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Blog - 56

Spafinale 2015. 9. 13. 17:13

   한동안 이 친구들은 각자 개인 활동을 하면서 자신의 인생을 사느라 서로 소원하게 지냈다. 그러다 한자리에 모이게 됐다. 뭔가 계기가 있었다. 꼭 무슨 사건이 발생해야지만 모이거나 이상하게 모였는데 어떤 기발한 체험에 빠지거나, 그런 정해진 미래나 불확정적인 우연은 있을 수 없겠지만 무언가 새로운 일이 닥쳐온다면 그때는 공교롭게도 대체로 모여있는 일이 잦았다. 마침 이 날도 그랬다.
   닉이 파티에 초대를 받았는데 만난지도 오래되었으니 같이 가보는 게 어떠냐, 나쁠 거 없다, 그래 모일까, 해서 지금 현재 일곱 명 친구들은 리무진에 모두 같이 타고 있다. 뭐는 뭐고 어째서 시간은 앞으로만 흐르며, 어떤 공통점은 왜 그렇고, 그런 이상한 얘기들 없으니까 머리도 복잡하지 않고, 한 얘기 또 했을 걱정도 없으니까 마음이 놓인다. 훨씬 낫네. 한결 좋아. 그런데 왠지 불안해. 이제 1인칭만 자연스럽게 가능하다면 딱인데, 그건 조금, 한편으로 재수없다. 그러니, 통과. 이상한 생각은 무시하고, 그러고 보니 모두 길다란 리무진을 처음 타 본다.
   「그냥 그라마에 나오는 파티 생각하면 되는 건가?」, 「파티에 초대받아 가본지도 오래 됐네.」, 「난 클럽도 안 다녀. 음악 소리가 대따 커서 귀가 멍멍한 게 한 1주일은 간다니까. 그런 데 어떻게 오래 머무르니?」, 「옷이나 구두, 얼굴 또 뭐가 있지, 잘 차려입지 않았는데 괜찮을려나?」, 「나도 초대 받긴 했는데 모임이 어떤 성격인지는 잘 모르겠어. 그냥 와인 마시고 구경 좀 하는 셈 치고 오지. 기분 전환하고 말이야. 별 일이야 있겠어?」 시작은 이랬다.
   시간은 오전, 파티치고는 꼭 회의? 비즈니스 미팅이나 조찬 약속을 떠올리게 한다. 리무진 안에서 정확히 누가 먼저 잠들고, 무슨 얘기까지 하다가 대화가 끊겼는지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정말 애매하게 모두들 스르륵 잠에 빠져들었다. 오전 시간이니까 전날의 피로는 말끔히 날아갔으니, 일의 중요도가 높거나 집약된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것은 오전에 처리하는 게 좋지만 그건 직장인들 얘기고, 이들이 맞이한 오전은 꼭 해질녁 오후처럼 나른한 기운이 감돌았기 때문에 리무진 안에서 모두 잠에 취해버렸다. 리무진에 있던 샴페인 한두 잔 때문인가 아니면 무색, 무취, 무미, 무감의 마취 가스가 쥐도 새도 모르게 내뿜어져서 그랬을지는 모르지만 일단 각자 따로따로 단꿈을 꾸고 있다. 꿈 속에서 모두 같이 행동하거나 공동 출연, 개개인 꿈의 다자적인 동기화, 시리즈를 찍을 수는 없다. 있다면 그걸 지칭하는 용어는, 해몽이다. 오 해몽이라, 어린이 시절 등교길에 오토바이 뒷좌석에서 왼발 아킬레스건이 까여본 것도 특유의 징조이자 해몽인가, 바다의 여신인 테티스의 아들이 몽중방황할 일이겠다. 또는 평론이나 연구라고 해야 할까? 평론가들을 뭐라 하는 건 아니다. 오해를 사서 좋을 게 뭐가 있나. 사전에 양해를 구하는 게 낫지. 그런 꿈의 다각적인 뒤섞임이 가능하다면 그건 최면 아니면 허구다. 이들 가운데 누군가는 짧은 시간이지만 단꿈에 빠졌을 것이다. 조심스럽게 추측해 보자면 개꿈의 내용은 이와 같다. 꿈이라고 써진 정육각형 큐브의 문을 열고 들어가니 그 안에 피라미드가 있다. 피라미드에 문이 있다. 문을 열고 피라미드에 들어간다. 시공간이 무한 확장된다. 안개와 화려한 연기가 피라미드를 채우드니 갑자기 어딘가로 이동 중인 리무진 안에 친구들과 함께 있는 당신의 정신으로 순간 이동되어 환경이 바뀐다. 리무진이 멈춘다. 리무진의 문은 바깥으로 열리는데 그와 동시에 그 문은 복제되어 안쪽으로도 동시간에 열린다. 1개 시간에 2개의 몸과 공간, 그러면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것은 기하급수적으로 확산한다. 그래, 이건 개꿈 맞다.
   그러다가 차가 멈추고 모두 잠에서 깨어나자 어느 공원의 공터에 도착해 있다. 제복과 모자를 쓴 준수한 기사 양반이 뒷문을 열어주신다. 아깝다. 영화배우 감인데. 직업에 귀천이 어딨나, 그 일을 하시면서 남을 감동시키는데 이보다 더 고귀한 일이 대체 어딨다는 말인가. 딱 됐다. 잠시 자는 동안 얼마나 멀리까지 떠나온 것인지 모르겠다. 혹시 그들이 자는 동안 그 리무진이 대형 수송기 안으로 들어가서 주차하고, 수송기가 어느 민간인 통제 구역까지 와서 그들을 내려주고, 다시 리무진이 달려서 어느 사택? 비밀 심리 연구소로 그들을 데려온 것인지 알 수 있는 것은,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물어볼 사람도 없다. 핸드폰 안테나 감도는 한 칸에서 깐닥깐닥한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리무진을 타게 된 경위가 잘 떠오르질 않는다. 하지만 모두들 함구하고 누구 하나 나서서 그 궁금함에 대해 편하게 말 한마디 꺼내 놓지 않는다. 오전 시간인데 꼭 클럽에서 밤 새고 터벅터벅 집으로 혼자 퇴근하는 기분이다. 오전인데 말이다.
   이들이 도착한 곳은 나무가 우거지고, 대문 너머로 오래되고 커다라며 비밀스런 궁전이 있을 것 같은 어떤 거대 주택의 대문 같았다. 그런데 꼭 놀이공원 매표소...처럼도 보인다. 아니 박물관 입구일까? 그것도 아니다. 마치 군사 기밀 시설이 있는 대형 군부대의 위병소를 연상케 하는 황갈색 천, 구멍이 숭숭 살짝살짝 뚫어진 천과 그물이 뭘 감싸고 있었기 때문이다. 감싸여진 그 내용물은 비상시에만 공개하는 것인가. 몰라서 묻는다. 그럼 가르쳐 주던가. 혹시 수도사나 주술사가 제작한 기관총으로 탄환으로는 옥수수 알갱이나 팥알 같은 특수 곡물을 쓰고, 서로 영혼이 바뀐 남녀 당사자에게 그걸 연발로 다다다닥 사정없이 발사하면, 뒤바뀐 그들의 영혼이 다시 제 육신을 찾아갈 가망성이 미약하지만 조금은 농후한 그런 용도의 발사 기관이란 말인가. 또 군데군데 일정 간격으로 높은 감시 탑들도 보인다. 이 안에서 어떤 파티를 한다는 것일까, 의아하지만 우선 기다려본다. A급 현장 요원을 보면 8:2 가르마와 2:8가르마, 꽁지머리, 덥수룩한 수염등 모두 뭔가 한 역할 할 듯한 위압감을 보여준다. 조니, 케빈, 알렉스, 마크, 하워드, 닉, 제임스는 일단 쫄았다. 그 가운데 누군가 어떤 기억이 떠올랐는지 오면서 도착하기 전에 밀집된 꽃농원 군락, 대평원, 초원, 골프장, 양편으로 가로수가 엄청 크고 차는 한 대도 다니지 않는 쭉 뻗은 직선 도로 그리고 아무래도 잘못 보았겠지만 비행접시를 보았다고 한다. 비행접시 음 비행접시! V자로 날아가는 철새일 수도 있다. 참고로 파티에는 여권을 지참하고 와야 한다고 해서 지금 그것 때문에 좀 까다롭고 꼼꼼하게 탐문? 신원 확인의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 이름만 파티일지는 모르지만 대형 글라이더나 수상 이착륙 비행기를 타고 내리는 경험을 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차분히 그들은 말없이 기다리고 있다. 다만 수상한 느낌이 드는 점은 이 일대의 성곽과 공원과 입문소등을 설계하고 만든 사람 가운데 현존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아무도 없을 듯한 어쩐지 어딘가 모르게 불길한 예감이 드는 것은 모두 눈빛으로만 공감하고 있다. 어쨌든 드디여 통관절차가 끝났다.
   「오래 기다리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드라큘라, 맞나? 아니 빌더버그? 스토커 경? 오 그래, 스토커 경께서 애타게 기다리고 계십니다. 정말 꼭 한 번 만나 뵙고 싶어하셨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바로 옆에서 상관으로 보이는 다른 요원이 똥그랗게 도끼눈을 뜨면서 한 손으로 입술의 자크를 잠그는 몸짓을 보여준다. 「이제 궁전에 들어가셔서 즐거운 파티를 즐기시길 바랍니다.」  성문? 큰 대문이 열리고 리무진에 내렸던 그들은 걸어서 입구를 통과하고, 커다른 나무들이 즐비한 숲을 한동안 걸어가니 앞에 노란색 스쿨버스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앞서 입구에서 이 버스를 타고 이동하라며 안내를 받았다.
   스쿨버스에 탄다. 버스 안에는 체크 무늬 옷을 입은 십여 명의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모두 외국인이고 말도 안 통해서 파티에 관한 의사소통은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게다가 무척 근엄하신 분들이신 데다가 스쿨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중간에 버스가 멈추어서 어디쯤에 그들을 내려주었다. 그들이 내린 지점에서는 왠 관광 안내원처럼 보이는 사람이 관광객처럼 보이는 사람들을 인솔하며 뭔가를 열심히 설명하고 있다. 방금 내린 체크 무늬 옷을 입은 사람들도 파티에 초대되었을 텐데 그들을 따라 내려야 했나? 그들은 드레스 코드가 체크 무늬인가, 체크 무늬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인가. 뭔가 안내가 허술한 건가 아니면 자유로운 건가? 어리둥절한 뿐이다. 그렇게 노란 스쿨버스는 계속 어딘가로 그들을 데려간다. 마침내 어딘가에 도착한다. 그들은 내린다. 버스는 왔던 길로 다시 되돌아간다. 이들이 내린 곳에는 또 다른 대문이 있다. 이제 현관이 나올 때가 됐는데, 너무 큰 집에 초대받은 거 아니야, 라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별다른 얘기를 할 수 없다.
   여기 있는 대문도 아까와 비슷한 컨셉이지만 자세히 보니 건축 기술과 양식이 조금은 차이가 있다. 이제 마지막 관문이겠지 하면서 안내처 여직원으로부터 조금 걸어가시면 된다는 얘기를 듣고 다른 건 물어보지 않고 대문을 통과했다. 그대로 길을 따라 쭉 걸어가니 왠 주택 한 채가 보인다. 집 앞에는 조그만 수영장이 있다. 집사의 집인가? 이게 별채일 리는 없는데. 도대체 얼마나 큰 저택이란 말이야, 가늠이 안되는구만. 야외 정원에 딸린 파티가 이따금 열릴 것 같은 주택의 실외 수영장, 딱 아담하게 그만한 수영장이 있고, 수영장 바닥에 청록색 복고풍 자동차가 주차되어 있다. 당연히 수영장에는 물이 채워져 있는 상태다. 수영장 안의 색깔은 청록색의 보색이다. 꼭 작품같다. 아마 그럴 것이다. 것이다? 예언은 커녕 짐작이라도 자주 하고 싶다. 아예 날 감쪽같이 속여주라, 대놓고 말하고 싶어지기 직전이다. 슬슬 인내심이 줄어들고 호기심과 탐구욕이 차오른다. 그러나 이곳은 초대받은 파티의 주무대는 아닐 것이다. 바깥으로 나돌더래도 주최자가 경연장의 주무대를 선보인 후에 슬쩍 빠지는 게 순서일 것이다. 예의지. 파티는 파티지만 일단 녹차든 커피든 뭔가를 마시고 싶지만 우선 파티장에 가야하기 때문에 아무데서나 무작정 퍼질 수는 없다. 좀 피곤하지만 그러면 안 된다. 벌써 피로하다는 뜻은 아니다. 어? 그런데 거짓말처럼 갖가지 칵테일과 물, 보드카, 과일과 빵, 커피등이 있다. 누가 미리 준비해둔 것인가. 이게 뭔 경주인가? 알 게 뭐야. 일단 목을 축인다. Kiss of the Fire 라는 칵테일, 누구 만들 줄 아는 사람 있냐고 마크가 물어보지만 모두 묵묵답답이다. 그렇게 간단히 다과를 마무리 한 채 아무래도 이곳은 그들이 찾는 파티장이 아닌 것 같아서 그곳을 나온다. 그리고 걷는다. 파티가 열리는 무도회를 찾아 떠난다. 막 걷는다. 계속 걷는다. 이대로 가면 지구라도 한 바퀴 돌 것만 같다. 드디어 꽃밭과 승마 일행, 브라스 밴드 행진단을 스쳐지나간 후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대문이었다. 옛날 왕들이 살았다는 또 지금도 현재 진행형인 그런 거대한 궁전의 대문. 좋긴 하지만 뭔 대문 박물관도 아니고 계속 대문이 나와?
   「장난하냐?」, 「장난 아닌데.」, 「어떤 장난꾸러기 작품이야?」, 「어쭈, 이것 봐라?」, 「LIKE?」, 「흥분돼?」, 「느껴?」, 「이런, 장난쳐?」, 「그런데 이 유형에서 못 빠져 나가면 어떡하지?」, 「무슨.」, 「그럴 리는 없어. 그러······겠지?」
   이 대문은 3번째 대문이다. 대문을 지키는 사람들의 수는 점차 줄어 들어 0이 되었지만 그 규모나 정교함, 외관과 양식과 깃발등은 능히 그 대문 너머에 스위트룸, 손님용 침실, 대무도회장, 중무도회장, 소무도회장, 오락실, 카페, 놀이공원, 동물원, 미술관, 극장, 직원용 침실, 사무실, 욕실, 호수, 대정원, 집무실, 착륙장, 비상 탈출구가 있을 듯한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세상 어디에서도 그 짝을 찾을 수 없을 듯하게 생긴 웅장한 인류 문화 유산으로 보존해야 할 것 같은 유물과도 같았다. 혹시 다음에 제 4차 대문이? 상식적으로 내다봐도 이건 아닌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대문을 통과해서 커다란 그늘이 있는 수풀지대를 통과하니 저 앞으로 호수가 보이고 그 호수 한 가운데 궁전이 보인다. 이거다. 겨우 찾았다!
   이걸 보여 주려고 문짝 3개를 통과해 온 것이다. 하지만 그곳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은 호수가에 있는 나무 보트 밖에 없다. 이렇게 큰 공간에 사람들은 하나도 없는데 이곳 호수 근처도 꼭 민간인 출입 금지 구역 같다. 어찌 보면 성을 보호하기 위해 그런 것인지도 몰라. 그렇다. 아무튼 그곳으로 가야만 한다. 더 잃을 것도 없고 남은 판돈 가져가 봐야 의미 없다. 올인만이 정답이다. 다른 테마 파크와 놀이 공원에 가면 이런 보트, 돈 내고 타야 한다. 영화와 드라마에서는 주인공들이나 타는 거다. 그들이 탈 나무 보트는 바이킹 배와는 또 다르게 애니메이션 <어드벤쳐 타임> 같은 만화 캐릭터가 나무로 정교히 조각되어 있다. 즉 배가 멋져!
   보트를 만진다. 탄다. 노를 젓는다. 하긴 수영해서라도 조금 힘들겠지만 갈 수 있는 거리다. 호수 한가운데 있는 성에 도착한다. 그런데 뭐야, 호수 바깥에서 보던 것과는 달리 이 성은 1:1 실측 사이즈 모형 같다. 폭샥폭샥, 푸쉭, 프악, 퍽퍽, 머리 위에 주전자를 즉시 올려놔야 할 것 같다. 성채 중간중간 있는 문도 모두 잠겨 있다. 게다가 문도 엄청 커서 넘어갈 수도 없다. 어떻게 안으로 들어갈 방법이란 전무하다. 무슨 소리도 안 들린다. 맛있는 음식 냄새도 안 난다. 그러다가 제임스가 사무실에서 프린터 기기로 빼낸 듯한 종이에 <성 뒤쪽 길을 따라 가시오!> 라는 벽에 붙여진 종이를 발견한다. 하긴 다른 방도가 없다. 이 직접적인 실마리가 아니더래도 그럴려고 결심하기 직전이다. 고급스럽게 뭘 암시하질 않고, 라면서 불만을 표출하지 않은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성 뒤편에 가보니 호수를 건너오기 전에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성과 육지는 육로로 연결되어 있다. 단지 그들이 나무배를 탄 위치에서는 보이지 않을 뿐. 그렇게 육지로 건너가는데 갑자기 미라가 발견되거나 좀비가 쫓아오는 말도 안 되는 믿을 수 없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 앞으로 보이는 것은 놀이공원이나 유럽 도시 같은 데서 볼 수 있는 도심지 도로로 다니는 열차와 미니 열차, 그것을 합한 형태의 기차가 있다. 그들은 그것을 타고 버튼을 누른다. 조작도 쉽다. 버튼 누르면 출발, 속도는 일정, 이동하는 궤적은 꼬불꼬불 나무와 탑과 정원들 사이를 지나서 간다. 그렇게 해서 그들이 도착한 곳은 사막의 끝이다. 영화 Mad Max: Fury Road (2015) 같은 데 나오는.
   「혹시 여기 버닝 맨 페스티벌 지역 아니니?」, 「잘 모르겠는데.」, 「아닌 것 같은데. 지점식으로 여러 곳에서 하긴 하지만 이런 식으로 열리지는 않아. 정말 여기가 어딘줄 모르겠어. 이런 데 처음 와봐.」, 「이곳은 뭐하는 곳일까?」, 「지구, 현재...는 맞겠지?」
   그 앞으로 정말 기궤하게 만든 이상한 차가 있다. 여간해서는 설명이 불가능한 미래에서 온 차 같다. 그걸 만지든 타보든 거기까지 간다. 갑자기 조니는 투명한 벽에 머리가 부딪히고, 제임스는 손이 또 다른 친구들도 투명 유리벽에 부딪힌다. 이런 삐─삐─삐─ 순간 아주 잠시 얼굴 표정이 뒤틀릴 뻔 했지만 코피가 나거나 눈탱이가 부은 건 아니니까 진정하고, 무슨 일인가 차분히 살펴 본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문이 보인다. 광선이 조금씩 가르쳐준다. 그럼 이건 제 4차 대문이다. 흥분하고 나불대고 뭐 그런 절차 생략한다. 모험을 많이 하면 그렇게 된다. 자, 대문 통과.
   뭔 이상한 차를 타고 사막을 달린다. 사막을 차를 타고 달려봤는가? 사막 근처에도 안 가봤다고? 그럼 낙타는 타 봤나? 낙타를 보기는 했지만 만져보지는 못했다? 사막을 차를 타고 달려보지 않았다면 말을 하지 말라, 이런 격언도 있다. 그런데 여기서부터는 직선 구간이 아니다. 곡선이 시작된다. 중간중간 구불구불 굽은 길이 나왔지만 큰 시각으로 보자면 모두 직선 구간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거의 균등하게 정확히 구부러지고 있다. 기분이 이상하다. 한참을 사막의 변두리 지역을 가로질러 가다 보니 거대하게 동남아시아풍? 아랍? 천일야화에 나오는 것 같은 대문이 보인다. 차에서 내린다. 마침내 제 5차 대문에 도착한 것이다. 이 대문은 불투명 대문이다. 대문 너머가 보이지 않는다. 사람도 없다. 표식도 없다. 문고리까지 없다. 문을 어떻게 열지? 열려라 참깨? 깡충깡충? 트랄 라 라 노래? 혹시 문 너머에는 집단 나체 향연이? 생전 처음 경험하는 온갖 도취감과 미풍, 육체의 탐닉에 따른 순수함과 청량감과 뽀얀 미인들? 빗자루를 탄 마녀가 바로 옆에서 공중에 떠 있고? 이보쇼, 꿈 깨셔! 이런, 지금 문도 못 열고 있는데 일장춘몽이라니. 여보게 황금 열쇠가 다 무엇이란 말인가. 암호가 뭐야. 꿈꾸는 건 자유니까 일단 어쩜 그럴 것이다, 라고 간주하고 진땀 흘리면서 들어갈 방도를 찾고 있는데 문이 찰칵, 하면서 열린다.
   이번 문은 자동문이다. 좋다. 아까 한 말은 농담 반 진담 반이었다. 아무쪼록 그런 일은 없기를? 그렇다고 불쑥 기도까지 할 것까지야. 비로소 제 5대문을 통과한 후 맞이하는 제 5지역이다. 뻔하다. 아마도 비행기 무덤이 나오겠지. 수십만 대의 폐 비행기들이 있는 곳. 사막을 지났으니 그런 지역이 나올 법 하다. 그게 아니라면 당연히 오아시스, 육체의 대향연이 열리고 있는 환락의 오아시스지 뭐겠나. 엉거주춤하며 둘 중 하나이겠거니 했는데 실망했다고 할까? 진짜 비행기 무덤이 있다. 오, 이런! 도리어 잘못된 건가? 실망해야 할 일인가? 비행기 한 대는 확실히 진짜다. 나머지도 진짜 같다. 그런데 수영장에서 마셨던 음료가 아무래도 자못 의심쩍다. 수영복을 입은 미녀 군단이 당신을 향해 뛰어온다. 옆에서 하는 말이 초고속 카메라로 촬영한 영상처럼 몇 분의 1초, 그렇게 느리게 들리고 보인다. 당신 얼굴도 펭귄으로 보이고, 조니 코는 코끼리, 제임스 코는 피노키오, 오 이런, 지면이 구부러진다. 미래가 보인다. 남반구에 있는 향수 제조 공장의 꽃향기가 느껴진다. 구름을 타볼까? 아까 마셨던 음료에 아무래도 뭔가 섞인 듯 하다. 그렇지만, 허나, 여기서, 여기서 다시 돌아가? 아니 될 일이다. 파티고 뭐고 다 때려쳐? 그동안 공들여 투자한 시간이 아까워서라도 그럴 순 없다. 뭐 어쩌겠나. 진짜인데!
   아까 크게 봤을 때 곡선이 시작된다고 했듯이 이 비행기 무덤이 있는 장소도 꼭 육상 트랙의 바깥 구역처럼 보인다. 더 이상 대문은 나타나지 않는다. 지금 이들이 걷고 있는지 뛰고 있는지 아니면 어디 나딩구르는 스쿠터 몇 대를 타고 돌아다니는지 모를 일이다. 멀쩡하기야 하다면야 아무래도 괜찮다. 그렇게 구부러진 방향으로 좀 더 가보니 트로이의 목마를 연상케 하는 10층 건물만한 개 인형이 보인다. 그 옆으로 느닷없이 지름 20m 쯤 되는 빨간색 야구공, 아니 잘못 봤다, 테니스공이 굴러온다. 고무 재질로 제작된 듯 하고 찰지게 탄력적으로 잘 굴러간다. 단지 개는 가짜라서 뛰어가지 못한다. 공이 지나간 후에 한숨 돌린다.
   재미난 일들이 벌어지는데 왜 사람들이 아무도 없는 것일까? 왜 없기는 그냥 없다, 이걸로 설명은 충분하다. 왜 머머 하는가, 정말 궁금해야 하는 일들은 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건 나중 생각하고 우선 현재를 살아가자, 이렇게들 생각하는 듯한 표정을 보여준다. 오늘 하루 벌어진 일들을 떠올리며 이들은 무작정 걷고 있다. 걷기, 가 좋다거나 뭔가에 도움된다는 것은 익히 아는 일이지만 작정하고 많이? 그것에 집중하여 걷는 일 또한 그리 많지 않다. 그렇게 수많은 나무와 넓은 대로, 푸르른 초원을 굉장히 커다란 육상 경기장 트랙이라 생각하면서 살짝 굽은 길에 들어서서 계속 따라가고 있다. 이건 마치 직선 주로에 접어든 중거리 육상 선수의 마음가짐이나 기분, 느낌과 그나마 가장 비슷할 듯 하다. 게다가 그 움직임의 곡선이 시계 방향인지 시계 반대 방향인지 잘 파악하지 못한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 보니 지나온 사건들이 대수롭지 않게 느껴진다. 순간 갑자기,
   전방이나 측방, 하늘 또는 약간만 높은 어느 고도에서 컨테이너가 하나 툭 땅으로 떨어진다. 쾅 하는 굉음에 놀라기도 하지만 그 소리 이전에 확연하게 어느 높은 지점에서 움직이기 시작하여 조금의 멈추는 정지 동작없이 연속 동작으로 그대로 땅에 떨어지는 잔상, 그 시각적인 환영이 계속 반복하여 뇌리에 떠오르고 있다. 믿기지 않는 일이기 때문에 서로 봤어? 봤어? 뭐야? 뭐긴 뭐야? 같은 묻거나 답하고 동의를 구하는 짧은 대화조차 나누지 못한다. 컨테이너가 2개, 3개, 10개 막 연속으로 계속 떨어진다면 어찌된 일인가 잘 파악해 볼려는 노력이라도 해볼 텐데 딱히 할 수 있는 반응은 당장, 없다. 정말 없다. 더군다나 제정신을 차리기 전에 연이어서 그랜드 피아노 3대가 연속으로 공중에서 떨어진다. 이번에도 정확히 못 본다. 하지만 그리 높지 않은 어느 만큼에서 떨어진 건 알겠다. 어떻게 갑자기 공중에 나타났지? 그들과의 거리는 좀 된다. 멀리서 보이는 것이지만 꽤 옛날에 만들어진 피아노로 하얀 건반은 상아로, 검은 건반은 흑단으로 만들어진 듯 하다. 하긴 어떤 무언가를 위해 상아 안에도 추적기가, 하늘을 날아다니는 독수리나 숲과 들판을 걷고 뛰는 곰과 물 속의 상어에게도 GPS가 붙는 세상이다. 영화에서 특수 요원이 자기 몸 속에 심어진 칩을 꺼내는 일은 또 뭔가로 업그레이드 될 것이다. 잠깐 정신을 놓은 사이에 분명 그 자리에 없었는데 트럭 1대가 붕 하면서 질주하드니 전속력으로 나무를 들이받는다. 안에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조금 높은 하늘에서 배가 30척, 탁 땅으로 떨어진다. TV 커피 광고에 나올 법한 보트이면서 어딘지 모르게 하늘을 날지 않았을까 예측하게 만드는 괴력을 지닌 이상한 배다. 그리고 골든 리트리버가 감당 못하는 태니스공 몇 박스처럼 하늘에는 배구공들이 공중 어느 지점에 고도를 일정히 유지한 채 떠 다닌다. 몇 억 개, 는 아니다. 하여튼 많다. 농구공들은 공중으로 하늘 높이 날아오른다. 축구공들은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한다. 분포도 고르다. 아름답다. 경이롭다, 는 바로 이런 때 쓰는 말일 것이다. 이 초자연적인 마술쇼를 누가 부리느냐, 왜 일어나느냐, 왜 하필 우리에게, 따위는 상상해 볼 여유가 없다. 그러나 촐싹맞게 겁먹은 것처럼 제자리에서 뛰지는 않는다. 아까 걸었다면 지금은 훨씬 빨리 걷는다. 즉 경보다. 머무를 수는 없는 일이다. 이렇게 아무 생각없이 한참을 빨리 걷다 보니 좀 흐리고 침침한 날씨였는데 하늘이 갑자기 환해진다. 슬슬 발걸음이 느려지더니 그들은 눈부시게 밝은 약간 크기가 작은, 뭔가 의심스럽지만 평소보다 덜 밝은 태양을 바라본다. 뭔가 그래야 할 것만 같다. 때마침 어두컴컴했던 먹구름이 걷힌다. 시커먼 구름 커튼이 젖혀지면서 훨씬 드높은 하늘에 해님이 나타난다. 너무 밝아서 제대로 쳐다볼 수 없다. 대놓고 정말 독한 맘 먹고 바라본다면 안구에 심각한 악영향이 끼칠 것이다. 마치 실연당한 리듬 체조 선수가 2단 평행봉 위에서 안무를 마치고 번쩍 날아서 땅에 착지할 때 무릎을 딱 펴고 지면과 접촉하는 행동처럼. 일단 먼저 봤던 태양이 가짜고 나중 것이 진짜인가? 아니면 해가 2개나 하늘에? 먼저 있던 태양이 진짜...는 아닌 것 같은데? 그럼 그게 가짜? 어떻게 이런 일이. 왜 안 돼? 오, 신이시여! 2개의 태양을 거룩히 여기옵소서. 이건 완전 뜬 구름 잡는 일이다. 하지만 진짜다. 완전!
   걷다가 빨리 걷다가, 다시 오히려 뛰지 않고 걸음이 느려진다. 평균적인 걷기 속도를 되찾았다. 이제야 진짜 걷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렇게 걷는 그들의 주변은 여전히 리무진에서 내려 성채로 들어왔던 그리고 2번째와 3번째의 대문에서 보았던 엄청나게 우거진 수풀과 초원, 평지, 꽃밭이 끝없이 펼쳐진 풍경이다. 누가 헐값에 내놓은 골프장을 냅다 인수해서 이름 모를 쇼를 벌이는 것 같지는 않다. 그들은 정신이 몽롱하고 그저 계속 걷고 있다. 그렇게 대략 30분쯤 더 나아가니 그들의 앞에는 폐허로 변한 도시가 보인다. 몇백 년, 몇천 년 미래에 핵전쟁이 벌어져서 도시가 엉망진창이 되면 이럴 것이다, 라는 설정으로 영화에서 많이 봤던 무대. 해수면이 엄청나게 올라간다면, 커다란 괴행성이 지구와 부딪힌다면, 빙하기가 되찾아 오면 혹시, 지구 내핵이 변이를 일으키거나 지구 자기장이 심각하게 틀어져서 어떤 대혼란이 찾아왔을 때 이럴  것이다, 라고 예상해 볼 수 있는 모습, 딱 그것이다. 그런데 화면이 아니라 실제 상황이다. 건물은 모두 망가지고 낡고 1800년대 후반에 부서진 다리처럼 대교도 휘어져 있고, 모래 언덕에 도심지 일부가 물에 잠겨있고 일부는 사막화가 진행되는 장면, 정확히 그것이다. 그런데 특이하게 뉴스에서 봤던 빈민이나 난민을 위해 도로변에 놓여진 음료수와 바나나, 즉석 식품들이 보인다. 혹시 이게 진짜일까? 설마 그럴 리는 없겠지. 그렇다고 가짜일 리도 없다. 그럼 아마도 영화 촬영장? 적당히 컴퓨터 그래픽으로 처리할 것이지 이렇게 생-난리를 칠 수는 없다. 의미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남은 선택지는 하나, 서바이벌 게임? 그게 맞다면 음 아무래도 게임이 아니라 진짜 생존이 문제일 것 같다. 아니? 예술의 영감을 수없이 전파할려나, 또 모른다. 뭔가 예상치 못한 여러가지 일들이 있을 것 같다. 그렇게 인근 1km 정도를 탐색하고 있던 중에 완연한, 득의만만한, 완벽한 안심의 징후를 느낄 수 있는 노란색 스쿨버스 1대가 그들에게 다가오고 있다. 그럼 그렇지, 누군가에 의해서 갑자기 그들이 미래 세상에 덥썩 내던져진 것은 아니었다. 이제 알았다. 휴, 하면서 한숨을 몰아쉰다. 스쿨버스가 그들 앞에 멈춘다. 문이 열린다. 열릴려다가 다시 닫힌다. 문이 삐그덕거리는 게 좀 상태가 안 좋은 것 같다. 다시 열린다. 이번에는 확실히 열렸다. 스쿨버스의 운전사 아저씨는 외국인 같다. 그런데 딱 어느 계열인지 상당히 추측하기 어려운 얼굴이다. 혼혈도 이런 혼혈은 처음 보는 듯 하다. 그런데 이분이 하얀 종이 한 장을 들어올린다. 그 종이에는 이렇게 씌여있다. <이 차는 파티장으로 갑니다. 반갑습니다. 환영합니다.> 이게 다다. 꼭 청렴한 해외 여행 상품의 현지 안내자가 공항에서 맞이할 여행객을 위해 들고 있는 표식같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파티장까지만 가면 된다. 목적은 그것이지 않는가. 그들은 차에 탄다. 운전하시는 아저씨에게 얼마나 가야 할까요, 이 곳은 어디인가요, 이 성곽에 대해 아시는 것이 있나요, 이 지역은 대체 뭐하는 데에요, 여긴 언제부터 이랬어요, 라고 물어봤지만 들었는지 안 들었는지 들을 수 있는지 없는지, 아무 답변없이 때때로 그들을 향해 얼굴을 돌리면서 살짝 미소만 건네신다. 이분 모나리자야? 아니 남잔데. 원래 이 일을 담당하시는 분이 아니라 급히 투입된 땜빵이거나 진짜 운전기사를 매수했거나 때려눕혀서 잠시 기절하게 만들고 무대포로 (나는 당신들을 데리러온) 저승사자다, 그럴 것만 같은 기묘한 낌새가 엿보인다. 그러나 저러나 스쿨버스는 파티장으로 가고 있다. 버스가 파티장에 도착하기 전에 하나 특이한 풍경이 있었다면 그것은 어느 건설 중인 도심지를 지나쳤다는 거다. 힘차게 부지런히 마구 대폭적으로 만들어지는 신도시 건설 현장, 딱 심시티 게임을 연상시키는 경치가 꽤 인상깊었다. 폐허로 변한 도시와 건설중인 신도시, 무슨 관련이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참으로 희한한 대조 때문에 몹시 가슴이 울렁거려 약간 토할 것 같은 속쓰림과 오랜 등산으로 높은 산의 정상에 올랐을 때의 희열감 또한 사르르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 같았다. 뭐 어쨌든 그들은 파티장에 도착했다. 스쿨버스에서 내린다. 상황이 이렇게 되고 보니 두번째가 아니라 첫번째 운전기사 아저씨가 살짝 뭔가 숨기고 있었다는 데 중론이 모인다. 그분과는 헤어졌으니 따져 물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데,
   뭐야 이거? 이런 환장할! 이곳은 앞서 제 2차 대문을 통과해서 잠시 쉬어갔던 수영장이 딸린 저택, 수영장 바닥에 복고풍 차가 잠수해 있는 그곳이었다. 다만 틀린 그림 찾기를 하자면 아까는 물 즉 수영장 바닥은 선홍색에 쿠페가 청록색이었다면 지금은 쿠페는 본홍색이고 수영장은 하늘색이란 거다. 자동차도 전에는 복고풍 옛날 차였는데 지금은 약간 클래식한 모습의 콘셉트카로 바뀌어 있다. 혹시 이와 똑같은 모양의 주택이 몇백, 몇천 채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것과 이것이 같다고 봐야 한다. 안 그러면 미쳐버릴 것이다. 처음에 잘못 봤던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거기와 여기가 다른 장소는 아니다. 이 전체 지역이 거대한 나사 못처럼 회전하는 거도 아닐 테고, 각 구역이 따로따로 움직이는 것도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해는 기울고 있다. 벌써 하루가 가고 있다. 어느새 하루 다 간다. 정말 힘든 하루였다. 파티 즐기기도 전에 힘 빼버렸다. 일단 에너지 음료 마시고 파티를 시작해야겠다. 이미 파티는 시작되었는지 안에서는 음악소리와 외침소리가 들린다. 이제야 안심이 된다. 기나 긴 고생 끝에 다다른 짧은 행복도 행복은 행복이다. 이제부터 즐기면 된다. 기나 긴 고생에 인생이 겹쳐지면, 나는 불행했다, 같은 묘비명이나 자서전 뒷 얘기와 비사가 떠오르면서 기분 이상해진다. 또한 시대를 풍미한 예술가의 인생은 파란만장했으며 끝으로 그는 불행했다, 라고 한다면 최상층의 고급 유머다. 개패, 내가 개를 왜 패? 싼타페, 내가 산타를 왜 패? 와는 다르게 번역하고 통역해도 허공으로 흩어져버리지 않는 농담. 그래서 글보다는 말에 1차적 유머가 더 많이 쓰일 것이다. 그러니 때로는 부장님식 재담을 힘껏 참을 것! 그래서 정확히 말하자면 그 재주가 부족함을 다행으로 여길 것! 그러나 오히려 카사노바가 갖추어야 할 제 1단계 기본 덕목이 부족함에 절망할 것! 그건 그렇고 향연에서 주의할 점이 한 가지 있다면 약간 에너지가 줄어들었으니 독한 술로 시작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또 한 가지 더한다면 손바닥만한 천으로 만든 것 같은 검정색 숏 원피스나 빨간색 롱 드레스를 입은 향기로운 여인의 유혹을 조심해야 하는 몸가짐일 것이다. 초반에만!
   어느덧 조니와 케빈과 알렉스와 마크와 하워드와 닉과 제임스는 파티장에 들어가서 파티 분위기에 한껏 게다가 흠뻑 젖어 있다. 어느 정도 긴장감이 무르익고, 동향도 파악했으며, 먹이를 물색하고 접근할 대상의 우선 순위까지 정해질 즈음 누군가 좌중을 휘어잡는 우렁찬 목소리를 뽐내며 언사의 지휘봉을 휘두른다.
   「여러분,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정말 애타게 꾹 참고 이 시간을 기다리셨군요. 얄미우리만치 잘 참으셨어요. 마음 속으로 정중한 경의를 표합니다. 저기 계시는 아리따운 숙녀분, 볼이 빨개지셨군요. 저기 뒤돌아서서 밀애를 즐기시는 아가씨는 스커트 뒤 자크가 고장난 것 같군요. 아차 방금 환하게 웃으시면서 어느 남자분께 눈짓을 보내시는 여주인공의 스타킹 올이 나갔군요.... 드디여 오늘의 메인 이벤트! 그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여기 계신 세계 곳곳에서 눈부신 활약을 하고 계시는 마술사 분들을 위해 또 그분들의 이혼녀? 아니 약혼녀를 위하여 마술사를 위한 마술, 공주를 기뻐하게 만드는 마술, 초과학적인 마술을 선보여드릴 시간입니다. 이렇게 말만 해놓고 막바지 파티 인사말로 끝낸다거나 은근슬쩍 노래 몇 곡으로 때울려고 한다면 여러분의 그 억울한 마음은 도대체 누가 위로해 줄까요? 제가요? 정중히 사양하겠습니다. 아니면 뭐 음성이 고운 텔레마케팅 직원이? 그것도 아니겠죠. 그럼요. 뒷감당은 어떻게 하라구요? 그 누가 책임지겠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에~이, 후훗~. 자, 여기서 인사말을 줄이고 여러분께 신비스러운 요술쟁이를 소개하겠습니다. 아차, 이 분은 그냥 그렇게 불린답니다. 요술쟁이라고. 다른 곳에서는 A네 B네 C네 하면서 장황한 애칭, 그것도 핵심을 콕 찝은 별명을 붙인다지만 그건 모두 2인자를 위한 칭호들이죠. 이 시대의 진정한 요술을, 자, 부정할 수 없는 환상을 펼쳐주실 요술쟁이를 여러분께 소개하겠습니다. 자, 나와주시죠. 요-술-쟁-이~. 신사 숙녀 여러분, 우뢰와 같은 박수로 그분을 맞이해 주시길 바랍니다.」
   요술쟁이가 나타난다. 그는 잠시 무대에서 조명에 적응하는 시간을 가진다. 아주 여유가 넘친다. 이것만 봐도 베테랑이 확실하다.
   「안녕하세요. 제가 준비해 온 요술은 따로 없습니다. 실망하셨나요? 아직 고개를 떨구거나 얼굴을 찡그리기엔 이른 시각입니다. 유명한 교수도 일부 그런다지 않습니까. 수업에 들어와서 강의는 하지 않고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한다는 말이, 자 질문하세요!, 이렇게요. 학문에 정통하고 학문의 인접 영역과 그 이웃의 지식까지 자신 있으니까 뭐든 물어보라는 강의법이죠. 물론 훌륭해요. 그러나 그건 학습이고 이건 마술입니다. 자, 무엇이 있을까요. 순간 이동? 그거 어떨까요? 중력을 거슬러서 제가 저 천장을 걸어가 볼까요? 음 사람의 몸통을 분리하는 신체 절단 마술, 식상하죠. 심지어 사고 위험까지 있어요. 게다가 논란의 여지는 다분하고, 진짜다 가짜다 말이 많을 수 밖에 없죠. 카드 마술, 변신, 시간 여행, 무서운 마술 뭐 많죠. 그럼요. 그렇다면 말이죠, 제가 무얼할지 딱 정하지 않았으니 여러분께 신청을 받아 보면 어떨까요? 앵무새를 허공에서 데려올 수도 있습니다만 그건 왠지 오늘 제가 땡기지가 않는군요. 예? 뭐라구요? ······ (노련한 프로라서 적당히 뜸을 들인다) 빨가벗고 마술을 하라구요? 순전 구라고 뻥에 속임수라서 하나도 못 믿으시겠다구요? 예, 예, 압니다, 안다구요, 잘 압니다. 그럼요 저도 처음엔 그랬거든요. 딱 여러분이 계신 자리에 제가 있을 때, 여러분과 똑같았어요. 어, 음, 카드로 만든 집은 어떨까요? 카드로 집이 만들어졌다가 신호를 보내면 모두 땅에 떨어지는 마술요. 아 오늘 카드를 안 가져왔군요. 그리고 공중부양...은 저도 손 땐지 오래됐습니다. 차라리 까놓고 이거다, 하면서 빛나는 요술 구슬을 그냥 속시원하게 보여드릴까요? 자잘한 거 모두 빼버리고 큰 거 딱 하나로 모두 정리해 버리면 어때요? 생명수? 탄산음료 마시고 싶네요. 음 또 뭐가 있죠? 엔간히 물어보고 딱부러지게 확실한 거 보여주라고요? 맞습니다. 저도 그러고 싶습니다. 제가 원래는 굉장히 말을 못했습니다. 그러나 마술을 배우고 나서는 어눌한 말투에서 어느 날 갑자기 능변으로 돌변했답니다. 사실 오늘 제가 분신처럼 들고 다니는 마술봉을 가지고 오지 않아 무척 불안하고 실수 연발에, 아 저는 미래가 조금 보이거든요, 예견 분야에도 잠깐 있었지요, 오늘 굉장히 뭔가 감이 안 좋고 몸살 기운이 있어서 실은 무대에 서지 않으려고 했답니다. 이제 후진들에게 자리를 비켜주어야 할 시기일 수도 있죠. 정말요. 하나 고백하자면 진짜 솔직히 말씀드리는 건데 프로의 길에 접어든 이후로 저는 오로지 몇-톤-급 크루즈선에서만 마술 인생을 살아왔기 때문에 이렇게 지상에서 펼쳐지는 마술엔 자신이 없습니다. 사실이 그러한데 어쩌겠습니다. 요즘은 눈속임으로 사람의 마음을 얻기가 쉽지 않죠. 그건 오래가지 않습니다. 장점을 부각시켜야죠. 그래요, 인정합니다. 내르막길이라는 걸. 그러면서 복장에는 또 어찌나 민감한지, 제가 생각해도 진정한 명인이 되려면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유명인으로 대접받긴 합니다만 어쩔 수 없게도 미안한 마음을 감출 수는 없죠. 전문 조명 예술가도 항상 붙어다니고, 제 까탈스러운 성질머리 때문에 조수도 오래 버티기 힘들죠. 아 1차 조수의 조수 말입니다. 곧 2차 조수가 그렇다는 거죠. 게다가 유리세정제도 해마다 트럭으로 써대는 통에 그 회사 우선주까지 이미 챙겨두었죠. 나이는 들고, 벌어놓은 돈은 상당히 탕진하고, 실력은 예전같지 않고, 한마디로 환장할 노릇이죠. 저는, 음, 디 어메이징 랜디, 마술계에서 알아주는 20세기의 중요한 마술사 중 한 명인 제임스 랜디, 그의 정통 수제자라고 사칭하는 어느 사기꾼에게 거액을 사기당했답니다. 챙피한 일인데 엄밀한 사실에 한때 뉴스에도 나왔어요. 인생을 헛 산 거 같아요. 마술을 할 줄 알지만, 대중을 감동시키지만 뒤에서는 사기나 당하고, 애처롭고 때론 혼자 운답니다. 사랑 얘기까지 하면 진상부릴 위험이 있으니 자중하리다. 오늘 이거~ 마술쇼는 안 하고, 넋두리만 무진장 늘어놓고 갈 꺼 같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제가 존경하는 단 한 명의 진정한 마술사, 믿거나 말거나지만 요즘 잘 나가시는 마술사 듀오인 베리와 스튜어트, 그들이 아직도 이분께 비밀 강습을 받고 있다는군요. 여러 마술 볼 필요없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큰 거 하나, 딱, 확, 쏴, 끝, 지존! 이게 환상이다, 이게 당신이 원하는 거다, 막 이렇게, 그분은, 그대의 가슴을 쥐었다 폈다 마음껏 요리하실 것입니다. 장담하겠습니다. 보장할께요. 자 그분, 그분이 이곳에 오셨습니다. 지금 즉시 그분을 여러분께 소개하겠습니다. 참고로 이분은 염력술사 입니다. 이 시대 마술계의 명맥을 잇고 있는 진정한 단 한명의 염력술사, 그분이 나오시겠습니다. 자, 여러분, 박─수, 그분을 환영해주시길 바랍니다!」 본격 메인 이벤트를 위한 희구와 촉망감을 고조시키는 바로 그것에 대중이 취해버렸나 보다.
   흔한 말로 우뢰와 같은 박수, 웃음, 기대 그리고 마술이 실패로 끝나면 어쩌나 하는 조마조마한 걱정의 풍선과 보이지 않는 콩닥거림의 물방울이 파티장을 떠다니고 있다. 마침내 그분이 무대에 올라오셨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저는 염력술사입니다. (박수), (박수) 오늘 제가 보여드릴 마술은 다름 아니라 바로 저 하늘의 달,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의 도플갱어, 다이아나의 쌍둥이 자매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역시 진정한 고수라 말이 짧다. 아마도 조수가 민첩한 손놀림과 황급한 몸놀림의 절묘한 조합으로 음악을 틀었을 것이다. 빈센초 벨리니의 오페라 노르마에서 정결한 여신! 그 음악이 나온다. 와 분위기 끝장이다. 마술만 그들을 실망시키지 않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꽤나 다행일 것이다. 음악과 함께 서투르게 바로바로 마술을 보여주지 않고 염력술사는 시어 한두 마디, 농담과 명언을 곁들여서 이 마술은 절대 속임수는 아니지만 굉장히 간결하게 시작되어 간단하게 정점을 찍고 천둥 소리와 함께 끝날 것이라고 마음껏 청중의 혼을 빼놓아버린다. 끝으로,
   「자, 여러분. 오래기다리셨습니다. 모두 저기 저 창문의 달님을 바라 봐 주세요.」 라고 힘껏 외친다. 그리고 모두는 그곳을 그윽히 바라다 본다. 그리고 창문 밖에는,
   먼저 있던 월광 옆에 또 하나의 달나라가 생겼다, 거짓말처럼!
   말도 안 돼! 믿을 수 없어.
   와!
   달이 둥글면 이지러지고 그릇이 차면 넘친다고 했나? 딱히 알맞는 속담은 아니지만 어떻게 이리도 상황과 여건이 이렇게 놀랍고, 이다지도 감동적이며, 이미 어딘가에는 비슷한 게 있을 테지만 이리도 발랄하게 적시적소에 써 먹을 수 있단 말인가. 오! 아름답도다. 이게 바로 낭만이로다. 현실에서의 드라마다. 이것이다. 뭔지는 몰라도 바로 이것이다. 아아, 아름다워라! 어여뻐, 멋져! 적어도 한두 명쯤은 눈가에 눈물 한 방울이 맺힐려다 그 짧은 순간에 마르거나 증발하거나 마술로 감추어버렸을 것이다. 깜빡 속아서 누구도 절대 눈치채지 못하도록. 난 마술사나 관중 이전에 마초야, 라면서.
   분위기가 뭔가 사이키델릭? 전위적? 몽환적이고 마술사에 대한 뭔가 못 믿을 구석이 남겨진 신뢰감으로 파티장은 압도된다. 모두들 완전 이상한 요술에 심취했다. 그러고 보니 이 집의 대문에는 보통의 주택과 달리 현판이 달려있었다. <로스웰>이라고. 뭔가 아른거리고 수상하지만 딱히 따지고 들어가거나 파티의 흥을 깨며 찬물을 끼얹을 수는 없으니, 우리는 수영장으로 가서 한 잔 더 하는 게 어떠니, 라면서 그들은 밖으로 나가 수영장 옆 소파에서 하늘에 떠 있는 2개의 달을 보며 술을 마시게 됐다.
   마침 날개 달린 아기 천사가 수영장을 향해 시원스레 누던 오줌을 멈춘다. 꼭 유명한 관광지에 가보지 않았더래도 누구나 평범한 분수대에서 또 TV에서 흔히 봤을 그분, 그리고 그분의 음, 쉬, 쉿! 조니가 그쪽으로 걸어가드니 무심코 그분의 고추를 만진다. 아기 천사 동상의 안색이 금세 붉어지는 것 같다. 또한 그분의 카이엔이 성큼 태동을 일으킬 것 같드니 정작 변화를 보인 것은 수영장이다. 수영장의 물이 급속도로 빠지고 있다. 그것이 이 용도의 버튼이었나 보다. 수영장 물이 모두 빠지니 화사한 색상의 컨셉트 모델 쿠페 1대가 제 모습을 드러낸다. 클래식 자동차로도 보이고 시장에 선보이지 않은 모델 같기도 하다. 모두들 와, 오, 우, 헉, 아, 감탄사를 내뱉는다.
   특수 버튼을 만드는 데 무슨 불경스러움이 문제되겠나! 나, 특수 버튼, 여기 있소, 대놓고 광고라도 하란 말인가? 어?
   괜히 앞서가거나 다가오라는 신호를 1년 후에도 눈치채지 못하는 부잡한 '네게 줄 수 있는 건 오직 사랑뿐'형 사나이를 위하여, 그리고 식탐을 탐구욕으로 해소하며, 빠져들고 싶어 안달나서 미남을 보면 매사 옴짝달싹 못하는, 그와 말 한마디라도 나누게 된다면 그분을 마주 보면서 두 눈을 13시 쯤의 방향을 불쑥 쳐다보는(왼손잡이는 11시 방향일까?) 귀여움이라도 보여야지만 비로소 안도하면서 애정운에 대한 관심의 끈을 한시도 놓지 않는 '사랑밖엔 난 몰라'꽈 아가씨라면, 문득 호기심에 그럴 수 있으니까, 간혹 충분히 그럴만 할 테니까, 쓰다듬는 방향이 강아지나 고양이에게 행하는 그것과 비슷하면서 강도와 또 뭔가 섬세한 추가 사항은 당연히 마법의 주문, 열려라 참깨에 포함되어 있겠지, 라는 것쯤을 예상하는 건 식은 죽 먹기다. 대충 만지자마자 사태가 벌어지면 음 그렇다. 곧이어,
   하워드는 엉덩이가 근질근질했는지 아기 천사 건너편에 있는 어느 여신상, 제우스의 일곱 부인 중 한 명인지 또는 헤라인지 아테나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어느 고혹적인 여신, 그분의 유두? 젖꼭지를 쓰다듬는다. 바로 하워드가. 눈빛도 심상치 않다. 뭔가에 홀린 것 같다. 어쩜 심각한 듯 하다. 오른손은 여신의(여신 자신의) 왼쪽 가슴, 하워드의 왼손은 그녀의 오른쪽 가슴을, 즉 그 동상을 당신이라고 가정했을 때 두 손을 X자로 교차해서 나의? 너의 나신을 감추는 몸짓에 기반한, 나름 생각해서 행동한 절도 있는 움직임이었다. 이 동작을 우연치 않게, 자기도 모르게 하워드가 딱 한 번에 그것도 막 심하게 격정적으로 단박에 헤치우는 바람에 직사각형 수영장의 긴 변, 그 면의 8:2 곧 상단 20%를 제외한 나머지 영역이 드르륵 열리고, 그 안쪽으로 조명과 도로가 드러난다. 그 안쪽으로 바로 눈에 보이는 차가 3대 있다. 그것은 1.벤틀리 벤테이가  2.롤스로이스 던  3.포르쉐 파나메라. 열려진 입구에 제일 먼저 걸어가 서 있는 마크의 스웨터가 유난히 돋보인다. 글씨가 씌여진 옷이라서 그렇다. 뒷모습에. 이런 글씨가. FOLLOW ME!
   이런 삐─삐─삐─! 허걱, 놀랍다. 신기해. 이럴 수가. 미쳤어. 와우. 장난 아니다. 끝장! 이것도 멋지지만 이게 끝일까? 아는 사람은 없다. 차 너머로는 조명이 끝없이 펼쳐져 있고, 터널이 쭉 뚫려 있다. 보통 대도시에서 공항 가는 길에 만날 수 있는 일반적인 모양이다. 도대체 이거 뭐지? 저 길을 따라 가면 어디가 나올까? 그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새로운 세상이?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까? 아득하고 궁금하고 신기하다. 갈까? 말까? 일수불퇴, 낙장불입.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 전진한다. 가야한다. 가자. 가겠다. 저승사자를 만난다 할지라도. 만약 만난다면 안녕하고 성큼 되돌아올 것이다. 만나면 안 된다. 곧바로 이들은 정말 무미건조한 로보트처럼 3대의 자동차에 나누어 탄다. 자연스럽게. 당연한 듯이. 넋이 나간 것 같다. 자동차들은 시동을 바로 걸 수 있는 상태고 에너지도 가득 차 있다. 앞뒤 안 보고 눈빛만으로 결의하고 즉시 출발한다. 고고!
   경주마를 채찍질하여 애마의 주력을 풍성히 풀어놓고 싶지만 그들은 그럴 수 없다. 속도를 낼 수 없는 이유는 터널 내부에 가끔씩 휘황찬란한 벽화가 간혹 보이기 때문이다. 유명한 궁전이나 멋진 대성당 내부에 보면 옆과 위와 바닥에 그려진 그림들 있지 않은가. 바로 그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길다란 창문이 어쩌다 한 번씩 나와서 바깥의 숲이나 강을 보여준다. 완전 처음 만나는 자유, 신세계다.
   한참을 그들은 달린다. 시간을 짐작할 수 없는 채로. 꾸준히 길을 가고 있는데 속도를 줄이라거나 안녕이라는 말은 하지마, 안녕이라고 말하지마, 안녕 나의 사랑, 잘가요 내 사랑, 이제 보내줄께요, 안녕이란 말 대신, Goodbye Yellow Brick Road, 같은 표지판들이 보이면서 가로등이 강렬해지고 어떤 알 수 없는 방법에 의해 반강제적인 특수한 방법으로 차의 속도가 줄어들기 시작한다. 점점, 점점, 점점.
   한편 장면을 전환해 보면 이곳은 사막 한 켠에 있는 스타벅 카페다. 고전소설과 알파벳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면 또 아동이라면, 그것이 그건가? S 한 글자만 안 붙어도 갸우뚱 할 수 있다. 물론 의뭉스러움은 끝내 표출하지 않을 수도 있고. 이곳은 바깥이 사막이고, 안은 보통의 카페다. 적당한 소음과 음악과 사람들, 또 커다란 그림이 하나 있다. 완전 대작이다. 카페 한 면을 다 차지한다. 이 그림은 이 카페와 비슷한 찾집의 내부 풍경을 보여준다. 그림 안에, 카페가 있고, 카페 안에, 그림이 많이 있다. 최종적인 그것은 터널 그림도 있고, 레이싱 게임의 다양한 모드도 있고, 해변 도로 질주, 다리 위 컨버터블등 모두 시점이 자동차 운전자 시점이면서 자동차 앞유리 바깥 틀이나 계기판은 안 보이고 모두 깔끔하게 1인칭 운전자 시점이다. 고로 그것은 실존과 공상의 괴리감을 잠재적으로 줄여 나간다. 때문에 그로써 창문이자 그림이 모두 탈출구라는 반에 반쯤 성공한 환각을 불러일으킨다. 앞유리 틀과 계기판이 보인다면 그건 1인칭 보다 전지적 시점에 가까울 것이다. 소설에 쓰이는 나는, 내가, 나의, 는 1인칭 주인공 시점이라고 통상 부른다. 하지만 그건 레이싱 게임의 좌석에 앉아 운전대를 잡고 앞쪽에 있는 선풍기를 틀어놓고 운전할 때의 화면 양식 3번인 1인칭 관찰자 시점과 비슷할 수도 있다. 사격 게임의 3인칭 관찰자 시점도 같은 얘기다. 정리하면, 사막의 카페 > 그림 1점 > 그림 내용 > 카페 내부 풍경 > 카페에는 그림이 여러 점 진열됨 > 제일 크고 멋지며 주목할 만한 그림은 터널 내부를 지나는 차의 1인칭 운전자 시점 > 그것과 양대산맥, 용호상박으로 쌍벽을 이루는 그림은 카페에서 그림을 보는 사람을 향해 정면으로 달려오는 자동차, 그것도 컨버터블, 딱 만화나 로맨틱 코메디 액션 영화 캐릭터! 정리하면 이것이다. 딱히 복잡한 내용은 아니지만 쉬우면서도 퍽 어려워 보인다. 말만 길었다. 아무튼 그렇다. 딱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그런데 바로 이것이 커다란 화근이자 잠재적인 나이트 클럽 사장이었다. 결과적으로!
   (그림이 아닌, 바그다드) 카페 내부에서 그 유화를 볼 때는 단순한 그림이고, 액자가 걸린 벽면 뒤로는 조니, 케빈, 알렉스, 마크, 하워드, 닉, 제임스가 타서 신나게 달리고 있는 슈퍼카 3대의 주무대인 터널 내부가 존재한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큰 그림 하나를 경계로 현실과 이상이 교묘히 맞닫아 있다. 꿈, 벽, 생시. 바꾸어 카페와 그림과 미몽.
   안녕이라고 말하지마! 라는 표지판을 마지막으로 터널이 끝났다.
   우광쾅쾅쾅!
   천둥 소리, 완전 번쩍 번쩍, 난리와 먼지와 혼돈.
   쿠르릉 쿵쿵!
   액자가 걸려진 카페의 한 벽면, 카페 내부 정경이 그려진 그림, 그것과 맞붙어 있는 벽면이 무너진다. 무너졌다. 난리났다. 현실과 이상이 만난 것인가?
   그림에서 차가 튀어나왔다는 환상, 이 아닌 실제 사건의 구현이 카페 손님들에게 바로 코 앞에서 벌어졌다. 벽면이 무너지고, <벤테이가─던─파나메라>가 이어서 나오더니 사막을 향해 전면 노출된 카페의 바깥으로 나아간다. 카페 설계와 그림 위치는 사람이 안 다치게 미리미리 설정되어 있었다. 카페에 있던 사람 가운데 점원 일부와 단골 손님 1명, 곧 그 그림을 익히 봐서 잘 아는 사람 그리고 7인의 전사 가운데는 조수석에 탔던 1명이(지금 그 이름을 밝힐 수는 없다) 바로 그, 그 현상을 체험하게 된다. (간드러진? 표현으로) 의식의 팽창&딱딱! 혹시나 그분이 여자라면 무의식적 흥분? 이건 어디까지나 야릇하거나 성적인 전개와 내용이 아니라 언제까지나 신체 과학, 의학, 성별 특징, 생물학, 단지 그것일 뿐이다. 남자는 뭐가 뭔지 잘 모를 것이다. 여자는 웃고 있다. 완전 빵긋! 원리는 불분명하다. 남자에겐 어른이 되어서도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다. 그러나 너무나도 아는 게 많으니까 모른 일을 발견했을 때의 약소하지만 환희, 결코 무시해 버릴 수 없다. 인생은 어렵다. 세상은, 온통, 미스테리, 투성이다.
   생애를 통틀어 수상 기회가 단 1회 곧 데뷔 연도 뿐이라는 신인상의 성품과 닮은 파격적인 한시적 행위 예술, 단발성 플래시몹의 시기가 임박했다면 원래는 카페 벽면에 걸린 그림은 1인칭 운전자 역시점으로만 그림 내용 전체가 채워질 텐데 쌩둥맞게 이 친구들에게 잭팟이 안겨졌다. 즉 얘들이 아니었다면 언젠가 미래에, 미리 정해져 있는 당첨자가 미리 그림을 바꿔치기 했을 것이다. 하지만, 따라서 죽 쑤어 개 준 꼴이 되어 버린 거다. 만에 하나, 이와 같은 연출을 의도로 기획하지 않았다면 이걸 '깜짝 행운상' 이라고 불러야 하나, 난 잘 모르겠다.
   하여간 이건 완전 대형 사고다. 그러면서 또 사고는 아닌 듯 하다. 왠지 작품이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 이걸 그렇게 불러도 된다면. 아마도, 욕 먹을 것 같다. 아슬아슬. 사고가 대형인지 토막 기사에 불과한지는 뭔가 모호하지만 7명 친구들은 일단 달린다. 오늘도 달린다. 항상 달린다. 오빠 달려. 나중에 걷고 싶어질 만큼, 쉬고 싶도록. 운명이다. 숙명이란 말이다. 타고 났다. 빠져 들었다. 헤어나올 수 없다. 시간은 앞으로 간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남자는 부풀리고 여자는 축소하고, 이건 아니다, 취소. 어차피 일은 터졌다.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 타임머신이 발명될 그날까지. 그것이 만들어져 시판되어도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치기 전까지. 시간은 차근차근 뚜벅뚜벅 앞으로 걸어만 간다. 바닥은 모래다. 사막이다. 하늘엔 태양. 모래 언덕으로 달려간다. 붕붕, 붕붕. 더 빠른 속도로 언덕 너머를 향해 도약. 모래 둔덕을 넘어가니, 넘어가니, 넘어가니,
   아-뿔-사!
   사막 자동차 랠리가 진행중이다. 얼떨결에 참가한다. 연습과 준비와 심사와 예선 모두 날려버리고 바로 즉시 본선이다. 와우! 그런데 이건 토끼와 거북이 경주 동화를 떠올리게 한다. 완전 똑같다. 그들 1호, 2호, 3호 차는 완전 천천히 길을 따라서만 갔는데 앞서 갔던 차들이 모두 고장이나 사고나 길을 잘못 들어서 이 친구들 7명이 탄 3대의 차량이 나란히 사이좋게, 오손도손 1등, 2등, 3등으로 골인한다. 그러나 나중 주최측에서 기록만 비공인 처리하고 적당히 경기 끝낼려다가 뒤늦게 들어온 진짜 선수들 때문인지 이 친구들에게는 메달 박탈에 출전 정지 처분만 내려진다. 벌금은 면했다. 언제 출전 자격을 따기라도 했던가? 시상대에는 올라갔다. 샴페인도 터트렸다. TV에서 많이 봤다, 어떻게 하드라. 그러므로 거의 똑같이 따라했다. 아니다. 완전 더 오바했지. 혹여나 청중에게 거북함을 유발하고, 어쩌면 민폐 제대로 끼쳤을 것 같다. 그렇지만, 기분 완전 째졌다. 대박! 
   이제 그만 모험을 끝내고 차를 돌려주기 위해 그 수영장이 딸린 저택을 찾아 헤매기로 한다. 좀 늦었지만 유종의 미를 거둬야 한다. 독서 감상문식으로 교훈까지 덤으로 주어지면 고마울 것이다. 그러나 조금은 암담하다. 뭔가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서글프단 말이다. 하지만 그에 상응하는 위대함과 인간 승리, 게임 주인공의 입장에 입각한 가슴 설렘을 온몸과 영혼으로 흐느끼며 체험하였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한담? 음, 그건 말이야, 자, 1) 파티가 열렸던 집을 찾거나 2) 사막 옆에 있는 카페를 찾거나, 둘 중에 하나를 해야 한다. 1에서 2로 가던 중 뭔가 다른 파생 도로가 있었던 거 같은데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들은 일주일이 걸려 드디어 수영장이 딸린 저택을 발견한다. 그 인근의 어마어마한 일대 지역에는 군데군데 간이 숙박시설과 샤워, 화장실, 의료 도구, 간단한 식음료는 곳곳에 배치되어 있었다. 이곳은 문이 모두 열린 채 꼭 일부 깽판을 부린 돌아이 때문에 경찰이 뜨고, 약 파티라는 뜬금없는 카더라 소문이 마을에 나돌며, 몇몇은 입건되었다드라는 이웃 사람들의 숙덕거리는 모습, 바로 그것을 연상케 하는 작태(?)를 아주 은근하게 보여주고 있다. 깜빡하면 잘 파악하지 못할 뻔 했다. 그리고 저택의 후방에는 처음에 이곳으로 타고 왔던 리무진 기사님과 리무진이 세워져 있다. 리무진 기사님은 저번 스쿨버스처럼 외국인이 아니었고, 그들을 집까지 모셔다 드린다고 친절하게 말씀해 주셨다.
   그들이 처음에 모인 도심지에 도착하여 리무진에서 내린다. 리무진은 떠나고 다 같이 이 말을 몇 번씩 되뇌이며 메아리 울리며, 마음속으로 되새김질 한다. 나직하게 다같이,
   "덮자!"
   그래 덮어야 한다. 우린 소시민이요, 신비와 불가사의에 환장한 인간도 아니잖아? 부디. 그래야 할 것이다. 빛이 아예 들지 않는 기억의 저 깊숙한 심연에 이번 일을 깊숙히 묻어버리자는 모종의 성격으로 비밀스럽게 결의한 다짐처럼. 왜냐하면 도저히 그것은 캘만한 규모와 궁금해 해도 괜찮을 수준이 <절대>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 이 친구들이 만났던 친구들은 이 지역 사람들이 아닌 것 같다. 마법사와 최면술사, 요술쟁이들도 이 시대 사람이라 단정지을 수 없다. 그들을 포함한 주요 참모진과 핵심 진행요원이 지구인이라는 보장도 없다. 그들은 당연히 꼭 착할 것이라는 근거 역시 없다. 뭐 하나 안심할만한 게 없다. 있다, 는 하나도 안 나온다. 이건 꼭 술집 간판 같지 않은가? 묻지마! 그들이 참여했던 파티는 조그만 잔챙이였고, 진짜 파티의 정체는 뭔가, 우두머리 성주는 대관절 누구냐, 뭐하는 작자냐, 어떤 비밀단체인가, 새록새록 캐내다가는 역풍을 살며시 아니 호되게 당할지도 모른다. 완전 개망신 당할 것이다. 뻔할 뻔자다. 하늘에서 갑자기 나타나서 땅으로 뚝 떨어지는 컨테이너에 깔린다면 뼈도 못추릴 것이다.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식겁해, 식은 땀 쭉 나! 딱 한 눈에 그림 그려진다. 사람이 많이 사는 대도시나 웬만한 주, 국가의 전체 행정구역보다 더 큰 크기의 괴-미확인-비행물체가 도시 위에 갑자기 떡 나타나서 도시가 아침이 됐는데, 당신이 등교하면서 출근하면서? 아니 클럽에서 작업에 실패하고 집으로 걸어오면서 '아직도 어두운 밤 인가봐. 하늘엔 반짝이는 별들이 내 모습을 가끔 쳐다보네.' 이렇게 나직한 시어를 소곤거리는 일이 발생하라고? 어? 그래? 진짜? 가난해도 행복하고 기쁘고 즐거운 인생을 길게 살고 싶다는 게 죄는 아니다. 뭐가 어때서? 견적 나와. 훤하다. 해 두 개 뜬 거 안 봤어? 달님이 두 분 계신 거 똑똑히 안 봤냐고? 봤자나! 믿을 수 없다면서도 진짜 떴는데, 그냥 뭔가 억울해 했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 콱 그냥 생쥐로 만들어버릴까? 그거...보다는, 아니 개구리가 나을려나? 이런 혼잣말이 들리는 것 같지 않냔 말이다. 원숭이, 캥거루, 너구리, 토끼, 곰, 여우, 갈매기, (GOD 철자를 역으로 하면) DOG... 후보군도 빵빵하다.
   그렇게 모험과 사건에 대한 종합적인 논의는 마무리 된다. 아울러 그와 별개로 지금 바로 알렉스가 케빈의 뒤통수에 새겨진 3D 바코드를 바라보고, 그걸 가르키며 친구들에게 묻는다.

「얘들아 이건 뭘까? 혹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