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Blog - 79

Spafinale 2016. 8. 31. 14:26

   ①
   오늘은 무명 블로그 회원들의 소설 간담회 모임일이다. 그래서 그들은 모두 어느 접시가 예쁜 식당에 모였다. 일곱 명 모두 참석했다.
   그리고 그곳과 별개로 다른 장소를 들여다본다. 자신의 계정에 사진을 올리면 보통 나도 가고 싶다네 부럽다네 데려가줘라네 라고 댓글이 달리는데 이것과는 약간 거리가 있는 듯한 전경과 그곳에 처음 방문하는 방랑자가 딱히 뭔가 감흥이 일지 않을 것 같은 전망이 그 심심함에 대하여 남다른 투정도 관심도 호의도 나타내지 않는 어느 신시가지에서 제임스는 하워드를 기다리고 있다. (전경과 전망은 말을 할 수 없으니까 당연한 말이다) 곧 둘 중 하나는 음 아니 두 공간에 한 사람이 동시에 존재하는 현상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설명이 어울리는 시골인지 도시인지 그런 공간은 대체 어떻게 생겼을지 그 허위를 파헤쳐보고 싶은 궁금함은 잠시 뒤로 미루겠다.
   그러면 두 공간에 어떻게 동시에 두 명이 출연하고 역할을 맡고 살아서 움직일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없다. 현실은 환상극이 아니니까. 왜 그렇게 되었나, 를 추적하면 적나라한 속옷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제임스와 하워드는 그들과 닮은 대역을 모임에 보냈고, 그들은 이 이상한 동네를 구경하기로 계획한 것이다.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블로그 모임의 신선함과 학술적 목적의 진지함이 다소 퇴보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스테리와 스릴러와 환상성에 대한 탐구는 뒷전이고 막 이와 같은 시시콜콜한 수다에 탐닉하는 분위기를 결코 부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너 누구 옆구리 만져봤어?」 「아니. 넌 만져봤어?」 「만져봤겄냐?」 「그게 뭐야? 난 또... 에잇, 당했네 당했어. 그런데 다른 사람 옆구리를 왜 만져?」
   뿐만 아니라 직접 대면했을 때도 그랬지만 핸드폰으로 또 노트북으로 소셜 네트워크 상에서 이처럼 노는 것도 약간 싫증났기 때문에 도시와 시골의 중간, 현대와 가상, 현실과 허구의 완충 지대는 이런 곳이 아닐까 라는 의구심과 동심이 그 기조를 이룬 호기심을 자아내는 웬 색다른 동네를 찾아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아, 지겨워졌다는 댓글 놀이는 바로 이런 것이었다.
   <또 합성이냐─딱 봐도 합성인데─뻥 좀 그만쳐라─어디산 뭐를 어디식 뭐로─합성천재─헤헷 너뮤 신나─속았다 속았어>
   제임스는 이런 말장난 놀이가 따분해졌다. 그리고, "나는 어머니를 위해 모차르트를 틀었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위해 바흐를 틀었다... 시드니 스미스는 천국이 트럼펫 선율에 귀 기울이며 푸아그라를 먹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 그러나 이런 과일의 비유가 몇 번이나 버텨줄까..." 이와 같은 결이 매끄러운 글도 좋지만 톡톡 튀는 말에 가까운 B급 글이 들리는 풍경을 보고 싶다는 것이 진솔한 내면의 상태라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하워드는 소설의 소재를 찾느라 폐가 탐험과 엑스트라 활동과 여행에 지쳤던 찰나였다. 또 하워드는 일명 교양소설과 철학소설, 고품격 소설을 위해 <문에 발 들여놓기 기술>, <말하면 믿게 된다 패러다임> 같은 심상치 않은 심리학 용어마저 즐거운 이야기로 바꿀려다가 지치고 또 지쳐서 휴식을 절실히 원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선한 여행지에서의 낯선 시간 보내기는 생각보다 허무하게 너무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제임스는 바나나 껍질을 밟고 넘어져서 손가락을 삐어서 멍들었고, 하워드는 오는 길에 배탈이 나서 심하게 아퍼 다시 되돌아갔으며, 무명 블로그 모임에 대역으로 참석했던 친구들은 참석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 그들이 가짜란 것이 탄로나버렸을 것이다. 귀여운 녀석들, 알맞는 엑스트라가 일을 빵구내고 집안 행사에 간 사이에 그 역시 대역을 쓴 게 틀림없다. 안 봐도 뻔하지만 아직 어떻게 되었는지 확인할 수 없어서 속단하지는 않는 것이 좋겠다.
   제임스는 신도시가 도시라고 하기엔 크기도 작고, 사람들도 붐비지 않고, 무엇보다 모든 상점들이 딱 하나씩만 존재했기에 둘러보고 싶은 마음이 무척 간절했다. 하지만 뭔가 액운을 만난듯한 불길한 느낌 때문에 그건 나중으로 미루고 좋게 집에 가서 남부러울 것 하나 없는 휴가를 보내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그 동네에 왜 상점들이 딱 하나씩만 존재하는가 왜 딱 하나씩만 있는가, 가 궁금할 수도 있으니 그 얘기를 잠깐 하고 넘어가자면 이렇다.
   그곳은 모든 상점이 딱 하나만 있는 곳이었다. 상점의 이름은 본연의 이름만 사용했다. 백화점? 딱 하나, 이름은 백화점. 찻집? 찻집도 단 하나, 이름은 물론 찻집. 작명소... 작명소라... 음 작명소... 간판에 작명소라 씌여있다. 또 뭐가 있을까? 서점은 서점, 빵집은 빵집, 문구점은 문구점, 미술학원은 미술학원, 이런 식으로 모든 이름이 그러했고 그 수량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둘이면 뭐가 문제될까, 그건 아직 구경하고 살아보지 못했으니까 응당 알아내지 못했다. 그중에는 행복설계소, 낭만연구소, 농담전파소, 웅변아카데미, 낙원상가 같은 정체불명의 이름들도 살며시 끼어있었다. 여기서 그 동네의 기이함이 한껏 부풀려지는 것만 같다. 이름 그대로의 상점이 딱 하나씩만 존재하는 까닭이 독점과 협업과 경제학과 산업이론에 연관되지 않고 뭔가 있을 듯한 신비로운 꿈과 희망과 환상의 측면으로 설명해야 한다는 근거는 눈씻고 찾아봐도 없었고, 그 합당한 설득력은 짧은 시간 안에는 결코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식품점, 오락실, 술집, 미용실 같은 일반명사가 아니라 저 이상한 이름들이 고유명사로 씌였다는 것은 그것이 그냥 좋은 이름을 명명한 것 그 너머의 어떤 숨겨진, 아니 아직 알아내지 못했지만 숨김없이 정식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을 듯한 기대감은 어른의 순수한 열정 마냥 무척 쏠쏠했고 한없이 부풀려졌다. 이쯤 되면 TV 단막극 정도 소재로 괜찮을 듯 하지만 그건 허구일테고 이건 현실이었으니 과히 나쁘지 않았고, 오히려 무명 블로그 친구들의 이목을 확 집중시킬만한 소재였으며, 누구보다 먼저 그 신비를 탐험하고 그 매력에 한껏 빠져들어 그 호젓한 도시 생활과 고전적인 시골생활을 모두 함께 먼저 경험하고 먼저 탐험하여 공동이 아닌 단독으로 그 신비감을 선점하고 싶게 만드는 곳이었다.

   ②
   한편 무명 블로그 모임은 연기되고 친구들 모두 단독 칩거 연구에 들어가기로 했다. 즉 대역이 탄로나는 일은 다음 모임으로 연기되었다. 살짝 귀뜸하자면 다음 모임 때는 들킬 것이다.
    친구들 가운데 자택이 호텔이라는 소문은 뜬소문으로 확인된 닉은 집에서 나름 소설 구상하는 가운데 뭔가 서운해하고 있다. 편의점에서 캔 맥주를 살 때 왜 자기에겐 신분증을 확인하자는 물음을 건네지 않는지, 그 때문에 삐진 것이다. 그러나 마냥 낙심하고 있을 수는 없어서 그는 지금 열심히 브로콜리를 먹고 있다. 왜냐하면 뉴스에서 브로콜리가 항산화요소가 많고 어쩌고 그랬기 때문이다. 곧 있으면 브로콜리를 그가 직접 집에서 키우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그날은 그의 생일이다. 자기도 그걸 까먹었고 누가 챙겨주지도 않았다. 잊어먹어서 그랬을 수도 있고.
   그리고 조니는 요즘 인공지능에 빠졌다. 사진을 그림으로, 영화를 음악으로 또 누가 지금 살아있다면 이렇게 책을 썼을 것이다 바로 이와 같이 그림을 그렸을 것이다 라는 어마어마한 자료와 방대한 자료 처리 속도에 기반한 여러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구해서 어떤 초현실주의 작품의 소재를 찾고 있었다. 케빈은 복고풍 의상에, 알렉스는 레코드판 수집에, 마크는 필름 카메라로 사진 찍고 현상하는 것에, 그리고 제임스는 스크린 야구장 스크린 배구장 같은 가상 게임에 빠졌고 또 집에서 TV 채널이나 돌리며 인터넷으로 이것 저것 알아보다가 혼자 술 마시며 하워드와 같이 가 보기로 했던 미지의 세계, 이상적인 파라다이스, 그들의 무명 블로그처럼 이름이 없는 유령 도시, 뭔가 비밀이 있을 것만 같은 그 정체성을 알 수 없는 이상한 도시에 대한 그리움을 새록새록 키워나갔다. 그러나 그는 그곳으로 갈 수 없었다. 의지가 있어도 시간과 마음의 여유와 풍족한 자원이 있어도 그는 그곳에 갈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곳은 지도에 없었기 때문이다. 저번에 잠시 둘레둘레, 뚤레뚤레 잠깐 입구만 둘러본 기억에 의지에서 다시 찾아가기에는 가는 길이 너무 복잡하고 이상하고 뭔가 이해할 수 없는 힘이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었다. 딱 1번은 직접 그 언저리에 발을 디뎌봤기 때문에 그 존재는 절대 부정할 수 없었으나 다시 방문하기엔 뭔가 막연하게 겁이 났고, 거기서 살다온 사람을 만날 수도 없었고, 그곳에 관한 아무런 자료도 없었다. 백방으로 수소문해도 아무도 모르고 아무런 정보도 구할 수 없었다. 인터넷 검색 자료도 전무했다. 그래서 제임스는 존재하지 않는 도시, 지도에 없는 도시의 현실감을 잊고 살게 되었다. 그러나 하워드는 그러지 않았다. 이번에는 하워드가 나는 놈 위에 있는 하는 놈이었다.
   처음에 하워드는 제임스의 말을 믿지 않았다. 걔는 좀 이상해, 멀거니 시선도 막 4차원을 보고 있는 것 같고, 속으로 음흉한 생각을 하는 듯 하지만 뭔 꿍꿍이가 있어서 뭔 놈의 미스테리를 꾸미고 가짜 꿈에 대한 구상을 글로 옮길 모략을 계획하는 것 같기 때문에 말도 어눌하고 농담도 희안해서 그의 말을 통 믿을 수 없었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신빙성도 없고, 납득도 안되고, 내용도 이상했다. 왜 어릴 때 들어봤던 그런 낭설처럼. 조용한 주택가에서 밤 12시 5분 전에 분홍색 차가 보이면 그 차 지붕에 올라가서 엉덩이를 까고 일을 보는 자세로 한 손에는 야구방망이를, 뒷주머니에는 면도기를 다른 한 손에는 거울을 들고 12시 정각을 기다렸다가 12시 정각이 땡~ 되면 거울에 미래의 신부? 아니 전생의 자신의 모습이 나타난다나 뭐라나, 맞나? 그런 쓰잘데기 없는 허무맹랑한 뜬소문을 하워드는 제임스로부터 듣게 됐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하워드는 그걸, 그 지도에 없는 도시에 가는 방법을 바로, 믿고 있었다.
   하워드가 그 존재하지 않는 동네를 처음 알게 되고 나서 단골 가게에 틈틈히 꼬박꼬박 들리는 것처럼 일정한 습관이 형성된 후에 그는 그곳에 이쪽 세계, 저쪽에서 봤을 때의 이쪽 세계에는 없는 세게라는 것을 알게 됐다. 한 여자를 알게 되니 선물을 주고 싶고, 선물을 주고 나니 진도를 나가고 싶은 것처럼 그는 그곳의 지형을 집에서 모니터 화면으로 조망하면서 찬찬히 다음에 구경할 곳과 소문난 먹거리나 그런 입소문을 검색해봤다. 그러나 그런 자료는 전혀 없었고 그런 동네도 없다고 한다. 아무도 보도 듣도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우연히 알게 된 작은 신비를 그는 쉽사리 정상적인 상식과 수평적인 교양으로 변환시키고 싶은 욕구는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그곳이 더 알고 싶어졌다. 쉽게 포기할 수 없었고 잊을 수 없었다. 더 궁금해졌고 그 괴상한 동네를 비로소, 벌써 좋아하게 되었다. 불과 알게 된지 얼마나 됐다고. 그 동네는 동네가 아니라, 여자였다. 친구들에게 으스대며 그곳의 존재를 알리고 싶지도 않았다. 물론 제임스에게도 비밀로 해야 했다. 왜냐하면 통상 이런 경우에 일이 알려지면 비경은 그 환상성을 잃어버리고 애정은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버릴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선-처리 후-보고 방식을 따르기로 했다. 그럴 것이다, 라는 학습을 그는 자동적으로 평생 해왔다. 그는 적어도 지금 이 순간 소년이었다, 소년!

   ③
   그는 하나의 비밀이 생겼고 그리하여 새로운 삶을 살게 됐다. 그래서 그는 아예 스마트 포투 뒤에 카라반을 연결해서 그곳으로 떠났다. 어차피 이쪽 동네에 있어봤자 재미난 일은 기대할 수 없었다. 인생이 너무 뻔했고 일상이 지루했으며 타성에 붙들려 옴짝달짝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자기가 일부러 적극적으로 미는 유행어가 있었다. 루팡하라는. 그러나 그 신조어를 쓰면 친구들은 괜한 시비를 걸고 우정을 빙자해서 시도 때도 없이 깐죽거리기만 했다. 쫀쫀한 녀석들 쩨쩨하게 말이야 어떻게 놀 줄도 모르고 이런 말장난이나 하면서 블로그에 너무 비협조적인 삶을 사는 것 같아 생각이 참신하지가 못해, 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루팡해!」 하워드.
   「루팡해? 루팡해, 가 뭔 말이야?」
   「루팡하라고.」
   「뭘 루팡해?」
   「아 루팡하라니까. 아 나 미치겠네. 척하면 척 못 알아듣냐? 다 설명을 해줘야 해? 어?」
   「도대체 그게 뭔 뚱딴지 같은 소리냐? 존말할 때 소설이나 써라.」
   「너나 존말할 때 얼토당토 않은 공상, 말 같지도 않은 글을 블로그에 그만 올려라.」
   잠깐 동안 하워드는 혹시 제임스가 밀사를 파견해서 자기를 감시하면 어떡하나 라는 걱정이 얼핏 스쳤지만 이곳은 지도에 없는 도시이기 때문에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에 안심이 되었고 다시 기분이 좋아졌다.
   인간의 생활과 모험가의 여행과 그가 사는 공간과 맞는지 맞지 않는지 잘 모르겠으나 100억년 수명 가운데 약 40억년째 쨍쨍 열을 내며 쉬지 않고 열을 내고 있다는 태양이라는 혹성이 모두 사진과 글과 영상과 음악과 그림으로 기록될 것이라는 막연한 상상에 추측이 당도했기 때문에 그는 딱 하나 별안간 떠오른 소원을 생각했다. 그리고 별똥별은 떨어지지 않았다. 때문에 그 소원의 가치는 이렇게 정량화할 수 있었다. 이루어지거나 말거나 라고. 그 다음에 그 소원의 잔영은 근간 자신이 누리고 즐겨야 할 대상을 궁리하는 것이었으며, 그야말로 그 소원이란 것 그것의 알맹이는 시간이 천천히 흘러갔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마치 가까운 미래에 시간구분선을 거슬러서 지구 자전과 반대 방향으로 뱅뱅도는 구름 위의 도시 생활을 아늑하게 체험하는 것처럼.
   일단 하워드가 파악한 것으로 봤을 때 새로운 도시는 그가 사는 곳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그렇지만 눈으로 보고 가슴으로 느끼는 데 그치지 않고 그는 하나하나 사진으로 가지각색 풍경들을 모두 담아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새로운 소설의 소재로 유용할 것 같은 어떤 이유를 알 수 없는 객체 지향형 문학에 대한 열망 때문이었다. 길가에 보이는 평범한 길고양이, 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표정, 당사자가 사후 알더라도 썩 기분 나쁘지 않을 듯한 도둑 촬영도 간혹 포함해서 노변에 멀거니 놓여있는 의자들 차들, 거리의 음악가, 건물에 보이는 이상한 대문들에 이르기까지 모조리 사진기의 렌즈를 들이밀었다.
   그렇다. 하워드는 지도에 없는 도시에 이미 도착해서 그곳을 탐험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잔디광장에 갔다가 어느 실외 수영장과 찻집에 들렸다. 그러다가 허기는 그냥 대충 햄버거로 때우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다. 왜냐하면 그가 찍은 사진들에 그곳의 영혼과 비밀이 담겨있을 것만 같은 은밀한 격동감과 그것을 글로 옮겨 걸작을 탄생시킬 수 있을 듯한 근거 없는 자신감을 예견했기 때문이다. 그 이상한 동네와 하워드의 집은 자동차로 이동했을 때 채 1시간이 넘지 않는 거리였다. 그는 집에 도착했다.

   ④
   하워드는 집에서 도메니코 치마로사의 피아노 소나타를 들으면서 그가 찍었던 사진들을 차근차근 관찰하기 시작했다. 순간 그는 하나 특이한 의문점을 포착했다. 웃으면 안되는데 웃기다, 라는 상황이 아니라 <안들은 걸로 할래>나 <못 볼 걸 본 듯한> 마치 그와 같은 신기한 현상을 발견했다. 썩 기발한 건 아니었으나 사진 가운데 어느 공사현장 사진도 있었는데 그 공사에 대한 자세한 설명의 글이 씌여진 표지판에 나타난 공사일정이 이상했다. 그건 꽤 먼 미래의 날짜였다. 그는 느닷없이 아뿔사, 라는 표정을 짓고 이렇게 혼잣말을 내뱉었다.
   「우리가, 아니 내가 어쩌다 이 모양 이 꼴이 됐지?」
   그래서 그는 첫째, 그것을 잊을려고 노력했다. 첫째, 다시 그곳에 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첫째, 멀리 떠나기는 귀찮고 새로운 취미를 물색하는 것도 귀찮아서 가까운 호텔 수영장에 출근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호텔 수영장에 가는 길에 길가에 버려진 웬 노란 비닐 봉투에서 찢어진 밑면으로 마네킹이 튀어나온 걸 보고 식겁했다. 그리고 호텔 수영장에서 그는 제임스를 만났다. 그는 저런 바로 같은 놈, 애도 아니고 고무보트 타고 뭐 하고 있는 거야 이렇게 생각했지만 속으로 제임스가 알려준 신도시에 몰래 다녀온 기억이 되살아나 슬그머니 움츠려드는 기색을 감지했다. 녀석이 직접 말은 하지 않았으나 꼭 이렇게 말할까 말까 라는 의혹이 거의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가 표정과 눈빛과 몸짓으로 분산되고 변형되어 그에게 쏠쏠한 압박감을 가하는 것 같았다. 뭐야, 너 혼자 갔다왔어? 그런 말을 듣는 듯 했다. 그러나 실제 그런 말은 발화되지 않았다. 그날 하워드는 제임스와 헤어지고 그 후로 그는 그 호텔 수영장에 일절 방문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하워드는 집에 와서 프란츠 슈베르트의 환상곡 D.934번을 들으며, 한 잔의 우유와 초콜릿을 옆에 두고 그 이상한 동네에 관한 사진을 모두 지워버렸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바로 그날은 제임스가 하워드 몰래 그 이상한 동네로 찾아간 날이었다. 대망의 길일일지 상서로운 원망의 게임 미션이 될지는 그 누구도 모를 일이지만 기쁜 일을 기다리지만 말고 즐거운 경험을 찾아 직접 시도하고, 장르를 애착하며, 인생을 아끼는 친구라면 조심스럽게 그 일은 살며시 일시적일 망정 신성에 귀인하고, 범접하기 힘든 신비로움을 탐험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거룩한 예측이 우세하게 여겨질 수도 있는 일이었다. 썩 홀대할 만한 터무니없는 탐사가 아니란 것은 이미 지금의 하워드가 간직한 소심한 불신과 거짓된 현실감과 이 세상에 대한 불가해한 애증의 경험이 그것을 반증하고 있었다. 무슨 수로 미래 도시가 옆 동네에 나타나냐고, 말도 안 된다고, 믿을 수 없다고 발끈하는 회의론이 슬슬 고개를 들만도 했으나 아직 딱히 확인된 건 별로 아니아니 아예 없었다. 대형 광고판에 있는 커다란 웃는 얼굴에 장난끼 넘치는 누군가가 낙서하는 것과 뭐가 다르다는 것인가? 이빨 빠진 걸로 모자라 정확히 그 자리에 문을 만들고, 상처 자국과 바이킹 뿔을 그려서 붙이고 약간 부족한 듯 하니까 지금까지는 오직 불독만 찬다는 바로 그 뿔달린 쇠목걸이까지 지저분하게 그리는 것도 예술이라면 예술이라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왠지 아닌 것 같다. 적정 연령은 유아요 대상은 도화지를 넘어서면 안될 것만 같다는 말이다. 그 이상한 동네는 쉽게 생각하면 공사현장 안내판에 날짜가 잘못 인쇄되었을 수도 있고, 모든 종류의 가게가 딱 하나씩만 있다는 사실은 멀리까지 돌아보지 못하고 근처만 살펴봤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아무튼 내내 망설이다가 하워드는 제임스에게 끝내 고백하고 말았다. 전화로!
   「미안. 꼭 그럴 생각은 없었는데... 저번에, 거기, 나 혼자 갔다왔어.」
   「어? 그게 뭐 어때서? 왜 미안해?」
   「왜냐고? 어... 그래 별일 아니긴 한데... 나도 잘 모르겠어. 어쨌든 거기가 좀 이상해. 뭔가 소름이 돋아. 그래서 괜히 뭔가 껄쩍지근한데, 음, 어, 뭐랄까 그곳은 목소리를 위한 협주곡 같다고나 할까? 거긴, 괴상한 동네야. 정말이야. 더 자세한 건 밝힐 수 없어. 귀신이 사는 듯 해. 그러나 증거는 없어. 딱히 뭐가 집히는 데가 있다고도 못하겠어. 하지만 그곳은 어떤 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를 연상시킨단 말야. 음습한 기운 있잖아? 딱 떨어지는 맛이 없어. 수상해. 의심스러워.」
   「그게 대체 뭔 소리야? 너 혼자 거기서 공중부양이라도 했냐?」
   「공중부양? 그건 아닌데, 아무튼 사람을 무척 오락가락하게 만드는 뭔가가 있어. 정말이야. 계속 누군가 날 지켜보고 있는 것 같고, 내 뒤를 슥 잡아끄는 뭔가 형언할 수 없는 느낌이 있단 말이야.」
   「뭔가가 있기는 뭐가 뭔가가 있어?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네. 너도 모르겠지?」
   「실은 그 동네가, 있잖아...... 지도에 없어. 거긴 지도에 없는 동네야. 그리고 그곳은 시간대가 여기와 달라. 완전 다르다구.」
   「뭔 소리야? 왜 루팡하게? 지도에 없기는 왜 없어? 지도 만드는 곳에서 또 지도를 알려주는 곳에서 업데이트를 안 했거나 뭔가가 착오로 빠졌겠지. 말이 되는 소릴 해라.」
   그래서 그들은 타협안을 놓고 의견 차이를 조율하고 신기술 기기를 이용해서 그 이상한 동네를 방문하기로 의견을 조율하고 절충했다. 하워드는 본부에 남고 제임스는 위치추적기를 갖고 거기 갖다 오기로. 동전 크기만한 물체를 제임스 운동화 깔창 안에 부착해놓고 위치추적을 시작했다. 제임스는 그곳으로 갔고, 별일 없다며 둘이 통화를 하게 됐다.
   「마법의 숲이라도 발견했냐?」 하워드.
   「마법의 숲? 응. 연필들이 날고 있어. 신나는 모험 여행에 함께 하지 못해서 서운하냐? 지금도 늦지 않았어. 생각 바뀌면 오라구. 아니 그럴 순간을 기다릴 게 아니라 마음을 바꾸면 되잖아. 어? 내가 거인의 엉터리 딸기잼이라도 찾아줄께. 문제 없어. 자신있단 말이야.」 제임스.
   그러나 그곳은 아무런 이상 징후를 발견할 수 없는 평범한 동네였고, 제임스는 돌아왔고, 당연히 순간이동 그런 것도 없었으며, 하워드는 꼬장꼬장한 여전히 지성적이며 신중한 작가로, 또 제임스는 다시 재미없는 어른으로 복귀하여 따분한 일상을 보내게 되었다. 피식, 재미없는 어른. 웃기지도 않다.

   ⑤
   평범한 나날이 이어지는 가운데 블로그 모임일이 되었다. 그 친구들은 오랫만에 하워드의 요트에서 모임을 가졌다. 그리고 얘기는 역시나 겉돌았다. 닉과 마크는 어제 거나하게 달리느라 내내 묵상에 빠져있었고, 알렉스와 케빈은 그들이 업무 협약을 맺으면 좋을 듯한 단체와 만남을 성사시킬 계획에 대해서 논의했으며, 조니는 뭔지 모르게 요즘 빠져있는 노래만 흥얼거리고 있었다. 뭔가 있었다. 밀었다 당겼다, 들었다 놨다, 쥐었다 폈다, 울렸다 웃겼다 하는 상대가 있었던 게 분명한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하워드는 블로그의 약점과 헛점, 보완점 등에 관하여 괄괄하게 간드러진 조언을 하는 중간중간 자기는 곧 초현실주의 작품을 선보일 테니 너네들도 장르 변화를 시도하던가 문체나 내러티브의 변용을 고찰해보던가 하라면서 블로그의 애증과 삶의 권태와 생애의 애원에 대하여 무겁고 재미없는 얘기를 늘어놓았다. 또한 그의 요트 이름을 모히토에서 다른 걸로 바꾸는 걸 심각하게 검토중이라고 했다. 금요일은 촌스럽고, 뭐가 좋을까 뭔가 기발한 작명에 대한 고민에 빠졌다고 알려주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날 제임스는 평소와는 다르게 사람이 변신하여 완전 다른 인격이 들어선 듯한 새로운 인물처럼 보였다. 뭔가 연기를 하는 듯한 꾸며진 행동을 내내 드러내고 있었다. 갑자기 이런 말을 뜬금없이 현 상황과 어울리지 않게 꺼냈다. 빠져든다 빠져든다 빠져든다 빠져든다 빠져든다 얍~! 그런 후 그는 바로 어디서 배웠는지 진짜 공중부양을 그들에게 보여주었다. 말로만 듣던 공중부양. 아주 드물게 거리에서 볼 수 있는 인도풍 차림새의 요가 수행자처럼 정좌세로 붕 떠서 서 있는 사람과 시선을 마주하고 차분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뻔한 속임수는 아니었다. 금세 친구들은 눈이 똥그래졌다. 당연히 보이지 않는 지지대가 있나 없나 다 확인했다. 올망졸망 제 2의 무엇을 바라는 눈치였다. 그리고 그날도 학구적인 글쓰기와 창작의 고통과 웹소설의 동향과 블로그 업데이트 마감 전의 처절한 괴로움과 마감 후의 환상통에 대한 진중한 토론과 작가로서의 고뇌와 가난과 예술에 대한 평론의 시간은 모두 꺼이꺼이 바람에 날아가버렸다.
   곧바로 제임스는 물 위를 걷는 마술을 선보였다. 물론 마술쇼를 보여주기 직전에 구호를 외쳤다. 빠져든다 빠져든다 빠져든다 빠져든다 빠져든다 빠져든다 얍~! 그는 꼭 말을 많이 하면, 말을 꺼내기 시작하면 가짜라는 게 탄로난다는 듯이 몸소 행동으로 뭔가를 보여줄려는 것처럼. 뒤이어 당연히 믿을 수 없으니까 그들은 제임스에게 신발을 벗은 후 묘기를 재현해보라고 했고 그는 아니나다를까 재현을 거부했다. 그러나 어디서 작두나 계란 수십 판을 구해온다면 그 위를 걷는 기행은 보여줄 용의는 있다고 호언장담했다. 그는 아차 했다. 말을 너무 많이 했던 것이다. 녀석이 쓰라는 글은 안 쓰고 어디서 이상한 차력과 서커스만 몽땅 배우고 독학으로 신기술을 섭렵한 것으로 모두들 예측했다. 그러던 중 조니가 뭔가 의심스럽다는 듯한 눈초리로 캐묻기 시작했다.
   「제임스! 너 그런 말 들어본 적 없지? 야 너 느낌있다, 이런 말 해주는 애 없었지? 내가 해줄께. 야 너 느낌있다! 히트다 히트! 완전 이건 파란 토끼가 있다고 해도 믿을 판국인데, 안 그러냐? 그래, 강아지는 무섭지 않아, 강아지는 무섭지 않다고. 이젠 녀석의 얼굴이 개로 보이는데, 왜지? 얘가 당나귀 가면을 쓴 것도 아니고 내가 약을 한 것도 아닌데, 영화도 아니고 현실인데, 왜 그렇지? 음... 그런데... 있잖아... 얘 좀 이상해보이지 않냐? 목소리도 어딘가 가늘어. 원래 가늘긴 했지만. 팔도 우리가 알던 제임스보다 더 짧어. 하지만 다리는 극미하게 더 길어. 또 목은 훨씬 퉁겁고. 비율이, 비율이 이상해. 봐봐! 그렇잖아? 어? ...... 우리에게 날마다 놀라운 일들이 생기지는 않지만 오늘 그런 일이 생긴 것 같은데? 어때? 잘 봐보라구. 잘 봐봐. 얘 모공이 이렇게 매끈하지가 않았어. 피부가 이게 사람 피부라고 하기엔 너무 살색이 도드라졌는데, 꼭 고무같아. 그리고 머리카락도 이상해. 가짜같아. 아무래도 얘는 제임스가 아닌 것 같은데?」
   역시나 여러 번의 눈빛이 왔다 갔다 하다가 정밀한 가면을 벗길까 말까 신분증을 뒤져볼까, 옷을 벗겨볼까 망설이던 순간 그 가짜 제임스는 재빨리 도망가기 시작했다.
   「야 잡어!」
   먼저 몸을 던지고 그 말을 들으면 쉽게 쉽게 가짜 엑스트라를 잡고 자초지종과 비밀스런 고백을 받아낼 수 있었을 텐데, 모두 대사를 먼저 꼭 자기가 칠려는 욕심이 지나쳤다. 때문에 그들은 간발의 차이로 짧은 추격전에서 가짜 제임스를 놓치고 말았다. 그리고 멀어져간 정체를 알 수 없는 도망자가 되뇌었던 말이 귓전을 맴돌고 있었다.
   빠져든다 빠져든다 빠져든다 빠져든다 빠져든다 얍~!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그러게 말이야. 귀신에 홀린 거 같은데.」
   「에~이 그 정도까지는 아니고. 뭔가 있겠지.」
   「가짜가 아니라 진짜 아닐가?」
   「걔가 진짜 그렇게 목이 퉁거워졌다고? 그러고 보니 머리도 좀 커보였는데, 왜 그렇지? 어렸을 때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어. 믿거나 말거나식으로. 개 냄새를 많이 맡으면 머리가 커진다고 그랬던가, 그건 뜬소문이니까 내버려두고 뭔가 바뀐 점을 헤아려본다면 음, 녀석이 쓰는 소설대로 그의 얼굴이 개의 머리로 바뀐 것은 아닐까? 그래서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 우리가 믿지 않을 테니 변장을 한 것일 수도 있고.」
   「아닐꺼야. 너무 갔다 너무 갔어.」
   「그래? 그래도 몰라. 그럼. 개인간 없으란 법도 없잖아. 늑대개는 있었어. 또 신화를 보면 그런 거 엄청 많아. 만화에도 그런 인물 천지야. 뭐 두고 보면 알겠지.」
   「그런데 아까 공중부양 그거 어떻게 한 거지? 물 위를 걷는 건 또 어떻고?」
   「맞아. 난 이미 말로는 지금까지 수십 번도 더 물 위를 걸을 수 있다고 심심하면 큰소리쳤지만, 음, 저건 진짜였어. 척 보면 알아.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거든. 대충 할줄 알았는데... 음 그게 쉽게 안되더라고. 정말 어려워. 그런데, 걔는 했어. 쟤 뭐하는 놈이지?」

   ⑥
   한편 제임스는 어느 날부터인지 모르게 왠지 팔이 점점 짧아지고 있는 듯한 이상한 낌새를 감지하기 시작했다. 그는 진짜 제임스다. 물론 앞서 나왔던 대역이 가짜라는 확증도 명확히 제시할 수는 없다. 그 증상은 군말없이 딱 잡아뗄 수 없는 착각일 수도 있고, 아마도 어쩌면...이 아니라 명백한 착오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자기 작업실 책상에서 일어나 벽에 대고 팔 길이를 기록해보았다. 그러나 비교할 수 있는 표본이 없었기 때문에 즉각 그 짧아진 듯한 팔 길이 변화의 진위와 그 정도를 측정할 수는 없었다. 늦었을 때가 가장 빠른 때라고 다만 다행인 것은 그 괴상한 증상이 나중 다시 나타날 때를 대비해 첫 기준점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마치 꼭 어린이들 키를 색연필이나 뭔가로 벽에 기록해놓는 것처럼. 물론 사진을 보거나 옷을 여러 벌 입어보거나 주변에 아는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되지만 이건 그만큼 둔중한... 뭐랄까 아직은 평상시의 팔 길이와 짧아진 후의 팔 길이가 현격한 차이를 나타내지는 않았기 때문에 거의 지금은 의심과 오해와 대비의 단계에 불과했다. 게다가 의심스러운 증상과 오싹한 의문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제 2탄과 제 3, 제 4의 물음표로 이어졌다. 즉 그는 어딘가 모르게 자신의 다리가 매우 미세하게 점차 길어지는 듯한 환각을 극미하게 인지했다. 그 시작이 언제인지는 알 수 없었다. 높은 데서 떨어지는 꿈을 몇 번 꿨더니 키가 클려고 그러나 짐짓 장난스런 농담으로 외면해버릴 수도 있었으나 나름 그건 그에게 심각한 문제였다. 왜냐하면 다리가 계속 길어졌을 때 적당히 길어지다가 멈추면 괜찮은데 만약 멈추지 않게 된다면 무척 곤란한 전대미문의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것은 명약관화한 추론임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는 심지어 목이 두꺼워지기 시작했다. 어, 내가 이렇게 목이 퉁거운 남자가 아닌데 어떻게 된 거지 라면서. 목이 두텁다 목이 두텁다... 음... 자라? 거북이? 코뿔소? 하마? 미세한 차이는 있겠지만 그는 어느 정도 차이를 느꼈다. 변화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즉 배는 금방 전보다 더 빵빵해지고, 다리는 아주아주 천천히 길어졌고, 나머지는 어떤 속도에 따라 알맞게 변형은 진행되어서 즉 이상한 초딩 또는 약간 판타지 영화 속의 난쟁이를 떠올리게 했다. 느낌은 그랬다. 정말이지, 효과음과 더불어 막 축소된 기분도 들었다. 오오 효과음~ 아, 들린다 들린다. 그는 진짜 신선한 효과음을 듣고 말았다. 피슉!
   그래서 그는 없던 습관이 생겼다. 전신 거울을 하루도 빼놓지 않고 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그는 점점 자기 신체가 더더욱 이상해져가고 있다는 걸 느꼈다. 변태나 괴물은 아니지만 뭔가 변화가 멈추지 않는 것만 같았다. 외계인처럼 갑자기 지력이 뛰어나게 되는 것도 아니고 슈퍼맨처럼 잠재적인 초능력을 숨기고 사는 것도 아닌, 결국 몸에 관한 문제가 예사롭지 않게 새로이 대두되고 있었다.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평소처럼 살면 그만이지만 잘하면 진짜로 구름 모자를 쓸 수도 있을 듯한 불안감 때문에 그는 슬슬 외출을 자제하기 시작했다. 그는 마침내 그레고르 잠자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제임스는 공중부양하는 기술을 어느 날 자기도 모르게 터득했다. 집 안에서는 방과 방 사이를 항상 공중부양해서 다녔다. 심심하면 공중부양을 했다. 그래서 그는 그걸 어떻게 달리 써먹을까 그걸 고민하게 되었다. 더군다나 그는 물 위를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자기 집 수영장 바닥이 빵구나서 그곳에서 확인하지는 못하고 빗물이 좀 흥건히 고인 곳에서 확인해봤다. 진짜 물 위를 걸을 수 있게 되었다. 경미한 대인기피증이 가시면 그는 나중 큰 무대에서 확인해볼 계획을 세웠다. 또 곧 있으면 투명인간 기술도 숙달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에 그는 음 자칫 응큼한 상상에 빠지는 걸 미연에 방지했다. 그러나 끝끝내 그는 자기 자신이 괴물처럼 여겨졌다. 따라서 그는 뭔지 모르는 정체불명의 대상에게 쫓기는 심정에 휩싸였으며, 그러므로 그는 저번에 하워드가 잠시 먼저 머물다왔다는 지도에 없는 동네로 떠나기로 작정했다. 그곳이 아니면 안될 것만 같았다.
   그가 그곳으로 가던 중에도 그 기묘한 신체 변화는 그칠 줄 몰랐다. 물론 육안으로 봐서는 전과 후의 차이를 뚜렷이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당사자의 기분과 느낌과 분위기는 그렇지 않았다. 그리고 새로운 변화가 있었다. 그는 속눈썹이 길어지고 팔다리의 털이 옅어지고 짧아졌다. 그걸로 그치지 않았다. 가슴도 봉긋 솟는 것 같았다. 아직은 양쪽의 균형이 약간 불안하다. 이러다 혹시 골반도 커지는 거 아니야, 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걸로 그치지 않았다. 그가 찍었던 또 찍혔던 과거의 사진에서도 별 차이는 없겠지만 그 변모된 모습의 차이가 모두 고스란히 그 사진들에 반영되었다.

   ⑦
   제임스는 그 이상한 동네에 도착했다. 그 이상한 동네는 도대체 어떤 동네를 말하는가, 가 궁금하지만 그냥 도시의 이름이 그런가 보다 쯤으로 넘겨짚어야만 할 것 같다. 왜냐하면 그는 예전의 그 그, 예전의 느낌을 하나도 경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데, 이때 진짜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공기의 향기, 거리에 보이는 물웅덩이, 누가 버린 종이 뭉치, 노란색 빨간색 나뭇잎, 짹짹 지저귀는 제비와 까마귀, 바지 입은 남자와 치마 입은 여자들, 그 가운데 그는 펭귄 한 마리를 본 듯한 환각을 느꼈다. 그것은 가짜 체험이 아니었다. 헛것이 아니었다. 그건 진짜였다. 다시 한번 그런데! 그런데 이때,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거리에 보이는 사람들이 모두 그와 똑같이 생긴 것을 우연치 않게 발견했다.
   「아니, 어떻게 이럴 수가......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지...... 말도 안돼...... 믿을 수 없어.」
   보이는 사람들은 마치 SF 영화처럼 로보트 같지만 로보트는 아니고, 정상인 같지만 정상인도 아니며, 나사가 하나 풀린 뭔가 많이 부족한 듯한, 혼이 절반쯤 나간 듯한, 내가 집에 TV를 켜놓고 나왔나 큰소리만 쳐놓고 무작정 연기했던 벌칙을 수행할 날이 벌써 임박했나, 그런 사소한 고민을 안고 있는 것만 같은 평소의 그와 몹시 흡사한 사람들로 거리는 가득했다. 뭔가 흐리멍텅하고, 뭔가 우유부단하고, 뭔가 정신박약하고, 뭔가 명령을 기다리는 듯 하고, 뭔가 방금 전 슈퍼 다람쥐가 굴렸던 쳇바퀴를 뺏어서 굴리다 나온 것 같고, 뭔가 꿈꾸는 듯하며, 뭔가 그 꿈을 되새기며 공상에 빠져 가물가물 헤매이는 것 같으면서 뭔가 망설이며, 뭔가 뭘 해야할지 어떻게 살아야할지 대체 어떻게 놀아야 할지를 잘 모르는 듯한 자신의 모습을 거리에서 1명, 2명, 3명, 4명, 5명...... 계속 보고 있었다. 그는 볼을 꼬집고 자신의 따귀를 스스로 때리고 벽에 대고 물구나무서기도 했다가 바닥에 엎드려 팔굽혀펴기와 가만히 서서 양 숫자 세기 등 할 수 있는 온갖 단순 몰입하기 행위를 진행했다. 그걸 하고 나면 정말 꿈 같은 이 이상한 정경이 모두 사라지거나 꿈이 깨거나 정상으로 돌변하거나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믿었고, 그리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맙소사, 그러자 정말 거짓말 같이 마술처럼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조금 전 요상한 소설 같은 특이 현상은 모두 사라졌다. 믿을 수 없다, 가 아니라 믿을 수 있었다. 다행이었다. 모든 게 정상이었다. 말이 됐다. 충분히 납득되는 현실이었다. 그러나 즐겁지는 않았고 재미도 없었으며 약간 우울했다. 평소에도 그렇다. 항상 그렇다. 그러니 괜찮다.
   그건 그렇고, 그는 괜한 걱정은 훌러덩 벗어버리고 대책없는 기쁨과 행복과 즐거움을 찾아헤매느라 시간을 소비하지도 않았으며, 다시 차분하게 우수한 글쓰기 그 황홀한 순간의 절정이 다시 자신에게 방문하기 전에 일부러 서툴게 삶을 재구성하고, 광고에 속고, 드라마에 빠지고, 속이고 속았던 인생을 되돌아보고, 복잡한 지난 삶은 잊고 지금 이곳에서 그분이 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없는 비밀을 만들며 새롭고 신비로운 생활을 소설로 만들겠다고 결심했다.
   항상 초반에는 왕성한 의욕과 더불어 실제 행동과 실천 또한 부지런하고 기운이 넘치는 사람이 있다. 제임스 역시 그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지극히 정상이었다. 그래서 그는 에잇 여기도 별거 없네, 그렇게 짐짓 실망하면서도 방향 전환의 방편을 찾기 위해 가까스로 체념은 연기하고 자연스러운 퍼포먼스와 아둔한 열정, 엉겹결에 찾아오는 번득이는 착상이랄지 어떤 천재성이 엿보이는 뭔가 재미있는 그런 궁금한 호기심이 스스로 춤을 추는 무언가 기쁜 놀이, 혼자서 할 수 있는 시간 보내기는 무엇이 있을까를 생각했다.
   그가 고안해낸 결론은 이런 건 아니었다. 지면 닭이 된다 닭닭 미니게임, 불가능한 난위도의 버튼 찾기, 오버워치 단편 애니메이션 마지막 바스티온, 괴담 애니메이션 쪽지의 비밀, 그리고 앙앙앙 난 니가 정말 좋아~
   그가 내린 결단은 이와 같았다. 카페에서 혼자 그것 해 보기. 첫째, 저기 저 가련한 자세로 앉아있는 유난히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연을 간직한 듯한 고운 그분을 스르륵 스르륵 스케치해서 스케치북을 들고 그녀에게 다가가 스케치북 한장을 팍 찢어서 그녀에게 건네면서 뭔가 건네려던 대사를 까먹고 그녀의 가슴을 보면서 코피 팍~ 코피 팍~. 그리고 둘째, 영상편지라 하기엔 조금 부끄럽고 단편 영화라 하기에는 너무 수줍지만 또 아니라고 할 수도 없는 단편 영화를 하나 찍기. 왜냐하면 친구들과 블로그 모임일은 가까워오고 마감일은 닥쳐오는데 글은 안 써지고 영감도 떠오르지 않고 그야말로 미칠듯한 답답함에 쉴새없이 시달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엔 글 대신 단편영화를 대신 올리겠다는 속셈이 있었던 것이다.

   ⑧
   그래서 그는 저기 보이는 노란 찻집, 알록달록 물감과 색연필과 크레파스를 떠오르게 만드는 웬 고전적인 느낌의 찻집에 들어갔다. 그곳의 이름은 참 복고적이었다. <나랑 친구할래?> 어차피 엄청 오랫만에 만나는 산뜻하고 여전히 청초하고 언제까지나 귀여운 후배가 "선배!" 라며 부르는 곱디고운 목소리를 듣는 일은 자신에게 일어날 수 없는 기적과도 같았으며, 글도 잘 안 써졌고, 단기 목표 1번과 2번을 실행하기 위해서였다.
   보나 마나, 아니나 다를까, 역시나 그는 "난 왜 여기 있을까?"라는 분위기에 젖어들었기 때문에 작전 1번은 물건너갔고 작전 2번을 해치우기로 했다. 그 2번을 위해서 그는 빵집에서 케익을 하나 사서 들고 왔다. 빵집 이름은 빵집이었고, 케익 이름도 케익이었다. 더럽게 재미없게 말이다.
   그는 전에 단편영화를 찍어보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일단 찻집에서 노트북으로 단편영화, 라고 검색해봤다. 그랬더니 연관 검색어로 (단편영화) 몸값, (단편영화) 사이트, (단편영화) 시나리오, (단편영화) 상영관 같은 주제가 뜨는 걸 봤다. 괜히 삼천포로 빠지면 안 될 것 같아서 다 집어치우고 바로 즉시 찍기로 돌입했다. 이미 각본과 어떻게 찍을 것인가, 는 다 머리 속에 담겨져 있었다. 배우, 제작비, 사운드트랙, 촬영감독, 조명기사 그런 거 다 모두 다 필요하지 않았다. 간결한 편집, 긴장을 늦추지 않는 플롯, 삐걱거리는 문소리도 필요없었다. 곧바로 큐 들어갔다. 출연자는 1명이었다. 자기 자신. 음악? 없었다. 대사? 필요없다. 기획 의도는? 있다. 바로 극찬은 사양하겠다, 였다. 줄거리는 거의 없지만 내용은 대략 이렇다. 간단하다. 쉽다. 완전 쉽다.
   찻집에서 외롭게 슬픔을 간직한 듯한 까칠한 그러나 알고 보면 자애롭고 부드러운 어느 낭만적인 남자가 혼자서 케익에 촛불을 붙인다. 처음에는 초를 하나만 올렸는데 갑작스레 욱~했는지 막 여러 개, 수십 개의 초를 올린다. 그러다 다시 모두 치우고 초를 딱 2개만 남겨놓는다. 불을 붙인다. 혼자만의 촛불잔치를 시작한다. 표정을 보니 금새 다시 기분이 좋아진 것 같다. 그는 조울증 환자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편집증? 강박증은 아니다. 증은 뭔 놈의 증, 그냥 작은 외로움 정도면 충분할 것이다. 그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왜, 우리 모두 해피엔딩, 내가 주장한 제목을 팀장이 묵살했지? 왜 갑자기 통장 잔고가 바닥났지? 왜 이번 달 카드값이 이렇게 많이 나왔지?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가 그건 알 수 없다. 그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 볼 수 없는 이상. 발끈할 일도 아니고 통찰이 필요한 탐구 과제도 아니다. 순간 그의 울적한 기분을 어떻게 알았는지 더없이 고즈넉한 경음악이 흐른다. 그건 어린시절 받았는지 받지 않았는지 기억이 흐릿한 연하장, 누나를 따라해서 직접 수작업으로 만든 크리스마스 카드를 친구에게 딱 한번인가 두어 번 보냈던가 그랬는데 답장은 못받았던 일, 누나는 왜 스무살에 그런 책들을 읽었을까, 그녀들은 어째서 그런 이해할 수 없는 글을 쓰고 읽는 것일까, 왜 여자는 월간지 1에서 월간지 2로 세월과 함께 취향이 바뀌는가, 반짝반짝 셀로판지, 매일 등하교길에 마주친 마주치기만 했던 그녀 그때 알던 그녀에게 손을 내밀어볼 걸 그랬나...... 그런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곡이었다. 제목은 알 수 없다. 알아낼 수는 있다. 그러나 거기까지. 슬모없는 공상과 쓸데없는 추억과 도저히 도움이 안 되는 상상은 집어치우고, 그는 눈을 감고 잡념은 물리친 채 닥치고 몽상과 상념에 젖어들었다. 그러다 갑자기, 갑자기, 느닷없이 목근육의 힘을 모조리 빼버린다. 꽃잎이 떨어지듯, 순결한 처녀가 고개를 떨구듯, 세기의 거장 알프레드 히치콕의 그 표정 그 몸짓 그 손짓을 딱 흉내내자마자 어딘가에서 돌풍이 몰아치고 그것이 어느 미녀의 다홍색 치마 밑으로 들어가서 옆에 있는 사람들을 화사하게 웃음짓게 만드는 그런 뜬금없는 서스펜스처럼! 그렇다. 그건 단편영화의 시네마틱한 순간이었다. 고개를 떨구면 그 밑에는 바로 케익이 있었다. 눈썹은 이미 살짝 불에 탔다. 그 다음은, 다음에 정확히 어떤 일이 벌어질지 기대해도, 된다. 그 다음의 뭔가를 어깨 너머로 꼭 확인하고 싶어지는 슬로우모션이 등장할 차례다.
   줄거리가 거의 없어? 간단해? 쉬워? 단편 영화가 뭐 쉬운 여자야? 음, 알아서 미리 처음부터 극찬은 잘 사양했고, 제작이고 연출이고 드럼이고 기타고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고 다 하니까 다음 장면은 무엇인지, 어떻게 될는지, 그 다음에는 또 무엇이 나타날지 그것은 굳이 밝히지 않기로 한다. 너무 많은 걸 보여줄 수는 없다. 권태 먼저 다이아몬드 반지는 나중? 이상하다.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있다. 살 수도 있고 못 살 수도 있다. 뭔 말을 해도 말꼬리는 잡힌다. 안 그럴 수가 없다. 그런데 말이 아니라 소설을 상대로 한다면, 김나는 커피포트를 연상시킬 것이다. 적어도 마음만은 부자여야 한다. 최소한 그 방향 그 일방성을 벗어나지 못할꺼면서 말만 말만 이러쿵저러쿵 그런 우를 저지르는 코믹 연기, 그런 건 그가 찍은 단편 영화에 등장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음 작품에 대한 미혹이랄지 대체 그걸 찍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라는 살가운 궁금증에 대한 미련은 턱없이 부족했다. 그러나 감정의 선율은 풍만했고 플롯 자체가 무척 감정적이었다. 퍽이나! 참 나 그것도 단편영화라고, 에~라...... 직업을 바꿔라~ 어? 양계업이나 목축업, 축산업, 술장사, NC 웨이터, TV 관련 연구자, 삼류 작가 등 많고도 많도다.
   하지만 어쨌거나 저쨌거나 그는 무명 블로그에 올릴 작품을 다행스럽게 마감일을 여유있게 앞두고 완성했다. 그리고 그것을 블로그에 업데이트했다. 그래서 그는 모든 긴장이 풀려버렸다. 그렇다고 바지에 오줌을 싸지는 않았다. 현실에 안주하고 타성에 만족했으며 못난 재능을 탓하며 스스로 자신에게 고까운 소리를 일삼았으나 그렇다고 내내 자책으로 일관하지는 않았다. 타산을 따져보니 자학은 했던 셈이 됐다. 눈썹이 탔고 그 다음 어떻게 됐으니까. 그는 가히 대중적인 화술은 썩 빈곤했지만 그런 이상한 뭔가를 만들어내는 재주 하나는 있었다. 따라서 그는 기쁜 나머지 오늘의 할일 두 가지 가운데 완수하지 못한 1번을 시도해볼까 하는 발가락 사이에 땀나는 충동이 일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은 의지만으로 부족한 일인데 괜히 발동걸렸다고 좋다고 시도했다가는 씁쓸한 패배주의에 바져서 속수무책의 실망감을 떠안고 2번 과제를 완결한 뿌듯함까지 그것마저 상쇄됨으로 모자라 기분이 아예 잡치게 될까봐 그냥 오늘의 할일은 미완성으로, 절반만 성공한 것으로 남겨서 유종의 미에서 트로피와 상패는 놔두고 상금만 챙기기로 했다. 그러는 것이 신상에 이롭고 무난하리라는 복안이 반영된 결단이었다.
   그때 마침 조니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제임스, 마감일 잊지 않았지? 그런데 있잖아~ 마감일이 변경됐어. 그리고 그 변경된 마감일이 당겨졌어. 그런데 방금 한 말 뻥이야. 장난이고, 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음... 뭘까? 맞혀봐. 아, 생각났다. 모임 장소가 바꼈다는 거야. 다이얼 M을 돌려라, 거기서 만나기로 했잖아? 그런데 장소가 바꼈어. 왜 바뀌었는지는... 왜냐하면... 안 가르쳐주지. 푸하하하하하하. 재미없지? 나도 알아. 상대가 재미없어 하면서도 예의상 웃어주는 걸 내가 즐기는지도 모르겠지만 이상하게 목소리만 듣고 그 목소리에 어울리는 영상을 상상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따라 웬 썩은 미소가 떠오르는 거 있지. 아 나 이거 이거 아재 개그에 익숙해지면 고품격과는 멀어지는 건데, 말이 늘면 글은 쉬운 길로 접어들게 되는데 큰일이네 큰일이야. 음 아무튼 이번에 거기 어디지, 지도에 없는 도신가 뭔가로 우리들이 찾아가기로 했으니까 그렇게 알고 있으라고. 네비게이션 찍으면 나오겠지 지가 안 나오고 별 수 있을라고. 안 되면 보이스카웃으로 돌아가는 거고. 그것도 좋겠네. 괜찮겠어. 자칫 기대가 되는데. 그럼.」
   결국 조니의 용건은 차나 한잔 하지, 가 아니었다. 애들이 어떻게 알았지? 내가 여기 있다는 걸? 하워드는 무덤까지 비밀을 갖고 가기로 했는데, 쉽게 발설할 녀석도 아니고. 음...... 조니가 도청했군, 그랬군 그랬어.
   그러나 그는 뭔가 조니의 속내가 의심스러웠다. 그의 음성이 맞긴 한데, 그러긴 한데 그의 음성에 관한 자료를 많이 모아서 각 단어와 호흡과 리듬 같은 모든 발성을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어서 합성한 것 같았다. 그리고 말의 내용도 허풍이 부족했다. 허세도 등장하지 않았다. 허구는 끼어들 여지도 없었다. 프로그램에 글을 입력하면 그걸 조니의 말로 만들어주는 꾸며진 작위성 그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의뭉스러운 의혹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2번 과제의 완수 때문에 들뜬 기분을 잠재울 수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실수였다. 그는 엄격하게 가짜 조니를 추궁하고 파악하고 따라붙었어야 했다. 야근을 해서라도. 야근? 정식 출퇴근을 해본지 오래된 사람은 낯선 단어구나, 야근.

   ⑨
   장면이 바꼈다. 자주 바뀐다. 딱히 보이지는 않고 상상은 잘 안되지만 카메라 각도와 영상의 속도가 세련된 듯한 기분이 든다. 밑도 끝도 없는 공상이다. 하여간 장면이 바꼈다. 블로그 회원들이 모이기로 한 날이다. 약속된 장소는 호숫가 정취가 근사한 카페였다. 나른한 백포도주 한 병이 테이블 위에 보이고, 테이블 밑에는 정말 오래된 적포도주가 댓병 대기하고 있다. 촛불에 불꽃은 반짝이고 있지만 명백한 낯술이다. 탁자 위에는 오페라 초대권, 영화관 시사회권, 일기장, 엽서, 핸드폰, 노트북, 가발, 모자, 먹음직스런 요리와 인형과 꽃다발과 어느 전설적인 테너의 아리아 CD, NC 1년 자유입장권, 그리고 인문교양서와 소설과 만화책들이 보인다. 즉 탁자가 엄청나게 커서 올릴 수 있는 건 뭐든 올려야 할 것만 같다. 그러면? 음, 그러면. 아직 준비가 안 되었다면 슬로우모션으로 돌리든가 그러면 좋을 텐데... 보여줘? 뭘 보여줘? 여기서? 안 돼.
   아무튼 그랬는데 모인 애들 가운데 유독 제임스만 멀쩡하고 나머지 친구들은 모두 가짜 티가 난다. 그것도 많이 난다. 그러나 진짜 1명 가짜 6명이라서 진짜인 그는 쉽게 이의를 제기하지 못한다.
   그리고 이쪽에서는, 지도에 있는 도시에서는 블로그 모임을 진행중이다. 오늘도 역시 가짜 제임스가 등장하셨다. 물론 나머지 여섯 명은 진짜다. 저번에 왜 도망쳤냐고 물어보니까 그는 이렇게 말했다.
   「도망치기는 누가 도망쳤다고 그래? 급한 약속을 잊고 있다가 바로 떠올라서 서둘러 떠난 것 뿐인데. 생사람 잡고 있어. 흥!」
   그의 컨셉은 오늘 뻔뻔함이라는 원재료에 능청을 첨가했지만 여전히 부족한 연기력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나머지 친구들은 팔짱을 끼고서 또 폼을 잡고서 뒷짐을 지거나 눈을 가늘게 뜨거나 당황함과 냉소와 끔찍함을 모두 넘어버린 웃음으로 일관하면서 그래 어디까지 하나 보자, 저분이 어쩔려고 저러지, 이젠 말리기도 귀찮다 라면서 합을 맞추고 덩달아 같이 놀게 되는 형국에 이르렀다.
   자, 종이 울렸다. 다음 과목은 수학? 과학? 예체능? 아니다. 경우의 수다. 그러나 예정에 없던 마술사의 등장으로 드라마 촬영장 말단 사원의 실수로 종이 잘못 울린 것으로 판명된다. 경우의 수, 그런 거 머리 아프다. 학교에서 공부하랴 직장에서 일하랴 집에서 청소하고 애기보랴 장비는 여력이 부족한데 소설에서까지 골치 아파서야 말이 되나. 재미없는 구간과 고리타분한 분량은 단숨에 뛰어넘기로 하자.

   ⑩
   앗! 그래서 저쪽 도시에서 제임스는 결국 제정신을 차리게 됐다. 알고 보니 그는 환상적인 글쓰기에 대한 욕심이 과했다. 인생의 신비를 과신했고 초현실주의를 맹신했다. 허구헌 날 헛된 이상을 쫓고 허황된 꿈만을 쫓아갔으며, 장비든 대사든 뭐든 길게만 만들려고 했고, 타인의 빈말은 물론 C급 허풍까지 덥썩 믿었던 것으로 모자라 자기 자신을 조종할 줄도 몰랐다. 영화를 너무 많이 봤고 허세와 허당 기질이 다분했으며 요설가의 장광설에 잘도 속아넘어갔다. 그분들에게 제법 중요한 고객이 되었다. 그것도 특급 단골로. 그리하여 그는 이 모양 이 꼴로 차의 네비게이션이 고장났는데 그것도 모르고 지도에 없는 동네라며 동화 속 나라에 당도한 듯한 착각에서 빠져나와 제정신을 차리게 됐다. 즉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곳은 친구들을 만나고 있는 근사한 찻집이 아니라 네트워크 마케팅 회사의 강연장이었다. 대역 연기를 신들리게 펼치는 친구들은 그처럼 반쯤 몽롱한 현실 감각으로 똘똘뭉친 광고와 헌사와 소개의 글을 모두 철썩같이 믿어버리는, 최소한 과거에 그렇게 반신반의하며 믿었던 바로 그런 순진한 보통 사람들이었다. 일명 일반인. 그래, 할 수 있어. 자 따라하세요. 뭐라 뭐라 구호를 외치고 그대로 따라하고 거미줄이 하늘에서 내려왔으니 자기 밑으로 거미줄을 내려보내야 하니까 썩은 동아줄이라도 내려보낼려면 친구에게 좋은 생명수가 있다고 좋은 껀수가 있다고 괜찮은 장비가 있다며 연락을 해야 한다고 하니까 바로 그때, 그렇게 빠져나갔던 혼이 다시 제자리로 들어오고 사태 파악을 제대로 하게 된 것이다. 그가 믿었던 환상은 허깨비였고, 다단계 교본을 요술의 비서로 잘못 알았던 것이다. 미칠 듯이 하나에 빠져드니 이제 다시 다른 하나, 새로운 하나, 더 흥미로운 무언가 꿈결처럼 달콤하고 실크처럼 나풀나풀한 새로운 다음의 어떤 무엇이 또 다시 필요하게 된 것이다. 마치 어떤 뭇-남성들의 이상형은 새, 새, 새로운 여자라는 농담처럼(농담 대신 다른 낱말을 넣는다면? 가령 넌센스, 절망, 희구, 거짓말, 강박 관념, 풍자, 프로이트주의 같은. 그러면, 오! 그건 답이 안 나온다).

   ⑪
   그는 드디어 그러면 그렇지 뭐 특별할 게 있다고, 그러면서 괜한 기대는 금물이라면서 좋게 송충이는 솔입을 먹고 살아야지 라면서 집으로 돌아가기로 마음을 굳혔다.
   그러나 곱게 집에 당도한 것은 아니었다. 그럴 리 있겠나!
   최근 그의 취미는 무엇인가? 그걸 왜 나한테 묻냐고? 글쎄! 실은 당신의 호사와 친교와 꿈과 사소한 습관과 내밀한 개인적 안목이 궁금하기 때문이다. 당신은 실내에 있을 때 햇볕이 실내로 어느 만큼 들어오는 것을 좋아하는지, 때때로 그 좋아함은 어떻게 변하는지, 우아함을 위해 쾌적함을 얼마나 감내할 수 있는지, 언제 어떻게 무슨 과정을 통해서 기분이 날아갈 듯 정신줄을 놓게 되는지, 또는 사람이 너무 빈틈없고 매사 반듯하고 매우 윤리적이라서 술 취해 거리에서 한 번도 자보지 않았는지, 지갑을 잃어본 적이 있는지, 사랑을 하게 되면 주로 차는지 차이는지, 그분에게 바라는 건 자기를 험하게 함부로 심하게 꾸짓으며 막 대하는 것과 동화 속 공주처럼 떠받드는 것 그 두 가지를 모두 바라는지, 그 모든 게 궁금한 것이다. 일방적으로. 누가 누구에게? 너무 자세한 것은 은근슬쩍 묻어놓고 넘어가기로 한다.
   제임스가 최근 즐겨 하는 일이 몇 가지가 있긴 하나 그 가운데 딱 2가지만 꼽자면 이와 같다. 사람들과 교감하며 사귀고 즐겁게 교제하는 기술도 딸리고 은거하며 소설 쓰기 특급에 몰입하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한쪽 어깨 위에 이상한 인형을 아예 상의와 꼬매서 붙여버린 의상을 입고 다니는 것이 그 하나였고, 나머지는 근래 바짝 물이 올라서 좋다고 중독된 놀이인 얕은 정원용 호수, 무슨 기념 회관이나 큰 궁정 한가운데 무릎 깊이로 넓게 전망을 위해 만들어진 분수대에서 고무보트를 타고 장난감 삼지창을 들고 서 있기, 바로 그것이었다. (한 얘기 또 하고 또 하고 그걸로도 모자라 계속 반복하기, 는 열외)
   변화가 하나 있다면 그는 예비용으로 사랑을 위한 큐피트 화살도 준비해뒀다. 그는 정말 그것에도 꼿혔다. 마음, 심리, 정신, 생각, 의도와 의지, 사유 그리고 사상까지? 이미 빠졌으면 한 번 부정해봐야 허우적거림에 지나지 않고, 한 번 반 부정하면 그것은 곧 애교요, 두 번 부정하면 과도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 되고, 이미 사랑은 시작됐으며 참을 수도 없고, 빠져들었으면 계속 진행하는 일만 남게 된다. 처음이 어려운 법이다. 가령 바람피우기와 이혼하기는 부적절한 예다, 물론! 자, 빠져든다 빠져든다 빠져든다 빠져든다 빠져든다! 삼천포, 한번 가자. 갈 시간이 됐다. 한동안 안 갔드니 서운하다. 독자 딱 두 명쯤 엉덩이 아니 귀가 근질근질하셨을 것이다. 자, 빠져든다 빠져든다 빠져든다 빠져든다 빠져든다 빠져봅시다~! (손가락 딱) OK! 물론 사람에 따라 사랑한다는 말하기, 까지가 정말 어려운 사람이 있는 반면에 거기까지는 쉽고 그 다음부터가 어려운 사람이 있다. 즉 모두 그래프와 유형 차이다. <나는 어떻다, 나의 경우는 어떻다, 나는 어떻게 생각한다>에서 '나는'을 생략하고 뭐는 뭐다 뭐는 어디서 와서 무엇이 된다 인생은 뭐다 청춘은 무엇이고 내 꿈은 뭐였으며 난 그 가운데 몇 개를 이뤘고 아직 몇 개는 남았고 새로 영입한 친구는 어떤 녀석이다 또 '사랑한다는 말까지는 쉽다 그 다음이 어렵다' 라고 하면 마음이 여린 사람들은 진짜 그런 줄 안다. 그게 전부인 줄 안다. 한동안 그게 다라고 생각한다. 그게 모두에게 통용되는 줄로 안다. 그것이 대체로 거의 언제라도 누구에게나 항상 들어맞는 말인 줄로 안다. 그러나 그건 절대적이지 않다. 그거 절반은 뻥이다, 개뻥! 웃자고 한 얘기고 개인적 경험을 압축한 말이라는 뜻이다. 아무리 찰떡같이 확신을 가지고 누가 웅변을 하건 뭐를 하건 모두 저처럼 받아들이면 된다. <나는 어떻다, 나의 경우는 어떻다, 나는 어떻게 생각한다> 별로 그다지 글 같지 않은 글이, 말 같은 글이 뭔가 의미가 불확실하고 개념이 모호하고 썩 중요하지 않지만 뭔가 어떤 결단과 불확실함과 이상을 궁금하게 만드는 힘은 없잖아 있다면 그건 모두 그 가치는 모두 절반 깎아야 하는 것이다. 50퍼센트 할인이 꼭 필요하다. 때에 따라 반대로 50을 곱하는 일도 개인에 따라 발생할 것이다. 그걸 늦게 깨닫고 어른이 되면 바로 평생을 상업과 타자적인 삶에 일조하고(그게 왜 나쁘겠냐마는), 진정한 나를 늦게 알게 되며, 인생도 이리 갔다 저리 갔다 물에 술 탄 듯 술에 물 탄 듯 하게 되는 것이다. 어른이 언제부터 어른이냐 얼마를 벌어야 어른이냐, 에 따라 재론의 여지는 있지만 말이다. 어떤가, 이 요사스럽고 빙빙도는 무언가에 대한 설명은 한 개인의 뚝심 같은 철학이자 세월의 지혜가 녹아든 약간만 흐릿하게 인상적인 평대사 같은가, 안 그런 것 같은가? <나는 어떻다, 나의 경우는 어떻다, 나는 어떻게 생각한다> 방금 전의 설명에 이 표어를 적용하자면 이건 음 어떡하나, 50퍼센트도 아깝군! 50? 50이라... 너무 했나? 너무 했다. 내 말은 일단 5퍼센트를 빼던가 또는 하나의 가설로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하나의 가설로!> 그렇다. 진심이다. 하나의 가설로, 모든 것을. 똑같은 말을 수없이 반복하게 만든다. 세상이 그렇게 만든다. 주변에 사람이 많고 바쁘고 멋져보이고 뭐 하나 빠지는 거 없고 인기도 많고 항상 유쾌하며 타인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분에게는 여기도 사랑 저기도 사랑, 다채롭고 화사하며 웃음과 행복에 둘러쌓여 살아가시는데 그렇다면 뭘 해도 재미없는 사람보다는 비교적 사랑이 쉬울 수 있다. 정말 쉽겠지. 그럴 테다. 즉 사랑의 고비랄까 그것에 대한 의미와 관점이 다를 수 있다. 그러겠지. 그런데 가만 있자... 정말 그게 쉽던가? 진짜로? 그건 일반인 기준이 아니다. 대다수는 일반인이다. 그 말은 틀렸다, 적어도 일반인에게는. 최소한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 먼저 그 안온함을 떠올리는 숙녀에게는. 그러니까 사랑은 없어~ 라는 말이 먹히는 거다. 그것도 아주 잘! 사랑이 어디 동네 똥개 이름이더냐? 어? 어? 정말 그런가? 대부분 우리가 읽고, 보고, 듣고, 접하는 글과 말과 작품은 쉽게 말해 일반적으로 잘난 사람이 만든 것이다, 잘난 사람이, 능-력-자가. 모두, 싹.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생 살아도 그런 컨텐츠를 만들어내기 힘들다. 그건 모두 머머-마를 탄 사람들이 만들어낸다. 그러니 세상에 떠도는 통용되는 말과 글과 텔레비전에 나오는 내용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드문 확률로 지구에서 그리고 인간으로 태어났는데 살아보니 인생은 뭐고 사랑은 뭐고 세상은 어떻드라, 에 대한 표본이 될 수 없다. 논리가 급진적이고 비약이 심했지만 인간계에서 그런 표본 추출을 비정상적으로 한듯한 그런 느낌이 든다. 그건 대략 상업과 허구와 단편적인 사실일 뿐이다. 의문을 제기하는 일이라거나 다큐멘터리와 시민단체나 환경운동가 그리고 바로 작은 목소리를 지닌 일반인의 생각과는 거리가 한참 있는 것이다. 이~따만큼. 내 것이 아니면 우선은 껍데기다. 출신배경과 성장환경이 좋고 적당히 행복하고 유명하지만 생각은 좀 갸우둥한 사람의 글과 말을 곧바로 받아들이기에는 인생은 너무 짧다. 내게 체화되지 않았다면 그건 타인의 인생일 뿐이다. 사랑? 웃음이 나올 일이다. 사랑? 물론 아름다운 것이다. 구분을 해보자. 1번, 사랑은 없다고 가정하고 살면서 할일은 정말 그런가 의문을 가진다 진짜를 찾는다. 그리고 2번, 사랑은 있다 그러니 이건 사랑일까 다가오는 저분은 사랑일까 사랑은 쉽다 사랑한다 말할까 좋아한다 말할까 내가 사랑했으면 그만인데 왜 난 사랑받지 못했다고 푸념인가 그때 사랑이라 믿었던 건 풋풋한 사과향 같은 거였나봐 이 사랑 음 이 사랑이라 글쎄. 1번과 2번은 모두 전문용어로 짧게 압축할 수 있다. 뒤섞여서 정리가 필요할 수도 있다. 많이. 그러나 그대에게 오리발 1번과 2번 닭발을 내민다면, 그냥 다그치면서 고르라고 하지는 않고 고결한 자세와 고매한 태도로, 현명한 당신이자 고상한 그대는 그렇게 쉽게 둘 중 하나를 선택하지 않는다. 수동적으로 하라는 대로 하지 않는다. 보통은 근사하게 3번을 택한다. 없으면 만든다. 왜냐하면 그거 아는데 평균 수십 년이 소요됐기 때문이다. 수십 년 씩이나! 그 지략을 터득하여 체감한 존재를 사회에서는 보통 어른이라고 한다. 그러나 법적 연령으로 성인이 된 후 또 다시 어른이 될 때까지 달리고 또 달리고 경쟁하고 좋은 일도 했다가 속고 속이기도 했다가 때로는 하얀 거짓말도 하며 옆길로 빠지기도 한다. 그래야 한다. 그렇게 된다. 그럴 수 밖에 없다. 열심히 다람쥐 쳇바퀴를 돌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데 그러다 사랑도, 돈도, 게다가 꿈도 놓친다. 그나마 기쁨이라는 물풍선과 보람이나 삶의 의미라는 고무 풍선을 잡았으면 괜찮은 거네. 그런데 인기와 행복과 많은 풍선으로도 모자라 솜사탕까지 거머쥔 사람이 하는 말, 난 절대 믿을 수 없다. 나는 절대 믿지 않는다. 난 그걸 보기도 싫...... 아니지 아니지. 아니야 아니야! 강의 분량이 나오는데 나도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들리는 건 듣고 우연히 보이는 건 본다. 옳지. 그렇지. 으흠. 에헴. 그래도 순서가 있으니까 더욱이 제가 좀 약삭바른지라 우선 면피를, 변명 먼저 하겠습니다. 엄한 걸 가지고 그분의 바짓가랑이를 꽉 부여잡고 믿음의 문제로 끌로가서 무척 송구스러웁다만 다 놓치고 지성이라는 눈에 잘 띄지 않는 풍선만 겨우 어렵싸리 잡은 사람은 어떨까? 뭐가 어때? 뭐가 어떠냐고? 1살 갓난아기가 생일잔치에서 앞에 놓여진 많은 상징물 가운데서 뭔가를 고르는 깜짝 이벤트처럼 비리비리한 어떤 아저씨가 지성이라는 사과를 따먹었다고? 그게 뭐야? 그게 뭐지? 그는 누구일까 어떤 사람일까? 그분의 생활은 대체로 합리적일까? TV는 주로 뭘 보고, 핸드폰은 어떤 거 쓰고, 소비 습관은 어떠하며, 사랑에 대해서는 어떤 관념을 지니고 있을까? 가게 마감 시간이다. 소설로 돌아가야 한다. 돌아갈 수 있는 문이 허공에서 45도 각도로 2층에 뿌옇게 구름이 형성되고 후광에 힘입어 드디어 나타났다. 곧 있으면 닫힌다. 아, 들린다. 울려퍼진다. 이번에는 피콜로 소나타구나. 지성에 당첨된 사람은 어떨까 뭐가 어떨까? 수없이 들어서 알지만 다시 듣고 보니 이상한 질문과 번민에 딱 적합한 사안들만 널찍히 풀어놓고 냅다 도망치겠다고? 벌써 잘하면 쉽게 도망칠 개구멍은 만들어 논거 아니냐고? 그런 법이 어딨냐고? 돌팔이인지 사기꾼인지 믿음직한 장사꾼과 성실한 학자도 과연 그러는지는 잘 몰라도 선수는, 선수는 마땅히 여운을 남겨야 그래야 선수다. 모르긴 몰라도 그럴 것이다. 그래서 결론이 대체 뭣이냐고라? 어~허 순진하시기는. 긴말 필요없다. 여러 말 할 것 없다. 딱 한마디면 된다. <그는 가난했다!> 음... 음... 그렇다. 됐습니까? 뭐시여? 아따 시방 뭐라고라? 아직도 불만족이시라고라? 거 마 아직 한~참 모자라다고 거 마 딱 하나만 더? 눈 감고 딱 하나? 뭐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 오케이, 미운 놈이든 어쩌든 일단 가자. 거의 결승점이 보이는구나. 음, 그럼 그대의 미소 때문에 기분이 좋으니까 딱 하나만 더. 오케이. <그는 불행하다?> 하하하하하. 바로 이제야 식 웃으시네. 이거야~ 이거야~ 이거라니까~. 자기는 이런 거 좋아하시는구나. 휴~ 저도 여러분 웃는 것 보니 정말 흐뭇하고, 감개무량하지만 적잖이 기진맥진합니다 그려. (저기 보이는 저 꼬마 신사를 향해서) 까꿍~ 안녕~(방긋, 엄마가 좋아요 아빠가 좋아요? 뭐? 곰돌이가?). 아 힘드네 힘들어. 오늘은 유독 힘들어. 모처럼 VIP만 모셨기 때문인지 제가 기력이 딸려서 그러는지는 몰라도 몹시 벅차군요. 어... 돈 버는 거 이게 이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에요. 네~ 그럼요. 어쨌든 마지막으로 구호를 외치고 이번 특별 부흥회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주섬주섬 필기구를 챙기며 바닥에 뭐 떨어졌나 어쨌나 확인을 하다가~) 거기 가죽점퍼 입으신 분 아 옆에 막 쳐다보지 마시고 눈 작고 척키인형 닮으신 분 아따 거기 주머니에 검정색 선그라스 8대2 가르마에 포마드 바르신 분 바로 그래 거기 아저씨, 일단 가짜 웃음부터 숙달하시기를. 끝! 
   앗, 돌아왔다. 분수대에서 고무보트를 타고 장난감 삼지창 들고 망보기, 라는 바로 2번을 또 적당한 위치가 보이길래 즉시 실행했는데 이번에는 뭔가 이상하게 일이 꼬여버렸다. 원래 정상적이라면 한적하고 새소리가 들려야 하는데 그게 아니라 사람들이 엄청나게 몰려들어서 막 그를 사진찍고, 카메라 후레쉬가 번쩍거리고, 구경하고, 웃고, 혹자는 비웃고, 심지어 동전을 적선하듯 분수대 앞에 던져댔고, 그 가운데 일부는 바쁜 가운데 또 소원을 비느라 분수대 안에도 동전을 던져댔고, 선심쓰듯 유일하게 새하얀 속옷, 아마도 하의 그리고 어쩌면 제일 안에 입는 면 100퍼센트로 추정되는 내복마저 던져졌다. 저걸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라고 잠시는 시간을 빼앗게 만드는 그것까지 등장했다. 도대체 그들은 어떤 경로로 왜 왔지? 뭣 때문에? 누구도 모를 일이다. 그걸로도 모자라 다양한 개들이 짓는 소리까지 들렸는데 그 소리는 왜 들리는지 그 이유는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차마 밝힐 수도 없고 알아낼 수조차 없었다. 전대미문의, 난생 처음 겪는 일이었으니까.
   그래서 그는 서둘러 그 현장을 떴다.
   그리고 그는 볼보 웨건을 몰고 집으로 가다가 길을 잘못 들고 말았다.
   그는 어느 막다른 마을에 도착했다. 처음에는 뭐야 이거, 그랬지만 보면 볼수록 알면 알수록 그곳은 꿈의 낙원이었다. 진짜 환상적인 요술의 공원이었고, 아름다운 요정들만 사는 것처럼 보였는데 진짜 아름다운 요정들만 살았다. 바로 그래~ 이거야~ 이거라니까~ 라는 감탄이 절로 나오고 동물의 머리에 사람의 몸을 하고 있는 진짜 괴물 온순한 괴물들이 살고 있기 때문에 탄복을 차마 멈출 수가 없어 경이로웠으며, 아름다운 꿈과 희망과 신비로 이루어진 지상천국이었다. 그곳은!
   그는 곧바로 행복설계소에 들어가서 행복을 설계했고, 낭만연구소에 들려서 낭만파 멋쟁이가 고민하는 판타지에 대해 눈부신 미녀들과 담화를 나누고 그분들과 진심어린 친분을 쌓았다. 게다가 그 동네에서 남자는 단 1명이었다. 그가 오기 전에는 0명이었다는 얘기였다. 뿌잉뿌잉~ 반짝반짝~ 알콩달콩~ 새콤달콤~! 그래~ 이거야~ 이거라니까~!

   ⑫
   그러나 이건 거짓이 아니었다. 가짜도 아니었다. 속임수 역시 아니었다. 모두 진짜였다. 흠없이 완벽한 요술 세계임이 틀림없었다. 암호명, 필요없었다. 한 번 잘 해주고 두 번, 세 번, 네 번 계속 이어지다가 막판에 잡아먹힐 걱정도 쓸데없는 기우에 불과했다. 즐기면 그만이었다. 챔피언이 된 거다. 이렇게 기쁘고 즐겁고 한없이 재미있어도 괜찮은지에 대해 입씨름할 상대조차 오금이 저릴 정도로 똑같았다. 무엇과? 바로 꼬마 아가씨가 읽는 동화책에 나오는 그림 거기 등장하는 그분과. 뭔가 반전이 있을까? 없다 그런 거. 그래도 덥썩 신뢰하기에는 세상을 알고 인생도 안다? 이곳은 예외다. 지구에서 유일한 이상향의 공간이다. 쾌락 대소동이 기다리지 않냐고? 어쩌면! 장막은 천천히 벗기자. 약혼자가 보고 있으면 어쩌나 라는 걱정은 붙들어 매도 좋다. 왜냐하면 여긴 4차원이니까. 남극 저 밑에 있으니까. 시간도 돌릴 수 있고 알라바이도 다 만들 수 있으니까. 이렇게 행복하다니 어쩌면 좋아요? 그래, 어쩌면 좋을까 어쩌면 좋아. 바라는 소원은 모두 이루어질 것이다. 불가능은 없다. 젊음은 영원하다. 당신은 청춘으로 돌아갔다. 화장지곽 안에 무엇이 들어있을까? 화장지가 아닐 것이라고 예상해도 된다. 똑똑해지고 싶어요? 자, 여기 이 모자를 쓰시오. 모자에는 웬 숫자가 씌여있군요. 200이라고. 200은 IQ? 예~스!
   자, 당신은 쾌적한 공기에 상쾌한 기분으로 아늑한 흔들의자에 앉는다 앉는다. 스르륵 스르륵 천상의 음률이 들린다 들린다. 저 앞에서 눈부신 누군가가 당신에게로 걸어온다 걸어온다. 그녀는? 그분은 날개를 펼친다 펼친다. 그러나! 그러나 안개가 뿌옇게 끼며 졸음이 몰려온다 몰려온다. 당신은 그다. 그는 제임스다. 당신은 제임스다. 제임스는 당신이다. 당신은 비로소 단잠에 빠지고 말았다 말았다.
   그때, 블로그 모임일에서 제임스 대역을 맡았던 친구가 나타난다. 그는 제임스의 옆으로 와서 자신의 본 모습으로 변신한다. 그건 변장이 아니라 본디 그의 원래 형태로 되돌아온 것이다. 그는, 그는 어떻게 설명할 수 없는 뭐라고 형언할 수 없는 어떤 불가해한 괴물의 모습이다. 만화와 영화에 나왔던 엑스맨의 미스틱과 닮았군, 정말 닮았어. 그의 성별은 알 수가 없다. 그는 마치 연기인 듯 기체가 아닌 듯 초소형으로 줄어들고 그 줄어듬을 멈추지 않는다. 거의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작아지더니 결국 그는 제임스 즉 당신의 뇌리 속으로 들어간다. 그는 제임스의 남성성일까? 분신일까? 당신의 복사판? 아니면 그대의 혼령? 그럼 제임스의 육신은 어떤 밀명? 서술자는 후견인? 따끔하게 혼이 나야겠군. 바로 이럴 땐 체벌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발바닥 간지럽히기나. 다음에 이어질 이야기는 이하동문이라서 설명을 줄여야 할 것 같다.
   불후의 환상 소설을 이만 마친다. 이야기 끝.

   ⑬
   하워드는 만년필로 쓴 자필 원고를 마친 후 공책을 덥는다. 그리고 그는 주춤주춤하다가 안되겠다는 결연한 표정으로 앞 표지에 이렇게 적는다.
   제임스, 꿈을 꾸다.
   그는 아휴 하면서 한숨을 내쉰다. 이거 이거 모태에서 상상했던 이야기도 아니고 뭔 말도 안 되는 허접한 소설이란 말이더냐, 블로그에 올려야 돼 말아야 돼? 그는 그렇게 심각하게 심사숙고한다. '구술자 + 서기' 라는 형식보다는 차라리 이것에 가까울 것 같다. 잠자기 전에 동화책 읽어주기 단계를 지나 동화책 읽기는 그만 됐고 딱 됐고, 이젠 책을 덮고 즉석에서 이야기를 만들어서 막 지어서 파파팍 구연해주라는 유아의 주문에 적절히 응답하고 웃고 말하고, 말하고 웃고, 다시 어이없어서 또 한번 웃는 바로 그 상태가 아닐까 라고 슬며시 점쳐보게 된다. 정말 그처럼 넌지시 해석해봤으나 그 또한 억측이었다. 독자의 요구 사항이 정확히 반영됐나? 그렇다. 그렇다? 그건 억지다. 반영, 안됐다. 독자의 정신이 하워드의 마음으로 전이되었을까? 전이? 전이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말도 안된다. 이 작품은 한마디로 철썩 같이 엉망진창이다. 하워드는 그렇게 고민하다가 도저히 이건 아니다 싶었는지 한마디 하면서 이상야릇하고 요상한 이야기가 씌여진 요술의 춤추는 구두 같은 공책을 갈기갈기 찢고 짓이기고 뭉치고 이빨로 물어뜯더니 집어 던진다. 침도 한바가지 묻어버렸다. (냄새를 맡아봐 말어?)
   「이런, 젠장!」
   이미 업로드했기 때문일까? 정말 백업은 이미 해놨고 괜히 쇼하는 건가? 그건 알 수 없다. 그는 성격 좋다. 그릇도 되고 깜냥도 된다. 그러나 연기는 이제 손 뗐다.
   누구 꿈을 꾸다, 는 그 누구의 인생도 바꾸지 못했다. 세상의 아름다움과도 연분을 맺지 못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에잇, 짝사랑이었네 그려.
   순간 불시에 하늘에서 공책 한 권이 떨어졌다. 그곳은 좀 전에 졸음에 빠져 달콤한 낮잠에 빠져들었던 제 2의 이상한 동네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동네였다. 그러나 분명 그곳은 제 1의 이상한 동네로부터 자신의 집으로 좀 더 가까이 진전된 위치에 자리잡고 있는 동네의 공원이었다. 그 공원에서 그는 다시 최근 몰두하고 있는 심각한 취미 활동을 펼치고 있었다. 얕으막한 정원 분수대에서 날개 달린 천사의 고추를 만졌다가 굳어진 하프를 튕길려고 했다가 웬 이름을 알 수 없는 바다의 신이 들고 있는 삼지창과 자신의 장난감 삼지창을 가까이서 비교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하늘에서 공책 한 권이 떨어진 것이다. 근처에 도서관이 있었을까? 제비나 까마귀 또는 하얗고 목과 부리가 다리와 날개가 모두 긴 새가 공책을 물고 날아가다 실수로 떨어트렸을까? 그건 알 수도 확인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제목은 대기중의 습한 수증기 때문인지 뭣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살짝 흐릿하게 지워진 상태였고, 제임스가 그 공책을 펼쳐봤을 때 도대체 뭔 일이 벌어질지 앞으로 어떤 신비로운 환상적 사실이 진행될지 잘 모르겠으나, 그러나, 그는 뭐야 이거 에잇 공책이자나~ 공책이 왜 하늘에서 떨어져? 그래도 다른 게 떨어진 거 보다는 낫네~ 그럼 됐어, 그러면서 그 공책을 그냥 분수대에서 나팔부는 이름 모를 천사 옆에 가만히 놔두고 그는 집으로 돌아갔다.
   혹시 가짜 하워드? 신들린 하워드? 정신 나간 하워드? 꿈은 대체 누가 꾼 거야? 진실은 뭐고? 알 게 뭐야!
   감정적인 변곡점을 여과없이 또 여지없이 보여주게 만드는군.
   그가 칭송한 건 과연 소설인가 아니면 고귀한 속임수이자 극심한 사실적 허구에 대한 찬미란 말인가? 뭐 신복고주의? 오, 불쾌하도다. 말이면 다 되는 줄 알어 라는 답변을 들을지도 모를 일이니까 진짜 이만 줄이는 게 낫겠다.
   끝으로 딱 한마디만 더하자면, 요컨대, 어디서 고기 굽는 소리... 이루 말할 수 없이 군침이 도는 그 소리가 들리는 것 같지 않은가? 그 냄새, 그 정취, 그 분위기, 무엇보다 바로 그 환희 그리고 캬~ 청량음료 한잔 또 그리고 음 그 다음! 아, 상상된다 상상돼. 그림이 딱 그려진다. 식감과 식탐과 먹성, 꼬르륵 꼬르륵. 당신은 오늘 또는 조만간에 분명코, 지지지직 지글지글 지지지직 지글지글 고기를 굽게 될 것이다. 어떤 아찔한 지성에 결단코 필연적인 고기, 탐미주의에 대한 관망과 그 뭔가 자동반사적 선행에 불가결한 고기, 바로 그 고기를 굽게 될 것이다. 단, 채식주의자라면 그건 어쩌지... 고기를 남에게 구워주기만 하느냐 마느냐는 개별적인 일이지만 썩 모습이 좋지는 않으니까 냄새만 맡거나 그냥 상상만하기. 그대가, 어쩌다가 정말 어쩌다 보니 벌써 여기까지 읽게 됐다면! 이건, 예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