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9회 부커상 심판위원 전원 만장일치 수상작 <개더링/앤 엔라이트>―아 심판위원이 아니라 심사위원이다―은 가족과 개인 이야기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몰라서가 아니라 '어떻게' 원하는지" 모르는 헤가티 대가족 구성원들은 지극히 보통 사람들이고 소설은 그들 모두에 관한 이야기다. 마리아 칼라스가 부르는 브라질 풍의 바흐와 같은 음악적인 감성 이야기는 나오지 않지만 개개인들의 수없이 다양한 감정들을 경험할 수 있어서 이 소설에 대해 평단의 찬미사를 흉내내자면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 <개더링/앤 엔라이트>는 농밀하면서 사적인 어른들만의 아주 중대한 삶의 비밀을 모두 담고 있는 것 같은 소설이다. 그동안 당신이 Twitter에서 retweet하거나 favorite 클릭한 내용 그리고 Facebook에서 나눴던 약속 잡기 대화 이후 오프라인에서 오갔던 이야기들, Tumblr에 차마 담지 못한 포스팅 자료들을 모두 이 곳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촌수는 묻지 말아달라던 베로니카의 심정에 동의하는 것처럼 플롯의 분석은 커녕 베로니카 형제들 프로필과 사건, 사고, 가족력과 개인사는 넘어가는게 좋겠다. 사실 소설 자체에 대해서는 길게 말하고 싶지 않다. 의욕의 문제가 아니라 재능과 기술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대신 누군가 이번 여름에 읽을 책 한 권을 추천받고 싶다면 그건 자신있게 권해줄 수 있겠다. '상쾌하고 매혹적인 가족 서사시'라는 간결하고 반듯하고 명료한 해설문이 소설 마지막에 실려있으니 참고하면 좋겠다. 몇가지 특징 가운데 하나는 이 소설에는 육체적 사랑에 대해 매우 꾸준하게 다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매우 꾸준하게 그리고 아주 많이. 헤가티 개더링의 성적 취향 얘기는 그렇게 중요하니만큼 소설 전체에서 지속적으로 화자되고 있다. 하지만 실제의 레슬링이 없는 레슬링 얘기같은 표현 때문에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줄리언 반즈'의 에이드리언을 닮은) 리엄에 대한 회고가 전혀 지루하지 않고 덜 중요한 것처럼 느낄 수 있다. 즉 평단의 극찬에 신뢰감이 실린다.
  착하고 친절하고 온화하며 투명한 여자를 좋아한다던 리엄은 영화 The Master의 불사조 Freddie Quell과 일부분 닮은 모습이다. 혹은 베로니카 일지도 모르겠다. 소설에 대한 분석력은 약하니까 리엄의 신비를 불사조 Freddie Quell 얘기로 대신한다. 그들의 피에는 적혈구와 헤모글로빈 같은 인체 성분 외에 위스키와 바닷물이 흐르는 공통점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바닷물이 뇌간에 있다치면 위스키는 일정량을 항상 유지해야만 하는 신체 질병 또는 선천적 증후군과 닮아있다고 상상해 볼 수 있다. 전혀 관련이 없을 것 같은 <개더링/앤 엔라이트>소설과 The Master (2012) 영화를 잇는 매개체는 술이다. 술이라는 교집합을 두고 왼편에 소설 <개더링/앤 엔라이트>, 오른편에 영화 The Master가 있다. 한편의 영화를 보고 나서 명쾌한 해석의 말과 아름다운 감상의 글을 꼭 남겨야 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첫째, 실은 그런 멋진 능력이 없으니까 둘째, 그냥 감상후 조용히 혼자서 음미하기만 해도 되니까. 시간 배경이 옛날인 영화에 대한 선호도가 비교적 낮은 사람들이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본다면 괜찮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마치 여러 교향곡들처럼 진득하게 오르락 내리락 하는 파도에 몸을 맡기면 클라이막스에 이르러서 언덕의 무지개 위로 붕 떠올라가는 그 느낌을 음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좋은 영화들에서 찾을 수 있는 공통점이 나오는 않는다는게 이 영화의 특징 같다. 그러면서 불사조 Freddie Quell에 대해서는 (염상섭의) 표본실의 청개구리와 (개구락지) 붉은 고추(Cayenne) 설계도처럼 파헤쳐서 영화라는 특수한 액자에 담겨져 있다. 성분을 알 수 없고 이름을 알 수 없는 그런 액자는 그 앞에 생명체가 나타나면 핑크 돌고래의 초음파나 흰색 코끼리의 초저주파와 같은 신비스러운 뇌파를 내보내는 것 같다. 믿어야하거나 말아야하거나! 궤변, 최면술, 똑진, YXX, 그룹 Boyfriend 노래 제목, 모래성 장면 반복이라는 키워드 외에 몇가지 인상적인 요점을 뽑아보면 다음과 같다. 

  • (sex obsession) 해변 < 세면대 거울 < 침실
  • (physical talk) 사진작업실 < 마스터 녹음실 < 술집
  • (time art) 실내악 무도 < "No Other Love" Jo Stafford < "Changing Partners" Helen Forrest

그리고 중간에 교모세포종 유발 폭탄주 제조법과 실내악 무도의 시간 동안 Freddie Quell을 향한 Peggy Dodd의 눈빛과 표정이 강렬했다. (혹시 딴데 보던건지도 모른다) 그 시선 때문인지 얼마전 커피 사러 가는 길에 횡단보도에서 만난 어느 여자분의 친절 요구가 생각난다. iPhone을 빌려 어떤 남자와 통화해서 약속을 잡고 나서 그 남자를 만나러 가는데 iPhone을 빌려주라던 완곡한 부탁을 하였던 그녀. 그 여자분은 왠지 영화 Magnolia의 소방헬기에 빨려 들어간 전설 속의 스쿠버 다이버를 연상시킨다. 영화 Magnolia. Magnolia가 개봉할 당시 특작부대에서 AK47을 쏘느라 영화 나온지도 몰랐다. 진짜 특수부대가 아니라서 자랑할게 별로 없다. 하지만 땅굴관련 부대는 군사학적으로 그렇게 흔하지 않다. 참고로 특수부대에는 2가지가 있다. 첫째, 대중에게 알려진 세계의 유명 특수부대 둘째, 전설일지 또는 실존하는지 불확실한 영화 본시리즈의 본 같은 존재들 집단. 니키타는 원래 그런 불세출의 존재다. 본래 빈수레가 요란한 법이다. 괜히 10대 초반에 누나와 놀러간 팬시점에서 입수한 (코팅) 탐 크루즈 사진이 생각난다. 삼천포로 빠졌던 특작 이야기를 다시 영화 The Master로 돌리면, 영화의 라스트에서는 주인공이 마스터교 프로세싱에서 배운 세뇌법을 영화 후반부에서 써먹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면서 몇차례 등장했던 음악과 장면의 절묘한 조합이 등장한다. 곧, 끝의 시작이다.
  수많은 학습 사례 가운데서 Yozoh 웹페이지에서인가 글을 읽고 cyworld blog에 출처없이 기록한 문장('미안해 고마워 사랑해?')과 잠원동에서 듣은 얘기("컵을 비워야 새로운 음료를 넣을 수 있다")를 달라스에서 재현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거나 책을 읽고 또 어디에서 보거나 주워 듣는 가운데 사람들은 그 가운데 따라할 것이 있고 흉내내면 안되는 것이 무언지를 어른이기 때문에 알고 있다. 하지만 베끼기, 모방, 오마쥬... 그것만으로는 재미없다. 뭔가 새로운걸 찾아야 한다. 남에게는 식상할지라도 본인에게는 새로운 것들! 이렇게 새로움이라는 악마는 이미 우리와 함께 살고 있나보다. 그 악마가 고품격이었으면 좋겠다. 영화 감상의 결론은 첫째, 큰 상 받은 작품은 극장에서 봐야 한다. 둘째, 모방의 대상을 잘 선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꽃이 지는 법은 다양하다. 정물화처럼 지지 않는 불멸의 꽃이 있는 반면에 영화 속에서의 파도와 현대음악의 분위기까지 떠올리는 벗꽃의 꽃잎 날리기, 그리고 The Master 감독의 전 영화인 Magnolia와 김유정 소설 제목으로 쓰인 동백꽃이 지는 방법도 있다. 그와 같이 영화도 여러 부류가 있을텐데 그 가운데 큰 상을 받은 작품은 대체로 지루한 편에 속한다. 그래서 큰 상 받은 작품은 어떤 계기가 필요한데 시기가 적절히 맞아서(?) 일반적으로 약간은 지루하지만 괜찮은 큰상을 많이 받은 영화를 한편 보게 되었다. 알게 되었다. 영화 더 마스터 (2012)는 제목에 대한 영화이면서 또한 학습에 대한 질문 같기도 해서 나름 부제목을 이렇게 정해 보았다. 스터디, 마스터의 마스터되기 Processing!
  영화와 소설의 결론은 제값을 내고 컨텐츠를 감상해야 한다는 것이지만 포스트의 결론은 그렇지 않다. 새로움이라는 쁘띠 앙마를 각자 분수에 맞게 경제적으로 끊임없이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솝우화 두루미와 여우에 나오는 두루미와 여우의 교집합을 찾는건 어렵지만 세상에는 제법 신기한 현상들을 쉽지는 않지만 노력하면 잘 찾아볼 수 있다. 그레이트 데인의 눈망울, 낮 하늘에 떠있는 달과 <개더링/앤 엔라이트>을 읽는 평범하고 평평한 행운외에도 수많은 비유와 의인화, 사랑법(love constitution), 마네킹, 건물에 서있거나 매달려 있는 조각상들도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베를린에서는 한밤중에 어떤 취객이 벤츠 엔블럼에 오줌을 누고 있을 것이고 애완견도 제 장소에 실례한다는 일반 가정집에서 이방 저방에 댓번쯤 오줌을 누는 인간도 있을 것이다. 그들을 교화하기 위해(?) 여기 소설<개더링/앤 엔라이트>과 영화 The Master가 존재하는 것 같다. 

개더링/앤 엔라이트
p.105 물론 지금 나는 텔레비전이나 보며 오후를 보내지는 않으니 마이클 와이스를 불신하고 결국 그를 떠나 더 훌륭하고 더 빠른 삶을 선택한 것은 의심할 바 없이 잘한 일이었다. 더 훌륭하고 더 빠른 삶, 지금의 나의 삶. 9시 전에는 집에 들어오지도 않는 남편과 곧 그렇게 될 두 딸을 위해 음식을 만들고, 중년의 남편과 가뭄에 콩 나듯 눈물로 얼룱진 섹스를 하며, 그를 때려야 할지 아니면 그에게 키스를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그런 삶.
p.180 나는 모든 남자들이 그렇지는 않음을 안다. 세상에는 무수한 마이클 와이스 들이 아들딸을 색소폰이나 피아노 교습소에 데려다 주면서 마음 편한 남자다운 남자들이 등장하는 달콤한 미국 영화 같은 삶을 살고 있다. 나는 그런 남자들이 존재함을 알고 실제로 만나기도 했지만 사랑에 빠지지는 못했다. 나는 고통받는 남자들을 사랑하며 그들도 나를 사랑한다. 그들은 내가 자신의 멋진 이탈리아 가구에 앉은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 그들은 내가 우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
p.182 나는 내 아이들을 보면서 여덟 살이면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쩌면 그렇지 않은지도 모른다. 여덟 살이면 모든 것을 알지만 숨겨지고 봉인되어 있기에 몸소 열어 봐야지만 알아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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