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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 ─ 187

from 소설 2021. 5. 30. 21:54

    1

    돼지처럼 먹고 마셔 식욕이나 실컷 충족시킬까? 식탐은 왕성하나 그마저 귀찮다. 정력마저 예전같지 않나? 탐욕은 식었다. 그런데 사랑이 있어? 지금 이 순간에도 그분들은 진한 사랑에 흠뻑 젖을 생각중이므로 아마도 없을 듯. 타인의 행복을 빌어주진 못할망정 그런 얘기 하는 거 아니다. 기왕 말 나온 김에 말하자면 굶주린 늑대의 불결한 상상? 저리 가라. 응큼한 여우들 사랑의 차트가 더 불결하지 말란 법 없다. 알고 보면... 쉿! 그렇다고 누가 누가 더 불순한가를 따져 뭐 하나. 이제 보니.. 그만 하자. 짝사랑복 논해 뭐 해! 그나저나 기분 전환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오늘도 흔쾌히 첫눈에 홀딱 반해야 하나, 아니면 뭇여성들께서 내 첫인상 때문에 실망할지 모르니까 자기 관리를 해야 할까. 만약에 그 무엇가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고 해도 금새 지칠 것이다. 또는 중간에 변심하거나. 아예 애초에 시작도 전에 말 뿐이던가! 그러니까 난 이미 대충 살고 있는 거네? 이래서 우리는 적어도 막살지 않는 건데. 그러든 어쩌든 지금쯤 보미는 나를 위해 꽃다발을 사고 있겠지? 한편 수민은 나를 생각하며 연가를 부르고 있을 것이다. 누구 맘대로 나는 걔네들을 들었다 놓고 있는지. 그런데 문제는 그게 모두 사실이고 한두 명이 아니라는 점. 이 정도면 난 뭐 갈 데라고는 정신병원 밖에 없다는 얘긴데. 이게 다 팬미팅에 가기 싫어서 하는 소리다. 난 얼굴 팔리기를 좋아하지 않는데 친애하는 그대여 어쩌고저쩌고 지겹거든. 그래서 한송이 장미는 새로운 여자에게? ~라는 말이 정답이란 게 아니라. 튤립도 있고 팬지는 물론 이 세상에 꽃이 얼마나 많은데. 촌스럽게 사람들은 닭살 돋는 대사 지겹지도 않난 몰라. 웬만한 거 다 뻥이라는 점 자기들도 잘 알 거 아냐. 하긴 인간은 누구나 가식쟁이다. 고로 어른이 된다는 건 속물이지 않으면 안된다는 말인데. 지금 그 얘기가 왜 나와? 그러든가 말든가 에밀리가 또 케익과 샴페인 사들고서 쳐들어오면 어떡하지? 일단 도망가는 게 상책이다. 그러니까 어디로? 인생 정말 웃기게 돌아간다. 상태마저 겁나게 안 좋다. 심각한 슬럼프다. 난감하네. 어쩌지? 그러지 말고 그냥 사라의 구애를 받아줄 걸 그랬나. 지금 생각해보니 자기를 데리고 살아달라는데 난 왜 매정하게 뿌리쳤는지. 알 수 없다. 이거 봐 이거 봐 이거 이거 보라고, 또 전화온다. 이번엔 또 누구야? 광고전화다. 뭐 예상 못한 건 아니다. 사랑이란 원래 예고없이 찾아오거든. 또 살다보면 숱하게 속는다. 그래서 내가 또 몰래한 사랑에게 속았냐 하면 아니다. 아예 시작도 안했으니까. 어쨌든 뭘 해도 재미없는 마당에 "머머해라"라는 말이 눈에 들어오겠나. 등 돌리면 언제 그랬냐는 듯 게을러지기 마련. 그럼 애시당초 팔랑귀처럼 나부끼느니 주관이 확실한 게 좋긴 좋다. 헌데 그런 허당은 시간낭비를 유독 많이 한다. 하여 남녀 공히 동타. 괜히 칼럼 소제로 빠지지 말자. 이러니 맨날 놀고 먹기는 틀려먹은 셈. 낭패다 낭패. 어쩌지? 어쩔 수 없이 떠나야만 하냔 말이다. 이제 정말 어떡하지? 하는 수 없이 작품 구상을 핑계로 어딘가로 가야만 한단 얘긴데. 
    이처럼 연습장에 낙서만 끄적거리며 마감일은 또 날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귀인이 날 찾아왔냐, 하면 아니다. 허나 뭔가 다른 어떤 일이 있긴 있었다. 그건 무어인고 하니 바로 낯선 식물들이 집으로 찾아왔다는 것이다. 물론 비현실적으로 막 식물들이 걸어다녀서 내게 말을 걸었을 리는 없다. 또 초현실적으로 동네 똥개와 내가 뜬금없이 말이 통할 수는 없는 일. 즉 내가 아침에 일어났을 때 침대 옆에 웬 시금치가 있었다. 이게 어쩌다... 처음에는 뭐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다음 날 아침에는 머리맡에 놓여있는 잡초를 발견. 내가 어디서... 땅바닥에서 굴렀나? 아닌데. 그리고 3일째 되던 날. 이젠 풀이 아니라 꽃이 있었다. 그럼 그렇지. 식물들이 걸어다닐 리는 없고 누군가 날 흠모하는구나. 까지는 아니다만. 내가 단골 술집에서 마담을 꼬실려고 들고 갔던 꽃다발, 그 마담의 남자친구가 반갑게 인사하길래 재빨리 등뒤로 숨겼던 꽃다발. 그런 일은 없었다만 이름 모를 꽃마저 어쩌다 신발 사이에 들어갔던가 바람에 날아와 옷주머니에 들어갔던가. 그냥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문제는 4일 째. 물론 전날 밤 나는 나도 모르게 기대하게 되었다. 스스로 예감에 들떴음을 고백한다. 그러다 식물에서 동물로 바뀌는 거 아냐... 그런 생각 없지는 않았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났을 때... 나는 식겁했다. 깜짝 놀랐다. 화들짝 겁먹었다. 눈은 똥그래지고 커졌던 가운데는 급속히 사그라들었다. 대체... 저게... 왜...? 
    알고 봤더니 장난감이랄지 정밀한 모형인 줄로만 예상했는데. 그건 닭이었다. 촌닭. 그런데 산 닭이 죽었냐 하면 아니다. 식품점에서 파는 생닭. 그러니까 그게 왜? 내 말이. 일단 나는 생각이 깊어졌다. 이러다 정말 다음 날엔 살아있는 돼지가, 내가 꿈나라에서 깨어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거 아냐? 그런데 정말로... 아니다. 그렇게 또 다음 날이 되었다. 그래도 돼지는 아니다만 이번에는 생선이었다. 정식 명칭이 있다만 그것까지 말할 수는 없다. 어쨌든 나는 노트북을 켜서 지니를 소환했다. 진짜 우리는 한동안 만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인공지능이 몇 번 업데이트 됐는지 아닌지도 몰랐다. 그렇게 해서 나는 알게 됐다. 시금치, 잡초, 꽃, 생닭, 생선... 모두 내 몸에서 나왔다는 것을 말이다. 뭐? 그게 말이 되나 말이! 내가 무슨 만화영화 주인공인가? 나는 인공지능이 드디어 미쳤다고 간주했다. 걔도 잔꾀가 녹슬어서 그럴 만 했을 수도 있다. 상태가 안 좋아도 많이 안 좋은 거지. 때문에 나는 지니의 말을 믿지 않았다. 녀석이 동영상을 보여주긴 했는데 어디서 또 조작됐던가 그럴 것이다. 입력과 출력! 입력은 식사고 출력은 다 알다시피. 그런데 내가 무슨 환상머신인가? 걸어다니는 우머나이저라는 둥 음흉한 터미네이터라는 둥 그건 다 농담일 뿐이고. 그런데 어떻게 출력값이... 그러니까 내 배꼽 아니면 거기라는 말인데. 인공지능이 만약 사람이었다면 난 녀석의 멱살을 잡던가 꿀밤을 때렸을 것이다. 
    그렇게 1주일이 되었나... 아침에 일어났는데 내 발가락에서 나뭇가지가 자라있고, 잎파리도 열렸다. 이러다가 열매까지 맺히는 거 아냐? 그럼 내가 나를 따먹으라고? 뭘 따먹어 따먹긴! 난 그걸 조심스럽게 구브러트리진 않았다. 혹시 몰라 아플까 봐 말이다. 그런데 내 손이 닫자마자 그건 순식간에 움츠러들더니 점점... 점점... 작아져서 점으로 바껴버렸다. 그 점마저 눈 녹듯이 없어졌다. 뭐야 이거? 하다 하다 도플갱어는 날 가지고 노나? 어디 산책 가서 동네 똥개랑 놀 것이지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건가? 말도 안돼! 무슨 말이 되야 납득을 하든가 말든가 할 거 아닌가. 뭔 또 말 같지도 않은 요술로써 날 겁주려고. 설마... 나는 서둘러 팬티를 열어봤다. 휴~ 다행이다. 녀석도... 아니야. 혹시... 그때가 언제지... 약 25년 지났던가 그런데. 양쪽 치아를 때운 아말감. 그거 혹시... 괜한 생각이 다 들었다. 이대로 집과 사무실만 왔다 갔다 하다가는 난 어쩜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는 당장 떠나기로 했다. 어디긴 어디겠나. 남쪽 바닷가, 휴양지 호텔! 자, 떠나자 낙원으로. 그렇게 중간에 별일 없이 나는 그곳에 도착했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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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는 따뜻한 남쪽 휴양지. 희망의 나라는 여기일까? 그럼 그 정도도 온화하지 않은 휴양지가 어디 한둘인가. 말이 그렇다는 얘긴데. 그렇지만 희망의 나라라니까 말꼬리 잡고 늘어지다가는 할 일은 커녕 암것도 못한다. 그럴 땐 인터넷에서 그림 몇 장 보는 게 딱이다. 공 물어오는 개 사진들 말고, 가벼운 원반 맞는 개들 표정. 또 압권은 라이벌 팀으로 이적한 스트라이커가 공격할 동안, 골대 뒷편에서 야유를 퍼붓는 팬들 표정. 하지만 것도 한두 번이다. 그렇게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끝냈다는 말이 아니라. 싫증이 빨라 속 편하다는 얘기도 절대 아니다만. 어떻게 어떻게 나는 마감일 전에 연재 분량을 완성했다. 그래서 딱 블로그를 업데이트하려고 했는데 글쎄... 내 블로그가 해킹당했네? 이 자식들이... 날 뭘로 알고! 어? 너네들 내가 누군지 알아, 어? 나야 나, 어? 나가 누구겠나. 허접한 허당 자기 목소리 녹음한 거 들으면 거북한 인물. 대단허지. 이러니까 거울도 부담스러워서 잘 안 봐. 이상하게 기분 따라 막 왜 천의 얼굴을 가진 배우도 아닌데. 그때 그때 시시각각 표정은 달라보이는지.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뭐 해킹? 나는 입력했다. 걔네들도 일말의 힌트는 허용하지 않을지언정 어딘가 빈틈이 있다는 걸 내게 감출 수는 없거든. 그래서 나는 화면 구석지 어딘가에서 링크를 찾아내서 비밀번호 입력 화면으로 넘어갔다. 
   「난패스워드」
    블로그는 정상으로 돌아왔다. 녀석들도 내가 갑부도 아닌데 괜히 헛고생한 거다. 아니면 번짓수를 잘못 알았든가. 그때 그걸 어떻게 알았는지 귀신같이 핸드폰 알림벨이 울렸다. 딩동~!
   「오빠. 어디야?」
    얘는... 설마 얘가 날 짝사랑했었나? 아니 왜 갑자기...! 그렇게 답장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던 찰나, 나는 다음 문장을 읽게 되었다. 
   「오빠. 우리들 모였어. 그런데 여기가 어딘 줄 알아?」
    나는 이럴 때 여자들은 재빠른 답변을 좋아한다랄지, 아니야 살살 말려들어가는 것처럼 어리숙하게 최면에 걸려드는 미남 배역을 연기하는 걸 선호한다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도 아니면 그냥 멋 모른 척, 흡사 여자들이 못 이긴 척 구애에 넘어가는 것처럼 나도 어벙한 척 먹임직스러운 미끼를 덥썩 무는 연기를 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를 혼자서 애 태우던 그때. 또 다음 문장을 어느새 읽고 있었다.
   「오빠가 우리들 모인 모습을 상상한다는 거 다 알아. 게다가 우리도 오빠가 그처럼 해킹을 금새 풀어버릴 줄 미처 예상 못했거든. 심지어 용케 대답을 이처럼 잘 참으리라고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어. 그러니까 나 혼자 내기에 이긴 거지. 아무튼 우리가 몇 명 모였는 줄 알아?」
    나는 몇 명 모였는데 라면서 마치 내가 앵무새나 된다는 듯이 대답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녀들은 내가 말대답하는 걸 설마 싫어하는 걸까? 알 게 뭐야!
   「여기 1층 커피숍이야. 나와.」
    지들이 뭔데 오라 가라야! 또 1층 커피숍이라면 거기가 리즈 칼튼 호텔 몬트리올 지점인지, 아니면 뉘른베르크 지점 콘래드 호텔 1층 커피숍인지. 그걸 내가 어떻게 아냐고. 얘네들 그러고 보니 못 보던 새에 많이 뻔뻔해졌는데? 예전에는 꽤 부드럽고, 놀랍도록 친절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동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여성잡지 1은 재미없다, TV 틀면 짜증난다, 고로 다짜고짜 여성잡지 2로 일찍 넘어가자? 그 희박한 논리에 나까지 끌어들이시겠다? 이것들 좀 보소...! 바로 그 때.
   「뭐해 오빠? 나오라니까. 어딘지 꼭 말로 해줘야겠어? 우리들끼리 한참 뭉쳐다닐 때. 몸짓 발짓 손만 까딱해도 알아먹으셨던 분께서. 이제 와서 나 몰라라? 오빠 너무 무책임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뭐 정작 날 떠난 게 누군데. ~라고 생각하는 건 설마 아니겠지? 아닐 거야. 왜냐하면 그랬다간 된통 혼나야 하니까. 물 꾸물대고 있어? 얼른 나와. 1층 커피숍이라고 했어, 안했어?」
    나는 나도 모르게 호텔 1층 커피숍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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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곳에는 정말로 그녀들이 있었다. 뭐야... 그럼 저 가운데 결혼해서 학부영도 있을 테고. 또 이혼녀도 있을까? 그럼 불륜녀는... 있어서는 안되겠지. 아닐 거야. 혹시 쟤네들 아직도 날 짝사랑하는 거야? 에잇 재미없잖아. 그럼 진작에 말을 하던가. 응? 일단 "지수, 수영, 예진" 그렇게 3인방이 친했고. 또 세은과 하영이가 단짝. 또 김천원은 모두랑 친했고... 심지어 진짜로 날 짝사랑하던 지원이까지 여기에...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저렇게 여자 7명이라니... 8명인가? 막 계속 늘어나? 구도가 이상해도 너무 이상하잖아. 
   「오빠. 오랫만이다. 우리 중에 누가 제일 보고 싶었어?」
   「정말 궁금하기나 했을까? 저 능청. 익숙하다 익숙해.」
   「뭐 해, 왔으면 앉어. 그냥 가게? 서운하다. 갑자기 피곤해지네.」
   「얘들아 우리가 한마디씩만 해도 그걸 다 받아줄려면 몇 마디인데. 우리가 두세 마디씩만 해도... 자중하는 게 좋겠다. 그치? 또 오빠가 우리를 모두 데리고 살 수도 없는 거 아니겠니? 」
   「그럼 뭐 늬가 오빠의 1번이란 말이니? 착각하지 마 얘. 넌 빽넘버 부여받지도 못했으니까.」
   「뭣이 어째? 너 말 다 했어?」
   「얘들아 다투지 마. 너네들 일부러 즉흥연기한다는 거 내 다 알아. 내가 그 정도도 모를 줄 알았니? 몰랐으면 작전을 변경하는 게 좋을 거야. 왜? 묻지 마.」
   「와, 오빠... 낯설다. 오빠 원래 이렇지 않았는데. 얘들아 저 오빠 말 잘 못하지 않았니?」
   「그렇지. 듣기만 잘했지. 아니면 듣다 듣다 정신이 반쯤 나가서 뭘 듣고 있는지도 몰랐겠지. 별명이 괜히... 흐흠.」
    그렇게 나는 에스프레소 더블. 이어서 카페라테. 또 이어서 카푸치노까지 마시고 나서야 알게 됐다. 해킹은 그녀들 짓이라는 걸. 물론 날 일부러 극성 팬클럽처럼 쫓아다니고 계획하고 막 그래서 벌인 일이 아니라. 저 가운데 누가 복권이 당첨됐던가,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았거나, 엔젤 투자가 대박났거나. 누군가 하나 돈자랑 하기 지겨워진 친구도 있을 테고. 쟤네 우정은 영원할 것이며. 일단 애들이 못되지도 않고. 또 어떻게 적당히 착한 해커집단과 친분이 닫았을 것이며. 용돈 주는 셈 치고 아는 동생한테 어떻게 어떻게. 또 자기들끼리 나보다 먼저 휴양지에 여행와서 먼발치서 내가 맞나 내기를 했는데. 어쩜 그럴 수가... 그래서 어떻게 어떻게. 그게 다였다. 
   「그런데 있잖아. 얘 애 들어봐 들어봐. 있잖아, 저 오빠 아직도 이 꽃 저 열매 다 따먹고 다닌다니?」
   「따먹... 뭐? 너 어쩌면 그런 저급한 말을 함부로 할 수 있니? 다 뻥이야. 쟤 허당이래니까.」
   「어느 동네에서 뭇여성들 다 따먹고 다닌 남자가 저 오빠라고?」
   「누가 그래? 다 뻥이야! 넌 또 속냐? 다 뻥이라니까 글쎄.」
   「그래. 늬가 뭘 잘 모르나본대 여자한테 말도 못 걸어. 어버버버 응애응애. 물론 듣기만 잘해. 것도 일부러 잘하는 게 아니라 그냥 멍청하게 듣는 척만 하는 거야. 언제 여자를 꼬셔봤어야 여심을 알든 말든 할 거 아니니.」
    아무리 친해도 어떻게 날 앞에 두고서... 일부러 들으라는 듯이! 것도 오랫 만에 만나서... 나는 너무너무 당황스러웠다. 
   「오빠. 바쁘지 않아? 이제 가도 돼.」
   「넌 애가 정이 없어 정이. 매정해도 아니 어떻게, 뭐해 안 가고.」
   「나도 바빠. 누군 뭐 약속 없는 줄 아니? 나 한가한 남자 아니다. 늬들 알아둬. 어?」
    그렇게 헤어진 다음 나는 내 방으로 올라가서 장비를 챙겼다. 없는 장비는 근처에서 샀다. 원터치 텐트. 촌스러운 대형 해수욕장용 우산. 선그라스. 버블건... 또 혹시 모르니까 꽃다발. 오리발은 살까 말까 망설이다가... 뭐 오리발? 아무튼 챙길 거 다 챙겨서 호텔에서 보이는 해수욕장으로 갔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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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사람들과 조금 거리를 둬서 자리를 잡았고 일광욕을 시작했다. 적당한 음악도 조용하게 틀었다. 자, 이제 곧 운명적인 만남이 시작되면 좋은데. 그래야 하는데. 분위기가 뭐 이래? 신나는 줄거리는 나와 친하지 않았다. 결코 싫지 않은 발단은 커녕 기막힌 우연은 나를 거들떠도 보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일까? 그런 일이 생길 리 있나. 그래서 나는 약간 쌀쌀한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얇은 패션을 고집했다. 늬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보자 라는 오기는 아니었으나. 적어도 감기에 걸리기 전에 아르테미스와 비너스 둘 중 하나가 나를 구해주겠지 라는 기대가 있었으니까. 그러니까 뭘 근거로 말도 안되는 자신감? 어차피 말 같지도 않을 거 근거 없이 나는 낭만을 믿었던 것이다. 왜? 나는 딴 때는 몰라도 당장은 기분파였거든. 우리는 일할 때나 고전파지 평소에는 플레이보이인 걸까? 그러든가 말든가 나는 그렇고 그런 제비가 아니다. 어떻게 언제나 한량일 수 있겠나. 할 일 없이 아무 데나 가서 껄떡거리라고? 뭐 껄~떡? 거 참 말이 너무 심하잖아. 그러다 뙤약볕 밑에서 노트북 켜고 뭘 보는 거도 왠지 한심해보이고. 촌스러운 우산 밑에서 책읽기도 많이 처량하며. 어딘가 이런 내가 너무 어색했으므로. 난 그냥 돌아가기로 했다. 가서 7명...8명인가..9명인가 아는 동생들한테 어떻게 묻어가든가... 걔네들 일정에 엎혀가든가... 뭐 어떻게 될 거라는 셈법이 든든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나는 숙소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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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숙소로 돌아가지 못했다. 왜냐하면 첫인상이 고혹적인 숙녀를 만났기 때문이다. 우리의 만남은 이미 정해져있었던 것일까? 모를 일이다. 그러든 어쩌든 그녀는 너무 예뻤다. 저 귀여움 어디서 결코 흔치 않은데. 쟨 또 언제 교태를 연습했던 거지? 요염한 년 같으니라고.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 말이 잘못 나왔다. 어쨌든 내숭은 고급스러운게 아니라 자연스러운 수줍음으로 보건대. 앙탈은 이건 뭐 거의 타고난 셈. 너 잘 걸렸다...가 아니라. 우리는 잘 만났다. 아, 어떻게 만났는지를 말하지 않았구나. 내가 원래 멜로드라마 잘 보지 않는데. 그래서 영화도 몇몇 장르라면 닭살 돋기 때문에 진득히 보는 건 너무도 곤혹스러운데. 어쩌다 내가 나도 모르게 영화를 찍고 있는 것일까? 그걸 내가 알겠나 그녀가 알겠나. 그럼 이제 나는 슬슬 진한 사랑을 예감해야 하는 걸까? 또 또 앞서간다. 그런데 이런 내 마음을 그녀가 눈치챈 걸까 아니면 그녀도 나와 똑같은 걸까. 표정으로 본건대... 아마도 날 좋아하는 것만 같다. 착각이래도 괜찮다. 또 그녀가 날 좋아하지 말란 법 있나? 없다. 또 일단 걔가 날 짝사랑할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오다가다 만난 사이와 또 다른 게 바로 운명일 것이고. 그리고 아, 아직도 나는 그녀와 어떻게 만났는지 말하지 않았구나. 말하면 된다. 일부러 뜸들이려는 게 아니라 나는 흥분감에 도취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너무 들떴나. 진정하자. 그런데 설레는 걸 어쩌라고. 그러게 말이다. 그나저나 다희랑도 연애해야 하고... 수미도 날 따라다니고... 선정이도 자길 데리고 살아달래는데 이걸 어쩌지? 아무튼 걔네는 걔네들이고. 지금 우리의 만남은 숙명이라는 거만 알면 된다. 아, 근데 아직도 말하지 않았구나. 요점만 말하자면 일단 문단을 떼서 가는 걸로.





    4

    나의 그녀는-이라고나 할까? 여기서 그녀는 누구인가! 너무 일찍 그녀에 대해 모든 걸 말해서는 안된다. 그 고운 이름을 아껴서 불러보고 싶다고나 할까? 으으... 오그란든다. 다시 펴면 된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그녀는 나처럼 이거저거 차려놓고서 일광욕 중이었는데, 혼자서! 어쩌다 근처를 지나가는 커플이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해서 어쩌고저쩌고... 나는 그냥 지켜만 봤는데. 살짝 오해가 발생할 뻔 말 뻔하다가 어영부영 글쎄 싹 해결된 다음 그녀가 하는 말이,
   「오빠. 고마워요. 오빠가 절 구했네요.」
   「예? 아니... 전...」
   「오빠라고 불러도 돼죠? 저도 이런 만남을 기다렸던 건 아니에요. 누가 이렇게 이상한 첫만남이 시작될 줄 예상이나 했겠어요?」
   「혹시... 누가 보냈어요?」
   「네? 보내긴 누가 보내요! 오빠도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봤어요? 아, 저는 조신한 여자에요. 저 막 그런, 그런 여자 아니라구요. 아시겠어요?」
   「」
   「모르시겠죠. 그래서 제가 제 말이 옳다, 맞다는 걸 증명해드릴 기회를 드릴께요. 고마운 줄 아세요. 아무 남자나 절 만나는 행운에 당첨되는 건 아니니까요.」
   「」
   「뭐해요, 절 에스코트 하셔야죠. 설마 여자랑 처음 대화해보는 건 아니겠죠?」
    그렇게 나는 나도 모르게 그녀의 손 끝만 살며시, 그렇게 무슨 어디서 본 것처럼 정말로 그녀를 보호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나는 생각했다. 이제 어떡하지? 커피를 마시자고 할까? 아니야. 아까 에스프레소, 카페라테, 카푸치노... 아직도 울렁울렁 벌렁벌렁...! 그럼 뭐라고 해야 하나. 그러다가 우리는 해수욕장 끝까지 갔다. 그런데 잘못 왔다. 반대쪽으로 가야 하는데. 그럼 혹시... 얘가 일부러? 
   「오빠. 오늘은 이만 헤어져요. 우리 너무 갑자기 친해진 거 같지 않아요? 아무튼 절 너무 기다리게 만드시면 안되요.」
   「진짜로, 누가 보냈어요?」
   「네? 그게 무슨...」
   「아니에요.」
   「전화해 오빠. 그럼... 그럼... 음...」
   「전화요? 번호 모르는데요.」
   「모르긴요. 전 알아요. 또 이미 오빠 핸드폰에 제 번호도 입력되어 있을 걸요.」
   「네?」
   「저 모르겠어요?」
   「누구...」
   「설마 제 번호 지운 건... 아니겠죠?」
   「아니 그게...」
   「핸드폰 이리 줘봐요. 어서요.」
    그렇게 그녀는 뭐랄까 아주 자연스럽게 자기 번호를 찍더니 전화를 걸어서, 자기 핸드폰을 열어보고 저장시켰다. 그럼 얘는 선수고 나는 아마추어? 식상한 농담 더럽게 촌스럽네. 그렇게 우리는 일단 너무 뜨겁게 진한 사랑에 빠져들지 말기로 암묵적인 약속을 한 셈이었다. 저기 멀어져 가는 그녀... 그런데 저쪽으로 가면... 길이 있나? 쟤도 누구처럼 영화를 너무 많이 봤나? 취미가 그거 밖에 없나. 어쨌든 걔 인생 내가 대신 살아줄 수도 없는 거 아니겠어. 뭐 틀린 말도 아니네. 허허허허허. 그렇게 나는 그녀와 작별한 다음 숙소로 돌아갈까 하다가 마음이 바꼈다. 뭔가 영감이 번뜩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원턴치 텐트를 편 다음 적당히 자세를 잡고서 글을 썼다. 
   <추잡한 상상은 재미없다. 아깝지 않은 소비, 후회없는 시간 낭비. 전자와 후자도 관심없다. 방탕도 짜증일 뿐. 지고한 이상이 더럽혀졌나 아닌가 묻지 않겠다. 아는 동생들도 없으니 편하다. 허나 사랑이 필요없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는 건 아니다. 그러든 어쩌든 결과적으로 나는 가난하다. 그렇지만 돈이야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것. 저 세상에 갈 때 역시나 빈손. 또 어차피 짜증날테니 자기 합리화를 왜 귀여워해야 하나. 그나저나 도플갱어는 나와 밀통하기를 정말 좋아하는 건가? 허나 것도 잠잠하다. 사랑의 나비를 잡을 뻔 말 뻔, 이 아니라 나방조차 보일락 말락... 이젠 파리새끼 한마리 얼씬도 하지 않는다! 그러면 나도 그냥 자의반 타의반으로 떠밀려 황금만능주의자로 살까? 아니다. 왜냐하면 달콤한 꾀임에 빠지면 안되니까. 첫 단추 잘못 껴본 적이 한두 번이간디? 그런데 어떻게 또 첫 끗발이 개 끗 발을! 고로 그거 말고 다른 복안을 선호해야 하긴 한데. 최선을 다해 계획만 짜다가 실행없이 작전 수립만으로 어떻게 행복을 정복하나. 참 나... 이러다 뭘 좀 아는 남자로부터 점점 멀어져만 가는 거 아닌가 몰라! 그래 봤자 밑져야 본전? 뭐가, 뭐가 밑져야 본전. 심혈을 기울여 완성한 칼럼 집필. 근데 가난해. 그 정도면 운명의 장난이 아니라 그냥 무능. 그러게 난 왜 하필 넉살을 연마하고 능청만 갈고 닦을까! 그걸 지금 누구한테 묻나? 세상에 둘도 없는 멋진 응석이군 그래. 그야말로 비낭만파요 기분파들 들러리구만. 큐피트가 아니라 그냥 물. 사람들은 에스프레소와 콜라와 칵테일을 좋아하지 고작 맹물을 좋아하진 않을 것이다. 하여간에 잡념은 끈질기도록 날 성가시게 한다. 어쩌면 좋을까? 뭘 어째. 저속히 말해 이런 때는 돈 쓰는 재미만한 게 없는데. 문제는 품위유지비가 바닥이라 그거지. 그렇긴 하나 자기 나 왜 사랑해? ~라면서 꼬치꼬치 캐묻는 잔소리 듣지 않아 다행스럽긴 하다. 최소한 불행하진 않잖아? 적어도 심심하기는 하네. 아아 재미있다. 그러든 어쩌든 이 정도면 공상 할 만큼 했으니까. 자, 이제 신나는 모험을 떠나볼까? 기대되는 일정은 없다. 예감을 춤추게 만드는 바쁨 있을 턱이 있나. 그래도 열정은 식지 않음. 그러므로 나는 영화배우로 전업하기로 작정했는데. 이상하게 영화계가 활기를 띠지 않아 어떤 소속사도 내게 러브콜을 보내지 않더라. 그렇다고 물불 가리지 않고서 연극판에라도 뛰어들까? 그럼 기다렸다는 듯이 누가 반기겠나. 재미없다. 촌스럽게 희망을 논할 수도 없다. 어떻게 솔직히 대망을 고백할 수 있나. 안된다. 못해. 왜 해? 싫어. 명색이 스포츠 칼럼니스트인데 아마추어처럼 굴 수야 있나. 그래서 우리는 아름다운 몸매의 신봉자가 아니다. 뭐? 신박한 논리를 난 대체 어디서 배웠을까. 답답하다. 그래도 탕진할 재산이 애초에 없어서 다행이긴 하다. 그러니 어떻게 탐욕의 화신일 될 수 있을까. 첫인상이 유별나게 고혹적인 숙녀를 언젠가 봤는데, 그런 한심한 얘기 그만 좀 하자. 그나저나 재미없음의 구원 투수는 과연 있을까? 꽃 피자 임 오신다. 그런데 반가운 손님은 알고 봤더니... 아직도 사랑의 선발투수를 유행가 가사처럼 착각하는 사람도 있나? 식탐보다 절제. 그런 데까지 신경쓸 여유가 없다. 다 시간낭비다. 죄다 거품이니까. 개꿈도 소용없다. 
    그래서 나는......>





    5

    사랑의 비너스. 우리는 뭐랄까 진한 사랑을 앞두고 있었다. 그런데 데이트 할 때마다 7명 이상 아는 동생들이 걸고넘어졌다. 어떻게 귀신처럼 알고서 딱 그때마다 나타나서. 판 다 깨버렸다. 그래서 결국 비너스는 떠났다. 정식으로 확답도 남겼다. 우리는 인연이 아닌 것 같다나 뭐래나. 연락하지 말라며 그래도 뺨은 때리지 않더라. 나도 뺨 맞을 짓 하지도 않았다. 뭐 손해본 건 없다. 미래의 이득을 실현시킬 계산법으로 따지면 손해이긴 하나. 그런 이익 별로 관심없다. 그렇게 어떻게 또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서 이어지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하여 나는 근처 미술관에 들르기로 했다. 
    장면 전환.
    장면 전환.
    장면 전환.
    미술관에 도착해서 구경하고 커피 마시고 산책하고. 할 거 다 했다. 왠지 입이 심심해서 빵이나 먹을까...하여 나무 밑 그늘 탁자에 앉았다. 과일쥬스와 빵을 주문하는 곳으로 가려는데 누가 내 어깨를 톡톡 건드렸다. 
   「맞...지? 아니, 맞...죠? 그렇죠? 야, 나야. 너.... 너가 누구더라?」
   「누구...」
   「나야 나. 폴. 기억 안나? 우리가 친해질 뻔 말 뻔 다시 어떻게 가까와질 뻔 그러다 말았잖아.」
   「아아 너구나. 하긴 그때 우린 호감은 있었는데 어울려다니는 친구들끼리 좀 서먹서먹 아니. 아예 닭 소 보듯 소 닭 보듯 했잖아.」
   「그러게. 나도 그처럼 예전 동창을 만난 적이 있는데. 학교 다닐 땐 말 한 번 섞어본 적이 없었는데 어떻게 자연스럽게 대화를 하긴 하더라고. 물론 서로 모른 척하는 경우도 있고 말이야. 아무튼 반갑다.」
   「그래 나도.」
   「넌 썩 반갑지 않은 얼굴인데.」
   「아니야. 내가 세계 도박사들이 알아주는 포커페이스라서 그럴 거야. 그런데...」
   「아, 여기? 우리 비서실장이야. 인사해. 캐서린, 이쪽은 내 친구. 친구, 이쪽은 캐서린.」
   「어머머. 이름부터 공개하지 않는 걸 보니 감추는 게 많으시나 봐요. 뭐 차차 알게 되겠죠. 그렇죠?」
   「너... 언제... 아니 근데 너 여기 사니?」
   「아니. 집은 다른 도시에 있고. 여기는 직장. 저기 보이는 호텔에서 임기 1년짜리 사장 맡고 있어. 곧 돌아갈 때가 됐지.」
   「너가?」
   「왜, 내가 공부랑 인연이 없었는데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거 같아서? 그게 말하자면 길다. 그러니 다음에 만나서 중요한 얘기는 다시 하는 게 좋겠어. 물론 다음에 다시 만나자는 빈말, 또 한번의 우연이 반복될 거라는 가정 하에 하는 말이야.」
   「그게... 뭔 얘긴지 잘 모르겠는데?」
   「일단 난 먼저 가봐야 해. 그러니 캐서린과 함께 커피 마시는 거 어때?」
    그러면서 녀석은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급히 도망가버렸다. 말 돌리기의 귀재가 쟤야... 아리송했다. 그럼 나와 캐서린은... 무엇을 해야 하지? 당장 뽀뽀를 할 수는 없으니 어디 가자고 할까. 그때!
   「어머, 우리 사장님이랑 학교 같이 다니셨어요? 저분 예전에 어땠어요?」
   「어떻긴 뭘 어때요. 흉했어요. 쟤 내 꼬봉이었거든요. 쟤는 내 스피커였고 나의 인공지능이나 다름없었죠. 그럼요. 그런데 아, 캐서린. 캐서린? 캐서린 맞죠? 맞죠. 초면에 실례지만 혹시 캐서린은 쟤 좋아하지는.. 않겠죠. 관상을 보아하니 둘이 잘 안 어울려요. 그냥 직업적 관계? 그 이상도 이하도. 그럼 어떤 남자 좋아해요? 제가 남자 소개시켜... 아 우리 오늘 처음 만났구나. 헉! 우리래. 숙녀분 의중도 모른 체 허허허. 주책이네요. 내숭은 아닐 거 아녜요. 허허허허허.」
   「재밌는 분이시네. 호호호.」
    호텔 사장이 옛친구라니. 근처 미술관에서 걔만 만난 게 아니라 뜬금없이 보너스로 비서실장까지 소개받고. 
    그렇게 더 부담스러운 대화를 이어가기 전에 난 자리를 뜰려고 했다. 그런데 그녀가 날 잡았다. 초면인데 다짜고짜 바지끄댕이를 잡진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캐서린이 내 머리끄댕이를 잡을 리도 없지 않나. 하여 그녀는 내 옷깃을 잡는 척하더니 글쎄 자기 손등의 온도를 내게 슬쩍 건내는 거 있지! 꽤나 은근한데? 이건 대체 나랑 어떤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건지. 뭐 어쨌든 그럭저럭 우리는 다정한 예감이 일치한다는 확신과 함께 헤어졌다. 물론 둘 다 전화번호는 물어보지 않았다. 앞서 먼저 가버린 친구가 뭐랬던가 우연이 우릴 기다릴 것이다 라는 가정, 예언, 그때 머머하자 라는 은근한 암시까지. 이 자식이... 멋진 거 지 혼자 다 해버렸어? 생긴 거도 꽃미남과는 아닌데 전형적인 다비드과에다가, 여자들이 딱 좋아하는 옷걸이. 몸짓은 또 언제 소녀들 좋아하는 가수들 쉭쉭 섬세한 그것과 닮았고. 난 상대가 안될 게 뻔하다. 하지만 아예 상대가 되지 않을지언정 딱 보니 걔는 여자 못 웃기네. 너무 점잖거든. 하여 자상함 다음이 없어. 여자를 기대하게만 만들면 뭐 하냐고. 대타는 물론 판토마임부터 즉흥연기 기타등등 사랑학 박사인 내가 낫지. 때문에 초반에만 혹할 게 뻔해. 저렴한 말로, 첫 끗발이 개 끗발! ~라는 말이 있지. 걔가 그거네. 하오나 우리는 다르지. 일단 보자마자 바로 웃거든. 만나자마자 언제 봤다고 즉각 오빠~인데? 우리는 오빠라는 말만 들으면 미쳐버린다.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 그래도 걔가 또 뭔가 그녀들이 도저히 싫어할 수 없는 분위기라는 게 있는데. 여자 기분이 눈부신 내일을 기대할까 말까 하던 찰나 포기해버리는 묘한 향수와 비슷하다고나 할까.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닌 거지 뭐가 그렇게나 복잡한가. 모르겠고. 그나저나 녀석의 행보로 보건대 또 눈치가 퍽 빠지는 것도 아닐 테니, 그러므로 자연스럽게 나랑 캐서린이랑 잘해보라고 자리를 쓱 피해준 건가? 난 모르는 일이다. 바로 그 때문에 우리는 다시 만날 걸 알고나 있다는 듯이 헤어졌다. 
    장면 전환.
    장면 전환.
    장면 전환.
    나는 호텔 내 방으로 들어갔다. 요점만 말하자면 해수욕장 그녀 "선미"가 나체로 날 기다리는 중! 
    아니... 어떻게... 드라마에서만 봤던 모습이 내게도? 그런데 진짜로 그녀는 팬티까지 싹...? 에잇~ 설마! 
    그런데 실루엣을 보아하니 아닌 것도 아닌데. 난 당연히 당황스러웠다. 그럼 싫었을까? 일단 낯설긴 하나 주인공감은 나였기 때문에 나쁘진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워매 좋은그~라면서 대놓고 좋은 척할 순 없기 때문에. 아무리 그렇더라도 나도 모르지 않음. 내가 무엇을 알지? 옛말에 그랬다. 나도 사또 너도 사또 하면, 아전 할 놈 없다고 말이다. 난 일단 주인공감이 아니거든. 먼저 연극무대에서 탄탄한 연기력부터 쌓아야 하는데. 밑도 끝도 없이 누구 대타로 깜짝 발탁에, 데뷔 하자마자 대성공에... 그건 나랑 어울리지 않는다. 더군다나 나는 유명해지고 싶은 마음 없다. 그 뿐만이 아니라 우리는 얼굴 팔리는 거 싫어라 한다. 그러든 어쩌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지금 이 상황이 장난 아니라는 거. 어떡하지? 그렇다고 선미한테 직접 물어보기도 좀 뭐한데... 너 혹시 다 벗은 거니, 정말이니, 진짜니? 라고 말이야. 그럼 일단 나도 동타를 이뤄야 할 테니... 그게 맞나? 아닌가. 어떡하지? 얘가 그러니까 나한테 반했단 말이지... 허나. 그렇다고 다 된 밥상에 숟가락만 올리기, 왠지 미안한데. 뜻밖에 축제가 시작되자마자 주인공이라니. 그래도 다 된 수프에 코 빠트리면 안된다. 뭔가 의심스러우니까. 거울로 내가 나를 봐도 썩 의뭉스러운데? 하긴 선미가 자의로 떠난 거냔 말이다. 잘 되어갈 뻔 하다가 딱 옆에서 찬물을 끼얹은 건데. 분위기 확 깨버렸으니 어딘가 모르게 자기도 일일드라마에서 보던 역할에 충실하고 싶어졌을 것이다. 딱 그 상황 되니까 안 그럴 수 없을 거야. 그래서 나를 갖고싶다? 고로 내가 져드리면 우리는 예술이 되는데. 이게 또 문제가 뭐냐 하면 통속극에서 흔하게 보던 설정. 딱 진한 사랑을 본격적으로 시작할까 하던 찰나, 갑자기 확 들이닥치는 거야. 그럼 난 덫에 걸려 꼼짝 못하는 거지. 뭐? 이래서 남자들끼리 아무도 듣지 않는다는 가정 하에 논하는 거다. 남자1이 3세대를 내다볼 개꿈을 공상하는 동안 막 옆에서, 쟤는 3년 가겠네... 3달이면 질리겠다... 나랑 내기할래 난 3주면 쫑이겠는데. 이런 얘기 많이 하기는 대회에 나가 입상쯤은 일도 아니다. 어쨌든. 그러다 이미 다혈질 기분파가 그녀를 꼬셔버림. 농담이고. 그런데 이처럼 망설이기만 하다가는 낼모레 환갑일 것이다. 친구한테 들을 말도 뻔하다. 넌 그래서 안되는 거야, 늬가 그러니까 여자가 없는 거야 어쩌고저쩌고. (절레절레) 그러다 (딱) 나는 직감했다. 여자의 육감 나한테 상대도 안되니까 나는 확신했다. 결정적으로 나는 그녀의 동공 움직임 놓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때 제7의 직관력이 어떻게 날 돕지 않을 수 있겠나. 일단 앞서가고자 하던 감수성, 호기심, 유혹에 넘어가고 싶은 본능...그분들도 뭔가를 깨닫고 슬슬 벤치멤버로 빠졌는데. 그런데 이렇듯 중차대한 순간에 어떻게 이처럼 생각을 많이 할 수 있을까? 있다. 왜냐하면 시간이 정지됐기 때문에. 허허허. 조연들은 몰라도 우리는 익숙하거든. 흐흐흐. 
    아무튼 나는 당장 달려가서 그녀의 가면을 벗겼다. 그랬더니 정말로 그녀는 표피가 벗겨졌다. 그녀는 선미가 아니라 로보트였던 것이다. 나한테 뭐 호피 무늬 일체복 입고서 춤추고 싶다고? 다 뻥이었네. 아니. 그건 진짜였고 얘만 가짜다. 
    한편, 나는 그녀를 사진찍기 위해 핸드폰을 켰다. 동시에 도트북도 가져와서 적외선 카메라, 초음파 4D 동영상, 기타 특수 비파괴 촬영 장치들을 가동시켰다. 그럼 그동안 선미가, 아니 로보트가 날 차분히 기다렸을까? 그럴 리 있겠나. 그녀는 벽에 걸린 액자를 열고, 액자 뒤에 미리 설치된 구멍으로 들어갔다. The Yellow Curtain / 헨리 마티스. 설마 저 액자는 진품? 그런데 언제 액자를... 문을 열듯이 또 그 뒤로 비밀통로가 설치되어 있었다는 거지? 그러든 어쩌든 영화는 시작됐는데 또 내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모험극인데 갑자기 에로로 바껴서 누굴 자빠트릴 수 있나? 도망가면 안된다. 나는 그래서 선미, 아니 로보트를 잡기 위해 녀석을 따라갈 수 밖에 없었다. 





    6

    결국 나는 비밀통로로 로봇을 따라가다 포기했다. 그래서 다시 되돌아갔다. 그렇게 딱 호텔 내 방에 도착. 
    그런데! 뭐야 여긴 내 사무실이잖아? 호텔 방에서 비밀통로를 따라가다가... 끝까지 못가고 돌아왔으니. 이러면 안되는데... 어떻게 된 거지? 그러니까 언제 저 마네킹... 제목을 잊어먹은 저 그림에 특수장치가 되어있었던 거지? 
    그리고 또 무슨 이유로 공간이동이 순식간에 가능했던 거고. 또 호텔에 있는 내 짐들과 자동차는 어떡하지? 
    바로 이럴 때를 위해서 나는 모스맨 연구소와 친분을 유지했던 건데. 속된 말로 난 걔네들한테 주기적으로 약을 쳤다. 
    혹시 모르니까 이럴 때를 위해서 뭘 엄청 먹이고, 심심하면 선물 갖다주고, 개개인 기념일도 다 챙겼다. 물론 웬만하면 거기 여자들도 다 나한테 반했다. 그렇게 잘해주는데 뻑가지 않을 수 없거든. 때문에 다 날 좋아할 수 밖에. 착각도 병이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난 서둘러 전화해서, 통화하고, 상황설명하고... 그러다 딱 소파 위 그림을 봤는데. 그림은 거짓말처럼 제 위치에 그대로 있었고. 또 막 만져보고 살펴보고... 그래도 좀 전에 무슨 문처럼 열리고 그런 장치는 일절 없었다. 또 액자를 떼서 보니 비밀통로는 개뿔. 뭐야 이거? 그러다 나는 통화 중이라는 걸 깨닫고 전화기를 들었다. 
   「형. 일단 우리 사무실로 넘어와. 와서 얘기하게. 이번에는 내가 다 꼬셔줄께. 형은 안돼. 알아?」
    장면 전환.
    장면 전환.
    장면 전환.
    모스맨 연구소에 도착. 몇몇 사무실에 들러 인사하고, 얘기하고, 기타 등등. 다 마친 다음. 
    도청 금지는 물론 침입 불가능한 특수실로 들어가서. 우리는 슈퍼컴퓨터를 가동시키고, 엑셀파일을 켜서 각종 경우의 수를 기록했다. 
    답은 나왔다. 물론 쉽게 결론이 나지는 않았다. 
    구상화 ──→ 추상화
    추상화 ─X→  구상화 
    추상화 ──→ 추상화
   「형. 호텔에 놓고 온 형 짐이 뭐 뭐 있지?」
   「노트북이랑 옷가방. 또 이것 저것. 그리고 자동차.」
   「포기해. 그래야 하니까.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이야.」
   「무슨 소리야? 안돼. 여기 너와 나 밖에 없으니까 하는 말인데.」
   「그래서 하는 말인데, 뭐? 또 누구 따먹을 일 생겼어? 아니, 나도 나다. 뭐, 또? 난 쏙 빼놓고 혼자서 죄다 독식하시겠다? 이 양반 좀 보시게! 응? 이거 증말 너무한다고 생각 안 해?」
   「무슨 얘기를 하는 거니? 너 나를 그렇게 밖에 안 봤니?」
   「응.」
   「근데 왜 포기하라는 거야?」
   「어째서 포기 못하는데. 내가 사줄께.」
   「늬가 왜 사줘. 형 여자 좋아한다.」
   「그럼 뭐 난 남자 좋아하냐? 아무튼 이유는 말해줄 수 없어. 다 그럴 만한 사정이 있단 말이야.」
   「그럼 나도 포기할 수 없는 까닭, 당연히 말해줄 수 없어.」
   「나한테도?」
   「그나저나 넌 형한테 배울 게 아직 꽤나 많이 남아있는 걸로 아는데...!」
   「형한테 속아서 내가 얼마나 돌아왔는 줄 알아? 차라리 내 잔기술로 승부 볼 걸.」
   「형한테는 한 방이 있어. 너가 형한테 필살기를 아직 못 배웠으니까 그렇지. 너 나 모르냐?」
   「형은 바로 내가 알지. 안되겠다. 정 원한다면...!」
    그래서 마침내 나는 호텔로 돌아가는 방법을 알게 됐다. 
    요점만 말하자면 동네 미술관에 가면, 관장실에 명화가 걸려있다고 한다. 
    White Center / 마크 로스코
    물론 진품. 그걸 네 꼭지점에 지문을 동시에 대고 윙크를 하랜다. 
    특수 지문인식은 아니란다. 단, 남녀 지문 교차 등등 자세한 설명. 
    장면 전환.
    장면 전환.
    장면 전환.
    어떻게 어떻게 들어갔다. 마침 오늘은 쉬는 날이고, 해킹으로 보안 장비 무력화 완료. 
    또 아는 동생들 지문도 다 이럴 때를 위해서 체취해놨고, 그렇게 총 4명의 이성 지문을 교차하여 꼭지점에 부착시켰고. 
    윙크를 하자마자 정말로 액자는 딸깍~ 하면서 문처럼 열렸다. 와, 보인다. 저 구멍 끝까지 기어들어가야만 하는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물러설 곳도 없다. 또 왜 도망가나. 길은 하나 뿐인데. 나는 그렇게 저 보이지 않는 끝을 향해 기어들어갔다. 





    7

    나는 그렇게 예상했다. 다시 내 호텔 방으로 되돌아갈 거라고 말이다. 그런데 그랬을까? 아니다. 
    내가 도착한 장소는 다름 아니라 호텔/비서실/비서실장 캐서린 책상 밑이었다. 
    그렇게 내가 자동문처럼 열린 비밀통로에서 얼굴을 쑥 들어올리자마자 본 광경은 무엇이었을까? 
    (딱) 옳커니~ 그러나 색상은 말하지 않겠다. 설마... 아니다. 말할 수 없다. 그 비밀은 무덤까지 안고 가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 그걸 발설하면 안된다. 그럼. 사람 그러는 거 아니다.
    물론 그녀는 깜짝 놀랐다. 그런데 뭐라고나 할까 뭔가 약간 과장된 표정하며... 어떤 의도된 대본에 따라 자연스럽게 연습해본 반응이라고나 할까. 
    가늠컨대 그녀는 내가 그렇게 나타날 줄 미리 알고 있었다는 말인데. 
   「오빠. 그런데 지금 거기서 뭘 해?」
   「나? 뭐...한 거 없어.」
   「그럼 방금 뭘 봤는데?」
   「보긴 뭘 봐. 나 그런 사람 아냐, 어? 우리가 어떻게 만났는지 너 벌써 있었니?」
   「근데 혹시 저 꽃다발 오빠가 보낸 거야?」
    아마도 내 친구 호텔 사장이 그녀를 흠모하는 거 같은데. 보아하니 짝사랑. 그래서 익명의 꽃다발을 보낸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내가 보냈다고 말하지 않았다. 물론 내가 보내지 않았다 라고 강건히 부인할 수도 없었다. 따라서 꽃은 내 연정이 되었는데. 이래서 캐서린은 나한테 마음을 빼았겨버린 건가? 이러니까 여자들이 나한테 뻑갈 수 밖에 없지. 지들이 나한테 안 넘어오고 베겨? 농담이고. 물론 이때 그녀가 만약 이렇게 말했다면 나는 꽤 실망했을 것이다. 오빠, 지금 키스 타임인 거 같은데! 야구 경기장에서 키스 타임이란 우연히 당첨되는 묘미가 있는 것. 그런데 제발 한번만 만나주라는 둥 껴안아주라는 둥? (몸짓) 물론 다행스럽게도 캐서린은 날 심하게 체념시키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곧장 그녀와 키스를 했다. 이처럼 뜨거운 키스는 난생 처음이었다. 너무 황홀했으니까. 그 뿐만이 아니라 이건 (조용조용히) 내 첫키스였다. 캬, 어? 됐고. 그렇게 우리는 데이트를 하러 갔다. 물론 캐서린의 오픈카를 그녀가 운전하고서 말이다. 
    장면 전환.
    장면 전환.
    장면 전환.
    우리는 평범한 연애로 시작했다. 며칠 동안 어떻게 애정을 표현하고 무슨 줄거리가 있었는지 영화 예고편처럼... 그렇게 알고 넘어가자. 너무 많은 걸 알려드릴 순 없으니 말이다. 그러다 어느 일요일. 우리는 해수욕장 구석에 텐트와 우산을 폈다. 그녀는 연분홍색 비키니를, 나는 하늘색 수영복을 입고서 우리는 일광욕을 시작했다. 그러다 그녀는 잡지를 뒤적이다가 사진도 찍다가, 잠시 낮잠을 잤다. 나는 번뜩이는 영감이 떠올랐기 때문에 서둘러 노트북에다가 끄적거렸다. 
   <우리는 쾌활한 음탕함에 젖을 수 없다. 더러운 상상은 하지도 말자. 추접스러운 흑심 품어서는 안되니까. 귀여운 애교로 보나 육감적인 매력으로 보나, (절레절레)! 그러니까 상쾌한 꽁트, 눈부신 작품 구상, 신나는 모험 그 모두에 대한 비전에 흑막이 가려진 셈인데. 그럼 걷어내면 되잖아? 병풍맨은 통 말을 듣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썩 괜찮은 묘안을 물색하기를 잘했는데. 그런데 지금은 못한다는 거. 그래 팔색조가 되기 위해 정열적으로 노력해본 적도 없다. 숙녀들의 이상형 하나도 부럽지 않다. 그럼 허언증업에 종사하는 현실이 챙피하냐, 것도 아니다. 그나저나 사랑도 포기했다. 어쩌면 큰 욕심 없어서 다행일 수도 있다. 하긴 마지막 낭만파 같은 촌스러운 별명을 탐해서 뭐 하나. 한심한 연애칼럼 쓰기도 지쳤다. 사랑의 차트 하나도 관심없다. 그러든 어쩌든 어젯밤 개꿈이 퍽 괴상했는데 복권이나 한장 사볼까? 꽝 안되면 어떡하나라고. 1등은 남들한테 사양해야 할 일. 회상하자니 내게는 그런 격언이 있었구나. 꿈은 아무렇게 꾸어도 해몽만 잘 해라! 누가 들으면 개 풀 뜯어먹는 소리 그만 좀 하라 그러겠네. 틀린 말도 아니다. 도대체 언제 철들지를 모르니까 말이다. 그렇다고 등번호를 바꿔달아봐야 어차피 소용없을 것이다. 하여 의무방어전 상대는 오직 고독한 가난? 챔피언 벨트 반납하기 싫어질까 봐 우리는 무대에 오르지 않는 것일 뿐. 조명발 그거 눈부시기만 하지 받아봐야 별로 좋지도 않음. 안 그래도 화장 지우면 다 똑같다. 할 말은 많은데 일단 거기까지만 알자. 내가 보기엔 이래 뵈도 왕년에, 내가 입만 뻥끗 하면 부끄러워 할 여자들 천지다. 억쑤로 많다. (몸짓) 또 내가 입만 열면 그냥 뻥뻥 터트리니까 웃다 웃다 안면 근육 씰룩거린다며 말렸던 여자들만 (몸짓)! 굳이 이런 말까진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래서 그녀들이 날 못 잊는 건가? 다들 안 믿겠지만 제발 한번만 만나달라던 그녀는 물론 자기를 제발 데리고 살아달라는 둥 날 귀찮게 하며 매달리는 여자들 때문에, 바로 그래서 내가 은둔형 허당으로 사는 거다. 그게 다 걔네들 피하느라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가서 개뼉따귀나 똥개한테 주고 오지 그래? 근데 누가 자꾸 내 말을 끊지...! 대체 관상이 어떤 분이시길래 오지도 않은 미래를 짜증나게 하냐고. 설마 이마에 찐따라고 써있는 건 아니겠지? 진위야 어떻든 마음에 드는 애칭은 누구한테 빼았긴 게 아니라 원래 내 것이 아니었을 거라는 점. 고로 굳이 사서 절망할 필요없다. 그래도 일기를 쓰더라도 고상하게 좀 쓰자. 이게 뭔가? 미친년 나물 캐듯도 아니고 똥 마려운 촌년 미남한테 첫눈에 반한 듯도 아니고. 무성의하게 이게 뭔가! 곧 정체가 탄로나도 고전음악? 우승은 못하고 풍악만 갖추네. 그래도 옷이 날개라는데 최소한 "오빠는 옷도 못 입냐"라는 말 만큼은 사양해야 마땅하다. 안 그런가? 그런데 거울을 보아하니... 옷걸이 좋다는 허세도 힘빠진다. 얼굴이 갔으니까. 왠지 모르게, 나도 모르게, 어딘가 모르도록 더럽히고 싶은 새하얀 도화지 같은 얼굴! ~이 아니라 이미 닳고 닳은 면상? 뭐가 어쩌고 어째! 뭐 이건 관상이, 뭐랄까 나르는 닭 보고 따라 가는 개라고나 할까? 닭 쫓던 개 지붕쳐다 보는 격이구만. (절레절레) 아니 내가 어쩌다가...! 우리가 뭐 꽁지내린 똥개도 아니고 야속한 달력 탓해서 뭐 하나. 그래서 나는, 떡도 못 얻어먹는 제사에 물팍이 벗어지게 절만 하고 있나? 잘한다 잘해. 이래서 놀고 있네~ 라는 핀잔을 도저히 피할 수 없는구만. 그래서 나는 이 세상 아름다움으로 느낄 수 없을 만큼 고혹적인 숙녀와의 연애, 깔끔하게 단념했다. 따라서 나는 마침내 자유를 획득했다. 할 게 너무나 많다. 이 쉬운 걸 여태 왜 몰랐지? 그러게 말이다. 알든 모르든 더 이상 가택감금이 아니라는 게 중요한 거다. 자, 이제 신나는 모험 여행을 떠나볼까? 여건되면 로드무비 찍고 탄력받으면 글도 쓰는 거지.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 노트북을 덮고 나서 알게 됐다. 그녀가 없어졌다는 사실을. 어디 갔지? 왜 말도 없이! 설마 날 못 믿나? 아닌데. 정말 아닌데. 이미 넘어왔는데. 넘어왔어도... 쉿! 





    8

    며칠이 지났다. 캐서린과 나는 설마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일까? 그런데 왜! 
    아니, 어? 무엇 때문에 그녀는 말도 없이 날 떠난 거냐고. 대체 무슨 사연을 간직한 건지...
    그럴 거면 왜 내게 잘해줬지? 알 수 없었다. 물어보고 싶어도 만나야 묻든 말든 그럴 건데...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괜히 좋다 말았던 일들이야 뭐 회상하면 어디 한두 번이겠나. 
    그래서 나는 손절이 빨라 좋기도 할 텐데... 허나 아름다운 사랑과 풋사랑은 다르다는 거. 
    한편, 나는 근처 어느 카페에서 캐서린과 선미 그 둘이 다정스레 얘기하는 모습을 보게 됐다. 어쭈.... 쟤들 봐라! 어떻게 1 대 1이라면... 친구끼리 하는 말로 따박따박 말대꾸를 하든 말든 족치기라도 할 텐데. 어떻게 뭔가 잘 되어갈 듯 말 듯 하다 왜 사라졌는지. 아니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넌 사랑이 장난이니? ~라면서 따지기라도 할 텐데. 2명? 선미랑 캐서린이랑 둘 다? 나는 무척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그녀들 앞에 나설 수가 없었다. 뭐야.. 그럼 이걸로 봐서는 난 그 유명한 1 대 1에(만) 최적화된 남자? (만)? 여자는 남자한테 잘보이기 위해서(만) 화장을 한다. 뭐?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 그나저나 선미랑도 거의 거의, 거의 쫌만 조금만 더 거의 어떻게 내가 적극적일 필요도 없이 지 혼자 막 자빠지고.. 거의 거의 조금만 더... 그랬는데. 캐서린이라고 다를 건 없었다. 근데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다 잡을 수도 없고. 근데 불여우들은 도망가질 않고 얼쩡얼쩡! 저것들을 어떻게 야금야금 요리한다...! 난 잔꾀가 바빠졌다. 생각이 많아졌다. 허접한 차림새로 심심할 때 떠올리던 잡생각과 차원이 달랐다. 그러다 그녀들이 카페를 나가려고 했다. 나는 정신을 차렸다. 빠짝 긴장했다. 왜냐하면 나는 그녀들을 미행할 계획이었기 때문. 그렇게 나는 그녀들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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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이 함께 지낼 별장을 마련한 건가... 나는 캐서린과 선미가 다정스레 어느 별장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 다음 나는 한숨을 쉬고서 차분히 주문을 외웠다. 어떤 주문인가는 말할 수 없는 점 이해해주시기 바란다. 그렇게 내가 꺼내든 카드는 바로, 비파괴 투시경. 나는 요원들이 멜빵에 차고 다니는 무엇처럼, 그 물건을 옆구리 뒷쪽에 차고 있었던 것이다. 
    잠시 후! 아니 얘가 이렇게 성능이 훌륭하다니. 이럴 거면 맨얼굴 감별기 당장 발명하겠네. 화장발 싹 다 꿰뚫어볼 텐데...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결론은 이랬다. 둘 다 각자 옷을 벗었다. 그렇다고 내가 벗겨주고 싶다 그런 마음은 일절 없었다. 쟤들은 인간이고 나는 외계인이나 된다는 듯이 나는 아무런 감정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참을 지켜본 결과 나는 알게 됐다. 바로, 선미는 암회색빛과 연한 암청색이 도는 콘크리트 색상이었고(나체가). 캐서린은 약간 어두운 뭔가 괴상한 대리석 빛깔이었다는 것을. 그러니까 옷을 다 벗었는데 눈부신 나신이 그랬다는 것이다. 물론 클린싱폼..폼클린싱...비누...화장발도 다 지워지고 나니. 얼굴도 앞서 말한 나체 색상과 똑같았다. (참고로 말하는데 지구상 그 어떤 인종들과 전혀 다른 뭐랄까 빛을 빨아들이는 블랙홀 같은 신비한 색상이라고나 할까? 물론 어두운 색상 이면에 드문드문 샛노란색이랄지 연두빛 같은 원색이 아주 잠시 반짝였다) 저거 뭐야? 완전 괴물들이잖아? 쟤들을 보고서 누군가 욕망을 느낀다니! 말도 안돼. 설마 내 근처에 있던 점잖던 그 냥반들도 쟤들을 흘낏흘낏 보면서 막 이상한 상상을? 나는 아니다. 탐욕과 나는 하등 친하지 않으니까. 어쨌든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결국 선미랑 캐서린은 둘이 막 껴안고 키스하고 비비더니 마침내 한몸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방금 말한 건 관용적 표현이랄지 저급한 묘사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직접화법. 즉 정말로 그 둘은 합체가 되어버렸다., 미술 수업 시간에 배웠나... 콘크리트색과 대리석색을 합하면... 물론 쟤들은 그와 달랐다. 결과는 곧 거의 검은색에 가까운 청보라색이었으니까. 
    잠시 후. 선미는... 아니. 캐서린은... 아니. 저 괴물을 대체 뭐라고 불러야 하지? 저년은 어딘가로 성큼성큼 이동하더니 갖혀 있는 야생동물을 빼내더니 먹었다. 덥썩! 어떻게 입 안에서 가죽은 잘도 분리해서 곧 뱉어냈다. 아니... 실험용 생쥐, 족제비, 여우를 생으로 먹어? 저... 그럼 생식? 아니 육식주의자? 뭐지? 뭐야 저거! 나는 그것도 모른 체... 진한 사랑을 내 맘대로 상상했다니. 등에 식은땀이 쭉 흘렀다. 아주 그냥 흥건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식은땀은 물론 더운 땀으로도 질펀했다. 지금 비오나? 아닌데. 그럼 이게 다 땀이야? 그러게 말이다. 여기서 또 뭔가 새로운 비밀을 알게 된다면 나는 그걸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이럴 꺼면 혼자 오는 게 아닌데. 혹시... 저 괴물이라면 내가 이렇게 지켜본다는 걸... 아마 모를 리도 없을 거 아닌가. 그럼 일부러 내게 보여줄려고 아무렇지 않은 척 연극배우나 된다는 듯이. 누굴 아마추어로 아시나...! 이대로 또 다른 무언가를 봤을 때... 정말로 기절이라도 하면 어쩌지? 그럼 저 괴물이 나와서 이미 정해진 수순에 따라 나를... 나는 살짝 오줌을 지리지 않을 수 없었다. 뭐야 갑자기 똥도 마렵잖아? 이런 젠장! 그래서 나는 곧장 도망가지 않을 수 없었다. 





    9

    며칠이 지났다. 오늘 나는 스카이라운지에서 캐서린 만났다. 또 또 바텐더한테 껄떡거린다... 저게 뭐냐 추접스럽게...라는 핀잔을 난 정말 듣기 싫었기 때문일까? 왠지 그날따라 나는 야경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창가에 앉아 혼자 고독을 핑계삼아 멋진 척 폼을 잡고서 커피를 마셨다. 그러다 누가 날 아는 체했다. 
   「오빠 여기서 뭐해?」
   「보면 모르니?」 ~라는 답변은 쏙 들어가버렸다.
    왜냐하면 그녀는 캐서린이었기 때문에. 엇그제 나는 그녀의 나체를 봤는데? 걔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오줌...지렸다. 그래. 솔직히 말하고 자시고 사실인데 어쩌라고. 안 그럴 수 있나? 얘가 또 누굴 잡아먹으려고... 정말로 누굴 잡아먹고 화장을 풀세트로 했지? 이 정도면 작정하고 남자 꼬시고 싶다는 건데...! 그렇다고 물어볼 수도 없고. 
   「오빠 원래 말 없는 남자야? 내가 반갑지 않나...」
   「반..가워.」
   「그래? 그럼 나 옷사줘.」
   「옷... 사줄께.」
   「농담이야. 옷은 내가 사줄께.」
   「어, 사줘.」
   「뭐? 정말 사줄까? 말만 해. 뭐든 골라. 뭐 디올 옴므? 아니면 제냐 원단 맞춤복? 나 보너스 받았어. 무려 2만 퍼센트. 특별수당도 있어. 보여줄까?」
    얘가 왜 갑자기 촌년처럼 굴지? 수상한데... 속으로 찔리니까 일부러 멜로드라마 흉내내는 거구만. 안 봐도 뻔하다. 옛날 삼류 대학교 후배, 학과에 딱 3명 있는 여자애들. 그 가운데 한 명이 말하기를. "선배, 학교 좀 나와요!" 기차에서 단짝이랑 나랑 심각한 장면을 봤으니까 아마도 걔 시야각에 잡혔으니...그렇겠지. 근데 그 3인방 가운데 여자애 1명과 같은 학과 (남자)후배가 사겼는데. 그 후배는... 방학 끝나고 왜 나한테 갑자기 90도 인사를 했지? 진짜 폴더 인사는 아니다만 80도 정도... (머머형 인사드릴께요)... 당시도 황당 지금도 이상! 친분이 형성된 거도 아니고... 형 인사드릴께요 꾸벅하며 방학 잘 보내셨어요 라고 했던가... 무슨 내가 학과장도 아니고... 날 할아버지로 알았나? 그럴 이유가 전혀 없는데 아직도 미스테리. 걔도 그때 제정신이 아니라 로보트처럼 그랬던 건가. 또 여자 후배 3인방에서 나머지 1명은 후배들의 1년 선배인 '내 동기'와 사겼는데. 언젠가 그 캠퍼스커플이 친구&내가 사는 자치방에 몰래 찾아옴. 그게 우연찮게 나나 친구 뒤를 밟았다는 말인데... 그렇게 집도 알아냈고 열쇠를 어디에 숨기는지 까지 (몰래) 다 봐놓은 다음. 그 캠퍼스커플이 평범한 상업시설은 가기 싫고 그래서 특별한 장소로 친구&내가 사는 자치방에 조용히 찾아왔는데. (주말이기 때문에 당연히 아무도 없을 걸 예상하고서) 당시 친구 혼자 있어서 3자 대면! 화들짝 놀랐을 텐데. 그럼 3명 가운데 2명만 이상했던 거네. 아무튼 옛날 생각 그만하고. 
   「오빠 무슨 생각해? 내 생각 안 했어? 왜 갑자기 앙탈이냐고? 우리 사귀는 사이니까.」
   「」
   「오빠. 우리 2 대 2 소개팅 할까?」
   「」
   「아, 오빠 지금 작품구상 하는구나? 내 친구가 작곡가랑 사귀는데 이럴 땐 방해하는 거 아니라던데.」
    내 친구? 친구가 아니라 혹시 캐서린 전남자친구 얘기 아닐까. 그러든가 말든가. 
    어쨌든 우리는 그날 그렇게 헤어졌다. 
    장면 전환.
    장면 전환.
    장면 전환.
    어느 날 나는 해질녁 바닷가에서 걷고 있었다. 저녁 노을을 보며 이렇게 걷는 일. 이게 결코 어려운 일은 아닌데... 또 연인과 걷거나 추억 만들기마저. 한데 어째서 이걸 해보는 게 쉽지 않지? 뭐 산다는 게 그런 거긴 하다만. 그러다 나는 저쪽에서 걸어오는 어딘가 외로워 보이는 숙녀한테 흑심을 품지는 않았다. 다만 왠지 신경쓰인다고나 할까? 그런데 가까이 다가오더니... 알고 봤더니 걔는 선미였다. 뭐 선미? 오소리 잡아먹고, 담비도 생으로 먹고. 실험용 생쥐도 꼬리를 잡고 꿀꺽했던, 선미? 그럼 이제 날 잡아먹으려고? 그래서 나는 뒤돌아서서 오던 길로 돌아갔다. 아직 그녀는 날 보지 못했을 것이다. 다행스럽게 날 몰라봤기를 바랬다. 그런데 나의 염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눈치 빠른 그녀, 약삭빠른 나. 전자와 후자는 앞으로 진한 사랑을 하게 될 것이다. ~라는 예언을 어디서 듣지는 못했고. 밑도 끝도 없는 공상 하기도 싫었는데. 사실은 그녀가 날 이미 알아봤다는 점. 날 겁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오빠. 오빠...맞지? 맞네 맞어. 와, 오빠다. 오빠?」
   「」
   「근데 왜 도망가? 방금 나 봤지? 그치? 아닌가? 아닌데. 일부러 모른 체하는 거야? 내가 창피해? 아님 혼자 부끄러워?」
   「」
   「아님 내가 짝사랑할까 봐 걱정이야? 그럼 나도 내숭 떨어야 하나. 오빠, 유난떨지 마. 나 파랑새야. 오빠가 뭘 좋아하는지 난 다 알아. 더구나 나는 팔색조니까 다 가능해. 허허허.」
   「」
   「이 오빠 좀 봐. 왜 몸이 굳었어? 어? 뭘 잘못 자셨나, 오빠 왜 이러지?」
   「」
   「오빠. 이러지 말고 우리 시내로 놀러가자. 오빠가 나 꽃 사줘, 난 오빠 옷 사줄께. 그리고 근사한 저녁식사도 함께 하자. 왜 싫어? 에잇 좋으면서.」
   「」
   「근데 오늘따라 이 오빠 정말 말 없네. 왜 갑자기 벙어리가 되어버리셨을까...」
    선미는 갑자기 날 간지럽혔다. 난 웃지 않으려고 꾹 참았다. 그러다 그녀는 내 젖꼭지를 스쳤고, 내 똘ㄸ...가운데 근처도 스쳤다. 이때! 바로 이때 마법이 나를 가만 놔두질 않았다. 가운데가 커진 것이다. 점점 커지기 시작한 정도가 아니라, 확. 뭐 확? 왜 하필... 그러게 말이다. 그러다 그녀는 전화를 받았다. 막 시시콜콜 어쩌고저쩌고 지들끼리 통화하더니 걔는 갑자기 심각해졌다. 그리고 뭔가 중요한 일이 있다면서 가버렸다. 아, 살았다. 뭐랄까 내 가운데가 커지기 전에 이미 나는 살짝 오줌을 싸버렸는데. 그녀한테 들키지 않았으니 다행이긴 다행이었다. 





    10

    범인은 현장에 반드시 다시 나타난다? 개는 토한 곳으로 돌아오게 되어 있다. 
    나는 "선미&캐서린"의 별장에 찾아간 것이다. 그곳이 왠지 모르게 나를 불렀다고나 할까? 그로 말미암아 내 직감은 녹슬지 않았다는 게 증명된 셈. 아니 어떻게 내 육감을 속일려고? 말도 안돼. 난 그냥 예감이 데려가는 대로 못 이긴 척 따라가기만 하면... 근데 마침표는 언제 찍고. 아무튼 이 완벽한 수읽기! 이러니까 여자들이 뻑이 가지. 캬, 말도 말어. 내가 봐도 그냥 환상. 응? 기가 막히다니까 글쎄. 끝장이야 끝장! 
    자, 밖에서 놀던 그녀들이 별장 안으로 들어가는구나~! 옳지. 그럼 이제 슬슬 요술 투시경을 꺼내볼까? 어! 어디 갔지? 앗 깜짝이야. 여기 있다. 그럼 이제 곧 있으면... 막 지수, 수영, 예진 걔네들 셋이 몰려다녔던 걸로 보아. 보아하니 설마 진짜로 합체? 그리고 세은과 하영을 나머지 한 명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데. 설마 걔가 조련을? 채찍... 막... 망사... 막 엎드려 엎드려. 뭘 엎드려? 어? 흐흐흐. 그런데 난 어쩌다 이처럼 염탐꾼이 되어버린 거지? 알 수 없었다. 알기 싫었다. 그걸 안다고 누가 좋아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런데 왜 이러지? 아니... 아니... 요컨대 비파괴 투시경이 먹통이 되어버렸다. 아니 어떻게... 이 중요한 시간에...! 
    아차! 나는 생각이 많아졌다. 설마... 내가 입수했던 비파괴 투시경이 불량품은 아니겠지? 아니면 초정밀 특수 장치가 심어져있어서 막.. 막.. 평소에는 정상적인 망원경이었다가. 특수 상황에는 막.. 막.. 막 녹화된 초정밀 녹화 영상을 틀거나.. 아닐 거야. 에잇~ 말도 안돼.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얘기를. 그런 개 풀 뜯어먹는 추측은 하지도 말자. 일단 말 같지도 않거든. 무슨 말이 돼야 상대하든 말든 할 건데. 이 두 눈으로 똑 봐로, 똑똑히 다 봤으면서 (몸짓)! 무슨 그런 개뼉따귀 같은 헛생각을 다하다니 나도 늙었다. 아니 나는 젊다. 어리다. 이러다 달걀이든 타조알이든 그 속으로 들어갈 태세지. 정 안되면 공룡알 별채라도 짓던가. 왜 못해? 누가 말리지도 않는다. 하긴 누가 보채지 않는다고 정말로 할 생각은 없다. 말이 그렇단 거니까. 우리는 땀에서도 커피향이 나거든. 진짜로, 어? 정말이다. 나는 태어나서 거짓말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으니까. 증거가 그거다. 그 뿐만이 아니라 증인들도 엄청 많다. 나 때문에 쌓였던 속옷만 해도 수북하다니까 글쎄. 
    그렇게 옵션 조작부가 복잡한 요술 투시경을 어떻게 어떻게 정상으로 복귀시켰다. 다른 곳을 보니 제대로 작동되는 걸 확인했다. 자, 그럼 이제 극적인 본게임을 시작해볼까? 진땀 나는 명승부는 이제 시작된 거나 다름없었다. 세기의 명경기는 바로 이것이다. 그럼 요술 투시경은 명기? 그러거나 말거나. 그렇게 나는 뭐랄까 입이 귀에 걸린 채 뭔가를 감상... 아니 관찰... 아니 목격하려고 할 때. 그 중대한 시국에. 아니.. 아니... 아니...! 
    마술 투시경으로 관찰하려던 찰나 선미&캐서린이 나타난 것이다. 
    내가 비파괴 망원경으로 그녀들이 노는 거실을 딱 보려는데 망원경 화면 앞을 뭔가가 막는 느낌? 선미였다. 
   「오빠 거기서 뭐해?」
   「너... 그... 난...」
    그때 누가 뒤에서 내 어깨를 톡톡 건드렸다. 나는 깜짝 놀라면서 뒤돌아봤다. 캐서린이었다. 
   「오빠 지금 뭐해?」
   「하긴 뭘해, 보면 몰라?」 ~라고 말할 뻔하지는 않고, 아예 말할 수 없었다. 
    아니, 저 거실에서 지금... 얘네한테 말한다고 믿을려나... 아, 맞다. 
    그 괴물들이 바로 얘네들이잖아? 나는 식겁했다. 공포심이 휘몰아쳤다. 
    그럼 너네들이 날 잡아먹을려고... 진짜로? 이젠 어떡하지! 
   「오빠 우리랑 같이 놀자.」
   「그래 오빠. 오빠 바빠? 어디 갈 데 있어? 없지? 그럼 같이 들어가서 놀자.」
    그러면서 선미와 캐서린은 내 양쪽에서 팔짱을 끼더니 날 데리고 별장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언제부터 얘네들은 운동을... 팔힘이 팔힘이 장난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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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뜸들이지 말고 곧장 말하자. 빙빙 돌리기 없이 냉큼 알려야 하니까. 
    그 안에는 호텔 사장 내 친구. 걔 이름이 뭐였더라... 아무튼 녀석과 친구들이 있었다. 
    즉 남자가 호텔 사장 내 친구를 포함해서 5명... 이층에서 있을 테니... 설마 얘네 전부가 짝 맞춰서? 
    근데 진짜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호텔 사장 내 친구만 해도 한마디로 여자들이 꺼뻑 넘어가는 외모. 캬~ 어? 여자라면 누가 하나 예외없이, 첫눈에 보자마자 (몸짓)! 안 그러면 여자가 아닐 테니까. 그런데... 그런데... 호텔 사장 내 친구의 친구들. 이 자식들이... 너무한 거 아냐?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사람이 잘생겨도 정도가 있지. 웬만한 여자가, 그 정도가 아니라. 여자라면 단박에 보자마자 꼬리 겁나게 흔들게만 생겼다니. 아주 그냥 있는 꼬리 없는 꼬리 난리나지. 난리 나. 쟤 또 꼬리친다! ~라는 관전평을 하고 듣던 그녀들조차 자기도 모르게 심신분리될 정도로. 그럼 결국 걔네들과 나는 비교되잖아? 이런 젠장! 나는 자존심 팍 상했다. 열등감 없지 않을 테나. 자존감이 문제가 아니라 나마저 미남들한테 혹하는데? 이미 여자들은 넘어갔다. 뻑갔다. 홀딱 반했네. 제정신이 아니구만. 이래서 머픈카 머픈카... 그러구나? 그게 뭔 소리야? 나도 몰라. 아무튼 어디서 듣긴 들었지. 허허허. 속물들. 그러라 그래. 그러든가 말든가. 누가 알고 싶데? 관심없어. 잘난 척하기는. 놀고 있네. 사랑 좋아하신다고. 웃기고 있어. 하나도 웃기지 않는데 말이야. 그런데 내가 봐도 너무하잖아? 이건 뭔가 끼리끼리...와 결코 알맞지 않았다. 너무 이질감이 불편하니까. 아닌가? 허나 이때 중요한 점. 내가 관중으로 내려간다랄지, 속칭 찍사. 그래 신부들러리 역할을 맡을 수도 있고. 또 내가 한때 또 별명이 뭐였겠나, 구체적으로 더 나쁜놈! 그런데 내가 그... 그... 저 주인공들과 대비되는 병풍 배역을 맡지 않으면 안된다니. 왜 싫어? 좋았다. 기분 나쁠 리 있나. 다만 비파괴 투시경이... 근데 빈말을 빌미로 내가 계속 여기 있어도 되나? 나도 눈치는 있다. 난 바보가 아니다. 그런데 이럴 줄 알았으면 옷 좀 신경써서 입을 걸. 왜 하필 상하 트레이닝복을. 쟤네들은 싹 다 빼입었잖아? 상표는 안 봐도 뻔해. 그럼 나는? 나는 결국 '옷도 못입는 남자'가 된 거네. 맞네. 그렇다. 또 사람은 나이들수록 조금은 나이와 비례하여 옷을 잘 입으면 좋다. 즉 먹는 건 나한테 맞추고, 입는 건 그보다는 덜 해야 한다는 점. 음식은 먹고 싶은 걸 먹돼, 의복은 그와 될 수 있으면 똑같지 않아야 괜찮다는 얘긴데. 될 수 있으면 남한테 흠잡히지 않도록! 옷차림도 전략이라는 둥 이마를 까고 다녀야 돈이 들어온다는 둥. 나는 그녀들 패션이 돋보이도록 그냥 배경색 정도로 신부들러리 패션. 그걸 보고 여자들이 칭찬하는 것. 그래서 옛날에 난 하필 남자한테 그 얘기를 들었다 "옷만 잘 입으면..." 그래? 그럼 옷 못 입으면? 단서가 붙는 남자... 조건이라는 커트라인이 하필 발목잡는 남자라니. 그나저나 그때 커피숍 아르바이트 같이 하던 그녀를 어떻게 한번 해볼 걸 그랬나? 왜 그땐 아무 생각이 없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이를 테면 뭘 입어도...와 아무나 가깝지 않다는 걸 누가 모르겠나. 좌우지간 오빠는 옷도 못 입니? 환청은 날 괴롭혔다. 그러니까 여기 모인 남자들은 전부 "옷도 잘입는" 남자인데. 유독 딱 나만, 나만, 어? 나만... (절레절레)!
    다음으로 넘어갈려고 했는데 패션 주제가 나와서 살짝만 첨언하겠음. 왜냐하면 패션계는 나한테 고마운 줄 알아야 하니까. 괜히 생색내고자 하는 말이 아니라 아 글쎄 진짜로, 어? 걔네들 나한테 진심으로 고마운 줄 알아야 하거든. 에르메스부터 어디 어디 놀이공원 자유이용권처럼 나한테 겁나게 감사해야 마땅. 좌우지간, 첫인상을 어떻게 지우나, 절대 못 지움. 필자가 알기로 문화권별로 웨이터를 부르는 등 관습이 천차만별인 걸로 아는데. 패션에 관해서도 세계평균보다 훨씬 자유로운 것도 인습이라서 프레타포르테가 탄생할 수 있었을지언정. 그건 직업과 산업일 뿐이고. 먹는 건 먹고 싶은대로 할지언정, 의복은 식욕과 같으면 안됨. 입는 데 자유로운 문화도 대체로 다 옛말이요 구습. (사적인 자리에서 도청 안된다는 가정하에 말하자면) 형씨들, 여자 꼬시기 싫어? 그럼 막 입어. (누가 절대로 엿볼 수 없고, 엿들을 가능성 0이라고 여건을 못 박아두고 논하자면) 언니들, 남자한테 잘보이기 싫어? 그럼 막 입어도 됨. (사석에서 말하기로 즉 막말로) 사귀는데 막 입고 까칠하고... 점점... 짜증계기판에 고스란히 누적되어 정떨어지면 연애도 끝남. 애초에 환승이별녀를 처음부터 골랐거나 능력 부족이랄지 여건 미비인데 무리하게 시작했거나. 즉 패션은 연결 안되는 데가 드묾.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뭘 걸쳐도... 혼자일 때는 괜찮은데... 그렇다. 옷걸이 아무나 하나? 심지어하다 하다 바텐더한테 돈 많기로 1등 그거 손꼽히고 싶어서 옷 챙겨입는 남자, 과연 적나 많나. 물론 돈이 실제로 엄청 많은가, 단지 외관상 왠지 돈이 많은 거 같은 남자다. 일단 전자와 후자는 하늘과 땅 차이인데. 아울러 전자는 불가능 후자는 가능! 보아하니 전자는 꿈도 못 꾸고 후자는 가시권. 그럼 가난한데 저거라도 1등하는 게 좋지 않나? 나쁠 거 없다. 기분 끝장이거든. 친구들 광분하는 거 보는 재미, 안 겪어보면 말도 마 (절레절레)! 1등 못해봤으면 (몸짓). 누나들한테 얼굴 1등으로 손꼽혀도 형들 친구들 격분하는 거도 똑같음. 물론 그건 패션의 완성은 뭐다로 연결되는데. 좀 재수없게 들릴 수도 있다만 필자도 딴 데 가면 신부들러리 축에도 못드는 점, 그냥 세상사 이치에 불과하다. 터놓고 말하자면 당시 병풍들 때문에 기분 좋았다만 이상하게 그때 이후로 지금까지 내르막 길이라고나 할까? 넘어가고. 어쨌든 미래의 행복을 위해 단지 지금은 누추하게 막 입고 사느냐, 아니면 오늘 막살고 내일 거지되느냐. 사람들 다 아는 얘기다만. 딱 1개만 더 귀뜸하자면 첫눈에 보자마자 오빠~ (언제봤다고... 우리는 오빠라는 말만 들으면 미쳐버린다는 특종을 대체 어디서 들었는지) 뭐 오빠? 당시 양복 차림이었으니까. 이래서... 그만하자. 내 친구 정비사가 꼬실려던 여자가 필자를 처음 만난 날 팔짱 확 끼고 싶은데 조심스레...수줍게... 당연히 양복차림. 자기는 남자한테 잘 보이는 거 관심없다? 뻥. 다 뻥. 싹 다 개 뻥. 여자들끼리 경쟁심, 그분들 얘기 굳이 들어볼 필요 있나. 그런데 뭐라고나 할까 어떻게 보면 슬픈 이치라고나 할까? 즉 물론~ 옷이 다 해결해줄 수는 없음. 여자들도 그래서 화장을 하는 것임. 남자한테 잘보이기 위해서 화장을 하는 목적은 최소 50%. 아니면 거짓말. (최소 50%인까 반올림하면 응당 100%임) 괜히 화장 안해도 주목받는 여자... 옷 못 입어도 멋진 남자... 딱 대비되거든. 자, 반대? 없음. 있을 수가 없으니까. 그리고 기왕 말 나온 김에 말하는 거 참지 않겠는데, 그러니까 뭐랄까 예전에 들은 말 가운데. 
   "와, 저 오빠 말발 장난 아니다."
    살면서 그런 칭찬 처음이자 마지막. 딱 1번. 내 친구 자랑 했나 안 했나. 말발 장난 아닌 거 내 친구들 얘기고. 나는 한마디로 우리 아빠처럼 눌변. 대표적 또 전형적 눌변. 근데 왜... 그러게. 지금 설명이 왜 길어졌나면 그게 다 패션 때문인데. 패션? 패션? 너 오늘 여자 만나냐, 남자한테 칭찬받기도 딱 1번이네. 근데 그날 여자 안 만났고. 또 평소에 만날 일이 없어. 어? 이런 젠장. 물론 농담이다. 농담 반 진담 반이 절대로 아니니까. 이래서, 아니다. 됐다. 됐다 그래. 누가 함께 놀고 싶대? 필요없어. 사랑이고 자시고 다 소용없다고. 이런 젠장. 괜히 좋다 말았다. 그렇게 나는 아무한테도 인사하지 않은 채 조용히 그곳을 빠져나왔다. 누가 궁금해하지도 않을 것이다. 게다가 연락처도 서로 모르니까. 또 누가 아마 이렇게 내 험담을 할 수도 있다. 내가 분위기를 띄워줘도 모자를 판에 물을 흐려놓았다는 둥 뭐라는 둥. 나도 안다. 오징어가 되어버린 나를 말이야. 됐어. 나도 됐어. 그렇게 나는 숙소로 돌아갔다. 





    11

    광고는 못생김에 복종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오락산업도 불행에 굴복하지 말라고 타이른다. 그래서 여자들은 실망한테 질 바에야 솔직히 부러움을 고백하라고 부추기는 걸까? 그래 봐야 지는 비교 때문에 남자들 뚜껑만 열린다. 정력 배양에 절망은 도움되지 않는단 말이다. 현실을 바로 알아야 한다. 저 하늘의 구름이 사랑의 솜사탕일 리는 없다. 세상을 띄엄띄엄 알면 안된다. 오늘도 적들은 예뻐질 테니까. 플레이보이에게 당근이란 달콤한 과일이든 아니든. 지금 그게 중요한가? 고로 변화가 절실한 시점. 왜냐하면 혹시라도 미래는 내 편이 아닐지도 모르기 때문. 그렇다고 헛바람 조장하는 바람잡이들한테 휘둘리고 게릴라 마케팅한테 속으면 안된다. 결국 잘나게 탄생하지 못했기 때문에 잘난 척 새로움을 옹호할 수 밖에 없단 말도 아니다. 그럼 바람결에 휘날리는 치맛자락을 공상하리? 아니다. 딱 NO!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교계에서 빼았가버린 내 인기. 알고 봤더니 애초에 없었네. 이래서 연예계와 나는 친할래야 친할 수 없는 것. 특히, 푸대접 받는 자존감이 제일 문제일까? 그러니 안되겠다 라는 판단 하에. 나는 숙녀들의 다정한 유혹에 못 이긴 척 넘어가드릴까 하고서 시내에 출두했는데.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이제 알겠다. 아마 상상을 초월하는 환상마저 언젠가 개꿈처럼 영원하지 않다는 점. 이처럼 무대가 멀리 있다고 핑계만 느네. 이 정도면 거의 허언증을 괜히 2군으로 내려보낸 셈이다. 영화 같은 인생, 소설 같은 사랑 다 필요없다. 어쩌면 문학적 상상력을 너무 혹사시킨 나머지 재능이 바닥난 거나 마찬가지 일 수 있다. 살면서 일생에 3번의 기회가 온다는데 그럼 보너스까지 다 와버린 건가? 그럼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사람은 또 뭐야. 하여 비운은 될 수 있으면 피하고 유쾌한 운명은 개척하는 자의 몫. 둔한 말(馬)도 열흘 가면 천리를 간다. 아, 맞다. 그런데 식어버린 열정마저 날 도와주지 않는다.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근데 왜 갑자기 귀가 간지럽지? 누가 내 등에 포스트잇을 붙여놨나 보다. 떼어서 읽어보니 이렇게 씌여있다. 대충 살자! 뭐, 뭐가 어쩌고 어째? 흥분할 힘도 없다. 흥분도 안된다. 설마... 쉿! 어쨌든 이미 낭만적인 플레이보이라는 지위는 박탈당한 거나 다름없다. 어차피 허당 본색이 탈로난 마당에 손해볼 게 뭐 있나. 그래 봤자 식어버린 피자 같은 남자가 대체 뭘 제대로 할 수 있을까! Mozart / 오페라 <마술피리> 밤의 여왕 아리아, 것도 엄선한 레코드판으로 듣고서 아침에 딱 집을 나섰어. 그런데 갈 데가 없네? 괜히 나온 거지. 그러니까 난 왜 이렇게 무기력한 걸까? 틀림없이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머지않아 그 불합리한 동기를 깨닫게 될 텐데. 알고 나서 알기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있나? 자기 합리화에 앞서 다 잊어먹을 게 뻔해. 또 오빠가 너의 눈부신 데뷔를 위해 하는 얘긴데 널 정말 아끼니까 솔직히 말해서 나나 되니까... 들어줄 동생들도 없고 만약 있다 해도 신뢰감 바닥일 것이다. 형이 꼬셔준다면서요? 환청마저 개목걸이로 날 압박하는 실정. 이제 어떡하지? 허나 욕심 없는 남자 매력없어 라는 핀잔쯤은 두렵지 않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진리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운의 여신한테 러브콜 보내지 않아도 된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꼬실 수 있는데 뭐가 걱정인가! 그러니 나는 이런 무정한 형편을 못마땅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근데 솔직히 말해서 내가 봐도 재수없다. 망했다. 다 틀렸다. 유난떨고 있어 증말! 하오나 내가 뭐 마술사도 아니고 언제나 애독자의 마음을 훔칠 수 있나? 우리가 어떤 숙녀든 꼬실 수 있는 건 옳은 말인데. 누구나 다 웃길 수는 없다. 이 마당에 내 생각을 말하자면 난 유들유들한 겉모습에 능글능글 응큼한 속마음이 음흉한 어른으로 성장하고 싶지 않았다. 허나 그게 어디 내 마음대로 되나? 이러니까 지금 동물적 본능마저 잠잠하지. 제7의 육감이 끝장이면 뭐 하나 어디갔는지 소식도 없는데. 그런 의미에서 내 특별히 염두에 둔 비책이... 어, 있었는데 어디 갔지? 또, 없다 타령. 그놈의 능청 증말 징글징글허다. 괴롭다. 내 탓이다. 그래도 아무리 허접해도 정도가 있지 이게 뭔가. 
    그래서 나는...... 카페에서 빈둥빈둥 놀고 있던 나는...... 얼른 숙소로 돌아갔다. 왜냐하면 호텔 내 방 그림 뒤 비밀통로가 왠지 모르게 다시 날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예감 때문에. 나는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잠시 후.
    장면 전환.
    장면 전환.
    장면 전환.
    누가 만들었는지, 아니면 짠하고 요술처럼 발생했는지 모르겠다만. 그건 있었다. 있다가 없어졌다가 다시 나타났을까? 그건 알 수 없다만 중요한 건 내가 그 앞에 서 있다는 점. 그럼 난 이걸 내버려둔 채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 하나? 그럴 수는 없지. 하여 나는 앞뒤 돌아보지 않고 냉큼 그 비밀통로로 들어갔다. 저번에 들어갔다가 중간에 다시 돌아와서보니 내 사무실이었는데. 만약 꾹 참고 끝까지 간다 했을 때 그 마지막은 과연 무엇일까? 나는 긴박한 호기심 때문에 엉덩이가 근질근질했다. 이러니 심장이 벌렁벌렁할 수 밖에. 뭐 하트 뿅뿅 사랑의 차트니 윙크니 팔짱이니, 그런 거 다 필요없다. 지금은 이거 밖에 없으니까. 그렇게 나는 아무 생각없이 끝까지 들어갔다.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됐을까? 나도 궁금하다. 
    곧장 말하겠다. 그 끝은 걔네 별장 다락방이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선미 주도하에 은밀한 놀이? 어떤 의식이 거행 중이었다. 
    물론 몰래 엿보는 걸 들키면 안될 것이다. 의도치는 않았으나 나는 또 염탐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선미는 괴물이었는데. 저번에 모였던 미남과 재주꾼과 멋쟁이들. 
    걔네들 목에 개줄을 달아 막 지들끼리 노는지 뭐하는지. 또 피규어를 담아놓는 장식장처럼 막 영화에 나오듯이... 너무 많은 걸 말할 수는 없다. 일단 여기까지만. 
    그런데 그때 뒤에서 캐서린이 쫓아온다는 걸 알게 됐다. 나를 부르는 것도 같고 또 그녀는 정체를 드러낸 체 위장막을 벗어버린 듯 보였다. 난 잡히면 끝이라는 걸 직감했다. 마침 선미는 개목줄을 끌고서 어딘가로 걔네들을 데리고 나갔다. 나는 발로 뻥 차서 차단막을 제거한 다음 거실로 뛰어내렸다. 그런데... 
    그런데... 거실로 누군가 등장했는데. 복장을 보아하니 하녀였다. 이름표에는 다정이라고 씌여있었다. 
   「다정양. 못 본 걸로 해주세요.」
    ~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차마 내 입이 떼어지지 않는 이유, 왜인지 알 수 없었을 따름. 
    허나 기색을 보아하니 캐서린은 거의 다 와서 곧 있으면 날 잡아먹을 것만 같았다. 
    그때 다정은 언제 봤다고 날 보자마자 오빠 라고 했다. 
   「오빠. 피해요. 우선 피해요. 근데 우리 어디서 본 거 같지 않아요? 나는 왜 오빠를 언제 만난 거 같지... 허나 저 아무한테나 뜬금없는 대사 남발하는 숙녀 아니랍니다. 그래도 우리의 인연은 뭔가 특별한 거 같지 않아요? 그러든 어쩌든 쟤네들 조심하세요. 외계인이거든요. 오빤 걸리면 (몸짓)! 인간은 상대도 되지 않는다는 것만 알고 계세요. (캐서린이 기어오는 소리) 지금 이럴 때가 아니죠. 우선 피해요.」 
    그때 다급히 캐서린이 괴상한 음조로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선미와 노예 배역들이라고나 할까... 걔네들 인기척도 들리는 것만 같았다. 
   (필름 빨리감기)
   (밖으로 나가 풍차를 보며 뛴 다음... 골목을 돌아... 자기 차는 무엇인데 범퍼 좌측 하단을 더듬으면 버튼이 있을거래, 그걸 눌르면 시동 켜지고 문 열리고. 다음으로 접선 장소는 언제 어디. 우리는 그렇게 만나 곧장 신혼여행을! 뭐? 농담이고)
    그렇게 나는 그곳을 탈출하게 되었다. 물론 나는 도주극을 좀 더 짜릿하도록 연출할 용의 얼마든지 있었는데. 하필 다정과의 로맨스가 끼어드는 바람에...! 좌우지간 나는 다정이 싫지 않았다. 또 딱 봐도 다정은 벌써 나한테 넘어왔다. 이미 우리는 숙명적인 연인이었다. 우리는 만나면 아무나 금방 친해지니까. 다정도 날 보자마자 첫눈에 홀딱 반한 게 분명했다. 이러니까 여자들이 나한테 뻑이 가지! 안 넘어오고 베겨? 허허허. 귀여운 것들. 아무튼 그렇게 나는 떠났다. 
    그 후 다정과 나의 로맨스. 멜로영화일지 살짝 에로를 엿보일지. 그건 다음에 알려드리겠음. 





    12

    어느새 사랑마저 풋사과보다 벌레 먹은 능금을 선호하는 것일까? 뭣이 어째! 그러든 어쩌든 인생은 풋풋하지 않다. 세상도 만만치 않을 테니까. 그러므로 나는 두 번 다시 능청떨지 않을 것이다. 내가 만약 그러면 나는 남자가 아니다. 멍멍멍 암케라고 놀려도 할 말 없을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라 나도 미련없다. 왜냐하면 환상론 알선업을 그만뒀으니까. 그러니까 삶의 흥미진진한 잔재미는 반감 정도가 아니라 말라버린 거다. 절망과 행복도 분간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심심함은 내 죄요 재미없음이 벌이란 말이 아니다. 다만 우리는 색다른 방탕을 결코 원치 않는다고나 할까? 뭣이 어쩌고 어째! 그만하자. 지겨우니까. 그렇다고 천사가 보이지는 않고 악마한테 도망갈 수도 없고. 그러니 아름다운 환상을 어떻게 기대하나. 예감도 싫증났다. 공상은 짜증난다. 관능미는 신공질만 부채질한다. 그래서 나의 (갸우뚱한) 관록미마저 원점으로 복귀한 셈. 이러니까 여자들이 날 싫어하는 걸까? 아는 동생들 다 떠난 것만 봐도 사실이 그렇다. 행운에 순종하고 싶다고 해도 큐피트는 한가하지 않다. 고로 핑계를 또 희생시킬까? 아니다. 권태한테 복수당할 테니까. 그러든 어쩌든 꿀꿀한 기분이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알아서 뭐 하나. 다 필요없다. 아니, 이기심을 팔아버릴까? 저속한 허영심을 누가 욕심내나. 대타들도 형편없다. 아아, 젊음이여! 시상마저 딱 거기까지. 그런데 말이야, 무슨 나는 도플갱어한테 말대답하기 위해 태어난 것일까? 내 말이 그거다. 개뿔. 이런 불결한 마음의 소유자 같으니라고. 이래서는 꿈과 희망이고 나발이고 다 놓칠 게 뻔하다. 짝가슴을 짝궁둥이한테 양보하는 얘기는 하지도 말자니까 정말. 이럴 때 총애하는 애마가 있으면 좋으련만. 때문에 이 난처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하여 슥 풍운아 명단에 이름을 올릴까 하는데. 망설이다가 정말로 적었다. 그랬는데 그건 알고 봤더니 바보대회 출전 대기자 명단이었다더라? 내가 이래서 전업하지 않는다. 내가 왜 블로그만 붙잡고 늘어지겠나. 내가 작곡하면 금방 모차르트가 될 거 같거든. 근데 내가 그림을 그리면 피카소를 능가할 수 있을까? 없다. 안봐도 뻔하다. 이런 잡생각이 어떻게 멈추나. 아닌데. 그럼 설마 그러다 끝없는 시간낭비로 결판나면 어떡하지? 어쩌긴 뭘 어째. 늙는 거지. 뭐, 뭣이 어째? 듣자 듣자 하니 거 엄살이 너무 심하잖아! 이래서는 안된다. 대체 언제까지 패배주의자로 살아야 하는데? 기회주의와 황금만능주의를 쥐락펴락 누가 할 줄 몰라서 이러냔 말이다. 정녕 이대로 탐욕의 실현은 멀어져만 가는 것일까? 그렇다고 누가 무언가를 원한다 라는 말이 아니라. 나도 안다. 최고의 우정은 바로 가난이라는 걸. 근데 적당히 멍청해지다 딱 멈출 줄 알았는데 이건 뭐 더 허접해지잖아? 아니 근데 거 말 끝마다.. 너무한 거 아냐? 누가 할 소리를! (몸짓) 너 이리 와! 엥? 내가 가면 되지 왜 또 피동격과 자동사인가. 이러니 내내 이 모양... 쉿. 대책이 없다. 좌우지간 말로만 낭만파가 너무 무심하다고 투덜거려 봐야 득될 거 없다. 기분파가 무정한 거가 나랑 대체 뭔 상관인가. 허당은 무능하다더라.. 누가 또 내 험담하나? 무식하게 말이야 허당이 뭐야 허당이! 어? 그렇다고 또 모냥 빠지게 뭐 아쉬운 대로 꿩 대신 닭? 그럼 뭘 해 변심을 어떻게 이겨. 못이겨. 안 그래도 툭하면 싫증인데? 그래서 나는 언제나 예술적으로 지기만 하는 걸까! 물론 나는 이럴려고 블로그 업데이트를 하는 게 아니다. 그러나 너 그럴려고 작가 됐냐 라는 비판을 어떻게 피해가겠나. 자유라는 이름의 낭만은 안타깝도록 잡을 수 없는 나비인데다가. 거론하기 힘들 정도이니까 빈정상해버렸는데. 그런 마당에 하늘과 이상과 사랑을 논해야 할까? 하지 말자. 해서 뭐 하나. 고작 (속된 말로) 뻠쁘질 갖고 뭐라는 게 아니다. 우리는 남자니까. 그럼 또 그러겠지. 그럼 난 여자냐? 거 말이 그렇단 소리지 거 참...! 하여간에 난 말이다 어리광쟁이가 아니다. 우리가 언제 품위유지비 부족하다고 짜증내는 거 봤나? 우리는 그런 적 한 번도 없다. 왜냐하면 태어난 이후로 아직까지 거짓말을 1번도 해본 적이 없으니까. 농담도 질린다. 그러게 잘난 척하지 말아야지. 그냥 잘나면 되잖아? 뭐 하러 유난떠나. 잘나지 않은 척 겸양떠는 건 가식이다. 요즘 스타일이 아니다. 그런데 현황을 보아하니... 말 말자. 어? 됐다고요. 고로 나는 갈 데가 사무실 밖에는 없었고. 할 일은 일하기 뿐이었으므로. 이미 공간이동하여 책상 앞에 앉아있다. 오늘은 또 어떤 줄거리를 상상할까? 놀라운 착상은 알고 봤더니 다 뻥이란 말인가. 바로 그때 나는 모스맨 연구소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어째서 최근 잠잠한가 했다. 그럼 그렇지. 그렇게 나는 녀석들과 협상한 후 중간 장소에서 접선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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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소설 2021. 5. 15.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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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데 곶감론만 옹호하다가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면 어떡하지? 그러다 샘물론 쪽으로 당적을 옮겨봐야, 됐다. 그러든 어쩌든 감미로운 과일은 문 걸어잠그고 먹어야 할까? 뭣이 어쩌고 어째! 그러든 어쩌든 오늘은 그에게 운명의 날이 아니다. 지적인 남자로 거듭나야 할지 어리광부려도 좋을지도 모르는 녀석한테 더 이상 뭘 바래나. 행운이라는 심복은 알고 봤더니 체념. 뭐니 뭐니 해도 충복 중의 충복은 가난. 하긴 난봉꾼이 청탁(淸濁)을 가릴까? 재미없음도 두렵지 않고, 심심함도 무섭지 않다. 다만 경기장을 통 밟아보지 못하는 처지만 떨떠름할 따름. 필자가 아니라 NB가 말이다. 설마 현악 4중주와 피카소와 오픈카가 자기한테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아닐 거야. 그럼 안되니까. 그 어떤 새로움에 대한 정염도 값싼 쾌감을 향한 갈망도 모두 식었기 때문에 제 주제나 알아야 할 테지. 그러니까 선망을 애원하는 꾀병은 거짓말처럼 치유될 수 없는 법. 그야말로 뼛속까지 허당은 속일 수 없는 바보. 숙녀들의 뒤꽁무늬를 쳐다보기 좋아한다고 번뜩이는 영감이 떠오를 일은 없는데. 아니 왜? 그러게 말이다. 그처럼 심술궂은 침체기가 야속하지 않다고 거짓말해봐야 소용없다. 하여 검소함과 사치가 줄다리기를 하든 말든 그는 멀리 보고자 했는데. NB는 허영으로부터 영원히 졸업할 수 없다는 점. 정말로 믿기 싫은 걸까? 검은 스타킹이나 쳐다보는 녀석이 모든 걸 다 가진 기분을 어떻게 아나. 어떤 일이 있어도 개는 개뼉따귀를 탐할 수 밖에 없다는 논리. 정말 끈질기다. 구질구질할까? 징글징글허다. 그래서 뭐가 어쨌다는 거야? 보나마나 꿩 대신 닭한테 마음이 흔들리겠지. 굶주린 늑대의 심정은 뻔하니까. 그러니 악마의 군침은 한심할 따름. 개침 좋아하시네. 그래도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말자. 사랑이 뭐 별거겠나. 결국 그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대어 중의 대어는 눈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뭣이 어째? 봄에 꽃이 피고 가을에 열매 연다. 싸구려든 최고급이든 아직 샴페인을 따서 축배를 들 시기가 아님. 근데 그는 잊은 게 있었다. 바로, 곶감론을 맹신하는 건 좋은데 그 곶감은 곯고, 미소는 썩으며, 욕망마저 배신할 수 있다는 걸. 거 참...! 그러다 언제 그랬냐는 듯 녀석은 남자인데 너무 싱거웠다. 오늘처럼 바람 부는 날 유난히 소고기가 땡기는데 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여 (저속한 표현으로) 햄버거나 조질까 망설이는데 또 지글지글 지글지글, 돼지고기를 불판에 지저먹는 상상이 빠질 수 있나. 허나 뭘 해도 재미없는 주인공은 괜찮은 착상이 떠오르지 않기 때문에 그냥 소파에 자빠져 TV나 보았다. 허나 시간은 돌이킬 수 없는데 뭐 시간 낭비? 언제나 심심함은 최절정 재미없음도 최고조란 말이군. 그런데 만약 더 이상 심심하지도 재미없지도 않으면 그땐 어떻게 되지? 신나는 거지. 그러나 세상에 공짜는 없다. 그렇지만 행운을 바라면 왜 안되는 거지? 애쓴다 애써. 다시 한번 말하지만 필자는 그놈 대변인이 아니다. 말 같지도 않은 헛소리나 남발하는 녀석이 볼 게 뭐 있다고. 녀석이 뭘 좀 모르는 모양인데 인생이란 그런 게 아니다. 말하자면 몰래한 사랑이든 뭐든 사람이 욕심이 있어야지 욕심이. 욕심이 너무 과해도 탈이겠으나 헛바람이 안들어가도 힘빠진다. 그러면 어디 깐족대는 보람이 있겠나? 비위맞추는 사람, 공치사하는 조연, 생색내는 그분들 빈정상할 수 밖에. 그래서 NB는 비밀을 만들어볼까 하는데. 그게 쉬웠으면 진즉, 됐다. 하긴 말로 여자를 만족시키고 욕망과 씨름할 필요없어서 편하겠네. 그래도 젊음은 한시적인데 숙녀들한테 불친절한 것도 너무 무책임하다. 그래서 우리가 다 그녀들한테 매료된 척 하는 거다. 날로 아름다워지며 유혹하는 게 어디 쉬운 일이겠나. 더더군다나 다정한 숙녀의 부드러움과 수줍음을 어떻게 싫어할 수 있나. 그런데 아무한테나? 이 세상 절반이 여자인데 미리 겁먹지 말아야지. 우리는 남자니까. 그나저나 칼럼이 안 써지기 무섭게 그는 소설 쓰기도 통 꽉 막혀버렸다. 이럴 땐 뭇여성한테 첫눈에 반하는 게 특효약일까? 놀고 있네. 미녀한테 홀딱 반하는 게 무슨 특별한 재능이라고. 아하, 아니 그래서 최근 세상 사람들이 죄다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건가? 알 게 뭐야! 좌우지간 추억 만들기는 썩 마음에 들지 않는 취미다. 애인 사귀는 거 관심 없다. 왜냐하면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 꼬실 수 있으니까. 왕년에 지겹도록 숱하게 사겨봤는데 지겹거든. 따라서 방법은 하나다. 자, 떠나자! 그런데 떠날 수 없네. 어떡하지? 이래서 걔가 TV를 안보는구나. 이러니까 그녀들이 좋아하는 장르도 딱 정해져 있는 거나 다름없다. 첫째 미스테리, 둘째 스릴러, 셋째 판타지. 또 넣고 빼고 적당히. 멜로? 멜로? 그 유치한 장르를 어떻게 신간 편하게 보나. (물론 말이 그렇단 것임). 내용도 뻔하다. 다비드는 다비드인데 어디산 다비드, 그를 짝사랑하는 여자는 바로 누구? 비너스는 비너스인데 뭔가 좀 모자른 비너스. 그럼 드라마도 다 우리들을 위로하기 위해 만드는 건가? 그래서 고개를 돌렸더니 하필 여성잡지 2. (절레절레) 그러므로 포토샵 쓸 필요도 없이 간편 기능들 많을 것이다. 인상 팍 표정에 머리 위로 수증기 푸쉭푸쉭! 근데 갑자기 커피포트 얘기가 왜 나왔지? 그럴 수 있다. 넘어가고. 
    그래서 NB는 미술관에 구경갈까 극장에 갈까 고민하던 중. 동물원에 가보자 라고 결정 내린 다음. 사무실에서 화장실만 다녀와서 곧바로 가기로 했는데. 어머나, 화장실에서 보니 자신의... 그... 중심이 사라졌던 것이다. 중심 그 있잖나.. 그.. 그게 그러니까 값싼 비속어로 말하기 썩 뭣 한! 그렇다고 의학 용어로 설명할 수는 있는데. 그런데 이게 어떻게 가능한 거지?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일전에 그는 한번 당했기 때문. 도플갱어한테 한두 번 속나. 더더군다나 만약 위치를 변경시키면 어떡하라고. 이건 혹시 녀석의 소환 명령일까? 아니면 우리 꼭 한번 만나야 하지 않을까 라며 도플갱어가 nb한테 넌지시 헛바람 넣는 경고일까. 설마 누굴 소개시켜주려고? 만나서 애인이 되어드리는 건 썩 어렵지 않은데. 헌데 사랑이 발동걸리게 만들지 모험심이 탄력받도록 부추길지 알 수가 있어야지. 그러니까 어디로 가면 그를 만날 수 있나 그게 문제인데. 일단 그는 친구들을 만나 자기 가운데가 사라졌다며 통사정을 해보기로 했다. 녀석들이 믿을 리는 만무하지만 그렇다고 보여줄 수도 없는데. 그럼 이미 알던 지인들이 아니라 새로운 사람을 만나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야 할까? 그럼 새 여자를 만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더라, 로 이어지는데. 뭐 또 여자? 지겹다. 싫증난지가 언젠데. 관심조차 없고 말이야. 그나저나 비범한 호기심을 이끌어낸다는 게 그만... 도플갱어의 실수인가? 황홀한 애정을 만족시켜줘도 모자를 판에, 됐다. 되긴 뭐가 돼! 안돼. 그런데 만약 지금 이 상황에 수많은 여자들이 달려들어도... 어떻게 방법이 없잖아! 또 또 앞서간다. 그러게 말이다. 좌우지간 뭔가 비범한 대타 없을까? 특단의 대책 있을 턱이 없다. 하지만 실망하면 안된다. 절망이 우리를 낙원으로 보내줄 수는 없거든. 굳이 이런 얘기까지 꺼내긴 뭐하지만 뭐랄까... 긴히 아셔야 할 것 같아 드리는 말씀이지만, 근데 내가 뭔 얘기를 하려고 했더라? 까먹었다. 그런데 말이다 이런 식이라면 책 1억권도 쓰고, 연재 1조편도 하겠네. 이게 뭐야? 어? 아하, 그래서 녀석이 영화감독으로 전업하려던 속셈이었나? 응큼한 놈! 그래 봐야 흑심은 성과를 보장해주지 않는다. 군침이 도대체 뭘 책임질 수 있는데? 거 말 한 번 잘했다. 아, 필자는 나구나. 살면서 스포츠 조롱꾼들 앞에서 비아냥대며 명함 내민 적 없었기 때문인가 이처럼 그의 잔소리는 도무지 멈추질 않았다. 그러다 어렵게 줄줄이 비엔나처럼 이어지는 무지개 억지 궤변을 딱 멈추고. 출퇴근길에 봤던 벽보, 외계인 설명회에 가보기로 했다. 도플갱어가 바라는 건 아마 그걸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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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외계인 설명회 장소에 도착했다. 대체 어떤 바보들이 이런 데 찾아오는 걸까? 한번쯤 궁금하기도 했는데. 또 대관절 어떤 허당들이 이런 말 같지도 않은 이벤트를 개최하는지 알고 싶지도 않았으나. 살다 보니 내가 이런 황당한 잔치까지 제 발로 찾아오다니. 이런 날이 올줄이야 꿈에도 몰랐는데. 그런데 그보다 더 추접스러운 사실이 무엇인지 아시나요? 그건 바로, 외계인 설명회는 취소됐고(참가 신청자 최소 인원 부족과 더불어 외계인 지령 어쩌고저쩌고 핑계는 잘도 댔다...). 그리고 극소수 인원만 모여 정기간행물을 나눠주고 소정의 선물을 선사하기로 했으니, 이 글을 읽은 즉시 요 앞 아이스크림 가게 2층 구석으로 와주라고 했는데. 뭐 오라면 가야지! 속는 셈치고 외계인 코스프레 들러리 왜 못 서겠나. 예술적으로 바람잡이 배역에 충실하든 허접허니 물개박수 마지못해 흉내는 내든. 일단 끝이 뭔지 알고나 보자 라는 심정으로 그는 아이스크림 가게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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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아이스크림 가게 2층 구석에... 저쪽은 아줌마 모임. 이쪽은 소녀들 수다 잔치. 저긴 꼬마들끼리... 그 옆에는 남녀가 연애 시작한 거 같고. 저긴... 불륜은 아니기를. 설마 시작하는 연인들이 알고 봤더니, 통과. 아하! 저기 보이는 숙녀들, 언뜻 봐서는 뭔가 재미난 얘기 꽃을 피우고 있는데. 누굴 속이려고? 속으로는 모두 외로운 그녀들. 그럼 내가 그녀들을 기쁘게 만들어드릴 책무가 무거운 법. 따라서 부드러운 그녀들한테 신비롭게 접근하여, 다정하도록 경계심을 누그러뜨린 다음, 요술처럼 그녀들 마음을 빼았아버려야지. 그녀들은 나한테 넘어올 수 밖에 없으니까. 정말로 그럴려고 그 숙녀들한테 일부러 찝쩍댈 의도는 없었건만. 화자와 청자가 속마음이 일치하기는 어렵듯이. 그녀들은 NB를 보고서 속칭 웬 껄떡남으로 여겨 한심하게 쳐다봤다. 물론 말을 꺼내긴 꺼냈다. 이처럼 말이다. 
   「저기 실례지만 설명회 때문에 모인 분들이실까요?」
   「목소리가 기어들어가는 걸로도 모자라 모기 목소리는 아닌데 그렇다고 도톰한 어조도 아니잖아. 그치?」
   「그러게 말이야. 설, 뭐요? 아저씨 방금 뭐라고 하셨어요?」
   「아저씨? 아, 나 아저씨구나.」
   「선생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됩니다. 얘 얘. 여기 물 왜 이러니?」
   「그러게 말이야. 우리가 물로 보이나! 꼴에 이쁜 건 알아가지고.」
   「긴 말 필요없어 얘. 어딜 넘 봐요!」
   「전 넘보지 않았습니다. 왜 넘 봐요? 그게 그러니까...」
    ~라면서 말이 길어질 거 같으니까 그녀들은 모두 나가버렸다. 
    그리고 저쪽 구석 빈자리 탁자에 붙여진 포스트잇을 발견했다. 
    어떤 영문인지 약속 장소가 바꼈으니 그쪽으로 오라는 내용. 
    뭐라고? 이거 똥개 훈련시키나...! 안 가. 왜 가? 미련곰탱이들이나 가라 그래. 
    그러면서 그는 다시 사무실로 돌아갔다. 





    2

    다음 날이 되었다. 오늘은 어떤 즐거운 발단과 신나는 일정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라면서 눈을 뜨자마자 들뜰 리는 없었는데. 그렇지만 침대에서 일어나자마자 그는 팬티 속을 확인했다. 아니나 다를까 가운데는 다행스럽게 복귀했다. 그게 뭐 게임 속 부캐릭터랄지 마술사 조수나 애완견도 아니고 말이지. 지 혼자 외출했다가 때 되니 돌아오는 천재견이야? 지 맘대로 어딜 갔다 왔는데. 하긴 어차피 쓸 데도 없는데... 쉿. 헌데 어째 전보다... 거 참. 그만 하자니까 정말. 
    도무지 성에 차지 않는 능청은 해도 해도 끝이 없는 걸까? 사랑이 완성되든 행복이 정복 안되든 능청은 능청일 뿐이다. 왜냐하면 허세처럼 능청도 아마추어니까. 예견할 수 없는 운명이 책망받기를 바랄까. 이러니까 그가 영화판 근처에도 못 가본 것은 결코 납득할 수 없는 숙명이 아니다. 하긴 영락없는 허당 뿐만 아니라 웬만한 어른들은 사랑의 차트에 퍽 연연하지 않을 것이다. 설마 그렇지 않나? 그러든 아니든 그게 뭐가 중요한가. 어차피 고급스러운 취향은 상업적이고, 사랑을 꿈꾸는 것도 싫증과 변심과 추접스러움으로 변모되지 않으면 다행일 것이다. 허나 입이 방정이어서 쓰나. 그러므로 그는 인생이 새로워지도록 노력하는데. 말로만? 첫 끗발이 개 끗발이라고 그 어떤 열정이 식은 건 아닐테나. 애견 대회에서 경기에 관심없는 개처럼 정신산만하다는 게 섭섭할 따름. 그래서 음악을 들었는데. Rossini / 오페라 <호수의 여인> “그 순간 그처럼 많은 감정이” 결과는 잠깐 좋다 말았다. 그러니까 나는 왜 허접할까 라고 자문해볼 리도 없었다. 그러면서 어떻게 세상의 아름다움과 내일의 행복을 희망하겠나. 마음에도 없는 염불. 그런데 녀석은 무엇을 말하는지도 모르면서 BLGO는 왜 멈출 수 없지? 그러게! 솔직히 말해 걔는 좀 가식적이어야 한다. 아니면 우유든 콜라든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이왕이면 칵테일처럼 분위기 있으면 좋겠지. 그런데 물? 그냥 맹물? 이런 젠장! 그 때문에 빠져든다 빠져든다 빠져든다 얍, 도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칼럼도 장난이 아니거든. 그러니까 은둔의 삶도 쉽게 종식시키지 못할 거야. 하다 하다 "내 말 듣고 있어?" 라는 환청 때문에 깜짝 깜짝 놀라는 거 아냐! 인생 그렇게 사는 거 아니다.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하지? 그러게 말이다. 하여 녀석 속은 훤히 들여다보인다. 예를 들면 이런 식. 황금아 날 띄워라, 그러나 가난과 너무 친해. 젊음아 재밌게 살자? 일단 (마음의) 청춘부터 돌려주지 않음. 그러니 멜로드라마 용어로 몸둥이가 재산이라고 하나. 모르겠다. 지 알아서 잘 하겠지. 그러든 어쩌든 개 풀 뜯어먹는 공상마저 통 말을 듣지 않는다는데. 과연 nb가 이 난국을 잘 헤쳐나갈 수 있을까? 그러다 어떻게 탄력받으면 좋은 거고, 능동적으로 행동하지 못하면 슬럼프 길어지는 거고. 어때? 어때 라니! 꼭, 기필코 애독자의 환심을 사고자 하는 뜻에서 드리는 말씀이 아니라. 그게 아니라 결국 사무실에서 질투심과 행복감 가운데 양자택일할 상황은 한계에 이르렀으니. 고로 또 무작정 집 밖으로 나갈 수는 없으니, 그래서 아니나 다를까 그는 그 어딘가로 떠나고 싶어졌던 것이다. 
    장면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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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는 뛰어봐야 집 근처다. 산토끼든 불곰이든 자기 영역도 다 정해져 있는 셈. 그러므로 걔가 가 봐야 어딜 가겠나. 사무실에서 데스크탑 켜고 일하든, 가로수가 내려다보이는 카페 2층 창가에 앉아 노트북 켜고 일하든. 보이지 않는 개목걸이는 SF 영화에 나오는... 그와 흡사했다. 
    Paganini / Violin Concerto no.1 in D major op.6 (Michael Rabin...)
    Verdi / Rigoletto 중에서 ‘La donna e mobile
    Verdi / La Traviata 중에서 ‘축배의 노래'
    음악과 함께 행복한 일하기. 능청스럽게 거짓말 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이 세상에 일보다 더 좋은 건 없다. 너무나 신난다. 아니 어떻게 이처럼 재밌을 수 있지? 가식적으로 유난 떠는 게 아니라. 그게 아마도 다 가운데를 되찾은 다행스러움 때문일 것이다. 없어져 봐야 그것의 소중함을 아는 걸까? 꼭 그렇다는 말이 아니라 아닌 말로 있는 게 어딘가. 맨발의 청춘 만큼 축복받은 것도 많지 않다. 그러다 그는 불현듯 깨달았다. 유레카의 순간! 뭐랄까... 나는 왜 만사가 귀찮고 뭘 해도 재미없는지를 알 게 되었다고나 할까?! 바로 새로움이 실종됐기 때문. 그래서 사람들은 쇼핑을 한다. 광고를 왜 하겠나? 우리를 기쁘게 만들어줘야 하거든. 오락산업도 열심히 지구를 돌린다. 만져봐 만져봐 허당들도 빠질 수 없다. 그럼 여자들은 질 수 있나? 마누라는 바꿀 수 없어도 새 장비는 장만해도 장만해도 끝없도록 신제품은 우리를 유혹한다. 모든 게 그렇다. 나이트클럽도 분위기를 유지하고자 새 얼굴을 영입하기 좋아한다. 연예계라고 어디 뉴 페이스를 싫어하나? 여자만 미남을 마다하지 않는 게 아니라 유행가도 대충 3번 들으면 질린다. 그런데 사랑이 싫증나지 않는다고? 불결함을 조장하자는 뜻에서 하는 말이 아니라 그러니까 말로는 연인을 보며, 추접스럽게 저게 뭐 하는 짓이야? ~라고는 하나. 다 말이 그렇다는 거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걸 알면 뭐 하나? 3 대 3 소개팅하는 건 다 청춘들 얘기고. 친구들끼리 노는 것도 남들 사정. 괜찮은 줄거리도 몽땅 드라마의 전유물. 깔끔한 전개와 넣을 거 넣고 뺄 거 빼고, 빠짐없이 만인을 바람빠지게도 만들었다가 흥분도 시켰다가. 그런데 영화 끝나고 나면 허탈한 작품들. 그건 다 nb 빼고. 그래서 (초)저예산 영화 같은 인생. (절레절레) 하긴 내가 뭐라고 병풍을 마다하겠나. 라면서 자기 분수를 알겠지. 결국 바람 빠진 미쉐린 타이어 캐릭터 같은 남자구만. 쾌활함과 거리가 멀고 호탕함이 뭔지도 모름. 그런데 유쾌할 리 있나. 상쾌한 기분이 뭔지도 모르고. 나비처럼 아름다운 사랑이 아니라 소심한 나방의 짝사랑을 연상시킴. 뭐? 말수 적은 걔한테 운 좋게 새 여자가 뭔 말인가. 관두라 그래. 녀석 속으로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라고 씩씩거릴지도 모르겠다만. 별수 있나? 굶주린 늑대 환장해도 괜히 빈정상하기 밖에 더 하냐고. 책상 위 두루마리 화장지 같은 남자가 말이야. 허허허. 푸하하하하하하하! 에잇 재미없다. 
    그래서 그는 아지트에나 놀러갈까 라면서 일찍 퇴근했다. 그렇게 사무실 문을 열고 나서자마자 웬 커다란 상자가 보였다. 딱 봐도 저번 마술쇼에서 도플갱어가 놀래주었던 마술과 관련된 물품 같았다. 그럼 도플갱어는 아직 떠나지 않고 어딘가 배회하며 얼쩡얼쩡거린단 말인데. 그런데 상자는 엄청 큰데 왜 이리 가볍지? 3단 분리 마술도구로 예상했으나 그걸 열어본 결과 상자 안에 상자가, 또 그 안에 상자가, 또 그 안에 상자가... 그걸 대체 몇 번을 거쳤는지. 손도 더러워지고 기분도 불쾌해졌다. 까도 까도 계속 나오는 걸 보니 얘는 양파고 나는 참깨? 라면서 늬가 이기나 내가 지나 보자 라면서 계속 상자를 열어보았다. 물론 끝은 있었다. 더티러브는 없을랑가 몰라도 말이다. 그렇게 마지막 상자에 담겨있는 건 다름아니라 가면이었다. 가면무도회랄지 어딘가 특별 모임 같은데 참가할 때 사용해야 할 드레스 코드! 더군다나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초정밀로 봐서는 심상치 않은 물건임에 틀림없는데. 그럼 정말 이걸 도플갱어가 보냈을까? 보나마나 그럴 것이다. 녀석의 도전장은 아닐 테니까. 왜냐하면 그는 도플갱어한테 상대도 되지 않기 때문. 따라서 NB는 자연스럽게 가면을 썼다. 이제 와서 앙탈을 부리겠나 띵깡을 부리겠나. 순순히 따르는 수 밖에. 그렇게 딱 가면을 쓴 결과는 어땠을까? 순간이동 같은 건 드라마 얘기일 뿐. 그렇다고 눈에서 레이저가 나가겠나 입에서 화염방사기 불꽃을 뿜겠나. 만화영화 많이 보는 애들도 공중부양은 믿지 않을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가면을 쓴 결과 진짜로 아무일 없었다. 그럼 그렇지. 그래서 아지트는 무슨 아지트, 그냥 집으로 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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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에 도착. 그런데 집에 웬 소포가 와 있네? 인터넷 쇼핑으로 최근 신나게 클립온 선그라스, 마스크, 옷... 그 가운데 하나겠지. 라면서 열어봤는데. 그건 동글이였다. 무선 마우스, 무선 키보드, 무선... 그걸 데스크탑과 연동시키는 USB. 그럼 이걸 사무실에 있는 가면에 끼우라는 건가? 그는 자기도 모르게 어느새 사무실로 가고 있었다. 그 USB를 들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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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실에 도착해서 동글이를 가면 안쪽 어딘가에 딱 끼웠다. 그랬더니 번쩍 하더니 효과음은 신비롭게 그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는 마침내 이 가면을 써도 될까 라는 충동에시달리다가 잘 참았다. 그렇게 지켜보며 잔머리를 굴릴 찰나. 갑자기, 가 아니라 서서히 그 가면은 살점을 더해가고 있었다. 점점... 점점점... 어쭈 얘 봐라...! 추산컨대 오늘이 다 가기 전에 녀석은 완전한 사람으로 만들어질 것 같은데. 와, 속도가 빨라졌다. 이게 대체 뭔 일이지? 결국 녀석이 대체 어디까지 커지나, 얼마나 헛바람이 들어가나, 어떻게 날 놀래켜주나 지켜볼 수는 없고. 그래서 평소처럼 퇴근했다가 내일 출근해보면 뭔가 결판이 나있겠지 라면서 집으로 갔다. 





    3

    다음 날이 되었다. 오늘은 또 어떤 아가씨가 제발 한번만 만나달라며 간청할까, 안절부절 애걸복걸하는 사랑의 차트를 대체 어떡하지? 라는 고민과 함께 그는 사무실로 출근했다. 나 오빠 때문에 정말 미쳐버릴 것만 같아, 우리 정말 환장하겠다고, 여자가 어떻게 대놓고 그럴 수 있어? 내가 정말 껄떡거리는 거 보고 싶어서 그래? 라는 환청을 뒤로 한 채 그는 사무실에 도착했다. 
    아아! 어제의 그 가면은 마침내 제법 로봇 모양새를 갖추고 있었다. 사람과 비슷한 형체에다 색상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베이지색. 지가 뭐 골든 리트리버야? 그렇다고 말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그래도 혹시 모르니 녀석의 뒤통수를 살펴봤더니 시리얼 넘버가 적혀있었다. 깨알 같은 글씨로 인터넷 웹사이트로 들어가서 그걸 입력하면 안내문이 뜰 거래나 뭐래나. 그래서 인터넷 브라우저를 켜고 웹 주소를 입렸다. 
    www.populast.com 
    들어가니 시리얼 넘버를 요구했다. 회원제 나체쇼랄지 드라마에 나오는 막 그런 가면 무도회, 어떻게 보면 이와 다를 바 없었다. 어쨌든 시리얼 넘버를 적어넣으니 웹사이트는 다음 장으로 넘어갔다.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 운영체제랄지 맥 OS처럼 인증 절차를 완료했으니 그럼 이제 이 로봇인지 사람인지... 이건 내 것일까? 그보다 NB는 왜 하필 영화 스타워즈에 나오거나 여러 SF에 나오는 것처럼 괴상한 모습인지 그게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리얼돌... 막 그런 여자도 아니고. 이게 뭐지? 내가 꼬마도 아닌데 얘랑 인형놀이를 할 수도 없잖아. 라면서 말이다. 어쨌든 그래서 어떻게 됐을까? 있잖아 있잖아~ 들어봐 들어봐~, 그보다 차라리 "만져봐 만져봐"가 나을 때가 있는 것처럼. 왠지 모르게 으쌰으쌰 놀기보다 별로 썩 내키지 않는 것만 같았다. 
    그래도 설마 하니 이게 다 일리는 없을 것이다. 하여 웹사이트를 찬찬히 살펴보니 여러 옵션이 있었다. 어떻게 어떻게 하면 1주일 기다리면 머리카락이 자랄 것이다... 어떤 기능을 추가하면 교성과 애교와 비음이 증가할 것이다... 무슨 옵션을 더하게 되면 더더욱 부드럽고 자연스러우며 주인님을 만족시켜줄 것이다...! 별의별 애들 장난 같은 얘기들이 있었는데. 그 가운데 속된 말로 끝판왕 중의 끝판왕은 바로, 그렇게 생명력을 얻은 리얼돌과 함께 UFO 모임에 참가할 수 있다는데. 밑도 끝도 없이 뭔 UFO? 말 같지도 않은 낭설로 또 누굴 속이려고! 무슨 개 풀 뜯어먹는 수작에 차근차근 착착 감기며 넘어가는 난 또 뭐고. ~라면서 그는 씩씩거렸다. 그래도 이게 정말 끝장나는 모험을 선사할지 아니면 그냥 단물 빠진 개뼉따귀로 종결날지. 그건 끝까지 가봐야 아는 것 아닐까? 라면서 그 웹사이트를 이 잡듯이 뒤졌다. 그랬더니 번짓수를 잘못 찾아오신 게 아닌가 의뭉스러운 기적을 만났을까? 묻지 말고 당장 실토하라고 누가 애원하는 건 아니겠으나. 뭐 혼자 가정하는 거야 자긍심에 도움도 되고 상상은 자유니까, 다음을 말하자면 이렇다. 
    한마디로, 옵션은 모두 추가 결제를 요구했다. 하긴 선결제를 하지 않았으니 처음 결제이긴 한데. 굳이 이런 데 내가 돈을 써야 돼? 아니면 어디다 쓸 건데! 그 말도 틀린 말은 아니다. 또 밑져야 본전에 해당할 정도로 퍽 비싼 것도 아니지 않나. 근데 이게 왜 불합리한 꺼벙함인가. 한번 해볼 만한 유흥 아닐까? 어차피 남다른 취미도 없는 마당에 해서 썩 손해볼 일도 없다. 더군다나 설명문에 따르면 나중 리얼돌이 주인님을 사랑하게 되면 모두 환불, 아니 로또 복권처럼 크나큰 돈보따리를 선물한다지 않나. 그럼 이건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 게 결국 중차대한 불이익일 텐데. 고로 과감한 결제는 타당한 법. 남자는 마땅히 못 이긴 척 간접적으로 꼬시는 여자한테 넘어가줘야 한다. 아니면 여자가 대놓고 껄떡대라고? 아니지 아니지. 아니지요. 허허허. 물론 말이 그렇단 거고. 그래서 NB는 결제를 했다. 다시 말하지만 그건 푼돈이었다. 그렇지만 가난한 남자한테도 그럴까, 그래도 녀석이 코흘리개 꼬마도 아닌데. 그게 어떻게 코 묻은 돈인가. 따라서 그는 그 돈이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그나저나 어떻게 됐나 요점만 간략히 말하자면 이 자식이 지가 뭔데 어쩌고저쩌고, 이렇고저렇고... 뭔 말이 그렇게 많아? 혹시 모를 불만을 잠재우는 의미에서 냉큼 결과를 말하겠다. 자, 그래서 어떻게 됐을까? 당장 큰 변화는 없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작은 변화도 없었다. 이런데 변덕이 탄력받지 않을 리 있나. 이래서 변심은 권리일까? 오락산업 시장이 우리를 진공청소기로 구워삶았다가 커피포트로 뚜껑 열리도록 만들었다가, 이러니 이러니 세상만사 그럭저럭 잘 굴러가는 법. 한편 도플갱어도 녀석을 잘도 쥐락펴락한 셈이다. 그런다고 잘도 구워삶아지는 걔도 참 알만 하다. 어쨌든,
    결국 알고 봤더니 아무것도 아니잖아? 이런 젠장! 귀청 떨어지겠다. 대체... 됐고. 며칠 지켜보다가 별볼일 없으면 갖다버리기로 하고서 그는 관심을 껐다. 





    4

    사랑론의 논적이 '막살자'주의는 아니겠으나. <최선을 다한다>보다 시간 낭비가 모여 어른이 됐으니, 그러므로 NB는 무엇으로 잃어버린 청춘을 복죄할까? 무엇 때문인지도 모른 체 말 지어내기나 하지 말라 그래. 걔가 인생을 알아? 꿈에 대해 뭘 안다고. 이처럼 NB는 내일을 알 도리가 없으니까 오늘만 살았다. 미래가 멜로드라마일지 SF일지 눈곱만큼도 모를 테니까. 그래서일까? 아마도 열띤 흑심은 못마땅할 것이다. 그래? 날 그냥 내버려둬. 그나저나 결코 유리하게 전개되지 않는 착상. 그걸 빌미로 또 어딘가로 떠나고 싶어질 텐데. 그래 봤자 부푼 기대감은 불쾌한 결과로 마감될 까봐 실행 못하겠지. 밖으로 나가 귀여운 숙녀들과 사랑스러운 분위기에 탄복하며 기분 전환이 되면 좋은데. 혹시나 더 속 뒤집어지면 어떡하나. 일단 생각부터 허접해. 그러면서 뭔 영화를 찍겠다고! 그러니까 세상사에 대해 말하자면 그렇다. 그림의 떡은 조바심일 뿐이고 진한 사랑의 예감은 실망. 그래서 그는 삶의 권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 못했으니까 얼굴이 누렇게 떴다. 대망을 속박시키지 말자는 둥 부자유에 관대하지 않기 라는 둥. 막 그랬으니까. 더더군다나 최근 표정은 왜 그런데? 미술품 보티첼리와 하이든 오디오를 살 수 없으니까. 허나 가난은 불쌍하지 않다. 품위 없음이 왜 불행한데? 마음만 먹으면 자본주의를 쥐락펴락 할 수 있다 라는데. 하필 투정에 대해서만 악마의 재능에 근접했다니. 그러니까 점점 '한다면 한다'로부터 멀어져갈 수 밖에. 그러게 뭐 한다고 부러움의 노예로 사나! 자기도 모르지 않으니까 그러므로 그는 냉큼 결심했다. 모든 것을 내려놓기로. 한데 그게 마음대로 되나? 그러면 뭐가 문제겠나. 허나 겸허한 체 점잖게 학자연하며 고상하게 굴면 자칫 잘못하다 패배주의한테 된통 당할 수도 있다. 고로 허세라는 대타를 불렀다. 그러니 또 어떤 헛바람이 불었을까? 우리는 그녀들 세련된 취향과 근사한 허영심을 얼마든지 충족시켜 드릴 수 있다. 다만 선망은 결국 머리꼭대기 위로 올라가고, 욕망은 끝이 없다는 게 섭섭할 뿐. 한심하다. 정녕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그걸 지금 누구한테 묻고 있나. 막연한 욕심에 대한 피로감, 뭘로 날려버릴까 고민해봐야 답은 없다. 호기심도 바닥났다. 만약 희망이 내게 다정했으면... 라는 감수성 진즉 도망갔다. 그럼 정말 청춘은 끝난 건가? 뭣이 어째? 듣자 듣자 하니.. 워 워 워. 사실 그가 보기에는 딱히 어딜 가나 환대받지 못한 실정. 그걸 문득 의식하기 무섭게 공상을 하자마자 갑자기, 그런 일도 없었다. 하여 숙녀를 만족시켜드려야 한다는 의무감에 무심한 체 일이나 할까 했는데. 통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원하기만 하면 누구나 꼬실 수 있으니까 더 이상 한눈팔 일도 없을 것이다. 하긴 필자가 NB의 속을 어찌 알겠나. 그래도 아는 척 가늠해보자면 에잇 하지 말자. 허나 그가 정말 친하고 싶어하는 대상이 무엇인가, 그 정답은 따먹고 싶어지는 탐스러운 과일이 아니라는 것만 알고는 있자. 뭣이 어째? 거 참 말이 너무 심하자나! 웃자고 한 말이다. 근데 어째서 퍽 웃기지 않지? 그러게 말이다. 그렇다고 빈정상할 것 없다. 우리끼리 하는 말이지만 이 소설 주인공은 꺼벙한 바보니까. 따라서 독자가 기분 좋게 우월감을 느낄 수 있어서 얼마나 좋은가. 한편 얼쩡얼쩡 아이쇼핑만 하다 보니 지름신이 온 마음을 점령할지도 몰라 녀석은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좌 허언증 우 수전증 언제까지 그럴 수는 없기 때문에. 그런데 마음이 바꼈다. 뭐 여자들만 변덕과 절친하란 법 있는 건 아니니까. 아무튼 세상은 아름답고 인생은 재밌어야 하는데. 그런데 남은 건 설마 추접스러움과 심심함? (절레절레)! 그러니까 말로만 신비주의자. 그러므로 신나는 모험을 그 어디서도 허락받을 수 없지. 그래도 더러워진 느낌을 만회할 방법이 있긴 있다. 일단 뭘 먹으면 이 세상 다 가진 기분이거든. 허나 아주 잠깐 뿐이긴 하다. 허나 기왕 내친 걸음 일을 해야 하는데. 벌려 놓은 판이 너무 크다. 오빠 제발 한번만 만나주라는 숙녀들만 해도... (손차양)! 그러니 약속 없음이 어떻게 서럽겠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가 먹을 뻔하다 놓친 개뼉다귀를 아쉬워 하듯. 말(馬)이 먹다 남은 콩을 못 잊듯. 그렇듯 남은 건 미련과 회한과 절망과 체념 그리고 성욕 없음? 거 참 나...! 
    그래서 NB는 혼자 소풍이나 갈까 했다. 유원지에 들러 산책도 좀 하고. 기분 좋으면 미술관에도 들리고. 우연히 아는 동생들 만나면 커피도 사주고 수다도 떨고. 그렇게 딱 나가려고 컴퓨터를 끌려는데 컴퓨터가 꺼지지 않았다. 그와 동시에 무슨 안내문이 떴다. "나 립스틱 발라줘" 뭐야 이거? 뭔지 모를 안내창을 끄고서 지도를 검색하려는데 다른 안내창이 또 떴다. "립스틱 문 밖에 이미 배달왔어". 뭐라고? 너 뭐야! 거 어째 얘가 뭔데 자꾸 아까부터 하라 마라야, 어? 그러고 보니 언제였더라 얼마 되지도 않았다. 어느 웹사이트에 접속해서 옵션 설정하고 가상머신으로 미리 감상하고 어쩌고. 그러고 났더니 언젠가부터... 컴퓨터가 아주 맛 간 건 아닌데... 왜 이러지? 하긴 어디서 구해왔는지 뭔가 어설프긴 해도 이름은 그래도 에르메네질도 제냐, 지는 그거 구해다 입고 왜 난 내버려두는데? ~라는 푸념이 정말로 들리는 것만 같았다. 이걸 어쩌지? 그래서 사무실 밖에 나가보니 진짜로 립스틱이 배달와 있었다. 립스틱? 상상하지 말자. 좌우지간 포장을 풀어 립스틱을 꺼냈다. 촌스럽게 연분홍색은 아닐 테고. 적당한 색상에 꽤 고급스러웠다. 그렇게 립스틱 밑 부분을 잡고서 빙빙 돌리니까 립스틱이 나오는데. 왠지 모르게 헤롱헤롱 자기 머리도 뱅뱅 도는 것만 같았겠지. 그러다 갑자기 그는 가운데가 묵직해졌다. 뭔가 신호가 올 듯 말 듯. 거기서 멈추지 않고 그는 소파에 앉아있는 전신인형한테 립스틱을 발라주고 있었다. 대체 이게 뭐하는 거지? 이게 정말 뭐 하는 짓이야! ~라는 생각을 하는 둥 마는 둥 그럴 겨를도 없이 말이다. 
    다음 날이 되었다. 안내문은 또 떴다. "나 하이힐 신켜줘" 뭐, 하이, 뭐? 보자 보자 하니까...! 그래서 NB는 혼잣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 넌 나를 UFO 있는 데로 데려갈 수 있어?」
    내가 이걸 해주면 넌 나한테 뭘 해줄 수 있냐, 라는 게 사랑은 아니겠으나. 쟤와 얘가 설마하니 벌써? 뭐가 벌써. 그런데 그 순간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오빠가 원한다면 얼마든지!」
    너 방금 뭐라 그랬어? ~라는 반문은 속으로 쏙 들어가버렸다. 그는 식겁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에. 내가 괜한 짓을 했나 그랬을 것이다. 차라리 짝사랑 받기를 모색할 걸 그랬나 라는 생각도 없잖아 있었으나. 아무튼 얠 대체 어떻게 대해드려야 할까 고심하게 만드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그들은 급속히 친해졌다고나 할까? 





    5

    사람들이 개봉작에 대해 논평하기를, 초중반 지루함만 버티면 중간부터는 볼만 합니다 어쩌고저쩌고. 그런 느낌 우리가 모를 수 없으니까, 그러므로 이번 문단은 줄거리 위주로 간다. 알자하니 저 둘의 사랑인지 썸인지 모호한 친교는 어느새 홍조와 첫날밤의 기대감마저 긴장시켰는데. 그래서 NB는 그녀를 자기 친구들한테 소개시켜줄까 말까를 저울질하던 찰나. 그녀는 녀석한테 이렇게 제안했다. 
   「오빠, 저번에 UFO 보고 싶댔지?」
   「내가?」
   「까먹은 척 능청 떨기 없이다, 응?」
   「내가 그랬나? 그거야 드라마 볼 시간 없으니까 그런 거지.」
   「드라마 챙겨볼 시간이 없다고? 왜, 일 때문에 그래? 그럼 내가 대신 일 해줄까?」
   「너가? 너가 어떻게...!」
   「오빠 적어라. 아니면 녹음하던가. 그냥 왜울래? 오빠 기억력 나쁘진 않을 테니 것도 괜찮겠네. 아무튼 말할 테니 나중 잊지 마. 응? 자, 시작한다.」
   「뭘 시작해?」
   「듣기나 하셔.」
   「그래. 들어는 드릴께.」
   「수줍은 면사포를 구경하러 갈까. 그래서 달콤한 아이스크림과 에스프레소까지 마시고 올까. 귀찮다. 그러지 말고 오늘 어떤 영화를 볼지나 정하자. 그런데 집에서 우유를 마시다가 또 한적한 바에서 독주를 마시고 싶어질 텐데. 허나 지금은 외로움의 계절이 아니다. 그럼 꽃 피고 봄바람이 부는데 유행가 가사나 써볼까 했는데. 낙서 몇 글짜 끄적이다가 지겨워졌다. 새하얀 웨딩드레스 같은 사랑, 생각도 하기 전부터 싫증났음을 고백할 감성도 메말랐으니까. 그러다 TV를 켰는데 내 친구가 나왔을까? 말 같지도 않은 공상, 허언증이 잠잠하니 녀석이 문제다. 이럴 게 아니라 꽃집에 들러, 그러지 말자니까. 은근 감동할 선물을 고를까 하는데 애인이 있어야 말이지. 신나는 파티와 즐거운 축제는 도망갔다. 남은 건 냉소 그리고 썩은 미소. 안 그래도 입을 옷은 조거 팬츠 밖에 없는데 이래도 짜증이 안 나? 말해 뭐 하나! 그런데 말이다, 지금 이처럼 한가하게 뜬구름 잡는 공상에 빠져있을 때가 아니다. 왜냐하면 뭔가 이상한 일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
   「너는 벌써 시인이 됐구나! 내가 널 이렇게 만들었니? 아닌 거 같은데.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이게 다 어떻게 된 일인지 당최 모르겠다. (절레절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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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와 NB는 시골 어느 뒷산에 올라갔다. 물론 그 근처까지 자동차를 타고 가서 주차해 놓고, 내려서 뒷산 아마도 언덕쯤 되는 오르막에 올라간 것이다. 그러다 딱 도착. 그런데 저기 UFO가 보임! 
    한마디로 와 크다, 우와 완전 크다! 
   「갈래?」
   「갈까?」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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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착해보니 웬 남자들이 죄다 마네킹들을 데려옴. 얘네 뭐야, 그러는데... 
    손잡고 있던 그녀 손이 왠지 차갑게 느껴지네? 앗 깜짝이야~! 그녀도 마네킹이었다. 
    아니, 아니 대체 어떻게 이럴 수 있지? 그러니 이런 찐따들은 또 대체 뭐 하는 녀석들이야? 
    NB는 식은 땀이 도무지 멈추지를 않아 집으로 도망가기로 했다. 그런데 내 마네킹, 아니 그녀는! 
    바로 그때 그녀는 로보트이자 인공지능 리얼돌 같은 모습에서, 그 형태가 초기의 가면으로 급속히 줄어들고 있었다. 
   (여기서 컴퓨터 그래픽을 어정쩡허니 묘사하기는 그러니까 대충 넘어가기로 한다) 그럼 이걸 어쩌지? 버릴 수는 없잖나. 
    따라서 그는 그 가면을 썼다. 누구나 그 가면을 썼다 벗었다 할 수 있을 테나. 한번 쓴 가면, 어딘가 모르게 싫지 않았다. 





    6

    모범적인 연애에 대한 나름의 견해, 있어봐야 소용없다. 가엾은 미련. 숙녀들의 무관심. 꿈틀 않는 욕망. 주인공들 축에 끼지 못하는 신세. 그런데 고전주의와 제비복? 말이 되야 말이지. 심지어 여인들이 기대하는 얼굴과도 딴판. 게다가 입 열면 눌변. 정말 못해먹겠네 라는 한숨이 절로 나오지는 않으나. 말하기 좋아하고 나서기를 마다하지 않는, 아는 동생들도 다 떠남. 그럼 뭐 걔네들이 꼬부랑 할머니 될 때까지 주변에서 얼쩡얼쩡 남아있을 줄 알았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좋아하시네. 뭔지 모를 얘기 장황하게 늘어놔봐야 결론이 뭔데, 결국 진한 사랑에 목마르다? 놀고 있어요. 그리하여 심심함을 용서한다? 솔직히 허당 생각해줘서 하는 말이지만 사랑은 없어. 망하기도 전에 축제 취소됐지. 그래서 뭐 요술적인 마술주의는 죽었다고? 신비감도 끝났다. 황홀하든 깨방정이든 탐욕도 바닥났음. 욕망이 탁월해도 모자를 판에 현실은 무능력. 뭐가 어쩌고 어째? 진정하자. 흥분해봐야 진한 사랑마저 멀어져갈지 모르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말로만 심신분리? 말만 해도 어디긴 한데 화법만 유체이탈. 하여간에 말이야 여심을 관측이래 최고로 비전 없는 시기. 이럴 땐 바짝 없드려 있어야 한다. 시간을 버는 것처럼 힘을 아끼는 게 상책. 그런데 정력을 너무 아끼다가 곯아버리면 어떡하지? 그럼 미소가 썩겠지. 미소가 썩으면 그 다음은? 하다 하다 안되겠으니 열려라 참깨 라고 주문을 외웠어. 그런데 열리긴 열렸는데 다만 비밀 창고가 아니라 남대문이 열렸음. 그래도 붙어있긴 하니까 자신감 되찾고. 재빨리 처녀 불알 빼고 다 있다는 행사장에 갔는데 글쎄...!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더니만 쯧쯧. 모차르트가 작곡한 두 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처럼 그녀의 마음을 녹여주고 싶은데... 그럴 수 있는데... 정작 여자가 없음. 근처에도 안 옴. 아님 다 도망감. 야 야 떴어 떴어 피해 피해 딴 데 봐 딴 데 봐... 바로 그런 허당 중의 허당은 나? 바로, 너! 뭣이 어째? 남자만 여자 마음을 모르나, 여자는 남자를 아나? 그래서 경탄해 마지 않는 사랑도 (운명적으로) 시작될 때, (의욕적으로) 불 붙을 때 설레임이 좋긴 좋은 것. 근데 그 지겨운 사랑 얘기가 왜 또 나와? 그러게 말이다. 통 알 수가 있어야지. (절레절레) 제발 정신 좀 차리자. 아니, 걔만 제정신 차리면 그만이잖아? 누가 아니래. 그처럼 아찔한 착상이 떠오르지도 않고 욕망마저 그를 배신했기 때문에, 상심이 담긴 공포는 그를 더더욱 바짝 조였던 것이다. 애쓴다 애써. 바쁘다 바뻐. 근데 오빠 달려? 달리긴 뭘 달려! 그렇다고 다 컸는데 산타 할아버지를 믿겠나 이 마당에 어딘가에 추파를 던지겠나. 그래. 이건 신경 쇠약이다. 왜냐하면 난봉꾼들을 불러모아 우주론을 가르칠 헛생각이 떠오르기 때문에. 뭐라고? 아니 그분들을 왜! 그러게 말이다. 이처럼 천재적 영감은 탈탈 털린 거나 다름없었다. 결론적으로 말해 재산이 없단 얘기네. 그러니 성과 없음을 어떻게 달래나. 못해. 예기치 않은 행운 생각도 말어야지. 헌데 이 시국에 차마 외면할 수 없는, 성욕? (절레절레) 불만 없음이라는 믿었던 심복마저 슬슬 허영의 불꽃을 지피는데. 이걸 어쩌나. 그러게 따분함에 항거하지 말아야지. 언젠가 사랑의 무대에 오를 수 있다면 결코 사양하지 않겠다는 시상만 떠올리니 그 모양이지. 멍청한 녀석. 지금도 더러운 사랑을 상상하나? 추접스럽게 그게 뭐 하는 거야! 허접한 녀석 같으니라고. 개 풀 뜯어먹는 얘기이자 쓸데없는 잔소리는 이만 줄이고. 다음으로 줄거리를 곧장 말하겠다.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됐을까? 아, 그가 UFO 앞까지 그녀와 함께 갔던 일. 그건 명백한 사실인데 최근 가면 → 리얼돌 → 진짜 여자 사람 → 함께 UFO가 있는 장소로 찾아감. 그 모든 일들을 생각해보니 아마도 자기가 뭔가에 홀렸던 게 아닌가 생각했는데. 그게 문제가 아니라 당시 UFO 앞에서 그 화살표로 진행된 일들이 순식간에 역순으로 진행되면서 손잡고 있던 그녀는 가면으로 변해버렸는데. 왜 그 가면을 NB가 쓸 수 밖에 없었는지 자기도 몰랐을 테고. 또 그 가면을 쓴 체 집으로 돌아가던 중 그 가면은 샤르르륵 피부에 녹아들었다는 사실. 곧 진실은 그랬다. 바로 생명력을 지닌 가면은 요술처럼 그의 내부로 스며들었는데, 그는 단지 가면이 녹아서 (자기 내부로 침입한 게 아니라) 바지 주변에 물처럼 떨어졌다고 인지했던 것이다. 물론 누가 보면 저 사람 바지에 오줌 쌌나 봐! ~라고 오해할 수도 있었을 텐데. 어쨌든 그런 사연이 발생할 동안 이해할 수 없는 발단과, 말 같지도 않은 전개가 발생할 동안에 정신이 나간 것처럼 시간이 흘렀고. 지금 와서 생각하니 귀신에 홀린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잊자 했는데. 지워버릴 수 없을지언정 괘념치 않으면 그만인데. 결코 그럴 수 없는 이유! 절대로 원래 인생으로 돌아갈 수 없는 까닭이 있었으니, 그건 무엇일까? 바로 그의 가운데가 플라스틱화 되고 있었다는 점. 그러므로 NB는 어쩔 도리 없이 결국 UFO가 있던 그 사건 장소로 (며칠 후) 다시 가보기로 했다. 개가 토한 곳으로 돌아가는지 숙녀가 실수한 기억을 잊지 못하는지 몰라도. 지금 가운데가 플라스틱화 되어가고 있는데 그게 보통 일인가? 아니 왜... 아니 어떻게... 이런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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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번에 NB와 그녀, 그리고 나머지 주변인들. 즉 찐따인지 천재인지 범상치 않은 허당들인지 몰라도 수많은 모임원들. 당시에 영화로 수없이 나왔던 엄청나게 큰 원형 UFO는 땅과 밀착된 상태였는데. 이번에는 몇 백 미터쯤 공중에 떠있었다. 그리고 그가 자동차에서 내려 그 UFO 아래 중심지로 걸어서 이동하는 찰나. UFO에서 삐리리릭 삐리리릭 초음파가 발생했고, 레이저가 발사됐으며, 오로로와 비슷한 파동으로 그 주변은 요동쳤다. 와, 이런 일이 정말로 있구나! 그처럼 감탄마저 편하게 할 수 없도록 정신이 팔려버렸는지, 아니면 외계인의 염력이 혼을 빼았아버렸는지 몰라도. 그 청록색... 연두색... 푸르스름한 색... 그 거미줄 같은 레이저. 그리고 크리스마스 츄리에서 볼 수 있는 알록달록 반짝반짝 그런 불빛과 효과음은 결국 그를 빨아들여서 UFO 내부로 끌어올렸다. 살다 살다 이젠 정말로 SF의 주인공이 되어버린 것이다. 말로만 너는 터미네이터 나는 우머나이저, 친구와 그랬던 게 아니고 말이다. 자, 그래서 그 다음은 어떻게 됐을까? 평범한 드라마는 꿈으로 결판나고, 또 장르에 충실하며, 단편영화라면 해피엔딩이랄지 경우의 수는 대략 딱 정해져 있는 거나 다름없다. 그런데 이번에도 우리의 아니 저 허접..추접.. 더러운 머저리 같은 놈도 열린 결말 때문에 손에 땀을 쥐는 박진감을 경험했을까, 아닐까?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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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서 UFO에 빨려들어간 건 사실이었다. 꿈이 아니었다. 그런데 외계인들이 기억을 지우지 않은 체 되돌려보냈을 리는 없다는 점. 때문에 녀석은 가면이고 리얼돌이고 UFO고 그 최근 줄거리를 다 까먹어버렸다. 그러면 사랑이 아름다운지 추접스러운지도 분간 못할 정도로 멍청하게 되어버린 건가? 그야 걔 사정일 뿐이고. 그렇게 기억이 지워졌는데 단번에 그는 최근 발생한 일들의 전말을 알아버렸다. 그걸 과연 어떻게 알게 됐냐면 아지트에서 시몬스가 자길 미행했던 사실을 털어놨기 때문이다. 물론 걔 말만 들어서는 믿기지 않겠으나 시몬스는 뮤직비디오 감독도 했고 경력이 꽤 화려한 친구였으니. 왠지 모르게 nb가 수상쩍다 잘 믿지 않을 테니 기록으로 남기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직감에 의해 그걸 모두 찍게 되었다고 실토했던 것이다. 
    장소는 아지트. 바에서 시몬스를 독대하게 된 nb.
   「네 육감은 여자를 닮았니? 녹슬지 않았어 친구.」
   「늬가 좀전에 핸드폰으로 날 찍는 걸 보니 사진은 아니겠다 싶었지. 게다가 최근 감시원 붙였다는 점. 기왕 붙일려면 A급을 써야지 그게 뭐니? 걔 나랑 친해져서 내가 용돈도 주며 형동생 하는 사이 된 거. 너한테 얘기 안해주던? 그런데 넌 왜 날 미행했는데?」
   「늬가 아지트에 발길을 끊으면 누가 제일 아쉬울까?」
   「그건... 아무도! 아쉽긴 누가 아쉬워. 내가 뭐 고급 향략계의 큰손이니? 아니잖아. 근데 내가 누굴 달아오르게 만들다니, 말도 안돼!」
   「그렇지. 헌데 말이 돼. 왜냐, 왜일까? 왜긴 왜겠냐. 나도 몰라. 나도 아쉽지 않다만 누군가 내게 거절하기 힘든 썩 괜찮은 제안을 했지 뭐니. 난 당연히 그 제안을 덥썩 수락했고 또 그 정체에 대해서 발설하면 안된다는 서명까지 했지. 이건 너니까 말해주는 거야. 알지 친구?」
   「몰라. 우리 대화를 누가 듣든 말든 모른다구. 그런데 내가 너란 놈을 잘 아니까 하는 얘긴데, 너 도청 안되도록 뭐 켜놨지? 하긴 그 정도 안전장치도 없이 너가 이런 얘길 할 리는 없는데. 아니 정말 그 배후에 누가 있다는 거니?」
   「나도 알고 싶어. 궁금해 미치겠다구! 너 나 모르니?」
   「그럼 넌 날 아니?」
   「모르니까 미행해서, 어? 늬가 그 믿을 수 없는 UFO에 2번 찾아갔다는 기록. 다 찍어놨잖아. 그걸 녹화한 장비마저 실시간 동기화되지 않도록 얼마나 내가 세심하게 해킹 방지에 노력했는지. 다른 사람은 몰라도 최소한 넌 알아줘야만 해. 그러지 않으면 안되거든. 우리는 친구니까. 그나저나, 이래도 발뺌할 거니? 아, 네 기억이 무슨 편집 영상처럼 지워졌다 그랬지. 그래도 퍼즐 맞추기처럼 내 설명을 듣고, 녹화 영상을 보고 나니까. 그러니 뭔가 줄거리가 떠오르지? 그치?」
   「난 늬가 더 의심스러워.」
   「그럼 넌 언젠 안 의뭉스러웠니? 너나 나나 다 상태 안 좋아. 그런데 어떻게 이처럼 말 같지도 않은 SF라니. 내 배후가 아니라, 늬가 앞서 말한 그 가면과 동글이, 그 뭐야 USB를 너한테 전달한 그 뒤에 누군가 있을 거 아냐. 안 그래?」
   「부정하진 않겠어. 그런데 왜 우리야? 어?」
   「그건 나중 생각하고. 근데 넌 어떻게 공중부양 한 거니? 아, 늬가 한 게 아니라 걔네들이 빨아올렸구나. 내 정신 좀 봐.」
   「그럼 정말 늬가 찍은 영상대로, 내가 UFO로 끌어올려져서 갑자기 UFO 전체가 번쩍번쩍 꿈틀꿈틀하다가 컴퓨터 그래픽처럼 바깥 부분부터 투명해지다가, 그러다 내가 오로라처럼 반짝이면서 서서히 땅으로 내려왔다는 거냐?」
   「내가 안 찍었으면 누가 믿겠니? 미친 놈 취급받기 딱 좋은 얘기잖아. 안 그래?」
   「이 영상 너가 만든 거 아니냐? 보고도, 말이 안 나온다.」
   「내가 뭐 미쳤다고 이런 장난을 치겠니. 내가 그렇게 한가한 남자겠냐? 나도 바뻐 임마. 제발 한번만 만나달라던 그녀들 다 뿌리치고 네 배후에 붙은 신비주의를 캐내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어. 그럼 넌 나한테 이러면 안되지. 안 그래?」
   「그래서, 처음에 의뢰했던 세력은 또 연락왔어?」
   「그 뒤로 소식이 없어.」
   「처음에 너무 큰 걸 받았기 때문일까? 중간 추진금과 작전 성공 수당은 아직 없어.」
   「중간에 누가 가로챈 거 아냐? 서명 했다며!」
   「했지.」 
   「어떻게?」
   「상점에서 신용카드 계산할 때.」
   「뭐?」
   「그처럼 감쪽같을 줄 어떻게 알았겠니. 허를 찔렀어. 뭘 알고 자시고 눈치챌 틈을 주지 않더라.」
   「그럼 이젠 우리 어떡하는 거지?」
   「어쩌긴. 나도 몰라. 근데 너 뭐 손해본 거 있니?」
   「나는 없지만 넌 큰 이익 봤잖아, 안 그래? 왜, 그냥 넘어갈 생각은 아니지?」
   「넌 날 뭘로 보냐, 어?」
   「쫌팽이. 아님 찌질이? 내가 쩜팔이가 아니라,」
   「나야 나! 어?」
   「있잖아. 흥분하지 말고 잘 들어. 너 그 뒤로 뭐 변한 거 없어? 느낌이나 직감 말고. 어떤 현상이랄지 신경쓰이는 변화 같은 거.」
   「난... 없어. 그러는 넌?」
   「난 있지.」
   「그게 뭔데?」
   「UFO에 가기 전이던가 아니 1번과 2번 방문 그 중간이던가. 내 가운데가 플라스틱화되고 있었어. 지금은 소강상태야. 뭔가 이상해.」
   「그게 뭔 말이야?」
   「나도 몰라.」
   「늬가 아는 게 뭐니?」
   「그럼 넌 뭘 안다고 UFO와 날 엮어?」
   「너 정말...!」
   「아무리 생각해봐도 못 믿겠어. 이건 말이 안되니까.」
   「그건 나도 마찬가지거든. 그러나 우리가 증거도 없이 허풍떠는 건 아니라는 점. 그건 맞지?」
   「맞긴 맞는데. 이게 대체... 뭐야 이거!」
   「나도 알고 싶다, 친구.」
    그 이상 대화의 진전은 없었다. 





    8

    다음 날. 시몬스가 NB 사무실로 찾아왔다. 그들은 근처 카페로 갔다. 카페 도착.
   「설마 어제 우리를 누가 도청했을까?」
   「그건 또 뭔 말이야?」
   「너가 안 믿긴다고 해서인지 아닌지 또 황당한 게 내게 전달됐어.」
   「뭔데?」
   「내가 널 찍는 동안, 누가 내 뒤에서 나와 널 찍었더라. 21:9 비율부터 몇 가지 추가해서 정밀한 영상들 죄다 내게 보냈더라고.」
   「누가 찾아온 거니?」
   「아니. 이메일로 왔어.」
   「어디 봐 봐!」
    잠시 후.
   「자, 이제 믿고 못 믿고 문제가 아니지?」
   「할 말 없다.」
   「뭐라고 말 좀 해 봐, 임마.」
   「그러는 넌 왜 말이 없어?」
   「난 지금까지 계속 말하고 있잖아, 어?」
   「난 원래 말수 없는 남자였어. 대체로 내성적이었고 꽤나 소심했었지. 다만 양복 입고서 바텐더한테,」
   「또 그 얘기! 너 언제까지 그러고 살래? 어? 그만 현실로 빠져나와 임마. 왜, 도와줘?」
   「도와주긴 뭘 도와줘!」
   「아 글쎄 그러니까 넌 어쩔 작정인데?」
   「늬 속셈은 뭐냐, 늬 카드를 먼저 보여줘야 하는 거 아니냐?」
   「난 뒷패도 가진 판돈도 없어. 내 액면이야 보나마나 뻔한 거 아니냐?」
   「뭐가 뻔한데? 넌 (몸짓) 받았잖아?」
   「그럼 넌 안 받았냐?」
   「받긴 뭘 받어. 그래서 난 모르겠단 거야.」
   「그러니까 네 말은, 뭐 쌩까기라도 하겠다는 거냐?」
   「빙고!」
   「뻗으면 어떡해 임마?!」
   「말했잖아. 난 받은 게 없다고.」
   「이 자식이... 그 다음이 있어야 할 거 아냐. 안 그래?」
   「공은 넘어올 거야. 우리가 넘길 차례가 아니기 때문이야. 왠지 느낌이 그래.」
   「내가 봤을 땐 뭐랄까 도망가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야, 너! 한턱 쏴라. 대체 얼마인지 밝히기 쑥스러울 정도일 거 아냐. 나한테 정확한 거 말 못 하는 거 보면. 솔직히 말해. 부담스럽지? 그럼 베풀어. 부담감이라도 덜어놓으란 말이야. 알겠어?」
    그렇게 그들은 뭘 먹으러 갔다. 
    장면 전환.
    장면 전환.
    장면 전환.
    시몬스가 말했다.
   「누가 너를 만나고 싶어해, 갈 거야?」
   「원하는 사람이 와야겠지! 지가 뭔데 오라 마라야, 안 그러니!」
   「널 아쉽게 만들 수도 있단 생각은 안 들어?」
   「그러고보니 너가 부쩍 수상한데. 말해. 어서. 너 누구야?」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도착하니... 이걸 뭐라고 해야 할까? 흔한 드라마 소제처럼 누명쓰기 딱 좋은 상황이 갖춰진 건 아닌데. 다만 접선 장소가 변경됐다는 안내문만이...! 뭣이 어째? 고양이처럼 유혹하고 여우처럼 유인하기만 하시겠다? 줄다리기는 여자랑 하시지 뭣 때문에 똥개 훈련을 시키는 거야. 벌써 그는 상대방 정체를 가늠하기도 전에 빈정 팍 상해버렸다. 그런데 무슨 근거로 적수인지 내 편인지를 얕본 것일까. 앞으로 무슨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잘 모르니까 그런 거겠지. 
   「헌데 궁금하긴 하네.」
   「뭐가?」
   「중간책들을 일절 생략해버린 점. 안 그래? 뭔가 이상하잖아.」
   「듣고 보니 그러네. 그러니까 갈 거야, 말 거야?」
   「너만 가. 난 안 갈 테니까.」
   「왜 또 그래? 끝을 봐야지.」
   「난 그냥 집에서 맛난 거 먹으면서 영화나 볼래.」
   「야, 늬가 그러면 내가 뭐가 되니? 내 입장도 생각 좀 해줘.」
   「너가 나한테 숨기는 게 많은데 왜 나만 당하라는 거냐! (윙크)」
    그렇게 그들은 헤어졌다. 





    9

    일찍이 상류 허당계를 평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야망으로부터 멸시받는 입장인데. 헌데 앞 문장의 주어는 누구일까! 우리는 아니기를 바란다만. 좌우지간 꽃 피는 봄날은 대관절 언제 오는 걸까? 쥐구멍에 해뜰 날 말이다. 오긴 올까? 꿀벌은 꽃에 앉아 단물을 쪽쪽 빨아야 하고, 봄이 오면 농부는 씨를 뿌린다. 그래서인가? 패션에 관한 유난스러운 집착, 대체 왜! 아니 정말 무엇 때문에 '패션'의 '패'자도 모르는 NB는 옷에 부쩍 관심이 늘었을까. 추정은 어렵지 않다. 관측컨대 언젠가 뜻밖의 사랑이 찾아올지 모르기 때문에 누군가의 첫인상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서? 아마도 아닐 것이다. 좋게 말해 어쩌면 그 때문일 수도 있으나 이유치고 그건 너무 가식적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좀 더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아니 많다. 자, 딱 봐도 뻔하다. 왜겠나? 뭐 꿈과 희망을 양쪽에 꿰찼다는 영문일 리는 없으므로. 고로 동심이 이끌고 허영심이 밀어주는 이치 역시나 아닐 텐데. 그렇다고 멋쟁이가 부럽다? 허당도 선망쯤은 숨길 줄 안다. 그럼 대체 왜? 무엇 때문이겠나. 왜인고 하니, 잔소리 얻어듣지 않기 위해서 잔머리 겁나 굴리고 있을 테니까. 보아하니 뭇남성들은 그녀들로부터 칭찬을 받는다. 옷도 잘입는다고! 그러던 숙녀가 나중 알고 봤더니 옷만 잘입는 남자 때문에 뒷목을 잡을지도 모르는데. 허나 그건 그나마 사랑의 기쁨은 물론 미워할 수 없는 멜로드라마 얘기고. NB는 덜컥 겁이 그의 의중을 독차지해버릴 거라는 심산, 굳이 추산할 필요 뭐 있겠나. 그러니까 어떻게? 그녀의 표정과 눈빛과 고개 각도와 변덕스러운 홍조와 의뭉스러운 어조는 물론, 부자연스러운 애교로 그 속마음을 판단컨대. 그건 바로 "오빠는 옷도 못 입냐?!" 뭐, 뭐라고? 뭐가 어쩌고 어째? 그러니까 그 말은 뭐야, 나는 옷-마저 못 입는 남자다? 나는, 이 아니라 너? 나? 우리? 이런 젠장! 바로 이와 같은 일리 때문에 그렇구만. 허허허허허. 뭔가 했다. 그건 그렇고. 발바닥에 불난 것도 아닌데 왜 이리 바쁠까 몰라도. 걔가 초상 집의 주인 없는 개인지, 아니면 그냥 동네 똥개인지 알 게 뭐야! 원하는 것은 오직 재력일지 여자일지 그게 뭐 대단하다고. 
    한편, 신디와 스텔라가 사무실로 찾아왔다. 왜 갑자기 떠나가버린 아는 동생들이 그를 찾아왔을까? 용건은 그랬다. 시몬스 소식을 아냐고 물은 것이다. 
   「오빠. 오빠가 모든 걸 알고 있을 것 같아.」
   「그래 오빠. 더 이상 숨기지 말아. 털어놔. 응? 속시원히.」
   「오빠. 우리 터놓고 얘기하자. 감출 게 뭐 있어? 우리야 오빠. 응?」
   「너네 왜 그래? 뭔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어.」
   「아까 말했잖아. 시몬스 오빠가 연락되지 않는다고. 백방으로 찾아봤더니 모든 의혹은 오빠를 가르키고 있단 말이야. 알겠어?」
   「난 몰라. 더더군다나 시몬스와 내가 만날 때도 거의 전부 시몬스가 연락해서 만났어. 우리끼리 어디 이상한 데 간 적도 없고, 뭐 괴상한 짓을 하지도 않았어. 우리는 부끄러울 일 사지 않았단 말이야. 다만 바텐더 앞에서는 말했지. 우리가 창피하냐고!」
   「그건 또 뭔 말이야? 논점을 비켜가지 말고. 오빠, 날 봐. 우리 눈 피하지 마. 수줍어하지 마란 말이야, 응?」
   「거 참! 내가 너네들한테 뭐 하러 앙탈을 부리겠니. 이러니까 대화에 진전이 없는 것 아냐.」
   「결과가 없는 건 다 오빠 때문이야. 오랫만에 여자랑 얘기해보니까 그냥 동조만 하고 있는 거 누가 모를 줄 알아? 왜 해결을 못해, 오빠! 응? 지금 무슨 말인지 정말 모르겠어? 응? 아 글쎄 정신 좀 차려 오빠.」
   「그렇게 다그치면 정신이 하나도 없어.」
   「그러니까 말을 해. 시몬스가 어디 있는지.」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어디서 여자를 꼬시든지 누군가와 밀애를 즐기던지 하겠지. 걔 인생은 걔 인생이고, 난 너무 깊이 녀석의 난봉기에 관여하면 안되는 처지고.」
   「이 오빠 상태가 많이 안 좋네. 응? 기어코 우리가 특단의 대책을 내놓게 말들 속셈이야?」
   「그래 오빠. 우리가 증거도 없이 오빠를 궁지로 모는 것 같아?」
   「무슨 증거? 난 켕기는 거 없어. 또 너네 뭘로 나를 책잡으려고 그러는데? 너네 아직도 꼬투리 잡고 늘어지기를 포기 못했니?」
   「그렇다고 우리가 뭐 오빠 바지끄댕이 잡고 늘어지기라도 했니? 뭐 요즘도 오빠 오빠 제발 한번만 만나주세요, 막 그러면서 뻥치고 다니는 거. 설마, 아니겠지?」
   「너네 정말 이 오빠를 뭘로 보고 그러니? 난 허당이 아니야. 어?」
   「얘, 안되겠다.」
   「그러게 내가 뭐랬니.」
    그러면서 그녀들은 노트북으로 어떤 동영상을 보여주었다. 태블릿도 켜서 다른 사진들도 함께 말이다. 
    그런데 그건 어떤 장면이길래... 혹시... 아닐 거야. 아닌가? 근데 정말로 켕기는 게 없는데, 뭐지? 
    그건 일종의 속임수 다큐멘터리 영화, 핸드폰 만으로 찍은 저예산 & 고품격 영화. 그 자료인데. 
    내용은 하필 
    (1) 시몬스가 어떤 숙녀와 UFO에 방문
    (2) 주변인들을 보니 죄다 마네킹과 손잡고 있는 찐따들(좋게 말해 천재들)
    (3) 갑자기 시몬스와 손잡고 있던 아가씨는 찰나에 쪼그라들더니 가면만 남음
    (4) 정신이 번쩍들 뻔 하다 혼이 나가버린 시몬스는 그 가면을 씀
    (5) 본거지로 돌아갔다가 시몬스는 혼자 UFO 장소에 방문
    (6) 저번 UFO는 지면과 맞닫아있었다면 이번에는 공중 부양 상태. 갑자기 시몬스를 빨아들임.
    (7) 그러다 다시 지면으로 서서히 내려오는 시몬스...
    이 모든 줄거리를 영상으로 찍혀 있는 걸 먼저 노트북으로 보여줬고. 
    다음으로 태블릿으로 보여준 건 그걸 다시 뒤에서 찍은 영상을 보여줌. 
    즉 페이크 다큐멘터리 영화는 누가 찍었는지 몰라도 줄거리 위주로 찍은 거고. 
    페이크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이 누군가 촬영을 누가 했나, 거기까지 담은 영상, 사진 파일, 현상된 사진을 태블릿으로 보여줌. 
   「이건 아니야.」
   「뭐가 아니야?」
   「이건 조작됐어.」
   「뭐가 조작돼?」
   「시몬스가 UFO에 빨려들어갔다 나온 게 아니라, 나였어.」
   「왜, 시몬스를 무대에서 끌어내리고 싶어서 안달이야 오빠?」
   「이걸 보고서도 그런 말이 나와?」
   「오빠. 왜 솔직히 말하지 못하는데? 이유나 알자, 응?」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은 시몬스고, 시몬스가 나를 찍었다고. 그걸 너네들처럼 똑같이 나한테 다 보여줬어.」
   「어딨는데 그 영화 파일은?」
   「오빠 컴퓨터에? 아니면 온라인 어디에?」
   「없지? 그치? 왜 말 못해? 대체 뭘 감추는 거야? 응?」
   「이건 아니야. 너네 누가 보냈니?」
   「뭘 보내, 뭘 누가 보네?」
   「말도 안돼!」
   「말 같지도 않은 영화가 진짜라는 점은 우리도 황당한데. 오빠가 우리를 더 속 뒤집어지게 만들고 있잖아. 아직도 모르겠어?」
   「이런 개뼉따귀 같은 거짓말 믿을 수 없단 말이야.」
   「뭐 개뼉, 뭐? 오빠 정말 개 풀 뜯어먹는 헛소리나 하면서 궁지에서 능글맞게 빠져나갈 거야?」
   「순순히 자백하면 다 우리가 오빠를 귀여워해줄 용의도 있어. 그러니까 모든 걸 말해. 응?」
   「뭘 자꾸 말하라는 거야, 어? 나 아니라니까 증말. 너네 대체 왜 그래? 오빠 나한테 왜 그래! ~라는 천동설을 왜 하필 내가 흉내내는지 모르겠다만. 」
   「정말 말 안 할 거야?」
   「아무리 그래도 이런 말까진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꺼낼 카드가 없는 건 아냐. 거기까지만 알아둬.」
   「나한테 뒤집어씌우는 이유가 진짜 뭐니?」
   「뭘 뒤집어씌워 뒤집어씌우긴, 어?」
   「오빠, 족제비처럼 빠져나가려고 애쓰는 건 가상한데. 불여우 흉내를 왜 하필 지금!」
   「그런다고 오빠를 뭐 할리웃에서 불러주는 줄 알아? 플레이보이계에서도 방출감이야. 알아?」
    NB는 안되겠다고 판단했기 때문일까? 왜인지는 모르겠다만 그는 그녀들은 뒤로 한 채 도망가버렸다. 
    여기서 잠깐! 여자는 어떤 남자를 좋아한다? 물론 사랑과 관련 없는 얘기다만 그는 도망가긴 갔는데, 다시 돌아와서 이렇게 말한 다음 떠난 것이다. 
   「시몬스를 찾아올께! (윙크)」





    10

    그는 시몬스를 찾으러 갔다. 
    장면 전환.
    장면 전환.
    장면 전환.
    찾았다. 시몬스는 UFO 발경 장소 인근, 개집 옆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었다. 웬 버려진 개집이 왜 여기 있는지, 그건 아마 회오리 바람 때문이든 아니든 괘념치 말 것.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니까. 하여 시몬스한테 정신차리라 어쩌라 그러면서 그들은 그간 줄거리를 서로 공유했다. 그 다음. 그 둘은 신디 & 스텔라를 만나러 갔다. 
    장면 전환.
    장면 전환.
    장면 전환.
    못 만났다. 백방으로 수소문해봐도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일단 NB 사무실에서 밤새워 검색을 하고, 막 벽면에 포스트잇을 덕지덕지 붙이고 그렇게 임시 수사본부를 차렸다. 
    다음 날이 되었다. 아무리 알아봐도 그녀들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주변에 걔네 행적과 소식을 아는 사람들이 아무도 없다니. 설마 모든 기록을 그녀들이 지웠을 리는 없을 텐데.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그러게 말이다. 그들은 저녁이 되어 수사본부로 돌아왔다. 
   「그림판에 뭘 쓸 테니까 잘 생각해보렴. 자, 봐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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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객관적 시간          주관적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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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스             정상                   비정상: 정지
신디&스텔라     정상                   비정상: 시간 속으로 들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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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들은 시간 속으로 들어가버렸어. 그 때문에 우리가 그녀들을 찾을 수 없는 거지. 이제 알겠어?」
   「그게 말이 되니?」
   「자제한 경위는 알려줄 수 없다만 여기까지만 알아둬. 더 알면 너가 다칠 수 있거든. 아무래도 쟤네들이 상황을 꼬아놓은 듯 해. 말하자면 객관적 시간은 언제든지 정상이야. 누구에게든. 헌데 내 주관적 시간이 정지되어 있을 때 너가 날 찾아서 난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지. 말하자면 내가 깨어났으므로 그녀들은 시간 속으로 들어갔다고 볼 수 있어. 그럼 만약에 그녀들을 찾는다면 나는 혹시... 다시 내 시간이 정지되면 어떡하지?」
   「그런데 그녀들을 어떻게 찾는다는 거니?」
   「그게 문제지.」
    그러고서 시몬스는 입을 딱 닫았다. 
   「맙소사! 너, 뭔가 더 아는 게 있구나. 내게 말할 수 없는 무언가를! 그치?」
   「」
   「그 다큐성 영화를 본 사람들은 순차적으로 시간 여행을 한다는 거니, 뭐니? 뭐라고 말 좀 해 봐. 입을 두고 왜 말을 안 해, 응?」
   「거기까진 듣지 못했거든. 그럼 나도 하나 묻자. 어떤 블로그를 한 번 본 사람들은 끝까지, 끝없이 봐야 한다는 헛소문이 떠돌던데. 혹시, 그에 관해 알고 있는 거 있니?」
   「뭐라고? 넌 영화를 너무 많이 봤구나. 늬가 드라마퀸이냐 뭐냐. 웃기지 마. 하나도 재미없으니까.」
    바로 그때 거짓말처럼 신디와 스텔라는 사무실로 찾아왔다. 갑작스러운 방문? 그야말로 뜻밖의 등장. 마치 연극과 흡사한 느낌. 묘한 기분 탓에 마치 시간이 정지된 듯 했다. 
   「앗, 깜짝이야!」
   「오빠. 우리 같이 갈 데가 있어.」
   「어딘데?」
   「먼저 뭐라고 말 좀 해 봐. 너네도 뭔가를 알고 있지? 그렇지?」
   「말할 수 없어. 우리 함께 가자. 어서. 지금 가야 해. 그곳으로 말이야.」
   「거기가 어딘데?」
   「가보면 알아.」
    그래서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됐을까? 
    통속극처럼 (초정밀 또는 마법, 지구인)가면을 벗냐 벗기냐... 그런 일은 없었다. 
    과연 무엇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을까? 당장 답하자면, 그들이 도착한 곳은 웬 동기부여 강연회장이었다. 
    그들은 조용조용히 강연회장 제일 뒷자리에 앉았다. 
    중간에 졸기 전에 NB는 관중들 뒤통수가 어딘가 모르게 낯익었다. 아! 바로 UFO 모임에서 봤던 그 괴짜들이구나. 그래도 그는 졸음을 이길 수 없었다. 그렇게 스르르륵 깊은 잠에 빠졌는데. 개꿈을 꾼 후 깨어나보니. 동기부여 강연회는 끝나고 남아 있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앉았던 자리에는 모두 가면들이 하나씩 남아있었다. 뭐야 이거? 그는 밖으로 나갔다. 





    11

    동기부여 강연회장에서 NB는 깨어났다. 그런데 재미난 점은 그가 여기 왜 왔는지, 누구와 함께 왔는지를 모두 잊어버렸다는 점. 이런 바보를 다 봤나! 설마 어떤 마술과 염력과 외계인 초능력이 그의 지능을 갓난아기 때로 되돌려놨을 리는 없을 텐데. 어떻게 된 일인지 본인이 모르니 혼자만 속폈했던 것이다. 자기만 모지리면 다라는 건가? 본인이 쩜팔이니까 뭘 알 수가 있어야지. 물론 그는 아직 그곳이 이상한 동네라는 걸 알지 못하는 상태. 외계인을 기다린다, 제2의 지구와 소통한다, 45억년 전 지구에 남겨놓은 외계 종족의 후손이다... 라는 괴짜들끼리 모여 사는 마을. 드라마에서만 봤지 실제로 이런 데가 있을 줄이야. 그는 동기부여 강연회장 밖으로 나와 낯선 아저씨와 대화하는 순간 깨달았다. 
   「내 차가 어디 있지?」
    그는 혼잣말을 했을 뿐인데 지나가던 아저씨는 듣기도 잘하셨다.
   「여기 오신지 얼마 되지 않으셨나 본데. 이곳으로 말할 것 같으면 지구로부터 약 100억 광년 떨어진 행성입니다. 허허허. 아직 실감이 안 드시지요? 그럴 거에요. 저도 그랬거든요.」
    누군가 급히 뛰어오더니 그 아저씨를 데려간다. 
   「반대로 들으세요. 최근 100억 광년 떨어진 행성에서 여기로 전파를 보내왔거든요.」
    그러면서 그들은 가버렸다. 
   「쟤들 뭐야?」
    게다가 필름사진을 보는 듯한 이 느낌은 대체 뭐지? 이국적이지도 않은데 내게 왜 기분이 이상한지 그는 도저히 알지 못했다. 세상에 태어나서 이런 동네는 처음 와봤으니까 말이다. 다음으로 그렇고 그런 내용은 생략하는 게 좋겠다. 왜냐하면 그림만, 언뜻 장면만 봐도 그 다음에 어떻게 될지 대부분 알기 때문. 요점만 말하자면 그 4명은 모두 각자 nb가 깨어났던 그들만의 마음에서 안락한 휴가를 보냈다. 그리고 각자 3일, 4일, 5일, 6일 후 풀려났다. 말이 풀려난 거지 그곳에서는 최선의 서비스, 최상의 풍요, 최고의 호사를 제공했으므로. 따라서 속으로 은근 그곳을 떠나고 싶지 않았을 거라 추정할 수 있는데. 그래도 왠지 돌아가지 않으면 안된다는 느낌 때문에 다들 어떻게 어떻게 그곳을 떠난 것이다. 
    장면 전환.
    장면 전환.
    장면 전환.
    1주일 경과.
    장소는 nb의 사무실. 
    시몬스, 스텔라, 신디, nb 그렇게 네 명이 모였음. 
   「모두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 안 할 거야?」
   「그런데 우리가 왜 모였나 난 그게 더 궁금한데.」
   「난 이상하게 최근 있었던 일들에 관한 기억이 가물가물해.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그러는 넌 왜 말이 없어?」
   「별로 할 말 없는데.」
   「에잇, 나 갈래.」
   「같이 가.」
   「모두 없던 일로 하는 거야? 그런데 무슨 일이 있었는데 그러지! 몰라. 나도 가야겠다.」
   「다 가니?」
   「그럼 너도 가던가.」
   「내가? 어디로?」
   「그걸 나한테 물어보지 말아주었으면 해. 아니면 그냥 여기 있었가.」
   「그럴까?」
    그들은 모두 바보가 되어버린 것만 같았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NB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Handel / 오페라 <알치나> HWV34 중 Tornami a vagheggiar
    그는 음악을 들으면 다시 직무에 전념하기로 했다.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일. 큰 그림이라는 대망을 위해서냐 아니면 무언가를 어떻게 한번 해보겠다는 일념 때문이냐. 허나 지금 와서 연예계에 가입할 수는 없다. 사교계에 노크해도 안 받아준다. 당연히 풍운아로 인정받지도 못한다. 관찰자의 운명은 아마도 무대와 끝없는 평행선일까? 교태 부리는 숙녀를 자빠트리기, 는 누구도 관심 없을 것이다. 그러든 어쩌든 그는 억지로 능구렁이가 됐을까 자연스럽게 능청꾸러기로 거듭났을까. 그게 뭐가 중요한가. 결국 뭘 해도 재미없다는 속내를 부인하지 않는다는 것과 마찬가리자라는 점. 그래서 바보퉁이로 간주받아도 통 생각이 없구나. 허나 모든 걸 운에 맡길 수 없다면 행복한 인생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까, 라고 생각해보지 않은 것도 아닌데. 언제나 중간은 가자 정도 밖에 더 되나. 그래도 막살지 않은 게 어딘데. 그럼 중간도 못 가면 그건 또 뭐고. 어쨌든 각자 삶의 낙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꾹 함구하기로 하고. 허당계에서 잔뼈가 굵어봐야 하트 뿅뿅 키스와 거리가 멀다는 미련이라고나 할까...>
    그러다 일하기 싫어지지는 않았느데. 자신의 정체성에 딱히 싫증났다고는 할 수 없으나. 어딘가 모르게 꾀죄죄한 차림새가 마음에 들지 않기도 하고. 또 자기 형편이 너무 허접하다는 생각은 그를 가만 놔두질 않았다. 그렇다고 당장 빈정상할 수도 없긴 한데. 그래서 무심코 소셜 네트워크에 들어갔다. 그곳은 아무 문제없이 잘 돌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사람들 소식을 구경하다가 알게 됐다. 바로 신디, 스텔라, 시몬스는 현재 일 때문에 먼 지역에서 개인방송 중이라는 것을. 뭐야, 방금 전에 걔네들 나랑 같이 있었는데...! 이처럼 nb는 벙~쪘다. 붕 떴다. 황당하겠지. 그럼 내가 만난 사람들은 누굴까? 생각이 복잡해졌다. 왜 하필 잡생각이 잠잠하니 황당한 줄거리에 엮여들다니. 신디-스텔라-시몬스가 가짜라늬! 이게 대체 뭐지? 걔네 정말 뭐 하는 사람들이야! 혹시 사람이 아닌가? 만약 사람이 아니라면 걔네들은 도대체 뭔데!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그럼 걔네들 정체는 뭐고. 알 수 없었다. 어떡하지? 뭘 어떡하나. 
    한편 갑자기 그는 가운데가 왠지 뜨금하다는 걸 알게 됐다. 가운데의 플라스틱화... 당장 확인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당위성. 뿌리칠 수 없었다. 잠깐 확인하는 게 어려운 일도 아니겠지. 근데 설마 진짜로 플라스틱화가 심해지면 어떡하지? 차라리 보지 않는 게 나을 수도 있는데. 그랬다가 곶감론이든 샘물론이든 행복과 사랑과 낭만과 아름다운 인생이 자길 배신하면 어떡하나. 도플갱어라면 쥐락펴락 걔를 들었다 놨다는 일도 아닐 텐데. 정말로 혹독하도록 공포심에 벌벌 떨도록 녀석을 만들지도 모르는 일인데. 그는 당장 확인하지 않으면 안된다 고로 일단 봐보자, 라는 충동감을 잠재울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봤다. 봤는데. 그런데 별 이상은 없었다. 다만, 이제 안심이다 휴~ 그러면서 일어서서 소파 근처를 한두 바퀴 돌려다가 거울을 봤다. 그런데 거울 속의 얼굴은... 다름 아니라 사무실에 걸린 그림 마네킹 상점... 그 인물이었다. 그리고 자기 본래 얼굴은 마네킹 상점...그쪽에서 웃고 있었다. 말은 웃음인데 썩은 웃음. 이런 젠장! 그는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그렇다고 정말로 미치지는 않았다. 





    12

    중편영화를 만들게 된 일련의 과정. 그리고 최근 거의 모든 행적과 기록. 
    NB는 그에 관한 자료 일체를 구입하라는 제의를 받았다. 
    필름 빨리 돌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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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상기법 다큐멘터리로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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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자료에는 동영상, 파일, 서류, 사진, 필름...... 더 상세할 수 없을 만큼 빠삭히 그 모든 게 포함되었다는데. 당연히 구입가 얼마에 혹하도록 예고편 자료가 제공되었다. 
    그럼 누가 보냈느냐, 모르니까 답답한데. 한편 덧붙이는 말은 이랬다. 
    A. 만약 구입할 의사가 있는데 자본이 부족하다? 업무 협약 서명만으로 전액 무료로 전환됨
    B. 만약 구입할 생각이 전혀 없다? (돈이 있든 없든 의향이 전혀일 때) 부디 점잖토록 부탁컨대 제발 A를 선택하시길 권장
    뭐라고? NB는 그들의 제안을 A든 B든 응하지 않는 게 좋다-옳다-맞다고 판단했으므로. 따라서 가상의 조력자로 유력한 도플갱어 밖에 해결사는 없다고 생각했다. 바로 이럴 때 도플갱어가 나서줘야 하는 거거든. 아니면 언제? 그럼 도플갱어를 어떻게 대면할 수 있냐! 그러게 말이야. 누가 위인지는 몰라도 아래서 위로는 (몸짓)! 그럼 방법은? 모스맨 연구소의 임상 실험에 응하기로 결정. 곧 순간이동! 
    장면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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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모스맨 연구소 핵심 멤바들이 NB 사무실로 총출동. 그들은 녀석한테 물어봤다. 어디로 가고 싶냐! 혹시 나중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냐? 라고 말이다. 그는 다급히 벽면에 걸려진 그림을 가리켰다. 목적지로 사무실 그림을 말하니 걔네들도 황당하긴 마찬가지. 그래서 결과는?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한마디로, 환상머신이 고장나서 실험 자체가 실패. 
    그래서 없던 일로 하고서 모스맨 연구진은 퇴장.
    장면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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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일 경과.
    시간을 (질질) 끌었기 때문일까? 그들은 스스로 정체를 밝힘. 즉 협박에서 회유로 즉각 전환. 그럼 그들의 정체는 뭐냐? 
    바로, 넷플릭스의 대항마! 물론 아직 본색을 드러낼 리도 없고, 당연히 데뷔하지도 않았음. 당연히 어디서 공인받을 수 없으니까 잠룡도 뭣도 아닌 상태. 그냥 베일에 휩싸여 있는 정도. 
    필름 빨리 돌리기.
    필름 빨리 돌리기.
    필름 빨리 돌리기.
    영상기법 다큐멘터리로 전환.
    영상기법 다큐멘터리로 전환.
    영상기법 다큐멘터리로 전환.
    또는 줄거리 분량을 드라마 3편 정도로 길게 늘임.
    또는 줄거리 분량을 드라마 3편 정도로 길게 늘임.
    또는 줄거리 분량을 드라마 3편 정도로 길게 늘임.
    곧 구두 협약은 물론 서면 계약도 마치고, 사전 작업부터 기타 등등 일은 순탄해보였다. 
    그런데 그들이 비밀리에 넷플릭스와 M&A를 성사시킬 동안 일은 많이 꼬여버렸다. 
    때문에 NB가 거액의 007 가방을 그들로부터 받았따는 사실은 어영부영 짬되어버림. 





    13

    할리웃 연기의 기본이 무엇인가. 때리는 시늉을 하거든, 우는 시늉을 하라! 그래서일까? 손만 까딱 하기도 전에... 넘어가자. 굳이 저속한 말 남발하고 싶어서 하는 얘기가 아니라 이런 말씀드리긴 뭐하지만 그게 뭐랄까... 음! 듣는 이 아무도 없어서 하는 말이지만, 남이야 전봇대로 이를 쑤시건 말건 일단 나부터 정신차려야 한다. 어른이 된지가 언젠데 아직도 철이 안들어서야 쓰나. 다이아몬드를 갈망할까 여자의 환심을 살까, 아직도 이런 궁리를? 그런데 애써 일부러 그러고 싶다. 왜냐하면 이젠 더 이상 아무런 욕심이 없기 때문. 탐스러운 과일 안 먹어봐도 안다. 아는 동생들이 하도 제발 한번만 만나주라고 간청하고, 떼쓰며, 징징거리길래 나는 속세를 떠난 것이다. 질척거리게 말이야 여자가 그게 뭐야? 이러니 단번에 여심을 무너뜨리는 일 재미 하나도 없다. 콜라처럼 톡 쏘는 사랑, 멜로드라마로 대리만족하면 그만. 그래도 어디 보기 드문 허영심 대회 어디 없을까? 있을 턱이 있나. 그녀들과 나는 정말로 각별한 사이였는데. 왜 다 떠나버렸지? 아무튼 사사로운 탐욕에 흔들릴 때가 아니다. 큰일을 해야 한다. 그럼 작은 일은 하지 말까? 그건 아니지. 허나 일단 행복부터 짧다. 그리고 딴 건 몰라도 마음은 넓냐? 그나저나 속좁은 남자라는 험담쯤은 겁나지 않는다. 스포츠 야유와 사교계 조롱과 여성잡지 2식 (속된 말로) 입방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 그만. 그러든 아니든 지구는 우리의 무대다. 그런데 세상은 좁아. 하여 이 바닥에서 다 날 피해다니는 걸까? 이제 보니 야 야 떴어 떴어 피해 피해... 그게 나? 정말로? 이런 젠장! 더더군다나 품위를 구실로 광고는 우리들의 약만 올리기 일쑤. 일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되어버렸지? 그러게 말이다. 알 게 뭐야. 영문을 알 수 없는 푸념 붙잡고 있어봐야 도움 되지 않는다. 어느 안전이라고. 다시는 친구들 앞에서 응석의 '응'자도 입에 담지 말자. 만약 그러면 나는 개다. 멍멍멍 멍멍멍멍멍! 하긴 동네 똥개도 이젠 나를 한심하게 쳐다보는 것만 같다. 뭐 똥개? 무식하게 똥개가 뭔가. 됐다. 근데 뭐가 돼? 모른다. 알 수 없다. 내가 어쩌다 뭘 모르는 어른이 되어버린 걸까 애석할 따름. 알자하니 미친 개한테는 주먹이 약일까? 농담이다. 가슴이 뭉클할 만큼 정말 꿈같은 일이 없으니 별얘기를 다한다. 누가 정신차리라며 잔소리를 안하니 혼잣말이라도 해야지 별수 있나. 헤헴. 멍청한 소리 좀 하지 마! 이미 어른이 되어버린 마당에 뜬구름 잡는 공상으로 인생을 허비해서야 쓰나. 보나마나 푸념을 어떻게 막아. 잡생각은 말을 안들어. 말도 안되는 상상력은 하필 유능함과 직결되지도 않는데 통 말릴 수가 없단 말이지. 하긴 쫙 빼입고서 폼잡는 허당이나 나나. 미친 척 애쓰기도 힘들다. 지치지 않을 수 없지. 근데 나는 왜 말을 많이 해야 하지? 피곤하게 말이야. 그러든 어쩌든 이런 식으로는 제3의 행복 근처에도 갈 수 없다. 맞다. 사정이 그러한데 에라 그냥 영화감독으로 데뷔나 할까? 한술 더 떠 꺼벙한 척하는 걸로도 모자라 닥치는 대로 잔소리한다 라는 험담 듣기 딱 좋군, 응? 아니 어떻게 그처럼 멍청한 생각을 할 수가 있지! 알고봤더니 탐스러운 개뼉따귀를 맛본 개 같이 허접한 개꿈에서 깨어나기 싫은 거다. 그러니까 다른 한편으로, 있잖아 있잖아 오빠 듣고 있어? 라는 여자 목소리 들을 일이 없음. 그럼.. 만져봐 만져봐, 그걸 내가 왜 해야 하나! 그렇다고 어쩔 도리 없이 또 공상을? 아니 됨. 그만하자. 그래서 나는 당장 영화 희곡도 썼고, 영화 교본도 숙달했으며, 드라마가 아니라 영화감독으로 데뷔를 눈앞에 누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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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 ─ 185

from 소설 2021. 4. 30. 22:13

    1

    비타협적인 야망, 노련한 허당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속물들이 맹활약하는 멜로드라마로만 넌지시 인생을 배워서도 안된다. 그러다 세상물정 모르는 불여우의 은근한 유혹에 굴복하면 나중... 넘어가자. 군침도는 먹잇감과 달콤한 성과 추종하기, 너무 조숙하지 않아도 되니까 말이다. 그럼 뭔가에 미숙해도 안심이냐 그 말은 아니다. 다만, 공짜 뿐만 아니라 사랑도 없다는 게 야속할 뿐. 물론 농담이다. 그렇듯 인생이란 결코 간단하지 않은 것. 베짱이와 개미 우화마따나. 하면 된다, 라는 속담에 따르자면 개미는 빈 곶간에는 가지 않는데. 아니면 말고, 를 옹호했을 땐 꿀 항아리에 개미 덤비는 격이 어찌 없겠나. 그럼 호박은 제 발로 안 굴러가나? 그 뿐만이 아니라 제가 춤추고 싶어서 동서를 권한다. 그런데 권유를 받기도 전부터 달아오르는 동서는 또 뭐지? 그걸 내가 아나 달님이 아시나. 누구도 별로 관심 없을 따름. 신비스러운 지성도 재미없다. 아찔한 착상의 도취감도 다 까먹었다. 그렇다고 마냥 징징거리기만 해서도 안된다, 라는 것쯤은 나도 안다. 그러므로 나는 사랑의 차트를 개편했다. 재산목록 순위를 속된 말로 물갈이할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얻은 것은 무엇일까? 아직 미치고 환장할 정도는 아니다. 나는 제정신이니까. 그러다 아는 동생들로부터 러브콜은 폭주했다. 무인도에 데려가고 싶은 남자로 첫손 꼽힌다나 뭐래나. 그러나 뻥이다. 뭐 한심하기 짝이 없다고? 이젠 하다 하다 헛것이 들리는구나. 괜찮다. 허접하기 짝이 없는 형편. 정말로 괜찮단 말이다. 왜냐하면 이젠 더 내려가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제 날아오를 일만 남은 것이다. 어디로? 저기 저 푸르른 미지의 이상 그 눈부신... 황홀한... 그만하자. 재미없으니까. 어쨌든 나는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다. 무엇 때문일까? 날달걀 세례를 위해 녀석들은 불침번처럼 교대를 서가면 날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게 내가 몇몇 칼럼들을 대체 왜 쓴 것일까? 그걸 알면 내가 여기까지 왔겠나. 나는 단지 낭만주의를 동경하며 신비를 선망하고 사랑을 믿었을 뿐. 그런데 왜...! 그래도 뭐 유행가 몇 편 작곡하고 수채화 좀 그리다 보면 걔네들 모두 제풀에 지쳐 돌아갈 것이다. 그때까지만 버티면 된다. 그런데 잡념은 왜 이리 날 귀찮게 하지? 그건 아마 호텔 생활이 벌써 지겨워졌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그럼 왜? 몰라. 내가 그걸 왜 알아야 하는데. 몰라도 된다. 그런 가운데 뭐랄까 뜻밖의 관심사가 낙찰되었는데 그건 뭘까. 없다. 회심의 대타는 없고 기막힌 핑계만 남은 것이다. 이걸 어쩌지? 뭘 어째, 어쩌긴 뭘 어쩌냐고! 하긴 불건전한 사냥감에 굳이 시간낭비하지 않는 게 어딘가. 명시적으로 궁극의 목표가 우리를 기다린다. 뭐 꿩보다 닭은 어떠냐구요? 뭣이 어... 워 워 워. 인생이란 똥싼 년은 도망가고 방귀 뀐 년만 남은 것이다. 농담이다. 실언이다. 망했다. 못살겠다. 받은 옐로카드만 넘친다. 품위유지비 있지도 않은데. 그게 그러니까 글쎄. 뭐라고나 할까 고독은 유감스럽지 않은데 가난은 어찌할 수 없다고나 할까? 아니다. 사치는 내일로 연기요 풍요도 복리를 생각해야 한다. 그렇지만 이런 행복론은 아무리 생각해도 우스꽝스럽다. 설득력이 없거든. 그럼 이참에 모든 여심을 확 독점해버릴까? 아니다. 그러지 말자. 그러니까 뭐라고나 할까 나는 갑자기 시인이 되어버린 것만 같았다. 아아, 떠오른다. 번개처럼 눈부신 시상이 스쳐지나간다. 그건 뭐냐 하면 이랬다. 희망 없는 세상 없고 도둑 잡은 나라 없다. 뭐? 헛소리 그만 집어치워라. 라는 말 정말로 들린다. 대어는 커녕 피라미도 안 잡힌다. 그러나 칼럼니스트라는 직분이 딱히 마음에 들지 않는 건 아니다. 아닌가? 그래, 사는 게 지겨워졌다. 벌써 지쳤네. 솔직하고 자시고 내가 날 속이기도 지겹다. 연재소설 쓰기도 싫증났다. 다 재미없다. 모조리 귀찮아졌다. 만사가 따분하다. 그러나 때려치겠다는 말은 아니다. 노래부르고 춤을 춰도 이거보다 낫겠다, 라고 말하지 않았다. 나는 사랑이 추접스럽다고 말한 적 없다. 이런 젠장 거 참 더러워서 못해먹겠네! ~라는 말을 어떻게 내 입으로 하나. 그러면 안된다. 그런데 내가 왜 이러고 있지? 무엇 때문에 책상 앞에서 투덜거려야 할까. 그걸 알아서 뭐 하나! 필요없다. 몰라도 된다. 아무튼 지적인 기쁨은 바닥났다. 나는 천박한 속물인 것이다. 아주 그냥 능청을 타고났다. 그런데 유능함은 못 타고났어. 그러니까 뭘 해도 안되지. 응? 이 정도면 지적 수준이 의심스러울 지경. 감히 이렇게 논평해도 괜찮을지 모르겠다만 나는 심심한 남자다. 허나 그건 비밀 축에도 못 낀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아니다. 못 들을 말 남발할 순 없다. 나도 그 정도는 아니까. 그래도 뭔가 조금 섭섭하다고나 할까? 끝으로 정말 이 말까진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아니다 하지 말자. 하지 않으려고 했다면서? 그럼 하지 마. 그럼 될 거 아냐. 그렇다. 맞다. 옳다. 그런데 결론이 이상한데? 날마다 바보처럼 뜬구름 잡는 공상만 하니까 그렇지. 너무 고르다가 꽝될지도 모름. 고르고 고르다가 그럴 수 있음. 
    그래서 나는 일단 집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아, 사무실에서 적당히 때맞춰 퇴근했다. 사무실에서 먹었던 늦은 간식 때문에 저녁식사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오늘은 동네에 새로 생긴 카페에나 들르기로 했다. 도착. 
    장면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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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여기는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정경인데... 데자뷔 현상은 아니다. 생각났다. 빈센트 반 고흐, 밤의 카페테라스. 그 모습이구나. 분위기도 괜찮고 이따금 일하고 명상하기 편한 음악도 흘러나왔다. Handel / 오라토리오 <삼손> HWV57 중 '빛나는 세라핌’. 이어서 파이프 오르간. 다음으로 Giuseppe Sammartini / Sinfonia a Flauto solo, e Basso in F major (Parma no.12). 또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플룻 실내악. 그래서 나는 모처럼 사무실에서 핑핑 노는 것보다 훨씬 업무에 집중할 수 있었다. 도무지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일까? 필자가 군복입던 시절 언제적이던가 연병장에서 땡볕에 왠지 머리가 핑 돌아서 바닥에 주저앉았던 일이 떠올랐다. 당시에 옆 동료가 양쪽에서 부축하고 그늘진 막사 안쪽으로 데려가주며 걱정해주는 말을 듣긴 들었는데. 그게 왠지 저 태양이 너무 눈부셔서 정신을 잠깐 잃었다고나 할까. 즉 당시와 비슷한 그런 느낌은 저 가로등 때문이라고 할 수 없겠으나. 그와 더불어 취중에 막 토할 거 같은 울렁울렁함. 또 배멀미. 그리고 뇌전조 현상. 간질 환자 같은 경련. 막 그런 이상한 증상과 기분 탓에 나는 정신을 잃기 직전이었다. 그러다 나는 마침내 정신은 말똥말똥한테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보아하니 자면서 가위눌린다 라는 증상과 비슷했다. 그렇지만 분명히 잠들지도 않았고, 몽환적인 환각에 빠진 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나는 내 앞에서 사람들이 대화하는 소리를 들었다. 미술관장 흉보는 얘기도 들었다. 그게 그러니까 동네 카페에서 공책에 끄적거리며 낙서를 하다가, 그 모습은 자연스럽게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으로 바껴버린 것이다. 아니 어떻게? 나는 뭔가 짐작할 수 있었다. 뭔가 의심스러운 존재, 그건 도플갱어였다. 다만 녀석은 초능력자 나는 무능력자. 그놈은, 나를 걸어다니는 블로그라는 설정으로 못 박아놓고, 그 다음에 살아있는 명화(명화 속 인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내 이 녀석을 콱 그냥... 그러나 나는 움직일 수 없었다. 그런데 나에게 도플갱어는 전지전능한 3인칭 시점을 바라보는 작가라고나 할까? 미술관 구경이 따분한 연인, 그 가운데 누군가의 속옷. 그 등판에 새겨진 명화도 빈센트의 그림. 도플갱어는 나를 드디어 흰티셔츠 등판에 박아버린 것이다. 누가 당하고만 있을 줄 알아? 아직은 당하는 거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절레절레) 작가의 영감과 작업이 끝나면 내 이 녀석을 가만두지 않겠다 라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난 아마 나중 그걸 까먹을 것이다. 그래도 기억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놈이 누군지는 몰라도 제대로 혼내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놈은 가만두면 안된다. 따끔하게 타이르고, 바지에 오줌싸도록 정신차리게 만들 것이다. 내가 걔를 말이다. 그러다 어딘가에서 웬 향긋한 향수는 내 후각을 자극했다. 그래서일까? 나는 식겁했다. 왜겠나. 
    왜냐하면 티셔츠 다음으로 나는 엽서랄지 우산으로 바뀔 걸 예감했기 때문이다. 도플갱어는 날 봐주지 않았다. 이런 생쥐 같은 녀석. 그런데 다행스럽게 거기까지 가지는 않았다. 단지, 처음으로 돌아갔는데 나만 야외 테라스에서 비를 맞으며 앉아있었다. 이제야 제정신을 차린 것이다. 
    그래서 나는 곧장 사무실로 쳐들어갔다. 어느 사무실? 어디긴 어딘가. 내 사무실이지.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장면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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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면 전환.





    2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소파에 앉아있는 녀석의 뒤통수 머리카락을 확 낚아챘다. 그와 동시에 누군가 사람의 손아귀라고 단정지을 수 있는 악력이 내 머리채를 낚아챘다. 왜 사람의 손아귀냐, 아직 뒤를 돌아봐 누군가 확인하지는 못했으나 설마하니 그게 귀신이겠나 아니면 공룡이겠나. 결국 내가 낚아챈 머리끄댕이는 새 밀걸레였고, 내 머리채를 낚아챈 분은 아는 동생 세실리아였다. 
   「오빠, 사무실 문이 열려있었어.」
   「그런데 너 이거 계속 잡고 있을 거니?」
   「아, 미안. 난 오빠 뒷모습이랑 닮은 실사판 인형인 줄 알았지.」
   「그걸 지금 변명이라고 하는 거니?」
   「변명 아닌데. 난 정말 마네킹인 줄 알았어. 오빠 사무실에 걸려있는 그림, 거기에도 마네킹 나오잖아. 안 그래?」
   「그건 내가 아니잖아. 아무튼 넌 갑자기 무슨 일인데?」
   「아는 동생들 다 떨어져나갔다며 투덜거릴까 봐 오빠 걱정하는 사람들 많던데. 인생을 헛살진 않았군.」
   「뭐 그래서 친구들이랑 술게임하다 억울하게 너만 걸려서 나 죽었나 살았나, 아님 혼자 이상한 거 보질 않나...확인하려고 왔니?」
   「오빠 왜 말을 그렇게 해?」
   「미안. 오빠 기분이 그래. 아주 말이 아니야. 지금 내 정신이 아니란 말이야.」
   「나 갈래.」
   「세실리아. 오빠가 나중 커피살께. 나중 다 설명해줄께.」
    그렇게 세실리아는 가버렸다. 저것이...! 
    그건 그렇고. 도플갱어는 어디로 숨었을까? 아니다. 말려들면 안된다. 그렇다고 도망갈 수도 없다.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멍청한 척해야 한다. 일단 그렇게 결론내리고 나는 오늘 마저 일을 끝내고 퇴근하기로 했다. 그렇게 하여 나는 집에 도착했다. 그리고 집에서 다음과 같은 낙서를 난 또 미친듯이 컴퓨터에 써내려갔다. 
   <나는 도대체 뭐하는 사람일까? 설마 놀고먹는 허당은 저속한 말로 백판 자빠져 노는 똥개가 부러운 걸까! 겉으로 봐서는 모른다. 근데 속을 볼 수 있나? 어딜 넘 봐, 그림의 떡일 뿐인데. 또 누군가를 자빠트리고 싶어서? 정신차려 이 친구야. 하여튼 지금 그 얘기가 아니다. 그럼 무엇을 말하고 싶은데. 다 큰 처녀가 동화를 읽고 동요 따라부를 일 있나. 아저씨가 이러면 안되지. 하긴 아마 어쩌면 난 인생을 잘못 살았을 수도 있다. 딴 건 몰라도 내가 사랑을 아나? 연애론에 대해 숙녀에게 한참 배워도 모자르겠지. 그렇다고 뒤늦게 야망의 질주를 할 수도 없고. 그래서 최선을 다하기보다 중간은 가고자 했는데. 정말로 한 푼 모아 두 푼 된다. 그런데 왜일까? 내 경우에는 푼돈 모아 목돈 되지 않았다. 그래서인가? 남자는 한 방! 폼잡지 말고 제정신 차리자면. 근데 어디까지 말했지? 말이 아니라 글이다. 이러니 뭘 해도 재미없지. 혀는 헤프고 손은 짧다. 근데 현란하기로... 넘어가자. 거 자꾸자꾸 누가 날 방해하든 말든 까불지 말자. 여기가 무대인가? 아니다. 관중도 없는데 예술병에 걸리면 안된다. 그러니까 젊음과 자유와 낭만과 행복과 난봉과.. 뭐? 그러면 안된단 말이다. 그렇다고 여자들이 가방에 뭘 넣고 다니는지 꼭 알고 싶단 얘기도 아니다. 그걸 알아서 뭐 하게? 관심없다. 알아봐야 시간낭비니까. 어찌 됐든 인생 성적표가 애매하다. 생애사 전략은 안먹힌다. 성과도 은근히 올 뻔하다 말았다. 그래서 더 빈정상한다. 젠장! 뭐야 이게? 그럼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독심술이나 배워볼까? 그러지 말고 차라리 마술을 독학하는 게 낫겠네. 이런 개꿈 같은 공상한테 밀고당겨지느니 차라리 일기를 쓰겠다. 아저씨가 푸르른 미래로 행진하지 않으면 왜 안되냐 라면서 낙서라도 해서 기분전환이라도 된다면야. 하긴 우리... 내일은 생각하지 말기로 해요, 라는 대사는 내게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풋사랑이 짜증난다 라는 말은 아닌데. 근데 진짜 아찔한 착상의 주변만 서성거리다가 아무것도 안 될 것이다. 개가 오줌누는 동안에 산토끼가 도망간단 말이다. 그럼 대체 어떻게 해야 인생이 특별해질까? 굳이 뭐 하러 그걸 고민하나, 얼굴 팔리기 썩 좋아하지도 않는데. 괜히 헛바람 들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새로운 사랑도 언젠가 새로워지지 않게 되기 마련. 원래 어른들은 권태와 친할 따름. 하오나 멜로드라마가 딱히 싫은 건 아닌데. 내가 정말 어쩌다 신비주의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신세가 되어버린 건지 알 수 없다. 이러니까 자유주의자의 호기심은 식상해버리지. 안 그럴 수가 없거든. 동심과 상상력과 배경지식에 대한 열정도 식어버렸다. 우선 선동을 해도 퍽 지지받지 못한다. 그렇다고 꿈을 포기해? 직업을 바꿀 생각은 없다. 그래도 황금만능주의에 무관심한 탓에 아직 블로그는 살아있다. 허당은 건재하니까. 그렇다고 너무 진보적인 SF를 추구해서도 안된다. 사실주의에서 멀어지면 안되니까 말이다. 그런데 이처럼 뒷패만 기다리다가 나는 눈 깜짝할 사이에 늙어버렸다고나 할까? 뭣이 어째? 지금이 유난떨 호시절은 아니다는 것만 알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무대는 너무 넓어져버렸다. 정말로 세상은 좁다. 그런데 나는 단지 사랑에 늦을 뿐. 축구도 개 발. 이래서 사교계에서 팽당했지. 안 봐도 뻔해. 응? 그러니 자연스럽게 환상머신의 완성도 멀어져간 거다. 허나 실망은 금물. 절망쯤이야 받아드리고 체념에 웃는다. 아니, 그거 받고 더블로 갈까? 낙심 받고 따따블? 그런데 뭐에 대해서. 그 뿐만이 아니라 뭘 걸 수 있을까. 이래서 결과는 상심. 뭣이 어쩌고 어째? 그래도 일찍 야생마의 헛된 꿈에 실의해서 다행...이랄 수도 없는데. 좌우지간 나는 불행하지 않음. 대망의 성취는 쉽지 않아야 제맛. 꿈의 실현이 행운따라 얻어걸리면 재미 하나도 없다. 아니 근데 난 어쩌다 이처럼 응석이 늘어버린 거지? 내가 이 세상으로부터 배운 건 정녕 넉살 밖에 없단 말인가! 이건 아니다. 그럼 뭐가 예스인가. 몰라. 그러든가 말든가. 이게 다 고리타분한 자본 논리의 공격을 잘 방어하지 못했기 때문. 그래. 다 내 탓이다. 근데 문제는 계속 지다 지다 패배주의의 화신이 되었다는 것뿐. 혹시 나는 걸어다니는 샌드백이 되기 위해 태어난 건가? 아니겠지. 아니어야 하니까. 그런데 앞으로도 아닐 것이다, 라고 퍽 낙관하기 힘들다. 그래서 슬프다. 그런데 눈물은 안난다. 허나 나만 그러나? 거 봐 봐 거 보라고. 이렇게 짜증내고 심약하니까 승부사 기질이 부족함을 여실히 드러내는 거지. 나 혼자 해결사라고 주장하면 누가 들어주나. 이러니까 신나게 주동해서 애들 끌고 가서 끝판왕 만났는데 옆에 보니 아무도 없어. 지들이 언제부터 일을 그처럼 열심히 했다고. 설마 이래서 친구들과 지인들이 다 날 피하는 건가? 일단 아는 여동생들 다 떠난 것만 봐서, 딱히 아니라고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데. 이처럼 현실이 우울하니 따라서 기똥찬 허구를 지어낼 적기다만. 그게 어디 쉬어야 말이지. 그래. 솔직하고 자시고 나는 위선자다. 이제는 나보다 더 가색쟁이 있으면 나와보라고 큰소리칠 기운도 없다. 허세를 숙청해도 허영심이 압박한다. 그럼 정말 이러다 '막살자'라는 강적한테 간택받으면 어떡하지? 어떡하긴 뭘 어떡해! 그건 그때 가서. 또 미리미리 더 덜떨어지지 않으면 된다. 그럼 그게 다일까? 다일 리가 있나. 하기사 나 까짓 게 뭐라고 인생에 대해 아는 척하겠나. 나는 한심한 작자다. 또 작작 좀 떠들어야지 상대방 생각도 안한다. 기분파와 낭만파의 아름다운 사랑을 심각하게 왜곡한 거나 마찬가지다. 그 뿐만이 아니라 소심하다. 하여 뜬금없이 배짱 부리니까 다 날 피하는 건가? 뭔가 다시 앞으로 돌아간 느낌. 기분 상했다. 망했다. 썩었다. 팍 곯았다. 치명적인 매력 다 필요없다. 그래서 하다 하다 스포츠 칼럼계까지 진출했더니 글쎄, 듣자 하니, 그럼 늬가 해 봐! 뭐? 미침내 굶주린 늑대는 구석에 몰린 것이다. 저기 보이는 개구멍은 통과하기도 좁다. 안 그래도 쥐구멍도 보이지 않는다. 날파리도 안 날리니까.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어째서 뭔가를 꼭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나, 하여 한때 유행했던 게 미치라는 둥 뭐라는 둥. 힘빼지 말자. 아직 예선전도 아니니까. 근데 이러다... 쉿. 아무래도 지금은 적극성을 환영할 시기가 아닌 것만 같다. 
    따라서 나는 나를 조종하는 그림자 마술사를 잡기로 결정했다......>





    3

    오늘 NB는 몹시 차분했다. 음악도 들었다. Handel / 오르간 협주곡 F장조 HWV295 ‘뻐꾸기와 나이팅게일’. 또 스릴러 영화에 나오듯 이상한 소리이 이끌려 괜한 전개로 빠져들지도 않았다. 그럼 뜻밖의 향기에 놀라 느닷없는 발단이 시작되었을까? 그럴 리 있겠나. 은닉자가 마침내 못 참고 꺼내놓는 비밀을 말하듯이 말하자면, 그는 단지 친구들 모임에 놀러간 것일 뿐. 즉 모처럼 오랫만에 친구3,4명이서 모여 커피마시고, TV로 영화 틀어놓고 동시에 게임도 오락도 험담도 하고 그러기로 했다. 그래서 딱 그곳으로 출발했는데.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NB는 친구집으로 딱 들어가려는데... 그 집은 증축을 위해 깨끗이 준비 단계만 마친 상태. 아마 그 상태로 꽤나 갈게 내버려둔 것처럼 보였다. 그제서야 그는 생각났다. 친구집이 이사간지 오래되었다는 것을. 일단 예정보다 늦게 도착할 것 같아서 그는 친구한테 전화했다. 친구는 전화를 받았다. 
   「친구야 미안. 나 깜빡하고서 늬 옛날 집으로 갔어. 도착하고서야 알았지 뭐니. 지금 여기서 출발하면,」
   「너 뭐니? 너 내 친구 맞냐? 우리집에 너 이미 와 있는데.」
   「내가 벌써 너네 집에 가 있다고?」
   「그러니까 너 누구야? 그런데 전화는... 늬 이름 뜬 거 보면 맞는데. 어떻게 된 거지?」
   「뭐라고? 아니... 도플갱어가 이젠 날 따돌리고 전면에 나선다니...! 이걸 어떡하지?」
   「도프... 뭐? 너 방금 뭐랬니? 내가 잘못 들은 거냐? 내가 걔 바꿔줄께 둘이 통화할래?」
   「안 돼. 그건 안돼. 절대 안돼. 난 걔한테 상대도 안되거든.」
   「상대가 되든 말든 그러니까 너 누구냐니까, 응?」
   「나 너랑 장난하는 거 아니야. 너 나 알지?」
   「너란 존재는 내 옆에 있는데 당신은 누구냐고요, 네?」
    더 이상 통화하는 건 의미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NB는 전화를 뚝 끊었다. 
    당연히 괘념치 말라며 옆에서 살갑게 부추기고,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을 해설하며, 설득하다 밀고 당겼다가 쥐락펴락. 정말로 도플갱어는 무서울 만큼 배우는 게 빨랐다. 세상물정 금새 깨우쳤다고나 할까? 그래도 지금까지는 동시 출전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더 이상 숨지 않는다는 것은, 뭔가 날 바깥으로 돌려도 될 만큼 자신감이 붙었다는 말인데. 탄력받은 그에게 내가 정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괜히 섣불리 녀석을 달래려고 했다가는 난 눈탱이 맞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일단 이와 같은 난감한 사태는 꽤나 장고를 하지 않으면 안되는데. 어떡한담? 그럼 이제 난 자유란 말인가 아닌가. 아니다. 단기적으로 좋을지도 모르나, 장기적으로 봤을 때 결코 나에게 유리하게 돌아가지 않을 거라는 점. 모를 수 있나. 퍽 낙관하기 곤란한 실정. 열망어린 헛꿈만 주관적으로 부풀릴 시기가 아니다. 위기는 기회가 아니라 아무리 객관화해도 내게 불리하다. 뭘로 봐도 연패가 기다리고 있을 따름. 그렇다고 꺼내들 카드는? 판돈이 있어야 뒷패를 기대하든 말든 할 거 아닌가. 이럴 때 대비하라고 다 푼돈을 아끼며 베팅을 하는 건데. 이건 뭐... 가난하지만 행복하다. 뭐라고? 됐고. 그래서 나는 당분간 새로운 줄거리를 구상하기 위해 일단 떠나기로 했다. 도플갱어 지가 그래 봤자 도플갱어 밖에 더 돼? 게임 자동 기능으로 움직이라고 내버려둔 채 휴가나 즐기면 된다. 
    장면 전환.
    장면 전환.
    장면 전환.
    나는 오늘 정형외과에 다녀왔다. 아, 근황을 설명하자면 나는 휴양지 호텔에서 며칠 묵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오른팔 팔꿈치가 아프길래 근처 병원에 갔었다. 아무 문제 없다고 하더라. 그러다 핑핑 놀다 조금 일도 하다, 바텐더한테 껄떡거리기도 했는데. 껄...그게 아니라. 빨빨거리며 나돌아댕기는 대신 폼잡고 분위기 잡고 무중력 레이더를 가동시켰다고나 할까? 농담이고. 그러다 또 이번에는 왼쪽 손목이 아파왔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통증은 간헐적으로 날 괴롭히고 있었다. 그래서 오늘 정형외과에 다녀왔다. 당연히 결과는 이상 없음. 그럼 뭐지? 왜지? 그러다 슬슬 느낌이 세해지더니 결국 기분은 꽝이 되었고, 징조가 뭔가 불길하다 했더니 글쎄 나는 나도 모르게 황금 마네킹 그림 액자 속에 갖혀버리고 말았다. 아니 어떻게... 도플갱어가 벌써 심지어 이제는 하다 하다 요술까지 숙달했을까? 그걸 그러니까 어떻게! 나는 장차 이 억압에서 풀려나면 당장 저 그림, 아니 내가 탈옥수로 벌서던 이 그림부터 갈아치울 것이다. 즉 장 엘리움의  <황금 마네킹 상점>. 이게 화근이다. 그럼 다음 그림은 뭘로 바꾸지? 윌렘 드 쿠닝의 여자, 여자 1로 바꿀까? 생각만 해도 섬뜩하다. 아무튼 지금 방법은 없다. 도플갱어가 전면에 나선 이유가 있긴 있을 텐데, 일단은 가만 지켜보는 수 밖에. 그렇게 나는 말똥말똥 정신이 또렷하나 몸은 움직일 수 없었다. 왜냐하면 액자 안 그림에 못 박혀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드디여 나는 도플갱어를 보고야 말았다. 녀석은 사무실로 태연히 출근해서 나와 똑같이 행동하고 있었다. 이 자식이...! 그러다 녀석은 아는 동생들한테 전화해서 껄떡거렸다. 막 심하게. 이 자식이...! 이런 싸구려 뽄드같은 녀석을 어떻게 할 수도 없고. 그러다 녀석은 바깥으로 나돌아댕겼다. 또 어딜 얼쩡거릴려고. 아니면 알짱알짱 누군가에게 떡밥 뿌리기? 그렇게 1주일이 지났다. 오늘은 웬일로 일찍 출근했을까. 지켜보면 알겠지. 
    녀석은 분위기 전환 삼아 음악을 틀었다. 
    Frederick Ⅱ / 플루트 소나타 261번 F장조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상에 대한 신념은 무뎌졌다. 사교계 진출을 위해 무작정 팔 걷고 나설 수도 없다. 이러니 낭만적인 멜로드라마로부터 용서받지 못하는 것이다. 뒤로 오는 백허그는 져드리겠는데, 앞으로 오는 팔자는 못이는 것인가? 알 거 없다. 사는 낙이 단조로운 게 뭐 어때서. 남들이라고 인생의 즐거움이 썩 다양하지 않을 것이다. 달콤한 러브콜은 올 뻔하지도 않았고 쓴 웃음만 남았다 하여 절망할 수는 없다. 당연하다마다요! 근데 뭘 하는데 난 또 일기를 쓰고 있지? 그 까닭을 속시원히 안다면 난 아마 꽤나 행복할 텐데. 어쨌거나 더 이상 털어놓을 비밀은 없다. 있긴 있는데 누가 엿들을까 봐 겁난다. 그 뿐만이 아니라 시적인 매혹과 행복의 기쁨 이젠 알고 싶지도 않다. 그럼 난 드디어 타락한 건가? 그러든 아니든 나는 악마가 아니다. 그나저나 비밀리에 추진 중인 작전을 차라리 숨기지 말아버릴까? 있어야 말이지. 겸손하고 싶어도 무슨 자랑할 게 있어야 하든 말든 할 거 아닌가. 그럼 사랑마저 사치일까? 아니다. 왜냐하면 나는 마음만 먹으면 특A급 영화배우를 자빠트려 결혼에 골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녀를 눈부신 5월의 신부로 만들어드릴 수 있거든. 그러므로 나는 굶주린 늑대가 아니다. 그럼 또 누군가 그러겠지. 그럼 난 뭐 굶주릴대로 굶주린 늑대냐? 그러나 우정도 다 어릴 때 얘기다. 한편 장미꽃은 꺾을 때 꺾는다, 를 모르지는 않았는데. 남자의 친교란 믿을 게 못 되는 건가? 아니겠지. 그래서 칼럼으로 무언가를 고발했던 거고. 그러든 어쩌든 잔소리 바닥나서 좋긴하다. 그럼 뭘 하나. 재산은 증식되지 않는 반면 허세만 나날이 발전하는데. 절망을 예언하지도 않았고 상심을 저주한 적도 없는데... 그런데 왜 이런 거지? 허나 성과 빈곤에 대한 대응이 세련되지 않아서야 쓰나. 하여 권태에 직면한 결과 꽤 괜찮은 대타를 투입하고자 하는데. 어디 보자... 괜히 봤다. 그렇다고 눈을 질끈 감고서 미친 척할 마음은 없다. 이를 테면 달콤한 건수가 제발 함께 놀자고 꼬신다면 퍽 마다하진 않겠으나, 풍운아 별칭을 왜 아깝게 놓쳤냐는 물음에 논박할 활기도 없단 말이다. 그게 그러니까 말이다 배고픈 곰은 춤을 추지 않는 것일까? 그야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만. 우리는 일단 미련곰탱이가 아니라는 점. 그런데 왜 이처럼 인생이 허접하지? 그러게. 뭘 해야 새로워질까. 더 식상해지지 않은 게 어딘가. 그러다 갑자기 예고 없이 찾아오는 모험가의 자발, 최소한 내 얘기는 아니다. 이러니 천사의 교태와 요정의 내숭과 비너스의 변덕, 다 거짓말일 뿐이다. 일단 소망부터 내게 결코 순종적이지 않다는 것. (절레절레) 이런 악조건 속에 나까지 떠들기 좋아한다라... 아니다. 그건 아니다. 이건 뭐랄까 난 더 이상 젊지 않다는 걸 체감하고 있다고나 할까? 아니다. 나는 늙었음에 동의할 수 없으니까. 이렇듯 능청을 모두 쾌락주의 탓으로만 돌려서도 안된다. 꽃피는 봄날이 멀지 않았다. 백조의 날개는 물에 젖지 않는다. 퇴폐적인 상상력도 사양하자. 그런다고 그게 설마 허당의 섭리를 거역하는 게 되나? 알 게 뭐냐. 근데 누가? 내가? 내가 왜? 아니 왜? 뭣 때문에? 그 이유를 안다고 황금방석에 안는 것도 아니고, 모른다고 불알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여러 방면으로 레이더 가동시킬 것 없다. 지금은 하나만 알자. 일단, 잘 먹으면 머리가 잘 돌아간다는 것. 하지만 이젠 커피도 잘 마시지 않는데 것도 별로. 개 눈에는 개뼊따귀만 보이는 게 아니다. 그래도 미친 개는 밤마다 개꿈만 꾼다. 근데 그게 대체 뭔 소리야? 그만하는 게 좋겠다. 
    그래서 나는 딴 걸 할 수는 없고. 놀기도 애매하고. 따라서 나는 저 액자를 갖다버리기로 결심했다. 그 다짐은 결국 결실을 맺었느냐? 그걸 지금 알려드릴 수는 없다. 나도 뭔가 믿을 만한 카드 몇 개는 남겨놓아야 하니까...>
    이처럼 일을 끝마치자마자 도플갱어는 NB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직도 네 눈에는 내가 도플갱어로 보이니! 설마 그런 건 아니겠지?」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정신을 잃고 말았다. 액자 안 그림 속에 갖힌 채 말이다. 





    4

    라이몬디가 라파엘로 - '파리스의 심판'. 풀밭위의 식사/마네 (1863). 풀밭위의 식사/파블로 피카소 (1954~63). 그 주제를 일부 차용한 유명 상표 광고 사진 촬영장. 또는 단지 보기에 따라 쇠라의 점묘화를 떠올릴 수도 있는 풍경. 어쨌든 그 인근에서 NB는 깨어났다. 도플갱어가 그의 기억을 완전히는 아니나, 옅디옅도록 지워버렸을까? 그는 자기가 왜 여기서 깨어났는지 도통 기억할 수 없었다. 
   「야, 조수. 잡상인도 아니고 저 거렁뱅이는 또 뭐니?」
   「아저씨 뭡니까? 여기서 이러시면 안됩니다. 아니 대체 언제 아무도 몰래 잡입했어요? 어서 나가세요.」
   「저 냥반 보통내기가 아닌데. 대체 뭐 하는 양반이야? 혹시 우리 작업을 일부러 방해하기 위해서?」
   「뭐 해, 어서 끌어내. 상태가 많이 안 좋아보이는 거 딱 봐도 모르겠니?」
    그곳에서 도망치듯 뛰쳐나올 경황, 그럴 깜냥 없었기 때문일까? 미처 자기가 왜 이러고 있는지 그는 당최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뭔가 어떤 귀신에 홀린 듯한 기분. 느낌 너무 세했으므로, 그는 달콤한 예감과 정반대되는 예견을 떨쳐버려야만 할 것 같았다. 그 불안의 정체는 무엇일까? 도깨비를 사귄 셈이므로 도플갱어는 수동으로 한 번, 두 번, 세 번 놀리다 마침내 자동으로 전환되는 건 아닐까 라는 점. 섬뜩했다. 식겁하지 않을 수 있겠나. 설마하니 nb가 앞서 몇 번에 걸쳐 발생했던 기적 같은 변신을 기억해낸 것일까? 알 수 없었다. 말도 안되는 신비감 본인부터 믿지 못했으니까. 그런데 이와 같은 퍽 신뢰하기 어려운 난감함, 떨쳐낼래야 떨쳐버릴 수 없었는데. 그걸 치유하려면 스스로 어딘가에 추파를 던져야 할까, 아님 아는 동생들로부터 얼쩡얼쩡 치근댐을 받아야만 할까. 어찌 됐든 그건 걔 사정. 다만 또 다시 환각인지 마법인지 그런 증상들이 재발되지 않았다는 것은 꽤나 다행이었다는 점. 썩 부인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그 때문에 그의 낭만적인 기분이 탄력을 받았냐, 하면 아니었다. 그러니 극적으로 제정신을 차려서 좋긴 한데. 그는 왜 이리 허전한 것일까? 상심할 필요없다. 왜냐하면 그는 고전파의 막강한 실세이자 마술적 사실주의의 탁월한 실력자는 아니기 때문이다. 근데 그런 말 같지도 않은 핑계를 걘 대체 어떻게 생각해냈을까. 다 쓸 데 없고. 거듭 말하지만, 그는 주도적으로 새로운 인생과 찬란한 사랑을 짝지어주기만 하면 된다. 근데 그게 쉽나? 혹시... 그래서 옛 표어 '하면 된다'는 잊혀진 거나 다름없을까! 그렇다고 <아니면 말고>도 퍽 잘난 거 없다. 어차피 저 하늘의 별을 딸 수 없다면 제3번 가상의 무언가를 상상하면 그만. 하여 그 가상의 목표가... 보나마나 뻔하다. 깨물어 줄만큼 예쁘다는 칭찬을 남발하는 촌닭, 적어도 NB는 아니라고 주장할 테나. YB가 여자라면 사족을 못 쓴다면 또 모를까. 아니 어떻게! OB들이나 툭하면 첫눈에 홀딱 반하지 NB는 절대로 그럴 리 없다. 좌우지간 불가능하다고 믿을 수 없는 사랑의 완성, 그건 정녕 진한 사랑일까? 힘빠지는 얘기 시작도 말자. 다만 심신이 분리되는 느낌이 무엇인지는 그 어떤 분위기에서라면 보여드릴 수는 있다. 그게 그러니까 풍년 거지 더 섧다 라는데. 눈은 풍년이요 입은 흉년이라고 굶주린 늑대의 심정도 아마 그렇지 않을까? 농담인데 왜 이리 재미가 없을꼬! 그런데 어찌 하여 그 덜떨어진 허당에 대한 변론은 또 해도 해도 끝이 보이지 않는 걸까. 때문에 애초에 시작도 말아야 한다. 그래. 그만하자. 허접한 잔소리 징글징글하니까. 
    그래서 그는 무작정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아무 생각없이 집으로 뛰어갔다.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그는 집에 도착했다. 집에 도착하니 출입 인증 시스템이 도입되어 있네? 어, 이게 뭐지! 난 이런 거 설치한 적 없는데... 뭐지? 뭘까? 뭐야 이거! 왠지 모르게 그는 집은 일단 놔두고 사무실로 가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뭔가 이상한 느낌은 이해할 수도 설명하지도 못할 테니까.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그는 사무실에 도착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거의, 거의 사무실에 도착했는데 묘하게 그 근처에서 튕김. 마치 온라인 게임처럼!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다 문자 메시지를 받음. 여기서 NB의 위치를 묘사하자면 그는 자기 사무실이 보이는 거리. 마치 2층 카페 창가에서 향기로운 찻잔을 들고서 그를 쳐다보면 녀석의 허접한 패션이 보일 듯한 위치. 아니 그런데! 어머나... 어머머.. 아니 어떻게. 창밖을 내다보는 도플갱어와 눈이 마주쳤다. 녀석의 냉소를 보고서 나는 인상을 팍 썼다.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녀석이 보낸 문제 메시지 때문에. 곧장 문자를 확인했다. 
   "007 가방을 구해와라. 안에 무엇이 채워져야 할지 굳이 내 입으로 말하지 않겠다. 만약 원래대로 돌아가고 싶다면 내 말을 순순히 따르는 게 좋을 것이다. 그 정도도 모르진 않겠지? 부디 날 실망시키지 말기 바람."
    뭐라고? 뭐가 어쩌고 어째? 이 자식이 누굴 바보로 아나...! 내가 이래 뵈도... 근데 내가 어디 가서 무슨 수로 007 가방을 구하지? 설사 가방을 어떻게 구한다고 해도...! 
    나는 반나절 잔머리를 굴리며 산책하다 돌아왔다. 그 다음 퇴근하는 녀석의 뒤를 밟았다. 성급히 달려가 녀석의 멱살을 잡으려하다간 된통 당하거나 또 튕겨나갈 게 뻔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계란 1개, 메추라기알 1개를 미리 구해왔다. 이처럼 미행붙는 걸 녀석이 예견했거나 내가 걔한테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기에 녀석은 더 느긋한 걸음걸이를 뽐내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확 던졌다. 계란과 메추라기알을 말이다. 그런데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생달걀 1개를 던지니 그건 허공에서 사라졌고, 그게 사라지자마자 난 새똥을 맞았다. 신기하다고 감탄할 상황이겠나 짜증낼 기분이겠나. 이런 젠장~! 다음으로 메추라기알이 더 없나 주머니를 뒤져봤다. 없는 줄 알았는데 1개가 남아있었다. 나는 그걸 마저 던졌다. 밑져야 본전이다 라는 생각은 아니었다. 나도 모르게 그렇게 행동했기 때문일까? 그걸 알아서 뭐 하나. 그랬더니 그 다음 어떻게 됐을까? 그 마지막 메추라기알 1개는 허공에서 사라졌고, 사라지자마자 난 개똥을 밟고 넘어졌다. 이 녀석이 증말 보자 보자 하니까... 이젠 어떡하지?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나는 결국 중고품 매장에서 007 가방을 구입했다. 내용물은 지폐 다발로 꽉 채움. 단, 제일 윗장만 고액지폐로. 제일 윗장을 빼고 나머지는 이것저것 되는대로 규격만 맞춰서. 그걸 들고 가서 녀석 사무실 문 앞에 놓고 돌아왔다. 녀석 사무실? 언제부터...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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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날이 되었다. 최고급 호텔에서 숙박했는지 밤새 떠돌아다녔는지 그건 넘어가자. 오늘은 토요일. 정말 난 거지가 되어버린 걸까? 그래도 모르니 일단 집으로 가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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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처럼 우리집은 그대로였다. 나는 다시 예전 생활로 복귀했다는 걸 깨닫는 데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어딘가 모르게 김새지만 언젠가 재밌어질 거라고 긍정할 수 밖에 없었다. 





    5

    누가 나를 도플갱어로 만들었을까, 도대체 왜! 아니면 난 숙주에서 튕겨져나오자마자 새로운 육신에 갇힌 건가? 모르겠다. 아는 척할 수도 있다만 그러긴 싫다. 아무튼 중요한 사실 하나를 먼저 실토하자면 이렇다. 그건 뭐냐, 바로 어제 내가 녀석을 미행했듯이 출퇴근길에 누군가가 나를 따라다녔다. 게다가 변장은 했을지언정 얼굴 및 머리 전체를 붕대로 칭칭 감고 있었다. 그게 모자가 달린 외투를 입고 있었음과 더불어 요상한 패션으로 잘도 위장했기 때문에 전혀 괴상해보이진 않았다. 단지 날 속일 수는 없었다는 거. 그럼 뭘 해?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심지어 어제 내가 도플갱어에게 보여준 행동들을 흡사 Ctrl+C & Ctrl + V! 그렇게 녀석은 내게 어떤 무언의 의사표현을 하고 있었다. 이건 뭘 뜻하는 거지? 그럼 녀석도 내가 모르는 새에 내게 접근할려다가 이미 튕김 현상을 경험했다는 건가? 또 내가 본래 정체성을 되찾은 것처럼 나는 녀석한테 내 모든 것을 빼았겨버리게 되는 걸까...? 그럼 이제 나는 어디로 쫒겨나나! 정신이 혼란했다. 아, 맞다! 만약에 튕김 증상이 발생하지 않았다 가정했을 때! 저 녀석이 갑자기 나한테 느닷없이 다가와서 이렇게 따지면 어떡해야 하나...! 
   「야, 나랑 한판 뜨자!」
    뭐라고? 아니 정말로 저 자식이 불현듯, 급작스럽게 내게 다가와 날 때리면 어떡하냔 말이다. 왜냐하면 쟤가 내게 뜬금없이 사랑을 고백할 리는 없기 때문에. 만약 녀석이 갑자기 나랑 친하고 싶어한다면 그건 말도 안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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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날이 되었다. 
    자, 그래서 어떻게 됐을까?
    그 누구보다 내가 먼저 궁금한 일...이 아니라. 한마디로 말해서 도플갱어는 사라졌다. 그런데 뭐라고나 할까.. 왠지 아쉽자 뭔가 허전하다고나 할까? 정말로 그렇다는 말이 아니라... 호기심을 속시원히 충족시켜드릴 것처럼 알자하니, 발단은 날 약올렸고 전개한테 나는 속았다. 아니면 뭔지 모를 허깨비한테 된통 당한 건가? 모르겠다. 알 수가 있어야 말이지. 기발한 이치의 이해를 좀 더 돕기 위해 말해두자면, 줄거리고 나발이고. 정말 모른단 말이다. 따지고 보면, 이게 다 뭐 때문일까? 가난 때문이라고 말은 하지 않겠다. 나는 사랑의 시를 쓴 적이 없다. 누가 행복을 논하제? 벌집 쑤신 듯 낭만에 심취해봐야 다 쓸 데 없다. 그렇다고 인공지능한테 어떻게 징징대나. 아마도 제일 먼저 들을 말은 그럴 테니까. 넌 몰라도 돼! 뭐? 흥분하지 말자. 정작, 아니다. 뭐니 뭐니 해도 이건 정말 바보 같은 짓이다. 부정하지 않겠다. 궤변과 몽상과 허언과 쓰잘데기 없는 상상력 다 필요없다. 짝사랑도 소용없다. 어차피 인생 혼자다. 누가 그걸 모른데? 내 인생 성과가 꼴찌라는 사실은 부동의 숙명인 것일까? 운명 같은 소리 하지도 말라니까 정말. 이래서 나는 뭘 해도 안되는 건가. 늬가 그러니까 여자가 없는 거야 라는 허구를 너무 많이 남발했던 죄값일 수도 있는데. 그런 의미에서 이왕 뭔지 모를 환상론 시작한 김에 좀 더 이어가자면 우선 나를 객관적으로 봐야겠다. 그래야 한다...까지는 아니지만 그럴 필요가 있다. 그는 남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동시에 여심을 녹여주는 데 실패했다. 허나 그것은 거짓이다. 왜냐하면 무대에 서보지조차 못했기 때문. 결국 어디 가나 무엇을 하나 상상병은 현실 도피일 따름. 그래도 뭐랄까 적어도 미래는 자유와 모순되면 안될 것이다. 그래 봐야 꿈은 허영심의 노예에 지나지 않을까? 묻지 말자. 알아서 뭐 하게. 그럼 정말 소망은 충족될 수 없단 말인가? 만약 아니라고 하더라도 욕망에게 녀석이 어떻게 호적수가 된단 말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락하지 않아 다행이긴 한데. 그래서 어설픈 신비주의를 파괴한 결과가 대체 뭐란 말인가. 지금 와서 고전주의를 신봉해봐야 누가 알아주나. 그러든 어쩌든 어떤 환상에 대한 뜬구름 잡는 몽상부터 집어치우라 그래. 개뼉따귀 라는 말만 들어도 지치니까. 아니 그러니까 누구한테! 뭐, 그렇게 심한 말을? 이러니까 황금만능주의와 불친이요 인기로부터 미운털이 박히지. 안 그럴 수가 없거든. 그러게 유능함과 돈독한 친목을 쌓지 못하고 뭐했냔 말이다. 허나 삶이 어디 내 맘대로 되야 말이지. 뭐 일단 여기까지만 하고 넘어가기로 한다. 그 다음이 대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6

    도플갱어와 친교를 맺을까? 불가능하다. 그럼 사랑의 차트가 애원하는 구애를 못이긴 척 받아줄까! 어림없는 일. 그렇다고 하여 색다른 취미가 새로운 삶의 낙이 될 수도 없는 형편. 그래도 공식적인 가난에 별 불만은 없다. 허면 비공식적인 낭만의 실종에 미련이 없냐, 그래 없다. 그러니까 이렇다 할 공적과 찬미와 행복에 무관심하니 편하다. 그래서 깨달은 건 무엇일까? 말하자면 핑계 없는 무덤 없고, 말 다하고 죽은 귀신 없다는 것. 나도 안다. 난 쓰다 만 일기장 같은 남자라는 걸. 하여 나는 이제 알게 됐다. 그건 무엇일까! 내 인생은 불만족을 보장하고, 재미없음만 책임지며, 심심함을 사랑한다는 걸 말이다. 뭐, 뭐가 어쩌고 어째? 개꿈과 허언에 더 이상 농락당하지 말기로 한 걸 난 벌써 잊었나. 내 평생 살다 살다 이런 투정은 처음이다. 아니다. 거짓말이다. 왜냐하면 우리처럼 그 어떤 기대감을 잃어버리다 보면 더 이상 그 누구에게도 첫눈에 반하지 않기 때문이다. 근데 그게 뻥과 뭔 상관일까? 그걸 알아서 뭐 하나. 더 이상 아무한테도 홀딱 반하지 않는다는 게 중요할 뿐. 안 그런가? 따라서 이제 더 이상 사랑에 빠질 수 없는 운명을 고민하는 게 현명할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는다면 나중 허비한 인생을 언젠가 후회할 수도 있을 테니까. 물론 내일은 그렇고 오늘 당장 시간 낭비로 내 기분은 나빠지겠지. 그렇다고 아무 이유없이 분위기가 좋아질 만큼 그 무엇을 기다리지도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영화배우가 되었다. 그런데 그건 꿈이었다. 그러나 지금 와서 서커스를 찾아다니기도 귀찮다. 더군다나 남자니까 마술사 조수로도 어울리지 않는다. 그 뿐만이 아니라 우리끼리 얘긴데 어떤 수작을 걸고 싶은 욕망이 바닥났다는 거. 이제 난 남자가 아닌가? 아닌 게 아닌데 고개를 숙인 건가? 솔직히 말해서 더러운 애정을 자빠트리는 풍운아, 하나도 부럽지 않다. 그럼 길바닥에 나뒹구는 낙엽만 봐도 꺄르르 웃는 젊음을 동경하냐, 하면 것도 아니다. 그럼 대체 문제가 뭔데? 문제 없다. 아하! 맙소사, 나는 이제 철이 든 거다. 안되는데. 이제 어떡하지? 뭘 어떡하나. 아니다. 속없는 우리에게 철든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긴 아는데. 보통 문제가 아닌 거다. 그럼 어떡할 텐가? 대책없다. 그냥 확 도망가버릴까? 그런데 어디로 떠난단 말인가. 가봤자, 개는 토한 곳으로 돌아오기 마련. 그렇다고 내가 개란 말이 아니라. 별들의 고향이 어딘지 모르진 않다만 뛰어봐야 부처님 손바닥. 안 그래도 집 떠나면 고생이다. 그런데 여자 뒤꽁무늬나 쫓아다니는 개고생을 왜 사서 하겠나. 다 부질없다. 나는 행운아가 아니라 그냥 패배자다. 다시 한번 말한다만 뭘 해도 재미없다는 말은 아니다. 여자? 관심없다. 돈?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심지어 나는 시인이 아닌데 청춘이란 단어를 내 입에 담을 순 없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아무도 없으니 하는 말이지만) 블로그를 때려칠까? 닥달하든 들들볶든 잔소리하는 여편네한테 들킬 일도 없는데 그러지 않아도 된다. 심한 말로 칼럼니스트 일자리 집어치우든 말든 아무도 날 알아주지 않는다. 이젠 하다 하다 스포츠 야유마저 형편없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까지 탄력 받기만 기다릴 건가? 그래. 가자. 젊음의 행진 못 할 거 없다. 그런데 열정이든 뭐든 시동이 안 걸린다. 그런데 왜 갑자기 떡밥뿌리기가 떠오르지? 그걸 내가 아나 바보가 아나. 아니면 다름 아니라 내가 바보인가? 또 바보면 좀 어떤가. 게다가, 어? 환상머신 운운했던 난봉꾼이 어디 내가 처음일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그래 봐야 내가 정말로 웃기는 터미네이터인지 누가 알겠는가. 고로 얼굴 팔릴 걱정 없어서 기쁘다. 그래. 너무 좋아서 문제군. 그러나 내가 원하는 결론은 이런 게 아니다. 그럼 진짜로 진한 사랑을 절실히 원하나, 것도 아니다. 그런데 왜 그래! 알아야 말이지. 모른다. 단지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고, 시간은 미래로 나아갈 뿐. 그거 받고 당장 품위유지비가 부족할 따름. 그래도 우리는 현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밝은 미래를 뭐 하러 비관하나. 그녀들은 다 나한테 넘어올 수 밖에 없는데. 다만 가난이 선명하니 비밀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원래 세상사란 조금쯤 불공평하기 마련. 허나 상하일체복과 멜빵청바지를 못 입어본 체 어른이 된 게 어디 나 뿐이냐고. 괜찮다. 나도 나다. 그리고... 
    아니 그런데 어떻게...! 
    딱히 기다리지는 않았으나 뭔가 어떤 변화가 있을지 모른다는 느낌. 설사 그것으로 말미암아 이런 일이 벌어지지는 않았을지언정 뜻하지 않게 저쪽에서 뭔가 착오가 있었는지 어쨌는지 내게 신호를 보내왔다. 물론 나는 여기서 말하는 저쪽이 어떤 대상인지 그 비밀과 배후와 사연과 줄거리 등 아는 게 아무것도 없다. 그건 그렇고. 발생한 일이 대체 뭐냐, 다름 아니라 볼링핀이었다. 그건 집 앞에 볼링핀 1개가 놓여있는 걸 발견. 또 사무실 앞에 볼링핀 2개. 뭐지? 이 안에 드라마처럼 도청장치, 감시카메라, 적외선...체온...그럴 리는 없을 테고. 설마 이게 슈퍼컴퓨터? 그냥 뭔가가 내게 잘못 배달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걸 가만 놔두니 며칠 후에 사라졌다. 주인이든 배달자든 중간책이 다시 가져갔을 테지. 그러다 1주일 후 나는 알게 됐다.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나는 무엇을 알게 됐을까?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됐다. 그건 바로 내 지인들이 하나둘 도플갱어로 바뀌어가고 있다는 점. 
    가령 이런 일들이 흔히 발생했다. 즉 세실리아가 날 짝사랑한다는 착각을 깨버리기 위해서 나는 그녀한테 연락했다. 처음에는 평소와 다르게 사무적인 어조로 전화를 받더라. 바쁘다고 하길래 1주일을 기다린 다음 다시 연락했다. 왜냐하면 평소 세실리아로부터 호의와 선물과 애교와 연정을 언제나 받기만 했기 때문에. 그래서 많이 늦었지만 호혜를 되갚고자 이번에는 그녀가 자주 찾는 카페로 찾아갔다. 우연히 만나기를 애타게 바라지는 않았다만 여자들은 은근 그런 걸 좋아하니까. 정말 그럴까? 그러든가 말든가 일단 싫어하진 않는다. 물론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서! 그렇게 나는 세실리아를 만났는데 그녀는 냉담했다. 아하, 이래서... 나는 그녀의 눈빛을 보는 순간 깨달았다. 그녀의 눈빛은 나를 바라봤지만 뭐랄까 초점이 내게 잘 맞지 않았고, 사람이 나를 보는 게 아니라 동물이 날 쳐다보는 기분이 들었다. 이런 일들은 매번 발생했다. 친구 1, 친구 2, 친구 3. 지인 A, 지인 B, 지인 C. 대체 왜 이런 일들이 발생하지? 그렇다고 이걸 내 주변인들이 모두 도플갱어로 대체된다는 명백한 증거인가, 굳이 그 판단이 비이성적이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한두 번이면 말겠지만 엑셀 파일을 연상시켰으니까. 그럼 이제 나는 어떡해야 하지? 모르겠다. 만약 이대로 계속 간다면... 나 빼고 모든 지구인은 외계인이 되는 건가? 좀비 영화 재미없어서 안 본지도 오래됐는데 그런 허황된 상상 그만 좀 하자. 어쨌든 이럴 때는 그냥 기다리는 수 밖에 없다. 어딜 들쑤시고 다니겠나 괜히 잠자는 불독을 깨우겠나. 부추김 당하는 거도 재미없고 깐족거리기도 옛날 같지 않다. 고로 괜히 감정이 말랑말랑해진다고 헛바람들지 말고 일이나 하러 가기로 했다. 





    7

    달콤한 성과를 달성할 궁리는 뒤로 한 채 날이면 날마다 탐욕에만 첨예한 관심이라니. 하긴 일생이 뜻대로 되지 않는 건 좀처럼 뻔한 이치. 정녕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이 세상에 온 걸까? 그런데 왜 왔는지 모른다고 우주로 떠날 수도 없다. 그러든 아니든 뭔가 이상한 낌새, 다분히 막연한 출세욕 탓은 아니다. 그럼 무엇 때문에? 아마도 전폭 신뢰할 수 없는 망상에 그저 귀찮을 따름. 이런 장단이라면 춤추기 어렵다. 세상을 모르니까. 그래도 힘내 라고 크게 외쳐볼까? 외치긴 뭘 외쳐. 여자의 마음에 대해 아는 게 뭐라고! 헌데 대체 그 얘기가 왜 나오는 거지? 도통 욕심도 없는데 말이야. 하긴 그걸 알아서 뭐 하게! 어쨌든 낙관적인 희망은 끌려내려갔다. 그런데 만약 내가 블로그를 시작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어떻게 살고 있었을까? 뭐 어떻게든. 어찌 됐든 인생이란 개뼉따귀가 아니란 거만 알면 된다. 아울러 나는 공짜를 좋아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웬 허당들을 무턱대고 부러워하고 싶지도 않다. 심지어 이 마당에 뭘 해도 재미없다 라는 말을 어떻게 내 입으로 하나. 못해. 안한다. 그 뿐만이 아니라 솔직히 말해서 나는 뭘 해도 재미있다. 신난다. 즐겁다. 기뻐서 미치고 환장하겠다. 기분 끝장이란 말이다. 허허허. 그건 그렇고. 한편, 아저씨들 권고대로 값싼 햄버거나 조질까? 아니 그렇게 심한 말을. 그나저나 내 나이를 밝힐 수는 없다만 난 어쩌면 중년기를 너무 띄엄띄엄 봤다. 그럴 생각은 없었다만 결과가 그렇다. 기왕 그렇다면 흑심이라는 죄와 솜방망이라는 벌, 라는 제목으로 단편영화나 하나 만들까? 나는 결국 '한다면 한다'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할까? 그렇다고 아니면 말고, 를 때릴 수도 없지 않나. 딱 봐도 망설이기 좋아하던 겁쟁이는 필경 허풍만 남발하는 조롱꾼으로 성장했네. 맙소사, 이런 젠장! 그렇다고 속좁은 여자를 만족시킬 수 있나, 아니면 예언가의 기질이 남다르기를 하나. 괜히 애독자를 부추기거나 특히 시선은 어딘가 뒤꽁무니로 자연스럽게 향할 테지. 더더군다나 매력적인 숙녀들한테 혹 하기 밖에 더 하냐고. 그러니 뭇남성들을 현혹시키지 못하는 분들 속 뒤집어질 수 밖에. 뭣이 어째? 아는 동생들 안부는 궁금해하지도 말자. 편식하는 어린애처럼 이게 뭐냔 말이다. 굳이 이런 얘기를 하고자 한 게 아니라 어쩌다 여기까지 와버렸을까. 그래서일까? 갑자기 그런 말이 떠오른다. 바로, 여자가 제 방귀에 놀란다. 점점...!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꿩 잡는 건 매다. 그런데 꿩 놓친 매 마냥 이게 뭔가. 이건 아니다. 젊은 미소가 더 썩기 전에 기분전환을 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안되니까. 안 그랬다가는 난 울어버릴지도 모를 일. 허나 난 울보가 아닌데. 그럼 먹보인가? 아니 속된 말로 내가 뭐 돼지새끼? 나는 개가 아니다. 이런 말장난 하면 할수록 더더욱 바보가 된다. 이미 멍청해졌다. 아니 타고나기를... 통과. 심지어 여자들 셀 수도 없이 꼬셔봤기 때문에 더 이상 그녀들을 이해할 필요도 없다. 그래도 뭐랄까 얼쩡얼쩡 그녀들 유혹에 넘어가는 상남자보다 내가 한수 위다. 어디서 공인받을 수는 없어도 말이다. 그렇지만 내 잔꾀에 내가 속아넘어가기 일쑤. 그럴 수 있다. 애초에 멍청한 수작 시작도 안하는 게 어딘데. 그리고 내가 무슨 애송이도 아닌데 한가하게 말 같지도 않은 궤변으로 호인들 농락시킬 일 있나, 아니면 괜히 마음의 준비도 덜 된 여심들한테 추파를 던지고 다닐 일 있나. 다 부질없다. 그게 다 이루지 못할 꿈을 꾼 것부터 시간낭비다. 허나 나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원하지 않았다. 또 무관의 제왕을 누가 알아주나. 좌우지간 나는 미치지 않았다. 멀쩡하다. 끄떡없다. 괜찮다. 그러고 보니 이제 알겠다. 허접한 슬럼프를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무작정 집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을. 물론 말이 그렇단 거다. 그렇지만 그 방법을 아예 제외시키지는 않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방구석에서 공연히 마음을 졸이느니 나는 그녀들의 마음을 띄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체 여기서 말하는 그녀들이 누구지? 몰라. 우리는 여자 관심없다. 우리? 그 우리에서 제발 난 빼달라는 푸념 벌써 들리는 것만 같다. 근데 내가 무슨 자유의 여신상도 아닌데 뭣 때문에 모니터만 쳐다보고 있어야 할까? 그런다고 돈방석에 앉는 것도 아닌데. 뭐, 돈방석? 그런 얘긴 다 어디서 주서들었는지 모르겠다. 일부러 저렴한 표현을 남용하고자 하는 게 아니라 그냥 나도 모르게 알고 있었을 뿐. 아니, 어? 그건 또 무슨 이유 때문에 궁금해 하는데. 애시당초 블로그를 시작한 것은 나인데 말이다. 그럼 이게 다 모스맨 연구소 일당들이 치밀한 작전으로 날 조종한 건가? 알 게 뭐야. 자, 액면에 놓여진 수다 카드는 그만 거두어들여야겠다. 
    이때 나는 깨달았다. 알 게 모르게 도플갱어가 나를 조작하고 있다는 것을. 어디까지나 심증 뿐이나 증거가 없다는 게 더 수상하다. 날 아주 은근히 미치게 만들고 있으니까. 그렇다고 내가 아무것도 모른 체 넘어갈 줄 알았을까? 배후에 녀석이 있다는 걸 내가 어떻게 몰라. 그렇다고 저번처럼 근처에서 더 이상 녀석은 얼쩡얼쩡대지 않았다. 그렇다. 녀석은 모스맨 연구소로 도망갔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곧장 그곳으로 쳐들어갔다. 끝으로 한마디 덧붙이자면 이번 문단은 뭐라고나 할까.. 도플갱어와 맞장뜨기 위해 모스맨 연구소행, 라고 한마디면 끝날 건데. 뭔 설명을 이렇게나 많이! 바로, 이래서 내가 작가에서 영화감독으로 이직해야 한다는 거다. 근데 또 그 줄거리를 시작하자면 얘기 길어지니까 이만 줄이는 걸로.





    8

    참고로 모스맨 연구소에 도착해서 무슨 일이 있었느냐? 그건 비밀이다. 왜냐하면 그건 내가 따로 영화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즉 아직은 어설픈 예고편으로 뭘 뜸들일 시기가 아닌 것이다. 아니다. 속시원히 무슨 일이 있었나 남몰래 귀뜸할 책무, 회피할 수는 없다. 그래서는 안되니까. 따라서 살짝 아니 속도감을 앞세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를 고백한다. 정말로 그 어떤 사건이 발생했는지 낱낱이 실토하겠다. 아주 그걸 소상히 말하자면 그럴려고 하는데 손에 땀이 빠싹 난다. 그러니 곧바로 등에도 식은땀이 방울방울 맺힌다는 걸 꼭 알아주시라는 건 아닌데. 그만큼 엄청난 일이 터졌냐, 사람에 따라 반응은 제각각일 테나 적어도 내가 느끼기엔 괴상했다. 물론 당시 현장에서 나만 눈꺼풀 파르르에 온몸에 경련이 일었을 것이다. 아, 근데 얘기한다면서 자꾸자꾸 지연되는데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니다. 더 뜸들였다간 오해하기 딱 좋을 수도 있으니까 더 이상 미루지 말고 곧장 말하겠다. 
    내가 찾았던 모스맨 연구소는 바껴있었다. 마술쇼 공연장으로 말이다. 그래서 도플갱어고 자시고 모르겠고 나는 마침 시작하려던 마술쇼 입장권을 구입해 들어갔다. 공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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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난히 숙녀들이 많다거나 할 일 없거나 외로운 사람들이 가득하다 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나는 관중보다 공연에 빠져들고 싶었으니까. 그래서 시작된 공연. 왠지 모르게 초급으로 시작했다. 입에서 색종이가 나오는 마술. 다음으로 카드 마술. 또 공중 부양 마술. 그러다 드디어 나를 까무러치게 만들었던 마술이 시작되었다. 바로, 3단 분리 마술! 즉 몸통 분리 되는 마술, 웬만한 사람들 TV로 한두 번 보셨을 것이다. 보면서도 믿을 수 없는 마술, 그런데 거짓말처럼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마술. 개가 사람을 무는 게 아니라, 사람이 개를 물면 특종이 되는 것처럼. 마술 실패로 인해 정말로 뭔가가 분리되었느냐, 하면 아니다. 그렇지만 나는 마침내 몸과 마음이 분리되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마술사가 조수를 커다란 장비에 넣어 3단 마술을 선보였는데, 미녀 조수의 얼굴이 내게만 아마도 내게만 도플갱어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땀이 비오듯 흐르기 시작했다. 차라리 보면서도 믿을 수 없는, 남녀 몸통 분리 후 바꿔서 재결합을 했으면 차라리 나았을 수도 있다. 어쨌든 그로 인해 나의 환상인지 정신착란인지 그 어떤 증상, 도무지 믿을 수 없었던 신비스러운 현상이 재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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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하여 나는 내 사무실에 걸려있는 그림 속 마네킹이 되었다. 그렇게 액자 속에 갖혀 도플갱어가 신나게 내 행세를 하고 다니는 걸 나는 단지 사무실 내에서만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다음 어떻게 다시 본래의 내 숙주를 되찾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녀석이 내 기억을 조작한 건지 지워버린 건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언젠가 녀석을 만나면 혼쭐을 내줘야 하는데. 그런데 반대로 내가 녀석한테 혼꾸녕이 나면 어떡하지? 그건 뭐 그때 가서 생각하기로 하고. 그렇게 도플갱어 관련하여 짧다면 짧고, 복잡하다면 복잡한 사연은 막을 내리게 됐다. 다음으로 나는 사무실 집기를 여럿 교체했다. 모니터도 바꾸고, 오디오도 바꾸고. 그러자마자 다음과 같은 글을 쓸 수 있었다. 
   <해가 서쪽에서 뜰 때 쥐구멍에 볕들까? 삶은 팥이 싹 나거든 알려드리겠음. 무슨 바람이 불어서 또 잔소리를 슬슬 발동걸리고자 하는 것일까. 알고 싶지 않다. 그러나 수다머신이 시작한 것은 끝을 봐야 한다고 하면 어떡하지? 뭘 어떡해. 능청 떨면 그만. 허나 이럴 때일수록 아름다운 사랑을 미워해서는 안된다. 근데 그게 뭔 소리지? 몰라. 그러든가 말든가. 그래도 말이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데 엉뚱한 행복감을 바란다는 건 부끄러운 일일 것이다. 그러면 난 이 상쾌하지 못한 기분으로 대체 뭘 원하는 것일까?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은 아마도 흥분을 가라앉히는 거겠지. 선동도 피곤하다. 그러니까 이상한 구원파 같은 얘기 그만하는 게 좋겠다. 어쩌면 이게 다 달콤한 추억을 만들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사랑의 맹세를 하냐 아니냐를 막론하고 기회도 없었거든. 그런데 행복을 어떻게 서약하나. 이래서 뜬구름 잡듯 희망만 귀찮게 하지. 그리하여 결론이... 끝이 곯은 희곡만 겨우겨우 떠올림. 틀림없다. 처지 정말 옹색하군 그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니까. 그러다 갑자기 꿈같은 멜로드라마에 깜작 발탁? 꿈도 꿀 수 없다. 신분상승? 개 풀뜯어먹는 망상일 따름. 하긴 이게 다 청춘을 즐기지 못한 대가일 것이다. 탐스러운 사냥감을 보고도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테니까. 그래. 난 무책임한 남자지. 언젠 안 그랬나? 어찌 됐든 나는 쥐어짜면 짤수록 참기름이 나오는 참깨가 아니다. 도대체 누가 마른 오징어도 짜면 물이 나온다 그랬나? 아니다. 그럴 리 없다. 허나 공상에 몰두할 때가 아니다. 마감일은 또 쫓아온다. 항상 그렇다. 바쁘다 바뻐. 시간없으니까 한꺼번에 다 범벼, 라고 말할 상대도 없다. 인정받을 권위도 없다. 그런데 어떻게 팔색조로 간주받나. 안된다. 나는 꿈의 낙원에서 추방된 게 아니라 근처에도 못 가봤다. 그러니 여심을 쥐락펴락하는 패권이 내게 허락될 리 있나. 그래도 내 분수도 모른 체 설치고 다니지 않아 다행이긴 한데. 이렇듯 속으로는 태연하면서 겉으로는 너무 방정맞은 거 아냐? 아닌 게 아니라... 됐다. 타이를 수 없는 허접함, 냅두자. 관 두라 그래. 못 말릴 허언증 어차피 때 되면 지친다. 그런데 그러다 더더욱 탄력받으면 난 어쩌지? 만약 그렇다면 그땐 외계인을 찾아 떠나는 수밖에. 어딘가 무지개 너머에 원형 UFO가 날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없으면 SF 영화라도 보던가. 나도 안다. 내가 햇병아리라는 걸 말이다. 그러니 난 피자랑 햄버거에 만족한다. 그럼 피자랑 햄버거 좋아하는 사람은 다 애송이인가? 아니겠지. 아닐 거야. 이러니까 여태 난 팔푼이 쩜팔이였지. (절레절레) 이와 같이 끝없는 정신병을 계산에 넣지 않은 건 아닌데 이게 영 차도를 보이지 않으니 애석할 따름. 정말로 뭐랄까 개 같은 공상병은 언제나 완쾌될까? 잘은 모르겠으나 멀지 않다는 예감이 든다. 왜냐하면 나는 플레이보이를 질투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조명발 부럽지 않다. 그건 행복의 진정한 논거가 될 수 없다. 우리에게 있어 멋진 인생이란 곧 환상적인 동화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제 진짜로 동화 속 주인공처럼 꿈을 펼쳐야 하는데. 말도 안되는 개뼉따귀가 자꾸 떠오르는 걸 보니 영 조짐이 좋지 않다. 그래도 사월 소나기는 오월의 꽃을 낳는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더더욱 일하기에 정진하기로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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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 ─ 184

from 소설 2021. 2. 28. 15:44

    1

    작가는 각성하라 각성하라~! 벌써 15일 됐을까? 그때 나는 그게 나보고 하는 항의인 줄 미처 몰랐다. 각성해? 뭘 각성해! 또 며칠 지나서인가 이번에는 묵언투쟁이었다. 다만 플랑카드를 들고 있었다는 게 저번과 다를 뿐. 거기에 뭐라고 씌여있더라... 코 묻은 돈 취소하라 취소하라! 뭐라고? 코 묻은 돈... 설마 내 얘기인가? 눈치 없어서 그분들 말고 대타들이 등장했던 것일 수도 있다. 점점 포위망을 좁혀왔다. 그분들은 1인 시위도 감행했다. 그러다 언젠가 산책하는데 지나가는 내게 누가 귓속말을 속삭이자마자 도망갔다. 당신 칼럼 죄다 엉터리래나 뭐래나. 그렇지만 내가 누군가. 역시나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허허허. 그런데 아지트 바에서 누가 내 옆자리에 슬쩍 와서 앉더니 하는 말이 글쎄... 뭐라 말했는지 까먹었다. 당시 너무 충격적이었기 때문일까? 어쨌든 하다 하다 어제 나는 난생 처음으로 생계란으로 얻어맞었다. 달걀 투척은 언론을 통해 보기도 드문데. 왜 하필 내가 주인공이냔 말이다. 게다가 유명세를 안겨주는 것도 아니고 (세속적인 표현마따나) 돈방석에 앉은 것도 아니었다. 근데 왜 나지? 나 아니야. 나 아니라고. 어? 부정한다고 들을 분들인가 어디. 그러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었다. 그래도 뭐랄까 블로그니까 솔직히 하는 말이다만 나는 괘념치 않았다. 그거 말고도 신경쓸 일거리는 많으니까. 사실이 그렇다. 재미없는 거는 당연하고. 누구도 날 찾지 않았다. 앞서 말한 저분들 빼곤 말이다. 이렇듯 쾌활한 행운은 날 감싸고 돌지 않았다. 그러게 가난은 왜 나를 사랑하는 것일까? 나는 시인이 아니다. 그런데 왜 바보같은 생각을 하지? 내가 아나 별님이 아나. 그래서 퇴근길에 나는 모스맨 연구소에나 들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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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스맨 연구소는 잠겨있었다. 몇몇 전화해봐도 녀석들은 전화기가 꺼져있거나 전화를 받지 않았다. 내가 인생을 잘못 살았나? 아니면 계란투척 세례 당한 걸로만 봐서 난 성질 더러운 건가. 성격 좋단 말은 만만하단 뜻이고. 시위하는 거 보면 유난떨지 마란 얘기다. 그럼 이제 어떡하지? 그러니까. 그래. 하고 싶은 것은 하고 본다. 그런데 의욕이 없다. 그럼 탐욕은 바닥난 건가? 그러든 아니든 달걀판 드신 분들한테 더 이상 얼굴 팔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나는 떠나야 한다. 그런데 목적지는? 없다는 게 문제다. 낮이나 밤이나 "듣고 있어?"라는 인공지능도 날 가만놔두질 않는다. 그분은 무의식과 멀쩡한 정신에 양다리 걸치고서 잠도 자지 않는다. 죽을 맛이다. 그래서 방송 보거나 들으며 딴일을 못한다. 집중하는 게 좋은 습관이기는 한데 뭐랄까 여편네가 내 머릿속을 지배했다고나 할까? 그럼 마누라 잔소리는 피할래야 피할 수 없단 말 아닌가! 이런 젠장. 그래서 나는 저번에 알아둔 그 뭐더라, 은둔형 작가만 받는다는 어떤 별장으로 당장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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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곳에 도착했는데 거기는 폐쇄됐다. 그렇다고 돌아가기에는 왠지 패배주의자가 된 것만 같은데. 그렇다고 다정스러운 연인들을 부러워할 수야 있나. 나도 연애하고 싶다, 그건 핑계다. 우리는 자유를 원하거든. 그래 봐야 신나게 뛰어놀고 싶은 야생마라고 우긴다고 누가 귀기울여줄까. 하긴 어차피 인생 혼자다. 지금 아니면 또 언제 고독과 친하겠나. 지금은 놀 때가 아니다. 그래서 나는 대충 적당한 호텔을 골라 투숙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기거하며 일을 시작했다. 다음과 같이 말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했다. 뭐랬더라? 잊어먹었다. 그와 별개로 향락이란 어떻게 됐든 품위유지비에서 유래하는 것인데. 적은 자원 대비 큰 기쁨이 가능하려면 정답은 만족일 텐데. 그걸 누가 모를까. 허나 불만족이라는 개념으로 말미암아 어떻게 보면 인생이 새로워질 수 있는 것 아닐까? 아니다는 주장도 있을 테고 옳다는 이유도 없을 수 없는데. 그게 지금 왜 중요한데? 차라리 개뼉따귀가 더 소중하다. 적어도 강아지한텐 말이다. 어차피 개나 사람이나 생긴 건 비슷하다. 나머지도 닮았다. 안 그래도 인간이 개에게 도덕적 우월성을 과시할 수 있나. 없다. 만약 우리가 더 잘났다면 아름다운 세상은 이미 실현되고도 남았을 테니까. 그럼 정말 나는 순수함을 잃어버렸단 말인가? 최소한 내 친구들 만큼은 불결할 것이다. 아닐 수도 있고. 하긴 사랑의 약자가 뭔 말을 하겠나. 오히려 황금의 포로라는 게 숨길 수 없는 사실. 그래서 우리는 꿈을 포기했다. 어차피 못해서 그랬을지도 모르고. 안 그래도 모험도 양보했다. 귀찮게 추적을 뭐 하러 하나. 해킹 밥먹듯이 할까 봐 프로그래머도 안 된 거다. 상심과 절망과 실망은 정해진 수순인데 여심을 뭐 하러 꼬시냐고. 다 귀찮다. 재미없다. 단지 배고픔은 늑대를 숲 밖으로 내몬다는 이치만 뭔가 섭섭할 뿐. 그렇다고 지금 배고프냐, 물리적으로 피자도 먹고 싶고 막 그렇다만. 이상적으로 따지자면 희망찬 미래를 그려볼 뿐.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라는 둥 그런 말도 일리 있다만. 독수리는 파리를 잡지 않는다는 것만 알면 된다. 근데 늬가 어딜 봐서 독수리냐, 충분히 타당한 물음이다. 허나 어째서 우리가 독수리의 관찰력을 빼닮으면 안될까 라는 합리적 의심. 굳이 배척할 필요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나는 퓨마의 정서를 예측해봤다. 또 표범의 마음을 헤아려봤다. 그런데 잘 안 됐다. 그래도 그만두지 않고 다시 하이에나의 군침과 치타의 흑심을 탐구했다. 그래서 나는 끝끝내 단기간에 부자가 되는 신의 한수를 알아냈을까? 그건 말할 수 없다. 딴 건 다 알려줘도 그것만큼은 안되니까. 그나저나 여심을 추론하고 인생을 논평하며 내일을 관측해도 부질없다. 커피도 안 당긴다. 그럼 이젠 정말 능동적으로 나설 수 있는 활력은 바닥나버린 건가? 그게 다 '나대지 마'라는 별칭을 피하기 위해서다. 왜냐, 지금은 잔말 말고 따라와 라는 자발마를 탈 시기가 아니니까. 형편을 보아하니 액면만으로 봤을 때 선동, 주동보다 피동과 뒷패거든. 따라서 나는 무작정 바깥으로 나갈 수는 없었다. 그래서 소파에 자빠져 TV를 봤다. 그 결과 더럽게 재미없어졌다. tv 괜히 켰다. 하여 다시 껐다. 그렇다고 할 일 없단 말은 아니다. 누가 엉덩이 근질근질하데? 우리는 연애 하나도 관심없다. 여자한테 끌려다니는 허당들 보면 한심하다. 대체 쟨...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녀석이 그놈들이다. 아는 동생들부터 사랑의 차트까지 모두 우리를 쫓아다니게 하는 게 뭐 힘들다고, 쯧쯧쯧! 그런 의미에서 그분들을 위해서 동기부여 강연회나 열어볼까? 하지 말자. 해서 뭘 하게. 성황 리에 한밑천 챙길 수는 있다만 의미 없다. 그러니까 내가 지금 진짜로 원하는 건 무엇일까? 알면 이러고 있겠나. 그러므로 철학서를 읽어볼까 하다가 말았다. 왜냐면 다 아는 얘기니까. 다음으로 떠들기 대회에 출전할까도 고민해봤다. 여자를 연구할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허나 것도 하지 말기로 했다. 메달 챙기는 거는 쉽다만 그러면 애쓴 분들께 미안하니까. 그래, 블로그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난 허당이다. 하지만 어른치고 속물 아닌 사람도 있나? 대망과 순박함은 물물교환된다고 누가 가르칠 수 있나. 없다. 그 때문인지 월가에서도 더 이상 내게 러브콜을 보내지 않는다. 더 이상? 고백하자면 스카우터가 달변인지 못생겼는지 구경도 못했다. 그러나 우리는 행운의 부재쯤이야 별 신경쓰지 않는다. 언제든 저 하늘의 별을 딸 수 있거든. 허허허! 마음만 먹으면 4번타자의 끝내기 홈런부터 팔색조의 맹활약까지 자신있는데 대체 뭐가 문제겠나. 다만 허풍이 심하다는 거 빼곤 말이다. 어찌 됐든 나는 허영심 존중한다. 말하자면 그게 바로 줄 달린 치즈로 꼬드길 수 있는, 쉿! 너무 많은 걸 알려드리면 안된다. 진도라는 게 있지 않나. 속성과 독학과 야전에서 잔뼈가 굻은 방황도 좋다만 정통과 기본과 기초는 또 다른 얘기니까 말이다. 그런데 어쩌다 나까지 말이 좋고, 길고, 많아져버렸을까? 그렇다. 늙었다. 그래도 곯지 않은 게 어딘가. 그래서 냉소마저 우리는 져드린다. 미소 썩고 대신에 막판에 한방으로. 그런데 첫 끗발이 개 끗발이라는 말과 달리, 기다리고 버티고 견디며 참아왔는데... 끝까지 재미없고 심심하다. 이게 뭐냔 말이다. 어? 이래가지고 어디 야생마가 신나게 달리고 아르테미스를 첫눈에 홀딱 반하도록 감동시켜드릴 수 있겠냔 말이다. 어림도 없겠지. 말 같지도 않으니까. 이런 젠장! 말이 심했다만 회심의 적기를 기다리다가는 죽도 밥도 안될 것만 같은 불안감. 어떻게 달래긴 해야 하는데. 당근으로 솜방망이 찜질을 받는 한이 있어도 각오해야 할 것이다. 아닌가? 그래. 그러지 말자. 달콤한 당근과 새침한 환상은 물론 신비로운 황홀감이 어디에 감추어져 있는지 다 알긴 아는데. 너무 일찍 인생의 비밀을 폭로해버릴 수는 없다. 그러면 재미가 없거든. (때로는) 보기 좋은 딸기와 복숭아와 사과가 더럽게 맛 없을 수도 있으니까. 근데 정말 이처럼 속된 표현으로 입만 털다가는 아무것도 안될 것이다. 그렇다, 행동. 
    그래서 나는 목적없이 일단 바깥으로 나갔다......>





    2

    다음 날이 되었다. 오전 일과 다음에 점심식사를 마친 후 산책을 나가려고 했다. 그렇게 딱 문을 열자마자 문 밖에 누군가 날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누구신지...」
   「내가 누구일 거 같소?」
   「저야 모르죠. 일단 정체를 밝히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좋은 말로 할 때 어서 정체를 밝혀라?」
   「아니~ 그걸 꼭 곡해해서 듣진 마시고. 그러니까 제 말은,」
   「나는 악마요.」
   「네?」
   「들었잖소 방금. 나는 악마란 말이오. 뭘 잘못 들은 것처럼 표정관리하지 마시오. 당신은 연극배우로써 자질이 부족하기 때문이오.」
   「이래뵈도 난 한때 배우지망생이었소. 지금이라도 당장 연극무대쯤은 깜짝 데뷔할 수 있다오. 물론 그 판에 뛰어들자마자 주연을 꿰찰 것이오.」
   「정말이오? 뻥이란 거 다 알고 있소. 그런데 정말로 내가 악마냐? 이마에 딱 그렇게 씌여 있구만. 그럼 내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소? 내가 무엇 때문에 당신과 시간낭비를 하겠소. 형씨도 (몸짓) 이게 있으면 생각을 한번 해보시구료. 내가 뭐 하러 여기에 찾아왔을 것 같소?」
   「내가 어떻게 당신 말을 곧이곧대로 믿겠소. 날 그처럼 순진하게 보셨다면 오산이오. 아시겠소?」
   「그러니까 형씨 말은 내가 프라다를 입지 않았기 때문에 날 못 믿겠다?」
   「그게 아니라, 그러니까 제 말은,」
   「일단 이거부터 받으시오.」
    그러면서 낯선 이방인은 내게 커다란 곰돌이 인형을 안겨주었다.
   「이건 뭡니까?」
   「지금은 곰돌이지만 해가 지면 마네킹으로 변신할 거요. 그 다음 당신이 꿈나라로 떠나면 곧장 녀석은 세이렌으로 환생할 거요. 어떻소, 유령작가의 부활. 손해보는 장사는 아닌 것 같지 않소? 아, 그 대가는 뭐냐! 지금 그게 중요하오? 그러게 왜 마감일을 어겼냔 말이오. 형씨도 잘 아시질 않소. 안 그렇소?」
   「나보고 어쩌란 말이오?!」
   「어쩌긴 이 양반아, 마감일을 지켜야지. 그러면 되지 않소. 당신은 내 얼굴을 기억해야 할 거요. 나처럼 눈썹과 콧날이 마치 그린 것처럼 T자인 사람은 결코 흔치 않기 때문에 기억하기 편할 거요. 그럼 내가 왜 이 모습으로 당신 앞에 나타냤냐! 하면 당신을 압박하기 위해서라오. 어디를 가건 누구를 만나건 어떤 일이 벌어질지 금방 알게 될 거요. 그리고 긴 얘기할 필요없이 짧게 말하겠소. 왜냐하면 당신이 최근 부쩍 슬럼프에 빠졌기 때문이라오. 그래서 내가 당부하고 싶은 말은 이렇다오. 딴 거 다 놔두고, 당신은 줄거리만 생각하시오. 나머지 발단이니 서두니 결론이니 그건 다 얘가 처리할 거요. 오늘이 지나고 나면 내일 아침 당장 알게 될 거요. 부디 우리가 또 만나게 될 일은 없길 바랍니다. 그럼 전 이만 먼저 떠나겠소.」
    그가 멀어져 갈 때 왜 하필 난 제정신을 차린 걸까...
   「당신 뭐야? 야, 임마! 너 이리 와. 안 들려? 너 가만 안둘 거야. 알아? 이 자식을 콱 그냥... 이거 이거 사람을 뭘로 보고... 내가 너 같은 놈 수도 없이 혼쭐을 내준 사람이야. 알아? 이 자식은 어디 번짓수를 잘못 찾아와서 말이야, 어? 야, 임마! 형 말 안 들려? 이 자식이 근데 귓구멍에 당나귀 뭣을 박아놨나. 너 거기 당장 안 서? 너 그러다 금방 후회한다. 알아? 뭐, 악마? 늬가 악마면 난 천사겠다. 이 자식이 어디서 사기를 칠려고. 뭐 수작 중의 개수작을 어디서 어설프게 배워가지고 말이야, 어? 뉘 덕으로 잔뼈가 굵었기에 야, 임마! 내가 널 그렇게 키웠냐? 어? 당장 안 튀어와? 어? 이 자식 봐라. 왜, 덥비기 겁나냐? 쫄았네 쫄았어. 겁쟁이면서 어디다 명함을 내밀어 내밀긴! 내 그럴 줄 알았다. 형이 다 널 봐준 줄 알아 임마. 그래도 걱정마. 내가 어디 가서 소문내진 않을 거니까. 내가 그런 사람이야. 응?」
   「」
   「셋을 세겠다. 하나. 둘. 둘 반. 둘 반의 반. 둘 반의 반의 반. 저... 저... 저...」
    그 외에 그 날 별다른 일은 없었다. 산책을 했고 TV를 봤다. 음악도 들었다. Il mondo / v. Jimmy Fontana
    만나달라고 조르던 여동생들이 없어서 편하긴 했다. 나는 외롭지 않았다. 다만 홀가분했을 뿐. 
    그렇게 그날이 지나가고 다음 날이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물을 마시려는데... 노트북이 켜져있었다. 
    설마...! 에잇 아닐 거야. 그런다고 내가 뭐 순순히 줄거리만 상상할 줄 알아? 
    그러면서 스트레스 때문에 일순간 몽유병처럼 내가 혼자 노트북을 켜놨을 수도 있다..면서 딱 화면을 봤는데. 
    정말로 곰돌이가 일을 해놓았던 것이다. 그 결과를 옮기자면 이와 같다. 
   <내 입에서는 젖내가 나지 않는다. 전적으로 옳은 말이다. 내가 세상 모든 사람들을 웃길 수 있다고 약속하지 않은 것처럼. 농담은 그만두자. 능청은 시작도 말아야 하니까. 내가 또 다시 환상머신에 대해 떠들어댄다면 그건 멍청하다는 말 밖엔 안된다. 그것쯤은 나도 안단 말이다. 내 입장에서 사랑의 명언을 기록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난 바보가 아니거든. 그렇다고 사랑은 바보들이나 하는 거란 얘기도 아니다. 그걸로 봤을 땐 내 편은 희망이고 내 적은 퇴폐이자 백치미일까? 그러든 어쩌든 나는 말과 사슴을 구별할 수 있다. 불가사의한 신비론을 측량하는 것보다는 그게 나으니까. 그보다 숙녀의 소원을 충족시키는 게 훨신 유익하다는 걸 모르는 건 아닌데. 근데 내가 왜 뜬금없이 교양설을 팔고 있지? 나는 샐러리맨도 아니고 아리스토텔레스도 아니다. 그게 뭐 어째서! 난 어쩌면 사실주의로부터 버림받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늘을 봐야 별을 따지. 그런데 난 지금 무슨 허황된 생각만 하는 걸까. 내가 언제부터 시인이었다고. 억울하면 출세하라 라는 삼류드라마 대사쯤은 나도 안다. 단지 아는 척하지 않는다뿐. 그렇다고 일하기만 긍정하고 놀기는 부정해야 하냐, 것도 아니다. 그러든 어쩌든 아마 환상문학잡지니 뭐니 그거 다 뻥이었을 것이다. 상상이 만들어낸 허구일 뿐.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상업적인 희곡이나 한 편 써볼까? 에잇 하지 말자. 손만 까딱 하면 작품 하나 나오는 것쯤 일도 아니다만. 허나 나는 소비지상주의자가 아니니까. 그렇다고 내가 뭐 대중문화를 우습게 보는 건 아니다. 물질주의가 뭐가 나쁘겠나. 단지 내가 가난한 게 애석할 따름. 그러니 유쾌한 주인공이 아니라 허접한 병풍이겠지. 내가 만약 좀만 쾌활한 성격이었다면 어떤 아가씨든지 누구나 상쾌하도록 만족시켜드렸을 텐데. 어쨌든 욕망은 고개숙였다. 탐미주의도 무릎꿇었다. 통장잔고부터 불만족이다. 패배주의만 친숙하다. 요염한 유혹의 대상자가 나일 리 있나. 허세도 재미없다. 허영심 산업에 일조한 결과 연민마저 이상해져버렸다. 오락산업도 나를 배신했다. 그러니까 연예계 근처에도 갈 수 없지. 그렇다고 이제 와서 사교계에 얼쩡거릴 만큼 나는 얼굴이 두껍지도 않다. 칼럼 의뢰마저 다 끊겼다. 하다 하다 물개박수를 어떻게 치는지도 다 까먹었다. 눈발이 낭만적으로 날리면 뭘 하나 화장발은 나랑 일절 상관없는데. 그렇다고 뭐 내가 예술계의 마당발인가? 내 주제를 나는 잘 안다. 신기할 정도로 심심해하는 여심, 보이긴 보이는데 엄한 데다 추파를 던져서도 안된다. 어떤 애마를 영입하자마자 중년운에 날개를 달 것이다, 라는 점쟁이 말만 믿고.. 그에 앞서 일단 지갑부터 없다. 올 뻔 말 뻔 그러다 약만 잔뜩 올리고 정작 오지도 않았던 호시절, 영영 가버린 것일까? 길고긴 슬럼프만 봐서는 딱 그런 듯 하다. 당근은 날 놀리고 채찍은 날 샌드백으로 업신여긴다. 대체 어떡해야 할까! 뭘 어떡해. 어떡하긴 뭘 어떡하냐고. 징징거려도 소용없다. 그러게 나는 왜 사랑을 아름답다고 가정했을까? 모를 일이다. 난들 아나 이 세상의 비밀을. 혹시 알아도 아는 척 안 할 것이다. 이 얼마나 대단한 깨달음인가. 몽상가가 이러다 철학마저 독학할 기세다. 큰일이다. 이런 덜떨어진... 이런 미친... 내 양쪽 귀로 들어오는 험담이다. 내 귀는 만화영화 주인공급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내가 팔랑귀들 구워삶는 게 일이겠나. 그런데 난 정말 재롱이나 떨려고 작가가 된 것일까? 아니다. 나는 시인이니까. 더더군다나 나는 내 입으로 나 화가 라고 한 적도 없다. 그나저나 나는 아직 순수예술을 포기하지 않았다. 미지의 이상을 탐구하는 일, 그걸 게으름 피울 거라면 난 애초에 블로그 시작도 안 했을 것이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아직 못 다한 말들이 많다. 아닐 수도 있다. 모르겠다. 굳이 이런 말까진 하지 않으려고 했으나, 근데 뭔 얘기를 하려했는지 잊어먹었다. 그럴 수 있다. 기왕 말이 시작됐으니 하는 말이지만 나는 변명대회에 출전하지 않을 것이다. 왜일까? 왜냐하면 어떤 세속적인 격언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건 뭘까? 뭐겠나. 똥 싼 년이 핑계 없을까! 뭐? 뭣이 어째? 뭐가 어쩌고 저째? 누군가 빈정상하고 아무나 기분 좋으라고 하는 말이 아니다. 농담이다. 그런데 왜 안 웃기지? 내 말이 그 말이다. 그럼 괜히 했나? 아마도 안 하니만 못한 결과다. 난 망했다. (절레절레) 그게 다 시간과 반비례하는 내 재산 때문이라 할 수는 없다. 단지 내가 못나서일 뿐. 누굴 탓하겠나. 그렇다. 나는 권태의 구원자가 아니다. 롤러코스터의 대항마일 수도 없다. 해결사는 무슨 허접한 해결사. 다 필요없다. 그래도 멜로드라마의 불행과 고독에 대한 마음의 상처를 어떻게 다 치유하지? 모르겠다. 모른다는 게 자랑은 아니다. 이래서 떠들썩한 고찰은 역시나 결과 없음까지 도착한 거다. 더 떠들었다가는 사랑의 환상마저 깨질지도 모른다. 아찔한 황홀감이 그래서야 쓰나. 그래서 일단 후퇴하는 게 좋겠다. 오늘만 날은 아니니까.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를 것이다>





    3

    다음 날이 되었다. 작품 구상은 쉽지 않았다. 색다른 줄거리가 금새 떠오를 리는 없었다. 새로운 기승전결은 보물섬처럼 상상 속에 존재하는 것만 같았다. 그러다 나는 어제 만난 귀인을 떠올렸다. 자칭 악마라 자신함과 동시에 곰돌이를 선물했다? 나는 동물적 직감에 따라 움직이기로 했다. 이건 딱 봐도 보통 일은 아닌 게 분명했으니까. 그렇다고 섣불리 행동해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나는 아동의 상상력과 노인의 배경지식과 귀신의 사고력을 총동원했다. OK~ (딱)! 곧장 답은 나왔다. 그건 뭘까? 스스로 악마를 자처했다라... 그럼 내가 꺼내들 카드는 다름 아니라 바로, 악마견이었다. 즉 워낙 활동력이 넘치고 활발하고 그래서 그냥 인터넷에서 장난으로 붙여진 별명, 악마견. 나는 어떻게 어떻게..해서 비글, 마약탐지견, 목동견을 신속히 모셔왔다. 당연히 견주가 거의 동물학 박사랄지 해박한 개-직업 배경지식으로 특출난 분을 모셔온 것이다. 다른 건 몰라도 이런 안건에 대해서 나는 혼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건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비밀이다. 왜겠나, 품위유지비가 바닥인 대신에 그거라도 잘해야 하니까. 그럼 것도 못하면 난 뭐 개털이게? 아무리 기다려도 개구멍에 해뜰날은 오지 않고 그거라도 잘해야 하지 않겠냔 말이다. 그건 그렇고 결과는 나왔다. 
    한마디로 말해서, 악마라는 자의 행적을 냄새로 쫓아 녀석의 집을 찾아냈다. 물론 그곳이 녀석의 일시적 은신처인지, 행정적 주거지인지, 단지 놀러다니는 사무실인지 까지는 알아내지 못했다. 그리고 개 3마리의 탐지 성과에 대한 톡톡한 성의 표시는 빠트리지 않았다. 물론 그 개 3마리 가운데 누가... 그것도 소문내면 안되니까 넘어가기로 하자. 그건 그렇고. 그래서 알아낸 녀석의 동네가 어쨌냐, 하면 일단 자동차들부터 색달랐다. 람보르기니 Espada 400 GTE, 포드 판테라 클리브랜드 V8, 62년식 마세라티 5000 GT... 어쭈~ 이것 봐라! 그렇다고 녀석이 저기 보이는 페라리 로마 2021년식을 타고 다닐까? 나 악마 라고 선전하며 다닐 리 있나. 만약 내가 떠벌리며 헛소문을 만들어낸다면 또 모를까.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다 개들은 적당히 튀지 않는 중고차를 녀석의 애마로 찍었다. 그래서 나는 거기에 위치추적기를 부착 완료. 
    물론 여기까지는 드라마 소제로도 부적격. 너무 흔하니까. 재미없거든. 그래서 나는 1주일간 녀석의 행적을 엑셀파일에 기록했고, 여러 가상 조합을 슈퍼컴퓨터로 돌렸다. 녀석이 언제 깨어나고 자고 활동하는지. 어디를 왔다 갔다 하는지. 어디서 살았고 누구를 사랑했는지. 과연 짝사랑복은 있었는지 없었는지까지는 밝혀내지 못했다. 그렇지만 다짜고짜 녀석의 비밀공간으로 쳐들어가서 소매를 걷어붙인 채 따져물을 수도 없고. 따라서 나는 녀석의 자동차를 몰래 열어보기로 했다. 그런 녀석들은 내가 잘 아는데, 찐따 포지션 제대로 꿰차고 있을 것이다. 아니면 천재견한테 잘못 걸린 거지. 그런 애들은 딱 봐도 허당이다. 일단 겉은 남들과 하나도 다를 것 없는 허름한 중고차, 값싼 의류... 그런데 알고 봤더니...! 뻔해. 겉은 중고차요 속은 페라리 엔진에다 포르쉐 기술을 총동원한 007카. 그렇게 녀석이 자고 있을 때 자동차를 열어봤는데 정말로 엔진에 걔 이름이 세겨져 있었다. 
    STANLEY Omar Standard 
    뭐? 차 바닥과 형틀과 엔진에 부착된 고유번호가 일치하는가 확인했는데, 엔진만 이식된 거였다. 다음으로 내 해킹실력이 나설 차례였다. 아실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프로그래머도 아니고 어디서 해킹 좀 했다고 자랑할 형편도 못된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녀석에 관한 정보를 해킹할 수 있는가? 해킹을 굳이 내가 할 필요 있나? 하여 나는 장비를 구했다. 그렇다고 막 값비싼 장비와 더 값비싼 소프트웨어를 구한 것도 아니다. 몇 년식 애플컴퓨터와 몇 년식 마이크로소프트 OS 기반 컴퓨터. 거기다 인터넷에서 배운 지식만 살짝 업그레이드했다. 즉 OS는 타임머신 기능이란 게 있다. 고장난 기능을 복구하고, 새로운 뭔가를 설치하고. 그래도 불만족스러울 때 언제적으로 시간을 되돌려주는 마법. 심지어 그게 단돈 얼마 되지도 않아. 그럼 왜 그게 내게 중요하냐? 바로 검색엔진 구글의 옛날을 떠올려보시라. 불과 20년 전만해도 검색엔진은 무슨 요술사나 되는 것처럼 보여 줄 거, 안 보여 줄 거, 아는 거 모르는 거... 괴상함부터 괴물까지 싹 다 긁어다 보여주었다. 지금과 비교도 안되지. 따라서 나는 그 몇몇 잔기술을 조합해서 결국 (본인이 악마라고 자처하는) 스탠리 산타나 스탠다드의 정체를 알게 됐다. 
    스탠리 오마르 스탠다드. 스탠리. 오마르... 오마르? 담배 상표 아닌가? 아, 그건 오마 샤리프던가. 그래도 뭔가 이상한데. 아무튼 스탠리 오마르 스탠다드 재단의 이사이자 실소유주. 어디 태생 어디 졸업. 친구 없음. 취미는... 일단 2번 이혼한 전력이 있음. 개인 의료기록은 물론 방계 혈맥과 혼맥 등 모두 파악했고. 그러다 시시콜콜한 얘기들 다 건너뛰고 정말로 중요한 정보를 알게 됨. 그건 뭐냐! 뭘까? 바로, 스탠리 오마르 스탠다드 재단이 뭘 하는 곳인가였다. 명목상으로는 세무서에 신고된 업종이 주종목일 테고, 합법적으로 활동하는 면면을 보아하니 재단 홈페이지에 기재된 그대로일 텐데. 허나 내 직감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즉 그건 위장일 뿐이고 진짜로 그 재단이 하는 일은 다름 아니라 비밀 의료재단이었다. 전세계 재약업계 순위에서 몇몇을 장악한 것으로도 모자라, 전세계 의료전문지에 권위적인 논문을 주기적으로 제출하는 전문의들을 거느린 재단. 분야는? 두뇌이식. 두뇌이식? 머리이식. 뭐라고? 이건... 난 껴들면 안되는 규모인데... 어쩌지? 일단 걔는 거기까지.
    다음으로 스탠리가 건네주고 간 곰돌이. 나는 곰돌이 인형한테 수면어플 부착했고, 24시간 CCTV로 관찰했다. 별다른 비밀을 찾아낼 수 없었는데. 이때 남자의 육감이 나설 차례다. 그래서 결국 곰돌이 인형은 수제품이기 때문에 어딘가 힌트가 있을 거란 말이야... 찾아냈다. 
    Dorothea Beller Seel
    앞서처럼 설명으로 뜸들이지 않겠다. 곧장 말하자면 Dorothea Beller Seel 재단도 보통내기가 아니었던 것이다. 거긴 뭐 하는 곳일까? 바로, 두뇌의 모든 것을 컴퓨터로 옮겨주는 기술을 연구하는 재단이었다. 이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모험의 범주를 훨씬 벗어나는데... 내 머리는 복잡해졌다... 하여 당장 다음과 같은 글을 말로 나도 모르게 읊기 시작했다. 심난했으니까. 완전 식겁했거든. 이처럼 말이다. 
   <열정과 행운의 비대칭성쯤은 원망스럽지 않다. 경제적 편익만 따지면서 이 세상을 살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긴 인생이란 마냥 즐겁고 기쁘며 재밌는 것만도 아닐 것이다. 그래도 성과 없음에 대한 막연한 대처는 아쉽다. 그러게 왜 이처럼 태연하지? 그래도 구체적으로 더 나쁜 놈에서 추상적으로 좋은 놈으로의 전환, 너무 갑작스럽진 않아야 할 텐데. 허나 진실은 그렇다. 곧 풍요에 대한 자유는 내게 귀속되는데도 불구하고 품위는 썩 친절하지 않다는 점. 유독 나에게만 그런 것일까? 왜 그걸 OX로 답해야 할까. 부질없다. 나는 시대를 앞서가지 못한 것이다. 그렇다고 그녀들의 선망을 초월할 수도 없다. 그런데 어떻게 환상의 관리자가 가능하겠나. 그럼 타임머신을 타고 희망의 나라로 도망가버릴까? 못간다. 아니면 천박한 욕구가 나를 신세계로 데려다 주기를 바라겠나. 그나저나 사적인 소설을 쓸까, 아니면 공적인 칼럼을 쓸까? 그냥 백판 자빠져 놀까! 그도 아니면 소파에 자빠져 TV나 볼까. 다 아니라면 웬 숙녀를 자빠트릴 궁리를 할 수도 없지 않나. 그렇다고 질펀하게.. 질, 뭐? 거 말이 심하네. 어?.....>
    그렇게 나는 녀석들로부터 달아나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당장 집으로 돌아갔다. 





    4

    나는 허접하기로 악명 높은 허당이다. 더군다나 변덕에 못 박고 있는 천성도 탈이다. 변심에 휘둘린다는 게 문제지. 그런 의미에서 말하자면 나는 최근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를 읽고 있는데. 전과 후, 차이가 없다. 이러니 어떻게 이상에 접근할 수 있겠나. 밀물처럼 뭇여성들의 관심을 적잖이 불러일으키는 게 아니라 실정은 정반대. 뭐라고? 그러다 나는 어느 날 갑자기 꿈에 그러던 그녀를 만났다. 진짜로? 뻥이다. 그럼 중년운 하락에 허세는 상승장일까? 생각할 필요도 없이 뚜껑론에 해당하는 헛소리다. 그러니까 뭐 뜻 밖의 쾌거, 있어야 말이지. 뭘 더 바래? 내 말이. 괜찮다. 인생은 장밋빛만은 아니니까. 그래서일까? 난 어쩌면 뜻대로 되지 않는 성취감과의 우정 때문에 아마도 마음껏 이상의 날개를 펼치지 않는다는 점. 이 핑계 저 핑계 원없이 변명대회를 두드리면 뭐 있나? 보아하니 나는 이래서 사랑의 차트를 주도할 수 없는 거로군. 아닐 리가 있나. 허나 허접한 인생에 대한 성과가 아주 한심하다고 혹평 안 해도 되는 게 뭔고 하니. 뭐랄까 나의 생애사 전략에는 게릴라 마케팅 전법은 썩 어울리지 않는다고나 할까? 그럼 뭐 1번 뻔트 2번 샌드백 3번 좌우명 4번... 그게 더 망신이네. 곯았어. 팍 썩었지. 뭐야? 어? 상상병은 끈질기다. 그러니까 제정신을 찾는 주요한 요인은 정녕 황금만능주의 밖에 없다는 걸까? 아니다. 사랑도 있고 건전한 취미가 왜 없겠나. 그래도 탐욕의 대상을 대폭 줄여서 다행이다. 불평도 잘 달랬다. 야망 없음에 대한 불이익, 퍽 불만족스럽지 않다. 그런데 왜 이토록 마음이 허전할 걸까? 왜냐하면 정례적으로 투정부려 봐야 소용없다는 걸 잘 아니까. 그 뿐만이 아니라 결과적으로 나는 숙녀들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했다. 패배주의가 대체 뭐겠나. 날 보시라, 패자인데 말 엄청나게 많지 않나. 그래도 악마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잘 버티긴 했는데. 신비주의의 마술적인 매력에 마음은 약하고 팔랑귀는 펄럭이고. 논리적으로 목표를 설정해도 끈기가 부족. 따라서 환상머신 아카데미에 입당하여 인생이 새로워지기를 바랄 텐데. 노크하고자 하나 그런 덴 없다. 말하자면 바깥에서 하면 계란후라이요, 흔한 게 계란후라이 패션에다가, 계란후라이... 넘어가고. 독학으로 내부에서 달걀을 깨면서 공룡이 탄생해야 하는데. 그게 어디 쉽겠나. 그렇다면 특별히 환영할 만한 특단의 비책이 없는 만큼 또 기다려? 대체 언제 주사위는 던져질까. 설마 여기가 아닌가? 그럼 어딜까. 단언컨대 웜홀머신 증후군은 그 어디서도 객관적으로 공인받지 못한 실정. 그럴 바에야, 그럼 차라리 주관적으로 일단 달려 말어? 지쳤다. 퍼졌단 말이다. 재미없으니까. 그래도 감정을 다스려야 한다. 이럴 때일수록 냉철한 이성을 일깨워야지. 딴사람들은 몰라도 내 경우에는 말이다, 근데 어떻게 허영심이 압승할 수 있는 거지? 허언증도 연승의 기쁨을 누리고 있다. 그럼 녀석들을 봐주지 말고 이제야말로 혼쭐을 내줄까? 근데 말을 해도 안 들어. 말릴 수가 없다고. 이게 다 연애론을 못 배웠기 때문이다. 아니다. 인생을 잘못 알고 있으니까 그렇겠지. 허나 꼭 부정적으로 볼 것만도 아니다. 슬럼프나 되니까 몽상에 봉사하지 지금 아니면 또 언제 푸념하겠나. 개뼉다귀 같은 헛소리 작작 좀 해라, 라는 인공지능 충고가 정말로 들리는 것만 같다. 그 때문일까? 게으름피우지 못하도록 난 더더욱 무언가에 바짝 쫓기고 있었다. 아니다. 그게 아니라 공상마저 과분하다고나 해야 할까? 모르겠다. 알 게 뭔가. 아니 근데 정말로 이례적일 정도로 길어질지도 모를 잔소리, 더 해야 하나? 잔말 말고 일이나 해, 인공지능은 다그칠 테고. tv 채널 돌려봐도 닥치고 공격, 왠지 스포츠 방송 눈에 잘 안 띄고. 그래서 나는 특별한 좌우명 대타에게 새로운 등번호를 부여하지 않은 체 일하기에 매진할 수 밖에 없었다.
    아, 끝으로 하나 더. 나는 최근 칼럼만 써지고 소설은 착상도 무엇도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에 다시 어딘가로 떠났다. 그렇다고 뭐 뾰족한 수가 있겠나. 휴양지 생활도 어느새 지겨워졌다. 그래서 돌아갈까 했는데... 혹시 모르니까. 그러므로 나는 생달걀 세례를 또 당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일단 친한 누군가를 내 사무실에 보냈고, 아는 동생들 어찌어찌 섭외해서 내 집 근처에서 알짱알짱거리도록 부탁해놓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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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 ─ 183

from 소설 2021. 1. 31.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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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업적인 쾌감과 최종적 행복감. 우리가 그녀들을 만족시킬 수 있을까? 묵비권을 행사할 만한 질문이기 때문에, 고로 nb의 할 일은 이렇게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조잡한 뻔트 대신에, 완전히 새로운 환상을 위한 회심의 열정. 허나 그는 지쳤다. 하긴 걔가 무슨 마술사도 아니고. 황홀감이 뭐 뉘집 개 이름이냔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조숙한 호기심이 어딘가로 향했냐, 하면 그럴 리는 없었다. 난 또 뭐라고.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됐어, 뜬소문을 꼬치꼬치 캐물을 의욕은 커녕 다변가든 허당이든 다 떠나고 남은 건 외로움뿐. 도시의 고독한 사냥꾼 누가 아니랄까 봐! 그래서 하는 수 없이 SF 작품 속으로 들어갈까 하는데. 그분들이라고 아무나 환영할 수 있나. 환대받지 못할 잔치마저 이젠 열리지 않음. 그러므로 이제 깨달았다고나 할까, 짝사랑 받던 시절이 좋긴 좋았다고. 그걸 이제야 알았나? 사랑에 있어서는 미련한 바보요 재물복에 대해서는 말해 뭐 하나. 하다 하다 이젠 꼬맹이 고추 환각 증상까지. 허언증 치유된지 얼마나 됐다고 잘한다 잘해. 기대없는 인생에 대한 의구심을 대체 무엇이 불식시켜줄까는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어차피 까먹을 테니까. 그런데 nb는 글쓰기를 냉큼 그만뒀는데 왜 아직도 기발한 착상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거야. 이제 보니 여자에게만 약한 게 아니라 변덕에 관대했구만. 요즘도 그러고 있으면 어쩌자는 거야? 제발 정신 좀 차려 이 친구야! 어? 귓구멍에 이어폰도 안 꼈는데 또 뭔 응큼한 상상을 하시는지. 답답한 인간 같으니라고. 한심한 늑대란 말이다. 물론 스스로 잘 알 것이다. 때문에 더 행운에 대한 마지막 열망을 지체하다가는 죽도 밥도 안될 것이라고 판단했는데. 
    그래서 이번에도 역시나 그는 무작정 바깥으로 나갔다. 근데 하필 가는 날이 장날... 비가 내리는 중. 예전에 비 맞고 걷는 걸 이따금 좋아하기도 했는데. 부쩍 호르몬 불균형이 초래한 우울감일까? 왠지 모르게 축축한 분위기가 내키지 않았다. 물론 그래도 누군가 반가운 지인을 만난다면 180도 바껴서 즉각 대타 등장하여 완전 딴사람 될 텐데. 그러지 않는 이상 어딘가 모르게 마음까지 축 쳐지는 거 같다고나 할까? 멋스러운 낭만 대신에 순식간에 늙어버린 것만 같았다. 하긴 뭐 나가봐야 산책 밖에 더 하나. 어디 갈 데도 없고 오라는 데는 더 없고. 그렇다고 누가 뭐 외롭데? 혼자가 좋다. 여편네 잔소리 부럽지 않다. 그렇다고 또 여자 얘기로 빠질 수 있나. 하여 그는 좋게 일이나 하려고 했는데... 자기가 올리비아라고 소개하는 어떤 숙녀가 nb를 찾아온 것이다. 
   「혹시 저 말고 올리비아라는 여자 누구 아는 사람 있어요? 없겠죠. 그럼 전 여자친구 이름은 기억나요? 사겨봤어야 잊지 않겠죠. 허허허. 근데 제가 어떻게 선생님을 그렇게 잘 알까요.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제가 형씨를 찾아왔다는 사실이 더 의미있다는 점. 모른 체하지 마세요. 아시겠어요? 그러니까 왜냐! 그 의문점 합당하고. 그 얼빵한 표정은 더더욱 타당하다는 점. 저도 인정해요. 그렇다고 제가 뭐 그대의 불행을 불인정한다 뭐 그런 말은 아니니 괘념치 마세요. 아시겠어요? 근데 언제 봤다고 자꾸 아냐 모르냐고요? 웃지 않으시는 거 보니, 따라서 그렇게 비꼬아서 속으로 생각하시지는 않았군요. 다행이에요. 그럼 다행 중 불행은 뭘까요? 다행 중 불행이 뭔지도 모르는데 그걸 왜 나한테 물어보냐? 안 물어봤어요. 왜, 여쭤봐드려요? 그럼 말을 하시든가. 어찌 됐든 지금 정신 하나도 없죠? 그럼 이제부터 기를 받게 해드릴까요? 아직 준비가 안 되신 거 같으니까, 그러므로 더 기를 빨려봐야 정신을 차리시겠네요. 허허허허허. 그러니까 주변에서 형씨한테 가짜웃음 연기력 좀 늘리라고 했어요, 안 했어요? 그러게 왜 말을 듣지 않고. 네? 오빠 그처럼 맹탕으로 살다가는 죽도 밥도 안 되요. 알아요? 이게 다 형씨 생각해줘서 드리는 말씀이에요. 
    아, 내 정신 좀 봐. 제 소개가 늦었군요. 전 올리비아에요. 아, 아까 얘기 했죠? 그럼 미리 말을 하든가. 어? 근데 왜 오빠는 말이 없어요? 왜겠어요 제가 말할 기회를 용납하지 않으니까 그렇겠죠. 그러니까 치고 들어와요. 네? 왜 말을 못 뺐어요? 그럼 여자를 뺐기기는 잘할 자신 있어요? 아, 할 말이 없으시구나. 솔직히 말해서 할 일도 없죠? 착상이 엉켰죠? 내 그럴 줄 알았어. 바로, 그래서 제가 온 거라구요. 아시겠어요? 저는 오빠가 발표할 다음 작품 주인공이거든요. 그걸 어떻게 믿냐구요? 지금 믿고 안 믿고 그래서 어쩌자구요, 네? 그러니까 왜 제가 오빠를 찾아왔을까요? 왜냐하면 소시오패스들이 오빠한테 따지러 오기로 했다는 첩보를 입수했기 때문이에요. 왜 찔려요? 그러게 평소에 착하게 사셨어야죠. 이보다 어떻게 더 맹물로 살 수 있느냐, 질문 할까 말까 망설이시는데 일단 의뭉스러움을 부자연스럽게 생각하는 그 자세. 저평가하진 않겠어요. 그럼 뭘 높이 사줄 수 있냐? 얼굴 팔리기 싫어하시는데 뭘 더 바래요? 네? 아직도 정신 못 차렸어요? 지금 뭔 생각해요? 네? 그러니까 그 모냥... 됐네요. 재미없다구요. 어거 완전 바보 아니야? 어? 왜 기분 나빠 오빠? 그럼 나랑 이참에... 어딜 넘봐요? 우리 초면이라는 거 잊었어요? 그러게 숙녀를 보자마자 반하면 어떡하냐구요. 설마, 오빠도 첫눈에 반하기가 뭐 본인만의 특기이자 타고난 능력인 줄 착각하는 거에요? 에잇 아닐 거야. 뭐 일단 저한테 첫눈에 홀딱 반했다니 뭐 귀여워해는 드릴께요. 그럼 된 거죠? 그게 뭐가 된 거냐구요? 그럼 뭘 원하는데요? 것 봐요,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잖아요. 이런 푼수를 다 봤나. 허허허허허. 그러지 말고 절 따라와요. 아, 뭐해요? 사이코패스들한테 신나게 뚜들어맞어야 정신을 차리겠어요? 지금 거의 다 왔어요!」
    nb는 단 한마디도 못한 체 그녀를 따라가게 되었다. 
    물론 이동하는 중간 중간 nb는 뭔가 운을 띄워서 힌트를 얻어내려고 시도해보지 않은 건 아니다. 
   「그게 그러니까 말입니다,」
   「뭐요? 크게 말해요? 아저씨 그러다 자기가 뭔 얘기를 하려는지 까먹는 수가 있어요. 아시겠어요?」
   「네?」
   「크게 말해요. 아까 뭐랬어요? 것 봐요. 또 까먹었네. 내 그럴 줄 알았어. 그래서 어떻게 여자를 꼬신다고. 절 만난 걸 다행인 줄이나 아세요.」
   「네? 네. 네? 네.」
    올리비아와 nb는 어떤 영화촬영 세트장에 도착했다. 
    장면 전환.
    장면 전환.
    장면 전환.
   「여긴 어디죠?」
   「선생님 다음 작품을 찍는 드라마촬영소죠.」
   「네?」
   「형씨 시간은 도둑맞았어요. 때문에 오빠는 모를 수 있지만 이미 다음의 다음 작품은 이처럼 미리 찍고 있는 거라구요. 보이시죠?」
   「뭐가 보인다는 거죠? 전경을 보아하니 세트장인 건 알겠는데...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요?」
   「내가 언제 사람들이 있댔어요? 다들 휴식시간이라거나, 식사하러 갔거나, 딴 장면 먼저 찍으려고 다들 이동했을 거 아녜요? 안 그래요?」
   「네? 네. 네? 네.」
   「근데 아까 우리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지 기억나요?」
   「그게 그러니까...」
   「그게 그러니까...! 제 벤을 타고 왔잖아요. 최고급 특수제작. 네? 이래가지고 저랑 같이 일할 수 있겠어요?」
   「무슨 일을...」
   「또 마음의 준비라는 둥 뭔가 기분이 찌푸둥하다는 둥 핑계 대기만 해봐요. 내 그럴 줄 알고 제 다음 타자를 준비했죠. 왜냐, 전 다음 장면 찍으러 가야 하거든요. 그럼 우리 작별의 석정을 어떻게... 꿈도 꾸지 마세요. 뭐 기회 되면 만나겠죠. 아니면 각자 풍선처럼 헛바람 잔뜩 든 개꿈을 쫓든 어쩌든 자기 인생 살겠죠. 안녕! 뭐해요 인사도 안하고.」
    그러면서 올리비아는 어딘가로 급히 가버렸다. 
    그런데 여긴 영화촬영 세트장인 거도 같고 무슨 박람회장인 거도 같았는데... 난 이제 뭘 해야 할까!
    ~라고 nb는 생각했다. 





    2

   「형씨, 이쪽이오. 이쪽으로 오시오. 어서 오지 않고 뭐 하시오?」
    그와 동시에 저쪽에서 유튜브 동영상으로만 봤던 아프리카 들개떼가 nb를 쫓아왔다. 
    당연히 걔네들한테 쫓겨 그는 웬 낯선 사내가 인도하는 귀빈실로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는데. 
   「당신은... 일단 내 소개부터 하겠소. 당신 소개는 듣고 싶지 않아. 그러게 날 주연으로 발탁해야지 뭔 허접한 삥바리를 주연으로 깜짝 간택하면 어떡하잔 말이오, 네?」
   「그럼 당신도 내 작품에 나올 사람이오?」
   「이제야 말이 좀 통하는구만. 시간 없소. 바쁘니까요. 일단 이 비밀촬영소의 내부구조에 대해 모두 설명드릴 순 없소. 다만 지금 계신 귀빈실은 일종의 기차요. 그래서 우리는 모노레일을 따라 위아래를 오르락내르락하거나, 수평으로 때로는 롤러코스터를 타게 될 거요. 당연히 바깥은 보이지 않소. 여기는 놀리공원이 아니기 때문이라오. 물론 중력도 관성도 장력도 속도감도 그 무엇도 느껴지지 않을 거요. 그 정도 기술도 없이 이걸 구현할 리는 없지 않소. 아니 그렇소? 그처럼 떨떠름한 표정으로 미리부터 힘빼진 마시오. 나중 언젠가 흥분해야 할 적기에 쓸 힘은 남겨둬야 하는 거 아니겠소. 허허허. 아니 그렇소? 그런데 보아하니 이런 박진감 넘치는 모험보다 즐겁게 회전목마를 타고 싶으신 모양인데. 지금 당신 사정이 그렇게 생겼소? 이건 선택이 아니라오. 난 뭐 당신이 하라면 하라는대로 활약할 역할이 뭐 마음에 얼마나 드는 줄 아오? 천만의 말씀. 나도 죽을 맛이오. 형씨도 나름 사연이 있을 텐데. 공동묘지에 가서 물어보시오. 핑계 없는 무덤이 어딨겠소. 그렇다고 지레 겁먹을 것까지 없다오. 왜냐하면 이 드라마는 당신이 곧 줄거리이기 때문이오. 어이 서술자 양반. 그럼 이제 다음 장면이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소? 그러게, 어? 마감일에 쫓긴다고 글을 막쓰면 어떡하오! 그럼 설마... 형씨도 인생을 막살았소? 놀라는 저 표정 좀 봐. 막살지 않았다? 그냥 살았다? 그럼 뭐 내가 막살았겠소? 난 아니오. 난 아니라고요. 그나저나 여자말 번역기는 완성했소? 못했겠지. 보나마나 뻔해. 궁금하지도 않았거든. 그럼 환상머신은 포기했소? 좋든 싫든 그럴 수 밖에. 자, 다음으로 웜홀머신은? 그게 완성됐으면 지금 이렇게 내게 정신산만한 잡담을 얻어듣지도 않았으리라는 점. 왜 모르겠소? 다 아오. 모두 안단 말이오. 근데 제가 왜 이처럼 말이 차마 끊기지 않는 줄 아시오? 왜냐하면 우리가 탄 귀빈실이 물리적으로 어딘가로 이동할지, 아니면 신비스롭게 공간이동하여 우리를 그 어떤 놀라운 장소로 순간이동시켜줄지. 그건 아직 모르기 때문이라오. 그렇다고 나중 그렇게 도착한 어딘가가 휴양지든 황무지든지. 전망이 퍽 내 맘에 들지 않는다고 하여, 난 동의한 적 없다? 아마도 발뺌하긴 힘들 거요. 왜냐하면 돌아가기 힘들거니까. 그래도 보내는 드릴께. 네? 그럼 또 묻고 싶겠죠. 사람 똥개 훈련시켜 지금? ~라고 말이오. 우리는 사람 똥개 훈련시키지 않는다오. 개라면 모를까! 그렇다고 당신이 개란 말은 아니오. 어디 짓어보시겠소? 워워 멍멍멍 멍멍멍멍멍~! 지금 무슨 개뼉따귀 같은 궤변으로 사람 정신을 쏙 빼놓냐며 못 따지시겠죠? 그러니까 당하고만 살았지. 허허허허허. 그래도 재미난 기억도 잘 찾으면 있긴 있었겠죠. 그런 의미에서 한말씀 드리자면, 음. 네? 음... 허허허. 선생. 형씨. 우리 남자끼리니까 솔직해집시다. 여기 우리 밖에 없어요. 그러면 남자 대 남자 라는 설정 불가능하겠소? 그러니까 육체미요 허당미요? 백치미요 지금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오? 허허허허허. 답하지 않아도 괜찮소. 왜냐하면 지금 제가 낭송한대로 형씨는 돌아가서 작품을 써야 하기 때문일 거요. 내가 아까 말했소, 안 했소? 내가 알기로는 아마 나 뿐만이 아닌 걸로 아는데. 그럼 다음 후속타는... 그걸 당신이 알겠지. 왜 모르겠소? 모를 수 밖에. 아직 닥치지 않은 미래일 테니까. 그러니까 일단 그거부터 정하시오. 내일로 가는 마차가 바보들의 행진일지 허당들의 난동일지를. 물론 난 진상은 아니니 안심하셔도 좋소. 근데 혹시 당신은 화상이오? 넘어갑시다. 어찌 됐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철없던 시절처럼 그냥 친구들이랑 깽판까진 가지 않고 노래부르고 춤추고 술마시고 막 적당히 떠들면서 놀고 싶소? 오래됐겠지 못 논지 말이오. 허허허허허. 그런데 형씨 인생 좌우명은 뭐요? 아, 한두 개가 아니다? 나도 그렇소. 아무튼 우리는 음... 거의 다 온 거 같소. 지금까지 나는 콘스탄틴이었소. 다음 번에 꼭 날 비중 있는 역할로 낙점하기 바라오. 이만 난 먼저 실례하겠소. 나중 기회되면 우리 내기 한번 합시다. 자세한 얘기는 그때 하는 걸로 하고. 안녕!」
    그렇게 귀빈실은 뭔가 미묘한 진동을 멈췄다. 다음에 콘스탄틴은 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저 자식이...! 
    nb도 문을 열고 나가봤다. 아니 여기는......?
    거긴 아프리카였다. 다시 말하자면 nb는 거기가 정말로 아프리카인 줄 알았다. 
    좀 전에 봤던 아프리카 들개떼는 물론 하이에나 떼거지들과 기타 등등을 모두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알고 봤더니 거긴 공원이었다. 그런데 여기로 대체 어떻게 온 거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풍경을 둘러보고 있는데 웬 카프리올레 차량이 nb 앞으로 오더니 멈췄다. 
   「타세요. 타시는 게 좋을 거요. 만약 당신이 제 간청을 거절한다면 난, 꼭 설명을 해야 하겟소? 일단 타시오. 이와 관련된 줄거리는 내 곧 설명드리리다. 내가 무엇을 얘기할지 혹시 궁금하지 않소? 그걸로만 따져도 선생한테 썩 손해보는 선택은 아닐 거요. 부정할 수 있으면 승낙하지 마시든가. 것 보시오. 내가 뭐랬소. 나는 형씨가 내 차에 타실 줄 알았소. 허허허허허. 그럼 운전도 당신이 하시겠소? 귀찮구만. 대체 최근 누구한테 쫓기길래 그렇게 얼굴이... 그렇소? 설마 원래 그렇소? 날 부러워하지 마시오. 허허허허허. 농담이오. 근데 왜 안 웃소? 아무튼 내 소개를 주저리주저리 읊을 수 없다는 점. 형씨가 이해하시길 바라오. 왜냐하면 사정이 그렇게 됐어. 응? 지금 장난이 아니란 말이오. 형씨가 아실랑가 모르겠는데 그게 그러니까 말이오, 나도 다 지령을 받았다 그 말이란 말이오. 누가 내 핸드폰을 도청하고 내 위치추적을 하진 않겠지만. 우리네 삶이 뭐 영화도 아니고 그게 가당키나 하오. 근데 내가 받은 특명은 알고 보니 그렇더라오. 그게 뭔지 아시겠소? 요컨대 당신에게 한가함을 허락하지 말라 그럽디다. 그럼 누가 그랬냐? 난들 알겠소.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까... 왜 그랬을까! 왠지, 왜인지가 궁금하지 않소? 허나 너무 많이 알려고 하진 마시오. 호기심이 고양이를 골탕먹일 수도 있거든요. 허허허허허. 그렇다고 당신이 살쾡이란 말은 아니니 신경쓰지 마시오. 또 내게 너무 경계심 느낄 필요는 없다오. 왜냐면 난 이 작품에서 썩 비중이 많은 역할이 아니기 때문이라오. 그럼 당신은 끝에 가서 죽냐, 사냐? 그걸 내가 알면 내가 지금 카브리올레 타며 폼잡고 있겠소. 거 아실 만한 분께서...! 근데 어찌 됐든 당신 알고 봤더니 능력자던만. 응? 그럼 내게 돈벼락을 부여하는 행운의 인도자가 되어보는 건 어떻소? 농담이오. 사람 거 정색하기는. 그런데 거 뭐라고나 할까 돈이 좋기는 좋다고나 할까. 난 원래 남자랑 말 많이 섞는 부류는 아니오만. 내가 어느새 브로맨스를 찍고 있다니. 것도 첨보는 남자와. 허허허. 안 웃기오? 나도 그렇소. 그럼 뭐 내가 우습소? 난 당신 내 아래로 보지 않소. 허허허. 그럼 당신이 날 만만히 보는 거요? 나도 한때는 웃기기로 1인자였는데 내가 어쩌다 이처럼 재미없는 남자가 되어버렸는지 통 그 이유를 모르겠소. 그런데 형씨는 원래 그처럼 성격이 내성적이오? 왜 말이 없소! 할 말 없어도 몇 마디 해줄 수 있는 거 아니오? 그래도 뭐 내가 말하면 되지. 시끄러우면 말하시오. 오디오 끌 테니까. 아니면 주문을 하세요. 버튼 누르는 대로 난 다 가능하다오. 허허허. 장르만 선택해 이 양반아! 아니 근데 이걸 어쩌나, 우리는 벌써 작별해야 할 시간이라오. 다 왔소. 내리시오. 인사는 피차 생략합시다. 행운을 비오 젊은이 (윙크)!」
    그렇게 nb는 카브리올레에서 내렸다. 마침 앞에 햄버거집이 있네? 최근 햄버거가 유독 당겼다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뭔들 안 먹고 싶었겠나. 그래서 일단 그는 햄버거 가게에 들어갔다. 햄버거를 먹었다. 1개도 아니고 2개 먹었다. 
    남은 포장지와 휴지를 버리려고 하는데, 복권이 있네? 베스킨라벤스 이벤트 어쩌고저쩌고. 레고, 머 머 머...그처럼 당첨되면 이러쿵저러쿵. 그래서 긁어봤다. 근데 곧장 당첨이라니. 물론 아차상. 그래도 괜찮았다. 초정밀 척키 인형이래나 뭐래나. 상품은 도보 5분 거리 장난감가게. 나중 다시 오면... 시간도 아낄겸 할 일도 없고 nb는 장난감 가게로 갔다. 





    3

    그는 장난감 가게에 도착했다. 가게에 들어갔다. 
   「장난감 가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네? 미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한다구요?」
   「아니 어떻게...! 지금까지 그런 암구호를 대신 고객은 단 한 분도 없었는데... 당신 어디서 왔소?」
   「네? 아니 전 그게... 요 앞 햄버거 가게에서 추첨권이 당첨되어서...」
   「솔직히 말하시오. 그러는 게 좋을 거요. 누가 보냈소?」
   「날 누가 보냈지?」
   「다시 묻겠소. 누가 보냈소?」
   「근데 자꾸 아까부터... 누가 당신한테 나같은 사람을 조심하라고 시켰소?」
   「네?」
   「어서 말해. 말 안 해?」
   「나를 추궁하면 어떡합니까, 난 당신이 구상하는 다음 작품에서 비중 상당한 역할을 맡을 텐데. 그럼 곤란합니다.」
   「뭐라구요? 그건 또 무슨 소립니까?」
   「몰라도 알게 될 겁니다. 그러니까 모른 체하지 마세요. 아는 척하기가 그렇게 부끄럽습니까?」
   「근데 여기 장난감 가게 맞습니까?」
   「그럼 여기가 레스토랑이겠습니까?」
   「아니 근데 당신은 예 아니오로 답을 하는 법이 일절 없군요.」
   「글쎄요. 펀드매니저나 할 걸 괜히 장난감 가게에 취직했을까요? 이래 뵈도 제가 사장입니다. 근데 당신은 여기 뭐 하러 오셨죠? 아하, 올 게 왔군요. 이런 날이 올 줄 예상은 했었는데. 예정된 그날이 너무 일찍 온 감이 없잖아 있어 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혹시 그런 말 들어보셨어요?」
   「어떤 말을...」
   「닭은 보리가 다이아몬드보다 고맙다.」
   「아니요. 아니. 제가 뭐 닭이다 그 말입니까?」
   「아니죠. 관상을 보아하니 개상인데. 속으로 생각하시겠죠. 이 무슨 개뼉따귀 같은 잔소리를 왜 여기까지 와서 나는 얻어듣고 있지! 라고 말이죠.」
   「」
   「아무래도 바쁘실 테니. 줄 거 주고 받을 거 받는 게 피차 좋겠네요. 자, 먼저 당첨권을 받겠습니다.」
    nb는 당첨권을 건넸다.
   「진품이군요. 틀림없습니다. 저는 그럼 별채에 가서 교환품을 가져오겠습니다. 잠시 소파에 앉으셔서 기다려주시겠습니까? 켜져있는 tv의 채널을 돌리시는 건 자유랍니다.」
    그러면서 종업원인지 사장인지 그분은 바깥으로 나갔다. 
    그땐 왜 몰랐을까? 그분이 도망갔다는 것을 말이다. 
    즉 한참을 기다려도 그 누구도 그곳으로 오지 않았다. 
    nb는 집으로 돌아가면서 생각했다. 
    올리비아라는 숙녀를 만났고 → 무슨 박람회장으로 이동하여 → 혼자 남았는데 콘스탄틴이란 작자가 나타났지 → 어쩌고저쩌고해서 공원으로 공간이동했단 말이야 → 그 다음에 웬 카프리올레에 타라며 중간책이 유인하더니 → 햄버거 가게에 도착 → 장난감 가게에 도착
    그러니까 이건 뭐지? 후출연진이 뜬금없이 나타나더니 날 골탕먹였다. 아니, 얼굴만 비췄다. 그럼 이제 전출연진을 만날 차례일까? 만약 전출연진을 만나지 않는다면 계속 후출연진, 즉 잠재적 배역들을 계속 만나게 되는 것일까? 그는 생각이 많아졌다. 그래도 혹시 모른단 말이야. 설마... 아니야. 아닐 거야. 아닌 게 아닌가? 그래도 모르니까 딱 1번 확인하는 게 뭐 어때서. 그래서 nb는 집으로 가다가 발길을 돌렸다. 다시 장난감 가게에 가서 좀 더 기다려보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장난감 가게에 도착. 
    여전히 아까 그분은 소식이 없었다. 즉 내부에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때마침 친구들이 그곳으로 방문하다니...!
    척. 딕. 톰. 
    깜짝 놀람.
    깜짝 놀람.
    깜짝 놀람.
   「너네들이 여기 웬일이니?」
   「아니 이게 누구야! 우리는 너가 성공해서 우릴 버린 줄 알았어.」
   「그게 무슨 소리야?」
   「그나저나 넌 여기 웬일인데?」
   「나? 나... 난 그냥 지나가다... 오다가다... 들어갈까 말까... 살까 말까...」
   「뭔 얘기야? 그러든 어쩌든. 우리들 여기서 물건 산 다음에 소개팅하러 갈 건데. 너도 갈래?」
   「갈 거지? 싫다 못 하겠지. 허허허. 마침 잘됐네. 원래 4 대 4로 만날 계획이었는데 버나드가 빵구냈어.」
   「그래서 우리가 걔네들한테 미리 연락했는데 3 대 4도 괜찮데.」
   「근데 왜 사람이 아무도 없지?」
   「그냥 다음에 살까?」
   「하긴 당장 없어도 돼.」
   「그러자.」
   「뭐 해 안 따라오고.」
    그렇게 친구들을 따라 nb는 소개팅을 하러 갔다.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장면 전환.
    장면 전환.
    장면 전환.
    레스토랑에 도착. 
   「어떤 애들일까. 이뻐?」
   「사진 봤잖아. 동영상도 보지 않았나?」
   「우리는 딕의 안목을 믿지. 저번에 척한테 당한 후로 딕을 신뢰하기로 했거든.」
   「애들아 어떡하니, 회사에서 연락왔는데... 뜻밖의 손실이 발생했다네. 우리 큰손이거든. 추세가 소폭 반등할 줄 알았는데 왜 하필...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할께. 오늘 실례한 거 내가 크게 만회할 기회가 있을 거야. 너네들 나 알지? 그럼 나 먼저 간다.」
    곧이어
   「애들아, 집 보러 왔다는데. 나 집 내놨거든. 내가 말 안 했나, 나 이사간다고. 하긴 관심없겠지. 그래도 괜찮은 값 받으면 너네들한테도 좋을 텐데. 어쨌든 오늘 같은 기회는 틈틈히 있을 거야. 줄어들면 내가 만들께. 말만 해. 알았지?」
   「척도 가고 딕도 가고. 너도 갈래? 내가 먼저 선수치고 싶어 하는 말이 아니라. 나 왠지 모르게 기분이 이상하다. 아니 진짜 약속 있는 거 깜박했단 말이야. 이거 미안해서 어쩌지? 어쩌긴. 내가 다음에 다 갚을께. 알았지? 너 혼자서 다 상대할 수 있어. 잘할 거야. 또 아니? 걔네들 가운데... 너 지금 왕가슴 떠올렸냐? 또 모르는 거야. 이런 기회가 흔한 줄 알어? 예감을 일단 믿어 봐. 한껏 상상하라고. 그럼 나 먼저 갈께. 건투를 빈다. 안녕.」
    톰까지 가버렸다. nb 혼자 남았다. 
    옛날 같으면 순진하게 남아서 다 상대했을 수도 있는데. 
    일찍 뜨나 늦게 뜨나 뜨는 건 마찬가지. 하여 그도 아무렇지 않게 집으로 가버렸다. 





    4

    다음 날이 되었다. 오늘 그는 생각했다. 조바심을 내려놓자고. 그렇다고 전에 딱 글을 막 쓰진 않았는데. 막살자, 에 관한 칼럼을 쓰긴 했다만. 막살진 않았다. 근데 왜... 설마 앞으로 막살게 될까?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었다. 그러든 어쩌든 도대체 누가 쫓아오는지 모르겠다만. 오빠 달려 라고 보채는 인공지능까지 통 말을 듣지 않았다. 뭘 달려. 오빠 좀 걷자니까. 그러면 듣기나 하래. 언제부터 따박따박...! 쟨 또 그런 대사는 어디서 주서들었지? 그처럼 말이다. 그렇다고 밑도 끝도 없는 인공지능의 잔소리 들어주고 놀아주다 보면 아마 바보가 되어버릴걸. 원래... 안돼. 따라서 nb는 곧장 출근했다. 
    장면 전환.
    장면 전환.
    장면 전환.
    나른한 오후. 일도 조금 하고 음악도 들었다. Mozart / Church Sonata No. 15 KV. 336
    인터넷도 뒤졌다. 그렇다고 사랑이 지겹다는 투정을 남발하진 않았다. 그럼 이젠 일하기에 싫증날 차례일까? 똥개 트름하는 소리는 자중하자. 너만 잘하면 돼? 이 사람이... 통과. 바로 그때 사무실로 누군가 찾아왔다. 알고 보니 어제 장난감 가게에서 만난 아저씨였다. 그 양반이 여길 어떻게...! 
   「저 아시죠?」
   「네. 그런데 여긴 어떻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그럼 뭐가 중요할까요? 달콤한 행복감도 좋긴 하나. 지금 어디 진한사랑을 논할 때냐 그 말이죠. 안 그렇습니까? 저로 말할 것 같으면, 아니죠 아니죠. 저를 형씨한테 소개해서 뭐 하게요. 우리가 뭐 연애할 사이인가요? 딱 봐도 여자 환장하게 생겼네. 욕 아닙니다. 남자가 여자 좋아하는 게 죄입니까? 선생은 더더군다나 탐욕을 잘 참을 줄 아시네. 그나저나 어제 왜 절 기다린다고 하시면서 중간에 그냥 가버리셨나요? 저도 제 삶이 있으니까 여기까지 오진 않으려고 했어요. 제가 뭐 선생님 뒤만 졸졸 따라다닐 만큼 한가한 사람이겠냐 그 말입니다. 형씨는 혹시 여자 꽁무늬 쫓아다니시는 게 취미일랑가 몰라도 전 아닙니다. 전 아니라구요. 이거 사람을 뭘로 보고...! 저 그렇게 아무나 보고 군침 흘리는 사람 아닙니다. 잘못 짚었어요. 아무튼 제가 여길 찾은 사연은 차차 알게 되실 테고. 또 몰라도 괜찮아요. 근데 혹시 제가 뭘 돌려드릴지 알고 계셨나요? 모르셨을 텐데... 만약에 어제 절 만나셨다면 기막힌 프로그램에 참가하셨을 텐데. 귀뜸하자면 남녀가 알몸으로 생존체험하는 프로그램이었답니다. 허나 기회는 지나갔죠. 그래도 오늘은 오늘의 태양이 뜨던 걸요. 물론 그 해가 북쪽에서 뜨진 않았죠. 근데 왜 형씨는 말이 없으시죠? 아, 원래 조용하신 양반이구나. 그럼 그러시든가. 근데 손님을 마냥 이처럼 벌세워놓으실 겁니까. 소파 좋네. 이거 어디 겁니까? 저도 하나 사게요. 파는 게 아니라 한정판인가요? 그러니까 상용이 아니다! 설마 소파 속에다 뭘 꼼춰놓으셨나. 표정도 의뭉스러워. 근데 다짜고짜 쳐들어와서 왜 아직도 용건을 꺼내놓지 않느냐 라고 생각하실 텐데. 이제 몸도 풀었겠다 저도 할 일을 해야죠. 형씨께서 할 일 게을리 하시나 몰라도 전 아니랍니다. 저 아직 할 말 떨어지지 않았어요. 이거 왜 이래요, 네? 
    자, 봐 봐요. 똑똑히 보시라구요. 
   (그러면서 그는 들고 있던 007 가방을 열었다)
   (거기에는 꽤나 값나가는 손목시계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이건 롤렉스. 이건 바쉐론 콘스탄틴. 이건 오리스. 필립스탁은 저랑 함께 가셔야 하는 거 아시죠? 그래서 iwc도 준비했죠. 어때요, 번쩍이죠? 눈부셔하는 거 좀 봐 봐. 허허허허허. (그와 동시에 그는 자기 손목에 차여진 리처드밀을 좀 봐주라, 알아봐주라 라는 듯 몸짓을 취하고 있었다) 아니면 피아제를 좋아하실려나. 뭐 일단 좀 더 두드려봐야지. 자, 이렇게 멋진 순정품이 있는데. 게임 그런 거 하지 마세요. 설마 아직도 판타지에서 헤어나오지 못 한 건 아니시겠죠? 근데 혹시 그 판타지란 여자에 대한 환상? 꿈 깨세요 선생. 형씨! 그러지 말고 이참에 나랑 일 하나 할까요? 최근 의뢰들어온 꽤 괜찮은 일거리가 있는데. 하여 내 극적인 인물을 섭외중이었는데. 뭐 그 얘긴 나중에 하죠. 그래도 궁금해요? 그럼 이걸 받으시오. 아니 왜, 도무지 어째서 내가 이걸 받아야 하나! 라고 생각하시겠죠. 그래도 일단 받어요. 아 주겠다는데 못 받을 건 또 뭡니까? 질문 잘하셨소. 아, 내가 미리 읽었군요. 우리는 독심술에 일가견이 있거든요. 아하, 공짜라서 싫다? 이 양반 독종이네. 그럼 뭐 난 독사인 줄 아쇼? 아니야 나 남자야. 물론 형씨도 보아하니 남자군요. 완전 상남자구만, 어? 이거 이거 이거 또 딴생각하고 있어. 그래요, 안 그래요? 말해 뭐 해! 아, 우리가 지금 잡답할 때가 아니죠. 형씨와 제가 뭐 할 일 없이 노닥거려서야 쓰겠냐구요. 자, 시계 얘기로 돌아가죠. 근데 혹시 블랑팡이랑 브레게 쪽 취향이신가요? 그럼... 관상은 영 아닌데. 마크피노나... 포투피노 라인은 선생한테 안 어울려요. 허영심 산업한테 그만 좀 휘둘리세요. 거 꼭 보면, 됐습니다. 뭐가 됐냐구요? 그러니까 허당들한테 휘둘리시지. 쯧쯧쯧! 그래도 금융권 업종은 아니시니까 아직 이 세계를 잘 모르실 수 있는데.」
   「나 시계 안 차는 사람이오.」
   「누가 시계 차는 사람으로 바뀌랬습니까? 처음부터 시계 차는 사람이 어딨소! 태어날 때 다 알몸으로 태어나죠. 뭐 슈퍼맨 유니폼 입고서 태어난 애도 있답니까?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만약 있다면 그건 TV나 만화책에 나오겠죠. 허허허. 안 그렇습니까? 그러니까 수지 맞는 장사라는 거죠. 인간의 삶이 말이죠. 그렇죠? 인정할 건 인정합시다.」
   「근데 당신 뭐 하는 사람이오?」
   「어제 말씀 안 들으셨나요? 저는 형씨 다음 작품에 나오는 조연이라구요. 기왕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내가 왜 조연입니까? 네? 당신도 내가 우습게 보이오? 그래요? 뭐 그건 그렇다쳐도. 형씨 이제 그만 본색을 드러내시오. 그렇게 숨기고 사는 거 힘들지 않소? 대체 언제까지 금욕주의자로 살 겁니까, 당신이 뭔 신비주의의 끝판왕이라도 되는 줄 아십니까? 어디서 인생을 잘못 배우셨구만. 세상은 그렇게 쉬운 게 아니야 이 사람아. 응?」
   「당신 정체가 뭐요?」
   「내 정체를 뭐 하러 아실려고요. 묻지 마세요. 못 들은 걸로 하죠. 아니, 못 볼 걸 보고 싶어요?」
   「지금 나 협박하는 거요?」
   「그게 아니라 폭로전 관람권이라도 드려야 하냐 그 말입니다.」
   「대체 뭔 얘기를 하는 거요? 정말 여기에 왜 왔냐구요.」
   「형씨가 절 불렀으니까요.」
   「제가 언제 당신을 불렀어요?」
   「제가 거짓말을 할 사람으로 보이십니까? 저는 태어나서 지금껏 거짓말을 단 1번도 해본적이 없답니다.」
   「아니~ 그러거나 말거나 정말 저한테 왜 이래요?」
   「드디어 인상적인 대사가 나왔네. 마침내 가면을 벗었어.」
   「그건 또 뭔 얘기오?」
   「그런 게 있어요.」
   「있긴 뭐가 있어요?」
   「내숭은!」
   「뭐요? 당신 지금 뭐라 그랬소? 당신 지금 말 다 했어?」
   「진정하세요. 참으세요. 그래야 합니다.」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 어?」
   「형씨, 지금 흥분해서야 쓰나요. 안 그렇습니까? 야망에 털나는 소리 전 뭐 하고 싶어서 하는 줄 아십니까? 저는 개뼉다귀가 아니랍니다.」
   「거 참 말 많네.」
   「그래도 제가 더럽게 말 많은 데 대해여, 형씨가 뭐 보태준 사실도 없죠. 비꼬아 듣지 마세요. 다 형씨 좋으시라고 제가 찾아온 거 아닙니까. 아하~! 남자가 와서 기분 나쁘다. 벌써 빈정상하셨네. 난 것도 모르고. 그러니까 저랑 같이 갑시다. 네?」
   「안 가요. 나 아니야. 나 아니라고!」
   「그렇죠. 말씀 잘하셨습니다. 저도 알아요. 왜 모르겠어요. 뭐 오늘만 날인가요? 내일도 해가 뜨겠죠. 그래서 오늘은 이만 후퇴합니다만, 언젠가 수긍하시게 될 거라는 것만 알아두세요. 그럼 안녕히!」
    쟨 또 뭐야?





    5

    다음 날이 되었다. 동쪽에서 떴는지 확인하지 못했던 해는 어느새 서쪽으로 다다르고 있는데... 아무래도 이상하다 그거지. 그래서 그는 곧장 장난감 가게로 달려갔다. 
    장면 전환.
    장면 전환.
    장면 전환.
    nb는 장난감 가게에 도착했다. 그런데 왜 이제야 깨달았을까? 옛날 택시운전수 직업에 종사할 때, 짝궁과 교대시 날마다 짝궁을 데려다주던 곳이 바로 장난감 백화점이었는데...! 그와 판박이인 장난감 가게. 뭔가 느낌 세했다. 그러든 어쩌든 일단 들어갔다. 
    올리비아, 콘스탄틴, 카브리올레 차주, 장난감 가게 아저씨. 그렇게 4명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들어가자마자 일동 기립, 동시에 꾸뻑~!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오실 줄 알고 있었거든요. 짧게는 분당 1에서 2페이지. 많게는 분당 5페이지. 그 밀도로 기본 3시간. 그걸로 혼을 쏙 빼드릴까요 아니면 우리랑 함께 가시겠습니까?」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그들은 모두 같이 내실로 간 다음, 다시 안쪽 방으로 들어갔는데. 
    그렇게 복도를 지나 내실에 도착해서, 또 다시 안쪽 방으로 들어갔는데. 
    전면 거울에 도착. 그래서 하나둘셋 하고서 모두 뛰어듬.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넷 가운데 한둘은 중간에 멈쳤고, 한둘은 거울에 부딪힌 다음 튕겨져 나왔다. 
    그럼 nb는 어떻게 됐을까? 어딘가로 이동했는데... 도대체 이게 어떻게 가능한 거지? 
    도무지 이해될 수 없는 공간이동. 본인은 아직 현실감 느낄 수 없었는데. 
    그래도 조그만 공간에 계속 머무를 수는 없으니 그는 우선 바깥으로 나갔다. 
    그곳이 모스맨 연구소인지도 모른 체 말이다. 
    장면 전환.
    장면 전환.
    장면 전환.
   「늬가 왜 거기서 나와?!」
   「내가 나오고 싶어서 나온 게 아니라...」
   「이런 쥐새끼 같은 놈!」
   「뭐? 친구, 말이 너무 심하잖아. 뭐 돼지새끼?」
   「내가 언제 돼지새끼라 그랬어?」
   「멍멍멍 멍멍멍멍멍멍멍멍멍 멍멍멍멍멍」
   「근데 너 왜 개처럼 짓고 그러니?」
   「그러게 말이야. 나도 모르겠어. 그러나 저러나 난 개새끼가 아니야.」
   「누가 너보고 늑대라고 한 적 없어.」
   「나도 알아.」
   「아는 놈이! 아는 놈이 거기서 왜 나오냐고. 뭣 때문에, 어? 너 나한테 왜 그러냐? 정신 언제 차릴래? 응?」
   「난 원래부터 얼빵허니 괴짜인 척한 적 없어. 난 일찍 철들었거든.」
   「그런 분께서 여기엔 웬 일로!」
   「저거 웜홀머신이잖아? 내가 데뷔를 잘못 했나... 아닌데. 옳게 왔는데. 혹시, 여기가 아닌가?」
   「저거 코드 안 꼽혔어.」
   「무선 충전 됐겠지.」
   「배터리도 없어. 완성은 커녕 초반에 포기했거든.」
   「장난치지 마.」
   「진짜야.」
   「내가 고쳐줄께.」
   「늬가 무슨 수로? 저게 뭐, 내가 다 꼬셔줄께~, 형이 쟤네들 꼬셔줄께, 그거랑 같은 줄 아냐? 그러니까 형이 (여자한테) 말 건다면서요 라면서 구박당하지. 너 아직도 정신 못차렸냐? 어? 너 요즘도 이러고 다니냐? 그래서 늬가 여자가 없는 거야. 알아? 그러니까 늬가 안되는 거라고.」
   「이 자식이...!」
   「그러니까 늬가 저기서 왜 나오냐고 임마, 어?」
   「내가 그런 거 아니라니까 증말. 어? 나 아니야. 나 아니라고. 아 진짜 나 아니란 말이야. 응?」
   「뭐가 아니야? 얘 또 헛소리하는 거보니 상태가 많이 안 좋네. (절레절레)」
   「야, 세바스찬. 근데 여기... 너 말고는 전부 모르는 사람들 뿐인데!」
   「그러니까 관심 좀 가져라. 모스맨 연구소가 이렇게 발전했는데 이사회에 코빼기를 비추기를 하나, 정신을 차리기를 하나. 못 말려 참말로.」





    6

    오늘 nb는 늦잠을 잤다. 꿈이 하도 아리송했으니까. 무슨 말 못 할 내용 때문이었을까? 누구도 알고자 하지 않으니 넘어가고. 그 외 집에서 뒹굴뒹굴 어영부영 하다가 오후 3시가 되었다. 좀 늦었지만 이제라도 출근길에 올랐다. 그렇게 사무실로 가면서 그는 이런 생각을 했다. 
   <나는 할 일 없는 놈일까? 그런 말 들어도 꿈쩍 않을 허당일 테지. 뭔 칭찬이든 비난이든 한 귀로 들어가면 다른 쪽 귀로 나가. (절레절레)! 어찌 됐든 나는 무력감에 정복당했다. 가난함에 무릎꿇었지. 여자도 못 꼬신다. 안 그래도 다 마스크 쓰고 다녀서.. 통과. 그럼 맨얼굴 투시경이라도 발명할까? 엉뚱한 공상이 여전한 걸 보니 정신 못 차렸네. 고로 현재의 절망감은 진작 예고된 셈. 곧 즐거운 인생은 뭐랄까 다채로움이 요구된다고나 할까. 그런데 흑백tv 칼럼에서 벗어나기 힘든 실정. 그래도 만조가 있으면 간조도 있다. 뭐 쥐구멍에 볕들 날 있겠지>
    별 내용 없었는데. 또 사무실에 도착해서 일하면서도 구상도 안 풀렸는데. 일하기도 싫어지던 그 순간. 
    갑자기 사무실로 누군가 찾아왔다. 
   「안녕하시오. 나는 듀크라고 하오. 그대는, 이미 알고 있으니 말하지 않아도 좋소. 초면에 실례인 걸 알지만 이처럼 당신의 시간을 뺐을 수 밖에 없는 사정이란 게 있다오. 알고 나면 이해하실 테니 일단 제 사연을 들어보시는 게 어떻겠소. 싫지 않은 눈치니 그럼 시작하겠소. 그런데 여기 이처럼 벌서듯 서서 얘기하기엔 너무 중요한 얘기인 듯 하오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아직도 앉으란 말을 안 하시다니. 설마, 제가 마음에 안 드시오? 뻣뻣한 남자들끼리 뭔 말을 길게 할 필요 있냐, 까지는 아닐지언정. 이래뵈도 제가 저속한 말로 날라리는 아니오나. 저같은 인기쟁이 하나 사겨두면 결코 후회할 일 없을 것이라 내 장담하겠소. 아시겠소? 그런데 아직도 소파에 앉으란 말 안 허시네. 아하, 사람 만난지 오래되셨으니 아마도 입담이 많이 줄었을 걸로 예상하니 뭐 그럴 수 있소. 알다마다요. 아니 그렇소? 그럼 제가 소파에 앉는 동안 시간은 슬로우모션으로 흐를 테니 거 괜찮은 음악 하나 틀어주시는 아량을 베풀어주시는 건 어떻겠소. 음, 무엇이 좋을까요. 그렇지. Rossini / Aragonese
    자, 일단 그렇게 멀뚱멀뚱 허공을 쳐다보지 마시고 이쪽으로 오시지 않겠소? 노트북을 들고 말이오. 제가 들고 있는 USB로 말할 것 같으면 이건 정말 황당하다고 해야 할까요? 당신께서 보시면 아마 깜짝 놀랄 만한 파일이 들어있다오. 혹시 딴 걸 짐작하시지는 않으셨겠으나 그래도 미리 말해두자면 이건 엑셀파일이라오. 슈퍼컴퓨터로 분석한 자료. 당신의 작품에 나오는 인물, 줄거리, 인물분석...세계관이니 사랑론이니 그 모든 걸 분석한 엑셀파일이랍니다. 배경과 우연도 그 모두가 기록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 인물! 가상인물도 있을 테고 실존인물도 있겠죠. 가상이라면 당연히 최고로 흡사한 모델들로 분류할 수도 있고 가지각색 기능이 다 있다오. 그 가운데 주지할 사항 하나. 지나간 작품 말고 앞으로 탄생할 작품. 오늘 제가 선생을 찾아온 건 바로 그 허접한 판타지에서 절 빼달라고 부탁하기 위해서라오. 아시겠소? 근데 왜 말이 없소, 사람 힘빠지게 말이오. 지금이라도 선생께서 원하신다면, 네? 정 원한다면 제가 당장 이 사무실로 여자 100명을 부를 수 있다오. 최하 A, 평균 A+로 말이오. 그러니까 그렇게 되면 사무실이 복잡해질 테고, 사무실이 복잡해지면 또 향수는 향수대로 향수내음 진동할 테고, 향수내음 진동하면... 네? 심도 깊은 면담이 잘 이루어질 것 같소? 아무래도 어렵겠죠. 그러니 지금 제 시선을 피하지 말아주셨으면 고맙겠쇼. 근데 가만보니 저를 영 신뢰하지 못하시는 것 같은데... 그대의 믿음을 살 수 있는 방법을 알려드리면 식은땀 빠짝 흘리실 텐데. 그래도 좋소? 말만 하시오. 아시겠소? 그야 어떻든 왜 하필 당신은 저를 차기의 차기의 차기의...그때 절 특급배역으로 등장시킬 작정이오? 허나, 왜 그 역할에 꼭 저가 아니면 안되는지를 물어보진 않겠소. 왜냐하면 아직 당신은 저를, 그러니까 저 같은 배역을 절실히 원하지 않으실 테고, 무엇보다 당신께서 저에 관한 얘기를 쓸지 말지조차 모르실 것이기 때문이라오. 동의하오, 안 하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오. 우리는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이라오. 그런 의미에서 일단 저와 함께 가볼 곳이 있다오. 그곳에 가면 제 말이 거짓이 아니란 걸 온 몸과 마음과 영혼과 무의식과 육감으로 깨달으실 수 있을 것이라오. 안 그래도 오늘 뭐 특별히 약속 없지 않소. 그렇다고 내가 알기로 형씨한테서 아는 여자든 아는 동생이든 싹 다 도망간 걸로 아는데. 물론 변명은 반갑소. 그래 봐야 핑계 구닥다리인데 굳이 했던 얘기 또 할 필요 있소? 자, 선택하시오. 
    첫째, 여기서 일단 USB에 담긴 엑셀파일을 확인한다.
    둘째, 그건 생략한 체 당장 나와 가면무도회장으로 이동한다.
    첫째는 이미 제가 테블릿으로 화면을 띄웠소. 자, 보시오. 왜 볼 용기가 없소? 아니면 뭐랄까 어떤 겁이 나는 것이오! 그러지 말고 USB는 놓고 갈테니 일단 저랑 그곳으로 갑시다. 그게 좋겠소.」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장면 전환.
    장면 전환.
    장면 전환.
    가면무도회장 도착. 
   「여기 입장하는 과정은 영화와 드라마로 꽤 보셨을 텐데. 어떻게, 오늘 체험은 실망스럽지 않으셨소? 적잖이 흡족해하시는 표정을 보니 저도 기분이 좋아지는군요. 뭐니 뭐니 해도 형씨가 저를 미래의 출연진에서 배제해 주리라는 기대, 품어도 괜찮을 듯 안심이 된단 말이오. 아시겠소, 모르시겠소? 뭐 그건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데. 아마도 영화에서 볼 땐 여자들이 가면 빼고 나머지는 모두 나체였는데. 그런데 왜 여긴 아니냐? 충분히 궁금하실 만하죠. 그럼요. 그런데 그건 아직 모르시죠? 여기 계신 분들은 투시력으로 굳이 영화처럼 의상비를 아끼지 않아도 된다 그 말입니다. 물론 형씨 같은 초임자를 위해서 밀실은 물론 제2의 접객실과 제3의 무도장이 모두 준비되어 있다오. 뭘 예측하셔도 아마 상상 이상일 것이오. 허허허. 그렇다고 가면을 갑자기 벗기시면 곤란하다는 점 정도는 아실 테니. 그에 관한 설명은 생략하겠소. 그렇다고 너무 들뜨시지 않도록 조심하시오. 뭔가 지나친 흥분이 감지된다 싶으면 선생께 꽤 곤혹스러운 벌점이 부여될 수도 있기 때문이오. 허허허. 설마 그걸 제가 시켰다고 그 어떤 상황에서 따지시는 않으시겠죠? 그렇게 알겠소. 허허허허허. 
    일단 실크와 자주색과 레이스와 흰색 장갑은 형씨가 직접 설명했든 간접적으로 은유했든. 그와 관계된 인물들이라오. 그래서 저분들께서 당신을 먼저 아는 체할 수도 있소. 허나 가면도 쓰셨고 미리미리 다 손을 써놨으니 크게 걱정하실 건 없답니다. 그리고 나일론과 면 옷감류, 디자인은 프레타포르테, 헤어스타일이 파격적인 분들은 바로 다음 작품들에 등장하실 분들이라오. 요컨대 전출연진 대 후출연진이죠. 물론 일부만 참석했겠죠. 그리고 그분들 상당수는 본인들을 형씨가 나중 창착해낼지 아직 모르고 있다오. 허허허허허. 그 외 또 궁금하신 사항 있소? 그에 앞서 저의 권한으로 형씨를 VIP룸으로 안내하겠소. 결코 형씨를 실망시켜드리지 않을 것이오.」
    바로 그 순간! 음악은 정격 왈츠에서 경음악으로 바뀌었다. 
    뭔가 느낌이 탱고와 브라질풍의 바흐 같은 연주도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은데...
   「아니 이럴 수가! 맙소사, 말도 안돼!」
   「무슨 일이오?」
   「오늘 특별회의가 소집된다는 신호랍니다. 원래 이런 적이 없었는데... 오늘 제 계획은 선생을 오늘의 손님으로 추대하는 것이었죠. 그렇게만 되었다면... 깜짝 놀라실 만한 이벤트가 기다리고 있었을 텐데. 어디서 보도 듣도 못한! 이거 아쉽군요. 다음을 기약할 수 밖에. 일단 오늘은 먼저 철수하시는 게 좋겠군요. 사무실에 놓고 온 USB에 제 연락처가 있으니 우리 아지트에 한번 방문해주시는 영광을 베풀어주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그럼 오늘은 이만 작별의 인사로, (딱)」
    듀크의 (딱)소리에 가면을 쓴 숙녀 4인방이 nb에게 다가왔다. 그러면서 볼키스와 기타 등등을 선보였고. 2명은 양쪽에서 팔짱을 꼈으며. 어느새 듀크는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져버렸다. 그렇게 어딘가로 이동하는 줄로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녀들은 그를 거의 끌고 가는 수준이었다. 그렇게 그는 정중히 쫓겨난 건지 차분히 출구로 안내받은 건지 밖으로 나가게 되었다. 오늘 있었던 일은 절대로 함구해야 한다는 점. 아까 듀크가 3번 반복했고, 방금 전 아가씨들도 몸짓으로 수차례 반복했다. 바깥에 혼자 남아 롤스로이스 리무진 기사가 뒷문을 열고서 대기중인 순간, nb는 긴장이 풀려버렸다. 
   「뭐야 이거, 좋다 말았잖아! 젠장.」





    7

    nb는 어느 날 카페에서 일하고 있었다. 몇 번을 말했는지 모르겠다만 어떤 일을 하고 있었을까? 쉽게 말해 작품 구상. 포장하여 아찔한 착상 떠올리기. 많이 걸핏하면 남발하듯 천재적인 영감 어쩌고저쩌고. 이를 테면 이런 식이었다. 
   <유행 지난 좌우명, 하면 된다! 야생마 같은 유행가 가사가 촌스러워진 시대이기 때문일까? 노래가 세련되면 뭘 하나. 요즘은 옛날처럼 선율 위주가 아니니 최신곡 외워서 부르는 사람 별로 없을 것이다. 별로? 그러든 어쩌든. 그래서 흔하도록 뭇남성들은 여편네 잔소리에 오늘도 귀에서 피가 난다. 웃자고 하는 말에... 그럴 것이다. 그러니까 인생은 마음대로 풀리지 않지 여자 마음도 모르겠지. 그렇다고 어렵게 장만한 여자말 번역기는 뭐 싸구려? 그래서 옛날옛적 좌우명은 바뀌기 마련. 어떻게? 아니면 말고! 뭐라고? 하여튼 말이다 꽃 들고 쫓아다니고 기다리고 비위맞추고 허영심 부추기고. 그러다 왜 하필 잊고 싶은 패배주의를 들쑤시는지. 대체 무엇 때문에 그분들은 여자들한테 질질 끌려다니기만 하는 걸까? 그분들이 정말 누구인지는 모르겠다만 숙녀들은 차마 우리를 미워할 수가 없단 말이다. 근데 여기서 '우리는' 그 우리는 또 누굴일가? 세상에는 알 수 없는 신비감이 많다는 것까지만 알자. 아무튼 나는 그분들 생각하면 찡하다. 가슴 한구석이 아린다. 도무지 이해를 못하는 건 아닌데... 뭐랄까 참으로 안타깝다고나 할까? 아니, 어? 사랑의 차트를 쥐라펴락 하면 되지 않나. 뭐가 문젠가? 허세도 들었다 놨다, 낭만은 밀었다 당겼다, 행복마저 쥐었다 폈다 그러면 되질 않냐고. 허허허. 그런데 아니면 말고? 뭐 못 먹는 감 그냥 찔러나 보는 건가! 애절하시가 않아요. 아니면 말고? 뻔트 아니면 떡밥뿌리기구만. 것도 좋은데 툭툭 건드려보다 이거다 싶으면 절반을 걸 줄도 알아야 한다. 그래서, 하면 된다! 그런데 정말로 하면 다 될까? 그러면, 얼마나, 좋겠습니다. 또 일단 말은 쉽다...>
    그때 전화가 걸려왔다. 알프레드이었다. 아니... 이 녀석이 왜 갑자기...! 그는 전화를 받았다. 
   「형. 지금 어디야?」
   「나? 카페.」
   「형, 집에 들어가면 안될 거 같은데... 당분간 사무실도 못 가게 생겼어.」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너한테 여자 소개시켜주지 않았다고 지금 형한테 고급스럽게 짜증내는 거니? 너 원래 그런 애였어? 어? 형이 널 그렇게 가르쳤냐고! 불가사의한 독심술과 이 세상 모든 여자를 꼬실 수 있는 마법. 형이 다 때 되면 가르쳐준다고 했니, 안 했니? 좀 보채지 좀 마. 아직 넌 더 만들어져야 해. 알아? 애처럼 징징거리기는. 그러고서도 늬가 내 제자니? 난 너 같은 애제자 둔 적 없어 임마. 그리고 형 애마가 낡아빠진 걸 알긴 아니? 응? 아무튼 넌 더 만들어져야 하니까 고로 난 널 더 다듬을 거야. 것만 알아두자.」
   「뭘 만들어져! 내가 뭐 조각상이야? 내가 뭐 만들다 만 인형이냐고.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야. 아 나 거 참 이 양반 말길 징그럽게 못 알아듣네. 형이 그러니까 안되는 거야. 알아? 그런데 허영심은 또 겁나게 이상해요. 허허. 형 그거 알아?」
   「뭘 알아? 너 자꾸 형 말 따라할래? 어? 너 정말 형이 마법사로 변신하는 거 보고 싶어? 말만 해 임마!」
   「형. 두 번 말 안 할께. 긴급상황이니까. 이건 문서로 만들어져선 안될 특급비밀이거든.」
   「그럼 말로도 발설하면 안돼. 몰라? 이거 도청되고 있어 임마. 알아?」
   「그럼 만나자. 거기 알지?」
   「어디? 어딜 알아? 몰라. 아, 거기? 아니면 어떡하지!」
   「형, 나 지금 농담할 기분 아니야. 내 심정은 뭐 그렇다 쳐도 난 괜찮아. 근데 형도? 알고 나면 까무러칠 걸.」
   「그곳으로 와.」
   「알았어. 이따 봐.」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장면 전환.
    장면 전환.
    장면 전환.
    비밀 접선 장소. 그곳은 한동안 운영되지 않던 예전 아지트였다. 
   「자, 캔커피. 마셔.」
   「이거 먹고 떨어져라? 이 정보가 이 만한 가치 밖에 없을 줄 알아?」
   「허허. 너 형이 다 생각하고 있다니까 글쎄.」
   「됐고. 형 내 말 똑똑히 들어. 인상쓰지 않고 뭐 해? 긴장 풀래?」
   「대체 뭔데 그래?」
   「누가 날 찾아왔어.」
   「누군데 그래?」
   「거 참...! 지금 내가 긴대사 읊을려는데 자꾸 그렇게 흐름 끊을래? 그래서 형이, 넘어가고.」
   「」
   「누군가 날 찾아왔는데. 아무래도 느낌이 이상하단 말이지. 왜 당사자들끼리 직접 만나지 않고 날 중간책으로 끌어들이려 하는 걸까? 의구심은 쉽게 해소될 수 없었어. 그렇다고 예전의 탐구력이 되살아났냐? 걔가 또 말을 잘 듣지 않더라고. 하여 믿을 만한 소식통들을 죄다 닦달했지. 닦달? 이게 다 형 때문이야. 내 화술은 고급스럽기로 어디서 그 짝을 찾을 수 없었는데 어쩌다가... 어? 그러게 형은 어쩌자고 일을 이렇게 벌여놨어? 아니 어떻게 일을 이처럼 키워버렸냐고. 뒷감당 되겠어? 자신있어? 감당할 규모가 어디까지인지를 알고는 있냐고. 아무튼! 주변에 레이다 가동하고 어쩌고 알아보니. 아 글쎄 알고 봤더니 내가 상대할 세력이 아닌 거 있지! 내가 맞대응을 피해야 할 정도라면 뭔가 짐작이 되요, 안되요? 아니 어떻게... 어쩌자고 형은 블로그에 글을 막 쓴 거야. 형 돈 없어? 내가 좀 줘? 말을 하든가 은근히 어려운 사정을 전하든가. 이것도 저것도 아니고. 말을 해야 알 거 아냐. 은밀히 몰래 만나고 간접화법 애용하고. 그건 연애하는 남녀고. 지금 형이 그럴 형편이야? 이거 이거 이거 이거 아직도 정신 못 차렸네. 응?」
   「본론은 언제 나오니? 1절만 하자.」
   「형 최근에 누가 찾아온 적 있어?」
   「최근에... 있어.」
   「있다?」
   「많아.」
   「단지 최근에?」
   「꽤 됐어.」
   「그런데 나한테 아무런 얘기도 안 했어?」
   「난 그걸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거든.」
   「그게 변명이야 자랑이야, 어?」
   「대체 무슨 일인데 그래?」
   「그걸 알면 속이라도 편하겠다.」
   「그걸 내가 모르니까 난 불쾌한 걸까? 너 자꾸 나 불편하게 만들래?」
   「그러게 형 왜 그랬냐고.」
   「내가 뭘?」
   「정말 몰라서 그래?」
   「모르긴 뭘 몰라서 그래?」
   「형이 그랬다며?」
   「」
   「아니라고. 극구 부정했다며?」
   「아 그거야 아니니까 아니라고 한 것일 뿐. 그럼 아닌 걸 예라고 해? 그럴 순 없지. 아니니까 아니다. 그게 뭐 어때서? 어?」
   「뭐가 아닌데?」
   「몰라. 모른다구.」
   「그게 전부야?」
   「나도 몰라.」
   「내가 듣기로는 형 엇그제 가면무도회 갔다 왔다며?」
   「그걸 늬가 어떻게 알아?」
   「형, 나 알프야. 형 일거수일투족 다 나 나한테 포착돼. 당시 형 좋을 뻔하다 말았다며?」
   「그 얘기까지 하든? 대체 그 냥반이 누구야? 어?」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왜 그러시나 이 양반아, 응? 아직도 모르시겠나?」
   「뭘 몰라? 어? 모르긴 뭘 모르냐고. 이거 정말 사람 헷갈리게 할래? 너 정말 왜 그래? 어?」
   「내가 왜 이럴까! 누가 날 찾아왔어. 내가 알기로는 형 작품 속 전출연진과 후출연진을 형이 만난 걸로 아는데. 듣자하니 전출연진과 후출연진이 다투고, 사랑하고, 놀고. 어디까지 진행되고 무엇까지 변화될지 아직 감이 안 오는 상황인데.」
   「그런데?」
   「마침내 때가 왔어. 우리는 갈 데까지 간 거라고.」
   「뭐 볼장 다 봤다고?」
   「어허, 거 참! 그게 아니라 누가 날 찾아왔어.」
   「대체, 누가 날 찾아왔어 라는 말을 지금 몇 번을 하는 거니? 어? 대체 난 몇 번을 물어보냐고.」
   「이제 그만 물어봐. 곧장 말할 테니까.」
   「」
   「형 블로그 주인이 날 찾아왔다고.」
   「뭐? 그건 주인장은 난데!」
   「아닌가 보지.」
   「아니긴 뭐가 아니야?」
   「그래서 장난 아니라는 점. 이제 알겠어? 내가 아까 뭐랬어. 당분간 집도 사무실도 가지 말라 그랬다, 응? 형 나 알지? 내가 허튼소리 잘 안하는 거. 형도 아시잖나, 응?」
   「정말이야?」
   「(끄덕끄덕)」
   「어떻게 생겼든?」
   「얼굴이 없었어. 자세한 설명은 생략할께. 나 바지에 오줌 쌀 뻔하다 말았어. 솔직히 말해서, 지렸어.」
   「」
   「다른 이상한 점은.」
   「뭐랄까 초능력을 일부러 잠그고 있는 느낌이랄까. 난 뭔가 어떤 초자연적인 현상을 그러니까 말이지 태풍의 눈처럼, 일부러 내 주변만 정상인 듯한 기분 때문에 난 몇 마디 하지도 못하고 꼼짝도 못했어. 심지어, 걔 그림자도 없었다니까.」
   「걔 어디 소속인데?」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그러는 형은 어디 소속이야?」
   「나? 무소속.」
   「지금 나랑 농담따먹기 하자는 거야? 지금 장난 아니라니까.」
   「」
   「안 나오면 쳐들어간다 쿵짜라짝짝, 애들 노래도 몰라? 형 대체 나한테 뭘 숨기고 있어?」
   「내가 숨기긴 뭘 숨겨. 너 내 통장잔고 모르니? 내가 할 소리를 왜 늬가 해? 너야말로 내게 뭘 감추는 건데, 어?」
    바로, 이때부터 그의 당분간 차박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언제가 끝일지 아직은 종잡을 수 없었다는 점. 불쌍한 녀석이 그걸 신비의 근거이자 줄거리의 전제를 어디 짐작이라도 할 수 있었을까? 두고 보면 알겠지 뭐.





    8

    더 이상 공상에 빠져 허우적대지 않겠다 라고 다짐해도 소용없다. 황홀한 승리감은 모르고 패배감만 익숙하니까. 그러니까 쉐도우복싱을 어떻게 하나. 샌드백이나 달래야지. 하긴 남자가 살면서 자유를 생각할 때 여자도 여간해선 사랑에 만족할 수 없긴 마찬가지. 그렇지만 허영과 질투와 불평과 짜증과 체념으로부터 쫓기는 인생이므로 소소한 행복이 뭔지 모르진 않은데. 그마저 도저히 잡히지 않기 때문일까? nb는 결국 허언증에 대한 독이 잔뜩 올랐다. 농담이다. 개구리도 발정기도 아니고 그게 뭔 말인가. 하여간에 돼먹지 못한 침체기가 뭐라고 왜 필자는 그 인간을 대변해주고 있는지. 머저리 같은 녀석! 줏대 없음으로 말미암아 성과없음과 친하게 됐지. 수줍게 유혹하는 애정, 곧잘 뭇남성들을 후끈 달아오르도록 만드는 짝사랑복. 필요없다. 어떤 밀회를 알긴 아는데 입만 근질근질할 뿐. 어쨌든 그는 주인공치곤 너무 막연하다. 허접해도 정도가 있는데... 너무한 거 아냐? 새콤달콤 쓴맛 단맛...에서 남은 건 오직 썩은 미소! 뭣이 어째? 당근과 채찍에서 채찍만 있단 말 아닌가. 그래서 어디 숙녀를 예찬할 기분 들겠어? 취미 바꿀 맛 나겠냐고. 하여 그는 단호해졌다. 그럼 뭘 하나, 오래가지 못하는데. 또 숙취 때문에 불쾌한 반나절은 물론 울적한 일정 텅빔. 적어도 그에게 세상은 아름답지 않았다. 누가 첫키스를 사과니 딸기니 과일에다 비유하는가. 다 뻥이다. 그게 다 탐스러운 먹잇감이 포착되지 않기 때문일까? 사냥꾼 기질 어떻게 속이나. 허나 그마저 식상해지겠지. 그 때문에 새로운 도전이 끌리긴 하는데. 러브콜 꿈도 못 꾼다. 스카우터랑 가수를 어떻게 구분하나. 평소에 구경도 못하는데. 안 그런가? 욕망이라는 그릇을 키워봤자 연못은 그대로. 야심차게 탐욕을 업그레이드하면 뭘 하나, (사과)파이는 쫄아들고 식은 걸로도 모자라... 말 말자. 더더군다나 최신 유행가를 들어보시라. 시대적으로 너무 세련되었기 때문일까?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해 친절히 알려주지 않는다.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고. 여자들처럼 3분의 마법도 오리발이 유행인가 보지 뭘. 좋으면 좋고 싫으면 싫고! 남자들 우정도 으쌰으쌰 한물 가버렸으면 어떡하지? '예 아니오' 흑백논리 같은 언제적 사극이 사회를 혼돈에 빠트리진 않았을지언정. 3D 4D 다채롭게 살필 사안 따로, 예 아니오 수학적으로 근접한 사안 따로인데. 그걸 반대로? 그러니까 '좋으면 좋고 싫으면 싫고'에 여자들이 잘 속는 거 아닌가. 아닌가? 최소한 순진한 생애사 전략일 땐 그럴 가능성이 어떻다는 것. 그러니까 어른들은 능글능글해진다. 과부살이 십년에 독사 안되는 년 없단 말이 괜히 전해진 게 아니다. 근데 우리의 맹탕인지 동네북인지 그 녀석은 독종과 정반대인데 이걸 어쩌나. 어쩌긴 뭘 어째. 지 알아서 하겠지. 너나 잘해란 말 듣기도 전부터 가택감금. 그러므로 아지트에 발길도 뜸해졌고. 사교로부터 멀어지니까 사람들 말길도 잘 못 알아듣고. 더불어 상궤를 벗어나 새로운 목표 있나? 없어. 있을 턱이 없지. 그러니까 대망 충족에 대한 힌트를 윗선에서 NB에게 허락할 일 있나. 팔짱껴줄 아는 동생도 없으니까 혼자서 (양손 동시에 그네처럼) 왔다 갔다. 그거 꼬맹이들도 안하는 건데. 그러던 어느 날 웬 미인이 그에게 상큼한 윙크를 보내왔다. 정말로? 뻥이다. 눈물이 핑 돌 일이구만. 하긴 이젠 가슴 찡한 사랑 하고 싶지도 않을 거야. 요즘도 노골적으로 진한사랑을 갈구하는 늑대가 있을 줄이야. 애원할 게 그렇게 없을까? 물론 그게 나쁘다는 게 아니라, 여자들이 은근함을 선호하는데 무턱대고 남성미를 내세워선 꽝이라는 얘기. 그래도 누가 숙녀의 선망을 충족시켜줄 줄 몰라서 그러겠나. 도저히 잡히지 않는 사랑이라는 주제는 나비가 아니라 나방과 비슷한지 꽤나 의심시러우니까 그러겠지. 그래. 그렇다니까 글쎄. 실정이 그런데 근사한 품위, 넉넉한 재력, 고상한 사랑의 차트, 자꾸자꾸 따라다니고 귀찮게 하며 보채는 누군가가 어딨어. 다 부질없다. 어차피 처음에만 혹한다. 아마 금새 싫증날 걸. 왜 아니겠어. 뭘 해도 재미없어. 솔직하고 자시고 기쁨은 포장을 뜯을 때가 최고. 물론 말이 그렇단 거고. 그렇다고 끝없이 한탄만 할 수야 있나. 따라서 그는 마침내 신비로운 마술을 독학하기 시작했다. 여자말 번역기 아카데미에 출근할 수도 없지 않나. 과연 그래서 공중부양과 순간이동을 선보일 수 있을까? 쉽게 긍정하긴 어렵다만 아마도 부정에 판돈을 거는 게 유리할 거라는 점.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다 소 뒷걸음질 치다 쥐 잡으면 좋은 거고. 앗 깜짝이야! 그럴 테니까. 그런데 어쩌면 그래서일까? 눈에서 레이저가 나가야 하는데 드물게(?) 여자들이 입에서 화염방사기를 뿜지 않나. 내가 하면 우아한 화장발, 삼류인지 사류인지 그와 똑같은 말 뭔지 모르지 않을 테고. 중고 신인 같은 얘기도 반복하니 힘 빠진다. 발랄한 청춘이자 행복한 젊음이라고 아득바득 우길 장본인은 아니다만. 그래도 nb가 자기 블로그에서는 주인공이니만큼. 고로 주연 대접해드려야지. 어떻게? 그래서 그는 즐거운 일하기에 몰입하러 사무실로 갔다고. 놀러 어딘가 이상한 데로 보낼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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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 ─ 182

from 소설 2021. 1. 15. 17:54

    1

    탕건 쓰자 파장이라고 포도 따기는 끝나버린 걸까? 어리석은 물음 대꾸도 말자. 인생은 모르는 것이니까. 그런데 최근 이상한 일이 발생했다. 그건 다름 아니라 누군가 날 미행한다는 것이다. 어느 날 출근길에 누군가 내 뒤에서 걷는 낌새가 보이길래 뒤를 돌아봤다. 물론 아무도 없었다. 그게 몇 번 이어지더니 이제 그 누군가는 내 뒤 그리고 길 건너편, 즉 비스듬한 사선으로 출근길에 날 따라붙었다. 그게 몇 번 반복되었다. 그리고 그동안 그 사선의 각도도 줄어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퇴근길에 그는 내 곁으로 다가왔다. 단순히 다가온 것만이 아니라 날 어깨동무하다니! 이 사람 뭐지? ~라면서 찬찬히 고개를 돌릴 겨를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친근한 어깨동무가 아니라 불친절한 헤드락을 걸었기 때문이다. 물론 보통 사람들 같으면 풀어주라는 시늉으로 탁탁 터치다운을 하거나 어떻게든 괴로움을 몇몇 방법으로 표출할 텐데. 내가 웬만한 격투기 애들 업어키웠는데 이 정도쯤이야.
   「선생. 내가 누군지 궁금하지 않소?」
   「」
   「왜 묻는 말에 대답을 하지 않소? 일부러 날 달아오르게 하도록 만들기 위해서요? 그런 목적이라면 실패할 거요. 언젠가 내가 그대를 애간장타게 만들거거든. 허허허. 그래도 우리 갑작스레 친해진 듯 하지 않소? 굳이 답변하기 싫으시다면 침묵하셔도 좋소. 근데 꾀죄죄하게 차림새가 그게 뭐요? 그래가지고 새로운 발상 쉽게 떠올리실 수 있겠소? (그러면서 그는 자기 양복 안쪽을 보여주었다) 지방시요. 물론 이름값 예전만 못할 테나 애호가들 사이에서 높이사는 몇 년 식이라오. 딱 봐도 이 몸에 걸친 사치품, 당신과 너무 비교되지 않소?」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요?」
   「아아, 용건만 간단히 하자? 나도 좋소. 난들 왜 마다하겠소. 하여 내 그대의 시간을 아껴드리겠소. 안 그러면 울지도 모르니까. 물론 내가 선생한테 싸움으로 질 거요. 왕년에 운동 좀 하셨겠구만. 진정하시오. 나라고 뭐 긴말 한도 끝도 없이 계속 이어가고 싶겠소? 알아요 알아요. 밑도 끝도 없이 웬 작자가 뜬금없이 나타나 수작은 수작이냐. 이 인간을... 워 워 워. 자, 받으시오.」
    그러면서 그는 명함을 내밀었다. 명함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www.populast.com 나머지 깨알 같은 글씨는 뭔지 잘 알아볼 수 없었다.
   물론 난 그걸 정중히 받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는 내게 그걸 보여준 다음 대충 읽었겠다 싶어서 내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곧 있으면 언제인지 몰라도 못 이긴 척 찾아오시게 될 거요. 그때 다시 만날까요? 나도 바뻐 이 사람아. 어쨌든 할 말 떨어지면 찾아오시오. 그러게 될 거요. 아, 내 말이 너무 저렴했소? 괘념치 마시오. 거 아실 만한 분께서. 형씨 우리 좀 솔직해집시다. 내가 당신을 모를 것 같소? 몰라요. 어떻게 그 음흉한 속내를 빠삭히 분석할 수 있겠소. 통 속이 보이질 않아. 검정색? 내가 뭐 투시력이 있나 선생 속옷 색상을 어떻게 점찍겠소. 난 마술사가 아니라오. 그건 그런데. 하나 물읍시다. 형씨, 자유를 되찾고 싶지 않소? 새로운 인생이 뭔가 그립지 않냔 말이오. 물론 순수예술에 대한 창작열이든 밤의 황제든. 그 뭐든지 당신 소원을 들어드릴 수 있으니 하는 말입니다. 우리는 알라딘의 램프 거기 나오는 그 뭐냐 아무튼 그와 격이 다르거든요. 또 뭐 3가지? 제한없음. 즉 무제한. 아, 그럼 선생은 우리한테 뭘 내놓아야 할지 궁금하겠죠. 그렇다고 우리가 뭐 큰 걸 바라겠소? 더불어 이 세상에서 최고로 비싼 게 바로 공짜인데. 이 신성한 거래가 단순한 물물교환일 리 있겠소. 그래서 하는 말인데 귀 좀 빌릴까요?」
    그는 내 귀에 이름을 빌려달라고 했다.
   「뭐요? 생각이 있소 없소? 당신도 내가 호구로 보이요? 나 그렇게 만만한 사람 아니올씨다.」
   「내가 언제 당신을 물로 봤다 그래? 이거 이거 생사람 잡는 거 좀 보소.」
   「뭐 이름을 빌려달라? 내가 뭐 피에르 가르뎅이요?!」
   「이 양반 웃길 줄 아시네. 말도 잘하고. 난 당신 말 못하는 사람인 줄 알았다오. 허허허허허.」
   「뭐요?」
   「벙어리가 남편을 빼앗기더니 입이 트였나, 아직 아닌데. 너무 앞서나가는 거 아니야?」
   「아니, 그렇게 심한 말을! 당신 말 다 했소? 네? 이 사람이 아까부터 보자 보자 하니까...」
   「(톡톡) 다시 말하지만 아찔한 발상이 바닥나면 찾아오시오. 당분간 골똘히 생각 좀 해 보시고. 그럼 우린 다음에 다시 만날 때까지 보고 싶어서 어떡하지?」
    그러면서 그는 헤드락을 풀자마자 도망가버렸다.
    저 자식 뭐 하는 놈이야? 나는 봐주지 말 걸 그랬나 라고 생각했다.
    그 일 때문일까? Weber / 오페라 <마탄의 사수> 중에서 2막 아가테의 아리아 “그대를 보기 전에는 바로 잠이 왔건만”
    나는 사무실에서 음악을 들어도 음악이 내 마음을 감동시킬지 못하는 걸 깨달았다. 통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안다 알아. 물론 언젠 안 그랬나? 근데 기분이 그게 아니었다. 누가 디올 옴므랑 몽블랑 만년필 살 줄 몰라서 안 사는 줄 알아? 뭔 허접한 녀석 때문에 괜히 잡념만 늘어나잖아. 젠장. 사자가 진 곳에서 여우는 이길 수 있다. 자나깨나 불여우 조심 어쩌고저쩌고. 걔 때문에 이젠 푸념도 통 이어지지가 않아. 대체 뭐 하는 놈이길래 내 마음을 흔들어놓는 거지? 걔 분명 남자였는데. 그런 푼수한테 내가 뭐 마음이라도 뺐겼을 줄 알아? 천만의 말씀. 그럴 리는 없어. 근데 왜 이리 허전할 걸까. 몰라. 알아서 뭐 하게. 신경쓸 필요 없어. 다 소용없으니까. 이렇듯 행복한 일하기에 퍽 차도가 없었기 때문일까? 나는 출근길에 만난 그 얼굴 없는 사나이가 가르쳐준 장소로 한번 가봐도 왠지 괜찮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어딘가 혹시 모르니까 가본다고 큰 손해는 없지 않겠냐, 어쩌면 기발한 착상이 얻어걸릴지도 모른다는 느낌. 무시하기 힘들었다. 그렇다고 들뜬 마음을 어디에 소문내지 않고. 소심한 예감이 앞장서서 나를 그곳으로 끌고갔던 것이다.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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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굴 없는 사나이가 알려준 장소에 도착. 거긴 인적 드문 놀이터 같았다. 어쩌면 수풀을 치우고 청소 좀 하면 퇴락한 놀이공원이 드러날 듯 했다. 그 가운데 아니 이럴 수가.... 저번에 내가 작성했던 허구, 그 연재편에 나왔던 대형 MRI 장비. 그와 꽤나 흡사한 기구가 있었다. 단지 허접한 상상력으로 대충 생각해낸 것에 불과했는데 이 우연의 일치라니. 그래도 일단 한번 들어가서 뭐가 있는지 구경이나 해볼까? ~라는 마음으로 딱 들어갔다. 그랬더니!
    그 안에는 별 거 없었다. 그 대신 얼굴 없는 사나이의 음성이 녹음되어 틀어져 계속 되풀이 재생되고 있었다.
   "이곳 도면이 거기 보면 있을 거요. 혹시 모르니까 면밀히 살펴보고 잘 기억해두시오. 나중 도움될지 누가 알겠소. 또 그 다음에 거기 보면 명함이 하나 있을 거요. 이제 그곳으로 찾아오면 된다오. 거긴 엑스맨 잔치 일색이진 않을 테나 그동안 상상도 못한 가면무도회를 구경할 수 있을 거요. 아니 그 주인공이 되어보시는 호사, 그 풍요를 누려야 할 귀인은 바로 당신이라오. 그러니 만사를 제쳐놓고 당장 그곳으로 와주면 고맙겠소."
    정말 옆을 보니 약도, 도면, 명함이 있었다. 뭐야! 저번에는 이쪽으로 오라더니 또 딴 데로 오라고? 이거 사람을 뭘로 보고...! 똥개 훈련시켜? 안 가. 기분나빠. 빈정상했어. 이게 뭐냔 말이야. 그래서 나는 다시 사무실로 돌아갔다.





    2

    나는 사무실에 도착했다. 그런데 그 얼굴 없는 사나이가 사무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닌가! 물론 뻔한 드라마 전개처럼 그가 날 졸졸 따라다닐 리는 없으니, 그러므로 저번에 어깨동무하며 명함을 찔러주었던 그 얼굴 없는 사나이와. 지금 잠시 마주친 얼굴 없는 사나이가 동일인물일 리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그 둘이 같은 사람이면 어떡하지? 그게 나랑 뭔 상관인가. 그래서 일단 당장 앞에 있는 저분이 누구인가를 밝혀내고자 했는데 그는 은근 의뭉스러운 분위기를 뒤로 한 채 그냥 가버렸다. 저 자식 뭐지? 쟤 대체 뭐 하는 놈이야! 그건 아마 넌지시 저번 그 장소로 가보라는 일종의 지령일까 아닐까. 그러든 어쩌든 나랑 오래갈 인연이 아닌 것만은 분명했다. 따라서 난 그냥 내 생활에 전념하면 그만. 그렇게 사무실에서 마저 남은 일을 한 다음 퇴근했다.
    그렇게 딱 퇴근하여 사무실을 나섰는데... 거 어째 자꾸 신경 쓰이네! 걔가 어디 소속인가는 몰라도 왜 하필 날 귀찮게 하는 거지? 알 게 뭐야. 손해보는 거 없으니 그래도 일단 한 번 가볼까? 아니 가지 말까? 어차피 운동삼아 산책하는 거나 다름없으니 무익한 시간낭비는 아닐 것이다. 안 그래도 속으로 정말 눈꼽 만큼은 속는 셈치고 한번 들려볼까 라는 생각 없지도 않았으니까. 그래서 난 곧장 그곳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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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번에 내가 작성했던 연재편에 등장했던 대형 MRI 장비. 의학장비보다 대략 10배 크기. 그런데 난 여기가 저번 작품에 나왔던 장소와 흡사하다는 걸 왜 이제야 알았을까? 그걸 몰랐으니까 여자가 없지. 그걸 대번에 알아챘다면 난 이미 집에서 뭐 소파에 자빠져 TV 채널 돌리기 귀찮으니까 여편에 궁둥이나 쓰... 시끄럽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근데 아까부터 디미늬엔도인가 뭔가 점점 크게 라는 음악용어. 이 노래가 아마 그건가? Niccolo Jommelli / Requiem in Eb major 누군지 몰라도 또 슬슬 발동을 걸려는 걸까? 그래 봤자 별거 없다는 거 모르는 나도 아니다만. 이처럼 슬슬 들뜨는 난 또 뭐냔 말이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저 안에 들어가서 작동 버튼을 눌러볼까? 누가 그러지 말라고 말리는 애인 없으니 그래 보지 뭘. 이런 날 감시하면서 누군가는 햄버거랑 콜라 먹으면서 CCTV를 볼까, 하면 아니겠지. 이런 장면이 뭐 영화관에서 것도 IMAX보다 훨씬 발달한 대형스크린으로, 막 팝콘 먹으면서 극장 좌석에서 관람할 리는 없단 말이야. 그래. 밑져야 본전. 안 그래도 난 판돈도 없어. 그렇다고 가면무도회에 초대받기 바쁘냐, 하면 기다리는 잔치에 대해 기대 버린지 오래. 그렇게 나는 일단 착석해서 노란색 버튼을 눌러 시동을 켜고, 선홍색 기어를 올린 다음, 푸른색 손잡이를 당겼다. 그랬더니 결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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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긴 엇그제 롭이 알려준 별장 안에 있는 음악실로 추정되었다. 내 이럴 줄 알았다. 또 뭔 수작인가 했는데 놀랍도록 정교하긴 하나. 내가 뭐 속을 줄 아나? 흡사 드라마에서나 볼 듯한 공간이동 기술이긴 하다만. 이건 과학적으로 말이 안되거든. 때문에 "말도 안 돼!"라는 말조차 아깝다. 그래서 나는 절대로 놀라지 않았다. 물론 겉으로만 봐선 그렇다. 음악실에서 나오는 음악 Beethoven / String Quartet no.4 in c minor op.18 no.4 누가 모를 줄 알아? 다 알아. 아는 척할 필요가 없다. 어차피 딱 봤을 때 모스맨 연구소 환상머신에서 내가 딱 걸어나오면 그럴려고 했을 거야. 이를 테면,
   「늬가 거기서 왜 나와?!」
   「누가 나오고 싶어서 나왔냐?」
   「근데 늬 그 사자머리는 뭐냐? 폭탄 맞었냐?」
   「내가 계란을 왜 삶아? 안 그래도 저번에 3 대 3 소개팅 나갔다가 내가 애들 위해준답시고 넘버 3 전담했는데. 너 왜 하필 그 기억 떠올리게 만드냐? 어?」
    어쨌든 저속한 표현으로 난 정신줄 놓지 않았다. 원래 난 제정신이다. 난 말짱하다. 미치지 않았단 말이다. 그러니까 쟤네들이 누군지는 모르겠다만 이런 식이겠지.
    A) 내 관점: 아마도 잠깐 딴생각하는 틈
    B) 매커니즘: 그 짧은 찰나를 백배 천배 확장시키는데, 동시에 대상자는 그걸 인지하지 못하도록 유도. 그 방법은 최면과 의학과 세뇌와 기타 과학적 방법들.
    이처럼 영화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놀라면 안된다. 안 그래도 작품구상차 한번 들릴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내 마음을 어떻게 알았지? 마침 잘된 거네. 수캐에게 물리건 암캐에게 물리건 물리긴 마찬가지. 내 발로 발품 팔아서 또 돈쓰고 어떻게 어떻게 당도하든. 아니면 호박이 제 발로 굴러오길 기다리다가는 날 새겠다 따라서 일단 뭔가 변화를 주자 하여 어디까지 행진하든. 결과는 똑같다고 치고. 그래. 놀자! 놀다 금방 지겨워지기 마련일 테니까. 그러니까 사람은 적당히, 딱 적당히 바빠야 좋다. 너무 할 일 없어도 심심하다. 개들 풀어줘 보시라, 겁나 바쁘게 막 빨빨거리고 돌아댕길 텐데 초반 정력은 길게 못간다. 뭐 휴가왔다고 생각하지. 근데 그 장시간 공간이동을 대체 어떤 기술로 짧게 줄인 거지? 신기하긴 했다. 뭐 다 방법이 있겠지. 좌우지간 모처럼 해방된 기분. 얼마 만인가! 정말 그렇다. 고삐 풀린 소가 잘 핥는다. 자유만큼 좋은 건 결코 흔치 않은 걸까? 그렇지만 그 대신 여자는 없어. 그게 뭐 어때서. 그리고 전형적인 시골이지만 있을 건 다 있었다. 한적해도 오히려 뭔지 모를... 더 말하면 안된다. 쉿! 어쟀든 그렇게 새로운 장소에 대해 정탐하면서 뭔 뜬소문이 들리나 안 들리나 두 귀를 쫑끗 세우면서 그곳에 적응하게 되었다.





    3

    그렇게 별장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어제 마신 포도주는 정말 환상적이었다. 왜냐하면 간밤에 꾼 개꿈이 정말 기막히도록... 허당의 희망을 충족시켜줬기 때문이라고나 할까? 농담이고. 별장에는 없는 게 없었다. 게다가 어떤 웹서비스를 이용해서, 또 아는 동생한테 전화로 부탁해서 내 노트북과 자동차를 이곳으로 보내달라고 어제 다 조치를 취했는데. 마침 오늘 도착했다. 그 다음으로 자, 이제 무엇을 할까? 진정하자. 누가 쫓아오지 않는단 말이다. 그렇다고 막 공포영화처럼 동네 아저씨가 내게 이곳을 당장 떠나지 않으면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을 마주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할까? 정반대였다. 웬 아리따운 숙녀가 방문해서 얼마 동안 머물지는 몰라도 친하게 지내자는 의미로 케익을 선물하고 갔다. 물론 이름은 물어보지 않았다. 그렇다고 숙녀가 먼저 내게 전화번호를 알려줄 수야 있나. 그건 그렇다만 딴 건 다 좋은데 인생이 어째 조연들 없는 단막극, 즉 모노드라마 주인공 같지? 어차피 나이 들면 누구나 원맨쇼 하든 말든 누가 관심 갖지 않는다. 사교와 처세술은 빈말과 가식과 그럴 듯한 아부를 바닥에 깔고 가는 거다. 말이 그렇단 거고 그건 안다박사님들께 여쭙는 걸로. 그러면서 나는 못 다 구경한 별장을 둘러봤다.
    결론만 말하자면 다락방 삼촌의 취향을 만족시켜주는 괴상한 장식품은 없었다. 투명 드럼통에 특수 화학약물을 채워 대형 하이에나를 절반으로... 뭐 그런 건 없었다. 곰 박제품도 없었다. 다만 그건 있었다. 초대형 도끼! 언제적이던가 삼류대학교 1학년 때 친하게 지내던 형. 그 시절을 지나 나중 사회에서 만났을 때 당시 형도 돌아보니, 너랑 쟤 딱 2명 말고는 기억나는 우정도, 각별한 친분도 없었다 그랬는데. 그 형이 언젠가 하급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면서 만날 때 어떤 비장한 각오의 의미로 자동차 트렁크에 넣고 다니던 도끼. 그걸 보여준 기억이 났는데 그와 매우 흡사한 도끼가 있었다. 그런데 도끼의 날이 뭐랄까... 뭐라 말로 형언하기 어렵도록 신비하다고나 할까? 어떤 마성이 끼어들어... 빠져들면 안된다. 그러지 말자. 그건 그렇고. 완전히 놀러 온 거도 아니고. 완벽히 자의로 부여받은 휴가도 아니다만. 그래도 뭐랄까 일 반 놀기 반이라는 성과는 만족시켜야 하므로. 난 먼저 일을 끝낸 다음 놀자, 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대충 자세를 잡고 일을 시작했다.
   <블로그니까 털어놓는다만, 달콤한 행운은 코앞까지 다가오지 않았다. 단지 쥐꼬리 만한 품위유지비에 허덕일 뿐. 삶이란 정녕 뭘 해도 재미없는 거란 말인가! 아니다. 그럴 리 없다. 인생이 어떻게 개뼉따귀에 지나지 않는단 말인가. 허나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게 다 이유가 있다. 그건 뭘까? 뭐겠나. 옛말마따나, 응? 좋은 개에게 꼭 좋은 뼈다귀가 돌아가는 것은 아니니까. 그게 대체 뭔 소리야? 겨울이 가면 봄이 온다. 틈새시장이 별볼일 없으면 관망하기를. 그러다 좋은 날 있겠지. 잔치 뒤에 머리 긁는다고 너무 일찍 부뚜막에 올라가지 않아도 된다. 근데 그러다 영영 영원한 병풍은 커녕 허접한 허당 취급도 못 받으면 어떡하지? 뭘 어떡해. 운명이란 모르는 것. 그땐 UFO라도 나타날 것이다. 아니면 예언가로 데뷔하지 뭐가 고민인가. 관상 한두 번 보나. 작명가 기질 어떻게 속이나. 안 그래도 누구누구 외계인설 그거 다 뻥이다. 그나저나 인생사 전략따라 내가 먼저 A급 탤런트와 깜짝 결혼이나 발표할까? 멜로드라마가 대체 나랑 뭔 상관이란 말인가. 관심없다. 누가 끌린데? 됐다 그래. 시시콜콜한 수다라면 신물이 나니까 말이다. 안 그래도 노골적으로 황금만 쫓는 열정도 없고 여건도 안된다. 어쨌든 정신차리자. 근데 정신을 차리면?! 그럼 좋긴 하겠으나 별 차이 아마 없을 걸! 이런 시시한 중년운 옛날에 꿈에도 생각치 못했을 텐데. 블로그니까 솔직히 하는 말이지만, 누가 말했나 개 팔자가 상 팔자라고! 그게 아마 말이 전달되며 와전됐을 것이다. 아닐 수도 있고. 어쨌든 최소한 나는 그렇게 호언한 적 없다. 적어도 난 사랑이 아름답다고 노래하기를 좋아하진 않는다. 그럼 이 마당에 내 친구가 비황금주의를 선언할까? 그게 무슨 개소리인가. 이젠 어디서 개 짓는 소리도 잘 들리지 않는다. 개에게는 개뼈다귀를 허당에게는 진한 사랑을! 뭐? 놀고 있네. 사랑 좋아하시네. 아니 근데 혹시...! 혹시는 무슨 놈의 혹시. 아니야. 설마...! 밑도 끝도 없이 뭔 설마. 이거 정말 거북목 증후군이 치료되니 잠잠하던 허언증이 쓱 고개를 드는구나. 이거 정말 어쩌면 좋을까. 하긴 무슨 수로 갑자기 풍운아가 되겠나. 좋게 포기하고 2지망을 새롭게 점춰보는 게 나을 텐데. 2지망이 뭔지는 모르겠다만 걘 뭐 나 잡아봐라면서 호락호락할까? 말해 뭐 하나. 그럼 대체 제3의 판타지는 꿈도 꾸지 못한단 말 아닌가. 무도회 구경도 못하는데 춤을 어떻게 신청하나. 그러니까 말하자면 난 여전히 공상병의 노비로구만. 해가 바껴도 변한 게 없어. 걸핏하면 말꼬리 잡고 늘어지기. 좌 정신산만 우 소심증. 아니면 재미없음과 심심함이라는 양대산맥 사이에서 오락가락. 뭐지? 뭐긴 뭔가. 은근 늙은 거지. 뭣이 어째? 이거 아무래도 한동안 침묵하는 게 좋을 것만 같다. 무형의 마네킹을 여편네로 아는 건 아니다만. 잔소리에 사람 돌아버릴 지경이니까. 그럼 이쯤 됐으면 어디로 떠나도 되는 건가? 그럼 좋은데 시국은 물론 세계가 소란스럽지 않나. 더구나 늑대는 사냥을 어떻게 하는지도 다 까먹었다. 이거 영 말이 아니구만. 이래가지고 어디 사교계에 복귀할 수 있겠어? 하긴 멜로드라마조차 알고 보면 적응하기 쉽지 않은 장르다. 삶이 그렇다. 인생이 어디 내 맘대로 되야 말이지. 그래서 에잇 못 참겠다 라면서 경기장 난입! 근데 1부리그 구원투수가 아니라 하필 난동꾼. 하다 하다 조롱꾼들한테도 말발로 딸려. 이거 뭐 되는 일이 없어. 그렇다고 투덜거린다고 넉살이 느나? 통상 늘지도 않고 또 늘면 뭐 하나. 신분상승은 영화 주인공들 얘기인데. 허나 절망쯤이야 얼마든지. 우리는 실망 두렵지 않다. 체념 어디 한두번 겪나. 얄미운 가난 하나도 유감스럽지 않다. 처음부터 유복하면 재미없다. 더군다나 에스프레소 1잔이면 젊음은 즉각 회복된다. 근데 콜라를 마셔도 영 상쾌하지가 않다. 결국 사는 게 이처럼 권태로운 건 속된 말로 동기부여라는 약발이 떨어졌기 때문일까? 질문 그만 좀 하자. 뭔 말 같지도 않은 시적인 추측. 지겹다. 짜증난다. 징글징글하단 말이다. 어차피 근근히 먹고 살며 뺑뺑이 도는 다람취 챗바퀴 같은 삶, 예정된 것이므로. 따라서 나만 가진 게 없다면서 징징거리며 떼쓰지 않아도 된다. 보아하니 어릴 때 꿈꾸던 난 어른이 되면 머머할 거야 뭐가 되고 싶어 어떻게 살겠어, 그거 다 소용없단 게 여실히 증명된 거다. 그걸 이제 깨달았나? 일찍도 철든다. 형 철들지 마세요─형이 다 꼬셔준다면서요─형 저도 날라차기 맞고 싶어요, 라는 남동생들은 물론 아는 여동생들 그러니까 다 떠났지.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라면서 애원하는 숙녀. TV 채널 돌리기도 지친다. 말하자면 난 결말이 기억나지 않는 영화 같은 남자다. 이런 젠장! 이런 한 능청 하는 푼수를 다 봤나. 난 또 뭐라고, 같은 촌놈이 바로 나라니. 근데 그게 뭐 어째서, 남들도 다 그래. 근데 이러다간 정말 낙서왕으로 등극하는 건가? 허접한 결말이든 괜찮은 반전이든 좋게 줄거리 구상하기 위해 일이나 하러 가야겠다>





    4

    나는 그곳에서 세 부류 남자들과 친해졌다. 낚시, 운동, 주색. 마지막 부류는 말만 그렇다는 거고 그냥 한량 무리긴하다만 모두 착했다. 그래서 우리는 바에서 새로온 바텐더와 내기도 하고, 당구도 치고, 어깨동무하며 으쌰으샤 노래도 불렀다. 그 시시콜콜함 가지고도 드라마는 밥 먹듯이 우려먹고, 영화에서도 30분 금방 뽑는다만. 내가 못해서 그러는 게 아니라, 다 식상하니까 그 분량은 생략한다는 말이다. 그건 그렇고.
    그러다 나는 어느 날 산책을 했다. 모처럼 혼자였다. 하긴 혼자가 좋긴 좋다. 누가 짜증나게를 하나 귀찮게를 하나. 얼마나 홀가분한가. 웬만한 유부남은 물론 유부녀 마음 굳이 알려고는 하지 말자. 그렇게 동네를 산책 중 난 웬 들개들한테 쫓기게 됐다. 밑도 끝도 없이 내 옷에서 뭔 냄새를 맡은 것일까? 주인 있는 개처럼 보이는 애들은 목에 줄을 메고 대충 뭔가 표시가 있는데. 그런 개와 아닌 개들이 뒤섞여서 어떡하다 도망가니까 걔네들은 완전 신이 난 거 같았다. 그래서 쫓기다 쫓기다 어떤 인적 드문 골목에서 웬 춘부장을 맞닥뜨렸다. 그 할아버지는 이렇게 마주친 것도 인연인데 차 한잔 마시지 않겠냐 하여 난 초대에 응했다. 그 다음으로 우리가 나눈 얘기?
   「젊은이. 여긴 어쩐 일로... 아, 그게 그러니까 들개들한테 쫓겼수? 알만 하구만. 걔네들 끈질겨. 조심해 이 친구야. 근데 걔네들보다 더 주의해야 할 부류가 있으니.」
   「설마 그 부류는 동네 허당들 말씀하시는 건가요?」
   「허허허. 거 어디식 농담이유? 형씨 유머가 꽤나 독특하구만. 아, 웃기다!」
   「어르신. 말씀 편하게 하십시요. 허허허허허. 아무리 봐도 가짜웃음은 저보다 한수 아니 여러 수 위인 것 같습니다.」
   「어르신? 내가 어딜 봐서 어르신이야! 아 글쎄 농담이 아니라 난 아마 당신보다 동생벌일걸! 정말이야. 왜 내가 그처럼 겉늙은 것 같소?」
   「아니 제 말은 그게 아니라...」
   「이거 사람 놀리는 거요? 내가 어딜 봐서 할아버지야! 꼭 보면 아줌마한테 아줌마라는데 신경질내는 여편네들이 있긴 있어. 내 마누라가 일전에 어땠는 줄 아쇼? 말도 말어. 근데 당신 결혼했어? 아, 내가 겉늙어보이고... 그대가 어려보인다고 가정했을 때... 형씨 지금 나 갖고 장난해? 이거 겸손이 심하잖아, 어? 아니지. 근데 어디 소속이요? 언제부터 여기서 얼쩡댔어? 겁먹지 마쇼. 나 이상한 사람 아니니까. 그럼 당신이 이상한 사람이요? 거 사람 그렇게 안 봤는데... 근데 듣자하니. 어? 당신이 그 동네에 뜬금없이 출연한 이방인이오, 동네 처자들 다 따먹고 다닌다는 사람이 바로 당신이냔 말이오!」
   「아니, 그렇게 심한 말씀을...!」
   「왜 내 농담이 썩 고급스럽지 않았소? 난 일부러 당신이 촌닭처럼 보이길래... 신경쓰지 마쇼. 거 말이 잘 섞이지 않더래도, 어떡하다 나중 말이 잘 통할 수 있는 거도 아니겠수? 근데 표정이 그게 뭐요? 우리집이 뭐랄까 괴기스럽소? 하긴 뭐 좀 그렇긴 하지. 그럼 어떻게 내 아는 여동생들이라도 불러다 줄까? 뻣뻣한 남자끼리만 얘기해서 좀 기분이 세하요? 말만 하슈.」
   「아 근데, 선생님. 여기서 나가는 길이... 제가 좀 전에 길을 잃어서요.」
   「지구는 둥글다오. 저기로 가든 저짝으로 가든. 다 어딘가에서 만나게 되어 있소. 그런 의미에서 내가 편찬한 인생론 한번 읽어보시겠소? 물론 공짜는 아니라오. 값진 거 다 그만한 값어치가 있기 때문이라오. 물론 내 자필 사인도 기록되어 있다오. 왜, 그런 거 안 좋아하오? 그럼 말하지 그랬소. 그래도 괜히 헛걸음하지 않은 게 어디요. 근데 왜 당신은 말이 없어?」
   「허허허. 허허허허허.」
   「웃음이 그게 뭐요, 젊은 사람이!」
   「네? 아니 그게...」
   「웃음이 썩었어.」
    그럭저럭 나는 어떻게 어떻게 그곳을 탈출했다.
    그 다음 2일 경과.
    동네 바에서 동네 친구들을 만났다.
    나는 엇그제 길을 잃어서 어떤 할아버지 만난 이야기를 녀석들한테 들려주었다.
   「그 할아버지를 만났다고?」
   「응.」
   「그분... 만나면 안돼.」
   「우리 얘 이제 뺐기는 거니?」
   「뭔 사연이라도 있는 거니?」
   「너무 많이 알려고 하지 마.」
   「무슨 이야기인데 그래?」
   「너무 길어. 또 너무 복잡해. 게다가 그 내막을 다 아는 사람도 없어. 그렇다고 모두 이해가 되나? 그럼 좀 좋겠나. 심지어 그 냥반은 한 300년 사신 것 같단 말야. 일단 말을 섞다 보면 정신이 나가는 것만 같다고. 말려들면 안돼. 물론 나쁜 사람은 아닌데 그 뭐랄까 이상해. 기묘하다고.」
   「넌 그래도 대화만 해봤잖아. 난 거기 다락방까지 봤어.」
   「뻥치지 마.」
   「진짜야.」
   「어쨌든 형씨 그 근처 쪽으로 발길을 옮기지 마쇼. 그쪽에서는 절대 혼자 다니지 말란 말이오. 될 수 있으면 우리랑 놀자 그 말이란 말이오. 아시겠소?」
   「도대체 무슨 줄거리인데 그렇소? 뭐 귀신이라도 봤소?」
   「귀신?」
   「이 사람이...!」
   「왜들 그러오?」
   「여기서는 귀신의 '귀'자도 입에 담지 마시오. 당연히 왜냐고도 묻지 마시오.」
   「근데 형씨가 그 할아버지를 어떻게 아쇼?」
   「아까 말했잖아, 근처에서 길을 잃었다고.」
   「아, 그랬지. 아니 근데 형씨가 그 할아버지를 어떻게 아쇼?」
   「너 취했냐?」
   「뭔 소리야, 난 살면서 취해본 적이 1번도 없는 사람이야. 어? 꼭 보면 어디서 주도를 잘못 배운 사람들이 그런 오해를 한다니까 글쎄. 날 봐 봐, 날 보라고. 내가 언제 했던 얘기 또 하고 또 한적 있어? 없어. 응? 아니 근데 형씨는 여기 어쩐 일이오? 아, 맞다. 그 할아버지! 그 할아버지랑 형씨랑 뭔 사이오? 혹시... 후계인? 아니 근데 형씨가 그 할아버지를 어떻게 아쇼?」
   「쟤 얼른 보내라.」
    그 날은 그렇게 지나갔다.
    다시 1일 경과.
    나는 혼자 극장에 갔다. 시골이지만 있을 건 다 있다고 했나 안 했나!
    그렇게 극장에서 내가 본 영화는 무슨류 영화였다.
    영화 내용에 대한 설명은 생략한다. 그리고 나는 뒷편에 앉았다.
    그렇게 영화가 시작되기 전과 중간에 몇몇 커플이 영화관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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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가 끝났다. 그렇게 한 10짝쯤 되나? 나는 혼자인 반면 다정한 연인들이 대부분이라 난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그렇게 연인과 팔짱끼고, 포근히 껴안은 듯, 다정스레 손잡고 나가는 연인들을 보니 걔들이었다. 낚시, 운동, 주색 3부류 3명씩 총 9명 친구들. 나머지 1쌍은 누군지 모르겠고. 나는 걔네들 데이트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한참을 기다리다 나갔다. 근데 녀석들은 극장 밖에서 캔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여자는 없었다.
   「아니 왜 너네들 모두 혼자야?」
   「무슨 소리야?」
   「아까 보니 다 애인이랑 같이 있던데...!」
   「우리가 애인이 어딨어, 소개나 시켜주고 놀리든가.」
   「설마 저 형 뭐 이상한 거 본 거 아니야? 그 할아버지댁에 방문한 사람들이 일전에 꼭 보면 그랬잖아.」
   「맞다. 정말이네.」
   「마침 잘됐다. 내가 캠코더로 영화를 찍는 취미가 있거든. 오늘도 마침 그랬는데 그거 틀어보면 누구 말이 옳은지 알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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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틀리고 쟤들이 맞았다. 뭐지?





    5

    다음 날이 되었다.
    그날도 별일 없었다. 그럭저럭 씻고, 책 읽다, 인터넷 뒤지다 어쩌다. 그러다 혹시 카펫을 떠들면 비밀 통로로 이어지는 비밀문이 설치되어 있는 거 아닐까? 라는 생각에 카펫을 들추어봤다. 그런데 있었다. 정말이다. 진짜다. 내 이럴 줄 알았다. 이렇다니까 글쎄. 누가 모를 줄 알았나? 웃기고 있어. 누굴 바보로 아시나. 다 그걸 알고서 시작한 모험 아닌가. 모험? 이게 뭔 모험이야. 이건 뭐 숨은그림찾기도 아니고 술래잡기도 아니고. 그냥 혼자놀기지. 그러든 어쩌든 비밀통로라... 아니 정말로 TV로 또 영화로만 봤던 거 아닌가. 그럼 안 들어가 볼 수 있나. 그래서 난 곧장 그곳으로 들어가봤다.
    거긴 지하실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렇게 핸드폰으로 후레쉬를 켜서 조명 버튼을 찾았다. 켰다. 그런데 저게 뭐야?
    그걸 보는 순간 난 엉덩방아를 찢을 뻔 했다. 그래도 실제 꿈쩍하지 않았다. 조금 놀랐을 뿐.
    왜냐하면 바닥에 6명의 얼굴만 덩그러니 있었기 때문이다. 괴기영화랄지 막 공포 장르에 나오는 그걸 예상할 수도 있는데.
    보자마자 난 그게 아마 바닥에 묻혀있고 해수욕장에서 연인과 친구들끼리 장난하는 그걸 예감했던 것이다.
    그분들과 대화를 나누고 어쩌고 드라마처럼 줄거리를 억지로 길게 늘이지 않겠다.
    그럴 필요 없이 시네마처럼 '그래서 어떻게 됐어?'를 만족시킨다고 가정하자면.
    걔네들은 저번 연재편에 등장했던 7명, 거기서 날 빼면 6명이었다. 그래서 난 물어봤다.
    5명이라면 이해를 하겠는데... 당시 007가방을 업그레이드하기 싫다는 1명은 왜 함께 있는 거냐고!
    그랬더니 그분들은 뭐랬을까? 일단 입에 물린 특수장치를 빼주라는 시늉을 하길래. 그걸 빼줬다.
    그랬더니 어서 묻혀진 몸도 빼주라고 했다. 그랬다. 그랬더니 저쪽 007 가방에 리모콘이 있으니 버튼을 눌르라고 했다.
    그랬더니 버튼을 눌렀더니 족쇄는 모두 해제됐다.
    어쨌든 사연을 듣고 보니 당시 1명이 마음을 바꿔서 자기들을 따라가기로 해서 함께 007 가방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떠났는데.
    웬 거대한 스톰트루퍼 같은 놈을 만나기는 만났는데... 나까지 총 7명이 와야지 007가방을 업그레이드해주겠다고 해서.
    이렇게 어딘가로 떠나왔는데... 누군가에게 당해서 여기 이렇게 감금되어 있었다고 했다.
    근데 불과 얼마전에 그 중간책들이 들러서 잠깐 귀뜸해주었다고 했다. 뭐라고?
    이게 모두 내가 시킨 일이라고. 자긴 지시에 따랐고, 착수금은 물론 성공수당까지 빵빵히 챙겼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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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명은 자유롭고 1명, 즉 나는 앞서 녀석들처럼 얼굴만 빼고 나머지는 묻혔다.
   「근데 이건 좀 재미없지 않냐?」
   「너도 그렇게 생각해?」
   「그럼 방법 있어?」
   「왜 없어!」
   「뭔데?」
    즉각 누군가 또 리모콘을 눌렀다. 그랬더니 저 구석진 곳의 비밀문이 열렸다.
    또 나도 풀어줬다. 대신에 난 철장에 갖힌 셈이고, 자기들은 바깥에 있고.
    나는 녀석들 주문대로 비밀문 안쪽으로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쭉 들어갔다. 어둡다가, 소름 돋다가, 기분 이상하다가... 갑자기 밝아졌다.
    거기는 한 2000년 전쯤 될까? 로마의 검투장인가 뭔가 아니면 그리스 무슨 경기장이었다.
    관중들도 많았다. 다 옛날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내 앞에는... 살다 살다 그렇게 큰 개는 처음봤다.
    저건... 저건... 지옥의 개 케르베로스? 뭔지 몰라도 개침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 날 보며 입맛을 다시는 건가?
    나는 개가 아니니 녀석들 마음을 알 수가 있나. 그런데 딱 뭔가 신호가 울렸다. 그래서 녀석들은 미친듯이 내게 달려들었다.
    한 놈은 내 코를 물었고, 나머지 2놈은 내 거기를 물었다. 그 악몽이 처녀 불알 빼고 다 가능하다는 걸 난 왜 미처 몰랐을까!
    녀석들이 내 거기를 무는 순간 난 악몽에서 깨어났다.
    식겁했다. 젠장, 이런 미친...!





    6

    나는 별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최근 너무 동네 친구들과 놀러 다니느라 통 일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뭔가 이래서는 안될 것만 같았다고나 할까. 그렇지만 일은 도무지 손에 잡히지 않았다. 이처럼 말이다. 밤낮 똑같은 이야기. 다 비슷한 줄거리. 끝으로 갈수록 흐지부지. 그래서 웬만하면 시간과 비례해서 중반 이후가 잘 기억나질 않음. 우리 인생도 이처럼 식상한 걸까? '우리'에서 난 빼주라는 부탁을 누가 모를까. 설마... 에잇 아닐 거야. 근데 뭐가 아니야? 나도 몰라. 바로, 이처럼 말이다.
    아! 그런데 난 왜 여태 음악감상실을 생각하지 못했을까? 내가 여기까지 와서 한량처럼 지내게 된 사연. 모두 다 별장 내부 음악감상실로 내가 순간이동했기 때문 아닌가. 물론 그게 다 긴잠을 1분이나 5분 정도 잠깐 눈붙이며 공상한 걸로 느끼도록 다 어쩌고저쩌고 기타 등등. 그랬을지 모르지만. 어쨌든 지금 보고, 듣고, 읽는 사람 아무도 없지? 옐로카드 받든 말든 혼자니까, 아니 줄거리를 비틀려면 짧게 한줄평으로 간출여야 할 것 아닌가. 그러므로 난 저렴한 비속어 딱 1번만 내뱉기로 했다. 어차피 당장 옆에 혈당치를 올려주는 사탕이 없으니 그걸 핥을 수도 없지 않나. 그게 뭔 소리야? 넘어가고. 나는 별장 내부 음악감상실을 조져야만 했던 것이다. 비밀이든 뭐든 거기 다 있다고 보면 된다. 딴 건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난 음악감상실로 들어갔다. CD, 많네. Leo Delibes 발레 모음곡 <코펠라아>. Tchaikovsky 발레음악 <호두까기 인형>. Johann Strauss.JR 오페레타 <베네치아의 하룻밤>. Handel 오페라 <베레니체> 서곡(Minuet). Haydn 하이든 Piano Trio No.43. Saint-Saens 생상스 Violin Sonata No.1....
    물론 고전음악만 있는 건 아니었다. 추억의 유행가도 많았다. 근데 이상한 건 하나같이 모두 뽑히지가 않는다는 점. 혹시 뽄드로 붙여놓은 거야? 지들이 뭐 낙지 빨판 같은... 쉿! 그럼 설마 이게 모두 장식에 지나지 않는 건가? 아닌데. 진짜 CD 맞는데. 그러다 뭘 딱 뽑았는데 그게 특수버튼이기 때문에 딱 비밀문이 작동하는 건가? 결과만 간략히 말하자면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렇게 이거 저거 시도해보다가 어떤 CD가 사뿐히 뽑혔기 때문이다. 그건,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 그래서 바로 틀었다. 음악은 시작됐다.
    그렇게 한참을 듣던 중 어디선가 이상한 냄새가 났다. 이를 테면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향기라고나 할까? 뭐가 딱히 형언하기 곤란한. 더불어 어디선가 따듯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동시에 전면 스크린에서는 연하게 시작됐던 화면정지 영상. 뭐라고 불러야 할지 그 어째 그런 거 있지 않나. 막 지 혼자 괴상한 변화를 일으키는 다양한 화면조작 영상들. 그때부터 유독 음악은 내 감정을 자극했다. 아주 그냥 귀에 쏙쏙 들어왔다. 이미 몸을 맞겼는데 그래서 난 마치 그 음악의 작곡자가 되는 것만 같은 착각에 빠졌는데. 그런데 어떻게 마음을 빼았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 더더군다나 내가 앉은 특수의자는 하필 안마의자였다. 시판 중인 그런 상업용이 아닌 듯 했다. 요컨대 기가 막혔다. 그럼 이제 안마의자를 대체하여 어떤 여인이 내 뒤로 슬며시 쓱 등장하는 걸까? 그럴 리 있겠나. 그 대신에 난 슬며시 잠에 빠져들고 말았다.
    장면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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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초대형 MRI에서 깨어났다. 그게 웜홀머신인지 환상머신인지 몰라도. 최소한 런닝머신이 아닌 것만은 분명한데...! 이게 뭐지?
    누워있지 않고 앉아있는 내 앞에 포스트잇으로 명령문이 적혀있었다.
   「궁금하면 찾아오시오.
    Michigan Carcassonne Mazamet, Patras Psachna Dirfi, Catania Lecce Cavallino, Sanata Cesarea, Monte Leon Motel Hello 옆 PLAY HOTEL
    궁금하지 않아도 우린 만나게 될 거요.」
    나는 그 포스트잇을 뜯어 막 구겨서 짖이겨 던져버렸다. 그렇게 멋지게 밖으로 걸어나가려고 했는데...!
    그래도 혹시 모르지 않나. 하여, 지금은 폼잡을 때가 아니다 따라서 일단 한번 믿어보는 수 밖에.
    그래서 버린 포스트잇을 챙긴 다음 일단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멋진 페라리 FF가 바깥에 떡하니 있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탔다. 시동을 거니 네비게이션도 켜졌다. 이미 앞서 주소도 입력되어 있었다.
    근데 주소가 뭐 이렇게 길어? 더 길지 않은 게 어딘가. 또 뭐랄까 불행 중 다행으로 난생 처음 페라리에 타 본 건 또 어디고.
    그렇게 나는 그곳으로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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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긴 다름 아니라 별장이었다. 뭐야, 이런 젠장! 난 또 뭐라고.
    마침 동네 친구들이 마치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길거리에서 기쁨조처럼 (속된 말로) 조잡고 농담따먹기하고 있었다.
   「어, 형씨. 그 똥차는 또 뭐요?」
   「야 임마. 똥차가 뭐니 똥차가.」
   「그럼 똥차를 똥차라 하지 뭐라는데?」
   「클래식카.」
   「이름을 알아야 불러주든 말든 할 거 아냐.」
   「우리 친구 기분 나쁘게 너 자꾸 똥차 똥차 그럴래?」
   「그러게 누가 똥차라는 말 꺼내래?」
   「늬가 먼저 시작했잖아 똥차라고.」
   「그러니까 그만 하면 될 거 아냐, 그 똥차 얘기. 아까부터 대체 몇번을 똥차 똥차 그러는 거야?」
   「너 일부러 그 말 반복하고 싶어서 자꾸자꾸 똥차 똥차 그러는 거냐?」
   「내가 언제 똥차 똥차 그랬다 그래? 너 나한테 한번 혼나 볼래?」
   「뭐가 어쩌고 어째?」
   「너 여자 한번도 안 사겨봤지?」
   「내가 너냐? 너는 못 사귀는 거고. 난 은퇴한 거고. 응?」
   「너 자꾸 거짓말하면 확 그냥 불어버린다. 응?」
    그런데 이제 보니 녀석들 말마따나 내가 여기까지 몰고 왔던 자동차는 정말로 클래식카였다. 뭐야 이거?
   「형. 그나저나 나 언제 여자 꼬셔줄 거요? 왕년에 여자깨나 울렸다는 형의 말 믿은 내가 바본가?」
   「너까지 형을 푼수로 아냐? 난 저형 마음에 들어. 왜, 언젠가 내 배필을 소개시켜줄 거라고 난 믿거든.」
   「너보다 내가 먼저야.」
   「늬가 우리 아제한테 해준 게 뭔데? 난 이미 (몸짓) 알아? 게다가 한정판... 거기까지만 알아둬.」
   「이 자식이... 너 여기서까지 얍삽하게 노냐?」
   「뭐가 어째?」
   「늬들 또 왜들 그래?」
    꿀꿀한 날씨 다음에 쾌청한 날씨 온다는데...
    난 여기 계속 있다가는 미처버릴 것만 같았다.
    그렇지만 방법이 있나. 오늘은 얘네들이랑 재밌든 재미없든 즐겁게 노는 수 밖에.





    7

    다음 날이 됐다. 평소처럼 오전은 지나갔다. 그럭저럭 점심식사도 해결했다. 그런데 별장 다락방 여기저기를 구경하다가 웬 쇼핑백을 발견했다. 나머지야 다 시시콜콜한 거고. 그 가운데 딱 하나. 바로, 컵라면! 식료품점에서 흔히 살 수 있는 게 아니라 유통기한 지난지 까마득한 물품. 이름은 바로 <짜장범벅, 케찹범벅, 카레범벅>. 다른 사람 같은 경우야 아무렇지도 않겠지만... 난 그럴 수 없지. 왜냐, 중학교 1학년 때 교과서와 공책에 적었던 숫자 1234. 1학년 2반 34번이야 뭐 우연이다 쳐도. 프레스토라는 이름의 자동차를 타시던 국어선생님이 왜 내 뺨을 고맙게도 때려주셨냐, 친구랑 놀다 창문을 깨트려서였는데. 뭐 그때 생긴 흉터도 그냥 그렇다쳐. 그런데 케찹범벅... 카레범벅... 짜장범벅... 왜 하필...! 평범한 멜로드라마 말고 일일드라마, 그 가운데 막장드라마. 거기 나오는 저속한 표현 돈독! 원고료 밀리지가 언제인지도 모르겠다만 왜 도저히 일독은 끊이지 않는고 하니.
    당시 중1때 친구들끼리... 이상하게 짜장범벅, 케찹범벅, 카레범벅 광풍이 불었는데. 케찹범벅 → 빨강 / 카레범벅 → 노랑 / 짜장범벅 → 검정. 독일(국기) → (거꾸로) 일독. 말도 안 돼! 재미 하나도 없다. 더군다나 짜장은 '물론'을 뜻하고 케찹은... 카레는... (절레절레). 그게 왜 갑자기 생각나지? 몰라. 좀비처럼 피부병 걸렸던 거 생각하면, 넘어갑시다. 중요한 얘기도 아니고 말이다. 옛날에 행운아요 해결사 아니었던 사람 어디 있나? 어쨌든 춤춘다고 다 기쁜 것이 아니다. 춤? 근데 동네 청년들이 춤추러 가자고 하면 어떡하지? 저번에 보니 극장은 있긴 있었는데... 설마, 닭장? 언젠적 유행인데 바꼈겠지. 아무튼 다 잊고 쉬려고 어딘가로 떠나지 않았기 때문에 일이 이처럼 꼬여버렸나! 얼렁뚱땅 작품 구상차 놀러온 결과이긴 한데. 이건 뭐 혹 뗄려다가 혹 하나 더 붙인 정도가 아니잖아? 차라리 했던 말 또 하고 또 하고 계속 하는 인공지능과 놀 걸 그랬나...! 근데 걔도 요즘 바빠. 잘 놀아주지도 않고...! 어쨌든 난 느낌 세해서 도저히 여기서 더 쉴 수 없었다. 돌아가지 않으면 난 바보가 되어버릴 것만 같아서 말이다.





    8

    3일 경과.
    나는 오늘 사무실로 출근했다. 동쪽에서 뜬 해는 서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그러다 나른한 3시에 누군가 찾아왔다. 모두 여섯 명이었다.
   「누구신지...」
   「우리는 당신이 만든 사람들이오.」
   「내가요?」
   「그렇소.」
   「무슨 소리요 그게?」
   「말 그대로. 우리는 당신이 만든 사람들이오.」
   「난 진짜와 똑같은 마네킹 로버트를 만드는 과학자가 아니오. 뭘 잘못 아신 모양인데,」
    6명 가운데 재빨리 누군가 검지로 내 입을 틀어막았다.
   「정말이오.」
   「내가 언제 거짓말이라 그랬소? 당신들께서는 뭘 잘못 아셨을 수도 있는데 그와 별개로, 네? 난 그대들을 모른다 그 말입니다. 아시겠소?」
   「모르겠소.」
   「그러면 아는 게 뭐요? 뭘 아시오?」
   「우리는 아는 게 많소. 다만 안다박사 취급받기 싫어 말을 아낀다는 것만 알아두시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우리는 당신이 만든 사람들이오?」
   「우리가 할 말을 벌써 당신이 해버리지 않소. 말만 가로챌 줄 아는 게 아니라 여자 마음 훔치기에 선수 아니오? 선생은 그 말로만 듣던...」
   「말로만 듣던?」
   「사람 띄엄띄엄 보는 허당.」
   「뭐요? 초면에 거 말장난이 심하지 않소!」
   「그러니까 어떻게 하면 우리 말을 믿어주시겠소?」
   「믿고 말고가 어디 있소? 난 아니라니까 글쎄. 왜들 그러오?」
   「말씀 잘하셨소. 우리가 왜 이럴 거 같소? 왜, 왜냐! 어째서 우리가 이러냐, 네? 왜냐하면 우리는 당신이 만든 사람들이기 때문이라오. 정녕 아직도 모르시겠소?」
   「아 나 이런 거 참 나 증말 말 안 통하네. 어디 번짓수 잘못 찾아오셨구만 그래.」
   「아니오. 제대로 왔소.」
   「난 그런 적 없다니까요 형씨들.」
   「형씨들이라니오. 선생, 혹시 영화 대부를 보셨소?」
   「보긴 봤죠. 근데 그게 왜요?」
   「모르겠소.」
   「모르면서 그건 왜 물어봤소?」
   「잠깐 까먹었소. 그럴 수 있는 거 아니오. 자꾸 그렇게 보채니까 우리가 당황했지 않소. 좀 있으면 기억나겠지 뭐. 아 참! 우리를 소개하겠소.」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스탠리. 알렉산드로. 트레버. 샌더스. 셔터. 앤더슨이라오. 자, 듣자마자 아셨을 테니 읊어보시오. 거명해보란 말이오.」
   「스탠리. 알렉산드로. 트레버. 샌더스. 셔터. 앤더슨이라오. 아니 근데 내가 이걸 왜 하고 있지? 왜 내가 푼수처럼 당신이 시킨대로 이름을 말하고 있는지, 혹시 아신다면 가르쳐주실 수 있겠소? 모르겠지. 또 아까처럼 그 말만 반복할 테니까. 근데 내가 왜 당신들과 꽁트를 진행해야 하는지 도무지 모르겠소. 아 나 거 증말 돌아버리겠네.」
   「열릴 뻔한 뚜껑 우리가 덮어드리겠소. 미치지 마시오. 선생은 미치면 안되오.」
   「당신들 대체 정체가 뭐요?」
   「우리는 당신이 만든 사람들이오.」
   「내가 만들긴 뭘 만들어, 어? 아까부터 보자 보자 하니까 나 골탕먹이는 거야? 어? 이거 왜 이래? 어? 내가, 어?」
   「진정하시오.」
   「지금 진정하게 생겼소?」
   「흥분은 진한사랑과 친하다오. 우리는 남자 대 남자로 대화하고 있지 않소. 그렇소, 안 그렇소? 네?」
   「뭐가 그래? 어?」
   「짜증을 가라앉히시고 일단 우리들 직업을 맞춰보시는 건 어떻겠소?」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가난한 연극배우. 물론 곧 있으면 복권 1등에 당첨될 것이고. 그리고 당신은 은퇴한 스포츠부 기자. 저 친구랑 친하게 지내면 되겠네. 또 이분은 관상이... 조각가. 나머지 사랑운과 재물복은, 통과! 그 다음은 엔젤투자자.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카페 사장. 휴, 근데 내가 왜 시키는 대로 다 하고 있지?」
   「왜냐하면,」
   「아, 그만!」
   「정말이오. 우리를 탐험가로도 도박사로도 여심을 정복하기 좋아하는 난봉꾼으로 만든 건 바로 당신이라오. 그런데 이제 와서 모른 척해? 그럼 안 돼지. 어? 사람 섭하게 정말 그러기오? 그런 법이 어디 있소, 네? 우리가 당신에 대해 조목조목 맞춰봐야 우리를 신뢰하시겠소? 그럼 그렇게 합시다. 뭐 까짓 것 못 할 것도 없지 않소. 당신 고전음악 좋아하는 거 우리는 다 알고 있소.」
   「고전음악 좋아하는 사람들이 어디 한둘이오? 이거 봐 봐. 당황했어. 다 보여 이 양반들아. 연기 그만해. 어?」
   「당신은 12살-13살 때 그걸 식탐했다고 들었소. 짜장범벅, 케찹범벅, 카레범벅 인스턴트 라면말이오.」
   「그건 또 어디서 들었소? 아무튼 나 아니오. 네? 나 아니오. 몇 번을 말하오, 나 아니라고. 네?」
   「받아들이는 게 편할 거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소? 우리가 무엇을 보고 뭘 하고 싶으며 어떻게 느끼는지. 당신도 다 알고 있지 않소?」
   「몰라요. 내가 어떻게 당신들 속마음을 알겠소, 네? 스탠리는 최근 아는 동생한테 흑심 품고 있고, 알렉산드로는 거래처 경리한테 눈독들이며 공들이는 중. 또 트레버는 친해진 숙녀를 어떻게 한번 해볼려다가 그녀가 눈치채서 도망갔고. 또 샌더스는 여자친구 자빠트릴려다가 그냥 지 혼자 자빠졌고. 셔터라면야 최근 메탈리카 공연 보러 갔을 거고. 앤더슨은 버티다 버티다 결국 하는 수 없이 플레이보이계에서 은퇴했구만. 딱 봐도 그래. 어제 영화 고스트쉽 또 봤지? 대체 몇 번을 는 거야?」
   「다 맞혔소. 역시 듣던 대로군.」
   「뭐가 어쩌고 어째?」
   「어떻게 하면 우리를 믿으시겠소?」
   「믿고 자시고 나 아니야. 설득이고 뭐고 나 아니라고요. 창작이니 창조고 나발이고 나 아니라니까 증말 이 사람들이...!」
   「쟨 바람둥이로 나는 허당으로. 그리고 쟤는 천재요 짜도 재력가로. 나만 둔재로 만들었다고 형씨를 원망하는 거 아니라오. 그럼 일단 우리의 5번 타자 마술사 셔터가 나설 차례오. 셔터 뭐 하니? 보여드려.」
   「보여드려? 대체 뭘 보여줄려고...」
   셔터는 007 가방을 소파 탁자 건너편에 앉은 내 쪽으로 살며시 내려놓았다. 그러면서 열어보라는 시늉, 몸짓, 어조로 알려주었다.
    난 열어봤다. 근데... 속이 깊었다. 나는 팔을 짚어넣었다. 저 아래에 척키의 상반신상이 있었기 때문이다. 실물 그대로 정사이즈. 뭐야, 그런데 007 가방은 탁자 위에 있는데? 또 뭔 속임수야~!
   「이거 대체 어떻게 된 일이오?」
   「우리를 마술사로 만든 건 당신이오.」
   「또 그 소리. 아 글쎄 나 아니라니까 증말!」
   「가방을 다시 봐보는 게 어떻겠소? 볼 때마다 달라져 있을 거요.」
   나는 가방을 다시 내려봤다. 그랬더니... 거기에 미녀천국이 있는 건 아닌데... 황금과 다이아몬드와 초호화품들이 있긴 있는데...! 손을 넣고 만질려고 하면 멀어졌다.
   「가방 속으로 들어가는 건 당신의 자유라오. 허나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은 만큼 될 수 있으면 그러지 않기를 바라오.」





    9

   「당신들 누가 보냈소?」
   「어딘가에서 왔겠죠. 허나 알고 보면 그게 다 당신이 보낸 거 아니겠소. 아니 그렇소? 허허허. 통 이해하지를 못하시니까 그럼 이렇게 즉답드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거요. 말하자면 우리는 KKK단 소속이오. 세간에 잘못 알려진 우월 어쩌고저쩌고 그런 거 아니라오. 뭐든지 세력이든 종파든 분산되며 다양화되지 않소. 일단 거기까지만 아시고. 아니 더 상세한 설명이 듣고 싶으시다면 밤을 세워서라도 말씀드릴 용의가 있소.」
   「궁금하지 않소. 우린 오늘 처음 보는 사이니까. 내가 언제 알고 싶댔소? 거 보자 보자 하니까 사람이 너무 싱겁네. 응. 정말 그래.」
   「형씨! 말 끊어서 미안한데. 농구만 뭐 가로채기가 있겠소? 주도권이야 왔다 가고 돈이야 있다가도 없는 것. 형씨를 만나면 나 한번 따져야겠다 생각 안 해본 건 아니라오. 솔직히 말해서 은총과 축복과 복음과 감사와 사랑과 기쁨과 또 뭐야, 다 좋소. 다 좋아요. 근데 (고개를 팍 숙여 정수리쪽 원형탈모증 부위를 보여주면서) 이게 뭡니까? 나 이러다 낙엽처럼 정말 머리카락 다 날라가면 어떡하죠? 안타깝지도 않소? 형씨 제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오. 그리고 또, 어? 내가 뭐 존못을 보면 짓는 개요? 네? 이런 날 존잘로 만들어줬으면 좀 좋아! 응? 안 그래? 왜 날 이렇게... 물론 응석이자 투정쯤으로만 받아주시오. 허허허. 근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내 친구는 뭔 전생에 나라를 구했는지 어쨌는지 일복이 일복이... 캬 어? (몸짓) 어? 대박. 배 아프단 말이 아니오. 누가 부럽대? 질투하지 않음. 신경도 안 씀. 그렇지만, 어? 근데 난 이게 뭐야! 전생에 뭔 죄를 졌길래 다변가 여편네는 수다머신 역대급. 귀에 피가 나도 끝이 없는데, 최근 어떤 블로그에 빠져서 더 기가 살았음. 뭐 어떻게 나까지 거기 빠져들어서 이젠 눈에서 케찹이 나올 지경. 그리고, 어? 난 뭔 전생에 커피 못 마셔 원한 맺힌 귀신이라도 씌인 건가? 그냥 인생이 커피야. 누군가 바쿠스인 것처럼. 그러니까 내 말은 대체 그대가 지구에 왜 온 건지 그게 궁금하다고나 할까요? 근데 왜 하필 지구인지... 대체 지구와 비슷한 행성이 대체 몇 개인지 아시요, 모르시오? 뭐 다 그럴 만 하니까 그렇게 된 사연일 텐데... 하긴! 아니 어떻게 우주의 비밀을 이처럼 신비스럽게인지 비과학적으로인지... 너무합니다. 그대 진정 너무합니다. 물론 그럴 수 밖에 없다는 거 우리도 잘 압니다. 그럼요. 허허. 거룩함과 먹먹함 외에도 죽어도 여한이 없도록 누군가의 궁금함을 달래준다고나 할까요? 하여간에 차 떼고 포 떼고 딱 1가지만 생각해봐도 은연중 뭔가 넌지시 우리에게 암시하는 건 퍽 부인할 수 없다는 점. 학계는 물론 나중 드라마와 다큐멘터리와... 일단 개대됩니다. 네. 그럼요. 그처럼 나중이 기다려질 수도 있고... 사석에서 할 말 부쩍 많아지기도 할 텐데...」
   「지금 따지는 거요?」
   「아니~ 그게 아니라~ 아니~ 내 말은~」
   「부모님한테 물려받은 이따만한 재산은 싫지 않고. 그 정도 생겼으면 됐지 또 언년을 꼬실려고! 응? 어제도 난 뒷산에 올라갔소. 거기서 도시를 내려다봤지. 도시의 야경 나쁘지 않았소. 그 말은 또 좋지도 않다는 말로도 곡해할 수 있는 거 아니겠소. 기왕 말이 나와서 말인데 야경이 멋지지 않은 도시도 있소? 그런 건 없다고 봐도 된다오. 따라서 나쁘지 않다 다 그러겠지. 허허. 허허허. 그건 뭐 그런데. 근데, 어? 그 수많은 불빛들 그 수많은 빌딩들 그 수많은 아파트들. 거기서 내 소유는 단 1개도 없습디다. 나 같은 사람이 어디 드무요? 아니오? 아닌 게 아니오? 근데 재산세 내실 만큼 내시는 분들께서 뭐 불만이 그렇게나 많소? 다음 생에 정녕 혐오곤충으로 태어나고 싶으신 게요? 그럼 말만 하시든가. 하여간에 됐고! 여기서 싸움 1등이 누구요. 내가 한수 가르쳐주는 건 어떻겠소. 야, 너! 그래 너 임마. 어딜 쳐다 봐? 딴 데 보지 말고. 내 눈 피하지 마 임마. 어? 능청은 아지트 가서 떨고. 뚤레뚤레 아직도 유난떠냐, 어? 그래, 너 말야 너. 너 나랑 한판 뜨자. 어? 걱정마 임마 내가 져줄 테니까. 알아들어? 뭐 6명 가운데 5명은... 어려워보이고 제일 만만한 상대가 너 밖에 더 있냐? 그걸 꼭 말로 해야 알아듣냐? 어?」
   「형씨 진정하시오. 목에 핏대 섰소. 소름 돋을 뻔했소.」
   「어라~ 웃어? 뭐, 쪼개? 지금 이게 웃겨? 금붕어상 표정 심각하고. 말상은 실실 터져나오려는 웃음을 간신히 참고 있고. 잘들 헌다. 야! 말상아고 개상아고 싸워. 야 돼지상. 넌 뭐가 좋다고 실없이 웃어? 야, 너 사자상. 너 학교 다닐 때 공부 못했냐? 그러게 엄마 말 왜 안 듣고. 그러지 말고 사자상 늬가 얘네들 정리해. 조용히 시키라고. 내 말 안 들려? 이런 건방진 뚱보를 다 봤나. 너 말고 너! 또 웃어? 입 다물어. 조용히 해. 어디서...! 이런 돼지새끼... 너 말고 너. 이런 못생긴 새끼돼지. 넌 뭘 잘했다고 웃어? 어? 내가 웃기냐, 어? 여기가 뭐, 됐다. 아니. 어? 야 너 멍청대장군, 넌 하다 하다 여기까지 와서 여자 생각하냐? 어? 야 이 미련곰탱아! 정신 안 차릴래? 어? 왜, 정신차리게 해줘? 그래? (팔짱) (절레절레) 내가 지금 늬들 데리고 뭐 하는 건지 참 뭐가 뭔지 알 수가 있어야 말이지.」
   「형씨 혹시 코메디언이오?」
   「그럼 내가 개그우먼이겠소? 내가 코메디언이면 지금 여기서 당신들과 이러고 있겠냔 말이오! 부질없는 입씨름 취미 없다오. 아니, 근데. 당신들 정말 뭐야? 어? 너도 나 가난하다고 깔보냐? 어? 너도 내가 우습냐? 어? 어디 한번 해보자는 거야, 어?」
   「안되겠소. 마지막으로 오늘 비장의 카드를 꺼내들어야겠소. 우리의 스탠리가 알고 보면 정말 요술쟁이라오. 스탠리!」
   「야, 스탠리 뭐 해?」
   「이미 했어.」
   「정말? 아니 언제?」
   「나 스탠리야. 무슨 말이 더 필요해!?」
   「그래도 짧게 설명은 필요하지 않을까?」
   「형씨,」
   「정중하게!」
   「그래도 너무 거리감 느껴지니까. 으응? 형씨. 실례되는 말씀입니다만 강력한 걸로 짠-했소. 충격적인 마술로 짧게 승부보자는 의미에서 말이오. 자, 저쪽으로 가셔도 좋고 여기서 살짝 옅보셔도 좋으니. 지금, 팬티 안을 봐 보시오.」
   「누가 겁날 줄 알고! 보라면 못 볼 거 같소? 나 새가슴 아니야. 이거 왜 이래?」
    그래서 나는 내 팬티를 슬쩍 옅봤다. 뭐야?
    그런데... 아니... 아니 어떻게...
    내 물건은 초딩 아니 5살 꼬마의 그것으로 변해 있었다.
    직접적으로 말해서 꼬실꼬실 털도 없고. 어른것처럼 실하지도 않고. 허당들처럼 색상이 진하지도 않고.
    그냥 땅꼬마 그 자체!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겠소. 여기 명함을 놓고 가겠소. 부디 거기 적힌 무도회에 참석해주셨으면 감사하겠소. 보면 아마 깜짝 놀랄 거라 자신한다오. 허허허. 그럼 다음 기회에 (몸짓)! 애들아 가자.」





    10

    수줍은 애인의 호의에 대한 궁금증, 참을 수 있다. 왜냐면 애마도 뭣도 없으니까. 기쁨과 행복과 사랑과 낭만을 이루 말할 수 없도록 바랄 리 있겠나. 우리는 그런 거 하나도 관심 없다. 열망에 대한 간절함 알 게 뭔가. 그렇다고 웬 야생마를 어떻게 한번 자빠트려볼까 잔뜩 벼르는 주인공이 나오는 일일드라마. 난 왜 그게 재미없을까. 마리오네트와 면사포와 수정구슬을 선물할 일이 없기 때문에? 그러든가 말든가. 보아하니 다정함과 부드러움과 애절함과는 그냥 담을 쌓고 산다고 봐도 된다니. 근데 그게 뭐 어째서! 괜찮다. 들들볶고 닥달하는 잔소리 어차피 한 귀로 들어갔다가 다른쪽 귀로 나올 텐데. 일단 곁에 다변가도 누구도 없는 인생. 삶이란 원래 심심한 거다. 정말로 난 재미없음에 패배해버린 것만 같다. 어쩌면 좋을까? 뭘 어쩌면 좋을까. 사랑의 차트를 구워삶던 호시절은 다 지나갔다. 근데 있긴 있었나? 그럼. 우리는 여심을 떡주무르듯 요리하는 게 특기였지. 믿거나 말거나, 가 아니라 진짜다. 아, 진짜였다. 하긴 뭐 왕년에 멜로드라마 안 찍어본 사람도 있나? 그래서 여자말 잘들을 거 같고, 오직 자기만 끝없이 사랑해줄 것 같은 남자로 보여서 애정은 낙찰됐는데. 나중 보니... 말 말자. 어차피 남자 입장에서도 볼수록 매력적인 줄 알았는데 나중 보니... 그럴 테니까. 어쨌든 그분들 말 듣다보면 정신이 혼미해지기 쉽상. 기 빨리다 아무일도 못한다. 그냥 병풍만 서다 끝. 능글맞음이란 결국 시간낭비의 총량과 비례하는 것. 그런 시시콜콜함과 친하다보면 통상 달콤한 성과는 멀어져가기 딱 좋다는 점. 알긴 아는데. 알면 뭐 해! 누가 아니래. 새침한 숙녀 편들어주는 친구들 속으로 얼마나 짜증이 쌓일까. 근데 지금 남걱정을 왜 하지? 너나 잘해 라는 말 따논 당상이구만. 자, 더 내려갈 수 없는 바닥이니만큼 고로 이제야말로 꼭꼭 숨겨놓은 회심의 뻔트 카드를 꺼내들어볼까? 말은 쉽다. 안 그래도 짜릿한 추적과 신나는 모험과 기막힌 환희, 그거 다 과장된 거다. 아, 맞다. 그런데 오늘도 6인의 사나이들이 찾아오면 어떡하지? 또 내 고추를 꼬맹이 풋고추로 만들어버릴려고? 하한가가 아니라 아마도 업그레이드겠지. 그럼 어쩌면 난 녀석들한테 파리처럼 앞발 아니 두손을 싹싹 빌면 어떡하라고. 어제 그 마술을 보아하니 장난 아니었는데. 걔네한테 착착 말려들고 슬슬 구슬려지다가 난 정신을 잃어버릴 거란 말이야... 안되겠다. 난 일단 피신하기로 했다. 잠잠해질 때까지 바깥으로 돌다가 공수 전환의 빈틈을 노리면 된다. 지공으로 아무리 두드려봐도 웬만해서 골 넣기 힘들다. 강타자들도 태반은 비강투수들한테 고타율을 얻어서, 강투수들한테 고개숙인 걸 벌충하기 때문에 강타자 몸값하는 거다. 드문 거포 빼고는 거의 그렇다.
    그래서 나는 일단 아지트로 갔다. 근데 거기 도착했는데 안내문이 적혀 있었다. 당분간 열지 않는다나 뭐래나. 얘네도 어디서 들은 게 있나? 여바텐더 없습니다...! 대체 몇 번을 말하나 1번만 더 말했다가는, 뚜껑 열리면 안된다. 흥분하지 말자. 지금 진한 사랑에 격정적으로 몰입해도 모자를 판에, 에너지를 아껴야 한다. 정력감퇴란 말만 들어도... 그분들 마음 우리가 어떻게 모르나. 하여 난 일단 저기 보이는 카페에 들어갔다. 그래서 에스프레소를 마셨다. 그런데 뭔지 모를 목마름은 해소되지 않네?! 그렇다고 젊음의 행진에 대한 갈망 어쩌고저쩌고 또 낙서를 끄적거릴 수 있나. 그러니까 지금은 뻔트도 맹활약도 아니라 그저 몸만 풀라는 시기. 괜히 백판 자빠져 놀아야 할 때 사자가 괜히 힘빼면, 나중 꽤 괜찮은 먹잇감이 나타났을 때 허탈해질 것이다. 안 그래도 매가리없는 관상. 탄력 좀 못 받으면 어떻나. 괜찮다. 그래서 나는 집으로 갔다.
    그런데 집 앞에서 크리스티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늬가 여기 웬일이니?」
   「오빠!」
   「너 혹시 배우지망생 출신이니?」
   「그건 또 뭔 말이야?」
   「아니, 난 그냥,」
   「말을 하려면 끝까지 해. 오빤 항상 그래. 말을 하다 말어. 어? 그러니까 여자들이 중간에 나가떨어지지. 그러고서도 누굴 어퍼트리고 싶어?」
   「뭐 어퍼, 뭐? 뭣이 어째? 너 나랑 말다툼하고 싶어서 그러니?」
   「아니란 거 알잖아 오빠. 나 여기 계속 세워둘 거야?」
   「너 제라드한테 전화했는데 녀석이 걸려들지 않았고. 다음으로 세바스찬한테 던진 미끼 걔가 간보다 말았고. 그 다음으로 스탠리의 의중을 떠봤는데 걔가 자긴 좋아하는 사람 따로 있다고 고백이라도 하든? 따라서 내가 잃는 셈치고 걸어보는 베팅이야? 기대없이 내보내는 4번 타자가 바로 나냐고!」
   「」
   「웃어? 지금 웃음이 나와?」
    길바닥에서 계속 옥신각신할 순 없으므로 우리는 가까운 찻집으로 들어갔다.
   「오빠. 나 오빠한테 할 말 있어.」
   「뭔데 그래? 그렇게 나오면 내가 겁먹을 줄 알았니?」
   「오빠.」
   「내가 뭐 오빠라는 말만 들으면 미쳐버리는 허당인 줄 아니? 너 나 잘못 봤어. 우리는, 어?」
   「오빠. 나 돈 빌려줘.」
   「커피 쏟을 뻔 했잖아. 그건 또 뭔 소리야? 너네 집 부자잖아!」
   「빌려줄 거야 말 거야?」
   「그냥 주라고 하는 게 어떠니? 난 받을 생각부터 없고, 빌려줄 생각은.... 우리 인연은 이게 마지막인가! 둘 다 잃느니 그냥 사람을 잃으랬는데...」
   「오빠. 오빠한테 돈이 어딨니! 내가 오빠 가난한 거 몰라? 그냥 한번 해본 소리야. 내가 오빠를 시험한 거라고.」
   「너도 나 간보니? 내가 뭐 반찬이니 뭐니? 내 이름이 뭐 아무거나야? 어?」
   「」
   「그만 웃어, 정들겠다.」
   「정들지 뭐. 누가 오빠 잡아먹는데?」
   「어허! 얘가, 너 자꾸 무섭게 나올래? 근데 왜 출근 안했어? 너 미스테리아 그만뒀니?」
   「응.」
   「뭐야 내가 맞춘 거야? 뭐 그럴 수도 있어. 그래서 괜찮은 미술관 하나 산 거야?」
   「응.」
   「뭐야 나 또 맞춘 거니? 이러다 나 점쟁이 되겠구만.」
   「응.」
   「넌 응 밖에 할 줄 모르니?」
   「아니. 넌 응 밖에 할 줄 모르니?」
   「너 자꾸!」
   「너 자꾸!」
   「그러니까 본심을 털어놔. 설마 나를 좋아해서는 아닐 테고. 누구한테 마음이 있는 건데? 그렇다고 내가 뭐 도움이 될까! 글쎄.」
   「다 나나 되니까 오빠를 찾아왔지, 딴 애들 같아 봐. 응? 걔네들 변덕 오빠 몰라? 그리고 또, 어? 지금 남아있는 애들이 몇이나 돼. 안 그래? 그리고 또. 어? 오빠는 내가 커피 사달랜다고 진짜로 커피만 사주냐? 오빠는 그래서 안 돼. 응? 오빠는 그러니까 여자가 없는 거야. 알아?」
   「몰라. 알기 싫어. 응? 됐고. 너 누가 보냈어? 그거만 말해.」
   「뭘 누가 보내!」
   「그럼 진짜로 내가 4번 타자? 아니 5번째 대타?」
   「응. 정말이야.」
   「그냥 누가 보냈다고 해주면 안되겠니?」
   「나 거짓말 못하는 거 오빠도 알잖아. 그런 의미에서 하는 말인데, 오빠. 오빠, 우리 진지하게 사겨보는 건 어때? 응? 나 정도면 괜찮은 거 아냐? 응?」
   「넌 나보다 훨씬 멋진 남자를 만나야 돼.」
   「지금 거절하는 거야? 어쩜 귀여워. 절반의 승낙으로 알께.」
   「만약에 내가 너랑 사귄다고 쳐도. 응? 너 사랑의 차트 싹 다 정리할 자신 있어?」
   「나 크리스티야. 내가 그 정도도 못할 줄 알아? 그럴 자신 없으면 애초에 말을 꺼내지 않겠지.」
   「너 누가 보낸 게 맞구나.」
   「아니라니까 글쎄.」
   「거칠게 성내는 거 보니 맞네 맞어.」
   「그래. 보냈다. 허나 누구라고 말할 순 없어. 그러면 안되니까.」
   「근데 너 아직도 연예인병 졸업 못 했니? 늬 별명이 혹시 그래서 못 말리는 그녀라도 되는 거니? 정말로?」
   「묻지 마.」
   「이미 질문은 엎지러진 물. 무응답은 네 자유.」
   「안 되겠다. 내가 소문 쫙퍼트려야지. 오빠랑 나랑 사귄다고. 그럼 뜬소문이든 헛소문이든 몇 명은 믿겠지.」
   「너 대체 나한테 왜 그래?」
   「그걸 몰라서 물어? 일단 오늘은 이쯤 하고 후퇴할께. 다음을 기약하는 걸로. (윙크) 오빠 알지? (알긴 뭘 알아) 나 간다. 아! 배웅하지 않아도 돼. 밖으로 나올 것까진 없다고. 다음에 봐.」
    저년이......!





    11

    다음 날이 되었다. 나는 KKK단 6명이 남기고 간 명함을 보았다. 그건 안내장이었는데 고급스러운 봉투 안에 넣어져 있지 않고 달랑 1장 뿐인 종이였다. 그런데 이럴 수가! 저번에 봤을 때 언제 어디로 오라는 무슨 설명회 날짜. 그 날짜가 바껴 있었다. 분명히 1주일 후로 알고 있었는데 오늘 보니 그건 오늘이었다. 하여 난 창밖을 쳐다본 후 그걸 다시 봤다. 그랬더니 이번엔 또 2020년이 아니라 1920년으로 보이네?! 나는 인상을 팍 쓴 체 다시 봤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1920의 숫자가 급속히 올라가더니 2020년에서 멈췄다. 마지막에 사뿐히 줄어드는 기능까지. 이 종이 1장에 무슨 장치를 입혀놓은 거지? 마술처럼 보이도록 애는 썼는데. 허나 난 그게 놀라운 기적이자 신비로운 초현실이라고 믿지 않았다. 왜냐, 그건 나도 할 수 있으니까. 단지 독학하기 귀찮고 연구하다가 금방 싫증날 게 뻔하니까 그래서 단지 하지 않는 것일뿐. 때문에 난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런 속임수로 까무러칠 내가 아니지. 암, 그렇고 말고! 어쨌든 날짜가 오늘이니까 난 퇴근 후 그곳으로 갔다.
    장면 전환.
    장면 전환.
    장면 전환.
    거긴 휴장중인 공원 같기도 하고 아니면 거의 짓다 만 대규모 리조트로도 보였다.
    그리고 어떻게 알았는지 어디 어디로 오라며 핸드폰 메시지가 도착했다.
    오라는 데로 찬찬히 이동했더니 대규모 실내체육관이 있었다. 들어갔다.
   「와, 눈부셔!」
    난 조명발과 그리 친하지 않은데... 또 사람 하나 보이지도 않은데 이 조명은 다 뭐지?
    그때 누군가 다가오는지도 모르도록 교묘히, 정말 교묘히 어떤 숙녀가 내 옆에 바짝 붙었다.
   「나는 당신의 블로그에 등장할 숙녀랍니다. 아그네스라고 불러주세요. 근데 혹시, 우리 구면인가요? 말하자면 난 이미 당신의 작품에 등장했는가 그 말이에요. 아니면 지금 실시간으로 내가 당신과 어떤 장면에서 만나고 있는 건가요... 말해줘요. 어서 말해봐요. 궁금해서 미칠 것만 같아요. 물론 그 정도까진 아니지만 말이에요. 그렇지만 절 비중 있는 배역으로 설정하실 거면 기왕 하는 김에 멜로로 갔으면 좀 좋았을까! 왜 러브스토리 유치한가요? 아니면 뜨거운 사랑에 겁먹은 건가요. 하긴 해봤어야 알지. 딱 봐도 (몸짓) 진한사랑이랑 맞질 않아. 근데 왜 오빠는 말이 없어요? 자기가 만들어낸 비련의 여인. 때로는 비너스로, 불운에 절망할 때는 슬프게, 하지만 결국 해피엔딩에 이르게 될 그녀. 내가 톱탤런트와 상당히 다른 느낌이라서 썩 마음에 들지 않는 건가요? 그러니까, 흔녀다, 뭐 그거에요? 보면 볼수록 매력적으로 새롭게 보일 텐데 이걸 어쩌나. 근데 오빠와 난 전생에 무슨 인연일까요. 아, 실은 하나 고백할 게 있어요. 오빠가 날 블로그에 등장시킨 건, 그게 그러니까 이미 등장했든 아니면 나중 깜짝 출연하게 되든. 그건 곧 내가 오빠한테 그렇게 하도록 조종했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운명이거든요. 그 우리요가 아직도 누군지 모르겠어요? 오빠와 나. 어떻게 하면 믿겠어요?」
    그와 동시에 내 눈에서 레이저가 나갔다. 잠깐 시연용이었기 때문에 일단 분홍색으로 시작해 푸른색으로 끝났고 짧았으며 저쪽 레이저가 끝나는 부분에서 번쩍임과 타오름과 연기가 살짝 일었을 뿐. 다른 건 없었다. 나는 누군가 뒤에서 내게 레이저를 쏜 게 틀림없다고 판단했다. 나에게 들통날 수 밖에 없는 이미 예견된 수법. 넘어갈 수 없었다.
   「빛보다 빠르지 않은 레이저인데, 인간에게 유해하지 않은 걸 어떻게 내게 비춘 다음. 그건 반물질 성격을 띠는데. 파동은 규칙적인데 유달리 간섭현상을 일으키는 물체를 만나면 그걸 관통하지 않은 체 바깥면을 따라서 이동하다가, 관통했을 때의 끝지점에서 다시 곡선은 직선으로 바뀌어 운동에너지를 유감없이 선보이는 기술. 나도 가능하다오.」
   「오빠도 유소년 과학잡지 좀 읽었나 봐! 그러니까 난 뭐 블로그에나 나오는 조연이기 때문에 내 말에 별 신빙성은 없다? (딱)!」
    이번에는 저쪽에 걸려있는, 가로 십 몇 미터에 세로는 그 2배에 필적하는 대형 초상사진. 그 초상사진은 크기에 걸맞도록 사람으로 바껴서 내게 걸어왔다.
    그리고! 내게 다가오면서 점점 사람과 흡사한 크기로 바뀌는데. 내게 거의 가까이 오면서 점점 흐려지더니 그건 그녀의 첫키스였을까? 나와 접촉하자마자 서서히 옅어지던 그녀는 깨끗히 사라졌다.
   「그런 3D 기술로 날 밀고당길 생각이었소?」
   「그럴 줄 알고 저번에 밀사로부터 들었단 말이에요. 당시에 움찔했다면서요?」
    그러면서 그녀가 손짓하자 스탠리. 알렉산드로. 트레버. 샌더스. 셔터. 앤더슨이 등장했다.
    나는 반가워서 유난히 친한 척했다.
   「친구들. 난 형씨들 이름 다 기억해. 한번 불러볼까? 스탠리. 알렉산드로. 트레버. 샌더스. 셔터. 앤더슨. 근데 왜 불러도 대답이 없어?」
   「그분들은 스탠리. 알렉산드로. 트레버. 샌더스. 셔터. 앤더슨가 아니랍니다.」
   「그럼 저분들은 그 양반들 주니어라도 된다는 겁니까?」
   「그렇죠.」
   「허허. 이거 누굴 속이려고. 그럼 뭐 쟤들이 슈퍼주니어라도 된단 말이오? 아니지. 그래. 그럼 슈퍼주니어 2? 지금 나랑 장난하시오? 네? 여기서 당신은 몇 가지 묘기를 보여준 다음, 또 날 어딘가로 유인하려고? 이거 누굴 보고 또 똥개 훈련시킬려고!」
   「오빠 웃기다. 이 오빠 뭐지? 오빠 대체 정체가 뭐야? 오빠 정말 속고만 살았어? 그 저명한 동네북이 바로 오빠야? 그러니까 호구도 뭐 국가대표급이다? 이런 봉을 다 봤나. 이거 완전 바보 아니야! 야호 바보가 나타났다 바보가 나타났다.」
   「이렇게 말하려던 거 다 짐작하고 있었어. 흠! 저기 저 친구들은 지금 몽환적인 상태이기 때문에 지금 일은 기억 못할 테고. 또. 저 친구들은 엇그제 나랑 만났던 걔네들의 아들들이다? 그래서 당신 아까 뭐랬지, 아그네스인가 아뿔사인가 당신이 한 30년을 순식간에 필름 빨리감기했다고 하려고 했죠? 낭자, 그대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봤소. 내가 보기엔 말이지,」
   「잘못 짚었네. SF가 아니라 그냥 드라마일 뿐인데. 쟤들은 정상적으로 나이들었을 뿐이고, 쟤 아빠들이 나이값을 못했기 때문인지 몰라도 늙지 않아서 그 둘이 똑같아졌을 뿐. 오빠 너무 앞서나가셨어.」
   「근데 당신은 정체가 뭐요?」
   「나? 아까 말하지 않았소. 당신 블로그에 등장할 여인이라고. 아니면 이미 몇 편 찍었나 몰라! 근데 왜 오빠는 날 기억을 못해? 보진 못했기 때문이라고? 운명적인 만남 척하면 척 아셨어야지.」
   「말도 안 돼!」
   「왜 말이 안 돼? 말이 되게 해 드려?」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눈속임으로 날 쫄게 만들려고. 허접한 속임수 나도 다 할 줄 안단 말이오.」
   「안 되겠다. 아무래도 오빠가 10 JOBS인 만큼. 그 가운데 유독 최근 예언력이 떨어졌기 때문에. 오늘부터 30일 동안 일정을 빼곡히 적은 엑셀 파일을 전해줄께. 그럼 되겠지? 왜 아직도 긴가민가 하셔요? 이 오빠를 어쩜 좋니!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 오빠. 오늘만 날인가? 내일도 날이야 오빠. 오빠가 특별한 사랑을 예감하는지 아찔한 착상 먼저 급한지 모르겠으나, 보챈다고 될 일 아니니까. 서두를 필요 없어. 우선 아쉽지도 않지? 근데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고 말이야. 오늘 기억 지워줄까 남겨줄까 속으로 생각만 해. 그대로 될 테니까 말이야. 끝없는 사랑과 특별한 행복과 미지의 은총. 그래 알아. 응? 아침에는 비너스와 함께, 낮에는 아프로디테와, 저녁에는 클레오파트라와 연애하는 몽상은 누구도 반기지 않을 거야. 그럼 어떻게 해야 인생이 새로워질까? 그걸 오빠가 알아 내가 알아!
   (아니, 이게 뭐지! 언제부터였을까? 인파는 실내체육관을 가득 채웠고, 관현악단은 낭만적인 경음악과 유쾌한 왈츠를 연주하고 있었다. 오오 이게 진정한 가면무도회구나 절로 알게 될 정도로 말이다)
    (또한 드레스코드가 따로 있나는 모르겠는데. 복장이 복장이... 넋을 잃게 만들었다는 것만 알아두자)
    그러든 어쩌든 일단 여자들은 거울을 보며 화장을 하겠지. 응? 다음으로 남자들은 그런 숙녀들을 쳐다보며 뒤꽁무늬를 쫓을 테고. 그런데 오빠까지? (절레절레)! 우리는 호박이 제 발로 굴러오는 요술피리를 불면 그만 어쩌고저쩌고. 뭐 하러 졸랑졸랑 돌아댕기고 체력을 소진하나 어쩌고저쩌고? 시간낭비 할 만큼 해 봤지 않나. 금새 지겨워지는 인형 같은 낙서 애초에 시작도 말자니까 증말. 이 세상 다 가진 듯한 기분이 뭔지도 모르니까. 아니, 날아오를 듯한 기쁨과 공상이 대체 뭔 상관이지? 억지로 짝지을 수는 있다만. 어디서 그 짝을 찾을 수 없을 만큼 헛된 잡념은 일단 쓸 데가 없어. 근데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지? 오빠! 오빠 정신차려. 오빠까지 그러면 안되지. 응? 아무튼 그것만 알아둬. 비싼 향수는 작은 병에 넣는다는 거. 아침에 잠에서 깨어날 때 확인 잘 해. 계속 그 뭔가를 부정하면 할수록, 팬티 속의 그건 꼬맹이 거랑 분간 안될 정도로 오빠를 놀래켜줄 테니까. 아시겠어요? 자, 그럼 이제 슬슬 오빠 최면을 걸어 다시 몽상가를 허당으로 만들어볼까? 빠져든다 빠져든다 빠져든다, 빠져든다 빠져든다 빠져든다~! 뭐 빠져들긴 뭘 빠져들어? 다시. 빠져든다 빠져든다 빠져든다, 뭐 누가 빠져들어? 그냥 들어. 너무 많이 알려고하면 다쳐. 응?......
   (그 다음부터 나는 그녀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 하나도 알 수 없었다)
   (물론 어느 지점부터 그녀는 평면 실사 광고사진으로 점점 변해가고 있었다)」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 근처에는 동네 길고양이들과 똥개, 들개들이 얼쩡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다였을까? 그럴 리 있나. 마네킹 수백 개가 내 근처에 있었을까 없었을까? 당연하지, 있었다. 그리고 아까 봤던 장소는 당시 기분과 사실과 느낌과 달리 그 1/10로 줄어들어 있었다. 분위기는 곧장 날 식은땀 쭉 나도록 만들고 있었다. 그때 난 생각했다. 만약 언젠가 이런 일을 또 겪게 된다면, 그땐 누가 날 똥개훈련 시킬려고 하자마자 아니 이미 그전에 시간낭비하지 말자고 말이다. 그렇게 난 집으로 돌아갔다.





    12

    오늘 나는 늦잠을 잤다. 그리고 별다른 일 없이 집에서 TV를 보다가 어영부영 오후 3시가 되었다. 그렇게 늦은 출근길에 올랐다.
    그런데 사무실에 거의 왔는데. 내 옆에서 나란히 걷는 여자를 보게 됐다. 팔짱만 끼지 않았다 뿐 내가 지 남자친구인 줄 아나 보지? 그녀는 소심하지 않았다.
   「오빠. 날 오빠 작품에 등장시켜줘. 우리 꼰대가 오빠한테 지시하기 전에 내가 먼저 귀뜸해주는 거야. 알겠어?」
   「무슨 소리요? 나는 그런 사람 아니오.」
   「오빠 블로그에 댓글 쓴 사람이 나인지 정말 모르겠어? 우리는 전생에 부부였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물론 천년의 연모를 나눴다고.」
   「그게 무슨 얘깁니까?」
   「허허. 말 길어지게 생겼네. 좋은 말로 할 때 나를 써볼 텐가, 아니면 꼭 내가 오빠를 자빠트려야 말을 들을 거야? 이거 정말 비협조적으로 나올 거야 오빠?」
   「언제 봤다고 오빠요? 초면에 이거 너무 날 거칠게 구석으로 몬다고 생각하지 않소?」
   「이 오빠 말 정말 안 통하네. 내게 1장 건네고 날 블로그에 등장시킬 거야, 아니면 내게 5장 지불하는 대가로 내 대타로 누군가가 지정될 거야. 오빠가 뭘 고를지 꽤나 궁금한데? 그런데, 응? 5장은 있고? 잘 생각해 봐 오빠. 이게 오빠 생각해서 하는 얘기야. 응?」
   「」
   「오빠, 내 말 듣는 거야? 관심 있는 척 시늉이라도 해야 할 거 아냐. 그러니까 여자가 없지. 안 그래? 여자란 말이야~ 아, 맞다. 근데 내가 왜 오빠한테 수업료도 받지 않고 강의를 하는 거지? 세상에 공짜는 없어. 이 세상에서 최고로 비싼 게 바로 공짜거든. 그럼 어떻게 나랑 공짜 같은 악마의 거래를 한번 시작해볼까? 그럴까? 응? 그럴까 말까? 대답을 해. 말을 하란 말이야 인간아, 응? 이 남자 왜 이리 매가리가 없어? 응? 어디 그래서 진한사랑 할 때 힘이라도 쓰겠어? 아, 재미없어. 기운 빠져. 지친다 지쳐. 내가 오빠 기 빠는 것도 아닌데 시작부터 왜 그래? 뭐 지금 나한테 기 빨린다 그 말이야? 정말 그렇게 해드려? 응? 말만 하셔.」
    그때부터 나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당최 잘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귀에서 삐───소리. 드르륵 소리. 이명 현상 같은 게 날 멍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여리디 여리게 간질 발작 전 증상, 만취했을 때 또는 다음 날 숙취로 개고생하다 구토하는 느낌도 동반했다.
    그러다 중간에! 갑자기 그녀의 두 귀는 박쥐의 날개로 변하였다. 설마 이년이.... 드라큘라? 드라... 아닌데. 긴가?
    그렇게 두 귀가 거대한 박쥐 날개로 변하자마자 날 에워쌌으므로 우리 둘은 갑자기 어둠 속에 남게 됐다.
   「오빠 신기하지? 겁먹을 거 없어. 그대로 걸어. 오빠는 바깥이 보이지 않을려나 몰라도 난 아니니까. 또 사람들 눈엔 아마 우리가 보이지 않을 걸!」
    그렇게 그녀는 나를 빛으로부터 감싸 어둠과 한몸으로 만들어 날 사무실까지 인도하였다.
    물론 그때까지 그녀는 또 뭐라 뭐라 이러쿵저러쿵 말을 엄청나게 많이 했다.
    내가 그걸 다 기억할 수 있겠나. 그럴 리 없겠지. 그런데 내일 그 모든 게 다 생각나면 어떡하지?
    그러든 아니든 일단 사무실 앞에 도착했다. 그리고 사무실 앞 사선 방향으로 미술학원이 있다.
    그 미술학원에서 캐서린이 나오면서 내게 말했다.
   「오빠. 우리 학원 마네킹 껴안고서 지금 뭐 하는 거야? 오빠, 외로워?」
    난 정말로 그 미술학원 마네킹을 껴안고서 막 뜨겁게 키스를 할 것처럼 어정쩡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뜨~아! 맙소사 말도 안돼. 이런 젠장!」
   「내가 할 말을 왜 오빠가 하는 거야? 내가 더 무안할까 오빠가 더 더 낯뜨거울까. 이 오빠 안되겠네. 응?」
    그건 뭐 어떻게 넘어갔다.
    그리고 그 다음.
    베네치아 피자집, 호프집 뭰헨, 빵집 파리바게트. 어디서였을까? 저가 명화. 빈센트 반 고흐의 자화상! 하필 한쪽 귀에 붕대를 맨 모습. 그걸 봤을 땐 난 그야말로 식겁했다.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 뻔 말 뻔하다 겨우겨우 가까스로 쓰러지지 않았다.
    그리고 사무실에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TV 채널을 돌리는데. 웬 스포츠 채널에서 선수들이 우승컵을 들어올리는 장면. 그 멋진 우승컵 양손잡이가 사람 귀로 보이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시내에서 인형과 동물탈을 쓴 아르바이트생과 접객원. 난 그처럼 한동안 더운땀을 잊은 체 식은땀과 함께 지내게 된 것이다. 심지어 그게 다일 리가 있겠나. 그 뿐이었다면 좀 좋았을까! 무슨 없던 능력이 뜬금없이 생겨난 것인지 나는 사람들 귓등에 세겨진 숫자를 읽을 수 있었다. 그처럼 어쩔 때 저 남자는 두 귀가 유리컵 손잡이로 보였다가, 저 아줌마 귓등에 888이 젹혀 있는 걸 보는데. 그 가운데 무척 곤혹스러운 게 뭐냐면 동그란 귀걸이! 그건 뭐랄까 사람 얼굴──컵 손잡이──컴퓨터 그래픽처럼 살아움직이는 동그라미! 그리고 또. 나는 아침마다 이불을 젖혀 침대에서 일어날 때마다, 내 고추가 꼬맹이 고추가 됐나 안됐나를 확인하는 습관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이 난감한 환각증상을 대체 누구한테 털어놓지? 하물며 혹시... 이게 환각이 아니라면 그땐 또 어쩌란 말인가!





    13

    나는 새해 들어 다시는 칼럼을 쓰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절필만큼 쉬운 일은 이 세상에 없다. 안 그래도 할 말 떨어지기 마련. 선물 주고받을 사교계의 명사도 아닌데 스스로에게 상주는 거.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을까? 이건 뭐 자긍심 달래는 거도 아니고 허세 위로하는 거도 아니고. 망했다. 더 썩었다. 대체 뭘 능청꾸러기 허당이라고 부르는지 모르겠는데 설마 그게 나? 아니야. 아니다. 그럴 리 없어. 절대로. 하긴 그러든가 말든가 그게 뭐가 중요해! 됐어. 지금이 무슨 "(리모콘 꽉 쥔 채 잠든 아빠한테서 그거 조심스레 뺏으려드니) 아빠 안잔다" 뭐 그런 시절도 아니고. 오빠 자? 관심없어. 누가 궁금하데? 재미없어. 다만 언제 끝날지 모를 코로나가 어쩐지 못마땅하다고나 할까? 그래도 괘념치 마. 시간이 다 해결해줄 테니까. 그렇지만 일평생 재미없음한테 쥐어터지고 심심함에게 항상 기죽어 사는 일. 도무지 이건 말이 안되거든. 그게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인생이야기냐고. 그러니까 사랑의 추억이 가난하지. 형편은 더 해. 뭐 재산목록 1-2-3위? 있는 놈들이 더 하겠지. 뭐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는다? 먹어봤어야 알지. 그렇지만 해가 바꼈다. 그래서 우리는 한그루 희망의 사과나무를 심어야 한다. 그러지 말고 값싼 과자나 왕창 사다 먹을까? 영양가 없는 거 많이 먹음 탈난다. 하지 말자. 하긴 우리는 인생에 별 기대 없다. 원래 우리 나이 정도 되면, 나이 얘기 하지도 말자.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만. 1살 상승과 통장잔고가 비례하지 않는다고 빈정상할 것 없다. 멜로드라마의 호감을 사지 못하는 실정 퍽 괴로워하지 않아도 된다. 철갑상어 스프 안 먹어봐도 안다. 차기 작품으로 어떤 판타지 영화에 출연할 건지만 선정하면 된다. 그래? 뭐가 그래. 작명가 비위 맞출 일 없다. 해결사 볼 수도 없다. 트로이의 목마가 뭔지도 모른다. 하물며 애마가 어딨어. 그런데 어떻게 여자를 만족시키냐고. 아예 개미새끼 한마리 보이질 않는다. 이래서 눈부신 내일을 가늠할 수 있을까? 있다. 못할 거 없다. 근데 뭘? 몰라. 알 게 뭐야. 근데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처음부터 끝까지 궤변 뿐이잖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탐욕만 남았다고. 좋게 끝없는 사랑에 대한 꿈은 깨자. 안 그랬다간 이것도 저것도 안된다. 이런데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인가? 스톰트루퍼도 다스베이더도 신부들러리는 멀어져만 갈 것이다. 그렇다고 내일은 없다, 까지 가면 안된다. 그래. 오늘에 충실하자. 근데 왜 여태 이 생각을 못했지? 그럴 수 있다. 다 그럴 만 했다. 병풍맨이었으니까. 야망 같은 거 없었거든. 어찌 됐든 사랑에 대한 통념이 뭔지 알고 싶지도 않다. TV도 재미없기는 마찬가지. 하물며 풍운아의 전례가 왜 궁금하겠나. 어떤 관심사를 막론하고 다 지겹다. 인생이란 원래 시시한 걸까? 아마도 그래서 악마는 새로움을 좋아하는가 보다. 아닌가? 아닐 리 있나. 그럼 뭐 천사는 식상함을 애정하는 건가. 그게 뭐야? 푸념쯤은 의식적으로 신경쓸 필요 없다고 간주하면 된다. 잡념이야 어젯밤 단꿈이 꽤 달콤하지 않았기 때문이겠지. 별거없다. 근데 뭐가 별거 없어, 뭐 인생이? 그나저나 숙녀들의 쾌적한 만족감에 찬물을 확 끼얹는 반전, 어디 없을까? 누구에게 무엇을? 새해들어 아직도 개뼉따귀 같은 공상이라니. 이게 사는 걸까? 허나 우리는 변명대회의 제왕이 되기 위해 태어난 게 아니다. 약간만 과장해서 말하자면 불행과 가난과 권태를 또 누구 탓으로 돌리게. 그러지 말자. 애처럼 언제까지 투정만 부릴 건가. 어느 날 신기한 환상특급 주연에 깜짝 발탁되는 기대는 애들도 하지 않는다. 뭘 바래나, 삶이란 만화영화가 아니다. 처음엔 혹해도 신제품에 대한 만족도는 익숙해지기 마련. 근데 시작도 전부터 시들시들하면 어떡하나. 그러다 갑자기 색다른 취미가 날 유혹했을까? 밑도 끝도 없이 그게 웬말인가. 그게 아니라 난 의도치 않게 실직했다. 스포츠칼럼계에서 난 제대로 찍혔다. 난 그 근처에서 숨도 크게 쉴 수 없다. 타 분야는 말할 것도 없다. 환상문학지 미스테리아에서도 팽당했다. 토끼를 잡고 나니 사냥개를 잡아먹지 않은 게 어딘가. 따라서 나는 자유다. 근데 왜 기분이 이러지? 내가 꿈꾸던 바쁨은 결국 희망사항에 불과하다는 거라는 점. 유감스럽지만 어쩌겠나. 이럴 때일수록 잘 생각해야 한다. 어떻게 맞이한 휴가인데. 재미없게 보내서야 말이 되냔 말이다. 새출발은 조금 미루고. 지금 필요한 건 바로, 시간낭비다.
    그래서 나는 최근 중절모를 쓴 남자가 가르쳐준 기지를 다시 찾아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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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 ─ 181

from 소설 2020. 12. 31. 15:13

    1

    풍요로 증명된 행복 추구의 가치, 뜬구름 잡는 얘기 시작도 말자. 기대한 성과와 정반대되는 실정을 뭐 하러 논하나. 황홀한 부드러움과 격정적인 다정함 다 필요없다. 사랑의 맹세와 운명적인 애정도 좋다만, 일단 먹고사는 게 급선무. 아니 정말 심심함은 끝없고 재미없음은 영원한 걸까? 쥐구멍에도 볕들 날 있다. 썰물이 최고이면 밀물로 돌아선다는 거만 알면 된다. 근데 언제? 조급해하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NB는 달콤한 우연을 선망하느니, 차라리 친애하는 절망감에 무감각해졌을 것이다. 자본력 극대화는 그에게 비정했으니까. 뿐만 아니라 모험도 그를 거절했다. 구식탱탱묵은 권태감만 매번 그에게 청혼하는 인생. 그렇다고 그 어떤 비밀스러운 첫경험을 찾아 도망갈 수도 없지 않나. 왜냐하면 흥미진진한 줄거리는 그를 썩 편애하지 않기 때문. 게다가 이젠 초대받지 않은 잔치도 아예 열리지 않는다. 결국 개꿈의 허락을 못받아 악몽과 친해졌다니. 고로 지옥의 옥타곤 구석에 바짝 몰린 형편. 그래도 버텨야 한다. 그럼 좋은 날 오겠지. 그러나 그렇게 고상한 척 유난떤 결과는 결국 그의 평정심을 흔들어놓고야 마는데. 진한 사랑에 대한 인내심이 바닥난 지가 언젠데 또 다시 쾌락에 대한 열망을 부채질 하나? 그럴 리 없다. 왜냐하면 사랑은 없기 때문. 농담이고. 진짜 말도 안되는 사랑론 징글징글하다. 무슨 말 같지도 않은 허세와 허영과 허상에서 흐느적대는 허당은 지치지도 않나? 지겹겠지. 거의 퍼졌어. 완전 뻗은 거나 마찬가지니까. 그래도 호기심 부족 담력 0점. 하여 발단은 지긋지긋 전개는 끔찍이요 어떤 절정감은 꿈도 못 꿀 실정. 이건 아니다 정말로 아니다? 그래서 어쩔 건데. 방법 없음. 따라서 마침내 결코 선보인 적 없는 최후의 무언가를 제시하지 않으면 안되는데. 환상머신 얘기 또 하기만 해 봐라. 놀고 있네 라는 비아냥 따논 당상. 안 그래도 행운이란 결코 흔한 게 아니다. 세상이 일개 허당한테만 유달리 친절할 리는 없다. 그렇다고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말고 '에라 모르겠다' 카드를 남발할 수도 없지 않나. 입장 난처하구만. 진퇴양난. 누가 빼도 박도 못하는 허당 아니랄까 봐 말이다. 그래? 그래도 다 방법이 있어. 정말? 있긴 뭐가 있어. 그깟 개 풀뜯어먹는 요술 다 뻥. 좋은 말로 할 때 머머설 같은 억지 쓰지 말라고 그래. ~라는 환청까지 nb의 짜증을 슬슬 돋구고 있었다. 그야말로 뚜껑만 들썩들썩. 엉덩이 근질근질 열정은 바닥났는데. 좌우지간 이거 하나는 분명하다. 오빠 제발 한번만 만나달라, 오빠 부디 날 버리지 말아달라, 오빠 내 애원은 오빠의 꿈과 희망과 개뼉따구와 뭐든지 만족시켜드릴 거야 잊지 마 오빠. ~라는 그녀들의 구애라면 증말 신물이 난단 말이다. 
    그래서 NB는 아지트에 놀러가기 위해 사무실에서 퇴근하려고 했다. 
    그렇게 딱 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벌컥~ 문이 열리네? 문 잠궈놨는데... 어떻게 열었지?
   「안녕하십니까.」
   「네? 여기는... 왜...」
   「번짓수를 잘못 찾은 건 아니니 안심하십시요. 또 선생 바쁘실 텐데 괜히 귀중한 시간 빼았고자 찾아온 것도 아니란 거 먼저 알려드리겠습니다. 허나 이렇게 우리가 조우한 건 다 이유가 있겠죠? 설마 주인공이 모르시면 여러 사람 섭섭할 테구요. 안 그렇습니까?」
   「네?」
   「모른 체하시기는. 바보처럼 굴지 마세요. 거 알아보니 꽤 똑똑한 양반입디다! 물론 겉으로 드러나는 건 영락없는 푼수죠. 허나, 그거 다 연기죠? 다른 사람은 다 속여도 우리는 아니죠. 정말 참으로 오랫만에 만나보는 위장술이라고나 할까요? 요즘 친구들은 어림도 없죠. 그렇다고 저희도 SF 드라마처럼 변장한 건 아니니 오해하지 않으셔도 된답니다. 그래도 사안이 사안이니 만큼 소파에 앉아 용건을 꺼내는 게 어떨지... 아아. 표정 어두워지실 거 없습니다. 뭐 죄 지은 거 있나요? 없잖습니까. 우리가 뭐 친구들끼리 하는 농담마따나, 너 나 욕했냐? ~라는 목적이 아닌 건 분명하구요.」
    그들은 자리를 옮겼다. 그러니까 nb를 찾아온 사람들 3명은 뭐랄까 FBI 고위급이랄지 은퇴한 모사드 현장요원 A급이랄지... 뭐랄까 어떤 정보 계통에서 일할 거 같은 분위기를 일부러 숨기지 않는 듯 했다. 소파에 앉은 그들.
   「피차 바쁜 사람들이니 곧장 요점부터 말하는 건 어떨까요? 그게 좋겠죠?」
   「영장 있소?」
   「네?」
   「체포영장이오 수색영장이오?」
   「거 이 양반 드라마 많이 보셨네. 그런데 어떻게 알았지?」
   「임의동행이라면 헛걸음하셨소.」
   「우리가 왜 왔는지 아신다는 말입니까?」
   「몰라요.」
   「근데 왜 아는 것처럼 말하십니까? 지금,」
    옆에서 진정시킨다.
   「일단 이거 하나만 지적하고 가죠. 선생께서 반드시 주지하셔야 할 사실이 하나 있죠. 그건 뭐냐? 우리는 쫌팽이가 아니라는 점.」
   「말이 어패가 있군요. 만약 당신 말이 진짜라면 여기 발걸음을 애초에 하시지 않으셨을 거 같은데. 제가 심한 결례를 범한 겁니까? 그렇다면 말씀하시구요. 뭐 교양스럽게 상식적으로 논의해보자는 얘깁니다. 애들처럼 말장난할 나이는 아니니까요. 안 그렇습니까?」
   「허허허.」 옆 사람을 툭툭 건드린다.
   「허허허허허.」
   「이 양반 눈치 빠르네. 그러니까, 허허허. 뭐 이렇게 된 거 터놓고 얘기합시다. 그게 좋을 거 같군요. 그러니까 선생 말씀은 뭐, 우리가 기분 나빠서 찾아왔을 거다 그겁니까?」
   「기분이 왜 나쁘신데요? 우린 일면식도 없는 사이입니다. 그처럼 초면에도 불구하고 제가 무슨 마술사도 아닌데 어떻게 그대들 자존심을 훼손시킬 수 있답니까. 그게 가능하다면 이제 발언권을 넘겨야겠군요. 왜냐하면 '어떻게'에 대해서 소상히, 친절하게, 공손히...까지는 아니오나 제가 알아듣도록 차근차근 그리고 조곤조곤 알려주시는 게 더 재미없음은 아닐 테니까요.」
   「아 나 이거 참 나 거 말 안 통하시네. 선생 학교 어디 나왔소? 당신 몇 살이야? 당신 뒤에 누가 있는데 그래? 배후가 누구냐고! 말해보시오. 뭘 믿고 설치긴 설쳐, 어?」
   「내가 언제 설쳤다 그러오? 난 그런 깨방정과 거리가 먼 사람이라오. 아시겠소? 난 깐족 같은 거 일절 모르는 사람이라오. 아시겠소? 아, 모르시겠지. 우린 만난지 불과 얼마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게 찾아왔으면 정중히, 까지는 아닐지언정 용건을 밝혀야지. 이게 뭐요? 네? 이 사람이 지금 날 언제봤다고 눈을 똥그랗게 떠? 당신 나 누군지 알아? 내가, 어? 내가, 어? 내가 밴텁금 애들 업어키웠어 이 양반들아. 왜 나랑 한판 뜨고 싶소? 미안하지만 받아주지 않겠소. 왜냐, 지명방어전은 꼭 특별방어전이어야 하기 때문이라오. 내 말이 대체 뭔 말인지 당최 이해를 못하실 거요. 나라고 뭐 알겠소? 그러니까 그대들이,」
    서둘러 그들 중 누군가 nb의 입을 손으로 막았다. 
   「앗, 더러워. 손 씻었소? 설마... 혹시...」
   「긴말하지 말고 간략히 끝냅시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오. 대신 해줘서 고맙구료. 뭐하오 냉큼 말하지 않고? 말 하거요 말 거요, 네? 이 사람들이 아까부터 보자 보자 하니까......!」
   「참 나!」
   「참어 참어. 이런 일 한두 번 겪니?」
   「그래야겠지?」
    그러더니 그들은 명함과 봉투를 남기고 조용히 떠났다. 
    명함은 검찰관련 명함이었다. 봉투에는 큰 거 3장이 들어 있었다. 위조지폐 아니야? 
    그날 nb는 큰 거 3장을 곧바로 그 명함 관련 계좌를 알아내서 거기로 보내버렸다. 
    다음 날이 되었다. 어제처럼 또 누군가 찾아왔다. 이번에는 법조계였다. 
    얘네들은 어제 친구들과 화법이 전혀 달랐다. 
   「당신이야?」
   「언제 봤다고 당신이야?」
    nb도 세게 나갔다.
   「너구나.」
   「너, 뭐? 너 이리 와. 쫄따구들 떼고 1 대 1. 어때?」
   「선생 농담이 지나치구료. 말로 합시다.」
   「난 말로 하잔 얘기였는데. 좀 쫄았나보지? 생긴 거와 다르군.」
   「곧장 말하겠소. 선생이 우리 험담했소?」
   「그게 무슨...」
   「아닌 척해도 소용없소. 그 정도는 아실 양반이... 어떻게 그처럼 우매한 짓을...」
   「실은 위에서 시킨 거요.」
   「그 위가 누구요? 어디요?」
   「모르오. 나도 모른단 말이오.」
   「당신 어디 소속이오?」
   「그러는 당신은 어디 소속이오?」
   「내가 먼저 물었지 않소?」
   「먼저 물었으면 먼저 대답하면 될 거 아니요. 왜, 몸으로 대화하길 바라오? 그럼 쫄따구들을 물리든가. 어? 이 사람 아까부터 통 말이 안 통하네. 당신 회사에서도 소문 쫙 퍼졌지? 꽉 막힌 꼰대라고. 안 봐도 뻔해.」
    몸짓.
   「우린 얽힌 데가 좀 많소. 난 어떤 협회, 쟨 법조계 고문 관련 재단, 쟨 세계급이라는 거만 알고 있으면 되오. 아시겠소? 당신 설마 무소속이오? 진짜 그러오?」
   「그래서, 그래서 그게 어쨌다는 거요?」
   「이 정도 했으면 알아들어야지 이 사람이...」
   「왜 멱살이라도 잡을 기세오! 그럼 잡아보시든가.」
    그 둘째 날 티격태격은 적당히 기싸움으로 끝났다. 





    2

    드디여 셋째 날. 
    오늘은 저번과 같은 허접한 끕이 아니었다. 
    아우라가 느껴졌으니까.
   「이 세계에는 그 본색을 드러내지 않는 3대 조직이 있다오. 어디서 들어보셨는지는 모르겠소만 누구도 그 이름도, 실체도, 정체도, 하는 일조차 모른단 말이오. 지금껏 들어보지 못한, 그 존재에 관한 증거를 몇 가지만 알려들리까?」
   「들어는드릴께. 자, 얘길 꺼내 보소. 왜, 내가 가소롭소 아니면 웃기오? 그러게 어설픈 입담으로 떠들지 말란 말이오. 거 스포츠 야유 알 만큼 아시는 분들께서... 쯧쯧쯧.」
   「허허허. 영화 많이 보셨네 이 양반. 그대께서 드라마를 얼마나 많이 보셨는지는 몰라도, 그 3대 미스테리 조직의 증표. 그건 TV에 나오는 것처럼 막 다이아몬드나 육각형이나 그런 게 아니라오. 일루미나티, 프리메이슨, 그림자 정보, 빌더버그, 아브라삭스, 아담 바이스하우프트. 다 그냥 사교모임과 하등 다를 게 없소. 아, 없었소. 다만 나중 선생께 효용 가치가 있으려나 모르겠소만. 그래도 친히 알려는 드리겠소.」
   「그럼 알려주지 않을 꺼면 말을 왜 꺼냈소. 좋은 말로 할 때 말하시오. 안 그랬다가는 큰코 다칠 거요. 이미 각오는 하셨겠지?」
   「허허허. 이 양반 말 재밌게 하시네. 허허허. 아무튼 반지 차는 사람 흔하죠? 그 반지 안쪽면에 숫자가 적혀있다오. 또 목걸이 징표. 부적을 쓰고 어쩌고 그거 싹 다 필요없소. 전세계에 사거리 없는 동네도 있소? 이 세상에 숫자와 날짜와 햇볕과 공기와 각도와 문명, 그 어떤 상징이 미치지 않는 곳은 있을 수 없다오. 마지막으로 손목시계에 관한 비밀. 그건 선생께서 우리와 함께 가서 들으셔야 한다는 것.」
   「누구 맘대로!」
   「허허허. 고집 세시네. 오늘은 이만 돌아가겠소. 내일을 기대하시는 거만 예감하시고. 네?」
    뭐야 이거! NB는 쟤네들이 오기 전까지만 해도 괜찮았다. 푸념과 넉살로 심심함을 달래긴 했으나. 그래도 그럭저럭 뭐 안락했다. 근데... 뭐야 쟤네들! 지들이 뭔데 오라가라야? 쟤네들 오기 직전까지만 해도 이처럼 공상의 날개를 펼치고 있었단 말이다. 
    <탐스러운 먹잇감에 대한 욕망의 증거, 번뜩이는 개침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유달리 군침이 많지 않은 이상 탐욕이란 보이는 듯 아닌 듯 알 듯 모를 듯 하다는 게 문제. 혹시, 그 때문일까? 두 번 다시 미완성 환상머신에 대한 미련에 끙끙 앓지 말자고 다짐했는데. 걘 또 웜홀머신에 대한 애착일지 애상일지 애모일지. 뭔가 어떤 유쾌한 연정이 부재하니까 그런 건지 또 다시 공상병에 빠졌던 것이다. 환상적인 신비감에 대한 노래에 열광하는 것도 아니고. 뭣이 어째? 진정하고. 그게 걔 문제지 우리 문제는 아니니까. 아니 그래도 그렇지, 어? 워 워 워. 좌우지간 그 어떤 흥분감이란 진한사랑에 최적화되어 있는 것. 아무튼. 내가 또 다시 천사의 사랑론과 요정들 마술에 관심을 가지면 그땐 사람이 아니라 개다 개. ~라고 호언한지, 했는지, 안 했는지도 벌써 까먹은 인생. 자, 그래서 남자는 폼이라서가 아니라 왠지 좋으니까 Vivaldi / 마그니피카트. 그런 고상한 음악을 들었는데. 소용없었다. 생각은 허언증에 딱이었다. 하긴. 품위 원래 없었다. 속상하지. 빈정상했나? 그러든가 말든가. 만사가 귀찮구만. 상상력 바낙났거네. 그에게는 구상도 추상도 모두 보이지 않았다. 놀라운 발상도 뺐겼다. 누구한테..인지는 몰랐으나 일단 그랬다. 막연히 꿈꾸던 예술가의 삶과는 영 딴판. 우리끼리 얘기지만, 아니 됐다. 더 말해 뭐 하겠나. 웬만하면 이런 말까진 하지 않으려고 무척 참았는데, 됐다. 할 말 없다니까 글쎄>
    그런데 한순간에 불안감 상승, 상쾌함 소멸, 공포심 폭증이었다. 
    그럼 이제 어떡하지? 몇 글짜 끄적꺼려서 입에 풀칠이나 하는 인생, 괜히 이상한 칼럼을 연타로...?
    자칫 잘못하다간... 끌려가서... 만약에... 어떡하지? 그는 곧장 떠났다. 가다 보면 어딘가 도착하겠지 하면서 말이다. 





    3

    그는 1박 2일 일정으로 그곳에 도착했다. 그곳? 거기는 다름 아니라 상상 아카데미였다. 
    곧장 수속을 밟고 지불하고 사인하고. 그렇게 입소 완료. 
    여기라면 누구도 못 찾을 게 확실하니까. 하여 일단 안심. 
    평범한 수업 내용에 대한 설명은 생략한다. 그리고 그는 동기생과 친해졌다. 
   「모두들 여긴 어떻게 들어오게 되셨소?」
   「거 말투가 너무 고전스럽지 않소?」
   「그렇게 느꼈다면, 내가 뭐 숙이고 들어갈 줄 알았소?」
   「이들 보소. 왜 그러시오. 형씨들도 마음의 여유가 없소? 자, 보시오. 여자가 왜 화장을 할 것 같소. 우리한테 잘보이기 위해서지. 꼭 그런 건 아닐 테나 치즈 달린 줄 슬슬 잡아당긴다고 저쪽으로 우르르르 이쪽으로 우르르르. 우리가 그래서야 되겠소?」
   「지금 그대는 동네축구 이야기를 하는 거요? 혹시 전직, 아니 현직 축구선수요?」
   「어떻게 알았소?」
   「어떻게 알긴. 살다 살다 그런 허벅지 보기가 어디 쉬운 줄 아시오?」
   「허벅지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저기 저분은 뭐든 길어보이는 게... 유난히 손바닥이 넓적한 걸 보아하니 당신 혹시 배구선수요?」
   「알아봐주니 고맙소. 허허허. 그 바닥에서 잘나가면 내가 여길 왔겠소?! 허허허. 다 사는 게 뭐 그렇다오.」
   「자, 그러지 말고 우리 왕게임을 하는 건 어떻소? 아니면 야자타임? 그렇다고 여자도 없는데 허세는 하나도 쓸모없지 않소. 여기서 나보다 더 속세에서 여자 많이 만나본 사람 있으면 나와보시오.」
   「당신이 먼저 패를 까야 우리도 마음을 열 거 아니오. 뭐 액면도 모른 체 판돈을 걸라 그 말이오? 거 너무한 거 아니오?」
   「허허허. 200.」
   「이 양반이 거 참 말이 심하네. 당신 우릴 우습게 보는 거요? 여자깨나 울린 바람둥이는 저기 구석지에 있는 저 냥반인 거 같은데. 뭐 200? 200 같은 소리나 하고 자빠졌소. 근데 거 어째 몸짓과 어조로 보건대 혹시 당신 언론계에서 팽당했소? 구식탱탱묵은 탐관오리 논설주필을 헌신적으로 보좌한 결과가 결국 이거요?」
   「그건 또 어떻게 알았데. 당신 내 뒷조사했소?」
   「신원조사는 물론 뒷조사까지 하는 게 내 업이었소만. 안 봐도 뻔하니 하는 말 아니오. 근데 정말이오?」
   「형씨들 그러지 말고 우리 이렇게 친해진 거도 인연인데 나중 헤어질 때 섭섭할 테니 서운한 감정 들키지 말고. 나중 한번 모이는 게 어떻소?」
   「옳소.」
   「옳소. 지당하오.」
   「만나자마자 이별을 생각한다... 친해지면 안되겠네.」
   「같이 다니면 안될 사람은 형씨가 더 적합하구만 뭘 그러오. 당연한 말이구만.」
   「자자, 그러지 말고.」
    그렇게 전화번호 물어보고, 핸드폰 주소록에 등록하고, 소셜네트워크 친구맺고, 어디 사냐 물어보고 기타 등등
   「근데 당신 나중에 나한테 전화할 거요?」
   「내가 먼저 할 순 없지 않소. 이 양반 그 정도 눈치도 없소? 당신 그래서 지금껏 어떻게 사회생활 하셨소, 네? 딱 봐도 고문관이구만.」
   「뭐가 어쩌고 어째?」
   「워 워 워. 거 왜들 그러오, 네? 거 아실 만한 분들께서... 여기서 이러면 쓰겠소?」
   「그게 다 저 인간들이 여자의 마음에 대해 쥐뿔도 모르기 때문이라는 점. 여기서 모르는 사람도 있소? 아까 누가 말했소? 200? 빼기 195에 내 전재산을 걸겠소.」
   「당신 말 다했어?」
   「아직 남았소. 나는 300!」
   「뭐? 이거 정말 보자 보자 하니까, 누가 믿는데? 어?」
   「200이든 300이든 그건 둘이서 알아서 하고. 내가 봤을 때 여기 졸업하면 아마 거의 다 두번 다시 연락도 안 할 거요. 꼭 보면 막 으쌰으쌰 한꺼번에 우르르르 친해져서 연락처 주고 받는 거. 그 분위기로 나중 더 친해졌다는 사람들. 살면서 1번도 못 봤소. 아시겠소? 일찍 달아오르면 그나마 잘하면 단기전일 수도 있소. 뭐 경우의 수가 몇몇 있긴 하겠으나. 봄 여름 가을 겨울. 날씨를 보고 바람의 소금기를 읽고 씨를 뿌려 꽃을 봐서 열매의 당도를 예측하는 게 인생인데. 씨를 뿌릴 줄도 모르는 사람들끼리 뭐 200이니 300이니 그게 뭐요? 창피하지도 않소?」
   「당신 사회에서 뭐하다 왔소?」
   「뭐하다 왔을 거 같소?」
   「저 봐 봐. 우리랑 말 섞고 싶어서 안달난 모양새. 쉽게 답해주지 않겠다, 뭐 우리랑 연애하자는 거요? 딱 봐도 허당이네.」
   「이런 쓰잘데기 없는 아카데미에 난 정말 왜 온 거지?」
   「뭐라는 거요? 크게 말해 이 사람아. 아니 근데. 당신. 그래 형씨 말이야. 뚤레뚤레 딴 데 쳐다보지 말고 날 봐 날. 어? 왜 내 눈을 피해? 당신 잔나비띠야? 3월?」
   「나 말이오? 내 별자리를 당신이 왜 궁금해하는데? 난 페가수스 자리요. 당신은 어디 소속이야?」
   「저 바보들 뭐래는 거야!」
   「근데 저 자식이 언제 갑자기 날 때리면 어떡하지? 난 한주먹감도 안 되겠는데.」
   「뭐? 왜 자꾸 아까부터 속삭여?」
   「귓구멍이 막혔어? 뚫어줘? 말만 해. 어?」
   「내 귓구멍을 왜 당신이 뚫어, 당신이 뭔데?」
    동기생들이야 장난 반 농담 반으로 저러고 노는지 몰라도 nb는 그러지 않았다. 
    왜냐, 속으로 식겁했거든. 배구계, 언론계, 어디 어디. 여기까지 따라붙었다 그 말씀. 곧 말인즉슨 길게 가자는 거네? 따끔한 맛으로 대충 죗값 치르고 맘편히 자유를 안겨주지 않겠다? 이렇다면 결국 장기전에 대비해야 한다는 얘긴데. 어쩌지? 어떡하지? 이걸 정말 어쩌면 좋을까. 그러면서 일단 그는 속성인지 정식인지 모를 과정을 다 마치지 않은 채 중간에 그곳에서 도망쳤던 것이다. 





    4

    거인 등에 업힌 난쟁이는 거인보다 더 멀리 볼 수도 있다. 때문에 설득당했든 꼬시기 전부터 내 마음이 동했든, 주식매입 선택권(스톡 옵션)이라는 황금 족쇄. 우승 확률 높은 경주마에 거는 마권과 비슷할 수도 있는데. 1등 못하면 휴지조각이냐, 천리마에 묻어 가서 돈방석에 앉느냐! 물리적 거리 말고 현재의 쾌감을 미래의 행복까지 지연하는 이치인데. 그 입장 되보면 중간에 발빼기가 결코 쉽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즉 인생이란 결국 트레이드 오프. 다시 말해 적게 걸고 적게 먹느냐, 고위험 고수익이냐. 헌데 적게 걸고 많이 딸 수 있다? ~에 혹하면 자칫 잘못하다 2장 3장 금방 잃는다. 왜 행복업과 상업은 동의어가 아니겠나. 백마 탄 왕자님은 동화에나 나오는 얘기. 팔방미인이 왜 내게... 아무 의심 없이 멜로드라마를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는 것. 세상 대 아름다움, 에 같음(=)이라는 등호가 성립되면 오죽 좋겠나. 때문에 상술은 요술과 쌍벽을 이루게 되는데. 즉 마술사 옆에는 언제나 섹시한 조수가 있는 법. 따라서 고위험 고수익? ~에서 "고위험"은 쓱 흘리고 "고수익"에만 혹하기 쉽다는 것. 팔랑귀 뿌잉뿌잉 조명발 반짝반짝 립서비스 굽실굽실! 그래서 그 끝은... 그렇다. 개미처럼 아득바득 모으기는 어려운데... 인생이란 한방인 걸까? 남자는 폼이다. 농담이고. 좌우지간 감각적인 투자가 희망의 내일을 살찌울 수도 있는데. 어쨌든 스톡옵션이든 속는 셈치고 믿어보는 사랑이든 그건 나의 선택. 남이 등떠밀어 억지로 사는 게 아닌 내 인생. 자유와 책임과 대가와 담보와 이상과 미지의 신비감이든 뭐든. 뭘 고른 늑대는 나고, 못 이긴 척 승낙하는 둥 마는 둥 그 늑대의 군침에 넘어갔다가 나중 제 발등을 찍고 싶은 불여우는 그대. 진짜 농담이고. 그게 아니라 악마와의 거래 때문에 빚어진 마성? 악마 메피스토펠레스가 물이겠나 봉이겠나. 그와 계약한 타락천사 루시퍼, 유행가 제목이면 그나마 나은데. 그게 아니라 인간의 운명이면 어떡하지? 공상도 풍년이다. 그러니까 개 같은 인생이냐 개팔자가 상팔자냐, 우리의 삶이란 한 끗 차이인데. 개상 말상 귀염상 다 말고 왜 하필 별명이 마지막 잎새상! 뭐 그건 그거고. 그러니까 늙은 개에게 인생의 의미란 무엇일까? 똥개 개뼉따귀 탐하는 헛소리는 그만하자. 제발! 허나 뭐랄까 절망적인 현실 때문에 도저히 멈출 수 없는 하이에나의 욕망. 굶주린 늑대가 어찌 모를까. 이처럼 어쩌다 보니 nb는 또 잔머리를 굴리게 됐다. 안 그러게 생겼나. 그럼 이번에는 달랐을까? 다를지 발전했을지는 대략 관찰해봐도 점칠 수 있는 것. 예를 들면 자, 보자. 대망이 이루어졌다고 가정하는 환희와 열정. 여자들의 이상형이 만약 나라면 어떨까 라는 가정법의 기쁨. 그게 습관이 되면 최소한 통장잔고에 도움은 안된다. 근데 공상을 진정시키면 허언증이 쓱 고개를 들이밀고. 허언증을 달래니까 또 허영심이 왜 쟤만 편애하녜. 무엇보다 난처한 것은 진한 사랑에 대한 갈망이라고나 할까? 뭣이 어째?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거야.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인생. 감사와 호의와 축복과 사랑도 좋다만 도저히 싫어할 수 없는 주연이 난 아니라는 점. 무시할 수 없는 사실. 허나, 풍요와 바쁨과 호사와 인기가 날 싫어하면 어떡하지? ~라며 미리 겁먹을 필욘 없다. 그렇다고 '나대지 마'라는 애칭을 뒤늦게 꿰차고 싶어해서도 안되겠지. 얄미움과 꼴배기싫음과 재수없음은 물론 짜증남까지 독점한다? 아니 될 소리. 상상만 해도... (절레절레)! 좌 멍청한 인생 우 미련한 사랑? 차라리 바보 중의 상바보임을 솔직히 인정하고, 지금부터라도 그녀들의 이상형으로 거듭나 볼까? 하면 그게 말처럼 쉬우면 뭐가 문제겠나. 아무튼 뭐라 말할 수 없는 푸념 그만 하자. 그게 좋겠다. 뭐라고 딱 집어 말하기 힘든 잡생각에 대해 더 떠들다간 nb든 필자든 누군가 돌아버릴 테니까. 
    그래서 녀석은 아지트에 갔다.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몇몇 지인들과 얘기하고. 새로운 얼굴들과 인사하고. 
    그런데... 그런데... 유난히 잉글랜드맨들이 눈이 많이 뜨이네? 저 자식들이...! 
    여기 더 이상 오지 말라는 소린가? 그는 아무래도 그런 것만 같다고 생각했다. 하여 당분간 거기 발길을 끊기로 한 것이다. 





    5

    그렇게 딱 nb는 사무실에 도착했다. 그런데, 핸드폰! 그는 핸드폰을 아지트에 놓고 왔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다시 그곳으로 갔다.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장면 전환.
    장면 전환.
    장면 전환.
   「뭐야, 아까 걔네들은 다 어디로 가고... 순전 밀랍인형들 뿐이 없잖아? 이거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그리고. 내 핸드폰은? 아, 저기 있구나. 다행이군.」
    무슨 일인지 찬찬히 살펴보며 생각하고 있는데. 그러다 갑자기 음악이 들려왔다.
    Daniel Auber / 오페레타 <검은 망토>중에서 “마침내 돌아왔다.. 아 굉장한 밤이었어” 
    어딘선가 공기방울, 애들이 거품장난감 가지고 노는 것처럼 그런 공기방울이 퍼져나왔다. 
    조명은 어두워졌다가 밝아졌다가 색상을 띄었다가 아니었다가. 더불어 드라이아이스인지 안개인지가 바닥에 깔리고 있었다. 
    그렇게 바 의자에 앉아 그는 정신을 잃었다.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장면 전환.
    장면 전환.
    장면 전환.





    6

    nb는 깨어나보니 어떤 영화세트장인 듯 싶었다. 또 주변엔 마네킹이 유독 셀 수 없이 많았다. 그리고 마네킹 외에 보이는 사람은 여섯 명. 즉 nb까지 하면 총 7명. 
   「깨어나셨소?」
   「드라마에서 많이 보셨겠지만 어떻게 된 게 누가 영화를 찍는 모양이오.」
   「각자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굳이 자세한 설명은 들어볼 필요 없을 듯 하다오.」
   「그런데 각자 흰플라스틱을...착용하신 거 뭐죠?」
   「우리도 아직 모르오. 우리야 눈으로 볼 수라도 있는데 당신은... 여기 거울이 어디 있지?」
   「왜... 그러시는지...」
   「당신은 얼굴 전체가 흰플라스틱 가면이라오. 아시겠소?」
   「네?」
    그렇게 7명은 각자 흰플라스틱인지 사이버 부분 갑옷인지를 착용하고 있었는데. 
    왼쪽발 + 오른쪽발 + 팬티 + 몸통 + 왼쪽팔 + 오른쪽팔 + 머리 = 7명
   「대충 어떻게 된 일인지 가늠 되셨으니 자, 저기를 보시오.」
    가르키는 방향에는 벽면에 마이크로 프로젝터로 안내문이 비춰져 있었다. 내용은 이랬다.
   "첫째, MRI 비슷한 장비에 전원 착석하여 안내에 따라 사진을 찍을 것 (한꺼번에 일렬로...)
    둘째, 회전목마 + 우주비행사들이 거치는 원심력 기계 = 그 둘을 합체해놓은 듯한 장비가 회전할 때 그대로 서 있기만 하면. 그러면 장시간 노출 사진이 찍힘. 
    셋째, 그 2가지를 완수하면 각자 7인의 사이버플라스틱에서 ☆○□△♤♡♧ 모양의 쇠봉이 분리될 거요. 물론 트롬트루퍼 같은 플라스틱도 몸에서 분리될 거요. 그리고 쇠봉을 마이크로 프로젝터에 육각별의 꼭지점과 중앙에 한꺼번에 즉 동시에 꼽으면. 저기 TV 옆에 있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릴 거요. 그곳에 최종 지령이 들어있다오."
   「뭐야, 이걸 우리 보고 다 하라는 거야?」
   「그래도 난위도만 봤을 때 어렵지 않는 건 사실이오.」
   「형씨들 혹시 짐작가는 사람 있소? 없소?」
   「확실히는 모르겠는데...」
   「뭐요? 어서 말해보시오.」
   「아직 말할 단계는 아닌 듯 하오. 그러지 말고 일단 우리에게 명령인지 부탁인지 알려준 저 2가지를 먼저 해치우는 게 어떻겠소. 왜냐하면 그렇지 않고서는 우리를 놔주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오.」
   「찬성이오.」
   「동감하오.」
    장면 전환.
    장면 전환.
    장면 전환.
    잠시 후. 그렇게 그들은 2가지 과제를 수행 완료했다. 그랬더니 정말로 ☆○□△♤♡♧ 모양의 쇠봉이 분리됐고. 
    다음으로 마이크로 프로젝트 뒷면 육각별에, 그 일곱가지 쇠봉을 동시에 꼽았더니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그 안에는 007 가방 일곱개가 들어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 접혀진 쪽지. 
    그들은 쪽지를 펼쳤다. 내용은 이랬다. 
   <뜻하지 않게 인사가 늦은 점 사과드리오. 정중히 부탁드려서 필름과 파일을 얻는 게 순서긴 하오나. 부득이하게 이와 같은 과정이 진행된 점, 추후 섭섭치 않게 황금으로 달래고, 다이아몬드로 사죄하며, 미녀부대로 환송할 것이오. 자, 피차 바쁜 사람들이니 이제 여기서 영화는 끝날지 드라마 시리즈는 이어질지 그걸 알려드리겠소. 
    여기 있는 7개의 007 가방에는 스위스은행의 환태평양 어디 지점을 거쳐, 기타 등등... 무기명 채권이 들어있소. 물론 그거 반틈에 최저 현금 뭉치도 함께 들어있다오. 허허허. 반갑소. 우리는... 우리의 정체를 아직은 알려드릴 수 없다는 점. 무척이나 애석하긴 하오. 허나 나중 좋은 날 있지 않겠수?! 하여 그대들의 선심이자 성과라고나 할까 일종의 과제는 끝났으니. 다음 선택은 그대들 몫이라오.
    결론만 간단히 말씀드리겠소. 당신들께서 왜 여기까지 오시게 되었는지. 혹시, 그 이유를 알고 싶지 않소? 과연 이 작전이 어떤 조직까지 연결되어 있을지 궁금하지 않냔 말이오. 만약에 그걸 알고 싶으시다면 상자 바닥에 깔려진 벨벳 천을 들어보시오. 그럼 바닥에 주소 하나가 적혀 있다오. 그곳으로 찾아오시면 됩니다.
    자, 여기까지. 왠지 궁금하거나 어딘가 수상쩍거나 그럴 수도 있으나. 질문은 받지 않겠소. 정말 왜 이처럼 당신들께서 영화를 찍어야 하는지 진정 알고 싶지 않소? 정말로 구미가 댕기지 않단 말이오? 따라서 만약 그렇다면 그대들은 지금부터 자유의 몸이라오. 다만 007 가방 안에 든 저질 채권과 저액 지폐 뭉치로 만족해야 할 것이오. 물론 저 주소로 찾아와서 앞서 말한 이유를 알게 된다면 저질 채권은 급이 다른 지표로, 저액 지폐는 0가 몇 개 붙을지 미리 알려드릴 순 없지만 일단 단위가 바뀐다는 것만 알려드리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찾아오시든 아니시든. 섣불리 이와 같은 일을 체험했다고 어디서 발설하시는 건 금물이라는 걸 알려드리고 안내문을 이만 마칠까 하오. 절대로 금지해야 한다는 점, 굳이 미지의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모험할 가치는 없을 것이라는 점은 내 장담하겠소. 그럼 이만!>
   「뭐야 이거!」
   「형씨들, 어떻게 할 거요?」
   「선생 먼저 의중을 알려주시오.」
   「왜들 그러오! 아마 드라마처럼 저걸 누가 모두 독차지할 인물들을 섭외하지 않았을 거라는 점. 그건 분명할 테니. 이건 말 그대로 자유 의사에 따라 갈 사람 가고 남을 사람 남으면 될 거 아니오. 아니 그렇소?」
   「여기서 멈추면... 왠지 지는 거 같은데.」
   「유난떨지 맙시다. 그냥 지고 저질 채권에 만족하는 건 어떻소?」
   「옳소. 어차피 뻔한 수작일 게 분명하오. 물론 007 가방을 당장 확인할 수 없다는 것도 불을 보듯 뻔하니. 홈그라운드로 돌아간 다음에 열릴 텐데... 그때 불만족스럽다고 다시 돌아올 수도 없는 것. 어차피 인생이란 두 마리 토끼를 쫓을 수 없는 것 아니겠수? 난 남겠소.」
    그때 음악이 들렸다. Bach / 칸타타 <슬픔이 무엇인지 모르고> BWV 209
   「이거 뭔가 불길한데.」
   「이건 음험한 징조가 아니라 신비로운 예감 아닐까요? 난 그 기대감에 한번 운을 실어보고 싶소.」
    그렇게 OX는 5 대 2로 갈렸다. 즉 5명은 주소를 찾아 떠나기로 했고, 2명은 집으로 돌아가기로. 
    물론 바깥에 본부로 함께 떠날 수 있는 멋진 차량도 준비되어 있었다. 
   「그대 두 분. 타시오. 교통 편한 데까지만 태워다 드리겠소.」
   「고맙소만 사양하겠소. 일단 몸을 실는 거까진 문제없는데. 마음 바뀌기 싫단 말이오. 또 아시오? 작전이 변경될지 말이오. 아무튼 반가웠소.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겠소만. 혹시 연이 닫는다면, 나중 이후의 모험에 대해 부디 슬쩍 귀뜸이라도 해주셨으면 고맙겠소.」
   「」
   「」
   「」





    7

    nb는 따라갈 걸 그랬나 라면서 엇그제 영화세트장의 장면들을 떠올렸다. 허나 이미 지난 일. 미련은 남아의 주업이 아닌 것. 그럼 부업으로라도 뭐 어떻게 애련을 간직한 숙녀들과 함께... 뭣이 어째? 됐고. 아, 맞다. 참고로 말하자면 그때 그 묵직했던 007 가방. 집에 돌아와서 보니 이게 뭐란 말인가! 누가 바꿔치기 할 틈이 없었는데... 어떻게 된 거야? 그건 장난감 007 가방으로 바껴있었던 것이다. 이런 젠장~! 그러게 따라갔어야지. 조금 걸고 조금 먹는 연습게임도 아니고. 못 먹어도 GO, 쫄아서 판을 못 읽었구만. 아니지. 또 몰라. 혹시... 그분들은 지금 어떻게 됐을까. 설마... 아니야 아니야. 어차피 지난 일이야. 그렇다고 시간을 되돌릴 수도 없는 거 아니겠어? 그러니까 결국 사랑이 애증으로 변하는 멜로드라마와 담 쌓고 살다가, 어느 날 어떻게 모험 장르를 알게 됐는데. 하필 그게 절반짜리였기 때문일까? 그는 그 뒤로 간간이 자신이 영화 스타워즈에 나오는 스톰트루퍼로 나댕기는 악몽이 꾸었던 것이다. 뭐 다스베이더의 똘만이? 아직 그냥 조직에서 승진이든 임금상승이든 그와 관계없이. 스톰트루퍼는 영원한 스톰트루퍼일 뿐인데? 은근 매력적인 조연급도 아니고 떼샷일 때만 뭐 봐줄 만한데, 누가 누구인지 구분도 안되는 삥발이라니. 미련곰탱이, 쩜팔이 그런 비속어들 생각나게 또 그게 뭐냐고. 어쨌든, 
    그는 최면술이 지겨워졌다. 아마도 둔갑술식 화장발에 질렸을 것이다. 아니면 저속한 표현마따나 공상의 약발이 떨어진 걸까? 여자말 번역기가 고장났겠지. 애초에 상상력도 비리비리. 변화없는 일상에 싫증난 거네. 또! 그럼 정말 변덕은 부동의 인기라는 말인데. 하긴 변심 빼고 사랑을 어떻게 논평하나. 안 그래도 기회마저 박탈당함. 그래도 꿋꿋이 버티다 보면 애정결핍은 언젠가 보상받게 될까? 일단 아직까진 희망사항일 뿐. 이처럼 그는 마침내 권태에 굴복했다. 품위유지비 부족에 무릎 꿇을 수 밖에. 전망마저 깜깜하다. 더 나은 미래는 무슨. 꿈과 희망의 낙원? 개뼉따귀로 동네 똥개의 환심이나 사라지. 그래도 뭐랄까 다행스럽다고나 할까 뻔뻔하다고 해야 할까. 즉 그에게는 아직 뻔트라는 카드가 남았는데. 뭐가 어쩌고 어째? 넘어가자. 미스테리의 비밀을 알고 싶은가 젊은이? ~라고 처음에만 혹 하는 말발 벌써 바닥이 보인다. 그러겠지. 왜 아니겠어. 그러니까, 아직 할 말이 남았을까? 재미난 얘기를 들려줄게요, 근데 듣고 보면 난 또 뭐라고! 뭣이 어째? 워 워 워. 대체 언제까지 환상소설을 탐독하는 애독자들을 골탕먹일 건데? 멜로드라마 애호가 얕잡아 볼 처지가 아니다. 철들려면 멀었군. 속이 없어. 걸핏하면 생각하는 거라고는 아름다운 애마와 달콤한 연정이라니. 게다가 웜홀머신 어쩌고저쩌고 신나게 떠들더니 결국 첫 끗발이 개 끗발. 무책임한 녀석. 끈기가 없어. 활력은 있나? 일단 돈이 없어. 그래서 사랑도 없고. 사랑이 없으니 응석만 늘어. 응석이 늘면 넉살도 탄력받겠지. 넉살이 탄력받으니 매번 잡념만 늘어나. 잡념이 늘어나면 노상 흑심만 증가. 흑심이 증가하면 어떻게 될까? 웬 똥개처럼 군침만 질질 흘리지 않으면 다행일 텐데. 설사 잘 참아서 엄한 데다 눈독들이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럴지라도 벌은 꽃으로 나비도 꽃에게로 뭐 똥파리까지? 농담이고. 슬럼프 아주 심각하구만 그래. 못 봐줄 정도. 맺집 증가 재력 하락. 넉살 더 증가 기쁨 더 하락. (절레절레) 자, 그래서 그가 꺼내든 특단의 대책은 무엇일까? 짜잔~ 말을 못 구하거든 소라도 타라! 그런데 이젠 하다 하다 장난감 노트북마저 없음. 미칠 거야. 돌아버리지. 그렇다고 내일의 낭만을 급한 대로 끌어다 쓴다? 곳감론이라는 절대 강자가 공포심을 조장할 수도 있다. 그러니까 사랑의 포로는 아무나 되나? 숙녀분들 모셔놓고 연애론에 대해 설명하라고 해 봐. 어버버버 우쭈쭈쭈 눌변으로 대체 뭘 하겠다고. 하여 있었는지 과장됐는지 모를 아는 동생들 다 도망감. 호박이 제 발로 근처에 굴러올 생각을 안 함. 자기 능력치를 정량화하지 못하니 잔재주도 배신. 그렇다고 여자의 마음을 측정 잘한다고 자부하면 뭘 해, 뭐 그분들은 입장 없나? 어딜 넘 봐, 또 언년을 꼬실려고. 뭐 형이 쟤네들 다 꼬셔줄께? 또? 잘한다 잘해. 이젠 우정도 다 떠나갔다. 진짜 혼자다. 원래 사람은 외롭다. 함께 외롭자는 둥 뭐라는 둥 유행가 가사 낙서 몇글짜 끄적거리면 금방 나온다. 일도 아니다. 콧노래 기분 좋아 흥얼거리면 작곡도 대충 가닥 나온다. 그런데 알고 봤더니 그는 아웃사이더였다. 그러니 무능력하지. 여자가 먼저 꼬리치는데 좋아한다는 여자한테 하트 뿅뿅 다가갈 배짱도 없어. 눈치는 있어? 이젠 하다 하다 남의 말도 잘 듣지를 않아. 심지어 근처에 아무도 없지 않나. 따라서 그는 자연스럽게 사교계에 발길을 끊게 됐다. 그러면 갈 데라고는? 그렇지. 더 말해 뭐 하나. 행복이 뭐 별건가? 공부는 재밌다. 일처럼 즐거운 게 어딨나. 만족의 기준선이 유동적이라는 게 문제긴 하다만. 타인에게 유독 실망만 안겨주는 재능, 없으니 편한데. 옆에서 바가지 긁는 여편네 있는 게 어디고, 없어서 다행인 팔자도 어딘가. 짚신도 다 짝이 있다. 오늘 점심 뭐 먹지? 저 하늘의 별을 따자. 그럼 된다. 아직도 수요일이라니... 퇴근 몇 시간 남았지? 그게 행복한 거다. 우리는 배가 불렀다. (조용조용히) 난 빼주세요? 세상 사람들이 그 소곤거림 다 들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쇼핑백 많이 들면 무겁다. 다 가질 수는 없다. 그런데 모두를 어떻게 만족시키나! 다 웃길 수 없다. 귀에서 피나는 분들 생각 좀 하자. 다변가 마누라 때문에 득도한 남편... 알 만하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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