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 176

from 소설 2020. 10. 15. 16:11

    1

    올 것이 왔다. 진짜? 뻥이다. 때이른 풋사과가 호박처럼 제 발로 굴러오는 일. 그럼 안되나? 안되는 정도가 아니라... 말 말자. 숙녀에게 나이를 뭐 하러 묻나. 나대지 말란다고 순종적으로 말 들으실 분인가. 나서기 좋아한다는데 잔말 말고 따라가 드려야지. 우린 퍽 매정한 촌닭은 아니거든. 근데 그게 불여우든 순정파든 눈씻고 찾아봐도 아무도 없다. 내 이럴 줄 알았다. 플레이보이계에서 참 좋은 거 배운 결과다. 그럼 난 정말 인생에서 배운 게 다 그저그렇단 말인가? 그러거나 아니거나 결과적으로 가난하다. 사실은 사실이니까. 그게 중요하지. 그럼. 보아하니 넌 나의 유일한 기쁨이니 환생한 거 같다는 둥 다 뻥이다. 오빠 한번 믿어봐? 두고 보면 안다. 세상사가 흔히 그렇다. 기왕 말 나온 김에 한번 물어봅시다. 필자 맘대로 우리 조금은 친해졌다고 가정하고 말이오. 그러니까 말이지, 속는 셈 치고 행복업자한테 투자해서 과연 어떻게 됐나요? 다 그렇다는 말이 아니라, 그렇다니까 글쎄. 그래서 우리는 엉덩이가 무겁다. 입은 더 무겁다. 간질간질 응애응애 삐악삐악 잔베팅 잘 하지 않는단 말이다. 결국 홈런 아니면 뻔트! 그런 양반께서 왜 지금... (절레절레). 안다. 응석 지긋지긋하다는 걸. 투정 저급하단 거 어찌 모르겠나. 허나 야전을 누빈 노장의 관록미, 쏙 빼닮지는 못했을지언정 근처에서 얼쩡거리는 했으니 만큼. 따라서 우리는 인생의 비밀 대충은 알고 있다. 팔랑귀 구워삶는 거 우리보다 더 전문가 있으면 나와보라고 큰소리 떵떵...치기에 앞서. 왜 갑자기 귀가 간지럽지? 그러게 말이야. 그러든 어쩌든 마이크 잡은 김에 남자라는 동물에 대해 소상히 알려드릴까 말까.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숙녀에 대해 낱낱히 보고하면... 아아 그냥 하지 말자. 딱 괴로운 게 그거니까. 그러니까 남녀는 말을 섞으면 섞을수록... 아 글쎄 됐다니까 증말. 거 참 말귀 못 알아들으시네 그려. 근데 내가 뭔 얘기를 하던 중이었지? 몰라. 그걸 왜 알아야 하는데. 어쨌든 사랑론 다 필요없다. 어른들 농담삼아 하시는 말씀마따나 자식놈 키워봐야 다 소용없다 하시지 않나. 우리는 여자보기를 돌맹이 보듯 한다. 안 그래도 말수 없고 돈 없고 안 웃긴 남자를 누가 좋아하나. 할 말도 떨어진지 오래. 마감일에 치어사는 인생. 그래도 단 몇 명에 불과한 애호가들께 무정할 수야 있나. 다정한 남자로 자부하여도 여자들한테 인기 없을지언정 그분들께 그래서는 안되지. 하여 그래서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라는 연재 분량. 알고 보면 난 또 뭐라고! 뭣어 어째? 뭐가 어쩌고 어째? 농담이고.
    좌우지간 이제 정말 환상머신과 이별한 것일까? 무도회는 끝났다. 바보들의 행진조차 초대받지 못했다. 사랑은 없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낼모레 환갑인데도 불구하고 여자를 한번도 사겨보지 못했는데, 어? 사랑이 아름다운지 더러운지 우리가 어떻게 아나. 몰라. 오빠도 똑같아 = 여자는 다 그래. 단지 그 정도? 재미없다. 그런 거 알아서 뭐 하게. 늬가 드디여 미쳤구나? 라는 농담따먹기 오갈 친구도 없다. 먼저 연락 안 하는 친구 특징... 내가 저렇게 20년 살고 나니 친구 1명 남았다. ~라는 분 비꼬는 게 아니라 그분 성격도 알만 하다. 그러니까 인터넷에서 마우스동호회를 기웃거리고, 스트라이더 동호회 모임까지 나갔지. 그럼 정말 때가 때인 만큼 엑스트라의 제왕으로 우뚝 서기? 누구 맘대로. 신부들러리랑 백댄서는 뭐 아무나 시켜주간디? 허접한 러브콜조차 딱 끊겼다. 근데 난 말수없는 남자인데 거 어째서 마네킹이 앵무새나 된 것마냥 나불대고 있지? 유쾌한 탐색전 구경도 못하니까 그렇지. 그렇다고 타로점 보고 수소문해서 용한 점쟁이를 찾아가면 뭘 해. (느낌이겠으나) 먼 점쟁이가 더 용하다? 그래 봤자 타고난 팔자 못 고친다. 그분들한테 훈수받고 난다긴다하는 만담가들한테 조언들어서 운이 트일 거 같으면 이 세상에 행운아 아닌 사람 하나도 없겠다. 아니 그런가? 그러던 어느 날. 정말 거짓말처럼 마치 영화처럼 흡사 꿈결처럼 말이다. 난 어떤 황홀한 숙녀에게 첫눈에 반하고 말았다. 난 그녀와 홀딱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정말로? 뻥이다. 다 뻥. 개 뻥. 우리한테 애인이 어딨나. 남은 건 넉살. 푸념만 늘었다. 바텐더도 더 이상 우리를 반기지 않는다. 허당인 거 딱 탄로났는데 친한 웨이트레스 표정 보면 안다. 그런 의미에서 난 둔갑술을 익혔지. 허허허. 허나 변장술 허접해서 써먹지 않으니 다 까먹었다. 때문에 난 사교계에서 잊혀진 남자 축에도 못 낀다. 듣고 보니 재밌다고? 재밌긴 뭐가 재밌어. 그러지 말고 일단 뽀뽀부터 하고 시작하자. 뭐? 이 사람이... 이 양반 상태가 많이 안 좋네... 선생 거 참 방황 많이 아셨구나... 쟤 대체 왜 저래? ~라는 말 들을까봐 겁나기에 앞서 이미 난 찍혀버린 거다. 여 바텐더 없습니다 바텐더 남자입니다! ~라는 안내문 괜히 공지했겠나. (절레절레)! 
    근데 여긴 대체 어디지? 밑도 끝도 없이 혼잣말하다 내가 대체 어디까지 와버린 거지? 나는 놀기도 싫증나고 일하기도 재미없어서 사무실 근처를 산책한다는 게 너무 멀리까지 와버린 거다. 혼자서 이 생각 저 생각은 물론 심지어 혼잣말까지 긴 대사. 근데 저 앞에는 웬 간판에 씌여진 글씨가 제법 짧지 않네? 그건 이랬다. 





    2

    어디로 갈지 모르는 가상머신.
    뭐라고? 뭐 딱히 흥미로운 일도 없는데 일단 들어가보기로 하지. 그래서 딱 들어가려는데 인공지능 목소리가 들렸다. 돈을 투입구에 넣고 어쩌고저쩌고 하라는 거였다. 나는 짜증난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단지 순순히 따르기만 하면 되니까. 그렇게 절차를 거쳐 딱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 내부는 뭐랄까 TV에서 보면 투명 케이블카 있지 않나. 바닥이 훤히 보여서 저 아래 깨알같은 장면이 그대로 보이는. 근데 이상한 게 뭐냐, 바닥을 축으로 나와 180도 방향만 다를 뿐. 뭐 어디서 잘 본따 만들었네. 제법 그럴 듯해. 투자 대비 수익, 뭐가 나올지 모르는 자판기처럼 썩 나쁘지 않음. 때문에 잠깐 즐기고 딱 나가려는데. 출구 바깥으로 웬 회전문이 보였다. 내부가 언뜻언뜻 보일락 말락. 대충 둘러보고 나가기 뭐 해서 마저 보고가지 뭐. 그렇게 딱 옆 공간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Vivaldi / Recorder Concerto in c minor RV441 방금 전 180도 거꾸로 보았던 그 장면이 있는 그대로. 그건 뭐라고나 해야 할까, 허름한 술집에 걸려진 달력에 보면 유난히 야한 모델이랄지 멋진 풍경 있지 않나. 조는 술친구 옆으로 그 모델이 슥 나타나는 일, 연출일 테지만. 그 멋진 풍경 달력을 보며 최면에 빠져버린다는 게 그냥 환상의 영역까지 건너가버렸다고나 할까? 꽤 정교했다. 홀로그램 기술 좋다고. 이 정도면 나쁘지 않지. 혼자 보기 아까우니까 말이다. 이처럼 감탄함이 자연스러운 현상인데 왜 갑자기 가녀린 신경질이 나는 거지? 믿기지 않을 환영 그게 가짜가 아니므로? 아니면 뭐 정말로 저 끝까지 가보고 싶은데, 뿌리치기 힘든 유혹에 못 이긴 척 따라가기엔 내가 너무 새가슴이라서? 어쩌면 슥 한번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훑어보는 둥 마는 둥 그걸로 줄거리 알아버렸기 때문일 수도. 설계자의 의도는 가상머신 속 진짜 모험을 체험해보라는 권유...가 아니라. 아마도 가상머신 내부 건너편엔 또 다른 뭔가가 기다릴 거라는 예고. 예감하지 못할 만큼 난 순진하진 않은 걸로. 이대로 내 앞의 정경을 탐사하다가는 돌아가지 못할지도 모르고. 그런다고 영화처럼 예측하지 못한 악당한테 쫓길 리는 없을 것 같고. 추정컨대 가상머신 내부 건너편을 꼭 확인해봐야 할 것만 같았다. 
    그렇게 회전문을 나와 그쪽으로 갔다. 거긴 나일론이나 폴리우레탄 장판 같은 소재가 가로 5~10cm 세로는 천장 고정이요 하단 허벅지 정도까지. 하여 시원한 바람이 불면 내부가 보일 듯 말 듯 야시시. 뭐야 이거 고급 살롱이야 뭐야. 일단 들어가볼까? 야, 거긴 하다 하다 똑같은 장면이 90도로 눞혀져 있었다. 물론 내게는 그 구도일 테지만 그쪽 입장은 그 방향이 정상적인 중력. 그러니까 이건, 거꾸로 → 정면도 → 측면도? 난 최근 몇몇 새옷을 구입하느라 익숙한 습관, 즉 즉각 행동하기보다 시간을 벌어 신중히 구입하는 소비처럼. 우선 밖으로 나가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오늘 가상머신을 모두 결산봐버리면 결국 섭섭한 결말 뻔할 것만 같아서일 수도 있고. 아니면 아껴두었다가 좀 더 극적인 신비감을 체감하고야 말겠다는 추산, 없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난 일단 '어디로 갈지 모르는 가상머신'밖으로 나갔다. 오늘은 일단 철수. 





    3

    그 후 나는 어떻게 했을까? 여기서 낯설게 하기, 미술 수업에서 배우는 용어들처럼 드라마 편집 기법으로 요약해 설명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숱하게 듣고 보며 알고 빤히 예상 못할 수 없는 줄거리 구간이니까. 그 지겨운 2막을 무슨 20막으로 늘일 일 있나. 
    그렇게 나는 친구를 가상머신에 데리고 갔다. 결과는? 가상머신 하우스는 사라졌다. 친구녀석 반응은 생략하기로. 
    나중 또 나 혼자서도 그곳에 가봤다. 못 잊어서? 혹시 모르니까. 그렇다고 없어진 가상머신이 돌아왔겠나. 
    끝났네. 환상 시작도 하기 전에. 잊어. 덮자. 결국 정답은 기다리기로. 
    잡히지 않는 고매한 이상, 애초에 없었다. 머저리 같은 생각 겁나게 지겹다. 아니, 내가 원래 미련곰탱이. 그러다 TV 드라마를 한번 봐볼까 했는데 결과는, 난 또 뭐라고! 자, 그럼 이제 정말 새로운 인생을 시작해볼까? 남들이 듣고 짜증낼 뻥 증말 징글징글하다. 재미 하나도 없다. 색다른 관심사가 어딨어. 취미가 없으니 애착하는 장비발도 없다. 신나는 뭔가를 모색하고자 밖에 나가봐야 별볼일 없음. 사실 어느 정도는 예상한 허당운이라고나 할까? 3분의 마법을 들어도 마음은 들썩거리지 않으니. 때문에 그럼 난 정말 늙어버린 걸까? 우리는 커피 없으면 못 산다. 뻥이다. 커피가 당기지 않는 것도 아마... 짐작은 간다. 뭐 슬럼프가 아예 평균이 될거라는 징후는 아니겠지. 근데 정말 더럽게 심심함만 지속되면 그때 난 정말 어떡하지? 어떡하긴 뭘 어떡해. 누가 환영하든 말든 기분은 꽝. 예감은 옅음. 전성기 있지도 않았음. 청춘은 끝남? 사랑은 없음. 쾌락은 짧다. 아예 욕망부터 바닥. 만족과 안 친함. 투정만 늘어. 그런다고 누가 넉살대회에 등떠밀어준대? 능청도 지친다. 능글능글도 퍼졌다. 불끈불끈에서 멀어짐. 가슴만 두근두근. 그래 봐야 권태와 타성뿐. 만사가 귀찮음. 연애감은 더 둔화하기 어렵도록 망가짐. 분위기가 이러니 기발한 착상이 뭔 말인야. 여자말 번역기는 증말 심각한 수준. 이러니 무슨 환상머신을 꿈꾸며 여심을 쥐락펴락? 말도 안된다. 허영심을 밀고 당길려다 다들 피하기 마련. 허영심녀한테 쥐어터지지나 않으면 다행. 따라서 이제 정말 절박한 시기이니 만큼 특단의 카드를 꺼내들어야 하는데. 근데 뒷패는 진즉 바닥났는데 어쩌라고. 뭘 어째. 그래서... 때가 아니다. 좀 더 재미없어져 봐야, 아니. 폴짝 뛰기 전 움츠린 개구리처럼. 일단 생각 좀 하자. 속 없단 소리 섣불리 듣지 말고. 툭하면 못 말려, 걸핏하면 나대지 마. 바로 그 주인공이 될 수는 없지 않나. 
    그래서 나는 가상머신 관련 서적을 몽땅 샀다. 자료조사 의뢰도 고액에 맡겼다. 인터넷을 파헤쳤다. 오랫만에 독학을 시작했던 것이다. 





    4

    근거 없는 낭설에 불과한 정력감퇴, 확인할 길 없음에 앞서 시험을 어찌 하나. 사랑론에 대한 논점을 흐리는 허풍만 난무하는 공상. 누구 하나 듣고 싶지도 않음. 하긴 타인의 허영심 일기장을 뭇남성들이 굳이 알아야 할 이유는 없다. 그건 그렇다만 헛된 꿈과 거품같은 쾌감을 들었다 놨다 하는 오락산업, 또 없이 살기엔 너무 무미건조할 수도 있다. 허나 시간낭비야말로 막대한 비용. 공짜만큼 비싼 건 없다고 봐도 된다. 근데 또 이상한 게 잡생각을 줄인다고 해서 당장 야망이 실현되는 것도 아니다. 때문에 대망보다 소망을 편애하는 게 낫긴 나은데. 그래 봐야 마침표는 결국 운발이 크나크게 작용하므로. 따라서 결국 내 인생 성적표는 통장잔고 부족이요 연애사 현황은 극심한 가뭄. (절레절레) 뭘 해도 재미없음, 뭘 해도 성과없음. 마침내 전자와 후자를 양쪽에 꿰찬 건가? 그거 받고 뭘 하나 더 얹어야 트리플크라운이 완성될까? 완성은 무슨, 그게 뭔 자랑이라고! 그럼 기왕 쉬어간 김에 사랑의 불경기이니만큼 연애론 같은 거 대충 써서 유명해져볼까? 우리는 얼굴 팔리는 거 싫어한다. 내가 그 쉬운 작업 못해서 안 하는 게 아니다. 하오나 숙녀들한테 커피 무한대로 사줘봐야 나중 연락 끊기고, 대중의 기억 속에 안착해봐야 귀찮기 밖에 더 하나. 명테너든 전설적인 바리톤이든 여자의 마음이야 오페라 아리아 제목일 뿐이고. 우리는 남자! 어? 캬- 남자. 그래서 우리는 오빠라는 말만 들으면 미쳐버린다? 놀고 있다. 웃기시네. 미치긴 누가 미쳐. 미침 어지간히 좋아하시다고 글쎄. 오늘은 또 누구누구한테 홀딱 반했더라? 뭐 툭하면 환장? 어허. 그래가지고 어떻게 환상머신을 완성하겠나. 여심을 만족시켜도 일이 될까 말까인데. 하여간에 희망의 웜홀머신은 미완성으로 남겨놓고. 당장 발등에 떨어진 아니 내내 운명처럼 껴안고 살지 않을 수 없는 마감일 걱정이나 하는 수밖에. 
    그래서 나는 또 어딘가 은둔처로 떠나기로 했다. 거긴 당연히 로버트를 닦달해서 끝끝내 녀석을 추궁한 결과 알아낸 별장이다. 그동안 물색해둔 저 비밀장소는 그 어디에도 발설하지 않았다. 누가 물어보지도 않았으니까. 근데 왜 하필 이 때냐, 논리적으로 썩 나쁜 시기도 아니거든. 물론 그대는 정녕 누구시기에 로버트를 그렇게 물고 늘어지는 거지, 라는 의문점 있을 수도 있는데. 그냥 대충 그렇다고 보면 된다. 당신은 대체 뭐 하는 분이신지 모르겠지만, 어차피 여성잡지 얼마 팔리지도 않는다. 미스테리아 언제 있었는지도 모를 텐데 걔네들 운영자들도 내가 누군지도 모른다. 근데 난 어쩌다 이렇듯 유령작가 라는 직함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됐더라? 그걸 알면 무명과 친했겠나 품위유지비에 허덕이기를 즐겨하겠나. 어쨌든 난 떠났다. 
    중간 건너뛰고. 장면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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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어디 멀리 떠났을까? 뛰어 봤자 부처님 손바닥. 또 어차피 귀찮다. 집 떠나면 고생. 필경 난 장외홈런보다 뻔트를 좋아한다는 걸 어찌 숨기나. 어쨌든 내가 도착한 비밀스런 장소는 다름 아니라 아지트였다. (절레절레) 내부에 별다른 새로움은 없었다. 대화 상대로 때마침 크리스탈이 있었고. 
   「오빠 어디 갔었어? 얼굴 보기 힘드네.」
   「무슨 소리야, 여기 출석률 내가 1위인 거 몰라? 너가 바쁘니까 그렇지. 나 인기없단 걸 꼭 그렇게 표현해야 할까? 비교된다.」
   「왜, 그럼 오빠 나한테 묻어가는 거 어떠슈?」
   「묻, 뭐? 너한테?」
   「아니다. 오빠가 무능력하기를 하나 자존심이 없나. 그래도 슬럼프 탈출하기 힘들면 말하셔. 내 친구 소개시켜줄께.」
   「뻥치지 마. 안 속아.」
   「그럼 어떻게 깔삼한 숙녀 내가 대신 꼬셔줄까?」
   「뭣이 어째?」
   「왜, 쌈빡한 건수 환영하고 싶어도 통 오지를 않잖아.」
   「너처럼 고상한 여인이 어쩌다 그리도 아줌마 정통 통속화법을... 내 사정 빤히 알면서, 어? 설마 쟤가 나한테 배운 건가... 이보다 더 허접한 궤변이 이 세상에 또 어디 있단 말인가! 진짜로 너 남자친구랑 헤어졌어? 아니면 내 입이 방정인 건가.」
   「나 남자친구 없는 거 알면서. 그러지 말고 뭐 재미난 일 있으면 하나 털어놔 바.」
   「다짜고짜 명령조냐 넌 친애하는 오빠한테?」
   「왜겠어. 왜냐하면 남달리 왕성한 호기심 시든지 오래니까.」
   「근데 너 정말 아까부터 꼭 남자처럼 말하네. 너 남자가 그렇게 좋냐?」
   「내가 뭐 오빠처럼 여자에 환장하는 그런 빽넘버인 줄 알어? 좋은 말로 할 때 웃기지 마. 하나도 안 웃기니까. 오빠 재미없어진지 오래 됐거든.」
   「뭐라고? 허당으로 말할 것 같으면 못 꼬시는 여자 빼고 다 꼬신다. 말만 해. 너가 찍으면 이 오빠가 싹 다 꼬셔줄께.」
   「뭐라고? 뭣이 어째?」
   「아, 증말! 따라하지 마.」
   「따라하지 마. 식상하다. 그러니까 여태 혼자지. 그나저나 늑대가 애걸하는 이상은 무엇일까? 여우가 갈망하는 행복감 논해 뭐 하나.」
   「너 봄타니? 근데 지금 가을인데.」
   「알아. 근데 오빠 자칭 가을남자라면서 패션이 그게 뭐니? 응? 자네 표정이 왜 그래? 어? 넌 정체가 대체 뭐야?」
    그처럼 말 같지도 않은 덤앤더머 대화는 대충 마무리됐다 치고. 곧이어 나는 저번에 봤던 어디로 갈지 모르는 가상머신에 대해 그녀한테 주저리주저리 떠들었다. 근데 반응을 보니 퍽 싫어하지 않는 눈친데? 먹이를 탐내는 고기는 잡힌다.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 못난 놈이 잘난 체 모르는 놈이 아는 체 없는 놈이 있는 체한다. 아니, 아니 것도 아니고. 그 말이 아니라. 
   「그래서 오빠 마음이 뒤숭숭하시다? 우중충한 표정이야 다 아는 거고.」
   「그래서 말인데, 있잖아. 그게 그러니까 내가 뭔가 그게 그러니까 말이지. 아, 쫌! 할 말 까먹었잖아? 이게 다 너 때문이야. 농담이야. 나 때문이야. 아니야. 몰라.」
   「오빠. 나한테 맞고 싶어? 백댄서 양말에 빵구난 얘기 그만 좀 하자. 응?」
   「이거 하나만 더. 앞서 말한 일 때문에, 있지. 있잖아. 응? 들어 봐. 금방 끝나. 들어보라고.」
   「아, 듣고 있어.」
   「말하자면 그 때문에 난 드문드문 사물이 비틀어져 보인다고나 할까? 전에 다 똑바로 보이던 것들이 말이야. 약간 (몸짓) 이렇게. 살짝. 기우뚱. 응? 뭔 말인지 알지?」
   「오빠. 오빠 고개가 삐딱하네. 그니까 기울어 보이지. 어딜 쳐다 봐? 몇 시 방향인데. 볼 데가 많으니까 그렇지. 한눈팔기 그거 오빠 특기잖아. 늘상 먹잇감 안 나타나나 레이다는 상시 풀가동. 어? 오빠 사진관에 가서 사진 찍어봤지? 딱 그때 사진사 아저씨가 오빠한테 뭐랬어? 어? 고개 똑바로! 자세 잡아줬어, 안 그랬어? 어? 오빠 고개가 쳐져서 일부러 틀어보는구만 그래.」
   「넌... 넌... 거...」





    5

    다음 날이 됐다. 나는 모스맨 연구소로 놀러갔다. 차마 미련을 떨쳐버릴 수 없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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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 뭐야. 또 너냐?」
   「넌 또 뭐야?」
   「너 말고 고위급 없어? 너 언제부터 여기서 일해? 나한테 귀뜸이라도 해줬어야지.」
   「왜, 너가 나 더 좋은데 꼿아줄 수 있는데. 또 그런 헛소리하시게? 됐다.」
   「야, 에드워드. 넌 내가 키운 거나 마찬가지야. 알아?」
   「무슨 소리야. 내가 널 엎어키웠지. 말은 바로 하자.」
   「근데 우리 언제 철들까? 아직도 이처럼 꺼벙한 말장난 계속 해야 하냐?」
   「그게 다 너 때문이야. 난 안 그러고 싶은데 자꾸 너한테 말리는데 그럼 난 어떡하냐. 응? 너가 속차리면 다 돼. 어?」
   「속 없는 건 너도 마찬가지야. 엉뚱함이든 허영심이든 난 너한테 상대도 안돼. 알아?」
   「몰라. 근데 웬일로 납셨냐?」
   「웬일은. 너네 웜홀머신 테스트나 할겸해서 왔지 뭐.」
   「그거 완전체 될 가능성 희박하다는 거 늬가 더 잘 알잖아. 웜홀머신 영원한 미완성품으로 남을 꺼야. 우리도 손놨어.」
   「뭐? 그럼 안돼. 내가 부탁할께. 3일전으로 날 보내줘. 딱 15분만 놀고 올께.」
   「그게 넌 가능하다고 생각하니?」
   「되든 안되든 임상실험 내가 해줄께. 좋든 싫든 그거 밑그림 그린 거 나다 너. 알지? 그 최초 기획자는 바로 나란 말이야.」
   「아는데. 아 참 나 이거 증말... 이제 이거 완전히 폐기된 프로젝트거든. 언제 고물상으로 넘기든가 할 거야 진짜.」
   「넘기긴 왜 넘겨 이걸. 어? 얘가 돌았나 미쳤나. 어?」
   「왜, 과거로 돌아가서 꼬시고 싶은 여자라도 있냐?」
   「나 여자 관심없다는 거 너도 잘 알잖아. 알만한 친구가 거 어째 내 속을 몰라줘, 어?」
   「너도 알겠지만 웜홀머신은 타임머신이 아니야. 근데 왜 그래?」
   「그럼 넌 뭐 우머나이저냐? 나도 터미네이터가 아니야. 누가 저게 환상머신이래?」
   「너 또 시작했냐? 말 같지도 않은 헛소리 그만 좀 하라니까 글쎄. 날 좀 내버려 둬.」
   「내 말 좀 들어봐, 그게 그러니까 말이지,」
   「듣긴 뭘 들어. 안된다니까 증말.」
   「잔말 말고 듣기만 해. 너한테 좋은 얘기니까. 너 여성환상 1.5에서 누구 마음에 드는 애 있어? 걔네들 내가 꽉 잡고 있다는 거. 알아, 몰라?」
   「어허! 너랑 나랑 보통 사이냐? 사람 섭섭하게 왜 그래? 나 그렇게 속좁은 남자 아니다. 응? 내가 일부러 너 생각해서 생각 한번이라도 더 하도록 밑밥 깐 거 몰라? 알아, 몰라? 다 나나 되니까,」
   「생색은 그러고 보면 늬가 나보다 한수 위다. 인정!」
    그렇게 나는 웜홀머신으로 들어갔다. 기어서, 가 아니라 걸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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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ach / Magnificat BWV243
    그 외 조명 번쩍번쩍. 효과음 퐁퐁. 진동 두근두근. 황홀함 으리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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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느긋하게 웜홀머신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것 봐, 내가 안된다 그랬자나. 내가 말했을 때 들었어야지.」





    6

    뻔뻔스러운 무료함. 한심한 지루함. 끝내주는 진부함. 뭘 해도 재미없다. 항상 따분하다. 늘 그랬다. 언제나 그렇지 뭘. 재미없지 않으면 그게 이상할 뿐. 그렇다고 이대로 더욱더 심심해지도록 방관만 해야 할까? 허나 타락마를 탈 수는 없다. 허당이기는 하나 막살기는 싫단 말이다. 그럼 어떻게 변화를 시도할까? 욕구불만이 지속된 끝에 성욕마저 바닥. 새로움에 대한 의욕은 비리비리. 이처럼 싫증과 변심이 양쪽에서 포박한 일상. 대체 어떻게 타개한담? 근데 굳이 꼭 일부러 능동적으로 나설 필요 있나. 피동적으로 행운이 스스로 찾아오던가, 아니면 때 되면 알아서 탄력받겠지. 긍정적인 소녀감성마따나 아저씨 낙관주의가 딴 게 아니니까 말이다. 맞다. 그렇다. 다정한 마음은 세상을 아름답게 보기 마련. 정말 그렇다. 물론 말만 그렇다. 이 나이에 곧이곧대로 남의 다 믿으라고? 팔랑귀가 인생을 그 어디로 끌고 갈지 말도 못한다. 그래도 아마 끝나버린 짝사랑복 눈부시게 부활할지 예쁘도록 환생할지 또 혹시 모른다. 흐흠. 허허허. 호호호. 빼곡한 일정은 다정하다. 뻥이다. 갈 데도 없고 핸드폰 있어 봤자다. 그래도 말이다 음..음. 사는 건 뭐랄까 꽤 즐거운 일이다. 진짜로? 뻥이다. 케케묵은 소원과 구식탱탱묵은 대망은 잊혀진지 오래다. 이처럼 아찔한 아름다움 매혹된 적은 일찍이 없었다? 개 뻥. 숱하게 많을 뿐. 여성잡지2 말마따나 같이 살아보면 알게 된다고도 한다지? 어쩌면 그럴 수도 있고. 그건 그렇고. 말 꼬리에 붙은 파리가 천리를 간다는데. 어디 은근슬쩍 환상적인 모험에 묻어갈 일 없을까? 있을 턱이 있나.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바램. 매가 꿩을 잡아 주고 싶어서 잡아 주나? 남 좋은 일을 왜 하나. 예술적인 광고가 어디 소비자 생각해줘서 허상을 예쁘게 포장하냔 말이다. 다 지들 먹고살자고 하는 일. 어쨌든, 늬가 드디어 미쳤구나 미쳐도 아주 단단히 미쳤구나! ~라는 대사 현실에서 읊을 기회가 없다는 거만 알면 된다. 엑스트라 누가 시켜주지도 않는다. 신부들러리 아무나 하는 거 아니다. 병풍도 다 병풍 나름. 공짜로 우주여행을 어떻게 하나? 어차피 간접경험도 그저그렇다. 그렇듯 소망은 썩었다. 미소는 곯았다. 사과는 풋풋하다. 환상머신은 나쁘다. 멜로드라마 더럽게 재미없다. 이건 아니다. 이건 정말 아니다. 
    따라서 나는... 나는... 모스맨 연구소를 재방문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뭔가 있을 것 같거든. 그게 뭔지는 몰라도 어딘가 수상해. 어떤 낌새가 엿보이지는 않는다만. 그래도 어딘가 모르게 의뭉스럽다고. 너무 혹하면 그건 꾀임이고. 왠지 끌리는 마성의 기운이라고나 할까? 그런 게 느껴졌다고나 할까 말까. 꼭 그처럼 억지로 갖다붙이는 직감이 아니라도 내가 그곳에 가야 할 이유는 많았다. 굳이 여자의 육감을 빌릴 필요가 뭐 있나. 풍운아의 경기감각 딱 보면 감 온다. 그런즉슨 갈고닦은 잔꾀가 녹슬지 않도록 무던해 애를 쓰던 시절은 지났다. 젊음은 끝났다? 그게 아니라. 제7의 전성기에 대한 열망이 마음대로 쓱 고개를 들었을 뿐. 인생이란 곧 재미없음과 심심함 가운데 몇몇 뻔트가 우리를 달래주는 것. ~이 아니라고 썩 부정하기도 다 귀찮으니까. 근데 그게 뭐 어쨌다는 거야? 결코 바닥날 일 없는 다변가의 할 말, 상상만해도 멈칫하기 마련. 바로 그 수다쟁이가 나이면 곤란하므로, 따라서 나는 잡생각을 없애기 위해서라고 모스맨 연구소에 놀러가야만 했던 것이다. 
    중간 건너뛰고. 장면 전환.
    중간 건너뛰고. 장면 전환.
    중간 건너뛰고. 장면 전환.
    이번에도 에드워드 밖에 없었다. 뭔고 하니 굳이 설명 듣지 않아도 알만 했다. 걔네는 모스맨 연구소 2 즉 신사옥을 새로 만들어 나갔고 구닥다리는 에드워드한테 헐값에 넘긴거고. 딱 봐도 그랬다. 어리숙한 녀석. 어디서 내숭을. 우리끼리 할 얘기가 더 남은 거도 아니고. 사소한 말장난 옮기기는 난처하고. 하여 중간 과정 생략하고 어떻게 내가 녀석을 구워삶았다치고. 
   「웜홀머신은 포기했다만. 너 저기 한번 들어가볼래?」
   「저건 또 뭔데?」
   「들어가 보면 알아. 너 나 알지?」
   「너 나 믿냐?」
   「나 여자 좋아한다.」
   「그럼 난 남자 좋아하냐?」
   「지금 그 말이 아니잖아.」
   「에드워드. 난 아니다. 난 아니야.」
   「누가 아니야. 지금 그 얘기가 아니라니까. 늬가 그래서 여자가 없는 거야. 넌 그러니까 뭘 해도 안된다고. 잔말말고 어서 들어가기나 해.」
   「근데 최소한의 설명은 해줘야 하는 거 아니니? 저게 무슨 핀란드식 사우나야 아니면 비너스 감성머신이야, 응?」
   「너무 많이 알면 재미없어.」
    그렇게 나는 이름 모를 대형 상자로 걸어들어갔다. 
    결과는? 역시나 달력에서 봤던 멋진 풍경. 시력측정기에 보이는 화면. 마이크로소프트 구형 윈도우 초기 배경화면. 기타 등등. 향기는 샤넬 넘버 5? 윽 촌스러워. Handel / 명랑한 사람, 슬픈 사람, 온화한 사람 HWV 55. "내 말 들리니?" 에드워드의 말은 에코로 처리됨. 진동은 무엇을 닮음. 기타 효과음 끝장. 한데 여기서 끝이냐? 그럴 리는 없다. 바로 그때 뭔가 변화가 일어났다. 한때 내가 믿었던 세계7대 불가사의 같은 일이라고나 할까? 능청 작작 좀 부리고. 사실만 간략히 말하자면 이랬다. 정말 초미세 실사화라서 정말 손을 뻗고, 걸어가서 느껴보려던 그 정경이. 초침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전자시계말고 아날로그 시계의 초침은 크게 나누어 2가지로 나뉜다. 째깍째깍, 부드러움 바늘 움직임으로. 이번에는 후자였다. 그러니 내 정신이 온전함에서 심신분리로 바뀌지 않고 배겨? 슬슬 난 저절로 유체이탈에 탄력받고 말았다. 그렇게 정신을 잃고 쓰러진 것이다. 





    7

    어디서 깨어났지? 더 이상 공간이동은 없었다. 말도 안되지. 뭐 웜홀머신?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얘기를. 몇몇 비밀스런 줄거리는 몽땅 진실이었으나. 그거 빼고 나머지는 드라마나 영화로 나오면 그때 판단하기로 하고. 아무튼 세상사가 그렇다. 문 연 놈이 문 닫는다. 근데 내가 실험기 안에서 깜빡 잠이 들어기 때문에 이번에는 에드워드가 날 깨웠다. 선생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됩니다 어쩌고저쩌고. (때로는) 무대책이 상책이다. 나는 계속 자는 척했다. 그러니 또 녀석은 너 자는 척하는 거 다 안다나 뭐래나. 그러게, 어? 그러니까 말이지 녀석은 완성시키라는 웜홀머신은 내버려둔 채 이게 뭐냐고. 차 떼고 포 떼고 거의 성공할 듯 말 듯 말만 미완이지 거의 완성된 거나 다름없던 환상머신. 내가 아는 자료를 모두 전수해줬으면 뭐 하나 만들 때도 됐겠다. 근데 걔는 날이면 날마다 여기서 뭐 하는 거지? 못된 고양이 잡으라는 쥐는 안 잡고 씨암탉만 잡는다고 알만 하다 알만 해. 그렇게 나는 실험기계에서 딱 나왔다. 근데 내가 나오자마자 저기 저 웜홀머신에서 웬 개가 한마리 걸어나오네? 거의 나랑 간발의 차이로. 견종은 비글이었다. 
   「에드워드. 너 비글 키우니? 아니, 언제부터?」
   「나 개 안 키워. 나도 처음 보는 앤데.」
   「너가 쟤를 처음 본다고?」
   「너도 그렇지? 나도 그래.」
   「뭐가 그래!? 어? 너한테 비글이 웬말이니. 너랑 비글이 어울린다고 생각하냐? 넌 불독이 어울려. 것도 정통 불독. 톰과 제리에 나오던.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뭘 그렇게 생각해? 나 쟤 처음 본다니까 글쎄. 거 참...」
   「정말이야? 그럼 쟤가 저기 어떻게 들어갔는데?」
   「나도 모르지.」
   「저 안에... 너 아까 그랬잖아. 웜홀머신 작동 안된다고.」
   「그랬지. 그랬어. 누가 아니래? 난 뻥 안 쳐. 나는 있는 그대로 말했는데 왜 그래?」
   「그게 그러니까 저 비글은 밖에서 이곳으로 들어오지는 않았고. 그럼 뭐지?」
   「어디서 왔겠지.」
   「웜홀머신 가동 안된다며?」
   「그래. 가동은 안돼. 다만 보낼 수는 없는데 누가 오는 건 못 막겠지? 안 그러니?」
   「」
   「너 통장잔고 얼마 있어? 나한테 1장 꼿아줄 수 있어? 폰뱅킹이든 인터넷뱅킹이든 방법은 많은데 돈이 없잖아. 근데 난 너한테 1장 보낼 수 있어. 뭐 정말 보내주라고? 미쳤냐 내가 너한테 1장을 투자하게. 세상에 공짜는 없어~! 넌 맨날 사랑은 없다는 둥 우리는 오빠라는 말만 들으면 미쳐버린다는 둥 허황된 잔소리만 재탕삼탕이 특기인지 모르지만. 난 아니다. 어? 난 아니라고. 우리는, 한다면 한다.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고. 너처럼 내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줄 아니? 착각하지 마. 내가 너랑 같냐? 내가 무슨 허접한 푼순 줄 아니? 너도 그러니까 이제 그만 찌질함 졸업하는 게 좋을 거야. 너 언제까지 꺼벙함 껴안고 살 건데? 지겹지도 않니? 어? 너 잔꾀 바닥난지가 언젠데 아직도 그 모양이야? 너 옛날에 뉴욕 5번가에서 지하철탈 때 꾀죄죄한 복장으로 한적한 좌석에 딱 앉으니. 앞에 앉은 숙녀가 쳐다봤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것도 여자들만 아는 표정으로 말이야. 응? 기억나, 안 나? 그게 늬 일이지 내 일이니. 근데 내가 뭐 한다고 너한테 설교하면서 정력을 낭비하지? 그만하자. 재미없으니까.」
   「그럼 쟤 누가 보냈는데?」
   「그걸 내가 알면 여기서 이러고 있겠냐?」
   「에잇~ 말도 안돼. 밑도 끝도 없이 쟤 혼자 어디서 여기로 뚝딱 공간이동했다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말이 되는지 안 되는지 너한테 믿으라는 말 나 한 적 없다.」
   「왜 그래 갑자기 진지하게?」
   「진짜니까.」
   「정말이라고?」
   「내가 뭐 한다고 너한테 뻥치겠냐. 너 나 알지?」
   「내가 널 모르냐?」
   「그거라고.」
   「근데 내가 널 다 아나? 아직 모르는 게 남지 않았을까? 것도 많이.」
   「그래서 넌 아마추어 난 프로. 어? 이제 좀 이해가 되니?」
   「뭐? 뭐가 어쩌고 어째?」
    그렇게 모스맨 연구소에서 나는 나왔다. 녀석이야 애완견이랑 정답게 살면 그만이고. 나는 나고. 무슨 말이 되는 얘기를 해야 믿든 말든 할 거 아닌가. 뭔 밑도 끝도 없이 비글이 지 혼자 짜잔? 개 풀 뜯어먹는 소리. 어디서 약팔려고. 그렇게 나는 고독한 문학도로 변신했다. 난 다시 외로운 환상머신 연구생으로 돌아온 것이다. 
    심심함과 재미없음을 타개하기 위해, 일단 무작정 빨빨거리며 나돌아댕기라는 무언의 압박. 무시하면 그만. 그렇다고 그 허탈감을 방탕과 퇴폐미로 벌충해? 아니 될 소리. 결국 이제 와서 재물운의 불행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게 된 셈이란 말인가. 아니지. 또 몰라. 혹시 알아? 자, 그럼 이제 풍운아의 미결산 이익을 본격적으로 따져볼까 말까. 하지 말자. 그걸 뭐 하러! 그래도 궁금하단 말이야. 뜬금없이 의아할 수도 있거든. 호기심를 어떻게 내팽게치나. 그래서 당장 무엇이 궁금한고 하니, 은근 허당이 아니라 은둔 허당으로써 숨겨둔 미실현 이익은 무엇일까? 미실... 뭐라고? 뭐가 어쩌고 어째? 흥분하지 말자. 내친김에 정력도 아끼고. 뭐? 됐고. 좌우지간 말썽꾸러기의 밝은 미래를 예견해서 뭐 하나. 난봉계 퇴출감한테 뇌물 받고서 삼류 점쟁이가 어설픈 낙관주의를 남발하라고? 누구 맘대로 희망찬 미래의 선명함을 트집잡으려고. 의미 없다. 비전은 더 없고. 뭐 아무튼 기왕 할 말도 떨어지고 엉덩이도 근질근질하지 않으니, 다정한 행복 때문에 설레기를 하나 부드러운 쾌감 때문에 들뜨기를 하나. 그처럼 신나는 미래를 점춰볼 시간에 좋게 소파에 자빠져 TV나 볼까? 어차피 더럽게 재미없어 할 꺼 뻔할 뻔자. 그러니까 행운의 불확실성에 찬사를 보내는 게 곧 인생인데. 다들 아시겠지만 삶이 어디 내 맘대로 되냔 말이다. 난들 뭐 이렇게 살게 될 줄 알았수? 라는 말 뻔히 상상됨. ~을 넘어 언제든지 어디에서나 환청도 무뎌진다. 뭐 그건 그렇다 쳐도 우리네 연애사 침체기는 정녕 불경기에서 대체 언제 빠져나올 수 있단 말인가. 허나 요정의 신비주의와 천사를 홀딱 반하게 만드는 멜로드라마가 누구에게나 익숙하다면 그게 어디 환상인가? 한정판이 괜히 있냔 말이다. 그래서 인생이라는 도박판 아니 건전한 경주를 내게 유리하도록 만들어야 하는데. 팔이 짧어. 세칭 일컫기로 금수저가 아니야. 그렇다고 미남과 성우와 재주꾼을 좋아하는 여자들만 탓할 수 있나. 그분들 애정하다가 어차피 우리 허당들한테 넘어오는 게 순서이긴 하니 뭐 그러려니. 근데 또 그 얘기가 왜 나와? 내 말이 바로 그 말이라니까 글쎄. 이대로 질주하다간 사랑의 포로는 커녕 공상만 하다 날새겄네. 때문에 난 정말 상상병 의존도를 줄이고, 숙녀들한테 인기 있는 남자이고 싶어졌다. 아니?! 실제로 버는 돈 절반을 그녀들 커피사주는 데 몽땅 썼다. 반재산 투자. 근데 결과는? 다 떠났다. 싹 다 갔다. 한 명도 안 남았다. 나만 팽당한 거다. 하여 결론은 플레이보이 연애사에서 전례 없는 불황. 어? (절레절레)! 그럼 이게 다 사랑론 칼럼을 남발했기 때문에, 따라서 통상 사랑의 비밀은 누구에게나 하향 평준화되었으므로, 고로 파랑새 인플레이션 효과라 아니 할 수 없는데. 너도 나도 팔색조요, 너는 우머나이저 나는 터미네이터 일색. 그게 다 자업자득이란 말이냐고. 안되겠다. 이저럼 주춤하다간 영영 찌질한 허당으로 눌러앉지 말란 법도 없다. 따라서 더 허접해지지 않기 위해서 난 뭔가 행동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다. 허나 품위유지비 저조는 정말 끈질겼다. 좀처럼, 이 아니라 간지러운 껀수는 구경도 할 수 없었다. 아예 사람들이 다 어디로 숨어버렸던 것이다. 그럼 이제 어떡한담? 뭘 어떡해. 어떡하긴 뭘 어떡해! 꼬리가 길면 밟힌다. 따박따박 잔소리를 반길 정황이 있고 벌렁벌렁 혼자 흥분감을 다스릴 적기가 다 따로 있는 법. 그래서 난 갈 데가 사무실 밖에 더 있나? 그러다 뭐 쥐구멍에 볕 들 날 있던가. 코끼리 뒷걸음질치다 너구리 잡겠지. 못 잡을 수도 있고. 아니면 그래도 뭔가 아쉽다면 또 다 방법이 있다. 떡밥뿌리기니 일단 뻔트 먼저 대본다는 둥 우리의 관록미는 끝이 없단 말이다. 근데 그 카리스마 단지 말뿐? 현란한 혀놀림 증말 징글징글하다. 아조 말만 말만 허세 세계챔피언감. 대체 언제까지 허풍으로 입에 풀칠하고 살 생각인데? 속도 없어. 거 참 말 더럽게 많다고. (절레절레)





    8

    최근 에드워드 거동이 수상했다. 거리에서 마주칠 때, 인스타그램, 들리는 소문...... 미녀를 1주일이 멀다 하며 갈아치움. 그럼 정말로? 혹시... 웜홀머신으로 당도하자마자 귓가에 최면가를 슥 불어넣었을까! 아니면 그 옆에 있던 실험기로 숙녀들 혼을 쏙 빼놓은 걸까. 대체 뭐지? 녀석이 대관절 어떤 방법으로 그처럼 전성기를 구가할 수 있느냐고. 이건 말이 안되거든. 나는 그런 에드워드의 믿을 수 없는 난봉기를 보며 충격받았다. 당연하지. 그렇다고 저속한 표현으로 빡치지는 않았다. 단지 말이 그렇다뿐. 허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뭔가 있는 게 틀림없다. 아니면 그런 말도 안되는 연애 때문에 녀석 입이 귀에 걸리는 일들이 연속적으로? 말 같지도 않은 미스테리. 하오나 사실인 걸 어떡하나. 꼭 녀석이 내 라이벌은 아니겠으나 영화 장르처럼 우정이란 단어도 간지럽긴 마찬가지. 괜히 나만 팽당한 것마냥 왠지 울적한 기분 달랠 수가 없었다. 뭐랄까 말하자면 부러워서하는 말은 아니다만 나는 웜홀머신의 정체를 꼭 벗겨버리고야 말겠다고 다짐했던 것이다. 이건 다시 없을 좋은 기회가 틀림없다. 일고의 과장없이 거짓말 하나 보태지 않고 말하자면, 뭔가 복잡한 내막은 없을 게 뻔하고 얄팍한 수작이라는 한꺼풀만 벗기면 끝. 포장지를 깠더니 더 야릇한 포장지가? 그럴 리는 없다. 내가 녀석을 잘 알거든. 괜히 모스맨 연구소 1기 멤바들이 알맹이는 빼가고 껍데기만 에드워드한테 넘기지는 않았을 테니까. 녀석이야 뭐 허당이니까 얼마에 그걸 양도했는지 꼬치꼬치 물어보면 얼굴 어두워질 거 확실하고. 아무튼 그래서 나는 야심한 시각에 어떻게 어떻게 웜홀머신이 있는 사무실 내부로 진입하는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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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웜홀머신 내부에서 비밀통로를 발견했다. 들어갔다. 따라갔다. 계속 갔다. 멈출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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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체 이 길이 어디까지 연결되어 있는 거지? 
    그러다 숲이 나왔다. 상시 개방하는 수목원도 아니요, 초갑부 소유 사립지처럼 멋지지는 않다만, 허나 1세기에서 단 몇 퍼센트 기간만 개방하고 나머지는 은밀하도록 조용히 놔두는 왕궁길. 그와 흡사했다고나 할까? 대체 어떤 원리 때문인지는 차차 파고든 결과 알 수도 있고 모를 수도 있는데. 녀석 대체 뭔 꿍꿍이를 현실로 옮겨놓은 건지 신통방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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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숲길을 걷다 도심지로 보이는 정경이 저만치 보였다. 나는 더 힘을 냈다. 그렇게 좀전에 봤던 주택가에 도착했다. 이제 보니 거긴 우리 동네였다. 내 집과 사무실 중간쯤. 근데 바로 그때 저기 저 인간은.... 저 사람은 바로, 나잖아? 뭐야 이거! 동시에 같은 시간대에, 것도 같은 공간에 1개체가 2로 분리되어 공존할 수 있다고? 물론 뒷모습은 나였다. (정)옆모습은 안 보였다. 살짝 측면은 보였다. 아무리 봐도 나였다. 나는 그 인간을 따라갔다. 그렇게 녀석은 내 사무실로 들어가려고 했다. 나는 이대로 놓쳐버리면 안된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뛰었다. 아니, 막 뛰려던 참이었다. 바로 그때 옆에서 에드워드가 톡 튀어나왔다. 그렇게 날 가로막더니, 
   「따라가지 마.」
   「」
   「돌이킬 수 없을 테니까.」
   「」
   「설혹 뭔가 심증이 사실과 일치한다는 걸 알게 되어도」
   「알게 되어도?」
   「득보다 실이 많을 거야. 훨씬! 뭔 말인지 알지?」
   「아니, 아니 그게, 아니 난...」
   「근데 너 어디서 오는 길이니?」
   「」
   「너 나한테 빚진 걸로 하자.」
   「」
   「갚으라고 독촉하지 않을 마음의 채무.」
   「」
   「알아. 이것과 네가 애초에 넘겨준 환상머신 초본. 내 말은 그러니까, 그 둘 퉁치자는 말이야. 알겠지? 알아, 몰라? 아무튼, 절대, 따라가면 안돼. 알았어?」
   「」
   「그만 술이나 먹으러 가자.」





    9

    나는 통보없이 모스맨 연구소에 놀러갔다. 
    그렇게 곧장 사무실로 들어가기 전 일단 내부에 누가 있나 창문으로 살펴봤다. 
    그런데 창문 너머로 마라가 에드워드로 변장하는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아니, 저년이! 
    일부러 염탐할 의도는 없었다. 근데 마라가 옷 갈아입는 장면도 아니고, 걔가 에드워드로 변신할 줄이야 누가 알았겠나. 
    그래? 그러면...! 그렇다고... 어라? 얘 봐라. 어쭈, 그래?
    그건 뭘 뜻하지? 미녀를 1주일이 멀다 하며 갈아치웠던 일은... 다 마라 친구들-동료-선후배들일 테고. 
    그럼 왜? 아마도... 비밀스런 종신계약 때문이라니.
   「이제 알겠다. 그럼 그렇지. 그 착한 위인. 선량한 촌놈. 고지식한 촌닭나리 에드워드께서 버뮤다 처자들을 다 따먹고 다녔을 리가 없지. 허허. 나도 나다. 깜빡 속을 뻔 했다니. (절레절레) 이제 알았어.」
    그럼 에드워드는 어디로 갔지? 나는 미스테리아 소유 별장으로 곧장 떠났다. 
    위치추적 화근이 될 만한 그 무엇도 함께 하지 않은 채 말이다.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미스테리아 소유 별장 도착. 어렵게 어렵게 내부로 진입 성공. 건물 내 유일하게 감시망이 놓친 개구멍을 통해. 
    그 다음 친구한테 배웠던 잔기술로 보안시스템 무력화. 
    단 10분 안에 에드워드를 찾아야 함. 최장 길어도 15분.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찾음. 
   「하여튼 말이야, 내 이 비상한 추리력은 알아줘야 한다니까 글쎄. 이러니까 여자들이 뻑이 가지. 안 그러고 베겨? 말 하나마나!」
    여기서 에드워드와 나의 통상적인 대화는 생략하기로 한다. 굳이 옮길 만큼 긴박한 중요도는 없기 때문에. 
    그렇게 일단 에드워드는 적당한 은신처로 피신해 당분간 쉬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집으로 돌아갔다. 





    10

    다음 날 나는 집에서 일어났다. 개꿈을 꿨는데 잘 기억나지 않았다. 
    그렇게 아침 일과를 마치고 출근하려고 딱 나서려는데. 문을 열자마자 어떤 거대한 기운이 그 문을 닫혀버렸다. 
    결론만 말하자면 이랬다. 앞뒤 떼고 핵심만. 요점은 이랬다. 바로,
    ... 우리집이 통채로 가상현실 기계로 변한 것이다. 
    A면은, 바닥을 축으로 나와 180도 방향만 다를 뿐
    B면은, 정상 풍경인데 초현실적으로 실사화
    C면은, 90도로 눞혀짐
    ... 이 분야의 권위자 가운데 내가 아는 사람이 에드워드 밖에 더 있나? 
    ... (따르릉) 
    장면 전환.
    장면 전환.
    장면 전환.
    (사안 설명과 1절은 생략함)
   「양자역학에 따르면... 반물질 알지?... 그건 말이야... 바깥의 힘이 아니야... 늬가 반작용 매개체도 아니고... 일단 일반상대성 원리로써 말하자면 너에게 이해시킬 수는 있는데. 이건 뭐랄까 굉장히 이례적인 현상이거든. 따라서 결국 특수 상대성 원리를 대입하여 판단할 수밖에 없어. 허나 그걸 너가 말하면 아니? 당연히 모르겠지. 자, 그러니까 좋게 나한테 말해. 뭘 말해? 뭐긴. 반물질 생성이 의심스러운 뭔가를 집에 들여다 놓은 적이 있냐, 에 대해서. 물론 네가 물리학과 교수와 친해서 그분을 집에 초대해서 저녁식사를 함께 하고. 잘 헤어졌는데 그분이 007 가방이 집에 놔두고 갔더라? 바로 그런 거. 뭔가 켕기는 거 없어?」 
   「있어. 척키 인형.」
   「어디서 주웠는데?」
   「어디로 갈지 모르는 가상머신, 그 뭐랄가 놀이공원에서 볼 수 있는 유령의 집 있지? 그런 것처럼 무인가상현실 하우스가 있길래 탐방했지. 그 내부에서 벌어진 일이 방금 전 우리집에서 똑같이 일어났고. 그리고 그날 그곳 마당에서 그 인형을 주워서 집에 왔어. 그게 다야.」 
   「왜 나한테 말하지 않았어?」
   「늬가 언제 물어봤냐?」
   「안 물어봤어. 그래도 그 정도 사안이면 딱 딱 맞춰서 재빨리 보고를 해야할 거 아니야. 어?」
   「너 내가 엎어키웠다는 거 잊지 마. 안 그래도 너 여자 뒤꽁무늬 쫓아다니느라 바쁜데, 나까지 널 귀찮게 해야 한다는 게. 그게 말이 되니?」
   「말이 되든 말든 그건 내가 판단할 일. 따라서 일단 선보고 후조치. 어?」
   「넌 허당 난 고수. 넌 엑스트라 난 주인공. 너만 원맨쇼하게? 신부들러리 증말 징글징글하다. 어? 늬가 언제부터 나랑 명콤비였냐. 응?」
   「근데 너 원래 그렇게 말 많은 남자였냐? 됐고. 그거 옆에 있어?」
   「응.」
   「전원 차단시켜.」
   「버튼은...없는데... 켜있는지도 모르겠어.」
   「그럼 눈에서 레이저가 나가겠니? 필요없으니까 구현하지 않았을 뿐. 그러니까 배터리를 빼던가 어떻게 해보라고.」
   「(잠시 후) 배터리 뺐어.」
   「잘했어.」 
   「정말 잘한 거야?」
   「보면 알 거 아니야. 어때?」
   「와! 없어졌어.」 
   「것 봐, 내가 뭐랬니. 내가 이런 사람이야. 알아? 너 나한테 고마워해야 해. 얼렁뚱땅 넘어갈 생각 마. 알았어?」
   「그럼 이대로 끝난 거니?」
   「그럴 리가 있냐. 사건 규모, 상상 안돼?」
   「설마... 혹시... 장난 아닌 거니?」
   「그래. 그러라니까. 바로 그러라고.」 
   「그럼 난 어떡해야 해?」
   「뭘 어떡해. 누가 뭘 어떡하냐고. 내가 지금 그리 갈께. 아니다. 너네 사무실에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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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사무실에서 녀석과 만났다.
   「에드워드. 날 띄워라.」
   「뭐 어째? 늬가 날 인기남으로 만들어라. 차라리 그러자. 제발 좀 그러면 안되겠니?」
   「근데 우리 이제 어떡하냐? 배후에 대체 누가 있는데?」
   「가만 있어 봐. 척키 인형은?」
   「아, 맞다. 집에 놓고 왔어. 챙겨온다는 게 깜빡했어.」
   「그걸 깜빡하면 어떡해? 야, 뭐 해? 당장 집으로 가야지. 그 안에 다 들어있어. 어서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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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드워드와 나는 우리집에 도착했다. 들어갔다. 샅샅히 뒤졌다. 그러나 없었다.
   「사라졌어.」
   「사라... 방법은 하나다.」
   「그게 뭔데?」
   「넌 지금부터 바보가 되어야 해. 것도 역대급 왕가슴. 아니 희대의 바보. 사극에서 많이 봤지? 왕과 거지 동화처럼 내가 늬 대역을 할 수는 없는 거잖아. 알겠어?」
   「정말 그러면 된다고?」
   「이 형만 믿어. 넌 늬가 여자들 다 꼬셔준다며 큰소리 뻥뻥 자신있게 뻥쳤지만. 난 너 안 믿었어. 허나 지금은 장난이 아니야. 알겠어?」
   「(끄덕끄덕)」
   「그러니까 당분간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조용히 지내기만 하면 돼. 걔네가 누군진 모르겠다만 괜히 막 들쑤시고 다니는 놈이 걸리기를 바란 거라고. 딱 봐도 그래.」





    11

    줄거리 위주로 너무 급박하게 이야기가 진행됐으므로, 고로 잠시 완급조절. 그렇듯 본 문단은 쉬어가는 의미. 근데 괜히 밑도 끝도 없이 쉬어가는 문단이 아니라, 그게 아니라 앞서 줄거리에 나왔듯 <1달전 아무것도 몰랐던 때처럼 살기로 하자>라는 작전 때문임. 자, 뭔 얘기인지는 몰라도 어떤 말보따리를 풀어야 1달 전 아무것도 몰랐던 순진한 순둥이로 되돌아갈 수 있을까. 그건 이거다. 자, 일단 한번 들어나 보자. 
    바느질 못하는 년이 실은 길게 꿴다. 짧은 쾌락에 한맺혔단 말이 아니라. 그래도 기왕지사 산뜻한 포부를 위해서 장비발 신경쓰는 게 좋지 않을까? 아마도 나쁠 건 없겠지. 다만 변심이 문제일 뿐. 그처럼 대체로 꿈은 포기와 친하다. 쾌락도 덧없다. 대망 당연히 잊혀지지. 재산목록 3호 것도 맨발의 청춘 때 얘기. 만약 졸부가 되어도 부자 돼도 별거 없다고 한다. 인기 싹 다 거품이다. 유독 나에게만 친절하지 않은 사랑, 부러워할 거 없다. 어차피 애정마도 초반에만 뜨겁기 마련. 놀기도 날마다 놀면 금방 싫증난다. 자랑도 귀찮아서 안 한지 오래. 취미 진득하니 오래가나? 물에 빠진 건 건져도 계집에게 빠진 건 못 건진다.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 장타, 단타, 평타, 범타, 뻔트, 뻥카... 세상물정 그렇다는 의미. 근데 정작 하고 싶은 말이 뭔데 여기까지 와버렸지? 내 말이 바로 그거라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뭐니 뭐니 해도 사랑이 최고의 주제이긴 하겠으나. 아 글쎄 진짜로 유행가 가사처럼 사랑하는 사람들이 어디 흔한가? 길가는 사람 아무나 잡고 물어보지 않아도 안다. 웬만한 어른들 지금 그처럼 사실 줄 예전에 미처 아셨냐고 여쭙기 송구스럽다는 걸. 뭐 그건 그거고.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 흐린 날 있으면 바람부는 날도 있기 마련. 혹시 오늘만 사는 풍운아 아니냐구요? 칭찬이야 조롱이야 의뭉스러운 속마음 당최 알 수가 있어야지. 알 수 있다. 안 봐도 뻔하거든. 웬만하면, 애정에 굶주린 양떼를 목도한 늑대의 흑심. 그러니까 타락할 뻔했다 정신차린 영혼과 더러운 사랑이란 말이지, 그래? 우리가 아름답게 만들어드리자. 뭣이 어째? 농담이고. 이제 헛소리 그만하고 본격적으로... 아니다. 자발마는 더 특훈 시키기로 하고. 지금은 액면이 완성되지 않았다. 밑그림 구상 추상적이면 안된다. 그처럼 기발한 활약상은 몰라도 혹하는 발단 낌새도 없다. 고로 민첩한 심부름꾼처럼 나는 양대 여성잡지사로부터 내내 기죽어 사는 형편인데. 지들이 언제부터 내 상전이었다고. 뭣이 어째? 됐고. 뭐 아름다운 인생을 향한 열망? 나가있어. 고혹적인 사랑의 태도, 저리 비켜. 새하얀 도화지에 순결한 청춘스케치를 그리시겠다, 조용히 해라. 그럼 정말 닥치고 일이나 할까? 좋든 싫든 할 건 하는 거고. 그와 별개로 도대체 어떻게 놀아야 놀랍다고 소문이 날까? 얼굴 팔려 좋기도 하겠으나 우리는 그거 그리 반기지 않는다. 오죽하면 우리가 여자에 관심 없겠나. 그래 봐야 만담가의 허세와 정력가의 허풍 그거 다 뻥이다. 개 뻥. 그러든 어쩌든 첫눈 오는 날 할 일 없을 거 뻔하다. 근데 타인의 반짝이는 크리스마스 이브가 왜 궁금하겠나. 할 말도 없다. 모험심도 지쳤다. 감수성은 진즉 퍼졌다. 호기심은 동면에 들어갔다. 질투마는 말도 듣지 않는다. 군침마가 언제 내게 우군이었간디? 매번 권태마만 내게 최적화된 거지. 결국 타성 편향적인 인생. 뭘 해도 재미없는 아저씨. 아줌마들도 그래서 말만 많다. 무명들이 그래서 남 얘기 빼면 뭐가 남나. 그래? 그럼 이번에 정말로 여중-여고-여대 앞에서 문구점 사장이랄지 분식점 점주가 되어볼까? 되긴 뭘. 하나마나지. 보나마나 뻔해. 어? 초반에만 혹하겠지. 결국 식상해질 테고. 그걸 뭐 하러? 나 아니어도... 그만 하자. 입 아프게 뭐 한다고 쓰잘데기 없는 잔소리를, 듣는 사람도 없는데 바가지 긁을 일 있나. 아니면 좀 더 개처럼 살아주라며 떽떽거리는 마누라가 있기를 하나. 북어와 여편네는 이틀에 한번씩... 아니. 그 얘기가 아니지. 뭐 기왕 이렇게 된 거 솔직히 고백하고 말 거도 없다. 허언증 도졌다는 것 말이다. 그러게, 어? 웜홀머신 증후군이 가면 어디까지 가겠나. 아직도 판타지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있나? 뭔 생선 같은 놈 나와서 여자랑 연애하는 이야기?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시작부터 끝까지 걸어만 다니다 끝나는 장르? 칼럼과 연재분량이야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이고. 꼭 그렇단 말이 아니라. 말하자면 속된 말로 입에 풀칠하는 게 급선무. 안 그래도 여심은 모두 이 손바닥 안에 있다. 여자의 마음? 밀었다 당겼다 들었다 놨다 쥐었다 폈다, 그것만 하면 된다. 어려울 거 없다. 하면 된다. 안되면 말고, 걔네들 우리가 불세출의 플레이보이로 만들어 줄 수 있다. 쉽다. 엄청 쉽다. 내 마음에 쏙 드는 연예인 누구? 그녀랑 결혼하는 법 알고 싶으면 날 찾아오면 된다. 남들말 들을 거 없다. 특단의 대책이니 신기한 묘수니 우리는 아는 동생들이 애칭 붙여주기로, 일명 코치였다. 단짝도 날 하다 하다 '말'이라 불렀다. 미스터 말, (성씨)말. 근데 왜 난 지금 이 모냥 이 꼴이지? 그러게. 말해 뭐 하나. 그렇다고 세상이 야속하단 말은 아니다. 우리는 차 욕심 없다. 여자 보기를 돌 같이 한다. 가는 여자 잡지 않고 오는 여자 막지 않기, 우리 얘기다. 아직도 여자라는 말만 들으면 미쳐버리는 마초가 있나? 그분들도 참! 아 글쎄 요즘도 숙녀가 대체 뭘 좋아하는지 모르는 상남자가 있냐고. 쳇! 웃기지도 않다. 여심 별거 없다. 뭐 여체가 별거 없다고? 계란후라이 패션? 웃자고 한 얘기에... 뭐 그러지 말자. 마음의 여유를 찾잔 말이다. 어쨌든 허당계는 내가 꽉 잡고 있다. 차기 물망에 오르는 누구라는 둥 러닝메이트요 조명발들? 걔네들 옛날 보기 흉했다. 이마에 보형물 넣고 주사 맞고 라미네이트 하지 않은 유명인, 별로 없다고 봐도 된다. 안 그래도 걔네들 다 내가 키웠다. UFC 현직 전직 챔패언들, 내가 꼽아줬단 말이다. WBA, WBC 유명인들 상당수 옛날에 내 앞에서 부들부들 떨었다. 고개도 못 들었지. 어디 눈을 맞춰? 찍소리도 못했다. 바지에 오줌이나 저리지 않으면 다행. 물론 뻥이다. 난 찐따다. 정말이다. 하다 하다 '찐따'라는 상표에 관심가는 거 숨길 수 없다.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다변 증말 징글징글하다. 그러면 듣는 사람은 그 얼마나 지긋지긋할까를 생각하면... (절레절레)! 말 말자. 이게 다 그대 생각해줘서 얘기하는 건데 이러쿵저러쿵, 생색내기 시작도 하기 전에 들을 말은 뭐다? 너나 잘해! 지가 뭔데... 어? 넌 뭐 얼마나 잘났다고... 응? 늬가 우머나이저면 난 터미네이터야. 알아? 그만하자. 그게 좋겠다. 거 참 더럽게 말 많다는 얘기 듣기 싫다면 말이다. 





    12

    개는 자기가 토한 곳으로 돌아온다. 물론 곧장 처음 가상머신 하우스를 발견한 장소를 재방문하지는 않았다. 글쎄 뭐랄까 난 어쩌면 상투적인 전개를 걱정하고 있었다고나 할까? 왜냐하면 음 그게 말이다, 그게 한마디로 직업병 때문. 아무일도 없을 걸 뻔히 알면서 괜히 있지도 않은 일을 과장해서 억지로 원고를 넘기고. 그럼 또 투정꾼들께서 잡지 팔아먹을려고 별의별 허당을 혹사시킨다는 둥 단기이익 쥐어짠다는 둥. 하다 하다 걔 혹시 계열사 실세의 사둔의 조카의 조수는 아닌지 의심하면 어떡하나. 꼭 그렇진 않겠으나 그 외에도 시간낭비 뿐만 아니라 가장 마음에 걸리는 건 진부함. 소녀들 특징이 뭔가. 수줍어하기. 들뜨기. 설레기. 수다. 남얘기하기. 듣기. 침묵하기. 바람에 구르는 낙엽만 봐도 꺄르르 웃기. 그리고 중요한 한가지, 바로 뭐든 거론만 하면 하는 말은? 식상해! 그 지겨움에 나까지? 더운땀이 아니라 식은땀 날 일이 그거다. 그래서 몇몇 후보군을 검토해보게 되는데. 가령, 몇몇 경우의 수 생각으로 풀 수도 있다. 결국 3번째인가 4번째에 해당할 텐데 어쨌든 그곳으로 딱 찾아갔는데,
    A. 나처럼 전번 특별한 경험 때문에, 나랑 똑같은 이유로 찾아온 사람들 다수 (드라마 머, 뭐...)
    B. 딱 도착했는데 어떤 노신사께서 충고, 들어가지 마시오...! 식겁한 끝에 부인이 나타나 이 양반 어쩌고저쩌고 신경쓰지 마시라. 그들이 떠난 후 웬 강아지가 나타나더니 자기를 따라오라는 듯이 앞서가다, 쳐다보다, 앞서가다, 뒤돌아보다... 반복. 따라갔더니 거대한 UFO 발견...
    C. 찾다 찾다 길을 잃음. 끝끝내 도착했는데 그 짧은 시간 동안 10년이 훌쩍 가버림. 내부는 거울의 집. 거울을 보니 벌써 20년 늙어버림...
    D. 도착해서 딱 들어갈려던 끝에 비명소리를 들음. 흔한 스릴러 영화 소재.
    E. 도착해서 딱 들어갈려는데 누가 나오면서 하는 말. 안에 아무것도 없소. 확인해봐도 좋소. 근데 혹시 예전 어떤 기억이 끝끝내 당신을 괴롭히지 않소? (그러면서 2개의 봉투를 전달) 마음의 안정을 원하면 파란색 봉투를 12시간 후에 열어보시오. 비밀의 일원이 되고 싶다면 24시간 후 빨간색 봉투를 열어, 단지 열지 말고 잘 뜯어보시오. 내용물은 없을 테지만 겹겹이 붙여진 봉투 안에 뭔가 있을 테니 말이오. 그리고 왜 12, 24시간 후냐? 다음 타자를 만나면 그분께 여쭤보는 게 좋을 거요. 내겐 묻지 말아줬으면 하니 말이오. 아시겠소 젊은이? 이 내 배꼽 근처까지 내려온 수염을 걸고 드리는 힌트니 부디 믿어줬으면 좋겠소. 우리 인연이 여기까지인지 또 다음에 혹시 만날지도 모르오만. 또 아시오? 선생 팔짜를 고쳐주진 못할망정 그대 야릇한 여복을 점춰줄지 말이오. 아니, 그러지 말고 기왕 말 나온 김에 내 손주 한번 만나보는 게 어떻겠소? 내 손주 이뻐. 아니, 걔 아직 유학가서 돌아오려면 좀 기다려야 하니. 그러니까 내 친구의 딸을 만나보는 게 어떻겠소. 아마 그런 미인은 살면서 몇 번 보지 못했을 거라 내 장담하오만... 듣다 듣다 지쳐서 실례한다면서 청자가 먼저 자리를 뜨기 전에, 노인이 먼저 주저앉음. 말을 너무 많이 해서 일시적으로 기력이 떨어진 것임. 어떻게 어떻게 절정으로 치닫고 해피엔딩. 
    F. 그곳 자리에 극장이 생겼음. 간판을 보아하니 볼만 한 영화. 쥬라기 공원, 돌아온 티라노! 관람 후 알게 됨. 그건 쥬라기 공원 100번째 후속편이란 것을. 또는 스타워즈 (1977)이 시리즈로 이어진 끝에 100번째 후속작. 뜬금없이 미래세계에 도착한 것임.
    A, B, C, D, E, F... 다 아니었다. 어쨌든, 
    중간 건너뛰고. 장면 전환.
    중간 건너뛰고. 장면 전환.
    중간 건너뛰고. 장면 전환.





    13

    자세는 (광고 과장글처럼 포복절도하다가 아니라) 포복. 즉 엎드려 보기. 3인칭 관찰자 시점. 당연히 망원경을 준비해가지 않았기 때문에 두손을 계란을 쥐듯이 오므려 두눈에 갖다대기. 나는 바늘 끝에 계란을 세울 수 있다. 거짓말이다만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그렇다는 거고. 허나, 바늘 끝에 달걀 올려 놓기? 애초에 승산도 가망도 없을 일이 태반이겠으나. 지금 상황은 그게 아니다. 그러니까 왜? 왜냐하면 2문단에서 가상머신 탐방, 3문단에서 친구랑 재방문했는데 가상머신 없어짐, 12문단에서 혼자서 재방문했는데... 누군가 안에서 나오는 걸 목격했기 때문. 
    그럼 과연 누가 그곳에서 나왔나? 걸어서 나왔나 재빨리 튀어나왔나. 설마 슥 기어서? 누가누가 나왔냐면 바로 이랬다. 
    유인원: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루시, 아르디피테쿠스케냔트로푸스 플라티오프스, 호모 에렉투스, 호모 헤이델베르겐시스, 네안데르탈인...
    멸종동물: 2018년 1월 29일에 공식적으로 멸종됐다는 '동부 퓨마', 포클랜드 늑대, 숀부르크 사슴, 아메리카밍크속, 태즈메이니아주머니늑대, 세인트헬레나집게벌레, 사르데냐우는토끼, 하우긴귀박쥐... 
    처음에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나오니 저건 또 뭐야! 당연히 그랬다. 누가 값비싼 복장 입고서 쇼하는 거라고. 근데 찬찬히 살펴보니 장난이 아니었다. 그래서 잔지식 총동원...으로는 부족하니까 황급히 핸드폰 앱을 켰다. 갔다 비추기만 하면 위키피디아 뜨고, 기타 등등 쫘르륵. 뭐야 이거! 뭐지? 대체 뭐야 이거, 어? 무슨 표토르 도스도예프스키 소설에 나오듯 뜬금없이 실신하고 누가 살해당하고 다음 날 어쩌고. 그것도 아니고. 뭔 알베르 카뮈 소설에 나오는 것처럼 저승사자 명부에 누구 이름을 쓰면 뭔가 제거되고. 구식탱탱묵은 소제도 아니고. 근데 바로 그때! 
    엎드려 관찰자 자세인 내 옆으로 제라드가 나랑 똑같이 엎드려 누가누가 나오나 보고 있었다. 얘는 대체 언제 왔지? 또다시 갑자기. 도대체 어떤 녀석이 내 엉덩이를 밟지 하고서 딱 돌아봤더니, 그건 사무엘. 우리는 말이 필요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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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간 건너뛰고. 장면 전환.





    14

    우리 셋은 도심지로 돌아왔다.
    장소는 내 사무실. 분위기 상 차분한 음악이 절실했다. 
    Leopold Mozart / Missa Solemnis
   「그러니까 그걸 나보고 믿으라고?」
   「봤잖아.」
   「하긴 안 믿을 수도 없지.」
   「못 믿겠으면 우리도 네 앞에 나타날 일 없지 않을까?」
   「누가 다 부정하겠대?」
   「그럼 네가 예전에 썼던 칼럼. 몇몇 오점 있긴 있을 텐데. 그 가운데 하나. 신 : 인간 = 인간 : 동물. 그 비유를 설명했던 거. 문맥상 의미는 알겠으나 이제 생각해보니 아차~했던 거 하나 있지 않을까?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은 동물의 의식을, 한두 명도 아니고 수없이 걔네들 의식을 조종하며, 만인의 팔짜를 정해진 대로 진행시키는 운명. 사람은 동물을 인위적으로 거주지 제한이랄지 기타 등등 그건 가능할 테지만. 과학적으로 유도하거나 맹수와 곰들 목에 위치추적기 다는 거 말고 SF 영화처럼 텔레파시로 실시간 조정이랄지, 각본 씌어진 대로 살도록 만드는 건 못하잖아. 계, 문, 강, 목, 아목, 하목, 상과, 과, 족, 아족, 속... 그 종들. 웜홀 머신 연구하다 보니 어쩌다 그 멸종된 종들까지 알지 않으면 안되겠더라고. 근데 내가 뭔 말을 하는 중이지?」
   「그러게. 그러지 말고 심심한데 토끼나 한 마리 잡아먹을까? 내가 자칼이나 불여우도 아닌데 토끼는 무슨. 그러지 말고. 좋게,」
   「좋게, 뭐?」
   「넌 지금 관찰자 시점이란 거 아직도 모르겠냐? 또 우리 말 끊고 궤변으로 여심을 감으려고? 감길 여심이 지금 어딨냐. 우리도 이제 안 말려. 우리가 무슨 줄 달린 치즈냐? 넌 또 이런 말 하려고 했지? 너도 이미 연구 끝났어. 가령, 
    밤새도록 생각해낸 잔꾀가 결국 부질없는 공상. 남이야 그러든가 말든가. 아, 맞다. 근데 걔가 나구나. 근데 그게 나랑 대체 무슨 상관이지? 몰라. 그게 뭘 어쨌다고. 왜 그러는지 내가 알기나 한대? 모른단 말이야. 이놈의 잡념은 더더욱 엉망진창. 나는 불후의 명작을 집필하는 데 실패했다. 타임머신은 무슨. 아울러 뭇여성들의 환심을 사는 것도 포기한지 오래. 허나 못해서 안하는 게 아니다. (세속적 표현마따나) 툭하면 우려먹어 보건대? 반복해 보건대, 우리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여자를 꼬실 수 있다. 누구나, 어디서든, 단 몇 마디면 충분하다. 뻥 아니다. 진짜다. 아니다. 뻥이다. 노잼. 솔직히 말해서 뭘 해도 재미없다. 늘상 아지트에서 듣는 말은 두 가지. 늬가 그래서 안되는 거야, 오빠는 그러니까 여자가 없는 거야. 전자든 후자든 무감각해진지도 옛날. 빠져든다 빠져든다 제대로 빠져든다, 빠져들긴 뭘 빠져들어! 나는 그야말로 푸석푸석 식어버린 감자튀김 같은 남자다. 그 다음. 어쩌고저쩌고. 또 다시. 이러쿵저러쿵. 또또 계속. 미주알고주알. 끝.
    안 그래? 뻔해.」
   「너네 너무 멀리까지 갔어. 알고 있어?」
   「우리만 갔겠냐? 우리가 지금 누구랑 같이 있는데.」
   「내가 바보냐? 나도 알아. 박복한 과부는 재가를 가도 누구를 만난다. 운발을 보아하니 자중할 시기라는 거 왜 모르겠냐.」
   「바늘만 있고 실이 없다. 남자들만 남자들만...! 꽃이 있어야 나비가 모이는데 누가 헛소문 퍼트렸구만.」
   「너 거 참 그.. 어?」
   「곁길로 새지 말고 요점만 말하자. 환상머신 계획은 폐기. 무도회도 폐막. 청춘은 즐기면 그뿐. 웜홀머신은 절반의 성공. 행복은 미완의 예술? 농담이고. 결국 늬들 말과 성과는 그거잖아? 소환기! 근데 현세랄지 동급이랄지... 그건 안되고. 보내는 거도 안되고. 타임머신은 말 같지도 않고. 이거 정말 마술이냐 과학이냐? 어? 늬들 통 속을 모르겠다. 또 마라 걔는 왜 또 끌여들였는데? 지분 구조 대체 어떻게 된 거냐고. 어? 어쩐지 이상하다 싶드라. 그러니까 말하자면 웜홀이든 심신분리든 공간이동이든 다 안되겠으니. 결국 소환기? 그 어떤 이미지트레이닝에 자꾸자꾸 소환되는 남자의 입장. 너네들이 알기는 아냐? 당해봤어야... 당해봐도 모를 텐데. 알 수가 없잖아?! 아니 근데, 어? 누가 걸핏하면 출석요구서 남발하는지 도통 알길이 없지 않냐고. 아 나 이거 증말 거 참 나 원 참. 뭐야 이거, 어? 뭐가 문제야? 난 말이야, 보아하니, 아니. 아니 내 말은 그게 그러니까. 그래도 솔직히 말해서 말이야. 기왕 말 나온 김에 꺼내지 않을 수 없는 게 뭐냐면. 너네 대체 뭣 땜에 그러는데? 늬들 나한테 숨길 것 없어. 우리가 어디 그런 사이냐?」
   「뭐 긴 얘기는 필요없고. 이만 하면 잡지사 의도는 전달한 듯 싶은데. 똑뿌러지게 줄거리 말하지 마라 했으니. 넌 유쾌하지 않을 수도 있다만. 통쾌한 1줄평으로 네 의구심 해소시키지 말라 했거든.」
   「누가! 어? 누가? 아 대체 누가?」
   「명쾌한 식상함보다 은근한 신비감을 좋아하시는 분들께서 말이야.」
   「뭐? 뭣이 어째? 뭐가 어쩌고 어째?」
    제라드와 사무엘은 더 이상 말해 뭐 하냐는 뜻이기 때문일까? 걔네들은 곧장 일어서서 사무실을 나갔다.
   「야, 가냐? 이제 난 늬들 꼬봉이냐 뭐냐? 어? 나 말 안 끝났어. 이 자식들이...」
    무정한 자식들. 왜 속시원하게 보고서를 고지하지 않는 거야. 왜지? 어째서? 대체 뭣 때문에. 제품설명서 어딨어? 누가 논문 쓰래? 최소한의 근거와 최선의 요점, 모범적인 줄거리 다 어디 갔냐고. 근데 갔던 걔네들이 다시 돌아와서 이 말을 마저 전하고 돌아갔다.
   「늬 마음 알아. 긴가민가하지? 오락가락하겠지. 안 그럴 수가 없으니까. 말도 안되거든. 허허. 허나 어떻게 보고도 못 믿냐고. 미칠 거야. 왜 아니겠어. 이해해. 딴사람도 아니고 하필 본인이 영화찍고 있으니 당연하지. 그러면 말이야 그럼 다음 차례는 말이야, 그 어떤 의구심이 슬며시 네 마음에 노크하지 않을까? 저처럼 멸종이 아니라 보전종. 즉 다음으로 식물일지 괴물일지 아니면 멀쩡한 거지일지. 누가 알아! 과연 누가 소환될지 어떻게 아냐고. 부쩍 알고 싶어지지 않니? 물론 난 말만 전했을 뿐이야. 우린 그냥 중간책이라 그 말이지. 허나 잔머리 너무 굴릴 필요없어. 잔꾀 바닥났다고 걱정말라구 친구. 털끝만큼의 호기심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은 이상, 넌 하던대로 허당이면 돼. 아마도 기다리라는 지령 아닐까?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르겠지 뭐. 아무튼 뭔가 재밌어지는 진행이라는 거 너도 썩 부정하진 않을 거 아니야. 안 그래? 허허허. 그러니까 지켜보자고.」
    그렇게 대답은 듣지도 않고 녀석들은 가버렸다. 지들 말만 전하고 말이다. 
    물론 여기까지는 그 육성을 직접 듣고 작성한 것이다. 불과 얼마 되지도 않았다. 
    하여간에 여자들 은근한 거 겁나 좋아해. 은근 허당 아닌 사람 명함도 못 내밀겠네 그래. 그러니 섭섭한 마음 뭘로 달랠까 (절레절레)





    15

    뭐랄까 허당이 늙은 증거는 커피와 멀어진 거? 허나 우리는 청춘과 이별할래야 할 수가 없다. 그래도 허세대회 그랑프리 어차피 마음만 먹으면 우리꺼나 마찬가지니까 좀 더 느긋해지자면. 어쩌면 그 어떤 군침으로 홍수를 이룬 죗값은 결국 일복일지도 모름. 아닌가? 허나 여자라고 뭐가 다를까. 그러니까 불경스러운 대망과 순결한 소망 사이에서, 끝끝내 너와 나 누구나 황금만능주의자일 수 밖에 없을 텐데. 세상사를 보아하니 나는 착하게 살고 싶은데 꼭 보면 뿌리치기 힘든 유혹은 흔하디 흔하다. 푼돈 아끼면 뭐 하나, 사이렌의 속삭임 같은 광고에 혹하여 거금 홀라당. 인생은 한방이다, 그게 그거랑 다른 건데... 넘어가고. 우연이라는 훈풍에 힘입어 극적으로 출세하나 했는데 딱 그러다 맘. 그렇게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 보면 꿈은 잊혀진다. 탐욕마저 막연해진다. 멜로드라마는 재미없다. 남녀의 애정은 유치할뿐. 자동적으로 연식은 고풍스러워짐. 바보들의 행진을 왜 하나. 젊음과 친하다는 건 내 생각일 뿐. 일단 속마음이 옹졸하거나 변심마저 이랬다 저랬다. 배부른 배불뚝이 아저씨 처녀 땐 귀여워보였는데 마른 장작이 잘 탄다는 조언을 왜 그땐 귓등으로 들었을까. (말이 그렇단 거지 웃자고 하는 얘기에... 그건 그렇고) 뚝딱 세월을 건너뛰니 매사 부정적인 남자가 내 남편이더라? 알고 보면 호인인데 집에서는 가부장적 제왕이요 밖에서는... 미련한 사랑 유행지난지 오래. (옛말로야 여우같은 부인과는 살아도 곰같은 부인과는 못산다지만, 요즘엔 반대로 곰같은 부인과는 살아도 불여우같은 부인과는 못산다고도 함. 그게 다 양쪽 말 들어보고 어쩌고저쩌고 말만 많아짐). 그러니 가족장르와 웬만한 판타지를 마초들이 어찌 진득이 감상할 수 있나. 억지로 체면과 입장이 있으니 연기하는 것뿐. 먹은 개는 짓지 않는다. 뭐야, 그럼 다시 굶주린 늑대로 돌아가기? TV 채널만 돌려봐도 돌아온 싱글 형편 뻔하다. 그럼 뭐 어쩌라고, ~라는 투정 이미 들렸다. 보나마나 뻔하지. 하여 다른 타로카드를 꺼내드니 이렇게 씌여있는 식. 그건 뭐다? 매인 말은 항상 뛰고 싶은 생각만 한다. 아하, 자유를 애타게 갈구하시는구나. 자, 모험심이라면 번지수를 제대로 찾아오셨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는다. 매도 맞아본 놈이 잘 맞는다. 맺집 보소. 개 발은 아니구만. 근데 가만 보니 어설픈 실패담 밖에 없는데 이걸 어쩌지? 그걸 왜 남한테 물어보나. 오다 가다 만난 사이에 언제 봤다고 친한 척. 좌우지간 심심하다고 인터넷 놀이터에서 뉴페이스 발굴하느라 지친 일상 그 마음 잘 안다. 꼭 악마만 새로움을 추구하란 법 있나. 마성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기분까지는 아니어도. 새출발은 취미만 바꿔도 느낌 안다. 그래서 새롭게 영입한 대타는 뭔고 하니... 그걸 공짜로 알려드릴 수야 있나. 허나 힌트는 드릴께. 일단 놀라지 말기. 그게 정말 뭔고 하니, 아직은 묻지 마. 아, 일부러 반말한 게 아니라. 여자의 나이 함부로 묻는 거 아니다. 뭐, 나대지 마? 이 사람이...! 농담이고. 그대가 사랑을 싫어하시나 우리가 우정을 모르나. 말리지 마? 말려주란 말이지 않나. 결국 보따리에 무슨 괴물이 들었다는 둥 신통방통 영험한 효력은 확실하다는 둥, 옛날 시장판에서 약팔던 입담과 왜 갑자기 닮아가는 거지? 그러게, 응? 그러니까, 어? 애들은 가라. 공부하기 싫은 사람? 엄마말 듣는 척이라도 하는 게 좋다. 어른 말 안 들을 땐 기다리고 기다리고 절반 잃어도 기쁠 만큼 확실한 적기라는 게 있는 한도에서만. 그러니까 선생 말씀은 뭐 듣지 마? 아니~ 그게 아니라~ 아니~ 아니긴 뭐가 아니야! 작전 들통났다. 대타 바닥났다. 푼돈 안 모인다. 관중 얼씬도 안한다. 초딩한테 상욕 얻어듣기 전에 좋게 자유를 찾아 떠나자. 기분파에서 낭만파로 왜 변신 못하냐 그 말이다. 아름다운 선망이니 고결한 여심이니 허황된 얘기? 다 뻥이다. 꼭 그렇단 말이 아니라. 솔직히 이런 말까진 안 하려고 했는데 기왕 말 나온 김에 하나 고백하자면 그렇다. 여성환상 1.5 잡지사 전직원들이 다 날 좋아한다. 진짜로? 뻥이다. 재산도 없다. 가난뿐이다. 외롭다. 뭘 해도 재미없다. 할 말도 없다. 벅찬 감정은 이성을 마비시켰다. 뻥이다. 들뜬 심정 또한 심신분리에 성공했다. 가짜다. 근데 유체이탈은 금새 끝났다는 게 아쉬울 뿐. 그럴 리가 있나. 그처럼 달콤한 행복감은 짧았다. 이게 바로 허당 인생이다. 그러니까 일찍일찍 행복한 가정을 일구는 게 좋긴 좋은 걸까? 얘기 잘 나가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자나. 이게 뭐냐고. 또 어떤 인공지능한테 휘둘리는 거지? 숙녀들의 마음을 끌어도 모자를 판에 또 공상에 질질 끌려간 건가? 진한사랑에 대한 예감이 풍만해지는 게 아니라 무슨 말 같지도 않은 헛소리에 말려버렸잖아? 허당과 푼수와 바보로 잘못 판단할 수도 있는데, 왕년에 남자 꽤나 홀리고 여자깨나 울렸던 그분들. 실망으로 끝날 기대감 그만 좀 감자. (절레절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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