여기는 인적은 없지만 온갖 로봇 시스템으로 관찰과 방어와 겁주기는 물론 긴장감 유발등 수많은 자동화 장치가 되어있을 것만 같았다. 아, 맞다. 혹시 잊어먹고 들고 오지 않았나 놀랐는데 다행히도 가방을 들고 왔다. 거기서 여기까지 오는 동안 진짜가 가짜로 탈바꿈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가 여기까지 오는 데는 대략 3시간이 걸렸고, 그동안 가방은 계속 나와 함께 있었으니까. 지금 기분과 가장 흡사한 건 어쩜 그게 아닐까? 십 년 다닌 회사를 그만 두고서 막 회사 바깥으로 나오는 순간, 그날 클럽에서 신나게 놀기, 그 다음 날 낯선 곳에서 정신 차리기. 단, 그곳이 길바닥만 아니기를.
   아마도 누군가 나타날 것 같지는 않으니까 나는 저기 보이는 사원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여기에 갈 데라고는 거기 밖에 없었으니까. 뭐 혹시라도 지금 이 모습을 마라가 책상에서 노트북으로, 소파에서 핸드폰으로 지켜보고 있더라도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마라는 마라고 나는 나니까. 이건 꿈이 아니니까 말이다. 만약 내가 마라의 술책에 걸려든 것이라 할지라도 나중 내게도 설욕의 기회가 있지 않겠는가. 내가 만약 장래 유명해진다면 나는 이 순간에 대해서 버틸 수 있는 데까지 버티며 함구할 것이다. 왜 그런 생각이 떠올랐는지는 몰라도 어쩐지 그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다 마라 일당이 날 잡으러 딱 들이닥치면 난 속수무책으로 당해야 하니까, 나는 그만 덜렁대고 저기 보이는 저 푸른 사원으로 들어갔다.
   사원 안은 텅 비어있었다. 흡사 부동산에 내놓은 것만 같았다. 나는 뜬금없이 공상을 떠올렸다. 여기서 나와 마라가 동거를 한다? 마라 너도 싫니, 나도 그다지 댕기지는 않아. 미스테리아 연구실장 마라의 고백 직전에 내가 도망친 듯 해서 난 조금은 마라에게 미안했다. 혹시라도 마라가 날 좋아하고 있었다면 그 사랑을 모른체 한 내가 정말 나쁜 남자일 테니까 말이다. 그런 헛된 몽상 때문에 나는 반사적으로 마라와의 처음 만난 장면을 도저히 떠올릴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 순간이 기억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상한 상상은 그만하고 나는 뭔가 수상한 흔적이나 이상한 작동 버튼 같은 걸 찾아봤다. 없었다. 게다가 유달리 조용했다. 적외선 카메라라도 가져올 걸 그랬나? 쓸데없는 짓이다. 가져와도 소용없었을 테니까. 나는 아마 내가 별의 중심에 잘못 찾아온 건 아닌가 설핏 의문이 들었고, 바깥에 나가서 주변을 살펴보기로 했다.
   그렇게 나갈려는 순간 출구 위의 거울이 눈에 들어왔다. 그 거울을 보니 거울의 반대편에 또 거울이 있었다. 나는 그곳으로 갔다. 거기 있는 거울에는 비너스상이 비춰져 있길래 나는 또 비너스상 앞에까지 갔다. 달리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비너스와 악수를 나눴다. 왠지 그녀는 도도한 숙녀인 것만 같아서 나는 예의상 그렇게 행동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파이프 오르간이 울리면서 조명이 어두워졌고 천장위의 미러볼이 작동했다. 요염한 분위기가 연출된 것이다. 그리고 비너스상의 뒷편에 있는 파이프 오르간 옆에 있는 쪽문이 나타났다. 미세한 균열도 없는 대리석 장식이었는데 신기하게도 쪽문이 스윽 나타난 것이다. 나는 흡사 그곳에 빨려들어가는 것처럼 저절로 그곳까지 걸어갔고 쪽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이건 개구멍이 아니라 마법의 문이었으니까.
   거기서부터는 마치 놀이공원에 있는 귀신의 집이랄지 마법의 집, 그런 데 있는 기울기가 뒤틀리는 효과와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다. 중력이 틀어지는 듯 느껴졌고, 나는 저기 저 무지개빛 공간까지 계속 걸어갔다. 아마 나는 90도 정도 틀어졌을 것이고, 그러나 나는 멀쩡히 땅 위를 걷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걸어갔다. 그런 다음 다시 쪽문을 열었고 나는 환상촌에 도착했다.
   뭐야, 이게 환상촌이었어? 촌스럽기는, 라고 투덜거리지는 않았다. 나는 일단 분위기를 살폈다. 그곳은 위압적인 큰 건물의 1층 로비였고, 내부는 텅 비어있었다. 분홍색 안내 책상에는 아리따운 안내양이 있어야 정상인데 그곳에는 아무도 없고, 웬 고운 연노란색 편지 하나가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편지를 꺼내서 읽는 것뿐. 새하얀 편지에는 이렇게 씌여 있었다.
   「우리는 요정 너는 인간, 안녕. 미스테리아를 부탁함. 나중 인간으로 변신해서 놀러가겠음.」
   뭐야, 이게 끝이야? 마라, 넌 역시나 촌년이었니? 싱겁기는! 아마도 마라는 이미 떠난 듯했다. 벌써 요정이 되어버린지도! 그러면 그녀는 나보고는 시간을 어기지 말라고 해놓고서 자기는 나보다 더 먼저 가버린 거야? 인정 못해! 믿을 수 없어! 말도 안돼! 아, 잠깐!
   내 가방! 007 가방! 내 돈 가방! 내 돈!
   나는 아까 그 사원으로 돌아갈려고 했다. 좀 전에 갑자기 파이프 오르간 소리가 울리길래 잠시 전망을 살핀다는 게 그만 바닥에 가방을 내려놓고 말았던 것이다. 뭐야 그곳으로 돌아갈 수 없는데? 어쩌지? 나는 정말 그곳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나는 요정이 되는 것도 실패했고, 가방도 꿈도 환희도 다 날아가버렸다. 모두 놓쳐버렸다. 괜히 좋다 말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 항상 이런 식이니까.
   그렇게 해서 나는 집으로 돌아왔고, 미스테리아 연구실장에 취임하게 되었다. 


   13

   나는 목적 달성에 실패했을까? 애초에 뚜렷한 목적이 없었으니 성공도 실패도 아닐 것이다. 다만 007 가방만 그리울 뿐. 그러면 나는 지금까지의 체험에서 무엇을 배웠을까? 나는 이제 학교를 졸업한지 오래 되서 배운다는 태도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학습보다는 기대와 욕구의 진행과 흥미와 몰입을 즐기고 쾌감과 동경심을 해소하고자 노력했을 것이다. 그렇게 살아왔을 것이다. 어쩜 나는 미스테리아 연구 과업에 대해서 한 발만 담그고 있다가 결과적으로 보면 발을 슬쩍 빼버린 듯 했다. 흡사, 딱 백 년 가는 사랑을 해 보고 싶다면서 심심하면 애인을 갈아치우는 탕자가 되버린 듯한 느낌, 도저히 종식시킬 수 없었다. 패배감은 확 다가와서 뜻모를 홍조를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긍정적인 요인도 있었다. 반전은 없었지만, 아니면 흐름대로 죽 가야 했을까? 그래도 새로운 변화는 있었다. 바로 미스테리아 연구실장이라는 감투를 얻은 것이다. 바로 내가. 복선이야 지금부터 만들면 그만이고 놀라운 국면 전환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더불어 미스테리아는 다시 건재했던 예전 모습으로 돌아왔고, 판매 실적도 과거 전성기 수준으로 회복됐다. 따라서 지금부터 내가 할 일은 하나 밖에 없었다. 그건 바로 비서를 뽑는 일. 유능한 일치고 비서가 없는 사례는 별로 없다. 거기다 열망이 가득하고 선망까지 푸짐하다면 가히 멋진 비서는 어쩌면 필수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날마다 비서를 면접보는 재미로 소일하고 있었다. 그러다 나는 미스테리아 전임 실장인 마라와 왠지 흡사한 분위기를 연상시키는 듯한 어느 숙녀를 비서로 뽑았다.
   그 뒤로 어느 날 나는 미스테리아에 업다이크경의 비서가 찾아오는 꿈을 꿨다.
   그는 007 가방을 돌려달라고 했고, 나는 빈손을 내밀었다. 그래서 그 비서는 사무실 소파에 무례하게 드러누웠다. 일명 뻗는다는 작전에 돌입한 듯 했다. 버티기에 들어간 거지. 그러다 잠시 후 제2, 제3의 그와 똑같이 생긴 비서가 계속 찾아왔고 사무실은 그들로 꽉 차게 되었다. 그러다 사이렌이 울렸고 나는 사무실 윗면에 있는 비상구를 열어서 바깥으로 나갔다. 그런데 밖이 2층 건물 옥상이 아니라 어느 로보트의 두뇌였다. 그래서 나는 다시 로보트의 두뇌 뚜껑을 열고 무중력 상태인 미지의 공간으로 훨훨 날아서 탈출했다. 그러다 꿈이 끝났다. 아무 의미없는 개꿈이었던 것이다.
   그외 별다른 일이라면, 내가 잘못본 것인지는 몰라도 거리에서 우연히 마라를 닮은 여인을 틈틈히 마주쳤고, 마을을 떠났던 옛 친구들이 하나둘 마을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굴러온 돌에 밀려났던 박힌 돌이 다시, 굴러서 돌아온 것이다. 그리고 나는 두고 온 007 가방이 자꾸 생각났기 때문에 환상촌과 지도에 표시된 별의 중심부에 가봤다. 그러나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했다. 결과는 허탕 나는 허당 마음은 허영 미래는 허풍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14

   모든 것이 처음으로 돌아왔다. 미스테리아는 건재했다. 달리 새로운 일이라면 멀더가 어느 사설 클럽을 소개시켜 준 일이 있었다. 이름은 원 네트워크. 나는 고개를 돌렸고, 한동안 멀더와 거리를 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서포터즈 조마조마로부터 연락이 왔다. 왜 연락이 없냐, 복권이라도 당첨 됐냐, 보고 싶다는 둥 어쩐다는 둥. 나도 보고 싶다면서 언제 한번 나간다면서 의례적인 통화를 마쳤다.
   그러다 쨉 다시 쨉에 이은 스트레이트가 훅 들어왔다. 그것도 강력한 설렘으로. 난데없이 미스테리아의 전-편집장 실비아가 되돌아온 것이다. 칭찬도 뻔한 빙자도 원치 않는 상태에서 나는 선뜻 생색낼 권리를 박탈당했다. 나는 내심 상석을 내주기는 싫었지만 소식 들었지 어쩐다 라는 다변, 정식 통보장, 책상용 새로운 명패, 미스테리아 웹사이트의 새단장등 뒷받침되는 근거는 하나둘이 아니라서 나는 내가 밀려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초심으로 돌아갔다. 어차피 007 가방의 내용물을 구경이라도 했으면 됐고, 그건 본주인이 따로 있을 것이며, 내 일을 위한 최적의 상태로 돌아왔으니 피장파장이다. 괜히 소란스러워 봐야 들뜨기만 하고 막 놀러가고 싶기 밖에 더 하겠나. 나는 실비아에게 실장 자리를 흔쾌히 내주었다. 그러나 솔직히 마음은 그리 유쾌하지 않았다. 심지어 날시도 썩 상쾌하지 않았고, 통쾌한 기쁨이 저 멀리 떠나가버린 걸로도 모자라 은근한 재미까지 완전 달아나버렸다.
   그런데 문제는 실비아가 못 보던 사이에 세련된 아가씨로 변했고, 고상한 화장술에 도가 텄으며, 유난히 허영끼가 돋보여졌다는 점이다. 곧 정상의 범주를 벗어나는 처사였다. 남자는 허세 여자는 허영을 벗어나는 지점은 누가 봐도 알 수 있다. 그건 바로 허세와 허영 모두 100 - 100 클럽에 가입하는 것. 그외 특별한 사례로 남자가 허영 여자가 허세에 일가견을 보이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건 곧 허당이 '은근'이란 수식어를 마다하고 99점 허당의 본색을 드러내는 것과 똑같은 일이다. 그렇게 실비아는 기분이 튀면서 춤추고 사뿐사뿐 나비처럼 꽃 향기에 취한 듯 하길래 나는 최대한 동조성의 역량을 발휘했다. 얘가 전에는 이러지 않았는데 도시에서 뭘 좀 보기는 보았나 보다. 그런데 그런 내 모습이 실비아에게는 퍽 성에 차지 않았던 것일까.
   「어머머. 오빠. 그 표정 뭐니? 날 믿지 못하겠다는 거야? 정말 그래? 정중한 몸가짐에 의젓한 호의와 넌지시 맞장구를 쳐주었다면 한뭉치 딱 떼줄 생각도 아예 없지는 않았는데, 거 왜 생각을 고쳐먹게 되는군 그래. 그거 알고 있니 오빠? 속이 빤히 들여다보인다는 거 설마 모르지는 않겠지?」
   「아니. 그게 아니라. 그게 말이야. 내 말은, 너가 없을 때 일이 좀 있었어. 그래서 그래 실비아.」
   「일? 무슨 일? 무슨 일이 있었는데? 말해 봐. 말해 보라구. 왜 말을 못하니?」
   「그런데 그게 말이야. 믿기지 못할 일이라서... 사실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점이 걸려서 그래. 하지만 내게는 모두 진짜였지. 설령 알게 되더라도 누가 믿겠어 그 일을.」
   「사실이 아닐지도 모른다구? 그럼 사실이 아닌 거네. 지어낸 거라는 말이잖아? 오빠 지금 뭔 소리를 하는 거니? 그게 그러니까 무슨 일이야? 못 보던 사이에 오빠가 좀 이상해졌는데. 왜 그럴까? 그나저나 이 남자가 날 아주 몰인정한 괴물로 만드네? 이 거 원 친구 앞에서 새 옷도 입지 말라는 거야 뭐야!」
   기분이 쎄했고 느낌은 쌩했으며 분위기는 아주 잠깐, 당시엔 몰랐지만 꽤 오랫동안 싸늘했다. 내 007 가방이 실비아에게 전달된 게 분명했으니까. 실비아의 저 홍조. 얼마지? 대체 얼마길래? 저 C로 시작하는 초록색 가방은 뭐고, 이 라일락 향기로 가득한 전조는 다 뭐냐고. 실비아는 내가 알기로는 완전한 촌년이었다. 겉모습이 그렇다는 게 아니라 생각의 구조와 사고 체계가 완벽했기 때문에. 그런 측면을 바탕으로 지금 실비아의 말과 행동은 완벽히 뭔가 놀라운 변화가 있다는 걸 증명하고 있었다. 그 변화는 달리 특별한 게 아니라 형편이 풀렸다는 거 말고 딴 건 없는 듯 했으니까. 앗, 이전 대화를 그대로 옮기지 않아서 그렇지 실비아는 도저히 참지 못하고서 어떤 새로움에 관해서 생각을 말하고 또 말했다. 그 말을 각색하면 뻔했다. 새로운 구단주가 출연했고, 다른 누구도 아닌 그와 직접 계약을 맺었고, 실비아는 독립된 연구실에서 특별 임무를 보장받게 된 것이라고. 그러면 새로운 대표라는 작자, 곧 발행인은 설마 업다이크? 나는 그분이 업다이크냐고 물어보지 않았다. 게다가 갑자기 실비아가 행복해진 원인이 무엇인지 역시 추궁하지 않았다. 더 나아가 다시 돌아온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 싶다는 내색도 비추지 않았다. 심지어 무슨 좋은 일 있냐, 화색이 좋아 보인다, 요즘 어떻게 지냈지 라면서 정답게 화답까지 했다. 그런데 문제는 내 연기가 어색했다는 점. 실비아는 그 즉시 내 빈틈을 슥 파고들었다. 눈치 빠른 년! 하늘에서 뚝 떨어진 황금의 원-주인이 나인 줄도 모르고.
   그 후로 실비아, 환상 문학 잡지 미스테리아 연구실장 실비아의 허영끼는 정상으로 돌아왔다. 실비아는 어딘지 모르게 어색해 하면서 내게 아낌 없는 친밀감을 표현했다. 우리는 다시 허물 없는 친구이자 사업 동반자로 돌아갔다. 하지만 나는 마라가 앉아 있어야 할 자리에 실비아가 있다는 게 적잖이 불편했다. 그게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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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던 어느 날 실비아는 취재차 인근 산촌으로 떠났다. 신비한 숲이라는 어느 특급 제보 때문에 출장을 떠난 것이다. 나는 불시에 찾아온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 즉시 사무실을 샅샅이 살피면서 혹시 모를 단서랄지 마라와 관계된 문건이 있는지 면밀한 관찰에 들어갔다. 결과는 없었다. 대실망. 그러나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실낱 같은 희망을 찾다가 행운에 편승해서 소탈주에 이어 감격스럽게 자유를 맞이하게 될지 누가 알겠나. 그렇게 나는 촉박한 시간 내내 사소하든 중요하든, 뭐 하나만 걸려라 하면서 찾고 또 찾았다. 그러다 나는 마침내 절망했다. 나의 갈망은 좌절로 판결났기 때문에 내 열망을 그냥 덮자는 의미에서 나는 고개를 들고 몸을 45도 틀어서 뒷목을 잡고 한숨을 내쉴려고 했다.
   바로 그 순간 사무실 천장에 문이 보였다. 저건 아마 배기통이나 조명, 전기 시설을 위한 정비용 통로일 텐데 그래도 확인이 필요했다. 나는 그 문을 열고 사무실 위 공간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글쎄 그곳은 폐쇄된 밀실이 아니라 SF 영화랄지 신화의 한 장면을 그린 명화 같은 공간이었다. 나는 분위기를 한번 슥 훒어보았다. 그러고 나니 여긴 아마도 완충지대인 듯 느껴졌다. 아래 사무실과 건너 신세계를 잇는 레테의 강 같은 거 말이다. 그래서 나는 사다리를 발견했고, 돔 형태의 천장 중간 쯤에 있는 창문 같은 문까지 도달했으며, 그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랬더니 글쎄 그곳은 환상 문학 잡지 미스테리아 사무실이었다. 책상에는 연구실장 마라가 앉아 있었다. 그런데 마라는 남성 정장 스타일의 고급 여성복을 입고 있었다. 나는 반가워서 마라를 불렀다.
   「마라! 어떻게 된 일이야? 이게 다 뭐지? 너는 이곳 건물주니 아니면 주피터의 정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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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다 나는 발이 가려워서 발을 잠깐 긁적거리다가 잠이 깼다. 실비아는 출장에서 돌아왔고 나는 소파에서 잠을 자다 꿈을 꾸고 있었던 것이다. 잠꼬대가 심했던 날 보다 못해 실비아가 내 발가락 부분을 툭툭 걸드렸던 것이다. 에잇, 이런 젠장! 불가사의이자 미스테리였는데 개꿈이었다니, 좋다 말았다. 삶의 기대, 신비감에 대한 소망, 환상의 희망은 확 확 사그라져버린 것이다. 그런데 순간 거짓말처럼 실비아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미스테리아 회원들 제보가 있었어. 회원 명부 1기부터 6기까지 회원들 천직부터 무직까지 빅데이터를 분석해보면 미스테리아에 계속 투고를 하고 있는 은둔형 도사를 알 수 있다네. 혹시 신이 쓴 게 아닐까 의아하게 만드는 인기 연재 소설을 쓰는 천재 작가의 은신처가 나타날 거래. 그분과 인터뷰를 해달라는 회원들 요청이 아주 아우성이라구. 방금 전에 빅데이터 센터에 갔다 왔던 마라를 닮은 비서와 거기에 갔다 올께. 사무실 잘 지키고 있어 오빠. 오빠, 심심하면 피자라도 한판 시켜 먹고. 알았지? 갔다 올께!」
   뭐 심심하면 피자라도 한판 시켜 먹어? 내가 피자를 만들어서 먹든가 해야지 이거 원! 그리고 사무실을 잘 지키고 있어? 내가 뭔 집 지키는 개도 아니고! 나는 꿈에 대한 해석과 새로운 선망에 대한 예감과 잠시 아련하고 아찔했던 작품 구상에 대한 분위기와 낭만적인 산통이 모두 다 깨져버린 듯 해서 기분이 울적해졌다. 그러다 마음을 되돌려서 꿈은 꿈이고 현실은 현실이니까 이제 진짜 사무실 탐색 시간이 돌아왔다고 생각했다. 괜히 실비아가 사용하는 실내화나 서랍에 숨겨진 물건에 탐닉하더라도 지금의 이 거부할 수 없는 환영에 대한 탐구 시간은 내게 더 없는 행복감을 불러올 테니 나는 내게 주어진 기쁨의 추적 시험을 통과해야 했고 시간을 헛되이 써서는 안된다고 판단했다. 이렇게 중요한 시간인데 실비아는 내게 뭐 피자나 탐식하라고?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조금 시간이 지나서 사무실 탐사가 헛손질에 불과하다는 결론이 났고, 그런 다음에야 실비아의 배려심이 꽤 적절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나는 진짜로 피자를 주분했고, 피자가 배달되는 시간에 정말 마지막으로 사무실을 슥 훒어봤다. 낯선 사람을 보든 신사든 숙녀든 누굴 처음 보면 알게 모르게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슥 훒어보지 않나. 그런데 만약에 모르는 환상의 통로랄지 비밀을 추적할 수 있는 최후의 단서가 존재할지도 모르는 사무실을 그냥 넘어가라고? 이름까지 환상 문학 잡지 미스테리아 연구실인데?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나는 최종 탐험에 들어갔고,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 참으로 놀랍고도 기발한 의심의 증거를 발견해냈다. 그 의뭉스런 물증은 다름 아니라 방금 전 꿈에서 봤던 바로 그 천장의 문이었다. 그렇다. 그건 어디에나 있는 일종의 흔한 건물 설비일 뿐이다. 그러나 확인과 판타지는 별개이고, 예지몽과 이상은 한쌍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천장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랬더니 글쎄 신기한 풍경의 뭔가가 펼쳐졌냐? 아니다. 그냥 평범한 설비 시설은 아니지만 옥상 문 옆에 있는 협소한 공간일 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2층인가 3층인가 옥상에 나가서 인근 전망을 살펴봤다. 그랬더니 저 멀리 무지개가 보였다. 게다가 엄청 컸다. 와 이런 풍광을 이처럼 진짜로 본 게 실로 얼마만이던가. 그 순간 뭔가가 떠올랐다. 혹시 저 무지개 반원이 내가 예전에 꿈꾼 로보트의 두뇌가 아닐까 라고. 따라서 나는 좀 더 정밀한 관측에 들어갔다. 그랬더니 글쎄 무지개의 한쪽 끝은 저번에 마라보다 내가 발빠르게 당도했던 그 사원이었고, 나머지 한쪽은 미스테리아 전-연구실장 마라와 만난지 얼마 되지 않아서 함께 찾아갔던 공사 차질로 인해서 미완성에 머물렀던 환상촌이었다. 그럼 처음에 마라는 내게 엉터리 거짓 정보를 흘렸고, 나중 내게 스스로 진짜 환상촌으로 찾아오라는 계획이라도 품었단 말인가? 이제 와서 그게 다 뭔 소용이 있겠나. 이미 실비아는 돌아와서 저렇게 의욕적으로 편집장 일을 하면서 연구소장 일까지 도맡아서 맹렬히 업무에 매달리고 있는데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일단 관망에 들어갔고, 추세를 지켜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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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후 나는 틈만 나면 옥상으로 올라갔다. 건물 내부가 아닌 바깥에 비스듬한 구석에 나선형 계단이 있기 때문에 그걸 타고 2층 건물 옥상까지 편하게 올라갈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사무실 내부에 있는 특수 통로를 이용해서 올라가는 데서 색다른 흥미를 느꼈다. 유별난 쾌락마저 동반됐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특별한 재미를 경험할 수 있었고, 그러므로 난 어느새 그 일련의 놀이에 중독되어 버렸다. 그래서 나는 법석을 떨며 그것을 하나의 취미로 발전시켰고, 고로 그것은 타인과의 교감을 필요로 하지 않는 혼자만의 순수한 즐거움이었다. 그렇다고 꼭 천사의 노래를 부르자 같은 시상을 떠올리고 예술적인 영감을 부르기 위한 목적은 아니었다. 오선지도 악흥도 007 가방도 이와 같은 새로운 아지트에 대한 기쁨과 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이 즐거움과 복권 당첨 가운데 딱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 그런 매정한 질문은 거부하고 싶다. 왜냐하면 '돈이 좋기는 좋구나' 그런 말은 듣거나 읽는다면 몰라도 내 입으로 말하기엔 썩 부적절하고, 딱하며, 가엾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정확히 무엇이 불쌍하다고? 나도 모르겠다. 아무튼 막연하지만 가을 나그네가 생각났고 측은함이 느껴졌다. 괜히 미숙한 연민과 서투른 자조로 살짝 흐를 뻔 했다마는 돌아와서, 내가 가진 장비들을 가지고 내 아지트로 방문하는 횟수는 부쩍 눈에 띄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아지트에서 나는 혼자 고기를 구워 먹고, 술도 마시고, 오르간 협주곡을 듣고 책을 읽으며, 영화를 봤다. 틈틈히 글도 썼고, 무지개가 있든 없든 나는 자주 망원경으로 전망을 살폈다. 게다가 텐트도 쳤고 잠까지 잤다.
   그렇게 단망경으로 시작했던 경관 보기는 점점 정찰과 관측으로 발전해갔고 나는 마침내 측정병이 됐다. 내게 어딘가로부터 주목 받고 싶은 동심이 있었겠지만 그런 타인의 동심을 엿보고 싶은 욕망 역시 동시에 존재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어떡하다 나는 전문적으로 무언가를 지켜보며 관찰에 대한 육구가 점차 커져감을 깨달았다. 그러다 나는 천문학자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고가의 장비까지 아지트에 들여다 놓는 지경에 이르게 됐다. 급기야 나는 새로운 고성능 장비를 주문했다. 그리고 그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뭔가 은밀한 장면을 보기는 봤다. 그러나 많이 보지도 않았고 거기에 빠지지도 않았다. 내 목적은 어디까지나 무지개 너머였으니까. 그렇게 주문한 장비가 배달되어 왔을 때 박스 안에는 웬 쪽지가 들어있었다. 쪽지 내용은 이랬다.
   「무지개를 바라보는 지점과 무지개의 양 끝자락을 가상의 선분으로 이었을 때 도형의 모양은 무엇일까요? 그 정답을 www.망원경브랜드.com 에 입력해주세요. 정답이면 상품 오답이면 ......」
   쪽지에서 ......부분은 지워져 있어서 글씨를 알아볼 수 없었다. 나는 또 다시 뜨끔한 심정을 지울 수 없었다. 아 어제도 뜨끔 오늘도 뜨끔, 이젠 지겹지도 않고 신물나지도 않았다. 어쨌든 내 모든 행적을 들켜버린 듯 했다. 저번에 쓴 기고문 때문에 누가 나를 찾아올지도 모르는 데 시간만 끌다 아무도 오지 않았기 때문에 난 더욱 좌불안석이었는데, 이번에는 아마도 아니겠지만 뭔가 어떤 은밀한 경고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슴이 철렁 하면서 두근거렸고, 과거 내가 저질렀던 나쁜 일, 어쩌다 벌어진 악행 가운데 상위 1, 2, 3위와 견주어도 손색이 있고 방심에 금이 갈 정도의 긴장감이 느껴졌다.
   이 일을 계기로 나는 그 장비들을 모두 중고로 내다 팔았고, 더 이상 아지트에도 들르지 않았다. 발길을 뚝 끊어버렸던 것이다. 마라와의 추억과 모종의 사건들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나는 그 일을 당분간 잊고 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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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는 미스테리아 사무실. 모처럼 바쁘지 않은 시기가 찾아왔다. 실비아는 한가하게 손거울을 자주 들여다봤고, 마라를 닮은 비서는 인터넷 쇼핑을 하는 듯 했다. 나는, 나 역시 무슨 재미난 일 없나 하면서 빈둥거렸지만 틈틈히 마라에 관한 소식, 마라의 인터넷 흔적, 당시 미스테리아 소수 회원들에 관한 기록, 마라와 함께 처음에 방문했던 환상촌 지역에 관한 지적도와 토지 대장 조회, 미스테리아에 실렸던 내 글에 관한 반응을 인터넷으로 알아봤고, 이 모든 일에 대한 이야기를 엮어서 어떻게 허구로 쓸 것인가를 고심하고 있었다. 그런 한편 우리는 직장인들의 영원한 고민 대상을 잡고 늘어졌다. 바로 점심 때 무엇을 먹을 것인가!
   그러던 바로 그때, 사무실 카페트가 들썩거렸다. 뭐야 쥐야? 저 정도 들썩거릴 정도면 쥐가 아닌데? 그럼 뭐야? 지하의 인간? 저번에 꾼 꿈처럼 천장 문을 열고 올라갔드니 글쎄 우리 사무실이었드라? 무엇인지 궁금했고 일단은 신기했으니까 우리는 카페트를 제쳤다. 그러자 벌컥 하면서 문이 열렸다. 그런 다음 누군가 잘 차려입은 사람들이 올라왔다. 알고 보니 그분들은 환상 문학 잡지 미스테리아의 새로운 발행인과 고위급 임원들이었다. 뭐야 위에도 문이 있었고 아래에도 문이 있었다? 원래 1층은 주차장, 2층은 사무실, 3층은 옥상인 구조의 건물이었다. 그런데 주차장에서 올라올 수 없는데 어떻게... 그야 어쨌든 나는 그 찰나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름 뭔가 행복했었다고나 할까? 왜냐하면 나는 그 잠시 동안 인기척이 느껴졌을 때 아직 나타나지 않은 그분들이 혹시 어쩔 수 없이, 하는 수 없이 이별한 마라와 과거 쇠퇴기 미스테리아의 열혈 회원들일까 하면서 가녀린 바램이 잔잔하게 내 매마른 감성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내 기대는 여지없이 물거품이 되었고, 역시나 헛된 예감의 결과는 최근 내 아지트의 취미처럼 뒤끝이 좋을 리가 없었다. 그런 내 상념을 제정신으로 돌린 건 뭐랄까 꿈을 이뤘기 때문에 매사 외롭다는 말이 입버릇처럼 되버린 듯한 어느 중년 남성의 목소리였다.
   「말로만 환상 문학 뭐 그럴 꺼에요? 우리가 누굽니까? 아무리 그래도 문학계 인사 아닙니까. 이 정도가 뭐 어렵나요? 안 그런가요? 게다가 좋아서 하는 일 아니냔 말이에요. 옷이야 빨면 되지 먼지 좀 묻은 게 뭐 어쨌다고... (조용조용히 비서로 보이는 옆사람에게) 뭐 케찹? 겨자 소스? 으흐흠. 뭐 그래도 암울한 시절은 아니잖아요. 최소한 기쁜 소식과 슬픈 소식이 있다, 뭐 먼저 들을래? 이런 대사도 유행이 지난지 한참 되지 않았냐구요!」
   그분들의 등장이 극적이었기 때문인지 그분들이 가져온 소식은 좋았다. 나야 좋든 싫든 사업상 동반자에 엄밀히 외부인이니까 큰 영향은 없다만 실비아의 반응으로 봐서는 좋은 일인 듯 했다. 무슨 거대 언론 재벌도 아닌데 미스테리아의 새로운 발행인은 사업을 확장하는 중인 것 같았다. 연예기획사, 언론사, 출판사, 부동산업등으로. 하긴 온라인이 주축이 된 세상에 먹고 살기 힘든 서점에만 가도 그런다고 한다. 출판사가 서점의 일정 부분 진열대를 부동산처럼 산다고. 그야 물론 당연한 경제 논리라고 할 수도 있는데 왠지 좀 마냥 반갑지는 않은 지식이다. 하지만 어쩌랴. 그럴 수 밖에. 과정이야 어쩌든 나는 미스테리아에서 이상한 체험을 겪었고, 미스테리아는 상업적으로 살아남았다. 그러므로, 그처럼 미스테리아의 앞날이 밝다는데 나는 다시 업무 공간을 카페로 옮기지 않을 수 없었다.


   19

   나는 카페에서 일하는 데 진력이 났다. 듬직하지 못한 이런 내 모습 어쩌고저쩌고, 소녀 감성을 흉내낼 수는 없고 나는 깔끔하게 마라에게 되돌아갔다. 마라는 새로운 기고문을 요구했다. 아 마라가 아니라 실비아. 자꾸 헷갈린다. 어쩌면 나는 마라를 좋아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사랑했을까? 감정극으로 빠지면 안된다. 아무튼 나는 착상이 떠오르지 않기 때문에 지금은 어렵다고 했다. 그렇게 다시 예전의 모습대로 우리는 각자 자기의 일을 했다. 그러다 실비아는 비서와 함께 출장을 갔다. 무슨 일 때문에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번에 그녀는 내게 심심하면 피자라도 시켜먹으라는, 의리로 다져지고 우정으로 똘똘 뭉쳐진 오랜 마누라 같은, 어떻게 생각하면 조금 무정한 언사는 남기지 않았다.
   자, 혼자 만의 시간이 돌아왔다. 그렇다고 그 즉시 정신 나간 소리와 말도 안되는 발상이 떠오른 건 아니다. 다만 쾌활한 시도에 대한 의혹이 불거졌을 뿐. 왜냐하면 그동안 내가 이곳에서 겪은 일만 놓고 봐도 그럴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꿈에서 천장으로, 현실에서 천장, 카페트 밑 비상구에서 발행인이 튀어나오고, 번호표를 달았던 사람들 하며, 007 가방과 또 뭐야, 너무 많다. 그동안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렇다. 작가 입장에서는 반가운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독자는 은밀한 무언가는 모른다. 할말이 많은 말 많은 사람도 알 수 없다. 가슴 속에 간직한 내밀한 비밀은 어쩐지 꼭꼭 숨겨두고 싶은 심정을. 곧 나는 지금까지 발생한 일에 대해서는 공개할 수 있고 그러기를 원하지만 진정한 불가사의 하나쯤은 비공개로 남겨두고 싶었던 것이다. 그럼 신비롭든 놀랍든 어쩌든 그게 도대체 뭐냐? 그건 찾아봐야 한다. 지금 찾으면 된다. 그럴 수 있다. 왜냐하면 이 공간 안에 모든 미지의 비밀이 숨겨져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긴 아마도 미래에 존재할 슈퍼 컴퓨터의 두뇌 내부 같은 그런 기운이 흐르는 것만 같으니까. 찾을 수 있다. 있을 것이다. 없을 수가 없다. 이미 많이 속고 수없이 실망했고 끝없이 기겁했으며 무던히도 뜨끔했으니까, 이제는 마지막 대마왕이 나타날 차례의 시기인 듯 느껴졌다.
   그렇다. 이제는 옆이다! 이제는 옆이라고. 책상 밑, 꿈에서 천장, 현실에서 사무실 천장, 사무실 바닥, 외부의 공간, 찾아오는 사람들. 다 나왔다. 모두 나왔다. 이제는 옆이다. 이제는 옆일 수 밖에 없다. 그렇다. 저기 왼쪽에 보이는 황금 마네킹 상점인가 뭔가, 진품은 아니다. 그리고 이쪽 뭉크 그림에서 주인공만 만화 캐릭터로 바뀐 그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절대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단,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왜냐하면 꽝일 작품을 건드리면 비상벨이 울릴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추측이다. 근거도 없다. 하지만 잃을 건 없다. 미리 조심한다고 해될 건 없단 말이다. 내가 언제까지라도 이 사무실에서 오래도록 일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 모험을 걸어도 된다. 그래야 한다. 나는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나는 승부사가 되었다. 현대극이냐 고전주의냐, 곧 고전의 패러디냐 복사판일지라도 변함없는 고전이냐. 값싸고 부담없고 합리적인 선택을 할 꺼냐, 똑같은 값어치라면 눈길을 끌고 정신을 매료시키고 고혹적인 신비감이 서려있는 진짜 같은 가짜를 고를 것인가. 물론 나는 후자였다. 영원한 후자. 물론 나는 비록 가짜일지라도 고전주의다. 따라서 나는 벽에 걸려진 황금 마네킹 상점인가 뭔가 그 액자를 떼어냈다.
   아아, 내 비이성적인 추론은 그대로 들어맞았다. 딱 들어맞았다. 이 순간을 위해서 그 수많았던 절망과 후회와 체념과 더불어 실망과 회외와 실패가 필요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지금 목도한 환상은 진짜였다. 나아가 벽에 부착된 뭔가는 어설프게 비밀 금고가 아니었다. 그 비밀번호를 내가 어떻게 풀겠나. 어디서 청진기를 구해올 수도 없고 구해 와도 내게는 그런 기술이 없다. 다행스럽게도 벽에는 문이 있었다. 그냥 열면 된다. 잠겨있지만 않다면. 여기서 우연은 한번 더 내편이 되었다. 그 문은 잠겨있지 않았으니까. 나는 문을 열었다. 기다림을 즐기지 않고 멋진 자세도 잡지 않았다. 생각하고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언제 실비아와 비서가 돌아올지 모르기 때문에. 시간은 제한되어 있었고 내 마음은 더 촉박한 심정이었다. 그런데 문을 열었는데 그곳에는 미래로 가는 마차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아니면 황홀함으로 뿅 가게 만들어주는 나이트클럽 홍보 마담이 날 기다리고 있을까? 그럴 리가! 예상 가능한 상품은 아마도 007 가방일 것이다. 그러나 절정은 예측대로 등장하지 않을 수도 있다. 수틀리면 다시 전개나 발단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말이다. 지금이 그렇다.
   나는 비밀 특급 문을 열었다. 힘차게 열었다. 여는 건 한번인데 열었다는 말은 줄기차게 반복하니 조금 겸연쩍기는 하나 그만큼 인상적이고 그처럼 드라마틱한 순간이었다. 나는 문을 열었고 나는 놀라서 까무러칠 뻔 했다. 기뻐서 주저앉을 뻔 좋아서 아이 좋아라 방방 뛸 뻔, 하다가 어안이 벙벙하게 되었다. 바깥 공간은 바로 전망 좋은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며칠 쉬었다 오고 싶은 휴양지 풍경. 영화로운 정경. 저 멀리는 호수인지 바다인지 그리고 넘실대는 초록색과 하늘색. 야외 수영장에는 분홍색 튜브와 주황색 수영복. 그리고 연두색 우산. 잔디밭에는 커다란 살색 인형. 뚜껑이 없는 푸르른색 멋진 차도 있고 동네 분위기가 괜찮은 풍경. (딱)! 들어갈까 말까! 보통 때라면 나는 두말없이 당장 뛰어들었겠지만, 그러나 나는 왠지 지금 그런 생각이 들었다.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라 라고. 무턱대고 돌아올 수 없는 미래의 문 너머로 이동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따라서 나는 사무실 바깥으로 나가서 확인했다. 이 건물을 설계한 건축사는 아마 어느 소설책에서 보고 영감을 얻어 이렇게 지었을 것이다. 루빅큐브를 어떻게 어떻게 다듬은 그런 모양. 그 건축 설계도에 어떤 사연이 숨겨져 있을지는 몰라도. 그건 그렇고 바깥에서 봤을 때 황금 마네킹 상점이 걸려있던 벽면 너머에는 나무가 있어야 했다. 나무 이름은 모르겠고, 거기는 그냥 거리처럼 공기만 있는 공간에 나무가 있고 그 너머는 그냥 평범한 거리였다. 그래서 나는 밖에 나가기 전에 사무실에서 낚싯대와 야구방망이와 긴 물건 한둘을 그 문에 걸쳐뒀다. 그런 다음 나가서 확인했다. 그런데 단단한 대리석만 보였다. 안에서 문에 걸쳐뒀던 낚싯대와 야구방망이와 긴 물건의 나머지 부분은 보이지 않았다. 그게 환영이건 환각이건 밖에서 봤을 때 나머지 부분이 보여야 했는데 전혀 보이지 않았다. 문도 없었고 꽉 막힌 벽이었다. 그러므로 이건 환상이 확실했다. 그런데 어떻게...!
   나는 다시 미스테리아 사무실로 들어왔다. 환상 문학 잡지 그 이름 때문일까? 이걸 믿어 말어? 믿어야 하나 믿어서는 안되는 것일까? 모든 것을, 잠재의식과 무의식의 저변에 깔린 모래알 하나까지도 모두 작품으로 용해해낼 수 있지만 단 하나 나만의 비밀을 남겨둬야 한다면 그건 아마 지금 보고 있는 이 망설임일 것이다. 들어갈까 말까. 들어가지 않으면 나중 내내 생각날 테고, 들어가면 혹시 못 나오는 거 아닐까? 나오면 되지 왜 못 나와? 아마 저기에 들어가서 돌아다니다 보면 혹시 미스테리아 전-연구실장이었던 마라와 그 회원들을 만나게 될까? 그 외에 또 다른 어떤 환상과 신비와 꿈과 희망이 날 기다리고 있을까? 아니면 기다리지 않을까? 열망이 실현되고 소원이 이루어지며 요술 주문을 외울 수 있기는 커녕 고생만 원없이 하게 되는 건 아닐까? 밑도 끝도 없는 함정에 걸려들었으니 살다 살다 이런 모험은 처음이라는 그런 기행을 거치고 나서 가까스로 탈진한 다음에야 탈출하게 되는 걸까? 사전 정보는 아무것도 없었다. 액면에 아무것도 없는데 모든 것을 걸어야만 하는 듯 했다. 아아 긴장됐다. 떨렸다. 설렜고 찡했으며 조마조마했다. 두근거렸다. 흥분됐고 아찔했다. 그러나 두려움은 사라졌다. 무섭지도 않았다. 그러나 쫄망쫄망 사랑에 빠진 듯한 소녀처럼 애타는 심정 역시 없지는 않았다. 슬며시 기쁨이 중력을 무력화했다. 그렇지만 아직은 계속 망설여졌다. 왜냐하면 5분 앞서갈려다가 50년 먼저 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천국과 지옥을 두 손에 쥐고 있었던 것이다. 바다의 신 넵투스의 삼지창이라도 있었다면 사과나무에 열린 바나나라도 푹 찔러봤을 텐데. 아쉬운 데로 저기 보이는 아무 피뢰침이나 가져다가, 아니 그보다는 차라리 포크가 낫겠다. 남의 집 잔치는 물론 어느 축제라도 불청객 자격으로 동참할 수 있도록. 못 먹는 감 찔러나 본다고 가슴 아픈 지난 사랑을 고백이나 해 볼걸 그랬나 라는 생각도 들었다. 아니지. 그러다 옛날에 발목 잡혔으면 잡혀도 여러 번 잡혔겠지. 그러면 무책임하게 도망칠 수도 없고, 이런 판타지는 꿈에서도 상상도 못했을 꺼 아니야. 항상 관망만 하고 언제나 밑밥만 뿌리는 작전은 결과적으로 유효했던 걸로. 매우 효과적이었던 걸로. 그건 그렇고 나는 무한정 기다리고 관찰하며 고민할 수 만은 없었다. 왜냐하면 비서와 실비아가 곧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애꿎은 이 내 상황은 기정 사실이었고 무를 수도 없었다. 그래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야말로 혼을 빼놓는 광기로 가득하며 운명이 걸린 일생일대의 모험이었으니까. 그녀들에게 이 비밀 통로를 들켜서는 절대 안된다. 나만 알아야 하니까. 그래서 나는 결정했다. 에라 모르겠다! 나는 그곳으로 들어갔다.


   20

   여기는 바로 그곳이었다. 거금이 들어있던 007 가방을 놓고 왔던 바로 그 사원.
   지난 일을 돌이켜보자면 이렇다. 마라 책상 밑 지도가 사라짐. 마라가 눈치를 챈 듯함. 마라가 설명함. D-day를 꼭 기다려야 함. 3일전에 007 가방을 받게될 거라고 예언함. D-day 3일 전 날. 업다이크경이 찾아와 007가방 수여함. 내용물을 확인. 나는 기다림을 참지 못하고 별의 중심으로 찾아감. 별의 중심에 도착. 사원만 있고 안으로 들어감. 어떻게 어떻게 해서 개구멍에 들어감. 위압적인 건물에 들어섬. 나 혼자 그곳을 환상촌이라고 착각함. 그러나 별 볼 일 없음. 그래서 나갈려고 했는데 뜻밖의 술책에 걸려듬. 출구 위에 있는 거울, 또 거울, 다시 비너스상인가가 있어서 악수 그리고 비밀문. 미스테리한 공간으로 들어감. 신기한 건물 1층 로비에서 편지를 발견. 마라는 이미 떠난 듯함. 요정이 되어버린지도. 앗, 007 가방 007 가방! 돌아갈 수 없음. 그래서 나는 집으로 돌아옴. 미스테리아 연구실장에 취임함. 실비아가 돌아와서 나는 미스테리아 연구실장에 오르자마자 낙마함. 이런, 젠장!
   이와 같은 서사가 있었는데 나는 그 사원에 도착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고액 돈뭉치가 가득했던 007 가방을 손에 쥐었다.
   으하하하하하! 푸하하하하하하! 음하하하하하하!
   그래~ 이거야~ 이거라고!
   가방을 열어보니 빳빳한 지폐는 모두 그대로 있었다. 얄팍하고 허접하게 첫 장만 진짜가 아니라 전부 다 진짜였다. 그래서 나는 흐뭇했고 그것을 들고 바깥으로 나갈려고 했다. 그런데 바깥에는 바로 범인을 잡기 위해 경찰과 기자들과 구경꾼들이 가득했다. 뭐야 그럼 내가 범인? 심지어 현상금도 꽤 되는 듯 했다. 방법이 있나, 나는 어쩔 수 없이 다시 그 비밀문을 열고 내부로 들어갔다. 이번에는 007 가방을 놓고 오지 않았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나는 그림을 찢고서 미스테리아 사무실로 나동그라졌다. 장난의 신이 내 소망을 엿들었던 것일까? 거짓말 같은 환상의 결과는 두 그림 가운데 황금 마네킹의 손을 들어주었다. 즉 나는 뭉크의 원작에서 주인공만 만화 캐릭터로 바뀐 그림을 찢고서 사무실로 다시 돌아왔던 것이다. 나는 분명 리본 커팅 행사장의 귀빈이었고 주위에는 아리따운 궁녀와 애잔한 애첩들이 자그마치 총 대기중이이었는데, 여흥과 담소와 다과 다음에 어떤 궁극의 본 게임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라 다 떠나버린 아무도 없는 경기장에서 겨우겨우 혼자서 쓸쓸하게 결승선을 통과하기나 했다는 듯이 나는 저 앞에 있는 그림 황금 마네킹 상점을 바라봤다. 그렇게 황당하게 이게 어찌된 일인가 하면서 놀라워하며 나는 황금 마네킹 상점을 계속 바라봤다. 아마도 원망의 시선으로 째려봤다는 표현이 어쩜 더 정확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거 싹 다 필요없고, 제일 중요한 거 하나는 그것이었다. 가방! 오직 가방! 나는 이번에는 절대 포기할 수 없고 실패해서도 안되기 때문에 내 손에는 굳건하게 007 가방이 쥐어져 있었던 것이다.
   으흐흐흐흐! 으흐흐흐흐! 푸하하하하하하! 이거면 됐다는 이거면 충분하다는 그런 웃음일까?
   나는 즉시 가방을 열어봤다. 그런 다음 즉각적으로 실의에 빠졌다. 상심은 멈출 줄을 몰랐다. 왜냐하면 가방 안에 돈뭉치들이 가득하기는 한데, 그런데 모두 첫 장만 진짜 지폐였고 나머지는 다 하얀 종이였기 때문이다. 밀가루와 베이킹소다, 설탕물과 생명수 정도는 구분할 줄 알아야 하는데 나는 그마저도 춘몽으로 착각하며 헛된 몽상에 빠져버리기를 즐기는 얼간이에 머저리가 분명했던 것이다. 난 정말 뭘 해도 안되는 건가? 오, 저런! 그 순간 나는 저번에 대면하지 못했던 피자 배달원이 혹시 마라가 아닐까 그런 엉뚱한 생각을 떠올렸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출장 갔던 실비아와 비서가 돌아왔다. 나는 꾸지람받을 게 뻔하니 정다운 음성으로 먼저 이렇게 한마디 했다.
   「오,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