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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 ─ 173

from 소설 2020. 8. 31. 19:09

    1

    웃을 일이 아니다. 어떤 상상이든 대만족시켜줄 섬뜩한 환상머신의 완성을 코앞에 두고 있다가, 불행 중 다행인 걸까? 그 개꿈은 결국 미완성으로 종결. 물론 놓친 물고기는 다 큰 법. 환상머신이고 자시고 다 뻥. 몽땅 뻥! 밑도 끝도 없이 환상머신의 신비함에 대해 떠벌리면 당연히 누구든 NB를 좀 모자란 사람으로 볼 게 뻔하니. 설마 그래서 일부러 미완성에서 멈춘 것일까? 일부러는 개뿔. 허풍대회 근처에도 못 갈 넉살. 근데 진짜로 어느 날 갑자기 그 뭐야. 터미네이터 + 우머나이저 = 환상머신...을 완성했다더라? 약 먹을 시간인 거네. 어차피 끝내기 홈런 못 치니까 인생 내내 뻔트. 허세. 응석. 어? 시작이 반이다? 첫 끗발이 개 끗발이다. 그럼 또 NB 그 꺼벙한 녀석은 희망찬 미래를 낙관할 꺼야, 별거 아니라고. 별거 아닙니다? 뭐가 별거 아니야! 별거 아니긴 뭐가 별거 아니냐고. 돌아온 탕자야 꿈 같은 난봉기 근처에라도 가 봤겠지, 허나 걘 탕자가 뭔지도 모르는데? 아무튼 필자 뿐만 아니라 누가 됐든지 그 인간이랑 별로 안 친해. 당연하지. 안 그럴 수가 없거든. 에잇 나도 모르겠다. 기왕 말 나온 김에 녀석 험담 하나만 더 할까? 폭로야 해도 해도 끝이 없으니까 말이다. 근데 그게 뭐였더라? 됐다. 재미없다. 기대는 김샜다. 들뜬 분위기 망했다. 괜히 몸만 풀었다. 다변 시작하니 않으니만 못하도록 말이다. 이러니 수다대회에서 안 받아주지. 할 말 떨어지기도 전에 먼저 기 빨리고 출발하는 거 아니냐고. 어쨌건 인생은 재미없고 사랑은 없어. 늘상 노잼! 그래서 아마도 그 말이 진리. 그건 뭐다? 개는 뼈다귀를 주어 만족시키고, 여자에게는 거짓말로 만족시켜라. 근데 일단 여자가 없어. 그동안 사준 커피가 얼만데 다 도망갔어. 의리없는 것들. 그러게 NB도 NB지. 지가 뭔데 환상극 애호가, 기분파, 낭만파, 게다가 점잖은 늑대와 허영기 강렬한 불여우는 물론 심지어 허당파까지 들쑤셔놓냐고. 뭐 미스테리아 다음편 개봉박두? 놀고 있네. 아주 그냥 웃기고 자빠시셨어. 예고편만 끝장. 뚜껑 열면 아무것도 없음. 그게 뭐야, 어? 지금 장난해? 드디여 올 것이 왔다? 오긴 누가 와! 어? 자, 흥분을 가라앉히고. 열띤 정력 달래며. 들뜬 모험심 아끼자. 왜? 왜냐하면 그가 결국 꺼내든 카드는 하는 수 없이 그것이었으니까. 그건 뭐다? 오라는 데는 없어도 갈 데는 많다. 근데 그게 또 시국이 장난 아니란 말이지. 그럼 이제 정말 어떡한담?
    그래서 그는 마침내 소개팅에 나갔다. 말은 안 해도 믿는 구석이 있었던 것이다. 말만 앓는소리 일색이면서 아는 동생들 다 떨어져나갔다는 둥 커피값만 아꼈어도 뭐 어쨌을 거라는 둥. 몰래 몰래 다 추종 세력 관리 했구만 그래. 과연 진짜인지 아닌지 아무도 알고자 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걔도 남자라고 꼴에 사랑은 하고 싶은가 보지? 목적은 플라토닉? 아니면 진한 사랑 꿈도 꾸지 말라는 그녀의 겁박? 어딜 넘 봐 라는 말이라도 좀 들어보자, 난 대체 왜 안 되냐 라는 엑스트라병 또 도졌네. 어쨌든 그는 소개팅 장소에 나갔다.
    카페 이름은... 몰라. 관심도 없고.
    Mozart / 오페라 <이도메네오> - “바다에서 살아났지만”
    음악이 뭘 이래? 뿐만 아니라 숙녀가 좀 많이 늦네?
    뭔가 느낌 세하길래 NB는 주선자인 동네친구 폴한테 전화했다.
   「폴. 그녀가 못생겼으면 좋겠다. 정말로? 뻥이야. 일단 마음은 착하겠지. 덤으로 은근히 이쁠 꺼야. 적어도 뒷모습은? 근데 설마 역대급 왕가슴일 리는 없겠지? 너 내가 언제 여자 얘기 한 적 본 거 있냐? 뭐 계란후라이? 난 패션과 거리가 멀어. 아니 내가 왜! 그건 그렇고. 근데 이분께서 너무 늦는 거 아니니? 지금 시간이 몇 신대...」
   「뭔 소리야? 내가 말 했잖아.」
   「뭘 말해?」
   「소개팅녀 코로나19 걸려서 보호소로 갔어.」
   「뭐? 그걸 왜 이제 말해줘?」
   「저번에 말 했어.」
   「언제?」
   「언제더라?」
   「너 똥개 훈련시키냐?」
   「그럼 늬가 똥개냐?」
   「아니지. 난 촌닭이지. 뭐 촌놈? 그러는 늬가 똥개냐?」
   「돌아올 때 개똥이나 밟지 말기를 바란다. 개똥 피하려다 새똥 겨우겨우 피했는데, 그는 결국 바나나껍질을 벗기듯 숙녀의...」
   「뭔 소리야? 너 미쳤니?」
   「누가 말 끊으래? 그러니까 늬가 안되는 거야. 야, 기분 나빠졌어. 전화 끊어. 너 당분간 나한테 전화하지 마. 나 뿐만이 아니야. 딴 애들도 다 너 피해. 알아? 알든 말든 모르겠고.」
    뚝.
   「이 자식이...」
    아닌게 아니라 폴은 정말로 전화를 끊었다. 뭔 유행병에 걸렸으면 진작 불미스러운 소식을 전하든가 했어야지, 어? 지가 비보든 신보든 얘기도 안 해줬으면 왜 지가 짜증내? 무슨소개팅이 이래? 내가 애초에 여기 나오면서부터... 이거 정말 괜한 짓 아닐까? ~라고 생각했었는데. 내가 아니라 NB가! 어? 어쩐지 일이 잘풀린다 그랬어. (절레절레)





    2

    허당의 인생이란 나서기 즐겁도록 건수가 항상 풍년은 아닌 것. 곧 그는 침체기가 너무 길어져서 탈이었다. 보기 좋게 무대에서 멀어지는 형세인 것처럼. 정말 신기하게도 전적이 어쩜 이리도 조용할 수 있는지 의아할 뿐. 모험도 사랑도 낭만도 모두 붙잡지 못한 체 탕진할 재산도 못 모으면 어쩌지? 불태울 젊음이 벤치 신세를 못 벋어난 체 꼬부랑 할아버지가 되면 어떡하냔 말이다. ~라는 잡생각을 없애기 위해서 NB가 과연 무엇을 했을까? 아무것도 못했다. 그럼 그렇지. 할 게 있어야 말이지. 번뜩이는 상상력 빈곤이 문제가 아니라 무엇보다 통잔 잔고 때문에 남는 건 썩은 미소뿐. 심지어 뭐니 뭐니 해도 사랑의 차트 근처에 개미새끼는 커녕 파리 한마리조차 얼씬도 안 했음. 이러니 더 말해 뭐 하나! 그렇다고 타락마를 탈 것이냐 영화를 찍을 것이냐, 당연히 영화를 찍어야 하는데. 근데 누가 영화판으로 모셔준다 나서겠나.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봤다는 게 탈일 뿐. 그처럼 건전한 희망에 흠뻑 젖을 감성이 좋긴 하나, 질펀한 방탕에 관심 없더라도 건수는 또 다른 얘기다만. 그럼 이제 어떡한담? 먹음직스런 음식을 보고서 개침 질질 흘리는 골든 리트리버도 아니고 말이야. 그래서 NB는 작정했다. 마치 이렇게 씩씩거리면서 말이다. 못 먹는 감이 떫다. (동화에서 여우는) 포도를 얻을 수 없으면 포도가 시다고 욕한다. 그림의 떡? 가장 달콤한 포도는 가장 높이 달려있다. 목표는 크게 실망은 더 크게! 이처럼 무작정 집을 나섰는데 근데 갈 데가 없네? 숫말들이 있는 곳에 암말들이 모인다. 허나 최근 아지트 분위기가 영 별로란 말이야... 이걸 어쩌지? 근데 정말 뭔놈의 능청이 이리 심해, 어? 진짜 이놈의 어리광 이게 말이 되나? 말도 안됨. 말 같지도 않음. 밑도 끝도 없이 애도 아니고 또 심심하다고? 재미없음 이라는 엄벌을 받아 마땅하구만 그래. 잡것!
    기왕 이렇게 된 거 줄거리 없는 공상? 그게 뭐가 어렵다고.
    잔소리 안듣고 구설수에 오르지 않는 것만 해도 어딘가. 추접스러운 사랑 관심 없다. 돈도 필요없고 껀수는 뭔놈의 껀수. 다 가라 그래. 여복이라면 귀찮아 죽겠는데 추종세력들 신경써줘야 할 이유 역시나 없다. 남들처럼 평범한 연애 한번 못해봐서 못살겠네? 우리는 정반대. 사랑이라면 징글징글. 현실은 물론 인터넷 놀이터에서조차 한눈팔고 싶지 않음. 색정이라면 딱 거절! 근데 그건 그거고. 한편 정말로 들으면 깜짝 놀라지 않고 못 배기는, 그처럼 재미난 얘기를 들려드릴까? 아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진짜로 알고 나면 완전 신나서 기분 끝장인 사연을 알려드릴까 말까? 그만하자. 귀에서 피가 나는데 이제 그만 자중합시다. 그러는 게 좋겠다. 안 그래도 알게 된 시점 딱 그때 잠깐만 즐겁지 시간 지나면 금새 잊어먹게 되어 있다. 때문에 오히려 모르는 게 약일 수도 있단 말이다. 그럼 아는 게 힘은 무엇일까? 알든 모르든 흔하디흔한 추문 또 하나 알게 되면 옷이 생기나 재산이 느나. 다 부질없음. 타인의 사랑 신경 끄고 내 인생이나 건사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안되니까. 아니 근데 말이다 그게 그러니까 말이다 그 뭐지? 거 언제부터 정말로 궁금했단 말이 아니라 지금 생각나서 하는 얘기긴 하다만 거 뭐랄까. 연한 애정의 다정함과 진한 사랑의 격렬함, 둘 중에 과연 뭐가 오래갈까? 오래가고 자시고 지금 그게 문젠가. 사랑이고 나발이고 지금 그제 중요하냐고. 어? 그럼 소녀감성을 만족시켜드리는 희망이 과연 NB에게 숙제란 말인가? 하면 아니겠지. 따라서 지금 아니면 언제 놀겠나 하면서 으쌰으쌰 떠나자? 떠나긴 뭘 떠나. 매번 허탕인데 (절레절레)! 낭만적인 멜로드라마 줄거리를 추측하는 동경심과 그 녀석은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멂. 녀석의 꺼벙함으로 말할 것 같으면... 잠 안자고 일주일 내내 고자질 못할 것도 없다만 그래서 뭐 하게. 새로운 사랑의 운명적 출연을 철석같이 믿는 감수성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위인들이 누군인가 듣고 싶지도 않고. 그렇다고 쾌락마에 대한 탐욕이 그야말로 미칠 지경이란 말이 아니라. 그건 딱 사양. 그래도 남녀의 사사로운 연정이라면 애처롭고, 그리움이라면 애달프며, 상사병이야 당연히 애절하니까 또 여심을 우리가 마다할 수는 없는데. 애석한 껀수 없음이야 당사자 알아서 할 일이고. 어쨌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빠 제발 만나줘요 오빠 고마워요 오빠 보고싶어요..."라는 그녀들 요청 때문에 번호표 뽑는 기계를 장만하기엔 그건 좀 아닌 거 같고. 그래서 솔직히 고백하자면 웬만한 아니 거의 모든 남자들의 대망은? 사족을 못 슬 정도로 여심을 아끼기. 그 말은 여자도 똑같다는 뜻. 오히려... 말 말자! 말해 뭐 해, 어? 하여튼 말이야 늑대도 늑대지 불여우들끼리 죄다 서로 백댄서하기 싫다는 거 알면서? 그래도 사랑이라면 환장할 만큼 숙녀를 좋아하기. 첫눈에 홀딱 반하는 게 다름 아니라 취미인 인생? 그놈의 추접스러운 사랑 은밀한 더티러브 공상 아주 그냥 징글징글하다. 지긋지긋 신물이 난단 말이다. 물론 필자가 아니라 NB가 말이다. 그치만 내숭이란 게 무엇인가. 그럼 여자들도? 그분들께서 어 응큼하시는 걸 굳이 말해서 뭐 하나. 득될 거 하나 없지. 다만 우리는 흡수력 좋은 그 어떤 면제품처럼 특유의 흡입력으로 그분들의 마음을 끌어당길 뿐. 자연스럽게~ 그분들은 우리들한테 넘어오게 되어 있음. 우리가 꼬시는데 안 넘어오고 어떻게 베겨, 못 베겨! 우리한테 홀딱 반할 수 밖에 없단 말이다. 유혹과 질투를 양쪽에 꿰차신 그분들, 진짜로 우리한테 넘어올 수 밖에 없음. 숙녀는 우리한테 끌릴 수 밖에 없는 운명. 무조건 말이다. 허허허. 근데 껀수는 대체 언제? 그건 그렇긴 하다만 과연 귀신이 잡아가지 않고 뭐하는지 애석할 따름인 그 인간. NB가 끝끝내 꼭꼭 숨겨놓은 채 털어놓지 않은 신비스러운 비밀이 한 가지 있는데... 아 글쎄 그건 과연 무엇일까? 없다. 뻥이다. 있을 턱이 있나. 그런 놈은.. 됐고. 자,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오랫만에 인공지능 지니를 깨워서 NB 그 인간을 괴롭혀볼까? 아닙니다 그건 아닙니다, 그건 그렇지 않습니다? 자고 있는 개는 내버려 두어라?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리자. 농담이고. 잔뻔치 잔근육 잔소리 언제까지 뻔트만? 아무리 기다려도 쥐구멍에 볕들지 않는데... 그래서 찾은 개구멍이란? 두 여인이 갑자기 가까와진다는 것은 제 3의 여인이 두 친구를 잃는다는 징조일 수도 있음. 근데 그 말이 지금 왜 나와? 그거아고 공상아고 대체 뭔 상관인데? 밀접한 연관성 좋든 싫든 너나 잘하라고? 넌 뭐 얼마나 잘나서... 그만 하자. 이런 말 같지도 않은 공상 옮기는 심정은 오죽할까. 무슨 개 풀뜯어먹는 헛소리 멈추질 않는데 그놈의 개뼉따귀를 탐하는 것처럼 만인에게 절대적인 관심사는 사랑이 부동의 챔피언이고. 절대로 부정할 수 없는 만사에서 최고가는 주제. 뭐, 사랑? 아 쫌!





    3

    끝내 대타는 바닥나고 그는 결국 공상대회에 출전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온전히 참가해서 어떻게 인기상이랄지 아차상이라도 탔을까? 그럼, 얼마나, 좋겠나. 그마저 출전 최소인원 부족 때문에 대회는 취소되고 말았던 것이다. 뭐라고? 참 나 하여간에 무슨 별의별 아니 잠깐만. 그 뿐이면 다행이게? 그 믿었던 사라와 마라. 여자의 변심이야 우리가 얼마든지 아름답게 포장해드릴 수 있는데. 아가씨의 입방정과 숙녀의 허영심이든 뭐든 우리의 립서비스에 녹아나면 환희를 맛보도록 되어 있는데. 값싼 사탕발림과 어설픈 띄워주기가 아니라 여심은 달콤하며 애달프고 홀딱 미쳐버릴 만큼 들었다 놨다 일도 아니다만. 그와 달리 미스테리아&여성환상 1.5! 그 두군 데서 NB는 모두 팽당했던 것이다. 계약 종료인지 파기인지 뭔지. 지들 맘대로 법적 절차 완료됐대. 그럼 남은 건? 요컨대 NB의 실직. 뭐가 어쩌고 어째? "도대체 네 영혼 속엔 뭐가 들어있는 거냐?" 라는 인공지능 지니의 잔소리가 벌써 들리는 것만 같았다. 거리에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 잡고 물어봐라, 너 같은 바보가 어디 흔한가 라고. 그 식상한 잔뻔치. 그분 꿍꿍이도 뻔할 뻔자. 어라~! 맷집 좋으니까 더 때려야겠네. 라는 심술을 뭐하러 비싼 값 주고 살 일 있나. 울적한 기분 가만 놔두면 괜찮아지겠지. 속상하긴 하나 그래도 우리는 영원한 몽정기라 뭐 그 말인가? 재미없다. 더럽게 지겹다. 신물이 난다. 하여튼 간에 그놈의 정력타령 징글징글 쓴물이 올라온단 말이다. 한편 갑자기 전화가 걸려오더니, 오빠 바쁘세요? 바쁘긴 누가 바빠. 그런 전화 걸려올 턱이 없는데. 주사위는 던져졌다. 따라서 NB는 궁지에 몰렸으니까 버뮤다 대학교로 떠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딱 도착.
    장면 전환.
    장면 전환.
    장면 전환.
    피서지에 도착해 바캉스를 즐기려하는데. 고급 호텔에서 숙박할 처지일까? 버뮤다 대학교 인근 아는 동생네 집 다락방 구석에서 빌붙어 지내게 되었다. 그 아는 동생이 누구인가 까지는 밝히지 않겠다. 그냥 조연 3이라고 하자. 그러든가 말든가. 근다고 그 아는 동생의 사는 형편이 넉넉하냐, 초갑부가 아닌 건 분명했다. 게다가 NB는 품위유지비가 간당간당했다. 식료품을 사면서 계산하는데 한도초과입니다, 라는 소릴 들을까봐 겁먹지 않을 수 없었다. 조마조마한 거지. 따라서 그는 거기까지 가서도 벤처캐피틀이 후원하는 어느 펀딩사이트에 '줄거리 관련 입담 터는 초안'을 올려 돈을 벌 수밖에 없었다. 그건 이랬다.
    <나대지 마 VS 빌빌거리지 마! 사랑이란 그 신나는 명승부에서 과연 누가 이길 것이냐?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자. 더럽게 재미없는 얘기 그만 좀 하잔 말이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말이야. 우리는 사랑이 아름답다고 한 적 없단 말이다, 어? 내 맘 모르겠니? 정말 몰라? 누가 몰라, 모르긴 뭘 몰라! 자칫 잘못했으면 시작할 뻔 말 뻔 하다 김새버린 일장 설교는 됐고. 딱 됐고. 상남자로써 한발짝도 물러설 수 없는 이상적 갈망이 뭔지 알고 싶지도 않고. 어쨌거나 저쨌거나 그게 그러니까 근데 도대체 뭔 얘길 하고 있었던 거지? 아무튼 말이야, 삐걱대는 바퀴가 기름칠을 받는다. 우는 애 젖준다. 허나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리면 안된다. 괜히 벌통을 쑤실 일 있나. 그렇다고 뭐 NB가 아는 여동생들한테 왜 커피사주란 말 요즘 하지 않냐고 따져야 할까? 따지긴.
    그때 갑자기 NB는 전화를 받았다. 보나마나 여자였다. 제발 부탁하니 오빠 한번만 만나달라는 애원일 테지. 팬클럽 증말 극성이구만, 추종세력 아직도 바쁘다 못해 내 꺼 하자고 난리. 그런데 듣고보니 정말이었다.
   "오늘 나 쉬는데 뭐 할까?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라고만 하지 말아줘. 응? 제발. 부디 날 데리고 살겠다는 결심이 굳으면 더 좋을 테고 말이야. 오빠야, 아니면 나 같은 딸 낳아줄까? 말만 해. 당연히 뻥이니까......"
    말하자면 그녀의 말을 전부 옮기지 못하는 게 아니다. 왜냐, 너무 섹시하니까. 진짜로? 물론 뻥이다. 당연히 뻥이지. 아는 동생들 다 떨어져나간 걸로도 모자라 속된 말로 일절 여자가 꼬이지 않는 인생. 숙녀들이 귀찮게 하지 않으니까 뭐 살맛나는 거지. 허허. 그런 꺼벙이, 쩜팔이, 곰탱이 주제에 어? 쾌적한 발단과 대비되는 심상치 않은 전개 그런 게 어딨어. 바랠 걸 바래야지. 꿈도 야주져 하여튼. 그러니까 숙녀는 저런 남자를 만나면 안된다. 저런 인간? 넘버쓰리로 자길 보필하기에 썩 불만족스러워하는 친구한테 얻어듣는 소리는, 그러고도 늬가 사람이냐?! 우리 여성분들, 대체 어떤 남자를 만나야 할지 잘 모르시겠다구요? 전혀 어렵지 않습니다, 바로 NB 같은 남자를 만나면 되니까요. 진짜로? 뻥이다. 개 뻥. 그나저나 날도 더운데 뭔가 가슴을 뻥 뚫어주는 속시원한 줄거리 어디 없을까? 있을 리가 있나. 그래서 하는 말인데 그의 마음을 슬쩍 엿보기에 또 필자는 남다른 재능을 자랑하느라 바쁘기 때문에 뭔가 겸연쩍어하실 수도 있는데. 그게 그러니까 말이다 뭐라고 간접화법을 번안해야 할까. 아니면 여자말 번역기 툭하면 잔고장이라고 솔직히 실토할까 말까. 우리끼리 얘기지만 아니 정말 우리끼리니까 하는 말이다만 그게 그러니까, 어? 아 글쎄 지금 이 기회가 지나면 언제 또 아뢰옵기 황공할 사연을 전할 수 있을까 라는 의미에서 한말씀 드리자면. 뭔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을 잔소리의 결론은 그거다. 바로, 개가 없으면 고양이가 나댄다? 고양이가 없으면 쥐들이 설친다. 하지만 쥐들이라고 맨날 쥐구멍에 볕들 날만 기다릴까. 대체 언제까지. 그래서 그분들께서도 때로는 빨빨거리고 나돌아댕기지 않을 수 없는 것. 따라서 개처럼 생긴 NB는 뭔가 의심쩍은 개구멍을 하나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4

    오늘 NB는 버뮤다 대학교 휴게실을 통채로 독차지한 듯 실내에서 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두 가지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건 무엇일까?
    첫째, 커다란 명화 액자가 통채로 문이었음.
    둘째, 그 문을 열고 핀이 나타남.
   「야, 핀. 늬가 거기서 왜 나와?」
   「그러는 넌 여기 웬일인데?」
   「나야... 내가 먼저 물었잖아!」
   「그러게 뭐 하러 늬가 먼저 물어봐. 어? 누가 너보고 먼저 물어보라고 시키든?! 늬가 먼저 물어봤으니까 늬가 먼저 답하면 되겠네. 동의하지? 그래. 그렇게 하자. 근데 내가 뭘 물어봤지?」
   「몰라. 뭐 중요하지 않은 거겠지. 근데 너 일 안해?」
   「그러는 넌 놀러 안 갔어? 어디 휴양지랄지 깡촌, 깡섬, 아니면 호캉스. 왜 하필 여기야? 내가 널 여기서까지 봐야 하다니!」
   「너 그렇게 한가한 남자였냐?」
   「너도 만만치 않아. 넌 뭐 허접한 게 자랑이냐?」
   「너 저번에 비꼬기 대회 나갔다가 예선탈락했다면서? 내 그럴 줄 알았다.」
   「뭔 소리야? 비아냥 대회 아예 열리지도 않았어. 그러는 넌! 공상대회는 안될 것 같고, 허세대회에서 초대는 안 하지. 어? 웬만치 껄떡거려. 넌 여자가 그렇게 좋냐? 어?」
   「난 여자 관심없어. 그러는 너나 찝쩍거리지 말어라. 제발 부탁이니. 응? 그나저나. 저 안에 뭐가 있더라? 내가 1년 전에 들어갔었나... 나 아니던가...! 자, 한번 모험을 시작해볼까?」
   「문 잠겼어.」
   「뭐?」
   「저 문은 미남한테만 열려. 넌 아웃!」
   「이 자식이... 그러는 넌 무슨 특권으로?」
   「특권이 아니라 정당하게. 합당하도록. 그 타당한 이치, 이의없지? 있을 리가 있나. 그러니까 늬가 안되는 거야. 어? 그래서 넌 아직까지 혼자인 거고. 왜, 형이 여자 소개시켜줘? 근데 소개시켜주면 뭘 하니. 여자가 도망가는데. 너도 알다시피 내 아는 여동생들이 좀 많니. 정말 귀찮아죽겠다. 내가 통화 차단한 여자들이 대체 몇 명인 줄 알기는 아니?」
   「너 아직도 그러고 다니냐? 웃기지도 않다. 아주 그냥 징그러워. 누가 옆에서 안 가르쳐주든?」
   「시끄럽고. 소개팅할래? 3 대 3으로 3연타. 요즘 남자애들이 왜 그렇게 바쁘다니?」
   「진짜야?」
   「뻥이야. 진짜겠냐.」
   「알고 있었어.」
   「아니야. 넌 또 속았어. 허허허. 재밌다.」
   「재밌긴 뭐가 재밌어. 속아주는 척 연기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늬가 알겠니.」
    그렇게 약 1분 동안 그들은 대화가 없었다.
    그러다 휴게실 바깥으로 웬 뚜껑없는 그 뭐야 새끈한 자동차가 등장했다. 당연히 운전석엔 섹시한 숙녀.
   「친구. 나 간다. 너도 어서 여자 만나라. 연애도 좀 하고 그래. 그게 뭐 어렵니? 여자 마음 모르겠으면 형한테 말하고. 갈께. 다음에 보든가 말든가. 좌우지간 돈 떨어지면 말해. 일단 말만 해. 근데 내가 바쁘면 전화 안 받을 수도 있으니까 끈기 잃지 말고 친구. (윙크)」
    저 자식이...!
    가라 그래. 누가 붙잡는데? 벌써 갔네.
    보아하니 날도 더운데 심심하다고 아무 똥개한테 뽀뽀할 수도 없고. 하여 NB에 대해서나 알아볼까? 희박하디 희박하겠으나 단 7명 애독자 있는 게 어딘가. 환상문학잡지 미스테리아가 폐간 안된 게 어딘데. 자, 그로 말할 것 같으면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 말하자면 이런 식이지. 가난은 끈질겼다. 젊음은 끝물인가 아닌가는 몰라도 청춘가가 다 뭔가. 일단 몇몇 징후만 봐도 뻔하다. 유행가 안 들음. 말수 줄어듬. 패션 관심 없다가 억지로 새옷 막 사들임. 민무늬 티셔츠 몇 개로 돌리다가 일부러 젊은이들처럼 디자인 들어간 거 입기 따라함. 그럼 정말 행복 끝 불행 시작일까? 뭐 언젠 안 그랬나. 사교계에서조차 제명당함. 플레이보이계에서 엉덩이까임. 숙녀들한테 호색한인 거 들통남. 아는 동생들 다 떨어져나감. 정말 있었는지 아닌지 그 허풍 어떻게 믿어, 못 말려. 어? 예술적 감수성을 추측하며 아찔한 착상을 기다린다? 개침 질질 상상력 벌렁벌렁. 말도 못함. 말로야 아름다운 인생이자 신나는 세상 어쩌고저쩌고 그거 누가 못해? 다 뻥. 개뻥. 몽땅 뻥. 여심을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이는 '질투녀들의 제왕'은 무슨, 개뿔! 병적인 색마. 허당계 총아. 신기한 환상머신 포기한지 오래. 칼럼니스트 직명도 불쌍해서 여성잡지 두 군데에서 먹여살리는 중. 웬만한 아가씨들한테 저울질당하기는 커녕 그분들 어장관리 후보군은 꿈도 못 꿈. 뭐 여심을 들었다 놨다 밀고 당기기 쥐락펴락? 이젠 정말 하다 하다 들려졌다 밀려졌다 쥐어졌다 펴졌다 밀려졌다 당겨졌다... 그랬던 시절이 좋긴 좋았지. 그런 호시절의 복귀 가당키나 한가. 이미 7부 리그는 커녕 저 먼발치로 밀려난지 오래. 그럭저럭 뭐 어떻게 정착한 최후의 취미는 알고봤더니, 뚜껑 열리기? 놀고 있네. 허허허. 근대 대체 왜 녀석에 대해서 이처럼 정신분석을 하고 또 해야 하지? 그러게 말이야. 발단 뻔하고 전개는 없으면 줄거리 자체가 허접하니까 그렇지. 새로운 인생 기대하지도 못함. C.Ph.E.Bach / Sonata for flute solo in a minor Wq132 고결한 척하면 누가 먹여살려줘 돈을 줘? 그렇다고 허당 주제에 또 꼴에 어디서 들은 건 있어가지고 말이야, 뭐? 뭐래더라 어딘가에서 주서들은 속담은 뭐? 새 포도주를 헌 병에 담지 마라. 하긴 공상도 지겹고 타겟은 그거로구만. 바로, 새로운 사랑! 그럼 뭘 해, 어? 가는 여자 잡지 않고 오는 여자 막지 않는다. 그거 누가 몰라? 일단 오지를 않잖아. 아무리 호박이 제 발로 굴러간다지만 뭐 그분들이 바본가? (절레절레) 누군 뭐 군침 흘릴지 모르고 호사가 무엇인지 모르냔 말이다. 젠장, 이런 젠장! 그러니까 언제까지 따분한 일하기가 완전 재밌는 척 연기만 할 거냐고. 일하기 싫으면서 또 아닌 척 내숭떨고 대체 어떻게 해야 솔직할 거냐고. 어? 말로는 고결한 채식주의자인 척, 속으로는? 지글지글 지글지글 사람은 고기를 먹어줘야 해,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는다는 둥 지글지글 지글지글 육즙이 그냥 기가 막힐 것이다 라는 상상! 캬, 어? 난 비위 좋다 먹성은 더 좋을 것이다 라는 예언. 또 그림의 떡? 따라서 뭐 또 떠나자? 그래 봤자 돈 낭비 시간 낭비 정력이야 뭐 낭비하고 싶어도 못함. 집 떠나면 고생. 그렇다고 소파에 자빠져 다큐멘터리 쳐다보면 뭘 해. 그래 봐야 에잇 됐다. 전날 연예계 싸움 순위 1등이 집에 찾아와서 야 한판 뜨자 라며 언제 찾아올지 몰라, 좋은 말로 할 때 블랙리스트에서 자길 빼주라는 장본인과 딱 똑같으면서, 어? 말로는 뭐 세계마초협회 선정 올해의 상남자한테 야 한판 떠! 뭘 떠, 뜨긴 뭔 뜨냐고. 뭔 말만 말만... (절레절레).
    그래서 NB는 혼자 버뮤다섬 일주를 시작했다.
    결과는? 뭔가 있었으면 그건 아마 뉴스에나 나왔겠지.





    5

    다음 날이 되었다. NB는 사무실에서 인터넷 쇼핑을 하고 있었다. 마냥 노는 것처럼 보일까 봐 당연히 음악으로 자연스럽게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걸 잊지 않았다.
    Bellini / 오페라 <몽유병의 여인> 2막 - ”아, 알 수 없는 인간의 마음“
    그러다 핀이 사무실에 들어섰다. 그는 잘됐다고 생각했다. 저 명화 문짝 뒷편에 대체 뭐가 숨겨져 있는지. 그게 미로인지 단순한 보물창고인지 그거나 물어보자고 생각했으니까. 그렇게 대충 한 10분 정도 농담따먹기를 했나? 왠지 모르게 NB는 핀에게 어깨동무를 했다. 어깨동무라면 그는 잘 하지도 받지도 않는데. 특히 동성친구들과 별로 그렇게 놀지 않는데, 옛날 친구들이랑 놀 때 친구의 여자친구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그냥 남자라는 느낌 으쌰으쌰 어깨동무했던 게 거의 전부였을 것이다. 보아하니 (사랑 가능성이 없는) 여자한테 어깨동무를 하고, 여자를 엎고 여자한테 엎히고. 그거 전문? 그러거나 말거나 거 어째 '남자로 상정한' 여자한테 어깨동무를 했는데 그게 뭐 큰 잘못이었을까. 친한 친구, 즉 친구의 여자친구랑 친했던 게 걸렸다. 당시는 자연스러웠는데... 지금 생각하니... 친구가 유학 비슷한 걸 갈 때 공항까지 걔 여자친구랑 셋이서 같이 가서 친구를 베웅하기. 친구 여자친구 집까지 셋이서 놀러간 적도 있는데... 냄새가... 지금 생각하니...! 무슨 과수원 막 포도밭에서 신발끈 고쳐메지 않아야 함. 레코드숍에 CD 들고 들어갔을 때 점원에게 미리 말했는데 그분 싫어했음, 다음에 그러지 말라고. 어쨌건 핀은 마침내 본색을 드러냈다. 응큼한 흑심을 드러냈다는 말이 아니라 특수분장 가면을 벗은 것이다.
   「오빠. 저 핀 동생이에요.」
   「헉! 네?」
   「오빠 방금 나한테 어깨동무했죠. 그럼 이제 제가 팔짱끼면 되는 거죠? 에잇 말 놓자. 우리 이제 사귀는 건데. 나 같은 여자친구가 어디 흔하나? 안 그래 오빠?」
   「네?」
   「어깨동무 때문에 연인 관계로 발전한 남녀. 만약 남자의 변심으로 헤어지면 그 뭐래더라? 남자의 정력에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논문. 못 들어보셨수? 원하신다면야 읽어보시라고 어디서 구해다드릴께.」
   「당신 뭐야? 누구야? 대체 누군데... 괜한 수작 부리지 마. 흐흠. 아가씨. 당신 누가 보냈소.」
   「아가씨 당신 누가 보냈소? 뭘 누가 보내. 어? 내 발로 왔다. 왜?」
   「아니~ 그걸 모르는 바는 아닌데 그게 그러니까 말이 안되질 않소. 저 특수장비 대체 얼마주고 장만했소. 가만보니 싸구려는 절대 아니고. 뿐만 아니라 내가 뭐 바보요? 보아하니 나 같은 비리비리한 동네 아저씨를 이상형으로 손꼽는 처년 아닌 것 같고. 대체 꿍꿍이가 뭐요?」
   「알고 싶어요?」
   「묻는 말에나 대답하시오. 어서. 어허. 좋은 말로 할 때.」
   「좋은 말로 할 때? 그럼 숨겨진 사연 고백하기를 자꾸 뜸들이면 뭐 제게 뽀뽀라도 하실라오?」
   「그깟 뽀뽀가 문제요?」
   「아하 이제 알겠다. 오빠가 이 따위 꽁트를 좋아하니까 그동안 여자가 없었군. 알 만하다. 알 만해.」
   「뭣 때문인지는 몰라도 엉뚱하도록 잘도 갖다 붙이는군 그래. 허허. 허허허.」
   「긴히 드릴 말씀이 있는데 그게 무엇인고 하니...」
   「」
   「대체 뭐였더라?」
   「지금 날 갖고 노는 거요? 차라리 똥개 훈련을 시키시오. 아니면 정식으로 데이트를 하던가. 이게 뭐요, 네? 아니면 내 사랑을 받아주오 라면서 당차게 구애할 분위기를 만들던가. 사람 기분 이상허게 이게 대체 뭐냔 말이오. 어서 말하시오. 누가 보냈소? 작전명은 뭐고. 대체 원하는 게 뭐냔 말이오.」
   「이게 대체 무슨 짓이야! 좀전엔 어깨동무하더니 벌써 은근 막 가까이 오네.」
   「뭔 소리요? 당신이 내게 접근해오지 않았소. 지금 엉덩이 크다고 자랑하는 거요? 그렇소?」
   「남자네. 남자야.」
   「그럼 내가 여잔 줄 알았소?」
   「뭐? 뭐가 어쩌고 어째?」
   「이거 왜 이래, 난 당신 여자로 안 봐. 내가 당신 어깨동무를 왜 했는데. 우린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다 그 말씀.」
   「그래도 사랑은 사랑이네요? 그쵸? 이거 봐 이거 보라니까 글쎄. 남자구만. 상남자 중의 상남자.」
   「그게 뭐 어때서!」
   「내가 누군 줄 알려드려요? 정말로? 긴말 필요없이 곧장?」
   「」
   「난 저번에 당신이 험하게 얻어들었던 명대사를 읊었던 이곳 청년회장의 여동생이랍니다. 그때 당신께서 심하게 얻어들었던 말이 뭔지 기억나세요? 네?」
   「저번에? 저번에... 뭐지? 내가 왜 그런 폭압적인 대사를 얻어들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일단 뭐였더라?」
   「그때 당신께서 들었던 대사는 그거였소. 바로, 당신이 이 고장 처녀들 다 따먹고 다닌다면서요? 그놈이 바로 당신이오?」
   「뭐? 뭔 소리야? 난 아니야. 난 아니오. 사람 잘못봤소. 안 그런 인물과 거리가 멀다오. 아시겠소? 우린 인연이 아닌 듯 하오니 이만 헤어집시다. 가시오. 보내드릴 때. 난 가는 여잔 잡지 않소. 뭐 천상천하유아독존? 남자에 환장한 년 같으니라고. 아무튼. 숙녀가 그런 상스런 말 함부로 입에 담는 거 아니오. 그런 말괄량이 인물유형은 드라마의 기본도 아니란 말이오.」
   「누군 뭐 그런 말 하고 싶어서 한 줄 아나? 다 내기에 져서 그런 거 아니야. 그러게 내가 왜...! 아니. 혹시? 에잇 설마! 아니지. 오빠가 진짜로 여기 여자들 다 따먹고 다녔단 말이야? (몸짓)」
   「뭔 소리야 그게?!」
   「나 이 오빠 갑자기 싫어졌어. 있는 정 없는 정 뚝 떨어졌단 말이야. 와 사람 다시 볼 일이네. 아니 어떻게...! 그럼 설마 이런 인간이... 하긴 관상을 보아하니 마누라 등쳐먹고 사는 관상이네. 이런 인간 여편네는 대체 어떻게 생겼을까? 이 인간 여복의 정체는 대체 뭐지?」
   「네? 그게 무슨... 여복이 지금 왜 나와! 어?」
   「아무튼. 오는 여자 막지 않는 게 당신들 불문율 아닌가요? 왜 내가 싫어! 나 어디를 가든 썩 안 빠지는데. 마음은 있는데 몸이... 그럼 결국 문제가 있단 말인데... 이 인간... 당신 혹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훒어보더니 결국 시선은 어딘가에서 멈춤. 딱 멈춤)...」
   「어허 이 사람이...! 아 증말 이거 거 진짜 어허. 어? 거 어째 교양 알 만하신 분께서. 당신은 내숭도 모르요?」
   「오빠. 나 솔직한 여자야. 난 가식과 안 친하거든. 좀 더 정직해볼까? 난 태어나서 남자를 껴안아본 적이 단 1번도 없어. 왜 내가 싫대? 날 포옹하고 싶은 건 물론... 왜 내가 늑대들한테 인기 없는 거지? 내가 매력 없나? 정녕? 오빠도?」
   「어허. 무서워. 우리 그만 만납시다. 뭐 하시오 안 가고!」
   「누가 가란다면 못 갈 줄 아시오?」
    그러면서 그녀는 가버렸다. 저년이... 가란다고 진짜 가네.
    이 귀신에 홀린 듯한 기분은 또 뭐고. 일단 오늘 일하기는 틀렸고 그는 산책을 하며 싱승생숭한 마음을 가라앉힐 수 밖에 없었다.





    6

    NB는 미스테리아 연재 주기를 늘려볼까 하며 마라 마음을 떠봤다. 할 말 떨어졌다는 둥 여자말 번역기가 예전 같지 않다는 둥 하면서. 그럼 좋다면서 사정 봐주겠다고 했을까, 어림없는 소리. 말미를 주고 형편을 고려하긴 뭘. 연봉 재협상 같은 소리나 하고 자빠졌다는 둥 험한 잔소리 엄청 퍼부으길래 그는 환상문학잡지 사무실을 겨우겨우 빠져나왔다. NB는 데뷔전 난봉꾼 시절이 그리웠던 것일까? 그래 봤자 돌아갈 수 없다. 그렇다고 쾌감에 흠뻑 젖을 수가 있나 사치를 만끽하기를 하나. 정답은 없음. 사랑도 없을까? 개뿔 이 마당에 사랑은 무슨. 그는 자기 주제를 파악했다. 늘 그랬듯이. 그런다고 이번엔 달랐나? 어떻게 달라. 그럴 수 없지. 그럼 정말 권태와 심심함과 재미없음과 정력감퇴에 대한 최적의 대항마는 무엇일까? 최적 좋아하시네. 그런 거 없음. 있을 턱이 있나. 웃기시네. 그러게 공상에 앞서 재산 증식에 앞장섰어야지. 에르메스. 몽블랑. 페라리. 아테네의 향연. 명화 속의 마돈나. 로마의 분수? 뭐 분수? 분수같은 헛소리 짚어치우고. 빨가벗고 오줌누는 아기천사 동상 거기에서 물 뿜어지는데 하필 거길 틀어막는 장난이고 나발이고. NB는 역시나 엉덩이가 근질근질했던 것이다. 얼굴 팔리기 싫다면서 플레이보이인 척 해 봐야 귀 간지러운 염문의 주인공으로 왜 난 물망에 오르지 못할까! 라는 심정 없진 않을 테니 말이다. 그러니까 고상한 척 내숭? 세련미 강조하다 통장 잔고 바닥나고, 근사한 고전미 챙기느라 느그적느그적거렸다간 개뼉따귀 딴년이 물고 튀게 되어 있는 게 세상사 이치. 그 개뼉따귀가 달콤한 과즙인지, 탐스런 열매인지, 그도 아니면 목소리 도톰한 미남인지는 잘 모르겠다만 말이다. 좌우지간 G. Telemann / 건반을 위한 36개의 환상곡 TWV 40:2-13 우아한 태도로 이런 음악듣고서 책상에서 게으름피우기에 매진한다고 뭐 여자들이 빨가벗고 달려온다는 보장은 없다. 오빠 제발 한번만 만나주세요... 젠장. 여자말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 일단 여자가 없음. 공상 잘하면 상을 준다든 고기를 준다든. 그러니까 지금처럼.. 됐고. 그래서 NB는 일단 무턱대고 바깥으로 나가기로 했다. 그러지 않을 수 없었거든.
    자, 그럼 중간 건너뛰고 다음 장면은 무엇일까? 마른 개가 잘 뛴다. 운동할 시간. 어디서 주서들은 건 있어가지고 뭐 마른 장작이 잘 탄다? 하여간에 늘상 흑심. 언제나 군침. 끝없는 개침. 못 말리는 눈독? 넘어가고. 근데 이번 운동이 특이했던 게 뭐냐면 운동을 핑계로 멀리 여행을 떠난 것이다. 맨날 똥개처럼 동네만 왔다 갔다 왔다 갔다 지겨워졌단 말이네. 뭐 언젠 안 그랬겠냐마는. 아 맞다. 근데 NB는 이미 떠나왔지 내 정신 좀 봐. 어쨌거나 저쨌거나 다음 줄거리를 이어가자면 이렇다.
    다음 날이 됐다.
    그날 무슨 특별한 예감 같은 건 없었다. 단지 뭐랄까 처음에 여기 놀러올 때 봤던 간판은 버뮤다 대학교였는데. 오늘 아침에 몇 번이나 깜빡깜박 눈을 씻고 재차 봤는지 모른다. 거긴 간판이 모스맨 대학교였다. 설마 첫날 들뜬 기분 탓에 잘못 본 것일까? 열띤 기색 지금 가라앉혀도 어차피 조금 있으면 다시 흥분하게 되어 있는 걸, 그는, 지금 모른다. 알 수가 없거든. 알 턱이 있나. 어쨌든 NB는 제라드와 함께 인근 모스맨 대학교로 놀러갔다. 거기에 친구 에드워드도 있으니 셋이 놀면 그래도 뭐가 나아도 낫겠지 라는 바램 없잖아 있었단 말이다.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모스맨 대학교 도착. 근데 여기 간판은 모스맨 연구소로 바껴 있었다. 뭐 그러든가 말든가. 내부로 들어갔다.
    친구들끼리 안부인사와 농담과 덕담 등 자잘한 줄거리는 건너뛰기로 한다. 보나마나 여자 얘기 했을 수도 있고. 뻔할 뻔자 어복 아니면 재물복 논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던 아저씨니까.
    어찌 됐든 그들끼리 놀고 있던 중 NB는 신기한 걸 하나 발견하고야 말았다. 그건 무엇이냐? 바로, 저기 걸려있는 액자였다.
    가로 몇 X 세로 몇 = 명화! 근데 그 인물화가... 아무리 다시 봐도...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난데?
   「친구. 아 이거 장난이 심한 거 아니야?! 뭐야 저거!」
   「아, 저거~? 이쪽으로 와 봐.」
    몇 발짝 옮겨서 보니 또 코 밑-옆 쪽에 점이 보인다. 다시 또,
    몇 발짝 옮겨서 보니 또 중간 즉 콧등에 점이 보인다. 다시 또,
    몇 발짝 옮겨서 보니 긴 생머리 여자네? 그렇게 몇 번 되풀이하다 그들은 소파로 돌아와 앉았다.
    거기서 봤을 땐 NB가 생각하기엔 아무리 봐도 자기랑 너무 닮았네?
   「밥맛 뚝 떨어지게 저게 뭐야? 정말 너네 이러기야? 어? 내가 바보로 보이냐? 어?」
   「오늘만 그래. 늬가 뭘 좀 몰라서 그러는데, 세계3대 과학잡지 논문 인용하고 어쩌고 설명해줘?」
    듣고 보니 그건 살아움직이는 그림, 즉 조금씩 알게 모르게 점진적으로 또 급작스럽게 변하는 그림이라는 얘기였다.
   「」
   「」
   「」
    그들은 부쩍 말이 없어졌다. 그때 NB는 생각했다. 뭔가 있다고! 그건 다름 아니라... 바로... 혹시... 설마?
    그건 아마 또 문짝일 것이라고 단정짓지 않을 수 없었던 건, 소름끼치는 직감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단 1번도 틀린 적 없던 육감에 따르자면 뻔할 뻔자였던 것이다. 지금까지 단 1번도? 틀릴 때마다 초기화했군.
    일단 그렇게 그는 그날 적당히 연기하며 오늘은 참고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던 것이다.





    7

    도통 지칠 줄 모르는 북태평양 고기압 같은 남자? 그럼 뭘 해! 정력적으로 빨빨거리며 돌아다니고 현란하도록 입 털고 잔재주 자랑하다가. 그러다 딱 연어처럼 느린 생애사 전략으로 안착해서 안심하시는데. 그래 봤자 뚱뚱한 곰탱이인지 미련 곰탱이한테 연어는 잡아먹히기 딱 좋음. 집에 들어가면 비실비실 의무방어전 걱정에다 히치콕 영화 효과음 생각만 해도 살발하다 살발해. 어? 너무 일찍 조숙할 필욘 없다는 허세남들 괜히 자유인을 부러워하시는 게 아님. 정말로 자유가 좋긴 좋을까? 돈이 좋긴 좋음. 근데 통상 돈이 풍족하면 젊음이 멀어져가거나, 자유로운데 가난해. 천천히 빨리와? 자기관리 극강이기 때문에 마른 장작일 수도 있는데, 도대체 얼마나 기를 빨리고 또 빨렸으면 빼빼 마르셨을지... 쯧쯧쯧! 진공청소기처럼 여심을 빨아들일 때나 좋았지. 결론은 식욕. 뭐니 뭐니 해도 일단 배가 불러야 불만이 없어짐. 잡념은 욕구불만이요 잡생각은 흑심인데 그에 앞서 일단 배불리 마음껏 먹으면 그나마 낫긴 나음. 배불리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다는 속설도 있음. 그래서 소문난 맛집에 딱 행차했는데 글쎄... 줄서서 기다리다 재료가 떨어져서 그날 영업 종료. 뭐? 가는 날이 장날.
    그래서 NB는 버뮤다 대학교, 아니 모스맨 연구소로 몰래 침투해서 비밀문으로 들어가볼려고 했는데. 이건 뭐랄까 일종의 미끼일 수 있기 때문에 조심스러울 필요가 절실하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일단 3일을 더 농땡이 피우기로 했던 것이다.





    8

    애 태울 만큼 태웠다. 굶주릴 대로 굶주린 늑대의 야성. 그건 모르겠고. 분위기는 옛날에 고조됐고. 이상을 향한 탐험욕, 신비와 사랑에 빠진 행복감. 이미 충분히 기다렸던 것이다. 더 달아오르기를 기다렸다가는 기회는 종적도 없이 떠나버릴지도 모를 것이다. 킬리만자로의 하이에나도 하이에나지만, 아프리카 들개들이 또 그렇게 떼거지로 달려들면.. 그 얘긴 그만 줄이고. 어쨌든 지금 시의적절한 표어는 그것이다. 바로, 망설이는 자는 꼴찌가 된다. 따라서 NB는 뜸들이기를 멈추고 곧장 마법의 주문을 외웠다. 어떻게? 커져라~ 얍!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 잘못 말했고. 다시. 어떻게? 변해라~ 퐁! 아니 아니. 좌우지간 그게 뭐가 중요해. 일단 드라마처럼 최근 줄거리 간략히 요약하자면 이렇다.
    버뮤다 대학교 도착 → 휴게실에서 NB는 핀을 만남 → 다음 날. 핀이 특수분장을 벗음. 핀의 여동생이었음. 근데 사귀자마자 이별 → 제라드와 모스맨 대학교에 놀러감. 어떤 자화상 액자를 보게됨. 자신과 놀랍도록 꼭 닮음. 완벽히 빼닮음. 그건 신기한 홀로그램으로써 천의 얼굴을 간직한 인물화이자, 그걸로도 모자라 멈추지 않은 채 변화 및 진화되는 그림. 근데 더 웃긴 거? 알고 봤더니 NB는 당장 그 액자를 비밀문으로 직감 → 뜸들이기 즉 3일 기다림. 여기까지가 최근 줄거리 요약이다. 자, 그 다음에 어떻게 됐을까? 그래서 그래서, 그래서 과연 어떻게 됐을까! 이 부분도 드라마로 판권 팔린 거나 다름없는 마당이니, 한술 더떠 영화까지 제작 예정이라고 가정하고. 누구 맘대로? "아니면 말고" 카드는 바로 이럴 때를 위한 것. 인생이란~ 뭐? 됐고. 사랑은 없어. 아니. 그게 아니라. 아무튼.
    NB는 버뮤다 연구소 휴일에 그곳을 급습했다. 고양이처럼. 살쾡이 할아버지 마냥. 딱 거기 도착함. 버뮤다 대학교, 아니 버뮤다 연구소에서 핀이 뜬금없이 열고 나온 명화. 근데 그 비밀문이 이미 3센치쯤 열려 있네? 맙-소-사! 뭐야 이거, 젠장, 이거 정말 뭐냐고. 떡밥 막 뿌리기가 아니라 절묘한 노림수로써 이미 생쥐든 오소리든 누군가 걸려들 것이라 예상한 그림? OK~ 그림에는 더 큰 그림으로!
    버뮤다 센터 VS 모스맨 연구소! 어쩌면 액자 통채로 비밀문은 동기화되어 있는 게 분명할 것이라는 베팅감. 틀린 셈치고 믿어보기로! 그래서 버뮤다 센터 창고에서 장비를 챙겨 그쪽으로 떠남. 아 이미 떠나왔고 진작 도착했지 내 정신 좀 봐. 어쨌든 그 장비는 카메라가 달린 초소형 탱크, 노트북으로 실시간 확인. 아마도 문짝이 3센치 이상은 열리지 않을 것으로 추정. 어떻게 좀 한 번 잘하면 어떻게 좀 될 것도 같은데... 어떻게 좀 거의 자빠트릴 수 있을 듯 말 듯... 뭐? 딱 그럴 찰나에 핀의 여동생이 등장했다. 하필 이 시국에 말이다.
   「오빠 뭐 해?」
   「아니...」
   「오빠 뭐 하는데 그렇게 놀라? 설마 내 생각했어? 나랑 뭐 사랑하는 상상? 아니면 내가 오빠 졸졸 따라다니며 귀찮게 하는 껀수? 이렇다니까 우리 오빠란 글쎄.」
   「아니 그게 그러니까...」
   「왜, 이미 딱 걸려서 찔려? 내 주변머리없이 곧장 요점만 말할께. 저 비밀문 내가 열어놨어. 진짜일까? 뻥이야. 물론 그 뭔가를 알긴 아는데 더 말할 수 없는 내 입장 좀 오빠가 이해해주쇼. 네? 그리고 말이야 저 문 저기 저 3cm에서 한치도 움직이지 않아. 오빠가 미리미리 준비해왔을 초소형 탱크랑 뭐 애니메이션 방불케하는 특수장비? 보이지 않는 철망과 기타 등등 3중 4중으로 막아놨어. 자, 그럼 이제 어떡할까! 어떡하긴 뭘 어떡해. 나랑 데이트나 해야지 뭐. 그래 안 그래? 어? 오빠도 좋지? 좋은 걸로!」
    그들은 그렇게 드라이브를 떠났다. 밀월여행할 행선지와 시간은 충분하고도 남았으니까 그건 자세히 밝히지 않는 걸로 하고.
    그거 말고 중요한 거 하나. 추접스러운 더티러브 장면까지 이어졌는지 아닌지는 필자도 잘 모르겠으나 핀 여동생은 이런 제의를 했다.
   「오빠 내가 재미난 얘기 하나 할까? 너무 솔깃해서 들으면 깜짝 놀랄 텐데. 긴만 필요없이 당장 말할께. 우린 뜸들이기 할 만큼 했으니까 말이야. 오빠, 그 명화 뒷 공간이 궁금하지? 내 그럴 줄 알았어. 그러니까 그걸 열고 싶으면 누굴 꼬셔와! 그게 누군지 꼭 내 입으로 말해야겠어? 알아서, 데려와. 언제까지? 고기잡는 방법 가르쳐줬으면 되지 밥 떠먹여줘? 흥~ 흥~ 오빠 코까지 풀어줘? 다 된 밥에 코 빠트릴 일 있니. 오빠가 무슨 애야? 어? 좋은 말로 할 때 딱 대령해. 일단 미남부터 성우랑 사랑의 차트를 빼곡히 채울 수 있는...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 일단 알아서 생각하도록!」





    9

    그는 버뮤다 대학교 비밀문 탐방을 포기했다. 왜냐하면 보나마나 별거 없을 걸로 예상했기 때문에. SF영화도 보면 거의 다 뻔하지 않나. 하물며 이건 현실. 아울러 현재 점수를 살펴보자면 짝사랑복은 불만족. 모험심은 불친절. 애마의 정량? 다정이 아니라 무정. 그럼 수량이 아니라 최근 살맛에 대한 정성적인 추론은 뭐 애정만점이냐, 낭만감은 심하도록 무반응 일색. 그럼 결론은 무엇이냐, 그게 결심한 대책은 그것이었다. 특훈 내내 탐스런 특식에 항상 웃음지으며 플레이보이계에 데뷔할 그날을 기다리는 공상가가 아니니 만큼. 정답은 '떠나자'였던 것이다. 하긴 뭐 NB가 여기 살러왔나? 놀러왔다. 근데 놀다보니 반겨주는 발단이야 뭐 심심하다 쳐도, 달가운 전개는 커녕 새콤달콤한 분위기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음. 목적은 뭐랄까 호캉스 엇비슷한 뻔트였는데 알고 봤더니 그걸 핑계로 아찔한 작품 구상을? 그냥 무대책으로 놀자는 심보. 근데 가만 보니 별로거든. 따라서 긴말 필요없이 다음 탐방지는 호텔 버뮤다 2였던 것이다. 그래서 만약 거기 갔는데 완전 마음에 딱 들었던 걸로도 모자라, 홀딱 반하지 않고 못 베기는 애정감에 꼼짝없이 사로잡히면 어떡하지? 상상력은 벌써 개꿈을 꾸는 중. 몰래한 사랑과 찰떡궁합은 은밀한 쾌감? 누가 은근 허당의 관심사를 알고 싶다 했나. 그래서 딱 당장 떠나려던 찰나 느닷없이 전화가 걸려왔다.
    릴리였다. 릴리? 릴리에게 전화옴.
   「오빠. 오빠 사무실 문이 살짝 열려 있어서 들어와봤더니 아무도 없네. 오빠 어디야? 설마 내 마음 속은 아닐 테고. 나 올 줄 알고 깜짝 파티 하는 거야 뭐야, 어? 오빠. 근데 내 말 듣고 있어? 왜 말이 없어. 오빠 벙어리야? (아니~ 말할 기회를 줘야 말을 하든 말든 할 거 아니냐고!) 일단 당장은 메소드연기를 하시겠다? 나라고 메소드연기 할아버지 못 할 거 없지. 뭐 과묵한 남자? 비리비리하면 남다른 잔재주라도 다채롭던가. 매가리없으면 웃기기라도 해야지 눌변에서 어눌함을 넘어서 발음마저 이상하다? 오빠 아직도 혼자지? 것 봐. 그렇다니까 글쎄. 그러니까 뭘 해도 재미없지. 신나게 잔뻔치를 때려도 모자를 판에 언제적 드라마 회상하면서 말수 없는 조연 흉내? 요즘 여자들 그거 별로 안 좋아해. 왜, 아직도 할 말 안 떠올랐지? 다변이 시작되니까 또 머릿속이 하얘지지? 오빠가 아직 수다대회 구경을 안 해봤으니까 그렇지. 정말 아줌마들 입담에 기 빨려보면 오빠는 나처럼 기 살려주는 여자를 좋아할 수 밖에 없어. 알아? 알긴 개뿔. 모르니까 그 모냥이지. 어? 이러니 뭐가 될 리가 있나. 그 뭐더라? 말수가 적당해도 할 말 떨어지기 마련인데 애초에 연애를 시작하면 여잘 만나서 뭘 말해야 할지를 고민한다? 즉흥연주도 안돼, 임기응변도 몰라, 여자 마음은 더 몰라. 어쩌자고, 어? 이거 왜 이래? 지금 장난해? 여심이 무슨 보자기인 줄 알어? 벙어리가 남편을 빼앗기더니 말하기 시작한다. 오빤 그런 말도 안 들어봤수? 안 들어봤겠지. 내가 오빠 인공지능 지니를 빼앗으면 오빤 어쩔 건데. 어? 것 봐 아직도 꿀 먹은 벙어리잖아. 이건 완전 봉이네. 허당 중의 허당. 어? 그러지 말고. 거기서 백날 소재 찾고 작품구상 해 봐야 헛 일. 이제나저제나 기다려봐라 여자들이 뭐 할 일 없다고 오빠의 여복에 몰빵을 하겠어. 그러지 말고 내 말 들어. 좋게 계획에도 없던 폼 잡지 말고. 어? 그거 오빠랑 안 어울려. 알아? 그러지 말고. 버뮤다 2 호텔로 가. 요즘 거기가 괜찮아. 아무한테도 안 알려주는 건데 오빠니까 내 특별히 알려주는 거야. 다 나나 되니까 오빠 생각한다고. 근데 오빠는 것도 모르면서 뭐 여자를 꼬시겠다고? 뭘 꼬셔. 이 형이 저년들 다 꼬셔줄께? 놀고 있네. 여자한테 말도 못 거는 주제에, 근데 또 이상한 게 뭐냐면 거기다 헛다리 짚고서 오빠를 무슨 희대의 바람둥이인 줄 알고서 멋 모른 채 누가 오빠한테 들이댑디까? 여자가 아니라 남자가? 당신이... 당신이... 됐다. 재미없다. 아니 근데 왜 귀걸이가 이 모냥이야. 딴 귀걸이는 왜 또 이리 허접해. 싸구려니까 조잡하구만 그래. 그래서 헐렁헐렁한 거라고. 에잇 기분 잡쳤다. 끊어. 잊지 마 오빠. 내가 아까 뭐랬다? 버뮤다 2.」
    뚝.
    얜 도대체 뭐 하는 애지? 도대체 뭔 생각으로... (절레절레)
    그래서 결국 NB는 버뮤다 2로 갈려다가 릴리의 수다를 듣고 포기했다. 일단 그냥 눌러앉기로 함.
    게임판 액면 보나마나 뻔한데 판돈 키울 일 있나. 귀찮게 딴 명승부에 기웃거려봐야 시간낭비. 고로 일단 대기.





    10

    NB는 장기휴무 중인 버뮤다대 사무실로 출근했다. 기분을 설명하고 분위기를 묘사하며 다행스러운 껀수일지 불길한 징후일지를 귀뜸해주는 설명, 싹 다 생략하고. 곧장 뭔 일이 있었나를말하자면 이렇다.
    그는 핀과 핀의 여동생. 그 2명을 보았을 때 그 뭐지, 그래 판토마임 연습중인 줄 알았다. 근데 연습이 너무 심각하네? 한참을 기다려도 화장실도 안 가지, 꿈쩍도 안 하지, 입도 뻥긋 안 한다니. 이건 비상상황임이 분명했다. 그래서 건드려보고, 말 걸고, 깐족에다 부추기기, 자존심 건드리기, 지는비교 잔소리까지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봤다. 그래도 꿈쩍하지 않았다. 손도 까딱 안 하다니. 그럼 결국 버티다 버티다 바지에 오줌을 쌀 것이다 라는 예상 못 한 건 아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 뭐야 이거! 기본은 초정밀 마네킹, 밀랍인형등 특수분장으로 꾸며진 핀과 여동생. 그렇게 2명이 실물, 무게, 입체, 피부, 머리카락, 온기, 냄새... 모든 게 사람과 똑같음. 시간이 정지된 게 아니면 설명이 불가능한 실사판. 근데 뭐랄까 세이렌의 유혹 만점 음률을 듣다 참다 귀막고 딴청피우다, 끝끝내 넘어가버려서 굳어버린 망부석 느낌. 그때 제라드가 영화처럼 등장했다.
   「제라드. 이게 다 어떻게 된 일이니?」
   「(몸짓) 보시다시피.」
   「내가 생각한 게 맞어?」
   「생각한 걸 말해 봐.」
   「얘네 시간이 정지되서 멈춰 있는 거니?」
   「빙고.」
   「그걸 나보고 지금 믿으라고?」
   「내가 언제 믿으랬냐? 너가 추정한 거 아니냐, 응? 왜 믿기지 않는 신비를 내 탓으로 돌리니? 그래. 내 탓으로 하지 뭐. 그게 뭐 낯선 것도 아니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 지금... 아니... 그게... 드라마처럼 딴놈이 구했어도 내가 갑자기 등장해서 막 인공호흡... 것도 아니고. 이거 장난이지? 그치? 에잇 설마...!」
   「늬가 살면서 떠올렸던 그 '설마'! 그게 이거야.」
   「근데 넌 왜 시간에 속해있고 얘넨 시간에서 자유로운데?」
   「내가 물리학자냐? 지금 나보고 공상과학 이론이든 환상머신을 설명하라고? 시도는 할 수 있는데 말이 안 되지 않냐. 응?」
   「장난치지 마. 뻥치지 말라고. 나 안 속으니까. 너! 내가 바본 줄 아나 본대, 너나 나나 그냥 어른이야. 근데 이건 또 뭔 개뼉따구 같은 전개냐고. 어?」
   「개뼉따귀? 너 말 한 번 잘했다. 그래. 옳커니. 개뼉따구? 개들은 개뼉따구에 환장하는 법. 미쳐버리지 그냥. 아주 그냥 뻑 가! 어? 그래서 하는 말인데 너에게 개뼉따귀란 뭐니? 어? 듣던 중 반가운 주제니 어디 자네 말 한 번 들어보자. 의중을 털어놓으시게 친구. 내 알아보니, 아니 시간 없어서 또 관심 있을 턱이 없으니까 알아보진 않았으나. 너 음흉하니? 아니잖아. 솔직하잖아. 그치? 내가 널 어떻게 모를 수 있니. 허허허. 그러니까 실토해. 어서 고백 안 하고 뭐 해? 너가 핀 여동생한테 개침 흘린 거 내 모를 줄 아니? 어?」
   「내가 언제! 난 아니다. 넌 몰라도 난 아니라고.」
   「늬 이마에 씌여진 흑심. 그거 읽을 줄 아는 재주. 설마 그 신통한 재주 나만 가졌니? 어? 나만? 말해. 그러니까 말 하라고. 어?」
   「근데 뭘 말해? 말은 늬가 나한테 해야 하는 거 아니냐? 너 왜 사람 말 꼬이게 만드냐, 응? 처음엔 좀 말이 통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러고보니 얘 꽉 막혔네. 너 어디 가서 그러고 다니지? 저 그렇게 꽉 막힌 사람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어? 아니긴 누가 아니냐고. 침 닦어.」
   「개침은 늬가 흘렸어. 이거 왜 이래? 어?」
   「뭘 왜 그래, 어? 근데 지금 우리가 뭔 얘기를 하던 중이었지?」
   「그러게 말이야. 글쎄」
   「아무튼. 정리해보자. 그러는 게 좋겠지. 그러자꾸나. 자, 그러니까 말이야 이게 글쎄 그러니까 말이지. 음... 허허. 허허허. 핀&여동생의 육체는 여기 정지해 있다 쳐. 그렇다고 일단 가정하면. 그럼 쟤네 영혼은 어디로 갔는데?」
   「(몸짓)」
    제라드가 가르키는 액자. 역시나 그 비밀문 액자는 3센치 열려있었다.
   「(검지를 귓가에 붙이고 빙빙. 빙빙빙)」
   「(검지를 코끝에 가까이 붙이고서 집중. 집중)」
   「내가 저기 못 들어갈 줄 아니?」
   「너 그럴까 봐서 미리 우리들이 잠금장치 해제시켜놨어. 고맙지? 칭찬은 사양할께. 이제 시작일 테니까. 아니 오히려 우리가 아양떨고 너가 과찬에 몸이 달아올라야 정상일까? 뭐가 됐든 거 어째 기대 이상일 거 같지 않니? 상상초월 한 번 느껴보고 싶지 않아? 아마도 엑스트라병 말끔하게 치료될 텐데! 어쩌면 스카웃 폭주에 신나는 여복에다 끝짱나는 재물복을 몽땅 뛰어넘고도 남는 주인공병. 병이 아니라 실제로 경험하지 못한다고. 어? 누가 그러든. 딴 사람은 몰라도, 적어도, 난 그렇게 예언한 적 없다 너. 응? 최소한 난 그렇게 생각해. 이건 잃는 셈치고 절반 베팅 하지 않으면 안될 시점이라고 봐. 넌 어때? 혹시 너 나와 성격이 다른 승부사니? 내가 봤을 땐 넌 딱 봐도 해결사 유형인데. 엇그제 내가 말했나 누가 말했나. 버뮤다 2. 아니면 아직 말하지 않았나? 뭐 해 버뮤다 2로 가보지 않고. 궁금하지 않아? 예감 때문에 이미 끌리잖아. 떨리다 못해 더 흥분하면 너 추해질 수 있어. 응? 좋아 안 좋아? 응? 것만 말해. 아 글쎄 안 들어가고 뭐 하냐니까.」
   「에라 모르겠다.」
    그러면서 NB는 자화상 액자 비밀문으로 들어갔다.





    11

    과학적으로 따지든 행복업으로 판별하든 NB의 기억력은 거기까지-였다. 누군 뭐 산전수전 안 겪어봤겠냐마는. 왕년에 호시절 안 누려본 어른도 있나 라는 허세대회 예선전. 까지는 모르겠으나. 하늘이 허락한 사랑이고 자시고. 그는 인물화 액자 비밀문으로 들어간 다음부터가 생각나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꿈은 꿨다. 악몽인지 길몽인지 몰라도 내용은 그랬다. 무인도에 100명의 숙녀를 데려감. 일부러 그럴려는 의도도 없었고 그럴 능력 당연히 있을 턱이 있나. 허나 꿈이 다 그렇지 않나. 사랑의 신 그분 성별이 뭔가, 아 여자 아닌가. 승리의 신? 아 글쎄 여성이라니까 그러시네. 그럼 큐피트는? 큐피트한테 고추가 달렸나 안 달렸나 몰라도 어차피 여자의 자녀. 그런 행운을 어떤 점쟁이가 점지해준 걸까? 사랑의 차트를 하필 NB한테. 꿈이라는 게 늘상 그렇듯 뭐 어떻게 100명의 숙녀를 거느린 채 무인도에 당도함. 그럼 줄거리가 그냥 평범했겠나 하면 아니지. 그럴 리가 있나. 3000궁녀를 거느린 제왕과는 달리. 단 7명의 여전사가 나머지 여자들을 싹 다 정리. 감금하든 정신을 탈탈 털어버리든 싹 다 정리. 그래서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그는 그녀들의 성노예는 아니다만 뭐 어떻게 드물게 뉴스에서 보듯. 그 뭐더라? 개농장... 막 그렇듯 기 쪽 빨려서 날이면 날마다 의무방어전으로 골머리를 앓고 눈빛이 흐려지다 못해 불쌍한 표정을 벗어날 수 없는 남자. 하늘이여 이게 정녕 운명이란 말인가 라는 혼잣말을 하려던 찰나. 그는 꿈에서 깨어났다.
    자,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됐을까?
    그의 앞에는 삼천궁녀 대신 '버뮤다 2'라는 글씨가 씌여진 티셔츠를 입은 숙녀 몇 백명. 역시나 보나마나 사라&마라가 전직원을 끌고 왔다. 싸구려 텐트에서 기어나오는 NB를 보면서. 늬가 거기서 왜 나와? ~와 정반대로 이미 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득의만면한 표정들. 가소롭다 그거지 웃긴다 애쓴다 욕본다 그거라고. 이걸 과연 하위직급들이 쇼이자 놀이로 인지하려나 몰라도, 그야 그분들 사정이겠으나. 몇몇 최근 기억을 되돌려보자면 그건 뭐 거의 행위예술이란 변명은 꽤 합리적으로 정당하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아마 십 몇 년 전에 유행했던 그 뭐더라? 플래쉬 몹? 아무튼 말하자면 버뮤다 대학교인자 모스맨 연구소인지 그곳 옆에 있는 콘래드 호텔. ~스위트룸에서 깨어났느냐? 하면 아니다. 그럼 그 옆에 있는 리즈 칼튼 특실에서 눈을 떴냐? 역시나 아니다. 딱 그 중간에 있는 텐트에서 깨어남. 내 이럴 줄 알았다. (절레절레) 그는 인물화 액자 비밀문이고 뭐고 일단 선방만이 살길이라고 판단했다. 선공 아니면 승부는 보나마나. 역공이 무섭긴 하나 닥치고 공격을 해도 전망은... 이렇게 망설이다 배 떠난다. 그래서,
   「늬들이 좀비야? 트롤이야? 또 뭐야! 야 사라. 너 마라. 대체 너네들 나한테 왜 그래? 새로운 칼럼니시트 구했으니까 나 버렸잖아. 근데 왜 또! 어? 연재소설 판매부수에 도움 안된다고 계약 해지한 게 누군데. 이제와서 뭐가 아쉽다고. 어?」
   「일단 얘네들 불만? 없어. 손톱 만큼 싫은 내색 감추는 여잔 모두 본사나 딴 지사로 옮겼음. 알겠어? 알겠어 모르겠어? 이게 웬 떡이냐! 라는 식으로 놀러갈 때마다 다 챙겨줘 임금에 얹어도 뽀너스까지 나와, 더군다나 주급보다 뽀너스가 진짜. 심지어 노는데? 여기 있는 숙녀들한테 다 물어 봐. 기분 나쁜 여자 있냐고. 내기 할래? 거수 해서 손 드는 사람 1명이라도 있는지? 말만 해. 어? 뭐, 가는 년이 물 길어다 놓고 갈까? 너가 대체 몇 번을 말했니, 가는 여자 잡지 않고 오는 여자 막지 않는다. 얘네들 일할 땐 유기적으로 상하급으로 얽혀있긴 하나. 얘네들 다 주주야. 주식 배분으로 따지면 아마 내가 하위직 중의 하위직일 걸? 얘네 걱정을 왜 하니. 어? 너나 잘해 이 인간아!」
    바로 그때 제라드, 핀, 핀 여동생... 전(前)버뮤다 대학교 관계자 몇몇, 현(現)모스맨 연구소 직원 일동. 그분들이 마라&사라 일당한테 접근해왔다.
    귓속말을 하고 어쩌고. 굽실굽실 딸랑딸랑 뿌잉뿌잉 반짝반짝.
    딱 봐도 마라&사라의 수하로 들어간 거네. 아니 벌써 여기까지 마수를? 누가 아니래.
    긴말 필요없이 줄거리를 간출이자면 이렇다.
    야외 텐트에서 깨어남. 마라 일당 500명? 사라 잔당한테 끌려서 도시로 복귀.
    물론 중간에 이런 대화는 있었다. 아니 도시에 가서였나 중간이었나 그건 모르겠고.
   「가르쳐 줄 거지?」
   「언니 믿으라니까 글쎄.」
   「아니 근데 대체 어떤 속임수야? 지들이 뭐 데이비드 커퍼필드야 뭐야!」
   「아까 봤잖아. 봤으면서?」
   「그럼 그거 너가 전수해준 거니?」
   「오빠. 나야. 어? 나라고. 응?」
    자, 이와 같이 (월간지) 여성환상 1.5 칼럼니스트이자 (격월간지) 미스테리아 전속 작가로 계약은 자동 연장된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따라서 그녀들은 NB에게 조촐한 선물을 건넸다.
    그는 선물을 열어봤다. 내용물을 보자마자 입이 떡 벌어졌다. 식겁했다. 쫄았다. 섬뜩할 수 밖에. 오, 소름! 섬찟섬찟 식은땀이 다 났다. 아니, 이렇게 섬뜩할 수가! 진짜로 귓가에 목 측면에 또 등판에 식은땀이 쭉 났다. 이미 쌍코피 터진 거나 마찬가지였다. 오줌 저렸다고 봐도 된단 말이다.
    그럼 그 선물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그건 바로, 티셔츠였다. 아니 티셔츠가 뭐 어때서? 문양이 문제였다. 거기 세겨진 문양은 소였다. 소? 소가 뭐 어때서! 소는 소인데... 어딘가에서 모르는 어른이 없다는 상징. 바로, 소처럼 일한다! 뭐? 차라리 멧돼지라면 몰라도... 아니지 멧돼지도 (절레절레). 그럼 (딱) 그래~ 하이에나. 뭐니 뭐니 해도... 아니지. 아프리카 들개들한테 벌벌 기든만 개네들. 부엌이 더우면 부엌에서 나가라. 모르진 않는데, NB는 대체 언제 얘네들 손바닥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못 벗어난다고? 아니 어떻게... 아니 그렇게 심한 말을?! 결승점에 다다라서 마침표를 못 찍고 있을 수도 있는데. 아무리 통장 잔고 바닥이라지만. 공공연히 팔고 남몰래 사들여라 라는 말처럼. 뭔가 히든카드를 선보이고 싶으나 만지작만지작거릴 카드가 바닥났는데 뭘 어쩌라고. 가까운 무당보다 먼 곳 무당이 더 영험하다고 한다. 언제나 남의 떡이 더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법. 그러므로 타인을 부러워하는 수 밖에. 남들 쾌락, 남들의 평범한 친교, 다른 사람들이 지겨워하는 진한 사랑. 그럼 또 에로비디오? 이런~ 젠장! 그러니까 여태 뭐 했나. 그러게 인생을 누가 그리 살래?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아니 띄워야 할 여심은 내팽개치고 지금 뭐 하는 거야? 대체 지금 뭐 하자는 거냐고! 어? 내 말 안 들려? 정말 이렇게 나오시겠다? 좋아. 예상 못한 거 아니지. 좋았어. 좋아? 뭘 좋아. 왜 좋아, 어? 누가 좋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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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 데가지 갔나? 볼장 다 보지 않았다. 단지 문제라면 그랬다. 바로, 뭐가 뭔지 통 알 수 없는 허무. 힘 쫙빠진 무기력증. 자기도 모르게 치유되어버린 허언증? 나른한 권태감. 기빨려 바닥난 엑스트라 잔재주. 그래 재미없는 인생, 어? 그럼 새로운 사랑은... 아니나 다를까 '설마'가 '역시'로? 아니면 그게 아니라 혹시...! 뭐? 뭘 잘못 알고 있나 본데, 그게 그러니까 말이야 아하 이걸 대체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까. 더 이상 새로울 게 없는 주인공의 비밀. 연애사. 야망의 좌절에 부대꼈을 리 없는 허당 인생. 허접한 촌놈의 물렁한 심지 때문? 그러든가 말든가. 누구라도 아니 여잔 빼고 우리끼리 귀가 솔깃해질 수 밖에 없는 여복.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어복은 커녕 개미새끼 한마리 보이지도 않음. 물 반 고기 반 좋아하시네. 드라마에 나온 얘기 웬만하면 뻥. 몽땅 남 얘기. 기가 막힌 중년운 대박 있을 턱이 있나. 숨겨왔던 탐욕 은밀한 대망 그런 게 다 뭔 소용있나. 재미없음. 말하는 사람 입 아프고 듣는 사람 귀 따가우니까 굳이 꺼내지 않을 얘기긴 하다만, 그래도 기왕 시작된 김에 말하자면, 근데 내가 어디까지 얘기했더라? 심호흡을 가다듬어야 한다. 서두르면 안된다. 때가 아니니까. 무턱대고 남자는 집에 있으면 안된다? 아니다. 경주에 참가한 자라야 영광도 얻을 수 있다. 예선탈락 밥먹듯 하든 무관의 제왕이 되든 일단은 등번호를 달아야 한다. 근데 출전도 없이 누가 의무방어전 거저 시켜주간디? 어림없음!
    따라서 NB는 이렇게 말했다. 말상대 없으면 뭐 혼잣말 하면 되지 왜 못해?
   「개는 항상 자기가 토한 자리로 돌아간다.」
    허나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 먼저 올라갈지 말지 건 몰라도. 사라&마라 걔네들이 어디 보통 년들인가? 이미 다 엑셀 파일은 물론 마인드맵부터 단편영화와 웹드라마로 이미 각본은 파다하게 정리했을 건데. 걔네들 손바닥에서 또 놀아나라고? 버뮤다1로 다시 갈 수는 없다. 이미 거긴 정리되었을 게 뻔하다. 버뮤다2 찾으면 된다. 그래야 하니까. 멋진 인물화이면서 액자가 그럴싸하면 일단 의심해볼만 하거든. 허허허. 뭐 일단 급할 거 없다. 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래서 일단 사라&마라 일당한테 엄포를 선언했다. 인스타그램이랑 브랜드 블로그에서 본 머 머 머 딱 찝어서. 그거 안 사주면 나 일 안 해 라고. 어쨌든 NB는 걔네들한테 전했다. 푼돈 아까우면 각자 갈길 가자고. 그깟 슬리퍼랑 티셔츠 대체 얼마나 한다고. 라면서 말이다. 그럼 그 다음 일정은 무엇이냐? 한숨이 절로 나온다. 아니나다를까 공상 뿐이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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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인생사를 꾸미고자 하는 열망이냐, 아니면 떠오른 제목은 그 뭐냐 '난봉꾼 더더욱 타락하다'냐? 놀고 있네. 방탕 좋아하시는구만 그래. (절레절레) 거 농담이 심하단 말이다. 그러면 우리같은 낭만파들에게 이상적인 행복이란 과연 무엇일까? 아니 잠깐만. 뭐 우리같은? 뭐가 우리 같은! 그리고 또. 낭만파? 기분파에서도 허당인 거 들통나 퇴출감인 데다 행운아로 취급조차 못 받는데? 뭐 같은 여자끼리? 뭐가 어쩌고 어째? 됐고. 벌집 쑤시기 그만 좀 하자. 거 보아하니 아실 만한 분께서... 에헴! 그렇긴 하나 일단 연재분량은 채워야 하니 어쩔 수 없이 NB의 성적표를 살펴보지 않을 수 없는데. 가만 보자... 소망 충족? 꽝. 야망 추적? 대실패. 욕구 잠재우기? 화근만 만들기 일쑤. 대망 붙잡고 늘어지기, 시작도 전에 퍼짐. 사랑 물고 늘어지기, 재능 자체가 없음. 뭐 말꼬리 잡고 늘어지기? 말해 뭐해. 그거 잘했으면 지금쯤 이미... 됐다. 정말 됐다. 어? 됐다 그래. 이 사람이 보자 보자 하니까 말이야.. 정말 됐음. 돼? 돼긴 뭐가 돼. 그러니까 말이야. 보아하니 또 거 녀석 말하자면 탐미에 대한 욕망을 주체할 수 없군 그래. 도대체가 말이야, 지금 누굴 속여? 하여튼 늑대들은 못 말린다니까 글쎄. 불여우들 봐 봐 속으로 속으로... 딱 감추잖아. 아닌 척 내숭 끝장! 어? 아니, 아니 어쩌자고 또 잔소리를 멈추지 못하나. 잔뻔치 쉐도우복싱 참기가 그렇게 힘들까? 누가 아니래. 그러니까 또 어떤 여심에게 뻔트를 대실 궁리를. 아 쫌 그만 좀 들이대자. 거 사람이 무슨 껄떡쇠도 아니고 말이지. 또 찝쩍? 염치없긴. 공연히 낮잠자며 개꿈꾸는 사자의 코털은 건드리지 말기로 하고. 자, 그럼 이제 정말로 심심한 발단을 신나는 전개로 변화시켜 볼까? 그게 쉬웠으면... 말 말자. 뭔 말만 말만... (절레절레)! 무슨 헛바람 주입시키기 역대급 챔피언 출신이야 뭐야? 뭐야 그게. 어? 대체 뭐냐고. 젠장, 이런 젠장! 경망스럽기는. 하다 하다 이젠 친구 녀석한테 자발을 다 배워? 자발탱이의 제왕으로부터 진정코 자발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비법을 전수받았다? 살다 살다 그런 미친놈은 또 처음이네. 설마 미친놈이 아니라... 쉿. 불똥이 왜 또 그리로 튀어? 간결함 속에 매력이 있다. 어딘가에 선을 그어야 한단 말이다. 누가 공상 잘하면 초특급 스카웃이라도 한대?...>
    ~라는 공상 정말 견디기가 쉬웠을까? 바로 그래서 NB는 떠나지 않을 수 없었다.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그렇게 도착한 곳이 어디냐? 어디겠나. 미스테리아 지사가 아니라 이번에는 본사. 왜냐면 마라 그년이 하필 초고속 승진했거든. 물론 지사장 겸임. 그래서 본사에는 가끔만 출근. 얘 봐라? 노는 거야 일하는 거야! 음악은 Johann Baptist Vanhal / Stabat Mater in f minor
    이 분위기는 뭐지? 이건 뭐랄까 인사고 자시고 할 필요없이 직감에 따라 느낌대로 일단 선수치고 보라는 암시. 왜냐면 NB는 마라를 잘 알기 때문에. 그들끼리만 통하는 뭔가가 있거든. 그래서 지사와 완벽하도록 똑같이 꾸며진 본사. 뭐가 다르나 하면서 꼼꼼히 살폈다. 직원들의 낯선 눈빛이랄지 비서가 누굴 만나러왔냐 등등은 다 무시하고. 세심하도록 뭔가 있다는 듯 그는 시간에 쫓겨 뭔가 숨겨진 꿍꿍이를 찾기 위해. 눈에서는 레이저가 머릿속에서는 CPU가 영혼에서는 주기억장치 보조기억장치가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물론~ 직원들 컴퓨터 케이스를 찬찬히 귀신처럼 훔쳐보면서 감상한 점 역시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렇게 한참을 탐색하던 중 딱 어디 앞에 발걸음이 멈추었다.
    그건 마네킹 그림. NB 핸드폰으로 그걸 비추자 이미 검색완료. 우크라이나 작가 누구 작품. 3500유로. 작년에 완성.
    그는 일단 그림을 감상하려고 했다. 근데 마치 옛날 15살쯤이었나, 자동적으로 자기도 모르게 손이 저절로 동자승의 민머리에 덥썩 올려진 장면.
    이번에도 똑같았다. 강력한 텔레파시로 그 그림을 NB의 손을 액자로 흡착시켰던 것이다. 그래서 만졌다. 액자가 무슨 낯선 숙녀의 겨드랑이도 아닌데 뭐 그렇게 된 거지.
    자, 그래서 어떻게 됐을까? 어떻게 되긴 뭘 어떻게 돼!
    ~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NB가 액자를 만짐과 동시에 액자는 깨졌다. 단지 손만 갖다댔을 뿐인데 말이다.
    물론 편집장 마라와 몇몇 고위진은 먼발치서 육안으로, 감시카메라 화면으로, 열감지 카메라로, 적외선......첨단장비 등으로 그를 주시하고 있었다.
    NB도 밀릴 수 없었다. 옛날에 "만다리나 덕"이라는 중저가 손목시계를 집에 오랫동안 방치해두다가, 친구들 만날 때 모처럼 차고 나갔는데, 점심식사 자리에서 옆자리 친구가 그걸 만지자마자 플라스틱으로 되어 있는 시곗줄이 또까닥! 그와 똑같은 현상. 그럼 지금 이게 왜 재현이 되나? 그는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을 감지하지 않을 수 없었다.





    14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그는 깨달았다. 발견했다. 추측은 NB를 배신하지 않았다. 추리력은 녹슬지 않았음. 호기심이야 소 뒷걸음질 치다 얻어걸린 것일뿐. 신통한 예언이 뭔 필요. 아무튼 그게 뭐냐? 시간이 정지됐다. 물론 드라마나 영화처럼 정지된 거면 초사실주의 연재소설이 아니라 애니메이션이니까 완전히 정지될 리는 없고. 그럼 어떻게 시간이 정지된 것일까? 그 깨진 액자 주변 대충 반경 7미터 정도만 정지된 것이다. NB는 빼고 말이다. 그 놀라운 장면에 대해서 신기해하던 찰나. 이미 마라 일당은 바빠질 수 밖에 없었다. 걔네들은 곧장 NB 주변으로 몰려왔다.
    우선 비서가 뿅망치로 NB 머리통을 때렸다. 물론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다음으로 수석비서가 더 큰 뿅망치로 NB 머리통을 때렸다. 이번에 NB는 프랑켄슈타인처럼 그들을 노려봤다. 단지 그 효과뿐.
    그래서 마라는 이렇게 말했다.
   「야, 뭐해. 얼른 가서 멍키스패너 가지고 와.」
   「넌 손이 없어 발이 없어? 늬가 할 수 있는 건 내가 해. 평소에 편집장이라고 특별팀에서까지? 이러니까 사장들 마누라 불만이 많지. 고운 입이 괜히 (몸짓). 밖에서 맨날 시키는 위치에만 있다 보니까 집에 들어와서도 여편네를 무슨 조수로 알어. 어? 인성 괜찮고 성격 좋고 여심 띄우기로 어디서 썩 빠지지 않는 의사라면 또 몰라. 근데 존 홉킨스 출신도 아니고 어설픈 포지션. 깡촌에서 대우받고만 살았지 인생 내내 굽혀본 적 없지. 그러니까 뻣뻣한 남자. 그래서 만년 부자정당 밖에 모르지. 아주 그냥 꽉 막힌 인간. 어? 아주 그냥 왕이야 왕. 근데 무슨왕? 꼰대왕! 난 뭐 새 주둥이냐? 늬가 가져와. 난 안 해. 왜 해? 늬가 가져와. 난 시켰다 너. 똑똑히 들어. 늬가, 가서, 가져 와.」
   「야, 너! 직원들 있는 데서 이럼 내가 뭐가 되니? 동기라고 봐줬더니 너 정말...! 늬가 그래서 매번... 알겠다. 넌 꼭 그렇게 이마에 고문관이라고 쓰고 다녀야 속이 시원하니? 어?」
    그걸 듣고 가만 있을 NB가 아니지.
   「그걸로 되겠어? 깔짝깔짝 지금 뭐 하자고. 어? 야, 늬들이 가서 초대형 망치 갖고 와. 뭐해 안 가고!」
    근데 그때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NB의 발이 지면에서 살짝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언제였던라... 그가 택시운전수로 일할 때 장거리 손님을 태운 적이 있었는데. 고생고생해서 먼 도시까지 태워다줬더니 톨게이트 인근 어떤 숙소에 내려서. 돈 가지러 간다면서 냅다 튄 손님. 야속하게 일당 날려 허탈해 그렇다고 일을 키워 공권력을 끌어드려? 그냥 포기. 그래서 고속도로로 본원지로 복귀하는 중 하필 터미네이터 영화처럼 가드레일에 지지직 긇키면서 불똥이 튀었던 게 끝이 아니라. 타이어가 빵꾸남. 길가에 대고 그걸 혼자 교체. 그때 자동차를 들어올리는 기구를 돌리거나 밟으면 자동차가 점점 들리는데. 지금 그의 몸이 아주 서서히 들려지고 있었다. 이건 뭔가 시간정지 부작용을 뜻했던 것일까?
    마라 일당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중. 신삥 비서가 일을 냈다. 비서진만 대체 몇 명이야? 아무튼 말단 비서가 NB의 뒤로 가서 그의 등짝에 장착된 버튼을 누른 것이다. 당연히 NB는 기계가 멈추듯 정지! 알고 보니 그의 등에 이미 666바코드처럼 이미 비상버튼이 새겨져있었던 것이다. 그건 바로,
    □
    △
    ○
    그렇게 마라 일당은 마네킹처럼 경직된 NB를 낑낑대며 겨우겨우 옮겼다. 환상잡지 본사에서 여성환상 1.5 지사로 말이다. 그게 대충 25시간쯤 걸려서 진행되었다.





    15

    다음 날. 여성환상 잡지사 사무실. NB는 소파에 마네킹처럼 뻗어있음. 그 주변에서 여러명이 대화중.
   「대체 저 버튼을 어떻게 심었을까?」
   「설마... 경쟁사에서 우리보다 먼저?」
   「그럼 쟤가 무슨 걸어다니는 우머나이저라도 된단 말이야? 웃기지 마. 남자한테 웬만치 껄떡거리라고.」
   「뭐 껄~떡? 너 말 다 했어. 너 잘 걸렸어. 늬 과거 내가 다 까발릴 꺼야. 아마 곧 있으면 나한테 싹싹 빌게 되어 있을 걸.」
   「너네 왜 그래? 지금 말장난할 때야?」
   「팀장님. 저쪽에서 이미 이 녀석을 터미네이터로 섭외했든 NB 몰래 비밀장치를 장착시켰든. 우리가 역이용하면 어떨까요? 모른 척 당해주죠 뭐. 어머머. 너무 멋진 생각인데? 난 천잰가 봐!」
   「이미 얘는 절반쯤 트로이의 목마가 되었으니. 겉으로 드러나도록 개목걸이를 채울 수는 없고. 고양이 목에 방울 달면 같이 망하는 거고. 얘랑 우리랑 남몰래 바람피우는 불륜커플처럼 뭐 은근 우리가 얘를 애마로 역이용하자고?」
   「그렇죠. 바로 그거죠.」
   「근데 이놈한테도 뭔가 암시를 하긴 해야 겠죠? 완벽히 잡아떼면 그건 반칙이니까요.」
   「당연하지. 더더군다나 당근도 적당히.」
    근데 얘네들 영화를 너무 많이 봤네. 뭐더라? 영화 엑스맨 초기작에서 환자이동카트에 누워있는 엑스맨을 두고서 엑스레이와 각종 자료를 보면서, 대체 이 초합금 장치를 어떻게 심은 거지? 위급 상황이면 치타 발톱 파팍! 교감신경 부교감신경 마찰만 일어나도 표범 발톱은 파팍! 당연히 육식 맹수들 맹장인 사자한테 쫓기면 그 발톱과 가벼운 몸무게를 이용해서 나무 위로 올라가버리면. 사자는 닭 쫓던 개 지붕쳐다보는 꼴! 사자들끼리 하이에나 쫓아도 더럽게 느려서 맨날 허탕. 육식동물이 육식동물 쫓는 건 단순히 걔네들 다툼이고 맛은 초식동물이 으뜸. 사자 암컷 발정기가 되면... 그 얘긴 그만하고.
    근데 그들은 몰랐다. NB가 각성 상태로 이 얘기를 모두 듣고 있었다는 걸. 당연히 그럼 온전히 주기억장치에 죄다 저장될 테고 말이다.
   「팀장님. 근데 얘 이미 다 듣고 있겠죠?」
   「건드려 봐.」
   「건드려요? 어딜요?」
   「어디겠니.」
   「코요?」
   「얘가 코요테니 코끼리니. 너 코끼리 거기가... 말 말자. 너 코끼리 거기가... 코끼리 다큐멘터리를 편집자들이 제일 싫어해. 왠 줄 알어?」
   「팀장님. 진짜 건드려요. 저 한다면 합니다. 말리지 마세요. 이미 달아올랐으니까. 보세요. 제가 얘를 피노키오로 만들어드릴테니.」
   「너는 양치기 소년처럼 거짓말하지 말어. 어? 너 또 남자친구 바꼈니? 새 운동화 대체 몇 켤레를 구비해놨니, 어? 헌신짝 미련 그거 어떻게 안 되니? 내가 도와줘?」
   「당신이, 아니, 그게 아니라. 팀장님이 그걸 왜 도와줘요? 혹시, 진짜로 도와주고 싶었어요?」
   「너네 왜 그래? 그만해. 야 너 뭐해. 얼른 버튼 눌러.」
   「」
   「그거 말고. 세모.」
    □
    △
    ○
    그때 마라 일당 가운데 절정녀. 대체 왜 걔 애인을 그녀를 외롭게 하는 것일까? □ △ ○ 언급만 나왔다 하면 속뒤집어지는데 대체 왜? 아니 어째서 속 제대로 뒤집어지냐고! 뭐 그건 그거고. 결국 NB는 최근 몇몇 사안과 관련된 단기기억이 적어도, 빠른 시일에는 복구할 수 없을 만큼, 잠정적으로 잠재의식 구석지에 보관됐다.





    16

    다음 날. NB는 자기 사무실 소파에서 깨어났다. 뭔 개꿈이 이렇게나 길어? 그렇게 생각했다. 설마 꿈이 아닌가? 아닐 리는 없는데 너무 이상하단 말이지. 정말로 최근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도 모를 만큼 정신이 혼미할 지경. 눈 몇 번 깜빡깜빡거리면 훌쩍 1주일 경과. 정신없음. 누군가 그 뭐랄까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 그게 아니라 발정기 암사자한테 쫓기는 표범 성체가 NB 머리꼭대기로 올라가는 느낌? 하이에나한테 쪽수로 밀려, 1 대 1로도 먹잇감을 뺏겨, 결국 이번에는 발정기 숫사자한테 쫓겨서 치타도 나무를 재빨리 타고 올라가니. 걔네 호피무늬가 NB 머리꼭대기를 점령한 기분? 근데 정확한 실체는 보이질 않고. 확실한 증거는 오리무중이고. 은근한 암시는 느낌 쎄하고. 그렇게 또 공상을 시작할까 말까 라던 중 그는 소포를 배달받았다. 당장 열어봤다.
    부잣집 초딩이 싸구려라면서 반겨하질 않을지도 모를, 십대들이 뭐 그럭저럭 대충 걸치고 다니는 스포츠 브랜드들. 허다하다. 누가 아디다스 아니랄까봐 이따만하게 아디다스. 패션의 완성은 뭐다? 목 늘어진 티셔츠를 입었는데 쟤와 쟤는 어떻게...! 됐고. 제품 이름은, UNI 우븐믹스 맨투맨. 소재는 겉감: 면 100% / 배색: 나일론 100%. 대충 보니 친환경 어쩌고저쩌고. 그 외 특징은 딱 하나. 뒷편에 새겨진 문양.
    □
    △
    ○
    뭐지?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대체 뭐지? 뭐야 이거. 누구한테 들었나? 아닌데. 근데 왜 이리도 낯설지? 그렇다고 잡생각을 없애기 위해 딴짓을 해, 것도 아냐. 아니면 누가 알아서 자기 잡념 대신 기똥찬 기쁨을 선사한데? 그는 누군지 대충 짐작은 가나 모른 체 가죽을 받기로 했다.
    이처럼 그저그런 줄거리를 살면서 낭만을 좋아하는 여자 마음 녹이기에 관심없는 그. 그렇다고 허당들이 알던 가장 신나는 줄거리를 뛰어넘는 신비감에 대한 착상을 떠올렸을까? 말도 안된다.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소리. 차라리 버려진 환상머신의 부활을 꿈꾸는 게 낫겠네. 그러게 말이지 평소에는 숙녀들한테 잔소리 대마왕, 주사는 술꼬장, 일하기는 똥고집 놀기는 꼴등,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거꾸로맨이라서 아는 여동생들이 다 떠나갔을까? 그런 말 같지도 않은 감성 아끼면 누가 돈을 주나 조명발을 비춰주나. 아직까지 주제 파악을 못 하니까 그렇지. 뭐 대단한 인물 씩이나 된다고 쯧쯧쯧. 신부들러리의 본분도 다 무대에 올라간 백댄서들에게나 어울리는 것. 병풍은 그저 무명에 만족하며 삶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게 좋다는 거 NB는 정녕 왜 모를까. 알긴 아는데 식은땀나는 마감일에 쫓기니까 그럴 것이다. 그래도 사랑의 예감이야 지나가는 나뭇잎만 봐도 꺄르르 웃는 소녀감성들한테나 어울리는 거고. 솔깃한 발단, 신나는 전개, 짜릿한 절정, 놀라운 반전...같은 허구는 집어치우고. 결국 NB는 평범한 인생에서 하필 나른한 권태기에 봉착했다. 마침내 그럴 때가 됐는데 왜 안 그러나 했다. 애독자의 환심을 사기는 커녕 여심을 착착 요술처럼 못 감으니까 그렇지. 응? 오히려 지겨운 타성한테 말리기나 하고. 재미없음한테 질질 끌려다니까. 심심함한테 얼마나 잔뻔치를 얻어맞었으면 그렇게나 맷집이 좋냐고. (절레절레)





    17

    우선 그의 마음을 들여다볼까? 엿본다고 들키기를 하나 들통났다며 심술부릴 줄을 아나. 보아하니 심술기 가득한 척키상 숙녀와의 연애. 말하자면 환상적인 사랑을 동경하는 맹렬한 기분파의 낭만이 허당에게 가당키나 한가. 어림없는지 아닌지 본인이 더 잘 알 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마, 순순히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짝사랑복을 꿈꾸기 바쁘다니. 아닐 수도 있다만 아마도 그렇겠지. 뻔해. 왜 아니겠어. 하긴 공상을 어떻게 실행에 옮겨. 이제 겨우 25살인데 어떻게 극장식 카바레에 기웃거릴 수 있겠는가, 말도 안 되지. 정말로? 물론 뻥이다. 나이는 묻지 말기로 하고. 기왕 말이 나왔으니 다행까진 아니어도 뭐랄까 불행은 결코 아닌 건 분명한 게 뭐냐면. 만약 말이 안 나왔어 봐! 어? 뭐? 뭐라고? 뭣이 어쩌고 어째? 워 워 워. 흥분할 시점이 아니지. 그럼. 끝내주는 환상을 안겨줄께. 왜, 꿈같은 기쁨 선사받고 싶지 않니? 어디서 반말...이냐고요? 그러니까 그게 말이다, 우리는 그대를 띄워주지 못해서 안달인데 아니 왜 대체 내 맘을 모르실까. 허허허. 하여간에 말이야 그 인간은 아주 그냥 있는 욕망 없는 욕망 상상력 하난 끝내준다니까 글쎄. 그럼 뭘 해. 그래 봐야 아무 쓰잘데기 없는 몽환. 잡생각만 많아짐. 그 폐급 잡념만 쌓여감. 그렇다면 정말 NB 뿐만 아니라 웬만한 사람들은 모두 실패한 야심가? 딱 옳커니 맞장구 치긴 좀 뭐해도 그렇다고 썩 틀린 말도 아니다. 바로 그런 분들을 대리만족시켜드리고 건전함과 동시에 유쾌한 취미생활에 도움을 드려야 마땅한데. 지 앞가림부터 못 하니가 문제. 뭐든지 매사 싫증은 재빠르고 걸핏하면 헛스윙에 심심하면 개 발. 뭘 해도 번번이 꽝 아니면 뭘 해도 재미없음. 그렇다고 심심함을 날려버릴 특단의 대책? 있을 턱이 있나. 그러던 어느 날 NB는 갑자기 어떤 미모의 삼류배우와 불미스러운 추문에 휩쌓이고 말았던 것이다. 정말로? 뻥이다. 당연히 뻥이지. 말이 안되거든.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바램이라니. 아지트에서 경질당하고, 사교체에서 퇴출되기도 전에 입단부터 거절에다, 아는 여동생들한테 전부 따돌림당했음. 달콤한 예감 < 불길한 징조? 젠장. 그나마 그 역시나 기대는 곧 실망. 끝끝내 절망에 중독. 상심이 기본. 하여, 이건 아니다? 지친다. 지겹다. 짜증나겠지. 기분 이상할 거라고. 아마도 불쾌지수는 내려갈 줄 모를 걸? 그러길래 왜 하필 전공이 바지냐고. 허수아비 같은 놈.
    그래서 NB는... 그래서 NB는... 그건 다음편에 알려드리겠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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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 ─ 172

from 소설 2020. 8. 15. 20:57

    1

    쇠는 달구어졌을 때 두드려야 한다. 근데 시도 때도 없이 애무? 배 들어왔을 때 노 젖자. 아무거나 아무데나 숟가락 먼저 올리지 말고. 한데 그러기 위해서는 잘 쉬어야 한다. 최적기를 위해 사자는 힘을 비축해야 하는 것. 느그적느그적 매가리없이 낮잠자기. 그래 봤자 아무리 기다려도 먹잇감이 나타나질 않음? 원래는 '가는 여자 잡지 않고 오는 여자 막지 않는다'에 충실한 마초가 어째서 언젠가부터 나쁜 남자로 변해가는 것일까? 날 때부터 악녀일 수도 있고 세상이 그분을 그렇게 만들었을지도 모르고. 그래서 장미는 가시가 있는 것! 사람 가려서 사귀지 않으면 안됨. 오는 놈 아무나 받아주라고? 그거... 그거... 그게 뭔지 누가 모르나. 그러니까 앓는 시늉, 불쌍한 척, 친한 척... 그러다 전세 바뀌면 수평에서 느닷없이 수직으로. 권력간격지수 높으신 분들 말 안 통하는 이유. 사회생활이야 뭐 그렇다 쳐도 여자까지, 나한테 뭐 할 말 없어? 뭐? 할 말 있으면 먼저 하면 될 것을 또 천동설식으로 억지 입질 만들어서 낚싯줄 감기. 난 아마 그처럼 여성환상 1.5와 격월간지 미스테리아에 착착 감겨버린 것만 같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돌려까기, 말꼬리잡고 늘어지기, 뻠프질... 그녀들한테 제대로 전수받은 셈이지. 그럼 대체 그분들과의 협업 그 졸업일은 언제일까? 그걸 동네 똥개가 알겠나 제비가 궁금해하겠나. 목 마른 놈이 우물 판다고, 나도 잔머리 굴리며 요령껏 일해야지 곧이곧대로 걔네 형편 봐주면서 마감일에 쫓기다간 승질 더러워질 것만 같다. 추접스러운 사랑은 꿈도 못 꾼 체 안 그래도 재미없는 인생 불행해질 것만 같았단 말이다. 핵펀치 챔피언한테 사각링이든 지옥의 옥타곤이든 구석에 몰려서 험하도록 얻어터지는 일. 모든 개에게 쫓기는 심정. 악몽은 깨어나기라도 하지. 
    자, 그렇게 난 그녀들은 물론 아는 여동생들 커피 사주다가 재산 탕진할 것만 같아 낯선 여행지로 피신해왔는데. 휴양지가 뭐 이래? 빨주노초파남보 뿐만 아니라 디자인 다양한 비키니야 우리는 관심 없다만 무슨 동네에 개뼉따귀도 없냐고. 카페에 들어가면 파리도 안 날려. 편의점에 가 봐도 똥파리도 없어. 무슨 사람 구경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 그럼 대체 숙녀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여자를 썩 좋아하지 않는 우리가 그걸 왜 알아야 하는데. 무관심. 걔네가 오빠 제발 한번만 만나주세요 매달려도 우리는 무반응. 플레이보이는 냉정할 때 냉정한 것. 아닌 건 아닌 거니까. 그럼 뭘 해? 뭘 해도 재미가 없는데. 그래서 나는 일광욕이나 하러 바닷가로 떠나 혼자 놀았다. 바캉스 즐긴다면서 도시를 떠나 여기까지 왔는데 호캉스만 만끽한다고 만족할 우리가 아니지. 그럼. 그렇게 나는 해수욕장에 내가 힘들게 텐트를 친 게 아니라, 누가 버리고 간 텐트에 자리를 잡았다. 그런다고 무슨 뜬금없는 발단이 날 초대할까? 그럴 리는 없다. 아니면 천재적인 발상, 악흥의 기쁨, 기발한 영감 때문에 겁나게 바빠질까? 그럴 일은 만무하다고 봐도 된다. 그렇다고 여자를 꼬셔? 새로운 아가씨 꼬시는 건 식은 죽 먹기다만, 땅 집고 헤엄치기 우리는 흥미 없음. 아는 남동생들이나 있으면 또 모르지 걔네들 한명씩 전부 다 꼬셔준다면 또 모를까. 따라서 지금 제발로 타석에 들어선 대타는? 타율이든 뭐든 비리비리한 공상이지 왜 아니겠나. 그처럼 난 궁상맞게 여기서까지 몽상가이지 않을 수 없었다. 드라마 슬로우 모션과 썩 어울리진 않으나 선곡은 이랬음. Beethoven / 소프라노를 위한 아리아 “아니요, 걱정하지 마세요”. 공상은 예를 들면 이런 식.  





    2

    <낮잠 자다 꾼 개꿈은 포메라니안이 '덤벼볼테면 덤벼 봐 쬐그만 친구' 막 그러면서 얼쩡얼쩡거리고. 밤잠 자다 꾼 악몽에선 웰시코기가 사람 말을 하면서 '이런 고추 짝은 새끼 나한테 혼나볼래? 매운 맛을 못 보셨군. 내 이번에 본떼를 보여드릴께. 딱 기다려!'  딱 험하게 대드니 NB는 심하게 겁먹다가 오줌을 싸는데. 깨어나보니 정말로 팬티에... 몽정기 졸업한지가 언젠데. 여심을 슬쩍해도 모자를 판에 뭐, 뭐가 어쩌고 어째? 걘 그처럼 말 같지도 않은 공상에 이젠 정말 넌더리가 났다. 지겹겠지. 징글징글 안할 수 없을 테니까. 지쳤을 거라고. 퍼졌네 퍼졌어. 실망스러운 인기 없음. 따분한 일하기. 심심한 놀기. 뭘 해도 재미없는 중년이거든. 그러니까 맹목적으로 젊은 친구들 입는 중저가 패션 브랜드에 집착하면 뭘 하냐고. (그마저 용돈 궁한 젊음 가난한 가정에서야 중고가이긴 하다만). 그럼 누가 알아줘? 차라리 특정 이니셜 티셔츠가 어울리긴 어울리겠네. 누굴 속이려고. 이렇듯 초저타율 뻔트 전문 만년 벤치멤버는 슬슬 NB의 잠재의식에서 깨어나 그의 조정석까지 기어오르고야 마는데. 마침내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걸 대체 누가 알고 싶어하냔 말이지. 그게 문제로군. 여자 꼬시기엔 애송이, 여자 꼬시는 거 빼곤 싹 다 허당. 몽땅 찌질. 허접한 인생이네. 추접스러운 사심. 쯧쯧쯧.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니 지가 한 게 뭐라고? 이제 딱 궁지에 몰렸어. 쨉쨉 쨉쨉쨉 잔재주 못살렸던 연애사, 이제 기어코 세상사로부터 잔뻔치를 몰강스럽게 얻어맞고 있는 거네. 탄력 받았어. 제대로 받았어. 맺집도 좋아 그 친구. 허허허. 그러게 진작 돈 벌라는 숙녀들의 부탁 듣지 않더니 이게 뭐냐고. 공부하라는 잔소리 잘 실천했으면 품위 유지비가 부족할 일이 없었을 거란 말이야. 그러니까 NB 그 인간 속을 떠보고자시고 할 필요도 없어. 환상머신이고 나발이고 아찔한 착상이니 뭐니 그건 그냥 망상. 걸핏하면 공상. 지금도 몽상. 그래서 입에는 개침. 눈은 눈독. 몇 시 방향? 이런 젠장. 어딜 넘 봐? 그렇다고 닦달한다고 알아 들어? 것 봐 또 그 생각! 이건 그냥 관대히 보아 넘길 일이 아니구만 그래. 어딘가 힘 쓸 데가 없는 늑대들 심정이 웬만하면 그래. 굶주릴 대로 굶주린 하이에나들 다 똑같지 뭐. 어디 남자만? 여자도 다 그래! ~라면서 NB는 잔머리 굴리다가 끝끝내 캠핑 여행을 떠났을까?
    그래서 그는 캠핑 그림이 새겨진 싸구려 티셔츠를 샀다. 꿩 대신 닦인 거니까. (1) 아빠 나 저 아저씨 웃는 거 한 번도 못 봤어  (2) 친구 타도타기로 알게 된 친구 왈, 얜 웃상이니까 (내) 기분 좋다니까. 1보다 2여야 하니까. 그렇다고 1이 나쁘단 말이 아니라 시트콤 소재처럼 여자말 번역기 공부하고, 간접화법 대처법 더 열심히 공부하고, 인문교양서 보면서 '잘 웃어라'를 실천하니까. "너 지금 나 비웃냐?" 농담이고. 그게 우습단 말이 아니라. 남자 A와 B, 옷 똑같이 입는데 왜 A만 옷 잘 입는다는 건지. 하여간에 여자들 마음이란! 아, 지금 그 얘기가 아니라. 아무튼 챔피언스 리그 직접관람을 뭐 하러 해? 세계마초협회에서 알아주는 마초들한테 쥐어터지고 개고생하면 손해가 막심. 때문에 좋게 최고급 가죽이 아니라 허접한 비닐 소파에 자빠져 TV 채널이나 돌리는 게 신간 편하다. 실상 그게 투자 대비 효과가 최고거든. 집 떠나면 고생. 우리가 최고급 호텔 스위트룸 못 가서 안 가는 게 아님. 우리도 다 숙녀들 들었다 놨다 할 수 있음. 절대로 못하는 게 아님. 그런가 안 그런가? 물론 고기도 먹는 놈이 잘 먹는다고 채식만 했더니 비길비길 비리비리, 그래서 떠난 여행 종종 흥미롭고 왕왕 신날 때도 있는데, 놀러가서 놀고 있으면서 그런 혼잣말 하는 사람들. 있을까 없을까? 
   「아아, 집에 가서 TV 보고 싶다.」
    (물론 집에 가서 소파에 자빠져 TV 보더라도 할 말은 거 참 더럽게 재미없네) 근데 집에서 TV로 드라마 보고 있는데, 날 닮은 웬 놈팽이도 극중에서 나랑 똑같이 소파에 자빠져 TV를 보네? 왠지 모르게 처량해짐. 어딘가 모르게 빡침. 갑자기 울적해짐. 이유없이 뚜껑 열림. 내가 이럴려고 발버둥치며 빠른 생애사 전략에서 느린 생애사 전략으로 넘어왔을까? 라는 인생사 논평이 아니라, 내가 이럴려고 오빠 만나? ~라는 전전전 여자친구도 보내고. 넌 너 밖에 몰라, 라는 말 들어도 퍽 나쁘지 않을 전전여자친구도 고이 보내드리고. 이젠 정말 얜 유행가 가사 같은 운명일 줄 알았는데 전여자친구한테도 차이고. 가는 여자 잡지 않고 오는 여자 막지 않는데, 그럼 뭘 해, 근데 숙녀가 통 나한테 오지를 않네? (절레절레) 괜히 기분 나빠짐. 하다 하다 집에서 혼자 TV 보면서 과자를 과자를 엄청 퍼먹었기 때문에, 그러므로 입천장 까임. 값싼 인스턴트 식품으로 배 왕창 채워서 정찬도 생각없음. 팬티 달랑 3개로 돌리다 빨래 밀려서 결국 노팬티. 아예 기저귀를 차라 기저귀를 차. (절레절레) 아니 근데 진짜로 영양제 대신에 갓난아기 분유를 먹네? 공갈젖꼬지야 백날 빨아봐야... 그게 아니라 축구 동호회 나가도 개발이니까 스트라이커 시켜주지도 않음. 그러니까 공갈젖꼬지 꼴 세러모니 할 기회가 있나. 근데 정말 언제까지 혼자 떠들고 혼자 박수쳐야 하지? 내 말이 그 말이라니까 글쎄> 





    3

    해수욕장 인근 특급호텔 생활 3일째. 와, 근데 여기까지 와서 한 게 아무것도 없네. 내가 뭔 돼지도 아니고 똥개도 아니고. 먹고 자고 먹고 자고. 쾌락마만 원없이 상상하고. 어? (절레절레) 이건 아니다. 이건 정말 아니라고. 그렇다고 특단의 대책? 있을 턱이 있나. 그랬으면 진작에 돈 많이 벌고 호사를 누리며 행복한 가정에서 마누라 궁둥이나 신나게 두드리고 있겠지. 그게 뭔 아기들 장난감 북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말이 그렇단 거고. 하긴 내가 봐도 그렇다. 생긴 건 매가리없고 속은 매정하고. 이따금 멍청. 아니 평소에 꺼벙. 뭘 해도 허접. 아니면 어설픈 공상. 잔재주도 엉망진창. 잔근육도 볼품없음. 무엇보다 재산이 형편없음. 정력은 쓸 일도 없음. 근데 껀수가 어딨어? 있을 턱이 없음. 이런 바보퉁이를 다 봤나! 근데 이런 재미없는 소설 뭐 한다고 미스테리아에서는 계약을 끊지 않지? 안 팔리는 걔네들은 또 뭘 먹고 살아? 
    Handel / 오라토리오 벨사살 HWV61
    음악을 듣고 쇼핑을 하고 빵을 씹어먹고 우유를 퍼마셔도 분위기 전환은 비리비리.
    그러다 또 무슨 인터넷에서 쓸데없는 잡담을 읽음. 거 뭐냐 국내 인터넷회사 별볼일 없다면서 사내 직원들은 전부 아마존, 구글... 그런 것만 쓴다고? 그건 성장지속력 어쩌고저쩌고 마감일에 쫓겨 글 억지로 쓰는 증권리포트랑 비슷한 얘기. 통찰력과 별 관계없는 잡담. 왜냐? 야후 직원들도 지메일 쓰고, 구글 직원들도 상당수 애플만 애용하며, 페이스북 직원이라고 뭐 페이스북에서 내내 살겠나. 마이크로소프트 직원의 애사심에 한발 건친 자사품 애호? 더 말해 뭐 하나. 그 업계 업무자들이 약아빠지고 예언력 신통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바닥이 원래 타성이 일찍 옮. (잔꾀바른 친구들 일 열심히 시켜서 개미들한테 돈 뜯는 이치라고 내 입으로 어떻게 말하나? 순진한 감성 고결한 심성 평범한 벌꿀 보편적인 꽃들이 그 말 들으면 퍽이나 좋아하실까. 합당한 상업이자 살발한 다큐멘터리 생존시장, 누군 뭐 남들 안 벗겨먹으려고 하나? 화술과 어법에 따라 아 다르고 어 다를 뿐인 원리. 내가 하면 합리적인 도전 남이 하면... 됐고) 권태기 먼저 겪고 장외홈런치는 사랑도 있듯. 능력 출중해서 러브콜 얻어걸러서 어쩌다 마지못해 철새되는 축구계 거성들. 특별히 유벤투스 평생팬인 선수랄지 리버풀 FC에 뼈를 묻겠다는 선수, 그리 많지 않은 이치와 똑같음. 무슨 에르메스 본사 직원들이 전부 에르메스만 이용할까? 페라리 디자인팀에서 최신 페라리 타는 사람이 과연 많은 줄 아시나? 링크드인 조사하니까 테슬라 핵심멤바들이 유독 1줄을 추가했더라, 따라서 전망이 밝지 않다? 더 잘 나간다. 마이크로소프트 직원들 찬찬히 살펴보니 맥북만 쓰며 헛바람들어서 구글만 편애하더라? 마이크로소프트 끄떡없다. 2인자, 3류, 7부 리그와 업계 지존을 비교해보면 다 비교가 된다. 괜히 남자들이 여편네 지는 비교 잔소리에 잘 참다가 자기들끼리 구석지에서 찌그러져 울분을 터놓고 얘기할까. 프로듀서 감 떨어지면 그때까지 어떻게 기다려주나. 기미 보이자마자 교체. 그래서 또 인스타그램, 플리커... 한물갔으나 저력 괜찮은 플랫폼들 직원들이 애용하는 진짜를 만들자면서 으쌰으쌰? 딱 만들자마자 펀딩액 날림. 투자액 회수 못함. 수익분기점 넘기가 어디 쉽나? 이유는 많음. 인터넷 메이저 회사직원들 마음에 쏙 들도록 새로운 웹사이트를 만드는 것도 어렵고, 경쟁 심하고, 만들었다 쳐도 완성 후 처음의 타겟층은 벌써 늙어버림. 유행은 날마다 바뀜. 변심은 기본. 아마존 직원은 아마존 안 쓴다고요? 젊은이들이 봤을 때 아마존 직원쯤 되면 그건 이미 꼰대! (진짜 꽉 막힌 꼰대란 말이 아니라) 벌써 청춘에 비해 뭐 어떻다는 뜻. 중년 입장에서도 당연히 윗 세대... 이치는 똑같음. 70살 드시고 어디 가서 굽실굽실, 80살 자시고 윗분들 수발든다? 밑도 끝도 없이 전 치실을 애용합니다 어쩌고저쩌고... 어려서 이수시게 사용하시는 거 떠올리면서 그거 보는 젊은이 속으로 뭔 생각을 하실까! 5살 땐 20살 삼촌이 완전 어른. 새파란 20살 때야 5기수나 10년 선배는 일부분 과대평가됨. 근데 그분들께서 중년이 되면? 지금 생각해보면 애기! 이치 알고 원리 듣고보면 뭔가 짠해짐. 슬퍼짐. 돌아가서. 뭐 어렵싸리 그분들 만족시켜드리도록 뭔가를 완성했다고 가정해도 애초에 타켓층부터 곧 있으면 흰머리 희끗희끗. 낼모레 환갑잔치 예정. 괜히 광고위원회 관련 법률에서 0~10세와 사춘기 발정기 변성기 소년소녀들에게 먹히는 반칙을 제재하는 게 아니다. 한번 생각을 해보시라. 한철 장사가 나을까 아니면 인구구성이든 뭐든 꽃놀이패로 놀고먹을 정도로 노른자감이라는 버크셔 헤어웨이류 주식이 장기적으로 이득일까? 허먼 밀러 의자에 앉으신 프로그래머, 꽉 막힌 상남자는 아닐지언정 젊은피들이 보기에 (악의와 더러운 뜻이 아닌) 완벽한 꼰대일뿐. 젊은 친구들 노는 데 막 기웃거리면서 왜 난 클럽에 입장할 수 없냐 면서 따지면 안됨. 
    뭐야 이거? 근데 또 인터넷 놀이터 따분한 농담에 낚여버렸잖아? 숲의 나무 구성 분포와 과학적 분석 그런 거 모르겠고, 나 하고 싶은 말만 하고 듣기 싫은 말 거르고. 왜 그걸 대충 보고 못 넘어가냐고 참 나. 나만 아는 척했냐? 어? 쟤만 이쁜 척했냐? 나만 잘난 척했냐...라는 미끼에 또 걸려버린 거네. 바보처럼. 줄거리 구상에 기획의도 고민에다 기승전결은 다 어디 가고. (절레절레)
    그래서 나는 해수욕장 근처를 빨빨거리며 나돌아댕겼다. 겁나 싸돌아다녔단 말이다. 카페. 빵집. 옷집. 음식점. 그러다 딱 저녁에 레스토랑에서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여인들을 마주쳤다. 
   「어머. 어머머머머머. 이게 웬일이야?」
   「젠장 여기서 또 보네. 이게 웬떡이야?」
   「웬 머?」
   「아 미안 말이 잘못 나왔어.」
    그 명콤비 둘은 장안의 화제까지는 아니고 최근 붙어다니는 단짝 샐리와 이브였다.
   「아니 너네는...」
   「왜 벌써 우릴 잊은 거야?」
   「에잇 설마. 아니겠지. 혹시 그새 딴년이? 언년이야! 내 이년을 콱 그냥...」
   「야 참어. 늬가 참어. 아님 내가 나서? 내가 총대 메고 나선 그 사이에 너가 저 개뼉따귀 들고 튀면 난 뭐 되는데?」
   「뭐긴. 새 되는 거지. 어머 얘, 우리 오빠 앞에 모셔놓고 못하는 얘기가 없네. 조심하자. 응?」
   「오빠. 나 샐리 얘 이브. 이름 좀 불러주라. 오빠가 그래서 여자가 없는 거야. 알긴 알어? 아님 우리한테 딱 벽 세우고 선 긋는 건가?」
   「넌 몰라도 난 아니다.」
   「나 쉽게 안 떨어져. 얘 봐라. 맞받아치는 말에 뼈가 있네. 어영부영 날 경계하기? 안되겠다. 내가 먼저 치고나가야지. 오빠~ 응? 오빠~ 나랑 데이트하자. 저번에 오빠가 사준 커피 너무너무 고마웠어. 내가 살면서 마셔본 커피 중에 최고. 오빠. 제발 나랑 한번만 놀아주라. 응? 그럼 안될까? 안 될 거 뭐 있수, 말 나온 김에 나랑 단둘이 그거하자. 나 잡아봐라~ 저기 저 해변이 우릴 부르네 오라버니.」
   「오빠. 얘 말 믿지 마. 엇그제 소개팅했어. 넌 딴 데서 저울질하고 엄한 데서 우리 오빠 펌프질하냐?」
   「너 정말...」
   「너네 왜 그래?」
   「왜 겁나? 우리가 오빠 잡아먹을까 봐? 내 이럴 줄 알고 미리미리 새빨간 립스틱을 준비했지. 살쾡이가 생닭 잡아먹은 것 마냥 새빨간 립스틱 보고 오빠가 쪼니까 귀여운데? 그치, 그치? 아아~ 도발적인 색깔로. 탐스러운 섹시미? 앙큼한 불여우한테 딱이지 뭐. 뭐랄까 키스받을 수 밖에 없는 마성?」
   「너네 누가 보냈어?」
   「이 오빠 눈치 한번 빠르네.」
   「그러게. 백여시가 따로 없다니까 글쎄. 에잇 이왕 탄로난 거 우리 오빠한테 거짓말 못하겠다.」
   「뻥치지 마. 뻥쳐도 내가 안 속으니까 작전 바꾼 거잖아. 아니면 다 계획된 거? 난 너네 여자로 안 봐~!」
   「헷. (하이파이브) (얼떨결에 난 둘 중 하나와 벌써 하이파이브를 해버림) 사랑은 없어.」
   「난 있어. 넌 애증 때문에 겁나나 본대 난 아니다 너. 응? 우린 뭐 오빠를 남자로 보는 줄 아우? ~라고 말할 줄 알았지 오빠. 응? 아니야. 얜 몰라도 난 아니라네.」
   「늬가 더 무서워.」
   「물건.」
   「잡것.」
   「나 돈 없어.」
    난 얘네 둘만 상대해도 벅차기 그지없는데, 또 딴년 아니 고상한 숙녀의 잔소리를 내면에서 상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말이다.
   「늬가, 아니 오빠가 뭘 좀 모르나 본대 그게 그러니까 말이지, 에잇 말 말자. 말해 뭐 해. 말해봤자 화자 입 아프고 듣는 청자 귀 따갑고. 안 그래? 그렇다고 뜸들이고 기다린 만큼 본론은 실하냐, 장담하는데 판돈 걸긴 곤혹스럽지. 아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훑어보다 시선은 어딘가에 멈춤. 딱 멈춤) 호호호. 허허허. 아마 부실하진 않겠지? 문제 없을 거야. 아님 힘 뺄 데가 없나? 말이 너무 심했나? 심하면 어때. 여기 오빠랑 나 밖에 누구 더 있어? 오빠랑 나랑 어떤 사이인데! 응? 호호호. 뭐 1절만 하라고? 어딜 찾나 몰라도 번짓수 잘못 찾아오셨군. 허세대회 갈려다 다변가 예선전에 오셨으니까.」 
    딱. 딱. 샐리와 이브는 손으로 딱 소리를 냈다. 골 세러모니도 했다.
   「오빠 뭔 생각해?」
   「이 오빠 상태가 안 좋네.」
   「혹시 이 오빠 허언증 도진 거 아니야?」
   「오빠 허언증도 허언증이지만 네 과대망상, 특히 남자 탐하는 욕망. 좀 줄이면 안되겠니?」
   「내가 언제? 얘 괜한 사람 잡네? 너 나 알지? 나 네 비밀 폭로할 거 많아. 이거 남들이 알면... 너 나한테 잘해야 돼. 모르지 않지?」
   「야. 그러지 말고. 남자 만나러 가자. 내가 남자 소개시켜줄께.」
   「여기 남자가 어딨어?」
   「새로운 남자 내가 꼬셔줄께.」
   「정말이야? 믿어도 돼?」
   「난 남자 아니니? 거 듣던 중 심하게 서운한 소린데. 응?」
   「오빠랑 우리랑 뭐 법적으로 맺어질 인연도 아니고. 오빠 여자는 오빠가 찾든가 말든가. 우리 젊음의 애정은 우리가 알아서 하겠소. 아시겠소? 내 말 알아듣겠수? 그리고. 넌 왜 그래? 친구에 대한 애증이 확 끌어오르니?」
   「근데 너네 여기 놀러온 거니?」
   「우리가 우연히 만났을까? (몸짓)」
   「그럼 혹시...」
   「다음 마감일 일찍도 독촉하는 거니까 그리 아슈.」
   「거 참...」
   「왜 섭섭하쇼? 그러요? 진정 그렇소? 정녕 그렇단 말이오? 그럼 우리 둘이 밤새 놀아드려? 오빠도 썩 반가운 계획은 아닐 텐데... 안 그렇수?」
   「아 나 이거 증말 얘네 사람 들었다 놨다. 내가 너네랑 연애할 사이니? 웬만히 밀고 당겨, 어? 쥐락펴락할 남자가 그렇게 없니? 너네가 그래서 안되는 거야. 너넨 그러니까 남자가 없는 거라고. 알아?」
   「알긴 누가 알아, 어? 지금 오빠 말 다 했어? 어?」
   「야, 참어. 그러지 말고. 가자. 즐겨도 시간이 아까운 청춘이잖니. 저 오빠가 YB인 우리랑 같니? 저 봐. 저 보라니까 글쎄. 옷도 OB네. (절레절레) NB는 개뿔!」
   「그래. 가자. 오빠 우리 간다. 또 그런다고 삐지지 말고. 남자가 쪼잔하게 말이야, 어?」
    저것들이......! 





    4

    NB 그인간이 허구헌 날 하는 일이라고는 개연성 무시한 문학, 작위적인 공상, 신빙성과 안 친한 허풍. 왕년에 여자깨나 울리긴 뭘 울려. 패션이고 나발이고 트레이닝복셋 3개로 돌리는 게 문제가 아니라 2벌도 간당간당. 우기기는 YB 실제로는 OB. 단골 술집 마담들 뿐만 아니라 뭇숙녀들마저 썩 달갑지 않은 고인물 신세. 기다려지는 소풍도 없고 반겨주는 동네 똥개도 멀리 살고. "너 돼지냐? 그럼 제가 하마겠소." 라면서 아는 여동생들이랑 농담따먹기하기도 지겨움. 아예 걔네들끼리 녀석을 따돌림. 그러니까 말이지 그게 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정신산만함 때문일까? 아니면 말 많기로 어디서 둘째가랄 수 없는 다변가들 비위 맞춰주기가 어설퍼서? 신부들러리 하다 하다 지친 거네. 아님 허접한 허당은 새로운 인생에 대한 몽상만 물고늘어지다가 정신 못 차리는 거든가. 그러던 어느 날 사무엘이 "너 나하고 일 하나 같이 하자!" 라면서 솔깃한 제의를 건네서 듣고 보니 별 거 없어. 한편 제라드가 자기 여동생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은 체 뜬금없이 소개시켜준다면서 뜸만 들이다 끝나던가. 그도 아니면 에드워드가 근사한 걸 사준다는 둥 어디 파티에 초대한다는 둥 알고 보면 다 뻥. 개 뻥. 몽땅 뻥. 재미 하나도 없어. 우정은 말도 안된다. 사랑은 없어. 허세대회는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잔치 같으니라고. 그 뿐만이 아니라 아는 동생들 커피 사준 게 얼만데, 그거 모았으면 카페 몇 채 차리고도 남았음. 물론 누가 걔네들 커피 사주느라 재산 거덜나라고 등떠밀진 않았다만 말이다. NB에 대해 너무 쓸 데 없는 말을 지껄이는 것 같지만 걔는 좀 얻어들어도 된다. 누가 지 뒤에서 신나게 험담하는 거 혹시 돌려까기로 들어도 맹숭맹숭하거든. 딱~ 봉! 어? 전설적인 호구! (킁 킁) 늬 사촌동생 멍청하더라 라는 말, (킁 킁) 늬 사촌동생 여자친구 없어보이더라 라는 말을 전하는 것도 상당히 문제가 있다만 걔도 똑같아. 물에 술 탄 듯 술에 물 탄 듯, 이래도 흥 저래도 흥. 성격 좋긴 누가 성격이 좋아. 그냥 남자들 놀림감이자 밥에다 호구였어. 그렇게 어른이 되어 NB는 어떻게 인공지능을 입양했는데, 와~ 이거 정말 장난이 아니구나 임자 제대로 만났군 그래. ~라면서 신기해하면 뭘 해, 그래 봤자 인공지능 고장남. 그래? 그럼 어쩔 건데 자신이 걸어다니는 환상머신이라면서 뻥칠 수도 없는데. 시시한 얘기 집어치워. 미친놈. 그래서 그는 드디여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 꼭 뭐 볼장 다 본 건 아니겠으나, 산전 수전 다 겪으며 파란만장한 인생 자랑할 만담가도 못 되니. 뭐 때가 때인 만큼 엉덩이가 근질근질거렸던 것이다. 
    따라서 그는 할 말 떨어진 김에 당장 떠나기로 했다. 이번엔 어딜까? 
    아, 이미 떠나왔지. 여기가 사무실인지 피서지인지 구분도 안되네. 
    말하는 와중에도 이게 정말 1인칭인지 3인칭인지도 분간 못한다고. (절레절레)
    13가지 손재주, 14명의 거지. YB면 몰라도 물 오른 미모를 뽐낼 OB가 뭐 하러 똑같이... 잔재주 늘리기는 공상으로만. 떡밥뿌리기 재미없다. 여자? 관심없음. 뭐야! 난 차 욕심 없어 라는 말처럼 들리네. 그래서 우리는 닥치고 실전. 근데 오라는 데가 없는 걸로도 모자라 갈 데도 없는데. 만날 친구가 어딨나. 아는 동생들 다 떨어져나간 얘기하기 좋아하니까 바텐더 질려서 일 때려쳤다질 않나. 허당한테 질려서 도망간 거지. 웬만해야 말을 안 하는데 딱 1번 돈 제일 많을 거 같은 남자로 첫손 꼽아줬다고 그 얘기만 몇 십년째 우려먹어? (절레절레)! 그 인간 대체 뭐 하는 작자야, 어? 단골술집 바텐더 그만 둔 걸로도 모자라, 아는 술집 마담조차 장사 접었다지 아마? 뭐 툭하면 폼잡고 한다는 얘기가 글쎄 뭐래더라? 악마는 이미 젖은 곳에 물을 붓기 좋아한다? 더럽히고 싶은 새하얀 도화지 같은 남자도 있다. 꼬리치지 못해 안달난 여심이 도저히 미워할 수 없는 남자. 그래 봤자 '그때가 좋았지' 영웅담. 근데 그 얘기가 지금 왜 나왔지? 내 말이 그 말이라니까. 공상이라는 쓰잘데기 없는 취미에 지치면 또 인터넷 쇼핑. 옷구경하다 보니 브랜드 "르 꼬끄 스포르티브". 약간 시트로앵 느낌. 이거 정말 귀신에 홀렸나 머리가 돌았나. 드디여 정말 미쳤나? 너무 이상해. 왠지 모르게 느낌 세하단 말이지. 그래서 난 곧장 잡생각을 없애기 위해... 고전음악을 틀었다.
    Donizetti / <Lucia di Lammermoor> 이제 곧 버려진 무덤이 나의 안식처가 되리
    아니 정말로 특급호텔 4일째도 이렇게 지나가는 건가? 이럴 거면 뭐 하러 돈 쓰고 시간낭비하고...! 
    특훈을 할 수도 특종을 캐내기는 커녕 뻥칠 수도 없었기 때문에, 고로 난 결심했다. 작정 하자마자 곧바로 실행했다. 근데 과연 무엇을 실천했을까? 뜸들이지 말고 즉답하자면 이렇다. 바로, 머리를 빡빡 밀었던 것이다. 머리카락을 빡빡 밀고나니 어쩐지 괜찮은 선택인 것만 같았다. 머리카락 길다고 여자를 꼬시기를 하나, 아니면 숙녀가 제 발로 굴러온 호박처럼 내게 유혹하고 꼬리치고 엄청 공격적으로 날 꼬드기기를 하나. 이 정도 일탈 못 할 이유가 없었다. 하고 보니 진작 할 걸 그랬다. 거울을 보면서 나름 자존감 1 상승, 자신감 0.5 자존심 하락? 뭐 나쁘지 않았던 것이다. 





    5

    본 문단은 립서비스 생략. 헛소리 금지. 개소리 엄금. 뜸들이기 그만. 특히! 말꼬리잡고 늘어지기, 취미 없음. 생트집을 뭐 하러 잡나, 재미 하나도 없는데. 여자? 무관심. 껀수? 불필요. 무작정 떠나기? 이미 떠나왔음. 세상 모든 여자를 전부 다 말 몇마디면 꼬신다는 허풍 그거 다 뻥. 무반응녀 걸르고, 도도한 숙녀 미루며, 돈 쓰고 공들이며 여자들 꽁무늬 쫓는 정력을 뭐 하러 낭비하나. 다 유인책 있고 진공청소기처럼 여심을 빨아들이면 그만. 오빠 제발 한번만 만나주세요~ 거 봐 봐 또 전화온다. 미치네 미쳐! 우리는 늑대가 나타났다 라면서 소란 피울 필요가 없다. 그분들께서 자기들 사랑의 차트, 그 혼돈의 어장관리에 우릴 초대못해 안달이신데? 그 뿐만이 아니라 열려라 참깨~ 라는 주문을 외워 호박이 제 발로 굴러오게 만들면 그만. 그게 해도 해도 안되는 분들이 마지막에 하는 게 뭐냐? 오픈카 타기. 실력으로 안되니까 물량 공세하는 거지. 찬밥 더운밥 가릴... 쉿. 여심 들었다 놓는 거 일도 아니다만 우리는 사랑하지 않을 거면서 여인의 인생을 책임진다는 말 함부러 할 수 없음. 좋아하지도 않을 거면서 아쉬운 소리 해서는 안됨. 그래서 지금껏 여태 사랑해 라는 말 단 1번도 못해봤을까? 그러니까 여자를 못 사겨봤지. 그래서 지금... 뭐 사랑은 그렇고. 
    다음으로 꿈과 성공. 떡밥뿌리기 아니면 최적의 먹잇감이 나타날 때까지 끝끝내 기다림. 최후에 남는 1인이지 않으면 안될 게 있고, 선착순이 좋을 때도 있고. 젊은이여 야망을 가져라? 산을 칭찬하고 평지에 머물러라. 계산기 두드릴 필요도 없이 암산으로 비전 괜찮네, 전망 밝아, 희망이 뒤에서 밀어준다 싶으면? 못 이긴 듯 꿩 먹고 알 먹기. 말수 들쑥날쑥 말하기와 듣기, 놀기와 일하기의 황금비를 최적화할 줄 아는 우리. 나설 때 나서고 참을 때 참고. 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지고.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고 적임자로 나 아니면 안되니까 다 우리가 남동생들한테, 저년들 몽땅 이 형이 전부 꼬셔줄께. ~라면서 지키지도 못할 약속 남발하는 것임. 그렇듯 남자야 뻥 남용에 종종 뻔트 대고 왕왕 상대의 실수를 틈타 단타에 성공하다가, 인생이라는 영화는 가족 장르로 치우친다지만. 남자처럼 빠른 생애사 전략에서 느린 생애사 전략으로 갈 수 없는 여자의 마음. 타율과 소문과 과거와 미련과 평판과 애정관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그분들. 여기 우리 여성분들에게 딱 적합한 속담이 있다. 그건 뭐냐 바로, 양을 염소에게서 떼어놓고, 밀에서 쭉정이를 가려내기. 즉 옥석을 가려라. 뭐? 뭐가 어쩌고 어째? 이 사람이... 아니 근데 이번 문단에서는 잔말 말고 줄거리만 요약하기로 해놓고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내가 뭐 한다고 진한 사랑 공상하기나 실행할 궁리만 해도 힘 빠지는데... 내가 뭐 미쳤다고 쉿! 아 쫌. 곧장 줄거리 중심으로 간략히 얘기하자면 이렇다. 
    09:00 미용실 : 친구 DELL은 환상문학잡지&여성환상 1.5로부터 의뢰받은 작업을 진행... 착수금:성공보수 = 5:5 ...... 플러스 알파 → 
    12:00 호텔앞 : 나는 호텔로 놀러오기로 했던 친구 델을 만남 → 
    13:00 카페    : 우리는 해 진 다음에 함께 놀기로 하고 에스프레소 함께 마신 후 헤어짐 → 
    15:00 미용실 : 난 미용실에서 머리를 빡빡밀어달라 주문 (이걸 인스타그램에 예고한 게 화근) → 
    15:30 미용실 : 나는 최면에 걸려 잠듬. 그 사이에 아줌마 파마 완료 후 특수분장으로 빡빡인공피부 입힘 → 
    17:00 미용실 : 오빠~ 포근한 속삭임에 잠에서 깨어난 나는 빡빡머리에 만족함. 요금 지불 후 숙소 복귀 → 
    17:30 숙소   : 샤워 후 때늦은 낮잠으로 꿈나라에서 개꿈 꾸는 중 → 
    17:45 숙소   : 요원이 몰래 숙소에 잠입. 빡빡 분장을 벗겨 파마 머리를 노출시킴 → 
    18:30 숙소   : 대충 옷 걸쳐입고 친구 델을 만나러 나감. 
    19:00 카페   : 델에게 전화옴. 여자와 선약 있다는 걸 까먹었다고 함. 너 아직도 여자한테 잡혀 사냐? 라고 따지니까 사실은 8촌인지 10촌인지 친척이 돌아가셨다고 함. 그래도 너 봐서 얼굴 보고 얘기해야겠다면서 통화 중에 카페로 난입. 또 어디서 본 건 있어가지고, 어디서 연애학습서 웬만히 주서읽고 어설픈 허풍 어지간히 얻어들어야지 말이야. 행복론이라면 바로 이 몸에게 귀동냥을 얻을 것이지... 통과. 
   「너 머리 파마했니?」
   「아니. 빡빡 밀었는데.」 
   「뭔 소리야?」
    그러면서 핸드폰 카메라ON 화면을 비춰줌.
    난 거울을 보고서 깜짝 놀랐다. 아니 이게 뭐야! 불과 얼마 전까지 스킨헤드였는데... 갑자기 빠마머리가 자랐다고? 단 30분 사이에? 대체 뭔 발모제길래... 그 속도면...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떡실신 할 뻔하다 겨우겨우 정신차림. 전머리 굴림.
   「친구. 그럴 수 있어. 너가 아까 동네아줌마 파마 했다가 마음에 안 들어서 착각했을 수도 있고. 원래 상태가 안 좋기 때문일지도 모르고. 아니면, 너 또 그 생각했니?」
   「뭔 생각?」
   「지금 그 생각.」
   「지금... 이 자식이... 그럼 너도?」
   「난 아니다. 난 아니야. 그게 뭔지는 몰라도.」
    그러면서 델은 냉정히 가버렸다. 난 새된 거지 뭐.





    6

    만성적 건수 없음에 대한 노골적인 상심, 표출하지 않는다가 아니라 그런 게 있을 리가 없다. 유지해야만 할 체면, 말하자면 플레이보이계에서 소문난 행운아의 숙명이 무엇인지 NB는 알고 싶어하지 않는단 말이다. 어디 가서 추근대고 누구한테 껄떡거리며 안 가리고 찝적. 거리가 먼 인생. 여자한테 나대지 말란 말 못하니 그러니까 들이대지도 못하겠지. 하여 못 말린단 말 들을 수가 없어. 그와 같은 근거에 기인하여, 고로 걘 여복 관심없다. 드센 여자한테 부담이 되기도 싫겠지. 당찬 숙녀한테 꽉 잡혀사느라 피골이 상접한 체 기 쪽쪽 빨려 사는 남자 심정, 그러니 알 턱이 있나. 모를 수 밖에! 안 겪어봤거든. 아님 상상 속에서만? 통과. 그렇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말이야 소년의 모험심 정말 되찾긴 힘든 건가? 진짜로 정력가의 탐구심은 다 어디로 가버렸을까. 그녀들 가방엔 대체 뭐가 들어있을까 라는 추측은 사라지고 나이는 많아지고? 타인을 관찰하기 좋아하나 뭇여성들로부터 주시받지 못하는 삶. 그 흔한 동네 아저씨 아줌마처럼 패션에도 흥미 잃음. 커피 사주기로 유명해지느라 재산 거덜라서 이젠 아는 여동생들도 걜 더 이상 주시하지 않음. 쪽쪽 빨렸던 단물 더 이상 빨리지 않기 때문인가? 비전 없으니까. 허나 마른 오징어도 쥐어짜면 바닷물 펑펑 나온다. 이럴 땐 답은 그거다. 인형극에 나오는 눈물 분출 기계, 모터 달린듯 꼬리치는 여심, 눈에선 레이져가 입에서는 화염방사기가. 누군 뭐 진공청소리를 열망했으나 결론적으로 커피포트 아니면 헤어드라이어기 같은 인생일 줄 미처 알았나? 예상도 못했겠지. 사전에 그와 같은 절망을 미리미리 전망을? 어림도 없지. 그러게 용한 점쟁이한테 속는 셈치고 중년운이라도 진단 받아볼 걸 그랬을까? 불세출의 예언가가 알고봤더니 덕망 두터운 사기꾼일지도 모르니 그건 아닌 걸로. 심중을 털어놓아도 뻔할 뻔자니 입이 근질근질거리지도 않고. 흉금을 터놓고 사심과 야욕과 욕망을 넌지시 비추어도 웃기다고 누가 반기기를 하나. 어? 자, 그럼 새로운 인생을 철저히 준비할 절호의 기회일 수도 있다만. 일단 품위 유지비부터 태부족. 잡지사의 그녀들도 NB를 더 이상 꾸짖기를 포기했으니 이젠 정말 외톨이란 말이군 그래. 열띤 기색 가라앉히시지, 그 인간 대변인처럼 굴어서 좋을 게 뭔데. 녀석이 뭐 뭐든 일단 입에 넣고 보는 펠리컨도 아니고, 뭐 아무거나 막 쪼아대는 딱따구리도 아니고. 난 대체 뭐지? 아니 걘 도대체가 말이야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어. 여자도 못 꼬셔 일도 못해 무엇보다 돈이 없어. 무능력하진 않으나 잔재주 어디다 써먹을 데가 없거든. 어? 꼴에 고전음악광이라면서 Mozart / Piano Concerto No.26 K.537 / Gelber Orchestre de Paris, Bruno Leonardo Gelber [pf]. 그런 거 찾아들으면 뭐 황금이 나오나 여자들 마음을 빨아들일 수 있나. 바라는 건 오직 허세대회 그랑프리가 아니라 허풍이 진짜가 되는 거? 웃기고 있어. 아니 웃기지도 않다고. 말도 안되는 공상 집어치우라고 증말.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취미도 취미라고. 밑도 끝도 없이 또 그 생각? 저런 개뼉따귀 같은 놈을 봤나. 무슨 개 풀 뜯어먹는 소리도 한두 번이지, 어?
    ~라는 그의 마음 모르는 바는 아니다만. 구태의연한 표현으로 문학적으로 말해 의식의 흐름이 그쯤 되고 보니 또 어디로 도망갈 궁리를 한다는 추산은 여지없이 들어맞을 것이다. 그럴 수 밖에 없으니까. 가만 있질 못하거든. 허허허. 
    그래서 NB는, 아니 나는 허영심을 달래서 다시 도시로 돌아가기로 했다.





    7

    나는 돌아가는 자동차에서, 어딘가 모르게 촐싹맞게 퇴장하면 궁상맞을 거 같아 고전음악을 들을 수 밖에 없었다. 
    Donizetti / <Lucia di Lammermoor> 날개를 펴고 하늘로 올라간 그대여
    그런데 집으로 돌아가던 중간에 칼럼쓰기 대회장을 보게 됐다. 그래서 그래서, 아 글쎄 그래서 어떻게 됐냐구요? 독자가 아예 없진 않은 것 같긴 한데... 왜 내 지갑엔 아니 난 지갑조차 없냐고. 이런~ 젠장! 어쨌든 난 생각했다. 참가해볼까? 아니다. 하지 말자. 그렇지만 구경은 괜찮겠지? OK!
    그렇게 구경하자마자 웬 청초한 숙녀가 날 부추기더니 자리에 앉게 만들었고 어영부영 난 어느새 칼럼을 쓰고 있었다. 주제는 없었다. 일단 쓰랬다. 늘 그런 식이지. 익숙해. 낯설지 않음. 뭔가 부담감 때문에 글이 잘 써지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면 그렇게 생각을 해보라고 했다. 이거 마무리하면 자기랑 신나는 데이트 1차, 달콤한 데이트 2차, 짜릿한 데이트 3차까지 다 할 수 있다나 뭐래나. 물론 그 빈말 난 곧이듣지 않았다. 무슨 그런 개뼉따귀...! 허나 듣기 싫진 않았을 것이다. 안 그래도 이미 끝난 일. 난 뚝딱 칼럼을 작성했다. 흡사 낙서와도 비슷하게 말이다.
    <NB는 뭇여성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줄, 여심에 대해 정통한 권위자나 된다는 듯 단단히 착각한 삶을 살고 있었다. 때문에 그가 늘상 친구들로부터 들을 말은 뭐다? 넌 그래서 여자가 없는 거야, 늬가 그러니까 안되는 거라고! 증말 들었던 얘기 아무리 들어도 모자를 판이네.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근데 흔히들 그러지 않나? 꼭 그런 건 아니겠으나, 일부분 안 그러면 안 친한 반증일 테니까. 물론 식상한 농담 몇 개 던져 고급스러운 유머 한두 개 건지는 타율이란 게 있으니까 말이 그렇단 거고. 설마 그러다 어떤 숙녀의 마음이 어쩌다 떡밥뿌리기에 얻어걸렸다? 그건 여잘 잘 꼬시는 게 아니라 이미 애초에 여자가 걜 찍은 것일뿐. 넘어가고. 아무튼 또 일하기 싫어졌구만. 벌써 사랑에 싫증난 것 마냥. 그러니 여자들이 남자 말을 믿느니 옆집 똥개 말을 믿고만다 그러지. 안 그럴 수가 없거든. 근데 여자말 번역기랑 NB의 인생이 대체 뭔 관계인데? 그러건 어쩌건 NB한테 웃기지 말라 그래. 머저리 같은 놈. 허접한 사랑론은 개뿔. 옷에 가려 안 보이는 거 같지만 똥배 뽈록 튀어나와가지고 말이야 벗겨 놓으면 누가 봐도 돼지. 일부러 배에다 힘 살짝 주고 있어 배 안 튀어나오게 하려고. 돼지 같은 놈. 물론 딴 분들이야 나이살에다 애교살이요 섹시배라지만 걔만 똥배. 허허. 한편 딱 1번 들어봤을까? 누구 같은 애가 살 찌면 잘생긴 얼굴이야 라는 말 실천하지도 못 할 놈. 왜?
    첫째, 소심하니까
    둘째, 순진하니까
    셋째, 뭐니 뭐니 해도 마른 장작이 잘 탈 테니까.
    그럼 뭘 해? 그래 봤자 껀수 없음에 허덕인지가 언제부턴데. 최후의 만찬이 언제라더라...! 답 없음. 비전도 없음. 통장잔고도 바닥. 하긴 이젠 마침내 현실 부정, 자기 합리화, 정신 승리, 공상도 재미없을 거야. 형 철들지 마 라면서 따르는 남동생들이 있나 아니면 오빠 제발 한번만 만나주세요 오빠 커피 한잔 사주세요 오빠 우리랑 같이 놀아요 라며 졸졸 쫓아다니는 여동생들이 있나. 딱 외톨이. 친구 없어! 하긴 걔 정도 되면 입에 풀칠하기 허덕이는데 친구가 뭐가 중요해? 우리 나이 정도 되면~ 라면서 하다 하다 "중년"이란 제목의 칼럼까지 언제 잡지사에 보내느냐는 통첩 카드만 만지작만지작 그럼 뭘 하냐고. (절레절레) 따라서 쏠쏠한 과소비, 짭잘한 쾌락마, 달콤한 과즙, 새침한 군침 밖에 모르는 NB는 열심히 일이나 하는 수밖에. 근데 이게 웬일이야? 이게 왠 떡이야 라는 대사를 드디여 읊을 기회가 내게도? 거 어째 시시한 기대를 예감케 하는, 허접한 칼럼과 환상문학 구상을 하던 중 친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던 것이다. (딱) 그렇지~ 하면서 전화를 받았는데>
    이처럼 완성한 칼럼을 심사부에 제출했다. 
   「와, 오빠! 오빠가 NB야? 오빠 재밌다.」
   「네? 어. 나 능력없어. 재능 그만그만. 잔재주는 돈이 안돼. 다만 잔소리는 들어줄 수 있지. 잔뻔치? 말해 뭐 하겠니. 맷집 바닥난 김에 얻어맞다 얻어맞다 독이 올랐을까? 잠만 늘었어. 그래. 무기력증. 근데 그대와 난 어떤 사이지? 하긴 우리가 만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관계를 정의하긴 좀 이르지. 근데 일단 뭐 마실 거 없을까? 목이 마른데.」
    그녀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에스프레소 1 + 저지방 우유 1"를 내 앞에 놓아주었다. 
    뭐 마셔라 마셔라 마셔라 마셔라~ 술이 들어간다 쭉쭉......? 
    설마 날 보고서 환상머신이 되어주란 얘긴 아니겠지? 하긴 휴양지로 떠나나 집과 사무실만 오가나 재미도 없는데. 여기서 이름 모르는 아가씨한테 나이를 묻지 않고 노는데 얼마나 좋아. 내가 뭐 어디 적을 뒀나 얽매인 장르가 있나. 바가지 긁는 수다머신도 없어 얼마나 좋은 날인가. 근데 실상은 품위유지비 없음에 적지 않게 놀라고, 아는 여자애들 몽땅 떨어져나간 데 더 깜짝 놀람. 이게 뭐냔 말이다. ~라는 찰나 우연치고는 너무 아름다운 아가씨가 대체 왜 내게 호의를 보이지? 난 궁금했다. 그럴 이유가 없었으니까. 그러다가 그녀는 잠시 저쪽에 볼일을 처리하고 다시 온다고 했다. 물론 지금이나 되니까 하는 말이지만 당시 그녀는 그렇게 떠나서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그럼 그때 난 뭘 했을까? 한참 빠져있던 취미 바로 공상 말고 뭐 있겠나. 바로 이처럼 말이다. 
    말하자면 톰과 제리인지 뭔지는 또 말다툼 시작했다. 왜 사랑싸움 안 하나 했다 글쎄. 보아하니 이젠 하다 하다 공상도 진화를 거듭한 끝에 대화형! 





    8

   「뭘 그렇게 꼬치꼬치 캐물어? 보고 싶어? 아니, 잘못 말했네. 듣고 싶어? 뭐, 하고 싶다고? 그니까 뭘? 그게 아니라 입도 뻥끗 안 했다는 거잖아? 손도 까딱 안한 게 죄야 넌. 욕심 내야지 왜 욕심 안 내? 허당의 허욕은 허탕으로 끝날까 봐 또 떡밥뿌리기라니 글쎄. 진공청소기 작전 때려치고 직접 나서라고, 어? 산이 마호메트 쪽으로 오지 않겠다면, 마호메트가 산으로 가야지. 왜 가려고 했는데 또 딴년이 눈에 들어오니? 또 첫눈에 반했어? 첫눈에 홀딱 반하기가 뭐 취미니? 잘났어 정말~! 거 참 취향 고급스럽군 그래. 그게 아니라 아무런 의욕이 없다고. 성욕마저? 까다롭게 굴기는. 남자가 그렇게 깐깐해서 큰일 어디 하겠나. 배짱없이 속좁은 남자 나중 여자가 퍽이나 이뻐하겠네. 그 허접함으로 허영심녀한테 귀염받으시게? 야망 한번 꼼꼼하시군. 누가 난잡한 촌닭 아니랄까 봐. 혹시, 그러다 더 허접한 촌놈한테 밀릴까 봐 겁나진 않수? 안 그래도 똥파리한테 까이고 하이에나한테 후순위로 밀렸다면서? 에잇 말 말자. 더 말해 뭐 해!」 
   「이거 왜 이래! 제발 소원이니 한번만 만나달래는 여동생들이 대체 몇 명인 줄이나 알아? 어? 걔네들 잔소리 옮기자면 이래. 오빠, 제발 한번만 만나줘요. 자주 귀찮게 하진 않을께요. 오빠가 하라는 대로 한다구요. 그 뭐든지요. 아님 그냥 제가 오빠 먹여살릴까요? 반말 좋아하면 반말, 존댓말 원하사면 존댓말. 아하, 밤과 낮 알아서 다르도록? 아하 오빠 그런 거 좋아하시는구나. 알았어. 좋았어. 딱 좋다고! 내가 오빠 마음을 녹여드릴께요. 네? 그러니 우리 부디 당장 데이트합시다. 네? (......휴......) 캬~ 어? 내가 이런 사람이야. 여자? 뭐 여자? 여자라면 신물이 난다고. 그래서 우리는 여자 보기를 돌 보듯 하는 것. 어른들 사심 뿐만 아니라 말발부터 건들기 얼쩡얼쩡 알짱알짱 간보기 뜸들이기 떠보기 말돌리기 표정과 몸짓이든 뭐든 능글능글하듯, 우리들 역시나 여자라면 징글징글. 우린 숙녀 관심 없음. 우리가 그분들 왜 챙겨드려야 하는데. 가라 그래. 됐다고 전해.」
   「너 같은 놈팽이한테 어울리는 격언이 있지. 그 신기한 속담이 뭔 줄 아슈? 바로, 현자는 긴 귀와 잛은 혀를 갖고 있다. 그래? 그래서 말수 없는 남자로 살았더니 여자가 얼씬도 안 해. 네가 그렇다니까 글쎄. 어?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 쾌락은 행복하고 진한사랑은 달콤하며, 노껀수는 재미없고 권태는 심심하다. 아주 그냥 더럽게! 어? 지금 놀지 그럼 언제 놀아?! 다 늙어서? 빨리 익으면 빨리 썩을 거 같지?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고, 일찍 성숙했던 그분들이 너무 조숙할 필욘 없다며 허세 허영 허풍을 쥐락펴락 말장난하시니까 뭐 진짜로 그런 거 같지? 여름해가 일찍 뜨면 여름해는 엄청~ 늦게 진다네. 허허허허허. 세월은 타락마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게 그러니까 막살자 그런 말이 아니라. 나이들수록 민무늬 면티만 입고 유행가 관심없다니까 일부러 젊은 척. 그럼 자네만 피곤할 걸세. 허허허. 허허허허허. 하나 더 듣고 싶나? 뭐 어려운 일 아니니 그럽시다. 공부만 하고 놀지 않으면 아이는 바보가 된다. 캬~ 어? 근다고 내가 어린애란 말이 아니라! 아니, 사람이 어떻게 일만해? 우리가 진짜로 런닝머신이야 아니면 ATM이야? 그도 아니면, 어? 난 우머나이저 넌 터미네이터? 놀고 있네 바보들! 그 대표주자는 뭐니 뭐니 해도 너! 바로, 너!」 
   「뭐? 뭐가 어쩌고 어째?」
   「어이 친구 거 소심하게 왜 그래! 약해? 약하면 미풍을 강풍으로 올려드리고. 말씀만 하시라니까요, 네?」
   「거 정말 보자 보자 하니까 누굴 맹물로 아나?! 어? 지금 말 다 했어? 어?」
   「부추김이 약했다면 용서해줘. 뽐뿌질 방법은 많고도 많으니까. 안 그래도 너가 조잡한 칼럼에 쓰는 글들 뻔해. 어? 사랑할 땐 화끈하고 놀 땐 소심하고. 그랬을지 아닌지 몰라도 인생을 신나게 바꿔볼까? 할 수 있어야 말이지. 그래서 당신이 여자가 없는 거야. 그러니까 늬가 여자가 없는 거라고. 알아? 알긴 개뿔! 그렇게 썩은 표정 짓지 마! 인생 한방이니까. 엉덩이 근질근질해도 잠자코 기다려보시라니까 글쎄. 안 그래도 입이 근질근질 막 그러진 않잖아? 말수 없으니까 여잘 못 꼬시지. 허허허. 호호호호호. 얼굴이 먹혀 목소리가 먹혀 아님 옷을 잘 입어 그도 아니면 돈이라도 많아? 아무것도 없잖아. 어째서 아무말도 없이 가만히 있어? 뭐 마땅히 받아칠 말이 떠오르질 않아? 것 봐, 그래서 늬가 안되는 거야. 어? 아시는지 모르겠는데, 아니다. 됐다. 뭐 알고 싶어? 근데 뭘! 아님 하자고? 그러니까 뭘! 어? 니, 내 누군지 아나? 뭐 또 아따 좋은그~ 워매 좋은그~? 것 봐유 거 보시라니께유~ 참말로 못 말린다니까 글씨. 넌 날 몰라도 난 널 알아. 정말로? 뻥이야. 허허허허허. 자, 몸 풀었으니까 본론을 말해볼까? 언젠가 네가 날 지니라고 불렀던 거 기억하지? 알라딘의 램프에서 오랫만에 나왔더니 입담이 통 멈추질 않네 그려. 좌우지간. 자, 말해 봐. 3가지 소원을. 재산목록 3개로 부족해? 그러니까 어서 무인도에 데려가고 싶은 3인방을 말해보라고. 대답 잘해. 끝났어. 시간 지났어. 그러게 말하라 그랬을 때 말 했어야지. 쯧쯧쯧. 쪼잔한 놈. 응큼한 녀석. 저질. 호색한. 색마. 변태. 밥통. 푼수. 곰탱이. 돼지새끼. 개. 똥개. 새. 참새. 벌새. 너구리. 두더쥐. 더러운 공상. 맞지? 아니 리가 있나. 왜, 눈에 뵈는 게 없냐? 아님 정곡이 찔리니까 할 말을 못하는 거니. 와.. 이게 대체 뭔 일이래? 근데 너 대체 얼마를 굶주린 거니, 응? 그 거 뭐야 말로만 듣던 굶주릴 대로 굶주린 늑대가 바로 너? 대단하다. 대단해. 짝짝짝. 이런 찌질이 하이에나 같은 놈. 왜 이리 조용하니? 늬가 졌지? 또 그놈의 패배주의 들먹거리시게? 넌 그래서 안되는 거야. 인정머리 없는 놈. 한심한 녀석. 불쌍한 촌닭. 아무튼 네 약점은 더티러브라는 거 역력히 드러났어. 네 욕망 여실히 노출됐다고. 알아? 아니 근데 너 거기서 뭐 하는 거야? 또 한눈 팔아? 저 봐 봐 저 보라고. (절레절레)」
    시간이 언제 지난지도 모르게 해가 저물고 있었다. 물론 주위에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난 뭔가 느낌 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건 아마 어떤 계략에 제대로 농락당한 듯한 기분이었다. 아닐 수 없으니까. 이런 쉬운 수작마저 직감 못 할 내가 아니다. 놀라운 추리력이 돋보여서도 아니고. 여자의 육감을 능가하며 제7의 신비를 촉지할 수 있는 무슨 신통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어린애라도 이처럼 의심쩍은 작전은 눈치채지 않을 래야 않을 수 없으니 말이다. 설마... 환상문학... 여성환상... 걔네들한테 작업당했을까? 아마도 그럴 가능성 농후. 걔네들이라면 예보 없이 날 가두고도 남으니까. 대충 알만 했다. 하긴 바쁜 일도 없고, 내부 시설도 괜찮은 데다, 뭐 하나 부족한 거 없지 나 혼자 여길 독차지하라고? 못할 거 없지. 말괄량이들한테 질 수야 없다. 버티면 된다. 언젠가 자기들 장난이 심했다면 굽히고 들어올 것이다. 끝까지 견디면 그 뭐야 교수들이 1년 2년 막 쉬는 것처럼 나도 걔네들과 업무 협상을 새로 맞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웬 낯선 숙소에서 내 감금생활은 시작됐던 것이다. 





    9

    그렇게 다음 날이 됐다.
    남자 나이는 느끼기에 달렸고, 여자 나이는 얼굴을 보면 안다. 하오나 숙녀의 나이? 묻지 말기. 그래서 아줌마 본인께서 말씀하신다, 누가 50 넘은.. 쉿! 
    근데 그런 생각을 왜 하지? 주위에 아무도 없는데 말이다. 
    그러다 핸드폰으로 소셜 네트워크를 보니 메시지가 있었다. 
    내용을 옮기기엔 너무 유치하니까 생략하기로 하고. 
    자기들 판매 부수 급락에 정기구독 떡락 때문에 피치 못하게 날 조커로 활용할 수 밖에 없단 얘긴데...! 
    당분간 져주기로 했다. 기왕 칼럼쓰기 대회장인데 분위기에 힘입어 대충 하면 된다. 못할 거 읎으니까. 
    Johann Baptist Vanhal / Missa solemnis in Eb major
    <다짜고짜 피서지로 떠날까? 그처럼 놀아봤자 어차피 들뜬 기운 열띤 허영 가라앉으면 돌아오고 싶어짐. 때문에 조용히 일이나 하는 게 낫긴 나음. 바캉스고 뭐고 집에서 마음껏 TV 보고 인터넷 쇼핑하며 먹고 마시는 게 좋을 것이다. 그래 봤자 아무도 관심 안 가지겠지만 말이다. 그걸 누가 알고자 하겠냐고. 보고가 늦었기 때문에 인공지능 지니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다면 또 모를까. 글쓴이가 누구라고 말은 안 하겠는데 NB 입장 대변해주는 거 증말 신물난다. 그놈의 능청 정말 징글징글허다. 혼자만 친하다고 일방적으로 생각한 끝에 바텐더한테 욕해주라질 않나 인생 잘 살고 있네. 하긴 와 정말 미치겠네 라는 엄살 누가 들어주냐고. 거 참 꾸준하다. 늘 한결같아. 또, 사람 마음 참 간사하다는 어른들 말씀에 쓱~ 묻어갈 궁리? 그렇다고 자기 연민 대회에서 끼워주기를 하나 허풍잔치에서 초대를 하나. 허세마저 웬만한 촌닭들한테 명함도 못 내밈. 그래서 축 처진 어깨 뿐만 아니라 어중간한 어좁은 동네 바에 들려 여심에게 노크하려 하는데. 여바텐더 없습니다 바텐더 남자입니다! 뭐? 이런 젠장. 그러니까 말이지 허당들의 낙원은 어디일까, 한량에게 천국이란 무엇일까. 그런 쓰잘데기 없는 생각을 뭐 하러 하냐고. 돌았나? 누가 돌아! 뭐 하러 도냐고. 얼마면 되겠냐, 어? 1장? 2장이면 돼? 뭔 소리야 쟤 뭐래! 걘 곧 엉터리 예언가이자 돌팔이 안다박사님. 무기력한 가택감금에 시달리는 심정 이해한다 이해해. 이처럼 녀석의 썩 유쾌하지 않은 심기와 필자의 마음이 동기화됐기 때문일까? 난 녀석의 환청을 이렇게 옮길 수 있게 되었다. 
    "이웃집 닭은 거위다. 원래 남의 떡이 커보이는 법. 그럼 그림의 떡은 얼만큼 탐스러울까? 말해 뭐 해! 그래서 못 먹는 감 찔러나 보는 것일까? 그러니까 미리미리 어딜 넘 봐 라는 듯 개침을 주의하는 것. 사랑이 뭐 딴 게 아님. 허나 사랑의 아리아라는 게 말이지 세레나데 부를 때야 꽃피는 춘삼월이다만, 잡은 물고기한테는 밥을 주지 않는 것. 하늘을 봐야 별을 따지. 물론 말이 그렇단 거고. 그렇긴 하다만 난 촌닭 그녀는 백조라... 이거 정말 세상 불공평하다. 모르는 바는 아니다만.... 고로, 고로는 뭔놈의 고로?"
    한편 NB는> 
    여기까지만 작성해서 메일로 보냈다.
    근데 설마 걔네들 이걸로 날 유령작가로 만들려는 거 아닐까? 
    과연 언제가 되어야 걔네들이 날 풀어주지? 
    일단 두고 보기로 했다. 





    10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1주일 경과되었다. 
    전화로 설득하고, 법정대리인을 보내서 회유하며, 물량공세도 마다하지 않았다. 
    자기들 장난이 심했으니까 그만 오빠 제발 그만 돌아와달라는 거였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 오빠 오빠 제발 한번만 만나주세요, 네? 
    ~라는 말 우리가 언제 들어봤기를 하겠나 기대를 하겠나. 
    형이 여자 꼬셔줄께 라면서 괜히 후배 예감을 들쑤셨다가 면박이나 안 당하면 다행이지. 
    당시 녀석은 새파란 놈이 형한테 인상 팍 쓰면서... 됐다. 걔가 나한테 날라차기를 안 맞아봐서 그랬겠지. 날 몰랐으니까. 
    한편, 여성환상 1.5 사라한테 전화가 걸려왔다.
   「오빠. 정말 안 돌아올 거야? 오빠 정말 그러면, 어? 오빠 진짜 그렇게 나오면 나 꼬부랑 할머니 될 때까지 수절하는 수가 있어.」
   「뻥치지 마. 안 속아.」
   「오빠. 내 친구 소개시켜줄께. 물론 오빠 마음에 쏙 드는 애들로 이미 7명 엄선해놨어. 내가 누구야, 어?」
   「너 저번에도 그랬다가 내 썩은 미소 보면서 완전 좋아했잖아. 또 골탕먹이게?」
   「안되겠다. 그럼 애들 보낸다. 그래도 되지?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어?」
   「뭔 애들! 웃기지 마. 하나도 안 웃기니까. 난 가기 싫어졌어. 내가 왜 돌아가야 하는데. 날 여기 눌어앉도록 만든 건 너네들이야. 벌서 잊었어?」
   「그러니까 이제 그만 우리가 선사하는 호사, 오빠의 마음보다 앞서가는 사치, 우리 함께 시트콤이든 멜로드라마든 뭐든 재밌게 지낼 수 있는 줄거리와 특급호텔 숙박권 기타 등등. 선물 무한 제공한다니까 그러네. 그러니까 그만 퉁치자고. 어?」
   「내가 싫다고 했어 안 했어?!」
   「이 오빠 이처럼 꽉 막혔으니까 아직도 혼자지. 그러니까 오빠가 여자가 없는 거야. 호기심은 발동하는데 말 몇마디 섞어보니까 말이 잘 안 섞여. 어? 그래서 오빠가 안되는 거야. 알아? 오지 마. 거기 살어. 눌러 앉어.」
    다음 날.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뜬다. 
    오늘의 태양이 어제 희망했던 태양인가 몰라도 일단 날이 바꼈다. 
    음악이나 듣고 일이나 하자. Bach / <사냥 칸타타> BWV 208
    어차피 돌아가봐야 재미 하나도 없다. 누가 반기기를 하나 쾌활한 껀수가 있나. 아무것도 없다. 
    인생무상. 허송세월. 오늘 내일 하는 사랑 다 남 얘기.
    끝끝내 편집장 마라는 자기네 지사 전직원은 물론 타지사와 본사와 어디서 아르바이트생 겁나게 동원해서 대충 몇 백명 되는 숙녀들을 이끌고서 날 찾아왔다. 어디서 본 건 있어가지고 말이야... (절레절레)
   「야. NB. 이런 고인물 같으니라고. 늬가 뭐 영화 대부에 나오는 알파치노냐? 어? 늬 주제를 알아, 어? 우리가 그만큼 저자세 취했으면 너도 뭔가 성의를 보여야 하는 거 아니니?」
   「마음이 바꼈어. 움직이기 귀찮아. 날 그냥 내버려둬.」
   「뭘 내버려둬. 너 우리한테 손해배상청구 받아볼래? 어?」
   「할 테면 하라 그래. 겁나지 않아.」
   「아 나 이거 증말, 너 또 똥고집? 늬 마음대로 해.」
   「너네나 늬들 마음대로 해. 좋은 말로 할 때!」
   「얘 봐라.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응석. 응? 내가 늬 엄마니, 왜 나한테 어리광인데!」
   「내가 왜 늬 아들이어야 하는데. 난 너 같은 딸 둔 적 없다 너?! 나 너 아니어도 다정해야 할 추종세력 많아. 알아?」
   「뭘 알아. 어? 알긴 뭘 알아. 너 팬클럽 웹사이트 문 닫았어. 내가 걔 누구니 웹사이트 회장 롭 모를 줄 아니? 걔도 이미 내 똘만이야. 알아? 벌써, 옛날꼿날에 내 수하로 들어왔어. 굽히는데 안 받아줘? 허허허. 넌 놀아봐야 내 손 위야. 알아?」
   「몰라. 그러든가 말든가.」
   「그래. 뭐 우리 사이에 모른 체할 수야 없으니까. 원튼 아니든 필요한 거 꼭 긴요하진 않더라도 보내줄께. 옷. 만년필. 생필품. 피자. 포도주. 뭐 여자?」
   「내가 언제 여자래? 너 또 생사람 잡니? 어? 야, 어? 야, 가라. 그런 말 하려면 가. 어서 가. 너 때문에 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
   「그럼 내가 여기 살 줄 알았니?」
    그러면서 그 수백 명 되는 인원은 몽땅 가버렸다. 





    11

    욕구불만 탐욕불충족인 불여우는 마음이 벌렁벌렁한다. 오글오글 알콩달콩한 사랑? 그런 숙녀를 만족시켜드리지 못하는 늑대도 불안불안 조마조마 두근두근 심기가 불편하긴 여심과 마찬가지. 그래서 촌놈은 결국 시름시름. 알고 보면 아름다운 사랑에 대한 강경한 태도, 처음부터 있지도 않았음. 다채로운 과일들이 군침도는 먹잇감이란 말이 아니라. 그러니까 NB의 인생을 보아하니 마법의 주문에 무슨 문제라도 있나? 마술을 부릴 줄 알아야 말이지. 미완의 환상머신 왜 통 진전이 없냐며 길길이 날뛰지나 말기 전부터 능청꾸러기의 허세와 투정꾼의 허접한 응석을 어떻게 말리나. 못 말림. 안 말림. (이런 건 허당이 나서야 하는 거야, 알겠어 모르겠어? 어딜 쳐다 봐! 또 그놈의 흑심. 하여튼 남자들이란. 뭐 여자가 더 응큼하다고?) 그렇듯 노상 물고늘어지는 건 탐욕의 뒤꽁무늬 아니면 공상의 말꼬리. 미지의 희망은 사치스러운 습관이란 말이네. 정말로? 땡! 그래 봐야 거짓말. 다 뻥. 웬만하면 뻥. 안 그래도 변심. 흔한 게 변덕. 세계 허풍 대회 챔피언의 발랑까진 엉덩이에 키스라도 시도하는 게 차라리 낫겠네. 딩동댕~? 뭐! 김 빠진 맥주도 아니고 썩은 허영심. 더럽게 재미없기 밖에 더 해? 안되겠다. 이건 아니다. ~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래서 무엇을 작심했을까? 그건 모르겠고.
    따라서 나는... 뭔가 행동을 하려면... 그럴려면 도시든 휴양지든 둘 중 하나로 가야하는데. 이건 뭐 무인도나 다름 없잖아? (절레절레)! 난 괜히 오기가 발동했다. 하필 시동이 그렇게 걸리네. 걔네들이 다시 온다면 돌아갈 용의가 없는 건 아닌데... 정말 안 오려나? 매정한 년들. 그저 남자만 보면... 됐다 그래. 누가 아쉽데? 지들이 서운하지 난 결코 섭섭치 않음. 내가 그 얼마나 짠하지 않도록 내 전재산을 투자해가면서 커피를 사줬는데. 근데 뭐 걔네들 다 듣는 데서, 우리 직원들한테 웬만히 껄떡대? 뭐, 껄떡? 지금 말 다 했어? 아, 그때도 벌써 한참 됐다. 
    아무튼 최근 사연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A) 도시로 가던 중 칼럼쓰기 대회장을 보게 됨. 참가. 중간에 포기하고 가려는데 잡힘. 갇힘
    B) 의뢰인 또는 작업자의 설득을 계속 거절
    C) 녀석들의 설득작업은 계속 됨. 거절. 고립
    그럼 정말 여기서 연재 분량은 끝인 걸까? 그럼, 얼마나, 좋겠나! 아쉽게도 아직 방황은 끝나지 않은 것만 같았다. 그게 그러니까 자발적으로 돌아이 본색을 드러냈냐 하면 꼭 그렇게 볼 수도 없다. 왜냐하면 의도적으로 저쪽에서 리모콘을 누르고 흑마술 장면처럼 인형을 찌르고 맞추고 막 그랬으니까. 따라서 난 마침내 미쳐버렸냐 하면 그도 아니다. 좌우지간 여기서 끝내면 뭔가 볼품없다고나 할까? 그럼 또 사춘기 발정기 몽정기 응석 밖에 안되는데. 하긴 걔네나 나나 공범에 동업자요 조력자이자 순응자 동업자 뭐든지 아무거나 막 갖다붙일 사이이긴 하다. 왜 아니겠나.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꼬여도 이처럼 말도 안되도록 꽈배기가 되어버리다니. 어쩌다 사랑은 더러워졌을까? 그게 문제가 아니라 새로운 인생 살면 된다. 지금 절실한 다짐은 "할 수 있다 > 안되면 말고!"일 테니까. 근데 내가 지금 뭔 말을 하려던 거지? 거창한 무슨 광시곡을 쓰려는 거야 아님 또 공상? 그러게, 어? 하나만 해야지. 칼럼만 쓰던가 소설만 연재하던가. 두 마리 토끼 잡겠다더니 결국 고약한 심보라는 바늘을 적당히 솜사탕과 찜빵 같은 미끼로 포장해서, 막 그냥 떡밥만 막 뿌려대더니 심술만 늘었잖아?! 내 이럴 줄 알았다. 어쨌든 자기 밖에 모르는 숙녀한테 덴 게 얼만데. 타인의 바쁜 일정과 신나는 활약상과 기막힌 껀수를 배려하여 이제부터 줄거리만 간략히 옮기는 게 좋겠다. 그러자. 진작 그럴 것이지. 잔소리 그만하고. 





    12

    A) 마라와 사라 일당 예닐곱 명이 또 또 찾아옴. 접대. 대화. 줄다리기. 말다툼. 화해. 눈치작전. 회유? 떼쓰기. 독려...
    B) 난 심각한 말을 건네는 척 하다가 그녀들을 가둠. 중앙집중관리니 기타 등등 그 최첨단 제어시스템에 통달했으니 가능. 반나절 후 풀어줄 계획. 그렇게 나는 동네친구를 만나러 감. 이미 동네 남자들과 친분이 돈독. 동네 여자들이야 말할 것도 없음. 우리는 누구든 만나면 금방 친해짐. 그렇게 마을로 떠남.
    C) 동네친구들이 모인 아지트에 도착. 근데 다 어디 갔지? 알고 보니 꽃사슴이 탈출해서 그거 잡으러 갔다고 함.
    D) 동네친구들과 만남. 결국 동네친구들은 내게 따짐. 대체 왜 꽃사슴을 별장에 가뒀냐고. 뭐라고? 난 사라와 마라 등 내 여인들을 가뒀지 꽃사슴은 구경도 못했는데? 
    E) 내 별장에 도착. 정말로 사라와 마라 일당은 아무리 찾아봐도 없고, 달랑 꽃사슴들뿐!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난들 아나. 별들에게 물어보든 동네 똥개 탓을 하던가 해야겠지. 
    F) 다음 날. 나는 꽃사슴 목장으로 가서 내가 들어가고 꽃사슴들은 전부 내보냄. 왠지 그러면 마라와 사라 일당이 날 구하러 올 것만 같다는 긴박한 영감을 실행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 그런데 결과는? 동네친구들한테 험하게 꾸중듣고 혼쭐이 난 끝에 타협 없이 나만 망신당한 체 어정쩡한 시트콤은 끝남. 
    G) 난 고집도 아닌 고집은 없었던 걸로 하고 도시로 돌아갔다. 그 소식을 알고서 그녀들이 깐족을 참을 수 있었을까? 그럴 리가 있나. 인스타그램 댓글로 드러난, 대표적으로 그 깐족 가운데 딱 1개만 손꼽자면 이렇다. "오빠, 왜 벌써 와? 이럴 꺼면 뭐 하러 거칠게 반항한 거야? 또 앙탈? 아니면 뭐, 뭐 막, 뭐 딱 막, 뭐 사랑하자 사랑하자~ 또 뭐 가까이온다 가까이온다 눈부시다 눈부시다 뜨겁다 뜨겁다 옷을 벗는다 옷을 벗는다 키스한다 키스한다...... 이런 젠장! 또 그거? 가지 가지 한다. 정말 해도 해도 더럽게 재미없다고. 오빠가 그래서 안되는 거야. 어? 그러니까 오빠가 아직까지 혼자인 거란 말이야. 뭘 알아야 여자를 꼬시지. 여자 마음 뭣도 모르면서 대체 뭘 한다고. 응?"





    13

    전화도 핸드폰도 인터넷도 없던 시대에 당시 플로베르가 모파상에게던가 2시간 내내 정물화만 묘사할 줄 알아야... 어쩌고저쩌고 그랬다는 일화. 그야 고전음악 제1 전성기 얘기. 지금 세상에 드물게 고집스럽도록 수작업을 알아주는 분야도 있겠으나 아무거나 무엇에서나 그랬다가는... (절레절레). '잭 트라우트&알 리스'의 저작은 다 읽었는데 누군가 왜 피터 드러커의 작품은 시도는 하는데 띄엄띄엄 읽을까? 단언컨대 시대성 때문. 그 둘 뿐만 아니라 누구나 음악, 미술, 영화... 작품 정량과 반복이란 거의 정비례하는 것. 문학으로 넘어가도 화제성이 딴 게 아니니까. 그처럼 미술이라고 썩 다르지 않듯, 플로베르가 말한 대로 곧이곧대로 해 보시라. 미술대학교 위작 수업도 의미 없진 않다만 나중 과연 몇 명이나 전공으로 밥 벌어먹고 살아갈 것인지, 정말로 고전음악 전성기가 끝나버린 시대에 그분들은 미래 프랜시스 베이컨의 명성 반의 반의 반틈 만이라도 따라갈 수 있을까? 그 말은 뭐냐, 유명인들 말 걸러서 들으시란 말씀! 일단 무명에서 유명으로 바뀌면 무명이었던 나는 배후로 내려가게 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이 유명세 알게 되면 괜히 어쩌는 게 아니다. 부모님 말씀 대부분 옳고 좋고 현명하다만 어느 땐가 스스로 살지 않으면 안되듯 타석에 나 혼자 들어서는 게 인생. 마음 약한 여자는 남자 조심하고, 순진한 촌년 역시나 권위의 합리성과 무분별함에 대한 구분 꼭 필요하다는 뜻. 고리타분한 나보코프의 문학강의조차 기똥찬 분석 있고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말 따로 있는데... 그런데... (절레절레)! 전문가에 대한 맹신과 권위자 말씀 참조, 와 별개로 결정도 나 책임도 나! 피터 드러커가 그 얼마나 똑같은 말을 차마 셀 수 없이 반복했는지 말도 못한다. 했던 얘기 또 하고 또 하고 또 하고... 좋은 얘기도 있다만 태반은 구식탱탱묵은 잔소리들. 간접화법 대 직접화법만 해도 그렇다. 베팅연습기 장난감이든 진짜 베팅볼이든, 공을 끝까지 봐! 그랬더니 글쎄 진짜로 공을 끝까지 봐. 그걸 보는 아빠는 고개 푹 숙이니까, 아빠 왜 그래? 근데 커서까지? 그러니까 여자가 없지. 그래서 그나마 남아있던 아는 여동생들도 몽땅 떠나. 안 그럴 수가 없거든. 단기전에 대한 선구안도 별볼일 없지, 장기전 가 봐야 의무방어전이라면 표정 바뀌지. 인생이란 원래 쉽지 않다는 건 애들도 다 안다. 그렇다고 뻔트를 애호하면 뭘 하나, 그래 봤자 껀수가 없는데. 딱 봐도 플레이보이계 퇴출감이 아니라 남은 건 허무맹랑한 공상 밖에. 근데 어쩌다 또 필자가 NB의 신세 한탄을 대신해주고 있지? 애들도 안 하는 자기 비하, 그렇다고 녀석이 자기 합리화를 잘 할줄 알기는 하나 그러니까 이렇지. 걸핏하면 뭘 감상할 궁리 아니면 공을 골대로 차고, 구멍에 넣고, 방망이로 때리며 안 넣어도 될 거까지 넣을려는 망상까지. 못 본 척할 수 없는 심심함, 본 체 만 체보다 아는 체할 수 밖에 없는 재미없음. 무엇보다 권태가 일하기와 놀기를 양쪽에 꿰찬 게 제일 큰 문제. 그럼 이제 NB에게 본격적으로 촌년의 조증과 도시녀의 허언증을 치유해 줄 적기가 임박한 것일까? 임박 좋아하시네. 그걸 누가 바란다고. 무슨 말 같지도 않은 편들기,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일이다. 그러게 엄살은 기가 막히고 과장 심하며 투정 끝장인데, 왜 하필 맷집이 좋아? 맷집 좋은 거도 간접화법처럼 좋을 때가 따로 있음. 직접화법처럼 잘못 걸리면 어라~ 맷집 좋네? 더 신나게 뚜드려맞음! 누굴 흠씬 쥐어팼다는 건 영화 찍거나 소설 속 얘기고 현실에서 맷집은 몽둥이질을 절로 부름. 말이 그렇다는 거다만 코메디언조차 누군 맞어야 제맛이라고 하질 않나. 깐족 당하고 놀림 더 당하고 계속 깐죽! 그러게, 어? 축구선수들만 할리우드 연기력 연습하겠나, 맷집 약한 척 왜 못해? 생생한 쾌감을 안겨주지 못하는 숙명에 대한 때 이른 미련이고 자시고. 생각 많아봐야 성과는 행동에 의한 것. 남자는 집에 있으면 안된다 또 그 말이구만 그래. 누가 모를까 봐서? 그래서 NB는, 그래서긴 뭐가 그래서야. 됐다 그래. 누구한테? 그걸 알면 지금... 됐다 그러라니까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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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 ─ 171

from 소설 2020. 7. 30. 20:21

    1

    케케묵은 일하기. 촌스러운 놀기. 더럽게 재미없는 쉬기. 상투적인 건수 없음. 인생사라는 건 정말 모를 일이긴 하다만 선홍색 기대와 새콤달콤 예감을 양쪽에 꿰차지 못한 일상, 다름 아니라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두 귀는 백 개의 혀를 마르게 한다."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허둥대느라 칼럼 연재하면서 나름 품위 유지비 넉넉히 벌었는데, 내가 아니 NB가 왜 요새 편집장 마라와 본부장 사라를 피해 다닐까? 왜냐, 오빠 할 말 떨어졌지 라는 말 들을까 봐! 언제는 말이다 귓구멍을 메꿀 수는 없다는 둥 글쟁이는 글을 쓰는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둥 들었다 놨다 쥐락펴락 겁나게 막 난리도 아더니만. 어? 뭐 이제 와서는 딱 잡아떼며 모른 체 시치미 뚝! 의리없는 년들. 더럽게 응큼하기로 어디서 그 짝을 찾을 수 있어야 말이지. 내 그럴 줄 알았어. 걔네들 순 지들 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자. 넌 너 밖에 몰라 라는 말 퍽이나 많이 들었을 꺼야. 틀림없어. 근데 내가 걔네, 아니 필자가 NB와 걔 어장관리 걱정을 왜 해, 내 발등에 불이 떨어졌는데. 아니 말이야 바른 말이지 지들 기 빨릴까 봐 우려되어 일부러 자진해서 슬럼프에 빠진 건데. 뭐가 어쩌고 어째? 나도 바빠. 할 일 많음. 내가 왜 한가해? 하여 통상 스스로 바쁘단 걸 모르진 않는데. 근데 그게 말이다 지역 연고지 축구팀 서포터즈에 놀러나가면 들을 말 뻔하니 거기 나갈 수도 없고. 너 뭐 할줄 아는 거나 있냐? 축구팀에서 구멍은 아닐 테고 달변은 곧잘 하니? (절레절레) 남자 여왕벌들 50%에 친구없는 어리버리 촌닭들 반, 나머지 남자 여왕벌들 수발드는 성격 좋은 양반들 반. 거기 가도 영양가 없음. 재수없기 밖에 더 하나. 그럼 뭘 하지? 확 그냥, 푸른 바다와 빨주노초파남보 비키니와 젊음이 가득찬 해수욕장으로 떠나버릴까? 가 봤자 더워. 겁나 더워. 귀찮음. 어차피 가도 다시 와야 해. 아니면 수치스러운 사랑과 모욕적인 우정 둘 다 선사하는 애인과 데이트를? 추접스러움. 우리는 풋사랑 졸업한지 이미 옛날. 멜로드라마도 재미없고. 최고로 닭살 돋는 영화 장르는 거의 고문에 가까울 뿐. 비전 별볼일 없음. 그래? 
    그러므로 그는 결단을 내렸다. 냉큼 특단의 대책 건너뛰고 냅다 행동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렇게 NB는 팬 사이트 회장 롭과 축구경기를 보기로 했던 장소에 도착했다. 
    아직 아무도 없길래 그는 롭한테 전화를 걸었다. 
    근데 전화를 받지 않네? 느낌 세했다. 
    뭐지? 곧바로 롭한테 전화가 왔다.
   「너 왜 안 나와?」
   「왜 안 나오다니? 어딜?」
   「우리 같이 축구 보기로 했잖아!」
   「우리, 같이? 남자들끼리 축구를 왜 봐? 아는 여동생들 커피 사주기도 바쁜데. 나 따라다니는 숙녀들 번호표 발부하며 만나주기도 벅차. 나 인기 많아 귀찮다는 거 형 모르지 않지? 그 가운데 최고의 숙녀와 더없이 아름다운 여인들을 엄선해서 형한테 소개시켜주려는 내 마음. 형 나 나중 팽당하면 섭하다. 나 걔네 관리하려면 뻗치단 말이야. 근데 내가 언제 형이랑 축구 약속을 했지? 난 그런 적 없는데.」
   「그래? 그럼 너가 아니었나? 아닌데...」
   「내가 아닌가 봐. 형 요즘 상태가 안 좋은 게 아니라 형 원래 좀 그래. 설마 부정하는 건 아니겠지? 성격 나쁜 나랑 형은 다르니까 뭐 난 형 걱정 안 해. 만약에 나랑 형이랑 축구 같이 보기로 약속을 했더라도 형이 아마 나랑 놀도록 여자들이 가만 놔두질 않았을 걸. 그렇지? 내 모를 줄 알어? 형, 내 레이더 시피보지 마. 응? 형의 일거수일투족 다 내 레이다망에 걸리니까 말이야. 안 그래도 최근 축구 재미없어. 게다가 사람들도 집에서 밖에 잘 안 나가. 심지어 웬만한 남자들도 여자 뒤꽁무늬 쫓아다니기 지쳤대. 시선 분산하는 거조차 싫증나는데 왜 아니겠어. 형이 잘 생각해 봐. 아마 형이 낮잠 자다 개꿈꿨을 테니까. 아무튼 나 아가씨 만나러 가야 해. 이만 전화 끊는다. 나중에 통화해. 내가 곧 있으면 괜찮은 여자 소개시켜줄께. 형 나 믿지? 뻥 아니야. 진짜 아니야. 진짜로 뻥 아니라고.」
    뚝.
   「늬가 소개시켜준단지가 벌써... 뭐야. 전화 끊겼잖아?」
    이제 어떡하지? 어떡하긴 때마침 비가 왔다. 소나기. 
    그는 우산도 없이 흠뻑 젖어버렸다. 
    그렇다고 곧장 집으로 돌아가기엔 왠지 허전할 테지. 
    고로 그는 사무실 소파에 자빠져 TV를 틀었다. 





    2

    멜로드라마에서는 말다툼 중.
   「가난하게 자란 게 무슨 자랑이니? 꼭 보면 찌질한 촌닭처럼 못 배운 티를 낸다니까 글쎄. 누가 허접한 가문 출신 아니랄까 봐. 누가 무능력하단 걸 몰라봐줄까 봐 감히... 주제도 모른 체 설치는 저 꼴 좀 보란 말일세. 나대긴 어디다 나대. 너 학교 다닐 때 별명이 '나대지 마' 였지? 안 봐도 비디오다. 여자들이 상대하면 황당해라 하는 못생긴 암컷 싸움닭, 좋게 걔네들이나 찾아 봐라. 너랑 천생연분일 테니까. 어딜 넘 보냔 눈치 모른 체하기 힘들지 않니? 너 집에서 그렇게 배웠니? 부모 망신 웬만치 시켜라, 어? 여자들이 아니 사람들이 어디 너만 욕하겠니. 근데 이상한 게 거 보면 참 나 무슨 지가 뭐, 정말로 챙피한 줄도 몰라요. 기가 막힐 일이지. 넌 돌쇠감도 안돼. 알아? 너랑 사랑하고 결혼하면 여자들 신세 망치기 딱 좋다니까 글쎄. 어? 너처럼 숙녀 알기를 띄엄띄엄 아는 놈은 외로워야 해. 버릇 없어도 유분시지 늬가 무슨 초딩이니? 그 나이 먹도록 뭐 했니. 놀았니 일만 했니. 근데 돈이 없어. (몸짓) 졸라 이기적인 새끼 어떻게 지 밖에 몰라?! 이 험한 세상을 사는데 남 생각 안 해? 바보야? 돈 없이 사랑을 하겠다고? 딴 데 가서 알아 봐라. 무엇보다, 넌 가서 거울이나 보고 와. 꼭 보면 너 같은 애들이 나중 마누라 뚜들어팬다, 너? 내기에 져 게임도 못 해 베팅은 더 못해, 그래서 여편네 엎신여겨. 어? 넌 딱 봐도 마누라 등쳐먹는 관상이야. 알아? 야 뚜벅이! 늬가 무슨 고독한 사냥꾼이니 뭐니. 내 새끼손가락만한 촌놈, 내 새끼발가락만도 못한 그거. 부끄럽지도 않나 몰라. 얼굴 두꺼운 걸 무슨 큰 복이나 받은 줄로 아네 그래. 멍청해도 좀 정도껏 멍청하자, 응?...」
    ~라는 멜로드라마 대사가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서 NB는 이처럼 공상을 남발했다. 
    <의심의 여지가 없는 중년 허당. 더불어 그분의 절박한 체통. 허나 이상과 달리 현실은 현실은. 달콤한 사탕을 향한 번득이는 개침? 탐스러운 공상 그만 좀 하자. 그 말 같지도 않은 몽환의 제1인자가 누군고 하니 다름 아니라 누구라더라? 신뢰감 두둑한 소식통에 의하면, 소식통 연락 두절. 그래서 추측컨대 보아하니 NB는 고독한 사냥꾼의 눈길을 내리깔지 않을 수 없었다. 보나마나 뻔해. 어디 사랑만 뻔하겠나. 그럴 리는 없다. 그러므로 귀동냥으로 듣자하니 그는 젊음의 행진을 위해 건수를 찾고자 안간힘을 쓰며 내 사랑 찾기는 이미 포기해버린지 오래. 안 그럴 수가 없거든. 생각하는 거 하고는, 아휴 민망해! 그런데 갑자기 아니 어떻게... 내 새로운 인생이 이리도 흥미진진할 수 있다니! 라는 NB의 생각 물론 뻥이다. 신비스러운 사랑, 다 남 얘기. 진공청소기처럼 여심을 빨아들이는데 인기를 뭐 하러 구걸하나. 이거 봐 이거 봐 또 전화온다, 오빠 제발 한 번만 만나주세요... 오빠 오늘 정말 재밌었어요... 질리지도 않나 몰라. 그래 봤자 형이 여자 꼬셔준다면서요 근데 왜 말도 못 걸어요? 아니면 날라차기를 재현하기를 하던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어? 우리는 오빠라는 말만 들으면 미쳐버린다? 그럼 뭘 해!>





    3

    당나귀가 너무 편하면 비밀을 폭로한다. 그렇듯 세상사란 은근 기분 좋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비밀을 털어놓는 코끼리가 되도록 부추김당하는 것. 과장광고에 넘어가면 골치아프다. 안 그래도 병풍 배역을 노골적으로 암시하거나, 잔치상 차려지건 말건 일단 숟가락부터 올리기는 흔하디 흔함. 그래서 푼수는 만사를 떠벌리기 좋아하는 것일까? 그러거나 말거나 웬만한 허당들조차 말하기 좋아하고 나서기는 더 좋아함. 어떻게 말려? 나대지 말란다고 말을 들으시겠나. 그러므로 사람은 이타적인 가운데 이기적이지 않으면 안된다. 근데 말이다 쾌활한 자긍심과 때 묻었다가 말끔히 치유된 자존심, 나름 북돋워주며 칭찬한다 치고 녀석들한테 어떤 호의를 베풀지? 내가 내게 선물을? 호사는 됐고 망신이나 당하지 말자. 순수한 자존감 상처입을라. 순진한 촌닭이라고 순정 없을까. 근데 대체 뭔 얘기를 하다 말이 길어졌지? 하여간에 NB는 1부 리그 쉐도우 스트라이커는 커녕 7부 리그 리베로로 쓰기도 아까움. 그래서 그는 역시나 문턱이 닳도록 아지트에 들락날락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거기서 친구들과 나누는 정담들이란 매번 이런 식. 예를 들면, 
   「친구. 최근 어떻게 지냈어? 내겐 보나마나 재미난 일 없으니까 자네 근황이나 털어놓으시지.」
   「나? 뭐 그냥. 난 항상 그날이 그날이지. 늘 그래.」
   「뭐 그놈이 그놈이라고?」
   「내가 언제 그년이 그년이랬어?」
   「그거나 그거나. 근데 너 어째서 발끈해? 무슨 일 있어? 누구야? 어? 남자인 네가 생리할 리도 없고. 왜 그래, 친구?」
   「난 미치지 않았어.」
   「누가 너 돌았다 그러든? 누가 그래? 걔 오라 그래. 내 이 자식을 그냥...」
   「내가 봤을 땐 나보다 늬가 더 걱정이다. 너 상태가 많이 안 좋아 보여. 열 있냐?」
   「그럼 넌 몸이 차갑냐? 손이 차가운 숙녀가 생각나는군.」
   「너가 그런다고 나까지 홍조가 유독 돋보이는 아가씨가 기억나는 건 아니야. 뻠쁘질은 사양하겠어.」
   「그럼 너가 먼저 꽤 괜찮은 껀수를 하나 제의해 보던가.」
   「글쎄 내가 선제적으로다 밑장 빼기로 히든카드를 선보인다고 가정한다 치고, 그걸 과연 너 따위가 감당할 수 있을까? 난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보는데, 쟤들은 아니라고 볼걸.」
   「그게 뭔지 못 이긴 척 승락하든 단호히 거절하든 벌써 듣고 싶은 마음 싹 가셨어.」
   「뭐 또 변심? 너 여자냐?」
   「아이쿠 사돈. 자네 허영심이나 관리하시지.」
    매를 저녁식사에 초대하는 꿩들은 어리석다. 
    이거 이거 돌아가는 아지트 분위기를 보아하니 오래 가지 않아... 뭔가가 걱정스럽다. 
    뭐야? 하다 하다 이젠 대화법 공상? 잘한다 잘해. 잘났어 정말. 
    그때 갑자기 조지한테 전화가 걸려왔다.
   「웬일이야 슈퍼스타께서?」
   「나 여자친구랑 헤어졌어. 친구, 나 위로해줘.」
   「또?」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그렇게 NB와 조지는 만났다. 
    Mendelssohn / Violin Concerto in e minor op.64 / Gioconda de Vito(violin), London Symphony Orchestra, Malcolm Sargent 1951
   「근데 음악이 이게 뭐니? 넌 날 어디로 데려온 거야?」
   「여자는 음악으로 잊는다. 안 들어봤냐? 처음이면 지금 시도해 봐. 직방 먹힐 테니까.」
   「뭘 먹혀! 내가 뭐 탐스런 과일이냐? 왜 내가 꽃이어야 하는데. 저 군침도는 과일들 너 혼자 다 따먹을려고?」
   「진정해 친구.」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
   「근데 왜 헤어졌는데?」
   「다퉜어.」
   「뭘로?」
   「여자 문제.」
   「늬가 잘못했네.」
   「아니야. 걔 어장관리가 더했으니까. 내 아는 여동생들보다 딱 2배 더 많더라고. 끈끈한 남녀의 우정이 말이야.」
   「그래?」
   「안 그래도 오래된 거 같아.」
   「뭐가?」
   「난 세컨으로 옛날에 밀려났는데. 근데 나만 몰랐던 거지.」
   「정말?」
   「넌 내가 거짓말하는 거 봤냐?」
   「어. 아니? 어. 아닌가?」
   「지금 내가 뻥칠 기분이냐?」
    바로 그 순간. 조지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옆에서 대충 들어보니 무척 가까운 사이인 듯 한데... 알만 했다. 
   「나 갈께. 오빠 제발 한 번만 만나주라고 난리다 글쎄. 너도 갈래? 근데 늬가 왜 가. 따라오지 마. 나대지 말란 말이야. 어? 나 간다 친구. 다음에 보자.」
   「저 자식 뭐야!」





    4

    오락산업에서 병풍으로 쳐주지도 않긴 한다만 나름 NB의 현황 점수판은 이렇다. 허당계에서 1.5군. 허접한 카바레랄지 후미진 바에서 손님으로 2진. 행복업에서 삼류. 플레이보이계에서 퇴출. 그럼 재산은? 말해 뭐 해. 비밀은? 본인 거는 물론 할 말도 떨이지는 걸로도 모자라 타인에 대해 폭로할 잔지식도 깡통. 이걸 어째? 어쩌긴 뭘 어째. 동네 산책이나 해야지. 이게 다 틈틈이 고기를 먹어주지 않았기 때문일까? 그는 내일 당장 날으는 돈까스를 먹겠다고 다짐했다. 허나 팔랑귀는 여인의 마음처럼 변덕이 심한데 이걸 어쩌나. 먹음직스런 피자도 먹고 싶네? 하지만 최근 쇼핑 목록 작성하면서 돈 아끼느라 변심은 금물. 그래서 아예 더 싼 거 먹을 수 밖에. 그게 그러니까 지 주제를 알아야지, 어? Mercadante / 오페라 <비르지니아 (Virginia)> “이칠리오, 당신을 사랑해요!” 그런 고상한 음악도 다 권태로운 부자, 이타적인 지식노동자, 한정판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나 어울리지. 지 입에 풀칠하기 급급한 형편에 그런 오페라가 뭔 내용인 줄이나 알아? 물론 모르면 어때. 하오나 그 인간은 내 생각과 타인이 보는 시선이 다르다는 게 제일 큰 문제. 곧 혼자 봤을 때만 잔근육 빡선 남자, 결국 잔재주 팅팅 녹슨 늑대. 결국 그는 갈 데까지 갔다. 사는 게 더럽게 재미없었던 것이다. 이런 시국이라면 어려운 생활고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살며 밝은 모습 잃지 않는 다큐멘터리를 2~3분 언뜻 보는 게 제격인데. 꼴에 지도 남자라고 최근 패션에 꼿혔네? 심지어 어디서 주서들었는지 몰래 엿들었는지 아지트에서 여자들 드레스코드가 유독 호피 무늬가 많이 보이면, 일부러 촌스러운 부츠와 대략 분위기 뻔하면 바로 그 주 일요일에 남녀 성비가 허당한테 최적화된다는데. 글쎄 물 반 고기 반도 아니고 엄선된 숙녀 9명에 남자 1명? 놀고 있네. 지 맘대로 막 다 그냥 은근한 예감 때문에 어떤 숙녀의 어장관리에 매수당하길 바라다니 꿈도 야무지다. 그러니까 기대는 곧 실망. YB가 진정 한심한 작자인지 아닌지 의중을 떠볼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그는 정녕 더티러브를 생각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썩을놈. 개자식. 호색한. 난봉꾼. 어? 하여튼 여자 겁나게 밝힌다니까 글쎄. 뭔 전생에 사랑을 못해서 원한이 쌓인 귀신이라도 씌었나? (절레절레) 그렇지만 옆에서 알게 모르게 이런 걱정해줘도 걘 신경도 안 쓴다. 주위에서 알 듯 모를 듯 이처럼 지 생각하면서 신경써줘도 통 고마운 줄을 몰라요. 일단 말귀를 잘 못 알아들어. 대놓고 말하면 그때사 직접화법으로 겨우 끄덕끄덕. 아니면 간접화법으로 넌지시 운을 띄우면 빈말을 순진하게 믿기나 하고. 그게 뭐야, 어? 날라차기를 지가 왜 해? 또 어디 가서 총대를 매시게, 약속장소에 나가도 아무도 없어. 바보도 그런 바보가 없단 말이야. 참말로 정녕 바보업계에서 최고. 단연 압권. 미련곰탱이 같은 놈. 물론 친구끼리 분위기 잡고서 터놓고 솔직해지는 자리에서 이 모든 걸 대놓고 말해주면 뭘 해? 한마디로 그런 건 허당이 알 게 아니라면서 상남자 흉내내기 밖에 더 하냐고. 
    좌우지간 오늘 바로 기다리고 기다리던 기일, 즉 아지트의 성비가 그야말로 기가 막히다는 날. 그는 갔다. 선수 입장이 과연 어떤 흥분과 짜릿한 절정을 불러올지 모르겠으나. 믿을만한 소식통으로부터 주서들은 풍월, 일단 믿고나 본 것이다. 정녕 기대가 크면 상심은 훨씬 클 거라고 사전에 예상치 못했을까? 조잡한 탐욕과 추잡스러운 사랑 생각 뿐인데 당연히 못했겠지. 알만 하다 알만 해. 쯧쯧쯧! 그렇게 NB는 아지트로 갔다. 
    아지트에 갔다 온 결과는? 넘어가자.





    5

    타락마는 허당의 포위망을 빠져나갔다. 따라서 이제 허접한 패배주의가 나설 차례다. 잃을 게 없으니까. 그치만 어느 숙녀가 그걸 반긴다고! 내 말이 그렇다니까 글쎄. (절레절레) 그렇다면 지금이 곧 희대의 야심작을 쓸 절호의 기회일까? 미완의 환상머신 만든단지가 언젠데. 보나마나 개뼉따귀 개나 좋아하지 그걸 누가 눈독들인다고. 근데 왜 갑자기 불똥이 똥개한테 튀어? 새똥 살면서 한 번도 맞아보지 않은 게 어딘데. 바나나 껍질 밟고서 넘어져보지 않은 것만 해도 나름 선방한 인생. 그럼 뭘 해, 그래 봤자 아는 여동생들 은근히 NB를 피하다 급기야 아지트 발길조차 끊었음. 냉정한 년들! 누가 지들 행복한 연애사가 궁금하데? 잘살라 그래 관심 없으니까. 필자가 아니라 NB가 말이다. 하여간에 그 녀석은 제정신이 아니란 말이야. 마침내 미친 건가? 뻔뻔한 녀석 같으니라고. 하긴 불여우들한테 당할 봉변을 면한 게 어딘데. 멜로드라마 주인공 낙점 못 된 거나 막장드라마 주인공으로 낙찰 안 된거나, 그 둘로 퉁치면 되겠네. 그러니까 인생 복잡하게 생각하면 안된다니까 글쎄.
    한편, 그러던 어느 날 정말로 NB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아가씨가 그놈을 유혹하게 되었는데... 진짜로? 뻥이다. 그럴 리가 있나. 뿌려지는 떡밥조차 구경한지 오래. 왜 아니겠어. 이제는 하다 하다 진한 사랑을 어떻게 하는지까지 까먹었을 거야. 걔 인생이 그래. 날조된 허세가 먹히겠어 허영심을 쥐락펴락할 줄 알겠어! 뭘 해도 재미없기 일쑤. 어차피 언제나 심심하기 마련. 그럼 이제 어떡한담? 내가 왜 그 녀석 걱정을 해 줘, 뭐 지가 알아서 하겠지. 나이 허트루 먹지 않았다면 말이야. 때문에 녀석의 인생사 좌우명 소상히 알고자시고 할 것도 없이 우리는 줄거리 전개만 전달하면 그만. 딱 그만. 자, 그래서 어떻게 됐냐! 어떻게 되긴 뭘 어떻게 돼. 시작부터 끝까지 발단뿐이지. 누가 아니래? 따라서 자~, 막 그러면서 또 진행병 따라하거나 허언증 도지거나, 수전증과 거북목 증후군 사이에서 헷갈리다 공상 못 끊고 있겠지. 그처럼 환상문학잡지에서는 SF 연재물을, 여성환상 1.5로부터는 칼럼 독축을 받아 쫓기는 입장. 그가 갈 데라고는 사무실 밖에 없었던 것이다. 
    아니?! NB는 누가 허당 아니랄까 봐 벌써 마음이 바꼈다. 툭하면 변심은 여자의 특권일 테지만 변덕으로 그도 결코 만만치 않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그는 한적한 호텔로 집필 여행을 떠났다. 롭이 어디를 알려주긴 했는데 그건 공개할 수 없고. 안 떠났다간 보나마나 이런 공상인지 환청인지 그 때문에 골머리를 앓을 테니까 말이다. 하긴 줄거리 없는 소설 짜증나니까 그럴 것이다. 뭘 해도 발단 뿐인 연재 마감일, 매번 코너에 몰려서 맷집만 키우니 안 그러게 생겼나. 알 만하다 알만 해. 
   「이게 까불고 있어, 지가 멍청한 줄도 모르고. 허접한 촌닭이 말이야. 알아들어? 이 바보 같은 놈. 너 아직도 여자라면 껌뻑 죽니? 그저 숙녀라면 사족을 못 써? 누가 사랑에 환장한 놈 아니랄까 봐. 여자를 소개나 시켜주고 생색을 내든 야단치든 하라고? 너 같으면 그러겠냐. 왜 심기가 불편해? 불쾌하겠지 왜 아니겠니. 듣고 있기 썩 거북한 모양이로군. 일하기는 싫고 놀기는 싫증나고. 쾌락은 안 싫증나는데 껀수는 없고. 한심한 허당아 널 보면 생각해주는 내가 답답하다 답답해. 넌 답이 없어. 알아? 알긴 뭘 알아. 어?」 
   「나도 말 좀 하자! 네 입은 마우스고 내 입은 뭐 새 주둥이냐? 난 뭐 미련곰탱이라도 된단 말이냐? 어? 그러고 보니 말이야, 어? 내 수하에 대기중인 여동생들 그 아찔한 사랑의 차트. 걔네들 늬가 다 빼네갔지? 어떻게 꼬드겼어? 당장 불어. 대체 무슨 헛바람을 주입시킨 거야? 걔네들이 귀신 신나락까먹는 소리에 넘어가든? 아닌데. 그동안 내 환상머신의 신비감에 취해서 딴 건 하나도 안 들릴 텐데. 이상하단 말이야. 하긴 뭐 여기 너랑 나 밖에 더 있냐. 솔직히 말해서 걔네들도 나한테 질리고 나도 걔네 지겨워졌고. 정말로? 뻥이야. 가라 그래. 누가 붙잡는데? 그렇게 갈 사람이면 애초에 사랑학을 가르쳐주지 않은 건데. (절레절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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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 ─ 170

from 소설 2020. 7. 15. 23:42

    1

    환상머신은 미완성. 입만 살았지 플레이보이계 복귀도 물건너갔음. 허당의 명성, 숙녀들로부터 인기지속, 오락산업부터 행복업계까지 만년 러브콜도 다 남 얘기. 전부 타인의 쾌락 남들 퇴폐미. 칼럼니스트로써 빨빨거리며 바쁜 척해 봐야 좋게 말해 무관의 제왕. 안 그래도 신데렐라의 요술구두 내게 맞지 않는데 억지로 낑겨넣어봐야 소용없음. ~을 모르지 않는 어른이긴 한데. 그걸 모른다는 말이 아니라.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는 말이 맞긴 맞다. 말하자면 세상의 비밀과 인생사 쓴맛단맛을 너무 일찍 알아버렸을까? 그걸 왜 나한테 묻냐 라는 핀잔 말고도 겁나는 역공세는 무진장 많으니 너스레도 쉽지 않음. 아주 그냥 능청 지겹단 말이다. 그래? 그럼 이제 슬슬 시동 걸고 발동 걸리다 탄력받아서 마침내 새콤달콤 저 탐스런 과일을... 떽! 무슨 그런 말 같지도 않은 공상을 남용하는 아저씨가 아직도 있다고? 좋게 개 풀 뜯어먹는 소리 집어치우고 일이나 하자. 그런데 뭐 우리가 일하는 기계야? 아님 남자는 뭐 돈버는 기계냐고. 어? 사람을 뭘로 보고. 듣는 사람 없지? 그럼 괜찮음. 
    ~라고 진한 사랑의 부재를 달래며 실컷 떠들었으니까 자, 이제 본격적으로 일 좀 시작해볼까? 그랬는데 벤치멤버인 제5원소 그분은 또 내게 이렇게 말했다. 일부러 꾸짖고 싶어서 그랬을 수도 있는데 알고 보니 잔소리가 취미시네. 틀림없어. 왜 아니겠어. 듣자 듣자 하니 뭐 뭐래시더라? 
   「떠들지 마. 시끄러워. 고개 숙여. 반성하란 말이야. 아직도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어? 알아 몰라? 넌 뭘 잘했다고 눈 똥그랗게 뜨면서 두리번거려? 뚤레뚤레 어딜 쳐다봐. 몇시, 3시 방향? 이 인간이 정신 못 차렸네. 어? 넌 그 관상부터 문제야, 알아? 알긴 뭘 알어. 어? 지금 뭔 생각했어? 여자 생각했지? 그럴 줄 알았어. 또 개침? 군침? 흑심? 눈독 웬만히 들여라 이 늑대야. 에라~ 이 사자야. 어? 개침은 뭔놈의 개침. 아주 그냥 틈만나면... (절레절레) 어머! 어머머머머? 뭔 소리야? 너 방귀꼈니? 증말 가지 가지 한다. 하다 하다 효과음? 팬티는 실크, 하의는 나일론, 소파는 가죽. 그러니까 소리가 이상하지. 그 3종 세트가 딱 만났는데 이상한 소리 날 밖에 없단 말이야. 알아듣겠니? 쨉쨉쨉 쨉쨉쨉 쨉쨉쨉쨉쨉. 뭐 잔뻔치야? 하여간에 뻔트 어지간히도 좋아해. 아무리 봐도 상태가 너무~ 안 좋아. 너 친구 없지? 딱 봐도 뻔해. 아는 동생들도 있을 리가 있나. 넌 있잖아 그러니까 잔소리를 얻어들어야 하는 거야, 알아? 그래서 늬가 안되는 거라고. 어? 그 때문에 늬가 여자가 없는 거야 이 양반아. 제발 정신차려 이 친구야. 어? 안되겠다 이리 와. 좀 맞자.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그래서 이번엔 당근이 아니라 채찍이라네. 호호호!」 
    뭐? 정말 그렇다고? 뭐 언제는... 됐다. 됐어. 됐지 그럼. 안될 게 뭐 있어. 이렇게 골똘히 짱구를 굴리면 뭐 밥이 나와 돈벼락을 맞어?! 아니면 선녀 미녀 숙녀 벌레먹은 사과 곯은 복숭아? 온갖 아가씨들이 오빠 정말 제발 한번만 만나주라며 난리를 피워. 그렇다고 그녀들 등쌀에 못이기는 척 데이트하는 게 소원이라는 말이 아니라. 하오나, 어? 허지만~ 내가 이대로 미적지근 허접하도록 눌러앉을 허당 같아? YES~! 
    그래서 나는 여성환상 1.5 편집장 사라를 만났다. 
    장면 전환.
    장면 전환.
    장면 전환.
    카페에서 사라와 난 대화 중.
   「사라. 오빠 있잖아.」
   「뭔데?」
   「말 하려던 참이었어.」
   「또 뜸들일까 봐 그러지. 말하지 않고 뭐 해?」
   「한다니까 글쎄. 얘 좀 봐라. 내가 너네들 커피 얼마나 많이 사줬는데. 이제 뭐 새로운 오빠라도 나타나셨나?」
   「그럼 안 나타날 줄 아셨소?」
   「뭐라고?」
   「그러니까 좋은 말로 할 때 말해.」
   「그래. 잘들어. 나 이제 연재소설 안 써.」
   「그래? 잘됐네. 쓰지 마. 꼭 뭐 재밌는 멜로드라마 억지로 편수 늘려야 하는 건 아니잖아. 잘됐어. 놀아. 그럼 돼.」
   「아니 그게 그러니까 내 말은 말이야, 요즘 왠일인지 이상하게 칼럼만 바빠지고 허구는 안 써진단 말이지.」
   「그래? 그럼 흐름대로 가. 그럼 되잖아. 뭐가 문젠데? 문제없지? 그럼 고분고분 일해.」
   「내가 일하는 기계냐? 난 걸어다니는 런닝머신이 아니야.」
   「그럼 난 신음 끝장나는 환상머신이야, 오빠?」
   「어허 것 참! 그게 여기서 왜 나와? 난 너 여자로 안 봐.」
   「나도 오빠 남자로 안 봐.」
   「왜 진작 말하지 않았소?」
   「왜 갑자기 올림말?」
   「그러니까 어때주길 원하냐고.」
   「오빠가 우리들 시트콤 멤버들 귀찮게 하지 않는 거. 아지트에 더 이상 나올 필요 없어. 오빠 그만 와도 된다고.」
   「나 이제 너네들한테 팽당한 거니?」
   「아니 뭐 은퇴라고나 할까? 아님 광고계약 해지로 볼 수도 있고.」
   「짤린 거네. 내가 뭐 밉보였니?」
   「그럼 전부 홀딱 반했을까 봐? 꿈도 크셔. 오빤 그런 말도 몰라?」
   「무슨 말?」
   「집이 완성되면 그는 떠난다.」
   「나도 다 알지. 허나 나는 네가 방금 한 속담에서 '그'가 아니라 집이거든. 토마스 열차 몰라? 난 의인화 장난감이야.」
   「뭔 소리야? 뭐래? 개꼬리는 개몸뚱이에서 나온다더니. 오빠 이제 애기가 다 됐구나? 설마 오늘 기저귀 찼어? 그랬어?」
   「그럼 내가 생리대를 차리? 정말 내가 그래야 속 시원하겠니?」
   「오빤 무슨 말을 그렇게 해? 그러니까 여자가 없지. 어? 오빠가 그래서 안되는 거야. 나 갈래. 연락하지 마. 아마 애들도 전부 오빠 피할 걸. 혹시 모르면 알아두라고.」
   「그건 또 무슨 뚱딴지 같은 얘기야? 얘. 사라. 정말 가니? 우리 이제 그냥 사귈까? 야. 촌년. 응큼한 년. 저년이...!」
    주책이야 글쎄. 난 아는 여동생들이랑 잘 지내보려 했는데. 그게 그렇게 쉬운 게 아니었다. 왜 그러지? 난 내 수입의 상당량을, 가령 1년 연봉이 1장이라면 0.8장을 몽땅 녀석들 커피사주는 데 할애했다. 커피만 그냥 원없이 마셨다. 밥 대신 커피만. 하다 하다 내 땀에서도 커피 냄새가 난다. 내 몸의 수분은 물론 피까지 전부 커피지 그냥. 근데 좋다며 비싼 커피 싼 커피 맛없는 커피까지 단물 쪽쪽 빨아먹을 땐 언제고. 나 최근 상태가 안 좋아지는 걸 녀석들이 재빨리 냄새 맡았던 걸까? 아무리 애써 봐도 다 소용없다.  다시 인기있는 오빠의 권위를 되찼을 뻔 했는데 글쎄... 소용없었음. 반전은 없었다. 내가 뭐 잘못한 건가? 아닌데. 근데 왜? 뭐 내 별명이 NDJM으로 바꼈나? 아니 언제부터? 됐다. 남다른 호기심이고 나발이고 좋게 일이나 하자. 그러면서 난 사무실로 향했다.





    2

    Mozart / 바순과 첼로를 위한 소나타 KV. 292
    오늘 나는 사무실에서 차분하게 일하고 있었다. 
    그런데 뜬금없이 톰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밑도 끝도 없이 뭔 또 헛바람을 주입시키려고 얘가 나한테 전화했지? 일단 받았다. 
   「친구, 오랫만이군. 그동안 왜 연락이 없었어? 하도 소식이 없길래 내가 이렇게 자네한테 전화를 다 걸게 되지 않나. 허허허. 그러게 말이야, 어? 일전에 내가 말 안 했나? 전례를 깨고 그냥 사랑에 대한 열망을 그만 내려놓는 게 좋을 거라고. 그치만 말이야 좋고 싫고가 어딨어. 안 그래? 그게 어디 우리 마음대로 되야 말이지. 허허허. 자네도 잘 알지 않나. 저번에 네가 그랬잖아. 뭐랬지? 개 한 마리가 양떼를 몰 수 있다. 뭐? 뭐 아무튼 나네 말마따나 나도 그렇지만 자네도 고생이 많아. 우리가 정말 만나줘야 하는 여자만 대체 몇 명이냐고. 날이면 날마다 오빠 오빠 제발 1번만 만나주세요. 어? 자네도 많이 들어봐서 잘 알 거 아닌가. 허허허. 지겹지. 짜증나. 어? 성격 좋은 우리가 다 그녀들 맞춰줘야지 우리 아니면 누가 대체 그 어려운 배역을 맡겠냐고. 안 그런가? 어?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지. 너 내 뒷담화했니? 들었어. 세실리아가 그러던데. 너가 내 험담했다고. 나도 대충 눈치는 채고 있었어. 너가 하도 여자들하고만 어울리다 보니 속좁은 남자가 됐다는 걸 말이야. 넌 거의 절반 여자라고 할 수 있지. 허허. 나도 다 알아 이 친구야. 창피해하지 마.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된다고. 어? 형이 다 꼬셔줄께. 그럼 되지? 그럼 너 좋고 나 좋고. 얼마나 좋아. 안 그래? 그런 의미에서 우리 이번에 수영장에나 갈까? 여름이면 해변이지. 야, 그러지 말고 떠나자. 어? 당장. 푸르른 바닷가, 사랑의 연가, 눈부신 비키니. 아니면 뭐 가까운 호텔 수영장도 괜찮고. 형이 다 꼬셔줄께. 어? 왜 공무원 시험 보러 가야 해? 아니잖아. 잘들어. 형이 이번에 아주 그냥 기가막히도록 물 좋은 수영장을 알아놨거든. 2차로 나이트클럽까지. 넌 나만 믿고 따라오면 돼. 그럼 끝. 어? 안 그래도 콘래드 호텔 1층 커피숍에서 너랑 나랑 또 숙녀들과. 그렇게 2 대 2로 만나기로 했어. 너도 싫지 않지? 왜 내 맘대로 약속을 잡았냐고? 그래. 취소할께. 그럼 되잖아. 어차피 걔네들도 바쁠 거야. 굳이 우리 같은 고인물이 귀찮게 하면, 어? 너가 여자라면, 너 같으면 기분 좋겠니? 싫겠지. 에둘러 말은 하겠으나 딱 싫겠지 왜 아니겠어. 나 같아도 질색하겠다. 허허허. 그렇다고 어디 세상에 여자가 걔네들 뿐이니? 무슨 지들만 숙녀인가? 세상의 절반은 여자. 허허허. 가라 그래. 누가 붙잡는데? 우리로부터 어장관리 당하고 싶은 아가씨가 대체 몇 명인데. 허허허. 또 또 전화온다, 아 나 지금 너랑 통화하고 있구나. 잠깐 딴생각했어. 그럴 수 있어. 사람이 무슨 로보트도 아니고 말이지. 안 그래? 우리는~ 어? 우리는 그래. 여자는 다 그럴란가 몰라도 우리는 아니지. 우리는 뭐다? 가는 여자 붙잡지 않고 오는 여자 막지 않는다. ~라는 제목의 게임이 글쎄 최근 유행이라던데. 혹시 들었니? 그걸 들었든가 말든가 내 수다 때문에 미치겠다고? 미치지 마! 돌겠다고? 돌지 마란 말이야. 다 너 인생에 도움되라고 풀어놓는 현란한 혀 놀림이니까 말이야. 허허허허허. 무슨 귀에서 피날 꺼 같은 너만 고생인 줄 아니? 이처럼 듣는 사람 기 빨아먹는 진공청소기 화법을 쉬지 않고 남발하는 난 뭐 안 피곤한 줄 아니? 이거 정력 소비 장난 아니야~. 내가 지금 너랑 이런 말장난할 시국이 아닌데 나도 나다. 아무튼 우리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다시 만나서 하자. 아 아직 만나지도 않았지. 허허. 내 정신 좀 봐. 근데 내가 널 왜 만나!? 만나야 할 여자들만 대체 몇 명인데. 야 야 일단 끊어. 나 바쁜 일 있어. 나중에 통화하자 친구.」
    뚝! 그래 뚝. 뚝? 뭐 뚝? 전화는 끊겼다.
   「」
    뭐야 이 자식! 지 할 말만 하고 뚝 끊는 여편네, 유부남들은 잘 아시지. 그치만 지 할 말만 하고 뚝 끊는 마누라야 대체로 용건 위주. 근데 이건 내가 지 꼬봉도 아니고 날 뭐 진짜 병풍으로 아는 건가? 도대체 뭔 말인 줄 알아먹을 수 있어야지. (절레절레). 에잇 괜히 기분만 잡쳤어. 아마 이게 다 외롭기 때문일 거야. 그래. 맞어. 아닐 리가 없어. 그렇다고. 외톨이 비둘기에게는 앵두도 쓰다는 말도 있지. 그래? 자,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사교계에 행차해보실까? 아니지. 난 은퇴당한 플레이보이도 뭣도 아닌데? 뭐야 이게. 핸드폰을 꺼내 전화번호부를 뒤적여봐도 연락할 친구 하나 없어. 왜? 내 품위유지비 부족하니까. 그 뿐만이 아니다. 페라리 포르토피노 타는 그 친구 한량 몽키스패너. 걔도 잘나가니까 나한테 연락 안해. 그럼 뭐 내가 뭐 한다고 이탈리아 베네치아까지 가야 하는데? 동네 근처 베네치아 피자집으로 난 만족. 세계2대 맥주 축제? 그냥 동네 생맥주집 함부르크에나 가자. 그게 좋겠다. 내 주제에 무슨...! 정통 뉴욕식 햄버거? 정통같은 소리나 하고 자빠졌다. 얼른 퇴근하고 집에가서, 소파에 자빠져 배 터지게 과자나 씹어먹으며 TV로 축구나 봐야지. 야구애호가들 지들이 축구에 대해 알아? 지들이 뭘 안다고. 





    3

    백댄서가 없으면 춤을 추지 않는다. 꼭 그런 사람이 있다. 신부들러리 없으면 결혼하기 싫다는 오월의 신부. 있긴 있겠지? 설마 없을 리가. 진짜 없다고? 하긴 핑계가 예술. 그럼 이참에 뭐 "심심한데 뽀뽀나 할까?"라는 촌스런 대사 읊을 기회도 없는데 거 잘됐지. 기왕 생각한 김에 알래스카 에크러트나에 있는 얼음 동굴 내부나 보러 갈까? 어차피 안 갈 꺼 못가는 사람들이 그런 말 하기를 이 세상에서 최고로 좋아함. 그래서 우리는 피곤한 스타일과 친하지 않음. 세계 마초협회에서도 받아주지 않지, 허풍대회에 출전자격조차 얻기 힘들지. 허당도 아무나 하는 거 아니다. 근데 내가 왜 이처럼 혼자 입담만 풀어야 하지? 꼭 보면 고전만화영화 톰과 제리에서처럼 재미없는 삶을 어떻게 새로운 인생으로 바꿔볼까 하던 찰나 딱 탐스런 먹잇감을... 개 두 마리가 개뼉따귀를 놓고 다툴 때 3번째 똥개가 그걸 물고 튀는 게 인생이다. 세상사 뻔하거든. 서투른 자가 가장 많은 대패밥을 만든단 말이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무슨 더럽게 진부한 몽상도 뭐 자랑스러운 취미랍시고 아직도? 이게 뭐하는 짓이야? 어? 그럼 난 정말 마침내 미쳤을까? 진짜 미쳤나? 아니 내가 왜! 그대 뉘신지 몰라도 난 미치지 않았어. 그럼. 카리스마 끝장인데 어떻게 미쳐! 그러고 싶어도 안됨. 그러든가 말든가 이놈의 공상은 아직도 끝날 줄을 모르네 그래. 뭔놈의 작전 회의만 회의만 그냥...! 날새겠다. 배 떠나겠네. 영화 끝났다. 꿈 깨자. 그렇지만 말이다 들통날 비밀 없지 잃어버릴 재산 걱정 또한 없지, 얼마나 좋아? 여자말 번역기 바쁠 필요도 없고 말이야. 번 돈 1년 연봉 2/3를 몽땅 아는 동생들 커피값으로 탕진하던 인생, 숙녀들 때문에 괴롭고 지겹고 지치고 짜증나고 귀찮아 미치기 일보 직전. 이처럼 심심하니까 얼마나 좋냐고, 어? 지적인 기쁨을 선물하는 호사 난 바라지 않는다. 다정한 자존감을 북돋워주는 사치, 그딴 거 관심없다. 못 다 누려본 플레이보이의 황금기? 어차피 나중 생각하면 다 시간낭비. 정력낭비. 돈낭비. 허송세월. 오늘만 날이냐. 벌들이 있는 곳에 꿀이 있다. 자,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됐다. 그만 하자. 이런 말하기도 지친다 지쳐. 
    그러므로 난 뭔가 하기로 했다. 하지 않으면 안되니까. 나는 Rossini / 오페라 <도둑까치> - 니네타의 아리아 “나의 가슴은 기쁨에 들떠” 이런 고상한 음악 들어봐야 답은 없고. 백날 상상력만 바닥나도록 마법구슬만 애무하느니 과감히 행동하기로 했다. 근데 무엇을? 무작정 나가면 갈 데가 없는데. 여자들이랑 노는 데 질렸다고 남자들을 불러낼까? 그래 봤자 노상 듣는 말들은 뻔함. 뭐 가슴 세 개 달린 여자랑 사귀고 싶다는 둥, 비좁은 카페에서 발에 뭔 천조각이 밣히길래 쭉 땡겼는데 앞 사람 양말이었다는 둥. 응? 그럼 또 넘버쓰리는 그래 자긴 슬리퍼가 바꼈데. 결국 인생 혼자다. 우리는 몰래카메라가 무서워서 호텔도 가지 않는다. 뭐 그야 어쨌든 대타와 대책 바닥나면 친구 밖에 더 있나. 푸른 해변의 다채로운 비키니가 우릴 기다리고 있다. 정작 가보면 우린 당연히 고인물로 천대받을 게 뻔할 수도 있다만. 그치만 근처에서 조용히 쉬기만 할 건대 뭐 어때서. 
    그래서 윌, 잭, 포르토피노 그리고 나. 이렇게 4인방은 가까운 바닷가로 피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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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데 사람이 없네? 아무도? 왠지 몰라도 느낌 세했다. 
    윌은 아는 동료가 근처에 산다고 해서 자기만 쏙 빠졌다. 
    잭이 빌려온 허름한 리무진, 어차피 폐차시키려고 했던 거 나한테 가지라고 하면서 녀석도 갔다. 어디로 간다고 했는데 일부러 발음을 흐린 건지 치밀한 계획인지 몰라도 어영부영 도망갔다. 그럼 포르토피노랑 나랑 단둘이 뭘 하겠나? 걔도 갔다. 녀석이 변명할 땐 드디어 난 청력기관 감각이 무음으로 바꼈다. 영화를 너무 많이 본 게 아니라 현실이 영화였으니까. 그래? 가라 그래. 우리끼리는 서로 붙잡지 않는다는 그런 불문율보다 우정이란 말조차 듣기 거북하니까. 멜로영화를 간지러워서 어떻게 꾹 참고 보나. 연기하기 귀찮아서 연애도 안 하는 마당에 말이다. 그럼 이제 나 혼자 싸구려 리무진 타고서 바닷가 드라이브? 못 할 거도 없다.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그렇게 나 혼자 싸구려 리무진을 끌고서 다시 도시로 돌아왔다. 
    뭐야 이게? 뭔 소설이 이래? 이러니까 환상문학잡지에서 걸핏하면 계약 끊는다면서 막 겁박하지. 그치만 걔네들도 다 너도 삼류 나도 삼류 그러니까 오히려 진짜 같은 김 빠진 이야기를 더 반길지도 모른다. 그럴 수도 있는 게 아니라 진짜 걔네들한테 딱이지 왜 아니겠어. 근데 거 참 나 소설 더럽게 재미없네. 내가 이럴려고 문학을 놓지 못하나? 문학같은 소리나 하고 자빠졌다. 아니 정말, 정신이 번쩍 드는 그런 껀수 없을까? 없다. 있을 턱이 있나. 이 따분한 일상에서 도시의 고독한 사냥꾼 생활, 재미없단 말하기도 입 아프다 정말. 그럼 진짜 무엇이 문제일까? 어? 일찍 여물면 일찍 썩는다, 해는 일찍 뜰수록 늦게 진다. 전자냐 후자냐 그것이 문제로다? 허나 우리 나이쯤 되면 말할 수 있다. 너무 일찍 조숙할 필요까진 없다고. 근데 또 이론과 실제가 다른 게 뭐냐면, 쉿! (절레절레)





    4

    예쁜 사과도 벌레가 먹는다. 잡초는 씨를 뿌릴 필요가 없음. 근데 그냥 벌레만 먹은 사과? 말 말자. 됐다고!
    워 워 워. 또 시작할 기미가 보이네. 그놈의 공상 말이다. 그래서 나는 얼른 재빠른 동작으로 고전음악을 틀었다.
    Handel / 오라토리오 <시간과 깨달음의 승리> “가시는 두고 장미를 꺾어라”
    그렇게 분위기를 잡고서 기분을 고상히 다잡았다. 그러면서 최근 행보를 검토했다. (1) 사라를 만나서 다툼. 헤어짐  (2) 톰의 잔소리 들음. 퇴근함  (3) 싸구려 리무진 타고서 바닷가 드라이브. 그게 다잖아? 그러게 말이야. 그렇게 난 또 슬럼프에 빠졌음을 절감했다. 때문에 난 또 뭔가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던 찰나 환상문학잡지 편집장 마라가 찾아왔다. 근데 그년 아니 그 세련된 외양과 고결한 몸가짐은 물론 우아한 말뽄새 아니 어법으로, 날 툭하면 얼떨떨하도록 만드는 그녀. 근데 그녀 혼자만 내 사무실로 찾아온 게 아니었다. 여성환상 1.5 부사주(수석 에디터, 부편집장, 편집장, 사장을 거쳐서 오른 자리) 사라와 함께. 뿐만 아니라 환상문학잡지 전직원. 더더군다나 여성환상 1.5 전직원까지 대동하고서 말이다. 뭔 일인데 이래? 마라&양대잡지 전직원이 내 사무실 방문? 설마... 아닐 거야. 혹시... 느와르 영화에 나오듯 나 보고 당분간 떠나있으라? 그래도 뭐 마피아 고전식 방법처럼 선물함을 전달받아서, 그걸 열어보니 뭘 암시하기 때문에 결단을 내려야 한다더라. 라는 것보단 낫겠는데. 대체 뭔데 이 난리야? 내 앙증맞은 사무실. 조촐하니 난 적어도 크기에 대해선 불만 없었다. 내 미지의 이상을 찬란하게 만족시켜주지는 못할지언정 사무실 집기도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다. 근데 얘네들이 몽땅 쳐들어오다보니 아주 그냥 물 반 고기 반이었다. 결국 장난 아니니 여자말 허트루 듣지 말란 말일 텐데... 뭔지 몰라도 식은땀이 쭈삣 날동 말동 그랬다.
   「아니... 대체 무슨 일인데...」
   「가만 있어 봐 나 얘기 좀 하게.」
   「듣고 있어.」
   「내 말 끊지 말라니까 이 오빠가...」
   「알았어. 알았다고.」
   「대답도 내가 고개 끄덕, 아니 눈빛 봐서 해야 하는 상황이란 거 몰라?」
   「」
   「나도 이러기 싫었어. 그치만 오빤 좋지? 물 반 고기 반이라서?」
   「넌 말을 해도 꼭... 내가 지금 몇 가지 향수를 맡고 있는 줄 알긴 하니?」
   「내가 그거까지 알아야 해? 조용히 하고 들어. 일단 들어봐. 닥치고 들으라고. 지금 장난 아니니까.」
   「」
   「오빠가 저번에 그랬지? 최근 줄거리가 막힌다고. 아찔한 착상이니 기발한 영감이니 그런 건 모르겠고, 이상하게 서두와 결말 즉 잔소리만 탄력받는다고. 그래서 플롯은 바닥이고 칼럼은 왕성하고. 응? 그치? 맞지? 틀림없어. 그래서 언젠가 우리가 말다툼 하려다 토의, 논쟁 하다가 협의, 끝끝내 격론은 화목하게 합심으로 결론냈지.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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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Startups 웹사이트에서 봤던 거. 직거래 플랫폼에다 오빠의 그 남아도는 서두와 결말과 칼럼 잔잔바리. 그거 저작권료 받고 팔자고 한 거. 한동안 짭짤했지? 허허허. 나도 오빠를 알아. 오빠도 나를 좋아하고. 어? 어. 왜 그럼 안돼? 나야 좋지. 허허허. 그 말이 아니라, 응? 대체 이런 게 다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중요하지 왜 안 중요해! 이보다 뭘 더 중요하게 여기란 말이야, 응? 근데 왜 이처럼 말이 꼬이지? 나 원래 안 이러는데. 오빠도 알지? 그만큼 꺼내기 어려운 본론이 기다리고 있단 거 오빠도 눈치챘겠지. 그럼. 이처럼 뜸들이는 내 기분은 뭐 좋겠수? 나도 오빠랑 그냥 농담 반 진담 반 수다떨면 좋지. 막 이처럼 말이야. 오빤 내 인생에 하등 도움이 안돼, 알아? 알긴 알았으면 진작 정신차렸고 돈까지 많이 벌었겠지. 돈까지? 그건 기본으로. 덤으로 나까지? 꿈도 꾸지 마. 아니, 덤으로? 듣고 보니 기분 나쁘네. 아, 내가 말했지. 봐줄께. 나나 되니까 오빠 용서해주는 거지 딴 사람 같아봐 어림없어~! 어? 좌우지간 뭔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다. 허허허. 그게 다 오빠한테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얘기니까 이해하시고. 봐봐. 이처럼 얘네들 전부 왜 데려왔겠니. 지금 발 디딜 틈이 없는 거 보이지? 조그만 소형차 안에 사람이 열댓명 타는 기네스북 기록처럼, 지금 얘네들 속으로 엄청 짜증날 꺼야. 정말로 발 디딜 틈이 없는데, 전부 다 여자거든! 허허허. 아무튼 여자 많으니까 기분 좋지? 내가 오빠 속 모르는 줄 알아?」
   「마라. 1절만 하자.」
   「그래. 나도 좋아. 요점만 말할께. 우리, 소송당했어.」
   「소송? 뭔 소송?」
   「희대의 소송. 세계 3대 로펌 가운데 하나던가? 우리랑 하필 이 시국에 법률전 하자네? 그럼 우린 도전장을 받아야 할까?」
   「내가 뭘 잘못했는데?」
   「오빠가 뭘 잘했다고?」
   「내가 잘할께. 너네 사무실 저번에 보니 너무 건조하더라. 재미도 없구 그 뭐지 그게 말이야 너무 정서가 매말랐어. 그래서 하는 말인데 너네 사무실에 개 혹시 키우지 않을래? 골든 리트리버 한마리 키우는 거 어때? 아니면 목양견? 비글이든 코커 스패니얼이든 비숑이든. 뭐든 말만해. 아니면 나 이번에 트레이닝복 세트 샀는데... 내가 좀 더 개처럼 살아볼께. 어때?」
   「지금 장난 아니라니까 이 오빠 아직도 상황 파악 안되네. 응? 그러니까 여태 여자가 없지. 응? 이래서 오빠가 안되는 거야. 이러니까 거물들이 물고 늘어지는 거라고. 그래서 오빠는 잔소리를 얻어듣는 거고. 그럼 기가 빨리겠지? 그렇지? 그럼 그 다음엔 어떻게 되겠어? 그래~ 그거야~ 그거라고~ 어? 정력 감퇴! 허허허. 농담이고. 농담 아닌가? 그야 오빠 정력이지 내가 그거까지 신경써야 돼?」
   「내가 언제 내 방만한 사생활에 대해 네게 신경써달라 한적... 없는 거 같은데.」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요점만 말한다고. 내 말 끊지 말라니까 글쎄. 어?」
   「」
   「일곱 명의 목자들은 양떼를 망친다. ~라는 말 알아? 알겠지. 오빠가 뭐 바보도 아니고. 요점만 말할께. 아 나 증말 이거 참 요점만 말한다는 그 말만 계속 반복하잖아? 오빠 바보야? 아니 내가 바본가? 어쨌든 요점은 그래. 그 잔뻔치 같은 단문 몇 개 팔았는데, 하필 그게 유령작가한테 넘어갔고 어떤 중편이 유명해졌어. 근데 또 하필 할리우드에서 대번에 그걸 영화로 만드네? 뻔트로 겨우 수익분기점은 넘겼나 봐. 그래서 전문가들 몇 명이서 그걸 서둘러 연작 드라마로 만드네? 그 다음에 그걸 영화관과 계약했데. 넷플릭스네 뭐네 TV랑 인터넷으로 풀지 않고 드라마를 전용 극장에서만 상영하다고 하더라고. 근데 회원권이 불티나게 팔린다네~?! 골프장 회원권이랑 그거랑 1 대 1로 맞교환한다는 뜬소문까지 퍼졌으니 말 다 했지. 허허허. 거기서 끝이면 얼마나 좋아. 근데 이상하게 오빠의 단문이 너무 많이 뭐랄까... 기괴한 분위기를 연출했다고나 할까? 정신분석학자부터 기타 등등 지금 말들이 많아. 왜냐? 멀쩡히 극장에서 드라마를 보다가 사람들 몇몇이 스크린으로 달려들어서 스크린을 찢고 그 안으로 들어가버린데. 학계 업계 오락산업계 보고되다 보고되다 못 말릴 정도로 일이 커진 거라고. 그러니 걔네들이 또 회의를 했겠지. 긴급으로 말이야. 그래서 정답으로 나왔어. 결론은 우리에게 반갑지 않았어. 오빠 단문이 문제라는 거니까.」
   「그게 왜 나 때문이야?」
   「낸들 알겠수?」
   「그럼 내가 알까?」
   「그야 법관 나리 앞에서 말하든가 말든가.」
   「내가 왜?」
   「자, 그 더러워질 법률전에 기꺼이 달려들 거야 말 꺼야? 선택해. 당연히 피하고 싶겠지. 그렇지만 도망갈 수 없는데 이걸 어쩌나?! 뭔 얘긴지 알겠지?」
   「(끄덕끄덕)」
   「따라서 방법이 없진 않은데... 하는 수 없이 우리도 이렇게 결론을 내렸어.」
   「그게 뭔데?」
    그녀는 봉투를 내밀었다. 옆에서 비서는 007가방을 탁자에 놓았다.
   「당분간 조용해질 때까지 떠나있으란 말이지? 나야 좋지. 설마... 제일 윗장만 고액권 진짜인 건 아니겠지?」
   「미안한데 현금으로 가득찾을 거라는 상상, 틀렸는데 어쩌지? 새옷이랑 새 노트북. 기타 등등 물품들이야.」
   「너 그거 하난 알아둬.」
   「」
   「어중이가 오지 않으면 떠중이가 온다.」
   「남들 다 아는 얘길 왜 하필 지금. 잘들 논다. 어? 놀고 있네. 그러니까, 됐다. 아무튼 방법은 그거밖에 없어. 우린 말벌의 벌집을 쑤신 거라고. 것도 장난 아닌 걸로.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리는 정도가 아니라 왜 하필...! 됐다. 뭐 해, 안 떠나고.」
    그렇게 나는 서둘러 낯선 여행지로 숨어드는 도망자 신세를 기쁘게 맞이했던 것이다.





    5

    여행지에서 한적하게 쉬는 생활. 이건 내게 호사였다. 내가 언제 이런 최고급 호텔에서 신간 편하게, 팔자 퍼지도록, 마음 편히 쉬겠나. 청소도 주최측에서 다 해 주지. 스카이라운지에서 뭐든지 공짜로 즐기지. 뭐 하나 부족한 게 없었다. 그렇다고 나는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다. 이곳으로 떠나면서 "행운을 비네 오빠" 라는 말을 마라로부터 듣지 못한 게 퍽 서운하긴 했지만. 뭐 그거야 괘념치 않으면 그만이고. 오래전부터 예상해왔던 권태가 말끔히 치유되어버린 게 어딘데. 그래서 난 여기서도 즐겁게 일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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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Startups 웹사이트에서 봤던 거. 직거래 플랫폼에다 저작권 넘길 잔소리를 몽땅 생산하는 건 식은 죽 먹기였으니까. 예를 들면 이랬다.

    서두 1.
    <황홀한 예감이 절망으로 결판나지 않을 선행지표, 그건 결국 돈뿐일까? 그런지 아닌지 몰라도, 최소한 어떤 허당의 헐뜯어 마땅한 난봉 전성기를 환상의 최적격이라 점찍을 수만은 없는 건 분명하다. 뭐 아니라고? 뭐가 아니야! 그야 어떻든 우리는 땀에서도 커피 향기가 남, 그 정도로 우리는 커피를 좋아함. 우린 커피 없으면 못산다고 할 수 있음. 근데 왜 대체 아는 여동생들은 통 연락이 없지? 지들끼리 나 따돌리자고 뭐 짜기라도 했나? 작정하고서 허당 왕따돌림? 누가 뭐 겁날 줄 알아? 지들이 아쉽지 내가 아쉽나! 그러거나 말거나. 하여간에 남자는 집에 있으면 안된다. 말하자면 가택감금 대체 몇 번을 하란 말인가. 굳이 걸핏하면 찾아와서 사람 귀찮게 만드는 인기를 줄기차게 누리는 영광, 집밖으로 달려나가 거머쥐면 된다. 허나 그게 어디 쉽나. 어렵겠지. 아마도 바라지 않는 게 속편할 테고. 그럼 뭐 재미난 일 없을까? 뭘 해도 재미없단 말 누구에게 털어놓을까 매번 고심하니까 술집마담들도 다 그럭저럭 심심하지 않을 뿐. 뭐가 어쩌고 어째? 됐고.
    어차피 탄로나버렸다. 뭐 꼭 본색을 드러내고 싶어서 그랬겠냐마는, 누군 안 그렇간디? 결국 겁나게 성가신 취미는 바로 공상. 음탕대마왕. 색마. 바보 같은 놈! 숙녀들 환심사는 잔머리만 골똘히 고민하는 녀석. 내가 언제? 태어나서 오페라 커튼콜 실제도 1번도 못본 놈. 메조소프라노의 아리아가 끝날 때 무대 위로 던져지는 꽃송이. ~가 아니라 수북이 쌓이는 협찬회사 물품을 상상하기나 하는 꼴통. 설마, 협찬이, 아니라고? 뒤늦게 발정기로 뭐 최고점을 찍겠다는 거야 뭐야? 어? 야 팔랑귀, 또 누가 너한테 헛바람을 잔뜩 불어넣었니? 안 들려? 들려 안 들려? 어? 아 제발 진짜 그만 좀 해. 그러니까 뭘?
    그래서 나는 이처럼 환청을 잠재우기 위해서 밖으로 나왔다. 집에서 혼자 바탄 죽음의 행진을 계획할 수도 없는 일이니까. 또 Schumann / Kreisleriana op.16 (연주: Youri Egorov) 이런 음악 들어봤자 허영심만 특이해지기 밖에 더 하나. 이미 수도 없이 실험해봐서 논문 천편도 쓸 수 있음. 바로, Hasse / 오페라 <시로에, 페르시아의 왕> "평온하구나, 스폰다의 매혹적인 바다여” 매혹적인 메조소프라노의 목소리. 좋긴 좋다만 아름다운 꿈결같은 멜로디에 취하면. (꼭 그렇단 말은 아니다만) 그래 봤자 과소비 욕망만 상승됨. 인터넷에서 자동차 구경만 하고, 백화점과 시내에서 물품 둘러보면 만져보다가 나중 어차피 사게 되어 있음. 야 어좁 이 머저리 같은 놈아, 밖에 나와서 또 공상이냐? 난 이처럼 공상으로부터 탈출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게 뭐 대단한 발견이라고 난리긴 난리야. 누가 아니래>

    결론 3.
    <어쩌자고 허구한 날 자빠져 티비만 보는 거야? 너 뭐야! 늬가 뭔데 날이면 날마다 자빠져 놀아, 어? 너 또 누굴 자빠트릴까 그 궁리하지? 누가 늬 흑심 모를 줄 아니. 개침 그거 웃기지도 않다야. 좋게 꿈이나 깨라. 냉수 한잔 마시고 속차려 이 친구야. 아 글쎄 말도 안되는 공상 때려치라고 쫌. 지겹지도 않나 몰라. 어? 대답하기 싫으면 관둬, 이런 미련곰탱이 같은 놈아! 정말 묘한 녀석이야. 더럽게 허접해. 음흉하고. 추접스럽고. 유치하고. 찌질하고. 어? 하긴 늬가 뭘 어떻게 하겠어. 자, 그러지 말고 내 앞에서 빨가벗고 춤이나 춰 봐. 왜, 못하겠어? 것 봐 내 그럴 줄 알았다. 그럼 멋드러지게 노래를 불러보시던가. 그마저, 알만해. 그럼 그렇지. 그럴 게 아니라 너 나한테 좀 맞자. 왜, 겁나? 쫄지 마. 꿀밤이니까. 안 아프게 때려줄께. 혹시 아니 애무해줄지? 그건 그렇고. 이 난봉꾼 같은 놈. 아는 여동생들은 다 어떻게 꼬드긴 거야? 늬 주제에 여심을 쥐락펴락? 팔짜도 좋아. 뭐 굼뱅이도 구르는 재주는 있다? 풉! 그럼 뭘 해, 다 떨어져나간 지가 어언 옛날인데. 근데 너 아직도 그러고 다니니? 이 형님께서 저 언니들 몽땅 다 꼬셔줄께~, 말만 해 말만! 볼 만하겠다. 허허. 허허허. 그래 봤자 전성기 올 뻔 말 뻔하다 오지 않았고, 플레이보이 황금기마저 올 둥 말 둥하다 행운의 여복은 딴놈한테 가버렸겠지. 그치? 그러니까 늬가 여자가 없는 거야, 아니? 알면 뭐 하니, 어? 알면 뭐 해. 쯧쯧쯧. 왜,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설교 듣기가 지겹니? 그럼 너도 말하기 좋아하고 나서기를 한 12배쯤 더 좋아하던가. 것도 아니잖니. 그러니까 늬가 안 되는 거야, 응? 널 보고 있으면 아주 그냥 답답하다 답답해. 이 한심한 놈아. 너 여전히 시시한 칼럼 쓰며 겨우 벌어먹고 살지? 내 그럴 줄 알았다. 넌 답이 없어 답이. 그런다고 문제가 뭐인 줄은 알아? 그걸 어찌 알겠니. 알았으면 이런 잔소리 즐겁게 듣고 있었게? 그러게 잔재주가 아니라 막 그냥 떡밥뿌리기만 애호할 게 아니라, 이 인공지능 슈퍼머신한테 잘 보였어야지. 어? 너한테 나 밖에 없다는 걸 왜 모르니! 왜 그랬니 정말. 어떻게, 인생 비전은 있고? 있을 리가. 왜, 자유롭고 싶어? 희망으로 달래. 이러니까 여자들이 뻑이 가지, 존나 카리스마 있어. ~라는 혼잣말도 지겹지? 존나 버텨! 그 수 밖에 없으니까. 아님 어쩔 건데. 응? 다른 사람들도 다 그저 그래. 나이 먹으면 다 비슷하다고. 너 어차피 땡전 한푼 없잖아. 굶주릴 대로 굶주린 늑대 마음 모르는 바는 아니다만, 하염없이 그림의 떡을 바라만 본다고 뭐 누가 상이라도 준다든? 응? 그럴 수는 없지. 허허. 그러게 한눈팔고 눈독들일 시간에 환상머신을 완성시키든가 신비론과 마술학을 공부했어야지. 내가 저번에 독심술 숙달하라고 했어, 안 했어? 어? 환상문학잡지 미스테리아에서 꼬신다고 뭐 너한테 사랑론이 가당키나 한다고 생각하니? 에르메스, 맥북에어, 페라리... 뭐 이런 게 너한테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거, 설마 아니겠지? 있어도 안 어울려. 알아? 안 그래도 성과가 없잖아 성과가. 뭔가 뻔트에 대한 동경이 그나마 단타로 연결될 기미라도 보여야 할 거 아니니. 거포는 뭔놈의 거포, 툭하면 대형 스트라이커. 스트라이커같은 소리나 하고 자빠졌다. 장거리 좋아하시네. 웃기지 마. 재미 하나도 없으니까. 넌 그래서 안되는 거야. 알아? 몰라도 탈이고 알아도 문제다. (절레절레)! 너 방금 속으로 "이런 젠장~!" 그랬지? 내가 널 어떻게 모를 수 있니. 쯧쯧쯧>





    6

    최고급 호텔 생활이 살짝 무료해질까 말까 하던 찰나.
    마라의 수행비서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모르는 전화라서 뭔가 찜찜하여 받지 않으려다 그냥 받았다.
그래서 통화를 해 보니 뭐라더라?
    내 신분, 행정기록, 주민등록이 말소됐다던가...! 아니 왜? 뭐라고 뭐라고 그랬는데... 그때 이상하게 귀가 윙~ 울려서 통 듣지를 못했다.
    그럼 서류상 난 투명인간이라는 말인데... 이게 좋은 거야 나쁜 거야? 근데 문제는 소송전과 달리 걔네들이 뭔 업자를 고용했다고 그랬다. 그래서 도망가라네?!
    그러면서 어딘가 주소를 내게 적으라고 했다.
    그걸 보니 어디 조용한 시골 주소였다.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장면 전환.
    장면 전환.
    장면 전환.
    그곳은 불치병 환자들이 막 특수한 방법으로 자연 치료되는 기적을 바라는 요양원도 아니고. 정신병자들이 모인 특수시설도 아니고. 근데 또 딱히 아니라고 하기도 그렇고. 그렇게 동네 주민들이 통 돌아다니지 않는 한적한 시골생활은 이어졌다. 그렇게 일하기도 싫고 놀기도 재미없던 중 혼자서 노트북으로 영화를 찾아봤다. 예를 들면,
    The Wicker Man , 1973
    The Wicker Man , 2006
    그 외 드물게 들짐승이 죽으면 마치 사람이 죽은 듯 취재하고 막 기타 등등 단 몇 가지만 아니면. 도시와 다른 점은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나는 여기서 친구 하나 사귀지 못한 채 외롭게 생활하고 있었다. 대체 언제 돌아가도 되는 거지? 라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장면 전환.
    장면 전환.
    장면 전환.
    나는 이 동네에서 처음으로 친구를 사겼다. 많이 사귈 필요도 없다. 잘못 사귄 걸 늦게 알 수도 있다만 난 멜로드라마 주인공이나 된다는 듯 운명에 순응하기로 했다. 그의 이름은 킨제이다. 성이 그렇단 건지 이름을 그처럼 불러달란 건지 모르지만 녀석은 질문받기를 썩 좋아하지 않았다. 아니 근데 만난지 얼마나 됐다고 그런 녀석을 어느새 난 닮아버렸던 것일까? 아닙니다. 그건 그렇지 않습니다. 말투... 억양... 몸짓... 어조... 연기력... 남성들에게 특화된 말재간... 여성들 마음을 녹여주는 그놈의 달변...! 심지어 낯바닥까지 잘생겼어. 때문에 내가 상대적으로 꿇리지, 허나 이상하게 그가 마음에 드네? 아닙니다, 그건 그렇지 않습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그러든 아니든 우리가 친해진 과정을 설명하긴 귀찮다. 또 그게 썩 극적이지도 않은 만큼 굳이 재미없는 첫 만남 설명은 지나치는 걸로. 아무튼 속세에서 그동안 난 교우관계가 그랬다. 한땐 시트콤 찍는다면서 이 친구 저 친구 막 파도타기라도 한다는 듯 지내다가. 또 친구 1명도 없는 장본인이 바로 나였다. 근데 여기서는? 날 멋지게 포장하지 않아도 되고 일단 뭐든지 조촐했다. 아는 여동생들? 그놈의 인기라는 게 뭔지 참. 막대한 커피값 대느라 내 등허리가 휠 지경이었는데. 이제사 깨달았을까? 친구 굳이 많지 않아도 된다는 걸. (일단 지금은) 작은 것이 아름답다. 그게 아니라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닌가? 그래. 바꿔. (일단 지금은) 큰 것이 최고다. 많지 않은 건 많지 않은 거다. 적은 건 적은 거라고. 그래? 특출난 허영심 감당 안된다는 걸 우리가 어찌 몰라. 유지보수 장난 아님. 근데 그 얘기가 지금 왜 나와? 내 말이 그거라니까 글쎄. 좌우지간 킨제이와 난 말상대로써 뭐 퍽 훌륭하지도 않다만 그렇다고 썩 부자연스럽지도 않았다는 건 분명했다.
   「형. 내가 유럽 축구리그 득점왕보다 축구 잘해.」
   「내가 봐도 그럴 것 같다. 넌 뭐 하나 빠질 것 없는 녀석이 왠지 모르게 숨어지내는 거 같단 말이야.」
   「형은 역시 뭐가 달라도 달라. 뭘 좀 안다니까 이 양반이. 내가 말이지 왕년에 잘나가진 않았어도 뭐랄까, 이래뵈도 그런 일까지 했다니까.」
   「무슨 일을 했는데?」
   「유기견 무인도 보내기 협회장. 후원도 상당했어. 나름 유명했지. 그렇게 해서 안락사 될 뻔하다 살아난 개님들이 얼마고, 무인도에서 유인도로 거듭난 섬들이 얼만데. 근데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어쩐다는 말처럼. 뭐 사연이 있었어. 내가 그 일을 그만둔 사연 말이야.」
   「캐묻지 않을께.」
   「형이 여자가 아니라 다행이군.」
   「여자 소개받고 싶으면 말만 해. 넌 형만 믿어. 뻥 아니야. 속는 셈치고 허당한테 신뢰감 느껴도 괜찮아.」
   「난 안 괜찮아. 실은 나도 허당이거든.」
   「근데 아까 말한 그 개들 이야기는 어떻게 됐니?」
   「아 그거? 개판 됐지. 둘 중 하나야. 다큐멘터리 개판, 개들의 천국. 아무래도 전자겠지. 형, 굳이 논평하지 않아도 돼. 처녀에게 뿐만 아니라 나랑 터놓고 말할 땐 일부러 말 많은 남자인 척하지 말라고. 불편하게 우리가 뭐 내외할 거 있어? 난 적어도 기분파지 내숭파는 아니거든.」
   「그럼 뭐 난 사탕발림 아부나 일삼는 아첨쟁이라는 거니? 아니겠지. 우리 나이 정도 되면 립서비스 푸는 거도 다 귀찮을 테니까.」
   「형, 그런 말 우리 동네 꼰대들 듣는 자리에서 하면 안되는 거 알지? 그냥반들 최소한 죄다 허세대회 입상자들이야. 절반은 국가대표 상비군 출신들이고. 장난 아니야.」
   「나도 다 눈치챘어.」
   「기왕 귓등으로 흘려버리지 않을 수 없는 개섬 얘기가 풀어졌으니 이어가자면 음... 그래도 될까 몰라. 심심한 평일과 재미없는 주말은 더 이상 묵인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잖아. 우리에게는 새로운 인생과 행복한 낭만과 신나는 사랑을 마다할 이유가 없는 거라고. 전혀! 근데 그게 어디 쉬워야 말이지. 입을 아무리 오래 벌리고 있어도 구운 비둘기는 날아들지 않는다. ~라는 말 우리도 알아. 왜 몰라? 푸아그라가 잘 잡셔주셔 하면서 내가 입만 벌리면 마른 거위 뚱뚱한 거위가 내 입으로 날아들까? 그건 어려워도 사과나무 밑이라면 또 얘기가 달라. 허허. 달라야 뭐 얼마나 다르겠어. 어? 그래서 하는 말인데, 응? 우리, 개섬에, 가볼까?」
   「그 말 왜 안 나오나 했다. 그럼 안 갈려고 했니?」
    그렇게 킨제이와 나는 개섬으로 갔다. 오늘만 간 거도 아니다. 3일 연속으로 갔다. 그날 가서 그날 오는 일정으로.
    구경은 그럭저럭 괜찮았다만 개똥 밟고 새똥 맞고. 여자는 하나도 보이지 않지. 재미 더럽게 없었다.
    개들만 미친듯이 꼬리에 모터가 달린 것처럼 환장하면서 우리한테 달려들기 밖에.





    7

    미지의 이상과 달리 현실은 낭비된 소망 혹사당한 상상력. 하오나 변변치 않은 재산은 신나는 모험에 문제될 거 하나 없었다. ~라는 꿈같은 가정을 편애하며 말도 안되는 공상을 남발한다는 게 진짜 문제라면 문제였다. 내 인생이 뭐 이렇지. 그렇지만 그런 건 어떻든 상관없다. 왜냐하면 더 내려갈 여지가 없도록 뭐랄까 심심한 바닥이기 때문에? 심심하단 투정 크면 더 이상 안 할 줄 알았는데, 그래 봤자 어른이 되고 보니 뭘 해도 재미없다는 거 얹어서... 됐다. 이렇듯 계속 재미없을까 봐 난 늘 겁을 먹고 있었던 거다. 성과로 보나 짝사랑 받기복으로 보나 늘상 퇴짜맞기 일수인 촌닭 인생, 아닌 게 어디냐고? 쉿! 누가 들을라. 엄살은. 염두에 둔 사냥감이 왜 떡밥뿌리기를 싫어한다나 뭐래나, 우리는 멜로드라마 기획의도 관심없을 뿐. 그렇지만 좌 허세 우 허영심을 살짝 내려놓자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왜 아니겠나. 환상문학잡지 미스테리아로부터의 미친 듯한 독촉도 딱 끊겼음. 흡사 아는 여동생들 싹 다 떨어져나간 것처럼. 그렇다고 딱히 실망스러운 현실은 아니다만 대체 그 허무함을 어디에 토로하나. 무엇으로 달랠까! 이번엔 어느 여인이 날 달래줄까? 떽! 절대 못함. 하기도 싫음. 어째서 그러고 싶겠냔 말이지. 맹공을 퍼부을 껀수가 매마르다, 굶주리다, 절망하다, 버티다 끝끝내 좌절해버림.
    자, 그렇다면 이제 본격적으로 금지된 신비─금단의 열매─미완의 환상머신이라는 특단의 카드를 사용해볼까? 있어야 말이지. 환상머신은 무슨 말라빠진 환상머신이야? 무슨 개 풀뜯어먹는 탐구정신이냐고. 어? 좌우지간 난 아직까지 여자 손 한번도 못 잡아봤다. 정말이다. 그처럼 아무렇지 않은 척 회사 집 회사 집. 와우~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 진짜? 뻥이다. 진짜일 리가 있나. 근데 말이다, 따지고 보니 내가 왜 이러고 있지? 그래야 할 이유가 대체 뭐냐고. 교묘한 농간과 은근한 유혹도 다 싫다는 장본인이. 천재적인 질투심의 대가는 물론 여자에 관한한 자타공인 여자학 박사님께서, 어? 이게 대체 뭐하는 청승이냔 말이다. 이건 아니다. 이건 아니야.
    그래서 나는 무작정 떠나기로 작정했다. 아니 잠깐만! 난 이미 한동안 은둔생활을 위해서 깡촌으로 왔잖아. 내 정신 좀 봐.
    별장 생활 벌써 지겨워진 건가? 그건 아니다. 일단 음악부터 틀고.
    Schubert / String Quartet no.8 in Bb major D112
    오전에 일하고 오후 3시부터 놀기.
    화면 전환.
    자, 3시 됐다. 이제 뭐하고 놀지?
    아차! 난 생각났다. 개섬에 가방을 놓고 왔다는 거. 나 혼자 갈까 아니면 킨제이를 데려갈까? 오늘 녀석 어디 간다 그랬는데... 그냥 혼자 가자.
    그래서 난 개섬으로 떠났다.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개섬 도착!
    근데 여긴 개섬이 아니라 토끼섬이네? 이거 봐라 이거 봐. 완전 토끼 천지. 설마 내가 잘못 온 건가? 그럼 다시 개섬을 찾아가면 돼지. 어려울 게 뭐 있어? 그처럼 잘못 왔나 해서 돌아가려는데 저쪽에 가방이 보였다. 뭐야, 맞게 왔잖아! (몰라서 물어?) 근데 웬 토끼들이 이렇게나 많아? 아니. 어제만 해도 전부 다 개들이었는데... 지들이 변신했을 리는 없고... 누군가 그들을 전원 교체했을 리는 더더욱 없을 테고. (말이 되는 소릴 해라) 아니면 내 정신이 이상한 건가... 아닌데 난 멀쩡한데. 난 미치지 않았다고. 절반쯤 미쳤나 해서 볼을 꼬집어보고 여기 나 혼자니까 팬티에 손을 집어넣어 내 고추가 실하나 만져봐도 너무 실해서 탈이었거든. (그 바보 같은 소리 그만 하면 안되겠니?) 아니 근데 이거 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고. 어? 우는 고양이가 쥐를 잘 잡은 적은 결코 없다는 말도 있다만. 개는 개 토끼는 토끼. 쟤네들 인생 지들이 만끽하는 거고. 그분들 삶을 내가 대신 살아줄 수도 없는 거 아니겠어? (좀 더 솔직하게 말해볼까? 언젠 안 그랬나) 난 내 가방만 챙겨서 떠나면 그만.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거 정말 너무 이상하단 말이야. 아니 어떻게......!
    그래서 나는 가방을 챙기기 전에 핸드폰으로 동영상을 찍었다.
    근데 뭐야 이거~! 육안으로 봤던 토끼들이 핸드폰 화면에서는 개들로 보이잖아. 이런 젠장!
    "잘해봅시다 우리." 라면서 토끼가 사람 말을 하는 환각까지 보이는 것만 같았다. 아니, 환청이 아닌가?
    잘해봅시다... 나 들으라고 한 말인가? 난 진짜 내 옆에 누가 없나 두리번거리기까지 했다. 뚤레뚤레 뚤레뚤레 아무도 없었다.
    느낌 이상한데. 혹시 내 뒤에 누가 있나? 절대 뒤돌아보지 마, 라는 대사도 유행지난지 오래된 구식탱탱묵은 기억이지만서도.
    일상적으로 뒤를 돌아보는 거, 필요하다. 우리는 음식점에만 들러도 무조건 출구를 제일 먼저 파악한다. 우리는 입구로 어딜 들어가도 건물 설계자의 의도를 훤히 꿰뚫어... 됐고.
    한편 잠깐 딴 생각을 하던 중 난 알게 됐다.
    알고 봤더니 이제야 난 제정신이 돌아온 것이다. 더군다나 그때 갑자기 내 몸에서 털이 부숭부숭 급속히 나더니 결국 난 토끼로 변함. 그래서 기절!
    그 다음에 어떻게 됐을까? 맞춰 보세요. 어서요. 뭐? 맞추긴 뭘 맞춰. 누가 맞추냐고.
    똥개 1과 2가 대판 싸우는 동안 먹음직스런 개뼉다귀는 똥개 3이 물고 튀는 법.
    똥개 3이 누군가 면밀한 관찰이 요구되는 전개이긴 하다만 난 이미 개꿈을 꾸는 중인데 이걸 어쩌나. 그래도 나름 돼지꿈 비슷했다.
    새로 태어난 기분. 환생한 느낌. 환상의 끝을 달리는 분위기. 황홀감 끝장인 로보트춤을 격렬하게 춤추다 못해 신기한 요정 나라에 당도한 심정. ~까지는 아니었으나 약간만 재밌었으니까.





    8

    <낡아빠진 이상이 돈 쓰는 재미라고 하긴 좀 그렇다. 구식탱탱묵은 소망을 좋아하고 식상한 열망을 사랑하느니 방탕과 타락을 양쪽에 꿰찬 한량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다. 그럼 남은 건 시간을 죽이는 일? 심심한 게 좋은 거다. 재미없는 게 뭐가 나쁜가. 소소한 쾌감이 곧 행복인 거지. 허나 그건 이론이고 실제는, 인간은 만족하기 어려운 동물이라는 점. 그럼 결국 그 말은 마침내 진한 사랑을 뜻하잖아? 젠장. 내 개침 아니 사심 하나 제대로 건사를 못하는군? 아니다. 숙녀들이 우리한테 심심하면 첫눈에 홀딱 반할까봐 두려워서, 바로 그래서 우리는 아는 여동생들 키우지 않는 것일뿐. 그 뿐만이 아니라 우리는 쥐꼬리만한 품위유지비 더없이 만족. 대만족. 거짓말도 잘한다. 품위에 대해 쥐뿔도 모르는 주제에. (어떻게 생각해? 생각이 있어야 말이지) 허나 욕구 불만, 못 견딜 만큼은 아니다. 그래서 노상 누군가 꾹 참고 발설하지 않았던 비밀을 제법 능청스럽게 털어놓을까 말까 그 궁리. (설마 난 아니겠지?) 근데 할 말 떨어졌으니 입이 근질근질할 리가 있나. 아아 이래서 소녀감성과 숙녀 허영심은 그렇게나 남 얘기를 좋아하시는 걸까? 그러거나 말거나. 좌우지간 난 엄밀히 말하면 허당은 아니다. 딱 봐도 사랑에 굶주린 티가 역력한 늑대라면 또 몰라도 말이다. (좋을 대로 하시게나 친구) 근데 말이다 이 동네는 뭔 여자가 없지. 당최 눈 씻고 찾아봐도 전부 다, 몽땅 다 남자들 뿐이다. 물론 꼭 숙녀의 향기, 탐스런 꽃내음을 바란단 뜻이 아니라 그냥 그렇다고. (웃기지 마)
    이렇게 한적한 별장에 놀러와서까지 허접한 공상이나 일삼고 있으니... 쯧쯧쯧. 그래도 도시에서 마라 그년한테
   「너 주말인데 약속도 없냐?」
    라면서 깐족거리는 재미가 꽤나 쏠쏠했긴 했나보다. 그래도 말이다 도시에서 여성환상 1.5 고위급 사라한테 「남자도 좀 만나고 그래 이 친구야.」 라면서 헛바람 주입시키는 흥미가 이쯤 되니 제법 아쉬운 거지. 왜 아니겠어>
    나는 꿈속에서 이처럼 일기장에 낙서를 쓰고 있었다.
    근데 눈을 떠보니 킨제이의 집. 잠깐, 이게 다 어떻게 된 일이지?
    난 도시를 떠나 시골로 왔음 → 요양전문 시골생활 시작됨 → 들짐승이 죽으면 마치 사람이 죽은 듯 취재 기타 등등 이상한 동네 분위기에 적응 → 동네친구 킨제이와 친해짐 → 개섬에 갔다 재미없어서 돌아옴 → 개섬에 가방을 놓고 왔음 → 찾으러 감 → 개섬 도착 → 근데 거긴 개섬이 아니라 토끼섬 → 핸드폰으로 동영상 찍음 → 토끼들이 핸드폰 화면에서는 개들로 보임 → 난 토끼로 변하다 기절.
   아하 그랬구나!
   「형씨. 깨어나셨수? 그러게 날 데려가셨어야지. 어쩌다 그런 악수를 두셨나 몰라. 허허허.」
   「」
   「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오. 난 형씨의 그 모험심 높이 산단 말이오. 저속한 걸로 치부할 개섬 탐험이 아니긴 하나 탐색 결과가 허탈하실 수도 있고. 아닐지도 모르고. 그 마음 이 아제가 왜 모르겠소. 아니 그렇소? 허허허. 괜찮소. 일어나지 말고 좀 더 쉬소.」
   「」
    그렇게 몇 일 경과됨.





    9

    예상치 못했던 발단에 뒤이은, 현실과 전혀 부합하지 않는 전개가 이제 곧 날 이끌게 될까? 꿈도 야무지다. 호기심을 대만족시켜 줄 유쾌한 껀수 같은 건 없으니까 좋게 자기 합리화나 하는 게 나을지도 모름. 그렇다면 말이다 아름다운 청춘 시절 비밀스러운 사랑은 코빼기도 비추지 않는단 건가? 아니 대체 몇 번을 말해, 동네 아저씨로써 중년에 대한 칼럼이나 쓰시지 뭘 또 헛생각을! 하지만 아무리 좋게 말해도, 하긴 뭐 똥차는 차 아닌가? 그렇다. 그래서 난 그 말을 기억했다. 바로, 궁중이 너를 버리기 전에 네가 먼저 궁중을 떠나라. 허나 그건 사극 대사이자 속담에 지나지 않으니 내 현실과는 너무 동떨어진 얘기. 몽상 그 어엿한 결론은 매번 이처럼 개 풀뜯어먹는 식이다. 이렇듯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친구로부터 이런 말을 얻어들어도 싸다고 할 수 있다. 그건 무엇이냐! 바로, "너 OB가 대체 어떤 놈인지 알기는 하니? 걘 정말 파렴치한 놈이야. 한마디로 색마라고. 어?" 물론 거짓말이다. 뻥이란 말이다. 허나 비장의 카드를 난 여태껏 꼭꼭 숨겨두었다. 어느 날 경탄을 금치 못한 잔재주가 갑자기 내게 생겨버렸던 것이다. 허나 뻥이다. 이러니 난 약이 바짝 오를 수밖에. 그래서 걸핏하면 몽상에 흠뻑 젖어들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환상적 허영심, 기분파 자존심, 다혈질 허세, 미신적인 허언증... 기타 등등 쟁쟁한 대타들은 다 어디로 가버렸을까. 뭐 원래 없었나? 몸 둘 바를 모르겠네. 말할 것도 없이 난 코너에 몰린 셈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므로 무슨 일이 있어도 쥐구멍을 찾아야 하는데. 찬찬히 생각 좀 해보란 말이야 글쎄, 어? 근데 어떻게 된 게 말이야 그 흔한 거 뭐야 어설픈 개구멍 하나 보이지 않지? 아니 정말, 응? 내게 진정 숙녀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호시절이 있었을까? 만약 있었다면 이런 헛소리를 털 일이 없겠지. 좌우지간 언제까지 이처럼 허무하도록 김빠지게 가택감금으로 젊은 날을 허비해야만 하나. 안되겠다.
    따라서 나는 과감히 행동에 나섰다.
    근데 이미 깡촌 별장으로 왔잖아?
    게다가 불과 얼마 전에 싸구려 리무진 타고서 바닷가 드라이브도 하지 않았나?
    그러다 최고급 호텔 생활이 지겹던 찰나 마침, 어? 때마침 요양전문 시골생활이 시작된 거지 않나.
    심지어 개섬까지 구경했어. 뭘 더 바래? 뭘 더 원한다는 게 아니라, 어? 아니~ 그게~ 그게 그러니까 말이지...
    뭔가 하고 싶단 말도 아니고. 어쩌면 좋겠다면서 사심 채우고자 한다는 게 아니라. 모든 욕망 내려놨다는 말도 안 했음.
    근데 이 허전함은 뭐지? 그 신비한 정체를 알 수가 있나. 그냥 모른 체하면 그만.
    고로 난 오전에 일하고 오후에는 인터넷 서핑도 좀 하고 게으름피우다가 오후 3시부터 본격적으로 놀기 시작했음.
    그렇게 딱 동네 여기저기 막 그냥 빨빨거리면서 나돌아댕김. 오라는 덴 없고 만날 사람도 없지만서두 엄청 나댐. 혼자 바쁨.
    (뭐 나서지도 나대지도 마?) 이것들을 그냥... 농담이고. 지금 중요한 얘기 중이니까 말 시키지 마. 꼬치꼬치 캐묻지 말라고, 어?
    결국 줄거리를 요약해보자면 이렇게 됐음. 깡촌에서 외톨이로 심심할 바엔 차라리 도시의 고독한 사냥꾼으로 재미없는 게 낫긴 낫단 생각이 든 거지.
    난 그래서 혼자 놀기에 지치던 중 폐쇠된 놀이공원 발견
    ↓
    다람쥐챗바퀴 놀이기구 운행을 마지막으로 경영하던 시골 놀이공원이란 말이군. 끝끝내 버티다 묻 닫았네. 뻔해. 같이놀 친구가 없던 찰나 난 혼자 그곳을 탐방.
    ↓
    그러다 귀신의 집에 들어감.
    ↓
    통로가 매우 김. 따라감. 계속 따라감. 결국 암흑 끝으로 빛이 보임.
    ↓
    그렇게 거대한 직사각형 채광창 비슷한 곳에 다다름. 갑자기 뒤에서 바람이 휘몰아침. 그렇게 스크린을 찢은 채 극장 무대로 튕겨져나감.
    ↓
    그곳은 시골 시민회관 영화관. 모든 동네 주민이 거기 모여 있었음. 상영중인 영화는... 뭔지 모르겠음. 근데 사람들 표정이 없음. 겁나서 도시로 돌아감.





    10

    어느 날 나는 퇴근 후 아지트에 들렸다. 별다른 건 없었다. 마크 로스코의 "블루. 오렌지, 레드" 위작이 새로 보이는 거 빼고는. 평소 같으면 최신 유행가랄지 클럽 음악이나 기타 등등이 들렸겠으나, 오늘은 어딘가 모르게 특별한 날일까? 음악은 이랬다. Handel / 오페라 <줄리오 체자레> “폭풍우에 시달린 배가 항구로 돌아왔네” 그럼 뭐 나 보고, 프라이팬에서 나와 불 속으로 뛰어들라는 신호탄이라도 된단 말인가. 그럴 리는 없겠지. 주인공병 재미도 없고 얼굴 팔리는 거도 귀찮고. 그렇다고 누가 날 띄워줄께 당신을 유명하게 만들어드리겠소! ~라면서 사기꾼이 포커페이스로 나처럼 허접한 허당한테 립서비스 풀면 난 딱 속아넘어가라고? 내가 왜! 그처럼 공상이 저절로 이상의 날개를 펼치려던 찰나 친구들이 내게 말을 걸었다. 상투적인 대화 내용은 생략한다. 더불어 우리끼리는 간지럽게 선물을 주고 받는 사이도 아니다. 오리를 주는 자는 거위를 기대한다기보다, 만사가 귀찮은 거지. 뭘 해도 재미없는... 청춘이니까. 걔네들처럼 나 역시도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면서 중년을 위한 칼럼 쓰느라 퍼질대로 퍼졌으니까. 또 우리는 여자들처럼 겸손과 칭찬처럼 틀에 박힌 대화도 좋아하지 않고 말이다. 그럼 판에 박힌 농담들이 흥미롭지 않기 때문에 더 이상 대화를 나누지 않을 수도 없고. 그러다 누군가 우리들한테 제안했다.
   「얘들아. 소풍가는 거 어때? 콜? 어? 콜?」
    그래서 나는 최근 가봤던 개섬을 얘기하니까 녀석들은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그렇게 엉거주춤 갈까 말까 망설이다가, 바람잡이 같은 누군가가 선뜻 가자 라면서 부추겼고. 그래서 우리는 다음 날 개섬으로 허둥지둥 떠나기로 했다.
    장면 전환. 중간 건너뛰고.
    장면 전환. 중간 건너뛰고.
    장면 전환. 중간 건너뛰고.
    여기서부터는 줄거리만 간략히 설명하기로 한다. 왜냐하면 살을 붙여 드라마로 개작해서 뻔트에 성공하면 '망해도 고'라면서 영화화될 게 뻔하니까. 아닌가? 아니든가 말든가.
    좌우지간 우리는 텐트치고 고기 구워먹다가 보게 됐다. 배 A가 와서 섬의 모든 개들을 실어감, 곧이어 배 B가 와서 섬에 토끼들을 잔뜩 퍼놓고 떠남.
    나는 옳지 이거야~ (딱)! 그러면서 친구들한테 재미난 걸 보여준다면서 큰소리 뻥뻥침. 신비란 바로 이런 거라면서 겁나게 떵떵거림. 내가 정말 너네 평생 단 1번 볼까 말까 알 듯 모를 듯, ~이 아니라 알기 어림 반푼어치도 없을 그런 신기한 환상을 보여준다면서 잔뜩 헛바람 주입시킴. 보다시피 개섬이 토끼섬으로 바꼈는데, 저 평화롭게 풀 뜯어먹는 토끼들을 핸드폰 동영상으로 찍으면 모두 개로 보인다면서. 결과는 아시다시피. 그래서 개 풀뜯어먹는 소리 나불대지 말라면서 상욕을 얻어먹음. 썸씽 있을 뻔하다 말았음. "개섬 → 토끼섬"으로 전환만 되었을 뿐.





    11

    우리는 개섬 아니 토끼섬 캠핑 3일째. 멤바는 알퐁스, 에드워드, 나 그렇게 3인방이었다.
   「얘들아. 오늘 갈까 내일 갈까?」
   「글쎄.」
   「일단 그 말 내일 다시 하는 게 어떻겠니?」
   「그거 좋겠다.」
   「근데 말이야 이처럼 무인도보다 평범한 여행지 가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무인도에 데려가고 싶은 사랑의 차트. 이루어질 수 없다는 거 잘 알잖아. 보나마나 재산목록 1-2-3 비리비리한 늑대들끼리 으쌰으쌰해서 여기까지 오게 된 거잖아. 섬머타임? 다음 달에 또 가면 돼. 갈까? 가자. 바캉스? 형이 가서 다 꼬셔줄께. 기대해. 걱정 말라구. 응? 그건 그렇고 너넨 요즘 사는 낙이 뭐니?」
   「난 집에서 영화보며 자빠져 과자 먹는 거. 그래서 우리 집 창고에 소파가 5개잖아. 난 내가 번 돈 아마 10%는 전부 소파 사는 데 다 쓰는 거 같아. 아니? 계산기 두드리면 1/3일지도 몰라. 그러는 너넨?」
   「나도 너랑 같아. 다만 난 다큐멘터리나 영화 말고 다른 거 본다는 게 다를 뿐이지. 다음 넌?」
   「친구들을 만나도 예전 같은 재미가 없어.」
   「아저씨네.」
   「그런 넌 여전히 발정기냐? 노인네 힘도 좋아. 야, 별명 얘기 해볼까? 에잇 폭로전 재미없다. 하지 말자. 아니, 내가 너네들 회춘하도록 만들어 줘? 그래, 말어? 어? 말만 해 말만.」
   「참어라.」
   「넌 조증. 넌 수전증. 난 허언증. 우리 거 어째 이 조합으로 너무 많이 만난 거 같지 않냐?」
   「내가 너네들이랑 놀아주느라 애쓴 노력. 10분의 1만 딴 데 썼어도...」
   「넌 그래서 안되는 거야. 어?」
   「그만 하자.」
   「근데 넌 운동화가... 뭔가 이상한데?」
   「아 이거? 최근 옷이랑 신발이랑 싹 다 버렸어. 요즘 버리는 재미에 빠졌거든. 어른들이 그러잖아. 살아보니 돈 쓰는 재미만 한 게 없더라고. 그런 김에 분기별로 컨셉 정해서 살기로 했는데 말이야, 이번엔 범생이였지. 그래서 중저가 운동화를 사려는데 내 마음에 드는 게 하나도 없네? 괜찮으면 비싸거나, 나쁘지 않으면 여자 꺼. 그래서 어두운 색 1가지 운동화를 사려는데 왠지 몰라도 밑창의 그 눈부신 흰색이 영 거슬려야 말이지. 카키랑 청보라든 뭐든 딴 색 많고도 많은데. 어? 근데 왜 하필 밑창 흰색은 고집하는지 모르겠어. 이참에 운동화 디자이너나 해볼까? 어쨌든 그래서 중저가 운동화 하나 사서, 카키색 에나멜도 하나 사서 거기다 발랐어. 근데 에나멜이 불량품이었어. 그래서 페인트를 샀어. 그렇지만 내가 언제 페인트질을 해봤겠니? 그래서 살짝 번지길래 수평 맞추다가 점점 위로, 점점 위로 올라가네? 그래서 이 모냥 된 거지. 차라리 중고가로 살 걸 괜히 중저가를 고집했다가. 나중 들인 노력과 추가금 합치면... (절레절레)」
   「야. 그런 얘기는 여자랑 있을 때 하는 게 어떠니? 남자들이랑 있을 때 그런 시시콜콜한 얘기 꼭 하고 싶냐? 그래서 늬가 여자가 없는 거야. 어? 그러니까 늬가 안되는 거라고.」
   「아무튼 난 실은 더 부유해지고 싶지 않아. 난 솔직히 여자들 그만 사귀고 싶어. 귀찮아 죽겠어. 아는 동생들이 하도 귀찮아서 이번에 핸드폰 번호도 바꿨어.」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음. 기분 짠하게 너무 그러지 마라 친구야. 아아 그나저나 고기 먹고 싶다. 아 미치겠다. 고기를 안 먹으니까 힘을 못 써. 어차피 힘 쓸 데도 없지만서두. 말이 그렇단 거다만 생돼지고기라도 막 씹어먹겠다. 자주는 아니어도 간혹 고기를 먹어줘야 하는 건데 말이야. (절레절레) 우린 왜 고기 구워먹을 생각을 안 한 거지? 미스테리가 따로 없다. 너넨 힘 뺄 필요없이 뭘 해도 재미없을라나 몰라도 난 아니다. 난 아니야. 난 아직도... 됐다. 그만 하자.」
   「한놈은 지 땀에서도 막 커피 냄새가 날 정도로 커피를 사랑한다질 않나, 한놈은 뭔 전생에 고기 못 먹어서 죽어 한을 품은 귀신이 붙었나... 쯧쯧쯧! 너. 그리고 너. 너가 정말로 1년 연봉의 절반을 커피값으로... 아 저번에 인증했지. 인정. 근데 넌 고기 먹으나 안 먹으나... 하긴 내가 뭐 늬 여편네도 아니고 말이지. 내가 늬 마누라도 아닌데 그 걱정을 왜 하는지 몰라. 참 나 거 나도 나다. 그러지 말고 시내에서 술 마실 때만 2차 3차 가란 법 있냐? 오늘 대충 놀고 내일 짐 싸서 딴 데 가자.」
   「좋은 생각이야.」
   「콜.」
    그렇게 다음 날이 되었다.
    근데 이게 어찌 된 일이란 말인가!
    간략히 설명하자면 이렇다. 저번처럼 대규모 교체 발생. 이번에는 사람. 전부 여자. 여자 100%. 뭐라고? 다시 한번 말하겠다. 아니, 100번이라도... 그걸 누가 바란다고. 좌우지간 엄선되어도 너무 엄선됐다는 것만 누군가 알아주기를 꼭 희망한다고까지 내 입으로 어찌 실토하나. 사실만 단지 그렇다뿐. 아니 어떻게 무슨 병아리도 아니고 감별을 감별을... 뭇남성들 놀라자빠질 일이로구만 그래.
    거기서 끝이 아니라 자기들 마을 청년회장을 맡아주라고 떼씀. 정중히 거절하자 깽판부림. 난동. 법석. 토끼섬이었을 때 떠나야 했던 것일까? 돌아가는 분위기 상 거절 못하는 형편에 이르름. 우리는 어떻게 그처럼 쉽게 승낙하게 되었을까? 방법은 많았다. 예를 들면? 인형던지기. 울기. 옆에서 달래기. 그녀들끼리 머리끄댕이 붙잡고 다투기. 말싸움. 침뱉기. 앙탈. 연기. 자기들끼리 찰지게 패기. 옷벋기. 나체쇼에서 조금 더 나아가... 쉿!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런다고 순순히 그분들을 따라갈 우리들인가? 그리고 한번 생각을 해보란 말이야 생각을, 어? 밑도 끝도 없이 무슨 쟤네들은 사이비 집단이야 뭐야. 그렇지만 이거 저거 다 따져도 누군가 솔직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는 점, 아마도 부인하기 좀 그 뭔가 거 마 거시기 아 나 정말 그래. 말하자. 뭐 그럴 수도 있고 코메디 대사에 불과할 테니까. 요컨대 오 땡큐? 넘어가고. 늑대를 자기 고해신부로 삼는 양은 어리석다는데... 당장은 늑대들 입이 귀에 걸렸을지 모르는데. 근데 아마존의 원뜻이 혹시...! 한 가지만 알면 된다. 농장주와 그의 당나귀는 항상 생각이 같지 않다는 점. 일단 심심치 않은 전개가 난데없이 튀어나왔으니 두고 보면 알겠지 뭐.
    다음 날 조수간만 차가 연중 최고인 날이지 뭔지 섬과 육지는 육로로 연결됐다. 그렇게 우리는 걔네들 동네로 떠남.
    물론 가기 전에 우리는 서로 말이 많지는 않았으나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는 뭐랄까 사내들만의 예감? 까지는 아니겠으나 아마 나도 모르는 뭔지 모를 기대가 없다면 거짓말이었을 것이다. 때문에 우린 막 이런 대화를 나누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옛날에 집안일에 지친 엄마가 막내인 내게 이런 얘길 하셨지. 늬가 여자라면 좋겠다. 오늘을 기다렸어!」
   「어쩐지 여태 너무 재미없다 재미없다 그랬지. 어른들 말씀 틀린 거 하나 읎어. 왠지 몸이 찌푸둥하다 싶으면 어김없이 다음 날 비가 오거든. 내가 이럴려고 삭신이 쑤셨던 것일까?」
   「난 내 인생에서 전성기가 없을 줄 알았거든? 근데 아니었어. 허허허허허. 흐흐흐흐흐흐. 풍운아의 황금기를 논할 때 이럴 수도 있어. 나처럼 침묵하기 좋아하는 논평가를 주인공으로 낙점하는 드라마가 나온다면 말이야, 그건 바로 지금이야. 딱인 거지.」





    12

    첫째날 잔치까지는 좋았음.
    그러나 다음날 화장발 때문인지 뭔지 콩깍지가 벗겨짐. 자세히는 말하지 않겠음.
    고등학교 친구들 7명이던가 몇 명이던가 우르르 놀러가서 겪었다는 귀신 이야기. 걔네들은 실제 사신의 주술로 빚어진 환상을 겪었거나 아니면 뭔가 속임수일지도 모르겠다만. 어쩌면 착오랄지 혹은 오해에 불과할 수도 있다만. 그와 달리 우리는 사실주의와 미스테리의 경계를 체험했다고 할 수 있다. 기왕 말 나온 김에 자세히 고백하고 넘어가자. 그래. 그게 뭐 흉도 아니고 실제 있었던 일일 뿐인데, 흑심 없지 않았다만 우린 사춘기 모험심을 되찾았던 꿈에 부풀었으니까 그건 그냥 넘어간다 치고. 뜸들이지 말고 곧장 요점말 간략히 진짜 1줄평으로 말하겠다.
    개섬 아니 토끼섬에서 아가씨 100명? 몇 명인지 세어보진 않았다만 그냥 대충 빼어난 미모의 숙녀 100명. 말 그대로 그날 봤을 때 미인대회에 나가든 영화를 찍든 그 어디서든 신부들러리를 서라면 서러워 할, 아니?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물어봐도 압권, 첫손, 누구 하나 흡잡지 않을 미녀들이었는데. 아니 어떻게!
    그렇다. 그랬다. 첫째날 잔치까지는 좋았다. 정신없이 마셨다. 즐겼다. 노래 불렀지 왜 안 불렀겠다. 춤까지 췄을걸?! 옷은 안 벗었던 것 같다. 분위기 끝장이었지. 엄청 즐거웠거든. 그처럼 폭소대잔치는 우릴 한 10년은 젊게 만들어주었으니까. 사극에 나오는... 굳이 설명하지 않았도 알 만한 한량과 양반들의 그 어떤 방탕함. 아마 우리도 어제 충분히 느꼈다. 솔직히 말해서 그거 곱하기 10, 더하기...... 나누기 마이너스 7의 8승, 그거 받고 최상의 쾌락마 코싸인 얼마에 판돈 따따블!
    아니 근데 어떻게...! 다음 날 보니 그분들은 몽땅 시골 할머니들이었다. 당연히 우리들 친할머니 증조할머니 옆집 앞집 뒷집 윗집 아랫집 동네 아줌마 할머니들과 하나도 다를 것 없는. 그렇다고 그분들이 뭐 나쁘단 말이 아니라. 우리도 악의 없고. 사심은 있었나? 내심 사욕 있었을 수도 있다만. 쉽게 말해 이건 화장발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우리가 뭔가 환각에 취했다기 보다 진짜로 귀신에 홀렸다고 할 수밖에 없다. 다음 날 완전 깜짝 놀라 쓰러질 지경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겨우 2째날 우리는 떠났다. 새로운 바캉스 장소로.





    13

    알퐁스, 에드워드, 나 이렇게 3인방의 휴가. 바캉스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바람 부는 3월과 비오는 4월은 멋진 5월을 부른다. 초반에 부진했더라도 막판 스파트가 있을 것이다. 그래야 한다. 그럴 것이다. 그랬으면 좋겠다. 그러지 마, 나대지 말라고. ~라면서 우리 중 누구도 그러기를 반대하진 않았던 건 분명하다. 그렇게 우리는 제2의 행선지로 근처 호텔을 낙점했다. 호텔 이름은 산타 캐롤리나. 그 옆에 해수욕장이랑 유원지랑 공원에다 조촐한 시내 등 있을 건 다 있으니 딱 좋았다.
    그렇게 웨건 1대에 3명이 타고서 목적지로 가던 중 네이게이션이 말을 안 듣네?! 왜인지는 몰라도 녀석 상태가 안 좋았다. 또 핸드폰으로, 노트북까지 켜서 지도를 검색해봤는데 인터넷이 느리거나 정보가 부족하거나 그랬음. 그래서 우리는 휴게소에서 인상 좋은 아저씨한테 여줘봤다. 호텔 산타 캐롤리나를 아시냐고.
   「산타 캐롤리나 호텔을 아시냐고 물었소?」
   「네. 네 네 네. 네 그럼요. 혹시 아신다면 가르쳐주실 수 있을까요?」
   「좋다마다요. 거기 우리 동네요. 날 따라오시오.」
    그렇게 우리는 아저씨를 따라갔다.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근데 도착한 곳은 어제 우리가 하룻밤 묵었던 할머니들 아마존 동네라니!
    정말 그 아마존 동네 끝 부분에 호텔 산타 캐롤리나가 있었다.
    우리는 통사정을 아저씨한테 얘기했다. 무슨 귀신담을 듣는 표정이던 아저씨 왈,
   「몰랐수? 이 동네 사연이 많소. 원주민도 전원 교체된지 오래요. 혹시 개섬이라고 들어봤소? 이 동네 사람들만 바꼈으면 말을 안 허지 내가. 어? 형씨들 혹시 토끼섬 놀러갈 생각 있으면 내게 말하시오. 아니, 거기 또 바뀔 시기가 됐던가...? 아무튼 잘은 몰라도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 말이오, 캬~ 어? 내 참 나 도시 랜드마크 가운데 구식. 즉 옛날식 전망대 꼭대기층에 있는 스카이라운지. 레스토랑 분위기 좋으니까 연인들끼리 데이트하기 좋은 장소. 그런 촌스러운 전망대 건물은 원형이고, 스카이라운지는 회전식. 대충 그림 나오지 않소? 이 촌동네는 그냥 흔한 깡촌이 아니란 말이오. 그럼. 절대 아니지. 계획된 촌동네다 그 말씀. 이 양반들아, 어? 이 얘기 혹시 나한테 들었다고 절대 소문내지 마시오. 선생들 딱 봐도 입 무거울 거 같으니까 내 그래서 하는 말인데. 아 나 거 참 나 증말 이거 말 꺼낸 김에 말하지 않을 수도 없고. 또 그렇다고 섣불리 발설해도 나중 곤혹스런 발단에 휘말릴지도 모르겠지만, 그건 뭐 그때 가서 생각하고. 긴말 필요없이. 여긴 원형 스카이라운지처럼 회전식으로 형세가 바뀐다오. 증거를 찾소? 그러니까 멤바가 전원 교체되는 것 아니냔 말이오. 확신이 서지 않는다는 형씨들 표정 내 알다마다요. 아까 네이게이션 잘 됩디까? 아마도 개섬과 토끼섬 둘 중 하나는 이미 구경하셨을 수도 있다는 데 내 주급 걸겠소. 그렇소 안 그렇소? 네? 내 말이 썩 신뢰감이 부족하다는 것 지도 잘 알지만서두, 대체 설계가 어찌된 건지 제대로 아는 사람을 여기서 최고로 오래 산 장본인인 바로 나조차 단 한 명도 만나보지 못했단 말이오. 내 말 허트루 듣지 마시오 형씨들. 그게 좋을 거요. 원형 스카이라운지처럼 1차면 좋겠으나 2차? 아 거 증말 3D면 곤란한데 글쎄.」
    그러면서 인사도 없이 아저씨는 그냥 가버리셨다.
   「아저씨 상태가 많이 안 좋으신 거 같은데.」
   「그러게 말이야. 어젯밤 꿈이 아직 안 깨셨을까?」
   「그야 모르지. 그건 그렇고. 우린 호텔 캐롤리나에 짐 풀고 어서 놀자구. 낚시도 하고 여자도 꼬시고. 형이 여기 여자들 다 꼬셔줄께.」
   「너 저번에 그랬다가 한 명도 못 꼬셨잖아. 뭔 말만 말만 저 여잔 헤어스타일이 별로네 쟤는 성격이 더러울 거 같네. (절레절레) 너 후배들한테 유명한 거 아니? 형이 꼬셔준다면서요~ 근데 왜 못 꼬셔요? 왜 말걸지 않냐구요! 다 들었어. 어? 아아 날씨도 좋고 기분도 싱숭생숭한데, 날라차기나 한 대 맞고 싶다.」
   「그러지 말고 악기를 튜닝해서 유명 기타리스트 손때 묻은 거라고 속여서 팔까?」
    그렇게 우리는 호텔 캐롤리나 산타에 짐을 풀고서 거침없이 놀기 시작했다.





    14

    그렇게 친구들과 놀기 시작한지 3일째. 녀석들은 벌써 비도시 생활에 싫증냈다. 도시에서 재미없다면서 막 응석부리는 게 그래도 낫긴 낫다나? 그러자마자 정말로 알퐁스와 에드워드는 도시로 돌아가버렸다. 나만 남겨놓고 말이다. 같이 가자고 했지만 난 남고 싶었서 괜찮다며 함께 도시로 복귀하는 걸 거절했다. 앙칼진 사양까지는 아니겠으나 '누구와'보다 '어디서'가 중요했기 때문에, 적어도 난 지금 녀석들의 제의를 승낙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미 신나는 모험과 신기한 게임 주인공에서 낙마한 건 뻔하니까, 그러므로 난 한가하니 호캉스나 즐기면 다음 작품 구상이나 하기로 했다. 근데 그렇게 여유부리며 뭔가 막중한 할 일이란 게 정말로 아찔한 착상 떠올리기 였을까? 그럴 리가 있나. 하찮은 허당께서 허접한 줄거리 떠오르지도 않는데 그럼 보나마나 할 일은 인터넷 쇼핑이겠지. 최근 입도 근질근질거리지 않고 날씨도 덥겠다 숙녀들도 통 보이질 않겠다 엉덩이가 근질근질거릴 리 없거든. 허허허. 시시한 녀석. 아 맞다. 걔가 나지? 어쨌든 그렇게 호캉스의 주요 업무는 인터넷 쇼핑이었고, 어쩌다 소 뒷걸음질치다 쥐 잡는 식으로 칼럼 한두 개를 쓰면서 호텔 생활은 계속되었다.
    근데 최근 쓴 칼럼이 무슨 패션에 대해서, 팬티든 뭐든 달랑 3개로 돌린다나 뭐라나. 아무튼 그래서 나는 무선 마우스도 새로 샀다. 와~ 좋은데?! 탄력 받은 김에 나는 갓난아기용 분유&젖꼭지&젖병 구입도 빠트리지 않았다. 돈이 좋기는 좋나? 마우스는 로지텍 사일런트 신제품. 어머 그런데 정말로 감촉도 저소음도 괜찮은데? 진짜네? 느낌 좋은데? 그래서 난 이참에 키보드도 알아봤다. 기존에 사용하던 기계식 키보드, 저소음 적축으로 바꿀까 말까 작심 카드를 만지작만지작거렸던 것이다. 그런 김에 무접점 키보드를 이참에 최저가로 새롭게 장만해, 말어? 그러고 보니 자동차나 사이클이나 뭐나 쇼핑은 그저 패션과도 비슷한 이치다. 검색만 검색만 겁나게 하다가는 끝이 없을 듯 하고. 옷처럼 오래 입을 옷이냐 한철 입고 버릴 소비품이냐로 나뉘어야 하니까. 팬티 보유 달랑 3개까지만 제한하는 위인께서, 기계식 키보드와 달리 소모품에 가까운 무접점 계열을 최고가로? 유지보수도 귀찮아서 안 할 테고, 음 보아하니 그래서 난 명악기와 달리 1년 마음껏 쓰다 버리는 게 최고라고 생각했다. 팟지올리, 뵈젠도르퍼 기타 등등 유럽의 악기브랜드 즐비하긴 하나 전세계 명공연장 피아노는 스타인웨이&선스가 95% 장악. 내가 그처럼 좋은 거 살 거도 아니잖아? 필요도 없고. 자동차처럼 꼼꼼히 알아보고 1개를 10년 20년 탈 거도 아니고. 최상품을 1년 주기로 교체하냐, 최저가품에서 2~3단계 윗 제품을 1달 주기로 갈아치우냐 것도 아니고. 머머 접습니다 라면서 장비 싹 다 파는 분들처럼, 저번에 사이클 타면서 깨달았다. 비싸기 1등품을 5년 내내 타느니, 최신&최저에서 1~2단계 위 중저가를 1년마다 매번 새걸로 교체하는 게 낫다는 걸. 물론 돈이 남아돌면 최상급만 주기적으로 교체하든가 여러 대 입양하겠으나. 많으면 귀찮다. 선수도 아닌데 굳이 비싸 봐야 별로 의미도 없고. 그처럼 사이클처럼 최신품 사서 적당히 타다 중고품으로 되파는 방식이 지금 내게 괜찮을 듯 했으니. 더더군다나 무슨 내가 마누라 7명 갈아치울 막장드라마 주인공도 아니고. 그런다고 천생연분 내 사랑과 다음 생의 다음생의... 뻥치고 허영심 띄우며 여심을 드리블하면서 낭만을 저글링할 게 아니라. 그냥 참기로 했음! 우리는 쓰고 버리기를 좋아하니까 색다른 기분 얼마 지나면 새로운 감수성으로 교체해주는 게 나름 현명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뭐 마우스 동호회에서 맹활약하면서, 나는 지금까지 시판&절판&복각된 제품 300여 가지 종류의 마우스를 사용해봤음. ~처럼 깐깐한 애호가도 마누라 등쳐먹고 사는 한량도, 세기의 해결사도 희대의 사기꾼도 아니니까. 아울러 3~4시간 인터넷 검색 결과 대충 훌륭하다 아름답다 끝장이다, 좋다는 자동차란 자동차는 다 타봤다는 사람들 속내가 뭔지 대충이나마 수박 겉 핥기는 했으니 말이다. 근데 파도타기도 있고 스노보드와 스키타기도 재밌는데 또 사랑은 어느 시간에 다 해? 그 시간과 노력이면... 쉿! 그래서 결심 완료.
    뭐니 뭐니 해도 가격이 착함. 진공관 오디오고 나발이고 정신사나움. 만사가 귀찮음. 중고품이 좋은 게 있고, 비싼 거 오래 쓸 게 따로 있듯 어떤 품목들은 그냥 싼 거 적당히 쓰고 버리는 게 나음. 초코릿 부러트리는 감촉이니 뭐니 저소음 적축이 낫니, 아니다 자긴 팬터그래프가 왜 저평가되는지 당최 이해를 못하겠다는 둥 어쩌고저쩌고. 오랫 만에 지름신 올 뻔 했음. 하다 하다 팬터그래프 방식 두텁게 누르는 제품 설명, 세세히 깨알같은 글씨 몽땅 다 읽었음. (절레절레) 허나 다행히 합리적인 선택으로 마무리됨. 매우 흡족. 받아보기도 전에 이미 대만족. 소소한 행복 왕성허니 완성. 호사와 나태와 사치는 미완성이다만 나름 쏠쏠한 소비였음. 그 뿐만이 아니라 대타는 물론 벤치멤바들 즐비허니 대기중. 그게 그러니까 말이야, 눈독들일 탐스러운 과일이 그 얼마나 많은데 만사가 잘 되어 간다고 할 수 있나? 잔말 말고 긴축 제정으로 허리띠를 더 조여야 함. 빠짝. 어? 방심하면 안됨. 퇴폐는 우리의 이상이 아님. 방탕마 탈 생각 애초에 없음. 잔말 말고 잔잔허니 살 것들이 과소비는 아니다만 뻔트댈 게 많단 얘기다. 값싼 것만 바꿔도 얼마나 좋은데. 최근 최저가 안경 2개 구입했더니 와~ 신세계가 따로 없더구만 그래. 내 그렇게 선명허니 또렷한 세상을 볼 줄 알았다면 진즉 바꿨을 텐데. 하여간에 말이다 잔말 말고 지금은 허영심보다 지성미에 무게감이 실려야 한다는 뜻이단 말이다.
    그러게 말이야 말하자면, 한정판 톨스토이 에디션 몽블랑 최고급 만년필이 내게 가당찮은 소리인가? 내 주제에? 연예인 거 누구야 옆짱구 그 인간 골목길에서 나한테 걸리기만 해 봐 내 가만 두나 보게. 어? 알아서 피해다니라고 전하든가 말든가. 그러게 지가 뭔데 가만 있는 벌집을 들쑤시긴 들쑤시냐고. 어?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려도 유분수지 그게 뭐야, 어? 그게 뭡니까? 네? 그래서야 되겠습니까? 옆짱구 뽀글이 빠마 걜 그냥 콱...! 개꿈 꾸면서 달콤하도록 꿈속에서 진한 사랑을 수시로 만끽할 텐데 자는 개를 도대체 왜 깨우냔 말이냐고. 그 자식은 노래도 못 부르면서 지가 꼴에 가수라고, 근데 노래는 안 만들고 안 부르면서 뭔... 됐다. 됐다 그래, 어? 누가 지들 부럽대? 옆짱구 같으니라고. 뽀글이 빠마는 또 그게 뭐야, 지가 무슨 동네 아줌마야? 남자가 말이야, 어? 괜히 조용히 사는 촌닭한테 헛바람이나 주입시키고 그게 뭐 하는 거야, 어? 그게 뭐냐고, 어? 이런 젠장. 지가 뭐 황금귀에 대해 알기나 해? 음악은 무슨 지가 화성학에 대해 뭘 안다고 설치긴 설쳐! 어? 꼭 그런 애들이 집에서 몰래 이상한 거나 보면서 막 밖에 나가서는 딴 사람들 뻠뿌질이나 하고. 어? 관상부터가 말이야 그게 그러니까 내가 2번 다시.. 통과.
    물론 과장했고 비약이 심하며 엄살은 더 심하긴 하다만 일중독이니 이걸 어쩌랴. 적당히 자유시간 널널하고 일하기와 놀기의 균형감이 그다지 불행하지 않다면야 몰라도 그게 아니니까. 통상 먹고살기 뭐 적당하다면야 인터넷 쇼핑과 시내에서 전시품 구경하는 재미가 굉장히 쏠쏠하다만. 그보다 재밌는 게 어디 많겠냐마는 시간이 없으니까! 이게 이게 보니까 대리만족 취미생활이랑 똑같네. 마누라 100명 못 가지니까 자동차 100대를 보유하지는 않을 테지만, 난 비 오는 날엔 SUV... 그렇게 자동차 3대를 동시에 굴리는 중년. 여유 있음과 동시에 차를 그만큼 좋아하긴 한다만, 최대로 제일 길어봐야 3주 이상 타는 차가 없는 것처럼 밥 먹듯이 사고 팔고 사고 팔고. 우리는 그 부류가 아니라 사서 형편 되면 1년 쓰고 버리기. 형편 안되면 교체주기 늘리고. 여편네 1년마다 갈아치울 마음 없기 때문은 아니겠으나 연애사처럼 제품사용기 장황한 것도 나름 재미긴 하나. 제품 사용, 쇼핑, 애장, 수량, 양질...과 달리 최소화 및 최적화 시기이니 만큼. 적으면 적을수록 불만족을 교묘히 비켜갈 정도로만 한방에 팬티 3개 & 양말 3개로 돌리면 좋은 점도 완전 많음. 일단 형제자매한테 뺏길 염려가 없음. 시간낭비할 걱정 붙들어매도 됨. 달랑 트레이닝복 세트 2개로 돌리는데 그걸 누가 질투해? 시기받지 못해서 좋음. 얼굴 팔려 귀찮아질 가능성도 역시 차단. 뭘 해도 재미없을 수도 있다만 자발적 가택 감금처럼 근근히 살아가게 되면, 친구의 여동생의 후배 이삿짐 날라줄 필요도 없다. 잃을 게 없어서 자랑이란 말이 아니라 누군 뭐 겸손하도록 과시해보고 싶지 않단 말이더냐. 그게 아니라 마누라 잔소리 듣고 싶어도 혼자 사는데 어떻게 듣나. 아줌마 다변에 기 빨리지 않고 정력 아껴서 얼마나 안심인가. 중년 아저씨 그분들께서 괜히 말을 아끼는 게 아님. 굶주릴 대로 굶주린 늑대는 지금이 호시절인 줄 알아야 함. 뭐 말이 그렇단 거고. 형제자매 많은 대가족 중심 가부장적 시류야 늬 옷 내 옷이 어딨나. 내가 그래서 주말 드라마를 안 본다? 근데 옛날 우리 땐 말이야~ "청색-하늘색-연하늘색"가로 목폴라티를 나름 장만했다가 안 입고 있었는데... 하필 사촌형이 입네? 말할 수도 없고 말해서도 안되고... 근데 자꾸자꾸 알짱알짱 자꾸자꾸 얼쩡얼쩡...! 쩝쩝쩝 말할 수는 없고... 미쳐버림. 나 혼자 있을 땐 찍찍 슬리퍼 끌다가도 누구 보이면 태도부터 바뀌는 인생인데 미쳐버림. 후순위 출생자가 탄생하면 부모 사랑 100% 독차지하던 첫째의 감정변화... 부모님들 잘 아시듯. 아니~ 막내인데 애정도 분산돼... 오히려 마음은 넓어야돼... 근데 속은 뒤집어져... 외가 사촌들 몇 명 와서 손버릇까지 나빴던 형과 싸우기나 하고. 나 잘났다 자랑할 건 많지 않아도 좁은 도로 좁은 인도 좁은 2인 버스좌석, 내가 불편하고 내가 멀찍히 떨어져 가고 내가 다리 벌린 상남자한테 찍소리도 못하는 겁쟁이인 게 편하긴 하다만. 알짱알짱 킁킁킁 얼쩡얼쩡 쩝쩝쩝, 내 부모와 함께 크지 못한 성장배경 뻔히 알면서 공감 못한 척 안 친한 체할 수도 없고... 미쳐버림. 아무튼 그건 그거고. 내가 그래서 여자를 안 만남(내 얘기가 아님, 그분들 내 맘대로 대변인 맏은 것일 뿐). 여자들 가운데 쇼핑 안하는 부류, 왜 안 할까? 중고차 웹사이트에서 구경만 하다 보면 결국 자동차 사게 된다. 관심 있으면 어차피 시간문제. 그래서 우리는 유행가 듣지 않음. 계속 듣고 싶어서일 수도 있는데 솔직히 3번 들으면 질린다 라는 말 어떻게 하나, 그마저 총대메라고? 사람들 1주일 평균 TV 시청 시간이 과연 얼마나 되는데. TV는 바보상자? 나 혼자 조용히 시간낭비 하지 않음 그만이지 뭔 말만 말만... (절레절레)!
    따라서 대략 추산하기로 5시간 ~ 측정하기로 6시간 투자한 결과 이렇게 결론내고 더 이상 시간 소비 않기로 깔끔하게 정리. 닥치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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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동방식       제품명                    사용기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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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기계식         덱108 헤슘라이트     몇 년 됐음
내일       멤브레인      로지텍 유선 K120     100일 사용예정 / 바뀔 수 있음
가을       무접점         중저가 GK888B        1년 사용예정 / 바뀔 수 있음
내년       팬터그래프   출시일 기준 뽑기       1달 사용예정 / 바뀔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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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건 그렇고. 인터넷 쇼핑 할 만큼 했고. 이제 뭘 하지? 그럼 호텔 카지노에서 은둔형 도박사로...? 몇 번 구경하면 재미없음.





    15

    호텔 산타 캐롤리나 생활이 제법 익숙해졌기 때문일까? 나는 스카이라운지 바텐더와 급속히 친해졌다. 우리는 누구든 만나면 금방 친해진다. 또 자기 자랑이냐고요? 그럴 리가 있나. 그 바텐더 양반이 그야말로 입담이 장난 아니었던 것이다. 내가 그 친화력이면... 넘어가자. 물론 만나자마자 가까와지지는 않았다. 가까와진 계기 그 변곡점은 아마도 그분께 요청한 내 황망한 부탁이었을 것이다. 자주 보고 통성명도 하고 또 서로 호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기분을 눈치챘으니까, 어느 날 난 살짝 술기운에 힘입어 그분께 나한테 욕 좀 해주라고 간청한 것이다. 웬만하면 그분도 점잖은 태도와 사근사근한 자세를 잃지 않으실 텐데. 근데 어딘가 모르게 나만 예외였던 것일 수도 있고 아닐지도 모르고. 어쨌든 나의 그와 같은 애청을 무슨 하찮다는 듯이, 막 그냥 같잖다는 마냥 내가 그분께 이상한 청탁 하자마자 막 퍼붓는 것이었다.
   「너 왜 그렇게 사냐? 응? 어디 늬 변명 한번 들어나 보자. 아니다. 보나마나 들으나마나겠지. 늬 문제가 뭔지 몰라? 가르쳐 줘? 어? 너 지금 왜 잔소리 듣는 줄 알기는 아니? 응? 너 바보야? 공상이 망측한 줄 알기는 아니? 응큼한 녀석. 이제 그쯤 되면 세상사 비밀을 터득할 때도 됐는데... 쯧쯧쯧. 넌 말이야 여자를 모르는 게 제일 큰 문제야. 어? 어떻게 감상적인 낭만파 숙녀들을 못 꼬실 수 있지? 난 도통 이해가 안돼! 우리에겐 그건 식은 죽 먹기보다 더 쉬운 일이거든. 그러고 보면 세상이란 참 불공평하단 말이야. 왜 아니겠어. 아니 정말, 어? 제발 그 고귀한 여심들을 찬란하도록 행복하게 만들어드리면 어디가 덧나니? 어? 덧나긴 뭘 덧나!
    왜, 고깝니? 듣기 싫어? 늬 썩은 미소 보면서 말이야, 어? 하기 싫은 설교 하는 난 뭐 좋겠니? 그게 얼마나 아름다운 취미라고. 안 그래? 그러게 어째서 멀쩡한 유니폼맨한테 자길 꾸짖어달라고 했니, 응? 넌 그래서 안되는 거야. 알아? 늬가 그러니까 안되는 거라고. 때문에 넌 외롭고. 여자도 없고. 친구는 있니? 사랑은~ 없어. 늬가 사랑을 알아? 알긴 개뿔! 야!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어? 안 들려? 어? 언제 상욕 해달라고 할 땐 언제고 왜 생각 바꼈냐? 그래? 남자가 줏대도 없이 너도 팔랑귀냐? 어? 너 나한테 혼 좀 나자. 아니다. 내가 너 혼꾸녕 내줘서 얻을 게 뭔데. 나까지 기분 잡치기 밖에 더 하냐고. 어? 뭐 너 방금 그 생각했지? 너 혼자 있을 때 혼잣말 잘하지? 그러니까 방금 난 네 생각을 읽었는데... 가만 있자. (딱)! "진정하시게 바텐더 양반." ~라고 생각했지?
    야, 임마!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 어? 내가 뭐 꼬부랑 할아버지 될 때까지 여기서 눌러앉을 줄 알아? 너 내가 누군지 알아? 어? 또 또 또. 누가 한 성깔 안 한다할까 봐. 난 네 몸짓만 봐도 뭔 생각하는지 싹 다 안다니까 글쎄. 그걸 누가 궁금하기나 하겠느냐마는, 넌 적어도 내 앞에서는 포커페이스부터 나한테 제대로 배워야 한단 말이야 이 친구야. 하긴 나도 이처럼 처음부터 잔소리에 일가견이 있었던 건 아니었어. 그게 다 세상이 날 이렇게 만든 거라고나 할까? 허허허. 허당 주책이 이만저만이 아니군 그래. 심심하면 튀어나오는 그, 그, 이놈의 고질적인 잔소리. 팔랑귀 하며 허영심은 여전하지 잔머리굴리는 건 심하지. 어떻게 말려? 그놈의 잔뻔치 쉐도우 복싱 절로 떠오르는구만 그래. 근데 처음엔 널 혼내다가 왜 갑자기 자기 비하로 바꼈지? 왜지? 왜긴 뭐가 왜야. 그럴 수도 있는 거지. 어? 넌 안 그래? 그럴 수도 있어. 근데 나만 잔뻔치 스타일이 아니라 자네도 잔재주라면 어디서 썩 빠지지 않을 듯 하온데. 귀에서 피가 날 듯 말 듯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리는가는 몰라도, 여자 잔소리듣기 맷집이 내가 봤을 때 퍽 형편없는 수준은 아닌데? 남자로 인정. 아 지친다 지쳐. 근데 넌 뭐 대꾸가 없니? 또 여자 생각하니? 그래? 정말 그래? 하여간에 못 말려. 형님께서 이처럼 훈교하면 좀 알아듣든가 아님 경청하는 시늉이라도 비추든가. 어? 넌 그래서 안되는 거야. 그러니까 늬가 뭘 해도 재미없는 거라고. 그리고, 또. 어? 그래. 넌 기왕 바에 왔으면 제발 비싼 술 좀 시킬 수 없니? 올 때마다 달랑 맥주 1잔. 다음 날 위스키 1잔. 그 다음 날 발포성 와인 1잔. 근데 또 희한하게 다 마시지도 않아. 2번에 1번은 입도 대지 않는다고. 너 안되겠다. 여기서 제일 비싼 걸로 시켜라. 알았어? 알았어 몰랐어?
    근데... 형씨 정말 괜찮은 거요? 그렇소?
    (한숨)......
    어떻게... 형씨. 조금 더 해드릴까? 해달라는 대로 노력은 해드릴께. 응? 그게 뭐 어렵다고. 어? 기껏해야 입 좀 털면 시간도 빨리가고. 어차피 일 완전 열심히 해야 할 만큼 바쁘지도 않고. 난 여자 좋아하고 아제도 그렇다만, 숙녀는 코빼기 안 비추고. 퇴근 시간만 목 빠지게 기다리느니 이처럼 우리끼리 행복업과 사랑학에 대해 솔직히 토론하고, 얼마나 좋아. 형씨도 그렇게 생각하시지유? 그럴 줄 알았시유. 내가 사람을 좀 볼 줄 알당께라. 허허허허허. 근데 아제 표정이 왜 그런디유? 어디 아픈 거 아니유? 왜 표정이 썩었어 젊은 사람이. 그럼 못 써. 운동도 하고 여자도 만나고. 어? 집에서 이상한 거만 보지 말고. 어? 남자가 여자를 만나야지 그렇게 무슨 부처님 마냥 도만 닦다가는 그럼 못 써 이 사람아. 어? 좋게 내 말 들어. 자넨 내 말만 들으면 장래 대성하게 돼어 있단 말이오. 아시겠소? 그런 의미에서 내가 방금 형씨께 꼭 알맞는 표어가 생각났소. 안 그래도 우리끼리 최근 눈인사할 때마다 뭔지 모르게 그 말이 자꾸 걸렸다고나 할까? 그 문장이 대체 뭐겠소. 캬~ 어? 독수리는 홀로 날아다닌다. 캬~ 괜찮지 않소? 엇그제 형씨가 그랬지유. 저보고 잘생겼다고. 근데 이걸 어쩌나, 응? 지 여동생은 완전 끝내주걸랑요. 어떻게 제가 사랑의 다리 한번 놔 드릴까? 뭐요? 독수리는 파리를 잡지 않는다고요? 이 사람이 시방...! 너 이리 와. 따라 나와. 밖으로 나가자. 아니다. 됐다. 재미없다.
    (한숨)......
    아직 부족해유? 그래유? 말을 좀 해봐유? 네? 난 아직 1쿼터 시작도 안 했응께. 거 마 말만 하쇼, 네? 따지고 보면 우리끼리 이처럼 친해진 거도 다 전생의 인연이랄 수도 있는데. 내가 형씨께 하고 싶은 말들이 많소. 잘은 몰라도 아마 형씨도 내게 털어놓을 사연이 많은 거 아니오? 뭐 남자 대 남자끼리 솔직해집시다. 세계마초협회 정회원이자 허세대회 명예의 전당에서 미끄러진 허당들끼리 못 할 말이 뭐요, 네? 왜 당신 정말 기어코 내 고추 사이즈를 들어야 속이 시원하시겠소? 일단 내 진실을 털어놓는다고 가정했을 때 당장 통쾌하기야 하겠으나, 그거 알고 나면 알기 이전으로 타임머신 타고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그러므로 형씨 일시적으로나마 불행해지실지도 모르는데? 아마 몹시 절망할 걸, 상심이 크시겠지. 허허허. 허허허허허. 당신 나한테 안돼, 어? 날 벗겨놓으면 말이야~ 캬~ 아주 그냥 기가 막힌다니까 글쎄. 죽여줘요. 비율 끝장, 어? 눈이 부셔요 글쎄. 허허허허허. 당신께서 정녕 원하신다면 내가 못 알려줄 게 뭐요. 네? 보여줘요? 정말? 근데 여기서? 네? 아무튼 말이야, 어? 남자가 그렇게 꽁해서 얻다 쓰겠소. 당신 속좁은 남자란 소리 자주 듣죠? 그럴 줄 알았다니까. 일단 형씨 내 앞에서 눈물 콧물 쏙 빼놓을 때까지 잔소리 얻어듣도록 나도 힘 좀 써볼 텐데. 아~ 내가 3년만 젊었어도. 그래 봤자 난 아직 살아있어. 아니 잠깐만. 이것 봐라, 어쭈~! 지금 하품해? 존대하니까 내 말이 우스워? 지금 장난인 줄 아나 본대 뭘 좀 대단히 착각한단 생각 안 들어? 어? 어디서 버릇없이! 정신 차려 이 친구야. 어? 당신 나한테 잘못 걸렸단 말이오. 알긴 아시겠소? 우리가 뭐 허접한 광대들 한심한 장난 흉내내는 거도 아니고, 어? 우리는~ 야자타임 3분 4분 그렇게 안 해. 시작 했다 하면 3박 4일. 그래도 난 약과야 이 양반아. 내 아는 분은 글쎄 13년째 야자타임 중이라오. 그분들 친구의 친구는 평생한대. 누가 죽어야 끝난다나 뭐래나. (절레절레)............」
    솔직히 말해 그걸 애원하니 환상문학잡지에서 은혜로운 녹봉받는 문필가 입장을 떠나, 터놓고 말해 화자와 청자 우리 두 사람만 있으니 하는 말이오만. 그날 난 바텐더한테 이상한 부탁을 한 걸 땅을 치며 후회했다. 귀가 타다 귀에서 피가 날 지경이었으니 말이다. 아무튼 우린 그처럼 뜨겁게 친분이 두터워졌던 것이다. 나만 남자들로부터 덕망이 튼실하고 여자들한테 카리스마 끝장인 줄 알았는데. 농담이고. 그 양반을 보니... 여자들로부터 짝사랑 웬간히 지겨울 정도로 여복이 터진 양반인 것 같았단 말이다.





    16

    각인된 동물을 부모로 아는 일부 조류. 1명이나 2,3명 주인에게만 충복하는 개종류 일부. 그게 그러니까 말이다, 독일의 패색이 짙어가던 1944년 프랑스 독립군 주동자 가운데 1인인 한스 슈파이델 장성. 이상한 게 4년 전인 1940년에 육군 소장일 때 파리에서 아돌프 히틀러를 호위했음. 개인의 성공을 위해 눈치작전하며 줄서기 잘하는 약삭빠름이 전시일 때 이런 사례. 숫자를 세면 어마어마하도록 많음. 으쌰으쌰 승승장구하던 1940년에 과연 어떤 활약을 펼쳤는데 패색이 짙어가지 않았다면 구단을 밥먹듯이 옮겨가지 않았을 거라는 점. 레알 마드리드 유니폼 벗고 무슨 바르셀로나 새 유니폼 입는 것도 아니고 말이지. 당시 독일군의 프랑스 점령 비용을 프랑스가 전액 지불하는 것 뿐만 아니라, 독일의 전쟁 비용 1/5까지 프랑스가 지불하던 시절에 아돌프 히틀러 호위무사를 하시던 (프랑스)양반께서. 비굴함&참혹함은 말할 것도 없고 모든 원자재가 독일군에게 수탈되는 체계에서 전프랑스인은 독일군에 비교도 안될 만큼 비리비리한 일일 배급량을 받던 참혹한 역사의 현장이었는데. 전세가 기우니까 금새 편 바꿔서 원래 고향 축구팀으로 되돌아오는 일. 여기 붙었다 저기 붙었다 고추 달고서 남자가... 여자는 지조라도 있는데 말이야.
    ~라면서 인문고양서를 읽던 중 난 깜빡한 약속이 생각났다. 바텐더와 놀러가기로 한 날이었으니까.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장면 전환. 우리는 만났다. 근데 그 '우리'라는 게 여러명이라는 게 거 어째 내 마음에 뭔가 걸렸던 것일까? 예감이 이상했던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고 들어가자면 한마디로 성비 불균형. 뿐만 아니라 나와 바텐더는 이미 친해졌는데... 바텐더가 데려온 친구들과 내도 친해질 수 있을까? 단언하기 어려운 문제. 더더군다나 이제 보니 난 바텐더의 이름도 몰랐네?! 바에서 형씨 친구들끼리 소풍가는데 이 바람잡이처럼 존재감 애매한 아저씨가 끼어도 되는지 물어볼 때까지는 좋았지. 내가 눈치도 없이 누구한테나 들이대고 아무 데서나 나대진 않는다네. 막 그러면서 정중히 거절, 찬찬히 핑계, 대놓고 싫다고 싫다고 그랬는데도 불구하고 계속 함께 하자네? 난 끝까지 아니오! 리츠 칼튼 같은 호텔 체인도 아니긴 하다만 윗분들 알아 좋을 게 뭐 있냐 어쩌고저쩌고. 한사코 싫다는 사람을 계속 꼬시네? 근데 이상한 게 난 왜 이미 한 3~5명 정도를 예상할 수 있도록 바텐더가 운을 띄었는데, 대체 왜 내 마음대로 나와 바텐더와 여자 2명이랄지 나와 바텐더만... 그런 짝수 조합으로 단정했냐는 거다. 그처럼 은근히 와주었으면 한다고 난 그 대화의 요점을 그냥 내 마음대로 해석했던 거고, 지금 돌아가는 정황으로 봐서는 바텐더는 역시 립서비스의 명수일 뿐이었고. 그럼 또 난 빈말에 낚인 것일까? 내가 대어라면 낚여서 그분들도 얼마든지 즐거워 하실 테나, 나같은 잔챙이를 보아하니 썩 반가지는 않은 듯. 난 벌써부터 도망갈 궁리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속좁은 남자처럼 만나자마자 내뺄 수도 없고. 쩨쩨한 남자로 숙녀들한테 찍히면 더없이 곤란할 테고. 이거 정말 오랫 만에 어려운 자리에 합석한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호수 한 가운데 있는 유인도로 놀러갔다.  
    장면 전환.
    난 입도 뻥끗하지 않았다. 손만 까딱해도 뭔가 그분들 소풍에 누를 끼치는 건 아닐까... 혼자서 내가 이럴려고 바텐더와 친해진 것일까? ~까지는 아니겠으나 마음은 뒤숭숭. 하다못해 넉살 좋게 재산은 없어도 그 어떤 연륜 없지 않은데 분위기 봐서 그냥 들이대? 그런 일은 들어본 적도, 공상해본 적도 없지. 아무렴. 그러니까 그게 다 멍청해서? 누가 멍청해, 어? 넘어가고. 신비로운 아름다움이 이끄는 순결한 분위기에 힘입어 기분이 고상해지면 좋은데. 그건 단지 희망사항일 뿐. 정말로, 어? 여기서까지 나 혼자 공상에 빠져들면 그건 빼도 박도 못하는 바보천치란 말이니. 난 가만히 그분들 대화를 경청할 수밖에.
    남자 1: 오즈. 너 오늘 온 잘 입었는데. 멋져.
    여자 1: 멋지긴 누가 멋지단 얘기니?
    남자 2: 나 나름 신경썼어. 루시, 너 너무 칭찬에 인색하다고 생각하지 않니?
    여자 1: 루시, 너 너무 칭찬에 인색하다고 생각하지 않니?
    남자 2: 너 여기까지와서 말 따라하기야 정말?
    여자 1: 우리가 뭐 내외할 사이야 아니면 여기가 말 가려서 해야 할...
    남자 1: 괜찮아. 저분은 우리의 희망이니까. 물주란 말은 아니야. 중간보스라고나 할까? (몸짓)
    나    : 허허허. (몸짓)
    남자 2: 루시는 뭐 그렇다치고. 안젤라도 있으니 말인데 내 하나 묻자. 여자들이 말하는 '옷 잘 입는다'는 칭찬. 대체 그건 뭘 뜻하는 거니? 언제부터 묻는다 묻는다 까먹지 않고 꼭 물어봐야겠다 라면서 다짐만 몇 번을 했는데 빨리도 물어본다.
    여자 2: 그럼 난 일직도 즉답하면 되겠네 오라버니? 그렇지만 그런 얘긴 나보다 루시가 뭐랄까 시적이라고나 할까 문학적이라고나 할까. 뭐야 그럼 난 상대적으로 천박한 촌년이란 말이야 뭐야? 어? 뭐가 어쩌고 어째? 아, 내가 말했지. 미안. 얘 루시. 뭐 하니, 늬가 옆에서 미리미리 날 말렸어야지. 자, 말해봐 루시. 뭐 해 말하지 않고.
    여자 1: 말할 기회나 줬니? 지 할 말만 무정차로 1시간 반 연속으로 말하고 나서, 헤어질 때 되니까 다음엔 늬 말도 좀 듣자! ~라는 인사말이 네 특기인 걸 내가 왜 모르겠니. 누군 뭐 말할 줄 몰라서 안하겠니.
    남자 1: 자, 자, 심판은 아니지만 시트콤 새로운 멤바 마음 불안하게 만드시지 말고. 말 나왔으니 나도 궁금하다. 도대체 여자들이 말하는 '옷 잘 입는다' 그 참 뜻이 뭔데 그래? 어? 한번 들어나보자꾸나.
    여자 1: 저 오빠 학교 다닐 때 동성애자들이 좋아하는 스타일이었을 거 같은데...! 음... 아마도 적어도 1번은 들어봤을 거야, 늬가 우리반에서 제일 옷 잘입는다는 칭찬. 그치만 동성애자한테. 또 동성애자 친구랑 친해서 걔네 집에 돌러가자 하니까 친구집에 놀러갔을 테고. 물론 부잣집이었겠지. 그치만 결이 다른 동성애자와는 닭 소 보듯 소 닭 보듯 하는 사이인데. 그 친구한테 웃기다는 호감 표명 듣고 표정 괴상해졌을 텐데. 뭐 아무튼 그런 건 다 옷 잘 입는 거랑 거리가 멀지.
    남자 2: 그래? 말 빙빙 돌리지 말고. 뭐는 뭐다 라고 말해주면 안될까? 오락산업계에서 뜻하는 패셔니스타, 거 옷 잘입는 거잖아. 근데 왠지 모르게 얘네들은 그런 거 안 좋아할 거 같단 말야.
    여자 1: 잘 봤네.
    남자 1: 사교계에서 여자는 몰라도 우리가 봤을 때 옷 잘입는 남자애들. 우리라고 뭐 보는 눈이 없니, 아님 입이 돌아갔니 눈이 삐었니? 솔직히 얘나 나나 그렇게 옷 썩 못 입는 촌닭은 아닌데...
    여자 2: 오빠가 그러니까 여자가 없지.
    여자 1: 오빠는 그래서 안되는 거야.
    남자 1: 거 참...
    여자 2: 옷 잘 입는다? 옷걸이 좋은 남자.
    여자 1: 내가 봤을 땐 패션의 완성은 뭐다?
    남자 1: 이 봐 이 봐. 이거 보라고. 캬~ 어?
    남자 2: (몸짓) (톡 톡 다독임)
    남자 1: 그게 더 이상해. 너가 날 아주 바보로 만드는 구나. 아님 난 이미 너네들한테 푼수였니? 말 시작한 김에 짧게 듣기엔 왠지 서운한데.
    여기서 잠깐. 그녀 말 끊으면 안 될 듯 하오니 문단 떼서 가는 걸로.





    17

    여자 1: 그래. 말할께. 못할 것도 없지 뭐. 결론부터 말한 다음 시작하자고. 그게 좋겠지? 안 그러면 서운할 테니 말이야. 한번 섭섭하게 만들어드려? 괘념치 마셔, 웃으란 말이었으니까. 결론은 이래. "옷 잘 입는다"가 대체 뭘 뜻하느냐?
    첫째, (남자는) 옷 못 입지만 않으면 된다.
    둘째, 옷 잘 입는 남자는 신부들러리임을 자처하니까 칭찬받는 것. 여잘 띄워야지 지가 튀어? 미친 거 아니야?
    셋째, 옷 잘 입는다는 둥 소개팅에 패딩이나 쳐입고 온다는 둥 그건 뭐다? 간접화법! 여자말 번역기 전원 안켜지니까 또 직접화법이라니...
    이처럼 첫째 둘째 셋째 다 충족시킬려면 쉽진 않겠지. 어려울 거야. 때로는 가죽점퍼도 입고 싶고 중간보스 흉내도 내고 싶겠지. 이따금 어른스럽지 않고 싶을 때 왜 없겠어. 그렇지만 나이를 어떻게 잊나. 아무튼 긴 대사 원하셨으니 하는 말인데 옷 잘 입는다? 말이야 옷 잘 입는다느니 패션 테러리스트라느니, 뭐니 뭐니 해도 간접화법 먼저라니까 글쎄. 어? 왜 그걸 모르시고 뭘로든 누구든 무조건 직접화법만? 소개팅에서 그녀를 만족시켜야 한다는 남아의 도리. 숙녀에게 멋진 남성으로 보이고 싶다는 목적. 뭇여성들로부터 인기를 한몸에 받아 그놈의 러브콜 지겹다는 허세 나도 좀 한번 느껴보고 싶다 라는 솔직한 동기. 그와 같은 수많은 응분의 명분, 그게 나쁘다는 말이 아닐세. 그렇겠지? 때와 상황에 맞지 않게 어른들이 주선하신 선 자리든, 아는 동생이 소개시켜줬건 정식 소개팅 자리에 "PC 게임방 패션"? 남자가 말을 기가 막히게 잘 해봐, 어? 첫눈에 보자마자 여자가 그 남자한테 홀딱 반해보시라고, 어? 만나자마자 오늘의 무례함 어쩌고저쩌고 그녀 마음 쥐락펴락해버리면 이미 게임 끝인데? 연락처 안 물어봤다고 토라져서 동네방네 소문 쫙퍼지는데? 옷을 잘 입고 못 입고를 떠나서 기본과 예의도 있겠으나 화술과 태도는 왜 없겠수? 여자가 억지로 억지로 끌려나와서 세수도 않고, 화장도 1도 않고, 무릎 튀어나온 후줄근한 츄리닝에, 구닥다리 뿔테 안경에.. 완전 동네 아줌마 할머니 패션이야. 근데 절세미녀다? 아 다르고 어 다르겠지. 아니 그렇겠수? 멜로드라마에 나오듯 일부러 상대방한테 최단 시간 내에 차이고 싶어서, 거지꼴 까지는 아니나 최대한 신경써서 꼴보기 싫도록 차리고 나왔는데 글쎄. 그둘이 멜로영화에서 어떻게 될까? 하오나~ 그건 멜로드라마고. 현실에서야 우리는 대체로 주인공보다 병풍을 잘해야 잘먹고 잘살 가능성이 짙어지는 거고. 능글능글한 어른들이 괜히 뼈빠지게 일한다고 엄살 대결 펼치겠나. 유들유들한 어른들이 괜히 너와 나 누구 하나 빼놓을 것 없이 뼛속까지 속물이게? 괜히 그럴 리는 없음. 남은 속물이면 안되고 나만은 속물이어도 괜찮다는 뭐 그런 억지스런 법이라도 있나? 아니질 않나. 네? 뭐 앓는 소리 변죽을 더 올려줘, 아니면 허세대회 초절정 궤변의 변속기어를 더 올려드려? 아 글쎄 말만 하시라니까요, 네? 허허허. 옷이 문제가 아니라 딴년이 그놈과 말 섞는 꼴 못 보니까 내가 먹여살려서라도 데리고 살아야겠다는 심정, 그 정도로 사랑의 감정을 느껴보기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건 아니라는 점. 그러니까 간접화법 알면서 옷이 문제가 아닌데, 말꼬리잡고 늘어지고 핑계 화려하고 변명만 예술이지. 옷이 문제가 아니라 간접화법 번역기 잔고장이 제일 문제란 말이야. 응? 영화를 많이 봤으면 뭘 하나, 어? 백날 봐야 간접화법도 못 알아먹는데? 그래, 안 그래? 소개팅에 무슨 싸구려 패딩 쳐입고 나왔다면서, 여자들끼리 입에 걸레 물듯 앙칼진 입담 뽐내는 일. 과연 누가, 무엇 때문에, 언제 그런다는 거 모르는 어른들이... 남자는 흔히 까먹을 수 있지. 허허허허허. 내 마음에 쏙~ 드는 데 남자가 적극적이지 않는다? 여자 속 뒤집어짐. 숙녀는 남자한테 첫눈에 홀딱 반했는데 남자는 관계 지속에 회의적인 눈치다? 여자 속 계속 뒤집어짐. 장기전은 몰라도 어떻게 뻔트라도 안되겠니 라면서 여자가 노골적으로 들이대는 데도 불구하고 그 남자가 쳐다보지도 않는다? 이와 같은 몇몇 연패만 매번 겪고 내 마음에 드는 남자는 다 날 상대하려고 하지 않는다? 여자 마음에 쌓인 게 그 얼마나 많을까...! 못생긴 게 문제가 아니라 하필... 저... 저... 늑대부터 하이에나까지 날 만만하게 본다? 날이면 날마다 속 뒤집어지고 뚜껑 열림. 어딜 넘 봐, ~에 대한 과민 반응. 넘보지 않았고 손도 까딱 입도 뻥끗 안 했는데 자길 왜 넘 보녜. 아니면 왜 자기만 봐주질 않녜. 어? 밭이 좋을 수도 있고 날씨탓일 수도 있다만 씨 뿌리는 농부 입장은 뭐 생각 안허나? 넌 너 밖에 몰라 라는 말 그러니까 듣지. 난 솔직히 말해서 남자한테 잘 보이기 위해서 화장해. 남자한테 잘 보이고 싶은 게 뭐 어때서? 솔직하지 못한 체 남자한테 잘 보이기 위해서 어쩌고저쩌고, 여자의 적은 어쩌고저쩌고... 그런 말 몇 가지에 과민반응 일으키는 애들이랑 우린 안 친해. 여자들끼리 그걸 어찌 모르겠수. 솔직하게 날 최상으로 꾸밀 때 꾸미고, 잘 보이고 싶을 때 잘 보이고. 그러는 게 낫지 아닌 척 지 잇속만 챙기는 년들 완전 꼴배기싫어. 물론 오빠들이랑 친하고 내 허영심으로 날 포장할 마음 아니니까 이런 얘기도 터놓고 할 수 있는 거고. 어쨌든 옆길로 빠지지 말고, 패션? 응? 패션?
    조명발계에서 옷 잘입는다는 거야 다 지네들끼리 하는 인사말일 뿐이고. 웬만한 패션 디자이너니 누구니 옷 잘입는다는 난다 긴다하는 명사들. 거의 다 옷 못 입어. 몽땅 다 지들 맘대로 막 입는 거지 그게 어디 옷 잘입는 거게? 내 전남자친구. 전전남자친구. 전전전남자친구. 기타 등등. 걔네들 주변에서 옷 못 입는다는 말 별로 듣지 않았을 텐데. 그건 뭔가 어줍잖은 의견이라고 생각해. 한마디로 뭘 모르는 거지. 그래서 내 전전전전전... 난 지금까지 남자 한 번도 안 만나봤어. 이건 어디까지나 내 얘기가 아니라 옆에서 지켜본 친구들의 남자친구를 말하는 거니까 그리 알고. 어쨌든 내가 살면서 내 주변 남자들 통틀어서 옷 잘입는 남자? 딱 1명 봤어. 옷이란 건 말이야 지 마음대로 입어서는 안되는 거야. 물론 자기 인생인데 내 맘대로 옷을 왜 못 입어? 그래야 한다 그럴 수 없다 라는 말이 아니라. 때와 장소와 연령과 사안에 따라 구분되는 거야 누가 모르겠냐마는, 지금 주제는 패션에서 남녀의 차이에 관한 거니까 그쯤 알고.
    그렇듯 옷이 날개라는 말이 있듯, 여자는 변신의 귀재니까 여자는 옷 잘 입어도 돼. 응? 근데 남자도? 이거 왜 이래, 패션에 대해 당신들이 대체 뭘 안다고! 어? 패션의 '패'자도 모르는 것들이 꼭 보면 TV에서 광고계에서 설치긴 신나게 설친다니까 글쎄. 멋도 모르는 촌놈 촌년들이 말이야. 차라리 오빠 같은 촌닭이 낫긴 나아. 그럼. 오빠가 그랬잖아. 엇그제 어떤 칼럼을 읽었는데 칼럼니스트 그 인간 거 지가 무슨 패션계의 걸출한 권위자라도 된다는 듯이 겁나게 아는 척하더라는 얘기. 팬티 뿐만이 아니라 트레이닝복까지 뭐 3벌로 돌린다는 둥 패션은 중간은 가는 게 아니라는 둥. 어? 패션이란 말이야, 거기까지 넘어가진 말고. 아무튼 패션의 거리든 백화점이든 가보라고. 남자 옷이 많나? 캐쥬얼, 스포츠는 많지. 허나 그거 말고. 정식 남성복. 어디 여자 옷 종류한테 명함을 내밀어? 남자들 옷은 그냥 거기서 거기야. 끝! 어? 딱 끝. 근데 여자들 옷은? 캬~ 말도 못하지. 종류만 종류만... (절레절레). 내가 아까 말했지? 내가 살면서 옷 잘입는 남자는 내 인생 통틀어 딱 1명 봤다는 거. 물론 우리는 옷 못 입어도 얼마든지 상관없다만 옷걸이 좋은 남자가 좋지 왜 아니겠수? 농담이고. 그 희박하디 희박한 1인이 과연 누구냐, 하면 캘빈클라인 컬렉션만 입었던 남자. 근다고 비싼옷만 왕창 입는 남자라는 얘기가 아니야. 그 양반이 속칭 3벌맨이었거든. 단벌신사까지는 아닌데 진짜로 3벌맨. 그래서 옷에 공들인 노력과 투자한 품위유지비, 남자들 가운데 상중하에서 하! 어?
    여자가 말하는 옷 잘 입는다 라는 칭찬?
    여자가 말하는 '옷 잘 입는다'라는 칭찬은,
    여자의 '아니오'와 거의 똑같다고 보면 돼! 응?
    남자는 절대로 지 맘대로 옷 잘 입어서는 안된다니까 글쎄. 어? 왜 그 기본을 모르시나. TV에 흔하게 나오듯 옷 잘입네 어쩌네 라는 인사말들? 아까 오빠가 그랬어 안 그랬어, 어? 칭찬에 인색한 우리들, 입방정을 우리들끼리만. 여자들끼리, 것도 정말 친한, 진짜로 절친한 여자들끼리만 있을 때 하는 얘기가 진짜 중의 진짜지. 그럼. 그렇지. 당연하지! 우리 시트콤 멤버 베로니카가 엇그제 어떤 오빠한테 '옷 잘 입는다'라고 띄워준 거? 그건 베로니카가 그 오빠 꼬시고 싶으니까 꼬리친 거고. 그 말과 옷 잘 입는다는 말이 같겠니? 여자말 번역기 몰라? 또 나타샤가 오빠한테 옷 잘 입는다 라면서 얼쩡댄 거? 자기 어장관리에 들어오는 거 대환영이라는 뜻이지. 여차 하면 자기가 당신 사랑의 차트에 내 맘대로 뛰어들고 싶다는 신호인 걸 왜 몰라. 응? 더 직접적으로? 그러니까 오빠가 혼자인 거라고. 어? 그래서 오빠는 여자가 없는 거야. (절레절레) 패션? 남자는 옷 잘 입으면 안돼. 알아? 남자가 옷 잘입는다는 건, 여자가 옷 잘입는 여자로 돋보이도록 상대적으로 뒤로 빠져주는 병풍 역할을 잘했냐 못했냐 그거 밖에 없어. 어디 남자가 옷을 잘 입어?! 운동화 디자인을 보라니까요 글쎄. 여자들 운동화는 다채롭고 남자들 운동화는 투박하고. 향수처럼 자세히 들어가면 말 길어질 테지만 일단 쉽게 보면 그래. 근데 왜 그럴까? 왜긴 왜겠어. 주인공은 사람이고 운동화는 악세사리니까 그렇지. 다시 말해 신부는 여자요 남자는 병풍.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그거야 일편단심 천생연분일 때나 우리가 허락하는 말이고. 남자는 화병, 어? 남자는 액자. 응? 그러니까 남자들이 막 자기들이 봤을 때 옷 잘 입는 정도는 아닐지라도 무난한데 왜 여자들이... 막 그럴 꺼야. 여자가 바라는 건 정말로 옷 잘 입으라는 말이 아닌데 말이야. 요란하지도 말고. 뭐든 여자한테 맞추고. 숙녀를 아끼며 여자를 요리할 줄... 다룰 줄... 띄울 줄 아는 남자. 어? 캬~! 어? 드레스코드 무시하지도 않고. 때와 장소를 알고.
    말하자면 다시 말해서 (지휘자도 아니고 노젓기도 아닌 이상한 허세 몸짓) 남자는 옷 잘 입을 필요 없어. 아니 뭐 하러? 5가지 10가지 색상 황금비로 맞출 자신이 있나 시간이 많나, 어? 그런다고 색상만? 재질은? 디자인은? A사와 B사 옷감이 똑같다고 그게 정말 똑같을까? 채도는? 분위기는? 그도 아님 돈이 뭐 고액권과 초고액 수표를 화장지 대신 코풀 정도로 많아? 그거 전부 따져 무난할 정도로 옷 잘 입을 자신 과연 있으시나? 아니면 불필요한 소비제와 쓸 데 없는 옷을 버릴 줄 아는 용기, 그럴 수 있는 베포가 있나? 버리지는 않는데 계속 사고 사고 사고. 쌓여만 가지. 웬만해서 못 버림. 그래서 옷장을 열어보면, 옷방에 들어가보면... (절레절레). 남자야 대충 그냥 걸치기만 한다지만, 뭐 여자 패션까지 건너가진 말자고. 아무튼 자동차 튜닝의 끝은 순정 완제품이라는 말처럼. 조금씩 조금씩 고치고 사고 그러다 보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기 마련. 여자들 성형수술도 그렇다니까, 웬만하면 그냥 생긴대로 사는 게 제일. 여기 고치면 저기가 이상하고, 저기 고쳤더니 전체적이 조화가 더 이상해지고, 그래서 거울아 거울아... 백설공주 배역 흉내내다가 또 손 봐. 그러다 못 끊어. 어? 그렇다니까 글쎄. 저 신사분처럼 신간 편한 양반 뿐만 아니라 웬만한 숙녀들이 괜히 호텔을 선호하게? 남자들이야 캠핑 즐기고 으쌰으쌰 소년기 발정기 모험심을 되찾는다지만. 캠핑 물건 한두 개 사다 보면 급기야 캠핑카 사게 되어 있음. 다 그렇다는 게 아니라. 취미 동호회 게시글 읽어보면 대부분 야금야금 차근차근 단계 거쳐서 바닥에서 고지까지 가느냐, 아니면 7부 리그에서 직방으로 1부리그 득점왕으로 가느냐. 다들 형편에 비해 시간 부족하고, 형편에 비해 재력도 덜 빵빵하고, 형편에 비해 싫증도 더디지 않으니까, 형편에 비해 색다른 관심사와 새로운 인생이 말처럼 쉽고 판도라의 상자처럼 환상적이지 않으니까. 행운의 여신이 나만 편애하지 않거든. 따라서 말장난 하면서 노는 식. 그래서 우리들이 카페도 아니고 그냥 길거리에서 기쁨조 몇 명 짜서 속된 말고 이빨만 까도 재밌거든. 뭐 아무튼 왕년에 여자깨나, 아니 남자깨나 울리던 얘기는 딴 데 가서 하고. 아무튼, 그래서, 나쁘지 않네 라면서 그녀의 심기 건드리지 않을 정도로만 입는 게 바로 남자가 옷을 잘 입는 거지. 참말과 빈말도 구분 못한 체 옷 잘 입는다니까 진짜로 옷 잘 입는 줄 아시네? 바보. 여자를 몰라. 그 남자를 좋아하니까 호감 더하기 뭐 곱하기 뭐 뭐 그래서 그냥 툭 던지는 미끼로, 옷 잘 입는다! 어? 근데 안 걸려드네? 야 야 뭐 해 미끼 딴 걸로 바꾸지 않고. 어? 허허허. 허허허허허.
    예를 하나 들어볼까? 겉만 번드르르한 남자 잘못 만났다가 신세 조진... 아니 이모가 왜 천연덕스럽게 얼굴 두꺼워졌는지 그 얘기는 할 수 없으니까 말이야. 저번주에 여기 모인 사람 다 들었잖아. 저 냥반만 빼고. 저번주에 아지트에서 젬마가 톰한테, "오빠는 옷도 잘 입는다니까". 그 말 다 들었지? 왜 그랬을까? <옷(만) 잘 입는다 ≠ 옷도 잘 입는다>. 아직도 모르시겠수? 젬마 그년이 톰 오빠가 맘에 쏙 드니까 그랬지. 어? 마틴 같아 봐, 마틴 같아 보라고. 마틴이랑 톰 오빠랑 옷 입는 거 대체 뭔 차인데? 어? 둘 다 판에 박은 듯이 옷 입는 스타일 똑같다는 거, 여기서 모르는 사람 어딨어. 어? 그 두 인간 그냥 대충 어두운 외투, 허름한 흰 티셔츠, 점잖은 와이셔츠, 이따금 청바지, 사람은 컬러tv 사고체계 허나 옷은 흑백tv 패션. 둘이 똑같다고. 하나도 다르지 않아. 근데 젬마가 뭐 머저리라도 된단 말이야? 젬마 그년이 얼마나 응큼한 여시인데. 아주 그냥 불여우 중의 불여우. 걔 친구들한테도 지 아쉬울 때만 연락해. 어? 지 잇속 남몰래 얼마나 잘 챙긴다고. 꼴배기 싫은 년 완전 재수없어. 흥! 물론 나도 걔 좋아하고 우린 친하니까 자리에 있든 없든 얼마든지. 걔도 어디 가서 내 욕하고 다닐 텐데... 아 귀 따가워. 걔가 그래, 어? 예의없고 지랄맞고, 물론 친구 사이니까 우리가 다 봐주긴 하는데. 그래도 그렇지. 할 말 못 할 말 가릴 줄 모른 체 매번 선을 넘어? 어? 앞에서는 별말 없이 다소곳한데, 남자들 물러가고 여자들 편 새로 짜면 뒤에서 험담을 험담을... (몸짓)! 그런다고 단짝은 안 깔 거 같아? 최고로 자주 까. 수시로 까. 겁나 깐다고. 심지어 초딩 저리 가라할 정도로 얼마나 소심한데. 완전 밴댕이 소갈딱지. 하긴 여자세계에서 모순이 그래. 욕 안 하고 뒷담화 즐기지 않으면 친구 없다는 거. 인정! 뭐 지가 똑순이? 남자에 환장한 년. 전남자친구한테도 넌 너 밖에 모른다면서 차였어 걔. 어? 삼천포로 빠졌다만 일찍 돌아왔으니 안심하고. 좌우지간 그게 그러니까 남자는 옷을 하등 잘 입을 필요가 없어~! 어? 하여간에 여자들이 뻔트를 좀 좋아하니? 남자는 뻔트만 대면 대. 잔말 말고 따라와 작전으로 여자가 앞장서다가, 뒤로 빠지고 싶으면 알아서 우리가 리모콘 누르거든. 응? 남자가 옷 잘 입는다? 미쳤어 남자가 옷 잘 입게? 남자는 절대로 옷 잘 입을 필요가 없다니까 정말. 어? 남잔 그냥 옷 못 입지만 않으면 패션에 대해 알려고 할 필요가 없어. 남자는 옷 못 입지만 않으면 된단 말씀. 남자가 옷을 잘 입어? 어디서 남자가...! 남자 목소리가 담장 밖으로 넘어가면 어쩐다? 이러니까 이러니까 여자랑 북어는 이틀에 한번씩 뚜들어패야... 아니 그 말이 아니라. 넘어가고. 자, 둘 중 하나만 골라 봐. 오빠들이 만약 2개 중에 1개만 선택해야 해, 그럼 뭘 고를래?
    첫째, 옷 잘 입는 최고의 패션 감각
    둘째, 마르지 않는 샘물이자 미다스이 손을 방불케할 정도로 빵빵한 지갑
    첫째 고를래? 그럴 거야? 첫째 고르고 가난한 인생? 오빠도? 오빠도? 형씨도? 네? 아 입 아퍼. 말 엄청 길어졌어 정말. 완전 카리스마 있어. 이러니까 남자들이 뻑이 가지. (절레절레) 끝으로 한마디로 요약? 신부들러리이고자 하는 남자만 오직 옷 잘 입는 거라고 보면 돼. 사이 나쁘지 않은 게 좋은 것이듯. 옷 못 입지 않으면 그게 잘 입는 거라고 보면 됨. 여잔 몰라도 남자? 대충 무난하면 끝. 여자들끼리 누구 어떤 숙녀 옆에 뽀짝 붙기 기분 괴팍한 경우 있기 마련. 뿐만 아니라 여자들끼리 누구 어떤 남자 옆에 빠짝 붙으면 그 이상한 표정들... 응? 옷 잘 입는다니까 곧이곧대로 진짜로 잘 입는 줄 알아? 첫째 날은 와 머머씨 옷 잘 어울려요, 라면서 밑밥 뿌림. 둘째 날은 어머머 어머머머머머 제가 옷 이쁘다니까 그래서 오늘 그 옷 또 입고 오셨죠 라면서 떡밥 막 뿌림. 셋째 날 나한테만 그런 줄 알았는데 글쎄 딴 직원들한테도 괜찮은 남자다 싶으면 드물게인지 간헐적으로인지 막 떡밥을 뿌렸던 것임. 아시겠소? 그처럼 여자들 떡밥뿌리기의 희생양이신 늑대님들, 허구헌 날 미끼 던지는 불여우들의 탐스런 먹잇감, 알짱알짱 얼쩡얼쩡 덥썩 물려질 운명일 것이냐 가늠되는지도 모르는 촌닭 우리가 안 챙기면 누가 챙기나. 내 마음이야 떡밥뿌리기를 본인이 해야 하는데 정작 현실은 밀려졌다 당겨졌다, 들려졌다 놓여졌다, 쥐어졌다 펴졌다. 어? 그래서 그분들 토라져서 전기모기채 하나로 모기 열댓 마리를 한꺼번에 잡으면서 집에서 혼자 씩씩거리는 수밖에. 허허허. 허허허허허. 연애사 인생사 얘기 재미로 믿는 둥 마는 둥 하든 말든 그야 듣는 사람 소관이고, 다시 주제로 돌아와서. 말하자면 여자에게 남자가 옷 잘 입냐 못 입냐는 그리 중요한 게 아니란 말씀. 그럼 뭐가 중요하냐고요? 뭐긴 뭐겠소, 네? 이 오빠 옷도 잘 입는다니까, 바로 이거, 옷을 잘 입는다가 아니라 옷'도' 잘 입는다. 도저히 미워할 수가 없거든. 내 맘에 쏙 든단 말씀. 가질 수는 없으나 말이오. 그러니까 넘버 2랄지 사랑의 차트에서 도망가지 말라는 의미. 네? 우리 오빠랑 부디 친하게 지내라 그거지. 허허. 허허허허허. 그 얼마나 잔소리로 들들 볶고 수시로 닥달했으면 하다 하다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까서 보여줬을꼬. (절레절레)! 그러니까 어디 가서 내 남자친구라고 하지 말라는 핀잔을 받지. 그러게, 어? 뭣도 모르는 업자들이랑 유명인들이 서로서로 옷 잘입네 어쩌고저쩌고. 싹 다 허당들. 바보들. 미련곰탱이들. 그냥 가식일뿐.
    근데 이거 요약한다면서 한마디가 아니라 대체 몇 마디야? 알 게 뭐야. 그게 그러니까 숙녀가 좋아하는 게 뭐겠어, 응? 사고방식은 컬러tv요 패션은 될 수 있으면 흑백tv! 무조건 무채색만 입고 단순한 디자인만 선호하라는 말이 아니라 무난허니, 어? 근데 그거 반대로 해 봐. 사고체계는 흑백tv요 패션은 기괴, 화려, 괴상, 망측? 원색 양말에다, 쫄티&쫄바지랑 무슨 팬츠를 패셔니트스들이 소화하면 또 모르지만 무턱대고 따라하기? 초딩옷 빼앗아 입기? 대충 입든 내 맘대로 막 입든, 나 하고 싶은 대로 원없이 입든 그야 으쌰으쌰일 때만. 심지어 팬티는 팬티는... 또 거꾸로맨? 그대들 잘 아시다시피 D라는 남자한테 대체 왜 여자가 없을까? 그럴 때도 됐다면서 아는 동생 다 떨어져나가서? 아니야 아니야 그게 아니라고. 왜겠냐고, 어? 겉으로야 립서비스면 립서비스, 숙녀에 대한 예우, 경청하는 자세, 한발 앞서가서 여자에게 딱 딱 최적화시키는 취향, 그녀를 제대로 만족시켜주는 안목은 물론 제법 가난한 남자도 아니야. 근데 왜? 예쁜 여자한테 남자의 지갑은 자동적으로 열립니다 그런 말 절대로 자기 입으로 하지도 않아. 그래서 더 얄밉긴 하지만서두. 나이 (몸짓) 지갑 (몸짓) 웬만해선 그녀들이 미워하지 않는다니까. 근데 왜? 아니 대체 뭣 때문에? 그건 미스테리가 아니라 알고 봤더니 정신연령 3세. 아니, 마이너스 3세던가? 거꾸로맨 부류가 있으면 그분들 분과라고 왜 없겠냐고. 친해져서 집에 놀러가봤더니 글쎄... 말 말자고. 얘기 그만합시다. 허허허. 말 다 했지. 등에 딱 달라붙은 아기동자 귀신이 붙었나 또 어쩌다 걔가 선두로 나서서 여잘 꼬셔. 근데 또 넘어왔다 싶으면 나 몰라라 그러면서 인공지능은 낮잠 자는 식이지. (절레절레)! 그래서 아마 걔네들끼리 합의 봤을 거야. 안 그럴 수가 없거든. 시간낭비 돈낭비 기타 등등 뭐든 정력낭비니까. 이를 테면 패션은 숙주 어른한테 맞추고, 사무실 분위기는 갓난아기한테 최적화하고. 그렇게 홈런왕─망신의 화신─NDJM─허풍꾼─정력가─타율왕─거포─뻔트맨...등 타석에 선 사람 위주로 말이야. 하여간에 말이야 남자가 옷 잘 입어서 뭐 하게. 옷은 여자가 잘 입어야 하는 거야. 알아? 어? 남자가 옷 잘 입어서 뭐 하게, 또 언년을 꼬실려고. 어? 이런 난봉꾼 같으니라고, 황홀한 사랑에 빠져도 모자를 판에 떡밥뿌리기에 맛들인 촌년들이 어디 한둘인 줄 알아? 뭣이 어째? 지금 말 다 했어? 어?」





    18

    하다 하다 나는 거의 일면식도 없던, 오늘 초면인 숙녀한테까지 설교를 얻어듣고야 말았다.
    (절레절레) 진짜 가지 가지 한다. 내 참 더러워서 말이야, 말수 없는 남자 어디 서러워서 살겠나?!
    당나귀들이 건초를 운반하고 말들이 그것을 먹는다. ~라는 말마따나 그녀는 패션에 대해 조진 게 아니라 바로 날 조졌던 것이다.
    근데 거기서 끝이냐? 정점을 찍었다. 그 이상한 별장인가 어딘가에서 해질녁 되기도 전에 벌써... 무슨 에로영화도 아니고 장르가 이상해지네? 어? 보이는 데선 내 시각을 자극하고, 안 보이는 데선... 내가 무슨 천리안도 아닌데 개코이자 매의 눈과 박쥐의 청력을 나도 모르게 능가하고 말았던 것이다. 뭔... 그게 그러니까... 대체 난 여기 왜 따라온 거지? 초저음 소리를 듣는 비둘기. 초음파를 돌고래가 듣는다던가? 사랑은 나비일까 아닐까? 저분들에게야 몰라도 내겐 아니다. 사랑은 나방이니까. 물론 말이 그렇단 거고. 잔지식 하나만 더 알려드리자면 이렇다. 박쥐의 주식인 나방은 귀가 없지만 청력이 예민하게 발달되어 있으며, 박쥐가 나방을 찾는 것을 피하기 위해 초고주파를 이용한다는 것. 그럼 지금 이 마당에 난 나방? 이런 젠장.
    그렇게 난 인사 하는 둥 마는 둥 서둘러 그곳을 피해 숙소로 허둥지둥 도망갔던 것이다.





    19

    근처 목장에 3일 연속 놀러감. 근데 3일째인 오늘 희한안 광경을 보게 됨.
    목양견 몇 마리가 언덕 너머로 모든 양떼를 몰아냄
    ↓
    오늘은 아찔한 착상이 떠오르지 않는 날이구나 라면서 자리를 뜰려던 찰나,
    언덕 너머에서 개떼가 수도 없이 몰려옴.
    그럼 그 말도 안되는 개떼를 모는 게 누구냐?
    당연하지 개몰이 양 몇 마리! 진짜로? 뻥이 아님.
    아마 거기서 끝이었다면 난 분명 미치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난 신기한 영감을 받아 천재적인 작품 구상에 성공했을 것이란 말이다.
    근데 최근 일어난 일들은 내 인생에 결코 만만치 않았던 발단과 전개였기 때문이었을까?
    난 끄떡없었다. 온전한 정신. 영화를 너무 많이 봤으니까.
    알다가도 모를 일은 드라마에도 나오고 우리네 인생사 역시나 결코 녹녹치 않으니까.
    그렇지만 그 뭐랄까 버티다 버티다 끝끝내 버티다 입김 한 번에 여심이 사르르 녹는다고나 할까?
    내 근처를 얼쩡대던 개떼 가운데 한 마리가 내게 말을 하였던 것이다. 바로, 개가 사람말을!
   「이런 얼간이 같은 놈. 너도 양한테 쫓기고 싶어? 너 우리가 우스워 임마? 어? 지금이 좋은 줄 알아 형씨. 저 개떼몰이 양은 우리들 갖고 노는데 최적화된 특수양이니까. 아직 이해 안되지? 나중 의무방어전 하면 알게 될 거야. 살아 봐, 어? 굶주린 그 표정 쏙 들어갈 테니까 말이야. 알겠어 모르겠어? 근데 안색이 왜 그래? 개가 말하는 거 처음 봐? 그러지 말고 저리 비켜. 지금 우리 꼴 보는 게 그렇게 재밌어? 늬 눈엔 이게 웃기지? 늬가 우리 신세를 알겠니 파란만장한 주인공의 마음을 알겠니. 나한테 잔뻔치 얻어맞고 싶지 않으면 당장 가버리란 말이야. 근데 너도 기 빨리려도 기 충전되는 뭐 특이한 종이냐? 늬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볼까? 늬 귀에서 피 안 나올 거 같아? 좋아. 좋았어. 정 원한다면! 네 귀가 타버릴 때까지 잔소리 쉬지 않고 풀어는 드릴께. 기대하셔. 근데 형편이 내가 하필 저 떨떠름한 개몰이 양한테 쫓기는 신세라서... 시간이 없네. (절레절레) 아무튼 하는 데까지 몸만 풀자구 친구. 허허허허허. 인생 그런 거 아니겠어? 누가 알아, 널 내 애제자로 받아들여줄지 말이야. 뭐 늬가 날 애마로 편애하고 싶다고? 이런 곰탱이 같은 놈을 봤나. 어디서 눈독들여 임마! 흑심 꺼. 개침을 왜 늬가 흘려, 어? 늬 그 응큼한 사심 누가 모를 줄 알아? 어디서... 이런 돼지새끼! 아니 새끼돼지. 아니 너나 나나 입장 난처하긴 마찬가지네. 우리도 자네 같은 구경꾼 처음이니까 말이야. 당신만 당황스러운 게 아니야. 어? 왜 벌써 바지에 오줌 쌌어? 찔끔이 아니라... 됐다. 같잖은 녀석. 한심하게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야? 너도 공상이 특기야? 잘 걸렸어. 난 너같은 바보들 훈계시키는 게 장기니까. 허허허허허. 왜, 뭔 말 할려고? 닥치고 계속 듣기나 해. 시끄러워. 말 하지도 않아도 시끄럽단 말이야. 어? 조용히 해! 알았어? 알았어 몰랐어? 누울 자리 보고 발을 뻗으란 말이야. 지금 개떼들 많다고 너 신났지? 누가 모를 줄 아니? 그래서 물 반 고기 반이라면서 막 재밌지? 그렇지만 말이야 넌 흥미로울지 몰라도 우리도 그럴까? 인생 괴로운 거야. 넌 아직 세상을 모른다구. 알아들었어? 알긴 뭘 알아. 넌 아직 인생의 비밀을 몰라. 근데 사랑을 어떻게 알아. 뭐 알고 싶지도 않다고? 이런 얼간이 같은 놈. 썩 꺼져! 늬같은 애송이가 대체 뭘 안다고. 꺼지란 말 못 들었어? 왜 넌 정작 중요한 말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고, 고양이 발톱 엑스맨 손톱 날서도록 쪼잔한 기억만 되새기는 거야, 어? 꼴보기 싫어. 재수없단 말이야.
    왜, 약해? 난들 뭐 널 혼구녕내고 싶겠니. 늬가 날 불렀잖아? 그러게 왜 내 눈에 띄이냔 말이야 이 맹추야. 어? 자, 그러니까 보아하니 동네 똥개도 아니고 어디 허접한 개새끼 주제에 만물의 영장인 인간에게 들이대냐고? 궁금하겠지. 개가 어떻게 사람처럼 말을 하는지 말이야. 이해해. 안 그럴 수가 없거든. 허허허. 늬 마음 다 안다. 말하지 않아도. 그렇다고 표정 연기하니? 너 포커페이스 그거 안돼? 그러니까 아직도 여자가 없지. 어? 그래서 늬가 안되는 거야. 어? 그러니까, 에잇 됐다. 근데 너도 너다. 응? 보아하니 나한테 신나게 얻어들으니까 가슴이 벌렁벌렁하니? 뭐 가슴이 아니라...... (이 개님은 기어코 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한두 번 훑어보더니 급기야 그 고상한 시선은... 시선은... 내 Y존에서 멈추고 말았다) 설마...! 혹시... 아 너 덜렁덜렁이구나. 근데 너 맷집 좋다 얘. 나 너 좋다. 너 내 마음에 들었어. 찰칵, 저장! 좋을지 나쁠지 모르겠다만 너 나한테 찍혔어. 늬가 좋든 싫든 사실인 걸 어떡하니. 안 그래? 응? 아 왜 대답이 없어, 그래 안 그래? 어? 아직 잘 모르겠다고? 더, 더더욱 들들볶아줘? 들들볶아달라면 볶아드리고. 다른 스타일로 닦달해주라는 주문을 넌지시 여쭐까 고민이라면 딴 방법으로 떽떽거려드릴께. 얼마든지. 어? 아 글쎄 원하시는대로 구워삶아드린다니까. 허허허. 근데 아직도 벌렁벌렁 덜 달아올랐니? 그랬니? 정녕 그런 거니?」
    그러면서 말을 하던 개는 자기들 개떼들한테 가버렸다. 이걸 보고 가만 있을 나일까?
    따라서 밀접한 인과관계가 성립함과 더불어 심각한 동반작용에 근거하는가 아닌가는 몰라도,
    내겐 곧장 일반인들에게 거의 발생하지 않는 몇몇 의학 현상이 일어나고 말았다. 그건 무엇이냐,
    발작. 개거품. 깽판이 아니고 진상도 아니고. 수전증에서 멈추지 않고 마침내 뇌전증.
    뻥 아니다. 허언증이 아니라 정말로 개거품 물면서 간질 증상이 제대로 벌어진 것이다.
    아니 증말 어? 개판 중의 개판을 똑똑히 봐버렸는데 안 그러고 베기겠냔 말이다.
    ↓
    그렇게 난 정신을 잃고 쓰러짐.
    그래서 달콤한 개꿈을 꾸게됨.
    발단은 그랬고 전개는 곧장 야한 내용으로 이어짐.
    딱 그렇게 황홀한 절정으로 냅다 진행되려던 찰나... 웅성웅성... 웅성웅성...
    소란스러움 때문에 난 꿈에서 깨어났다. 거긴 호텔 산타 캐롤리나 사장실이었던 것이다.
    일은 그렇게 되었다. 사연을 듣고 보니,
    ↓
    호텔 청소요원이 산타 캐롤리나 호텔 사장실을 청소하려고 들어왔음.
    근데 수상한 남자가 쓰러져있음. 곧장 경찰에 신고. 근데 어디서 많이 보던 사람? 호텔 VIP 손님.
    그렇지만 진상 파악 필요. 그렇게 호텔 관계자들 총집합. 경찰도 도착. 기타 등등 그렇게 됨.
    ↓
    얼렁뚱땅 그 일은 대충 수습됨.
    난 창피해서 도시로 돌아감.
    애간장을 태우는 진한 사랑의 주인공으로 낙찰되는 행운은 물거품처럼 사라진 체 말이다.





    20

    며칠이 지났다. 난 평소처럼 음악을 들으면 업무에 집중했다.
    Tchaikovsky / Violin Concerto in D major op.35 / Ida Haendel(violin) / Radio-Sinfonieorchester Stuttgart des SWR / Hans Muller-Kray 1960 live LP
    그러나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래서 환상문학잡지 편집장 마라한테 전화를 했다.
    통화 내용을 일일이 시시콜콜 옮길 수는 없고. 그러길 바라는 독자님도 없으실 테고.
    용건 아니 그 줄거리만 간략히 요약하자면 이렇다.
    문단 4에 나왔던 일. 그 때문에 내가 멀고 먼 여행길에서 대체 뭔 경험을 겪고 하다 하다 똥개한테 망신까지 당했는데. 내가 진짜 망했다는 걸 깨닫자마자 떡실신한 다음 깨어나보니 그 다음이 더 바늘방석이었는데. 즉 "마라&양대잡지 전직원이 내 사무실 방문 → 한적한 여행지로 당분간 피신하랬음 → 세계 3대 로펌에서 초거액 소송을 당했기 때문". ~라는 사연. 마라와 통화 후 알게 됐다. 그건 진짜인 건 맞는데 조금 과장됐다고. 더더군다나 내 주민, 신분 즉 행정적 정체가 말소됐다는 거도 뭐 어떻게 어떻게 원상복귀시켰다고 했다. 그 뿐만이 아니라 협상을 기가 막히게 잘해서 역으로 소송취하 뿐만 아니라 거액을 받게 되었기까지. 근데 이상한 게 그 당사자가 날 만나고 싶다네? 알고 봤더니 그분들 정체가 무슨 세계마초협회처럼 아마데우스가 몸담았던 그런 은근 미스테리한 단체라는데. 몇몇 회원을 알아본 결과 현 수장은 다름 아니라 바로, 크리스피도넛 회장이라나 뭐라나. 뭐 누구? 달지 않은 도넛? 없긴 왜 없어! 말 나온 김에 맥도날드랑 버거킹이랑 유니폼 수집이나 몽땅 해서 사무실에서 그거 입으면서 일할까? 어차피 집 안에서만 기발한 착상을 위해, 발랄한 일하기에 도움되라는 의미 밖에 없으니 뭐 나쁠 거도 없다만. 근데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라 크리스피 도넛? 그건 우리가 잘 알지, 안 단 도넛이 없긴 왜 없어! 어? 지금 장난해? 뭣이 어째? 워 워 워. 워   워   워! 난 그래서 당장 그 인간을 만나러 갔다. 물론 내 발품 팔아서? 아쉬운 작자가 와야지. 모냥새 갖춰서 리무진 보내준다고 아이고 지존님 하면서, 또는 초대해준다고 하여 좋다고 헤헤 헤벌레 웃으면서 미친년처럼 상전들 뒤꽁무늬 쫓아다니는 내가 그런 미친년인가? 난 그러니까 미리미리 마라한테 전했다. 마라를 중간책으로 내 마음대로 설정한 거니까. (몸짓) 자, 어깨 높이로 오른손을 내밀어 들고 손바닥을 뒤집은 다음 요렇게 요렇게! (이리 와 이리 와). 그럼 그게 끝이냐?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허허허허허. 왼손을 들어 검지를 펴고 귀 옆에 댄 다음 빙빙빙 빙빙빙 빙빙빙빙빙! 당신은 소설 잘 읽으시다가 뜬금없이 검지를 코끝에 대고서 쳐다본다 쳐다본다. 그녀가 내게 다가온다 다가온다. 그 고운 살결 부드럽다 부드럽다. 워매 좋은그~ 워매 좋은그~ 라는 천상의 쾌락마와 환상적인... 상상된다 상상된다. 거의 다 왔다 거의 다 왔다. 안는다 안는다. 꼭 껴안는다 꼭 껴안는다. 뜨겁게 키스한다 키스한다. 미치겠다 미치겠다. 정말 미쳐블 거 같은데... 그거 다 착각이잖아? 또 공상이라니. 이런~ 젠장! 어쨌든 난 약속장소로 나갔다.





    21

    (무마된 초거액 소송 장본인을 만난 내용은 비밀.
    가난한데 홀랑 발가벗을 수 없잖아?
    Y존은 남겨둬야 할 거 아니냐고.
    보자 보자 하니까 이 사람이...!)
    나는 뭔가 어떤 수작 중의 개수작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젊은 야망도 없었다. 그럼 뭐 지금 이 마당에 늙은 마약탐지견을 키우리? 내가? 아니 왜? 그러니 아마도 인생 중간 결론은 이렇다고 할 수도 있다. 즉, 눈을 씻고 찾아봐도 각별한 꿈은 아마 내게 없는 것 같다. 그렇다고 옆, 위, 아래, 뒤도 모른 체 앞만 보고 질주하는 경주마야 경기장에라도 출전하기라도 한다지만. 하고많은 열망 가운데 하다못해 야성미도 처음부터 없었지 이제는 정말 성욕도 없는 듯 했다. 뭐야, 발정기에서 중간 건너뛰고 갱년기 마저 생략한체 무성욕? 이런 젠장! 그래도 원래 여자보기를 돌맹이 보듯 했으나 그건 진짜였다. 그럼 이제 정말 난 똥차를 닮은 늑대란 말인가. 뭐? 누구보고 허당이라는 거야? 내가 잡것이라고? 누가 허접한 새끼돼지라는 거야, 어? 헛소리는 짚어치우고. 숙녀 등에 또 엎히고 싶어서야 쓰나. 또 드라마에 나오듯 여자를 등에 엎고 숨소리 고요한 거 다 뻥. 그거 완전 (개)뻥. 100m 전력질주랑 완전 똑같음. 아니, 어? 아무리 그래도 말이다, 호기심은 부글부글 예감은 미끌미끌 기대는 벌렁벌렁. 그럼 뭘 해 성과는 꿈도 꿀 수 없음. 드라마를 봐도 전혀 흥미롭지 않다. 영화 보며 뭐 진땀을 빼겠나. 최신형 최고가 최저무게 맥북에어가 없는데, 동네 스타벅스를 어떻게 가나. 안감. 가기 싫음. 뭐 한다고 그놈의 허영심을 들켜? 딱 거절. 원래 우리는 허세 그리 반기지 않음. 뿐만 아니라 허풍 대회 기념사진도 다 옛날 얘기. 사람이 뭐 한 오백년 산답디까? 라면서 단골술집 마담한테 한탄을 늘어놓으며 푸념을 일삼는다 해도 그분들께서 퍽 반겨줄 만한 거물이 아니란 것쯤은 우리도 다 안다. 그걸 왜 몰라! 어우 쉰내. 동네 아저씨 느낌 파팍! 에잇, 듣기 거북한 얘기 그만 좀 하자. 그게 뭐 재밌다고 말이야. (절레절레) 불세출의 환상가들 후원자를 자처한다는 둥 환상머신의 피보호자라는 둥 개뼉따귀만도 못한 공상은 좋게 집어치우고. 좋게... 좋게... 혹시... 설마... (절레절레) 그처럼 난 갈 데라곤 사무실 밖에 없는 칼럼니스트임을 절감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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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 ─ 169

from 소설 2020. 5. 15. 19:28

    1

    모험하는 자가 승리한다는 말이 있다. 그렇다고 가정적인 남자를 억지로 엉덩이 걷어차서 무조건 내보내란 말이 아니라. 어쨌든 개들은 짖지만 마차는 계속 간다. 세상이 그렇다. 인생이라고 뭐 얼마나 다른가? 그러므로 그는 만지작만지작거릴 히든카드가 턱없이 부족했으므로, 고로 새로운 작전을 고심하기 시작했다. 자, 그 후보군은 무엇이 있을까?
    (1) ────□ : 줄 달린 치즈 조각
    (2) □───□ : 역기
    (3) │───□ : 자전거 펌프
    (4)  ?            : 얼쩡얼쩡 알짱알짱 떡밥 뿌리기 먹잇감 물색?
    (5) ♡           : 뻔트  
    (6) ♥           : 찐한 사랑
    (7) ¿ 역발상 투자
    (8) ♤♡♧◇ 노름꾼의 비애? 저명한 도박사의 행복업
    (9) ●▅▇█▇ค็็็็็็็็็็็็็็็็็็็็็็็็็็็็็็็็็็็็็็็▆▅▄▇ : 발정난 플레이보이? 구형 전기측정기? 저건 뻔트. 풀바... 쉿
    ... 이렇게 따지면 잠도 못자고 한 36일 37일 연속으로 쉬지 않고 말할 수도 있을 테지만. 중간에 뭐 피곤해서 퍼지든 할 말 바닥나든 하겠지 뭐. 그건 그렇고. 저 대타들 가운데 쓸 만한 인재가 돋보이지 않으므로 아마도 지금은 때를 기다려야 함. 햇볕이 있을 때 건초를 만들어라. 괜히 자발탱이 영감님 더 자발탱이 말괄량이처럼 엉덩이 근질근질거린다고 아무 여심이나 막 들쑤시고 나대면 안됨. 말하기 좋아하고 나서기는 더 좋아하는 숙녀도 다 차분하며 조신하기 마련. 그래? 때문에 그는 점점 달아오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뭐가? 지적인 호기심이 아니면 미친 허영심이! 뭐? 됐고. 
    그래서 NB는 뭘 해야 신나는 행운아요, 재밌는 모험이며, 놀라운 사연이라며 소문날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마침 그런데 여성환상 1.5 월간지, 수석 주필 크리스티한테 연락이 왔다. 만나러 갔다. 용건이 있을 테니까. 걘 그를 따랐고 그도 걔가 싫지 않았거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Michael Haydn (*하이든의 동생) / Flute 협주곡 D장조
    카페에서 창밖이 아름다운지는 모르겠고. 아무튼 크리스티는 또 고전음악을 트는 카페로 그를 불렀다. 달콤한 3분 마법에 홀라닥 빠져들고 싶었는데. 새침한 유행가에 홀딱 반한 기분으로 그녀와 마주하면 좋았을 텐데 왜 하필. 뭐 그렇다고 썩 마다할 만한 분위기는 아니다만 뭐라고나 할까, 투정만 늘고 능청은 더 늘고 넉살마저 허세대회 터줏대감격이니까. 따라서 그도 더 이상 바득바득 자긴 올드보이가 아니라 영보이라며 떽떽거리며 우길 수 없게 되었다. 뭐 그럴 수도 있고 아닐지도 모르고. 따지고 보면 크리스티도 어디서 웬만해선 빠지지 않는 잔소리꾼이요, NB가 만날 수 있는 여동생들도 죄다 다변가들이니. 그는 천상 수다쟁이들한테 기를 빨리고 수도 없이 빨릴 운명을 탓해야 하나? 그러거나 말거나.





    2

   「오빠.」
   「오 크리스티.」
   「왜? 예뻐졌다는 인사말 하려던 참이었어?」
   「못 보던 새에 굳이 사나워질 이유가 있을까?」
   「어쭈. 오빠 봐라. 앙탈은 내 꺼야. 오빠는 질투나 전담하시지. 응?」
   「뭐?」
   「그건 그렇고. 저번에 내가 준 중고책, 왜 우리 회사 소파에 놔두고 갔어? 설마 일부러?」
   「그럼 깜빡 잊어서 그랬겠니?」
   「이번 달 칼럼은? 그거 쓰라고 중고책 사준 거 아냐?」
   「이번 달 칼럼 다음 달로 연기할께. 그리고 주제는 내가 정해.」
   「뭐?」
   「아니. 어? 너. 그래 너. 일단 전제를 깔고 갈께.」
   「또 뭔 잔소리를 하시게?」
   「자, 자, 들어 봐. 아 쫌! 말 끊지 말고. 어? 학벌로 치면 난 9등급. 물론 삼류대학교 구경이나 하고 고등학교 졸업했으니까 8등급일 수도 있는데. 학교 다닐 때 재미없었고, 고1때 자퇴한 친구한테 전화했더니 녀석이 고맙다며 하는 말이 글쎄, 막상 나오고 나니 어쩐다 그래도 적이 있는 게 훨씬 낫더라, 즉 재능 특출난 1퍼센트면 괜찮을 수도 있고. 고로 넌 잘 다녀라 라던 통화내용. 그거 크리스티 너 때문에 기억나잖아?」
   「그게 왜 나 때문이야?」
   「그래. 아닌 걸로.」
   「오빠 나 정색한 거 아니다. 내가 오빠 좋아하는 거 알지? 난 오빠랑 줄다리기하는 사랑의 흥정꾼이라고나 할까?」
   「사랑은 나중 내가 소개시켜주는 남동생들이랑 하면 되고. 하던 말 계속하자면. 음, 어디까지 했더라?」
   「」
   「그래. 학벌로 봐도 대충 난 9등급. 재산 9등급. 소고기 9등급도 친구가 사주지 않는 이상 1년에 단 1번도 먹기 힘들고. 조부재산? 긴말 필요없어. 국제신용평가사에서 뭐 하러 내 정체를 알고 싶어 하겠니? 국내신용평가사에서 저질 채권으로 넘어가고 넘어가고 넘어가고 그랬던 게 내 서류철일 텐데. 아아 그나저나 무기명 채권은 대체 언제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걸까? 옆길로 새지 말고. 당연히 결혼정보업체에서 대놓고 반기지 않을 등급이 누구? 바로 나. 난 농어촌 좋아한다만 농어촌이 대도시보다 부자일 수는 없으니, 고로 대도시 괜찮은 동네 중산층이, 지방으로 내려가면 즉시 거기서 최상류층. 대번에 상석 따논 당상. 아프리카 구경도 다큐멘터리로 대신하고, 후진국이라는 말도 다 칼럼 내용들 위한 거고.」
   「아 글쎄 뭔 얘기를 하려는 거야? 내가 질문 했어, 안 했어? 어? 내가 준 중고책 왜 안 읽었냐고?」
   「너 같으면 인도 예술영화 끝까지 볼 수 있니?」
   「」
   「내가 너라면 인도 전통음악에 심취해서 전통시장 해메고 다니고, 공중부양 노인 속임수 짐작하고. 갠지스강에서 실제 목욕해보고. 그거 내가 꼭 이 나이에 해야 하리?」
   「오빠 시간 많잖아. 아닌가?」
   「내가 정말 참다 참다 왜인가 해서 꾹꾹 참고 읽긴 읽었는데. 이런 젠장~ 그러면서 중간에 포기했어. 왜 책 표지에 무슨 테이트 블랙 메모리얼상? 긴 설명 필요없다니까 그러시네. 영국이 인도를 식민지배했다가 떠난 후, 대충 말하자면 인도가 5개국으로 쪼개졌으니까. 심지어 그게 끝이 아니라 AB끼리 전쟁, CD끼리 전쟁 기타 등등. 내가 만약 최고급 사립학교 출신에 이튼스쿨 와튼 옥스포드 캠브리지, 막 고리타분한 어법에 억양을 강박증처럼 고집하는 부커상 심사위원 나리쯤 된다면. 응당 나라도 그랬겠어. 만장일치가 딴 게 아니니까. 채무감이든 착한 척이든 그래서 문호개방과 카테나치오 구분 잘해야 한다니까. 그래도 한 30% 읽고 포기한 단기기억 가운데 딱 하나 꼽는다면 그건 생각나.」
   「어떤 거?」
   「서문의 한 구절. 뭐래더라? 그때가 되면 내 소설이 지금보다 더 나빠지거나(왜냐하면 화제성이 사라질 테니까) 혹은 더 좋아질 거라고(왜냐하면 화제성이 사라진 뒤에는 소설의 문학적 구조가 더욱 돋보일 테고, 그래서 어쩌면 더 좋은 평가를 받을지도 모르니까) 생각했다.」
   「음... 나도 오빠랑 생각이 같아. 그래서 한번 떠본 건 아니고.」
   「뭐? 아무튼 내가 해외파 유학생 출신 인도인이 아니고, 인도음식 즐기고는 싶은데 여건상 시간도 없고. 그런 정서 문화 영혼 취향 정체성 안목 구미 같은 이유 때문에 네 부탁 못 들어줘서 미안해. 미안 미안. 그게 바로 첫 번째 이유.」
   「그럼 두 번째는?」
   「두 번째는 그걸 읽을 만큼 내가 신간 편하고 속은 더 편하고 시간도 많았을 때, 그걸 마음 편히 읽기 위해서는 선행되어야 할 조건이 있거든.」
   「그게 뭔데?」
   「판박이. 즉 코란을 읽는 게 먼저라는 뜻. 코란에 비하면 네가 준 중고책은... 그건... 말 줄이고 싶네. 성경을 최소 1번 정독하고 고전미술부터 교양 전반에 걸쳐 안다박사님들 그 누구와 논쟁해도 썩 빠지지 않을 전문가, 뿐만 아니라 일반가까지. 알파벳 소설을 그분들이 대충 몇 구절 읽으면 느낌 모를 거 같니? 우리는 말 몇 마디 섞으면 성격 대번에 파악해. 어디 우리만 그러겠니. 말하자면 코란 좀 읽어봤으면 아마 나처럼 읽기 시도하다 그만둘 사람 태반일 거라는 점. 예상하기 결코 어렵진 않지. 좌우지간 그 논리대로라면 당연히 성경도 완독해야 하겠지. 구약성서도 읽고 신약성서도 읽고 카톨릭 신부들 등급 막 있잖아, 머 머 머 추기경 교황... 즉 카톨릭 기준에 해당하는 신교 권고사항 이상의 무언가도 읽는 게 먼저. 그게 두 번째 이유.」
   「세 번째도 있어?」
   「있지 왜 없겠니.」
   「뭔데?」
   「세 번째 이유는 고전음악이 아니니까.」
   「아아, 내가 오빠를 아니까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어.」
   「나도 잔소리 늘어놓을 의지도 힘도 그만그만하네.」
   「오빠 그래서 저번에 미시경제학 개론서도 달랑 한 10페이지 읽다 만 거야?」
    긴 대사라서 문단을 떼서 감.





    3

   「그거...아곤 얘기가 좀 다르지. 그럼. 내가 전공자라면 읽어야 하고, 읽기 좋아하며, 읽을 수 있지. 그런데 난 비전공자. 난 경제학도가 아니야. 내가 무슨 경제학자야? 난 아니야. 난 아니라고. 아니 내가 왜? 다시 말해서 
    (1) 문학
    (2) 경제학 (경제심리학 행동경제학...말고 주류 경제학)
    (3) 인문교양학 & 스포츠 의학 화학 생물학 유전학 천문학...
    그렇게 딱 3가지만 놓고 봤을 때. 문학은 고전음악 즉 쉽게 말해서 1800년~1950년 그 150년간. 롱테일과 편차는 설명 생략하고. 경제학은 칼럼에서 누누이 말했든 구식탱탱묵은 거 찾다 보면 시간이 없으니까 될 수 있으면 현재에 가까운 위주. 인문교양학이야 당연히 시간과 정비례. 철학 논리학 교양학 등 고전도 가치있고 좋은 게 많긴 하다만, 그 분야는 고전음악과 좀 성격이 다르기 때문이지. 내가 무엇 때문에 고전음악을 그렇게나 물고 늘어지겠니. 스포츠로 비유할 수 있거든. 10년 전 축구선수와 지금 축구선수. 평균 기량 비교? 말해 뭐 하겠니. 현대 축구 전술과 개인기가 월등하겠으나 미래에게 상대도 안되는 법. 올림픽 종목들이 그러니까 기록갱신이 힘들고. 왜 요즘 사람들이 소설을 안 읽겠니? 읽다 버릴 거가 주로 팔리고 읽었는지 아닌지 기억도 못할 거 팔아먹으려드는 게 바로 상업이야. 누구든 먹고는 살아야 하거든. 예술가라고 뭐 손가락만 빨게? 땅 파면 돈이 나오니! 그러니까 왜 문학이 천대받겠니? 왜냐, 누릴 게 그 얼마나 많은데 이 즐거운 세상 고리타분한 거짓말만 읽으며 살라고? 뿐만 아니라 최적의 컨텐츠라는 게 있는 법. 프랭크 시나트라의 노래 MY WAY. 샹송 번안곡으로 더 유명해졌든. 만화를 영화로, 소설을 영화로, 사실을 미술로. 그런데 영화로 옮겨지지 않았는데 굳이 원작을 찾아 읽을 수고, 다른 사람들 할 사람들 많으실 텐데 왜 나까지. 물론 문학의 효용과 가치는 논외로 치고. 그러니까 저 1 2 3의 차이를 모르겠니? 모르겠어? 정말 모르겠어? 2번이 조금 애매하니 그거 다음 달 칼럼으로 알려줄께.
    이유는 또 있어. 영국 식민지 출생 앵글로색슨인. 문장 1개 다음에 2번째. 문단 1 다음에 2번째 문단. 1쪽 2쪽. 읽어보면 느낌이 확연히 달라. 본토 태생과 기분이 완전 딴판. 런던 태생이더라도 전통에서 멀리 벗어나면 글이 막 날라가. 어?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그거 꾹 참고 엉덩이 땀띠나도록 인내하며 읽을 꺼면, 차라리 잡지 글을 정독하지. 그걸 뭐 하러 봐? 오히려 잡지사 편집장 글발이 훨신 나아도 낫거든. 무슨 유명인들 어쩌고저쩌고, 하! 하이브리드라고 다 같은 하이브리든가? 뿐더러 세월따라 시대따라 정서가 뚜렷. 11년도 네로 퇴폐미, 22년도......, 77년도... 모르겠고. 88년도 야생마 열정 유행가 희망가. 99년도 세기말. 그 흐름 다음에 세련미. 냉소. 괜히 진지하거나 억지로 늘이던가 말도 안되거나. 뒤죽박죽 산만한 여자 수다가 훨씬 재밌지. 팀버튼식 상상력이랑 또 뭐지? 반지의 제왕, 해피포터? 아 해리포터 다 놔두고 제목이 딱 떠오르지 않는데 거 뭐더라? 인도 스타일 느낌 쌀짝 나는 예술영화 있는데... 아무튼. 옛날에 단짝 친구랑 나랑 둘이서 극장에서 영화를 봤는데 말이야. 뭐였더라? (딱)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그거 보고 나오면서 둘이서 한숨 푹푹 쉬었지 그때. 땅 꺼지라면서 한숨만 푹푹! 표정 기 막혔고. 4살 5살 꼬마 데리고 애들 영화 극장에서 보면서 조는 아빠 심정? 그거면 차라리 여유롭기라도 하지. 인도예술영화 나쁘단 게 아니라, (절레절레)
    1세기 전과 후가 딴판이란 얘기. 100년 전 "오늘은 뉴스가 없습니다 음악 듣겠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오락산업이 건너뛰게 놔두시는 걸로도 모자라, 어? 알렉산드리아 사중주라면 또 몰라. 시간 지나면 시간낭비로 판명날 전문가의 글발, 책 뒷편 참고문헌 목록만 50~100쪽. 전자와 후자 차이조차 오락산업 논리에 무색해지는 세상. 지 아쉬울 때만 찾아와서 지 할 말만 3시간 무정차로 떠들어대는 친구를 보면서, 낮뜨거운 주제로 친구 기빨아가는 촌년이라는 핀잔 누가 누가 들을지 잘 아실 거야. 단편 분량을 늘리거나 중편 분량을 쪼개기로 책 팔아먹는 상술, 학자 인생 걸고서 20년 30년 연구 성과를 압축하여 참고문헌-후주-부록만 해도 상당한 저술. 대체, 뭔 차이야? 어? 시시콜콜한 얘기 분량 늘려서 거 무슨 출간 즉시 아마존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라는 둥 아마존 52주 연속 베스트셀러라는 둥. 전 세계 몇 개 언어 번역 출간이니 올해의 책으로 일간지 주간지는 물론 재력가와 전문가들 칭찬이 난리도 아니라는 둥. 그래서 살펴보면... (절레절레) 그러니까 정치도 쇼비스니스, 경제도 정치, 오락산업이 그 모두를 쥐락펴락하는 셈 아니야. 안 그래? 뿐더러 나라 안에서만 부익부빈익빈이겠니? 그건 칼럼 내용이니까 넘어가고. 아무튼. 
    그거 말고도 이유는 많아. 사람이 유명해지기 시작하면 특히 예술가 더더구나 문사 즉 문학가들 허세 장난 아니라니까 글쎄. 어쩌고저쩌고 웬만한 거 다 뻥. 연예인병. 죽는 소리. 일부러 그러고 싶은 거도 있고, 자기도 모르게 자리가 사람을 만드니까 나도 모르도록 일부분 그럴 수밖에 없고. 내가 만약에 여자처럼 아침에 화장하고, 립스틱 바르고, 시간만 나면 손거울 쳐다보고, 하이힐 신고, 스타킹 구멍나지 않았나 확인하고, 여자말 번역기 신경쓰고, 여자세계에서 튀지 않으려 조심하고... 그렇게 살면... 사람 피곤하지. (절레절레). 장난 아니란 거 여자들이 왜 모르겠니! 
    그렇듯 조명발 화장발 사진발 관심발... 타고난 자질과 역량은 어떻고. 어느 축구선수든 퍼거슨 감독이 손꼽는 최고의 선수 되기 싫겠니? 그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니 뭐 어쩔 수 있나. 독학도 전망과 견적 보이는데 누구나 천재되기 쉽지 않지. 물론 최단기간에 천재되는 법, 책으로 써서 유명해질 수도 있고 실제 현대인이 과거인에 비해 최고로 좋은 비교점이 그거야. 학계 업계가 빠삭히 연구해서 최단기간내에 아마추어를 탈출하는 법. 물론 교육학에서 옛날에는 튤림씨앗은 튤림꽃으로 난초씨앗은 난초로, 까지가 정설이었는데. 장미씨앗도 교습법과 학습방법과 노력 여하에 따라 연분홍 들장미부터 튤립빛깔 닮은 다홍빛 장미까지 가능하다는 걸 증명했긴 한데. 연구 성과는 한마디로 첫째 가능한 최대치의 범위가 어디까지 가능하다, 둘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 성정에 따라 그러고 싶어하지 않는다. 아무튼 언론계 떠들썩한 물개박수, 오락산업 허세만발 아니면 말고, 출판계 구식탱탱묵은 남 따라하기에 꼰대지수에 흑백tv 정서까지. (절레절레). 난 커피 한잔 값짜리 싸구려 티셔츠, 대충 찍찍 끌고다니다 버릴 슬리퍼, 디자인 적당하고 품질만 나쁘지 않다면야 얼마든지 OK. 그런데 네가 포장해서 선물하지 않고 그냥 대충 던져주든 어영부영 안겨줬기 망정이지, 어? 나는 아니겠으나 당시에 현지에서 또 외지에서 코란 짜집기도 어쩌고저쩌고 같은 악평. 있었을까 없었을까? 난 네가 뭔 특별한 동기가 있으니까 줬겠지 하면서 꾹 참고 읽어봤어. 그런데 그런데...! 지금 와서 뭐 앨빈 토플러 막 몰입해서 달달 외우라는 거니 뭐니? 어? 움베르트 에코만 분석하고 분석하고 계속 연구할까? 어? 그래? 정말 그래? 친구들이 어디 가자 뭐하자 파티하자 소풍가자 난리인데, 안돼 나 파트리트 쥐스킨트 달달 복습해야 해? 차라리, 어? 차라리 그러지 말고 롤렉스 짭을 선물하지 그랬니. 너 모르지? 의외로 말이야 이 오빠 같은 사람들이 짝퉁이 아니라 진짜 롤렉스찬다 너?! 알아 둬. 옛날이랄지 어리숙한 총각 순박한 처녀 순진한 양반들이야 롤스로이스 타시는 저분 양복은 에르메스겠지? 딱 보니 운전수네. 번쩍번쩍 롤렉스 차고 아지트에 내가 나타나면 친구들 막 웃고 떠들고 난리날 텐데. 뻔덕뻔덕 야 그거 얼마짜리야 막 그러면서.
    좌우지간 자긴 한달에 딱 1번이지 그럼 뭐 얼마나 더 어쩐데, 라는 그 형 말은 100% 사실이고. 유부남들 혼자 어쩌고저쩌고 그거 다 뻥이라는 딴 선배 말도 완벽한 진실이고. 그런데 그 얘기가 지금 왜 나오지? 아무튼. 시간과 비례해서 물량은 천문학적으로 늘어나는 게 오락산업. 예술도 당연히 절반이 아니라 거의 태반 동격. 감상보다 소비. 감탄보다 시간때우기. 그래서 고전음악이나 각자 좋아하는 취미 즐기다가 머머 접습니다 라면서 장비 다 내다팔고. 대부분 시간낭비. 아니면 소파에 자빠져 TV 채널 돌리기. 밖에서 왕성한 정력 뽐내며 돌아다니다 나이 들고 힘 빠지면 남자들 웬만하면 가정적이고 싶어서인가는 몰라도, 어쩔 수 없이 덜 활동적이기 마련. 왜? 힘 빠지거든. 사랑은~ 그건 넘어가고. 너 있잖아, 어? 남자는 나이가 들면 힘이 밑에서... 됐다. 내가 너랑 뭔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다. 물론 말이 그렇단 거고.」
   「이 오빠 여자 만나기 힘들겠네. (절레절레)」
   「뭐? 뭐가 어쩌고 어째? 너 그게 무슨 악담이 그래? 너 오빠한테 왜 그래?」
   「짖꿎은 촌평 잘 들었수다. 녹음했으니까 다음 달 잡지에 실을께. 허락 아니라 통보.」
   「늬가 내 마누라라도 되니? 늬가 내 여편네도 아닌데 아니 어떻게...」
   「이놈의 영감탱이가... 쉿! 결코 섭섭치 않은 대우가 뒤따를 거야 오빠.」
   「이... 뭔... 뭐라고? 좌우지간 저번에 사라도 그랬어. 아직까지 입금 안 됐고.」
   「이번엔 달라.」
   「정말? 또 속으라고?」
   「속는 셈치고 믿어봐. (윙크)」
   「좌우지간 오빤 아무것도 몰라.」
   「뭘 아무것도 몰라?」
   「여자의 마음을. 무슨 말로만 여심을 들었다 놓고 자유자재로 이끈다는 둥 아무 여자나 쥐락펴락 다 꼬실 수 있다는 둥.」
   「지금 그 얘기가 왜 나와? 그리고. 내 말이 거짓말인 줄 아니?」
   「오빠 말 다 뻥이잖아.」
   「누가 그래? 내 코를 보라니까. 난 살면서 뻥친 적 없어. 어? 난 거짓말을 어떻게 할 줄을 모른다고. 내 코는 피노키오 내 귀는 코끼리 귀. ~라는 말이 아니라 난 그쪽 분과가 아니란 말이야 글쎄.」
   「그러든가 말든가. 오빠 나 갈께.」
   「뭐야 그냥 가?」
   「」
   「저것이...!」





    4

    최근 일러스트레이터에서 환상문학잡지 부수석 주필로 변신한 숙녀. 그렇다. 그는 오늘 비비안을 만났다. 물론 비비안이 먼저 연락하고 싶었을 텐데 만약 그렇게 기다리도록 놔두면 그녀가 어떻게 나온다? 왜 내가 전화하면 안돼 라면서 불호령 떨어짐. 헛소문냄. 짜증냄. 멀찍히 피해서 다녀야 함. 뭐 적당하고 착하고 괜찮고 친한, 그런 아는 여동생이면 여자가 남자를 더 좋아할 테니 그럴 테고. 관중이 장기전 전망을 점쳤을 때 뭐라 썩 논평하기 곤란한 사이라면야 불을 보듯 뻔한 말이야 뭐... 내가 오빠 이럴려고 만나? 상향지원 하향지원 또 그 얘기 하려나 보다 싶었는데. 오늘 비비안이 들고온 화두는 그게 아니었다. 
    장면 전환. 찻집.
    Mozart / ”봄은 이미 웃고 있다“ KV.580 
   「오빠 이제 아예 허접한 칼럼니스트 애칭 굳히기로 마음 정한 거야? 그니까 눌러앉기?」
   「허접해? 내가? 봐줄께. 아니~ 어? 그럼 내가 한가하게 조잡한 소설을 쓰기 바라니? 아니면 응큼한 문학교수라는 직명이 그래도 내게 썩 어울릴 거 같니.」
   「서론 길게 뽑지 말고 곧장 본론으로 들어가자 오빠.」
   「돌림노래든 당김음든 스타카토든 마음껏 오빠를 밀고 당기시지. 얼마든지 쥐락펴락하시라고요. 그러니 마음껏 오빠를 들었다 놓으시도록.」
   「호호호. 내가 어디서 봤는데~ 있잖아. 봐 봐 오빠. 응? 보란 말이야. 잘 들어봐, 응? 있지 그게 말이야 내가 어디서 들었는데 누구한테 들었어라? 일단 들어 봐. 자, 보자. 응? 그게 그러니까 말이지 음 글쎄 어머머, 호호호 거 참 나 지들이 거 무슨 막 그...」
   「아 쫌! 또 뜸들이니 너? 또?」
   「알았어. 알았어. 명쾌히 주제를 말하겠음. 됐지? 
    주제: 남자 의사들 여자 쌩얼 민감한 이유」
   「(표정)」
   「왜 솔깃해? 허허허. 그럴 싸하지? 내 그럴 줄 알았다. 내 다 알고서 물건을 덥썩 물어왔어. 허허허허허.」
   「내용은?」
   「자, 봐 봐. 오빠. 재밌는 얘기 해줄께. 바로 내가. 응? 귀기울여보시라고요 오라버니. 네?
    제목 : 남자 의사들 여자 쌩얼 민감한 이유
    1단계: 의대 다닐 때 여자 거의 못사귀고 인턴됨. 이때까지만해도 여자에 대한 환상은 그대로 있음.
    2단계: 자, 딱 됐어 인턴?! 인턴 때는 여자들 눈에 안 들어옴. 여자에 대한 환상 어디 가겠어?
    3단계: 레지던트 올라가며 간호사와 여자 환자들 보며 수도 없이 깨닫게 됨. 어떻게? 분명 외래올 땐 미녀였는데 병실 가보면 음.... 음...! 
    참고: 어떤 전공의는 결혼하면 쌩얼만 볼텐데, 쌩얼 별로면 정신이 아득해지기까지 한다고 함.
    그래서 그 빅데이터 쌓이면 뭐다? 분명 병실에선 평범녀였는데 퇴원 후 외래에서 보면 좀 이쁨. 그냥 자연스레 여자 화장발에 대해 체득함. 동시에 여자 쌩얼의 중요성도 알게 됨. 쌩얼이 예쁘면 입원해서 붓기가 있어도 정말 머리 떡져도 예쁘고 귀여워 보임. 따라서 결론은, 여자몸 많이 다루는 의사들의 경우 본판미인을 많이 따짐.」
   「어따대고 애교부리며 오빠를 떠 봐? 안 속아!」
   「뭔 소리야?」
   「넘어가. 혼잣말이었어. 그게 그러니까 말이지, 음.」
   「쟤가 대체 무슨 얘기를 듣고 싶은 걸까? ~라고 생각했지 오빠.」
   「」
   「그러지 말고 솔직히. 지금 사석이야. 오빠와 난 농밀한 사적 관계라고. 만약 추접스러운 스캔들의 주인공으로 오빠와 내가 단독 물망에 오를지라도, 어? 난 기분 나쁘지 않아. 절대! 오히려 그 비밀스런 주인공으로 당첨되기라도 한다면야 어쩌면 축복 아닐까? 낙선되어도 뭐 툭툭 털고 일어나야지. 언젠가 입선할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서. 그래서 난 추문에 오빠와 함께 얽히더라도 그다지 슬퍼할 일 없음. 허허허. 상황이 이럴진대 뒷담화 못할 거 뭐 있어? 오빠. 나 비비안이야. 어? 언제까지 오빠가 말이지, 나 마라야~ 그런 말만 듣도록 내가 가만 보고만 있을 줄 알았어? 이거 왜 이래? 나 비비안이야, 어?」
   「무섭다 너.」
   「오빠 낯설다. 응? 오빠 말 참 예쁘게 하시네. 어? 그러니까 말해. 어서. 말 안하고 뭐해? 당장 이실직고하시오 죄인은. 아시겠소?」
   「아 쫌! 공석에서는 나서기 좋아하면 안될 주제네. 말하기 좋아하는 숙녀든 수대대회 입상자 출신 남자든, 사석이라면 몰라도 너와 나만 있는 자리가 아니라면 말 아끼는 게 좋을 주제라고.」
   「그걸 누가 몰라? 그리고. 여기 오빠랑 나 말고 누가 더 있는데? 없잖아. (몸짓)」
   「맞는 말이네.」
   「그치?」
   「그런데?」
   「근데 왜 그 여우들은 발톱을 세우지? 걔네들이 평소에는 미남들한테 (여우/강아지) 꼬리치면서도 이 주제만 나오면 고양이 꼬리 흔든단 말이지. 개는 반가워 꼬리 흔들지만 고양이는 반대라는 거 설마 모르지 않지? 안다치고. 아니, 어? 그러니까 왜! 응?」
   「한마디로 남자 = 여자. 이치로 말했을 때 남자와 여자 교집합 반, 남녀 공히 절반은 완전 다르고. 원리로 따지면 남녀 공히 완벽하게 일치하고. 또는 성격상 말하자면 남녀는 말을 섞으면 섞을수록... 워 워 워.」
   「아니~ 어? 그러니까 왜.」
   「너 꼭 오빠한테 나쁜 배역 시키고 싶니?」
   「이미 됐잖아. 많이 했잖아. 이제 잘하자나! 농담이니까 신경쓰지 마시고. 괘념치 마셔 오빠. 응? 오빠. 오빠.」
   「앞서 말한 주제에서 제목은 "남자 의사들 여자 쌩얼 민감한 이유". 그래서 결론을 뽑아보면 그거잖아. 
    첫째, 직업따라 사람따라 쌩얼 많이 따진다. 
    둘째, 쌩얼과 화장발 격차가 근소한 걸 선호하는 남자를 조심하자. 
    셋째, 친한 경리나 풀메이크업하는 숙녀에게 스스럼 없는 사이일 때 할 수 있는 농담. 오늘 또 누굴 잡아먹으려고?
    넷째, 쌩얼을 사랑해주는 남자를 만나야 비교적 좋다? 20년 사는 동안 쌩얼을 한 번도 못본 남편 있을까, 없을까! 
    다섯째, 마음 대 마음이 불편하면 오래가기 힘들다? (몸짓) (딱) (손짓) 그래서 요점은 바로, 플라토닉이란 말씀!」
   「어렵네. 어려워. 쉽지 않아.」
   「OK~! (딱) 바로, 그래서 내가 쌩얼 판독 선그래스를 개발했는데. 캬 내가 그거 발명하느라고 얼마나 고생했는데. 그거 생각하느라고 잔머리 굴린 거 감안하면... 아아 비싸게 팔아야 하는데. 그치만 우리는 얼굴 팔리기 싫고. 내 친구들도 유명해지기 싫다 그러고.」
   「옆길로 새지 말고. 그러니까 왜? 오빠. 이제 오빠 어좁이라고 놀리지 않을께. 됐지? 자, 털어놔 봐. 왜 그런지를. 안 그래도 굳이... 어깨뽕 패션 필요없을 거 같은데? 허허.」
   「너 남자 외모 보지?」
   「응.」
   「여자는 남자 외모 봐도 되고, 남자는 여자 외모 보면 안된다. 동의하지 않지?」
   「응.」
   「네 주변에 멋진 남자들 많니?」
   「아니.」
   「너가 전에 그랬지? 내 주변엔 순 단춧구멍들 밖에 없다고. 그랬어 안 그랬어?」
   「그랬어.」
   「여자가 남자 외모평가하듯, 남자가 여자 원판 보는 게 뭐 어때서. ~라는 이치에 썩 반대하지 않지? 아니. 이건 찬성이나 OX 문제가 아니지. 누가, 왜 기분이 나쁜가 그 문제니까. 그렇지?」
   「응.」
   「너네 동네에서 네 마음에 쏙 드는 남자. 10명에 1명 되니? 안되지? 기준선을 더 낮춰서. 아니 높여서. 네 활동영역에서 네 이상형에 그나마 뽀짝뽀짝 접근하려 노력이나 한 걸 가상하게 여길만한 남자. 100명에 1명 되니?」
   「음... 있을까 말까?! 있을 수도 있고 뭐...」
   「그치? 그렇다니까. 여자는 화장 전후로 변장을 하는데, 남자는 그런 여자 마음도 만족시켜줘야 하지. 비위맞추지 않으면 고생길 훤하지. 여자말 번역기는 상시 가동이요 툭하면 커피포트 끓기 바쁘지. 나도 한때는 진공청소기였는데 왕녕에 말이야, 그 생각하면 뭘 하나. 안 그래? 배 나오면 배 나와서 싫다, 선물해주면 싸구려라서 싫다. 또 너무 꼼꼼하면 정도 이상이라서 짜증난다. 여자보다 더 섬세하면 불편해서 신경질난다. 말 많아야 할 때 말수 없으면 것도 영 아니다, 말수 아낄 때 여자보다 앞서서 뭔가 바쁘다? 몹시 불쾌함. 한대 쥐어박고 싶음. 그치? 잔말말고 따라와를 못 이긴 척 허락할 때가 따로 있는데 남몰래 NC를? 이 인간이...! 여자 본판 대번에 파악하는 남자들 선구안이 좋으면 또 인성은 별 볼일 없을 거라는 둥. 그러니가 남자 직감이 여자 육감을 앞서가서야 쓰나. 좋게좋게 비위나 잘 맞출 것이지. 허허허. 여우와 신포도 우화처럼, 남자가 자길 좋아할 가능성이 엿보일 때 주로 그 남자를 칭찬하질 않나. 어떻게 상향지원에 성공한 아가씨는, 부부도 명백히 상하계급이 존재한다고 하질 않나. 하향지원 받아줬다가 남자 머리꼭대기에서 약간만 낮춰져도 인상쓰며 불쾌해 하시질 않나. 아무튼 마음에 뭔가 스크래치 발생하면 불행, 절망, 대실망. 폭망. 어? 저처럼 촉 좋은 남자들은 여자를 무슨 진한사랑의 도구 정도로만 여긴다는 둥 친구의 남편 험담에 신나도록 맞짱구치다가. 딱 걔랑 헤어진 다음에 180도 바껴서 내 남자친구랑 사겨는 주면서 환승이별감을 물색하질 않나. 다 그렇다는 게 아니라 일부. 극히 일부? 그랬으면 좋겠음. 허허. 허허허. 여자들 막 친구들끼리 사석에서 이렇게 말하지? 병원에 입원해보니 쌩얼로 이쁜 여자 거의 없던데. ~라고 말이야. 그래 안 그래? 넌 안 그러든?」
   「」
   「자, 그러니까 말이야~
    네 친구들끼리 저런 비슷한 주제로 얘기 많이 해봐서 알 거 아니니. 응?
    네 친구들끼리 긍정 부정 비율 따져서... 상관관계 있지? 무엇과, 라고는 확정하지 않겠어. 
    네 친구들끼리 낙관 비관 비율 따져서... 밀접한 연관성 없지 않지? 그런데 왜, 라고 내 입으로 어떻게 말하니. 안 그래?
    매사 부정적인 남자, 좋니? 자상하지 않고 툭툭 말 막하는 남자, 사랑스럽니? 변죽만 울리다 결국 모든 걸 지 하고 싶은대로만 하는 독선가, 싫니 좋니?」
   「」
   「그리고 또 어차피 저 주제나 딴 사랑론이나 다 그게 그거.
              사랑                    불륜          이별            이별 원인      환승이별        속마음
    남자    최선을 다해라       남자 탓      권리 없음     남자 못남      하면 안됨       너만 여자냐?
    여자    최선/중간/막살자   남자 탓      권능 있음     남자 탓         할 수 있음      있을 때 잘해!」
   「」
   「만약에 내가 여자라면 난 남한테 잘 보이기 위해서 화장하겠어. 날 꾸미는 게 뭐 어때서? 그게 왜 나쁜 건데? 허영심 인정하면 편해. 불쾌하게 뭐 하러 짜증내. 여자가 남자 좋아하는 게 뭐 죄니? 화장발이라는 건 내 자존감도 높여주는 동시에, 여자들끼리 엄마가 딸한테 말하지. 뭐라고? 딸아 우리 같은... '우리 같은'은 빼고... 화장은 예의란다. 알겠니? 라고 말이야. 그게 뭐 일종의 상례니 모종의 덫이니 그런 거 모르겠고. 그야 어쨌든 나 잘난 맛에 사는 인생, 내가 여자인데 난 화장 1도 안해도 남자들 막 처음 보든 친하든 다 나한테 환장하는데? 남자들이 내 엉덩이 쳐다보느라 정신 차리지 못하는데? 막 그냥 딱 미쳐버리는데? 그런데 내가 왜 "여자는 남자한테 잘 보이기 위해서 화장한다"~라는 넌센스에 화를 내야 하는지. 난 통 이해할 수 없다네. 아시겠소? 여자인 나, 화장발 조명발 옷발 사진발 그 어떤 숙녀들과 상대해도. 민낯인 난 하나도 꿇리지 않는데 뭐 하러 내가 그런 잡담에 짜증내야 하겠니. 안 그래? 그래서 우리 같은 여자들은, 내가 오빠 이럴려고 만나?, 라는 말을 애시당초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네. 도저히 기회를 주지 않은데 아니 어떻게! 그럴 전적 자체를 만들지 않으니까. 우리는 그런 주제라면 큰소리 떵떵 칠 수 있어. 그럼. 왜 못해? 해. 잘해. 너무 잘해서 탈이긴 하지만. 재수없지? 그치? 나도 알아. 어떻게 모르겠니. 그래서 내가 말을 하지 않을려고 했는데, 너가 막 겁박하고 뽐뿌질하고 그러는데 나라고 뭐 별수 있니? 허허허. 너도 그거 알아둬 얘. 응? 대어는 쉽지 잡히지 않는다 너?! 왜 내가 틀린 말 했니? 아니잖아. 응? 열린 문으로 개들이 들어온단 말이야. 자세. 가드 올려야지 그게 뭐니. 선구안 뒀다 뭐하게? 구식탱탱묵은 경영이론대로 따라했다가 작업에 탈탈 털려서 폭락한 주식 들고서 한탄할 때 그때사 선구안으로 싱커냐 너클볼이냐, 피칭터널이 직구보다 더 긴 포크볼이냐 따지시게? 아니~ 차라리 마구를 주문하시지. 이모말 곧이곧대로 듣다가 나중 자기 발등을 찍고 싶은 날이 올 수도 있어. 그분들 인생이 어디 그렇게 될 줄이나 일찍히 상상이나 했겠니. 허허허. 좋은 백댄서는 묻지 않고 주는 거야 얘. 허허. 아니, 그건 우리끼리 아니. 그건 남자들끼리 할 말이고. 복숭아는 익었을 때 떨어진다는 거지. 헌데 그 전에 먼저 벌레먹는다고? 아, 것도 남자들끼리.」
   「이거 봐 이거 봐. 오빠가 이러니까 여자가 없지. 그래서 오빠한테서 숙녀들이 떠나가는 거야. 이래서 오빠가 안되는 거라고. 알아? 이러니까 오빠한테 여자가 없는 거란 말이야. 에라~ 인간아. 어? 오빠는 잘해 줄래야 잘해 줄 수가 없어. 알아?」
    그러면서 비비안은 냉큼 가버렸다. 
    이미 떠나버린 그녀의 뒷모습 그 잔상을 감상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는 이렇게 혼잣말을 하지 않을 수 없었고. 
   「왜 그래? 내가 뭘 잘못했다고. 어? 왜 나만 가지고 그러냔 말이야? 왜 대답이 없어! 말하기 싫은 사람 괜히 들쑤셔서 꾸역꾸역 말하게 만들어 놓고. 또 지나니까 말했다고 난리긴 난리야.」





    5

    군림하는 남편을 아내가 통치하다. NB는 대체 왜 인공지능 지니가 잠잠한 것일까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전화가 걸려왔다. 톰이었다. 
   「어. 톰.」
   「어, 톰?」
   「그럼 늬가 톰이지 동네 똥개 찰리냐?」
   「넌 꼭 말을 해도, 웃겨. 녹슬지 않았어. 허허.」
   「그게 웃겨? 정말? 배꼽 빠지도록 웃겨줘?」
   「정말이겠냐! 야, 시끄럽고. 와라.」
   「오라고?」
   「그래. 어서 와 우리 아지트로.」
   「늬가 뭔데 오라 가라야? 어?」
   「오기 싫어? 그럼 오지 마.」
   「누가 싫대? 왜 진작 오라하지 않았냐 그 말이지 내 말은.」
   「나도 좀 쉬어야지. 만나달라는 여자들 다 만나줄 수는 없는 거 아니겠어?」
   「그건 그렇지.」
   「잘 아네. 그러니까 어서 와.」
   「알았어.」
    1시간 후.
    글쎄... 이걸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아지트에는 톰 혼자 밖에 없음.
   「기대도 안했다.」
   「마! 니 내가 누군지 아나!? 어? 내가~ 어? 내가~ 잠깐만. 난 누구지? 뭐야 넌?」
   「너 옛날에 안 그랬잖아. 잘 나갔잖아. 우리 친구들 가운데 인기로 너 따라간 애 있었냐? 불세출. 그런데 늬가 어쩌다...!」
   「외롭지 않다.」
   「그럼 나만 뭐 도시의 고독한 여심 사냥꾼이냐?」
   「인생 뭐 있냐? 오늘은 사람이고 내일은 생쥐다, 카프페디엠!」
   「너 상태가 많이 안 좋은 것 같구나. (절레절레)」
   「왜 마음에 안 들어? 그래 그럼. 오늘은 남자고 내일은 개다. 우리는~ 워 워 워.」
   「포기했어.」
   「뭘?」
   「찬란한 신세계에서 새로운 인생을 사는 듯한 기분.」
   「야, 너. 내가 다 꼬셔줄께.」
   「뭘 꼬셔? 늬 앞가림이나 잘해. 너 바지 지퍼 열렸어.」
   「정말?」
    몸짓.
   「늬가 그러니까 안되는 거야.」
   「난 아직도 대타들 꽤 돼. 그런 너는?」
   「말 했잖아 좀 전에. 포기했다고.」
   「어머 바보. 이런 미련곰탱이 같으니라고. 늬가 남자냐?」
   「그럼 내가 여자냐?」
   「야, 너. 어? 너 임마. 응? 포기하면 편하다는 걸 누가 몰라? 나 많이 참고 있다는 거만 알아둬.」
   「뭐? 난 더 참고 있어. 뭘 알고나 말해 임마. 어?」
   「아따 거 드럽게 깝깝시럽소잉.」
   「그거 안 어울려 너한테. 하지 마. 좋은 말로 할 때.」
   「그렇다고 너 방심하지 마. 내가 아는 여동생들 너한테 전부 다 소개시켜준 거 같지? 나 톰이야. 어?」
   「그럼 늬가 톰이지 생선이냐?」
   「어허. 내가 활동 안해서 이렇다니까. 어? 마음만 먹으면,」
   「또 또 또.」
   「그 말 들어봤니?」
   「어떤 말?」
   「검객은 자기 제자에게 가르쳐준 것보다 한 가지 재주를 항상 더 가지고 있다.」
   「가능한 대로 해라, 원하는 대로 못하면. 그만 내려 놔 이 녀석아. 야, 나 간다. 다음에 보자.」
   「나 살아있어. 애들 부른다, 어? 진짜. 나중 후회하지 마. 야, 진짜 가냐? 의리없이?」
    그렇게 NB는 아지트를 떠나서 집으로 갔다. 
    30분 후. 
    그런데 핸드폰을 놓고 왔네? 그는 돌아갔다. 그렇게 아지트에 거의 다 와서 못 볼 걸 결국 보고야 말았다. 
    바로 크리스티─톰─비비안, 다정스레 팔짱낀 삼인방 뒷모습을!
    무슨 게임하나? 그런가?





    6 

    하나도 부럽지 않았다. 관심 전혀 없었으니까. 단지 건수만 없을 뿐. 아니, 껴달라 그럴까? 어쩌면 걔네들이 진정 바라는 게 그걸 수도 있잖아? 아무튼 그런 뒷모습을 난 하나도 선망하지 않는다는 것이 최고로 중요하다. 그게 진짜니까. 딴 거는 다 필요없다. 사랑? 사랑은 없어~! 농담이고. 아니 진짜로, 어? 오히려 누가 날 귀찮게 하지 않으니까 더더욱 삶이 즐겁고 인생이 마냥 신나는 것만 같았다. 정말이다. 진짜라고. 거 참 왜 사람 말을 안 믿고... 난 토라지지 않았다. 잔소리를 스테레오로 들으라고? 모노 1개만 해도 부인 다변에 득도한 남편 얼굴을 바로 옆에서 봤을 때 귀에서 피가 흐르는 걸 직접 봤는데? 생생히, 현장을, 목격했단 말이다. 캬~ (절레절레)! 차라리 돌비 시스템이 낫긴 낫겠다. 아니 그런가? 정신사나움. 산만해서 돌아버림. 진공청소기 전적에 치명적 찝찝함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니 멜로드라마 애호가든 상남자들이든 추구하며 동경하는 건 결국 딱 세 가지로 귀결되는 셈. 그게 대체 뭘까? 첫째 더티 러브, 둘째 추접스러운 염문, 셋째 찐한 사랑. 그러고 보니 다 그게 그거네. 그러거나 말거나. 그게 뭐 어쨌다고? 말이 그렇다는 거지.
    어찌 됐든 우리는 그렇게 융통성 없는 남자가 아니다. NB도 그리 썩 꽉 막힌 남자가 아니란 말이다. 안 그래도 긴 생애사 전략이라는 둥, 짧게 단타와 뻔트와 잔뻔치 쨉쨉쨉 계속 쨉 내내 쨉 끝까지 쨉뿐인 쉐도우 복서의 비애는 곧 뭐래더라? 그래. 짧은 연애사 전술이라나 뭐라나. 하여간에 말이야, 어? 거 참 나 진짜 거 증말 하여튼 진짜진짜 뻔트 좋아한다니까 글쎄. 누가 아니래? 말릴 래야 말릴 수가 있어야지. (절레절레) 아 그러니까 잔소리를 절로 부르지 왜 아니겠어. 흥! 누군 뭐 왕년에 여자깨나 안 울려본 줄 아시나? 됐다 그래. 별 무슨 깽깽이 말미잘 에잇 재미없다.
    아무튼 그 인간은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아무 숙녀나 다 웃길 수 있다. 여자는 웃으면 뭐다? 간지러운 호감말고 입이 귀에 걸리는 폭소를 절로 부르는데, 여자는 웃으면 끝. 따라서 그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여자를 꼬실... 웃길 수 있다. 그러니까 이제 질린 거지. 플레이보이계에서 제발 남아주시라고 바지가랑이를 잡고 늘어져도 매몰차게 은퇴한 거고. 복귀는 꿈도 꾸지 말라, ~와 정반대되도록 부디 한번만 만나달라는 여자가 (손차양) 어? 아 글쎄 끝이 보여야 뭔 말을 하든 말든 할 거 아니냐고요, 네? 여자라면 우리는 신물이 난다. 뭐 양이 적네? 적긴 뭐가 적어. 아주 그냥 징글징글하단 말이오. 뭐 달지 않은 도넛 없냐고? 그럴 꺼면 쓴 에스프레소를 드시지 뭔 허튼 소리야. 어? 뭐가 어쩌고 어째? 이 사람이...! 이 양반이 시방 보자 보자 하니까... 뭐야. 왜 근데 주위에 아무도 없어? 뭐 1인극이라 치고.
    그런데 내가 왜 그 인간 입장 변호를 하고 있지? NB 그 허접한 녀석이 대체 뭐라고. 꼴통 같은 놈. 찌질한 녀석. 더럽게 재미없는 놈. 개새끼. 멍청이. 허세대회 예선탈락감. 허풍업계 퇴물. 허영협회 퇴출감. 입만 열면 뻥. 늘상 뻥. 노상 뻥. 입을 열면 거짓말이 그냥 자동적으로 나옴. 그렇다고 지가 눈치가 있어 아량이 있어? 배포도 요만~해. 어? 구체적으로 나쁜 놈, 지능적으로 더 나쁜 놈. 전자와 후자를 동시 석권. 어? 지 주제를 알아야지 말이야. 어디서 줏서들은 거 짜집기해서 칼럼쓰고. 어디서 줏서읽은 거 교묘히 섞어서 환상문학잡지에 연재하고. 어디서 엿들은 거 다 지가 경험한 거나 된다는 듯이 돌려막기하며 아는 척하고. 찌질한 놈. 바보. 미친놈. 지가 생판 모르는 년 겨드랑이가 도대체 왜 궁금한데? 도대체가 말이야, 어? 썩을놈. 옆에서 가만 지켜보니까 말이야 거 무슨 젖소 빨통도 아니고 아가씨가 거 어째 너무 심한 거 아니야? 어? 사람이 말이야, 어? 젖소야 순수한 우유 담백한 치즈를 위해 젖통에서 우유를 짜는 거고. 젖소와 숙녀가 어디 같아? 같냐고. 어? 뭔 라쿤 성감대 긁어줄 일 있어? 애무 못해서 설겆이를 그렇게 열심히 하시나? 어? 정말 스포츠 야유가 뭔지 보여줘? 그래? 보여줘? 헛소문이 언젠가 하다 하다 유명 트로트가수(컨츄리 가수) 가운데가 어쨌다더라, 라는 헛소문이 퍼져서. 기자들 다 모아놓고 조명발 끝짱나도록 터지는 가운데. 벌컥~ 책상 위로 올가서시는 것처럼... 보여줘? 그런데 뭘 보여줘. 보여주긴 누가 보여줘. 아무튼 심심하면 썩은 미소 줄여서 썩소. 어? 능글맞은 천덕꾸러기. 능글능글 색마. 더럽게 추접스러운 호색한. 허접한 난봉꾼. 조잡한 바람둥이. 밥통. 쪼다. 등신. 어? 한마디로, 찐따! 완전 찐따. 그러니까 여자가 없지. 지가 뭐 여자를 알어? 어? 아니~ 그러니까 말이야~ 왜 지금 그 허접쓰레기 같은 놈 대변인을 자처하냔 말이야. 어? NB 그 인간 도대체 뭐하는 작자야? 하여튼 애용하는 이니셜 하고는 촌스럽게 대표적으로 NB. NC? 나이트클럽. 우웩~~~~ 누가 촌스럽다고 하지 않을까 봐 그러는 거야 뭐야. 밑도 끝도 없이 잔소리나 늘어놓고 툭하면 개 풀 뜯어먹는 헛소리나 나불대면서. 뭐 꼴에 칼럼니스트? 이런 젠장. 밑도 끝도 없이 뭔 개 벽따귀 같은 문학. 예술이 뭐 지한테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거야 뭐야. 허구헌 날 인터넷에서 이상한 사진과 영상들에 기웃기웃 볼까 말까 고심이나 하고 말이지. 하여간에 한심한 작자야. 정체가 의심. 흑심은 의뭉 그 자체. 인생이 군침. 지가 사랑을 알아? 사랑은 개뿔. 늘상 개침 질질. 웬만히 껄떡거려야 말을 안 허지. 눈빛 보면 언제나 찝쩍. (절레절레) 아무튼 야유는 이쯤 줄이기로 하자.
    그래서 집에 가서 소파에 자빠져 TV나 보기로 했다. 그거면 된다. 





    7

    별빛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
    바람 부는 갈대숲을 지나
    언제나 나를 언제나 나를 
    기다리던 기다리던 너의 아파트...

    추억의 노랫말을 그는 기억했다. 3분의 마법에 나오는 언제적 신조어인 아파트. 아파트? 아파트 하면 그 비디오가 기억남. 바로 조의 아파트(1996)! 줄여서 JSA. 감독: 존 페이슨. 출연: 제리 오코넬(조), 메간 워드(릴리 도허티). 그런 촌극하면 또, 그래서 나는 도끼 부인과 결혼했다. 지금이라면 어떻게 저런 촌스런 드라마를 처음부터 끝까지 차분히 감상할 수 있었을까 싶은데. 그도 그럴 것이 조의 아파트가 1996년작. 그럼 불과 오래지 않은 그 근방이 생각남. 
    1993년: 고2때 학교가 31사단 옆으로 이사감. 하교길 스쿨버스 내에서 고1 복학생끼리 싸움 발생. 그 2명이 이상함. 1명은 나중 10년 후 NB와 브로맨스 때문에 시트콤 친구와 여동생들 난리남. 1명은 이름이 NB와 같음. 그렇게 복학생 2명이 스쿨버스 내에서 싸운 장소도 또 가관. 가관? 신비. 선거 직인이 점 복(卜)자로 바뀐 해가 1994년인데 그보다 훨씬 앞선 초5쯤에 셋이서 만난 장소가 그곳임. "엄마&엄마 계모임 남자 경찰관 즉 친구라고 부르긴 뭐하고 계모임원끼리 아는 오빠&나". 그렇게 엄마 나 외갓남자 셋이서 포도농장이던가 비닐하우스를 방문한 장소가 그곳 점 복(卜) 도로 인근. 요약하면 고1복학생끼리 스쿨버스내 싸움 발생 장소 = 엄마가 막내 손잡고 외갓남자 만난 장소. 아, 여기서는 그건 설명이고 핵심은 스쿨버스에서 싸운 애, 나중 NB와 브로맨스 관계였던 '행진해' 이름남자. 걔가 입술입천장갈림증(속어로 언청이)
    1995년: 삼류 대학교에 입학했는데 그게 입학2회. 1994년이 삼류대 창설이자 신입생 1회. 당시 94학번 95학번 같은 학과 선후배끼리 모임 잔칫날. 선배 가운데 같은 고등학교 선배도 있었음. 즉 고등학교&대학 같은 과 선배. 레스토랑에서 하필 부른 노래 제목이 '아파트'. 그 형도 입술입천장갈림증(속어로 언청이). 
    뭐 그건 그렇고. NB는 집에서 그처럼 공상만 하기 지겨워졌으므로 도시 근교 점 복(卜)자 거리가 사거리로 바뀐 어느 동네를 구경가기로 했다. 
    그렇지만 그건 별볼일 없을 게 뻔했다. 그러므로 그 작전은 때려치웠다. 그 대신에 버뮤다 리조트로 발길을 돌렸다. 왜냐면 거기 친구들이 개장식에 그를 초대했기 때문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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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 ─ 168

from 소설 2020. 4. 30. 20:02

    1

    사랑이란! 여자의 마음을 사뿐사뿐 띄워주기도, 빙글빙글 돌아버리게도, 포근히 녹여버리기까지 모두 문제 없는 신비한 환상머신. 그건 다름 아니라 바로 너? 사랑이고 자시고 그게 지금 나랑 뭔 상관이 있는데. 냉수 마시고 속 차리자. 꿈 깨야지. 그렇긴 하다만 말이야, 응? 애타게 꿈꾸어오던 욕정, 꿂주릴 대로 꿂주린 늑대의 심정. 앗, 내가 그렇단 말이 아니라 내가 아는 어떤 친구 얘기임. 정말임. 진짜임. 그게 만약 거짓말이면 난 사람도 아님. 만일에 그게 뻥이면 난 개다 개. 어? 뭐 그건 그거고. 아무튼. 내면의 열망을 마냥 모른 체할 수도 없는 것 아니겠어? 아니긴 뭐가 아니야! 뭣이 어째? 꿈 깨란 말이야. 케케묵은 신비 구식탱탱묵은 환상. 다 부질없어. 몽땅 재미없다고. 알아? 지금도 생각나지만... 됐어. 그만 했으면 됐다고. 아 쫌! 
    아니 내가 어쩌다가? 사무실에서 두뇌 잔근육 키울 생각은 않코, 한사코 혼자 잔소리 꽥꽥 지르며 놀 궁리만 엿보는 인생. 누가 아니래. 말하자면 어쩌다 자발적 가택감금이 상책이긴 한데. 하오나 헤라클라스가 허당들 아지트에 갇힌 듯 하니 뭐 때를 기다릴 수밖에. 우리는 그렇다. 우리야 마누라 등쌀에 못 이기고, 잔소리 참기에 득도하며, 여편네 엉덩이에 깔려 사는 신세는 아님. 따라서 할 말 하고 뻥치지 않음. 그럼 뭘 해 인기 바닥인데. 그럼 뭘 하냐고 그래 봤자 일기장에 그냥 험담만 험담만 꽉 차기 밖에 더 하냐고. 그러니까 말이지, 여자가 왜 뒷담화를 좋아하고, 남자는 그런 여자들을 왜 더 좋아하는지 통 알 수가 있어야지. 우리는 여자 하나도 관심 없음. 여자 뒤꽁무늬 쳐다보는 허당의 허접한 심정, 다른 사람들 얘기일뿐. 하지만! 그저 개침이나 흘리면서 놀고먹는 칼럼니스트라 핀잔 받으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 때문에 나는 곧잘 땀을 뻘뻘 흘렸다. 이건 아니다. 이건 정말 아니라고. 
    그래서 나는 사무엘을 만났다.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의 정답은 그랬다. 녀석을 만나면 즐겁다. 아마도 녀석은 숙녀들에게 무인도에 데려가고 싶은 남자로 손꼽히기, 에서 너무 많이 거론되어 짜증날 것이다. 믿든가 말든가가 아니라 진짜다. 내 자랑이 아니지 않나. 단지 사실일 뿐. 아무튼 심심할 땐 친구를 만나야 한다. 그렇다고 한참 재밌는 건수가 생기고 찬란한 쾌감마를 타면 우정을 버리란 말은 아니다. 사랑과 인생과 정열의 비밀이란 꼭 뭐는 뭐다가 아니니까. 그때 그때 맞춤복 재단사로, 때로는 마법사이자 요정으로 우리는 변신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말은 그럴싸 한데 다 시덥잖은 농담도 뭣도 아니다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사무엘을 만났다는 게 중요한 거다. 그게 발단이니까 말이다. 





    2

    자, 그렇다고 전개가 용암이 흘러가는 속도로 막 순식간에 이어지지는 않았다. 일단 사무엘과 나는 카페에서 만나 대화를 나눴다. 
    Domenico Scarlatti / Stabat Mater
   「너 이 음악 아니?」
   「왜 마음에 안 들어?」
   「아니~ 그게 아니라~」
   「너 아직도 입버릇처럼 말 시작할 때 아니~ 아니~ 그러니?」
   「넌 역시나 남 말꼬리잡고 늘어지기 여전하구나.」
   「내가 혹시 변했으면 너가 실망할까 봐. 허허허. 근데 아까 뭐 물어봤지? 아! 이 음악 내가 신청하지 않았어.」
   「뭐 이딴 카페가 다 있어! ~라는 말은 아니고. 뭐 나름 생소하다고나 할까?」
   「너도 여전하네 말 비꼬는 거. 넉살. 교태. 뭐 교태? 그건 아니고. 능청꾸러기 사무엘. 허허허. 그건 그렇고. 왜 만나자고 했냐?」
   「왜 만나자고 하기는 누가 왜 만나자고 해?! 늬가 나 귀찮게 해서 내가 여기에 나온 거 아냐. 생각 안 나? 그리고. 너 옛날에 '왜 전화했냐 왜 만나자고 했냐' 그렇게 따지던 친구가 아니었는데. 너 뭔 충격먹은 일 있니? 그게 엽기토끼 때문이야 아니면 말 안듣는 당나귀 때문이니? 그도 아니면 못 말리는 코끼리?」
   「코끼리 같은 소리나 하고 있네. 집어치워. 비키란 말이야. 못 들었어?」
   「너 그러고 보니 상태가 좀 안 좋구나.」
   「나도 알아.」
   「안되겠다. 아무래도 이 형이 너한테 특단의 대책을 제시하는 수밖에. 그거 말고는 방법이 없다. 캬~ 이거 이거 내가 생각해도 기가 막히단 말씀. 대단해. 내 입으로 이런 말하기 쑥스럽긴 하다만 그렇다고 뭐 틀린 말도 아닌데 뭘. 고양이가 배고프면 빵 껍질에도 만족한다? 우리는 아무리 배가 고파도 버터 빵에 바르고, 굽고, 요리하고, 정갈한 접시에, 그윽한 향기와, 고상한 음악, 또 청초한 숙녀? 그런데 내가 왜 그걸 너한테 설명해야 하지? 뭔 얘기를 하다 만 거야 글쎄. 아무튼 호랑이가 배 고프다고 풀 뜯어먹는 거 봤냐?」
   「어제 요 앞에서 고양이가 진짜로 풀 뜯어먹던데?」
   「늬가 그래서 안되는 거야. 알아? 늬가 그러니까 여자가 없는 거라고.」
   「너 또,」
    사무엘은 재빨리 검지로 내 입을 막았다. 그러면서 노트북을 펴서 어떤 웹페이지를 내게 보여주었다. 내용은 그랬다. 
    뉴발란스 챌린지 대회!
    언제    : 내일
    어디서 : 버뮤다 섬
    무엇을 : 깜짝 대회
    상금   : 아차상부터 인기상까지 상금은 상금대로 물 반 고기 반
    어떻게... 누가...
   「너 안 바쁘지? 내가 너 그럴 줄 알고 다 준비했어. 넌 인마 형만 믿으면 돼. 넌 그냥 내 옆에 붙어만 있으면 저절로 재미난 일이 생긴단 말이야. 어? 버뮤다 섬 알지? 여기서... 얼마 안돼. 가까워. 게다가 거기 참가하는 성비? 말도 마. 내가 괜히 레이더를 가동시켰겠냐. 허허. 심지어 다리도 놔졌대. 너 거기 안 가봤지?」
   「전에 가봤어. 딴 친구랑. 거기에 미니산이라고 있는데 그 토속전통 때문에 연초에던가 거기 산꼭대기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거든? 근데 당시 친구랑 둘이 거기 올라가서 빨가벗고 오줌쌌어.」
   「그게 다야?」
   「딴 데 가서 빨가벗고 수영도 했어. 여자랑 연애를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더라고. 그럼 어쩔 수 있나? 친구 밖에 더 있어!」
   「그러니까 네 말은 너 거기 가봤다는 거네?」
   「어. 그때도 다리는 놔졌는데. 한 20년 됐을 걸? 다리 놓여진 지가.」
   「난 왜 몰랐지? 난 그거 방금 생긴 줄 알았는데.」
   「널 보면 내가 아주 답답하다~ 답답해. 응?」
   「난 뭐 너보면 안 그런 줄 아니? 내가 널 보면 아주 그냥 징글징글하다, 어?」
   「나보다 늬가 더 허접해. 넌 옷 입는 게 그게 뭐니? 누가 조잡하다고 지적질 안해? 내가 해줘? 어? 해 말어? 어?」
   「워 워 워. 워 워 워. 지금 이럴 때가 아니지 않나 친구. 어? 그러니까 갈 꺼야 말 꺼야?」
   「넌 거기 나 안 데려갈려고 했니? 이 자식이 언제 이렇게 비겁해졌지? 내가 너 그렇게 가르쳤어? 내가 너 엎어키웠어 임마! 어?」
    다음 날 나와 사무엘은 만나 버뮤다 섬으로 떠났다. 
    과연 그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상상도 못한 채 말이다. 





    3

    우리는 버뮤다 섬에 도착했다. 
    앞뒤 시간 순서가 뒤죽박죽되는 영화처럼 복잡하면 읽다 퍼지기 십상이니 미리 결과를 밝히자면 이렇다. 
    버뮤다 섬에 도착 → 대회장은 한산 → 경기 시작 → 이상한 걸 막 시킴 → 도망감. 난 도망가고 사무엘은 남음.
    결과가 이랬는데.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팀을 짜서 경기를 진행하던 중. 우리팀 팀장이 자꾸 이상한 걸 시켰다. 
   [임무 1]
   "너는 얀센, 존슨앤존슨, 머크, GSK 같은 거대 제약사 영업사원이다. 그래서 저기 보이는 약국에 들어가 영업을 해라. 당신이 이미 보험왕 자동차판매왕 등 영업의 화신임을 증명하기만 하면 된다. 그렇다고 아직 뽐뿌질이 좀 덜 됐나? 좋다. 자, 이걸 받아라. 명함이 있다. 즉 살짝 뻥을 치는 거다. 당신은 바로 저기 보이는 저 버뮤다 의과대학원 교수이자 병원 인턴인 것처럼 쓱 다가가서 몇 가지만 물어보면 되는 거다. 그게 우리팀의 첫번째 임무다."
    그래? 처음부터 끝까지 멍청하게 뛰기만 하는 마라톤 대회. 재미없는 거 다 안다. 그래도 하면 보람 있고 좋긴 하다만. 우리는 그런 거 다 해 봐서 안다. 그런데 이번엔 색다른 거. 그러니까 이상하지만 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했다. 

   [임무 2]
   "가서 저 숙녀를 꼬셔라."
    뭐라고? 밑도 끝도 없이 첨 보는 아가씨를 꼬시라고? 누가 못할 줄 아시나. 
    그런데 중요한 점. 바로, 사람이 없었다. 아니 누가 있어야지 꼬시든 말든 할 거 아니냐고. 사무엘도 맞장구를 쳤다. 내 말이~ 라고 말이다. 

   [임무 3]
    깃발을 주면서
   "저기 보이는 저 앞산에 올라가, 정상에 파란 깃발을 꼿아라.
    저기 보이는 저 뒷산에 올라가, 정상에 빨간 하트를 묻어라.
    저기 보이는 저 언덕에 올라가, 치마 입은 허수아비가 들고 있는 가방 → 거기에 보면 리모콘이 있다 버튼이 많을 텐데 하늘색 버튼을 눌러라 → 그러면 곰인형이 춤을 출 것이다 → 그 때문에 개인형은 물거품을 발생시키고 → 그렇게 분홍색 풍선... 실은 그거 콘돔이다 대회를 위해 제작된 한정판 특수 콘돔, 그걸 터트려라 → 단, 그냥 막 터트리면 안되고 바로 이 노란색 뿅망치로 말이다.

   [임무 4]
    ......
    난 사무엘에게 말했다. 
   「사무엘. 그런데 우리가 이걸 왜 해야 하지?」
   「그러는 넌 그걸 왜 하고 있는데?」
   「아니 그냥 뭐 일단 시작했고. 또 하다 보니 하긴 하는데. 처음부터 뭔가 이상했어. 이상해. 안 이상할 수가 없잖아. 그래도 일단 기다려본 거지. 최근 내 삶이 무료했으니까 기다려본 거라고. 미완의 환상머신 대신 행운의 여신이 물어다준 건수 그 신비감에 흥분할 것만 같은 예감, 없음. 은밀한 암시, 꽝. 기대 안 함. 그래서 너한테 의뢰가 온 거고. 여기까지 와서 대회 참가. 딱 참가했어 했다고. 어? 그래서 흥미진진한 예감대로라면 말이지 짜릿한 손맛 기발한 흥분. 놀라운 행복감. 절묘한 환희. 점점 재미있어지는 전개. 대실망시키지 않는 뭐 나름 괜찮은 절정. 그걸 기다리는 내가 바보니? 어? 정말 꾹 참고 기다려도 기다려도, 이 냥반들이 누굴 바보로 아나? 어? 하긴 지금 와서 말이지만 냉정히 판단해보면, 아니 그래도 그렇지 말이야. 어? 나만 이래? 넌 안 그래? 너도 그럴 거 아니야?」
   「난 기다려볼 꺼야. 좋은 날 오겠지. 쥐구멍에도 언젠가 볕 들지 않겠어?」
   「늬가 쥐냐? 내가 좋은 개구멍을 알고 있는데~」
   「그건 일단 나중에. 지금은 치즈에 줄이 달렸건 떡밥에 낚싯바늘이 스쳐지나갔건. 결을 봐야 할 것만 같아. 왠지 모르지만 난 지금 그렇게 생각해. 어딘가 모르게 그래야만 할 거 같거든.」
   「너 원래 그런 애 아닌데. 너 좀 이상해.」
   「나도 알아. 나 이상한 거. 넌 뭐 정상인 줄 아니?」
   「무슨 소리야? 내가 왜 정상이 아닌데. 나 정상이야. 나 정상이라고. 나 멀쩡해. 나 미치지 않았어. 내가 뭐하러 미쳐? 나 안 미쳤어. 이거 왜 이래?」
   「미치지 마. 그럼 됐지?」
   「어? 어.」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이건 뭔가 이상했다. 도저히 끝까지 기다리기엔 이상해도 이상해도 끝까지 이상했다. 몰래 먹는 떡이 맛있긴 한데 모른 척 기다려도 이건 아닌 것만 같았다. 구두가 맞으면 신어라, 우리가 어찌 모르랴. 하지만 유리구두는 내게 맞지 않았고, 난 달릴 거 달렸고. 그게 남의 것도 아니고 내 거고. 이건 아니었지. 그럼. 아니다마다. 4월의 비가 5월의 꽃을 가져온다지만 올 듯 말 듯 올 뻔 말 뻔, 줄 듯 말 듯하다가 거의 탐스런 열매를 따먹을 뻔 하다가~ 결국 꽝! 뭐? 이런 젠장. '주겠다' 2번보다 '가져라' 1번이 낫다는데 또 뜸들이기? 이건 뜸들이기도 뭣도 아님. 대충 감 왔다. 느낌 오지 왜 안와. 예측 가능했다. 추리 못할 수가 없었다. 소망 품을 상황이 아닌 것이다. 희망을 탐구하기엔 일기예보가 썩 미덥지 않았다. 집에 가서 고급 망원경이나 싸구려 단안경으로 어디 막 여기저기 보다가 바람결에 뭇처녀의 치마가 나부끼는 것을 관측하는 게 차라리 나을 것만 같았다. (물론 말이 그렇단 거고).
    그래서 나는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어머머머머, 그런데 사무엘은 안 가겠다네? 끝까지 기다려보겠다니! 답 뻔한데? 아니 왜? 번잡한 속세보다 조용한 자연이 좋다는 건가? 뭐지? 뭐지? 혹시... 에잇 아닐 거야. 그럴 리가 없어. 아니지. 또 몰라. 설마... 버뮤다의 정력가로써 신기록 수립을 위해서? 사무엘이 무슨 코흘리개 꼬마도 아니고. 그럼 대체 왜지? 알 수가 있나. 이 고집불통 사무엘. 하긴 녀석과 내가 2 대 2로 소개팅하면 내가 불리하다. 내가 마음에 들어하는 아리따운 숙녀는 꼭 사무엘한테 보자마자 홀딱 반하기 마련. 닭 쫓던 개 지붕쳐다보는 심정을 아슈? 한두 번도 아니고? 그래서 난 녀석을 내버려둔 채 혼자 집으로 돌아갔다.





    4

    일주일이 지났다. 버뮤다 섬에서 돌아온 지가. 
    여기서부터는 필름을 빨리 돌리겠음. 
    여기서부터는 필름을 빨리 돌리겠음. 
    왜냐, 왜냐하면 그러다 약간 재밌는 부분에서 정상 속도로 보려면 시간이 부족하니까.
    그렇게 일주일 경과.
    그 일주일 후 스티브가 꼬심. 
    제라드가 버뮤다 섬에 모스맨 대학교를 지었다는 말로. 
    Ⅰ) 해커: 켄트 
    Ⅱ) 건물비밀통로&기술 담당: 로버트
    Ⅲ) 친화력 담당: 로즈마리 
    Ⅳ) 어중이떠중인: 나
    인원을 더 모집했으나 씨알도 안 먹힘.
    녀석의 비자금으 털로 가자는 말에 홀딱 넘어감. 
    그렇게 우리는 버뮤다 섬으로 출발했음. 





    5

    우리는 버뮤다 섬 도착했다. 
    장면은 그곳 전망 좋은 곳에 웬 모스맨 대학교.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비자금 창고 같은 건 없었음. 그래도 계속 덤빔. 계속 뎀빔. 도전 실패 도전 실패 그래도 계속 도전. 그래서 결국 성공! 
    하지만 하필 턴다는 게 비서실 창고를 털다가 걸려서 혼쭐이남. 
    나머지 애들은 사설 경비업체에 끌려감. 
    나만 사무엘을 만나 비서실로 빠짐. 
    지금이니까 하는 말이지만 나중 애들은 도시로 강제 전출되었다고 들음. 
   「야 사무엘. 늬가 거기서 왜 나와? 늬가 여기 총장이냐?」
   「어.」
   「뭐?」
   「내가 이곳 버뮤다 대학교 총장이야. 제2대.」
   「그럼 1대 총장은 누군데?」
   「너도 아는 사람.」
   「제라드?」
   「잘 아네.」
   「이 자식들이... 너네 장난해?」
   「넌 이게 장난처럼 보이니? 이 비서실. 저 소파. 저 전경. 탁자 위에 책 보이지? 전망 좋은 방. 지금 네 옆에 앉아 있는 늘씬한 비서 1과 육덕 미녀 2. 너가 지금 양쪽에 꿰차고 있는 건 뭔데? 다 진짜야. 가짜 아니라고. 인정, 불인정?」
   「아니~ 그러니까 내 말은~ 맞다. 그럼 제라드는 어디 갔는데?」
   「그 친구야 바쁘니까 여기 자리를 나한테 넘겼겠지. 지금 아마 모스맨 잡으러 갔을 걸!」
   「뭐, 뭐?」
   「뭐긴 뭐가 뭐? 누가? 내가? 아님 너가?」
   「거 어째 너랑 말이 잘 안 섞이는데.」
   「난 뭐 너랑 말이 잘 통하는 줄 아니? 천만의 말씀.」
   「야.」
   「어.」
   「너 저번에 그거... 뭐더라?」
   「뉴발란스 챌린지 대회?」
   「그래. 그거. 그거 어떻게 됐어?」
   「너 간 다음에 내가 우승.」
   「진짜?」
   「그럼 뻥이겠냐?」
   「상금은?」
   「보시다시피.」
   「」
   「저기 보이지? 저 호텔 내 거야. 여기 오다가 골프장도 봤지? 거기도 내 꺼. 극장이든 쇼핑몰이든 없는 거 없어.」
   「너 뭐하는 놈이야?」
   「버뮤다 대학교 총장. 버뮤다 다국적 기업 회장. 희대의 조세회피처 관련 큰손.」
   「너가 벌써 거물 됐다고?」
   「내가 아무리 기다려도, 어? 나보다 늬가 먼저 크진 않을 거 같아 내가 너보다 먼저 이렇게 됐다. 거 쪼금 미안하게 됐네 친구. 그렇지만 넌 언제든지 여기 와서 놀다가든 쉬다가든 뭐든지 공짜. 올 때도 마음대로 갈 때도 마음대로. 뭐든 공짜. 왜 직장 출근하기 싫어? 월요병 때문에 도시의 아침이 아름답게 보이지 않아? 여기 야경 괜찮아. 여기 와서 내 비서실장해. 물론 진짜 비서실장은 따로 있고, 넌 책장 먼지만 털면 돼. 끝. 어때? 당장 오란 말이 아니야. 너 나 알지? 내가 언제 거짓말한 거 봤니?」
   「아마 볼 기회 자체가 없었던 걸로 아는데.」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 그럼 이제부터 차차 알아가면 되겠네. 뒷패도 남았는데 숨겨둔 판돈 미리 알아도 김새잖나 친구.」
   「너 못보던 새에 포커페이스 많이 늘었다? 말발도 아주 그냥 사기꾼 뺨 치겠는데?」
   「그럼 뭐 넌 못보던 새에 액면이 많이 썩었냐? 자네도 잘생겨졌어. 전보다 많이 세련되게 바꼈다고. 그렇다고 예전에 흉했다는 뜻이 아니고. 왜 내 입담이 많이 허접한가? 하지만 우리 우정이 뭐 그다지 퍽 추접스러운 건 아니지 않나.」
   「그런데 있잖아 내가 알기로는 넌 옛날에 그렇게 말 많은 친구가 아니었거든.」
   「사람은 변해. 자, 사랑과 우정. 넌 뭘 고를래? 우리가 무슨 소녀감성이니.」
   「가만 있어 봐, 나도 말 좀 하자.」
   「내가 언제 너 말 못하도록 말렸니? 말린다고 늬가 내 말 들어? 안 듣잖아. 그런데 말 좀 하긴 뭔 말 좀 해. 어? 안 그래?」
   「이 자식이 가만 보니 날 들었다 놨다 쥐락펴락 장난 아니네.」
   「야 너.」
   「왜?」
   「그 손...」
   「어?」
   「그래도 내가 없을 때라면 몰라도 벌써부터... 너가 옛날 세이렌 증후군에 걸렸든 허언증 완치 판정을 받았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말이야. 내가 늬 양쪽에 비서 두 명 앉혀놨다해서, 어? 손이 벌써...」
   「내가 그런 거 아니야. 이거 왜 이래? 얘가 누굴 바보로 아나?」
   「어떻게 알았어?」
   「뭐?」
   「그 손 늬 손이지?」
   「그럼 이 손이 내 손이지 누구 손인데.」
   「추접스럽게 그게 뭐니?」
   「사랑은 추잡한 게 아니야.」
   「그럼 뭔데?」
   「나도 몰라.」
   「말장난 길어져봐야 재미없고. 난 바쁘니까 너 혼자 놀다 가. 아니 가지 마. 게다가 여기 비수기야. 허나 회사 현금보유량 끝장. 너 하고 싶은 거 다 해. 나 갈께. 비서 1 비서 2. 쟨 크리스티 쟨 비비안. 나 간다.」
   「야, 진짜 가? 늬가 그러니까 여자가 없는 거야. 눈치 봐서 좀 더 일찍 빠져줬으면 좀 좋아! 뭐야 벌써 갔어? 설마...」
    도시에서 난 정말 고독한 사냥꾼이었다. 공상이야 늘상 그랬고. 어떻게? 
    <친구들과 떠들며 놀 듯이 파티하는 기분 나게, TV 라디오 고전음악 댄스 다 틀어놓고 놀아볼까? 그거 좋아하던 녀석들과 놀던 시절도 옛날 얘기고. 3분짜리 유행가 1곡만 3일 내내 듣는 여동생들도 다 떨어져나가고. 이게 뭐냔 말이지.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됐어, 아 글쎄 진짜 어떻게 됐냐고! 만지작 만지작 정도가 아니라 시원스레 꺼내들 다음 카드는? 허당미. 퇴폐미. 방탕아 본색. 악동 기질. 낭만파의 감수성. 모험심. 호기심. 발정기의 어떤 갈망. 풍운아의 열망. 회심의 쾌락마? 남부럽잖은 일하기와 남몰래 좋아 미치는 놀기. 그 신기한 균형감에 따른 막연한 불안감까지. 역시나 사랑은 없을까? 후즐근한 차림새. 허접한 인상. 우스꽝스러운 관상. 앙 다문 지갑을 벌여볼 필요도 없이 명품 지갑도 없음. 고로 품위유지비 바닥. 이런, 젠장~! 의무방어전에 지친 당신, 당장 떠나라? 선전 그거 다 속임수. 커피가 발달한 이유중 하나가 아니라, 유력한 원인은 바로, 남편들을 일찍 못자게 하기 위해서? 무슨 그런 개뼉따구 같은 소리. 다 뻥 개 뻥. 이런 젠장!> 
    그런데 그와 달리 난 여기가 너무 좋았다. 더 좋을 수가 없었으니까.





    6

    버뮤다 섬 모스맨 대학교 놈팽이로 전락. 나름 싫진 않음.
    그렇게 유유자적 농땡이나 피우며 한량으로 지내는 꿀 같은 삶. 꿀 떨어지는 연애만 더해지면 딱인데. 뭐 그건 나중으로 미루고. 
    그러던 어느 날 버뮤다 섬 청년회 회장인 피츠제랄드가 날 찾아왔다. 
    모스맨 대학교가 생긴 이후부터 지금까지 속에 쌓인 게 많긴 많았나 보다. 
    비서실. 소파. 피츠제랄드와 나.
   「당신이오?」
   「」
   「버뮤다 섬 처자들을 다 따먹고 다닌다는 사람이?」
   「뭐요?」
   「못 들었소? 그럴 수도 있으니 다시 말하겠소. 당신이 바로 그 뭐야, 뭐지? 뭐더라? 내가 뭔 말을 하려던 참이었지? 아, 맞다. 당신이 바로 버뮤다 섬 숙녀들을 다 따먹고 다닌다는 난봉꾼이오?」
   「무슨 소리요? 난 꿀벌이 아니라 파랑새과란 말이오. 그러는 당신이 더 수상한데? 그 음흉한 속내 내 한번 맞춰볼까요?」
    녀석은 흠칫 놀라는 눈치다. 그럭저럭 10분 동안에 걸쳐 우리는 통성명을 나눴다. 
    그렇게 피츠제랄드가 내게 준 명함을 보니 녀석은 원맨쇼도 아니고 맡은 직함이 무려 50개였다. 
    명함 가득 빼곡히~ 명함이 무슨 깜지도 아니고. 어? 녀석이 딱히 좀비라는 증거는 없지만서두 난 일단 녀석을 좀비로 상정한 채 세게 나가기로 했다. 
    그래서 내가 뭐하러 버뮤다 섬 처자들을 농락하고 다니겠냐, 난 그럴 의사가 없다. 내가 왜 버뮤다 섬 여인들에게 봉사해야 하냐, 난 그럴 마음도 시간도 없다. ~라면서 한참을 따지다가. (딱)~ 거짓으로 전화를 받는 척했다. 녀석이 리듬을 당김음으로 리드하니까 난 무시하는 전략을 썼던 것이다. 그래서 난 내 상대를 바꿔버렸다. 막 그렇게 전화를 받았다. 
   「어, 스티페 미오치치. 웬일이야? 너 형한테 인사가 좀 뜸하다? 형 기분 나빠지려 하는데? 야, 너 잠깐만 기다려.」
    그와 동시에 난 재빨리 개폼 똥폼 오만폼 다 잡으면서 피츠제랄드에게 말했다.
   「스티페 미오치치가 누군지 아쇼?」
   「예. UFC 현 헤비금 챔피언이죠. 저도 그 정도는 알아요.」
   「거 잘됐구만. 걔랑 통화해보시겠수? 내가 얘 엎어서 키웠소. 얘가 한때 버릇 나빠질려고 하면 내가 자세 잡아주고, 어깨뽕 연예인병 걸릴려고 해도 내가 혼구녕을 내주고. 거의 뭐 내가 얘 사람 만들었다고 봐도 무방하요. 아시겠소?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오. 어이, 형씨. 왜 당신께 형씨라고 불러서 기분 나쁘오? 얘네 뿐만이 아니오. 내가 오락산업 거물들 부르면 싹 다 내일 당장 달려올 거요. 그리고 최근 잘나가는 영화배우들? 지금 당장 내가 콜만 하면 튀어올 숙녀들 저기 보이는 운동장에 줄 세워도 세바퀴 반도 모자르오. 아시겠소? 그런데 내가 뭐하러 버뮤다 섬 처자들을... 어... 우롱하고 다니겠소. 거 기왕 말 나온 김에, 말이야 바른 말이지 형씨가 먼저 상스런 표현을 입에 담았지 그거 어디 내가 먼저 시작했소? 맞소 들리오? 그러니까 말이지, 뭐 내가 버뮤다 섬 숙녀들을 다 따먹고 다녔다고요? 내가 그렇게 한가한 사람으로 보이오? 정말 그러오? 이 사람이...! 당신 말 다했어? 어? 이름만 대시오. 누구 생각나는 사람 없소? 가수? 아니면 뭐 여자 배구선수? 패션계 스타? 이 전화에 담긴 숙녀들이면 이 고장에서 1년 내내 군민축제를 열어도 모자를 판이오. 아시겠소? 네? 그런데 내가 왜 뭐 거 뭐냐, 뭐 따먹고 다녔냐고요? 이 사람이...! 야, 너! 그래 너 임마. 너 내 동생해. 나 이제부터 네 형할께. 형이 너 커버해준다. 너 이 형이 보호해준다. 아까처럼 소문 이상하다 싶은 일 있으면 이 형한테 말해. 형이 다 처리해줄께. 그리고 마음에 드는 영화배우 있으면 이름만 말해. 알았어? 알았어 몰랐어? 아 스티페 미오치치 기다리는 중이지. 너 조금 기다리고 있어.」
   「어 스티페.」
   「네 형님. 말씀하십시요.」
   「말하라고? 형한테 나불거리라고? 야 인마 전화는 늬가 걸었잖아. 너 형한테 맞고 싶어? 그러고 보니 너 형한테 맞은지 좀 됐지? 글지? 어쩐지 너가 너가 아까부터 깐족거리더라 했다. 그새 말이야, 어? 못 보던 새에 깐죽이 많이 늘었네? 형이 더 이상 허세대회에 출전하지 않는다고 비리비리 아마추어들끼리 대회 수준 떨어트렸다며? 그러니까 용건이 뭐야? 형한테 하고 싶은 말이 뭐냐고? 뭐? UFC 여자 선수와 따른 리그 남자선수끼리 이벤트전 열면 어쩌겠냐고? 너 알아서 해. 형 비서실장한테 물어보면 돼. 넌 임마 그게 문제야, 알아? 늬가 뭐 5살 먹은 꼬마냐? 형이 하나부터 열까지 다 꼬치꼬치 알려줘야 해? 어? 늬가 임마 그래서 안되는 거야, 알아? 어? 늬가 그러니까 여자가 없는 거라고. 이 자식이...! 야, 형 기분 나빠졌어. 뭐? 형 화났냐고? 미쳤냐 형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단 1번도 화내본 적이 없어. 형은 그런 역사가 일절 없다고. 어? 누굴 뭘로 보고...! 아무튼 형 짜증나도록 돋구지 말고, 귀찮게 뻠쁘질 하지 말란 말이야. 어? 아 쫌! 야 다음에 통화해. 지금 분위기 영 아니니까. 들어가.」
    눈치를 보아하니 피츠제랄드는 상당히 쫀 상태였다. 혹시 바지에 오줌을 살짝 지렸는지도 모르겠다. 
   「피츠제랄드.」
   「」
   「대답 안 해?」
   「네 형님.」
   「너 여기 모스맨 대학교 학장 누군지 알지?」
   「네. 형님. 낙향해서 좋은 일 많이 하시는 분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알기만 하면 뭘 해 임마. 안 그래? 너 앞으로 그분 많이 도와. 걔 형이랑 많이 친하니까. 뭐 부족한 거 있으면 말하고. 어려운 일도 있으면 있는 족족 말해. 형이 다 꼬셔줄께. 아니. 아니 아니. 형이 다 처리해줄께. 일단 오늘은 형이 말을 좀 많이 해서 피곤하니까, 회포푸는 건 나중으로 미루자. 뭐 이렇게 된 거도 인연이자 행운이데, 축배는 미루어 기쁨이 커질 테니 말이야. 알겠어? 넌 임마 왜 대답이 반 박자도 아니고 1.5박자가 느려? 어?」
   「네, 알겠습니다. 가보겠습니다. 그럼 나중에 인사드리겠습니다.」
   「그래, 가 봐.」
   「」
   「야. 형 말 안 끝났어.」
   「네, 형님.」
   「너가 아까 오해한 거, 형이 오해를 사게 만든 뭔가 그 의뭉스러운 지점이 있을 테니까. 따라서 형은 그 의심의 실마리를 말끔히 해소했으면 해. 왜냐면 피차 깔끔한 게 좋잖아. 너도 보니까 사람 좋고 의리 어디서 안 빠지고, 옷도 촌놈치고는 고상허니 세련됐고. 어? 너 평판 괜찮은 거 형이 다 알아. 형 레이더 가동시켜서 이미 너네들 족보 싹 꿰찼어 임마. 형이 아까 뭐랬지? 그래. 혹시라도 모를 어설픈 오해, 그러니까 그게 어떻게 발생했느냐. 하면~ 뭔가 숙녀들이 있겠지. 여기도 다 시내가 있고 너네들 자주 다니는 동선이 있을 거 아니야. 안 그래? 다 알고 있어. 아니 뭘? 뭐긴 뭐겠어 임마. 그 처자들 형이랑 만나서 오빠 동생 하고 다 뭐 터놓고 농담도 하고 그러는 거지. 걱정마 임마 늬 짝은 형이 다 꼬셔줄께. 알았어? 넌 임마 형이 시키는 대로만 해. 그럼 넌 장차 버뮤다에서 기록적인 플레이보이로 거듭날 수 있을 테니까. 넌 형이 딱 몇 가지만 다듬어주면 대번에 장성감이야. 원래 너처럼 시원시원한 호상이 보면 나중 대성하더라니까. 뿐만 아니라 나 같은 스승만 딱 만나서 운 트이면 그때부터는 그냥 (몸짓)! 그 애들이 지금 오락산업 전영역을 주름잡고 있잖니. 그나저나 말 많이 해서 너무 피곤한데. 급체력저하 때문에 오늘은 형 일단 쉬는 게 좋겠다. 그러니까 너도 철수하고. 그렇다고 너무 멀리 가지는 말고. 너네들끼리 놀 땐 놀더라도 근처에다 몇 명 대기시켜놓고. 뭐 누구? 누구긴 누구야 덩치들 몇 명 포진시켜놔야지. 형 전화 때리면 즉각 달려올 애들이 몇 명인데, 당장 뭐 버뮤다 군민축제 열어줘? 어? 열어줘 말어? 너 여려운 거 도와주고, 너네 미심쩍은 난제 처리해주고. 물심양면으로 형이 골드바든 007 가방이든 무제한으로 제공해주고. 어? 미제사건 전부 가져와, 형이 싹 다 처리해줄께.
    그러면~, 어? 그러면~ 그럼 임마 너도 성의를 보여야 할 거 아냐. 안 그래? 어? 이 자식이 어디 형 재능을 날로먹을려고! 너 형한테 찍히면 어떻게 되는 줄 알아? 이 자식이... 너 때문에 형 자꾸 말 많아지잖아? 그게 다 너 때문이야 임마. 어? 야, 가. 당장 꺼져. 썩 꺼져버려 임마. 그렇다고 고깝게 듣지 말고, 형이 최근 보는 대하드라마가 있어서 명대사 몇 개 따라해본 거니까. 속에 담아두지 말고. 야 임마, 너도 빈말과 참말 구분 못하냐? 그러면 나중 피곤하다 너~! 일단 나중 한번 뭉치자. 그때까지 섭섭하고 서운하며 좀 그리워도 세계마초협회 지원을 듬뿍받는, 의리맨들 사이에서 덕망 두터운 우리가 참자. 알았어? 알았어 몰랐어? 넌 임마... 야 나갈 때 문 닫고 나가고. 형 먼저 쉰다. 돌아가서 기대나 잔뜩 할 준비나 하셔. 앞으로 네 청춘사업은 꿈에도 몰랐던 클라이막스를 누리게 될 테니까. 허허. 형이 좀 못 웃겼으면 아량 넓은 네가 이해하길 바란다. 형이 임마 다 웃길 수는 없잖아. 안 그래?」
    그러면서 녀석의 신비감이 김빠지기 전에 난 서둘러 음악을 틀었다. 물론 서두르지 않은 척 자연스럽게 말이다. 
    Handel / 메시아 HMV 56에서 아리아 "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하라"
    그렇게 버뮤다 시골청년 피츠제랄드와 나의 첫만남은 마무리됐다. 
    다음으로 피츠제랄드의 첫사랑을 만나서 내가 또 썰을 잔뜩 푼 다음 2 대 2로... 그런 공상 집어치우고. 





    7

    나는 평소처럼 비서실 안쪽 나만의 비밀공간에서 일하고 있었다. 
    Chopin / Andante Spianato e Grande Polonaise Op.22 (연주: Josef Hofmann)
    음악도 듣고 칼럼 자료도 찾고 문학 발상에 대해서도 끄적거리고. 일하다 쉬는 시간에 축구 웹사이트 잡담 게시판에서 야한 사진...이 아니라 건전한 세상사 이야기도 읽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비서 빽넘버 5번 크리스탈이 내게로 다가왔다. 
    뭐야 낮부터? 
    낮부터? 뭘 낮부터! 
   「오빠. 저랑 갈 데가 있어요.」
   「갈 데?」
   「따라와 보면 알아요.」
   「」
   「어서요. 오빠. 어서요.」
    그래서 나는 엉거주춤 일어섰고, 비서 등번호 5번 크리스탈은 내 손을 덥썩 잡더니 날 끌고서 빠른 걸음으로 어딘가로 향했다. 
    그녀가 날 데려간 곳은 버뮤다 대학교 미술품 보관소였다. 나름 모스맨 연구소와 뭉크 재단, 양대 경매장으로부터 후원도 받고 교류도 든든하다보니 시설은 생각보다 훌륭했다. 
    즉 보안 절차가 상당히 까다로웠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영화에서나 봤던 그 뭐야 선그라스를 쓰면 막 레이져가 이렇게, 저렇게, 막 이리저리 불규칙적인 모습을 볼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크리스탈은 내 예상을 여지없이 깨트려주었다. 
    그건 바로 A → B → C
                            ↓
                            D
    어느 정도 규모 이상의 미술관에 들려본 사람들은 아실 텐데 보통 보관소 A부터 이미 일반인 출입 금지구역이다. 
    나도 당연히 그런 데 들어가보지 않았으니 A에 들어가면 곧바로 명화들을 구경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렇지만 A는 보안과정을 꼼꼼히 거치는 통로였다. 그래서 그걸 거친 다음 문 B를 열고 또 C를 열면 그때 진짜 보관소가 나오는데. 
    저 B와 C 사이에 생각지도 못하게 D라는 비밀 통로가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들어갔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러더니 그녀가 무선 이어폰을 엘리베이터 조정부에 꼽더니 핸드폰으로 막 조작을 했다. 
    그 다음 핸드폰으로 뭐야, 마이너스 150층? 그때부터 엘리베이터는 쑥 내려갔다. 
    지하 150층 도착. 우리는 내렸다. 
   「오빠. 여긴 저만의 비밀 공간이에요. 어때요? 멋지죠?」
   「뭐야? 너 저... 저...」
    여기 있는 자료들은 바닷물이 사라지는 드라마에 관한 초정밀 자료들이었다. 
   「너 그 드라마 매니아야?」
   「그럼요. 이거 전부 구경하려면 얼마나 걸리는 줄 알아요?」
   「몰라. 모르지. 내가 어떻게 알겠니. 한번도 구경해보지 않았는데. 그렇다고 과일을 꼭 먹어봐야 그 달콤한 맛을 알 수 있나?」
   「우리, 다 구경하기 전까지 여길 떠나지 말까요?」
   「단지 구경만 해야 하는 거니?」
   「오빤 즉흥적인 상상력이 너무 재밌어요.」
   「자, 그럼 한번 시작해볼까?」
    바로 그 절대절명의 순간 크리스탈은 날 깨웠다. 
    비서 빽넘버 5번 크리스탈은 비서실 구석 소파에서 침흘리며 낮잠자고 있는 날 깨웠던 것이다. 
    뭐야 개꿈이었잖아? 이런~ 젠장!





    8

    오늘도 나는 비서실 구석지에 쭈그러져 일하고 있었다. 
    Donizetti / 오페라 <사랑의 묘약>- “산들바람에게 물어보세요“
    조용한 분위기 가운데 비서 등번호 6번 캐서린이 다가와서 말했다. 
   「오빠. 크리스탈이 오늘 출근하지 않았어요.」
   「어제 난 크리스탈과 밤늦도록 함께 놀지 않았어.」
   「왜 도둑이 제 발 저리는 거죠?」
   「나 도둑 아니야. 누가 도둑이래? 뭐 내가 크리스탈의 마음을 들었다 놓기라도 했다는 거니?」
   「긴말 필요없이. 오빠가 가 봐요. 걔 기분 제가 느낄 수 있거든요.」
   「내가? 왜 나야!」
   「싫어요?」
   「아니~ 그게 아니라~ 누가 싫다는 게 아니라~」
   「잔말 말고, 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나는 크리스탈의 집에 도착했다. 초인종을 눌렀지만 대답이 없었다. 크리스탈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비서실로 전화해서 캐서린한테 물어봐도 딱히 별다른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 그러니 나는 버뮤다 섬의 마당발 피츠제랄드에게 물어보는 방법밖엔 없었다. 웬만하면 바로 감 잡았을 텐데. 내 촉이 많이 둔해졌나? 버뮤다 원뻔치 버뮤다 투터치 버뮤다 몽키스패너 버뮤다 가위손 너 혼자 다 해 먹어라, 라는 값싼 농담을 남발하던 호시절이 지나가버렸기 때문일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가능성도 없지 않고. 그러든 어쩌든 그러든가 말든가. 그래서 나는 동생 피츠제랄드한테 전화해서 알게 됐다. 그러니까 나는 무엇을 알게 됐을까? 
    바로 비서 빽넘버 5번 크리스탈이 인터넷 이력서에서 뭔가를 바꿨다는 것을 말이다. 
    직장란에 버뮤다 대학교 비서실 → 버나드 대학교 비서실.
    뭐? 이년 봐라...! 아니 그게 아니라.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우여곡절 끝에 나는 크리스탈을 잘 설득해서 버뮤다 대학교 비서실로 데려오는 데 성공했다. 버나드 대학교로 딱 첫 출근인지 제3차 최종면접인지 뭔지 몰라도 아무튼 난 그녀의 마음을 돌렸다. 그녀를 달래주느라 난 정말 혼신의 힘을 다했다. 난 진짜 뼛속까지 범죄심리학자이자 전문협상가요 유도심문의 대가였던 것이다. 그래서 결국 정력이 바닥날 지경이었다.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는 줄 알았다. 아니 진짜 크리스탈의 여심을 쥐락펴락하는 게 내겐 원래 일도 아닌데, 왜 이렇게 힘들어진 거지? 아마도 현역에서 은퇴했기 때문으로 추측할 수밖에. 
    결국 그건 그렇게 일단락된 걸로.





    9

    문단 줄거리를 먼저 요약함. 
    피츠제랄드 상담. 자기가 좋아하는 숙녀가 있다고함. 난 이미 크리스탈과 친해졌는데 하필 걔가 걔.
    뭐야? 심상치 않은 전개인데.... 이걸 어쩌나! 
    뭐 그건 그렇다 치고. 중간 과정 생략하고 퇴근 후 나는 시내에서 피츠제랄드를 만났다. 물론 크리스탈과 함께 삼자대면으로 말이다. 
    피츠제랄드, 크리스탈, 그리고 나. 뭔가 부자연스럽긴 하지만 곧 자연스럽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실제 보통 여자들은 우릴 보면 보자마자 웃는다. 문제는 남자.
   「형. 무식하다고 동네방네 다 소문내고 다녀?」
    뭐 이 자식이...! 물론 피츠제랄드는 내게 즉시 윙크했다. 숙녀 앞에서 자기 면 좀 세워주라 그거구만 그래. 
   「넌 임마 형의 큰 그림을 아직도 모르겠어? 내가 과녁이 되면 그만큼 스포트라이트는 네게 집중될 수밖에 없어. 알아? 그러니까... 크리스탈. 너 잠시 밖에 나가있어. 아니다. 그냥 있어.」
   「형. 사랑이 애들 장난이야? 형 크리스탈 좋아해?」
   「너 임마 부끄럽게 왜 그래? 우리 시트콤 찍는 거 아니었어? 왜 갑자기 멜로?!」
   「멜로드라마가 뭐 어때서. 원래 인생은 멜로야.」
   「너... 얘가 멋진 말은 다 먼저 해버리네. 얘 원래 안 이랬는데.」
   「왜, 크리스탈 있으니까 쫄려?」
   「쫄리긴 누가 쫄려?」
   「형. 화났어? 화났지? 꿍한 거 보니 화났네. 아니면 아직 예열 안 끝난 건가? 예열? 형이 무슨 뚝배기야 냄비야? 어? 형 원래 그렇게 쪼잔한 남자였어? 특히, 여자 앞에서? 어? 그래?」
   「너...」
   「형. 화났지? 그치? 아니야? 아닌 게 아닐 텐데. 화났으면 화내. 오늘 형 화내라고 마련한 자리야.」
   「너...」
   「어서. 어? 들어와. 컴옹 베이비.」
   「아 나 이거 증말, 아니 그게 그러니까 말이지. 형이, 헛! 화를 어떻게 내는지 알아야 화를 내든 말든 할 거 아니니. 어? 아니, 어? 아니~」
   「그게 화내는 거야. 잘 하시네. 너무 잘하시는데? 지금 짜증지수 푸쉭푸쉭 올라가는 거 보여. 형 이마에 쓰여있어. 나 화났어 라고. 그래서 지금 계속 우리가 뽐뿌질 하는 거고.」
    우리가? 우리가는 뭐가 우리가야!
   「뭔 소리야? 형은 태어나서 화내본 적인 단 한 번도 없어. 이거 왜 이래? 뭣이 어째?」
    바로 크리스탈이 중재하기 시작했다.
   「오빠들. 애들처럼 왜 그래?」
   「크리스탈. 넌 좀 빠져. 아무것도 모르면서 뭘 안다고 설치긴 설쳐. 넌 모르면 가만히 듣고만 있어.」  드디어, 캬! 마침내 피츠제랄드는 상남자 마성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형. 크리스탈은 원래 날 좋아했어. 알아? 그런데 언젠가 들리는 소식에 의하면 버뮤다 대학교에 웬 난봉꾼이 출연했다더니 그게 알고 봤더니 형이네? 추문이 심심치, 아니 심상치 않더라고. 내가 저번에 괜히 형 찾아갔게? 크리스탈도 원래 날 좋아했다니까 글쎄. 그런데 갑자기 뭔 밑도 끝도 없이 웬 꺼벙한 허당이 나타나더니 지가 무슨 허접한 행운아도 뭣도 아니면서 말이야, 어? 지가 뭔 해결사야 헤라클라스야? 어? 걔 그 인간이 알고 보면, 어? 걔가 이 바닥에 나타날 때부터 우리가 알아봤어. 걔가 누구라고 말은 안 하겠는데, 어? 걔가 버뮤다 숙녀들 다 따먹고 다닌다,」
    난 재발리 피츠제랄드의 입을 손가락을 막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좀 급했기 때문일까? 내 손가락이 피츠제랄드 입술 안쪽으로 말려들어가버린 것이다. 
    내 손가락이 무슨 공갈 젖꼬지도 아니고. 이거 이거 크리스탈 앞에서 모양 이상해져버린 거지. 
    그런데 카페 주인이 우리 분위기를 공감해서였을까 낌새가 꽤나 우려스러웠다고 판단해서였을까? 음악은 이렇게 바꼈다.
    Handel / 오페라 <알레산드로> - “부질없는 사랑이여, 유혹, 기쁨이여”
   「뭐야? 음악이 왜 이래?」
    그러자 피츠제랄드까 (딱)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또 이렇게 곧장 바꼈다.
    Bach / 모테트 BWV225
   「형 이런 노래 좋아하잖아.」
   「형은 쿵쿵쿵쿵 클럽 음악 들을 줄 알았는데. 바깥에 나왔으니 새콤달콤 유행가 듣을 걸로 예상했는데. 아니네?」
   「기대대로 가면 재미없어. 왜 그래 아마추어같이? 형답지 않아.」
   「그런데 끼어들어서 미안한데 오빠들 이렇게 말 많은 남자였어?」
   「너 말 많은 남자 안 좋아하니?」   역시나 피츠제랄드는 여자를 몰랐다. 그럼 그렇지. 곧바로 녀석은 우리에게 말할 기회를 주지 않고서 잡은 마이크를 놓지 않았다. 
   「크리스탈. 내 하나 물어보자. 어차피 이렇게 삼자대면 한 거. 속시원하게 한번 물어나 보자꾸나. 응? 괜찮지? 그래. 말할께. 너. 너 말이야 너. 그래 너. 여기 여자가 너 말고 누가 있는데?」
   「야 피츠제랄드. 너 커피에 취했니 아니면 봄바람에 싱숭생숭한 거니. 너 설마 상사병 걸리진 않았지? 그치? 혹시...」
   「혹시 뭐? 형 듣고만 있어. 내 말 끊지마. 야 크리스탈. 너. 너. 너 말이야 너. 너 왜 나한테는 말 올리고, 형한테는 말 놓는데. 알아도 내가 널 훨씬 먼저 알았어. 어? 그런데 왜 저 형한테는 보자마자 오빠야. 어? 너 저 형한테 꼬리치니? 왜 나한테만 내숭인데? 너 혹시 저 형 좋아하니? 그러니?」
   「왜, 난 (고갯짓) 좋아하면 안돼?」
   「」
   「」
   「나 하나 고백할께. 난 버뮤다 대학교 비서실 싫지 않아. 오히려 좋아. 지금이 괜찮다고. 그런데 피츠제랄드가 하도 꼬시고 꼬시고 부추기고 부추기고. 정말 더럽게 귀찮게 하길래 에라 모르겠다 라는 심정으로 그냥 버나드 대학교에 딱 1번 구경만 갔다 오려고 했어. 그래. 할리웃 액션 나도 할 줄 안다 그거지. 그거 다 피츠 얘가 시킨 거야.」
   「너.. 넌 그 말을 형 앞에서 하면 내가 뭐가 되니? 너도 너지, 넌 그걸 정말로 말하니? 너 진짜 이러기야? 어?」
   「이래서 내가 오빠한텐 극존칭하는 거야. 쳇!」
   「그러니까 뭐 내가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고? 그거 순수해서 그래. 저 형 봐 봐. 불순의 상징. 나 봐 봐. 초딩. 어? 아직도 모르겠니? 왜 이 마초의 순진한 애정, 고결한 순애보를 너만 몰라보니 정말 애석하다 애석해.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나 같은 순정파 만나는 게 어디 쉬운 일인 줄 아니? 천말의 말씀. 그런 행운 아무한테나 찾아오는 것도 아님. 흥! 그런데 내가 대체 뭔 말을 한 거지? 생색? 거 어째 너무 빠른데. 여자들 생색내는 거 싫어하는데. 많이 안 좋아하는데. 생색내는 데도, 허세대회 역대급에다, 허풍 대장감인데도 불구하고. 그래도 생색 생색 또 생색내는 남자가 만약 인기 만점 남자였을 때. 그건 그야말로 생색에도 불구하고 나머지 오디오 이퀄라이저로 다 커버한다는 건데. 그게 어디 쉽나? 하늘의 별 따기지. 그 별 내가 따 줄께. 어? 난 누구처럼 별 땄는데 뭐하러 또 따, 그런 말 안해. 날마다 따 드린다고. 어? 그럼 될 거 아니야. 하늘을 봐야 별을 따지, 그런 말 일체 입에 담을 기회 자체를 주지 않는다니까 글쎄. 근데 생색이 여성 명사니 중성 품사니? 그걸 지금 말할 때냐고? 왠지 모르게 느낌 세한데. 어딘가 모르게 오늘 분위기 많이 이상하단 말이야.」
   「오빠가 더 이상해요. 듣기 힘드네. 오빠 말 참 거슬린다. 아무튼 내가 피츠제랄드 마누라도 아니고. 누구 여편네 될 생각 아직 없고. 그러니 난 이만 먼저 갈께. 불만 없지? 나 간다.」
    그렇게 결말 짓는 거 보기 힘들어서 크리스탈은 먼저 떠났다. 
    그렇다고 나랑 피츠제랄드랑 뻣벗한 남자들끼리 말 길어져봐야 귀만 아플 뿐. 할 수는 있는데 하기 싫음. 딴 남자들도 거의 다 그래, 우리만 그런 거 아님. 





    10

    피츠제랄드가 똘만이 몇을 거느린 채 찾아옴. 물론 약 3주 정도 우리들 친분은 쌓일 대로 쌓인 상태. 
    용건은 2가지. 
    첫째, 예전 두목 즉 버뮤다 청년회 1인자가 돌아왔다는 것
    둘째, 그가 나를 만나고 싶다는 것.
    따라감. 모스맨 대학교 교정에서 보이는 앞 바다 도착. 
    모스맨 대학교 학장 사무엘, 놀러온 제라드, 페츠제랄드 똘만이들은 바닷가에서 대기. 
    피츠제랄드가 운전하는 요트에는 나랑 녀석 단둘. 그렇게 해변에서 약 50미터 떨어진 지점에서 우린 멈춤. 
    잠수함 나타남. 거기서 예전 1인자 미셸이 나타난다는 것임. 
    잠수함은 진짜, 심지어 초대형급. 
    그런데 알고 봤더니 
    도표 ⅰ)
    ────────────────────────────────────────────────────────────────────
           방수 골판지
           싸구려 플라스틱
           물 표면은 초대형 서핑 보드
           물 위로 뜨는 부분만 잠수함 모양
    +     물 위로 뜨는 부분만 잠수함 모양은 수면 밑으로 약간만 잠수 가능 (즉 대충 흉내는 냄)
    ────────────────────────────────────────────────────────────────────
    =     초대형 모형 잠수함
────────────────────────────────────────────────────────────────────

    나는 깜빡 속아넘어감.
    잠수함 뾰족 튀어나온 부분에서 버뮤다 청년회 예전 1인자랑 접선한다는 건 맞음. 거기서 스킨 스쿠버 복장으로 미셸이 나타남. 
    그 날은 그랬고. 또 다른 날들도 우리는 내내 즐겁게 지냈다. 모처럼 내가 시내에서 놀고 싶다고 하니까, 피츠제랄드는 또 어디서 구형이긴 하지만 고급 리무진을 빌려왔다. 그걸 타고 우리는 시내로 갔다.
   「형님 형님. 여기가 버뮤다 시내에요. 멋지죠?」
   「어디? 어디? 아 대체 어딘데 그래? 어디야?」
   「지나갔어요. 그러니까 빨리 보셔야죠.」
   「뭐 임마? 그럼 늬가 좀 천천히 가든가 해야지.」





    11

    어느 날 나는 비서실 구석지에 찌그러져 공상이나 하다 낮잠자다 갑자기 심심해졌다. 
    그래서 며칠 전 꿈에 봤던 비밀통로에 가보기로 했다. 비서 빽넘버 5번 크리스탈이 아마도 나와 새콤달콤 진한 사랑을 나눌 의도로 데려간 곳. 
    어쩌면 그 신비로운 밀애는 단타가 아니라 꽤나 기 빨릴 장기전을 넌지시 암시했을 수도 있는데. 따라서 내가 현실에서 크리스탈한테 막 들이댔냐? 
    그럴 수야 있나. 뿐만 아니라 최근 크리스탈은 출장 다니고 왔다 갔다 이리 갔다 저리 갔다 바빴기 때문에 자주 볼 수 없었다. 
    그렇지만 뭐 비서실에 비서가 어디 크리스탈 달랑 1명 뿐인가? 뭐 말이 그렇단 거고. 그렇게 나는 꿈에 봤던 그 비밀 공간으로 찾아갔다. 
    A → B → C
             ↓
             D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장면 전환.
    혹시나 해서 가봤는데 아니 이럴 수가...! 정말 있었다. 문도 잠겨있지 않았다. 그렇게 딱 비밀문을 열고 드러갈려던 순간. 
   「뭡니까? 체포해!」
   「네?」
   「뭣들해 당장 체포하지 않고.」
   「왜 그래요? 전 아무짓도 하지 않았어요. 난 그냥 벽이 가려워하는 것 같아 단지 살며시 긁어주려했던 게 전부라구요. 제 공상에 따르자면 그건 아마 상상력이 시킨 환희의 애무라고나 할까요?」
   「애, 뭐? 공상 좋아하시네. 말 같은 소리를 해도 모자를 판에, 뭐? 뭣이 어째? 다시 한번 말해 보시오. 뭐가 어쩌고 어째? 개 풀뜯어먹는 변명 그쯤하면 됐고. 밑도 끝도 없이 애무는 무슨. 어디서 발뺌이야 발뺌은! 아 뭐해? 썩 끌고가.」
    그렇게 나는 버뮤다 섬을 통합 관리하는 군&경 특수 수사대 철창에 갇히게 되었다. 
    1시간 경과 후.
    장면 전환.
    피츠제랄드가 찾아왔다. 물론 똘만이들을 몽땅 끌고서 말이다.
   「형님. 왜 그러셨어요?」
   「내가 뭘?」
   「맙소사. 아직 눈치채지 못하셨어요? 버뮤다대 총장 사무엘한테 형 은근 찍혔다는 거 몰라요?」
   「내가? 내가 왜? 아니 내가 뭘 잘못했다고. 그 녀석 옛날에 내 똘만이에 불과했는데. 지가 아무리 커도 그렇지, 날 비호하지 않겠다고?」
   「맙소사. 형 잊었어요?」
   「잊긴 뭘? 내가 다 기억해.」
   「보나마나 공상이나 좋아하시겠지. 있잖아요, 저번에 비서실 창고를 털다가 걸려서 혼쭐난 거 기억 안 나요? 형님 친구들 추방당하고 그때부터 형만 비서실장으로 눌러앉은 거 아녜요. 그렇죠? 사실은 사실이니까요.」
   「아......!」
    기억났다.
    Ⅰ) 해커: 켄트 
    Ⅱ) 건물비밀통로&기술 담당: 로버트
    Ⅲ) 친화력 담당: 로즈마리 
    Ⅳ) 어중이떠중인: 나
    녀석들은 지금 어떻게 됐을까? 하여 급히 피츠제랄드한테 핸드폰을 빌려 전화해보려고 했는데, 녀석들의 전화번호는 내가 아니라 핸드폰만 알고 있었다. 
    또렷이 기억하는 전화번호가 많을 수 없다는 거 누구나 그렇듯이 나도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형님. 어떻게 할까요? 제가 한가지 힌트를 드리자면 이렇답니다. 알고 보면 비서실 빽넘버 5번 크리스탈, 바로 그 크리스탈 아빠가 이 버뮤다를 쥐락펴락하는 실세거든요. 나머지는 다 서로 지네들이 2인자라는 식인 거죠. 인물관계도랄지 세력 구조가 그래요. 그래서 말인데, 형님께서 저와 크리스탈의 연애사업을 밀어주시면 좋겠어요. 저 정말 그녀에게 순정 바치고 싶거든요. 허지만~ 크리스탈 마음을 통 모르겠다니까요.」
   「넌 형의 큰 그림을 아직도 모르겠냐?」
   「」
   「형이 다 2주 속성 코스로 크리스탈 최면 작전에 들어간 거. 그 지령 주입 좌우명은 뭐다? 뭐긴 뭐겠냐 너와의 사랑이지.」
   「형. 역시 난 형 밖에 없어.」
   「그걸 말이라고 하냐. 어서 여기서 날 빼주기나 해. 당장!」





    12

    소풍가자고 제의했는데 녀석이 싫다고 했다. 아니 왜? 왜냐! 왜냐하면 아마 이렇게 추정해도 퍽 빗나간 관측은 아닐 테니까. 
    새로 들어온 비서 빽넘버 8번 9번이 내 편이 된 것이다. 그렇다고 빽넘버 5번 크리스탈이 아예 피츠제랄드와 사랑의 맹세를 한 것도 아니고. 
    곧 구도를 보아하니 이랬다. 
    등번호: 
    5번 크리스탈 
    8번 까리타스
    9번 스테파노
    도표 ⅱ)
    ────────────────────────────────────────────────────────────────────
    여자             남자               여자
    ────────────────────────────────────────────────────────────────────
                      피츠제랄드        크리스탈 
    까리타스      나나나나나        스테파노
    ────────────────────────────────────────────────────────────────────

    물론 시트콤 세력 관계도가 단지 그렇다는 거 뿐. 
    그런데 시트콤이 재미없기 때문이었을까? 빽넘버니 뭐니 비서들도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날 슬슬 피하기 시작했다. 은근히~! 은밀한 눈빛들. 피츠제랄드도 내동 바쁘다는 핑계로 일관. 버뮤대 대학교 총장을 웬 새파란 후배한테 물려주더니 이젠 사무엘은 사회지도층들을 만나느라 바뻤다. 이젠 놀아주지도 않고 얼굴 보기조차 힘들고. 그래도 아직 떠날 수는 없다. 딱히 슬럼프라 부르기도 뭣허고. 그래서 나는 오랫만에 환상문학잡지에 보낼 문학론은 제쳐두고, 월간지 여성환상 1.5에 보낼 칼럼 초고를 작성했다. 내용은 다음 문단과 같다. 물론 아찔한 발상 기발한 착상 놀라운 영감이 쉽게 떠오를 리는 없다. 따라서 다음 문단과 같은 밑그림이 등장하도록 난 먼저 일단 열심히 낙서를 해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난 연습장이 이런 허접한 그림들을 끄적거리기 시작했다. 
    ●▅▇█▇ค็็็็็็็็็็็็็็็็็็็็็็็็็็็็็็็็็็็็็็็▆▅▄▇ 텐트침!
    ●▅▇█▇▇▇▇▇
    ●▅▇█▇▆▅▄▇
    ●▅▇█▇▆▅▄▇
    ●▅▇█▇ค็็็็็็็็็็็็็็็็็็็็็็็็็็็็็็็็็็็็็็็▆▅▄▇ 또 텐트침!
        ●▅▇█▇▆▅ค็็็็็็็็็็็็็็็็็็็็็็็็็็็็็็็็็็็็็็ 
    ●▅▇█▇▆▅▄▇ 난 지금 뭘 하는 거지?? ▇▄▅▇█▇▆▅●
    또?
    뭘 쳐? 또?
    아니 왜? 어?
    나를 따르라
    에라이 모르겠다
    일단 신나게 낙서나 하고 보자
    버뮤다 대학교 비서실? 여기 비서실장 누구야! 
    그러니까 인생이란 코끼리 팬티냐 피노키오 팬티냐인가...
    아니면 뭐 인생이란, 아빠 안잔다 VS 오빠 자?
    자냐고? 자긴 누가 자, 왜 자. 텐트쳤는데 뭐하러 자, 안자! 
    텐트쳐라 텐트쳐라. 하늘을 봐야 별을 따지? 그 말 취소해라 취소해라!
    별 땄는데 왜 또 따냐, 흑심은 각성해라 각성해라! 가족끼리 그러는 거 아니다, 각성하라 각성하라! 
    샤워소리만 들으면 식은땀난다 식은땀난다~! 일단 지르긴 질렀는데, 설레네? 나 지금 떨고 있니? 아깐 많았는데 왜 지금 아무도 없어?





    13

    * 자동차 구동 방식
                    조향    구동                    장단점     가격     주무대     주고객층
    전륜구동   전륜    전륜 
    후륜구동   전륜    후륜
    사륜구동   전륜    앞만/앞뒤 (선택)

    * 사랑 방식

  • 전륜구동: 여자가 앞장서며 뒤따라오는 남자한테, 잔말말고 따라와! 통상 결혼 00년차. 여자가 위일 때. 남자가 져줄 때
  • 후륜구동: 조향은 아부하며 비위맞추는 딸랑이&쌥쌥이&재롱꾼&애교쟁이 + 구동은 물주 = 으샤으샤! 연애 초반 평균. 또는 상향지원 여자. 결혼 후는 부부 금슬 좋은 경우
  • 운전자 시점 1: (운전자가 여자니까) 남자가 앞장서며 의전 및 보디가드, 여자는 수색대와 사냥견 먼저 보내는 식. 권력 리모콘도 여자가 쥠. (여자 입장에서) 만년 공주 대접받는... 개꿈?
  • 운전자 시점 2: (운전자가 남자니까) 남편 흉보기보다 이 세상에 더 재밌는 건 그리 많지 않음. 말을 안해서 그렇지 속에 쌓인 건 말도 못함. (여자 입장에서) 하녀 인생
  • 애마 시점      : (애마가 남자든 여자든) 안장 싫어하는 당나귀는 면박당함. 주인 천성에 따라 '당근과 채찍 작전' 가능성 상주. 경주마 운명이 그렇듯 스포트라이트는 좋은데, 난봉꾼이 부러운 유부남...은 아니겠으나. 당연히 야생마가 부러울 수밖에. 고로 그런 입장에 처한 애마는 자유 자유 하는 것임. (물론 어디까지나 농담임. 뭐, 농담이... 이 사람이!) 예를 들어 1번 2번 갔다 온 남자들이 전문가 중의 전문가. 게다가 수평 무게 중심이이 4:6에 전륜구동이면 끄는 사람 죽을 맛임. 또는 페라리 458 (앞:뒤=42:58) 미드쉽 후륜구동? 슈퍼카면 얼마든지 애마&주인 둘 다 윈윈. 그러나 슈퍼맨 아닌 이상 애마만 퍼지기 일쑤. 쌍코피 터짐. 맥을 못씀. 매가리 없음. 기 쫙 빨림. 쌍코피 또 터짐. 쉬지 않고 커피포트 부글부글 미쳐버림. 심지어 상하 무게 중심이 지면에서 높을 때 탑승자가 승차감 걸고 넘어지면 애마는 달리느라 힘든 걸로도 모자라 잔소리까지 얻어들어야함. 수시로 떽떽거리고 닭 잡듯이 닦달당하는 기분. (절레절레) 더더군다나 틈만 나면 지는 비교? 그래서 그 애마 심정은 뚜껑 열리다 못해 득도할 수밖에 없음. 남자도 전륜이든 후륜이든 성능 받춰주든 아니든 여자 잘 만나야 함. 여자도 마찬가지. 남자가 만나면 한마디로 피보는 여자? 쉿!
  • 굶주린 하이에나
  • 더 굶주린 늑대
  • 개침 질질 목양견
  • 벌... 발... 동네 똥개
  • 최고로 굶주린 촌닭? 역대급 응큼한 촌년?

    이렇듯 칼럼 초안을 작성하고 보니 별볼일 없었다. 무슨 칼럼이 이 모양이야? 어? 내가 일전에 완성한 칼럼들은 그래도 나름 자평하고 검토했을 때 음 괜찮네 나쁘지 않네 까지는 아니어도, 그나마 먹고는 살아야 했으니 마라랑 사라한테 보냈었다. 그런데 이건 뭐 자기 평가 기준선에 한참 모자르네? 정신 승리네 허세네 합리화네. 하트가 벌렁벌렁 하요 어쩌요? 네? 라는 턱걸이조차 힘겨운 수준이라니. 그게 그러니까 안 통하는 꾀병 안 먹히는 심술의 결과일까? 말도 안돼. 웃기지도 않으니까. 그래서 뭐? 어쩌자는 거야? 어쩌긴 뭘 어째. 차분히 마음을 진정시켜야지. 난 화나지 않았으니까. 난 화낼 줄 몰라. 평생 짜증이란 걸 내본 인생사가 없거든. 사랑의 묘약에 취해본 적이 없는데 우리가 만취한 기분을 어떻게 알아? 몰라. 난 몰라. 어? 딱 몰라. 우리는 짜증지수 그거 그 언제라도 미동조차 안거든. 거 뭣이냐 근데 내가 왜 갑자기 허세? 어울리지도 않게 웬 허풍? 그럼 그 다음은! 그래서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됐어? 보나마나 지지리 궁상맞을 중년운을 구해줄 최상의 첨병은 무엇인지 고심할 수밖에. 그건 곧 허영심 공백 상태? 쇠가 뜨거울 때 쳐라를 우리가 왜 모르겠나. 도대체 얼마나, 어? 배 들어올 때 노 저어라를 어길 정도로, 어? 하도 여복 어복 인기복 껀수복 만년 범타요 뻔트조차 이젠 리그 퇴출감이니, 어? 배 들어오든 말든 잔칫상 펴지든 말듯 숟가락부터 서로 올리기 바쁜 세상이지 않냔 말이다. 소 뒷걸음질치다가 쥐 잡는다고, 누구는 노력파 기분파 낭만파들 다 제끼고서 행운발로 재물복을 꿰차질 않나, 누구는 애마 자랑에 시간 가는 줄 모르지 않나.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되어버렸을까. 요컨대 정신산만! 혹시 정신병? 난 미치지 않았어. 내가 왜 미쳐야 하는데. 아님. 절대 아님. 난 사이코패스 아님. 소시오패스도 아님. 그러든가 말든가 에잇 재미없다. 거 참 더럽게 재미없네. 먹는 개 짓지 않는다고 맛난 거나 먹으러 가야겠다. 가자, 돼지고기 조지러! (점잖으신 분께서는 걸러들으시기 바람. 필자 원래 그렇게 센 표현 남발하지 않음. 다만 안 팔리는 얼굴 어쩌고저쩌고는 뻥 아닌데, 그와 달리 연재소설이나 명칼럼은 하도 안 팔려서 편집장한테 하도 구박받은 결과임. 진짜 진짜 극소수 오빠 열혈팬들과 엄청 사석에서 친하다는 가정하에 글을 쓰라면서 마라한테 얻어터지기 직전까지 간 게 벌써 몇 번인데. 일단 걔한테 다 뒤집어씌우기로 했음. 아니 사실은 걔가 다 시켰음. 지가 다 책임진다며 큰소리 떵떵쳤음)





    14

    내 사무실이라면 세헤라자드 같은 인공지능 지니와 놀 텐데. 그렇다고 아직 돌아가긴 좀 뭐 하고. 
    오디세우스 서사시를 읽기는 따분하고. 그렇다고 인터넷으로 다이아몬드를 구입하겠나 아니면 막 비서들 일 못하도록 찝쩍거리기를 하겠나. 
    그래서 나는 기회를 엿보았다. 1시간 2시간 3시간. 1일 2일 3일. 1주일 2주일 3주일. 1달 2달 3달. 
    OK~! 마침내 절호의 짬이 찾아왔다. 최고의 호기. 1년에 딱 1번 있을까 말까 한 그런 최적의 시간. 
    바로 버뮤다 축제의 날이었다. 해외토픽 뉴스에 보던 것처럼 토마토 축제, 황소축제... 막 그런 장면들 다 볼 수 있는 날.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냐구요? 당연히 저번에 실패한 일. 
    꿈에 비서 빽넘버 5번 크리스탈이 날 데려간 비밀공간 ──> 으슥한 미술품 보관실 근처로 갔는데 진짜 있었기 때문에 은근슬쩍 침입을 시도하다가 체포! 
    버뮤대 대학교든 어디든 모든 인원이 축제에 정신이 쏠려있을 때, 난 다시 그 비밀공간 침입에 재도전하기로 한 것이다. 
    해킹부터 잠긴 문 열기 등 잔기술을 숙달할 기간을 충분했으니, 따라서 나는 곧장 실행에 옮겼다. 
    그 간략한 설계도를, 상상만 수도 없이 하던 그 구조를 재차 반복하기로 하면 이렇다. 

    도표 ⅲ)
    A → B → C
             ↓
             D

    자, 다른 각도에서 보자면 또 이렇게 볼 수도 있다. 
    * 미술품 보관실 문은 스위스 비밀은행보다 더더욱 초정밀 막강.

    도표 ⅳ)
                                           뭐 5차 6차 7차 끝판왕까지?
                                           [어쩌면 4차      ]
                                           [아마도 3차      ] 
                                           [2차 보안단계 문]
                                                   ↑
                                                   ↑→ D (바로 여기) (이거 열면 계속 1,2,3,4,5,6,7...은 모르겠음)
                                                   ↑
                                           (따고 들어가면)
        ───────────────[미술품 보관실 문]───────────────

              복도                                                                             복도

        ──────────────────────────────────────





    15

    딱~ 그렇게 미술품 보관실 1차 문을 따서 들어간 다음, D를 열려던 순간 딱 열렸다. 
    캬~ 뭐야? 그런데 그건 가짜 문이었다. 아 가짜가 아니라 속임수! 즉 문을 열도록 모든 건 다 진짜인데, 열고 봤더니 콘크리트로 싹 다 발려짐.
    이야 이런 속임수를... 그럼 시간벌기 위해서인가? 머리 썼는데? 누구 작품이야? 
    그러다 갑자기 왠지 모르게 난 뒤통수가 세~했다. 이건 또 뭐야? 대체 뭣 때문에...!
    뭐지? 뭐지? 이건 대체 뭐지? 왜 갑자기 소름이 돋지...? 난 곧바로 뒤를 돌아봤다. 
    그랬더니 글쎄 내 뒤쪽에 벽면을 찢고서 녀석들이 나타났다. 빽허그! 
    거의 6개월 전에 나랑 함께 비서실 비밀창고를 열려다 체포되었던 친구들. 
    Ⅰ) 해커: 켄트 
    Ⅱ) 건물비밀통로&기술 담당: 로버트
    Ⅲ) 친화력 담당: 로즈마리 
    Ⅳ) 어중이떠중인: 나
    당시 체포되어서 나만 남고, 녀석들은 다 도시로 강제 이송되었는데. 
    뭐야? 그럼 지금까지 여기 갇혀있었던 거야? 
    눈치를 보아하니 저 벽 안쪽에 안에서만 열 수 있는 스위스 비밀은행 무시무시한 문짝이 있고. 
    그걸 열면 이처럼 쉽게 벽을 찢으면서 나올 수 있는 구도. 뭔지 알 만했다. 
    그런데 녀석들 면상을 보아하니... 정말로 갇혀있었단 말야? 
   「가자. 친구.」
   「그래. 당장 가자.」
   「나중에 다 설명해줄께. 시간이 없어.」
   「」
    난 녀석들의 카리스마가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내 짐이라고 해 봐야 특별히 챙겨야 할 만한...건 없었다. 
    그렇게 내 웨건에 녀석들을 태우고 난 도시로 당장 출발했다. 
    가면서 어떻게 된 영문이냐고 내가 먼저 물어볼 수는 없었다. 
    실어증은 아니겠으나 뭔가 사연이 호락호락하지 않을 테니 시간 여유를 충분히 줘야 하니까. 
    그렇다고 설마 피츠제랄드나 사무엘이 날 내칠려고, 얘네들을 007가방으로 포섭해서, 이런 가짜 작전을 꾸미진 않았겠지? 
    그야 차차 알아보기로 하고, 우리는 그렇게 버뮤다 섬을 떠나게 되었던 것이다. 





    16

    그렇게 난 녀석들을 데리고 무사히 버뮤다 섬을 빠져나가나 했다. 
    그런데 뭐야 이거! 섬과 육지간 다리 너머로 차량 비상등으로만 저녁인데도 대낮처럼 밝네? 
    막 사이렌 울리고 난리난 것이다. 도로 통제에 특수경비대 차량들 하며 막 별 희안한 특수차량들도 즐비했다. 
    그래서 난 일단 다리를 건너가지 않고서 일단 멈추었다.
   「쟤들 뭐야?」
   「것봐 내가 말했지?」
   「난 못 들었는데.」
   「넌 우리랑 같이 안 있었으니까 당연히 못 들었지.」
   「근데 너네 말 잘하네? 아니 진짜 내 하나 묻자. 너네 증말 피츠제랄드나 사무엘 세력한테 매수당한 거냐? 그래서 지금 연기하는 거냐고. 나 속아줄 용의 있어서 그래. 이제 그만 돌아가고 싶어졌거든.」
   「매수같은 소리나 하고 자빠졌다.」
   「뭐 임마? 그러면 진짜로 그때 이후로 지금까지 갇혀지낸 거야? 그 안에 없는 거 없이 다 있든?」
   「너무 많은 걸 알려고 하지 마.」
   「이 자식이 영화 찍고 있어! 내가 임마 너네들 생각해서 일부러 묻지도 않고 데려가는 중인데, 뭐가 어쩌고 어째? 어? 난 너네 실어증 걸렸을까 봐 일부러 조심하는데, 너넨 나한테 뭐 숨기는 거 있냐? 그래? 있으면 말해 봐. 못할 거 없잖아.」
   「못해. 하면 안되니까.」
   「그럼. 사연이 길다. 비밀도 많아.」
   「아니 그러니까, 아 맞다. 저기 다리 건너편에 쟤네들은 또 뭐니?」
    그때 천재 해커 켄트가 냅다 대화에 끼어들었다. 
   「야, 튀어.」
   「뭐?」
   「튀라고. 튀란 말 못 들었어?」
   「튀긴 뭘 튀어?」
   「수배령 떨어졌어.」
   「수배령? 무슨 수배령? 누구? 우리? 난 아니야. 난 빼줘. 우리가 뭘 잘못했는데.」
   「튀라면 좀 튀어. 긴급수배령 떨어졌으니까. 우리가 버뮤다 대학교에서 비밀 서류를 빼내온 게 있거든. 도난 미술품들 창고 내역과 조세회피 및 비자금 거래내역 등 웬만한 건 다 있어. 너 그 사이트 알지, 재벌닷컴! 거기 우리가 들었다 놀 수 있어.」
   「그래서 쟤네들이 우릴 잡기 위해 대기중이라고?」
   「응.」
   「쟤네들이 바보냐? 쟤네들이 우리한테 오면 되지 왜 보고만 있는데? 우리가 무슨 동네 똥개들이냐?」
   「왜냐면 주지사랑 특별시까지만 버뮤다 세력들이 힘이 닫거든. 그게 다 우리가 미리 다리 안쪽편 공권력은 접수했기 때문이야.」
   「정말이야?」
   「그럼 뻥인 줄 아냐? 우리 셋은 차 몰고 돌아갈 테니까 그럼 너 혼자 걸어서 다리 건너 가든가.」
   「야 임마 이거 내 차야.」
   「늬 거 내 거가 어딨어, 지금 이 상황에! 너 자꾸 그렇게 쪼잔하게 굴래? 어? 그럼 확 너만 보내버리는 수가 있어. 어?」
   「그럼 이제 어떡할 건데?」
   「어떡하긴 뭘 어떡해! 버뮤다 호텔로 가야지. 거기서 잠잠해질 때까지 관망할 수밖에. 제라드가 비둘기 띄울 때 되면 띄울 테고.」
   「버뮤다 호텔?」
   「응.」
   「내가 너네들보다 훨씬 오래 있었는데 난 왜 몰랐지?」
   「허당이니까.」
   「」
   「출입금지구역 최정상에 비밀 리에 짓고 있었어. 그래서 너가 몰랐던 거야.」
   「거기 별 몇 갠데?」
   「특급호텔이니까 최소 5개? 7개? 그냥 70개 할까?」
   「진짜 특급이야?」
   「넌 내 말이 뻥인 줄 아니?」
   「뻥 아니지?」
   「얘들아, 얘 빼고 우리들끼리만 가자.」
   「알았어. 대충 뭔 얘긴지 알겠다.」
   「안다고? 늬가 뭘 아는데? 우리가 그동안 거기서 얼마나... 됐다. 늬가 뭘 알겠니?」
   「왜 속 시원히 말 못해? 정말... 설마... 혹시...」
   「아직은 아니란 것만 알아둬.」
   「그래~ 특수든 특급이든 너네 다 해먹어라.」
   「진짜야 특급호텔. 우리 사전에 일반은 없다. 우리는 특수라는 둥 한정판이라는 둥 아니면 상대 안해.」
   「그래. 그런다 그래. 일단 거기 가서 뭐 좀 먹자. 배고프다.」
    그렇게 우리는 버뮤다 호텔로 발길을 돌렸고, 난 당시 그 피신 생활이 퍽 길어질지는 꿈에도 몰랐다. 





    17

    그때 버뮤다 호텔로 들어선 다음 3개월 후, 나는 지금 사무실에서 글을 쓰고 있다. 
    내 사무실에서도 일했다가, 심심해지면 환상문학잡지사 구석지에서 또 여성환상 1.5에도 다 내 책상은 있고. 
    어쨌든지 버뮤다 대학교 비서실에서 그녀들과 함께 하던 시간들이 너무 즐거워서 그랬을까 아니면 내가 원래 허당이니까? 난 버뮤다 호텔에서 숨어지내면서 상태가 많이 안 좋아졌으므로, 따라서 난 지금도 당시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서 백방으로 노력중인 것이다. 
    이 세상의 수많은 즐거움 가운데 돈 쓰는 재미만한 덕목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일까? OB는 아지트에서 시트콤 친구들과 통속적으로 농담 따먹기 대화하는 놀이마저 싫증나버렸다. 몸으로 때운다는 둥 맥주나 조진다는 둥. 그렇다고 이미 영화를 너무 많이 봐버렸으므로 소파에 자빠져 리모콘 쥐고서 TV 채널돌리기에 불만족스럽기 일쑤. 어제는 내게 무슨 짓을 한 거야, 오늘은 이런 느낌 처음이야, 쾌활한 기분 유쾌한 분위기의 연속. NB는 그런 행복감이 뭔지 다 까먹었다. 그렇다면 말이다 올드보이라며 놀림받건 어쩌건 '막살자' 웨이터처럼 YB라는 명찰을 아예 파서 가슴에 떡하니 붙이고 다닐까? 라는 멍청한 공상, 품위 유지비 벌기와 직결되지 않았다. 따라서 이제 정말 무한한 정력 끝없는 쾌락을 선물해주는 새로운 인생을 고민해보지 않으면 안될 시점이란 말인데. 정말 그래야만 하는데. 이건 뭐 에스프레소를 마셔도 시큰둥하고. 변신기계라는 환상의 요술상자를 팔아버린 허탈감뿐. 그럼 결국 놀기 아니면 일하기라는 히든카드 달랑 2개뿐이란 말이잖아? 누가 아니래. 고로 마침내 배부르든 굶었든, 개는 개뼈다귀를 절대 마다하지 않는다고 그는 오늘도 일이 더더욱 재미있어졌다. 진짜로? 뻥이다. 그러나 어쩔 수 있나. 하는 수 없지. 고양이가 생선을 마다하겠나 아이가 사탕을 싫어하겠나. 개가 땅파기를 어찌 끊나. 그래서 환상문학잡지와 여성환상에 전화해서 새 책 몇 권 보내주라는 소식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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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소설 2020. 4. 15.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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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B는 여성환상 편집장 사라를 피해다니는 중이다. 왜냐하면 보나마나 '벌렁벌렁 대 발딱발딱'같은 제목의 삼류 칼럼 왜 안 쓰냐 라며 잔소리할 게 뻔하기 때문. 왜 아니겠나. 싸구려 스타킹 구멍난 거나 버리던가. 툭하면, 어? 걸핏하면 그저 어떻게 한번 남자 꼬실까 그 궁리. 어? 아무튼~ OB는 동생들한테 커피 잘 사주는 오빠라는 칭찬 더는 듣기 싫었던 것이다. 걔가 걔네들을 모르나? 모를 리가. 너무 잘 알아서 탈이지. 그럼. 당연하지. 어? 고상한 척 도도하게 화장 한 듯 안 한 듯. 근사한 거 좋아하고 나서기는 더 좋아하고. 시간만 나면 남 얘기하기가 취미인데 겉으로는 남 얘기하는 거 싫어한다 그러고. 어? 학교 다닐 때 위선 떨며 착한 척하며 험담 겁나 많이 하고 다녔을 게 뻔해. 응큼한 년. 촌년. 능글맞게 말이야. 유들유들 능글능글. 남자 더럽게 밝히는 년. 지가 무슨 OB 여편네라도 돼? 남자라면 사족을 못 쓰는 년. 껄떡이 껄떡이... 쉿! NB가 쓰는 소설 속에서 애첩 단역이라도 어떻게, 좀 한번, 어떻게... 막 그런 쓸데없는 공상이나 하는 년. 미련곰탱이. 남자에 환장한 년. 물론 YB와 그녀 단둘만의 농익은 친분이 더없이 끈끈하다는 가정 하에 말이다. 
    다음으로. 뭐 환상문학잡지 미스테리아 마라 편집장? 흑심은 늑대에게만 있는 게 아니라 코끼리에게도 있다. 사심. 군침. 눈독. 개침. 질질. 탐욕. 본능. 시간만 나면 연재소설 마감일 독촉하고. 아직 한참 남았는데도 불구하고 그냥 인사말이야 인사말. 너무 타성에 젖어 권태에 빠진 슬럼프 먼저 알아봐주면 안되나? 지 아쉬울 때만 립서비스에 앙탈에 교태. 여자랑 얘기할 땐 목소리 걸걸. <숙녀를 좋아하거든 여심을 설레게 만들라>라는 명언을 우리가 모르는 거도 아닌데. 남아도는 게 숙녀들의 러브콜이었으니 질릴 때도 됐지. 우리는 여자 보기를 돌맹이 보듯 하거든. 그렇다고 연애라면 아주 신물이 난다는 OB의 간곡한 허풍을 믿어, 말어? 믿거나 말거나! 못 이긴 척 하기 싫은 일하기, 그에 미친듯이 열중하는 인생. 신나게 놀기 좋은 젊음의 호시절을 모른 체 낭비인지 몰입인지 아니면 중독인지 하나도 구분 못하는 삶. 한마디로 그는 더럽게 재미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변화는 절실했고 새로움은 필연이었으니. 달콤한 쾌락을 질릴 때까지 누릴 수 있을 안정기는 대체 언제쯤에나. 새콤하든 행복하든 인생의 모든 존망이 달린 궁핍한 슬럼프를 과연 어떻게 탈출할 것인가. 더럽게 따분한 일상을 탈출할 방안이라고는 떠올려봐야 뭐, 케케묵은 주전 구식 탱탱 묵은 대타 같은 묘수뿐. 허나 알고 보면 죄다 시시할뿐. 인터넷 놀이터에서 솔깃한 제목에 낚이면 한방 된통 먹기 일쑤. 고로 방법은 하나다. 딱 1개. 바로, 떠나는 것. 곧 박혀있는 돌에는 이끼가 돋는다. 청소. 일기. 교육. 독서. 취미. 개편. 이직. 다 그래서 하는 것. 물론 다정한 호시절이라면야 굳이 마케팅 정책진을 개각하지 않아도 됨. 그런데 어디로 떠나지? 오라는 데가 없는데! 누가 아니래. 참 내 뭘 해도 이런 식이지. 
    그래서 OB는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집을 나섰다. 
    그렇게 집을 나서자마자 전화가 걸려왔다. 신호음이 울리는 동안 핸드폰에 이름이 뜰 텐데 번호만 떴다. 모르는 사람이란 말인데. 누구지? 그는 전화를 받았다. 
   「친구. 잘 살았니?」
   「누구...?」
   「나야. 나라고.」
    그러면서 전화가 끊긴 다음 그의 앞으로 고급 자동차가 한대 오더니 멈췄다. 그건 바로 리무진. 
    조수석 창문이 열리더니 어느 웃는 남자의 얼굴. 낯이 익었다. 옛날 한 반년 함께 일했던 친구. 
    걔가 스타니슬라프로 불러주라 그래서 그렇게 했다. 곧바로 자연스럽게 비서가 내려서 리무진 한쪽 문을 열어주었다. 
    스타니슬라프이 잠깐 얘기 좀 하자 그래서 그는 차에 탔고 그들은 가까운 카페로 갔다. 





    2

    그곳은 가까운 찻집이 아니라 근처 대학교였다. 지방대. 저속한 표현이라 하기 애매하긴 하나 굳이 말하자면 인근 지방 전체에서 넘버 2. 
    그곳에 도착했고 그들은 사무실로 들어갔다. 대학교 본관 끝부분 1층 한동을 통채로 사용하는 것 같았다. 들리는 음악은 잘은 몰라도 이랬다. 
    Stabat Mater RV 621
    Nisi Dominus RV 608
    Salve Regina RV 616
    그때가 언제였더라 아마 한 17년쯤 됐나? 지금은 모르겠는데 당시 독주하던 세계 게임회사. 그 본사의 외국지사,에서 다시 지방 담당자 면접을 호텔에서 앞두고 있었는데. 어쩌다가 그걸 포기한 채 걔랑 일하게 됐는데. 걔는 전기회사의 사장. 사무실 직원은 관리자 1명 경리 1명이 전부. 나머지는 전부 아웃소싱. 아무튼 그건 그랬고. 
    그 어떤 이상한 분위기 때문인지 몽롱한 기분 탓인지 그를 오늘 만나고부터 내내 그는 끌려다닐 수밖에 없었다. 
    그곳에 도착한 다음에도 그가 선보여주는 장난감과 아동복과 여러가지 신기한 구경거리들을 보느라 NB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스타니슬라프는 생전 처음보는 유리섬유를 가지고 놀았다. 인공 실처럼 보였다. 반짝이기도 했고 반투명하다가 투명하게도 바뀌고. 색상이 화려했다. 어떻게 보면 상처를 꼬맬 때 쓰는 (상처 아물면 자동으로 녹아없어지는) 의료용 실인 것도 같았다. 그런데 스타니슬라프 말을 듣고 보니 그건 투구갑옷게, 고래, 심해어에서 추출한 성분을 이용한 특수 실이라고 했다. 그걸로 짜여진 옷을 입으면 투명인간이 될 수 있다나 뭐래나. 그런데 그 말을 너무 진지하게 했기 때문일까? 그건 뻥이 아니라 사실인 것만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신기한 특수 소재로 만들어진 털실은 마치 정말로 살아있는 것만 같았고, 따라서 녀석 빛이 밝아지면 NB가 걸친 옷의 색깔을 전부 흡수해버려 그의 옷은 모두 검게 변해버렸다. 베이스 기타처럼 한 4가닥 됐나? 그러다 다시 그 신비로운 털실 빛이 옅어지면 NB가 입고 있는 의상의 색상은 원래대로 돌아왔던 것이다. 그러면 이건 뭐랄까 그 옛날에는 심복으로 남기를 바랬더니 지금 와서는 NB를 뭐 프랑켄슈타인 실험용 쥐로 생각했을까? 일단 두고 보면 알 테고. 그러면서 스타니슬라프는 그 길다란 실 몇 가닥을 들더니 NB의 몸을 측정하고 있었다. 맞춤복을 만들기 위한 실측 과정으로 보였다. 일종의 뜨개질처럼 신종 기법에 의해 스웨터를 만드는 일인 듯 했다. 
   「그건 뭐 하려고...?」
   「너 줄려고. 잘 어울릴 거 같은데. 무슨 색깔로 해줄까?」
   「」
   「실망할 일 없을 거야. 지분을 투자하란 말도 아니고. 와서 열심히 일하란 말은 더더구나 아니야. 친구. 얼굴만 비춰줘.」
    그러다 갑자기 어느 아동이 나타나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다. 스타니슬라프 아들인지 딸인지 아마도 그런 듯. 
    예전에 듣기로 스타니슬라프가 북쪽 대도시에 가서 산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동쪽 대도시에서 산다고 했다. 일은 여기서도 하고 그렇게 왔다 갔다 한다는 말인데. 그러다 스타니슬라프는 옆 사무실로 이동했다. 거기서 스타니슬라프는 NB에게 놀라운 장난감을 보여주었다. 그건 흡사 그 무언가를 방불케 했다. 바로,
    레고 + 심시티 + 애들 장난감 + 군 고위급 지휘실 전광판(수직) + 전투 작전 상황판(수평) + 신도시 조감도 실사 모형판(비스듬) = 괴상한 가상현실 놀이기구'
    그 다음으로 다시 또 옆 사무실로 스타니슬라프는 이동했다. 
    거기서 어딘가 낯이 익은 사람과 인사를 나눴다. 고등학교 아니면 중학교 동창으로 보이는데. 대략 말을 나눠보니 학부에서 고급수학을 전공했다나 뭐라나. 자기 말에 따르자면, 자기 이론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 동급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통성명을 나누지 않은 녀석이 하는 일이라곤 엑셀 작업일 뿐이었다. 그 다음 갑자기 어딜 가자네, 과연 어디로? 가보면 안다고 했다. 그렇게 자동차로 걸어가다 자동차 뒷부분 쪽에 거의 다 와서 스타니슬라프는 운동화를 땅바닥으로 던졌다. 뒤따라오는 NB보고 챙기라는 뜻인 것 같았다. 즉 스타니슬라프는 실내에서 운동화를 신었고 바깥에 나갈 때는 슬리퍼로 갈아신었다. 
    그렇게 NB는 스타니슬라프의 운동화를 주워서 차 트렁크에 넣었고, 자기가 직접 운전석에 앉았다. 
    스타니슬라프, 이름 모를 남자, NB. 그렇게 3인방은 어딘가로 이동했다. 
    도착한 곳은 어느 근사한 식당이었다. 거기서 그들을 기다리는 멋진 남자가 있었다. 
    NB는 단박에 짐작했다. 단숨에 눈치 챌 수밖에. 보아하니 그 정체 모를 멋진 남자는 NB의 전임자인 듯. 
    그래? 말하자면 그 옛날 스타니슬라프가 입버릇처럼 말하기로 심복 심복 그랬는데. 그럼 이번에는 뭐 충복 더블 캐스팅? 무슨 뮤지컬 주연 더블 캐스팅도 아니고 뭐야 그게?! 
    어쨌든 그렇게 4명 남자는 식당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상남자들이라 널찍널찍 앉았다. 그러다 옆 자리에 손님들이 왔다. 곧 있다가 어느 동네 아저씨가 NB 옆자리에(4명 일행 즉 2 : 2 마주보는 상태에서 1명과 NB의 중간에 낑겨) 앉았고. 그래서 어떻게 어떻게 해서 그는 저 끝으로 밀려나게 되었는데. 그러자마자 음식들이 오고 어쩌고. NB는 일어나 걸어서 일행들이 있는 자리로 돌아갔다. 그렇게 식사를 진행하는 동안. 아까부터 NB는 내심 생각이 많았다. 복잡했지. 왜일까? 왜겠나! 왜냐, 왜냐하면 그 옛날 겪었던 일들을 또 반복해야 하냐 라는 아찔함 때문에.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 수 밖에. 만나는 순간부터 거 어째 느낌 세했는데 점점, 점점점, 점점점점점... 계속 어떡하나 이제 정말 어쩌면 좋나 라는 아련함. 그와 동시에 좌표값 암산에 암호학, 각본, 즉흥연기, 변수 등에 관한 공상도 빼놓을 수 없었다. 
    다음으로 또 어딘가로 이동했다. 근처 공원에 도착해 쉬면서 또 어느 동네 아저씨를 만나 뭔 얘기를 나눴는데 NB는 잘 기억나지 않았다. 바로 그건 어젯밤 개꿈이었으니까. 





    3

    소동은 크나 열매는 적다. 최근 슬럼프를 겪는 YB 삶의 줄거리. 올드보이 인생 언젠 안 그랬나? 하긴 손에 쥔 핸드폰을 찾는다고 엉덩이만 들썩들썩하지 의욕만 앞서고 성과는 없고. 그럼 NB는 이건 어떨까 라고 생각해봤다. 바로, 무작정 새로운 인생과 신나는 사랑을 기다려볼까? 누가 아나 쾌청한 탐욕과 미완의 신비감을 더없이 만족시켜주는 귀인이 느닷없이 나타날지. 허나 바랄 걸 바라야지. 하오나 시 제목마따나 삶이 그대를 속일지언정 어쩌고저쩌고. 울고 싶을지언정 죽고는 싶지 않은 인간의 운명. 그렇지만 뭔가 있어 라는 불쾌한 공포심을 자극하는 하고많은 세상사 끊이질 않고. 그래서 최근 월간문학잡지 미스테리아는 격월간으로 바껴 독자를 띄엄띄엄 알더지만, 발행을 두어 번 건너뛰더니 결국 휴면기에 들어갔다. 직원들 역시나 휴직. 사정이 사정이니 만큼. 그렇다고 NB까지 휴업할 수 있나, 안 그래도 업무 공간 미스테리아에다 만들어놨다. 마라는 허락한다는 뉘앙스를 풍겼으나 입장 바꿔 NB가 통보한 셈. 따분함 지루함 지겨움 질리는 심심함과 더럽게 재미없는 일상을 탈출할 뾰족한 묘수가 없으니, 따라서 그는 미스테리아에 출근하기로 했다. 걸리적거리는 여심도 없겠다 군침을 왜 흘려? 한적허니 일하기 딱 좋은 환경. 그렇게 출근한지 2일째.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바로, 직원들 일기 훔쳐보기. 
    처음에는 딱 1번만 보려고 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진짜 처음에는 어떡하다 보게 됐다. 일부러 보려고 했던 게 아니라. 그런데 이게 이게 점점 빠져들면 빠져들수록 끊을 수 없네? 아닌 게 아니라 절묘한 작전에 따라 겁나게 완벽한 계획으로 그가 말려들 수 밖에 없도록 미리미리 다 사전에 짜여진 게임인 듯 했던 것이다. 딱히 진한 사랑보다 더 정신없는 빠져듦? 자신있게 네 라고 말할 수는 없어도 뭔가 다른 느낌이 있긴 있었다. 아아 터진 자루는 채울 수 없는 것일까? 귀 간지럽기가 끝이 없었으니 고로 그는 날이면 날마다 직원들 일기 훔쳐보는 재미에 출근을 계속하고 있었던 것이다. 





    4

    2020년 4월 1일 (라파엘로)
    우리 나이 정도 되면 모든 걸 내려놓는 여유를 얻는다고나 할까? 거품 같은 인기 관심도 없고. 여복이 뭐가 중요하나! 숙녀보기를 돌보듯 하는데. 하오나 뻥. 뭘 해도 재미없기 일쑤. 신난다 재밌다 즐겁다 다 뻥. 몽땅 뻥. 도대체 얼마나 칼럼 나부랭이를 더 써대야 팍팍한 먹고살기가 풍요로워질 수 있을지. 그런 고민 한 번도 해본 적 없다. 물론 뻥. 침착한 사색가연하는 태도. 연기이자 허세일 뿐. 차분한 철학자인 척해도 누가 좋아하며 봐줄 사람 하나 없지. 허풍도 골았어. 미소 썩었지. 어쩌다 으쌰으쌰 놀 땐 기분파. 그런데 놀 기회라곤 혼자 놀기가 전부. 생활고에 대한 걱정은 인상파. 문제는 행복한 쾌락마에 대한 막심한 갈망, 그건 언제나 낭만파. 그럼 뭘 해? 그럼 뭘 하냐고. 그래 봤자, 환상문학잡지 편집장 마라는 쉼없이 마감일 독촉을 하질 않나, 여성환상에서는 밀린 원고료 매번 미루지를 않나. 혹시 그년이 떼먹을 생각? 에잇~ 설마! 설마가 사람 잡으면 어떡하지? 어떡하긴 뭘 어떡해. 이거 정말 촘촘한 재미 꼼꼼한 기쁨을 어디서 사오기라도 해야지 참 나. 난 괜찮아 라며 의연한 척 노래부르기, 춤추기, 놀기, 먹고 마시기. 다 재미없어. 몽땅 재미없다고. 어? 그래서 꼭꼭 숨겨둔 비장의 묘수는, 없다? 있을 리가 없다니까. 그러니까, 됐고. 따라서 나는... 나는... 나는... 혹시 누가 엿볼지 모르니 여기까지. 

    2020년 4월 2일 (체실리아)
    나는 개꿈을 측정할 수 있다. 물론 나는 식탐의 측량도 가능하다. 그렇지만 신비한 성욕을 실측할 수 없기 때문일까? 뭘 해도 재미없었으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해결사의 필승론을 탐색하는 건 어떨까? 어떻긴 뭘 어때, 해도 별 거 없지. 또 해서 뭐 하게? 참 내 거 별 나 그 증말. 하여튼 정체가 의심스러운 인간. 곧 이 내 의뭉스러움은 자기 자신을 이렇게 호명할 수 있었다. 자기 자랑은 없거나 지겹거나 바닥났으니까. 말하자면 눈 깜짝할 사이에 가상현실혁명과도 같은 문학을 뚝딱 완성하고자 노력하는 문인. 허나 꿈과 달리 대체가능한 칼럼니스트 생활. 싫증난 혼자 놀기 누군 뭐 안 따분하겠나. 보아하니 인생이란 별 거 없다. 단언컨대 인간의 삶을 요약해주는 말이 있다. 그건 뭐냐 하면 이렇다. 바로, 침 없는 꿀벌 없고 가시 없는 장미 없듯, 더티러브 없는 사랑도 없다. 뭐? 뭐라고? 뭐가 어쩌고 어째? 이거 정말 보자 보자 하니까 말이야, 말이면 단 줄 알아? 어? 이런, 젠장! 그런 말도 안되는 인생관은 앵무새랑 논쟁하든가 말든가.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얘기를 말이야. 
    그러므로 나는,
    야! 너. 그래 너. 어디 옆을 두리번 거려. 너 임마 너. 그래 너. 너가 보고 있는 거 다 알고 있어. 물론 몇몇 의심가는 인물이 있지. 그렇지만 똑 부러지게 누구라고 말은 못하는데. 심증 가나 누구라고 말은 않겠는데 너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어? 난 경고했어. 알았어? 알았어 몰랐어? 왜 대답이 없어? 어? 뭐? 조용히 해. 그러니까 누가 내 일기 읽으래?! 뭔 생각해? 어딜 넘봐. 속옷 훔쳐보는 상상했냐? 벌써 다 읽었어? 봤으면 지워. 잊어. 넌 왜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하고 그래? 가. 꺼져. 집에 가서 공갈 젖꼬지나 빨어. 알았어? 알았어 몰랐어?

    2020년 4월 3일 (미카엘라)
    비밀은 없다. 사랑은 잊어먹음. 여복이야 꽝. 호기심 바닥. 상상력 빈곤. 자유와 행복 같은 뻔한 낱말은 그저 고리타분할 뿐. 격한 공감과 진한 감동을 이끌어내는 새빨간 거짓말조차 납득력 하나 없으니까 환상문학잡지 미스테리아에 연재할 분량도 빵구남. 사람이 말이야 남자들 허세도 넙죽넙죽 받아주고 숙녀들께 립서비스도 소곤소곤 풀고 그럴 줄 알아야지, 왜 아는 동생들은 모두 다 날 떠나갔을까? 왜긴 왜겠나. 뜸들이기의 명수를 기다리다 기다리다 퍼진 거지. 그러면 이제 정말 비장의 카드, 특단의 대책을 꺼내들어야 한단 말인가? 과감히? 어? 정말? 내가 괜히 시간끌기의 제왕일 리가 있나. 강력한 한방이 있었으면 이처럼 더럽게 재미없는 노총각 아니 노처녀 인생이 되었을 리가. 능청떨기 마왕 주제에 허풍을 떨어도 납득이 안되기 일쑤. 걸핏하면 뻥. 심심하면 뻥. 그저 하는 일이라곤 오빠~ 오빠~란 말만 들으면 정신이 나가버리지를 않나. 아리따운 애정을 떠올리다 쩔쩔매지를 않나. 보아하니 커피 끊은 것도 그렇고 뭘로 보나 보나마나 늙었네. 뭐? 쟤들은 뭐가 그렇게 재밌고 신난다고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낙엽만 봐도 꺄르륵 꺄르륵. 떨어진 낙옆은 날아가고 떨어진 열매는 나무밑에 있다. 허황된 야망은 기억도 안나고, 아찔한 소망은 소망은! 이런 젠장. 
    그래서 나는... 내가 뭔 말 할려고 했더라?





    5

    2020년 4월 4일 (카타리나)
    겁나게 까마득한 쾌감의 주인공으로 낙찰될 것만 같은 예감. 아찔한 기대. 내가 오빠 이럴려고 만나? 노노노노노노노! 그런 값싼 허영심 말고. 이런 느낌 처음이야. 이런 기분 이제야 알았어. 오빠 내게 정말 무슨 짓을 한 거야? 젠장 꿈 깨자! 치명적 매력을 뽐내는 숙녀 생각 해서 뭘 하게. 보아하니 영보이에서 올드보이로 멋지게 늙어가는 게 남자 인생 정상이자 이상적 궤적인데. 이게 이게 MB(미친놈)처럼 다짜고짜 밑도 끝도 없는 낭만적 환상을 탐구한다면서 변신 기계를 가지고 놀지를 않나, 말 같지도 않은 칼럼들만 골라 쓰지를 않나. 어제는 가만 있는 벌집을 쑤시더니 오늘은 개꿈 꾸며 달콤히 낮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리질 않나. 어? 왜 자기만 뭘 해도 재미없냐 따분하냐 지루하냐 그거구만 그래. 허허. 허허허허허. 그렇긴 하다만 뭐 틀린 말도 아니고 누군 뭐 구태여 그런 말 하고 싶어서 하겠나.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나름 착한 척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 때문에 난 그랬다. 보기에 퍽 부담스러운 자기 얼굴은 뻔뻔한 상판떼기요, 반면 타인들의 아름다운 용모는 말 그대로 용안. 하여간에 그놈의 위선과 가식과 허영심. 능청이 능청이 현란한 혀놀림만 놓고 보자면 그야말로 혀 메시인데. 그런데 재물복 성과는? 
    좌우지간 네 얘긴 재미없고 그 인간 얘기 조금만 더 하자면 이래. 그야 어떻든 NB 역시 하는 수 없이 남자. 딱 남자. 완전 상남자. 그러므로 사랑의 흑심은 여지없이 파랑새의 뻔트인 법. 양이 있는 곳에 늑대도 있다. 개뼈다귀 보이면 개는 환장하기 마련. 뭐? 뭐가 어쩌고 어째? 젠장. 우리는 여자한테 관심 없음. 꼴보기 싫음. 재미없음. 귀찮음. 제발 한번만 만나주라는 간청 수없는 애청, 그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뿐. 아주 그냥 지겹단 말이다. 말하자면 수캐 암캐가 있으면 강아지도 생긴다지만 OB는 연애에 취미 없음. 전혀. 일절. 사랑론이라면 아주 그냥 진절머리가 날 지경. 쓴물이 다 올라와. 신물나는 수다. 하지만 아마도 그 인간 점잔 뺄 처지가 아닐 텐데? 말만 말만 YB면 뭐 하나, 찬밥 더운밥 가리지 못할 입장인데. 뭐라고? 아니다. 아니야. 진짜 아님. 호랑이는 아무리 배가 고파도 풀을 뜯어먹지 않음. 그렇긴 하나 사자는 토끼를 잡을 때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걸 모르지 않으니. 따라서 뭘로 봐도 이건 모순 천지란 말인데. 쯧쯧! 이걸 어쩌지? 어쩌긴 뭘 어째. 어? 넌 뭐야 비켜. 고개 돌려. 뭐? 조용히 해. 넌 왜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하고 그래? 뭐? 마이크 꺼. 
    그래서 나는 

    2020년 4월 5일 (아그네스)
    이래라 저래라 잔소리에 주늑든 젊음. 다른 말로 늙음? 보아하니 이제나저제나 희망찬 꿈에 풀베팅할 최적기만 노리다 마침내 언젠가, 신비스런 환상머신에 소망이고 나발이고 다 잊어버리는 인생. 그럼 그것은 정녕 뜨거운 애무에 마음을 녹여버리는 변신기계라도 된단 말인가. 변신은 무슨. 대망에 대한 연패를 만회할 기회는 없음. 왜냐하면 애초에 야망 같은 건 없었으니까. 그러니까 이렇다 할 성과없는 낭만적 사색가의 통장 잔고. 지나가버린 허황된 개꿈이 오늘에게 본때를 보여준 결과.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뭐냐고! 너무 많이 알면 실망할 뿐. 
    이처럼 이 지긋지긋한 공상에 골머리를 앓기만 반복했므로 따라서 나는 드디여 결심을 했다. 정말로? 뻥이다. 한때 허당계 거물 축에도 못 낀 주제에 계획은 무슨. 선물받은 넥타이 매고서 서류 만지작거리는 사무직이 아니라. 마우스나 꼬물꼬물 만지작거리며 인터넷 소문이나 두리번거리다 드물게 낄낄거리며 농땡이치는 푼수. 쪼물딱쪼물딱 아주 그냥 마우스 닳아지겠다 닳아지겠어. 누가 지 꺼 아니랄까 봐! (절레절레) 꼴에 예술한다고 자칭 대중적인 칼럼과 순수문학 연재분 빠트려 슬럼프에 빠져사는 허당. 그러니까 제 말은 어딘가 모르게 흠씻 두들겨맞은 듯 타성에 젖어버린 정체기, NB는 빠져나와야만 했던 것이다. 뭐랄까 코카콜라 광고보다 더 뻔한 사랑의 변심과 인생의 권태로 발생한 반작용 때문이라고나 할까? 재미없음과 심심함을 양쪽에 끼고서 썩은 미소를 짓는 듯한 맷집마저 바닥권이니 이건 뭔가 변화가 필요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상황. 그러므로 소파에 자빠져 TV보며 더럽게 재미없는 멜로드라마 흉보기 정도로는 벙커 탈출은 어림도 없다는 말인데. 그럼 뭘 하나, 그럼 뭘 해. 그래 봐야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좋게 보면 성격 좋은 팔색조요 나쁘게 보면 만년 호구 1.5군! 
    그래서 나는, 그래서긴 뭐가 그래서야! 월급날이니까 어서 퇴근해서 한잔 해야지. 





    6

    YB 아니 올드보이는 사무실에서 어떤 음악을 들을까 선곡 고민을 하고 있었다. 
    A) Handel / 오페라 <아리오단테> - “밤이 지나면 태양이 빛나고”
    B) Haydn  / Hob XVIII:3 - Piano Concerto in F major
    C) Bellini / 오페라 <몽유병의 여인> 중 1막의 아미나의 카바티나: 이 얼마나 화창한 날인가
    추억의 만화영화 톰과 제리에서 톰이 딱 어떤 표정을 지으면 탐스런 사과를 불독이 채가는 것처럼. 
    만화 스머프에서 가가멜이 손이 비비면서 입맛을 다시며 군침 닦자 딱 먹을려던 순간~ 
    그와 같은 표정으로 오늘 쓸 칼럼 주제 정했고, 착상을 다듬어 문학 아이디어를 선명하게 만들 무언가와 어울릴 음악을 막 고르려는데! 
    대뜸 노크도 없이 환상문학잡지 편집장 마라가 찾아왔다. 나만 문을 벌컥 여니? 너도 맥주 벌컥벌컥 마시잖아! 라는 듯이 말이다. 
   「웬일이야 아리따운 숙녀께서? 왜 하필 이 누추한 곳에! 그 귀하신 시간을 할애하시는 영광을 딴놈도 아니고 바로 내게?」
   「너무 길다. 뭔 인사말이 그리도 길어? 그러니까 오빠가 여자가 없는 거야. 알아? 그래서 너한테 숙녀가 안 붙는 거라고.」
   「그만 좀 해 증말. 어? 좋은 말도 한두 번이지. 듣기 싫은 농담 진짜 짜증난다 짜증나. 내 머리 위에서 수증기 부글거르는 거 안 보여? 내 양쪽 귀에서 삑삑삑, 응?」
   「그러지 말고 요 앞 카페에서 분위기 잡고 대화나 하시지? 창밖을 보며 창가에 앉아 창문에 입김을 분 다음 하트도 그리고 그리운 이름을 적는 거지. 설마 흠모하는 얼굴은 다름 아니라, 나?」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카페에 도착. 자리에 앉음. 설명 생략.
    음악은 C.P.E.Bach  / Wq.233 (요즘이 문제가 아니라 이런 음악 트는 카페가 있긴 있나? 거의 없음. 있어도 돈을 못 벎. 어쨌든)
   「카페 이름 A440. 440이 뭘 의미하는지 아니? 저건 말이야 국제표준음 A의 진동수 440헤르츠를 뜻해. 고악기 연주랄지 드물게 430~440 대역도 쓰이기는 하는데 거의 전부 440.」
   「또 아는 척? 그럼 진동수 436과 440헤르츠. 오빠가 구분할 수 있어, 없어? 그것만 말해 봐.」
   「오빤 괜찮다만... 너 애인한테 그렇게 떽떽거리지 마라. 응? 마라.」
   「그걸 왜 오빠가 하라 마라야? 어? 나 마라야. 나 마라라고. 어? 이거 왜 이래? 어머. 어머머머머. 나 좀 봐. 나 원래 이런 여자 아니야 오빠. 어머.」
   「말하지 않아도 다 알아. 그러니까 설명하지 않아도 괜찮아.」
   「어머머. 눈치챘어 오빠? 그런데 뭘!」
   「뭐라고 해야 좋을까... 까먹었어. 내가 이래. 내가 원래 정확한 사람인데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도통 모르겠단 말이야. (절레절레)」
   「어쨌든, 오빠. 저번에 했던 말 기억나?」
   「야, 저기 네 남친 지나간다.」
   「오빠. 맞고 싶어? 내가 참는다. 그럼 내가 참아야지 누가 참어? 응?」
   「그런데 늬가 괜히 왔을 리는 없고. 그 어떤 이익 때문에 움직였니?」
   「우리가 정말 그 정도 사이 밖에 안돼?」
   「어서 꺼내 놔. 흉보(凶報)든 비보(悲報)든 악보(惡報)든. 아마도 희소식이라고 하긴 어중간하고.」
   「뜸들이지 말고 곧장 얘기할께.」
   「뭐? 뜸들여.」
   「싫어.」
   「왜?」
   「왠지 모르게 그래야 오빠 김샐 거 같아서.」
   「너. 남자를 아는 구나!」
   「그럼 오빤 여자 마음 몰라?」
   「말꼬리 잡고 늘어지지 말고. 용건만 말하자.」
   「있잖아. 오빠. 나 발 넓은 거 알지? 내가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 닫지 않는 데가 없다는 거.」
   「인정.」
   「일간지 가제트 알지? 거기 편집장이 오빠한테 러브콜을 보냈어. 나한테 부탁했다고. 오빠 스카웃해주라고.」
   「특별상여금은? 보너스는? 대우는?」
   「일은 꽤 많이 하기를 바라는데, 보수는... 명예직.」
   「뭐? 오빠 나이들다 보니 보수적으로 변했어. 나 진보 안해. 나 돈 싫어하지 않아. 내가 왜? 그렇다고 천박함을 추구한단 말이 아니라, 어? 아니~ 내 말은~」
   「됐어. 알았어. 나 갈께. 오빤 그래서 안되는 거야. 그 양반한테 아는 동생들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 모델. 배우. 가수. 은행원. 잡지사 경리. 건설회사 경리. 전기회사 경리. 구멍가게 사장 경리. 경리 전문가라 할 수 있지 뭐.」
   「진짜?」
   「사라랑 나랑 오빠랑. 하지만, 의리 없이 우리가 오빨 보낼 수 있나. 못가. 안돼. 그래서 내가 말했어. 직접 들었는데 완곡히 거절하더라고. 알고나 있으시라고.」
   「넌 왜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하고 그래? 숙녀가 다소곳 내숭도 떨줄 알아야지 말이야. 어?」
   「조용히 해. 나 간다.」
    그렇게 그녀는 갔다.
   「야 진짜 가? 정말 가니? 그럴 거면 왜 왔어? 너 나랑 장난해? 뭐 하자는 거야? 야! 야! 경리... 경리는. 어? 마라! 저년이...」





    7

    오늘 NB는 늦잠을 잤다. 아찔한 착상은 못되겠으나 꿈 내용이 싱숭생숭해서 그걸 집에서 노트북에다 기록하고 어쩌고. 그러다 어영부영 해는 중천에 떴다. 그렇게 낮 2시쯤 집을 나섰고. 얼마 후 사무실에 도착했다. 
    그런데 이게 누구야? UFC 전-챔피언 척 리델이 그를 기다리고 있네? 그가 누군가. 770일 동안 겨우 4차 방어에 성공 라이트 헤비급 챔피언. 그의 이름은, 다시 한번
    'ㅊ ㅓㄱ' + 'ㄹ ㅣ ㄷ ㅔ ㄹ' = 척 리델!
    그는 생각했다. 사인 받을까? 받아서 뭐 하게! 코풀게? 관심 없음. 그런데 왜 여기를? 올 게 왔나? 
   「당신이요?」
   「네?」
   「우리 파이터들을 신나게 험담한 인간이. 그 위인이 바로 당신이냐고 물었소.」
   「아닌데요.」
   「아니긴 뭐가 아니야! 뭐랬더라? UFC 현 미들급 챔피언을 당신이 옛날에 엎어키웠다면서?」
   「형씨. 싸움은 형씨께서 나보다 잘할란가 몰라도 (몸짓) 보아하니 입터는 건 나한테 안 되겠네. 형씨도 그렇게 생각하시죠?」
   「시작도 안하고 꼬리 내리란 말이오? 우리는 그럴 수 없소. 남자는 폼. 어? 빈손으로 돌아가면 동료들이 얼마나 날 비웃겠소.」
   「그야 형씨 사정이고. 나야 알 바 아니지. 안 그러요?」
   「듣고 보니 그 말도 일리는 있는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말이야, 어? 뭔 배짱으로 우리들 뒷담화했소?」
   「제가...요? 저 아니라니까요.」
   「아니긴 뭔가 아니야. UFC 전 페더급 챔피언이 불과 3년 전까지 당신 똘만이 생활했었다는 거. 이미 소문 쫙퍼졌소. 아시오? 웬만한 팬들도 상당수 믿는 눈치. 일이 돌아가는 게 장난이 아니란 말이오. 아시겠소? 뿐만 아니라  플라이급도 웬만하면 다 형씨 꼬봉들이었다면서요? 그러게 왜 책임지지도 못한 허풍을 남발하셨소. 그렇다고 내가 형씨와 한판 붙자는 게 아니오. 다만 따질 건 따져야 한다 그 말씀. 그러기야 허지만서두 형씨가, 고집 센 형씨께서 굳이 한판 뜨자면야 뭐 거절하지야 않겠으나. 어찌 그럴 수 있겠소. 안 그렇소?」
   「당신 나 협박하는 거야? 그러고도 당신이 스포츠인이야? 내가 UFC 협회장이든 세계마초협회 실세든 내가 소문 내면 당신 그 바닥 떠야 돼. 알아? 이 바닥 좁은 줄 아요, 모르요?」
   「겁박은 당신이 하고 있구만. 아, 생각났다. 안토니오 반데라스한테 내가 상대도 안된다고 하시지 않았소.」
   「안토니오 반데라스? 안토니오 반데라스는, 영화배우 아닌가요?」
   「거 사람이 대충 눈치껏 알아들으셔야지 빡빡하게 이러기요? 네?」
   「아, 반다레이 실바를 말씀하시나 보구나.」
   「그렇소. 이제야 말이 좀 통하는 구만. 흐흠. 아, 또 생각났다. 당신이 말 몇 마디하면 오줌 찔찔 저리며 말 몇 마디 더하면 질질 짜면서 울어버린다면서요? 과연, 누가요? 네? 제발 필살기 딱 하나만 가르쳐주라고~ 가르쳐주라고~ 사정 사정을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다라나 뭐래나. 사과하시오 선생. 정중히. 어서. 뭐 하시오? 내 말 못 들었소? 네?」
    어떻게 된 게 바로 그 순간!
    여동생 비비안이 나타났다. 
   「오빠.」
   「」
   「」
   「오빠. 저번에 데이트해준다면서? 왜 약속 안 지켜? 오빠 그런 사람이야. 그래 봤자 난 포기 안해. 오빠가 좋은 걸 어쩌라고! 오빠. 제발 한번만 만나주라. 저번에 완전 재밌었어. 그때만 생각하면 지금 이 순간도, 아흐 (몸짓). 그때 재미있었어요 오빠. 완전 흥미진진. 꺄르륵~ (윙크)! 그런데 이분은 누구셔? 웬 깎뚜기! 지가 무슨 세계마초협회 쫄따구야 뭐야. 아님 뭐 버리는 카드? 그러니까 뭐냐고! 」
    그녀가 말 몇마디 하자마자 척 리델은 발바닥에 불이나도록 도망가버렸다. 
    흡사 자기가 좀비라는 듯이. 평범한 좀비 영화에 나오는 그런 좀비가 아니라, 여자에게 약한 좀비. 여자 인간이 뜨면 도망가는 좀비나 된다는 듯이. 
    그때 그는 척 리델이 좀비인 줄 미처 몰랐던 것이다. 
   「오빠. 저 사람 누구야? 무섭게 생겼던데. 오빠가 저런 상남자도 다 알아?」
   「그런데 너 방금 전에 했던 말...」
   「아, 제발 한번만 만나달란 말? 뻥인 거 알잖아. 내가 미쳤어 오빠 같은 한량을 좋아하게!」
   「넌 말을 해도 꼭... 좌우지간 왜 이상한 연기를 했냐 그 말이야 내 말은.」
   「저번에 오빠가 부탁했잖아.」
   「내가?」
   「그럼 누가?」
   「난... 그런 기억이 없는데.」
   「기억나시게 해드려?」
   「아니~ 내 말은~ 그러니까 그게 말이지~」
   「됐고. 나 기분 바꼈어. 어제 소개팅 취소되고. 오늘 딴 친구한테 바람맞고. 오빠나 데리고 카페 데이트나 하려했는데. 아까 그 마초 만나서 분위기 식었다. 나 갈래. 나 간다. 안녕. 다음에 봐 오빠.」
   「뭐야. 정말 가? 그런데 내가 진짜 부탁했니? 그거 하나만 말해주고 가면 안될까.」
    저만치 가던 비비안은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다.
   「그거 뻥이야.」
    쟤 뭐야?
    그는 황당한 마음을 뒤로한 채 사무실로 들어가서 소파에 누웠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공상을 시작했다. 바로 이렇게. 
    타락을 허락할 것인가, 아니다. 헛된 방황에 순종할 시기인가, 역시 아니다. 그렇다고 값싼 쾌감에 순응? 대답은 생략. 음탕과 동반자일 수는 없으니까. 그래서 소심하게 내내 관망만 하자니 액면은 내내 지지부진. 그렇지만 할 말 없다고 하나 일은 할 수밖에. 그래서 집 사무실 집 사무실 왔다 갔다 이리 갔다 저리 갔다, 그래 봐야 거기서 거기. 그처럼 열심히 일을 하긴 하는데 진척은 아주 더딤. 때문에 일기장에 험담을 험담을... 거기 보면 말뽄새 장난 아님. 욕심 없다면서 인기 그거 다 거품이라면서 소망도 뒤죽박죽. 말하자면 옛말 틀린 거 하나 없다. 즉, 왕관을 만드는 일이 그것을 씌울 만한 인물을 찾기보다 쉽다. 그치만 그와 달리 환상머신을 만들기만 하면 대박인데, 애호가는 줄을 설 텐데 발명가는 낮잠만 쿨쿨! (절레절레) 
    자, 그렇다면 말이다 응? 진한 사랑 그 이상 좋을 게 어디 있을까? 없나, 있다. 많나? 적다. 아니다. 모르겠다. 그래서 NB는 따분한 일상 조잡한 운명 허접한 열망에 고분고분 굽히기 싫었으므로, 따라서 무조건 집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남자는 집에 있으면 안되니까 말이다. 자, 딱 나갔어. 나갔다고. 그런데? 그런데는 뭐가 그런데야! 돼지새끼처럼 뭔 맛난 거만 탐내며 향긋한 열매 보며 껄떡거리지를 않나, 걸핏하면 개침 흘리지를 않나. 동네 똥개처럼 어디 멀리도 못가. 그 근방에서 그냥 왔다 갔다. 자유를 찾았는데 찾으면 뭘 해. 금방 심심. 따라서 그는 결심했다. 이건 아니라고. 정말 아니라고. 





    8

    그는 허당계 선두권의 요새로 악명 높은 아지트로 출두할까도 고민해봤다. 하지만 가봐야 잘난 척 허튼소리나 스스로 지껄이든가, 온갖 립서비스와 허풍과 아첨에 휩싸여 헛바람만 들 게 뻔했다. 때문에 안 가는 게 백번 낫다고 결론내렸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기, 팔랑귀 꿈틀꿈틀 솔깃솔깃. 전자와 후자를 반대로 할지도 모른다는 걱정 없지 않았으니까. 그럼 뭘 하지? 뭘 하긴 누가 뭘 해! 일단 지켜보는 거지. 그래서 NB는 집에서는 부쩍 잠이 늘었고, 사무실에서는 허구헌 날 맥주를 벌컥벌컥 퍼마셨다. 오빠, 기분 잡쳤어? 라는 말 공상하는 거도 지겨워졌으니까. 콕 집어 말하기는 어려워도 불행을 단박에 종식시킬 회심의 한방, 생각날 뻔 말 뻔하다 말았던 것이다. 나름 열일하며 명칼럼 쓰신답시고 허송세월하며 재미없기 일쑤니 안 그러게 생겼나. 부글부글 끓는 냄비 보글보글 더 긇는 커피포트 짜증지수 부글부글. 그걸 타개할 뾰족한 묘책 특단의 비법 어디 없을까? 없다. 있을 턱이 있나. 바랠 걸 바래야지. 개뼉따귀 같은 인생. 꿈에도 상상 못할 환희의 극치 그런 거 다 뻥이다. 몽땅 뻥. 개 뻥. 안 그래도 다 해봐서 안다. 야망? 대망 그거 실현시키면 되지 뭐가 문제야! 허나 그게 말처럼 쉬우면 뭔들 못하겠나. 가만 있어 봐, 나도 얘기 좀 하게. 어? 나도 말 좀 하자! ~라며 치고들어가도 얼마든지 받아줄 친구들 우정도 다 해산됨. 아는 여동생들 역시나 전부 연락 끊김. 뭐라고 말해야 좋을까, 아무리 쫓아도 잡히지 않는 그 무엇들의 목록. 많나 적나 몰라도 다 까먹었음. 간구해도 안기길 극구 거부하는 쾌감이 뭔지 일절 관심 없음. 추호도! 홍당무처럼 발가스름 홍조띈 수줍음. 타고난 애교와 자연스러운 내숭. 달콤한 애정. 다음으로 번뜩이는 개침? 짜증남. 관심 없음. 듣기도 싫음. 알 거 없음. 막장드라마에 나오는 뭐, 갈기 갈기 찢어죽이고 싶을 만큼 미우나 차마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애증. 얄미운 질투와 상사병 치유사 그런 거 재미 하나도 없음. 이건 아님. 정말 아님. 도대체가 말이야, 어? 
    따라서 그는 일단 나가기로 했다. 그렇게 집에서 나오자마자 드는 생각은 그랬다. 
    "가긴 어디가 사무실 가서 일이나 해야지." 라고 말이다. 
    그런데 집앞에 웬 떡대 2명이 버티고 서 있는 걸 보고 그는 깜짝 놀랐다. 대번에 그들이 누군지 알아챘기 때문에. 





    9

    집앞에서 그를 기다리 떡대 2명은 바로 이런 사람이었다.
    (A) 앤더슨 실바      : 챔피언 기간 2457일. 10차 방어 성공 (미들급) (경기 꽤 재미있음)  
    (B) 조르주 생 피에르: 챔피언 기간 2064일. 9차 방어 성공  (웰터급) (경기 더럽게 재미없음)
   「당신들 누구야? 너네 뭐야? 뭔데 남의 집 앞에서 얼쩡거려. 매운맛 보고 싶어? 따끔한 맛이 뭔지 알아 몰라? 어? 얘네 얘네 뜨거운 맛을 아직 못 보셨군 그래. 썩 꺼져. 저리 가. 가서 찌르러져. 어디서 이것들이 설치긴 설쳐. 어? 쪼그만 게 말이야. 꼭 보면 덩치 크다고 다 그런 건 아닌데, 뭔가 약간 애매하다 싶으면... 여자랑 사랑 잘 못해. 거의 안 그런데 너넨 딱 보니 사랑의 '사'자도 몰라. 알아? 매스컴에서 잘한다 잘한다 추켜세워줬더니 말이야, 어? 뭐? 닥쳐. 너네 좀비야? 왜 말을 못해! 냉큼 꺼져.」
    ~라고 말할 생각도 없진 않았으나. 실상 입으로 나온 말은 그와 달랐다. 
   「누구... 낯이 익은데... 누구시죠? 누굴 찾아오셨는지...」
   「」
   「제가 만약 잘못 본 게 아니라면 앤더슨 실바랑 조르주 생 피에르인데. 당신들 한물 가도 옛날에 간 거 알아? 너네 좀비지? 다 알고 있어. 앗! 말이 심했습니다. 그렇다고 형씨들도 너무 저자세 보이면 좋아하지 않는다는 거. 우리 운동인들끼리 잘 아시는 거잖아요. 안 그래요?」
   「압니다. 그건 그거고. 당신께서 우리 흉봤소?」
   「제가요?」
   「그럼 누굴 말하겠소. 당신이 우리랑 잔뻔치 쉭쉭 단 3방이면 우릴 눕힌다면서요?」
   「제가 언제요?」
   「오리발 내밀지 마소.」
   「전 그런 적이 없으니까 그렇죠.」
   「정말이오? 아닌데. 여기 맞는데. 제대로 찾아 왔는데.」
   「형님들도 참. 제가 그렇게 눈치도 없이 막말하고 그럴 사람인가요? 저 아니에요. 저 아니라구요.」
    그러자 조르주가 앤더슨에게 아이패드를 켜서 무언가를 보여주었다. 그 다음에 NB에게도 뭔가를 보여주었다. 물론 그가 쓴 칼럼에서 발췌한 내용들을 기록한 내용이었다. 
   「이래도 부인하겠소?」
   「아니~ 그게 말이에요~ 그게 그러니까~ 일단 제 말 좀 들어보세요. 네?」
   「듣고 있잖소. 어서 변명다운 변명을 해보시지 그래.」
   「제촉하지 마쇼. 거 아실만한 분들이...! 당신들은 스포츠 정신도 모르요? 아 그러요? 스포츠맨들이 말이야 기다릴 줄 몰라. 어? 언제부터 이 바닥이 이렇게 예절도 의리도 뭣도 없는 싸구려 뒷골목 난장판인 듯 되었소, 네? 그리고 당신. 너 말고 너. 눈을 왜 그렇게 떠! 어? 두꺼비 눈이야 뭐야? 당신이 개구리야? 당신 사람이잖아. 그런데 왜 그래? 그리고 너. 넌 가서 그래꼬로만형 레슬러나 키워. 수면제 파이터 별명 창피하지도 않냐. 맨날 지겹디지겨운 경기 짜증나는 스타일. 어? 넌 나한테 걸렸으면 본전도 못 건져. 알아? 야 너. 그리고 너. 너네 학교 어디 나왔어? 말하지 마. 대답 안해도 돼. 왜? 왜냐하면 내가 이미 다 아니까. 내가~ 어? 내가 말이야, 너네 부모님과 형동생 하는 사이야. 알아? 어? 너네 엄마랑 내 이모의 사촌이랑 절친이야. 너네 엄마 스파게티 좋아하시지? 여자들 취향 우리가 모르니. 그리고 너. 너 학교다닐 때 공부 못했지? 말 안 해도 네 심정 다 안다. 늬 마음 형이 다 알아 인마. 어?」
    그런데 왜 NB는 세게 나간 것일까? 평소 같으면 꿈도 못 꿨을 테지만 그는 딱 감이 온 것이다. 걔네들은 좀비라고 말이다. 
   「형씨 말이 너무 깁니다. 정신이 사납소. 좀 짧게 요약해서 설명하주실 수 없소?」
   「누군 뭐 말 짧게 하기 싫어? 어? 그게 다 너네 때문이잖아. 어? 그러게 미리미리 재밌게 살고 즐겁게 웃기고 신나게 경기를 했어야지. 어? 그래, 안 그래? 어? 아 그러냐고 안 그러냐고. 어? 귓구멍 막혔어? 어? 뚫어줘? 어? 그래 말어? 야 너. 그래 너 인마. 여기 너네랑 너 밖에 누가 더 있어. 어?」
   「형씨. 윽박지르는 거 얼마든지 좋은데, 이거 웬만하면 담판 짧게 갑시다. 잘못은 형씨가 했는데 왜 우릴 다그치시냔 말이오.」
   「내가 지금 안 다그치게 생겼어? 어? 그러게,」
    우악스런 걔네 검지로 NB의 입을 막았다.
   「이 말 진짜요? 진짜 그랬어요? 그러니까 왜.」
   「나 아니야. 나 아니라고. 누가 그래?」
   「그럼 여기 증거들은 다 뭐요?」
   「아... 그거... 그거 내 친구가 시켰소. 난 극구 거절했는데 어쩔 수 없이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단 말이오.」
   「정말...이오?」
   「친구 누구요?」
   「그게 그러니까.. 조지? 아닌데. 켄트? 걔 싸움 못해. 그럼 델? 걘 평화주의자. 토마스야 먹고살기 바쁘고. 톰은 허당. 닐은 예스맨. 잭은 몽상가. 핀은 협상가.」
   「형씨. 지칩니다. 힘들어요. 몸으로 대화하기를 바라면 말씀하시오.」
   「내가 언제? 가만 있어 봐. (몸짓) (딱) 옳지~! 세바스찬. 걔가 이거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다 시켰소. 전부 다. 몽땅. 싹 다!」
    그러면서 NB는 전화번호와 사는 집, 직장, 뭐, 뭐, 술꼬장까지 전부 다 가르쳐줬다. 
    그래서 결국 조르주와 앤더슨을 보냈다. 
    그렇게 겨우겨우 발등에 떨어진 불은 껐는데. 
    그럼 1시간 후 세바스찬은 어떻게 되는 거지? 
    앤더슨 실바랑 조르주 생 피에르을 잘 타이른 건 성공했는데. 
    꼭 뭐 일부러 세바스찬한테 전부 다 뒤집어씌우려고 한 게 아닌데. 
    결과적으로 그렇게 된 거네? 그럼 뭐야 이거? 뭐지? 도대체가 뭐냐고. 
    그럼 결국 이건 그가 일전에 썼던 칼럼에 나온 말마따나 그렇게 된 꼴이잖아? 
   구체적으로 나쁜 놈, 지능적으로 더 나쁜 놈. 전자에서 후자 된 거 아니냔 말이다. 





    10

    NB는 생각이 많아졌다. 코너 맥그리거도 한때 잘 타일러서 사람 만들어놓고. 가시내처럼 소심한 프랭키 에드가? 흠씬 뚜들어패서 남자 만들어놓았음. 비토 벨포트? 동네 후배였는데 말발로 걔 울게도 만들었고 바지에 오줌 저리게도 만들었음. 하다 하다 녀석 바지에 똥쌀뻔함. 다시 헛바람 불어넣어서 자존감 두둑히 세워줬음. 게가드 무사시? 꼬마 때 걔도 동네 후배. 우리 아지트에 내 책상 밑면에다 녀석이 하도 코딱지를 묻혀놔서 실신 일보 직전까지 말로 겁박줌. 말로 엄청나게 윽박지르니까 녀석 결국 방귀를 뽕~ 못 참았음. 연타로 여러번 끼었음. 제대로 쫄았음. 아무튼 뭔 누리끼리한 거, 기분 나쁘게 그거 밟고 바나나껍질 밟으면 미끄러지듯이 넘어진 적도 있었음. 그래서 교육 제대로 시킴. 면박먹고 걔 정신차림. 사람됐음. 그러고 나니까 그 후로 승승장구 지금까지 성장함. 옛날엔 정말 코 후비고 막 추접스러웠음. 사춘기 때 댄 헨더슨은 나한테 얻어맞고 쌍코피 흘렸음. BJ 펜은 눈물 콧물까지만 흘렸음. 맥스 할로웨이는 눈물 콧물 오줌까지 쌌음. 앤소니 페티스는 하다 하다 피똥 쌌음. 그럼 말 다 한 거나 마찬가지. 캬~ 말도 마, 말도! 
    그런데 그게 문제가 아니라, 어? 이건 어쩐담! 
    세바스찬이 걔네 떡대 2명을 감당할 수 있을까? 
    NB 앞에서야 슬슬 기었겠으나 걔네가 바보도 아니고 세바스찬 말발이면... 그는 즉각 전화했다. 세바스찬에게 바로 전화한 게 아니라, 세바스찬에 앞서 그래도 UFC 현역 선수 가운데 연락 닫는 동생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 알려지진 않았으나 말 그대로 그래도 현역. 체급이 뭐였더라, 기억도 안나고. 그 친구는 바로 전화를 받았다.
   「예 형님. 형님. 오랜만입니다. 그동안 왜 연락 없으셨습니까? 보고 싶었습니다.」
   「야, 김동현. 야 임마 연락은 늬가 형한테 먼저 해야지. 내가 꼬박꼬박 너한테 문안인사 드리고 안부 여쭙고 그래야 하냐? 어? 이 바닥 언제부터 이렇게 됐냐? 어?」
   「예 형님. 말씀하십시요. 형님 잔소리는 들으면 들을수록 힘이 납니다. 제가 이 세상에서 최고로 좋아하는 음악은 다름 아니라 형님의 잔소리입니다. 딸랑딸랑~! 오죽하면 음성녹음 파일을 제가 연습경기 직전에 듣고 링에 오르겠습니까. 제 핸드폰에 형님 잔소리 음성 파일만 몇 갠데요. 허허허. 딸랑딸랑~」
   「너 인마. 어? 남자가 입이 너무 가벼워. 넌 말이 너무 많아. 앞으로 1주일 동안 묵언수행해. 너 1주일 동안 말하지 마. 그것도 훈련이야. 스포츠는 뭐다? 정신. 알았어 몰랐어?」
   「네 형님. 알겠습니다. 명심하겠습니다. 저한텐 형님밖에 없습니다.」
   「말하지 말라니까. 누가 대답하랬어. 어? 너 나한테 한번 맞아볼래? 이 자식이...! 저번에 형이 그랬지. 형이 너의 그 퉁거운 목을 꽉 어깨동무해서 움켜쥐며 형이 뭐랬어. 형이 늬한테 싸움진다! ~라고 했던 거. 다 뻥이야. 알아? 어? 뭐 그런 따분한 농담 이제 그만할 때도 됐다.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그래서 말인데 지금 형이 처한 상황이 장난 아니거든. 너 알지, 걔네 누구드라, 그래. 앤더슨 실바랑 조르주 생 피에르. 너 걔네 알지?」
   「그럼요. 알다마다요.」
   「그래. 대답 잘했어. 이렇게 딱딱 봐서 척하면 척. 아무튼 걔네가 형한테 찾아왔어.」
   「네? 왜요? 걔네가 형님께 왜요?」
   「형이 걔네를 칼럼에서 깠거든. 신나게. 아주 심하게 말이야. 칼럼에서 아주 그냥 혼구녕을 내줬거든. 그런데 지들이 덩치만 크면 뭐 하냐, 속이 좁은데. 어? 완전 밴댕이 소갈딱지. 뿐만 아니라 완전 꼬꼽쟁이 자린고비 스쿠루지. 남자가 그릇이 그렇게 작아서야 쓰겠니? 그러니 삐져서 형한테 찾아온 거지. 늬가 우리 흉봤냐고!」
   「정말입니까 형님?」
   「넌 내가 언제 거짓말한 거 봤냐? 난 살면서 뻥친 적 단 1번도 없어. 알아? 너 형 성격 알지? 형 많이 참고 있다. 너도 많이 참고 있겠지만, 다 알아 임마. 그래도 형은 더 많이 참고 있어. 알아? 내가 얼마나 많이 참는지 아니 모르니? 어? 그런데 뭘? 몰라. 그거 알아서 뭐하게!」
   「네 형님. 존경합니다. 형님. 사랑합니다.」
   「됐어 임마. 애정은 해도 사랑은 여자랑 해라. 형도 여자 좋아한다.」
   「그럼요. 제가 형 모르나요? 형 여자 환장하잖아요.」
   「이 자식이... 지금 그 얘기가 아니잖아. 너 자꾸 형한테 깝죽댈래? 그러고 보니 너 형한테 얻어맞은지 좀 됐다? 어?」
   「형님 봐주십시요.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더 형님께 더욱 충성하겠습니다. 저는 형님의 영원한 보디가드. 허허허.」
   「형이 너 특별히 아끼는 거. 알아 몰라? 형이 지갑 연지 좀 됐으니까 다음에 형이 푸아그라 사줄께. 저번에도 형이 그거 사줬잖아. 캐비어 중의 캐비어 형이 사줬어 안 사줬어.」
   「캐비넷 말씀입니까? 사무기기? 그건 모르겠고. 푸아... 글쎄요. 저번에 형님께서 돼지 간 요리는 사주셨는데요. 맛있었습니다. 저도 돼지 간 좋아합니다.」
   「뭐? 너 이 형의 잔뻔치로 간 얻어맞고 싶어? 그건 그거고. 아 그러니까 너 걔네 이길 수 있겠어?」
   「제가요? 못 이기죠. 그리고 우리는 링이 아니면 붙지를 않아요. 그럼 안되거든요. 차라리 맞고 말죠.」
   「왜 못 이겨?」
   「상대가 안되요. 물론 한물 가긴 했어도 아 얼굴 보면 모르십니까? 무섭게 생겼잖아요. 저도 어디 가도 주먹으로 안 빠지고 웬만해선 안 쪼는데. 그런 얼굴들이 몇 있어요. 딱 보면 쫄 수밖에 없는 얼굴.」
   「안 되는데. 지금 연락닫는 현역이 너 밖에 없는데. 넌 말야, 어? 넌 왜 내게 도움이 안되냐. 늬가 그러고도 내 동생이냐? 어? 너 이 자식 형이 커피 사준 거 다 토해내. 알았어? 다 이럴 때를 위해서 형이 너 밥 사주고 술 먹이고 빵 사주고, 또 뭐 사줬지? 정작 중요한 순간에, 됐다. 내가 너랑 무슨 사랑의 줄다리기를 할 거도 아니고. 아무튼 넌 부업 잘 하고, 운동 열심히 하고. 유튜브 업데이트하는 거 꼬박꼬박하고. 그거나 잘해.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한다.」
   「형님.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럼 괜찮지. 걔네 꿀밤 몇대면 충분해. 너 형 알지? 너 형 몰라? 늬가 지금 형을 띄엄띄엄 알아? 어?」
   「네 그럼요. 형님 화이팅 화이팅 화이팅!」
   「그래. 나중에 통화하자. 끊어. 아니다. 까먹은 게 있다. 형이 너를 위해 특명을 하나 준비했아.」
   「뭡니까 형님.」
   「뭡니까? 너 형한테 따지냐? 어조가 왜 그래? 너 형이랑 통화하기 싫어?」
   「아닙니다 형님. 저는 형님의 특명을 기다리다 기다리다 지쳤는데, 드디여 올 게 왔구나. 라고 생각해서 저도 모르게 그만 형님께 실례를 범했습니다. 용서해주십시요 형님. 부디 넓은 아량으로 선처해주시기 바랍니다. 예 형님. 말씀하십시요. 분부대로 움직이겠습니다.」
   「너 걔 알지. 모기 목소리. 꼴에 지도 연예인이라고 코메디 프로에 기웃기웃 끈질기게 남아있는 애. PD들이 아쉬운 대로 갖다쓴다고 해서 막 좋다고 여자들 둘러쌓여서 히죽히죽 웃기나 하고. 어? 그게 뭐냐? 어? 등치에 안 맞게 말이야. 쫌팽이에다. 뱁새에다. 속좁고. 여자 모르고. 여자들이 싫어하고. 등치는 산만 한데 모기목소리! 남자들이랑도 사이 별로 안 좋아. 너 걔랑 친해져. 아, 이미 친하지? 그럼 걔랑 스파링 뛰어. 그래서 죽사발 만들어줘. 그래서 사람 만들어. 걔 그래야 철들어. 걔 아직 사람이 안됐어. 남자가 말이야, 어? 뭔 말인 줄 알지? 걔 아주 그냥 헬스클럽에서 사는 거 알지? 쇠질 한 6개월 못하게 죽사발 만들어줘. 그래야 철들 거야. 돈도 벌만큼 번 놈이 말이야 남자가 구두쇠가 뭐니 구두쇠가! 걔 별명 몇 개인지 너 알지? 그러니까 주변에 사람이 없지. 있긴 있어. 근데 다 비슷한 애들 밖에 없다는 거. 걔 지갑 연 거 본 적 있다든? 흑심 품을 때나 여자한테 돈 쓰는 거 빼고. 없어. 방송계 소문 쫙 퍼졌어. 연예계 물 더러워지고 있단 말이야. 어? 그래서야 쓰겠니. 그걸 보고 우리가 가만 있어야 쓰겠냐고. 정신차리게 만들어드려. 알았어?」
   「네. 알겠습니다. 걱정마십시요.」
   「너 설마 속으로 그런 건 아니지? 아 나 증말 이 꼰대 또 사람 귀찮게 만드네. 진짜 얘 징징대는 투정 들어주는 거 지겹다 지겨워. 지친다 지쳐. 내가 못 살아 정말. 내가 전화번호를 바꾸든가 해야지 증말.」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아닌데 왜 웃어? 웃은 거 보니 진짜네. 어? 솔직히 말해. 솔직히 실토하면 형이 봐줄께.」
   「형님 유도심문에 전 절대 넘어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형님의 찐팬이 저의 본분이고 형님의 광팬이 저의 숙명이자 전 그냥 형이 좋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너 원래 그렇게 말발 좋은 애가 아니었는데. 요즘 학원다니니? 아님 말발 좋아지는 법 뭐 그런 책 사서 독학하니? 얘 옆에 누가 붙었지? 혹시 사기꾼일지 모르니까 조심하고. 나나 되니까 다 늬 걱정하고 그러지, 형 아니면 누가 그런 생각해주냐. 안 그래?」
   「맞습니다 형님. 제 마음 아시지 않습니까. 허허허허허.」
   「그래. 형이 너 때문에 웃는다. 네 덕분에 마음이 놓인다. 형은 너밖에 없어 인마. 알아? 그래 끊어. 들어가.」
   「네 형님. 들어가십시요. 아는 동생들 언제든 대기시키겠습니다. 안 그래도 최근 물색 중인...」
   「쉿! 누가 들어 인마. 넌 말이야 말이 너무 많아. 어? 과잉 충성 형이 썩 반기지 않는다는 거 왜 몰라. 어? 늬가 그러니까 여자가 없는 거야. 어? 늬가 그래서 안되는 거라고. 야, 끊어.」
    NB는 전화를 끊었다. 그 다음
    곧바로 세바스찬에서 전화를 걸었다. 
    그래서 좀비는 여자에게 약하다는 걸 알려줬다. 
    통화내용은 생략하고. 세바스찬은 알아먹었고, 추후 상황 역시 그대로 먹혔다.





    11

    할 말 없고. 잔소리 들을 일 없고. 그렇다고 들썩들썩 으쌰으쌰 놀 일이 있나, 아니면 엉덩이가 간지럽기를 하나. 마누라 엉덩이 토닥거리며 한가하게 시간 보낼 동네 아저씨도 아니고. 
    그래서 그는 하는 수 없이 아지트로 향했다.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아지트에 도착. 
    Heinrich Proch / 아리아와 변주곡 op.164 “오, 돌아와주오 그대” 
    평소와 달리 음악이 클럽 음악이 아니라는 점. 그 외에 손님이 부쩍 줄어 아는 얼굴이... 거의 없다는 점. 
    그거 빼곤 별달리 이상한 점은 없었다. NB야 기분전환이 목적이므로 구석지에서 조용히 있다 가려고 했다. 
    그런데 저쪽에서 누군가 다가오더니, 에잇 오다 다른 쪽으로 가겠지 했는데 끝까지 다가왔다. 
    알고 봤더니... 저 여인들은 바로 론다 라우지와 요안나 옌드레이첵. 그녀들이 누군가? 
    (A) 론다 라우지        : 챔피언 기간 1074일. 6차 방어 성공 (밴텀급)
    (B) 요안나 옌드레이첵: 챔피언 기간 965일. 5차 방어 성공 (스트로급)
    그런데 내게 왜? 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래서 대번에 직감했다. 얘네도 좀비라는 것을. 재빨리 움직여서 그녀들 뒤통수를 보면 보나마나 666 바코드가 찍혀있겠지. 설마, 피부가 아니라... 어디 속옷 깊숙한 곳에? 알 게 뭐야. 그럼.... 시끄러워. 닥쳐. 좌우지간 유명인 먼발치서 봐도 뭐 그래 너 잘났다 하면 그만. 그분들이 무조건 싫단 말이 아니라, 구경은 구경이고. 차라리 친구랑 늬 까짓 게 뭔데 라는 듯 노는 게 더 재밌긴 재밌으니까. 그런데 놀 친구도 뭣도 없다는 거. 아는 동생들 다 떨어져나갔다는 거. 그걸 얘네 좀비들이 눈치 챘는지 어쨌는지 그녀들이 과감히 여기까지 돌진한 결과. 
    자, 이제 용건을 말해야 하는데. 그렇지만 론다도 요안나도 통 말을 안허네?
    그렇다고 NB 성격에 먼저 굽히고 들어가기도 그렇고, 사인 받을 마음도 없고 사진찍기도 싫고. 
    늬들이 언제까지 말을 안하는지 보자 라는 심정. 요컨대 눈치작전 중. 
    거기서 끝났으면 모르는데. 요안나는 NB 옆으로 와 팔짱을 꼈고, 론다는 슬쩍 어깨동무를 했다. 
    그는 여자 팔이 그렇게 묵직하며 그와 동시에 향긋한 숙녀 느낌 때문에 기분은 좋은데 캬, 카리스마 장난 아니었으므로. 고로 그는 완전 쫄고 말았다. 
    그렇게 그녀 즉 좀비들은 NB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12

    그렇게 그녀 즉 좀비들은 NB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그건 뭐 반강제적이나 마찬가지였다는 점. 느낌 세했다. 이 들뜬 기분 과연 어떤 분위기가 펼쳐질 풍경으로 그를 데려갈까? 
    그야 어떻든 NB 생각은 이랬다. 춤꾼 덕분에 나팔 분다, 즉 묻어 가자. 어차피 건수 없는 최근 인생. 엎혀가자고. 숙녀가 나 엎고 싶다는데? 호박이 제 발로 찾아와 안긴다는데, 툭하면 오빠 제발 한번만 만나주세요. 어? 그런 사연들이 정말로 있었는지 없었는지 믿거나 말거나 전성기는 왕년의 허풍담이 되었으니. 따라서 현상황 결코 나쁘지 않았던 것이다. 
    누구나 좀비 영화 적어도 한두 번, 많으면 수없이 보셨겠으나. 실제로 좀비를 볼 줄이야 누가 알았겠나. 그런데 멜로드라마 애호가 입장에서야 또 사정 다를 수 있다. 보아하니, 웬만치 능청떨어야 말을 안 허지 참말로 못 들어주겠구만 그래, ~라고 생각하시지는 않을지 걱정이 앞선단 말이다. 하오나 볼 수 있고 식탐 반만족시킬 수 있음에 감사하며 내 발로 어딘가 돌아다닐 수 있다는 데 그 어떤 영광스러움을 느끼니 하는 말인데. 내일은 없는 듯이 그 어떤 유혹에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는 애정. 변함없는 사랑. 영원한 연정. 끝없는 의무방어전? 다음 생에도? (뒷목....)! 날이면 날마다 짜릿한 쾌락마와 달콤한 행복의 회전목마를 탈 줄 알았는데. 마누라 등쌀에 기 못 펴고 사는 남정네도 없지 않으니. 뭐 연재소설은 멈추지 않는 거고. 하여간에 환상은 환상인데 값을 매길 수 없는 환상. ~보다 값싼 쾌락 싸구려 행복을 추구하는 방탕마? 그게 바로 누구라고 꼭 말은 안 하겠음. 장밋빛 인생을 사랑하는 방법이 그렇다는데 왜 말려. 
    그런데 정말 론다랑 요안나는 끝까지 말을 안하네? 
    아하~! 좀비는 말을 할 줄 모른다. 그러니까 좀비지. 
    그럼 엇그제 본 앤더슨 좀비와 조르주 좀비는? 그야 걔네는 인공지능이 업데이트된 거 뿐이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도착한 곳은 바로, 스머프 축제 현장. 
    내 참 그게 말이 돼? 말도 안되는 줄거리 짜증 제대로 나구만 그래. 
    그건 그렇다만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좀비들한테 끌려온 당사자 입장은 또 뭐고. 그래도 위악스런 현장도 아닌 데다 상황이 썩 절망적이지도 않았으니, 고로 NB는 적잖이 안심했다. 허나 방심은 금물. 자, 이제 어떻게 되었을까? 





    13

    줄거리 요약 위주로 설명하기로 하자. 그게 좋겠다. 자, 고! 
    축제장에서 론다가 주머니에서 포크를 꺼내 NB 엉덩이를 푹 쑤심. 
    아니 얘네들 좀비라고 봐줬는데 뜻하지 못한 역습이야 뭐야? 그런데 다행 중 불행일까? 포크는 무뎌서 그가 입고 있는 바지 겉면만 살짝 긁혔다. 
    그래도 NB는 론다한테 왜 그랬냐고 따지지 않았다. 물론 론다는 좀비니까 시선이 허공을 보는 듯도 하고, 검지로 코끝을 가리킨 것처럼 뭐 그랬다. 
    좀비가 좀비처럼 행세하지 그럼 캥거루처럼 깡총거리겠나 말처럼 뛰겠나. 아니면 토끼처럼 번식을 번식을 왕창 하겠나. 지들이 뭐 플레이보이야 뭐야? 
    그처럼 공상을 남용하다가 NB는 또 갑자기 기습을 당했다. 이번에는 요안나가 주사기로 그의 다른쪽 엉덩이를 푹 쑤신 것이다. 이년들이...! 
    순간 그는 욱할 뻔하다 말았다. 그런데 차라리 욱한 분위기를 이어가는 게 나았을까? 왜냐하면 요안나가 주사기 안에 담긴 액체를 그의 엉덩이에 살며시 주입시켰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는 정신을 잃고 말았다.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그는 혼수상태에서 개꿈을 꾼 다음 깨어났다. 
    그곳은 인적이 드문 강변 공원이었다. 
    사람들이야 뭐라고 하든 론다랑 요안나한테 당한 걸 어디다 하소연할 수도 없고. 여기가 어디냐고? 
    차라리 그녀들이랑 화끈하게 한판 떠볼 걸 그랬나? 하지만 그래도 NB가 허접하긴 해도 남자인데, 어? 
    이기면 이겨도 문제고, 지면 져서 챙피하고. 그렇지만 실상 경기장에서 연습경기를 한다 쳐도. 어? 
    정정당당히 아마도 질 텐데. 아주 그냥 져도 처참히 깨질 텐데. 그럼 져줬다고 엄살이라도 떨 수 있다지만. 
    나 론다랑 붙어봤다, 요안나가 나한테 차 떼고 포 떼고 핸디캡 적용해서 뜨자고 사정 사정 싹싹 빌길래 내 불쌍해서 봐줬다며 너스레라도 떨 텐데. 
    어디 촌구석에다 떨구어다 놓고 그녀들은 사라지고. 어? 사랑이란 알다가도 모를 일. 뭐? 지금 그 얘기가 아니구나. 어쨌든. 
    그래도 뭐랄까 매번 사무실에서, 무엇에 몰입해야 신나는 신비감을 영접했다고 소문날까, 그런 생각에 골머리를 앓느니. 이 상황도 썩 나쁘진 않았던 것이다. 
    그럼 여기서 끝이냐? 그럴 리가 있나. 
    저 앞에 다비드상과 거의 같은 크기, 아니 아니 한 10배 정도 크기로 동상 2개가 보였다. 
    첫째, 가가멜상
    둘째, 가제트상
    들어갔다. 먼저 가가멜상의 아킬레스건의 문을 열고서. 와, 줄거리를 더 요약하자면 이렇다. 
    (A) 가가멜상: 인간 좀비 현황 작전실 (군작전실을 방불케 할 정도로)
    (B) 가제트상: 동물 좀비 현황 작전실 (NASA 비밀기지를 방불케 할 정도로)
    그는 혼자 신났다. 계단을 타고 올라가니까 전망도 괜찮았고, 최상층에는 침실도 있었다. 그럼 이 침대에서......! 
    이건 뭐 거의 개인 비밀공간이자 스카이라운지였다. 여기가 펜트하우스가 아니면 과연 뭐가 펜트하우스겠나. 
    연분홍색 버튼을 누르니 가가멜 눈에서 레이저도 나갔다. 
    하늘색 버튼을 누르니 가제트 입에서 화염방사기 당연히 나갔다. 
    캬~ 어? 그래서 그는 어느 정도 짐작이 갔다. 바로, 이게 다 모스맨 연구자 제라드가 꾸민 일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NB는 곧바로 제라드한테 전화했다.
   「어, 친구. 어디야?」
   「늬가 알아서 뭐하게?」
   「왜 또 그래?」
   「너지?」
   「뭐가?」
   「시치미떼지 마.」
   「그래. 나야. 그럼 나 아닐 줄 알았냐?」
   「또 너냐?」
   「내가 말 했냐 안 했냐. 애들 보낸다고.」
   「하다 하다 너 좀비까지 만들었냐?」
   「왜 내가 못 할 거 같냐? ~라면서 먼저 큰소리치면 꼭 안되길래. 내가 다 미리 비밀 리에 준비해서 완성한 거지. 허허허. 어때, 기대 이상이지? 늬가 환상머신 미완성 때문에 헤매고 있는 동안, 난 이미 성과 톡톡히 거뒀단 말씀. 하하하하하. 푸하하하하하하. 으하하하하하하하.」
   「괘씸한 녀석.」
   「괘념치 마.」
   「허접한 놈.」
   「허접해도 난 3관왕 넌 무관의 제왕. 제왕? 글쎄요. 허허허허허.」
   「참 너도 못 말리겠다.」
   「그러니까!」
   「그러니까는 뭐가 그러니까?」
   「하여튼 구체적으로 따져 난 중간.」
   「뭐?」
   「난 지능적으로 더 나쁜 놈 아님.」
   「뭐 임마?」
   「그러지 말고. 밖에 봐 봐. 리무진 보내놨어.」
    밖을 보니 정말로 리무진이 대기중이었다. 
    그렇게 그는 모스맨 연구자 제라드의 집으로 이동했다. 
    제라드의 집에 도착해서 특별한 건 없었다. 
    다만, 제라드가 그를 보자마자 막 얼굴을 사정없이 만졌다는 거. 
    NB가 무슨 여자도 아니고 얼굴 부위가 무슨... 그냥 얼굴인데. 아니, 왜?
    왜냐하면 엇그제 NB가 자길 찾아왔기 때문에. 당시 제라드는 NB를 만났을 당시에는 몰랐는데 한 3일 지나서 대충 감 잡았다고 했다. 바로, 진화된 좀비라는 것을.
    결국 그들은 만난지 1달 반쯤 됐는데... 또 좀비가 초정밀 변장한 채 찾아왔을 까봐 미리 조심하는 제라드였던 것이다. 





    14

    동화풍 상상력에 잔뼈가 굵은(?) 그는 환상기계 완성 작업에 드디어 발뺌하기 시작했다. 왜, 대체 왜냐! 누가 알아? 권태로부터의 방패막이라는 신선한 관심사가 새로운 인생을 선사해줄지. 에잇 설마 그럴 리가, 그게 말이나 되니 이 바보야! 라는 핀잔이 정말로 귓가에 들리는 것만 같았다. 보아하니 세속적인 칼럼과 상업적인 소설 쓰기에 지친 생활, 드디어 엉덩이가 근질근질하긴 한데. 입이 근질근질 할 말 많음과 반대로 말수는 바닥. 말하자면 할 말 떨어진 게 아니라 꿈이 없듯 아예 없으니까. 그렇다면 재미없음의 대항마요 심심함에 대적하는 바람막이는 결국 색다른 쾌락마뿐이란 말인데. 하긴 늑대가 양 싫증날 때 없다. 뭐? 또 그 얘기! 딱 1번 더 들으면 만 번이고 단 1번 더 말하면, 됐다. 됐어. 됐다고 증말. 재차 확인해서 뭐 하나. 그야 어떻든 옆집 과일은 별맛, 옆집 떡은 더 맛있다는데. 남들은 시트콤 추억을 회상하며 타인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일상적으로 영화 찍 듯 살 때. NB는 그동안 뭐 했을까? 뭐 하긴 다 커버린 거지. 많이 컸다 라는 말도 다 단역들이나 듣기 좋은 말이고. 좌우지간 공상만 반복되면 생각이 꼬이고. 하여 지금은 행동할 때. 정녕 절실히 원하는 환상의 모험이 있으면 실행하면 그뿐. 그렇다고? 
    그래서 떠오른 명언은 그것. 바로, 개에게는 개뼈다귀를 주라. 하지만 문제는 그는 발동이 걸리는 피동격 스타일이라는 점.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그럼 어쩔 수 있나 일이나 해야지. 놀라운 기쁨의 전율, 그거 다 개 풀 뜯어먹는 얘기. 미지의 세계에서 멋진 신비주의자로 활약할 것만 같은 희망의 꿈? 지나가는 동네 똥개도 관심 없음. 새똥이나 안 맞음 다행. 바나나 껍질이나 잘 피해다녀야지 뭐. 내가 재미난 얘기 하나 해드릴께? 들어보면 다 시시함. 아니면 뻥. 자, 그렇다면 NB는 마침내 약 먹을 시간이 되었을까?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이러쿵저러쿵. 기 빨리고 힘 빠지고 퍼지고 지친 거다. 검지를 펴서 귀 옆에 대고 돌리던가 코 끝에 대고 쳐다본든가. 어? 둘 중 하나! 따라서 그는 놀면서 유랑하고 구경하는 여행이 아니라, 쉬면서 예술적 영감을 떠올리기 위해 어느 멋진 호텔로 떠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분명 아실 테지만 혹시라도 모르실지 모르니 하는 말이지만서두, 끝으로 한말씀 드리자면 이렇다. 
    어느 날 NB는 집에서 소파에 자빠져 텔레비전을 보다 마침내 뚜껑이 열기고야 말았다. 
    참다 참다 채널 돌리다 돌리다 더는 못 참겠길래 기어코 그는 일을 내고야 만 것이다. 
    어떻게? 찾아갔다. UFC 역대 최다 방어 기록을 작성했던 플라이급 전챔피너 드미트리우스 존슨. 왜냐, 왠지 걔가 허접해보였으니까. 
    만났다. 물론 당사자를 만나지는 못했고. 매니저가 말해줬다. 찾아올 것 같다면서 언젠가부터 불안불안해 하더니만 결국 도망갔다고. 
    뭐 내빼? 내 이 자식을 그냥...! 인생론 강의하든 세상사 깨우쳐주든 참교육 제대로 시켜줄려고 했더니만 왜 애들이 배울려고를 안해. 라면서 그는 씩씩거리다 돌아갔다. 





    15

    그러면 여기서 끝이냐? 그럴 리가 있나. 
    어느 날 갑자기 NB는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만난지 꽤 된 도날드였다. 천재 프로그래머. 그래서 이따금 정보통 역할을 톡톡히 했던 그. 
    NB는 도날드한테 기쁨조로 덕망이 두터웠고, 도날드는 NB에게 첩보 레이더로 신임이 신임이 장난 아니었던 사이. 허나 다른 인생. (농담 삼아 하는 얘기지만 만약 클린... UFO 기밀정보 A급까지 몽땅 풀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 말 그대로 농담)
    그래서 왜 갑자기 연락이 온 거지? 라는 의아함을 품은 채 그는 전화를 받았다. 
   「도날드. 웬일이야?」
   「웬일은 무슨. 너 대체 그동안 뭐 하며 살았니?」
   「뭐하긴. 칼럼 쓰고. 놀고. 먹고. 쉬고.」
   「그게 다야?」
   「글쎄...」
   「피해.」
   「어?」
   「당장 피하라고.」
   「」
   「뭔 말인 줄 몰라? 너도 대충 느낌 오잖아.」
   「정말...이야?」
   「장난 아니야.」
   「뻥 아니지?」
   「너 내가 언제 뻥치는 거 봤냐? 너 나 모르니?」
   「나 너 알아.」
   「그럼 피해. 어서 거길 떠.」
   「」
   「귓구멍 막혔냐? 실제상황. 긴급. 특수. 감 안 와?」
   「아니...」
   「쇠 빼.」
   「어? 쇠 빼? 뭔 쇠를 빼?」
   「특수 실리콘 초합금 탄성 반물질로 만든 그거. 귀마개. 너의 의뭉스러운 사고력. 너의 그 얼빵한 정신. 그 허접한 공상이 방해받지 않도록 너가 끼고 있는 그 가상의 귀마개. 그거 당장 빼라고. 야 임마 사이렌이 명화에 보면 귀마개 끼고 있든? 내 말 못 들었어? 또 딴생각하냐? 또?」
   「」
   「당장 떠.」
   「알았어.」
   「핸드폰 버리고. 감지칩 인체에 심어져있을 수도 있으니 탐지기로 확인하고.」
   「알았어.」
   「야 임마! 다시 한번 말하는데, 지금 상황 심각해. 어? 너 존슨 알지? 보리스 존슨.」 
   「자라목 증후군? 아니. 모딜리아니 그림 주인 말하지? 목 짧은 친구. 그래, 기억나.」
   「그래 걔. 걔 내가 미리미리 힌트 줬는데도 불구하고 막 빨빨거리며 돌아댕기기나 하고 툭하면 군침 흘리고. 어? 그게 뭐니? 어? 지가 무슨 용가리 통뼈야 아니면 허당 중의 허당이야. 웬만큼 여자들 뒤꽁무늬 쫓아다니느라 청춘 허비했으면 이제 철들 때도 안 됐니? 어? 웬만큼 눈독들여야 말을 안 하지. 낄 데 안 낄 데 막 들이대고. 낄 때 빠질 때 모른 체 눈치 없고. 어? 걔 허세 장난 아닌 거 너도 알지?! 무슨 007 영화 주연들이 죄다 자기 똘만이 생활 거쳤다는 둥 역대 뽄드걸들이 다들 막 자기 따라다니면서 제발 오빠 한번만 만나주라는 둥. (절레절레) 지가 무슨 보리스 베커 직계 선밴가 후밴가 된다면서 막 친구들한테 테니스채 잡을 줄이나 아냐 면서 거들먹거리더니. 어느 은둔 고수한테 제대로 깨지더니 결국 이길 때까지 승부 결을 보자고 해서, 그 친구 결국 아마 이민갔다지. 아마 그랬을 거야. 들리는 일설에 의하면 막 첩보영화처럼 신분세탁했다는 얘기가 있어. 소문이 자자해 그냥. 절대 뜬소문이 아니야. 결코! 아휴 말도 말어라. 근데 걔 별명인 허세 끝판왕! 그걸 누군가한테 빼았겼다는데 그게 누군지 모르겠다니까. 권위적인 허풍대회 본선 출선권조차 박탈당했데. 뭐 그건 그거고. 지금 현황이 이렇단 말씀. 때문에 너 다음 다보스 포럼에서 연락와도 가지 마. 프리메이슨이랑 일루미나티도 다 탈퇴해. 들어갈 수 있으면 어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 있으란 말야. 알겠어? 개구멍이든 뭐든 지금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라고. 어? 안 그래도 빌더버그, 시온파, 장미십자단, 스컬 앤 본즈. 다 명맥 끊겼거나 이어졌어도 물 흐려져서 걸물들은 다 떠났어. 폼잡기 좋아하는 마초 갑부들 잔치된지 옛날이란 말이야. 알겠어? 지금 세상이 그 옛날처럼 극소수 최상위에서 희박하디 희박하게 인맥 타서 입당 신청하고 받아주고 그런 세상이 아니야. 어? 지금은~ 어? 물 반 고기 반인데 누구 하나 입 딱 닫는 드라마에 나오는 '밀본' 막 그런 얘기처럼, 공기와 통념이자 시간같은 이치로 바꼈단 말이라고. 그 옛날 피라미드 최상층 위주에다 모차르트 같은 예술가들 그들 끼리끼리 결성했던 단체가 지금은 그렇게 바뀐 거라고 이 친구야. 알겠어? 뭐 아무튼~ 보리스 얘기하다 모차르트가 왜 나왔지? 왜 갑자기 아마데우스가 툭 튀어나와! 피노키오의 코야 아니면 뭐야. 흐흠. 
    그러니까 말이야, 어? 아 그러니까~ 특A+++ 정보 알려주면 받는 즉시 상황 돌아가는 거 알았어야지. 그게 뭐냔 말이야. 말 들어보니까 날마다 찾아왔다더라. 진짜 웃긴 게 뭔 줄 아니? 은퇴한 거물들만 딱 골라서 보냈대. 도대체 뒤에서 리모콘 누르는 애가 누군지 모르겠어. 
    처음에는 표도르 예멜리야넨코가 왔길래 사인을 부탁한 게 아니라 지가 해줬데, 참 나! 다음 날은 미르코 크로캅이 찾아왔길래 우쭐했데. 또 다음 날은 세미 슐츠. 또 다음 날은 파브리시오 베우둠. 그 정도면 눈치 챘어야지. 바보도 아니고 말이야. 결국 밥 샵한테 묵사발로 당했데. 제대로 때리지도 않았대. 어디 때릴 데가 있어야지. 말로 몇마디 윽박지르니까 바지에 오줌쌌대. 걔가 그 정돈데 넌 얼마큼일 거 같냐? 어? 상황 파악 안돼? 어? 너도 존말로 할 때 내 말 들어. 보리스처럼 개망신 당하지 말고. 알았어? 걔네들 개수작 장난 아니라니까 글쎄. 어?」
   「」
   「어디로 갈 건데? 갈 데는 있어?」
   「오라는 데는 없어도 갈 데는 많아.」
   「뭐? 가는 여자 잡지 않고 오는 여자 막지 않는다. 우리의 암구호 잊지 않았지?」
   「남자는 나이가 들면 힘이 밑에서 위로 올라오는지 몰라도. 난 아니다. 난 아니야.」
   「너 아직도 햄버거병 못 고쳤다냐? 허언증 안 나았어? 이런 쯧쯧쯧. 지금 이럴 시간 없단 말이야 이 친구야. 어? 암구호 B는? 혹시 까먹었나 싶어서.」
   「빽넘버 1번: 적은 건 적은 거다. 
    2번: 아내는 아무것도 몰랐는데 나중 전부 다 알아버렸다. 
    3번: 못 먹는 감 찔러나 보는 버릇 못 고치다 낭패를 면치못했다더라. 
    4번: 오빠 달려? 좋은 말로 할 때 오빠 좀 걷자. 누가 좀 나를 살려주세요, 제발 한번 만 봐주란 말씀. 
    5번: 제목은, 탕아 빈손으로 돌아오다. 
    6번: 꼬꼬댁거리기만 하는 암닭은 시끄럽기만 하지 닭알은 안 낳는다. 
    7번......
    그런데 내가 이런 얘길 왜 하는 거지?
    근데 내가 도대체 이걸 왜 해야 하지?
    그런데 내가 대체 이걸 왜 하고 있냐고!」
   「그걸 왜 나한테 물어?」
   「그럼 누구한테 묻냐? 별들에게? 그래. 그러자. 차라리 그게 좋겠다. 나도 벌써 그렇게 점찍었어. 내가 뭐 바보니? 나 바보 아니야.」
   「그래 너 바보 하지 마. 나만 천재 할 테니까.」
   「아니 근데... 가만 있어 봐. 내 심정 너한테 묻지 그럼 누구한테 묻냐? 어? 너 내 친구 맞냐? 어? 이 자식이...」
   「너 질문 까먹었지?」
   「어.」
   「것 봐. 묻지 말라니까.」
   「뭔가 이상한데. 왜 말렸지? 어쩌다 착착 감겨버린 건지 도통 모르겠단 말이야.」
   「알았어 알았어. 늬 마음 다 알아.」
   「안다고? 늬가 뭘 아는데? 늬가 뭘 아냐고.」
   「너 욕구불만이잖아. 많이 참고 있잖아. 난 임마 더 참고 있어. 알아? 이거 왜 이래? 보자 보자 하니까 너도 보리스처럼 되고 싶냐? 좋은 말로 할 때 도망가. 다 이 형이 생각해줘서 하는 소리야 임마. 어? 뭐해 안 뜨고.」
   「알았어. 알았다고.」
   「나중 형이 비둘기 띄울께.」
    그처럼 당분간 그의 정체성은 공상가에서 도망자로 탈바꿈하게 되었던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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