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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누구시길래.
규수이자 부군이신 당신께서는 뉘신지. 그대는 누구시길래 이 심상치 않게 재미없는 소설을 읽으십니까? 그래도 되는 겁니까? 당신이, 아니 당최 당신이 뭔대 이리도 한심한 글을 쓰면서 귀중한 시간을 허비해버리시나요? 이게 뭡니까? 참나, 소설이 뭐길래, 단 1번 읽고 그만인데!
글이 안 써진다. 글이 안 써져. 안 써져도 너무 안 써져. 말이나 글에 따라 수동태나 능동태를 적절히 분배해서 사용해야 하는데 사람에 따라 하나의 행위에 대해 그것이 확연히 구분된다. 나는 사람들의 마음을 훤히 읽는다, 능동태다. 누군가를 만나면 그분의 마음이 느껴진다, 수동태다. 다시 능동태는, 나는 글 쓰는 걸 좋아한다, 나는 최면을 잘 건다. 수동태는, 나는 최면이 잘 걸린다, 언제 어느 때나 글이 잘 안 써진다. 그리고, 무슨 일을 해도 안 된다, 뭘 해도 안 된다, 뭘 해도 재미없다, 는 딴 얘기다. 혹시 틀리지 않았나 확신은 못한다. 여기서 이걸 읽고 다른 데서 크게 읊을려 생각했다면 한 번 더 검토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소설쓰기 & 온라인 발행 & 연재물 & 초보자 & 과거에 말 수가 많지 않았고 & 하고 싶은 얘기가 엄청나게 많지 않음 즉 자아가 확고하지 않다는 뜻, 이 여섯가지를 만족함과 동시에 너무 잘 쓸려고 한다면 집필에 관한 동사는 수동태로 표현하는 것이 옳다. 여기서는 골백번 그게 맞다. 왜 안 써지는가, 를 좀 더 생각해 보면 이런 추론도 가능하다. 이런 창작의 작업이라면 뭔가가 안 된다, 그분이 오시지 않는다, 오늘은 접어야겠다, 그날을 침착하게 기다린다, 그날은 올 것이다, 이렇게 슬그머니 분명치 않게 '주어가 뭐뭐했다'의 원인을 살짝 흐려서 여운을 남기다 보면 거짓말처럼 어느 날 글이 잠시는, 어떤 날은 잘···은 아니고 조금은 잘 써지는 행운을 만날 수도 있다. 가장 최소 단위의 등장인물로 어떻게 하면 가장 즐거운 이야기를 쓸 수 있을까 연구하는 듯한 J의 뇌리엔 특별한 착상이란 건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2명 중 1명은 잘 한다는 연상법, 저급의 두뇌 훈련 기술, 늘상 할 일 없이 자동적으로 의지에 딱히 영속되지 않는 무엇, 그것은 좋으나 싫으나 열심히 할 수 밖에 없다. 불편하든 지겹든 운명이든 습관이든 어쩔 수 없는 일. 컴퓨터 게임 가운데 고전 게임에서는 연관성 있는 그림인 볼펜과 노트, 짝이 맞는 1번 벽돌이나 문자나 문양과 어울리거나 똑같은 2번을 서로 잇게 만들면 그것은 같이 소멸되면서 점수가 올라가고 단계가 다음으로 넘어간다. 게임이 아닌 현실에서는 가장 기본적인 이와 같은 연상법, 짝짓기와 떠올리기, 그것만으로 잡생각의 소멸과 반대로 어떡하다 소설이 써질 수 있다. 그러나 보통은 그럴 수 없다. 그러기 힘들다. 말도 안 되는 얘기다. 그럼. 그러니까 그게 된다면, 그렇다면 대박이다.
세븐 일레븐, 즉 아침 7시에 출근해서 밤 11시에 퇴근하는 워커홀릭의 애칭. 나인 투 파이브, 곧 아침 9시에 잠을 자기 시작하여 해와 달과 대기가 노을의 광경을 준비하는 시간인 오후 5시에 단꿈에서 깨어나는 예술가 또는 유흥업계(주류업계) 종사자와 DJ 그리고 밤손님. 전자와 후자가 친한 친구 사이이기는 어렵다. 어렵지만 또 그래서 극과 극은 통하니까 절친한 사이가 될 수도 있다. 그 두 인간이, 인간이라 하니까 어감이 어째 좀 달갑지 않게 들려서 바꿔 부르자면, 그 두 VIP가 가깝다거나 그 둘이 한사람의 과거와 현재라면 흔히 말하는, 읽는, 듣고 보는 그런 자조의 울림에 관한 대화가 들려질 것이다. 어머 그렇데, 어쩐다드라, 어떡하니, 어쩜 그런 일이 등등등. 또는 난 과거엔 이랬는데 지금은 그때 그랬다는 걸 못 믿겠다, 살다 보니 바뀌더라, 변하더라, 어떻드라 그런 말들. 우낀 해석이나 '첫인상은 어땠는데 현재-인상은 어떻다'는 좋은 대화도 가능하지만 어쨌든 여기서는 조금 그쪽으로 몰자면 비교의 극대화, 차이점의 최대치다. 난 그때 열심히 일만 했어, 하나 밖에 몰랐어. 순진하고 또 순진하며 미련했어. 지금 그때를 돌이켜 보니 그건 그냥 뭐뭐한 척, 흉내내기, 답습하기, 모방, 베끼기, 오마쥬, 패러디, 필사, 따라하기, 여기다 몸을 던지고 마음은 저곳에, 액션만 취하고 터부와 사회규범에 구속받지 않는 새로운 인생을 산다고 법석을 부렸지만 그건 파격이나 혁신이 아닌 독창성과 신선미라곤 찾아볼 수 없는 타성에 따른 삶, 남들처럼 살아가기에 다름 아니었어. 그런 거. 난 인생을 잘못 살았나 봐. 다시 태어나면 어떻게 살고 싶어. 즉 그땐 그랬고 지금은 이래. 허구헌 날...은 아니지만 가끔 한숨 쉬고 수십 년 평생 반복하는 혼잣말 몇가지.
그러나 그 두 VIP가 멀다면, 두 인물을 한사람으로 보고 그 차이가 깊고도 푸르다면, 그러면서 그 둘을 연결한다면, 좋아하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면 묵직한 의미를 수반한 많이 듣고 또 보게 되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얼굴 표정의 반응을 뛰어넘는 좀 오바하면 찬란한 기적이 태동하게 된다. 말은 기적, 크게는 전설, 작게는 추억, 밝은 면으로는 기쁨, 넌 연애, 쟨 또 무엇이 된다. 그렇게 부를 수 있다. 그래도 된다. 개개인의 자유다. 이름 부르는 사람 마음이다. 그게 뭐든지. 안 그러면 눈치 없는 어른이거나 숨기는 본능을 이해 못하거나 언제 드러내고 언제 감춰야 할지를 잘 모르는 거다. 바꾸어 말하면 그것은 서사적인 꿈의 실현에 가까웁게 될 것이다. 실패라도 그건 실패가 아니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다. 아니다. 그게 맞다. 전자가 새드 엔딩이라면 후자는 뭐겠나. 오! 해피해피 고고? 달링, 러빙 유? 척-하다 보면 어느 날 그와 똑같이 되어 있고, 남이 그대를 따라하게 될 것이다. (물론 잘 하고 싶지만 못하는, 따라하기 단계가 높은 가짜 웃음도 있음) 릴레이 상어 파도타기, 파도 넘자마자 아쉬우니가 그냥 내리켜 계속 파도타기, 다같이 타기, 평생 파도만 타기, 파도를 안 타더라도 파도 타기 사진 한 장 프린트해서 책상 옆에 1주일간 붙여 놓기. 너의 꿈은 이루어진다. 이루어질 것이다.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악담을 퍼붓고 비관을 일삼는 이가 있으면 조용히 가슴에 담아두거나 그것을 원동력으로 좀 더 노력할 것.
노력하면 안 되는 게 없다, 는 말은 마음가짐과 자세에 대한 얘기다. 긍정적인 태도. 보통은 안 되는 건 안 되는 것일 테지만 또 드물게는 하면 된다. 에잇 해도 해도 안 되네, 깨끗하게 포기하고 뒤돌아선 순간 1단계 클리어, 2단계 시작. 하면 된다, 라는 말이 어쩔 때는 살면서 당신 생활에 먹힌다. 1)노력하면 다 된다. 2)뭘 해도 안 된다. 3)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4)가능성은 반반 50 대 50. 나열된 1, 2, 3, 4를 합산? 절충? 꿈보다 해몽이라드니 했더니 된다, 그거다. 머피의 법칙과 샐리의 법칙의 합작품! 이런 맛에 세상을 사는 거 아닌가? 아니면 절반만 거는 방법도 있다.
잠깐 정리하면, 이번 챕터의 첫 문단은 어 뭐냐면 그냥 모르는 사람이 서로 만나서 말 튼 거다. 압권, 은 아니고 도입 장면. 두번째 문단은 침잠에 이은 명상과 긍정적인 자애심의 분위기. 세번째는 안 써지는 건 안 써지는 거지만 실낱같은 실마리에 대한 희망, 꿈도 야무진 기대, 그야말로 뻔뻔한 자기 할 일 계속하기, 묵묵히 삶을 꿋꿋이 살아가기, 에 대한 내용. 넘버 4~ A와 B의 매칭 곧 짝짓기에 대한 실망이랄지 뻔한 내용과 익숙한 얘기. 그리고 다섯은 끈기있게 꾹 참고 버티고 버텨서 재회에 성공하는 설렘과 그것을 포기하지 말고 해야 하는 이유 또 으쌰으쌰 동기부여까지. 6번 문단은 다섯번째 문단을 짧게 요약. 그리고 이번 문단은 별 일곱 개. 자, 다음으로 가본다. 여덟, 아홉, 열 계속 가보자. 무지개 너머로 오즈의 마법사가 나가신다. 길을 비켜라. 아무도 없을 때만 큰소리.
무엇을 뭐뭐한다, 문법에 맞는 말로 예를 들면 책을 읽는다, 영화를 본다, 그림을 그린다, 이렇게 쓸 수 있다. 이 보통의 문법을 슬쩍 화법으로 바꾸면 생소하긴 하겠지만 새로움 또한 있다. 요즘에만 누가 누가 자주 쓰는 게 아니라 인류는 까마득한 옛날부터 그래 왔다. 그러나 막 심하게 남용한다면 그건 정신 산란하고 속된 말로 저질? 고품격과 멀어지게 된다. 속된 말의 기준이 뭔지는 불분명하지만 글과 말의 차이, 그걸로 추가 설명은 생략할 수 있다. 앞서 말한 VIP처럼 글과 말을 감정이 움트지 않았더래도 가까이 서로 억지로 붙여보자면, 글이 말을 남발하게 하자면(글과 말 모두 하나의 인격체나 사람이라고 가정 그래 의인화), 처음엔 갑갑하지만 점차 진행시키면 좀 더 행진시키면 계속 우주로 보내버리면 무질서와 카오스 그 경계를 넘어서게 될 것이다. 지금을 위해서 앞의 VIP를 끌어들여서 얼렁뚱땅 설명했다. 여기서 평범한 건 지나치고 그 파격을 허용하는 예를 들면, 이렇다. 꼬냑 두 병 쳤어, 가방이나 차를 질렀어, (가난한 대학생이 택시를 타다, 가 아닌) 택시 꼿아랄지 점심 (먹다 대신) 때려, 같은 말들. 품위는 다소? 떨어지지만 품위-유지비의 개념처럼 이런 어법을 J는 소설쓰기의 창작 동기로 차용한다. 왜냐하면 그게 재미있을 것 같으니까! 해 보고 싶어서! 그럴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코너에 몰렸으니까! 따라서 그는 그와 같은 전위적인 글쓰기를 선보여야 하는데 또 여기서 너무 쉽게 가면 재미없다.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 개구리 뜀뛰기 자세. 그러다 폭삭 주저 앉을 수도 있지만 영영 주저 앉아 그냥 시골에서 웰빙해야 할지도 모르지만 한번 그래프에 꺾임의 요행과 미학을 살짝 덧붙여본다. 그러므로 그는 그냥 계속 글이 안 써졌던 것이다. 마치 글이 안 써짐으로써 사람들을 웃겨보겠다는 속내처럼. 분명 그렇다. 숨길 수 없는 의도. 손바닥으로 태양을 가려.
그런데 이게, 무엇을 뭐뭐한다, 그것이 소설쓰기에 도움이 되나? 정말? 과연? 두고 볼 일이다. 한번 지켜보자. 이 무슨 기구하고도 이상한 소설쓰기 발상이란 말인가, 참 나!
그리하여 그는 집에서 글이 안 써지니까 바깥으로 돈다. 도시 안에서 여기저기 가 보고 사람 구경하고, 소셜 네트워크에서 뭐 없나, 세상 소식 가운데 중요한 밀담을 누군가가 암호와 암구어를 이용해서 전달하지 않을까 하면서 외부에서 글쓰기 소재를 찾아다닌다. 그렇게 하나 마나 보나 마나 찾아봤자 별것 없는 소득을 기대하기 어려운 시간 보내기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이미 써놓은 소설이라고 부르기도 부끄럽고 그러나 아까운 블로그 연작 이야기에 어느 덜떨어진 극소수 독자층이 알게 모르게 게 눈 감추듯 슬그머니 생기고, 열혈 팬덤이 형성된 것일까. 만약 있었더라도 겉으로 드러날리는 없다. 그 블로그 포스트처럼 그 팬들도 상당히 까다로운 스타일일 것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아마도 간접적으로 그들의 마음을 전달할 가능성이 크다. 대놓고 들이대지 않고 은근히 마음으로 다가가고 몸과 마음과 영혼까지 모두 건네오게 만들 것이라는 계산 딱 나온다. 딱 맞춘 예상 아니면 헛된 망상이다.
결국 이 말은 그가 지금 온라인으로 소설을 쓰고 있기 때문에 그것의 최대 장점, 즉답성이 확 희미하게 다가오는 것을 느낀다는 것이다. 딱히 뭐라 설명할 수 없지만 뭔가 연결되는 공통점이 보이고 어떤 미심쩍은 일정한 유형이 보일락 말락 하고 있다. 이건 일반적인 것이 아니다. 이종이다. 어쩌면 미래에 예속된 일일 것이다. 아마도 일종의 몽상이리라. 또는 혼자 보는 우화. 심지어 실체가 거의 없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그게 대관절 무엇인가는 중구난방이지만 차차 알아가기로 한다. 차츰 정체가 드러날 것이다. 자, 개봉박두!
수사적인 문구와 꼬고 꽈는 어려운 표현법은 지금 논외다. 복잡함은 사양, 단순함 그것. 연인에게 문학을 말로 그것도 길게 설교하는 것은 한동안 핀잔받을 일임이 확실하니까 알아서 판단할 일이다. 어디 문학만인가. 뭐야, 이건 연애편지나 다정한 속삭임과 사랑의 은어가 아닌데, 이런.
판타지와 SF, 픽션의 경우 한가지 구분 기준이란 게 있다. 처음부터 환상 세계 안에서 시작하느냐 아니면 현실에서 시작하여 기적적으로 드라마틱하게 꿈의 만화적 환상극으로 넘어가느냐, 그것이다. 보통 2명 중 1명은 전자보다 후자쪽을 좋아한다. 비교적 어린이보다 어른이 그렇다. 또 남자와 여자, 나이, 혈액형, 별자리 등은 각자 알아서 판단하자. 실화를 영화로 만드느냐, 영화가 먼저 있고 나중 그게 실현되느냐도 중요하지만 닭이 먼저든 달걀이 먼저든 여기서는, 이 소설에서는 전자쪽은 일절 다루지 않고, 후자의 선경에 섬광을 잔뜩 비추어서 찬탄을 거듭하여, 염치 불구하고 작정하고서 억지로 독자를 최면에 빠트린 후에 그분들이 선뜻 넘어와서 왈칵 홀라당 정신줄을 놓아버리게 만든 다음에, 당신께 기다렸던 낭만과 무드를 안기고, 드디여 단박에 전자의 느낌에 흠뻑 젖어들게 만들고 싶은 것이 서술자의 솔직한 마음이다. 둘 다 몰입이 가능한 사람은 얼마나 좋을까, 안 좋을까.
그러나 신출내기, 날땅보, 초보 풍쟁이 J는 애당초 인간이 너무 순박하고 어리석은 허당이라서 터무니 없는 소설도 못쓰고, 형사 콜롬보나 선망하면서 고작 한다는 게 조만간 대단한 소설을 쓰겠다는 의욕만 시종일관 자꾸 키우고 있다. 그 허영기를 만회할 기회가 와야 할 텐데. 소설의 신이나 악마를 알현하면 좋으련만, 아 악마는 곤란하다. 한 번 불러본 것으로 그만. 거참!
날이면 날마다, 하루 24시간 꿈에서도, 꼬마 때부터 어른일 때까지 언제라도 하늘을 날아다니는 해적선과 웜홀 시간여행과 고대 유적에 감추어진 비밀, 어느 날 아침 일어났드니 집 앞 공원에 코끼리 10배만한 싱크홀이 생기고 그 안을 탐험, 능력치를 무한대로 끌어올리는 신비의 영약을 구해서 먹고 팔고 연구하고, 실존하는 아틀란티스, 쉬쉬하며 막는데 급급한 피라미드의 전설, 마법의 성, 알라딘의 요술램프 기타 등등 기타 등등. 여기서 다루기에는 탐탁지 않은 식상한 이야기다. 그런 소설을 쓰면 반드시 누군가는 <뭐해서 뭐한 이야기>라고 달랑 한 문장으로 요약해버릴 뻔한 일은 반드시 발생한다. 틀림없다. 운 좋으면 몇 줄 더 이어질 테고.
소설은 안 쓰고 그는 급기야 소설에 대한 선행 학습에 나선다. 쓸 경험 쌓기. 소설 쓰기보다 경험이 먼저란 얘기다. 만에 하나 누군가는 괜히 이런 소설을 읽고 나서 우울증에 걸렸다고 할 수도 있으니 그런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고, 뭘 쓰더라도 알고 써야 하고, 구술을 하더래도 겪은 뭐가 있어야 한다는 논지로 그는 무작정 거리로 나선다. 그가 사춘기 시절 감행한 시내버스 타고 종점까지 갔다오기, 도시 근교 종교 시설 구경하고 오기, 고속버스를 타고 좀 더 멀리 가보기. 갈 때는 멀면 멀수록 좋겠지만 돌아올 생각을 해야 한다. 집, 외지, 집, 시골, 집, 공원을 아무 규칙없이 막 싸돌아다닌다. 그러다 문득 그가 대학교 2학년 때던가, 그 대학교는 지금 없어졌다, 사실 고등학교도 중도 포기가 맞다, 어느 지방 공원인 산으로 학과 MT를 갔다. 또래들과 같이 안 놀고, 친구랑 둘이서 따로 떨어져 나와 그 산의 중턱을 헤매다가 우연히 발견한 주인없는 카페, 망한 아니 폐업한 개패를 발견하고, 대책없이 위스키를 그곳에서 갖고 나와서 친구랑 둘이 병나발 불었는데 자기만 쓰러져서 그가 뻩은 후, 친구가 산 아래 사람들 있는 곳에 내려가서 병력 요청하여 인력을 끌어온 다음, 짐작처럼 몇명에 의해 뜸어져 내려온 일을 떠올렸다. 그래 이거야. 여기 가보는 거야. 그리 멀지도 않아. 아직 공짜 술도 남아 있을지 몰라. 썩 어려운 일도 아니잖아. 길도 다 알아. 그는 떠났다. 그곳으로.
이렇게 산속으로 떠나서 헤매는 이야기로 재주꾼들은 영화 한 편 2시간짜리를 만든다. 작품이고 예술이다. 앞서 말한 전자, 그처럼 설정 자체가 판타지가 아니래도 이걸로 그분들, 프로들은 영화 전문 웹사이트에서 60~70점 너끈히 뽑는다. 뭐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만 그걸 감안하고 그는 '난 소설가야. 난 지금 소설을 쓰고 있어. 이곳에 가면 글이 써질 꺼야.'라고 스스로 되뇌이면서 그곳으로 간다. 꼭 어디 안 좋은 데 끌려가는 것 같다. 이 다음에 이야기가 어떻게 될까? 어떻게?
그의 집으로부터 해당 목적지까지 100km 정도일 것이다. 평일엔 책을 읽고 데스크탑 컴퓨터 앞에 앉아서 인터넷 돌아다니기와 소설 구상으로 뭔가 일하는 자세를 보이고 주말에 그곳으로 떠났다. 그 도립공원에 도착. 맑은 날, 시원한 산공기, 산뜻한 바람, 산악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암벽등반 동호인들 그리고 동아리 MT 대학생들. 그들 가운데도 누군가는 정규 일정에서 이탈하여 무작정 산속으로 들어가 그 숨겨진 카페를 발견하고 이상한 술병을 들고 나와 그걸 마신 후 남녀 영혼 체인지라는 놀라운 사태를 맞이할지도 모른다. 여기까지는 퇴근 직전의 직장인, 금요일을 맞이한 대학생처럼 그도 행복도가 올라갔다. 실재 그가 태어난 지명의 번지는 999, 그 숫자는 다 계획된 것이 아니면 설명이 안 된다.
그건 그렇고 날도 덥고 힘겹게 그만의 추억의 장소를 찾고 있지만 그건 어딘가로 사라져버린 듯 하다. 그러고 보면 참 오래됐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던데 시간이 너무 지나버렸다. 만약 있었다면 그걸 발견했다면 몹시 실망할지도 모를 일이다. 아예 찾지 못한 게 좋은 건지도 몰라. 뭐 어쩌겠나. 그분은 오시지 않나 보다. 소설도 안 써지는데 별안간 어떻게 생긴줄도 모르는 마로니에 나무를 찾아다니는 게 나을까? 창작의 오로라, 신비한 영감, 영광스런 착상의 순간, 악흥의 회오리. 아무런 책임이나 의무가 없는 그분의 면피를 위하여 또 다른 그분을 찾아야 하나. 좋게 집 뒷산에나 올라가 캔 맥주나 깔걸 그랬다. 새 됐어, 완전. 최소 등장 인물이 등장하는 소설로 최대 흥행 수익 영화 대박, 드라마 연작 초히트, 말도 안 되는 얘기다. 개소리. 헛소리. 투자자에게 아쉬운 소리할 필요도 없었는데 그게 다 뭔 잠꼬대란 말인가. 다시 돌아간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그는 한마디 한다. 에라 모르겠다, 그냥 막 쓰자!
그는 실상 마음 한구석에 자꾸 어딘가로 뜻 모를 청운을 품고 멀고도 멀리 정처없이 떠나고 싶은 속마음이 약간 있었지만 실은 멀리가지 않아도 그가 사는 도시 안에 있을 건 다 있었다. 사람 사는 게 원래 그렇고, 세상사 마찬가지다. 게다가 그만의 망상, 딱히 설명할 수 없는 불가사의, 부러 캐내거나 알고 싶어하지 않는 모른 척 하기. 태연자약 포스트 모던 소설가연. 초사실주의와 판타지를 결합한 아직 장르의 이름이 없는 신소설 작가인 체함. 구태여 멀리 갈 필요 없을 듯 하다. 여기서 끝이 아니야. 멋있어 멋있어. TV 개그 프로그램의 유행어를 따라하는 것도 다 쓸모가 있다.
어 저기요 잠깐만요. 재미없는 이런 소설 읽으시면 우울해져요. 차라리 조증이 나아요. 어머. 우리 여성분들, 기쁘고 신나는 또 아름답고 감명 깊은 그런 소설 고르실 줄 잘 모르시죠? 미치겠다. 이제부터 차츰 기어를 올리고 터보를 가동시키고 천상의 음률을 마법의 글로 풀어내겠어요. 메인 경기 다 끝나가는데 언제까지 큰소리, 입장권 환불되고 소설의 악명만 높아갈 것이다. 왜 하필 여기서, 지금, 어떻게 이리도 천연덕스럽게 스스로 저주의 언사를 내놓는지. 그 반사이익, 그것의 효과를 설마 바라지는 않는다. 절대 아니다. 절대!
저기요 독자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됩니다. 이런 따분한 소설 읽지 마세요. 뭔 교훈이 있나요 아니면 하던 일 다 때려치우고 소설 읽기 그 하나에만 몰두하게 만드는 영험한 힘이 있나요. 아무 것도 없어요. 남는 거 없다구요. 리콜 마케팅조차 들이댈 수 없다니까요. 저라면 이런 책 한 트럭 갖다 줘도 읽지 않을 거에요. 단지 읽을까 말까, 끝끝내 읽을까 말까, 그 미묘하고도 팽팽한 오묘함을 즐길 심산이라 이거죠. 솔직히 속마음을 다 깠어요. 자 어떠세요. 그만 읽고 당신의 삶을 사세요. 인생을 즐기시라구요!
시원스레 술취한 듯 개소리를 퍼부었으니 이제 소설로 돌아간다. 본연의 업무로. 꼭 보면 이런 거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니까. 변태들. 어쩌다 보니 이런 스타일로 글을 쓰는 게 본령이 되어버렸어. 어쩌면 좋아. 어쩔 수 없다.
J는 집에 와서 급하게 캔 맥주 세 개를 쳤다. 오! 아아! 쳤다? 쳤다! 마시다, 적시다, 들이키다, 그런 먹는 것과 연관된 동사가 아니라 난폭함은 아니지만 젊음의 장난과 무모한 움직임, 그 역동성이 느껴지는 말. 요술의 묘약을 뿌린다, 그러면서 동시에 친했던 오래 소식이 끊겼던 친구인줄 알고 낯선 타인의 뒤통수를 세게 철썩 후려치는 반가운 몸짓을 뜻하는 동사. 혼자 있을 땐 옷을 홀라당 벗어도 되고 품위도 내던져 버리고 캔 맥주를 마시지 말고 치자. 그러자. 그래. 이거다. 멀리 갈 필요없이, 멀면 멀수록 좋은 환상적인 천혜의 관광지로 떠날 필요없이 그가 사는 동네, 도시 거기만 둘러보고 잘 찾아봐도 분명 신기하고 기이한 이상스런 뭔가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선망에 가까운 확신과 그래도 된다는, 그래야 한다는 당위성과 친숙함이 동반된 동기가 부여됨을 느낀다. 맞다. 그는 정말 그런 사례와 실제 장면을 드물지 않게 봐 왔다. 바로 그걸 모두 모아서 연결시켜 글로 쓰기만 하면 점묘화 기법을 닮은 놀랍고도 새로운 소설을 쓸 수 있을 것이다. 까닭 모를 희망의 달덩이가 떠오름을 느낀다.
자동차. 자동차가 도로에, 주차장에, 차고에, 판매점에, 수리점에 있는 것은 정상이다. 하지만 깊은 산속 차가 다닐 수 없는 산속 오솔길에 턱 있다면, 오 뭔가 있어. 뭔가 있다구. 저번에 그는 그런 걸 한번 보았다. 집 뒷산을 타고 멀지 않은 봉우리로 가다 보니 뭔 삼지창 마크가 돋보이는 분홍색 컨버터블이 한 대 있었다. 그곳은 인적이 드문 곳으로 평소 지나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는 인기가 하락한 산길이었다. 차가 바퀴를 굴려서 도달할 수 없는 사람만 지나다니는 산길이다. 그런데 어떻게 삼지창이, 분홍색 삼지창이 이곳에 있을 수 있지? 바다의 신 포세이돈과 그 추종자들이 여기서 몇 달 몇 년에 걸쳐서 바로 이곳에서 만들었나? 그럴 수는 없다. 아, 그는 지금 집에서 캔맥주를 치고 있다. 1캔 치고, 2캔 치고, 3캔째 치고 있다. 어느 때던가 복잡한 심정을 달랠 겸 떠났던 산행길에서 보았던 있을 곳이 도저히 아닌데 있었던 컨버터블을 회상하고 있다. 그 장면. 그건 모두가 아는 쉽게 예상할 수 있는 방법으로 그곳에 이동되고 그래서 영화를 찍은 것일까? 행위예술이라도 한 걸까? 아니다. 아니다. 다 아니다. 그건 아마도 바다의 물오름인가 용오름인가 하는 그 과학적인 현상이 해변으로 이동해서, 물에서 땅으로 넘어왔으면 그건 토네이도라고 부를 것이다, 그래서 해안 도로에 정차되어 있는 분홍색 삼지창 컨버터블을 하늘로 올렸다가 거센 태풍으로 수십, 수백 킬로미터를 날아와서 턱 하니 그 위치에 던져진 거다. 그렇게 꽉 안착된 증거로 바퀴 한쪽이 펑크나 있고, 페인트가 조금 탈색됐으며, 약간 짠-내가 나고, 타이어에 소금 자국이 핸들에 바다 수초 건더기가 그리고 뒷좌석에 결정적인 단서가 있다. 산드로 보티첼리(1444~1510)의 비너스의 탄생에 나오는 비너스가 탄생한 딱 그런 것 같은 커다란 조개 껍데기, 그게 바로 그 말도 안 되는 기막힌 이동 과정을 밝혀주는 빼도 박도 못하는 증거품 제 1호다. 보물 1호, 가보 1호, 그것이다. 그러나 그때 그는 이 좋은 구경거리를 놓고 황급히 집에 돌아왔다. 왜 그랬을까? 왜 그는 그것을 핑크 트라이던트를 보고도 그냥 힘없이 시무룩하게 지나쳐버린 것일까. 왜 그때 왜 그 거룩하고 고요한 찰나에, 아무도 방해하는 이 없는데 좀 더 구경하면서 마음껏 추측하며 상상의 나래를 펼칠 것이지 왜 그랬나. 그래 안 늦었다. 지금 캔맥주를 골방에 쳐박혀서 마시든지 치든지 할 게 아니라 다시 보러 가면 된다. 못 할 게 뭔가. 좋다. 떠나자. 어서. 그곳으로. 록 그룹 COLDPLAY 앨범 재킷에 나오는 그 그림은 뭐드라. 꼭 그 포즈 한 번 잠깐 취해 봐야 할 것 같다. 자, 따라하기 끝났다. 벌써. 가자. 간다. 떠났다. 이런. 뭐야? 집에서 뛰어가면 40분, 보통 걸음으로 가면 그 두배가 걸리는 그곳에 도착했는데 분홍색 삼지창이, 올드 마세라티가 보이지 않는다. 근처에 누가 버렸는지 아동용 장난감 빈 박스와 바람개비, 개 사료인지 땅에 떨어진 고양이 밥 뿐이 없다. 저런! 누가 어느새 그걸 가져가버린 것인가. 오, 타이밍 놓쳤다. 아끼지 말고 그 시간을 즐겼어야 하는데 이미 지나가버린 것이다. 후회해도 소용없다. 사랑은 또 온다. 어울리지 않는 마법같은 조합 A + B는 또 온다. 숙명의 궁합 A + B는 반드시 돌아올 것이다. 지난 사랑의 불꽃은 아직 꺼지지 않았어. 다시 온다. 다시 와. 웃으며 보낸다. 기다리면 돼. 사랑은 또 다시 올테니까. 왜 좀 어디서 많이 들어본 노래 말 같은데...
횡 하니 산들바람만 부는 장소를 뒤로하며 아쉬움 꼬리 삼아 살랑살랑 흔들면서 돌아오는데 언뜻 그때 컨버터블 범퍼에 새겨진 낙서인가 사인을 보았던 화면이 떠오른다. 고풍스런 글씨체, 그것은 조니, 였다. 조니, 조니······워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만났던 토끼는 동화처럼 사람의 말을 할줄 몰랐다. 다람쥐도 발바닥 사이즈보다 큰 게 없었다. 나무에서 식사를 위해 무슨 일을 하던 딱따구리도 산중 휴게소에서 커피를 마시거나 사진 작가의 어깨 위에 자유자재로 앉았다 날았다 하지 않고 인적이 드문 외길에 있는 자작나무의 가지에 착 달라붙어 있다. 즉 특이 사항은 없다. 정상이다. 평화롭다. 덤덤하다. 돌아오는 길에 산길 교차로에서 멈춘다. Y자 모양, 좌상에서 내려와 구심점을 거쳐 밑으로 내려가야 하는데 세 갈래 길에 웬 강아지 한마리가 이 친구를 사랑스럽게 쳐다보고 있다. 꼬리를 흔들락 말락, 시선을 피할까 말까. 자연스럽게 다가오길래 녀석의 머리도 쓰다듬고 배를 만져볼까 말까 망설이다가 강아지가 재롱을 부리면서 그의 손을 깨물었다가 도망갔다 다시 다가오고, 뛰었다가 바짝 엎드렸다가 마음껏 애교를 부린다. 그러다 갑자기 자기를 따라 오라는 듯 살살 거리를 띄면서 물러나고, 쳐다봤다, 딴청부렸다, 를 반복한다. 정말 자연스럽게. 꼭 사람같다. 집도 가깝고 바쁘지도 않으며 얘랑 좀 더 놀고 싶은 마음에 아무 의심없이 사심은 조금 품고 가만가만 따라간다. 다만 강아지를 따라온 이곳은 사람들이 거의 다니지 않는 길로써 풀이 많이 자라나 길이 희미해지고 있다. 그렇게 J를 끌고 유인하여 그 이름 모를 들개는 어느 약간 야트막하고 평평한 이상한 마크가 바닥에 그려진 장소에서 멈추드니 땅바닥에 막 몸을 비벼댄다. 땅에 새겨진 표식은 별 내용없는 흔한 인터넷 뉴스에서 볼 수 있는 거대한 외계인 표식, 뭐 그런 거와 비슷하게 생겼다. 그냥 별 일 없네 하면서 한번 슥 둘러보고 돌아갈려는데 에구머니나, 이게 뭔가, 뭔 생쇼도 아니고 이 근방에서 제일 커 보이는 나무 위, 즉 나무의 중간 가지에 걸터서 뭔 요트가 있는 게 아닌가. 이런! 카누나 헹글라이더, 패러글라이더, 무인 글라이더, 대형 풍선이면 그런가 보다 하겠지만 뭔 요트. 그것도 대충 봐도 실운전 가능해 보인다. 처음에 놀라서 약간 뻥 튀겨 말한 듯 하다. 요트 보다는 보트에 가깝다. 요트 같은 보트, 그래 그거다. 즉시 바다에 띄우면 꽤 멀리 갈 수 있고, 지금 팔아도 제값 받을 것 같다. 운전석 옆에 책도 몇 권 보인다. 태양을 따라 항해하는 법, 바다에서 길을 잃어버렸을 때 돌아오는 법, 떠다니는 유동 등대를 만났을 때 대처하는 법 등등. 죄다 머머 하는 법이라는 제목의 노란 책들 뿐이다. 그런데 그 노란색의 빛 바램이 모두 차이가 있어 한 번에 산 것이 아니라 따로따로 하나씩 사 모은 것 같다. 한쪽에 통조림 깡통, 인형, 침구류, 침낭, 츄리닝, 가방, 낚시 도구들도 보인다.
배가 산으로 가다, 그건 속담이 아니었어!
그러나, 그는 그 안으로 들어가서 좀 더 수색하고 탐사할까 하다가 감탄사를 연발한다. 삐─! 아차! 아뿔사! 맙소사 이게 왠 떡이야. 그런데 알고 있는 감탄사가 많지 않다. 아까 생각은 이랬어. 이런 믿기지 않는 B + A가 나타나면 나중에 보면 늦는다고, 아끼지 말라고, 기다리고 애태우다 미루기만 하면 배 떠난다고, 딴 늑대들이 가로채간다고, 하고 싶은 거 있으면 하고,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먹고, <먹을까 말까 할땐 먹어라>라는 카피라이트를 보면 웃고, 사고 싶은 거 있음 사고, 가고 싶으면 가라고. 그러나, 그러나 그건 너무 쉽다. 귀중한 건 쉽게 오지 않는다. 원래 세상 이치가 그런 법이다. 그러나 그 법칙이 안 먹히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세상은 뭐 같다, 라고도 한다. 그러든지 말든지 아무튼 지금은 '해라, 하자, 해도 된다' 에서 그럴까? 로 반쯤 넘어왔다. 정말 진귀한 무엇이 하늘에서 덥썩 내려와 안겨질리 없다. 완전 고귀한 거라면 진짜 그렇다면 게임 이론에 따라서 나타날 것이다. 더군다나 이런 머저리, 멍청이, 바보, 얼간이 같은 녀석에게 공짜로? 어림없다. 세상에 공짜가 어딨어. 게다가 트릭도 있다. 심지어 유인술도 널렸다. 유혹의 반짝임은 늘상 함께하는 것이다. 감 잡았다. 딱 패턴 드러난다. 앞서의 기적, 삼지창을 확인하지 않고 지나쳐서 새끼친 거다. 저번에 슬며시 웃고 지나쳤던 컨버터블처럼 님을, 내 님을 보냈다가 집에서 마음을 보내고 그분을 떠올리며 그리움을 키우다 나중 조용히 근처에 들렸다가 못 보고 아쉬움과 함께 돌아오다 보면 또 다른 순간 이동의 신이 새로운 모습으로 신기한 방법과 함께 나타난다, 이게 바로 지금 사건의 윤곽이다. 그도 남들과 똑같이 인생의 풍파를 조금은 겪었다. 그래, 파도의 물결을 타는 거네. 그렇다. 참아야 한다. 참지 않는 건 모두가 할 수 있는 일이고, 정말 매일 언제나 세상은 그렇게 돌아간다. 만고의 진리다. 그럼, 다음을 기약하고 양보하며 천상춘의 시기를 기다리는 건 아무나 못한다. 바늘로 허벅지라도 찔러야 하나? 정말? 못할 거 없지. 남의 행운을 가로채는 것 같아서 어째 찜찜했다. 공짜는 마음이 불편하다. 싼 게 비지떡이다. 되로 주고 말로 받을 수 있다. 손해보는 게 속편한 인생이었다. 영혼은 팔지 않을 테다. 그렇지만 무엇을 거침없이 하고, 뭐는 참고 참고 또 참아야 하며, 어떤 건 더 키워서 잡아먹어야 하는지 딱 훤히 이치와 물정과 원리가 드러나지 않는다. 마구 헷갈린다. 좋은 놈, 멋진 놈, 이상한 놈. 주면 먹고, 줘도 못 먹고, 줘도 안 먹는, 놈놈놈, 영화 The Good, the Bad and the Ugly (1966). 마치 사랑의 감정과 좋아하는 마음이 엇갈리는 것처럼 뭐가 뭔지 도통 모른다. 나이를 거꾸로 먹는다. 직감과 직관만은 온전하고.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양다리, 삼다리, 뻔한 인생살이말고 오직 일편단심도 있고. 어떻게 해야 해? 어찌 살아야 하냐고? 1번 룰을 따르면 시끌벅적, 플랜 B를 지켜도 웅성웅성,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아직 세상을 덜 살았을까 고생을 덜 했을까. 이런 젠장 그러다 다 늙어서 꼬부랑 할망구 영감탱이 되겠다. 다 모르겠고 일단 피한다. 결정했다. 기적이 뜬금없이 딴 데로 갈려다가 착오가 생겨 그가 먼저 맛을 본 거다. 기다리면서 애타고 있는, 속앓이 하는 누군가에게 괜히 미안함. 그래, 봐도 못 본 척, 알아도 모르는 것처럼, 못 볼 껄 본듯이 가만히 지나쳐서 돌아오기. 때를 기다려야 한다. 그렇게 그는 집으로 돌아왔다. 고를 수 있는 카드는 내빼는 것, 단 하나였다. 돌체 비타! 뜻이나 알고 하는 말인가. 지금 볼살 떨린 독자 있다, 옆사람 보면서 웃는 사람. 뭔 뜻인지 몰라. 알아도 금새 까먹어.
어, 여기서 잠깐 돌아갈 수 없는, 당분간은 돌아가면 안 되는 그곳에 있던 보트 옆면에는 꼬마가 낙서했는지 공장에서 나올 때 씌여졌는지 웬 서명이 있었다. 케빈! 아니 글씨를 다시 보니 알렉스 같기도 한데, 도굴꾼이나 그림 사기꾼 손을 거쳤나, 홀로그램처럼 약간 겹쳐보인다. 뭔 상표도 아니고, 뭐지? 자, 여기서 잠시 그 전에 봤던 핑크 삼지창에서 봤던 조니, 그 이름과 이게 관련이 있나? 케빈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사람들이 누가 있지. 알렉스는 또 누가 있고. 어쨌든 케빈은 12살이야. 아니야. 신출내기인지 몰라. 그것도 아니야 일반인이 분명해. 일반인 신성이야. 맞아. 왠지 조작된 이름 같은 거, 존 스미스, 그런 느낌이야. 만날 때마다 이름이 바뀌는 친구, 그런 거. 그 말이 맞는 것 같아. 여기서 나아갈 단서는 더 없다. 그냥 둘 다 이름이라는 거. 그거 말고 이 상황에 뭔 억측을 떠올리겠나. 때를 기다려야 한다. 조용히.
그 일이 있은 후 한동안 아무런 특이함과 신기함을 일상생활에서 발견할 수 없었다. 정상으로 돌아왔다. 다행이다. 더위 먹어서 헛것을 본 것인지도 모른다. 행인이 많은 길을 가다가 괜히 하늘의 구름 모양이 이상하다고 막 쳐다보면 몇몇이 같이 쳐다보게 되어 있고, 또 그 가운데서 상태가 조금 안 좋은 친구가 있다면 어 뭐다, 뭐 아니야 라고 소리치면 옆에서 웅성거리다가 참다 못한 한 아저씨가 한마디 하신다. 저런 미친 놈 쯧쯧쯧, 하면서.
이제 그는 지난 일에 대한 그때의 기억과 감각에 대한 믿음을 잃어가고 괜히 신빙성도 떨어지는 얘기였다면서 콩만한 걸 보고 카페만하다고 오해했다거나 온전히 타인의 '타인의 여자친구'를 위한 행위예술이었을 것이라고 단정지은다. 이젠 더 이상 생각도 안 난다. 양치기 소년도 아니고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도서관에 들렸다가 지역 신문을 보던 중 흥미로운 사건을 알게 된다. 도시 인근 시골 공용 운동장에서 시추기가 발견된다. 어느 시골 아저씨께서 약주를 좀 많이 드셨는지 뜬금없이 뭔 천연가스와 석유와 지하수를 찾겠다고 여기저기 시추기로 막 파고 다니다가 주민신고로 제지되었다는 내용이다. 청년시절 본인의 전성기에 분명코 최소 딱 1번은 성공하셨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일생 삽질만 하시면서 대박의 환상을 쫓으며 이일 저일 오만가지 분야를 기웃거리다 청춘을 허비해버렸기 때문에 뭔가 아쉽고 허탈하니까 늙으막에 기네스북에 등재되던, 보물을 찾던, 끝으로 왕삽질 한번 해보던, 뭔가 탐험가이자 탕아로서 족적을 남기고 성과를 얻어야겠다는 조바심에 밑도 끝도 없이 옛날 영화를 흉내낸 것으로 추론이 모아진다. 단지 장소가 틀렸을 뿐이다. 상황도 그렇지만 그래도 소원 푸셨겠다. 이쪽도 돌아이다. 돌아이 전성시대. 꼭 무슨 이상하자, 캠페인 같다.
그렇게 도서관에서 이 책, 저 책과 잡지도 보다가 그는 집으로 간다. 지금 누군가를 만난다면 그는 할 말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딱 그런 약간 의기소침하고 침울한 분위기다. 집으로 가는 길에 보게 되는 도심 속 휴가지 이벤트 현장의 길다란 물-미그럼틀 설치 현장의 대형 크레인, 이걸 뭐라 불러야 하나. 이동식 크레인이 아니라 설치형 크레인, 지금 보이는 이것보다 더 큰 것은 항만시설이나 대형공장에나 있을 법한 그런 커다란 크레인. 집으로 가다가 공사현장에서 그 큰 크레인의 줄 끝에 이동식? 설치형 간이 샤워실이 걸려 있다. 에이~ 뭐야! 별거 아니잖아. 극히 평범하게 크레인은 자기 할 일을 하고 있는 거다. 인터넷 소셜 미디어 사이트에서 특종감으로 취급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도 그 뉴스에 턱걸이로 제일 낮은 등급 소식이라도 될려면 1)해안도로에서 트럭이 도로를 이탈하여 바다에 빠지고 2)소형 크레인이 삐요삐요 하면서 도착, 그걸 끌어올리다가 힘에 부치다 부치다 크레인도 따라서 전복 3)안되겠다 싶어서 중형 크레인 장비가 도착, 곧 기다리면 상황 종료될 거에요, 그랬는데 이마저도 출력과 안착력이 딸려서 꽈당 엎어짐. 4)처음부터 이 친구가 왔어야 했는데, 늦었지만 유종의 미를 거둬야 한다, 그럴 수 있다, 안 그러면 안 된다. 사진 다 찍혔다. 동영상도 물론이다. TV 뿐만이 아니라 인터넷에서 난리난다. 지구촌 곳곳에서 사람들이 핸드폰으로 금새 보고 삽시간에 퍼진다. 대형 크레인이 도착하여 상황 끝. 이 정도는 되어야 소셜 미디어의 물결을 탈 수 있다. 그래 그 정도는 아니란 말이다. 무슨 원맨쇼도 아니고 그가 도시 괴담이자 괴도 루팡인가? 비정상적인 나이트크롤러, 엇나가는 파파라치, 액션과 스릴러와 SF와 미스테리와 판타지 장르의 영화 및 드라마에서 단역조차도 어울리지 않는다. 좋게 집에서 발 닦고 책 읽으며 규칙적인 생활을 하면서 그분이 그리고 내님이 오시기를 기다리는 게 낫다. 딱 그럴 팔짜다.
도대체 소설의 소재는 어디서 찾고 소설은 어떻게 써야 하는 것일까. 소설보다는 먹고 사는 것이 먼저인데 전자(소설)로 (떼)돈을 벌어 후자를 해결할려 하니 그게 문제다. 그는 집에서 맨날 풀만 먹으니까 화장실에서 나오면 꼭 사슴이나 소, 말의 그것 냄새가 나는 것 같다. 비자발적 채식주의? 저런~! 그분은 오시질 않고, 아아!
매일 똑같은 일과, 항상 보는 풍경, 의식주의 변화도 없고, 그분은 영영 오실 기미도 약조까지 없는 데다가 불가사의의 실종, 비밀의 단절, 흘깃 이상함과 새로움을 찾아 주변을 두리번거려도 아무 일도 아무런 색다름은 없다. 문득 땀만 삐질삐질 흘린다. 땀이, 분비물이 많은 체질인가. 그러나 이 생활이 타당하다. 있을 수 없는 일이 발생하고 계속 연타를 터트려 그걸 소설로 쓰면 썩 납득하기 곤란할 것이다. 신경을 곤두세우고 정신력을 몰두해도 그런 소설은 잘 안 읽힌다. 험담의 빌미를 제공하는 일이다. 노골적으로. 공교롭게도 그럼 그렇지, 하고서 허무주의의 실증감을 느끼는 가운데 그는 기인한 광경을 발견한다, 비로소. 블로그 소설 추종자들의 옛정이란 말인가. 아니면 또 역시나 주빈은 그가 아니란 말인가. 그렇지만 이걸로 됐다. 이거면 된 거다. 그만하면 됐다. 행복하단 말이다. 여기까지로 되고 더는 바라지 않는다. 일단은 만족!
무엇이냐 하면, 그가 일주일에 3번 운동하는 런닝 장소를 바꿔볼려고 아니나 다를까 인근 산행에 나서다 이상한 걸 본 것이다. 달리 뭘 할 수 없었다. 산행은 산행인데 약간만 더 멀리 갔다. 저번에 산에서 봤던 컨버터블, 집에서 거기까지 거리 A. 그때 본 나무 위에 카더라-식으로 자태를 뽑내며 걸터 있던 요트? 아니 보트, 집에서 그곳까지 거리 B. 이번 사건의 장소는 A + B + 알파였다. 그 정도 산길을 가보니까 수풀에 가려졌지만 보일락 말락한 샛길이 있고, 거길 따라가니 철조망이 있다. 토끼, 다람쥐, 산록 비슷한 덩치 큰 동물도 보인다. 어쩌지? 여길 넘어가면 영영 집에 돌아가지 못하는 것 아닌가? 오빠 달려? 철조망에는 팻말이 붙여져 있다. <상수원 보호 구역> 들어가면 안 된다. 벌금 얼마 뭐라뭐라. 그럼 들어가면 안 되지, 하면서 발걸음을 돌리는데 이런, 철조망이 몇 미터 가다 끝나 있다. 개구멍도 아니고 설마 이 철조망도 어디서 날아와서 하늘에서 툭 떨어진 건가? 아닌가? 그런 의심이 들 수 밖에 없다. 그렇지만 더 길을 따라 쑥 들어간다고 해서 별다른 볼거리는 나타날 것 같지는 않다. 그렇게 망설이고 있는데 저기 저만큼 숲속인데 웬 콘크리트 더미가 보이는 듯 하다. 조금만 들어갔다 돌아오자, 괜찮아, 무엇인가 보고만 오자구, 확인차 들어갔다 바로 나오자구, 하면서 들어간다. 마침내, 이윽고 그 앞에 보이는 것은,
오 마이 갓, 삐─ 삐─ 삐─!
가까이서 확인한 괴물체는 집채만한, 그건 너무 낮춰 잡은 거니까, 정밀한 감식이 불필요하게 딱 맞는 크기로 비유하자면, 비유가 맞는지 모르겠지만 큰 건물만한 테트라포트 1개가 숲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뭔 말이 안 나와. 이게, 왜, 여기, 혼자, 덜렁...... 초음파 측정기나 방사능 검사라도 필요한 건가. 아직 저번 요트 아니 보트 위치에 확인차 가보지 않았는데. 정리하면 1번 삼지창, 2번 보트, 3번 크레인에 매달린 간이 샤워실, 이건 선수교체라 치고 다시 3번 테트라포트. 1번을 보고 지나쳤다가 다시 가보니 없었어. 돌아오다가 2번 발견. 다시 시간이 지나고 2번을 재확인하지 않고 3번 목격. 피보나치 수열이야 뭐야? 복잡하네. 어렵군! 에잇 다 몰라, 전부 다 타겟은 딴 사람일 꺼야. 한 번 더 두고 보자구. 진득히 기다려 보는 거야. 쇠뿔도 단김에 빼라지만 이건 그거와 맞지 않아. 뭔가 패턴이 있을 꺼야. 아니라면 숨겨진 뭔가를 더 추적해 나가야 해. 뭐야 나 탐정? X파일의 멀더야 스컬리야? 아님 멀더 + 스컬리?
그는 내심 쫄아서 서명이고 뭐고 확인하지도 구경도 않고 달음박질쳐 집으로 돌아왔다. 다시 가택감금!
그분이 오셨던 것일까? 아니면 오시지 않은 것일까? 설마 간 보고 내빼신 건 아니냔 말이다. 그대는, 이처럼 하품 나오는 수면제 같은 소설을 읽으시면 안됩니다. 절대 안됩니다. 당신이 주인공인 소설을 사세요. 당신은 걸어다니는 소설입니다. 소설이 지금 소설을 읽고 있다구요. 소설이 소설을 써서는 곤란합니다. 이거 읽으면 IQ 팍팍 떨어져요. 이런 소설 절대 읽지 마세요. 절대. 그래······ 주실거죠?
최면은 보통 눈 감고 빠지고, 숫자를 셉니다. 뭣이여? 이번에는 숫자도 안 세고, 눈도 안 감았는데, 윙크까지 안 했는데, 어렵쇼, 눈 뜨고 당한건가? 그대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