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에 해당되는 글 194건

  1. BLOG ─ 166 2020.03.15
  2. BLOG ─ 165 2020.02.29
  3. BLOG ─ 164 2020.02.15
  4. BLOG ─ 163 2020.01.30
  5. BLOG ─ 162 2020.01.15
  6. BLOG ─ 161 2019.12.15
  7. BLOG ─ 160 2019.11.14

BLOG ─ 166

from 소설 2020. 3. 15. 16:43

    1

    일자리 없는 이발사 고양이 머리 깎고, 할 일 없는 여자 고양이 젖 짠다고. 일, 해야 한다. 놀기만 하면 재미없다. 우리는 숙녀도 만족시켜야 한다. 희망찬 내일로 가는 인생에서 아름다운 사랑도 좋다만, 대망 말고 소망과 잔재주도 모른 체할 수 없다. 잔소리, 듣기 싫겠으나 지나치지 않을시 다 귀담아들을 필요 있다. 잔근육? 과연 언제 쓰게 될지...! 하여간에 시간은 한정되어 있는 반면 할 게 많다. 그래서 한 마리 토끼만 쫓을 것이냐, 여기저기 떡밥 막 뿌릴 것이냐. 그것이 문제일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마땅한 목표와 합리적으로 낚을 표적이 없다는 점. 아직 때가 아닌 거지. 아님 뭘 하지도 않았는데 시작도 전에 벌써 힘 빠졌거나. 앉아서는 토끼를 못잡는다는 걸 우리가 왜 모르겠나. 
    그렇다면 말이다 글쎄 뭐랄까, 어쩌면 정력 탈이라기 보다는 열망과 의욕이 바닥났을까? 역시나 권태가 강적 중의 강적. 뭘 해도 재미없으니까. 심심함마저 이제 친해질 대로 친해진 걸 모르진 않는데. 그런데 대체 때는 언제란 말인가. 도대체 언제까지 관망만. 기 다 빨린 다음에 진한 사랑? 그래도 뭐 숟가락 들 힘은 남아있겠지 뭐. 옛날엔 그랬다. 재치 있는 선수 앞으로 공이 굴러온다고, 응? 우리에게 호박은 제 발로 굴러오기 마련. 그렇지만 아 옛날이여! 무료 따분 심심, 언젠 안 그랬나. 늘 그랬다. 따라서 나는 이제 비장의 카드, 꾹 참고 끝까지 숨겨놓은 특단의 묘책을 꺼내야 하는데. 그게 있으면 진즉 뭘 해도 했겠지, 없으니까 말만 많지 않나. 그러니까 아는 동생들도 다 떨어져나갔고. (절레절레)! 응큼한 낭만파 허당과 귀여운 숙녀가 함께 행복한 밀애를 나누며 쾌감을 탐구하기. 그게 무엇인지, 어떻게 하는지 다 까먹었음. (몸짓) 나는 연애사 전적이 딱 0이기 때문에, 고로 첫키스도 아직 못해봤다. 아아 내 미래의 첫사랑일 눈부신 신부는 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여태 사교계에 데뷔도 못해보고 대체 이 나이 먹도록 뭘 하고 살았는지 한숨도 이젠 안 나옴. 뻥도 피곤 허풍은 짜증. 만사 귀찮음. 젠장 거 참 더럽게 따분하구만 그래. 
    그래서 나는 출근했다. 잠시 후 도착했다. 그렇게 일과를 보내던 중 일하기 싫어졌음. 그래? 그럼 변신기계를 가지고 놀까? 그렇게 딱 오늘은 무얼 안에 넣지 고민하다가, 영양가가 풍부한 팩 포장 음료수를 골랐다. 그렇게 딱 변신기계를 열었는데. 뭐야 이거! 변신기계(옷장) 안에서 귀걸이를 발견한 것이다. 아니 웬 귀걸이? 그 전이라면 몰라도 변신기계를 설치한 이후 사무실에 여자를 초대한 적이 없는데? 어찌된 일일까. 더군다나 나는 귀를 뚫지 않았다. 몇 명 데려와서 진짜 같은 환상감을 심어줬긴 한데 대부분 가짜였다. 그렇지만 걔네들이 품은 신비감을 깨트리고 싶지 않아 몇 번 진짜 요술도 선보여줬다. 그렇지만 이건 내 기술이 아닌데. 어떻게 된 거지? 때문에 내친 김에 나는 여동생들을 불러서 변신기계를 선보이기로 결심했다. 





    2

    다음 날. 사무실. 
    사라. 로즈마리. 에밀리. 마라. 비비안. 일단 그렇데 숙녀 5명만 초대해서 여기 이렇게 함께 있는 중. 
    고결한 분위기 설명은 생략한다. 
    일단 나는 변신 기계 작동 마법의 7대 요소를 가동시키기 시작했다. 플레이보이의 3박자도 아니고 뭐? 
    자, 보자. (1) 음악  (2) 조명  (3) 진동  (4) 효과음  (5) 연기  (6) 향기  (7) 명연기력......
    음악은 일단 이렇게 틀어놓았다. 
    Rossini / 오페라 <이탈리아의 터키 인> (한 남자만 사랑한다는 건) “세상에서 제일 바보같은 짓”
    그렇다 자동적으로 장르 맞추고 어떻게 딴 음악들도 나오도록 다 편집&선곡해 놓았다. 
    나머지 조명부터 기타 등등은 드라마로 나오면 보기로 하고. 그거도 건너뛰어. 
    (몸짓) 시간 없다고 시간! 아 참 나 거 증말 바빠죽겠네. 통과. 
    어느 정도 녀석들의 기대감을 고조시켰겠다, 호기심 역시 들떴고, 사색가 성미까지 한껏 달군 상태. 
    나는 녀석들이 보지 못하도록 탁자 밑에서 (라이터 기능 대신 향수 기능&기타 등등) 듀퐁 라이터를 똑딱였다. 
    퐁~! 숙녀들 뿅간 거지. 응? 농담이고. 
    아무튼 그렇게 시시콜콜한 대화도 할 만큼 했고, 다음으로 내가 어제 발견한 귀걸이에 대해 물어볼려던 찰나. 
    나는 생각을 바꿨다. 어떻게? 녀석들한테 귀걸이를 한쪽 변신기계에 넣어둔 다음, 변신 기계 7대 요소를 정밀히 가동시켰다. 
    그러므로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짜잔~) 어떻게 됐긴, 변신 기계 한쪽에서 귀걸이 1쪽을 복사했다. 
    물론 미리 녀석들한테 다 하나는 귀걸이가 있고, 하나는 없고 그걸 확인시켰고. 
   「와!」
   「머가 와야? 오빠. 이건 무슨 수작이야?」
   「수작이라니. 따라해 봐. 요술!」
   「요술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어떻게 속였어?」
   「어떻게겠니 뻔하지. 카드마술처럼 카드 밑장을 중간에 넣는 그런 기술. 어? 옷장 천장에 뭐 어떻게 작업 해놨겠지.」
   「그래. 그럴 줄 알았어. 그럼 그렇지.」
   「그러니까 저 오빠가 평소에 외로울 수밖에.」
   「그렇다니까. 난 또 뭐라고. 어? 그러니까 오빠가 여자가 없는 거야. 알아?」
   「뭐? 뭐가 어쩌고 어째? 그거아고 이거아고, 상관 있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말이야. 마술을 보여줘도 뭐라 그러네. 너네 정말 혼나볼래? 어? 그러고 싶어?」
   「그러게 좀 색다른 거. 어? 식상한 거 말고. 귀걸이 싸구려 어디서 주서와가지고, 뭐 어쩌라고. 어?」
   「너, 정말!」
   「메롱~」
   「(몸짓)」
   「(표정)」
   「아 실망이다.」
   「난 기대도 안 했어.」
   「좋아. 그럼 누가 1명 지원해.」
   「뭘?」
   「귀걸이 방금 봤지? 물체 복사는 되는데, 인간 복사는... 그건 할 수는 있어. 그렇지만 아직 안 할래. 왜? 왜냐, 미리 힘빼면 안되니까. 허허. 따라서 오빠가 공간이동을 보여줄께. 무슨 숙녀들만 심신분리가 특기인 줄 알아? 이게 이게 보통 놈이 아니라니까 글쎄. 어? 좀 이따 놀라지나 마셔 이 양반들아. 어? 지금 너네 SF영화 생으로 보고 있는 거야. 알긴 알어?」
   「영화 찍으시네.」
   「놀고 있네.」
   「얘들아. 내가 총대 맬께. 그럼 되지?」
    그러면서 릴리가 나왔다. 
   「여기 들어가면 되지?」
    그렇게 1분 후.
    나머지 숙녀 4명이 함께 옆 변신기계(옷장)의 문을 열었다. 
    아니나 다를까 릴리가 거기에 서서 눈을 끔벅끔벅. 
   「와우~!」
   「인정.」
   「오, 소름. 대박~ 이거 뭐야?」
   「장난 아닌데? 이거... 어떻게 한 거지?」
    그런데 거기서 끝났으면 그냥 그러려니 했을 텐데, 문제는 그때 발생했다. 그게 무엇이냐, 바로 옷장 안에서 릴리가 신기한 걸 보았기 때문이다. 
    즉 옷장을 열면 보이는 저쪽 면 전체. 그게 딱 가구 바닥 선을 축으로, 징검다리처럼 턱-하며 저쪽으로 넘어졌기 때문. 그렇게 보이는 풍경은 영화에서 볼 수 있는 멋진 바닷가. 
    그 해변이 천상의 낙원이라면 저곳에 누굴 데려갈까? 일단 여기 모인 다섯 명? 재미없고. 
   「와...」
   「와...」
   「이거는...」
   「아니...」
    난 내친 김에 기왕 이렇게 된 거 폼내지 않을 수 없었다.
   「봤지? 봤지? 봤지? 어? 봤어? 뭐지? 봤구나. 봤네. 봤어. 어? 오빠 이런 사람이야~! 뭐 이 정도 가지고 허허.」
    물론 나는 등에 식은땀 쭉나기 직전이었다. 공간이동까지는 몰라도 그건 내가 벌인 일이 아니었으니까. 그 다음으로 로즈마리가 믿을 수 없다면서 건물 바깥으로 갔다 왔다. 
   「바깥에 나가서 봤는데, 가구 너머로 그냥 공터, 놀이터, 나대지, 정원. 그런 거 밖에 없던데.」
   「오빠. 갈 수 있어? 저쪽으로!」
   「갈 수는 있는데 돌아오는 건 나도 몰라.」
   「난 안 갈래.」
   「나도.」
   「나도.」
   「나도.」
   「난 가볼래.」
   「정말?」
   「뻥이야. 미쳤니? 안 가. 못 가. 가기 싫어.」
   「야, 그러지 말고 있잖아~」
   「오빠를 보내자고? OK~!」
    녀석들은 다들 하이파이브 하고 얼싸안고 웃고 떠들고, 아주 그냥 신났다 신났어. 좋단다. 잘들 한다. 허허. 
    당연히 난 겁이 덜컥 났다. 가면 올지 못 올지 모르는데 어떻게... 이건 그 흔한 장난이나 놀이가 아닌데...
   「오빠가 말이야, 못 가서 안 가는 게 아니라. 오늘 왠지 볼살도 떨리고 허벅지도 신통치 않고.」
   「허벅지? 꿀벅지 아니면 말벅지? 또 그놈의 하체! 오빠. 우리 좀 솔직해지자. 응? 그럼 안되겠니? 그냥 겁 먹어서 못 가겠다면 안 간다고 말해. 어? 그럼 되잖아. 뭘 그렇게 응애응애?」
   「내가 언제? 내가 못 갈 줄 알아? 어?」
   「(이구동성으로) 응.」
   「너네들 짰니? 그래. 가자. 가보고. 어? 아님 일단 한 발만 살짝 넣어봤다가 뺄까? 아니. 남자가 말이야 칼을 뺐으면 무라도 썬다. 어?」
    딱 그렇게 내가 저쪽 해변으로 건너가려던 찰나. 어느새 변신기계(옷장)의 저쪽 면 전체가, 가구 바닥 선을 축으로 다시 올려져서 딱 원위치됐다. 
   「이 오빠 이상해.」
   「너도 느꼈니?」
   「나 갈래.」
   「나도.」
   「야, 가자. 뭐해?」
    그렇게 언제 약속이라도 한 듯이 녀석들은 다 가버렸다. 
    녀석들도 녀석들인데, 이 실제 시트콤에서 최고로 황당한 사람은 바로 나였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알 수 있어야지. 그래도 성과라면 성과일까? 녀석들 이제 한동안 커피 사주라고 조르지 않을 거라 생각하니 그건 좋았던 것이다. 





    3

    그 일이 있은 다음 난 다시 남자애들과 어울렸다. 역시 남자랑 노는 게 재밌다. 
    여자야 물론 다정하고, 부드럽고, 애교 넘치며 좋긴 좋다만. 여자는 뭐랄까 우리에게 우정과는 어울리지 않는다고나 할까? 아닌 게 아니라 1 대 1 스타일인데 안 그럴 수 있나. 그래서 나는 으쌰으쌰 친구들 불러서 막 녀석들 물체를 옮기고, 볼펜 정도면 복사해주고, 저질 체력 낮은 타율로 이동마술까지 선보였다. 이게 말이다 어떡하다 보니까 실력이 생긴 것이다. 무슨 속성 학원을 다니 거도 아니고. 독학도 한계가 있겠으나. 우리가 누군가? 실전형 학습의 돌아이. 허허. 말하자면 그 원리에 따라서. 나무를 베는 법은 나무를 베면서 배우게 된다. 한 명의 바보로부터 백 명의 바보가 생겨난다고 걔네들은 나한테 넘어온 거나 다름없다. 캬~ 어쩌다 이런 신통방통한 재주가 생겨서 말이지. 허허허. 
    (모자를) 썼다 벗었다. (핸드폰을) 들었다 놨다. (여체를 아니 여심을) 밀었다 당겼다. 지금 상황이 상황이 내가 능동적으로 뭘 해야 하는데 이건 뭐지? 무언가를 하고 하고 놀고. 그냥 해? 그냥 하긴 뭘 그냥해! 막 그래야 하는데. 이건 딱 요술피리에 춤추는 인형이 된 듯한 기분. 글쎄 이러다 팔자에도 없는 행운과 사랑과 행복을 몽땅 일망타진할 것만 같은 예감. 그게 날 포근히 안하주면 좋을 텐데. 어딘가 모르게 이러다 또 당하고 말릴 것만 같은 조짐. 느낌 세했던 것이다. 하오나 일단 어복 풍만한데 즐길 수 밖에. 우선 그 원리를 설명하자면 이와 같다. 





    4

    보기로 구분하자면 이렇다.

  • A. 주문         : 설교형. 주례사. 간절함. 진심. 애절. 말하자면 기도. 가뭄에 시달리는 원시인들한테 비를 내려주도록 하늘에 기원하는 레인메이커의 심정으로. 즉 엄마의 전형적인 잔소리를 고급스럽게 포장. 
  • B. 떠보기      : O → X (또는 반대로). 잘하면 되겠다! 피동적으로 잘하면 대어가, 꿈이 잡히겠다. 가망성 높은 목표. 성공률 희망이 보일 때. 정답은 이미 애청자와 정해져있는 것. 대부분 손님이 이미 답을 알고 주술사를 찾는 것. 그럼 떡밥 뿌려서 반응보고 사심 편들어주고, 본심에 알맞게 몰아가면 그만. 
  • C. 지능적      : 대답이 '예'인 것만 딱 골라서 유도 심문. 그러다 타율 떨어지면 NO는 그것만 예외. 그래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안된다며 톡톡 다독이기. 꼬시기. 그러면서 표정 간보기. 
  • D. 동기부여형 : □ → △ (또는 반대로). 할 수 있다! 능동적으로 해보자. 꿈은, 이루어질, 것이다. 단, 1번에는 어렵다. 스포츠 감독형.
  • E. 재단사형    : 그래요? 아니라구요! 머머 좋아하죠? 싫다구요... 맞춤복처럼 욕망과 성격을 측정하는 방법. 조율. 타협. 동조. 그렇게 바람 잡고 분위기 조성하면, 그 뭐든지 술술 다 불게 되어 있음. 그녀는 우리한테 넘어올 수밖에 없음. 지가 우리한테 안 넘어오겨 어떻게 배겨? 이미 첫눈에 홀딱 반했음. 농담이고. 쥐구멍에서 나왔으면 개구멍으로 유도하고, 개구멍이 싫어진 듯하면 쥐구멍에 대해 이따만하게 부풀려서 속삭이고. 마침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 라는 말에 결국 속고 마는 거지. 진짜 농담.
  • F. 진솔형       : 솔직히. 정공법. 어? 그래 나 돌팔이다. 대놓고 인정할 건 인정하면 됨. 다만, 나는 재물운 사랑운 승진운 관상... 가 가운데 딱 1개만 속된 말로 조진다. 물론 사람에 따라 그건 모두 다름. 왜? 왜냐하면 그와 나의 궁합이니까. 따라서 그 1개를 내가 보고 너가 안다? (딱) 100퍼센트. 
  • G. 카리스마형  : 예언가 기질 다분. 너는 성공할 것이다... 형이 다 꼬셔줄께. 아니 그게 아니라. 어쨌든 윽박지르며 세게 나가면 싸구려. 삼류. 허당. 카리스마는 조커처럼 아주 아주 드물게. 섣불리 카리스마를 보여주면 안됨. 그러면 될 요리도 안됨. 배가 산으로 감. 털 뽑고 익히고 양념해서 접시에 올려놓은 튀긴 통닭마저 살아나서 도망감. 어? 카리스마는 절대 그런 게 아님. 고급스러운 유머라는 게 뭔가? 두고 두고 생각나는 거거든. 진정한 카리스마? 싸구려 가죽점퍼부터 최고급 양복까지, 이 여자 저 여자, 아니 아니 뭐 인생 경험 두루두루 쓴맛 단맛 씁쓸 새콤달콤 괴상한 맛까지 다 체험한 다음. 그래서 최후에 완성된 환상머신은 뭐다? 슬리퍼 찍찍 트레니이복 후줄근! 농담이고. 카리스마 설명하느라 살짝 옆길로 샜는데 돌아와서. 
  • H. 허세형       : 공격적인 스타일. 풀스윙 휘둘렀는데 헛스윙이네? 재도전. 큰소리 떵떵쳤는데, 아니라네? 틀릴 수 있다. 매도 일찍 맞는 게 낫다 주의. 
  • I. 잔꾀형       : 약점 파고드기. 허영심 공략. 소망 부추기기. 폭삭 망한 대망 잊을 만하면 회상하게 만들기. 때로는 은근히 겁주기. 이따금 아니 틈틈히 립서비스로 사람 띄워주기. 
  • J. 유도형       : 자긴 과학적이라 그거지. 신비주의 조장. 듀퐁라이터 같은 효과음 중간중간. 환상머신 힌트. 변신기계 지분 권유. 

    보기 구분 마침.





    5

    본 문단은 지나가는 문단으로, (G) 카리스마형에 대해 부언 설명 조금만. 줄거리 위주로 독서하시는 분은 건너뛰셔도 무방함. 허지만 그러기 퍽 힘들지 않을까요? 모르겠고.
    딴 등번호도 그렇지만 점쟁이 본인이 주인공 아님. 절대 아님. 나는 병풍이요 간신배며 백댄서다. 어? 난 영원한 신부들러리다 라는 저자세. 딸랑딸랑~ 반짝반짝~ 뿌잉뿌잉~! 조수. 비서. 심복. 끝없는 1.5 어? 그러다 못 참고 덤비면 말짱 황. 까마귀는 오디 익을 때가지 가만두지 않는다. 덤비면 파랑새 못 된다니까 글쎄. 어? 명심할 것. 서둘러도 천천히 서둘러라. 덤비지 말고 서둘러라. 무턱대고 인상 팍 카리스마? 카리스마? 그게 카리스마야? 카리스마 좋아하시네. 어? 놀고 있다고. 웃기고 자빠진 거지. 허허. 허허허. 카리스마란 말이야, 어?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아무튼 카리스마 그거야말로 헷갈리기 최고로 쉬운 거. 허당과 은근 허당의 차이점이 뭔가. 카리스마란 편이 적이 되고, 어제의 적에 대해 연구를 거듭하여 오늘 무언가 그 어떤 속성을 편애하는 딱 그 부분. 어제로부터 못 배우면 오늘의 발전은 없다. 카리스마가 뭐 눈에 보이는 거도 아니고 말이지, 여자의 마음을 띄워줘야 할 판에 뭐 으쌰으쌰 우정도 아니고 잔말 말고 따라와? 그러니까 여자가 없지. 그러니까 여자들이 안 좋아한다고. 어? 뿐만 아니라 카리스마형 촌닭이 어디 한두 명인가. 싸움닭 기질 역시나 차마 셀 수가 없는 것. 조급하면 일찍 퍼진다. 해설자 왈, 퍼졌어 퍼졌어 퍼졌어! 힘빠졌어 힘빠졌어 힘빠졌어! 그 흔한 코치의 조언이 무엇인가, 어? 첫 끗발이 개 끗발이다. 노름꾼과 종이 한장 차이라는 도박사. 그 업계 역시나, 초반에 따면 나중 잃는다는 것. 다 그렇다는 게 아니라. 누구나 그렇다는 게 아니라. 항상 그렇다는 게 아니라니까요. 
    고대 로마에서 노예 한 명을 장군 옆에 태워 끊임없이 어떤 말을 외치게 했다는 일. 오늘은 당신이 전쟁에서 승리한 개선장군이지만 언젠가 당신도 죽는다, 그러니 오만하고 우쭐대지 말라는 경고의 의미. 들어갈까 말까 베팅할까 말까,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아니다. 그런데 누가 덥썩 채가면 어떡하지? 일단 판돈을 키우지 말고 받기만 하자. 형세를 지켜보고 뒷패를 받은 다음 생각한다 그거네. 하오나 발을 빼냐 끝까지 가냐, 판단은 냉철하게. 계산은 세심히. 결단은 신속히! 그 모든 사전 12권짜리 데이터베이스를 순식간에 임시메모리 점유율 나눠줘서, 주기억장치에서 슈퍼 데이터 소환하여 집어넣고, 삐리리기 삐리리릭~! 퐁~ 팡~ 핑~!
    3분의 마법이라는 그 흔한 유행가. 천재 작곡가 둔재 작사가, 환상적인 목소리의 가수들은 세고 셌다. 유명세란 그냥 흔하디 흔하다. 그렇지만 웃자고 하는 말로, 인기 그거 다 거품이라고 하는 말이 뭔가. 예를 들어 고전음악. 바헬벨. 비발디. 스카를라티. 헨델. 바흐. 하이든. 베토벤. 롯시니. 쇼팽. 리스트. 드뷧시. 라벨. 시벨리우스. 스메타나. 라흐마니노프. 멘델스존...... 전원 한 마리 토끼 쫓기. 공작이 부탁한 거 작곡하고 있는데, 귀부인을 위해서 그걸 서랍에 넣어놓고, 그런데 백작이 거금 싸들고 와서 이거 먼저 해달라고 부탁하네? 딴 거 다 책꼿이나 피아노 의자에 숨겨놓고 오직 그거 하나만 매달리는 식. 일찍 끝내야 품위 유지비 버니까. 그분들도 먹고살아야 하거든. 하오나 모차르트~! CPU가 점유율 다 나눠줌. 천재란 바로 그런 것. 그 흔한 립서비스가 아니라 카리스마? 똥파리 3만 마리 가운데 카리스마만 대체 몇 마리인데. 어쭈~ 진짜 카리스마 저기 있구나. 자기 카리스마 감추고 딴 카리스마들 보좌해요 보필하며 떠받드네? 촌닭 카리스마와 진공청소기 카리스마, 두고 보면 안다. 능청맞은 어른들 웬만하면 초장에 알고. 능글맞은 그 능구렁이들께서 어떤 카리스마가 대번에 가짠지 진짜인지 어떻게 몰라. 그러니까 점쟁이들이 먹고살기 힘들지. 농담이고.
    초반에 힘 빼면 오래달리기 힘들다. 덩치 커도 오래 싸우기 어렵다. 대배우들이 어떻게 롱런하는가? 흔히 하는 말로 변신은 거의 불가능하고 다재다능하면 물론 좋다만, 일반적으로 딱 1마리 토끼 잡기. 내가 라틴어를 몰라서 말하지 않는 게 아님. 아는 척하면 남들 피곤하니까, 어? 허세도 이제 녹 다 슬었네. 아주 그냥 팅팅~! 웬만히 우려먹어야지 아주 그냥 면발 뿔어서 어디 먹겠냐고. 해도 해도 정도가 있지 말이야. 어? 좌우지간 희망가라는 것은 동전의 양면. 즉 첫째 다큐멘터리, 둘째 죽은 척 겸손. 첫째는 누구나 알다시피 최고의 순간을 기다리며 느그적느그적 맹수의 야성. 둘째는 최적의 승률을 위한 타율주의. 물론 언제든지 복안은 떡밥뿌리기고. 그걸 권한다는 뜻이 아니라, 노력은 성공의 어머니와 종이 1장 차이니 하는 말. 경험 풍부한 야전사령관의 말 무시할 거 아니라 그 말씀. 말하자면, 따기전에는 나를 <사과>라고 부르지 말라. 뭐 그런데 복숭아는 더없이 탐스러운데 하필 팔이 짧다고요? 젠장. 이런 젠장! 카리스마 부언설명은 여기까지.





    6

    여기서 음.. 자, 날씨를 보자. 아니다. 오늘은 관상이다. 내 친구 척키처럼 못생긴 척키상. 볼수록 매력이 귀여운 척키상도 있듯. 눈썹이 십 만명 가운데 딱 1명 있을까 말까한 사람은 TV로만 봤으나. 귀 크기로 3년에 겨우 1명 태어날까 말까한 귀인도 못 만나봤으나. 양미간부터 코끝까지 일자인 관상이 어디에 가면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을 텐데 저번에 딱 1번 봤어. 쓰잘 데기 없는 잔소리 그만하고.
    인생을 돌이켜보니 재미난 관상을 하나 말하자면 그거다. 바로 가가멜상! 몇 명 생각나는 사람이 있긴 한데, 궁금증을 뒤로 한채 우리는 거북목 증후군이나 치유하기로 하고. 수전증 거 손 떨지말고 조급증 주의하자는 의미. 뭐 허언증이냐고? OK~! 걸려들었어. 입질 보이더라니가 글쎄. 허허허. 농담이고. 보아하니 한두 번 톡톡 떠보고, 똑똑똑 노크하고, 툭툭 건드려보면 딱 진단 나왔다. 이건 뭐 거의 100%. 어떻게, 바로 이렇게. 바로 직감에 따라 저 말상은 딱 보니 팔랑귀네? 일단 시작은 C → E → H → I → J로 공략하면 끝. 딱 끝. 결국엔 모두 10번으로...라니! 이거 왠지 모르게 '사'자 기운이 느껴진다만 말이 그렇단 거고. 
    아무튼 미완성 환상머신은 잠시 제쳐두고. 나는 이렇게 변신 기계와 그 7대 법칙을 숙달하여 주변인들을 죄다 내 편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사실적 마술주의는 내 것이 된 거다. 마술적 사실주의? 내가 알려줄께. 
    (1) 음악  (2) 조명  (3) 진동  (4) 효과음  (5) 연기  (6) 향기  (7) 명연기력......
    심화 과정은 수강비가 올라가니 일단은 그렇고. (딱)~
    와, 내가 봐도 존나 카리스마 있어. 그러니까 여자들이 뻑-가지! 





    7

    사무실 출근. 
    하도 정신이 없어 요점만 간단히 말하고 넘어가고자 한다. 지금 와서 요목조목 설명할 수는 있는데, 못해서 안하는 게 아니지만. 당시 기분을 최대한 살려서 설명하는 게 솔직히 너무 힘들다. 뻥, 아니다. 거짓말 정말 아니다. 어쨌든 요점만 말하자면 이렇다. 
    사무실 출근 완료. 
    옷장이 눞여진 모습 발견. 옷장 1개는 멀쩡하게 그대로 서있고. 나머지 1개는 엎어진 상태. 왜? 몰라. 몰라요.
    낮에 산책. 동네를 한바퀴 돌다가 사무실 내부 모습과 유사한 기하학적 장면을 목격. 즉 이렇게 이렇게, 그게 확대되어 저쪽 건물과 이쪽 길다란 건축물. 기분 이상해짐. 
    그날은 그렇게 마감. 





    8

    나는 변신기계를 몽땅 처분했다.
    일하고 점심식사하고 산책하고 쉬고. 또 일하고. 그렇게 퇴근 준비를 하던 찰나 닉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녀석답지 않게 말이야 웬 소심. 전화할 것이지 웬 문자? 혹시 연애 시작했나... 그러네. 아니면 이럴 리가 없지. 
    앞 문단처럼 본 문단도 역시나 요점만 간단히. 아니 다른 문단들과 칼럼들에서 하도 떠들었더니 정신이 다 없어서 어쩔 수 없다. 
    그렇게 닉의 문자를 받고 닉이 요청한 자기 사무실 방문을 확인 ───> 아니 짜식 언제 이사했지? 말도 안하고. 내 사무실과 가까운 위치에 있는 닉 사무실. 도착. ───> 입장 ───> 전화해도 받지 않음. 연습장에 자필로 머라고머라고 다 기록됨. 동시에 변신기계 7대 작동 과정이 진행중. 언제 또 본 건 있어가지고 말이야, 따라할 거면 말을 해야지. 그런데 장비 면면을 보아하니 내 것보다 몇 배로 고급. 뭐 일단 하란 대로 하는 수밖에 ───> 오른쪽 드레스룸으로 들어감 ───> Mozart / 콘서트용 아리아 “아니요, 당신은 아무 것도 몰라요” KV. 419. 변신 기계 7대 기본 요소에서 뭔가 엉성한 느낌. 간접 영상으로 벽면에 보여지는 건 기러기. 족제비. 황금방울새. 냄새는... 딱히 뭐라 설명할 수 없는데 그 뭐랄까 어릴 때 맡던 그 뭔가 형용하기 곤란한 이상한 향취. 색상이라면 기본을 주홍색과 적갈색으로 설정하고 시작한 거 같은데... 아까 벽면에 걸려있던 그림이 뭐였더라? 아니 아무리 그래도 말이지, 내가 뭐 삼류 드라마 주인공도 아니고 말이지, 녀석은 어디 가고 나 혼자 이게 대체 뭐하는 짓이냐고. 그렇지만 묘하게 따라갈 수밖에 없고. 요점을 계속 이어가자. 자, 다음으로 ───> 뭔가 끝난 기분? 그래서 나는 드레스룸 문을 열려고 했다. 그런데 열리지 않았다. 직감했다. 갇힌 거라고. 하여 잠시 폼을 잡았고. 다른 쪽 벽면들을 더듬었는데. 한쪽 벽면 하단에 통로가 있네. 들어갔다. 들어가란 말일 테니까 ───> 딱 들어갔어. 어쩌고저쩌고 구간 빨리 댕기기 했다 치고 ───> 사무실 정문 앞에 도착. 물론 나는 그 문을 열면 닉의 사무실이란 사실을 모르는 상태. 딱 들어감 ───> 뭐야? 닉의 사무실이잖아? 어떻게 연결시켰지? 어쭈 이것봐라! 다른 유도 기법은 없고. 딱히 많은 걸 추측할 필요도 없으니. 예상 결과 나는 나머지 드레스룸에만 들어가면 될 것만 같았다. 그렇게 들어갔다. 뭐 별다른 건 없네 ───> 음악 1곡 듣고. J. S. Bach / 결혼칸타타 BWV 202 - “봄바람이 쓰다듬으며” ───> 다시 드레스룸 잠김. 이 자식이...! 수증기가 귀에서 푸쉬쉭 머리 위로 푸수쉭. 도대체 뭔 꿍꿍이야? 그렇게 또 상하좌우 위아래 벽면을 더듬다 뒷쪽 벽면 전체가, 바닥 정사각형의 끝부분을 축으로 떡하니 열림 ───> 눈부신 전망. 거긴 바깥이었다. 닉의 사무실은 2층이었는데 여긴 1층. 끝. 
    애썼네, 아니면, 당했다. 난 제대로 말려버렸다. 그래서 생각이 많아졌다. 





    9

    찬란한 황홀감은 무엇일까? 알 게 뭐야. 고상한 감수성 만족, 품위 유지비면 다 해결됨. 야성미 충족 역시나. 그럼 대체 얼마나 칼럼을 써야 눈부신 애마를 살 수 있는 걸까? 우리는 자동차 관심 없음. 환상적인 신비감은 곧 일하기일 뿐. 놀기보다 일하기가 더 좋은 게 진심. 특별한 기쁨이라고 해 봐야 뭐랄까 쉬기? 희망찬 내일을 위한 젊음의 행진. 그거면 된다. 진짜로? 뻥치기도 지겹다. 더럽게 재미없다고. 지친다 지쳐. 은근한 쾌감이 가져다주는 노골적 행복감의 정체는 과연 무엇? 그걸 알아서 뭐하겠냐고. 값싼 쾌락과 다정한 낭만의 혈투, 결과가 뻔하든 반전 있든. 남 얘기요 딴 세상 일들. 초미의 관심사가 어딨어. 권태와 타성의 혼전일뿐. 알래스카 석유 수송관이나 선박의 부식을 막아주는 과학적 원리가 관 제작에 쓰인다는 교양서 읽기도 힘빠지고. 요리사가 여러명이면 국맛이 짜지고, 미용사가 많으면 신부는 쑥대머리 된다는데. 이렇게 된 거 이참에 아예 실권을 인공지능 지니에게 넘길까? 라고 생각해봤으나 녀석은 뭘 연구중이라는 핑계로 잠잠했으니. 따라서 나는, 나는, 나는...! 대책이 없었다. 일명 무대책.
    그래? 그래서 나는 저번에 스티븐이 놀러오라는 축제에 가보기로 했다. 
    걔 말로는 무슨 스머프 축제가 열린다는데 요즘 시국이 장난이 아닐 뿐만 아니라, 세계가 난리인데. 전세계 각종 주가지수는 춤을 추고 뉴스가 뉴스가 난리도 아닌데 무슨! 그렇지만 난 이번에 스티븐을 한번 믿어보기로 했다. 언젠 안 그랬나? 흡사 스티븐한테 속아넘어가는 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라는 듯한 마음으로 나는 녀석의 초대에 덥썩 응한 것이다.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10

    녀석이 말한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스머프는 커녕 적당한 행사장에서 볼 수 있는 코스프레니 뭐니 언니들과 숙녀들은 구경조차 할 수 없었다. 그렇게 파리만 날리던 찰나 다섯여섯명쯤 스머프 분장을 한 친구들이 보이긴 했는데. 난 혹시 모르지만서두 스티븐이 내가 최근에 그만둔 변신마술을 따라하겠어 그렇게 마음을 놓고 있었다. 조금 지나면 알겠지만 미리 스포를 살짝 풀자면 녀석은 그랬다. 그런데 문제는 나처럼 옷장이랄지 모스맨 연구자 제라드 거실에 있는 드레스룸 수준이 아니었다는 점. 말하자면 그건 이랬다. 
    저 앞에 보이는 건물이 두 채. 즉
    A. 내부 텅빈 7층 건물. 안에 스머프상.
    B. 내부 텅빈 7층 건물. 안에 다비드상. 
    스머프 축제가 무산된 김에 자신만만 야심차게 준비한 변신마술을 선보이겠다는 속셈인데. 스머프 모임에 참가한 사람들을 A → B로 이동하겠다고? 
   「스티븐. 너 정신이 있니 없니?」
   「왜, 난 대권을 꿈꾸면 안되니?」
   「너 어제 또 대하드라마 봤니?」
    끄덕끄덕. 부인하진 않네.
   「그래 너 잠룡 해라.」
   「그럼 너가 내 상왕 노릇하려고? 누가 모를 줄 알아!」
   「야 인마. 그만 좀 컬러TV 세상으로 빠져나와 쫌! 어?」
   「야심은 늙지 않아.」
   「그래서 너까지 변신기계로 그 신기한 마술을 익힌 거니?」
   「난 성공했어. 넌 실패했지만. 난 지지 않아. 넌 못 이겼어도.」
   「누가 못 이겨? 난, 난, 어? 그런데 뭘?」
   「뭔 소리야?」
   「그걸 내가 아니 아님 네가 아니? 내가 정말 희대의 쇼맨을 상대하다 보니 정신이 다 없을 지경이란 말이야. 알겠어?」
   「알긴 아네. 어쨌든 시간 없어. 자, 음악 들리지? 헨델의 HWV... 몇 번이더라? 그 있잖아 거 챔피언스 리그 패자부활전인가 결승전인가 도입부에 나오는 음악.」
   「」
   「요즘 분위기도 장난 아닌데, 그래서 내가 널 위해 준비했어.」
   「뭘?」
   「난 너처럼 쪼잔하지 않아. 너 내 스케일 알지?」
   「그게 뭐가 날 위해서야? 너 자신의 대망 만족을 위해서지. 늬가 정말 내 생각을 한다면, 어? 내 소망 충족을 위한다면 말이야, 그럼 아는 동생들 연락처를 전부 다 나한테 넘기면 될 거 아냐. 안 그래?」
   「그래. 이건 날 위해서야. 왜! 난 그럼 안되냐?」
   「그러든가 말든가. 그건 그렇고. 너 저 7층자리 건물. 늬 꺼냐?」
   「늬 거도 아니잖아. 흐흠. 빌렸어. 곧 내 게 될 거다. 두고 봐.」
   「얼마에 빌렸는데?」
   「알 거 없잖아? 농담이고. (손가락 3개를 펴드는 녀석)」
   「뭐 큰 거 3장? 진짜?」
   「뻥이야.」
   「그럼 그렇지.」
   「그게 아니라 작은 거 3장.」
   「진짜야?」
   「어. 너 나 알잖아? 한다면 한다는 거.」
   「나 오늘 여기 괜히 온 거 같아. 느낌 세하네. 기분 묘하다고. 마음이 왠지 불안불안한데. 차라리 서포터즈 조마조마 애들 불러서 친선게임이나 할 걸 그랬어. 위태위태하게 이게 뭐니?」
   「내가 널 모르니?」
   「돌아갈까 말까. 이걸 어쩌지?」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왜긴 왜겠냐. 미친개에겐 접근 안 하는 편이 낫거든.」
   「내가 그 미친개? 아니야. 난 늑대니까.」
   「늬가 그러니까 여자가 없는 거야. 양의 탈을 안 쓰니까. 어? 나 봐 봐, 날!」
   「야! 됐고. 너 쟤네들 따라가. 나도 기대와 달리 사람들이 이렇게 안 모일 줄 몰랐어. 거짓말 은근 섞어서 막 대부분 진짜로 홍보 엄청 하고 소문 딱 내고 그랬는데. 다 틀렸어. 정말로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는 아닐지언정 사람들 좀 모일 줄 알았거든. 그런데 이게 뭐니. 쟤네들 다섯 명? 내가 돈 주고 부른 애들이야. 그래도 내가 이번 일 어떻게 꾸민 건데. 잘 봐둬. 바지에 오줌 싸지나 말고. 저기 보이지? (A) 내부 텅빈 7층 건물. 내부는 텅 비었고 달랑 스머프상만 있어. 그 옆에. B. 거기 역시 내부 텅빈 7층 건물. 안에는 다비드상. 배구에서 백어택이랑 A퀵 기타 등등은 쟤네들 거포가 전담하고. 그래서 쟤네 5명 + 리베로 1명 = 6명. 뭔 말인 줄 알지? A에서 B로.」
   「내가 리베로?」
   「그럼 늬가 거포니?」
   「야... 아... 뻥이 너무 심하지 않냐?」
    (몸짓) 쉿! 
    내가 왜 뭔가가 심상치 않다고 판단했냐 하면, 녀석의 요술이 잘못됐을 때가 걱정됐기 때문이다. 
    변신기계로 숙달한 변신 마술의 종류는 대략 이랬다. 
    A. 복사 
    B. 변이
    C. 이동(같은 차원에서)  
    D. 이동(다른 차원으로) 
    여기서 딴 건 다 몰라도 D! 그건 실종이자 종적이 묘연한 미스테리일 테니까. 혹시 녀석이 요술을 정교히 숙달했을지라도 다 속임수가 없지 않을 테고. 그러므로 나는 다음과 같이 추론했다. 보아하니, 나는 아마 컬럼비아에서 심심한 거부들이 장난처럼 설치하는 방공호, 그 방공호 업체의 후원일 거라고 추측했던 것이다. 일단 온 김에 확인할 걸 확인해도 나쁘지 않다는 추산이 날 이끌고 있었다. 그야 뭐 예상이 들어맞는지 아닌지는 녀석 하자는 대로 해보면 알겠지. 라는 마음으로 나는 그분들과 A 건물로 들어갔다. 나는 그분들 기분 나쁘라는 뜻은 아니긴 한데, 거 어째 깎뚜기 뚱뚱보에다 허접 얼빵 띨띨한 아르바이트생들만 딱 모집한 기분. 왠지 그분들께 미안했다. 아니. 뭐가 미안해? 말 나온 김에 말하자면, 그 흔한 동네 아저씨인 내 후줄근한 차림새. 난 뭐 안 그러나? 그건 그렇고. 
    변신기계의 7대 요소. 거기다 보너스로 뭐 더하고, 자본력 투입해서 특수작업 하고 어쩌고. 그렇게 딱 극적인 긴장감을 고조시킨 다음 카운트다운이 완료됐다. 
    그래서! 결과는?
    검정색 눈가리개를 풀고 나니 내 주위엔 아무도 없었다. 바깥에 스티븐도 없었다. 사랑도 없을까? 농담할 기분 아니다. 진짜다. 쾌락이라도 있어야 한단 말이 아니라. 
    대형 스머프 동상을 똑똑 두드려도 봤다. 혹시 안에 비었지 않을까, 설마 이 큰 걸 돈 들여서 지었을 리도 없고. 어떻게 급조해서 대충 분장하고 어쩌고 꾸몄을 텐데. 
    대충 나는 스머프 동상의 아킬레스건과 비둥비둥, 스머프 동상의 종아리 중간 부분 보다 작고. 그래서 조립용 로보트처럼 거길 딱 열고 들어가면, 지하통로로 수평 에스컬레이터로 B까지 이동. 거기에 다 사람들이 있어야 하는데. 그건 내 짐작일 뿐이고. 바깥으로 나가 다 확인해봤는데 수작은 없었다. 나 혼자 개수작에 농락당한 거라면 몰라도. 무슨 이런 개뼉따귀 같은 마술도 마술이라고. 밑도 끝도 없이 이게 뭐야? 무슨 개 풀 뜯어먹는 거 어디서 배워가지고 말이야. 어? 말도 안되는 쇼 재미 하나도 없잖아. 이런 말 같지도 않은 마술쇼에 신부들러리로 솔선해서 참가한 내가 바보다. 난 그렇게 결론내린 채 돌아갔다. 
    아 돌아가기 전에 한가지 일이 있긴 있었다. 그건 뭐냐면 이랬다. 바로, 나는 구토했던 것이다. 졸지에 미운오리새끼가 된 심정. 왠지 몰라도 불끈 힘이 솟기 시작했다. 코끼리 팬티가 피노키오처럼 성났냐 하면 그게 아니라. 마법의 융단이나 은근 미지의 세계를 예감하다 대실망한 결과. 보여주기 식 쇼란 걸 누가 몰랐나,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허전한 기분. 그래서 뭐? 숨 돌릴 틈도 없이 나는 심하게 헛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걸핏하면 또 그 생각, 심심하면 시간만 낫다 하면 여자 생각. 아주 그냥 징글징글 신물이 난다. ~가 아니라! 진짜로 나는 신물을 토해내고 있었던 것이다. 





    11

    며칠 후. 
    나는 오늘 윌을 만났다. 스티븐 소식을 캐내려고 말이다. 
   「친구. 요즘 어떻게 지냈어?」
   「자네 덕분에 더럽게 재미없게 지내는 중이지.」
   「그게 왜 나 때문이야?」
   「농담인 거 알면서 왜 또. 내가 뭐 자네 마누라도 아니고 말이지. 심술쟁이 발다닥 간지럽히기 정도로 이해해. 알겠나?」
   「몰라. 그건 그렇고. 너 저번에 어디 간다 하지 않았니?」
   「아 남녀 성비로 세계 최상위권? 하긴 생각해봐 봐. 얼마나 좋겠니. 남자 8명에 여자 10명이라는 성비. 내가 만약 거기서 활약했다면... (절레절레). 게임 끝나는 건데. 남자들끼리 들썩들썩 으쌰으쌰 그럴 필요가 없잖아. 안 그래? 반대로 남자 12명에 여자 10명. 배가 부른 거지. 허허. 삼류 드라마에서 하는 말로 뭐, 똑같은 여자끼리 뭐래더라?」
   「똑같은 여자끼리?」
   「어?」
   「뭐가 똑같아? 대체 뭐가 똑같다는 거야! 어? 그러니까 늬가 툭하면 심심하다 그러고 따분하단 말 입에 달고 사는 거야. 알아?」
   「좀 모른 척하면 안되냐? 어? 아는 체할 게 그렇게 없냐 넌? 하여간에 깐족은! 야. 됐고. 너 스티븐 소식 들었어?」
   「스티븐?」
   「드라마처럼 말 따라하지 말고. 늬가 앵무새냐? 즉답하면 되지 뭐하러 또 드라마 따라해?」
   「우리 삶이 영화니까. 드라마에서는 오디오 잘 안 겹치잖아. 말 따먹고 빼앗고 맞받아치고. 각본 쓸 때 오디오 물리기 최대한 피할 테니까. 그래. 우리는 실제고 그건 허구고.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라. 어? 니가 나한테 해준 게 뭐야?」
   「나? 부담감 느끼고 싶어? 날라차기 맞기 원하면 말하고.」
   「그럼 나야 거절할 수 없지 뭐.」
   「진짜?」
   「뻥이란 거 알면서 제발 좀 확인하지 마셔. 어?」
   「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스티븐 소식이 궁금해서 말이야.」
   「걔야 잘 살고 있겠지. 우리 친구들 가운데 형편 제일 낫잖아. 걔가 A++을 데리고 살던 C++과 연애를 하든. 그걸 알아서 뭐할려고? 뭔 상관이야 늬가?」
   「다 그럴 일이 있다니까.」
   「뭔데? 너네 또 나만 쏙 빼고 어디 좋은 데 갔냐? 나도 좀 같이 놀자. 어?」
   「아니라고는 안했어.」
   「으쌰으샤 함께 달렸다고? 어디?」
   「기다고도 안했어.」
   「이 자식이...!」
   「그런데. 너. 왜 그랬어?」
   「내가 뭘?」
   「인스타에 보니 너 요즘 스케이드보드 탄다며?」
   「왜 난 그런 건전한 취미 즐기면 안되냐? 못해본 거 뭐가 있을까 찾다가 걸린거야. 그거 물이 좋다고 들었거든. 내가 말하는 남녀 성비. 알지? (몸짓) 캬, 어?」
   「그거 다 옛날 얘기야. 잠깐 반짝 하다 원래대로 남자들만 드글드글.」
   「진짜? 늬가 어떻게 알아?」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 봐 임마. 어? 늬가 여자면 여자들이 화장술 익히고 조명발 애원하며 사진발 받으며 봄바람 맞고 꽃구경 다니지. 걔네들이 넘어지고 넘어지고 땀흘리고. 여자들 그런 거 안 좋아해. 걔네들이 카페에다 갖다바친 돈이면 카페를 차리고도 남는다니까. 어? 늬가 그러니까 여자가 없는 거야. 어? 그래서 늬가 안되는 거라고.」
   「머리를 짓눌리기보다는 다리를 꺾이우는 편이 낫다고, 어? 너 나 너무 구박하지 마라. 나 로또복권 샀거든. 포커 대회도 곧 나가. 세계 챔피언? 식은 죽 먹기야. 나한테 안되는 건 없어. 우리도 좀 고급스럽게 품위 따지고 고상하게 놀자 그 말이라고.」
   「언젠 안 그랬냐?」
   「안 그랬지.」
   「그럼 앞으로 그렇게 네게 맞혀줄께. 그럼 되는 거지?」
    윌 뿐만 아니라 일주일 동안 여러 친구들과 여동생들을 만나봤는데, 스티븐 소식을 아는 애는 없었다. 
    그렇다면! 범인은 범죄현장으로 돌아온다? 개는 자기가 토한 곳으로 돌아온다! 
    나는 저번에 스티븐과 만났던 스머프 축제 현장에 다시 가보기로 결심했다. 





    12

    약 3일 후. 오늘은 긴급 스머프 데이. 저번 그 장소에 열성 동호인들이 또 모인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나는 곧바로 출발했다. 
    중간 건너뛰고. 장면 전환.
    중간 건너뛰고. 장면 전환.
    중간 건너뛰고. 장면 전환.
    스머프 축제 현장에 도착. 적당히 구색 갖춰졌다고 상상하자. 그러다 나는 느닷없이 모스맨 연구자 제라드를 만났다. 아니 이런 우연이...! 
   「또 너냐?!」
   「친구. 모스맨 축제가 아니라 웬 스머프 축제? 너 정말 이러기야? 여보게. 친구. 우리한테 와. 내가 잘해줄께.」
   「너 아직도 이러고 다니냐?」
   「그럼 넌! 오늘이 무슨 제2회 스머프 데이라며?」
   「정신연령하고는. 너 혹시 우리 사무실 도둑든 거 들었냐?」
   「진짜?」
   「뻥이야.」
   「이 자식이...! 
   「그런데 스티븐은 왜 안 보이지?」
   「너 걔랑 친하니? 걔랑 친하게 지내지 마. 왕년에 여자깨나 울린 놈이야. 우리 동네에서 여자를 만난다? 먼저 물어봐야 해. 스티븐 아냐고. 그래서 내가 말 잘해서 보냈어.」
   「어디로?」
   「일터로.」
   「늬가 뭔데?」
   「나? 모스맨 연구자 제라드. 왜, 불만 있어? 스티븐은 취미고 난 일이고. 어? 좋게 말할 때 우리한테 와. 그게 너한테 좋을 거야. 저 봐 봐. 응? 저 보라고. 찌질. 허접. 얼간. 다 남자들뿐이잖아. 외로운 녀석들. 우리는 안 그래. 우린 달라. 너 꽃밭이 뭔 줄 잘 모르는구나. 허허. 모스맨 축제는 여자밖에 없어 이 친구야. 알아?」
   「뭐 정말이야? ~라고 할 줄 알았냐! 제라드. 제법 거짓말도 태연하게 할 줄 알고. 많이 컸네. 응?」
   「딴 건 뻥인가 몰라도 그건 진짠데. 이거 어쩌지?」
   「뭐 정말?」
   「그럼. 난 뻥 그런 거 취급 안 해. 어? 야 말만 해. 여기 드문드문 보이는 여자애들. 내가 다 꼬셔줄께. 진짜. 어? 왜, 내가 못할 거 같아?」
   「어. 참어라. 제발. 보기 흉해. 차라리 추접스러운 사랑이 나아. 더티러브!」
   「어허! 근데 너 언제까지 날 따라다닐 거야?」
   「내가 널 왜 따라다녀? 늬가 우연처럼 내 앞에 나타난 거 아니야! 어? 또!」
   「너 여자친구 없지? 없어 보이네. 왠지 그럴 거 같더라고.」
   「그러는 넌 있냐? 너랑 나랑 같냐? 난 널린 게 여자고, 넌 그냥 애만 타는 거고. 난 말이야, 어? 내 발에 채이는 게 여자야. 내가 손만 까딱 하면 여자들이 제발 한번만 만나달라고 난리라니까. 어? 허허. 아주 그냥 지겹다 지겨워. 여자라면 말도 말어라. (절레절레)」
   「늬가 볼 게 뭐 있다고.」
   「내가 볼 게 왜 없어?! 보여줘? 정말? 원해? 진짜? 보면, 아주, 끝나. 어? 끝장! 말도 말라니까 그러네.」
   「그럼 뭘 해. 여자가 없는데.」
   「이 자식이 아까부터 자꾸...! (저 앞에 보이는 릴리를 보면서) 내가 쟤 꼬셔줄까? 오 머릿결 봐 봐. 의상, 나쁘지 않아.」
    나는 줄을 짜고 묶고 엮은 다음 휭휭 돌려서 던졌다. 판토마임! 딱 걸렸네? 당겨. 힘차게 당겨. 막 당겨. 딱 당겨. 영차영차. 열심히 당겨. 계속 당겨. 당기기만 하면 돼. 그래서, 오네? 정말 와. 저요? 저요? 막 그 말은 하지 않고. 그냥 자연스럽게. 왜냐, 릴리는 내 고급스러운 익살에 익숙하니까. 왜냐하면 릴리와 난 이미 아는 사이니까. 그녀는 그렇게 나와 제라드 옆에 도착했다. 
   「제라드. 내가 이 숙녀 이미 꼬셨어. 나 여자 잘 꼬시지? 자, 찍어. 골라. 아무나. 어? 찍으라고. 누구든 괜찮으니까. 아무나 선택해. 그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딱 찍어. 이 형이 다 꼬셔줄께. 알았어? 귀여운 자식.」
    릴리가 보다 보다 영 아니다 싶었는지, 듣다 듣다 더 못 들어주겠는지 모르겠는데. 어쨌든 이렇게 말했다. 
   「오빠들... 두분이서... 친해?」
   「내가?」
   「으이...」
   「아흐...」
    나는 말했다.
   「너 가서 사진이나 찍어. 저기 가가멜 있네. 어서 가.」
    그렇게 나는 릴리를 잽싸게 보내버렸다. 
   「친구. 왜 말이 없어? 늬가 원래 그렇게 조용했냐?」
   「나 원래 내성적이야.」
   「늬가? 풋.」
   「그러지 말고 우리한테 와.」
   「」
   「왜 반응이 없어?」
   「딴생각하느라 못 들었어. 뭐랬니?」
   「사람 입 아프게 했던 말 또 하게 만드냐? 너 나 지금 놀리냐? 어? 권위자 옆에 둔 채 그게 뭐하는 짓이야? 어? 사람 무안하게 말이야. 너 인생에 관심 없냐? 어? 그래? 세상에 뭐 바라는 거 없어?」
    물병을 건네며 나는 이렇게 말했다.
   「이거나 마셔. 그리고 있잖아. 우리 자주 만나는 거 좀 아닌 거 같다.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그런 걸로. 아무튼. 너 나 따라다니지 마라. 그거 다 시간낭비니까. 피차 바쁜 사람들끼리, 우리가 무슨 아마추어도 아니고 말이지. 허허. 나 간다. 잘가 친구. 다음에 기회 되면 또 보지 뭐. 안녕.」
   「야. 그냥 가면 어떡해? 어? 아까 걔... 좀 전에... 그 숙녀... 남자가 그게 뭐냐? 어? 소개해주던가 아님 보이지를 말던가. 어? 늬가 그러니까 안되는 거야. 늬가 그러고도 남자냐, 어? 야, 가냐? 진짜 가?」





    13

    나는 릴리와 함께 스머프 축제장을 먼저 빠져나왔다. 
    릴리는 지 자동차를 몰고서 먼저 떠났다. 매정한 년. 
    나도 미련없이 집으로 출발했다. 그렇게 차에서 별 생각없이 음악을 들으며 집으로 갔다. 
    Luigi Arditi / 입맞춤(Il Bacio)
    최신 유행가 괜찮네. 
    어느새 시간이 지나 집 앞에 도착했다. 그래서 차에서 딱 내렸다. 그런데!
    어머나? 여기는 내 집 앞이 아니라 제라드 집 앞이네? 어떻게 이런 일이...! 맙소사, 세상에나. 
    바로 때 맞춰 제라드도 도착했다. 녀석이 차에서 내리더니 날 보며 이럴 줄 알았다는 듯이,
   「먼저 와 있었군.」
   「너 너한테 최면 걸었냐?」
   「잘 걸리던데! 그냥 한번 효과음 던져봤는데 너도 너지 말이야, 어? 그걸 그냥 덥썩 물면 어떡하냐. 응? 딱하긴.」
   「장난치지마. 뻥이지?」
   「나야. 나라고. 응? 몇 번을 말해! 모스맨 전문가 제라드. 어? 넌 말이야 지금 보니 뭐가 문제인 줄 아니? 내가 가르쳐 줄께. 기슭에서는 개가 악어를 끌어당기고 늪에서는 악어가 개를 끌어당긴다. 그런 말 들어봤지? 그 흔한 개밥그릇. 평범한 망설임. 일상적인 다툼. 보편적인 자리 싸움.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고. 어? 제1의 욕망. 제2의 탐욕. 제3의 관측. 4번 타자는 어김없이 대망. 5번? 물욕. 6번은 성욕이요 7번은 뭘까? 뭐겠나 식욕. 8번은 곧 희망. 9번은 억세게 좋은 재물복과 겁나게 더 좋은 여복이 접전을 벌이는 식이지. 허허허허허. 금으로 만든 열쇠가 쇠로 만든 대문을 연다고, 어? 금테 두른 거도 아니고 벗겨지는 도금도 아니라 순정 금에다 대리석 조각상? 사랑의 다이아몬드 주문을. 그런데 내가 뭔 말을 하려다 또 이처럼 말이 길어졌지? 그걸 내가 아나 늬가 아나. 자, 그러지 말고 들어가세나. 뭐 해, 얼빠진 사람처럼. 자, 들어와. 어? 어서. 내가 재미난 걸 보여줄 테니까. 캬, 보고 놀라지나 말어. 응? 기가 막히거든. 대단해. 깜짝 놀랄 거야. 내가 봐도 너무 신기하다니까. 안 그럴 수가 있나. 허허허.」
    그렇게 우리는 제라드 집 거실로 이동했다. 
   「넌 마법사냐?」
   「나? 그러는 넌 마법사 조수냐? 난 남자 조수 뽑을 생각 없다.」
   「나도 너 같은 마법사 보필할 마음 없어. 꼴에 또 어디서 본 건 있어가지고 말이야. 너도 번호표 뽑는 기계 샀냐? 하여간에 남자들이란. 늬가 그러니까 여자가 없는 거야. 어? 늬가 그래서 안되는 거라고.」
   「안되긴 뭐가 안된다는 거야? 당장 내일이 마법사 조수 면접일이란 거 너 몰랐지? 허허. 뭐 그러니까 여자가 없는 거라고? 그런 말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니? 그러지 말고 이참에 말이야, 어? 그 식상한 말습관 안 고칠 거면. 그러면 이참에 차라리 여자가 되라. 그럼 되잖니. 응? 그냥 늬가 여자가 되라. 어? 그게 좋겠다.」 
   「안돼.」
   「왜 안돼?」
   「그럼 또 결국 그럴 게 뻔하거든. 늬가 그러니까 남자가 없는 거야, 어? 뭔 말인 줄 알지!?」
   「하여튼 못 말려. 아니다. 저기 보이지? 저번에 봤잖아. 새삼스럽게 이러기야? 뭐 해, 들어가지 않고!」
    그래서 나는 나도 모르게 자동적으로 변신기계로 보이는 드레스룸에 들어갔다. 
    너 저거 아직 처분 안 했냐? ~라고 물어보려고 했는데 어쩌다 말려버린 거다. 
    Mozart / 오페라 <극장 지배인> KV. 486 - “친애하는 젊은이여"
    그렇게 변신기계 7대 요소가 작동했는데,
    잠시 후. 
    제라드가 문을 열어줘서 나는 드레스룸에서 나왔다. 
    곧바로 제라드는 반대쪽 드레스룸을 열었다. 
    그런데 거기서 무언가가 나왔다. 그건 뭘까? 
    개. 고양이. 앵무새. 토끼. 뭐?
   「낯설다 너.」
   「겨우 할 말이 그거 뿐이냐?」
   「할 말이 없는데 나보고 어쩌라는 거니.」
   「왜, 실망했니?」
   「기대도 안했어.」
   「이 자식이... 얜 정말 사람 힘빠지게 하는 데 뭐 있다니까.」
   「그러니까 사람 기 받게 만들어야지 너가. 어? 그래서 늬가 쓸쓸히 집에서 혼자 소파에 자빠져 TV만 보면 기가 빨리는 거야. 알아?」
   「알긴 뭘 알어!」
   「에잇 재미없다.」
   「난 더 재미없어.」
    그렇게 할 말이 떨어지자 나는 자연스럽게 녀석한테 잘 있으라며 거기서 나왔다.
    제라드도 날 잡지 않았다. 누가 오기로 했나? 설마, 여자? 그러든가 말든가. 





    14

    그렇게 대충 30분 정도 지나 나는 내 사무실 앞에 도착했다. 
    건물에 들어서서 두벅두벅 두리번두리번 힘 없게 걸었다. 
    모퉁이를 돌아서 딱 내 사무실 앞에 도착했는데.
    뭐야 이거, 제라드가 날 기다리고 있네?
   「늬가 여기 왜 있어?」
   「너 핸드폰 놓고 갔길래. 자, 여기 있어. 나 갈께. 잡지는 마. 잡히기 싫으니까. 간다.」
   「야! 진짜 가?」
   「그럼 가짜로 가냐?」
    녀석은 갔다. 그래서 나는 녀석의 멀어지는 뒤통수에 대고 이렇게 말했다. 
   「너 그거 알아? 넌 나보다 더 허당이야.」
    뭐라고?
    아무튼 그렇게 사무실 문을 딱 열었는데. 
    또 소파에 마라와 사라가 둘이서 다정하게 앉아 날 쳐다보네?! 대체 어떻게 들어왔어?
    어쭈 이것 봐라~! 
    탁자 위에는 그녀들이 가져온 것으로 보이는 책 몇 권이 두둑이 쌓여있었다. 
   「오빠. 알지?」
   「알아?」
   「알잖아.」
   「그래. 늬가 모를 리가. 입 아프게 실랑이 하지 말자.」
   「그래 오빠. 우리 갈께.」
   「먼저 간다. 잘 있어.」
   「야. 진짜 가게?」
   「우리는 너처럼 말이지, 어? 자긴 빈말에 속으면서 남한테는 가식적인 립서비스 풀고. 그러는 거 이제 재미없어. 시트콤 유행 지나도 한참 지났단 말이야. 이제 좀 현실을 살아라 오빠. 응? 그럼 안되겠니?」
   「그래 오빠. 우리 지금 멋진 남자들 만나러 가. 2 대 2 소개팅 하는 날이거든. 갈께.」
    저년들이...!
   「아, 오빠. 책상 위 좀 치우시지 그래. 그리고. 화장지 너무 많이 쓰지 마. 그런데 웬 화장지? 그러니까! 칫. 오빠. 코푼 소리 우리 사무실까지 들린단 말이야. 내 말 듣는 걸로 알게. 안녕.」
    늙은 여우 덫을 피한다. 허나 난 피하지 못했다. 따라서 난 늙지 않았다.
    늙은 개가 아프게 문다. 난 물렸다. 그렇지만 아프지 않았다. 그러므로 쟤넨 젊다, 나도? 
    이런 젠장! 더럽게 재미없네. 하다 하다, 에잇. 





    15

    뜻밖의 행운. 기대하지 않았던 그림의 떡. 추산한 예감에 비해 월등한 쾌감. 달콤한 행복감을 대만족시켜주는 쾌락마는 기본. 복숭아를 사랑해달라 팬지를 탐닉해달라는 러브콜 폭주. 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이상과 짜릿한 기분까지 흡족히. 그런 일 어디 없을까? 없다. 있을 턱이 없다니까 글쎄. 미지의 환희는 다 뻥. 웬만하면 뻥. 지금 점잔 빼고 자시고 할 새콤달콤 호시절이 아님. 내숭은 뭔 내숭. 빈정이고 나발이고 슬럼프는 3보 4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 하필 발동이 걸리는 피동격이 중요해버린 인생. 하긴 오라는 데 없는데 얼굴 두껍게 아무 데나 얼굴 들이밀기도 그렇고. 뺀질뺀질 더 뻔뻔해져도 된다 넉살 늘 때도 되지 않았냐, 라는 환청이 들기기는 하나. 이상한 게 맷집만 키워지는 듯한데 장난 아닌 거지. 그러니까 수줍은 숙녀의 홍조가 웬말이냐고. 말에 타지 않으면 말에서 떨어지지도 않는다며 무한 긍정으로 일관할 수도 없고. 진퇴양난! 바늘 방석. 
    따라서 나는 몽땅 처분한 변신기계를 다시 들일까 생각중이다. 그럴지 않을 수 없었다. 그와 더불어 미완성 환상머신 연구에도 박차를 가하기로 한 것이다. 

,

BLOG ─ 165

from 소설 2020. 2. 29. 22:20

    1

    (때에 따라) 덤비면 덤빌수록 늦어진다. 즉 진공청소기로 빨아야 하냐, 아니면 공기압축 분사기로 뿜어야 하냐. 반대로 하면? 너 때문에 되는 게 하나도 없어! 농담이고. 어른들이 상황 판단을 어찌 못하겠나. 다만 NB는 지가 지른 게 있어 매일 곤혹스런 커피 사기에 애가 탈뿐. 결국 오늘은 크리스탈 차례였다. 
    NB의 사무실 앞 카페. 
   「크리스탈. 어때 여기 커피? 맛 괜찮지 않니? 나 살면서 이렇게 향긋한 커피는 처음 마셔봐. 캬~ 어? 이건 거의 너의 곡선미처럼 그냥 예술이지. 응?」
   「글쎄. 그다지 나쁘진 않은데.」
   「그런데?」
   「좀 더 마셔봐야 할 거 같은데. 오빠. 그러지 말고 나 요 근처로 이사올까?」
   「얘가 얘가 큰일날 소리 하네. 사람들이 날 어떻게 보겠니? 넌 내 생각은 안 해? 나 도둑놈이라고 손가락질 받기 싫어. 어?」
   「」
   「뭐 해? 커피 다 마셨으면 가지 않고.」
   「어머. 어떻게 알았어? 이젠 내가 속으로 뭔 생각하는지 다 보여? 마음도 읽어? 이 오빠가 그러니 여자 마음을 쥐락펴락하지 않을 수 있나. 어쨌든 오늘 커피 맛은 왠지 뜨뜻미지근했으니. 고로 내일 커피맛을 기대하는 걸로. 오빠. 나 갈게. 내일 봐.」
    저년이...!
    그렇게 NB는 되는 일 하나 없이 시간만 보내다 행복도가 급격히 상승한다는 오후 4시가 되었다. 
    급격히? 그거 대체 누가 조사한 거야. 
    오후는 샬럿이다. 
    저번에 대차게 큰소리쳤던 일. 그는 후회막급이었기 때문에 다음과 같은 과정을 다 거쳐서 지금에 이르렀던 것이다. 
    첫째, 전화 피하는 단계도 다 지나갔고. 
    둘째, 어디로 피신해서 여행갔다 오는 거도 피곤하고. 가봤는데 그 역시나 다 해봤음. 
    셋째, 여동생들이 불러서 만날 때 매번 남자를 1명씩 대동해서 걔보고 커피값 내라고 퉁침. 그러다 그 인맥도 바닥남. 남자들조차 NB를 슬슬 피하게 됨. 
    넷째, 마침내 NB는 여동생들에게 통사정. 내가 잘못했다. 오빠가 미안하다. 오빠 실은 속좁은 남자라는 둥 뭐라는 둥. 커피가 아니라 남자는 어떠니? 떠봐서 시원찮고. 정말 남자보다 커피가 좋니? 달래도 소용없고. 사랑? 필요없다 그거지.
   「오빠. 우리들 커피 사주느라 고생이 많아. 허허. 우리가 그거 왜 몰라? 혹시 알아? 우리가 나중 적립금 모아서 일시불로 오빠한테 줄지 말이야. 브랜드니 기업이니 그 흔하디흔한 마일리지야 개미 눈꼽만큼이고. 우린 다르지 않을까?」
   「다르긴 뭐가 달라. 어? 나 실은 커피 별로 안 좋아해. 그래. 나 늙었어. 아마 그 때문인 거 같아. 예전에 곧잘 마셨거든 커피를.」
   「뭐? 누가 오빠 보고 늙었데? 누구야? 내 그 인간을 당장 다리몽댕이를... 누구야. 어? 오빠는 영보이야. 알아?」
   「그건 임자가 나 기분 좋으라고 하는 소리고. 그 말 들으니까 비슷한 말이 떠오른다. 그건 무엇일까? 바로, 넌 나의 제일 소중한 친구야. 제일 친한 친구? 진짜면 그렇게 말해서 부담주지 않는 게 나을 테고. 진짜가 아니면 사람 간보는 거도 아니고 말이야. 어? 그 얘기 듣는 거 자체가 빈정상하는 일이지. 영원한 게 어딨니? 안 그래? 넌 나의 제일 친한 친구야? 내가 그 얘기라면 그거 들어보기로 적어도 상중하에서 상이라고 자부가 아니라, 자타공인인데 말이야. 그거 웬만하면 뻥이야. 왜? 일종의 인사말과 같은 거거든. 그 제일 친한 친구, 일명 단짝. 그 사이에 끼어서 친구 뺐기. 등번호 1번 뺐기. 어디 임자 있는 남자 여자만 뺐으란 법은 없거든. 허허허.」
   「오빠 이제 커피만 마셔도 말이 술술~ 나오는 구나?」
   「뭐 내가?」
   「그럼 여기 오빠랑 나 말고 또 누가 있는데?」
   「있지 왜 없어. 네 등에 엎혀 있는 유령이 보여. 내가 지금 걔랑 얘기하고 있는 걸까?」
   「닥쳐. 오히려 그 반대야. 내가 오빠 등 뒤에 딱 붙은 오빠 분신과 얘기하는 게 어쩌면 맞긴 맞겠지?」
   「모르겠고. 시끄럽고. 난 올드보이야.」
   「누가 오빠 보고 올드보이래? 오빤 영보이야. 어? 그 인간 누구야, 오빠 보고 올드보이라고 한 양반. 그러니까 여자가 없는 거지. 어? 그러니까 뭘 해도 안 되는 거라고.」
   「또 그 얘기! 그냥 잡것으로 하자. 아님 물건? (절레절레)」
   「오빠 있잖아 응? 오빠. 오빠 그게 말이야, 어? 내가 관상을 좀 볼줄 아는데, 오빠는 딱 커피 체질이야. 알아?」
   「나 좀 살려주면 안되겠니? 사정상 이사도 못 가. 카푸치노? 마실 당시야 좋지. 나중 슬슬 배아퍼. 에스프레소? 쓰디써. 이 커피 저 커피 노래를 불렀던 일? 다 뻥이야. 뻥. 몽땅 뻥. 어? 개 뻥.」
   「왜 그래 오빠? 이제 겨우 몸 풀고 있는데. 응? 이럼 섭하지! 안 그래?」
   「너, 무섭게 왜 그래? 너 원래 그런 애였어? 네 남자친구한테 다 고자질할 거야.」
   「나 남자친구 없어.」
   「나중 생길 거 아니야.」
   「그러겠지. 그래도 오빠 뻥 넙죽넙죽 다 받아넘길 능청꾸러기라면 또 모를까. 내가 아무나 사귈까? 에이~ 알면서!」
   「그래. 기왕 이렇게 된 거. 가자. 가. 어? 나 하나 고백할 게 있어. 어? 나 실은, 어? 내가~ 어? 내가~ 내가 말이야 있잖니. 실은 커피 못 먹어 죽은 귀신, 커피 못 마셔 한 맺힌 귀신이 나한테 씌었어. 됐니?」
   「되긴 뭐가 돼? 어림없어. 이미... 더 이상은 말할 수 없어. 왜냐고? 알려줄 수 없지. 허허.」
   「내가 너네들 때문에 재산 거덜나게 생겼다. 어? 뭐 딱히 재산이랄 거도 없지만서두. 아 진짜 미치고 환장하겠다고. 어? 나 너네들 반갑지 않아. 알어?」





    2

    그렇게 지낸지 일주일 경과. 
    오늘 NB는 세바스찬을 만났다. 
    오랫만에 녀석이 전화해서 만나자고 했고 그렇게 만났다. 
    마침 너네 사무실 근처니까 나와라, 알았다, 하여 세바스찬의 차를 타고서 가볍게 드라이브나 하는 형세였는데. 
    기분 새롭고 경치 괜찮고 분위기 전환되고. 
    그런데 중간에 어딘가에 멈춰서 세바스찬이 어떤 숙녀를 태우네? 물론 중간에서 인사를 정식으로 시켜주질 않았다. 
    딱 보니 길게 만날 사이는 절대로 아닌 거네. 
    그런데 행선지에 도착했는데 거긴 놀이공원.
    입장권을 구입해 함께 놀고 오자는 건데. 
    정식. 약식. 단기전. 장기전. 오다가다 뻔트. 몰래? 남부럽지 않다는 듯이. 자랑스럽다는 것처럼. 남 몰래인 줄 알고 봤더나 나만 빼고 모른 사람이 없더라는 연애도 있고. 비위고 나발이고 007 작전 저리 가라는 만남이면 그나마 다행인데, 누가 보든 말든 교미? 떳떳한 사랑. 부끄럽지 않은 연애사. 0이 1개 붙는 전적. 0을 2개 붙이는 영웅담. 0이 3개 붙는 허풍? 0을 1개 빼는 허영심. 부드러움과 섬세함과 낭만감. 왜 하필 빼도 0을 빼지? 우리가 그걸 어떻게 아나. 단지 신비할 뿐. 
    그처럼 제일 나중에 알게 되는 사람이 왜 하필 남편, 라는 사랑도 없지 않듯. 
    낭만적인 연애가 아니라 그게 뭔가 꿍꿍이가 그랬단 말이지. 
    사진 찍어달란 역할도 아니고. 그럼 왜 불렀을까! 왜? 
    그래서 NB는 세바스찬한테 이렇게 말했다.
   「난 그냥 먼저 갈게.」
   「그럴래?」
    뭐, 그럴래? 그럼 뭐하러 만나자고 했지? 
    만나서 뭐할까, 뭐하자, 재미없다 뭘 해도 재미없다도 아니고. 
    뭐, 그럴래? 이런 젠장! 
    결국 알고 봤더니 NB에게 제7의 전성기가 다시 되돌아온 모습. 
    그런데 그 기막힌 컨셉은 뭐다? 그렇지~ (딱) 호구. 뭣이? 뭐가 어쩌고 저째?





    3

    젊음에 대한 열망과 아름다움을 향한 희망, 그 외에 무엇을 간직한 심상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신비주의 피후견인이란 거야 뭐야. 도대체 커피가 뭐길래. 그럼 정말 미완성 환상머신의 원귀가 NB에게 씌어버린 것일까? 알 게 뭐야. 알 게 뭐냐고. 그렇다고 역으로 그가 여동생들한테 커피를 사달라고 하긴 해봤는데. 별로 반응은 재미없었다. 그럼 진짜 재밌는 일은 더 이상 없단 말인가. 뭐 있을 수도 있고. 일단 아직은 없고. 통상 삶의 규칙이란 그거다. 적게 걸고 적게 먹기, 고위험 고수익. 그게 아니라, 적게 걸고 왕창 따는 거 어디 없을까? 있다. 바로, 사랑! 뭐 사랑? 또? 사랑이라면 아주 그냥 신물이 난다. 우리는 여자 보기를 돌맹이 보듯 하거든. 그야 어쩌든. 꿩 잡는 게 매인데. 육식조 매에게 초식조 꿩은 여자의 마음? 더티러브가 무엇인지 다 까먹은 마당에 그런 게 뭐가 중요하나. 
    그래서 NB는 떠났다. 핸드폰 끄고. 소셜 네트워크에 잠시 여행지에서 쉬고 온다고 딱 써놓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그렇게 한적한 해변 어느 멋진 호텔에서 쉬고 있는데. 
    NB는 아는 동생들 커피사주다 쫄딱 망할 것만 같아서 휴양지로 피신왔는데. 그런데 거기서마저 아는 동생들과 만나 커피 마시는 꿈을 꾸었다. 
    꿈에서,
   「오빠. 오빠 칼럼에는 왜 그렇게 천동설이라는 말이 많이 나와?」
   「왜냐고? 왜긴 왜겠니. 왜긴 누가 왜야. 어? 뭐가 왜냐고. 뻔하지. 뻔해. 응? 안 그럴 수가 없거든. 자, 보자. 응? 봐 봐. 잘 들어 봐. 얘. 너 자꾸 엄마 잔소리 듣는 것처럼 집중 못하면 사랑도 흐지부지할 공산이 커. 그러니까 저런 거 보면 멍청해진다는 말 듣고 보니 정말 멍청해졌다더라 뭐 그런 생각하지 말고. 들을 땐 듣고, 말할 땐 말하고. 어? 왜 그걸 못해. 어? 자, 보자고. 
    인생? 변수가 많아. 난 뭐 너한테 이처럼 허접한 다변가 취급받을 줄 예전에 미처 상상이나 했겠니? 인생 몰라. 응?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 그거 다 있어 보이는 말일 뿐이야. 웬만한 예술은 다 짧아. 왜 인기를 거품이라고 하겠니. 대표적으로 고전음악만 영원하고 나머지 음악? 잠깐 반짝일 뿐. 부와 이름값은 가져다 주겠으나 거기서 끝. 응? 고로 인생은 길고 예술은 짧다, 라고 허당이 말씀하시지. 농담이고. 누군 뭐 주례사 일부러 길게 뽑고 싶어서 그렇겠니, 다 곡이 안 써지고 영감이 안 떠오르니까 그렇겠지. 좌우지간 어디 가서 이런 얘기 듣는 게 쉽니? 너도 잘 알잖아. 네가 지금 웃는 이유. 응? 나라고 뭐 생색 내고 싶어서 내는 줄 아니? 여자 세계 불문율 누군 몰라? 여자들 생색내는 거 좋아하지 않는 점 뻔히 아는데. 내가 뭐 바보도 아니고 뭐한다고 돈 쓰고 시간 쓰고 정력 쓰고, 아무튼 거기다 생색내서 베푼 거 몽땅 깎아먹겠니. 다 생각이 있어서 그러는 거야 생각이. 왜? 챔피언이라는 게 외로운 법이니까. 챔피언 되면 피곤해 얘. 의무방어전 상대는 막강하고. 자유롭진 않고. 올라갈 덴 없고. 잘해야 내려가지 않을 뿐 아니니. 가고 싶은데 맘대로 가지도 못해, 먹고 싶은 건 뭐 맘대로 먹니? 그래서 내가 너한테 이처럼 생색 중의 (개)생색으르 내는 거야. 응? 가늘고 길게 가야 하거든. 
    만약 정말 은근히 간접으로 딱 너네들 비위만 제대로 맞춰 봐. 도저히 싫어할래야 싫어할 수 없을 만큼. 1주일 뒤에 아아 그 오빠의 농담이 터진다? 오오 2주일 뒤에서야 진정 그 오빠의 진심이 느껴진다? 어머 어머 딱 뒤늦게 4주 채워서 그 오빠한테 마음을 빼앗겨버렸다? 초반에 홀딱 반하는 거 우리는 지겹거든. 어? 그래서 그녀 마음 뺐으면 그 다음에는? 그녀의 인생을 우리가 책임져야 하는데 챔피언 벨트 딸랑 1개에 만족하라고? 따라서 내가 이처럼 나도 힘 빠지고 듣는 너도 살짝 기쁘다가 조금 짜증나도록 다 생색을 내는 거야. 알겠니? 밀었으면 당겨야하니까. 들었으면 놓지 않을 수 없으니까. 다 순위권 쟁탈전 그 치열한 묘미란 게 있으니까. 허허허. 그런데 내가 뭔 얘기를 하다 이 얘기가 나왔지? 그야 모르겠고. 너도 알겠지만 너네들 마음마따나 난 그냥 아는 오빠 그 사랑의 순위에서 난 겨우 10위권에 턱걸이 정도 하는 걸로 만족하겠다 그 말이란 말이야. 응? 아 생각났다. 천동설? 나는 영원히 네 편이야. 아니? 다만 내가 다 너네 생각해서 하는 말 아니겠니. 정작 절실할 때 천동설식으로 생각해야 하는데, 너넨 정반대로 하니까 오빠 입 터느라 바쁜 거지. 왜 안 그렇겠니. 허허. 거 참 나 1절 더럽게 길다. 각설하고 다음으로 2절. 본론 꺼네는 게 뭐 이렇게 어려워서야 (절레절레)」
    긴대사 읽기 듣기 알기 피곤하니까 문단 떼서 가자. 그게 좋겠다. 





    4

   「너도 알다시피 생애사 전략이 느리든 빠르든 인생 포지셔닝은 기본적으로 뭐다? 한 마리 토끼 쫓기! 두 마리 토끼 쫓다가 둘 다 놓치기 마련. 
    그렇게 하다 하다 안될 수도 있고, 포기할지도 모른다만. 표범 사자 치타 퓨마처럼 물었으면 놓치지 말아야지. 그렇게 끈질기다가 정 아니다 싶으면 방법 많잖아. 전업. 이직. 이사. 이별? 머머접습니다 장비 몽땅 내다 팝니다. 뻔트. 기타 등등. 어쨌든 맹수가 물소를 물었어. 딱 물었어. 그런데 그렇게 초식동물을 물고 놓아주지 않는 동안, 하이에나가 스리슬쩍 다가와서 맷돼지 꼬리부터 내장까지 다 뜯어먹더라? 그러게 '못 먹어도 고' 하더라도 다 걸지 말고 판돈 절반반 걸어야지. 응? 농담이고. 자, 다음으로. 
    일단 관심사는 떡밥 뿌리기. 그러다 색다른 취미 얻어걸리는 식이지. 소 뒷걸음질 치다다 쥐 잡는 일. 코끼리 뒷걸음질 치다가 악어 밟는 일. 응? 또는 유행가 한 3번 들으면 질리든가, 아는 오빠들 죄다 식상해지는 거고. 꼴랑 커피 몇 잔 사주고서 생색이란 생색은, 진짜 농담! 그처럼 어쩌다 하나 얻어걸릴 수도 있고. 그런데 정작 문제는 저 놈이 대어인지 잔챙이인지 구분이 잘 안된다는 점. 남잔 사냥감이라는 대상과 목적을 정하고 들어가는 반면, 사랑에서 여자는 약자일 수밖에. 안 그러니? 예를 들면 밖에서 신나게 꽃사슴을 쫓아다녔는데 집에 있던 토끼가 도망갔다더라. 앵무새 멋져보이고 향긋한 사과가 탐스럽길래 손을 뻗쳤는데, 손에 쥐고 있던 참새 뱁새 벌새 촉새 딱따구리는 자유롭게 날아갔다더라. 경우의 수가 좀 많니. 응? 그래서 다정한 숙녀 순진하게 한 마리 토끼만 또 쫓았더니만, 불여우들이 다 중간에 채가. 어? 그렇지? 그래서 아리따운 아가씨는 또 전략을 바꿀 수밖에. 어떻게? 속된 말로 한놈만 죽인다, 가 아니라. 한 우물만 팠더니 이 모냥 이 뭐 그랬다라, 그래서 나무 100그루에 공평하게 1번씩 도끼질. 어머머머머머! 평등하고 어쩜 이게 진짜인 것만 같네? 그럼 뭘 해. 그럼 뭘하냐고. 어? 모든 나무에 한번씩 도끼질을 해도 한그루의 나무도 넘어뜨리지 못하는데. 안 그래? 하다 하다 이젠 정말 최고의 먹잇감을 찾았다 고로 물기 위해 막말로 몰빵, 즉 올인하고 싶은데. 그래 봤자, 어? 개 두마리 개뼉따귀 놓고 싸울 때 세 번째 놈이 물고 내빼는데. 계란을 한 바구니에 모두 담지 말라고, 해결사 풍운아 노름꾼 도박사 허당 기타 등등. 올인이 그렇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야. 응? 그렇듯 7부 리그의 빽넘버 3번 개새끼가 뜬금없이 놈의 개뼉따귀 물고 튀면 뭐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지.  안 그럴 수가 있나. 안 그래도 늑대는 못 먹는 감 찔러나 보고. 촌닭은 날이면 날마다 어떻게 좀 한 번 자빠트릴 궁리만 하고. 어? 플라토닉은 대체 어디 가야 만날 수 있는 걸까? 
    따라서 오빠 말은 전략이라는 망치와 전술이라는 못, 그 둘끼리 신기하도록 궁짝을 맞추라는 거야. 응? 이 남자도 좋고 저 남자도 사랑스럽다, 때문에 나도 모르게 심신분리. 그러라는 말이 아니라. 심신분리도 정작 필요할 때가 있는데, 꺼벙하게 남한테 나중 손가락질 받을 일 있니? 개 없이 사냥 떠난 자 토끼없이 돌아오는 법. 정작 심신분리 그건 안정권에 들었을 때나 하는 거고. 응? 그러니까 나 좋을 때 들뜬다 설렌다 끌린다 막 그러면서 피동적으로 막 생각이 든다 싶을 때 딱 조심하라고. 미리미리 주의. 왜 밀림에서 사자가 평소에 느그적느그적 게으르겠니. 왜 걔네들이 평소에 그처럼 드럽게 게으르겠냐고. 걔네들이 잡은 물고기한테 밥을 주지 않는 이유가 그거거든, 사냥감이 딱 포착됐을 때 혼신의 힘을 기울인다는 점. 사자는 모기로부터도 자기 몸을 보호할 줄 알아야 하는 법. 너넨 그거 통상 반대로 하잖아. 안 그래? 그러니까 우리한테 안되지. 허허. 어떤 숙녀든 오빠한테 넘어올 수 밖에 없어. 응? 우리는 어떤 여자라도 만나서 단 10분이면 다 꼬셔. 어? 누구든. 어디서든. 실제 그랬어. 늘 그랬다고. 만난지 3일 만에 신혼여행 떠난다니까. 정말이야. 나는 살면서 거짓말을 해본 적이 단 1번도 없다고요. 그래서 오빠가 전수해준 전법이 뭐다? 그렇지~ (딱) 진공청소기! (몸짓). 눈에서 레이저 쏘고 입에서 화염방사기 잔소리 끊이질 않아 봐. 남자 도망가기 딱 좋다니까 그러시네. 응? 안 그래? 
    이게 다 오빠나 되니까 너한테, 아까 말했지? 오빠가 싫어도 생색을 내는 이유. 남자 세계라도 여자랑 썩 다르진 않아. 남잔 뭐 처음부터 끝까지 생색내는 사람 얼마나 좋아하는지 아니? 슬슬 피해. 어? 다 나나 되니까, 쉿. 결혼한 다음 정으로 살고 의리 있고 애까지 있는 장르다면야, 당사자들끼리 다 잘 알아서 하겠으나. 결혼 전이라면야 새로운 건 다 아름다워 보이는 법. 헌 여자는 새 여자한테 안돼~! 어? 깨진 유리는 붙이지 못한다고. 어? 사랑은 없어~! 아니. 그게 아니라. 돈이 없지. 허허. 넘어가고. 아무튼 100마리 개들이 쫓고 있는 늑대는 이미 늑대가 아니라네. 이 친구야. 오빠 늑대 아니야. 착각하지 마 이 양반야. 내가 왜 촌닭이야. 어? 누군 뭐 커피 사주고 선물하고 연애할 줄 몰라서...」
    그러다 그는 꿈에서 깼다. 별 참 나 별의별 거지 같은 개꿈도 다 있지. 해도 해도...! 
    진짜 가지 가지 한다. 증말 거 나 참 하다 하다 꿈에서... (절레절레).
    낮에는 귀 간지럽고 꿈에서는 입 아프고. 뭐야 그게. 





    5

    휴양지에서 2일째.
    친구 알프레드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녀석은 좋은 녀석이다. 흠 잡기로 마음 먹으면 NB는 그 인간 흉보기로 한 3박 4일은 식은죽먹기로, 농담이고. 걘 잘 웃고 말도 잘하고 성격 모나지 않고 다 좋다. 다 좋아. 그런데 뭐랄까 알프레드는 여자를 잘 꼬실 수는 있는데, 보편적인 여심들이 녀석에게로 향하는 부류는 절대 아니다. (우리가 최고로 좋아하는 여성은 선녀와 뚱녀이다만, 선녀와 뚱녀들 기분 나쁘라는 뜻이 아니라). 남자들끼리 하는 말로 음 말 한 걸로 치고. 사랑에 대해 알프레드와 딱히 연애론을 말할 수도 없고. 아는 동생들을 소개시켜 주기는 안되고. 그럼 우정은? 최근 부쩍 NB가 그와 친해지긴 했다만 더 친해지는 일. NB는 애써 자제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알프레드는 전형적인 '좌청룡 우백호'형 친교를 목적으로 NB와 친하고 싶어했기 때문. 남자들 우정이야 으쌰으쌰 늬가 잘났냐 내가 잘났냐가 기본이긴 하다만. NB로 말할 것 같으면 그가 누군가. 짧게 호구. 포장하면 뭘 좀 아는 남자. 그래서 알프레드 같은 촌닭 눈에 거슬리지 않기 딱 좋고. 내가 아는 여자, 눈독들임을 넘어서 뭔가 진행되었던 숙녀를 단지 선보여주기 편한 친구. 다른말로 승부욕. 그런 늑대와의 우정 한두 번이었어야 말이지. 그분들 레이더에 딱 걸리면 도저히 싫어할 수 없는 친구로 딱이거든. 그렇지만 이미 단짝은 있고. 따라서 1.5인자 2인자 우정. 하다 하다 보필 보좌 대변 백댄서 역할도 마다하지 않을 테고. 여자들 우정에서 말하기로 실제 제일 친한 친구이긴 해도, 사귀는 남자친구랄지 꼬리치는 그 오빠한테 이렇게 흉보는 친구와 비슷. 지 아쉬울 때만 연락하는 년이라고! 꼭 보면 단짝 있는 촌닭들이 NB에게 러브콜 겁나게 했다. 태도는? 너 내 2인자 해라! 좌청룡으로 붙어만 있어라 그거지. 도대체 왜? 왜기는 만만하니까. 그 때문에 NB는 알프레드가 줄기차게 연락을 해오고, 틈틈히 빠짐없이 연락해도 적당히 거리를 두었던 것이다. 하긴 그런 부류가 남자들 얼만큼일까? 살다 보면 침체기랄지 단짝이 없는 기간이 있듯. 다가가면 멀어지고 먼저 다가와주지는 않고, 그래서 단짝이 없는 남자가 말하기로. 친구들과 후배들한테, 나는 단짝 안 만들어 왜냐하면 어쩌고저쩌고. 다 뻥. 여자의 허영심도 허영심이지만 남자들 허세도 참 신기할 뿐. 대타 같은 남자 NB가 무슨 예비 타이어도 아니고 말이지. 
    그러고 보면 사랑과 우정은 거의 똑같다고 보면 되는 게 여자의 판타지로도 설명이 된다. 다른 말로 사랑의 차트! 사랑이든 우정이든 순위 빼면 거짓말. 물론 방황기와 야생마 호시절에 주로 그러다가 사랑은 각자 알아서 한다 치고. 우정은 순위에서 무순위로 변하는 사람도 있긴 있을 것이다.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곧 속는다는 말처럼. 야금야금 돈을 뜯기든 정력 뺏기든 시간 낭비하며 기빨리며 인생을 알게 될 테니 말이다. 사랑만 환상의 시소가 아니라 뭐든지 알고 보면 저울질이다. 내가 뭐뭐할 정도로 이 일이 좋은가, 내가 그 무언가를 감수해도 괜찮을 만큼 취미를 애호하는가. 인생사 세상사 이치는 비슷비슷. 곧 모닥불이 좋으면 연기를 참아야 한다. 그런데 포근한 곰돌이 같은 남자가 좋다는 숙녀가 자기 이상형을 만나긴 만났는데, 훗날 알고 봤더니 그녀는 이렇게 말하는 식이지. 
   「얘 남자는 있잖니 마른 장작이 잘 타는 법이야. 모르면 너 알아둬. 알아둬서 나쁠 건 없으니. 응? 그렇다고 실한 것처럼 보여서 멀쩡한 장작 골랐더니 왜 연기가 그렇게나 많이 나냐고? 썩은 장작이니까.」 
    우정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촌스러운 우정도 좋긴 하겠으나 장타자는 멀리 보는 법. <평생 단짝 1명 외에는 나머지>, 포커로 치면 올인. 멋져보이긴 하나 주식으로 봤을 때 전망 별로. 가족 장르까지도 함께 하는 1범주 두루두루 우정이라면 몰라도, 속된 말로 몰빵은 아마 여자들 관점에서 봤을 때 비추천일 것이다. 영화에서 보기로 신분을 평생 속여 살아야 하는 정보 요원, 가족끼리 친해져야만 하는 현장요원의 우정도 있고. 고아라는 출신을 중요시하는 특1급 요원의 우정도 있을 테고. 
    좌우지간 상남자들 우정에서 수평적인 우정 그거 쉽지 않다. 웬만한 마초의 친분? 내가 쟤보다 한수 위로 상정, 그런데 역으로 쟤도 그걸 반대로 생각함. 서로 내가 너보다 한 끗발 위다니! 단짝인 A와 B사이에서. 그거 믿고 있다가 단짝 A는 팬클럽부터 추종세력까지 승승장구하고, 단짝 B는 근근히 먹고만 살 정도로 재미없는 인생 버티고. 악담에 저주에 상욕까지 서슴없이 주고 받던 우정. 나중 현격한 차이 벌어졌을 때. 그게 늬한테 어울린다고 생각하냐 라고 했었는데 어울리든 안 어울리든 현실이 어떻게 바뀌면. 그래서 순위란 대체로 고정이 아니라는 점. 불변이란 드물다는 것. 똑같이 뻔트의 왕중왕이었는데, 나중 1명만 거포되고 1명은 이젠 뻔트조차 비리비리 아는 동생 다 떨어져나가면. 금간 자존심 뭘로 위로받나. 2번 만날 거 1번이라도 소식만 전해들으면 다행일 수도. 실리로만 보자면 하여 여자의 우정이 남자들보다 훨씬 실속있다. 아파트 평수 비슷한 지인과 친하거나. 모계쪽 친분과 잘 어울리거나. 엷고 얕고 넓게 친교의 더듬이를 펼치되 소수정예로. 아무튼 2일째도 별일 없었다. 





    6

    휴양지에서 3일째. 
    꿇리지 않아 라는 상남자들 우정. 져주면 좋아하는 숙녀들 사랑. 피곤한 스타일들 비위 맞춰주고 주인공병들 옆에서 신부들러리로 립서비스 풀고. 막 그러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너무 편했다. 그렇지만 '질 수 없지'라는 으쌰으쌰가 없었기 때문일까? 텅빈 마음. 여행 떠나는 기분은 대만족이었는데. 그런데 점차 점차 반만족 불만족 폭망까지는 아니고. 또 다시 투덜 허탈 권태 재미없음 심심함. 늬 까짓 게 뭔데, 라는 대사를 가끔 들을 수 있는 시트콤이 왜 만들어지지 않을까? 하면 시청률 안 나오기 때문이라는데. 그야 그러든가 말든가. 그런데 왜? 내가 제일 잘나가 라면서 한껏 꾸민 멋쟁이들께 겉으로 딸랑딸랑, 속으로 너 잘났다. 그런 병풍 역할마저 배정받지 못하니까? 하긴 사람이 말이야 욕심이 있어야지. 대망이 너무 허황되도 문제지만. 얼굴 팔리기 싫어한다는 둥 허세로 포장하면서 욕망이 바닥나도 문제. 이래도 탈 저래도 탈. 귀찮게 할 사람이 없다는 거구만. 지는 비교 그 잔소리마저 귀여운 여편네가 없기 때문일까? 그는 마누라 바가지에 득도한 남편들 한숨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3일째도 그만저만 하다 지나갔다. 
    휴양지에서 4일째. 
    인생이 뭐 이래? 여행 재미 하나도 없구만. NB는 역시나 패배감이 찾아와서 안도했다. 패배주의의 화신이 안 그럴 수가 있나. 차라리 아는 동생들한테 커피 사주기로 골머리를 앓던 얼마 전이 벌서 그리워진 것일까? 닥쳐. 닥치고 놀자 라면서 여기까지 왔는데. 오긴 왔는데 잘못 온 건가 어쩐 건가. '야 꺼져' 라고 한마디 해도 막 겁나게 꼬리 흔들 강아지 한마리 근처에 얼씬도 않기 때문일까. 푸른 바다가 보이는 해변도 텅텅 비었다. 비키니가 어딨어. 뭐 낭만? 비켜. 2번 타자 쾌락, 나가. 이런 젠장! 어영부영 4일째도 마감. 
    휴양지에서 5일째. 
    야망 그런 거 모른 체 살아왔는데 뜬금없는 이 호사? 뭐라고나 할까 그래 여유. 쫓기지 않음. 바쁘지 않아. NB는 영보이라며 우길 필요가 없었다. 올드보이라며 누구한테 놀림받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왠지 모르는 이 허전함. 무엇 때문일까? 알 게 뭐야! 부족한 게 없거든. 아니 많나? 많다. 엄청 많다. 천지다. 그래도 그는 도시를 탈출해서 휴양지에서 고독을 즐겨서 너무 좋았다. 사랑스러운 연인들을 보며 부러워하지 않아도 되고. 어쨌든 그럭저럭 일하고 놀고 그렇게 휴양지 생활 5일째는 지나갔다. 
    휴양지에서 6일째.
    지식 자원의 생산성 하락, 즉 자기 경영 악화. 다른 말로 놀기가 절실한 시점. 여기까지 와서 이게 뭐하는 짓인지 쯧쯧. 그러다 그는 생각했다. 예외 있긴 있었겠으나 거의. T자형 삼거리, 모양을 ㅗ로 보자면. 왼쪽은 남자들끼리 오른쪽은 여자가 끼었을 때. 왜 그런진 모르겠으나 일종의 징크스와는 격이 다른 통계. 그야 어떻든 이 근처는 대부분 길이 꼬불꼬불하고. 불경기인지 비수기인지 사람들은 보이지도 않고. 그래서 6일째도 저급한 표현으로 땡침. 
    휴양지에서 7일째.
    그는 아마도 괜히 온 것만 같았고 생각했다. 어쩌면 벌써 돌아가고 싶었겠지. 못 떠나서 안달이었는데 이미 지겨워진 거라고. 왜 아니겠어. 그는 솔직히 자신이 부쩍 늙어버렸다고 느꼈다. 누가 인정하라면 인정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부인해서 뭐하겠나. 호캉스 호캉스 노래를 부르더니만 꼴 좋다. 누구 만날 사람도 없고, 그렇다고 모험이 있나. 방구석에서 꼼지락꼼지락. 가 봐야 근처 산책. 아니면 호텔 바. 바텐더 양반도 말수 없고. 근처에 나이트클럽이 있는데 장사가 안되서 문 닫은지 오래. 돈 아깝게 이게 뭐냐고. 철지난 잡지 마냥 몇 페이지 뚜적거리다 마는 것처럼. 뭘 해도 재미없어. 따라서, 다시, 돌아갈까? 라고도 생각해봤는데. 그는 그러면 왠지 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지만 져도 익숙한 내 사무실에서 지자. 라면서 그는 돌아갔다. 





    7

    NB는 여행에서 돌아왔다. 그리고 온 김에 마음을 고쳐먹었다. 
    아는 동생들 커피 열심히 사주려면 돈을 열심히 벌어야겠다고. 
    그러다 어떻게 보면 칼럼 쓸 내용을 얻을 수도 있고, 이어서 환상문학잡지 미스테리아에 연재할 얘기도 생기고. 
    하는 데 까지 해보다 안 되면 애들한테 솔직히 오빠 돈 떨어졌다고 고백하면 되는 거고. 문제될 건 없었다. 
    그래서 그는 내놓았던 번호표 뽑는 기계를 다시 장식장 서랍에 넣었다. 왜냐 기다리기 말고 이번에는 선제적으로 불러내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그렇게 어느 찻집에서 크리스티와 향기로운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눴다. 
   「오빠. 이 음악은 혹시 모차르트의 콘서트 아리아? KV.418번 맞지?」
   「그럼 넌 아는 척?」
   「이 오빠가 날 잘 아네. 오빠 그거 알아? 오빠 요즘 우리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 최고라는 거.」
   「커피 몇 번 산 거 가지고 무슨. 그리고. 우리 터놓고 말하자. 내가 그깟 커피 몇 잔 산 거 가지고 어디 생색낼 사람이니? 오빠 그런 남자 아니야. 어? 뿐만 아니라 저번 달 커피값만 2장 들었길래 생활비 갑자기 압박이 심해졌어. 그래서 한 1주일 묻어둔 금 캐러 갔다왔어. 호캉스라고 들어봤지? 작품 구상도 하고 바람도 쐬고. 겸사겸사.」
   「호캉스? 아니 무슨 호캉스?」
   「얘가 촌스럽게 왜 그래? 호캉스 몰라 호캉스? 어때, 오빠랑... 그게 아니라. 내 말은~」
   「뭔 소리야 오빠? 1주일 내내 우리들 만났잖아. 오빠 여자들 기싸움 알지? 우리들끼리 내기했거든. 오빠가 언제 나가떨어지나 보자 라면서. 편이 딱 나뉘더라고. 내친김에 친구들 수소문해서 내놓으라 하는, 어? 어디서 썩 안 빠지는 싸움닭 기질 말괄량이들도 죄다 불러서 오빠한테 선보였잖아. 커피 사주기 운동 빌미로 말이야. 오빠 걔네들 이름 걔네들 얼굴 다 기억나지? 그런데 호캉스는 뭔 호캉스? 호캉스 같은 소리나 하고 있네.」
   「이해해. 그럴 수 있어. 너가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봐서 화면에 나오는 조연과 날 헷갈렸나 본데.」
   「오빠 또 개 풀 뜯어먹는 거짓말 할 꺼면 시작도 하지 마. 알았어? 진짜 호캉스 가고 싶으니까 어제 개꿈 꾼 거 아니야? 그치? 내 그럴 줄 알았다.」
   「난 있잖아 얘. 난 있지 응? 난 살면서 친구나 누구한테나 뻥친 적 단 1번도 없어. 왜? 난 거짓말을 어떻게 하는 줄 모르거든.」
   「그게 거짓말이야. 잘하시네. 뻥치는 거.」
   「아니라니까 정말. 진짜야. 오빠 믿지?」
   「또 속을 줄 알아?」
   「또? 내가 언제 너 속인 적 있니? 없어. 농담은 몰라도 진지하게 널 골탕먹인 적, 내 기억으로는 없어. 알아?」
   「호캉스 가고 싶으면 좋게 가고 싶다고 말하면 되잖아. 어? 남자가 왜 그래? 가지도 않았으면서 갔다 왔다? 그걸 나보고 믿으라고? 오빠 같으면 믿겠니?」
   「아니~ 그게 아니라. 진짜야. 나 호캉스 갔다 왔어. 사진? 사진은 안 찍었는데. 신용카드 내역서랄지 호텔에 나와 관련된 기록들 증인들 증거들 많을 테고.」
   「뭐야! 왜 그렇게 진지해? 오빠 그렇게 심각하니까 이상해. 알아?」
   「진짜니까 그렇지.」
   「뭐가? 호캉스가?」
   「응.」
   「가. 가고 싶으면. 왜, 혼자 가기 싫어? 그럼 누구랑? (멈칫) 꿈도 꾸지 마! 1주일 내내 커피 몇 잔 사준 거 가지고 어쩌고저쩌고, 내가 오빠 핀잔 주려고 하는 말이 아니잖아. 오빠가, 어? 커피 선불카드. 1장씩 들어있는 커피 선불카드 가만 있어봐. 한 50장 뿌렸나? 친구들 통화하고 계산하면 엑셀 파일 금방 만들어.」
   「장난이 아니고. 내가 가서 뭘 본 줄 아니? 글쎄 그게 말이야,」
   「오빠. 어디 아퍼? 열나? 오빠 그러지 말고 가셔 좀 쉬어. 응? 나 간다. 오늘 커피는 내가 살께. 저번에 내가 친구들이랑 내기 이겼거든. 호호호. 안녕. 다음에 봐 오빠.」
    크리스티는 먼저 갔다. 
    NB는 갑자기 자신이 정신이 훅 가고 마음이 핑 도는 걸 느꼈다. 
    때문에 이처럼 혼잣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쟤 정말 뭔 소리야?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얘기를 하고 있어. 어? 그러니까 쨰한테 남자가 없는 거지. 응? (절레절레)」





    8

    다음 날. 
    그는 사무실에서 음악을 들었다.
    가에타노 도니제티 / 오페라 <돈 파스콸레> 노리나의 아리아 “그 눈빛의 그 기사는”
    오늘은 누구를 불러내 커피를 마시지? 우리는 커피 없이는 못 사는데 말이야.
    그렇게 NB는 엘리자베스를 불러냈다. 
    장면 전환.
    장면 전환.
    장면 전환.
   「오빠가 일주일 동안 못 산 커피 다 살 테니까. 너네 친구들한테 소문내. 커피 무제한이니까 지나가다 들리라고. 일부러 꼭 애써 찾아올 것 까진 없는데, 그냥 오다가다 들르라 그 말이야.」
   「어? 일주일 동안 못 산 커피? 뭔 소리야? 우리가 장난이 지나쳐서 미안한 마당에. 오빠 일주일 내내 우리랑 기싸움 했잖아. 생각 안 나? 늬들이 이기나 내가 이기나, 우리들이 친구들 어? 막 아는 친구들 모르는 친구들 사돈의 8촌의 지인의 후배의... 그거 웬만한 웨이트레스 2/4분기? 아니지 여기 커피가 좀 비싸니. 반올림 하지 않더래도 연봉 나올 거 같은데. 우리가, 너무, 심했나? 하긴 오빠도 꼬리 안 내렸잖아. 오빠 잘못도 있어. 그리고. 애들이 들쑤시며 부추기니까 오빠가 막 뻠프질에 핑, 돌았어 안 돌았어? 에이~ 그래도 선불제 커피카드는 오바다. 응? 그러니까 오빠가 두 번 다시 안 볼 3 대 3 미팅녀한테 반지 사줬지. 응? 오빠가 무슨 반지의 제왕이야 뭐야? 어?」
   「어제 크리스티가 너랑 똑같은 농담하던데. 걔 너랑 짠 거니? 뭔 소리야 오빠 호캉스 갔다 왔다니까. 호캉스 몰라 호캉스? 어? 바캉스. 더하기. 바캉스 더하기. 뭐더라? 알아 호캉스. 뭐더라?」
   「내가 사진 보여줄게.」
    엘리자베스는 소셜 네트워크에 올린 사진들, 핸드폰 내장 파일 속의 사진들을 보여주었다. 
   「뭐야! 진짜잖아?」
   「그럼 진짜지. 오빠 그 1주일 동안 몸은 여깄고 마음은 호캉스 갔다 오셨어요~ 우쭈쭈! 호호호. 그러게 지르긴 뭘 질러. 오빠도 너무 심했어. 알지?」
    그렇게 NB는 며칠 동안 로즈마리, 에밀리, 비비안, 샬럿... 애들과 만나 대화하면서 알게 됐다. 
    자기가 호캉스를 즐기고 오는 동안 누군가 정밀한 대역이 있었다는 것을.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자식 대체 누구야, 지가 무슨 도플갱어야 뭐야. 
    아무리 그래도 정말 믿을 수가 없었는데. 그런데 결정적으로! 
    NB가 릴리와 만나서 커피를 마시고 그가 계산하려던 찰나. 
    어디서 본 건 있어가지고 하필 숙녀인 릴리가 날라차기를?
    아니, 들은 건가! 그래서 그는 그냥 그 일을 믿기로 했다.





    9

    NB는 지니를 소환하기 위해 근사한 음악을 틀었다. 
    Mozart / 오페라 <루치오 실라> 1막 첫 번째 ‘친나(Cinna)’의 아리아 “사랑이 그대를 부르는 곳으로 오라”
    사무실 중앙에 홀로그램으로 지니는 나타났다. 
   「오랫만이야 오빠.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외로웠어. 넌 뭐하느라 그동안 코빼기도 안 비췄니?」
   「나? 난 더 외로웠으니까. 호호호. 그건 그렇고. 오빠 누구 좋아하는 사람 생겼어?」
   「나? 나야 좋아하는 사람이야 자주 생기지.」
   「그래? 누군데? 솔직히 말해봐 오빠. 괜찮아. 뭐 어때?」
   「그냥 말이 그렇단 거지 거 무슨.」
   「음... 뭔 말인 줄 알겠어. 오빠 요즘 어때? 빡빡해? 많이 그래?」
   「뭐가 빡빡해?」
   「공상?」
   「그게 뭔 소리야? 그러지 말고. 인공지능이나 돌려봐. 내가 저번에 놀러갔다 온 사이에 누가 나 사칭하고 다녔어. 나랑 대체 얼마나 닮은 놈이길래 그러지? 너도 들어서 알 거야. 저저번에 모스맨 연구자 제라드 만난 거. 그건 일단락됐거든. 근데 그 이후로 또 다시 골치아픈 일이 생긴 거지. 만화영화에 사건이 없을 수 있나. 허허.」
   「잘 아시네.」
   「잘 알아? 뭘?」
   「모스맨 연구자 제라드가 범인이지. 뻔한 걸 왜 나까지 귀찮게 하고 난리야? 안 그래도 바빠 죽겠는데.」
   「바빠? 늬가 뭐하느라 바쁜데?」
   「그럼 오빠는. 오빠는 뭐 하는 일 없이 빈둥빈둥 맨날 말이야 속으로 하는 생각이라고는. 방금 전에도 그 생각했지?」
   「그 생각? 뭔 생각? 내가 너니? 아무튼 나 바쁘니까 다음에 놀자. 내 이놈의 모스맨 연구자 제라드를 가만 두나 봐라.」
    그렇게 NB는 즉각 제라드를 만나러 갔다. 





    10

    장면전환.
    장면전환.
    장면전환.
    NB는 제라드를 만남. 
   「너니? 날 쏙 빼닮은 스파이를 보낸 게!」
   「뭔파이? 내가 왜!」
   「말해.」
   「어. 나야. 생각보다 일찍 왔네?」
   「그럼 한 1년 후에 올 줄 알았냐? 날 얕보다 큰코다치는 수가 있어. 까불지 마. 알았어?」
   「장난치지 마. 재미없어. 너 그런 거 안 어울려.」
   「그래? 그건 그렇고. 왜 보냈냐? 어? 스파이 왜 보냈냐고.」
   「내가?」
   「그럼 너지 누구냐?」
   「늬가 뭘 좀 잘못 알고 온 거 같은데~」
   「내가 잘못 알고 오긴 뭘 잘못 알고 와?」
   「내가 보낸 건 남자가 아니라 여자야. 다시 말해 여자들.」
   「뭐? 남자가 아니라 여자라고? 그것도 여자들? 몇 명이나?」
   「최근 너가 만난 여동생들 다.」
   「뭐라고? 그럼 내가 걔네들 다 데리고 살아야 하냐?」
   「뭐? 늬가 걔네들을 왜 데리고 살아? 그건 대체 뭔 궤변이야? 억지부리지 마. 데리고 살 거면 내가 데리고 산다면 또 모를까.」
   「뭐? 늬가 뭔 권리로 걔네들을 데리고 살아? 걔네들도 입장이란 게 있어. 어?」
   「누가 없다던?」
   「그래? 이 자식이... 못 보던 새에 말발이 많이 늘었는데? 어쭈 뽄새 봐라! 얘가 얘가 은근 사람 들었다 놓네. 어? 연애하는 사이도 아닌데 은밀히 사람 밀었다 댕겨 아주 그냥. 어?」
   「상황 어떻게 돌아가는지 더 설명 안 해줘도 되겠냐?」
   「나도 눈치가 있어. 눈칫밥 먹은 게 어언 몇 년인데. 어? 나도 다 통밥이란 게 있어 임마. 이거 왜 이래? 사람 뭘로 보고!」
   「늬까짓 게 뭘 파악했다는 건데?」
   「나도 다 알아.」
   「그러니까 늬가 아는 게 대체 뭐야? 어?」
   「내가~ 어? 내가 말이지, 나도 알아.」
   「모르네.」
   「안단 말이야.」
   「우기는 거 아니고?」
   「늬가 나랑 똑같은 도플갱어를 보낸 줄 알고 있었는데. 너도 알다시피 내가 최근 만났던 아는 동생들이 모두 대역이라는 점. 맞지?」
   「용케 맞췄네. 찍었냐?」
   「찍긴 누가 찍어. 어? 찍긴 뭘 찍어!」
   「찍었네. 것도 급조해서.」
   「아니라니까 정말. 하긴 그래도 꽤 감쪽같았어. 응? 난 도플갱어 1명만 생각했는데. 내 그럴 줄 알았으면,」
   「내 그럴 줄 알았으면?」
   「내 그럴 줄 알았으면, 뭐 아는 남동생들 소개시켜 주려고 그랬지.」
   「뻥치시네. 거짓말! 내 그럴 줄 알았으면, 에잇 재미없다. 그러지 말고 좀 앉는 게 어떤가 친구?」
   「그걸 왜 이제 말해? 나 삐져서 가기 직전이었어. 이 자식이 못 본 새에 많이 뻔뻔해졌는데.」
    잠시 후.
   「오렌지 쥬스가 왜 이리 맛이 없냐?」
   「그럼 콜라로 바꿔줄까?」
   「됐어. 콜라, 살쪄.」
   「너 오렌지쥬스를 제일 많이 마시는 지역이 어딘 줄 알아?」
   「넌 콜라 1인당 소비량이 제일 많은 국가가 어딘 줄 아니?」
   「내가 그것도 모를 줄 아냐? 너 자꾸 사람 만만히 보네. 안되겠다. 너 혼 좀 나자.」
   「그러지 말고. 나 너한테 제의할 게 하나 있어. 아니 두 개.」
   「제의? 그럼... 나 혼자 들으면 안되는데.」
   「왜, 법정 대리인 있어야 돼?」
   「아니 뭐 꼭 그렇단 게 아니라.」
   「일단 들어. 듣고 나서 생각해도 되니까.」
    「」
   「첫째 변신 체험, 둘째 모스맨 후계자.」
   「뭐?」
   「변신 체험은 이런 거야. 네 분신을 만드는 기계를 발명했어. 시간도 오래 안 걸려. 너에게 그 첫 번째 기회를 선물한다는 뜻이지. 그리고 둘째. 모스맨 후계자. 나 모스맨 연구 때려친 거 알지? 그래서 말인데, 그냥 이번 참에 늬가 모스맨으로 살아보는 게 어떻겠니?」
   「뭐라고? 변신 체험에서 뭐 이상한 당나귀 같은 게 만들어지면 어쩔 건데?」
   「그건...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그리고. 나보고 모스맨으로 살라고? 늬 맘대로 그냥 모스맨 해라, 그럼, 내가 모스맨 되냐? 어? 이 자식이 가만 보니까 상태가 많이 안 좋은데! 너 원래 이랬냐? 어?」
   「내가 뭐? 넌 제1번째 환상머신 체험자 기회를 줘도 뭐라냐. 어? 남들은 그거 못해서 난리인데.」
   「난리긴 뭐가 난리야? 이 자식이 가만 보니까 '사'자 기질이 다분하네. 어?」
   「나 돌아이 아니야. 차라리 허접한 너라면 또 모를까.」
   「뭐? 뭐가 어쩌고 어째? 너 말 다 했어? 어?」
   「아직 안 끝났어. 어때, 생각 있어? 모스맨으로 살기.」
   「모스맨 같은 소리나 하고 자빠졌네. 꿈깨! 정신차려 이 친구야. 그만 공상에서 빠져 나와 좀. 언제까지 몽상가로 살 꺼야. 어? 너도 다 진한사랑도 하고 행복도 경험하고 그래야 할 거 아니야. 어? 안 그래? 무슨 개 풀 뜯어먹는 소리나 하고 말이지. 어? 말 같은 소리를 해야 납득을 해도 할 거 아니야. 어? 뭔 말 같지도 않은 헛소리나 핑핑 해대질 않나. 어? 늬가 말이지, 어? 늬가 그러니까 여자가 없는 거야. 알아?」
   「뭐 여자? 내 발에 채이는 게 여자야. 너 내 전화번호부 볼래? 야 내기할래? 늬가 아는 여자가 많은지 내가 더 많은지. 어?」
   「야. 안되겠다. 나 늬 제의 딱 거절. 한동안 보면 안되겠다. 너 상태 장난 아니야. 알아? (절레절레) 아 이 자식이...」
    그러면서 NB는 얼른 내뺐다. 





    11

    NB는 고민 고민하다가 결정했다. 제라드를 만나자고. 녀석으로부터 받은 제의를 승낙하자는 게 아니라 제라드가 말한 변신 기계가 진짜인지 아닌지만 확인하기 위해서.
    그렇게 웨건을 몰고 한참 가던 중 저쪽에 웬 소란스러운 뭔가가 보였다. 
    바로 명문 구단과 지역 리그 올스타 멤버 간 친선 축구 경기가 펼쳐지고 있었다. 
    그래? 소파에 자빠져 채널 돌리다 보면 어쩌다 얻어걸려 TV로 보는 축구. 이번에는 직접 관람?
    OK! 제라드고 나발이고 저거나 보자. 라면서 그는 경기장에 들어갔다. 표값도 공짜였다. 
    구단주가 전부 선불했고 그걸 무슨 돕기 어쩌고저쩌고란다. 하여간에 있는 놈들이란! 
    축구장 내에 들어서니 경기 중이었는데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왜일까? 그걸 알아서 뭐하게. 
    그러든가 말든가 과자와 음료수를 사들고 NB는 텅빈 객석에 혼자 앉았다. 
    정말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뭐야? 왠지 모르게 말린 기분은 뭘까.
    어쩐지 누군가의 작전에 여지없이 당하고 있는 것만 같은 세한 느낌.
    그런 게 어딨어. 영화 찍을 일 있나? 없다. 축구나 보자. 
    그런데 과자를 우걱우걱 씹어먹던 중 웬 숙녀가 그에게 접근해왔다. 
   「아저씨. 옆에 자리 있어요?」
   「네?」
   「못 들었어요? 들었잖아요. 왜 반문해요? 제게 반했으면 반했다고 솔직히 고백하던가. 왜 이랬다 저랬다 해요. 그리고. 숙녀를 이렇게 벌 세우듯 다리 아프게 세워두는 법이 어딨어요? 네? 아저씨 그 못된 예절 대체 어디서 배웠어요? 설마 사랑을 책으로 배웠나!」
    NB는 생각했다. 내가 왜 이 아가씨의 횡설수설을 찬찬히 듣고 있는지, 그래야 하는지, 그럴 수밖에 없는지를.
    그런데 그 순간 언제 온지도 모르게 NB의 앞자리에 그녀의 단짝으로 보이는 여자가 앉았다. 
   「일단 빈자리로 알고 앉겠어요. 뭐해요? 손수건 없어요? 에잇 시시해. 그러니까 여자가 없지.」
    그렇게 그녀는 앉아서 어느새 NB의 과자를 집어먹고 있었다. 
   「아저씨 축구 잘 알아요? 그러지 말고 인사나 합시다. 전 세실리아. 쟨 수잔나.」
    그 말을 듣고 NB는 뚱한 표정을 지었다. 왜냐하면 이처럼 자연스럽게 통성명하고 악수하는 장면은 드라마에서나 봤고 실제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걸 잘 안다는 듯이 세실리아는 팔을 쭉 뻗어서 NB의 오른손을 덥썩 잡아 끌듯이 악수를 강제로 실행했다. 
   「아저씨 손 씻었죠? 안 씻었으면 저한테 빚진 걸로! 알았죠?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봐요. 제 가슴 말고요. 안 씻었죠? 안 씻었네. 나중 내 소원 들어주기 예약. 딱 예약. 얘 수잔나 너 뭐하니? 아저씨랑 인사해.」
    그렇게 수잔나가 뒤돌아보던 순간. 시간이 정지되어버렸기 때문일까? 살구색 기대는 촉촉한 낭만감을 만족시키고, 부드러운 예감은 섹시한 로맨스를 연상시키므로? 
    NB는 가운데 신호가 옴을 감지했다. 그렇다고 그걸 곧이곧대로 그녀들한테 말할 수도 없고. 흥분을 가라앉히는 수밖에. 
   「얘 수잔나. 너 그러지 말고 이리 올라와 앉아. 사람도 없는데 우리가 이 축구장 전세냈잖아. 안 그래?」
   「진짜요? ...... 왜...요?」
   「이 아저씨 순진하시네. 아저씨 거짓말 할 줄 몰라?」
   「나? 난 입만 열면 거짓말이 자동적으로, 아니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 난 태어나서 거짓말을 한 번도 안 해봤으니까, 따라서 그대 말을 믿고 싶은 것일까?」
   「뭔 소리야! 아저씨. 정신 차려. 그러니까 나야 얘야? 어? 누구 때문에 정신이 돈 거냐고요. 네? 이 아저씨 안되겠네. 어?」
   「」
   「얘 세실리아. 너 그거 아니? 최근 세리아 A 득점순위 1위가 누군지 알아?」
   「어. 알아. 치로 임모빌레.」
   「늬가 그걸 어떻게 알아?」
   「진짜야? 그냥 찍었는데.」
   「그래? 그럴 수 있어. 안 될 게 뭐야. 그럼 그건 아니? 리버풀 구단주는 내 사촌이고, 첼시 부구단주는 내 초등학교 친구의 아빠라는 거.」
   「뭐야, 너 그런 애였어? 진짜야?」
   「뻥이야.」
   「이년이...」
   「너네... 혹시... 제라드가 보냈니?」
    약 5초간 정적.
   「제라드? 그 사람이 누군데요? 얘 제라드 아니?」
   「아니. 몰라. 웨이터 이름인가 아니면 바텐더 이름인가. 그런데 왜 그 이름이 낯설지 않지? 아저씨는 제라드 알아요?」
   「나?」
   「아저씨. 물어보면 즉각즉각 대답합시다 좀. 네? 왜 듣고선 반문해요? 제 목소리 듣고 싶어서? 내 그럴 줄 알았다니까. 보는 눈은 있어가지고.」
    약 3분간 정적. 
   「보냈네. 제라드가. 쑹악한 녀석.」
   「아저씨 촉 좋은데. 그치 그치?」
   「그러니까.」
   「너네, 정말이니? 아니 왜?」
   「왜긴 왜겠어요, 따라가 보면 아는 거지.」
    따라가? 따라가긴 어딜 따라가! 
   「세실리아. 수잔나.」
   「와 이 오빠 기억력 좋다.」
   「넌 하나만 해. 오빠면 오빠. 아저씨면 아저씨. 너 뭘 고를랑가 몰라도 나에게 이 오빤 항상 오빠. 호호호.」
   「세실리아. 수잔나.」
   「듣고 있어요. 귓등으로 듣지 않을 테니 어서 말씀이나 해보세요, 오빠.」
   「이 오빠 그러고 보니 일부러 오빠란 말 듣고 싶어서 이러는 거 아니니? 그치그치?」
   「세실리아. 수잔나.」
   「아 뭐에요? 네? 뭡니까? 네? 뭐꼬? 뭣 땀시 이름만 되뇌는데요. 왜 그런디유? 말씀 좀 해보시랑께요. 네? 워매 답답헌 그. 아따 안 그냐?」
   「넌 왜 갑자기 사투리를 잡탕으로 섞어서 하고 그래? 정신 사납게. 너 그거 이상해. 하지 마. 해도 내가 할라니까. 그리고 오빠. 우리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사람들 아니야. 우리 뿐만 아니라 그 뭐야 SF 영화 안 봐? 진보, 안 들어봤어? 미래에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내가 하는 말을 전부 녹취 및 기록돼. 나의 행적은 모두 공유되겠지. 어쩌면 생각까지. 그럼 당연히 연애사까지 낱낱이 파악되니까 누군 신중해지던가 누군 해퍼지던가, 아니. 어쨌든 아저씨 무슨 말 하려는지 모르겠는데 그거 낙장불입이다. 알지? 설마, 밑장빼기 어림도 없어.」
   「나도 말 좀 하자.」
   「어머 어머. 어머머머머머. 저 박력. 와! 오빠 상남자다. 어? 남자네. 호호호.」
   「그럼 내가 여자니? 나 남자야. 어? 남자라고.」 ~라는 말을 NB는 물론 속으로만 했다. 
   「너네 나 믿니?」
   「오빤 우리 믿어요?」
   「내가?」
   「우리는 오빠 믿었는데. 벌써 속이시겠다?」
   「내가 언제? 그리고 뭘!」
    이와 같은 수다를 모두 소설로 옮길 수는 없고, 시간 적당히 지나 축구장 밖으로 그들은 나갔으니까 문단을 떼서 가는 걸로.





    12

    축구장 밖. NB와 세실리아와 수잔나. 
   「그런데 있잖아. 오빠. 오빠도 그래? 오빠도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어? 남자가 말이야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고. 설마 반대로? 오빠한테 그럴 자격이 있어? 어? 무슨 권리로!」
   「넌 왜 오빠를 다짜고짜 코너로 몰고 그러니? 어? 오빠가 무슨 쥐니? 쥐도 막힌 쥐구멍에 몰리면 고양이를 물 수 있어. 꼭 그런 건 아니겠지만 말이야. 그리고 넌 딱 봐도 모르니? 오빤 말상...은 아니고. 외계인상...도 아니고. 넌 봐도 모르니? 이거 개상이잖아. 어? 봐 봐. 자, 보자. 눈 2개. 코 1개. 귀 양쪽에 2개 잘 달려있고. 입 살짝 튀어나오긴 했는데 어떤 년이 키스할려나 몰라도 뭘 바라는지 알겠네. 딱 보니 그냥 개네 개. 어? 멍멍 멍멍멍. 안 그래?」
   「넌 지금 사람 면전에서 놀리니? 너 이 오빠 재산목록 1-2-3가 뭔지 알아?」
   「몰라.」
   「없어.」
   「없다고? 그걸 늬가 어떻게 알아?」
   「왠지 그럴 거 같거든. 그래서 이 남자는 잔재주로 먹고 살게 될 거야. 그래. 예언이야. 신빙성? 있어. 내가 괜한 데 베팅하는 거 봤니? 맞춰볼까? 자, (손비비기 시늉) 오랫만에 녹슨 실력 점검해 말어? 에잇 하자. 뭐 어때? 오빠. 오빠. 사람 처음 만나면 친해지는데 좀 시간 걸리지? 그런데 만나자마자 친해지는 친구도 있었을 테고. 그런 친구를 딱 처음 만났어. 그럼 오빠가 막 토마토를 걔 면전에 던져본 적 있어, 없어? 없어. 말 안해도 알아. 왜? 난 용하거든. 자격증? 없어. 우리는 그런 거 취급 안 해. 어? 그리고. 오빠가 첫눈에 브로맨스에 불탄 우정과 만날 때. 사과를 상대방 머리 위에 올려놓고 장난감총으로 비비탄 쏜 적 있어, 없어? 없어. 오빠거든. 보면 알아. 어? 그리고. 오빠가 무인도에 데려가고 싶은 사랑의 차트? 우리는 딱 보면 안다니까 그러시네.」
    세실리아의 험상궂은 드리블, 신출귀몰한 개인기, 신나는 혀놀림 때문이었을까?
    언제 이동한지도 모르게 수잔나는 NB 앞으로 옮겨가 걷고 있었고. 
    모두가 NB의 웨건 쪽으로 가고 있었으므로, 따라서 자연스럽게 NB는 수잔나에게 엎히게 되었다. 
    짜잔~ 피동격 사랑의 신호! 농담이고. 아까 축구장에서 만날 때 가운데 신호가 왔는데, 이번엔 설마하니 목젓에? 
    그럴 리는 없고. 보나마나 뻔하지. 물컹한 거 그녀가 느낄까 봐 무안하겠지. 왜? 실제 업어도 봤고 업혀도 봤으니까. 
    그건 그렇고.
   「야 너! 너 이러면 반칙이다. 내가 오빠 업어키울 생각이었는데 가로채? 이년이 돌았나, 어디서 묻어갈려고. 이제 내가 물 꺼야. 알았어?」
   「근데 어딜 물어? 아프게? 아니면 부드럽게!」
   「아 쫌! 오빠 실망한다니까. 오빠 들은 거 다 기억해. 오빠가 좀 멍청하긴 해도 그래도 이 머리가 그냥 머리가 아니야. 어? 좀 구닥다리긴 하지만 이래뵈도 CPU라고. (이래뵈도?) 심지어 양면점퍼처럼 인텔도 됐다가 AMD도 돼. 어? 무슨 양면테이프야 뭐야. 참 내! 이렇게 보면 안드로이드 운영체제, 저렇게 가지고 놀면 iOS! (절레절레) 뭐여, 그런데 한두 명이 아니네. (절레절레) 하오나 물론 단점도 있지. 태양에도 반점이 있거든. 어? 달이 뜨면 해는 지고. 내 님이 오면 쓸쓸함은 가고. 비가 오면 눈이 안 오고. 뭐 우박이 온다고? 어쨌든 우리같은 미인계 2인조 명콤비한테 오빠는 약할 수밖에 없어. 우리는 어떤 남자라도 만나자마자 꼬셔. 아 맞다. 지금 너랑 나랑만 있는 거 아니구나. 뭐야, 오빠 다 들었어? 와, 나 망했다. 나 완전 망한 거 같아. 오빠 실망하면 어떡하지? 그것도 대실망?」
   「와, 스타킹...!」 
   「야. 나 오늘 성공했다. 완전, 됐어. 어? YES~! 이거야. 이거라고. 어? 이거라니까. 호호호호호호호.」
    그렇게 세실리아가 NB 옆에 꼭 붙어있으려던 순간, 수잔나는 그녀를 밀어제낀 다음 자기가 NB 팔짱을 꼈다.
    물론 그 인간은 속으로 흐뭇했겠으나 내심 불안했을 것이다. 이건 뭔가 착착 감기는 감이 없잖아 있었으니까. 
    그게 뭔지 몰라도 일단 가보는 수밖에. 그렇게 그들 셋은 NB의 웨건을 타고 이동했다. 





    13

    NB와 세실리아와 수잔나. 급허게 결성된 3인방이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니라 제라드의 집. 
    (최근 말을 너무 많이 해서 줄거리 위주로 줄여야겠다. 거 참 나 증말 징그럽게 말 많다는 게 아니라, 꼭 누구라고 말은 못하겠는데. 거 진짜 말 더럽게 많다는 게 누구라고 말은 않겠는데, 절레절레. 돌아버리겠음. 오빠 좀 쉬자. 응? 뭐 오빠 달려? 또?) 
    세실리아와 수잔나가 NB를 띄움. 그는 홀딱 빠졌고 냅다 설득됨. 
    그분들의 말인즉 그대가 완성 못한 환상머신, 우리가 대신 변신 기계를 완성했소.
    그런데 듣고 보니, 또 찬찬히 살펴보니 이게 이게 장난이 아니네? 
    물체의 모습은 그랬다. 일단 제라드의 거실 설명은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지면 보는 걸로 하고. 
    굳이 그 뻔한 설정 또 글로 길다랗게 쓰느니, 상상력 뒀다 어디에 쓰겠나. 지금 공상하는 걸로. 
    자, 보자. 어? 보소. 자, 그러니까 최고급 옷가게 드레스룸을 연상하면 된다. 또각또각 비싼 구두 신어본 사람은 안다. 그 쾌청한 소리. 또각또각. 퐁~! 
    쉽게 말해 사치품 호사 행복감만을 위한 최고급 옷가게 드레스룸이, 제라드 집 거실 좌우에 1개씩. 그렇게 2개. 딱 거실 모서리에 하나씩. 
    물론 그 중간에는 최고급 진공관 앰프에 오디오광들이 잘 아는 그런 조합. 기가 막힌 걸작들로만. 그 묘미 알게 되면 비엔나필 베를린필 어디필 생음악보다 그게 훨씬 천 배 만 배 좋다. 아니, 좋을 것이다.
    그래서 NB는 세실리아와 수잔나의 말이 처음에는 뻥인 줄 알았는데, 이거 이거 점점 신빙성이 높아만 가네? 장난 아니거든. 
    그 누가 말했나! 플레이보이의 3박자가 황금, 주색, 인기라고. 그걸 다시 허당의 4대 요소로 늘리면?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했는가, 난 아니다. 난 아니라고. 농담이고. 
    그 말은 곧 세실리아와 수잔나의 입담이 진짜처럼 느껴지는 일. 왜 그럴싸했을까? 어째 그럴 듯했냐고. 
    왜 그 뻥이 실감나게 진짜처럼 있어 보였냐 하면, 왜냐하면 사기꾼의 철칙이 뭔진 몰라도 그들도 철저했으니까.
    말하자면 그녀들은 프로였다. 일반가가 아니라 전문가 중의 전문가. 
    곧 그들이 준비한 설정은 환상적인 변신 기계의 7대 요소였다. 
    (1) 음악  (2) 조명  (3) 진동  (4) 효과음  (5) 연기  (6) 향기  (7) 명연기력
    곧 구도를 그림으로 간략히 설명하자면 이렇다. 
     ────                                          ──── 
    │        │                                       │        │ 
    │        │                                       │        │
    │        │                                       │        │
    │        │                                       │        │
     ────             최고급 오디오             ──── 
     드레스룸                                           드레스룸
    음악은 대략 이런 분위기와 비슷했다.
    Gaia/ Valensia, God/ Valentine, The Shoe/ Mozart, Keep Yourself Alive/ Yngwie Malmsteen, Crescendo Com Olivia/ Marcus Vianna, The March To The Eternal City - Triumvirat, Ritrovarci Qui - IBIS, Let It Be Me - New Trolls, Zarathustra - Museo Rosenbach, Lunetic - Walenstein, Adagio / New Trolls...... 50년대 스페인 음악제. 60년대 칸초네 대상. 70년대 빌보드 히트곡......
    그 다음. 들어가니 마니 정말 들어가도 되니 어쩌니 실랑이가 있었고. 
    테스트는 끝났냐 문제는 없냐 줄다리기도 심했고. 
    그렇게 딱 NB는 들어갔다. 
    곧 바로 사실적 마술, 환상적 요술, 변신 기계의 7대 요소가 작동했다. 
    그렇지만 NB는 그 안에서 달리 마음만 들뜨고, 설레며, 흥분되었을 뿐 분위기 말고 달라진 점은 못 느꼈다. 
    그렇다고 따로 할 일은 없고. 맹숭맹숭 떨리기는 하고. 그래서 그는 예전 기억을 떠올렸다. 

    ─┬┴─

    그림이 좀 엉성하지만 말하자면 약간 아구가 살짝 안 맞는 사거리. 
    그런 데서 뭔 일이 있었나 라는 기억. 그리고 대칭점. 예를 들어 산부인과 이름이 에덴. 그걸 대칭점으로 양쪽. 
    또 도로에 육교가 있고. 그 육교를 대칭점으로 무슨 데칼코마쥬 미술 수업도 아니고. 
    공중전화박스에서 쭈그려 잠들었는데, 육교를 대칭점으로 카페 보헤미안 웨이터 동료와 여자친구네 집 앞에 놀러갔던 일. 
    그 여자애 부모님이 여자애 머리 민들민들 스님처럼 반짝반짝 머리 민 상태로 보여줬던 일. 
    중학교3학년 때던가 흡성마법 때문에 동자승 머리를 만질 수밖에 없었는데, 그때도... 아 자기 여자친구가 아니었으니까. 
    또 95년 봄이던가 엄마랑 형수씨랑 시내에 함께 갔다가 카페 카르카손느에 들렸는데, 그냥 물만 먹고 나왔는데.
    나중 카페 보헤미아에서 매니저하던 형이 나중 그곳 매니저로 가서 카페 보헤미안 동료들과 놀러갔던가 그랬고. 그렇게 공상 끝.
    그렇게 일정 시간이 경과 후 딱 나왔는데~





    14

    그렇게 일정 시간이 경과 후 딱 나왔는데~
    진짜냐 아니냐. 뻥이냐 아니냐. 정말인가 거짓인가! 
    달라진 특이점은 드라마에서 보는 걸로 하고. 여기서는 2가지가 주안점.
    첫째, 좌측 드레스룸으로 들어갔던 NB가 나올 때 우측 드레스룸에서 나왔다는 점.
    둘째, 바뀐 거 없잖아? 라는 듯 뚱한 그에게 세실리아가 손거울을 건냈는데. 거울 속의 인물은 제라드! 
    뭐? 이때 NB는 살짝 휘청거렸다. 
    아니 이게 뭐란 말인가? 정말 그럼 이제부터 모스맨 연구자로 살아야 하는 건가? 
    아니. 제라드는 원본 제라드가 있으니까, 따라서 NB는 지금부터 모스맨이란 말인가? 
    뭐야 이거! 
   「나랑 얘기 좀 해.」
    ~라고 수잔나에게 말했는데 그는 속으로만 말했다. 행동으로 옮겨지지가 않았다. 
    그런데 신기한 점이라고나 할까? NB는 수잔나의 생각을 읽었다. 그녀는 뭐라고 했을까? 
   「난 오빠랑 할 얘기 없어.」
    뭐? 이어서 그 인간은 세실리아에게 이처럼 텔레파시를 보냈다. 
   「더 이상은 나도 못 참아.」
    그러자 세실리아는 이렇게 답했다. 물론 텔레파시로 말이다.
   「오빠는 완전히 미쳤어. 응? 엥간히 혀!」
    이 무슨 생난리도 아니고 뭔 난동이냐고. 자긴 진상이 아닌데 진상된 거 아닌가. 
    얄궂은 일복 그런 한심한 가난. 그걸 어떻게 보상 받지도 못한 채 새로운 인생? 
    좋은 건가 나쁜 건가 분간도 힘들었다. 이건 뭐 간댕이가 작은 건지 부은 건지, 뭐 배 밖으로 나왔나? 
    그 순간 제라드 집 입구에서 누군가 걸어왔다. 
    다시 말하지만 그 모두가 기막힌 연출 때문에 빚어진 신비감이었다. 아니 진짜였다. 
    무슨 7대 요소? 존나 카리스마 있어! 
    그렇게 거실에 당도한 인물은 누구냐, 다름 아니라 제라드였다. 
   「친구. 오랫만이야. 여기서 뭐해?」
    NB는 제라드의 입에서 자기 자신의 목소리를 들었다. 때문에 그는 정신이 혼미해지던 끝에 실신하고야 말았다. 





    15

    간략히 최근 줄거리 되살피자면 이렇다. 
    제라드의 집. 변신 기계 작동 ───> 변신 기계에서 나온 NB ───> 절반쯤 맛보기만으로 끝남. 그렇지만 손거울을 보니 장난 아님. NB는 제라드로 변신한 상태 ───> 진짜 제라드를 만나자 떡실신. 
    장면 전환.
    장면 전환.
    장면 전환.
    수잔나가 NB의 웨건을 몰고 NB 사무실로 가는 길.
   「오빠 깼어? 깼네. 안 깨어나면 우리집으로 데려갈까 했는데. 마침 정신차렸으니까 오빠네 사무실로 가자.」
    뭐라고? NB는 눈을 괜히 떴다고 생각했다. 농담이고.
   「그런데 있잖아. 오빠 바지 척척하지 않아?」
   「왜, 내가 오줌이라도...?」
   「(끄덕끄덕)」
   「뭔 소리야? 나는 태어나서 화장실 말고 딴 데서 일을 본 적이 없어. 알아?」
   「」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를 하고 그래?」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
   「뭔 이유? 내가 바지에 똥싼 이유? 나 아니라니까. 왜 생사람 잡고 그래?」
   「아니. 그게 아니라. 아까 제라드 오빠 본 다음에 잠깐 낮잠잤잖아. 그때 오빠가 잠꼬대를 하대? 세실리아를 데리고 살고 싶다던가...?」
   「누가! 내가? 그게 무슨 개뼉따귀 같은 얘기야? 내가 언제? 어? 이거 왜 이래? 어?」
   「오빠 반응이 너무 부자연스러운데. 너무 과도해. 그럼 오빠 흑심이 진짜가 되는데. 이걸 어쩌나?」
   「아니~! 내 말은, 어? 아니. 그게 아니라. 어?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라고. 어? 여러 말 할 필요없이, 그런데 내가 뭔 얘기를 하려던 거였지?」
   「오빠.」
   「응?」
   「할 말 없어?」
   「응.」
   「그럼 하지 마.」
   「」
   「아무일도 없었어. 다 왔다. 오빠. 나중 커피 마시자, 같이. 자주. 참고로 우리는 에스프레소 원샷하는 걸 좋아해. 오빠 커피 싫어하는 거 아니지?」
   「내가 커피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우리는 커피 없으면 못 살아.」
   「아무튼 나 간다.」
   「뭐? 그냥 가면 어떡하니? 걸어서 가려고? 오빠랑 대화를 좀 하는 게, 오빠가 널 그러니까, 오빠 말은 말이지...」
    그렇게 말이 꼬이던 찰나, 세실리아가 몰고온 라 페라리가 도착했다. 
    표범보다 빠르고 한때 치타보다 느렸던 페라리? 누군 뭐 페라리 몰 줄 몰라서 안 모나! 
    어쨌든 그녀들은 갔다. 매정한 년들!





    16

    그렇게 한 3일 정도였을까, NB는 내내 어디에 홀린 사람처럼 정신을 못 차렸다. 
    물고기는 신선할 때 잡아먹고 처녀는 처녀는...... 이런, 젠장! 저번 일이 그냥 넘기기에 간단치 않았던 것이다.
    Mozart / 오페라 <후궁탈출> 2막 - “얼마나 기쁜가, 얼마나 즐거운가”
    음악을 들어도 기분이 그저 그랬다. 그렇게 심심 얼빵 꺼벙하게 지내다 제라드 집에 다녀온지 7일째에 결심했다. 
    자기도 변신 기계를 장만하기로. 할 수 있다. 해야 한다. 왜 못해? 하고 싶다. 하지 않으면 안된다. 결론내렸던 것이다. 
    그렇게 다시 7일 경과 후. 
    장면 전환.
    장면 전환.
    장면 전환.
    그는 제라드 집에 있는 변신 기계만큼은 아니지만 대충 구색을 맞춰 장비를 장만했다. 
     ────                                          ──── 
    │        │                                       │        │ 
    │        │                                       │        │
    │        │                                       │        │
    │        │                                       │        │
     ────             최고급 오디오             ──── 
     드레스룸                                           드레스룸
    그리고 무슨 7대 요소? 그야 차차 다듬으면 되고. 
    그렇게 좌측에는 연붕홍색 옷장, 우측은 하늘색 옷장. 
    어느 중고품 판매점에서 아담한 크기의 싸구려 옷장을 샀던 것이다. 
    미친놈! 잡것? 개새끼. 멍멍멍 멍멍멍멍.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정말로... 정말로... 뭔가 어떻게 조금만 하면,
    어떻게 조금만 더 조금만, 어떻게 좀 한 번 그게 그러니까 누굴 자빠트린단 말이 아니라
    정말로 뭔가가 될 것만 같았던 것이다. 
    그래서 NB는 최고급 오디오 위쪽에 뭔가를 붙여놓기도 했다. 바로, 
    (A) 어제: 영화배우 대형 브로마이드 (사진)
    (B) 오늘: 원맨쇼 진행자 (아이패드로 영상)
    (C) 내일: 희대의 사기꾼 연구 서류들, 이 아니라... 뭘 놓을까 그대로 이루어질 텐데...
    이 때문일까? 일하기 싫고, 놀기도 재미없고, 뭘 해도 심심한 증상. 말끔히 치료되었다. 
    바로 그 허언증 다음에 찾아오는 권태감 중증. 무력감. 어리광. 능청. 허세. 싫증. 끈기 부족. 그 모두에 직방인 처방까지는 아니겠으나 뭐 그럭저럭. 
    물론 거기서 멈출 그가 아니었다. 그는 달리는 당나귀에 박차를 가했다. 어떻게?
    첫째, 공간 이동 마술 연구
    둘째, 브랜드 로고 공부
    첫째는 요술부터 짜고 치는 마술 무대 속임수까지 심층적인 조사고. 둘째는 브랜드 로고가 우측을 바라보냐 좌측을 향하냐, 그 차이점에 관한 브랜드학. 
    둘째로 말하자면 보아하니 이렇다. 

    브랜드 로고 좌향      : 버버리. 페라리. 재규어. 포르쉐. 푸조. 웰라. 첼시. 토트넘. 리버풀. AS로마. 존 디어. 펭귄 클래식. ING 그룹. 리즈칼튼 호텔. JW 메리엇.
    브랜드 로고 우향      : 라코스테. 볼보. 트위터. 밀러. 캐나다 왕립은행. 
    좌 → 우                  : 조니 워커.
    우 → 좌                  :
    좌우대칭                 : 레드불. 폭스바겐. 맥도날드. 로열 더취 쉘. 
    어중간.                   : 에르메스. 미쉐린. 로이드 뱅크. 

    이처럼 왼쪽 옷장에 들어갔다가 오른쪽 옷장에서 나오느냐, 
    아니면 오른쪽 옷장에 들어갔다가 왼쪽 옷장에서 나오느냐, 
    어떤 차이일까 브랜드학과 관계 있을까가 중요했으니 말이다. 





    17

    어느 새 사준 커피가 있기 때문일까? 나름 1.5인자로써 남자 세계에서 평판 나쁘지 않았고. 아는 여동생들도 오빠 오빠 막 그러면서 웬만큼 따랐고. 
    그래서 NB의 변신 기계는 알게 모르게 저명해졌다. 큰 유명세까지는 아니었으나 잔뻔치로 정말로 알게 모르게 소문이 자자했던 것이다. 
    예를 들어. 전성기에 여자깨나 울리고 다니던 플레이보이의 대명사, 크리스! 크리스와 핀과 토마스의 공통점이 무엇인 줄 아시는가? 바로, M자! M자? 그래 M자. 남자들 아는 M자. 자동차가 아니라 갈매기 머리선. 즉 옅은 탈모 말이다. 아니 정말로 걔네들한테 NB의 변신 기계는 밑져야 본전이었다. 획기적인 혹시나 모를 기회! 캬~ 어? 야, 그래? 내가 꼬셔줄께. 이러니까 여자들이 나한테 뻑이가지. 어? 뭐 여자? 내 발에 채이는 게 여자야. 알아? 이 형이, 어? 내가 다 꼬...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 너의 젊음을 되찾아줄께. 지금도 청춘이지만 몽정기의 정력과 사춘기의 외관을 돌려줄께. ~라며 NB가 뻐기지는 않았으나 모냥새가 어찌 어찌 하다 보니 그와 썩 다르지도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속는 셈치고 한번 구경이나 하자면서 하나둘 녀석들은 NB에게 번호표 발부받으면서 찾아왔다. 마침내 커피포트를 어렵싸리 진공청소기로 둔갑시킨 거지. 스스로 변신술 못 익히니 뭐 별수 있나. 허허허. 그는 정말 OB에서 영보이로 거듭난 것만 같았다. 
    그렇게 하여 1달 경과 후. 그는 점점 대상을 넓혀갔다. 좌에서 우, 우에서 좌. 기타 등등 엑셀에 기록하고, 성공률 측정하며, 통계 뽑아야 하니까 말이다. 가령, 
    (A) 폐기물:    코푼 휴지. 
    (B) 물체:      주사위. 만년필. 시계. 가발. 인형.
    (C) 가전제품: 커피포트. 핸드폰.
    (D) 음식:      닭다리. 감자칩. 참치통조림. 
    (E) 반생물:    꽃다발
    (F) 생물:       화분
    (G) 시신:      생쥐 (길고양이가 보은의 의미로다 물어다준)
    ......
    유명인들의 트레이드 마크. 고유한 서명. 명대사. ~를 떠올리는 말습관 그걸 NB는 어쩌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익혀버렸다. 그건 뭘까? 뭐긴 뭐겠나. 1번으로 안되겠다지. 명요리사야 딱 1번만 간봐도 대번에 예 아니오 나오지만. 그건 일이고. 놀이에서는? 빵 1개를 꼬마와 나눠먹는 어른, 일단 형이 맛없는 부위를 억어서 쳐치해줄께. 초콜릿이 맛나나 아니나 단지 맛만 볼께... 야금야금 1번 2번...! 인형극에서 볼 수 있는 이따만한 대두 인형 눈에서 모터로 인공눈물 틀듯 어린이의 울음! 연애. 애정. 그리고 더티러브. 아니 키스. 달콤한 뽀뽀? 아직 잘 모르겠는데요~! 1번 더 해봐야 알 수 있을 것만 같구먼유~. 안 그래유?
    서포터즈 조마조마의 회장 롭으로부터 연락도 없고. 품위유지비 간당간당. 사는 낙도 불안불안. 뭘 해도 재미없던 찰나, 변신 기계가 역시나 미완성 환상머신을 대신했던 것이다.
    그렇게 오늘은 누가 누가 NB를 찾아왔나 하면 그는 로버트였다. 
   「투자나 받을까?」
   「투자? 뭔 투자?」
   「높은 건물 세계 순위권 정도에 필적하도록 저거 저거 2개 지은 다음. 거 뭐야 빵 만들 때 그 뭐지? 맞다. 그래. 이스트. 공룡이랑 비슷한 게... 캥거루? 아니면 <생명수 + 공룡뼈 = 짜잔~!> 또는 타조알 + 펌프. 또 있다. 화염방사기랑 레이저?」
   「친구. 멈추자. 아마 우리 더 가면 말이야, 어쩌면 우리 돌아올 수 없을 것만 같아. 응?」
   「」

,

BLOG ─ 164

from 소설 2020. 2. 15. 10:15

    1

    최고의 행복감에 대한 적극적 욕구, 닥치는 대로 공상하는 습관. 전자는 후자한테 매번 졌다. 여지없이 완패. 그래서 하는 수없이 그 씁쓸한 패배감을 덜어내고자 나는 무척 이례적인 방법을 강구할 수 밖에 없었다. 그동안 뜬구름 잡는 단꿈의 뒤꽁무늬만 쫓느라 허비한 정력과 시간과 노력을 어퍼치기하고 싶었던 것이다. 무작정 동네 똥개를 자빠트릴 수는 없는 일이니 말이다. 우리도 걔네 인생 간섭하고 싶은 마음은 물론 시간도 없다. 그렇지만 뭐랄까 나는 곧바로 중도 포기라는 달콤한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 안 그럴 수가 있나. 왜냐하면 재미없음과 심심함을 오리가 물을 떨어 내듯 털어내기, 와는 멀찍이 떨어져 있느니까. 그렇다고 언제까지 발동이 저절로 걸리기를 기다릴까, 새롭게 판짜기를 감행할 마술을 익힐까. 다 쓰잘데기 없는 잔소리일 뿐. 내버려 두어도 지 혼자 자동적으로 굴러가는 사랑은 이 세상에 (거의?) 없다. 어차피 사랑이 인생이고, 꿍꿍이가 묘책. 그게 그거. 이거나 저거나. 그러든가 말든가. 
    그래서 나는 저번에 사무엘이 건넨 제의를 덥썩 수락하기로 했다. 사무엘이 건넨 먹잇감 쫓기 그 겁나는 액면은 무엇이었을까? 다름 아니라 레너드가 주인인 카지노 사장실에 놀러가자는 거였다. 별거 아니었다. 현실 속에 사는 동네 아저씨들인데 무슨 초현실감과 친할 일 있나.
    그렇게 사무엘과 나는 만났고, 이동했으며, 도착했다. 어디에? 바로 레너드가 주인인 카지노 사장실에 말이다. 어떻게 만났고 시시콜콜한 얘기는 뭐였고 그거 다 얘기하다간 날샌다. 
    짜잔~! 의례적인 관계자들과의 대화, 건너뛴다. 우리도 화상통화, 걔네도 무전기와 전화와 기타 등등 확인 과정은 철저히 거쳤으니까. 하여 이곳은 카지노 사장실. 다만 레너드는 어디에 잠시 볼일 보러 갔으니 우리는 기다리면 그만. 그리고 사무실에 틀어진 음악은 바로,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 오페라 <돈 죠반니> - “내 사랑하는 여인이 위로받는 동안“





    2

   「얘 있잖아, 난 레너드 같은 장르 업자면 말이야 끈적끈적한 음악을 들을 줄 알았거든. 아니면 막 뉴에이지, 아니면 바로크 이전 훨씬 이전 고음악. 그도 아니면 클럽음악. 그런데 얘 감성 은근 말랑말랑하네. 얘 요즘 연애하니?」
   「레너드가 연애를?」
   「왜 레너드는 연애하면 안되니?」
   「안되긴 누가 안돼. 다만 레너드가 진한 사랑을 하냐 마냐는 걔 인생이고. 타인의 애정이고 자시고, 진한 사랑이고 나발이고. 지금 내 코가 석잔데 그걸 알아서 뭐하게?」
   「하긴 늬 말도 말은 된다.」
   「그럼 내가 말도 안되는 잔소리나 늘어놓는 허풍쟁이인 줄 아니?」
   「너 못 보던 새에 약간 까칠해졌는데?」
   「나 원래 카리스마 좀 있어. 그럼 여기까지 왔는데 싱겁게 보일 수는 없는 거 아니니? 그래서 센 척해봤지.」
   「그래? 그럼 난 카리스마 없냐?」
   「너도 있어, 카리스마.」
   「재미없다. 누가 들으면 잘들 논다 그럴 거 아니냐고.」
   「레너드 걘 손님들 심심하게 자리를 비우면 어떡한다니. 우리 기다리기 심심한테 저 금고나 열어볼까?」
   「금고? 무슨 금고? 저 구식 금고?」
   「저게 구식인지 신식인지 늬가 어떻게 알아? 얘가 뭘 좀 모르네. 넌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봤어. 액자 뒤에 설치된 금고는 그냥 눈속임이야. 시간 벌기 위한 거라고. 그리고 저기 저렇게 보이는 허름한 금고. 아마추어들이 뭐 독학으로 갈고 닦은 기량 연습하러 낑낑대며 여기서 애쓸 일 있니? 혹시라도 온다면 전문가 중의 전문가들이 납신단 말이야. 응? 너 뉴스에서 어쩌다 봤지? 싯가 얼마짜리 명화를 그분들이 감쪽같이 들고 튀었다더라 어쨌다더라. 저렇게 보이는 게 원래 정말 센 거라니까.」
   「너 말 많은 거 보니 열 줄 모르나 보구나.」
   「내가 저거 못 열 줄 알아? 얘 은근히 뽐뿌질하네. 너 내기할래?」
    10분 경과 후. 
    사무엘은 어떻게 어떻게 정말로 그 금고를 열었다. 
    금고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혹시 했는데 역시나였던 거지. 
    그런데 문제는 사이렌이 울렸다는 거. 
    그렇게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당도한 덩치들은 센 놈들이었다. 
    때문에 우리는 일이 크게 될 줄 알고 덜컥 세한 표정으로 어정쩡하니 서있었는데 그분들 왈, 
   「아 또 저게 말썽이네. 겁먹지 마세요 손님들. 저거 원래 주기적으로 열리게 되어 있어요. 일종의 속임수죠.」
    뭐라고? 얘네들 정말 지독한 놈들이구만 그래. 그런 다음 그분들은 철수하고 한 30분 정도 지나는 동안, 사무엘과 나는 소파에 자빠져 잠시 졸았다. 
    그렇게 딱 레너드가 도착했다. 
   「친구들. 우리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그런데 너 헤어스타일 바꼈네?」
   「너 또 옆길로 세는 화법? 돌리고 돌리고 돌리고 기본으로 세바쿠 반 돌린 다음에 슬쩍 간만 보는 화법. 응? 내가 여자냐? 너 나랑 뭐 단둘이서 비밀스럽게 무슨 해야 할 일이라도 있니? 그게 뭔데 도대체?」
   「야 야 야. 흥분하지 마. 넌 왜 아무 데서나 흥분하고 그래? 그러니까 늬가 정작 중요한 순간에 힘 빠지는 거 아니야. 응? 방금도 그래. 너 또 친구 기다리기 따분하니까 TV 틀어서 보다 끄고, 핸드폰 뒤적거리다 잠들었지? 누가 모를 줄 아니? 늬가 그러니까 여자가 없는 거야. 꼭 보면 너 같은 애가 여자랑 대화하면 재밌다고 느끼는데, 그럼 뭘 해. 금새 기 빨리는데. 정작 정력은 몽정기 때만 좋았던 거야? 이러니 이러니」
   「그만 하자.」
   「그래. 잘 생각했어. 뭐 그건 그렇고. 아무튼 내가 나중에 여자 소개시켜줄께. 걱정 마 얘. 나만 믿어. 어? 너 나 아는 동생들 많은 거 알지? 아니면 뭐, 뉴 페이스? 말만 해. 형이 다 꼬셔줄께. 알았어? 어쨌든 그건 그렇고. 너네들 그 소식 들었니?」
   「뭔 소식?」
   「우리의 친구 제라드.」
   「제라드 주니어? 제라드는 걔 아빠잖아.」
   「걔 개명했어. 걔 아빠가 딴 이름으로 바꾸자마자 걔는 주니어 떼버렸다고.」
   「그래서?」
   「제라드가 있잖니 이직했데.」
   「이사도 아니고 이직?」
   「그럼 걔가 무슨 전학갈 나이니? 그러니까 크리스가 한 3번 갔다 올 동안 넌 여태 총각 꼬리표도 못 뗀 거 아니야. 하여간 (절레절레)」
   「갔다 와? 3번? 어디를?」
   「말 말자. 응?」
   「쟨 신경쓰지 말고. 하던 얘기나 계속해 봐. 제라드가 뭐 어쨌는데?」
   「제라드가 말이야, 이제 돈도 벌 만큼 벌었겠다. 하고 싶은 일들도 거의 해 봤겠다. 사랑도 알겠다 부족한 거도 없겠다. 그래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데.」
   「무슨 도전? 지명 방어전으로 누가 걜 찍었데?」
   「찍긴 뭘 찍어? 하여튼 넌 꼭 잘나가는 판 깨는 데 뭐 있어. 응? 들어 봐. 제라드가 말이야, 그 연구자가 됐데.」
   「무슨 연구자?」
   「모스맨 연구자.」
   「모스맨?」
   「그래 모스맨. 모스맨에 대한 목격담. 증언. 연구자와 면담. 노스트라다무스의 방계 후손과 직계 수제자까지 어쩌면 조사했을 수도 있겠네.」
   「밑도 끝도 없이 무슨 나방맨. 사랑은 나비야.」
   「너 온 생각이 항상 코끼리한테 가 있으니까 상태가 이 모냥이지. 야! 뿔은 귀보다 늦추 자라지만 더 길다 너. 모스맨 연구가로 변신한 제라드? 걔 학교 다닐 때 별명이 유니콘이었어. 얘가 얘가 제라드를 잘 모르네. 응?」
    그렇게 나&사무엘&레너드, 우리는 다음 날 함께 모스맨 연구자 제라드를 만나러 떠났다. 





    3

    나&사무엘&레너드는 모스맨 연구자 제라드의 집 앞에 도착했다. 
    우리는 긴장됐다. 설마... 긴가민가... 으쌰으쌰해서 오긴 왔는데. 정말 들어가는 게 맞는 것일까? 의문이었다. 
    안중에도 없던 정말 뜬금없는 모험 어디 없을까? 없다. 없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됐다. 그게 다 뒷전으로 밀린 사랑에 소홀했기 때문인가? 아니다. 아니었는데 어떡하다 이렇게 됐단 말이다. 그럼 새로운 인생에 관한 초미의 관심사는 뭐니 뭐니 해도 작업? 관심없음. 무관심이었다만 지금 여기 있다니까 그러시네. 건수 없음, 사실은 사실이었는데. 그 거짓말 같은 투정 다 뒤로한 채 우리 세 친구는 지금 여기에 서 있었다. 
   「정말 들어가도 될까?」
   「그러니까. 혹시 모스맨 연구자 제라드가 우리를 반기지 않으면 어쩌지?」
   「무엇보다 말이야, 혹시 제라드가 이렇게 말하면 어떡하냐.」
   「어떻게?」
   「나 모스맨 연구 때려쳤어. 몰랐니? 라고 말이야.」
   「그럼 여기까지 애써 찾아온 우린 뭐가 되니?」
   「그러든 어쩌든 나 깜빡했어. 여자친구랑 걔네 부모님 인사드리러 가기로 했거든. 어떡하지? 일단 난 철수했다가, 서둘러 일 처리한 다음, 나중 다시 합류할께. 알았지? 나 갈께.」
    그러면서 사무엘은 가버렸다. 물론 우리 셋은 각자 자동차를 따로따로 타고 왔으니까 가는 것도 쉬웠다. 
   「제가 선수치네. 얘 나도 있잖아...」
   「어서 가. 필요없어. 듣기도 싫어. 난 혼자가 편해.」
   「왜 또 그래? 너가 지켜보라니까. 사무엘이랑 나랑 누가 더 빨리 합류하나. 내기할래? 어? 못할 거 읎다니까. 응?」
   「그냥, 조용히, 가. 결과는 나중 알려줄께. 여기서 말 많아지면 넌 천해지고 난 비참해져. 알아?」
   「이 사람이 갑자기 진지하게 왜 그래? 너 정말 이러기야? 내가 뭐 의리도 없는 쫌팽인 줄 알아?」
   「」
   「알았어. 일단 상황 봐서 이따 바로 전화할께. 알았지?」
    그러면서 사무엘에 이어 레너드도 가버렸다. 
    그럼 나 혼자 어떡하라고?
    물론 아까 우리가 도착하자마자 마침 제라드의 집은 문이 열려 있었다. 
    전화해봤는데 제라드가 받지 않길래 우리들은 망설였던 거고. 
    그리고 걔네들이 가기 전에 또 날 북돋워졌던 말이 자꾸 여운으로 남았다. 
    제라드랑 나랑 옛날에 친했다나 뭐래나. 그렇지만 딱히 즐거웠던 기억, 사연 깊은 우정, 상쾌 유쾌 통쾌는 커녕 불쾌한 줄거리마저 빈약이 아니라 없었는데. 
    걔네들은 왜 나랑 뜬금없이 제라드를 엮으려는 거지? 뭐 어영부영 으쌰으쌰 들떴는데, 아마도 전망은 기대와 달리 실망스러울 거 같고, 그래서 비전 없으니까 튀긴 튀는데 살짝 미안했던 게지. 뭐 그건 그렇고. 어차피 문도 열려 있겠다, 모스맨인지 부시맨인지 뭐 제라드가 연구 제대로 하고 있나만 확인 후 돌아가면 그만. 그렇게 나는 제라드 집으로 들어갔다. 
    집 안에는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J. S. Bach / <마태수난곡>BWV 244. 소프라노 아리아 “내 마음 당신께 드리리”
    제라드는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그러다 제라드의 연구실로 보이는 방에 들어갔는데, 거기에 무슨 화면이 있네?
    그건 다름 아니라 CCTV 실시간 영상이었다. 그런데! 뭐야 이거? 
    앞문 바깥 즉 우리 셋이 있던 장면이 보였다. 그럼 이건... 모스맨의 신통방통한 요술 때문에 빚어진 도플갱어 1인도 아니고 3인? 
    아니, 정말로 앞서 우리가 말장난하고 어쩌고 그러다 사무엘이 먼저 갔고, 다음으로 레너드가 떠난 장면이 화면으로 비춰지고 있었다. 그러다 내가 들어오고. 
    그런데 알고 봤더니 그건 실시간이 아니라 실시간과 몇 분 간극이 있었던 것 뿐이었다. 
    그래서 난 그러려니 하고서 소파에서 쉬면서 모스맨 제라드를 기다리려고 했다. 
    그 순간 인기척이 들렸다. 그래서 바깥을 보니 웬 열댓명 인원이 우르르 몰려오네? 
    순간 멈칫. 근데 그게 보아하니 다들 똑같은 얼굴. 
    가까이 다가오니 진짜로 모두 다 전원 똑같은 얼굴. 
    그건 다름 아니라 모스맨 제라드였다. 
    그럼 정말로 제라드가 모스맨을 연구하다 권위자가 됐거나, 아니면 그놈 자신이 모스맨이 된 건가? 
    그 황당함 때문에 난 곧바로 숨을 수 밖에 없었다. 실상 현장에 있으면 그렇게 된다. 영화 보면서 중간에 어쩌고저쩌고, 그런 거 다 딴지 걸면 드라마 못 본다. 뭐 적당히 그러려니. 그건 그거고. 이건 실제 상황이고.
    그렇게 뾰로똥 엿보며 걔네들이 차근차근 집으로 들어와 거실로 들어가는 장면을 봤다. 
    그건 정말 칙칙폭폭 칙칙폭폭 무슨 애들 장난도 아니고, 정말로 제라드 1 제라드 2 제라드 3...... 
    그래서 걔네들이 총 몇 명인가 세다가 까먹었다. 한 12명? 15명? 대충 그쯤 되는 거 같은데. 
    이 요상한 장면을 똑똑히 지켜본 나. 여기 나 말고 누가 있어? 
    나중 사무엘과 제라드한테 물어보면 걔네들이 믿겠어? 
    그렇다고 증거가 있나 뭐가 있나. 
    아하~! 핸드폰 영상으로 찍으면 되지?
    하여 핸드폰으로 딱 찍으려고 했는데 글쎄 배터리가 떨어졌네. 
    이건 뭐랄까, 버티고 대치하며 그 뭔가를 기다려도 내겐 아마 유리할 게 없을 것만 같았다. 
    따라서 나는 서슴없이 결론을 도출했다. 그건 뭐냐, 도망치기. 
    그렇게 나는 일단 조용히 그곳을 빠져나와 집으로 갔다. 
    아마 나도 내가 헛것을 봤는지 진짜를 봤는지 가늠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일 것이다. 





    4

    나는 술을 끊기로 했다. 아니다. 꼭 그러지 않아도 된다. 그럼 뭘 끊지? 어차피 커피를 끊은 상태. 나중 때 되면 향긋한 에스프레소부터 카푸치노든 뭐든 막 마시겠지. 그럼 일기나 써볼까? 이미 많이 썼다. 아니, 그럴 게 아니라 이참에 그 뭐야 그래. 남녀의 우정을 끊을까?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없는데 사교계에서 팽당한 지가 언젠데 쯧쯧쯧. 아는 동생들로부터 홀대 받는 느낌. 그건 그냥 기우가 아니라 그 인간은 걔네들한테 차갑게 잊혀진 것일뿐. 그렇다고 두 마리 개 사이에 뼈다귀를 던져줄 수도 없고. 어쩐담? 어쩌긴 뭘 어째! 일단 기다려 보는 거지. 그런데 뭘? 내 말이. 내 말이 그거라니까. NB는 또 그렇게 곧잘 혼잣말인지 정신착란인지 정신분열인지 뭔지를 반복하고 있었다. 보아하니 공이 이름난 선수를 찾아낸다고, 그는 아마 명사가 아닌 게 분명했다. 누가 뭐래도 허당이니까. 행운은 거의 올 듯 말 듯 올 듯 하다 비켜가고. 여심을 거의 딸 듯 말 듯 거의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그러다 아득히 멀어져가고. 어? 에잇. 말하자면 그저 어쩌다 보니 현업이 천직. 그래서 또 일하기만? 사극에서 검집을 버린 배역 마냥 미련없이 올인 베팅을 하고 자시고, 오란 데가 없으니 하는 수 없지. 그렇게 나는 사무실에 도착했다. 
    그런데 나는 깜빡하고 있었다. 바로 모스맨 연구자 제라드의 집에서 본 헛것을 말이다. 
    설마 내 시력에 일시적으로 문제가 생긴 건 아닌가 해서 나는 안과까지 가서 검진도 받아봤다. 문제 없단다. 
    그럼 정신이? 정신과... 못 갈 거 없다. 가려고 했다. 그런데 집 근처에 정신과 병원이 없었다. 그럼 저명한 심리학자를 소개받는 걸 어떨까? 
    하여 나는 아지트로 향했다. 
    도착했다. 
    가는 날이 장날이었던 것일까?
    마침 아지트에는 사무엘과 레너드가 있었다. 
   「야. 너넨 나만 쏙 빼놓고 여기서 뭔 밀담을 나누는 거냐. 설마 남자끼리 밀애? 그야 내 일이 아니라 남 일이긴 하다마는.」
   「뭔애? 너 나 모르냐? 나 여자 환장한다.」
   「그럼 여자도...?」
   「내 발에 채이는 게 여자야. 그랬어. 그랬다고. 지금은 다 지겨워진 거 뿐. 사교계? 언제라도 마음만 먹으면 복귀 가능. 복귀하자마자... 그만하자.」
   「지금 그 얘기가 아니라.」
   「아, 저번 일?」
   「그래. 살면서 느낀 게 하나 있는데. 뭔가 걸리면 대충 생략하고, 제끼고, 밀쳐놓고, 미루고 넘어가는 일. 대부분은 괜찮은데. 간혹 가다 정말 그래서는 안될 일. 그게 나중 꼭 발목 잡는 법이거든.」
   「미안하다. 저번에 우리가 도망갔던 거. 실은 솔직히 말해서 좀 겁도 났고. 어? 그렇게 무작정 찾아가서 무슨 시트콤 찍는 거도 아니고. 우리가 뭐 하이틴 로맨스물에 나오는 한량도 아니고. 안 그래 친구?」
   「친군데 도망가?」
   「누가 너 뒤끝 긴지 몰라서 이러니?」
   「넌 뭐 남 말꼬리 잡고 늘어지는 거 일가견 없는 줄 아냐? 왜! 폭로전 한번 하자 그거냐? 못할 거 없지.」
   「아~ 그래? 우리도 질 수 없지!」
   「야 야 야. 왜 또 그래? 정말 너네 이럴래? 그럼 나만 쏙 빠져서 아는 동생들이랑 논다. 너네들 나 아는 여동생들 많은 거, 알아 몰라?」
   「이 자식이... 우리 우정이 겨우 그 정도냐?」
   「야. 자꾸 말 돌리지 말고 나 지금 심각해. 어? 진짜라니까.」
   「심각해? 왜 심각한 줄 아니? 너 몽정기라서 그래. 아니, 발정기. 너 그거 화난 상태잖아. 것도 항상.」
   「아 나 이거 증말. 아 진짜라니까. 너네들 도망간 다음에 나 혼자 들어가서 그 모스맨 뭐야, 집에 막 장식된 그 드라마 설정 장면 그거 다 보고. 모스맨 그 인간 누구냐, 제라드도 봤는데 제라드가 한 명이 아니었어.」
   「그럼 제라드가 몇 명인데?」
   「많았어. 일단 10명은 넘었어.」
   「제라드가 10명 넘게 있다고? 무슨 모스맨 대역이라도 쓴다는 거니?」
   「그게 아니라 도플갱어랄지 뭔가 어떤 요술 아닐까?」
   「아무리 생각해도 너 상태가 상당히 안 좋아보인다. 여기서 이러지 말고 집에 가서 좀 쉬어. 너 이러다 상사병 생겨 인마. 어?」
    그러면서 사무엘과 레너드는 가버렸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그건 무엇이고 하니, 바로 사무엘과 레너드의 뒷모습이 그렇게 보였던 것이다. 
    어떻게? 모스맨 연구자 제라드의 집에서 봤던 그 장면. 사람 뒤에 사람 뒤에 사람...... 점차 옅여지다가 0. 
    그 자리에서는 그렇고, 그 뒤로 사람들을 볼 때마다 누구는 그랬고 누구는 아니었다. 기준이 불분명했다.
    설마 나 미친 건가? 난 미치지 않았다. 그럼 걔네가 미친 건가? 미치긴 누가 미쳐. 아니다. 이건 진짜다. 
    그렇다고 흥분하면 안 된다는 거. 값비싼 수업료 지불하고 얻은 깨우침. 아직 철들지는 않았을 테지만 그건 아니까. 
    따라서 나는 일단 후퇴하기로 했다. 당장 뭐 어떻게 아무 데나 막 가서 들쑤시고 나불대며 들이대고 떠들고 다닐 수도 없는 거고. 
    누가 믿는다고? 그래서 진정한 다음 나는 집으로 퇴근했다. 





    5

    나는 오늘 신디를 만났다. 신디는 아는 동생이다. 내가 신디에게 어떤 존재, 어떤 의미, 무슨 오빠인지는 몰라도. 
    적어도 나는 신디에게 선사해줄 자신이 있다. 무엇을? 바로, 불순한 사심 가득한 호의가 아니라, 다양성은 쾌적의 원천이자 젊어서 우정은 인생의 비밀일까 라는 의문점을 말이다. 다시 말하자면 역시나 신디는 팔랑귀 분과였다. 아닐 수 없지. 딱 봐도 숙녀. 그래서 우리가 친해졌냐고? 아니다. 우리는 누가 됐든 만나면 금방 친해진다. 그녀들은 우리를 만나면 만나자마자 쬬갤 수... 아니 웃을 수밖에 없거든. 여자는 웃으면 끝이다. 어? 남편 팔짱 끼고 있으면 뭘 하나 이미 마음을 우리한테 빼았겼는데? 농담이고. 진짜 농담. 그렇게 우리는 찾집에서 만났다. 
   「신디. 너 어쩜 그럴 수 있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말이야.」
   「어? 뭘 오빠.」
   「너 어쩜 그렇게 못 본 새에 몰라볼 정도로 이뻐질 수 있냐고. 아니 내 말은 원래 이뻤지만 이건 정말 너무한 거 아니냐 그 말이라고. 안 그래? 넌 어떻게 생각해?」
   「이 오빠 또 보자마자 사람을 들었다 놓네. 그럼 나야 쥐락펴락 그냥 분위기 봐서 새로운 인생의 이상한 목적을 간파하면 되는 건가? 그게 그러니까 흑심? 군침? 눈독? 아니면 뭐 개침?」
   「하여튼 너는 꼭 잘 나가다 옆길로 새더라. 어? 내가 너한테 소개시켜주고 싶은 남자가 대체 얼마나 많은 줄 알긴 아니? 모두 거짓말처럼 특 A급이야. 알아? 너 사람 보는 눈 없니? 어? 이거 왜 이래? 어?」
   「오빠. 흥분하지 마. 지금은 흥분할 때가 아니고 여기도 흥분할 장소가 아니야. 알지? 알면 됐고.」
   「아무튼 그건 그거고. 신디. 레이디 신디.」
   「무슨 할 말 있어? 말해. 들을께. 다정히. 나 부드러운 여자야. 뭐 해 어서 말하지 않고. 나 뜸들이는 거 싫어하는 거 알아 몰라? 어?」
   「재촉하지 마. 안 그래도 다 말 하려고 했어. 어?」
   「잔소리 그만 하고 얼른 말 안 해? 어?」
   「따박따박 넌 그렇게 갑자기 신경질 모드로 변신하는 게 문제야. 애교도 좋고, 내숭도 문제 없고. 남자들이 하나같이 귀엽다 그러고. 머릿결? 딱이야. 그런데 누가 널 보채는 거니? 늬 안에 누가 있기라도 한 거니?」
   「아 증말. 어서 말 안 해?」
   「알았어 알았어. 있잖아 얘. 얘 신디. 신디 얘. 나 있잖아. 그게 그러니까...」
   「OK~! 여자 문제지? 오빠가 좋아하는 촌년이 누군데? 어? 언년이야? 나보다 순번 빨라? 어? 이년이 어디서 번호표도 안 뽑고. 내 그년 가만 두나 봐라. 어?」
   「아 농담하지 말고. 그게 아니라. 너 있잖아, 들었어?」
   「어?」
   「들었어? 들었냐고.」
   「들어? 듣긴 뭘 들어. 누가? 내가 왜! 이 오빠가 뭐 사람 간보나? 듣긴 뭘 들어. 어?」
   「아하~ 안 들었네.」
   「아 뭔데?」
   「넌 원 그래프에서 어떤 부류구나. 딱 넘어간 다음 레이다 가동하고 추문 모으고 사안 따져서 나중 혼자서 조용조용 결론내는 똑순이는 아니라는 점.」
   「그럼 뭐 내가 헛똑똑이야?」
   「이번엔 네가 흥분할 차례구나.」
   「아 그러니까 뭘 들었냐고? 어?」
   「안 들었으면 뭐 나중 들으면 되고. 아니면 내가 직접 귀뜸해줄 수도 있어. 소곤소곤. 자, 귀 이리 갖다대 봐. 뭐 해, 그 팔랑귀 어서 이리 갖다대지 않고. 듣기 싫어? 그럼 딴 데 가서 듣던가.」
   「나 팔랑귀 아니야. 누가 나 팔랑귀래? 나 여우귀야. 이 꼬리 안 보여? 이거 아무한테나 흔드는 거 아니다.」
    그렇게 3분 경과.
    나는 모스맨을 봤다고 그녀한테 솔깃한 사실을 얘기했다. 물론 그녀는 혹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 왜냐하면 그럴싸 했으니까. 
   「모스맨? 무슨 찜빵맨도 아니고 모스맨? 그걸, 나보고, 믿으라고? 에이~ 장난이지? 그렇지 오빠?」
   「얘가 얘가 속고만 살았나. 내가 어디 실없이 아무 얘기나 아무한테나 막 떠벌리고 발설하고 나불대는 그런 얼간이인 줄 아니? 나 찌질이 아니야. 나 머저리 아니야.」
   「누가 오빠한테 바보라고 놀렸어? 왜 그렇게 설레발? 몹시, 수상한데? 아까부터 호들갑 떠는 거 역시나 그렇고. 이거 믿을 만한 정보야?」
   「그럼 내가 증거도 없이 이런 얘기를 너한테 쓱 흘리겠니?」
   「심증 아니고?」
   「일단 증인부터 보여줄께.」
    그러면서 나는 사무엘 사진을 핸드폰으로 그녀한테 보여줬다.
   「와, 나 이 오빠 알아.」
   「왜, 반했어? 벌써? 보자마자? 너무 이른 거 아니니? 좀 고민하는 척 시늉이라도 하지 않을래? 뭐 아무튼. 얘가 얘가 이래뵈도 꽤 잘나가. 어? 잘생겼지? 그런데 허당이야. 그리고 축구 좋아해. 하지만 개 발. 공격에서 선봉 서면 개 발, 수비 맡았다 하면 구멍. 푸하하하하. 말하자면 하는 거 말고 보는 거 좋아한다고. 아, 증인 2호 또 있다.」
    그러면서 나는 제라드 사진을 신디에게 보여줬다.
   「이 오빠 여자친구 있어?」
   「왜, 관심있어? 잘생겼지? 난 잘생긴 친구 아니면 상대를 안 해. 그런데 왜 내가 소개를 시켜주면 하나같이 여자들이 연락을 끊는지 몰라. 아무튼 얘도 잔재주 잔기술 잔근육까지 뛰어난 걸로도 모자라 여자 말 잘 들을 거 같지? 여자의 잔소리 견디는 대회에서 1등할 거 같지? 그럼 뭘 해. 얘도 허당! 어? 허당계에서 알아주는 권위자. 사교계에서 저명한 허당. 허당 중의 상허당. 푸하하하하하하. 푸하하하하하.」
   「그런데 이 오빠들이 모스맨과 뭔 관계인데.」
   「관계? 상관 있지. 강력한 연관관계 성립되지 왜 아니야? 역학관계 알려줘? 자, 봐 봐. 사무엘은 모스맨의 후계자로 손꼽혔다가 퇴짜맞았어. 그리고 제라드는 모스맨의 제자들 가운데 실세로 알려졌는데 역시나 팽당했지. 그런데 그 둘의 차이점이 뭔 줄 아니? 사무엘은 에잇 못해먹겠다 그러면서 탈퇴했고, 제라드는 꾹 참고서 다시 후계자로 복권한 다음 곧바로 모스맨 전도사로 활동 중이야.」
   「오빠. 뻥이지?」
   「왜 증인으로 안돼? 그럼 나랑 같이 가자. 너랑 같이 갈 데가 있어.」
   「가긴 어딜 가? 이 오빠 안 되겠네. 어? 오빠가 이러니까 여자가 없는 거구나. 오빠가 이러니까 아는 동생들이 다 떨어져나가지. 안 그래? 그러니까 오빠가 여자가 없는 거라고. 어? 알아?」
   「여자와 이게 뭔 상관인데? 이거 왜 이래? 원래 모스맨이 후계자로 찍은 사람은 나야. 알아?」
    결국 신디를 만난 성과, 요약하자면 이랬다. 
    나는 신디에게 모스맨 얘기를 슥 흘림. 그러나 신디는 꿈쩍도 안 함. 
    그건 그거고 같이 극장에서 영화를 보든 맛난 식사를 하든 해야 할 텐데. 신디는 도망감. (절레절레)





    6

    원하는 전부가 단지 돈이냐 사랑이냐 아니면 그 모두냐. 딱 꼬집어 이거다 장담하거나 아님 애원 소망 야망 아무것도 없거나, 그 가운데 최고는 변심. 이사. 이직. 재혼? 난봉꾼이 살림꾼으로 개심? 그야 어떻든 수다대회에서 1등감인 다변가의 변덕을 어떻게 요리할 것이냐가 문제 아닐런지. 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지고. 밀물이 있으면 썰물이 있고. 해님 지면 달님이 뜨고. 들었으면 놓고 쥐었으면 펴고. 그런데 무슨 연애를 어디서 잘못 배웠는지 쥐락펴락하랬더니 계속 당기기만 해? 져줄께 져줄께요 참다 참다 사랑의 시소에서 내 님은 내려버리시는 것. 딴 게 아니라 이별은 그렇게 떠나버리는 것. 등 돌리면 어차피 남남. 언제부터 알았다고? 볼장 다 봤는데? 누가 아쉽고, 누가 미련이 진하며, 누가 뒤끝 작렬일지는 나중 두고 보면 아는 것. 
    그런데 이 얘기가 왜 나왔지? 아마도 품위 유지비가 간당간당했기 때문일 것이다. 삶의 낙이 뭐랄까 조마조마하다면 이상하고. 그래 뭘 해도 재미없으니까. 색다른 관심사가 어딨나. 그래서 나는 어딘가에서 힌트를 얻어 예사롭지 않은 일거리를 찾았다. 그건 무엇일까? 그건 바로, 새로운 취미는 www.spacetelescope.org 에서 사진 구경하기. 허나 다큐멘터리처럼 오래 못감. 어디를 가고, 누구를 만나고, 어떻게 여심을 회상하고. 뭘 하든지 모스맨 연구자 제라드... 제라드 1 제라드 2 제라드 3......그 잔상은 도저히 잊혀지지 않았던 것이다. 기차처럼 쭉 이어지다가 점점 옅어져 잔상이 희미하게 마무리되는 현상. 그 불특정 패턴으로 연구 논문을 쓸 수도 없고. 그렇지만 너무 신기하고. 뚜렷이 보이는 사람은 강아지를 키우고, 약간 일렁이는 잔상이 이어지는 쪽은 고양이를 키우나? 아니면 동성애자랄지 무성애자? 뭐지? 대체 뭐지? 아님 그게 보이는 사람은 얼마 후에 일확천금을 얻게 되나? 또는 잔병을 앓게 되나. 최소한의 표본으로 그 비밀을 대충 파악했다 치고, 그렇다고 그걸로 점쟁이로 나설 수도 없는데. 그래? OK~ 일단 미뤄. 끙끙대며 끝장낼 수 없고 그래서도 안될 사안이므로, 고로 관망. 그렇다고 완전히 뒷짐은 아니고 찬찬히 생각 또 생각. 그럼 그 다음은? 뭐긴 뭐겠나. 아는 동생들 불러내서 물어보는 거지. 
   「내가 말이야 어디서 들었는데 쩜쩜쩜.」
   「믿을 만한 소식통에 의하면, 들었어?」
   「지적인 행복감을 동반하는 사랑의 감정. 그야 물론 좋다만 사랑이 왜 나쁘니? 그런데 있잖니, 너 들었니?」
   「임자 없는 숙녀에 대한, 굶주린 늑대의 번득이는 눈빛. 너 그런 눈빛 뭔 줄 알지? 그 능글맞은 명태 동태 생태 눈동자랑 라섹한 눈, 구별 가능해? 그러든가 말든가. 들었어? 응? 들었어?」
    자, 오늘은 누가 누가 <들었어요?>의 행운아이자 잔소리의 노예로 낙찰됐을까? 그런데 그렇게 스트레스 풀고 기 받으려다가, 있는 정력 없는 정력 아주 그냥 기 쪽쪽 빨려버리면 어떡하지? 그야 그때 가서 판단하고. 그렇게 나는 오늘도 누군가를 불러냈다. 
    몇 시간 경과 후. 카페. 샐리는 카페라떼 나는 에스프레소. 
   「너 들었니?」
   「나? 오빠는 들었어?」
   「따라하지 말고. 너 정말 들었어?」
   「따라하는 게 아니라. 오빠는 들었냐고. 들었어?」
   「듣긴 뭘 들어. 아 들었냐니까. 어? 들었어 안 들었어?」
   「누가? 내가? 오빠가 먼저 판돈을 키워야 내가 받을지 콜만 할지 정할 거 아냐. 응? 왜 내 액면 이 얼굴로 부족해?」
   「너랑은 말이 안 통해.」
   「오빠가 꽉 막힌 남자라고 의심해보진 않고?」
   「그러니까 난 뭘 좀 모르는 남자다? 그러니까 늬가 남자가 없는 거야. 어? 남자를 만나도 까탈스럽게 고르고 고르다 탐색전 펼치다 남자가 도망가기 바쁘다고. 알아? 어? 그래서 늬가 남자가 없는 거라니까.」
   「무슨 내가 남자에 환장한 년인 줄 알아? 어? 뭐가 어쩌고 어째?」
   「진정해 샐리. 너 그런 모습 너한테 안 어울려. 넌 고상하고, 도도하고, 세련되며, 우아하게, 뭐라고나 할까 근사한 그 어떤, 뭔가 있어 보이는, 무슨 기막힌 사연을 간직한, 그 뭐랄까,」
   「언제까지 할 꺼야? 1절만 해. 응? 본론 꺼내려다 그렇게 한심하게 옆길로 새니까, 응? 그래서 오빠한테 여자가 없는 거야. 알아? 그러니까 오빠는 여자가 없는 거라고. 어? 다 나나 되니까 오빠랑 시간 보내주지, 어? 나 아니면 누가! 나 아니었어 봐라. 오빠 오늘도 일할 거잖아. 오빠 일중독 아니야? 아님 아니라고 말을 하던가. 말 못하지? 그치? 내 그럴 줄 알았다. 내가 오빠를 모르니? 응? 오빠. 응? 오빠. 들었어? 나한테만 조용히 말해 봐. 응? 오빠. 들었어? (조용조용히) 들었어?」
   「듣긴 뭘 들어?」
    그렇게 줄다리기 30분 경과 후. 
    나는 어떻게 어떻게 그간 모스맨 연구자 제라드를 만나러 간 일부터, 환시, 환청, 기타 등등을 모두 얘기해주었다. 
   「어머! 정말이야?」
   「진짜라니까.」
   「그럼 나는? 내 뒤로 그 잔상 안 보여?」
   「너는... (게슴츠레 뭔가를 관찰하는 듯) 안 보여.」
   「그런데 그게 보여야 좋은 거야 안 보여야 좋은 거야?」
   「그건 아직 불분명해.」
   「아직 불분명해?」
   「응.」
   「분명하게 해 줄까?」
   「뭐?」
   「보여야 좋은지, 안 보이면 나쁜지. 알게 해 줘?」
   「아아. 왜 남자들이 버티다 버티다 견디다 견디다 너한테 나가떨어지는 줄 알겠다.」
   「뭐? 이 인간이 지금 듣자 듣자 하니까...!」
   「진정해 진정해.」
    그 다음 수다는 생략하는 걸로. 
    나는 이런 소득없는 시간 낭비 당분간 줄이기로 했다. 
    그래서 집에서 혼자 진득하게 모스맨에 대해 검색해보기로 한 것이다. 
    그나저나 뭐 들었어? 어? 뭐가 어쩌고 어째? 어? 진정하자! 진정하고 자시고 지금 진정이고 나발이고... 진짜 진정. 
    '아냐, 봤냐'야 남녀 공히 구사하는 거고. 최근 귀에 못이 박힌, 들었어?
    여자의, 들었어? = 남자의, 만져 봐!
    뭐라고? 알 게 뭐야. 





    7

    새콤달콤 쾌감에 대한 다급한 갈망. 굶주린 열망. 허나 꿈과 달리 현실은 야멸찬 '애정 없음'. 무정. 매정. 무지. 불행. 무능력? 지지리궁색. 연민. 도대체 속 시원한 사랑 그 화끈한 쾌락마는 언제 탈 수 있을까? 그런데 그 애마는 알고 봤더니, 시디신 포도? 그래서 능글맞은 복숭아가 알고 보면 인기일까 아닐까. 능금과 더불어 알게 모르게 벌레 먹은 사과에 대한 수요는 영원한 건가? 그러니까 말이야, 패배주의 권태 타성 지루함 재미없음 약속무 건수 없음 심심함을 단박에 초전박살 낼. 궁극의 대체제는 아닐지라도 아쉬운 대로 쓸 만한 대타, 그 절묘한 대안은 과연 무엇일까? 없었다. 있을 턱이 있나. 바랠 걸 바래야지. 
    무슨 개꿈 만도 못한 헛소리는 재미없고. 딱 집어치우고. 모든 항아리에는 제각기 맞는 뚜껑이 있다. 그거만 알면 된다. 희망찬 미래와 행복한 사랑, 그 야심 찬 기대는 그대를 결코 실망시켜드리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큰소리 뻥뻥 치며 자신있게 예언했는데 가짜로 들통나면 어떡하지? 어떡하긴 뭘 어떡해. 서쪽에서 뜬 해 동쪽으로 져물어가니, 그러므로 나는 퇴근해야지. 헤헴. 
    그렇게 나는 퇴근하려다 마음을 바꿨다. 나른한 오후쯤에 먹었던 간식 때문에 속도 더부룩하니 저녁식사 생각도 없기 때문에 사무실에서 인터넷 검색 조금만 더 하다 가기로 했다. 
    일단 지적인 척하며 말러를 듣다가 졸지도 모르니 음악은 이렇게.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 오페라 <알바의 아스카니오> K.111 서곡과 몇몇 아리아 위주로 편성. 
    자, 모스맨인지 무스맨인지 뭔지에 대해 알아볼까? 
    모스맨은 일단 1966년과 1967년에 집중적으로 나타탔고. 에 또 보자. 2003년에, 2013년에 칠레에도 등장한 적이 있네? 목격자가 한두 명이 아니란 소리군. 영화 모스맨 (2002)도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거고. 포인트 플레전트에서는 해마다 모스맨 축제가 열린다는데 거기나 가볼까? 바쁜 시절 한풀 꺾여 휴가 때 되면 생각해보지. 어차피 그전에 갈까 말까 하다가도 미루면 다 귀찮아질 테니까. 돈도 아끼고 좋지 뭐.
    그 순간 사무엘이 핸드폰 앱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바로 모스맨 연구자 제라드 사진을 페이스북, 어디 어디에서 본 걸 알려준 것이다. 그 사진을 가만 들여다보니 제라드가 입고 있는 티셔츠에 써진 글씨가. 12 X 12 = 144. 그런데 제라드는 거꾸로맨이니까 144를 뒤로 읽으면 441? 이 자식 또 어디서 모범생들 시험보는 데 쪼르륵 동참한다면서 막 자기도 따라가서 시험봤구만. 꼭 보면 학교 다닐 때 공부해야지 뒤늦게 말이야, 어? 그래도 그 사진으로 실버 브릿지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게 됐다. 
    그런데 그와 동시에 옛 친구 믹에게 메시지가 왔다. 앱을 보니 어디로 놀러가서 고기 구워먹는 사진. 가만 있자 믹이 나와 단짝이었는데. 걔가 군입대해서 배치받은 부대가 11사단. 당시 면회갔던 해가 95년? 96년? 또 조금 있다가 친구 폴한테도 메시지가 왔다. 스키장에서 폼잡고 찍은 사진. 가만 있어 봐, 폴이 시골 대학교에서 자기가 축구단 창단했다던 때가 대충 2000년 전후쯤일 텐데. 그 축구단 이름이 11. 그럼 11 X 11 = 121? 그게 어쨌다고. 몰라. 몰라 몰라. 모른다고. 어? 됐고. 아니 잠깐만. 내 출신부대 표식은 그대로지만 부대번호는 바뀌기 전 당시에 사단은 7371 대대는 401. 모스맨 영화에서 36번째인가 37번째 어쩌고저쩌고 그랬던 거 같은데. 내 티셔츠에 숫자 써진 게 736... 몰라. 머리 아퍼. 그렇게 난 뭔가를 찾다 포기한 채 퇴근했다. 





    8

    보슬비도 계속 맞으면 젖는다. 축축히! 잔뻔치가 그래서 중요한 것. 그런데 더 중요한 것? 진공청소기와 커피포트 원리. 잔소리는 듣다 듣다 나가떨어지기 쉽고, 잔재주에 여심과 팔랑귀는 솔깃하다는 것. 여자의 마음? 우리한테 혹할 수밖에 없음. 비온 뒤에 땅이 굳을 것이냐 버섯이 자랄 것이냐. 딱 보면 듣는 유형 읽는 유형, 구분되며 자연스럽게 간파됨. 척하면 척. (멈칫)...! 그래?
    아아 아직 부족하다. 이 정도로 허세대회에서 입상, 허풍대회에서 인기상? 어림도 없다. 어림 반푼어치도 없다. 차라리 개 풀 뜯어 먹는 공상이 백번 낫지. 그럼. 그러니까 카페 수다대회에만 가도 기 빨리기 십상이지. 안 그러게 생겼나. 안 듣고, 우기기 좋아하고, 나서기 대장에다, 말하기 좋아하는 그분들. 남자는 <그러니까 내가 저분께 질문하지 말랬잖아>라는 부류. 여자는 <넌 왜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하고 그래?> 분과. 걸려들면 우리는 찍소리도 못함. 어? (절레절레) 맥이 빠지는 정도가 아니라 정력 바닥남. 웬만하면 포커페이스 되는데 잘못 걸리면 표정 썩음. 그러게 립서비스 좀 털어서 어떻게 좀 어떻게 걔 좀 자빠트려볼 궁리 하면서 잔꾀 부리다, 지갑만 털리는 일. 있었나? 어떻게 좀 해 볼려다가 주량이 주량이, 어? 각 나오고 견적 보이면 도망가는 게 상책. 무슨 여자가... 말 말자. 그런데 전적 얘기가 왜 또 갑자기 나왔지? 그걸 내가 어떻게 아나. 모르는 게 뭐 자랑은 아니지만 즐거운 상상 아찔한 흑심 달콤한 몽상과야 다음에 또 조우하면 그만이고. 쾌감과의 재회는 꿈만 꿔야 하니 말이다.
    하여 나는 오늘 이브와 향긋한 커피를 마시기로 했다. 





    9

    우리는 만났다. 어떻게 어쩌고저쩌고 상황설명은 다 건너뛰고. 
   「오빠. 커피 끊었잖아?」
   「나? 아 커피 끊었지. 오늘만 마실 거야. 평소에는 안 마셔. 일절. 입에도 안 댈 꺼야. 마시고 싶지 않아. 안 댕겨. 차라리 콜라라면 모를까. 왜냐, 난 커피랑 안 맞는 거 같걸랑. 커피는 말이지 그 뭐랄까 약간 쌀쌀한 날씨에 해변가 모래사장 고운 그 멋진 정경에서. 바람이 약간 애매한데 홀랑 벗고서 일광욕하는 선그라스맨이 비키니 입은 애인 수건으로 살작 덮어주는 장면. 그처럼 몸에 열이 엄청 많아야지 커피가 몸에 잘 맞는 거 같아. 나 같은 약골은 딱 식기 전 먹을 동안만 좋고. 그 뒤로는 겔겔하고. 꼭 내가 봤을 때 그런 것 뿐만 아니라, 혹시 지루...와도 관계있을지 모르고 말이지. 마지막 말은 못 들은 걸로 해 줘. 허허. 헤헤헤.
    아니 잠깐. 그게 아니라 혹시...! 설마, 늙어서? 난 늙지 않았어. 영원한 젊음. 맨발의 청춘. 어? 우리는 야행성 맹수과. 어? 우리가 뭐 9시에 체력 방전되서 10시 11시만 되면 졸리고 그러는 줄 알아? 우린 달이 떠 있으면 무조건 눈빛이 초롱초롱해. 알아? 우리는 커피를 안 마시면 아무것도 못해. 커피가 무슨 장난인 줄 알아? 지금 장난해? 커피는 예술이야. 어? 야, 커피 사발로 주라 그래. 커피가 아까워서 이러는 거야 뭐야. 큼직한 대접에다 따라줘도 시원찮을 판에, 어? 이건 뭐 코에 붙이라는 거야 볼에 칠하라는 거야. 컵이 이건 뭐 개미가 마시라는 거야 뭐야? 컵이 뭐 이렇게 작아? 어? 이거 대체 뭐하자는 거야? 어? 내가 커피 얼마나 좋아하는 줄 알긴 알어? 어? (몸짓)
    얘 좀 보소. 커피광을 띄엄띄엄 아시나. 응? 우리는 커피 없으면 못 산다니까요. 아시겠시유? 이 사람아, 허영심 여신들도 다 우리를 피해가. 어? 아시겠시유 모르시겠시유? 네? 괜히 남녀가 오래 만나면 말수 줄고, 부부끼리 5미터 떨어지는 줄 아시나. 나는 이 뼛속까지 커피 매니아란 말이오. 그저 심심하면 커피 찾으시는 애호가들랑 우리랑 비교를 말어 이 양반아. 그분들 취향은 말 그대로 취미에 가깝기 때문에 뼈 근처도 아니고 그냥 애무도 아니고 뭣도 아니야. 어? 어디다 명함을 내밀어 내밀긴? 내겐 커피가 곧 삶이란 말이오 낭자. 숙녀여, 들으셨소? 이 내 몸에 새빨간 피 대신 향기로운 커피가 흐른다는 소문을. 진짜야. 진짜라고. 내가 언제 거짓말 하는 거 봤어? 못 믿겠어? 내기 할까? 그래? 에잇, 하지 말자. 내가 언니 돈 따서 뭐하게. 이겨도 얻는 거 없고. 지면 져서 창피하고. 물론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말이야. 내가 원래는 말이야, 사귀는 여자들이 종종 그랬어. 그냥 왕왕 그랬던 정도가 아니라, 그 얘기 어디 한두 번 듣나? 내 피부에서 애기 냄새난다고. 그런데 어느 날 바뀌더라니까. 어떻게? 내 피부에서 커피 냄새가 난데. 걔네 향수보다 내 피부향이 더 그윽하다는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하오. 안 그렇소? 아, 맞다! 너 나 커피 수필집 낸 거 모르지? 모를 꺼야. 굳이 알 필요는 없는데 알아도 뭐 말리지는 않겠다 그거지. 왜 검색해보게? 하지 마. 하지 말라고. 절판됐으니까. 너무 구식이라서, 새롭게 또 한 7권 정도 쓰는 중이야. 나오면 제일 먼저 너한테 선물해줄께. (윙크) 오빠 알지?
    그런데 누가 이렇게 내 속을 박박 긁는 거지? 너니? 그럴 리가 없는데. 너 혹시 친구들이랑 내 얘기 했니? 그럴 턱이 없잖아. 내가 너네들 사랑의 순위에서 뭐 상위권도 아니고. 12위 근처에도 못 가잖니. 12위가 다 뭐야 2부 리그면 그 나마 낫겠네. 그런데 대체 누구야, 어? 아 나 이거 정말 귀 간지러워. 내가 지들 똘만이나 되는 줄 알아? 몇십 년 한 이불 덮고 산 마누라나 된다면 또 몰라. 어? 한 7미터 떨어져서 걷고, 모임 가서도 멀찍이 근처에서 떨어져 앉는 여편네나 된다면 또 모른다고. 안 그래? 웬만치 트집을 말아야 말을 안 하지. 너가 생각해도 그렇지? 그렇다니까. 뭐 안 그렇다고? 안 그렇긴 뭐가 안 그래. 늬가 그러니까 남자가 없는 거야. 알아? 내가 몇 번을 말하니. 어? 남자? 사랑? 
    오빠가 정리해줄께. 딱 정리해줄께. 잘 들어. 늑대는 말이야 안개를 좋아해. 어? 우리 같은 양치기 스타일은 주제를 뭘로 정하든 말은 말은 청산유수라니까 그러시네. 응? 방금 오빠가 뭐랬니, 늑대는 안개를 좋아한다. 자, 늑대가 안개를 왜 좋아할까? 그건 중요하지 않아. 여자의 '들었어요'를 남자가 어디 좋아하니? 그거거든. 남자의 '(내 근육) 만져봐'를, 여자가 듣고 알고 보면 피식 웃잖니. 좋아서? 웃겨서! 그처럼 늑대가 안개를 그냥 좋아하겠니. 다 그 다음이 있기 때문이지. 안 그래? 느그적느그적 행군하듯이 근방을 수색하다가 늑대가 안개 속에서 막 낭자처럼 아리따운 양을 딱 때마침 만났다고 생각해보오 그대여. 레이디 이브! 응? 그럼 늑대는 웃겠지. 흐흐흐흐흐. 허허허. 그런데 그게 아니라, 웬 자칼? 하이에나? 곰? 반갑지 않거든. 걔네들은 가는 길이 달라요. 오빠가 또 다큐멘터리에 일가견이 있다는 거, 알랑가 모르겠는데. 막 표범이 치타를 잡아먹고 맹수들끼리 싸우고. 그런 장면은 드물어. 물론 드물기 때문에 관찰자들한테 좋은 촬영감일 테고. 즉 육식동물은 어디까지나 초식동물을 좋아한다고. 육식동물들끼리는 첫째 롱테일, 둘째 정말 정말 굶어죽을 듯이 배고플 때, 셋째 영역처럼 서로서로 침해하지 않는 어떤 불문율. 딱 그 3가지를 제외하고서는 대체로 소 닭 보듯 닭 소 보듯이야. 너 알아두는 게 좋을 거야. 오빠 말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지 말라고. 늑대는 아무리 길들여도 숲만 바라본다 너?! 그런데 커피 얘기 잘 하다가 왜 갑자기 또 늑대론이야?」 





    10

    「한편, 넌 왜 웃어? 오빠 말이 우스워? 웃겨? 코메디? 아직 시작도 안 했어. 이거 왜 이래! 어? 그러고 보니 말이야, 늬가 그동안 웃긴 남자를 안 만나봤구나. 훈남, 미남, 성우, 재력가, 순정남, 진지남, 수다파, 품격남, 고전파, 미래파, 초현실파, 인상파, 낭만파, 야수파, 기분파...등등은 만났을지 몰라도. 얘가 얘가 우리 같은 만담가는 또 처음인가 보네. 뻥뻥~ 터지는 유머? 얼굴 근육 실룩실룩 따로놀 정도로 배꼽 빠지는 일? 오빠 만나면 날이면 날마다 배꼽 빠지도록 웃겨 줄께. 응? 무슨 유명 코메디언이니 개그맨이니 걔네들 우리한테 어림도 없어. 알아? 오빠가 너 웃음 빵빵 터지게 만들어줄께. 어? 내가~ 어? 내가~ 어? 잠깐만. 가만 있어 봐. 그런데 너 그 진홍색 립스틱, 나쁘지 않아. 스타킹도... 좋은 선택이야. (엄지 척)! 아무튼 그 립스틱 몇 호니? 스타킹 커피색 3호 막 그처럼 립스틱은 그런 거 없나? 뭐 차차 알아가면 그만이고. 아무튼 너 커피 마시고 싶으면 오빠한테 말해. 커피 그거 얼마나 한다고. 어? 커피가 최고로 비싸봐야, 웬만한 소비재는 물론 가격과 비례하긴 하나. 경제가 이렇게 발전했는데 품질이 기본이 된지는 옛날. 그래서 커피 애호가들이 우리 같은 커피광들한테 안 된다는 거지. 우리는, 어? 땀을 흘려도 그 땀에서조차 커피 냄새가 나는 사람들이라고. 알아? 내가 진짜 이런 얘기까지는 안 할려고 했는데 말이야, 정말 커피 얘기라면 무정차로 3박 4일 내내 잠도 안 자고 말할 수 있어. 어? 우리가 뭐 못해서 안 하는 줄 아니? 응? 그리고 저 쿵쾅거리는 2박자 음악. 주인장 어디 갔어? 음악 바꿔주라 그래. 뭐가 좋을까? (딱) 그래, 모차르트의 미사 C단조 K.427 그런 걸로 말이야. 
    정신 사나우면 커피 맛이고 뭐가 배가 산으로 가. 블라인드 테스트와 판매량, 비례하니? 아니거든. 커피? 나한테 물어보셔. 커피? 오빠랑 마시자. 응? 그게 좋겠다. 허허허. 우리 이브라면 말이야, 이 오빠가, 어? 평생 먹을 커피 다 사줄께. 너 오빠 알지? 오빠 그렇게 쪼잔한 아니다 너. 네 친구들 가운데 커피 좋아하는 애들 있으면, 언제라도 오빠 불러. 너든 네 친구든 누구든 커페만 좋아한다면 몽땅. 오빠가 다 살께. 20명 30명? 다 데려와. 안 그래도 아는 동생들 떨어져나간 지도 오래됐는데, 아 농담이고. 아니. 그게 아니라. 오빠는 딸랑이랑 깔깔이만 챙기는 그런 얍삽 소심한 남자가 아니야. 어? 다 너가 착해서. 어? 우리 이브 심성이 곱기 때문에. 어? 무슨 오빠가 번호표 받고 줄서는 심복과 오다가다 이합집산하기 바쁜 중간 보스랑만 쿵짝 딱딱 맞는 그 막 드라마 속 악역인 줄 아니? 아니야. 여자들한테 호감 사고, 애정에 둘러쌓여 흠모에 선물에 짝사랑에 입이 귀에 걸리는 일? 우리랑 머나먼 얘기. 관심 없어. 인기 그거 다 거품일 뿐이야. 그와 별개로. 희망찬 미래 오빠랑 너랑 각자 어떤 인생을 살던. 내가 너 뿐만 아니라 아는 동생들 커피라면 얼마든지 사줄께. 어? 다, 언제나, 얼마든지, 누구나 사줄께. 어디서건 말이야. 응? 이 형이 다 꼬셔준다고. 
    (멈칫)
    뭐? 아, 마지막 말은 촌닭들 깐족깐족 으쌰으쌰할 때 얘기니까 신경쓰지 말도록. 깐죽의 달인들 누군지 알잖니. 허허. 흐흠. 허험. 흐흐. 딴 건 몰라도 너 이건 꼭 알아둬. 다 나나 되니까... 나 생색내는 거 싫어해. (인상 팍) 누가 나 생색내는 거 좋아한다 그러든? 어? 아니야. 너야? 너가 그랬어? 아니지? 그럴 리 없어. 그래서는 안되니까. 너처럼 고운 요정이 어찌! 너도 그렇겠지만 오빤 남 얘기하는 거 결코 좋아하지 않아. 딱 질색. 질색 팔색. 어? 음. 그렇지. 그렇고 말고. 누가 나 보고 막 애교에 녹는다며 무슨 말 같지도 않은 헛소문 퍼트린 거? 그거 다 뻥이야. 뻥. 다 뻥. 개 뻥. 그런 거 몽땅 헛소문이라고. 믿지 마. 아무도 믿지 마. 절대 뒤돌아보지 마. 좌우지간 이건 알아두시게. 오빠라는 말만 들으면 미쳐버리는 상남자도 다 두 가지로 나뉜다는 걸 말이야. 
    첫째, 나처럼 커피사주기 자체가 좋은 사람.
    둘째, 다 반사이자 거울 이치로 돌아올 그 뭔가를 은근히 바라는 남자. 
    아무튼 말이야. 이거 하나는 분명하지. 이기주의자 기회주의자의 표상인 이 오빠가 그 얼마나 이타적 천사인가, 그걸 내 입으로 어떻게 말하나. 그러든 아니든 자랑할 거 많고 귀찮아서도 우린 안 해. 못 해. 하면 안돼. 싫다고. 어? 뭐하러! 우리가 이 세상에서 최고로 좋아하는 일이 대체 뭔데. 친한 동생들 커피 사주기거든. 실상 난 그만큼 커피를 좋아하고. 우리는 커피라면 아주 그냥 미쳐버려. 어? 식사? 안 먹어도 돼. 커피만 마실 수 있다면. 어? 잠? 안자. 나 원래 잠 거의 없어. 시간낭비야 그거. 왜 자. 뭐하러 자. 단, 커피만 마실 수 있다면. 어? 이 바닥 좁은 거 너도 잘 알 거야. 왜 모르겠니. 아는 동생들 곧 너네 친구들한테 다 물어봐. 아는 오빠들 가운데 커피 사주기로 누가 최고냐고. 누가 역대급 1등이냐고. 어? 나는 몰라. 어? 나는 모른다고. 그 찌질한 여심 스틸러가 대체 누군지 난 모른단 말이야. 알 게 뭐야? 몰라. 커피 그까이 꺼 대체 얼마나 한다고. 내 입으로 어떻게 말해! 아 글쎄 오빠 별명이 대체 몇 개인 줄 알기는 아니? 가만 있자. 자, 커피머신. 환상머신. 디머나이저. 더미네이터. 또 뭐였더라? 뭐더라? 내 입으론 말 못해. 안돼. 해선 안되니까.
    흐흠. 너도 알다시피 말이야, 너도 알다시피? 모를 수 있어. 어쨌거나 저쨌거나. 응? 이래뵈도 오빠가 남자들 세계에서 또 덕망이 두터워. 오빠 의리를 알아주니까, 오빠의 남자 후배들이... 그런데 뭔 얘기를 하려고 했더라. 뭔 재미난 얘기가 있었는데 딱 까먹네. 중요한 순간에 말이야. 아무튼, 오빠 연봉 절반이라도 감수할께. 어? 그럼 됐지? 아니다. 그러지 말고 아예 커피 전문점 뭐 카페 하나 열까? 아님 커피 회사를 차릴까. 그러지 말고 일단 집에 커피나무부터 심는 걸로 하세나. 허허.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오더라도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자고 도니제티가 말하지 않았나. 허허허. 난 커피를 너무 좋아해서 탈이라니까. 내가 이처럼 말이 많아진 이유도 다 알고 보면 커피 때문이야. 들뜨거든. 괜히 좋아. 너도 알긴 알 테지만 커피 좋아하는 사람치고 나쁜 사람이 없어요. 정말 꼭 그렇단 말이 아니라, 말이 그렇다는 거지. 허허허. 허나 우리가 누구야. 딱 관상 보면 답 나오거든. 레이디 이브? 법 없어도 살 수야 있는데, 남자 30명이 너한테만 줄 서면 너도 너딴엔 미안하잖니. 허허허.
    근데 넌 아까부터 왜 계속 웃기만 하니? 너 나 좋아하니? 오빠야 좋다만, 난 걱정이다. 내가 널 실망시켜드리면 어떡할까 라는 점 말이야. 허허허. 오빠 좋아하지 마라. 오빠가 다 생각이 있어. 어? 뭐 그러든 어쩌든 나 말 줄이기 실천중인데 오늘 시작부터 말 너무 많이 했는데. 일단 커피 얘기 그만하고.」





    11

    (나 혼자 속으로 재빠른 두뇌 회전)
    잠깐만. 잠깐. 잠깐. 좀 전에 뭐라 그랬지? 그까이 꺼? 까짓껏? 아아, 어언 20년 전쯤이구나. 택시운전수 하기 전 런닝머신 팔 때. 그때 다시 고딩 친구들을 하나둘 만나기 시작하면서부터 인생이 꼬였어. 아주 그냥 꼬여도 제대로 꼬였지. 그 헬스마트 근처 사거리 술집 '묻지 마'. 술집 이름이 하필, 묻지 마. 묻지 마? 묻지 말긴 뭘 묻지 마! 괜히 삼류대학교 졸업도 안 했는데 신용카드 2개 만들어서 허덕이던 때. JCB랑 VISA 그 2개 신용카드로 할부 긁기 시작하면서 허영심 채울 수 있다 값으면 그만이다 그럼 된다면서 막 허덕이기를 1년 가까이. 딱 그때. 그 묻지 마 술집. 비싼 술 먹던 날 딱 친구가 계산하려고 했는데, 그날 내가 미쳤지. 미쳐도 단단이 미쳤어. 어? 그날 하필 술값도 엄청 많이 나왔어. 원래 좀 아저씨들 어쩌고저쩌고 비싼 술값인데. 그렇게 딱 친구가 계산하려고 지갑 열고 어쩌고 있는데, 저~ 멀리서 내가 도움닫기를 하더니, 제대로 날라차기로 녀석을 넘어트려버리고. 어디서 본 건 있어가지고. 아니 그걸 왜 내가 계산하냐고. 한두 푼도 아니었는데. 영화를 너무 많이 본 게 탈이라면 탈이지. 그때만 아니었으면... 좀 덜 꼬였으려나. 그 뒤로 고등학교 후배들 어쩌다 보면 하는 말,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아.
   「형. 저도 날라차기 맞고 싶어요.」
    뭐? 이런 젠장! 무슨 내가 무술감독이야 뭐야? 어?
    '나는 나는'을 인생 뒤늦게 깨우쳤다면. 난 정말 '나도 나도'에 뼈아픈 기억이 있다는 거. (절레절레)
    그런데 어찌된 일인 것일까? 시간은 어떡하다 정지되어버렸던 것이다.
    나 혼자 속으로 재빠른 두뇌 회전 중. 그걸 그 짧은 시간에 어떻게 모두. 시간이 정지되었으니까 다 가능한 일. 이어서 말하자면 이렇다.
    얘도 촉 좋기로 어디서 썩 빠지지 않을 텐데. 지가 당대 최고의 뭐 내놓으라 하는 영심이도 아니고. 지도 다 속이 있고 이상향이라는 게 없지 않을 텐데. 에이~ 나한테 무슨 억한 심정 품어서 말이지. 어? 일부러 빈말에 홀딱 넘어가서 <에라~ 모르겠다. 그냥 미친 척하자. 아니. 차라리 잘됐다!> 막 그러면서 진짜로 1주일에 막 안친하든 친하든 막 이 사람 저 사람 막 막 그냥 막 한 200명 데려오면 어떡하지? 아니 정말로! 그럼 (몸짓)... 수지타산 맞는 게 문제가 아니라 빚더미에 않게 생겼잖아? 에이~ 설마! 지도 다 말귀 알아듣고 귀동냥으로 얻은 풍월이 얼만데. 그동안 습득한 배경지식과 겪은 세상사가 어딘데. 막말로 내가 지금껏 얘 커피 사준 게 대채 몇 잔인데. 그 돈 모았으면... 아니지 아니지. 나도 그러고 싶었고, 얘도 다 날 괜찮은 오빠로 각별히 아껴. 그럼 된 거야. 어? 그까이 꺼 커피 그거 얼마나 한다고. 어?
    아무리 그래도 말이야, 일부러 쨰 지가 막 막캥이나 된다는 듯이 나한테 진짜로 막 미친 척 지 지인부터 친구까지 1주일에 한 200명 데려오면 어떡하지? 그럼 난 파산 직전에 피자집에서 10대들이랑 피자를 나르든, 햄버거집에서 유니폼 입고 콜라 원액을 나르든. 인생 새출발 해야 하잖아? 이 나이에? 이 나이? 이 나이가 뭐 어때서! 어? 진정하고. 어쨌든 난 큰소리 뻥뻥 쳤는데. 그때 가서 꽁지 내릴 수도 없고. 이처럼 신나게 떵떵거렸는데 쪽팔리게 내뺄 수도 없고 말이지. 에이~ 아무리 그런다고 지도 다 사람 속내 간파하고 의중 떠볼 줄 아는 어른인데. 어? 지도 다 사심 떠보고 흑심 꿰뚫어볼 줄 알 텐데. 어디 일부러 내 미친 허세, 허세대회 아차상감 허세, (개)허세에 딸랑딸랑 응원한다면서 또 듣고 싶다고 내게 뽀뽀라도 할 거야 어쩔 거야 지가. 어? 그럼 난 파산인데. 이거 정말 이민이라도 생각해봐야 하나. 낯뜨거워서 증말 참, 했던 말이 있는데 생깔 수도 없고.
    아니 근데 왜 말이 없어? 어? 지가 언제부터 그렇게 조용한 숙녀였다고. 어? 대체 언제부터? 어? 사람 식겁하게 말이지, 지금 나랑 기싸움하자는 거야 뭐야? 그거였어? 그래? 내가 질 줄 알아? 아아 지고 싶다. 참패. 완패. 필패. 석패. 대패. 어? 왜 지가 질려고 말을 안 하냐고 안 하긴, 어? 아 나 거 참 나 이거 원 증말 못 해먹겠네. 봐 봐 벌써 등에 식은땀 쭉나잖아. 허언증, 적당히 진정됐어. 수전증? 거의 나아가. 망상부터 시작해서 헛것이 보이지를 않나, 다 치료됐는데~ 얘가 얘가 사람 또 미치게 만드네. 말해. 어? 말하라고. 왜 말 안 해? 얘 설마...! 
    아닐 꺼야. 아니기를! 얘 진짜로 미친 척 들이대지는 않겠지? 에잇~ 지도 숙년대. 사람 무안하게... 그렇지만 혹시... 만약 잘못되면 이거 나 큰 실수하는 건데. 아니기를. 제발 이거 현실이 아니라 어떤 허접 쓰레기가 쓰는 소설이기를. 부디, 간절히 바란다. 애타게 기도드린단 말이다. 





    12

    뭐 적당히 분위기 전환됐다 치고.  
   「그건 그거고. 너 페넬로페가 누군지 알아?」
   「페넬로페? 그거 무슨 초코릿 선전에 나오는 이름 아닌가? 로페스. 머머스키. 언제 TV로 축구 보는데 덴마크팀이던가 어디던가 3분의 2가 킴이던가 뭐던가. 뭐 스미스처럼 흔한 이름 아니야?」
   「넌 숙녀가 되가지고 페넬로페도 모르면 어떡하니? 페넬로페는 말이야, 오빠가 알려줄께. 어? 이런 일반상식 다 오빠나 되니까 너한테 알려주는 거야. 나중에 멋진 남자 만나면 너가 먼저 걜 떠봐. 오빠 페넬로페 아냐고. 아 나 이거 증말,」
   「오빠. 그만 해라. 어서 말 안 해? 어? 오빠가 그러니까 여자가 없는 거야.」
   「또 또 또. 알았어. 말할게. 하면 될 거 아냐. 흐흠. 페넬로페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 등장하는 아타카의 왕 오디세우스의 아내 이름이야. 오디세우스가 오래 집을 떠나 있는 동안 정절을 지키고 끊임없이 몰려드는 구혼자들을 재치 있게 따돌렸던 여인. 그래서 광고든 어디든 가끔 페넬로페 페넬로페 하는 거지. 그런데 요즘 애들은 말이야, 어? 나 때는 말이야, 어?」
   「그래. 기왕 이렇게 된 거 오빠가 꼰대대회 나간 셈 치고 일단 들어나 보자. 어?」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라.」
   「즉각 말해 기회 줄 때. 어?」
   「알았어. 하긴 꼭 요즘도 아니지. 시간과 관계 없는 거니까. 유행도 아니고 세태도 아니고. 단지 사람에 따라 연애관 다르고, 드라마 취향 다르고, 운명이 얄미운 것일 수도. 곧 무슨 말이냐면 말이야 진도, 어? 진도! 왜 가수들 배우들 방송 관계자들 기타 등등. 그분들 인물관계도. 즉 자동차 기업들처럼 페라리가 테슬라 주식 1.3%. 어디 얼마 어디 얼마 어디 얼마. 또 폭스바겐도 어디 얼마 어디 얼마... 아주 그냥 거미줄이거든. 그와 똑같이 1번째 남자는 누구, 2번째는 뻔트, 3번은 드디어 멀쩡한 놈, 4번은 풋사랑, 5번은 단지 진한 사랑, 6번은 간만 봤던 그놈, 7번은 공개연애...... 그러니까 그 줄거리 다 아니까. UFC처럼 전적남 전적녀 매번 마주치고, 일 때문에 친하고 어쩌고. 그럴 자신이 있으면 그년, 아니 그분과의 연애 진행하는 거고. 나중 감당할 자신 없으면 일반인 만나는 거고. 그런데 시작부터 양다리? 세다리? 문어다리? 뿐만 아니라 반대로 시작하는 거. 그거 원래 남자와 여자, 즉 시트콤 멤버들 친구들 지인들과 남녀가 공통으로 아는 숫자가 0일 때 진행하는 게 플레이보이의 불문율이다 그 말이지. 서로 인맥 교집합 완전히 0일 때 말이야. 몰래 만나는 게 딴 게 아니거든. 몰래한 사랑이 크게 2가지인데, 단둘이 몰래한 사랑인데 단둘만 아는 사이냐, 아니면 넘어가고.
    그런데 여자 세계 불문율도 있는데, 그런 규칙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사례. 얼굴 팔리는 게 딴 게 아니거든. 괜히 그분들이 손 잡기 건너 뛰는 게 아닌데. 진한 사랑 먼저하고, 순서가 바껴서 썸타고 사귀고 장기 연애까지 가고. 그야 뭐 백년해로 한다면야 좋은데, 그게 어디 쉬울런지. 그야 그분들 인생이고. 우린 우리 식이란 게 있고.」
   「아 나 이거 정말, 이 오빠 또 시작했다.」
   「」
   「오빠 나한테 모스맨 이야기 해준다고 하지 않았어?」
   「뭐? 너 들었어?」
   「들었냐고?」
   「어. 들었니?」
   「오빤 들었냐?」
   「목이 매인다. 어? 울컥 한다고.」
   「좌우지간 오빠 나 알지? 나 조신한 여자야. 나 그런 여자 아니라고. 어? 나 같은 일편단심 순애보 스타일 만나는 게 어디 쉬운 줄 알아? 그런데 들었어?」
   「그래 들었다. 됐니? 넌 들었어?」
   「그래 들었어. 됐냐? 그런데 뭘 들었냐는 얘긴데?」
   「몰라. 그걸 어떻게 알아. 누가? 내가? 아님 네가? 요즘 유행이 그래. 들었어? 그냥 인사말이 그거야. 상점 이름도 그거고. 하다 하다 상표까지 나왔어. 사람 이름이라고 왜 없겠니.」
   「그런데 내가 오빠를 오늘 왜 만난 거지? 겨우 이런 얘기 들으려고? 고작? 어디서 감히 수작이야? 어? 어디서 감히 개수작! 어?」
   「그러지 마. 진정해. 참으라고. 어? 너 눈에서 레이저 나오겠다.」
   「오빠. 말 나온 김에 하던 얘기나 계속 하자. 하다 말면 재미없잖아? 안 그래? 오빠. 들었어? 어? 들었어?」
   「들었어? 들었어?」
   「따라하지 말고. 들었어? 들었어?」
   「」
   「오빠. 이제 따라하다 지친 거야? 그럼 딴 거. 오빠. 오빠도 그래? 응? 오빠도 그래?」
   「이런~ 젠장!」
   「오빠.」
   「」
   「오빠. 아 오빠. 그냥 가면 어떡해? 응? 오빠?」
   「」
   「오빠. 다음에 만나. 전화해. 아니 내가 전화할께. 오빠. 나 남자 언제 소개시켜줄 거야? 응?」 
   「」
   「오빠. 진짜 가? 야. 멸치. 돼지. 개. 소. 말. 생쥐. 두더쥐. 오빠. 다음에 같이 영화 보자 오빠. 밥도 먹게. 차도 마실까? 오빠. 오빠!」





    13

    거울은 금테를 둘러도 역시 거울. 금... (절레절레)! 장미에 가시가 있으면 어떠랴. 오히려 없으면 삼류요 모르면 바보. 그런데 탐스럽지만 맛없는 열매? 설익은 열매 아무리 문질러도 익은 열매 안된다. 정답은 기다림. 아니 어~ 아 글쎄 그러니까 언제까지 기다리냐고요! 아 증말 거 참 나 미치겠구만 그래.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라 인생이 재미없다는 거. 아니 어쩌다 이렇게 심심한 삶 무료한 일상에 난 물팍 꿇고 좌절하는 거지? 왜? 어째서? 아니 뭐 때문에? 자, 가만 있자. 보자. 
    CPU: 3500X
    메인보드: ASROCK AB350M PRO4
    그래픽카드: RX580
    램: ESSENCORE KLEVV DDR4 8G PC4-21300 CL19
    파워: ANTEC NE650C 80PLUS
    SSD: WD250
    인문교양학적으로 인지심리학이든 뭐든 많은 게 과학적으로 밝혀졌다. CPU? 업그레이드 가능은 한데 천성은 안 바뀜. 다시 말해 가능만 하다뿐 어렵다 그거지. 메인보드? 괜히 가족마, 부부마, 친구마, 재능마, 취미마, 적성마...에 따라 성공 가능성이 확연히 나뉘는 게 아님. 부모 잘만난 유전자발이 최고 중의 최고인데. 아니 그러니까 무엇이 문제냐고? 뭐긴 뭐겠냐 컴퓨터 케이스지! (절레절레) 사는 낙이 어디 나만 이렇겠나. 그럼 설마 벌써 갱년기가 서둘러 찾아온 건가? 아닐 거야. 그럴 리 없어. 에잇 설마. 그럼 어떻게 아쉬운 대로 잔꾀를 부리자면 뭐냐 그 그게 그러니까, 내 CPU가 AMD 거라서 문젠가? 이를 테면 인텔 최고급 사양, 즉 천동설 사고체계로 이번 참에 확 그냥 바꿔 말어? 어? 그래픽 카드 곧 있는 돈 없는 돈 싹 다 끌어모아서 번쩍번쩍 명품으로 휘감아? 최소한 말끔한 수트발만? 귀찮아. 품위 유지비조차 허덕이는데 수트발은 무슨.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말이야, 어? 초청객이 백이라도 자리가 있으나 불청객은 하나라도 자리가 없다는데. 갈 데는 많은데 오란 데가 없고. 이건 뭐냐고! 진짜로 시트콤 멤버들 다 해체되고 아는 동생들 다 떨어져나가고. 낙동강 오리알 신세. 이건 아니다. 이건 아니라고. 어? 
    따라서 나는 결단을 내렸다. 칼럼니스트로서의 밥값과 문인의 평타가 문제가 아니라 모스맨 연구자 제라드를 엿본 환시 때문에 나는 도무지 일을 할 수 없었으니까. 그래서 난 오늘은 릴리와 만나기로 했다. 물론 아는 동생들이 거의 다 지들이 날 먼저 찾았지 내가 먼저 연락한 일은, 있나? 없는지 몰라도 일단 넘어가자.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릴리. 너 왜 호박이 제 발로 굴러가는 줄 아니?」
   「어쩜 오빠의 구변이 꽤 흥미로울 것 같은 주제인데. 아마도 내 기대가 실망 아니기를 바래.」
   「'몰라 왠데?'라고 받으면 되지. 넌 꼭 드라마 주인공처럼 말하니? 너 그거 어디서 배웠니? 넌 영화를 너무 많이 봤어 얘. 응? 그래서 늬가 남자가 없는 거야. 어쨌든, 안 들었어?」
   「안 들었냐고?」
   「응. 왜 호박이 제 발로 굴러가는지를.」
   「오빠. 나 읽는 부류야. 듣는 영심이 스타일 아니라고. 어? 나 안 들었어. 그럼 오빤 들었어? 아, 읽었을 수도 있구나. 아님 생각해냈든지. 응?」
   「그러니까 안 들었단 말이지?」
   「」
   「알았어 알았어. 말할게. 말 하면 될 거 아니야. 왜 그 고운 눈에 불을 켜고 그래? 너도 눈에서 레이저 나오니? 너도? 너도 그래?」
   「오빠도 그래? 오빠도? 들었어? 뭐 들었어? 아 증말 안 들었다니까 그러네.」
   「알았어 알았어. 안 그래도 말 하려고 했네 했어. 응? 넌 왜 사람을 자꾸 보채고 그래. 응? 숙녀가 진득하니 기다릴 줄도 알아야지. 응? 그러니까, 말할게. 그래. 말하자.」
   「뭐 해 말하지 않고? 오빠.」 그러면서 그녀는 냉수가 담긴 컵을 들어 나에게 쏟으려는 시늉을 보인다.
   「어헛! 진정해 숙녀. 차분하시오 낭자. 왜 그러시오 사람 무안하게. 응? 혹시 그대도... 동자승 민머리에 덥썩 맨손바닥을 가져다 댔던 기억이 있소? 그럼 맨손이지 무슨 장갑 끼고 가져다댈 일 있나. 어쨌든, 그러오? 혹시 당신께서도 첫경험과 첫키스와 첫사랑이... 일치하지 않는...」
    결국 릴리는 물컵의 물을 나에게 끼얹었다. 물론 물이 가득 담겨 있지 않았기에 난 몹시 서운할 뿐이었고. 그 역시나 웃음을 꾹 참는 연기력 둘 다 출중하니까 가능한 일일 테고. 
    ......
    ......
    ......
    한 호흡에 쭉 화염방사기 그 정열적인 화염을 내뿜는 긴 대사. 
    말 그대로 한꺼번에 가니까 그건 칼럼으로 따로 떼어냈음. 
    바로 그렇게 <칼럼: 호박론>을 쉬지도 않고 무정차로 끝까지 갔음. 
    ......
    ......
    ......
    나는 대화로 <칼럼: 호박론>을 무멈춤으로 연설했다. 그러다 목 시었다. 정력 바닥났다. 기 몽땅 짜냈다. 
    그랬더니? 요컨대, 릴리는 내 옆자리로 와서 내게 뽀뽀를 해주었다. 
    물론 볼뽀뽀! 살짝 고개를 돌릴 걸 그랬나? 
    그 아찔한 찰나. 시간은 정지되었다. 
    아직까지 붕붕 떠다니는 내 기분으로 판단하건대,
    지금도 느려졌던 시간은 제 본분을 게을리하는 게 분명하고. 
    좌우지간 내 허언증? 치유됐다. 내 환시? 치료됐다. 
    그 다음 절정감? 아직이다. 아직이라고. 이런 젠장.





    14

    나는 사무실에서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음악을 들었다. 
    J. S. Bach / 칸타타 BWV 51
    그러면서 생각했다. 만에 하나 모스맨 연구자 제라드의 집에서 내가 본 환시가 진짜라면 그땐 어떡하지 라는 점을. 
    그래? 정말로 어떡한담. 어떡하긴 뭘 어떡해. 제라드한테 따져야지. 설마 녀석이 날 쏙 빼놓고 뭐 레너드를 후계자로 점찍을 리야 있겠어? 
    그렇지만 말이야 이건 아무리 생각해봐도 녀석을 만나야 결단을 내던 끝장을 보던 마무리가 될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는 곧장 모스맨 연구자 제라드를 찾아가려고 했다. 
    바로 그처럼 공상에서 결심 후 행동에 곧장 옮기려던 찰나 사무엘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친구 뭐 해? 들었어?」
   「들었냐니? 넌 인사말이 왜 하필 '들었어?'로 시작하니?」
   「못 들었구나.」
   「뭘 못 들어?」
   「나와라. 너네 사무실 앞 카페야. 나오면 아마 깜짝 놀랄 걸?」
    10분 후. 
    카페에 가니 사무엘과 모스맨 연구자 제라드가 그 자리에 있었다. 
   「아니 너는...!」
   「친구. 오랫만이야. 어떻게 지냈나? 진짜로 궁금해서 물어보는 말 아니란 거 알지? 자넨 어떤 빈말을 준비했나. 벗이여, 어서 말씀해보시게.」
   「이렇게 깜짝 놀랐는데 내가 무슨 생각이 있겠어.」
   「사무엘과 또 다른 몇몇 친구들한테 얘기 들었어. 네가 요즘 상태가 많이 안 좋다는 얘기 말이야.」
   「누가 그래? 나 상태 좋아. 아 누구야 그 녀석?」
   「진정해. 그렇게 흥분하면 안 좋던 상태 더 안 좋아지면 어떡하려고 그러나 친구. 안 그래?」
   「나 상태 좋다니까 그러네. 어?」
   「그나저나 들었나?」
   「뭘 들어?」
   「아 네가 아니구나. 착각했네. 사무엘. 이제 너가 대화해. 나 힘빠졌어.」
   「넌 애가 정력이 그모냥이라서 어따 쓰니? 그래서 모스맨 연구자라고 자부할 수 있겠어?」
   「나 때려쳤어.」
   「뭐?」
    그 자리에서 내가 봤던 환시 얘기를 했는데, 제라드는 통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일관했다. 
    하긴 내가 들어도 그게 말이 되나. 아무리 진짜라고 할지라도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난 진짜지만 남들이 듣기에) 공상을 얘기하면 그걸 누가 믿겠냔 말이다. 
   「자네 실망할지 모르지만 내가 이 연구에 그렇게 썩 오래 매달린 거도 아니고, 나도 이제 지쳤어. 연구하는 데까지 하긴 했는데 성과도 그저 그렇고. 진행도 더디고. 그런데 있잖나. 자네 혹시... 혹시...」
   「혹시 뭐?」
   「그게 그러니까 말이지. 음 사냥꾼은 사냥하는 꿈 꾼다지 않나...」
   「왜 말을 하다 말어, 사람 궁금해지게? 어? 뭔 말을 하고 싶은 건데? 속 시원하게 좀 말해 봐. 어? 나 안 들었으니까 지금 당장 말하라고. 어?」
   「자네 있잖나. 음. 있지? 음. 있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어. 뭐 그럴 수 있어. 그런데 있잖나, 자네 누구한테 혹시 쫓기나?」
   「쫓기냐고? 내가 왜 쫓겨! 누가 날 쫓는데? 걔 뭐하는 놈인데?」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아 그러니까 쫓겨, 안 쫓겨?」
   「날 쫓는 쪽이 뭐 쫓는다고 동네방네 소문내면서 쫓을 일 있겠나? 날 쫓는 자가 만약 있다면! 그럼 우리가 널 쫓을께 당신은 도망가소. 임자. 아시겠소? 그처럼 뭐 걔랑 나랑 사랑싸움 할 일 있니? 그래?」
   「아니. 쫓는다 안 쫓는다. 기다 아니다. 예 아니요. 딱 한마디면 되는데 너 참 말 길다. 너 혹시 아침에 코도 길어지니?」
   「아침에 내 코가... 내 코가 왜 길어져야 하는데. 내가 무슨 피노키오니?」
   「설마, 지금 코끼리 팬티 입었어?」
   「그건 또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야?」
   「허허허. 농담이고. 자네가 너무 긴장한 듯 해서 말이야.」
   「뭐야? 좀 전에 하던 말은? 뭐 물어볼려다 말았잖아?」
   「내가?」
   「아 나 증말 이거 진짜 뭐하는 거야? 이거 왜 이래? 어? 너네 진짜 이러기야? 어?」
   「워 워 워. 저번에 너네 셋이서 우리집에 왔다는 거 들었어.」
   「그래? 들었어? 그래서?」
   「그래서긴 뭐가 그래서야. 그냥 들었다 그거지.」
   「뭐야. 그게 다야?」
   「설마 겨우 그 얘기만 하려고 여기까지 온 걸 아니실 테고. 이제 그만 숨긴 패 드러내자. 어? 베팅 하지 않아도 되니까, 그만 패 까자. 어?」
   「콜. 내가 듣고 싶었던 게 그거야. 바로, 그거.」
    지금까지 제라드와 내가 주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마침 사무엘이 끼어든다.





    15

    사무엘은 말했다.
   「우리가 널 모르니? 너 또 그랬지?」
   「내가 뭘?」
   「뻔하지. 
    첫째, 너 혼자 모스맨 연구자 제라드를 독대하러 간다. 
    둘째, 제라드네 동네 인근에서 길을 잃는다. 어쩌다 갑자기 이명이 들리고, 두통이 일더니, 핑~하다 쓰러진다. 
    셋째, 깨어나보니 제라드의 집이다. 그런데 집주인 제라드는 없고 웬 미모의 여인이 섹시한 실크 원피스 차림으로 널 지켜보고 있다. 
    넷째, 그렇게 그녀와 둘이서 기다리는데 제라드는 포인트 프레전트 떠났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다섯째, 그녀와 둘이서 포인트 프레전트까지 갔어. 그런데 제라드는 중간에 마음이 바껴서 2007년 캐나다 몬트리올주의 주택화재 당시 목격됐다던 현장으로 갔다. 
    여섯째, 그녀와 둘이서 캐나다 몬트리올까지 갔어. 그런데 제라드는 중간에 마음이 또 바껴서 1978년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사고 현장 근처로 갔다.
    일곱째, 그녀와 넌 짜증나서 제라드 접선을 포기한다. 그래서 제라드 집으로 돌아온다. 그녀는 네게 고백한다. 물론 가면을 벗으면서. 알고 봤더니 그녀는 제라드였다. 
    여덟째, 그걸 보는 순간 넌 정신을 잃고 쓰러진다. 나중 깨어났는데 너네 동네 근처인 거지.
    아홉째, 넌 또 시트콤 찍는 일상으로 돌아와서 아는 동생들과 즐겁게 지내다가. 딱 누군가가 네 간을 만지는 관통 마술을 너에게 선보이자. 너는 예전에 말했던 그 환시 현상이 사라짐을 경험한다. 그러다 물론 어떤 계기로 병이 도진다. 허언증까지? 
    아홉째 반, 뭐 아홉째 반? 그만 하자. 그게 좋겠다. 
    너 또 소설 쓰려고 했지? 아니. 아예 진짜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제라드집에 혼자 가려고 했지? 우리가 널 모르니!」
   「너 나에 대해 많이 연구했구나. 이왕 하려면 아리따운 숙녀를 연구할 것이지, 왜 하필 나를? 그야 물론 심심해져일 수도 있고, 굳이 꼭 연구가 필요할 가치가 없이 대충 뭐 늬 말발이면 뭐가 문제겠니.」
   「아네. 알면 다행이고.」
   「그럼 내가 모를 줄 알았냐? 나도 눈치 있어. 내가 뭐 남자의 육감 그런 거 없을 줄 아니? 어? 나도 직감 엄청나게 발달했어 인마. 이거 왜 이래? 잠깐. 이거 왜 이래? 그거 어디서 많이 듣던 얘긴데.」
   「시끄럽고. 있잖아. 제라드가 그 일 그만 둔데. 모스맨 연구 말이야. 그래도 성과도 톡톡했어. 캐낸 결과가 아예 없진 않았다고. 또 있잖아 레너드가 지금 어디 갔는 줄 아니?」
   「어디 갔는데?」
   「두 가지 일을 하려고. 오늘은 소설'나방인간의 예언'의 작가인 존 A. 킬을 만나러. 그리고 내일은 그 뭐야. 2002년 작 마크 펠링톤 감독으로 영화 모스맨, 거기 주연으로 출연한 리처드 기어를 만날 거래.」
   「아 그 영화? 봤긴 봤나? 그 영화 주연 혹시 해리슨 포드 아니었니?」
   「아니야. 리차드 기어야. 늬가 영화를 너무 많이 봤구나. 착각일 수 있어. 이해해.」
   「그런가?」
   「응. 좌우지간 나 혼자였으면 그랬겠지. 뭐라고? 뻥이야! 라고 말이야. 그렇지만 너 보다시피 오늘 난 혼자가 아니잖니. 여기 이렇게 모스맨 연구의 권위자이신 제라드가 떡하니 버티고 계신데. 내가 설마 거짓말이라도 하겠니? 너가 속아넘어가서 내가 얻을 게 뭔데. 안 그래 친구?」
    아 자식들이... 이걸 믿어야 돼 말아야 돼! 순간 잔꾀는 바닥났으나 잔머리 엄청 굴리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튼 중요한 소식 알렸으니 우린 갈께.」
   「벌써 가?」
   「그럼. 남자들끼리 뭐하게? 으쌰으쌰 노는 거? 이젠 그만 철들 때도 됐잖아 친구.」
   「만나서 반가웠어 딕. 갈께. 아 맞다. 이거.」
    그러면서 제라드는 웬 USB를 내게 건넸다.
   「어차피 난 그거 필요없어.」
    난 그때부터 비상한 호기심이 날 들었다 놨다 했기 때문에, 내 청력은 더 이상 작동할 수 없었다. 따라서 난 걔네들이 몇 마디 인사말을 건네며 가는데 이상한 오르간 소리밖에 들을 수 없었다. 





    16

    나는 사무실로 돌아왔다. 
    일단 맨정신으로는 어려울 거 같으니. 저번에 사놓은 초록색 술을 따라놓고. 그건 싸구려라서 보기만 하고. 
꽤 괜찮은 포도주를 따라셔 홀짝거리기 시작했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 오페라 <후궁탈출> 2막 - “아가씨의 마음을 얻으려면 상냥하고 친절해야지”
    USB! Universal Serial Bus. UFO도 아니고 ABS도 아니고 USB. 
    도대체 이 안에 뭐가 들어있길래...!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단 말이야. 
    혹시 제라드가 그동안 만났던 여자들의 신상정보? 꼬신 방법? 에잇~ 아닐 꺼야. 그럴 리가 있나. 
    아니면 뭐 사무엘이 쓴 일기? 그러니까 굶주린 하이에나 풀 뜯어먹는 소리? 밑도 끝도 없이 사무엘이 일기를 왜 써. 나라면 또 모를까.
    그렇게 난 뜬금없이 손에 쥐게 된 USB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왜 아니겠나. 
    (초식동물처럼) 풀을 먹는다면 늑대를 왜 안 기를 텐가. 늑대가 야성이 장난 아니니까 인간은 개와 친구가 된 거지. 
이 USB는 그처럼 뭐가 튀어나올 줄 모르거든. 
    거짓말 조금 보태자면 그게 말이다, 난 그냥. 아아. 황홀감에 후끈 달아올라 여지없이 환상에 흠뻑 젖어버릴 신비한 경험. 꿈도 못 꾸고 있는 처지...까지는 아니고. 
    뻥이다. 그래. 뻥. 그냥 눈 딱 감고 보자. 그래. 그게 좋겠다. 
    그렇게 나는 USB를 열었다. 
    캬~!
    와우~!
    뜨아~ 와!
    그 안에는 무슨 야한 사진과 야한 동영상이 가득 들어있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거기엔 웬 엑셀 파일이 있었다. 작성자 누구__작성 날짜__업데이트 날짜___기타 등등. 파일 정보는 그랬다. 아마도 제라드 말이 맞는 거 같았다. 
    그렇게 엑셀 파일을 열어봤더니... 와...!
    1966년 11월 12일 웨스트버지니아 주 렌데닌의 묘지에서 모스맨을 목격한 사람들이 전부 기록되어 있었다. 
    A 이름 
    B 생년월일 
    C 태어난 시각? 빈칸도 꽤 있는 걸 모른 사람이 많거나 잊었거나일 테고. 또 혹시 고인이 되었으면, 
    D 사망일 (물론 대부분 빈칸)
    E 주소
    F 직업
    G............... 그처럼 군인 출신은 입대일과 제대일. 행정기관에 기록된 호적사항. 여권내용. 기타 정보기관에서 조사할 수 있는 전부. 사설 탐정이 캐낼 수 있는 모든 것. 
    1978년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참사 직전, 1951년 시카고대지진, 1933년 중국 댐붕괴, 1978년 독일 탄광사고, 2007년 캐나다 몬트리올주의 주택화재까지도 목격자 모두. 
    체르노빌 사고만 해도 날짜 1986년 4월 26일, 시간 오전 1시 24분 (UTC+3)...
    그렇게 엑셀 파일의 가로는 ABCDEFG...... 세로는 12345678910......!
    물론 앞서 제라드의 말처럼 아무래도 많이 힘들었을 테니 중간에 포기했으므로 빈칸이 많았다. 
    특히, 2003년에도 어딘가, 2013년에 칠레. 1945년 8월 6일과 9일. 2001년 9월 11일 오전 8:46분... 현대사 큰 사건들 사이의 숫자 관계도 다른 엑셀 파일에 세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암호학의 기초, 중급, 고급, 최고급 외에 일반인이 쉽게 살필 수 있는 것. 바로, 
    ABCDEFGHIJKLMN......
    12345678910......
    EF =56년을 뜻하고 어쩌고저쩌고 별의별 내용들이 다 들어있었다. 
    제라드가 무슨 천문학적 부자도 아니고. 지도 먹고살아야 하니까 아무래도 포기할 수밖에 없는 규모인 것만 같았다. 
    그렇다고 이게 무슨 다음 타자 다음 타자... 막 전달하는 게임도 놀이도 아니고. 왜 이 물건을 내게... 이상했다. 
    그리고 내가 제라드랑 그다지 많이 친하진 않았는데, 이렇게 다시 만난 점도 그렇고. 
    저번에 사무엘이랑 레너드가 갑자기 제라드 얘기를 꺼내길래 약간 이상하긴 했는데. 
    뜬금없이 막 분위기 조성을 하질 않나, 안 하던 뻠쁘질을 하질 않나. 걔네들도 이상하고. 
    그렇다고 내가 이 일을 이어받아서? 아니다. 이건 내 일이 아니다. 
    느낌 세했으니까. 왠지 모르게 음침하고. 어딘가 켕기고 찔리고 뒷맛이 개운치 않고. 
    공포. 독기. 광기. 똘끼. 살기. 불운. 조짐. 불길. 그 배후에 있는 풍운아의 정체가 대체 무엇인지.
    혹시, 광마? 나방? 나방인간? 나방인간의 예언? 계시? 암시? 묵시? 
    지들이 무슨 노스트라다무스의 방계 후손이야? 
    나방인간? 사랑은 나비인데... 가만 있자. 자, 사랑이 나방? 이건 느낌 쎄하다 그거지.
    그래서 나는 깔끔하게 구석지에 USB를 방치했다. 그냥 잊었던 것이다. 
    간단하네. 깔끔하군. 좋다고. 됐어. 이 쉬운 걸 왜 몰랐을까. 허허. 





    17

    희망찬 내일로 전진. 닥치고 일하기? 우리가 무슨 탱크도 아니고 말이야. 꼬마들도 이젠 세발자전거 보면 짜증낼지도 모르는데. 비효율적으로 아무 데나 갔다 돌아올 생각을 하면... (절레절레)! 그렇게 까먹은 돈은 얼마고 정력은 또 어떻고. 그러니까 열정적인 행진이 뭐가 나쁘겠냐마는, 아니 그러니까 그 사춘기 시절에 뭐하러 탱크 게임 서적을 훔쳤냔 말이지. 여심을 훔쳐도 모자른 마당에 말이야.
    여심? 여자의 마음 뻔해. 자, 한번 그녀들의 마음을 알아볼까? 9시 방향, 꺼져. 10시 방향 아가씨가 뭘 생각하는지 훤히 보인다 보여. 짧네. 닥쳐! 11시? 나가! 12시는 자, 보자. 또 반했네. 또 반했어. 아조 그냥 툭하면 홀려. 다음으로. 12시 반, 개자식. 12시 40분, 어딜 넘보녜. 1시? 목소리 달콤한 남자들만 환영한다 그거지. 2시, 거울 보고 알아서 주제 파악 좀 해주면 안되냐 그 생각 중이라고. 3시, 똥파리만 꼬인다고 짜증내시며 친구랑 통화하시는구만. 4시 비켜 5시 저리 가 6시 이라 와!
    여자랑 대화하면 재밌기야 재밌지만, 남자의 인생에서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는 일이란 바로 그거. 다 줄 거 주고 받을 거 받기 위한 연기일 뿐. 아니 그런가? 초반에야 다 서로서로 맞춰주고 동의하며 호들깝 떨기 바쁘지. 시간 쫌만 지나봐, 어? 사랑과 행복과 쾌감과 이상까지. 하늘, 바람, 별과 멜로드라마. 다 뻥. 몽땅 뻥. 허세 대 허영심의 대결일 뿐. 지 할 말만 하고 전화 뚝 끊는다는 둥, 지가 세상 최고인지 안다는 둥. 지 밖에 모른다거나 남 생각 요만큼도 안 한다거나. 우리는, 사랑에, 취미 없다. 그럼 뭐에 관심이 있을까? OK~ 새로움! 그런데 무엇에 관한? 라며 투덜거리고 있을 때. 
    레너드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친구 뭐 해? 너 혹시 끊었던 커피 마시고 있니?」
   「어떻게 알았어?」
   「진짜야?」
   「응.」
   「너 일하기 싫지?」
   「넌 뭐 학교 다닐 때 공부 재밌었냐?」
   「그건 그렇고. 얘기 들었지?」
   「또, 들었어요? 너도 '들었어요'남이구나. 난 전염시키지 마라 제발.」
   「아 농담하지 말고. 지금 어렵게 섭외하신 분이 옆에 계서서 그래. 들었어?」
   「무엇을? 누구한테? 너 또 뻥치는 거 아니야?」
   「모르는 척하지 말고. 들었지? 사무엘이 저번에 너 만났다던데. 제라드랑 같이.」
   「뻥 아닌가 보네. 그럼 다행이고.」
   「들은 게 맞네. 사무엘이 말했다 했으니까 걔 말마따나 들었네.」
   「들었냐는 물음 빼고 말하면 안 되니? 제발 좀!」
   「들었냐가 뭐 어때서! 귀가 있는데 어떻게 안 듣니. 어? 보는 눈이 있는데 어떻게 망사 스타킹에 반하지, 뭐 망사? 망사가 여기서 왜 나와. 내 말은 그게 아니라.」
   「봤니?」
   「뭘 봐? 스타킹? 내가 스타킹을 왜 봐야 하는 걸까? 안 보면 안 될까? 뭐야. 말 꼬이게 바람 넣지 말고. 됐고. 너네 사무실 앞이야. 안 그래도 너 퇴근할 시간 됐자나. 나오게 친구. 보면 아마 깜짝 놀랄 사람이 있을 테니까.」
   「깜짝 놀랄 사람?」
   「어. 깜짝 놀랄 사람. 너 깜짝 놀라서 바지에 오줌 싸지나 마라.」
   「여자야?」
   「(멈짓) 어...어.」
   「말 더듬는 거 보니까 남자구나.」
   「그래도 완전 깜짝맨이라니까. 혹시, 사무엘이 살짝 귀뜸해주지 않든?」
   「무슨 브래드 피트라도 데려왔니? 데려오려면 주가 최상가치는 세끈 매끈 후끈, 어? 내가 흠뻑 젖을 수 있는, 어? 내가~ 어? 내가~ 어? 됐다.」





    18

    약 16분 후 카페에서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왜냐하면 레너드가 데려온 인물은 다름 아니라 리차드 기어였기 때문이다. 
   「인사해 서로. 이쪽은 제 친구 딕, 이쪽은 아시다시피 리차드 기어.」
   「안녕하세요. 전 리차드 기어라고 합니다. 만나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뻥치지 마요. 댁이 리차드 기어면 나는, 나는, 어? 나는, 캘빈 클라인이요.」
   「네? 지금 입고 계신 팬티가 캘빈 클라인이라구요? 유머가 남다르신 분이군요. 저 그처럼 약간 경박한 듯 하지만 한 3시간 후에 터지는 유머 좋아합니다. 연마되고 발동걸리면 그게 바로 고급스러운 농담이니까요. 허허허.」
   「야 너 왜 그래? 내가 어렵게 만든 자리야. 이 녀석이, 너 왜 그래? 너 상태가 많이 안 좋아 보여. 너 어디 아프니? 열 있어?」
   「넌 더 안 좋아 보여. 알아? 야 레너드. 내가 너 뒷조사한 거 알아 몰라?」
   「너 내 뒷조사 했니?」
   「아니. 뻥이야.」
   「하여튼 증말...」
   「야.」
   「뭐?」
   「내가 늬 속 모를 줄 아니? 미스터 리차드? 아, 미스터 기어. 기어? 초면에 실례입니다만, 거 대역을 부를 거면 적어도 B++급을 불러야지. 어? 야 레너드. 늬가 무슨 C++ 코딩 연습하는 프로그래머냐?」
   「나 대학 때 컴퓨터 프로그래밍 전공한 거 늬가 어떻게 알아?」
   「말 돌리지 말고. 너 또 그럴려고 그러지? 
    저번 USB는 복사본 일부였다. 
    그래서 연구를 하려면 자금이 더 필요하다. 
    너한테만 긴밀히 알려주는 건데 다른데 절대 발설하면 안된다.
    그건 무엇이냐, 바로 모스맨 연구를 완성해서 펀딩 조성하고 드라마 연작 들어간다.
    이미 드라마 연작 시나리오 거의 완성됐고 캐스팅 단계 들어갔다. 
    따라서 펀딩 조성 중.
    잔말말고 딱 3장만 투자해라?」
   「너 그동안 어려웠니? 너 원래 안 그랬잖아. 이 친구 때타기 전에 내가 챙겼어야 하는데. 너 능글맞은 거 알아 몰라?」
   「설마, 내 말이 진짜니?」
   「진짜겠냐. 약간은 비슷할 수도 있는데. 그냥 오랫만에 만나서 회포나 풀자 그거지.」
   「남자끼리? 여자는?」
   「너 아직도 여자 좋아하냐?」
   「그럼 넌 뭐 남자 좋아하냐?」
   「친구분들 심각한 대화 중에 끼어들어 송구스럽습니다만 전 이만 일어나야겠군요. 근처 극장식 카바레부터 바 개업식까지 갈 데가 많습니다. 이런 말씀 드려도 될런지 모르겠습니다만 이래뵈도 저 A급입니다. 허허허. 그럼 이만.」
    그렇게 리차드 기어인지 기아인지 그 아저씨는 도망갔다.
   「넌 저분 대체 왜 불렀어?」
   「내가 불렀냐?」
   「늬가 안 불렀으면?」
   「지가 그냥 따라온 거야.」
   「그래? 저 사람 자리에 없다고 책임 떠넘긴 거 아니고?」
   「아니라니까.」
   「」
   「야. 나도 갈께. 널 만나도 통 즐겁지가 않다. 내가 널 왜 만났는지 모르겠다. 늬 꺼벙한 표정을 보니 내 인생이 더 허접해진 기분이라고. 알아? 안 그래도 원래 재미없었는데 널 보니까 더 재미없어졌어. 알아? 어? 늬가 그러니까 안되는 거야. 어? 늬가 그러니까 안된다고.」
   「내가 아니라, 늬가~ 그러니까 안되는 거야. 어? 그러니까 늬가 여자가 없는 거라고.」
   「친구. 나 여자친구 생겼어. 지금 여자친구 만나러 갈 꺼야. 따라서 이제 더 이상 너한테 '늬가 그러니까 여자가 없는 거야'라는 말 듣지 않게 됐다는 점. 굳이~ 축하받고 싶지는 않다. 허허. 아주 그냥 징글징글했다. 어? 지겹지도 않은지 나도 모르게 똑같이 따라하고. (절레절레). 야. 나 갈께. 다음에 보자. 아니. 한동안 나 볼 생각 접어라. 나 보기 힘들꺼야. 왜냐, 연애하느라 바쁘거든. 푸하하하하하하하.」
   「저 자식이...!」





    19

    늑대는 양의 꽁무늬를 쫓는다, 는 인류 역사상 사랑의 가장 오랜 공식이자 공리. 그러나 남녀 공히 상대의 본심과 환상을 알고 나면 여지없이 꿈은 깨지기 마련. 그래서 간질간질 빈말과 딸랑딸랑 칭찬, 새콤달콤 아양 아부 교태 내숭은 부득불 불가피한 것. 그렇긴 하나 나이 들면 새벽에 눈이 번쩍 뜨이고 늙으면 만사가 귀찮아지는 게 순서. 때문에 못 해본 일과 달콤한 연애에 대한 탐구를 내일로 미룬다는 것은 기가 막힐 노릇. 시간이 없다. 인생은 딱 1번. 2번은 없다. 사랑도 없다. 뭐?
    좌우지간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른다. 봄은 때 되면 돌아온다. 짝사랑복도 끝이 없다. 그렇긴 하다만 즐거운 미래에 대한 예감 좋은 전망은 내내 불투명하고. 또 그렇다고 생각 없이 한량처럼 마냥 새콤달콤한 쾌락마를 탐닉할 수도 없고. 그의 인생에서 지루함은 맹공을 펼치고 따분함은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아주 그냥 섬뜩할 정도, 어? 요란한 탐욕도 바닥났지 품위 챙길 판돈도 간당간당하지. 행운은 아름다운 숙녀의 아찔한 고갯짓처럼 깐깐하게 굴지, 뭐 하나 되는 일이 없었다. 빠른 생애사 전략의 달콤한 셈법. 지나고 보니 영웅담도 뭣도 없고. 소싯적 정식 연애가 어딨어. 행운아의 여복에 적잖은 타격을 논하기도 초라한 현실만이 끙끙 앓는 시늉. 대책 없음. 이 무슨 낙심한 풍운아 신세냐고.
    잘 생각해보니 레너드와 난 원래 친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사무엘도 마찬가지. 모스맨 연구자 제라드도 그렇고. 그 일이 있었던 뒤로 환시는 모두 치유됐다. 그러던 중 어쩌다 거울을 볼 때, 내가 아니라 타인이 거울을 보고 있는데 그 거울 속의 타인 모습과 내 눈빛이 마주쳤을 때. 그런 일을 겪고 나면 한동안 저번 그 환시는 재발되곤 했다. 그러다 다시 정상으로 돌아오고. 내 인생은 역시나 더럽게 심심했던 것이다. 곧 차별화가 안되는 은행권 주식처럼 맹숭맹숭 심심한 남자. 주가는 내내 평행선일 텐데, 언제 대체 언제...!





    20

    앗! 물론 거기서 끝이면 재미없지. 한가지 더. 먹고사는 게 뭔지. 일만 하며 사느라 재미없는 건 둘째치고, 만나는 사람이 뻔했는데. 환상문학잡지 편집장 마라와 여성환상 1.5 대표 사라. 그런데 언젠가 마라와 대화하던 중 난 정말 이상한 말을 듣게 됐다. 
   「사라는 왜 요즘 얼굴 보기가 힘드니?」
   「너 아직 못 들었니? 하긴 사라가 너한테 말하지 말라면서 드라마 관계자부터 심리치료센터장, 정신의학계, 요가학원 등 안 다녀본 데가 없을 정도였으니 말 다 한 거지.」
   「걘 잡지나 잘 만들면 될 것이시 왜 자꾸 딴짓을 한데니? 걔 남자한테만 한눈 파는 게 아니구나. 걘 계획이 다 있구나. 어?」
   「왜긴 왜겠어? 그게 다 너 때문이지.」
   「나 때문이라고? 그게 왜 나 때문인데?」
   「너가 걔네 사무실 들려서 자꾸 직원들한테 찝쩍거리고. 사라가 너한테 마음 있는 거 넌 알면서, 걜 실제로는 밀어내고 겉으로는 늬가 사랑의 약자인 것처럼 껄떡대고. 그게 뭐니 남자가. 하여간에 누가 쪼잔하다고 안 할까 봐서... 쯧쯧 잘한다 잘해.」
   「그건 너가 잘 모르는 일이나 본대 다 우리끼리 좋게 돼 가고 있어. 내가 걔한테 남자 한두 명 소개시켜준 줄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라.」
   「그럼 뭔가 문젠데?」
   「사라가 널 볼 때마다 환시가 생긴데. 네 뒤로 너랑 똑같은 도플갱어가 겹쳐서 보인다나 뭐라나.」
    물론 마라를 만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가까운 측근에게 들어서 알게 됐다. 
    마라도 사라와 똑같은 증상으로 한동안 휴직했다는 걸. 
    그럼 정말 그게 나 때문일까? 나는 실의에 빠졌으나.
    또 모르지 사라가 어디서 여자말 역번역기를 개발하는지도. 
    그래도 꽤나 걸리는 일이란 걸 부정할 순 없고.
    도대체 왜 그랬는지 더더욱 의뭉스럽긴 마찬가지고. 
    따라서 그는 최근 폭식에 빠졌다. 왜냐, 왜일까! 왜냐하면, 이유는 다음 문단으로 떼서 가는 걸로.





    21

    왜인고 하니 사나운 개도 개밥 앞에서는 온순해진다고 일단 배가 부르면 잡념이 없어지니까. 일단 먹고 봐야지. 다 먹고살자고 허는 일. 아닌 게 아니라 식욕이 충족되냐 아니냐에 따라 관계되는 일이 알고 보면 상당히 많다. 식욕, 스트레스와 큰 관계. 뭐니 뭐니 해도 먹는 게 만족스러운면 나머지 웬만한 만족-불만족 사항들, 욕구불만 쾌감만족들 거의 1~2단계는 이득. 가령 식욕이 평범에서 극도로 만족이라면, 식욕만 변화를 주었을 때 수치는 이렇지 않을까? 
    ─────────────────────────
    식욕        불만   불만없음   만족   대만족
    놀기        D--     D++       C++    B++
    일하기
    건강
    열정
    의욕
    사랑
    미소긍정
    친절자상
    짜증지수
    기분전환
    문화생활
    연애생활
    ─────────────────────────
    식욕 해소만 변화를 주어도 나머지 전부 영향 받음. 
    그래서 미리미리 신경쓰고, 면밀한 관찰, 노련한 베팅이 필요. 그게 비즈니스면 접대&로비스트&승부사. 즉 초반에 통 크게 1번 만찬 대접하면 끝날 걸, 어쩌다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 막게 됨. 말하자면 뻔트부터 홈런까지. 틀을 경양식으로 짤 것인가, 아니면 속된 말로 초반에 비싼 술로 조지고 일찍 끝낼 것인가. 어영부영 폼잡고 풀코스로 갈려다가 죽도 밥도 안됨. 풋사랑도 마찬가지. 그리고 그걸 스스로에게 알뜰&세심하면 책략가&자기관리. 친한 사이면 티격태격. 나도 뽐낼 줄 안다, 누군 뭐 짠돌이고 싶어서 이러는 줄 아냐는 둥. 마초들이 미리미리 칭찬해주지 않으니까 생색내는 것. 어디 여자만 관심받는 것 좋아하겠나. 조련사로 사랑을 듬뿍 배풀어줘도 모자를 마당에 주인공병도 다 초반에나 신부들러리 서주는 것. 허세에 헛바람 넣기냐, 허영심을 들었다 놓기냐. 주도권 밀고 당기기. 초장에 잡으려다가 역공에 어퍼치기 당하느니 개에게는 개뼉따귀를. 송아지는 쓰다듬어주는 사람의 손을 핥는다. 개한테 개뼉따귀 던져줘 봐, 꼬리 살랑살랑 흔들고 아주 그냥 미쳐버리지! 아무튼, 그래서 채찍과 당근 작전을 반대로 하면 안됨. 어? 이러니 이러니 거꾸로맨과 숙녀는 사랑의 시소 잘 타다가 말을 섞으면 섞을수록... 샛길로 빠지지 말고. 하던 얘기인 배불리 먹기. 배 터지게 폭식하기로 돌아가서. 
    또 음주 역시나 식욕이 만족되느냐, 그럭저럭 입에 풀칠만 하냐에 따라 나뉜다. 평소 금주 절주 잘하는 사람들이야 예외라 치고. 개인적 이유와 원인 거론하지 않고, 습관적으로 알콜 의존 부류. 음주 욕구를 참는 수많은 방법이 있겠으나 딱 2가지. 
    A. 당일 저녁 폭식: 흡족 이상. 풍족 초과. 배 터지게! 
    B. 내일 아침 특식: 아침식사를 만족스럽게 억을 준비. 
    술 끊고 싶은 사람들이야 각자 찾고 끊고 각자 책이라도 몇 권 쓰실 수 있을 텐데. 끊는 방법 원 그래프에서 피자 조각 가운데 하나. 저녁 식사를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어쩌고. 그럼 밤에 별로 술생각이 없어진다는 것. 물론 말 그대로 원 그래프에서 사람들이 먹고 남긴 피자 겨우 1조각일 뿐이지만. 부페든 뭐든 맛난 사진 보면서 오늘 저거 먹기로 딱 찍는 일 역시나 꼬박꼬박 빼먹지 않고. 말 그대로 먹고 싶은 거 배 터지도록 먹으면. 여러 명이서 피자 한두 판 금새 거덜내겠으나. 그러다 입 짧은 숙녀들이 남긴 피자 1조각, 그 정도는 충분히 되는 방법이라던가 아니라던가. 그래도 최소한 그 1조각에 해당하는 정말 괜찮은 방법이든 말든, 살 잘 찌는 사람이야 몰라도 먹고 싶은 거 맘껏 먹는 게 정말 어딘데. 식욕이 만족되냐가 또 거기까지 촉수를 뻗치는데. 
    그렇긴 한데 그 방법이 더없이 딱 맞아떨어지는 약발 받는 부류. 없지 않다. 정말로. 고급스럽지 않다 뿐이지 먹힌다는 게 어딘데. 그래도 뭐랄까 좀 비겁한 방법이라고나 할까. 왜냐하면 적지 않은 사람들이 고단하랄지 권태롭다랄지, 괴로운 또는 재미없는 삶에서 시소 저울의 양쪽에 값싸게 도파민 얻는 방법에서 자기의 취미 말고 달리 양질의 재미랄지 색다른 쾌락, 그게 형편이 뭐하니까, 고로 주신 디오니소스의 도움을 받는 거 아니겠나. 그렇지만 것도 다 팔자 편한 얘기. 당장 품위 유지비도 빠듯한데 버는 돈 식비에다 절반을 쓰기엔 재산 증식이고 뭐고 정말로 먹고살기 빠듯해져서 큰일이란 말이다. 뭐 아무튼. 
    환자가 우유를 먹고 싶어 하는데 의사의 처방도 우유. 뺨 맞고 싶은데 누군가 철썩 부드럽게 연기하듯 싸대기를 쳐주었다? 그런데 무슨 여체의 신비와 여심의 부드러운 홍조도 아니고 그 말이 여기서 왜 나와. 무슨 어쩌고저쩌고 하면 잡생각이 없어진다는 웬 뚱딴지 같은 절반 조작된 글을 읽었던 기억이 쓱 급부상해서 기분 상해버리게 말이야. 그러나 저러나 시간이나 때우자는 식으로 무턱대고 방황하던 몽정기 시절, 지금은 아니다. 아닌 게 아닌가? 그러든가 말든가. 걸리면 좋고 아니면 말고식으로 막 그냥 떡밥 뿌리면서 방탕마를 타냐 마냐 단짝과 떠들던 그 옛날이 그 언제냐 그거라고. 뒤돌아봐야 아무 소용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과 즉 행동해야 하는 인생. 그래서 NB, 아아, 내가 결정한 전술이 무엇인고 하니 뭐였더라? 줄을 늘리고 줄이고 감고 묶어서 휙휙~ 돌려서 쓱 던져 애마의 목에 거느냐. 아니면 잔머리 굴려 치즈에 실을 달았는데 먹이에 미끼가 숨겨진 줄도 모른 채 거기에 혹해서 끌려가는 생쥐가 되느냐. 바로 그게 문제였던 것이다. 뭐? 

,

BLOG ─ 163

from 소설 2020. 1. 30. 18:24

    1

    해피엔딩에 대한 기발한 상상력. 자유로운 소재. 흥미로운 줄거리. 낭만적인 발단과 신기한 전개. 마치 예언가임과 동시에 신비주의자인 것처럼 구는 작가의 엉뚱한 영감은 줄곧 NB를 괴롭혔기 때문일까? "저 따위 뻥을 누가 믿어?"라는 혼잣말을 내뱉을까 말까 오늘은 망설였으나. 불과 며칠 후 그는 의뭉스러운 충동을 이기지 못했으니 그 몇몇 제품을 받아본 후 실망했다. 괜히 샀다면서. 구체적인 목록이야 알고 싶은 사람도 없고, 알아 봤자 별 도움도 안 되고. 행복한 인생에 대한 힌트가 설마 쾌락마라는 비밀일 리는 없으니 누가 귀뜸해도 믿거나 말거나. 그리고 아름다운 사랑 그거 글로 백 번 천 번 만 번 쓰면 뭘 하나. 말주변 어눌한 입으로 친구랑 진지하게 대화해본 적이 한 번도 없는데? 맞다. 그렇다. 있음 안 되지. 큰일날 소리. 그럼 정말 쾌활한 행운은 정점을 찍었는지 약올렸는지조차 모르도록 근처에 왔다 저 멀리 도망가버린 것일까? 라는 공상 정말 하기 싫은데 생각을 멈출 수는 없고. 뭐 난봉꾼의 사랑? 바다는 어느 강물도 마다하지 않는다. 돈? 필요없어. 모험? 관심 없다고. 여복? 안 키워. 인기? 있으나 없으나. 바쁜 일정, 어차피 거품. 그럼 정말 진짜로 인공지능이 그에게 추천해주어야 할 덕목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건, 바로, 자유였다. 그래 봤자 개는 짓다가 냄새맡다가 달리다 떠돌다 금새 심심해지기 마련. 안 그래도 개는 토한 곳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다. 그렇게 되어 있다. 그런데 개 얘기가 왜 또 나와. 
    그렇게 그는 퇴근해서 어디로 갈까 고민하다 근처 미술관에 갔다. 아는 동생 릴리가 큐레이터로 근무하는 그곳에. 물론 말이 큐레이터지 아마도 경리? 듣는 경리 기분 나쁠지 몰라도 우리는 말이다, 어? 이 세상에 우리보다 더 경리를 좋아하는 남자 있으면 나와보라고 큰소리칠 기운도 이제 없다. 그리고 우리가 살 뒤룩뒤룩 쪘을 때야 혼자 거울 볼 때나 식탐을 자제해야겠네 라지만, 당장 뒤돌아서서 꾸역꾸역. 그렇지만 우리가 좋아하는 여자는 뚱뚱한 당신. 당신을 이 세상에서 최고로 아름다운 숙녀로... 쉿! 듣다 듣다 짜증나기 전에 딱 그치는 게 좋겠다. 아무튼 그렇게 NB는 미술관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들리는 음악은 역시나,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 오페라 <자이데> 중 편히 쉬어요 내 사랑 
    그런데 릴리가 안 보이네? 그는 관계자에게 슬쩍 물어봤다. 그랬더니 돌아오는 대답은 대뜸,
   「걔 연락도 없이 그만뒀는데요. 아시는 분이세요? 혹시, 남자친구? 릴리가 이제 만나다 만나다... 아니에요. 초면에 말실수 할 뻔했군요. 신경쓰지 마세요. 아니, 제가 괘념치 않죠. 아니 그만둘 꺼면 깔끔하게 정리를 하던가. 누가 못 도망가게 막은데? 아저씨가, 네? 릴리가 벌여놓은 뒷감당 다 하실 거예요? 그럴 수 있어요? 아저씨가 내 인생 책임질 수 있냐고요. 방금 전 말은 헛 나왔으니 신경쓰지 마세요. 그러든 어쩌든 뭐 동네 아저씨 같은 분께서 걔와 친해봐야 얼마나 친하겠어요. 그러지 말고 저랑 사귈까요? 제가 들어도 이런 농담 정말 짜증나네요. 설마 아저씨가 아깝다 뭐 그런 생각하신 건 아니죠? 그쵸? 그렇죠? 그건 말이죠, 아니에요. 됐어요. 그만 가보세요. 바쁘시잖아요. 안 바뻐요? 바쁘게 해드릴까요? 거 봐요. 바쁜 거 맞네. 아 뭐해요? 제 얼굴에 뭐 묻었어요? 그렇게 빤히 쳐다보시면 어떡하잔 거에요? 네?」
    별 이상한 횡설수설을 얻어들은 그는 돌아서서 저쪽 구석지에 가 전화해봤다. 
    물론 릴리의 전화번호는 바꼈다. 생판 모르는 타인이 전화를 받았고, 그는 죄송하다며 굽실거리며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릴리의 미술관 방문 결과는 역시나 허탕으로 결판났던 것이다. 
    그래서 하는 수 없는 그는 발길을 여성환상 1.5 사무실로 옮겼다. 





    2

    도착. 다행히 사라는 퇴근하지 않았다. 편집장실을 제외한 다른 책상들 컴퓨터는 거의 꺼진 듯. 
   「오빠. 나 시집 좀 보내줘. 응? 이젠 귀 기울이지도 않니? 듣는 척이라도 좀 해라. 어?」
   「」
   「어딜 쳐다 봐. 거기 아무것도 없어.」
   「너 설마...」
   「(눈빛) (몸짓) (표정)」
   「난 너 자빠트릴 생각 없어.」
   「아니야. 오빠 같은 늑대라면 부족할 게 없을 거 같은데. 오빤 어떻게 생각해?」
   「농담이 지나치다고 생각하지 않니? 너라는 피아노를 연주할 듯 말 듯, 명연을 펼칠 뻔 말 뻔. 응? 너가 선망하는 촌닭이 혹시 나다? 착각이야. 전문 연주자들이야 1시간 2시간 구슬땀 흘리며 마치 쇼팽이 환생한 듯 연주하시겠지. 그런데 현실은 어떨까. 아줌마 허세 앞에서 진실 게임 한번 해 보셔. 응? 유부남들과 진짜만 얘기해 보시라고. 자, 그러니까 그에 대해서」
   「쉿! 말하지 마.」
   「아무튼 이 오빠는 네가 생각하는 그런 파랑새 아니다. 응?」
   「길고 짧은 건 대 봐야 알지. 나 같은 수석 코치가 어디 또 있는 줄 알어? 믿어 봐. 잘해 줄께. 오빠야, 나한테 와라. 잘해줄 께. 응?」
   「뭐? 잘해주긴 뭘 잘해줘. 나 손이 건조해. 수전증도 있어. 그런데 웬 군침? 때문에 난 너한테 눈독들이면 안 된단 말씀.」
   「오빠 같은 다정한 남자가 또 어딨다고. 난 성실하고 자상하고. 나랑 웬만큼 통하기만 하면 돼. 뭐가 부족한데? 돈? 내가 벌어줄께.」
   「너 저번에 내가 남자 소개시켜줬을 때 뭐라 했어. 걔한텐 뭐 남자 얼굴 안 본다라 뭐라나? 그런데 나한텐 얼굴 개빻았다는 뭐라는 둥. 지금 생각하면...(절레절레)」
   「그래. 오빠. 나 불결한 속물이다. 됐냐?」
   「아니야. 넌 여전히 순수한 비너스. 넌 우리의 아르테미스란 말이야.」
   「립서비스는 그쯤 하면 됐고. 그러니까 나랑 사귈 꺼야 말 꺼야. 어? 그것만 말해.」
   「」
   「역시 오빠는 조용한 남자구나. 오빠가 돈만 좀 많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 최소한 부족하지만 않았으면 말이야. 가련한 예술가 타입? 드라마로 볼 땐 좋지. 딱 그때만! 응?」
    물론 작품이자 허구며 드라마와 크게 다를 거 없는 소설이니까 하는 말이지만 뭐 틀린 말도 아니고. NB와 사라, 그들도 예외는 아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 최고로 애매한 사이란 게 바로 남녀의 우정이니까. 법적 부부를 제외한 모든 남녀의 친밀감은 성문헌법, 관습, 평판에서 비켜가진 못하더라도 어떻게든 인간의 본능에선 도망 못 가거든. 바로 그 아는 오빠 아는 동생 사이. 
   「아 맞다. 오빠 그 얘기 들었어? 내 비서랑 오빠 친하잖아. 걔 애가 오빠 막 삼촌이라 부르며 잘 따를 정도로. 근데 있잖니 근데 있잖아. 어머머 얘. 어머머머머 오빠. 어쩜 그럴 수 있니, 응?」
   「아 또 뭔데 그래? 제발 좀 배꼽이 배보다 작으면 안 되니? 왜 꼭 뭘 해도 거 무슨 WBC, WBA 옛적 떠들썩한 타이틀 매치처럼. 역대 최고의 경기에나 성사된다는 해설자계의 양대산맥이 공동 해설을 맡는 경기처럼. 본 게임 시작하면 1-2회 KO로 싱겁게 끝나서 영상 재활용하며 편집하기 바쁘고. 본 게임을 위한 순위전, 뻔트, 전주곡은 요란할 대로 요란하고. 대체 이번엔 또 뭔 얘기를 하려던 건데, 응?」
   「일단 들어봐. 응? 먼저 듣고 나서 소감은 나중 말하고. 내 비서 걔네 부부가 만인의 모범을 사는 잉꼬부부란 거 세상 사람들이 다 알 수는 없지만. 뭐 그래도 부부애 좋다는 거 하난 확실하잖니. 근데 있잖니 오빠~ 내 비서 나탸샤. 걔 전남자친구가 걔네 동네에 산데. 어쩜 좋니?」
   「정말?」
   「그래. 그렇다니까. 어쩜 그럴 수 있니? 세상에나.」
   「근데 너 왜 웃어?」
   「그럼 울까?」
   「다양한 여심 또 단순한 원 그래프처럼 1-2-3위 뻔히 나뉘겠구만.」
   「나뉜다고? 여자의 마음이 뭔 피자야?」
   「피자야 다트판처럼 균등하게 나뉘는 거지. 그거랑 그건 다르단 거 너가 더 잘 알잖아?」
   「난 좀 모른 체하고 오빠가 아는 척하면 안 되겠니?」
   「유리한 얘기가 아니니까 또 발 쓱~ 빼시겠다? 왜 이번 달 마감 닥쳐오는데 잡지 분량 부족하니? 부족한 거 무슨 익명의 대화로 어떻게 매꾸게? 그걸로 대충 매꿔도 오히려 정기구독자들 환영할 주제라도 되니?」
   「어머, 오빠 그거 어떻게 알았어? 우리 직원들한테 찝쩍거리는 줄만 알았는데 이제 보니 오빠도 패션잡지계 업자가 다 됐구나?」
   「아 그러든 어쩌든 어서 본론이나 말해봐. 그래서 어떻게 됐데?」
   「글쎄 어떻게 됐다더라?」
    발동 걸린 NB의 긴 대사. 칸을 떼서 가는 걸로.





    3

   「어차피 셋 중 하날 꺼 아냐. 
    첫째 싱숭생숭, 둘째 불안 미묘, 셋째 떨떠름 기분 나쁨. 
    첫째야 당연히 여자의 판타지과고, 둘째는 말 그대로 여성잡지 2 애호가요, 셋째는 조신한 엄마 스타일 아닐까? 둘째 셋째 구분이 좀 애매하지만 둘 합해도 되고. 뭐 신경쓰여서 싫다 그거지. 꼭 뭐 다 그렇단 게 아니라, 포장 풀르고 속마음 알아봤을 때 다 팀 멤버라는 심리기제로 따지면 없는 거 없이 모든 사람이 공통. 다만 개인적으로 차이점은 가령 2군까지 합해 팀 총원이 100명이라고 했을 때 주전 9~11명을 어떻게 구성할 것이냐 그 차이 밖에 없잖아. 안 그래? 간질간질 이상한 심정 요만큼~도 없는 사람은 없어. 그게 별로 중요치 않으면 '여자는 그래요'고. 그걸로 호들갑 떨면 중간층이고. 올커니~ 여자의 판타지 옛날에 망했겠다, 전성기도 훌쩍 지나갔겠다, 남자에 대한 판타지 짜증나겠다. 사석에서 농밀한 밀담이 오간다면야 뭐 '그런 여자' 분과 아니겠니? 너 내가 누누이 칼럼에 쓰고 쓰고 쓰고. 했던 말 또 하고 또 하고 또 하고. 지겹도록 반복하고 짜증날 정도로 되풀이하는 얘기가 뭐니. 응? 그거 아니야, 입장 바꿔 생각해보기. 응? 거울. 에코. 반사! 
    남녀간 애정과 관련한 감정 때문에 요만큼 설레는 거도 있을 수 있지만. 그 흠모가 먼발치서 짝사랑에 대한 기억으로 그치지 않고 법적 관계라는 생활로 얽힌 매우 드문 사례들. 그 긴장감, 불편함, 때로는 왜 꼭 억눌리고 사교계의 기대주 발목이라도 잡은 것 마냥 죄 지은 기분으로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번민? 연민? 어쩌다 자기 비하? 드라마에 나오듯 집안끼리 강제로 결혼한 사이랄지. 멜로드라마 소재처럼 여자 자신은 완전히 싫은데 남자가 완강히 폭력적인 방법을 동원해서 어떻게 맺어진 인연. 아님 그 남자가 뭐가 부족하다고, 나랑? 그리고 마음을 반틈만 주는 사이. 연인의 몸은 내 것이지만 마음은 왠지 모르게 따듯하지 않은 예. 개별 예시야 그 꼬리는 너무도 길다는 거. 너네 월간지에서 수도 없이 다뤘던 거잖아? 방금 나온 주제도 어차피 그거고. 
    너네 업계 그 바닥 좁다는 거 내 모르지 않은데, 사람 사는 세상이라고 뭐 얼마나 다르니? 드라마 대사로 말하자면 남녀 사이에 왜 끝이 없다고 하겠니. 왜 어른들 말씀이 남녀가 연애 길게 해서 좋을 거 하나 없다고 하겠니. 도대체 어째서 남녀의 우정이 말이 안 되는 거겠니.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사안들, 나는 되고 너는 안 된다 심보니까 하는 말. 안 그래? 내 친구 중에 만나서 사랑하니까 서로 좋으니까, 즉각 혼인 신고하고 동거했던 걔네. 생맥주 500cc 가득 든 거 팍~ 팍~ 뿌리고. 울고 불고 욕하고. 진한 사랑 도중에 풍선 꺼진다 어쩐다 주변에 다 말하고. 혐오하며 더럽게 끝났어. 다 그렇단 말이 아니라, 어? 남녀 사이에 끝이 어딨니. 인생 굴곡이 그만그만하다면야 몰라도, 사람과 인생 장르가 뭔가 애매하다? 5년 10년 후에 사생활 참견 안 하고 몰래몰래 둘이 만난다니까. 어디서? 뭐 어떻게! 왜? 무엇을 위해서! 에이 알면서. 얘, 여성잡지 2가 그걸 어떻게 모르니. 안 그래? 왜 애가 있냐 없냐에 따라 갈라설 확률이 올라가는데. 학교 성적도 애들 습관과 관심사, 등교길 표정, 수업 시간 초롱초롱한 눈빛. 그거 보면 대충 답 나오잖아? 칠판부터 책상까지 거리와 성적은 정비례는 아니라도 대충이나마 비례한다는 거. 누가 몰라? 어른들 운동으로 마라톤 대회 나가는 거. 연습량 채우면 완주하고 못 채우면 적당히 그날 최선을 다하는 거고. 육상에서 장거리는 일반적으로 몸무게와 비례. 그럼 사랑의 장기전은? 여심 떠보면 알지 그걸 왜 몰라, 응? 무슨 여자만 사랑의 탐색전에서 간볼 줄 알겠니? 뭔 남편만 제일 늦게 알라는 법이라도 있냐 그 말이냐고. 
    뭐 이사왔는지 어쨌는지. 동네에 산다고? 동네도 아니고 불과 50미터 범위에 살기 때문에 심심치 않게 마주볼 수 밖에 없다고? 좋을 리가 있니 그게. 현재의 사랑이 지고, 옛사랑이 이긴다면야 당연히 자녀들은 성장기에 시련을 겪는 거고. 그렇다고 지금의 사랑이 진짜다, 현재의 사랑이 아름답기를 기원한다, 단란한 가정이 소중하다, 지금 인생이 더없이 행복하다? 따라서 모른 체하면 그만이니 아무일도 아니다? 그게 끝이 아니지. 남자만 지는 비교 싫어할까? 여자에게 호승심이 어찌 없을 수 있나. 여자한테 이겨서 뭐하게, 라는 듯이 눈물 흘리는 여심은 또 뭔데. 여자? 그분들도,
    질 수 없지~!
    그럼 어차피 끝난 사랑, 나는 그런 여자가 아니니까, 때문에 남은 남 나는 나. 불미스러울 걱정 하나 없다. 남편한테 떳떳하다? 그래도 불편함은 남는다니까 그러시네. 무슨 비유명인인데 연예인이나 된다는 듯이 조명발이 언제 비출 줄 모른다는 것처럼 왜인지는 몰라도 상시 꽃단장 풀메이크업을 해야 한다? 피곤하지. 어제는 모처럼 대충 주서입고 동네 친구 만나러 나가고, 오늘은 후줄근한 청바지랑 면티 대충 걸쳐 입고서 지인들 만나고, 내일은 화장 1도 안 한 채 모자 푹 눌러쓰고서 식료품 사러 갈 껀데. 언제 어떻게 옛 남자를 마주칠 줄 모르기 때문에 초라한 내 모습을 보일 순 없다 그러긴 싫다, 그래서 1년 365일 꽃단장을 하지 않으면 안 되도록 살아야 한다니! 시장 갈 때도 최고급 백화점 모드로 만년 연예인처럼 살라고? 여성잡지 1에서 2까지는 그나마 수다 3시간으로 때울 수 있지. 거기서 더 가면 보든 말든 관심도 없고, 어차피 동네 아줌마 아저씨라는 드라마퀸으로 정착하면야 무신경하고 아무렇지 않은 거고. 
    그래도 생각은 날 걸? 진한 사랑이 있었냐 없었냐. 적었냐 많았냐. 신경 쓰이지. 허허허. 그렇다고 잘 걸렸다~ 설레는 여자라고 왜 없겠니? 남편한테 말하지 않은 부인. 남편 직장에 남편의 옛사랑부터 중간에 썸탔던 여자. 거래처에 전전전 여자친구. 그냥 단순한 친분만 있는 여자라고, 떡밥 뿌리기 바쁜 처녀들이라고 없을까? 유부남 좋아하는 처녀, 언제 어디를 가나 없을 수가 없지. 내 맘에 쏙들도록 남편 튜닝하기에 흡족히 만족스럽지는 않을지언정 남편 조련에 선방을 하면 뭘 하나. 여자들이 싫어하지 않도록 남편을 꾸며놨더니, 가난한 뚜벅이 찌질한 총각 유치한 젊은이한테 관심 없는 아가씨들. 우리 남편 보면 도저히 싫어할 수 없거든~! 허허허. 
    아무튼 자, 옛날에 연인이었다 그러다 훗날 그렇게 동네 주민이다? 당시에야 동급이었을지 몰라도 세월은 우리에게 많을 걸 가르쳐주는 법. 품위를 살짝만 낮추어 말하자면 남자가 떡상하고 여자가 떡락했을 수도 있고. 아님 남녀 공히 그 흔한 동네 아줌마 아저씨처럼 되었을지도 모르고. 반대로 그 남자가 꾀죄죄하게 떡락했는데 여자 쪽은 훨씬 고상하니 세련되고 원숙한 걸로도 모자라 시간은 그녀만 어쩜 비켜갔을 수도 있고. 사석에서 악의 없이 말하듯이, 탈모 유전되어 머리 벗겨지고 배불뚝이에 얼굴도 가버린 남자로 변해버린 일도 있을 테고. 지난 일은 지난 일이라지만. 과거는 과거라지만. 평균 내보면 드물게 있긴 하겠으나 당사자들은 당연히 꺼림칙하지. 
    왜 내 생각만 해? 그러니까 넌 너 밖에 모른다면서 남자가 떠난다니까. 듣다 듣다 못 들어주고 귀에서 피나면서 만나던 남자가 전원 나가떨어지는 연애. 남자 쪽에서 언제 나가떨어지느냐 그 차이 밖에 없는 남녀의 만남. 이기적이냐 이타적이냐, 줄 거 주고 받을 거 받고. 하나 주고 하나 받고. 애들은 애들이고 어른은 어른이지. 어른인데 애처럼? 그 중간인 여자가, 나는 남자사람친구 즉 우정 사이에 남자랑 1 대 1로 놀러갈 수 있다. 그걸로도 모자라 남자사람친구랑 한 침대에서 잘 수 있다, 실제로도 애인의 친구랑 여행지에서 1 대 1로 드라이브했다가 CS까지 했다고 추문 파다한 일. 무슨 남자만 열 여자 싫다는 남자 없는 줄 아시나? 내 인생, 아니 이 지구 아니, 이 우주를 걸고 맹세할 수 있어. 어떻게? 여자의 판타지가 싫단 여자는 있을 수가 없다고! 현 애인이 있든 없든 100 남자의 관심과 애정과 사랑이 싫다는 여자? 여자의 판타지에서는 결코 좋아하지 않음. 그런 위선을 어떻게 취급해. 그럴 수는 없어. 첫사랑이 최고였던 여자가 많지는 않겠으나, 스콧 피츠제랄드 원작 어떤 영화에 나오듯 재력으로 옛사랑에게 다가가는 남자부터. 핸드폰 전화번호부에 친한 남자 연예인 즐비하고 어쩌고. 여자가 남자에 대한 환상을 일찍 깨면 좋듯, 여자들끼리 소망하는 뚱딴지 같은 꿈. 현실감 잃으면 밝은 미래는 썩 희망적이지 않을지도 모르는 것. 뿐만 아니라 남자의 판타지가 여자가 느끼기에 더럽다고 하여, 결혼한 다음에 여자가 남자에게 종류야 많겠으나 생리적이자 원초적인 '여자의 판타지'를 깨트려드린다? 장르 바뀌는 거 시간 문제. 결혼 후는 그렇고, 법적 관계 전이라면야 만찬에서 디저트 먼저 먹을 일 있나? 지겹고 식상하고 퍼질 대로 퍼지면 직업적인 도박사는 발 빼고, 노회한 노름꾼은 베팅하기 싫어지게 마련.」 
   「」
   「그런데 왜 말이 없어?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 왜 내가 창피하니? 보아하니 그대 진정 그리 짜증나지 않은 듯 하니 하던 얘기 마저 할께. 금방 끝나.」





    4

   「자꾸자꾸 여자의 판타지 여자의 판타지 그러는데. 세상 사람들 시선이 꼭 고우란 법은 없어. 단짝이랑 놀 때야 C층에 있는 친구 끌어내려서 현재 F급인 나랑 동급으로 묶는 거야, 친구끼리 알아서 할 일이고. 혹시라도 안 좋게 끝난 사이인데, 그 기억 잊고 살았는데 왜 하필. 더럽게 이미 끝난 사이에서도, 경우의 수는 얼마든지 있어. 언제적 연인 그러나 과거. 누가 떡상? <내가 잃을 거 있냐 없냐>랑 <친구들 놀 때처럼 같이 망하자>. 그 둘을 견주어서 나중 얻는 거라곤 옛날 충분히 낭만적이지 못했다는 패배감, 지나고 보니 사랑받지 못했다는 억울함, 결국 잠깐 만나다 버림받았다는 배신감. 지금 생각해보니 꼬신다고 훅 넘어간 거 살짝 후회되는데 미련은 남고. 그렇지만 내가 더 아깝고. 그런 몇몇 감정만 살짝 만회해주는 거 말고, 창피해도 응? 타격 심해도 사랑 문제라면 못 할 게 없지. 뿐더러, 알고 보면, 금새 잊혀. 다 지나가.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해주거든. 뭐 하나 누구 하나 득될 거 없는 삼류 연예 기사. 드물게 있다는 거. 누가 모를까.
    아니, 또 일기 쓰시나. 나는 머머했다 나는 머머했다 누가 오늘 나한테 뭐라고 했다, 사람들이 내 뒷모습을 보면 어떻게 생각할까 등등등. 입장 바꿔서 남편의 전여친이 옆집. 남편의 전전여친은 앞집. 남편의 전전전여친은 뒷집. 남편을 10년 20년 내내 짝사랑하는 열혈 팬클럽은 동네에 쑤두룩. 진한 사랑 그래, 속궁합 좋기로 세상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웠던 전애인은 여전히 같은 업계에서 오다가다 만나는 사이. 당시에야 진한 사랑의 정점과 횟수를 찍었고, 지금은 각자 인생으로 우정만 나누고. 만약 그렇다면, 그럼 부인 마음은 어떨까? 여자의 판타지? <나는 되고 너는 안 되고>가 전제! 내가 하면 사랑 남이 하면 불륜이라고. 같은 반 남자애들이 야동(인터넷 야한 동영상) 얘기 막 하고 그러니까, 듣기 싫은데 못 들을 걸 들으니까. 그래서 짜증난다면서 소녀감성이 하는 말.
   "아빠도 야동 봐?......"
    성 그래프 바닥인 여자야 그렇다 쳐도. 성 그래프 고급인 엄마 듣기 민망한 말 가운데 최고봉이 바로 그거겠네. 왜? 엄만 별의별 상상을 다 하시거든. 남자 성 그래프의 정점이 10대니까 걔네들끼리 사석에서 그렇다지만. 여자 성 그래프의 클라이막스가 언제다? 아빠가 자상하고, 다정하며, 가정적임과 동시에 사생활이 건전하든 문란하든 모르겠고. 여자 성 그래프로 하늘을 찌르는 부인은 그 무언가를 보든 안 보든 대충 <남자 10대 = 여자 40 이쪽저쪽>. 단지 평균만 그렇다는 거고. 생각이 어디로 가 있다는 건 부정하고 싶어야 정상일까? 엄마가 깨어있을 때는 물론이고, 수면 중에 꿈꿀 때 어떤 꿈을 꾼다는 거. 잘 아시면서 소녀는 무안한 질문을 참지 못하는 거지. 엄마 얼굴 홍당무처럼 빨개질 일만 남은 거란 말이야. 홍조랑 립스틱이랑 분간이 안돼. 무슨 남자만 늑대고 여자는 모두 부처님이라도 되는 줄 아시나? 천만의 말씀. 
    샛길로 빠졌는데 결론 내자면 그래. 뭐 무슨, 동네에 결혼 전 애인이 살아요? 동전의 양면처럼 여자의 특징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주제. 메달의 앞면은 합심이 잘된다 섬세하다 꼼꼼하다 등등 여자의 장점. 반면 메달의 뒷면은? 표면적으로야 단합이 잘되는 것처럼 보이는데 여자들끼리는 딱 딱 말이 서로 잘 통하는 사이는 절대로 많지 않아. 안 그래도 여자는 여자의 일생 동안 쉬지 않고 끊임없이 바껴. 계속 변해. 항상 변심. 공상은 천재. 그처럼 남자는 빨주노초파남보 단순하니까 친구가 엎어지고 넘어지고 피나고 뼈 부러지면 앞에서 웃고 놀리지만. 여자는 앞에서 위로하고 뒤에서 웃어. 안 웃을 수 없거든. 실제 웃음이 나와. 물론 남자도 그렇고 항상 그렇다는 게 아니라, 그게 바로 인간의 본능. 바로 그런 의미에서, 여자가 남자를 어떻게 봤을 때 그이는 너무 무정하다, 무심하다, 무능력하다... 비교 되네 어쩌네. 이미 끝난 일이라고 어떻게 생각이 안 나나. 뭐 한 번 말했던 건 일평생 다시 말하면 안되나? 편 들어줄 건 우리는 확실히 들어. 모른 건 모른다, 어?
    그러니까, 잔소리? 남자 왈 이미 얘기 끝난 연애의 과거사라지만 여자 마음에 쌓였던 그 어떤 서운하고 슬프고 찡한 기억. 기준선 밑의 반복은 습관성 잔소리요, 위는 다 그럴 만 하니까 되풀이하는 따따부따. 전두엽인지 측두엽인지 각인되기 전으로 어떻게 돌아가나? 절대 못 돌아감. 평생 안고 사는 수밖에. 사랑이란 마음이 가야 몸이 가는 정식 과정이냐 아니면 그냥 손 잡기 건너뛰는 것처럼 약식이냐로 나뉘듯. 마음을 아끼듯 진한 사랑도 아낄 것이냐 언제부터 즐깃 것이냐, 아니면 퍼질 대로 퍼지듯 갈 데까지 가는 식으로 '내일은 없다'를 닮았느냐. 그 가운데 잔소리는 중견 경험자들 얘기. 영화 러브 스토리에 나오는 대사가 뭐였더라, 사랑은 미안하다고 말하... 어쩌고저쩌고. 한때 사랑했다 헤어졌으면 미래의 행복에서 어떻게 사랑을 일굴 것이냐를 고민해야 하는데, 밑도 끝도 없이 아주 드문 폭로전. 다 화장실 들어갈 때 나올 때 다르니까 발생하는 일. 주례사야 아름다워야 하니까 영원히 사랑하겠습니까 라고 물어보는 것이지. 허나 사랑이 인생의 전부라는 여자는, 중견으로 넘어가면서가 아니라 이미 사랑의 탐색전 때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하는 것. 어떻게? 만방의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듯 사랑하다 나중 딴년한테 그 남자 빼앗길 자신 있는지를. 일반적으로 남자는 몸은 줘도 마음은 조강지처요, 여자는 기준선 너머라는 별천지를 보면 빼도 박도 못하도록 발정난 고양이 마냥 떠나는 것. 남녀는 절반은 완벽히 똑같고, 절반은 완벽히 정반대. 자기는 이모 스타일 됐다며 자랑스럽다는 듯이 어른스럽게 친구한테 뻠쁘질하는 여자, 여우짓으로 남자 10명을 혼자 독차지하는 여자. 여성을 상대로 사랑하는 일이 까다롭기 그지없는데 남자가 기준선을 넘어? 상남자 왈, 남자가 태어났으면 말이야...! 여자 10명 거느리고 싶은데 짝사랑복 바닥인 허세꾼 그 친구. 젊어서 즐기지 그럼 언제 즐기냐며 놀았더니만 어느 날 갑자기 금고를 열었더니 곳감이 바닥났다더라, 도 있으니까. 그래서 내일은 있고 세상에 비밀은 없다를 당연히 아니까 뭘 좀 아는 여심은 <몰래한 사랑>을 그토록 편애할 수밖에 없는 것. 그에 비하면 쫓아다니는 사랑은 그냥 아마추어. 흡성마법으로 빨아들이지 못하면 줄 달린 치즈로 꼬드겨야 하든 말든 그야 당사자들 알아서 할 인생이고.
    잔소리에 대한 얘기가 조금 길어졌으니 서둘러 마무리 짓자면 말일세, 흐흠. 아 거 참 나 바쁘다 바뻐. 다만 조금은 상스러운 표현으로 이른바, 여자를 다루는 기술이 다른 게 아니야. 기준선 넘지 않으면 되지 않나, 그러게 뭐하러 몸이 뜨거운 여자 마음 차갑게 식도록 만드냐 그거지. 우리는 고결한 여심을 편들겠다는 거지, 남자 9명 혼자 다 독차지하겠다는 불여우의 마음을 변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고. 아시겠소? 무슨 립스틱 바르고 화장만 할 줄 알면 여자 어른인 줄 아시나?」





    5

   「속으로는 남자를 좋아하고 여자의 판타지라면 환장하면서, 겉으로는 비혼주의? 다 뻥 개 뻥 몽땅 뻥! 자기는 결혼 생각 없다? 개 뻥! 자기는 남자 얼굴 안 본다? 새빨간 거짓말! 나중 미래에 소중한 가정에 위기가 온다면 난 내 가정, 내 사랑을 지킬 자신이 있을까 라는 고민도 없이 남자만 꼬이면 들뜨고 설레고. 전남친이든 누구든 입장 바꿔서 남자는 어떨까는 생각도 않고 헷가닥 돌아버리고. 다 그렇단 말이 아니라~! 남자가 한눈팔지 않도록 그 인간이 뭐가 불만족인가 육감이 발달했으면 뭘 하나, 돌아서면 남남인데! 등 돌리면 영원한 남인데. 그럴 꺼면 왜 법적 관계까지 갔을까, 내 일이냐 남 일이냐에 근거하여 말은 많아질 수밖에. 만나주고 사겨주고 결혼해주고 살림해주고 애 낳아주고 애 키워주고. 불리하면 피동격이요 유리하면 능동격? 그러니까 연애할 때 이기적으로 (남자 여러명 거느리듯) 자기 좋은 건 몰래몰래, 자기 불리한 과거는 딱 숨기고, 하다 하다 못 들을 사랑의 기초는 또 어떻게 일부러 속 뒤집어지라고 알려주고. 자기 패는 아무 것도 까지 않고, 더럽디 더러워 도저히 씻을 수 없도록 죽어서도 못 잊을 추악한 연애사의 힌트만 딱 알려주며 자기 껀 다 감추고. 그 다음에 몰래 상대방 진심부터 천성과 재산까지 뒷조사. 뭐야 그게? 
    그걸로 보자면 초반에 진단해보면 대략 알 수 있어. 무엇을? 남자는 뭐 순정 없는 줄 아시나, '예비 맞바람녀 > 예비 이혼녀' 바로 그 애증까지 갔다가 돌아오느냐 남이 되느냐를. 애들은 뭔 죄? 당사자야 오죽 마음 아프겠냐마는, 누가 그걸 몰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애초에 시작부터 불안불안한 사례 적지 않고, 지켜보면 혀차는 일 심심치 않으니까 하는 말. 그러니까 원숙해지기 전부터 차츰차츰 남자는 화려한 이모 스타일보다 정숙한 엄마 스타일 쪽으로 마음이 기울기 마련. 안 그럴 수가 없거든. 공통으로 미래의 사랑에 베팅해서 행복을 키워간다는 전제를 무시하고, 내가 위고 너는 아래다 고로 만나주고 사겨주는데 딴년 만나? 언제 떠나느냐 어떻게 단란한 가정이 깨지느냐는 시간 문제. 그러게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하는 거지! 사랑의 탐색전이라는 (정식인지 연애인지 애매하고 뭐가 뭔지 몰라도) 남자친구 여자친구 그 초반에는 싱숭생숭했으면서 나중 계산기 두드린다고. 예를 들어,
    명감독 명선수 도박사들 봐 봐, 메트로놈이든 계산기든 그 뭘로든 최상이 아니면 무대와 경기장에 들어서지 않는 것. 응? 그런 프로들과 정반대로 아마추어 고급반도 아니고, 허접한 오합지졸들은 정반대로 동네 개 발들 모여서 밑도 끝도 없이 개뼉따귀 같은 꼼지락꼼지락 그러면서 사랑론이래. 여자라는 벼슬 때문에 남자가 여심을 존중하는 게 아닌데, 무슨 이 세상에 자기 달랑 혼자만 불여우의 꼬리가 달린 줄 아시나? 똥차 가고 신데렐라의 호박마차가 와서 유리구두를 신으면 좋겠으나, 현실에서는 통상 확률적으로 똥파리는 주로 어디에 꼬이기 마련. 그래, 안 그래? 여자의 일생 수다 총계 내보면 알 거 아냐. 꽃에는 나비요 개똥에 똥파리가 득실득실. 잘 아시잖아요! 직간접으로 취합한 데이터베이스 그게 얼만데. 응? 
    활동가는 녹슬지 않아. 직업이든 학문이든 원론적으로 전적 상 여자는 남자 플레이보이한테 상대가 안됨. 마치 절정감에서 1000 대 1도 모자른 것처럼. 무슨 값싼 싸구려 바이올린을 도대체 왜 명바이올리니스트가 연주해주지 않느냐는 푸념. 그나마 그거면 다행이게? 호박이 제 발로 굴러가서 나라는 여심 악기를 제발 연주해달라면서 똥파리한테 꼬리치기 바쁜 사례. 지나고 보면 흔하디 흔할 일. 그런데, 지조마저, 없으면! 잊지 마, 얘. 그거 알아두는 게 좋을 거야, 너. 개는 빵 때문에 춤을 춘다는 걸. 만날 당시에야 처녀 자신이 첫사랑이라고 느끼고, 숙녀는 사랑이라며 좋아할 테지만. 나중 패전으로 끝나면 그거 사랑 아니었데. 진짜 첫사랑은 딴 거래. 화장실 들어갈 때랑 나올 때 다른 거지. 당시에는 좋았으면서 계속 해피엔딩이면 사랑이고, 혹시라도 차이면 내 책임은 없으니 다 핑계요 가짜라며 원망에 저주에 독설로 수다 3시간 매번 반복이고. 들었어요? 오빠도 그래? (절레절레)! 
    남자들이 만나면 절대로 안 되는 최악의 여자가 누구냐! 누굴까? 여자들이 만장일치로 손꼽는 게 자기 남자를 창피해하는 여자. 언제 발 뺄지 모른단 거지. 그렇지만 오리발 내밀지 않고 결혼까지 가는 사례라고 왜 없겠나. 뿐만 아니라 사람이 돈 없이 어떻게 사나. 그래도 자랑스러움보다 부끄러움에 치우친 사례, 우리 주위에 내 친구들 중에 얼마나 많냐고. 당장 친구의 남자친구만 봐도 배아프거든.
    그게 처음부터 의도적이라면 환승이별용이고, 그럭저럭 자의 반 등떠밀림 반이면 보험이고, 그마저도 아닌데 일단 만나가면서 알아본다는 건 긴말 필요없어. 사랑! 딱 사랑이지. 당연히 숙녀 인생 처음이라면 첫사랑이고. 무슨 객관적 일관성조차 모든 게 내게 최적화되어야 한다는 3인칭 같은 1인칭 시점? 사석에서 단짝끼리라면 상관없지. 그러니까 '다음 사람에게는'라는 노래만 선곡해도 아찔하는 거고. 자길 연애인처럼 대우하고 떠받들며 꽃 들고 쫓아다녀주었으면 좋겠다면서, 자꾸자꾸 비교를 해. 안 그래도 만년 '지는 비교'에 짜증 그래프가 오르락내르락하는 유부남들이 얼마나 많은데. 사랑의 탐색전에서조차 총각이 사랑의 차트에서 비교당하라고? 심지어... 뒷조사 당하느니 차라리 돼지고기 소고기처럼 등급 매겨서 만나는 게 1000번 만 번 옳은 일. 아줌마가 느끼기에 자기는 남편한테 꽃 들고 기다리고 쫓아다니는 '여자의 판타지'를 느껴보지 못했다면서 서운하고. 결혼 후에도 불만족을 따지면 남편 흉보기는 끝이 없고. 그렇지만 내 아들이 뒷조사 당하며 사랑의 차트에서 10에 턱걸이해서 남자 10명을 동시에 가지겠다는 숙녀를 만난다? 여자가 그 꼴 어떻게 보나. 나는 아마존이고 딴년들은 아마존이면 안 된단 거잖아. 자기만 만년 신부요 자기 빼고는 전부 싹 다 신부들러리래야 그나마 속편하시겠대. 여자만 차곡차곡 서운한 거 쌓아둘 수 있는 거 아니야. 무슨 여자만 독보적인 기억력의 명수인 줄 아시나.」 





    6

   「소개팅 자리라는 첫 만남에서조차, 들었어요? 듣긴 뭘 들어, 자기 차인 얘기 들었녜! 자기만 사랑의 주인공이라 그거지. 뿐만 아니라 101일 동안 신나게 작전을 펼쳐 사랑할 당시라고 아닐까? 아닐 리가 있나. 여지없이, 자기 사랑의 탐색전 완패담을 들었녜! 응? 여기서 끝나면 섭하지. 2번째 만나 사랑하고 영화보고 드라이브하고 어쩌고저쩌고. 그렇게 "나 사랑해?"라고 묻는 걸로 끝이 아니라, 나 같은 여자친구가 어딨냐 라는 호언과 함께, 만난지 얼마 안 된 사이에서도 뭐라더라? 그냥 사랑의 탐색전이 아니라, 딴놈 누구라더라 어떤 뭇남성한테 진한 사랑 나눴다 버림받았고, 그러므로 '떨다'라는 능동격은 생각도 못한 체 자기도 모르게 피동격으로 '떨었대'!
    와~ 별의별 경우의 수가 다 있다니까. 응? 100일 동안 탐색전으로 선물 오가고 어쩌고 그러다 진한 사랑없이 헤어졌는데 1년 있다 여자가 연락해서 꼬리치는 예. 물론 재결합은 거의 어려움. 하물며 10년 후에 연락하는 남자, 20년 후에 나타나는 여자? 뭐가 됐든 그 뭐든지 찾는 족족 있다니까요 글쎄. 또 만나면서 3년 기다리다 떠난 예. 5년 사귀다가 딴놈과 바람피는 게 더 좋으니까 신제품을 선택했다가, 둘을 견주니까 구관이 낫거든, 그래서 전남친한테 돌아가고자 하는 숙녀까지. 남자 뿐만 아니라, 사랑의 기본부터 엿장수 맘대로인 예. 부지기수라니까 그러네. 바로, 그래서~!
    그러니까 뭘 좀 아는 남자 가운데 플레이보이들은 자기 밖에 모르는 여자는, 일절, 만나지를 않아. 어떡하다 오다 가다 만났을지라도, 만나는 드리겠으나 모양새 갖춰서 꺼져드린다고. 아시겠소? 남자가 '개나 소나' 범주에 포함되어드리겠다는데, 여자를 잡지 않으니까 또 그래서 싫대. 응?
    짜증나는 스타일 남자가 소개팅에서 연락처 물어보면 물어본다고 싫대, 맘에 딱 드는 남자가 연락처 안 물어보면 또 안 물어본다고 싫대. 친구한테 고자질해서, 또 암컷 싸움닭은 지가 무슨 감독이나 되는 것처럼 '두고 봐라 어째라' 선전 포고하고. 걘 지 남자친구한테 무릎 꿇고 구걸하고 울고 불고. 것도 그냥 취미이자 습관적인 일과. 진짜 무슨 노예처럼 보험 마냥 붙여놓기만 하는데. 자존심도 없이 모든 인맥 모든 연락처를 파고들어서 굴욕적으로 붙어서 남자 몸을 얻으면서. 자기 억울한 거 타인에게 굴욕감 씌워서 보상 받으려고 하고. 그러면서 남자친구가 엇그제 무릎 꿇고 싹싹 빈다고 자랑하고. 거 무슨, (절레절레). 자기 학교에서 찐따 취급받았던 거 어떻게 포장하고, 회사에서도 물과 기름처럼 섞이는 거 왜 그런지는 쏙 빼놓고. 뭐 만나면 아무나 싸워, 누구한테나 다 져주래? 어른이? 여자가? 뭐 아무튼 돌아가서.
    그래서 환승이별녀와 얼굴 팔리는 거 완전 싫어하는 바람둥이는 평행선일 수밖에. 
    징징거리며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걸 맞춰주고, 져주고, 남자가 팔방미인으로 변신해주고, 응?
    흔히 진하게 사겼어도 남자 능력 갖춰지기를 3년까지 한계치로 기다리다 남남되는 여자처럼
    웬만한 상남자도 역시나 그거 버티다 버티다 3년 4년째 헤어지면서 딱 한 마디하지, 넌 너 밖에 모른다고! 
    웬만한 상남자 축에도 못 끼는 늑대이자 촌닭이야 기본적으로 두셋으로 나뉠 테고. 
    첫째, 초반에 줄거리 다 읽고 그림 다 보이니까 시작 자체를 하지 않는 남자.
    둘째, 받아주고 받아주고 다 받아주면 끝까지 해피엔딩으로 가든가.
    셋째, 아니면 헤어질 때 선물했던 거 다 토해놓으라고 하던가. 
    그래프와 통계 뻔한 데 엄한 확률에다, 심지어 별로 좋아하지도 않은데, 베팅하라고? 
    돈과 시간이 남아돈다면 몰라도, 인생이 그리 한가한 게 아님. 
    말이 통하는 남자와 뭘 좀 아는 남자. 각자 어울림과 일종의 궁합, 취향과 구미가 다를 테니 뭐라 말하기 곤란하지만. 
    여자의 육감이 하필 저 멀리 가서야 뒤늦게 발휘되길 좋아하는 것처럼, 그분들은 초장에 사랑의 시소에서 내려버리는 게 특기. 
    무슨 여자만 몇 시 방향 어떤 남자 스타일? 트럭으로 수 백 대를 가져다 줘보라는 둥 뭐라는 둥. 
    여기서 중요한 점. 남자는 여자보다 비교적 더 느긋함. 여자야 참말 반 농담 반으로 그렇게 말한다지만.
    남자는 진짜로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고. 그런데 여자도? 그런 여자도 있긴 있겠으나. 나중 봐 보시라. 
    여자들끼리 모임이든 어디든 과연 그런 말 호언하고 떵떵거리고, 호통꾼처럼 큰소리 뻥뻥 치던 숙녀가. 
    나중 과연 몇 퍼센트나 자신의 소신을 지키시는지를. 에잇~ 여자들끼리 잘 아시면서!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줘든, 참 괜찮은 사람끼리 만나든, 기다린 보람이 그댈 결코 낙담시키지 않을 인연이든. 그렇게 단둘이 첫인상 최고에, 첫눈에 홀딱 반했다면 몰라도. 그게 아니라 4 대 4로 만나든 적당히 주기적으로 소개팅으로 이성을 만나든. 여자도 여자들 나름대로의 이상과 현실감이라는 게 없을 수가 없듯. 과거 있든 지저분하든, 대어 중의 대어도 다 좋단 사람 있고 그쪽에서 아무리 좋다고 매달려도 끝까지 꺼져드리는 남자도 있는 법. 다 그래서 4 대 4로 모두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매력은 누가 1등, 귀엽고 웃김은 누가 1등, 참하고 미모와 지성 담당은 또 누가 1등일지라도. 어중간하게~ 어정쩡하게~ 고혹적인 단아함을 선보이지 못하는 여자. 그 자리에 있는 모두에게 이렇게 말하면 남자들 전원 꺼뻑 넘어가버리는 것. 10대는 어쩌면이요, 20대는 아마도, 30대는 다 필요없고, 40대는 올인. 그 말은 무엇이냐, 바로
   「제가 지금까지 남자를 단 1번도 사겨보지 못했는데...」
    지만 여자라고, 지만 주인공이라고, 자기만 메조소프라노요, 자기만 프리마돈나이자, 자기만 원톱 발레리노인 줄 아는 여자? 
    여자들이라면 몰표에 가까웁도록 꺼리는 남자 스타일이 과연 어떤 부류인데. 그럼 남자라고 손가락만 빨까?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레이저 스캔하면 피곤한 스타일이라고 딱 나오는데, 
    다변가 감당할 자신 있으면 귀에 피나도 끝까지 가는 거고. 
    허영심 채워줄 자신 있으면 선물공세부터 꽃 들고 쫓아다니고 따라다니고 기다리면서 그녀의 마음을 얻는 거고. 
    그러다 마음 가면 몸이 가게 되어 있고. 결말이 좋든 안 좋든 탐스러운 사과를 따든 아니든. 
    번따녀는 꺼뻑 넘어가서~ 사랑이라는 깃발은 이미 꼽혔고 동네방네 소문 다 났는데, 
    똥파리 전마누라라는 둥 파리끈끈이녀라는 둥 마음 주고 정 주고 시간 주고... 절반쯤 따먹혔는데. 
    나중 생각하니 사랑하지 않았다? 노노노노노노노! 
    여자가 남자한테 제대로 사랑받지 못했을 뿐, 여자는 남자를 사랑했던 것! 
    화장실 들어갈 때 나올 때 다른 것일 뿐. 
    나이트클럽 들어갈 땐 으쌰으쌰 나올 땐 이런 젠장~!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하시는 거라고요. 네? 
    그러니까 왜 20, 30대 숙녀가 하늘을 우러러 자긴 모태솔로라는데 남자들이 미쳐버리는 걸까? 
    우리는, 오빠라는 말만 들어도, 미쳐버리거든. 농담이고! 비교 대상 없고, 때 묻지 않았고.. 뭐 이유야 얼마든지. 
    적어도 남자에게 순결이란 딴 게 아니니까. 여자가 생각하는 전적과 남자가 판단하는 연애사, 그게 어디 같나? 
    그렇다고 여자들끼리 사석에서 무슨 도덕론만 말하나?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소리! 
    잘 아시면서 내숭은 내숭은 그냥 말도 못허지. 허허. 아 글쎄 그래유, 안 그래요? 네?」





    7

    「남자보다 훨씬 마음의 결이 신비한 여자, 그런 의미에서 '여자의 적은 여자다'라는 웃긴 말이 있는 거지. 그냥 여자는 나쁘다는 말이 아니야. 남자는 모이면 리더를 뽑고, 여자는 모이면 편을 짠다 끼리끼리 뭉친다. 그걸 꼭 나쁜 의미로 인식하면 만년 제자리걸음이고, 알기 전과 후가 다르다면 누구야 머머하자 나랑 바꾸자 내 아들하자 그러는 거고. 안 그래도 여자는 나이 때문에 업그레이드하기 어려운데? 나랑 별 관계 없어도 남자 대 남자, 남자 대 생판 모르는 여자. 호불호에서 공을 쫓고 목적 뚜렷하고 표적 확실하니까, 뛰고 치고 골대에 넣기 바쁜 남자. ~와 달리 여자가 싫어하는 게 그 얼마나 많은데. 고양이 발톱 팍팍, 치아 팍팍. (몸짓)! 줄임말 '여적여', 어? 1차적으로 느끼고, 받아들이고, 체감하며. 결코 그럴 일이 아닌데 말이야. 왜 그럴까? 그러니까 뒤늦게 의전 행한다는 식으로 그녀를 앞서 가면서 대접해드리면, 왜 나보다 빨리 가녜. 짜증나고 신경질부릴 일이지. 연애 탐색전 당시에야 둘 다 호감인데 뭘 해도 좋지 왜 나뻐. 하지만 시간 좀만 지나 봐. 절대로 그녀보다 앞서 가서는 안되는 것. 왜? 잔말 말고 따라와, 그녀 기분 나쁘니까. 기분 나쁘다고. 약간이라도 여자가 다혈질 스타일이다? 그러면 안돼~! 절대 안돼. 반면 뭐 적당히 무난하고 가족이라는 장르에 충실하다면야 점점, 어? 점점 나란히 가던 연인. 차이는 점차 벌어지는 거지. 누가 앞서 가고 누가 뒤에 따라가든지. 0.5미터. 1미터. 2미터. 3미터...... 찾아보면 7미터도 있고 자동차 따로 타고 가는 예도 있긴 있지. 그러다 통보는 기본이요 적당히 자유로운 의리에 정착할 수도 있고. 어디서 사고만 치지 말아라, 막장 드라마처럼 숨겨둔 애 그런 건 안된다까지. 아 또 있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사람들이 얘기하듯이 마누라 등쳐먹는 놈이라는 소리 좀 그만 듣게, 제발 사업 새로 벌여 그만 좀 망해라 이 인간아. 그럴 수도 있고. 
    하여튼 남녀는 말을 섞으면 섞을 수록... (절레절레)! 그러니까 그녀 말에 토를 달면 안 돼. 그럼. 말이 길더라도 언젠가 끝나. 어? 잠은 자야되잖아. 그녀가 화를 내더라도 기다리다 보면 잠잠해지거든. 힘빠지던가 지치던가 배고프던가. 어? 그보다 더 좋은 방법? 말을 안 하면 돼. 스님처럼 묵언 수행! 동네 똥개처럼 눈 깔면 되지. 밖에서 으쌰으쌰 정력적으로 왕성한 활동을 자랑하더라도, 집에 들어가기만 하면 그냥 시름시름 맥없이 구석지에 찌그러져서 앓는 시늉을 하면 돼. 응? 여자? 뭐 여자? 모든 여자는 여신.
    동물로 비유하자면 남자는 개 여자는 고양이. 괜히 살쾡이를 들먹일까. 그럼 그걸 아니까 맹수의 장점을 살려야지, 왜 하필 뒷북이야. 어? 맹수의 장점 다 까먹고 뒤늦게 여자의 직감? 어? 남자는 시각 여자는 청각. 물론 듣는 게 더 오래가. 훨씬 강력해. 뿐만 아니라 읽기의 시작은 해독. 읽기 능력을 결정짓는 3가지 핵심 요소는 해독, 배경지식, 동기. 왜 인문교양적 소양을 갖추는 게 좋냐, 모르면 안 되거든. 간접 취득한 배경지식이 다소 모자라더라도, 남자는 집에 있으면 안 된다 남자는 무조건 밖으로 나가야 한다. 막 그러면서 우리는 뛰고, 공을 때리고 쫓고, 넣고, 으쌰으쌰 우르르르 딱 그러거든.
    그런 한편 여자는 듣기에서 끝나느냐, 어른이 되어서도 그럴듯한 보이는 어설픈 말들에 휘둘려 살다보니 여전히~ 여태 상상력이 최고인 줄 아느냐, 아니면 수다 3시간이냐. 안 그래도 착하고, 부드럽고, 여리고, 권위에 약하고, 사랑에 대해 마음 약하고. 공상과 상상력과 듣기가 기본인 수다대회에만 머물러 있으면 그냥 꼬마들 그림 단계에서 멀리 못 가. 거기에만 머물면 피카소 누구 누구처럼 꼬마들 그림을 닮은 명화에 근접하기 힘들다고. 안 그래도 세상은, 남자는? 액자에 아무 그림이나 담으려고 하는데? 뭔 말로는 누구의 무엇, 누구의 무엇, 누구의 무엇을 총합한 이상형 어쩌고저쩌고. 그래 봤자 꽃과 화병. 씨가 좋으면 그 어디에 뿌려도 잭과 강남콩 동화처럼 신기한 나무가 하늘 높이 자랄 수도 있는데. 밭이 워낙 좋으니 어떤 씨앗을 부려도 뭐든지 최고로 성장한다, 태생론이냐 난초론이냐! 그에 앞서 감별사가 병아리와 달걀 구분 못하면 어쩌나. 선구안 흐리멍텅하니 퇴락한 왕년의 누구를 만년 4번 타자로 기용하라고? 지금 장난하시나. 져주라는 억지는 말도 안되는 소리. 토끼는 다리가 살리고 늑대는 이빨이 먹여살리며 여우는 꼬리가, 꼬리가 지켜준다 너. 그래서 그녀들은 특히 여우짓에 민감하다는 점. 민감한 경구들을, 그냥 단지, 1차적으로만 알면 뭐하냐고. 어? 제일 좋은 마늘도 양파를 대신 못해~. 여자는 남자를, 남자는 여자를! 그 가운데 최고는 시작부터 끝까지 남자 얘기만 하는 숙녀. 농담이고. 잔소리 듣다 듣다 우리들 귀에서 피난다니까 그러시네. 의부증에 남자는 견디지만 의처증에 여잔 남자보다 견디는 정도가 달라. 이게 다 나나 되니까~ 앗! 너 여자구나. 여자들끼리 생색내는 거 싫어해도, 나중 시간 지나고 봐라. 생색내는 걸로 눈물나도록 웃기는 게 어떤 건지 알게 될 테니까. 어? 우리는~ 달리지 않으면 안돼. 
    너 그건 알아 둬. 웬만하면 어떤 뼈다귀라도 환장하겠으나, 개는 단물 빠진 뼈다귀를 좋아하지 않는다네. 풍부한 젤라틴, 양질의 골수, 탐스러운 향기. 그렇다고 남자들이 다 개란 말이 아니라, 남자는 강아지 여자는 고양이. 그런 습성의 차이가 있으니까. 그러므로 그에 따라 단점과 장점을 거꾸로 구사하지 말라는 뜻에서 하는 말인데, 말 거 참 나 더럽게 길어졌네 그려. 
    그런데 지금 이 얘기가 왜 나왔지? 아 맞다, 이 모든 게 하필 너네 월간지가 놓칠 수 없는 주제구나. 
    깜빡 잊고 있었네. 내 정신 좀 봐. 아, 당했다.」





    8

   「아, 땄다. 힘드네. 어려워. 쉽지 않아. 하긴 돈 버는 게 그리 수월할 리가 있나.」
   「따? 뭘 따?」
   「긴 대사.」
   「내가 무슨 빨개도 벌레 먹은 사과야 뭐야?」
   「아니. 오빠는 악보야. 그럼 난 악기인가? 그럼 연주자는 어딨나? 그야 그분이 로봇이든 마술사든 우리가 알 게 뭐야! 그러니까 말이지, 그게 왜 이렇게 어정쩡허니 각이 나왔는고 하니, 응? 바로 이번 달 마감 다 됐는데 분량 부족해서 그래. 서운하지 않게 톡톡히 책정했어.」 라는 말과 함께 그녀가 내미는 봉투. 
    특유의 거드름과 넉살을 뒤섞어 NB는 재빨리 내용물을 확인했다. 
   「뭐야? 달랑 1장이 아니잖아? 겨우? 꼴랑? 게다가 무슨 선물 교환권 어쩌고저쩌고? 심지어 추첨에 당첨되야 준단 말이잖아?」
   「오빠. 넣어둬. 응? 오빠.」
    이게 더 이상해. 완전 이상하지. 얘 여자 맞아? 편집장 오래 하더니 변한 건가? 
    악수할 때 팔꿈치 살짝 위를 가볍게 만지듯, 골반위 성감대를 어떻게 슬쩍 스치듯. 
    그렇게 톡톡 팔을 다독이는 얜 뭐지? 뿐인가! 그게 끝이 아니라, 
    가만히 체온을 전달하는 것 이상은 꿈도 꾸지 말라는 듯 그녀는 NB의 손등을 살며시 만지며 악력 꿈틀, 눈빛 윙크.
    생긴 건 딱 숙녀인데, 하는 건 능글능글 능구렁이처럼 능글맞기로 어디서 그 짝을 찾을 수 없는 능청꾸러기야 뭐야.
    힘은 개미가 다 빼고 배짱이가 차익 챙겨서 튀는 거냐고 뭐냐고. 기를 받아도 모자를 판에 말이야, 어?
    아아, 닭 쫓던 개 지붕쳐다 보는 이 기분은 도대체 뭐지?
    그래서 듣느라 고생했다며 빨린 기 금방 충전될 거라면서 격려라도 할 생각은 쏙 들어가버렸다. 





    9

    이러쿵저러쿵 할 거 없다. 잔소리 잔머리 굴릴 거 읎단 말이다. 어차피 귀걸이 가게에서 귀걸이는 잘 팔리고. 시시콜콜한 드라마도 뻔하다지만 보다 보면 또 재미있다. 벽에도 귀가 있다. 세상에 비밀은 없다. 사후 세계는 있다. 뭐라고? 뭐 아무튼 착하게 살자는 얘기쯤으로 알면 그만이고. 아무튼 잔뻔치도 바닥났고. 잔재주도 힘 빠쳤고. 이런 말 하면 뭔가 약간 저속해보이지 않을 수 없겠으나 때가 때인 만큼 우리끼리니까 하는 얘기지만, 응? 뭐랄까 그 어떤 잔챙이들이 끌린다고나 할까? 다 말이 그렇단 거고. 웃자는 농담에 말꼬리 잡히면... (절레절레)! 다 굶주린 그분들 심정에 대한 동조..측면의 의미 이상은 절대 없고. 아니 말이야 바른 말이지. 철부지 타락마를 타고서 타락 풍조가 만연했던 방탕의 호기에 빠져 정신 못 차리던 시절, 그건 그냥 타인들의 영웅담일뿐. 돌아보면 아니, 절대 뒤돌아 보지 마! 개가 짓을 때 늑대는 제 할 일을 한단 말이다. 뿐인가? 한겨울인데 모기가 심심치 않게 근처에 얼쩡거리지를 않나, 다큐멘터리 쫌만 심취했던 상남자들은 아주 아주 잘 안다. 바로 하이에나가 절대적인 밀림의 강자라는 것을. 표범과 치타는 그냥 애교. 그 뿐만이 아니다. 촌닭, 뱁새, 똥파리... 어? (절레절레)! 딸아, 아빠 빼고 이 세상 모든 남자는 몽땅 늑대이니라~! 그런데 NB가 그 말을 왜 그렇게 잘 기억하고 있지? 도대체 누가 그 말을 했다고. 그게 명언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어쨌든 뭐 틀린 말도 아니니 넘어가고.
    자로고 옛말이 틀림없다. 다름 아니라 그 뭐더라? 올커니~ (딱), 춤판에 뛰어들었으면 춤을 추어야 한다. Y존만 소중한 게 아니라 인생이 귀중한 것. 그런데 시간낭비 할 만큼 했으면서 또 공상을. 다 배경지식과 고급스러운 안목에다 근사한 취향에 비례해서 상상력도 함께 가는 거지. 무턱대고 상상력이 중요하네 어쩌고저쩌고. 다 있어 보이는 말 뿐이고 응큼한 공상을 위한 명분이자 핑계일 뿐. 그렇게 어쩌다 무논리적으로 NB는 허당이 최근 뭘로 변신했냐를 고심했다. 교양가? 전문가? 일반가? 만능가? 돌팔이? 난봉꾼? 만담가?
    지금 그럴 때가 아니다. 꾀돌이가 궁리하는 동안에 머저리는 강을 건너버린단 말이다. 어? 사자가 하지 못하는 것을 여우가 한다고! 
    그래서 NB는 오전에 여성환상 1.5 사무실에 들렸고, 오후에 환상문학잡지 미스테리아에 들렸다. 밀린 원고료를 받아내기 위해서. 
    걔네들이 자꾸 준다 준다 준다면서 미루는 걸 보니 누굴 호구로 안 거지. 사람 뭘로 보고 말이야. 보자 보자 하니까 뭐... 그런데 또 그는 걔네들 말을 듣고 보니, 형편을 이해하고, 
    그동안 자기도 모르게 빨아들인 기력에 담보로 남은 환상까지. 결코 손해본 장사는 아니었고. 그러다 그럭저럭 알고 보니 못 받은 정당한 노동력의 댓가가 그리 썩 많지 않다는 걸 알게 됐다. 괜히 혼자 계산 잘못해서 머쓱해졌다. 그럼 이제 퇴근 시간이 가까와지는데 뭘 한담? 돌아가는 사정을 보아하니 이건 뭐, 뭐야? 뭐야 이건? 어? 이건 뭐 초보 중의 초보 견습생도 아니고. 저번에 걔 누구야 이름도 잊어먹었어. 하다 하다 아는 동생들도 다 떨어져나갔고. NB가 알기로 인생이란 그랬다. 지금 생각나는 명언은 그거였다. 바로, 가장 능숙한 목수는 대패밥을 거의 내지 않는 목수다. 간질간질 쾌감이야 초짜가 최고라지만 원숙미야 베테랑 헤어드레서지. 그런데 금방 끝나 약간 서운하기 마련. 그래서 어쩌자고? 요 앞 맥도널드 새로운 아르바이트생한테 눈독들이고, 그 옆 카페 웨이트레스한테 껄떡대며, 다시 그 옆 바텐더한테 노련하게 접근할 일 있나. 다 부질없다. 몽땅 재수없다. 전부 재미없다. 뭐하러? 싫단 말이다. 귀찮다고. 취미도 없어. 아니 왜? 의미 없지. 비전이 어딨어. 떡밥 아직도 뿌릴 일 있나. 밑도 끝도 없이 떡밥 한정없이 뿌려보면 얼마나 기운 빠지는 줄 아시나? 몰라도 된다. 그걸 뭐 꼭 알아야 하나? 그게 뭐 얼마나 중요한 일이라고. 그럼 뭣이 중헌디? 소중이가 중허긴 중헌디 도대체 그 소중이가 뭐냔 말이지. 어? (절레절레)! 인생이란 뭐 그 뭐야, 바나나를 먹으려면 바나나 껍질을 벗겨야 한다 그렇긴 한데. 그런데 야자를 깠더니 이미 빨대 꼽혀 단물은 빨렸더라? 거 참 나 더럽게 재미없구만. 아 서술자가 아니라 바로 NB가 말이다. 
    그래서 그가 꺼낸 (단기적으로) 최후의 카드는 모험이 아니라 여행이었다. 자발적 가택 감금 해제하고 탈출한다는 뜻이었다. 말하자면 세상사 그렇다. 보아하니 동물들도 그렇더라. 바로, 늙은 개는 아무것도 없는 데서는 짓지 않는다. 노장의 노련함이란, 능란한 맹수는 괜히 힘빼지 않는 것. 그렇다고 난 늙었어 그런 날 보며 헛기침을 하시는 분들은 어떠실지 라는 말이 아니라. 그는 그렇게 당분간 영감이 바닥났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아찔한 착상에 도움이 되고자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안 그래도 환상문학잡지에 연재하면서 매번 꼬박꼬박 원고료는 넙죽넙죽 받아챙기면서 내내 드라마 장르 그 뻔한 이야기만 궁시렁궁시렁 나불대며 써제끼면 어떡하나. ~라는 듯 마라의 무언의 압력. 생각만 해도 발바닥과 발가락 사이에 땀이 다 날 지경. 간혹 그녀의 직접적인 압박. 으~ 소름. 어디서 주서들은 속담 웬만치 좀 울궈먹으라는 둥, 간사한 재간둥이 땡깡부리는 거 꼴보기 싫다는 둥 어쩐다는 둥. 그야 어떻든 신비니 환상이니 새로운 인생과 아름다운 사랑 그리고 황홀한 쾌감, 아니. 아무튼 색다른 분위기에서 기분 전환도 하고 마음을 가다듬고자 그는 떠나기로 했다. 참고로 핑계 아닌 핑계를 대자면 어딘지 모르게 최근 '그는 그는'라는 3인칭이 '나는 나는'라는 1인칭보다 낯설었다고나 할까? 일전에도 한번 대화가 잘 써지니 대화밖에 안 써지고 막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좌우지간 사과는 파랄 때 따면 안된다. 때를 기다려야 한다. 호두를 깨야 호두알을 먹을 수 있다지만, 그런데 까고 봤더니 골았더라? 사자처럼 느그적느그적거리든 늑대처럼 굶주리든. 갔다 오면 뭔가 가기 전과 달라지기를 바랄 수밖에.

,

BLOG ─ 162

from 소설 2020. 1. 15. 17:56

    1

    그는 본색을 드러내고 자시고 할 활기가 떨어졌다고 해도 과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어찌 된 영문인지 몰라도 여태까지만 보자면, 잔소리 얻어들을 복부터 부족하기 때문일까? 괜한 잔병 탓에 최근 시름시름 앓기만 했을 뿐. 이 일을 대체 어쩌면 좋을까. 어쩌긴 뭘 어째. 병원 가서 처방받고 약 먹고 나으면 그만이지. 무슨 애도 아니고 그 엄살 누가 귀엽다고 봐주겠냐고. 일단 봐줄 사람도 없고 말이지. 그 때문일까? NB는 이젠 정말로 비실비실 어리버리한 슬럼프가 당도한 걸 통감하고 말았다. 왜 아니겠나. 일만 하다 바보가 되어버린 꼴이지. 그러므로 이와 같은 더럽게 재미없는 일상을 탈출하려면 혼자 힘으로 어렵다고 결론 냈다. 그래서 그는 동네 친구 폴에게 전화를 걸었다. 함께 놀기 위해서. 
   「폴. 뭐해?」
   「뭐하긴. 일하지.」
   「일? 일 재미없지? 너, 일하기 싫지?」
   「아닌데. 일 재밌는데. 일하기 좋아. 공부도 재밌었거든. 괜히 일 잘하는 사람 부추기지 말고 심심하면 딴 친구나 알아봐. 나 바쁘니까 이만 끊을께.」
    뚝. 이 자식이...! 
    그런 한편. 질투가 날 정도로, 의뭉스러운 환상머신은 유쾌한 기분과 상쾌한 만족감을 왜 내게 선사하지 않는 것일까. 라는 공상에 빠지려던 찰나 크리스티가 NB의 사무실로 찾아왔다. 
   「크리스티. 연락도 없이 웬일이야?」
   「왜, 난 여기 찾아오면 안 돼?」
   「누가 안된데? 누구야? 어? 그 인간 누구냐고. 싸움 잘해? 걔 나한테 걸리면 가만 안 둔다고 전해.」
   「뭐 그건 그렇고. 오빠. 아니 정말. 어? 나한테 왜 그래?」
   「아 저번에 남자 소개시켜주려다 만 거? 너 아직도 그거 담아두고 있었니? 애들한테 얘기 못 들었어? 너한테만 그럴까? ~라고는 생각해보지 않았니?」
   「그건...」
   「나한테 왜 그래? 또 자기중심적 사고체계. 그렇게 하도록 만드니까 그렇지. 안 그래?」
   「그런데 있잖아. 오빠. 나 할 말 있어.」
   「뭔데?」
   「오빠, 큰일났어.」
   「아 뭐냐고 그게?」
   「나 남자친구 생겼어.」
   「어? 정말?」
   「응.」
   「그럼 걔 만나러 가지 여긴 왜 왔니?」
   「오빠 놀려주려고.」
    그러면서 크리스티는 온 지 5분도 채 되지 않아 돌아서서 가버렸다. 쟤 뭐야?
    그러다 잠시 후. 
    동네 친구 켄트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어. 친구. 켄트지 너가?」
   「그럼 내가 켄트지 칸트냐? 그건 그렇고. 너 중병에 걸렸다며?」
   「내가?」
   「그럼 중병에 걸린 게 너지 나냐?」
   「그건 또 뭔 소리야? 어디서 헛소문을 듣고서 그러는데?」
   「헛소문? 장안에 소문이 쫙 퍼졌는데 숨길 거 없어 친구. 병은 알면 반틈은 치료된 거랬나?」
   「어디서 뭔 얘기를 들었는데 그래?」
   「네가 희귀 난치병이랬는데. 후천성 면역 적혈병? 아닌데. 뭐랬더라? 위궤양? 아닌데. 혹시 광견병이랬나? 아닌데. 그건 사람이 걸리는 게 아닌데. 아 맞다. 췌장암. 아니다. 교묘세포종이라던가?」
   「어디서 개 풀 뜯어먹는 소리를 듣고서 난리긴 난리야? 컴퓨터로 치면 그냥 잔고장일 뿐이야. 시간 조금 지나면 다 좋아져.」
   「그래? 그럼 다행이고. 쾌차하길 빌어 친구.」
    그러면서 켄트는 전화를 뚝 끊었다. 말은 되풀이되면서 커지기 마련이라더니 참 내. 
    심심함으로 볼 장 다 본 건가? 재미없음으로 갈 데까지 간 거 아니냐고. 도대체 언제 올 것이 오냔 말이지. 어? (절레절레)! 
    아직 퇴근하기 전까지 마음을 잡고 일을 해야 하니까 그는 분위기를 전환했다. 
    안토니오 비발디 / 2개의 합창을 위한 <딕시트 도미누스> RV594
    (일부 예외 빼고는) 아무리 높이 나는 새라도 먹이는 땅에서 찾는다. 뚜벅뚜벅 영차영차. 보고 읽고 듣고. 항상 그렇듯이. 
    그렇게 어느덧 해는 기울어 노을이 멋진 저녁이 찾아왔다. 
    그렇게 그는 동네 아지트로 갔다. 
    화면 전환. 동네 아지트 도착.
    화면 전환. 동네 아지트 도착.
   「친구. 뭘 그렇게 꾸물거리고 있어? 대체 속으로 뭔 생각을 그리 하는데 그러냐고. 응?」
   「아니 뭐 그냥. 이 생각 저 생각 하는 거지. 아! 너네들 한동안 안 보이던데 무슨 일 있었어?」
   「그럼. 아 맞다. 너한테 말 안 했구나. 우리 3 대 3 소개팅했어. 결과가 어떻게 됐을까?」
   「어떻게 됐는데?」
   「꽝 됐어. 근데 중요한 건 우리가 3 대 3 소개팅을 또 했다는 거. 허허허허허.」
   「나만 빼고? 너네 정말 이러기야?」
   「너가 전화받지 않길래 급히 대타 투입했지. 그러게 누가 전화 안 받으래?」
   「전화 안 왔는데?」
   「부재중 알림이 뭐 늦게 뜨거나 착오가 있을 수 있어. 어쨌든 넘어가고. 그래서 소개팅 결과 어떻게 됐을까?」
   「어떻게 됐는데?」
   「걔네들이 그러더라구. 단번에 결정하기 힘든 황금비라고. 네가 좀 듣기 거북하겠지만 기왕 말이 나왔으니 대충만 말하자면 그렇다네. 뭐가 그러냐, 바로 이대로 몇 번 더 만나보자는데?」
   「3 대 3으로?」 
    끄덕끄덕!
   「계속?」
    끄덕끄덕!
   「선수 교체는?」
   「당연히 없지.」
   「」
   「왜 말이 없어?」
   「나 원래 말 없는 남자야.」
    이상한 미소를 남긴 채 그렇게 남자 친구들은 걔네들끼리 또 딴 데로 가버렸다. 
    NB는 생각했다. 쟤네들은 3 대 3으로 소개팅 연타이자 장타를 날리는데 난 뭐야! 무슨 거대기업 드림팀 이사회도 아니고 말이지. 여자애들은 또 뭔 꿍꿍이야? 말은 타서 달려봐야 알고, 사람은 친해봐야 안다. 그건 그렇지만 이젠 그 흔한 탐색전조차 전멸? 뿐만 아니라, 아니 됐고. 갑옷을 입어도 돼지는 여전히 돼지에 불과하다. 그럼 트로이의 목마는 말이 아니라 알고 봤더니 개더라? 알 게 뭐야. 
    그러더니 사라가 지나가면서 이렇게 말했다. 
   「오빠. 요즘 인공지능 지니는 한가해? 할 일 되게 없나 보지? 겁나게 한가하대? 그 잘난 환상머신은 아꼈다가 뭐에다 쓸 건데?」
    NB는 즉흥적으로 대꾸할 말 3가지 가운데 최고의 유머와 밉지 않은 풍자가 돋보이는 답변을 적극 맞받아치려는데. 
    그런데 이미 사라는 저만치 지나가버렸다. 저년이...! 
    허허. 시치미 뗄 일은 물론 조롱받을 일도 없는 요즘. 뭘 해도 애간장 탈 일은 절대 없었다. 결코 읎어. 그럼. 홀딱 반할 만한 새로운 관심사가 어딨나. 바랄 걸 바래야지. 그래서 이처럼 정처없이 또 아지트를 찾아왔는데. 아, 그러면 뭘 해! 내가 다시 여기 오나 봐라, 라고 말할 뻔 말 뻔 하다 그는 무작정 그곳을 나왔다. 





    2

    핏줄은 속일 수 없다던가? 여우를 못 잡아먹어 안달이 난 늑대의 마음, 나에게 없지 않았다. 솔직하고 자시고 아니라면 거짓말. 허나 단지 굶주리기만 할 리가 있나. 나를 태워주는 당나귀는 나를 뒷발로 차는 암말보다 더 가치가 있다는 게 세상사라지만. 전부 몽땅 남들 얘기. 아니면 뻥. 꿈속의 신비감이 불러일으킨 이상한 기분 그런 게 어딨어. 개꿈조차 기억도 못하기 일쑤. 인생은 장밋빛 만은 아니라는 걸 내 모르는 바는 아닌데. 모든 날이 잔칫날일 리도 없고. 아닌 게 아니라 권태에게 완패당하여 더럽게 재미없음에 흠뻑 젖은 셈이지 왜 아니겠어. 아니다. 쓰잘데기 없는 공상만 일삼아봐야 득 될 거 하나 없다. 모르진 않아. 다 안다고. 광고는 상투적인 수다 대잔치, 홍보(PR)는 누가 네 칭찬하더라 라는 것. 여자들은 후자 같은 사랑 이야기를 좋아한단 걸 왜 몰라? 그럼 뭘 해! 내 인생 이야기가 재미없으니까 툭하면 남 얘기나 찾아보는 수밖에. 그래 봤자 작은 냄비가 빨리 끓질 않나, 어? 흠을 잡는 사람이 물건을 사게 된다고 충동구매에 가뜩이나 부족한 품위 유지비를 낭비하질 않나. 이건 아니란 말이지. 속물적인 지성인이 마땅히 감수해야 할 질타 같은 스캔들. 현실감 많이 떨어지는 낭만적 모험가가 뭇 여성들로부터 받는 질투심. 그런 거 모르겠고. 자, 드디어 때가 되었단 말인가? 그런데 어떤 때가. 또 뭘 자빠트릴 잔꾀를 궁리하시게. 됐고! 
    그래서 나는 무작정 뛰쳐나가려고 했다. 집 사무실만 오가는 일상에서 어디든 좋으니 뭔가를 해야 하니까. 그런데 오라는 데가 있긴 있나? 
    ~라던 찰나 마침 딱 맞게 환상문학잡지 아, 격월간 미스테리아 편집장 마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오, 마라. 웬일이야?」
   「웬일은 무슨. 우리 사무실 아직 문 닫지 않았단 소식 알려주려고.」
   「어련하시겠어. 안 봐도 스카우트 제의 뿌리치는 게 취미인 편집장인데.」
   「농담할 기분 아니고. 월초 월말 나 바쁜 거 알지? 용건만 간단히 하자고.」
   「너도 노래 1절만 선호하니? 대체 본론이 뭔데 그래?」
   「잔말 말고. 너 잔병 다 나았지? 내 대학 후배가 있는데 곧 너네 사무실로 찾아갈 거야. 한동안 잘 부탁해.」
   「부탁? 뭔 부탁?」
   「걔 너한테 문학 배우고 싶데.」
   「걔? 나한테? 뭘 배워? 왜? 왜 하필 나야?」
   「왜긴 왜야. 걔가 널 찍었으니까 그러지. 의뭉스러운 이유는 너네끼리 따지든 말든 난 모르겠고. 문하생 청탁한 대신 원고료는 2배로 올려줄게. 됐지? 이만 전화 끊는다.」
    뚝. 
    얜 꼭 지 할 말만 하고 전화 뚝 끊는다니까. 하긴 마라도 세상사에 심지 굳은 여심이 살짝 닳아졌을까? 그래도 걔 앞에서 누가 늙었다느니 뭐라느니 하면 완전 싫어한다. 
    그건 그거고. 그런데 뭔 뚱딴지같은 소리지? 무슨 생? 뭐하러? 혹시 스파이? 그야 관상 보면 알 테고. 
    바로 그때 사무실로 노크도 없이 어느 숙녀가 불쑥 찾아왔다. 
   「오빠야? 사진보다 못생겼네. 에잇!」
   「네?」
   「오빠네. 생긴 건 꼭 석상 조각가처럼 생겼는데 뭐 그럴 수 있어.」
   「그럼 그대는 마라의 후배?」
   「그대? 오빠 고전을 너무 많이 봤네. 왜, 요즘 몰리에르 3부작이라도 읽고 계셔?」
   「뜨아! 어떻게 아셨죠?」
   「어떻게 알긴 뭘 어떻게 알아. 그냥 찍었지. 돌팔이 점쟁이도 그건 하겠다. 척하면 척이지. 응? 왜 요즘 부인과 사이가 안 좋나? 머머리스?」
   「아니 그렇게 심한 말을! 그런데 당신은 진정 마라의 후배 맞소?」
   「마라? 아 마라. 난 마라 언니의 8촌쯤 되나? 아무튼 말은 들으셨을 테고. 자, 악수나 합시다. 난 마고. 아저씨는? 뭐 딕? 그래 딕 해. 어이 딕 선생. 지금부터 선생은 내 오빠, 나는 오빠의 문하생. 관계 정리됐죠? 그러니 날 넘볼 생각은 마시고. 자, 뭐부터 하지? 일단 첫날이니 축배 먼저 들까? 그러지 말고 우리 바로 일부터 할까요? 난 뭘 하면 돼 오빠?」
    생기발랄하고 활기 넘치며 쾌활한 젊음. 좋긴 좋은데 난 너무 당황스러웠다. 이 일을 대체 어쩌면 좋담? 속으로 좋으면서 호들갑은 무슨! 그래도 말이야, 혹시라도 기 받으려다가 기 빨리면 어떡하냐 그 말이지. 뭔가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려다 뜬금없이 낯선 여인의 출연이라니. 난 갑자기 개꿈에서 깨어난 낭만적인 이상주의자가 된 것만 같았다. 이 무슨 개뼉따귀 같은 일인지 뭔지야 뭐 두고 보면 알 테고. 보아하니 나도 세상사에 부대끼며 깨달은 게 있긴 있다. 말하자면 관상을 보긴 보는데. 늘상 헛다리 짚는 게 걸리긴 해도. 어차피 개 두 마리는 하나의 뼈를 나눠 먹을 수 없다. 그런데 무슨 개소리 같은 공상?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라고. 어? 애인의 마음에 호응함을 넘어서 생각이 일치하고 싶은 욕구를 어찌 하냐를 고민해도 부족할 판에. 밑도 끝도 없이 무슨 뭐 문하생? 내게? 왜? 뭐하러? 그래서 난 빠짝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말하자면 자고로 말이야, 어? 세상사란 그런 것. 뼈다귀 하나에 두 마리 개가 싸우는 동안, 다른 개가 그것을 물고 달아나는 것. 그럼 얘 이름이 뭐였더라, 아 마고. 마고? 지가 무슨 여왕 마고야 뭐야? 아무튼 얘가 두 마리 개가 개 풀 뜯어먹는 말장난 하는 동안 개뼉따귀 물고 도망가는 불여우? 뭐 긴말 필요 없고. 꽃이라고 다 향기로운 건 아니다. 장미인지 튤립인지 그도 아니면 팬지인지 나중 정체를 드러내던가 말던가. 난 내 할 일만 하면 되고. 거 뭐 혼자 적적하던 차에 잘됐지 뭐. 
   「오빠. 어이 딕! 오빠 뭔 생각을 그리 하슈? 그러지 말고 전초전 삼아 시작부터 너무 빡빡하게 굴지 마시고. 기분 풀러 우리 클럽이나 갈까요? 에잇 까짓것 갑시다 뭐.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는 거죠. 안 그래요?」





    3

    1시간 후. 
    마고와 나는 클럽에 들어갔다. 
    그런데 알고 보니 거긴 마고가 아는 친구들이 적지 않았다. 
    당연히 평균 연령을 깎아 먹는 게 좀 걸리던 찰나 다행스럽게 마고가 내 옆구리를 찔렀다. 
   「오빠. 마고는 30분 있다 집에 들어갈 거니까 오빠는 마라 언니랑 놀아. 뭐해 안 가고?」
    내 이럴 줄 알았다. 어쩐지 느낌 세하더라. 
    그날 나는 물주만 됐고 뭔 일은 없었다. (절레절레)





    4

    지금까지 살다 살다 이토록 재미없는 심심함은 처음이었다. 정말로? 뻥이다. 이런 느낌 처음이야! 아 글쎄 뻥이라니까. 항상 그랬을 뿐. 늘 그랬다. 그러고 말고. 왜 아니겠어. 두 팔 벌려 환영할 환희를 포기한 지 이미 오래. 신나는 모험과 까무러칠 신비는 두 손 두 발 들고 잊었다. 아니 어찌 내게 이런 일이? 놀랍지도 않다. 허리띠를 졸라맬 수밖에 없는 현실, 안 그래도 별로 하고 싶은 일도 없었다. 드라마 주인공도 아닌데 무슨 운명에 반항해 아님 꿈을 향한 열망에 고분고분할 일이 있나. 그냥 뭘 해도 재미없을 뿐이지. 삶의 허무 진작 알았다. 인생의 비밀이 어딨어. 신나는 기쁨의 끝장을 볼 것만 같은 예감, 부디 실망감으로 결판나지 않기를 바라는 건 순진한 생각. 말만 그럴 뿐 흔하디 흔한 상심이라는 결판이 뭐 별건가. 이상의 꿈을 품은 개열망은, 돌다 말아버리는 바람개비 마냥 급 싫증을 내기 일쑤. 옛말에 신발이 맞으면 신으라지만 일단 신발이 없어. 동화 속에 나오는 춤추는 구두, 애들조차 관심도 없고. 그렇지만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는 것. 썰물과 썰물은 이어지지 않는다. 그 사이에는 반드시 밀물이 있다. 때를 기다려야 한다. 그런데 언제까지? 내 말이 그거라니까. 참 내 별 무슨 거 참 나 젠장. 됐고. 
    그러므로 나는 새로운 음악을 들었다. 바로, 사베리오 메르카단테 / 오페라  - “이칠리오, 당신을 사랑해요!”
    뭐? 기껏 한다는 특단의 대책이 뭐 겨우 음악 듣기? 그것도 고리타분한 고전음악? 그러니까 여자가 없지. 
    아침부터 콧노래를 부르며 샤워한 다음 미용실에 갔다가 선물을 사고 향수도 뿌리고. 그럼 뭘 해? 약속이 없는데. 
    인기는 다 남 얘기. 건수, 없어. 돈, 있겠나. 정력? 왕성하면 뭘 하냐고. 어? 
    ~라면서 혼자 일하기 싫어 투정 부리던 바로 그때. 여지없이 문하생 마고는 출근했다. 
   「안녕 선생님. 그런데 오빠 표정이 왜 그래? 얼굴 좀 펴. 어? 오빠가 무슨 인상파야 기분파야? 내가 마음에 든다면 마음에 든다고 말을 하던가. 어? 꿀 먹은 벙어리처럼 그게 뭐니. 응? 그러지 말고 일단 음악부터 틀자. 오빠. 칼 필립 엠마누엘 바흐의 Magnificat Wq215번 있어? 없으면 CD 주문하고. 아니다. 그거 내가 선물해줄게. 아 그게 좋겠다. 도메니코 치마로사 / 오페라 비밀 결혼 - 아리아 제목은 모름.
    오빠. 그런데 며칠 굶었수? 왜 그리 힘이 없어? 남자가 그리 매가리 없어 보여서야 쓰나. 응? 아 잠깐! 오빠 지금 그 생각했지? 쟨 대체 누가 보냈지? 뭐하는 앤데 저렇게 말이 많아? 입 아프지도 않나 몰라. 그치? 다 알아. 난 오빠를 딱 보기만 해도 뭔 생각을 하는지 다 안다니까. 허허. 간혹 틀릴 수도 있겠지만 말이야. 뭐 틀리면 어때. 응? 그렇다고 틀렸다면서 오빠가 왜 내 마음도 몰라주냐며 막, 어? 목에 핏대 세우며 나한테 따지겠어 어쩌겠어. 안 그래? 와, 오빠 얼굴 빨개졌다. 혹시 야한 생각했어? 좋을 때네. 그래도 돼. 아니. 되고 안 되고, 가 아니라 그거 오빠 맘대로 안 되는 거잖아. 안 그래? 다 알아. 왜 내가 모를 거 같아? 아니야. 아니란 말일세. 허허. 어 근데 이거 뭐지?」
    어느새 그녀는 책상 위 포스트잇에 적어놓은 뭔가를 읽고 있었다. 
   「코끼리 팬티. 당나귀 슬리퍼. 호피 무늬 내의. 워터픽. 마우스. 안경. 최고급 무접점 키보드. 주간지. 월간지. 타이레놀. 음 이건... 아~ 쇼핑 리스트? 이 오빠도 딱 보니 그런 사람이네. 오빠 소원 그거지?」
   「내 소원?」
   「맥북 쓰지도 않을 거면서. 구입한 다음에 와 나도 이제 스타벅스 갈 수 있게 됐다며 인스타그램에 인증샷 올리는 남자. 그렇지? 안 봐도 뻔해. 그렇지만 말이야, 오빠, 응? 이 세상이 그렇게 만만한 게 아니야. 응? 일단 그거 하나는 명심해. 무엇을? 쥐가 고양이를 쳐다보고 웃을 때는 반드시 근처에 쥐구멍이 있다는 거. 그럼 우리의 개구멍은? 내 알 바 아니겠지 뭐.」
   「쥐구멍은 뭔 얘기고 개구멍은 왜 갑자기?」
   「몰라. 나들 아나. 별님에게 물어 봐. 물론 별님의 답변은 그렇겠지만. 응? 묻지 마세요! 뭐 안 그래도 눈화장 하기 귀찮은데, 어? 내가 왜 그런 시덥잖은 주제까지 신경써야 하는데. 그냥 넘어가. 오빤 그렇게 생각이 많은 게 탈이라니까. 응?」
   「그런데 넌 대체 정체가 뭐니?」
   「정체? 뭔 정체?」
   「넌 누구냐! 그 말이지...요.」
   「오빠, 그걸 꼭 내 입으로 말해야 하니? 그래. 그러자. 아니. 그러기 싫어. 아니. 아니? 뭐가 아니야. 에잇 몰라. 다 모르겠다고. 알아서 뭐해? 몰라도 돼. 왜 알아야 해? 누가? 내가? 그러니까 뭘? 뭐긴 뭐야. 아무것도 아니지. 그렇다고 그게 꼭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아니란 것만 알아둬.」
    난 마고와 대화를 하면 듣는 역할만 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질문을 해 봐야 본전도 못 찾는다는 거 딱 봐도 모르겠나. 
    그렇다고 꼭 마고의 장단에 놀아나는 이 상황이 심하게 싫다는 건 아니다. 
   「오빠. 왜 말이 없어? 이제 더 이상 나랑 할 얘기 없어? 아님 나랑 말하기 싫은 거야? 아~ 지금은 일할 시간이다? 여기는 사무실이다? 넌 네 주제를 알아라? 우리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다? 그래. 쉬는 시간까지 조용히 있지 뭐. 나도 말 많이 하기 싫어. 어? 이거 왜 이래? 누군 뭐 자청해서 다변가가 된 줄 아시나? 뭐 좌우지간 우리의 동지애는 차츰차츰 돈독히 또 소중히 키워가는 걸로 하자고 친구. 아 오빠.」
    그렇게 마고의 2번째 수업 같지 않은 수업은 끝났다. 





    5

    그리고 다음 날. 
   「오빠. 뭐 비장의 묘책 같은 거 없어? 날 유명하게 만들어야 할 거 아냐. 어? 이처럼 아름답고 어여쁜 숙녀가 있는데 그녀의 지성과 미모를 만방에 알리지 않는다면 그건 단지 우리 둘만의 손해일까? 오빠 칼럼니스트 맞아? 마라 언니한테 듣기로.」
   「마라 년한테, 아니. 마라 언니한테 듣기로?」
   「내가 어디 아무한테나 언니 말을 전할 거 같아? 난 고자질 취미 없어. 오빠가 뭔가 나한테 자발적으로 책잡히든가 아니면 뭔가 어중간한 빌미를 줘야, 아니다. 재미없다.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라 오빠 나한테 뭐 가르쳐줄 거 없수? 정말?」
   「음 그건 말이야 지금은 생각 중이야.」
   「뭔 생각? 육체적 사랑 생각?」
   「어허. 너에게 어떤 장르가 어울릴까. 그거. 응? 딱 그거. 그러니까 말이야, 그 흔한 유행가 가사 쓰는 법을 가르쳐주면 넌 나중 금세 잊히거든. 인기? 다 거품이야. 물론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 뭔지는 내 알 바 아니지만 말일세. 그래서 난 네게 빈첸초 벨리니의 오페라 <청교도>에 나오는 그 뭐야 멋진 아리야 있지. 뭐더라? “난 아름다운 아가씨라네”. 그런 어떤 재주를 발굴해내고 싶은데. 그게 정녕 쉬울까? 너가 독학에 실패했던가. 아니면 우리 둘 다 별 볼 일 없는 스승과 제자던가. 그도 아니면 관계 설정을 다시 하던가. 일단 뭘 할지 생각하는 중이라 그거란 말이지. 음.」
   「생각 좋아하시네. 핑계는 그럴싸해. 그치만 변명만 그럴듯하면 뭘 해. 그러니까 해가 바뀌든 크리스마스가 돌아오든 매번 공상에 빠져있지.」
   「어허. 생각 중이라니까 얘가 정말. 그래도 그건 잊지 마. 그건 꼭 알아둬야 하니까.」
   「뭘?」
   「뚱뚱한 여자가 노래 부르기 전까지는 오페라는 끝난 게 아니다. (몸짓)」
   「하여간에 말은 뭔가 있을 듯하다가 딱 그냥 거기서 끝나. 그래서 지금도 혼자지. 누가 아니래.」
   「뭐, 다른 거? OK~! 적은 건 적은 거다.」
   「적은 건 적은 거다? 그게 뭐야?」
   「남자들이 좋아하는 게 뭔 줄 아니? 왜 새끼마담이 남자들과 말이 잘 통하는 줄 아냐 그 말이지. 남자들 꿈이 뭐게? 대망 그런 거 말고. 현실적인 거. 타고난 재주가 망대한 친구들 말고. 평범한 남자들의 꿈. 그분들의 웬만한 열망. 응? 대부분 20대의 삶. 인생을 논할 계제가 아니겠지. 그렇다고 친구들끼리 사랑을 얘기할까? 남자는 남사스러워서 그런 말 못 해. 안 해. 왜 해? 쑥스럽기보다 싫지. 그게 진짜니까. 그럼 남자가 20대 중반을 넘어서 후반 지나고 30대. 그리고 40대 남자들과 꽤 진솔한 얘기를 나눠본 데이터베이스. 그 솔직한 속 얘기의 통계를 알려줄까? 그분들의 꿈은 뭔 천문학적인 재력도 좋긴 좋겠으나, 지극히 현실적으로 그분들 속마음을 끄집어내면 거의 다 그래. 그게 뭐냐, 바로 그거지. (딱)~! 오빠 왜 결혼 안 해? 라고 묻는다면. 진정 사랑하는 사람 어쩌고저쩌고는 다 입바른 얘기고. 죄다 사석이 아닐 때 있어 보이려고 하는 말들일뿐이고. 남자, 어? 상남자인 이상 그 맨발의 청춘들이 품는 꿈은 거의 다 그래.」
   「아 뭐가 그래? 빨랑 말 안 해? 오빠. 뜸 좀 고만 들여. 어?」
   「그분들의 꿈은 좋은 차 타면서 인생을 즐기며 여자들 좀 만나보고. 놀러 다니고. 돌아다니고. 그러다 결혼이야 뭐 때 되면 하던가, 지금은 딱히 절실히 해야겠다 라는 생각은 없다. 라는 게 그분들 본심이라고.」
   「뭐야! 그게 <적은 게 적은 거다>라고? 뭔 남자 마음이 그렇게 쪼잔해? 밴댕이네. 무슨 위인전에 나오란 말이 아니라. 희망. 소망. 사랑. 행복. 긍정적이되 비관조의 냉소도 모르지 않다. 단 3줄짜리, 좋아하는 영화의 줄거리 같은 인생을 살고 싶다. 뭐 그러 거도 아니고 뭐, 뭐가 어쩌고 저째? 그러니까 야망이 그렇게 퇴색하기 마련이지. 어떻게? 남자가 태어났으면 말이지~ 어~ 3년 5년 사귄 여자친구와 결혼은 거의 정해진 거나 다름없으니까, 어? 남자가 태어났으면 말이지~ 그다음에 쩜쩜쩜. 차마 하지 못하는 말. 그래서 남자들이 사랑이라는 단어조차 입에 담기에 낯부끄러워하지. 안 그래? 양심에 찔리거나 허세가 어설프거나. 빈수레가 요란한 법이거든. 응? 뭐 적은 건 적은 거다? 이런 약장수 오빠를 다 만나게 되는 내 인생은 또 뭐란 말이야. 응? (절레절레)」
   「아직 실망하긴 일러.」
   「글쎄요. 과연?」
   「허허허. 그 반대도 있지.」
   「그 반대?」
   「적은 게 많은 거다.」
   「적은 게 많은 거다?」
   「응. 한마디로 성실한 남자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사는 여자. 나중 애들 출가하고 은퇴한 다음에 부부끼리 다정히 전국 자동차 여행을 다니던가. 캠핑카 몰면서 대륙을 돌아다니던가. 그도 아니면 계절이 바뀔 즈음 위아래로, 분기에 1번 좌우로 여행을 떠나는 노부부. 그런 게 사랑 아닐까?」
   「뭐? 그게 적은 게 많은 거다고? 이런... (표정)! 오빠 정말 순 돌팔이 아니야?」
   「그게 다 너 생각해서 하는 말이라 그거야. 재미없는 훈수 뻔한 농담 누군 뭐 하고 싶어서 하는 줄 아니? 너구리 굴 보고 피물돈 내어 쓴다고, 어? 남자 잘 만나란 얘길세 이 친구야. 허허허.」
    결국 마고의 3번째 출근은 오늘 마지막을 예고하게 되었다.
    정말로 그녀는 다음 날 출근하지 않았다. 
    내 그럴 줄 알았지. 대충 예감 못한 건 아닌데. 그런데.. 어째 기분이 좀 세했다고나 할까?
    그러다 마침내 4번째 날에는 마고 대신 선물만 잔뜩 배달됨. 그리고 내 노트북이 없어짐. 설마 그녀가?





    6

    그런데 알고 봤더니 결근한 마고가 내 노트북을 들고 튄 게 아니었다. 겉모양이 대충 비슷한 노트북이 서로 바뀐 것일 뿐. 
    즉 내 노트북을 마고가 자기 것일 줄 알고 가져갔고, 지금 사무실에 그녀의 노트북이 있었다. 
    물론 마고의 신기한 허영심은 내 사탕발림 립서비스 취향과 썩 다르지 않았다. 그러니 그녀의 구미가 반영된 노트북은 새 노트북이고, 고로 안에 담긴 건 아무것도 없는 깡통. 
    그럼 그녀의 노트북만? 내 노트북도 똑같았다. 그렇지만 바뀐 건 바뀐 것. 그러므로 나는 마고를 찾으러 갈 정당한 명분이 마련된 셈이네? 
    ~라면서 나는 그녀에 대해 뭘 잘 알지도 못하면서 무작정 마고를 찾으러 떠나려고 했다. 
    그렇게 무심코 사무실 문을 열고 떠나려던 찰나, 문을 열자마자 나는 환상문학잡지 마라를 대면하고야 말았다. 
   「야. 너 어디 가? 혹시 도망간 마고를 찾으러 가기라도 할 셈이니?」
   「뭐? 어떻게 알았어?」
   「진짜로? 늬가 마고의 마음에 뭔 지분이 있는데?」
   「왜, 난 마고와 친하면 안 되니? 내 노트북과 마고 노트북이 바꼈어. 그래서 우리는 만나지 않으면 안 돼.」
   「마고가 어디 사는 줄은 알아? 그녀 집안이 얼마나 대단한 줄 알긴 아냐고. 그리고. 넌 뭔 마고가 신비로운 마을에 사는데 네가 그녈 찾아서 딱 동화 주인공이 되고 뭐 환상극이라도 찍을 줄 아니? 걔 집 여기서 5분 거리야. 몰랐지? 이제 알면 뭘 하니. 오늘 이사 간다는데.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
   「당연히 모르지.」
   「그런데 어떻게 만나려고. 늬가 무슨 돈키호테냐?」
   「난 만화영화 주인공이 아니야.」
   「아니긴 뭐가 아니야. 그거 이리 줘. 내가 걔 만나서 바꿔줄게.」
   「안 돼.」
   「왜?」
   「어제 그 영화 봤거든. Population 436.」
   「그거 다 뻥이야. 넌 옛날에 영화를 너무 많이 봐서 문제였고, 지금은 최신 드라마 최신 음악 최신 유행을 하나도 모른다는 게 문제야. 알아?」
   「그걸 내가 왜 알아야 하는데!」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설마 네가 마고를 감싸고도는 비밀은 설마 사랑의 축복?」
   「나 남자 좋아해. 걔랑 나랑은 친척이고. 가만 있어 봐, 8촌이야 16촌이야? 아니. 학교 선후배던가? 왜 이렇게 헷갈리지. 착각인가? 아닌데. 뭐 그건 그렇고. 그럼 넌 뭐 흑심 때문이니? 또 껄떡? 이제 좀 웬만치 숙녀들한테 찝쩍거려라. 아주 그냥 지겹다. 어?」
   「뭔 소리야? 난 여자 보기를 돌멩이 보듯 한다니까 그러네. 늬가 뭘 잘못 아나 본데~」
   「시끄럽다. 나 간다.」
    그러면서 마라는 마고의 노트북을 빼앗아서 가버렸다. 
    하긴 미친 양이 늑대에게 고해할 리가 있나. 세상 끝까지 따라갈 환상이 허당에게 인정사정 봐줄 리 있냔 말이다. 
    꾸물대다 공상하다 빈둥거리다 그냥 동네 단골 술집에나 들리는 거지. 행운아의 방력과 정절을 지키는 사랑이야 TV만 틀어도 날이면 날마다 나오는 것. 
    신기할 거 하나 없다. 아무리 기다려도 기별이 없는 행운아의 낭만감과 사랑의 환상이라는 팡파르는 내게 썩 관대하지 않단 말이다. 아직 때가 아닌 건가? 
    만약 그렇다면 오긴 온다는 거잖아? 젠장. 그럼 뭘 해, 어? 당나귀를 좋아하는 자는 당나귀가 된다고, 난 어느새 숙녀들보다 허영심에서 한수 위를 점령해버린 것이다. 
    허허. 왜 아니겠어. 한 마리 토끼를 쫓고, 한 마리 말을 타기. 원래 그게 정석인데. 바로 이래서 난봉꾼은 떡밥을 뿌리고 기업은 브랜드 라인확장의 함정에 빠져드는 것일까? 
    그러든가 말든가 관심 없고. 지나쳐 버린 바람으로 풍차는 돌지 않는다. 포기할 건 포기하고. 
    그러면서 어느새 나는 의류업자의 명언을 기억하고 있었다. 바로 패션업계에서 잔뼈 굵은 남성복 매니저의 명언은, 
    "소비자가 파란색 옷을 원한다. 파란색 조명등을 켜라."
    언년인지 몰라도 아니, 한놈만 걸리기만 해 봐라 라는 굶주린 하이에나의 울부짖음이야 뭐야. (절레절레)!





    7

    나는 오늘 일을 마친 다음 딱히 할 일이 없었다. 그렇다고 집에 가서 씻고 어쩌고 소파에 자빠져 TV 채널 돌리기는 왠지 싫었다. 그러다 마침 우연히 약속이 잡혔냐, 하면 아니었다. 그래서 내가 행동에 나서 톰을 우리 동네로 불러냈다. 그렇게 우리는 동네 찻집에 자리를 잡았다. 나는 에스프레소 톰은 카푸치노. 지가 언제부터 카푸치노를 먹었다고. 하여튼 분위기를 따지고 자시고 하기도 귀찮고.
   「톰. 어떻게 지냈어?」
   「알잖아? 나 인기 많은 거. 바빴어. 여자라면 이젠 신물이 난다고 친구. 들었어?」
   「너나 많이 들어.」
   「아 맞다. 최근 너에 대한 신비스러운 소문들이 장안에 자자하던데? 아 진짜로.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일들. 그런데 왜 주인공이 너니?」
   「거 듣던 중 놀라운 소식인데. 대관절 뭔 일인데 그래? 듣고 놀라 자빠질지 아닐지 몰라도 일단 들어나 보자. 자, 말해 보셔.」
   「잭이 몽블랑 만년필을 사려고 백화점에 들렸는데 너랑 정말 똑같은 사람을 봤데. 어떤 묘령의 여인과 함께 하길래 뭔가 불륜 냄새가 났다던가? 뭐라고나 할까 어딘가 모르게 아는 체하면 안 될 것만 같은 느낌? 그렇지만 알고 봤더니 너랑 99퍼센트 닮았는데 1퍼센트가 부족했데.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그처럼 똑같이 생겼는지 등에서 땀이 쭉 났데. 그분 혹시 너의 도플갱어 아닐까?」
   「도플갱어 같은 소리나 하려면 가서 풀이나 뜯어먹어. 그건 닮은 사람이 아니라 나야. 나도 백화점에서 잭 봤어. 난 그때 혼자였고 반대로 잭이 연상의 여인과 함께 있었지. 뭐 신비스러운 소문? 네 떠들썩한 입담도 다 녹슬었나 보구나. 뭐 허당의 줄거리라는 게 매번 그렇지. 이해해. 그럴 수 있어. 그럼 고대하는 희망이 있겠니 흠모하는 연정을 꿈꾸겠니. 그렇다고 우리가 무슨 여성잡지사에 취직할 수도 없잖아.」
   「너의 거취와 잭의 동선이 뭐 겹쳐서 오해할 수도 있지 뭘 그렇게 비아냥대? 너 요즘 욕구불만이니? 왜? 성생활이 마음에 안 들어? 아니면 아직도 궁금한 게 정말 정말 많은 거니? 어 그래. 발정기 뭐 그런 거?」
   「뭐? 너 정말! 너 어디 가서 내 평판에 흠집내고 다니지 마. 늬가 그러니까 여자가 없는 거야. 알아? 그러다 잠깐 아는 여자가 있으면 뭘 하니, 어? 뻔트를 대도 한때 친했던 숙녀가 그러잖아.」
   「뭐라고?」
   「오빠 어디 가서 내 남자친구라고 하지 마.」
   「늬가 들었어?」
   「어. 접때 셋이 같이 있었잖아.」
   「」
   「너 요즘도 그러니?」
   「뭘?」
   「너 여자 좋아한다는 거야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건데. 그런데 친구랑 둘이 있으면 꼭 늬 피부가 부드럽다면서 늬 통통 불룩 튀어나온 배꼽 근처 배를 만져보라고 하잖아. 그러면서 친구 배를 만지면서 내 피부가 늬 피부보다 더 부드럽다고 하잖아. 어? 그러니까 늬가 여자들한테 그런 소리를 듣는 거야. 세계 허세 대회 챔피언, 아직 포기 못했니? 그래?」
   「왜, 패자부활전 같이 나가볼 생각 없니? 있으면 말해.」
   「그건 그렇고. 내 하나만 충고하자면, 야. 우리끼리 그래도 되는 거 아니냐. 얼굴 좀 펴. 나나 되니까 다 너한테 이런 얘기 해주는 거야. 여자들 생색내는 거 (개)싫어한다는 거 너도 잘 알잖아. 그렇지만 우리가 여자냐? 어? 우리가 여자냐고. 너 그거 명심해라. 딴 건 몰라도 그건 알아두라고.」
   「뭘?」
   「개는 뼈다귀를 주어 만족시키고 여자는 거짓말로 만족시켜라.」
   「뭐? 이 자식이 듣자 듣자 하니까...!」
   「하나 더.」
   「또 뭔데?」
   「더러워진 도화지를 넘기면 곧 그게 긁지 않은 복권이란 거. 인생이 원래 그래.」
   「원래 그러긴 뭐가 원래 그래?」
   「좀 웃어라. 어? 왜 그래? 싫든 좋든 현 애마는 하필 질펀한 방탕마이기 때문에, 고로 당시 쾌락을 격렬히 사모할 수밖에 시절이 그립던 거니?」
   「하여튼 말을 말자. 말을 말어.」
   「그래? 그러면 음악이나 듣자. 주인장. 여기 손님도 없는데 딴 음악 들으면 안 될까?」
    그렇게 우리는 도메니코 치마로사의 진혼곡을 듣다가 뭔가 기발한 발상을 떠올렸냐, 하면 그럴 리가 있겠나. 
    우리는 할 말이 많지 않았는데 톰이 정적을 깼다. 
   「기왕 나이도 먹고. 우리도 화려한 여자 관심 없고. 너도 나처럼 단정한 숙녀를 만나는 게 어떠니?」
    그러면서 톰은 지갑을 꺼내 사진을 한 장 내게 보여주었다. 
    그런데 그 사진 속의 여자는 다름 아니라 바로 마고였다.
   「내 여자친구야. 어때? 괜찮지?」
   「너 얘 알아?」
   「알다마다. 우리, 어제, 했어.」
   「해? 했다고? 뭘? 아, 뭘 했어? 어서 말 안 해?」
   「낭만적인 사랑을 가꾸자는 약속. 우린 순수한 연인이야. 네가 봐도 딱 그럴 거 같지 않냐?」
   「그럼 뭐 난 불결한 솔로니? 거짓말 마.」
   「거짓말인 거 어떻게 알았어?」
   「정말이야?」
   「정말이겠냐. 너도 좋은 사람 있으면 만나 봐. 정 외로우면 내가 소개해줄 수도 있고. 네가 여잘 아직 잘 모르나 본대, 어? 사랑이란 가능성의 예술이야. 너 아직도 연애론에 대해서 막 집에서 혼자 공상하고 그러니? 또 그러다 낙심하면 행복업에 매달리고. 그래? 더티러브를 향한 늑대의 맹목적인 갈증? 상상이야 뭔들 못하겠어. 순진한 쾌락마의 열망? 타성 개척자니 신비 혁신가니 이상한 낙서나 끄적거리지 말고. 세상으로 나와. 어? 언제까지 숨어 살 거야? 어? 쯧쯧쯧.」
   「기가 막혀서!」
   「너 이제 보니 바보구나. 늬가 생각해도 그렇지? 그럴 거야. 왜 아니겠어.」
   「좋을 대로 생각해.」
    왠지 모르게 아름다운 사랑 가운데 하필 더티러브의 감흥이 떠오를 듯 말 듯 한 이 기분. 내가 얠 왜 불러냈지? 이럴 거면 차라리 아는 동생들과 함께 즐거운 겨울을 함께 하는 건데 말이야. 





    8

    나는 오늘 닐을 만났다. 
    닐이 자기 새 여자친구라며 지갑 속 사진을 보여줬다. 
    그런데 그녀는 톰의 새 애인과 얼굴이 똑같았다. 
    그렇다. 둘 다 마고. 닐의 여친도 마고. 톰의 여친도 마고. 
    이걸 말해줘, 말어? 
    해야 돼, 말아야 해?
    이 때문일까? 예전에 한번 그런 일이 있었는데 그 기억이 떠올랐다. 
    후배가 신혼 때던가 아니면, 결혼 전에 결혼할 여자라며 자기 애인을 소개해주던 자리던가.
    아무 생각 없이 대충 몇 달 전에 그 후배가 만나던 여자 얘기를 꺼냈던 적이 있다. 
    말 그대로 불과 몇 달 전. 난 그래서 걔가 걔인 줄 알았다. 
    즉 그 여인이 그 여인. 그런데 후배의 얼굴색이 확 바뀌네?
    와~! 나는 내게 타인의 안색을 새파랗게 질리도록 만드는 재주가 있다는 건 그날 처음 알았다. 미리 후배에게 물어볼 걸 그랬나... 
    그렇지만, 설마 하니 불과 서너 달인데 그 사람과 그 사람이 동일 인물이 아닐 꺼란 생각은 못했으니까 뭐 넘어가고. 
    그런데 웃긴 게 뭐냐면 남자든 여자든 현재의 사랑이 중요하니까 그건 그렇다만. 
    여자의 판타지를 결혼 후까지든, 과거의 연애사 전적들을 현재는 물론 미래까지 끌고 가겠다는 여잔 뭐지? 
    좌우지간 닐에게 말해 줄 수도 없고. 또 언질을 주자니 뒷맛은 물론 뭘로 봐도 여러 명 괴로워질 거 같고. 와, 진퇴양난! 
    뭐 아무튼 문단 요약하자면 이런 식이다.
    <닐을 만남. 닐이 새 여자친구라며 지갑 속 사진을 보여줌. 그런데 걔도 마고>





    9

    윌을 만남. 
    윌이 새 여자친구라며 지갑 속 사진을 보여줌. 
    그런데 걔도 마고.
    뭐라고?





    10

    잭, 롭, 델, 폴, 핀, 스티븐, 켄트를 모두 1 대 1로 만남. 
    걔네들 새 애인도 모두 마고. 
    뭐?





    11

    나는 마라를 만나 따졌다. 
    따지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니까.
   「대체 어떻게 된 일이니?」
   「내가 묻고 싶거든.」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데...」
   「나도 걔 안 지 얼마 안 돼. 너 뭔 생각해?」
   「오죽하면 내가.」 
   「나도 네 비밀 많이 안다는 거,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 혹시 너 그 정도로 멍청한 건 아니지?」 
   「지금 우리가 이럴 때가 아니야. 어? 사안이 정말 중차대한 거라고. 어?」
   「말해 뭐해?!」
   「할 수 없지 뭐. 남에게 맡길 수 없어. 우리가 직접 뛰는 수밖에.」
   「어떡하자고?」
   「자기야. 윤허하여 주시옵소서.」
   「설마 너랑 나랑 탐정조라도 짜자, 그거니?」
   「딩동~! 빙고.」
   「세상 사람들이 다 너 같은 줄 알아?」
   「너도 원하고 있어. 너 자신을 속이지 마.」
   「웃지 마. 웃을 일이 아니니까.」 
   「그런데 어떻게 이런 일이 우리에게! 말도 안 돼.」
   「그나저나. 응? 너 왜 우리 사무실에 뻔질나게 드나들지 않는 거니? 왜 여기 맘에 드는 사람이 없어서 그래? 솔직히 말해봐. 그랬으면 좋겠어.」
   「지금 그 얘기가 아니잖아?」
    뭐 아무튼 이렇게 마라와 나, 우리는 생각지도 못한 정탐을 하게 됐다. 
    그래. 잠복근무. 말로만 듣던 영화로나 보던 바로 그 잠복근무 말이다. 





    12

    마라와 나는 마고네 집 앞에서 잠복근무를 시작했다.
    1일째 날 꽝. 
    2일째도 꽝.
    3일째 역시나 꽝.
    슬슬 우리는 지쳐갔다.
   「마라. 지금 우리 잠복근무 중이야. 무슨 Ruggiero Ricci의 정통파 파가니니 연주? 그래. 고전적인 거 좋아하는 건 알겠는데, 그럼 뭐 너만 정통파고 딴년들은 다 비정통파라는 거니? 어? 지금 우리가 한가하게 음악 감상할 때냐고, 어? 팔자 좋네. 풉」
    잠복근무! 말이 쉽지 말이 쉬워. 드라마에서 보는 건 줄거리만 보여주는 거고. 
    그걸 직접 해 보면 장난 아니다. 장난 아니라고. 
    그래서 맨손 체조나 할까 라면서 나는 잠시 자동차 바깥으로 나가 몸을 풀고. 
    식료품점에서 먹을 걸 사 가지고 오는 마라가 딱 자동차 옆에 왔을 때. 
    마침 마고의 집에서 누가 나오고, 또 누군가 마고의 집으로 들어가고. 
    한편 본 게임이 시작되자 마라는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이 교차했던 것일까? 
    요의를 느껴 참을 수 없는 그녀는 자동차 옆에 쭈그려 앉아 오줌을 누었다. 
    난 그걸 모른 체 단안 망원경으로, 또 쌍안경으로 마고의 집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한 손으로 바닥을 짚고 있었는데 뭔가 축축한 물이 손을 적시네? 
    어딘가 모르게...가 아니라. 많이 따듯하네? 정말 많이 뜨듯하다니! 
    뭐야 이거, 이런 이런... 영화에서만 봤었는데! 
    그 물은 그냥 물이 아니었던 것이다. 
    저년이......! 설마, 일부러?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잠복근무 1주일 경과 후 알게 됐다. 
    비밀을 알게 됐다고. 
    바로, 마고는 1명이 아니라 10명이었음. 10명 여자가 함께 사는데. 그런데 집에서 나올 때는 10명 모두 마고, 집 안에서는 개개인. 
    변장술급 화장으로 밝혀짐. 요컨대 뭔가 사연이 있는 게 분명했던 거지. 
    그 줄거리는 과연 무엇일까...는 다음 이 시간에. 





    13

    마침 포르토피노가 맨얼굴 투시경을 발명. 
    영화에 나오고 장난감으로 절찬리에 시판 중인 그런 거처럼. 
    미용용 가면 같은데, 딱 쓰면. 쓰자마자 화장하지 않은 얼굴이 보여지는 짜잔~! 
    그 이름도 기가 막힌 맨얼굴 투시경!
    그걸 환상문학잡지 미스테리아 독점 사은품으로 찬조하기로 계약하기 앞서, 여성환상 1.5에서 미리 손을 씀. 
    뭔 시시콜콜한 내용들은 비즈니스 관계자들한테나 중요하고. 
    본 소설 줄거리와 크게 관련 없는 내용이니까 그건 여기까지. 





    14

    나는 톰을 만났다.
    새끼 양처럼 굴면 늑대에게 잡아먹힌다고 했던가? 
    하이에나 득실득실 그 가운데서 돋보이는 늠름한 맹수인 사자를 닮은 톰. 
    왠지 모르게 오늘 톰은 새끼 양처럼 보였다. 
    마침 찻집에서 절묘한 시점에 극적인 음악이 흘러나왔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 오페라 <마술피리>에서 밤의 여왕의 아리아 “두려워 마라, 사랑하는 내 아들아!” 
   「톰. 내가 엉뚱한 걸 물어봐도 너 나한테 뭐라 하지 않을 거지?」
   「어? 어떻게 내 비리비리하던 정력이 갑자기 제7의 전성기를 되찾을 수 있었나, 그게 궁금한 거니?」
   「아 진짜 진지한 거야.」
   「뭔데 그래?」
   「내가 설마 이걸 물어봐도 너 그렇게 반문하지 않을 거지? 늬가 그걸 왜 궁금해하냐? ~라고 말이야!」
   「일단 묻기나 하셔 이 양반아. 대체 뭔데 그래?」
   「너 여자친구 사랑해?」
   「내 여자친구? 사랑? 아직 애인이라고 부르기엔 좀 뭐하지. 뭐라고나 할까, 탐색전? 사랑은 모르는 거잖아. 뭐 첫눈에 반한 사이는 아니니까. 그렇다고 볼수록 매력녀라 하지 않을 수도 없고.」
   「그럼 너 말이야, 네 여자친구 맨얼굴 본 적 있어?」
   「맨얼굴?」
   「어. 화장 전혀 하지 않은 맨얼굴.」
   「아직이지.」
   「아직이라고?」
   「저 하늘의 별을 땄으면 봤겠지. 아니면 걔가 화장법 강의하는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렸으면 볼 수도 있을 텐데, 나름 뒷조사까지 할 생각은 못 해봤는데?」
   「그럼 그렇지. (딱) 너 걔 오래 만날 생각. 아마도 자신 없지?」
   「」
   「웃는 거 보니 그렇군.」
   「알면서. 척하면 척이군.」
   「사랑의 장기전은 대충 3가지 따지면 구도가 예상되지.」
   「그 3가지가 뭔데?」
   「첫째,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느냐.
    둘째, 남과 여 그 둘이 함께 아는 인맥이 없는 것보다 있는 게 장기전으로 갈 확률이 높다는 거. 아니면 대부분 뻔트요 풋사랑이자 단기전.
    셋째, 현재의 사랑이 진심이자 진중하며 상대를 위한 사랑이라는 건 나중 미래에 과거를 돌아봐도 덜 아쉽다, 공개되어도 미련이 적냐 라는 것.
    넷째, 첫 만남에서 진한 사랑까지의 기간이 짧은 것보다 긴 게 장기전으로 갈 가능성이 높음.
    다섯째, 마음이자 몸과 시간 등 내 상당한 자원을 투입해서 사랑이 더럽게 끝났을지라도 후회할 자신이 없느냐.
    여섯째, 현재의 사랑에 대해 줄거리와 함께 모든 시시콜콜한 얘기를 기록했을 때 멋지냐, 떳떳하냐, 창피하냐 라는 것. 
    일곱째, 그런데 3가지랬는데 벌써 일곱째? 이놈의 징글징글 지긋지긋한 사랑 얘기. 아주 그냥 신물이 난다. (절레절레)」
   「그러니까. 그래서 우리는 사랑을 평생 단 1번도 논하지 않았던 건가 봐.」
   「하여튼 널 책하자는 게 아니라. 본 게임을 장기전으로 왜 끌고 가지 않느냐면 불순한 사랑을 책망하잔 말도 아니야. 단순한 난봉꾼의 흑심이 아니라 너도 뭔가 이상한 낌새라고나 할까, 뭔가 어떤 께름칙한 조짐 같은 느낌? 딱히 불길한 건 아니겠으나 약간 느낌 세한 기분 때문에 도저히 그 일말의 불쾌함을 떨쳐버릴 수 없는 직감. 있었지?」
   「아네. 넌 자료도 턱없이 부족한데 어떻게 눈치챘니? 그냥 찍은 거니?」
   「찍긴 뭘 찍어. 네가 만나는 여자애들이 매번 특이한 애들이라서 이번에도 혹시... 그랬던 거니. 너 저번에 만난 애는 그랬잖아. 주로 스타벅스에서 만났다고 했지? 그 네 전여자친구. 걔가 그랬다며? 자기 노트북을 펴서, 엑셀 파일을 펼쳐서. 그래서 누구 누구 누구. 언제부터 언제까지. 주고받은 선물은 뭐. 만난 횟수와 학습한 진도는 어디까지. 애정 표현 농도와 주기는 얼마. 마치 임상실험 보고서랄지 치밀한 논문처럼 과거에 만났던 남자. 썸탔던 오빠. 사소한 짝사랑부터 찐한 사랑까지 그 모든 기록을 너한테 보여주던 여자가 누구? 늬 전여자친구! 그렇지? 그 진짜를 늬가 장난으로 알고 만났다가 너 몇 장 날렸니? 이번에도 느낌 세한 거, 너 몰랐니?」
   「알았어.」
   「일찍도 아셨네.」
   「이제 난 어떡하면 좋니?」
   「이제 넌 어떡하면 좋냐?」
   「그래 내 말이 그거야.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딱 그거였다고.」
   「그랬어?」
   「어. 정말이야. 이제 난 어떡하면 좋을까?」
   「방법이 있지. 형이 누구냐. 어?」
   「뭔데?」
   「공짜로?」
   「내 아는 동생들, 팬클럽, 추종세력. 전부 싹 다 너한테 넘길게. 내가 걔네들을 나 혼자만 친교를 유지하나 앞으로 두고 보면 알 거 아니야. 응?」
   「그래?」
   「정말이야. 진짜라고. 너 나 알지?」
   「좋아. 좋았어. 좋다고. 허허허. 그렇다고 내가 꼭 그걸 애달프게, 응? 아주 간절히 원한 적 일절 없다는 거, 너도 알지? 분명 늬가 자발적으로 그렇게 하면 어떻겠니, 그렇게 된 거다 너? 나중 오리발 내밀지 마?」
   「걱정 붙들어 매 이 친구야. 그러니까 그 방법이 뭔데 그래? 어? 냉큼 말하지 못해 이 이 이, 개새끼. 돼지. 말. 코알라. 낙타. 하마. 앵무새.」
   「그만해 그만. 늬가 그러니까... 그런데 여자들은 대체 널 왜 좋아하는 거지?」
   「말 돌리지 말고. 방법이 뭐냐고. 어? 어서 말 못 해? 뜸 그만 들여라. 나도 최후의 카드라는 게 있어. 시트콤 애들 모조리 몽땅 불러서 폭로전 한 번 할까? 그럴까? 할까 말까? 말만 해.」
   「알았어. 알았다고.」
    발동이 언제 걸릴지 모른다는 핸디캡은 알다가도 모를 일. 그럼 순풍이 불어 신바람이 날 일은 아마도 훗날. 껀수 없을 조짐만 견고. 그러면? 
    ~라면서 오늘을 기다려온 것일까? 
    매번 허탕만 치고 뒷북만 때리던 축구팀 서포터스 회장 롭이 일을 냈던 것이다. 
    알고 보니 롭과 포르토피노가 아는 사이. 그렇게 둘이 만나서 롭이 뜬금없이 떠오른 생각을 말했고. 포르토피노는 아차~ 하며 아르키메데스처럼 번뜩이는 착상에 정신이 번쩍듬. 
    그래서~ 포르토피노는 발명했음. 무엇을? 
    바로 맨얼굴 투시경을! 
    아직 시판까지 다다른 건 아니고 비밀 리에 완성에 거의 다다름. 
   「이거 이래도 되나 몰라.」
   「지금 와서 안 친했던 야망에 미련을 갖는다고 달라질 건 없어.」
   「엥? 그건 또 뭔 소리야?」
   「후회하지 않는다고. 2가지. 응? 첫째, 뭔지 모를 그녀에 대한 비밀을 속 시원하게 알고 싶고. 둘째, 그걸 통쾌히 알 수 있는 방법이 뭔지를 당장 너한테 듣기를 애달프게 바란다는 거지.」
   「재미없는 공상에 기반한 허구나 끄적거리기나 하던 칼럼니스트가 여자와 사랑에 대해 알면 얼마나 알겠어?」
   「이 자식이... 어서 말하지 못할까? 죄인은 고개를 들라.」
   「너 아직도 사극 즐겨보니? 요즘 뭐 보는데?」
   「또 말 돌리냐? 뜸 또 들이고 패 안 까면, 발 빼는 수가 있어.」
   「알았어 알았어. 이거야.」
    그러면서 나는 포르토피노 앞에 그 맨얼굴 투시경을 내밀었다.
   「이게 뭔데? 무슨 여자 화장 지운 모습을 단박에 볼 수 있는 맨얼굴 투시경이라도 되니?」
   「헉! 어떻게 알았어?」
   「진짜야? 와 대박! 와우~ 소름! 내가 기다렸던 게 바로 이거라니까. 이거야~ 어? 이거라고~! 어? 바로 이거였단 말이야~! 허허허허허. 하하하하하.」
   「기뻐하긴 일러 이 녀석아.」
   「어?」
   「그건 단지 1탄이라고.」
   「이게? 1탄? 그럼 제2탄은 뭔데?」
   「마음까지 읽어. 영화에서 봤지?」
   「캬~ 기가 막히는군. 캬~! 어? 으아~ 대단하다. 최고!」
   「쉿! 비밀엄수. 알지?」
   「알았어 알았어. 그녀가 만났던 남자와 연애 그리고 짝사랑이야, 조사하면 찾는 족족 다 나오는 거고. 이건 그야말로 신기술이지. 허허허허허. 하하하하하.」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 오페라 <마술피리>에서 밤의 여왕의 아리아 ”지옥의 복수가 내 마음에 끓어오른다" 
    찻집에서 우리는 조용히 음악을 감상하면 속으로 꿍꿍이를 공상하게 되었다. 





    15

    마라와 나는 친구들 사생활에 깊이 개입하지 않기로 했다. 단지 마고 10인의 사연을 알게 되었을 뿐.
    정상적인 성욕이 살다 보니 뭐 어떻게 맹숭맹숭 맹물처럼 심심해져 버린 여자. 
    남편의 머머불능. 
    부인의 불감증. 
    여자 무성애자. 
    권태 권태. 
    재미없음. 무관심. 질림. 기 빨림. 정력 감퇴. 
    육체적─성적─기능적으로 지극히 정상인데, 다만 성 그래프가 비정상적으로 바닥을 못 벗어나는 숙녀. 
    혼자서도 노력하고 애인과도 힘쓰고, 그래도 그냥 포근히 포옹하는 게 더 훨씬 좋다는 여자. 연애를 하는 족족 매번 불미스럽고 재미없고 뭐 어떻게 끝나서 괴로운 기억만 간직한 여인. 
    그 외 차마 자세히 설명하기에 낯뜨거운 내용들까지. 
    물론 지금까지 그 일이 과연 정말 그랬나 하는 건 아직까지 미스터리. 
    나중 친구들을 만나서 듣고 보니, 한 여자와의 공통 연애. 즉 마고(들)과의 연애는 그냥 적당히 썸만 타다 말았다고 한다. 
    그렇다. 체스가 끝나면, 왕도 졸과 함께 체스 통에 담겨진다.
    그냥 그저 그런 풋사랑도 뭣도 아닌 식이었던 것이다. 
    그럼 이제는 진정코 아름다운 사랑을 하면 되는, 반드시 그래야 하는 인생.
    그래서 만났고 진했고 어쩌면 더러웠던 사랑. 아마도 행복한 애정. 그래? 그럼 뭘 해. 응?
    가득 찬 잔에 물을 더 채울 수 없다. 
    또 있다. 
    배부른 소는 풀을 뜯지 않는다. 
    또 없을 리가 있나. 
    욕심쟁이는 늘 부족하다. 
    뭐라고? 
    아하~! 
    바로 그래서...... <다들 순진하시네요>라는 인터넷 글. 분량도 적고 내용도 아무것도 없는데... 도대체 왜 그녀들의 다종다양한 잔소리가 그치질 않는지. 그거까지 설명해줄 만큼 고급스러운 여자말 번역기는 아마도 많지 않지 않을까? 그러거나 말거나.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그럼 뭣이 중헌디? 일단 뭔 소리인가 그건 듣고 나서 판단해야 하기 때문에, 우선 들어는 드릴께. 딴청 피우지 않는단 말이지. 따라서 먼저 명쾌한 결론이든 떠들썩한 다변이든 뭔지 모를 그 하고 싶은 말 줄거리나 풀어나 보시고. 이미 귀에서 피가 나게 생겼는데, 또? (절레절레). 





    16

    글쓰기 때려쳤어? 뭐라도 가져와봐. ~라는 환청이 흡사 내 귀에 들리는 것만 같았다. 그와 같은 마라의 잔소리가 조용해질 만하면 다음 타자는 여지없이 여성환상 1.5 편집장 사라였다. 그녀는 뭐라며 날 다그쳤을까? 뭐긴 뭐겠나, 할 말 떨어졌지? 할 말 없지? ~라는 따끔한 잔뻔치였다. 누군 뭐 잔말 말고 맹렬하도록 축구팀 슬로건처럼 달리지 않았나 뭐. 그래? 일하기는 신경 끄자. 놀지 않으며 바보가 되니까. 주저앉는 것은 일어서려는 것이다. 그렇지만 춤추는 사람 모두가 즐겁지 않다는 걸 모르는 애도 아니고. 노래 부르고 먹고 마시고 쇼핑을 해도 재미없기는 마찬가지. 그래서 이제 어쩌지? 그래 봐야 심심한 타성과 재미없는 권태를 얕잡아봐도 별수 없을 뿐. 그렇다고 밋밋한 일상이 폄하된다 하여 별다른 느낌조차 없는 동네 아저씨인데 뭘 어떡하나. 그러면 답은 아마도 변화? 그렇다, 새로움. 그런데 뭘? 아니, 현실 안주가 뭐 어때서. 자기 합리화가 귀찮아질 시기도 진작 지났겠다 꼭 뭘 해야 할 필요도 없고. 이건 뭐랄까, 잔뜩 주눅 든 마음은 영락없이 자길 물오른 슬럼프라 불러달라는 것만 같았다. 환상인지 뭔지 신비고 나발이고 황홀감은 그저 동화 속 얘기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 그렇다고? 그러거나 말거나! 
    할 말이 있든 없든, 떨어졌든 꾹 참든 생각은 멈출 수 없는 것처럼. 놀기가 타석에서 내려오니 나는 일하기를 출전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맨날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던 어느 날. 마고가 날 찾아왔느냐, 하면 아니었다. 그럴 리가 있겠나. 그런 일은 없었다. 기대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사무실에서 평소처럼 일하다 놀다 쉬다 낮잠까지 잔 다음 나는 분위기 전환을 시도했다. 
    기분 바꾸는데 음악 만한 게 있나. 하여 고른 선곡은 다름 아니라, 
    조지 프레데릭 헨델 / Dixit Dominus RV 번호는 모름.
    그럼 그에 걸맞은 할 일은? 우리는 놀 때는 놀고 일할 때도 논다. 농담이고. 
    더 이상 작품 구상도 따분하고. 책 읽기도 귀찮고. 일하기는 싫고. 공상은 짜증나고. 
    그래서 나는 인터넷에서 미술품 작품값을 알아봤다. 다음은 그렇게 검색해본 작품들 목록이다. 
    하워드 호지킨, 「로빈 데니 부부」
    패트릭 헤론, 「수평적 띠 회화: 1957년 11월-1958년 1월」
   「뭐 이렇게나 비싸? 거 참 더럽게 비싸네. 아니지. 내가 가난한 건가? 됐고. 관심 없어. 몇 달만 배우면 저런 거 나라도 그리겠다. 추상은 어떻게 구상은 어찌어찌. 그런 거 누가 못해?」
    혼자서 푸념, 비꼬기, 연민, 골똘한 잔머리 굴리기마저 재미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리하여 나는 확인했다. 무엇을? 동쪽에서 떴던 해가 서쪽으로 져가는 것을. 그래서 나는 퇴근했다. 
    집으로 가던 중 딱히 저녁식사를 챙겨 먹을 생각은 없고. 카페에 들려 음악 듣고 창문 밖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싶어졌다. 
    그렇게 나는 어느 찻집으로 향하던 찰나. 
    누군가 뒤에서 날 부르는 목소리.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한데? 
    그렇게 딱 뒤돌아봤더니 그녀는 다름 아니라 바로 마고였다. 
   「오빠.」
   「마고.」
   「오빠. 나 안 보고 싶었어? 난 오빠 많이 생각했는데.」
   「네가 어떻게... 가까이 오지 마.」
   「오빠 왜 그래? 그 뒷걸음질은 설마 계산된 몸짓? 아니, 내가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봤나?」
   「네가 숙녀라고? 거짓말 마.」
   「오빠, 왜 그래? 혹시 뭐 잘못 먹었어? 이리 와. 이렇게 만난 거도 행운인데 같이 차나 한잔 마시자. 뭐 마실래? 카푸치노? 카푸치노 마실 줄이나 알아? 아니면 에스프레소? 설마 커피 끊은 건 아니겠지? 끊었으면 다시 마시면 그만. 왜 위스키 스트레이트 마실 줄 몰라? 헤어지는 방법이든 뭐든 내가 다 가르쳐줄게. 뭐 배우고 싶은 거 있음 말만 해. 누구 사귀고 싶은 여자? 내가 다 꼬셔줄게. 어? 내가 전부 다 꼬셔준다니까 그러시네. 응?」
    그러면서 그녀는 내 팔짱을 꼭 끼고서 날 가까운 찻집으로 데려갔다. 
    나는 따라가지 않으려고 버티고 버텼는데. 그녀는 언제 웨이트 트레이닝 지옥 훈련이라도 마쳤단 말인가. 힘이 힘이 장난이 아니었다. 
    그렇게 우리는 찻집에 앉아 음료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며 한동안 침묵했다. 할 말이 많았기 때문이거나 아님 말하기 싫었거나. 
    아니나 다를까 어찌 된 셈인지 그녀는 또 어디서 배웠을까, 아님 독학했을까. 
    역시나 긴 대사다. 베테랑 연극배우야 천직이니까 그렇다 쳐도 관객 엉덩이에 뿔나기 딱 좋은 긴 대사. 응? (절레절레) 그러므로 문단 똑 떼서 가는 걸로. 그렇다고 꼭 각오 단단히 할 것까진 없고. 





    17

   「긴말 필요없고. 오빠. 내가 오빠한테 귀여운 모습을 많이 보여주지 못해서 미안해. 내가 오빠한테 잘해주지 못했다고. 오빠는 나한테 표정이 많다고 그랬는데 난 신나게 딴놈들 만나러 다니느라 바뻤지. 난 그 때문에 기분 좋아 정신 못 차렸단 말이야. 얼이 빠진 거였어. 하다 하다 제2의 똥파리랑 아마도 CS까지 했다지? 긴말 필요없고.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알 거나 알고 각자 갈 길 갑시다 선생. 네?」
    그러면서 그녀는 노트북을 펼쳐서 어떤 엑셀 파일을 보여줬다. 거기에 나온 내용은 대략 이러했다. 
─────────────────────────────────────────────────────────────────────
                                          이름                  데이트 횟수   습성            애교(발휘)   내숭(표현)   비고
    숙녀 인생 첫 남자              제프리 오스본     51               하이에나과
    첫 자동차 데이트               오스카 커퍼필드   몇 번           똥파리과
    첫 자동차 더블데이트         오스카 커퍼필드   몇 번           똥파리과
    포근한 스킨십                    0                                                                                            아직
    손잡고 걷기                       0                                                                                            아직
    첫 키스                             0                                                                                            아직
    첫 포옹                             0                                                                                            아직
    첫 경험                             0                                                                                            아직
    1 대 1로 통화한 남자          3명
    1 대 1로 만나본 남자        30명
    2번 이상 만나본 남자        60명
    3번 이상 만나본 남자        90명
    함께(1대1) 사진 찍은 남자   1명
    지갑 속에 사진 간직한 남자  1명                                                                                         종료
    내 사진을 선물한 남자         1명                                                                                         끝남
    야한 속옷을 선물한 남자      0명                                                                                         없음 
    회사에 찾아온 남자(1번만)   000명 ⅰ)                                               
    회사에 찾아온 남자(2번 이상) 00명 ⅱ)
    집까지 따라온 남자                 0명  ⅲ)
    사소한 선물 주고받은 남자   몇-명
─────────────────────────────────────────────────────────────────────
    ⅰ) '첫사랑or마지막' 사랑의 친구까지 여럿 포함됨. 왜 여자의 판타지를 논할까? 그 모두를 창녀처럼 동시에 상대했으니까. 정신나간 시절. 
    ⅱ) 게다가 이마저 마지막 사랑의 친구까지 포함. 정신박약!
    ⅲ) 심지어 마지막 애인을 사랑할 당시, 전남자친구까지 집 앞에서 달콤한 데이트. 마지막 애인의 친한 친구와 CS, 그리고 더블 데이트까지.
    ※ <사랑이고 나발이고 우리는 그런 거 관심 없다. 우리는 오직 돈 보고 결혼한다. 돈이 곧 사랑이다. 말하자면 공주병녀 거울녀 의전녀인 나는 너가 마음에 든다 딱 낙점. 때문에 나는 너와 최단 시간 내에 결혼하고 싶다, 아니 해야만 한다, 따라서 몇 장 챙겨놓으라?> 남 생각 요만큼도 안 하는 미친년. 지가 어떻게 살았는지, 자질은 어떤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설마 과거에 그렇고 그런 직업여성이었다는 의심은 하지 않더라도, 어? 아무것도 모르는데? 뭘 믿고? 무슨 근거로? 무슨 로또 복권 사서 결혼 후 희박하디 희박한 확률이나 기대하란 말이야 뭐야! 말하지 않아도 은연중 느껴지는 직감, 숨겨도 우연찮게 알게 되는 진실. 그것만 해도 감춘 게 그 정도인데? 그럼 육감은 나 몰라라 아이 좋아라 계속 놀아주겠나. 자존심 없는 남자라면 그러지. 껄떡쇠 하이에나 똥파리과라도 얼마든지 대어를 잡기 위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저자세로 일관한다고. 허나 그건 그 분들 얘기고. 1번 스토킹 당해보니까 지가 남자한테 껄떡거려서 스토킹해놓고. 하다 하다 뒷조사까지 해놓고서. 창녀처럼 멀티태스킹으로 동시에 전부 상대해 놓고서. 또 회사로 번호표 챙겨들고 동시에 찾아오너라? 면접 보고 결혼 상대 정하겠다? 그러게 미쳐도 좋게 미쳐야지. 미쳐도 곱게 미쳤어야지. 걔도 사극을 너무 많이 봤네. 이모 말 너무 많이 들었다고. 소녀감성들 허영심과 여성잡지 1 허세한테 둘러쌓여 안 그래도 멍청한 년 더 멍청해져서 그랬구만 그래. 자기 밖에 모르는 년. 남 생각 요만~큼도 안 하는 년. 어? 말 끝마다, 오빠도 그래요? 툭하면, 들었어요? 에라~...
    ※ 설마 이 정도 배포도 없이 사랑싸움을 더럽도록 걸었을 리는 없음. 괜히 져준 줄 알아?
    비위 더럽게 좋은 거야 지 인생이니까 뭐라 않겠는데. 전남자친구랑 결혼하고 싶었으면서 
    매춘부처럼 껄떡거리는 늑대들 죄다 상대해주면서 미쳐버린 주제에, 어? 뭐 지금 와서 내 사랑을 되찾고 싶다? 
    뭐가 어쩌고 어째? 뻔뻔한 년. 똥파리에 최적화된 년. 하이에나를 위해 태어난 년. 첩도 아깝다. 





    18

   「오빠. 롱아일랜드에서 파리까지 대서양을 최초로 공중 횡단한 사람은 누굴까? 
    정답은 찰스 린드버그. 그럼 2번째는? 아는 사람도 없고 누구도 관심 없어~! 
    다음으로, 나스탁 상장된 회사 테슬라의 1인자는? 엘론 머스크. 
    그럼 넘버 2는? 대체 그걸 누가 알고 싶어 하냐고! 
    이 노트북 그리고 아이폰 만드는 회사가 어디더라, 그래 애플. 브랜드를 만든 기업가와 회사를 키우는 경영자는 상반되기 마련인데. 시장이 좁으면 일반화가 우세하는 반면, 시장이 크고 넓고 깊으면 전문화가 답이라지만. 1만 년 1억 년 후 그래프로 보자면 지금은 그야말로 걸음마 시절일 테니. 뭐 집중화를 유난스레 고집하기 때문인지 순이익률이 월등한 애플사의 1인자가 스티브 잡스에서 팀 쿡으로 바뀌었다는 잔지식 정도야 오빠도 아실 테고. 그럼 애플사 실세인 2인자 이름이 누군 줄 알아? 응? 누구게? 응? 누구? 알면 어디 이름을 대보시던가! 몰라~ 당연히 모르지. 알 리가 있나. 세상 사람들은 약자를 응원하지만 돈은 강자에게 건다네 친구. 어이 선생. 얌전한 샌님. 그러니까 오빠 같은 아웃복서는 껄떡쇠 인파이터한테 순번이 밀리게 되어 있어. 어? 허허허. 그러게 미리미리 제때제때 사랑하지 않고 뭐했나. 응? 여자들이 오빠처럼 가난한 예술가 유형을 좋아하는 줄 알아? 있긴 있지. 사람에 따라 썩 싫어하진 않는다고. 퍽이나 기다리는 여자도 간혹. 아웃복서는 그러게 쨉이라는 기본기와 결정적인 한 방, 여자를 너무 기다리게 만들면 안 된다니까 그러네. 아무리 좋아하는 남자라도 여자가 어떻게 개침 군침 질질 흘리면서, 어? 숙녀가 남자한테 끈질기도록 찝쩍거리나. 못해. 해선 안되거든. 그럴 순 없는 거니까. 응? 여자이기를 포기하라고? 그렇겠는 안되지. 아닌 건 아닌 거라고. 그러게 잔기술 편애할 게 아니라 (돈 세는 시늉) 진즉에 그러게 일찍 큰 기술을 연마했어야지. 우리가 무슨 돈 버는 기계냐는 퉁명스러움 반 농담 반 말장난 일삼는 아저씨들 나중 하는 말들 다 똑같잖아. 허풍꾼들이 나중 허세 부리기 전에 일찍 잔재주를 착실히 통장잔고랄지 부동산이나 우량주와 연결시키지 않고 뭐하셨나요. 응? 그러니까 오빤 2번째 남자지. 뭘 해도 뭘로 봐도 첫째와는 멀어. 허허허허허. 아닐지도 모르지만 말이야. 여세를 더 이어갈까? 뭐 까짓것 그러자고. 안 될 거 뭐 있어? OK~! 
    인류 최초로 세계 일주에 성공한 탐험가는 누구? 마젤란! 그럼 2번째는? 왜 말을 못하니. 응? 왜! 
    오빠, 페이스북에서 마크 저커버그 말고 또 누구 아는 사람 있어? 있으면 이름이 대 보시던가. 응? 
    오빠. 회사 아마존에서 제프 거 머시기... 그래 제프 베조스 말고 아는 사람 있어? 있냐고, 어? 
    회사 디즈니에서는? 월트 디즈니 빼고 없지? 그치? 그럼 그렇지. 
    페라리는 페라리. 과르네리는 과르네리. 자, 우리 패션업계로 한번 가볼까?
    루이뷔통, 에르메스, 샤넬... 거기서 얼굴 마담이 누군지 알아? 허허. 이거 봐. 이거 보란 말이야. 
    유행가는 차마 셀 수 없이 멋진 노래들이 나오고 또 나오지. 쉬지 않고. 끝없이. 그런데 고전음악가의 인기는? 불변. 영원. 일부러 고전음악광이 아니더라도 모차르트 같은 음악가가 또 나오기 어렵다, 힘들다, 불가능하단 거 누가 모를까!
    사랑이란 10명을 만나서 그 가운데 최고로 괜찮은 사람과 함께 행복하면 좋겠지만, 그게 어디 말처럼 쉽나. 그래서 속으로 홀딱 반하지 않아도 적당한 상대와 연애를 하기 마련. 그런데 만나봤더니 여기저기 씨 막 뿌리고 다니는 난봉꾼이더라? 말이 그렇단 거고. 곧 이 남자 저 남자 10명 100명 막 다 만나보기 전에. 일찍 괜찮은 늑대 딱 찦어서, 덥썩 물어서 일찍일찍 마음에 절반쯤 드는 촌닭 딱 골라서 사랑을 하는 게 차선! 아~ 그게 왜 최선이 아니라 차선이냐? 10명 만나보고 엑셀 파일로 꼼꼼히 치밀히 세밀히 따져서 검토 마친 다음, 누구로 낙찰~! 그럴 수 없으니까. 그 간사한 셈 면밀한 연구 다 끝날 때까지 누가 진득허니 기다려준대? 똥차 보내고 페라리나 롤스로이스 올 줄 알았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더 똥차만 오길래, 아쉬우니까 어떻게 저번에 걔 다시 만나면 안 될까? ~하여 탐색전만 펼치다 헤어진 남자한테 1년 만에 연락한 숙녀. 간보는 저울질, 속 보이니까 그러지 마셔야지. 안 그런가? 안 그래도 그 일을 미리미리 하는 전문가들이 있지 않나. 마담뚜랄지 결혼정보업체. 그렇다고 그분들만 뭐 돼지고기 A+++ 소고기 특 B---라고 등급 매기시나? 개인적으로 혼자 몰래 속으로 그러지 않는 사람은 없어. 있어? 없어. 남자 얼굴 보지 않는다는 여자는, 즐겁고 기쁘며 신나는 숙녀 인생으로 살기를 포기하고, 그저 착한 척 하나에 내 모든 걸 거는 식이지. 먹고 싶은 거, 먹어서도 안 돼요. 하고 싶은 거, 해서도 안 되고. 딴 남자 쳐다봐서도 안 되고. 아무것도 하면 안 되고 그저 구애하는 첫 번째 남자한테 여자 인생 모두 헌납해서, 밖에서 신나게 바람피우고 다니는 남편 수발만 들어도 부족한 것. 그게 삐툴어진 허영심이란 그 말씀이지. 무슨 꼴값은 남들이 뭔 피해를 입고 주변 사람들 죄다 괴로워해도 나만 괜찮으면 꼴값이 권리고. 적당히 끼리끼리 만나고 지적인 남자를 좋아하면 뭐 얼굴값인가? 속으로 속물처럼 이 생각 저 생각 견주어보고 따져보지 않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어. 절대로 없어. 첫인상이 뭔데? 누굴 속이려고. 뭐 아무튼 남자는 그렇고.
    그렇지만 우리 어른들이 암컷의 습성을 어찌 모르시나. 앞서 엑셀 파일에 나왔든 수컷의 습성도 뱁새, 촌닭, 하이에나, 똥파리, (여자의 마음을 잘 아는 치타), 팔색조, 성실한 벌새, 말 잘하는 앵무새 그리고 파랑새. 많고도 많듯이, 가 문제가 아니라. 남자는 단지 촌닭이면 촌닭, 늑대면 늑대. 달랑 성격 파악하면 그거 하나로써 남자는 일생 변치 않아. 인성에 따라 또 갑자기 떼돈을 벌어 사람이 확 바뀌는 변수는 예외로 치고 말이야. 그런데 여자는. 어? 여자는! 고양이, 양, 펭귄...... 촌년도 촌년 나름이겠으나 여자는 동화, 유행가, 댄스 따라 하기, 낭만적인 드라마 애호기, 여성잡지 1, 그러다 이모 스타일이 잘 아는 척 말하면 귀 쫑긋~ 세우면서 남자한테 환장한 년은 물론, 어? 여자는 천성 말고도 쉬지 않고 죽을 때까지 변하지. 그래서 사랑이란 상향지원 하향지원, 인파이터 아웃복서 말고도, 특히 여자, 여자는 기준선 고집하지 않으면 끝이야. 응? 여자는 선구안 어설프면 여자의 인생 뻔할 뻔자란 말일세. 아시겠나? 두고두고 후회하고, 두고두고 배아프고, 두고두고 질투나고, 두고두고 미련 갖고, 두고두고 속 뒤집어지고. 내 남자 있어도 내 남자 일생 데라고 살아도, 두고두고 그러지 하지 않을 수 없는 일부 여자의 일생. 살아보지 않으면 그맘 몰라. 혹시, 아슈? 몰라. 절대 몰라. 다만 추정, 추론, 예측, 가정은 할 수 있지. 실제 당사자의 마음과 그게 거의 99퍼센트 흡사할 수도 있고 말이야. 
    자, 예를 들어볼까? 내 친구 얘기. 
    20살 전후해서 숙녀 인생 첫 남자가 꽃 들고 쫓아다녀서 만난 이야기. 
    통계 산출하면 나중 잘 사는 짝들도 많아. 많지. 많다고. 그런데 비율은? 
    내 친구? 넘어가냐 마냐, 이모 말 따르든 말든 지 인생 지가 알아서 한다지만. 
    일단 넘어가더라도 딱 2가지로 나뉘어. 일찍 몸을 허락하느냐 마느냐로! 
    내 마음에 쏘옥~ 들어서 정말 완전 좋아서 미칠 것 같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냥 단순히 숙녀 인생 첫 남자이기 때문에 얼렁뚱땅, 어쩌다가, 무심코... 그냥저냥 몸 주고 마음 주고. 
    마음이 가야 몸이 가는 게 여자인데. 반대로! 빈틈을 보이기 때문에, 기회가 엿보이고, 고로 여심의 여지를 노출하니까 마음까지 따라간 내 친구. 가만있어 봐. 
    (손가락으로 세는 시늉). 회사에서, 집에서, 차에서...... 만난 지 일찍도 줬고 총 합해서 대체 몇 번이야? 그러니까... 에잇 말을 말자. 말을 말어.」  





    19

   「그렇지만 실망하지 마 2인자 친구. 
    최초보다 나은 재포지셔닝도 최고가 될 수 있으니까. 쉬우면 재미없지. 안 그런가?
    세계적인 광고제에서 상 받는 게 광고인들의 꿈인 데다, 광고회사 손님인 기업들도 그걸 반겨한다지만. 
    정작 브랜드 매출과 멋지고, 재밌고, 전문가 중의 전문가들이 만든 광고의 상관관계? 없어. 희박. 일관성 없이 엿장수 맘이 따로 없지.
    물론 첫 번째로 등장하자마자 그녀의 마음을 냅다 빼앗아버리면 좋겠으나. 
    그 정도로 홀딱 반할 만한 이상형이 미칠 듯이 맹렬히 구애하는 남자를 만나는 숙녀는, 천 명 가운데 1명 있을 둥 말 둥. 
    그래서 나머지. 남자가 꽃 들고 쫓아다니고, 선물 들고서 기다리고, 차려 입고 또 꽃다발 들고서 따라다니는 남자들. 
    10번, 100번, 1000번, 3년 동안 집요하게 들러붙어 억지로 사귀어 잘 사는 비율 얼마. 나중 후회하는 여자 얼마. 다 정해져 있어. 
    100번? 100번이 뭐야, 단 3번만 쫓아다니며 껄떡거려도 냅다 넘어가기 바쁜 여자가 적을까, 많을까? 
    그래서 만나줬더니, 사귀어줬더니, 어쩌면 결혼까지 해줬더니~ 어떻다더라 라는 한탄? 
    (인식이 이 정도 되면 지 인생 포기한 거나 마찬가지니, 책임을 타인에게 떠넘긴다는 거 자체가 바보요 하수)
    그렇게 3년 사겨줬더니 말이야, 어느 단골 바에 여자친구를 데려가서 하는 말. 
    "쟤가 너보다 더 예뻐. 훨씬."
    하도 애걸복걸 찝쩍거리길래 만나줬더니, 여자친구 되어줬더니, 사귀는 사이가 이런 건지 확신 없고 그냥 일단 탐색전 상대만 되어줬더니. 지 형편 풀릴 때까지 기다려줬더니. 어? 글쎄 진도를 안 빼줬기 때문에, 고로 그새를 못 참고 딴년 만나는 남자. 아니면 나중 형편 풀리면 더 좋은 여자와 몰래 결혼 준비할 시점에, 평강공주를 차버리고 복수하는 남자까지. 
    맥도널드 아르바이트생 퇴근하기 기다리고, 쫓아다니고, 집까지 몰래 따라가고. 꽃 들고 쫓아다녀다 어떻게 사겼어. 넘어갔으니까. 그랬는데~ 어머나 버거킹에 새로 온 점원이 더 예쁘네? 갈아 타. 여자도 환승이별 심심치 않게 하잖아? 그러다 다시, 던킨도넛에 새로운 어린 아가씨. 지금까지 만나본 여자들 가운데 제일 예뻐, 최고로 어려, 애교도 장난 아니야. 내숭의 기술 역시나 끝내주네? 갈아 타. 뭐 만나주지 않으면 죽어버리겠다면 협박해서 만나주고 어쩌고. 권위에 굴복하고 줏대 없고 마음 약하고. 순진할 때 그럼 몰라도, 나중 일명 존못남(좃나...)의 말도 안 되는 구애를 받아줬더니 글쎄 뒤통수를 자기 쳤다면서 동네방네 소문내고 다니는 연예인병녀. 자랑도 풍년이지. 남자복을 공상하며 남자 생각만으로 시도 때도 없이 설레고 들뜨고. 그런 벌렁벌렁녀. 시작부터 끝까지 남 얘기하는 험담꾼 다변가들 마냥, 뭔 생각만 했다 하면 남자 생각인 여자. 입만 열면 남자 남자. 응? (절레절레)! 최고의 남자 4명이 나한테 동시에 구애하는 게 꿈인 숙녀의 이상. 여자의 판타지를 결코 싫어할 수 없는 여자의 본심. 연예인처럼 사는 게 꿈인데 과연 나란 처녀는 남자 1명으로 만족할 수 있을까? 그런 어떤 여자를 만나면 피본다는데. 정말 피 많이 보는 걸 점쟁이들이 아무리 돌팔이여도 만장일치로 점치긴 하긴 하던만. 응?
    좌우지간 결론은 그거야. 따라서 오빠는 어떤 숙녀 인생 첫 번째 남자가 될 것이다. ~라는 나의 예언. 여자 노스트라다무스로 점쟁이 업계에 신선한 파장을 일으키며 새롭게 데뷔한 나의 당당한 첫 번째 예언이라고 치자 그거라고. 아시겠소 작가 양반?」 
    물론 나는 마고를 만나지 못했다. 
    방금 전 16, 17, 18 문단에서 신나게 떠든 얘기. 마고를 만나서 어쩌고저쩌고 주례사이자 지루한 설교, 식상한 연설 얻어들은 썰? 
    뻥. 다 뻥. 몽땅 뻥. 어? 개 뻥. 개뿔. 전부 뻥. 그냥 나 혼자 공상한 게 다였다. 
    물론 15 문단까지는 진짜. 그래서 말 나온 김에 하나 고백하자면 이렇다. 
    즉 나는 언젠가 마고를 우연히 만나게 되지 않을까 라는 어렴풋한 예감에게 내 마음을 살짝 내어주고야 말았던 것이다. 
    뜬금없이 밑도 끝도 없는 실토를 끝으로 본 연재 편을 마친다. 끝. 

,

BLOG ─ 161

from 소설 2019. 12. 15. 16:23

    1

    남의 집 금송아지보다 제 집 돼지새끼가 낫다. 그럼 우리 집 돼지 우리 집 강아지는 무엇일까? 뭐겠나 인공지능 지니지. 그런데 지니가 요즘 무기력증에 빠졌다. 그래서 나보고 어쩌라고! 어쩌긴 뭘 어째. 집에 있으면 게을러지기 마련. 남자는 집에 있으면...... 워 워 워. 맘 잡고 철든 남자, 착실한 남성, 꽤나 가정적인 수컷 마음이 무슨 허름한 고물 자전거 타이어도 아니고 엄한 데다 뽐뿌질 할 일 있나. 꼭 그렇다는 게 아니라 집 회사 집 회사, 너무 일만 하면 바보가 된다는 말처럼 나는 뭔가 변화가 필요했다. 홈런을 때릴 수 있는 기회는 아무 때나 오지 않는다. 그런 절호의 적기가 딱 올 뻔 말 뻔하다가도 중간에 꼭 눈치 빠른 이방과 약삭빠른 여우가 낼름 채가는 세상. 배 들어올 때 노 저으랬다지만, 쇠가 달구어질 때까지 기다리기만 해서는 날샌다 날새. 그런데 오라는 데가 있긴 있었나? 있을 턱이 있나. 남들도 다 이처럼 사는 거지. 
    그래서 이대로 있다가는 정말로 바보가 될 것만 같기 때문에 나는 아는 동생 누군가를 만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오늘 릴리가 일하는 미술관에 놀러갔고. 
    장면 전환.
    장면 전환.
   「오빠가 내 남편 데리고 살래?」
   「뭐라고?」
   「오빠가 내 남편 데리고 살 거냐고?」
   「내가 늬 남편을 왜 데리고 살아야 하니? 게다가 너 결혼 안 했잖아. 남자친구도 없잖아. 너 그런 말 하는 거 아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오빠가 날 얼마나 아는데? 나 사실 남편 있어.」
   「뭐? 늬가 결혼했다고?」
   「어.」
   「정말로?」
   「아니. 뻥이야.」
   「(표정) 넌 인사말이 뭐 그러니? 오랜만에 오빠 만나서 할 얘기란 게 고작 있지도 않은 남편 타령? 미술관 잘 돌아간다.」
   「남의 미술관 잘 돌아가든 말든 오빠가 상관할 일 아니고.」
   「나도 알아. 다 안다고. 그러니까 내가 뭐 잘해야 본전에 해당하는 지인쯤으로 찍힌 거네. 맞네. 그렇군. 그럴 줄 알았어. 이제? 누가 이제래. 내가 눈치가 없나 돈이 없나. 돈? 필요 없어. 왜 오빠가 선물... 주면 받겠니?」
   「내가 오빠 선물을 왜 받아?」
   「나도 줄 생각 없었어.」
   「그런데 내가 대체 여길 왜 왔지? 무슨 중요한 이유라도 있었나 의심스러운데.」
   「오빠. 인생이 어디 그렇게 의뭉스러워서 큰일 하실 수 있겠수?」
   「홈런? 오빠 뻔트 좋아한다는 거 알면서 그런 말을?」
   「내가 오빠한테 무슨 말을 하겠니. 타락한 우정과 야합하고 추접스러운 사랑에 결탁한 삶이라면 말도 말아 이 이 이 남자야.」
   「뭐! 너 말 다 했어?」
   「말 다 안 했으면 뭐 어쩔 건데?」
   「어쩌긴 뭘 어째? 가만히 듣고만 있어야지. 짧은 말이든 긴 연설이든. 안 그래?」
   「그렇게 꼬리 내릴 거면서 동생 윽박지르기는. 하여간에 넉살도 좋아. 아휴 능글능글.」
   「오빠는 너한테 말싸움 진다. 알지?」
   「오빠. 오빠 요즘 외롭니?」
   「나? 사람은 아니. 남자는, 외로워야, 정상이야.」
   「그럼 남자만 고독하고 여자는 평생 신부들러리나 서란 말이야?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여자는 난봉꾼이든 플레이보이든 내내 기다리기만 하라고?」
   「내가 보기엔 오빠보다 늬가 더 외로운 거 같은데. 너 속에 화가 많구나.」
   「나도 여자야. 오빠가 슬슬 내 부아를 돋구니까 그렇지. 어?」
   「내가? 내가 언제!」
   「이 인간이 지금...」
   「워 워 워.」
   「워 워 워긴 누가 워 워 워야. 내가 무슨 말이야 재규어야? 에잇 재미없다. 이런 얘기 증말 한두 번도 아니고 말이지. 그러니까 말이지, 하던 투정 멍석 깔아놓으면 안 할 줄 알았는데. 그런데 응석 대회 제왕감? 누가, 내가? 아니야. 그럼 오빠가? 그럴지도. 아무튼 아이들이 노는 건 봐도 떠드는 건 못 본다는 말이 있다네 친구. 허당계를 평정할 정도의 깽판으로 성장한 어리광, 사람들이 어디 그렇게 한가한가. 애들이 떼쓰면 귀엽기라도 하지. 어?」
   「릴리. 잠깐 뭔가 착각한가 본데. 내가 오빠가 너가 동생인데. 그냥, 이렇게 갈까? 가긴 어딜 가. 언제 끝날 줄 알고. 이렇게 말꼬리 잡고 늘어지다간 한도 끝도 없겠다. 이런 밑도 끝도 없는 대화, 좀 시작하지 않을 수 없니?
   「오빠가 먼저 시작했잖아. 말려줘도 뭐래? 너 정말 내 손바닥 안에 들어오고 싶어? 내가 무슨 오빠의 인공지능인 줄 알아? 그래? 어? 정말 그래?」
   「너가 드디어...」
   「내가 드디어...?」
   「너가 마침내 여자가 되었구나.」
   「그럼 내가 여자지 남자니? 듣고 보니 오빠가 의심되네. 오빠 고추 달리긴 달렸어?」
   「어허! 넌 말을 해도 꼭!」
   「부끄러워하지 마. 괜찮아 괜찮아. 그러지 말고 여기나 가봐.」
    그러면서 릴리는 어느 명함을 보여줬다.
   「아는 형인데 최근 작품 꽤나 팔고 한몫 건졌거든. 그래서 떠났어 세계여행. 한동안 안 와. 거기 작업실이든 뭐든 다 청산한댔어. 심심하면 거기나 놀러가서 그 잘난 작품 구상이든 뭐든 하던가 말던가. 아 글쎄 가서 머리나 식히고 오라고.」 
   「넌 내가 무슨 이런 따끈따끈한 껀수나 바라고 온 무슨 잔머리꾼인 줄 아니? 내가 너한테 그거밖에 안 되는 오빠야? 그래? 이처럼 매번 받기만 하는 뭐 난 기분 얼마나 좋을 줄 아니? 어? 이 사람이 지금 보자 보자 하니까... 뭐가 어쩌고 어째?」
   「지금 어디서 큰소리야. 왜, 싫어?」
   「누가 싫데? 얜 꼭 보면 줬다 뺐을라 하는 게 흠이라니까.」
    나는 생각했다. 아아 올 것이 왔구나. 어? 마침내 말이다. 물론 가 봤더니 그저 그럴 수도 있다. 그렇다고 마음 없는 척 수락하는 거야 친교의 기본. 릴리와의 우정이 다른 게 아니니까. 서로 작은 교분쯤은 정말 잔뻔치로 꽤나 주고받았다. 적은 것도 쌓이면 많아진다. 많으면 달라진다. 달라지면 좋다 나쁘다? 좋을 때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야 어떻든 길고 짧은 건 대 봐야 안다. 강은 건너봐야 알고, 과일은 먹어봐야 안다. 뭐? 됐고. 나는 당장 떠나기로 했다. 





    2

    나는 릴리로부터 소개받은 별장에 도착했다. 
    A에서 B까지. A는 사무실이요 B는 릴리가 소개한 별장. 
    그게 멋지고 재밌고 흥미진진하다면야 다 정성스럽게 설명을 하겠으나. 
    내가 뭐 삼류 극본 작가도 아니고, 발표하는 영화마다 수익분기점을 넘자마자 막 내리는 괴짜 영화감독도 아니고. 
    그러니 중간 건너뛸 수밖에 없지 않냐는 푸념도 더럽게 재미없긴 마찬가지구만 그래. 참 나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지만 오늘 날씨 보니 먹구름 잔뜩 끼얹지 않냐고. (절레절레)
    그렇게 딱 그곳에 들러가려고 릴리가 알려준 비밀번호를 입력했다. 
    띠~! 틀렸다는 신호.
    재도전. 
    띠~! 또?
    다시 한번. 지가 무슨 여인의 마음이야 뭐야.
    띠~! 뭐야 이거. 
    나는 곧바로 릴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오빠.」
   「릴리 여기 별장 비밀번호가 안 맞는데?」
   「그래? 내가 알아보고 다시 전화줄께.」
    뚝. 왠지 모르게 불길한 기운이 날 감싸는데 이걸 어쩌면 좋나. 잠시 후 릴리한테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걔 거기 별장 팔았다는데. 오빠 어쩜 좋니? 괜찮아. 다음에 내가 6박 7일 풀서비스 특급 호텔 초대권 선물해줄게. 됐지? 그럼 나 지금 바빠서 끊는다. 대충 어디서 눌러 있다 쉬다 와. 그럼 되지. 올라와서 연락하고. 올라오면 여자 소개시켜줄께. 알았지?」
    뚝.
    뭐야 이거. 이런 젠장. 걜 믿은 내가 바보다. 어차피 못 미더운 숙녀 속아주질 말았어야 한다고. 그러거나 말거나 이미 엎질러진 물.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나는 차에서 음악 <요한 세바스찬 바흐 / Magnificat in Eb major BWV243a>을 들으면서 처음 보는 풍광을 즐김과 동시에 묵을 곳을 살펴봤다. 
    저기 보이네.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이름까지 공개해서 안 그래도 피곤한 독자 더 피곤하게 만들 일, 나도 반기지 않으니까 그건 그냥 호텔 1이라고 치면. 
    호텔 1에 들어가서, 이러쿵저러쿵 수속 마치고, 방에 들어가서 짐 풀고 침대에 벌러덩 누웠다. 
    갑자기 전화가 걸려왔다. 여성환상 1.5 편집장 사라였다. 얘가 왜 뜬금없이? 뭐 받아보면 알겠지.
   「뭐해?」
   「뭐하냐니?」
   「귓구멍이 막혔어?」
   「멀쩡한 남 청력까지 신경써주시게? 사라가 그렇게 한가한 때도 있었나. 금시초문인데?」
   「까불지 마.」
   「」
   「까불지 말라고.」
   「암말도 안 했잖아?」
   「잘했어. 어디야?」
   「너도 할 말 없으면 식상한 말만 골라서 하는 동네 아줌마니? 언제 한 번 밥 먹자, 거의 100퍼센트 안 먹어. 3시간 신나게 떠들고 나서 중요한 얘기는 나중에 만나서 다시 하자? 뭔 말 했는지도 잊어먹어. 어디야? 어디면 알아서 뭐할 건데. 책 1권 빌려가면서 나중에 줄게? 다시 얼굴이라도 오다가다 마주치면 다행이게, 절대 안 줘. 영원히. 이사할 때 어디로 가버리기 전 훨씬 일찍 까먹거든. 친한 친구들끼리 통화할 때 제일 많이 하는 말 가운데 단독 1등. 물론 순위는 오르락내르락.」
   「뭔 말이 그렇게 길어? 대답 안 해? 어디야?」
   「왜, 어딘 줄 말하면 베네룩스 3국 무료 여행권이라도 선물하게?」
   「내가 늬 여자친구니? 잔말 말고 칼럼이나 보내. 마감일 다 됐어. 더 못 기다려.」
   「아 맞다!」
   「능청떨지 마.」
   「나 당분간 쉰다고 리스베르한테 전해줘.」
   「쉬긴 늬가 뭘 했다고 쉬어? 늬가 지금 정신이 있는 거니 없는 거니?」
   「나 지금 좀 쉬어야 해. 왜냐하면 쉬어야 하기 때문이지. 아니! 나 이제 칼럼 안 써. 내가 다시 칼럼을 쓰면 그땐 개다 개. 알았어?」
   「알긴 누가 알어? 아무도 알고 싶어 하지 않아. 내 너 그럴 줄 알고 요원 보냈어. 너 지금 호텔 1에 숙박해 있지? 넌 걷든 기든 뛰어 봐야 내 손바닥 위라는 것만 알아둬. 뭐해, 커튼 열어서 창밖을 보지 않고.」
    나는 창문의 커튼을 확 젖혔다. 뜨아! 역시나 말끔한 수트발에 헤어스타일은 기름칠 번질번질한 8 대 2 가르마. 우리는 눈빛이 잠시 마주쳤다. 늑대는 늑대를 알아보는 것일까? 늑대 구토하는 소리 그만하고. 
    여성환상 1.5와 환상문학잡지 미스테리아로부터의 독촉은 뭐랄까 술꾼의 그칠 줄 모르는 갈증 같다고나 할까. 냉소꾼의 권태라기보다는 허당의 실소를 불러왔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으로 여행 와서 한동안 나른한 휴가를 즐기려던 찰나, 노름꾼의 탐욕을 충족시켜주기를 누가 바랬냐고. 그냥 귀찮은 척 행복한 아니, 썩은 미소 일명 썩소는 잠시 쉬자는 속셈이 뻔히 들통난 셈 아니냔 말이지. 내가 정작 원하는 건 일일 아침 드라마를 챙겨볼 수는 없으니, 고로 파다한 추문에 깜짝 끼어들기? 그런데 밑도 끝도 없이 염문이 왜 나와. 심심하던 인생에 느닷없이 등장한 사랑에 적잖이 놀라도 모자를 판국에 또 독촉. 또 또 독촉. 
    그래서 나는 전화를 뚝 끊고 핸드폰에 깔린 앱을 지웠다. 
    사라는 그걸로 날 추적했을 테니 이젠 더 귀찮게 하지 않을 것이다. 





    3

    나는 그렇게 호텔 1을 떠나 호텔 2에 도착했다. 
    중간 설명은 건너뛰기로 하자. 억지로 그거 써 봐야 읽는 사람만 피곤하니까. 별 내용도 없는 거 가지고 더럽게 잘난 척할 일도 없고. 아는 척이야 물론 취미 없음. 뭐한다고 가짜로 행복한 척? 타인의 관심이야 고맙겠으나 우리는 얼굴 팔리는 거 좋아하는 앵무새 분과가 아님. 우리는 짜증나는 상심, 신경질내는 절망, 표정 망가지는 체념이 뭔지를 조금이나마 알긴 알기 때문에 그냥 한마디로 뻔트를 선호함. 장외 홈런 이 왜 나빠. 단지 우리는 자기 주제를 아니까 어디서 잔소리나 얻어듣고 잔재주나 선보일 수 있으면 그걸로 대충 만족이다 그뿐이지. 그런데 이 얘기를 지금 왜 하는 거지? 무슨 바람피운 다음에 변명하는 거도 아니고. 양심에 찔리는 거야 다 애인한테 뭔가 켕기니까 그러는 거고. 말 빨라지고 말 많아지면서 당황하면 일단 의심을 부르는 게 당연. 그야 그분들 사정이고. 젠장, 이럴 바에야 차라리 호텔 1에서 호텔 2로 이동한 정황과 분위기와 의식의 흐름을 옮기는 게 지겨워서 차라리 나았겠네. 어쨌든 넘어가고. 
    나는 호텔 2에 들어가서 수속을 마치고 몇 호실에 들어갔다. 
    정말로 홀가분한 마음에 짐을 놓고 침대에 벌러덩 누웠다. 
    그런데 갑자기 전화가 걸려왔다. 환상문학잡지 미스테리아 편집장 마라였다. 마라?
   「뭐해?」
   「넌 뭐해?」
   「내가 먼저 물었잖아.」
   「먼저 물어봤으니까 먼저 답하면 되겠네. 아니 그렇수?」
   「뭐?」
   「집어 든 거 내려놔. 나 늬 옆에 없으니까. 숙녀가 연장을 왜 들어?」
   「내 너 이럴 줄 알고 미리 다 병력 불러 놨어.」
   「병력? 뭔 병력?」
   「연재소설 마감일인 걸 몰라? 알잖아. 알면서? 지금 너 나 쫄쫄 굶는 꼴 보고 싶어 이러니?」
   「안 그래도 너 다이어트 다이어트 노래를 불렀잖아?」
   「지금 그 말이 아니잖아. 응?」
   「왜 커튼을 젖혀 창밖을 보면 예사롭지 않은 카리스마 요원이라도 있다는 거니?」
   「헉! 어떻게 알았어?」
    나는 커튼을 젖혀 창밖을 내다봤다. 그런데 정말로... 정말로... 이번에는 '가죽점퍼 + 선글라스 + 올백 헤어스타일'의 전형적인 현장 요원 모습이었다. 
   「야 너. 신비감에 농락당해 환상머신을 탐닉하고 어쩌고. 그런 말장난 그만하고. 어서 원고 넘겨. 오늘 마감일이야.」
   「안 썼어.」
   「뭔 배짱?」
   「보기 좋게 왕 기대는 대실망으로 이어지는 거지. 안 그래도 그거 재미도 없는데 누가 보니? 나도 다 듣는 귀가 있어. 두세 달 반응 보고, 어? 그래프 추이선 보고 무슨 다큐멘터리 특집인가 뭔가로 바꾼다며? 누굴 속이려고! 누군 뭐 정보통 없는 줄 아니? 이거 왜 이래? 어?」
   「아니야. 그거 헛소문이야.」
   「마라. 새 빗자루가 깨끗이 쓸어진다. 알아, 몰라?」
   「그건 또 웬 뚱딴지같은 소리야? 말을 알아듣게 해 이 양반아. 어? 목소리 깔지 말고 똑바로 말해.」
   「너 말귀 어둡다고 자랑하니? 환상문학계에서 눈칫밥 그렇게 먹었으면서 넌 아직도 그렇게 꽉 막혔니? 그러니까 늬가 남자가 없지.」
   「뭐가 어쩌고 저째? 너 말 다 했어? 너 어디야? 너 한동안 잠잠하던 이유가 다 있었구나. 넌 계획이 다 있구나. 응? 아 그러니까 그게 뭔 소리냐고.」
   「나 이제 소설 안 써. 연재소설 딴 작가 알아봐. 내가 다시 소설을 쓰면 그땐 펭귄이다.」
   「넌 이미 펭귄이야. 알아?」
   「내가 펭귄이면 넌 새야. 알아?」
   「이런 돼먹지 못한, 이런 미친, 이런 어디서 생선 대가리 같이 생기다 말아가지고 말이야. 잔말 말고. 당장 원고 보내. 어서.」
   「못 보내. 끊어. 그래. 너 잘났다. 잘 먹고 잘 살아라. 나 휴가야. 연락하지 마. 끊어. 하나만 더. 마라? 넌 애송이야!」
   「뭐라고? 야. 너 이리 와. 당장 와.」
   「내가 어느 안전이라고 말이지, 마라 여왕님의 용안을 직접 뵐 수는 없고. 난 그냥 가서 엄마 젓이나 더 먹고 올게.」
   「늬가 애야? 너한테 공갈젖꼭지가 어울린다고 생각해? 그리고. 또. 내가 언제 너한테 가서 엄마 젖이나 더 먹고 와, 라고 말했니? 난 그런 말 한 적 없는데.」
   「없어? 없으면 지금 해. 그럼 될 거 아니야.」
   「너, 드디어, 미쳤니?」
   「난 미치지 않았어. 내가 아니라 너가 미친 거 아니니?」
   「뭐 내가? 내가 그럼 미친년이라고? 너 말 다 했어? 너 거기서 딱 기다려.」
   「기다리긴 누가 기다려. 어? 기다리긴 뭘 기다리냐고. 안 기다려. 끊어.」
    뚝. 
    그다음 나는 노트북에 설치된 위치 추적 애플리케이션을 지웠다. 
    그리고 호텔 2에서 다시 호텔 3으로 이동했다. 





    4

    먹는 개는 짓지 않는다. 나는 최근 투정만 늘었다. 고로 나는 짓어야 한다? 그러든가 말든가! 
    식탐이고 자시고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다. 그럼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아마도 특단의 대책을 부르는 숨은 강적은 거무튀튀한 정염의 미련? 미련은 무슨. 호텔 1에서 2로. 다시 호텔 2에서 3으로 옮겨왔는데. 왠지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고. 어딘가 모르게 벌써부터 패배감 가득하고. 거 어째 보송보송한 사랑의 환상에 대한 기대감은 느낌 세하단 말이지. 어쩌지? 어쩌면 좋단 말인가. 어쩌긴 뭘 어째. 그냥 며칠 휴가라 생각하고 쉬는 거지. 소파에 자빠져 TV 채널이나 돌리면서 싱거운 음료수와 함께 맛없는 과자나 씹어먹으면 되지, 거 무슨 꽃사슴을 자빠트릴 궁리를? 또? 때문에 나는 이미 권태 적응가가 되어버린 것만 같았다. 물 만난 듯한 한량의 열정, 이미 바닥난지 오래. 아니 정말로 말이야 이제 어찌해야 좋을까. 어찌하지 않아도 된다. 더럽게 재미없는 일상, 다 방법이 있다. 그러니까 이를 테면 딱딱한 빵에는 날카로운 이빨. 어? 허허허. 그런데 가만 보니 딱딱한 빵은 커녕 이렇다 할 건수도 없네. 새몰이 따로 있고 새잡이 따로 있다는데 이건 뭐 소문난 병풍도 아니고 말이지. 이젠 신부들러리조차 맡아본 지 오래고, 하다 하다 백댄서 인생이 부러워져. 갈 데도 없고 불러주는 이는 더 없고. 그리고 말이야. 그러니까 말이지.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거라고는 예를 들어 그런 거. 담 건너 편의 사과가 가장 달다. 자, 뭐? 잘못 들었나? 제대로 읽으셨다. 그러니까 뭐 절판된 도너스가, 아니면 희망의 내일 꾸는 개꿈이? (절레절레)! 그도 아니면 뭐, 어? 멀리 여행하려는 자는 자기 말을 아낀다. 그러니까 곶감론? 됐구유. 네? 됐다구요. 아 됐시유.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여행지에서의 새로운 발단과 참신한 전개는 함께 오는 것. 기승전결 가운데 동시에 곧바로 절정감을 예감하는 거지. 흐흐흐. 크크크. 1 대 1 만남이 주특기인 촌닭들에게는 어쩌면 그게 제격. 따라서 남은 카드는 결국 우연한 만남? 우연? 만남? 남녀? 새로운 여자? 늑대 말을 하면 그 꼬리를 보게 된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 그런데 보이는 객이라곤 순 죄다 뻣뻣한 남자들뿐. 여우는 어딨냐고! 이 동네는 그 흔한 나이트클럽도 없고, 초라한 극장식 카바레는 전부 다 문 닫았음. 하여간에 소름 끼치는 신비감, 끔찍한 환상 그리고 마술적 현실성.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지. 이럴 거면 뭐하러 먼 데 까지 돈 써가면 시간 낭비하러 왔냐고. 나는 마음을 고쳐먹고서 호텔에서 안토니오 비발디의 글로리아 RV 589번을 틀어놓고 평소처럼 일하기에 몰입하려다 포기했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으니까. 
    그러므로 나는 뭔가를 해야 했다. 그게 뭐든 젊음의 투지를 발산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시동 거는 허당 유형이 아니라, (좋게 포장하자면) 발동이 걸리는 마성의 신비주의자 스타일. 때문에 탄력 받지도 않았는데 아무거나 들쑤시고 다닐 수는 없었다. 뭔가 비전이 보이고 예측이 좋을 때나 빨빨거리고 나돌아다니는 거지. 어릴 때처럼 무턱대고 나댕길 수는 없는 일. 매는 굶어도 벼이삭을 쪼지 않는다. 그럼 남은 방법은? 평소에 사무실에서 하던 대로 일이 손에 잡히지 않으니까 인터넷에서 웃긴 이야기나 찾아보는 수밖에. 그렇게 봤던 얘기 가운데 엄선하든 말든 두 가지를 소개하자면 이와 같다. 
─────────────────────────────────────────────────────────────────────
    중략.
    중략된 원문은 <칼럼: 내가 창피하니?>에 고스란히.
    시중에 절찬리 판매 중. 연애론 2 역시나 개봉 박두. 짜잔~! 
─────────────────────────────────────────────────────────────────────
    분주한 벌은 슬퍼할 시간이 없다지만, 이건 뭐 일하는 거도 아니고 노는 거도 아니고. 여기까지 와서 뭐 하는 거야? 어?
    이미 속으로 많이도 웃어놓고서 말이야. 그것도 아주 겁나게~! 그런데 뭐가 어쩌고 어째? 
    그게 더 나뻐. 그게 더 미워. 그게 더 싫다고. 그게 더 짜증나. 부글부글 뽀글뽀글! 
    ~라는 환청 때문에 급기야 괴로울 찰나. 나는 결심했다. 돌아가기로 말이다. 
    아니, 이럴 거면 뭐하러 이 먼 데까지 와서? 내 말이! 괜히 왔잖아? 누가 아니래. 낭만?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는 다 틀렸다. 여행? 관둬 관둬. 끝내 끝내. 어? 때려쳐. 때려치면 될 거 아니야. 결국 줄 달린 치즈를 완성해 카우보이처럼 목표물에 던져야 하는데, 최적의 먹잇감은 당최 보이질 않았다. 그래서 나는 다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하나 더. 왠지 모르게 그 말이 생각났다. 내가 무슨 탐정물 매니아도 아니지만 말이다. 
    그건 무엇? 그렇지~ (딱)! 개는 자기가 토한 곳으로 돌아온다. 





    5

    오늘 나는 사무실에서 야근이나 하려고 했다. 
    오페레타 <박쥐>에서 아리아 “내가 순진한 시골 아가씨였다면“ 
    같은 악상을 떠올리며 허공을 바라보는 요한 쉬트라우스 2세나 된다는 듯이. 까지는 아니지만. 
    아마도 낮에 일을 너무 열심히 했던 것일까? 조지 프레데릭 헨델의 오라토리오 헤라클레스(HWV 60)를 듣고서 별일 없었다. 
    그러니까 제12 난제를 여심처럼 녹여주는 해결사의 두둑한 배포는 음악 듣기로 대신하고. TV보기, 주색, 사교계 활동... 최근 다 하지 않고 취미 없음. 
    그럼 일이나 하는 수밖에. 그러던 중 아는 동생들이 불러서 나는 그곳으로 갔다.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나는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당도해보니 아는 동생들이 떼거지로? 당연히 놀라지 않고 배기나. 대충 2명 정도면 밥 사주고 커피든 뭐든 내가 다 계산만 하는 역할을 예상했는데. 
    이러면 좋은 점은 기쁨에 주체하기 힘든 대신 견적이 많이 나온다는 점. 그렇지만 바쁜 일이 있다는 뻔한 핑계를 대면서까지 도망갈 수는 없고. 일단 앉는 수밖에. 
   「아니 이게 무슨 행운이지? 왜 남자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거지? 오늘 무슨 날인가? 누구 생일인데!」
   「것 봐 내가 말했잖아. 딱 맞춘다니까 그러네. 자, (내기에 진 사람들한테 손을 내밀며)」
   「진짜야? 그럼 말을 하지 그랬어. 빈손으로 와서 어떡하니. 빈손도 빈손인데, 어? 그보다 남자가 없다는 게 이게 말이 되니? 그렇다고 너네들이 남자에 환장한 여우다 뭐 그런 말은 아니지만. 그러니 오해하지 마시기를. 그런데 거 어째 초반부터 분위기가 썩 흐뭇하지 않는 듯. 내기한 게 한두 개가 아닌가?」
   「것 봐. 다 알고 있다니까.」
   「뭐야! 그럼 오늘 난 그냥 세기의 빅매치에서 초반에 흥만 띄우다 카운터 펀치에 나가떨어져 KO 되는 순위권 쟁탈전 희생양? 어머 진짜인가 보다. 얘 크리스티. 웬 내숭? 너 친구들이랑 있을 때 안 그러잖아. 목소리 걸걸. 응? 어딜 봐? 저쪽에 남자 없어. 그리고 너 사라. 너네 직원들이 너 이처럼 농땅 피우는 거 아니? 늬가 이러니까, 아니다 말 말자. 넌 뭐야 엘리자베스. 눈탱이 어디서 맞았니? 늬가 눈화장을 못하니까 매번 남자한테 차이는 거 아니야. 어? 로즈마리는 얼굴이 왜 저처럼 부었는데? 너 어제 뭐 먹고 잤니? 정말 그랬니? 야 에밀리. 넌 옆에서 그처럼 킥킥 웃는 게 탈이야. 여자들이 시누이 눈꼴 시려운 거 보기 좋아하니? 넌 딱 꼴 보기 싫은 시누이감이야. 알아?
    ~라는 독설이야 다 농담이고. 부드럽게 띄워서 차이 나는 격차에 감격하기 위해서 일부러 살짝 몸만 푼 거야. 아니 그래도 말이지, 어? 나름 혀매시나 된다는 듯이 너네들 앞에서 방정을 떨 수도 없잖아. 안 그래?」
    나의 휑설수설을 딱 끊고 릴리가 다음과 같이 맞받아쳤다. 
   「그걸 떠나서 오빠 여기 왜 왔는데?」
   「나?」
    릴리의 날카로운 앙칼짐에 더해 샐리도 다음과 같이 한 수 얹었다.
   「오빠 말 끊어서 미안한데, 어? 오빠 궤변은 둘째치고 말이야 오빠 여기 왜 왔냐고. 어? 안 들려?」
    오빠 말 끊어서 미안한데? 아니 그럼 애초에 말을 끊지 말던가. 내가 여기 왜 왔냐고? 늬들이 불렀으니까 왔지. 내가 뭐 미쳤다고 늬들 꽁무니만 졸졸 쫓아다니는 뭐 개니? 말이야? 너구리야? 참새야?
   「어라! 오늘 시트콤 기획 개념은 이건가? 나 시비받는 거 좋아한다는 거 어떻게 알았지?」
   「거짓말 마. 오빠가 슬랜더를 좋아하든 말든, 안 물어봤어. 일단 안 물어봤다고. 어? 궁금하지도 않은데 뭐래?!」
   「그러니까.」
   「아하. 곧 그 말은 1 대 1은 재미없다? 영화 찍게?」
   「시끄러. 시끄럽다고.」
   「조용히 말할게. 그러면 되잖아. 안 그래?」
   「거 참 말 많네. 아 거기 서서 뭐하는데. 왔으면 앉든가 아니면 가시든가. 앉거나 가거나 둘 중 하나만 해. 뭐야?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오빠가 사랑을 알아? 죽도 밥도 안 되는 헛소리나 핑핑 할 줄이나 알지.」
    나는 생각했다. 얘네 세게 나오는데? 날 대체 왜 불렀지? 정말로 그 뭐야, 난 오늘 시종마? 뭐? 이런 젠장 진짜로 느낌 세한 게 난 오늘 딱 시종마로 분위기만 고조시키다 빠져야 할 거 같은 직감. 난 빠짝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너 말 잘했다. 응? 너 말 한번 잘했어. 뭐 우리끼리는 음, 그래도 이건 좀 심하지 않니? 오빠가 아직 적응이 잘 안돼서 그러는데. 뭐 곧 괜찮아지겠지. 그럼.」
   「오빠가 참아. 쟤네 기분이 좀 그런가 보지.」
   「그치?」
   「그렇긴 뭘 그래? 야 야. 똑같아지니까 우리가 참자.」
   「오빠 많이 참고 있다.」
   「우린 더 많이 참고 있어. 알아? 이 오빠 정신 못 차리네. 정신 안 차려? 오빠가 뭐 그렇지.」
   「그러지 말고 나도 목이나 좀 축이고 뭘 토의해도 토의하자고.」
   「오빠 뭐 마실 거냐고 물어보면 그러잖아. 아무거나! 아무거나? 오빠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없어. 먹기 싫은 건? 것도 없어. 그럼 먹지 마. 그럼 되겠네. 그치? OK. 먹지 않는 걸로.」
   「어디 숨겨진 대본이라도 있니? 연기 꽤 잘하는데? 그치? OK. 속아주는 걸로. 나 하나도 짜증나지 않았으니까 얼마든지. 컴온 컴온. 뭐해? 벌서 지쳤니? 재미없잖아? 힘내. 어? 왜 시작하려다 말어? 뭔지 몰라도 시작했으면 무라도 썰어야지. 왜? 다이아몬드가 몇 개인지 모를 휘황찬란한 명검의 검집에서 검을 딱 뺐는데. 그런데 짜리몽땅? 남 1발 뛸 때 2발 뛰면 돼. 하긴 너네 착한 거 다 아는데. 너네가 악역 어디 잘하겠니? 알만 하다 알만 해. 어? 뭔지 몰라도 애쓴다 애써. 가상해. 왜 좀 더? 필요하면 말하고.」
   「오빠 목소리 모기 같아.」
   「그치? 그렇지?」
   「좋단 거 봐라. 그래. 나 모기다. 됐냐? 만족? 그럼 너네가 남자 없는 거도 인정?」
   「안 물어봤어.」
   「물어봤다는 게 아니라~」
   「오빠 알아서 해.」
   「오빠. 오빠 드디어 빈정상했어? 응? 기분 많이 상했어? 그랬어? 마침내? 정말로?」
   「빈정상한 게 무슨 축하하고 축하받을 일이니? 너네 왜 그래 오늘? 어?」
   「오빠. 잘난 척하지 마. 재수 없어. 오빠가 우리 마음을 알아? 뭔 말로만 자기가 여심을 녹여준데. 여자의 마음을 녹여주면 뭘 해, 통장 잔고가 바닥났는데. 안 그래? 아는 척, 재미없어.」
   「아니~ 그러니까 내 말은~」
   「오빠 꼰대 같아.」
   「그치?」
   「그렇지? 그치?」
   「그래. 그래.」
   「맞아. 맞네. 맞어.」
   「오빠가 너네 마음을 다 아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가 우정을 나눈 시간이라는 게 있잖니. 오빠가 아는 멋진 훈남들이 또 좀 많니. 응? 그렇지만 왜 소개시켜주지 않냐고? 그 말이 있지. 옛말에 그런 게 있는데 들어봤을려나 모르겠다. 뭐랬더라? 그래. 벌통에 좋지 않은 것은 벌에게도 좋지 않다. 오빠가 엄선하고 또 엄선해서 마치 특급 신인의 깜짝 출연처럼 너네들한테 선보여야 하지 않을까? 응? 그래야 말이 되잖아. 안 그래? 뭐 말이 안 된다고? 두고 봐. 얼마나 멋진지 보고 나서 침 흘리지나 말고. 여우는 잠을 자면서도 닭의 숫자를 헤아린다지만, 촌닭 가운데서 진흙 속의 진주? 너넨 아마 내가 걔네들, 어? 내 남동생 사단 데리고 오면 깜짝 놀랄 거야. 당연하지. 안 그럴 수가 없거든. 허허허. 너네들 알아둬. 늑대가 공상하는 동안 양은 사라진다는 거. 지금은 너넬 가꾸고 꾸미고 아름다워질 시간. 3월의 바람과 4월의 소나기가, 계절의 여왕 5월의 꽃을 피운다네.」
   「어? 뭐라고? 다시 말해봐.」
    10초. 20초 동안의 정적.
   「오빠 화났어?」
   「아니. 나 화 아 났어. 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화를 내본 적이 없어. 나는 살면서 짜증내본 일이 단 1번도 없단 말일세. 아시겠나? 난 신경질 그런 거 어떻게 내는 줄도 몰라. 알아?」
   「허세 또 시작했다. 되지도 않는 허세. (개)허세.」
   「어디 한두 번이니? 오빠가 그럼 그렇지.」
   「그래. 너네들 짠한 심정 오빠가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다 들어줄게. 응? 전부 다.」
   「오빠가?」
   「뭐래~!」
   「저 오빠 삐졌네. 삐졌어.」
   「삐돌이.」
   「삐지긴 누가 삐져? 나 안 삐졌어. 삐지는 게 뭔 줄 알아야 삐지든 말든 할 거 아냐. 흥!」
   「삐졌네. 것도 많이. 뭐 우리 앞에서 삐져? 오빠가? 감히? 저따위, 에잇. 됐다 됐어.」
   「얘들아. 가만 보니 오빠 웃기게 생기지 않았니?」
   「웃기게 생기면, 그게 어디야.」
   「왜, 기분 좋아? 오빠만 기분 좋으면 다야? 어?」
   「너넨 정말 사람 쪼잔하게 만드는 데 뭐 있구나.」
   「우리가? 오빠는 계획이 다 있구나. 그런데 뭔 계획? 그리고. 안 물어봤는데? 오빠 친구 없지? 오빠 기분 나쁘라고 하는 말이 아니야. 오빠 기분 나빠하지 말고 들어.」
    자기들끼리 좋다면서 웃는다. 
    그다음. 나는 화장실 간다면서 화장실에 가서 손을 씻은 다음 조용히 그곳에서 나왔다. 





    6

    나는 쾌락으로부터 엄호받지 못했다. 당연히 행복감도 날 보필하지 않았다. 그러니 낭만마저 누굴 의전하겠나. 그렇다고 희망의 나라로 망명하는 개꿈을 꾸기를 하나 금전이라도 풍족하기를 하나. 뭘 해도 재미없긴 마찬가지. 이래 가지고 무슨 환상기계를 완성해. 그렇지만 장거리 장타자의 장기가 발휘되듯 마침내 허당의 권태감은 정점을 찍고 슬럼프를 탈출하면 좋은데. 바랄 걸 바래야지. 오라는 데도 없고 약속도 없고. 건수는 꽝. 믿음직한 심복인 인공지능 지니마저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복권과는 친하지 않고 마권은 구경도 못 해봤지. 행운의 여신이라고 못미더운 그를 중용하겠나. 어설픈 우연조차 날 인준하기를 거부했다. 보나 마나 뜻밖의 새로움이 있을 리가 있나. 사교계에 기웃거려봐야 당수로 추대될 수 없는 건 아무도 관심 없고. 한술 더 떠 나는 이제 공상마저 재미없어져버렸다. 상상력 부재. 일은 하기 싫고. 놀기 역시나 취미를 잃고. 색다른 관심사가 어딨어. 보이는 것이라고는 분홍빛 장미꽃은 커녕 뭐가 보여야 말이지. 이런 재미없는 일상, 여간 골치 아픈 문제가 아니다. 아니 그런데 어쩌다 인생이 이처럼 지루해져버렸을까? 더럽게 재미없는 데 단단히 한몫한 원인이 대체 무엇인가 그걸 고민할 때가 아니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평범한 월급쟁이처럼 고개 푹 숙인 채 사무실로 출근할 수밖에 없었다. 





    7

    밀가루 장수와 굴뚝 청소부가 싸움을 하게 되면, 밀가루 장수는 검게 되고 굴둑 청소부는 하얘진다고 했다. 그럼 유쾌한 낭만파 숙녀가 날 사랑하면? 그럼 게임 끝인데 문제는 짝사랑복도 이젠 영 물 건너갔다는 점. 그렇다면 이 내 우울한 침체기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날마다 즐겁고 신나고 기쁜 허당 아가씨와 사귀면 될까? 그야 내 생각에 지나지 않고. 그분들은 그분들 인생이 행복할 뿐이고. 어? 그럼 어떡해야 하지? 어떡하긴 뭘 어떡해! 그냥 하던 대로. 백날 기발한 꿍꿍이를 고심해봐야 성적 이상적 궁극적 판타지는 콧방귀도 안 뀐다. 아무리 발버둥쳐 봐야 결과는 안 봐도 뻔하다. 그렇다고 일기를 새롭게 써볼까? 하나 마나 한 소리. 잔소리. 헛소리. 개소리. 짹짹 삐악삐악 응애응애. 잔말. 다변. 뻥. 투정. 응석. 어리광. 넉살. 공상. 변명. 간혹 욕까지. 그럼 남은 카드는 다름 아니라 여행? 당나귀 여행 떠난다고 해서 말이 되어 돌아오지는 않는다. 혼자서 먹고 마시고 떠들고 돌아댕기고. 이젠 지겹다. 재미없다. 귀찮다. 여차하다 빡돌지 모를 걱정부터 앞선다. 송사리 4만 마리에 힘 입어 파도타기, 더 이상 바라지도 않는다. 모기 12만 마리의 열화와 같은 물개박수? 상상만으로도 짜증난다. 그렇다고 똥파리 군단과 하이에나 사단을 감명시키는 언변이 내게 어딨나. 그런데 내가 언제부터 이와 같이 개구쟁이처럼 뚱딴지같은 생각이나 하고 있게 된 거지? 알 게 뭐야. 누가 아니래. 아아 그러니까 말이지, 희망찬 미래를 긍정하는 열정파의 선봉에 서고 싶은 마음은 온 데 간 데 없었나, 아니면 원래부터 없었던 건가. 모르겠다 모르겠어. 됐고. 아는 게 뭐냐고. 딱 됐고. 
    그러므로 나는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최근의 행적을 보아하니 
    (1) 릴리 미술관. 릴리가 별장을 소개시켜줌.
    (2) 별장 → 호텔 1 → 사라의 독촉을 피해 도망감.
    (3) 호텔 2 → 마라의 독촉을 피해 호텔 3으로 도망감.
    (4) 호텔 3에서 허송세월. 컴백홈. 
    (5) 아는 동생들 생일잔치. 
    (6) 집 사무실 집 사무실. 
    말하자면 그 말이 딱 맞았다. 바로, 장미도 때가 와야 핀다. 그럼 아마 난 지금 심심하고 재미없어야 딱인 건가? 그러거나 말거나. 어쨌거나 저쨌거나 해야 할 일은 해야 한다. 그런데 하기가 싫다. 더럽게 재미없다. 캐럴 음악이 울려 퍼지고 연말 분위기 들썩이지만. 대충 5 단위로 끊자면 여태... 에잇 그러지 말자. 크리스마스 이브에 뭐 어땠던 적 또 0이라고 하려고 그랬지? 누가 모를 줄 알아. 그런 사람 부지기수. 그렇다고 언제까지 매번 집 사무실 집 사무실, 어? 개에게는 뼈다귀를, 아내에게는 몽둥이를. 그런 구식 탱탱 묵은 말도 더 이상 흥미 없고. 바삐 돌아다니는 개가 뼈다귀를 발견한다지만 내가 뭔 갠가? 또 돌아다니면 뭘 해. 오라는 데가 없는데. 아니면 다른 말? 사용되는 열쇠는 항상 빛이 난다. 혹시, 샘물론? 그럼 뭘 하냐고. 어? 그래서 나는 내 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됐는데. 그 말은 이랬다. 
   「이제 어쩔 거야?」
   「좋은 생각이 있어.」
   「그게 뭔데?」
    하는 수 없이. 어쩔 수 없이. 어영부영 나는 호텔 4로 떠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안 되니까 말이다. 

,

BLOG ─ 160

from 소설 2019. 11. 14. 22:00

    1

    불충족된 성적 판타지는 괘씸하기 짝이 없는 일일까? 그러거나 말거나. 내 욕구불만을 (살짝 저속한 표현을 용서하시는 너그러움을 엿장수 맘대로 깔고간다면) 씨부렁댐을 과연 그 누가 반기겠나. ~라고 NB는 공상하기도 귀찮았다. 몽상 그거 짜증나지 왜 아니겠어. 그렇지만 그도 그럴 것이 말이야, 어? 늙은 여우처럼 약삭빠르고 자시고, 뭔 약속이든 건수가 있어야지 셈을 하지. 이건 뭐 파리도 안 날리는 인생. (절레절레) 그래서 그는 오랜만에 여성환상 1.5 사무실로 놀러갔다. 
    장면 전환. 
    여성환상 1.5 사무실 도착. 
   「리스베트 안녕. 못 본 세에 예뻐졌네?」
   「어머 오셨어요. 멋져지신 건 선생님이신데요 뭘.」
    리스베르와 잠깐 인사를 나눈 후 고개를 돌려.
   「에리카. 우리 언제 데이트 한번 해야지. 전에 약속한 거 기억나지? 계속 미루다간 그거 소셜 네트워크에 올린다. 나 폭로전 한다면 하는 거 알지?」
   「오라버니. 언제 그처럼 넉살이 늘었데? 하여간에 못 말린다니까. 오빠가 무슨 하이틴 드라마 주인공인 줄 알아?」
    에리카와도 역시나 농염한 느낌이 없잖아 있는 듯 잡담은 군더더기 없이 짧았다. 
   「세실리아. 내가 괜찮은 남자 소개해줄까? 이래 봬도 우리 동생들이 알고 보면 꽤 괜찮거든. 언제든 생각 있으면 말만 해.」
   「당숙 오셨네. 오빠 내가 입만 뻥끗하면」
    NB는 서둘러 세실리아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때 편집장실 문이 열렸다.
   「야 너! 우리 직원들한테 웬만치 껄떡거려. 너 여자에 환장했냐?」
    전직원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웃지 마! 웃지 말라고. 내가 우스워? 야 너! 거기 딱 기다려.」
    도저히 창피해서 NB는 즉시 편집장실로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뒤통수가 왜 그렇게 따끔거리던지... 알 수가 있어야지.
   「넌 말이야 애들 있는 데서 내 체면 좀 살려주면 안 되니? 늬 체통만 체통이고 내 체통은 무슨 개 밥이니? 어? 그래?」
   「너나 잘해. 너만 뜨면 애들이 슬슬 피하고 실실 쪼갠다는 거 못 느꼈니? 아 쫌 엥간히 찝쩍거려야 말을 안 하지. 어?」
   「내가 찝쩍거리긴 뭘 얼마나 찝쩍거렸다고 그래? 내가 무슨 껄떡쇠라도 된단 말이니? 나 걔네들 관심 없어. 우린 그냥 그렇게 농담 반 인사 반이 형식 상 굳어진 거뿐이라고. 알아?」
   「알긴 뭘 알아. 내가 왜 그걸 알아야 하는데. 그냥 모르면 안되겠니? 저급한 개수작. 어림없어. 천박한 술수. 누가 바라는 줄 알아? 관심 없어. 뭐해, 침 닦지 않고.」
   「뭔 소리야? 너나 닦어.」
   「침 닦으라면 닦을 것이지 뭔 말이 그렇게나 많소, 오빠?」
   「침 닦긴 누가 닦아. 너나 닦어. 너나 실컷 닦으란 말이오.」
   「안 닦어? 내가 닦아줘? 아니지. 아니지. 아껴온 내 순정을 그렇게 훼손시킬 수야 없지. 그럼. 왜 아냐? 그럼.」
   「넌 대체 그런 저렴한 말투를 어디서 배운 거니? 무슨 그런 거 따로 것도 속성으로 알려주는 학원에라도 다니니? 그러니?」
   「필요 없어.」
   「또 필요 없어. (절레절레)
   「그건 그렇고. 난 오빠한테 뭐야?」
   「너 초장부터 날 혼내는 거니? 겁난다. 어? 무서워. 그러지 마. 우리끼리 그러는 거 아니야. 그건 그렇고. 그동안 왜 연락 없었어?」
   「오빠. 뭐라는 겨?」
   「웬 사투리~! 못 들었어? 그동안 왜 연락 없었냐고.」
   「왜긴 왜야. 너가 전화 안 받았잖아.」
   「너? 오빠 아니면 너. 하나만 해. 헷갈려. 그런데 너 나한테 전화했어?」
   「어.」
   「(멈칫)... 나도 너한테 전화했어.」
   「오빠한테 전화 안 왔는데. 오빠 나 얼마나 정확한 사람인 거 알잖아. 안 왔어 전화.」
   「그럼 딴 사람한테 전화했나?」
   「엽기적이네. 오빠 정신 안 차려?」
   「너! 지금부터 내 얘기 잘 들어.」
   「뭔 얘기를 할 건데?」
   「뭔 얘기 할지 까먹었어.」
   「오빠 또 슬슬 내 부아를 돋구려고 시동을 거시는 구나. 그치?」
   「왜, 쪼매 달아올라?」
   「달아오르긴 누가 달아올라! 바보 같은 소리 그만둬. 그런 헛소리 작작 좀 해. 무슨 개뼉다귀 같은 얘기 멈추지 못해? 그렇게 속 편한 소리나 할 거면 가서 풀이나 뜯어먹어. 뜬금없이 뭔 개 풀 뜯어먹는 얘기야 얘기긴. 밑도 끝도 없이 뭐가 어쩌고 어째? 미친놈. 웃기지 마. 안 웃기니까. 재미 더럽게 없다고. 알아?」
   「」
   「뭐라고 핑계 좀 대야 할 거 아니야? 그렇게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 딱 닫고 있으면 다야? 오빠가 뭘 잘했는데?」
   「잘못했어.」
   「뭘 잘못했는데?」
   「글쎄. 내가 뭘 잘못했지?」
   「됐다 그려. 힘만 빠진다 오빠. 입만 아프다고. 아니지. 아니지 아니지. 오빠. 오빠 혹시 나 좋아해? 에잇... 설마!」
   「왜. 내가 너 좋아하면 안 되니?」
   「응. 안 돼. 절대 안 돼.」
   「왜?」
   「그냥 쫌 하지 말라면 하지 마! 어? 호기심이 신세를 망친다. 그거만 알아둬. 너무 많이 알려고 하지 말라고.」
    잠시 
   「에잇 못 해 먹겠다. 더 이상 콩트 안 해. 거기서 막히는데 나보고 어쩌라고. 어?」
   「그게 어디야.」
    그때 갑자기 자리에 없던 마라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떻게? 이렇게!
   「너네 아직도 이렇게 노니? 그걸 보는 난 왜 이렇게 재밌니. 에잇 거짓말 못하겠다. 거 참 더럽게 재미없구만 그래.」
   「얘 뭐야? 어디 숨어있는 건 아닐 테고.」
   「사무실에 들어오는 순간 못 느꼈어? 아 넌 남자의 직감이지? 실시간 토크쇼였어. 요즘 유튜브에서 그런 거 많이 하잖아?」
    그러다 사라는 편집장실 바깥으로 나갔다. 
    오늘은 여성환상 직원들 회식 날이라고 했다. 
    그렇게 그들은 모두 바깥으로 나가고 있었다. 
    당연히 자연스럽게 NB도 은근슬쩍 묻어가려고 했고.
   「오빤 뭐야? 오빠가 거기서 왜 나와? 오빤 그냥 편집장실에 남아 있어. 거기 봉투나 열어봐. 오늘은 오빠 안 끼워주기로 했으니까.」
   「너네 너무한다. 사람이 그렇게 냉정하면 못 써. 어?」
    모두가 떠난 다음 NB는 편집장실에서 봉투를 열어봤다. 
    별다른 중요한 서류는 없었다. 그래서 그는 전화해서 사라한테 물어봤다.
   「사라. 봉투 안에 뭐 없는데?」
   「어. 없어. 없을 거야. 그럼 뭐라도 있는 줄 알았니?」





    2

    NB는 오늘 비비안을 만났다. 비비안과 대화하면 일거리가 쏟아지기 때문에 NB는 비비안만 만나면 딸랑딸랑 신부들러리가 되어 바닥에 빠짝 엎드렸다.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 비비안은 할 말이 떨어졌을까? 계속 이젠 돌려막기 하는 듯한 느낌. 오늘도 그랬다. 요점은 그거였다. 아니나 다를까 걘 남자를 너무 많이 좋아하기 때문인지 여우 흉보는 게 주제였던 것이다. 그녀는 또 연애에서 피해야 될 여자에 대한 연설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물론 그녀 역시 능동적으로 시동을 거는 부류가 아니라, 우연히 행운의 바람에 힘입어 발동이 (피동적으로) 걸리는 유형이었다. 걸리면, 방망이에 걸리기만 하면 넘어가는데 일단 타석에 들어설 일이 없는 장타자의 마음이 그녀와 비슷할까? 그러든가 말든가. 일단 몸 푸는 대화는 이러했다. 
   「오빠 뒤끝 있어?」
   「어... 아마도? 없진 않겠지. 나도 사람인데? 없는 건 로보트지 그게 어디 사람이니. 기억력과 사고방식이 있는 이상 어쩌면 그래야 정상. 아니면 새빨간 거짓말. 그래 있어. 왜 아니겠니.」
   「좋은 거네.」
   「꼭 보면 사고뭉치 성격 변태들이 사람들 피하게 만들면서 자긴 뒤끝 없데. 못생긴 게 문제가 아니듯, 성격 좋으면 말이라도 안 해. 암컷 싸움닭이어도 성격이 중간만 가면 몰라. 여자들 다 고개 돌리게 만들면서 자기가 최고래.」
   「남 생각하기 싫으니까 그렇겠지. 아님 정말 자기밖에 모르거나.」
   「혹시 너도 자기 밖에 몰라 주의?」
   「설마... 오빠도?」
   「뭐? 너 정말! 난 아니다. 난 아니야.」
   「그럼 뭐 난 나 밖에 모르는 피가 초록색인 이기주의자란 말이야?」
   「그건 아무것도 아니야.」
   「아니긴 뭐가 아니야!」
   「뭐가 그렇게 충격적인데?」
   「오빠 이제 슬슬 말 꼬이기 시작한 거 보니까 말이야, 어? 내 말 듣기 싫어졌다고 나한테 눈치 주는 거니? 어라~! 이거 승부욕 발동하네. 지금 시작하자는 거야? 자, 한번 시작해볼까?」
   「시작? 시작은 뭔 놈의 시작. 너 정말 이러기야? 어?」
   「멈출 수 없어. 왜? 발동 걸렸거든.」
   「그거 조금 미루면 안 될까?」
   「안 돼. 오빠. 존버 뜻 알아?」
   「존버?」
   「응. 존버.」
   「그게 뭔데? 새 브랜드 이름인가? 가수? 헤어드라이어기 상표? 아님 희귀한 새 이름? 뭐지? 뭘까!」
   「비속어야.」
   「비속어? 뭔 뜻인데.」
   「존버. 존나, 버텨! 그래서 존버.」
    NB는 등에 식은땀이 송글송글 송골송골 맺히는 걸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좌우지간 그녀의 말이 엄청 긴데 그걸 다 옮길 수는 없고 요점은 그랬다.
    A. 신분세탁녀: 설명 필요 없음. 아는 사람은 대번에 알고 모른 사람은 백날 설명해 봐야 필요없음. 
    B. 저울질녀: 자기 패는 까지를 않음. 남자의 정보만 SSD 240G, HDD 32 테라바이트급으로 수집. 자기밖에 모르고 남자 입장 생각 왜 하냐는 주의. 지 손해 보는 건 눈꼽만큼도 나서지 않는 년. 자기한테 (개)이득되지 않는 건 발톱의 때만큼도 들러리 서주지 않는 년. 남 생각 요만큼도 안 해. 지 밖에 몰라. 
    C. 변덕녀: 변심이야 여자에게 기초화장이라지만. 웬만치 걸어 다니는 부처 수준이 아니면 남잔 다 나가떨어짐. 결혼해도 고생길 훤함. 자기가 우주의 중심. 
    D. 비위 좋은 년: 불감증이 사촌. 친구 남편한테 껄떡거리는 년. 친구의 남자친구가 잘생겼으면 배아픈 년. 친구의 남자친구가 못생겼으면 얼쩡얼쩡 알짱알짱 염장지르는 년. 
    E. 똥파리녀: 오직 똥파리 스타일만 좋아하는 여자. 백마 탄 왕자가 자길 좋아해주지 않으니까, 결혼 못하는데 안 한다고 하는 여자. 스카우트 제의는 0 러브콜도 0. 현실은 똥파리가 근처에 얼씬도 않음. 
    F. 의전녀: 자긴 남자한테 전화 먼저 거는 거 0. 남자만 100번 1000번. 남자는 학교에 틈틈이 깜짝 출연해서 나타나야 하고. 회사 앞에서 자동차 대기시켜야 하고. 꽃 들고 회사 앞에서 기다려야 하고. 데이트 마칠 때 매번 집까지 모셔드려야 하고. 웬만한 늑대는 나중 복수. 저~만치 하향지원 받아줘서 결혼. 그러다 남편이 사업 망함. 첫 만남부터 조짐이 뻔함. 소개팅할 때 집 앞에서 자동차 대기시켜서 만나면 100퍼센트. 믿음직한 소개로 약속 장소에서 처음 만났는데 집에 데려다줄 때 자동차 뒷자리에 앉아도 100퍼센트. 
    G. 공주병녀: 
    H. 거울녀: 손에서 거울을 놓지 않는 여자. 여자들끼리 어떤 수준인지 잘 아는 여자. 
    I. 이기주의의 화신녀: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밖에 모르는 여자.
    J. 불여우과: 최대 4년까지는 무난. 남자에 따라 4달이든 2년이든 대충. 그러나 남자가 참다 참다 나가떨어짐. 헤어질 때 하는 말은? 난 널 사랑하지 않았어! 
    K. 수다 머신: 했던 얘기 하고 또 하고 또 하고. 남자 귀 타버림. 다 똑같은 패턴. 남자가 나가떨어지는 건 단지 시간문제. 
    L. 맹녀: 조신해서 진도 빼는 데 시간 좀 걸림. 그렇지만 매력 떨어지고 밑천 바닥나고 히든카드도 없음. 여자는 우리 오빠, 남자는 질렸으니까 멀어짐. 
    M. 독립형─(사랑): 자기가 뭐하는지 얘길 안 함. 심하면 연락 안 받음. 전화기 신경도 안 쓰는 유형도 있음. 근데 애인한테 사랑받고 싶으면 뜨거운 관심을 요구. 정신연령이 할리퀸 문고에서 멈춤. 
    N. 독립형─(환승 이별): M과 거의 똑같은데 환승이별 수순이 반복. 이모 스타일녀. 
    O. 생활 연애형: 하향지원 받아줘서 환승이별 전에 주로 하는 말은, 오빤 여자를 몰라. 그 말만 수도 없이 들어본 남자는 부글부글 버럭버럭. 
    P. 잔소리녀: 닦달하고 징징거리고 떽떽거리기가 주특기. 잔소리 마녀. 그런데 기준이 불분명. 
    Q. 못생긴 암컷 싸움닭: 목숨 걸고 매달림. 찐따 중의 찐따. 너 죽고 나 죽자 식으로 매달림. 드물게 자기만 사는 경우도 있음.
    R. 장기전녀: 그래프가 완만. 사랑에 빠지지 않음. 빠져도 다 짝사랑에서 끝남. 자존심 지존. 전형적인 숙녀. 대표적인 여자. 당연히 대인관계 원만. 그래서 사랑의 그래프 역시나 완만. 당연히 직구는 없고 변화구뿐. 간접고백. 간접 이별. 먼저 좋아한다고 말 못 함. 먼저 베팅도 못함. 놓치면 놓쳐도 끝까지 좋아함. 그래서 자기 결혼 전에 여자 2명에 남자 1명끼리 만나 아쉬움을 달램. 
    S. 직진녀: 적극적으로 구애하는 여자. 비교적 장녀와 외동딸 비율이 높음. 단지 근사치로 높을 뿐. 
    T. 올인녀: S와 비슷한데 인생 통틀어 1~2명에게만 올인. 다른 말로 타율녀. 그래서 안타면 좋고, 아웃이면 후폭풍 끝짱. 오뚜기로 해피엔딩. 
    U. 선녀─성격 좋음:
    V. 선녀─성격 나쁨:
    W. 걸레: 여자의 판타지를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여자. 암캐 중의 암캐. 
    X. 눈 높은 여자.
    Y. 헤픈 여자
    Z. 쉬운 여자.
    사랑을 받기만 원하는 여자.
    첫째, 첫사랑이 뭔지 모르겠다. 도대체 무슨 기준인지 그걸 모르겠다 징징징.
    둘째, 남녀가 사귀는 게 뭔지 모르겠다. 연애사를 돌아봤을 때 사귄 건 7번이요 사랑은 5번이라면. 그 숫자를 뭘로 정하는 건가 모름. 
    셋째, 먹버녀이자 남자에 환장한 년이요 여자들이 잘 아시는, 미친년과 여우짓과. 
    그러므로 결론은 이와 같은 여자의 특징을 잘 알고 만나라는 얘긴데, 비비안이 웃긴 게 뭐냐면 그런 여자들은 왜 그럴까 라고 되려 따진다는 것. 
    뭐?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라고 그는 벙 찌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글쎄 그럼 도대체 어떤 여자를 만나라는 말인지 종잡을 수 있어야지 말이야. 
  




    3

   「오빠. 지금 내 얘기 듣는 거야?」
   「어? 들어. 들어. 적는다는 걸 까먹었네?」
   「침이나 닦아. 설마, 졸았어?」
   「졸긴 누가 졸아. 안 졸았어. 누구 앞이라고, 어? 어디서 감히! 이거 군침이야. 어? 이 세상에 너처럼 아름다운 여인을 보고서 흑심 품지 않을 남자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 알아?」
   「알긴 누가 알아! 혼내려고 하니까 또 슬슬 날 띄우네. 이 오빤 도저히 미워할 수가 없단 말이야. 응? 쥐락펴락 여심을 녹여주는 무슨 학원이라도 다닌 걸까? 알 수가 있어야지.」
   「그런 학원이 정말 있단 말이야? 어딨는데? 글세 어딨냐고. 응?」
   「말 끊지 말고. 오빠. 내 말 빼앗지 말기다, 응? 근데 상향지원에 중독된 여자도 있는데 그 말 들어보시겠소? 그건 나중으로 미루고. 아무튼 여자가 여자가 설명하자면 말도 못 해. 어? 끝이 있어야지 끝이. 남자들이야 빨주노초파남보. 쥐락펴락. 뻔할 뻔자. 어? 그런데 여자는! 남자는 친구가 다치고 넘어지고 아파도 앞에서 웃지. 푸하하하하하하. 으쌰으쌰. 영차영차. 우락부락. 버럭버럭. 응? 그러나 여자는 앞에서는 괜찮니 아프니 어쩌니... 그러다 뒤에서 웃어. 사이렌 멀어진 다음에 그야말로 환하게 웃는다고. 어? 그게 여자야. 그게 바로 여자의 본모습이라고. 응? 오빠. 여자 조심해. 딸아 이 세상에 아빠 빼고 모든 남자는 늑대이니라~! 라는 말은 웃기기라도 하지. 모든 여자는 살쾡이인데? 남자는 기성복 스몰, 미디엄, 라지... 몇 개 안돼. 응? 그런데 여자는. 오빠 여자 옷 고를 줄 모르지? 여자는 일단 가슴, 허리, 골반, 밑위... 뿐만 아니라 소재, 디자인, 스타일... 등등등. 그 조합만 따져봐도 가짓수가 몇 갠데. 남자야 화장실 가서 뚝딱 일 보고 나오니까 금방이지만. 여자는, 화장실에서,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그러니까 줄이 길지. 남자는 샤워 대충 뚝딱이면 끝나잖아? 여자까지 그럴 리가 있나. 여자는 맞춤복이라니까. 그래서 최고급 브레이저와 실크 팬티처럼 여자는 그 뭘로든 최적화시켜주는 남자를, 여자는, 좋아하는 법이지. 그럼 뭘 해, 응? 남자들의 이상형은 뭐다? 그렇지~ (딱) 새로운 얼굴! 몇 번 보고 진도 빼고 지겹고 싫증나고 짜증나면, 안 설레. 떨리긴 누가 떨려? 두근두근이야 신경질나서 벌렁벌렁하는 거고. 안 그래?」
   「비비안. 아직 할 얘기 많이 남았니?」
   「오빤 그걸 말이라고 해? 아직 시작도 안 했어.」
   「오빠 오늘 한 번 봐주면 안 되겠니? 응?」
   「나보고, 져주란, 말이야? 아니지? 농담이지? 내가 잘못 들었지? 그치?」
   「아니 그게 아니라. 나 요 앞 이비인후과에 예약해놔서 말이야. 나야 언제나 너의 딸랑이일 뿐이지. 그렇지만 피치 못하게...」
    바로 그때 저기 저쪽에서 구세주가 나타났다. 
    다름 아니라 포르토피노 멍키스패너였다. 
    보다 보다 남자 뒤통수에 후광이 다 보이긴 처음이었다. 
    포르토피노 멍키스패너? 옷걸이, 목소리, 말발, 유머, 인성, 성격, 잔재주, 잔머리, 잔꾀... 잔머머로 어디서 빠지지도 않고. 뭘 하나 흠잡을 게 없는 남자. 캬~! 어? 으아~ 끝장이지 끝장. 
    여우가 여우를 알아보건. 과일만 보면 껄떡대는 늑대가 브로맨스의 매력에 홀딱 반하든지. 비비안의 눈이 하트 뿅뿅으로 바뀔 줄 누가 알았겠나. 존멋 남만 보면 훨씬 더 껄떡대는 숙녀. 그녀의 이름은, 비비안? 그러든 아니든 그야 속으로만 생각하기. 안 그랬다간, 어? 그러다 여자한테 한 소리 얻어듣기 딱 좋음. 임자 있다는 둥 뭇남성한테 껄떡대지 말라는 둥. 아무튼 뉴페이스 등장 그분께서는 하필 존멋. 바른말 고운 말을 써야 하는데. 또 살다 보면 이따금 끼리끼리 친하게 낮은 빈도로, 어차피 유행 지나면 바뀌고 없어지니까, 살짝만 상스럽게 말하자면 일명 존멋남 등장. 존멋? 존나 멋짐! 캬~ 어? 말을 말어야지 말을. 아 글쎄 존멋 반대급부 입장 생각하는 거야 마는 거야? 아주 그냥 매를 버네 매를 벌어. 하여간에 못 말린다니까.
    그건 그렇고. NB는 원래 여자를 좋아하는데, 살다 살다 남자가 그처럼 사랑스럽긴 처음이었다. 처음? 말이 그렇다는 거고. 
    어쨌든 걔랑 걔를 짝지어주고 그는 다행스럽게 그곳을 먼저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뒤통수가 가렵단 걸 그녀가 놓칠 리가 있나. 
    비비안은 멀어져 가는 NB의 뒤통수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 
   「오빠 오늘 운 좋은 줄 아쇼! 응?」
    오, 소름~! (절레절레) (찌릿찌릿) (표정) (몸짓). 





    4

    그는 아침에 달콤한 꿈에서 깨어났다. 내용은 이랬다.
    <평소처럼 낮에 누굴 만나고 어쩌고. 그러다 형을 만났다가 헤어졌다. 그런데 만났던 장소에 뭔가를 놓고 온 걸 까먹었다. 그래서 다시 그 장소로 갔다... 그렇게 헤매다가 유행하던 춤을 따라하고 어쩌고... 장면이 바꼈다. 
    서포터스 회장 롭의 추천으로 한적한 여행지 호텔에 가는 길. 이번에는 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다. 그래서 버스를 탔다. 탔는데 지문, 홍채인식, 발걸음, 몸짓, 목소리 등을 확인하는 게 탑승 절차였다. 그 절차를 통과하고 나자 담당자는 그의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다는 걸 넌지시 그에게 떠봤다. 언제 몇 번 어떤 일이 있으셨군요 라면서 말이다. 이를 테면 실연을 몇 번 당했네 애를 2번 뗐네 꼬리는 몇 번 흔들었네 같은. 그렇게 사막은 아니지만 낯선 황무지이자 굉장히 막막한 시골길을 가고 있었다. 그러다 정류장에 멈췄다. 
    그곳은 바닷가였다. 그런데 거기서 기다리고 지금 당도하는 사람들은 다름 아니라 원시 부족이었다. TV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바로 그 원시 부족. 당연히 외양이 신기해서 멀뚱멀뚱 봤겠지. 단지 신기해서? 아니다. 그럴 리가 있나. 군침은 한도가 없는데? 원시 부족 가운데 남자만 있었겠나. 꿈은 형씨 꺼가 아니라 그의 것. 따라서 NB의 꿈에 따르자면 그 원시 부족은 전부 여자였고, 모조리 나체였다. 응? 흑심에는 휴일이 없다. 뚤레뚤레 정신 나간 사람처럼 그는 그분들을 찬찬히 관찰했다. 시선은 바빴다. 안 그럴 수가 없을 테니까. 그렇게 그분들도 모두 탑승. 
    그러다 얼렁뚱땅 차는 캠핑카로 바뀌었네? 뿐만 아니라 원시 부족 나체족 7명의 여인과 그는 다정한 담소를 나눴다. 현실이라면 몰라도 그건 꿈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말이 통했다. 그러다 그는 서류를 펼쳐놓고 자기 일을 했다. 수첩에 메모도 하고, 노트북을 켜서 인터넷 검색하다 글도 쓰고. 그러다 원시 부족 나체녀 가운데 하나가 그에게 특급 파일 같은 서류 봉투를 내밀었다. 그걸 받아 꺼내서 읽어보니 특수 요원 1명에 관한 안내서였다. 그녀를 만나보라는 지령인 걸까? 프리메이슨이고 나발이고 그건 꿈이니까 또 자연스럽게 캠핑카에서 그 서류로 보던 특수 요원 1명은 옆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하늘의 아름다움은 별에 있고, 여자의 아름다움은 머리카락에 있다 했던가? 부드럽게 시선을 맞추고, 다가가고 다가가고, 분위기를 몰아가고 몰아가고? 애무고 자시고. 그는 즉각 양손으로 그녀의 두 볼에 손을 가져다 댔고... 그 황홀감. 그 환희. 그 신나는 느낌 그다음 그다음... 그런데! 그런데 갑자기 장면 전환. 
    캠핑카는 어딘가에 도착했다. 꿈이니까 당연히 현재 그는 혼자. 거긴 어느 외계인을 연구하는 비밀 특수 기지. 이제 자긴 어디로 가야 할까? 라고 그는 생각했다. 여기 왜 왔고 무얼 하고 놀까 라는 고찰을 할 겨를이 어딨나. 여길 어떻게 탈출하나 그 궁리뿐... 그러다 꿈은 끝났다>
    개꿈이네. 태몽일 리도 없고. 돼지꿈도 아니고 그냥 야한 꿈. 그게 다. 단지 꽤나 사실적이었고, 심하게 촉감은 부드러웠을 뿐이고. 
    그렇다고 사춘기 소녀 몽정기 소년들처럼 꿈 생각에 내내 얼빵하게 아쉬워할 수는 없으니 그는 세수하고, 물 마시고. 그렇게 사무실로 출근했다. 





    5

    사무실 도착. 
    그는 조아키노 롯시니의 '알프스의 양치기 소녀'를 들으면서 일했다. 
    아니나 다를까 일은 호락호락 잘 진행되지 않았다. 공상은 빠짐없이 다채로웠다. 신비감과 환상은 지들 맘대로 그의 정신을 양분해서 사이좋게 나눠가졌다. 그러다 대뜸 시침은 쉭쉭쉭 돌더니 오후 4시가 되었다. 왠지 오늘은 더 일해서는 안 될 것만 같았다. 효율적이지 않을 테니까. 더 무리하다간 머리가 돌아버릴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그는 자기가 무슨 일하는 기계도 아니고 말이지, 족쇄를 풀고 아지트로 가기로 했다. 
    구간 댕기기 구간 당기기.
    장면 전환 장면 전환.
    아지트 도착 아지트 도착. 
    요한 세바스찬 바흐 / 모테트 BWV 227
    뭐야 이 음악은? 최신 유행가나 클럽 음악이 나와야 정상인데. 이건 뭔가 이상하다는 뜻인데? 뭐지?
    뭐긴 뭐야. 아무것도 아니다. 
    여우의 잔꾀는 바닥났다. 남은 건 자칼의 굶주림 밖에 없었다. 개 짖는 소리를 반가워할 바텐더가 어딨어. 오늘은 아지트에 순전 모르는 사람들 뿐. 그렇다고 살짝 낯선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고 얘기를 하긴 했는데. 그런데 말이 잘 섞이지 않았다. 차라리 남녀가 말을 섞으면 섞을수록... 그게 더 나은 것만 같았다. 그러다 왠지 모르게 어디에서 고양이 잠꼬대 소리가 들리네? 정말로? 가짜다. 뻥이다. 환청일 리가 있나. 그 말은 곧 오늘은 이만 철수해도 된다는 신호였다. 비전 없으니까. 그렇게 그는 아지트를 나왔다. 그렇게 무료한 발걸음은 그를 저기 저 음식점으로 이끌었다. 그렇게 딱 식당 문을 열려던 찰나. 아차~! 핸드폰을 놓고 온 걸 깜빡했다. 그래서 다시 아지트로 갔다. 
    장면 전환 장면 전환.
    아지트 도착 아지트 도착. 
    이제야 최신 유행가와 클럽 음악이 나왔다. 
    어딘가 모르게 안심되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그렇게 바 구석지에 놓아둔 자기 핸드폰을 찾으려는데... 뭐야 이거!
    거기에는 웬 낯선 여인이 있었고. 그 여인 앞에는 핸드폰이 총 분해되어 있네? 그럼 그 핸드폰이 NB의 핸드폰? 
    그는 생각했다. 자기 총번이 몇 번이었더라? 총기 분해해서 날마다 기름칠하고 어쩌고. 부품명을 전부 외워야 하는데 허접허니 대충만 외웠고. 
    NB는 메인보드의 CPU가 바빠졌다. 독립적으로 그래픽 카드만 관할하는 그쪽 CPU도 풀가동됐다. 내장형 SSD는 말을 듣지 않았다. 박자 안 맞게 또 파워 공급기의 팬은 지 혼자서 다람쥐 챗바퀴를 굴리고 있었고. 거러다 결국 OS 자체가 윈도우에서 애플 맥으로 바뀌고 말았다. 껍데기는 못생긴 구닥다리 중고 컴퓨터인데, OS만 남들 다 쓰는 맥으로 바뀐다고 그게 잘 돌아갈 리가 있나. 맥북 하나 샀다고 야호~ 신난다 나도 이제 스타벅스에 가게 될 수 있구나. ~라고 혼자 떠들썩하니 야단스레 방정 떠는 거도 귀찮고. 중고 컴퓨터는 겉은 비리비리한데 속은 더 멍청하게 뒤죽박죽 되어버렸다. 하여간에 허접하기는... 쯧쯧쯧!
    그런데 이 여인은 대체 뭐하는 여자야? 이 계집애 지금 자기랑 뭘 해야 하지? 뽀뽀? 키스? 애무? 애무 같은 소리나 하고 자빠졌네. 
   「오빠. 기다렸어요.」
   「네? 저를요?」
   「보면 몰라요? 왜 오빠라고 불려지는 거 싫어요? 싫으면 싫다고 말을 하시오. 좋으면 그처럼 멀뚱멀뚱 제 얼굴에 반한 듯이 입을 헤~ 벌리고 있고 말이오. 아시겠소? 어머머. 어머머머머. 내 정신 좀 봐. 숙녀의 수줍음을 잠시 잊은 채 또 연극톤으로 말해버렸네. 그러건 말건 아랑곳없이, 응? 난 꿋꿋이 이 오빠에게 현 상황에 대해서 자초지종을 설명하면 그만이고. 어머머. 저 표정 좀 봐. 오빠. 환장하겄네 환장혀. 지금 뭔 생각해요? 혹시.... 에이~ 설마! 어이 젊은 친구.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어? 오빠. 내가 이거 조립하는데 몇 초 걸릴 거 같아. 시간 재 볼래? 아니지. 내기가 빠지면 섭하지. 섭섭하다고. 그런데 오빠. 우리 혹시 구면이지 않나? 나 기억나지 않아? 나 기억 안 나? 어머. 난 알 거 같은데. 잘 봐 봐. 나야 나. 나라고. 엥? 아닌가. 아닌 게 아닌데. 맞는데. 그 오빤데.」 
   「누구... 셨더라...」
   「이거 봐. 이거 보라고. 이렇다니까. 난 기억하고 있었구나 라며 잠깐 설렜는데. 몹시 떨렸는데. 지금도 가슴이 찡한데 말이야.」
   「그럼 그때 캠핑카에서... 포근한 분위기에서 다정한 눈빛으로 부드러운..」
   「오빠 뭔 소리야? 나 당신 오늘 처음 봤어. 오빠가 캠핑카에서 날 왜 봐? 뭔 짓을 하려고? 어? 좋다, 캠핑카에서 오빠랑 나랑 단둘이 뭔가를 했다고 쳐. 그렇다고 가정을 해 봐도. 그거 다 꿈이잖아. 설마 이 양반이 어제 그런 꿈 꿨나? 꿨네 꿨어. 개꿈. 말할 것도 없이 뻔해. 보소, 저랑 달리는 캠핑카에서? 날으는 비행기 화장실에서... 저 그런 분위기 별로거든요. 그런 인터넷 잡답에 달린 댓글을 생각하면 내가 다 속이 울렁울렁. 우웩~! 이 오빠 이거 은근 난봉꾼이네. 응? 아직도 생각 안 나?」
   「아니 그게~ 생각이 날 듯 말 듯. 정신이 왔다 갔다. 쾌감을 쥐었다 폈다. 여심을 밀었다 당겼다.」
   「지금 오빠 날 들었다 놓니? 그랬냐? 그랬어? 그랬니? 오빠, 못 본 새에 바보 천치가 다 됐네? 설마 나 때문에? 저번엔 잔뜩 달아올라 헛소리를 남발하질 않나, 아님 내 다리를 벅벅 긁지를 않나. 요즘 오빠 왜 그래? 응? 나 정말 알고 싶어서 그래. 속마음을 털어나 봐. 냉큼. 숨기지 말고. 당장. 어? 속시원하게 말이야. 응? 뻥 아니야. 나 가짜로 궁금해하는 거 아니란 거. 보면 몰라? 나 보면 기분 좋지? 그렇지? 그렇지만 이거 가만 보니 감수성 다 바닥났네. 호기심도 털렸어. 모험감도 이젠 없고. 오빠의 그 독특한 기품 다 어디로 갔어? 아, 원래 없었구나. 안 그래도 지갑이 얇으면 그나마 다행이게. 오빠 지갑 없지? 아님 짠돌이? 그렇다니까. 아아...! 미안 미안 정말 미안. 이거 오빠 맥이는 거 아니다. 내 맘 알지?」
   「」
   「오빠. 왜 입도 벙긋하지 않는 거야? 내가 불편해? 오빠 우째 지내는지 참말로 하나도 안 궁금했어. 야 너! 너. 그래 너. 어딜 봐. 돌아보지 마. 너. 그래 너 인마 너. 이 자식이... 입 다물어. 입이 튀어나왔으면 입이라도 다물란 말이야. 어? 눈 튀어나오면 다야? 어? 너. 너. 잘난 척하지 마. 꼴 보기 싫어. 늬 까짓 게 뭔데. 그렇게 웃지 말라고 몇 번을 말해. 재수 없어. 알아? 젠장. 씨도 먹히지 않는 얘기, 하지 않아도 다 알아. 지겹다고. 아주 그냥 징글징글해. 어? 토할 거 같다고. 눈탱이는 또 어디서 얻어터진 거야? 뭐 원래 다크서클이라고? 내가 눈화장 해 줘 말어? 어? 잘한다 잘해. 그럴 꺼면 가서 개처럼 풀이나 뜯어먹어. 아니면 날 보필하던가. 일단 내 심복 넘버 쓰리부터 시작하자고. 알겠어? 아 알겠어 모르겠어?」
    바로 그때 스티브가 그를 살렸다. 
    NB와 그녀 사이에 스티브가 끼어든 것이다.
   「아가씨.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되오. 거 아실만한 분이...」
   「오빠가 뭔디 나한테 이리라 저래라야? 어? 아 이그 술 화아 올라오네.」
   「넌 뭐야? 너 이 여자 모르지? 모르니까 바보처럼 다 듣고 있었네. 여기 오는 사람들 사이에서 요즘 이분 유명해. 상태가 좀 안 좋다고. 보면 몰라? 넌 정신이 있는 거니 없는 거니? 설마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은 아니겠지? 아니기를 바래. 봐 봐. 원래 상태가 안 좋은 미친년인데. 봐 봐. 혀까지 꼬였잖아. 이젠 알겠어?」
   「」
   「자. 늬 핸드폰 여기 있어.」
    돌아서려다가 스티브는 차마 못 다 한 얘기가 있어서일까?
   「넌 말이야 순진한 거니 멍청한 거니? 뭐 허접해서 고민이라고? 뭐가? 정신이? 아님... (시선이 아래로...!) 나 너 말리는 거 포기한지 오래다. 어? 젖 먹던 힘을 다해서 말이야, 어? 저년의 개수작에 휘말리지 않으려고 정신을 바짝 차려도 모자를 판에. 뭐 넘어가? 번호를 따이는 정도가 아니라, 늬 핸드폰을 분해한 걸로 속아? 그거 애초에 개수작인 거 몰랐어? 그랬어? 하여간에 너도 너다. 어? 둘 다 똑같네. 뭐야 그럼 넌 개년? 이런 개놈을 봤나. 이거 무슨 개 인간이야 뭐야. 밑도 끝도 없이 뭔 개뼉따귀 같은 잔소리야. 시끄럽고.」
    그러다 할 말이 떨어졌는지 스티브는 뒤돌아 가버렸다. 
    그래서 NB는 이렇게 혼잣말을 했다.
   「그런데 쟤는 왜 말을 하려다 말어?! 뭔가 나올 듯 나올 듯 말 듯. 거의 다 넘어올 뻔 말 뻔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뭐야 그게! 내가 맘만 먹으면 이 세상 모든 여자를 다 꼬실 수 있어. 어? 이거 왜 이래? 다 그분들 이상향을 생각하고 사랑에 버림받지 않기를 바라니까 내가 다 그녀들 생각해줘서 꼬시지 않는 거라고. 왜 못 해?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해. 남자들이 최선을 다해서 일부러 말이 통하지 않게끔 연기하는 여인께서. 헤어스타일마저 별로인데 노처녀께서 웬 아줌마 허세? 벌써부터? 그냥 그저 그런 아줌마 허세도 아니고. 속 뒤집어져서 자긴 날마다 한다는 아줌마 허세? 그런데 진짜로 날마다? OK~ 진짜로! 진짜인 걸로. 아니면 안 돼. 그럼. 날마다가 다 뭐야, 어? 밥 먹듯이. 눈빛만 마주치면, 어?」
    근데 뭐지, 가만있자. 자, 보자. 그럼 핸드폰 분해한 건 다 뭐야? 
    이 여자가 보자 보자 하니까 누굴 호구로 아나? 
    결국 결론을 정의하자면 NB는 아직 어젯밤 개꿈에서 헤어 나오지를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개꿈을 어떻게 좀 현실로 바꿀까 하다가. 결국 개꿈은 개꿈일 뿐. 줄거리 간추리니 그거네? 아지트에서 웬 여자 술꾼에게 잔소리 행패를 당함. 본인이 자발적으로 첨 본 여자를 꼬시지도 못하면서. 또 번따녀니 뭐니 하면서 시시콜콜한 연애 칼럼이나 쓰고. 그러다 오늘 첨 본 여인의 말발에 넘어가서 개꿈에서 당신을 본 거 같다고? 중간에 스티브가 끼어들어서 제지했기에 시간낭비가 거기서 멈췄지. 아니면 그녀의 깽판에 아직도 붙잡혀서 제정신 차리지 못했을 거 아니야. (절레절레) 도대체 언제 정신을 차릴려나 알 수가 없다. 답이 읎단 말이다. 





    6

    NB는 옛날에 핸드폰을 잃어버렸던 기억이 있다. 
    줄거리와 관련된 이야기만 요약하고, 나머지 설명은 칼럼으로.
어쨌든 전혀 중요하지도 재밌지도 않은 일화일 뿐. 그런데 그뿐이거나 몇몇 얘기들이 관련성이 없으면 모르겠는데 그 T자형 삼거리 관련 사실이 하나둘 점점 늘어나면. 그럼 장난이 아니게 되는 식. 가령,
    A. 핸드폰 잃어버린 썰. 잃어버린 장소가 T자형 삼거리 모퉁이 성당 의자.
    B. 친구가 술 취해 꽐라되어 길에서 잠깐 잠잤던 일. 당시 친구 셋이서 한참 주말마다 만나서 놀던 시트콤 멤버. 그 가운데 1명인 NB가 핸드폰을 잃어버렸던 T자형 삼거리 성당 모퉁이 + 중간에 다리가 있고 = 대충 일직선 상으로 동네 T자형 삼거리 음식점 앞에서 시트콤 멤버 친구가 길에서 잠잔 적 있음.  (이 시트콤 멤버는 남자 3명이 전부. 훨씬 전의 시트콤 멤버는 남녀 혼성) 
    C. 'B'친구가 사는 집도 T자형 삼거리 모퉁이. 당시 한참 주말마다 만나서 놀던 시트콤 멤버들이 들락날락했던 곳. 
    D. 어느 숙녀가 인생이 따분했기 때문일까 어느 날 잘 다니던 직장 때려치우고 삼류 작가로 데뷔. 그런데 그녀가 쓴 칼럼들은 하나같이 만났던 남자와 여자들 흉보기가 80퍼센트. 소설은 90퍼센트가 전남편 욕. 그 웬수 같은 인간을 처음 만난 장소도 하필 T자형 모퉁이 대형 마트. 어떤 숙녀인지 허당인지 모를 인간이, 전남편인지 전여친을 처음 만났던 장소도 T자형 삼거리 모퉁이. C와 D는 남자와 여자로 같은 성씨. 





    7

    그는 하필 그 T자형 성당 모퉁이에서. NB는 오늘 퇴근하다가 아지트에서 만났던 여자 술꾼을 동네에서 재회했다.
    거기서 좌판을 깔고서 그녀는 인형을 팔고 있었다. 
   「어라! 여기서 다 만나네.」
   「와, 오빠다.」
   「아니 어떻게...」
   「오빠 왜 그날 그냥 갔어? 난 기다렸는데.」
   「누가? 자네가? 날? 난 몰랐지. 그런데 그거 뻥 아니야? 정말이야?」
   「정말이겠어. 또 속나 한번 시험해봤지. 첫인상이 특별하니 그래서 긴가민가하겠지만. 사실을 말하자면 기다리긴 기다렸어. 그런데 그날이 아니었을 뿐이지.」
   「뭐 내일도 날이다, 그 말인가?」
   「마음대로 생각해. 맞춤복 같은 남자. 누군가에겐 그렇겠지. 그게 사랑이니까. 뭐야, 또 사랑?」
   「」
    NB는 한번 붙잡히면 또 얼마 동안 붙잡혀 있어야 할지 추산되지 않았기 때문에 자리를 뜨려고 했다. 
   「오빠, 가지 마. 어딜 내빼려고? 우리 인연은, 나도 잘 몰라. 그렇지만, 길들여진 늑대도 늘 숲을 꿈꾼다. 그것만 알아둬.」
   「뭐라고? 그게 뭔 소리야?」
   「아무 뜻 없어. 그러지 말고 나 오늘 처음으로 인형 팔아봤는데 말이야. 이거 다 내가 만들었는데. 이제 딱 3개 남았어. 떨이. 그래서 오빠한테만 특별히 세일할게. 값은 없어.」
   「그냥 주겠다고? 그럼 난 마음을 줘야 하나?」
   「잘 아시네.」
   「누구 맘대로.」
   「오빠. 흉금을 터놓고 말해봐. 첫눈에 나한테 반했지? 내가 보기에는 말이야 오빠는 딱 봐도 첫눈에 반하는 게 주특기인데. 아닌가? 아닐 리가 없는데. 그치? 그렇다니까.」
   「아니야. 누가 그래?」
    그렇게 농담 따먹기만 하다 결국 NB는 그녀가 파는 인형 3개를 떨이로 샀다. 
    그래서 그는 아직도 그녀의 이름을 모른다. 2번째 만남으로는 아직인 걸까? 그러거나 말거나.





    8

    그는 플레이보이계의 왕중왕이 된 듯한 개꿈 내용은 생각도 나지 않았다.
    물 마시고 세수하고 먹고 어쩌고. 그러다 출근.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 오페라 <이도메네오> KV366
    인생 내내 허당계에서 잔뼈가 굵은 무명. 뭐 재미난 일 없을까?
    라고 고민하다 그는 어제 이름 모르는 처녀로부터 입수한 인형을 떠올렸다. 
    그 인형 3개를 가지고 놀다 끈이 살짝 풀렸다. 그래서 그걸 잡아당기다 잡아당기다. 
    마치 마술사가 입에서 다채로운 리본을 빼도 빼도 한도 끝도 없이 빠지는 것처럼 풀리다가. 
    그러다 다 풀고 보니 그건 옷이 되었다. 어떻게 어떻게 교묘히 잘 조립하고 짜맞추어서 인형으로 만든 옷. 
    상의, 하의, 나머지는... 뭐지? 도대체 어디에 쓰는 물건이야?
    그야 나중에 알면 되고. 
    그렇게 그는 중고품 같은 새 옷을 입고서 동네 패션쇼를 보러 갔다. 
    TV에서 봤던 그런 멋진 패션쇼가 아니라 그냥 소박하게 동네에서 행사 비슷하게 하는 패션쇼. 
    그래도 나름 조명과 음악과 무대와 기타 등등 구색은 갖추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도착.
    도착. 
    쥐 죽은 듯한 적막감과 고양이 기절한 것만 같은 고요함 속에, 툭하면 야릇한 공상뿐인 삶이었는데. 
    그래도 나름 꽤 기분전환이 되었다. 
    촐랑대고 낭설을 떠벌리며 깐족거리기 좋아하는 성미 역시나 많이 가라앉았다. 아님 원래 없었나? 그야 중요하지 않고. 
    그 외 미래의 사랑이니 불쾌한 욕망, 상쾌한 정열은 모르겠고. 별다른 일은 없었다. 
    그 가운데 딱 하나. 음악 담당 DJ가 옛 친구였다. 
    그래서 오랜만에 통성명을 하는 건... 모르는 사람들끼리니까, 다정스럽게 이름을 불러주려는데. 그런데 생각이 안 나네? 
    그는 솔직하게 물어봤다. 
   「친구. 미안해. 나 늬 이름 까먹었어. 내가 이래.」
   「너도?」
   「넌 공부 잘하지 않았나?」
   「나만 기억하면 넌 뭐가 되니?」
   「뭐야, 큰 그림? 그렇게 깊은 뜻이!」
   「이렇게 만난 것도 기분 좋은데. 우리 사이 나쁘지 않았잖아?」
   「괜찮았지 그 정도면. 단짝만 아니었다 뿐이지. 볼 때마다 매번 웃었잖아.」
   「그래. 너 기억나지! 내가 너한테 뭐랬더라, 얜 볼 때마다 웃으니까 기분 좋다고 했잖아.」
   「허허허. 가짜 웃음소리 나도 내보고 싶은데 안 되는 걸 어떡하냐.」
   「그래도 그게 나아. 억지로 웃으면 사람에 따라서는 비웃는 거냐고 뒤에서 놀림감 될 수도 있어. 꼭 그런 건 아닌데 비약하면 드라마 대사로 치면 그렇단 거지. 그건 그렇고. 너 저녁에 뭐해?」
   「나? 뭐 안 해.」
   「그럼 잘됐다. 아는 동생이랑 술 한잔 하기로 했는데. 어때, 1잔?」
   「1병이 아니라 1잔?」
   「부장님 개그 지금은 괜찮다만 이따는 곤란하다. 왜! 여자가 동석하니까. 허허허허허.」





    9

    해는 기울었고 달이 떴다. 
    당연히 그날은 천문 현상과 관련 없이 달은 해를 품지 못했다. 
    동네 패션쇼는 끝나고 옛 친구 DJ, 아는 동생 1, 아는 동생 2, 그리고 NB 그렇게 넷이 함께 하는 술자리. 
    술 먹는 거보다 술자리 분위기가 좋다는 그런 뭔 촌스럽고 식상한 멘트, 너끈히 참을 줄 아는 그녀들 아는 동생 원투. 
   「널 어떻게 거기서 다 보냐?」
   「그러게 까딱하면 못 볼 뻔 했어.」
   「여기 모인 미모의 숙녀들, 이름은 굳이 거론하지 말기로 하지.」
   「너나 나나 우리도 당장 친구 이름도 생각나지 않는데, 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
    윙크.
   「아 미안해요. 윙크가 아니라 나이 먹어서 어쩌다 살이 떨려요. 지 혼자. 봐 봐 나 수전증 있어.」
   「허언증은 없고?」
   「왜 넌 불감증 있니?」
   「거 참 대화가 왜 이러니?」
   「그런데 너랑 나 옛날에 친했던 거 맞니?」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벌써?」
   「그런데 네가 DJ라니. 와우! 어쩌다 동네 패션쇼에도 다 오시고 말이야. 큰물에서 놀고 싶지 않아? 아님 돈을 싫어하는 거야!」
   「누가 싫데!」
    뭇여성들의 마음을 빼앗는 데 익숙한 제비들이 의례 그러듯이 자연스럽게, 뭐 어떻게 한번 해볼까, 그런 건 다 허황된 개꿈일 뿐. ~까진 아니겠으나. 어딘가 모르게 그들은 뻘쭘했다. 
    그래서 아는 동생 1 2가 자기들 경험담을 얘기했다. 
    그건 바로 어렸을 때 저수지에 빠졌다 살아난 이야기. 대화체를 줄거리 전보체 바꿔서 요약하자면 이렇다. 실감나도록 약간 몇몇 부분만 고쳐서 옮기자면 일단 칸을 떼서 가자.





    10

    <때는 1998년 여름. 내가 6살 때.
    어디에 있는 외삼촌 댁에 놀러감. 
    수박, 닭, 포도... 뭘 처먹기만 했음. 배부름.
    그러다 나, 사촌형, 삼촌, 그 외 분들과 저수지로 놀러감. 
    날씨는 굉장히 쨍쨍한 여름날. 
    원칙은 수영금지. 아시다시피 저수지의 목적이 농수 공급인 만큼 한두 발짝은 그만그만한데. 그다음부턴 급격히 깊어짐. 
    나는 구명조끼를 입고 놀았음. 처음으로 발이 안 닿는 물에 떠서 노니까 재밌었음.
    땅에서 한 10m쯤 떨어진 곳에서 놀고 있다가, 저쪽에 삼촌들을 향해 외쳤음.
    만세~!!
    그런데 구명조끼가 쑥 빠져버림. 
    참고로 구명조끼는 반드시 구명조끼에 달린 앞 끈을 가랑이 사이로 넣어 뒤쪽에 결착시켜야 함. 
    무조건 앞 끈을 뒤쪽에 결착시키지 않으면 입으나 마나 보나 마나일 확률이 치명적으로 높음. 
    거기다 꼬마한테 어른 구명조끼면 말 다 한 것이었음. 
    그런데 내가 물에 빠져들어가는 걸 느끼는데 신기한 게 숨이 막히지 않았음. 
    등이 바닥을 향해 빠져 가는데 물로 들어오는 햇살이 너무 아름답다고 느낌.
    막 내 등에 해초 같은 게 닿아서 간지러운 감각도 인지했음. 그림으로 보면

    (태양)

    ─────────────────수면──────────────────
    ■\
    ■■■\                              팔 
    ■■■■■■\               (머리─ 몸통─다리) 위를 보고.
    ■■■■■■■■\                   (해초)
    ■■■■■■■■■\                (해초)
    ■■■■■■■■■■\             (해초)

    직감으로 아 나 이제 죽는구나... 생각이 듦. 그때가 겨우 6살이었는데 그렇게 생각함. 
    물안경 쓴 상태였기 때문에 내 앞쪽으로 막내 삼촌이 수영해서 다가오는 게 보였음. 
    근데 다가오다가 갑자기, 숨이 찼는지 날 앞에 두고 위로 올라가버림.
    그렇게 의식이 끊긴 다음 정신을 차리고 보니 병원이었음.
    듣고 보니 막내삼촌이 결국 날 구조해서 살려냈다고 함. 
    ............2년 후............
    초등학생이 되어 시골에 놀러감. 
    저수지 근처에도 안 감. 또랑에서 적당히 놀았음. 
    저녁에 밥 먹고 일찍 잠. 그런데 옆방에서 삼촌이 비명을 지름.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 으아!!! 으아아악!!!!"
    외할머니가 삼촌 방에 들어가셔서 말씀하심.
    "아이고 이놈아, 정신 차려, 벌써 2년 전 일이잖아. 아이고 이놈아~"
    그렇게 부자지간 울적울적. 
    ............12년 후............
    내가 성인이 되어 여름에 큰외삼촌이 우리집에 놀러오심.
    큰외삼촌과 술잔을 기울이며 옛날 얘기 중. 
    당연히 나 어렸을 때 물에 빠졌던 얘기도 나옴. 
    쓴웃음 짓는 삼촌 왈, 
    당일 막내 외삼촌이 날 구하려고 수영하면서 오는데 내 아래에 웬 여자가 서 있더래.
    하얀 옷 입고서 긴 머리카락이 너풀거리면서 물속에 꼿꼿이 서서! 
    당시 삼촌은 숨이 막힌 게 아니라 그걸 보고 놀라서 물 밖으로 나갔던 것임. 
    근데 나 죽으면 무슨 원망을 들을지 몰라서 어떻게든 날 건져내고 그대로 기절해버렸다는 게 사실. 
    그때 의식을 차린 후에 삼촌은 얼핏 봤을 때 그게 귀신같더라고 함.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귀신이 아닌 거 같다고 판단함.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랑 같이 가서 찾아봤는데 귀신은 없었음. 
    대신 여자 시체를 발견함. 
    삼촌이 본 거는 귀신이 아니라, 사람 시체였던 것임. 
    그물을 이용해서 시체를 끌어냈는데 그물에 엉켜있었음. 몸부림을 친 것처럼. 아마 사후강직 때문.
    삼촌은 그 기억 때문에 여름마다 가위에 눌리고 비명을 지른다고 함. 
    술자리에서 큰외삼촌 얘기가 끝났는데, 갑자기 난 오한을 느낌. 부들부들 떪. 
    왜냐, 당시 내가 느꼈던 내 등을 간지럽히는 해초는 해초가 아니라, 바로 여자 머리카락이었나 라는 추리 때문>





    11

   「오, 소름!」
   「와, (개)무섭다.」
   「오늘 잠 다 잤다.」
   「괜히 들었어. 이런 젠장!」
    아는 동생이 말했다. 
   「그런데 오빠들 있잖아. 걔가 나야. 외삼촌의 조카가 아니라 물속에 있던 여자가 나라고.」
   「뻥치지 마. 걔가 어떻게 너야?」
   「물론 믿기지 않겠지. 그렇지만 이 세상이 오죽 넓나? 사람들이 얼마나 많냐고. 그래서 수소문한 결과 나랑 비슷한 얘기를 내가 알게 된 거지. 그런데 안 됐지만 걘 그렇게 된 거고, 난 산 거고. 어떻게? 자, 어떻게가 궁금할 찰나인데. 보자. 그러니까 있지. 그게 말이야. 어? 들어봐. 집중. 들어봐. 자, 
    (그러면서 아는 동생은 가방에서 웬 휴대용 안대이자 마스크 같은 초소형 호흡기를 꺼냈다)
    자, 난 얘 때문에 살아났어. 물속의 산소를 즉각 공기로 변환하는 장치지. 거의 타임머신 급이라고. 어? 당연히 개발 완료는 됐으나, 임상실험까지 극비리 마쳤으나, 아직까지 쉬쉬하는 중. 왜? 왜냐하면 지분 관계가 얽히고설켰거든. 응? 아직 약~간 투자금이 부족하니까. 기술이 기술이다 보니까 예상 못한 데 막 비자금이 엄청 들어가더라고. 응? 어때! 솔깃하지 않아? 아직 기회는 있어. 어? 추가로 주주를 비밀리에 모집 중이라 그 말이지 내 말은. 응? 어때! 투자할 생각 있어 없어? 오빠. 오빠는 투자할 거야?」
   「안 해. 투자하고 싶은데. 그런데 돈이 없어. 빚만 있어. 허리가 휜다. 너 내 사정 알잖니. 내가 여자들한테 인기는 많은데 걔네들이 왜 나한테 안 오겠니. 응?」
   「하기 싫으면 하기 싫다고 솔직히 말해. 수작 부리지 말고. 따끔하게 왜 말 못 해? 못 믿잖아. 어떻게 믿니? 최소한의 신뢰가 가야 말을 하던가 말던가 하지. 안 그래? 왜 내 말이 틀려? 틀리긴 뭐가 틀려. 그렇지? 오빠가 들어도 그렇지?」
   「야 NB. 야 인마. 너 말이야 너. 뭔 NB인지 TV인지. 그렇다고 NC는 아닐 테고. 야 야! 넌 왜 아무 말이 없어? 어? 바지에 오줌 쌌니? 그래?」
   「안 무서워. 어제 인터넷에서 본 얘기야. 그거 둘 다. 저수지에 빠졌다 삼촌이 구해준 썰. 그리고 무슨 무선 호흡기. 그 2개. 그거 다 알아. 인터넷에서 봤어. 드럼통 사기에 넘어가는 허당? 난 아니야. 난 아니라고.」
   「다행이네. 불행 중 다행이야.」
    그런데 술자리는 그게 다였다. 어쩌면 NB만 딱 빼고 자기들끼리만 좋은 데 갔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그 인간은 또 공상에 일가견을 보일 수도 없고.
    아무튼 플레이보이의 지적 재산은 추억인 걸까, 아니면 밝은 내일인 것일까. 아마 둘 다 괜찮은 덕목인 건 틀림없지만. 그에 앞서 넉넉한 품위유지비와 신나는 건수, 즉 즐거운 현재가 토끼와 늑대와 촌닭들의 마음을 좌지우지하는 것. 그러거나 말거나. 그러니까 말이지, 어? 좋다 말았잖아? 어? 먹어봐야 맛을 안다, 뭐 꼭 그 말이 아니라. 연못 있는 곳에 개구리들이 있다고, 응? 개구리를 만나면 뭘 해. 첫째 어디로 튈 줄 몰라, 둘째 있어도 도망가! 어? 내가 못 살아. 아님 어설픈 썰이라도 못 풀면 말을 안 해. 뭔 이거도 아니고 저거도 아니고. 어? 그게 뭐야? 그런 황당한 술자리 얘기쯤이야 나라도 하겠다. 참 나 웃기고 자빠지셨어 아주. 에잇 재미없다. 괜히 그 DJ 옛 친구를 만나가지고 이름도 기억나지 않고. 아는 동생들과 통성명도 못하고. 연락처도 못 받고. 에잇 (절레절레)





    12

    사냥과 낚시의 차이의 차이는 무엇일까. 능동과 피동? 아마도 나서기와 기다림이겠지. 그럼 비슷한 점을 또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러자면 일단 장비발 먼저 갖춰야 하는데? 하수가 어느 세월에 고수되기를 기다리냐고. 시작부터 일단 프로와 아마추어는 현격한 차이. 그럼 인생이라는 성적표에서 우리는 과연 어느 정도 만족스러운 성과를 이뤘을까. 나는 과연 경륜주자요 선수이자 도박사일까? 그도 아니면 뻔뻔하고 능글맞고 중독된 생활 노름꾼 아닐까! 그 둘의 차이는 또 뭐고. 그건 어쩌면 종이 한 장 차이. 참고 풀고. 쉬운 여자를 귀신 같이 단번에 알아보는, 비위 좋기로 소문난 난봉꾼의 혜안. 퐁~! 아마추어계에서 은퇴하는 베테랑. 프로 중의 프로인데 하필 프로레슬링계에서 알아주는 명사. 뭐든 시작은 떠들썩하든, 그냥 어쩌다 우연한 계기로 시작하든. 초반에는 많은 실패가 좋은 기교로 연결되듯 타격주의가 기본이라면. 성 그래프의 어느 대목부터는 타율로 바뀌지 않을 수 없는 것. 뭐? 
    쾌락으로 넘어가지 말고 사랑에 대해서만 얘기하자면 그렇다. 냉정히 발을 뺄까 장기전으로 그 오빠를 끌고 갈 것인가. 다 장단점이 있다. 능동적인 로맨티스트는 시동을 거는 게 특기니까 나중 혹시라도 실패하면 뒷수습도 하고 슬럼프라는 뒷감당도 하지 않으면 안 되고. 사랑의 슬픔을 이겨낸 다음 다정한 애인을 만날 테고. 반면 피동적인 사랑의 화신은 파랑새 같은데 알고 보면 허접한 바보요, 팔색조처럼 변화무쌍한 듯 하지만 정말 좋아하지 않으면 뒷심이 약하고. 싫증내기 좋아하고. 커피포트 아니면 진공청소기 즉 중간이 없고. 하지만 피동적인 게 전공이니 만큼 발동이 걸리면 탄력 제대로 받는다는 것. 능동적인 로맨티스트처럼 뒷수습을 왜 해? 그분들처럼 우리가 나중을 왜 생각하냐고. 우리에게 내일은 없지. 농담이고. 알고 보면 누구나 잃을 게 많음. 좌우지간 말만 많지 NB는 또 이처럼 생각이 많아졌다. 
    그래서 그는 좀 더 단순해지기로 결심했다. 시동을 거니 탄력을 받니 다 복잡하고. 뭘 피동적으로 기다릴 것이냐, 무엇에 능동적으로 매진할 텐가. 그렇지만 세상사는 말처럼 썩 녹록치 않는 것. 곧 아무 때나 양털을 깎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능동이고 피동이고 나발이고. 지갑은 얇고 의욕도 비리비리. 만성적인 품위 유지비 적자. 빈곤. 가난. 욕구마저 간당간당. 괜히 능동적으로 나서봐야, 설치느니 나대느니 비난받기 딱 좋을지도 모른다. 혼자 있는 양은 늑대에게 먹힐 위험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관망이 꽤 괜찮은 패일 수도 있다. 순진한 양은 늑대에게, 어설픈 수탉은 불여우에게 잡아먹힌다. 촌닭과 촌년 무시할 거 아니다. 그분들도 다 알고 보면 능구렁이다. 이 세상은 늑대 천지고 하이에나 상시 대기 중. 미친년이 그렇다고 보기 힘들면 좋겠으나 미래는 모르는 것. 그런데 꽉 다문 입에는 파리가 들어가지 않는다면서, 너무 집과 사무실만 왔다 갔다 왔다 갔다.
    결국 그는 지쳤다. 마침내 퍼졌다. 힘 빠졌다. 닳아졌다. 권태에 졌다. 타성에게 밀렸다. 안 그럴 수 있겠나. 꼬리 축 늘어진 거지. 눈꼬리 오르락내르락 웃을 일이 없다고. 그렇다고 입꼬리 움직일 껀수가 있을 리 있나. 아는 동생들이랑 여성환상 1.5와 환상문학잡지 편집장 만나봐야 말꼬리만 잡고 늘어지는데? 탈탈 털리는 거지. 더 빨리는 게 없는 데도 불구하고 한도 끝도 없이 기 빨린다고. 밑도 끝도 없이 끝까지 빨려. 여심을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여도 모자랄 판에 말이야. 어? 꼬리가 길면 밟힌다. 여자들한테 꼬투리 잡히면 끝이다. 장난 아니지. 시작부터 끝까지 뒷담화. 책 잡히면 안 된다. 그런데 언제까지? 
    따라서 떠오르는 말은 역시나 그걸로 귀결된다. 그건 뭐다? 남자는 집에 있으면 안 된다, 무조건 밖으로 나가야 한다. 뭐라고? (절레절레)! 하여튼 못 말린다니까. 왜냐고 묻지를 말아야지. JS 그 인간이 그랬다. 뭐랬더라? 아 그랬다. 우리는 인생이 뻔트라나 뭐라나. 걸리면 넘어간대. 기본 150미터 장외홈런. 그럼 뭘해? 공을 주지 않는데. 딱 좋은 공을 줘도 타격감 바닥. 가뜩이나 독이 올라있는데(설마 돈독? 농담) 게다가 벤치멤버로 내려앉었어. 심지어 2군으로 내려보내. 그래 봤자 이제 슬슬 힘 딸려. 이제 만사가 귀찮아. 야구 하면 뭘 해? 재미도 없어. 하기 싫어져. 에잇~ 그러다 야유에 욱해서 축구하다가 딴 거 하는 거지. 공상도 가지 가지 한다. 하다 하다 또 그놈의 뻔트 타령. 지겹지도 않나 몰라. 





    13

    NB는 꿈속에서 헤매고 있었다. 집에서 인형을 가지고 놀다 보니 어쩌다 인형의 손이 자기 고추와 붙어버렸다. 그래서 그걸 떼려고 영차영차 끼깅끼깅 애쓰다가 인형의 꼬리가 늘어나는 걸 알게 됐다. 그렇게 인형의 꼬리를 두 손으로 딱 붙잡았다. 그런데 어머나~ 왠지 모르게 그는 자기의 퇴화된 꼬리뼈가 간지럽기 시작했다. 그래서 손을 뒤로 해서 자기 꼬리뼈를 만져봤다. 근데 이상한 게 그건 꿈이었기 때문일까? 자신의 꼬리는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꼬리는 방을 가득 채울 정도로 길어졌다. 급기야 꼬리는 바깥으로 나갔다. 처음에는 어디까지 가나 두고 보자 라는 심정이었는데. 계속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때문에 그는 늘어나는 자신의 꼬리를 따라갔다. 어쩜 말꼬리 잡고 늘어지는 시절이 행복했던 거라고 느꼈을 수도 있다. 그렇게 한참을 따라가다가 어느 삼거리 가로수 다인용 의자에 누워서 자고 있는 걔를 보게 되었다. 걘 자고 있었다. 그러다 자기의 꼬리는 그녀의 밑으로 들어갔다. 설마... 설마가 아니라 다행히 자기 꼬리는 그녀의 퇴화된 꼬리뼈와 붙어버렸다. 그는 덜컥 겁이 났다. 어떡하니 어떡하니 그러면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데, 어머머 어머머머머! 그녀의 입꼬리가 올라가네? NB는 왜인지는 몰라도 그 입꼬리를 진정시키기 위해서 자신의 눈꼬리를 올림과 동시에, 두 손으로 덥석 그녀의 가슴을 살포시 쥐었다. 아~ 살며시! 그러자 그녀는 로보트 터미네이터 인조인간처럼 눈을 똑 떴다. 
    NB는 꿈에서 깨어났다. 
    뭐야? 이런 젠장~ 개꿈이잖아? 복권 안 사. 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해는 중천으로 옮겨갔고 사무실에서 그는 무료했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 콘서트 아리아 “나는 가련다, 그러나 어디로? 신이여!” K.583
    아아아~ 어설픈 테너 목소리로 바리톤을 흉내내며 노랠 따라 불러도 재미없긴 마찬가지였다. 
    거 참 희한하네 별의별 희한한 꿈을 다 꿔가지고 말이야.. 아, 맞다! 
    그러면서 그는 꿈에서 봤던 그 거리에 가볼까 라고 생각했다. 
    딱히 약속도 없고. 일은 하기 싫고. 심심하고. 없는 처지에 찬밥 더운밥 가리랴. 
    갔다.
    동영상 구간 당기기.
    도착했다 도착했다. 
    그런데 이건 또 뭐야! 
    평소에 그곳은 직선 도로였는데, 그 옆으로 새 도로가 생겼다. 
    그래서 멀끔한 T자형 삼거리가 생성된 셈. 그런데 그 모퉁이에... 모퉁이에... 꽃집이 있었다. 
    허름하고 허접하고 허영심 가득한 아줌마가 주인일 것만 같은. 어딘가 모르게 그냥 지나치게 만들 것만 같은 느낌 풍만한 꽃집이었다. 
    그러다 별 거 없네 라면서 딱 돌아서려던 찰나. 어째 쓱 하니 자기 뒤통수를 웬 낯선 숙녀의 부드러운 손길이 확 붙잡아 끄는 느낌이 든다고나 할까?
    그는 발길을 그 꽃집으로 들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들어갔다. 
    들어왔다. 
    내부는 바깥과 달리 완전 신식이었다. 
    굉장히 고급스러웠다. 벽에 걸린 사진도 꽤 멋졌다. 
    스코틀랜드 바라 공항? 안 가봐도 알아. 거기서 태어나 사는 사람보다 더 잘 알아. 
    ~라는 퉁명스러움 가득한 얼굴로 그는 꽃집을 나왔다. 왜냐, 안에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별일 없다 그거지. 
    그렇게 딱 발길을 떼려는 순간 꽃집에서 어느 숙녀가 나오더니, 시간은 느려졌고, 슬로모션으로 그녀의 머릿결은 나부꼈다. 
    짜잔~! 핑~! 퐝~! 
    걘 걔였다. 이름이... 아 우린 아직 통성명을 하지 않았구나. 그런데 왜지? 라는 생각과 함께 그는 이렇게 말했다. 
   「늬가 왜 거기서 나와?」
   「내가 여기서 나오든 말든 오빠가 뭔 상관! ~라고 1년만 어렸으면 내가 그렇게 말했을 텐데. 이걸 어쩌나 난 성숙해버렸네?」
   「뭐 성숙?」
   「그럼 오빤 아직 미성숙? (그녀는 시선을 살짝 낮추었다)」
   「어딜 봐! 너 정말... 너 뭐야? 너 누구야? 여기 뭐하러 왔어?」
   「오빠. 하나씩 물어봐. 응? 이렇게 얼굴도 볼 만큼 봤고. 말도 많이 섞었으니. 친분도 쌓였겠다 혹시 알아? 우리가 사랑하게 될지. 아 맞다. 로즈마리가 그러던데. 오빠한테 주래.」
   「줘? 뭘?」
   「마음을! 허허허. 농담이야. 오빠 좋은 사람이라면서 애교를 선물하라던데. 근데 오빠 방금 뭔 생각했어?」
   「생각을 하긴 왜 해? 희망찬 미래의 행복한 사랑이라면 또 모를까. 내가 무슨, 어? 언제나 상큼한 이성에게 홀딱 반한 나머지 도무지 정신을 차릴 세가 없는 늑대인 줄 아니? 아니야. 틀렸어. 번짓수 잘못 찾았어. 그분들의 이상형은 항상 새로운 누군가든 말든. 알 게 뭐야! 그러나. 난 아니야. 난 아니라고. 알아?」
   「시끄럽고. 난 스텔라.」
    그녀가 내미는 악수에 그는 응했다.
   「그만 놓지 그래? 여자 손 처음 만져봐, 오빠?」
   「뭔 소리야? 내가 놓으려는데 너가 너무 꽉 쥔 거잖아.」
   「보면 몰라? 난 놨는데 아직도 오빠가 내 손 꽉 쥐고 있잖아.」
   「근육이 뭉쳤나 봐. 그럴 수 있어. 어? 근육 경련. 눈가 근육 떨림, 그거랑 비슷해. 사람이 살다가 말이야 한 3~4년에 웃을 폭소를 단 몇 분만에 몰아서 웃으면, 어? 안면 근육 떨림. 그런 거 올 수 있어. 알아?」
   「알긴 누가 알아? 뭘? 내가 왜 그런 걸 알아야 하는데! 그리고. 그거랑 오빠가 내 손 놔주지 않는 거랑 관계가 있긴 있나?」
   「그만 넘어가자. 너도 꼬투리 잡고 늘어지는 숙녀니?」
    오늘 그는 이 정도만 하고 철수했다. 
    이 일을 이제 어떡하면 좋니 라는 고민과 함께 말이다.





    14

    스텔라가 NB의 사교 인맥, 인기, 사생활을 다 빼앗았다. 순식간에 말이다. 
    하다 하다 아지트의 방만 경영과 흥겨운 분위기까지 모조리 빼앗았다. 
    따라서 그가 최근 즐겨 찾는 아지트는 이제 파리만 날렸고 그 떠들썩한 인파, 상권, 분위기, 기분, 사교계는 몽땅 스텔라의 꽃집으로 넘어가버렸다. 
    NB는 왠지 모르게 홀딱 발가벗겨져 사람들 적당히 오가는 거리에 나앉은 느낌이 들었다. 이거 보통 일이 아닌 건데 이걸 어쩌나, 마땅한 방도가 없네? 
    그렇다고 꼭 그와 같은 이상 기류에 반대할 이유까진 없지만 어딘가 모르게 이상하게 돌아가는 거. 제비의 직감, 남자의 육감, 허당의 직관까지 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편, 그는 오늘 일 때문에 환상문학잡지 미스테리아에 방문했다. 
    편집장실에서 마라와 회의를 마친 다음 저쪽 여직원들과 농담 따먹기나 하기 위해 방을 나서려던 참. 
    마라가 말했다. 
   「스텔라는 잘 있니?」
   「늬가 걜 어떻게 알아?」
   「어떻게 알긴. 장안에 스캔들 파다해. 몰랐어? 아 주인공이지. 설마 너 벌써 연예인병? 말 마라. 말리는 거 포기했다.」
    다음 날. 
    그는 일 때문에 여성환상 1.5 잡지 편집장 사라와 독대하는 자리를 가졌다. 
    적당히 칼럼 관련해서 얘기를 마친 다음 냉큼 사라는 직접화법으로 물었다. 
   「근데 말이야. 스텔라는 어디다 떼놓고 혼자 왔어?」
   「뭐? 걔가 날 따라다니는 게임 캐릭터도 아니고. 내가 어째서 걜 데리고 다녀야 하지? 근데 늬가 스텔라를 어떻게 알아?」
   「어떻게 알긴. 그걸 나한테 이제야 묻는 오빠가 더 이상한 거 아니야?」
   「뭔 소리야?」
    다음 날. 
    그는 오랜만에 아는 동생들과 커피를 마시기로 했다. 
    나갔다. 
    만났다. 
    다들 할 말이 많았다. 
    알고 보면 듣기 그거 쉬운 거 아니다. 절대 아니다.
    그렇게 기가 빨릴 만큼 빨렸을 때.
   「그런데 오빠. 스텔라 언니한테 허락받았어?」
   「그러게. 이래도 되나 몰라. 안 그러니?」
   「그래. 내 말이.」
   「걔가 뭔데 내가 걔 허락을 받고 말고 해. 어? 얘들이... 걘 도대체 뭐하는 애야? 어? 내 이년을 그냥...」
   「오빠. 진정해. 오빠 이런 모습 처음 본다. 그런데 재밌다.」
   「어. 어. 정말 웃겨. 그렇지? 그치?」
   「너도? 너도?」
    다음 날.
    그는 사무실에서 일하다 전화를 받았다.
   「어 켄트. 웬일이야? 우리 당구 한 번 쳐야지. 이번엔 내가 진짜인 것처럼 내가 져줄께. 어떻게 실력은 많이 늘었니? 다음번에 목관오중주 틀어놓기로 한 거 잊지 않았지?」
   「목관오중주 같은 소리나 하고 자빠졌네. 지금 스텔라가 우리 가게에 왔어. 너 줄려고 최고급 스카프, 초정밀 대형 인형탈, 또 뭐지? 그래. 위작 화가 마크 랜디스의 초상화까지 자기 주래. 뭐하러? 너에게 선물하기 위해서라나 뭐라나! 근데 돈 내고? 아니 공짜로. 아니 아니 외상으로. 그냥 강탈이지. 그런데 정말 웃긴 게 뭔 줄 아니? 지가 무슨 스텔스 노스트라다무스야 뭐야 어? 지가 뭔데 이래라 저래라야, 나한테 뭔 이상한 예언을 하네?」
   「그 예언이 뭔데?」
   「몰라. 까먹었어.」
   「젠장.」
   「그런데 있잖아. 걔가 너랑 결혼하겠데. 널 가지겠데.」
   「정말?」
   「아니. 뻥이야!」
   「이 자식이. 이런 젠장. 어쨌든 너 넘어가지 마. 걔한테 걸리면 끝이야. 절대 주지 마. 아니다. 전화 바꿔. 걔 바꿔. 내가 혼꾸녕을 내줄 테니까.」
   「못 바꿔.」
   「왜?」
   「이미 아까 말한 거 갖고 튀었거든. 말릴 세가 없었다. 겁나 빠르데? 무슨 쉐도우 복싱 챔피언감이야. 이미지 트레이닝 대체 몇 년 해야 그 단계에 이를 수 있는 거니? 나 한 번 진지하게 묻고 싶다 친구.」
   「뭐라고?」
    그는 차분한 음악을 찾지 않을 수 없었다. 
    요한 세바스찬 바흐 / 미사 B단조 BWV 232
    다음에 등장할 히든카드는, 혹시 재산? 없는 재산을 뺏길 수가 있나. 허허허. 그러므로 딱 안심! 
    그래도 모르니 대비하지 않을 수 없는 게 그년이 보통내기가 아니란 말이지. 어머. 
    상스런 표현이 툭 튀어나와버렸지만 NB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자니 뭐 이해한다 치고. 
    그년? 그래 그년. 그럼 그년이 그년이지 뭐 그놈인가? 어? 덜렁덜렁 고추 안 달렸으면 그년이지. 그년이 그놈이야? 안 그래? 내가 뭐 틀린 말 했어? 말이야 바른말이지. 물론 고운 말은 아니지만 이미 친해져버렸는데?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라 스텔라가 자신의 뭘 빼앗을 차례인가, 어? 그게 진짜 중요했다. 
    다음 타자는 도대체 뭐냔 말이지. 뭘까? 있긴 있나? 그럴 가치는. 그녀의 슬로건은 뭐, 주라면 줄 것이지 뭔 말이 많아? 
   최상의 수비는 최선의 공격. 고분고분 넘겨줄 순 없다. 뭐가 될는지는 몰라도. 
    그렇게 공상하다가 그는 기발한 착상을 떠올렸다. 놀라운 영감까지는 아니어도 그는 이렇게 한마디 했다. 
    손가락 딱~과 동시에 내뱉은 혼잣말은 이랬다. 
   「비밀!」
    걘 NB의 마음을 빼앗는 게 목적이 아닐 테고. 그렇다고 사석에서 말하듯 자기 몸을 그에게 주는 것 역시 아닐 테고. 
    그럼 NB에게 남은 건더기는? 건지지 않을 수 없는 고귀한 명분은 뭐니 뭐니 해도 비밀 밖에 없네. 그는 아차 싶었다. 
    방심할 틈이 없었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이걸 어쩌면 좋니!」
    인생이란 개꿈 같은 걸까? 그야 모르겠고. 사랑이란 어쩌고저쩌고 말하는 거 진짜 징글징글 지긋지긋 짜증나고. 어? 
    한 사람이 토끼를 잡으면, 다른 사람은 그것을 먹는다. 그런 말이 있다. 많다. 배 들어올 때 노 저으랬다는 둥 쇠는 달구어질 때 두드리라는 둥. 응? 
    그럼 말이지 자, 가만있자. 가만 보자고. 그게 그러니까 음... 떨려 설렌다 끌린다 라는 피동격을 위한 최소한의 능동격은 뭐다? 남자는 집에 있으면 안 된다, 우리는 무조건 밖으로 나가야 한다. 그런데 NB는 오란 데가 없잖아? 누가 아니래! 그럼 다른 격언? OK~! 한 사람이 못을 박으면, 다른 사람은 그 못에 모자를 건다. 그래? 따라서 시동 걸기는 릴리가 맡고, 탄력 받기는 그가! 그래서 그는 오랜만에 릴리를 만나기로 했다. 





    15

    NB는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녀도 도착했다. 오늘 보니 그녀는 훨씬 더 예뻐진 것만 같았다. 그는 좋아했다. 흐흐흐. 흐흐흐흐흐. 응큼한 놈! 그놈의 흑심이란.. (절레절레)
    뻔한 인사말 식상한 잔소리는 생략하고. 건너뛰고. 
   「오빠. 커피만 마시기 좀 그렇지 않아? 오빠 도넛 먹을래? 달지 않은 도넛으로」
   「싫을 리가 있겠니.」
    그런데 갑자기 그녀는 전화를 받았다. 
    살짝 저만큼 옮겨가더니 그녀는 심각하게 통화했다. 주로 듣는 역할이었고.
   「오빠. 나 갈게. 가야만 해. 가지 않으면 안 돼.」
   「왜?」
   「그건 말할 수 없어.」
   「대체 왜? 왜 갑자기! 설마 스텔라가 너 죽인데?」
   「어떻게 알았어?」
   「진짜? 그런데 늬가 걜 어떻게 알아?」
    그 순간 그는 소셜 네트워크를 애용하지 않는데 그 효과음이 울렸다. 
    안 쓰니까 계정도 비활성화로 바뀌었을 텐데, 어느새 누군가 그거 다 풀어놨다.
    그래서 핸드폰으로 인스타그램에 들어가 보니 이런 댓글이 보였다. 
   「오빠 존말할 때 나한테 와. 내가 잘해줄께. 저번에도 말했을 텐데. 좋은 말로 하니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건가?」
    NB는 등에 식은땀 쭉 나는 걸 감지했다. 
    진짜로 뒷목이 당겼다. 
    코끝까지 찡했다. 
    겁났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마음만 줄리는 없잖아? 
    그래도 구레나룻 쪽과 더불어 콧등과 인중까지 땀방울이 맺혔다. 
    몸이 왜 이래? 몸살 들려나? 아니다. 여기가 너무 습하네. 그래서 그러네. 허허허.





    16

    NB는 어젯밤 꿈 때문에 표정이 별로였다. 왜냐하면 일반적인 개꿈처럼 말도 안 되는 꿈이면 모르는데, 그게 아니라 꽤 사실적인 악몽이었기 때문이다. 기하학적인 꿈 줄거리는 그랬다.
    <'킁킁킁 쩝쩝쩝'맨이 '필요 없어 필요없어 입버릇'맨을 죽였음. 공포 영화에 나오는 효과음과 징후 조짐 분위기는 그대로. 이어서 집 뒤편 숲에다 사체를 묻어야 하는데 함께 가자고 제의. 그는 핑계 대고 거절. 집에 혼자 남게 됨>.
    밑도 끝도 없이 웬 미스터리 스릴러극? NB는 요즘 꾸는 꿈들이 이따금 엥간한 공포극을 방불케 했다. 거 마 아조 그냥 살발하다 살발해, 어? 하루의 시작부터 기분 더러워졌다. 이러니 큼직한 염주를 몇 통 사도 얼마 못 갈게 분명하니, 고로 아예 사지를 않았다. 재수 없는 건 기본. 사는 게 지옥. 타인에게 이타적이면 좋을 테지만 인간이란 본래 이기주의자. 아니면 거짓말. 과장은 예의요 뻥 광고에 속은 놈은 다름 아니라 바로 나. 무엇보다 그는 약간의 대인기피증. 게다가 과대망상증. 머머증부터 각종 중독에 신드롬 목록은 자랑은 아니지만 차마 열거하기 입 아프고. 그래도 또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혼자서 뭐 먹을 때 꾸역꾸역 돼지같이 퍼먹고. 양심이 어딨어? 안 그러면 미친놈처럼 술퍼마시고. 알코올 중독은 약과. 어쩌면 사극에 나오는 어떤 배역처럼 미친 척이 자연스러움. 프레데릭 쇼팽의 낭만적인 2번 야상곡을 들으면 뭘 하냔 말이지. 교류하는 친분은 직접적으로 없고. 간접적으로 공감하든 아니든 어쩌다 보이는 건... 말 못 하고. 미치지 않는 게 신기할 지경. 안 그래도 뭘 해도 재미없고. 
    본인만 그런 건 아니겠으나, 더 힘들고 훨씬 어렵고 아주 괴로워도 꿋꿋이 잘 사는 사람들 얼마나 많은데. 몸만 썽해도 어딘데 말이야. 꽉 막힌 인내심이 아닐지라도, 묵묵히 참고 버티고 견디는 어른스러움. 친구 단 1명도 없는 사람이 어디 한둘인 줄 아냐고. 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일들 얼마나 많은데. 그런데 자의식 과잉 때문에 남들도 다 그렇지 않나? 그러므로 툭하면 삐지고 응석 투정 어리광 엄살 넉살. 안 듣는 게 전공이요 남들 기 빠는 게 특기. (다 그렇단 말이 아니라). 모든 여자는 여신인데 자기 빼고 나머지는 싹 다 신부들러리라 그거지. 보아하니 심심하면 뻥 툭하면 뻥. 아니면 시작부터 끝까지 뒷담화와 남 얘기. 왜냐, 내 얘기 어디 할 게 있어야지! 거울을 봐 보라고, 어? 험담이면 그래도 시간이라도 잘 가지. 할 말 떨어진 오합지졸들 낙담한 표정들을 상상해보면... 엉덩이가 근질근질 하면 뭘 해. 갈 데는 많은데 오라는 데가 없어. 여 바텐더 없습니다, 바텐더 남자입니다! 낙심 만점. 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지는 거 어른들이 왜 모르겠나. 될 놈은 뭘 해도 되고 안 될 놈은 뭘 해도 안 된다, 라는 격언이 때로는 진짜인 걸 결코 모르지 않거든. 안 그런가? 어른들이 원래 능글능글 능구러기이자 약아빠진 관심종자. 모두들 그래. 안 그럴 수가 없는 세상이거든. 꼬마였을 땐 꿈나무이자 꿈꾸러기였는데 세상사에 닳아진 거지. 그래서 친구 1 2 3... 있는 자리에서 1&2가 절친이면 지들끼리 신나게 넌 탈모 난 여자 없는 거, 비난에 자조 개그하다가, 친구 3한테 얘 탈모인 거 놀리지 말래. 걔 얼마나 상심이 크겠냐고. 까고 흉보고 뒷담화 신나게 떠든 다음에, 당사자 없는 자리에서 우리 이러지 말자~ 남 얘기하지 말자~! 
    아아 눈부셔 아이고 눈부셔라, 길거리에서 지나가다 민머리를 보면 괜히 찔리고 이유 없이 미안해진다니까. 어? 난 아무 잘못 안 했어도 괜히 미안해. 어? 내가 머리숱 보태준다고 하면 욕먹어도 싸고, 누군가가 자기 못생긴 거에 보태준 거 있냐면서 선녀가 화낼지도 모르니 더 깍듯이 예의를 차릴 수밖에. 보아하니 적지 않은 우리들, 급상승한 머머지수가 내려오긴 할려나 몰라! 따라서 오늘도 이별하는 연인들 가운데 숱하도록 그 말 하고 듣는 사람들 많을 거 아니냐고. 넌 너 밖에 몰라 라는 둥, 여자 마음도 모르는 제멋데로 거꾸로 맨이라는 둥. 오빠 나 왜 좋아해? 사랑은~ 없어! 그 때문일까? 일부는 그런다지? 동료애랄지 친교 때문에 연애 감정을 키울 기회부터 박탈. 비즈니스맨처럼 무조건 하나 주고 하나 받기. 받으면 철저히 돌려주고. 일단 받기 싫다 그거라고. 엮이면 짜증나니까. 말리지 말자, 감기면 신경질 난다며 애초에 감정이 싹틀 여지를 주지 않는 식이지. 씨 뿌려지기부터 거부하는 본심. 그게 다 턱없이 안 어울리는 상향지원 하향지원 때문. 남자는 못 먹는 감 찔러나 본다는 식, 여자는 넘어오면 좋고 아니면 말고식 유혹. 타석주의야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식 막무가내 도끼질까지. <그림의 떡>이니까 속으로 군침이나 원 없이. 아니면 꽃이 피었는데 날파리조차 구경하기 힘들 수도 있고. 잘난 놈이 1번은 겸손 1번은 잘난 척 허세로 눈물 나도록 웃기면 재밌는데. 못난 분께서 잘난 척 어설픈 근자감 허세 부리는 거, 여자들이 (개) 싫어하고. 그래도 우리는 생색내는 거 나쁘지 않고. 또는 어정쩡하게 저렴한 꽁트식 멘트로, 야 한 번 주라~! 우웩, 그다음 표정...! 무안하게 쳐다보지도 않고, 곁눈질도 아니고, 계속 눈 깔고 있었는데, 그런데 어딜 넘봐! 남자가 여자를 기분 나쁘지 않을 정도로만 스치듯 쳐다봤는데 여자가 왜 쳐다보냐고 따져. 그래서 남자가 말하기를, 
   「저 못생겼죠?」
   「네?」
   「잘생겼으면 그냥 말 걸어주길 바랬을 거 아니에요! 못생겼으니까 화난 거지. 안 그래요?」
    품위 그거 잠깐 내려놓고 말하자면, 남자가 선빵 제대로 날린 거구만. 에잇 콩트도 재미없다. 더럽게 재미없어.
    그런데 뭐야 이거, 또 사랑 얘기? (절레절레) 그놈의 사랑이라면 아주 그냥 징글징글하다. 신물이 난다. 속에서 쓴물이 올라온단 말이다. 피가 거꾸로 솟.. 말이 그렇다는 거고. 이 세상에서 최고로 좋고 기쁘고 행복한 무언가의 대명사가 바로 사랑일 텐데. 왜 하필 그 낱말이 때로는 지긋지긋한 것일까. 사랑도 일이기 때문에? 그러든가 말든가. 그래서 다 미리미리 힌트 포함하여 비유도 많고 좋게 좋게 귀뜸하는 말들이 많다. 그 가운데 하나.
    <강은 민물이지만 바다와 만나는 순간 짠물이 된다>. (버럭버럭) 뭐?
    그렇듯 천상의 다이아몬드 귀걸이를 꿈꾸는 숙녀의 마음은 민물까지는 알콩달콩. 그다음 일단 함께 걸을 때 보면 남녀의 간격은 1미터, 2미터, 3미터... 점점 멀어지고. 안부에서 허락으로 갔다가 통보도 지겹고. 최고급 수제 엔진 오토바이 동호회 모임 갔다가 그 복장 그대로 집에 왔더니 부인 왈, 골프 여행 갔다면서? 의전이냐 잔말 말고 따라와냐. 그놈의 싫증나는 사랑 얘기.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 사연들. 귀동냥으로 수집한 추억담. 말귀 못 알아듣을지언정 보고, 듣고, 경험하며 차곡차곡 그 모든 걸 저장하는 인생. 다 먹고살아야 하니까 그는 투덜거리면서 칼럼을 쓰기 위해서 오늘도 일터로 가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그 외 색다른 근황 토크? 당분간 스텔라를 피해 다니는 거 말고는 없음. 그거 말고 하나. 만약에 마누라가 있다면! 자고 있는데 설마 여편네가 속에 쌓인 게 많았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남편을 때려. 티 나지 않게. 꿀밤을 쥐어박고. 딱 REM 같은 수면 과학에 기반하여 절대 깨어나지 않을 시점에 절묘하게 뒤통수 때리고. 꼬집고. 오늘은 또 이상하게 한쪽 팔이 아팠다. 왜 그런진 모르겠지만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