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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 ─ 198

from 소설 2024. 11. 7. 15:24

    1

    바보 같은 인생은 갑자기 기쁜 삶으로 역전할 수 있을까? 세기말의 종말론처럼 로또 복권 같은 상상. 안하는 게 낫겠다. 그러니 시간아 멈추어다오 라며 능청떨지 않아 좋긴 한데. 근데 그럼 또 재미가 없네? 그러게 말이야. 하긴 시간은 되돌릴 수 없고. 일생은 두 번 살 수 없으니. 따라서 하고 싶은 일을 찾아 그걸 만끽해야 하는데. 내가 뭘 하고 싶더라? 그게 문제다. 헌데 내가 언제부터 투정꾸러기가 되어버렸을까. 그걸 알아 뭐하겠나. 이제 보니 난 정신상태가 글러먹었다. 재산도 없을 뿐더러 의지 역시 박약. 게다가 형편 없는 사랑관으로 어떤 숙녀를 꼬시겠다고. 그렇지만 더 나은 내일이 우리를 기다릴 거라는 예감. 굳이 마다할 이유는 없겠지. 허나 중년의 삶에 그 어떤 새로움을 기대한단 말인가. 하오나 천진난만한 비관론을 뉴페이스의 종말로 간주할 수는 없는 법. 뭔 말이지? 그러게 말이야. 자, 이제 거창하게 고민할 필요 없단 얘기다. 그럼 기분전환만 생각하면 된단 얘기인데. 그런데 난 왜 툭하면 이처럼 말 같지도 않은 몽상으로 괴로워해야 하지? 쉽지 않아. 쉽지 않아? 뭐가 쉽지 않아. 안되겠다. 그래서 나는 교외 드라이브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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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에서 시골로 금방 넘어왔다. 그렇게 적당한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주차장에서 내 애마와 똑같은 모델을 봤는데. 보자마자 가버렸다. 뭐야 만나자마자 작별? 그렇다 치고. 그렇게 카페에서 카푸치노를 마시면서 나는 왜 산뷰와 벽뷰와 논뷰와 어울리는가를 생각했는데. 주변을 보니 나는 연령대의 평균에서 오락가락. 그 때문에 또 그런 생각이 들었다. 늙음에 비례하여 활기가 떨어져가며 황금에 미치는 거 아닐까 라고. 안 그럴 수 있겠나. 하긴 사랑은 영원할 수 없겠지. 더구나 연애마저 어려운데 즐거움은 바닥나야 이상하지 않다. 그렇게 가을이 왔다. 근데 왜 달력 사진과 비교되지? 그러든가 말든가. 천상의 기쁨은 궁금하지도 않을 따름. 친절한 남자도 수줍은 숙녀도 내 주변에 아무도 없는 마당에. 그러니 드라마를 보여 황홀한 연애를 부러워할 리가 있나. 소파에 자빠져 TV도 안봐 사람도 안 만나. 교양마저 다 잊어먹었나? 이렇게 사교와 동떨어진 마당에 뜬금없이 낯선 여인의 모성애를 자극해봐야 필요없다. 그때 알람이 울렸다. 동네 친구가 자기집에 나를 초대하는 날이다. 오늘 저녁이구나. 기억해보니 십대 시절에 친구집에 놀러가고 친구를 내 집에 초대하고. 늙으니 그마저 없어지다니. 어쨌든 저녁을 기다려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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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 집 도착. 의례적인 인사말 하며 립서비스 잔치. 그럼 이제 슬슬 나는 기가 빨려나가겠지. 신체에서 피로가 제일 먼저 오는 곳 가운데 하나가 눈일 텐데. 벌써 게슴츠레? 아직 끄떡없음. 무슨 말하지도 않았는데 드레스 코드가 맞춰졌다느니 당신 이뻐졌다 집이 아름답다 행복한 인생 딴 거 없더라는 둥. 또 무슨 얘기들을 했더라? 아, 맞다. 나이듦과 비례하여 다습한 손은 건조해지는데 우리 가운데 (쌩)아이폰을 사용하는 사람이 있다면서 왜 다 날 갑자기 쳐다보는 거지? 
   「저도 손이 건조합니다. 그래도 가슴은 다정하죠. 저 이상한 사람 아닙니다. 왜, 제가 꽉 막힌 어른처럼 보입니까? 실은 그렇겠죠. 왜 아니겠어요. 하지만 멋진 해변가에서 하필 찬바람 불고 싸늘한데 억지로 수영복과 비키니 맞춰입고 일광욕하는 일. 전 못합니다. 안합니다. 그에 비하면 케이스 없이 쓰는 취향. 너무 뭐라 하지 맙시다. 허허허. 그리고 전 파티 그런 거 못해봤습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어쩐지 꼭 미팅 나가서 제가 꽝된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그나저나 제가 분위기 못 맞춰서 아쉬울 따름이군요. 마침 저한테 왜 형씨는 말이 없죠? ~라고 여쭤보실려다가 제가 선수친 기분이군요. 이렇다니까요. 그러게 제가 다과회인지 뭔지 안온다고 했잖습니까. 저 인간은 왜 불러서 난리야, 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만. 잘 참다 말썽꾸러기가 되는 체질인가 봅니다. 그럼 다시 분위기를 띄워볼까요? 그게 맘대로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이럴 때도 다 방법이 있죠. 아이스크림? 우리가 젊은이들처럼 게임을 하기도 그렇잖아요. 그러고 보면 억지 미소와 가짜 웃음보다 썩소가 훨씬 솔직하고 편할 수도 있어요. 그렇긴 한데 괜히 저 때문에 흥이 다 깨진듯 해서 죄송하군요.」
    근데 알고 봤더니 그건 나 혼자 속으로 생각한 혼잣말이었다. 또 굳이 인사말을 안하고 나와서 눈치 챈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점. 다행이라면 다행일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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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이제 무엇을 하지? 지금은 재미없어도 가까운 미래는 상쾌해야 할 텐데. 달리기를 할까 수영장에 갈까. 아니면 무작정 카페에 들려 운명적인 사랑을 기다릴까? 그러다 최근 내가 즐겨찾는 장소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건 바로 스머프 공원. 아니나 다를까 그곳 밖엔 갈 데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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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머프 공원에 도착했다. 활기차게 공원을 모두 돌아볼 수는 없고 해서 의자에 앉았다. 어찌된 영문인지 웬 노인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근데 이분이 정녕 노인인지 젊은이인지 짐작하기 어려운 행세. 뭐지? 시대적으로... 다른 지방 사람도 아닌 듯 하고. 굉장히 특이한데 딱히 설명하기 곤란한 분위기를 풍겼는데. 
   「형씨, 나를 알아보겠소? 아마도 기억하지 못하시겠지만 우리는 언젠가 프리메이슨 목회에서 만난 적이 있었소. 그때 우리가 약조하기로 차후 스머프 총회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누군가 당신의 기억을 지웠버렸나보오. 기억 못하죠? 그렇겠죠. 뭐 그건 그렇고. 스머프 총회가 우리를 만나게 해주었으니 그에 대해서만 얘기해보기로 합시다. 스머프 총회는 가입조건이 까다롭다거나 일정 요건이 충족되어야 하거나 그렇지 않소. 다만 선택받은 자 즉 우리가 충분히 연구해서 뽑은 사람에 한해서만 가입을 허락한다오. 그러니 우리가 당신에 대해서 알만큼 알아냈다는 말이겠죠. 그런데 지금 혹시 그런 생각하고 있소? 이 영감탱이는 뭐 하는 사람이지! 라고 말이오. 아시다시피 아니 전혀 모르시겠지만 난 전생에 유명한 독심술사였다오. 그러니 당신의 마음을 훤히 꿰뚫고 있을 수 밖에. 자, 그럼 스머프 총회가 어떻게 과거 프리메이슨으로 둔갑해서 활동해왔는지가 궁금하지 않소? 그러니까 프리메이슨의 기원설로 일곱가지가 있는데. 피라미드 석공 기원설, 세그메트 여신 기원설, 성전 기사단 기원설, 피타고라스 기원설, 솔로몬 성전 기원설, 중세 영국 석공 길드설, 근대설립설 원투까지. 그 모두가 스머프교를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오. 
   자, 그럼 당신이 아마도 믿음이 부족할 테니 그대에 대해 내 잠시 설명하는 건 어떻겠소. 당신이 살아온 인생. 어디서 공부했고 누구와 일했으며 어떤 숙녀와 사랑을 못해봤다거나. 열애했던 취미는 물론 학창시절 친했던 친구들. 사진으로 남거나 못 남은 추억들. 연도별 전화목록부와 함께. 어떤 친구의 집에 놀로갔으며 드물게 학교 친구를 집에 데리고 왔다거나. 술 마시고 취해서 길거리에서 언제 잠을 잤으며. 첫키스는 물론 언제 어떻게 노상방뇨를 했는지까지. 우리는 다 알고 있다오. 미리 말씀드리지만 부디 놀라지 말기 바라오. 당신은 전생에 볼셰비키 소속이었죠? 그럴 줄 알았소. 또 당신은 전전생에 프리메이슨 임시정부에서 활동했죠? 그렇다니까요 글쎄. 일단 지금은 혼자 살고. 만나는 여자는 뭐야 9명? 바쁘게 사는 모습 좋아요. 숨겨진 자녀는, 넘어갑시다. 뭐야 집에 지금 여자가 와 있네? 아니 또 바꼈소? 이럴 수가. 그런데 그녀는 비밀이 없는 여자. 재산은 엄청 많고. 어쨌든 당신이 지금 타는 애마는 파나메라 투리스모. 지갑은 에르메스. 향수는 샤넬? 무슨 암호까지 럭셔리 브랜드로 정했소? 참 내 촌스럽게 그게 뭡니까? 우리는 다 알고 있다오. 근데 설마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칸타타 절반을 당신이 작곡해주었소? 뿐만 아니라 숱한 문학작품마저 당신이 대필해줬다는 거 알고 있소. 이 정도면 우리의 정보력이 거의 전설적이라고 봐도 되겠소. 그렇죠? 기왕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당신의 고향을 조사하다가 알게 된 게 있소. 그건 말할까요 말까요? 그러자면 또 조부모, 증조...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되니 지금은 때가 아닌 것 같소만. 좌우지간 낮 열두시 종이 치자마자 태어난 건 좋은데. 그렇게 태어나자마자 지역을 무려 7군데나 옮겨다니다니. 그럼 고향이 일곱이 되는 거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거친 인생을 사셨던 결과 결혼은 5번이요 이혼은 4번에. 그리고 기후위기 단체를 후원하고 있군요. 좋아요. 블랙록 투자사에 지분이 상당하시고. 이거 제가 계속 해야 할까요?」
   「말씀 중에 죄송한데 말입니다. 다 틀렸는데요. 아마도 사람을 잘못 보신 것 같습니다.」
   「뭐요? 아니 그럼 진작에 말을 해야지. 이 사람이 정말 누구 똥개 훈련시키나? 당신 벙어리요? 왜 진작 제지를 안 하쇼? 누가 말렸어? 아니지 않소. 내 참 살다살다 별 희안한 인간을 다 보겠네. 거 참 이상한 양반이야. 어찌 됐든 내 지금은 물러가오만. 이것만 명심하는 게 좋을 거요. 주말에 할 일 없으면 여기 스머스 공원으로 나오시오. 기가 막힌 장면을 보게 될 테니 말이오.」
   「......」
    그러면서 웬 아저씨는 가버렸다. 대체 뭐 하는 사람이지? 알 도리가 없었다. 





    2

    일주일이 지났다. 할 일이 없었다. 원래 늙으면 그럴까? 젊어도 똑같다. 단지 어릴 땐 심심하다 라고 표현하는 반면 늙어서는 괜히 바쁜 척 응석부리는 게 살짝 다를 뿐. 대체 우리는 왜 그러는 걸까? 여기서 '우리는'에 포함되지 않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 늙음 때문에 몸을 움직일 때 효과음이 들어가지 않을 텐데 말이다. 그건 그렇고 오랫만에 스파를 즐길까? 아니다. 그건 한달 후에. 그럼 여행을 갈까? 피곤해서 자주 못가니까 다음에. 그렇다고 강변도로와 해안도로로 드라이브를 떠나자니 왠지 기분이 아닌 것 같고. 미용실은 어제 다녀왔으며. 쇼핑? 내키지 않음. 낚시? 피곤해서 못함. 스포츠 경기 관람은 혼자 가기 지겨워짐. 그렇다고 미술관과 동물원 근처에서 얼쩡거리기도 뭐 하고. 놀이공원에 함께 갈 숙녀는 공석이니. 당연히 남은 건 스머프 공원 밖에 없게 됨. 
    장면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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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번에 마주친 그 아저씨 말은 정말일까? 일요일에 여기 뭔 일이 있을 거라는 예언. 예언은 무슨. 지가 무슨 노스트라다무스야? 근데 일요일을 앞둔 토요일 23시 30분에 이곳에 방문한 난 뭐지? 뭐긴 뭐야 톰과 제리 만화영화에서 달콤한 치즈 덫에 걸린 녀석이겠지. 뭐라고? 말도 안돼. 그때 도시 시내 쪽에서 불꽃놀이가 시작됐다. 저기를 갈 걸 괜히 이쪽으로 왔나 싶었다. 그렇게 근처를 얼쩡거리다 어영부영 밤 12시 5분 전이 됐다. 이때쯤 내가 돌아가버릴 걸 예상해서 뭔가 준비했을 수도 있는데. 그럼 당연히 그런 망상을 믿을 나는 아닌데. 
    순간 자정의 순간 그 분위기를 고조시키기 위해서인지 몰라도 저쪽에서 새떼가 엄청나게 날라갔다. 딱보니 철새가 아니라 준비된 거였다. 벌새인지 제비인지 뭐지? 
    곧이어 딱 12시가 되어 내 발 밑을 중심으로 하여 반지름은 약 100미터. 모양은 대략 원인데 약간의 변화가 있는 듯 했고. 원둘레를 휏불 든 사람들이 돌고 있었다. 멀리서 봐도 수많은 인원이 동원된 걸로 보아하니. 무슨 행사지? 축제야? 가서 뭐 하는 거냐고 물어볼 수도 없는 건데. 그런데 대체 저분들은 왜 저걸 하고 있냐고! 가만보니 원의 중심이 이곳인데... 여기서 뭐가 솟아 나올려나? 그건 기다려도 아닌 듯 해서 생각하는데. 무슨 멧돼지를 때려잡는 것도 아니요. 토끼를 몰아서 사냥하는 것 역시나 아니니까. 그러므로 먹잇감에게 간접적으로 알리는 무언가 의뭉스러운 알림? 물론 새 회원에 대한 예우일 수도 있다만 그런 말 같지도 않은 억측은 드라마에서나 가능한 일이고. 그렇지만 난 영화 속에 사는 인간이 아닌데. 그럼 이건 착란? 아니야. 최면도 아니고. 지금 환영을 보는 것도 아닌데. 왜 하필 이런 괴상한 신비감이 신나는 주말 밤에 벌어지냐고. 그렇다고 무슨 스머프 총회라는 게 만약 있다면 이걸 매번 하지도 않을 테고. 없다면 뭐 창단식일 리도 없는데. 아니면 지금 내 근처 어딘가에 스머프교 교주가 숨어있나? 이 자식 나오기만 해 봐라 내 가만 두나 봐라! 나와라 이런 멍청이 바보 미련 곰탱아. 당장 나와. 한판 붙자. 내 이래 뵈도 UFC 선수들 여런 나가떨어지게 만들었음. 거기 등장하는 웬마한 녀석들 내 앞에서 바지에 오줌 지렸음. 내 얘기만 들어도 바들바들 떨었음. 근데 이러다 하늘 위로 초거대 UFO가 나타나는 거 아냐? 만약 그러자면 맥북에어처럼 완전 조용할 리는 없을 텐데. 그렇다고 영화처럼 너무 떠들썩해도 말이 안되고. 
    바로 그때 빙빙 돌던 휏불은 꺼졌다. 곧이어 반지름은 더 차이가 나도록 한 200미터? 이제는 휏불이 아니라 레이저야 뭐야? 가만보니 저건 핸드폰 후레쉬였다. 물론 멈춰있지 않고 앞서 휏불처럼 돌고 있는 상태. 그럼 앞서 휏불도 인파가 상당했는데. 저 정도면... 저 촘촘하도록 핸드폰 후레쉬가 빛나는 걸 보니. 아르바이트생 1명이 막 막 막대기 긴 거에다 핸드폰 수십 대를 부착해서... 그건 아니고. 멀리서 봐도 1명당 1대로 보이는데. 무슨 UFO 플래쉬몹? 플래쉬몹 그거 유행 지난 지가 언젠데! 뭐하는 거야?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 기다려도 UFO는 나타나지 않음. 그럼 설마 나체 여인들 막 몇 천명이 내쪽으로 뛰어온다? 말 같지도 않음. 그럼 그 대신 개떼 5만 마리가 한꺼번에? 말도 안됨. 좌우지간 나는 젊음에서 멀어져가니까 상상력이 이것 밖에 안됨을 인정한다. 안 그러게 생겼나. 게다가 주어진 상황으로 보건대 웬만한 영화 플롯을 추정한다? 불가능. 어정쩡한 단편영화 스토리조차 추리 안됨. 그냥 개처럼 눈만 끔벅끔벅하는 게 다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사후세계의 불가사의함과 우주 바깥의 궁금증에 대해서 고민할 수도 없고. 어떡하지? 드라마에서는 보통 저쪽 이탈자 한두 명이 내쪽으로 뛰어오기도 하던데.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래도 미녀였으면. 농담이고. 이렇게 된 마당에 내가 저들에게 희망의 사과나무가 될 수도 없거니와. 난 젊음의 주인공도 아님. 
    그러다 나는 헛것을 보았다. 저 멀리 풍선 15만개를 한꺼번에 모아서 떠오르는 거대 인형을. 아닌가? 그냥 재밌는 모양의 열기구인데. 실제로 본 게 아니라 갑자기 시력측정할 때 보이는 쪼그만 열기구를 떠올렸을 뿐. 아니 잠깐! 핸드폰으로 이걸 사진 찍을 생각을 왜 안한 거지? 그렇다고 뒤늦게 가방 속의 납짝 디카를 꺼내는 것도 좀 모냥빠지는데. 그냥 관두자. 그럼 내가 도망가든가 아니면 저들이 이상한 쇼를 그만두던가 그런 승부가 시작되어버린 것일까? 아닐 거야. 내가 어떤 기대에 부흥해서 내 몸이 막 열 배, 백 배 부풀어올라 만화영화처럼 막 그래야 하는데. 난 못하거든. 그런 쟤들이 제풀에 지치겠지. 어쩌겠어. 근데 나는 이런 이상한 긴장감을 즐기기 위해서 하필 이 야심한 시각에 것도 혼자서 스머프 공원을 탐방하러 온 거야? 알 게 뭐야. 안되겠다. 유튜브에서 봤던 제목마따나 뭐 회피남 어쩌고저쩌고? 일단 튀자. 도망가자. 잡아먹히면 안되니까 말이다. 그렇게 한참 뛰어 내 애마에 올라탔다. 시동을 걸고. 그렇게 한 20분 운전했나. 공터에서 내려 잠깐 쉬는데. 나처럼 쉬는 사람들이 쏙닥쏙닥 하는 얘기들을 엿들었다. 그게 아르바이트였고 짭잘한 수당을 받는 거 말고 아는 게 일절 없다나 뭐래나. 괜히 더 괴상해짐. 그렇게 믿을 수 없는 주말은 지나갔다. 





    3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뭘 하지? 무엇을 하던 혼자 있겠지. 그렇다고 꿈 많던 젊은 시절로 돌아갈 수도 없고. 만약 만화영화처럼 돌아간다고 해도 야망 없고 재미없을 건 뻔함. 주변에서 나도 유튜버나 해볼까 라는 푸념도 들을 일 전혀 없는 삶. 그러니 뉴욕 최부촌 아파트를 소개하는 유튜브 숏영상의 코멘트까지 읽음. 그 가운데 간혹, 저분은 어디서 초딩 나온 게 유일한 자부심이래나 뭐래나. 그럼 '6시 내 고향' 같은 프로그램이나 사석에서 시골 출신 양반이 말하기로. 우리는 저 바다만 봐도 가슴이 울렁울렁해. ~라는 자부심은 되고 도심의 회색아파트 지대에서 자란 애들은 아무런 자부심도 뭣도 없어야 하나? 그건 아님. 그분들이라고 비교적 부모 잘만난 행운은 약간이나마 남다를 수 있겠으나 감성 썩고 사리분별 못하진 않음. 오히려 뭘 해도 재미없는 늙은이가 불운의 그림자 아래서 비꼰 댓글과 젊은이들 생각은 완전 딴판. 뭐 그건 그렇고. 그렇다고 소파에 자빠져 TV를 틀자니 뻔한 아파트 얘기, 정치, 식상한 토크쇼, 내용 전개 판에 박은 드라마 등등. 어느새 어두운 분위기의 NO젊은이? (절레절레). 어디서 들은 얘기를 하자면. 자기가 예전에 초딩들 상대로 하는 일 했었는데 첨엔 초딩들이 자길 좋아했는데, 같이 있는 시간이 길어지니까 자기를 좀 지루해하고 점점 같이 안있으려고 했다나 뭐래나. 그렇긴 하나 면전에서 초딩한테 못 생겼어 라는 말을 직접 들어본 입장에서 말하자면 어차피 무뎌짐. 잊혀짐. 물론 잔뻔치가 평생 누적되면 또 다른 얘기겠으나 넘어가고. 안 그래도 웬만한, 말 말자. 처음엔 호감으로 다가왔다가 말 수가 적으니 말 놓던 사람이 존대말 쓰기 시작했다는 둥. 말이 없고 밝지 않으면... 사람들이 계속 좋아해줄 이유가 없다는 둥. 근데 조용했으면 싶은 분께서 말 많으면! 그래서 젊은이들끼리 함께 하는 술자리에 오래 남아줬으면 하는 선배는 일찍 가고, 일찍 가시길 바라는 선배는 진득하니 오래도 남아계신다나 뭐래나. 젊어서는 투정이요 늙어서는 주접? 우리 얘기다. 그렇다. 하다하다 나는 네이버→네이바, 쩜프→짬프, 멤버→멤바.. 막 이런 예로 뭐가 있나도 수차례 떠올려봤음. 또 의자에 앉으면 무릎이 벌어짐. 다 늙어서! (뿐만 아니라 20대 중후반만 되어도 게임을 직접에서 유튜브 시청으로 대체. 그 역시 노화현상 아니라고 못함). 속된 말로 환장할 노릇 까지는 아니겠으나. 한마디로 미치겠음! 그래도 젊어서 흑화되지 않았다만 늙어서 뭔가 분위가가 쳐지고 어둡다라고나 할까? 자연스럽게? 이래서 나이 들면 나보다 잘나거나 늙은 사람은 피하기 마련. 근데 그 no젊은이가 바로 나? 인사성도 오다가다 만난.. 넘어가자. 어차피 나이들수록 깨우치기 마련인 잔소리일 뿐이고. 어쨌든 나는 별 볼일 없는 속물이다. 그러니까 앞 문단 얘기처럼 혼자서 스머프 공원에 놀러갔겠지. 그럼 결국 스머프 공원에 또 가란 얘기일까? 누가 시키지는 않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나는 스머프 공원에 갔다. 그런데 바로 그곳이 아니라 근처 언덕, 오름 지대에 자리잡은 것이다. 그곳을 관측하기 좋으니까. 거기에 마침 짓다 만 폐건물도 있었다. 은폐와 엄폐에 좋고. 물론 잠망경도 챙겨갔다. 그렇게 시간이 됐다. 밤 12시 5분전. 그렇게 망원경으로 그곳을 보니 웬 열기구가 보였다. 뭐지? 혹시 잠망경이 잘못된 건가? 가짜야? 아닌데. 다시 봐도 보였다. 혹시 해서 핸드폰 카메라 사진으로 댕겨보았다. 거리가 거리인지라 자세하진 않지만. 뭔가 있긴 있는데. 뭐지? 진짜 열기구일까? 만약 변화가 없었다면 대충 1시간 대기하다가 중간에 가져온 커피 마시고, 빵 먹고, 과자는 먹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그러다 철수했을 것이다. 그런데 뭔가 보였다니. 이건 예상 못했는데. 어떡하지? 뭐 어쩔 수 있나. 가보는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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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착했다. 그런데 열기구 같은 건 없었다. 뭐야 이거! 그럼 아까 봤던 건 뭐지? 당시에는 있었는데 이동시간 딱 그때 치워버렸을까? 그럴 리는 없을 거 같은데. 왜 있어야 할 게 없냐고. 아님 아예 애초에 보이지 않던가. 혹시 내가 함정에 빠졌나? 아닐 거야. 나는 대어가 아니니까. 대어는 커녕 달콤한 치즈로 꼬셔도 미끼조차 아까울 걸. 그런데 열기구는 어딨어? 그걸 내가 어떻게 알겠나. 바로 그때 이번에는 저 멀리서 셀 수 없는 촛불들이 켜졌다. 그런데 가만 보니 바람이 불어 막 꺼지고 다시 붙이고. 또 누군가는 인공 촛불도 있는 듯 하고. 막 우왕좌왕. 뭐 하는 거야? 대체 뭐 하자는 거냐고! 그럼 혹시 다시 저쪽으로 가서 거 뭐더라. 시력 측정하는 장비를 구비해서, 그걸 뭔가 어떻게 뚝딱뚝딱 분해하고 거기다 망원경을 결합한 다음. 현미경의 발판만 붙여서. 거기까지 어떻게 어떻게 했다고 쳐. 그 다음에 그걸 가지고 저쪽 언덕으로 가서 여기를 보면 뭔가 SF 드라마에 나오는 장면이 보일까? 무슨 미련 곰탱이 같은 상상을. 이런 젠장. 그럼 이건 뭐지? 어제만 해도 반도체 기업 퀄컴 주가가 시장 예상치를 훌쩍 웃돌아 주가가 날아가는데. 난 돈도 없고. 헛고생만 하고. 언제까지 똥개 훈련만 해야 하지? 누가 시킨 건 아닐 텐데. 만약 시켰으면 어떡하지? 근데 과연 누가! 게다가 영화에 보면 대략 주인공은 2명에서 5명 정도. 모험을 해도 뭘 상의하고 기승전결로 넘어가는 쾌감이 있어야 하는데. 엉망진창. 이건 기적도 아니고 전설도 아니며 그 어떤 장르도 아님. 바로 그때! 
    아무일도 없었음. 옛날 같으면 넉살 좋게 그럴 것이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게임을 시작해볼까? 그럼 옆에서 초딩이 놀려주겠지. 근데 아무도 없어. 뭐 인생론에 대해 강변하면서 아무나 만나지 마라? 옆에 아무도 없음. 그런데 어떻게 어떻게 저 멀리서 불빛이 반짝이며 큰 원을 돌고 있었다. 저걸 신기하다고 해야 하나 이상하다고 하는 게 맞을까. 그래. 신비롭긴 한데. 왜 UFO는 안나타나냐고. 이쯤 되면 그 변화는 내가 만들 수 밖에. 그래서 난 전력질주를 감행했다. 그렇게 저쪽 대열에 합류하려고. 그럼 뭔가 실마리가 풀리겠지. 그래야 한다. 그렇게 될 것이다. 아마 그럴 수 밖에 없을 걸? 근데 이번에 저쪽 인파들은 사람이 아니라 로봇개면 어떡하지? 그야 그때 가서 생각하기로 하고. 
    장면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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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그분들 인력에 합류했다. 핸드폰 후레쉬를 켰다. 너무도 은근슬쩍 잠입했나 걱정되지만. 일단 일원이 되긴 했다. 그래서 그들과 똑같이 행동하고 있는데. 대체 왜 이래야 하지? 옆사람한테 물어보기로 했다. 이거 혹시 강강수월래 플래시몹이냐? 아님 뭐냐? 왜 이러는지 아냐? 등등을 물어보기 위해서 말이다. 
   「저기요. 말씀 좀 물읍시다. 있잖아요,」
   「있긴 뭐가 있어요? 저 남자친구 있거든요.」
   「뭐니? 무슨 미새더라, 전문용어 그거야? 보아하니,」
   「얘, 신경쓰지 마. 내가 드라마 제목 뭐더라. 걔 같은 남자 소개시켜줄께.」
   「어머 진짜?」
   「근데 이 아저씨 뭐니? 생긴 건 꼭... 외계인처럼 생겨가지고 말이야. 아님 멀쩡한데 여자를 너무 좋아하나?」
   「그러게. 뭘로 보나.. 말 말자.」
   「아니 전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긴 뭐가 그게 아니에요? 우리들 남자친구 있거든요. 남사친도 많거든요.」
    거 참...! 난 그게 아니었는데 말이야.
    뭐 그렇다 치고.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여기 계시는 분들은 대체 왜 빙글빙글 도는 거죠?」
   「」
    이번에는 내 말을 못 들었는지 자기들끼리만 신나게 수다를 떪.
    혹시 대화 나누면 안될 금기사항? 이게 무슨. 그야 뭐 차차 정탐하고 탐문하고 끈질기게 관찰해보면 알게 되겠지. 그러면서 그날은 일단 철수했다. 





    4

    그렇게 매주 나는 스머프 공원에 갔다. 대부분 말이 잘 안 통하거나. 동문서답하거나. 원하는 답을 못 듣거나. 잘 모르거나. 그게 다였는데. 이런 이상한 대화도 있었음.
   「저기 혹시...」
   「당신은 우리가 찾는 외계인이 아니오.」
   「네? 무슨 뜻이죠? 저는 지구인입니다.」
   「당신은 지구인 같지도 않아. 대체 어디서 왔어?」
   「어디서 오다니요. 이 근처에 살고 있어요. 물론 휴양객으로 말이오.」
   「그러든 어쩌든 내 알 바 아니고. 당신은 우리가 기다리는 외계인이 아니오.」
   「그럼 당신들이 염원하는 그분은 대체 어떤 분이오?」
   「그건 알려줄 수 없소. 아니 잠깐. 여기 모인 분들은 모두 아는데. 당신은 어떻게 모를 수 있지? 당신 혹시 뭐 지구동공설에나 나오는 지하인이오? 정말 그렇소? 이거 이거 너무 수상해, 어?」
   「그건 또 뭔 소립니까? 도무지 무슨 얘기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군요.」
   「모른 척하지 마시오. 당신 어디서 왔소? 어디 소속이오? 정체를 밝히시오.」
   「대체 어떤 이상향의 존재를 고대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떻게 제가 눈에서 레이저라도 나가게 할까요? 아니면 날개를 펼쳐서 날까요? 원하는 걸 말씀해보세요. 그래야 어떻게 장단을 맞출 수 있을 거 아닙니까.」
   「그걸 꼭 말로 해야 안답니까? 사랑이 뭔지 몰라요? 이런 바보 같은 양반을 다 봤나. 쯧쯧쯧!」
   「아니, 어? 어떻게 입에서 화염방사기의 불꽃이라도 뿜을까요? 물론 할 수는 있겠으나 우리는 만화영화의 세상에 살고 있지 않잖아요.」
   「바보천치 같군.」
    이분들이 바라는 꿈과 비전과 희망에 내가 모두 부합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근데 그게 과연 공통될까? 뿐만 아니라 어느 정도 근사치로 접근이라도 되면? 그럼 또... 난리나겠지. 이래도 싫다 저래도 짜증난다 뻔할 거야. 근데 내가 참 별생각을 다하는구나. 그러든 어쩌든 일단 이번 크리스마스까지만 이곳에 숨겨진 비밀을 탐구해보기로 하고. 크리스마스가 지나면 깨끗이 포기하는 걸로 하자. ~라고 다짐했는데. 
    한 한 달쯤 지났을려나? 점점 핸드폰 후레시 켜고 원을 도는 인파는 줄어만 갔다. 왜 도는지도 알아내지 못했다. 나도 점점 지쳐갔다. 당장 집어치울 수도 없고. 난감하네. 
    바로 그처럼 기분이 쳐지던 찰나. 어떤 여자 유튜버가 나에게 접근해왔다. 
   「저기 잠시만 인터뷰에 응해주세요. 오빠는 그래야 할 것만 같아요.」
   「오빠요? 아빠, 아닐까요?」
   「어머 오빠 왜 이렇게 웃겨요?」
   「제가요?」
   「그나저나 이 외계인 신드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네? 외계, 뭐요?」
   「아아 뉴스를 아예 안보시는 아저씨구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관심도 없으신 거 같고. 주위를 둘러보세요. 지금 오빠 혼자 남았어요. 그 많던 사람들은 다 흩어졌다구요. 다 잊었어요. 이제 UFO 초거대 UFO를 기다리는 사람은 오빠 단 한 명 뿐이라구요. 아시겠어요?」
   「내가요?」
   「정말이네요.」
   「우리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주변에 경치 좋은 카페 많은데 그곳으로 자리를 옮기면 어떨까요? 그래도 UFO는 몰라도 맨발 운동하는 분들도 계셨고. 최근에는 오리발까지 본 적 있소. 진흙 밟기 무슨 건강 목적으로 말이오. 아무튼 말이 길어질 거 같은데...」
    나는 추호도 그녀를 꼬시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내가 만약 흑심을 품으면 그건 멜로드라마 대사로 뭐 껄떡이라는 둥 개침이라는 둥. 들을 말 뻔할 테니까. 그런데 왜 갑자기 그녀가 좋아질려고 하지? 그 후 어떻게 됐나 모든 걸 밝힐 수는 없다. 차마 그럴 수 없는 처지를 이해해주시기 바람. 





    5

    벅차오르는 교성은 만족스러운 행복일까? 말도 안되는 질문이다. 노상 잔꾀는 바닥나고 잔머리는 안 돌아가고. 어쩌지? 뭘 어째. 숙녀들이 제발 한번만 만나달라고 난리였던 어제나 회상하는 거지. 근데 그때 걔네들은 왜 그랬지? 그러게. 그래 봐야 가슴이 파인 드레스에 우리는 눈 하나 꿈쩍하지 않는다. 그냥 혼자 있고 싶을 따름. 툭하면 전화해서 잔소리하던 그녀! 어디 한두 명이야? 아, 과거형인데. 원래 배부른 사자는 낮잠을 자고, 굶주린 늑대는 (속된 말로) 입 털기 바쁘다. 그러든 어쩌든 나는 비겁했다. 그녀들 마음이 애타는 걸 알면서 모른 체했으니까. 말이야 바른 말이지. 그녀들이 내게 얼마나 열광했던가. 뻥이 아니다. 그런데 말 못할 비밀은 왜 자본으로 환산할 수 없는 걸까. 다름 아니라 그게 재물운일지도 모름. 그러거나 말거나 마지막 연애는 부끄러웠나 애절했나. 기억도 안난다. 아무리 그래도 이 세상에 그녀들의 애마가 되는 기쁨을 만끽하는 것보다 지겨운 게 어디 있나. 아주 그냥 신물이 난다. 생각만 해도 쓴물이 올라오거든. 그러긴 그래도 우리는 품위와 행복과 사랑을 포기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아직 첫사랑은 시작도 안 했기 때문. 그래도 달력이 바꼈으니까 속상함과 빈정상함과 속 뒤집어지는 일쯤은 잊어버리자. 희망찬 열망과 함께 보채는 그녀, 들뜬 숙녀들의 기대를 져벼리면 안되니까. 근데 그녀들 가운데 누굴 고르지? 선택을 하는 둥 마는 둥 능청도 재미없다. 가만히 듣자하니 무슨 그런 개똥 같은 헛소리만 떠들고 자빠졌으니까 지금도, 아니 그렇게 심한 말을? 근데 죽치고 수다 떠는 게 취미도 아는데 난 왜 갑자기 푸념이 늘었나. 보나 마나 백날 어떤 생각만 하니까 그렇겠지. 그런 녀석들 머리 속엔 대체 뭐가 들었다? 조용조용 하나만 알려드리자면 여자라고 퍽 다를 건 없음. 허허허허허. 그걸 꼭 누가 가르쳐줘야 아나. 그러든 어쩌든 미남을 보면 사족을 못 쓰는 그녀들 챙겨주는 것도 이골이 났음. 웬만히 날 쫓아다녀야지. 일설에 의하면 자기들끼리 번호표 발부기를 샀다가 주사위로 바꿨데. 그게 왜겠어. 왜겠냐고! 그렇지만 장화 신은 여자들이 목소리 도톰한 남자들한테 환장하는 게 나랑 뭔 상관이야. 관심 없어. 다른 남자들한테 눈길 주며 엉덩이를 씰룩거리는 뒷모습은 그냥 길거리 돌맹이 보듯 하니까. 아무튼 그러라 그래. 왜냐, 우리한테만 여심이 몰리면 우리도 힘들거든. 벅찰 거 아냐. 그 뿐만이 아니라 우리는 낭만적인 연애의 부재에 썩 연연하지 않는다. 더더군다나 촌스러운 패션이 뭐가 문젠데. 아니 한번 생각해보자. 어떻게 뭘 해도 재미없을 수 있지? 사랑을 노래하고 잔소리를 얻어듣는 운명이 얼마나 기쁘기 그지없는데. 그러다 어느 날 웬 숙녀가 고백해오겠지. 당신을 생각하면 코끝이 빨개진다고. 그럼 나는 답할 것이다. 그대가 뭐 루돌프 사슴코라도 된답디까? 그럼 또 언년이 우리 오빠를 꼬실려고 껄떡거리냐면서 제지를 할 수 밖에 없어. 어떻게? 나는 오빠는 보면 너무 좋아서 눈물이 핑 돈다고! 그런데 그녀들을 내가 간지럽히며 웃겨줄려고 하면 이제야 개꿈이란 걸 깨닫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이란 군말 필요없이 희망가를 부르는 것이다. 아닌가? 상태가 이렇기 때문에 그동안 내가 내뱉던 숱한 허풍들 중 유독 무엇이 진짜인 것처럼 느껴지게 되었는데. 근데 그게 뭐였더라? 알 수 없을 따름. 뭐 또 까먹었어? 잘났어 정말. 더불어 겁먹은 연민. 쓸데없는 공포. 영락없는 가난? 아주 그냥 권태가 성스롭구만. 예술적이야. 이래서는 도저히 희망의 찬가를 지어낼 수 없다. 그러니까 방탕스러운 상상력마저 탕진됨. 기쁨의 행진은 꿈도 못 꿀 지경. 대체 마술처럼 등장할 팔색조의 미친 활약은 언제쯤일까? 그걸 별이 아나 똥개가 추측하나. 아니면 어여쁜 숙녀에게 물어봐? 말이 안됨. 어쩌면 허접한 중년운마저 심각한 타격임을 눈채 챘으니까 그녀들이 근처에도 오지 않는 건가. 뭔 꽃이 보여야 여심을 부추기든가 말든가 하지. 이거 나 원 참! 이처럼 더 잃을 것 없는 해결사의 망한 정체. 탄로날 걱정 없으니 편하긴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슨 까닭인지는 모르겠으나, 우리는 도전을 멈출 수 없다. 그런데 무엇에 대해? 이건 뭐 몽유병도 거북목 증후군도 아니고. 참말로 난감하구만. 관능적인 찬사는 발설한 기회조차 없고. 의례적인 허언은 정신을 못 차리고. 어쩌지? 어쩌긴 뭘 어째. 이래서는 죽도 밥도 안된다. 허나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라고 '막살자'별칭을 떠올려서도 안되는데. 근데 이런 식이면 사랑의 결론이든 환상의 끝이든 춤추는 마술 구두는 도무지 멈출 수가 없잖아? 내 말이! 따라서 그냥 억지로 끝내는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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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 ─ 197

from 소설 2024. 10. 17. 17:50

    1

    영화처럼 극적인 삶을 살 수 있을까? 없다. 게다가 대부분 허구 아니면 과장이다. 그처럼 둘 중 하나다. 또는 능력자거나 젊거나. 몇몇 조건 빼면 우리들에게 드라마틱 뭐 그런 건 없다고 보면 된다. 우리들에게? 넘어가자. 어찌 됐든 내 주변에 꿈, 희망, 열망, 환희, 신비, 아름다움과 사랑? 거리가 먼 얘기일 따름. 그래서 삶의 목표를 설정하고 새로운 도전을 하라는 둥 취미를 가지라는 둥. 판에 박은 조언? 식상하다. 그렇다고 삶의 큰 기쁨이니 소소한 행복이니 그래 봐야. 무슨 기가 막힌 절경이니 사진찍어 자랑하고 추억하며 인스타그램에 올리느니. 논뷰와 산뷰로 만족하는 게 지당함. 무슨 하와이와 알라스카와 밀라노를 거쳐 유럽일주? 황토방과 갯벌체험이 딱. 아니면 주제파악이라는 제목의 칼럼 기억. 그런데 컨버터블은 무슨! 게다가 골든 리트리버와 비글과 코카 스파니엘? 동네 똥개 구경이 딱. 그런데 호캉스가 웬말. 심지어 논뷰와 산뷰도 내 땅이 아님. 근데 왜 내가 혼자 주접을 떨고 있지? 아무래도 도시를 떠날 때가 됐나 보다. 그래서 나는 썩 멀지 않은 휴양지로 떠났다. 
    도착했다. 경치는 그럭저럭. 최근 본 넷플릭스 드라마 주인공처럼 나도 펜션을 숙소로 잡았다. 그러다 펜션 주인장과 친해졌다. 그럼 또 파도타기가 시작됐겠지. 근처 읍내 정육점 사장은 함께 낚시하면서 가까와졌고. 카페 사장과는 말이 통해서? 술집 사장은 왠지 모르게 더 말이 통해서? 어떤 전시관 관장과는 도시 얘기로 화기애애. 또 초등학교 선생. 식물원 직원. 선주와 선장은 술 먹다가. 또 이름도 알았다가 잊어먹고. 얼굴도 익혔다가 헷갈리고. 그렇게 휴양지 생활에 적응해갔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낙조 전망대 카페에 놀러갔다. 
   「형씨는 도시에서 뭘 했소?」
   「하는 일이 없었소.」
   「나도 실은 도시에서 살다 중간에 이곳으로 유입된 사람이라오. 당연히 연애도 많이 했죠. 친구도 많았소. 그렇지만 군중 속의 외로움이라고나 할까? 아마도 나이드니까 젊음의 들뜸을 중년의 번잡함으로 오해했기 때문일 것이오. 내가 이곳에 내려온 이유는 말이오. 게다가 늙으니까 친구들을 만나도 옛날 얘기도 재미없고. 할 얘기도 많지 않고. 연락도 뜸해지고. 만나기도 싫어지고. 하긴 우리들만 그러겠소? 청춘들도 뭘 해도 재미없긴 마찬가지겠죠. 지나왔으니까 다 아는 얘기죠. 그런데 형씨는 바닷물이 푸르고, 관광객이 많거나, 볼거리와 맛집들은 물론 결코 심심하지 않은 여행지로 가지 여긴 대체 무슨 일이오? 말하지 않아도 괜찮소. 왜냐하면 오늘 우리와 함께 귀신 나오는 집에 가야 하기 때문이라오.」
   「귀신 나오는 집이요?」
   「귀신 본 적 있소?」
   「당연히 없죠. 그럼 김선생은 있어요?」
   「난 아직이라오. 다만 여기 사는 친구들 가운데 몇몇은 아마 경험자로 알고 있소.」
   「그럼 오늘 그곳에 가면 귀신을 알현할 수 있단 말이오?」
   「운이 좋으면 그렇겠죠.」
   「썩 믿음직스럽지 않군요.」
   「그렇다고 이 시골에 밤의 네온사인과 번화가의 분위기가 어딨겠소. 하여 신비로운 탐험이 제격 아니겠소.」
   「어쩌면 대어를 볼 수 있겠으나 너무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단 얘기로 들리는군요.」
   「잘 알아들으셨소.」
   「김형 그러지 말고 은행원 아가씨. 마트 점원 숙녀. 보건소 그녀. 차라리 5 대 5 미팅이 어떨까요?」
   「갑자기? 쉽지 않아. 그건 쉽지 않아요. 네. 하지만 또 방법이 썩 없는 건 아니겠죠. 우리에게 희망 빼면 뭐가 남는데요. 허허허허허. 그러니까 그게 있죠, 뭐? 날 왜 찾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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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나 기대는 곧 실망. 말만 말만 그럴싸 했지 괜한 희망만 들쑤셔놓고서 모두 바쁘다면서 가버렸다. 그럴꺼면서 무슨 귀신이네 미팅이네 왜 그런 거야? 그래서 나는 혼자 못 가본 명소들을 탐방하기 위해 차를 탈려는데. 뭐야? 내 차가 없어져버렸다. 어디 갔지? 찾았다. 어디 갈 일이 없었으니까. 근데 설마 이렇게 덤벙대니까 나는 지금껏 부자가 못되었을까? 자본을 정복한 건 아니지만 꼭 부자가 아니라고 부정하기도 뭐하다. 또 아니면 어떤가. 뭘 모르던 시절 어른들의 인문교양학에서 가르치듯 아무나 만나지 마라 라는 격언을 실천하지 못했다가. 다 늙어서는 아무나 만나지 마라가 아니라 주위에 아무도 없음인데. 무슨 행복과 희망과 부자 가운데 어디에 깃발을 꼿아야 무슨 소용 있겠나. 근데 거기서 여자가 빠졌으니까 난 마치 남의 일처럼 말하는 건가? 아니다. 나는 사랑에 관심없으니까. 정말로? 정말이겠나. 그러든 어쩌든 도시에서 떠나오니 마음이 편하다. 이걸 꼭 뭐라 표현하기 곤란한다만 그걸 멋지게 표현하지 못하는 그 불편함이 자연스럽다고나 할까? 좌우지간 이곳도 완전한 휴양지는 아니므로 주중에 주민들은 대부분 일한다. 그건 뭐냐? 나만 논다는 거다. 물론 그게 나쁜 건 아니다. 또 할 일이야 찾으면 되는데. 이를 테면 말 잘 통하는 상대가 없거나 만약 드물게 있어도 뭔가 불쾌한 사연, 안 어울리는 조건, 쾌활하고 마음에 들 수 있는 친교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승리하든가. 즉 과거는 그랬다. 그럼 미래는 다를까? 희망은 관심없고 기대는 안함. 그렇지만 행진은 해야 함. 안 그래도 이미 늙어버렸는데 무모한 젊음처럼 마시고 놀고 대책없이 계속 놀 수도 없는 인생. 그래서 나는 도시에서도 하지 않던 인스타그램을 했다. (그러다가 또 칼럼 작성 / 다 썼다치고) 
    그러니까 전진하기 좋아하는 남성성 보좌하기에 지쳤다는 말은 아니다. 아닌 게 아닌가? 아니면 어쩔 건데. 할 수 없다. 아무도 없는 산속이나 무인도에서 혼자 살 게 아니라면. 게다가 어딜 봐도 촌놈 아니면 촌년이라며 투정할 수도 있는데. 그럼 난 촌닭 아닌가? 어쩌겠나. 페라리 FF는 휴양지에서 딱 1시간만 타본다 아니 그냥 옆에서 사진만 찍으면 그만이라 했을 때. 나는 남들처럼 드림카를 상상도 안해봤는데, 왜냐하면 그런 게 없었고 근사치를 들여놔봐야 어차피 질릴 테고 나머지 이유야 많으니까. 어쨌든 파나메라 투리스모를 우리 동네에 가져다 놓는다 가정했을 때. 예전 친구 말마따나 안 어울릴 거 같음. 결국 유럽 사진과 북미 풍경이 아니라 정답은 그거다. 논뷰, 산뷰, 막뷰! 어? 바로 이래서 트럭 아니면 오직 세단인 걸까? 그러니 SUV로 절충인 거네. 아니면 전기차. 근데 내가 언제부터 차 얘기를 좋아했다고 이러지? 나는 원래 시내버스 타는 남자였는데. 내가 대체 왜 이러냔 말이야. 왜냐하면 아니다. 말 말자. 그런데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라. 지금쯤이면 새로운 친구가 내게 제의를 넌지시 건네는 게 순서일 텐데. 가령 첫째 유령선 탐험, 둘째 귀신의 집 구경, 셋째 폐 놀이공원 탐방, 넷째 무인도 탐사. 그런데 도시에 이어 여기서까지 혼자? 장소가 문제가 아니란 얘기군. 그럼 답은 나왔다. 나 혼자 망한 리조트를 찾아가는 걸로. 





    2

    휴양지에서 며칠 동안 잠을 많이 잤다. 그럼 꿈을 많이 꿨겠지. 악몽은 없었고 개꿈 위주였다. 거기서 낮에는 새로 사귄 친구들을 만났고 밤에는 도시생활과 비슷했다. TV, 유튜브, 인터넷, 책도 뒤적거리고 뭐 살거 없나 구경하고. 다만 연애는 못했다. 그래서일까? 또 뭔가 꿈틀꿈틀 신비주의를 찾아나서라는 악동의 속삭임. 있었으면 거짓말이겠으나. 또 꼭 그렇지도 않았다는 점. 왜냐하면 남자는 철들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는데. 하긴 그동안 남긴 블로그만 봐도 툭하면 환상, 탐험, 열망? 밑도 끝도 없이 염탐. 어느새 습관을 지나 생활을 넘어 인생이 되어버렸나보다. 전생에 무슨 미스테리 괴담의 주인공이었을까? 대관절 전생의 업보가 어떻길래 말을 잇지 못하도록 하는지. 그러든 어쩌든 지나간 시간은 돌이킬 수 없기 마련이므로 오늘을 보람차게 살아야 할 테니. 그래서 난 또 휴양지의 해수욕장을 보름동안 탐방했다. 그 다음엔 동네 뒷산을 비롯해 전망 좋은 언덕들을 일주일. 낚시도 일주일. 그러고 보니 볼 건 다 봐버렸다. 그럼 끝?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느 저수지를 지나. 언덕처럼 조그만 산을 넘고. 카페도 보이고 들밭에서 일하는 분들과 인사말 나눈 다음. 오솔길을 따라 경치가 괜찮은 곳에 올라가보니. 딱 보이는 건 바로 폐리조트! 가령 마당 넓은 폐주택을 구경하는 재미라면 그곳에 살았던 사람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유추하기까지는 아니지만. 남겨진 물건들과 살았던 흔적을 엿보며 무슨 외계인은 없겠지 없구나 다봤다 라며 완결되는 느낌. 그것과 비슷한 구경을 또 할 수 있을까 해서 역시나 들어가보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렇게 여기저기 보다가 나는 지하실로 들어갔다. 1층은 인테리어가 하얀색이라면 이제 슬슬 회색빛이 감돌다가 막 어떤 게임처럼 으시시해지는 건가? 아아 너무 재밌다. 당연히 그냥 하는 말이다. 그래도 완전 노잼은 아니니까 괜찮다. 아직도 청춘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며 저돌적인 젊음을 즐길 수는 없으니. 옛친구를 만나봐야 추억 얘기도 지겹고 할 얘기도 없으니 이렇게 혼자 노는 게 알맞긴 한데. 그렇다고 휴양지에서 새로 사귄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여기서 어디로 가야 하냐고 물어볼 수도 없었으니. 이 다음은 어떡해야 하나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마침 지하실 밑에 또 지하실이 있네? 들어갔다. 그런데 평범한 구조가 아니라 지상으로 올라가는 모양새를 보이다가 마딱드린 광경은 실내 수영장. 다만 물은 없었다. 그런데 왜 먼지가 하나도 없지? 누가 청소했을 리도 없을 텐데. 원래 더럽혀질 수 없는 운명의 건물? 말도 안되겠지. 아니 근데 왜 안 더럽냐고. 뭐야 더러우면 더럽다고 피해 안 더러우면 안 더럽다고 투정. 뭔가 이상하니까 그렇지. 어쨌든 이곳에 와서 보고, 듣고, 느낀 점을 모두 얘기할 수는 없다. 할려면 한도 끝도 없이 할 수도 있다만. 그러면 재미가 없으니까. 폐건물 유튜브 영상에서 보는 내용과 완전 똑같으니 말이다. 
    그렇게 한 반나절쯤 지났을까? 아이폰을 보니 시간은 대여섯 시간이 아니라 무려 일주일이 경과해 있었다. 누가 내 아이폰에 장난친 건가? 그럴 꺼야. 이게 진짜일 리는 없으니까. 그래서 난 아이폰 조작에 속지 않은 채 어떻게 어떻게 깊고 깊은 출구를 찾아 밖으로 나갔다. 그렇게 나가 주변을 보니 저멀리 처음 들어갔던 폐리조트가 보였다. 뭐야 내가 (지하로) 이렇게 멀리까지 왔다고? 믿기지 않았으나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산책과 등산만 해도 돌아보면 내가 저기서부터 여기까지 왔나 그와 비슷하니까. 그렇지만 그걸 감안해도 이건 너무한데! 뭐지? 그런데 이렇게 햇볕을 쬐니 기억이 난다. 난 사실 그곳에서 출구를 못 찾아 헤매다 잠자고. 깨어나 걷고. 지쳐서 쉬고. 그러다 어디서 웬 신음소리가 들리네? 난 젊음에서 멀어지니까 최신 유행가를 안 듣는데 그와 더불어 아버지를 봉양하던 중 방문한 보청기센터. 거기서 듣기로 아버지 청력이 기능적으로 0에서 10% 구간이라나. 몇 년전 들은 그 얘기까지 더해지니 아이폰으로 유튜브 볼 때도 최저음으로 듣는데. 그래서 폐리조트 내부에서 듣던 신음소리가 더 또렷이 들렸던 걸까? 어쨌든 근원지를 찾아보니 그건 배터리가 아마도 강력할 거 같은 아이팟에서 켜진 영상이었다. 재생중인 영상은 한 3,40년 된 듯한 비디오. 누가 놓고 간 건가? 어차피 뭘 해도 재미없을 거면 숙소 반대편에 있는 배카페에 방문할 걸 그랬나? 거긴 진짜 배를 육지 언덕까지 끌어다 놓아서 경치도 괜찮은데. 아무튼 지상으로 나와보니 제정신을 찾아서 다행이다만. 난 일주일이란 시간을 잃어버린 것만 같았다. 그렇다고 이걸 휴양지 친구들한테 말하지 않을 수도 없고. 예상은 말해봤자 반응은 예상이 빗나갈 리도 없을 테고. 그래도 한다 안한다에서 '한다'를 선택하는 게 나을 듯 해서 말해봤더니? 역시나-였다. 
   「친구, 어디 불편한데 있는가? 있으면 말을 해. 괜히 이상한 얘기 지어내지 말고.」
   「형씨, 나한테 뭐 서운하 거 있소? 혹시 내가 뭘 잘못했다면 빙빙 돌리지 말고 직언해주셨으면 좋겠소. 나 남자지 않소. 그러다고 형씨가 여자란 말은 아니라오.」
   「선생, 개꿈을 너무 실감나도록 꾼 거 아니오? 나도 그런 적 있어 알긴 안다오. 하지만 너무 갔다고 생각하지 않소?」
   「그곳이 어디요? 나도 한번 데리고 가주쇼. 왜 그런 일들은 김형 같은 양반들한테만 일어나는지 원 참. 왜 나만 쏙 빼놓고 말이야.」
    괜히 말했다. 안 그래도 뭘 해도 재미없는 녀석들일 텐데. 젊은이들 저속한 표현마따나 (개)빡쳤을려나? 겉으로 표현하진 않았을 테지만 그랬을 수도 있다. 무슨 말 같은 말을 해야 말이지. 내가 생각해도 그렇다. 나도 겨우 기억해냈음은 물론 말도 안되니까 말이야. 그러든 어쩌든 지들과 나는 같이 늙어가는 처지 아니야. 그럼 맞짱구 쳐줄 수 있는 거 아냐? 아, 그랬구나. 자기한테 뭔가 섭섭한 일 있으면 말하라는 거나 남자말 번역기 돌려도 마찬가지니까. 하긴 나 뿐만이 아니라 걔네들도 늙어가는구나. 뭐? 예전 엄마한테 했던 얘기가 생각난다. 엄마랑 나랑 함께 TV 보다가 엄마가 툭하면, 쟤도 늙었어 쟤도 많이 늙었구나 등등. 근데 그걸 계속 반복하니까 듣다 듣다 내가 어쩌고저쩌고 반응. 근데 나도 지금, 아니 그냥 생활처럼 그러고 있다. 생각도 그렇다. 젠장! 그럼 진짜 젊음은 끝나버린 거잖아? 맞다. 청춘은 끝났다. 게다가 커피조차 이제는 디카페인. 그마저 한달에 2번? 콜라는 한달에 1번? 아직 안마셔봤지만 무알콜 맥주도 1년에 몇 번이면 충분하겠네. 이제 노후자금 걱정과 심심함 때문에 건강이 위협받지 않도록 관리해야 하는 은퇴자 처지. 냉정하게 보든 허세로 부풀리든 허영으로 미화하든. 이미 무직이자 은퇴자. 좋은 시절 다 가버렸음. 생각해보니 클럽도 딱 1번 가봤지만 제대로 놀지도 못하고 그 안에서 길 잊어먹고, 일행도 못찾고 어리버리 남은 건 오직 고독. 꽝. 그렇다고 연애는 멋지게 했나? 나이 50살 거의 다 됐다만 아직도 모태솔로. 뭐? 이런 젠장! 뭘 해도 안되는 건 여전하구나. 진짜 여전하면 좋을 건 변해버렸고. 대체 언제까지 거꾸로맨으로 살아야 하지? 이젠 취미는 양치질과 산책 밖에 없는 삶. 인생에서 뭘 바랄 수 없음. 안되겠다. 내 경험이 진짜라는 걸 증명하는 수 밖에. 그래서 나는 그곳으로 다시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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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폐리조트에 도착했다. 그런데 생각이 바꼈다. 이상하다. 아니 이상할 거 없다. 굳이 이걸 진짜인지 아닌지 가늠할 필요 있을까? 없다. 어차피 아이폰으로 동영상 찍어도 거기서 끝난다. 혹시 유튜브에 올려도 관심 못 받을 게 뻔하고. 편집도 못할 거고. 고로 의미없는 일일 뿐. 뭐야 그럼 괜히 왔잖아? 그렇다니까 글쎄. 그렇게 된 거 근처 바에나 가야겠다 라면서 나는 그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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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에 자리를 잡았다. 
   「바텐더님. 논알콜 맥주 하나 주시겠소?」
   「메뉴에는 없지만 드리지요. 손님을 위한 게 아니라 제몫이지만 말이에요.」
   「역시 형씨는 제 마음을 알아줄 줄 알았소. 내 예언하나 하겠소. 앞으로 형씨한테 여자가 줄을 설 것이요. 아마도 인원은 가늠 못할 거요. 아시겠소?」
   「절 웃겨주실려고 하시는 말씀으로 알겠습니다.」
   「그런데 하나도 웃기지 않다? 그야 두고 봅시다. 내가 돌팔이 예언가인지 아닌지를 말이오.」
    그때 옆에서 말을 걸어왔다.
   「옆에서 듣기 민망하오. 그럼 어차피 민망할 거 내게도 그런 덕담 건네주시는 게 어떻소. 왜, 저 친구랑 제가 너무 비교됩니까?」
   「아닙니다. 아닙니다. 제가 어디...!」
   「왜 말을 하다 맒니까?」
   「제가 원래 말을 잘 못하기 때문이겠죠. 그러는 댁은 왜 저 멋진 경치가 펼쳐지는 카페를 놔두고 이처럼 조용한 가게를 찾으셨소. 별 이유가 없겠지만 한번 여쭤보는 겁니다.」
   「말 그대로 별 이유 없다오. 그렇지만 뭐랄까 아무도 내 말을 믿어주지 않기 때문이라고나 할까요?」
   「네? 그게 무슨...! 뭔지 말씀해주시지 않겠습니까? 저라면 철썩같이 믿을지 누가 압니까.」
   「아마도 듣고 나면 어처구니 없다고 느끼실 텐데 그래도 말해볼까요, 말까요?」
   「마음이 있군요. 어서 말씀해보시구료. 마법지팡이 여기 있다고 상상할 준비가 됐단 말이오.」
   「다름 아니라 거대, 아니 초거대 UFO가 내게 발각됐다오.」
   「네?」
   「뭘 되묻고 그러오. 잘 들었지 않소. 것 봐요. 내가 말 안한다 그랬잖아요.」
   「아니 제 말은. 그러니까 제 말은, 기왕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터놓고 얘기합시다. 뿐만 아니라 속되게 말해 그니까 까놓고 말해서 난 속아도 괜찮소. 그게 뭔 대수겠소. 다만 하나 짚고 넘어가자면. 선생께서 말씀하신 UFO의 사이즈가 어떻게 된다구요?」
   「형씨가 은퇴자로 보이니 나 같은 운둔자가 조심스레 귀뜸하겠소만. 앞서 말했듯이 (몸짓). 거기까지만 아쇼. 더 알려하지 마시구요.」
   「설마, 장난은 아니겠죠?」
   「내가 장난할 사람으로 보이오? 아니지 않소.」
   「그럼 우리가 만담할 만큼 가까운 사이도 아니니, 따라서 선생 말씀이 맞단 얘긴데.」
   「뭘 기대하시오? 홀딱 반할 만한 숙녀를 자빠트릴 궁리나 하시지 마시고 나랑 함께 소풍간 셈치고 그 UFO를 구경하러 가시지 않겠소?」
   「그래서인지 침이 꼴깍 넘어가는 구료. 아니 근데 왜 군침이 돌죠?」
   「그걸 내가 어떻게 알겠소. 그야 어떻든 태어나서 이런 광경을 딱 한 번 마주칠 수 있다면 그건 인류사에서 오직 극소수에게 허락된 행운일 거요. 더군다나 형씨는 야망 없고 욕심도 별로인 데다 인생 내내 병풍이셨을 걸로 추측해서 하는 말인데. 이게 아무일도 아니라고 이미 눈치채지 않는 걸로 보이오. 말이 잠시 꼬였소만. 원래 사석에서 점잖게 말해야지 신경쓸 필요없도록 편한 자리면. 말 섞다가 그럴 수 있소. 왜냐하면 적어도 무의식적으로 몸 섞는 응큼한 서사를 상상할 필요는 없기 때문일 거요. 사람일은 모르는 거잖소. 보아하니 나이도 먹고 이제 헛바람도 잘 들어가지 않을 어른같아 하는 말인데. 제가 괜히 실없는 얘기를 꺼내는 걸로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소. 우리가 평소 한가하긴 하나 중요한 주제로 남까지 한가하게 만들고 싶도록 사는 제주는 딱히 없으니 말이오.」
   「저도 말해도 되겠소?」
   「그럼요. 얼마든지.」
   「선생은 지금 저를 벌세워두고서 3박4일 내내 떠드실 수 있을 달변가로 보이시는데. 아직 몸도 푸시지 않은 걸로 보건대. 저를 얼마나 들었다 놓을지, 어느 정도 감았다 풀지 고민할 필요도 없으신 듯 보이는군요. 그러니까 제 말은 제가 아무리 속고만 산 바보일지라도 형씨 말까지 안 믿을 걸로 보이오? 그래서 계속 뜸만 들이는 거요?」
   「아니오. 아직 우리는 오다가다 만난 사이에서 겨우 몇 발짝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라오. 아 그렇지 않소. 신뢰가 쌓였나 인생사에 대해 차분히 대화나눴나, 그렇다고 뭘 해도 재미없는 어른들끼리 요즘 뭐가 흥미롭다오 라면서 상대의 구미를 건드리며 간지럽히기를 했소. 그러니까 제 말은 아직 덜 친해졌는데 섣불리 형씨 보고서 저를 덥썩 믿으라, 끝장나는 UFO를 만나러 가자, 우리 함께 환상의 내일로 가자며 형씨를 꼬실 수 없으니 하는 말 아니겠소.」
   「나는 준비됐소. 그게 절망의 UFO일지 허접한 외계인의 연극일지 난 아무래도 괜찮단 말이오.」
   「정말이오? 그럼 좋죠. 나야 아직 두세 시간 더 설변을 푸는 거야 일도 아니지만 노고를 줄일 수 있으니 말이오. 그럼 우리 이렇게 하는 게 어떻겠소. 내일 요 앞 해변에서 이 시간에 만나는 거요. 괜찮겠소?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면 거절하셔도 좋소. 내일 만나서도 중간에 번복하셔도 괜찮고 말이오.」
    그렇게 나는 아직 이름도 모르는 아저씨와 UFO 탐험을 위해 내일 만나기로 했다. 이게 잘하는 일일까? 하긴 지금 와서 꿈을 바꾸겠나 야망가로 거듭나겠나. 게다가 여기까지 와서 칩거만 고집할 수도 없는 일. 하여 밑져야 본전. 뿐만 아니라 또 모르지 않나. 만약 UFO를 못찾을지언정 꽤 괜찮은 추억이라도 만들지. 아니면 뜬금없이 매력녀와 사랑에 빠질지 말이다. 물론 실망도 준비됐다. 심지어 판돈은 안든다. 모험은 공짜다. 죽음을 떠올릴 필요도 없다. 스머프와도 관련 없다. 그렇다고 그 냥반한테 된통 당할 재산이 있나 뭐가 있나. 어찌 됐든 내일 만나보면 알겠지. 





    3

    나는 오늘 약속장소에서 DAN을 만났다. 어제 이름을 가르쳐줬는데 잊어먹다 뒤늦게 생각났다. 
   「나오셨군요. 그럴 줄 알았소.」
   「실은 형씨가 안나오실 수도 있겠다 라며 걱정한 건 저죠.」
   「이해해요. 우리가 왜 만나기로 했는지를 생각해보면 되니까요. 그런데 아제는 정력가요?」
   「네? 무슨 얘기시죠. 뜬금없이 정력가라뇨. 전 그냥 몽상가로 해둡시다.」
   「허허허허허. 왜 그런 얘길 묻는고 하니 오랫만에 UFO를 탐색하러 가니 설레서 그랬소. 어떻소. 아제의 예감은 말이오. 아마 나쁘지 않죠? 잘하면 외계인과 조우할 수도 있을 테니 말이오. 어째 표정을 보아하니 내가 너무 앞날을 낙관하는 것 같소? 난 아직 어린애같은 긍정주의자라오. 어젯밤 꿈도 즐거웠소.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말이오. 어찌 됐든 이렇게 탐험가 동지가 된 마당에 이걸 기념하여 어떤 미신을 하나 만들면 어떻겠소. 아니오. 안 그러는 게 좋겠소. 괜히 징크스 만들 필요 없지 않소. 우리가 뭐 야구선수도 아니고 말이오. 즉 UFO 탐험은 날마다 하는 게 아니란 얘기라오. 긴장푸쇼. 기대로 부푼 것과 별개로 결과에 너무 연연하지 맙시다. 그야 어찌 됐든 아제가 변변찮은 내 연설을 믿어주어 고맙소. 그런 의미에서 내가 아제에게 여자친구를 소개시켜주면 어떻겠소? 아니 근데 갑자기? 그러게 말이오. 그러지 맙시다. 나중 봐서, 또 기회는 많을 테니 말이오. 자, 우리가 만나자마자 내가 또 달변을 참지 못하고 있는데. 이건 혹시 좋은 징조일까요 아니면 허접한 결말을 예고하는 썩은 조짐일까요. 역시나 모른 척 눈감아 줍시다 그려. 허허허허허. 다만 내가 외계인과 싸우다 다치면 부디 모른 체하지 말아주시오. 적당히 몸은 사려야할 테지만 시작부터 의리를 버릴 수 없는 일 아니겠소. 그런데 이제 보니 아제는 오늘 더 잘생겨진 거 같소. 난 더 멍청해진 듯 보이고 말이오. 그나저나 우리가 함께 외계인을 때려잡고 UFO에 깃발을 꼽는다면 매스컴에 연락해야 할까요? 아마 연락해도 믿지 않을 테고 안해도 이상하지 않을 테나. 좌우지간 우리 그냥 싸구려 술집에서 얘기나 더 할 걸 그랬을까요? 솔직히 말해서 제 등짝에 식은땀이 쭉 나고 있답니다. 아제는 믿거나 말거나쯤일 테지만 난 아니기 때문이오. 난 사실 예전에 외계인을 만난 적이 있다오. 심지어 걔네들한테 납치되어 UFO에 끌려갔던 적도 있소. 아무튼 사전 정보를 몇 가지 알려드리자면 이렇소. 
    자, UFO의 종류에 대해 알려드릴까요? 일단 빛보다 빠른 녀석들이 있겠죠. 그리고 반투명한 놈들. 또 시간여행 때문에 자꾸 보였다 안 보였다 그러는 UFO도 있고. 참 이 얘기를 꺼내자면 한도 끝도 없는데. 나중 걔네와 우리가 만날 때를 대비하여 말씀드리자면. 우리가 볼 땐 걔네가 외계인이지만. 걔네들 입장에서는 우리가 외계인이라는 점. 이게 천동설 아니겠소. 우리가 농담처럼 말하는 외계인 외계인? 다름 아니라 자기 밖에 모르는 지동설을 쏙 빼닮은 듯 하니 드리는 말씀이오. 근데 아제 표정이 좀 그렇군요. 그래도 이렇게 확 트인 정경과 맑은 공기와 함께 UFO를 구경할 생각을 하니. 불행은 저 멀리 도망가버린 거 같지 않소? 뭐라고 말 좀 해보쇼.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이오. 만약 외계인이 아제의 속마음을 꿰뚫어볼 수도 있으니 하는 말 아니오. 안 그렇소? 게다가 그분들도 꿈과 이상이라는 게 있겠죠. 형씨도 이상형과 여성상이라는 게 있을 테니 말이오. 그럼 내 세계관은 어떨까요? 그걸 알아 뭐 하겠소. 이미 늙어버린 마당에 말이오. 우리 씁쓸한 얘기는 하지 말기로 합시다. 그런데 정말 우리 둘 만 가도 될까요? 만약 우리가 쪽수로 밀리면 어떡하라구요. 아제는 싸움...에 썩 소질이 돋보일 거 같진 않은데. 나도 마찬가지고. 그럼 우리가 쟤네들한테 흡씬 뚜둘어맞으면 어떡한담니까. 대책있소? 난 없소. 없는 게 자랑은 아니오만.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드는 걸 어떡하오. 안 그렇소? 아니 만약 걔네들이 처음부터 당돌하게 나오면 아제가 걔네들을 혼쭐내준다구요? 무슨 수로 말이오. 게다가 말도 안 통하면 어떡하고. 이제보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군요. 그렇다고 우리가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굴 사람이오? 그러니 뭔가 아니다 싶으면 우리가 외계인인 척 합시다. 좋은 생각 같지 않소? 근데 왜 내가 갑자기 망상가가 됐지? 그러게 말이오. 나는 미치지 않았소. 내가 왜 미쳐? 그럴 일 없죠. 지금 우리가 외계인과 친해지냐 마냐, 외교를 시작할까 말까, 친분을 맺어 때돈을 버냐 마냐라는 단계인데. 초장에 찬물 끼얹지 맙시다 그려. 허허허허허. 아무튼 오늘은 정말 신나고, 재밌고, 기쁘며, 짜릿한 하루가 될 것만 같소. 바로 오늘을 기다리느라 고생이 많았소 아제. 그런데 아제는 왜 말이 없소? 입이 얼어붙었소? 내가 만약 첫눈에 반할 것 같은 여인이라면 탐스러운, 아니 근데 내가 이런 얘기를 왜 하고 있지? 그러게 말이오. 자,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본론을 말할 시간이 되었소. 많이 기다리셨소. 버티느라 고생하셨구만. 다 아요. 내가 왜 모르겠소. 허허허허허. 
    자, 앞서 봤던 돌기둥을 기억하시오? (그는 좀전에 내게 웬 돌덩이를 보여주며 이걸 기억하라고 했다) 결론부터 말하겠소. 첫째, 우리가 만났던 지점의 돌조각. 둘째, 저기 해변 끝에 보이는 쇠기둥. 아마도 알루미늄에 티타늄에 막 조합이 기가 막혀서 지구상에서 아직 아니 앞으로도 절대 만들어낼 수 없는 합금일 거요. 이 첫째와 둘째를 점이라 생각하고 연필로 자를 대고 줄을 그러본다고 생각해보시오. 직선일 것 같소? 프톨레마이오스의 우주구조, 히파르코스의 우주구조, 또한 아리스타르코스의 태양중심설까지 설명하진 않겠소. 다만 지구가 평평하지 않다는 학식을 아시듯이. 지구평면설을 신봉하지 않는다면 이걸 굳이 꼭 직선으로 보아야 할 이유, 있을까요? 아마도 그러든 말든 아무렇지 않게 보일 테지만. 기하학에서, 원 또는 구의 반지름은 그 중심으로부터 경계에 이르는 선분이라오. 그렇죠? 그리고 반지름은 그 지름의 절반이고 말이오. 아울러 반지름으로 사용하는 일반적인 약어와 수학 변수는 r이고 확장하여 지름 d는 반지름의 2배로 정의될 텐데. 쉽게 말해 앞서 말했던 첫째와 둘째를 난 예전에 지름의 극히 일부분이라고 가정해보았소. 그런데 이럴 수가! 원의 넓이 = 원주율 × 반지름에 근거하여. 나는 UFO의 크기를 계산할 수 있었소. 앞서 첫째와 둘째를 지적했듯 그게 증거라오. 다른 근거도 무수히 많소만 그건 차차 설명드리겠소. 일단 굳이 비순환소수와 무리수인 동시에 초월수인 원주율 파이에 대해서 설명하진 않겠소. 요약해서 반지름 R인 원의 둘레, 넓이, 부피, 겉넓이를 비롯해 바젤 문제. 복소수 계산.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에 의한 아인슈타인 방정식. 불확정성 원리에 따라, 양자 역학적인 물리량. 조르주루이 르클레르 드 뷔퐁이 제기한 뷔퐁의 바늘 문제까지. 모든 상식. 지식. 학식. 논문. 컴퓨터를 통한 AI 무한 연구 등. 모든 걸 검토해보니 내가 발견한 UFO는 남극의 전체를 덮고도 남을 만큼 거대했소. 물론 그게 UFO 본체일지 아니면 본체에서 잠깐 지구를 탐구하러 나온 초소형 비행선일지까지는 알아내지 못했소. 그렇다고 내가 저 아무 쓸모 없을 것처럼 보이는 돌덩이와 특수 합금 기둥의 탄소연대측정조차 해보지 않을 것 같소? DNA 염기 서열 분석은 물론 빈틈없이 UFO가 맞다는 걸 검토했소. 자, 어떻소. 나와 함께 나머지 외계인의 흔적을 비롯해 인간으로 변장한 그들을 추적해보지 않겠소? 새로워질 우주의 비밀은 머지않아 대리석 조각상처럼 그 본모습을 드러낼 것이오.
    아 그런데 있잖소. 아주 잠깐 머리도 풀겸 딴 얘기 좀 하자면 말이오. 바람 불고 선선하며 파도소리 좋고. 백사장이 드넓게 펼쳐진. 이 아름다운 해수욕장에. 만약 개를 풀어놓으면 정말 미친듯이 환장할 것 같지 않소? 막 막 막 바람에 개침이 휘날리며 막 막, 네? 자, 그럼 마저 하던 얘기를 이어서 하자면 말이오......」
    이 양반이 내가 중간에 말을 끊지 않는다고 전문용어를 순서없이, 관련없이, 무턱대고 막 끌어다 설명하네? 이분이 상태가 좋지 않은 거야 아니면 내가 그렇게 속여도 덥썩 믿을 만큼 덜떨어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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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개월 후 나는 다른 휴양지에서 어떤 지인을 만났다. 그리고 친해졌다. 다음으로 함께 놀러다녔겠지. 그러면서 내가 새로운 여자친구를 소개시켜준다는 둥 젊어지는 비법을 전수해주겠다는 둥 말이 많았을 테고.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그분을 멋진 해수욕장으로 불러내 만났다. 
   「형씨 나오셨군요. 내가 장난으로 UFO를 보여주겠다 했을 것 같소? 아마도 반신반의했을 테지만. 내가 아무 믿는 구석 없이 그런 낭설을 자신있게 떠들진 않았을 테니. 아마도 형씨는 믿는 둥 마는 둥 속는 셈치고 놀러가보자 그랬을 텐데. 좀 지나면 아마 깜짝 놀라 자빠질 꺼요. 뿐이요? 한동안 신비주의를 배운다며 한 3년 나와 동거동락 할 수도 있소. 그럼 또 따분한 연구만 하겠소? 내가 중간에 여자는 어떻게 자빠트린다니 사랑의 희망에 대해 떠들썩 떠벌릴 테고. 뭐 그건 그렇고. 자, 본론부터 말하겠소. 자, 앞서 봤던 돌기둥을 기억하시오? (그는 좀전에 내게 웬 돌덩이를 보여주며 이걸 기억하라고 했다) 결론부터 말하겠소. 첫째, 우리가 만났던 지점의 돌조각. 둘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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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 ─ 196

from 소설 2024. 8. 23.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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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포영화를 볼까 미래의 운명을 점처볼까. 개인적 행복만 추구하느냐 사랑스러운 연애로 시간 가는 줄 모르느냐. 그런데 가슴 뭉클한 사연을 새로 만드는 것도 벅찰 게 뻔하다. 그러든 어쩌든 바보 같은 여행은 계속됐다. 삶이 섬뜩하든 인생이 엉뚱하든 얼마만의 자유인데. 그런데 여기까지와서 옛 정부를 만나겠나 그때 그 애인이 쫓아올 리 있겠나. 새로운 숙녀도 관심없다. 나는 어떤 수도승처럼 무엇에도 애착을 갖지 않게 되었으니까. 뭐야 벌써 시인이 된 거야? 부정할 이유도 없다. 그래도 뭔가 유쾌한 일 없을까 생각해봤는데. 없다. 그러지 말고 오페라를 보러갈까 아니면 축구장에 가서 고함이라도 지를까. 나는 뭘 해야 할지 몰라 난처했다. 기쁨고 들뜸과 흥분도 어느새 가라앉은지 오래. 허나 이 불안한 떨림은 대체 뭐란 말인가. 아마도 웃음을 잃어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좌우지간 시간은 잘간다. 하긴 못 갈 게 뭔가. 그렇긴 한데 왜 나는 집으로 돌아가기 싫은 거지? 꼭 복귀 욕구가 없다 까지는 아니지만. 뭐랄까 도시의 삶이 뭔가 피상적이라고나 할까? 그럼 딴 사람들은 안 그렇게! 이건 복잡하게 설명할 필요없이 뭘 해도 재미없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말로 늙었다? 이런 젠장! 허나 시간을 멈출 수는 없다. 그래서 나는 여행지에서 외계인을 만났냐 못 만났냐, 만났을 리 있나. 이러니 방황은 거부할 수 없었다. 물론 나는 어른들의 권태를 이해한다. 그래서 우리에게 사랑이 필요하겠지. 허나 타인이 내 성감대를 궁금해하도록 관여할 수는 없는 법. 뭐? 아무래도 이게 사교가 망가졌기 때문인 듯 하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알아서 뭐 하나. 차라리 허접한 감성을 끌어올리는 게 나을 것만 같았다. 아니면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환상은 끝나버렸다고나 할까? 왜냐하면 연애론은 물론이요 사람들과 사귀는 법도 잊어버렸으니까. 그럼 이제 어쩌면 좋나. 어쩌긴 신비로운 UFO를 찾아 탐험해야지. 그런데 어디 가서! 그러니까. 때문에 나는 전례없는 새로움을 포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아있는 비밀은 없을까? 재미없는 열린 결말만 남은 듯 해서 찜찜할 따름. 그렇다고 지금 와서 성과만 추종할 수도 없는데. 
    그러던 어느 날 뭔가 의뭉스러운 발단이 내게 찾아왔다. 그건 무엇이냐, 날마다 여러 사람이 내 옆을 스쳐지나가면서 한 발음을 내게 쓱 흘렸다는 점. 이를 테면 
    첫째 날, 스
    둘째 날, 너
    셋째 날, 프
    말을 걸지도 않고. 공원 의자에 앉아있으면 옆에 자리잡고서 혼잣말을 하는 것도 아니며. 누군가에게 통화하는 듯이. 꼭 나한테 뭔가 알려준다는 것처럼. 그렇게 하루에 여러 명이 한 음절씩 속싹이길래 뭔가 했다. 그런데 그게 며칠 계속되니까 우연이 아니란 걸 깨달았다. 그리고 단어가 왜 하필 그랬는지. 어쨌든 넷째 날부터는 잠잠했다. 썰물처럼 빠져나갔는지 아니면 뜸을 들이는지 몰라도. 나중 제의가 은근히 발생한다면 받아들일 건가 말건가 고심하라는 뜻이었을까? 그렇게 주말이 되어 나는 근처 바닷가 해수욕장을 찾았다. 전망 좋은 자리에서 적당히 구색을 갖춘 다음 일광욕을 하는데. 아 글쎄 조용하던 바람잡이가 다시 나타난 것이다. 언제 다가온지도 모르게 다가와서 슬쩍 건네는 말이. 
   「받으시겠습니까?」
   「네?」
   「제가 들고 있는 USB를요. 이게 뭘까요? 아마도 아실 것 같은데.」
   「글쎄요. 그걸 제가 무슨 수로 알겠습니까.」
   「좌우지간 간략히 말씀드리죠. USB 안에는 딱 한 개의 동영상만 있답니다. 그 동영상을 틀면 재생이 끝날 때까지 컴퓨터의 모든 기능은 말을 듣지 않죠. 뿐만 아니라 반경 몇 킬로미터의 프로토콜 자원을 제어하는 통신소이자 방화벽 기지로 작동하는데. 더 자세한 내막은 말씀드릴 수 없고. 그 동영상이 끝나면 USB는 내부 회로가 망가지면서 알아채지도 못할 정도로 안에서만 폭발합니다. 말하자면 딱 한 번만 시청할 수 있다는 거죠. 여기서 옵션 2가 있는데 이건 거기서 발전한 것으로 한 번 동영상을 본 다음에 재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점이 다르죠.」
   「당신은 누구시죠?」
   「그건 알 필요 없겠죠. 어때요, 생각있습니까? 가격은 최신 아이폰 가격과 동일하죠. 드라마와 영화에서 봤던 것과 달리 가치가 턱없이 소소하긴 하죠? 그래서 의심해볼 만 하건 알겠는데. 밑져야 본전 아닐까요? 굳이 이렇게 은근한 제의를 주고 받게 된 시점에. 최근 AI의 발전에 대한 어느 SF 작가의 소회를 인용할 것까지도 없이. 미래가 궁금하지 않습니까? 아니면 앞날이 벅차든 눈부시든 그건 모르겠고 일단 눈앞의 쾌락을 마다하기 싫으신가요. 어찌 됐든 그대가 AI가 되지 말란 법은 없다지만. 만약 그렇게 된다고 해도 꽤 골치아플 거라는 점. 대충 짐작은 가능하겠죠. 자, 긴말 필요없이 말로만 듣던 동영상. 가감없이 보고 싶은 욕망을 부채질하기 시작하진 않으시겠지만. 아마도 거절한다면 나중 후회하지 않을 자신은 있나요? 앞서 말했듯이 속는 셈치고 물물교환을 하는 게 어떨까요.」
    장면 전환.
    장면 전환.
    장면 전환.
    처음에 그분이 롤스로이스를 타고 와서 뒷자리에서 문을 열어줘서 내리길래 보는 둥 마는 둥 했는데. 내게 말을 걸었던 사람과 동일 인물임을 눈치채고. 어떻게 된 게 내가 장지갑을 마련한 뒤로 빳빳한 현금을 그 정도 가지고 다녔다는 게. 아마도 현실에서는 우연이요 허구적으로는 첩보일 수 있으나. 결론만 말하자면 해수욕장에 가지고 갖던 맥북에어로 즉시 그 USB 안의 동영상을 재생해봤는데. 그건 스너프가 아니라 스머프 영상이었다. 뭐? 이런 젠장! 
    그러다 한달이 지났다. 
    이번에도 매일 슬쩍 정보를 흘리기 시작하는데. 
    첫째 날, 스머프 공원에 가보자. 갑시다. 가볼래? 가보쇼. 거기 안 놀러가고 뭐해유? 등등.
    둘째 날, 스머프 공원에 가보면 누군가 다가오는데. 그렇게 만나 어쩌고저쨌다 라는 얘기.
    셋째 날, 스머프 동영상 1,000개를 봤는데. 관련 유튜브를 모두 뒤져봤는데. 어떻게 어떻게 이상한 걸 누가 봤다더라. 
    그래서 나는 결국 스머프 공원으로 발길을 돌리고야 말았다. 





    2

    나는 오늘 스머프 공원에 도착했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스머프 마을의 비밀을 캐내어볼까? ~라고 자신있게 기대감을 피력하면. 만약 그걸 누군가 엿듣는다면 당연히 간혹 험한 말 엄청 얻어듣기 딱 좋을 수도 있는데. 왜냐하면 언젠가 게임할 때 정확히 그랬으니까. 허나 이렇게 분위기를 고조시켜야지 나중 또 엄살떨 근거가 마련된다는 걸 부인할 수 없다는 점. 그렇긴 한데. 그렇지만 이게 너무 유난떤다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최근 발생한 일들이 장난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그럼 이제 어두웠던 과거를 말끔히 만회할 만큼 신비와 환상과 모험을 일망타진하게 될까? 너무 앞서가지 말자. 그렇지만 나는 동시에 초월주의, SF, 미스테리와 스릴러 장르에 대한 예감을 차마 버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 대체 언제 철들지? 대답은 회피하는 걸로 하고. 그런데 왜 갑자기 지난 영화감상 기억들이 회상되는 거지? 그럴 수 있다. 다만 태양광 패널에 빵구나는 소리 참을 줄도 알아야 어른이다. 뭐 그건 그렇다 치고. 
    이런 저런 잡념 기억도 못하는 사이 나는 어느새 스머프 공원 안내판을 보고 있었다. 
    내부 수리중이므로 약 3달 동안 문을 닫는다나 뭐래나! 뭐야? 
    나는 실망하기를 멈춘 다음 근처 뒷산에 올라가기로 했다. 운동 + 전망! 기분 전환에 꽤 괜찮을 테니까. 
    그렇게 초입부를 걷는 도중 웬 고상한 여인이 내 옆에서 걷고 있다는 걸 나중 눈치챘다. 
   「아저씨. 제 남편 좀 찾아주세요. 제 남편이 글쎄 우리집 하프시코드를 박살낸 다음 가출했거든요. 특별히 화낼 이유도 없었어요. 평생 부부싸움 한번 해보지도 못한 사람이거든요. 근데 이 양반이 최근 왜 이럴까요. 부쩍 짜증이 많아지더니 글쎄 부부관계까지 거부하네요. 초면에 이런 얘기까지 꺼내서 죄송하긴 한데. 실례지만 오빠는 우리 남편과 뭔가 느낌이 많이 닮았다고나 할까요? 왠지 모르게 바로크 사람 기분이 들거든요. 그야 어쨌든 나중 왜 내 남편을 못 따라가서 내 남편이 딴년과 놀아나게 만들었냐 따지지는 않을 테니. 놓쳐도 좋으니까 그래도 잘 감시해주시겠어요? 사례는 충분히 해드릴께요. 전 가진 게 돈 밖에 없는 여자거든요. 무식해서 그런 게 아니에요. 왜냐하면 친구도 없고 돈을 쓸 데도 없으니까요. 이상하게 나이가 들어 변한 게 뭐냐면 뭘 가지고 싶지가 않아요. 만약 이런 내가 오빠와 연애하면 이런 권태를 치유할 수 있을까요? 괜한 궁금증 망측하기도 해라. 저기 보이시죠? 어서 저 냥반을 곧장 따라가세요.」
    이러면서 슥 빠지는데 글쎄 그녀는 뒤로 내뺐고 앞서가는 그녀의 남편은 유독 발걸음이 빨랐다. 
    그런데 그녀의 부탁을 들어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난 동의한 적 없지만 답변할 기회가 있었어야지. 
    나와 직관된 일이라면 무시하든 개입하든 할 텐데. 어정쩡허니 중간에서 멈추기도 그렇고. 
    그렇지만 어차피 가는 길이기 때문에 나는 그녀의 남편을 따라가기로 했다. 
    한 30분 정도 경과했을까? 
    남녀 성비가 균등할 뻔하다 여자쪽이 좀 더 많은 모임이 휴식하고 있길래. 나도 근처에서 쉬기로 했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을 마음도 없고 맛난 음식을 권한다면 사양할까 말까 고민할 예측도 하지 않았다. 그때 다른 일행이 뒤따라와서 사진을 찍어달래길래 가볍게 사진을 찍어줬는데 글쎄. 
   「오빠 저기 저 리얼돌들은 뭐지? 설마 예술작품일까?」
   「누가 버린 거겠지.」
    나는 옆에서 이분들 대화를 엿들은 다음 깜짝 놀랐다. 앞서 남녀 성비가 어쩌고저쩌고 그분들이 글쎄 죄다 마네킹이었다고? 다시 보니 정말 그랬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지? 그때 이 커플은 내게 다시 말을 걸어왔다. 
   「근데 아저씨 저 인형들 혹시 사람이라고 착각하지 않으셨어요? 간혹 그런 사람들이 있다면서요. 저희도 얘기 듣고 알았어요. 이곳에 오면 환영을 본다나 뭐래나. 그 때문에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들이 적지 않대요. 오히려 대부분이라던가. 하긴 우리도 그래서 온 거긴 하지만요. 그래도 그 환각을 직접 경험한 사람으로부터 당부받은 정보가 있어서 우리는 헛것이 보이지는 않죠. 공원에 있는 약수터 물을 마시지 마라. 자판기 음료를 먹고 싶어도 참아라. 특히 전날 근처에서 절대 술을 마셔서는 안된다. 그 외 또 몇 가지가 있는데. 우리는 그대로 따랐거든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일부러 그걸 경험하러 온 게 목적인데 그 충고들을 따르면 어떡하자는 거지?」
   「그러게 말이야. 오히려 이분께 우리가 세이렌이 되는 건가?」
    말만 걸었지 지들끼리 몇 마디 나눈 다음 이분들은 서둘러 먼저 떠났다. 뭐야 이거! 여기 괜히 온 거 아냐? 나는 망설였다. 발걸음을 돌릴까 말까. 아무래도 더이상 흥미로운 전개는 없을 듯한 예감. 믿지 말까? 그렇지만 지루한 발단만 내내 지속되다가 갑자기 황홀한 절정이 찾아올 수도 있으니까 좀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장면 전환.
    장면 전환.
    장면 전환.
    역시나 기대는 실망으로 끝났다. 하긴 세상 그 무엇도 환상적 기반에 근거하여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설마? 이럴 줄 알았다면 내부수리중이라는 안내판을 본 다음 발걸음을 놀이공원으로 돌렸여야 옳다. 그래? 지금이라고 늦지 않음. 그렇게 딱 놀이공원으로 출발하려던 순간 어쩐지 엉덩이가 따끔거리다니. 이거 뭐지? 그렇게 뭔가 이상함을 인지하자마자 나는 정신을 잃고 말았다. 왜냐하면 누군가 내 엉덩이에 삼지창을 푹 쑤셨기 때문이었다. 





    3

    내가 정신을 차리자마자 어떤 여인이 나를 지긋이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언뜻 봐서는 이십대 숙녀 같은데 찬찬히 그녀의 인생을 가늠해보니 소녀인 듯 보이기도 하고. 다시 청초한 그녀의 낯빛을 감상하자니 젊어보일지언정 30대 후반을 지나 어쩌면 40대 어느 즈음일 것 같기도 한데.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그래도 잠깐 현 상황을 설명하자면 그녀는 웬 노트북으로 나를 찍고 있었다. 동영상인지 사진인지 몰라도 간편한 핸드폰을 놔두고 왜 하필? 그야 그녀 소관일 테고 살다보면 일부러 그러고 싶을 때가 있을 수 있으니까 이해는 하는데. 근데 왜 이따금 심심치 않게 보이는 이런 배역과 마주쳤는지 의아해해봐야 뭐 하나. 
   「어머! 정신차리셨어요? 이 노트북이 당신의 정력을 저하시키지는 않을 테니 걱정마세요.」
   「깜빡 정신을 잃었다 깨어난 사람한테 건넬 첫마디로 꽤 부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어때요? 아저씨가 회사에서 만년 승진 못해 직업을 그만뒀는지 여기 저기 막 돌아다니기 바쁜 플레이보이일지 알 게 뭐예요.」
   「그대는 혹시 평범한 대화에 대해서라면 신물이 났나요? 그게 본캐릭터에요 아님 부캐인가요?」
   「그게 왜 궁금한데요! 오빠야말로 왜 우리가 갑자기 말을 섞게 됐는지 알고 싶어해야 하지 않나요?」
   「그야 그런데. 아직 아무 생각이 없군요.」
   「그럴 수 있어요. 아저씨 같은 사람을 한두 번 본 게 아니지는 않지만.」
   「그건 또 뭔 얘기죠?」
   「몰라도 된답니다. 그건 중요하지 않을 테니까요. 어쨌든 왜 정신을 잃게 됐는지 기억나세요?」
   「네. 누군가 내게 장난감 화살을 쏜 거 같아요. 애들이라면 큐피트겠거니 하겠는데. 하긴 상대가 누군지 알 겨를이 없었죠.」
   「그런데 오빠 얼굴이 점점 파래지는 거 모르시죠?」
   「네?」
   「봐봐요. 자, 핸드폰으로 비춰줄께요. 흐흠. 그렇죠? 어떻게 사람 피부가 이럴 수 있죠?」
   「그거야말로 제가 묻고 싶은 질문이군요.」
   「그러게요.」
   「근데 이건 일시적인 증상일까요 아니면 말도 안되는 영화 같은 현상일까요!」
   「그야 두고 보면 알겠죠. 어머머 어쩜 좋아 어쩜 좋아! 오빠 코가 동그래지고 있어요. 코 뿐만이 아니에요. 흐흠. 자, 봤죠? 설마 제 핸드폰이 조작 아니냐구요? 그럴 리 있겠어요. 그럼 제 손거울로 비춰드리죠. 흐흠. 제 손거울 딱 봐도 변조될 가능성은 전혀 보이지 않죠?」
   「근데 이 손거울 어디서 샀어요? 아님 누구한테 선물로 받았나요? 누가 선물했죠? 설마 첫키스 기념으로? 아니면 이별여행 때문에? 근데 이별여행은 왜 떠나는 거죠? 한번 하자는 걸까요? 해요? 하긴 뭘 해요!」
   「이 아저씨가 아직 제정신이 아닌가 보네. 보아하니 아마도 전생엔 마법사였을 테고 현생엔 난봉꾼이겠네. 그럼 다음 생엔 뭐지?」
   「뭐요? 사람을 뭘로 보는 겁니까? 나는 그럼 남자가 아닙니다.」
   「그야 내 알 바 아니죠. 어쨌든 전 바쁘니 이만 가야겠어요. 우리가 너무 친해지면 안될 것 같지 않나요? 그렇죠. 지금이 헤어질 시기라는 거죠. 잘있어요 오빠.」
   「그냥 가면 어떡해요? 전 어떡하라구요?」
   「앞서 말했잖아요. 내 알 바 아니라구요. 다만 아저씨 핸드폰에 제 연락처가 찍혀있을지 누가 알겠어요? 딴 남자들이 글쎄 한 천 명쯤 될려나. 그렇게 제 번호를 따고 싶어서 환장을 했는데. 나도 모르게 오빠한테 처녀의 연정을 선사하는 것처럼 번호를 알려줄 줄이야.」
   「정말 갈 꺼에요?」
    그렇게 이름 모를 소녀는 가버렸다. 그래도 나는 그녀를 쫓아갈려고 시도는 해봤다. 그런데 만화영화 스머프에 나오는 것처럼 내 팔과 다리와 몸 전체가 둥글게 변해버렸으니. 그녀를 쫓아갈 수가 없었다. 뭐 적응하면 나중 괜찮아지겠지만 지금은 첫경험 아닌가. 그렇지만 이런 말 같지도 않은 변신은 대체 뭐지? 이걸 믿을 수도 없고 어떻게 해볼 수도 없고. 어떡하지? 그렇다고 나랑 비슷한 스머프들만 사는 마을을 찾아나서는 것도 말이 안되고. 그런 세상이 존재하는지 안하는지 그걸 궁금해할 때도 아닐 뿐더러. 이렇게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면. 그럼 사랑도 못하는 거잖아? 그러니까 연하게 아니면 진하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왜냐하면 근처에 인간들은 없었지만 청력이 초인적으로 발달해서인지 막 멀리서 우리를 잡아먹으려는 악당들의 얘깃소리들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그 뿐만이 아니라 시력은 또 얼마나 좋아졌는지. 더더군다나 저 멀리 보이는 동네 아저씨들이 죄다 가가멜처럼 보이다니! 이미 나는 스머프가 되어버린 건가? 무슨 이런 개뼉따구 같은 일이 다 있지? 그래도 어떻게 어떻게 옷으로 가리고 사람들을 피해서 별장으로 돌아오긴 했다. 그렇게 딱 숙소에 도착했더니 그녀로부터 문자가 왔다. 
   「스머프 웹사이트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면 예전 모습으로 돌아간대요. 저도 누구한테 들었어요. 그런데 그게 채 하루를 못 넘긴다나? 그러므로 매일매일 스머프 웹사이트를 끼고 살아야겠죠? 스머프 그림도 그리고. 스머프 소식과 살며. 오늘은 스머프 마을에서 어떤 시트콤이 펼쳐졌는지 궁금해하는 건 물론. 스머프 마을의 전설. 스머프 개개인의 특징들. 스머프는 어떻게 성장하고, 사랑하며, 늙어가는지. 스머프는 쾌락을 어떻게 추구하는지. 그곳과 그들이 인간세상과 무엇이 같고 다른지 등등. 그걸 주의깊게 또 악기 연주처럼 단 하루도 빼먹지 않고. 그렇게 살아가면 인간의 육체가 스머프로 변하지는 않는다고 어떤 사람이 아저씨한테 알려주랬어요. 아셨죠?」
   「무슨 이런 가가멜 눈썹 타는 얘기를 나보고 믿으라는 거야 뭐야? 내가 이런 허접한 연출에 속을 줄 알아? 그리고 이게 무슨 해독제야? 미친 거 아냐?」
    ~라면서 나는 그녀한테 전화를 걸었는데 역시나 받지 않았다. 아니 근데 이건 설마 불치병? 이건 드라마에서나 가능한 건데 어떻게 이럴 수 있냔 말이야. 그렇게 나는 날이면 날마다 인터넷을 뒤졌다. 스머프북 닷 컴. 무슨 http://www.instagram.com 을 빙자한 스머프그램? 또 설마 나랑 비슷한 사람들이 있나 없나 살폈는데 그 웹사이트가 최근 나스닥에 상장을 했다니. 그래서 http://www.reddit.com 도 날마다 뒤졌다. 그러다 어떤 웹사이트를 알 게 됐는데. 혹시 해서 레딧 주식과 게임스탑 샀다가 망했네 어쨌네 글 쓰고 댓글 달면서. 여기 혹시 나랑 비슷한 사람 없나요? 라는 취지로 글을 남기기도 했다. 그러나 당연히 반응은 없었다. 있을 턱이 없을 테니까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귀찮아서, 게을러서, 뭔가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서? 반복되는 일상이 지겨웠기 때문일 수도 있는데. 그와 같은 어떤 극심한 권태감에 말미암아 며칠 스머프 웹사이트 중독을 멈춰봤다. 일반적으로 누구나 알듯 커피를 끊었더니 어떻다더라 금단 증상 과정을 견디면 그 다음이 있다더라 어떻다는 둥. 그 상투적인 사실이 과연 내게도 적용되었을까? 처음에는 내 신체 일부분이 스머프로 변하는 증상은 나타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다. 그러면 스머프 웹사이트를 날마다 들여다봐야 하는 압박감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뭐랄까 후천적인 운명? 이유? 뭘로 표현하든 일종의 해방이랄지 예전으로 돌아간다는 자유. 그에 대한 불이익이 없었다는 걸 알게 된 건데. 그런데 그러면 뭘 하나! 부작용이든 뭐든 만약 스머프 웹사이트 중독을 멈춰도 아무런 손해가 없지만. 그렇지만 그걸 이미 중단할 수 없는 경지에 이르고 말았는데! 뭐라고? 그럼 이걸 평생 지속해야 한다는 말인가? 일단 지금으로써는 그렇다. 물론 가까운 미래는 예측가능하고 먼 미래는 예상이 덜 쉽겠으나. 이건 앞날의 가정이 꽤..가 아니라 순수하도록 일관적이라는 걸 부인할 수 없다는 점. 물론 그게 크나큰 노고를 필요로한다든지 좋든 싫든 악취미의 폐해에 심신이 영향받는다든지 그와는 달리 별다른 영향은 없다는 점도 부정 불가능. 그렇지만 다만 그걸 평생지속이라니! 어떡하지? 특별히 어려울 건 없다만. 아무리 그래도 평생지속? 숨쉬고, 잠자고, 먹고 마시고. 씻고, 개처럼 싸고? 냄새 맡고 생각하고 감성과 이성을 쥐락펴락할려다가 웬 말괄량이한테 (그냥 말로써만) 된통 당할 수도 있는데. 그래도 웃어서 더없이 좋긴 할 텐데. 그처럼 그냥 사는 일. 인생. 나이듦. 또는 좋게 말해 웰빙? 가난을 탈출하는 대가로 악마와 거래한다는 통속극 설정도 상상해볼 수 있다만. 뭘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있나. 단순히 젊음에서 서서히 멀어지는 것과 달리 아예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는 점. 어쩌면 뭔가 짠할 수도 있고, 혹시나 비인간적일 수 있을 것이며, 아마도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게 될지 아득하다는 게 뭔가 마음에 걸렸다는 점. 결코 부인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자유를 갈망하든지 해방을 원하든지 나는 그 이전으로 돌아갈려고 시도를 반복했다. 결론만 말하자면 안됨. 근데 정말로 그때부터 내 삶이 서서히 가난에서 부유함으로, 뭘 해도 재미없음에서 약간씩 활기참으로 변화하는 걸 알게 됐다. 이건 완전 신기한 우연일 수도 있다만 무슨 복권 당첨번호 점지의 개꿈도 아니고. 난 그런 거 안 믿음. 그러든 어쩌든 이대로 갈 데까지 가보자 라는 빽넘버와 더 늦지 않도록 탈출해야만 한다는 대타 그 둘의 싸움. 그걸 지켜보며 웃고 울며 신나는 관전의 쾌락? 그게 아니라 그걸 결코 관망할 수도 거부할 수도 없다기보다 시청자 감상자가 아니라 온전히 고대 로마 콜로세움을 절대로 벗어날 수 없다는 검투사의 입장. 요컨대 딴생각은 줄어들고 역시나 뭐든지 운신의 폭도 줄어들 수 밖에 없다는 점이 날 가만놔두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백방으로 알아봤다. 지킬과 하이드 관점으로 봤을 때 아직은 지킬의 행동력이 하이드의 사고력이랄지 명령, 조종, 꼬드김, 유혹, 우리 리모콘 함께 누르면서 축제를 즐기자는 설득? 아직은 지킬의 제정신이 우세했기 때문에, 따라서 나는 과거로 돌아갈 방법을 찾아봤던 것이다. 그런데 그걸 어떻게 어디에서? 아쉽게도 스머프 웹사이트에서! 그러다 어느 날 알게 됐다. 어딘가에 가면 박물관의 유물처럼 보관중인 가면이 있는데. 그걸 딱 쓰면 스머프 웹사이트 중독이 말끔히 해결된다나 뭐래나! 정말로 그럴까? 물론 믿거나 말거나일 것이다. 그러니 무작정 애처럼 장난감 사러 가는 마음보다 뭔가 가능성 높은 (웹사이트 게시글) 작성자의 글들을 주의깊게 살펴보다가. 어떤 작성자의 의견에 신뢰감이 부풀어오르다가 우리는 만나게 되었다. 그분이 직접화법으로 야 만나자 그랬는지, 중간에서 누가 주선했는지, 아니면 내가 다가갔는지 지금 말해도 되긴 되는데. 그걸 못 알려줄 이유가 딱히 있다는 건 아닌데. 어쨌든 우리가 만났다는 게 중요했다. 





    4

    당일에 맥도날드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딱 나갔더니 핸드폰으로 알려왔다. 접선 장소가 스타벅스로 바꼈다고. 그래서 자리를 옮겼다. 도착했다. 그런데 갑자기 전화가 왔다. 당신 나 알아볼 수 있냐고, 우리가 이렇게 만나도 괜찮은 거냐고 그리고 뭐랬더라? 마음의 준비가 됐냐는 둥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냐는 둥. 이 냥반 멜로드라마 것도 옛날옛날 꺼 너무 많이 보셨네. 응? 안 만날려며 관 둬! ~라고 저속히 표현하자면 때려치울까 말까 살짝 고민했지만. 그래도 기왕 목적과 대의와 이것도 어쩌면 삶의 낙이겠니 라는 긍정적 사고 때문에. 상대의 주문에 따라 어디서 노란 모자를 급히 구해와서 그걸 쓰고 기다리는데. 뭐야 또 장소를 근처 베스킨라빈스로 바꾸네? 뭐 이번 기회에 오랫만에 아이스크림 먹어보지 라고 생각해서 또 자리를 옮겼음. 그렇게 웬 숙녀를 만나게 됐는데. 
   「저기 있잖아요. 인사는 생략하고. 요점부터 말씀드리자면 저는 당사자가 아니랍니다. 심부름꾼이죠. 아르바이트라고나 할까요?」
   「그런데 미니스커트는 왜 입고 나오셨어요? 거기다 그 스타킹은 또 뭐구요? 물론 옷차림이야 자유이자 아름다움이지만 마법사는 전데 우리가 왜 조수 놀이를 해야 하냐 이거죠.」
   「마법사가 아저씨라구요? 뭔 뚱딴지 같은 얘기에요?」
   「아, 제가 잠시 착각했습니다. 죄송해요. 딴 생각하다 그만!」
   「그건 그렇고. 이 쪽지 받으시죠. 그럼 이만  전 가볼께요. 앞으로 두 번 다시 만나지 말죠. 아셨죠? 그래도 나중 혹시 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치면 절 알아보셔야 해요. 왜냐하면 만약 그때 못 알아보면 제가 당신 귀방망이를... 이런 말씀 드리기 뭐하지만. 아니 이런 말씀 드리기 뭐하지만? 아무튼 잘 사쇼.」
    그렇게 가버린 숙녀. 뭐야 지가 드라마 주인공 하다 갑자기 낙차해서 짜증난다는 거야 뭐야? 어쨌든 쪽지를 펴보니 거기엔 어떤 호수 중간에 있는 섬으로 오라는 내용이었다. 오늘 못 오면 언제든지 오래나? 지가 무슨 챔피언이야 뭐야? 나는 결정했다. 안 간다고! 가기 싫다고 말이다. 이거 무슨 똥개 훈련시키는 일도 아니고 뭐 하자는 거야, 어? 누굴 허쉬퍼피로 알아 닥스훈트로 알아? 내가 왜 비글이나 동네 똥개여야 하는데! 안 가. 가서 뭐해? 어차피 만나고 싶은 마음도 없었음. 게다가 아쉬울 거도 없음. 더더군다나 만나봤자 큰 이익도 기대할 수 없을 테고. 심지어 만약 수중의 물건이라도 빼았기고 몇 대 쥐어터지면 어떡하나? 차라리 마주치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옳커니! 내가 무슨 어? 우연히 만난 고객이 하필 부자였기 때문에 더더군다나 못생기지도 않고 뭐 썩 빠지지도 않으니까, 따라서 단물 쪽쪽 빨려줘야 하는 그런 만만한 먹잇감이야? 어디서 먹음직스럽기 때문에 허접한 늙은이이자 볼 거 하나없는 아저씨를 쥐어 짤려고 말이야. 무슨 마른 수건을 쥐어짜서 고급 별장 수영장을 가득채우겠다는 심보야? 아니면 실적과 전망이 불투명한 애플은 브랜드고 나는 사과처럼 뭐 달콤한 과즙을 헌납해야만 하는 숙명에 굴복할 테니까 자긴 뭐 착즙기다? 진공청소기 최신품들 발매는 끝이 없으니까 냉큼 갖다쓰고 버리겠다는 거야 뭐야.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로 들어가야 한다는 속담도 있다만. 굳이 늑대 것도 굶주린 늑대가 여우들 영역을 침범해봐야 좋을 일 없을 듯. 걔네들 세상도 질서와 상도덕과 순리라는 없지 않을 테니까. 물론 살면서 어떤 때는 정물화의 과일이랄지 요염한 누드모델처럼 꽤나 정적이어야 한다랄지 이따금 피동적이거나 못 이긴척 져줘야 할 시기도 있는데. 지금 나는 웬 너구리한테 따먹힐 과일은 되기 싫었다고나 할까? 아니면 과일은 과일인데 왜 하필 벌레먹은 사과여야 하냐 그 말일 수도 있다만 어쨌든. 그러므로 애초에 불여우 근처에 가지 않는 게 상책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조금만 더 덧붙이자면 아닌 게 아니라, 어?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의 회귀본능도 심오하지만. 그러다 불곰한테 꿀꺽 잡아먹히면? 2200마리의 알래스카 곰들이 연어를 폭식하는 걸 굳이 육안으로, 코앞에서 보지 않아도 아니까 말이다. 





    5

    어느 날 문득 나는 스머프 고기가 궁금해졌다. 물론 만화영화와 현실을 구분 못하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자꾸자꾸 말도 안되는 억지를 부리는 개구쟁이가 되어버린 걸 어쩌란 말인가. 항상 그런 건 아닌데 뭔가 이상해졌단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드라마 주인공 덱스터도 아니고. 영화 배역 뭐지 거 엄청 많지 않나. 다만 뭘 해도 재미없는 어른으로써 하다하다 생각한 게, 뭐 꼭 그런 건 아닌데. 하긴 권태를 길들이고자 안 하던 게임도 다 해봤다. 그러다 Steam의 Escape the Backrooms이라는 게임에 잠시 빠졌다. 그건 1~4인 협동 공포 탐험 게임으로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인해 미지의 세계에 갇힌다는 흔한 괴담을 바탕으로 어쩌고저쩌고인데. 그런 한편 갑자기 궁금해졌던 것이다. 스머프 고기를 구하러 어딘가로 갔는데 접선 장소에서 막 이동 이동, 계속 이동 그래서 딱 도착. 근데 거기서 안개라는 제목의 무슨 게임과 영화처럼 어떻게 어떻게 막 막, 어? 막 막 그 뭐 막 어떻게 어떻게 딱 스머프 고기를 구했어. 그래서 탈출했어. 그리고 집으로 돌아왔어. 근데 소요된 시간은 불과 얼마에 지나지 않음. 이처럼 설마 말 같지도 않은 공상이 실제로 벌어지면 어떡하나 라고 말이다. 바로 거기까지 생각이 이어졌던 것이다. 그것도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게 최근 삶이 너무 단조로웠기 때문이다. 감정의 고저가 넓지 않고 인생의 다채로운 보폭이 비좁은 걸로 봤을 때. 설마 이대로 인생이 끝나버리면 어떡하지? 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래서 새로운 취미를 만들겠나 식탐에 빠지겠나. 지나버린 과거는 몰라도 어느 만큼 정리된 여기서 언제까지 대략 단 한마디로 현재의 인생, 멀지 않은 미래까지. 그걸 축약해보니 정말 보잘 것 없었기 때문에 그러므로 스머프 고기 같은 말 같지도 않은 상상이 가능했던 것이다. 아무튼 그 요점이 뭐냐, 내 인생에 대해 사랑의 서사시로 옮기겠나 아니면 장편 드라마로 각색하겠나. 지금 딱 보니 뭐랄까 허무하다고 해야 하나 허접하다고 해도 안 이상한 건가! 
    그러니까 그게 뭐냐? 첫째, 둘째, 셋째...가 아니라 순번 없이. <건강 | 스너프 | 블로그 | 주식> 이렇게 4가지. 그 외 본능? (미래의) 성적 생활? 진한 사랑? 또는 종족 보존? 다른 말로 외면할 수 없는 이성적 관심? 그건 죄다 건강으로 합산하면 됨. 그 외 다 부차적이거나 사소한 취미, 여가생활, 어쩌다 여행, 드라이브... 같은 삶도. 식어버린(?) 인생에서 기본적인 요건이라 치면 그마저 건강에 포함된다 치면. 지겨운 말이지만 이건 한마디로 늙었다는 얘기? 뭐? 미치고 환장할 노릇. (절레절레) 아 이래서 어른들이 늙은 것도 서럽다 그랬던가? 어쨌든 무슨 희망이 있나 호기심이 남았나 바닥나지 않은 새로움과 더불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가 아니라 당당히 밝힐 수 있는 꿈이 있나. 아님 자유? 없음. 있긴 있으나 딱 제한적. 그야 나만 동물원의 너구리 신세가 아니라 행동반경 감안하면 누군들 안 그러겠나. 우리 모두 비슷하겠지. 그래도 먹고 마시고 놀고 춤추며 노래하고 돌아다니고. 난 아직 늙지 않았어 막 그러면서 억지로 할 수는 있는데. 이젠 더 이상 그렇게 살 수 없는 건가? 그럼 내일은 없어 라는 좌우명으로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좋을까? 꼭 그분들이 멋지고 부럽다는 게 아니라. 이젠 더 이상 오늘만 살 수 없다는 점. 그걸로 따지자면 젊음은 끝난 거다. 완전히 끝남. 뭐? 이런 젠장! 태생적으로 인생에서 총 몇 시간을 놀고 방황하며 막 살 수 있는데. 그 막대그래프를 다 채워버린 느낌? 어른들은 다 안다. 모르는 늙은이 즉 非젊은이는 한 명도 없을 것이다. 바로, 그래서 사람들은 병풍을 선호하고, 만만한 신부들러리를 곁에 두고자 하며, 막연한 방향성은 공통된 것이다. 그러나 못 할 게 뭔가. 지금이라도 어떻게, 아니다. 어차피 금방 퍼질 게 뻔하다. 지쳤어 지쳤어 힘빠졌어 힘빠졌어... 이젠 관절 생각 안 할 수 없음. (절레절레) 육체도 육체다만 정신 (몸짓 똑똑똑) 이 영혼부터 늙어버렸단 말씀. 그런데 무슨 게임을 하고 놀러다니고 오늘만 사는 것처럼 웹툰 보고 유행곡 듣고 춤추고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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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스머프 웹사이트에서 찾아낸 정보를 바탕으로 접선 장소에 도착했다. 거긴 스머프 공원이었는데. 내부의 어떤 개구멍을 통해 어떻게 어떻게 딱 들어갔어. 응? 어떻게 들어갔다고! 그런데 난 왠지 모르게 이 상황이 뭔가 너무 잘못됐다고 느꼈다. 여기서 더 나아가서는 안될 것만 같았다. 이게 대체 뭐 하는 일이지? 누가 알면 완전 비웃을 거 아냐. 나중 스스로 생각해봐도 이런 걸 회상하면 어떡하나. 역시나 도전은 허접했다. 괜히 일을 벌였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돌아갔다. 내가 여기 두 번 다시 오나 봐라 막 그러면서 말이다. 앞서 건강 관련하여 일주일에 콜라를 딱 한 번, 정말 많아 봐야 두 번 마실 수 있는 인생. 그게 재밌어? 그런데 생각해보니 언젠 안 그랬나. 아울러 싸구려 피자만 먹어도 썩 불만스럽지 않은 삶이니 고로 딱히 손해본 건 없네. 그럼 밑져야 본전 아냐? 그게 또 그렇게 되나? 논리 전개가 뭔가 이상한데? 그래도 이상할 수 있다. 또 그래도 된다. 가만보니 돌이켜보니 줄곧 그렇게 살아왔네. 그러면서 뭘 그렇게 투정부려. 어쨌든 여기서 멈췄으면 된 거다. 아무도 모르면 되니까. 아니? 누가 알아도 인정 못 할 거도 없다. 그보다 일단 아무도 관심 없음. 그렇게 나는 집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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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다음 날이 되었는데. 집으로 누가 찾아왔다. 누군가 용건이 있다고 하여 집 마당으로(휴양지 임대 거처) 나가 만났는데. 아니 어떻게 이런 미인이 내게 용건이? 난 재산도 젊음도 아무것도 없는데? 그런데 뭐 하러 날 만나러 왔지? 의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대 그냥 가시면 어떡합니까? 우리는 어떡하라구요? 뭐 바람둥이 말마따나 내 알바 아니다 그런 말 하실 거면 입도 뻥끗 마세요.」
   「네? 그게 무슨...」
   「그게 무슨...? 말을 할려면 끝까지 하세요. 뭔 남자가 흐리멍텅해가지고 눈에 힘도 없고 사람이 매가리가 없어. 어? 그래가지고 여자랑 사랑할 수 있겠어요? 초장에 잡히기도 전에 숙녀는 도망갈 거 아니냐구요, 네? 설마...!」
   「설마, 뭐요? 당신 뭡니까? 네? 설마, 라니요. 네? 이 사람이 이거 보자보자 하니까 증말!」
   「그런 반응 좋아요. 그걸 원했어요. 호호호호호. 근데 그 다음이 없잖아요! 네? 당신은 남자에요. 네? 전 여자구요. 네?」
   「누가 아니랍니까?」
   「그럼 절 어떻게 해보세요. 왜, 마음으로는 절 어떻게 자빠트리고 싶은데. 아니 아니 제가 하고 싶은 말은 그게 아니라. 어쨌든 오빠는 여자를 만족시켰던 경험 없지 않죠?」
   「그게 갑자기 왜 궁금하시죠?」
   「궁금하지 않아요. 다른 말을 꺼내기 위한 서두에 불과한 말인데 잘못 집으셨군요. 그렇게 직접화법을 선호하시니 여자를 못 꼬시지. 제가 가르쳐 드려요?」
   「가르쳐주긴 뭘 가르쳐줘요. 제가 앱니까? 그나저나 대화에 진전이 없군요. 소득도 없구요. 우리가 대체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 거죠?」
   「그러게요. 만약 그걸 사랑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면 당신은 스머프 만화의 가가멜이 될 거에요. 물론 가가멜은 스머프 스프 만들기에 실패했지만 당신은 다를 거구요.」
   「아니 그럼 스머프 고기 때문에 여기까지 찾아오신 거에요?」
   「이제야 아셨군요.」
   「」
   「그런데 왜 말이 없으시죠? 예전 만나던 그녀들은 모두 말없는 남자를 좋아했나보죠? 아니면...」
   「아니면...? 거 참 증말...!」
   「흥분하지 마세요 오빠. 제가 있잖아요. 그렇지만 솔직히 말해서, 막장 드라마 어법을 빌리자면 까놓고 말해서? 아니 어떻게 그런 말을! 그런 상스러운 말은 입에 담지도 마세요. 아, 오빠는 조용하시군요. 어쨌든 오빠 혼자 집에서 데스크탑으로 막 섹시한 여자 사진 보면서 시간 보내는 거 보단 저랑 대화하는 게 낫잖아요. 것도 백번 천번!」
   「제가 한가하게 인터넷으로 여자 사진이나 본다고 누가 그럽디까?」
   「그럼 그렇지 않았나요?」
   「」
   「왜 말을 못하세요?」
   「잠깐 딴생각을 했소 낭자.」
   「뭐 낭자? 으으으윽 구려!」
   「근데 언젠가 인터넷으로 본...」
   「제가 걔냐구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닐지도 모르죠. 그런데 우리 어디서 만난 거 같지 않아요? 아니면 오빠 혼자 저를 유튜브로 보신 건가? 뭐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그럼 뭐가 중요한데요?」
   「그걸 숙녀한테 거칠게 물어보시면 어떡합니까? 연애 어떻게 하는지 몰라요? 그러니까 헤어지는 법도 모르시겠죠. 그렇죠?」
   「그건 대체 뭔 얘기죠? 제가 그걸 왜 알아야 하는지 도무지 모르겠어요.」
   「자랑이십니다. 그런데 스머프 고기는 왜 찾으시는 거죠? 혹시... 정력 때문에?」
   「뭐, 뭐요? 지금 말 다했어요? 제 정력이 왜 궁금하신데요?」
   「좌우지간 만화영화를 너무 많이 보셨거나 아님 잘못된 마법 지식에서 아직 못 헤어나오신 거군요. 제 말 맞죠?」
   「그런데 우리가 언제까지 이렇게 만담을 나눠야 하죠?」
   「글쎄요. 우리가 사랑할 때까지? 호호호호호. 일단 오늘은 제가 이쯤에서 후퇴할께요. 하지만 아주 물러난 건 아니란 거. 그것만 알아두세요. 조만간 어떤 소식이 있을 테니까요.」
   「당신들 대체 정체가 뭐야?」
   「너무 많이 아실려고 하지 마세요, 오빠! (윙크)」
    그녀는 떠났다.
   「쟤는 뭐지? 뭐 하는 여자야? 흥!」





    6

    어디선가 스머프 고기 냄새가 난다. 뭐라고? 내가 언제부터 스머프 고기 냄새를 맡을 수 있었을까. 혹시 그냥 싸구려 향수 냄새를 잘못 맡은 거 아냐? 아닐 것이다. 이건 지금까지 보도 듣도 못한 향기니까. 그런데 그게 스머프 고기 냄새라고 어떻게 장담하지? 왜냐하면 누가 그러지 말라고 말리지 않았기 때문. 그런 말 같지도 않은 얘기는 재미없고. 그러다 나는 바로 오늘, 근처에 사는 장기휴양족의 저녁 식사 초대가 있다는 걸 기억해냈다. 구글 캘린더, 핸드폰 알람 설정, 메모나 달력에 기록하는 방법을 택하지 않은 건 왜냐. 그건 처음에 그분들의 권유를 믿지 않았던 탓도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 약속시간이 되어 생각해보니 구태여 속아서 나쁠 것도 없을 것 같아서 그곳에 가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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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곳은 나름 분위기가 조성된 상태였다. 촛불과 음악은 물론 적당한 온도와 습도. 어디서 구했는지 임시 거처임에도 불구하고 카페트도 깔고. 말 잘듣는 강아지도 있었다. 
   「그런데 우리의 식사 초대를 처음에 안내켜 하시던데. 저희는 그대가 오시지 않을 줄로 알았어요. 혹시 스머프 고기 냄새를 맡고 오신 거 아닌가요?」
   「네?」
   「이거 내 정신 좀 봐. 일단 스머프 고기부터 내오기로 하죠. 참고로 무슨 고급 레스토랑이나 유럽식 정찬처럼 긴 코스를 기대하진 마세요. 스머프 고기가 있는데 그런 게 무슨 소용있겠어요. 안 그래 여보?」
   「그럼. 형씨와 우리가 알게 모르게 정이 들어버렸는데. 스머프 고기 대접하는 게 무슨 대수겠수.」
    엥? 우리가 알게 모르게 정이 들어버렸다고? 아닌데. 정이 들고 말고 할 거 없는 사이인데. 내가 혹시 잘못 온 거 아닐까 하면서 뭔가 조짐이 이상했다. 
   「짜잔~ 스머프 고기에요. 일단 감상부터 하시죠. 처음 생육을 입수할 때는 꿈과 비전 때문에. 조리를 시작할 당시에는 짜릿한 폭식에 대한 희망과 바람으로. 그런데 바라던 모습으로 조리된 이 모습을 보고나니 감당할 수 없는 행복감에 제정신을 잃을 것만 같아요. 안 그래 여보?」
    스머프 고기? 이건 흔한 케익 위에 얹은 모습, 그 뭐지? 식용 가능한 그런 캐릭터가 분명했다. 초코랑 고형분 버터? 성분은 잘 몰라도 어떻게 어떻게 만들어진 곰. 무지개. 생일 축하합니다 문구. 산타. 요술지팡이. 단지 케익 장식일 뿐인데 모양과 색상만 스머프 모양. 이 사람들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봐서 그런 건가 아니면 원래 상태가 안 좋은 거야? 종잡을 수 없는 상황 전개인데. 황당한 절정으로 이어지기 전에 도망갈까?
   「저기 제가 몸이 갑자기 안 좋아서 먼저 일어서야겠어요. 죄송합니다. 다음에 제가 대접할께요.」
   「네?」
   「스머프 고기를 시음할 기회는 결코 흔치 않은데.」
   「괜찮으시겠어요?」
   「죄송합니다.」
   「왜 그러시지?」
   「글쎄요 여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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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뭐 하는 사람들이지? 혹시 내가 그분들한테 스머프 고기를 먹고 싶다고 애원했던가? 아니다. 그럼 함께 영화라도 찍자는 거였나? 장단 못 맞춰드릴 거도 없다만. 무슨 카메라도 뭣도 없는데 연기라니.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는다고 평생 드라마로만 봤지 그걸 어떻게. 그런데 만약 그분들이 말하는 스머프 고기를 먹었다고 쳐. 그럼 그 다음은? 스머프 그룹을 나한테 소개시켜줄려나? 그런 상상이 불가능하지도 않다만. 굳이 도망올 이유도 썩 설득력이 부족한 건 맞다. 아무리 사람들과 못 어울리고 돈 없고 지겹게 살고 있지만. 사회성이 없는 것도 아니니까. 그럼 다시 가볼까? 그럼 그러겠지. 몸이 다시 괜찮아졌수? 라고 하시겠지. 그럼 뭐 능청스럽게 갑자기 좋아졌다고 하면 그만. 그럼 진짜로 다시 가볼까? 혹시 본격적인 파티가 시작됐을지 누가 알겠어. 그럼 막 가면무도회처럼 비엔나 왈츠를 필두로 막 영화에서 보던 막 무녀들은 나체에다, 뭐? 아이즈 와이드 원샷? 혹시 알아? 나는 다시 돌아가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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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로 내가 지인의 집 창문으로 보던 장면은 뭐냐? 다름 아니라 스머프들이 긴 식탁에 모여 앉았음. 근데 긴 식탁 위에는 지인녀가 누워있음. 영화에서나 보던 바로 그 장면! 뭐지 이거? 낯선데? 당연히 실감이 나지 않음. 물론 믿기지 않을 테니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러게 앞서 스머프 고기 식사 초대받아 저 자리에 내가 있던 당시. 뭔가 식탁이 이렇게 길다랄 필요가 있나 싶었음. 아니 정말로 뜬금없이 웬 SF 정서라니. 근데 진짜일까? 가만보니 그런 것 같았다. 그럼 저들이 진짜 스머프들? 혹시 인형극에 나오는 그런 변장이 아닐까 찬찬히 살펴봤는데. 깜빡 속아넘어갈 정도로 정교했음. 아무리 그래도 이걸 믿어 말어?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믿을까 말까 망설이다가 저 식탁 위에 지인녀는 스머프들한테 잡아먹히는 거 아냐? 그러고 보니 나체는 나체였다. 그런데 스머프들은 생식을 좋아하나? 뭐지? 진짜 뭐지? 미처 대응하는 방법을 그 어디서도 배우지 못한 현실. 빠져나갈 수도 전원을 꺼버릴 수도 없고. 어떡하지? 들어가서 말릴까? 아니면 합석을? 합석은 뭔 합석. 그런데 앞서 지인 남녀가 나를 나를 불러 셋이서 스머프 고기를 먹자했는데. 그땐 케익 데코레이션에 불과했는데. 혹시 그것 때문에 저 스머프들은 위협감을 느꼈던 것일까? 말도 안돼! 쟤들이 무슨 저승사자도 아니고 말이야. 그런데 이건 단지 나를 위해 꾸며진 연극에 불과하더라? 아직 과거형이 아니니 알 수가 있어야지. 그럼 은근히 진심을 떠볼 필요없이 노골적으로 물어보면 될 것이다. 일단 들어가서 멱살 잡기가 곤란하다면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고 물어는 볼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럼 혹시 당신은 초대받지 않은 잔치니까 빠지라고 할까? 근데 스머프랑 나랑 말이 통할 리가 없잖아. 믿도 끝도 없이 다 늙어서 중년이 갱년기랑 싸워야지 이게 대체 뭐 하는 상황이지? 그러게 말이다. 근데 쟤들은 행동이 왜 저렇게 느리지? 게다가 왜 갑자기 하늘에 먹구름은 끼는 거고. 설마 비가 오지는 않겠지. 만약 소나기가 내리면 맞으면 된다. 설마 눈이 내리지는 않을 거 아냐? 근데 그게 지금 이 엄청난 사건과 대체 뭔 관계란 말인가. 그러고 보니 이건 내가 평소 내 블로그에 업데이트하고 싶은 이야기였다. 유튜브에서 볼 수 있는 3분~15분짜리 짧은 영화 각본도 못 쓰니까 이처럼 가난한가 의심하던 찰나. 그래서 오늘 이런 난감한 상황이 닥쳤을까? 근데 쟤들은 무슨 음악을 듣고 있지? 잠깐 관찰해봐도 쟤들이 본능적이고 내가 논리적인 게 아니라. 그냥 양쪽 다 초현실적 배역인 듯. 그러든 어쩌든 왜 나는 저 스머프들한테 알 수 없는 친밀감을 느끼는 거지? 함께 얘기하고 웃고 떠들며 마시고 놀고 돌아다니며 사진에 동영상도 찍어서 같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건 대체 왜일까? 물론 그럴 수 있다. 소셜네트워크에서 곰돌이가 노는 것만 봐도 그러니까. 좌우지간 내가 만약 저곳으로 쳐들어가서 딱 어떻게 더 부정적인 진행은 막았다고 가정했을 때. 그런데 만약 내가 쟤들한테 우리와 함께 하자 인간 고기가 그 얼마나 맛있는지 아냐 라면서 설득당하면 어떡하지? 그럼 난 과학적으로 인육은 못 먹거나 아마 예술적으로 맛 없을 것란 생각부터 하겠지. 그러면서 아니 스머프가 우리 인간이랑 똑같은 언어를 사용하네? 그럼 뭐 나라고 스머프 언어를 구사 못 할 줄 아냐? ~라고 꽁트를 진행한다는 게 정말 우스꽝스럽다는 걸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나저나 우물쭈물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없는데 설마 쟤들도 뭔가 헤매는 거 아냐? 이럴 줄 알았으면 BB탄 권총이라도 준비해둘 걸 그랬나? 그래서 전용 멜빵으로 구색도 맞추고? 무슨 그런 바보 같은 상상을. 근데 왜 하필 난 지금 혼자지? 누구 도와줄 병력 없나? 병력 같은 소리나 하고 자빠졌다.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입부터 험해지면 안되는데. 지금 안 그러게 생겼어? 어쨌든 이럴 줄 알았다면 미리 놀이공원에 가서 아르바이트 인형맨들이랑 재밌게 놀기라도 할 걸 그랬다. 막 사진도 찍고 솜사탕도 사먹고 그렇게. 근데 혼자서 가봐야 재미없을 게 뻔하다. 물론 안 그럼 나 혼자 심심하겠지. 그때 나는 보았다. 저 스머프 가운데 1명이 슬쩍 미소짓는 걸 말이다. 그게 혹시 신호탄이었을까? 그러니까 쟤들은 내가 엿보며 동태를 살피고 있는지 알면서 모른 체. 다만 탐스러운 먹잇감이 추가로 생겼다며 속으로만 기분 좋아해. 결국 저 스머프들이 나를 언제 자빠트리냐는 시간 문제였던 건가? 자빠트리긴 뭘 자빠트려! 내 그러니까 좋게 여행지에서 집으로 돌아가 소파에 자빠져 TV나 볼 걸. 괜히 난처한 형세에서 옴짝달짝 못하는 신세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데없이 난 저 스머프들의 인생을 궁금해하냐고. 바로 그때! 
    땡~! 
    1인칭 주인공 시점을 잠깐 변경하자면. 앞서 나를 불러 스머프 고기 시식 잔치에 초대했던 지인 남녀. 그 가운데 지인남이 어디서 구했는지 후라이팬으로 내 뒷머리를 냉큼 때렸던 것이다. 땡~! 눈에 불이 번쩍 하고 자시고 할 거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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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꿈을 꿨다. 걸리버여행기의 그 장면부터 막 갑자기 확 확 바뀌고. 왜 변하는지도 모르고. 막 그러다가 딱 깨어났다. 그런데 아뿔싸! 어? 맙소사, 내가 앞서 봤던 식탁 위에 누워있다니. 설마 지인남녀는 고기가 상했던가 뭔가 푸석푸석했기 때문에 요리감 교체? 무슨 선수 교체도 아니고 이게 대체 뭐냔 말이다. 
   「어머머머. 깨어나셨어요? 앞서 집에 돌아가셨는데 왜 말도 없이 우리를 엿보고 계셨죠? 그래도 괜찮아요. 오히려 그러기를 바랬거든요.」
   「잠시 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아무일도 없었어요. 게다가 스머프 고기는 아직 그대로구요. 왜 저희가 모두 먹어버렸을까 봐 걱정했어요? 여분은 냉장고에 얼마든지 있으니 마음껏 드세요. 아, 왜 자기가 식탁 위에 누워있냐구요? 어쩐 일인지 그대가 문 앞에 쓰러져있길래 이곳으로 데려왔죠. 그런데 침대는 없고 땅바닥에 눕히기도 그렇고. 마침 식탁이 꽤 기니까 뭐 이렇게! 그런데 설마 꿈꾸셨어요? 안색이 파래요. 호호호호호.」
    나는 그날 이후 지인 남녀를 두 번 다시 보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는 안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7

    그날 기분은 그저 그랬다. 항상 그런 식이지. 그럼 뭐 누군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춤추고 들뜨며 흥분하지 않겠지. 그럼 내가 미치지 않았다는 반증인데. 그게 나쁜 건가 하면 아닐 것이다. 어쨌든 해는 떴고 내일이 오기 전에 나는 오늘 어떤 의미를 찾아야 했는데. 불분명한 목적은 익숙해도 굳이 달콤한 성과가 찾아와준다면 반기지 않을 이유는 없다만. 그러니까 그게 무슨 말이지? 스누피 박물관을 가냐 아니면 스머프 공원을 방문하냐 그 고민이구만. 좋았어. 결정했어. 후자다. 어찌 됐든 스머프 고기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는 없으니까. 만약 갔는데 누군가와 만나서 갑자기 사랑을 하고 나서 스머프 고기를 먹게 됐다? 그럴 일은 없겠으나 혹시 모르지 않나. 원래 인생이란 알 수 없는 법이니까. 그래도 실망이 클 수 있으니 미리 기대는 하지 않기로 했다. 
    장면 전환. 
    장면 전환. 
    장면 전환. 
    내가 스머프 공원의 외로운 의자에서 쉬고 있을 때 웬 스머프가 내 옆에 앉았다. 
   「이제 아무도 찾지 않는 스머프 공원에 무슨 일이십니까? 대답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궁금해서 물어본 건 아니니까요. 그렇지만 진짜로 대답해주지 않으실려고 했어요? 깍쟁이 아저씨. 그럼 그 대신 저랑 연애라도 하시던가요. 왜, 제가 스머프 인형 탈을 썼기 때문에 이쁜지 안 이쁜지 가늠이 안되세요? 저 엄청 이뻐요. 주변에서 막 난리거든요. 허나 그건 제 판단이고 아저씨 취향은 다를 수 있죠. 인정해요.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아저씨 눈에 제가 썩 못생겨보이진 않을 거예요. 장담해요. 그럼요. 아 글쎄 그러니까 여기 뭔 일로 오신 거에요? 설마 스머프 고기? 아저씨도?」
    「」
    「왜 갑자기 눈을 똥그랗게 뜨세요? 아님 말을 하시던가요. 말 하기 싫으세요? 혹시 제 말 듣기도 싫으신 건 아니겠지요. 그러든 어쩌든 저랑 대화 나누는 게 귀찮으시면 그냥 냅다 뽀뽀나 할까요? 농담이에요. 뭐 꼭 못 할 거도 없지만 말이에요. 그런데 그거 아세요? 언제였더라. 한 10년 전이던가? 아저씨처럼 뭔가 오묘하고 왠지 모르게 느낌이 이상하고. 분위기 쎄한 아저씨가 찾아왔었죠. 참고로 제가 여기서 제일 고참이거든요. 저처럼 오래 버틴 스머프는 한 명도 없었어요. 아무튼 그날 그 아저씨도 저에게 그랬죠. 스머프 고기에 대해 아냐구요. 물론 지금 제 앞에 저와 눈빛이 교차중인 아저씨는 묻지 않았죠. 제가 스머프 고기를 아냐랄지 우리 함께 애절한 사랑을 나누지 않겠냐든지. 그렇다고 꼭 말로 해야 아나요? 눈빛만 보면 알 수 있죠. 근데 아저씨 눈빛은 뭔가 흐리멍텅하면서도 매가리가 없군요. (절레절레) 그래도 낙담하지 마세요. 그런 아저씨도 놀려먹는 재미가 꽤 쏠쏠하거든요. 무슨 그런 말장난을 하냐구요? 당시 그 아저씨도 그랬거든요. 실은 그 이후로 그 아저씨랑 저는 살림을 차렸어요. 결혼식은 올리지 않았답니다. 애는 낳았을까요? 근데 거짓말이에요. 저 혼자 그 아저씨를 짝사랑했거든요. 어찌 됐든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제가 아주 그냥 살벌한 비밀 하나 알려드릴까요? 듣고 나면 소름이 돋을 거예요. 그럼요. 알려진 풍문에 의하면 그 비밀을 알고 난 뒤로 평생 기저귀를 차고 다닌다는 사람도 있대요. 정말이에요. 그런데도 알고 싶으세요? 그런데 공짜로요? 그럴 순 없죠. 아저씨도 뭘 하나 걸어야죠. 안 그래요? 그럼 뭘 거실 건데요. 보아하니 돈은 겁나게 많으실 테니 저처럼 허접스럽게 돈으로 승부하는 멜로드라마는 좋아하시지 않으실 거 같고. 그럼 포옹을 해준다? 그게 뭐에요. 저는 얻는 게 없잖아요. 왜요 제가 뭘 원하는지 모르시니까 신중하신 거에요? 알겠어요. 아저씨가 왜 저를 좋아하는지를요. 뭐 우리가 만난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이러냐구요? 그럼 어때요. 우리는 영화처럼 만났는데요. 그러든 어쩌든 꼭 아저씨는 늙은 개처럼 말수가 없군요. 평소에는 안 그러시겠지만 설마 어디서 데였나요? 그렇죠? 말 많은 여자한테 아주 제대로 당했나보군요. 그래서 실어증에라도 걸린 거에요? 살짝 웃으시는군요. 그럼 제가 앞서 말한 비밀을 공짜로 알려드릴께요. 왜냐하면 공짜가 이 세상에서 제일 비싼 법이니까요. 그렇다고 여기서 더 뜸들이지는 않겠어요. 그 환상적인 비밀을 공개하길 미뤄봐야 아저씨가 저랑 살림을 차리진 않으실 테니까요. 아니에요? 왜 저를 데리고 사실 거에요? 그래도 이미 데리고 사시는 분께서 안좋아하실 거잖아요. 상관없어요? 제가 상관있죠. 그럼 전 세컨드가 되는 거니까요. 그런데 우리가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 거죠? 아, 비밀! 
    그 비밀이란 이거죠. 스머프 고기를 찾는자는 스머프가 된다. ~라는 속설이 이곳에서는 꽤 유명하죠. 아니 저명하죠. 알게 모르게 그 때문에 스머프 고기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으니까요. 다들 능청꾼이 따로 없죠. 근데 아저씨는 세계 엄살러가 아니시군요? 그래서 유난떨기도 싫다 넉살도 과장도 투정도 아니다. 질투니 뭐니 응석이니 그걸 내가 왜 해야돼 그런 분과 인간이다 뭐 그거죠? 그래서 어차피 한 번뿐인 인생 스머프가 되면 되는 거고 혹시 모르니까 이렇게 저 같은 위장 스머프한테 접근하신 거군요? 맞죠? 그렇죠? 제가 제대로 봤죠? 근데 제가 위장 스머프인지 아닌지 어떻게 아세요? 저는 진짜 스머프에요. 그럼요. 만져보세요. 냄새도 맡아보구요. 개처럼요. 일단 사진이라도 함께 찍으세요. 기념으로요. 어차피 안보신다구요? 그럼 어때요. 그게 놀이인데. 사람들 다 그래요. 어차피 버릴 거 사고 쓰고 갖고. 인생이 뭐 별건가요? 아니 근데 설마 아저씨가 이미 스머프 아닐까요? 우리들 세계 격언에 따르자면... 그게 맞는데. 정말인데. 그럼 이건 뭐죠? 아무리 그래도 제가 숨겨둔 스머프 고기를 보여드리면 어떡하실 건데요. 저라고 뭐 비장의 카드가 없을 거 같아요? 원래 저 같은 미녀가 남자한테 한번 빠지면, 뭐요? 뭐가 어쩌고 어째요? 갑자기 남자 얘기가 왜 나와요? 네? 제가 뭐 남자에 환장한 년인 줄 아세요? 아니, 그렇게 심한 말을! 죄송해요. 괜히 흥분했네요. 그래도 그럴 수 있어요. 딴 실수 한 건 아니잖아요. 저는 영화에서처럼 서서 오줌 싸는 여자가 아니거든요. 또 어때요? 좌우지간 이렇게 된 거 우리 함께 무인도 여행이나 떠날까요? 왜 짜릿한 첫날밤을 그곳에서 보내기 싫으세요? 이 양반도 호캉스 좋아하시네. 말 바꾸면 늙었어. 왜, 듣기 싫어요? 아니란 표정이네요. 젊음에서 멀어지지 않는 사람은 이 세상에 한 명도 없어요. 그러니까 해탈하셨다? 일찍도 철드셨군요. 그렇지만 살면서 철들지 않아야 할 때가 있죠. 바로 저 같은 숙녀와 함께 할 때 말이에요. 근데 꽃다발도 없이 그냥 오셨어요? 하긴 처음 봤는데 다짜고짜 빽허그도 말이 안돼죠. 이해해요. 
    그런데 아저씨 어쩜 그렇게 태평해요? 스머프가 된다는 게 뭔 줄 모르세요? 그건 차마 말로 할 수 없는 거라구요. 그러니 우리 세계에서 그건 그냥 불문에 부치는 거라구요. 아 떨려! 미치겠어요. 언제 어떻게 바람이 불지 모르는데 그럼 제 소원 하나만 들어주시죠. 어차피 아저씨는 이미 스머프가 되신 거 같은데. 제가 이렇게 스머프 탈을 쓰며 아르바이트나 하고 있는 신세. 이상하지 않아요? 저랑 바꿔요. 네. 그게 좋겠어요. 난 가짜고 아저씨가 진짜잖아요. 세상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말이에요. 제 말이 맞죠? 이미 설득되셨구만. 그럼 일단 저기 레오폴트라는 카페에 제가 말해놓을께요. 아저씨가 절 사랑하신다구요. 호호호호호. 그나저나 저는 십년 째 이 일을 때려치지 못하고 있지만. 살다 살다 진짜로 스머프를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어떻게 이럴 수 있죠? 무슨 추억의 TV 단막극으로 보는 환상특급 뭐 그런 거에요? 볼을 꼬집어봐도 진짜인데. 아니 근데 말이에요, 네? 우리가 바라던 이상적인 스머프가 아닌 건 그런가 보다 하는데. 너무 낭만이 없잖아요. 게다가 너무너무 느닷없다구요. 심지어 영화배우처럼 잘생기지도 않았어. 하지만 잘생긴 사람들만 영화배우를 하는 건 아니니까 이해해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 맹한, 뚱한, 몽롱한? 설마 멍청하시진 않으시겠으나. 아무튼 이건 너무 꿈같아요. 뭐라 설명할 수 없다구요. 그래도 사는 게 다 그런 거라는 말은 하지 마세요. 그런데 대체 왜 말이 없으세요? 하긴 제가 미처 말할 기회를 드리지 않았으니까요. 아니 근데 아저씨 지금 뭔 생각해요? 설마 제 나체를 상상? 아닐 꺼야. 왜, 제가 오빠라고 불러드리지 않아서요? 그게 뭐 어렵다구요. 오빠! 오빠~! 
    아무튼 약속하신 거에요. 제가 한 시간 신나게 떠들어드렸으면. 그럼 오빠가 제 인형옷을 입고 1시간 공원에서 일하는 거. 근데 그럼 내가 손해인가? 뭐 손해 좀 보죠. 내가 오빠를 큐피트로 만들어드리고 나는 행운의 여신을 맡으면 되니까. 그치 오빠? 오빠 내 말 듣고 있어? 왜 잠와요? 아 졸린 게 아니라 원래 눈매가 그렇군요. 그럼 저한테 한번 맞아볼래요? 그래도 제가 어떻게 오빠를 때려요. 안할래요. 그러지 말고 우리 원없이 연애나 할까요? 아 글쎄 드린다구요. 제 마음을요. 왜, 싫어요? 오빠. 그럼 나 실망한다. 하긴 이렇게 뜬금없는 건 말이 안되지. 그런데 만약 내가 오빠를 떠나면 어떡하지? 오빠는 나를 대체 얼마나 기다려줄까? 1년? 5년? 10년? 100년? 아니면 내가 떠나자마자 마침 잘됐다 싶어서 새장가갈까. 근데 이 냥반 어떻게 해야 웃는 모습을 보지? 왜 안 웃어? 억지로 간지럽힐까? 그게 아니라 상태가 굉장히 안 좋아 보이는데. 썩었나? 설마. 그러든 어쩌든 오빠한테 근사한 선물도 못 받아보고. 화사한 꽃다발은 커녕. 다정한 속삭임과 애정의 표현들 하며. 우리 정말 왜 이렇게 헤어져야 하죠? 그렇지만 나는 오빠를 떠날 각오를 해야 하고. 오빠도 스머프가 될 운명을 거절할 수 없다면. 그러면 우리의 사랑이 완성되는 건가? 무슨 이런 바보의 시가 다 있담. 이런 바보 같은 말로 오빠를 웃겨줄 수 있다고 생각한 건 아닌데. 그건 아닌데. 드라마 보면 그렇잖아. 마지막에 역할 바뀌는 거. 반전이네 뭐네 그처럼. 그럼 오빠가 이 한적한 공원에서 스머프 인형극을 할 때 언젠가 누가 또 찾아온다는 건데. 만약 안 찾아오면? 그럼 평생 해야겠지. 뭐? 그런데 이 오빠 못해먹겠다면서 도망가면 어떡하지? 뭐 잡아다 족쳐서, 아니 그게 아니라. 잘 타일러서 자리에 앉히면 그만. 원래 이런 사람들이 말은 또 잘 듣거든. 근데 아직 한 시간 안됐나? 아니 정말 내가 왜 이 오빠의 의중을 미리 알아채서 만족시켜드려야 하지? 뭔가 반대로 됐잖아. 하긴 나도 모르는 바는 아냐. 우리의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거도 잘 알고 말이야.」
    그 뒤로 나는 정신을 잃고 말았다. 안 그러게 생겼나. 
    장면 전환. 
    장면 전환. 
    장면 전환. 
   「어이 형씨. 아 놀고만 있을 거야? 가서 손님들 사진도 함께 찍어드리고. 전단지도 나눠드리고. 아 글쎄 일을 찾아서 하란 말이야. 대체 저렇게 게을러서 어떡하지? 지가 진짜 인형이야 아님 늙은 개야?」
    일주일 후 나는 그 일을 그만뒀다. 그런데 웬 세끈한 컨버터블 최신차. 그걸 그녀가 남겼다면서 가져가라니. 싫진 않은데. 혹시 이게 퇴직금일지 유품일지 어떻게 알고. 그래도 일단 그걸 몰고서 나는 스머프 공원을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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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 ─ 195

from 소설 2024. 6. 8. 23:53

    1

    NB는 사랑의 시를 쓰는 걸 포기했다. 그 말은 언제 연애와 낭만의 시상에 대해 진지하게 심취하며 정진했다는 뜻일 텐데. 그럼 뭐 시작하자마자 포기했다는 건가? 알 게 뭐야. 다만 뭐랄까 청초한 미녀가 뜻밖의 고백을 해주지 않는다며 푸념할 수는 없고. 누군가와 행복과 우주와 바람에 대해 논할 수도 없기에. 아마도 무작정 떠나고 싶었을 것이다. 하여 말만 들어도 좋은 캠핑. 허나 막상 시도해보면 나가떨어질 게 뻔한 견적. 그래도 새처럼 자유롭게 허공을 날며 인생을 노래할 수도 없는 노릇. 고로 이럴 땐 생각 많으면 안된다면서 그는 떠났다. 목적지도 없었다. 그렇게 그는 어떤 캠핑지에 도착했다. 그런데 도착하자마자 웬 발랄한 아가씨와 매력적인 숙녀들로부터 둘러싸여 정신을 못차렸을까? 그럼 얼마나 좋겠나. 그렇지만 웬 캠핑러가 그를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연배도 비슷. 잘은 모르겠으나 재산은 그보다 우월, 지식과 연애경험과 뭘로 봐도... 그는 멜로드라마식 용어인 스캔에 취미 없었다. 왜냐하면 패션에 관심도 적고 늘상 유령작가로써 무능력 캐릭터였을 테니까. 근데 그게 이유 맞나? 틀린 답이면 어떻고, 남과 다르고 싶을 나이를 훌쩍 지나 뭘 해도 재미없는 어른이 철학을 물고늘어질 리도 없겠지. 근데 단순히 인사말만 하고 헤어질 줄 알았는데 이 아저씨는 왜 이렇게 친절하시지? 
   「선생께선 캠핑을 좋아하시나 보죠?」
   「아니 뭐랄까 좋아하지도 안 좋아하지도...」
   「자신의 정체를 노출하시는 걸 조심하시는 것 같군요.」
   「네? 정체랄 게 뭐 있나요. 소심하고 가난하며 권태로운 게 비밀은 아닐 테니까요.」
   「어머. 형씨 말 잘하시네요? 말수 없으신 줄 알았는데.」
   「옳게 보셨어요. 다만 왠지 모르게 당신께는 바보의 입을 트는 재주가 남다른 것 같군요.」
   「지나치게 자길 낮추지 마세요. 그럼 제가 여자를 소개시켜드리기 주저하잖아요. 또 알아요? 제가 전화 한 통만 하면 즉각 달려올 오빠 부대들이 (손차양) 그럴지.」
   「오...부대? 옛날 말을 즐겨 구사하시는 걸 보니 일부러 제 경계심을 누그러뜨리시고자...」
   「네. 애쓰고 있죠. 허허허. 근데 이상하게 여기가 캠핑 명소인데 형씨가 오자마자 다 떠났어요. 우연일까요? 아님 형씨한테 묘한 능력이 있는 걸까요.」
   「전 드라마를 많이 보진 않습니다.」
   「그래요. 제가 영화를 너무 많이 본 걸로 하죠. 허나 상상력은 형씨가 한수 위인 걸로.」
   「네? 절 띄워주셔 봤자 전 대접할 게 하나도 없답니다.」
   「오해하진 마시죠. 이렇게 즐거운 대화 몇 마디면 충분하니까요. 그나저나 복잡한 도시를 떠나 자연과 함께 하니 마음이 편안하군요.」
   「그렇죠. 연애 관계가 복잡하긴 어렵잖아요.」
   「설마 우리 구면일까요?」
   「그건 왜...」
   「글쎄요. 차차 생각해보죠.」
   「어딘가 모르게 쎄하군요.」
   「허허허허허.」
    NB는 그렇게 그분과 헤어졌다. 오다가다 만난 사이인데 갑자기 친해져서도 곤란했다. 희망찬 미래를 약속할 만한 연애관이 돕지도 않았을 테고 말이다. 그럼 이제 뭘 하지? 이래서 사람들은 말한다. 캠핑 장비 구입해서 2번 쓰면 많이 사용하는 거라고. 물론 말이 그렇단 거다. 그러니 아무런 장비 없이 달려온 NB 같은 구경군도 있겠지. 그러니 멜로드라마를 보며 유독 닭살 돋던 대사가 뭐였더라. 그 무슨 술보다 술 마시는 분위기가 좋다 어쩐다? 내숭이든 모험이든 누가 끌고 누가 밀든 캠핑이라고 뭐 얼마나 다를까. 그럼 노는 거 좋아하는 사람이 많을까, 공부하는 거 사랑하는 사람이 많을까? 두말하면 잔소리다. 다 학교가기 짜증나고 일하기 싫어도 어쩔 수 있나. 먹고사는 게 다른 게 아니니까 말이야. 이러다 그는 캠핑장에서 낭만적인 시상에 심취할 것만 같은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뭐? 그래도 더워 죽겠다, 시끄럽다, 재미없다 보다야 나은데. 그는 왠지 여기 멈추면 안될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날은 내내 드라이브만 했다. 그렇게 멋진 노을을 보면서 그는 바닷가 언덕 위 어느 멋진 호텔에 도착했다. 
    그렇게 딱 호텔에 들어가려는데, 뭐야? 폐업했잖아? 문 닫은지 얼마되지 않은 것 같은데. 어떡하지? 그러고 보니 주변에서 야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뭐랄까 캠핑러 반 채권자 반이랄까. 분위기가 이상했다. 그렇다고 어떤 구경을 마냥 기다릴 수도 없었다. 그럼 철수해? 근데 어디로 철수하냔 거다. 그걸 인공지능한테 물어볼 수도 없고. 어떡하지? 이래서 피로회복을 아예 만들지 않고 추억 만들 시도도 하지 않는 게 나은 건가? 뭐가 좋고 뭐가 나쁘다 말할 수 없다. 남들이 TESLA 모델 Y를 타든지 내가 홀딱 반할 수 밖에 없는 모델 B양을 만나던지. 뭐? 그럼 둘 중에 뭐가 더 낫지? 고르고 자시고 할 게 뭐 있나. 어쨌든 집에서 멀리 도망친 거 같았는데 딱히 즐겁지는 않았다. 그래도 좋았다. 기뻤다. 해방이니까. 자유잖아. 원래 이러다 보면 낯선 여행지의 풋사랑도 그에게 노크하기 마련. 아니면 말고? 어차피 여행이란 돌아가야만 하는 거다. 가 봐야 사진 찍고, 고기 구워먹고, 술 마시고, 구경하고. 도시에서도 노래하고 춤추고. 영화보고 밥먹고 차 마시고. 뭐야, NB가 이런 구식탱탱묵은 노땅이란 말이야? 전형적인 아웃사이더다. 하긴 부정하지 않는 건 좋다. 그걸 놓고 말 많아지면 망하는 거니까. 여자들이 좋아서 미칠 거 같냐 아님 단순히 웃기만 하냐. 같을 순 없잖아? 근데 문제는 웬만큼 웃었으면 그만 웃어야 하는데 한도 끝도 없어? 그러니까 초반에만 뻥뻥 터트리다 마는 거지. 처음만 좋아. 아니면 다변가 그녀한테 다 나가떨어지든가. 원래 사랑의 끝은 아름답기 어려운 건가? 지겹다. 이러니 UFO 동호회가 회식도 하는 거지. 그럼 가게 매출 오르고 동네 상권 돌아가고. 나라 경제도 동력을 얻고? 세계 경제 재미없다. 근데 이 자식은 왜 멈춰있는 거지? 마침 이제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동차는 포르쉐 카브리올레. 무슨 숫자 명칭은 번거롭다. 그 설명 적당하면 좋은데 말이 많다? 여자 뿐만 아니라 웬만한 남자들도 싫어한다. 이래서 사랑을 모르지. 인기가 없어. 오는 여자 막지 않고 가는 여자 잡지 않는다, 가 아니라. 아예 안온다 그거라고. 근데 그 얘기가 왜 나왔지?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라 NB가 공책을 꺼내 뭐라 적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안해본 일들을 적고 있었다. 무전 여행? 아니 아니. 그건 추억의 영화에나 나오는 거고. 도보 여행. 근데 왜 하다 말지? 또 분위기 따져? 진득하니 공부하다가 뭘 또 마시고 싶어진 거군. 근데 편의점까지 가기가 귀찮네? 다시 고개를 팍 숙였다. 그래서 뭘 끄적였나 보니. 슬럼프에 빠져 방황 중인 거포. 재산 탕진한 왕년의 스트라이커. 방탕한 생활로 가난해진 대형 신인. 타락한 중년? 그들의 공통점이 뭔가에 대해 웬 숙녀한테 밑도 끝도 없이 썰을 풀 기회조차 없다는 둥 어쩐다는 둥. 다 쓰잘데기 없는 글 밖에 써지지 않았다. 그런데 뭐야 웬 낯선 아가씨들이 한꺼번에 그에게 접근했다. 
   「아저씨 우리 함께 해요.」
   「도시 같으면 어림 없다는 거 잘 아시죠?」
   「모르시지 않겠지.」
   「그럼 웬만한 클럽에서 저분이 우리한테 말이나 걸 수 있을 거 같니?」
   「아예 들여보내 주지도 않겠지.」
    다함께 웃음. 겁나게 좋아함. 완전 웃김. 
   「아저씨 뒷목 잡는 거 봐 봐.」
   「좀 귀엽다. 근데 아저씨 전여친 몇 명이었어요? 혹시... 모쏠?」
   「웃지 마. 웃지 마. 분위기 이상해지잖아. 근데 진짜?」
   「아 웃지 말라니까 증말. 야 차 봐 봐. 아저씨 저 차 오빠 거에요? 와 멋지다.」
   「말 돌리니까 더 이상해.」
    또 웃음. 비웃는 거야 뭐야.
   「아저씨 집에서 할 일 없죠? 그쵸? 그러니까 우리가 놀아주는 거죠.」
   「아저씨 직업은 뭐에요? 펀드매니저? 아님... 삼류 연애인 로드매니저? 아니면...」
   「(딱~) 건물주. 그런데 2~3층짜리, 수입보다 나가는 게 더 많아. 아님 영화감독?」
   「장르는? 말 말자. 아 이제보니 어째 행색이 가난한 예술가? 그래도 제냐스포츠, 포르쉐, 맥북... 왜 안 어울리지? 우리가 너무 멋진 직업만 들먹였나. 그래도 원래 그렇잖아. 그럼 5년차 수험생을 말하니 아님 빚 많은 육체노동자로 점치니? 아니잖아. 지방러가 더 지방러를 깔보니? 아니야. 매스컴에서 막 서울 어디 대학교가 같은 이니셜 캠퍼스를 비하한다? 오바지. 다 뻥. 그건 한마디로 뭐다? 구분. 그럼 끝. 뭔 말이 더 필요해? 싹 다 필요없어. 직업 뿐만 아니라 무대도 그래. 서울 빼고 다 촌 아냐? 예 아니오 말은 안해도 다 알잖아? 그러면서 뭘 모른 척. 웬 위선? 드라마에서 서울이 무대 아닌 경우 있어? 있으면 뭘 해. 거의 없어. 비싼 차 타면 뭔가 다르다, 좋은 차 몰면 차이가 있다 없다 논하는 자체가 뭐겠니. 달라보이는 걸 누가 부정해. 말은 안해도 말 안하면서 다 안다는 거 아니겠냐고. 교훈, 다자주의, 화합, 겸양, 질서 그런 거만 말해? 졸린다. 수열과 수평 혼동하면 망해. 착한 척과 솔직함이 반대로 되면 썩는단 말야. 공산주의가 왜 실패했는데. 근데 아무리 그래도 이런 아저씨가 의외로...」
   「뭐 의외? 넌 사람을 그런 식으로...! 왜 상태가 안 좋아보여? 아닌데. 애인은 곤란하지만 뭐 아무튼 이런 분들이 알고 보면 고전음악광이야. 딱 최고급 자동차에서 푸치니, 베르디랑 막 아리아를 들어. 옆에 그녀를 태우고. 근데 어디 음습한 구석으로 데려가서 확 돌변해. 바로, 그분이 이분?」
    또 웃음. 비웃는 거야 뭐야.
   「나이트클럽 문지기인데 알고 봤더니 클럽 7개를 보유한 거물. 아님 SF 작가? 미술가? 재력가? 해결사?」
   「근데 왜 말을 안 해요? 아저씨 벙어리에요? 그렇게 능글맞게 웃지만 말구요. 우린 옛날 영화 안 봐서 그 시절 감성 몰라요. 아시겠어요?」
   「보긴 봤잖아. 요즘도 보구. 너 옛 영화 동호회 가입했잖아. 어떤 오빠 꼬실려고.」
   「내가 언제?」
   「그러지 말고 술이나 한잔 하죠. 근데 아저씨는 도시에서 술 한잔 사달라는 동생들도 없어요? 괜찮아요. 우리가 생겼으니까.」
   「그러니까. 우리 아니면 누가 저 외로운 분께 오빠 오빠 불러드리겠니.」
   「아저씨 그만 놀리자. 곧 울 거 같으니까. 그러고 보니 안색이 안좋아졌어. 아님 원래 울상인가? 좀 그러네. 아님 마지막 입새상? 음 뭔가 얼굴에 슬픔이 있어.」
   「그게 아니라 나이가 있다. (몸짓)」
   「그만 놀리자. 그러다 화내시겠다.」
   「근데 넌 화장을 왜 고치니? 누구한테 잘 보일려고? 설마...!」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가 잡아먹진 않을 테니까. 그러다 확 덥쳐?」
   「어머머 넌 못하는 말이 없어.」
    그렇게 약 1시간 경과.
    고기도 잘 구워먹었다. 추억도 쌓을 것 같은 예감을 선물받았다. 꽤 친해진 느낌도 받았다. 근데 그게 다였다. 그녀들은 떠났으니까. 연락처 교환도 없이 말이다. 다만 인스타그램에 시커멓게 나온 사진을 흐릿하게 처리해서 사진만 함께 올리고. 그게 더 기분 나빴나? 더 싫든 덜 상심하든. 이게 무슨 마음의 상처겠나. 뭐 다 늙은 마당에? 말이 심했다. 그래도 잠깐 좋았으니까. 나쁘지 않았어. 젊음의 행진을 할 듯 말 듯 했으니까. 그럼 뭘 해. 왠지 더 울적해지는 걸. 





    2

    나는 근처 호텔로 자리를 옮겼다. 내가 정처없이 떠도는 집시는 아니지만 왠지 뭐랄까 이 유랑자 적 하는 여유를 흠모했다고나 할까? 뭐, 촌스럽다. 억지로 여자 꼬시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그러든 어쩌든 나는 이제 예술가가 아니다. 누가 들으면 오해할 수도 있겠다만 말이 그렇단 거다. 어쨌거나 오늘 나는 여행자. 그걸로 됐다. 안 될 건 뭐 있나. 그런데 나는 미친 듯 사랑하던 그때가 좋긴 좋았지 라는 느낌의 연애시를 쓰러 여기까지 왔나? 아님. 낭만시와 헤어졌으니 그건 아니다. 안 그래도 그녀들의 구애와 추종자들의 광기 띤 러브콜 나에게는 없었다. 그럼 이제 늙음과 친해진 건가? 허나 젊음은 아껴둔 카드. 그럼 뭘 하나. 나는 플레이보이계에서 영구 제명당했는데. 그래도 혹시 누가 날 찾을지도 모르니 나는 호텔 카운터에 물어봤다. 날 찾는 낯선이의 쪽지가 없었냐고. 답은 들으나마나. 마치 날 상태가 꽤 안 좋은 양반으로 쳐다보는 시선. 익숙하다. 그래도 우리는 의심을 버릴 수 없다. 그래서 흘낏 뒤쫓는 미행자가 있나 살폈는데. 있을 턱이 있나. 그러던 어느 날 지인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예전 딱히 친하지는 않았으나 친구와 애인의 중간쯤을 점유하고 싶은 연락책이었는데. 그건 내 생각이고 녀석 입장은 날 바람잡이쯤으로 여긴 걸까? 그래도 이제 와서 찾아준 게 궁금했다. 왜 날 부른 거지? 안 그래도 어딘가 모르게 날 외면하는 듯한 분위기. 꺼지라는 직설어법은 아니겠으나 알아서 떠나라는 듯한 눈짓들. 눈치채지 못할 리도 없었다. 내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아무리 그래도 이 친구들이 내 풍문을 못 들었나보지? 내가 비밀을 한 번 발설하면 그땐, 그땐 어떻게 되는 거지? 근데 그 비밀을 나는 잊어먹었다. 뭘 기억하는 것도 없고 바보가 되어버렸으니까. 헌데 지금 울려퍼지는 사랑의 찬가, 웬 삼류가수의 모창인가 아니면 이상한 편곡인가 뚱딴지 같은 몽상에 찬물을 끼얹었다. 내 이럴 줄 알았다. 비싼 호텔이 아니어서 그랬나? 어쨌든 나는 그곳으로 떠났다. 목적은 소설 공상이자 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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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착했다. 녀석의 별장은 멋졌다. 근처 경관도 훌륭했다. 나는 대런에게 전화했다. 
   「대런 너 어디야?」
   「아 친구. 이거 어떡하지? 나 도시야. 게다가 나 사랑에 빠졌어.」
   「갑자기?」
   「그럼 갑자기지 뭐 한 10년 짝사랑하다 본격적으로 연애를 시작하겠냐?」
   「너 답지 않게 왜 그래?」
   「너야말로 왜 날 은근 띄워줄려 하지?」
   「빈정대지 말고 본론만 말해. 언제 올거야?」
   「안 가. 나 얘랑 당장 살림 차릴 거야.」
   「뭐? 두집 살림 하겠다고?」
   「뭔 소리야? 걔 저번에 정리했어. 나도 다 헷갈린다야.」
   「그래서 뭐 세계여행이라도 떠나겠다는 거냐?」
   「지금 아니면 안 될 거 같아. 이제 깨달았어. 미루다가 인생 끝난다는 걸 말이야.」
   「그러니까 그걸 왜 이제야 깨달았니?」
   「난들 알았나 뭐.」
   「그럼 여기 비밀창고 문이나 열어주든가.」
   「거기 안에 아무것도 없어. 또 문 비밀번호도 까먹었어. 안 그래도 그나마 있던 값나가는 물품 몽땅 도둑맞었어.」
   「그럼 나 혼자 여기서 뭘 해?」
   「뭘 하긴. 너도 나처럼 갑자기 사랑에 빠지면 돼. 왠지 모르게 몸이 풀려야 가능할 거 같다면 뭐 일단 첨 본 허영녀를 꼬셔보던가.」
   「뭐? 말이 심하잖아. 그러든 어쩌든 너의 그녀. 이쁘냐?」
   「아니. 못생겼어. 너 알잖아. 내가 만났던 여자들. 이제 너한테 거짓말 하지 않기로 했다. 왜? 재미없으니까. 그런데 진짜로 그럴까? 뻥이야. 완전 이뻐. 끝장! 알지?」
   「알긴 뭘 알아. 안 속아. 이제 보니 너 늙었구나.」
   「뭐? 그러는 넌 뭐 청춘이냐? 그나저나 늬가 찍어준 종목 있지? 3개다 썩었다. 이러고서도 늬가 내 친구냐? 너 전문가 맞어? 이거 완전 돌팔이 아냐?」
   「뭔 소리야? 내가 언제 너한테 종목을 찍어줘?」
   「아 됐고. 끊자. 남자끼리 뭔 전화통화를 오래하냐. 나중 보자.」
    뚝. 뭐야 이 자식은! 못 보던 사이에 상태가 무척 안 좋아졌는데. 아무튼 여기 괜히 왔잖아? 젠장. 어쩔 수 없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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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대런 집 창고 개구멍을 발견했다. 그곳을 탐험해보고 싶은 충동? 없을 리 없겠지. 큰 불행이 예정돼 있을 것 같지도 않았고. 아울러 당연히 지나치도록 가슴 설레는 모험도 기대 안 했다. 그렇다고 딱 들어가서 괜히 실망도 하지 않을 테고. 또 우연찮은 타임머신을 딱 찾아내서 탑승할 예감은 옛날에 버렸다. 이 마당에 그녀들과 밤새 놀 수를 있나 어디 여행 떠나 마음 편히 쉴 수가 있나. 그럼 밑져야 본전일까? 그러다 귀신을 만날지 모르니까 위험 회피 차원에서 헷지 수단을 마련해도 나쁘지 않을 텐데. 하여 개인방송을 켜놨다. 이제 심심하면 모든 걸 기록해주는 자동 앱, 장비, 알람을 비롯해 파파라치처럼 내 모든 걸 동영상과 사진으로 남겨주는 상품도 구매해뒀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보면 자기는 사진들을 어떻게 저장한다 남들은 어쩌냐 막 그렇게 궁금해들 하는데. 언젠가 그런 고민은 물론 내가 했던 일들은 많은 영역이 외주화될 것이다. 마치 SF 영화처럼. 물론 더 많은 부분들은 그대로일 테고. 뭐 그건 그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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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대런집 창고 안에서 웜홀을 발견했다. 이걸 탐구할까 말까. 고민할 시간에 덥썩 들어가볼까? 근데 그러다 못 돌아오면 어쩌지? 또 갔는데 거긴 사후세계면? 이러다 웜홀이 놀이공원 폐장시간과 동기화되면 어쩌고. 그런데 이게 말이 되나? 친구네 집 창고를 개구멍으로 들어갔는데 딱 그 안에 또 개구멍이 있다? 없으란 법도 없다. 일단 대런한테 묻는 게 먼저였다. 근데 전화를 안받네 녀석이. 아니 근데 여긴 왜 이렇게 춥지? 바깥은 춥지도 덥지도 않은 날씨인데. 뭐야 이건 또. 뭔가 일정 공간에서 잠깐 수평적으로, 다시 잠깐 요동치는 식으로 강력한 중기압 소용돌이 때문에? 근데 그게 양자화학과 핵자기공명에 기반해서 무슨 입자 터널이 이런 창고 안에서 가동됐다 가정해. 뿐만 아니라 중이온가속기가 완전 말도 안되도록 우연히 발생해서 헬륨이온보다 무거운 이온을 빛의 속도 몇 배로 가속해서 웜홀이 나타났다? 말도 안돼.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억측이야. 재미없게 말이야. 그렇다고 저 개구멍을 그냥 지나쳐버려? 그럴 순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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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우리집에 도착했다. 약 30분 산책했을 뿐인데 아니 어떻게? 이제 알았다. 이건 웜홀은 웜홀인데. 내가 도착한 여긴 예전 내가 살던 세상이 아니라 지구 동공세계라는 걸. 왜냐하면 웜홀 안에서는 중력이 무력해지던가 뭔가 특수하게 역학을 만들어냈을 테니까. 그럼 과거 우리집과 여기는 100%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동기화될 테고. 그건 괜찮다만 차이점은 뭐지? 그야 차차 알아가면 그만. 별 차이가 없을 수도 있고. 그나저나 대런 집에 두고 온 내 애마는? 근데 이제 보니 이거 순 개꿈 같잖아? 근데 또 꿈은 아니란 말이지. 뭐지 이거? 뜬금없이 요술이 하필 나한테? 그럴 리는 없잖아. 그렇다고 돈벼락 대신에 개고생을 면해 신나도록 놀게 해주겟다는 귀신의 농간도 아닐 테고. 일단 두고 보는 수 밖에. 





    3

    몽상은 덧없다. 그렇다고 점성술을 이제 와서 독학할까? 환상이 깨지지 않았다면 한번 도전해볼 텐데. 핑계마저 권태와 친해져버렸다. 따라서 타로 카드로 사랑의 점을 치는 일, 나와 어울리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난 깨달았다. 그렇다고 사랑의 종식을 선언하는 일은 아닐 텐데. 이건 아마 젊음을 질투하는 방증일까? 아 잠깐! 아니다. 번뜩이는 착상이 떠오를 뻔 하다 말았다. 매번 이런 식이다. 이래서 낭만도 행복도 신비도 사랑마저 우리를 배신하는 건가? 아니다. 아니어야 한다. 아닐 것이다. 설마 여자들이 원하는 이상을 내가 만족시켜줄 줄 몰라서 이러나? 역시 아니다. 그런데 왜 나는 바보 같은 관념론자가 되어버렸을까. 왜냐하면 나는 뭔가 고백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건 바로 최근 어떤 뉴스인 한 연예인이 유흥업소 실상으로부터 마약 어쩌고저쩌고. 실은 그 당사자는 나니까. 근데 어쩌다 대타로 톱탤런트는 구설수에 오르내린다. 그럼 아니라고 말을 하지. 출국금지 당해야 할 사람은 바로 나인데. 못 나갈 걸 아나 보지? 관심없다. 그야 환상소설과 무관하니 넘어가기로 하고. 어찌 됐든. 고독과 가난과 허무 이제 아무렇지도 않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나는 회심의 도전을 감행했다. 그건 바로 스타벅스 취업. 허나 연락없다. 곧이어 나는 버거킹에도 노크했다. 그럼 뭘 하나. 맥도날드는 고객층마저 어려서 포기한지 오래다. 이 마당에 허쉬 주식마저 날 골탕먹인다. 괴롭히는 순번들이야 끝이 없다. 어쩌란 말인가. 하오나 인생이 망가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론 희망을 노래하는 연기도 하지 않겠다. 현실을 외면할 순 없으니까 말이다. 게다가 뜻밖의 행운을 수배한다고 녀석이 나한테 잡히나? 어림없지. 아마도 야망과 난 부적절한 관계인가 보다. 그야 어떻든 나는 상심과 작별해야 한다. 근데 어떻게? 그게 문제다. 뿐만 아니라 기분도 별로다. 이 마당에 분위기를 어떻게 바꾸지? 못 바꾼다. (절레절레) 
    그러던 어느 날 친구 스콜이 찾아왔다. 커피를 마시며 한다는 얘기가 글쎄,
   「너가 무슨 웜홀을 발견했다며?」
   「그건 어떻게 알았어?」
   「레이다 망에 다 걸리는데 어떻게 모르니.」
   「그럴 리 없는데. 난 아무한테도 말 안했거든.」
   「블로그에 뭐 적다 지웠지?」
   「응.」
   「자세한 건 말할 수 없고. 대체 거기가 어디냐? 믿진 않지만 확인은 필요하니까.」
   「가보게?」
   「응.」
   「너랑 나랑?」
   「아니.」
    그때 친구들이 떼거지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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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럴 줄 알았다.」
   「내가 이래서 개구멍을 신뢰하지 않아.」
   「딴 길이 나온다면 몰라도 왜 하필 시멘트로 막혔냐?」
   「그러게 말이야. 하긴 기대도 안했잖아?」
   「그만 흩어지자.」
    언제 내가 녀석들을 불렀나? 왜 지들이 난리야. 근데 이건 또 언제 막혔지? 뻔하다. 처음부터 재미없었으면 말도 안 해. 그러니까 왜들 찾아와서 말이야. 아주 그냥 인생이 꽉 막힌 꼴이다. 이렇게 된 거 한동안 여기 눌러앉아 말아. 아니다. 그렇게 나는 웬 휴양지 호텔을 물색해서 그곳에 정착했다. 그러나 성과 없이 집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4

   <언제였더라 내가 심하게 능청떨던 적이. 그러니까 뭐라 그랬던가. 아마도 나는 늙지 않았다? 당연히 거짓말이다. 이러니까 어른들도 엄살로 어디서 빠지지 않지. 아니 그럼 나는 어른이 되기 싫다는 말일까? 그러든가 말든가. 게다가 되기 싫다면 안 늙나? 아니지 않나. 심지어 마음만 젊으면 뭐 하나. 물론 말이 그렇단 거다. 그런데 이 얘기를 왜 갑자기 해야 하지? 꼭 중요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다. 다만 한번 생각해봄직 하니까. 즉 애들은 심심하다를 말하거나 드러낸다. 근데 어른은 반대로 바쁜 척한단 말이다. 이래서 어느 헤어드레서가 그랬었나? 여대생조차 3,4학년 넘어가면서부터 눈빛만 봐도 다르다고. 그게 그 얘기였구나. 맞어. 그래서 4학년 졸업반 그녀가 졸업 후 계획을 물으니까 괜히 발끈했던 것이로군! 아하 정말 그래서? 정말로 1학년과 4학년의 그 극명한 대비감을 생각하면 왠지 짠하단 말이야. 안 그럴 수가 있나! 하긴 문화센터에서 나오는 할머니들 헤어질 때 인사말 가운데 하나도 그거다. 나도 바빠! 뭐? 누가 안 바쁘다 트집잡을까 봐 미리 엄포하는 것일까? 또는 약속 없음에 대한 불만? 아무도 날 귀찮게해주지 않는다는 서운함 때문에? 아님 나만 인기 없음에 대한 짜증? 대체 왜지? 응?
    물론 대딩 1학년의 초롱초롱함이 너무 빛나니까 3,4학년만 되어도 환멸 어린 시선일 수 있단 얘기. 그러다 황홀한 사랑에 빠져들면 다시 우리들은 설레기를 바라는 게 인생일까? 왜 아니겠어. 허나 그때만 해도 프리지아 꽃향기 같던 스무살이 불과 몇 년 차이로, 세상사 다 안다는 듯하거나 권태로운 늙은이 마냥 덜 젊음이라니. 결국 툭하면 응석. 투정. 그마저 재미? 삶이 별거 있겠냔 말이지. 말이 그렇단 얘기고.  
    정말로 어른들은 왜 애들처럼 심심함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일까. 평범함보다 특별함이, 가난보다 부유함이 빛나니까 그럴 테지만. 어떻게 보면 탄생과 멀어지고 죽음과 가까와지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남편의 기일을 챙기는 부인의 열의, 나는 시간과 비례하여 줄어드는 그 마음을 얘기하고자 입을 떼었는데. 그러자마자 청자였던 누나도 그랬다. 할 일 없어서 그런다고. 이걸 어떻게 바로잡나. 무슨 드라마 위기의 주부들 내용은 모르겠다만. 할 일 없음을 부정하지 않는 필자 입장에서, 나는 할 일 없음에 알고 보면 극히 예민한 어른들에게 시간에 정비례하는 열의 얘기는 꺼낼 수 없었다. 그러니까 내심 그런 건가? 늙은 것도 서러운데 연가의 주인공도 못해봤지 근데 심지어 할 일까지 없으라고? 아닐 수도 있다만 그래서 때로는 대화할 때 말수부터 조심스러워지기 마련이다. 
    아니 근데 이 얘기가 왜 갑자기 떠올랐지? 그동안 약간 쌓였던 부분도 있겠으나 아마 어제 사촌형을 만났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어젯밤 꿈에 엄마를 만났거든. 부드러운 엄마 배를 만지면 잠들어 포근했는데. 그런데 의식이 깨자마자 숙취가 (절레절레)! 좋다 말았어. 어쨌든 사촌형의 쓰잘데기 없는 다변. 들어주지 않으면 안된다. 이 양반도 자기 잔소리를 끊거나 반론하거나 귀담아 듣지 않으면 싫어하기는 마찬가지. 속도 어른이다 그 말이지. 만약 말 좀 통하는 게 그렇게 어려웁습니까 라고 조곤조곤 반박하면 대번에 삐진다. 그 뒤로 말 안 함. 이상하게 어디서 지령을 받았는지 코메디에서나 재미있는 바로 그, 어? 그건 아닙니다 화법! (절레절레) 미쳐버림. 갑갑. 답답. 말하기 좋아하는 양반 늬가 말 잘 들어줘라 라는 누나의 말처럼. 누구가 내 말 잘 들어준다는 병풍 애호가들. 기억난다, 꽉 막힌 친구의 막말 오빠가 참으라는 제지. 아직도? 그러니까 언제까지! 봉이 괜히 봉이냔 말이야. 그렇다고 말수 없는 어른들이라고 내가 아무 얘기나 해도 되냐. 하면 아니다. 당연히 비위에 맞는 말만 딱 골라서 것도 까다롭게. 하물며 병풍으로 낙인 찍혔으면 말 다 했겠지. 
    어찌 됐든 처음에 능청으로 시작했던 논제는 은근슬쩍 변주를 계속한다. 가만 놔뒀다가는 막 이상한 쪽으로 흘러갈 것 같음. 그러게 어제 좋게 혼자서 햄버거 사먹을 걸 그랬단 말이지. 수제 소고기 패티에 치즈를 녹여서 후라이팬에 잘 구운.. 아니다. 그야 언제든 먹을 수 있으니까. 그럼 능청 적당히 떨자 라고 결론을 내려 말어?>
    ~라는 수필을 어떤 주간지에 게재했는데. 그곳에 차곡차곡 쌓였던 원고료는 결국 하나도 받지 못했다. 왜냐하면 폐간과 더불어 연락책, 담당자, 무슨 부장인가 뭔가 모두 연락이 끊겼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웬 어른들이 날 찾아왔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선생님과 중요한 얘기를 하기 위해서 찾아왔습니다.」
   「저와요?」
   「네.」
   「시답잖은 주제가 아니라 무슨 긴요한 말씀을 나누기 위해서라구요?」
   「네.」
   「그럴 거라면 번짓수를 잘못 찾으신 거 같은데요. 왜 하필 같잖은 저와 수다도 아니고 대담을 하실려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으신다구요?」
   「그럼요.」
   「그래서 설명할 시간이 필요한 거죠. 어때요? 생김새만 딱 봐도 뭔가 분위기 있지 않습니까? 선생께서 무척 흥미로워하실 거라고 내 장담합니다.」
   「저를 잘 아십니까?」
   「글쎄요. 그야 아냐 모르냐로 단답하기 곤란하군요」
   우리는 근처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그들은 무슨 자기들이 웜홀 연구회라고 했다. 한명은 유체이탈을 쭉 설명하드니 누군가 또 어느 저명한 학회에 몸담은 이력을 설명했다. 어떤 교수직 명함과 더불어 논문을 보여주기도 하고, 노트북을 펼쳐 이것저것 정신없이 설명했다. 듣고 보니 처음에는 납득 가지 않았으나 난 결국 설득되고 말았다. 그러니까 결론은 무슨 내가 저번에 웜홀을 경험한 건 영혼과 육체가 분리됐기 때문이라나? 
   「요약하자면 제가 영혼만 먼저 이쪽으로 건너왔을 때 그럼 당신들이 내 육체를 이곳으로 옮겨다 놓으셨다는 겁니까?」
   「믿기 힘드시겠지만 사실인걸요.」
   「그걸 뭘로 증명하시겠소?」
   「재현이라도 할까요?」
   「못할 건 없지만서두. 그건 하지 않는 게 좋겠소.」
   「그럼 형씨한테 최근 발생한 신기한 현상에 대해 우리가 맞춰볼까요?」
   「네?」
   「아마도 우리가 알기로는 선생께서 요즘 무척 가위를 많이 눌리신 걸로 아는데.」
   「그건 어떻게 알았소?」
   「우리가 파이어니어 10호, 파이어니어 11호, 보이저 2호를 해킹해서 선생의 영혼 이동 궤적을 추적했으니 알게 된 거죠.」
   「뭐라구요?」
   「우리는 사실 선생께서 가위눌릴 때 자신이 방의 천장으로 올라가서 누워있는 본인 육체를 보는 걸 예상했다오. 그럼 그 다음 수순은 무엇이겠소. 형씨 같은 인물은 당연히 천장이 없다면 어디까지 가나 보자 라면서 자신을 시험했겠죠. 그렇죠? 그럼 그게 대기권을 벗어나기를 기다렸다가 가까운 행성의 불규칙 위성. 인간들이 외계로 보낸 비행선들. 즉 무인선들 말이오. 카시니-하위헌스호. 갈릴레오호. 뉴 허라이즌호. 스파이어니어 계획 10호 11호. 율리시스. 그 외 대체 몇 개의 무인선들이 지구 밖으로 보내졌는지 아시오 모르시오? 그렇다고 여기서 팔분의자리 델타토성 횡단 소행성, 그리고 낙하형 탐사정인 갈릴레이 탐사정에 대해 모두 설명할 수는 없소. 아무튼 지구인들은 이미 예전에 심우주 공간 탐사에 막대한 성과를 거뒀는데. 우리는 그런 탐사선들이 공군기지에서 보내질 때 이미 당신 같은 인간의 영혼 이탈을 추적할 수 있는 몇몇 장치들을 몰래 그 우주선들에 심어뒀다오. 자, 지금 밖을 봅시다. 어둡죠? 왜 어두울까요? 밤이라서요? 아닙니다. 저번달에는 캘리포니아주 전체를 가릴 만한 우주선이 당신 집 위를 가렸기 때문이고. 오늘은 태양계 바깥에 저 먼 은하계의 초 거대행성의 2중 그림자가 지구와 태양 사이를 가렸기 때문이라오. 아직 무슨 얘기인지 잘 모르시겠지만 차차 알아가기로 하고. 자, 이쯤에서 우리와 좀 가주셔야겠소.」
   「같이 가자구요?」
   「네.」
   「어디로요?」
   「가보시면 알게 됩니다.」
   「이 사람들이 웬 허튼 수작이오. 나는 드라마를 많이 보지 않았소. 그래서 당신네들이 그냥 바보로 보인단 말이오.」
   「왜 무슨 바쁜 일 때문에 망설여지오? 딱히 직업 없잖소.」
   「그럼 내가 바쁘지 않단 말이오?」
   「바쁘시죠. 그럼요. 왜 우리가 모르겠어요. 다 압니다. 허나 현재 조기축구회에서 형씨를 모시기 위해 애쓰나요? 아니죠. 그럼 지금 떼돈이라도 벌고 계십니까? 아마도 쫄쫄 굶지 않으면 다행이겠죠. 그렇다고 친구들과 모임에서 만나 기쁨과 슬픔과 행운에 대해 토론이라도 하기로 했나요? 상상 연애만 하고 계신다는 거 다 압니다. 허나 어른이 되기 싫으면 뭐합니까. 이미 어른인데요. 그럼 이제와서 웜홀 머신을 발명하실려구요? 불가능하잖아요. 아니면 뭐 환상학이라도 창시하실 계획이 있다? 내일 해가 서쪽에서 뜨기를 바랄께요. 안 그래도 사진 찍으신지 오래되셨죠? 삶이 재미없단 증거네요. 인생이 따분하시죠? 불행론에 대해 쓰셔도 많이 쓰실 수 있겠네요. 이런 판국에 저희와 함께 하지 않으실 이유는 또 뭔데요. 자, 앞으로 펼쳐질 흥미로운 모험이 내심 기대되지 않습니까? 마음을 굳혔군요. 허나 이미 늦었습니다. 거 보아하니 큰일 못하실 분이네. 관상도 우리가 찾던 개상이 아니오. 게다가 피부도 갔어. 어?」
   「아니 왜 갑자기 설변의 품위를 놓아버리시는 거요?」
   「왜냐하면 여자친구가 천문대 놀러가자고 하면 갈 거면서 지구는 구하기 싫어하는 성격에. 더더군다나 빈털털이. 그건 좋다 그거에요. 우리 웜홀 동호회에서 최신 노트북 조차 선물하지 못할 형편인 거 같소? 불신 가득한 험담 머신이오 뭐요? 잘못했소 안 했소?」
   「거 사람을 너무 몰아붙힌다고 생각하지 않으시오?」
   「그러든 어쩌든 선생은 우리가 찾던 사람이 아니오.」
   「뭐요? 말 다 했소? 당신들이 뭔데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하시오. 내가 물건이오? 그렇소? 누가 쥐었다 폈다 하면 쥐어졌다 펴칠 줄 아시오? 이 거 사람을 뭘로 보고...!」
   「아니 글쎄 형씨가 어쩌다 이 꼴이 되셨는지 거 참 걱정이군요.」
   「뭐, 뭐요? 안되겠소. 내 북미항공우주사령부에 형씨들 작전을 모조리 신고해버리겠소.」
   「그러지 마시고 좋게 천체 관측 기초부터 숙달하시는 게 어떻소?」
   「뭐가 어쩌고 어째? 내가, 어? 내가 마음만 먹으면 마른 오징어를 쥐어짜서 꽤 큼직한 물컵을 채울 수 있는 사람이오. 알아? 참다 참다 별 뭔 개똥도 아니고 무슨 이런 개뼉따구...」
   「형씨! 말이 심하십니다. 어쨌든 우리 인연은 여기까지인 거 같소. 조만간 A급이 형씨를 찾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소. 거기까지만 아시죠.」
   「그건 또 무슨 속임수요?」
    그들은 떠나버렸다. 정말로 우리 인연은 짧고 이상했다. 괴상했다. 뭐지 이거? 





    5

    어느 날 친구들과 카페에서 떠들던 중 누가 제의했다. 캠핑가자고. 에드워드는 차박이 좋다, 브루스는 아니다 백패킹이 낫다, 그러던 중 스티븐은 그랬다. 뭐라 부르든지 목적지가 더 중요하지 않냐 나는 무인도로 갔으면 좋겠다. 그렇게! 
   「그런데 못 갈 이유 있나?」
   「나 내일 회사 가야하는데.」
   「사표내. 못 간다고 전하란 말이야.」
   「그래. 너 회사에 기력 다 뺐기고 어쩌다 불행까지 겹쳐서 나중 재산 탕진하면 어쩔 거야, 어?」
   「지금 아니면 청춘열차는 떠나. 천국으로 가는 로켓에 탑승하는 데 무슨 고민이 필요하니. 안 그래?」
   「맞어. 혹시 알아? 보물섬이면 좋고 아니어도 영화 찍을 수도 있잖아. 나중 늙어서 형씨는 젊어서 백패킹도 못해보고 뭐했수? ~라고 핀잔 들으면 뭐랄 건데!」
   「나도 반대하지는 않아.」
   「그럼 너가 수륙양용 배자동차를 공수하면 되겠다.」
   「그건 너무 거창하니까 우리가 봐주는 게 어떨까. 조촐하게 카약 4대만 기부받자 쟤한데.」
   「자, 내가 이럴 줄 알고 노트북 챙겨왔잖냐. (웹사이트에 올려진 사진을 보여주면) 여기 어때? 끝내주지?」
   「이 정도면... 굳이 드라마 보면서 대리만족하지 않아도 되잖아.」
   「그런데 말이야 경치는 좋은데. 거기 희망은 있을까?」
   「희, 뭐? 차라리 여자는 있을까 라고 물어보지 그랬니.」
   「그건 너무 속보이잖아.」
   「너 원래 속보이는 놈이야. 우리는 속이 없고.」
   「그러든 어쩌든 지금이 아니면 이제 우리 열정은 바닥난다고 생각한다. 뭘 해도 재미없는 인생만 해도 벌써 얼마인데.」
   「근데 늬들 텐트는 칠 줄 아니?」
   「그거 금방해. 식은 죽 먹기라고.」
   「말이 쉽게 나오는 거 보니 알만하다.」
   「나는 파라솔 빨간 거랑 노란 거 준비할께.」
   「그러지 말고 엑셀 파일 새로 하나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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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광 꽤 괜찮은 무인도에서 캠핑 3일차. 
   「이제 슬슬 지겨워지는데.」
   「너 그럴 줄 알았다.」
   「그러니까 이제 모험 차례다 그거니?」
   「미행이 붙지도 않았고 누가 우릴 추적하지도 않잖아.」
   「그러면 탐험할 동굴이라도 있단 말이야?」
   「저쪽 언덕 너머에 짓다만 카페가 있어. 장사도 했던 거 같아.」
   「정말?」
   「그 사장님 도시에서 이혼하고 여기 와서 얼마나 살았을까?」
   「근데 주량도 약하고 싫증도 금방이니까 아마 다시 도시로 도망갔을 거야.」
    그때 그들 앞에 갑자기 웬 아저씨가 나타났다. 연배는 짐작하기 어려웠다. 카리스마는 걔들과 막상막하였다. 
   「젊은이들 언제 왔소. 여기에 낙원이 있는지 어떻게 알았지?」
   「도시에서 사랑에 낙담하여 떠나왔다고 치죠.」
   「그래서 낭만을 찾았소?」
   「혹시 꿈의 대화를 하시자는 겁니까?」
   「어허 그렇게 막 들어오면 어떻게 하오. 너무 성급하다 생각하지 않소?」
   「그렇다고 환희의 미소를 선생께 엿보일 수 없는 거 아니겠소.」
   「그러고 보니 친구들 가운데 형씨가 나랑 꽤 말이 잘 통하는 걸 보니. 여보시오. 저 친구 상태가 제일 안 좋은 거요? 하하하하하. 농담이오.」
   「농담이 아닌 거 같은데요. 왜냐하면 바보는 바보를 알아보는 법이니까요. 저야말로 진담이 아닌 걸로 하죠. 하하하하하하하.」
   「형씨 가짜 웃음 장난 아니구만 그래.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우리 일행과 합석하는 게 어떻겠소. 내 친구들로 말할 것 같으면 밤을 세워 자랑해도 모자른다오.」
   「정말이요?」
   「정말이겠소?」
   「제가 사람이 그렇게 순진하답니다. 그러니 여자들이 뻑이 갈 수 밖에요. 푸하하하하하하하.」
   「그러든 어쩌든 어차피 신혼여행도 아닐 바에야 뭐 생각하고 자시고 할 필요 있나요. 원래 인생이란 외로운 법. 게다가 스위스 특급 호텔 지겹도록 가봤을 테니. 여기서 우리 함께 사과나무를 심읍시다.」
   「왠지 모르게 이곳에 많은 비밀이 숨겨져 있을 것 같군요.」
   「잘 보았소. 일단 남쪽 해안에 회색 우주선이 난파당해 있고. 저쪽 폐 카페 안에는 관짝이 있거든요? 근데 그 안에 은빛 외계인 시체가 있다오.」
   「결국 그걸 우리한테 보여주시겠단 말씀입니까?」
   「못 보여줄 이유도 없으니까. 왜, 싫소? 남들은 꿈을 찾아 떠나고 황금을 쟁취하기 위해 노력하는 인생을 사는데. 그러면서 또 누군가는 UFO랄지 외계 문명의 흔적을 찾기 위해 사력을 다하지 않소. 근데 가만히 굴러온 호박을 마다할 이유가 있소? 알겠소. 너무 급작스럽다 그거구만. 하지만 원래 행운이 그렇단 말일세. 어쩌겠소. 세상이 그런 걸. 그렇지만 또 아시오? 그 외계인과 조우해서 웬 영감이 번뜩 떠올라 당신들 중 누군가 갑자기 영화감독으로 데뷔할지 말이오. 아니면 이 가운데 갑자기 미래를 예언하는 사람도 생길 걸요. 자, 뭔가 재미난 일이 벌어질 거 같지 않소? 어차피 인생은 한 번 뿐이지 않소. 손해볼 거 같소? 이렇게 벌써 친해진 마당에 벌써 불이익은 우리로부터 도망간 듯 하오. 설마 마음이 내키지 않으면 내일 함께 암벽등반을 해도 괜찮소. 아니면 저 앞 더 작은 무인도를 소개시켜 드리겠소. 그러다 혹시 아오, 우주의 창조 비밀에 대해 귀뜸해줄지 말이오. 아니면 뭐 정력가 인생의 제7 전성기 회복을 바라는 거요? 아 글세 말만 하시라니까요. 자, 그럼 불멸의 우주인을 마주할 준비가 되었소 안되었소? 아직 여자처럼 마음의 준비가 안된 모양이구료.」
   「그런데 선생님은 혹시 전직 공포 장르 극작가셨습니까?」
   「나 말이오? 난 영화배우였다오.」
   「근데 얼굴이 왜 그래요?」
   「하하하하하. 형씨 대담하게 웃길 줄 알군요. 내 마음에 들었소. 내가 무려 15일 동안 잠을 자지 못해서 그렇다오. 그렇지만 내 기력이 회복된다면 아마 깜짝 놀랄 걸요. 그렇다고 지금 여기서 내 3번의 결혼생활을 모두 얘기해드릴 수는 없고. 일단 자리를 옮겨 내 친구들을 소개시켜드리겠소. 한 친구는 관상가, 다른 한 명은 작명가요, 마지막은 풍수가랍니다. 하하하하하. 물론 말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형씨들도 결코 밀리지 않는다는 걸 내 다 간파했다오. 그렇게 타인의 속마음 추측하기만 좋아할 게 아니라 대놓고 늙은이의 마음을 떠보는 건 어떻소. 외계인을 어떻게 만났는지 막대한 재산을 어떻게 모았는지를 말이오. 왜, 내 평판이 속세에서 더러울 거 같소?」
   「그런데 형씨 입담은 정말 청찬유수군요. 기가 막혀요. 젊어서 여자 깨나 울렸겠소. 아님 아직도 쟁쟁한 현역이십니까? 장난 아니군요 글쎄. 자, 그럼 즐거운 만남을 이어가 볼까요? 어쨌든 외계인의 부활을 보고 후회할지 아니면 끔찍한 초능력이 생겨 열광하지. 아무튼 두고 봐야 알 거 아니오. 그렇다고 인적 많은 캠핑장에서 사람들이 속속 모여들기를 바랄 거 같지 않으니. 우리의 만남은 정말 기막힌 인연 같소이다.」
   「왜 아니겠소.」
    그렇게 그들은 폐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NB, 브루스, 에드워드, 스티븐. 그리고 만담가, 관상가, 풍수가, 점쟁이. 그렇게 여러명이 모이게 됐다. 
   「자, 우리 오늘의 기적에 대한 목도 사실을 무덤까지 가지고 갈까요? 그런 의미에서 축배를 드는 게 어떻겠소. 아 농담이요 농담.」
   「그렇게 미심쩍은 눈빛으로 떨지 않아도 괜찮다오. 어차피 청초한 애정을 찾으러 오지도 않았으니 우리끼리 불편해 할 이유가 없단 얘기오.」
   「혹시, 외계인의 DNA에 뜻모를 저주가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니겠죠?」
   「젊은이 영화를 너무 많이 봤구만. 허허허허허. 걱정 마시오.」
   「우리가 형님들을 전적으로 믿지 않는다는 것도 아시죠?」
   「그럼요. 평생 속고만 사시지 않으셨을 테니. 사람 좋은 당신들은 저주받지 않을 테니 안심하시라니까요. 아니면 미녀들을 부를까요? 하지만 첫눈에 반할 아름다움에 매혹되는 건 도시에서도 충분하오. 여기까지 와서 뿅갈 일 있소? 아니란 말이오. 허지만 어디 가서 외계인을 만날 것 같소?」
   「근데 외계인이 있긴 있는 겁니까?」
   「저 건너편에 거대한 UFO가 있다고 아까 얘기 했소, 안 했소? 모르긴 몰라도 아마 내내 오늘 본 외계인에 매혹된 추억으로 남은 여생은 결코 심심하지 않을 거요. 내 장담하겠소. 왜 내가 미친 것 같소? 난 미치지 않았소. 완전 정상이니까. 아 이제 알겠소. 그러니까 아제들이 보기에는 내 말이 뭐 인스턴트 라면의 뿔은 면발 같다 그거요? 그건 중요하지 않소. 아니 근데 이게 무슨 소리지? 누구 이상한 소리 들은 사람 없소? 내가 좀 예민한가 보구료. 신경쓰지 마시오. 아, 어디까지 얘기했더라? 도시를 떠나 공기 좋은 곳에 왔더니 통 피곤하지 않길래 한 이주일 잠을 자지 않았더니 그런가 보오. 괜찮소. 안 그래도 꽃 피는 봄이 저 앞인데 좋은 사람들을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니 기분이 좋구료. 허허허허허. 자, 그럼 황홀한 판타지를 시작해볼까요? 아직이오. 원래 본경기는 늦게 시작하지 않소. 섣불리 축포를 터트릴 수야 없지 않소. 앗! 저건 뭐지? 저기 저 빛나는 눈빛 여지없이 여우군요. 맞죠? 내 이럴 줄 알았어. 녀석들은 귀신처럼 알아본다니까 글쎄. 그럼 이 근처에 사슴을 비롯해 몇몇 구경하기 어려운 동물들도 모여들었을 텐데. 여긴 동물원이 아니고 우린 서커스단도 아닌데 재밌군요. 허허허허허. 그나저나 도시를 떠나니까 여심을 신경써야 하나 주식 차트를 쳐다봐야 하나. 좋지 않소? 젊은이들은 PC방에서 게임 하면서 막 이거저거 주서먹는 게 천국일 텐데. 우리한테 사는 낙이 뭐겠소. 노래 부르고 춤 추고 마시고 떠들고. (절레절레) 이제 더 못 놀겠소. 정말루요? 말이 그렇단 거죠. 허허허허허. 그렇다고 이제 와서 그림 그리기를 배우겠소 아니면 행복론을 작성하겠소. 아무튼 옛날 탈퇴한 UFO 동호회에 관한 일화를 얘기하면 정말 깜짝놀라실 텐데. 말, 할까요? 근데 그 얘기는 진짜로 섣불리 발설하면 안된다는 것만 아시오. 난 챙길 여자의 마음도 많고 탐구할 과제도 산더미라오. 그런데 식겁할 위험을 감수하고서 그 얘기를? 그건 차차 생각하기로 하고. 이렇게 별이 빛나는 밤은 캠프파이어와 더불어 그녀들과 신나게 놀아야 제격인데. 젊음의 행진을 고집할 수도 없고 아쉽기만 하군요. 그래도 어떻게 생목으로 누가 연가를 불러보시겠수? 하겠다면 말리지 않겠소. 왜 여자가 없어서 흥이 나지 않소? 아 그러게 내가 아까 부른다 하지 않았소. 그러니까 말리지 말아야지. 허허허허허. 그럼 사랑의 노래 대신에 누가 애달픈 연애 이야기라도 하실 용의 있소? 없는 걸로 하고. 그래도 떨리는 예감을 진정시키며 놀라운 직감을 발전시킨 형씨들은 아마 예측하셨을 걸로 아오. 바로 내가 왜 이렇게 뜸을 들이는지 말이오. 근데 어쩌다보니 본인도 그걸 까먹었으니 애석할 따름. 왜지? 아니 왜! 그러게 말이오. 누구 아시는 분 계시오? 없소? 정말 없소? 있다면 서슴없이 말해주시오. 네? 날 좀 도와달란 말이오. 바람 불어 기분도 좋고 내 님도 언젠가 올 것만 같고. 외계인을 확인한 다음 곧이어 드라마에서나 봤던 커다란 UFO에 탑승하리라는 예감. 엉덩이가 근질근질 가슴은 벌렁벌렁 영혼이 날 떠나버릴 것처럼 들썩들썩하군요. 이걸 어쩐담? 어쩌긴 뭘 어째. 서곡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게임을 끝낼 수는 없는 법. 캬 정말 휴양지 최고급 호텔로 떠나지 않은 게 다행이오. 그랬으면 처음 만난 그녀들한테 시달릴 거 하며 밤새 잠을 재우지도 않을 텐데. (절레절레)! 그러니까 에로영화에서나 봤던 기진맥진한 정력 탈진? 생각만 해도 다리가 후들거리는 군요. 허허허허허. 농담이오. 혹시 집중력 떨어질까 봐 농이 심했으니 이해하시구료. 그래도 혹시 비너스의 윙크와 아르테미스의 팔짱이 아쉬운 분은 얘기하시구료.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몸짓). 그야 연애는 끊이지 않으니까 말이오. 식음을 전폐할지언정 사랑을 마다한다? 그래서는 안되죠. 그녀들을 외롭게 해서야 쓰나. 어찌 됐든 축제의 초입부는 희롱의 의미가 아니니만큼 오해하지 말기 바라오. 아니 근데 저기 형씨 졸리오? 어허. 체력이 약하시구만. 아니 벌써? 그녀가 실망하겠어. 상심이 크겠단 말이야. 아 글쎄 입장 바꿔 여자 마음 어떻겠냔 말이오. 안색을 보아하니 음, 내게 조용히 얘기해보오. 내가 코치하면 당신은 밤의 제왕으로 거듭날 수 있으니 말이오.」
    그렇게 NB와 친구들은 그냥반의 입담을 듣다듣다 지쳐 쓰러졌다. 누구는 텐트에서 잤고, 누군 의자에서 또 그냥 땅바닥에서. 그렇게 다음 날이 되었는데. 
   「아침이다.」
   「낮이야.」
   「어떻게 된 거지?」
   「뭐 없어진 거 없니?」
   「없어진 게 아니라 늘었어.」
   「뭐가 늘어?」
   「돈이.」
   「적선이야?」
   「나중 만나게 되면 물어봐야지」
   「언제 만나? 어떻게?」
   「글쎄.」
   「저건 또 뭐야?」
   (뱃고동)
    뭐야 저기 군함이 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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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담가, 관상가, 풍수가, 점쟁이. 그 4인방이 해경에 신고한 것이다. 사안이 중대하니 결국 군함이 오게 된 거고. 인적 없는 무인도에서 코카인을 키운다나 뭐래나. 어쨌든 공권력자들과 잘 얘기가 되어 그분들은 돌아갔다. NB와 친구들도 도대체 외계인이 어딨나 기웃거려 봤는데. 뭐야, 저기 폐 카페 안에 있는 관짝은 뭐지? 근데 재미난 게 누구 하나 그걸 열어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냥 도시로 돌아가기로 했다. 





    6

    누구에게 선물을 줄까. 미소로 환대받을 기대는 접은지 오래. 그럼 아무도 살지 않는 산속에 사나 도시에 사나 마찬가지잖아? 정말로 다를 바 없다. 그럼 연애하거나 직장에 얽매인 상황도 아닌데 굳이 회색도시를 고집할 필요 있나? 또 떠날 구실에 목마를 방랑자인 것만 같다. 하오나 안될 것도 없지 않나. 이쯤에서 어떤 미녀한테 첫눈에 반한다는 것도 말이 안되고. 뿐만 아니라 푸른 꿈을 꾼다? 뭘 해도 재미없단 투정도 입 밖에 꺼내는 게 아닌 듯. 가만 보니 현대인들이 옛날에는 소음도 무뎠고 고난도 잘 버텼는데. 그래서 일부러 고생하기 위해서 캠핑을 떠날까? 도시를 못 벋어나도 다른 방편이야 많은데. 근데 누가 내게 넌지시 어떤 탐험을 제의하지 않느다는 점. 하긴 당연하긴 한데. 그렇다고 발가벗고 미친놈처럼 거리를 뛰어다닐 수도 없고. 푹신한 소파를 바꾸자니 귀찮으며. 어떤이의 변태적인 취향을 비평할 의욕도 없는 데다. 이처럼 언제까지 권태와 다퉈야 하지? 극장에 가볼까 아니면 오페라하우스 근처에서 뮤직비디오 주인공처럼 거닐어볼까. 아니 근데 분홍빛 도시의 심연에 관한 철학을 책으로 써볼 궁리를 왜 해야 하지? 이러다 혹시 빨리 늙어버리면 어떡하나 라는 겁. 그 엉뚱한 공포심은 여지없이 나를 휴양지 호텔까지 옮겨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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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곳의 정경을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다. 사석에서 말하기로 기가 막히다는 둥 어쩐다는 둥. 간략해 말해 왜 진작 바람과 바다와 여행자들이 많은 이곳에 오지 않았을까 의아할 따름. 그러다가 내가 젊은 백패킹족들과 어떻게 만나게 됐냐? 별다른 우연이 아니라 그냥 드라마에서 보듯 얼렁뚱땅 만나게 됐음. 자, 그렇게 만나게 됐다 치고. 
   「해안 산책로를 걷던 아저씨를 보며 생각했습니다. 저분 혹시 실연당하고 홀로 여행중이시지 않을까? 기분은 침울해보이고, 분위기는 패배자 같으며, 왠지 모르게 타락한 과거를 회상하는 듯 하단 말야.」
   「허허허. 자네는 시인인가?」
   「제가요?」
   「뭘요. 얘는 그저 방탕한 한량일 뿐이에요.」
   「그런데 선생님은 저 특급호텔의 최고급 객실을 놔두고서 왜 여기 맨땅에 원터치 텐트를 설치하셨죠?」
   「나의 재산내역을 대번에 꿰뚫어보다니. 자넨 어떤 인생을 살아왔을지 굳이 궁금해하진 않겠네. 우리 모두 남자지 않나. 허허허.」
   「그나저나 이국적인 정취에 얕은 수심. 따듯한 수온. 간지러운 바람. 해수욕장에서 수영하는 건 어때요? 하지 말죠. 낮에 많이 했어요.」
   「젊은이들 너무 놀아서 피곤한가 보군. 그럼 자네들 사정을 내 한번 맞춰볼까? 음, 뭐랄까 여자도 지겹지? 놀러와서 처음엔 재밌었는데 이상하게 도시에서 능청떨던 때랑 똑같아진 거 같지? 각자 다 핸드폰만 쳐다볼 꺼면 왜 뭉쳤나 속으로만 생각했을 테고. 누군가 풍력발전기에 올라가보자고 제의했는데 반응 별로였고. 나이트클럽 갔다가 실망해서 여기서 나를 만났을 테고. 그럼 매력적인 추억을 어떻게 만들까 고민해볼 감성은 내키지 않고. 그렇다고 뜬금없이 새로운 모험을? 게임 뿐만 아니라 영화도 요약해서 보는데. 사서 고생을 왜 해. 허나 멋스러운 해변에서 파도소리에 가슴은 울렁거리는데. 파라솔 밑에서 촌스럽게 통기타 치면서 노래를 불러? 아니지. 빨간 목마등대에도 가봤겠다 서퍼 해봤다가 바닷물만 왕창 먹었겠다 승마로 전환했는데 괜히 애마부인 생각이 나네? 더 촌스러워짐. 그러다 살면서 한 세 번 볼까 말까한 울긋불긋 노을을 보며 수상한 제7의 호객꾼을 상상했을 텐데. 그게 바로 난가? 아니라면 서운할 일도 아닐 텐데. 그렇다고 우리 인연이 그저 그렇게 영화처럼 오다 가다 옷깃만 스쳤을 뿐인 걸로 착각하진 말세. 왜냐하면 오늘 밤 외계인을 만날지 알라스카만한 UFO 불시착지를 구경하게 될지 예측할 수는 없으니까. 어딘가 모르게 흔하디 흔한 외모의 소유자였던 이 아저씨의 얼굴을 다시 보게 되나? 난 외국인도 아니고 혼혈도 아닌데. 이 냥반 대체 우리를 무지개빛 꿈의 세계로 안내할 영도자라도 되나 뭔 자신감이야 어떤 심보야 막 그러면서 궁금해지나? 약간 과장해서 그럴 수도 있는데. 그런데 하나 힌트를 숨기지 않자면 요 앞 해안도로를 따라가다가 샛길로 빠지면 뭐가 나온긴 나와. 여행객들은 몰라. 내지인도 아는 사람이 없는데? 허나 나는 알지. 그런데 왜 카약을 타겠나 뭐 하러 인근 도심지로 술 마시러 가겠나. 아, 맞다. 자네들 목마르겠군. 내 차 트렁크에서 짐 좀 가져다 주겠나? 가서 보면 조니워커 블루. 평생 1번 마셔볼까 말까한 이름 모를 와인. 캐비어. 특급 치즈. 뭐든 있어. 다 가져가게. 아, 코카콜라 1.5와 펩시 2배 농축음료도 있다네. 이참에 한정판으로 대주주들한테만 은밀히 전달한 뭐더라 일라이 릴리의 환상음료. 그거도 있어. 다만 발설은 금물. 거만 지키면 돼. 자네들 다 마셔. 근데 안타깝게 난 생각이 없어. 자네들 먹는 거만 봐도 기분이 좋거든. 이렇게 잔치 중에 내 깜짝 선언을 할 수도 있어. 혹시 아나 내가 까무러칠 만한 숙녀들을 소개시켜줄지? 사람일은 모르는 거야.
    그러고 보니 깜빡 잊을 뻔 했는데 말이야. 외계 생명체를 보더라도 놀라지 말게. 녀석이 살아있든 그렇지 않든. 더군다나 한번 그 눈빛을 보게 된 사람은 정신이 조금 이상해지는 게 문제야. 당연히 그 비밀을 발설하면 어떻게 된다는 건 드라마에서 많이 봤을 텐데. 현실에서도? 정말로 그걸 말하지 않고는 못 베기더군. 왜? 제정신을 벗어나니까 그렇겠지. 아니 왜 내 얘기가 말도 안되나? 그러겠지. 안 그러면 이상한 거니까. 그래도 딴 노인네보단 어딘가 마음에 맞지 않나? 맨정신보다 오히려 이게 낫지 않을까? 다행인지 불행인지 일단 여기 펼쳐진 음식만 해도 나쁘지는 않잖아. 자, 이제 서풍은 멈추고 남서풍이 시작해서 비가 올 듯 말 듯 신비로움을 고조시키게 될 텐데. 음 풍향이 바꼈군. 이럴 줄 알았어. 마침 저 앞에 파랑새가 나타났군. 봐 봐 진짜잖아. 다만 사진은 찍지 말게. 앞으로 또 보게 될 테니까 말이야. 나는 저 새들이 부러워. 허나 우리는 인간인데 어쩌겠나. 그러니 아무때나 여자를 꼬시겠단 얘기는 아닐세. 그렇다고 그녀들의 유혹을 야단쳐야 하냐 것도 아냐. 그래도 우리가 적어도 지금은 세상을 재밌게 살고 있는 거 같지 않나? 어떻게 아직도 출출하면 배달음식이라도 시킬까? 아무때나 말하시게. 문제될 게 뭐겠나. 이런 기회에 우리 사진도 같이 찍세. 또 어플로 그림 그리고 싶으면 그려. 그런데 신비라는 토끼와 낭만이라 불리는 사슴은 남자들끼리 있으니 논하지 않는 게 좋을까? 어허 여자 얘기 하지 말라니까 글쎄. 아 내가 했나? 안 취했는데 왜 이러지. 그냥 취한 척한 거야. 왜냐, 나는 살면서 단 한 번도 취해본 적이 없거든. 그나저나 젊은이들 가운데 저 친구. 내일모레 출근할 생각하나? 잊어버려. 그건 그때 가서. 아니면 때려쳐. 어? 내가 책임질 거냐고? 말이 그렇다 거 아냐. 응? 그래도 갑자기 내 예언 하나 하지. 낼모레 새로운 여자가 자네한테 꽃 들고 찾아갈 걸세. 두고 봐. 첫눈에 반할 테니까. 아주 그냥 홀딱 반할 거라고. 솔직히 말해 환장할 걸? 왜 상상만 해도 즐겁나? 봐 봐 입이 귀에 걸렸군. 이렇게 웃음을 참지 못하는 걸 보니 정말로 우리가 UFO를 보게 될 징조인가 보군. 징조? 정말로 풍랑과 파도가 거칠어졌는데? 이거 황금 같은 휴가에다 공짜 점보기라. 썩 안 어울리는 건 아냐. 그러지 말란 법도 없고. 
    그나저나 우리가 잠시 후 외계인과 독대할 시간이 가까와 오는데. 내가 예전에 마술사로 활약하던 시절 얘기를 해볼까? 그때 난 주술사도 겸했는데 말이야. 그런데 어쩐지 그 얘기는 지금과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그래 아껴두기로 하지. 그나저나 이제 운명의 서막이 가까와오는데 자네들은 흥분되나 몰라도 난 아니야. 난 걔네들과 이미 친해졌으니까 말이야. 어떡하다 그렇게 됐을까? 그걸 모두 얘기하자면 1,000부작 드라마로도 부족할 텐데. 그래도 자네들 설마 무섭지는 않지? 이 세상에 귀신이 어딨나. 걱정 마. 외계인이 자네들을 잡아먹진 않을 테니까. 그런데 우리가 오늘 못 만났으면 어땠을까? 차라리 만나지 말 걸 그랬나! 그야 두고보면 알겠지. 왜겠나, 공포 체험한다고 친구들끼리 공동묘지로 가는 거보다 외계인과 조우하러 가는 게 낫지 않겠어? 그렇다고 오늘 기억이 나중 통채로 없어질 거라고 생각하지 말게. 드라마랑 현실은 같기도 하지만 다르기도 하니까 말이야. 아니 근데 내가 말이 너무 많은가? 하긴 적진 않지. 허허허. 어쩌겠어. 가는 세월 붙잡을 수가 없는데. 하긴 늙는 게 아무렇지 않다가도 때로는 조금쯤 끔찍하긴 해. 어쩔 수 없어. 그래도 내일은 기대 돼. 사랑은 또 오니까? 내가 오지 말란다고 걔가 내 말을 듣나? 이러니까 여자들이 뻑이 가지. 뭐? 넘어가자구. 그러고 보니 자네들 가운데 실연당한 친구가 있군. 그냥 평범한 이별인가? 상사병은 상사병으로 치유하란 말은 하지 않겠네. 더더군다나 그게 어디 마음대로 되나? 남 얘기라고 속 편한 소리 쉽게 하는 게 아니야. 좌우지간 이렇게 정신없이 떠들다보니 앞날이 보이는군. 미스터리 오컬트 장르는 아니지만. 또 완전히 그렇지 않다고도 할 수 없어.」
    다음 장면은 생략한다. 보나마나 녀석들은 모두 잠들어버렸고. 나는 걔네들 지갑에 두툼히 용돈을 챙겨두고 떠났으니까. 원래 이걸 시도하다 실패해서 망해야 꽁트가 완성되지만. 내 인생은 미완성 코메디일까? 그러든 말든 내일은 뭔가 흥미로움과 아름다움과 신나는 기쁨이 아예 없지 않기를 바래본다. 





    7

    어느 날 내 자동차 조수석에서 웬 비키니가 발견됐더라? 그럴 일은 없다. 내 애마에 다른 사람을 일절 태운 적이 없거든. 잡념이 많아진 걸 보니 색다른 취미를 고민해야 하나 마는 게 좋을까. 빵구난 우산 같은 헛생각 정말 끊이질 않는구나. 하긴 발바닥을 간지럽힐 애인이 있나 정신없이 바쁘기를 하나. 자원봉사도 혼자 하면 재미없겠지. 역시나 전망 좋은 별장은 언제나 날 부르는구나. 그래도 그녀들이 귀찮게 하지 않는 게 어디야. 그래도 최근 내내 심심하다가 재미난 드라마를 한 편 봐서 다행히긴 한데. 반짝반짝 크리스마스는 지났고 해수욕장 개장은 멀고. 그렇다고 이 나이에 친구한테 오리배 타러가자고 조른다? 말이 안된다. 원래 도시의 남자는 고독한 법. 더불어 현대인도 외로운 것. 원래 사람은 혼자. 하여 허탈을 무심코 식탐과 바꾸기도 곤란함. 진짜 뭐 재미난 일 없을까? 있을 턱이 있나. 그러다 그는 웬 캠핑장에 들렀다. 그리고 거기서 솔캠족들과 친해졌다. 자, 이제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차차 알아보는 걸로. 그러다 정말로 외계인을 만날지 아니면 UFO 잔소리만 듣다 퍼질지. 그야 두고보면 알것이다. 
   「혼자 오셨어요?」
   「내가 혼자 왔나?」
   「혼잣말을 자연스럽게 구사하시는 걸 보니 넉살이 저보다 위시군요.」
   「내가 그랬나? 그러든 어쩌든 난 수컷인데 암컷이 없어 괜히 미안해지는군요.」
   「원 별말씀을. 몇 마디 뿐이지만 너무 빙빙 돌지도 말고 곧장 용건을 알려주지 말라는 느낌을 받는군요. 맞나요?」
   「글쎄요. 그 느낌이 내 소관은 아니라 난 채점할 수 없소. 그대도 순종적인 애마를 찾는 게 목적은 아닌 듯 한 것처럼 나 또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풍향에 개의치 않는다오.」
   「그게 무슨 뜻이죠?」
   「내 상태가 썩 좋지 않다쯤 아닐까요?」
   「웬걸요. 어쨌든 저쪽에서 솔캠족들 가벼운 파티가 있으니 들려주시면 어떨까 해서요. 싫으시면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시면 그만이구요. 저도 저분들 오늘 처음 보는 거지만 지들끼리만 놀고들 난리야. ~라는 핀잔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지 말란 법도 없으니까요. 제가 너무 인생에 달관한 괴짜 같은 모습으로 놀래켜드렸으면 사죄드립니다.」
   「사죄는 무슨. 그 축제에 내가 불현듯 껴들어도 괜찮겠소? 난 그게 걱정이라오.」
   「함께 하시면 좋죠. 상상력이 남다르실 것 같고. 그녀들이 봤을 때 뭔가 분위기 있는 듯 하며. 남자들이 판단했을 때 뭐랄까 값싼 말로 쩐주? 농담입니다. 제가 이렇답니다.」
   「괜찮소. 나도 그런 농담 좋아하요. 진짜는 아니지만 말이오. 그럼 우리 함께 보 재촉하는 시간을 붙잡아볼까요?」
    NB와 낯선 청년은 자리를 옮겨 그곳에 놀러온 솔캠족들은 함께 오붓한 시간을 보내게 됐다.
   「이 고귀한 순간을 어떻게 보내면 좋을까요?」
   「소중한 추억을 만들면 되겠죠.」
   「우연한 인연이니까 너무 막연해지지 말았으면 해요.」
   「저도 평범한 거 좋아해요.」
   「난 왠지 적응하기 어려운데 내가 너무 솔직한 거오?」
   「아닙니다 선생님. 적절한 말씀이세요. 하오나 여기 모인 사람 다 그럴 걸요? 안 그래도 오늘 여기서 솔캠족이란 말 생소하지 않은 사람 하나도 없을 테니까요.」
   「그런가요? 그럼 다행이군요. 솔캠족. 허허허. 하긴 우리가 미래파라는 모임으로 나중에도 뭉치는 걸 주장하긴 뭐 하죠. 처음 만나서 헤어질 때 서운하다면 으쌰으쌰 연락처 주고 받는 일. 거북해도 억지로 하지 않겠죠 아마?」
   「그럼요. 자, 그럼 이제 수컷을 사냥하러 갈까요? 아, 죄송합니다. 여기 지금 여자가 너무 많으니까요.」
   「그렇게 말씀하시는 형씨는, 죄송합니다.」
   「지금 웃어야 합니까?」
   「그럼 화내실 겁니까?」
   「자, 어색함은 이쯤에서 해소하고 이제 본격적으로 UFO를 탐험하러 갈까요?」
   「방금 뭐라 하셨오? 저만 아직 모르는 뭔가가 있는 듯 한데. 굳이 알지 않아도 괜찮을까요?」
   「오히려 그게 더 낫지 않을까요?」
   「여러분 시간이 됐습니다.」
   「벌써요?」
    그렇게 솔캠족들은 웬 탐험을 시작했다. 근데 모두들 너무 빨리 가버렸다. 그래서 NB 혼자 남았는데.
   「형님. 여기서 뭐하세요?」
   「미처 저분들을 따라잡지 못했는데. 나만 뒤쳐졌어요.」
   「그럼 그냥 우리끼리 술 마시러 2차 갈까요? 저희 집 어떠세요!」
   「그럴...까」
    그렇게 그는 오늘 처음 본 솔캠족 형씨와 그의 집으로 갔는데. 
   「안되겠어요. 전 쟤들 따라가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아요. 이 시간이 지나면 후회할 테니까요.」
    그러면서 그 분이 가버리니 NB 혼자 남게 되었다.
   「뭐야 이거! 일부러 날 배려해서 은근히 남겨준 건가? 왜냐하면 중간에 어떤 이유로 뒤쳐지면 분위기 쎄할 테니까? 그러든가 말든가.」





    8

    나는 꿩 놓친 매 신세일까? 그럼 어떻고 아니면 뭐 하나. 그러든 어쩌든 이제 나는 자유다. 그럼 언젠 자유롭지 않았나? 왜 이렇게 퉁명스러워졌지? 진정하자. 아님 뭘 먹든가. 그도 아니면 뭘로 기분 전환을 하지? 일단 정답은 연애를 하면 된다. 허나 그건 좀 미루자. 늦어도 좋으니까. 무작정 자기 합리화한테 져주지 뭐. 그럼 인생 대전환의 의미로 이번에 사진작가로 데뷔할까? 말이 되는 소리 좀 하자. 물론 안될 거도 없다만 이제 빈말 남발하기에는 인생이 짧고, 적성에 딱 맞는 분야를 지금 찾아 뭐 하나. 어쩌다 뻔트가 좋아져버렸는데. 말이 그렇다만. 점잖게 한분야에 정진하는 분들 도움 못되는 소리 일부러 하는 건 아니다. 그런데 뭐랄까 시간은 야속하다고나 할까? 벌써 시인이 다 되어버렸군. 만약 그게 아니라면 여지없이 늙은 거지. (절레절레) 아무리 그래도 기계적인 몽상을 이 푸른 여행지에 와서도 하다니. 속 없다. 그러니 철도 없지. 그런데 어떻게 반짝반짝 행운의 그녀와 뽀뽀를 하겠나. 소설을 읽으며 추리를 시도할까 드라마에 빠져 모험을 대리만족할까. 다 별로다. 우선 내 인생이 시시하니까. 하지만 나라고 다정한 추억과 친애하는 사랑을 마다하는 건 아냐. 그럼 뭘 해. 죄다 말 뿐인데. 이래서는 한도 끝도 없겠다. 
    그래서 나는 일단 숙소 근처 미용실에 들렸다. 꼭 그런 건 아닌데 야한 생각 때문에 머리카락이 금새 자란건가. 아니다. 아마도 난 갱년기일 테니까. 일단 몽정기가 아닌 건 분명하니까 말이다. 그럼 이제 투덜이에서 행동가로 변신한 거다. 자, 중간 설명 건너뛰고 미용실에 어느새 방문했다. 여기서 그녀의 고혹적인 낭만에 유혹당할지 아니면 사랑의 포로가 되어 어떤 숙녀를 나도 모르게 꼬셔버릴지. 그건 오늘의 운세에 맡기기로 하고. 
   「오빠 혹시 누구 찾으시는 헤어드레서 있으세요?」
   「오빠...요?」
   「아빠...는 아니잖아요.」
   「허허허. 보시다시피 전 지금 농담을 받아드릴 준비가 안된 사람이네요.」
   「그럼 어때요. 이미 오빠인데요. 기분 나쁘시지 않죠? 제가 사람을 좀 볼 줄 알죠. 아니면 아니라고 하세요, 네?」
   「아, 나의 사랑!」
   「네?」
   「아닙니다.」
   「싱거운 사람.」
   「네?」
   「저도 아니에요. 근데 벌써 변심한 건 아니시죠?」
   「무슨...」
   「저로 낙점하신 거 같아서요. 자, 다른 헤어드레서 찾을 필요없죠? 이럴 줄 알았다니까. 자, 악수 한번 하죠. 아니 이건 남자의 방식인데. 오빠가 제 손금을 봐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이거도 언제적 멜로드라마야 참. 근데 왜 오빠는 말이 없어요?」
   「여긴 미용실이니까요. 난 해설자가 아니잖아요. 그렇지만 미녀와 함께 하니 썩 싫지만은 않군요.」
   「어머머. 은근 절 띄워주시는군요. 어쩜 잠깐이나마 아르테미스가 된 기분이군요. 근데 왜 저한테 잘 보이시려는 거죠? 대답하지 마세요. 아니 근데 제 얼굴보다 제 포니테일을 더 힐끗거리시는군요. 그래도 되요. 안되란 법 없잖아요. 어쨌든 저한테 컷트를 하신 다음 오늘 탐방객으로 남으실 건가요 아님 낚시꾼이 되실 건가요? 제발 난봉꾼만 아니시기를.」
   「네?」
   「아무말도 아니에요. 가만 보니... 아저씨 친구 없죠?」
   「갑자기 오빠에서 아저씨로 바꼈군요. 그러게 처음부터 너무 잘나간다 했다. 괜찮아요.」
   「오빠 삐졌어요?」
   「찾으시는 헤어드레서 있나 물었죠? 있어요. 여기서 최고 말단 불러주세요. 글쎄 뭐랄까 업계 전문용어 있죠? 아직 데뷔 안한 뭐 그런. 그분한테 저를 맡기겠어요. 시간이 오래 걸려도 좋고 얼마든지 실패해도 괜찮아요. 정 이상한면 삭발하면 되죠. 제가 이 상황에 누구한테 잘 보이겠어요? 그렇다고 삶을 포기하고 막 그런 건 아니랍니다. 물론 그녀들의 미모가 저는 조금도 부담스럽지 않아요. 근데 이건 무슨 얘기지? 알 게 뭐야.」
   「그 사람이 바로 저에요. 번짓수 제대로 찾으셨군요.」
   「네?」
    장면 전환.
    장면 전환.
    장면 전환.
    그녀는 그날 미용실을 그만뒀다. 어차피 때려칠려고 했대나 뭐래나! 설마 나 때문에...는 아니니까 안심. 근데 뜻밖의 친구가 생겨 좋긴 한데. 우리가 과연 사사로운 정을 이어갈 수 있을까? 아니면 새로운 연정을 싹틔워도 되나? 근데 아무리 봐도 친구라고 하기에는... 뭔가 이상하다. 그녀가 그냥 내게 여행 안내인으로 남는 게 이상적일 거 같은데. 그러든 어쩌든 나는 그녀가 갑자기 궁금해졌다. 누군들 안 그러겠나. 뭐 이렇게 된 김에 화가로 직업을 바꾸던가 그 뭐지? 드라마 장소 섭외랑 영화 장면 배경장소 물색하는 직업. 뭐 있다 치고. 아무튼 검은색 렌트카를 최신 샛노란 오픈카로 바꾸기를 잘했다. 그렇다고 내가 그녀를 어떻게 한번 해보겠다는 건 아니다. 절대로 아니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니까. 아니 그건 남자가 아닌데. 그렇다고 오늘 내일 막 그렇게 자빠트리겠다는 의도를 감추는 건 더 이상하잖아? 뭔 소리야. 어찌 됐든 여기를 내 고향으로 삼든가 아니면 그녀를 내 애인으로 만들지 뭐. 헌데 누구 맘대로? 꿈도 야무지다. 그렇지만 원래 인생이 꿈이잖아? 게다가 다 늙어서 웬 야망? 적당히 소망으로 타협하자. 심지어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 게 멋져. 뿐만 아니라 그 주인공이 더 아름다울 거 같은 막연한 상상. 그래서 내가 이 모냥 이 꼴... 그만 하자. 더럽게 재미없다. 이러니 이때까지 봉으로 살았지. 하지만 그게 어때서? 과거는 과거고. 이제 눈부신 미래가 희망에 부풀어... 부풀긴 뭘 부풀어. 개꿈이? 연기자들은 가장 찬란한 순간을 영상에 담아 멋지고, 일반인들도 최고로 경이로운 순간을 사진으로 남길 수 있는데. 이제 보니 남은 게 없어. 그동안 난 대체 뭘 했지? 나만 그런 게 아니다. 잘 기억나지 않아도 언젠가 신나게 놀았던 기쁨도 있었겠지. 뭐 없거나 부족했으면 어떤가. 배 한 척 사서 무인도로 떠나면 그만. 아니면 무인도에 누굴 데려가나 달콤한 상상에 골똘히 집중하던가. 
   「오빠 무슨 생각해? 오빠 정말 이상하네. 혹시 응큼한 생각한 거 아냐? 나 조신한 여자야. 쉽게 생각하지 마.」
   「나 너 쉽게 생각해.」
   「쉽게 생각하긴 뭘 쉽게 생각해? 쉽게 꿀밤맞기 내기나 할까? 이 오빠 좀 혼나야겠는데.」
   「내가 너한테 왜 혼나? 사랑을 받으면 모를까.」
   「애교는 제 껍니다 오빠. 이 오빠 은근 귀여울 뻔 하다 만단 말이야. 이 험난한 세상이 이분을 이렇게 만든 걸까? 그렇다고 우리가 만나자마자 싸운 건 아니니 고로 이 냥반이 나한테 얻어맞은 건 아니잖아.」
   「너 지금 누구랑 얘기하니?」
   「오빠 그러지 말고 나 술 한잔 사주세요. 에잇 아니다. 술 끊은지 칠 년 됐는데 아깝다.」
   「진짜야?」
   「아니죠. 뻥이에요.」
   「너 지금 나를 갖고 노니?」
   「아니 내가 어떻게...! 그래도 똥개 훈련보단 낫잖아요. 아닌가? 뭐 그럼 우리 이제 뭐하고 놀지? 놀이공원 갈까? 아니다. 아님 나이트클럽? 촌스럽게 무슨.」
   「뭘 할지 말지 늬가 다 정해라. 날 아주 발가벗겨 놓지만 말아줘.」
   「네? 오빠를 홀랑 발가벗겨 주라고요? 아니 어떻게...!」
   「아니 숙녀가 그렇게 심한 말을...!」
   「아니 숙녀가 그렇게 심한 말을...!」
   「너 나 따라하니? 미치겠다.」
   「너 나 따라하니? 미치겠다.」
   「...」
   「뭐 이렇게 된 거 오빠가 나 책임집시다. 응? 오빠, 내 인생 책임져. 그러니까 지금 우리 엄마아빠 만나러 가자?」
   「뭐가 어쩌고 어째?」
   「그럼 당장 신혼여행 떠나자고? 여기가 여행지야. 근데 어딜 떠나?」
   「우리가 지금 무슨 얘기를 하는 거니?」
   「오빠 나한테 실망한 건 아니지? 희망을 버리지 맙시다. 오늘만 날이 아니니까.」
   「못 말리겠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오빠는 옛날에만 가난했던 거 같아.」
   「이젠 내 비밀까지 캐냈어? 잘했다.」
   「우리 얼만큼 친해졌나 확인하진 맙시다.」
   「넌 정말 남자를 툭툭 건드는 재주가 탁월하구나. 아님 마음에 드는 사람한테만 그러는 거니? 아마도. 아이쿠 맙소사! 그럼 이미 독심술사겠네? 이걸 어쩌지. 내 마음을 들켜버렸으니 말이야.」
   「아니 이 인간이. 근데 우리 이렇게 길바닥에서 언제까지 얘기만 해야 하지? 난 썰풀고 어쩌고 그런 멜로드라마 타입 아냐. 어? 그러지 말고 오빠 내 친구 소개시켜줄께. 같이 만나 놀자.」
    그날 나는 그녀를 만난 걸 후회했다. 왜냐하면... 비밀이다. 





    9

    다음 날 그녀들이 호텔로 NB를 찾아왔다. 호텔 커피숍에서 차를 마시는데 용건을 들어보니 이랬다. 어제 그만둔 미용실 지하에 비밀 통로가 있대나 뭐래나. 그걸 나보고 믿으라고? ~라고 믿는 둥 마는 둥 그녀들을 보내버릴까 하다가. 하는 수 없이 녀석은 팔랑귀를 신뢰해보기로 했다. 왜냐하면 속아도 썩 손해볼 게 없으니까. 이렇게 한심한 놈이 도시에서 과연 지금까지 어떻게 살았을까? 일단 걔네들은 공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아마도 작전을 짜겠지. 계획도 없이 덤벼서는 곤란할 테니까. 인생이야 즉흥연주처럼 사랑에 빠질 수 있다지만 삶이란 계획대로 안되는 게 보통이라지만. 그동안 본 드라마가 얼만데. 그러나 장비도 없어 경험은 더 없어 관련 지식이야 있을 턱이 있나. 하여 NB는 그녀들이 심심해서 놀아줄 사람을 찾나보다 이러다 말겠지 라고 생각했다. 즉 안되면 네비게이션이 경로 수정하는 것처럼 즉시 대관람차 타러가면 그만이니까 말이다. 그래서 결국 했냐! 해? 뭘 해? 역시나 그녀들은 한껏 분위기만 고조시키다 탐험하지 말기로 담합했다. 지들이 뭐 공정거래위원회 임원이야 뭐야? 
   「오빠, 이렇게 된 김에 우리 보트 하나 빌려서 무인도에나 가자.」
   「무인도에? 왜 하필 늑대를 데려갈 생각이니? 내가 남자로 안 보이니?」
   「그럼 오빤 우리가 여자로 보이는 거야?」
   「날 뭘로 보고!」
   「이래서 우리가 오빠를 낙점한 거지. 틀렸다면 고쳐쓰지 뭐.」
   「틀리긴 뭘 틀려. 날 개조해? 내가 로보트니? 정말 본떼를 보여줘 말어. 오빠가 일전에 발굴가였다는 거 말했니?」
   「오빠만? 우린 언제나 방랑자야. 게다가 시덥잖은 도굴꾼 우린 안 쳐줘. 그러니 그 말 안 듣는 개의 주인 같은 표정은 집어치우시지.」
   「너 오빠한테 무슨 말버릇이니?」
   「오빠~」
   「오빠~」
   「나는 오빠라는 말만 들으면 미쳐버리는 허당이 아냐.」
   「그러지 말고 우리 바다 보러 갈까?」
   「지난 2주 내내 바다만 봤다.」
   「그래서 안 가겠다고? 그건 그렇고. 오빠 나중에 우리랑 계속 친하게 지낼꺼야?」
   「너 오빠한테 그런 질문은 금기야.」
   「내일 일도 모르는데 너무 멀리 보진 말자. 뭐 그 얘기구나. 찬성. 아울러 반대하면 어쩔건대.」
   「반대하면 오늘 사랑하면 그만 아닐까?」
   「사랑?」
   「누가 누구랑? 어떤 식으로?」
   「묻지 마.」
   「알았어.」
   「근데 오늘 우리 동창회 있지 않았니?」
   「남자 안 온대.」
   「그건 좀 그렇다. 우리가 무슨 남자에 환장한 조연도 아닌데.」
   「너 덜떨어져 보여. 이제 더 이상 고상한 척하는 거 피곤하지?」
   「끄떡없어.」
   「끄떡없어? 그럼 원래 고상하지 않다는 걸 인정하는 걸로.」
   「너 왜 자꾸 내 신경을 긁는데?」
   「왜냐하면 우리와 오빠가 헤어질 시점인 거 같기 때문이야.」
   「너도 그렇게 느꼈니?」
    이러면서 걔네들은 연락처 교환도 없이 NB를 떠나갔다. 이럴 거면 뭐 하러 왔지? 
    이래서 NB는 근처에 있는 카페 '쇼팽과 고흐'에 자리를 잡았다. 혹시 아는 사람을 만나면 좋고 아니래도 아쉬울 건 없는 청춘이니까? 방랑벽과 역마살의 차이를 굳이 이 시점에 따져 뭐 하나. 할일없이 일일드라마에 중독될 팔자도 아니고. 여성잡지 보는 그녀의 취미를 트집잡을 마음은 더더욱 없으며. 매력녀, 인기녀, 도화녀, 귀염녀... 로부터 도망가고 싶기 때문임을 부인할 때가 됐는데. 어찌 됐든 엉덩이가 근질근질하던가 아니면 새로운 변화가 절실할 것이다. 대체 세상에서 뭘 찾는지는 몰라도. 슬픔과 이별과 회한의 반대 개념과 부쩍 친해지고 싶을 테니까. 그럼 여행과 사랑이 딱인데. 우연성의 진입장벽은 높고 사랑의 짙음마저 부족하지만 그 두마리 토끼를 다 잡았자나? 심지어 계속. 근데 도대체 뭐가 불만이지? 그야 어른들은 알아도 모른 척. 그렇게 숱한 경험을 바탕으로 백전노장이 되었으나 아직도 소파에 자빠져 TV 채널 돌리는 습관을 그분들은 못 버리셨으니. 우리는 세상이 아직도 궁금한 건가? 아니면 사랑은 신비롭고 금새 식어버리는 연정은 신기하게도 다음 타자를 불러준다는 데 굳이 마다하지 않... 이게 대체 뭔 얘기야? 알 게 뭐람. 
    한편 오랫만에 그는 카페에 앉아 느긋하게 여유를 즐겼다. 내친김에 노트북을 켜서 무작정 글자를 적기 시작했다. 보아하니 자기는 왜 항상 새로운 타인만 만나며 살고 있지? 라는 생각. 기존에 알던 친분을 유지하는데 에너지를 쏟지 않아 편하긴 한데. 의도하지 않게 스쳐지나가는 인연에만 몰두하는 삶. 꼭 나쁠 건 없다만. 그렇다고 무슨 드라마 줄거리 같은 사건을 기대하겠나. 더이상 영화 같은 인생을 예감하지도 않는 나이. 그런데 어느 날 함정에 빠졌다? 아니다. 더군다나 흔한 유행을 따라한들 그마저 금새 바뀐다. 마음에도 들지 않는 옷 사 봐야 안 입듯 말이다. 그러고 보니 과거의 방황은 결과적으로 오늘의 떠돌이를 만들어낸 것 같은데. 그러든 어쩌든 심각하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저기 저 예쁜 그녀와 눈빛 교환이 뜨거워졌기 때문이다. 정말로? 뻥이다. 그렇다고 잠잠한 야성을 불러내봐야 녀석도 소환될 리 없겠지. 때문에 황홀함을 추구할 질주를 왜 하나. 무언가에 맹목적인 열정도 없거니와 환상과 마술과 사랑으로부터 버림받은 것만 같은 감성. 그냥 내버려두는 수 밖에. 그러던지 말든지 어느 요정을 뜻밖에 만날려나? 갑자기? 무슨 애첩한테 뺨 맞을 공상을. 이처럼 그는 엉뚱함이 민첩해봐야 별 이득 없었다. 자, 그럼 이제 어떤 우연을 물색한담? 달콤한 자유. 시간의 정지. 청춘을 회복? 하긴 뭘 해도 재미없어야 정상이다. 안 그러면 이상한 거지. 안 그랬다간 허접한 변덕에 뭔가를 기대하는 게 나을 테니까. 그건 또 뭔 말이지? 알 게 뭐야. 믿거나 말거나 같은 인생은 절대 아니라고 부정해봐야 소용없다. 그러니 결국 우리는 낭만을 포기한 것이다. 우리는? 좋게 말해 NB만 권태에 굴복한 거네. 새로움을 좋아하고 사소한 행복에 만족하던 시절을 지나 이제 뭐 늙은 개라고? 마성의 환상은 바쁘고 악마의 유혹도 다 얠 피해가나보다. 그러든가 말든가. 그럼 이제 다음 타자로 누가 물망에 오를 것인가인데. 연애? 별로야. 소풍? 지금 하고 있고. 아님 딴 사람들 운동회에 가서 같이 놉시다? 그럼 보나마나 뭐래, 뭡니까, 쉽지 않아 같은 말을 듣겠지. 그러니까 것도 안됨. 이래서 사람들이 소셜 네트워크를 끊지 못하는 걸까? 그래서 그는 인정했다. 신나는 파티에 초대받지 못했다고. 언젠 안 그랬나. 그저 이보다 더 심심할 수 없어 좋을 따름이지.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단골 카페 점원과 함께 했다. 
   「선생님. 제가 뭐라 불러드릴까요. 아저씨 아니면 오빠. 이왕이면 후자가 좋겠죠?」
   「아무렴 어떻나. 자네 좋을 대로 하시지.」
   「속마음을 들키기 싫은신 거죠? 달리 말하면 1인칭으로 주제 파악을 잘하는 건데. 아니면 2인칭으로 내 기분 파악에 훤하니 독심술사던가. 아님 내가 3인칭으로 분위기 파악 못하는 건가?」
   「원하는 이성상을 내게 말해보시게. 내가 싹 다 꼬셔줄테니까.」
   「정말요? 거짓말치고 너무 태연하시네요. 알고 보면 여자한테 잘 휘둘리시는 데 남다른 소질이 다분할 거 같은데. 그러지 말고 저한테 넘어오시죠.」
   「젊은이. 멋쩍게 왜 그래?」
   「어머머. 오빠는 뭐 얼마나 나이 드셨다고 그래요?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말이야. 어때요, 제가 마음에 들죠? 싫진 않나 봐. 딴청 피우는 걸 보니. 못 들은 척하시지 마세요 오빠. 어머머 내가 너무 대담했나? 그래요. 저 원래 안 그래요. 근데 오늘은 왠지 모르게 수줍고 싶지 않다고나 해야 할까? 근데 숙녀가 혼자 떠들게 하시다니. 너무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무엇보다 제가 오빠의 욕망을 훤히 꿰뚫고 있다는 점. 잊지 마세요. 어쩜 저 음흉한 미소. 사교적인 플레이보이의 흔한 기교가 아니야.」
   「그럼 뭔데?」
   「뭐긴요. 나한테 넘어온 거지.」
   「자네 남자친구와 나랑 아는 사이라면 어쩔려구 그럼 농담을 남발하시나.」
   「쉽지 않아.」
   「쉽지 않아? 요즘 그 말투가 유행인가 보군. 근데 뭐가 쉽지 않다는 거지? 아무리 들어도 모르겠어. 도대체 뭐가 쉽지 않다는 거야? 응?」
   「아아, 쉽지 않아.」
   「아 글쎄 뭐가 쉽지 않냐고?」
   「오빠 흥분했어요? 재밌네. 웃겨. 날 유쾌하게 만드는 남자. 오랫만이라구요. 그래서 지금 행복하냐구요? 슬플 리 있겠어요. 제 눈을 보세요. 초롱초롱 반짝반짝 뭔가 새로운 사랑에 대한 기대에 흠뻑 부풀어 있는 거 같지 않아요? 그러지 말고 오빠 우리집에 가요. 갑시다, 네? 가자구요 우리 집에. 응큼한 생각만 하시지 않는다면요. 왜요, 싫어요? 싫어도 가야 해요. 우리가 남이에요? 보통 인연이냐구요. 그렇게 멀뚱멀뚱 쳐다만 보지 말고 뭔 말을 하세요. 표정이 그게 뭐에요, 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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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의 집에 이미 손님이 있었다. 그렇게 시작되어 무르익은 파티 분위기. 동참하란다고 정말로 동참할 만큼 NB는 순진하지 않았으므로 이별은 정해진 수순. 그래서 내친 김에 곧장 다음을 기약하며 떠났다. 오다가다 만난 사이라는 게 이런 것일까? 하긴 스쳐지나가는 게 아쉬워 많이들 연락처를 주고 받지만 나중 보면 연락 단 한 번도 안하는 게 거의 다다. 지금 그때로 돌아간다면,은 쓸 데 없는 생각이고. 어쨌든 삶이 어쩐지 곧 재밌어질 거라는 기대. 형편없는 공상이 틀림없었다. 그러고 보면 젊음, 소풍, 여행, 연애 같은 걸 바란다는 게 어쩌면 그에겐 욕심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집에서 멀리 떠나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지금의 감성을 썩 부정하는 건 아니겠지. 그러니까 여기서 뜬금없이 전여친을 만나면 어떡하지? 라는 잡념이 떠올랐을 텐데. 불현듯 겨우겨우 잠재웠던 허언증이 도지다니. 그래서 그는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어 급히 자리를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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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다 어느 게스트 하우스에 자리를 잡았는데. 딱 보니 연령대가 안 맞음. 게다가 모여서 노는 게 뭐랄까 대학교 1학년들의 풋풋한 첫 만남 같은 오리엔테이션을 닮은 듯하지만 뭔가 분위기가 축축하고. 산뜻한 젊음의 기분이 나쁘지는 않으나 너무 꿍꿍이를 숨기고 있는 느낌에다. 심지어 자기들끼리만 레이저와 텔레파시와 초음파가 오가는데 날 끼워달라 애걸할 수도 없는 노릇. 이건 아니다 싶어 딱 그곳을 나왔는데. 
   「아저씨. 그냥 가면 어떡해요?」
   「그래요. 아저씨만 지금 걷돌다 나중 외로워질 거 같은 예감에 감정 이상해지는 줄 아세요? 우리도 마찬가지라구요.」
   「네? 그건 동의할 수 없습니다.」
   「뭘요? 오빠는 아무렇지 않다? 아니면 아저씨는 우리가 잘 간파했는데 우리는 저들과 왜 어울리지 못하냐?」
   「글쎄요. 그게 그러니까 글쎄요.」
   「아니면 이렇게 셋이서 급하게 환상의 조를 짠 게 마음에 안드시나요?」
   「환, 뭐요?」
   「기분 최고군요. 물론 거짓말이죠. 그래도 잠깐 행복해질 뻔 하다 만 것치고는 심심해진 게 오히려 반갑지 않으세요? 아니라면 청춘을 부러워하지 마시죠. 그저 떠나간 여흥에 아쉬워하지 말고 새로운 만남을 축복하자구요. 왜, 저의 미모와 얘의 (눈짓), 감사하지 않나요? 그럴 수가! 그나저나 시간은 잘가는군요. 어차피 가는 세월 붙잡을 수도 없잖아요. 그럼 재밌게 지내야죠. 왜, 우리랑 어울리지 못하시겠어요?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아저씨를 벗겨먹을 생각도 없고 연애할 마음도 아니니까요. 그렇지만 여행객이라고 해서 친구 사귀지 말란 법 있나요? 아니잖아요.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우리 자기 소개들랑 하지 말기로 해요. 거절하지 마세요. 여자 말 잘 듣게 생긴 오빠. 그리고 그 표정 좀 어떻게 해봐요. 이쯤 되면 제 엉망진창 화법에 서둘러 적응하는 것도 예의 아닐까요? 아님 솔직히 말해요. 우리 스타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구요. 그렇지만 우리가 뭐 결혼할 사이에요? 네? 뭐 셋이서 함께 살고 싶으세요? 그건 아니잖아요. 근데 뭐가 고민인데요! 지나간 시간은 개의치 말자구요. 어차피 떠난 사랑 붙잡을 수도 없잖아요. 아울러 돌아오긴 누가 돌아와요? 또 돌아와봤자 우리가 더 이뻐요. 호호호. 그럼 일단 요 근처 강변을 목적지로 정하는 건 어때요? 싫진 않은 눈치네. 아직 우리한테 마음을 빼앗기진 않았으나 승산 있어보여 좋다구요. 그러든 어쩌든 여자의 내숭 훔치진 맙시다. 딱 보니 오빠는 옛 친구랑 만나서 할 얘기도 없으실 거 같고. 새 친구를 더 반겨하실 거 같구만요. 그렇죠? 그런데 어떻게 우리를 싫어할 수 있죠? 아니겠죠. 이미 마음에 들었네. 완전 홀딱 반했어. 왜, 아니에요? 아니라고 말 못하시구만 그래. 자, 분위기도 좋고 날씨도 선선하고. 그런데 오늘 우리와 헤어지면 다시는 서로 연락하지 말자고 다짐하셨어요? 그럴 마음 먹을 관상은 아냐. 그럼. 자, 어때요? 우리 이미 친해진 거 같죠? 원래 우리는, 아니 오빠는 누굴 만나든 금방 친해지나봐요. 절대 우리가 그렇다는 말은 아니니 안심하세요. 근데 내 친구는 왜 말이 없냐구요? 제가 대신 하잖아요. 아직 스테레오 직전 모노라고 생각하시죠. 안 그래도 자연스럽게 쟤가 앞서가잖아요. 그럼 우리 둘은 앞서 가는 그녀의 각선미를 감상하면 되잖아요. 아, 멋져. 눈부셔. 너무 인상적이야. 오늘 밤 잠 못 이루는 거 아냐? 아니 근데 그렇게 대놓고 보시면 어떡하자는 거에요? 사람 민망하게 말이에요. 지금 팔짱은 제가 끼고 있는 거잖아요. 정말 이러기에요? 이렇게 별이 빛나는 밤에 숙녀의 유혹에 굴복하지 않는 오빠와. 데이트를 하는데 오빠는 늘씬한 저 그림만 보고 있으니 왠지 모르게 슬퍼지는군요. 안 그러게 생겼어요? 이게 정녕 오빠가 바라는 상황인가요? 아마도 제가 썩 사랑스럽지 않나 보군요. 할 수 없죠. 
    어머머 그러고 보니 도착했군요. 저기 보이는 부엉이 동산. 아시죠, 절대로 들어가지 말라는 소문요. 출입금지 된지도 꽤 오래죠 아마? 어때요, 함께 가볼까요 아니면 오빠 혼자 가실래요? 그렇다고 오빠는 여기 남고 우리만 들어가라는 건 아니겠죠? 저 안에 뭐가 있을지 왠지 설레는데요. 근데 오빠는 겁나요? 일단 들어가지 말라는 덴 다 이유가 있을 거에요. 그런데 들리는 풍문에 의하면 홀수는 괜찮데요. 근데 제 친구는 마음에 안 내키나봐요. 그럼 답은 나온거잖아요. 벌써 결론이 보이는 거 같아 진절머리가 날 리는 없는데. 아무튼 저 안에 대체 뭐가 있다는 거죠? 뭔가 주문을 거는 조각상이랄지 귀신을 만나는 체험을 선물하지도 않을 텐데. 왜 들어가지 말라는 거죠? 누가 그래요? 난 못 들었는데. 오빤 들었어요? 우리가 모르는데 오빠가 어떻게 알겠어요. 이해해요. 그래도 될 수 있으면 여행도 젊었을데 다니라는 말. 오빠도 아실 텐데. 오빠가 늙지 않았다는 걸 지금 증명하면 되잖아요. 그렇게 비너스의 환영을 만나든지 신비롭게도 판도라의 상자를 열든가. 나중 언젠가 우리를 우연히 다시 만나면 절대 모른 척하지 말기에요? 아셨죠? 자, 뭐하세요? 왜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되었나요? 그럴 수 있어요. 뭔가 오늘 신혼 첫날밤 기분과도 약간 닮은 구석이 없잖아 있으니까요. 얘, 은근 기대되지? 너도 이런 거 싫지 않지? 오빠, 오늘을 기억해야 해요. 우리 셋이 함께 한 순간을 말이에요. 이쯤 되면 우리가 오빠를 놀리는 거도 아니고 이미 좋아한다는 거. 꼭 말로 고백하지 않아도 아실 텐데요. 그러니까 도전하실 거에요, 말 거에요? 우리는 가고 싶어도 못 간다는 거 잘 아시잖아요. 뿐만 아니라 소년이 탐험을 왜 싫어해요? 우리는 다른 누구도 아닌 오빠가 저 부엉이 동산을 정복했으면 좋겠어요. 왜냐구요? 왜겠어요. 우리가 오빠를 좋아하니까요. 오빠도 동의하시죠? 그럴 줄 알았어요. 드라마는 이미 시작됐다고 봐요. 우린 이미 영화 주인공이니까요. 자, 곧 있으면 꿈을 이룰 것 같지 않나요? 지난 날 애타게 바라는 사랑 앞에서 망설이던 과거의 내가 꼴보기 싫었던 적 있을 거 아니에요. 남자는 직진이죠. 그럼요. 네? 인생 한 방이라구요. 호호호. 안 그래도 어차피 시작이 반. 네? 게다가 우리도 여자랍니다. 우리를 만족시키는데 오빠의 미래 우리가 책임질게요. 그러니까 시작하면 끝인 거죠. 쉽죠? 어려울 게 뭐 있겠어요. 다만 낭만과 환상과 보물과 쾌락은 물론 모험과 긴장감까지 몽땅 일망타진할 것만 같은 예감. 이미 기분 좋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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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뭔가 있긴 뭘 뭐가 있어. 괜히 한나절 꼬박 출구를 못 찾아 고생하다가 겨우겨우 부엉이 동산을 탈출한 거다. 새벽 다 새고 아침이 되서야 퀭한 눈으로 피곤한 몸을 끌고서. 어쩐지 낯선 숙녀들이 부추긴다 했다. 그러니까 그는 처음 느낀 감정이 옳았다고 생각했다. 즉 얘네들이 왜 갑자기 친한 척 하지? 라고 말이다. 





    10

    지금 모험심을 따르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야 젊을 때 얘기. 그럼 이제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바닥난 건가? 더 이상 늙음을 부정하기도 귀찮을 것이다. 무언가 마음에 끌리는 일이 있나 사랑에 대한 환상이 설렘을 느끼도록 만들어주기를 하나. 그렇다고 그녀들처럼 타인에게 질투받고 싶지 않다는 열망을 감출 수도 없다. 그녀들처럼? 지금 와서 내숭에 쥐락펴락해서도 안될 것이다. 그럼 이제 다음 뻔트의 대상은 무엇일까. 고민할 필요없다. 어차피 열망은 식을 테니까. 근데 이건 너무 허무주의 아냐? 기분이 그렇구나. 허둥댈 일도 없고. 뿐만 아니라 여자는 우리를 안 만나주고? 재미없다. 그러면서 눈 깜짝할 새에 시간만 허비된다. 그렇지만 인생은 적극적이어야 한다는 둥 도전 의식을 잃어버리지 말라는 둥 인문교양서를 읽기도 귀찮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동기부여 강연회에 가서 예술적 영감을 되찾아볼까? 그래서 그는 여행을 떠나왔지만 하이힐 소리도 못 들었고 비키니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물론 농담이다. 그렇다고 뜬금없이 길 잃은 똥개를 추격할 수도 없는 일. 그럼 아무 소득 없이 집으로 돌아가야 하나? 뭐 낮잠 자다가 유체이탈 해서 갖다왔다 치고. 자, 그럼 이제 공중부양하는 외계인을 만나러가자며 그녀들을 꼬셔야 하는데. 정말 그러겠다는 게 아니라 말이 그렇단 거다. 왜냐하면 먼저 여자를 귀찮게 하느니 차라리 황홀하도록 유혹당하는 게 편하니까. 그러다 NB는 지나가는 어떤 숙녀에게 홀리고 말았다. 또? 하여간에 심심하면 매혹당하는구만. 그래서인지 아닌지 역시나 금방 잊었다. 말하자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일텐데 홀딱 반하면 뭐 하냐고. 일단 말을 걸어 그녀의 혼을 쏙 뻬놓는 건 쉽지만. 그건 일도 아니다만. 또 뻔한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는 귀찮음. 그건 우리를 절망시키는 건가? 그래도 방황에 지쳐 타락하느니 어쩌면 응석과 투정이 낫긴 낫다. 더더군다나 방탕도 의미 없다. 이처럼 번뇌에 압도당하느라 정신없을 때. 그는 도플갱어를 우연히 만나고 말았다. 
    도플갱어? 정말 똑같은지는 알 수 없었다. 왜냐하면 얼굴을 정면으로 볼 수 없었으니까. 연애도 그렇다. 사귀는 남녀도 상대의 무결한 무표정과 수많은 얼굴 변화를 알아차리기 전에 헤어지는 게 대부분. 그럼 오래 함께 사는 부부는 서로를 다 알까? 근데 왜 갑자기 얘기가 그쪽으로. 다시 돌아와서. 
    그렇게 NB는 도플갱어를 한 3박4일 쫓아다녔다. 그럼 이게 추적일까? 어쨌든 그렇게 며칠 지나고 나서 알았다. 상대는 도플갱어가 아니라는 것을. 그래서 실망했을 테고. 역시나 싫증났을 것이다. 허나 망상이 지나치지 않도록 잘 참았을 텐데. 헌데 기대없이 왜 졸졸 따라다녔던 거지? 무작정 예감이 시켰다고 핑계댈 궁리. 그런 단계도 이미 지났고. 추억을 사진으로만 남기는 것이 아쉬웠을 수도 있는데. 뭐랄까 어떤 특정 각도에서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이 뭔가 이색적이었다고나 할까? 그럼 특정 각도가 아니라면? 말 말자. 사랑에 대한 꿈도 빨리 깨는 게 좋다는 둥 이성에 대한 환상을 버리라는 둥. 차라리 젊은이들처럼 웃고 떠들며 마시고 노래하며 춤이라도 추는 게 나을 텐데. 그런데 이제 그만 가짜 도플갱어와 헤어질 생각을 하니 어쩌면 속시원했을 것이다. 그처럼 딱 돌아설려는 찰나 그녀는 NB에게 말을 걸었다. 
   「우리 어디서 만난 적 있죠?」
   「네?」
   「왜 자꾸 절 따라오시는 거죠? 아니에요. 그게 아니라 우리의 동선이 겹친 것 뿐일 테죠. 제가 괜한 오해를 했다면 용서하세요. 왜, 싫어요? 그럼 절 데리고 살던가요. 그건 더 싫다구요? 절 뭘로 보구! 대체 제가 왜 이런 말도 안되는 실언을 하는지 저도 알 수 없어요. 그게 다 선생님 때문이에요. 아시겠어요? 낮선 여행지에서 이토록 자주 마주쳤으면 이미 정담이 들만큼 든 거 아녜요? 눈빛은 말했잖아요. 그래요. 솔직히 말하자면 오빠가 저한테 첫눈에 반한 걸로 하죠. 근데 왜 말을 걸지 않았죠? 그게 더 서운해요. 뭔가 이루어질 듯 말 듯 애처롭게 만드는 거. 여자 애태우는 게 그렇게 좋으세요? 맙소사 이 양반 안되겠네. 오빠. 여자 만난지 오래됐죠? 딱 보니 외로워보여. 그런데 굶주린 늑대로 보이기는 싫다? 하오나 남자가 여자 좋아하는 게 뭐 죄인가요? 그러든 어쩌든 더 이상 절 부끄럽게 만들지 맙시다, 네? (그러더니 그녀는 NB의 손을 덥썩 움켜쥐었다) 아니. 제 손을 왜 잡으세요? 아무튼 일단 나가죠. 다음 행선지로 가자구요.」
   「네? 네.」
   「왜요, 제가 너무 부담스러우세요? 하지만 어차피 도시로 돌아가면 연락하지 않으실 거잖아요. 다 알아요. 하지만 그렇게 자유롭도록 제가 오빠를 가만놔두질 않겠어요. 그 섬뜩한 표정. 마음에 들어요. 어디 더 놀래는 표정 좀 지어봐요. 호호호호호. 왜, 약해요? 어머 센 거 좋아하시는 거에요? 이렇다니까 글쎄. 좌우지간 멋진 경치에 좀 더 흠뻑 취해보기로 해요. 아셨죠? 근데 혹시 저를 푼수녀쯤으로 오해하시진 않았을 거에요. 그러기를 바라니까요. 그렇다고 안심해서는 안돼 오빠. 어쩌다 공상녀로 둔갑할 수 있으니까. 근데 왜 오빠가 뜻밖의 미녀를 만나 곤경에 처했는지 궁금하지 않아? 신경쓰지 말기로 해요. 인생은 짧으니까. 그렇지 오빠? 우리 기쁨과 여흥과 낭만만 생각하자구. 그럴 거지? 그럴 줄 알았다니까. 근데 그 꺼벙한 표정은 뭐니? 세상은 끝나지 않아. 그러니까 대체 언제까지 과거만 생각하고 살건데. 우리 함께 눈부신 미래를 만들어나가는 거 어때 오빠? 근데 내가 지금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 거지? 그렇지만 지금 이 시간은 소중해, 안 소중해? 그러므로 현재 이 순간에만 의미를 부여하자구. 동의하는 거지? 어차피 반대할 거 아니잖아요. 그러니 우리 인연의 앞날을 예측할려고 하지 마. 나에 대해 너무 많이 알려고도 하지 말구. 알았어요? 뭘 멀뚱멀뚱 생각하는데! 도시에서 비전 따지면 살다가 이곳으로 도망왔잖아. 아니면 휴가. 또는 여행? 그럼 계획이 무슨 필요가 있어! 자, 이제 오리배를 타러갈 시간이야. 뭐해 안 따라오구!」
    장면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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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우리는 푸른 해변가에 도착했다. 노란 파라솔. 하얀 비키니. 넘치는 젊음. 작열하는 태양. 저 멀리 보이는 풍력 발전기. 뛰어노는 골든 리트리버들. 카페에서 햇볕을 피해 쉬는 사람들 등등등.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맙소사! 
    이때 이름 모르는 동행녀를 누근가 머리를 잡아챘는데. 그게 누구였느냐! 최근 며칠 만났던 여자들이 하필이면 거기서 모두 맞닥드린 것이다. 태풍의 눈처럼 누구는 참고, 누군가는 모른 체하며, 어떤이는 말을 할 듯 말 듯. 그러다 딱 불꽃이 튀기 시작하더니 막장드라마처럼 여자들이 머리끄댕이를 잡기 시작하는데. 이때부터 영화에서 흔히 봤던 슬로우모션. 당연히 그녀들이야 시간 지나면 화해할 테고. 더 시간 지나면 각자 일정에 따라 여행을 계속할 텐데. 굳이... 그래서 녀석은 도망갈 따름. 허나 당혹스러움이 믿기자 않더라도 어쩌겠나. 그렇다고 멜로드라마 속으로 풍덩 빠져드는 것 같은 신비스러움을 거부할 수도 없는 것. 다만 여행길을 제촉하며 그녀들과 마추치지 않도록 잘 피해다니는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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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소설 2023. 5. 23.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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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판이 안되려면 당나귀 새끼들만 모여드는 법. 때를 괜히 보는 게 아님! 그에 앞서 내 형편을 보아하니 지붕 위 호박도 못 따면서 저 하늘의 별을 따겠다고? 하여 못 따먹는 과실을 보며 여우가 저 열매는 시디 실 거야 라고 하나. 하긴 타석에 들어서지도 못했는데 돈키호테처럼 허깨비한테 덤벼봐야 소용없다. 세상사가 그렇다. 더더군다나 엉망이된 타격감은 꿈쩍도 않는다. 속절없이 꽃 없는 나비 신세. 어쩌지? 뭘 어째. 쥐 잡는 데는 천리마가 고양이만 못하다. 수줍은 소망과 귀찮아 짜증나는 그녀들의 애원들까지 몽땅 일망타진할 수 있는 마술사한테 알맞는 조수를 기용해볼까 했는데. 있어야 말이지, 어? 게다가 그건 나 스스로 마술사라고 단정하는 식인데 그게 말이 되나 말이. 그럼 이 세상에 요술쟁이 아닌 사람 하나 없겠네. 이제 내가 기댈 수 있는 것이라곤 몽환적인 환청을 부풀려 소설로 승화시키는 일. 근데 허접한 품위유지비와 멍청한 영감은 딱 정비례. 그렇다고 성에 차도록 짝사랑 받지 못한 울분을 책으로 써낼 수도 없는 일. 나는 정말 인생을 잘못 배운 걸까? 헌데 누가 가르쳐 줬어야 말이지. 그래도 알아야 한다. 사랑은 아름답다는 것을! 뭣이 어쩌고 어째? 그래도 내일 서쪽에서 해가 뜰지 어떻게 알아! 하지만 그렇게 보자면 어느 날 갑자기 내가 SF 영화 속 주인공이 될지도 모를 텐데. 그럴 거면 차라리 로또복권이나 사자. 그게 좋겠다. 간단히 말해서 이제 남은 건 하나 밖에 없다. 물 오른 미모를 뽐내는 배우지망생을 꼬셔서 결혼하는 일. 그런데 알고 봤더니 그녀 집안은 거물 중의 거물? 마음에도 없는 상속은 바라지도 않을 테나 싫다는데 주는 걸 어째. 꿈도 야무지다. 근데 나는 왜 이런 개뼉따귀 같은 공상으로부터 자유로울 순 없는 거지? 개구멍은 눈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으니 탈출할 수도 없는데. 이처럼 허영기만 충만해가지고 어떻게 뭇여성들을 만족시켜줄 수 있냔 말이다. 그래도 믿는 구석은 오직 하나 허세대회 뿐이었는데. 그마저 사기꾼들이 몰려와 망해버렸다. 아무리 그렇긴 해도 사랑의 극치감을 만끽하는 연애가 어려운 일은 아니다. 까짓것 하면 되니까. 그런데 말과 달리 삶은 벌써 꽉 끼는 삐에로 가면을 벗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를 괴롭힌다. 여기서 말하는 우리에 다만 나는 없었으면. 그러든 어쩌든 개뼉다귀 우려 먹듯 다시 또 '없다'논리를 애용하고 싶진 않다. 하지면 과연 고양이가 생선을 마다할까? 아니면 개가 개뼉다귀를 싫어할까. 다 부질없다. 뭐야 또 없다 잖아? 이런 젠장! 그래도 지금 와서 하는 말이지만 나는 그 어떤 각선미도 탐미한 적 없다. 또 설마 아직도 가터벨트라면 정신을 못차리는 양반들이 있나 없나 모르겠다만. 적어도 난 아니다. 어디 그런...! 게다가 시시콜콜한 멜로드라마 소재들이 대체 나랑 뭔 상관인가. 다 시간낭비다. 그러게 내가 뭐랬나. 난 암말도 안했음. 뭐라고? 잘도 둘러댄다. 어떻게 먹고살지를 걱정해야 하는데. 이게 뭐지? 허당들한테 능청꾸러기란 별명을 뺏어서 뭐 하자는 거냔 말이다. 그러지 말고 좋게 들어보지 못한 모험에 대해 떠들어봐야겠다. 근데 그게 뭐였더라? 까먹으면 까먹은 거지. 괜찮다 괜찮아. 썩은 미소는 바닥을 차고 올라가면 되지만, 웃음기 사라진 건 답이 없으니까. 그러든 어쩌든 당분간 말을 말아야겠다. 그게 좋겠다. 
    그런데 정말 그럴려고 했는데...! 이렇게 그 어떤 행운만 기다리다가는 날이 샐 것만 같아서. 도저히 이래서는 안된다는 생각 때문에 나는 동호회에 가입했다. 그곳 이름은 비밀이다. 다만 뭘 하는 곳인가는 말할 수 있다. 바로 캠핑 + 카약. 그런데 때마침 모임 번개 일정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 좋았어. 모임장소와 준비물이 무엇인지 찬찬히 읽어봤는데. 나 같은 초보는 몸만 오라그런다. 그래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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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모임 장소에 도착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사람들은 아무도 오지 않았다. 하여 노트북을 열어 동호회 카페에 들어가보니, 아뿔사! 모임이 취소됐다네? 이런 젠장! 어쩐지 일이 잘풀린다 그랬다. 그럼 그렇지. 때문에 나는 의도치 않게 어느 해변가에서 차박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언제 사용했는지 기억도 안나는 침낭이 차 트렁크에 있겠다, 또 그냥 가기엔 왠지 지는 거 같거든. 인생은 짧은데 언제까지 패배주의만 신봉할 수는 없는 법. 고로 나도 모르게 나는 '한다면 한다'맨이 된 것이다. 근데 밥은 어떻게 먹지? 또 샤워는? 게다가 어떤 불량배들한테 괴롭힘을 당하면 또 어떻고. 그야 영화 같은 일은 발생하지 않을지언정 나는 갑자기 사랑이 하고 싶어질 지도 모를 일. 사랑? 진한 사랑 아니면 소설 같은 순애보. 둘 중에 하나를 고른다고 누가 번호표 들고 기다릴 리도 없고. 따라서 나는 그 한적한 해변가, 외진 캠팽지, 심심한 관광지까지 가서 또 웹서핑 밖에 할 일이 없었다. 대체 왜 나는... 어차피 할 말도 없고. 밑져야 본전. 그러다 운 좋으면 드라마처럼 외로운 숙녀와 연애하지 말란 법도 없으니까. 좋다 좋아. 그렇게 나는 주식창도 봤다가 동영상도 구경하다가 야심한 밤이 되었다. 그러다 나는 그냥 집으로 돌아가자 마음 먹고 차를 딱 봤는데. 뭐야? 차가 없어졌잖아? 어디 갔지? 왜 없어졌어? 어떻게 된 거야? 
    그러다 생각났다. 핸드폰 어플로 애마의 실시간 위치를 볼 수 있다는 걸. 그렇게 어플을 봤는데... 뭐야. 혼자서 어디로 가고 있잖아? 누가 내 차를 훔쳤어? 똥찬데? 아니 왜? 뭐 하러? 그렇다고 지금 이 외딴 곳으로 택시를 부르기는 뭐 하고. 뜻밖에 탐정의 활약을 기대해 볼 수도 없고. 제일 가까운 곳에 누가 살지? 발렌타인 아니면 조니. 아르마니는 이민 갔음. 티파니는 허영심 못 견뎌서 내가 찼음. 셀린느도 어장 관리하느라 정체가 탄로나 정 떨어졌고. 지금 이 시간에...만만한 건 조니 밖에 없었다. 그래서 녀석과 통화해 불렀다. 그런데 도착한 녀석은 발렌타인.
   「늬가 여기 웬일이니?」
   「나라고 뭐 널 보고 싶었는 줄 아니?」
   「빈말이라도 그래 줄 순 없니? 또 알아? 내가 끝내주는 숙녀를 소개시켜줄지 말이야.」
   「너 나 알잖냐. 일부러 분위기 뚝 떨어트려서 시작하는 거. 그래야 그녀들이 감동하거든.」
   「너 아직도 그러고 다니냐?」
   「아니. 여자 싹 다 떨어져나갔어.」
   「너도 나랑 같은 신세구나.」
    인사말은 그 정도면 됐고. 나는 웬 악당인지 바보인지가 내 차를 훔쳐갔다며 어플을 켜서 보여줬다. 
   「안 그래도 엉덩이 근질근질했는데 뭐해? 따라가야지.」
    그렇게 우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애마를 뒤따라잡았다.
   「옆으로 붙여봐. 대체 누구지?」
    내 애마 옆으로 조니의 자동차는 붙었다. 근데 차에 아무도 없네? 귀신이야? 더군다나 나는 유령도 믿지 않는다. 그럼 뭐야?
   「너 정말 나를 깜짝 놀래켜주는구나. 대체 저 안에 뭐가 있는 거냐?」
    알고 봤더니 그 안에는 웬 난장이 아저씨가 타고 있었다. 근데 알고 보니 <난장이 + 다운증후군>. 뭐라고? 뿐만 아니라 사정을 듣고 보니 딱했다. 그렇다고 동정심한테 휘둘릴 수는 없는데. 사연을 듣고 보니 어떻게 어떻게 해서 딱 30분만 드라이브하다가 곱게 원위치 시켜놀라 그랬다는데. 그래서 나는 공짜로? 그렇게 녀석을 떠봤다. 그렇다고 기똥찬 처녀를 내게 소캐시켜준다며 녀석이 퉁치자네? 솔직히 나는 어디서 좀 놀지 않았는데. 얜 내 눌변을 쥐락펴락 가지고 노는 걸 보니 보통내기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대체 얼마나 놀라운 그녀인데 얘는 나랑 흥정을 하자는 거지? 더더군다나 2 대 2로 소개팅하면 어떻겠냐는 거다. 그야 싫지 않았는데 나는 이 친구가 더 궁금했다. 그야말로 오랫만에 내 호기심에 불을 집힌 거지. 하여 나는 물었다. 
   「당신은 뭐 하는 사람이요?」
   「저 말이오? 나는 사람이 아니올씨다.」
   「형씨가 괴물이면 난 뭐 괴물의 호적수인 줄 아시오?」
   「모르겠소.」
   「근데 거 어째 아까부터 우리는 좀 말이 잘 섞이지 않는다는 느낌 들지 않았소?」
   「잘 아시구만 그래.」
   「지금 나를 들었다 놨다 길들이는 거요? 아니면 만만한 감수성 아이고 잘 걸렸다 싶어서 은근한 최면을 거는 거요.」
   「그럴 리 있겠소. 우리는 빙빙 돌려서 말하지 않는다오.」
   「그럼 뭘 하겠소. 내가 이렇게 정신 못 차리는데.」
   「내가 여자 소개시켜준다는 제안이 그렇게나 당신을 감동시켰소?」
   「거 참 이 양반이 못하는 소리가 없네. 난 여자 보기를 돌맹이 보듯 한다오. 당신도 내가 뭐 오빠란 말만 들으면 미쳐버리는 푼수로 보이는 건 아니겠죠?」
    그렇게 오다가다 만난 사이를 훈훈한 우정으로 연결시키자는 약조 없이 우리는 헤어졌다. 또 소개팅 장소로 곧장 가라고 하여 우리는 곧바로 떠났다. 근데 중간에 조니가 바쁜 일이 있다면서 내뺐다. 왜 숙녀의 마음을 자빠트릴 용기가 없나보지? 근데 나 혼자서... 아차. 녀석은 "난쟁이+다운증후군" 총각의 말을 믿지 않은 거였다. 그럼 내게도 귀뜸을 하던가. 의리 없는 놈. 그럼 나 혼자만 그 아제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으면서 좋아했던 거잖아? 이런 젠장! 어쨌든 못 만나면 말고 약속장소에 다 왔으니까 기다려보기로 했다. 거긴 카페였다. 나오면 곧장 마음을 빼았으면 그만이고. 안 나오면... 나는 더 시간을 뺐기지 않아서 역시나 손해볼 거 없어 나쁘지 않고. 근데 이 흥분감은 또 뭐지? 나는 정말 낯선 숙녀가 기다려지는 걸까? 이러다 배우병 도질 것만 같았다. 더군다나 내가 언제 사랑 때문에 가슴 아파했다고. 그나저나 정말 소개팅녀는 나타나지 않는 걸까? 여기까지 순순히 먼저 나온 내가 바보다. 뭘 기대해? 시간 낭비하지 말고 집에 가서 TV나 보자. 엎드려 턱에 팔을 받치고든지 소파에 자빠져서든지. 거만해도 누가 나한테 뭐라 하는데. 그러면서 딱 카페에서 나왔는데. 
    뭐야? 저 앞에서 "난쟁이+다운증후군" 총각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다짜고짜 고함을 지를 마음도 없고 아무런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왜인지 몰라도 녀석은 속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권총이었다. 몇 구경인지 대략 가늠은 되는데 "난쟁이+다운증후군"라는 사정을 감안하니... 웃겼다. 
    근데 뭐야, 녀석이 정말로 나를 조준하잖아? 피할 겨를이 없었다. 나는 이미 비비탄을 맞고 말았으니 말이다. 





    2

    "난쟁이+다운증후군"는 나를 납치했던 것이다. 내가 눈을 뜨자마자 거울이 보였는데 뭐야 이거? 내 코 아랫선 수평 + 입꼬리 수직선 = 그 위치에 점이 생겼다. 엄밀히 말하면 옛날에 나는 그 점을 뺐었는데. 그게 다시 생긴 걸까? 아니다. 카페 앞에서 녀석이 쏜 비비탄이 딱 거기 맞았고, 그 충격으로 시퍼렇게 피멍이 든 것이다. 근데 녀석의 정체는 뭐지? 그러다 정신을 차렸다. 
    나는 의자에 묶여 있었던 것이다. 이게 그 드라마에서나 보던... 한니발? 제목이 뭐였지? 팔걸이에 올려진 내 팔 위로 반원인가, 터널 모양처럼 약간 더 구형인가. 그러니까 이건 특수 초합금? 누군가 버튼을 누르면 그게 딱 풀리고? 밑도 끝도 없이 이거 대체 뭐 하자는 거지? 이처럼 뭔 상황인가 생각하고 있었는데 저 앞에서 웬 남녀가 사랑의 행위에 집중하고 있었다. 말 그대로 내면 연기. 고전적 용어로 합궁? 에로 영화에 나오는 바로 그 장면. 근데 이건 실제 상황! 기분이 묘했다. 뭐랄까 누구에게나 내재된 어떤 변태 성욕을 자극하는 건가? 근데 정말로 단계를 거쳐서... 정말로... 진짜로... 어... 이래도 되나? 라면서 내가 잠깐 눈을 돌렸다 다시 볼 수 밖에 없으니까, 기왕 보려면 제대로 봐야 하기 때문에 딱 현장을 정밀히 봐둘려던 그 순간. 그 남녀는 사람 크기 인형으로 바껴버렸다. 뭐야 이거? 작지도 크지도 않은 딱 사람과 같으면서도, 정말 만지고 싶을 정도로 보드라울 것만 같은 피부. 게다가 여기까지 온기가 느껴졌다. 
    바로 그때 저쪽 대형 TV가 켜졌다. 거기서 좀전에 봤던 그 장면이 보여진다. 그럼 걔네들이 저 TV 안으로 들어간 건가? 그러다 또 TV가 갑자기 꺼졌다. 그래서 다시 실제 남녀가 있던 곳을 쳐다봤는데. 그래서 어떻게 됐을까? 남녀 가운데 여자는 실제 사람인데, 남자는 아까처럼 사람 크기 인형이었다. 근데 여자는 그 남자 인형을 진짜 사람으로 인식으며 그 사랑의 행위에 몰두하고 있는 건가? 내가 가서 그건 사람이 아니라며 그녀를 진정시켜주고 싶었다. 진정? 그게 그러니까 왜 그러는지 무슨 사연으로 이래야만 하는지 알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모습을 아무 생각없이 지켜보던 중 알게 됐다. 남자 인형을 안고서 신음하는 그녀가 서서히, 조금씩, 슬며시 대리석으로 바뀌고 있었다는 것을! 
    그렇게 남녀가 고대 그리스로마 대리석 조각상으로 바껴버리던 과정이 완성된 시점. 딱 대리석화가 마친 순간. 그때 손발을 묶고 있던 초합금 장치는 풀렸다. 그런데 그건 초합금 장치가 아니라 허술한 밧줄로, 심지어 겁나 허접하게 묶여있었던 것이다. 이건 또 뭐야? 그러든 어쩌든 난 모르겠고. 일단 서둘러 그 조각상에게 접근했다. 그리고 만져봤다. 진짜 대리석이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그리고 이 빈집은 다 뭐야? 이곳은 고급 호텔 같은 분위기인데 사람이 살았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니다. 드라마 장면들이 연출되고 꾸며진 것처럼 아마 이곳도 그럴 것이다. 근데 나를 도대체 왜 불렀지? 그 "난쟁이+다운증후군" 총각은 어디로 가버렸고! 그렇다고 지금 당장 집으로 돌아가기도 뭐했다. 왜냐, 여기가 궁금했거든. 또 없는 게 없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다. 
    그래서 나는 걱정됐다. 
    가족이 날 찾았는데 내가 없어졌다? 막 실종 신고하고, 누구를 찾습니다 어쩌고저쩌고. 그 혼란을 생각하니 아찔했다. 물론 자주 보지 않으니 당분간은 아무 걱정 없다만. 어쨌든 벌써 1주일이 흘렀는데. 일단 가서 상황을 수습하는 게 급선무다. 때문에 난 여기 더 머물고 싶었으나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돌아갔다. 그렇다고 걸어서 가야 할까? 이상하게 내 자동차는 집 바깥에 있었다. 그야 뭐 "난쟁이+다운증후군" 총각이 내 차를 몰래 빌려썼으니 미안해서 대령해놓은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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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에 도착해서 알았다. 컴퓨터를 켜서 시간도 보고, TV 뉴스도 봤다. 밖에 나가 사람들한테도 물어봤다. 그런데 이곳의 시간은 불과 단 하루 밖에 지나지 않은 것이다. 뭐지? 그곳의 일주일은 여기의 하루? 1주일 대 1일? 비율은 7 대 1? 나보다 더 연로하신 분들께는 죄송하신 얘기지만, 다 늙어서 이제서야 뭐 모험? 놀고 있네. 이게 무슨 개떡이야. 게다가 주인공도 아니잖아? 더더군다나 내가 사랑의 행위 그 주인공도 아니었어. 그렇다고 엄밀히 따져 관객도 아니었는데. 또 그게 완전히 아니라고 할 수도 없고. 그 뿐만이 아니라 돈을 원없이 벌어서 막대하도록 부풀리는 것도 아니고. 뭐 시간을 벌어? 어른이 되지 않게 해주세요 라고 기도했던 소년이 진짜 늙어죽도록 소년으로 남는, 막 그런 판타지 영화도 아니고. 그렇지만 그때부터 내 기억은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때문에 시시때때로 그 농밀한 장면이 떠올랐다. 마치 사춘기 애들이 막 뭔가를 알게 됐는데, 누구나 아는 몇몇 기억처럼. 더 문제는 뭐냐면 그 다음으로 어떤 타자가 등장하냐는 것. 혹시, 아니다. 이러면 안되는데. 정말 안되는데. 다 큰 처녀가 양손으로 눈을 가렸는데 어느새 손틈을 벌린다? 엿보긴 뭘 엿 봐! 
    그러든 어쩌든 나는 그날부터 "난쟁이+다운증후군" 총각을 찾아다녔다. 이건 뭐랄까 30년~50년 전 드라마랑 비슷한 설정이구나. 마약 중독 어쩌고저쩌고! 맞나? 아닌가? 
    그러던 어느 날 시내를 떠돌고 있었는데. 인파가 갑자기 많아졌다. 좁은 골목이었는데 우리는 오도가도 못하고 막혀버렸고. 나도 역시 고개도 못 돌릴 지경이었는데. 뒤에서 누가 말했다. 
   「형씨, 내 목소리 기억하시죠? 설마 모르시는 거 아니죠? 애마의 내비게이션에 입력해뒀다오. 기다리겠소.」
   「당신 누구야?」
    고개를 돌릴 수는 없고. 만약 돌렸다가는 돌처럼 굳어버릴 것만 같고. 그때 거짓말처럼 인파 정체는 풀렸다. 당연히 그 인간은 찾을 수 없었다. 
    그럼 다음 수순은? 나는 그곳으로 떠났다. 





    3

    내비게이션에 기록된 마을 이름은.. 뭐였더라? 기억나지 않는다. 지금 와서 최대한 비슷한 명칭을 떠올릴 수는 있다만 그건 썩 중요하지 않은 것 같고. 다시 말해 드라마로 나오더라도 시청자 역시나 1주일이면 잊어먹을 게 뻔함. 어쨌든 내가 도착한 비밀 기지는 사족보행 마을을 먼 거리에서 관찰할 수 있는 최적의 염탐 장소였던 것이다. 사족보행? 그곳을 낮에는 일반 카메라와 고성능 쌍안경으로 관찰하고, 밤에는 적외선 카메라와 잘 알려지지 않은 우주용&군용 특수 기계로 그곳을 지켜봤다. 그랬더니 나도 어느새 직립보행을 잊어버린 것만 같았는데. 대체 저 녀석들은 뭣 때문에 사족보행을 고집하는 거지? 알 수 없었다. 다만 변변찮은 할일, 중년의 권태, 가난의 염증, 희망과 불친, 행복이 뭔지 알지도 못하던 내 삶이 갑자기 바빠졌다는 점. 아마 나는 겨울잠에서 깨어나자마자 신나게 연애하고 바쁘게 돌아다니는 곰탱이가 되어버린 것만 같았다. 그 덕분에 캠핑 문외한에서 전문가로 슬슬 변신하고 있었는데. 
    그러다 녀석들 정체를 간파했다. 바로 낮에는 인간, 밤에는 레고! 기막힌 성과였다. 그래서 언젠가 야심한 시각에 딱 몰래 현장으로 침입했다가. 뭔가 위치를 바꿔놓는다거나, 누군가를 몽유병에 걸리게 할 수도 있었는데. 때로는 내 낡은 최저가 노트북을 웬 갑부의 최고급 노트북과 내용물을 교환하는 작업. 시간도 충분하겠다, 관련 하드웨어를 준비해놨고. 최적의 소프트웨어를 이용해서 그마저 손쉽게 뚝딱 처리. 그럼 이제 다음으로 내 똥차를 대체 무엇으로 바꾸어볼까를 궁리하던 찰나. 아뿔사! 이건 생각도 못했던 전개였는데. 그게 뭐냐? 
    바로 언젠가 내가 남겼던 블로그 소설.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데. 하도 많이 써서 그런가는 모르겠고. 
    a) 어쨌든 말도 안되는 발단
    b) 웬 뚱딴지 같은 전개
    c) 개 풀뜯어먹는 절정
    d) 밑도 끝도 없이 해피엔딩!
    뭐야 이거. 표정이 썩고 젊음이 망하는 문학. 그걸 양산하던 언젠가 그 시절. 그래서인지 어쩐지 내용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는데. 웬 괴짜가 그걸 나와 또 계약맺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냥 영화학과 대학생이 졸업작품 찍느라고 어쩌고저쩌고 신경도 안 썼던 일이 있었는데. 그 때문에 그게 간단히 말해 허접한 단편영화로 만들어짐. 그런데 내가 만들었던 주인공의 영험한 능력. 못 믿을 신통함. 그게 바로 내 영혼을 단편영화 속으로 가져가버렸는데. 하필 작품 내용에서 중간에 뭐더라? 앞서 내용처럼 어떤 신비한 마을을 몰래 감시하던 생활. 그렇게 망원경 몇 개로 딱 보고 있던 중. 누군가 거인이, 내가 난쟁이였는지 어쨌는지 하여튼 그 인간이 내 엉덩이를 지긋이 밟네? 그로써 사춘기 때 기억이 연상되고. 그렇게 내 정신을 흡수. 따라서 그때부터 나는 단편영화에 딱 갖혀버림. 어떡하지? 뭘 어떡하나. 내 힘으로 탈출은 불가능한데. 
    그때부터 나는 단편영화가 재생되는 것과 같이. 시간 A에서 B까지가 반복되는 SF 영화처럼. 그렇게 무한 반복되는 로보트로 살게 되었다. 물론 장편 드라마라면 극중 인물인 내가 눈빛을 내 마음대로. 극에 최적화되지 않도록 내 마음대로, 오직 딴 데를 훔쳐보는 것만 가능했으므로. 나만의 엑스마키나는 오직 딴 건 다 연기의 화신인데. 눈빛은 뭐랄까 요망했다고나 할까? 즉 그게 단편영화라서 그다지 문제되지 않았던 것. 그래서 나는 힐끗힐끗 쳐다볼 수 있었다. 감상자는 대부분 다양한 사람들. 취업준비생도 있었고, 퇴근후 원룸에서 취미로 단편영화를 감상하는 사람도 있었고. 당연히 나는 그분들의 침실, 거실, 소파. 자동차 안에서 노트북으로 영화를 봤다면 그 자동차 내부. 텐트에서 아이패드로 보고 있으면 내가 볼 수 있는 건 오직 텐트 내부만 흠찟흠찟 째려볼 수 있었다는 점. 그런데 그렇게 유튜브 영상이 막 조회수 얼마네 그런 것처럼. 나는 힘든 것도 모르고, 권태로움도 친구가 되어가던 찰나. 누군가의 데스크탑이 딱 고장나버렸는데. 
    하필 그 컴퓨터의 주인공은 자동차광처럼. 컴퓨터를 자기 신체와 막 복잡하고 엄청나게 정밀하도록 연결해서 단편영화를 보던 사람. 가령 

도표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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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영화 양들의 침묵 (1991년)이던가? 레드드래곤, 한니발, 한니발 라이징의 연관 순서는 모르겠다만. 머리를 냄비 뚜껑 여는 것처럼... 그렇게 까지는 아닌데. 막 운동선수들 몸에 뭘 붙여서 수많은 선을 컴퓨터와 연결. 그런 것처럼. 특수한 연결성을 기반으로 하여 단편영화를 감상하는 괴짜. 하필 그분의 데스크탑 어딘가가 딱 고장나버림과 동시에. 어떻게 어떻게 해서 그 냥반과 나는 육체 교환. 달리 말해 정신이 서로 바꼈을 수도 있는데. 아무튼 그때부터 나는 단편영화 무한 반복이라는 지옥을 탈출하게 된 것이다. 근데 날 대신에 갖혀버린 그분께는 죄송하지만. 이걸 어떻게 원위치시킬 수도 없고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다만,
    첫째, 새로운 사람의 인생을 탐색하느라 1달
    둘째, 새로운 사람으로 삶을 사는데 적응 1달
    셋째, 새로운 사람의 재산을 몽땅 탕진...은 아니다만. 통속적으로 말해 잠깐 돈쓰는 재미에 빠짐 1달.
    넷째, 아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어 나는 낮에는 연구에 정진했다. 
    그건 뭐냐? 바로 나처럼 단편영화랄지 각종 허구에 갖혀버린 인간이 있나 없나에 관한 연구에 빠져버렸다는 점. 만약... 생각 많아지니까 말이다. 근데 그게 잘 됐을까? 그럴 리가 있나. 그래도 하는 데까진 노력했다. 그러다 실험체의 눈이 깜빡깜빡 막 그러는 동안. 이마 위로 선을 그어 딱 그걸 밥솥 여는 것처럼. 또는 아예 냄비 뚜껑 열듯이 분리하던가. 그렇게 뇌를 포크로 또는 거기에 선을 연결해서. 막 그런 비밀단체가 있다는 첩보를 입수. 그걸 한참 알아보다 실패. 어쨌든 백방팔방 동화책이든, 연극대본이든, 막장드라마든지 단편영화에 갖혀버린 사람을 조사해서 일단은 엑셀파일을 완성하는 것. ~라는 할 일이 생겼는데. 한마디로 성과는 보잘 것 없었다. 물론 낮에는 그랬고 일과가 끝나면 자유시간. 그렇게 나는 새로운 인생을 즐기고 있었다. 





    4

    그렇게 저녁 시간에 혼자 유튜브를 보다 잠이 들었는데. 
    꿈에서 여자가 유튜브를 보며 자기위로 → 그럼 유튜브 주인공이 그녀를 방문 → 곧장 내면연기.
    처음 꿈에서 깼을 땐 뭐 이런 개꿈이 다 있지? 왜 내가 꿈에서 여자였지? 막 그랬는데. 또 한번 같은 꿈을 꿨는데 그래도 뭐 그럴 수 있다 했는데. 뭐야 계속 꾸잖아? 꿈에서 영화를 보며 막... 자세히 설명은 안하겠다만. 사람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즉 성 정체성에 알맞도록 남자로 막 그랬다면 단꿈이었겠으나. 이런 개꿈은 한마디로 악몽이라고나 할까? 괴상했음. 그런데 꿈을 깬 어느 날. 내가 드라마를 보는데 나도 모르게 12살 때처럼 바닥에... 막 그러고 있었는데. 딱 그 순간 방문을 열고서 그 드라마 주인공이 나를 찾아왔다. 어머나 이걸 어쩌나! 그렇게 그녀는 나를 덮쳤다. 뭐 자빠트리고 자시고 그럴 겨를이 없었음. 그냥 막무가내로 에로연기. 근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날마다 반복. 당연히 처음에는 좋았다. 근데 기력 바닥. 정력 탕진. 완전 초최. 거의 산송장에 근접. 당연히 쌍코피 터짐. 한두 번도 아니라 계속. 막 터짐. 식은땀으로 심심하면 샤워. 물론 뻥이다. 상상만 해도 식겁하지. 
    그러든 어쩌든 (내가 새로 얻은 육신의 주인) 이 인간은 뭐랄까 나랑 굉장히 비슷한 녀석이었다. 한마디로 한심했지. 인생이 허접. 덜떨어진 놈. 다만 나보다 나은 건 컴퓨터와 육체를 연결해 어쩌고저쩌고. 그렇다고 그걸 누가 알아줘? 쓰잘데 없음. 어쨌든 (약간 중고긴 하지만 그래도 그 연식이 어딘데) 새로운 신체를 얻자마자 녀석의 두뇌로 내 영혼은 업그레이드됐는데. 물론 다운그레이든지 변형이든 그건 그렇고. 곧장 모든 기억을 흡수. 아니 그 자신이 되어버림. 단순히만 봐도 30대 초반부터 음악을 안 들음. 핸드폰은 7년인가 8년째 최저가 구닥다리만 사용. 한 3년 더 애용할 계획. 자동차는 10년도 넘은 하이브리드. 게다가 30대 초반부터 사진도 거의 안 찍음. 또 아이폰 ↔ 애플 그 실시간 경험도 없음. 당연히 최신곡 들은지도 15년이니까 노래 부르는 것도 까먹음. 여자 꼬시는 재주도 썩음. 키스 어떻게 하는지까지도 새까맣게 잊음. 재미 더럽게 없는 인생. 옷도 안 사입어. 신발도 1개. TV도 안 봐. 만나는 사람도 없어. 만나도 사람들과 대화도 안됨. 뭐 이딴 인간이 다 있지? 말이 심했다만 한마디로 바보였다. 물론 다른 분들이야 번잡하지 않다거나 좋게 표현할 방법 많지만. 얘는 그냥 바보였다. 그리고 지금은 그 얘가 나였고 말이다. 뿐만 아니라 여자를 언제 만났는지 기억도 안남. 아예 풋사랑과 육체적 사랑은 있었을망정. 태어나서 지금껏 여자를 단 한 번도 사겨보지 못함. 즉 연애 무경험자. 근데 또 전립선 건강 걱정해서 어쩌다 하는 수 없이 에로비디오는 드물게 본단 말이지. 싫든 좋든 남자의 운명이란 말이야 뭐야. 물론 남자들끼리만 아는 진실. 하긴 그렇다고 몽정을 하면 건강이겠으나 못하면 또 어쩌다 부쩍 걱정돼거든. 그러든 어쩌든 약속이 없어. 사람도 안 만나. 대체 뭔 재미로 살지? 
    그러다 나는 이 멍충이의 주식 포트폴리오를 업그레이드해줬다. 언제 녀석과 내가 뒤바뀔지 모르나 일단은 그게 좋았을 테니까. 그런데 평생 이러면 어떡하지? 어떡하긴 뭘 어떡해. 날이면 날마다 인터넷 게시판이나 쳐다보는 거지. (절레절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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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 ─ 193

from 소설 2021. 12. 30. 19:08

    1

    잠꼬대 같은 공상은 재미없다. 그럼 이제 고양이 손을 빌어 불 속의 밤을 끄집어내볼까? 근데 문제는 주변에 탐스러운 복숭아는 커녕 파리새끼 한마리 얼씬하지 않음. 그러니까 아는 동생들이 다 도망갔지. (절레절레) 그런데 먹음직스러운 먹잇감이 제 발로 굶주린 늑대에게? 놀고 있네. 허나 구름이 걷히면 달과 별을 볼 수 있다. 권태에 주늑든 게 자랑은 아닐 테니까. 그 결과 NB는 허영심을 파괴했다. 다만 오히려 허영심 2가 부활했다는 게 거북할 뿐. 그러니 고귀한 이상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나. 때문에 어떤 욕망마저 퇴색했을 것이다. 더구나 일단 잘나지 않았으니까 잘난 척도 못한다. 그런데 어떻게 아는 척을! 이러니 기쁜 바쁨이 아니라 불쾌한 일정 없음만. 일전에 나는 미치지 않았다더니 이제는 난 늙지 않았다로 바꼈을까? 둔갑술은 딱하고 여자말 번역기도 고장났다. 마침내 마술도 썩었다. 희망도 멍청해지고 소망도 곯았다. 그런데 사랑이 허접하지 않다고? 최소한 멜로드라마는 유치하다. 이래서 반짝이는 짝사랑복도 믿을 게 못된다. 이 여자 저 여자 다 따먹고 다니더라는 허풍만큼 재미없는 게 어딨나. 부질없다. 소용없어. 가라 그래. 저리 비켜? 아무도 없음. 꽃과 하늘과 별과 그대의... 시도 안 써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녀석은 비너스의 매력을 측정하겠다니. 말이 되나 말이. 이러니까 고상한 세련됨은 허랑방탕함에 희석되지. 결국 정체는 탄로난 셈. 풍운아가 아니라 그냥 몽상가. 그래서 오늘도 백판 자빠져 놀고먹기 좋아하시나? 말을 말자. 이런 형편에 이 세상에 둘도 없는 희열을 걘 털어놓고 싶어도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일단 들어줄 사람도 없거니와 뭘 모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록빛 다정함과 신비로운 부드러움? 놀고 자빠졌다. 그런 의미에서 질투심을 팔고 호기심을 부풀렸는데. 알고 봤더니 남은 건 뭘 해도 재미없음. 뭐라고? 그러니까 지난 날을 돌아보니 누구에게나 만만히 보였거나, 아니면 (개)엄살! 그래서는 야망은 커녕 사랑도 소망도 다 놓친다. 물론 알긴 아니까 이 시대에 능청이 웬말 막 그러면서 무작정 집 밖으로 나가 봐야 또 이용당함. 솔직히 말하자면 허당이 아니라, 좋게 얘기해서 허당일 따름. 그러니 정말로 잔뜩 굶주린 늑대는 고독에 지친 거다. 우리끼리 얘기지만 그는 욕심이 없다기보다는 그냥 무지했으므로 다른 별명 다 포기한 체 어엿한 몽상가로 남은 것이다. 좋았어. 훌륭하군. 대단해. 가련하다? 미련한 거지. 허허허. 이처럼 한량으로써 소임을 다하다 보니 언젠가 꿈이 평생 놀고먹는 거라는 걸 기억도 못해. 아무튼 백판 자빠져 노는 건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그러니까 행복한 사색가의 팔자래야 밤이면 술꾼으로 변신한다는 거? 더럽게 재미없는 사실이 그거다. 게다가 흉금을 털어놓을 말상대는 없지, 만약 있다고 하여도 할 말 떨어진 실정. 그래서인지 몰라도 살다보니 숙녀에게 나이는 묻지 않을지언정 놀기 일하기 다 싫증났다는 거짓말을 누구도 들어주지 않게 되었다. 그렇다고? 그러거나 말거나. 그런데 이 마당에 여심을 잡아끄는 묘한 매력을 어떻게 발달시키나. 못한다. 불가능하니까. 그러나 정말로 무대 근처도 서성이지 못하는 운명이 밉지는 않을 텐데. 그래 봐야 얄미운 패배주의는 쓴웃음을 끝없이 선사하는 것. 삶에 흥미를 잃었군. 그러니까 사는 낙이 뭐야? 대체 그걸 알아서 뭐 하겠나. 안 그래도 사랑은 없다. 더더군다나 어차피 식을 건데 사랑을 뭐 하러 하나. 그러게 뭇여성을 꼬실 생각을 왜 해. 운명의 여신은 노크할 마음도 없는데 문만 열어놓다니. 그러니까 여자가 없지. 
    그래서 녀석은 아무 생각없이 놀이공원에 갔다. 이유가 무슨 필요있나 싶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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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리 소포일러를 살짝 귀뜸하자면 그는 숙녀를 꼬셨다. 아니, 뭐 어떻게 어떻게 NB는 여자들한테 꼬심을 당했다. 이를 테면 
   「오빠 혼자 왔어요?」
   「쟤 왜 갑자기 아저씨한테 말 걸지?」
   「갑자기 부인이랑 애들이 아빠한테 다가오는 거 아냐?」
   「그러게. 그러니까 내가 4 대 4 소개팅 나가자고 했니 안했니!」
   「근데 이 오빠는 왜 말이 없지? 말 못하는 거 아닐까? 아님 안 들려?」
   「넌 왜 멀쩡한 오빠를 놀리고 그러니? 못됐어.」
   「그렇지만 저 오빠 상태가 많이 안 좋아 보이지 않니? 그러니까 말하자면 우리가 뭐 찬밥 더운 밥 가릴 처지냐 그 말이야 내 말은.」
   「그러든 어쩌든 이 오빠 기본 좋나봐. 들떴어. 혹시 이 오빠도 오빠라는 말만 들으면 미쳐버리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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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B는 애초에 그녀들 가운데 누군가를 어떻게 한번 자빠트려볼 흑심은 없었다. 그렇다면 그녀들이 녀석을 어떻게 한번 해보겠다는 의도가 있었던 것일까? 그게 지금 왜 궁금한데. 아무도 관심없을 뿐. 그러든 어쩌든 이곳은 그녀들끼리 사는 숙소다. 그녀들은 함께 산다. 불여우 4 마리가 왠 토끼 1 마리를 소굴로 불러들인 건가. 세상에 이런 일이! 그렇다고 이런 일이 아예 있을 수 없다고도 말할 수 없다. 고로 어떻게 되는지 지켜볼 수 밖에 없는데. 그러던 순간 여자 1명은 거실에서 소파에 놓여진 옷을 치우고, 여자 3명은 다른 방으로 갔다. 뭔가 음료를 준비한다랄지 그런 목적일 것이다. 그런 다음 일단 여자 1명이 NB와 함께 소파에 앉았다. 그런데 갑자기 그녀는 코피를 흘렸다. 뭐라고? NB라고 에티켓을 모를 리가 있나. 그래서 아기처럼 손바닥으로 그걸 닦아줄려는 것처럼 자기도 모르게 손이 그쪽으로 갔다. 그러나... 아뿔사! 
    NB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식은땀이 등을 적셨다. 그렇다고 바지에 오줌을 지리지는 않았다. 허나 안심하다가 설마 바지에 똥을 쌌다? 아 글쎄 그러니까 뭣 때문에! 설명이 늦었다. 그렇다고 말 나온 김에 계속 뜸만 들일 의도를 품고 서술자가 애독자를 골탕먹일 생각은 없다. 왜냐하면 애독자 자체가 꼴랑 4,5명쯤에 불과할 테니까. 물론 많아 봐야 무척 낙관적으로 예상했을 때 말이다. 어쨌든 왜 NB가 입에 군침이 흥건했는가,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 왜 녀석의 심박수가 부쩍 상승했는지, 무엇 때문에 트럼프 카드에 나오는 네 가지 모양 가운데 하필 하트가 벌렁벌렁했는지 그 이유를 말해볼까? 아니나 다를까 혹시 NB는 지금 딴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제정신이라면 분명 바지에 똥을 싸을 테니까. 즉 군대에서 휴가 나와 웬 신학대학교 도서관에 들어가 악보를 찢고 지갑을 왜 훔치도록 만들었는지, 그게 원인이 되어 1,2년 뒤 도심지 시내 미용실에서 전화왔었던 일. 당신 지갑이 우리 미용실에 떨어져 있으니까 와서 찾아가시오, 만약 찾아가기 싫다면 그러든가 말든가. 까지는 아닐지언정 이를 테면 이런 쓰잘데기 없는 잡념들. 물론 여자들 넷이 사는 집에 늑대 1명이 초대받았는데 그런 뭐랄까 잠깐만 옐로카드 받는 셈치고 심한 말 딱 1번만 하자면. 뭔 말 할지 까먹었음. 
    아무튼 그는 정신을 차렸다. 그녀의 코피를 닦아주려 했는데. 그런데 알고 보니 조금 전과 상황이 전혀 달랐던 것이다. 무엇이 달랐을까? 
    첫째, 그녀는 숙녀가 아니라 마네킹이었음
    둘째, 코에서(콧구멍에서?) 흐르는 피는, 다시 보니 눈에서 흐르는 하늘색 액체였음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막 그러면서 NB는 다른 쪽에 있을 여자 3명에게 다가갔다. 그런데 그녀들도 모두 마네킹이라니! 그래서 그는 다시 여자 1명에게 돌아왔다. 
    물론 여자 1명은 좀전에 분명 소파에 앉아있었는데 지금은 (벌떡) 일어서 있었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일까? NB의 팬티는 팽창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왜? 뭐 변태야? 아니면 전문용어 무슨 도착이야? 그는 대번에 정신을 차렸다. 따라서 그녀들이 귀신인지 유령인지 몰라도 걔네 작전대로 허둥대다가는 자기까지 마네킹으로 변신할 것만 같은 불안감. 이제야말로 바지에... 쉿! 결국 그는 도망갔다. 





    2

    그 뒤로 그는 여자 네 명은 무조건 피해다녔다. 또 이따금 코에서 뭔가가 흘러나왔다. 그게 또 이상한 게 밖에서는 정상적인 콧물이 흘렀는데. 집에서는 초록색 콧물이 간헐적으로 흘러나오는데. 이걸 말하면 누가 믿어줄까? 결국 NB의 코는 성감대로 바뀐 것인가 아닌가! 그래서 그는 비정상적으로 아찔한 착상을 번뜩이는 영감이라도 되는 것처럼 미친듯이 별 허접한 허구를 쓰기 시작했다. 이를 테면 주인공의 성행위 빈도에 따라 콧물 색상이 변한다나 뭐래나. 그런데 그게 말이 되나? 무슨 말도 안되는 걸 뭐 하러...! 그러게 뭐 한다고 놀이공원에 가서 꼬심을 당하나. 아니나 다를까 말 같지도 않은 이야기를 써내려간 공책을 찢어서 그는 던지고, 물고, 뜯고, 뭉쳐서 던져버렸다. 또 무슨 밑도 끝도 없이 뭐 하늘색 눈물과 초록색 콧물? 이런 개뼉따귀 같은.. (절레절레)! 그렇지만 엇그제 놀이공원에서 있었던 일은 전부 사실이고. 또 그녀들 숙소에서 벌어졌던 황당한 사건. 그건 대체 뭘로 설명할 건데. 스스로도 납득할 수 없는 불가사의를 남한테 고백한다? 답답하다. 아니면 그걸 빌미로 소설을 써서 순진한 양반들을 속여서 때돈을 번다? 허접해 허접하다고. 그럼 그걸 다 없던 일로 치분한다? 그건 또 아니지. 따라서 그는 그녀들 숙소에 다시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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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B는 그녀들의 숙소를 찾을 수 없었다. 분명 이 근처 어디였는데... 왜 찾을 수 없지? 막 그러면서 수없이 헤맸는데 도저히 그녀들 숙소 비슷한 건 코빼기도 비추지 않았다. 어떻게 좀 닮은 거라도 발견하는 것마저 허락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니까 왜? 그걸 필자가 아나 독자가 짐작하시나. 누구도 모를 일일 따름. 그렇게 포기한 채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저기 저쪽에서 그녀들 4명이 정답게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막 룰루랄라 룰루랄라 얍 얍 뿅 뿅, 어쩌고저쩌고 수다 떨면서 말이다. 그걸 본 순간 NB는 다리에 힘이 풀려 땅바닥에 주저앉을 뻔 했다. 그렇다고 길바닥에서 엉거주춤 서서 바지에 똥을 싼다? 요의도 전혀 느끼지 않았고. 그는 덜컥 겁이 나서 도망가려고 했다. 그런데 몸이 말이 듣지 않았다. 그렇게 점점, 점점 그녀들은 다가오고 있었는데. 
   「어머머 얘들아 이 마네킹 뭐니?」
   「뭐지? 특이하게 생겼는데?」
   「못생긴 거지 이게 이상하다고?」
   「그러든 어쩌든 어딘가 모르게 수상한데.」
   「너도 그렇게 느꼈니? 나도 왠지 모르게 느낌 세해.」
   「아마 이거 누가 버린 거 같은데. 얜 어쩌다가 주인한테 버림받았지?」
   「그런 의미에서 낙서라도 해줄까?」
   「그러지 말고 우리 집에 데려가서 그림을 그려주자. 옷을 입혀주고 막..」
   「너 방금 뭐 생각했어?」
    그렇게 NB는 그녀들한테 붙잡혀서 꼼짝도 못한 체 불여우 굴로 끌려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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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B는 잠에서 깨어났다. 장소는 그녀들 숙소 소파!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그는 눈을 떴다가 다시 감았다. 왜냐하면 근처 어딘가에 마네킹이 있나 없나를 확인하기 싫었으니까. 만약 있다면 그녀들일 테고, 없다면 또 뭔가 꿍꿍이 때문에 자기를 요리할 조미료를 사러 갔을 테고. 케찹도 사올려나? 막 파스타 소스랑 뭐랑... 안돼 안돼. 그래서 그는 도망갔다. 만약 잡혀서... 상상도 하기 싫었으니까. 





    3

    어느 날 NB는 꿈을 꾸었다. 유령이 나타나 그녀들 4인방을 다시 만나라나 뭐래나. 내용을 잘 기억나지 않는데 그게 뭐랄까 꿈이야 어차피 몽환적이기 마련이다만 이건 극히 사실적이다가 또 이상하게 만화영화처럼 다채로웠다가. 그래서 꿈을 깨고 나니 침대 시트가 흥건하니 젖었다는 것. 또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다시 그곳으로 가보면 뭔가를 발견할 것이다 라는 귀신의 속삭임? 무슨 뚱딴지 같은 개꿈을 꿔서... 또 속아넘어가라고? 허나 속는 셈치고 녀석은 또 바보처럼 자기도 모르게 다음 날 그곳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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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에는 왜 몰랐을까? 그곳은 동네 전체가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변신을 앞두고 있었다. 때문에 인적이 드물어지고 이 다음에 어떻게 되겠다를 아무도 모를 수 없을 정도로 진행되는 단계. 그런데 이런 과정이 왜 전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지? 그게 아마 다 그녀들 때문일 것이다. 그러든 어쩌든 꿈의 계시 때문에 복권을 살 걸 괜히 여기까지 또 고생스럽게 발걸음을 했다면서, 막 녀석은 또 인상 팍 쓰면서 이러쿵저러쿵 혼잣말을 내뱉으면서 그녀들 숙소로 들어갔다. 그런데 어머나! 오늘은 웬 비밀번호를 요구하네? 전에 미처 못 봤던 것일까? 인적 없고 사람도 살지 않으며... 그런데 왜 이런 출입문이 있는지 없는지도 몰랐지? 물론 전엔 항상 열려있었으나 도둑고양이가 뭘 잘못 건드려서 문이 딱 닫혀버렸어. 그런데 고장났던 비밀번호 문짝이 어느 날 정상작동했다? 그럴 수 있다. 어렵겠으나 녀석은 그런 거까지 의심할 만큼 심기가 편치는 않았으니까. 그런데 비밀번호는 뭐지? 아하! 마네킹들 뒷목에 전부 파이(π) 기호가 각인되어 있던 걸 기억해냈다. 그렇다고 시그마니 루트니 뭐니 수학책에서 봤던 기호를 죄다 동원할 필요까지 있겠나. 비밀번호 입력창에 딱 3141, 딩동댕!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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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아니 어떻게... 아뿔사! 맙소사, 소파 앞 탁자에는 정말로 007 가방이 있었다. 전에 봤던 마네킹이랄지 또 마네킹이 없을 땐 진짜 사람 즉 여자들. 그런 건 죄다 사라진 채 이제 남은 건 오직 007 가방뿐. 그럼 그녀들과 다정한 모습들과 은근한 유혹... 그런 게 모두 이 가방으로 들어갔다고? 그럴 수도 있고 아닐 가능성도 농후하다만. 꿈을 믿을 마음은 없었다만 속는 셈치고 와서 지금 이렇게 식겁한 상황. 대체 저 안에 무엇이 들었길래...! 뭐지? NB는 일단 가방을 들고 그곳을 나왔다. 물론 케익 상자를 당장 열어서 생크림 맛을 보는 것도 좋고, 멋지며, 가능은 하겠으나. 동네 분위기가 어떻고 또 꿈에서 뭔가를 알려줬는데 그걸 드라마처럼 뭘 좀 알아야지, 밑도 끝도 없이 당장 사실주의? 일단은 이기주의자로써 영화 주인공인 척 녀석은 그 가방을 자기 사무실로 옮겼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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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곳은 녀석 사무실. Handel / 세속 칸타타 ‘사랑, 잔인한 폭군’ HWV97 자, 일단 (TV로 흔히 봤던 표정과 몸짓처럼) 그는 양손을 비볐고 이제 한번 시작해볼까 막 그러면서 뜸을 들였다. 근데 대체 안에 뭐가 들어있길래... 설마 고액권 다발이? 만약 그렇다면... 또 그게 아니라... 혹시 코카콜라 제조 비법이 적힌 수첩이? 더 뜸들였다가는 신비감이 실망감으로 변하는 마법이 실현될지도 모르므로, 따라서 NB는 당장 가방을 열었다. 그런데 잘 열리지가 않네? 아니 왜? 당연히 뭔가 장치가 있겠지. 자기를 뭐 조심스럽게 다뤄주라 그건가? 우리 서두르지 말아요 뭐 그러냔 말이다. 그래서 손잡이를 잡고 어떻게 할까 했는데, 그 손잡이를 (일부러 그렬려는 건 아니었다만) 딱 트니까 가방이 찰칵 하면서 열렸다. 그럼 내용물은? 
    안에는 작은 카바레, 즉 극장식 카바레가 구현되어 있었다. 또는 인형극 극장 무대라고나 할까? 뭐랄까 막 뭐지 뭐지 그러는데 모차르트, 비발디, 브람스, 베토벤... 그런 멜로디가 자연스럽게 들렸는데. 가방은 직각까지만 열렸고. 왠지 모르게 어떤 특수한 상황에서만 150도 각도까지 젖힐 수 있을 걸 예상할 수 있었으며. 그 안에 무대에는 1명 인형만 올릴 수 있었고, 대기자는 3명. 물론 지금 무대는 공석. 그래서 발레리나 후보는 총 4명. 그런 누구부터 메조소프라노로 간택한다? 콜로라투라는 그러니까 스킬레토힐을 일단 벗겨서, 에라 모르겠다 너부터 프리마돈나로 나서자. 왜냐하면 못 고르겠으니까. 그렇다고 공평하게 공연 때마다 바뀌도록 막 뮤지컬 제작 기법을 적용할 수도 없고. 그래서 네 명 숙녀 가운데 일단 아무나 무대로 올렸는데. 그러자 '백조의 호수' 노래가 모차르트 21번 피아노 협주곡 2악장인가 그걸로 바뀐 거 말고는 변한 게 없었다. 뭐야 이게! 별것도 없잖아? 아직은 NB가 장차 뭔 기발한 작풍이 자기를 들었다 놨다, 밀었다 당겼다, 쥐었다 폈다, 감았다 풀었다 그럴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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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B는 평소처럼 출퇴근하는 삶을 살았다. 친구를 만나서 넌 최근 누구를 꼬셨다며 떠보고. 술집에서 바텐더한테 소파에 자빠져 즐겨보는 프로그램은 무엇이지 성의 없는 립서비스를 받고. 그러다 글이 안 써진다며 무작정 발길을 옮긴 곳은? 미술관. 동물원. 공원. 또 드라이브! 기타 등등. 변한 건 없는데. 딱 하나 바뀐 건 새로운 여자들을 만났다는 점. 물론 요점만 말하자면 진한사랑은 다 실패했다. 당연히 말이 통하고, 사랑을 논하며, 멜로드라마를 반역하네 마네 라는 줄거리도 없이 진한사랑 만을 추구한 건 아닌데. 성적표를 말하자면 그랬다는 것. 그러다 NB는 어딘가 모르게 그게 혹시 007 가방에서 무대에 벨벳 드레스를 올렸기 때문이가 라는 의문을 품기 시작했는데. 그래서 사무실에 있는 가방을 열어 1명만 올라갈 수 있는 모노드라마 주인공을 교체했다. 그랬더니 어떻게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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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면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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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뜸들이지 않고 곧장 말하겠다. 그는 침대행에 성공했다. 그런데 아니... 그게...! 새로 만난 그녀의 이름은 샤론이었는데 왜 하필 그 순간에 눈물을? 기뻐서 흘리는 게 아님. 또는 슬퍼서 눈물이 나왔다? 역시나 아니었는데. 그럼 왜! 왜인지 알 수 없었다는 건 나중 그녀가 말해서 알았고, 또 당시에도 그녀가 막 잡아끌고, 자기를 다시 어째주라... 그런 여러 정황과 근거와 몸의 언어로써 충분히 알 수 있었는데. 근데 이상한 건 그런 그녀의 의사와는 달리 그녀의 몸은 차갑게 식으면서 눈물을 흘리더라는 점. 왜일까? 당연히 그녀와 연애하고, 오래 사귀며, 많이 대화를 나눠보면 알 수 있었겠으나. 어색한 만남은 오래가지 못했고. 또 더더욱 괴상한 건 다음 만나는 여자도 똑같이 키스하고, 손잡고, 포옹하고... 다가온다 다가온다 미치겠다 미치겠다 뜨겁다 뜨겁다 흥분한다 흥분하다...! ~라는 과정을 거친 다음 그녀 또한 눈물을 흘렸다는 점. 그래서 녀석은 누구와도 그 다음을 결코 진행할 수 없었다. 





    4

    이처럼 여자 10명을 만나면서 알게 됐다. 그게 다 가방 때문이라는 걸! 빨랐는지 늦었는지 이제야 원리를 깨달았던 것이다. 
    (1) 플리츠 스커트
    (2) 고급스러운 실루엣
    (3) 고전적인 매력
    (4) 윙클 드레스
    가방을 열면 고정된 무대. 거기에 등장시킬 수 있는 인원은 딱 1명. 누구를 퇴장시키면 무조건 다른 1명을 다시 올리지 않으면 안되도록 설정되어 있음. 이게 그 때문? 이건 연극보다는 장편 드라마에 어울리는 소재인데 아무튼 은근함을 퇴출시킨 채 확실히 말하자면 이렇다. 
    (1) 플리츠 스커트      → 눈물
    (2) 고급스러운 실루엣 → 코피
    (3) 고전적인 매력      → 귀에서 피
    (4) 윙클 드레스        →  ....애...액? 
    물론 1~4번 모두 의상이 가방을 열 때마다 매번 변한다는 걸 녀석은 정말 오래오래 지나서 알게 된다는 건 귀뜸하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된다. 왜냐하면 그만큼 녀석이 제정신이 아니라는 점을 모르면 안되니까. 여기서 혹여 누군가는 4번 애...뭣이면 좋지 왜 나쁘겠냐며 환호성을 지를지도 모르겠다만. 그게 마냥 쾌재를 부를 일만도 아닌 게 뭐냐면! 그가 접근하는 여자가 이를 테면 브랜드 마케팅처럼 표적이 최적화되었다면 몰라도. 그게 아니라 뭐 아무나... 막... 누구나? 골치아퍼진다. 왜 난감하지 않겠나. 
    여기서 통계에 따른 도표, 수치, 기록,,, 그래프가 어떠하니 뭐가 어쩌고저쩌고더라? ~까지 설명할 수도 있다만. 그 가운데 최우선으로 말해야 할 게 있다. 그건 무엇일까? 바로, 1, 2, 4번은 사실주의이고 3번만 환상파였다는 점. 그게 대체 뭔 말이지? 즉 결말에 가서 어퍼지든 찬물을 확 끼얹든 어차피 정점은 못 찍을지언정. 합방을 하게 됐는데, 합궁을 하니 마니, 속궁합을 따져보는 과정에서, 마침내 비밀스러운 성감대를 딱 대번에 찾아냈는데. 그러든 어쩌든 나머지는 싹 다 사실주의. 그렇지만 죄다 실패. 그런데 유독 3번만 마술적인 환각으로 NB의 마음을 황홀하도록 미칠 듯이 흔들어놓았는데. 다시 말해 3번도 역시나, 기왕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애독자여! 그대여 한번 상상을 해보시라. 그러세요 제발! 딱 어떻게 어떻게 딱 그럴려고 하는데. 그런데 상대방 귀에서 피가 나오는데 더 진행한다? 못한다. 또 갑자기 쌍코피가 흐르는데 키스를 계속한다? 말 같지도 않음. 눈물은 앞서 말했고. 경험한 사람들 거수? 물론 4번 애... 그건 우리가 만약 사후 세계의 비밀을 알게 된다면... 경우의 수만 따져도 생지옥이 따로 없을 거라는 점. 그래서~ 은근이라는 간접화법이 없을 수 없는데. 그처럼 4번 만큼 곤혹, 짜증, 뚜껑열림에 대해서는 애처롭게 말을 아낌. 머리에서 부글부글 수증기가... 모락모락... (절레절레)! 근데 왜 갑자기 어디서 문어 썩은... 쉿! 
    보아하니 누구를 타석에 등장시켜도 전부 실패. 아무리 시기 적절하게 교체를 해도 누구나 헛방망이. 아니면 솜방망이? 헛발질도 한두 번이지 차라리 망신 안 당하도록 집에서 혼자 영화나 보는 게 백번 천번 나을 건 뻔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계가 쌓이다보니 NB는 알 게 됐단 말이다. 나머지는 모두 사실주의였으나 오직 3번만 환각, 환상, 환영... 마술적인 판타지였다는 걸! 즉 귀에서 피가 흐르는데 어떤 날은 그게 청록색이었다가... 누군가 귀에서 흐르는 액체는 거의 진짜 케찹과 흡사하기도 하고. 또 연보라색 액체가 귀에서 흐르자마자 막 증발하는데. 그 기체가 커졌다 작아졌다 반짝였다 초소형 불꽃축제처럼 터지다가. 물론 이건 극중 농밀한 정사씬? 머머씬? 그런 정신없는 순간에 뜬금없이... 남녀 모두 미칠 노릇인데. 여자도 여자지만... NB는 밑도 끝도 없이 뭐 귀에서 흐르는 피가 어느 날은 주황색이었다가 또 다른 여자를 만나서는 뭐, 어? 귀에서 무지개색 변화무쌍한 액체가 흐르더니 막 증발해서, 다음에 코앞에서 불꽃놀이가 펼쳐졌다고? 누가 믿겠어. 허나 사실인데? 물론 그놈 딱 1명에게만! 
    딱 여기까지만 해도 편당 30분 잡고 20부작쯤 거뜬히 뽑을 수 있을 텐데. 
    중요한 건 어느 날 녀석은 또 꿈에서 계시를 받았다는 점. 내용은 무엇을까? 
    저번에 선물했던 그 가방을 찾으로 왔노라 어쩌고저쩌고! 그랬더니 집에서 일어나자마자 그는 사무실로 뛰어갔다. 
    그랬더니 정말로 그 마술 가방은 사라져버렸다. 그래서 어떻게 됐을까? 정말 어떻게 됐을까? 그 다음에 그 다음에... 아 글쎄 어떻게 됐냐고? 





    5

    요술 가방이 선사한 원리. 그건 앞서 괴상한 꿈을 꾼 뒤로, 요술 가방이 선사한 원리는 반대로 바껴버렸다. 
    즉 이제부터 NB는 누군가를 만나면 이상하게 눈물을 흘렸다. 
    또 어느 날 인연을 맺게 된 어떤 숙녀와 친해져서 데이트르 하고. 
    그러다 연애의 진도를 심각하게 고민하던 끝에, 아차! 아니 저런... 저... 저...!
    딱 중요한 순간에 NB는 코피를 흘리네? 키스하던 그녀는 표정 싹 바뀐다. 
    또 딴 분을 만났더니 글쎄 이상하게 오줌마려워. 막 자주 그래. 근데 화장실에 가면 또 안 마려워. 
    뭐지? 뭐지? 이거 대체 뭐지? 그러니까 대체 누구를 만나면 귀가 가렵고, 누구와 함께 있으면 쌍코피가 나게 되어 있을까. 
    이를 테면 딱 거사를 치른 다음에 뭐 쌍코피가 터지든 말든 해야 할 건데. 무슨 뭐 마침표도 못 찍고, 어? 느낌표는 커녕, 에잇! 
    말 말자. 어? 묻지 말라고 글쎄 이 양반아. 거 사람 미칠 노릇이 이거니까 말이야. 아주 그냥 환장할 일이지 그냥. 돌아버려. 
    좋다 마는 거도 한두 번이지. 뭐가 어쩌고 어째? 
    C.P.E.Bach / Magnificat Wq215
    그래서 녀석은 결국 장편 드라마를 1단계는 1부작에서 20부작까지, 2단계는 1부작에서 30부작까지 마쳤으니까. 
    이제 서서히 다음을 구상하여 수동 기어를 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니까 어떻게 기어 조작을 했을까? 
    정답은 엑셀! 왜 그런지는 모르겠으니까 <어떻게>부터 알아봐야 하지 않겠나. 따라서 일단 만나봤다. 
    스타벅스 커피숍에 취직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봤다. 물론 모든 걸 엑셀표에 적었다. 뭐든지 기록했다. 
    그런데 스타벅스 유니폼을 입는 동안 녀석은 여자를 단 1명도 못 꼬셨다. 또 아무도 그를 유혹하지 않았다. 
   (절레절레) 그래서 그는 스타벅스를 때려친 다음 버거킹에 취직했다. 유니폼을 바꿨기 때문일까? 버거킹 매장 
    내에서는 별 일이 없었다. 다만 우연의 일치 때문인지 뭔지 날이면 날마다 그는 여자를 갈아치웠다. 그렇다고 속된 말로 막 그냥 씨를 막 뿌리고 다닌 건 아니었다. 뭐? 아니, 그렇게 심한 말을...! 농담이고. 그럼 뭘 해? 
엑셀에서 주의할 만한 부분은 아무 것도 못 건졌는데. 하여 다시 유니폼을 또 맥도날드로 바꿨는데. 
    다시 말해 이제는 누구를 만나도 코피가 나지 않음. 눈물이 말랐나? 이러면 엑셀표를 작성하는 의미가 없잖아? 왜 아니겠나. 
    호시절이 다 가버린 건지 아닌지 화려한 전성기는 다시 찾아오지 않게 되었다. 그럼 이제 정상으로 돌아왔으니 좋잖아. 
    근데 표정이 왜 그래? 누가 알겠나 그 꿍꿍이를. 





    6

    그러던 어느 날 NB는 사무실에서 일을 하는 둥 마는 둥 놀고 있었다. 빈둥빈둥 호랑방탕한 놈 같으니라고, 뭐 평생 놀고먹겠다고? 그 심보를 어디서 배웠는가는 몰라도 설마 어려서부터 꿈이라면 또 몰라도. 아니, 설마 어려서부터? 무슨 그런 개똥 같은 소망을 일찍부터! 그나저나 그가 받은 문자는 무엇일까? 요약하자면 이랬다. 
   "어디어디 모텔 몇 호실로 오시오. 우리의 제의를 무시할 수 없는 이유는 그대가 더 잘 알 것이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우리가 당신을 자기라 불러도 될까요? 안 될 건 또 뭐겠소. 더더군다나 방금 뭐랬냐, 우리 라고 하지 않았겠소. 그럼 그대는 1명인 반면 우리는 2명이지 않겠소. 왜, 생각이 많아지시오? 그러든 아니든 우리는 반드시 만나야 되는 것. 아무튼 방문은 1시간 뒤 약 5분 동안 열려있을 것이오. 혹시 늦더라도 당신의 발걸음이 느려지지 않도록 다 조치해놓을 것이오. 그럼 도착하여 우리를 뭐라 불러드릴 생각이오? 아직 우리가 누군지 모르겠소? 궁금함에 마음에 별나라로 도망가기 전에 어서 만납시다."
    이런 느낌 처음일까? 쿵쾅쿵쾅 녀석의 심장은 두근거렸다. 어디 하트만? 
    장면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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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디어디 모텔 몇 호실에 딱 들어섰는데. 거기에는 뒤늦게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내려는 것인지 막 반짝반짝, 뿌잉뿌잉, 들썩들썩 막 그랬다. 축제 기분이 고조되는 느낌으로 장식도 꾸몄고 음악도 알맞고. 그런데 그의 앞에는 웬 마네킹이 2명 서있다니! 아뿔사...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녀석은 갑자기 자기 몸의 중간, 그곳이 따듯해지는 걸 감지했다. 그때 핸드폰은 마구 울렸다. 왜냐하면 자기 사무실 출입 시스템이 경고음을 보내왔기 때문이다. 불시에 누가 침입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건데. 아니 누가? 그러게 말이다. 왜 하필 이 중요한 순간에... 누구지? 올 사람이 없는데. 게다가 어째서 지금이냐고. 심지어 몰래 침입해서 특수 선그라스로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막 선홍색 레이저, 하늘색 레이저를 일부러 건드려서까지. 꼭 그렇게 해서라도 자기 사무실에 들어와야 할 긴박한 이유라도? 일단 뭐 가보면 알겠지. 그래서 얘네들을 어떻게 요리할까는 잠시 뒤로 미룬 체 NB는 자기 사무실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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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사무실에 도착했다. 그런데 음악을 누가 틀어놨지? Viotti / Violin Concerto No. 22 게다가 텔레비젼도 켜져있고. 무선청소기 역시나. 대체 누구야? 그런데 아무도 없어. 그렇다고 특수 침입 시스템이 오작동할 리도 없고. 그건 연방 준비위원회는 물론 스위스와 전세계 곳곳의 조세회피처가 있는지도 모를 정도의 비밀 장소에서도 신뢰하는 그런 프로그램인데. 아니 어떻게... 허무감이 밀려왔다. 뭐야? 그런 허전함을 날려버릴 해결사가 바로 녀석 등 뒤에 있었다는 사실을 그땐 왜 몰랐을까. 알 리가 없지. 그때 NB는 왠지 모르게 자기 팬티를 열어봤다. 그런데 그 물건이 뭣 때문에 대리석으로 변해있지? 알 수 있나. 모를 수 밖에. 그러다 갑자기! 
    벽에 걸리 명화 속 마네킹은 느닷없이 하늘색 레이져를 녀석한테 쏘았다. 그래석 NB는 마네킹으로 바꼈고, 명화 속 nb는 밖으로 뛰어나와 녀석의 모습으로 변했다. 이제 숙주를 탈환하는 방법이 새롭게 발전했다고나 할까. 그걸 누가 감탄할 기회도 주기 싫다는 듯이 nb는 서둘러 어딘가로 뛰어갔다. 거긴 어디일까? 어디겠나. 앞서 NB가 어디어디 모텔 몇 호실 바로 거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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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디어디 모텔 몇 호실. 도착하자마자 nb는 연분홍빛 레이져를 마네킹 2명에게 쏘았댔다. 그녀들의 마음을 녹여서 부드럽고, 다정하며, 따스한 육신으로 변신하게 하기 위해서! 뭐라고? 바로 그 찰나, NB의 사무실에 또 누군가 도착했음을 nb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럴 겨를이 어딨겠나. 생각이 어디 가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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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플리츠 스커트
    (2) 고급스러운 실루엣
    (3) 고전적인 매력
    (4) 윙클 드레스
    그 넷 가운데서 또 다른 멋진 패션으로 변신한 2명. 그녀들은 NB 사무실로 들어왔다. 이미 NB가 마네킹으로 변해있는 걸 알고 있었다는 듯이. 그렇게 자연스럽게 그녀들도... 아니다. 그녀들은 눈에서 레이져가 나가지 않음. 따라서 레이져 대신에 녀석의 마음을 녹일 수 있는 그녀들 본거지로 그 마네킹을 데려갈 수 밖에 없었는데. 근데 몸이 아니라 마음을 녹일 수 있는? 그러거나 말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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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숙소에서 그녀 2명은 눕힌 NB 마네킹의 발바닥을 한 명씩 담당하고 있었다. 나머지 2명은 아직 아마 출타 중이었을 건데. 그녀들이 어서 돌아와 녀석의 두 손을 담당해서 어떤 마법을 완성시키면 녀석은 다시 사람으로 변신할 것이다. 그런데 왜 아직도 안 오는 거지? 대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길래! 





    7

    1주일 후. 
    시간은 후딱 가버렸다. 
    장소는 시내. 시내에서 더더욱 멍청해진 NB를 양쪽에서 부축하여 걷고 있을 때. 저 앞에서.... 저 앞에서... 
    다음 장편 드라마는 방영되면 확인하는 걸로. ~라고 환상극은 끝날 뻔했는데. 이걸 어쩌나? 녀석은 통 무대에서 내려갈 줄을 몰랐음. 자, 그래서 어떻게 됐을까? 이어가자면, NB는 인파가 꽤 되는 시내에서 웬 유리창에 부딪혀서 넘어졌다. 쇼윈도우라고 하나? 그럼 이미 마네킹들이 녀석을 아이쇼핑했을 수도 있다는 얘긴데. 그러거나 말거나 사람들이 모두 그를 주목한 것은 아니었다. 몇몇은 그 장면을 보고서 웃고, 잡담하고, 미소를 감추거나 키득키득. 그렇다고 숙녀가 그 몸짓에 어떤 성적 상징이 숨겨져 있나 라면서 희번덕거릴 수 있나. 말 그대로 몇몇은 웃고 몇몇은 제 갈길 가고. 그런데 중요한 점은 마치 아무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NB는 정상으로 복귀했다는 점. 양쪽에서 팔짱 꼈던 그녀들은 온 데 간 데 없고. 역시나 정면에서 작은 nb도 거울처럼 그렇게 자기한테 다가왔는데. 쇼윈도우에 부딪힌 다음에는 여자-nb-여자... 걔네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바로 그때! 
    옆에서 NB를 부축하는 마초 2명. 
   「아이쿠, 괜찮은세요?」
   「어르신, 어쩌다 넘어지셨어요? 설마 드라마처럼 저 안쪽으로 쓱 통과하실 수 있을 것 같았나요?」
   「그러게 말예요. 정신이 좀 드세요? 설마 그게 가능했다고 해도 그럼 이 세상에 초능력자 아닌 사람이 어딨겠어요. 안 그래요? 저희 같은 잔챙이라고 뭐 불행과 가난만 양쪽에 꿰차고 살란 법 있냔 말이에요. 기왕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이건 아마 계획에 따라 실행된 작전은 아닐 겁니다. 그걸 당신이 어떻게 아냐구요? 그야 뭐 엄마한테 물어보면 알겠죠. 그러지 말고 '엄마한테 말하지 마'라는 나이트클럽에나 갈까요? 무슨 이런 재미없는 농담도 농담이라고. 개똥 같은 잡담 그만하고 일단 우리랑 갑시다. 어디로 갈지는 가보면 알겠죠. 물론 고급스러운 리무진을 타고 갈 테니까, 칵테일도 드실 수 있죠. 당연히 마술사의 조수는 미녀일 테구요. 어떻게 취향은 그냥 치마, 아니면 치마+스타킹? 그런데 저희도 주어진 좌표로 가는 게 임무일 분 그곳에 어떤 귀빈이 기다리고 있을지, 어떤 기가 막힌 파티가 벌어지고 있을지 아무것도 아는 게 없어요. 다만 형씨께서는 가셔서 결코 손해보시진 않을 테고. 우리가 선생을 모셔가는 데 실패하면 우리는... (절레절레) 말도 말어요. 말도 마시라구요. 왜냐구요? 아 글쎄 묻지 마시라니까요. 그래도 뭔가 궁금하니 조금 힌트를 쓱 흘릴까요? 영화에서 보셨어요 안 보셨어요? 황홀한 몸매, 천상의 목소리로 마음을 녹여주는 교태. 귀여운 게 강아지랑 똑같네. 웬 나이트가운과 파티복과 무슨 패션쇼를? 그런데 무슨 가면무도회도 아니고 막 사람들이 쓴 가면은 초정밀한 상어대가리, 독수리 머리, 돼지 머리, 코뿔소 머리... 등등. 그럴 줄 알았죠? 아니에요. 모두 나체. 그리고 선그라스. 또 하나? 마스크!」
    리무진을 타고서 도착한 곳은 말 그대로 대저택. 
    정문부터 또 다른 정문까지는 멋진 오픈카를 타고 이동. 
    다시 2번재 정문부터 3번째 정문까지는 적토마, 백마, 천리마...애마를 타고서. 
    그렇게 어떻게 어떻게 파티장에 입성. 중간에 물론 8 대 2 가르마가 깔끔한 요원들이 암구어를 물어봤을 테고. 
    주변에는 가죽점퍼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는데. 그 안으로 들어가는 건 NB 혼자! 
    그렇게 딱 들어갔는데. 진짜로 앞서 말했듯이 모두 나체! 심지어 속옷을 하나도 안 입음. 
    그런데 알고 봤더니 죄다 마네킹. 그런데 100명? 200명? 몇 명인지 몰라도 전부 다 움직이지도 않고. 
    말도 없고. 요한 쉬트라우스인지 그 주니어인가 2세인가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미묘하게 눈을 돌릴 때, 
    발걸음을 멈췄다가 움직일 때. 시선을 돌릴 때. 뭔가 관심을 보일 때. 호기심을 발동하는 그 순간. 
    여러 마네킹들은 미묘한 움직임이 있었다는 점. 그래서 너무너무 이상하다 싶어서 그는 그 가운데 
    새끈한? 어떤 숙녀를 만져봤다. 뭐야? 따듯하잖아! 그래서 알게 됐다. 
    이 수많은 마네킹들은 전부 다 마네킹이 아니라는 점. 그럼 누구는 하체만 사람이요... 
    또 엑셀파일처럼 자료 입력해서 휘리릭, 삐리릭 CPU 돌리고 RAM 구동시켜야 하나? 
    어쨌거나 저쨌거나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됐을까? 
    음악 장르가 뒤바뀌며, 드라이아이스 수증기를 비롯해 변화무쌍한 분위기. 어떤 줄거리가 이어질까, 
    배후에 감춰진 속임수는 무엇이며, 유인하여 몰고갈 다음 등장 인물을 예상하도록 귀뜸해줄 텐데. 
    ... 라고 골똘히 전머리를 너무 굴렸기 때문일까? 그는 소파에 자빠져 스르륵 잠에 빠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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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류 나이트클럽. 허나 한땐 더 잘나가는 클럽이 없었다더라 어쩐다더라. 심지어 일부러 삼류로 꾸몄을 뿐 그 안에서만 비밀문 열고 들어갈 수 있는 사설 비밀 클럽이 있다더라. 소문만 무성한 그런 나이트클럽. 거기서 그 뭐지 고전영화 죠스에 보면 철창 안에 사람이 들어가서, 그걸 바다 밑으로 들여보내 어쩌고저쩌고. 그런 철창 비슷한 데서 NB는 깨어났다. 근데 복장이... 나체에다 황금색 반짝이 팬티! 그리고 부족한 근육은 실리콘으로 붙이고 어쩌고. 또 얼굴은 뭐가 씌여져 있는데 본인은 알 수가 있나. 설마, 넘어가고. 또 SF 영화에 나오듯이 로봇의복을 입고서 막 전투하고 그러는 것처럼, 로봇이 그의 등과 팔다리 곳곳에 부착되어 있거나 의도대로 움직이도록 연결만 되어있는데. 그렇게 관절꺾기 인형 이름이 뭐지,,, 막 로보트 춤을 출 수 밖에 없었는데. 
    그러면 삼류 나이트클럽 손님은? 다음 내용은 장편 드라마로 개봉되면 관람하는 걸로. 





    8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설마 인생이란 잠깐 기분 좋았다가 대부분 빈정상하는 건가! 말할 것도 없이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아니어야 하니까. 이처럼 녀석은 끊임없는 공상 때문에 괴로웠다. 상념은 늘 그를 괴롭혔다. 게다가 슬럼프와 부쩍 친해지기까지. 심지어 가난은 끈질기도록 NB의 뒤꽁무늬만 쫓아다닐 따름. 뭐가 어쩌고 어째? 말하자면 탐스러운 열매는 자꾸 미래로 도망가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정말로 그는 괜찮은 애마를 배당받지 못한 걸 늘상 망각했다. 그러면서 이따금 내뱉는 혼잣말은, 아니 누굴 바보로 아나! 물론 농담 반 진담 반. 그게 아니라 풍문으로 전해질 수 없는 긴가민가일 뿐. 그러므로 밝은 내일에 대한 가슴 부푼 희망 대신에. 그 대신에 자기도 모르게 어떤 저속한 제목을 떠올릴 것이다. 다름 아니라 뭐, 경리녀 따먹기 같은 삼류 드라마 제목을 말이다. 뭐, 뭐가 어쩌고 어째? 아직도 그런 개뼉따귀 같은 잡담에 귀기울이는 사람이 있나? 필자가 알기로는 단 1명도 없다. 이 세상을 오락산업이 떡 주무르듯 하는 시대에 그런 개 풀 뜯어먹는 헛소리가 재밌다는 것부터 말이 안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녀석은 신비로운 상상력을 어떻게 쥐어짜내려고 잔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그게 한다고 되나? 그럼 얼마나 좋겠나. 말이야 바른 말이지 어떻게 한번 해보겠다는 건 멜로드라마 주인공들 얘기일 뿐이다. 그러든 어쩌든 흠모하는 애정은 끈질길 것이다. 그 대상이 누군지는 몰라도 공공연히 알려진 진실은 아마도 그것. 짧게 말해 뉴 페이스? 이럼에도 불구하고 소망 충족을 어떻게 하나. 그래서 식탐이 농간을 부렸다. 곧 그는 실수로 폭식에 몰두한 것이다. 쯧쯧. 물론 오래가진 못했다. 결국 현실 초월과 초망 충족은 택도 없는 희망에 지나지 않은 것. 고로 남은 건 애만 태우는 재미없음. 아니면 쩔쩔매는 가난? 그럼 지금이라도 어떻게 비밀이나 추억에서 둘 중 하나를 만들어볼까? 그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님. 고로 남은 건 세상의 기쁨, 환희, 만족, 선망을 두고 보고만 있어야 하나? 그러던가. 아니면 내 불만을 애써 눈치 못 챈 척하든가. 그게 뭐야! 결국 아니나 다를까 꼼작없이 심심함. 할 수 없이 따분. 어쩔 수 없도록 재미없음. 당연히 권태한테 맺집 부르트도록 샌드백 신세. 이래서 남자는 집에 있으면 안된다. 뭐랄까 우리는 엉덩이 근질근질한 거 못 참는다고나 할까? 농담이고. 
    그래서 녀석은 무작정 밖으로 나갔다. 뭐, 또? 말하자면 자기 자신에게만 보이는 등에 딱 달라붙은 로봇. 타인에게는 보이지도 않고 누구도 볼 수 없는 그것. 그것으로부터 자유를 얻기 위해 어떡해야 하나를 고민하기 위해서였다고나 할까.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오줌을 눠도 알록달록 무지개빛이요 뭔가를 집어도 홀린 듯 제 의지와 때때로 다르게 움직이는 생활. 그래서 그는 마침내 X맨 연구소로 찾아갔다. 끝까지 가지 않으려고 했으나 언제까지 웜홀 연구만 할 수도 없고 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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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소설 2021. 10. 31. 16:48

    1

    사색가로써 전적이 마음에 들지 않는 인생. 그래서 역전을 꿈꾼다? 바라든 아니든 갑자기 외계인으로 변신은 불가능하다. 그 때문에 마음에 없는 말과 욕망은 아마도 상치될 텐데. 그로 미루어 짐작하면 그 둘이 대치하면 뭘 하나. 재미없음과 심심함이 대적한다 한들 그 어떤 황홀함은 그림의 떡일 뿐인데. 말이 너무 심했나? 첫째 심하다기엔 좀 뭐하고, 둘째 아무도 듣지 않으며, 셋째 현재 NB한테 떽떽거리고 닦달하며 잔소리 얻어들어도 정신 못차릴 지경이라는 게 중요할 따름. 그래? 뭐가 그래. 그러긴 뭐가 그래! 이런 형편에 어떻게 듣도 보도 못한 사랑에 빠지겠나. 어림없다. 멜로드라마는 관심 없고 야망은 통 말을 안 듣고. 어쩌지? 그야 본인 알아서 하겠지 뭐. 그러니까 이제는 마음은 새파래졌고, 피부는 핏기를 잃었으며, 세상이 노랗게 보일 지경. 그러다 한번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하늘이 연분홍빛으로 보이네? 단지 석양이었다. 시간이 정지된 줄 알았겠지. 한편 갑자기 그는 인터넷 대작 게임에 빠졌다. 흡사 청초한 미녀에게 첫눈에 홀딱 반한 것처럼. 그러나 예사롭지 않은 친밀감은 3일에 불과했다. 그럼 그렇지. 하여 이제는 뭐가 그렇게 좋은지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낙옆만 봐도 웃을 수 없는 중년. 드디여? 사랑에 대한 애착이 돈독하면 뭘 하나. 결국 말만 무슨 머쉰이라는 둥 그랬지 알고 보면 허당 중의 허당. 이래서 우리는 무언가를 알 수 있다. 즉 숙녀에게 반하기는 쉬워도, 능력자가 되기는 어렵다는 것을. 뭐라고? 하오나 무능력자가 뭐 어떤가. 적당히 행복하기만 하면 그만이지. 이제 와서 사교계에 늦깎이 데뷔를 왜 하나. 그 때문에 잔머리는 아마 이렇게 돌아갈 듯. 심심한데 마술을 독학할까, 여자말 번역기 학원에 다녀 그녀들의 마음을 녹여줄까, 아니면 청개구리 허당계를 창단할까. 뭐라고? 생각한다는 거 하고는. 이래서 여자가 없지! 그러니까 사랑은 완성하기 힘들다. 행복을 어떻게 정복하나. 가난한테 눈탱이 맞지나 않으면 다행. 말이 심했다만 다 웃자고 하는 말인데 듣고 보니 안 웃기군 그래. 그래서 어떻게 숙녀의 손금을 봐주겠다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됨. 결국 그는 권태로부터 용서받지 못한 남자였다. 그럼 이제 권태기가 복수할 차례일까? 차례는 무슨.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도 연애를 해보고 싶다고? 누가 남자 아니랄까 봐. 굶주릴 대로 굶주린 늑대는 그냥 소파에 자빠져 TV나 보라 그래. 시내에 나가 눈 돌아가면서 평균연령이나 깎아먹지 말고 말이다. 다 커서 그게 뭐야! 찌질한 녀석. 한심하다 한심해. 한편 뉴스에서 또 토마토와 마늘이 정력에 좋다더라 라는 걸 보고서... 귀 얇으면 피곤하다. 그러니 젊음을 탕진해서 현재 지갑 없음? 허나 고깝게 듣지 말자. 왜냐하면 미련한 놈이 곰 잡을 수도 있으니까. 근데 기나긴 푸념은 대체 언제 끝날까? 그야 허당이 골든벨을 울리면 끝나겠지. 아니면 복권은 꽝되던가. 아예 사본 적도 없다고? 그러든가 말든가. 이래서 늦잠 자며 꿈에서 깨어나기 싫을 텐데. 그래 봤자 개꿈은 꾸나 마나다. 그러니 또 단꿈이 선명치 못하니까 반투명한 공상이 대신할 것이다. 가령 이런 식. 나는 어제 누구를 자빠트렸을까, 아니 나는 지금 뭐 하고 자빠졌나! 또는. 심심한데 (피동격으로) 짝사랑이나 받을까 아니면 (능동적으로) 누군가를 유혹할까. 뭐, 뭐가 어쩌고 어째? 그건 그렇고. 그는 갑자기 뭔가 놀랄 만한 전개가 나타나지 않았으므로 아지트에 가보기로 했다. 실상 도망가버린 젊음 때문에 상심할 수도 없는 노릇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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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지트는 문 닫았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나는 야외로 한바퀴 돌기로 했다. 드라이브! 혼자? 조용해서 좋지 뭘. 그렇게 사무실에서 아지트까지 걸어갔다가 아지트가 닫힌 걸 보고 야외로 자동차 타고서 나가려고 했는데. 그런데 내 자동차가... 어디로 갔지? 주인은 여기 있는데 지 혼자 어디로 가버렸나? 그렇다고 세계적인 미술품 수집가의 수하에 있는 중간보스가 내 허름한 중고차를 훔쳐갈 리도 없잖아! 그런데 어떻게... 뭐지? 아니면 웬 바보가 지 혼자 영화 찍는다면서 내 차가 마음에 들기 때문에 문을 딴 다음, 드라마에 나오듯이 파란선-빨간선-초록선-노란선에서 피복 벗겨 뭐와 뭐를 연결했더니. 그렇게 시동 걸어 몰고 가버렸을 리도 없을 텐데. 거 참 이상하네. 그런데 어쩐지 동네에 캠핑카가 최근 세워져 있었고, 사람들이 이따금 들락날락하는 걸 알아보니 그건 점집이었다. 웬 영험한 도사가 일시적으로 땅기운이 좋기 때문에 머물르면서 사람들 점을 봐준다고 하는데. 그 양반한테 물어봐야겠군 그러면서 나는 그 캠핑카에 방문했다. 
   「도사님. 제 차가 사라졌어요.」
   「그랬어요?」
   「되묻지 마시구요.」
   「그건 제 마음이지요. 찬찬히 상황을 확인하고자 수긍하는 건데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그랬나요? 그럼 저를 다그쳐주세요. 딱 보니 저 같은 허당 혼내주시는데 재주가 탁월할 걸로 예상합니다.」
   「네? 그건 또 무슨... 형씨는 저랑 말이 잘 섞이질 않는군요.」
   「그래요?」
   「그래요? 되묻지 마쇼. 거 참 우리가 왜 만났는지 자꾸 헷갈리게 만들거요?」
   「네? 그건 제 마음이지요.」
   「벌써 날 따라하시네. 아, 그러고보니 제가 먼저였군요. 오랫만에 적수다운 적수를 만나 반갑습니다. 아, 제 말은 어떻게 생각해보면 우린 꽤 말이 잘 통할 것 같다 그런 얘깁니다. 섭섭히 생각하지 마시구요.」
   「아니요. 무척 고깝게 들립니다.」
   「거 참, 이럴 게 아니라 인사말은 이 정도로 하고. 그만 왜 날 찾아왔는지 본론을 얘기하시는 게 어떨까요?」
   「그러게요. 제가 선생님을 왜 찾아왔죠?」
   「그걸 나한테 물어보면 어떡합니까! 설마 저한테 여자를 소개받고 싶으신 건 아닐 테고. 날 대체 뭘로 보는 거요, 네?」
   「제 눈엔 선생님 얼굴이 생선 대가리로 보입니다.」
   「허허허. 재미없는 농담에 미소로 답하지 못할 만큼 난 답답한 사람 아니라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설마 당신 새대가리요? 미안하오. 실언했소. 허나 당신이 심했어. 알아?」
   「그러니까 실없는 농담으로 분위기 떨떠름하게 만드는 난 형편없는 작자란 말이오?」
   「내가 언제 그랬소. 이 양반 그러고보니 자꾸 내 부아를 돋구는데. 그런다고 설마 내가 형씨 손금이라도 봐줄 줄 아시는 거요?」
   「그건 또 무슨 소립니까? 제 성적 취향에 대해 섣부른 판단은 참아주시죠.」
   「그러게 왜 아까부터 자꾸자꾸 깐족거리고 그러시오.」
   「제가 언제 깐족거렸다고 그러십니까. 며칠 캠핑카를 관찰해보니 성별, 연령별, 매력, 감정, 외모 분포가 구분되더라. ~라며 선생님을 협박할 의도는 없다오.」
   「네? 지금 말 다 했소?」
   「저는 말 많은 남자가 아니란 것만 알아주십시오.」
   「그럼 지금 나보고 말 많다고 면박주는 거요, 것도 면전 앞에서?」
   「근데 도사님은 왜 자꾸 아까부터 제 말을 비꼬아 듣는 겁니까?」
   「내가? 아무래도 우리...끼리는 대화가 길어지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소. 동의하시오?」
   「제가 왜 싫겠습니까. 저도 바쁜 사람입니다.」
    나는 그렇게 캠핑카에서 나왔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캠핑카 앞에 내 자동차가 있었다. 그 찰나 사이에 누가 여기다 내 자동차를 가져다 놨지? 그게 저 괴팍한 도사가 다 짜고 그랬을 리는 없을 텐데. 설마 그렇다고 할지라도 속을 나도 아니고. 싸구려 발단과 허접한 전개는 식상하다. 삼류 드라마로 날 어떻게 한번 해보시겠다? 나는 말려들 생각 없다. 사람을 뭘로 보고! 저 양반의 전직이 뭔지 의심스럽긴 하다만 그의 인생이 속된 말로 아마도 꿀잼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사랑의 찬란함은 나한테 상대도 되지 않을 테니까. 하긴 유치하게 내가 저 냥반을 찾아온 것부터 문제다. 뭐 자동차야 원래 여기 있었는데 내가 막 드라마처럼 없는 자아를 분열시키고, 없는 인물을 만들어내서 반전의 반전. 그게 일시적으로 착각한 걸 수도 있다. 때문에 나는 내 자동차가 밑도 끝도 없이 캠핑카 옆에 짠~하면서 나타난 것에 대해서 하나도 놀라지 않았다. 
    바로 그때! 캠핑카가 움직였다. 뭐야, 저건 RV카랄지 자동차가 끌어서 이동하는 캠핑카인데. 당장 뭔지 모를 세한 느낌. 새파란 직감은 달아오른 흑심을 식혀주기에 충분했다. 뭐? 어쨌든 저 캠핑카는 내게 말하는 듯 했다. 자기를 따라오라고! 그래? 그럼 못 따라갈 내가 아닌데. 왜냐, 내가 못할 줄 아냐? 라는 말은 참고 그냥 따라가지 않으면 안될 것만 같아서. 그렇게 녀석을 따라간지 약 30분 경과.
    결론만 말하자면 나는 녀석을 놓쳤다. 그럴 거면 뭐 하러 따라오라는 것처럼 내게 도발한 거지? 물론 내 오해일 수도 있다만. 아니 근데 여긴 대체 어디야? 이게 정말 용한 점쟁이 짓인지 돌팔이 마술사가 내게 장난을 치는 건지 모르겠는데. 아니 증말 여긴 어디지? 차에서 내린 나는 선명하거나 상쾌한 경치를 보다가, 갑자기 그게 바뀌는 장면까지 보게 됐는데. 
    알고 봤더니 '나&자동차'보다 크게 자동차 모형이 있었고. 그 안에 '나&자동차'가 그 큰 모형 안에서 자동차 실내 디자인을 감상했는데. 알고 보니 실내 디자인을 둘러싼 화면들 전체가 일종의 TV 브라운관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게 다 진짜가 아님을 알게 된 바로 그때. 저쪽에서 무당벌레 3,000만 마리가 나를 향해 맹렬히 날아오고 있었다. 당연히 나는 그 위세에 눌림과 동시에 혼신의 힘을 다해 도망갔는데. 그러다 어딘가에 걸려 넘어지고 또 몇 바쿠 땅바닥을 구르다가. 그러다 어느새 정신을 잃어버림. 
    그래서 나는 어디서 깨어났을까? 
    다름 아니라 캠핑카였다. 의자에 앉아 책상에 엎드린 자세로! 
   「선생님. 그 짧은 틈을 쪼개서 낮잠까지 주무시네요? 대단합니다.」
   「선생님? 아, 잠깐! 다리에 쥐났어.」
   「어디요? 어디요?」
   「어딘지 알면?」
   「제가 주물러드려야죠.」
   「저리 가.」
   「지금 저 보고 저리 비키라 하셨어요? 서운해요. 사람 섭섭하게 우리 정말 이러기에요?」
   「그런데 내가 왜 당신한테 선생이란 호칭을 들어야 하는 거요?」
   「무슨 소리에요, 나 같은 미녀 조수가 또 어딨다고. 선생님도 엉터리 마술사에서 쪽집게 점쟁이로 대변신할 수 있던 사연도 다 제 덕택인 거 인정하셨잖아요.」
   「제가요? 언제요! 아니 당신은 누군신데...」
   「개꿈 꾸셨어요? 설마 그 내용에서.. 저를 겁탈? 이래서 내가 앙탈을 안 부릴래야 안 부릴 수가 있나. 또 또! 쌤, 대체 언제 정신차릴 거에요, 네? 또 저한테 비법은 언제 전수해주실 거구요. 저기 줄 엄청 긴 거 안 보이세요?」
   「」
    나는 그제사 눈치챘다. 내가 돌팔이 점쟁이로 돌변한 사실을. 이게 다 어찌 된 일인지는 잘 모르겠다만 기억을 복구하고 과정을 검토할 시간이 없었다. 저 긴 줄을 어떻게 내가 다 상대한단 말인가. 그래서 나는 냅다 도망갔다.
   「저기 저 인간 도망간다.」
   「인간이 아닌가? 저 놈 잡아라.」
   「기와 이렇게 된 마당에 개를 패자!」
   「하필 우리 차례 다 됐는데 도망가다니. 야 잡어. 뭐 해 안 뛰고!」
   「저 놈 잡히면 가만 두나 봐라.」
   「잡힐지 안 잡힐지 일단 잡고나 보자.」





    2

    2탄을 예고하지 않는 드라마. 그래 봐야 다 방법이 있다. 그래 봤자 웬만하면 1탄 따라가기 힘들다. 그래서 결국 남자들은 새로운 여자를 결코 싫어하지 않는 건가? 사랑 얘기라면 싫증 정도가 아니라 속에서 쓴물이 올라온다. (당신은 단물이 고인다고? 절레절레) 그렇다고 꼭 블로그가 개 같단 말은 아닌데. 어쨌든 그는 상냥함을 싫어하지 않았다. 하긴 남자라면 어떻게 축복 받은 몸매에 화낼 수 있을까! 물론 NB가 아무 여자한테나 첫눈에 반한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육덕녀의 관능미가 짜증났다. 그러므로 상쾌한 건수니 아름다운 유혹이니 다 지겨웠다. 또 풍운아를 부러워하지도 않는다. 즉 주술사가 아니라 작명가인 걸 다행으로 생각한다는 건가? 퍽이나 기특한 발상이군 그래. 석연치 않은 세상사의 복잡함은 모르겠고 그냥 놀고 먹겠다? 그래서 선뜻 인생의 신비로움을 포기해버렸나! 글쎄 아무리 쫓아도 사랑은 잡히지 않았으니 그러겠지. 이럴 때 깜짝 놀랄 만한 특별함, 색다름, 새로움이 그를 초대하면 얼마나 좋겠나. 이처럼 그는 권태로운 인생에 너무도 잘 적응해버렸다. 뭐 누군들 안 그러겠나. 이처럼 식상한 전개는 좀처럼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는데. 그래서 더 이상 멍청이로 살지 않겠다는 바보 선언을 했다. 그럼 뭘 해? 아무도 들어주지 않음. 실망도 옛날에 익숙. 그러니 오늘은 왜 절망이 안 오지? 체념아 놀자 그거네. 안 그래도 팔랑귀구만. 그래서 달아나는 노루 보고 잡은 토끼도 놓쳤어. 하여 이제 몸은 얼어버린 수탉이요 마음은 어쩌면 냉동참치? 그러나 잡초는 빨리 자란다. 하여 욕망이 어떻게 멈추나. 원래부터 요란한 공상은 미움받을 수 없단 말이네. 그래도 헛된 탐욕을 사랑하잔 뜻은 아니겠으나. 속된 표현마따나 백판 자빠져 놀고 먹는 놈팽이에 적임자가 아니라 딱 허당이잖아? 괜찮다. 남자가 여자 좋아하는 거야 당연하지. 그래서 웬 숙녀를 자빠트리지 못할 바에야 소파에 자빠져 TV나 보겠지. 그런데 말로는 사욕에 초연하다? 전적 없음을 좋아한다는 말처럼 거짓말인 건 뻔하다. 이래서 녀석은 기분이 나빠졌다. 어떻게 분위기가 좋아지기를 바라겠나. 하긴 그런 말도 있다. 그림의 떡으로 배를 채울 수는 없다. 뭐, 뭣이 어째? 나 참 말문이 막히네. 그건 그렇고. 그처럼 잠자코 가택감금 상태로 지내기에 엉덩이가 근질근질했으므로 그는 조용히 아지트 근처를 배회했다. 기웃기웃 하면서 새로운 얼굴 없나 직접 들어가서 탐문하긴 그렇고. 하여 얼쩡얼쩡 역시나 관찰자 직분에 충실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퇴근길에 캠핑카의 미행을 눈치채게 되었는데. 아니 왜 나를? 그리고 미행을 하려면 안 들키도록 몇몇 조로 나누거나 위치 추적을 자동으로 할 수도 있을 텐데. 일부러 어리숙하다는 건 무언의 의사 표시일까 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는데. 그 때문에 나는 나도 모르게 일부러 캠핑카를 앞서 보낸 다음 곧바로 우리의 입장을 뒤바꿨다. 이제 내가 캠핑카를 추척 중이고, 녀석은 내게 미행을 받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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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도착한 곳은 끝이 보이지 않는 평야 지대에 캠핑카가... 몇 대야? 한마디로 개수를 셀 수 없을 정도. 흡사 수출용 차량을 선적에 싣기 전에 대기 장소 같다고나 할까? 그런데 여기까지는 배가 들어올 수 없는데. 그야 뭔가 사정이 있을 테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상대는 왜 내게 이 광경을 구경시켜준 것인지 아직도 알 수 없을 따름. 이처럼 잔머리를 굴릴 동안 내가 미행했던 캠핑카가 어디로 갔는지 놓쳐버렸다. 더더군다나 이 근방에 보이는 캠핑카는 모양과 색상과 모델이 거의, 거의 다 비슷비슷. 따라서 나는 곧장 따라갔던 캠핑카를 찾는 건 포기했다. 
    다음으로 인적이 없었으므로 소리를 질렀으나 인기척은 없었고. 사람 이외의 반응도 전무. 그래서 혹시 모르니까 캠핑카들을 열어봤는데. 그렇게 잠겨있고, 잠겨있고, 잠겨있고... 앗! 문이 열리는 캠핑카가 드물게 있었는데. 그런 캠핑카들 안에는 여지없이 곰돌이 인형들이 앉아 있거나, 아니면 아주 드물게 멧돼지나 강아지가 나를 반겼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설마 꿈은 아닐 테고! 
    그러다 나는 단번에 깨달았다. 저멀리 보이던 캠핑카가 점점 늘어가고 있다는 것을. 여기가 무슨 우주도 아니고 내가 언제부터 천문학자? 잠깐 한눈을 팔고 나니까 저 까마득히 보이던... 허나 휘청하면서 쓰러지지는 않았다. 일단 뭐가 뭔지 이해를 못하고 있었을 뿐. 그렇게 근처에서 뭔가를 탐방하며 추측하다가 바둑판처럼 세워진 대열에서 빈 공간을 보자 정신을 잃고 말았다. 





    3

    내가 깨어난 곳은 우리 동네 캠핑카 안. 깨어나서 바깥을 엿보니 사람들이 줄서서 대기중이라니. 나는 뒷문으로 도망가려다가 잠겨있길래 창문..도 안 열렸고. 어떻게 어떻게 뚜껑을 열고 탈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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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다. 오늘도 NB는 사무실에서 저속한 말로 농땡이를 피우고 있는 중. 그러다 전화도 없이 미카엘이 벌컥 사무실 문을 열고 나타났다. 
   「미카엘! 웬일이야, 연락도 없이?」
   「연락을 미리 하면 너가 여자들을 빼돌릴 것 같아서.」
   「응? 그럼 실망했겠구나. 어쩌지?」
   「뭘 어째. 어쩌지 않아도 돼. 왜냐하면 난 절망했으니까.」
   「너까지?」
   「뭐? 너 여전하구나.」
   「그러면 너가 날 변화시켜줄래?」
   「내가 왜? 너 알아서 해. 그러니까 연애를 하던가.」
   「말하는 폼을 보니 너 연애 얘기 하러 왔구나.」
   「넌 눈치가 그렇게 빠른데 왜 여자가 없냐?」
   「없기는 누가 없어? 지금도 나는 활발한 현역이야 임마. 어? 내 발에 채이는 게 여자라고. 알어?」
   「알든 모르든 오늘은 내가 화자다. 넌 청자니까 일단 듣기나 해.」
   「뭔 말을 하려는 건데?」
   「얘기가 좀 길어.」
   「예상하고 있었어. 어서 털어놓지 않고 뭘 해?」
   「급하기는. 그렇다고 내가 성급하게 거짓말을 지어낼 수는 없는 거 아냐. 안 그래?」
   「난 너 보고 소설 쓰라고 한 적 없다.」
   「알아. 그래서 더더욱 나의 로맨스는 아름다울 뿐.」
   「너 못 보던 새에 많이 유치해졌구나. 난 계속 듣고 있어야 하냐?」
   「응.」
   「일단 우리가 언제 마지막으로 만났지? 넌 그게 문제야. 기억력이 여자와 관련되어 최적화되어 있다는 점. 그나저나 내가 무슨 얘기를 하려고 했지? 아, 그거구나! 나는 말이야, 음 최근 부쩍 상상력이 빈곤해졌어. 허나 나는 재미없는 삶에 괴로워하지 않았다구. 왜냐하면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현실을 환상으로 바꿀 수 있기 때문이지. 그렇다고 내가 뭐 영화처럼 짜릿한 사랑을 꿈꾸지는 않았어. 내가 언제 야망 키우는 거 봤니? 그런데 이런 내가 애인에게 무엇을 선물할까를 왜 고민해야 하냐. 안 그래? 근데 이런 비논리적인 화법 나도 적응이 안돼. 그러든 어쩌든 참다못해 드디여 타락해야겠단 말은 아니야. 왜냐하면 사교계도 귀찮고 무도회마저 관심 없으니까. 그래? 그러거나 말거나! 좌우지간 흔해빠진 지겨움은 아무렇지 않을 거야. 너도 그래? 몰라. 너가 나처럼 여자를 많이 만나봤어야 인생이 뭔지를 알지. 어? 그러게 언제까지 대어만 노릴 거냐, 어? 늑대는 잡어야. 알아? 그만 소망으로 목표를 바꾸란 말이야. 너 그러다 날 샌다. 아끼다, 말 말자! 이러니 판에 박은 권태야 친숙할 따름. 왜냐, 그러다 소 뒷걸음질에 쥐를 잡을 수도 있거든. 허나 말이 쉽지 그게 어디 가당키나 하냔 말이야. 만약에 삶이 식상하지 않다면 그게 더 이상함. 그러던 어느 날 뜻밖에 당혹스러운 짝사랑? 개한테 풀이나 뜯어먹으라 그래. 무슨 개뼉따귀 같은 잔소리를. 너도 내가 약장수로 보이냐? 나는 낯술 하지 않았어. 흐흠. 일단 웬만한 숙녀들은 너한테 속아넘어갈 리가 없다는 거만 알아둬. 그렇다고 늑대의 인생을 폄하하겠다는 말은 아니다만. 뭘 해도 싫증이 빠른데 어쩌란 말이야. 하여 오늘도 아마 희망찬 미래에 대해 한바탕 떠들어볼까 생각하다가 느닷없이 동공이 확장되는 너가 생각나서 찾아왔어. 왜냐, 오늘도 아니나 다를까 심심해할 거거든. 그럼 전화를 하던가. 왜 너는 부를 때만 타석에 등장하냐, 어? 늬가 무슨 대타냐?」
   「어.」
   「그래? 그럼 그렇고. 하긴 만일에 개뼉따귀를 보고도 개침을 흘리지 않는다면 그건 개가 아니지.」
   「그건 또 무슨 얘기야? 너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거야. 정신차려 이 친구야.」
   「나는 정신을 잃지 않았어. 나는 인간이야. 난 남자라니까. 남자는 여자를 탐하게 되어 있어. 물론 여자도 똑같지. 그럼 여자도 혹시...? 에잇 설마~! 신바람 나는 멜로드라마에 혹여 내 추종 세력들이 짜증낼지 모르니까 헛소리만 하는 건 아닌데. 기발한 환상극을 절대 못 써서 창작하지 않는다는 것만 알아두면 돼. 너도 알다시피 나 영화판 때려쳤어. 직업을 바꿨단 말이야. 물론 전업이 완성되진 않았어. 내가 미완성을 좋아하는 것도 있지만 계절이 바뀌는 그 찰나의 여심을 내가 가만놔둘 수는 없으니까. 물론 농담이야. 근데 내가 뭔 얘기를 하고 있는 거지? 그러게 중간에 내 얘기를 끊어야 할 거 아냐. 왜 아무런 제지를 하지 않는 건데?」
   「왜냐하면 나는 듣는 건 잘 되는데 끌고 끊는 건 잘 안돼. 그래서 나는 너네들이 연락할 때 다 갔어. 언제 너네들이 나한테 연락했을 때 내가 안 간 적 있냐? 없어. 그런데 동시에 내가 너네들한테 먼저 연락한 적 있든? 없어. 그러니까 제발 날 묻어가게 해줘. 너도 알다시피 난 그냥 업혀거야 하거든. 이래 뵈도 날 업어본 여자도 있다 너, 아니? 아무튼 생각해보니 내가 무슨 마누라한테 잡혀살아 찍소리 못하는 남편도 아닌데.. 왜 난 그렇게 살았지? 정말로 난 감독 손끝만 보고 산 듯 하단 말이야.」
   「그걸 이제 알았냐? 그래서 늬가 여자가 없는 거야. 알아? 그러니까 늬가 안되는 거라고. 그러게 어디 연애 아카데미 같은 데라도 등록해서 좀 배워. 어?」
   「그래서 남은 건 뭐 맥 빠진 인생과 김 빠진 사랑? 놀고 있네. 재미없다. 알고 보면 여자들이 미남한테 환장한다는 비밀도 녀석은 지 입으로 말 못하겠지. 뭇여성들이 어떤 매혹에 대한 욕망이 굴뚝같단 말을 어떻게 자기 입으로? 혹시라도 풍문으로라도 듣는다면 그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내면 그만. 왜냐하면 세상 사람들 모두 법 없어도 살 사람들이라면 좋겠지만 그건 꿈이니까. 뭐? 멍청함에 약은 없다. 그러게 내 뭐랬나. 아니다. 쥐구멍에 볕 뜨지 말란 법 없다. 더더군다나 녀석도 뭔가를 기대하는 것도 같은데. 그 꿍꿍이가 대체 뭐지? 지가 뭘 안다고. 그런데 그게 어때서?」
   「너 못 보던 새에 상태가 많이 안 좋아졌구나. 원래 정상이 아니란 거 정도는 우리들도 반신반의했는데. 너 이 정도였니?」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왜 늬가 하냐?」
   「너 보다는 내가 그나마 정상이니까.」
   「너 말 다 했어?」
   「어허. 머쉰, 왜 그래?」
   「내가 무슨 머쉰이야. 나는 그냥 말이야. 너가 터미네이터지.」
   「나는 터미네이터가 아니야. 늬가 우머나이저지.」
    이런 식상한 얘기를 한도 끝도 없이 읽어달란 말은 아니다. 밑도 끝도 없는 헛소리를 대체 누가 반기겠나. 이런 개뼉따귀 같은 대화 증말 징글징글하다. 밤이나 낮이나 이런 (저속한 표현마따나) 개소리 누가 못 지어내나! 안 그런가? 흐흠. 





    4

    그나 저나 NB는 찬찬히 미카엘의 얘기를 장장 1시간 들어줬다. 그래서 1시간이 경과하여 미카엘은 겨우 몸이 풀린 정도라고나 할까? 그러다 미카엘은 1시간 30분 정도에 마침내 본론을 꺼내놓았다. 듣고 보니 최근 어느 여자를 만났는데 둘이 한편의 낭만극을 찍었다는데. 살림도 차리고 남들 하는 거 다 했다는데. NB는 미카엘과 절친한 사이일 뿐만 아니라 미카엘의 친구를 거의 다 알고 있었다. 미카엘의 모르는 인생사도 별로 없을 정도로. 그런데 미카엘이 털어놓는 얘기가 신빙성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들어줬을까? 믿기지 않았으니까. 늬가 어디까지 나불대나 보자 까지는 아닐지언정. 왠지 모르게 나도 미카엘처럼 가슴 절절한, 코 끝이 찡한 사랑을 해보고 싶었다고나 할까! 그래서 NB는 듣다 듣다 녀석의 말을 확 끊었다. 
   「너 언제까지 여자 얘기만 할래? 듣고 보니 얘 안되겠네. 뭐 아까 말한 누구? 그런데 그녀가 어느 날 갑자기 떠났다고? 너 원래 여자 없었어.」
   「」
   「」
   「너 원래 여자 없었단 말이야.」
   「그래?」
   「그래 임마. 너 저번에도 그랬자나. 오늘 갑자기 늬 차가 없어졌다고. 뭐 페라리 FF인지 루소인지? 멋진 차가 왜 갑자기 사라지냐. 원래 없었으니까 그랬지. 대체 누가 널 이렇게 만들어냐. 그게 궁금하다.」
   「」
   「」
   「늬가 말하니까 정신이 번쩍든다.」
   「그럼 만약에 내가 말하지 않았다면 너 오늘 밤새도록 얘기하려고 했니?」
   「응. 왜냐하면 내 정신이 아니었을 테니까.」
   「그럼 너가 나한테 고마워해야 하는 거잖아.」
   「알아 임마. 말하지 않아도 돼. 늬가 생각하는 거나 내가 생각하는 거나. 너나 나나, 응?」
   「그나저나 너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이제야 하는 말인데 아아 그렇구나. 이제 생각났어. 그게 다 오오 이제 보니 그 모든 게... 이제야 퍼즐이 맞춰지는 거네. 캬,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듣고 보니 미카엘은 새로 사귄 친구 초대로 웬 대형 농공단지에 놀러갔다가 논 다음 집으로 복귀했는데. 그날 갔다 다음 날 왔는데. 1주일이 훅 가 있었다는 거다. 즉 1주일 기억이 확 날아가버렸네? 녀석은 그때 이후로 자기도 모르게 환상을 지어내서 자기가 막 믿는 삶을 살고 있더랜다. 
   「거기가 대체 어디야?」
    우리는 그곳으로 출발했다.





    5

    거긴 캠핑카 결집지였다. 물론 그 둘은 당장 그 한복판까지 진출하진 않았다. 그곳을 조망할 수 있는 요새 같은 정찰지를 탐방하여 괜찮은 관측지에서 그곳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정말이지?」
   「너 내가 언제 거짓말 한 거 본 적 있냐?」
   「넌 옛날부터 입만 열면 거짓말이었어. 물론 참말도 했지. 그래서 종잡을 수 없었어.」
   「그래도 넌 잘 구분할 수 있었을 거 아냐. 왜냐하면 친구니까. 우리들은 늘상 만나는 친구끼리만 놀았고. 그런데 어떻게 농담을 구분 못해?」
   「이런 상황이 닥칠지 미리 예견했다고나 할까?」
   「늬가 노스트라다무스냐?」
   「그나저나 저기에 내려가 볼까?」
   「너가 가자면 갈 수는 있는데 난 별로 추천 안한다. 왜냐, 너도 나처럼 될 수 있거든. 내가 이상하게 변했으니까 오늘 너가 내 정신을 깨워줬잖아. 근데 너가 이상해지면 누가 널 챙겨줄 건데. 나? 나는 여자 만나느라 바뻐 임마. 물론 노력은 하겠으니 난 너 감당 안돼.」
   「나도 너가 날 챙겨주는 건 기대도 안해. 바라지 않아. 더구나 나도 새로운 육덕녀를 영입하면 그만.」
   「뭐 새로운 슈퍼모델을 벌써 선점했다고?」
   「그런데 있잖아 저기는 내가 최근 방문했던 곳이거든.」
   「너도?」
   「그래. 근데 내가 저기 가봤을 때는 저런 농업지대가 아니었어. 지금 보면 비닐하우스가 바둑판처럼 오밀조밀하게 배치되어 있는데. 내가 저기 갔을 때는 그게 아니라 캠핑카들이 약간 느슨하게 줄지어서 꽉 차 있었거든.」
   「그게 언젠데?」
   「한 2,3주 됐나?」
   「정말이야?」
   「정말이지. 지금은 뻥칠 때가 아니잖아.」
   「그때 거기 가서 뭐 했는데?」
   「딱히 한 건 없어. 다만 이상하긴 이상했지. 왜냐하면 그곳을 둘러보다가 나는 정신을 잃었고, 깨어났을 때 우리집 근처 캠핑카 안이었으니까.」
   「진짜야?」
   「아 진짜라니까 글쎄.」
   「그러든 어쩌든 오늘이 중요해.」
   「그럼 내일은 안 중요하냐?」
   「내가 언제 내일이 없댔냐? 나는 오늘만 사는 남자가 아니야.」
   「그럼 나보고 어제에 묶여 있는 늑대로 살란 말이냐?」
   「그러지 말고 늬 생각을 말해봐.」
   「아무래도 가보지 않으면 후회할 것만 같아.」
   「너도?」
    하이파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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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B와 미카엘은 함께 현장까지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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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도착했더니 거긴 농공시설이 아니라 종교시설! 뭐지? 
   「저길 꼭 들어가야 하는 건.. 아니겠지?」
   「아닐 거야. 일단 철수하는 게 어떨까?」
   「그게 좋겠지?」
   「그래. 술이나 먹으러 가자.」
   「내가 좋은 델 알고 있어.」
   「가자.」





    6

    인생이란 네모난 구멍에 둥근 뚜껑일까? 그게 무슨 개 풀 뜯어먹는 소린가. 그게 그러니까 한갖 감상적 기분에 젖어있을 때가 아닌데. 그럼 뭐에 흠뻑 젖어야 하냐고요? 질펀한 상상력은 남자도 짜증낸다. 그런데 어떻게 숙녀가 음습한 분위기를 좋아하기를 바랄까. 다 부질없다. 소용없어. 가라 그래. 필요없으니까. 자, 이제 절망과 상심과 체념쯤이야 아무렇지도 않음. 또 누가 아나? 해가 동쪽에서 뜰지 말이야. 아, 그게 정상이구나. 난 또 뭐라고. 이래서 나는 어떤 저질 성적표를 용서할 수 밖에 없었다. 초라한 전적에 대해 후회가 있을 턱이 없지. 안 그래도 지적 호기심도 바닥났다. 그렇다고 특히 시간 낭비에 민감하던 청춘을 되찾고 싶단 말은 아닐 테지만. 뭐랄까 절망에 무감해질 거라는 예감이 적중한 게 아니라 그냥 늙은 건가? 답답하군. 왜 한심하지 않겠어. 하긴 시간은 유독 그대만 비켜가는군요, 라는 대사를 읊을 기회가 없으니 당연할 테지. 이런 와중에 점을 쳐보면 어떨까. 추정컨대 내가 운명을 썩 신뢰하든 말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희망은 멀어져가고 슬럼프는 내 바지끄댕이를 붙잡은 체 놓아주질 않고. 어쩌지? 뭘 어째. 어쩌긴 뭘 어쩌냐고. 완전 기쁜 연애를 하면 된다. 그렇지만 신나는 멜로드라마의 주인공감으로 나는 부적합인 현실. 받아들여야지 안 받아들이면 어쩔 건데. 이래서 사교계가 날 거절했구나. 엑스트라와 부합하지도 못한 허당이니까 이해는 하는데. 거 참 너무한 거 아냐? 아니다. 번민과 빈곤과 고뇌와 더불어 절망까지 감수해야 하니까 말이다. 이러니까 사색가도 모험가도 풍운아도 해결사도 웬만한 별명들은 날 도저히 공인할 수 없는 거다. 그렇다고 불만족이 뭐 자랑이란 말은 아니다만. 거 기왕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나만 사랑을 모를까? 굶주린 늑대들이 뭘 안다고. 불여우도 똑같다. 어쨌든 타오르는 욕망의 본심이 뭐냐고 묻지 말자. 차라리 애인한테 비키니를 선물하자. 아니면 뜬금없이 여행이나 갈까? 내가 지금 개소리를 지껄일 때가 아닌데 라면서 자학하고 싶단 말이 아니라. 정말로 어디서 개 짓는 소리가 들려 정신이 번쩍 든다. 그럼 뭐 언젠 안 그랬나? 근데 내가 지금 뭐 하고 자빠져 있는 거지! 일하기 싫어 핑계 삼아 앓는 소리 남발할 게 아니라. 그게 아니라 떠나자. 한다면 한다. 가면 된다. 미술관 왜 혼자 가면 안되나. 놀이공원에 혼자 가서 뭇여성들 뒤꽁무늬를 따라다니겠단 말은 아니다만. 멋진 해수욕장에서 새로운 사랑을 만나지 말란 법도 없다. 그러나 사무실을 나가면 귀찮은데... 그래서 소파에서 나갈 궁리를 않음. 이처럼 나도 어느새 말이 많고, 좋고, 길어져버렸다. 이걸 대체 어쩌면 좋지? 어쩌면 좋긴 뭘 어쩌면 좋아! 이번 기회에 새끈한 자동차를 사고 여자도 바꾸면 되지. 아니, 그게 아니라 말이 그렇단 거고. 이처럼 낭만은 멀고 초현실주의로부터 간택받을 수도 없는 실정. 그러니까 만만한 인공지능을 불러도 대답이 없지. 또 지금 때가 어느 땐데 아직도 인공지능? 그러니까 여자가 없지. 그럼 또 패자무언이냐, 핑계 없는 무덤 없다. 전자와 후자 사이에서 난처해 할 거 뻔한데. 미련한 놈 쓰잘데기 없는 생각만 부자구만. 곰은 대체 언제 잡을려고 말이야. 이런 마당에 내가 어째서 사랑의 기쁨을 선망해야 하나. 차라리 사랑의 슬픔에 짜증내는 게 좋지는 않을지언정. 혹시라도 뿔을 구하러 갔던 낙타가 귀를 잃어버릴지도 모르니까 그냥 시나 쓸까? 날마다 하는 일이 그건데 무얼 더! 뭘 해도 재미없음이 다 늙음 때문이라는 걸 빤히 연구해봐야 부질없다. 
    그래서 NB는 미카엘한테 전화를 했다. 
    그런데 없는 전화번호라고 하네? 이 자식이...!
    하는 수 없이 NB는 혼자 캠핑카 천국 & 농공지대 & 종교시설이던 그곳에 가보기로 했다. 
    장면 전환.
    장면 전환.
    장면 전환.
    녀석은 혼자 그곳에 도착했다. 그런데 도무지 거길 찾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산세가 막 많이 변한 것도 아님. 어떻게 된 거지? 숲 안에 있을 게 아니라 좀 멀찍이 떨어져서 봐야 하나? 하여 전망대까지 가서 조망을 살펴봐도 찾을 수 없었다. 다시 원래 장소인 공원에 도착했는데,,, 공원 어딘가에 숨어있을 리는 없고. 이상한 <관계자외 출입금지> 구역이... 설마... 혹시 전체가 다 공원으로 바꼈나? 지금으로서는 그거 말고는 답이 없었다. 아니 진짜로 오직 그것만이 사실인 듯 하다. 어떻게 된 거지? 일단 NB는 철수했다. 
    그리고 그날 그는 집에서 혼자 거울을 보다 허물을 벗었다. NB의 외피를 벗기면서 nb가 새롭게 탄생한 것이다. 그래서 그 다음에 nb는 곧바로 로봇처럼 글을 쓰기 시작했다. 
    A) 캠핑 축제 → 숙주찾기
    B) 농업 단지 → 허물벗기
    즉 A,B 출신들은 각자 자기가 소멸하기 전에 옮겨갈 숙주를 찾는다랄지 또는 허물을 벗고 알까기를 한다랄지. 여기까지는 nb가 체험한 직접경험이고. 그와 더불어 공중부양, 유체이탈, 부활 등을 추가하여 각종 도표에 따라 인물관계도를 한쪽 벽면에 그려서 포스트잇을 덕지덕지 붙였다. 
    바로 그때 미카엘의 아들이 nb 집 밖에 도착해서 그를 불렀다. 
   「대부.」
    당연히 nb는 천리안이자 은하계 바깥 소리까지 들을 수 있었으므로 고개를 까딱했다. 
    올 것이 왔을까? 그런데 뭐 하러! 뭔가 목적이 있겠으나 남자끼리 만나서 뭘 하게. 
    뭐 남자 둘이서는 극장 조조 프로만 봐야 하거나, 남자 셋 이상일 땐 저녁 영화를 봐도 되는 암묵적 규약에 서명하려고? 아니면 갈 데까지 갔나.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 없애는 그 머드라 그 거 있잖나... 제거... 뭐 그거 때문에?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으나 느낌 세한 상황을 nb가 예상하지 않을 수 없었으므로. 그는 미리 천적 관계에 해당하는 누군가를 
근처에 서성이게 만들었는데. 그와 같은 쫓고 쫓기는 드라마의 몰입도는 아마 nb가 봐도 잘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그걸 영화화시킬 수 있는 제작사를 알아보기로 했는데. 다음 내용은 다음 기회에! 





    7

    NB는 깨달았다. 황홀한 사랑을 꿈꾸어봐도 소용없다는 걸. 그럼 어차피 칙칙할 거라면 차라리 nb한테 재량권을 내어줘버릴까도 생각해봤다. 그렇지만 언제 녀석이 노크하는지 알 수가 있나. 그 때문에 뭇여성들한테 윙크하는 추태를 부려서도 안될 것이다. 하긴 연애도 무기한 찬란할 수 없다. 잡은 물고기한테는 밥을 주지 않는 법이거든. 그럼 작명가의 이상은 영원할까? 하다 하다 밤의 황제라는 호칭을 스스로 부여할 생각을 하다니. 그런데 이런 녀석을 잡지사는 왜 은퇴시키지 않는 걸까. 그 허접한 이유를 알아서 뭐 하나. 그나저나 흠모하는 그녀의 애정에 도취되어 로맨스에 흠뻑 젖는 공상의 노예 신분에서 도망가기를 소망하는데. 꽃병은 꽃을 위해 존재하는 것. 그러므로 액자 같은 남자는 명화를 기다리는 수 밖에. 맥 빠진 현실이다. 아니면 매가리 없이 잘생겼다는 칭찬조차 못 받는 신세인가? 그래서 그는 아찔한 시상을 떠올렸다. 이를 테면 이런 식일 테지. 젊음은 아름답다. 허나 사랑은 냉혹하다. 따라서 야수여 뜨거운 열정으로 그녀를 만족시켜라. 만족, 뭐? 뭐가 어쩌고 어째? 쳇! 그게 시적 상상력이라면 이 세상에 시인 아닌 사람은 한 명도 없겠네. 맘 편히 만화영화를 보며 게으름 피울 때인 줄 아나 보지? 허나 눌변의 대명사인 NB도 어느새 말이 늘었다. 고로 변명이 왜 없을까. 어디서 또 주서들었을 것이다. 비밀을 얘기하면 그 사람의 종이 된다고! 하오나 귓구멍은 메울 수 없는 법. 그래서 차라리 귀에서 피가 나는 게 더 나을까? 낫긴 뭐가 낫나. 말을 말자. 어쨌든 내일은 아직 오지 않았다. 뭐야? 그럼 기똥찬 어제는 가버렸단 말이잖아? 투정과 작별한 게 언젠데 아직도. 남자고 나발이고 녀석은 철들려면 멀었다. 그러니까 속 없는 남자. 설마 지금도 질나쁜 누구를 기억하나? 이러니 행복이 선명해지기는 커녕 날씨까지 변덕이지. 지구 기상이변도 다 걔 때문이다. 고로 자기도 모르게 지구의 운명까지 걱정하시겠다? 꿈도 크다. 아주 야무져요. 잘났어 정말. 이러니 아직도 에로영화 무대 주변을 서성이는 망상에 빠져있지. 인생이 참말로 멜로드라마와 정반대다. 그렇지만 뭐랄까 녀석이 꼭 측은하다는 건 아니다만. 이제 알겠다. 따분하기 이를 데 없으니, 그래서 타인의 삶을 엿본다는 걸. 그럼 뭐 관음증? 수전증부터 머머증 겁나게 많네. 좋겠다. 허언증 없는 사람 어디 서러워서 살겠나. 이러니 아프로디테의 변치 않는 미모를 믿기보다는 상남자들이 오늘의 건수를 선호할 수 밖에. 그럼 또 식상한 인생은 물들어서 NB마저 육체적 사랑을 편애할 수 밖에. 그런 건 또 어떻게 금새 배워요. 이래서 사랑도 부질없다. 정결한 여신은 뭔 정결한 여신. 예술도 가련하다. 블로그? 불쌍해. 그럼 달콤한 쾌락은 끝났나? 최소한 신비한 후속타는 기대할 수 없다. 왜냐하면 군침부터 말라버렸으니까. 아주 그냥 사막이다. 신기루 구경도 못한다. 그런데 그게 혹시 얕은 물에 큰 고기 없기 때문일까? 아무리 그래도 큰물로 가봐야 뱁새는 뱁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듣는 뱁새 기분 나쁠 것이다. 이래서 NB는 똥차도 없지. 하긴 똥차를 똥차라 그러지 그럼 뭐라고 해! 한편 또 남의 것도 아닌 자기 정신을 들었다 놨다 쥐락펴락하는 걸 감지했으므로 녀석은 분위기를 바꿨다. Vivaldi / ‘Magnificat’ RV610a 허나 기분전환이 쉽게 될 리 있나. 그러니 최후의 방편으로 한동안 들리지 않았던 아지트. 그는 그곳으로 향했던 것이다. 내가 아지트에 두 번 다시 가나 봐라 만약 가면 나는...라고 했으나. 제1 정체성 바보는 죽었는데. 다시 부활했으니까 말이다. 그럼 도대체 대타들이 몇 명이야? (절레절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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