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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일상생활에서 사람들은 행복하니? 행복해? 행복하지 않아, 라는 말을 잘 하지 않는다. 대화의 주제와 시간, 장소, 상대등을 가리지 않고 어찌 보면 감 없는 사람이 보면 동성끼리 사귀는 거 아냐 같은 오해를 즐거운 상상을 유발시키는 경우를 제외해도 아주 공감 못할 얘기는 아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소시알 ㅎ레조(소셜 네트워크)에서는 그럭저럭 부끄럽지 않게 이 말을 과감하면서도 떳떳하게 사용한다. 여기까지는 그다지 왜 그렇지, 왜 그런거야 하면서 유난떨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텔레비젼을 보면서 '그래서 행복하니?' 라는 말이 나오면 때로는 무척 거북한 감정을 품고서 그 다음에 무슨 얘기를 할지 어떤 대화를 나눌지 다 아니까, 식상하고 지겨우니까, 왜 그런지는 더 자세히 몰라도 별로 재미있어 하지 않는다. 또 그런데 정말 기특하게도 종이책이나 전자책으로는 어떻게 보면 남몰래 자기도 이미 다 아는 그것에 대한 그것이 제목으로 쓰인 책들을 찾고 또 찾고 읽고 또 읽으면서 더 훌륭한 책을 기다린다.
뭔가 이상하다. 한 번 더, 잔뜩 수상하다. 한 번 더, 다 같이...는 록스타나 다른 장르 뮤지션들이 즐겨 사용하는 문구다.
이런 건 로베르토 볼라뇨, 파울로 코엘료 스타일 문체를 사용해야 더 느낌이 사는데 그럴 깜냥도 안되고 그게 어디 막 따라한다고 쉽사리 되는 것도 아니다. 저 이야기를 왜 했냐 하면 그 단어를 직접 쓰지는 않더래도 간접적으로 고급스럽게 아리송하게 느껴지도록 만듬으로써 독자의 마음이 그분들의 육체로부터 유체이탈 하는 기분을 느끼시게끔 해야지만 필론의 결례를 범하지 않으리란 믿음? 어림짐작? 때문이었다.
지금 일부 마음이 안 뜬 독자는 몸이 무거우신 탓이 크니까 장기 스트레스를 단기 스트레스인 운동으로 상쇄하지 못하셔서 그럴 것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잘 모르겠다. 컨설턴트들도 먹고 살아야 한다.
어차피 우긴다고 소설의 수준이 급작스럽게 올라가는 것도 아니고 없는 스토리가 갑자기 잘 풀려서, 너무 잘 풀려서 특급 속기사를 고용해 초딩처럼 구술을 받아쓰게 할 황망한 사태는 절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따라서 썰을 좀 풀겠다. 잘 안 참거나 잘 못 웃거나 불안한지 들뜬 것인지 잘 모른다면 누군가의 의도가 절반은 먹힌 건가. 어쩌다 보니 역대, 당대, 지역 최고의 작가들만이 가능하다고 쉬쉬 하면서 알려진 연재 쓰기 방식이 구사되고 있으니 아무래도 글쓴이의 상태가 좋을리 만무하니, 제임스 카메론이 수직형 노란 잠수함을 타고서 들어갔다 나온 심해처럼 넓고 깊은 그대의 마음과 인격으로 대인배답게 이해해 주실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가 아니라 이미 예전에 서로 약조했다. 설마 기억 못하시지는 않으리라.
저 하늘의 별이라도 따다 드리겠소, 말 한마디에 천 냥 빚도 갚는다지만 뭔가 정형화된 관계에 삼자가 끼어들 여지에 대해서 허점을 보일 것 같으면 남자들은 부모든 하늘이든 인생이든 모든 걸 다 건다. 모든 걸 다 걸고 웅변한다. 여자들은 또 다른 방식을 이용한다. 그 중간의 방법에 대해서 생각하다가 퍼뜩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블로거가 이 말빨을, 이 글빨을 어디서 배웠겠는가? 단, 그것이 아무리 저급할지라도 글의 흐름 상 그냥 '에나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와 같이 변명이든 그 어떤 핑계든 일단 듣고 보자, 우선 읽고 보자 라고 할 수 있다면! 고품격 소설? 지금 단락에서는 금기어다. 파란만장한 인생? 푸르스름한 빛은 커녕 그냥 진흙탕이었다. 영화, 압축밸브다. 사랑, 아니다. 쑥스럽다. 그럼 하모니? 닮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가 된다. 그것도 아니면 어디서 배웠겠는가? 뭐겠는가? 무엇일까?
남자다!
남자에게 배웠다. 그러므로 본인도 혹은 S도 틈틈히 더 고민을 해야겠다. 굳이 큰 도서관을 죄다 뒤지면서 벤다이어그램 도표를 찾아보지는 않겠지만 나이, 의사 표현 수단, 예술의 구현 방법에 대해서 심도 있는 혜안을 찾아보겠다. 즉 어린 나이의 사람의 말과 글, 대가들의 처녀작, 실제 혹은 가짜 처녀의 말빨, 소설 자체와 그것이 영화로 나올 때, 왜 영화 먼저 나오고 나중에 그것이 소설화되지 않는지(맨날 날개 돋치 듯 팔려서 많이 읽혀서 영화화, 영화화, 어여쁜 영화화), 못 할 수도 있지만 측정 가능한 판단이 뚜렷한 결과물이 나올지 안 나올지 모르지만 생각해 볼 만한 문제다. 그렇지만 글쎄다. 쉽지 않겠지만 음 아무래도 독자의 도움을 청해야겠다.
어설프게 인문 교양서의 주제까지 주제도 모른 채 넘본다는 험담이 재빨리 예상되니까 소설의 작법으로 녹슬고 다 쓰러져가는 요트의 뱃머리를 돌려야겠다. 영화 태양은 가득히 (1960)에서 배의 동그란 운전대를 뭐라 부르는지 갑자기 생각이 안난다. 험담 하면 안티팬이다. 코메디 TV 프로그램에서 어느 여자 스타가 말한다. 모두에게 사랑받고 싶다고. 더 사랑받고 싶다고. 그러면 MC가 옆에서 덧붙인다. 안티는 무조건 있어요. 안티는 없을 수 없어요. 여자 스타의 말은 젋어서 그런지 어리고 푸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건 '사랑받고 있지만 충분히 사랑받고 있지만 왠지 모르게 관심 없는 사람들에게 신경이 씌여요. 저도 모르게 이상한 운를 타고 제가 점이나 도형이 아닌 선이 되는 듯 그런 느낌인 거 있죠' 그렇게 말했어야 할 것 같지만 또 모른다. 그냥 후자처럼 복잡하고 길다랗게 풀어서 제 마음을 잘 해석하지 못하거나 안 하고 있는 것일지도.
잠깐 어느 항공기 조종사의 글을 인용한다. 비단 기장 뿐만 아니라 날렵 아니 날씬하고 도도한 스튜어디스도 런던, 로마, 베를린, 파리, 모스크바, 싱가폴, 베이징 찍고 도쿄에서 턴, 뉴욕 거쳐서 토론토 들리고 시드니 다음에 상파울로까지, 그녀들의 Forsquare는 휘황찬란하다. 왜 내가 사는 도시가 안 나왔냐는 심약한 모습은 들키지도 엿보이지도 말자.
대학 친구들과 술 한잔을 하는데, 다들 한목소리로 일이 힘들어 죽겠단다. 화이트칼라들의 일을 잘 모르는 내가 대화에 어울리지 못하자 한 친구가 말을 걸어 주었다. “이번 달엔 어디 어디 가니?” “발리, 하와이, 몰디브, 그리고…”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그 친구가 소리쳤다. “와, 좋겠다. 완전 놀러 다니는구나!” 그러고 보니 스케줄이 모두 휴양지들이었다. 나는 정색하며 ‘가봐야 모두 24시간 밖에 머물지 않고, 그동안 잠자고 밥 먹으면 컨디션 조절할 시간도 모자란다’고 주장했다. 더구나 하고많은 날 밤샘과 시차 때문에 신체 리듬은 엉망이고, 소음, 방사능, 자외선, 전자파 등등 몸에 해로운 것 천지이며, 날씨나 비행기가 나쁘기라도 하면 초주검이 된다며 엄살을 떨었다. 그때 다른 친구가 한마디 툭 던졌다. “그래도 너는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잖아.” 나는 이 말에 말문이 막혔다. 그렇다면 이 친구들은 하기 싫은 일을 하고 있단 말인가.
이처럼 기장이나 스튜어디스 또는 그 비행기의 퍼스트 클래스 주 고객처럼 코스모폴리턴적인 사람들이 있다. 보통 그들이 영화와 드라마 그리고 소설의 주인공들이다. 참 비행기는 이코노미와 비즈니스만 있는 줄 알았다. 즉, 비즈니스와 퍼스트 클래스가 다른 말인지 몰랐다. 무식이 대화 중에 탄로나지 않아서 다행이니 지면을 빌려서 고백하는 바이다. 그리고 비행기 사고는 연도와 반비례해서 매해 감소하고 있다. 인류 문명은 더 나은 미래로 가고 있다. 비행기든 무엇이든 슬픈 뉴스는 슬프고, 세상 모든 사람이 행복하면 좋겠고, 메리 셸리의 비단결 같은 글은 도저히 못 쓰겠다. 죽었다 깨어나도 안 되는 건 안되는 거다.
다시 돌아와서 여권이 너덜너덜한 기운찬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여권에 도장 한 번 못 찍어 본 사람도 있다. 팍팍한 필자도 몇 년 전까지 후자에 속했고 지금도 새옷을 안 사니까 그러고 사니까 사진을 안 찍는 아줌마들 마냥 여권 쓸 일이 전혀 없다. 여기까지는 보통의 예술 작품에서 정말 지겹도록 다루는 범주다. 여권이 없는 평범한 청소년, 가난한 서민, 판타지 영화, 막장 드라마, 있을 수 없는 이야기, 뜬금없이 탈출하고 어이없이 쫓기고 밑도 끝도 없이 여행 떠나고 죽고 또 죽고 기타 등등등. 새로운, 새로운 소설을 쓸려면 그 패턴을 끊어야 한다. 딱 끊어야 한다.
그러면 어떤 캐릭터가 나올까? 영화 Up in the Air (2009)? 아니다.
바로 공항을 기웃거리는 남성, 타지도 않을 거면서 괜히 근처만 왔다 갔다 하는, 슈퍼스타의 차고를 매우 멀리서 훔쳐보기만 하는 중딩, 괜히 살고 있지도 않는 부자 동네를 마치 인근 주민인 척 하면서 산책하는 약간 어설픈 지폐 몇 장을 잃어버린 것 같은 표정의 아가씨, 장래 꿈이 소설가인 초딩. 바로 그분들의 걸리버의 관념이 아닌 걸리버들만 살고 있는 나라에 홀라당 도착한 소인의 관점, 신세계에 당도한 구석기인의 마음, 고래들 사이에 낑긴 새우의 생각. 바로 그것이다. 너무 외교적인가? 무슨, 사교적으로 진실한 친구 사귀는 것도 어렵다.
참고로 (내용은 큰 기대를 하지 않지만) 이번 연재분은 더글라스 케네디의 소설 제목만 보고 삘 받아서 작성하였음을 밝힌다. 물론 최근의 혼자 생각이 많이 포함되었지만 발화점은 그거다. 오~ 이 아저씨 책에서 밑줄 긋는 농도로만 처음부터 끝까지 글을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건 아마도 초딩이 부르는 노래일 것이다.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에 정말 좋겠네~♬ (* 옛날 옛날 꼬마 숙녀께서는 이런 노래를 불렀다지만 지금은 인터넷이 있다, 와 요즘은 정말이지 누구나 신화 속 주인공 같다)
뭐야 당신, 아니 그대여, 아직도 그 노래 이 글 읽는 동안 배경음악으로 안 틀었단 말이야? 오케이, 하이파이브, 그럼 지금이라도 듣자. 머다나의 Like a Vir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