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젠장! 왜 기계식 키보드를 샀는데 글이 안 써지는 거야? 이번 편 분량을 먼저 쓰고 나서 즉 부담되고 어려운 일을 하고 나서 소풍을 떠나겠다, 라는 순서를 따라야 했나. 한시름 덜었나 했는데 이런 개뿔도 모르면서 또 행동이 앞섰어. 장기적인 관점에서 행복감에 대한 기계식 키보드의 영향력은 예상보다 낮을 가능성이 크지만 길고 가는 만족감을 안겨줄 줄 알았는데, 일시적으로 창조적 생산성을 높여줄 거라고 내심 콩알만하게 기대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더군다나 부담감만 늘었으니 괜히 혹 떼러 갔다가 도로 혹 한 개를 더 붙이고 온 국면인가. 물건 사기 지름신이 뭔 없던 능력을 가져다 준다고, 돌맹이가 꽃을 피울리는 없는데 하필 그깟 예지력을 믿는 게 아니었어. 키보드 매니아들 웹사이트에 들려서 그들의 온갖 설전과 인터넷 지식들을 짧은 시간에 습득한 다음 기계식 키포드를 집에서 인터넷을 통해 주문했는데, 이 글을 쓰는 당시 물건이 아직 도착하진 않았지만 그 물건을 곧 받는다는 두근거림으로 뭔가 새로운 영감이 탄생할줄 알았는데 아니었어. 손글씨로 수첩에 내용을 완성한 다음에 주문할 걸 괜히 섣불리 지름신이 내려와서 쇼핑에 빠져들어 쉽사리 결제를 한 것 같다. 혹여나 이렇게 한참을 투덜거린 다음에 또 몰라, 번뜩이는 그분이 내려오실지도. 이건 지킬?
저런! 축배를 너무 일찍 들었군. 천재들의 그늘에 내내 가려져 있다가 뒤늦게 대기만성으로 처음 시상대 위에서 샴페인을 터트리는 1등 선수보다 마치 혼자 체스 두며 노는 아저씨 같아. 홀로 체스를 두면서 한 수 두고, 체스하는 사람 어디 갔나, 라면서 깐족거림과 동시에 탁자 건너편으로 재빨리 넘어가서 다음 수에 대한 갈등에 빠지는 1인 2역 뚱딴지. 모노드라마에서만 1인 2역하란 법 있나 하면서. 기계식 키보드만 준비하면 만사형통? 아니야. 아직 그 고전적이고 가장 보편적인 기행도 안 해봤자나. TV나 영화에서 거의 안 본 사람이 없다는 그 장면. 원고지에 글을 써내려가다가 안 써져서 머리를 긁적거리고 종이를 찢고 구기고 뭉쳐서 방구석에 집어 던지기. 그걸 계속 반복. 사무실이나 방바닥에 그 원고지 구긴 뭉치가 가득 쌓인 장면. 내 그럴 줄 알았어. 그럼 늬가 하는 일이 다 그렇지. 항상 그런 식이야. 매번 똑같아. 새로운 여자를 만나서 사랑은 드문 것이니까 이 사랑은 소중하다며 막연하게라도 고마워 해야 하는 것이라고 달콤한 밀어를 속삭이다가 금새 지겨워지면서 한눈을 파는 그 과정처럼. 당최 기다림을 즐기질 못한다구 이 친구야. 생각해 보라구. 너의 글을 읽고 누군가 즐거워 한다면 기쁨의 회전목마와 즐거움의 총각 잔치 그 사이에 있는 기다리는 재미를 왜 즐기지 못하는데? 연애를 예로 들면 완전 뜨겁게 불같이 타오르는 사랑도 있지만 점점 그 아름다움과 절실함이랄지 애틋함을 키워가는 경우도 있어. 그 사람은, 내 님은 나 만 알고 내 마음 속에 영원히 간직되는 것이라며. 독자 또한 글쓰는 사람과 같이 그 다음, 이 다음에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 마치 몸과 나이만 어른이고 다시 어린아이로 되돌아간 느낌을 갖게 되는 순간은, 그것은 아마 1번 글을 읽을 때와 2번 글을 읽을 때, 바로 그 중간의 어디쯤일 꺼야. 딱 1번, 막 2번이 아닐 수도 있어. 난 그렇게 생각해. 왜 안 써지는 생각만 하는 거야. 퇴근 후 집에 가서 배우자의 엉덩이를 토닥거릴 안락한 기분을 떠올려 보라구. 아, 이건 잘못된 비유, 인정. 독자님, 고귀하신 그들의 기다림을 생각해 봐. 1번 글과 2번 글을 그냥 읽든 웃으며 읽든 그건 잠깐이고 모두들 자기의 삶을 사는 거라구. 그게 다야. 물 반 고기 반이라 말하던 이야기 전개를 뺀 인문-교양학적인 화제를 곁들여 쓰려는 욕심은 이야기만 쭉쭉 빼지 못하니까, 돈 빌려주라니까 죽는 소리하는 변명에 지나지 않는 거 아니겠어. 대사 외우는 게 싫어서 배우의 꿈을 포기하고, 사인하는 걸 거북해 하니 연예인은 되지 않겠다는 변변치 못한 핑계와 똑같아. 소설과 인문, 교양, 자기계발 등등 두마리 토끼와 월척을 한꺼번에 낚을려다 죽도 밥도 안 되는 수가 있어. 누울 자리 봐 가며 다리를 뻗어야지. 그래 봐 줬다. 잔소리 이만 줄일께. 깡통이 아니라면야 알아들었을 테니까. 여기까지는 하이드.
어찌됐든 7인의 친구들은 쥬라기 공원, 그 섬에 당도하지 못하고 다시 하워드의 집과 가까운, 이상한 요트 여행을 떠났던 해변으로 되돌아 왔다. 왜 그 섬에 들어가지 않았는지, 언제 요트가 정착한 슈퍼 요트에서 떠나왔는지, 어떻게 다시 처음의 이 장소로 되돌아왔는지 기억하는 친구들이 하나도 없었다. 뭐 이런 숙취가 다 있나, 하면서 하워드의 집으로 돌아가면서 세계 어디를 가든지 만날 수 있는 카페에 들려 차를 마신 후 이번 모임을 마무리할 계획으로 그 찾집에 들어간다. 찾집에 들어가 보니 한쪽 면이 꽉 막혀버렸던 엇그제 그 카페와는 달랐다. 음악이 있고 사람들이 보이며 지극히 정상적인 상태다. 그런데 서로들 옆 테이블의 다른 사람 노트북을 보던지 신문을 보거나 자기 핸드폰을 보든지 하나같이 시간과 날짜를 의아해 한다. 왜냐하면 하워드의 집에서 출발한 일시에서 불과 반나절 뿐이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딱 몇 시간, 같은 날짜, 이게 뭔가. 약 3박 4일? 일주일? 까지는 아니래도 분명 2박 3일쯤 보냈던 거 같은데 시간이 되돌려질 리는 없고, 지구의 자전이 느려질 수도 없는 데다가 과거로 시간 여행을 갔다온 것도 아닌데 믿을 수 없는 일이다. 딱히 기적이라고 부를 수도 없고. 조금 피곤하지만 마지막 날 기억이 모두 끊겼으니 또 정확한 설명도 안 되고 잃어버린, 아니 늘어진 시간의 원인에 대한 이해도 끝맺지 못하고 있다. 어떻게 된 거지?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뭐야 이거? 이걸 믿으라고? 이거 좋은 거야, 나쁜 거야? 이런 경험 처음인데, 처음.
「어, 어. 누가 설명 좀 해 줄래?」
「글쎄. 점원에게 물어보고 대답을 듣고 나서 난 화장실에 가서 귀를 씻었어.」
「얘는 냉수 3컵을 마셨어.」
「쟤는 에스프레소 2잔 원샷했고.」
「볼을 꼬집어도 따갑고, 귀를 비틀어도 똑같아.」
「우리가... 미친 건 아닌데.」
「이러다가 우리 몸의 크기가 막 줄어들어서 소인이 되는 거 아냐?」
「내 핸드폰만 그런 게 아니었네.」
「이건 장난도 아니고, 행사도 아니고. 그냥 사실이야. 현실. 초현실도 공상도 꿈도 아닌 실재라고. 그런데 믿을 수 없는 일이야. 못 믿겠어. 사기야.」
「내가 봤을 때는 딱 3일 된 거 같거든. 그런데 왜 그러지. 일단 받아들이자.」
「받아들이는 건 문제가 아닌데 이건, 이건 말이야. 말도 안 되는 일이잖아. 어이없어. 뭐지 이거?」
「시간이 천천히 가면 나쁜 건 아니잖아? 물론 당사자만 그러겠지. SF 영화에 보면 우주 여행을 갔다 오면 자기는 그대로인데 지구의 시간은 무진장 흘러가버려서 손자 손녀들이 더 어르신으로 나오잖아. 하지만 이건 우리와 그들 즉 이 카페 안의 사람들과 함께 시간이 더디게 갔어. 아니 아니지. 우리만 시간이 더디게 갔나? 뭐야 이거. 잘 모르겠는데.」
「이건 말이야, 내가 봤을 때는 일종의 착시야. 착시? 아, 착각. 우리가 낮잠 잔 걸 1박으로 계산한 걸 거야. 그래야 설명이 되는데... 아닌데, 아니란 말야. 분명 2박 3일을 보냈는데, 어떻게 된 거지?」
「자, 생각해 보자구. 한참 재미난 일을 하면 시간이 빨리가는 것처럼 느껴지고, 지겹고 지루한 작업을 반복하면 시간이 더럽게 안 가. 깊이 들어가지 말고 이것도 상대성 원리야. 어 잠깐, 행복하면 시간이 빨리가고 불행하면 나이를 천천히 먹는다? 세상은 공평하다는 말인가? 아 옆길로 새면 안 돼. 그러면 우리가 너무 활동적이고 짜릿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반나절을 2박 3일이라고 착각한 건가? 아니 아니 절대 아니야. 이것도 아니란 말야. 도저히 뭘로도 설명이 안 돼. 미치겠다.」
「우린 미치지 않았다구. 난 정상이야.」
「그래 넌 미치지 않았어. 원래 상태가 그다지 좋지는 않았으니까 아예 지금이 더 정상이야. 극히 이성적인 상태야. 멀쩡해. 그냥 믿기지 않는다 뿐이지. 아, 미안. 이상한 일이 닥치면 내가 좀 직설적이 되나 봐.」
「됐어. 벌써 빈정상했어. 아예 그런 말을 하지를 말던가. 저속하게 말이야. 넌 전혀 속되거나 상스럽지 않고 매우 점잖고 얌전한 친구란 걸 다 아는데 뭘. 다만 간혹 음란해. 미안, 농담이야.」
「하여튼 유치하기는. 됐고, 마지막 날 누구 기억하는 사람 없니? 왜 모두 필름이 끊겼지?」
「난 NC 사장이 왕요트 주인일 꺼라고 기대하며 기다린 것 까지는 기억나. 그러나 딱 거기까지. 거기서 끊겼어.」
「가물가물하게 아주 희미하게 뭔가 그림은 보여. 하워드 요트로 돌아가서 거기서 스르르 잠이 들고 좀 덜컹거린 기분 정도로만.」
「어떻게 된 거지?」
「살다보니 참 별 일이 다 있네.」
「앞으로 살면서 더 희한한 일들을 많이 많이 보게 될 꺼야!」
「어? 그건 뭐야? 예언이야? 넌 마술사? 이건 주술?」
「혹시 이건 아닐까? 이 도시의 축제가 진행중이니까 실제 시간은 우리가 인지한 게 맞고, 나머지 곧 종이신문과 기계 즉 핸드폰과 노트북과 시침 시계 등등을 모두 2박 3일 이전으로 돌려놓은 상황 말야. 그거 같은데. 이거야. 이거라구. 어쩐지 이상하다 했어. 난 또 바보된줄 알았잖아.」
「나도 그렇게 믿고 싶지만 네 의견이 틀린 것 같은데. 저기 텔레비젼 봐봐. 뉴스 나오잖아. 방송 앵커랑 리포터, 방송국 모두 우리가 알고 있는 시간과 대립하고 있어. 저기 드라마 방송되는 화면 보이지? 드라마도 아직 찍지도 않은 걸 방송에 내보낼 리는 없잖아?」
「그건 그래.」
「귀신이 곡할 노릇이군.」
「니콜라우스, 니키. 너꺼 노트북 봐 보자. 접 때 왕요트 찾아갈 때 접속했던 웹사이트, 거기 무슨 단서가 있을지 몰라. 왠지 그럴 것 같지 않니?」
「그래. 그게 좋겠다. 오 왠지 모르게 흥분되는데.」
「그러게 말야. 뭔지 모르는 리듬을 타고 있어.」
「맛난 음식과 몸에 좋지만 맛없는 음식, 그 가운데 뭘 먼저 먹을까! 오늘 공부하고 내일 노느냐, 지금 당장 용돈 다 써버리고 한동안 청렴하게 살든가, 사람 일은 모른다고 내일 무슨 일이 있을지 어떻게 알겠냐면서 오늘 바로 지금 모든 걸 마음가는 데로 할꺼라며 스피노자가 심은 사과나무를 뿌리째 뽑아버릴 것인가, 그게 문제가 아니라 그런 동기부여를 만드는 생명수, 그것의 제조비법을 정확히 분리하여 나누어 가지고 있는 핵심 경영진, 핵심 경영진이 접근 가능한 그 비율이 씌여진 문서, 그것이 보관된 스위스와 바하마 버뮤다 군도의 비밀금고, 그 금고 담당 현장 요원, 그 현장 요원을 관리하는 코드명 관리 책임자, 그 인간의 옆집에 사는 어린이, 이런 초딩이 즐겨 읽는 동화에 나오는 괴물 콩나무를 타고 올라가서 구름 위 세상에 도착한 아이슬란드 탐험가 같지 않니? 꼭 우리가 말야. 그것도 지금.」
「뭔 말이야?」
「여긴 보니까 꼭 촬영 스텝들로 보이는 사람들만 있는 것 같은데.」
「다시 찾아야 돼. 내 척키 인형.」
「나도. 특수 코팅된 색종이로 만든 대형 종이배.」
「다들 정상이 아니야. 너네들 말리고 있어. 뭔지 몰라도 걸려들면 안 돼. 저들은 이걸 노린 거라구. 정신차려. 너네들 이름이 비정상, 꼭 그런 거 같아.」
「일단 그 웹사이트 들어가 보자.」
「그래 시간이 정말 반나절만 지났다면 거기, 거기 어디지? 그래, 쥬라기 공원에 다시 가보는 거야! 여기서 공룡 본 사람 있어? 없잖아. 혹시 알아? 이번에 보게 될지.」
「박물관이 살아있다.」
「박물관이 살아있다 2.」
「그래 맞아. 시간이 정말 반나절만 지났다면 거기 다시 놀러가 보고, 우리가 느꼈던 시간이 맞다면 웹사이트든 NC 사장이든 에르메스씨든 어디서든 확실한, 납득되는 단서를 찾고 이해를 해야 해. 답답해서 현실과 이상이 분간이 안되잖아. 어때, 그래야 하잖아?」
「맞아.」
「콜.」
「오! 저기 저 사람 스티브 발머 아니니? 완전 똑같이 생겼는데. 뭐야 그와 얘기하는 사람은 케빈 스페이시랑 닮았는데. 아니 닮은 게 아니네. 맞네 맞아. 둘 다... 내가 잘못 봤나? 니콜라스 케이지 윤곽도 보이고 아무튼 이상한데. 아닌 것도 같고.」
「너가 잘못 봤어.」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우리가 미쳤나 안 미쳤나, 그걸 따질 때라구. 여자도 아닌데 엄한 데다 한눈 팔지 말도록.」
「Yes, Sir!」
숫자 도메인의 그 웹사이트에 들어가니 저번에 봤던 사진과 채팅이나 공지사항들은 없고 왠 초대장만 덩그러니 보인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무엇을 한다, 그러니 오라, 이곳으로! 간략하게 이게 다였다. 하지만 이 친구들은 모히토, 하워드의 요트에 입력되어 있는 좌표값이나 이동 기록을 확인하면 되니까 일단 그곳으로 가기로 한다. 미친 사람 취급되기 일보 직전이라 제정신이 아니다. 그러나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있다. 게다가 그들이 시간 개념? 관념을 잘못 알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들은 시간을 번 거다. 모험까지 덤으로. 즐거움과 새로움, 꿈과 낭만과 그 다음 대기자 명단에서 기다리고 있는 좋은 단어들, 마구 계속 따라온다. 그 원리를 상세히 알게 되고 연구해서 어딘가에 알리고 발표한다면, 오 대박! 제정신이 아닌 게 맞다. 혹시 그 섬, 쥬라기 공원에 어렵싸리 찾아갔는데 그 섬이 이동식 섬이라서 교체 멤버, 지명 타자 <알라딘의 요술램프> 팻말이 나 섬 이름, 이라고 광고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건 모르겠고 일단 떠났다. 두고 보자.
자, 그들은 1시간인지 몇 시간인지 불확실한 못 믿을 일정에 따라 그 섬으로 가고 있다. 하마터면 <자, 도착했다>라고 쓸 뻔 했다. 천만다행이다. 기계식 키보드, 손맛이 좋다. 죽인다. 기똥차다. 착착 감긴다. 쩍쩍 달라붙는다. 물론 좀 과장했다. 아니 많이 그런 거 같다. 좋기는 한데 막 날아갈 것 같지는 않다. 솔직히 말이다. 조금 지나면 이 정도가 기본 아니겠어, 라고 이 층위에 적응될 것이다. 세상일이 다 그렇다. 그렇게 미지의 신비한 쥬라기 공원으로 가는 동안 하워드의 요트, 모히토에서 딱히 다른 놀이도 아닌 가장 유서깊고 무난한 인류의 놀이, 즉 담소를 나눈다. 말을 잘 하는 친구들이다. 그런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닉이 대뜸 명대사 읊기, 가 아닌 명대사를 연기했던 전설적인 배우들이 사석에서 했던 말, 공공연히 매스컴에 슬쩍 흘린 몇 마디, 여기서 한 농담, 저기서 떨구었던 입만 뻥~끗하면 난리 날 언사, 어디에서 듣고 보고 읽고 구경하기 어려운 바로 그것을 보여준다. 보아하니 꽤 괜찮은 연기이자 공연이다. 이걸 눈 앞에서 안 본 사람은 절대 실감할 수 없을 것이다. 문단을 넘기기 전에 여기서 잠깐, '소문나면 안 될 비밀'이란 게 짐짓 있긴 있는 것일까? 정말? 글쎄요! 모르는 사람만 속앓이 할 수도 있지만 있어도 탈이고 없어도 진부하니 즉 한마디로 모순이다. 다만 이런 말을 해도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유난떨다, 넉살 피우다, 전자와 후자가 서로 어떻게 비슷한지는 딱 1번만 생각해 볼 일이다.
「잠깐 분위기 가라앉은 것 같으니, 나만 말짱한가, 왠지 모르게 다들 침울한 것 같으니까 말하지 않고 듣고만 있어도 돌연 기쁘고 재미있도록 명언이랄지 멋진 말 몇 마디 해볼께. 지금이 이런 말 하기 딱 알맞는 것 같아. 혹시 따분하거나 재미없을 수도 있으니 미리 양해를 구하고 말야. 자, 준비 됐어? 시작할께.」
「일단 몸 먼저 풀어야 하니까. 원주율 먼저 가자! 3.14159 26535 89793 23846 26433 83279 50288 41971 69399 37510 58209 74944 59230 78164 06286 20899 86280 34825 34211 70679. 더 할 수 있지만 여기까지. 그리고 올림푸스 12신은 제우스, 포세이돈, 헤라, 아프로디테, 데메테르, 아테나, 아폴론, 아르테미스, 헤르메스, 헤파이스토스, 아레스, 헤스티아 혹은 디오니소스.」
「여기 나오는 괴물 및 종족은 고르곤, 그라이아이, 기가스, 라미아, 메두사, 미노타우르스, 사티로스, 세이렌, 스킬라, 에키드나, 카토블레파스, 켄타우로스, 키메라, 퀴클롭스, 티폰, 퓌톤, 하피, 헤카톤케이레스, 히드라. 어! 왜 괴물을 먼저 말했지? 이어서 티탄! 니케, 레아, 레토, 메노이티오스, 므네모시네, 비아, 셀레네, 아스트라이아, 아스트라이오스, 아틀라스, 에오스, 에피메테우스, 오케아노스, 이아페토스, 젤로스, 코이오스, 크라토스, 크로노스, 크리오스, 테이아, 테티스, 테미스, 팔라스, 페르세스, 포이베, 프로메테우스, 헤카테, 헬리오스, 히페리온. 자, 그 다음으로 태초의 신이 나와야지. 가이아, 닉스, 아난케, 아이테르, 에레보스, 에로스, 오레, 우라노스, 카스마, 카오스, 크로노스, 타르타로스, 탈랏사, 폰토스, 헤메라. 그 밖의 신과 티탄과 님프는 이렇다네. 고르고, 네레이드, 네메시스, 다프네, 데이모스, 디오네, 메두사, 무사, 모르페우스, 스틱스, 아글라이아, 알라스토르, 아스클레피오스, 에로스, 에리니에스, 에리스, 오리온, 운명의 세 여신(모이라이), 이리스, 타나토스, 티케, 카론, 페르세포네, 프리아포스, 프시케, 헤르마프로디테, 헤베, 휴프노스. 그리고 로마 고유의 신은 야누스, 유스티티아, 포르투나, 플로라 이렇다네.」
「여기 등장하는 영웅을 또 빼놓을 수 없지. 디오메데스, 메데이아, 벨레로폰, 아이아스, 아킬레우스, 아탈란테, 오디세우스, 오르페우스, 오이디푸스, 이아손, 카드모스, 테세우스, 페르세우스, 헤라클레스, 나우폴리오스, 네스토르, 라에르테스, 륀케오스, 멜라스, 멜레아그로스, 몹소스, 칼라이스, 제토스, 부테스, 아드메토스, 아르고스, 아우톨루코스, 아이탈리데스, 아스칼라포스, 아카스토스, 악토르, 안카이오스, 암피온, 에치온, 에르기노스, 에우페모스, 에우리알로스, 오일레우스, 이다스, 이드몬, 이올라오스, 이피토스, 카스토르, 클뤼티오스, 탈라오스, 텔라몬, 타퓌스, 팔라이몬, 펠레로스, 페리클뤼메노스, 페이리토스, 펠레우스, 필록테테스, 포리클리메노스, 포이아스, 폴리데우케스, 프론티스, 힐라스, 메넬라오스, 아가멤논, 네오프톨레모스, 니레우스, 마카온, 아이아스, 메돈, 메네스테오스, 메리오네스, 스케디오스, 스텐토르, 스테넬로스, 아가페노르, 아스칼라포스, 아우토메돈, 안티파테스, 안틸로코스, 에우도로스, 에우리알로스, 에우리필로스, 이도메네우스, 탈티비오스, 테우크로스, 테우시테스, 토아스, 트라시메데스, 틀레폴레모스, 포이닉스, 포다르케스, 포달레이리오스, 프로마코스, 프로테실라오스, 고르기티온, 글라우코스, 다레스, 데이포보스, 헥토르, 아이네이아스, 파리스, 사르페돈, 돌론, 리카온, 레소스, 멜라닙포스, 미돈, 아카마스, 아이세포스, 알카토오스.」
「뭐야 말로만 듣던 고기능 천재 서번트가······ 닉이었어?」
「오 뭐야, 얘 괴물이야?」
「처음엔 뭔 장난할려나 했는데, 이거 장난이 아닌데?」
「얘들아 이젠 몸 풀렸으니 좀 멋진 말 해볼께 좀 더 기다려 보렴.」
「언젠가 모리스 슈발리에가 말했지. 영화는 이를테면 당신이 전화를 통해서만 구애하고 싶은 아름다운 여자와 비슷하다. 어때? 아직 모르겠지?」 무반응. 전율 때문에 얼었다. 안 그럴 수가 없겠지. 카페인이 필요한 건지 술이 마시고 싶은지 또는 잠자고 싶은지 그저 쉬고 싶을 따름인지 통 속내를 보여주질 않고 있다. 무엇보다 말없이 놀라는 게 급선무다. 그것 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코메디를 만들기 위해 내게 필요한 것은 공원과 경찰관 한 명 그리고 예쁜 소녀 한 명이다! <찰리 채플린>. 어 반응이 시큰둥한 데. 기달려 봐. 한 번 더 간다.」 닉 혼자만 계속 말한다.
「두 가지 재앙 사이에 끼게 될 때, 나는 주로 예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쪽을 택한다. <매 웨스트>. 그래 알아 안다구. 이제 시작한지 얼마 안 됐자나. 기다려 보라구. 마술을 보여줄 테니까.」 메이드 바이 닉.
「내 생각에, 나는 나 자신이 되고 싶지 않아서 배우가 된 것 같다. <진 아서>. 이젠 바로 이어서 말할께. 참을성을 가지고 끈기 있게 버텨. 이따 놀라지나 말고. 대중의 박수와 아첨을 즐겨라. 그러나 절대로 그것을 믿지는 말라. <로버트 몽고메리>.」 닉 와우.
「<베티가 존에 대해> 그녀는 래시를 제외한 MGM의 모든 남자 스타와 잤다. <존이 베티에 대해> 나는 데이비스를 미워하는 게 아니라 단지 분개할 뿐이다. 튀어나온 눈알과 담배와 우스꽝스러운 짤막한 대사들을 빼면 그녀에게 뭐가 남는가? 그 여자는 가짜다. 하지만 대중은 바로 그 점을 좋아하는 것 같다.」 슬슬 닉의 말을 듣고 있는 친구들의 표정과 눈빛이 심상치 않게 변해 간다. 딱히 답변은 하지 않고 어디까지 하나 보자, 이런 공통적인 내면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연기는 환상이고 환상인 만큼 마술이기도 하니 사실성을 따질 문제는 아니다. <로렌스 올리비에> 어, 율 브리너..는 까먹었다. 통과. 모든 남자는 생애 한 번쯤 매혹적인 빨강머리를 미친 듯이 사랑해 볼 권리가 있다 <루씰 볼>. 그리고 <이브 몽탕> 나는 남자는 두 번, 어쩌면 세 번 사랑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어쨌든 세 번이 최대치인 것은 확실하다.」
드디어 제동을 걸고 확답을 들어야 한다는 것인가. 「워 워, 뭐니? 어디 보고 말하는 거야?」
「그러게. 누가 스케치북 들고 넘겨가며 보여주는 거도 아닌데. 어떻게 된 거지?」
「닉, 너 미쳤어? 왜 그래? 아까 그거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에 나오는 대사인가, 아닌데. 옛날 영화들 보면 영화 제목이 참 괜찮은 것 같아. 많이 안 봐서 잘 모르지만.」
「너······ 어디··· 아픈 거 아니니? 무슨 일 있으면 말해. 친구 좋다는 게 뭐야?」
「그걸 어떻게 다 외울 생각을 해? 도대체 얼마나 걸린 거야? 외우는 거... 힘들지 않아? 외우는 거... 어려운 거잖아?」
「아니 어떻게 원주율과 그리스 로마 신화 이름들과 그 배우들의 말을 똑같이 그대로 읊을 수 있는 거지? 뭔 속임수니? 오 이런!」
「와우! 놀라워!」
「이런 펭귄. 오! 신이시여!」
「이게 사람이야 로보트야? 그걸 어떻게 다 외웠니? 이 또한 못 믿을 일이군. 오늘 운세가 이상한가. 왜 그러지.」
「귀에 뭐 꼽은 채로 듣는 즉시 따라 말한 거 아니야? 오, 아니네.」
「그 말이나 글을 외워서 읊은 것도 대단하지만 이 몸짓, 어조, 표정, 연기. 오 멋져, 졸라 멋져!」
「이런. 이 친구 완전 딴 사람처럼 보이는데.」
「그래. 사람이 달리 보인다야. 원래 괜찮은 친군데 훨씬 더 멋져 보여. 정말. 신기하네.」
「아직 끝난 게 아니야. 다른 멋진 말 더 외워볼께. 멈추라고 하지 않으면 1시간이고 2시간이고 계속할 테니까 알아서 제지해 줘.」
「내가 손가락을 벤다면 그건 비극이다. 어떤 남자가 뚜껑 열린 하수구로 걸어 들어가 죽는다면 그건 코미디다. <멜 브룩스>. 내가 출연한 영화 중에 새벽 두 시에 텔레비전에서 방영되는 게 하도 많아서 사람들이 내가 죽었다고 생각할 정도다. <마이클 케인>. 남자들은 바람이나 피우도록 놔두고 우리 여자들이 세상을 굴려야 한다. <골디 혼>. 스카치에서 마티니로 바꾸는 게 아니었는데 <험프리 보가트>. 나 이거 원, 흔히 말하는 것처럼 그 모든 여자들의 품속에 다 뛰어들었다면 아마 낚시하러 갈 시간도 없었을 거요. <클라크 케이블>.」 닉이 잠깐 멈춘다. 그래도 누구 하나 말을 받지 못한다.
「스탕달의 연애론, 존 갤브레이스의 풍요한 사회,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 뿐만 아니라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 만유인력과 운동법칙, 빅뱅과 현대우주론, 전자기학과 전자기유도, 반도체와 트랜지스터, 엔트로피의 법칙, 빛의 이중성, 쿼크발견과 표준모형. 단분자, 물질파 이론, 슈뢰딩거 방정식, 불확정성 원리, 슈뢰딩거의 고양이, 초끈이론, 파울리의 배타원리, 패러렐 월드. 읽으면 다 외워져. 미치겠어. 병원에 가봐야지. 이러니까 잊는 게, 잊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좋은 건지 새삼 깨닫는다니까. 이 세상을 잘 몰랐을 때는 또 모르는 게 너무 많아서 어디가든 말을 못하고 듣기만 했지만 말이야. 초능력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라는 걸 초능력을 얻고 나서야 알게 되었어. 당연히 그게 없었을 때는 우스개 소리로 잡담만 나누지 거기까지 생각이나 하겠어? 직업이나 취미로 작품 만드는 사람들만 예측하겠지. 더...... 할까?」
오 그만. 여기까지. 안 말리면 언제까지라도 끊임없이 계속할 듯 하여 말없이 동시에 이 친구들은 손짓으로 그만하면 됐다며 표시를 보낸다.
거인의 외침, 거성. 괴물의 요술, 초능력. 지독한 명연기에 감동하여 그 분위기에 고무되고 떨려서 다른 친구들은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하고 관객석에 앉은 관람자 마냥 넋을 잃고 바라만 본다. 한 친구는 팔짱을 끼고, 다른 이는 깍지를 끼며, 누군가는 동영상을 찍고 또 누군가는 눈부신 연기를 보면서 몸이 굳어버리고 눈빛이 레이저를 비추는 듯 감격의 정점을 찍는다. 그들의 면면을 보면 아무 여념없이 마치 짜고 연극을 찍는 것처럼 하나같이 얼척없다는 표정이다. 그렇다. 진짜 얼척없는 일이다. 행여나 닉이 이런 재주를 언제 터득했는지 짐작이나 했을까. 잠시 좌중의 신기함에 답을 해야할 듯 허공에 떠다니는 부담감을 낚아채서 닉이 말을 잇는다.
「초능력이 생긴다면 어떻게 되는 줄 아니? 아무것도 변하지 않아. 다만 사람이 어려질 꺼야. 그 어려진 모습을 본다면 어쩌면 니글니글할 수도 있어. 많이 거북할지도 모르지. 게다가 남아는 원래 나이와 관계없이 애야. 철들면 늙는 것? 지는 거라고 생각하나 보네. 어른이 되기엔 이미 부적합한 면모를 지녔다고 딱 거기까지만 언급하고 멈춰야 하나. 그렇게 더 어려지면서 초능력이 생긴다면 실은 그다지 변한 건 별로 없을 꺼야. 우연히 처음 만나 담소를 나누면서 손윗사람이 손아랫사람에게 하는 이런 말처럼, 부자가 되어도 별로 사는 데 크게 변하는 것은 없더라. 일반인에서 초능력자로 바뀌고 빈자에서 부호로 변한다면 기본적인 틀은 변하지 않나 봐. 보통은 살면서 반틈 정도는 계층을 이동하지 않자나.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이런 쉬운 비유도 가능해. 나는 초능력자니까 일반인인 너보다 뛰어나, 알아? 당연히 그러지 않지. 그러잖아? 물론 친구끼리는 친구니까 농담은 하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우리가 너보다 우월해, 잘 살아, 키 커, 예뻐, 부국이야, 똑똑해, 그러지 않잖니. 단지 남자 친구들 사이에서 왜 그런 거 있잖아. 서로간에 억측과 반감은 없다, 그걸 꼭 확인하기 위해 모이고 만나서 다시 재확인하고, 한 번 친구는 영원하다, 우린 고추 달린 고추 덜렁덜렁한 남자 대 남자다, 다툼과 오해는 풀자, 이미 풀었다, 우린 뒤끝 없다, 하루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깨끗하고 말끔하다, 다시 풍년이요 최고의 전성기로다, 그렇게 여성적이지 않은 것들. 그런 약간 원시적인 DNA 같은 측면들. 반면 여자들은 그 반대니까 애를 낳겠지, 남자같지 않으니까 여자라는 사람이 아기라는 인간을 낳을 수 있는 거겠지. 느낌과 표현으로 넘어가자면 대사상가는 되야 명함을 내미니까 삼천포로 빠지면 안되겠다. 다시 초능력에 대해 말하자면, 그러다가 좀 더 나아가면 뭐랄까, 자아보다 초능력이 커진달까, 잠식한달까, 그걸 뭐라 표현해야 하지. 천사가 되고 싶어 한다고 할까? 별명이 타락천사였나? 적어도 초능력으로 악마가 되고 싶어하지는 않을 꺼란 얘기야. 몸은 그대로고 마음만 붕 뜨니까 날 좀 지면에 붙잡아 달라 그 말이겠지. 강아지나 고양이가 되고 싶어한달까? 어려지는 마음처럼 주어진 삶을 즐겨야겠다, 아름다운 인생을 살아야 한다, 사는 동안 뭔가 의미는 있어야 하지 않겠냐, 잠시나마 그런 생각을 하게 될 꺼야. 말이 좀 길어졌지만 해야 할 말이 몽글몽글 발생하는 행운과 토실토실하고 포동포동한 생각을 설파하는 기회의 구름을 탔으니까 하던 얘기 조금만 더 계속할께. 동영상 찍은 거 나중 보면 재미있어. 요즘 사람들이 거기 시간을 제일 많이 쓰잖아. 즐거움 쏠쏠하지 음. 가슴이 벅차올라. 영화에서 보면 초능력 돌연변이를 보고 사람들은 무서워하고 공포에 떨며 사회는 혼란에 빠지지만 SF에 가까운 기이한 능력이 아니라 인간의 능력치로써 극한에 다다른다는 의미의 초능력을 어느 날 터득한다면 그렇게 될 꺼란 말이야. 내 얘기는 아니고 그냥 어쩌다 그런 생각을 해 봤어. 실은 난 동화를 쓰고 싶었어. 해리포터 같은 판타지도 괜찮고. 하지만 그런 능력은 체득할 수 없었어. 대신 고딩 때 필사했던 경험을 떠올리고 성우 생활 하면서 즐거웠던 일 그리고 최근에 빠져버린 키보드 동호회 활동과 기계식 키보드를 구입해서 명언과 명대사를 키보드를 통해 컴퓨터로 옮겨보는 취미가 생겼어. 흔히 아는 색칠하기와 비슷한 놀이지. 아무 생각없이 알록달록 애들처럼 색칠하다 보면 뭔가 편안해지고 안정감을 느낀다는 색칠하기 취미 있잖아. 그러다 보니 또 뭘 외우는 법, 순식같에 통채로 사전 한 권 외우는 법, 그런 책들도 사서 읽고 연구하며 한동안 그 분야를 팠어. 꼿혀서 완전 매달렸지. 뭘 창작할려다가 엄한 쪽으로 전문가가 된 거야. 결국에는 마음 먹으면 말이든 책이든 모든 걸 외울 수 있는 능력이 생긴 거야. 물론 이것도 초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면 말이야. 외울까 하면 다 외워져. 그래서 외우기 대회에는 안 나가. 자랑 같지만 외우기 대회의 문제는 하나도 재미없어. 마치 프로 바둑선수들이 셀 수 없는 명경기의 첫수부터 마지막수까지 다 외운다고 하지만 규칙을 깨버리고 마구 아무렇게나 흐트러진 바둑돌은 하나도 못 외우는 거랑 비슷해. 하지만 외우기 대회에 나가면 또 몰라, 고개 팍 숙이고 좌절할지. 하지만 지금 올라선 단계는 어느 수준까지는 이미 도달했어. 있잖아, 이건 말이야, 나의! 나의 글을 짓고 만들려다 남의! 남의 글과 말을 외우고 말하는 데서 재미를 느끼고 그 재능이 생겨버리고 거기 풍덩 빠져버린 거야. 무한대의 외우기 능력이 창작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그건 기다려 봐야지. 사람들은 그래, 초능력이 생긴다면 뭘 하고 싶냐고. 그냥 웃자고 하는 얘기들 말야. A라는 능력이 생긴다면 돈을 왕창 벌겠다. B의 운발이 찌릿하며 내게 들어온다면 난 그걸로 카사노바가 되겠다. C라는 초능력 때문에 기분도 좋고 슈퍼맨이 되어 승천하게 된다면 난 만화나 영화처럼 위기에 빠진 사람들을 구하고 내 능력이 필요한 곳에 달려가겠다, 그러면서 일이 끝난 후 몰래 사라져서 평범한 삶을 살 테다. 여러가지 의견이 있을 꺼야. 그런데 내 경우에는 이 능력으로 너네들 웃겨주고 사람들 감동시키고 놀라게 하면 그걸로 대만족이야. 돈? 난 더 필요하지 않아. 이미 많아. 무덤에 가지고 갈 수도 없잖아. 거기서는 한바탕 웃지도 못하는데 뭘. 유명세? 지금도 나름 뭐 괜찮아. 더해지면 아마 오히려 피곤해지겠지. 그만그만해. 삶의 경험, 많이 겪었어. 충분해. 시련이든 쾌락이든 인고의 세월이든 예전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 마음껏 즐기면서 여유로운 삶을 살고 있다고. 행복이 뭐다, 딱 말은 못하지만 최소한 불행하지는 않아. 그거면 됐어. 또 몰라, 살아보니까 어쩌다가 나중에 초능력이 생겨서 그런지, 선천적으로 타고난 부자랄지 그런 귀족과 신흥 부호가 같이 어울리고 친한 풍경은 잘 그려지지 않는 것처럼, 이 능력도 딱히 써먹을 용처가 많지는 않는 것 같아. 초능력에도 끕이 있는 것일까? 아니면 이걸 초능력이라고 부르기엔 낯간지러운 일일까. 난 사실 곧이 곧대로 말하자면 잘 모르겠어. 그리고 그 모른다는 사실이 부끄럽지 않아. 그러다 어느 날 뜬금없이 동화가 써질 수도 있을 테고 말이야. 처음엔 이게 뭐냐며 당황스럽고 난감해 하며 창피하고 수줍어했을지 모르지만 아까 말했잖아, 어려진다고! 어려진다는 것, 어른이 어린이처럼 들뜨고 어려진다는 것. 그건 사랑처럼 좋은 일 아닐까? 대답은 내가 대신할께. 난 잘 몰라. 도저히 모르겠어.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든 발바닥 간지럽히기든 몰라, 모른다구. 이게 다야. 음 저번에 에너지 음료 몬스터는 마셔봤으니 이번에는 레드불 먹어봐야겠다. 갑자기 땡긴다야. 아 자꾸 말이 많아지면 나이든 건데. 큰일이다. 정말 큰일이야.」
「브라보!」
「앙콜!」
「멋져!」
「잘컸어.」
「이제 비로소 어른이 되었군. 장하다.」
「와! 또 듣고 싶다. 내일도 듣고 싶다. 어안이 벙벙하네.」
「오 재밌어. NC 사장인지 왕요트 주인 때문에 벌어진 명연기, 갑작스런 감동이라서 더욱 놀랍구나. 훌륭해. 외우기의 명수, 태어나서 실제로 처음 봤어. 오오!」
「오 멋지다. 뭔가를 듣고 싶으면 바로 사인 보내고, 얘 능력 필요하면 같이 있을 때 써먹어야겠다. 그런데 말이야. 뭔가를 외우는 능력. 그거 얘 말마따나 그렇게 딱히 써먹을 곳이 많지는 않은 것 같아. 좀 명석한 친구들은 아주 높은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다 하잖아. 게다가 이미 우리는 초능력이 일반화된 세상에서 살고 있잖아. 남의 사생활을 내 손바닥 보듯이 보고, 불구경이든 싸움구경이든 뉴스만 봐도 온갖 소식들이 다 나오고, 심지어 남들 잠자는 거도 혼자든 둘이든 별의 별 영상들도 많자나. 인터넷에는 정말 어마어마한 자료들이 있어. 하늘도 날아다녀. 닉처럼 굳이 외울 필요없이 사진을 찍고, 이 사람 장기를 떼서 저 사람에게 집어 넣고, 3-D 프린터에 천체 망원경도 이젠 메가톤급으로 쓰여지고 무인 비행체도 은하계 단위로 돌아다녀. 온갖 호화스러운 요리와 옷과 생활들 이루 말로 다 할 수가 없잖아. 어쨌든 그건 그렇고 작가나 화가, 음악가의 말과 글이 아닌 평생 연기만 했던 배우들의 말을 그 찰진 육성으로 직접 듣게 되니 가슴 한구석이 차갑기도 하고 뜨거워지는 거도 같고 정말 뭉클하구나."
「일부러 만들어낸 창작품, 시인과 소설가와 화가와 작곡가, 무용가 등등 예술가의 녹록한 언어와 표현법이 아닌 평생 남의 창작품을─당연히 창작품의 일원이자 요체지만─연기했던 배우들의 사소한 말, 그 글이 아닌 짧은 말에 유명인의 인생이 통채로 녹아들어가 있기 때문에 그 가치는 쉽게 다른 것과 바꿀 수 없는 것 같아. 꼭 부작용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뭐랄까. 꼭 나의 이야기, 내가 하는 거짓말, 내가 생산해낸 픽션, 그걸 굳이 만들어야 하나? 그런 생각도 가끔 들더라니까. 타인이 만든 예술품이 아닌 배우로써 일생을 보낸 연기자의 말, 그 자체가 예술이었어. 배우라면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특별한 직업군이기 때문에 말할 때 사용하는 어휘 또한 달라. 진짜 자아인지 어디 등장인물인지 잘 분간이 안 되니까 그래서 유달리 범상치 않아 보이는 듯 해. 그 언어 구사 때문에 또 생각이 끝말 잇기를 하게 되지. 그 있잖아, 국제투명성기구에서 발표하는 부패지수. 그것이 문화의 특징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테지만 한 언어가 나타내는 낱말의 총량, 바로 그것과 작으나마 연관이 있지 않을까, 라는 어딘가 인문서적에 씌여 있을 내용도 떠올라. 하여튼 평생 말하며 행동하는 사람들이라서 참 다르다니까.」
「완전 닉 독무대구나. 오 저기 뭔가 보이는데.」
「어 보인다 보여. 그런데 팻말이 이상한데.」
「맞아. 깃발도 보여. 그런데 해적선 마크도 아니고 그 어디에서도 못 본 문양이야. 글씨는 확실하게 보이는구나. 누가 얘기해 볼래?」
「내가 말 할께. 알라딘의 요술램프!」
「오오. 느낌 이상한데.」
사르륵 일단 그들은 그곳에 배를 정박한다. 섬의 해안선으로 들어와서 부두에 배를 댔다. 간략하게 그곳을 설명하자면 인터넷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당신이 죽기 전에 가봐야 할 장소 몇, 딱 그런 모습이다. 그리고 해안 인근 전체가 놀이공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어설프지만 있어 보이는 요원이나 보디가드 같은 아저씨들이 많이 보인다. 얘네들은 귀에 뭘 꼽고 있다. 영화 찍나? 아닌 것 같은데. 군사시설인가? 그거도 아닌데. 무슨 높은 직위의 거물급 인사가 방문할려나? 알 수 없다. 그들은 닉이 주인공이니까 닉에게 모두 뒤집어씌운다. 어려운 일이든 수훈이든 뭐든 다. 대표로 가서 물어보고 오라고 주문 완료. 닉이 벌써 저만치 멀어져 가고 웬 블랙요원과 심각하게 대화를 나눈다.
「쟤 뭔 얘기를 하는 거지?」
「그러게 말야. 왜 저리도 진지한 걸까? 그럴 필요 있나?」
「뭔가 있겠지. 그럴 만한 사연이 있을 꺼야.」
「내 말이 그 말이야.」
「오면 물어보자.」
돌아와서 닉이 한참을 뜸을 들이다가 설명해 주는데 아까 블랙요원에게 단단히 쇠뇌당한 듯 하다. 요약하자면 이곳은 쥬라기 공원인가, 맞다. 저 놀이공원과 산 너머에 진짜 공룡들이 있는가, 있다. 여기서 말하는 공룡이 그 공룡? 이것 역시 맞다. 그러나 한발 늦었다고 한다. 공룡이 사고를 쳐서 약간의 재난이 발생하여 비상사태에 돌입했기 때문에 입장은 안 된다는 거다. 일시적이지만 잠정적으로 무기한 폐쇄한다는 거다. 저런! 헛걸음인가. 눈으로 살아있는 공룡을 직접 봐야 믿을 수 있는데. 보긴 봤는데, 맞긴 맞는데 공룡이 딱 삐─! 그만하다면, 만약 그렇다면 실망이다. 완전 실망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아까 그 요원이 닉에게 자꾸 이런 설명의 중간 중간에 귓속말을 건넸다고 한다. 비밀 코드가 있다면 출입은 가능하다는 거다. 뭐야 장난도 아니고 쇼도 아니고. 단호하게 말했다고 한다. 들어갈 수 없다, 하지만 꼭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어, 그래? 그럼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서 들어가 볼까? 약간씩 눈빛으로 서로들 속마음을 타진한 끝에 좀 더 장고에 들어간다. 그런데 이 얘기를 들은 그 때부터 슬슬 이곳의 음험한 기운이 느껴지고, 경치가 별로 썩 개운해 보이지 않고, 놀이 공원도 어딘지 모르게 급조한 티가 나는 것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그러고 보니 이곳은 그때 보았던 모히또가 들어갔던 왕보트에서 본 섬, 쥬라기 공원과 다르게 생겼다. 그때 왕보트와 해안과의 거리는 얼추 100M 이짝 저짝이었다. 당시 술이 조금 취하고, 분위기 탄 걸, 분위기 많이 탄 걸 감안해도 대강의 해안선과 산자락의 직선과 곡선, 변곡점들이 지금 보니 그때와는 많이, 아주 많이 다르게 보인다.
「뭐야 이거. 여기는 그 섬이 아닌데!」
「저 요원도 사기꾼 같고.」
「이거 원, 롤스로이스야 벤틀리야? 옛날 중딩들 사이에서 잠깐 소문 돌았던 그런 얘기야? 떼돈 싸들고 가도 신분이나 품위, 명성이 안되면 못 산다는 밑도 끝도 시작까지 없는 카더라-소문. 그런거야?」
「가만 가만. 호흡을 가다듬고 차분히 논리적으로 생각해 보자구. 친구들 한 박자 쉬어 가자고. 첫째, 하워드 요트에 기록된 좌표가 잘못된 거다? 이건 아닌 것 같아. 그래 위치는 맞아. 푯말이나 대강의 분위기와 형식은 똑같아. 그니까 이건 아니야. 그리고 둘째, 쥬라기 공원은 처음부터 없었다? 이건 믿거나 말거나, 까지는 아니지만 존재했을 것이다, 실제로 있었다고 하더라, 에 근접하는 신기루와 같은 가장 신빙성 있는 가설이야. 왜? 왜냐하면 우린 이곳을 목도하고 기억이 사라졌으니까. 그 다음 셋째, 쥬라기 공원이 있었다, 하지만 그 섬은 이동하는 즉 바다에 떠다니는, 그러나 정밀한 규칙에 따라 표류하는 섬이었다? 그래, 그래서 좌표는 맞는데 그 섬은 그 뭐지, 세계지도를 뉘어진 위와 아래가 올록볼록한 그런 지도로 봤을 때 물결치는 자기장이 신비하게 흐른다는 그런 이론에 따라 어딘가로 쥬라기 공원은 이동했을 것이고, 우리가 현재 도착해 있는 이 좌표에는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 아니지 아니지, 나도 막 회까닥한다, <알라딘과 요술램프> 바로 이 섬이 이 지역에 떠내려와서 임시 정착했다! 이게 그나마 가장 설득력 있는 추리이긴 한데, 이건 내가 말하고 나서도 웃음 밖엔 안 나오는군.」
「검색해 볼까? 인기 동화 순위? 그런데 검색을 왜 해? 난 안 해.」
「점점 미쳐가는 거 아냐. 원래 그런 영화들 보면 대개 스스로 만들어낸 환각과 환상 때문에 사건이 꼬여가고 혼자 흥분하면서 일이 커지잖아. 우리가 딱 그 초입 단계에 이른 거 같아.」
「그래 이도 저도 생각하지 말고 그냥 돌아가자. 왠지 느낌이 안 좋다. 불길한 조짐이 뒷목을 타고 올라와.」
「그래 정말 그런 것 같아. 돌아가자.」
「그럴까?」
「늦은 건 아닐까? 돌아갈 수 있을까?」
「못 돌아간다면 그건 더 이상 영화가 아닌 현실, 아니 재난이자 믿을 수 없는 미래 세계지.」
「돌아가고 싶다. 집에 가고 싶어.」
「돌아간다면, 돌아간다면, 닥치고 어서 집에 가자.」
「NC 사장 아니면 왕요트 주인 또는 누군가 알 수 없는 비밀 단체. 아무튼 누군가 어떤 사람들이 지금 초딩의, 초딩에 의한, 초딩을 위한 초딩 소설 쓰시나?」
「우리가 언제 또 이런 경험 해보겠니?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지. 이거 뭐 청소년 환상극도 아니고, 컨셉을 엄청 잘못 잡았네. 우선 부딪히고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든 나아가며 끝까지 가고 싶지만, 음, 그렇게 배워왔고 모든 작품들은 그걸 가장 많이 말하지만, 이런 실제 상황에서는 그냥 돌아가는 게 현명한 일이야.
그럼.」
「그래 집에... 가자.」
「그래 늦지 않았어.」
「그런데 돌아가면 또 시간이 훨씬 짧은 시간만 지나간 걸로 되어 있을까? 아예 하루나 이틀 시간이 거꾸로 가 있지는 않을까?」
「오~ 오~ 이거야, 이거. 돌아가면, 우리가 돌아가면 어찌되어 있을지 궁금하지 않니? 모험의 주제는 이거야. 이 효과가 정답이야. 이게 결론이라고. 이러니까 기억이 끊기면 미스테리 스릴러는 시작되고, 우리식으로 신장르를 만들자면 문명 기기를 이용해서 과학적으로 접근하고 녹음하고 영상을 찍고선 마지막엔 그 의문의, 마법의, 신기한 섬의 비밀은 끝끝내 풀리지 않는다! 그렇게 결론 내리는 거라고.」
「뭔 말이야? 얘 영화를 너무 많이 봤다.」
「그래 맞아. 존은 끝에 가서 죽는다.」
「그럼. 난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모두들 돌아가는 걸로?」
「컴백홈!」
어-어, 설마! 설마 이게 끝은 아니겠지. 나도 제발 끝이 아니기를 바란다. 지금 소설이 시작해서 챕터가 여기까지 이어온 게 어딘데, 그동안 수없이 복선과 반전이 있었는데 설마한들 여기서 끝내겠어? 그럴 리는 없겠지만, 아무리 그러한들 여기서 끝나면, 그건 슬픔이야. 여기가 끝이 아니기를 가슴 떨리게 기원한다. 여기서 끝나지 않을 거라고 기대하시오? 진정 그렇게 생각한단 말이오? 틀렸소! 확실하게 틀렸소. 그래서 애통하고 구슬프다오. 물론 미안한 마음도 있고, 독자를 속였다는 일말의 죄책감도 느낀단 말이오. 엉덩이도 가렵고 손가락은 아프며 땀 날라 하면서 약간 불쾌한 기분, 그것이 엄습하여 온 몸을 휘감는다오. 꿈인가? 생시인가? 전생은 아닌가? 초능력? 이런 젠장.
그들은 딱히 실연당한 젊은이나 무언가에 낙담한 패배 의식과 닮은 이상한 우울함과 몽환적인 분위기에 이끌려 처음 떠나왔던 해변으로 그리고 NC, 나이트클럽이 있던 도심지 그리고 그 다음에는 하워드의 집을 향하여 공간 이동을 한다. 모히토가 해변에 닫기 전 어느 즈음이던가 그들은 마지막으로 하늘에서 내려주셨을지 악마의 수작인지 모르는 환영을 보고야 만다. 절대 최면만은 아니었다. 뭔가에 감염되지도 않았고, 어딘가에 중독된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그들은 그들의 배와 약 100m 거리에서 바다 위를 달리는 열차를 본 것이다. 열차도 그냥 열차가 아니라 정말 못 말리는 못 믿을 그런 기차!
바로, 토마스 열차! 토마스가 간다. 에드워드도 간다. 헨리까지 간다. 고든을 빼놓을 수 있겠나. 제임스, 엄청 깐죽거리는 제임스 열차도 행진하신다. 그리고 퍼시, 토비, 덕, 도널드, 더글라스, 올리버, 에밀리, 하비, 빌, 벤, 로지, 아서, 머독, 네빌, 퍼거스, 찰리, 몰리...... 너무 많다. 토마스와 친구들, 잃어버린 왕관. 기차 앞면에 얼굴! 전설의 왕관과 사라진 친구는 어디에?! 꼬마기관차 토마스와 친구들. 블루마운틴 미스터리. 하여튼 토마스 열차는 있다. 명백한 실존주의! 그것이다.
한심스런 얼굴색으로 그게 뭡니까? 라는 독자의 급작스런 꾸짖음에 아차, 하며 쫄아든 마음을 애써 감추고 싶지는 않지만 오오, 토마스 열차! 그것은 결단코, 정녕 사실인데 절대 어찌할 수 있는 수법도 아니요 명백한 실제일 뿐인데 어떻게 더 해명하지도 거짓 자백을 털어놓을 수도 없는 입장인 것만은 분명함.
오, 웃었어 웃었어! 비록 냉소지만. 그 다음은 상상하기 싫다. 음. 워워 예감이 좋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