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환상머신은 미완성. 입만 살았지 플레이보이계 복귀도 물건너갔음. 허당의 명성, 숙녀들로부터 인기지속, 오락산업부터 행복업계까지 만년 러브콜도 다 남 얘기. 전부 타인의 쾌락 남들 퇴폐미. 칼럼니스트로써 빨빨거리며 바쁜 척해 봐야 좋게 말해 무관의 제왕. 안 그래도 신데렐라의 요술구두 내게 맞지 않는데 억지로 낑겨넣어봐야 소용없음. ~을 모르지 않는 어른이긴 한데. 그걸 모른다는 말이 아니라.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는 말이 맞긴 맞다. 말하자면 세상의 비밀과 인생사 쓴맛단맛을 너무 일찍 알아버렸을까? 그걸 왜 나한테 묻냐 라는 핀잔 말고도 겁나는 역공세는 무진장 많으니 너스레도 쉽지 않음. 아주 그냥 능청 지겹단 말이다. 그래? 그럼 이제 슬슬 시동 걸고 발동 걸리다 탄력받아서 마침내 새콤달콤 저 탐스런 과일을... 떽! 무슨 그런 말 같지도 않은 공상을 남용하는 아저씨가 아직도 있다고? 좋게 개 풀 뜯어먹는 소리 집어치우고 일이나 하자. 그런데 뭐 우리가 일하는 기계야? 아님 남자는 뭐 돈버는 기계냐고. 어? 사람을 뭘로 보고. 듣는 사람 없지? 그럼 괜찮음.
~라고 진한 사랑의 부재를 달래며 실컷 떠들었으니까 자, 이제 본격적으로 일 좀 시작해볼까? 그랬는데 벤치멤버인 제5원소 그분은 또 내게 이렇게 말했다. 일부러 꾸짖고 싶어서 그랬을 수도 있는데 알고 보니 잔소리가 취미시네. 틀림없어. 왜 아니겠어. 듣자 듣자 하니 뭐 뭐래시더라?
「떠들지 마. 시끄러워. 고개 숙여. 반성하란 말이야. 아직도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어? 알아 몰라? 넌 뭘 잘했다고 눈 똥그랗게 뜨면서 두리번거려? 뚤레뚤레 어딜 쳐다봐. 몇시, 3시 방향? 이 인간이 정신 못 차렸네. 어? 넌 그 관상부터 문제야, 알아? 알긴 뭘 알어. 어? 지금 뭔 생각했어? 여자 생각했지? 그럴 줄 알았어. 또 개침? 군침? 흑심? 눈독 웬만히 들여라 이 늑대야. 에라~ 이 사자야. 어? 개침은 뭔놈의 개침. 아주 그냥 틈만나면... (절레절레) 어머! 어머머머머? 뭔 소리야? 너 방귀꼈니? 증말 가지 가지 한다. 하다 하다 효과음? 팬티는 실크, 하의는 나일론, 소파는 가죽. 그러니까 소리가 이상하지. 그 3종 세트가 딱 만났는데 이상한 소리 날 밖에 없단 말이야. 알아듣겠니? 쨉쨉쨉 쨉쨉쨉 쨉쨉쨉쨉쨉. 뭐 잔뻔치야? 하여간에 뻔트 어지간히도 좋아해. 아무리 봐도 상태가 너무~ 안 좋아. 너 친구 없지? 딱 봐도 뻔해. 아는 동생들도 있을 리가 있나. 넌 있잖아 그러니까 잔소리를 얻어들어야 하는 거야, 알아? 그래서 늬가 안되는 거라고. 어? 그 때문에 늬가 여자가 없는 거야 이 양반아. 제발 정신차려 이 친구야. 어? 안되겠다 이리 와. 좀 맞자.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그래서 이번엔 당근이 아니라 채찍이라네. 호호호!」
뭐? 정말 그렇다고? 뭐 언제는... 됐다. 됐어. 됐지 그럼. 안될 게 뭐 있어. 이렇게 골똘히 짱구를 굴리면 뭐 밥이 나와 돈벼락을 맞어?! 아니면 선녀 미녀 숙녀 벌레먹은 사과 곯은 복숭아? 온갖 아가씨들이 오빠 정말 제발 한번만 만나주라며 난리를 피워. 그렇다고 그녀들 등쌀에 못이기는 척 데이트하는 게 소원이라는 말이 아니라. 하오나, 어? 허지만~ 내가 이대로 미적지근 허접하도록 눌러앉을 허당 같아? YES~!
그래서 나는 여성환상 1.5 편집장 사라를 만났다.
장면 전환.
장면 전환.
장면 전환.
카페에서 사라와 난 대화 중.
「사라. 오빠 있잖아.」
「뭔데?」
「말 하려던 참이었어.」
「또 뜸들일까 봐 그러지. 말하지 않고 뭐 해?」
「한다니까 글쎄. 얘 좀 봐라. 내가 너네들 커피 얼마나 많이 사줬는데. 이제 뭐 새로운 오빠라도 나타나셨나?」
「그럼 안 나타날 줄 아셨소?」
「뭐라고?」
「그러니까 좋은 말로 할 때 말해.」
「그래. 잘들어. 나 이제 연재소설 안 써.」
「그래? 잘됐네. 쓰지 마. 꼭 뭐 재밌는 멜로드라마 억지로 편수 늘려야 하는 건 아니잖아. 잘됐어. 놀아. 그럼 돼.」
「아니 그게 그러니까 내 말은 말이야, 요즘 왠일인지 이상하게 칼럼만 바빠지고 허구는 안 써진단 말이지.」
「그래? 그럼 흐름대로 가. 그럼 되잖아. 뭐가 문젠데? 문제없지? 그럼 고분고분 일해.」
「내가 일하는 기계냐? 난 걸어다니는 런닝머신이 아니야.」
「그럼 난 신음 끝장나는 환상머신이야, 오빠?」
「어허 것 참! 그게 여기서 왜 나와? 난 너 여자로 안 봐.」
「나도 오빠 남자로 안 봐.」
「왜 진작 말하지 않았소?」
「왜 갑자기 올림말?」
「그러니까 어때주길 원하냐고.」
「오빠가 우리들 시트콤 멤버들 귀찮게 하지 않는 거. 아지트에 더 이상 나올 필요 없어. 오빠 그만 와도 된다고.」
「나 이제 너네들한테 팽당한 거니?」
「아니 뭐 은퇴라고나 할까? 아님 광고계약 해지로 볼 수도 있고.」
「짤린 거네. 내가 뭐 밉보였니?」
「그럼 전부 홀딱 반했을까 봐? 꿈도 크셔. 오빤 그런 말도 몰라?」
「무슨 말?」
「집이 완성되면 그는 떠난다.」
「나도 다 알지. 허나 나는 네가 방금 한 속담에서 '그'가 아니라 집이거든. 토마스 열차 몰라? 난 의인화 장난감이야.」
「뭔 소리야? 뭐래? 개꼬리는 개몸뚱이에서 나온다더니. 오빠 이제 애기가 다 됐구나? 설마 오늘 기저귀 찼어? 그랬어?」
「그럼 내가 생리대를 차리? 정말 내가 그래야 속 시원하겠니?」
「오빤 무슨 말을 그렇게 해? 그러니까 여자가 없지. 어? 오빠가 그래서 안되는 거야. 나 갈래. 연락하지 마. 아마 애들도 전부 오빠 피할 걸. 혹시 모르면 알아두라고.」
「그건 또 무슨 뚱딴지 같은 얘기야? 얘. 사라. 정말 가니? 우리 이제 그냥 사귈까? 야. 촌년. 응큼한 년. 저년이...!」
주책이야 글쎄. 난 아는 여동생들이랑 잘 지내보려 했는데. 그게 그렇게 쉬운 게 아니었다. 왜 그러지? 난 내 수입의 상당량을, 가령 1년 연봉이 1장이라면 0.8장을 몽땅 녀석들 커피사주는 데 할애했다. 커피만 그냥 원없이 마셨다. 밥 대신 커피만. 하다 하다 내 땀에서도 커피 냄새가 난다. 내 몸의 수분은 물론 피까지 전부 커피지 그냥. 근데 좋다며 비싼 커피 싼 커피 맛없는 커피까지 단물 쪽쪽 빨아먹을 땐 언제고. 나 최근 상태가 안 좋아지는 걸 녀석들이 재빨리 냄새 맡았던 걸까? 아무리 애써 봐도 다 소용없다. 다시 인기있는 오빠의 권위를 되찼을 뻔 했는데 글쎄... 소용없었음. 반전은 없었다. 내가 뭐 잘못한 건가? 아닌데. 근데 왜? 뭐 내 별명이 NDJM으로 바꼈나? 아니 언제부터? 됐다. 남다른 호기심이고 나발이고 좋게 일이나 하자. 그러면서 난 사무실로 향했다.
2
Mozart / 바순과 첼로를 위한 소나타 KV. 292
오늘 나는 사무실에서 차분하게 일하고 있었다.
그런데 뜬금없이 톰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밑도 끝도 없이 뭔 또 헛바람을 주입시키려고 얘가 나한테 전화했지? 일단 받았다.
「친구, 오랫만이군. 그동안 왜 연락이 없었어? 하도 소식이 없길래 내가 이렇게 자네한테 전화를 다 걸게 되지 않나. 허허허. 그러게 말이야, 어? 일전에 내가 말 안 했나? 전례를 깨고 그냥 사랑에 대한 열망을 그만 내려놓는 게 좋을 거라고. 그치만 말이야 좋고 싫고가 어딨어. 안 그래? 그게 어디 우리 마음대로 되야 말이지. 허허허. 자네도 잘 알지 않나. 저번에 네가 그랬잖아. 뭐랬지? 개 한 마리가 양떼를 몰 수 있다. 뭐? 뭐 아무튼 나네 말마따나 나도 그렇지만 자네도 고생이 많아. 우리가 정말 만나줘야 하는 여자만 대체 몇 명이냐고. 날이면 날마다 오빠 오빠 제발 1번만 만나주세요. 어? 자네도 많이 들어봐서 잘 알 거 아닌가. 허허허. 지겹지. 짜증나. 어? 성격 좋은 우리가 다 그녀들 맞춰줘야지 우리 아니면 누가 대체 그 어려운 배역을 맡겠냐고. 안 그런가? 어?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지. 너 내 뒷담화했니? 들었어. 세실리아가 그러던데. 너가 내 험담했다고. 나도 대충 눈치는 채고 있었어. 너가 하도 여자들하고만 어울리다 보니 속좁은 남자가 됐다는 걸 말이야. 넌 거의 절반 여자라고 할 수 있지. 허허. 나도 다 알아 이 친구야. 창피해하지 마.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된다고. 어? 형이 다 꼬셔줄께. 그럼 되지? 그럼 너 좋고 나 좋고. 얼마나 좋아. 안 그래? 그런 의미에서 우리 이번에 수영장에나 갈까? 여름이면 해변이지. 야, 그러지 말고 떠나자. 어? 당장. 푸르른 바닷가, 사랑의 연가, 눈부신 비키니. 아니면 뭐 가까운 호텔 수영장도 괜찮고. 형이 다 꼬셔줄께. 어? 왜 공무원 시험 보러 가야 해? 아니잖아. 잘들어. 형이 이번에 아주 그냥 기가막히도록 물 좋은 수영장을 알아놨거든. 2차로 나이트클럽까지. 넌 나만 믿고 따라오면 돼. 그럼 끝. 어? 안 그래도 콘래드 호텔 1층 커피숍에서 너랑 나랑 또 숙녀들과. 그렇게 2 대 2로 만나기로 했어. 너도 싫지 않지? 왜 내 맘대로 약속을 잡았냐고? 그래. 취소할께. 그럼 되잖아. 어차피 걔네들도 바쁠 거야. 굳이 우리 같은 고인물이 귀찮게 하면, 어? 너가 여자라면, 너 같으면 기분 좋겠니? 싫겠지. 에둘러 말은 하겠으나 딱 싫겠지 왜 아니겠어. 나 같아도 질색하겠다. 허허허. 그렇다고 어디 세상에 여자가 걔네들 뿐이니? 무슨 지들만 숙녀인가? 세상의 절반은 여자. 허허허. 가라 그래. 누가 붙잡는데? 우리로부터 어장관리 당하고 싶은 아가씨가 대체 몇 명인데. 허허허. 또 또 전화온다, 아 나 지금 너랑 통화하고 있구나. 잠깐 딴생각했어. 그럴 수 있어. 사람이 무슨 로보트도 아니고 말이지. 안 그래? 우리는~ 어? 우리는 그래. 여자는 다 그럴란가 몰라도 우리는 아니지. 우리는 뭐다? 가는 여자 붙잡지 않고 오는 여자 막지 않는다. ~라는 제목의 게임이 글쎄 최근 유행이라던데. 혹시 들었니? 그걸 들었든가 말든가 내 수다 때문에 미치겠다고? 미치지 마! 돌겠다고? 돌지 마란 말이야. 다 너 인생에 도움되라고 풀어놓는 현란한 혀 놀림이니까 말이야. 허허허허허. 무슨 귀에서 피날 꺼 같은 너만 고생인 줄 아니? 이처럼 듣는 사람 기 빨아먹는 진공청소기 화법을 쉬지 않고 남발하는 난 뭐 안 피곤한 줄 아니? 이거 정력 소비 장난 아니야~. 내가 지금 너랑 이런 말장난할 시국이 아닌데 나도 나다. 아무튼 우리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다시 만나서 하자. 아 아직 만나지도 않았지. 허허. 내 정신 좀 봐. 근데 내가 널 왜 만나!? 만나야 할 여자들만 대체 몇 명인데. 야 야 일단 끊어. 나 바쁜 일 있어. 나중에 통화하자 친구.」
뚝! 그래 뚝. 뚝? 뭐 뚝? 전화는 끊겼다.
「」
뭐야 이 자식! 지 할 말만 하고 뚝 끊는 여편네, 유부남들은 잘 아시지. 그치만 지 할 말만 하고 뚝 끊는 마누라야 대체로 용건 위주. 근데 이건 내가 지 꼬봉도 아니고 날 뭐 진짜 병풍으로 아는 건가? 도대체 뭔 말인 줄 알아먹을 수 있어야지. (절레절레). 에잇 괜히 기분만 잡쳤어. 아마 이게 다 외롭기 때문일 거야. 그래. 맞어. 아닐 리가 없어. 그렇다고. 외톨이 비둘기에게는 앵두도 쓰다는 말도 있지. 그래? 자,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사교계에 행차해보실까? 아니지. 난 은퇴당한 플레이보이도 뭣도 아닌데? 뭐야 이게. 핸드폰을 꺼내 전화번호부를 뒤적여봐도 연락할 친구 하나 없어. 왜? 내 품위유지비 부족하니까. 그 뿐만이 아니다. 페라리 포르토피노 타는 그 친구 한량 몽키스패너. 걔도 잘나가니까 나한테 연락 안해. 그럼 뭐 내가 뭐 한다고 이탈리아 베네치아까지 가야 하는데? 동네 근처 베네치아 피자집으로 난 만족. 세계2대 맥주 축제? 그냥 동네 생맥주집 함부르크에나 가자. 그게 좋겠다. 내 주제에 무슨...! 정통 뉴욕식 햄버거? 정통같은 소리나 하고 자빠졌다. 얼른 퇴근하고 집에가서, 소파에 자빠져 배 터지게 과자나 씹어먹으며 TV로 축구나 봐야지. 야구애호가들 지들이 축구에 대해 알아? 지들이 뭘 안다고.
3
백댄서가 없으면 춤을 추지 않는다. 꼭 그런 사람이 있다. 신부들러리 없으면 결혼하기 싫다는 오월의 신부. 있긴 있겠지? 설마 없을 리가. 진짜 없다고? 하긴 핑계가 예술. 그럼 이참에 뭐 "심심한데 뽀뽀나 할까?"라는 촌스런 대사 읊을 기회도 없는데 거 잘됐지. 기왕 생각한 김에 알래스카 에크러트나에 있는 얼음 동굴 내부나 보러 갈까? 어차피 안 갈 꺼 못가는 사람들이 그런 말 하기를 이 세상에서 최고로 좋아함. 그래서 우리는 피곤한 스타일과 친하지 않음. 세계 마초협회에서도 받아주지 않지, 허풍대회에 출전자격조차 얻기 힘들지. 허당도 아무나 하는 거 아니다. 근데 내가 왜 이처럼 혼자 입담만 풀어야 하지? 꼭 보면 고전만화영화 톰과 제리에서처럼 재미없는 삶을 어떻게 새로운 인생으로 바꿔볼까 하던 찰나 딱 탐스런 먹잇감을... 개 두 마리가 개뼉따귀를 놓고 다툴 때 3번째 똥개가 그걸 물고 튀는 게 인생이다. 세상사 뻔하거든. 서투른 자가 가장 많은 대패밥을 만든단 말이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무슨 더럽게 진부한 몽상도 뭐 자랑스러운 취미랍시고 아직도? 이게 뭐하는 짓이야? 어? 그럼 난 정말 마침내 미쳤을까? 진짜 미쳤나? 아니 내가 왜! 그대 뉘신지 몰라도 난 미치지 않았어. 그럼. 카리스마 끝장인데 어떻게 미쳐! 그러고 싶어도 안됨. 그러든가 말든가 이놈의 공상은 아직도 끝날 줄을 모르네 그래. 뭔놈의 작전 회의만 회의만 그냥...! 날새겠다. 배 떠나겠네. 영화 끝났다. 꿈 깨자. 그렇지만 말이다 들통날 비밀 없지 잃어버릴 재산 걱정 또한 없지, 얼마나 좋아? 여자말 번역기 바쁠 필요도 없고 말이야. 번 돈 1년 연봉 2/3를 몽땅 아는 동생들 커피값으로 탕진하던 인생, 숙녀들 때문에 괴롭고 지겹고 지치고 짜증나고 귀찮아 미치기 일보 직전. 이처럼 심심하니까 얼마나 좋냐고, 어? 지적인 기쁨을 선물하는 호사 난 바라지 않는다. 다정한 자존감을 북돋워주는 사치, 그딴 거 관심없다. 못 다 누려본 플레이보이의 황금기? 어차피 나중 생각하면 다 시간낭비. 정력낭비. 돈낭비. 허송세월. 오늘만 날이냐. 벌들이 있는 곳에 꿀이 있다. 자,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됐다. 그만 하자. 이런 말하기도 지친다 지쳐.
그러므로 난 뭔가 하기로 했다. 하지 않으면 안되니까. 나는 Rossini / 오페라 <도둑까치> - 니네타의 아리아 “나의 가슴은 기쁨에 들떠” 이런 고상한 음악 들어봐야 답은 없고. 백날 상상력만 바닥나도록 마법구슬만 애무하느니 과감히 행동하기로 했다. 근데 무엇을? 무작정 나가면 갈 데가 없는데. 여자들이랑 노는 데 질렸다고 남자들을 불러낼까? 그래 봤자 노상 듣는 말들은 뻔함. 뭐 가슴 세 개 달린 여자랑 사귀고 싶다는 둥, 비좁은 카페에서 발에 뭔 천조각이 밣히길래 쭉 땡겼는데 앞 사람 양말이었다는 둥. 응? 그럼 또 넘버쓰리는 그래 자긴 슬리퍼가 바꼈데. 결국 인생 혼자다. 우리는 몰래카메라가 무서워서 호텔도 가지 않는다. 뭐 그야 어쨌든 대타와 대책 바닥나면 친구 밖에 더 있나. 푸른 해변의 다채로운 비키니가 우릴 기다리고 있다. 정작 가보면 우린 당연히 고인물로 천대받을 게 뻔할 수도 있다만. 그치만 근처에서 조용히 쉬기만 할 건대 뭐 어때서.
그래서 윌, 잭, 포르토피노 그리고 나. 이렇게 4인방은 가까운 바닷가로 피서왔다.
장면 전환.
장면 전환.
장면 전환.
근데 사람이 없네? 아무도? 왠지 몰라도 느낌 세했다.
윌은 아는 동료가 근처에 산다고 해서 자기만 쏙 빠졌다.
잭이 빌려온 허름한 리무진, 어차피 폐차시키려고 했던 거 나한테 가지라고 하면서 녀석도 갔다. 어디로 간다고 했는데 일부러 발음을 흐린 건지 치밀한 계획인지 몰라도 어영부영 도망갔다. 그럼 포르토피노랑 나랑 단둘이 뭘 하겠나? 걔도 갔다. 녀석이 변명할 땐 드디어 난 청력기관 감각이 무음으로 바꼈다. 영화를 너무 많이 본 게 아니라 현실이 영화였으니까. 그래? 가라 그래. 우리끼리는 서로 붙잡지 않는다는 그런 불문율보다 우정이란 말조차 듣기 거북하니까. 멜로영화를 간지러워서 어떻게 꾹 참고 보나. 연기하기 귀찮아서 연애도 안 하는 마당에 말이다. 그럼 이제 나 혼자 싸구려 리무진 타고서 바닷가 드라이브? 못 할 거도 없다.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그렇게 나 혼자 싸구려 리무진을 끌고서 다시 도시로 돌아왔다.
뭐야 이게? 뭔 소설이 이래? 이러니까 환상문학잡지에서 걸핏하면 계약 끊는다면서 막 겁박하지. 그치만 걔네들도 다 너도 삼류 나도 삼류 그러니까 오히려 진짜 같은 김 빠진 이야기를 더 반길지도 모른다. 그럴 수도 있는 게 아니라 진짜 걔네들한테 딱이지 왜 아니겠어. 근데 거 참 나 소설 더럽게 재미없네. 내가 이럴려고 문학을 놓지 못하나? 문학같은 소리나 하고 자빠졌다. 아니 정말, 정신이 번쩍 드는 그런 껀수 없을까? 없다. 있을 턱이 있나. 이 따분한 일상에서 도시의 고독한 사냥꾼 생활, 재미없단 말하기도 입 아프다 정말. 그럼 진짜 무엇이 문제일까? 어? 일찍 여물면 일찍 썩는다, 해는 일찍 뜰수록 늦게 진다. 전자냐 후자냐 그것이 문제로다? 허나 우리 나이쯤 되면 말할 수 있다. 너무 일찍 조숙할 필요까진 없다고. 근데 또 이론과 실제가 다른 게 뭐냐면, 쉿! (절레절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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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사과도 벌레가 먹는다. 잡초는 씨를 뿌릴 필요가 없음. 근데 그냥 벌레만 먹은 사과? 말 말자. 됐다고!
워 워 워. 또 시작할 기미가 보이네. 그놈의 공상 말이다. 그래서 나는 얼른 재빠른 동작으로 고전음악을 틀었다.
Handel / 오라토리오 <시간과 깨달음의 승리> “가시는 두고 장미를 꺾어라”
그렇게 분위기를 잡고서 기분을 고상히 다잡았다. 그러면서 최근 행보를 검토했다. (1) 사라를 만나서 다툼. 헤어짐 (2) 톰의 잔소리 들음. 퇴근함 (3) 싸구려 리무진 타고서 바닷가 드라이브. 그게 다잖아? 그러게 말이야. 그렇게 난 또 슬럼프에 빠졌음을 절감했다. 때문에 난 또 뭔가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던 찰나 환상문학잡지 편집장 마라가 찾아왔다. 근데 그년 아니 그 세련된 외양과 고결한 몸가짐은 물론 우아한 말뽄새 아니 어법으로, 날 툭하면 얼떨떨하도록 만드는 그녀. 근데 그녀 혼자만 내 사무실로 찾아온 게 아니었다. 여성환상 1.5 부사주(수석 에디터, 부편집장, 편집장, 사장을 거쳐서 오른 자리) 사라와 함께. 뿐만 아니라 환상문학잡지 전직원. 더더군다나 여성환상 1.5 전직원까지 대동하고서 말이다. 뭔 일인데 이래? 마라&양대잡지 전직원이 내 사무실 방문? 설마... 아닐 거야. 혹시... 느와르 영화에 나오듯 나 보고 당분간 떠나있으라? 그래도 뭐 마피아 고전식 방법처럼 선물함을 전달받아서, 그걸 열어보니 뭘 암시하기 때문에 결단을 내려야 한다더라. 라는 것보단 낫겠는데. 대체 뭔데 이 난리야? 내 앙증맞은 사무실. 조촐하니 난 적어도 크기에 대해선 불만 없었다. 내 미지의 이상을 찬란하게 만족시켜주지는 못할지언정 사무실 집기도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다. 근데 얘네들이 몽땅 쳐들어오다보니 아주 그냥 물 반 고기 반이었다. 결국 장난 아니니 여자말 허트루 듣지 말란 말일 텐데... 뭔지 몰라도 식은땀이 쭈삣 날동 말동 그랬다.
「아니... 대체 무슨 일인데...」
「가만 있어 봐 나 얘기 좀 하게.」
「듣고 있어.」
「내 말 끊지 말라니까 이 오빠가...」
「알았어. 알았다고.」
「대답도 내가 고개 끄덕, 아니 눈빛 봐서 해야 하는 상황이란 거 몰라?」
「」
「나도 이러기 싫었어. 그치만 오빤 좋지? 물 반 고기 반이라서?」
「넌 말을 해도 꼭... 내가 지금 몇 가지 향수를 맡고 있는 줄 알긴 하니?」
「내가 그거까지 알아야 해? 조용히 하고 들어. 일단 들어봐. 닥치고 들으라고. 지금 장난 아니니까.」
「」
「오빠가 저번에 그랬지? 최근 줄거리가 막힌다고. 아찔한 착상이니 기발한 영감이니 그런 건 모르겠고, 이상하게 서두와 결말 즉 잔소리만 탄력받는다고. 그래서 플롯은 바닥이고 칼럼은 왕성하고. 응? 그치? 맞지? 틀림없어. 그래서 언젠가 우리가 말다툼 하려다 토의, 논쟁 하다가 협의, 끝끝내 격론은 화목하게 합심으로 결론냈지. 어떻게?
https://mashable.com/
https://techcrunch.com/
또 Startups 웹사이트에서 봤던 거. 직거래 플랫폼에다 오빠의 그 남아도는 서두와 결말과 칼럼 잔잔바리. 그거 저작권료 받고 팔자고 한 거. 한동안 짭짤했지? 허허허. 나도 오빠를 알아. 오빠도 나를 좋아하고. 어? 어. 왜 그럼 안돼? 나야 좋지. 허허허. 그 말이 아니라, 응? 대체 이런 게 다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중요하지 왜 안 중요해! 이보다 뭘 더 중요하게 여기란 말이야, 응? 근데 왜 이처럼 말이 꼬이지? 나 원래 안 이러는데. 오빠도 알지? 그만큼 꺼내기 어려운 본론이 기다리고 있단 거 오빠도 눈치챘겠지. 그럼. 이처럼 뜸들이는 내 기분은 뭐 좋겠수? 나도 오빠랑 그냥 농담 반 진담 반 수다떨면 좋지. 막 이처럼 말이야. 오빤 내 인생에 하등 도움이 안돼, 알아? 알긴 알았으면 진작 정신차렸고 돈까지 많이 벌었겠지. 돈까지? 그건 기본으로. 덤으로 나까지? 꿈도 꾸지 마. 아니, 덤으로? 듣고 보니 기분 나쁘네. 아, 내가 말했지. 봐줄께. 나나 되니까 오빠 용서해주는 거지 딴 사람 같아봐 어림없어~! 어? 좌우지간 뭔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다. 허허허. 그게 다 오빠한테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얘기니까 이해하시고. 봐봐. 이처럼 얘네들 전부 왜 데려왔겠니. 지금 발 디딜 틈이 없는 거 보이지? 조그만 소형차 안에 사람이 열댓명 타는 기네스북 기록처럼, 지금 얘네들 속으로 엄청 짜증날 꺼야. 정말로 발 디딜 틈이 없는데, 전부 다 여자거든! 허허허. 아무튼 여자 많으니까 기분 좋지? 내가 오빠 속 모르는 줄 알아?」
「마라. 1절만 하자.」
「그래. 나도 좋아. 요점만 말할께. 우리, 소송당했어.」
「소송? 뭔 소송?」
「희대의 소송. 세계 3대 로펌 가운데 하나던가? 우리랑 하필 이 시국에 법률전 하자네? 그럼 우린 도전장을 받아야 할까?」
「내가 뭘 잘못했는데?」
「오빠가 뭘 잘했다고?」
「내가 잘할께. 너네 사무실 저번에 보니 너무 건조하더라. 재미도 없구 그 뭐지 그게 말이야 너무 정서가 매말랐어. 그래서 하는 말인데 너네 사무실에 개 혹시 키우지 않을래? 골든 리트리버 한마리 키우는 거 어때? 아니면 목양견? 비글이든 코커 스패니얼이든 비숑이든. 뭐든 말만해. 아니면 나 이번에 트레이닝복 세트 샀는데... 내가 좀 더 개처럼 살아볼께. 어때?」
「지금 장난 아니라니까 이 오빠 아직도 상황 파악 안되네. 응? 그러니까 여태 여자가 없지. 응? 이래서 오빠가 안되는 거야. 이러니까 거물들이 물고 늘어지는 거라고. 그래서 오빠는 잔소리를 얻어듣는 거고. 그럼 기가 빨리겠지? 그렇지? 그럼 그 다음엔 어떻게 되겠어? 그래~ 그거야~ 그거라고~ 어? 정력 감퇴! 허허허. 농담이고. 농담 아닌가? 그야 오빠 정력이지 내가 그거까지 신경써야 돼?」
「내가 언제 내 방만한 사생활에 대해 네게 신경써달라 한적... 없는 거 같은데.」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요점만 말한다고. 내 말 끊지 말라니까 글쎄. 어?」
「」
「일곱 명의 목자들은 양떼를 망친다. ~라는 말 알아? 알겠지. 오빠가 뭐 바보도 아니고. 요점만 말할께. 아 나 증말 이거 참 요점만 말한다는 그 말만 계속 반복하잖아? 오빠 바보야? 아니 내가 바본가? 어쨌든 요점은 그래. 그 잔뻔치 같은 단문 몇 개 팔았는데, 하필 그게 유령작가한테 넘어갔고 어떤 중편이 유명해졌어. 근데 또 하필 할리우드에서 대번에 그걸 영화로 만드네? 뻔트로 겨우 수익분기점은 넘겼나 봐. 그래서 전문가들 몇 명이서 그걸 서둘러 연작 드라마로 만드네? 그 다음에 그걸 영화관과 계약했데. 넷플릭스네 뭐네 TV랑 인터넷으로 풀지 않고 드라마를 전용 극장에서만 상영하다고 하더라고. 근데 회원권이 불티나게 팔린다네~?! 골프장 회원권이랑 그거랑 1 대 1로 맞교환한다는 뜬소문까지 퍼졌으니 말 다 했지. 허허허. 거기서 끝이면 얼마나 좋아. 근데 이상하게 오빠의 단문이 너무 많이 뭐랄까... 기괴한 분위기를 연출했다고나 할까? 정신분석학자부터 기타 등등 지금 말들이 많아. 왜냐? 멀쩡히 극장에서 드라마를 보다가 사람들 몇몇이 스크린으로 달려들어서 스크린을 찢고 그 안으로 들어가버린데. 학계 업계 오락산업계 보고되다 보고되다 못 말릴 정도로 일이 커진 거라고. 그러니 걔네들이 또 회의를 했겠지. 긴급으로 말이야. 그래서 정답으로 나왔어. 결론은 우리에게 반갑지 않았어. 오빠 단문이 문제라는 거니까.」
「그게 왜 나 때문이야?」
「낸들 알겠수?」
「그럼 내가 알까?」
「그야 법관 나리 앞에서 말하든가 말든가.」
「내가 왜?」
「자, 그 더러워질 법률전에 기꺼이 달려들 거야 말 꺼야? 선택해. 당연히 피하고 싶겠지. 그렇지만 도망갈 수 없는데 이걸 어쩌나?! 뭔 얘긴지 알겠지?」
「(끄덕끄덕)」
「따라서 방법이 없진 않은데... 하는 수 없이 우리도 이렇게 결론을 내렸어.」
「그게 뭔데?」
그녀는 봉투를 내밀었다. 옆에서 비서는 007가방을 탁자에 놓았다.
「당분간 조용해질 때까지 떠나있으란 말이지? 나야 좋지. 설마... 제일 윗장만 고액권 진짜인 건 아니겠지?」
「미안한데 현금으로 가득찾을 거라는 상상, 틀렸는데 어쩌지? 새옷이랑 새 노트북. 기타 등등 물품들이야.」
「너 그거 하난 알아둬.」
「」
「어중이가 오지 않으면 떠중이가 온다.」
「남들 다 아는 얘길 왜 하필 지금. 잘들 논다. 어? 놀고 있네. 그러니까, 됐다. 아무튼 방법은 그거밖에 없어. 우린 말벌의 벌집을 쑤신 거라고. 것도 장난 아닌 걸로.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리는 정도가 아니라 왜 하필...! 됐다. 뭐 해, 안 떠나고.」
그렇게 나는 서둘러 낯선 여행지로 숨어드는 도망자 신세를 기쁘게 맞이했던 것이다.
5
여행지에서 한적하게 쉬는 생활. 이건 내게 호사였다. 내가 언제 이런 최고급 호텔에서 신간 편하게, 팔자 퍼지도록, 마음 편히 쉬겠나. 청소도 주최측에서 다 해 주지. 스카이라운지에서 뭐든지 공짜로 즐기지. 뭐 하나 부족한 게 없었다. 그렇다고 나는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다. 이곳으로 떠나면서 "행운을 비네 오빠" 라는 말을 마라로부터 듣지 못한 게 퍽 서운하긴 했지만. 뭐 그거야 괘념치 않으면 그만이고. 오래전부터 예상해왔던 권태가 말끔히 치유되어버린 게 어딘데. 그래서 난 여기서도 즐겁게 일을 했다.
https://mashable.com/
https://techcrunch.com/
또 Startups 웹사이트에서 봤던 거. 직거래 플랫폼에다 저작권 넘길 잔소리를 몽땅 생산하는 건 식은 죽 먹기였으니까. 예를 들면 이랬다.
서두 1.
<황홀한 예감이 절망으로 결판나지 않을 선행지표, 그건 결국 돈뿐일까? 그런지 아닌지 몰라도, 최소한 어떤 허당의 헐뜯어 마땅한 난봉 전성기를 환상의 최적격이라 점찍을 수만은 없는 건 분명하다. 뭐 아니라고? 뭐가 아니야! 그야 어떻든 우리는 땀에서도 커피 향기가 남, 그 정도로 우리는 커피를 좋아함. 우린 커피 없으면 못산다고 할 수 있음. 근데 왜 대체 아는 여동생들은 통 연락이 없지? 지들끼리 나 따돌리자고 뭐 짜기라도 했나? 작정하고서 허당 왕따돌림? 누가 뭐 겁날 줄 알아? 지들이 아쉽지 내가 아쉽나! 그러거나 말거나. 하여간에 남자는 집에 있으면 안된다. 말하자면 가택감금 대체 몇 번을 하란 말인가. 굳이 걸핏하면 찾아와서 사람 귀찮게 만드는 인기를 줄기차게 누리는 영광, 집밖으로 달려나가 거머쥐면 된다. 허나 그게 어디 쉽나. 어렵겠지. 아마도 바라지 않는 게 속편할 테고. 그럼 뭐 재미난 일 없을까? 뭘 해도 재미없단 말 누구에게 털어놓을까 매번 고심하니까 술집마담들도 다 그럭저럭 심심하지 않을 뿐. 뭐가 어쩌고 어째? 됐고.
어차피 탄로나버렸다. 뭐 꼭 본색을 드러내고 싶어서 그랬겠냐마는, 누군 안 그렇간디? 결국 겁나게 성가신 취미는 바로 공상. 음탕대마왕. 색마. 바보 같은 놈! 숙녀들 환심사는 잔머리만 골똘히 고민하는 녀석. 내가 언제? 태어나서 오페라 커튼콜 실제도 1번도 못본 놈. 메조소프라노의 아리아가 끝날 때 무대 위로 던져지는 꽃송이. ~가 아니라 수북이 쌓이는 협찬회사 물품을 상상하기나 하는 꼴통. 설마, 협찬이, 아니라고? 뒤늦게 발정기로 뭐 최고점을 찍겠다는 거야 뭐야? 어? 야 팔랑귀, 또 누가 너한테 헛바람을 잔뜩 불어넣었니? 안 들려? 들려 안 들려? 어? 아 제발 진짜 그만 좀 해. 그러니까 뭘?
그래서 나는 이처럼 환청을 잠재우기 위해서 밖으로 나왔다. 집에서 혼자 바탄 죽음의 행진을 계획할 수도 없는 일이니까. 또 Schumann / Kreisleriana op.16 (연주: Youri Egorov) 이런 음악 들어봤자 허영심만 특이해지기 밖에 더 하나. 이미 수도 없이 실험해봐서 논문 천편도 쓸 수 있음. 바로, Hasse / 오페라 <시로에, 페르시아의 왕> "평온하구나, 스폰다의 매혹적인 바다여” 매혹적인 메조소프라노의 목소리. 좋긴 좋다만 아름다운 꿈결같은 멜로디에 취하면. (꼭 그렇단 말은 아니다만) 그래 봤자 과소비 욕망만 상승됨. 인터넷에서 자동차 구경만 하고, 백화점과 시내에서 물품 둘러보면 만져보다가 나중 어차피 사게 되어 있음. 야 어좁 이 머저리 같은 놈아, 밖에 나와서 또 공상이냐? 난 이처럼 공상으로부터 탈출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게 뭐 대단한 발견이라고 난리긴 난리야. 누가 아니래>
결론 3.
<어쩌자고 허구한 날 자빠져 티비만 보는 거야? 너 뭐야! 늬가 뭔데 날이면 날마다 자빠져 놀아, 어? 너 또 누굴 자빠트릴까 그 궁리하지? 누가 늬 흑심 모를 줄 아니. 개침 그거 웃기지도 않다야. 좋게 꿈이나 깨라. 냉수 한잔 마시고 속차려 이 친구야. 아 글쎄 말도 안되는 공상 때려치라고 쫌. 지겹지도 않나 몰라. 어? 대답하기 싫으면 관둬, 이런 미련곰탱이 같은 놈아! 정말 묘한 녀석이야. 더럽게 허접해. 음흉하고. 추접스럽고. 유치하고. 찌질하고. 어? 하긴 늬가 뭘 어떻게 하겠어. 자, 그러지 말고 내 앞에서 빨가벗고 춤이나 춰 봐. 왜, 못하겠어? 것 봐 내 그럴 줄 알았다. 그럼 멋드러지게 노래를 불러보시던가. 그마저, 알만해. 그럼 그렇지. 그럴 게 아니라 너 나한테 좀 맞자. 왜, 겁나? 쫄지 마. 꿀밤이니까. 안 아프게 때려줄께. 혹시 아니 애무해줄지? 그건 그렇고. 이 난봉꾼 같은 놈. 아는 여동생들은 다 어떻게 꼬드긴 거야? 늬 주제에 여심을 쥐락펴락? 팔짜도 좋아. 뭐 굼뱅이도 구르는 재주는 있다? 풉! 그럼 뭘 해, 다 떨어져나간 지가 어언 옛날인데. 근데 너 아직도 그러고 다니니? 이 형님께서 저 언니들 몽땅 다 꼬셔줄께~, 말만 해 말만! 볼 만하겠다. 허허. 허허허. 그래 봤자 전성기 올 뻔 말 뻔하다 오지 않았고, 플레이보이 황금기마저 올 둥 말 둥하다 행운의 여복은 딴놈한테 가버렸겠지. 그치? 그러니까 늬가 여자가 없는 거야, 아니? 알면 뭐 하니, 어? 알면 뭐 해. 쯧쯧쯧. 왜,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설교 듣기가 지겹니? 그럼 너도 말하기 좋아하고 나서기를 한 12배쯤 더 좋아하던가. 것도 아니잖니. 그러니까 늬가 안 되는 거야, 응? 널 보고 있으면 아주 그냥 답답하다 답답해. 이 한심한 놈아. 너 여전히 시시한 칼럼 쓰며 겨우 벌어먹고 살지? 내 그럴 줄 알았다. 넌 답이 없어 답이. 그런다고 문제가 뭐인 줄은 알아? 그걸 어찌 알겠니. 알았으면 이런 잔소리 즐겁게 듣고 있었게? 그러게 잔재주가 아니라 막 그냥 떡밥뿌리기만 애호할 게 아니라, 이 인공지능 슈퍼머신한테 잘 보였어야지. 어? 너한테 나 밖에 없다는 걸 왜 모르니! 왜 그랬니 정말. 어떻게, 인생 비전은 있고? 있을 리가. 왜, 자유롭고 싶어? 희망으로 달래. 이러니까 여자들이 뻑이 가지, 존나 카리스마 있어. ~라는 혼잣말도 지겹지? 존나 버텨! 그 수 밖에 없으니까. 아님 어쩔 건데. 응? 다른 사람들도 다 그저 그래. 나이 먹으면 다 비슷하다고. 너 어차피 땡전 한푼 없잖아. 굶주릴 대로 굶주린 늑대 마음 모르는 바는 아니다만, 하염없이 그림의 떡을 바라만 본다고 뭐 누가 상이라도 준다든? 응? 그럴 수는 없지. 허허. 그러게 한눈팔고 눈독들일 시간에 환상머신을 완성시키든가 신비론과 마술학을 공부했어야지. 내가 저번에 독심술 숙달하라고 했어, 안 했어? 어? 환상문학잡지 미스테리아에서 꼬신다고 뭐 너한테 사랑론이 가당키나 한다고 생각하니? 에르메스, 맥북에어, 페라리... 뭐 이런 게 너한테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거, 설마 아니겠지? 있어도 안 어울려. 알아? 안 그래도 성과가 없잖아 성과가. 뭔가 뻔트에 대한 동경이 그나마 단타로 연결될 기미라도 보여야 할 거 아니니. 거포는 뭔놈의 거포, 툭하면 대형 스트라이커. 스트라이커같은 소리나 하고 자빠졌다. 장거리 좋아하시네. 웃기지 마. 재미 하나도 없으니까. 넌 그래서 안되는 거야. 알아? 몰라도 탈이고 알아도 문제다. (절레절레)! 너 방금 속으로 "이런 젠장~!" 그랬지? 내가 널 어떻게 모를 수 있니. 쯧쯧쯧>
6
최고급 호텔 생활이 살짝 무료해질까 말까 하던 찰나.
마라의 수행비서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모르는 전화라서 뭔가 찜찜하여 받지 않으려다 그냥 받았다.
그래서 통화를 해 보니 뭐라더라?
내 신분, 행정기록, 주민등록이 말소됐다던가...! 아니 왜? 뭐라고 뭐라고 그랬는데... 그때 이상하게 귀가 윙~ 울려서 통 듣지를 못했다.
그럼 서류상 난 투명인간이라는 말인데... 이게 좋은 거야 나쁜 거야? 근데 문제는 소송전과 달리 걔네들이 뭔 업자를 고용했다고 그랬다. 그래서 도망가라네?!
그러면서 어딘가 주소를 내게 적으라고 했다.
그걸 보니 어디 조용한 시골 주소였다.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장면 전환.
장면 전환.
장면 전환.
그곳은 불치병 환자들이 막 특수한 방법으로 자연 치료되는 기적을 바라는 요양원도 아니고. 정신병자들이 모인 특수시설도 아니고. 근데 또 딱히 아니라고 하기도 그렇고. 그렇게 동네 주민들이 통 돌아다니지 않는 한적한 시골생활은 이어졌다. 그렇게 일하기도 싫고 놀기도 재미없던 중 혼자서 노트북으로 영화를 찾아봤다. 예를 들면,
The Wicker Man , 1973
The Wicker Man , 2006
그 외 드물게 들짐승이 죽으면 마치 사람이 죽은 듯 취재하고 막 기타 등등 단 몇 가지만 아니면. 도시와 다른 점은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나는 여기서 친구 하나 사귀지 못한 채 외롭게 생활하고 있었다. 대체 언제 돌아가도 되는 거지? 라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장면 전환.
장면 전환.
장면 전환.
나는 이 동네에서 처음으로 친구를 사겼다. 많이 사귈 필요도 없다. 잘못 사귄 걸 늦게 알 수도 있다만 난 멜로드라마 주인공이나 된다는 듯 운명에 순응하기로 했다. 그의 이름은 킨제이다. 성이 그렇단 건지 이름을 그처럼 불러달란 건지 모르지만 녀석은 질문받기를 썩 좋아하지 않았다. 아니 근데 만난지 얼마나 됐다고 그런 녀석을 어느새 난 닮아버렸던 것일까? 아닙니다. 그건 그렇지 않습니다. 말투... 억양... 몸짓... 어조... 연기력... 남성들에게 특화된 말재간... 여성들 마음을 녹여주는 그놈의 달변...! 심지어 낯바닥까지 잘생겼어. 때문에 내가 상대적으로 꿇리지, 허나 이상하게 그가 마음에 드네? 아닙니다, 그건 그렇지 않습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그러든 아니든 우리가 친해진 과정을 설명하긴 귀찮다. 또 그게 썩 극적이지도 않은 만큼 굳이 재미없는 첫 만남 설명은 지나치는 걸로. 아무튼 속세에서 그동안 난 교우관계가 그랬다. 한땐 시트콤 찍는다면서 이 친구 저 친구 막 파도타기라도 한다는 듯 지내다가. 또 친구 1명도 없는 장본인이 바로 나였다. 근데 여기서는? 날 멋지게 포장하지 않아도 되고 일단 뭐든지 조촐했다. 아는 여동생들? 그놈의 인기라는 게 뭔지 참. 막대한 커피값 대느라 내 등허리가 휠 지경이었는데. 이제사 깨달았을까? 친구 굳이 많지 않아도 된다는 걸. (일단 지금은) 작은 것이 아름답다. 그게 아니라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닌가? 그래. 바꿔. (일단 지금은) 큰 것이 최고다. 많지 않은 건 많지 않은 거다. 적은 건 적은 거라고. 그래? 특출난 허영심 감당 안된다는 걸 우리가 어찌 몰라. 유지보수 장난 아님. 근데 그 얘기가 지금 왜 나와? 내 말이 그거라니까 글쎄. 좌우지간 킨제이와 난 말상대로써 뭐 퍽 훌륭하지도 않다만 그렇다고 썩 부자연스럽지도 않았다는 건 분명했다.
「형. 내가 유럽 축구리그 득점왕보다 축구 잘해.」
「내가 봐도 그럴 것 같다. 넌 뭐 하나 빠질 것 없는 녀석이 왠지 모르게 숨어지내는 거 같단 말이야.」
「형은 역시 뭐가 달라도 달라. 뭘 좀 안다니까 이 양반이. 내가 말이지 왕년에 잘나가진 않았어도 뭐랄까, 이래뵈도 그런 일까지 했다니까.」
「무슨 일을 했는데?」
「유기견 무인도 보내기 협회장. 후원도 상당했어. 나름 유명했지. 그렇게 해서 안락사 될 뻔하다 살아난 개님들이 얼마고, 무인도에서 유인도로 거듭난 섬들이 얼만데. 근데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어쩐다는 말처럼. 뭐 사연이 있었어. 내가 그 일을 그만둔 사연 말이야.」
「캐묻지 않을께.」
「형이 여자가 아니라 다행이군.」
「여자 소개받고 싶으면 말만 해. 넌 형만 믿어. 뻥 아니야. 속는 셈치고 허당한테 신뢰감 느껴도 괜찮아.」
「난 안 괜찮아. 실은 나도 허당이거든.」
「근데 아까 말한 그 개들 이야기는 어떻게 됐니?」
「아 그거? 개판 됐지. 둘 중 하나야. 다큐멘터리 개판, 개들의 천국. 아무래도 전자겠지. 형, 굳이 논평하지 않아도 돼. 처녀에게 뿐만 아니라 나랑 터놓고 말할 땐 일부러 말 많은 남자인 척하지 말라고. 불편하게 우리가 뭐 내외할 거 있어? 난 적어도 기분파지 내숭파는 아니거든.」
「그럼 뭐 난 사탕발림 아부나 일삼는 아첨쟁이라는 거니? 아니겠지. 우리 나이 정도 되면 립서비스 푸는 거도 다 귀찮을 테니까.」
「형, 그런 말 우리 동네 꼰대들 듣는 자리에서 하면 안되는 거 알지? 그냥반들 최소한 죄다 허세대회 입상자들이야. 절반은 국가대표 상비군 출신들이고. 장난 아니야.」
「나도 다 눈치챘어.」
「기왕 귓등으로 흘려버리지 않을 수 없는 개섬 얘기가 풀어졌으니 이어가자면 음... 그래도 될까 몰라. 심심한 평일과 재미없는 주말은 더 이상 묵인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잖아. 우리에게는 새로운 인생과 행복한 낭만과 신나는 사랑을 마다할 이유가 없는 거라고. 전혀! 근데 그게 어디 쉬워야 말이지. 입을 아무리 오래 벌리고 있어도 구운 비둘기는 날아들지 않는다. ~라는 말 우리도 알아. 왜 몰라? 푸아그라가 잘 잡셔주셔 하면서 내가 입만 벌리면 마른 거위 뚱뚱한 거위가 내 입으로 날아들까? 그건 어려워도 사과나무 밑이라면 또 얘기가 달라. 허허. 달라야 뭐 얼마나 다르겠어. 어? 그래서 하는 말인데, 응? 우리, 개섬에, 가볼까?」
「그 말 왜 안 나오나 했다. 그럼 안 갈려고 했니?」
그렇게 킨제이와 나는 개섬으로 갔다. 오늘만 간 거도 아니다. 3일 연속으로 갔다. 그날 가서 그날 오는 일정으로.
구경은 그럭저럭 괜찮았다만 개똥 밟고 새똥 맞고. 여자는 하나도 보이지 않지. 재미 더럽게 없었다.
개들만 미친듯이 꼬리에 모터가 달린 것처럼 환장하면서 우리한테 달려들기 밖에.
7
미지의 이상과 달리 현실은 낭비된 소망 혹사당한 상상력. 하오나 변변치 않은 재산은 신나는 모험에 문제될 거 하나 없었다. ~라는 꿈같은 가정을 편애하며 말도 안되는 공상을 남발한다는 게 진짜 문제라면 문제였다. 내 인생이 뭐 이렇지. 그렇지만 그런 건 어떻든 상관없다. 왜냐하면 더 내려갈 여지가 없도록 뭐랄까 심심한 바닥이기 때문에? 심심하단 투정 크면 더 이상 안 할 줄 알았는데, 그래 봤자 어른이 되고 보니 뭘 해도 재미없다는 거 얹어서... 됐다. 이렇듯 계속 재미없을까 봐 난 늘 겁을 먹고 있었던 거다. 성과로 보나 짝사랑 받기복으로 보나 늘상 퇴짜맞기 일수인 촌닭 인생, 아닌 게 어디냐고? 쉿! 누가 들을라. 엄살은. 염두에 둔 사냥감이 왜 떡밥뿌리기를 싫어한다나 뭐래나, 우리는 멜로드라마 기획의도 관심없을 뿐. 그렇지만 좌 허세 우 허영심을 살짝 내려놓자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왜 아니겠나. 환상문학잡지 미스테리아로부터의 미친 듯한 독촉도 딱 끊겼음. 흡사 아는 여동생들 싹 다 떨어져나간 것처럼. 그렇다고 딱히 실망스러운 현실은 아니다만 대체 그 허무함을 어디에 토로하나. 무엇으로 달랠까! 이번엔 어느 여인이 날 달래줄까? 떽! 절대 못함. 하기도 싫음. 어째서 그러고 싶겠냔 말이지. 맹공을 퍼부을 껀수가 매마르다, 굶주리다, 절망하다, 버티다 끝끝내 좌절해버림.
자, 그렇다면 이제 본격적으로 금지된 신비─금단의 열매─미완의 환상머신이라는 특단의 카드를 사용해볼까? 있어야 말이지. 환상머신은 무슨 말라빠진 환상머신이야? 무슨 개 풀뜯어먹는 탐구정신이냐고. 어? 좌우지간 난 아직까지 여자 손 한번도 못 잡아봤다. 정말이다. 그처럼 아무렇지 않은 척 회사 집 회사 집. 와우~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 진짜? 뻥이다. 진짜일 리가 있나. 근데 말이다, 따지고 보니 내가 왜 이러고 있지? 그래야 할 이유가 대체 뭐냐고. 교묘한 농간과 은근한 유혹도 다 싫다는 장본인이. 천재적인 질투심의 대가는 물론 여자에 관한한 자타공인 여자학 박사님께서, 어? 이게 대체 뭐하는 청승이냔 말이다. 이건 아니다. 이건 아니야.
그래서 나는 무작정 떠나기로 작정했다. 아니 잠깐만! 난 이미 한동안 은둔생활을 위해서 깡촌으로 왔잖아. 내 정신 좀 봐.
별장 생활 벌써 지겨워진 건가? 그건 아니다. 일단 음악부터 틀고.
Schubert / String Quartet no.8 in Bb major D112
오전에 일하고 오후 3시부터 놀기.
화면 전환.
자, 3시 됐다. 이제 뭐하고 놀지?
아차! 난 생각났다. 개섬에 가방을 놓고 왔다는 거. 나 혼자 갈까 아니면 킨제이를 데려갈까? 오늘 녀석 어디 간다 그랬는데... 그냥 혼자 가자.
그래서 난 개섬으로 떠났다.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개섬 도착!
근데 여긴 개섬이 아니라 토끼섬이네? 이거 봐라 이거 봐. 완전 토끼 천지. 설마 내가 잘못 온 건가? 그럼 다시 개섬을 찾아가면 돼지. 어려울 게 뭐 있어? 그처럼 잘못 왔나 해서 돌아가려는데 저쪽에 가방이 보였다. 뭐야, 맞게 왔잖아! (몰라서 물어?) 근데 웬 토끼들이 이렇게나 많아? 아니. 어제만 해도 전부 다 개들이었는데... 지들이 변신했을 리는 없고... 누군가 그들을 전원 교체했을 리는 더더욱 없을 테고. (말이 되는 소릴 해라) 아니면 내 정신이 이상한 건가... 아닌데 난 멀쩡한데. 난 미치지 않았다고. 절반쯤 미쳤나 해서 볼을 꼬집어보고 여기 나 혼자니까 팬티에 손을 집어넣어 내 고추가 실하나 만져봐도 너무 실해서 탈이었거든. (그 바보 같은 소리 그만 하면 안되겠니?) 아니 근데 이거 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고. 어? 우는 고양이가 쥐를 잘 잡은 적은 결코 없다는 말도 있다만. 개는 개 토끼는 토끼. 쟤네들 인생 지들이 만끽하는 거고. 그분들 삶을 내가 대신 살아줄 수도 없는 거 아니겠어? (좀 더 솔직하게 말해볼까? 언젠 안 그랬나) 난 내 가방만 챙겨서 떠나면 그만.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거 정말 너무 이상하단 말이야. 아니 어떻게......!
그래서 나는 가방을 챙기기 전에 핸드폰으로 동영상을 찍었다.
근데 뭐야 이거~! 육안으로 봤던 토끼들이 핸드폰 화면에서는 개들로 보이잖아. 이런 젠장!
"잘해봅시다 우리." 라면서 토끼가 사람 말을 하는 환각까지 보이는 것만 같았다. 아니, 환청이 아닌가?
잘해봅시다... 나 들으라고 한 말인가? 난 진짜 내 옆에 누가 없나 두리번거리기까지 했다. 뚤레뚤레 뚤레뚤레 아무도 없었다.
느낌 이상한데. 혹시 내 뒤에 누가 있나? 절대 뒤돌아보지 마, 라는 대사도 유행지난지 오래된 구식탱탱묵은 기억이지만서도.
일상적으로 뒤를 돌아보는 거, 필요하다. 우리는 음식점에만 들러도 무조건 출구를 제일 먼저 파악한다. 우리는 입구로 어딜 들어가도 건물 설계자의 의도를 훤히 꿰뚫어... 됐고.
한편 잠깐 딴 생각을 하던 중 난 알게 됐다.
알고 봤더니 이제야 난 제정신이 돌아온 것이다. 더군다나 그때 갑자기 내 몸에서 털이 부숭부숭 급속히 나더니 결국 난 토끼로 변함. 그래서 기절!
그 다음에 어떻게 됐을까? 맞춰 보세요. 어서요. 뭐? 맞추긴 뭘 맞춰. 누가 맞추냐고.
똥개 1과 2가 대판 싸우는 동안 먹음직스런 개뼉다귀는 똥개 3이 물고 튀는 법.
똥개 3이 누군가 면밀한 관찰이 요구되는 전개이긴 하다만 난 이미 개꿈을 꾸는 중인데 이걸 어쩌나. 그래도 나름 돼지꿈 비슷했다.
새로 태어난 기분. 환생한 느낌. 환상의 끝을 달리는 분위기. 황홀감 끝장인 로보트춤을 격렬하게 춤추다 못해 신기한 요정 나라에 당도한 심정. ~까지는 아니었으나 약간만 재밌었으니까.
8
<낡아빠진 이상이 돈 쓰는 재미라고 하긴 좀 그렇다. 구식탱탱묵은 소망을 좋아하고 식상한 열망을 사랑하느니 방탕과 타락을 양쪽에 꿰찬 한량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다. 그럼 남은 건 시간을 죽이는 일? 심심한 게 좋은 거다. 재미없는 게 뭐가 나쁜가. 소소한 쾌감이 곧 행복인 거지. 허나 그건 이론이고 실제는, 인간은 만족하기 어려운 동물이라는 점. 그럼 결국 그 말은 마침내 진한 사랑을 뜻하잖아? 젠장. 내 개침 아니 사심 하나 제대로 건사를 못하는군? 아니다. 숙녀들이 우리한테 심심하면 첫눈에 홀딱 반할까봐 두려워서, 바로 그래서 우리는 아는 여동생들 키우지 않는 것일뿐. 그 뿐만이 아니라 우리는 쥐꼬리만한 품위유지비 더없이 만족. 대만족. 거짓말도 잘한다. 품위에 대해 쥐뿔도 모르는 주제에. (어떻게 생각해? 생각이 있어야 말이지) 허나 욕구 불만, 못 견딜 만큼은 아니다. 그래서 노상 누군가 꾹 참고 발설하지 않았던 비밀을 제법 능청스럽게 털어놓을까 말까 그 궁리. (설마 난 아니겠지?) 근데 할 말 떨어졌으니 입이 근질근질할 리가 있나. 아아 이래서 소녀감성과 숙녀 허영심은 그렇게나 남 얘기를 좋아하시는 걸까? 그러거나 말거나. 좌우지간 난 엄밀히 말하면 허당은 아니다. 딱 봐도 사랑에 굶주린 티가 역력한 늑대라면 또 몰라도 말이다. (좋을 대로 하시게나 친구) 근데 말이다 이 동네는 뭔 여자가 없지. 당최 눈 씻고 찾아봐도 전부 다, 몽땅 다 남자들 뿐이다. 물론 꼭 숙녀의 향기, 탐스런 꽃내음을 바란단 뜻이 아니라 그냥 그렇다고. (웃기지 마)
이렇게 한적한 별장에 놀러와서까지 허접한 공상이나 일삼고 있으니... 쯧쯧쯧. 그래도 도시에서 마라 그년한테
「너 주말인데 약속도 없냐?」
라면서 깐족거리는 재미가 꽤나 쏠쏠했긴 했나보다. 그래도 말이다 도시에서 여성환상 1.5 고위급 사라한테 「남자도 좀 만나고 그래 이 친구야.」 라면서 헛바람 주입시키는 흥미가 이쯤 되니 제법 아쉬운 거지. 왜 아니겠어>
나는 꿈속에서 이처럼 일기장에 낙서를 쓰고 있었다.
근데 눈을 떠보니 킨제이의 집. 잠깐, 이게 다 어떻게 된 일이지?
난 도시를 떠나 시골로 왔음 → 요양전문 시골생활 시작됨 → 들짐승이 죽으면 마치 사람이 죽은 듯 취재 기타 등등 이상한 동네 분위기에 적응 → 동네친구 킨제이와 친해짐 → 개섬에 갔다 재미없어서 돌아옴 → 개섬에 가방을 놓고 왔음 → 찾으러 감 → 개섬 도착 → 근데 거긴 개섬이 아니라 토끼섬 → 핸드폰으로 동영상 찍음 → 토끼들이 핸드폰 화면에서는 개들로 보임 → 난 토끼로 변하다 기절.
아하 그랬구나!
「형씨. 깨어나셨수? 그러게 날 데려가셨어야지. 어쩌다 그런 악수를 두셨나 몰라. 허허허.」
「」
「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오. 난 형씨의 그 모험심 높이 산단 말이오. 저속한 걸로 치부할 개섬 탐험이 아니긴 하나 탐색 결과가 허탈하실 수도 있고. 아닐지도 모르고. 그 마음 이 아제가 왜 모르겠소. 아니 그렇소? 허허허. 괜찮소. 일어나지 말고 좀 더 쉬소.」
「」
그렇게 몇 일 경과됨.
9
예상치 못했던 발단에 뒤이은, 현실과 전혀 부합하지 않는 전개가 이제 곧 날 이끌게 될까? 꿈도 야무지다. 호기심을 대만족시켜 줄 유쾌한 껀수 같은 건 없으니까 좋게 자기 합리화나 하는 게 나을지도 모름. 그렇다면 말이다 아름다운 청춘 시절 비밀스러운 사랑은 코빼기도 비추지 않는단 건가? 아니 대체 몇 번을 말해, 동네 아저씨로써 중년에 대한 칼럼이나 쓰시지 뭘 또 헛생각을! 하지만 아무리 좋게 말해도, 하긴 뭐 똥차는 차 아닌가? 그렇다. 그래서 난 그 말을 기억했다. 바로, 궁중이 너를 버리기 전에 네가 먼저 궁중을 떠나라. 허나 그건 사극 대사이자 속담에 지나지 않으니 내 현실과는 너무 동떨어진 얘기. 몽상 그 어엿한 결론은 매번 이처럼 개 풀뜯어먹는 식이다. 이렇듯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친구로부터 이런 말을 얻어들어도 싸다고 할 수 있다. 그건 무엇이냐! 바로, "너 OB가 대체 어떤 놈인지 알기는 하니? 걘 정말 파렴치한 놈이야. 한마디로 색마라고. 어?" 물론 거짓말이다. 뻥이란 말이다. 허나 비장의 카드를 난 여태껏 꼭꼭 숨겨두었다. 어느 날 경탄을 금치 못한 잔재주가 갑자기 내게 생겨버렸던 것이다. 허나 뻥이다. 이러니 난 약이 바짝 오를 수밖에. 그래서 걸핏하면 몽상에 흠뻑 젖어들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환상적 허영심, 기분파 자존심, 다혈질 허세, 미신적인 허언증... 기타 등등 쟁쟁한 대타들은 다 어디로 가버렸을까. 뭐 원래 없었나? 몸 둘 바를 모르겠네. 말할 것도 없이 난 코너에 몰린 셈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므로 무슨 일이 있어도 쥐구멍을 찾아야 하는데. 찬찬히 생각 좀 해보란 말이야 글쎄, 어? 근데 어떻게 된 게 말이야 그 흔한 거 뭐야 어설픈 개구멍 하나 보이지 않지? 아니 정말, 응? 내게 진정 숙녀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호시절이 있었을까? 만약 있었다면 이런 헛소리를 털 일이 없겠지. 좌우지간 언제까지 이처럼 허무하도록 김빠지게 가택감금으로 젊은 날을 허비해야만 하나. 안되겠다.
따라서 나는 과감히 행동에 나섰다.
근데 이미 깡촌 별장으로 왔잖아?
게다가 불과 얼마 전에 싸구려 리무진 타고서 바닷가 드라이브도 하지 않았나?
그러다 최고급 호텔 생활이 지겹던 찰나 마침, 어? 때마침 요양전문 시골생활이 시작된 거지 않나.
심지어 개섬까지 구경했어. 뭘 더 바래? 뭘 더 원한다는 게 아니라, 어? 아니~ 그게~ 그게 그러니까 말이지...
뭔가 하고 싶단 말도 아니고. 어쩌면 좋겠다면서 사심 채우고자 한다는 게 아니라. 모든 욕망 내려놨다는 말도 안 했음.
근데 이 허전함은 뭐지? 그 신비한 정체를 알 수가 있나. 그냥 모른 체하면 그만.
고로 난 오전에 일하고 오후에는 인터넷 서핑도 좀 하고 게으름피우다가 오후 3시부터 본격적으로 놀기 시작했음.
그렇게 딱 동네 여기저기 막 그냥 빨빨거리면서 나돌아댕김. 오라는 덴 없고 만날 사람도 없지만서두 엄청 나댐. 혼자 바쁨.
(뭐 나서지도 나대지도 마?) 이것들을 그냥... 농담이고. 지금 중요한 얘기 중이니까 말 시키지 마. 꼬치꼬치 캐묻지 말라고, 어?
결국 줄거리를 요약해보자면 이렇게 됐음. 깡촌에서 외톨이로 심심할 바엔 차라리 도시의 고독한 사냥꾼으로 재미없는 게 낫긴 낫단 생각이 든 거지.
난 그래서 혼자 놀기에 지치던 중 폐쇠된 놀이공원 발견
↓
다람쥐챗바퀴 놀이기구 운행을 마지막으로 경영하던 시골 놀이공원이란 말이군. 끝끝내 버티다 묻 닫았네. 뻔해. 같이놀 친구가 없던 찰나 난 혼자 그곳을 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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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귀신의 집에 들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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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로가 매우 김. 따라감. 계속 따라감. 결국 암흑 끝으로 빛이 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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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거대한 직사각형 채광창 비슷한 곳에 다다름. 갑자기 뒤에서 바람이 휘몰아침. 그렇게 스크린을 찢은 채 극장 무대로 튕겨져나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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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은 시골 시민회관 영화관. 모든 동네 주민이 거기 모여 있었음. 상영중인 영화는... 뭔지 모르겠음. 근데 사람들 표정이 없음. 겁나서 도시로 돌아감.
10
어느 날 나는 퇴근 후 아지트에 들렸다. 별다른 건 없었다. 마크 로스코의 "블루. 오렌지, 레드" 위작이 새로 보이는 거 빼고는. 평소 같으면 최신 유행가랄지 클럽 음악이나 기타 등등이 들렸겠으나, 오늘은 어딘가 모르게 특별한 날일까? 음악은 이랬다. Handel / 오페라 <줄리오 체자레> “폭풍우에 시달린 배가 항구로 돌아왔네” 그럼 뭐 나 보고, 프라이팬에서 나와 불 속으로 뛰어들라는 신호탄이라도 된단 말인가. 그럴 리는 없겠지. 주인공병 재미도 없고 얼굴 팔리는 거도 귀찮고. 그렇다고 누가 날 띄워줄께 당신을 유명하게 만들어드리겠소! ~라면서 사기꾼이 포커페이스로 나처럼 허접한 허당한테 립서비스 풀면 난 딱 속아넘어가라고? 내가 왜! 그처럼 공상이 저절로 이상의 날개를 펼치려던 찰나 친구들이 내게 말을 걸었다. 상투적인 대화 내용은 생략한다. 더불어 우리끼리는 간지럽게 선물을 주고 받는 사이도 아니다. 오리를 주는 자는 거위를 기대한다기보다, 만사가 귀찮은 거지. 뭘 해도 재미없는... 청춘이니까. 걔네들처럼 나 역시도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면서 중년을 위한 칼럼 쓰느라 퍼질대로 퍼졌으니까. 또 우리는 여자들처럼 겸손과 칭찬처럼 틀에 박힌 대화도 좋아하지 않고 말이다. 그럼 판에 박힌 농담들이 흥미롭지 않기 때문에 더 이상 대화를 나누지 않을 수도 없고. 그러다 누군가 우리들한테 제안했다.
「얘들아. 소풍가는 거 어때? 콜? 어? 콜?」
그래서 나는 최근 가봤던 개섬을 얘기하니까 녀석들은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그렇게 엉거주춤 갈까 말까 망설이다가, 바람잡이 같은 누군가가 선뜻 가자 라면서 부추겼고. 그래서 우리는 다음 날 개섬으로 허둥지둥 떠나기로 했다.
장면 전환. 중간 건너뛰고.
장면 전환. 중간 건너뛰고.
장면 전환. 중간 건너뛰고.
여기서부터는 줄거리만 간략히 설명하기로 한다. 왜냐하면 살을 붙여 드라마로 개작해서 뻔트에 성공하면 '망해도 고'라면서 영화화될 게 뻔하니까. 아닌가? 아니든가 말든가.
좌우지간 우리는 텐트치고 고기 구워먹다가 보게 됐다. 배 A가 와서 섬의 모든 개들을 실어감, 곧이어 배 B가 와서 섬에 토끼들을 잔뜩 퍼놓고 떠남.
나는 옳지 이거야~ (딱)! 그러면서 친구들한테 재미난 걸 보여준다면서 큰소리 뻥뻥침. 신비란 바로 이런 거라면서 겁나게 떵떵거림. 내가 정말 너네 평생 단 1번 볼까 말까 알 듯 모를 듯, ~이 아니라 알기 어림 반푼어치도 없을 그런 신기한 환상을 보여준다면서 잔뜩 헛바람 주입시킴. 보다시피 개섬이 토끼섬으로 바꼈는데, 저 평화롭게 풀 뜯어먹는 토끼들을 핸드폰 동영상으로 찍으면 모두 개로 보인다면서. 결과는 아시다시피. 그래서 개 풀뜯어먹는 소리 나불대지 말라면서 상욕을 얻어먹음. 썸씽 있을 뻔하다 말았음. "개섬 → 토끼섬"으로 전환만 되었을 뿐.
11
우리는 개섬 아니 토끼섬 캠핑 3일째. 멤바는 알퐁스, 에드워드, 나 그렇게 3인방이었다.
「얘들아. 오늘 갈까 내일 갈까?」
「글쎄.」
「일단 그 말 내일 다시 하는 게 어떻겠니?」
「그거 좋겠다.」
「근데 말이야 이처럼 무인도보다 평범한 여행지 가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무인도에 데려가고 싶은 사랑의 차트. 이루어질 수 없다는 거 잘 알잖아. 보나마나 재산목록 1-2-3 비리비리한 늑대들끼리 으쌰으쌰해서 여기까지 오게 된 거잖아. 섬머타임? 다음 달에 또 가면 돼. 갈까? 가자. 바캉스? 형이 가서 다 꼬셔줄께. 기대해. 걱정 말라구. 응? 그건 그렇고 너넨 요즘 사는 낙이 뭐니?」
「난 집에서 영화보며 자빠져 과자 먹는 거. 그래서 우리 집 창고에 소파가 5개잖아. 난 내가 번 돈 아마 10%는 전부 소파 사는 데 다 쓰는 거 같아. 아니? 계산기 두드리면 1/3일지도 몰라. 그러는 너넨?」
「나도 너랑 같아. 다만 난 다큐멘터리나 영화 말고 다른 거 본다는 게 다를 뿐이지. 다음 넌?」
「친구들을 만나도 예전 같은 재미가 없어.」
「아저씨네.」
「그런 넌 여전히 발정기냐? 노인네 힘도 좋아. 야, 별명 얘기 해볼까? 에잇 폭로전 재미없다. 하지 말자. 아니, 내가 너네들 회춘하도록 만들어 줘? 그래, 말어? 어? 말만 해 말만.」
「참어라.」
「넌 조증. 넌 수전증. 난 허언증. 우리 거 어째 이 조합으로 너무 많이 만난 거 같지 않냐?」
「내가 너네들이랑 놀아주느라 애쓴 노력. 10분의 1만 딴 데 썼어도...」
「넌 그래서 안되는 거야. 어?」
「그만 하자.」
「근데 넌 운동화가... 뭔가 이상한데?」
「아 이거? 최근 옷이랑 신발이랑 싹 다 버렸어. 요즘 버리는 재미에 빠졌거든. 어른들이 그러잖아. 살아보니 돈 쓰는 재미만 한 게 없더라고. 그런 김에 분기별로 컨셉 정해서 살기로 했는데 말이야, 이번엔 범생이였지. 그래서 중저가 운동화를 사려는데 내 마음에 드는 게 하나도 없네? 괜찮으면 비싸거나, 나쁘지 않으면 여자 꺼. 그래서 어두운 색 1가지 운동화를 사려는데 왠지 몰라도 밑창의 그 눈부신 흰색이 영 거슬려야 말이지. 카키랑 청보라든 뭐든 딴 색 많고도 많은데. 어? 근데 왜 하필 밑창 흰색은 고집하는지 모르겠어. 이참에 운동화 디자이너나 해볼까? 어쨌든 그래서 중저가 운동화 하나 사서, 카키색 에나멜도 하나 사서 거기다 발랐어. 근데 에나멜이 불량품이었어. 그래서 페인트를 샀어. 그렇지만 내가 언제 페인트질을 해봤겠니? 그래서 살짝 번지길래 수평 맞추다가 점점 위로, 점점 위로 올라가네? 그래서 이 모냥 된 거지. 차라리 중고가로 살 걸 괜히 중저가를 고집했다가. 나중 들인 노력과 추가금 합치면... (절레절레)」
「야. 그런 얘기는 여자랑 있을 때 하는 게 어떠니? 남자들이랑 있을 때 그런 시시콜콜한 얘기 꼭 하고 싶냐? 그래서 늬가 여자가 없는 거야. 어? 그러니까 늬가 안되는 거라고.」
「아무튼 난 실은 더 부유해지고 싶지 않아. 난 솔직히 여자들 그만 사귀고 싶어. 귀찮아 죽겠어. 아는 동생들이 하도 귀찮아서 이번에 핸드폰 번호도 바꿨어.」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음. 기분 짠하게 너무 그러지 마라 친구야. 아아 그나저나 고기 먹고 싶다. 아 미치겠다. 고기를 안 먹으니까 힘을 못 써. 어차피 힘 쓸 데도 없지만서두. 말이 그렇단 거다만 생돼지고기라도 막 씹어먹겠다. 자주는 아니어도 간혹 고기를 먹어줘야 하는 건데 말이야. (절레절레) 우린 왜 고기 구워먹을 생각을 안 한 거지? 미스테리가 따로 없다. 너넨 힘 뺄 필요없이 뭘 해도 재미없을라나 몰라도 난 아니다. 난 아니야. 난 아직도... 됐다. 그만 하자.」
「한놈은 지 땀에서도 막 커피 냄새가 날 정도로 커피를 사랑한다질 않나, 한놈은 뭔 전생에 고기 못 먹어서 죽어 한을 품은 귀신이 붙었나... 쯧쯧쯧! 너. 그리고 너. 너가 정말로 1년 연봉의 절반을 커피값으로... 아 저번에 인증했지. 인정. 근데 넌 고기 먹으나 안 먹으나... 하긴 내가 뭐 늬 여편네도 아니고 말이지. 내가 늬 마누라도 아닌데 그 걱정을 왜 하는지 몰라. 참 나 거 나도 나다. 그러지 말고 시내에서 술 마실 때만 2차 3차 가란 법 있냐? 오늘 대충 놀고 내일 짐 싸서 딴 데 가자.」
「좋은 생각이야.」
「콜.」
그렇게 다음 날이 되었다.
근데 이게 어찌 된 일이란 말인가!
간략히 설명하자면 이렇다. 저번처럼 대규모 교체 발생. 이번에는 사람. 전부 여자. 여자 100%. 뭐라고? 다시 한번 말하겠다. 아니, 100번이라도... 그걸 누가 바란다고. 좌우지간 엄선되어도 너무 엄선됐다는 것만 누군가 알아주기를 꼭 희망한다고까지 내 입으로 어찌 실토하나. 사실만 단지 그렇다뿐. 아니 어떻게 무슨 병아리도 아니고 감별을 감별을... 뭇남성들 놀라자빠질 일이로구만 그래.
거기서 끝이 아니라 자기들 마을 청년회장을 맡아주라고 떼씀. 정중히 거절하자 깽판부림. 난동. 법석. 토끼섬이었을 때 떠나야 했던 것일까? 돌아가는 분위기 상 거절 못하는 형편에 이르름. 우리는 어떻게 그처럼 쉽게 승낙하게 되었을까? 방법은 많았다. 예를 들면? 인형던지기. 울기. 옆에서 달래기. 그녀들끼리 머리끄댕이 붙잡고 다투기. 말싸움. 침뱉기. 앙탈. 연기. 자기들끼리 찰지게 패기. 옷벋기. 나체쇼에서 조금 더 나아가... 쉿!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런다고 순순히 그분들을 따라갈 우리들인가? 그리고 한번 생각을 해보란 말이야 생각을, 어? 밑도 끝도 없이 무슨 쟤네들은 사이비 집단이야 뭐야. 그렇지만 이거 저거 다 따져도 누군가 솔직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는 점, 아마도 부인하기 좀 그 뭔가 거 마 거시기 아 나 정말 그래. 말하자. 뭐 그럴 수도 있고 코메디 대사에 불과할 테니까. 요컨대 오 땡큐? 넘어가고. 늑대를 자기 고해신부로 삼는 양은 어리석다는데... 당장은 늑대들 입이 귀에 걸렸을지 모르는데. 근데 아마존의 원뜻이 혹시...! 한 가지만 알면 된다. 농장주와 그의 당나귀는 항상 생각이 같지 않다는 점. 일단 심심치 않은 전개가 난데없이 튀어나왔으니 두고 보면 알겠지 뭐.
다음 날 조수간만 차가 연중 최고인 날이지 뭔지 섬과 육지는 육로로 연결됐다. 그렇게 우리는 걔네들 동네로 떠남.
물론 가기 전에 우리는 서로 말이 많지는 않았으나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는 뭐랄까 사내들만의 예감? 까지는 아니겠으나 아마 나도 모르는 뭔지 모를 기대가 없다면 거짓말이었을 것이다. 때문에 우린 막 이런 대화를 나누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옛날에 집안일에 지친 엄마가 막내인 내게 이런 얘길 하셨지. 늬가 여자라면 좋겠다. 오늘을 기다렸어!」
「어쩐지 여태 너무 재미없다 재미없다 그랬지. 어른들 말씀 틀린 거 하나 읎어. 왠지 몸이 찌푸둥하다 싶으면 어김없이 다음 날 비가 오거든. 내가 이럴려고 삭신이 쑤셨던 것일까?」
「난 내 인생에서 전성기가 없을 줄 알았거든? 근데 아니었어. 허허허허허. 흐흐흐흐흐흐. 풍운아의 황금기를 논할 때 이럴 수도 있어. 나처럼 침묵하기 좋아하는 논평가를 주인공으로 낙점하는 드라마가 나온다면 말이야, 그건 바로 지금이야. 딱인 거지.」
12
첫째날 잔치까지는 좋았음.
그러나 다음날 화장발 때문인지 뭔지 콩깍지가 벗겨짐. 자세히는 말하지 않겠음.
고등학교 친구들 7명이던가 몇 명이던가 우르르 놀러가서 겪었다는 귀신 이야기. 걔네들은 실제 사신의 주술로 빚어진 환상을 겪었거나 아니면 뭔가 속임수일지도 모르겠다만. 어쩌면 착오랄지 혹은 오해에 불과할 수도 있다만. 그와 달리 우리는 사실주의와 미스테리의 경계를 체험했다고 할 수 있다. 기왕 말 나온 김에 자세히 고백하고 넘어가자. 그래. 그게 뭐 흉도 아니고 실제 있었던 일일 뿐인데, 흑심 없지 않았다만 우린 사춘기 모험심을 되찾았던 꿈에 부풀었으니까 그건 그냥 넘어간다 치고. 뜸들이지 말고 곧장 요점말 간략히 진짜 1줄평으로 말하겠다.
개섬 아니 토끼섬에서 아가씨 100명? 몇 명인지 세어보진 않았다만 그냥 대충 빼어난 미모의 숙녀 100명. 말 그대로 그날 봤을 때 미인대회에 나가든 영화를 찍든 그 어디서든 신부들러리를 서라면 서러워 할, 아니?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물어봐도 압권, 첫손, 누구 하나 흡잡지 않을 미녀들이었는데. 아니 어떻게!
그렇다. 그랬다. 첫째날 잔치까지는 좋았다. 정신없이 마셨다. 즐겼다. 노래 불렀지 왜 안 불렀겠다. 춤까지 췄을걸?! 옷은 안 벗었던 것 같다. 분위기 끝장이었지. 엄청 즐거웠거든. 그처럼 폭소대잔치는 우릴 한 10년은 젊게 만들어주었으니까. 사극에 나오는... 굳이 설명하지 않았도 알 만한 한량과 양반들의 그 어떤 방탕함. 아마 우리도 어제 충분히 느꼈다. 솔직히 말해서 그거 곱하기 10, 더하기...... 나누기 마이너스 7의 8승, 그거 받고 최상의 쾌락마 코싸인 얼마에 판돈 따따블!
아니 근데 어떻게...! 다음 날 보니 그분들은 몽땅 시골 할머니들이었다. 당연히 우리들 친할머니 증조할머니 옆집 앞집 뒷집 윗집 아랫집 동네 아줌마 할머니들과 하나도 다를 것 없는. 그렇다고 그분들이 뭐 나쁘단 말이 아니라. 우리도 악의 없고. 사심은 있었나? 내심 사욕 있었을 수도 있다만. 쉽게 말해 이건 화장발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우리가 뭔가 환각에 취했다기 보다 진짜로 귀신에 홀렸다고 할 수밖에 없다. 다음 날 완전 깜짝 놀라 쓰러질 지경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겨우 2째날 우리는 떠났다. 새로운 바캉스 장소로.
13
알퐁스, 에드워드, 나 이렇게 3인방의 휴가. 바캉스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바람 부는 3월과 비오는 4월은 멋진 5월을 부른다. 초반에 부진했더라도 막판 스파트가 있을 것이다. 그래야 한다. 그럴 것이다. 그랬으면 좋겠다. 그러지 마, 나대지 말라고. ~라면서 우리 중 누구도 그러기를 반대하진 않았던 건 분명하다. 그렇게 우리는 제2의 행선지로 근처 호텔을 낙점했다. 호텔 이름은 산타 캐롤리나. 그 옆에 해수욕장이랑 유원지랑 공원에다 조촐한 시내 등 있을 건 다 있으니 딱 좋았다.
그렇게 웨건 1대에 3명이 타고서 목적지로 가던 중 네이게이션이 말을 안 듣네?! 왜인지는 몰라도 녀석 상태가 안 좋았다. 또 핸드폰으로, 노트북까지 켜서 지도를 검색해봤는데 인터넷이 느리거나 정보가 부족하거나 그랬음. 그래서 우리는 휴게소에서 인상 좋은 아저씨한테 여줘봤다. 호텔 산타 캐롤리나를 아시냐고.
「산타 캐롤리나 호텔을 아시냐고 물었소?」
「네. 네 네 네. 네 그럼요. 혹시 아신다면 가르쳐주실 수 있을까요?」
「좋다마다요. 거기 우리 동네요. 날 따라오시오.」
그렇게 우리는 아저씨를 따라갔다.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근데 도착한 곳은 어제 우리가 하룻밤 묵었던 할머니들 아마존 동네라니!
정말 그 아마존 동네 끝 부분에 호텔 산타 캐롤리나가 있었다.
우리는 통사정을 아저씨한테 얘기했다. 무슨 귀신담을 듣는 표정이던 아저씨 왈,
「몰랐수? 이 동네 사연이 많소. 원주민도 전원 교체된지 오래요. 혹시 개섬이라고 들어봤소? 이 동네 사람들만 바꼈으면 말을 안 허지 내가. 어? 형씨들 혹시 토끼섬 놀러갈 생각 있으면 내게 말하시오. 아니, 거기 또 바뀔 시기가 됐던가...? 아무튼 잘은 몰라도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 말이오, 캬~ 어? 내 참 나 도시 랜드마크 가운데 구식. 즉 옛날식 전망대 꼭대기층에 있는 스카이라운지. 레스토랑 분위기 좋으니까 연인들끼리 데이트하기 좋은 장소. 그런 촌스러운 전망대 건물은 원형이고, 스카이라운지는 회전식. 대충 그림 나오지 않소? 이 촌동네는 그냥 흔한 깡촌이 아니란 말이오. 그럼. 절대 아니지. 계획된 촌동네다 그 말씀. 이 양반들아, 어? 이 얘기 혹시 나한테 들었다고 절대 소문내지 마시오. 선생들 딱 봐도 입 무거울 거 같으니까 내 그래서 하는 말인데. 아 나 거 참 나 증말 이거 말 꺼낸 김에 말하지 않을 수도 없고. 또 그렇다고 섣불리 발설해도 나중 곤혹스런 발단에 휘말릴지도 모르겠지만, 그건 뭐 그때 가서 생각하고. 긴말 필요없이. 여긴 원형 스카이라운지처럼 회전식으로 형세가 바뀐다오. 증거를 찾소? 그러니까 멤바가 전원 교체되는 것 아니냔 말이오. 확신이 서지 않는다는 형씨들 표정 내 알다마다요. 아까 네이게이션 잘 됩디까? 아마도 개섬과 토끼섬 둘 중 하나는 이미 구경하셨을 수도 있다는 데 내 주급 걸겠소. 그렇소 안 그렇소? 네? 내 말이 썩 신뢰감이 부족하다는 것 지도 잘 알지만서두, 대체 설계가 어찌된 건지 제대로 아는 사람을 여기서 최고로 오래 산 장본인인 바로 나조차 단 한 명도 만나보지 못했단 말이오. 내 말 허트루 듣지 마시오 형씨들. 그게 좋을 거요. 원형 스카이라운지처럼 1차면 좋겠으나 2차? 아 거 증말 3D면 곤란한데 글쎄.」
그러면서 인사도 없이 아저씨는 그냥 가버리셨다.
「아저씨 상태가 많이 안 좋으신 거 같은데.」
「그러게 말이야. 어젯밤 꿈이 아직 안 깨셨을까?」
「그야 모르지. 그건 그렇고. 우린 호텔 캐롤리나에 짐 풀고 어서 놀자구. 낚시도 하고 여자도 꼬시고. 형이 여기 여자들 다 꼬셔줄께.」
「너 저번에 그랬다가 한 명도 못 꼬셨잖아. 뭔 말만 말만 저 여잔 헤어스타일이 별로네 쟤는 성격이 더러울 거 같네. (절레절레) 너 후배들한테 유명한 거 아니? 형이 꼬셔준다면서요~ 근데 왜 못 꼬셔요? 왜 말걸지 않냐구요! 다 들었어. 어? 아아 날씨도 좋고 기분도 싱숭생숭한데, 날라차기나 한 대 맞고 싶다.」
「그러지 말고 악기를 튜닝해서 유명 기타리스트 손때 묻은 거라고 속여서 팔까?」
그렇게 우리는 호텔 캐롤리나 산타에 짐을 풀고서 거침없이 놀기 시작했다.
14
그렇게 친구들과 놀기 시작한지 3일째. 녀석들은 벌써 비도시 생활에 싫증냈다. 도시에서 재미없다면서 막 응석부리는 게 그래도 낫긴 낫다나? 그러자마자 정말로 알퐁스와 에드워드는 도시로 돌아가버렸다. 나만 남겨놓고 말이다. 같이 가자고 했지만 난 남고 싶었서 괜찮다며 함께 도시로 복귀하는 걸 거절했다. 앙칼진 사양까지는 아니겠으나 '누구와'보다 '어디서'가 중요했기 때문에, 적어도 난 지금 녀석들의 제의를 승낙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미 신나는 모험과 신기한 게임 주인공에서 낙마한 건 뻔하니까, 그러므로 난 한가하니 호캉스나 즐기면 다음 작품 구상이나 하기로 했다. 근데 그렇게 여유부리며 뭔가 막중한 할 일이란 게 정말로 아찔한 착상 떠올리기 였을까? 그럴 리가 있나. 하찮은 허당께서 허접한 줄거리 떠오르지도 않는데 그럼 보나마나 할 일은 인터넷 쇼핑이겠지. 최근 입도 근질근질거리지 않고 날씨도 덥겠다 숙녀들도 통 보이질 않겠다 엉덩이가 근질근질거릴 리 없거든. 허허허. 시시한 녀석. 아 맞다. 걔가 나지? 어쨌든 그렇게 호캉스의 주요 업무는 인터넷 쇼핑이었고, 어쩌다 소 뒷걸음질치다 쥐 잡는 식으로 칼럼 한두 개를 쓰면서 호텔 생활은 계속되었다.
근데 최근 쓴 칼럼이 무슨 패션에 대해서, 팬티든 뭐든 달랑 3개로 돌린다나 뭐라나. 아무튼 그래서 나는 무선 마우스도 새로 샀다. 와~ 좋은데?! 탄력 받은 김에 나는 갓난아기용 분유&젖꼭지&젖병 구입도 빠트리지 않았다. 돈이 좋기는 좋나? 마우스는 로지텍 사일런트 신제품. 어머 그런데 정말로 감촉도 저소음도 괜찮은데? 진짜네? 느낌 좋은데? 그래서 난 이참에 키보드도 알아봤다. 기존에 사용하던 기계식 키보드, 저소음 적축으로 바꿀까 말까 작심 카드를 만지작만지작거렸던 것이다. 그런 김에 무접점 키보드를 이참에 최저가로 새롭게 장만해, 말어? 그러고 보니 자동차나 사이클이나 뭐나 쇼핑은 그저 패션과도 비슷한 이치다. 검색만 검색만 겁나게 하다가는 끝이 없을 듯 하고. 옷처럼 오래 입을 옷이냐 한철 입고 버릴 소비품이냐로 나뉘어야 하니까. 팬티 보유 달랑 3개까지만 제한하는 위인께서, 기계식 키보드와 달리 소모품에 가까운 무접점 계열을 최고가로? 유지보수도 귀찮아서 안 할 테고, 음 보아하니 그래서 난 명악기와 달리 1년 마음껏 쓰다 버리는 게 최고라고 생각했다. 팟지올리, 뵈젠도르퍼 기타 등등 유럽의 악기브랜드 즐비하긴 하나 전세계 명공연장 피아노는 스타인웨이&선스가 95% 장악. 내가 그처럼 좋은 거 살 거도 아니잖아? 필요도 없고. 자동차처럼 꼼꼼히 알아보고 1개를 10년 20년 탈 거도 아니고. 최상품을 1년 주기로 교체하냐, 최저가품에서 2~3단계 윗 제품을 1달 주기로 갈아치우냐 것도 아니고. 머머 접습니다 라면서 장비 싹 다 파는 분들처럼, 저번에 사이클 타면서 깨달았다. 비싸기 1등품을 5년 내내 타느니, 최신&최저에서 1~2단계 위 중저가를 1년마다 매번 새걸로 교체하는 게 낫다는 걸. 물론 돈이 남아돌면 최상급만 주기적으로 교체하든가 여러 대 입양하겠으나. 많으면 귀찮다. 선수도 아닌데 굳이 비싸 봐야 별로 의미도 없고. 그처럼 사이클처럼 최신품 사서 적당히 타다 중고품으로 되파는 방식이 지금 내게 괜찮을 듯 했으니. 더더군다나 무슨 내가 마누라 7명 갈아치울 막장드라마 주인공도 아니고. 그런다고 천생연분 내 사랑과 다음 생의 다음생의... 뻥치고 허영심 띄우며 여심을 드리블하면서 낭만을 저글링할 게 아니라. 그냥 참기로 했음! 우리는 쓰고 버리기를 좋아하니까 색다른 기분 얼마 지나면 새로운 감수성으로 교체해주는 게 나름 현명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뭐 마우스 동호회에서 맹활약하면서, 나는 지금까지 시판&절판&복각된 제품 300여 가지 종류의 마우스를 사용해봤음. ~처럼 깐깐한 애호가도 마누라 등쳐먹고 사는 한량도, 세기의 해결사도 희대의 사기꾼도 아니니까. 아울러 3~4시간 인터넷 검색 결과 대충 훌륭하다 아름답다 끝장이다, 좋다는 자동차란 자동차는 다 타봤다는 사람들 속내가 뭔지 대충이나마 수박 겉 핥기는 했으니 말이다. 근데 파도타기도 있고 스노보드와 스키타기도 재밌는데 또 사랑은 어느 시간에 다 해? 그 시간과 노력이면... 쉿! 그래서 결심 완료.
뭐니 뭐니 해도 가격이 착함. 진공관 오디오고 나발이고 정신사나움. 만사가 귀찮음. 중고품이 좋은 게 있고, 비싼 거 오래 쓸 게 따로 있듯 어떤 품목들은 그냥 싼 거 적당히 쓰고 버리는 게 나음. 초코릿 부러트리는 감촉이니 뭐니 저소음 적축이 낫니, 아니다 자긴 팬터그래프가 왜 저평가되는지 당최 이해를 못하겠다는 둥 어쩌고저쩌고. 오랫 만에 지름신 올 뻔 했음. 하다 하다 팬터그래프 방식 두텁게 누르는 제품 설명, 세세히 깨알같은 글씨 몽땅 다 읽었음. (절레절레) 허나 다행히 합리적인 선택으로 마무리됨. 매우 흡족. 받아보기도 전에 이미 대만족. 소소한 행복 왕성허니 완성. 호사와 나태와 사치는 미완성이다만 나름 쏠쏠한 소비였음. 그 뿐만이 아니라 대타는 물론 벤치멤바들 즐비허니 대기중. 그게 그러니까 말이야, 눈독들일 탐스러운 과일이 그 얼마나 많은데 만사가 잘 되어 간다고 할 수 있나? 잔말 말고 긴축 제정으로 허리띠를 더 조여야 함. 빠짝. 어? 방심하면 안됨. 퇴폐는 우리의 이상이 아님. 방탕마 탈 생각 애초에 없음. 잔말 말고 잔잔허니 살 것들이 과소비는 아니다만 뻔트댈 게 많단 얘기다. 값싼 것만 바꿔도 얼마나 좋은데. 최근 최저가 안경 2개 구입했더니 와~ 신세계가 따로 없더구만 그래. 내 그렇게 선명허니 또렷한 세상을 볼 줄 알았다면 진즉 바꿨을 텐데. 하여간에 말이다 잔말 말고 지금은 허영심보다 지성미에 무게감이 실려야 한다는 뜻이단 말이다.
그러게 말이야 말하자면, 한정판 톨스토이 에디션 몽블랑 최고급 만년필이 내게 가당찮은 소리인가? 내 주제에? 연예인 거 누구야 옆짱구 그 인간 골목길에서 나한테 걸리기만 해 봐 내 가만 두나 보게. 어? 알아서 피해다니라고 전하든가 말든가. 그러게 지가 뭔데 가만 있는 벌집을 들쑤시긴 들쑤시냐고. 어?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려도 유분수지 그게 뭐야, 어? 그게 뭡니까? 네? 그래서야 되겠습니까? 옆짱구 뽀글이 빠마 걜 그냥 콱...! 개꿈 꾸면서 달콤하도록 꿈속에서 진한 사랑을 수시로 만끽할 텐데 자는 개를 도대체 왜 깨우냔 말이냐고. 그 자식은 노래도 못 부르면서 지가 꼴에 가수라고, 근데 노래는 안 만들고 안 부르면서 뭔... 됐다. 됐다 그래, 어? 누가 지들 부럽대? 옆짱구 같으니라고. 뽀글이 빠마는 또 그게 뭐야, 지가 무슨 동네 아줌마야? 남자가 말이야, 어? 괜히 조용히 사는 촌닭한테 헛바람이나 주입시키고 그게 뭐 하는 거야, 어? 그게 뭐냐고, 어? 이런 젠장. 지가 뭐 황금귀에 대해 알기나 해? 음악은 무슨 지가 화성학에 대해 뭘 안다고 설치긴 설쳐! 어? 꼭 그런 애들이 집에서 몰래 이상한 거나 보면서 막 밖에 나가서는 딴 사람들 뻠뿌질이나 하고. 어? 관상부터가 말이야 그게 그러니까 내가 2번 다시.. 통과.
물론 과장했고 비약이 심하며 엄살은 더 심하긴 하다만 일중독이니 이걸 어쩌랴. 적당히 자유시간 널널하고 일하기와 놀기의 균형감이 그다지 불행하지 않다면야 몰라도 그게 아니니까. 통상 먹고살기 뭐 적당하다면야 인터넷 쇼핑과 시내에서 전시품 구경하는 재미가 굉장히 쏠쏠하다만. 그보다 재밌는 게 어디 많겠냐마는 시간이 없으니까! 이게 이게 보니까 대리만족 취미생활이랑 똑같네. 마누라 100명 못 가지니까 자동차 100대를 보유하지는 않을 테지만, 난 비 오는 날엔 SUV... 그렇게 자동차 3대를 동시에 굴리는 중년. 여유 있음과 동시에 차를 그만큼 좋아하긴 한다만, 최대로 제일 길어봐야 3주 이상 타는 차가 없는 것처럼 밥 먹듯이 사고 팔고 사고 팔고. 우리는 그 부류가 아니라 사서 형편 되면 1년 쓰고 버리기. 형편 안되면 교체주기 늘리고. 여편네 1년마다 갈아치울 마음 없기 때문은 아니겠으나 연애사처럼 제품사용기 장황한 것도 나름 재미긴 하나. 제품 사용, 쇼핑, 애장, 수량, 양질...과 달리 최소화 및 최적화 시기이니 만큼. 적으면 적을수록 불만족을 교묘히 비켜갈 정도로만 한방에 팬티 3개 & 양말 3개로 돌리면 좋은 점도 완전 많음. 일단 형제자매한테 뺏길 염려가 없음. 시간낭비할 걱정 붙들어매도 됨. 달랑 트레이닝복 세트 2개로 돌리는데 그걸 누가 질투해? 시기받지 못해서 좋음. 얼굴 팔려 귀찮아질 가능성도 역시 차단. 뭘 해도 재미없을 수도 있다만 자발적 가택 감금처럼 근근히 살아가게 되면, 친구의 여동생의 후배 이삿짐 날라줄 필요도 없다. 잃을 게 없어서 자랑이란 말이 아니라 누군 뭐 겸손하도록 과시해보고 싶지 않단 말이더냐. 그게 아니라 마누라 잔소리 듣고 싶어도 혼자 사는데 어떻게 듣나. 아줌마 다변에 기 빨리지 않고 정력 아껴서 얼마나 안심인가. 중년 아저씨 그분들께서 괜히 말을 아끼는 게 아님. 굶주릴 대로 굶주린 늑대는 지금이 호시절인 줄 알아야 함. 뭐 말이 그렇단 거고. 형제자매 많은 대가족 중심 가부장적 시류야 늬 옷 내 옷이 어딨나. 내가 그래서 주말 드라마를 안 본다? 근데 옛날 우리 땐 말이야~ "청색-하늘색-연하늘색"가로 목폴라티를 나름 장만했다가 안 입고 있었는데... 하필 사촌형이 입네? 말할 수도 없고 말해서도 안되고... 근데 자꾸자꾸 알짱알짱 자꾸자꾸 얼쩡얼쩡...! 쩝쩝쩝 말할 수는 없고... 미쳐버림. 나 혼자 있을 땐 찍찍 슬리퍼 끌다가도 누구 보이면 태도부터 바뀌는 인생인데 미쳐버림. 후순위 출생자가 탄생하면 부모 사랑 100% 독차지하던 첫째의 감정변화... 부모님들 잘 아시듯. 아니~ 막내인데 애정도 분산돼... 오히려 마음은 넓어야돼... 근데 속은 뒤집어져... 외가 사촌들 몇 명 와서 손버릇까지 나빴던 형과 싸우기나 하고. 나 잘났다 자랑할 건 많지 않아도 좁은 도로 좁은 인도 좁은 2인 버스좌석, 내가 불편하고 내가 멀찍히 떨어져 가고 내가 다리 벌린 상남자한테 찍소리도 못하는 겁쟁이인 게 편하긴 하다만. 알짱알짱 킁킁킁 얼쩡얼쩡 쩝쩝쩝, 내 부모와 함께 크지 못한 성장배경 뻔히 알면서 공감 못한 척 안 친한 체할 수도 없고... 미쳐버림. 아무튼 그건 그거고. 내가 그래서 여자를 안 만남(내 얘기가 아님, 그분들 내 맘대로 대변인 맏은 것일 뿐). 여자들 가운데 쇼핑 안하는 부류, 왜 안 할까? 중고차 웹사이트에서 구경만 하다 보면 결국 자동차 사게 된다. 관심 있으면 어차피 시간문제. 그래서 우리는 유행가 듣지 않음. 계속 듣고 싶어서일 수도 있는데 솔직히 3번 들으면 질린다 라는 말 어떻게 하나, 그마저 총대메라고? 사람들 1주일 평균 TV 시청 시간이 과연 얼마나 되는데. TV는 바보상자? 나 혼자 조용히 시간낭비 하지 않음 그만이지 뭔 말만 말만... (절레절레)!
따라서 대략 추산하기로 5시간 ~ 측정하기로 6시간 투자한 결과 이렇게 결론내고 더 이상 시간 소비 않기로 깔끔하게 정리. 닥치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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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동방식 제품명 사용기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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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기계식 덱108 헤슘라이트 몇 년 됐음
내일 멤브레인 로지텍 유선 K120 100일 사용예정 / 바뀔 수 있음
가을 무접점 중저가 GK888B 1년 사용예정 / 바뀔 수 있음
내년 팬터그래프 출시일 기준 뽑기 1달 사용예정 / 바뀔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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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그렇고. 인터넷 쇼핑 할 만큼 했고. 이제 뭘 하지? 그럼 호텔 카지노에서 은둔형 도박사로...? 몇 번 구경하면 재미없음.
15
호텔 산타 캐롤리나 생활이 제법 익숙해졌기 때문일까? 나는 스카이라운지 바텐더와 급속히 친해졌다. 우리는 누구든 만나면 금방 친해진다. 또 자기 자랑이냐고요? 그럴 리가 있나. 그 바텐더 양반이 그야말로 입담이 장난 아니었던 것이다. 내가 그 친화력이면... 넘어가자. 물론 만나자마자 가까와지지는 않았다. 가까와진 계기 그 변곡점은 아마도 그분께 요청한 내 황망한 부탁이었을 것이다. 자주 보고 통성명도 하고 또 서로 호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기분을 눈치챘으니까, 어느 날 난 살짝 술기운에 힘입어 그분께 나한테 욕 좀 해주라고 간청한 것이다. 웬만하면 그분도 점잖은 태도와 사근사근한 자세를 잃지 않으실 텐데. 근데 어딘가 모르게 나만 예외였던 것일 수도 있고 아닐지도 모르고. 어쨌든 나의 그와 같은 애청을 무슨 하찮다는 듯이, 막 그냥 같잖다는 마냥 내가 그분께 이상한 청탁 하자마자 막 퍼붓는 것이었다.
「너 왜 그렇게 사냐? 응? 어디 늬 변명 한번 들어나 보자. 아니다. 보나마나 들으나마나겠지. 늬 문제가 뭔지 몰라? 가르쳐 줘? 어? 너 지금 왜 잔소리 듣는 줄 알기는 아니? 응? 너 바보야? 공상이 망측한 줄 알기는 아니? 응큼한 녀석. 이제 그쯤 되면 세상사 비밀을 터득할 때도 됐는데... 쯧쯧쯧. 넌 말이야 여자를 모르는 게 제일 큰 문제야. 어? 어떻게 감상적인 낭만파 숙녀들을 못 꼬실 수 있지? 난 도통 이해가 안돼! 우리에겐 그건 식은 죽 먹기보다 더 쉬운 일이거든. 그러고 보면 세상이란 참 불공평하단 말이야. 왜 아니겠어. 아니 정말, 어? 제발 그 고귀한 여심들을 찬란하도록 행복하게 만들어드리면 어디가 덧나니? 어? 덧나긴 뭘 덧나!
왜, 고깝니? 듣기 싫어? 늬 썩은 미소 보면서 말이야, 어? 하기 싫은 설교 하는 난 뭐 좋겠니? 그게 얼마나 아름다운 취미라고. 안 그래? 그러게 어째서 멀쩡한 유니폼맨한테 자길 꾸짖어달라고 했니, 응? 넌 그래서 안되는 거야. 알아? 늬가 그러니까 안되는 거라고. 때문에 넌 외롭고. 여자도 없고. 친구는 있니? 사랑은~ 없어. 늬가 사랑을 알아? 알긴 개뿔! 야!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어? 안 들려? 어? 언제 상욕 해달라고 할 땐 언제고 왜 생각 바꼈냐? 그래? 남자가 줏대도 없이 너도 팔랑귀냐? 어? 너 나한테 혼 좀 나자. 아니다. 내가 너 혼꾸녕 내줘서 얻을 게 뭔데. 나까지 기분 잡치기 밖에 더 하냐고. 어? 뭐 너 방금 그 생각했지? 너 혼자 있을 때 혼잣말 잘하지? 그러니까 방금 난 네 생각을 읽었는데... 가만 있자. (딱)! "진정하시게 바텐더 양반." ~라고 생각했지?
야, 임마!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 어? 내가 뭐 꼬부랑 할아버지 될 때까지 여기서 눌러앉을 줄 알아? 너 내가 누군지 알아? 어? 또 또 또. 누가 한 성깔 안 한다할까 봐. 난 네 몸짓만 봐도 뭔 생각하는지 싹 다 안다니까 글쎄. 그걸 누가 궁금하기나 하겠느냐마는, 넌 적어도 내 앞에서는 포커페이스부터 나한테 제대로 배워야 한단 말이야 이 친구야. 하긴 나도 이처럼 처음부터 잔소리에 일가견이 있었던 건 아니었어. 그게 다 세상이 날 이렇게 만든 거라고나 할까? 허허허. 허당 주책이 이만저만이 아니군 그래. 심심하면 튀어나오는 그, 그, 이놈의 고질적인 잔소리. 팔랑귀 하며 허영심은 여전하지 잔머리굴리는 건 심하지. 어떻게 말려? 그놈의 잔뻔치 쉐도우 복싱 절로 떠오르는구만 그래. 근데 처음엔 널 혼내다가 왜 갑자기 자기 비하로 바꼈지? 왜지? 왜긴 뭐가 왜야. 그럴 수도 있는 거지. 어? 넌 안 그래? 그럴 수도 있어. 근데 나만 잔뻔치 스타일이 아니라 자네도 잔재주라면 어디서 썩 빠지지 않을 듯 하온데. 귀에서 피가 날 듯 말 듯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리는가는 몰라도, 여자 잔소리듣기 맷집이 내가 봤을 때 퍽 형편없는 수준은 아닌데? 남자로 인정. 아 지친다 지쳐. 근데 넌 뭐 대꾸가 없니? 또 여자 생각하니? 그래? 정말 그래? 하여간에 못 말려. 형님께서 이처럼 훈교하면 좀 알아듣든가 아님 경청하는 시늉이라도 비추든가. 어? 넌 그래서 안되는 거야. 그러니까 늬가 뭘 해도 재미없는 거라고. 그리고, 또. 어? 그래. 넌 기왕 바에 왔으면 제발 비싼 술 좀 시킬 수 없니? 올 때마다 달랑 맥주 1잔. 다음 날 위스키 1잔. 그 다음 날 발포성 와인 1잔. 근데 또 희한하게 다 마시지도 않아. 2번에 1번은 입도 대지 않는다고. 너 안되겠다. 여기서 제일 비싼 걸로 시켜라. 알았어? 알았어 몰랐어?
근데... 형씨 정말 괜찮은 거요? 그렇소?
(한숨)......
어떻게... 형씨. 조금 더 해드릴까? 해달라는 대로 노력은 해드릴께. 응? 그게 뭐 어렵다고. 어? 기껏해야 입 좀 털면 시간도 빨리가고. 어차피 일 완전 열심히 해야 할 만큼 바쁘지도 않고. 난 여자 좋아하고 아제도 그렇다만, 숙녀는 코빼기 안 비추고. 퇴근 시간만 목 빠지게 기다리느니 이처럼 우리끼리 행복업과 사랑학에 대해 솔직히 토론하고, 얼마나 좋아. 형씨도 그렇게 생각하시지유? 그럴 줄 알았시유. 내가 사람을 좀 볼 줄 알당께라. 허허허허허. 근데 아제 표정이 왜 그런디유? 어디 아픈 거 아니유? 왜 표정이 썩었어 젊은 사람이. 그럼 못 써. 운동도 하고 여자도 만나고. 어? 집에서 이상한 거만 보지 말고. 어? 남자가 여자를 만나야지 그렇게 무슨 부처님 마냥 도만 닦다가는 그럼 못 써 이 사람아. 어? 좋게 내 말 들어. 자넨 내 말만 들으면 장래 대성하게 돼어 있단 말이오. 아시겠소? 그런 의미에서 내가 방금 형씨께 꼭 알맞는 표어가 생각났소. 안 그래도 우리끼리 최근 눈인사할 때마다 뭔지 모르게 그 말이 자꾸 걸렸다고나 할까? 그 문장이 대체 뭐겠소. 캬~ 어? 독수리는 홀로 날아다닌다. 캬~ 괜찮지 않소? 엇그제 형씨가 그랬지유. 저보고 잘생겼다고. 근데 이걸 어쩌나, 응? 지 여동생은 완전 끝내주걸랑요. 어떻게 제가 사랑의 다리 한번 놔 드릴까? 뭐요? 독수리는 파리를 잡지 않는다고요? 이 사람이 시방...! 너 이리 와. 따라 나와. 밖으로 나가자. 아니다. 됐다. 재미없다.
(한숨)......
아직 부족해유? 그래유? 말을 좀 해봐유? 네? 난 아직 1쿼터 시작도 안 했응께. 거 마 말만 하쇼, 네? 따지고 보면 우리끼리 이처럼 친해진 거도 다 전생의 인연이랄 수도 있는데. 내가 형씨께 하고 싶은 말들이 많소. 잘은 몰라도 아마 형씨도 내게 털어놓을 사연이 많은 거 아니오? 뭐 남자 대 남자끼리 솔직해집시다. 세계마초협회 정회원이자 허세대회 명예의 전당에서 미끄러진 허당들끼리 못 할 말이 뭐요, 네? 왜 당신 정말 기어코 내 고추 사이즈를 들어야 속이 시원하시겠소? 일단 내 진실을 털어놓는다고 가정했을 때 당장 통쾌하기야 하겠으나, 그거 알고 나면 알기 이전으로 타임머신 타고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그러므로 형씨 일시적으로나마 불행해지실지도 모르는데? 아마 몹시 절망할 걸, 상심이 크시겠지. 허허허. 허허허허허. 당신 나한테 안돼, 어? 날 벗겨놓으면 말이야~ 캬~ 아주 그냥 기가 막힌다니까 글쎄. 죽여줘요. 비율 끝장, 어? 눈이 부셔요 글쎄. 허허허허허. 당신께서 정녕 원하신다면 내가 못 알려줄 게 뭐요. 네? 보여줘요? 정말? 근데 여기서? 네? 아무튼 말이야, 어? 남자가 그렇게 꽁해서 얻다 쓰겠소. 당신 속좁은 남자란 소리 자주 듣죠? 그럴 줄 알았다니까. 일단 형씨 내 앞에서 눈물 콧물 쏙 빼놓을 때까지 잔소리 얻어듣도록 나도 힘 좀 써볼 텐데. 아~ 내가 3년만 젊었어도. 그래 봤자 난 아직 살아있어. 아니 잠깐만. 이것 봐라, 어쭈~! 지금 하품해? 존대하니까 내 말이 우스워? 지금 장난인 줄 아나 본대 뭘 좀 대단히 착각한단 생각 안 들어? 어? 어디서 버릇없이! 정신 차려 이 친구야. 어? 당신 나한테 잘못 걸렸단 말이오. 알긴 아시겠소? 우리가 뭐 허접한 광대들 한심한 장난 흉내내는 거도 아니고, 어? 우리는~ 야자타임 3분 4분 그렇게 안 해. 시작 했다 하면 3박 4일. 그래도 난 약과야 이 양반아. 내 아는 분은 글쎄 13년째 야자타임 중이라오. 그분들 친구의 친구는 평생한대. 누가 죽어야 끝난다나 뭐래나. (절레절레)............」
솔직히 말해 그걸 애원하니 환상문학잡지에서 은혜로운 녹봉받는 문필가 입장을 떠나, 터놓고 말해 화자와 청자 우리 두 사람만 있으니 하는 말이오만. 그날 난 바텐더한테 이상한 부탁을 한 걸 땅을 치며 후회했다. 귀가 타다 귀에서 피가 날 지경이었으니 말이다. 아무튼 우린 그처럼 뜨겁게 친분이 두터워졌던 것이다. 나만 남자들로부터 덕망이 튼실하고 여자들한테 카리스마 끝장인 줄 알았는데. 농담이고. 그 양반을 보니... 여자들로부터 짝사랑 웬간히 지겨울 정도로 여복이 터진 양반인 것 같았단 말이다.
16
각인된 동물을 부모로 아는 일부 조류. 1명이나 2,3명 주인에게만 충복하는 개종류 일부. 그게 그러니까 말이다, 독일의 패색이 짙어가던 1944년 프랑스 독립군 주동자 가운데 1인인 한스 슈파이델 장성. 이상한 게 4년 전인 1940년에 육군 소장일 때 파리에서 아돌프 히틀러를 호위했음. 개인의 성공을 위해 눈치작전하며 줄서기 잘하는 약삭빠름이 전시일 때 이런 사례. 숫자를 세면 어마어마하도록 많음. 으쌰으쌰 승승장구하던 1940년에 과연 어떤 활약을 펼쳤는데 패색이 짙어가지 않았다면 구단을 밥먹듯이 옮겨가지 않았을 거라는 점. 레알 마드리드 유니폼 벗고 무슨 바르셀로나 새 유니폼 입는 것도 아니고 말이지. 당시 독일군의 프랑스 점령 비용을 프랑스가 전액 지불하는 것 뿐만 아니라, 독일의 전쟁 비용 1/5까지 프랑스가 지불하던 시절에 아돌프 히틀러 호위무사를 하시던 (프랑스)양반께서. 비굴함&참혹함은 말할 것도 없고 모든 원자재가 독일군에게 수탈되는 체계에서 전프랑스인은 독일군에 비교도 안될 만큼 비리비리한 일일 배급량을 받던 참혹한 역사의 현장이었는데. 전세가 기우니까 금새 편 바꿔서 원래 고향 축구팀으로 되돌아오는 일. 여기 붙었다 저기 붙었다 고추 달고서 남자가... 여자는 지조라도 있는데 말이야.
~라면서 인문고양서를 읽던 중 난 깜빡한 약속이 생각났다. 바텐더와 놀러가기로 한 날이었으니까.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장면 전환. 우리는 만났다. 근데 그 '우리'라는 게 여러명이라는 게 거 어째 내 마음에 뭔가 걸렸던 것일까? 예감이 이상했던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고 들어가자면 한마디로 성비 불균형. 뿐만 아니라 나와 바텐더는 이미 친해졌는데... 바텐더가 데려온 친구들과 내도 친해질 수 있을까? 단언하기 어려운 문제. 더더군다나 이제 보니 난 바텐더의 이름도 몰랐네?! 바에서 형씨 친구들끼리 소풍가는데 이 바람잡이처럼 존재감 애매한 아저씨가 끼어도 되는지 물어볼 때까지는 좋았지. 내가 눈치도 없이 누구한테나 들이대고 아무 데서나 나대진 않는다네. 막 그러면서 정중히 거절, 찬찬히 핑계, 대놓고 싫다고 싫다고 그랬는데도 불구하고 계속 함께 하자네? 난 끝까지 아니오! 리츠 칼튼 같은 호텔 체인도 아니긴 하다만 윗분들 알아 좋을 게 뭐 있냐 어쩌고저쩌고. 한사코 싫다는 사람을 계속 꼬시네? 근데 이상한 게 난 왜 이미 한 3~5명 정도를 예상할 수 있도록 바텐더가 운을 띄었는데, 대체 왜 내 마음대로 나와 바텐더와 여자 2명이랄지 나와 바텐더만... 그런 짝수 조합으로 단정했냐는 거다. 그처럼 은근히 와주었으면 한다고 난 그 대화의 요점을 그냥 내 마음대로 해석했던 거고, 지금 돌아가는 정황으로 봐서는 바텐더는 역시 립서비스의 명수일 뿐이었고. 그럼 또 난 빈말에 낚인 것일까? 내가 대어라면 낚여서 그분들도 얼마든지 즐거워 하실 테나, 나같은 잔챙이를 보아하니 썩 반가지는 않은 듯. 난 벌써부터 도망갈 궁리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속좁은 남자처럼 만나자마자 내뺄 수도 없고. 쩨쩨한 남자로 숙녀들한테 찍히면 더없이 곤란할 테고. 이거 정말 오랫 만에 어려운 자리에 합석한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호수 한 가운데 있는 유인도로 놀러갔다.
장면 전환.
난 입도 뻥끗하지 않았다. 손만 까딱해도 뭔가 그분들 소풍에 누를 끼치는 건 아닐까... 혼자서 내가 이럴려고 바텐더와 친해진 것일까? ~까지는 아니겠으나 마음은 뒤숭숭. 하다못해 넉살 좋게 재산은 없어도 그 어떤 연륜 없지 않은데 분위기 봐서 그냥 들이대? 그런 일은 들어본 적도, 공상해본 적도 없지. 아무렴. 그러니까 그게 다 멍청해서? 누가 멍청해, 어? 넘어가고. 신비로운 아름다움이 이끄는 순결한 분위기에 힘입어 기분이 고상해지면 좋은데. 그건 단지 희망사항일 뿐. 정말로, 어? 여기서까지 나 혼자 공상에 빠져들면 그건 빼도 박도 못하는 바보천치란 말이니. 난 가만히 그분들 대화를 경청할 수밖에.
남자 1: 오즈. 너 오늘 온 잘 입었는데. 멋져.
여자 1: 멋지긴 누가 멋지단 얘기니?
남자 2: 나 나름 신경썼어. 루시, 너 너무 칭찬에 인색하다고 생각하지 않니?
여자 1: 루시, 너 너무 칭찬에 인색하다고 생각하지 않니?
남자 2: 너 여기까지와서 말 따라하기야 정말?
여자 1: 우리가 뭐 내외할 사이야 아니면 여기가 말 가려서 해야 할...
남자 1: 괜찮아. 저분은 우리의 희망이니까. 물주란 말은 아니야. 중간보스라고나 할까? (몸짓)
나 : 허허허. (몸짓)
남자 2: 루시는 뭐 그렇다치고. 안젤라도 있으니 말인데 내 하나 묻자. 여자들이 말하는 '옷 잘 입는다'는 칭찬. 대체 그건 뭘 뜻하는 거니? 언제부터 묻는다 묻는다 까먹지 않고 꼭 물어봐야겠다 라면서 다짐만 몇 번을 했는데 빨리도 물어본다.
여자 2: 그럼 난 일직도 즉답하면 되겠네 오라버니? 그렇지만 그런 얘긴 나보다 루시가 뭐랄까 시적이라고나 할까 문학적이라고나 할까. 뭐야 그럼 난 상대적으로 천박한 촌년이란 말이야 뭐야? 어? 뭐가 어쩌고 어째? 아, 내가 말했지. 미안. 얘 루시. 뭐 하니, 늬가 옆에서 미리미리 날 말렸어야지. 자, 말해봐 루시. 뭐 해 말하지 않고.
여자 1: 말할 기회나 줬니? 지 할 말만 무정차로 1시간 반 연속으로 말하고 나서, 헤어질 때 되니까 다음엔 늬 말도 좀 듣자! ~라는 인사말이 네 특기인 걸 내가 왜 모르겠니. 누군 뭐 말할 줄 몰라서 안하겠니.
남자 1: 자, 자, 심판은 아니지만 시트콤 새로운 멤바 마음 불안하게 만드시지 말고. 말 나왔으니 나도 궁금하다. 도대체 여자들이 말하는 '옷 잘 입는다' 그 참 뜻이 뭔데 그래? 어? 한번 들어나보자꾸나.
여자 1: 저 오빠 학교 다닐 때 동성애자들이 좋아하는 스타일이었을 거 같은데...! 음... 아마도 적어도 1번은 들어봤을 거야, 늬가 우리반에서 제일 옷 잘입는다는 칭찬. 그치만 동성애자한테. 또 동성애자 친구랑 친해서 걔네 집에 돌러가자 하니까 친구집에 놀러갔을 테고. 물론 부잣집이었겠지. 그치만 결이 다른 동성애자와는 닭 소 보듯 소 닭 보듯 하는 사이인데. 그 친구한테 웃기다는 호감 표명 듣고 표정 괴상해졌을 텐데. 뭐 아무튼 그런 건 다 옷 잘 입는 거랑 거리가 멀지.
남자 2: 그래? 말 빙빙 돌리지 말고. 뭐는 뭐다 라고 말해주면 안될까? 오락산업계에서 뜻하는 패셔니스타, 거 옷 잘입는 거잖아. 근데 왠지 모르게 얘네들은 그런 거 안 좋아할 거 같단 말야.
여자 1: 잘 봤네.
남자 1: 사교계에서 여자는 몰라도 우리가 봤을 때 옷 잘입는 남자애들. 우리라고 뭐 보는 눈이 없니, 아님 입이 돌아갔니 눈이 삐었니? 솔직히 얘나 나나 그렇게 옷 썩 못 입는 촌닭은 아닌데...
여자 2: 오빠가 그러니까 여자가 없지.
여자 1: 오빠는 그래서 안되는 거야.
남자 1: 거 참...
여자 2: 옷 잘 입는다? 옷걸이 좋은 남자.
여자 1: 내가 봤을 땐 패션의 완성은 뭐다?
남자 1: 이 봐 이 봐. 이거 보라고. 캬~ 어?
남자 2: (몸짓) (톡 톡 다독임)
남자 1: 그게 더 이상해. 너가 날 아주 바보로 만드는 구나. 아님 난 이미 너네들한테 푼수였니? 말 시작한 김에 짧게 듣기엔 왠지 서운한데.
여기서 잠깐. 그녀 말 끊으면 안 될 듯 하오니 문단 떼서 가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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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1: 그래. 말할께. 못할 것도 없지 뭐. 결론부터 말한 다음 시작하자고. 그게 좋겠지? 안 그러면 서운할 테니 말이야. 한번 섭섭하게 만들어드려? 괘념치 마셔, 웃으란 말이었으니까. 결론은 이래. "옷 잘 입는다"가 대체 뭘 뜻하느냐?
첫째, (남자는) 옷 못 입지만 않으면 된다.
둘째, 옷 잘 입는 남자는 신부들러리임을 자처하니까 칭찬받는 것. 여잘 띄워야지 지가 튀어? 미친 거 아니야?
셋째, 옷 잘 입는다는 둥 소개팅에 패딩이나 쳐입고 온다는 둥 그건 뭐다? 간접화법! 여자말 번역기 전원 안켜지니까 또 직접화법이라니...
이처럼 첫째 둘째 셋째 다 충족시킬려면 쉽진 않겠지. 어려울 거야. 때로는 가죽점퍼도 입고 싶고 중간보스 흉내도 내고 싶겠지. 이따금 어른스럽지 않고 싶을 때 왜 없겠어. 그렇지만 나이를 어떻게 잊나. 아무튼 긴 대사 원하셨으니 하는 말인데 옷 잘 입는다? 말이야 옷 잘 입는다느니 패션 테러리스트라느니, 뭐니 뭐니 해도 간접화법 먼저라니까 글쎄. 어? 왜 그걸 모르시고 뭘로든 누구든 무조건 직접화법만? 소개팅에서 그녀를 만족시켜야 한다는 남아의 도리. 숙녀에게 멋진 남성으로 보이고 싶다는 목적. 뭇여성들로부터 인기를 한몸에 받아 그놈의 러브콜 지겹다는 허세 나도 좀 한번 느껴보고 싶다 라는 솔직한 동기. 그와 같은 수많은 응분의 명분, 그게 나쁘다는 말이 아닐세. 그렇겠지? 때와 상황에 맞지 않게 어른들이 주선하신 선 자리든, 아는 동생이 소개시켜줬건 정식 소개팅 자리에 "PC 게임방 패션"? 남자가 말을 기가 막히게 잘 해봐, 어? 첫눈에 보자마자 여자가 그 남자한테 홀딱 반해보시라고, 어? 만나자마자 오늘의 무례함 어쩌고저쩌고 그녀 마음 쥐락펴락해버리면 이미 게임 끝인데? 연락처 안 물어봤다고 토라져서 동네방네 소문 쫙퍼지는데? 옷을 잘 입고 못 입고를 떠나서 기본과 예의도 있겠으나 화술과 태도는 왜 없겠수? 여자가 억지로 억지로 끌려나와서 세수도 않고, 화장도 1도 않고, 무릎 튀어나온 후줄근한 츄리닝에, 구닥다리 뿔테 안경에.. 완전 동네 아줌마 할머니 패션이야. 근데 절세미녀다? 아 다르고 어 다르겠지. 아니 그렇겠수? 멜로드라마에 나오듯 일부러 상대방한테 최단 시간 내에 차이고 싶어서, 거지꼴 까지는 아니나 최대한 신경써서 꼴보기 싫도록 차리고 나왔는데 글쎄. 그둘이 멜로영화에서 어떻게 될까? 하오나~ 그건 멜로드라마고. 현실에서야 우리는 대체로 주인공보다 병풍을 잘해야 잘먹고 잘살 가능성이 짙어지는 거고. 능글능글한 어른들이 괜히 뼈빠지게 일한다고 엄살 대결 펼치겠나. 유들유들한 어른들이 괜히 너와 나 누구 하나 빼놓을 것 없이 뼛속까지 속물이게? 괜히 그럴 리는 없음. 남은 속물이면 안되고 나만은 속물이어도 괜찮다는 뭐 그런 억지스런 법이라도 있나? 아니질 않나. 네? 뭐 앓는 소리 변죽을 더 올려줘, 아니면 허세대회 초절정 궤변의 변속기어를 더 올려드려? 아 글쎄 말만 하시라니까요, 네? 허허허. 옷이 문제가 아니라 딴년이 그놈과 말 섞는 꼴 못 보니까 내가 먹여살려서라도 데리고 살아야겠다는 심정, 그 정도로 사랑의 감정을 느껴보기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건 아니라는 점. 그러니까 간접화법 알면서 옷이 문제가 아닌데, 말꼬리잡고 늘어지고 핑계 화려하고 변명만 예술이지. 옷이 문제가 아니라 간접화법 번역기 잔고장이 제일 문제란 말이야. 응? 영화를 많이 봤으면 뭘 하나, 어? 백날 봐야 간접화법도 못 알아먹는데? 그래, 안 그래? 소개팅에 무슨 싸구려 패딩 쳐입고 나왔다면서, 여자들끼리 입에 걸레 물듯 앙칼진 입담 뽐내는 일. 과연 누가, 무엇 때문에, 언제 그런다는 거 모르는 어른들이... 남자는 흔히 까먹을 수 있지. 허허허허허. 내 마음에 쏙~ 드는 데 남자가 적극적이지 않는다? 여자 속 뒤집어짐. 숙녀는 남자한테 첫눈에 홀딱 반했는데 남자는 관계 지속에 회의적인 눈치다? 여자 속 계속 뒤집어짐. 장기전은 몰라도 어떻게 뻔트라도 안되겠니 라면서 여자가 노골적으로 들이대는 데도 불구하고 그 남자가 쳐다보지도 않는다? 이와 같은 몇몇 연패만 매번 겪고 내 마음에 드는 남자는 다 날 상대하려고 하지 않는다? 여자 마음에 쌓인 게 그 얼마나 많을까...! 못생긴 게 문제가 아니라 하필... 저... 저... 늑대부터 하이에나까지 날 만만하게 본다? 날이면 날마다 속 뒤집어지고 뚜껑 열림. 어딜 넘 봐, ~에 대한 과민 반응. 넘보지 않았고 손도 까딱 입도 뻥끗 안 했는데 자길 왜 넘 보녜. 아니면 왜 자기만 봐주질 않녜. 어? 밭이 좋을 수도 있고 날씨탓일 수도 있다만 씨 뿌리는 농부 입장은 뭐 생각 안허나? 넌 너 밖에 몰라 라는 말 그러니까 듣지. 난 솔직히 말해서 남자한테 잘 보이기 위해서 화장해. 남자한테 잘 보이고 싶은 게 뭐 어때서? 솔직하지 못한 체 남자한테 잘 보이기 위해서 어쩌고저쩌고, 여자의 적은 어쩌고저쩌고... 그런 말 몇 가지에 과민반응 일으키는 애들이랑 우린 안 친해. 여자들끼리 그걸 어찌 모르겠수. 솔직하게 날 최상으로 꾸밀 때 꾸미고, 잘 보이고 싶을 때 잘 보이고. 그러는 게 낫지 아닌 척 지 잇속만 챙기는 년들 완전 꼴배기싫어. 물론 오빠들이랑 친하고 내 허영심으로 날 포장할 마음 아니니까 이런 얘기도 터놓고 할 수 있는 거고. 어쨌든 옆길로 빠지지 말고, 패션? 응? 패션?
조명발계에서 옷 잘입는다는 거야 다 지네들끼리 하는 인사말일 뿐이고. 웬만한 패션 디자이너니 누구니 옷 잘입는다는 난다 긴다하는 명사들. 거의 다 옷 못 입어. 몽땅 다 지들 맘대로 막 입는 거지 그게 어디 옷 잘입는 거게? 내 전남자친구. 전전남자친구. 전전전남자친구. 기타 등등. 걔네들 주변에서 옷 못 입는다는 말 별로 듣지 않았을 텐데. 그건 뭔가 어줍잖은 의견이라고 생각해. 한마디로 뭘 모르는 거지. 그래서 내 전전전전전... 난 지금까지 남자 한 번도 안 만나봤어. 이건 어디까지나 내 얘기가 아니라 옆에서 지켜본 친구들의 남자친구를 말하는 거니까 그리 알고. 어쨌든 내가 살면서 내 주변 남자들 통틀어서 옷 잘입는 남자? 딱 1명 봤어. 옷이란 건 말이야 지 마음대로 입어서는 안되는 거야. 물론 자기 인생인데 내 맘대로 옷을 왜 못 입어? 그래야 한다 그럴 수 없다 라는 말이 아니라. 때와 장소와 연령과 사안에 따라 구분되는 거야 누가 모르겠냐마는, 지금 주제는 패션에서 남녀의 차이에 관한 거니까 그쯤 알고.
그렇듯 옷이 날개라는 말이 있듯, 여자는 변신의 귀재니까 여자는 옷 잘 입어도 돼. 응? 근데 남자도? 이거 왜 이래, 패션에 대해 당신들이 대체 뭘 안다고! 어? 패션의 '패'자도 모르는 것들이 꼭 보면 TV에서 광고계에서 설치긴 신나게 설친다니까 글쎄. 멋도 모르는 촌놈 촌년들이 말이야. 차라리 오빠 같은 촌닭이 낫긴 나아. 그럼. 오빠가 그랬잖아. 엇그제 어떤 칼럼을 읽었는데 칼럼니스트 그 인간 거 지가 무슨 패션계의 걸출한 권위자라도 된다는 듯이 겁나게 아는 척하더라는 얘기. 팬티 뿐만이 아니라 트레이닝복까지 뭐 3벌로 돌린다는 둥 패션은 중간은 가는 게 아니라는 둥. 어? 패션이란 말이야, 거기까지 넘어가진 말고. 아무튼 패션의 거리든 백화점이든 가보라고. 남자 옷이 많나? 캐쥬얼, 스포츠는 많지. 허나 그거 말고. 정식 남성복. 어디 여자 옷 종류한테 명함을 내밀어? 남자들 옷은 그냥 거기서 거기야. 끝! 어? 딱 끝. 근데 여자들 옷은? 캬~ 말도 못하지. 종류만 종류만... (절레절레). 내가 아까 말했지? 내가 살면서 옷 잘입는 남자는 내 인생 통틀어 딱 1명 봤다는 거. 물론 우리는 옷 못 입어도 얼마든지 상관없다만 옷걸이 좋은 남자가 좋지 왜 아니겠수? 농담이고. 그 희박하디 희박한 1인이 과연 누구냐, 하면 캘빈클라인 컬렉션만 입었던 남자. 근다고 비싼옷만 왕창 입는 남자라는 얘기가 아니야. 그 양반이 속칭 3벌맨이었거든. 단벌신사까지는 아닌데 진짜로 3벌맨. 그래서 옷에 공들인 노력과 투자한 품위유지비, 남자들 가운데 상중하에서 하! 어?
여자가 말하는 옷 잘 입는다 라는 칭찬?
여자가 말하는 '옷 잘 입는다'라는 칭찬은,
여자의 '아니오'와 거의 똑같다고 보면 돼! 응?
남자는 절대로 지 맘대로 옷 잘 입어서는 안된다니까 글쎄. 어? 왜 그 기본을 모르시나. TV에 흔하게 나오듯 옷 잘입네 어쩌네 라는 인사말들? 아까 오빠가 그랬어 안 그랬어, 어? 칭찬에 인색한 우리들, 입방정을 우리들끼리만. 여자들끼리, 것도 정말 친한, 진짜로 절친한 여자들끼리만 있을 때 하는 얘기가 진짜 중의 진짜지. 그럼. 그렇지. 당연하지! 우리 시트콤 멤버 베로니카가 엇그제 어떤 오빠한테 '옷 잘 입는다'라고 띄워준 거? 그건 베로니카가 그 오빠 꼬시고 싶으니까 꼬리친 거고. 그 말과 옷 잘 입는다는 말이 같겠니? 여자말 번역기 몰라? 또 나타샤가 오빠한테 옷 잘 입는다 라면서 얼쩡댄 거? 자기 어장관리에 들어오는 거 대환영이라는 뜻이지. 여차 하면 자기가 당신 사랑의 차트에 내 맘대로 뛰어들고 싶다는 신호인 걸 왜 몰라. 응? 더 직접적으로? 그러니까 오빠가 혼자인 거라고. 어? 그래서 오빠는 여자가 없는 거야. (절레절레) 패션? 남자는 옷 잘 입으면 안돼. 알아? 남자가 옷 잘입는다는 건, 여자가 옷 잘입는 여자로 돋보이도록 상대적으로 뒤로 빠져주는 병풍 역할을 잘했냐 못했냐 그거 밖에 없어. 어디 남자가 옷을 잘 입어?! 운동화 디자인을 보라니까요 글쎄. 여자들 운동화는 다채롭고 남자들 운동화는 투박하고. 향수처럼 자세히 들어가면 말 길어질 테지만 일단 쉽게 보면 그래. 근데 왜 그럴까? 왜긴 왜겠어. 주인공은 사람이고 운동화는 악세사리니까 그렇지. 다시 말해 신부는 여자요 남자는 병풍.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그거야 일편단심 천생연분일 때나 우리가 허락하는 말이고. 남자는 화병, 어? 남자는 액자. 응? 그러니까 남자들이 막 자기들이 봤을 때 옷 잘 입는 정도는 아닐지라도 무난한데 왜 여자들이... 막 그럴 꺼야. 여자가 바라는 건 정말로 옷 잘 입으라는 말이 아닌데 말이야. 요란하지도 말고. 뭐든 여자한테 맞추고. 숙녀를 아끼며 여자를 요리할 줄... 다룰 줄... 띄울 줄 아는 남자. 어? 캬~! 어? 드레스코드 무시하지도 않고. 때와 장소를 알고.
말하자면 다시 말해서 (지휘자도 아니고 노젓기도 아닌 이상한 허세 몸짓) 남자는 옷 잘 입을 필요 없어. 아니 뭐 하러? 5가지 10가지 색상 황금비로 맞출 자신이 있나 시간이 많나, 어? 그런다고 색상만? 재질은? 디자인은? A사와 B사 옷감이 똑같다고 그게 정말 똑같을까? 채도는? 분위기는? 그도 아님 돈이 뭐 고액권과 초고액 수표를 화장지 대신 코풀 정도로 많아? 그거 전부 따져 무난할 정도로 옷 잘 입을 자신 과연 있으시나? 아니면 불필요한 소비제와 쓸 데 없는 옷을 버릴 줄 아는 용기, 그럴 수 있는 베포가 있나? 버리지는 않는데 계속 사고 사고 사고. 쌓여만 가지. 웬만해서 못 버림. 그래서 옷장을 열어보면, 옷방에 들어가보면... (절레절레). 남자야 대충 그냥 걸치기만 한다지만, 뭐 여자 패션까지 건너가진 말자고. 아무튼 자동차 튜닝의 끝은 순정 완제품이라는 말처럼. 조금씩 조금씩 고치고 사고 그러다 보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기 마련. 여자들 성형수술도 그렇다니까, 웬만하면 그냥 생긴대로 사는 게 제일. 여기 고치면 저기가 이상하고, 저기 고쳤더니 전체적이 조화가 더 이상해지고, 그래서 거울아 거울아... 백설공주 배역 흉내내다가 또 손 봐. 그러다 못 끊어. 어? 그렇다니까 글쎄. 저 신사분처럼 신간 편한 양반 뿐만 아니라 웬만한 숙녀들이 괜히 호텔을 선호하게? 남자들이야 캠핑 즐기고 으쌰으쌰 소년기 발정기 모험심을 되찾는다지만. 캠핑 물건 한두 개 사다 보면 급기야 캠핑카 사게 되어 있음. 다 그렇다는 게 아니라. 취미 동호회 게시글 읽어보면 대부분 야금야금 차근차근 단계 거쳐서 바닥에서 고지까지 가느냐, 아니면 7부 리그에서 직방으로 1부리그 득점왕으로 가느냐. 다들 형편에 비해 시간 부족하고, 형편에 비해 재력도 덜 빵빵하고, 형편에 비해 싫증도 더디지 않으니까, 형편에 비해 색다른 관심사와 새로운 인생이 말처럼 쉽고 판도라의 상자처럼 환상적이지 않으니까. 행운의 여신이 나만 편애하지 않거든. 따라서 말장난 하면서 노는 식. 그래서 우리들이 카페도 아니고 그냥 길거리에서 기쁨조 몇 명 짜서 속된 말고 이빨만 까도 재밌거든. 뭐 아무튼 왕년에 여자깨나, 아니 남자깨나 울리던 얘기는 딴 데 가서 하고. 아무튼, 그래서, 나쁘지 않네 라면서 그녀의 심기 건드리지 않을 정도로만 입는 게 바로 남자가 옷을 잘 입는 거지. 참말과 빈말도 구분 못한 체 옷 잘 입는다니까 진짜로 옷 잘 입는 줄 아시네? 바보. 여자를 몰라. 그 남자를 좋아하니까 호감 더하기 뭐 곱하기 뭐 뭐 그래서 그냥 툭 던지는 미끼로, 옷 잘 입는다! 어? 근데 안 걸려드네? 야 야 뭐 해 미끼 딴 걸로 바꾸지 않고. 어? 허허허. 허허허허허.
예를 하나 들어볼까? 겉만 번드르르한 남자 잘못 만났다가 신세 조진... 아니 이모가 왜 천연덕스럽게 얼굴 두꺼워졌는지 그 얘기는 할 수 없으니까 말이야. 저번주에 여기 모인 사람 다 들었잖아. 저 냥반만 빼고. 저번주에 아지트에서 젬마가 톰한테, "오빠는 옷도 잘 입는다니까". 그 말 다 들었지? 왜 그랬을까? <옷(만) 잘 입는다 ≠ 옷도 잘 입는다>. 아직도 모르시겠수? 젬마 그년이 톰 오빠가 맘에 쏙 드니까 그랬지. 어? 마틴 같아 봐, 마틴 같아 보라고. 마틴이랑 톰 오빠랑 옷 입는 거 대체 뭔 차인데? 어? 둘 다 판에 박은 듯이 옷 입는 스타일 똑같다는 거, 여기서 모르는 사람 어딨어. 어? 그 두 인간 그냥 대충 어두운 외투, 허름한 흰 티셔츠, 점잖은 와이셔츠, 이따금 청바지, 사람은 컬러tv 사고체계 허나 옷은 흑백tv 패션. 둘이 똑같다고. 하나도 다르지 않아. 근데 젬마가 뭐 머저리라도 된단 말이야? 젬마 그년이 얼마나 응큼한 여시인데. 아주 그냥 불여우 중의 불여우. 걔 친구들한테도 지 아쉬울 때만 연락해. 어? 지 잇속 남몰래 얼마나 잘 챙긴다고. 꼴배기 싫은 년 완전 재수없어. 흥! 물론 나도 걔 좋아하고 우린 친하니까 자리에 있든 없든 얼마든지. 걔도 어디 가서 내 욕하고 다닐 텐데... 아 귀 따가워. 걔가 그래, 어? 예의없고 지랄맞고, 물론 친구 사이니까 우리가 다 봐주긴 하는데. 그래도 그렇지. 할 말 못 할 말 가릴 줄 모른 체 매번 선을 넘어? 어? 앞에서는 별말 없이 다소곳한데, 남자들 물러가고 여자들 편 새로 짜면 뒤에서 험담을 험담을... (몸짓)! 그런다고 단짝은 안 깔 거 같아? 최고로 자주 까. 수시로 까. 겁나 깐다고. 심지어 초딩 저리 가라할 정도로 얼마나 소심한데. 완전 밴댕이 소갈딱지. 하긴 여자세계에서 모순이 그래. 욕 안 하고 뒷담화 즐기지 않으면 친구 없다는 거. 인정! 뭐 지가 똑순이? 남자에 환장한 년. 전남자친구한테도 넌 너 밖에 모른다면서 차였어 걔. 어? 삼천포로 빠졌다만 일찍 돌아왔으니 안심하고. 좌우지간 그게 그러니까 남자는 옷을 하등 잘 입을 필요가 없어~! 어? 하여간에 여자들이 뻔트를 좀 좋아하니? 남자는 뻔트만 대면 대. 잔말 말고 따라와 작전으로 여자가 앞장서다가, 뒤로 빠지고 싶으면 알아서 우리가 리모콘 누르거든. 응? 남자가 옷 잘 입는다? 미쳤어 남자가 옷 잘 입게? 남자는 절대로 옷 잘 입을 필요가 없다니까 정말. 어? 남잔 그냥 옷 못 입지만 않으면 패션에 대해 알려고 할 필요가 없어. 남자는 옷 못 입지만 않으면 된단 말씀. 남자가 옷을 잘 입어? 어디서 남자가...! 남자 목소리가 담장 밖으로 넘어가면 어쩐다? 이러니까 이러니까 여자랑 북어는 이틀에 한번씩 뚜들어패야... 아니 그 말이 아니라. 넘어가고. 자, 둘 중 하나만 골라 봐. 오빠들이 만약 2개 중에 1개만 선택해야 해, 그럼 뭘 고를래?
첫째, 옷 잘 입는 최고의 패션 감각
둘째, 마르지 않는 샘물이자 미다스이 손을 방불케할 정도로 빵빵한 지갑
첫째 고를래? 그럴 거야? 첫째 고르고 가난한 인생? 오빠도? 오빠도? 형씨도? 네? 아 입 아퍼. 말 엄청 길어졌어 정말. 완전 카리스마 있어. 이러니까 남자들이 뻑이 가지. (절레절레) 끝으로 한마디로 요약? 신부들러리이고자 하는 남자만 오직 옷 잘 입는 거라고 보면 돼. 사이 나쁘지 않은 게 좋은 것이듯. 옷 못 입지 않으면 그게 잘 입는 거라고 보면 됨. 여잔 몰라도 남자? 대충 무난하면 끝. 여자들끼리 누구 어떤 숙녀 옆에 뽀짝 붙기 기분 괴팍한 경우 있기 마련. 뿐만 아니라 여자들끼리 누구 어떤 남자 옆에 빠짝 붙으면 그 이상한 표정들... 응? 옷 잘 입는다니까 곧이곧대로 진짜로 잘 입는 줄 알아? 첫째 날은 와 머머씨 옷 잘 어울려요, 라면서 밑밥 뿌림. 둘째 날은 어머머 어머머머머머 제가 옷 이쁘다니까 그래서 오늘 그 옷 또 입고 오셨죠 라면서 떡밥 막 뿌림. 셋째 날 나한테만 그런 줄 알았는데 글쎄 딴 직원들한테도 괜찮은 남자다 싶으면 드물게인지 간헐적으로인지 막 떡밥을 뿌렸던 것임. 아시겠소? 그처럼 여자들 떡밥뿌리기의 희생양이신 늑대님들, 허구헌 날 미끼 던지는 불여우들의 탐스런 먹잇감, 알짱알짱 얼쩡얼쩡 덥썩 물려질 운명일 것이냐 가늠되는지도 모르는 촌닭 우리가 안 챙기면 누가 챙기나. 내 마음이야 떡밥뿌리기를 본인이 해야 하는데 정작 현실은 밀려졌다 당겨졌다, 들려졌다 놓여졌다, 쥐어졌다 펴졌다. 어? 그래서 그분들 토라져서 전기모기채 하나로 모기 열댓 마리를 한꺼번에 잡으면서 집에서 혼자 씩씩거리는 수밖에. 허허허. 허허허허허. 연애사 인생사 얘기 재미로 믿는 둥 마는 둥 하든 말든 그야 듣는 사람 소관이고, 다시 주제로 돌아와서. 말하자면 여자에게 남자가 옷 잘 입냐 못 입냐는 그리 중요한 게 아니란 말씀. 그럼 뭐가 중요하냐고요? 뭐긴 뭐겠소, 네? 이 오빠 옷도 잘 입는다니까, 바로 이거, 옷을 잘 입는다가 아니라 옷'도' 잘 입는다. 도저히 미워할 수가 없거든. 내 맘에 쏙 든단 말씀. 가질 수는 없으나 말이오. 그러니까 넘버 2랄지 사랑의 차트에서 도망가지 말라는 의미. 네? 우리 오빠랑 부디 친하게 지내라 그거지. 허허. 허허허허허. 그 얼마나 잔소리로 들들 볶고 수시로 닥달했으면 하다 하다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까서 보여줬을꼬. (절레절레)! 그러니까 어디 가서 내 남자친구라고 하지 말라는 핀잔을 받지. 그러게, 어? 뭣도 모르는 업자들이랑 유명인들이 서로서로 옷 잘입네 어쩌고저쩌고. 싹 다 허당들. 바보들. 미련곰탱이들. 그냥 가식일뿐.
근데 이거 요약한다면서 한마디가 아니라 대체 몇 마디야? 알 게 뭐야. 그게 그러니까 숙녀가 좋아하는 게 뭐겠어, 응? 사고방식은 컬러tv요 패션은 될 수 있으면 흑백tv! 무조건 무채색만 입고 단순한 디자인만 선호하라는 말이 아니라 무난허니, 어? 근데 그거 반대로 해 봐. 사고체계는 흑백tv요 패션은 기괴, 화려, 괴상, 망측? 원색 양말에다, 쫄티&쫄바지랑 무슨 팬츠를 패셔니트스들이 소화하면 또 모르지만 무턱대고 따라하기? 초딩옷 빼앗아 입기? 대충 입든 내 맘대로 막 입든, 나 하고 싶은 대로 원없이 입든 그야 으쌰으쌰일 때만. 심지어 팬티는 팬티는... 또 거꾸로맨? 그대들 잘 아시다시피 D라는 남자한테 대체 왜 여자가 없을까? 그럴 때도 됐다면서 아는 동생 다 떨어져나가서? 아니야 아니야 그게 아니라고. 왜겠냐고, 어? 겉으로야 립서비스면 립서비스, 숙녀에 대한 예우, 경청하는 자세, 한발 앞서가서 여자에게 딱 딱 최적화시키는 취향, 그녀를 제대로 만족시켜주는 안목은 물론 제법 가난한 남자도 아니야. 근데 왜? 예쁜 여자한테 남자의 지갑은 자동적으로 열립니다 그런 말 절대로 자기 입으로 하지도 않아. 그래서 더 얄밉긴 하지만서두. 나이 (몸짓) 지갑 (몸짓) 웬만해선 그녀들이 미워하지 않는다니까. 근데 왜? 아니 대체 뭣 때문에? 그건 미스테리가 아니라 알고 봤더니 정신연령 3세. 아니, 마이너스 3세던가? 거꾸로맨 부류가 있으면 그분들 분과라고 왜 없겠냐고. 친해져서 집에 놀러가봤더니 글쎄... 말 말자고. 얘기 그만합시다. 허허허. 말 다 했지. 등에 딱 달라붙은 아기동자 귀신이 붙었나 또 어쩌다 걔가 선두로 나서서 여잘 꼬셔. 근데 또 넘어왔다 싶으면 나 몰라라 그러면서 인공지능은 낮잠 자는 식이지. (절레절레)! 그래서 아마 걔네들끼리 합의 봤을 거야. 안 그럴 수가 없거든. 시간낭비 돈낭비 기타 등등 뭐든 정력낭비니까. 이를 테면 패션은 숙주 어른한테 맞추고, 사무실 분위기는 갓난아기한테 최적화하고. 그렇게 홈런왕─망신의 화신─NDJM─허풍꾼─정력가─타율왕─거포─뻔트맨...등 타석에 선 사람 위주로 말이야. 하여간에 말이야 남자가 옷 잘 입어서 뭐 하게. 옷은 여자가 잘 입어야 하는 거야. 알아? 어? 남자가 옷 잘 입어서 뭐 하게, 또 언년을 꼬실려고. 어? 이런 난봉꾼 같으니라고, 황홀한 사랑에 빠져도 모자를 판에 떡밥뿌리기에 맛들인 촌년들이 어디 한둘인 줄 알아? 뭣이 어째? 지금 말 다 했어?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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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다 하다 나는 거의 일면식도 없던, 오늘 초면인 숙녀한테까지 설교를 얻어듣고야 말았다.
(절레절레) 진짜 가지 가지 한다. 내 참 더러워서 말이야, 말수 없는 남자 어디 서러워서 살겠나?!
당나귀들이 건초를 운반하고 말들이 그것을 먹는다. ~라는 말마따나 그녀는 패션에 대해 조진 게 아니라 바로 날 조졌던 것이다.
근데 거기서 끝이냐? 정점을 찍었다. 그 이상한 별장인가 어딘가에서 해질녁 되기도 전에 벌써... 무슨 에로영화도 아니고 장르가 이상해지네? 어? 보이는 데선 내 시각을 자극하고, 안 보이는 데선... 내가 무슨 천리안도 아닌데 개코이자 매의 눈과 박쥐의 청력을 나도 모르게 능가하고 말았던 것이다. 뭔... 그게 그러니까... 대체 난 여기 왜 따라온 거지? 초저음 소리를 듣는 비둘기. 초음파를 돌고래가 듣는다던가? 사랑은 나비일까 아닐까? 저분들에게야 몰라도 내겐 아니다. 사랑은 나방이니까. 물론 말이 그렇단 거고. 잔지식 하나만 더 알려드리자면 이렇다. 박쥐의 주식인 나방은 귀가 없지만 청력이 예민하게 발달되어 있으며, 박쥐가 나방을 찾는 것을 피하기 위해 초고주파를 이용한다는 것. 그럼 지금 이 마당에 난 나방? 이런 젠장.
그렇게 난 인사 하는 둥 마는 둥 서둘러 그곳을 피해 숙소로 허둥지둥 도망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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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처 목장에 3일 연속 놀러감. 근데 3일째인 오늘 희한안 광경을 보게 됨.
목양견 몇 마리가 언덕 너머로 모든 양떼를 몰아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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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아찔한 착상이 떠오르지 않는 날이구나 라면서 자리를 뜰려던 찰나,
언덕 너머에서 개떼가 수도 없이 몰려옴.
그럼 그 말도 안되는 개떼를 모는 게 누구냐?
당연하지 개몰이 양 몇 마리! 진짜로? 뻥이 아님.
아마 거기서 끝이었다면 난 분명 미치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난 신기한 영감을 받아 천재적인 작품 구상에 성공했을 것이란 말이다.
근데 최근 일어난 일들은 내 인생에 결코 만만치 않았던 발단과 전개였기 때문이었을까?
난 끄떡없었다. 온전한 정신. 영화를 너무 많이 봤으니까.
알다가도 모를 일은 드라마에도 나오고 우리네 인생사 역시나 결코 녹녹치 않으니까.
그렇지만 그 뭐랄까 버티다 버티다 끝끝내 버티다 입김 한 번에 여심이 사르르 녹는다고나 할까?
내 근처를 얼쩡대던 개떼 가운데 한 마리가 내게 말을 하였던 것이다. 바로, 개가 사람말을!
「이런 얼간이 같은 놈. 너도 양한테 쫓기고 싶어? 너 우리가 우스워 임마? 어? 지금이 좋은 줄 알아 형씨. 저 개떼몰이 양은 우리들 갖고 노는데 최적화된 특수양이니까. 아직 이해 안되지? 나중 의무방어전 하면 알게 될 거야. 살아 봐, 어? 굶주린 그 표정 쏙 들어갈 테니까 말이야. 알겠어 모르겠어? 근데 안색이 왜 그래? 개가 말하는 거 처음 봐? 그러지 말고 저리 비켜. 지금 우리 꼴 보는 게 그렇게 재밌어? 늬 눈엔 이게 웃기지? 늬가 우리 신세를 알겠니 파란만장한 주인공의 마음을 알겠니. 나한테 잔뻔치 얻어맞고 싶지 않으면 당장 가버리란 말이야. 근데 너도 기 빨리려도 기 충전되는 뭐 특이한 종이냐? 늬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볼까? 늬 귀에서 피 안 나올 거 같아? 좋아. 좋았어. 정 원한다면! 네 귀가 타버릴 때까지 잔소리 쉬지 않고 풀어는 드릴께. 기대하셔. 근데 형편이 내가 하필 저 떨떠름한 개몰이 양한테 쫓기는 신세라서... 시간이 없네. (절레절레) 아무튼 하는 데까지 몸만 풀자구 친구. 허허허허허. 인생 그런 거 아니겠어? 누가 알아, 널 내 애제자로 받아들여줄지 말이야. 뭐 늬가 날 애마로 편애하고 싶다고? 이런 곰탱이 같은 놈을 봤나. 어디서 눈독들여 임마! 흑심 꺼. 개침을 왜 늬가 흘려, 어? 늬 그 응큼한 사심 누가 모를 줄 알아? 어디서... 이런 돼지새끼! 아니 새끼돼지. 아니 너나 나나 입장 난처하긴 마찬가지네. 우리도 자네 같은 구경꾼 처음이니까 말이야. 당신만 당황스러운 게 아니야. 어? 왜 벌써 바지에 오줌 쌌어? 찔끔이 아니라... 됐다. 같잖은 녀석. 한심하게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야? 너도 공상이 특기야? 잘 걸렸어. 난 너같은 바보들 훈계시키는 게 장기니까. 허허허허허. 왜, 뭔 말 할려고? 닥치고 계속 듣기나 해. 시끄러워. 말 하지도 않아도 시끄럽단 말이야. 어? 조용히 해! 알았어? 알았어 몰랐어? 누울 자리 보고 발을 뻗으란 말이야. 지금 개떼들 많다고 너 신났지? 누가 모를 줄 아니? 그래서 물 반 고기 반이라면서 막 재밌지? 그렇지만 말이야 넌 흥미로울지 몰라도 우리도 그럴까? 인생 괴로운 거야. 넌 아직 세상을 모른다구. 알아들었어? 알긴 뭘 알아. 넌 아직 인생의 비밀을 몰라. 근데 사랑을 어떻게 알아. 뭐 알고 싶지도 않다고? 이런 얼간이 같은 놈. 썩 꺼져! 늬같은 애송이가 대체 뭘 안다고. 꺼지란 말 못 들었어? 왜 넌 정작 중요한 말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고, 고양이 발톱 엑스맨 손톱 날서도록 쪼잔한 기억만 되새기는 거야, 어? 꼴보기 싫어. 재수없단 말이야.
왜, 약해? 난들 뭐 널 혼구녕내고 싶겠니. 늬가 날 불렀잖아? 그러게 왜 내 눈에 띄이냔 말이야 이 맹추야. 어? 자, 그러니까 보아하니 동네 똥개도 아니고 어디 허접한 개새끼 주제에 만물의 영장인 인간에게 들이대냐고? 궁금하겠지. 개가 어떻게 사람처럼 말을 하는지 말이야. 이해해. 안 그럴 수가 없거든. 허허허. 늬 마음 다 안다. 말하지 않아도. 그렇다고 표정 연기하니? 너 포커페이스 그거 안돼? 그러니까 아직도 여자가 없지. 어? 그래서 늬가 안되는 거야. 어? 그러니까, 에잇 됐다. 근데 너도 너다. 응? 보아하니 나한테 신나게 얻어들으니까 가슴이 벌렁벌렁하니? 뭐 가슴이 아니라...... (이 개님은 기어코 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한두 번 훑어보더니 급기야 그 고상한 시선은... 시선은... 내 Y존에서 멈추고 말았다) 설마...! 혹시... 아 너 덜렁덜렁이구나. 근데 너 맷집 좋다 얘. 나 너 좋다. 너 내 마음에 들었어. 찰칵, 저장! 좋을지 나쁠지 모르겠다만 너 나한테 찍혔어. 늬가 좋든 싫든 사실인 걸 어떡하니. 안 그래? 응? 아 왜 대답이 없어, 그래 안 그래? 어? 아직 잘 모르겠다고? 더, 더더욱 들들볶아줘? 들들볶아달라면 볶아드리고. 다른 스타일로 닦달해주라는 주문을 넌지시 여쭐까 고민이라면 딴 방법으로 떽떽거려드릴께. 얼마든지. 어? 아 글쎄 원하시는대로 구워삶아드린다니까. 허허허. 근데 아직도 벌렁벌렁 덜 달아올랐니? 그랬니? 정녕 그런 거니?」
그러면서 말을 하던 개는 자기들 개떼들한테 가버렸다. 이걸 보고 가만 있을 나일까?
따라서 밀접한 인과관계가 성립함과 더불어 심각한 동반작용에 근거하는가 아닌가는 몰라도,
내겐 곧장 일반인들에게 거의 발생하지 않는 몇몇 의학 현상이 일어나고 말았다. 그건 무엇이냐,
발작. 개거품. 깽판이 아니고 진상도 아니고. 수전증에서 멈추지 않고 마침내 뇌전증.
뻥 아니다. 허언증이 아니라 정말로 개거품 물면서 간질 증상이 제대로 벌어진 것이다.
아니 증말 어? 개판 중의 개판을 똑똑히 봐버렸는데 안 그러고 베기겠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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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난 정신을 잃고 쓰러짐.
그래서 달콤한 개꿈을 꾸게됨.
발단은 그랬고 전개는 곧장 야한 내용으로 이어짐.
딱 그렇게 황홀한 절정으로 냅다 진행되려던 찰나... 웅성웅성... 웅성웅성...
소란스러움 때문에 난 꿈에서 깨어났다. 거긴 호텔 산타 캐롤리나 사장실이었던 것이다.
일은 그렇게 되었다. 사연을 듣고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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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청소요원이 산타 캐롤리나 호텔 사장실을 청소하려고 들어왔음.
근데 수상한 남자가 쓰러져있음. 곧장 경찰에 신고. 근데 어디서 많이 보던 사람? 호텔 VIP 손님.
그렇지만 진상 파악 필요. 그렇게 호텔 관계자들 총집합. 경찰도 도착. 기타 등등 그렇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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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렁뚱땅 그 일은 대충 수습됨.
난 창피해서 도시로 돌아감.
애간장을 태우는 진한 사랑의 주인공으로 낙찰되는 행운은 물거품처럼 사라진 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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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이 지났다. 난 평소처럼 음악을 들으면 업무에 집중했다.
Tchaikovsky / Violin Concerto in D major op.35 / Ida Haendel(violin) / Radio-Sinfonieorchester Stuttgart des SWR / Hans Muller-Kray 1960 live LP
그러나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래서 환상문학잡지 편집장 마라한테 전화를 했다.
통화 내용을 일일이 시시콜콜 옮길 수는 없고. 그러길 바라는 독자님도 없으실 테고.
용건 아니 그 줄거리만 간략히 요약하자면 이렇다.
문단 4에 나왔던 일. 그 때문에 내가 멀고 먼 여행길에서 대체 뭔 경험을 겪고 하다 하다 똥개한테 망신까지 당했는데. 내가 진짜 망했다는 걸 깨닫자마자 떡실신한 다음 깨어나보니 그 다음이 더 바늘방석이었는데. 즉 "마라&양대잡지 전직원이 내 사무실 방문 → 한적한 여행지로 당분간 피신하랬음 → 세계 3대 로펌에서 초거액 소송을 당했기 때문". ~라는 사연. 마라와 통화 후 알게 됐다. 그건 진짜인 건 맞는데 조금 과장됐다고. 더더군다나 내 주민, 신분 즉 행정적 정체가 말소됐다는 거도 뭐 어떻게 어떻게 원상복귀시켰다고 했다. 그 뿐만이 아니라 협상을 기가 막히게 잘해서 역으로 소송취하 뿐만 아니라 거액을 받게 되었기까지. 근데 이상한 게 그 당사자가 날 만나고 싶다네? 알고 봤더니 그분들 정체가 무슨 세계마초협회처럼 아마데우스가 몸담았던 그런 은근 미스테리한 단체라는데. 몇몇 회원을 알아본 결과 현 수장은 다름 아니라 바로, 크리스피도넛 회장이라나 뭐라나. 뭐 누구? 달지 않은 도넛? 없긴 왜 없어! 말 나온 김에 맥도날드랑 버거킹이랑 유니폼 수집이나 몽땅 해서 사무실에서 그거 입으면서 일할까? 어차피 집 안에서만 기발한 착상을 위해, 발랄한 일하기에 도움되라는 의미 밖에 없으니 뭐 나쁠 거도 없다만. 근데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라 크리스피 도넛? 그건 우리가 잘 알지, 안 단 도넛이 없긴 왜 없어! 어? 지금 장난해? 뭣이 어째? 워 워 워. 워 워 워! 난 그래서 당장 그 인간을 만나러 갔다. 물론 내 발품 팔아서? 아쉬운 작자가 와야지. 모냥새 갖춰서 리무진 보내준다고 아이고 지존님 하면서, 또는 초대해준다고 하여 좋다고 헤헤 헤벌레 웃으면서 미친년처럼 상전들 뒤꽁무늬 쫓아다니는 내가 그런 미친년인가? 난 그러니까 미리미리 마라한테 전했다. 마라를 중간책으로 내 마음대로 설정한 거니까. (몸짓) 자, 어깨 높이로 오른손을 내밀어 들고 손바닥을 뒤집은 다음 요렇게 요렇게! (이리 와 이리 와). 그럼 그게 끝이냐?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허허허허허. 왼손을 들어 검지를 펴고 귀 옆에 댄 다음 빙빙빙 빙빙빙 빙빙빙빙빙! 당신은 소설 잘 읽으시다가 뜬금없이 검지를 코끝에 대고서 쳐다본다 쳐다본다. 그녀가 내게 다가온다 다가온다. 그 고운 살결 부드럽다 부드럽다. 워매 좋은그~ 워매 좋은그~ 라는 천상의 쾌락마와 환상적인... 상상된다 상상된다. 거의 다 왔다 거의 다 왔다. 안는다 안는다. 꼭 껴안는다 꼭 껴안는다. 뜨겁게 키스한다 키스한다. 미치겠다 미치겠다. 정말 미쳐블 거 같은데... 그거 다 착각이잖아? 또 공상이라니. 이런~ 젠장! 어쨌든 난 약속장소로 나갔다.
21
(무마된 초거액 소송 장본인을 만난 내용은 비밀.
가난한데 홀랑 발가벗을 수 없잖아?
Y존은 남겨둬야 할 거 아니냐고.
보자 보자 하니까 이 사람이...!)
나는 뭔가 어떤 수작 중의 개수작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젊은 야망도 없었다. 그럼 뭐 지금 이 마당에 늙은 마약탐지견을 키우리? 내가? 아니 왜? 그러니 아마도 인생 중간 결론은 이렇다고 할 수도 있다. 즉, 눈을 씻고 찾아봐도 각별한 꿈은 아마 내게 없는 것 같다. 그렇다고 옆, 위, 아래, 뒤도 모른 체 앞만 보고 질주하는 경주마야 경기장에라도 출전하기라도 한다지만. 하고많은 열망 가운데 하다못해 야성미도 처음부터 없었지 이제는 정말 성욕도 없는 듯 했다. 뭐야, 발정기에서 중간 건너뛰고 갱년기 마저 생략한체 무성욕? 이런 젠장! 그래도 원래 여자보기를 돌맹이 보듯 했으나 그건 진짜였다. 그럼 이제 정말 난 똥차를 닮은 늑대란 말인가. 뭐? 누구보고 허당이라는 거야? 내가 잡것이라고? 누가 허접한 새끼돼지라는 거야, 어? 헛소리는 짚어치우고. 숙녀 등에 또 엎히고 싶어서야 쓰나. 또 드라마에 나오듯 여자를 등에 엎고 숨소리 고요한 거 다 뻥. 그거 완전 (개)뻥. 100m 전력질주랑 완전 똑같음. 아니, 어? 아무리 그래도 말이다, 호기심은 부글부글 예감은 미끌미끌 기대는 벌렁벌렁. 그럼 뭘 해 성과는 꿈도 꿀 수 없음. 드라마를 봐도 전혀 흥미롭지 않다. 영화 보며 뭐 진땀을 빼겠나. 최신형 최고가 최저무게 맥북에어가 없는데, 동네 스타벅스를 어떻게 가나. 안감. 가기 싫음. 뭐 한다고 그놈의 허영심을 들켜? 딱 거절. 원래 우리는 허세 그리 반기지 않음. 뿐만 아니라 허풍 대회 기념사진도 다 옛날 얘기. 사람이 뭐 한 오백년 산답디까? 라면서 단골술집 마담한테 한탄을 늘어놓으며 푸념을 일삼는다 해도 그분들께서 퍽 반겨줄 만한 거물이 아니란 것쯤은 우리도 다 안다. 그걸 왜 몰라! 어우 쉰내. 동네 아저씨 느낌 파팍! 에잇, 듣기 거북한 얘기 그만 좀 하자. 그게 뭐 재밌다고 말이야. (절레절레) 불세출의 환상가들 후원자를 자처한다는 둥 환상머신의 피보호자라는 둥 개뼉따귀만도 못한 공상은 좋게 집어치우고. 좋게... 좋게... 혹시... 설마... (절레절레) 그처럼 난 갈 데라곤 사무실 밖에 없는 칼럼니스트임을 절감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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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모험하는 자가 승리한다는 말이 있다. 그렇다고 가정적인 남자를 억지로 엉덩이 걷어차서 무조건 내보내란 말이 아니라. 어쨌든 개들은 짖지만 마차는 계속 간다. 세상이 그렇다. 인생이라고 뭐 얼마나 다른가? 그러므로 그는 만지작만지작거릴 히든카드가 턱없이 부족했으므로, 고로 새로운 작전을 고심하기 시작했다. 자, 그 후보군은 무엇이 있을까?
(1) ────□ : 줄 달린 치즈 조각
(2) □───□ : 역기
(3) │───□ : 자전거 펌프
(4) ? : 얼쩡얼쩡 알짱알짱 떡밥 뿌리기 먹잇감 물색?
(5) ♡ : 뻔트
(6) ♥ : 찐한 사랑
(7) ¿ 역발상 투자
(8) ♤♡♧◇ 노름꾼의 비애? 저명한 도박사의 행복업
(9) ●▅▇█▇ค็็็็็็็็็็็็็็็็็็็็็็็็็็็็็็็็็็็็็็็▆▅▄▇ : 발정난 플레이보이? 구형 전기측정기? 저건 뻔트. 풀바... 쉿
... 이렇게 따지면 잠도 못자고 한 36일 37일 연속으로 쉬지 않고 말할 수도 있을 테지만. 중간에 뭐 피곤해서 퍼지든 할 말 바닥나든 하겠지 뭐. 그건 그렇고. 저 대타들 가운데 쓸 만한 인재가 돋보이지 않으므로 아마도 지금은 때를 기다려야 함. 햇볕이 있을 때 건초를 만들어라. 괜히 자발탱이 영감님 더 자발탱이 말괄량이처럼 엉덩이 근질근질거린다고 아무 여심이나 막 들쑤시고 나대면 안됨. 말하기 좋아하고 나서기는 더 좋아하는 숙녀도 다 차분하며 조신하기 마련. 그래? 때문에 그는 점점 달아오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뭐가? 지적인 호기심이 아니면 미친 허영심이! 뭐? 됐고.
그래서 NB는 뭘 해야 신나는 행운아요, 재밌는 모험이며, 놀라운 사연이라며 소문날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마침 그런데 여성환상 1.5 월간지, 수석 주필 크리스티한테 연락이 왔다. 만나러 갔다. 용건이 있을 테니까. 걘 그를 따랐고 그도 걔가 싫지 않았거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Michael Haydn (*하이든의 동생) / Flute 협주곡 D장조
카페에서 창밖이 아름다운지는 모르겠고. 아무튼 크리스티는 또 고전음악을 트는 카페로 그를 불렀다. 달콤한 3분 마법에 홀라닥 빠져들고 싶었는데. 새침한 유행가에 홀딱 반한 기분으로 그녀와 마주하면 좋았을 텐데 왜 하필. 뭐 그렇다고 썩 마다할 만한 분위기는 아니다만 뭐라고나 할까, 투정만 늘고 능청은 더 늘고 넉살마저 허세대회 터줏대감격이니까. 따라서 그도 더 이상 바득바득 자긴 올드보이가 아니라 영보이라며 떽떽거리며 우길 수 없게 되었다. 뭐 그럴 수도 있고 아닐지도 모르고. 따지고 보면 크리스티도 어디서 웬만해선 빠지지 않는 잔소리꾼이요, NB가 만날 수 있는 여동생들도 죄다 다변가들이니. 그는 천상 수다쟁이들한테 기를 빨리고 수도 없이 빨릴 운명을 탓해야 하나? 그러거나 말거나.
2
「오빠.」
「오 크리스티.」
「왜? 예뻐졌다는 인사말 하려던 참이었어?」
「못 보던 새에 굳이 사나워질 이유가 있을까?」
「어쭈. 오빠 봐라. 앙탈은 내 꺼야. 오빠는 질투나 전담하시지. 응?」
「뭐?」
「그건 그렇고. 저번에 내가 준 중고책, 왜 우리 회사 소파에 놔두고 갔어? 설마 일부러?」
「그럼 깜빡 잊어서 그랬겠니?」
「이번 달 칼럼은? 그거 쓰라고 중고책 사준 거 아냐?」
「이번 달 칼럼 다음 달로 연기할께. 그리고 주제는 내가 정해.」
「뭐?」
「아니. 어? 너. 그래 너. 일단 전제를 깔고 갈께.」
「또 뭔 잔소리를 하시게?」
「자, 자, 들어 봐. 아 쫌! 말 끊지 말고. 어? 학벌로 치면 난 9등급. 물론 삼류대학교 구경이나 하고 고등학교 졸업했으니까 8등급일 수도 있는데. 학교 다닐 때 재미없었고, 고1때 자퇴한 친구한테 전화했더니 녀석이 고맙다며 하는 말이 글쎄, 막상 나오고 나니 어쩐다 그래도 적이 있는 게 훨씬 낫더라, 즉 재능 특출난 1퍼센트면 괜찮을 수도 있고. 고로 넌 잘 다녀라 라던 통화내용. 그거 크리스티 너 때문에 기억나잖아?」
「그게 왜 나 때문이야?」
「그래. 아닌 걸로.」
「오빠 나 정색한 거 아니다. 내가 오빠 좋아하는 거 알지? 난 오빠랑 줄다리기하는 사랑의 흥정꾼이라고나 할까?」
「사랑은 나중 내가 소개시켜주는 남동생들이랑 하면 되고. 하던 말 계속하자면. 음, 어디까지 했더라?」
「」
「그래. 학벌로 봐도 대충 난 9등급. 재산 9등급. 소고기 9등급도 친구가 사주지 않는 이상 1년에 단 1번도 먹기 힘들고. 조부재산? 긴말 필요없어. 국제신용평가사에서 뭐 하러 내 정체를 알고 싶어 하겠니? 국내신용평가사에서 저질 채권으로 넘어가고 넘어가고 넘어가고 그랬던 게 내 서류철일 텐데. 아아 그나저나 무기명 채권은 대체 언제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걸까? 옆길로 새지 말고. 당연히 결혼정보업체에서 대놓고 반기지 않을 등급이 누구? 바로 나. 난 농어촌 좋아한다만 농어촌이 대도시보다 부자일 수는 없으니, 고로 대도시 괜찮은 동네 중산층이, 지방으로 내려가면 즉시 거기서 최상류층. 대번에 상석 따논 당상. 아프리카 구경도 다큐멘터리로 대신하고, 후진국이라는 말도 다 칼럼 내용들 위한 거고.」
「아 글쎄 뭔 얘기를 하려는 거야? 내가 질문 했어, 안 했어? 어? 내가 준 중고책 왜 안 읽었냐고?」
「너 같으면 인도 예술영화 끝까지 볼 수 있니?」
「」
「내가 너라면 인도 전통음악에 심취해서 전통시장 해메고 다니고, 공중부양 노인 속임수 짐작하고. 갠지스강에서 실제 목욕해보고. 그거 내가 꼭 이 나이에 해야 하리?」
「오빠 시간 많잖아. 아닌가?」
「내가 정말 참다 참다 왜인가 해서 꾹꾹 참고 읽긴 읽었는데. 이런 젠장~ 그러면서 중간에 포기했어. 왜 책 표지에 무슨 테이트 블랙 메모리얼상? 긴 설명 필요없다니까 그러시네. 영국이 인도를 식민지배했다가 떠난 후, 대충 말하자면 인도가 5개국으로 쪼개졌으니까. 심지어 그게 끝이 아니라 AB끼리 전쟁, CD끼리 전쟁 기타 등등. 내가 만약 최고급 사립학교 출신에 이튼스쿨 와튼 옥스포드 캠브리지, 막 고리타분한 어법에 억양을 강박증처럼 고집하는 부커상 심사위원 나리쯤 된다면. 응당 나라도 그랬겠어. 만장일치가 딴 게 아니니까. 채무감이든 착한 척이든 그래서 문호개방과 카테나치오 구분 잘해야 한다니까. 그래도 한 30% 읽고 포기한 단기기억 가운데 딱 하나 꼽는다면 그건 생각나.」
「어떤 거?」
「서문의 한 구절. 뭐래더라? 그때가 되면 내 소설이 지금보다 더 나빠지거나(왜냐하면 화제성이 사라질 테니까) 혹은 더 좋아질 거라고(왜냐하면 화제성이 사라진 뒤에는 소설의 문학적 구조가 더욱 돋보일 테고, 그래서 어쩌면 더 좋은 평가를 받을지도 모르니까) 생각했다.」
「음... 나도 오빠랑 생각이 같아. 그래서 한번 떠본 건 아니고.」
「뭐? 아무튼 내가 해외파 유학생 출신 인도인이 아니고, 인도음식 즐기고는 싶은데 여건상 시간도 없고. 그런 정서 문화 영혼 취향 정체성 안목 구미 같은 이유 때문에 네 부탁 못 들어줘서 미안해. 미안 미안. 그게 바로 첫 번째 이유.」
「그럼 두 번째는?」
「두 번째는 그걸 읽을 만큼 내가 신간 편하고 속은 더 편하고 시간도 많았을 때, 그걸 마음 편히 읽기 위해서는 선행되어야 할 조건이 있거든.」
「그게 뭔데?」
「판박이. 즉 코란을 읽는 게 먼저라는 뜻. 코란에 비하면 네가 준 중고책은... 그건... 말 줄이고 싶네. 성경을 최소 1번 정독하고 고전미술부터 교양 전반에 걸쳐 안다박사님들 그 누구와 논쟁해도 썩 빠지지 않을 전문가, 뿐만 아니라 일반가까지. 알파벳 소설을 그분들이 대충 몇 구절 읽으면 느낌 모를 거 같니? 우리는 말 몇 마디 섞으면 성격 대번에 파악해. 어디 우리만 그러겠니. 말하자면 코란 좀 읽어봤으면 아마 나처럼 읽기 시도하다 그만둘 사람 태반일 거라는 점. 예상하기 결코 어렵진 않지. 좌우지간 그 논리대로라면 당연히 성경도 완독해야 하겠지. 구약성서도 읽고 신약성서도 읽고 카톨릭 신부들 등급 막 있잖아, 머 머 머 추기경 교황... 즉 카톨릭 기준에 해당하는 신교 권고사항 이상의 무언가도 읽는 게 먼저. 그게 두 번째 이유.」
「세 번째도 있어?」
「있지 왜 없겠니.」
「뭔데?」
「세 번째 이유는 고전음악이 아니니까.」
「아아, 내가 오빠를 아니까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어.」
「나도 잔소리 늘어놓을 의지도 힘도 그만그만하네.」
「오빠 그래서 저번에 미시경제학 개론서도 달랑 한 10페이지 읽다 만 거야?」
긴 대사라서 문단을 떼서 감.
3
「그거...아곤 얘기가 좀 다르지. 그럼. 내가 전공자라면 읽어야 하고, 읽기 좋아하며, 읽을 수 있지. 그런데 난 비전공자. 난 경제학도가 아니야. 내가 무슨 경제학자야? 난 아니야. 난 아니라고. 아니 내가 왜? 다시 말해서
(1) 문학
(2) 경제학 (경제심리학 행동경제학...말고 주류 경제학)
(3) 인문교양학 & 스포츠 의학 화학 생물학 유전학 천문학...
그렇게 딱 3가지만 놓고 봤을 때. 문학은 고전음악 즉 쉽게 말해서 1800년~1950년 그 150년간. 롱테일과 편차는 설명 생략하고. 경제학은 칼럼에서 누누이 말했든 구식탱탱묵은 거 찾다 보면 시간이 없으니까 될 수 있으면 현재에 가까운 위주. 인문교양학이야 당연히 시간과 정비례. 철학 논리학 교양학 등 고전도 가치있고 좋은 게 많긴 하다만, 그 분야는 고전음악과 좀 성격이 다르기 때문이지. 내가 무엇 때문에 고전음악을 그렇게나 물고 늘어지겠니. 스포츠로 비유할 수 있거든. 10년 전 축구선수와 지금 축구선수. 평균 기량 비교? 말해 뭐 하겠니. 현대 축구 전술과 개인기가 월등하겠으나 미래에게 상대도 안되는 법. 올림픽 종목들이 그러니까 기록갱신이 힘들고. 왜 요즘 사람들이 소설을 안 읽겠니? 읽다 버릴 거가 주로 팔리고 읽었는지 아닌지 기억도 못할 거 팔아먹으려드는 게 바로 상업이야. 누구든 먹고는 살아야 하거든. 예술가라고 뭐 손가락만 빨게? 땅 파면 돈이 나오니! 그러니까 왜 문학이 천대받겠니? 왜냐, 누릴 게 그 얼마나 많은데 이 즐거운 세상 고리타분한 거짓말만 읽으며 살라고? 뿐만 아니라 최적의 컨텐츠라는 게 있는 법. 프랭크 시나트라의 노래 MY WAY. 샹송 번안곡으로 더 유명해졌든. 만화를 영화로, 소설을 영화로, 사실을 미술로. 그런데 영화로 옮겨지지 않았는데 굳이 원작을 찾아 읽을 수고, 다른 사람들 할 사람들 많으실 텐데 왜 나까지. 물론 문학의 효용과 가치는 논외로 치고. 그러니까 저 1 2 3의 차이를 모르겠니? 모르겠어? 정말 모르겠어? 2번이 조금 애매하니 그거 다음 달 칼럼으로 알려줄께.
이유는 또 있어. 영국 식민지 출생 앵글로색슨인. 문장 1개 다음에 2번째. 문단 1 다음에 2번째 문단. 1쪽 2쪽. 읽어보면 느낌이 확연히 달라. 본토 태생과 기분이 완전 딴판. 런던 태생이더라도 전통에서 멀리 벗어나면 글이 막 날라가. 어?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그거 꾹 참고 엉덩이 땀띠나도록 인내하며 읽을 꺼면, 차라리 잡지 글을 정독하지. 그걸 뭐 하러 봐? 오히려 잡지사 편집장 글발이 훨신 나아도 낫거든. 무슨 유명인들 어쩌고저쩌고, 하! 하이브리드라고 다 같은 하이브리든가? 뿐더러 세월따라 시대따라 정서가 뚜렷. 11년도 네로 퇴폐미, 22년도......, 77년도... 모르겠고. 88년도 야생마 열정 유행가 희망가. 99년도 세기말. 그 흐름 다음에 세련미. 냉소. 괜히 진지하거나 억지로 늘이던가 말도 안되거나. 뒤죽박죽 산만한 여자 수다가 훨씬 재밌지. 팀버튼식 상상력이랑 또 뭐지? 반지의 제왕, 해피포터? 아 해리포터 다 놔두고 제목이 딱 떠오르지 않는데 거 뭐더라? 인도 스타일 느낌 쌀짝 나는 예술영화 있는데... 아무튼. 옛날에 단짝 친구랑 나랑 둘이서 극장에서 영화를 봤는데 말이야. 뭐였더라? (딱)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그거 보고 나오면서 둘이서 한숨 푹푹 쉬었지 그때. 땅 꺼지라면서 한숨만 푹푹! 표정 기 막혔고. 4살 5살 꼬마 데리고 애들 영화 극장에서 보면서 조는 아빠 심정? 그거면 차라리 여유롭기라도 하지. 인도예술영화 나쁘단 게 아니라, (절레절레)
1세기 전과 후가 딴판이란 얘기. 100년 전 "오늘은 뉴스가 없습니다 음악 듣겠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오락산업이 건너뛰게 놔두시는 걸로도 모자라, 어? 알렉산드리아 사중주라면 또 몰라. 시간 지나면 시간낭비로 판명날 전문가의 글발, 책 뒷편 참고문헌 목록만 50~100쪽. 전자와 후자 차이조차 오락산업 논리에 무색해지는 세상. 지 아쉬울 때만 찾아와서 지 할 말만 3시간 무정차로 떠들어대는 친구를 보면서, 낮뜨거운 주제로 친구 기빨아가는 촌년이라는 핀잔 누가 누가 들을지 잘 아실 거야. 단편 분량을 늘리거나 중편 분량을 쪼개기로 책 팔아먹는 상술, 학자 인생 걸고서 20년 30년 연구 성과를 압축하여 참고문헌-후주-부록만 해도 상당한 저술. 대체, 뭔 차이야? 어? 시시콜콜한 얘기 분량 늘려서 거 무슨 출간 즉시 아마존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라는 둥 아마존 52주 연속 베스트셀러라는 둥. 전 세계 몇 개 언어 번역 출간이니 올해의 책으로 일간지 주간지는 물론 재력가와 전문가들 칭찬이 난리도 아니라는 둥. 그래서 살펴보면... (절레절레) 그러니까 정치도 쇼비스니스, 경제도 정치, 오락산업이 그 모두를 쥐락펴락하는 셈 아니야. 안 그래? 뿐더러 나라 안에서만 부익부빈익빈이겠니? 그건 칼럼 내용이니까 넘어가고. 아무튼.
그거 말고도 이유는 많아. 사람이 유명해지기 시작하면 특히 예술가 더더구나 문사 즉 문학가들 허세 장난 아니라니까 글쎄. 어쩌고저쩌고 웬만한 거 다 뻥. 연예인병. 죽는 소리. 일부러 그러고 싶은 거도 있고, 자기도 모르게 자리가 사람을 만드니까 나도 모르도록 일부분 그럴 수밖에 없고. 내가 만약에 여자처럼 아침에 화장하고, 립스틱 바르고, 시간만 나면 손거울 쳐다보고, 하이힐 신고, 스타킹 구멍나지 않았나 확인하고, 여자말 번역기 신경쓰고, 여자세계에서 튀지 않으려 조심하고... 그렇게 살면... 사람 피곤하지. (절레절레). 장난 아니란 거 여자들이 왜 모르겠니!
그렇듯 조명발 화장발 사진발 관심발... 타고난 자질과 역량은 어떻고. 어느 축구선수든 퍼거슨 감독이 손꼽는 최고의 선수 되기 싫겠니? 그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니 뭐 어쩔 수 있나. 독학도 전망과 견적 보이는데 누구나 천재되기 쉽지 않지. 물론 최단기간에 천재되는 법, 책으로 써서 유명해질 수도 있고 실제 현대인이 과거인에 비해 최고로 좋은 비교점이 그거야. 학계 업계가 빠삭히 연구해서 최단기간내에 아마추어를 탈출하는 법. 물론 교육학에서 옛날에는 튤림씨앗은 튤림꽃으로 난초씨앗은 난초로, 까지가 정설이었는데. 장미씨앗도 교습법과 학습방법과 노력 여하에 따라 연분홍 들장미부터 튤립빛깔 닮은 다홍빛 장미까지 가능하다는 걸 증명했긴 한데. 연구 성과는 한마디로 첫째 가능한 최대치의 범위가 어디까지 가능하다, 둘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 성정에 따라 그러고 싶어하지 않는다. 아무튼 언론계 떠들썩한 물개박수, 오락산업 허세만발 아니면 말고, 출판계 구식탱탱묵은 남 따라하기에 꼰대지수에 흑백tv 정서까지. (절레절레). 난 커피 한잔 값짜리 싸구려 티셔츠, 대충 찍찍 끌고다니다 버릴 슬리퍼, 디자인 적당하고 품질만 나쁘지 않다면야 얼마든지 OK. 그런데 네가 포장해서 선물하지 않고 그냥 대충 던져주든 어영부영 안겨줬기 망정이지, 어? 나는 아니겠으나 당시에 현지에서 또 외지에서 코란 짜집기도 어쩌고저쩌고 같은 악평. 있었을까 없었을까? 난 네가 뭔 특별한 동기가 있으니까 줬겠지 하면서 꾹 참고 읽어봤어. 그런데 그런데...! 지금 와서 뭐 앨빈 토플러 막 몰입해서 달달 외우라는 거니 뭐니? 어? 움베르트 에코만 분석하고 분석하고 계속 연구할까? 어? 그래? 정말 그래? 친구들이 어디 가자 뭐하자 파티하자 소풍가자 난리인데, 안돼 나 파트리트 쥐스킨트 달달 복습해야 해? 차라리, 어? 차라리 그러지 말고 롤렉스 짭을 선물하지 그랬니. 너 모르지? 의외로 말이야 이 오빠 같은 사람들이 짝퉁이 아니라 진짜 롤렉스찬다 너?! 알아 둬. 옛날이랄지 어리숙한 총각 순박한 처녀 순진한 양반들이야 롤스로이스 타시는 저분 양복은 에르메스겠지? 딱 보니 운전수네. 번쩍번쩍 롤렉스 차고 아지트에 내가 나타나면 친구들 막 웃고 떠들고 난리날 텐데. 뻔덕뻔덕 야 그거 얼마짜리야 막 그러면서.
좌우지간 자긴 한달에 딱 1번이지 그럼 뭐 얼마나 더 어쩐데, 라는 그 형 말은 100% 사실이고. 유부남들 혼자 어쩌고저쩌고 그거 다 뻥이라는 딴 선배 말도 완벽한 진실이고. 그런데 그 얘기가 지금 왜 나오지? 아무튼. 시간과 비례해서 물량은 천문학적으로 늘어나는 게 오락산업. 예술도 당연히 절반이 아니라 거의 태반 동격. 감상보다 소비. 감탄보다 시간때우기. 그래서 고전음악이나 각자 좋아하는 취미 즐기다가 머머 접습니다 라면서 장비 다 내다팔고. 대부분 시간낭비. 아니면 소파에 자빠져 TV 채널 돌리기. 밖에서 왕성한 정력 뽐내며 돌아다니다 나이 들고 힘 빠지면 남자들 웬만하면 가정적이고 싶어서인가는 몰라도, 어쩔 수 없이 덜 활동적이기 마련. 왜? 힘 빠지거든. 사랑은~ 그건 넘어가고. 너 있잖아, 어? 남자는 나이가 들면 힘이 밑에서... 됐다. 내가 너랑 뭔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다. 물론 말이 그렇단 거고.」
「이 오빠 여자 만나기 힘들겠네. (절레절레)」
「뭐? 뭐가 어쩌고 어째? 너 그게 무슨 악담이 그래? 너 오빠한테 왜 그래?」
「짖꿎은 촌평 잘 들었수다. 녹음했으니까 다음 달 잡지에 실을께. 허락 아니라 통보.」
「늬가 내 마누라라도 되니? 늬가 내 여편네도 아닌데 아니 어떻게...」
「이놈의 영감탱이가... 쉿! 결코 섭섭치 않은 대우가 뒤따를 거야 오빠.」
「이... 뭔... 뭐라고? 좌우지간 저번에 사라도 그랬어. 아직까지 입금 안 됐고.」
「이번엔 달라.」
「정말? 또 속으라고?」
「속는 셈치고 믿어봐. (윙크)」
「좌우지간 오빤 아무것도 몰라.」
「뭘 아무것도 몰라?」
「여자의 마음을. 무슨 말로만 여심을 들었다 놓고 자유자재로 이끈다는 둥 아무 여자나 쥐락펴락 다 꼬실 수 있다는 둥.」
「지금 그 얘기가 왜 나와? 그리고. 내 말이 거짓말인 줄 아니?」
「오빠 말 다 뻥이잖아.」
「누가 그래? 내 코를 보라니까. 난 살면서 뻥친 적 없어. 어? 난 거짓말을 어떻게 할 줄을 모른다고. 내 코는 피노키오 내 귀는 코끼리 귀. ~라는 말이 아니라 난 그쪽 분과가 아니란 말이야 글쎄.」
「그러든가 말든가. 오빠 나 갈께.」
「뭐야 그냥 가?」
「」
「저것이...!」
4
최근 일러스트레이터에서 환상문학잡지 부수석 주필로 변신한 숙녀. 그렇다. 그는 오늘 비비안을 만났다. 물론 비비안이 먼저 연락하고 싶었을 텐데 만약 그렇게 기다리도록 놔두면 그녀가 어떻게 나온다? 왜 내가 전화하면 안돼 라면서 불호령 떨어짐. 헛소문냄. 짜증냄. 멀찍히 피해서 다녀야 함. 뭐 적당하고 착하고 괜찮고 친한, 그런 아는 여동생이면 여자가 남자를 더 좋아할 테니 그럴 테고. 관중이 장기전 전망을 점쳤을 때 뭐라 썩 논평하기 곤란한 사이라면야 불을 보듯 뻔한 말이야 뭐... 내가 오빠 이럴려고 만나? 상향지원 하향지원 또 그 얘기 하려나 보다 싶었는데. 오늘 비비안이 들고온 화두는 그게 아니었다.
장면 전환. 찻집.
Mozart / ”봄은 이미 웃고 있다“ KV.580
「오빠 이제 아예 허접한 칼럼니스트 애칭 굳히기로 마음 정한 거야? 그니까 눌러앉기?」
「허접해? 내가? 봐줄께. 아니~ 어? 그럼 내가 한가하게 조잡한 소설을 쓰기 바라니? 아니면 응큼한 문학교수라는 직명이 그래도 내게 썩 어울릴 거 같니.」
「서론 길게 뽑지 말고 곧장 본론으로 들어가자 오빠.」
「돌림노래든 당김음든 스타카토든 마음껏 오빠를 밀고 당기시지. 얼마든지 쥐락펴락하시라고요. 그러니 마음껏 오빠를 들었다 놓으시도록.」
「호호호. 내가 어디서 봤는데~ 있잖아. 봐 봐 오빠. 응? 보란 말이야. 잘 들어봐, 응? 있지 그게 말이야 내가 어디서 들었는데 누구한테 들었어라? 일단 들어 봐. 자, 보자. 응? 그게 그러니까 말이지 음 글쎄 어머머, 호호호 거 참 나 지들이 거 무슨 막 그...」
「아 쫌! 또 뜸들이니 너? 또?」
「알았어. 알았어. 명쾌히 주제를 말하겠음. 됐지?
주제: 남자 의사들 여자 쌩얼 민감한 이유」
「(표정)」
「왜 솔깃해? 허허허. 그럴 싸하지? 내 그럴 줄 알았다. 내 다 알고서 물건을 덥썩 물어왔어. 허허허허허.」
「내용은?」
「자, 봐 봐. 오빠. 재밌는 얘기 해줄께. 바로 내가. 응? 귀기울여보시라고요 오라버니. 네?
제목 : 남자 의사들 여자 쌩얼 민감한 이유
1단계: 의대 다닐 때 여자 거의 못사귀고 인턴됨. 이때까지만해도 여자에 대한 환상은 그대로 있음.
2단계: 자, 딱 됐어 인턴?! 인턴 때는 여자들 눈에 안 들어옴. 여자에 대한 환상 어디 가겠어?
3단계: 레지던트 올라가며 간호사와 여자 환자들 보며 수도 없이 깨닫게 됨. 어떻게? 분명 외래올 땐 미녀였는데 병실 가보면 음.... 음...!
참고: 어떤 전공의는 결혼하면 쌩얼만 볼텐데, 쌩얼 별로면 정신이 아득해지기까지 한다고 함.
그래서 그 빅데이터 쌓이면 뭐다? 분명 병실에선 평범녀였는데 퇴원 후 외래에서 보면 좀 이쁨. 그냥 자연스레 여자 화장발에 대해 체득함. 동시에 여자 쌩얼의 중요성도 알게 됨. 쌩얼이 예쁘면 입원해서 붓기가 있어도 정말 머리 떡져도 예쁘고 귀여워 보임. 따라서 결론은, 여자몸 많이 다루는 의사들의 경우 본판미인을 많이 따짐.」
「어따대고 애교부리며 오빠를 떠 봐? 안 속아!」
「뭔 소리야?」
「넘어가. 혼잣말이었어. 그게 그러니까 말이지, 음.」
「쟤가 대체 무슨 얘기를 듣고 싶은 걸까? ~라고 생각했지 오빠.」
「」
「그러지 말고 솔직히. 지금 사석이야. 오빠와 난 농밀한 사적 관계라고. 만약 추접스러운 스캔들의 주인공으로 오빠와 내가 단독 물망에 오를지라도, 어? 난 기분 나쁘지 않아. 절대! 오히려 그 비밀스런 주인공으로 당첨되기라도 한다면야 어쩌면 축복 아닐까? 낙선되어도 뭐 툭툭 털고 일어나야지. 언젠가 입선할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서. 그래서 난 추문에 오빠와 함께 얽히더라도 그다지 슬퍼할 일 없음. 허허허. 상황이 이럴진대 뒷담화 못할 거 뭐 있어? 오빠. 나 비비안이야. 어? 언제까지 오빠가 말이지, 나 마라야~ 그런 말만 듣도록 내가 가만 보고만 있을 줄 알았어? 이거 왜 이래? 나 비비안이야, 어?」
「무섭다 너.」
「오빠 낯설다. 응? 오빠 말 참 예쁘게 하시네. 어? 그러니까 말해. 어서. 말 안하고 뭐해? 당장 이실직고하시오 죄인은. 아시겠소?」
「아 쫌! 공석에서는 나서기 좋아하면 안될 주제네. 말하기 좋아하는 숙녀든 수대대회 입상자 출신 남자든, 사석이라면 몰라도 너와 나만 있는 자리가 아니라면 말 아끼는 게 좋을 주제라고.」
「그걸 누가 몰라? 그리고. 여기 오빠랑 나 말고 누가 더 있는데? 없잖아. (몸짓)」
「맞는 말이네.」
「그치?」
「그런데?」
「근데 왜 그 여우들은 발톱을 세우지? 걔네들이 평소에는 미남들한테 (여우/강아지) 꼬리치면서도 이 주제만 나오면 고양이 꼬리 흔든단 말이지. 개는 반가워 꼬리 흔들지만 고양이는 반대라는 거 설마 모르지 않지? 안다치고. 아니, 어? 그러니까 왜! 응?」
「한마디로 남자 = 여자. 이치로 말했을 때 남자와 여자 교집합 반, 남녀 공히 절반은 완전 다르고. 원리로 따지면 남녀 공히 완벽하게 일치하고. 또는 성격상 말하자면 남녀는 말을 섞으면 섞을수록... 워 워 워.」
「아니~ 어? 그러니까 왜.」
「너 꼭 오빠한테 나쁜 배역 시키고 싶니?」
「이미 됐잖아. 많이 했잖아. 이제 잘하자나! 농담이니까 신경쓰지 마시고. 괘념치 마셔 오빠. 응? 오빠. 오빠.」
「앞서 말한 주제에서 제목은 "남자 의사들 여자 쌩얼 민감한 이유". 그래서 결론을 뽑아보면 그거잖아.
첫째, 직업따라 사람따라 쌩얼 많이 따진다.
둘째, 쌩얼과 화장발 격차가 근소한 걸 선호하는 남자를 조심하자.
셋째, 친한 경리나 풀메이크업하는 숙녀에게 스스럼 없는 사이일 때 할 수 있는 농담. 오늘 또 누굴 잡아먹으려고?
넷째, 쌩얼을 사랑해주는 남자를 만나야 비교적 좋다? 20년 사는 동안 쌩얼을 한 번도 못본 남편 있을까, 없을까!
다섯째, 마음 대 마음이 불편하면 오래가기 힘들다? (몸짓) (딱) (손짓) 그래서 요점은 바로, 플라토닉이란 말씀!」
「어렵네. 어려워. 쉽지 않아.」
「OK~! (딱) 바로, 그래서 내가 쌩얼 판독 선그래스를 개발했는데. 캬 내가 그거 발명하느라고 얼마나 고생했는데. 그거 생각하느라고 잔머리 굴린 거 감안하면... 아아 비싸게 팔아야 하는데. 그치만 우리는 얼굴 팔리기 싫고. 내 친구들도 유명해지기 싫다 그러고.」
「옆길로 새지 말고. 그러니까 왜? 오빠. 이제 오빠 어좁이라고 놀리지 않을께. 됐지? 자, 털어놔 봐. 왜 그런지를. 안 그래도 굳이... 어깨뽕 패션 필요없을 거 같은데? 허허.」
「너 남자 외모 보지?」
「응.」
「여자는 남자 외모 봐도 되고, 남자는 여자 외모 보면 안된다. 동의하지 않지?」
「응.」
「네 주변에 멋진 남자들 많니?」
「아니.」
「너가 전에 그랬지? 내 주변엔 순 단춧구멍들 밖에 없다고. 그랬어 안 그랬어?」
「그랬어.」
「여자가 남자 외모평가하듯, 남자가 여자 원판 보는 게 뭐 어때서. ~라는 이치에 썩 반대하지 않지? 아니. 이건 찬성이나 OX 문제가 아니지. 누가, 왜 기분이 나쁜가 그 문제니까. 그렇지?」
「응.」
「너네 동네에서 네 마음에 쏙 드는 남자. 10명에 1명 되니? 안되지? 기준선을 더 낮춰서. 아니 높여서. 네 활동영역에서 네 이상형에 그나마 뽀짝뽀짝 접근하려 노력이나 한 걸 가상하게 여길만한 남자. 100명에 1명 되니?」
「음... 있을까 말까?! 있을 수도 있고 뭐...」
「그치? 그렇다니까. 여자는 화장 전후로 변장을 하는데, 남자는 그런 여자 마음도 만족시켜줘야 하지. 비위맞추지 않으면 고생길 훤하지. 여자말 번역기는 상시 가동이요 툭하면 커피포트 끓기 바쁘지. 나도 한때는 진공청소기였는데 왕녕에 말이야, 그 생각하면 뭘 하나. 안 그래? 배 나오면 배 나와서 싫다, 선물해주면 싸구려라서 싫다. 또 너무 꼼꼼하면 정도 이상이라서 짜증난다. 여자보다 더 섬세하면 불편해서 신경질난다. 말 많아야 할 때 말수 없으면 것도 영 아니다, 말수 아낄 때 여자보다 앞서서 뭔가 바쁘다? 몹시 불쾌함. 한대 쥐어박고 싶음. 그치? 잔말말고 따라와를 못 이긴 척 허락할 때가 따로 있는데 남몰래 NC를? 이 인간이...! 여자 본판 대번에 파악하는 남자들 선구안이 좋으면 또 인성은 별 볼일 없을 거라는 둥. 그러니가 남자 직감이 여자 육감을 앞서가서야 쓰나. 좋게좋게 비위나 잘 맞출 것이지. 허허허. 여우와 신포도 우화처럼, 남자가 자길 좋아할 가능성이 엿보일 때 주로 그 남자를 칭찬하질 않나. 어떻게 상향지원에 성공한 아가씨는, 부부도 명백히 상하계급이 존재한다고 하질 않나. 하향지원 받아줬다가 남자 머리꼭대기에서 약간만 낮춰져도 인상쓰며 불쾌해 하시질 않나. 아무튼 마음에 뭔가 스크래치 발생하면 불행, 절망, 대실망. 폭망. 어? 저처럼 촉 좋은 남자들은 여자를 무슨 진한사랑의 도구 정도로만 여긴다는 둥 친구의 남편 험담에 신나도록 맞짱구치다가. 딱 걔랑 헤어진 다음에 180도 바껴서 내 남자친구랑 사겨는 주면서 환승이별감을 물색하질 않나. 다 그렇다는 게 아니라 일부. 극히 일부? 그랬으면 좋겠음. 허허. 허허허. 여자들 막 친구들끼리 사석에서 이렇게 말하지? 병원에 입원해보니 쌩얼로 이쁜 여자 거의 없던데. ~라고 말이야. 그래 안 그래? 넌 안 그러든?」
「」
「자, 그러니까 말이야~
네 친구들끼리 저런 비슷한 주제로 얘기 많이 해봐서 알 거 아니니. 응?
네 친구들끼리 긍정 부정 비율 따져서... 상관관계 있지? 무엇과, 라고는 확정하지 않겠어.
네 친구들끼리 낙관 비관 비율 따져서... 밀접한 연관성 없지 않지? 그런데 왜, 라고 내 입으로 어떻게 말하니. 안 그래?
매사 부정적인 남자, 좋니? 자상하지 않고 툭툭 말 막하는 남자, 사랑스럽니? 변죽만 울리다 결국 모든 걸 지 하고 싶은대로만 하는 독선가, 싫니 좋니?」
「」
「그리고 또 어차피 저 주제나 딴 사랑론이나 다 그게 그거.
사랑 불륜 이별 이별 원인 환승이별 속마음
남자 최선을 다해라 남자 탓 권리 없음 남자 못남 하면 안됨 너만 여자냐?
여자 최선/중간/막살자 남자 탓 권능 있음 남자 탓 할 수 있음 있을 때 잘해!」
「」
「만약에 내가 여자라면 난 남한테 잘 보이기 위해서 화장하겠어. 날 꾸미는 게 뭐 어때서? 그게 왜 나쁜 건데? 허영심 인정하면 편해. 불쾌하게 뭐 하러 짜증내. 여자가 남자 좋아하는 게 뭐 죄니? 화장발이라는 건 내 자존감도 높여주는 동시에, 여자들끼리 엄마가 딸한테 말하지. 뭐라고? 딸아 우리 같은... '우리 같은'은 빼고... 화장은 예의란다. 알겠니? 라고 말이야. 그게 뭐 일종의 상례니 모종의 덫이니 그런 거 모르겠고. 그야 어쨌든 나 잘난 맛에 사는 인생, 내가 여자인데 난 화장 1도 안해도 남자들 막 처음 보든 친하든 다 나한테 환장하는데? 남자들이 내 엉덩이 쳐다보느라 정신 차리지 못하는데? 막 그냥 딱 미쳐버리는데? 그런데 내가 왜 "여자는 남자한테 잘 보이기 위해서 화장한다"~라는 넌센스에 화를 내야 하는지. 난 통 이해할 수 없다네. 아시겠소? 여자인 나, 화장발 조명발 옷발 사진발 그 어떤 숙녀들과 상대해도. 민낯인 난 하나도 꿇리지 않는데 뭐 하러 내가 그런 잡담에 짜증내야 하겠니. 안 그래? 그래서 우리 같은 여자들은, 내가 오빠 이럴려고 만나?, 라는 말을 애시당초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네. 도저히 기회를 주지 않은데 아니 어떻게! 그럴 전적 자체를 만들지 않으니까. 우리는 그런 주제라면 큰소리 떵떵 칠 수 있어. 그럼. 왜 못해? 해. 잘해. 너무 잘해서 탈이긴 하지만. 재수없지? 그치? 나도 알아. 어떻게 모르겠니. 그래서 내가 말을 하지 않을려고 했는데, 너가 막 겁박하고 뽐뿌질하고 그러는데 나라고 뭐 별수 있니? 허허허. 너도 그거 알아둬 얘. 응? 대어는 쉽지 잡히지 않는다 너?! 왜 내가 틀린 말 했니? 아니잖아. 응? 열린 문으로 개들이 들어온단 말이야. 자세. 가드 올려야지 그게 뭐니. 선구안 뒀다 뭐하게? 구식탱탱묵은 경영이론대로 따라했다가 작업에 탈탈 털려서 폭락한 주식 들고서 한탄할 때 그때사 선구안으로 싱커냐 너클볼이냐, 피칭터널이 직구보다 더 긴 포크볼이냐 따지시게? 아니~ 차라리 마구를 주문하시지. 이모말 곧이곧대로 듣다가 나중 자기 발등을 찍고 싶은 날이 올 수도 있어. 그분들 인생이 어디 그렇게 될 줄이나 일찍히 상상이나 했겠니. 허허허. 좋은 백댄서는 묻지 않고 주는 거야 얘. 허허. 아니, 그건 우리끼리 아니. 그건 남자들끼리 할 말이고. 복숭아는 익었을 때 떨어진다는 거지. 헌데 그 전에 먼저 벌레먹는다고? 아, 것도 남자들끼리.」
「이거 봐 이거 봐. 오빠가 이러니까 여자가 없지. 그래서 오빠한테서 숙녀들이 떠나가는 거야. 이래서 오빠가 안되는 거라고. 알아? 이러니까 오빠한테 여자가 없는 거란 말이야. 에라~ 인간아. 어? 오빠는 잘해 줄래야 잘해 줄 수가 없어. 알아?」
그러면서 비비안은 냉큼 가버렸다.
이미 떠나버린 그녀의 뒷모습 그 잔상을 감상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는 이렇게 혼잣말을 하지 않을 수 없었고.
「왜 그래? 내가 뭘 잘못했다고. 어? 왜 나만 가지고 그러냔 말이야? 왜 대답이 없어! 말하기 싫은 사람 괜히 들쑤셔서 꾸역꾸역 말하게 만들어 놓고. 또 지나니까 말했다고 난리긴 난리야.」
5
군림하는 남편을 아내가 통치하다. NB는 대체 왜 인공지능 지니가 잠잠한 것일까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전화가 걸려왔다. 톰이었다.
「어. 톰.」
「어, 톰?」
「그럼 늬가 톰이지 동네 똥개 찰리냐?」
「넌 꼭 말을 해도, 웃겨. 녹슬지 않았어. 허허.」
「그게 웃겨? 정말? 배꼽 빠지도록 웃겨줘?」
「정말이겠냐! 야, 시끄럽고. 와라.」
「오라고?」
「그래. 어서 와 우리 아지트로.」
「늬가 뭔데 오라 가라야? 어?」
「오기 싫어? 그럼 오지 마.」
「누가 싫대? 왜 진작 오라하지 않았냐 그 말이지 내 말은.」
「나도 좀 쉬어야지. 만나달라는 여자들 다 만나줄 수는 없는 거 아니겠어?」
「그건 그렇지.」
「잘 아네. 그러니까 어서 와.」
「알았어.」
1시간 후.
글쎄... 이걸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아지트에는 톰 혼자 밖에 없음.
「기대도 안했다.」
「마! 니 내가 누군지 아나!? 어? 내가~ 어? 내가~ 잠깐만. 난 누구지? 뭐야 넌?」
「너 옛날에 안 그랬잖아. 잘 나갔잖아. 우리 친구들 가운데 인기로 너 따라간 애 있었냐? 불세출. 그런데 늬가 어쩌다...!」
「외롭지 않다.」
「그럼 나만 뭐 도시의 고독한 여심 사냥꾼이냐?」
「인생 뭐 있냐? 오늘은 사람이고 내일은 생쥐다, 카프페디엠!」
「너 상태가 많이 안 좋은 것 같구나. (절레절레)」
「왜 마음에 안 들어? 그래 그럼. 오늘은 남자고 내일은 개다. 우리는~ 워 워 워.」
「포기했어.」
「뭘?」
「찬란한 신세계에서 새로운 인생을 사는 듯한 기분.」
「야, 너. 내가 다 꼬셔줄께.」
「뭘 꼬셔? 늬 앞가림이나 잘해. 너 바지 지퍼 열렸어.」
「정말?」
몸짓.
「늬가 그러니까 안되는 거야.」
「난 아직도 대타들 꽤 돼. 그런 너는?」
「말 했잖아 좀 전에. 포기했다고.」
「어머 바보. 이런 미련곰탱이 같으니라고. 늬가 남자냐?」
「그럼 내가 여자냐?」
「야, 너. 어? 너 임마. 응? 포기하면 편하다는 걸 누가 몰라? 나 많이 참고 있다는 거만 알아둬.」
「뭐? 난 더 참고 있어. 뭘 알고나 말해 임마. 어?」
「아따 거 드럽게 깝깝시럽소잉.」
「그거 안 어울려 너한테. 하지 마. 좋은 말로 할 때.」
「그렇다고 너 방심하지 마. 내가 아는 여동생들 너한테 전부 다 소개시켜준 거 같지? 나 톰이야. 어?」
「그럼 늬가 톰이지 생선이냐?」
「어허. 내가 활동 안해서 이렇다니까. 어? 마음만 먹으면,」
「또 또 또.」
「그 말 들어봤니?」
「어떤 말?」
「검객은 자기 제자에게 가르쳐준 것보다 한 가지 재주를 항상 더 가지고 있다.」
「가능한 대로 해라, 원하는 대로 못하면. 그만 내려 놔 이 녀석아. 야, 나 간다. 다음에 보자.」
「나 살아있어. 애들 부른다, 어? 진짜. 나중 후회하지 마. 야, 진짜 가냐? 의리없이?」
그렇게 NB는 아지트를 떠나서 집으로 갔다.
30분 후.
그런데 핸드폰을 놓고 왔네? 그는 돌아갔다. 그렇게 아지트에 거의 다 와서 못 볼 걸 결국 보고야 말았다.
바로 크리스티─톰─비비안, 다정스레 팔짱낀 삼인방 뒷모습을!
무슨 게임하나? 그런가?
6
하나도 부럽지 않았다. 관심 전혀 없었으니까. 단지 건수만 없을 뿐. 아니, 껴달라 그럴까? 어쩌면 걔네들이 진정 바라는 게 그걸 수도 있잖아? 아무튼 그런 뒷모습을 난 하나도 선망하지 않는다는 것이 최고로 중요하다. 그게 진짜니까. 딴 거는 다 필요없다. 사랑? 사랑은 없어~! 농담이고. 아니 진짜로, 어? 오히려 누가 날 귀찮게 하지 않으니까 더더욱 삶이 즐겁고 인생이 마냥 신나는 것만 같았다. 정말이다. 진짜라고. 거 참 왜 사람 말을 안 믿고... 난 토라지지 않았다. 잔소리를 스테레오로 들으라고? 모노 1개만 해도 부인 다변에 득도한 남편 얼굴을 바로 옆에서 봤을 때 귀에서 피가 흐르는 걸 직접 봤는데? 생생히, 현장을, 목격했단 말이다. 캬~ (절레절레)! 차라리 돌비 시스템이 낫긴 낫겠다. 아니 그런가? 정신사나움. 산만해서 돌아버림. 진공청소기 전적에 치명적 찝찝함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니 멜로드라마 애호가든 상남자들이든 추구하며 동경하는 건 결국 딱 세 가지로 귀결되는 셈. 그게 대체 뭘까? 첫째 더티 러브, 둘째 추접스러운 염문, 셋째 찐한 사랑. 그러고 보니 다 그게 그거네. 그러거나 말거나. 그게 뭐 어쨌다고? 말이 그렇다는 거지.
어찌 됐든 우리는 그렇게 융통성 없는 남자가 아니다. NB도 그리 썩 꽉 막힌 남자가 아니란 말이다. 안 그래도 긴 생애사 전략이라는 둥, 짧게 단타와 뻔트와 잔뻔치 쨉쨉쨉 계속 쨉 내내 쨉 끝까지 쨉뿐인 쉐도우 복서의 비애는 곧 뭐래더라? 그래. 짧은 연애사 전술이라나 뭐라나. 하여간에 말이야, 어? 거 참 나 진짜 거 증말 하여튼 진짜진짜 뻔트 좋아한다니까 글쎄. 누가 아니래? 말릴 래야 말릴 수가 있어야지. (절레절레) 아 그러니까 잔소리를 절로 부르지 왜 아니겠어. 흥! 누군 뭐 왕년에 여자깨나 안 울려본 줄 아시나? 됐다 그래. 별 무슨 깽깽이 말미잘 에잇 재미없다.
아무튼 그 인간은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아무 숙녀나 다 웃길 수 있다. 여자는 웃으면 뭐다? 간지러운 호감말고 입이 귀에 걸리는 폭소를 절로 부르는데, 여자는 웃으면 끝. 따라서 그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여자를 꼬실... 웃길 수 있다. 그러니까 이제 질린 거지. 플레이보이계에서 제발 남아주시라고 바지가랑이를 잡고 늘어져도 매몰차게 은퇴한 거고. 복귀는 꿈도 꾸지 말라, ~와 정반대되도록 부디 한번만 만나달라는 여자가 (손차양) 어? 아 글쎄 끝이 보여야 뭔 말을 하든 말든 할 거 아니냐고요, 네? 여자라면 우리는 신물이 난다. 뭐 양이 적네? 적긴 뭐가 적어. 아주 그냥 징글징글하단 말이오. 뭐 달지 않은 도넛 없냐고? 그럴 꺼면 쓴 에스프레소를 드시지 뭔 허튼 소리야. 어? 뭐가 어쩌고 어째? 이 사람이...! 이 양반이 시방 보자 보자 하니까... 뭐야. 왜 근데 주위에 아무도 없어? 뭐 1인극이라 치고.
그런데 내가 왜 그 인간 입장 변호를 하고 있지? NB 그 허접한 녀석이 대체 뭐라고. 꼴통 같은 놈. 찌질한 녀석. 더럽게 재미없는 놈. 개새끼. 멍청이. 허세대회 예선탈락감. 허풍업계 퇴물. 허영협회 퇴출감. 입만 열면 뻥. 늘상 뻥. 노상 뻥. 입을 열면 거짓말이 그냥 자동적으로 나옴. 그렇다고 지가 눈치가 있어 아량이 있어? 배포도 요만~해. 어? 구체적으로 나쁜 놈, 지능적으로 더 나쁜 놈. 전자와 후자를 동시 석권. 어? 지 주제를 알아야지 말이야. 어디서 줏서들은 거 짜집기해서 칼럼쓰고. 어디서 줏서읽은 거 교묘히 섞어서 환상문학잡지에 연재하고. 어디서 엿들은 거 다 지가 경험한 거나 된다는 듯이 돌려막기하며 아는 척하고. 찌질한 놈. 바보. 미친놈. 지가 생판 모르는 년 겨드랑이가 도대체 왜 궁금한데? 도대체가 말이야, 어? 썩을놈. 옆에서 가만 지켜보니까 말이야 거 무슨 젖소 빨통도 아니고 아가씨가 거 어째 너무 심한 거 아니야? 어? 사람이 말이야, 어? 젖소야 순수한 우유 담백한 치즈를 위해 젖통에서 우유를 짜는 거고. 젖소와 숙녀가 어디 같아? 같냐고. 어? 뭔 라쿤 성감대 긁어줄 일 있어? 애무 못해서 설겆이를 그렇게 열심히 하시나? 어? 정말 스포츠 야유가 뭔지 보여줘? 그래? 보여줘? 헛소문이 언젠가 하다 하다 유명 트로트가수(컨츄리 가수) 가운데가 어쨌다더라, 라는 헛소문이 퍼져서. 기자들 다 모아놓고 조명발 끝짱나도록 터지는 가운데. 벌컥~ 책상 위로 올가서시는 것처럼... 보여줘? 그런데 뭘 보여줘. 보여주긴 누가 보여줘. 아무튼 심심하면 썩은 미소 줄여서 썩소. 어? 능글맞은 천덕꾸러기. 능글능글 색마. 더럽게 추접스러운 호색한. 허접한 난봉꾼. 조잡한 바람둥이. 밥통. 쪼다. 등신. 어? 한마디로, 찐따! 완전 찐따. 그러니까 여자가 없지. 지가 뭐 여자를 알어? 어? 아니~ 그러니까 말이야~ 왜 지금 그 허접쓰레기 같은 놈 대변인을 자처하냔 말이야. 어? NB 그 인간 도대체 뭐하는 작자야? 하여튼 애용하는 이니셜 하고는 촌스럽게 대표적으로 NB. NC? 나이트클럽. 우웩~~~~ 누가 촌스럽다고 하지 않을까 봐 그러는 거야 뭐야. 밑도 끝도 없이 잔소리나 늘어놓고 툭하면 개 풀 뜯어먹는 헛소리나 나불대면서. 뭐 꼴에 칼럼니스트? 이런 젠장. 밑도 끝도 없이 뭔 개 벽따귀 같은 문학. 예술이 뭐 지한테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거야 뭐야. 허구헌 날 인터넷에서 이상한 사진과 영상들에 기웃기웃 볼까 말까 고심이나 하고 말이지. 하여간에 한심한 작자야. 정체가 의심. 흑심은 의뭉 그 자체. 인생이 군침. 지가 사랑을 알아? 사랑은 개뿔. 늘상 개침 질질. 웬만히 껄떡거려야 말을 안 허지. 눈빛 보면 언제나 찝쩍. (절레절레) 아무튼 야유는 이쯤 줄이기로 하자.
그래서 집에 가서 소파에 자빠져 TV나 보기로 했다. 그거면 된다.
7
별빛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
바람 부는 갈대숲을 지나
언제나 나를 언제나 나를
기다리던 기다리던 너의 아파트...
추억의 노랫말을 그는 기억했다. 3분의 마법에 나오는 언제적 신조어인 아파트. 아파트? 아파트 하면 그 비디오가 기억남. 바로 조의 아파트(1996)! 줄여서 JSA. 감독: 존 페이슨. 출연: 제리 오코넬(조), 메간 워드(릴리 도허티). 그런 촌극하면 또, 그래서 나는 도끼 부인과 결혼했다. 지금이라면 어떻게 저런 촌스런 드라마를 처음부터 끝까지 차분히 감상할 수 있었을까 싶은데. 그도 그럴 것이 조의 아파트가 1996년작. 그럼 불과 오래지 않은 그 근방이 생각남.
1993년: 고2때 학교가 31사단 옆으로 이사감. 하교길 스쿨버스 내에서 고1 복학생끼리 싸움 발생. 그 2명이 이상함. 1명은 나중 10년 후 NB와 브로맨스 때문에 시트콤 친구와 여동생들 난리남. 1명은 이름이 NB와 같음. 그렇게 복학생 2명이 스쿨버스 내에서 싸운 장소도 또 가관. 가관? 신비. 선거 직인이 점 복(卜)자로 바뀐 해가 1994년인데 그보다 훨씬 앞선 초5쯤에 셋이서 만난 장소가 그곳임. "엄마&엄마 계모임 남자 경찰관 즉 친구라고 부르긴 뭐하고 계모임원끼리 아는 오빠&나". 그렇게 엄마 나 외갓남자 셋이서 포도농장이던가 비닐하우스를 방문한 장소가 그곳 점 복(卜) 도로 인근. 요약하면 고1복학생끼리 스쿨버스내 싸움 발생 장소 = 엄마가 막내 손잡고 외갓남자 만난 장소. 아, 여기서는 그건 설명이고 핵심은 스쿨버스에서 싸운 애, 나중 NB와 브로맨스 관계였던 '행진해' 이름남자. 걔가 입술입천장갈림증(속어로 언청이)
1995년: 삼류 대학교에 입학했는데 그게 입학2회. 1994년이 삼류대 창설이자 신입생 1회. 당시 94학번 95학번 같은 학과 선후배끼리 모임 잔칫날. 선배 가운데 같은 고등학교 선배도 있었음. 즉 고등학교&대학 같은 과 선배. 레스토랑에서 하필 부른 노래 제목이 '아파트'. 그 형도 입술입천장갈림증(속어로 언청이).
뭐 그건 그렇고. NB는 집에서 그처럼 공상만 하기 지겨워졌으므로 도시 근교 점 복(卜)자 거리가 사거리로 바뀐 어느 동네를 구경가기로 했다.
그렇지만 그건 별볼일 없을 게 뻔했다. 그러므로 그 작전은 때려치웠다. 그 대신에 버뮤다 리조트로 발길을 돌렸다. 왜냐면 거기 친구들이 개장식에 그를 초대했기 때문이다. 끝.
1
사랑이란! 여자의 마음을 사뿐사뿐 띄워주기도, 빙글빙글 돌아버리게도, 포근히 녹여버리기까지 모두 문제 없는 신비한 환상머신. 그건 다름 아니라 바로 너? 사랑이고 자시고 그게 지금 나랑 뭔 상관이 있는데. 냉수 마시고 속 차리자. 꿈 깨야지. 그렇긴 하다만 말이야, 응? 애타게 꿈꾸어오던 욕정, 꿂주릴 대로 꿂주린 늑대의 심정. 앗, 내가 그렇단 말이 아니라 내가 아는 어떤 친구 얘기임. 정말임. 진짜임. 그게 만약 거짓말이면 난 사람도 아님. 만일에 그게 뻥이면 난 개다 개. 어? 뭐 그건 그거고. 아무튼. 내면의 열망을 마냥 모른 체할 수도 없는 것 아니겠어? 아니긴 뭐가 아니야! 뭣이 어째? 꿈 깨란 말이야. 케케묵은 신비 구식탱탱묵은 환상. 다 부질없어. 몽땅 재미없다고. 알아? 지금도 생각나지만... 됐어. 그만 했으면 됐다고. 아 쫌!
아니 내가 어쩌다가? 사무실에서 두뇌 잔근육 키울 생각은 않코, 한사코 혼자 잔소리 꽥꽥 지르며 놀 궁리만 엿보는 인생. 누가 아니래. 말하자면 어쩌다 자발적 가택감금이 상책이긴 한데. 하오나 헤라클라스가 허당들 아지트에 갇힌 듯 하니 뭐 때를 기다릴 수밖에. 우리는 그렇다. 우리야 마누라 등쌀에 못 이기고, 잔소리 참기에 득도하며, 여편네 엉덩이에 깔려 사는 신세는 아님. 따라서 할 말 하고 뻥치지 않음. 그럼 뭘 해 인기 바닥인데. 그럼 뭘 하냐고 그래 봤자 일기장에 그냥 험담만 험담만 꽉 차기 밖에 더 하냐고. 그러니까 말이지, 여자가 왜 뒷담화를 좋아하고, 남자는 그런 여자들을 왜 더 좋아하는지 통 알 수가 있어야지. 우리는 여자 하나도 관심 없음. 여자 뒤꽁무늬 쳐다보는 허당의 허접한 심정, 다른 사람들 얘기일뿐. 하지만! 그저 개침이나 흘리면서 놀고먹는 칼럼니스트라 핀잔 받으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 때문에 나는 곧잘 땀을 뻘뻘 흘렸다. 이건 아니다. 이건 정말 아니라고.
그래서 나는 사무엘을 만났다.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의 정답은 그랬다. 녀석을 만나면 즐겁다. 아마도 녀석은 숙녀들에게 무인도에 데려가고 싶은 남자로 손꼽히기, 에서 너무 많이 거론되어 짜증날 것이다. 믿든가 말든가가 아니라 진짜다. 내 자랑이 아니지 않나. 단지 사실일 뿐. 아무튼 심심할 땐 친구를 만나야 한다. 그렇다고 한참 재밌는 건수가 생기고 찬란한 쾌감마를 타면 우정을 버리란 말은 아니다. 사랑과 인생과 정열의 비밀이란 꼭 뭐는 뭐다가 아니니까. 그때 그때 맞춤복 재단사로, 때로는 마법사이자 요정으로 우리는 변신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말은 그럴싸 한데 다 시덥잖은 농담도 뭣도 아니다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사무엘을 만났다는 게 중요한 거다. 그게 발단이니까 말이다.
2
자, 그렇다고 전개가 용암이 흘러가는 속도로 막 순식간에 이어지지는 않았다. 일단 사무엘과 나는 카페에서 만나 대화를 나눴다.
Domenico Scarlatti / Stabat Mater
「너 이 음악 아니?」
「왜 마음에 안 들어?」
「아니~ 그게 아니라~」
「너 아직도 입버릇처럼 말 시작할 때 아니~ 아니~ 그러니?」
「넌 역시나 남 말꼬리잡고 늘어지기 여전하구나.」
「내가 혹시 변했으면 너가 실망할까 봐. 허허허. 근데 아까 뭐 물어봤지? 아! 이 음악 내가 신청하지 않았어.」
「뭐 이딴 카페가 다 있어! ~라는 말은 아니고. 뭐 나름 생소하다고나 할까?」
「너도 여전하네 말 비꼬는 거. 넉살. 교태. 뭐 교태? 그건 아니고. 능청꾸러기 사무엘. 허허허. 그건 그렇고. 왜 만나자고 했냐?」
「왜 만나자고 하기는 누가 왜 만나자고 해?! 늬가 나 귀찮게 해서 내가 여기에 나온 거 아냐. 생각 안 나? 그리고. 너 옛날에 '왜 전화했냐 왜 만나자고 했냐' 그렇게 따지던 친구가 아니었는데. 너 뭔 충격먹은 일 있니? 그게 엽기토끼 때문이야 아니면 말 안듣는 당나귀 때문이니? 그도 아니면 못 말리는 코끼리?」
「코끼리 같은 소리나 하고 있네. 집어치워. 비키란 말이야. 못 들었어?」
「너 그러고 보니 상태가 좀 안 좋구나.」
「나도 알아.」
「안되겠다. 아무래도 이 형이 너한테 특단의 대책을 제시하는 수밖에. 그거 말고는 방법이 없다. 캬~ 이거 이거 내가 생각해도 기가 막히단 말씀. 대단해. 내 입으로 이런 말하기 쑥스럽긴 하다만 그렇다고 뭐 틀린 말도 아닌데 뭘. 고양이가 배고프면 빵 껍질에도 만족한다? 우리는 아무리 배가 고파도 버터 빵에 바르고, 굽고, 요리하고, 정갈한 접시에, 그윽한 향기와, 고상한 음악, 또 청초한 숙녀? 그런데 내가 왜 그걸 너한테 설명해야 하지? 뭔 얘기를 하다 만 거야 글쎄. 아무튼 호랑이가 배 고프다고 풀 뜯어먹는 거 봤냐?」
「어제 요 앞에서 고양이가 진짜로 풀 뜯어먹던데?」
「늬가 그래서 안되는 거야. 알아? 늬가 그러니까 여자가 없는 거라고.」
「너 또,」
사무엘은 재빨리 검지로 내 입을 막았다. 그러면서 노트북을 펴서 어떤 웹페이지를 내게 보여주었다. 내용은 그랬다.
뉴발란스 챌린지 대회!
언제 : 내일
어디서 : 버뮤다 섬
무엇을 : 깜짝 대회
상금 : 아차상부터 인기상까지 상금은 상금대로 물 반 고기 반
어떻게... 누가...
「너 안 바쁘지? 내가 너 그럴 줄 알고 다 준비했어. 넌 인마 형만 믿으면 돼. 넌 그냥 내 옆에 붙어만 있으면 저절로 재미난 일이 생긴단 말이야. 어? 버뮤다 섬 알지? 여기서... 얼마 안돼. 가까워. 게다가 거기 참가하는 성비? 말도 마. 내가 괜히 레이더를 가동시켰겠냐. 허허. 심지어 다리도 놔졌대. 너 거기 안 가봤지?」
「전에 가봤어. 딴 친구랑. 거기에 미니산이라고 있는데 그 토속전통 때문에 연초에던가 거기 산꼭대기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거든? 근데 당시 친구랑 둘이 거기 올라가서 빨가벗고 오줌쌌어.」
「그게 다야?」
「딴 데 가서 빨가벗고 수영도 했어. 여자랑 연애를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더라고. 그럼 어쩔 수 있나? 친구 밖에 더 있어!」
「그러니까 네 말은 너 거기 가봤다는 거네?」
「어. 그때도 다리는 놔졌는데. 한 20년 됐을 걸? 다리 놓여진 지가.」
「난 왜 몰랐지? 난 그거 방금 생긴 줄 알았는데.」
「널 보면 내가 아주 답답하다~ 답답해. 응?」
「난 뭐 너보면 안 그런 줄 아니? 내가 널 보면 아주 그냥 징글징글하다, 어?」
「나보다 늬가 더 허접해. 넌 옷 입는 게 그게 뭐니? 누가 조잡하다고 지적질 안해? 내가 해줘? 어? 해 말어? 어?」
「워 워 워. 워 워 워. 지금 이럴 때가 아니지 않나 친구. 어? 그러니까 갈 꺼야 말 꺼야?」
「넌 거기 나 안 데려갈려고 했니? 이 자식이 언제 이렇게 비겁해졌지? 내가 너 그렇게 가르쳤어? 내가 너 엎어키웠어 임마! 어?」
다음 날 나와 사무엘은 만나 버뮤다 섬으로 떠났다.
과연 그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상상도 못한 채 말이다.
3
우리는 버뮤다 섬에 도착했다.
앞뒤 시간 순서가 뒤죽박죽되는 영화처럼 복잡하면 읽다 퍼지기 십상이니 미리 결과를 밝히자면 이렇다.
버뮤다 섬에 도착 → 대회장은 한산 → 경기 시작 → 이상한 걸 막 시킴 → 도망감. 난 도망가고 사무엘은 남음.
결과가 이랬는데.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팀을 짜서 경기를 진행하던 중. 우리팀 팀장이 자꾸 이상한 걸 시켰다.
[임무 1]
"너는 얀센, 존슨앤존슨, 머크, GSK 같은 거대 제약사 영업사원이다. 그래서 저기 보이는 약국에 들어가 영업을 해라. 당신이 이미 보험왕 자동차판매왕 등 영업의 화신임을 증명하기만 하면 된다. 그렇다고 아직 뽐뿌질이 좀 덜 됐나? 좋다. 자, 이걸 받아라. 명함이 있다. 즉 살짝 뻥을 치는 거다. 당신은 바로 저기 보이는 저 버뮤다 의과대학원 교수이자 병원 인턴인 것처럼 쓱 다가가서 몇 가지만 물어보면 되는 거다. 그게 우리팀의 첫번째 임무다."
그래? 처음부터 끝까지 멍청하게 뛰기만 하는 마라톤 대회. 재미없는 거 다 안다. 그래도 하면 보람 있고 좋긴 하다만. 우리는 그런 거 다 해 봐서 안다. 그런데 이번엔 색다른 거. 그러니까 이상하지만 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했다.
[임무 2]
"가서 저 숙녀를 꼬셔라."
뭐라고? 밑도 끝도 없이 첨 보는 아가씨를 꼬시라고? 누가 못할 줄 아시나.
그런데 중요한 점. 바로, 사람이 없었다. 아니 누가 있어야지 꼬시든 말든 할 거 아니냐고. 사무엘도 맞장구를 쳤다. 내 말이~ 라고 말이다.
[임무 3]
깃발을 주면서
"저기 보이는 저 앞산에 올라가, 정상에 파란 깃발을 꼿아라.
저기 보이는 저 뒷산에 올라가, 정상에 빨간 하트를 묻어라.
저기 보이는 저 언덕에 올라가, 치마 입은 허수아비가 들고 있는 가방 → 거기에 보면 리모콘이 있다 버튼이 많을 텐데 하늘색 버튼을 눌러라 → 그러면 곰인형이 춤을 출 것이다 → 그 때문에 개인형은 물거품을 발생시키고 → 그렇게 분홍색 풍선... 실은 그거 콘돔이다 대회를 위해 제작된 한정판 특수 콘돔, 그걸 터트려라 → 단, 그냥 막 터트리면 안되고 바로 이 노란색 뿅망치로 말이다.
[임무 4]
......
난 사무엘에게 말했다.
「사무엘. 그런데 우리가 이걸 왜 해야 하지?」
「그러는 넌 그걸 왜 하고 있는데?」
「아니 그냥 뭐 일단 시작했고. 또 하다 보니 하긴 하는데. 처음부터 뭔가 이상했어. 이상해. 안 이상할 수가 없잖아. 그래도 일단 기다려본 거지. 최근 내 삶이 무료했으니까 기다려본 거라고. 미완의 환상머신 대신 행운의 여신이 물어다준 건수 그 신비감에 흥분할 것만 같은 예감, 없음. 은밀한 암시, 꽝. 기대 안 함. 그래서 너한테 의뢰가 온 거고. 여기까지 와서 대회 참가. 딱 참가했어 했다고. 어? 그래서 흥미진진한 예감대로라면 말이지 짜릿한 손맛 기발한 흥분. 놀라운 행복감. 절묘한 환희. 점점 재미있어지는 전개. 대실망시키지 않는 뭐 나름 괜찮은 절정. 그걸 기다리는 내가 바보니? 어? 정말 꾹 참고 기다려도 기다려도, 이 냥반들이 누굴 바보로 아나? 어? 하긴 지금 와서 말이지만 냉정히 판단해보면, 아니 그래도 그렇지 말이야. 어? 나만 이래? 넌 안 그래? 너도 그럴 거 아니야?」
「난 기다려볼 꺼야. 좋은 날 오겠지. 쥐구멍에도 언젠가 볕 들지 않겠어?」
「늬가 쥐냐? 내가 좋은 개구멍을 알고 있는데~」
「그건 일단 나중에. 지금은 치즈에 줄이 달렸건 떡밥에 낚싯바늘이 스쳐지나갔건. 결을 봐야 할 것만 같아. 왠지 모르지만 난 지금 그렇게 생각해. 어딘가 모르게 그래야만 할 거 같거든.」
「너 원래 그런 애 아닌데. 너 좀 이상해.」
「나도 알아. 나 이상한 거. 넌 뭐 정상인 줄 아니?」
「무슨 소리야? 내가 왜 정상이 아닌데. 나 정상이야. 나 정상이라고. 나 멀쩡해. 나 미치지 않았어. 내가 뭐하러 미쳐? 나 안 미쳤어. 이거 왜 이래?」
「미치지 마. 그럼 됐지?」
「어? 어.」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이건 뭔가 이상했다. 도저히 끝까지 기다리기엔 이상해도 이상해도 끝까지 이상했다. 몰래 먹는 떡이 맛있긴 한데 모른 척 기다려도 이건 아닌 것만 같았다. 구두가 맞으면 신어라, 우리가 어찌 모르랴. 하지만 유리구두는 내게 맞지 않았고, 난 달릴 거 달렸고. 그게 남의 것도 아니고 내 거고. 이건 아니었지. 그럼. 아니다마다. 4월의 비가 5월의 꽃을 가져온다지만 올 듯 말 듯 올 뻔 말 뻔, 줄 듯 말 듯하다가 거의 탐스런 열매를 따먹을 뻔 하다가~ 결국 꽝! 뭐? 이런 젠장. '주겠다' 2번보다 '가져라' 1번이 낫다는데 또 뜸들이기? 이건 뜸들이기도 뭣도 아님. 대충 감 왔다. 느낌 오지 왜 안와. 예측 가능했다. 추리 못할 수가 없었다. 소망 품을 상황이 아닌 것이다. 희망을 탐구하기엔 일기예보가 썩 미덥지 않았다. 집에 가서 고급 망원경이나 싸구려 단안경으로 어디 막 여기저기 보다가 바람결에 뭇처녀의 치마가 나부끼는 것을 관측하는 게 차라리 나을 것만 같았다. (물론 말이 그렇단 거고).
그래서 나는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어머머머머, 그런데 사무엘은 안 가겠다네? 끝까지 기다려보겠다니! 답 뻔한데? 아니 왜? 번잡한 속세보다 조용한 자연이 좋다는 건가? 뭐지? 뭐지? 혹시... 에잇 아닐 거야. 그럴 리가 없어. 아니지. 또 몰라. 설마... 버뮤다의 정력가로써 신기록 수립을 위해서? 사무엘이 무슨 코흘리개 꼬마도 아니고. 그럼 대체 왜지? 알 수가 있나. 이 고집불통 사무엘. 하긴 녀석과 내가 2 대 2로 소개팅하면 내가 불리하다. 내가 마음에 들어하는 아리따운 숙녀는 꼭 사무엘한테 보자마자 홀딱 반하기 마련. 닭 쫓던 개 지붕쳐다보는 심정을 아슈? 한두 번도 아니고? 그래서 난 녀석을 내버려둔 채 혼자 집으로 돌아갔다.
4
일주일이 지났다. 버뮤다 섬에서 돌아온 지가.
여기서부터는 필름을 빨리 돌리겠음.
여기서부터는 필름을 빨리 돌리겠음.
왜냐, 왜냐하면 그러다 약간 재밌는 부분에서 정상 속도로 보려면 시간이 부족하니까.
그렇게 일주일 경과.
그 일주일 후 스티브가 꼬심.
제라드가 버뮤다 섬에 모스맨 대학교를 지었다는 말로.
Ⅰ) 해커: 켄트
Ⅱ) 건물비밀통로&기술 담당: 로버트
Ⅲ) 친화력 담당: 로즈마리
Ⅳ) 어중이떠중인: 나
인원을 더 모집했으나 씨알도 안 먹힘.
녀석의 비자금으 털로 가자는 말에 홀딱 넘어감.
그렇게 우리는 버뮤다 섬으로 출발했음.
5
우리는 버뮤다 섬 도착했다.
장면은 그곳 전망 좋은 곳에 웬 모스맨 대학교.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비자금 창고 같은 건 없었음. 그래도 계속 덤빔. 계속 뎀빔. 도전 실패 도전 실패 그래도 계속 도전. 그래서 결국 성공!
하지만 하필 턴다는 게 비서실 창고를 털다가 걸려서 혼쭐이남.
나머지 애들은 사설 경비업체에 끌려감.
나만 사무엘을 만나 비서실로 빠짐.
지금이니까 하는 말이지만 나중 애들은 도시로 강제 전출되었다고 들음.
「야 사무엘. 늬가 거기서 왜 나와? 늬가 여기 총장이냐?」
「어.」
「뭐?」
「내가 이곳 버뮤다 대학교 총장이야. 제2대.」
「그럼 1대 총장은 누군데?」
「너도 아는 사람.」
「제라드?」
「잘 아네.」
「이 자식들이... 너네 장난해?」
「넌 이게 장난처럼 보이니? 이 비서실. 저 소파. 저 전경. 탁자 위에 책 보이지? 전망 좋은 방. 지금 네 옆에 앉아 있는 늘씬한 비서 1과 육덕 미녀 2. 너가 지금 양쪽에 꿰차고 있는 건 뭔데? 다 진짜야. 가짜 아니라고. 인정, 불인정?」
「아니~ 그러니까 내 말은~ 맞다. 그럼 제라드는 어디 갔는데?」
「그 친구야 바쁘니까 여기 자리를 나한테 넘겼겠지. 지금 아마 모스맨 잡으러 갔을 걸!」
「뭐, 뭐?」
「뭐긴 뭐가 뭐? 누가? 내가? 아님 너가?」
「거 어째 너랑 말이 잘 안 섞이는데.」
「난 뭐 너랑 말이 잘 통하는 줄 아니? 천만의 말씀.」
「야.」
「어.」
「너 저번에 그거... 뭐더라?」
「뉴발란스 챌린지 대회?」
「그래. 그거. 그거 어떻게 됐어?」
「너 간 다음에 내가 우승.」
「진짜?」
「그럼 뻥이겠냐?」
「상금은?」
「보시다시피.」
「」
「저기 보이지? 저 호텔 내 거야. 여기 오다가 골프장도 봤지? 거기도 내 꺼. 극장이든 쇼핑몰이든 없는 거 없어.」
「너 뭐하는 놈이야?」
「버뮤다 대학교 총장. 버뮤다 다국적 기업 회장. 희대의 조세회피처 관련 큰손.」
「너가 벌써 거물 됐다고?」
「내가 아무리 기다려도, 어? 나보다 늬가 먼저 크진 않을 거 같아 내가 너보다 먼저 이렇게 됐다. 거 쪼금 미안하게 됐네 친구. 그렇지만 넌 언제든지 여기 와서 놀다가든 쉬다가든 뭐든지 공짜. 올 때도 마음대로 갈 때도 마음대로. 뭐든 공짜. 왜 직장 출근하기 싫어? 월요병 때문에 도시의 아침이 아름답게 보이지 않아? 여기 야경 괜찮아. 여기 와서 내 비서실장해. 물론 진짜 비서실장은 따로 있고, 넌 책장 먼지만 털면 돼. 끝. 어때? 당장 오란 말이 아니야. 너 나 알지? 내가 언제 거짓말한 거 봤니?」
「아마 볼 기회 자체가 없었던 걸로 아는데.」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 그럼 이제부터 차차 알아가면 되겠네. 뒷패도 남았는데 숨겨둔 판돈 미리 알아도 김새잖나 친구.」
「너 못보던 새에 포커페이스 많이 늘었다? 말발도 아주 그냥 사기꾼 뺨 치겠는데?」
「그럼 뭐 넌 못보던 새에 액면이 많이 썩었냐? 자네도 잘생겨졌어. 전보다 많이 세련되게 바꼈다고. 그렇다고 예전에 흉했다는 뜻이 아니고. 왜 내 입담이 많이 허접한가? 하지만 우리 우정이 뭐 그다지 퍽 추접스러운 건 아니지 않나.」
「그런데 있잖아 내가 알기로는 넌 옛날에 그렇게 말 많은 친구가 아니었거든.」
「사람은 변해. 자, 사랑과 우정. 넌 뭘 고를래? 우리가 무슨 소녀감성이니.」
「가만 있어 봐, 나도 말 좀 하자.」
「내가 언제 너 말 못하도록 말렸니? 말린다고 늬가 내 말 들어? 안 듣잖아. 그런데 말 좀 하긴 뭔 말 좀 해. 어? 안 그래?」
「이 자식이 가만 보니 날 들었다 놨다 쥐락펴락 장난 아니네.」
「야 너.」
「왜?」
「그 손...」
「어?」
「그래도 내가 없을 때라면 몰라도 벌써부터... 너가 옛날 세이렌 증후군에 걸렸든 허언증 완치 판정을 받았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말이야. 내가 늬 양쪽에 비서 두 명 앉혀놨다해서, 어? 손이 벌써...」
「내가 그런 거 아니야. 이거 왜 이래? 얘가 누굴 바보로 아나?」
「어떻게 알았어?」
「뭐?」
「그 손 늬 손이지?」
「그럼 이 손이 내 손이지 누구 손인데.」
「추접스럽게 그게 뭐니?」
「사랑은 추잡한 게 아니야.」
「그럼 뭔데?」
「나도 몰라.」
「말장난 길어져봐야 재미없고. 난 바쁘니까 너 혼자 놀다 가. 아니 가지 마. 게다가 여기 비수기야. 허나 회사 현금보유량 끝장. 너 하고 싶은 거 다 해. 나 갈께. 비서 1 비서 2. 쟨 크리스티 쟨 비비안. 나 간다.」
「야, 진짜 가? 늬가 그러니까 여자가 없는 거야. 눈치 봐서 좀 더 일찍 빠져줬으면 좀 좋아! 뭐야 벌써 갔어? 설마...」
도시에서 난 정말 고독한 사냥꾼이었다. 공상이야 늘상 그랬고. 어떻게?
<친구들과 떠들며 놀 듯이 파티하는 기분 나게, TV 라디오 고전음악 댄스 다 틀어놓고 놀아볼까? 그거 좋아하던 녀석들과 놀던 시절도 옛날 얘기고. 3분짜리 유행가 1곡만 3일 내내 듣는 여동생들도 다 떨어져나가고. 이게 뭐냔 말이지.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됐어, 아 글쎄 진짜 어떻게 됐냐고! 만지작 만지작 정도가 아니라 시원스레 꺼내들 다음 카드는? 허당미. 퇴폐미. 방탕아 본색. 악동 기질. 낭만파의 감수성. 모험심. 호기심. 발정기의 어떤 갈망. 풍운아의 열망. 회심의 쾌락마? 남부럽잖은 일하기와 남몰래 좋아 미치는 놀기. 그 신기한 균형감에 따른 막연한 불안감까지. 역시나 사랑은 없을까? 후즐근한 차림새. 허접한 인상. 우스꽝스러운 관상. 앙 다문 지갑을 벌여볼 필요도 없이 명품 지갑도 없음. 고로 품위유지비 바닥. 이런, 젠장~! 의무방어전에 지친 당신, 당장 떠나라? 선전 그거 다 속임수. 커피가 발달한 이유중 하나가 아니라, 유력한 원인은 바로, 남편들을 일찍 못자게 하기 위해서? 무슨 그런 개뼉따구 같은 소리. 다 뻥 개 뻥. 이런 젠장!>
그런데 그와 달리 난 여기가 너무 좋았다. 더 좋을 수가 없었으니까.
6
버뮤다 섬 모스맨 대학교 놈팽이로 전락. 나름 싫진 않음.
그렇게 유유자적 농땡이나 피우며 한량으로 지내는 꿀 같은 삶. 꿀 떨어지는 연애만 더해지면 딱인데. 뭐 그건 나중으로 미루고.
그러던 어느 날 버뮤다 섬 청년회 회장인 피츠제랄드가 날 찾아왔다.
모스맨 대학교가 생긴 이후부터 지금까지 속에 쌓인 게 많긴 많았나 보다.
비서실. 소파. 피츠제랄드와 나.
「당신이오?」
「」
「버뮤다 섬 처자들을 다 따먹고 다닌다는 사람이?」
「뭐요?」
「못 들었소? 그럴 수도 있으니 다시 말하겠소. 당신이 바로 그 뭐야, 뭐지? 뭐더라? 내가 뭔 말을 하려던 참이었지? 아, 맞다. 당신이 바로 버뮤다 섬 숙녀들을 다 따먹고 다닌다는 난봉꾼이오?」
「무슨 소리요? 난 꿀벌이 아니라 파랑새과란 말이오. 그러는 당신이 더 수상한데? 그 음흉한 속내 내 한번 맞춰볼까요?」
녀석은 흠칫 놀라는 눈치다. 그럭저럭 10분 동안에 걸쳐 우리는 통성명을 나눴다.
그렇게 피츠제랄드가 내게 준 명함을 보니 녀석은 원맨쇼도 아니고 맡은 직함이 무려 50개였다.
명함 가득 빼곡히~ 명함이 무슨 깜지도 아니고. 어? 녀석이 딱히 좀비라는 증거는 없지만서두 난 일단 녀석을 좀비로 상정한 채 세게 나가기로 했다.
그래서 내가 뭐하러 버뮤다 섬 처자들을 농락하고 다니겠냐, 난 그럴 의사가 없다. 내가 왜 버뮤다 섬 여인들에게 봉사해야 하냐, 난 그럴 마음도 시간도 없다. ~라면서 한참을 따지다가. (딱)~ 거짓으로 전화를 받는 척했다. 녀석이 리듬을 당김음으로 리드하니까 난 무시하는 전략을 썼던 것이다. 그래서 난 내 상대를 바꿔버렸다. 막 그렇게 전화를 받았다.
「어, 스티페 미오치치. 웬일이야? 너 형한테 인사가 좀 뜸하다? 형 기분 나빠지려 하는데? 야, 너 잠깐만 기다려.」
그와 동시에 난 재빨리 개폼 똥폼 오만폼 다 잡으면서 피츠제랄드에게 말했다.
「스티페 미오치치가 누군지 아쇼?」
「예. UFC 현 헤비금 챔피언이죠. 저도 그 정도는 알아요.」
「거 잘됐구만. 걔랑 통화해보시겠수? 내가 얘 엎어서 키웠소. 얘가 한때 버릇 나빠질려고 하면 내가 자세 잡아주고, 어깨뽕 연예인병 걸릴려고 해도 내가 혼구녕을 내주고. 거의 뭐 내가 얘 사람 만들었다고 봐도 무방하요. 아시겠소?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오. 어이, 형씨. 왜 당신께 형씨라고 불러서 기분 나쁘오? 얘네 뿐만이 아니오. 내가 오락산업 거물들 부르면 싹 다 내일 당장 달려올 거요. 그리고 최근 잘나가는 영화배우들? 지금 당장 내가 콜만 하면 튀어올 숙녀들 저기 보이는 운동장에 줄 세워도 세바퀴 반도 모자르오. 아시겠소? 그런데 내가 뭐하러 버뮤다 섬 처자들을... 어... 우롱하고 다니겠소. 거 기왕 말 나온 김에, 말이야 바른 말이지 형씨가 먼저 상스런 표현을 입에 담았지 그거 어디 내가 먼저 시작했소? 맞소 들리오? 그러니까 말이지, 뭐 내가 버뮤다 섬 숙녀들을 다 따먹고 다녔다고요? 내가 그렇게 한가한 사람으로 보이오? 정말 그러오? 이 사람이...! 당신 말 다했어? 어? 이름만 대시오. 누구 생각나는 사람 없소? 가수? 아니면 뭐 여자 배구선수? 패션계 스타? 이 전화에 담긴 숙녀들이면 이 고장에서 1년 내내 군민축제를 열어도 모자를 판이오. 아시겠소? 네? 그런데 내가 왜 뭐 거 뭐냐, 뭐 따먹고 다녔냐고요? 이 사람이...! 야, 너! 그래 너 임마. 너 내 동생해. 나 이제부터 네 형할께. 형이 너 커버해준다. 너 이 형이 보호해준다. 아까처럼 소문 이상하다 싶은 일 있으면 이 형한테 말해. 형이 다 처리해줄께. 그리고 마음에 드는 영화배우 있으면 이름만 말해. 알았어? 알았어 몰랐어? 아 스티페 미오치치 기다리는 중이지. 너 조금 기다리고 있어.」
「어 스티페.」
「네 형님. 말씀하십시요.」
「말하라고? 형한테 나불거리라고? 야 인마 전화는 늬가 걸었잖아. 너 형한테 맞고 싶어? 그러고 보니 너 형한테 맞은지 좀 됐지? 글지? 어쩐지 너가 너가 아까부터 깐족거리더라 했다. 그새 말이야, 어? 못 보던 새에 깐죽이 많이 늘었네? 형이 더 이상 허세대회에 출전하지 않는다고 비리비리 아마추어들끼리 대회 수준 떨어트렸다며? 그러니까 용건이 뭐야? 형한테 하고 싶은 말이 뭐냐고? 뭐? UFC 여자 선수와 따른 리그 남자선수끼리 이벤트전 열면 어쩌겠냐고? 너 알아서 해. 형 비서실장한테 물어보면 돼. 넌 임마 그게 문제야, 알아? 늬가 뭐 5살 먹은 꼬마냐? 형이 하나부터 열까지 다 꼬치꼬치 알려줘야 해? 어? 늬가 임마 그래서 안되는 거야, 알아? 어? 늬가 그러니까 여자가 없는 거라고. 이 자식이...! 야, 형 기분 나빠졌어. 뭐? 형 화났냐고? 미쳤냐 형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단 1번도 화내본 적이 없어. 형은 그런 역사가 일절 없다고. 어? 누굴 뭘로 보고...! 아무튼 형 짜증나도록 돋구지 말고, 귀찮게 뻠쁘질 하지 말란 말이야. 어? 아 쫌! 야 다음에 통화해. 지금 분위기 영 아니니까. 들어가.」
눈치를 보아하니 피츠제랄드는 상당히 쫀 상태였다. 혹시 바지에 오줌을 살짝 지렸는지도 모르겠다.
「피츠제랄드.」
「」
「대답 안 해?」
「네 형님.」
「너 여기 모스맨 대학교 학장 누군지 알지?」
「네. 형님. 낙향해서 좋은 일 많이 하시는 분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알기만 하면 뭘 해 임마. 안 그래? 너 앞으로 그분 많이 도와. 걔 형이랑 많이 친하니까. 뭐 부족한 거 있으면 말하고. 어려운 일도 있으면 있는 족족 말해. 형이 다 꼬셔줄께. 아니. 아니 아니. 형이 다 처리해줄께. 일단 오늘은 형이 말을 좀 많이 해서 피곤하니까, 회포푸는 건 나중으로 미루자. 뭐 이렇게 된 거도 인연이자 행운이데, 축배는 미루어 기쁨이 커질 테니 말이야. 알겠어? 넌 임마 왜 대답이 반 박자도 아니고 1.5박자가 느려? 어?」
「네, 알겠습니다. 가보겠습니다. 그럼 나중에 인사드리겠습니다.」
「그래, 가 봐.」
「」
「야. 형 말 안 끝났어.」
「네, 형님.」
「너가 아까 오해한 거, 형이 오해를 사게 만든 뭔가 그 의뭉스러운 지점이 있을 테니까. 따라서 형은 그 의심의 실마리를 말끔히 해소했으면 해. 왜냐면 피차 깔끔한 게 좋잖아. 너도 보니까 사람 좋고 의리 어디서 안 빠지고, 옷도 촌놈치고는 고상허니 세련됐고. 어? 너 평판 괜찮은 거 형이 다 알아. 형 레이더 가동시켜서 이미 너네들 족보 싹 꿰찼어 임마. 형이 아까 뭐랬지? 그래. 혹시라도 모를 어설픈 오해, 그러니까 그게 어떻게 발생했느냐. 하면~ 뭔가 숙녀들이 있겠지. 여기도 다 시내가 있고 너네들 자주 다니는 동선이 있을 거 아니야. 안 그래? 다 알고 있어. 아니 뭘? 뭐긴 뭐겠어 임마. 그 처자들 형이랑 만나서 오빠 동생 하고 다 뭐 터놓고 농담도 하고 그러는 거지. 걱정마 임마 늬 짝은 형이 다 꼬셔줄께. 알았어? 넌 임마 형이 시키는 대로만 해. 그럼 넌 장차 버뮤다에서 기록적인 플레이보이로 거듭날 수 있을 테니까. 넌 형이 딱 몇 가지만 다듬어주면 대번에 장성감이야. 원래 너처럼 시원시원한 호상이 보면 나중 대성하더라니까. 뿐만 아니라 나 같은 스승만 딱 만나서 운 트이면 그때부터는 그냥 (몸짓)! 그 애들이 지금 오락산업 전영역을 주름잡고 있잖니. 그나저나 말 많이 해서 너무 피곤한데. 급체력저하 때문에 오늘은 형 일단 쉬는 게 좋겠다. 그러니까 너도 철수하고. 그렇다고 너무 멀리 가지는 말고. 너네들끼리 놀 땐 놀더라도 근처에다 몇 명 대기시켜놓고. 뭐 누구? 누구긴 누구야 덩치들 몇 명 포진시켜놔야지. 형 전화 때리면 즉각 달려올 애들이 몇 명인데, 당장 뭐 버뮤다 군민축제 열어줘? 어? 열어줘 말어? 너 여려운 거 도와주고, 너네 미심쩍은 난제 처리해주고. 물심양면으로 형이 골드바든 007 가방이든 무제한으로 제공해주고. 어? 미제사건 전부 가져와, 형이 싹 다 처리해줄께.
그러면~, 어? 그러면~ 그럼 임마 너도 성의를 보여야 할 거 아냐. 안 그래? 어? 이 자식이 어디 형 재능을 날로먹을려고! 너 형한테 찍히면 어떻게 되는 줄 알아? 이 자식이... 너 때문에 형 자꾸 말 많아지잖아? 그게 다 너 때문이야 임마. 어? 야, 가. 당장 꺼져. 썩 꺼져버려 임마. 그렇다고 고깝게 듣지 말고, 형이 최근 보는 대하드라마가 있어서 명대사 몇 개 따라해본 거니까. 속에 담아두지 말고. 야 임마, 너도 빈말과 참말 구분 못하냐? 그러면 나중 피곤하다 너~! 일단 나중 한번 뭉치자. 그때까지 섭섭하고 서운하며 좀 그리워도 세계마초협회 지원을 듬뿍받는, 의리맨들 사이에서 덕망 두터운 우리가 참자. 알았어? 알았어 몰랐어? 넌 임마... 야 나갈 때 문 닫고 나가고. 형 먼저 쉰다. 돌아가서 기대나 잔뜩 할 준비나 하셔. 앞으로 네 청춘사업은 꿈에도 몰랐던 클라이막스를 누리게 될 테니까. 허허. 형이 좀 못 웃겼으면 아량 넓은 네가 이해하길 바란다. 형이 임마 다 웃길 수는 없잖아. 안 그래?」
그러면서 녀석의 신비감이 김빠지기 전에 난 서둘러 음악을 틀었다. 물론 서두르지 않은 척 자연스럽게 말이다.
Handel / 메시아 HMV 56에서 아리아 "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하라"
그렇게 버뮤다 시골청년 피츠제랄드와 나의 첫만남은 마무리됐다.
다음으로 피츠제랄드의 첫사랑을 만나서 내가 또 썰을 잔뜩 푼 다음 2 대 2로... 그런 공상 집어치우고.
7
나는 평소처럼 비서실 안쪽 나만의 비밀공간에서 일하고 있었다.
Chopin / Andante Spianato e Grande Polonaise Op.22 (연주: Josef Hofmann)
음악도 듣고 칼럼 자료도 찾고 문학 발상에 대해서도 끄적거리고. 일하다 쉬는 시간에 축구 웹사이트 잡담 게시판에서 야한 사진...이 아니라 건전한 세상사 이야기도 읽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비서 빽넘버 5번 크리스탈이 내게로 다가왔다.
뭐야 낮부터?
낮부터? 뭘 낮부터!
「오빠. 저랑 갈 데가 있어요.」
「갈 데?」
「따라와 보면 알아요.」
「」
「어서요. 오빠. 어서요.」
그래서 나는 엉거주춤 일어섰고, 비서 등번호 5번 크리스탈은 내 손을 덥썩 잡더니 날 끌고서 빠른 걸음으로 어딘가로 향했다.
그녀가 날 데려간 곳은 버뮤다 대학교 미술품 보관소였다. 나름 모스맨 연구소와 뭉크 재단, 양대 경매장으로부터 후원도 받고 교류도 든든하다보니 시설은 생각보다 훌륭했다.
즉 보안 절차가 상당히 까다로웠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영화에서나 봤던 그 뭐야 선그라스를 쓰면 막 레이져가 이렇게, 저렇게, 막 이리저리 불규칙적인 모습을 볼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크리스탈은 내 예상을 여지없이 깨트려주었다.
그건 바로 A → B → C
↓
D
어느 정도 규모 이상의 미술관에 들려본 사람들은 아실 텐데 보통 보관소 A부터 이미 일반인 출입 금지구역이다.
나도 당연히 그런 데 들어가보지 않았으니 A에 들어가면 곧바로 명화들을 구경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렇지만 A는 보안과정을 꼼꼼히 거치는 통로였다. 그래서 그걸 거친 다음 문 B를 열고 또 C를 열면 그때 진짜 보관소가 나오는데.
저 B와 C 사이에 생각지도 못하게 D라는 비밀 통로가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들어갔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러더니 그녀가 무선 이어폰을 엘리베이터 조정부에 꼽더니 핸드폰으로 막 조작을 했다.
그 다음 핸드폰으로 뭐야, 마이너스 150층? 그때부터 엘리베이터는 쑥 내려갔다.
지하 150층 도착. 우리는 내렸다.
「오빠. 여긴 저만의 비밀 공간이에요. 어때요? 멋지죠?」
「뭐야? 너 저... 저...」
여기 있는 자료들은 바닷물이 사라지는 드라마에 관한 초정밀 자료들이었다.
「너 그 드라마 매니아야?」
「그럼요. 이거 전부 구경하려면 얼마나 걸리는 줄 알아요?」
「몰라. 모르지. 내가 어떻게 알겠니. 한번도 구경해보지 않았는데. 그렇다고 과일을 꼭 먹어봐야 그 달콤한 맛을 알 수 있나?」
「우리, 다 구경하기 전까지 여길 떠나지 말까요?」
「단지 구경만 해야 하는 거니?」
「오빤 즉흥적인 상상력이 너무 재밌어요.」
「자, 그럼 한번 시작해볼까?」
바로 그 절대절명의 순간 크리스탈은 날 깨웠다.
비서 빽넘버 5번 크리스탈은 비서실 구석 소파에서 침흘리며 낮잠자고 있는 날 깨웠던 것이다.
뭐야 개꿈이었잖아? 이런~ 젠장!
8
오늘도 나는 비서실 구석지에 쭈그러져 일하고 있었다.
Donizetti / 오페라 <사랑의 묘약>- “산들바람에게 물어보세요“
조용한 분위기 가운데 비서 등번호 6번 캐서린이 다가와서 말했다.
「오빠. 크리스탈이 오늘 출근하지 않았어요.」
「어제 난 크리스탈과 밤늦도록 함께 놀지 않았어.」
「왜 도둑이 제 발 저리는 거죠?」
「나 도둑 아니야. 누가 도둑이래? 뭐 내가 크리스탈의 마음을 들었다 놓기라도 했다는 거니?」
「긴말 필요없이. 오빠가 가 봐요. 걔 기분 제가 느낄 수 있거든요.」
「내가? 왜 나야!」
「싫어요?」
「아니~ 그게 아니라~ 누가 싫다는 게 아니라~」
「잔말 말고, 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나는 크리스탈의 집에 도착했다. 초인종을 눌렀지만 대답이 없었다. 크리스탈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비서실로 전화해서 캐서린한테 물어봐도 딱히 별다른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 그러니 나는 버뮤다 섬의 마당발 피츠제랄드에게 물어보는 방법밖엔 없었다. 웬만하면 바로 감 잡았을 텐데. 내 촉이 많이 둔해졌나? 버뮤다 원뻔치 버뮤다 투터치 버뮤다 몽키스패너 버뮤다 가위손 너 혼자 다 해 먹어라, 라는 값싼 농담을 남발하던 호시절이 지나가버렸기 때문일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가능성도 없지 않고. 그러든 어쩌든 그러든가 말든가. 그래서 나는 동생 피츠제랄드한테 전화해서 알게 됐다. 그러니까 나는 무엇을 알게 됐을까?
바로 비서 빽넘버 5번 크리스탈이 인터넷 이력서에서 뭔가를 바꿨다는 것을 말이다.
직장란에 버뮤다 대학교 비서실 → 버나드 대학교 비서실.
뭐? 이년 봐라...! 아니 그게 아니라.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우여곡절 끝에 나는 크리스탈을 잘 설득해서 버뮤다 대학교 비서실로 데려오는 데 성공했다. 버나드 대학교로 딱 첫 출근인지 제3차 최종면접인지 뭔지 몰라도 아무튼 난 그녀의 마음을 돌렸다. 그녀를 달래주느라 난 정말 혼신의 힘을 다했다. 난 진짜 뼛속까지 범죄심리학자이자 전문협상가요 유도심문의 대가였던 것이다. 그래서 결국 정력이 바닥날 지경이었다.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는 줄 알았다. 아니 진짜 크리스탈의 여심을 쥐락펴락하는 게 내겐 원래 일도 아닌데, 왜 이렇게 힘들어진 거지? 아마도 현역에서 은퇴했기 때문으로 추측할 수밖에.
결국 그건 그렇게 일단락된 걸로.
9
문단 줄거리를 먼저 요약함.
피츠제랄드 상담. 자기가 좋아하는 숙녀가 있다고함. 난 이미 크리스탈과 친해졌는데 하필 걔가 걔.
뭐야? 심상치 않은 전개인데.... 이걸 어쩌나!
뭐 그건 그렇다 치고. 중간 과정 생략하고 퇴근 후 나는 시내에서 피츠제랄드를 만났다. 물론 크리스탈과 함께 삼자대면으로 말이다.
피츠제랄드, 크리스탈, 그리고 나. 뭔가 부자연스럽긴 하지만 곧 자연스럽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실제 보통 여자들은 우릴 보면 보자마자 웃는다. 문제는 남자.
「형. 무식하다고 동네방네 다 소문내고 다녀?」
뭐 이 자식이...! 물론 피츠제랄드는 내게 즉시 윙크했다. 숙녀 앞에서 자기 면 좀 세워주라 그거구만 그래.
「넌 임마 형의 큰 그림을 아직도 모르겠어? 내가 과녁이 되면 그만큼 스포트라이트는 네게 집중될 수밖에 없어. 알아? 그러니까... 크리스탈. 너 잠시 밖에 나가있어. 아니다. 그냥 있어.」
「형. 사랑이 애들 장난이야? 형 크리스탈 좋아해?」
「너 임마 부끄럽게 왜 그래? 우리 시트콤 찍는 거 아니었어? 왜 갑자기 멜로?!」
「멜로드라마가 뭐 어때서. 원래 인생은 멜로야.」
「너... 얘가 멋진 말은 다 먼저 해버리네. 얘 원래 안 이랬는데.」
「왜, 크리스탈 있으니까 쫄려?」
「쫄리긴 누가 쫄려?」
「형. 화났어? 화났지? 꿍한 거 보니 화났네. 아니면 아직 예열 안 끝난 건가? 예열? 형이 무슨 뚝배기야 냄비야? 어? 형 원래 그렇게 쪼잔한 남자였어? 특히, 여자 앞에서? 어? 그래?」
「너...」
「형. 화났지? 그치? 아니야? 아닌 게 아닐 텐데. 화났으면 화내. 오늘 형 화내라고 마련한 자리야.」
「너...」
「어서. 어? 들어와. 컴옹 베이비.」
「아 나 이거 증말, 아니 그게 그러니까 말이지. 형이, 헛! 화를 어떻게 내는지 알아야 화를 내든 말든 할 거 아니니. 어? 아니, 어? 아니~」
「그게 화내는 거야. 잘 하시네. 너무 잘하시는데? 지금 짜증지수 푸쉭푸쉭 올라가는 거 보여. 형 이마에 쓰여있어. 나 화났어 라고. 그래서 지금 계속 우리가 뽐뿌질 하는 거고.」
우리가? 우리가는 뭐가 우리가야!
「뭔 소리야? 형은 태어나서 화내본 적인 단 한 번도 없어. 이거 왜 이래? 뭣이 어째?」
바로 크리스탈이 중재하기 시작했다.
「오빠들. 애들처럼 왜 그래?」
「크리스탈. 넌 좀 빠져. 아무것도 모르면서 뭘 안다고 설치긴 설쳐. 넌 모르면 가만히 듣고만 있어.」 드디어, 캬! 마침내 피츠제랄드는 상남자 마성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형. 크리스탈은 원래 날 좋아했어. 알아? 그런데 언젠가 들리는 소식에 의하면 버뮤다 대학교에 웬 난봉꾼이 출연했다더니 그게 알고 봤더니 형이네? 추문이 심심치, 아니 심상치 않더라고. 내가 저번에 괜히 형 찾아갔게? 크리스탈도 원래 날 좋아했다니까 글쎄. 그런데 갑자기 뭔 밑도 끝도 없이 웬 꺼벙한 허당이 나타나더니 지가 무슨 허접한 행운아도 뭣도 아니면서 말이야, 어? 지가 뭔 해결사야 헤라클라스야? 어? 걔 그 인간이 알고 보면, 어? 걔가 이 바닥에 나타날 때부터 우리가 알아봤어. 걔가 누구라고 말은 안 하겠는데, 어? 걔가 버뮤다 숙녀들 다 따먹고 다닌다,」
난 재발리 피츠제랄드의 입을 손가락을 막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좀 급했기 때문일까? 내 손가락이 피츠제랄드 입술 안쪽으로 말려들어가버린 것이다.
내 손가락이 무슨 공갈 젖꼬지도 아니고. 이거 이거 크리스탈 앞에서 모양 이상해져버린 거지.
그런데 카페 주인이 우리 분위기를 공감해서였을까 낌새가 꽤나 우려스러웠다고 판단해서였을까? 음악은 이렇게 바꼈다.
Handel / 오페라 <알레산드로> - “부질없는 사랑이여, 유혹, 기쁨이여”
「뭐야? 음악이 왜 이래?」
그러자 피츠제랄드까 (딱)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또 이렇게 곧장 바꼈다.
Bach / 모테트 BWV225
「형 이런 노래 좋아하잖아.」
「형은 쿵쿵쿵쿵 클럽 음악 들을 줄 알았는데. 바깥에 나왔으니 새콤달콤 유행가 듣을 걸로 예상했는데. 아니네?」
「기대대로 가면 재미없어. 왜 그래 아마추어같이? 형답지 않아.」
「그런데 끼어들어서 미안한데 오빠들 이렇게 말 많은 남자였어?」
「너 말 많은 남자 안 좋아하니?」 역시나 피츠제랄드는 여자를 몰랐다. 그럼 그렇지. 곧바로 녀석은 우리에게 말할 기회를 주지 않고서 잡은 마이크를 놓지 않았다.
「크리스탈. 내 하나 물어보자. 어차피 이렇게 삼자대면 한 거. 속시원하게 한번 물어나 보자꾸나. 응? 괜찮지? 그래. 말할께. 너. 너 말이야 너. 그래 너. 여기 여자가 너 말고 누가 있는데?」
「야 피츠제랄드. 너 커피에 취했니 아니면 봄바람에 싱숭생숭한 거니. 너 설마 상사병 걸리진 않았지? 그치? 혹시...」
「혹시 뭐? 형 듣고만 있어. 내 말 끊지마. 야 크리스탈. 너. 너. 너 말이야 너. 너 왜 나한테는 말 올리고, 형한테는 말 놓는데. 알아도 내가 널 훨씬 먼저 알았어. 어? 그런데 왜 저 형한테는 보자마자 오빠야. 어? 너 저 형한테 꼬리치니? 왜 나한테만 내숭인데? 너 혹시 저 형 좋아하니? 그러니?」
「왜, 난 (고갯짓) 좋아하면 안돼?」
「」
「」
「나 하나 고백할께. 난 버뮤다 대학교 비서실 싫지 않아. 오히려 좋아. 지금이 괜찮다고. 그런데 피츠제랄드가 하도 꼬시고 꼬시고 부추기고 부추기고. 정말 더럽게 귀찮게 하길래 에라 모르겠다 라는 심정으로 그냥 버나드 대학교에 딱 1번 구경만 갔다 오려고 했어. 그래. 할리웃 액션 나도 할 줄 안다 그거지. 그거 다 피츠 얘가 시킨 거야.」
「너.. 넌 그 말을 형 앞에서 하면 내가 뭐가 되니? 너도 너지, 넌 그걸 정말로 말하니? 너 진짜 이러기야? 어?」
「이래서 내가 오빠한텐 극존칭하는 거야. 쳇!」
「그러니까 뭐 내가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고? 그거 순수해서 그래. 저 형 봐 봐. 불순의 상징. 나 봐 봐. 초딩. 어? 아직도 모르겠니? 왜 이 마초의 순진한 애정, 고결한 순애보를 너만 몰라보니 정말 애석하다 애석해.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나 같은 순정파 만나는 게 어디 쉬운 일인 줄 아니? 천말의 말씀. 그런 행운 아무한테나 찾아오는 것도 아님. 흥! 그런데 내가 대체 뭔 말을 한 거지? 생색? 거 어째 너무 빠른데. 여자들 생색내는 거 싫어하는데. 많이 안 좋아하는데. 생색내는 데도, 허세대회 역대급에다, 허풍 대장감인데도 불구하고. 그래도 생색 생색 또 생색내는 남자가 만약 인기 만점 남자였을 때. 그건 그야말로 생색에도 불구하고 나머지 오디오 이퀄라이저로 다 커버한다는 건데. 그게 어디 쉽나? 하늘의 별 따기지. 그 별 내가 따 줄께. 어? 난 누구처럼 별 땄는데 뭐하러 또 따, 그런 말 안해. 날마다 따 드린다고. 어? 그럼 될 거 아니야. 하늘을 봐야 별을 따지, 그런 말 일체 입에 담을 기회 자체를 주지 않는다니까 글쎄. 근데 생색이 여성 명사니 중성 품사니? 그걸 지금 말할 때냐고? 왠지 모르게 느낌 세한데. 어딘가 모르게 오늘 분위기 많이 이상하단 말이야.」
「오빠가 더 이상해요. 듣기 힘드네. 오빠 말 참 거슬린다. 아무튼 내가 피츠제랄드 마누라도 아니고. 누구 여편네 될 생각 아직 없고. 그러니 난 이만 먼저 갈께. 불만 없지? 나 간다.」
그렇게 결말 짓는 거 보기 힘들어서 크리스탈은 먼저 떠났다.
그렇다고 나랑 피츠제랄드랑 뻣벗한 남자들끼리 말 길어져봐야 귀만 아플 뿐. 할 수는 있는데 하기 싫음. 딴 남자들도 거의 다 그래, 우리만 그런 거 아님.
10
피츠제랄드가 똘만이 몇을 거느린 채 찾아옴. 물론 약 3주 정도 우리들 친분은 쌓일 대로 쌓인 상태.
용건은 2가지.
첫째, 예전 두목 즉 버뮤다 청년회 1인자가 돌아왔다는 것
둘째, 그가 나를 만나고 싶다는 것.
따라감. 모스맨 대학교 교정에서 보이는 앞 바다 도착.
모스맨 대학교 학장 사무엘, 놀러온 제라드, 페츠제랄드 똘만이들은 바닷가에서 대기.
피츠제랄드가 운전하는 요트에는 나랑 녀석 단둘. 그렇게 해변에서 약 50미터 떨어진 지점에서 우린 멈춤.
잠수함 나타남. 거기서 예전 1인자 미셸이 나타난다는 것임.
잠수함은 진짜, 심지어 초대형급.
그런데 알고 봤더니
도표 ⅰ)
────────────────────────────────────────────────────────────────────
방수 골판지
싸구려 플라스틱
물 표면은 초대형 서핑 보드
물 위로 뜨는 부분만 잠수함 모양
+ 물 위로 뜨는 부분만 잠수함 모양은 수면 밑으로 약간만 잠수 가능 (즉 대충 흉내는 냄)
────────────────────────────────────────────────────────────────────
= 초대형 모형 잠수함
────────────────────────────────────────────────────────────────────
나는 깜빡 속아넘어감.
잠수함 뾰족 튀어나온 부분에서 버뮤다 청년회 예전 1인자랑 접선한다는 건 맞음. 거기서 스킨 스쿠버 복장으로 미셸이 나타남.
그 날은 그랬고. 또 다른 날들도 우리는 내내 즐겁게 지냈다. 모처럼 내가 시내에서 놀고 싶다고 하니까, 피츠제랄드는 또 어디서 구형이긴 하지만 고급 리무진을 빌려왔다. 그걸 타고 우리는 시내로 갔다.
「형님 형님. 여기가 버뮤다 시내에요. 멋지죠?」
「어디? 어디? 아 대체 어딘데 그래? 어디야?」
「지나갔어요. 그러니까 빨리 보셔야죠.」
「뭐 임마? 그럼 늬가 좀 천천히 가든가 해야지.」
11
어느 날 나는 비서실 구석지에 찌그러져 공상이나 하다 낮잠자다 갑자기 심심해졌다.
그래서 며칠 전 꿈에 봤던 비밀통로에 가보기로 했다. 비서 빽넘버 5번 크리스탈이 아마도 나와 새콤달콤 진한 사랑을 나눌 의도로 데려간 곳.
어쩌면 그 신비로운 밀애는 단타가 아니라 꽤나 기 빨릴 장기전을 넌지시 암시했을 수도 있는데. 따라서 내가 현실에서 크리스탈한테 막 들이댔냐?
그럴 수야 있나. 뿐만 아니라 최근 크리스탈은 출장 다니고 왔다 갔다 이리 갔다 저리 갔다 바빴기 때문에 자주 볼 수 없었다.
그렇지만 뭐 비서실에 비서가 어디 크리스탈 달랑 1명 뿐인가? 뭐 말이 그렇단 거고. 그렇게 나는 꿈에 봤던 그 비밀 공간으로 찾아갔다.
A → B → C
↓
D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장면 전환.
혹시나 해서 가봤는데 아니 이럴 수가...! 정말 있었다. 문도 잠겨있지 않았다. 그렇게 딱 비밀문을 열고 드러갈려던 순간.
「뭡니까? 체포해!」
「네?」
「뭣들해 당장 체포하지 않고.」
「왜 그래요? 전 아무짓도 하지 않았어요. 난 그냥 벽이 가려워하는 것 같아 단지 살며시 긁어주려했던 게 전부라구요. 제 공상에 따르자면 그건 아마 상상력이 시킨 환희의 애무라고나 할까요?」
「애, 뭐? 공상 좋아하시네. 말 같은 소리를 해도 모자를 판에, 뭐? 뭣이 어째? 다시 한번 말해 보시오. 뭐가 어쩌고 어째? 개 풀뜯어먹는 변명 그쯤하면 됐고. 밑도 끝도 없이 애무는 무슨. 어디서 발뺌이야 발뺌은! 아 뭐해? 썩 끌고가.」
그렇게 나는 버뮤다 섬을 통합 관리하는 군&경 특수 수사대 철창에 갇히게 되었다.
1시간 경과 후.
장면 전환.
피츠제랄드가 찾아왔다. 물론 똘만이들을 몽땅 끌고서 말이다.
「형님. 왜 그러셨어요?」
「내가 뭘?」
「맙소사. 아직 눈치채지 못하셨어요? 버뮤다대 총장 사무엘한테 형 은근 찍혔다는 거 몰라요?」
「내가? 내가 왜? 아니 내가 뭘 잘못했다고. 그 녀석 옛날에 내 똘만이에 불과했는데. 지가 아무리 커도 그렇지, 날 비호하지 않겠다고?」
「맙소사. 형 잊었어요?」
「잊긴 뭘? 내가 다 기억해.」
「보나마나 공상이나 좋아하시겠지. 있잖아요, 저번에 비서실 창고를 털다가 걸려서 혼쭐난 거 기억 안 나요? 형님 친구들 추방당하고 그때부터 형만 비서실장으로 눌러앉은 거 아녜요. 그렇죠? 사실은 사실이니까요.」
「아......!」
기억났다.
Ⅰ) 해커: 켄트
Ⅱ) 건물비밀통로&기술 담당: 로버트
Ⅲ) 친화력 담당: 로즈마리
Ⅳ) 어중이떠중인: 나
녀석들은 지금 어떻게 됐을까? 하여 급히 피츠제랄드한테 핸드폰을 빌려 전화해보려고 했는데, 녀석들의 전화번호는 내가 아니라 핸드폰만 알고 있었다.
또렷이 기억하는 전화번호가 많을 수 없다는 거 누구나 그렇듯이 나도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형님. 어떻게 할까요? 제가 한가지 힌트를 드리자면 이렇답니다. 알고 보면 비서실 빽넘버 5번 크리스탈, 바로 그 크리스탈 아빠가 이 버뮤다를 쥐락펴락하는 실세거든요. 나머지는 다 서로 지네들이 2인자라는 식인 거죠. 인물관계도랄지 세력 구조가 그래요. 그래서 말인데, 형님께서 저와 크리스탈의 연애사업을 밀어주시면 좋겠어요. 저 정말 그녀에게 순정 바치고 싶거든요. 허지만~ 크리스탈 마음을 통 모르겠다니까요.」
「넌 형의 큰 그림을 아직도 모르겠냐?」
「」
「형이 다 2주 속성 코스로 크리스탈 최면 작전에 들어간 거. 그 지령 주입 좌우명은 뭐다? 뭐긴 뭐겠냐 너와의 사랑이지.」
「형. 역시 난 형 밖에 없어.」
「그걸 말이라고 하냐. 어서 여기서 날 빼주기나 해. 당장!」
12
소풍가자고 제의했는데 녀석이 싫다고 했다. 아니 왜? 왜냐! 왜냐하면 아마 이렇게 추정해도 퍽 빗나간 관측은 아닐 테니까.
새로 들어온 비서 빽넘버 8번 9번이 내 편이 된 것이다. 그렇다고 빽넘버 5번 크리스탈이 아예 피츠제랄드와 사랑의 맹세를 한 것도 아니고.
곧 구도를 보아하니 이랬다.
등번호:
5번 크리스탈
8번 까리타스
9번 스테파노
도표 ⅱ)
────────────────────────────────────────────────────────────────────
여자 남자 여자
────────────────────────────────────────────────────────────────────
피츠제랄드 크리스탈
까리타스 나나나나나 스테파노
────────────────────────────────────────────────────────────────────
물론 시트콤 세력 관계도가 단지 그렇다는 거 뿐.
그런데 시트콤이 재미없기 때문이었을까? 빽넘버니 뭐니 비서들도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날 슬슬 피하기 시작했다. 은근히~! 은밀한 눈빛들. 피츠제랄드도 내동 바쁘다는 핑계로 일관. 버뮤대 대학교 총장을 웬 새파란 후배한테 물려주더니 이젠 사무엘은 사회지도층들을 만나느라 바뻤다. 이젠 놀아주지도 않고 얼굴 보기조차 힘들고. 그래도 아직 떠날 수는 없다. 딱히 슬럼프라 부르기도 뭣허고. 그래서 나는 오랫만에 환상문학잡지에 보낼 문학론은 제쳐두고, 월간지 여성환상 1.5에 보낼 칼럼 초고를 작성했다. 내용은 다음 문단과 같다. 물론 아찔한 발상 기발한 착상 놀라운 영감이 쉽게 떠오를 리는 없다. 따라서 다음 문단과 같은 밑그림이 등장하도록 난 먼저 일단 열심히 낙서를 해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난 연습장이 이런 허접한 그림들을 끄적거리기 시작했다.
●▅▇█▇ค็็็็็็็็็็็็็็็็็็็็็็็็็็็็็็็็็็็็็็็▆▅▄▇ 텐트침!
●▅▇█▇▇▇▇▇
●▅▇█▇▆▅▄▇
●▅▇█▇▆▅▄▇
●▅▇█▇ค็็็็็็็็็็็็็็็็็็็็็็็็็็็็็็็็็็็็็็็▆▅▄▇ 또 텐트침!
●▅▇█▇▆▅ค็็็็็็็็็็็็็็็็็็็็็็็็็็็็็็็็็็็็็็
●▅▇█▇▆▅▄▇ 난 지금 뭘 하는 거지?? ▇▄▅▇█▇▆▅●
또?
뭘 쳐? 또?
아니 왜? 어?
나를 따르라
에라이 모르겠다
일단 신나게 낙서나 하고 보자
버뮤다 대학교 비서실? 여기 비서실장 누구야!
그러니까 인생이란 코끼리 팬티냐 피노키오 팬티냐인가...
아니면 뭐 인생이란, 아빠 안잔다 VS 오빠 자?
자냐고? 자긴 누가 자, 왜 자. 텐트쳤는데 뭐하러 자, 안자!
텐트쳐라 텐트쳐라. 하늘을 봐야 별을 따지? 그 말 취소해라 취소해라!
별 땄는데 왜 또 따냐, 흑심은 각성해라 각성해라! 가족끼리 그러는 거 아니다, 각성하라 각성하라!
샤워소리만 들으면 식은땀난다 식은땀난다~! 일단 지르긴 질렀는데, 설레네? 나 지금 떨고 있니? 아깐 많았는데 왜 지금 아무도 없어?
13
* 자동차 구동 방식
조향 구동 장단점 가격 주무대 주고객층
전륜구동 전륜 전륜
후륜구동 전륜 후륜
사륜구동 전륜 앞만/앞뒤 (선택)
* 사랑 방식
- 전륜구동: 여자가 앞장서며 뒤따라오는 남자한테, 잔말말고 따라와! 통상 결혼 00년차. 여자가 위일 때. 남자가 져줄 때
- 후륜구동: 조향은 아부하며 비위맞추는 딸랑이&쌥쌥이&재롱꾼&애교쟁이 + 구동은 물주 = 으샤으샤! 연애 초반 평균. 또는 상향지원 여자. 결혼 후는 부부 금슬 좋은 경우
- 운전자 시점 1: (운전자가 여자니까) 남자가 앞장서며 의전 및 보디가드, 여자는 수색대와 사냥견 먼저 보내는 식. 권력 리모콘도 여자가 쥠. (여자 입장에서) 만년 공주 대접받는... 개꿈?
- 운전자 시점 2: (운전자가 남자니까) 남편 흉보기보다 이 세상에 더 재밌는 건 그리 많지 않음. 말을 안해서 그렇지 속에 쌓인 건 말도 못함. (여자 입장에서) 하녀 인생
- 애마 시점 : (애마가 남자든 여자든) 안장 싫어하는 당나귀는 면박당함. 주인 천성에 따라 '당근과 채찍 작전' 가능성 상주. 경주마 운명이 그렇듯 스포트라이트는 좋은데, 난봉꾼이 부러운 유부남...은 아니겠으나. 당연히 야생마가 부러울 수밖에. 고로 그런 입장에 처한 애마는 자유 자유 하는 것임. (물론 어디까지나 농담임. 뭐, 농담이... 이 사람이!) 예를 들어 1번 2번 갔다 온 남자들이 전문가 중의 전문가. 게다가 수평 무게 중심이이 4:6에 전륜구동이면 끄는 사람 죽을 맛임. 또는 페라리 458 (앞:뒤=42:58) 미드쉽 후륜구동? 슈퍼카면 얼마든지 애마&주인 둘 다 윈윈. 그러나 슈퍼맨 아닌 이상 애마만 퍼지기 일쑤. 쌍코피 터짐. 맥을 못씀. 매가리 없음. 기 쫙 빨림. 쌍코피 또 터짐. 쉬지 않고 커피포트 부글부글 미쳐버림. 심지어 상하 무게 중심이 지면에서 높을 때 탑승자가 승차감 걸고 넘어지면 애마는 달리느라 힘든 걸로도 모자라 잔소리까지 얻어들어야함. 수시로 떽떽거리고 닭 잡듯이 닦달당하는 기분. (절레절레) 더더군다나 틈만 나면 지는 비교? 그래서 그 애마 심정은 뚜껑 열리다 못해 득도할 수밖에 없음. 남자도 전륜이든 후륜이든 성능 받춰주든 아니든 여자 잘 만나야 함. 여자도 마찬가지. 남자가 만나면 한마디로 피보는 여자? 쉿!
- 굶주린 하이에나
- 더 굶주린 늑대
- 개침 질질 목양견
- 벌... 발... 동네 똥개
- 최고로 굶주린 촌닭? 역대급 응큼한 촌년?
이렇듯 칼럼 초안을 작성하고 보니 별볼일 없었다. 무슨 칼럼이 이 모양이야? 어? 내가 일전에 완성한 칼럼들은 그래도 나름 자평하고 검토했을 때 음 괜찮네 나쁘지 않네 까지는 아니어도, 그나마 먹고는 살아야 했으니 마라랑 사라한테 보냈었다. 그런데 이건 뭐 자기 평가 기준선에 한참 모자르네? 정신 승리네 허세네 합리화네. 하트가 벌렁벌렁 하요 어쩌요? 네? 라는 턱걸이조차 힘겨운 수준이라니. 그게 그러니까 안 통하는 꾀병 안 먹히는 심술의 결과일까? 말도 안돼. 웃기지도 않으니까. 그래서 뭐? 어쩌자는 거야? 어쩌긴 뭘 어째. 차분히 마음을 진정시켜야지. 난 화나지 않았으니까. 난 화낼 줄 몰라. 평생 짜증이란 걸 내본 인생사가 없거든. 사랑의 묘약에 취해본 적이 없는데 우리가 만취한 기분을 어떻게 알아? 몰라. 난 몰라. 어? 딱 몰라. 우리는 짜증지수 그거 그 언제라도 미동조차 안거든. 거 뭣이냐 근데 내가 왜 갑자기 허세? 어울리지도 않게 웬 허풍? 그럼 그 다음은! 그래서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됐어? 보나마나 지지리 궁상맞을 중년운을 구해줄 최상의 첨병은 무엇인지 고심할 수밖에. 그건 곧 허영심 공백 상태? 쇠가 뜨거울 때 쳐라를 우리가 왜 모르겠나. 도대체 얼마나, 어? 배 들어올 때 노 저어라를 어길 정도로, 어? 하도 여복 어복 인기복 껀수복 만년 범타요 뻔트조차 이젠 리그 퇴출감이니, 어? 배 들어오든 말든 잔칫상 펴지든 말듯 숟가락부터 서로 올리기 바쁜 세상이지 않냔 말이다. 소 뒷걸음질치다가 쥐 잡는다고, 누구는 노력파 기분파 낭만파들 다 제끼고서 행운발로 재물복을 꿰차질 않나, 누구는 애마 자랑에 시간 가는 줄 모르지 않나.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되어버렸을까. 요컨대 정신산만! 혹시 정신병? 난 미치지 않았어. 내가 왜 미쳐야 하는데. 아님. 절대 아님. 난 사이코패스 아님. 소시오패스도 아님. 그러든가 말든가 에잇 재미없다. 거 참 더럽게 재미없네. 먹는 개 짓지 않는다고 맛난 거나 먹으러 가야겠다. 가자, 돼지고기 조지러! (점잖으신 분께서는 걸러들으시기 바람. 필자 원래 그렇게 센 표현 남발하지 않음. 다만 안 팔리는 얼굴 어쩌고저쩌고는 뻥 아닌데, 그와 달리 연재소설이나 명칼럼은 하도 안 팔려서 편집장한테 하도 구박받은 결과임. 진짜 진짜 극소수 오빠 열혈팬들과 엄청 사석에서 친하다는 가정하에 글을 쓰라면서 마라한테 얻어터지기 직전까지 간 게 벌써 몇 번인데. 일단 걔한테 다 뒤집어씌우기로 했음. 아니 사실은 걔가 다 시켰음. 지가 다 책임진다며 큰소리 떵떵쳤음)
14
내 사무실이라면 세헤라자드 같은 인공지능 지니와 놀 텐데. 그렇다고 아직 돌아가긴 좀 뭐 하고.
오디세우스 서사시를 읽기는 따분하고. 그렇다고 인터넷으로 다이아몬드를 구입하겠나 아니면 막 비서들 일 못하도록 찝쩍거리기를 하겠나.
그래서 나는 기회를 엿보았다. 1시간 2시간 3시간. 1일 2일 3일. 1주일 2주일 3주일. 1달 2달 3달.
OK~! 마침내 절호의 짬이 찾아왔다. 최고의 호기. 1년에 딱 1번 있을까 말까 한 그런 최적의 시간.
바로 버뮤다 축제의 날이었다. 해외토픽 뉴스에 보던 것처럼 토마토 축제, 황소축제... 막 그런 장면들 다 볼 수 있는 날.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냐구요? 당연히 저번에 실패한 일.
꿈에 비서 빽넘버 5번 크리스탈이 날 데려간 비밀공간 ──> 으슥한 미술품 보관실 근처로 갔는데 진짜 있었기 때문에 은근슬쩍 침입을 시도하다가 체포!
버뮤대 대학교든 어디든 모든 인원이 축제에 정신이 쏠려있을 때, 난 다시 그 비밀공간 침입에 재도전하기로 한 것이다.
해킹부터 잠긴 문 열기 등 잔기술을 숙달할 기간을 충분했으니, 따라서 나는 곧장 실행에 옮겼다.
그 간략한 설계도를, 상상만 수도 없이 하던 그 구조를 재차 반복하기로 하면 이렇다.
도표 ⅲ)
A → B → C
↓
D
자, 다른 각도에서 보자면 또 이렇게 볼 수도 있다.
* 미술품 보관실 문은 스위스 비밀은행보다 더더욱 초정밀 막강.
도표 ⅳ)
뭐 5차 6차 7차 끝판왕까지?
[어쩌면 4차 ]
[아마도 3차 ]
[2차 보안단계 문]
↑
↑→ D (바로 여기) (이거 열면 계속 1,2,3,4,5,6,7...은 모르겠음)
↑
(따고 들어가면)
───────────────[미술품 보관실 문]───────────────
복도 복도
──────────────────────────────────────
15
딱~ 그렇게 미술품 보관실 1차 문을 따서 들어간 다음, D를 열려던 순간 딱 열렸다.
캬~ 뭐야? 그런데 그건 가짜 문이었다. 아 가짜가 아니라 속임수! 즉 문을 열도록 모든 건 다 진짜인데, 열고 봤더니 콘크리트로 싹 다 발려짐.
이야 이런 속임수를... 그럼 시간벌기 위해서인가? 머리 썼는데? 누구 작품이야?
그러다 갑자기 왠지 모르게 난 뒤통수가 세~했다. 이건 또 뭐야? 대체 뭣 때문에...!
뭐지? 뭐지? 이건 대체 뭐지? 왜 갑자기 소름이 돋지...? 난 곧바로 뒤를 돌아봤다.
그랬더니 글쎄 내 뒤쪽에 벽면을 찢고서 녀석들이 나타났다. 빽허그!
거의 6개월 전에 나랑 함께 비서실 비밀창고를 열려다 체포되었던 친구들.
Ⅰ) 해커: 켄트
Ⅱ) 건물비밀통로&기술 담당: 로버트
Ⅲ) 친화력 담당: 로즈마리
Ⅳ) 어중이떠중인: 나
당시 체포되어서 나만 남고, 녀석들은 다 도시로 강제 이송되었는데.
뭐야? 그럼 지금까지 여기 갇혀있었던 거야?
눈치를 보아하니 저 벽 안쪽에 안에서만 열 수 있는 스위스 비밀은행 무시무시한 문짝이 있고.
그걸 열면 이처럼 쉽게 벽을 찢으면서 나올 수 있는 구도. 뭔지 알 만했다.
그런데 녀석들 면상을 보아하니... 정말로 갇혀있었단 말야?
「가자. 친구.」
「그래. 당장 가자.」
「나중에 다 설명해줄께. 시간이 없어.」
「」
난 녀석들의 카리스마가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내 짐이라고 해 봐야 특별히 챙겨야 할 만한...건 없었다.
그렇게 내 웨건에 녀석들을 태우고 난 도시로 당장 출발했다.
가면서 어떻게 된 영문이냐고 내가 먼저 물어볼 수는 없었다.
실어증은 아니겠으나 뭔가 사연이 호락호락하지 않을 테니 시간 여유를 충분히 줘야 하니까.
그렇다고 설마 피츠제랄드나 사무엘이 날 내칠려고, 얘네들을 007가방으로 포섭해서, 이런 가짜 작전을 꾸미진 않았겠지?
그야 차차 알아보기로 하고, 우리는 그렇게 버뮤다 섬을 떠나게 되었던 것이다.
16
그렇게 난 녀석들을 데리고 무사히 버뮤다 섬을 빠져나가나 했다.
그런데 뭐야 이거! 섬과 육지간 다리 너머로 차량 비상등으로만 저녁인데도 대낮처럼 밝네?
막 사이렌 울리고 난리난 것이다. 도로 통제에 특수경비대 차량들 하며 막 별 희안한 특수차량들도 즐비했다.
그래서 난 일단 다리를 건너가지 않고서 일단 멈추었다.
「쟤들 뭐야?」
「것봐 내가 말했지?」
「난 못 들었는데.」
「넌 우리랑 같이 안 있었으니까 당연히 못 들었지.」
「근데 너네 말 잘하네? 아니 진짜 내 하나 묻자. 너네 증말 피츠제랄드나 사무엘 세력한테 매수당한 거냐? 그래서 지금 연기하는 거냐고. 나 속아줄 용의 있어서 그래. 이제 그만 돌아가고 싶어졌거든.」
「매수같은 소리나 하고 자빠졌다.」
「뭐 임마? 그러면 진짜로 그때 이후로 지금까지 갇혀지낸 거야? 그 안에 없는 거 없이 다 있든?」
「너무 많은 걸 알려고 하지 마.」
「이 자식이 영화 찍고 있어! 내가 임마 너네들 생각해서 일부러 묻지도 않고 데려가는 중인데, 뭐가 어쩌고 어째? 어? 난 너네 실어증 걸렸을까 봐 일부러 조심하는데, 너넨 나한테 뭐 숨기는 거 있냐? 그래? 있으면 말해 봐. 못할 거 없잖아.」
「못해. 하면 안되니까.」
「그럼. 사연이 길다. 비밀도 많아.」
「아니 그러니까, 아 맞다. 저기 다리 건너편에 쟤네들은 또 뭐니?」
그때 천재 해커 켄트가 냅다 대화에 끼어들었다.
「야, 튀어.」
「뭐?」
「튀라고. 튀란 말 못 들었어?」
「튀긴 뭘 튀어?」
「수배령 떨어졌어.」
「수배령? 무슨 수배령? 누구? 우리? 난 아니야. 난 빼줘. 우리가 뭘 잘못했는데.」
「튀라면 좀 튀어. 긴급수배령 떨어졌으니까. 우리가 버뮤다 대학교에서 비밀 서류를 빼내온 게 있거든. 도난 미술품들 창고 내역과 조세회피 및 비자금 거래내역 등 웬만한 건 다 있어. 너 그 사이트 알지, 재벌닷컴! 거기 우리가 들었다 놀 수 있어.」
「그래서 쟤네들이 우릴 잡기 위해 대기중이라고?」
「응.」
「쟤네들이 바보냐? 쟤네들이 우리한테 오면 되지 왜 보고만 있는데? 우리가 무슨 동네 똥개들이냐?」
「왜냐면 주지사랑 특별시까지만 버뮤다 세력들이 힘이 닫거든. 그게 다 우리가 미리 다리 안쪽편 공권력은 접수했기 때문이야.」
「정말이야?」
「그럼 뻥인 줄 아냐? 우리 셋은 차 몰고 돌아갈 테니까 그럼 너 혼자 걸어서 다리 건너 가든가.」
「야 임마 이거 내 차야.」
「늬 거 내 거가 어딨어, 지금 이 상황에! 너 자꾸 그렇게 쪼잔하게 굴래? 어? 그럼 확 너만 보내버리는 수가 있어. 어?」
「그럼 이제 어떡할 건데?」
「어떡하긴 뭘 어떡해! 버뮤다 호텔로 가야지. 거기서 잠잠해질 때까지 관망할 수밖에. 제라드가 비둘기 띄울 때 되면 띄울 테고.」
「버뮤다 호텔?」
「응.」
「내가 너네들보다 훨씬 오래 있었는데 난 왜 몰랐지?」
「허당이니까.」
「」
「출입금지구역 최정상에 비밀 리에 짓고 있었어. 그래서 너가 몰랐던 거야.」
「거기 별 몇 갠데?」
「특급호텔이니까 최소 5개? 7개? 그냥 70개 할까?」
「진짜 특급이야?」
「넌 내 말이 뻥인 줄 아니?」
「뻥 아니지?」
「얘들아, 얘 빼고 우리들끼리만 가자.」
「알았어. 대충 뭔 얘긴지 알겠다.」
「안다고? 늬가 뭘 아는데? 우리가 그동안 거기서 얼마나... 됐다. 늬가 뭘 알겠니?」
「왜 속 시원히 말 못해? 정말... 설마... 혹시...」
「아직은 아니란 것만 알아둬.」
「그래~ 특수든 특급이든 너네 다 해먹어라.」
「진짜야 특급호텔. 우리 사전에 일반은 없다. 우리는 특수라는 둥 한정판이라는 둥 아니면 상대 안해.」
「그래. 그런다 그래. 일단 거기 가서 뭐 좀 먹자. 배고프다.」
그렇게 우리는 버뮤다 호텔로 발길을 돌렸고, 난 당시 그 피신 생활이 퍽 길어질지는 꿈에도 몰랐다.
17
그때 버뮤다 호텔로 들어선 다음 3개월 후, 나는 지금 사무실에서 글을 쓰고 있다.
내 사무실에서도 일했다가, 심심해지면 환상문학잡지사 구석지에서 또 여성환상 1.5에도 다 내 책상은 있고.
어쨌든지 버뮤다 대학교 비서실에서 그녀들과 함께 하던 시간들이 너무 즐거워서 그랬을까 아니면 내가 원래 허당이니까? 난 버뮤다 호텔에서 숨어지내면서 상태가 많이 안 좋아졌으므로, 따라서 난 지금도 당시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서 백방으로 노력중인 것이다.
이 세상의 수많은 즐거움 가운데 돈 쓰는 재미만한 덕목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일까? OB는 아지트에서 시트콤 친구들과 통속적으로 농담 따먹기 대화하는 놀이마저 싫증나버렸다. 몸으로 때운다는 둥 맥주나 조진다는 둥. 그렇다고 이미 영화를 너무 많이 봐버렸으므로 소파에 자빠져 리모콘 쥐고서 TV 채널돌리기에 불만족스럽기 일쑤. 어제는 내게 무슨 짓을 한 거야, 오늘은 이런 느낌 처음이야, 쾌활한 기분 유쾌한 분위기의 연속. NB는 그런 행복감이 뭔지 다 까먹었다. 그렇다면 말이다 올드보이라며 놀림받건 어쩌건 '막살자' 웨이터처럼 YB라는 명찰을 아예 파서 가슴에 떡하니 붙이고 다닐까? 라는 멍청한 공상, 품위 유지비 벌기와 직결되지 않았다. 따라서 이제 정말 무한한 정력 끝없는 쾌락을 선물해주는 새로운 인생을 고민해보지 않으면 안될 시점이란 말인데. 정말 그래야만 하는데. 이건 뭐 에스프레소를 마셔도 시큰둥하고. 변신기계라는 환상의 요술상자를 팔아버린 허탈감뿐. 그럼 결국 놀기 아니면 일하기라는 히든카드 달랑 2개뿐이란 말이잖아? 누가 아니래. 고로 마침내 배부르든 굶었든, 개는 개뼈다귀를 절대 마다하지 않는다고 그는 오늘도 일이 더더욱 재미있어졌다. 진짜로? 뻥이다. 그러나 어쩔 수 있나. 하는 수 없지. 고양이가 생선을 마다하겠나 아이가 사탕을 싫어하겠나. 개가 땅파기를 어찌 끊나. 그래서 환상문학잡지와 여성환상에 전화해서 새 책 몇 권 보내주라는 소식을 전했다.
1
OB는 여성환상 편집장 사라를 피해다니는 중이다. 왜냐하면 보나마나 '벌렁벌렁 대 발딱발딱'같은 제목의 삼류 칼럼 왜 안 쓰냐 라며 잔소리할 게 뻔하기 때문. 왜 아니겠나. 싸구려 스타킹 구멍난 거나 버리던가. 툭하면, 어? 걸핏하면 그저 어떻게 한번 남자 꼬실까 그 궁리. 어? 아무튼~ OB는 동생들한테 커피 잘 사주는 오빠라는 칭찬 더는 듣기 싫었던 것이다. 걔가 걔네들을 모르나? 모를 리가. 너무 잘 알아서 탈이지. 그럼. 당연하지. 어? 고상한 척 도도하게 화장 한 듯 안 한 듯. 근사한 거 좋아하고 나서기는 더 좋아하고. 시간만 나면 남 얘기하기가 취미인데 겉으로는 남 얘기하는 거 싫어한다 그러고. 어? 학교 다닐 때 위선 떨며 착한 척하며 험담 겁나 많이 하고 다녔을 게 뻔해. 응큼한 년. 촌년. 능글맞게 말이야. 유들유들 능글능글. 남자 더럽게 밝히는 년. 지가 무슨 OB 여편네라도 돼? 남자라면 사족을 못 쓰는 년. 껄떡이 껄떡이... 쉿! NB가 쓰는 소설 속에서 애첩 단역이라도 어떻게, 좀 한번, 어떻게... 막 그런 쓸데없는 공상이나 하는 년. 미련곰탱이. 남자에 환장한 년. 물론 YB와 그녀 단둘만의 농익은 친분이 더없이 끈끈하다는 가정 하에 말이다.
다음으로. 뭐 환상문학잡지 미스테리아 마라 편집장? 흑심은 늑대에게만 있는 게 아니라 코끼리에게도 있다. 사심. 군침. 눈독. 개침. 질질. 탐욕. 본능. 시간만 나면 연재소설 마감일 독촉하고. 아직 한참 남았는데도 불구하고 그냥 인사말이야 인사말. 너무 타성에 젖어 권태에 빠진 슬럼프 먼저 알아봐주면 안되나? 지 아쉬울 때만 립서비스에 앙탈에 교태. 여자랑 얘기할 땐 목소리 걸걸. <숙녀를 좋아하거든 여심을 설레게 만들라>라는 명언을 우리가 모르는 거도 아닌데. 남아도는 게 숙녀들의 러브콜이었으니 질릴 때도 됐지. 우리는 여자 보기를 돌맹이 보듯 하거든. 그렇다고 연애라면 아주 신물이 난다는 OB의 간곡한 허풍을 믿어, 말어? 믿거나 말거나! 못 이긴 척 하기 싫은 일하기, 그에 미친듯이 열중하는 인생. 신나게 놀기 좋은 젊음의 호시절을 모른 체 낭비인지 몰입인지 아니면 중독인지 하나도 구분 못하는 삶. 한마디로 그는 더럽게 재미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변화는 절실했고 새로움은 필연이었으니. 달콤한 쾌락을 질릴 때까지 누릴 수 있을 안정기는 대체 언제쯤에나. 새콤하든 행복하든 인생의 모든 존망이 달린 궁핍한 슬럼프를 과연 어떻게 탈출할 것인가. 더럽게 따분한 일상을 탈출할 방안이라고는 떠올려봐야 뭐, 케케묵은 주전 구식 탱탱 묵은 대타 같은 묘수뿐. 허나 알고 보면 죄다 시시할뿐. 인터넷 놀이터에서 솔깃한 제목에 낚이면 한방 된통 먹기 일쑤. 고로 방법은 하나다. 딱 1개. 바로, 떠나는 것. 곧 박혀있는 돌에는 이끼가 돋는다. 청소. 일기. 교육. 독서. 취미. 개편. 이직. 다 그래서 하는 것. 물론 다정한 호시절이라면야 굳이 마케팅 정책진을 개각하지 않아도 됨. 그런데 어디로 떠나지? 오라는 데가 없는데! 누가 아니래. 참 내 뭘 해도 이런 식이지.
그래서 OB는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집을 나섰다.
그렇게 집을 나서자마자 전화가 걸려왔다. 신호음이 울리는 동안 핸드폰에 이름이 뜰 텐데 번호만 떴다. 모르는 사람이란 말인데. 누구지? 그는 전화를 받았다.
「친구. 잘 살았니?」
「누구...?」
「나야. 나라고.」
그러면서 전화가 끊긴 다음 그의 앞으로 고급 자동차가 한대 오더니 멈췄다. 그건 바로 리무진.
조수석 창문이 열리더니 어느 웃는 남자의 얼굴. 낯이 익었다. 옛날 한 반년 함께 일했던 친구.
걔가 스타니슬라프로 불러주라 그래서 그렇게 했다. 곧바로 자연스럽게 비서가 내려서 리무진 한쪽 문을 열어주었다.
스타니슬라프이 잠깐 얘기 좀 하자 그래서 그는 차에 탔고 그들은 가까운 카페로 갔다.
2
그곳은 가까운 찻집이 아니라 근처 대학교였다. 지방대. 저속한 표현이라 하기 애매하긴 하나 굳이 말하자면 인근 지방 전체에서 넘버 2.
그곳에 도착했고 그들은 사무실로 들어갔다. 대학교 본관 끝부분 1층 한동을 통채로 사용하는 것 같았다. 들리는 음악은 잘은 몰라도 이랬다.
Stabat Mater RV 621
Nisi Dominus RV 608
Salve Regina RV 616
그때가 언제였더라 아마 한 17년쯤 됐나? 지금은 모르겠는데 당시 독주하던 세계 게임회사. 그 본사의 외국지사,에서 다시 지방 담당자 면접을 호텔에서 앞두고 있었는데. 어쩌다가 그걸 포기한 채 걔랑 일하게 됐는데. 걔는 전기회사의 사장. 사무실 직원은 관리자 1명 경리 1명이 전부. 나머지는 전부 아웃소싱. 아무튼 그건 그랬고.
그 어떤 이상한 분위기 때문인지 몽롱한 기분 탓인지 그를 오늘 만나고부터 내내 그는 끌려다닐 수밖에 없었다.
그곳에 도착한 다음에도 그가 선보여주는 장난감과 아동복과 여러가지 신기한 구경거리들을 보느라 NB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스타니슬라프는 생전 처음보는 유리섬유를 가지고 놀았다. 인공 실처럼 보였다. 반짝이기도 했고 반투명하다가 투명하게도 바뀌고. 색상이 화려했다. 어떻게 보면 상처를 꼬맬 때 쓰는 (상처 아물면 자동으로 녹아없어지는) 의료용 실인 것도 같았다. 그런데 스타니슬라프 말을 듣고 보니 그건 투구갑옷게, 고래, 심해어에서 추출한 성분을 이용한 특수 실이라고 했다. 그걸로 짜여진 옷을 입으면 투명인간이 될 수 있다나 뭐래나. 그런데 그 말을 너무 진지하게 했기 때문일까? 그건 뻥이 아니라 사실인 것만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신기한 특수 소재로 만들어진 털실은 마치 정말로 살아있는 것만 같았고, 따라서 녀석 빛이 밝아지면 NB가 걸친 옷의 색깔을 전부 흡수해버려 그의 옷은 모두 검게 변해버렸다. 베이스 기타처럼 한 4가닥 됐나? 그러다 다시 그 신비로운 털실 빛이 옅어지면 NB가 입고 있는 의상의 색상은 원래대로 돌아왔던 것이다. 그러면 이건 뭐랄까 그 옛날에는 심복으로 남기를 바랬더니 지금 와서는 NB를 뭐 프랑켄슈타인 실험용 쥐로 생각했을까? 일단 두고 보면 알 테고. 그러면서 스타니슬라프는 그 길다란 실 몇 가닥을 들더니 NB의 몸을 측정하고 있었다. 맞춤복을 만들기 위한 실측 과정으로 보였다. 일종의 뜨개질처럼 신종 기법에 의해 스웨터를 만드는 일인 듯 했다.
「그건 뭐 하려고...?」
「너 줄려고. 잘 어울릴 거 같은데. 무슨 색깔로 해줄까?」
「」
「실망할 일 없을 거야. 지분을 투자하란 말도 아니고. 와서 열심히 일하란 말은 더더구나 아니야. 친구. 얼굴만 비춰줘.」
그러다 갑자기 어느 아동이 나타나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다. 스타니슬라프 아들인지 딸인지 아마도 그런 듯.
예전에 듣기로 스타니슬라프가 북쪽 대도시에 가서 산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동쪽 대도시에서 산다고 했다. 일은 여기서도 하고 그렇게 왔다 갔다 한다는 말인데. 그러다 스타니슬라프는 옆 사무실로 이동했다. 거기서 스타니슬라프는 NB에게 놀라운 장난감을 보여주었다. 그건 흡사 그 무언가를 방불케 했다. 바로,
레고 + 심시티 + 애들 장난감 + 군 고위급 지휘실 전광판(수직) + 전투 작전 상황판(수평) + 신도시 조감도 실사 모형판(비스듬) = 괴상한 가상현실 놀이기구'
그 다음으로 다시 또 옆 사무실로 스타니슬라프는 이동했다.
거기서 어딘가 낯이 익은 사람과 인사를 나눴다. 고등학교 아니면 중학교 동창으로 보이는데. 대략 말을 나눠보니 학부에서 고급수학을 전공했다나 뭐라나. 자기 말에 따르자면, 자기 이론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 동급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통성명을 나누지 않은 녀석이 하는 일이라곤 엑셀 작업일 뿐이었다. 그 다음 갑자기 어딜 가자네, 과연 어디로? 가보면 안다고 했다. 그렇게 자동차로 걸어가다 자동차 뒷부분 쪽에 거의 다 와서 스타니슬라프는 운동화를 땅바닥으로 던졌다. 뒤따라오는 NB보고 챙기라는 뜻인 것 같았다. 즉 스타니슬라프는 실내에서 운동화를 신었고 바깥에 나갈 때는 슬리퍼로 갈아신었다.
그렇게 NB는 스타니슬라프의 운동화를 주워서 차 트렁크에 넣었고, 자기가 직접 운전석에 앉았다.
스타니슬라프, 이름 모를 남자, NB. 그렇게 3인방은 어딘가로 이동했다.
도착한 곳은 어느 근사한 식당이었다. 거기서 그들을 기다리는 멋진 남자가 있었다.
NB는 단박에 짐작했다. 단숨에 눈치 챌 수밖에. 보아하니 그 정체 모를 멋진 남자는 NB의 전임자인 듯.
그래? 말하자면 그 옛날 스타니슬라프가 입버릇처럼 말하기로 심복 심복 그랬는데. 그럼 이번에는 뭐 충복 더블 캐스팅? 무슨 뮤지컬 주연 더블 캐스팅도 아니고 뭐야 그게?!
어쨌든 그렇게 4명 남자는 식당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상남자들이라 널찍널찍 앉았다. 그러다 옆 자리에 손님들이 왔다. 곧 있다가 어느 동네 아저씨가 NB 옆자리에(4명 일행 즉 2 : 2 마주보는 상태에서 1명과 NB의 중간에 낑겨) 앉았고. 그래서 어떻게 어떻게 해서 그는 저 끝으로 밀려나게 되었는데. 그러자마자 음식들이 오고 어쩌고. NB는 일어나 걸어서 일행들이 있는 자리로 돌아갔다. 그렇게 식사를 진행하는 동안. 아까부터 NB는 내심 생각이 많았다. 복잡했지. 왜일까? 왜겠나! 왜냐, 왜냐하면 그 옛날 겪었던 일들을 또 반복해야 하냐 라는 아찔함 때문에.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 수 밖에. 만나는 순간부터 거 어째 느낌 세했는데 점점, 점점점, 점점점점점... 계속 어떡하나 이제 정말 어쩌면 좋나 라는 아련함. 그와 동시에 좌표값 암산에 암호학, 각본, 즉흥연기, 변수 등에 관한 공상도 빼놓을 수 없었다.
다음으로 또 어딘가로 이동했다. 근처 공원에 도착해 쉬면서 또 어느 동네 아저씨를 만나 뭔 얘기를 나눴는데 NB는 잘 기억나지 않았다. 바로 그건 어젯밤 개꿈이었으니까.
3
소동은 크나 열매는 적다. 최근 슬럼프를 겪는 YB 삶의 줄거리. 올드보이 인생 언젠 안 그랬나? 하긴 손에 쥔 핸드폰을 찾는다고 엉덩이만 들썩들썩하지 의욕만 앞서고 성과는 없고. 그럼 NB는 이건 어떨까 라고 생각해봤다. 바로, 무작정 새로운 인생과 신나는 사랑을 기다려볼까? 누가 아나 쾌청한 탐욕과 미완의 신비감을 더없이 만족시켜주는 귀인이 느닷없이 나타날지. 허나 바랄 걸 바라야지. 하오나 시 제목마따나 삶이 그대를 속일지언정 어쩌고저쩌고. 울고 싶을지언정 죽고는 싶지 않은 인간의 운명. 그렇지만 뭔가 있어 라는 불쾌한 공포심을 자극하는 하고많은 세상사 끊이질 않고. 그래서 최근 월간문학잡지 미스테리아는 격월간으로 바껴 독자를 띄엄띄엄 알더지만, 발행을 두어 번 건너뛰더니 결국 휴면기에 들어갔다. 직원들 역시나 휴직. 사정이 사정이니 만큼. 그렇다고 NB까지 휴업할 수 있나, 안 그래도 업무 공간 미스테리아에다 만들어놨다. 마라는 허락한다는 뉘앙스를 풍겼으나 입장 바꿔 NB가 통보한 셈. 따분함 지루함 지겨움 질리는 심심함과 더럽게 재미없는 일상을 탈출할 뾰족한 묘수가 없으니, 따라서 그는 미스테리아에 출근하기로 했다. 걸리적거리는 여심도 없겠다 군침을 왜 흘려? 한적허니 일하기 딱 좋은 환경. 그렇게 출근한지 2일째.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바로, 직원들 일기 훔쳐보기.
처음에는 딱 1번만 보려고 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진짜 처음에는 어떡하다 보게 됐다. 일부러 보려고 했던 게 아니라. 그런데 이게 이게 점점 빠져들면 빠져들수록 끊을 수 없네? 아닌 게 아니라 절묘한 작전에 따라 겁나게 완벽한 계획으로 그가 말려들 수 밖에 없도록 미리미리 다 사전에 짜여진 게임인 듯 했던 것이다. 딱히 진한 사랑보다 더 정신없는 빠져듦? 자신있게 네 라고 말할 수는 없어도 뭔가 다른 느낌이 있긴 있었다. 아아 터진 자루는 채울 수 없는 것일까? 귀 간지럽기가 끝이 없었으니 고로 그는 날이면 날마다 직원들 일기 훔쳐보는 재미에 출근을 계속하고 있었던 것이다.
4
2020년 4월 1일 (라파엘로)
우리 나이 정도 되면 모든 걸 내려놓는 여유를 얻는다고나 할까? 거품 같은 인기 관심도 없고. 여복이 뭐가 중요하나! 숙녀보기를 돌보듯 하는데. 하오나 뻥. 뭘 해도 재미없기 일쑤. 신난다 재밌다 즐겁다 다 뻥. 몽땅 뻥. 도대체 얼마나 칼럼 나부랭이를 더 써대야 팍팍한 먹고살기가 풍요로워질 수 있을지. 그런 고민 한 번도 해본 적 없다. 물론 뻥. 침착한 사색가연하는 태도. 연기이자 허세일 뿐. 차분한 철학자인 척해도 누가 좋아하며 봐줄 사람 하나 없지. 허풍도 골았어. 미소 썩었지. 어쩌다 으쌰으쌰 놀 땐 기분파. 그런데 놀 기회라곤 혼자 놀기가 전부. 생활고에 대한 걱정은 인상파. 문제는 행복한 쾌락마에 대한 막심한 갈망, 그건 언제나 낭만파. 그럼 뭘 해? 그럼 뭘 하냐고. 그래 봤자, 환상문학잡지 편집장 마라는 쉼없이 마감일 독촉을 하질 않나, 여성환상에서는 밀린 원고료 매번 미루지를 않나. 혹시 그년이 떼먹을 생각? 에잇~ 설마! 설마가 사람 잡으면 어떡하지? 어떡하긴 뭘 어떡해. 이거 정말 촘촘한 재미 꼼꼼한 기쁨을 어디서 사오기라도 해야지 참 나. 난 괜찮아 라며 의연한 척 노래부르기, 춤추기, 놀기, 먹고 마시기. 다 재미없어. 몽땅 재미없다고. 어? 그래서 꼭꼭 숨겨둔 비장의 묘수는, 없다? 있을 리가 없다니까. 그러니까, 됐고. 따라서 나는... 나는... 나는... 혹시 누가 엿볼지 모르니 여기까지.
2020년 4월 2일 (체실리아)
나는 개꿈을 측정할 수 있다. 물론 나는 식탐의 측량도 가능하다. 그렇지만 신비한 성욕을 실측할 수 없기 때문일까? 뭘 해도 재미없었으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해결사의 필승론을 탐색하는 건 어떨까? 어떻긴 뭘 어때, 해도 별 거 없지. 또 해서 뭐 하게? 참 내 거 별 나 그 증말. 하여튼 정체가 의심스러운 인간. 곧 이 내 의뭉스러움은 자기 자신을 이렇게 호명할 수 있었다. 자기 자랑은 없거나 지겹거나 바닥났으니까. 말하자면 눈 깜짝할 사이에 가상현실혁명과도 같은 문학을 뚝딱 완성하고자 노력하는 문인. 허나 꿈과 달리 대체가능한 칼럼니스트 생활. 싫증난 혼자 놀기 누군 뭐 안 따분하겠나. 보아하니 인생이란 별 거 없다. 단언컨대 인간의 삶을 요약해주는 말이 있다. 그건 뭐냐 하면 이렇다. 바로, 침 없는 꿀벌 없고 가시 없는 장미 없듯, 더티러브 없는 사랑도 없다. 뭐? 뭐라고? 뭐가 어쩌고 어째? 이거 정말 보자 보자 하니까 말이야, 말이면 단 줄 알아? 어? 이런, 젠장! 그런 말도 안되는 인생관은 앵무새랑 논쟁하든가 말든가.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얘기를 말이야.
그러므로 나는,
야! 너. 그래 너. 어디 옆을 두리번 거려. 너 임마 너. 그래 너. 너가 보고 있는 거 다 알고 있어. 물론 몇몇 의심가는 인물이 있지. 그렇지만 똑 부러지게 누구라고 말은 못하는데. 심증 가나 누구라고 말은 않겠는데 너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어? 난 경고했어. 알았어? 알았어 몰랐어? 왜 대답이 없어? 어? 뭐? 조용히 해. 그러니까 누가 내 일기 읽으래?! 뭔 생각해? 어딜 넘봐. 속옷 훔쳐보는 상상했냐? 벌써 다 읽었어? 봤으면 지워. 잊어. 넌 왜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하고 그래? 가. 꺼져. 집에 가서 공갈 젖꼬지나 빨어. 알았어? 알았어 몰랐어?
2020년 4월 3일 (미카엘라)
비밀은 없다. 사랑은 잊어먹음. 여복이야 꽝. 호기심 바닥. 상상력 빈곤. 자유와 행복 같은 뻔한 낱말은 그저 고리타분할 뿐. 격한 공감과 진한 감동을 이끌어내는 새빨간 거짓말조차 납득력 하나 없으니까 환상문학잡지 미스테리아에 연재할 분량도 빵구남. 사람이 말이야 남자들 허세도 넙죽넙죽 받아주고 숙녀들께 립서비스도 소곤소곤 풀고 그럴 줄 알아야지, 왜 아는 동생들은 모두 다 날 떠나갔을까? 왜긴 왜겠나. 뜸들이기의 명수를 기다리다 기다리다 퍼진 거지. 그러면 이제 정말 비장의 카드, 특단의 대책을 꺼내들어야 한단 말인가? 과감히? 어? 정말? 내가 괜히 시간끌기의 제왕일 리가 있나. 강력한 한방이 있었으면 이처럼 더럽게 재미없는 노총각 아니 노처녀 인생이 되었을 리가. 능청떨기 마왕 주제에 허풍을 떨어도 납득이 안되기 일쑤. 걸핏하면 뻥. 심심하면 뻥. 그저 하는 일이라곤 오빠~ 오빠~란 말만 들으면 정신이 나가버리지를 않나. 아리따운 애정을 떠올리다 쩔쩔매지를 않나. 보아하니 커피 끊은 것도 그렇고 뭘로 보나 보나마나 늙었네. 뭐? 쟤들은 뭐가 그렇게 재밌고 신난다고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낙엽만 봐도 꺄르륵 꺄르륵. 떨어진 낙옆은 날아가고 떨어진 열매는 나무밑에 있다. 허황된 야망은 기억도 안나고, 아찔한 소망은 소망은! 이런 젠장.
그래서 나는... 내가 뭔 말 할려고 했더라?
5
2020년 4월 4일 (카타리나)
겁나게 까마득한 쾌감의 주인공으로 낙찰될 것만 같은 예감. 아찔한 기대. 내가 오빠 이럴려고 만나? 노노노노노노노! 그런 값싼 허영심 말고. 이런 느낌 처음이야. 이런 기분 이제야 알았어. 오빠 내게 정말 무슨 짓을 한 거야? 젠장 꿈 깨자! 치명적 매력을 뽐내는 숙녀 생각 해서 뭘 하게. 보아하니 영보이에서 올드보이로 멋지게 늙어가는 게 남자 인생 정상이자 이상적 궤적인데. 이게 이게 MB(미친놈)처럼 다짜고짜 밑도 끝도 없는 낭만적 환상을 탐구한다면서 변신 기계를 가지고 놀지를 않나, 말 같지도 않은 칼럼들만 골라 쓰지를 않나. 어제는 가만 있는 벌집을 쑤시더니 오늘은 개꿈 꾸며 달콤히 낮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리질 않나. 어? 왜 자기만 뭘 해도 재미없냐 따분하냐 지루하냐 그거구만 그래. 허허. 허허허허허. 그렇긴 하다만 뭐 틀린 말도 아니고 누군 뭐 구태여 그런 말 하고 싶어서 하겠나.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나름 착한 척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 때문에 난 그랬다. 보기에 퍽 부담스러운 자기 얼굴은 뻔뻔한 상판떼기요, 반면 타인들의 아름다운 용모는 말 그대로 용안. 하여간에 그놈의 위선과 가식과 허영심. 능청이 능청이 현란한 혀놀림만 놓고 보자면 그야말로 혀 메시인데. 그런데 재물복 성과는?
좌우지간 네 얘긴 재미없고 그 인간 얘기 조금만 더 하자면 이래. 그야 어떻든 NB 역시 하는 수 없이 남자. 딱 남자. 완전 상남자. 그러므로 사랑의 흑심은 여지없이 파랑새의 뻔트인 법. 양이 있는 곳에 늑대도 있다. 개뼈다귀 보이면 개는 환장하기 마련. 뭐? 뭐가 어쩌고 어째? 젠장. 우리는 여자한테 관심 없음. 꼴보기 싫음. 재미없음. 귀찮음. 제발 한번만 만나주라는 간청 수없는 애청, 그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뿐. 아주 그냥 지겹단 말이다. 말하자면 수캐 암캐가 있으면 강아지도 생긴다지만 OB는 연애에 취미 없음. 전혀. 일절. 사랑론이라면 아주 그냥 진절머리가 날 지경. 쓴물이 다 올라와. 신물나는 수다. 하지만 아마도 그 인간 점잔 뺄 처지가 아닐 텐데? 말만 말만 YB면 뭐 하나, 찬밥 더운밥 가리지 못할 입장인데. 뭐라고? 아니다. 아니야. 진짜 아님. 호랑이는 아무리 배가 고파도 풀을 뜯어먹지 않음. 그렇긴 하나 사자는 토끼를 잡을 때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걸 모르지 않으니. 따라서 뭘로 봐도 이건 모순 천지란 말인데. 쯧쯧! 이걸 어쩌지? 어쩌긴 뭘 어째. 어? 넌 뭐야 비켜. 고개 돌려. 뭐? 조용히 해. 넌 왜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하고 그래? 뭐? 마이크 꺼.
그래서 나는
2020년 4월 5일 (아그네스)
이래라 저래라 잔소리에 주늑든 젊음. 다른 말로 늙음? 보아하니 이제나저제나 희망찬 꿈에 풀베팅할 최적기만 노리다 마침내 언젠가, 신비스런 환상머신에 소망이고 나발이고 다 잊어버리는 인생. 그럼 그것은 정녕 뜨거운 애무에 마음을 녹여버리는 변신기계라도 된단 말인가. 변신은 무슨. 대망에 대한 연패를 만회할 기회는 없음. 왜냐하면 애초에 야망 같은 건 없었으니까. 그러니까 이렇다 할 성과없는 낭만적 사색가의 통장 잔고. 지나가버린 허황된 개꿈이 오늘에게 본때를 보여준 결과.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뭐냐고! 너무 많이 알면 실망할 뿐.
이처럼 이 지긋지긋한 공상에 골머리를 앓기만 반복했므로 따라서 나는 드디여 결심을 했다. 정말로? 뻥이다. 한때 허당계 거물 축에도 못 낀 주제에 계획은 무슨. 선물받은 넥타이 매고서 서류 만지작거리는 사무직이 아니라. 마우스나 꼬물꼬물 만지작거리며 인터넷 소문이나 두리번거리다 드물게 낄낄거리며 농땡이치는 푼수. 쪼물딱쪼물딱 아주 그냥 마우스 닳아지겠다 닳아지겠어. 누가 지 꺼 아니랄까 봐! (절레절레) 꼴에 예술한다고 자칭 대중적인 칼럼과 순수문학 연재분 빠트려 슬럼프에 빠져사는 허당. 그러니까 제 말은 어딘가 모르게 흠씻 두들겨맞은 듯 타성에 젖어버린 정체기, NB는 빠져나와야만 했던 것이다. 뭐랄까 코카콜라 광고보다 더 뻔한 사랑의 변심과 인생의 권태로 발생한 반작용 때문이라고나 할까? 재미없음과 심심함을 양쪽에 끼고서 썩은 미소를 짓는 듯한 맷집마저 바닥권이니 이건 뭔가 변화가 필요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상황. 그러므로 소파에 자빠져 TV보며 더럽게 재미없는 멜로드라마 흉보기 정도로는 벙커 탈출은 어림도 없다는 말인데. 그럼 뭘 하나, 그럼 뭘 해. 그래 봐야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좋게 보면 성격 좋은 팔색조요 나쁘게 보면 만년 호구 1.5군!
그래서 나는, 그래서긴 뭐가 그래서야! 월급날이니까 어서 퇴근해서 한잔 해야지.
6
YB 아니 올드보이는 사무실에서 어떤 음악을 들을까 선곡 고민을 하고 있었다.
A) Handel / 오페라 <아리오단테> - “밤이 지나면 태양이 빛나고”
B) Haydn / Hob XVIII:3 - Piano Concerto in F major
C) Bellini / 오페라 <몽유병의 여인> 중 1막의 아미나의 카바티나: 이 얼마나 화창한 날인가
추억의 만화영화 톰과 제리에서 톰이 딱 어떤 표정을 지으면 탐스런 사과를 불독이 채가는 것처럼.
만화 스머프에서 가가멜이 손이 비비면서 입맛을 다시며 군침 닦자 딱 먹을려던 순간~
그와 같은 표정으로 오늘 쓸 칼럼 주제 정했고, 착상을 다듬어 문학 아이디어를 선명하게 만들 무언가와 어울릴 음악을 막 고르려는데!
대뜸 노크도 없이 환상문학잡지 편집장 마라가 찾아왔다. 나만 문을 벌컥 여니? 너도 맥주 벌컥벌컥 마시잖아! 라는 듯이 말이다.
「웬일이야 아리따운 숙녀께서? 왜 하필 이 누추한 곳에! 그 귀하신 시간을 할애하시는 영광을 딴놈도 아니고 바로 내게?」
「너무 길다. 뭔 인사말이 그리도 길어? 그러니까 오빠가 여자가 없는 거야. 알아? 그래서 너한테 숙녀가 안 붙는 거라고.」
「그만 좀 해 증말. 어? 좋은 말도 한두 번이지. 듣기 싫은 농담 진짜 짜증난다 짜증나. 내 머리 위에서 수증기 부글거르는 거 안 보여? 내 양쪽 귀에서 삑삑삑, 응?」
「그러지 말고 요 앞 카페에서 분위기 잡고 대화나 하시지? 창밖을 보며 창가에 앉아 창문에 입김을 분 다음 하트도 그리고 그리운 이름을 적는 거지. 설마 흠모하는 얼굴은 다름 아니라, 나?」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카페에 도착. 자리에 앉음. 설명 생략.
음악은 C.P.E.Bach / Wq.233 (요즘이 문제가 아니라 이런 음악 트는 카페가 있긴 있나? 거의 없음. 있어도 돈을 못 벎. 어쨌든)
「카페 이름 A440. 440이 뭘 의미하는지 아니? 저건 말이야 국제표준음 A의 진동수 440헤르츠를 뜻해. 고악기 연주랄지 드물게 430~440 대역도 쓰이기는 하는데 거의 전부 440.」
「또 아는 척? 그럼 진동수 436과 440헤르츠. 오빠가 구분할 수 있어, 없어? 그것만 말해 봐.」
「오빤 괜찮다만... 너 애인한테 그렇게 떽떽거리지 마라. 응? 마라.」
「그걸 왜 오빠가 하라 마라야? 어? 나 마라야. 나 마라라고. 어? 이거 왜 이래? 어머. 어머머머머. 나 좀 봐. 나 원래 이런 여자 아니야 오빠. 어머.」
「말하지 않아도 다 알아. 그러니까 설명하지 않아도 괜찮아.」
「어머머. 눈치챘어 오빠? 그런데 뭘!」
「뭐라고 해야 좋을까... 까먹었어. 내가 이래. 내가 원래 정확한 사람인데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도통 모르겠단 말이야. (절레절레)」
「어쨌든, 오빠. 저번에 했던 말 기억나?」
「야, 저기 네 남친 지나간다.」
「오빠. 맞고 싶어? 내가 참는다. 그럼 내가 참아야지 누가 참어? 응?」
「그런데 늬가 괜히 왔을 리는 없고. 그 어떤 이익 때문에 움직였니?」
「우리가 정말 그 정도 사이 밖에 안돼?」
「어서 꺼내 놔. 흉보(凶報)든 비보(悲報)든 악보(惡報)든. 아마도 희소식이라고 하긴 어중간하고.」
「뜸들이지 말고 곧장 얘기할께.」
「뭐? 뜸들여.」
「싫어.」
「왜?」
「왠지 모르게 그래야 오빠 김샐 거 같아서.」
「너. 남자를 아는 구나!」
「그럼 오빤 여자 마음 몰라?」
「말꼬리 잡고 늘어지지 말고. 용건만 말하자.」
「있잖아. 오빠. 나 발 넓은 거 알지? 내가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 닫지 않는 데가 없다는 거.」
「인정.」
「일간지 가제트 알지? 거기 편집장이 오빠한테 러브콜을 보냈어. 나한테 부탁했다고. 오빠 스카웃해주라고.」
「특별상여금은? 보너스는? 대우는?」
「일은 꽤 많이 하기를 바라는데, 보수는... 명예직.」
「뭐? 오빠 나이들다 보니 보수적으로 변했어. 나 진보 안해. 나 돈 싫어하지 않아. 내가 왜? 그렇다고 천박함을 추구한단 말이 아니라, 어? 아니~ 내 말은~」
「됐어. 알았어. 나 갈께. 오빤 그래서 안되는 거야. 그 양반한테 아는 동생들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 모델. 배우. 가수. 은행원. 잡지사 경리. 건설회사 경리. 전기회사 경리. 구멍가게 사장 경리. 경리 전문가라 할 수 있지 뭐.」
「진짜?」
「사라랑 나랑 오빠랑. 하지만, 의리 없이 우리가 오빨 보낼 수 있나. 못가. 안돼. 그래서 내가 말했어. 직접 들었는데 완곡히 거절하더라고. 알고나 있으시라고.」
「넌 왜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하고 그래? 숙녀가 다소곳 내숭도 떨줄 알아야지 말이야. 어?」
「조용히 해. 나 간다.」
그렇게 그녀는 갔다.
「야 진짜 가? 정말 가니? 그럴 거면 왜 왔어? 너 나랑 장난해? 뭐 하자는 거야? 야! 야! 경리... 경리는. 어? 마라! 저년이...」
7
오늘 NB는 늦잠을 잤다. 아찔한 착상은 못되겠으나 꿈 내용이 싱숭생숭해서 그걸 집에서 노트북에다 기록하고 어쩌고. 그러다 어영부영 해는 중천에 떴다. 그렇게 낮 2시쯤 집을 나섰고. 얼마 후 사무실에 도착했다.
그런데 이게 누구야? UFC 전-챔피언 척 리델이 그를 기다리고 있네? 그가 누군가. 770일 동안 겨우 4차 방어에 성공 라이트 헤비급 챔피언. 그의 이름은, 다시 한번
'ㅊ ㅓㄱ' + 'ㄹ ㅣ ㄷ ㅔ ㄹ' = 척 리델!
그는 생각했다. 사인 받을까? 받아서 뭐 하게! 코풀게? 관심 없음. 그런데 왜 여기를? 올 게 왔나?
「당신이요?」
「네?」
「우리 파이터들을 신나게 험담한 인간이. 그 위인이 바로 당신이냐고 물었소.」
「아닌데요.」
「아니긴 뭐가 아니야! 뭐랬더라? UFC 현 미들급 챔피언을 당신이 옛날에 엎어키웠다면서?」
「형씨. 싸움은 형씨께서 나보다 잘할란가 몰라도 (몸짓) 보아하니 입터는 건 나한테 안 되겠네. 형씨도 그렇게 생각하시죠?」
「시작도 안하고 꼬리 내리란 말이오? 우리는 그럴 수 없소. 남자는 폼. 어? 빈손으로 돌아가면 동료들이 얼마나 날 비웃겠소.」
「그야 형씨 사정이고. 나야 알 바 아니지. 안 그러요?」
「듣고 보니 그 말도 일리는 있는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말이야, 어? 뭔 배짱으로 우리들 뒷담화했소?」
「제가...요? 저 아니라니까요.」
「아니긴 뭔가 아니야. UFC 전 페더급 챔피언이 불과 3년 전까지 당신 똘만이 생활했었다는 거. 이미 소문 쫙퍼졌소. 아시오? 웬만한 팬들도 상당수 믿는 눈치. 일이 돌아가는 게 장난이 아니란 말이오. 아시겠소? 뿐만 아니라 플라이급도 웬만하면 다 형씨 꼬봉들이었다면서요? 그러게 왜 책임지지도 못한 허풍을 남발하셨소. 그렇다고 내가 형씨와 한판 붙자는 게 아니오. 다만 따질 건 따져야 한다 그 말씀. 그러기야 허지만서두 형씨가, 고집 센 형씨께서 굳이 한판 뜨자면야 뭐 거절하지야 않겠으나. 어찌 그럴 수 있겠소. 안 그렇소?」
「당신 나 협박하는 거야? 그러고도 당신이 스포츠인이야? 내가 UFC 협회장이든 세계마초협회 실세든 내가 소문 내면 당신 그 바닥 떠야 돼. 알아? 이 바닥 좁은 줄 아요, 모르요?」
「겁박은 당신이 하고 있구만. 아, 생각났다. 안토니오 반데라스한테 내가 상대도 안된다고 하시지 않았소.」
「안토니오 반데라스? 안토니오 반데라스는, 영화배우 아닌가요?」
「거 사람이 대충 눈치껏 알아들으셔야지 빡빡하게 이러기요? 네?」
「아, 반다레이 실바를 말씀하시나 보구나.」
「그렇소. 이제야 말이 좀 통하는 구만. 흐흠. 아, 또 생각났다. 당신이 말 몇 마디하면 오줌 찔찔 저리며 말 몇 마디 더하면 질질 짜면서 울어버린다면서요? 과연, 누가요? 네? 제발 필살기 딱 하나만 가르쳐주라고~ 가르쳐주라고~ 사정 사정을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다라나 뭐래나. 사과하시오 선생. 정중히. 어서. 뭐 하시오? 내 말 못 들었소? 네?」
어떻게 된 게 바로 그 순간!
여동생 비비안이 나타났다.
「오빠.」
「」
「」
「오빠. 저번에 데이트해준다면서? 왜 약속 안 지켜? 오빠 그런 사람이야. 그래 봤자 난 포기 안해. 오빠가 좋은 걸 어쩌라고! 오빠. 제발 한번만 만나주라. 저번에 완전 재밌었어. 그때만 생각하면 지금 이 순간도, 아흐 (몸짓). 그때 재미있었어요 오빠. 완전 흥미진진. 꺄르륵~ (윙크)! 그런데 이분은 누구셔? 웬 깎뚜기! 지가 무슨 세계마초협회 쫄따구야 뭐야. 아님 뭐 버리는 카드? 그러니까 뭐냐고! 」
그녀가 말 몇마디 하자마자 척 리델은 발바닥에 불이나도록 도망가버렸다.
흡사 자기가 좀비라는 듯이. 평범한 좀비 영화에 나오는 그런 좀비가 아니라, 여자에게 약한 좀비. 여자 인간이 뜨면 도망가는 좀비나 된다는 듯이.
그때 그는 척 리델이 좀비인 줄 미처 몰랐던 것이다.
「오빠. 저 사람 누구야? 무섭게 생겼던데. 오빠가 저런 상남자도 다 알아?」
「그런데 너 방금 전에 했던 말...」
「아, 제발 한번만 만나달란 말? 뻥인 거 알잖아. 내가 미쳤어 오빠 같은 한량을 좋아하게!」
「넌 말을 해도 꼭... 좌우지간 왜 이상한 연기를 했냐 그 말이야 내 말은.」
「저번에 오빠가 부탁했잖아.」
「내가?」
「그럼 누가?」
「난... 그런 기억이 없는데.」
「기억나시게 해드려?」
「아니~ 내 말은~ 그러니까 그게 말이지~」
「됐고. 나 기분 바꼈어. 어제 소개팅 취소되고. 오늘 딴 친구한테 바람맞고. 오빠나 데리고 카페 데이트나 하려했는데. 아까 그 마초 만나서 분위기 식었다. 나 갈래. 나 간다. 안녕. 다음에 봐 오빠.」
「뭐야. 정말 가? 그런데 내가 진짜 부탁했니? 그거 하나만 말해주고 가면 안될까.」
저만치 가던 비비안은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다.
「그거 뻥이야.」
쟤 뭐야?
그는 황당한 마음을 뒤로한 채 사무실로 들어가서 소파에 누웠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공상을 시작했다. 바로 이렇게.
타락을 허락할 것인가, 아니다. 헛된 방황에 순종할 시기인가, 역시 아니다. 그렇다고 값싼 쾌감에 순응? 대답은 생략. 음탕과 동반자일 수는 없으니까. 그래서 소심하게 내내 관망만 하자니 액면은 내내 지지부진. 그렇지만 할 말 없다고 하나 일은 할 수밖에. 그래서 집 사무실 집 사무실 왔다 갔다 이리 갔다 저리 갔다, 그래 봐야 거기서 거기. 그처럼 열심히 일을 하긴 하는데 진척은 아주 더딤. 때문에 일기장에 험담을 험담을... 거기 보면 말뽄새 장난 아님. 욕심 없다면서 인기 그거 다 거품이라면서 소망도 뒤죽박죽. 말하자면 옛말 틀린 거 하나 없다. 즉, 왕관을 만드는 일이 그것을 씌울 만한 인물을 찾기보다 쉽다. 그치만 그와 달리 환상머신을 만들기만 하면 대박인데, 애호가는 줄을 설 텐데 발명가는 낮잠만 쿨쿨! (절레절레)
자, 그렇다면 말이다 응? 진한 사랑 그 이상 좋을 게 어디 있을까? 없나, 있다. 많나? 적다. 아니다. 모르겠다. 그래서 NB는 따분한 일상 조잡한 운명 허접한 열망에 고분고분 굽히기 싫었으므로, 따라서 무조건 집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남자는 집에 있으면 안되니까 말이다. 자, 딱 나갔어. 나갔다고. 그런데? 그런데는 뭐가 그런데야! 돼지새끼처럼 뭔 맛난 거만 탐내며 향긋한 열매 보며 껄떡거리지를 않나, 걸핏하면 개침 흘리지를 않나. 동네 똥개처럼 어디 멀리도 못가. 그 근방에서 그냥 왔다 갔다. 자유를 찾았는데 찾으면 뭘 해. 금방 심심. 따라서 그는 결심했다. 이건 아니라고. 정말 아니라고.
8
그는 허당계 선두권의 요새로 악명 높은 아지트로 출두할까도 고민해봤다. 하지만 가봐야 잘난 척 허튼소리나 스스로 지껄이든가, 온갖 립서비스와 허풍과 아첨에 휩싸여 헛바람만 들 게 뻔했다. 때문에 안 가는 게 백번 낫다고 결론내렸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기, 팔랑귀 꿈틀꿈틀 솔깃솔깃. 전자와 후자를 반대로 할지도 모른다는 걱정 없지 않았으니까. 그럼 뭘 하지? 뭘 하긴 누가 뭘 해! 일단 지켜보는 거지. 그래서 NB는 집에서는 부쩍 잠이 늘었고, 사무실에서는 허구헌 날 맥주를 벌컥벌컥 퍼마셨다. 오빠, 기분 잡쳤어? 라는 말 공상하는 거도 지겨워졌으니까. 콕 집어 말하기는 어려워도 불행을 단박에 종식시킬 회심의 한방, 생각날 뻔 말 뻔하다 말았던 것이다. 나름 열일하며 명칼럼 쓰신답시고 허송세월하며 재미없기 일쑤니 안 그러게 생겼나. 부글부글 끓는 냄비 보글보글 더 긇는 커피포트 짜증지수 부글부글. 그걸 타개할 뾰족한 묘책 특단의 비법 어디 없을까? 없다. 있을 턱이 있나. 바랠 걸 바래야지. 개뼉따귀 같은 인생. 꿈에도 상상 못할 환희의 극치 그런 거 다 뻥이다. 몽땅 뻥. 개 뻥. 안 그래도 다 해봐서 안다. 야망? 대망 그거 실현시키면 되지 뭐가 문제야! 허나 그게 말처럼 쉬우면 뭔들 못하겠나. 가만 있어 봐, 나도 얘기 좀 하게. 어? 나도 말 좀 하자! ~라며 치고들어가도 얼마든지 받아줄 친구들 우정도 다 해산됨. 아는 여동생들 역시나 전부 연락 끊김. 뭐라고 말해야 좋을까, 아무리 쫓아도 잡히지 않는 그 무엇들의 목록. 많나 적나 몰라도 다 까먹었음. 간구해도 안기길 극구 거부하는 쾌감이 뭔지 일절 관심 없음. 추호도! 홍당무처럼 발가스름 홍조띈 수줍음. 타고난 애교와 자연스러운 내숭. 달콤한 애정. 다음으로 번뜩이는 개침? 짜증남. 관심 없음. 듣기도 싫음. 알 거 없음. 막장드라마에 나오는 뭐, 갈기 갈기 찢어죽이고 싶을 만큼 미우나 차마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애증. 얄미운 질투와 상사병 치유사 그런 거 재미 하나도 없음. 이건 아님. 정말 아님. 도대체가 말이야, 어?
따라서 그는 일단 나가기로 했다. 그렇게 집에서 나오자마자 드는 생각은 그랬다.
"가긴 어디가 사무실 가서 일이나 해야지." 라고 말이다.
그런데 집앞에 웬 떡대 2명이 버티고 서 있는 걸 보고 그는 깜짝 놀랐다. 대번에 그들이 누군지 알아챘기 때문에.
9
집앞에서 그를 기다리 떡대 2명은 바로 이런 사람이었다.
(A) 앤더슨 실바 : 챔피언 기간 2457일. 10차 방어 성공 (미들급) (경기 꽤 재미있음)
(B) 조르주 생 피에르: 챔피언 기간 2064일. 9차 방어 성공 (웰터급) (경기 더럽게 재미없음)
「당신들 누구야? 너네 뭐야? 뭔데 남의 집 앞에서 얼쩡거려. 매운맛 보고 싶어? 따끔한 맛이 뭔지 알아 몰라? 어? 얘네 얘네 뜨거운 맛을 아직 못 보셨군 그래. 썩 꺼져. 저리 가. 가서 찌르러져. 어디서 이것들이 설치긴 설쳐. 어? 쪼그만 게 말이야. 꼭 보면 덩치 크다고 다 그런 건 아닌데, 뭔가 약간 애매하다 싶으면... 여자랑 사랑 잘 못해. 거의 안 그런데 너넨 딱 보니 사랑의 '사'자도 몰라. 알아? 매스컴에서 잘한다 잘한다 추켜세워줬더니 말이야, 어? 뭐? 닥쳐. 너네 좀비야? 왜 말을 못해! 냉큼 꺼져.」
~라고 말할 생각도 없진 않았으나. 실상 입으로 나온 말은 그와 달랐다.
「누구... 낯이 익은데... 누구시죠? 누굴 찾아오셨는지...」
「」
「제가 만약 잘못 본 게 아니라면 앤더슨 실바랑 조르주 생 피에르인데. 당신들 한물 가도 옛날에 간 거 알아? 너네 좀비지? 다 알고 있어. 앗! 말이 심했습니다. 그렇다고 형씨들도 너무 저자세 보이면 좋아하지 않는다는 거. 우리 운동인들끼리 잘 아시는 거잖아요. 안 그래요?」
「압니다. 그건 그거고. 당신께서 우리 흉봤소?」
「제가요?」
「그럼 누굴 말하겠소. 당신이 우리랑 잔뻔치 쉭쉭 단 3방이면 우릴 눕힌다면서요?」
「제가 언제요?」
「오리발 내밀지 마소.」
「전 그런 적이 없으니까 그렇죠.」
「정말이오? 아닌데. 여기 맞는데. 제대로 찾아 왔는데.」
「형님들도 참. 제가 그렇게 눈치도 없이 막말하고 그럴 사람인가요? 저 아니에요. 저 아니라구요.」
그러자 조르주가 앤더슨에게 아이패드를 켜서 무언가를 보여주었다. 그 다음에 NB에게도 뭔가를 보여주었다. 물론 그가 쓴 칼럼에서 발췌한 내용들을 기록한 내용이었다.
「이래도 부인하겠소?」
「아니~ 그게 말이에요~ 그게 그러니까~ 일단 제 말 좀 들어보세요. 네?」
「듣고 있잖소. 어서 변명다운 변명을 해보시지 그래.」
「제촉하지 마쇼. 거 아실만한 분들이...! 당신들은 스포츠 정신도 모르요? 아 그러요? 스포츠맨들이 말이야 기다릴 줄 몰라. 어? 언제부터 이 바닥이 이렇게 예절도 의리도 뭣도 없는 싸구려 뒷골목 난장판인 듯 되었소, 네? 그리고 당신. 너 말고 너. 눈을 왜 그렇게 떠! 어? 두꺼비 눈이야 뭐야? 당신이 개구리야? 당신 사람이잖아. 그런데 왜 그래? 그리고 너. 넌 가서 그래꼬로만형 레슬러나 키워. 수면제 파이터 별명 창피하지도 않냐. 맨날 지겹디지겨운 경기 짜증나는 스타일. 어? 넌 나한테 걸렸으면 본전도 못 건져. 알아? 야 너. 그리고 너. 너네 학교 어디 나왔어? 말하지 마. 대답 안해도 돼. 왜? 왜냐하면 내가 이미 다 아니까. 내가~ 어? 내가 말이야, 너네 부모님과 형동생 하는 사이야. 알아? 어? 너네 엄마랑 내 이모의 사촌이랑 절친이야. 너네 엄마 스파게티 좋아하시지? 여자들 취향 우리가 모르니. 그리고 너. 너 학교다닐 때 공부 못했지? 말 안 해도 네 심정 다 안다. 늬 마음 형이 다 알아 인마. 어?」
그런데 왜 NB는 세게 나간 것일까? 평소 같으면 꿈도 못 꿨을 테지만 그는 딱 감이 온 것이다. 걔네들은 좀비라고 말이다.
「형씨 말이 너무 깁니다. 정신이 사납소. 좀 짧게 요약해서 설명하주실 수 없소?」
「누군 뭐 말 짧게 하기 싫어? 어? 그게 다 너네 때문이잖아. 어? 그러게 미리미리 재밌게 살고 즐겁게 웃기고 신나게 경기를 했어야지. 어? 그래, 안 그래? 어? 아 그러냐고 안 그러냐고. 어? 귓구멍 막혔어? 어? 뚫어줘? 어? 그래 말어? 야 너. 그래 너 인마. 여기 너네랑 너 밖에 누가 더 있어. 어?」
「형씨. 윽박지르는 거 얼마든지 좋은데, 이거 웬만하면 담판 짧게 갑시다. 잘못은 형씨가 했는데 왜 우릴 다그치시냔 말이오.」
「내가 지금 안 다그치게 생겼어? 어? 그러게,」
우악스런 걔네 검지로 NB의 입을 막았다.
「이 말 진짜요? 진짜 그랬어요? 그러니까 왜.」
「나 아니야. 나 아니라고. 누가 그래?」
「그럼 여기 증거들은 다 뭐요?」
「아... 그거... 그거 내 친구가 시켰소. 난 극구 거절했는데 어쩔 수 없이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단 말이오.」
「정말...이오?」
「친구 누구요?」
「그게 그러니까.. 조지? 아닌데. 켄트? 걔 싸움 못해. 그럼 델? 걘 평화주의자. 토마스야 먹고살기 바쁘고. 톰은 허당. 닐은 예스맨. 잭은 몽상가. 핀은 협상가.」
「형씨. 지칩니다. 힘들어요. 몸으로 대화하기를 바라면 말씀하시오.」
「내가 언제? 가만 있어 봐. (몸짓) (딱) 옳지~! 세바스찬. 걔가 이거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다 시켰소. 전부 다. 몽땅. 싹 다!」
그러면서 NB는 전화번호와 사는 집, 직장, 뭐, 뭐, 술꼬장까지 전부 다 가르쳐줬다.
그래서 결국 조르주와 앤더슨을 보냈다.
그렇게 겨우겨우 발등에 떨어진 불은 껐는데.
그럼 1시간 후 세바스찬은 어떻게 되는 거지?
앤더슨 실바랑 조르주 생 피에르을 잘 타이른 건 성공했는데.
꼭 뭐 일부러 세바스찬한테 전부 다 뒤집어씌우려고 한 게 아닌데.
결과적으로 그렇게 된 거네? 그럼 뭐야 이거? 뭐지? 도대체가 뭐냐고.
그럼 결국 이건 그가 일전에 썼던 칼럼에 나온 말마따나 그렇게 된 꼴이잖아?
구체적으로 나쁜 놈, 지능적으로 더 나쁜 놈. 전자에서 후자 된 거 아니냔 말이다.
10
NB는 생각이 많아졌다. 코너 맥그리거도 한때 잘 타일러서 사람 만들어놓고. 가시내처럼 소심한 프랭키 에드가? 흠씬 뚜들어패서 남자 만들어놓았음. 비토 벨포트? 동네 후배였는데 말발로 걔 울게도 만들었고 바지에 오줌 저리게도 만들었음. 하다 하다 녀석 바지에 똥쌀뻔함. 다시 헛바람 불어넣어서 자존감 두둑히 세워줬음. 게가드 무사시? 꼬마 때 걔도 동네 후배. 우리 아지트에 내 책상 밑면에다 녀석이 하도 코딱지를 묻혀놔서 실신 일보 직전까지 말로 겁박줌. 말로 엄청나게 윽박지르니까 녀석 결국 방귀를 뽕~ 못 참았음. 연타로 여러번 끼었음. 제대로 쫄았음. 아무튼 뭔 누리끼리한 거, 기분 나쁘게 그거 밟고 바나나껍질 밟으면 미끄러지듯이 넘어진 적도 있었음. 그래서 교육 제대로 시킴. 면박먹고 걔 정신차림. 사람됐음. 그러고 나니까 그 후로 승승장구 지금까지 성장함. 옛날엔 정말 코 후비고 막 추접스러웠음. 사춘기 때 댄 헨더슨은 나한테 얻어맞고 쌍코피 흘렸음. BJ 펜은 눈물 콧물까지만 흘렸음. 맥스 할로웨이는 눈물 콧물 오줌까지 쌌음. 앤소니 페티스는 하다 하다 피똥 쌌음. 그럼 말 다 한 거나 마찬가지. 캬~ 말도 마, 말도!
그런데 그게 문제가 아니라, 어? 이건 어쩐담!
세바스찬이 걔네 떡대 2명을 감당할 수 있을까?
NB 앞에서야 슬슬 기었겠으나 걔네가 바보도 아니고 세바스찬 말발이면... 그는 즉각 전화했다. 세바스찬에게 바로 전화한 게 아니라, 세바스찬에 앞서 그래도 UFC 현역 선수 가운데 연락 닫는 동생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 알려지진 않았으나 말 그대로 그래도 현역. 체급이 뭐였더라, 기억도 안나고. 그 친구는 바로 전화를 받았다.
「예 형님. 형님. 오랜만입니다. 그동안 왜 연락 없으셨습니까? 보고 싶었습니다.」
「야, 김동현. 야 임마 연락은 늬가 형한테 먼저 해야지. 내가 꼬박꼬박 너한테 문안인사 드리고 안부 여쭙고 그래야 하냐? 어? 이 바닥 언제부터 이렇게 됐냐? 어?」
「예 형님. 말씀하십시요. 형님 잔소리는 들으면 들을수록 힘이 납니다. 제가 이 세상에서 최고로 좋아하는 음악은 다름 아니라 형님의 잔소리입니다. 딸랑딸랑~! 오죽하면 음성녹음 파일을 제가 연습경기 직전에 듣고 링에 오르겠습니까. 제 핸드폰에 형님 잔소리 음성 파일만 몇 갠데요. 허허허. 딸랑딸랑~」
「너 인마. 어? 남자가 입이 너무 가벼워. 넌 말이 너무 많아. 앞으로 1주일 동안 묵언수행해. 너 1주일 동안 말하지 마. 그것도 훈련이야. 스포츠는 뭐다? 정신. 알았어 몰랐어?」
「네 형님. 알겠습니다. 명심하겠습니다. 저한텐 형님밖에 없습니다.」
「말하지 말라니까. 누가 대답하랬어. 어? 너 나한테 한번 맞아볼래? 이 자식이...! 저번에 형이 그랬지. 형이 너의 그 퉁거운 목을 꽉 어깨동무해서 움켜쥐며 형이 뭐랬어. 형이 늬한테 싸움진다! ~라고 했던 거. 다 뻥이야. 알아? 어? 뭐 그런 따분한 농담 이제 그만할 때도 됐다.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그래서 말인데 지금 형이 처한 상황이 장난 아니거든. 너 알지, 걔네 누구드라, 그래. 앤더슨 실바랑 조르주 생 피에르. 너 걔네 알지?」
「그럼요. 알다마다요.」
「그래. 대답 잘했어. 이렇게 딱딱 봐서 척하면 척. 아무튼 걔네가 형한테 찾아왔어.」
「네? 왜요? 걔네가 형님께 왜요?」
「형이 걔네를 칼럼에서 깠거든. 신나게. 아주 심하게 말이야. 칼럼에서 아주 그냥 혼구녕을 내줬거든. 그런데 지들이 덩치만 크면 뭐 하냐, 속이 좁은데. 어? 완전 밴댕이 소갈딱지. 뿐만 아니라 완전 꼬꼽쟁이 자린고비 스쿠루지. 남자가 그릇이 그렇게 작아서야 쓰겠니? 그러니 삐져서 형한테 찾아온 거지. 늬가 우리 흉봤냐고!」
「정말입니까 형님?」
「넌 내가 언제 거짓말한 거 봤냐? 난 살면서 뻥친 적 단 1번도 없어. 알아? 너 형 성격 알지? 형 많이 참고 있다. 너도 많이 참고 있겠지만, 다 알아 임마. 그래도 형은 더 많이 참고 있어. 알아? 내가 얼마나 많이 참는지 아니 모르니? 어? 그런데 뭘? 몰라. 그거 알아서 뭐하게!」
「네 형님. 존경합니다. 형님. 사랑합니다.」
「됐어 임마. 애정은 해도 사랑은 여자랑 해라. 형도 여자 좋아한다.」
「그럼요. 제가 형 모르나요? 형 여자 환장하잖아요.」
「이 자식이... 지금 그 얘기가 아니잖아. 너 자꾸 형한테 깝죽댈래? 그러고 보니 너 형한테 얻어맞은지 좀 됐다? 어?」
「형님 봐주십시요.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더 형님께 더욱 충성하겠습니다. 저는 형님의 영원한 보디가드. 허허허.」
「형이 너 특별히 아끼는 거. 알아 몰라? 형이 지갑 연지 좀 됐으니까 다음에 형이 푸아그라 사줄께. 저번에도 형이 그거 사줬잖아. 캐비어 중의 캐비어 형이 사줬어 안 사줬어.」
「캐비넷 말씀입니까? 사무기기? 그건 모르겠고. 푸아... 글쎄요. 저번에 형님께서 돼지 간 요리는 사주셨는데요. 맛있었습니다. 저도 돼지 간 좋아합니다.」
「뭐? 너 이 형의 잔뻔치로 간 얻어맞고 싶어? 그건 그거고. 아 그러니까 너 걔네 이길 수 있겠어?」
「제가요? 못 이기죠. 그리고 우리는 링이 아니면 붙지를 않아요. 그럼 안되거든요. 차라리 맞고 말죠.」
「왜 못 이겨?」
「상대가 안되요. 물론 한물 가긴 했어도 아 얼굴 보면 모르십니까? 무섭게 생겼잖아요. 저도 어디 가도 주먹으로 안 빠지고 웬만해선 안 쪼는데. 그런 얼굴들이 몇 있어요. 딱 보면 쫄 수밖에 없는 얼굴.」
「안 되는데. 지금 연락닫는 현역이 너 밖에 없는데. 넌 말야, 어? 넌 왜 내게 도움이 안되냐. 늬가 그러고도 내 동생이냐? 어? 너 이 자식 형이 커피 사준 거 다 토해내. 알았어? 다 이럴 때를 위해서 형이 너 밥 사주고 술 먹이고 빵 사주고, 또 뭐 사줬지? 정작 중요한 순간에, 됐다. 내가 너랑 무슨 사랑의 줄다리기를 할 거도 아니고. 아무튼 넌 부업 잘 하고, 운동 열심히 하고. 유튜브 업데이트하는 거 꼬박꼬박하고. 그거나 잘해.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한다.」
「형님.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럼 괜찮지. 걔네 꿀밤 몇대면 충분해. 너 형 알지? 너 형 몰라? 늬가 지금 형을 띄엄띄엄 알아? 어?」
「네 그럼요. 형님 화이팅 화이팅 화이팅!」
「그래. 나중에 통화하자. 끊어. 아니다. 까먹은 게 있다. 형이 너를 위해 특명을 하나 준비했아.」
「뭡니까 형님.」
「뭡니까? 너 형한테 따지냐? 어조가 왜 그래? 너 형이랑 통화하기 싫어?」
「아닙니다 형님. 저는 형님의 특명을 기다리다 기다리다 지쳤는데, 드디여 올 게 왔구나. 라고 생각해서 저도 모르게 그만 형님께 실례를 범했습니다. 용서해주십시요 형님. 부디 넓은 아량으로 선처해주시기 바랍니다. 예 형님. 말씀하십시요. 분부대로 움직이겠습니다.」
「너 걔 알지. 모기 목소리. 꼴에 지도 연예인이라고 코메디 프로에 기웃기웃 끈질기게 남아있는 애. PD들이 아쉬운 대로 갖다쓴다고 해서 막 좋다고 여자들 둘러쌓여서 히죽히죽 웃기나 하고. 어? 그게 뭐냐? 어? 등치에 안 맞게 말이야. 쫌팽이에다. 뱁새에다. 속좁고. 여자 모르고. 여자들이 싫어하고. 등치는 산만 한데 모기목소리! 남자들이랑도 사이 별로 안 좋아. 너 걔랑 친해져. 아, 이미 친하지? 그럼 걔랑 스파링 뛰어. 그래서 죽사발 만들어줘. 그래서 사람 만들어. 걔 그래야 철들어. 걔 아직 사람이 안됐어. 남자가 말이야, 어? 뭔 말인 줄 알지? 걔 아주 그냥 헬스클럽에서 사는 거 알지? 쇠질 한 6개월 못하게 죽사발 만들어줘. 그래야 철들 거야. 돈도 벌만큼 번 놈이 말이야 남자가 구두쇠가 뭐니 구두쇠가! 걔 별명 몇 개인지 너 알지? 그러니까 주변에 사람이 없지. 있긴 있어. 근데 다 비슷한 애들 밖에 없다는 거. 걔 지갑 연 거 본 적 있다든? 흑심 품을 때나 여자한테 돈 쓰는 거 빼고. 없어. 방송계 소문 쫙 퍼졌어. 연예계 물 더러워지고 있단 말이야. 어? 그래서야 쓰겠니. 그걸 보고 우리가 가만 있어야 쓰겠냐고. 정신차리게 만들어드려. 알았어?」
「네. 알겠습니다. 걱정마십시요.」
「너 설마 속으로 그런 건 아니지? 아 나 증말 이 꼰대 또 사람 귀찮게 만드네. 진짜 얘 징징대는 투정 들어주는 거 지겹다 지겨워. 지친다 지쳐. 내가 못 살아 정말. 내가 전화번호를 바꾸든가 해야지 증말.」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아닌데 왜 웃어? 웃은 거 보니 진짜네. 어? 솔직히 말해. 솔직히 실토하면 형이 봐줄께.」
「형님 유도심문에 전 절대 넘어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형님의 찐팬이 저의 본분이고 형님의 광팬이 저의 숙명이자 전 그냥 형이 좋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너 원래 그렇게 말발 좋은 애가 아니었는데. 요즘 학원다니니? 아님 말발 좋아지는 법 뭐 그런 책 사서 독학하니? 얘 옆에 누가 붙었지? 혹시 사기꾼일지 모르니까 조심하고. 나나 되니까 다 늬 걱정하고 그러지, 형 아니면 누가 그런 생각해주냐. 안 그래?」
「맞습니다 형님. 제 마음 아시지 않습니까. 허허허허허.」
「그래. 형이 너 때문에 웃는다. 네 덕분에 마음이 놓인다. 형은 너밖에 없어 인마. 알아? 그래 끊어. 들어가.」
「네 형님. 들어가십시요. 아는 동생들 언제든 대기시키겠습니다. 안 그래도 최근 물색 중인...」
「쉿! 누가 들어 인마. 넌 말이야 말이 너무 많아. 어? 과잉 충성 형이 썩 반기지 않는다는 거 왜 몰라. 어? 늬가 그러니까 여자가 없는 거야. 어? 늬가 그래서 안되는 거라고. 야, 끊어.」
NB는 전화를 끊었다. 그 다음
곧바로 세바스찬에서 전화를 걸었다.
그래서 좀비는 여자에게 약하다는 걸 알려줬다.
통화내용은 생략하고. 세바스찬은 알아먹었고, 추후 상황 역시 그대로 먹혔다.
11
할 말 없고. 잔소리 들을 일 없고. 그렇다고 들썩들썩 으쌰으쌰 놀 일이 있나, 아니면 엉덩이가 간지럽기를 하나. 마누라 엉덩이 토닥거리며 한가하게 시간 보낼 동네 아저씨도 아니고.
그래서 그는 하는 수 없이 아지트로 향했다.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아지트에 도착.
Heinrich Proch / 아리아와 변주곡 op.164 “오, 돌아와주오 그대”
평소와 달리 음악이 클럽 음악이 아니라는 점. 그 외에 손님이 부쩍 줄어 아는 얼굴이... 거의 없다는 점.
그거 빼곤 별달리 이상한 점은 없었다. NB야 기분전환이 목적이므로 구석지에서 조용히 있다 가려고 했다.
그런데 저쪽에서 누군가 다가오더니, 에잇 오다 다른 쪽으로 가겠지 했는데 끝까지 다가왔다.
알고 봤더니... 저 여인들은 바로 론다 라우지와 요안나 옌드레이첵. 그녀들이 누군가?
(A) 론다 라우지 : 챔피언 기간 1074일. 6차 방어 성공 (밴텀급)
(B) 요안나 옌드레이첵: 챔피언 기간 965일. 5차 방어 성공 (스트로급)
그런데 내게 왜? 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래서 대번에 직감했다. 얘네도 좀비라는 것을. 재빨리 움직여서 그녀들 뒤통수를 보면 보나마나 666 바코드가 찍혀있겠지. 설마, 피부가 아니라... 어디 속옷 깊숙한 곳에? 알 게 뭐야. 그럼.... 시끄러워. 닥쳐. 좌우지간 유명인 먼발치서 봐도 뭐 그래 너 잘났다 하면 그만. 그분들이 무조건 싫단 말이 아니라, 구경은 구경이고. 차라리 친구랑 늬 까짓 게 뭔데 라는 듯 노는 게 더 재밌긴 재밌으니까. 그런데 놀 친구도 뭣도 없다는 거. 아는 동생들 다 떨어져나갔다는 거. 그걸 얘네 좀비들이 눈치 챘는지 어쨌는지 그녀들이 과감히 여기까지 돌진한 결과.
자, 이제 용건을 말해야 하는데. 그렇지만 론다도 요안나도 통 말을 안허네?
그렇다고 NB 성격에 먼저 굽히고 들어가기도 그렇고, 사인 받을 마음도 없고 사진찍기도 싫고.
늬들이 언제까지 말을 안하는지 보자 라는 심정. 요컨대 눈치작전 중.
거기서 끝났으면 모르는데. 요안나는 NB 옆으로 와 팔짱을 꼈고, 론다는 슬쩍 어깨동무를 했다.
그는 여자 팔이 그렇게 묵직하며 그와 동시에 향긋한 숙녀 느낌 때문에 기분은 좋은데 캬, 카리스마 장난 아니었으므로. 고로 그는 완전 쫄고 말았다.
그렇게 그녀 즉 좀비들은 NB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12
그렇게 그녀 즉 좀비들은 NB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그건 뭐 반강제적이나 마찬가지였다는 점. 느낌 세했다. 이 들뜬 기분 과연 어떤 분위기가 펼쳐질 풍경으로 그를 데려갈까?
그야 어떻든 NB 생각은 이랬다. 춤꾼 덕분에 나팔 분다, 즉 묻어 가자. 어차피 건수 없는 최근 인생. 엎혀가자고. 숙녀가 나 엎고 싶다는데? 호박이 제 발로 찾아와 안긴다는데, 툭하면 오빠 제발 한번만 만나주세요. 어? 그런 사연들이 정말로 있었는지 없었는지 믿거나 말거나 전성기는 왕년의 허풍담이 되었으니. 따라서 현상황 결코 나쁘지 않았던 것이다.
누구나 좀비 영화 적어도 한두 번, 많으면 수없이 보셨겠으나. 실제로 좀비를 볼 줄이야 누가 알았겠나. 그런데 멜로드라마 애호가 입장에서야 또 사정 다를 수 있다. 보아하니, 웬만치 능청떨어야 말을 안 허지 참말로 못 들어주겠구만 그래, ~라고 생각하시지는 않을지 걱정이 앞선단 말이다. 하오나 볼 수 있고 식탐 반만족시킬 수 있음에 감사하며 내 발로 어딘가 돌아다닐 수 있다는 데 그 어떤 영광스러움을 느끼니 하는 말인데. 내일은 없는 듯이 그 어떤 유혹에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는 애정. 변함없는 사랑. 영원한 연정. 끝없는 의무방어전? 다음 생에도? (뒷목....)! 날이면 날마다 짜릿한 쾌락마와 달콤한 행복의 회전목마를 탈 줄 알았는데. 마누라 등쌀에 기 못 펴고 사는 남정네도 없지 않으니. 뭐 연재소설은 멈추지 않는 거고. 하여간에 환상은 환상인데 값을 매길 수 없는 환상. ~보다 값싼 쾌락 싸구려 행복을 추구하는 방탕마? 그게 바로 누구라고 꼭 말은 안 하겠음. 장밋빛 인생을 사랑하는 방법이 그렇다는데 왜 말려.
그런데 정말 론다랑 요안나는 끝까지 말을 안하네?
아하~! 좀비는 말을 할 줄 모른다. 그러니까 좀비지.
그럼 엇그제 본 앤더슨 좀비와 조르주 좀비는? 그야 걔네는 인공지능이 업데이트된 거 뿐이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도착한 곳은 바로, 스머프 축제 현장.
내 참 그게 말이 돼? 말도 안되는 줄거리 짜증 제대로 나구만 그래.
그건 그렇다만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좀비들한테 끌려온 당사자 입장은 또 뭐고. 그래도 위악스런 현장도 아닌 데다 상황이 썩 절망적이지도 않았으니, 고로 NB는 적잖이 안심했다. 허나 방심은 금물. 자, 이제 어떻게 되었을까?
13
줄거리 요약 위주로 설명하기로 하자. 그게 좋겠다. 자, 고!
축제장에서 론다가 주머니에서 포크를 꺼내 NB 엉덩이를 푹 쑤심.
아니 얘네들 좀비라고 봐줬는데 뜻하지 못한 역습이야 뭐야? 그런데 다행 중 불행일까? 포크는 무뎌서 그가 입고 있는 바지 겉면만 살짝 긁혔다.
그래도 NB는 론다한테 왜 그랬냐고 따지지 않았다. 물론 론다는 좀비니까 시선이 허공을 보는 듯도 하고, 검지로 코끝을 가리킨 것처럼 뭐 그랬다.
좀비가 좀비처럼 행세하지 그럼 캥거루처럼 깡총거리겠나 말처럼 뛰겠나. 아니면 토끼처럼 번식을 번식을 왕창 하겠나. 지들이 뭐 플레이보이야 뭐야?
그처럼 공상을 남용하다가 NB는 또 갑자기 기습을 당했다. 이번에는 요안나가 주사기로 그의 다른쪽 엉덩이를 푹 쑤신 것이다. 이년들이...!
순간 그는 욱할 뻔하다 말았다. 그런데 차라리 욱한 분위기를 이어가는 게 나았을까? 왜냐하면 요안나가 주사기 안에 담긴 액체를 그의 엉덩이에 살며시 주입시켰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는 정신을 잃고 말았다.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그는 혼수상태에서 개꿈을 꾼 다음 깨어났다.
그곳은 인적이 드문 강변 공원이었다.
사람들이야 뭐라고 하든 론다랑 요안나한테 당한 걸 어디다 하소연할 수도 없고. 여기가 어디냐고?
차라리 그녀들이랑 화끈하게 한판 떠볼 걸 그랬나? 하지만 그래도 NB가 허접하긴 해도 남자인데, 어?
이기면 이겨도 문제고, 지면 져서 챙피하고. 그렇지만 실상 경기장에서 연습경기를 한다 쳐도. 어?
정정당당히 아마도 질 텐데. 아주 그냥 져도 처참히 깨질 텐데. 그럼 져줬다고 엄살이라도 떨 수 있다지만.
나 론다랑 붙어봤다, 요안나가 나한테 차 떼고 포 떼고 핸디캡 적용해서 뜨자고 사정 사정 싹싹 빌길래 내 불쌍해서 봐줬다며 너스레라도 떨 텐데.
어디 촌구석에다 떨구어다 놓고 그녀들은 사라지고. 어? 사랑이란 알다가도 모를 일. 뭐? 지금 그 얘기가 아니구나. 어쨌든.
그래도 뭐랄까 매번 사무실에서, 무엇에 몰입해야 신나는 신비감을 영접했다고 소문날까, 그런 생각에 골머리를 앓느니. 이 상황도 썩 나쁘진 않았던 것이다.
그럼 여기서 끝이냐? 그럴 리가 있나.
저 앞에 다비드상과 거의 같은 크기, 아니 아니 한 10배 정도 크기로 동상 2개가 보였다.
첫째, 가가멜상
둘째, 가제트상
들어갔다. 먼저 가가멜상의 아킬레스건의 문을 열고서. 와, 줄거리를 더 요약하자면 이렇다.
(A) 가가멜상: 인간 좀비 현황 작전실 (군작전실을 방불케 할 정도로)
(B) 가제트상: 동물 좀비 현황 작전실 (NASA 비밀기지를 방불케 할 정도로)
그는 혼자 신났다. 계단을 타고 올라가니까 전망도 괜찮았고, 최상층에는 침실도 있었다. 그럼 이 침대에서......!
이건 뭐 거의 개인 비밀공간이자 스카이라운지였다. 여기가 펜트하우스가 아니면 과연 뭐가 펜트하우스겠나.
연분홍색 버튼을 누르니 가가멜 눈에서 레이저도 나갔다.
하늘색 버튼을 누르니 가제트 입에서 화염방사기 당연히 나갔다.
캬~ 어? 그래서 그는 어느 정도 짐작이 갔다. 바로, 이게 다 모스맨 연구자 제라드가 꾸민 일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NB는 곧바로 제라드한테 전화했다.
「어, 친구. 어디야?」
「늬가 알아서 뭐하게?」
「왜 또 그래?」
「너지?」
「뭐가?」
「시치미떼지 마.」
「그래. 나야. 그럼 나 아닐 줄 알았냐?」
「또 너냐?」
「내가 말 했냐 안 했냐. 애들 보낸다고.」
「하다 하다 너 좀비까지 만들었냐?」
「왜 내가 못 할 거 같냐? ~라면서 먼저 큰소리치면 꼭 안되길래. 내가 다 미리 비밀 리에 준비해서 완성한 거지. 허허허. 어때, 기대 이상이지? 늬가 환상머신 미완성 때문에 헤매고 있는 동안, 난 이미 성과 톡톡히 거뒀단 말씀. 하하하하하. 푸하하하하하하. 으하하하하하하하.」
「괘씸한 녀석.」
「괘념치 마.」
「허접한 놈.」
「허접해도 난 3관왕 넌 무관의 제왕. 제왕? 글쎄요. 허허허허허.」
「참 너도 못 말리겠다.」
「그러니까!」
「그러니까는 뭐가 그러니까?」
「하여튼 구체적으로 따져 난 중간.」
「뭐?」
「난 지능적으로 더 나쁜 놈 아님.」
「뭐 임마?」
「그러지 말고. 밖에 봐 봐. 리무진 보내놨어.」
밖을 보니 정말로 리무진이 대기중이었다.
그렇게 그는 모스맨 연구자 제라드의 집으로 이동했다.
제라드의 집에 도착해서 특별한 건 없었다.
다만, 제라드가 그를 보자마자 막 얼굴을 사정없이 만졌다는 거.
NB가 무슨 여자도 아니고 얼굴 부위가 무슨... 그냥 얼굴인데. 아니, 왜?
왜냐하면 엇그제 NB가 자길 찾아왔기 때문에. 당시 제라드는 NB를 만났을 당시에는 몰랐는데 한 3일 지나서 대충 감 잡았다고 했다. 바로, 진화된 좀비라는 것을.
결국 그들은 만난지 1달 반쯤 됐는데... 또 좀비가 초정밀 변장한 채 찾아왔을 까봐 미리 조심하는 제라드였던 것이다.
14
동화풍 상상력에 잔뼈가 굵은(?) 그는 환상기계 완성 작업에 드디어 발뺌하기 시작했다. 왜, 대체 왜냐! 누가 알아? 권태로부터의 방패막이라는 신선한 관심사가 새로운 인생을 선사해줄지. 에잇 설마 그럴 리가, 그게 말이나 되니 이 바보야! 라는 핀잔이 정말로 귓가에 들리는 것만 같았다. 보아하니 세속적인 칼럼과 상업적인 소설 쓰기에 지친 생활, 드디어 엉덩이가 근질근질하긴 한데. 입이 근질근질 할 말 많음과 반대로 말수는 바닥. 말하자면 할 말 떨어진 게 아니라 꿈이 없듯 아예 없으니까. 그렇다면 재미없음의 대항마요 심심함에 대적하는 바람막이는 결국 색다른 쾌락마뿐이란 말인데. 하긴 늑대가 양 싫증날 때 없다. 뭐? 또 그 얘기! 딱 1번 더 들으면 만 번이고 단 1번 더 말하면, 됐다. 됐어. 됐다고 증말. 재차 확인해서 뭐 하나. 그야 어떻든 옆집 과일은 별맛, 옆집 떡은 더 맛있다는데. 남들은 시트콤 추억을 회상하며 타인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일상적으로 영화 찍 듯 살 때. NB는 그동안 뭐 했을까? 뭐 하긴 다 커버린 거지. 많이 컸다 라는 말도 다 단역들이나 듣기 좋은 말이고. 좌우지간 공상만 반복되면 생각이 꼬이고. 하여 지금은 행동할 때. 정녕 절실히 원하는 환상의 모험이 있으면 실행하면 그뿐. 그렇다고?
그래서 떠오른 명언은 그것. 바로, 개에게는 개뼈다귀를 주라. 하지만 문제는 그는 발동이 걸리는 피동격 스타일이라는 점.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그럼 어쩔 수 있나 일이나 해야지. 놀라운 기쁨의 전율, 그거 다 개 풀 뜯어먹는 얘기. 미지의 세계에서 멋진 신비주의자로 활약할 것만 같은 희망의 꿈? 지나가는 동네 똥개도 관심 없음. 새똥이나 안 맞음 다행. 바나나 껍질이나 잘 피해다녀야지 뭐. 내가 재미난 얘기 하나 해드릴께? 들어보면 다 시시함. 아니면 뻥. 자, 그렇다면 NB는 마침내 약 먹을 시간이 되었을까?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이러쿵저러쿵. 기 빨리고 힘 빠지고 퍼지고 지친 거다. 검지를 펴서 귀 옆에 대고 돌리던가 코 끝에 대고 쳐다본든가. 어? 둘 중 하나! 따라서 그는 놀면서 유랑하고 구경하는 여행이 아니라, 쉬면서 예술적 영감을 떠올리기 위해 어느 멋진 호텔로 떠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분명 아실 테지만 혹시라도 모르실지 모르니 하는 말이지만서두, 끝으로 한말씀 드리자면 이렇다.
어느 날 NB는 집에서 소파에 자빠져 텔레비전을 보다 마침내 뚜껑이 열기고야 말았다.
참다 참다 채널 돌리다 돌리다 더는 못 참겠길래 기어코 그는 일을 내고야 만 것이다.
어떻게? 찾아갔다. UFC 역대 최다 방어 기록을 작성했던 플라이급 전챔피너 드미트리우스 존슨. 왜냐, 왠지 걔가 허접해보였으니까.
만났다. 물론 당사자를 만나지는 못했고. 매니저가 말해줬다. 찾아올 것 같다면서 언젠가부터 불안불안해 하더니만 결국 도망갔다고.
뭐 내빼? 내 이 자식을 그냥...! 인생론 강의하든 세상사 깨우쳐주든 참교육 제대로 시켜줄려고 했더니만 왜 애들이 배울려고를 안해. 라면서 그는 씩씩거리다 돌아갔다.
15
그러면 여기서 끝이냐? 그럴 리가 있나.
어느 날 갑자기 NB는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만난지 꽤 된 도날드였다. 천재 프로그래머. 그래서 이따금 정보통 역할을 톡톡히 했던 그.
NB는 도날드한테 기쁨조로 덕망이 두터웠고, 도날드는 NB에게 첩보 레이더로 신임이 신임이 장난 아니었던 사이. 허나 다른 인생. (농담 삼아 하는 얘기지만 만약 클린... UFO 기밀정보 A급까지 몽땅 풀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 말 그대로 농담)
그래서 왜 갑자기 연락이 온 거지? 라는 의아함을 품은 채 그는 전화를 받았다.
「도날드. 웬일이야?」
「웬일은 무슨. 너 대체 그동안 뭐 하며 살았니?」
「뭐하긴. 칼럼 쓰고. 놀고. 먹고. 쉬고.」
「그게 다야?」
「글쎄...」
「피해.」
「어?」
「당장 피하라고.」
「」
「뭔 말인 줄 몰라? 너도 대충 느낌 오잖아.」
「정말...이야?」
「장난 아니야.」
「뻥 아니지?」
「너 내가 언제 뻥치는 거 봤냐? 너 나 모르니?」
「나 너 알아.」
「그럼 피해. 어서 거길 떠.」
「」
「귓구멍 막혔냐? 실제상황. 긴급. 특수. 감 안 와?」
「아니...」
「쇠 빼.」
「어? 쇠 빼? 뭔 쇠를 빼?」
「특수 실리콘 초합금 탄성 반물질로 만든 그거. 귀마개. 너의 의뭉스러운 사고력. 너의 그 얼빵한 정신. 그 허접한 공상이 방해받지 않도록 너가 끼고 있는 그 가상의 귀마개. 그거 당장 빼라고. 야 임마 사이렌이 명화에 보면 귀마개 끼고 있든? 내 말 못 들었어? 또 딴생각하냐? 또?」
「」
「당장 떠.」
「알았어.」
「핸드폰 버리고. 감지칩 인체에 심어져있을 수도 있으니 탐지기로 확인하고.」
「알았어.」
「야 임마! 다시 한번 말하는데, 지금 상황 심각해. 어? 너 존슨 알지? 보리스 존슨.」
「자라목 증후군? 아니. 모딜리아니 그림 주인 말하지? 목 짧은 친구. 그래, 기억나.」
「그래 걔. 걔 내가 미리미리 힌트 줬는데도 불구하고 막 빨빨거리며 돌아댕기기나 하고 툭하면 군침 흘리고. 어? 그게 뭐니? 어? 지가 무슨 용가리 통뼈야 아니면 허당 중의 허당이야. 웬만큼 여자들 뒤꽁무늬 쫓아다니느라 청춘 허비했으면 이제 철들 때도 안 됐니? 어? 웬만큼 눈독들여야 말을 안 하지. 낄 데 안 낄 데 막 들이대고. 낄 때 빠질 때 모른 체 눈치 없고. 어? 걔 허세 장난 아닌 거 너도 알지?! 무슨 007 영화 주연들이 죄다 자기 똘만이 생활 거쳤다는 둥 역대 뽄드걸들이 다들 막 자기 따라다니면서 제발 오빠 한번만 만나주라는 둥. (절레절레) 지가 무슨 보리스 베커 직계 선밴가 후밴가 된다면서 막 친구들한테 테니스채 잡을 줄이나 아냐 면서 거들먹거리더니. 어느 은둔 고수한테 제대로 깨지더니 결국 이길 때까지 승부 결을 보자고 해서, 그 친구 결국 아마 이민갔다지. 아마 그랬을 거야. 들리는 일설에 의하면 막 첩보영화처럼 신분세탁했다는 얘기가 있어. 소문이 자자해 그냥. 절대 뜬소문이 아니야. 결코! 아휴 말도 말어라. 근데 걔 별명인 허세 끝판왕! 그걸 누군가한테 빼았겼다는데 그게 누군지 모르겠다니까. 권위적인 허풍대회 본선 출선권조차 박탈당했데. 뭐 그건 그거고. 지금 현황이 이렇단 말씀. 때문에 너 다음 다보스 포럼에서 연락와도 가지 마. 프리메이슨이랑 일루미나티도 다 탈퇴해. 들어갈 수 있으면 어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 있으란 말야. 알겠어? 개구멍이든 뭐든 지금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라고. 어? 안 그래도 빌더버그, 시온파, 장미십자단, 스컬 앤 본즈. 다 명맥 끊겼거나 이어졌어도 물 흐려져서 걸물들은 다 떠났어. 폼잡기 좋아하는 마초 갑부들 잔치된지 옛날이란 말이야. 알겠어? 지금 세상이 그 옛날처럼 극소수 최상위에서 희박하디 희박하게 인맥 타서 입당 신청하고 받아주고 그런 세상이 아니야. 어? 지금은~ 어? 물 반 고기 반인데 누구 하나 입 딱 닫는 드라마에 나오는 '밀본' 막 그런 얘기처럼, 공기와 통념이자 시간같은 이치로 바꼈단 말이라고. 그 옛날 피라미드 최상층 위주에다 모차르트 같은 예술가들 그들 끼리끼리 결성했던 단체가 지금은 그렇게 바뀐 거라고 이 친구야. 알겠어? 뭐 아무튼~ 보리스 얘기하다 모차르트가 왜 나왔지? 왜 갑자기 아마데우스가 툭 튀어나와! 피노키오의 코야 아니면 뭐야. 흐흠.
그러니까 말이야, 어? 아 그러니까~ 특A+++ 정보 알려주면 받는 즉시 상황 돌아가는 거 알았어야지. 그게 뭐냔 말이야. 말 들어보니까 날마다 찾아왔다더라. 진짜 웃긴 게 뭔 줄 아니? 은퇴한 거물들만 딱 골라서 보냈대. 도대체 뒤에서 리모콘 누르는 애가 누군지 모르겠어.
처음에는 표도르 예멜리야넨코가 왔길래 사인을 부탁한 게 아니라 지가 해줬데, 참 나! 다음 날은 미르코 크로캅이 찾아왔길래 우쭐했데. 또 다음 날은 세미 슐츠. 또 다음 날은 파브리시오 베우둠. 그 정도면 눈치 챘어야지. 바보도 아니고 말이야. 결국 밥 샵한테 묵사발로 당했데. 제대로 때리지도 않았대. 어디 때릴 데가 있어야지. 말로 몇마디 윽박지르니까 바지에 오줌쌌대. 걔가 그 정돈데 넌 얼마큼일 거 같냐? 어? 상황 파악 안돼? 어? 너도 존말로 할 때 내 말 들어. 보리스처럼 개망신 당하지 말고. 알았어? 걔네들 개수작 장난 아니라니까 글쎄. 어?」
「」
「어디로 갈 건데? 갈 데는 있어?」
「오라는 데는 없어도 갈 데는 많아.」
「뭐? 가는 여자 잡지 않고 오는 여자 막지 않는다. 우리의 암구호 잊지 않았지?」
「남자는 나이가 들면 힘이 밑에서 위로 올라오는지 몰라도. 난 아니다. 난 아니야.」
「너 아직도 햄버거병 못 고쳤다냐? 허언증 안 나았어? 이런 쯧쯧쯧. 지금 이럴 시간 없단 말이야 이 친구야. 어? 암구호 B는? 혹시 까먹었나 싶어서.」
「빽넘버 1번: 적은 건 적은 거다.
2번: 아내는 아무것도 몰랐는데 나중 전부 다 알아버렸다.
3번: 못 먹는 감 찔러나 보는 버릇 못 고치다 낭패를 면치못했다더라.
4번: 오빠 달려? 좋은 말로 할 때 오빠 좀 걷자. 누가 좀 나를 살려주세요, 제발 한번 만 봐주란 말씀.
5번: 제목은, 탕아 빈손으로 돌아오다.
6번: 꼬꼬댁거리기만 하는 암닭은 시끄럽기만 하지 닭알은 안 낳는다.
7번......
그런데 내가 이런 얘길 왜 하는 거지?
근데 내가 도대체 이걸 왜 해야 하지?
그런데 내가 대체 이걸 왜 하고 있냐고!」
「그걸 왜 나한테 물어?」
「그럼 누구한테 묻냐? 별들에게? 그래. 그러자. 차라리 그게 좋겠다. 나도 벌써 그렇게 점찍었어. 내가 뭐 바보니? 나 바보 아니야.」
「그래 너 바보 하지 마. 나만 천재 할 테니까.」
「아니 근데... 가만 있어 봐. 내 심정 너한테 묻지 그럼 누구한테 묻냐? 어? 너 내 친구 맞냐? 어? 이 자식이...」
「너 질문 까먹었지?」
「어.」
「것 봐. 묻지 말라니까.」
「뭔가 이상한데. 왜 말렸지? 어쩌다 착착 감겨버린 건지 도통 모르겠단 말이야.」
「알았어 알았어. 늬 마음 다 알아.」
「안다고? 늬가 뭘 아는데? 늬가 뭘 아냐고.」
「너 욕구불만이잖아. 많이 참고 있잖아. 난 임마 더 참고 있어. 알아? 이거 왜 이래? 보자 보자 하니까 너도 보리스처럼 되고 싶냐? 좋은 말로 할 때 도망가. 다 이 형이 생각해줘서 하는 소리야 임마. 어? 뭐해 안 뜨고.」
「알았어. 알았다고.」
「나중 형이 비둘기 띄울께.」
그처럼 당분간 그의 정체성은 공상가에서 도망자로 탈바꿈하게 되었던 것이다. 끝.
1
일자리 없는 이발사 고양이 머리 깎고, 할 일 없는 여자 고양이 젖 짠다고. 일, 해야 한다. 놀기만 하면 재미없다. 우리는 숙녀도 만족시켜야 한다. 희망찬 내일로 가는 인생에서 아름다운 사랑도 좋다만, 대망 말고 소망과 잔재주도 모른 체할 수 없다. 잔소리, 듣기 싫겠으나 지나치지 않을시 다 귀담아들을 필요 있다. 잔근육? 과연 언제 쓰게 될지...! 하여간에 시간은 한정되어 있는 반면 할 게 많다. 그래서 한 마리 토끼만 쫓을 것이냐, 여기저기 떡밥 막 뿌릴 것이냐. 그것이 문제일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마땅한 목표와 합리적으로 낚을 표적이 없다는 점. 아직 때가 아닌 거지. 아님 뭘 하지도 않았는데 시작도 전에 벌써 힘 빠졌거나. 앉아서는 토끼를 못잡는다는 걸 우리가 왜 모르겠나.
그렇다면 말이다 글쎄 뭐랄까, 어쩌면 정력 탈이라기 보다는 열망과 의욕이 바닥났을까? 역시나 권태가 강적 중의 강적. 뭘 해도 재미없으니까. 심심함마저 이제 친해질 대로 친해진 걸 모르진 않는데. 그런데 대체 때는 언제란 말인가. 도대체 언제까지 관망만. 기 다 빨린 다음에 진한 사랑? 그래도 뭐 숟가락 들 힘은 남아있겠지 뭐. 옛날엔 그랬다. 재치 있는 선수 앞으로 공이 굴러온다고, 응? 우리에게 호박은 제 발로 굴러오기 마련. 그렇지만 아 옛날이여! 무료 따분 심심, 언젠 안 그랬나. 늘 그랬다. 따라서 나는 이제 비장의 카드, 꾹 참고 끝까지 숨겨놓은 특단의 묘책을 꺼내야 하는데. 그게 있으면 진즉 뭘 해도 했겠지, 없으니까 말만 많지 않나. 그러니까 아는 동생들도 다 떨어져나갔고. (절레절레)! 응큼한 낭만파 허당과 귀여운 숙녀가 함께 행복한 밀애를 나누며 쾌감을 탐구하기. 그게 무엇인지, 어떻게 하는지 다 까먹었음. (몸짓) 나는 연애사 전적이 딱 0이기 때문에, 고로 첫키스도 아직 못해봤다. 아아 내 미래의 첫사랑일 눈부신 신부는 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여태 사교계에 데뷔도 못해보고 대체 이 나이 먹도록 뭘 하고 살았는지 한숨도 이젠 안 나옴. 뻥도 피곤 허풍은 짜증. 만사 귀찮음. 젠장 거 참 더럽게 따분하구만 그래.
그래서 나는 출근했다. 잠시 후 도착했다. 그렇게 일과를 보내던 중 일하기 싫어졌음. 그래? 그럼 변신기계를 가지고 놀까? 그렇게 딱 오늘은 무얼 안에 넣지 고민하다가, 영양가가 풍부한 팩 포장 음료수를 골랐다. 그렇게 딱 변신기계를 열었는데. 뭐야 이거! 변신기계(옷장) 안에서 귀걸이를 발견한 것이다. 아니 웬 귀걸이? 그 전이라면 몰라도 변신기계를 설치한 이후 사무실에 여자를 초대한 적이 없는데? 어찌된 일일까. 더군다나 나는 귀를 뚫지 않았다. 몇 명 데려와서 진짜 같은 환상감을 심어줬긴 한데 대부분 가짜였다. 그렇지만 걔네들이 품은 신비감을 깨트리고 싶지 않아 몇 번 진짜 요술도 선보여줬다. 그렇지만 이건 내 기술이 아닌데. 어떻게 된 거지? 때문에 내친 김에 나는 여동생들을 불러서 변신기계를 선보이기로 결심했다.
2
다음 날. 사무실.
사라. 로즈마리. 에밀리. 마라. 비비안. 일단 그렇데 숙녀 5명만 초대해서 여기 이렇게 함께 있는 중.
고결한 분위기 설명은 생략한다.
일단 나는 변신 기계 작동 마법의 7대 요소를 가동시키기 시작했다. 플레이보이의 3박자도 아니고 뭐?
자, 보자. (1) 음악 (2) 조명 (3) 진동 (4) 효과음 (5) 연기 (6) 향기 (7) 명연기력......
음악은 일단 이렇게 틀어놓았다.
Rossini / 오페라 <이탈리아의 터키 인> (한 남자만 사랑한다는 건) “세상에서 제일 바보같은 짓”
그렇다 자동적으로 장르 맞추고 어떻게 딴 음악들도 나오도록 다 편집&선곡해 놓았다.
나머지 조명부터 기타 등등은 드라마로 나오면 보기로 하고. 그거도 건너뛰어.
(몸짓) 시간 없다고 시간! 아 참 나 거 증말 바빠죽겠네. 통과.
어느 정도 녀석들의 기대감을 고조시켰겠다, 호기심 역시 들떴고, 사색가 성미까지 한껏 달군 상태.
나는 녀석들이 보지 못하도록 탁자 밑에서 (라이터 기능 대신 향수 기능&기타 등등) 듀퐁 라이터를 똑딱였다.
퐁~! 숙녀들 뿅간 거지. 응? 농담이고.
아무튼 그렇게 시시콜콜한 대화도 할 만큼 했고, 다음으로 내가 어제 발견한 귀걸이에 대해 물어볼려던 찰나.
나는 생각을 바꿨다. 어떻게? 녀석들한테 귀걸이를 한쪽 변신기계에 넣어둔 다음, 변신 기계 7대 요소를 정밀히 가동시켰다.
그러므로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짜잔~) 어떻게 됐긴, 변신 기계 한쪽에서 귀걸이 1쪽을 복사했다.
물론 미리 녀석들한테 다 하나는 귀걸이가 있고, 하나는 없고 그걸 확인시켰고.
「와!」
「머가 와야? 오빠. 이건 무슨 수작이야?」
「수작이라니. 따라해 봐. 요술!」
「요술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어떻게 속였어?」
「어떻게겠니 뻔하지. 카드마술처럼 카드 밑장을 중간에 넣는 그런 기술. 어? 옷장 천장에 뭐 어떻게 작업 해놨겠지.」
「그래. 그럴 줄 알았어. 그럼 그렇지.」
「그러니까 저 오빠가 평소에 외로울 수밖에.」
「그렇다니까. 난 또 뭐라고. 어? 그러니까 오빠가 여자가 없는 거야. 알아?」
「뭐? 뭐가 어쩌고 어째? 그거아고 이거아고, 상관 있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말이야. 마술을 보여줘도 뭐라 그러네. 너네 정말 혼나볼래? 어? 그러고 싶어?」
「그러게 좀 색다른 거. 어? 식상한 거 말고. 귀걸이 싸구려 어디서 주서와가지고, 뭐 어쩌라고. 어?」
「너, 정말!」
「메롱~」
「(몸짓)」
「(표정)」
「아 실망이다.」
「난 기대도 안 했어.」
「좋아. 그럼 누가 1명 지원해.」
「뭘?」
「귀걸이 방금 봤지? 물체 복사는 되는데, 인간 복사는... 그건 할 수는 있어. 그렇지만 아직 안 할래. 왜? 왜냐, 미리 힘빼면 안되니까. 허허. 따라서 오빠가 공간이동을 보여줄께. 무슨 숙녀들만 심신분리가 특기인 줄 알아? 이게 이게 보통 놈이 아니라니까 글쎄. 어? 좀 이따 놀라지나 마셔 이 양반들아. 어? 지금 너네 SF영화 생으로 보고 있는 거야. 알긴 알어?」
「영화 찍으시네.」
「놀고 있네.」
「얘들아. 내가 총대 맬께. 그럼 되지?」
그러면서 릴리가 나왔다.
「여기 들어가면 되지?」
그렇게 1분 후.
나머지 숙녀 4명이 함께 옆 변신기계(옷장)의 문을 열었다.
아니나 다를까 릴리가 거기에 서서 눈을 끔벅끔벅.
「와우~!」
「인정.」
「오, 소름. 대박~ 이거 뭐야?」
「장난 아닌데? 이거... 어떻게 한 거지?」
그런데 거기서 끝났으면 그냥 그러려니 했을 텐데, 문제는 그때 발생했다. 그게 무엇이냐, 바로 옷장 안에서 릴리가 신기한 걸 보았기 때문이다.
즉 옷장을 열면 보이는 저쪽 면 전체. 그게 딱 가구 바닥 선을 축으로, 징검다리처럼 턱-하며 저쪽으로 넘어졌기 때문. 그렇게 보이는 풍경은 영화에서 볼 수 있는 멋진 바닷가.
그 해변이 천상의 낙원이라면 저곳에 누굴 데려갈까? 일단 여기 모인 다섯 명? 재미없고.
「와...」
「와...」
「이거는...」
「아니...」
난 내친 김에 기왕 이렇게 된 거 폼내지 않을 수 없었다.
「봤지? 봤지? 봤지? 어? 봤어? 뭐지? 봤구나. 봤네. 봤어. 어? 오빠 이런 사람이야~! 뭐 이 정도 가지고 허허.」
물론 나는 등에 식은땀 쭉나기 직전이었다. 공간이동까지는 몰라도 그건 내가 벌인 일이 아니었으니까. 그 다음으로 로즈마리가 믿을 수 없다면서 건물 바깥으로 갔다 왔다.
「바깥에 나가서 봤는데, 가구 너머로 그냥 공터, 놀이터, 나대지, 정원. 그런 거 밖에 없던데.」
「오빠. 갈 수 있어? 저쪽으로!」
「갈 수는 있는데 돌아오는 건 나도 몰라.」
「난 안 갈래.」
「나도.」
「나도.」
「나도.」
「난 가볼래.」
「정말?」
「뻥이야. 미쳤니? 안 가. 못 가. 가기 싫어.」
「야, 그러지 말고 있잖아~」
「오빠를 보내자고? OK~!」
녀석들은 다들 하이파이브 하고 얼싸안고 웃고 떠들고, 아주 그냥 신났다 신났어. 좋단다. 잘들 한다. 허허.
당연히 난 겁이 덜컥 났다. 가면 올지 못 올지 모르는데 어떻게... 이건 그 흔한 장난이나 놀이가 아닌데...
「오빠가 말이야, 못 가서 안 가는 게 아니라. 오늘 왠지 볼살도 떨리고 허벅지도 신통치 않고.」
「허벅지? 꿀벅지 아니면 말벅지? 또 그놈의 하체! 오빠. 우리 좀 솔직해지자. 응? 그럼 안되겠니? 그냥 겁 먹어서 못 가겠다면 안 간다고 말해. 어? 그럼 되잖아. 뭘 그렇게 응애응애?」
「내가 언제? 내가 못 갈 줄 알아? 어?」
「(이구동성으로) 응.」
「너네들 짰니? 그래. 가자. 가보고. 어? 아님 일단 한 발만 살짝 넣어봤다가 뺄까? 아니. 남자가 말이야 칼을 뺐으면 무라도 썬다. 어?」
딱 그렇게 내가 저쪽 해변으로 건너가려던 찰나. 어느새 변신기계(옷장)의 저쪽 면 전체가, 가구 바닥 선을 축으로 다시 올려져서 딱 원위치됐다.
「이 오빠 이상해.」
「너도 느꼈니?」
「나 갈래.」
「나도.」
「야, 가자. 뭐해?」
그렇게 언제 약속이라도 한 듯이 녀석들은 다 가버렸다.
녀석들도 녀석들인데, 이 실제 시트콤에서 최고로 황당한 사람은 바로 나였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알 수 있어야지. 그래도 성과라면 성과일까? 녀석들 이제 한동안 커피 사주라고 조르지 않을 거라 생각하니 그건 좋았던 것이다.
3
그 일이 있은 다음 난 다시 남자애들과 어울렸다. 역시 남자랑 노는 게 재밌다.
여자야 물론 다정하고, 부드럽고, 애교 넘치며 좋긴 좋다만. 여자는 뭐랄까 우리에게 우정과는 어울리지 않는다고나 할까? 아닌 게 아니라 1 대 1 스타일인데 안 그럴 수 있나. 그래서 나는 으쌰으쌰 친구들 불러서 막 녀석들 물체를 옮기고, 볼펜 정도면 복사해주고, 저질 체력 낮은 타율로 이동마술까지 선보였다. 이게 말이다 어떡하다 보니까 실력이 생긴 것이다. 무슨 속성 학원을 다니 거도 아니고. 독학도 한계가 있겠으나. 우리가 누군가? 실전형 학습의 돌아이. 허허. 말하자면 그 원리에 따라서. 나무를 베는 법은 나무를 베면서 배우게 된다. 한 명의 바보로부터 백 명의 바보가 생겨난다고 걔네들은 나한테 넘어온 거나 다름없다. 캬~ 어쩌다 이런 신통방통한 재주가 생겨서 말이지. 허허허.
(모자를) 썼다 벗었다. (핸드폰을) 들었다 놨다. (여체를 아니 여심을) 밀었다 당겼다. 지금 상황이 상황이 내가 능동적으로 뭘 해야 하는데 이건 뭐지? 무언가를 하고 하고 놀고. 그냥 해? 그냥 하긴 뭘 그냥해! 막 그래야 하는데. 이건 딱 요술피리에 춤추는 인형이 된 듯한 기분. 글쎄 이러다 팔자에도 없는 행운과 사랑과 행복을 몽땅 일망타진할 것만 같은 예감. 그게 날 포근히 안하주면 좋을 텐데. 어딘가 모르게 이러다 또 당하고 말릴 것만 같은 조짐. 느낌 세했던 것이다. 하오나 일단 어복 풍만한데 즐길 수 밖에. 우선 그 원리를 설명하자면 이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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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로 구분하자면 이렇다.
- A. 주문 : 설교형. 주례사. 간절함. 진심. 애절. 말하자면 기도. 가뭄에 시달리는 원시인들한테 비를 내려주도록 하늘에 기원하는 레인메이커의 심정으로. 즉 엄마의 전형적인 잔소리를 고급스럽게 포장.
- B. 떠보기 : O → X (또는 반대로). 잘하면 되겠다! 피동적으로 잘하면 대어가, 꿈이 잡히겠다. 가망성 높은 목표. 성공률 희망이 보일 때. 정답은 이미 애청자와 정해져있는 것. 대부분 손님이 이미 답을 알고 주술사를 찾는 것. 그럼 떡밥 뿌려서 반응보고 사심 편들어주고, 본심에 알맞게 몰아가면 그만.
- C. 지능적 : 대답이 '예'인 것만 딱 골라서 유도 심문. 그러다 타율 떨어지면 NO는 그것만 예외. 그래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안된다며 톡톡 다독이기. 꼬시기. 그러면서 표정 간보기.
- D. 동기부여형 : □ → △ (또는 반대로). 할 수 있다! 능동적으로 해보자. 꿈은, 이루어질, 것이다. 단, 1번에는 어렵다. 스포츠 감독형.
- E. 재단사형 : 그래요? 아니라구요! 머머 좋아하죠? 싫다구요... 맞춤복처럼 욕망과 성격을 측정하는 방법. 조율. 타협. 동조. 그렇게 바람 잡고 분위기 조성하면, 그 뭐든지 술술 다 불게 되어 있음. 그녀는 우리한테 넘어올 수밖에 없음. 지가 우리한테 안 넘어오겨 어떻게 배겨? 이미 첫눈에 홀딱 반했음. 농담이고. 쥐구멍에서 나왔으면 개구멍으로 유도하고, 개구멍이 싫어진 듯하면 쥐구멍에 대해 이따만하게 부풀려서 속삭이고. 마침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 라는 말에 결국 속고 마는 거지. 진짜 농담.
- F. 진솔형 : 솔직히. 정공법. 어? 그래 나 돌팔이다. 대놓고 인정할 건 인정하면 됨. 다만, 나는 재물운 사랑운 승진운 관상... 가 가운데 딱 1개만 속된 말로 조진다. 물론 사람에 따라 그건 모두 다름. 왜? 왜냐하면 그와 나의 궁합이니까. 따라서 그 1개를 내가 보고 너가 안다? (딱) 100퍼센트.
- G. 카리스마형 : 예언가 기질 다분. 너는 성공할 것이다... 형이 다 꼬셔줄께. 아니 그게 아니라. 어쨌든 윽박지르며 세게 나가면 싸구려. 삼류. 허당. 카리스마는 조커처럼 아주 아주 드물게. 섣불리 카리스마를 보여주면 안됨. 그러면 될 요리도 안됨. 배가 산으로 감. 털 뽑고 익히고 양념해서 접시에 올려놓은 튀긴 통닭마저 살아나서 도망감. 어? 카리스마는 절대 그런 게 아님. 고급스러운 유머라는 게 뭔가? 두고 두고 생각나는 거거든. 진정한 카리스마? 싸구려 가죽점퍼부터 최고급 양복까지, 이 여자 저 여자, 아니 아니 뭐 인생 경험 두루두루 쓴맛 단맛 씁쓸 새콤달콤 괴상한 맛까지 다 체험한 다음. 그래서 최후에 완성된 환상머신은 뭐다? 슬리퍼 찍찍 트레니이복 후줄근! 농담이고. 카리스마 설명하느라 살짝 옆길로 샜는데 돌아와서.
- H. 허세형 : 공격적인 스타일. 풀스윙 휘둘렀는데 헛스윙이네? 재도전. 큰소리 떵떵쳤는데, 아니라네? 틀릴 수 있다. 매도 일찍 맞는 게 낫다 주의.
- I. 잔꾀형 : 약점 파고드기. 허영심 공략. 소망 부추기기. 폭삭 망한 대망 잊을 만하면 회상하게 만들기. 때로는 은근히 겁주기. 이따금 아니 틈틈히 립서비스로 사람 띄워주기.
- J. 유도형 : 자긴 과학적이라 그거지. 신비주의 조장. 듀퐁라이터 같은 효과음 중간중간. 환상머신 힌트. 변신기계 지분 권유.
보기 구분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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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문단은 지나가는 문단으로, (G) 카리스마형에 대해 부언 설명 조금만. 줄거리 위주로 독서하시는 분은 건너뛰셔도 무방함. 허지만 그러기 퍽 힘들지 않을까요? 모르겠고.
딴 등번호도 그렇지만 점쟁이 본인이 주인공 아님. 절대 아님. 나는 병풍이요 간신배며 백댄서다. 어? 난 영원한 신부들러리다 라는 저자세. 딸랑딸랑~ 반짝반짝~ 뿌잉뿌잉~! 조수. 비서. 심복. 끝없는 1.5 어? 그러다 못 참고 덤비면 말짱 황. 까마귀는 오디 익을 때가지 가만두지 않는다. 덤비면 파랑새 못 된다니까 글쎄. 어? 명심할 것. 서둘러도 천천히 서둘러라. 덤비지 말고 서둘러라. 무턱대고 인상 팍 카리스마? 카리스마? 그게 카리스마야? 카리스마 좋아하시네. 어? 놀고 있다고. 웃기고 자빠진 거지. 허허. 허허허. 카리스마란 말이야, 어?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아무튼 카리스마 그거야말로 헷갈리기 최고로 쉬운 거. 허당과 은근 허당의 차이점이 뭔가. 카리스마란 편이 적이 되고, 어제의 적에 대해 연구를 거듭하여 오늘 무언가 그 어떤 속성을 편애하는 딱 그 부분. 어제로부터 못 배우면 오늘의 발전은 없다. 카리스마가 뭐 눈에 보이는 거도 아니고 말이지, 여자의 마음을 띄워줘야 할 판에 뭐 으쌰으쌰 우정도 아니고 잔말 말고 따라와? 그러니까 여자가 없지. 그러니까 여자들이 안 좋아한다고. 어? 뿐만 아니라 카리스마형 촌닭이 어디 한두 명인가. 싸움닭 기질 역시나 차마 셀 수가 없는 것. 조급하면 일찍 퍼진다. 해설자 왈, 퍼졌어 퍼졌어 퍼졌어! 힘빠졌어 힘빠졌어 힘빠졌어! 그 흔한 코치의 조언이 무엇인가, 어? 첫 끗발이 개 끗발이다. 노름꾼과 종이 한장 차이라는 도박사. 그 업계 역시나, 초반에 따면 나중 잃는다는 것. 다 그렇다는 게 아니라. 누구나 그렇다는 게 아니라. 항상 그렇다는 게 아니라니까요.
고대 로마에서 노예 한 명을 장군 옆에 태워 끊임없이 어떤 말을 외치게 했다는 일. 오늘은 당신이 전쟁에서 승리한 개선장군이지만 언젠가 당신도 죽는다, 그러니 오만하고 우쭐대지 말라는 경고의 의미. 들어갈까 말까 베팅할까 말까,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아니다. 그런데 누가 덥썩 채가면 어떡하지? 일단 판돈을 키우지 말고 받기만 하자. 형세를 지켜보고 뒷패를 받은 다음 생각한다 그거네. 하오나 발을 빼냐 끝까지 가냐, 판단은 냉철하게. 계산은 세심히. 결단은 신속히! 그 모든 사전 12권짜리 데이터베이스를 순식간에 임시메모리 점유율 나눠줘서, 주기억장치에서 슈퍼 데이터 소환하여 집어넣고, 삐리리기 삐리리릭~! 퐁~ 팡~ 핑~!
3분의 마법이라는 그 흔한 유행가. 천재 작곡가 둔재 작사가, 환상적인 목소리의 가수들은 세고 셌다. 유명세란 그냥 흔하디 흔하다. 그렇지만 웃자고 하는 말로, 인기 그거 다 거품이라고 하는 말이 뭔가. 예를 들어 고전음악. 바헬벨. 비발디. 스카를라티. 헨델. 바흐. 하이든. 베토벤. 롯시니. 쇼팽. 리스트. 드뷧시. 라벨. 시벨리우스. 스메타나. 라흐마니노프. 멘델스존...... 전원 한 마리 토끼 쫓기. 공작이 부탁한 거 작곡하고 있는데, 귀부인을 위해서 그걸 서랍에 넣어놓고, 그런데 백작이 거금 싸들고 와서 이거 먼저 해달라고 부탁하네? 딴 거 다 책꼿이나 피아노 의자에 숨겨놓고 오직 그거 하나만 매달리는 식. 일찍 끝내야 품위 유지비 버니까. 그분들도 먹고살아야 하거든. 하오나 모차르트~! CPU가 점유율 다 나눠줌. 천재란 바로 그런 것. 그 흔한 립서비스가 아니라 카리스마? 똥파리 3만 마리 가운데 카리스마만 대체 몇 마리인데. 어쭈~ 진짜 카리스마 저기 있구나. 자기 카리스마 감추고 딴 카리스마들 보좌해요 보필하며 떠받드네? 촌닭 카리스마와 진공청소기 카리스마, 두고 보면 안다. 능청맞은 어른들 웬만하면 초장에 알고. 능글맞은 그 능구렁이들께서 어떤 카리스마가 대번에 가짠지 진짜인지 어떻게 몰라. 그러니까 점쟁이들이 먹고살기 힘들지. 농담이고.
초반에 힘 빼면 오래달리기 힘들다. 덩치 커도 오래 싸우기 어렵다. 대배우들이 어떻게 롱런하는가? 흔히 하는 말로 변신은 거의 불가능하고 다재다능하면 물론 좋다만, 일반적으로 딱 1마리 토끼 잡기. 내가 라틴어를 몰라서 말하지 않는 게 아님. 아는 척하면 남들 피곤하니까, 어? 허세도 이제 녹 다 슬었네. 아주 그냥 팅팅~! 웬만히 우려먹어야지 아주 그냥 면발 뿔어서 어디 먹겠냐고. 해도 해도 정도가 있지 말이야. 어? 좌우지간 희망가라는 것은 동전의 양면. 즉 첫째 다큐멘터리, 둘째 죽은 척 겸손. 첫째는 누구나 알다시피 최고의 순간을 기다리며 느그적느그적 맹수의 야성. 둘째는 최적의 승률을 위한 타율주의. 물론 언제든지 복안은 떡밥뿌리기고. 그걸 권한다는 뜻이 아니라, 노력은 성공의 어머니와 종이 1장 차이니 하는 말. 경험 풍부한 야전사령관의 말 무시할 거 아니라 그 말씀. 말하자면, 따기전에는 나를 <사과>라고 부르지 말라. 뭐 그런데 복숭아는 더없이 탐스러운데 하필 팔이 짧다고요? 젠장. 이런 젠장! 카리스마 부언설명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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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음.. 자, 날씨를 보자. 아니다. 오늘은 관상이다. 내 친구 척키처럼 못생긴 척키상. 볼수록 매력이 귀여운 척키상도 있듯. 눈썹이 십 만명 가운데 딱 1명 있을까 말까한 사람은 TV로만 봤으나. 귀 크기로 3년에 겨우 1명 태어날까 말까한 귀인도 못 만나봤으나. 양미간부터 코끝까지 일자인 관상이 어디에 가면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을 텐데 저번에 딱 1번 봤어. 쓰잘 데기 없는 잔소리 그만하고.
인생을 돌이켜보니 재미난 관상을 하나 말하자면 그거다. 바로 가가멜상! 몇 명 생각나는 사람이 있긴 한데, 궁금증을 뒤로 한채 우리는 거북목 증후군이나 치유하기로 하고. 수전증 거 손 떨지말고 조급증 주의하자는 의미. 뭐 허언증이냐고? OK~! 걸려들었어. 입질 보이더라니가 글쎄. 허허허. 농담이고. 보아하니 한두 번 톡톡 떠보고, 똑똑똑 노크하고, 툭툭 건드려보면 딱 진단 나왔다. 이건 뭐 거의 100%. 어떻게, 바로 이렇게. 바로 직감에 따라 저 말상은 딱 보니 팔랑귀네? 일단 시작은 C → E → H → I → J로 공략하면 끝. 딱 끝. 결국엔 모두 10번으로...라니! 이거 왠지 모르게 '사'자 기운이 느껴진다만 말이 그렇단 거고.
아무튼 미완성 환상머신은 잠시 제쳐두고. 나는 이렇게 변신 기계와 그 7대 법칙을 숙달하여 주변인들을 죄다 내 편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사실적 마술주의는 내 것이 된 거다. 마술적 사실주의? 내가 알려줄께.
(1) 음악 (2) 조명 (3) 진동 (4) 효과음 (5) 연기 (6) 향기 (7) 명연기력......
심화 과정은 수강비가 올라가니 일단은 그렇고. (딱)~
와, 내가 봐도 존나 카리스마 있어. 그러니까 여자들이 뻑-가지!
7
사무실 출근.
하도 정신이 없어 요점만 간단히 말하고 넘어가고자 한다. 지금 와서 요목조목 설명할 수는 있는데, 못해서 안하는 게 아니지만. 당시 기분을 최대한 살려서 설명하는 게 솔직히 너무 힘들다. 뻥, 아니다. 거짓말 정말 아니다. 어쨌든 요점만 말하자면 이렇다.
사무실 출근 완료.
옷장이 눞여진 모습 발견. 옷장 1개는 멀쩡하게 그대로 서있고. 나머지 1개는 엎어진 상태. 왜? 몰라. 몰라요.
낮에 산책. 동네를 한바퀴 돌다가 사무실 내부 모습과 유사한 기하학적 장면을 목격. 즉 이렇게 이렇게, 그게 확대되어 저쪽 건물과 이쪽 길다란 건축물. 기분 이상해짐.
그날은 그렇게 마감.
8
나는 변신기계를 몽땅 처분했다.
일하고 점심식사하고 산책하고 쉬고. 또 일하고. 그렇게 퇴근 준비를 하던 찰나 닉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녀석답지 않게 말이야 웬 소심. 전화할 것이지 웬 문자? 혹시 연애 시작했나... 그러네. 아니면 이럴 리가 없지.
앞 문단처럼 본 문단도 역시나 요점만 간단히. 아니 다른 문단들과 칼럼들에서 하도 떠들었더니 정신이 다 없어서 어쩔 수 없다.
그렇게 닉의 문자를 받고 닉이 요청한 자기 사무실 방문을 확인 ───> 아니 짜식 언제 이사했지? 말도 안하고. 내 사무실과 가까운 위치에 있는 닉 사무실. 도착. ───> 입장 ───> 전화해도 받지 않음. 연습장에 자필로 머라고머라고 다 기록됨. 동시에 변신기계 7대 작동 과정이 진행중. 언제 또 본 건 있어가지고 말이야, 따라할 거면 말을 해야지. 그런데 장비 면면을 보아하니 내 것보다 몇 배로 고급. 뭐 일단 하란 대로 하는 수밖에 ───> 오른쪽 드레스룸으로 들어감 ───> Mozart / 콘서트용 아리아 “아니요, 당신은 아무 것도 몰라요” KV. 419. 변신 기계 7대 기본 요소에서 뭔가 엉성한 느낌. 간접 영상으로 벽면에 보여지는 건 기러기. 족제비. 황금방울새. 냄새는... 딱히 뭐라 설명할 수 없는데 그 뭐랄까 어릴 때 맡던 그 뭔가 형용하기 곤란한 이상한 향취. 색상이라면 기본을 주홍색과 적갈색으로 설정하고 시작한 거 같은데... 아까 벽면에 걸려있던 그림이 뭐였더라? 아니 아무리 그래도 말이지, 내가 뭐 삼류 드라마 주인공도 아니고 말이지, 녀석은 어디 가고 나 혼자 이게 대체 뭐하는 짓이냐고. 그렇지만 묘하게 따라갈 수밖에 없고. 요점을 계속 이어가자. 자, 다음으로 ───> 뭔가 끝난 기분? 그래서 나는 드레스룸 문을 열려고 했다. 그런데 열리지 않았다. 직감했다. 갇힌 거라고. 하여 잠시 폼을 잡았고. 다른 쪽 벽면들을 더듬었는데. 한쪽 벽면 하단에 통로가 있네. 들어갔다. 들어가란 말일 테니까 ───> 딱 들어갔어. 어쩌고저쩌고 구간 빨리 댕기기 했다 치고 ───> 사무실 정문 앞에 도착. 물론 나는 그 문을 열면 닉의 사무실이란 사실을 모르는 상태. 딱 들어감 ───> 뭐야? 닉의 사무실이잖아? 어떻게 연결시켰지? 어쭈 이것봐라! 다른 유도 기법은 없고. 딱히 많은 걸 추측할 필요도 없으니. 예상 결과 나는 나머지 드레스룸에만 들어가면 될 것만 같았다. 그렇게 들어갔다. 뭐 별다른 건 없네 ───> 음악 1곡 듣고. J. S. Bach / 결혼칸타타 BWV 202 - “봄바람이 쓰다듬으며” ───> 다시 드레스룸 잠김. 이 자식이...! 수증기가 귀에서 푸쉬쉭 머리 위로 푸수쉭. 도대체 뭔 꿍꿍이야? 그렇게 또 상하좌우 위아래 벽면을 더듬다 뒷쪽 벽면 전체가, 바닥 정사각형의 끝부분을 축으로 떡하니 열림 ───> 눈부신 전망. 거긴 바깥이었다. 닉의 사무실은 2층이었는데 여긴 1층. 끝.
애썼네, 아니면, 당했다. 난 제대로 말려버렸다. 그래서 생각이 많아졌다.
9
찬란한 황홀감은 무엇일까? 알 게 뭐야. 고상한 감수성 만족, 품위 유지비면 다 해결됨. 야성미 충족 역시나. 그럼 대체 얼마나 칼럼을 써야 눈부신 애마를 살 수 있는 걸까? 우리는 자동차 관심 없음. 환상적인 신비감은 곧 일하기일 뿐. 놀기보다 일하기가 더 좋은 게 진심. 특별한 기쁨이라고 해 봐야 뭐랄까 쉬기? 희망찬 내일을 위한 젊음의 행진. 그거면 된다. 진짜로? 뻥치기도 지겹다. 더럽게 재미없다고. 지친다 지쳐. 은근한 쾌감이 가져다주는 노골적 행복감의 정체는 과연 무엇? 그걸 알아서 뭐하겠냐고. 값싼 쾌락과 다정한 낭만의 혈투, 결과가 뻔하든 반전 있든. 남 얘기요 딴 세상 일들. 초미의 관심사가 어딨어. 권태와 타성의 혼전일뿐. 알래스카 석유 수송관이나 선박의 부식을 막아주는 과학적 원리가 관 제작에 쓰인다는 교양서 읽기도 힘빠지고. 요리사가 여러명이면 국맛이 짜지고, 미용사가 많으면 신부는 쑥대머리 된다는데. 이렇게 된 거 이참에 아예 실권을 인공지능 지니에게 넘길까? 라고 생각해봤으나 녀석은 뭘 연구중이라는 핑계로 잠잠했으니. 따라서 나는, 나는, 나는...! 대책이 없었다. 일명 무대책.
그래? 그래서 나는 저번에 스티븐이 놀러오라는 축제에 가보기로 했다.
걔 말로는 무슨 스머프 축제가 열린다는데 요즘 시국이 장난이 아닐 뿐만 아니라, 세계가 난리인데. 전세계 각종 주가지수는 춤을 추고 뉴스가 뉴스가 난리도 아닌데 무슨! 그렇지만 난 이번에 스티븐을 한번 믿어보기로 했다. 언젠 안 그랬나? 흡사 스티븐한테 속아넘어가는 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라는 듯한 마음으로 나는 녀석의 초대에 덥썩 응한 것이다.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10
녀석이 말한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스머프는 커녕 적당한 행사장에서 볼 수 있는 코스프레니 뭐니 언니들과 숙녀들은 구경조차 할 수 없었다. 그렇게 파리만 날리던 찰나 다섯여섯명쯤 스머프 분장을 한 친구들이 보이긴 했는데. 난 혹시 모르지만서두 스티븐이 내가 최근에 그만둔 변신마술을 따라하겠어 그렇게 마음을 놓고 있었다. 조금 지나면 알겠지만 미리 스포를 살짝 풀자면 녀석은 그랬다. 그런데 문제는 나처럼 옷장이랄지 모스맨 연구자 제라드 거실에 있는 드레스룸 수준이 아니었다는 점. 말하자면 그건 이랬다.
저 앞에 보이는 건물이 두 채. 즉
A. 내부 텅빈 7층 건물. 안에 스머프상.
B. 내부 텅빈 7층 건물. 안에 다비드상.
스머프 축제가 무산된 김에 자신만만 야심차게 준비한 변신마술을 선보이겠다는 속셈인데. 스머프 모임에 참가한 사람들을 A → B로 이동하겠다고?
「스티븐. 너 정신이 있니 없니?」
「왜, 난 대권을 꿈꾸면 안되니?」
「너 어제 또 대하드라마 봤니?」
끄덕끄덕. 부인하진 않네.
「그래 너 잠룡 해라.」
「그럼 너가 내 상왕 노릇하려고? 누가 모를 줄 알아!」
「야 인마. 그만 좀 컬러TV 세상으로 빠져나와 쫌! 어?」
「야심은 늙지 않아.」
「그래서 너까지 변신기계로 그 신기한 마술을 익힌 거니?」
「난 성공했어. 넌 실패했지만. 난 지지 않아. 넌 못 이겼어도.」
「누가 못 이겨? 난, 난, 어? 그런데 뭘?」
「뭔 소리야?」
「그걸 내가 아니 아님 네가 아니? 내가 정말 희대의 쇼맨을 상대하다 보니 정신이 다 없을 지경이란 말이야. 알겠어?」
「알긴 아네. 어쨌든 시간 없어. 자, 음악 들리지? 헨델의 HWV... 몇 번이더라? 그 있잖아 거 챔피언스 리그 패자부활전인가 결승전인가 도입부에 나오는 음악.」
「」
「요즘 분위기도 장난 아닌데, 그래서 내가 널 위해 준비했어.」
「뭘?」
「난 너처럼 쪼잔하지 않아. 너 내 스케일 알지?」
「그게 뭐가 날 위해서야? 너 자신의 대망 만족을 위해서지. 늬가 정말 내 생각을 한다면, 어? 내 소망 충족을 위한다면 말이야, 그럼 아는 동생들 연락처를 전부 다 나한테 넘기면 될 거 아냐. 안 그래?」
「그래. 이건 날 위해서야. 왜! 난 그럼 안되냐?」
「그러든가 말든가. 그건 그렇고. 너 저 7층자리 건물. 늬 꺼냐?」
「늬 거도 아니잖아. 흐흠. 빌렸어. 곧 내 게 될 거다. 두고 봐.」
「얼마에 빌렸는데?」
「알 거 없잖아? 농담이고. (손가락 3개를 펴드는 녀석)」
「뭐 큰 거 3장? 진짜?」
「뻥이야.」
「그럼 그렇지.」
「그게 아니라 작은 거 3장.」
「진짜야?」
「어. 너 나 알잖아? 한다면 한다는 거.」
「나 오늘 여기 괜히 온 거 같아. 느낌 세하네. 기분 묘하다고. 마음이 왠지 불안불안한데. 차라리 서포터즈 조마조마 애들 불러서 친선게임이나 할 걸 그랬어. 위태위태하게 이게 뭐니?」
「내가 널 모르니?」
「돌아갈까 말까. 이걸 어쩌지?」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왜긴 왜겠냐. 미친개에겐 접근 안 하는 편이 낫거든.」
「내가 그 미친개? 아니야. 난 늑대니까.」
「늬가 그러니까 여자가 없는 거야. 양의 탈을 안 쓰니까. 어? 나 봐 봐, 날!」
「야! 됐고. 너 쟤네들 따라가. 나도 기대와 달리 사람들이 이렇게 안 모일 줄 몰랐어. 거짓말 은근 섞어서 막 대부분 진짜로 홍보 엄청 하고 소문 딱 내고 그랬는데. 다 틀렸어. 정말로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는 아닐지언정 사람들 좀 모일 줄 알았거든. 그런데 이게 뭐니. 쟤네들 다섯 명? 내가 돈 주고 부른 애들이야. 그래도 내가 이번 일 어떻게 꾸민 건데. 잘 봐둬. 바지에 오줌 싸지나 말고. 저기 보이지? (A) 내부 텅빈 7층 건물. 내부는 텅 비었고 달랑 스머프상만 있어. 그 옆에. B. 거기 역시 내부 텅빈 7층 건물. 안에는 다비드상. 배구에서 백어택이랑 A퀵 기타 등등은 쟤네들 거포가 전담하고. 그래서 쟤네 5명 + 리베로 1명 = 6명. 뭔 말인 줄 알지? A에서 B로.」
「내가 리베로?」
「그럼 늬가 거포니?」
「야... 아... 뻥이 너무 심하지 않냐?」
(몸짓) 쉿!
내가 왜 뭔가가 심상치 않다고 판단했냐 하면, 녀석의 요술이 잘못됐을 때가 걱정됐기 때문이다.
변신기계로 숙달한 변신 마술의 종류는 대략 이랬다.
A. 복사
B. 변이
C. 이동(같은 차원에서)
D. 이동(다른 차원으로)
여기서 딴 건 다 몰라도 D! 그건 실종이자 종적이 묘연한 미스테리일 테니까. 혹시 녀석이 요술을 정교히 숙달했을지라도 다 속임수가 없지 않을 테고. 그러므로 나는 다음과 같이 추론했다. 보아하니, 나는 아마 컬럼비아에서 심심한 거부들이 장난처럼 설치하는 방공호, 그 방공호 업체의 후원일 거라고 추측했던 것이다. 일단 온 김에 확인할 걸 확인해도 나쁘지 않다는 추산이 날 이끌고 있었다. 그야 뭐 예상이 들어맞는지 아닌지는 녀석 하자는 대로 해보면 알겠지. 라는 마음으로 나는 그분들과 A 건물로 들어갔다. 나는 그분들 기분 나쁘라는 뜻은 아니긴 한데, 거 어째 깎뚜기 뚱뚱보에다 허접 얼빵 띨띨한 아르바이트생들만 딱 모집한 기분. 왠지 그분들께 미안했다. 아니. 뭐가 미안해? 말 나온 김에 말하자면, 그 흔한 동네 아저씨인 내 후줄근한 차림새. 난 뭐 안 그러나? 그건 그렇고.
변신기계의 7대 요소. 거기다 보너스로 뭐 더하고, 자본력 투입해서 특수작업 하고 어쩌고. 그렇게 딱 극적인 긴장감을 고조시킨 다음 카운트다운이 완료됐다.
그래서! 결과는?
검정색 눈가리개를 풀고 나니 내 주위엔 아무도 없었다. 바깥에 스티븐도 없었다. 사랑도 없을까? 농담할 기분 아니다. 진짜다. 쾌락이라도 있어야 한단 말이 아니라.
대형 스머프 동상을 똑똑 두드려도 봤다. 혹시 안에 비었지 않을까, 설마 이 큰 걸 돈 들여서 지었을 리도 없고. 어떻게 급조해서 대충 분장하고 어쩌고 꾸몄을 텐데.
대충 나는 스머프 동상의 아킬레스건과 비둥비둥, 스머프 동상의 종아리 중간 부분 보다 작고. 그래서 조립용 로보트처럼 거길 딱 열고 들어가면, 지하통로로 수평 에스컬레이터로 B까지 이동. 거기에 다 사람들이 있어야 하는데. 그건 내 짐작일 뿐이고. 바깥으로 나가 다 확인해봤는데 수작은 없었다. 나 혼자 개수작에 농락당한 거라면 몰라도. 무슨 이런 개뼉따귀 같은 마술도 마술이라고. 밑도 끝도 없이 이게 뭐야? 무슨 개 풀 뜯어먹는 거 어디서 배워가지고 말이야. 어? 말도 안되는 쇼 재미 하나도 없잖아. 이런 말 같지도 않은 마술쇼에 신부들러리로 솔선해서 참가한 내가 바보다. 난 그렇게 결론내린 채 돌아갔다.
아 돌아가기 전에 한가지 일이 있긴 있었다. 그건 뭐냐면 이랬다. 바로, 나는 구토했던 것이다. 졸지에 미운오리새끼가 된 심정. 왠지 몰라도 불끈 힘이 솟기 시작했다. 코끼리 팬티가 피노키오처럼 성났냐 하면 그게 아니라. 마법의 융단이나 은근 미지의 세계를 예감하다 대실망한 결과. 보여주기 식 쇼란 걸 누가 몰랐나,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허전한 기분. 그래서 뭐? 숨 돌릴 틈도 없이 나는 심하게 헛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걸핏하면 또 그 생각, 심심하면 시간만 낫다 하면 여자 생각. 아주 그냥 징글징글 신물이 난다. ~가 아니라! 진짜로 나는 신물을 토해내고 있었던 것이다.
11
며칠 후.
나는 오늘 윌을 만났다. 스티븐 소식을 캐내려고 말이다.
「친구. 요즘 어떻게 지냈어?」
「자네 덕분에 더럽게 재미없게 지내는 중이지.」
「그게 왜 나 때문이야?」
「농담인 거 알면서 왜 또. 내가 뭐 자네 마누라도 아니고 말이지. 심술쟁이 발다닥 간지럽히기 정도로 이해해. 알겠나?」
「몰라. 그건 그렇고. 너 저번에 어디 간다 하지 않았니?」
「아 남녀 성비로 세계 최상위권? 하긴 생각해봐 봐. 얼마나 좋겠니. 남자 8명에 여자 10명이라는 성비. 내가 만약 거기서 활약했다면... (절레절레). 게임 끝나는 건데. 남자들끼리 들썩들썩 으쌰으쌰 그럴 필요가 없잖아. 안 그래? 반대로 남자 12명에 여자 10명. 배가 부른 거지. 허허. 삼류 드라마에서 하는 말로 뭐, 똑같은 여자끼리 뭐래더라?」
「똑같은 여자끼리?」
「어?」
「뭐가 똑같아? 대체 뭐가 똑같다는 거야! 어? 그러니까 늬가 툭하면 심심하다 그러고 따분하단 말 입에 달고 사는 거야. 알아?」
「좀 모른 척하면 안되냐? 어? 아는 체할 게 그렇게 없냐 넌? 하여간에 깐족은! 야. 됐고. 너 스티븐 소식 들었어?」
「스티븐?」
「드라마처럼 말 따라하지 말고. 늬가 앵무새냐? 즉답하면 되지 뭐하러 또 드라마 따라해?」
「우리 삶이 영화니까. 드라마에서는 오디오 잘 안 겹치잖아. 말 따먹고 빼앗고 맞받아치고. 각본 쓸 때 오디오 물리기 최대한 피할 테니까. 그래. 우리는 실제고 그건 허구고.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라. 어? 니가 나한테 해준 게 뭐야?」
「나? 부담감 느끼고 싶어? 날라차기 맞기 원하면 말하고.」
「그럼 나야 거절할 수 없지 뭐.」
「진짜?」
「뻥이란 거 알면서 제발 좀 확인하지 마셔. 어?」
「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스티븐 소식이 궁금해서 말이야.」
「걔야 잘 살고 있겠지. 우리 친구들 가운데 형편 제일 낫잖아. 걔가 A++을 데리고 살던 C++과 연애를 하든. 그걸 알아서 뭐할려고? 뭔 상관이야 늬가?」
「다 그럴 일이 있다니까.」
「뭔데? 너네 또 나만 쏙 빼고 어디 좋은 데 갔냐? 나도 좀 같이 놀자. 어?」
「아니라고는 안했어.」
「으쌰으샤 함께 달렸다고? 어디?」
「기다고도 안했어.」
「이 자식이...!」
「그런데. 너. 왜 그랬어?」
「내가 뭘?」
「인스타에 보니 너 요즘 스케이드보드 탄다며?」
「왜 난 그런 건전한 취미 즐기면 안되냐? 못해본 거 뭐가 있을까 찾다가 걸린거야. 그거 물이 좋다고 들었거든. 내가 말하는 남녀 성비. 알지? (몸짓) 캬, 어?」
「그거 다 옛날 얘기야. 잠깐 반짝 하다 원래대로 남자들만 드글드글.」
「진짜? 늬가 어떻게 알아?」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 봐 임마. 어? 늬가 여자면 여자들이 화장술 익히고 조명발 애원하며 사진발 받으며 봄바람 맞고 꽃구경 다니지. 걔네들이 넘어지고 넘어지고 땀흘리고. 여자들 그런 거 안 좋아해. 걔네들이 카페에다 갖다바친 돈이면 카페를 차리고도 남는다니까. 어? 늬가 그러니까 여자가 없는 거야. 어? 그래서 늬가 안되는 거라고.」
「머리를 짓눌리기보다는 다리를 꺾이우는 편이 낫다고, 어? 너 나 너무 구박하지 마라. 나 로또복권 샀거든. 포커 대회도 곧 나가. 세계 챔피언? 식은 죽 먹기야. 나한테 안되는 건 없어. 우리도 좀 고급스럽게 품위 따지고 고상하게 놀자 그 말이라고.」
「언젠 안 그랬냐?」
「안 그랬지.」
「그럼 앞으로 그렇게 네게 맞혀줄께. 그럼 되는 거지?」
윌 뿐만 아니라 일주일 동안 여러 친구들과 여동생들을 만나봤는데, 스티븐 소식을 아는 애는 없었다.
그렇다면! 범인은 범죄현장으로 돌아온다? 개는 자기가 토한 곳으로 돌아온다!
나는 저번에 스티븐과 만났던 스머프 축제 현장에 다시 가보기로 결심했다.
12
약 3일 후. 오늘은 긴급 스머프 데이. 저번 그 장소에 열성 동호인들이 또 모인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나는 곧바로 출발했다.
중간 건너뛰고. 장면 전환.
중간 건너뛰고. 장면 전환.
중간 건너뛰고. 장면 전환.
스머프 축제 현장에 도착. 적당히 구색 갖춰졌다고 상상하자. 그러다 나는 느닷없이 모스맨 연구자 제라드를 만났다. 아니 이런 우연이...!
「또 너냐?!」
「친구. 모스맨 축제가 아니라 웬 스머프 축제? 너 정말 이러기야? 여보게. 친구. 우리한테 와. 내가 잘해줄께.」
「너 아직도 이러고 다니냐?」
「그럼 넌! 오늘이 무슨 제2회 스머프 데이라며?」
「정신연령하고는. 너 혹시 우리 사무실 도둑든 거 들었냐?」
「진짜?」
「뻥이야.」
「이 자식이...!
「그런데 스티븐은 왜 안 보이지?」
「너 걔랑 친하니? 걔랑 친하게 지내지 마. 왕년에 여자깨나 울린 놈이야. 우리 동네에서 여자를 만난다? 먼저 물어봐야 해. 스티븐 아냐고. 그래서 내가 말 잘해서 보냈어.」
「어디로?」
「일터로.」
「늬가 뭔데?」
「나? 모스맨 연구자 제라드. 왜, 불만 있어? 스티븐은 취미고 난 일이고. 어? 좋게 말할 때 우리한테 와. 그게 너한테 좋을 거야. 저 봐 봐. 응? 저 보라고. 찌질. 허접. 얼간. 다 남자들뿐이잖아. 외로운 녀석들. 우리는 안 그래. 우린 달라. 너 꽃밭이 뭔 줄 잘 모르는구나. 허허. 모스맨 축제는 여자밖에 없어 이 친구야. 알아?」
「뭐 정말이야? ~라고 할 줄 알았냐! 제라드. 제법 거짓말도 태연하게 할 줄 알고. 많이 컸네. 응?」
「딴 건 뻥인가 몰라도 그건 진짠데. 이거 어쩌지?」
「뭐 정말?」
「그럼. 난 뻥 그런 거 취급 안 해. 어? 야 말만 해. 여기 드문드문 보이는 여자애들. 내가 다 꼬셔줄께. 진짜. 어? 왜, 내가 못할 거 같아?」
「어. 참어라. 제발. 보기 흉해. 차라리 추접스러운 사랑이 나아. 더티러브!」
「어허! 근데 너 언제까지 날 따라다닐 거야?」
「내가 널 왜 따라다녀? 늬가 우연처럼 내 앞에 나타난 거 아니야! 어? 또!」
「너 여자친구 없지? 없어 보이네. 왠지 그럴 거 같더라고.」
「그러는 넌 있냐? 너랑 나랑 같냐? 난 널린 게 여자고, 넌 그냥 애만 타는 거고. 난 말이야, 어? 내 발에 채이는 게 여자야. 내가 손만 까딱 하면 여자들이 제발 한번만 만나달라고 난리라니까. 어? 허허. 아주 그냥 지겹다 지겨워. 여자라면 말도 말어라. (절레절레)」
「늬가 볼 게 뭐 있다고.」
「내가 볼 게 왜 없어?! 보여줘? 정말? 원해? 진짜? 보면, 아주, 끝나. 어? 끝장! 말도 말라니까 그러네.」
「그럼 뭘 해. 여자가 없는데.」
「이 자식이 아까부터 자꾸...! (저 앞에 보이는 릴리를 보면서) 내가 쟤 꼬셔줄까? 오 머릿결 봐 봐. 의상, 나쁘지 않아.」
나는 줄을 짜고 묶고 엮은 다음 휭휭 돌려서 던졌다. 판토마임! 딱 걸렸네? 당겨. 힘차게 당겨. 막 당겨. 딱 당겨. 영차영차. 열심히 당겨. 계속 당겨. 당기기만 하면 돼. 그래서, 오네? 정말 와. 저요? 저요? 막 그 말은 하지 않고. 그냥 자연스럽게. 왜냐, 릴리는 내 고급스러운 익살에 익숙하니까. 왜냐하면 릴리와 난 이미 아는 사이니까. 그녀는 그렇게 나와 제라드 옆에 도착했다.
「제라드. 내가 이 숙녀 이미 꼬셨어. 나 여자 잘 꼬시지? 자, 찍어. 골라. 아무나. 어? 찍으라고. 누구든 괜찮으니까. 아무나 선택해. 그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딱 찍어. 이 형이 다 꼬셔줄께. 알았어? 귀여운 자식.」
릴리가 보다 보다 영 아니다 싶었는지, 듣다 듣다 더 못 들어주겠는지 모르겠는데. 어쨌든 이렇게 말했다.
「오빠들... 두분이서... 친해?」
「내가?」
「으이...」
「아흐...」
나는 말했다.
「너 가서 사진이나 찍어. 저기 가가멜 있네. 어서 가.」
그렇게 나는 릴리를 잽싸게 보내버렸다.
「친구. 왜 말이 없어? 늬가 원래 그렇게 조용했냐?」
「나 원래 내성적이야.」
「늬가? 풋.」
「그러지 말고 우리한테 와.」
「」
「왜 반응이 없어?」
「딴생각하느라 못 들었어. 뭐랬니?」
「사람 입 아프게 했던 말 또 하게 만드냐? 너 나 지금 놀리냐? 어? 권위자 옆에 둔 채 그게 뭐하는 짓이야? 어? 사람 무안하게 말이야. 너 인생에 관심 없냐? 어? 그래? 세상에 뭐 바라는 거 없어?」
물병을 건네며 나는 이렇게 말했다.
「이거나 마셔. 그리고 있잖아. 우리 자주 만나는 거 좀 아닌 거 같다.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그런 걸로. 아무튼. 너 나 따라다니지 마라. 그거 다 시간낭비니까. 피차 바쁜 사람들끼리, 우리가 무슨 아마추어도 아니고 말이지. 허허. 나 간다. 잘가 친구. 다음에 기회 되면 또 보지 뭐. 안녕.」
「야. 그냥 가면 어떡해? 어? 아까 걔... 좀 전에... 그 숙녀... 남자가 그게 뭐냐? 어? 소개해주던가 아님 보이지를 말던가. 어? 늬가 그러니까 안되는 거야. 늬가 그러고도 남자냐, 어? 야, 가냐? 진짜 가?」
13
나는 릴리와 함께 스머프 축제장을 먼저 빠져나왔다.
릴리는 지 자동차를 몰고서 먼저 떠났다. 매정한 년.
나도 미련없이 집으로 출발했다. 그렇게 차에서 별 생각없이 음악을 들으며 집으로 갔다.
Luigi Arditi / 입맞춤(Il Bacio)
최신 유행가 괜찮네.
어느새 시간이 지나 집 앞에 도착했다. 그래서 차에서 딱 내렸다. 그런데!
어머나? 여기는 내 집 앞이 아니라 제라드 집 앞이네? 어떻게 이런 일이...! 맙소사, 세상에나.
바로 때 맞춰 제라드도 도착했다. 녀석이 차에서 내리더니 날 보며 이럴 줄 알았다는 듯이,
「먼저 와 있었군.」
「너 너한테 최면 걸었냐?」
「잘 걸리던데! 그냥 한번 효과음 던져봤는데 너도 너지 말이야, 어? 그걸 그냥 덥썩 물면 어떡하냐. 응? 딱하긴.」
「장난치지마. 뻥이지?」
「나야. 나라고. 응? 몇 번을 말해! 모스맨 전문가 제라드. 어? 넌 말이야 지금 보니 뭐가 문제인 줄 아니? 내가 가르쳐 줄께. 기슭에서는 개가 악어를 끌어당기고 늪에서는 악어가 개를 끌어당긴다. 그런 말 들어봤지? 그 흔한 개밥그릇. 평범한 망설임. 일상적인 다툼. 보편적인 자리 싸움.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고. 어? 제1의 욕망. 제2의 탐욕. 제3의 관측. 4번 타자는 어김없이 대망. 5번? 물욕. 6번은 성욕이요 7번은 뭘까? 뭐겠나 식욕. 8번은 곧 희망. 9번은 억세게 좋은 재물복과 겁나게 더 좋은 여복이 접전을 벌이는 식이지. 허허허허허. 금으로 만든 열쇠가 쇠로 만든 대문을 연다고, 어? 금테 두른 거도 아니고 벗겨지는 도금도 아니라 순정 금에다 대리석 조각상? 사랑의 다이아몬드 주문을. 그런데 내가 뭔 말을 하려다 또 이처럼 말이 길어졌지? 그걸 내가 아나 늬가 아나. 자, 그러지 말고 들어가세나. 뭐 해, 얼빠진 사람처럼. 자, 들어와. 어? 어서. 내가 재미난 걸 보여줄 테니까. 캬, 보고 놀라지나 말어. 응? 기가 막히거든. 대단해. 깜짝 놀랄 거야. 내가 봐도 너무 신기하다니까. 안 그럴 수가 있나. 허허허.」
그렇게 우리는 제라드 집 거실로 이동했다.
「넌 마법사냐?」
「나? 그러는 넌 마법사 조수냐? 난 남자 조수 뽑을 생각 없다.」
「나도 너 같은 마법사 보필할 마음 없어. 꼴에 또 어디서 본 건 있어가지고 말이야. 너도 번호표 뽑는 기계 샀냐? 하여간에 남자들이란. 늬가 그러니까 여자가 없는 거야. 어? 늬가 그래서 안되는 거라고.」
「안되긴 뭐가 안된다는 거야? 당장 내일이 마법사 조수 면접일이란 거 너 몰랐지? 허허. 뭐 그러니까 여자가 없는 거라고? 그런 말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니? 그러지 말고 이참에 말이야, 어? 그 식상한 말습관 안 고칠 거면. 그러면 이참에 차라리 여자가 되라. 그럼 되잖니. 응? 그냥 늬가 여자가 되라. 어? 그게 좋겠다.」
「안돼.」
「왜 안돼?」
「그럼 또 결국 그럴 게 뻔하거든. 늬가 그러니까 남자가 없는 거야, 어? 뭔 말인 줄 알지!?」
「하여튼 못 말려. 아니다. 저기 보이지? 저번에 봤잖아. 새삼스럽게 이러기야? 뭐 해, 들어가지 않고!」
그래서 나는 나도 모르게 자동적으로 변신기계로 보이는 드레스룸에 들어갔다.
너 저거 아직 처분 안 했냐? ~라고 물어보려고 했는데 어쩌다 말려버린 거다.
Mozart / 오페라 <극장 지배인> KV. 486 - “친애하는 젊은이여"
그렇게 변신기계 7대 요소가 작동했는데,
잠시 후.
제라드가 문을 열어줘서 나는 드레스룸에서 나왔다.
곧바로 제라드는 반대쪽 드레스룸을 열었다.
그런데 거기서 무언가가 나왔다. 그건 뭘까?
개. 고양이. 앵무새. 토끼. 뭐?
「낯설다 너.」
「겨우 할 말이 그거 뿐이냐?」
「할 말이 없는데 나보고 어쩌라는 거니.」
「왜, 실망했니?」
「기대도 안했어.」
「이 자식이... 얜 정말 사람 힘빠지게 하는 데 뭐 있다니까.」
「그러니까 사람 기 받게 만들어야지 너가. 어? 그래서 늬가 쓸쓸히 집에서 혼자 소파에 자빠져 TV만 보면 기가 빨리는 거야. 알아?」
「알긴 뭘 알어!」
「에잇 재미없다.」
「난 더 재미없어.」
그렇게 할 말이 떨어지자 나는 자연스럽게 녀석한테 잘 있으라며 거기서 나왔다.
제라드도 날 잡지 않았다. 누가 오기로 했나? 설마, 여자? 그러든가 말든가.
14
그렇게 대충 30분 정도 지나 나는 내 사무실 앞에 도착했다.
건물에 들어서서 두벅두벅 두리번두리번 힘 없게 걸었다.
모퉁이를 돌아서 딱 내 사무실 앞에 도착했는데.
뭐야 이거, 제라드가 날 기다리고 있네?
「늬가 여기 왜 있어?」
「너 핸드폰 놓고 갔길래. 자, 여기 있어. 나 갈께. 잡지는 마. 잡히기 싫으니까. 간다.」
「야! 진짜 가?」
「그럼 가짜로 가냐?」
녀석은 갔다. 그래서 나는 녀석의 멀어지는 뒤통수에 대고 이렇게 말했다.
「너 그거 알아? 넌 나보다 더 허당이야.」
뭐라고?
아무튼 그렇게 사무실 문을 딱 열었는데.
또 소파에 마라와 사라가 둘이서 다정하게 앉아 날 쳐다보네?! 대체 어떻게 들어왔어?
어쭈 이것 봐라~!
탁자 위에는 그녀들이 가져온 것으로 보이는 책 몇 권이 두둑이 쌓여있었다.
「오빠. 알지?」
「알아?」
「알잖아.」
「그래. 늬가 모를 리가. 입 아프게 실랑이 하지 말자.」
「그래 오빠. 우리 갈께.」
「먼저 간다. 잘 있어.」
「야. 진짜 가게?」
「우리는 너처럼 말이지, 어? 자긴 빈말에 속으면서 남한테는 가식적인 립서비스 풀고. 그러는 거 이제 재미없어. 시트콤 유행 지나도 한참 지났단 말이야. 이제 좀 현실을 살아라 오빠. 응? 그럼 안되겠니?」
「그래 오빠. 우리 지금 멋진 남자들 만나러 가. 2 대 2 소개팅 하는 날이거든. 갈께.」
저년들이...!
「아, 오빠. 책상 위 좀 치우시지 그래. 그리고. 화장지 너무 많이 쓰지 마. 그런데 웬 화장지? 그러니까! 칫. 오빠. 코푼 소리 우리 사무실까지 들린단 말이야. 내 말 듣는 걸로 알게. 안녕.」
늙은 여우 덫을 피한다. 허나 난 피하지 못했다. 따라서 난 늙지 않았다.
늙은 개가 아프게 문다. 난 물렸다. 그렇지만 아프지 않았다. 그러므로 쟤넨 젊다, 나도?
이런 젠장! 더럽게 재미없네. 하다 하다, 에잇.
15
뜻밖의 행운. 기대하지 않았던 그림의 떡. 추산한 예감에 비해 월등한 쾌감. 달콤한 행복감을 대만족시켜주는 쾌락마는 기본. 복숭아를 사랑해달라 팬지를 탐닉해달라는 러브콜 폭주. 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이상과 짜릿한 기분까지 흡족히. 그런 일 어디 없을까? 없다. 있을 턱이 없다니까 글쎄. 미지의 환희는 다 뻥. 웬만하면 뻥. 지금 점잔 빼고 자시고 할 새콤달콤 호시절이 아님. 내숭은 뭔 내숭. 빈정이고 나발이고 슬럼프는 3보 4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 하필 발동이 걸리는 피동격이 중요해버린 인생. 하긴 오라는 데 없는데 얼굴 두껍게 아무 데나 얼굴 들이밀기도 그렇고. 뺀질뺀질 더 뻔뻔해져도 된다 넉살 늘 때도 되지 않았냐, 라는 환청이 들기기는 하나. 이상한 게 맷집만 키워지는 듯한데 장난 아닌 거지. 그러니까 수줍은 숙녀의 홍조가 웬말이냐고. 말에 타지 않으면 말에서 떨어지지도 않는다며 무한 긍정으로 일관할 수도 없고. 진퇴양난! 바늘 방석.
따라서 나는 몽땅 처분한 변신기계를 다시 들일까 생각중이다. 그럴지 않을 수 없었다. 그와 더불어 미완성 환상머신 연구에도 박차를 가하기로 한 것이다.
1
(때에 따라) 덤비면 덤빌수록 늦어진다. 즉 진공청소기로 빨아야 하냐, 아니면 공기압축 분사기로 뿜어야 하냐. 반대로 하면? 너 때문에 되는 게 하나도 없어! 농담이고. 어른들이 상황 판단을 어찌 못하겠나. 다만 NB는 지가 지른 게 있어 매일 곤혹스런 커피 사기에 애가 탈뿐. 결국 오늘은 크리스탈 차례였다.
NB의 사무실 앞 카페.
「크리스탈. 어때 여기 커피? 맛 괜찮지 않니? 나 살면서 이렇게 향긋한 커피는 처음 마셔봐. 캬~ 어? 이건 거의 너의 곡선미처럼 그냥 예술이지. 응?」
「글쎄. 그다지 나쁘진 않은데.」
「그런데?」
「좀 더 마셔봐야 할 거 같은데. 오빠. 그러지 말고 나 요 근처로 이사올까?」
「얘가 얘가 큰일날 소리 하네. 사람들이 날 어떻게 보겠니? 넌 내 생각은 안 해? 나 도둑놈이라고 손가락질 받기 싫어. 어?」
「」
「뭐 해? 커피 다 마셨으면 가지 않고.」
「어머. 어떻게 알았어? 이젠 내가 속으로 뭔 생각하는지 다 보여? 마음도 읽어? 이 오빠가 그러니 여자 마음을 쥐락펴락하지 않을 수 있나. 어쨌든 오늘 커피 맛은 왠지 뜨뜻미지근했으니. 고로 내일 커피맛을 기대하는 걸로. 오빠. 나 갈게. 내일 봐.」
저년이...!
그렇게 NB는 되는 일 하나 없이 시간만 보내다 행복도가 급격히 상승한다는 오후 4시가 되었다.
급격히? 그거 대체 누가 조사한 거야.
오후는 샬럿이다.
저번에 대차게 큰소리쳤던 일. 그는 후회막급이었기 때문에 다음과 같은 과정을 다 거쳐서 지금에 이르렀던 것이다.
첫째, 전화 피하는 단계도 다 지나갔고.
둘째, 어디로 피신해서 여행갔다 오는 거도 피곤하고. 가봤는데 그 역시나 다 해봤음.
셋째, 여동생들이 불러서 만날 때 매번 남자를 1명씩 대동해서 걔보고 커피값 내라고 퉁침. 그러다 그 인맥도 바닥남. 남자들조차 NB를 슬슬 피하게 됨.
넷째, 마침내 NB는 여동생들에게 통사정. 내가 잘못했다. 오빠가 미안하다. 오빠 실은 속좁은 남자라는 둥 뭐라는 둥. 커피가 아니라 남자는 어떠니? 떠봐서 시원찮고. 정말 남자보다 커피가 좋니? 달래도 소용없고. 사랑? 필요없다 그거지.
「오빠. 우리들 커피 사주느라 고생이 많아. 허허. 우리가 그거 왜 몰라? 혹시 알아? 우리가 나중 적립금 모아서 일시불로 오빠한테 줄지 말이야. 브랜드니 기업이니 그 흔하디흔한 마일리지야 개미 눈꼽만큼이고. 우린 다르지 않을까?」
「다르긴 뭐가 달라. 어? 나 실은 커피 별로 안 좋아해. 그래. 나 늙었어. 아마 그 때문인 거 같아. 예전에 곧잘 마셨거든 커피를.」
「뭐? 누가 오빠 보고 늙었데? 누구야? 내 그 인간을 당장 다리몽댕이를... 누구야. 어? 오빠는 영보이야. 알아?」
「그건 임자가 나 기분 좋으라고 하는 소리고. 그 말 들으니까 비슷한 말이 떠오른다. 그건 무엇일까? 바로, 넌 나의 제일 소중한 친구야. 제일 친한 친구? 진짜면 그렇게 말해서 부담주지 않는 게 나을 테고. 진짜가 아니면 사람 간보는 거도 아니고 말이야. 어? 그 얘기 듣는 거 자체가 빈정상하는 일이지. 영원한 게 어딨니? 안 그래? 넌 나의 제일 친한 친구야? 내가 그 얘기라면 그거 들어보기로 적어도 상중하에서 상이라고 자부가 아니라, 자타공인인데 말이야. 그거 웬만하면 뻥이야. 왜? 일종의 인사말과 같은 거거든. 그 제일 친한 친구, 일명 단짝. 그 사이에 끼어서 친구 뺐기. 등번호 1번 뺐기. 어디 임자 있는 남자 여자만 뺐으란 법은 없거든. 허허허.」
「오빠 이제 커피만 마셔도 말이 술술~ 나오는 구나?」
「뭐 내가?」
「그럼 여기 오빠랑 나 말고 또 누가 있는데?」
「있지 왜 없어. 네 등에 엎혀 있는 유령이 보여. 내가 지금 걔랑 얘기하고 있는 걸까?」
「닥쳐. 오히려 그 반대야. 내가 오빠 등 뒤에 딱 붙은 오빠 분신과 얘기하는 게 어쩌면 맞긴 맞겠지?」
「모르겠고. 시끄럽고. 난 올드보이야.」
「누가 오빠 보고 올드보이래? 오빤 영보이야. 어? 그 인간 누구야, 오빠 보고 올드보이라고 한 양반. 그러니까 여자가 없는 거지. 어? 그러니까 뭘 해도 안 되는 거라고.」
「또 그 얘기! 그냥 잡것으로 하자. 아님 물건? (절레절레)」
「오빠 있잖아 응? 오빠. 오빠 그게 말이야, 어? 내가 관상을 좀 볼줄 아는데, 오빠는 딱 커피 체질이야. 알아?」
「나 좀 살려주면 안되겠니? 사정상 이사도 못 가. 카푸치노? 마실 당시야 좋지. 나중 슬슬 배아퍼. 에스프레소? 쓰디써. 이 커피 저 커피 노래를 불렀던 일? 다 뻥이야. 뻥. 몽땅 뻥. 어? 개 뻥.」
「왜 그래 오빠? 이제 겨우 몸 풀고 있는데. 응? 이럼 섭하지! 안 그래?」
「너, 무섭게 왜 그래? 너 원래 그런 애였어? 네 남자친구한테 다 고자질할 거야.」
「나 남자친구 없어.」
「나중 생길 거 아니야.」
「그러겠지. 그래도 오빠 뻥 넙죽넙죽 다 받아넘길 능청꾸러기라면 또 모를까. 내가 아무나 사귈까? 에이~ 알면서!」
「그래. 기왕 이렇게 된 거. 가자. 가. 어? 나 하나 고백할 게 있어. 어? 나 실은, 어? 내가~ 어? 내가~ 내가 말이야 있잖니. 실은 커피 못 먹어 죽은 귀신, 커피 못 마셔 한 맺힌 귀신이 나한테 씌었어. 됐니?」
「되긴 뭐가 돼? 어림없어. 이미... 더 이상은 말할 수 없어. 왜냐고? 알려줄 수 없지. 허허.」
「내가 너네들 때문에 재산 거덜나게 생겼다. 어? 뭐 딱히 재산이랄 거도 없지만서두. 아 진짜 미치고 환장하겠다고. 어? 나 너네들 반갑지 않아. 알어?」
2
그렇게 지낸지 일주일 경과.
오늘 NB는 세바스찬을 만났다.
오랫만에 녀석이 전화해서 만나자고 했고 그렇게 만났다.
마침 너네 사무실 근처니까 나와라, 알았다, 하여 세바스찬의 차를 타고서 가볍게 드라이브나 하는 형세였는데.
기분 새롭고 경치 괜찮고 분위기 전환되고.
그런데 중간에 어딘가에 멈춰서 세바스찬이 어떤 숙녀를 태우네? 물론 중간에서 인사를 정식으로 시켜주질 않았다.
딱 보니 길게 만날 사이는 절대로 아닌 거네.
그런데 행선지에 도착했는데 거긴 놀이공원.
입장권을 구입해 함께 놀고 오자는 건데.
정식. 약식. 단기전. 장기전. 오다가다 뻔트. 몰래? 남부럽지 않다는 듯이. 자랑스럽다는 것처럼. 남 몰래인 줄 알고 봤더나 나만 빼고 모른 사람이 없더라는 연애도 있고. 비위고 나발이고 007 작전 저리 가라는 만남이면 그나마 다행인데, 누가 보든 말든 교미? 떳떳한 사랑. 부끄럽지 않은 연애사. 0이 1개 붙는 전적. 0을 2개 붙이는 영웅담. 0이 3개 붙는 허풍? 0을 1개 빼는 허영심. 부드러움과 섬세함과 낭만감. 왜 하필 빼도 0을 빼지? 우리가 그걸 어떻게 아나. 단지 신비할 뿐.
그처럼 제일 나중에 알게 되는 사람이 왜 하필 남편, 라는 사랑도 없지 않듯.
낭만적인 연애가 아니라 그게 뭔가 꿍꿍이가 그랬단 말이지.
사진 찍어달란 역할도 아니고. 그럼 왜 불렀을까! 왜?
그래서 NB는 세바스찬한테 이렇게 말했다.
「난 그냥 먼저 갈게.」
「그럴래?」
뭐, 그럴래? 그럼 뭐하러 만나자고 했지?
만나서 뭐할까, 뭐하자, 재미없다 뭘 해도 재미없다도 아니고.
뭐, 그럴래? 이런 젠장!
결국 알고 봤더니 NB에게 제7의 전성기가 다시 되돌아온 모습.
그런데 그 기막힌 컨셉은 뭐다? 그렇지~ (딱) 호구. 뭣이? 뭐가 어쩌고 저째?
3
젊음에 대한 열망과 아름다움을 향한 희망, 그 외에 무엇을 간직한 심상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신비주의 피후견인이란 거야 뭐야. 도대체 커피가 뭐길래. 그럼 정말 미완성 환상머신의 원귀가 NB에게 씌어버린 것일까? 알 게 뭐야. 알 게 뭐냐고. 그렇다고 역으로 그가 여동생들한테 커피를 사달라고 하긴 해봤는데. 별로 반응은 재미없었다. 그럼 진짜 재밌는 일은 더 이상 없단 말인가. 뭐 있을 수도 있고. 일단 아직은 없고. 통상 삶의 규칙이란 그거다. 적게 걸고 적게 먹기, 고위험 고수익. 그게 아니라, 적게 걸고 왕창 따는 거 어디 없을까? 있다. 바로, 사랑! 뭐 사랑? 또? 사랑이라면 아주 그냥 신물이 난다. 우리는 여자 보기를 돌맹이 보듯 하거든. 그야 어쩌든. 꿩 잡는 게 매인데. 육식조 매에게 초식조 꿩은 여자의 마음? 더티러브가 무엇인지 다 까먹은 마당에 그런 게 뭐가 중요하나.
그래서 NB는 떠났다. 핸드폰 끄고. 소셜 네트워크에 잠시 여행지에서 쉬고 온다고 딱 써놓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그렇게 한적한 해변 어느 멋진 호텔에서 쉬고 있는데.
NB는 아는 동생들 커피사주다 쫄딱 망할 것만 같아서 휴양지로 피신왔는데. 그런데 거기서마저 아는 동생들과 만나 커피 마시는 꿈을 꾸었다.
꿈에서,
「오빠. 오빠 칼럼에는 왜 그렇게 천동설이라는 말이 많이 나와?」
「왜냐고? 왜긴 왜겠니. 왜긴 누가 왜야. 어? 뭐가 왜냐고. 뻔하지. 뻔해. 응? 안 그럴 수가 없거든. 자, 보자. 응? 봐 봐. 잘 들어 봐. 얘. 너 자꾸 엄마 잔소리 듣는 것처럼 집중 못하면 사랑도 흐지부지할 공산이 커. 그러니까 저런 거 보면 멍청해진다는 말 듣고 보니 정말 멍청해졌다더라 뭐 그런 생각하지 말고. 들을 땐 듣고, 말할 땐 말하고. 어? 왜 그걸 못해. 어? 자, 보자고.
인생? 변수가 많아. 난 뭐 너한테 이처럼 허접한 다변가 취급받을 줄 예전에 미처 상상이나 했겠니? 인생 몰라. 응?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 그거 다 있어 보이는 말일 뿐이야. 웬만한 예술은 다 짧아. 왜 인기를 거품이라고 하겠니. 대표적으로 고전음악만 영원하고 나머지 음악? 잠깐 반짝일 뿐. 부와 이름값은 가져다 주겠으나 거기서 끝. 응? 고로 인생은 길고 예술은 짧다, 라고 허당이 말씀하시지. 농담이고. 누군 뭐 주례사 일부러 길게 뽑고 싶어서 그렇겠니, 다 곡이 안 써지고 영감이 안 떠오르니까 그렇겠지. 좌우지간 어디 가서 이런 얘기 듣는 게 쉽니? 너도 잘 알잖아. 네가 지금 웃는 이유. 응? 나라고 뭐 생색 내고 싶어서 내는 줄 아니? 여자 세계 불문율 누군 몰라? 여자들 생색내는 거 좋아하지 않는 점 뻔히 아는데. 내가 뭐 바보도 아니고 뭐한다고 돈 쓰고 시간 쓰고 정력 쓰고, 아무튼 거기다 생색내서 베푼 거 몽땅 깎아먹겠니. 다 생각이 있어서 그러는 거야 생각이. 왜? 챔피언이라는 게 외로운 법이니까. 챔피언 되면 피곤해 얘. 의무방어전 상대는 막강하고. 자유롭진 않고. 올라갈 덴 없고. 잘해야 내려가지 않을 뿐 아니니. 가고 싶은데 맘대로 가지도 못해, 먹고 싶은 건 뭐 맘대로 먹니? 그래서 내가 너한테 이처럼 생색 중의 (개)생색으르 내는 거야. 응? 가늘고 길게 가야 하거든.
만약 정말 은근히 간접으로 딱 너네들 비위만 제대로 맞춰 봐. 도저히 싫어할래야 싫어할 수 없을 만큼. 1주일 뒤에 아아 그 오빠의 농담이 터진다? 오오 2주일 뒤에서야 진정 그 오빠의 진심이 느껴진다? 어머 어머 딱 뒤늦게 4주 채워서 그 오빠한테 마음을 빼앗겨버렸다? 초반에 홀딱 반하는 거 우리는 지겹거든. 어? 그래서 그녀 마음 뺐으면 그 다음에는? 그녀의 인생을 우리가 책임져야 하는데 챔피언 벨트 딸랑 1개에 만족하라고? 따라서 내가 이처럼 나도 힘 빠지고 듣는 너도 살짝 기쁘다가 조금 짜증나도록 다 생색을 내는 거야. 알겠니? 밀었으면 당겨야하니까. 들었으면 놓지 않을 수 없으니까. 다 순위권 쟁탈전 그 치열한 묘미란 게 있으니까. 허허허. 그런데 내가 뭔 얘기를 하다 이 얘기가 나왔지? 그야 모르겠고. 너도 알겠지만 너네들 마음마따나 난 그냥 아는 오빠 그 사랑의 순위에서 난 겨우 10위권에 턱걸이 정도 하는 걸로 만족하겠다 그 말이란 말이야. 응? 아 생각났다. 천동설? 나는 영원히 네 편이야. 아니? 다만 내가 다 너네 생각해서 하는 말 아니겠니. 정작 절실할 때 천동설식으로 생각해야 하는데, 너넨 정반대로 하니까 오빠 입 터느라 바쁜 거지. 왜 안 그렇겠니. 허허. 거 참 나 1절 더럽게 길다. 각설하고 다음으로 2절. 본론 꺼네는 게 뭐 이렇게 어려워서야 (절레절레)」
긴대사 읽기 듣기 알기 피곤하니까 문단 떼서 가자. 그게 좋겠다.
4
「너도 알다시피 생애사 전략이 느리든 빠르든 인생 포지셔닝은 기본적으로 뭐다? 한 마리 토끼 쫓기! 두 마리 토끼 쫓다가 둘 다 놓치기 마련.
그렇게 하다 하다 안될 수도 있고, 포기할지도 모른다만. 표범 사자 치타 퓨마처럼 물었으면 놓치지 말아야지. 그렇게 끈질기다가 정 아니다 싶으면 방법 많잖아. 전업. 이직. 이사. 이별? 머머접습니다 장비 몽땅 내다 팝니다. 뻔트. 기타 등등. 어쨌든 맹수가 물소를 물었어. 딱 물었어. 그런데 그렇게 초식동물을 물고 놓아주지 않는 동안, 하이에나가 스리슬쩍 다가와서 맷돼지 꼬리부터 내장까지 다 뜯어먹더라? 그러게 '못 먹어도 고' 하더라도 다 걸지 말고 판돈 절반반 걸어야지. 응? 농담이고. 자, 다음으로.
일단 관심사는 떡밥 뿌리기. 그러다 색다른 취미 얻어걸리는 식이지. 소 뒷걸음질 치다다 쥐 잡는 일. 코끼리 뒷걸음질 치다가 악어 밟는 일. 응? 또는 유행가 한 3번 들으면 질리든가, 아는 오빠들 죄다 식상해지는 거고. 꼴랑 커피 몇 잔 사주고서 생색이란 생색은, 진짜 농담! 그처럼 어쩌다 하나 얻어걸릴 수도 있고. 그런데 정작 문제는 저 놈이 대어인지 잔챙이인지 구분이 잘 안된다는 점. 남잔 사냥감이라는 대상과 목적을 정하고 들어가는 반면, 사랑에서 여자는 약자일 수밖에. 안 그러니? 예를 들면 밖에서 신나게 꽃사슴을 쫓아다녔는데 집에 있던 토끼가 도망갔다더라. 앵무새 멋져보이고 향긋한 사과가 탐스럽길래 손을 뻗쳤는데, 손에 쥐고 있던 참새 뱁새 벌새 촉새 딱따구리는 자유롭게 날아갔다더라. 경우의 수가 좀 많니. 응? 그래서 다정한 숙녀 순진하게 한 마리 토끼만 또 쫓았더니만, 불여우들이 다 중간에 채가. 어? 그렇지? 그래서 아리따운 아가씨는 또 전략을 바꿀 수밖에. 어떻게? 속된 말로 한놈만 죽인다, 가 아니라. 한 우물만 팠더니 이 모냥 이 뭐 그랬다라, 그래서 나무 100그루에 공평하게 1번씩 도끼질. 어머머머머머! 평등하고 어쩜 이게 진짜인 것만 같네? 그럼 뭘 해. 그럼 뭘하냐고. 어? 모든 나무에 한번씩 도끼질을 해도 한그루의 나무도 넘어뜨리지 못하는데. 안 그래? 하다 하다 이젠 정말 최고의 먹잇감을 찾았다 고로 물기 위해 막말로 몰빵, 즉 올인하고 싶은데. 그래 봤자, 어? 개 두마리 개뼉따귀 놓고 싸울 때 세 번째 놈이 물고 내빼는데. 계란을 한 바구니에 모두 담지 말라고, 해결사 풍운아 노름꾼 도박사 허당 기타 등등. 올인이 그렇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야. 응? 그렇듯 7부 리그의 빽넘버 3번 개새끼가 뜬금없이 놈의 개뼉따귀 물고 튀면 뭐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지. 안 그럴 수가 있나. 안 그래도 늑대는 못 먹는 감 찔러나 보고. 촌닭은 날이면 날마다 어떻게 좀 한 번 자빠트릴 궁리만 하고. 어? 플라토닉은 대체 어디 가야 만날 수 있는 걸까?
따라서 오빠 말은 전략이라는 망치와 전술이라는 못, 그 둘끼리 신기하도록 궁짝을 맞추라는 거야. 응? 이 남자도 좋고 저 남자도 사랑스럽다, 때문에 나도 모르게 심신분리. 그러라는 말이 아니라. 심신분리도 정작 필요할 때가 있는데, 꺼벙하게 남한테 나중 손가락질 받을 일 있니? 개 없이 사냥 떠난 자 토끼없이 돌아오는 법. 정작 심신분리 그건 안정권에 들었을 때나 하는 거고. 응? 그러니까 나 좋을 때 들뜬다 설렌다 끌린다 막 그러면서 피동적으로 막 생각이 든다 싶을 때 딱 조심하라고. 미리미리 주의. 왜 밀림에서 사자가 평소에 느그적느그적 게으르겠니. 왜 걔네들이 평소에 그처럼 드럽게 게으르겠냐고. 걔네들이 잡은 물고기한테 밥을 주지 않는 이유가 그거거든, 사냥감이 딱 포착됐을 때 혼신의 힘을 기울인다는 점. 사자는 모기로부터도 자기 몸을 보호할 줄 알아야 하는 법. 너넨 그거 통상 반대로 하잖아. 안 그래? 그러니까 우리한테 안되지. 허허. 어떤 숙녀든 오빠한테 넘어올 수 밖에 없어. 응? 우리는 어떤 여자라도 만나서 단 10분이면 다 꼬셔. 어? 누구든. 어디서든. 실제 그랬어. 늘 그랬다고. 만난지 3일 만에 신혼여행 떠난다니까. 정말이야. 나는 살면서 거짓말을 해본 적이 단 1번도 없다고요. 그래서 오빠가 전수해준 전법이 뭐다? 그렇지~ (딱) 진공청소기! (몸짓). 눈에서 레이저 쏘고 입에서 화염방사기 잔소리 끊이질 않아 봐. 남자 도망가기 딱 좋다니까 그러시네. 응? 안 그래?
이게 다 오빠나 되니까 너한테, 아까 말했지? 오빠가 싫어도 생색을 내는 이유. 남자 세계라도 여자랑 썩 다르진 않아. 남잔 뭐 처음부터 끝까지 생색내는 사람 얼마나 좋아하는지 아니? 슬슬 피해. 어? 다 나나 되니까, 쉿. 결혼한 다음 정으로 살고 의리 있고 애까지 있는 장르다면야, 당사자들끼리 다 잘 알아서 하겠으나. 결혼 전이라면야 새로운 건 다 아름다워 보이는 법. 헌 여자는 새 여자한테 안돼~! 어? 깨진 유리는 붙이지 못한다고. 어? 사랑은 없어~! 아니. 그게 아니라. 돈이 없지. 허허. 넘어가고. 아무튼 100마리 개들이 쫓고 있는 늑대는 이미 늑대가 아니라네. 이 친구야. 오빠 늑대 아니야. 착각하지 마 이 양반야. 내가 왜 촌닭이야. 어? 누군 뭐 커피 사주고 선물하고 연애할 줄 몰라서...」
그러다 그는 꿈에서 깼다. 별 참 나 별의별 거지 같은 개꿈도 다 있지. 해도 해도...!
진짜 가지 가지 한다. 증말 거 나 참 하다 하다 꿈에서... (절레절레).
낮에는 귀 간지럽고 꿈에서는 입 아프고. 뭐야 그게.
5
휴양지에서 2일째.
친구 알프레드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녀석은 좋은 녀석이다. 흠 잡기로 마음 먹으면 NB는 그 인간 흉보기로 한 3박 4일은 식은죽먹기로, 농담이고. 걘 잘 웃고 말도 잘하고 성격 모나지 않고 다 좋다. 다 좋아. 그런데 뭐랄까 알프레드는 여자를 잘 꼬실 수는 있는데, 보편적인 여심들이 녀석에게로 향하는 부류는 절대 아니다. (우리가 최고로 좋아하는 여성은 선녀와 뚱녀이다만, 선녀와 뚱녀들 기분 나쁘라는 뜻이 아니라). 남자들끼리 하는 말로 음 말 한 걸로 치고. 사랑에 대해 알프레드와 딱히 연애론을 말할 수도 없고. 아는 동생들을 소개시켜 주기는 안되고. 그럼 우정은? 최근 부쩍 NB가 그와 친해지긴 했다만 더 친해지는 일. NB는 애써 자제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알프레드는 전형적인 '좌청룡 우백호'형 친교를 목적으로 NB와 친하고 싶어했기 때문. 남자들 우정이야 으쌰으쌰 늬가 잘났냐 내가 잘났냐가 기본이긴 하다만. NB로 말할 것 같으면 그가 누군가. 짧게 호구. 포장하면 뭘 좀 아는 남자. 그래서 알프레드 같은 촌닭 눈에 거슬리지 않기 딱 좋고. 내가 아는 여자, 눈독들임을 넘어서 뭔가 진행되었던 숙녀를 단지 선보여주기 편한 친구. 다른말로 승부욕. 그런 늑대와의 우정 한두 번이었어야 말이지. 그분들 레이더에 딱 걸리면 도저히 싫어할 수 없는 친구로 딱이거든. 그렇지만 이미 단짝은 있고. 따라서 1.5인자 2인자 우정. 하다 하다 보필 보좌 대변 백댄서 역할도 마다하지 않을 테고. 여자들 우정에서 말하기로 실제 제일 친한 친구이긴 해도, 사귀는 남자친구랄지 꼬리치는 그 오빠한테 이렇게 흉보는 친구와 비슷. 지 아쉬울 때만 연락하는 년이라고! 꼭 보면 단짝 있는 촌닭들이 NB에게 러브콜 겁나게 했다. 태도는? 너 내 2인자 해라! 좌청룡으로 붙어만 있어라 그거지. 도대체 왜? 왜기는 만만하니까. 그 때문에 NB는 알프레드가 줄기차게 연락을 해오고, 틈틈히 빠짐없이 연락해도 적당히 거리를 두었던 것이다. 하긴 그런 부류가 남자들 얼만큼일까? 살다 보면 침체기랄지 단짝이 없는 기간이 있듯. 다가가면 멀어지고 먼저 다가와주지는 않고, 그래서 단짝이 없는 남자가 말하기로. 친구들과 후배들한테, 나는 단짝 안 만들어 왜냐하면 어쩌고저쩌고. 다 뻥. 여자의 허영심도 허영심이지만 남자들 허세도 참 신기할 뿐. 대타 같은 남자 NB가 무슨 예비 타이어도 아니고 말이지.
그러고 보면 사랑과 우정은 거의 똑같다고 보면 되는 게 여자의 판타지로도 설명이 된다. 다른 말로 사랑의 차트! 사랑이든 우정이든 순위 빼면 거짓말. 물론 방황기와 야생마 호시절에 주로 그러다가 사랑은 각자 알아서 한다 치고. 우정은 순위에서 무순위로 변하는 사람도 있긴 있을 것이다.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곧 속는다는 말처럼. 야금야금 돈을 뜯기든 정력 뺏기든 시간 낭비하며 기빨리며 인생을 알게 될 테니 말이다. 사랑만 환상의 시소가 아니라 뭐든지 알고 보면 저울질이다. 내가 뭐뭐할 정도로 이 일이 좋은가, 내가 그 무언가를 감수해도 괜찮을 만큼 취미를 애호하는가. 인생사 세상사 이치는 비슷비슷. 곧 모닥불이 좋으면 연기를 참아야 한다. 그런데 포근한 곰돌이 같은 남자가 좋다는 숙녀가 자기 이상형을 만나긴 만났는데, 훗날 알고 봤더니 그녀는 이렇게 말하는 식이지.
「얘 남자는 있잖니 마른 장작이 잘 타는 법이야. 모르면 너 알아둬. 알아둬서 나쁠 건 없으니. 응? 그렇다고 실한 것처럼 보여서 멀쩡한 장작 골랐더니 왜 연기가 그렇게나 많이 나냐고? 썩은 장작이니까.」
우정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촌스러운 우정도 좋긴 하겠으나 장타자는 멀리 보는 법. <평생 단짝 1명 외에는 나머지>, 포커로 치면 올인. 멋져보이긴 하나 주식으로 봤을 때 전망 별로. 가족 장르까지도 함께 하는 1범주 두루두루 우정이라면 몰라도, 속된 말로 몰빵은 아마 여자들 관점에서 봤을 때 비추천일 것이다. 영화에서 보기로 신분을 평생 속여 살아야 하는 정보 요원, 가족끼리 친해져야만 하는 현장요원의 우정도 있고. 고아라는 출신을 중요시하는 특1급 요원의 우정도 있을 테고.
좌우지간 상남자들 우정에서 수평적인 우정 그거 쉽지 않다. 웬만한 마초의 친분? 내가 쟤보다 한수 위로 상정, 그런데 역으로 쟤도 그걸 반대로 생각함. 서로 내가 너보다 한 끗발 위다니! 단짝인 A와 B사이에서. 그거 믿고 있다가 단짝 A는 팬클럽부터 추종세력까지 승승장구하고, 단짝 B는 근근히 먹고만 살 정도로 재미없는 인생 버티고. 악담에 저주에 상욕까지 서슴없이 주고 받던 우정. 나중 현격한 차이 벌어졌을 때. 그게 늬한테 어울린다고 생각하냐 라고 했었는데 어울리든 안 어울리든 현실이 어떻게 바뀌면. 그래서 순위란 대체로 고정이 아니라는 점. 불변이란 드물다는 것. 똑같이 뻔트의 왕중왕이었는데, 나중 1명만 거포되고 1명은 이젠 뻔트조차 비리비리 아는 동생 다 떨어져나가면. 금간 자존심 뭘로 위로받나. 2번 만날 거 1번이라도 소식만 전해들으면 다행일 수도. 실리로만 보자면 하여 여자의 우정이 남자들보다 훨씬 실속있다. 아파트 평수 비슷한 지인과 친하거나. 모계쪽 친분과 잘 어울리거나. 엷고 얕고 넓게 친교의 더듬이를 펼치되 소수정예로. 아무튼 2일째도 별일 없었다.
6
휴양지에서 3일째.
꿇리지 않아 라는 상남자들 우정. 져주면 좋아하는 숙녀들 사랑. 피곤한 스타일들 비위 맞춰주고 주인공병들 옆에서 신부들러리로 립서비스 풀고. 막 그러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너무 편했다. 그렇지만 '질 수 없지'라는 으쌰으쌰가 없었기 때문일까? 텅빈 마음. 여행 떠나는 기분은 대만족이었는데. 그런데 점차 점차 반만족 불만족 폭망까지는 아니고. 또 다시 투덜 허탈 권태 재미없음 심심함. 늬 까짓 게 뭔데, 라는 대사를 가끔 들을 수 있는 시트콤이 왜 만들어지지 않을까? 하면 시청률 안 나오기 때문이라는데. 그야 그러든가 말든가. 그런데 왜? 내가 제일 잘나가 라면서 한껏 꾸민 멋쟁이들께 겉으로 딸랑딸랑, 속으로 너 잘났다. 그런 병풍 역할마저 배정받지 못하니까? 하긴 사람이 말이야 욕심이 있어야지. 대망이 너무 허황되도 문제지만. 얼굴 팔리기 싫어한다는 둥 허세로 포장하면서 욕망이 바닥나도 문제. 이래도 탈 저래도 탈. 귀찮게 할 사람이 없다는 거구만. 지는 비교 그 잔소리마저 귀여운 여편네가 없기 때문일까? 그는 마누라 바가지에 득도한 남편들 한숨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3일째도 그만저만 하다 지나갔다.
휴양지에서 4일째.
인생이 뭐 이래? 여행 재미 하나도 없구만. NB는 역시나 패배감이 찾아와서 안도했다. 패배주의의 화신이 안 그럴 수가 있나. 차라리 아는 동생들한테 커피 사주기로 골머리를 앓던 얼마 전이 벌서 그리워진 것일까? 닥쳐. 닥치고 놀자 라면서 여기까지 왔는데. 오긴 왔는데 잘못 온 건가 어쩐 건가. '야 꺼져' 라고 한마디 해도 막 겁나게 꼬리 흔들 강아지 한마리 근처에 얼씬도 않기 때문일까. 푸른 바다가 보이는 해변도 텅텅 비었다. 비키니가 어딨어. 뭐 낭만? 비켜. 2번 타자 쾌락, 나가. 이런 젠장! 어영부영 4일째도 마감.
휴양지에서 5일째.
야망 그런 거 모른 체 살아왔는데 뜬금없는 이 호사? 뭐라고나 할까 그래 여유. 쫓기지 않음. 바쁘지 않아. NB는 영보이라며 우길 필요가 없었다. 올드보이라며 누구한테 놀림받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왠지 모르는 이 허전함. 무엇 때문일까? 알 게 뭐야! 부족한 게 없거든. 아니 많나? 많다. 엄청 많다. 천지다. 그래도 그는 도시를 탈출해서 휴양지에서 고독을 즐겨서 너무 좋았다. 사랑스러운 연인들을 보며 부러워하지 않아도 되고. 어쨌든 그럭저럭 일하고 놀고 그렇게 휴양지 생활 5일째는 지나갔다.
휴양지에서 6일째.
지식 자원의 생산성 하락, 즉 자기 경영 악화. 다른 말로 놀기가 절실한 시점. 여기까지 와서 이게 뭐하는 짓인지 쯧쯧. 그러다 그는 생각했다. 예외 있긴 있었겠으나 거의. T자형 삼거리, 모양을 ㅗ로 보자면. 왼쪽은 남자들끼리 오른쪽은 여자가 끼었을 때. 왜 그런진 모르겠으나 일종의 징크스와는 격이 다른 통계. 그야 어떻든 이 근처는 대부분 길이 꼬불꼬불하고. 불경기인지 비수기인지 사람들은 보이지도 않고. 그래서 6일째도 저급한 표현으로 땡침.
휴양지에서 7일째.
그는 아마도 괜히 온 것만 같았고 생각했다. 어쩌면 벌써 돌아가고 싶었겠지. 못 떠나서 안달이었는데 이미 지겨워진 거라고. 왜 아니겠어. 그는 솔직히 자신이 부쩍 늙어버렸다고 느꼈다. 누가 인정하라면 인정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부인해서 뭐하겠나. 호캉스 호캉스 노래를 부르더니만 꼴 좋다. 누구 만날 사람도 없고, 그렇다고 모험이 있나. 방구석에서 꼼지락꼼지락. 가 봐야 근처 산책. 아니면 호텔 바. 바텐더 양반도 말수 없고. 근처에 나이트클럽이 있는데 장사가 안되서 문 닫은지 오래. 돈 아깝게 이게 뭐냐고. 철지난 잡지 마냥 몇 페이지 뚜적거리다 마는 것처럼. 뭘 해도 재미없어. 따라서, 다시, 돌아갈까? 라고도 생각해봤는데. 그는 그러면 왠지 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지만 져도 익숙한 내 사무실에서 지자. 라면서 그는 돌아갔다.
7
NB는 여행에서 돌아왔다. 그리고 온 김에 마음을 고쳐먹었다.
아는 동생들 커피 열심히 사주려면 돈을 열심히 벌어야겠다고.
그러다 어떻게 보면 칼럼 쓸 내용을 얻을 수도 있고, 이어서 환상문학잡지 미스테리아에 연재할 얘기도 생기고.
하는 데 까지 해보다 안 되면 애들한테 솔직히 오빠 돈 떨어졌다고 고백하면 되는 거고. 문제될 건 없었다.
그래서 그는 내놓았던 번호표 뽑는 기계를 다시 장식장 서랍에 넣었다. 왜냐 기다리기 말고 이번에는 선제적으로 불러내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그렇게 어느 찻집에서 크리스티와 향기로운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눴다.
「오빠. 이 음악은 혹시 모차르트의 콘서트 아리아? KV.418번 맞지?」
「그럼 넌 아는 척?」
「이 오빠가 날 잘 아네. 오빠 그거 알아? 오빠 요즘 우리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 최고라는 거.」
「커피 몇 번 산 거 가지고 무슨. 그리고. 우리 터놓고 말하자. 내가 그깟 커피 몇 잔 산 거 가지고 어디 생색낼 사람이니? 오빠 그런 남자 아니야. 어? 뿐만 아니라 저번 달 커피값만 2장 들었길래 생활비 갑자기 압박이 심해졌어. 그래서 한 1주일 묻어둔 금 캐러 갔다왔어. 호캉스라고 들어봤지? 작품 구상도 하고 바람도 쐬고. 겸사겸사.」
「호캉스? 아니 무슨 호캉스?」
「얘가 촌스럽게 왜 그래? 호캉스 몰라 호캉스? 어때, 오빠랑... 그게 아니라. 내 말은~」
「뭔 소리야 오빠? 1주일 내내 우리들 만났잖아. 오빠 여자들 기싸움 알지? 우리들끼리 내기했거든. 오빠가 언제 나가떨어지나 보자 라면서. 편이 딱 나뉘더라고. 내친김에 친구들 수소문해서 내놓으라 하는, 어? 어디서 썩 안 빠지는 싸움닭 기질 말괄량이들도 죄다 불러서 오빠한테 선보였잖아. 커피 사주기 운동 빌미로 말이야. 오빠 걔네들 이름 걔네들 얼굴 다 기억나지? 그런데 호캉스는 뭔 호캉스? 호캉스 같은 소리나 하고 있네.」
「이해해. 그럴 수 있어. 너가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봐서 화면에 나오는 조연과 날 헷갈렸나 본데.」
「오빠 또 개 풀 뜯어먹는 거짓말 할 꺼면 시작도 하지 마. 알았어? 진짜 호캉스 가고 싶으니까 어제 개꿈 꾼 거 아니야? 그치? 내 그럴 줄 알았다.」
「난 있잖아 얘. 난 있지 응? 난 살면서 친구나 누구한테나 뻥친 적 단 1번도 없어. 왜? 난 거짓말을 어떻게 하는 줄 모르거든.」
「그게 거짓말이야. 잘하시네. 뻥치는 거.」
「아니라니까 정말. 진짜야. 오빠 믿지?」
「또 속을 줄 알아?」
「또? 내가 언제 너 속인 적 있니? 없어. 농담은 몰라도 진지하게 널 골탕먹인 적, 내 기억으로는 없어. 알아?」
「호캉스 가고 싶으면 좋게 가고 싶다고 말하면 되잖아. 어? 남자가 왜 그래? 가지도 않았으면서 갔다 왔다? 그걸 나보고 믿으라고? 오빠 같으면 믿겠니?」
「아니~ 그게 아니라. 진짜야. 나 호캉스 갔다 왔어. 사진? 사진은 안 찍었는데. 신용카드 내역서랄지 호텔에 나와 관련된 기록들 증인들 증거들 많을 테고.」
「뭐야! 왜 그렇게 진지해? 오빠 그렇게 심각하니까 이상해. 알아?」
「진짜니까 그렇지.」
「뭐가? 호캉스가?」
「응.」
「가. 가고 싶으면. 왜, 혼자 가기 싫어? 그럼 누구랑? (멈칫) 꿈도 꾸지 마! 1주일 내내 커피 몇 잔 사준 거 가지고 어쩌고저쩌고, 내가 오빠 핀잔 주려고 하는 말이 아니잖아. 오빠가, 어? 커피 선불카드. 1장씩 들어있는 커피 선불카드 가만 있어봐. 한 50장 뿌렸나? 친구들 통화하고 계산하면 엑셀 파일 금방 만들어.」
「장난이 아니고. 내가 가서 뭘 본 줄 아니? 글쎄 그게 말이야,」
「오빠. 어디 아퍼? 열나? 오빠 그러지 말고 가셔 좀 쉬어. 응? 나 간다. 오늘 커피는 내가 살께. 저번에 내가 친구들이랑 내기 이겼거든. 호호호. 안녕. 다음에 봐 오빠.」
크리스티는 먼저 갔다.
NB는 갑자기 자신이 정신이 훅 가고 마음이 핑 도는 걸 느꼈다.
때문에 이처럼 혼잣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쟤 정말 뭔 소리야?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얘기를 하고 있어. 어? 그러니까 쨰한테 남자가 없는 거지. 응? (절레절레)」
8
다음 날.
그는 사무실에서 음악을 들었다.
가에타노 도니제티 / 오페라 <돈 파스콸레> 노리나의 아리아 “그 눈빛의 그 기사는”
오늘은 누구를 불러내 커피를 마시지? 우리는 커피 없이는 못 사는데 말이야.
그렇게 NB는 엘리자베스를 불러냈다.
장면 전환.
장면 전환.
장면 전환.
「오빠가 일주일 동안 못 산 커피 다 살 테니까. 너네 친구들한테 소문내. 커피 무제한이니까 지나가다 들리라고. 일부러 꼭 애써 찾아올 것 까진 없는데, 그냥 오다가다 들르라 그 말이야.」
「어? 일주일 동안 못 산 커피? 뭔 소리야? 우리가 장난이 지나쳐서 미안한 마당에. 오빠 일주일 내내 우리랑 기싸움 했잖아. 생각 안 나? 늬들이 이기나 내가 이기나, 우리들이 친구들 어? 막 아는 친구들 모르는 친구들 사돈의 8촌의 지인의 후배의... 그거 웬만한 웨이트레스 2/4분기? 아니지 여기 커피가 좀 비싸니. 반올림 하지 않더래도 연봉 나올 거 같은데. 우리가, 너무, 심했나? 하긴 오빠도 꼬리 안 내렸잖아. 오빠 잘못도 있어. 그리고. 애들이 들쑤시며 부추기니까 오빠가 막 뻠프질에 핑, 돌았어 안 돌았어? 에이~ 그래도 선불제 커피카드는 오바다. 응? 그러니까 오빠가 두 번 다시 안 볼 3 대 3 미팅녀한테 반지 사줬지. 응? 오빠가 무슨 반지의 제왕이야 뭐야? 어?」
「어제 크리스티가 너랑 똑같은 농담하던데. 걔 너랑 짠 거니? 뭔 소리야 오빠 호캉스 갔다 왔다니까. 호캉스 몰라 호캉스? 어? 바캉스. 더하기. 바캉스 더하기. 뭐더라? 알아 호캉스. 뭐더라?」
「내가 사진 보여줄게.」
엘리자베스는 소셜 네트워크에 올린 사진들, 핸드폰 내장 파일 속의 사진들을 보여주었다.
「뭐야! 진짜잖아?」
「그럼 진짜지. 오빠 그 1주일 동안 몸은 여깄고 마음은 호캉스 갔다 오셨어요~ 우쭈쭈! 호호호. 그러게 지르긴 뭘 질러. 오빠도 너무 심했어. 알지?」
그렇게 NB는 며칠 동안 로즈마리, 에밀리, 비비안, 샬럿... 애들과 만나 대화하면서 알게 됐다.
자기가 호캉스를 즐기고 오는 동안 누군가 정밀한 대역이 있었다는 것을.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자식 대체 누구야, 지가 무슨 도플갱어야 뭐야.
아무리 그래도 정말 믿을 수가 없었는데. 그런데 결정적으로!
NB가 릴리와 만나서 커피를 마시고 그가 계산하려던 찰나.
어디서 본 건 있어가지고 하필 숙녀인 릴리가 날라차기를?
아니, 들은 건가! 그래서 그는 그냥 그 일을 믿기로 했다.
9
NB는 지니를 소환하기 위해 근사한 음악을 틀었다.
Mozart / 오페라 <루치오 실라> 1막 첫 번째 ‘친나(Cinna)’의 아리아 “사랑이 그대를 부르는 곳으로 오라”
사무실 중앙에 홀로그램으로 지니는 나타났다.
「오랫만이야 오빠.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외로웠어. 넌 뭐하느라 그동안 코빼기도 안 비췄니?」
「나? 난 더 외로웠으니까. 호호호. 그건 그렇고. 오빠 누구 좋아하는 사람 생겼어?」
「나? 나야 좋아하는 사람이야 자주 생기지.」
「그래? 누군데? 솔직히 말해봐 오빠. 괜찮아. 뭐 어때?」
「그냥 말이 그렇단 거지 거 무슨.」
「음... 뭔 말인 줄 알겠어. 오빠 요즘 어때? 빡빡해? 많이 그래?」
「뭐가 빡빡해?」
「공상?」
「그게 뭔 소리야? 그러지 말고. 인공지능이나 돌려봐. 내가 저번에 놀러갔다 온 사이에 누가 나 사칭하고 다녔어. 나랑 대체 얼마나 닮은 놈이길래 그러지? 너도 들어서 알 거야. 저저번에 모스맨 연구자 제라드 만난 거. 그건 일단락됐거든. 근데 그 이후로 또 다시 골치아픈 일이 생긴 거지. 만화영화에 사건이 없을 수 있나. 허허.」
「잘 아시네.」
「잘 알아? 뭘?」
「모스맨 연구자 제라드가 범인이지. 뻔한 걸 왜 나까지 귀찮게 하고 난리야? 안 그래도 바빠 죽겠는데.」
「바빠? 늬가 뭐하느라 바쁜데?」
「그럼 오빠는. 오빠는 뭐 하는 일 없이 빈둥빈둥 맨날 말이야 속으로 하는 생각이라고는. 방금 전에도 그 생각했지?」
「그 생각? 뭔 생각? 내가 너니? 아무튼 나 바쁘니까 다음에 놀자. 내 이놈의 모스맨 연구자 제라드를 가만 두나 봐라.」
그렇게 NB는 즉각 제라드를 만나러 갔다.
10
장면전환.
장면전환.
장면전환.
NB는 제라드를 만남.
「너니? 날 쏙 빼닮은 스파이를 보낸 게!」
「뭔파이? 내가 왜!」
「말해.」
「어. 나야. 생각보다 일찍 왔네?」
「그럼 한 1년 후에 올 줄 알았냐? 날 얕보다 큰코다치는 수가 있어. 까불지 마. 알았어?」
「장난치지 마. 재미없어. 너 그런 거 안 어울려.」
「그래? 그건 그렇고. 왜 보냈냐? 어? 스파이 왜 보냈냐고.」
「내가?」
「그럼 너지 누구냐?」
「늬가 뭘 좀 잘못 알고 온 거 같은데~」
「내가 잘못 알고 오긴 뭘 잘못 알고 와?」
「내가 보낸 건 남자가 아니라 여자야. 다시 말해 여자들.」
「뭐? 남자가 아니라 여자라고? 그것도 여자들? 몇 명이나?」
「최근 너가 만난 여동생들 다.」
「뭐라고? 그럼 내가 걔네들 다 데리고 살아야 하냐?」
「뭐? 늬가 걔네들을 왜 데리고 살아? 그건 대체 뭔 궤변이야? 억지부리지 마. 데리고 살 거면 내가 데리고 산다면 또 모를까.」
「뭐? 늬가 뭔 권리로 걔네들을 데리고 살아? 걔네들도 입장이란 게 있어. 어?」
「누가 없다던?」
「그래? 이 자식이... 못 보던 새에 말발이 많이 늘었는데? 어쭈 뽄새 봐라! 얘가 얘가 은근 사람 들었다 놓네. 어? 연애하는 사이도 아닌데 은밀히 사람 밀었다 댕겨 아주 그냥. 어?」
「상황 어떻게 돌아가는지 더 설명 안 해줘도 되겠냐?」
「나도 눈치가 있어. 눈칫밥 먹은 게 어언 몇 년인데. 어? 나도 다 통밥이란 게 있어 임마. 이거 왜 이래? 사람 뭘로 보고!」
「늬까짓 게 뭘 파악했다는 건데?」
「나도 다 알아.」
「그러니까 늬가 아는 게 대체 뭐야? 어?」
「내가~ 어? 내가 말이지, 나도 알아.」
「모르네.」
「안단 말이야.」
「우기는 거 아니고?」
「늬가 나랑 똑같은 도플갱어를 보낸 줄 알고 있었는데. 너도 알다시피 내가 최근 만났던 아는 동생들이 모두 대역이라는 점. 맞지?」
「용케 맞췄네. 찍었냐?」
「찍긴 누가 찍어. 어? 찍긴 뭘 찍어!」
「찍었네. 것도 급조해서.」
「아니라니까 정말. 하긴 그래도 꽤 감쪽같았어. 응? 난 도플갱어 1명만 생각했는데. 내 그럴 줄 알았으면,」
「내 그럴 줄 알았으면?」
「내 그럴 줄 알았으면, 뭐 아는 남동생들 소개시켜 주려고 그랬지.」
「뻥치시네. 거짓말! 내 그럴 줄 알았으면, 에잇 재미없다. 그러지 말고 좀 앉는 게 어떤가 친구?」
「그걸 왜 이제 말해? 나 삐져서 가기 직전이었어. 이 자식이 못 본 새에 많이 뻔뻔해졌는데.」
잠시 후.
「오렌지 쥬스가 왜 이리 맛이 없냐?」
「그럼 콜라로 바꿔줄까?」
「됐어. 콜라, 살쪄.」
「너 오렌지쥬스를 제일 많이 마시는 지역이 어딘 줄 알아?」
「넌 콜라 1인당 소비량이 제일 많은 국가가 어딘 줄 아니?」
「내가 그것도 모를 줄 아냐? 너 자꾸 사람 만만히 보네. 안되겠다. 너 혼 좀 나자.」
「그러지 말고. 나 너한테 제의할 게 하나 있어. 아니 두 개.」
「제의? 그럼... 나 혼자 들으면 안되는데.」
「왜, 법정 대리인 있어야 돼?」
「아니 뭐 꼭 그렇단 게 아니라.」
「일단 들어. 듣고 나서 생각해도 되니까.」
「」
「첫째 변신 체험, 둘째 모스맨 후계자.」
「뭐?」
「변신 체험은 이런 거야. 네 분신을 만드는 기계를 발명했어. 시간도 오래 안 걸려. 너에게 그 첫 번째 기회를 선물한다는 뜻이지. 그리고 둘째. 모스맨 후계자. 나 모스맨 연구 때려친 거 알지? 그래서 말인데, 그냥 이번 참에 늬가 모스맨으로 살아보는 게 어떻겠니?」
「뭐라고? 변신 체험에서 뭐 이상한 당나귀 같은 게 만들어지면 어쩔 건데?」
「그건...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그리고. 나보고 모스맨으로 살라고? 늬 맘대로 그냥 모스맨 해라, 그럼, 내가 모스맨 되냐? 어? 이 자식이 가만 보니까 상태가 많이 안 좋은데! 너 원래 이랬냐? 어?」
「내가 뭐? 넌 제1번째 환상머신 체험자 기회를 줘도 뭐라냐. 어? 남들은 그거 못해서 난리인데.」
「난리긴 뭐가 난리야? 이 자식이 가만 보니까 '사'자 기질이 다분하네. 어?」
「나 돌아이 아니야. 차라리 허접한 너라면 또 모를까.」
「뭐? 뭐가 어쩌고 어째? 너 말 다 했어? 어?」
「아직 안 끝났어. 어때, 생각 있어? 모스맨으로 살기.」
「모스맨 같은 소리나 하고 자빠졌네. 꿈깨! 정신차려 이 친구야. 그만 공상에서 빠져 나와 좀. 언제까지 몽상가로 살 꺼야. 어? 너도 다 진한사랑도 하고 행복도 경험하고 그래야 할 거 아니야. 어? 안 그래? 무슨 개 풀 뜯어먹는 소리나 하고 말이지. 어? 말 같은 소리를 해야 납득을 해도 할 거 아니야. 어? 뭔 말 같지도 않은 헛소리나 핑핑 해대질 않나. 어? 늬가 말이지, 어? 늬가 그러니까 여자가 없는 거야. 알아?」
「뭐 여자? 내 발에 채이는 게 여자야. 너 내 전화번호부 볼래? 야 내기할래? 늬가 아는 여자가 많은지 내가 더 많은지. 어?」
「야. 안되겠다. 나 늬 제의 딱 거절. 한동안 보면 안되겠다. 너 상태 장난 아니야. 알아? (절레절레) 아 이 자식이...」
그러면서 NB는 얼른 내뺐다.
11
NB는 고민 고민하다가 결정했다. 제라드를 만나자고. 녀석으로부터 받은 제의를 승낙하자는 게 아니라 제라드가 말한 변신 기계가 진짜인지 아닌지만 확인하기 위해서.
그렇게 웨건을 몰고 한참 가던 중 저쪽에 웬 소란스러운 뭔가가 보였다.
바로 명문 구단과 지역 리그 올스타 멤버 간 친선 축구 경기가 펼쳐지고 있었다.
그래? 소파에 자빠져 채널 돌리다 보면 어쩌다 얻어걸려 TV로 보는 축구. 이번에는 직접 관람?
OK! 제라드고 나발이고 저거나 보자. 라면서 그는 경기장에 들어갔다. 표값도 공짜였다.
구단주가 전부 선불했고 그걸 무슨 돕기 어쩌고저쩌고란다. 하여간에 있는 놈들이란!
축구장 내에 들어서니 경기 중이었는데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왜일까? 그걸 알아서 뭐하게.
그러든가 말든가 과자와 음료수를 사들고 NB는 텅빈 객석에 혼자 앉았다.
정말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뭐야? 왠지 모르게 말린 기분은 뭘까.
어쩐지 누군가의 작전에 여지없이 당하고 있는 것만 같은 세한 느낌.
그런 게 어딨어. 영화 찍을 일 있나? 없다. 축구나 보자.
그런데 과자를 우걱우걱 씹어먹던 중 웬 숙녀가 그에게 접근해왔다.
「아저씨. 옆에 자리 있어요?」
「네?」
「못 들었어요? 들었잖아요. 왜 반문해요? 제게 반했으면 반했다고 솔직히 고백하던가. 왜 이랬다 저랬다 해요. 그리고. 숙녀를 이렇게 벌 세우듯 다리 아프게 세워두는 법이 어딨어요? 네? 아저씨 그 못된 예절 대체 어디서 배웠어요? 설마 사랑을 책으로 배웠나!」
NB는 생각했다. 내가 왜 이 아가씨의 횡설수설을 찬찬히 듣고 있는지, 그래야 하는지, 그럴 수밖에 없는지를.
그런데 그 순간 언제 온지도 모르게 NB의 앞자리에 그녀의 단짝으로 보이는 여자가 앉았다.
「일단 빈자리로 알고 앉겠어요. 뭐해요? 손수건 없어요? 에잇 시시해. 그러니까 여자가 없지.」
그렇게 그녀는 앉아서 어느새 NB의 과자를 집어먹고 있었다.
「아저씨 축구 잘 알아요? 그러지 말고 인사나 합시다. 전 세실리아. 쟨 수잔나.」
그 말을 듣고 NB는 뚱한 표정을 지었다. 왜냐하면 이처럼 자연스럽게 통성명하고 악수하는 장면은 드라마에서나 봤고 실제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걸 잘 안다는 듯이 세실리아는 팔을 쭉 뻗어서 NB의 오른손을 덥썩 잡아 끌듯이 악수를 강제로 실행했다.
「아저씨 손 씻었죠? 안 씻었으면 저한테 빚진 걸로! 알았죠?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봐요. 제 가슴 말고요. 안 씻었죠? 안 씻었네. 나중 내 소원 들어주기 예약. 딱 예약. 얘 수잔나 너 뭐하니? 아저씨랑 인사해.」
그렇게 수잔나가 뒤돌아보던 순간. 시간이 정지되어버렸기 때문일까? 살구색 기대는 촉촉한 낭만감을 만족시키고, 부드러운 예감은 섹시한 로맨스를 연상시키므로?
NB는 가운데 신호가 옴을 감지했다. 그렇다고 그걸 곧이곧대로 그녀들한테 말할 수도 없고. 흥분을 가라앉히는 수밖에.
「얘 수잔나. 너 그러지 말고 이리 올라와 앉아. 사람도 없는데 우리가 이 축구장 전세냈잖아. 안 그래?」
「진짜요? ...... 왜...요?」
「이 아저씨 순진하시네. 아저씨 거짓말 할 줄 몰라?」
「나? 난 입만 열면 거짓말이 자동적으로, 아니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 난 태어나서 거짓말을 한 번도 안 해봤으니까, 따라서 그대 말을 믿고 싶은 것일까?」
「뭔 소리야! 아저씨. 정신 차려. 그러니까 나야 얘야? 어? 누구 때문에 정신이 돈 거냐고요. 네? 이 아저씨 안되겠네. 어?」
「」
「얘 세실리아. 너 그거 아니? 최근 세리아 A 득점순위 1위가 누군지 알아?」
「어. 알아. 치로 임모빌레.」
「늬가 그걸 어떻게 알아?」
「진짜야? 그냥 찍었는데.」
「그래? 그럴 수 있어. 안 될 게 뭐야. 그럼 그건 아니? 리버풀 구단주는 내 사촌이고, 첼시 부구단주는 내 초등학교 친구의 아빠라는 거.」
「뭐야, 너 그런 애였어? 진짜야?」
「뻥이야.」
「이년이...」
「너네... 혹시... 제라드가 보냈니?」
약 5초간 정적.
「제라드? 그 사람이 누군데요? 얘 제라드 아니?」
「아니. 몰라. 웨이터 이름인가 아니면 바텐더 이름인가. 그런데 왜 그 이름이 낯설지 않지? 아저씨는 제라드 알아요?」
「나?」
「아저씨. 물어보면 즉각즉각 대답합시다 좀. 네? 왜 듣고선 반문해요? 제 목소리 듣고 싶어서? 내 그럴 줄 알았다니까. 보는 눈은 있어가지고.」
약 3분간 정적.
「보냈네. 제라드가. 쑹악한 녀석.」
「아저씨 촉 좋은데. 그치 그치?」
「그러니까.」
「너네, 정말이니? 아니 왜?」
「왜긴 왜겠어요, 따라가 보면 아는 거지.」
따라가? 따라가긴 어딜 따라가!
「세실리아. 수잔나.」
「와 이 오빠 기억력 좋다.」
「넌 하나만 해. 오빠면 오빠. 아저씨면 아저씨. 너 뭘 고를랑가 몰라도 나에게 이 오빤 항상 오빠. 호호호.」
「세실리아. 수잔나.」
「듣고 있어요. 귓등으로 듣지 않을 테니 어서 말씀이나 해보세요, 오빠.」
「이 오빠 그러고 보니 일부러 오빠란 말 듣고 싶어서 이러는 거 아니니? 그치그치?」
「세실리아. 수잔나.」
「아 뭐에요? 네? 뭡니까? 네? 뭐꼬? 뭣 땀시 이름만 되뇌는데요. 왜 그런디유? 말씀 좀 해보시랑께요. 네? 워매 답답헌 그. 아따 안 그냐?」
「넌 왜 갑자기 사투리를 잡탕으로 섞어서 하고 그래? 정신 사납게. 너 그거 이상해. 하지 마. 해도 내가 할라니까. 그리고 오빠. 우리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사람들 아니야. 우리 뿐만 아니라 그 뭐야 SF 영화 안 봐? 진보, 안 들어봤어? 미래에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내가 하는 말을 전부 녹취 및 기록돼. 나의 행적은 모두 공유되겠지. 어쩌면 생각까지. 그럼 당연히 연애사까지 낱낱이 파악되니까 누군 신중해지던가 누군 해퍼지던가, 아니. 어쨌든 아저씨 무슨 말 하려는지 모르겠는데 그거 낙장불입이다. 알지? 설마, 밑장빼기 어림도 없어.」
「나도 말 좀 하자.」
「어머 어머. 어머머머머머. 저 박력. 와! 오빠 상남자다. 어? 남자네. 호호호.」
「그럼 내가 여자니? 나 남자야. 어? 남자라고.」 ~라는 말을 NB는 물론 속으로만 했다.
「너네 나 믿니?」
「오빤 우리 믿어요?」
「내가?」
「우리는 오빠 믿었는데. 벌써 속이시겠다?」
「내가 언제? 그리고 뭘!」
이와 같은 수다를 모두 소설로 옮길 수는 없고, 시간 적당히 지나 축구장 밖으로 그들은 나갔으니까 문단을 떼서 가는 걸로.
12
축구장 밖. NB와 세실리아와 수잔나.
「그런데 있잖아. 오빠. 오빠도 그래? 오빠도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어? 남자가 말이야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고. 설마 반대로? 오빠한테 그럴 자격이 있어? 어? 무슨 권리로!」
「넌 왜 오빠를 다짜고짜 코너로 몰고 그러니? 어? 오빠가 무슨 쥐니? 쥐도 막힌 쥐구멍에 몰리면 고양이를 물 수 있어. 꼭 그런 건 아니겠지만 말이야. 그리고 넌 딱 봐도 모르니? 오빤 말상...은 아니고. 외계인상...도 아니고. 넌 봐도 모르니? 이거 개상이잖아. 어? 봐 봐. 자, 보자. 눈 2개. 코 1개. 귀 양쪽에 2개 잘 달려있고. 입 살짝 튀어나오긴 했는데 어떤 년이 키스할려나 몰라도 뭘 바라는지 알겠네. 딱 보니 그냥 개네 개. 어? 멍멍 멍멍멍. 안 그래?」
「넌 지금 사람 면전에서 놀리니? 너 이 오빠 재산목록 1-2-3가 뭔지 알아?」
「몰라.」
「없어.」
「없다고? 그걸 늬가 어떻게 알아?」
「왠지 그럴 거 같거든. 그래서 이 남자는 잔재주로 먹고 살게 될 거야. 그래. 예언이야. 신빙성? 있어. 내가 괜한 데 베팅하는 거 봤니? 맞춰볼까? 자, (손비비기 시늉) 오랫만에 녹슨 실력 점검해 말어? 에잇 하자. 뭐 어때? 오빠. 오빠. 사람 처음 만나면 친해지는데 좀 시간 걸리지? 그런데 만나자마자 친해지는 친구도 있었을 테고. 그런 친구를 딱 처음 만났어. 그럼 오빠가 막 토마토를 걔 면전에 던져본 적 있어, 없어? 없어. 말 안해도 알아. 왜? 난 용하거든. 자격증? 없어. 우리는 그런 거 취급 안 해. 어? 그리고. 오빠가 첫눈에 브로맨스에 불탄 우정과 만날 때. 사과를 상대방 머리 위에 올려놓고 장난감총으로 비비탄 쏜 적 있어, 없어? 없어. 오빠거든. 보면 알아. 어? 그리고. 오빠가 무인도에 데려가고 싶은 사랑의 차트? 우리는 딱 보면 안다니까 그러시네.」
세실리아의 험상궂은 드리블, 신출귀몰한 개인기, 신나는 혀놀림 때문이었을까?
언제 이동한지도 모르게 수잔나는 NB 앞으로 옮겨가 걷고 있었고.
모두가 NB의 웨건 쪽으로 가고 있었으므로, 따라서 자연스럽게 NB는 수잔나에게 엎히게 되었다.
짜잔~ 피동격 사랑의 신호! 농담이고. 아까 축구장에서 만날 때 가운데 신호가 왔는데, 이번엔 설마하니 목젓에?
그럴 리는 없고. 보나마나 뻔하지. 물컹한 거 그녀가 느낄까 봐 무안하겠지. 왜? 실제 업어도 봤고 업혀도 봤으니까.
그건 그렇고.
「야 너! 너 이러면 반칙이다. 내가 오빠 업어키울 생각이었는데 가로채? 이년이 돌았나, 어디서 묻어갈려고. 이제 내가 물 꺼야. 알았어?」
「근데 어딜 물어? 아프게? 아니면 부드럽게!」
「아 쫌! 오빠 실망한다니까. 오빠 들은 거 다 기억해. 오빠가 좀 멍청하긴 해도 그래도 이 머리가 그냥 머리가 아니야. 어? 좀 구닥다리긴 하지만 이래뵈도 CPU라고. (이래뵈도?) 심지어 양면점퍼처럼 인텔도 됐다가 AMD도 돼. 어? 무슨 양면테이프야 뭐야. 참 내! 이렇게 보면 안드로이드 운영체제, 저렇게 가지고 놀면 iOS! (절레절레) 뭐여, 그런데 한두 명이 아니네. (절레절레) 하오나 물론 단점도 있지. 태양에도 반점이 있거든. 어? 달이 뜨면 해는 지고. 내 님이 오면 쓸쓸함은 가고. 비가 오면 눈이 안 오고. 뭐 우박이 온다고? 어쨌든 우리같은 미인계 2인조 명콤비한테 오빠는 약할 수밖에 없어. 우리는 어떤 남자라도 만나자마자 꼬셔. 아 맞다. 지금 너랑 나랑만 있는 거 아니구나. 뭐야, 오빠 다 들었어? 와, 나 망했다. 나 완전 망한 거 같아. 오빠 실망하면 어떡하지? 그것도 대실망?」
「와, 스타킹...!」
「야. 나 오늘 성공했다. 완전, 됐어. 어? YES~! 이거야. 이거라고. 어? 이거라니까. 호호호호호호호.」
그렇게 세실리아가 NB 옆에 꼭 붙어있으려던 순간, 수잔나는 그녀를 밀어제낀 다음 자기가 NB 팔짱을 꼈다.
물론 그 인간은 속으로 흐뭇했겠으나 내심 불안했을 것이다. 이건 뭔가 착착 감기는 감이 없잖아 있었으니까.
그게 뭔지 몰라도 일단 가보는 수밖에. 그렇게 그들 셋은 NB의 웨건을 타고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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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와 세실리아와 수잔나. 급허게 결성된 3인방이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니라 제라드의 집.
(최근 말을 너무 많이 해서 줄거리 위주로 줄여야겠다. 거 참 나 증말 징그럽게 말 많다는 게 아니라, 꼭 누구라고 말은 못하겠는데. 거 진짜 말 더럽게 많다는 게 누구라고 말은 않겠는데, 절레절레. 돌아버리겠음. 오빠 좀 쉬자. 응? 뭐 오빠 달려? 또?)
세실리아와 수잔나가 NB를 띄움. 그는 홀딱 빠졌고 냅다 설득됨.
그분들의 말인즉 그대가 완성 못한 환상머신, 우리가 대신 변신 기계를 완성했소.
그런데 듣고 보니, 또 찬찬히 살펴보니 이게 이게 장난이 아니네?
물체의 모습은 그랬다. 일단 제라드의 거실 설명은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지면 보는 걸로 하고.
굳이 그 뻔한 설정 또 글로 길다랗게 쓰느니, 상상력 뒀다 어디에 쓰겠나. 지금 공상하는 걸로.
자, 보자. 어? 보소. 자, 그러니까 최고급 옷가게 드레스룸을 연상하면 된다. 또각또각 비싼 구두 신어본 사람은 안다. 그 쾌청한 소리. 또각또각. 퐁~!
쉽게 말해 사치품 호사 행복감만을 위한 최고급 옷가게 드레스룸이, 제라드 집 거실 좌우에 1개씩. 그렇게 2개. 딱 거실 모서리에 하나씩.
물론 그 중간에는 최고급 진공관 앰프에 오디오광들이 잘 아는 그런 조합. 기가 막힌 걸작들로만. 그 묘미 알게 되면 비엔나필 베를린필 어디필 생음악보다 그게 훨씬 천 배 만 배 좋다. 아니, 좋을 것이다.
그래서 NB는 세실리아와 수잔나의 말이 처음에는 뻥인 줄 알았는데, 이거 이거 점점 신빙성이 높아만 가네? 장난 아니거든.
그 누가 말했나! 플레이보이의 3박자가 황금, 주색, 인기라고. 그걸 다시 허당의 4대 요소로 늘리면?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했는가, 난 아니다. 난 아니라고. 농담이고.
그 말은 곧 세실리아와 수잔나의 입담이 진짜처럼 느껴지는 일. 왜 그럴싸했을까? 어째 그럴 듯했냐고.
왜 그 뻥이 실감나게 진짜처럼 있어 보였냐 하면, 왜냐하면 사기꾼의 철칙이 뭔진 몰라도 그들도 철저했으니까.
말하자면 그녀들은 프로였다. 일반가가 아니라 전문가 중의 전문가.
곧 그들이 준비한 설정은 환상적인 변신 기계의 7대 요소였다.
(1) 음악 (2) 조명 (3) 진동 (4) 효과음 (5) 연기 (6) 향기 (7) 명연기력
곧 구도를 그림으로 간략히 설명하자면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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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고급 오디오 ────
드레스룸 드레스룸
음악은 대략 이런 분위기와 비슷했다.
Gaia/ Valensia, God/ Valentine, The Shoe/ Mozart, Keep Yourself Alive/ Yngwie Malmsteen, Crescendo Com Olivia/ Marcus Vianna, The March To The Eternal City - Triumvirat, Ritrovarci Qui - IBIS, Let It Be Me - New Trolls, Zarathustra - Museo Rosenbach, Lunetic - Walenstein, Adagio / New Trolls...... 50년대 스페인 음악제. 60년대 칸초네 대상. 70년대 빌보드 히트곡......
그 다음. 들어가니 마니 정말 들어가도 되니 어쩌니 실랑이가 있었고.
테스트는 끝났냐 문제는 없냐 줄다리기도 심했고.
그렇게 딱 NB는 들어갔다.
곧 바로 사실적 마술, 환상적 요술, 변신 기계의 7대 요소가 작동했다.
그렇지만 NB는 그 안에서 달리 마음만 들뜨고, 설레며, 흥분되었을 뿐 분위기 말고 달라진 점은 못 느꼈다.
그렇다고 따로 할 일은 없고. 맹숭맹숭 떨리기는 하고. 그래서 그는 예전 기억을 떠올렸다.
─┬┴─
그림이 좀 엉성하지만 말하자면 약간 아구가 살짝 안 맞는 사거리.
그런 데서 뭔 일이 있었나 라는 기억. 그리고 대칭점. 예를 들어 산부인과 이름이 에덴. 그걸 대칭점으로 양쪽.
또 도로에 육교가 있고. 그 육교를 대칭점으로 무슨 데칼코마쥬 미술 수업도 아니고.
공중전화박스에서 쭈그려 잠들었는데, 육교를 대칭점으로 카페 보헤미안 웨이터 동료와 여자친구네 집 앞에 놀러갔던 일.
그 여자애 부모님이 여자애 머리 민들민들 스님처럼 반짝반짝 머리 민 상태로 보여줬던 일.
중학교3학년 때던가 흡성마법 때문에 동자승 머리를 만질 수밖에 없었는데, 그때도... 아 자기 여자친구가 아니었으니까.
또 95년 봄이던가 엄마랑 형수씨랑 시내에 함께 갔다가 카페 카르카손느에 들렸는데, 그냥 물만 먹고 나왔는데.
나중 카페 보헤미아에서 매니저하던 형이 나중 그곳 매니저로 가서 카페 보헤미안 동료들과 놀러갔던가 그랬고. 그렇게 공상 끝.
그렇게 일정 시간이 경과 후 딱 나왔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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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일정 시간이 경과 후 딱 나왔는데~
진짜냐 아니냐. 뻥이냐 아니냐. 정말인가 거짓인가!
달라진 특이점은 드라마에서 보는 걸로 하고. 여기서는 2가지가 주안점.
첫째, 좌측 드레스룸으로 들어갔던 NB가 나올 때 우측 드레스룸에서 나왔다는 점.
둘째, 바뀐 거 없잖아? 라는 듯 뚱한 그에게 세실리아가 손거울을 건냈는데. 거울 속의 인물은 제라드!
뭐? 이때 NB는 살짝 휘청거렸다.
아니 이게 뭐란 말인가? 정말 그럼 이제부터 모스맨 연구자로 살아야 하는 건가?
아니. 제라드는 원본 제라드가 있으니까, 따라서 NB는 지금부터 모스맨이란 말인가?
뭐야 이거!
「나랑 얘기 좀 해.」
~라고 수잔나에게 말했는데 그는 속으로만 말했다. 행동으로 옮겨지지가 않았다.
그런데 신기한 점이라고나 할까? NB는 수잔나의 생각을 읽었다. 그녀는 뭐라고 했을까?
「난 오빠랑 할 얘기 없어.」
뭐? 이어서 그 인간은 세실리아에게 이처럼 텔레파시를 보냈다.
「더 이상은 나도 못 참아.」
그러자 세실리아는 이렇게 답했다. 물론 텔레파시로 말이다.
「오빠는 완전히 미쳤어. 응? 엥간히 혀!」
이 무슨 생난리도 아니고 뭔 난동이냐고. 자긴 진상이 아닌데 진상된 거 아닌가.
얄궂은 일복 그런 한심한 가난. 그걸 어떻게 보상 받지도 못한 채 새로운 인생?
좋은 건가 나쁜 건가 분간도 힘들었다. 이건 뭐 간댕이가 작은 건지 부은 건지, 뭐 배 밖으로 나왔나?
그 순간 제라드 집 입구에서 누군가 걸어왔다.
다시 말하지만 그 모두가 기막힌 연출 때문에 빚어진 신비감이었다. 아니 진짜였다.
무슨 7대 요소? 존나 카리스마 있어!
그렇게 거실에 당도한 인물은 누구냐, 다름 아니라 제라드였다.
「친구. 오랫만이야. 여기서 뭐해?」
NB는 제라드의 입에서 자기 자신의 목소리를 들었다. 때문에 그는 정신이 혼미해지던 끝에 실신하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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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략히 최근 줄거리 되살피자면 이렇다.
제라드의 집. 변신 기계 작동 ───> 변신 기계에서 나온 NB ───> 절반쯤 맛보기만으로 끝남. 그렇지만 손거울을 보니 장난 아님. NB는 제라드로 변신한 상태 ───> 진짜 제라드를 만나자 떡실신.
장면 전환.
장면 전환.
장면 전환.
수잔나가 NB의 웨건을 몰고 NB 사무실로 가는 길.
「오빠 깼어? 깼네. 안 깨어나면 우리집으로 데려갈까 했는데. 마침 정신차렸으니까 오빠네 사무실로 가자.」
뭐라고? NB는 눈을 괜히 떴다고 생각했다. 농담이고.
「그런데 있잖아. 오빠 바지 척척하지 않아?」
「왜, 내가 오줌이라도...?」
「(끄덕끄덕)」
「뭔 소리야? 나는 태어나서 화장실 말고 딴 데서 일을 본 적이 없어. 알아?」
「」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를 하고 그래?」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
「뭔 이유? 내가 바지에 똥싼 이유? 나 아니라니까. 왜 생사람 잡고 그래?」
「아니. 그게 아니라. 아까 제라드 오빠 본 다음에 잠깐 낮잠잤잖아. 그때 오빠가 잠꼬대를 하대? 세실리아를 데리고 살고 싶다던가...?」
「누가! 내가? 그게 무슨 개뼉따귀 같은 얘기야? 내가 언제? 어? 이거 왜 이래? 어?」
「오빠 반응이 너무 부자연스러운데. 너무 과도해. 그럼 오빠 흑심이 진짜가 되는데. 이걸 어쩌나?」
「아니~! 내 말은, 어? 아니. 그게 아니라. 어?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라고. 어? 여러 말 할 필요없이, 그런데 내가 뭔 얘기를 하려던 거였지?」
「오빠.」
「응?」
「할 말 없어?」
「응.」
「그럼 하지 마.」
「」
「아무일도 없었어. 다 왔다. 오빠. 나중 커피 마시자, 같이. 자주. 참고로 우리는 에스프레소 원샷하는 걸 좋아해. 오빠 커피 싫어하는 거 아니지?」
「내가 커피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우리는 커피 없으면 못 살아.」
「아무튼 나 간다.」
「뭐? 그냥 가면 어떡하니? 걸어서 가려고? 오빠랑 대화를 좀 하는 게, 오빠가 널 그러니까, 오빠 말은 말이지...」
그렇게 말이 꼬이던 찰나, 세실리아가 몰고온 라 페라리가 도착했다.
표범보다 빠르고 한때 치타보다 느렸던 페라리? 누군 뭐 페라리 몰 줄 몰라서 안 모나!
어쨌든 그녀들은 갔다. 매정한 년들!
16
그렇게 한 3일 정도였을까, NB는 내내 어디에 홀린 사람처럼 정신을 못 차렸다.
물고기는 신선할 때 잡아먹고 처녀는 처녀는...... 이런, 젠장! 저번 일이 그냥 넘기기에 간단치 않았던 것이다.
Mozart / 오페라 <후궁탈출> 2막 - “얼마나 기쁜가, 얼마나 즐거운가”
음악을 들어도 기분이 그저 그랬다. 그렇게 심심 얼빵 꺼벙하게 지내다 제라드 집에 다녀온지 7일째에 결심했다.
자기도 변신 기계를 장만하기로. 할 수 있다. 해야 한다. 왜 못해? 하고 싶다. 하지 않으면 안된다. 결론내렸던 것이다.
그렇게 다시 7일 경과 후.
장면 전환.
장면 전환.
장면 전환.
그는 제라드 집에 있는 변신 기계만큼은 아니지만 대충 구색을 맞춰 장비를 장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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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고급 오디오 ────
드레스룸 드레스룸
그리고 무슨 7대 요소? 그야 차차 다듬으면 되고.
그렇게 좌측에는 연붕홍색 옷장, 우측은 하늘색 옷장.
어느 중고품 판매점에서 아담한 크기의 싸구려 옷장을 샀던 것이다.
미친놈! 잡것? 개새끼. 멍멍멍 멍멍멍멍.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정말로... 정말로... 뭔가 어떻게 조금만 하면,
어떻게 조금만 더 조금만, 어떻게 좀 한 번 그게 그러니까 누굴 자빠트린단 말이 아니라
정말로 뭔가가 될 것만 같았던 것이다.
그래서 NB는 최고급 오디오 위쪽에 뭔가를 붙여놓기도 했다. 바로,
(A) 어제: 영화배우 대형 브로마이드 (사진)
(B) 오늘: 원맨쇼 진행자 (아이패드로 영상)
(C) 내일: 희대의 사기꾼 연구 서류들, 이 아니라... 뭘 놓을까 그대로 이루어질 텐데...
이 때문일까? 일하기 싫고, 놀기도 재미없고, 뭘 해도 심심한 증상. 말끔히 치료되었다.
바로 그 허언증 다음에 찾아오는 권태감 중증. 무력감. 어리광. 능청. 허세. 싫증. 끈기 부족. 그 모두에 직방인 처방까지는 아니겠으나 뭐 그럭저럭.
물론 거기서 멈출 그가 아니었다. 그는 달리는 당나귀에 박차를 가했다. 어떻게?
첫째, 공간 이동 마술 연구
둘째, 브랜드 로고 공부
첫째는 요술부터 짜고 치는 마술 무대 속임수까지 심층적인 조사고. 둘째는 브랜드 로고가 우측을 바라보냐 좌측을 향하냐, 그 차이점에 관한 브랜드학.
둘째로 말하자면 보아하니 이렇다.
브랜드 로고 좌향 : 버버리. 페라리. 재규어. 포르쉐. 푸조. 웰라. 첼시. 토트넘. 리버풀. AS로마. 존 디어. 펭귄 클래식. ING 그룹. 리즈칼튼 호텔. JW 메리엇.
브랜드 로고 우향 : 라코스테. 볼보. 트위터. 밀러. 캐나다 왕립은행.
좌 → 우 : 조니 워커.
우 → 좌 :
좌우대칭 : 레드불. 폭스바겐. 맥도날드. 로열 더취 쉘.
어중간. : 에르메스. 미쉐린. 로이드 뱅크.
이처럼 왼쪽 옷장에 들어갔다가 오른쪽 옷장에서 나오느냐,
아니면 오른쪽 옷장에 들어갔다가 왼쪽 옷장에서 나오느냐,
어떤 차이일까 브랜드학과 관계 있을까가 중요했으니 말이다.
17
어느 새 사준 커피가 있기 때문일까? 나름 1.5인자로써 남자 세계에서 평판 나쁘지 않았고. 아는 여동생들도 오빠 오빠 막 그러면서 웬만큼 따랐고.
그래서 NB의 변신 기계는 알게 모르게 저명해졌다. 큰 유명세까지는 아니었으나 잔뻔치로 정말로 알게 모르게 소문이 자자했던 것이다.
예를 들어. 전성기에 여자깨나 울리고 다니던 플레이보이의 대명사, 크리스! 크리스와 핀과 토마스의 공통점이 무엇인 줄 아시는가? 바로, M자! M자? 그래 M자. 남자들 아는 M자. 자동차가 아니라 갈매기 머리선. 즉 옅은 탈모 말이다. 아니 정말로 걔네들한테 NB의 변신 기계는 밑져야 본전이었다. 획기적인 혹시나 모를 기회! 캬~ 어? 야, 그래? 내가 꼬셔줄께. 이러니까 여자들이 나한테 뻑이가지. 어? 뭐 여자? 내 발에 채이는 게 여자야. 알아? 이 형이, 어? 내가 다 꼬...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 너의 젊음을 되찾아줄께. 지금도 청춘이지만 몽정기의 정력과 사춘기의 외관을 돌려줄께. ~라며 NB가 뻐기지는 않았으나 모냥새가 어찌 어찌 하다 보니 그와 썩 다르지도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속는 셈치고 한번 구경이나 하자면서 하나둘 녀석들은 NB에게 번호표 발부받으면서 찾아왔다. 마침내 커피포트를 어렵싸리 진공청소기로 둔갑시킨 거지. 스스로 변신술 못 익히니 뭐 별수 있나. 허허허. 그는 정말 OB에서 영보이로 거듭난 것만 같았다.
그렇게 하여 1달 경과 후. 그는 점점 대상을 넓혀갔다. 좌에서 우, 우에서 좌. 기타 등등 엑셀에 기록하고, 성공률 측정하며, 통계 뽑아야 하니까 말이다. 가령,
(A) 폐기물: 코푼 휴지.
(B) 물체: 주사위. 만년필. 시계. 가발. 인형.
(C) 가전제품: 커피포트. 핸드폰.
(D) 음식: 닭다리. 감자칩. 참치통조림.
(E) 반생물: 꽃다발
(F) 생물: 화분
(G) 시신: 생쥐 (길고양이가 보은의 의미로다 물어다준)
......
유명인들의 트레이드 마크. 고유한 서명. 명대사. ~를 떠올리는 말습관 그걸 NB는 어쩌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익혀버렸다. 그건 뭘까? 뭐긴 뭐겠나. 1번으로 안되겠다지. 명요리사야 딱 1번만 간봐도 대번에 예 아니오 나오지만. 그건 일이고. 놀이에서는? 빵 1개를 꼬마와 나눠먹는 어른, 일단 형이 맛없는 부위를 억어서 쳐치해줄께. 초콜릿이 맛나나 아니나 단지 맛만 볼께... 야금야금 1번 2번...! 인형극에서 볼 수 있는 이따만한 대두 인형 눈에서 모터로 인공눈물 틀듯 어린이의 울음! 연애. 애정. 그리고 더티러브. 아니 키스. 달콤한 뽀뽀? 아직 잘 모르겠는데요~! 1번 더 해봐야 알 수 있을 것만 같구먼유~. 안 그래유?
서포터즈 조마조마의 회장 롭으로부터 연락도 없고. 품위유지비 간당간당. 사는 낙도 불안불안. 뭘 해도 재미없던 찰나, 변신 기계가 역시나 미완성 환상머신을 대신했던 것이다.
그렇게 오늘은 누가 누가 NB를 찾아왔나 하면 그는 로버트였다.
「투자나 받을까?」
「투자? 뭔 투자?」
「높은 건물 세계 순위권 정도에 필적하도록 저거 저거 2개 지은 다음. 거 뭐야 빵 만들 때 그 뭐지? 맞다. 그래. 이스트. 공룡이랑 비슷한 게... 캥거루? 아니면 <생명수 + 공룡뼈 = 짜잔~!> 또는 타조알 + 펌프. 또 있다. 화염방사기랑 레이저?」
「친구. 멈추자. 아마 우리 더 가면 말이야, 어쩌면 우리 돌아올 수 없을 것만 같아. 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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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행복감에 대한 적극적 욕구, 닥치는 대로 공상하는 습관. 전자는 후자한테 매번 졌다. 여지없이 완패. 그래서 하는 수없이 그 씁쓸한 패배감을 덜어내고자 나는 무척 이례적인 방법을 강구할 수 밖에 없었다. 그동안 뜬구름 잡는 단꿈의 뒤꽁무늬만 쫓느라 허비한 정력과 시간과 노력을 어퍼치기하고 싶었던 것이다. 무작정 동네 똥개를 자빠트릴 수는 없는 일이니 말이다. 우리도 걔네 인생 간섭하고 싶은 마음은 물론 시간도 없다. 그렇지만 뭐랄까 나는 곧바로 중도 포기라는 달콤한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 안 그럴 수가 있나. 왜냐하면 재미없음과 심심함을 오리가 물을 떨어 내듯 털어내기, 와는 멀찍이 떨어져 있느니까. 그렇다고 언제까지 발동이 저절로 걸리기를 기다릴까, 새롭게 판짜기를 감행할 마술을 익힐까. 다 쓰잘데기 없는 잔소리일 뿐. 내버려 두어도 지 혼자 자동적으로 굴러가는 사랑은 이 세상에 (거의?) 없다. 어차피 사랑이 인생이고, 꿍꿍이가 묘책. 그게 그거. 이거나 저거나. 그러든가 말든가.
그래서 나는 저번에 사무엘이 건넨 제의를 덥썩 수락하기로 했다. 사무엘이 건넨 먹잇감 쫓기 그 겁나는 액면은 무엇이었을까? 다름 아니라 레너드가 주인인 카지노 사장실에 놀러가자는 거였다. 별거 아니었다. 현실 속에 사는 동네 아저씨들인데 무슨 초현실감과 친할 일 있나.
그렇게 사무엘과 나는 만났고, 이동했으며, 도착했다. 어디에? 바로 레너드가 주인인 카지노 사장실에 말이다. 어떻게 만났고 시시콜콜한 얘기는 뭐였고 그거 다 얘기하다간 날샌다.
짜잔~! 의례적인 관계자들과의 대화, 건너뛴다. 우리도 화상통화, 걔네도 무전기와 전화와 기타 등등 확인 과정은 철저히 거쳤으니까. 하여 이곳은 카지노 사장실. 다만 레너드는 어디에 잠시 볼일 보러 갔으니 우리는 기다리면 그만. 그리고 사무실에 틀어진 음악은 바로,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 오페라 <돈 죠반니> - “내 사랑하는 여인이 위로받는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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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 있잖아, 난 레너드 같은 장르 업자면 말이야 끈적끈적한 음악을 들을 줄 알았거든. 아니면 막 뉴에이지, 아니면 바로크 이전 훨씬 이전 고음악. 그도 아니면 클럽음악. 그런데 얘 감성 은근 말랑말랑하네. 얘 요즘 연애하니?」
「레너드가 연애를?」
「왜 레너드는 연애하면 안되니?」
「안되긴 누가 안돼. 다만 레너드가 진한 사랑을 하냐 마냐는 걔 인생이고. 타인의 애정이고 자시고, 진한 사랑이고 나발이고. 지금 내 코가 석잔데 그걸 알아서 뭐하게?」
「하긴 늬 말도 말은 된다.」
「그럼 내가 말도 안되는 잔소리나 늘어놓는 허풍쟁이인 줄 아니?」
「너 못 보던 새에 약간 까칠해졌는데?」
「나 원래 카리스마 좀 있어. 그럼 여기까지 왔는데 싱겁게 보일 수는 없는 거 아니니? 그래서 센 척해봤지.」
「그래? 그럼 난 카리스마 없냐?」
「너도 있어, 카리스마.」
「재미없다. 누가 들으면 잘들 논다 그럴 거 아니냐고.」
「레너드 걘 손님들 심심하게 자리를 비우면 어떡한다니. 우리 기다리기 심심한테 저 금고나 열어볼까?」
「금고? 무슨 금고? 저 구식 금고?」
「저게 구식인지 신식인지 늬가 어떻게 알아? 얘가 뭘 좀 모르네. 넌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봤어. 액자 뒤에 설치된 금고는 그냥 눈속임이야. 시간 벌기 위한 거라고. 그리고 저기 저렇게 보이는 허름한 금고. 아마추어들이 뭐 독학으로 갈고 닦은 기량 연습하러 낑낑대며 여기서 애쓸 일 있니? 혹시라도 온다면 전문가 중의 전문가들이 납신단 말이야. 응? 너 뉴스에서 어쩌다 봤지? 싯가 얼마짜리 명화를 그분들이 감쪽같이 들고 튀었다더라 어쨌다더라. 저렇게 보이는 게 원래 정말 센 거라니까.」
「너 말 많은 거 보니 열 줄 모르나 보구나.」
「내가 저거 못 열 줄 알아? 얘 은근히 뽐뿌질하네. 너 내기할래?」
10분 경과 후.
사무엘은 어떻게 어떻게 정말로 그 금고를 열었다.
금고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혹시 했는데 역시나였던 거지.
그런데 문제는 사이렌이 울렸다는 거.
그렇게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당도한 덩치들은 센 놈들이었다.
때문에 우리는 일이 크게 될 줄 알고 덜컥 세한 표정으로 어정쩡하니 서있었는데 그분들 왈,
「아 또 저게 말썽이네. 겁먹지 마세요 손님들. 저거 원래 주기적으로 열리게 되어 있어요. 일종의 속임수죠.」
뭐라고? 얘네들 정말 지독한 놈들이구만 그래. 그런 다음 그분들은 철수하고 한 30분 정도 지나는 동안, 사무엘과 나는 소파에 자빠져 잠시 졸았다.
그렇게 딱 레너드가 도착했다.
「친구들. 우리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그런데 너 헤어스타일 바꼈네?」
「너 또 옆길로 세는 화법? 돌리고 돌리고 돌리고 기본으로 세바쿠 반 돌린 다음에 슬쩍 간만 보는 화법. 응? 내가 여자냐? 너 나랑 뭐 단둘이서 비밀스럽게 무슨 해야 할 일이라도 있니? 그게 뭔데 도대체?」
「야 야 야. 흥분하지 마. 넌 왜 아무 데서나 흥분하고 그래? 그러니까 늬가 정작 중요한 순간에 힘 빠지는 거 아니야. 응? 방금도 그래. 너 또 친구 기다리기 따분하니까 TV 틀어서 보다 끄고, 핸드폰 뒤적거리다 잠들었지? 누가 모를 줄 아니? 늬가 그러니까 여자가 없는 거야. 꼭 보면 너 같은 애가 여자랑 대화하면 재밌다고 느끼는데, 그럼 뭘 해. 금새 기 빨리는데. 정작 정력은 몽정기 때만 좋았던 거야? 이러니 이러니」
「그만 하자.」
「그래. 잘 생각했어. 뭐 그건 그렇고. 아무튼 내가 나중에 여자 소개시켜줄께. 걱정 마 얘. 나만 믿어. 어? 너 나 아는 동생들 많은 거 알지? 아니면 뭐, 뉴 페이스? 말만 해. 형이 다 꼬셔줄께. 알았어? 어쨌든 그건 그렇고. 너네들 그 소식 들었니?」
「뭔 소식?」
「우리의 친구 제라드.」
「제라드 주니어? 제라드는 걔 아빠잖아.」
「걔 개명했어. 걔 아빠가 딴 이름으로 바꾸자마자 걔는 주니어 떼버렸다고.」
「그래서?」
「제라드가 있잖니 이직했데.」
「이사도 아니고 이직?」
「그럼 걔가 무슨 전학갈 나이니? 그러니까 크리스가 한 3번 갔다 올 동안 넌 여태 총각 꼬리표도 못 뗀 거 아니야. 하여간 (절레절레)」
「갔다 와? 3번? 어디를?」
「말 말자. 응?」
「쟨 신경쓰지 말고. 하던 얘기나 계속해 봐. 제라드가 뭐 어쨌는데?」
「제라드가 말이야, 이제 돈도 벌 만큼 벌었겠다. 하고 싶은 일들도 거의 해 봤겠다. 사랑도 알겠다 부족한 거도 없겠다. 그래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데.」
「무슨 도전? 지명 방어전으로 누가 걜 찍었데?」
「찍긴 뭘 찍어? 하여튼 넌 꼭 잘나가는 판 깨는 데 뭐 있어. 응? 들어 봐. 제라드가 말이야, 그 연구자가 됐데.」
「무슨 연구자?」
「모스맨 연구자.」
「모스맨?」
「그래 모스맨. 모스맨에 대한 목격담. 증언. 연구자와 면담. 노스트라다무스의 방계 후손과 직계 수제자까지 어쩌면 조사했을 수도 있겠네.」
「밑도 끝도 없이 무슨 나방맨. 사랑은 나비야.」
「너 온 생각이 항상 코끼리한테 가 있으니까 상태가 이 모냥이지. 야! 뿔은 귀보다 늦추 자라지만 더 길다 너. 모스맨 연구가로 변신한 제라드? 걔 학교 다닐 때 별명이 유니콘이었어. 얘가 얘가 제라드를 잘 모르네. 응?」
그렇게 나&사무엘&레너드, 우리는 다음 날 함께 모스맨 연구자 제라드를 만나러 떠났다.
3
나&사무엘&레너드는 모스맨 연구자 제라드의 집 앞에 도착했다.
우리는 긴장됐다. 설마... 긴가민가... 으쌰으쌰해서 오긴 왔는데. 정말 들어가는 게 맞는 것일까? 의문이었다.
안중에도 없던 정말 뜬금없는 모험 어디 없을까? 없다. 없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됐다. 그게 다 뒷전으로 밀린 사랑에 소홀했기 때문인가? 아니다. 아니었는데 어떡하다 이렇게 됐단 말이다. 그럼 새로운 인생에 관한 초미의 관심사는 뭐니 뭐니 해도 작업? 관심없음. 무관심이었다만 지금 여기 있다니까 그러시네. 건수 없음, 사실은 사실이었는데. 그 거짓말 같은 투정 다 뒤로한 채 우리 세 친구는 지금 여기에 서 있었다.
「정말 들어가도 될까?」
「그러니까. 혹시 모스맨 연구자 제라드가 우리를 반기지 않으면 어쩌지?」
「무엇보다 말이야, 혹시 제라드가 이렇게 말하면 어떡하냐.」
「어떻게?」
「나 모스맨 연구 때려쳤어. 몰랐니? 라고 말이야.」
「그럼 여기까지 애써 찾아온 우린 뭐가 되니?」
「그러든 어쩌든 나 깜빡했어. 여자친구랑 걔네 부모님 인사드리러 가기로 했거든. 어떡하지? 일단 난 철수했다가, 서둘러 일 처리한 다음, 나중 다시 합류할께. 알았지? 나 갈께.」
그러면서 사무엘은 가버렸다. 물론 우리 셋은 각자 자동차를 따로따로 타고 왔으니까 가는 것도 쉬웠다.
「제가 선수치네. 얘 나도 있잖아...」
「어서 가. 필요없어. 듣기도 싫어. 난 혼자가 편해.」
「왜 또 그래? 너가 지켜보라니까. 사무엘이랑 나랑 누가 더 빨리 합류하나. 내기할래? 어? 못할 거 읎다니까. 응?」
「그냥, 조용히, 가. 결과는 나중 알려줄께. 여기서 말 많아지면 넌 천해지고 난 비참해져. 알아?」
「이 사람이 갑자기 진지하게 왜 그래? 너 정말 이러기야? 내가 뭐 의리도 없는 쫌팽인 줄 알아?」
「」
「알았어. 일단 상황 봐서 이따 바로 전화할께. 알았지?」
그러면서 사무엘에 이어 레너드도 가버렸다.
그럼 나 혼자 어떡하라고?
물론 아까 우리가 도착하자마자 마침 제라드의 집은 문이 열려 있었다.
전화해봤는데 제라드가 받지 않길래 우리들은 망설였던 거고.
그리고 걔네들이 가기 전에 또 날 북돋워졌던 말이 자꾸 여운으로 남았다.
제라드랑 나랑 옛날에 친했다나 뭐래나. 그렇지만 딱히 즐거웠던 기억, 사연 깊은 우정, 상쾌 유쾌 통쾌는 커녕 불쾌한 줄거리마저 빈약이 아니라 없었는데.
걔네들은 왜 나랑 뜬금없이 제라드를 엮으려는 거지? 뭐 어영부영 으쌰으쌰 들떴는데, 아마도 전망은 기대와 달리 실망스러울 거 같고, 그래서 비전 없으니까 튀긴 튀는데 살짝 미안했던 게지. 뭐 그건 그렇고. 어차피 문도 열려 있겠다, 모스맨인지 부시맨인지 뭐 제라드가 연구 제대로 하고 있나만 확인 후 돌아가면 그만. 그렇게 나는 제라드 집으로 들어갔다.
집 안에는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J. S. Bach / <마태수난곡>BWV 244. 소프라노 아리아 “내 마음 당신께 드리리”
제라드는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그러다 제라드의 연구실로 보이는 방에 들어갔는데, 거기에 무슨 화면이 있네?
그건 다름 아니라 CCTV 실시간 영상이었다. 그런데! 뭐야 이거?
앞문 바깥 즉 우리 셋이 있던 장면이 보였다. 그럼 이건... 모스맨의 신통방통한 요술 때문에 빚어진 도플갱어 1인도 아니고 3인?
아니, 정말로 앞서 우리가 말장난하고 어쩌고 그러다 사무엘이 먼저 갔고, 다음으로 레너드가 떠난 장면이 화면으로 비춰지고 있었다. 그러다 내가 들어오고.
그런데 알고 봤더니 그건 실시간이 아니라 실시간과 몇 분 간극이 있었던 것 뿐이었다.
그래서 난 그러려니 하고서 소파에서 쉬면서 모스맨 제라드를 기다리려고 했다.
그 순간 인기척이 들렸다. 그래서 바깥을 보니 웬 열댓명 인원이 우르르 몰려오네?
순간 멈칫. 근데 그게 보아하니 다들 똑같은 얼굴.
가까이 다가오니 진짜로 모두 다 전원 똑같은 얼굴.
그건 다름 아니라 모스맨 제라드였다.
그럼 정말로 제라드가 모스맨을 연구하다 권위자가 됐거나, 아니면 그놈 자신이 모스맨이 된 건가?
그 황당함 때문에 난 곧바로 숨을 수 밖에 없었다. 실상 현장에 있으면 그렇게 된다. 영화 보면서 중간에 어쩌고저쩌고, 그런 거 다 딴지 걸면 드라마 못 본다. 뭐 적당히 그러려니. 그건 그거고. 이건 실제 상황이고.
그렇게 뾰로똥 엿보며 걔네들이 차근차근 집으로 들어와 거실로 들어가는 장면을 봤다.
그건 정말 칙칙폭폭 칙칙폭폭 무슨 애들 장난도 아니고, 정말로 제라드 1 제라드 2 제라드 3......
그래서 걔네들이 총 몇 명인가 세다가 까먹었다. 한 12명? 15명? 대충 그쯤 되는 거 같은데.
이 요상한 장면을 똑똑히 지켜본 나. 여기 나 말고 누가 있어?
나중 사무엘과 제라드한테 물어보면 걔네들이 믿겠어?
그렇다고 증거가 있나 뭐가 있나.
아하~! 핸드폰 영상으로 찍으면 되지?
하여 핸드폰으로 딱 찍으려고 했는데 글쎄 배터리가 떨어졌네.
이건 뭐랄까, 버티고 대치하며 그 뭔가를 기다려도 내겐 아마 유리할 게 없을 것만 같았다.
따라서 나는 서슴없이 결론을 도출했다. 그건 뭐냐, 도망치기.
그렇게 나는 일단 조용히 그곳을 빠져나와 집으로 갔다.
아마 나도 내가 헛것을 봤는지 진짜를 봤는지 가늠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일 것이다.
4
나는 술을 끊기로 했다. 아니다. 꼭 그러지 않아도 된다. 그럼 뭘 끊지? 어차피 커피를 끊은 상태. 나중 때 되면 향긋한 에스프레소부터 카푸치노든 뭐든 막 마시겠지. 그럼 일기나 써볼까? 이미 많이 썼다. 아니, 그럴 게 아니라 이참에 그 뭐야 그래. 남녀의 우정을 끊을까?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없는데 사교계에서 팽당한 지가 언젠데 쯧쯧쯧. 아는 동생들로부터 홀대 받는 느낌. 그건 그냥 기우가 아니라 그 인간은 걔네들한테 차갑게 잊혀진 것일뿐. 그렇다고 두 마리 개 사이에 뼈다귀를 던져줄 수도 없고. 어쩐담? 어쩌긴 뭘 어째! 일단 기다려 보는 거지. 그런데 뭘? 내 말이. 내 말이 그거라니까. NB는 또 그렇게 곧잘 혼잣말인지 정신착란인지 정신분열인지 뭔지를 반복하고 있었다. 보아하니 공이 이름난 선수를 찾아낸다고, 그는 아마 명사가 아닌 게 분명했다. 누가 뭐래도 허당이니까. 행운은 거의 올 듯 말 듯 올 듯 하다 비켜가고. 여심을 거의 딸 듯 말 듯 거의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그러다 아득히 멀어져가고. 어? 에잇. 말하자면 그저 어쩌다 보니 현업이 천직. 그래서 또 일하기만? 사극에서 검집을 버린 배역 마냥 미련없이 올인 베팅을 하고 자시고, 오란 데가 없으니 하는 수 없지. 그렇게 나는 사무실에 도착했다.
그런데 나는 깜빡하고 있었다. 바로 모스맨 연구자 제라드의 집에서 본 헛것을 말이다.
설마 내 시력에 일시적으로 문제가 생긴 건 아닌가 해서 나는 안과까지 가서 검진도 받아봤다. 문제 없단다.
그럼 정신이? 정신과... 못 갈 거 없다. 가려고 했다. 그런데 집 근처에 정신과 병원이 없었다. 그럼 저명한 심리학자를 소개받는 걸 어떨까?
하여 나는 아지트로 향했다.
도착했다.
가는 날이 장날이었던 것일까?
마침 아지트에는 사무엘과 레너드가 있었다.
「야. 너넨 나만 쏙 빼놓고 여기서 뭔 밀담을 나누는 거냐. 설마 남자끼리 밀애? 그야 내 일이 아니라 남 일이긴 하다마는.」
「뭔애? 너 나 모르냐? 나 여자 환장한다.」
「그럼 여자도...?」
「내 발에 채이는 게 여자야. 그랬어. 그랬다고. 지금은 다 지겨워진 거 뿐. 사교계? 언제라도 마음만 먹으면 복귀 가능. 복귀하자마자... 그만하자.」
「지금 그 얘기가 아니라.」
「아, 저번 일?」
「그래. 살면서 느낀 게 하나 있는데. 뭔가 걸리면 대충 생략하고, 제끼고, 밀쳐놓고, 미루고 넘어가는 일. 대부분은 괜찮은데. 간혹 가다 정말 그래서는 안될 일. 그게 나중 꼭 발목 잡는 법이거든.」
「미안하다. 저번에 우리가 도망갔던 거. 실은 솔직히 말해서 좀 겁도 났고. 어? 그렇게 무작정 찾아가서 무슨 시트콤 찍는 거도 아니고. 우리가 뭐 하이틴 로맨스물에 나오는 한량도 아니고. 안 그래 친구?」
「친군데 도망가?」
「누가 너 뒤끝 긴지 몰라서 이러니?」
「넌 뭐 남 말꼬리 잡고 늘어지는 거 일가견 없는 줄 아냐? 왜! 폭로전 한번 하자 그거냐? 못할 거 없지.」
「아~ 그래? 우리도 질 수 없지!」
「야 야 야. 왜 또 그래? 정말 너네 이럴래? 그럼 나만 쏙 빠져서 아는 동생들이랑 논다. 너네들 나 아는 여동생들 많은 거, 알아 몰라?」
「이 자식이... 우리 우정이 겨우 그 정도냐?」
「야. 자꾸 말 돌리지 말고 나 지금 심각해. 어? 진짜라니까.」
「심각해? 왜 심각한 줄 아니? 너 몽정기라서 그래. 아니, 발정기. 너 그거 화난 상태잖아. 것도 항상.」
「아 나 이거 증말. 아 진짜라니까. 너네들 도망간 다음에 나 혼자 들어가서 그 모스맨 뭐야, 집에 막 장식된 그 드라마 설정 장면 그거 다 보고. 모스맨 그 인간 누구냐, 제라드도 봤는데 제라드가 한 명이 아니었어.」
「그럼 제라드가 몇 명인데?」
「많았어. 일단 10명은 넘었어.」
「제라드가 10명 넘게 있다고? 무슨 모스맨 대역이라도 쓴다는 거니?」
「그게 아니라 도플갱어랄지 뭔가 어떤 요술 아닐까?」
「아무리 생각해도 너 상태가 상당히 안 좋아보인다. 여기서 이러지 말고 집에 가서 좀 쉬어. 너 이러다 상사병 생겨 인마. 어?」
그러면서 사무엘과 레너드는 가버렸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그건 무엇이고 하니, 바로 사무엘과 레너드의 뒷모습이 그렇게 보였던 것이다.
어떻게? 모스맨 연구자 제라드의 집에서 봤던 그 장면. 사람 뒤에 사람 뒤에 사람...... 점차 옅여지다가 0.
그 자리에서는 그렇고, 그 뒤로 사람들을 볼 때마다 누구는 그랬고 누구는 아니었다. 기준이 불분명했다.
설마 나 미친 건가? 난 미치지 않았다. 그럼 걔네가 미친 건가? 미치긴 누가 미쳐. 아니다. 이건 진짜다.
그렇다고 흥분하면 안 된다는 거. 값비싼 수업료 지불하고 얻은 깨우침. 아직 철들지는 않았을 테지만 그건 아니까.
따라서 나는 일단 후퇴하기로 했다. 당장 뭐 어떻게 아무 데나 막 가서 들쑤시고 나불대며 들이대고 떠들고 다닐 수도 없는 거고.
누가 믿는다고? 그래서 진정한 다음 나는 집으로 퇴근했다.
5
나는 오늘 신디를 만났다. 신디는 아는 동생이다. 내가 신디에게 어떤 존재, 어떤 의미, 무슨 오빠인지는 몰라도.
적어도 나는 신디에게 선사해줄 자신이 있다. 무엇을? 바로, 불순한 사심 가득한 호의가 아니라, 다양성은 쾌적의 원천이자 젊어서 우정은 인생의 비밀일까 라는 의문점을 말이다. 다시 말하자면 역시나 신디는 팔랑귀 분과였다. 아닐 수 없지. 딱 봐도 숙녀. 그래서 우리가 친해졌냐고? 아니다. 우리는 누가 됐든 만나면 금방 친해진다. 그녀들은 우리를 만나면 만나자마자 쬬갤 수... 아니 웃을 수밖에 없거든. 여자는 웃으면 끝이다. 어? 남편 팔짱 끼고 있으면 뭘 하나 이미 마음을 우리한테 빼았겼는데? 농담이고. 진짜 농담. 그렇게 우리는 찾집에서 만났다.
「신디. 너 어쩜 그럴 수 있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말이야.」
「어? 뭘 오빠.」
「너 어쩜 그렇게 못 본 새에 몰라볼 정도로 이뻐질 수 있냐고. 아니 내 말은 원래 이뻤지만 이건 정말 너무한 거 아니냐 그 말이라고. 안 그래? 넌 어떻게 생각해?」
「이 오빠 또 보자마자 사람을 들었다 놓네. 그럼 나야 쥐락펴락 그냥 분위기 봐서 새로운 인생의 이상한 목적을 간파하면 되는 건가? 그게 그러니까 흑심? 군침? 눈독? 아니면 뭐 개침?」
「하여튼 너는 꼭 잘 나가다 옆길로 새더라. 어? 내가 너한테 소개시켜주고 싶은 남자가 대체 얼마나 많은 줄 알긴 아니? 모두 거짓말처럼 특 A급이야. 알아? 너 사람 보는 눈 없니? 어? 이거 왜 이래? 어?」
「오빠. 흥분하지 마. 지금은 흥분할 때가 아니고 여기도 흥분할 장소가 아니야. 알지? 알면 됐고.」
「아무튼 그건 그거고. 신디. 레이디 신디.」
「무슨 할 말 있어? 말해. 들을께. 다정히. 나 부드러운 여자야. 뭐 해 어서 말하지 않고. 나 뜸들이는 거 싫어하는 거 알아 몰라? 어?」
「재촉하지 마. 안 그래도 다 말 하려고 했어. 어?」
「잔소리 그만 하고 얼른 말 안 해? 어?」
「따박따박 넌 그렇게 갑자기 신경질 모드로 변신하는 게 문제야. 애교도 좋고, 내숭도 문제 없고. 남자들이 하나같이 귀엽다 그러고. 머릿결? 딱이야. 그런데 누가 널 보채는 거니? 늬 안에 누가 있기라도 한 거니?」
「아 증말. 어서 말 안 해?」
「알았어 알았어. 있잖아 얘. 얘 신디. 신디 얘. 나 있잖아. 그게 그러니까...」
「OK~! 여자 문제지? 오빠가 좋아하는 촌년이 누군데? 어? 언년이야? 나보다 순번 빨라? 어? 이년이 어디서 번호표도 안 뽑고. 내 그년 가만 두나 봐라. 어?」
「아 농담하지 말고. 그게 아니라. 너 있잖아, 들었어?」
「어?」
「들었어? 들었냐고.」
「들어? 듣긴 뭘 들어. 누가? 내가 왜! 이 오빠가 뭐 사람 간보나? 듣긴 뭘 들어. 어?」
「아하~ 안 들었네.」
「아 뭔데?」
「넌 원 그래프에서 어떤 부류구나. 딱 넘어간 다음 레이다 가동하고 추문 모으고 사안 따져서 나중 혼자서 조용조용 결론내는 똑순이는 아니라는 점.」
「그럼 뭐 내가 헛똑똑이야?」
「이번엔 네가 흥분할 차례구나.」
「아 그러니까 뭘 들었냐고? 어?」
「안 들었으면 뭐 나중 들으면 되고. 아니면 내가 직접 귀뜸해줄 수도 있어. 소곤소곤. 자, 귀 이리 갖다대 봐. 뭐 해, 그 팔랑귀 어서 이리 갖다대지 않고. 듣기 싫어? 그럼 딴 데 가서 듣던가.」
「나 팔랑귀 아니야. 누가 나 팔랑귀래? 나 여우귀야. 이 꼬리 안 보여? 이거 아무한테나 흔드는 거 아니다.」
그렇게 3분 경과.
나는 모스맨을 봤다고 그녀한테 솔깃한 사실을 얘기했다. 물론 그녀는 혹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 왜냐하면 그럴싸 했으니까.
「모스맨? 무슨 찜빵맨도 아니고 모스맨? 그걸, 나보고, 믿으라고? 에이~ 장난이지? 그렇지 오빠?」
「얘가 얘가 속고만 살았나. 내가 어디 실없이 아무 얘기나 아무한테나 막 떠벌리고 발설하고 나불대는 그런 얼간이인 줄 아니? 나 찌질이 아니야. 나 머저리 아니야.」
「누가 오빠한테 바보라고 놀렸어? 왜 그렇게 설레발? 몹시, 수상한데? 아까부터 호들갑 떠는 거 역시나 그렇고. 이거 믿을 만한 정보야?」
「그럼 내가 증거도 없이 이런 얘기를 너한테 쓱 흘리겠니?」
「심증 아니고?」
「일단 증인부터 보여줄께.」
그러면서 나는 사무엘 사진을 핸드폰으로 그녀한테 보여줬다.
「와, 나 이 오빠 알아.」
「왜, 반했어? 벌써? 보자마자? 너무 이른 거 아니니? 좀 고민하는 척 시늉이라도 하지 않을래? 뭐 아무튼. 얘가 얘가 이래뵈도 꽤 잘나가. 어? 잘생겼지? 그런데 허당이야. 그리고 축구 좋아해. 하지만 개 발. 공격에서 선봉 서면 개 발, 수비 맡았다 하면 구멍. 푸하하하하. 말하자면 하는 거 말고 보는 거 좋아한다고. 아, 증인 2호 또 있다.」
그러면서 나는 제라드 사진을 신디에게 보여줬다.
「이 오빠 여자친구 있어?」
「왜, 관심있어? 잘생겼지? 난 잘생긴 친구 아니면 상대를 안 해. 그런데 왜 내가 소개를 시켜주면 하나같이 여자들이 연락을 끊는지 몰라. 아무튼 얘도 잔재주 잔기술 잔근육까지 뛰어난 걸로도 모자라 여자 말 잘 들을 거 같지? 여자의 잔소리 견디는 대회에서 1등할 거 같지? 그럼 뭘 해. 얘도 허당! 어? 허당계에서 알아주는 권위자. 사교계에서 저명한 허당. 허당 중의 상허당. 푸하하하하하하. 푸하하하하하.」
「그런데 이 오빠들이 모스맨과 뭔 관계인데.」
「관계? 상관 있지. 강력한 연관관계 성립되지 왜 아니야? 역학관계 알려줘? 자, 봐 봐. 사무엘은 모스맨의 후계자로 손꼽혔다가 퇴짜맞았어. 그리고 제라드는 모스맨의 제자들 가운데 실세로 알려졌는데 역시나 팽당했지. 그런데 그 둘의 차이점이 뭔 줄 아니? 사무엘은 에잇 못해먹겠다 그러면서 탈퇴했고, 제라드는 꾹 참고서 다시 후계자로 복권한 다음 곧바로 모스맨 전도사로 활동 중이야.」
「오빠. 뻥이지?」
「왜 증인으로 안돼? 그럼 나랑 같이 가자. 너랑 같이 갈 데가 있어.」
「가긴 어딜 가? 이 오빠 안 되겠네. 어? 오빠가 이러니까 여자가 없는 거구나. 오빠가 이러니까 아는 동생들이 다 떨어져나가지. 안 그래? 그러니까 오빠가 여자가 없는 거라고. 어? 알아?」
「여자와 이게 뭔 상관인데? 이거 왜 이래? 원래 모스맨이 후계자로 찍은 사람은 나야. 알아?」
결국 신디를 만난 성과, 요약하자면 이랬다.
나는 신디에게 모스맨 얘기를 슥 흘림. 그러나 신디는 꿈쩍도 안 함.
그건 그거고 같이 극장에서 영화를 보든 맛난 식사를 하든 해야 할 텐데. 신디는 도망감. (절레절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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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는 전부가 단지 돈이냐 사랑이냐 아니면 그 모두냐. 딱 꼬집어 이거다 장담하거나 아님 애원 소망 야망 아무것도 없거나, 그 가운데 최고는 변심. 이사. 이직. 재혼? 난봉꾼이 살림꾼으로 개심? 그야 어떻든 수다대회에서 1등감인 다변가의 변덕을 어떻게 요리할 것이냐가 문제 아닐런지. 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지고. 밀물이 있으면 썰물이 있고. 해님 지면 달님이 뜨고. 들었으면 놓고 쥐었으면 펴고. 그런데 무슨 연애를 어디서 잘못 배웠는지 쥐락펴락하랬더니 계속 당기기만 해? 져줄께 져줄께요 참다 참다 사랑의 시소에서 내 님은 내려버리시는 것. 딴 게 아니라 이별은 그렇게 떠나버리는 것. 등 돌리면 어차피 남남. 언제부터 알았다고? 볼장 다 봤는데? 누가 아쉽고, 누가 미련이 진하며, 누가 뒤끝 작렬일지는 나중 두고 보면 아는 것.
그런데 이 얘기가 왜 나왔지? 아마도 품위 유지비가 간당간당했기 때문일 것이다. 삶의 낙이 뭐랄까 조마조마하다면 이상하고. 그래 뭘 해도 재미없으니까. 색다른 관심사가 어딨나. 그래서 나는 어딘가에서 힌트를 얻어 예사롭지 않은 일거리를 찾았다. 그건 무엇일까? 그건 바로, 새로운 취미는 www.spacetelescope.org 에서 사진 구경하기. 허나 다큐멘터리처럼 오래 못감. 어디를 가고, 누구를 만나고, 어떻게 여심을 회상하고. 뭘 하든지 모스맨 연구자 제라드... 제라드 1 제라드 2 제라드 3......그 잔상은 도저히 잊혀지지 않았던 것이다. 기차처럼 쭉 이어지다가 점점 옅어져 잔상이 희미하게 마무리되는 현상. 그 불특정 패턴으로 연구 논문을 쓸 수도 없고. 그렇지만 너무 신기하고. 뚜렷이 보이는 사람은 강아지를 키우고, 약간 일렁이는 잔상이 이어지는 쪽은 고양이를 키우나? 아니면 동성애자랄지 무성애자? 뭐지? 대체 뭐지? 아님 그게 보이는 사람은 얼마 후에 일확천금을 얻게 되나? 또는 잔병을 앓게 되나. 최소한의 표본으로 그 비밀을 대충 파악했다 치고, 그렇다고 그걸로 점쟁이로 나설 수도 없는데. 그래? OK~ 일단 미뤄. 끙끙대며 끝장낼 수 없고 그래서도 안될 사안이므로, 고로 관망. 그렇다고 완전히 뒷짐은 아니고 찬찬히 생각 또 생각. 그럼 그 다음은? 뭐긴 뭐겠나. 아는 동생들 불러내서 물어보는 거지.
「내가 말이야 어디서 들었는데 쩜쩜쩜.」
「믿을 만한 소식통에 의하면, 들었어?」
「지적인 행복감을 동반하는 사랑의 감정. 그야 물론 좋다만 사랑이 왜 나쁘니? 그런데 있잖니, 너 들었니?」
「임자 없는 숙녀에 대한, 굶주린 늑대의 번득이는 눈빛. 너 그런 눈빛 뭔 줄 알지? 그 능글맞은 명태 동태 생태 눈동자랑 라섹한 눈, 구별 가능해? 그러든가 말든가. 들었어? 응? 들었어?」
자, 오늘은 누가 누가 <들었어요?>의 행운아이자 잔소리의 노예로 낙찰됐을까? 그런데 그렇게 스트레스 풀고 기 받으려다가, 있는 정력 없는 정력 아주 그냥 기 쪽쪽 빨려버리면 어떡하지? 그야 그때 가서 판단하고. 그렇게 나는 오늘도 누군가를 불러냈다.
몇 시간 경과 후. 카페. 샐리는 카페라떼 나는 에스프레소.
「너 들었니?」
「나? 오빠는 들었어?」
「따라하지 말고. 너 정말 들었어?」
「따라하는 게 아니라. 오빠는 들었냐고. 들었어?」
「듣긴 뭘 들어. 아 들었냐니까. 어? 들었어 안 들었어?」
「누가? 내가? 오빠가 먼저 판돈을 키워야 내가 받을지 콜만 할지 정할 거 아냐. 응? 왜 내 액면 이 얼굴로 부족해?」
「너랑은 말이 안 통해.」
「오빠가 꽉 막힌 남자라고 의심해보진 않고?」
「그러니까 난 뭘 좀 모르는 남자다? 그러니까 늬가 남자가 없는 거야. 어? 남자를 만나도 까탈스럽게 고르고 고르다 탐색전 펼치다 남자가 도망가기 바쁘다고. 알아? 어? 그래서 늬가 남자가 없는 거라니까.」
「무슨 내가 남자에 환장한 년인 줄 알아? 어? 뭐가 어쩌고 어째?」
「진정해 샐리. 너 그런 모습 너한테 안 어울려. 넌 고상하고, 도도하고, 세련되며, 우아하게, 뭐라고나 할까 근사한 그 어떤, 뭔가 있어 보이는, 무슨 기막힌 사연을 간직한, 그 뭐랄까,」
「언제까지 할 꺼야? 1절만 해. 응? 본론 꺼내려다 그렇게 한심하게 옆길로 새니까, 응? 그래서 오빠한테 여자가 없는 거야. 알아? 그러니까 오빠는 여자가 없는 거라고. 어? 다 나나 되니까 오빠랑 시간 보내주지, 어? 나 아니면 누가! 나 아니었어 봐라. 오빠 오늘도 일할 거잖아. 오빠 일중독 아니야? 아님 아니라고 말을 하던가. 말 못하지? 그치? 내 그럴 줄 알았다. 내가 오빠를 모르니? 응? 오빠. 응? 오빠. 들었어? 나한테만 조용히 말해 봐. 응? 오빠. 들었어? (조용조용히) 들었어?」
「듣긴 뭘 들어?」
그렇게 줄다리기 30분 경과 후.
나는 어떻게 어떻게 그간 모스맨 연구자 제라드를 만나러 간 일부터, 환시, 환청, 기타 등등을 모두 얘기해주었다.
「어머! 정말이야?」
「진짜라니까.」
「그럼 나는? 내 뒤로 그 잔상 안 보여?」
「너는... (게슴츠레 뭔가를 관찰하는 듯) 안 보여.」
「그런데 그게 보여야 좋은 거야 안 보여야 좋은 거야?」
「그건 아직 불분명해.」
「아직 불분명해?」
「응.」
「분명하게 해 줄까?」
「뭐?」
「보여야 좋은지, 안 보이면 나쁜지. 알게 해 줘?」
「아아. 왜 남자들이 버티다 버티다 견디다 견디다 너한테 나가떨어지는 줄 알겠다.」
「뭐? 이 인간이 지금 듣자 듣자 하니까...!」
「진정해 진정해.」
그 다음 수다는 생략하는 걸로.
나는 이런 소득없는 시간 낭비 당분간 줄이기로 했다.
그래서 집에서 혼자 진득하게 모스맨에 대해 검색해보기로 한 것이다.
그나저나 뭐 들었어? 어? 뭐가 어쩌고 어째? 어? 진정하자! 진정하고 자시고 지금 진정이고 나발이고... 진짜 진정.
'아냐, 봤냐'야 남녀 공히 구사하는 거고. 최근 귀에 못이 박힌, 들었어?
여자의, 들었어? = 남자의, 만져 봐!
뭐라고? 알 게 뭐야.
7
새콤달콤 쾌감에 대한 다급한 갈망. 굶주린 열망. 허나 꿈과 달리 현실은 야멸찬 '애정 없음'. 무정. 매정. 무지. 불행. 무능력? 지지리궁색. 연민. 도대체 속 시원한 사랑 그 화끈한 쾌락마는 언제 탈 수 있을까? 그런데 그 애마는 알고 봤더니, 시디신 포도? 그래서 능글맞은 복숭아가 알고 보면 인기일까 아닐까. 능금과 더불어 알게 모르게 벌레 먹은 사과에 대한 수요는 영원한 건가? 그러니까 말이야, 패배주의 권태 타성 지루함 재미없음 약속무 건수 없음 심심함을 단박에 초전박살 낼. 궁극의 대체제는 아닐지라도 아쉬운 대로 쓸 만한 대타, 그 절묘한 대안은 과연 무엇일까? 없었다. 있을 턱이 있나. 바랠 걸 바래야지.
무슨 개꿈 만도 못한 헛소리는 재미없고. 딱 집어치우고. 모든 항아리에는 제각기 맞는 뚜껑이 있다. 그거만 알면 된다. 희망찬 미래와 행복한 사랑, 그 야심 찬 기대는 그대를 결코 실망시켜드리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큰소리 뻥뻥 치며 자신있게 예언했는데 가짜로 들통나면 어떡하지? 어떡하긴 뭘 어떡해. 서쪽에서 뜬 해 동쪽으로 져물어가니, 그러므로 나는 퇴근해야지. 헤헴.
그렇게 나는 퇴근하려다 마음을 바꿨다. 나른한 오후쯤에 먹었던 간식 때문에 속도 더부룩하니 저녁식사 생각도 없기 때문에 사무실에서 인터넷 검색 조금만 더 하다 가기로 했다.
일단 지적인 척하며 말러를 듣다가 졸지도 모르니 음악은 이렇게.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 오페라 <알바의 아스카니오> K.111 서곡과 몇몇 아리아 위주로 편성.
자, 모스맨인지 무스맨인지 뭔지에 대해 알아볼까?
모스맨은 일단 1966년과 1967년에 집중적으로 나타탔고. 에 또 보자. 2003년에, 2013년에 칠레에도 등장한 적이 있네? 목격자가 한두 명이 아니란 소리군. 영화 모스맨 (2002)도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거고. 포인트 플레전트에서는 해마다 모스맨 축제가 열린다는데 거기나 가볼까? 바쁜 시절 한풀 꺾여 휴가 때 되면 생각해보지. 어차피 그전에 갈까 말까 하다가도 미루면 다 귀찮아질 테니까. 돈도 아끼고 좋지 뭐.
그 순간 사무엘이 핸드폰 앱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바로 모스맨 연구자 제라드 사진을 페이스북, 어디 어디에서 본 걸 알려준 것이다. 그 사진을 가만 들여다보니 제라드가 입고 있는 티셔츠에 써진 글씨가. 12 X 12 = 144. 그런데 제라드는 거꾸로맨이니까 144를 뒤로 읽으면 441? 이 자식 또 어디서 모범생들 시험보는 데 쪼르륵 동참한다면서 막 자기도 따라가서 시험봤구만. 꼭 보면 학교 다닐 때 공부해야지 뒤늦게 말이야, 어? 그래도 그 사진으로 실버 브릿지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게 됐다.
그런데 그와 동시에 옛 친구 믹에게 메시지가 왔다. 앱을 보니 어디로 놀러가서 고기 구워먹는 사진. 가만 있자 믹이 나와 단짝이었는데. 걔가 군입대해서 배치받은 부대가 11사단. 당시 면회갔던 해가 95년? 96년? 또 조금 있다가 친구 폴한테도 메시지가 왔다. 스키장에서 폼잡고 찍은 사진. 가만 있어 봐, 폴이 시골 대학교에서 자기가 축구단 창단했다던 때가 대충 2000년 전후쯤일 텐데. 그 축구단 이름이 11. 그럼 11 X 11 = 121? 그게 어쨌다고. 몰라. 몰라 몰라. 모른다고. 어? 됐고. 아니 잠깐만. 내 출신부대 표식은 그대로지만 부대번호는 바뀌기 전 당시에 사단은 7371 대대는 401. 모스맨 영화에서 36번째인가 37번째 어쩌고저쩌고 그랬던 거 같은데. 내 티셔츠에 숫자 써진 게 736... 몰라. 머리 아퍼. 그렇게 난 뭔가를 찾다 포기한 채 퇴근했다.
8
보슬비도 계속 맞으면 젖는다. 축축히! 잔뻔치가 그래서 중요한 것. 그런데 더 중요한 것? 진공청소기와 커피포트 원리. 잔소리는 듣다 듣다 나가떨어지기 쉽고, 잔재주에 여심과 팔랑귀는 솔깃하다는 것. 여자의 마음? 우리한테 혹할 수밖에 없음. 비온 뒤에 땅이 굳을 것이냐 버섯이 자랄 것이냐. 딱 보면 듣는 유형 읽는 유형, 구분되며 자연스럽게 간파됨. 척하면 척. (멈칫)...! 그래?
아아 아직 부족하다. 이 정도로 허세대회에서 입상, 허풍대회에서 인기상? 어림도 없다. 어림 반푼어치도 없다. 차라리 개 풀 뜯어 먹는 공상이 백번 낫지. 그럼. 그러니까 카페 수다대회에만 가도 기 빨리기 십상이지. 안 그러게 생겼나. 안 듣고, 우기기 좋아하고, 나서기 대장에다, 말하기 좋아하는 그분들. 남자는 <그러니까 내가 저분께 질문하지 말랬잖아>라는 부류. 여자는 <넌 왜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하고 그래?> 분과. 걸려들면 우리는 찍소리도 못함. 어? (절레절레) 맥이 빠지는 정도가 아니라 정력 바닥남. 웬만하면 포커페이스 되는데 잘못 걸리면 표정 썩음. 그러게 립서비스 좀 털어서 어떻게 좀 어떻게 걔 좀 자빠트려볼 궁리 하면서 잔꾀 부리다, 지갑만 털리는 일. 있었나? 어떻게 좀 해 볼려다가 주량이 주량이, 어? 각 나오고 견적 보이면 도망가는 게 상책. 무슨 여자가... 말 말자. 그런데 전적 얘기가 왜 또 갑자기 나왔지? 그걸 내가 어떻게 아나. 모르는 게 뭐 자랑은 아니지만 즐거운 상상 아찔한 흑심 달콤한 몽상과야 다음에 또 조우하면 그만이고. 쾌감과의 재회는 꿈만 꿔야 하니 말이다.
하여 나는 오늘 이브와 향긋한 커피를 마시기로 했다.
9
우리는 만났다. 어떻게 어쩌고저쩌고 상황설명은 다 건너뛰고.
「오빠. 커피 끊었잖아?」
「나? 아 커피 끊었지. 오늘만 마실 거야. 평소에는 안 마셔. 일절. 입에도 안 댈 꺼야. 마시고 싶지 않아. 안 댕겨. 차라리 콜라라면 모를까. 왜냐, 난 커피랑 안 맞는 거 같걸랑. 커피는 말이지 그 뭐랄까 약간 쌀쌀한 날씨에 해변가 모래사장 고운 그 멋진 정경에서. 바람이 약간 애매한데 홀랑 벗고서 일광욕하는 선그라스맨이 비키니 입은 애인 수건으로 살작 덮어주는 장면. 그처럼 몸에 열이 엄청 많아야지 커피가 몸에 잘 맞는 거 같아. 나 같은 약골은 딱 식기 전 먹을 동안만 좋고. 그 뒤로는 겔겔하고. 꼭 내가 봤을 때 그런 것 뿐만 아니라, 혹시 지루...와도 관계있을지 모르고 말이지. 마지막 말은 못 들은 걸로 해 줘. 허허. 헤헤헤.
아니 잠깐. 그게 아니라 혹시...! 설마, 늙어서? 난 늙지 않았어. 영원한 젊음. 맨발의 청춘. 어? 우리는 야행성 맹수과. 어? 우리가 뭐 9시에 체력 방전되서 10시 11시만 되면 졸리고 그러는 줄 알아? 우린 달이 떠 있으면 무조건 눈빛이 초롱초롱해. 알아? 우리는 커피를 안 마시면 아무것도 못해. 커피가 무슨 장난인 줄 알아? 지금 장난해? 커피는 예술이야. 어? 야, 커피 사발로 주라 그래. 커피가 아까워서 이러는 거야 뭐야. 큼직한 대접에다 따라줘도 시원찮을 판에, 어? 이건 뭐 코에 붙이라는 거야 볼에 칠하라는 거야. 컵이 이건 뭐 개미가 마시라는 거야 뭐야? 컵이 뭐 이렇게 작아? 어? 이거 대체 뭐하자는 거야? 어? 내가 커피 얼마나 좋아하는 줄 알긴 알어? 어? (몸짓)
얘 좀 보소. 커피광을 띄엄띄엄 아시나. 응? 우리는 커피 없으면 못 산다니까요. 아시겠시유? 이 사람아, 허영심 여신들도 다 우리를 피해가. 어? 아시겠시유 모르시겠시유? 네? 괜히 남녀가 오래 만나면 말수 줄고, 부부끼리 5미터 떨어지는 줄 아시나. 나는 이 뼛속까지 커피 매니아란 말이오. 그저 심심하면 커피 찾으시는 애호가들랑 우리랑 비교를 말어 이 양반아. 그분들 취향은 말 그대로 취미에 가깝기 때문에 뼈 근처도 아니고 그냥 애무도 아니고 뭣도 아니야. 어? 어디다 명함을 내밀어 내밀긴? 내겐 커피가 곧 삶이란 말이오 낭자. 숙녀여, 들으셨소? 이 내 몸에 새빨간 피 대신 향기로운 커피가 흐른다는 소문을. 진짜야. 진짜라고. 내가 언제 거짓말 하는 거 봤어? 못 믿겠어? 내기 할까? 그래? 에잇, 하지 말자. 내가 언니 돈 따서 뭐하게. 이겨도 얻는 거 없고. 지면 져서 창피하고. 물론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말이야. 내가 원래는 말이야, 사귀는 여자들이 종종 그랬어. 그냥 왕왕 그랬던 정도가 아니라, 그 얘기 어디 한두 번 듣나? 내 피부에서 애기 냄새난다고. 그런데 어느 날 바뀌더라니까. 어떻게? 내 피부에서 커피 냄새가 난데. 걔네 향수보다 내 피부향이 더 그윽하다는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하오. 안 그렇소? 아, 맞다! 너 나 커피 수필집 낸 거 모르지? 모를 꺼야. 굳이 알 필요는 없는데 알아도 뭐 말리지는 않겠다 그거지. 왜 검색해보게? 하지 마. 하지 말라고. 절판됐으니까. 너무 구식이라서, 새롭게 또 한 7권 정도 쓰는 중이야. 나오면 제일 먼저 너한테 선물해줄께. (윙크) 오빠 알지?
그런데 누가 이렇게 내 속을 박박 긁는 거지? 너니? 그럴 리가 없는데. 너 혹시 친구들이랑 내 얘기 했니? 그럴 턱이 없잖아. 내가 너네들 사랑의 순위에서 뭐 상위권도 아니고. 12위 근처에도 못 가잖니. 12위가 다 뭐야 2부 리그면 그 나마 낫겠네. 그런데 대체 누구야, 어? 아 나 이거 정말 귀 간지러워. 내가 지들 똘만이나 되는 줄 알아? 몇십 년 한 이불 덮고 산 마누라나 된다면 또 몰라. 어? 한 7미터 떨어져서 걷고, 모임 가서도 멀찍이 근처에서 떨어져 앉는 여편네나 된다면 또 모른다고. 안 그래? 웬만치 트집을 말아야 말을 안 하지. 너가 생각해도 그렇지? 그렇다니까. 뭐 안 그렇다고? 안 그렇긴 뭐가 안 그래. 늬가 그러니까 남자가 없는 거야. 알아? 내가 몇 번을 말하니. 어? 남자? 사랑?
오빠가 정리해줄께. 딱 정리해줄께. 잘 들어. 늑대는 말이야 안개를 좋아해. 어? 우리 같은 양치기 스타일은 주제를 뭘로 정하든 말은 말은 청산유수라니까 그러시네. 응? 방금 오빠가 뭐랬니, 늑대는 안개를 좋아한다. 자, 늑대가 안개를 왜 좋아할까? 그건 중요하지 않아. 여자의 '들었어요'를 남자가 어디 좋아하니? 그거거든. 남자의 '(내 근육) 만져봐'를, 여자가 듣고 알고 보면 피식 웃잖니. 좋아서? 웃겨서! 그처럼 늑대가 안개를 그냥 좋아하겠니. 다 그 다음이 있기 때문이지. 안 그래? 느그적느그적 행군하듯이 근방을 수색하다가 늑대가 안개 속에서 막 낭자처럼 아리따운 양을 딱 때마침 만났다고 생각해보오 그대여. 레이디 이브! 응? 그럼 늑대는 웃겠지. 흐흐흐흐흐. 허허허. 그런데 그게 아니라, 웬 자칼? 하이에나? 곰? 반갑지 않거든. 걔네들은 가는 길이 달라요. 오빠가 또 다큐멘터리에 일가견이 있다는 거, 알랑가 모르겠는데. 막 표범이 치타를 잡아먹고 맹수들끼리 싸우고. 그런 장면은 드물어. 물론 드물기 때문에 관찰자들한테 좋은 촬영감일 테고. 즉 육식동물은 어디까지나 초식동물을 좋아한다고. 육식동물들끼리는 첫째 롱테일, 둘째 정말 정말 굶어죽을 듯이 배고플 때, 셋째 영역처럼 서로서로 침해하지 않는 어떤 불문율. 딱 그 3가지를 제외하고서는 대체로 소 닭 보듯 닭 소 보듯이야. 너 알아두는 게 좋을 거야. 오빠 말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지 말라고. 늑대는 아무리 길들여도 숲만 바라본다 너?! 그런데 커피 얘기 잘 하다가 왜 갑자기 또 늑대론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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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넌 왜 웃어? 오빠 말이 우스워? 웃겨? 코메디? 아직 시작도 안 했어. 이거 왜 이래! 어? 그러고 보니 말이야, 늬가 그동안 웃긴 남자를 안 만나봤구나. 훈남, 미남, 성우, 재력가, 순정남, 진지남, 수다파, 품격남, 고전파, 미래파, 초현실파, 인상파, 낭만파, 야수파, 기분파...등등은 만났을지 몰라도. 얘가 얘가 우리 같은 만담가는 또 처음인가 보네. 뻥뻥~ 터지는 유머? 얼굴 근육 실룩실룩 따로놀 정도로 배꼽 빠지는 일? 오빠 만나면 날이면 날마다 배꼽 빠지도록 웃겨 줄께. 응? 무슨 유명 코메디언이니 개그맨이니 걔네들 우리한테 어림도 없어. 알아? 오빠가 너 웃음 빵빵 터지게 만들어줄께. 어? 내가~ 어? 내가~ 어? 잠깐만. 가만 있어 봐. 그런데 너 그 진홍색 립스틱, 나쁘지 않아. 스타킹도... 좋은 선택이야. (엄지 척)! 아무튼 그 립스틱 몇 호니? 스타킹 커피색 3호 막 그처럼 립스틱은 그런 거 없나? 뭐 차차 알아가면 그만이고. 아무튼 너 커피 마시고 싶으면 오빠한테 말해. 커피 그거 얼마나 한다고. 어? 커피가 최고로 비싸봐야, 웬만한 소비재는 물론 가격과 비례하긴 하나. 경제가 이렇게 발전했는데 품질이 기본이 된지는 옛날. 그래서 커피 애호가들이 우리 같은 커피광들한테 안 된다는 거지. 우리는, 어? 땀을 흘려도 그 땀에서조차 커피 냄새가 나는 사람들이라고. 알아? 내가 진짜 이런 얘기까지는 안 할려고 했는데 말이야, 정말 커피 얘기라면 무정차로 3박 4일 내내 잠도 안 자고 말할 수 있어. 어? 우리가 뭐 못해서 안 하는 줄 아니? 응? 그리고 저 쿵쾅거리는 2박자 음악. 주인장 어디 갔어? 음악 바꿔주라 그래. 뭐가 좋을까? (딱) 그래, 모차르트의 미사 C단조 K.427 그런 걸로 말이야.
정신 사나우면 커피 맛이고 뭐가 배가 산으로 가. 블라인드 테스트와 판매량, 비례하니? 아니거든. 커피? 나한테 물어보셔. 커피? 오빠랑 마시자. 응? 그게 좋겠다. 허허허. 우리 이브라면 말이야, 이 오빠가, 어? 평생 먹을 커피 다 사줄께. 너 오빠 알지? 오빠 그렇게 쪼잔한 아니다 너. 네 친구들 가운데 커피 좋아하는 애들 있으면, 언제라도 오빠 불러. 너든 네 친구든 누구든 커페만 좋아한다면 몽땅. 오빠가 다 살께. 20명 30명? 다 데려와. 안 그래도 아는 동생들 떨어져나간 지도 오래됐는데, 아 농담이고. 아니. 그게 아니라. 오빠는 딸랑이랑 깔깔이만 챙기는 그런 얍삽 소심한 남자가 아니야. 어? 다 너가 착해서. 어? 우리 이브 심성이 곱기 때문에. 어? 무슨 오빠가 번호표 받고 줄서는 심복과 오다가다 이합집산하기 바쁜 중간 보스랑만 쿵짝 딱딱 맞는 그 막 드라마 속 악역인 줄 아니? 아니야. 여자들한테 호감 사고, 애정에 둘러쌓여 흠모에 선물에 짝사랑에 입이 귀에 걸리는 일? 우리랑 머나먼 얘기. 관심 없어. 인기 그거 다 거품일 뿐이야. 그와 별개로. 희망찬 미래 오빠랑 너랑 각자 어떤 인생을 살던. 내가 너 뿐만 아니라 아는 동생들 커피라면 얼마든지 사줄께. 어? 다, 언제나, 얼마든지, 누구나 사줄께. 어디서건 말이야. 응? 이 형이 다 꼬셔준다고.
(멈칫)
뭐? 아, 마지막 말은 촌닭들 깐족깐족 으쌰으쌰할 때 얘기니까 신경쓰지 말도록. 깐죽의 달인들 누군지 알잖니. 허허. 흐흠. 허험. 흐흐. 딴 건 몰라도 너 이건 꼭 알아둬. 다 나나 되니까... 나 생색내는 거 싫어해. (인상 팍) 누가 나 생색내는 거 좋아한다 그러든? 어? 아니야. 너야? 너가 그랬어? 아니지? 그럴 리 없어. 그래서는 안되니까. 너처럼 고운 요정이 어찌! 너도 그렇겠지만 오빤 남 얘기하는 거 결코 좋아하지 않아. 딱 질색. 질색 팔색. 어? 음. 그렇지. 그렇고 말고. 누가 나 보고 막 애교에 녹는다며 무슨 말 같지도 않은 헛소문 퍼트린 거? 그거 다 뻥이야. 뻥. 다 뻥. 개 뻥. 그런 거 몽땅 헛소문이라고. 믿지 마. 아무도 믿지 마. 절대 뒤돌아보지 마. 좌우지간 이건 알아두시게. 오빠라는 말만 들으면 미쳐버리는 상남자도 다 두 가지로 나뉜다는 걸 말이야.
첫째, 나처럼 커피사주기 자체가 좋은 사람.
둘째, 다 반사이자 거울 이치로 돌아올 그 뭔가를 은근히 바라는 남자.
아무튼 말이야. 이거 하나는 분명하지. 이기주의자 기회주의자의 표상인 이 오빠가 그 얼마나 이타적 천사인가, 그걸 내 입으로 어떻게 말하나. 그러든 아니든 자랑할 거 많고 귀찮아서도 우린 안 해. 못 해. 하면 안돼. 싫다고. 어? 뭐하러! 우리가 이 세상에서 최고로 좋아하는 일이 대체 뭔데. 친한 동생들 커피 사주기거든. 실상 난 그만큼 커피를 좋아하고. 우리는 커피라면 아주 그냥 미쳐버려. 어? 식사? 안 먹어도 돼. 커피만 마실 수 있다면. 어? 잠? 안자. 나 원래 잠 거의 없어. 시간낭비야 그거. 왜 자. 뭐하러 자. 단, 커피만 마실 수 있다면. 어? 이 바닥 좁은 거 너도 잘 알 거야. 왜 모르겠니. 아는 동생들 곧 너네 친구들한테 다 물어봐. 아는 오빠들 가운데 커피 사주기로 누가 최고냐고. 누가 역대급 1등이냐고. 어? 나는 몰라. 어? 나는 모른다고. 그 찌질한 여심 스틸러가 대체 누군지 난 모른단 말이야. 알 게 뭐야? 몰라. 커피 그까이 꺼 대체 얼마나 한다고. 내 입으로 어떻게 말해! 아 글쎄 오빠 별명이 대체 몇 개인 줄 알기는 아니? 가만 있자. 자, 커피머신. 환상머신. 디머나이저. 더미네이터. 또 뭐였더라? 뭐더라? 내 입으론 말 못해. 안돼. 해선 안되니까.
흐흠. 너도 알다시피 말이야, 너도 알다시피? 모를 수 있어. 어쨌거나 저쨌거나. 응? 이래뵈도 오빠가 남자들 세계에서 또 덕망이 두터워. 오빠 의리를 알아주니까, 오빠의 남자 후배들이... 그런데 뭔 얘기를 하려고 했더라. 뭔 재미난 얘기가 있었는데 딱 까먹네. 중요한 순간에 말이야. 아무튼, 오빠 연봉 절반이라도 감수할께. 어? 그럼 됐지? 아니다. 그러지 말고 아예 커피 전문점 뭐 카페 하나 열까? 아님 커피 회사를 차릴까. 그러지 말고 일단 집에 커피나무부터 심는 걸로 하세나. 허허.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오더라도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자고 도니제티가 말하지 않았나. 허허허. 난 커피를 너무 좋아해서 탈이라니까. 내가 이처럼 말이 많아진 이유도 다 알고 보면 커피 때문이야. 들뜨거든. 괜히 좋아. 너도 알긴 알 테지만 커피 좋아하는 사람치고 나쁜 사람이 없어요. 정말 꼭 그렇단 말이 아니라, 말이 그렇다는 거지. 허허허. 허나 우리가 누구야. 딱 관상 보면 답 나오거든. 레이디 이브? 법 없어도 살 수야 있는데, 남자 30명이 너한테만 줄 서면 너도 너딴엔 미안하잖니. 허허허.
근데 넌 아까부터 왜 계속 웃기만 하니? 너 나 좋아하니? 오빠야 좋다만, 난 걱정이다. 내가 널 실망시켜드리면 어떡할까 라는 점 말이야. 허허허. 오빠 좋아하지 마라. 오빠가 다 생각이 있어. 어? 뭐 그러든 어쩌든 나 말 줄이기 실천중인데 오늘 시작부터 말 너무 많이 했는데. 일단 커피 얘기 그만하고.」
11
(나 혼자 속으로 재빠른 두뇌 회전)
잠깐만. 잠깐. 잠깐. 좀 전에 뭐라 그랬지? 그까이 꺼? 까짓껏? 아아, 어언 20년 전쯤이구나. 택시운전수 하기 전 런닝머신 팔 때. 그때 다시 고딩 친구들을 하나둘 만나기 시작하면서부터 인생이 꼬였어. 아주 그냥 꼬여도 제대로 꼬였지. 그 헬스마트 근처 사거리 술집 '묻지 마'. 술집 이름이 하필, 묻지 마. 묻지 마? 묻지 말긴 뭘 묻지 마! 괜히 삼류대학교 졸업도 안 했는데 신용카드 2개 만들어서 허덕이던 때. JCB랑 VISA 그 2개 신용카드로 할부 긁기 시작하면서 허영심 채울 수 있다 값으면 그만이다 그럼 된다면서 막 허덕이기를 1년 가까이. 딱 그때. 그 묻지 마 술집. 비싼 술 먹던 날 딱 친구가 계산하려고 했는데, 그날 내가 미쳤지. 미쳐도 단단이 미쳤어. 어? 그날 하필 술값도 엄청 많이 나왔어. 원래 좀 아저씨들 어쩌고저쩌고 비싼 술값인데. 그렇게 딱 친구가 계산하려고 지갑 열고 어쩌고 있는데, 저~ 멀리서 내가 도움닫기를 하더니, 제대로 날라차기로 녀석을 넘어트려버리고. 어디서 본 건 있어가지고. 아니 그걸 왜 내가 계산하냐고. 한두 푼도 아니었는데. 영화를 너무 많이 본 게 탈이라면 탈이지. 그때만 아니었으면... 좀 덜 꼬였으려나. 그 뒤로 고등학교 후배들 어쩌다 보면 하는 말,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아.
「형. 저도 날라차기 맞고 싶어요.」
뭐? 이런 젠장! 무슨 내가 무술감독이야 뭐야? 어?
'나는 나는'을 인생 뒤늦게 깨우쳤다면. 난 정말 '나도 나도'에 뼈아픈 기억이 있다는 거. (절레절레)
그런데 어찌된 일인 것일까? 시간은 어떡하다 정지되어버렸던 것이다.
나 혼자 속으로 재빠른 두뇌 회전 중. 그걸 그 짧은 시간에 어떻게 모두. 시간이 정지되었으니까 다 가능한 일. 이어서 말하자면 이렇다.
얘도 촉 좋기로 어디서 썩 빠지지 않을 텐데. 지가 당대 최고의 뭐 내놓으라 하는 영심이도 아니고. 지도 다 속이 있고 이상향이라는 게 없지 않을 텐데. 에이~ 나한테 무슨 억한 심정 품어서 말이지. 어? 일부러 빈말에 홀딱 넘어가서 <에라~ 모르겠다. 그냥 미친 척하자. 아니. 차라리 잘됐다!> 막 그러면서 진짜로 1주일에 막 안친하든 친하든 막 이 사람 저 사람 막 막 그냥 막 한 200명 데려오면 어떡하지? 아니 정말로! 그럼 (몸짓)... 수지타산 맞는 게 문제가 아니라 빚더미에 않게 생겼잖아? 에이~ 설마! 지도 다 말귀 알아듣고 귀동냥으로 얻은 풍월이 얼만데. 그동안 습득한 배경지식과 겪은 세상사가 어딘데. 막말로 내가 지금껏 얘 커피 사준 게 대채 몇 잔인데. 그 돈 모았으면... 아니지 아니지. 나도 그러고 싶었고, 얘도 다 날 괜찮은 오빠로 각별히 아껴. 그럼 된 거야. 어? 그까이 꺼 커피 그거 얼마나 한다고. 어?
아무리 그래도 말이야, 일부러 쨰 지가 막 막캥이나 된다는 듯이 나한테 진짜로 막 미친 척 지 지인부터 친구까지 1주일에 한 200명 데려오면 어떡하지? 그럼 난 파산 직전에 피자집에서 10대들이랑 피자를 나르든, 햄버거집에서 유니폼 입고 콜라 원액을 나르든. 인생 새출발 해야 하잖아? 이 나이에? 이 나이? 이 나이가 뭐 어때서! 어? 진정하고. 어쨌든 난 큰소리 뻥뻥 쳤는데. 그때 가서 꽁지 내릴 수도 없고. 이처럼 신나게 떵떵거렸는데 쪽팔리게 내뺄 수도 없고 말이지. 에이~ 아무리 그런다고 지도 다 사람 속내 간파하고 의중 떠볼 줄 아는 어른인데. 어? 지도 다 사심 떠보고 흑심 꿰뚫어볼 줄 알 텐데. 어디 일부러 내 미친 허세, 허세대회 아차상감 허세, (개)허세에 딸랑딸랑 응원한다면서 또 듣고 싶다고 내게 뽀뽀라도 할 거야 어쩔 거야 지가. 어? 그럼 난 파산인데. 이거 정말 이민이라도 생각해봐야 하나. 낯뜨거워서 증말 참, 했던 말이 있는데 생깔 수도 없고.
아니 근데 왜 말이 없어? 어? 지가 언제부터 그렇게 조용한 숙녀였다고. 어? 대체 언제부터? 어? 사람 식겁하게 말이지, 지금 나랑 기싸움하자는 거야 뭐야? 그거였어? 그래? 내가 질 줄 알아? 아아 지고 싶다. 참패. 완패. 필패. 석패. 대패. 어? 왜 지가 질려고 말을 안 하냐고 안 하긴, 어? 아 나 거 참 나 이거 원 증말 못 해먹겠네. 봐 봐 벌써 등에 식은땀 쭉나잖아. 허언증, 적당히 진정됐어. 수전증? 거의 나아가. 망상부터 시작해서 헛것이 보이지를 않나, 다 치료됐는데~ 얘가 얘가 사람 또 미치게 만드네. 말해. 어? 말하라고. 왜 말 안 해? 얘 설마...!
아닐 꺼야. 아니기를! 얘 진짜로 미친 척 들이대지는 않겠지? 에잇~ 지도 숙년대. 사람 무안하게... 그렇지만 혹시... 만약 잘못되면 이거 나 큰 실수하는 건데. 아니기를. 제발 이거 현실이 아니라 어떤 허접 쓰레기가 쓰는 소설이기를. 부디, 간절히 바란다. 애타게 기도드린단 말이다.
12
뭐 적당히 분위기 전환됐다 치고.
「그건 그거고. 너 페넬로페가 누군지 알아?」
「페넬로페? 그거 무슨 초코릿 선전에 나오는 이름 아닌가? 로페스. 머머스키. 언제 TV로 축구 보는데 덴마크팀이던가 어디던가 3분의 2가 킴이던가 뭐던가. 뭐 스미스처럼 흔한 이름 아니야?」
「넌 숙녀가 되가지고 페넬로페도 모르면 어떡하니? 페넬로페는 말이야, 오빠가 알려줄께. 어? 이런 일반상식 다 오빠나 되니까 너한테 알려주는 거야. 나중에 멋진 남자 만나면 너가 먼저 걜 떠봐. 오빠 페넬로페 아냐고. 아 나 이거 증말,」
「오빠. 그만 해라. 어서 말 안 해? 어? 오빠가 그러니까 여자가 없는 거야.」
「또 또 또. 알았어. 말할게. 하면 될 거 아냐. 흐흠. 페넬로페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 등장하는 아타카의 왕 오디세우스의 아내 이름이야. 오디세우스가 오래 집을 떠나 있는 동안 정절을 지키고 끊임없이 몰려드는 구혼자들을 재치 있게 따돌렸던 여인. 그래서 광고든 어디든 가끔 페넬로페 페넬로페 하는 거지. 그런데 요즘 애들은 말이야, 어? 나 때는 말이야, 어?」
「그래. 기왕 이렇게 된 거 오빠가 꼰대대회 나간 셈 치고 일단 들어나 보자. 어?」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라.」
「즉각 말해 기회 줄 때. 어?」
「알았어. 하긴 꼭 요즘도 아니지. 시간과 관계 없는 거니까. 유행도 아니고 세태도 아니고. 단지 사람에 따라 연애관 다르고, 드라마 취향 다르고, 운명이 얄미운 것일 수도. 곧 무슨 말이냐면 말이야 진도, 어? 진도! 왜 가수들 배우들 방송 관계자들 기타 등등. 그분들 인물관계도. 즉 자동차 기업들처럼 페라리가 테슬라 주식 1.3%. 어디 얼마 어디 얼마 어디 얼마. 또 폭스바겐도 어디 얼마 어디 얼마... 아주 그냥 거미줄이거든. 그와 똑같이 1번째 남자는 누구, 2번째는 뻔트, 3번은 드디어 멀쩡한 놈, 4번은 풋사랑, 5번은 단지 진한 사랑, 6번은 간만 봤던 그놈, 7번은 공개연애...... 그러니까 그 줄거리 다 아니까. UFC처럼 전적남 전적녀 매번 마주치고, 일 때문에 친하고 어쩌고. 그럴 자신이 있으면 그년, 아니 그분과의 연애 진행하는 거고. 나중 감당할 자신 없으면 일반인 만나는 거고. 그런데 시작부터 양다리? 세다리? 문어다리? 뿐만 아니라 반대로 시작하는 거. 그거 원래 남자와 여자, 즉 시트콤 멤버들 친구들 지인들과 남녀가 공통으로 아는 숫자가 0일 때 진행하는 게 플레이보이의 불문율이다 그 말이지. 서로 인맥 교집합 완전히 0일 때 말이야. 몰래 만나는 게 딴 게 아니거든. 몰래한 사랑이 크게 2가지인데, 단둘이 몰래한 사랑인데 단둘만 아는 사이냐, 아니면 넘어가고.
그런데 여자 세계 불문율도 있는데, 그런 규칙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사례. 얼굴 팔리는 게 딴 게 아니거든. 괜히 그분들이 손 잡기 건너 뛰는 게 아닌데. 진한 사랑 먼저하고, 순서가 바껴서 썸타고 사귀고 장기 연애까지 가고. 그야 뭐 백년해로 한다면야 좋은데, 그게 어디 쉬울런지. 그야 그분들 인생이고. 우린 우리 식이란 게 있고.」
「아 나 이거 정말, 이 오빠 또 시작했다.」
「」
「오빠 나한테 모스맨 이야기 해준다고 하지 않았어?」
「뭐? 너 들었어?」
「들었냐고?」
「어. 들었니?」
「오빤 들었냐?」
「목이 매인다. 어? 울컥 한다고.」
「좌우지간 오빠 나 알지? 나 조신한 여자야. 나 그런 여자 아니라고. 어? 나 같은 일편단심 순애보 스타일 만나는 게 어디 쉬운 줄 알아? 그런데 들었어?」
「그래 들었다. 됐니? 넌 들었어?」
「그래 들었어. 됐냐? 그런데 뭘 들었냐는 얘긴데?」
「몰라. 그걸 어떻게 알아. 누가? 내가? 아님 네가? 요즘 유행이 그래. 들었어? 그냥 인사말이 그거야. 상점 이름도 그거고. 하다 하다 상표까지 나왔어. 사람 이름이라고 왜 없겠니.」
「그런데 내가 오빠를 오늘 왜 만난 거지? 겨우 이런 얘기 들으려고? 고작? 어디서 감히 수작이야? 어? 어디서 감히 개수작! 어?」
「그러지 마. 진정해. 참으라고. 어? 너 눈에서 레이저 나오겠다.」
「오빠. 말 나온 김에 하던 얘기나 계속 하자. 하다 말면 재미없잖아? 안 그래? 오빠. 들었어? 어? 들었어?」
「들었어? 들었어?」
「따라하지 말고. 들었어? 들었어?」
「」
「오빠. 이제 따라하다 지친 거야? 그럼 딴 거. 오빠. 오빠도 그래? 응? 오빠도 그래?」
「이런~ 젠장!」
「오빠.」
「」
「오빠. 아 오빠. 그냥 가면 어떡해? 응? 오빠?」
「」
「오빠. 다음에 만나. 전화해. 아니 내가 전화할께. 오빠. 나 남자 언제 소개시켜줄 거야? 응?」
「」
「오빠. 진짜 가? 야. 멸치. 돼지. 개. 소. 말. 생쥐. 두더쥐. 오빠. 다음에 같이 영화 보자 오빠. 밥도 먹게. 차도 마실까? 오빠. 오빠!」
13
거울은 금테를 둘러도 역시 거울. 금... (절레절레)! 장미에 가시가 있으면 어떠랴. 오히려 없으면 삼류요 모르면 바보. 그런데 탐스럽지만 맛없는 열매? 설익은 열매 아무리 문질러도 익은 열매 안된다. 정답은 기다림. 아니 어~ 아 글쎄 그러니까 언제까지 기다리냐고요! 아 증말 거 참 나 미치겠구만 그래.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라 인생이 재미없다는 거. 아니 어쩌다 이렇게 심심한 삶 무료한 일상에 난 물팍 꿇고 좌절하는 거지? 왜? 어째서? 아니 뭐 때문에? 자, 가만 있자. 보자.
CPU: 3500X
메인보드: ASROCK AB350M PRO4
그래픽카드: RX580
램: ESSENCORE KLEVV DDR4 8G PC4-21300 CL19
파워: ANTEC NE650C 80PLUS
SSD: WD250
인문교양학적으로 인지심리학이든 뭐든 많은 게 과학적으로 밝혀졌다. CPU? 업그레이드 가능은 한데 천성은 안 바뀜. 다시 말해 가능만 하다뿐 어렵다 그거지. 메인보드? 괜히 가족마, 부부마, 친구마, 재능마, 취미마, 적성마...에 따라 성공 가능성이 확연히 나뉘는 게 아님. 부모 잘만난 유전자발이 최고 중의 최고인데. 아니 그러니까 무엇이 문제냐고? 뭐긴 뭐겠냐 컴퓨터 케이스지! (절레절레) 사는 낙이 어디 나만 이렇겠나. 그럼 설마 벌써 갱년기가 서둘러 찾아온 건가? 아닐 거야. 그럴 리 없어. 에잇 설마. 그럼 어떻게 아쉬운 대로 잔꾀를 부리자면 뭐냐 그 그게 그러니까, 내 CPU가 AMD 거라서 문젠가? 이를 테면 인텔 최고급 사양, 즉 천동설 사고체계로 이번 참에 확 그냥 바꿔 말어? 어? 그래픽 카드 곧 있는 돈 없는 돈 싹 다 끌어모아서 번쩍번쩍 명품으로 휘감아? 최소한 말끔한 수트발만? 귀찮아. 품위 유지비조차 허덕이는데 수트발은 무슨.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말이야, 어? 초청객이 백이라도 자리가 있으나 불청객은 하나라도 자리가 없다는데. 갈 데는 많은데 오란 데가 없고. 이건 뭐냐고! 진짜로 시트콤 멤버들 다 해체되고 아는 동생들 다 떨어져나가고. 낙동강 오리알 신세. 이건 아니다. 이건 아니라고. 어?
따라서 나는 결단을 내렸다. 칼럼니스트로서의 밥값과 문인의 평타가 문제가 아니라 모스맨 연구자 제라드를 엿본 환시 때문에 나는 도무지 일을 할 수 없었으니까. 그래서 난 오늘은 릴리와 만나기로 했다. 물론 아는 동생들이 거의 다 지들이 날 먼저 찾았지 내가 먼저 연락한 일은, 있나? 없는지 몰라도 일단 넘어가자.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릴리. 너 왜 호박이 제 발로 굴러가는 줄 아니?」
「어쩜 오빠의 구변이 꽤 흥미로울 것 같은 주제인데. 아마도 내 기대가 실망 아니기를 바래.」
「'몰라 왠데?'라고 받으면 되지. 넌 꼭 드라마 주인공처럼 말하니? 너 그거 어디서 배웠니? 넌 영화를 너무 많이 봤어 얘. 응? 그래서 늬가 남자가 없는 거야. 어쨌든, 안 들었어?」
「안 들었냐고?」
「응. 왜 호박이 제 발로 굴러가는지를.」
「오빠. 나 읽는 부류야. 듣는 영심이 스타일 아니라고. 어? 나 안 들었어. 그럼 오빤 들었어? 아, 읽었을 수도 있구나. 아님 생각해냈든지. 응?」
「그러니까 안 들었단 말이지?」
「」
「알았어 알았어. 말할게. 말 하면 될 거 아니야. 왜 그 고운 눈에 불을 켜고 그래? 너도 눈에서 레이저 나오니? 너도? 너도 그래?」
「오빠도 그래? 오빠도? 들었어? 뭐 들었어? 아 증말 안 들었다니까 그러네.」
「알았어 알았어. 안 그래도 말 하려고 했네 했어. 응? 넌 왜 사람을 자꾸 보채고 그래. 응? 숙녀가 진득하니 기다릴 줄도 알아야지. 응? 그러니까, 말할게. 그래. 말하자.」
「뭐 해 말하지 않고? 오빠.」 그러면서 그녀는 냉수가 담긴 컵을 들어 나에게 쏟으려는 시늉을 보인다.
「어헛! 진정해 숙녀. 차분하시오 낭자. 왜 그러시오 사람 무안하게. 응? 혹시 그대도... 동자승 민머리에 덥썩 맨손바닥을 가져다 댔던 기억이 있소? 그럼 맨손이지 무슨 장갑 끼고 가져다댈 일 있나. 어쨌든, 그러오? 혹시 당신께서도 첫경험과 첫키스와 첫사랑이... 일치하지 않는...」
결국 릴리는 물컵의 물을 나에게 끼얹었다. 물론 물이 가득 담겨 있지 않았기에 난 몹시 서운할 뿐이었고. 그 역시나 웃음을 꾹 참는 연기력 둘 다 출중하니까 가능한 일일 테고.
......
......
......
한 호흡에 쭉 화염방사기 그 정열적인 화염을 내뿜는 긴 대사.
말 그대로 한꺼번에 가니까 그건 칼럼으로 따로 떼어냈음.
바로 그렇게 <칼럼: 호박론>을 쉬지도 않고 무정차로 끝까지 갔음.
......
......
......
나는 대화로 <칼럼: 호박론>을 무멈춤으로 연설했다. 그러다 목 시었다. 정력 바닥났다. 기 몽땅 짜냈다.
그랬더니? 요컨대, 릴리는 내 옆자리로 와서 내게 뽀뽀를 해주었다.
물론 볼뽀뽀! 살짝 고개를 돌릴 걸 그랬나?
그 아찔한 찰나. 시간은 정지되었다.
아직까지 붕붕 떠다니는 내 기분으로 판단하건대,
지금도 느려졌던 시간은 제 본분을 게을리하는 게 분명하고.
좌우지간 내 허언증? 치유됐다. 내 환시? 치료됐다.
그 다음 절정감? 아직이다. 아직이라고. 이런 젠장.
14
나는 사무실에서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음악을 들었다.
J. S. Bach / 칸타타 BWV 51
그러면서 생각했다. 만에 하나 모스맨 연구자 제라드의 집에서 내가 본 환시가 진짜라면 그땐 어떡하지 라는 점을.
그래? 정말로 어떡한담. 어떡하긴 뭘 어떡해. 제라드한테 따져야지. 설마 녀석이 날 쏙 빼놓고 뭐 레너드를 후계자로 점찍을 리야 있겠어?
그렇지만 말이야 이건 아무리 생각해봐도 녀석을 만나야 결단을 내던 끝장을 보던 마무리가 될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는 곧장 모스맨 연구자 제라드를 찾아가려고 했다.
바로 그처럼 공상에서 결심 후 행동에 곧장 옮기려던 찰나 사무엘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친구 뭐 해? 들었어?」
「들었냐니? 넌 인사말이 왜 하필 '들었어?'로 시작하니?」
「못 들었구나.」
「뭘 못 들어?」
「나와라. 너네 사무실 앞 카페야. 나오면 아마 깜짝 놀랄 걸?」
10분 후.
카페에 가니 사무엘과 모스맨 연구자 제라드가 그 자리에 있었다.
「아니 너는...!」
「친구. 오랫만이야. 어떻게 지냈나? 진짜로 궁금해서 물어보는 말 아니란 거 알지? 자넨 어떤 빈말을 준비했나. 벗이여, 어서 말씀해보시게.」
「이렇게 깜짝 놀랐는데 내가 무슨 생각이 있겠어.」
「사무엘과 또 다른 몇몇 친구들한테 얘기 들었어. 네가 요즘 상태가 많이 안 좋다는 얘기 말이야.」
「누가 그래? 나 상태 좋아. 아 누구야 그 녀석?」
「진정해. 그렇게 흥분하면 안 좋던 상태 더 안 좋아지면 어떡하려고 그러나 친구. 안 그래?」
「나 상태 좋다니까 그러네. 어?」
「그나저나 들었나?」
「뭘 들어?」
「아 네가 아니구나. 착각했네. 사무엘. 이제 너가 대화해. 나 힘빠졌어.」
「넌 애가 정력이 그모냥이라서 어따 쓰니? 그래서 모스맨 연구자라고 자부할 수 있겠어?」
「나 때려쳤어.」
「뭐?」
그 자리에서 내가 봤던 환시 얘기를 했는데, 제라드는 통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일관했다.
하긴 내가 들어도 그게 말이 되나. 아무리 진짜라고 할지라도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난 진짜지만 남들이 듣기에) 공상을 얘기하면 그걸 누가 믿겠냔 말이다.
「자네 실망할지 모르지만 내가 이 연구에 그렇게 썩 오래 매달린 거도 아니고, 나도 이제 지쳤어. 연구하는 데까지 하긴 했는데 성과도 그저 그렇고. 진행도 더디고. 그런데 있잖나. 자네 혹시... 혹시...」
「혹시 뭐?」
「그게 그러니까 말이지. 음 사냥꾼은 사냥하는 꿈 꾼다지 않나...」
「왜 말을 하다 말어, 사람 궁금해지게? 어? 뭔 말을 하고 싶은 건데? 속 시원하게 좀 말해 봐. 어? 나 안 들었으니까 지금 당장 말하라고. 어?」
「자네 있잖나. 음. 있지? 음. 있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어. 뭐 그럴 수 있어. 그런데 있잖나, 자네 누구한테 혹시 쫓기나?」
「쫓기냐고? 내가 왜 쫓겨! 누가 날 쫓는데? 걔 뭐하는 놈인데?」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아 그러니까 쫓겨, 안 쫓겨?」
「날 쫓는 쪽이 뭐 쫓는다고 동네방네 소문내면서 쫓을 일 있겠나? 날 쫓는 자가 만약 있다면! 그럼 우리가 널 쫓을께 당신은 도망가소. 임자. 아시겠소? 그처럼 뭐 걔랑 나랑 사랑싸움 할 일 있니? 그래?」
「아니. 쫓는다 안 쫓는다. 기다 아니다. 예 아니요. 딱 한마디면 되는데 너 참 말 길다. 너 혹시 아침에 코도 길어지니?」
「아침에 내 코가... 내 코가 왜 길어져야 하는데. 내가 무슨 피노키오니?」
「설마, 지금 코끼리 팬티 입었어?」
「그건 또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야?」
「허허허. 농담이고. 자네가 너무 긴장한 듯 해서 말이야.」
「뭐야? 좀 전에 하던 말은? 뭐 물어볼려다 말았잖아?」
「내가?」
「아 나 증말 이거 진짜 뭐하는 거야? 이거 왜 이래? 어? 너네 진짜 이러기야? 어?」
「워 워 워. 저번에 너네 셋이서 우리집에 왔다는 거 들었어.」
「그래? 들었어? 그래서?」
「그래서긴 뭐가 그래서야. 그냥 들었다 그거지.」
「뭐야. 그게 다야?」
「설마 겨우 그 얘기만 하려고 여기까지 온 걸 아니실 테고. 이제 그만 숨긴 패 드러내자. 어? 베팅 하지 않아도 되니까, 그만 패 까자. 어?」
「콜. 내가 듣고 싶었던 게 그거야. 바로, 그거.」
지금까지 제라드와 내가 주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마침 사무엘이 끼어든다.
15
사무엘은 말했다.
「우리가 널 모르니? 너 또 그랬지?」
「내가 뭘?」
「뻔하지.
첫째, 너 혼자 모스맨 연구자 제라드를 독대하러 간다.
둘째, 제라드네 동네 인근에서 길을 잃는다. 어쩌다 갑자기 이명이 들리고, 두통이 일더니, 핑~하다 쓰러진다.
셋째, 깨어나보니 제라드의 집이다. 그런데 집주인 제라드는 없고 웬 미모의 여인이 섹시한 실크 원피스 차림으로 널 지켜보고 있다.
넷째, 그렇게 그녀와 둘이서 기다리는데 제라드는 포인트 프레전트 떠났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다섯째, 그녀와 둘이서 포인트 프레전트까지 갔어. 그런데 제라드는 중간에 마음이 바껴서 2007년 캐나다 몬트리올주의 주택화재 당시 목격됐다던 현장으로 갔다.
여섯째, 그녀와 둘이서 캐나다 몬트리올까지 갔어. 그런데 제라드는 중간에 마음이 또 바껴서 1978년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사고 현장 근처로 갔다.
일곱째, 그녀와 넌 짜증나서 제라드 접선을 포기한다. 그래서 제라드 집으로 돌아온다. 그녀는 네게 고백한다. 물론 가면을 벗으면서. 알고 봤더니 그녀는 제라드였다.
여덟째, 그걸 보는 순간 넌 정신을 잃고 쓰러진다. 나중 깨어났는데 너네 동네 근처인 거지.
아홉째, 넌 또 시트콤 찍는 일상으로 돌아와서 아는 동생들과 즐겁게 지내다가. 딱 누군가가 네 간을 만지는 관통 마술을 너에게 선보이자. 너는 예전에 말했던 그 환시 현상이 사라짐을 경험한다. 그러다 물론 어떤 계기로 병이 도진다. 허언증까지?
아홉째 반, 뭐 아홉째 반? 그만 하자. 그게 좋겠다.
너 또 소설 쓰려고 했지? 아니. 아예 진짜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제라드집에 혼자 가려고 했지? 우리가 널 모르니!」
「너 나에 대해 많이 연구했구나. 이왕 하려면 아리따운 숙녀를 연구할 것이지, 왜 하필 나를? 그야 물론 심심해져일 수도 있고, 굳이 꼭 연구가 필요할 가치가 없이 대충 뭐 늬 말발이면 뭐가 문제겠니.」
「아네. 알면 다행이고.」
「그럼 내가 모를 줄 알았냐? 나도 눈치 있어. 내가 뭐 남자의 육감 그런 거 없을 줄 아니? 어? 나도 직감 엄청나게 발달했어 인마. 이거 왜 이래? 잠깐. 이거 왜 이래? 그거 어디서 많이 듣던 얘긴데.」
「시끄럽고. 있잖아. 제라드가 그 일 그만 둔데. 모스맨 연구 말이야. 그래도 성과도 톡톡했어. 캐낸 결과가 아예 없진 않았다고. 또 있잖아 레너드가 지금 어디 갔는 줄 아니?」
「어디 갔는데?」
「두 가지 일을 하려고. 오늘은 소설'나방인간의 예언'의 작가인 존 A. 킬을 만나러. 그리고 내일은 그 뭐야. 2002년 작 마크 펠링톤 감독으로 영화 모스맨, 거기 주연으로 출연한 리처드 기어를 만날 거래.」
「아 그 영화? 봤긴 봤나? 그 영화 주연 혹시 해리슨 포드 아니었니?」
「아니야. 리차드 기어야. 늬가 영화를 너무 많이 봤구나. 착각일 수 있어. 이해해.」
「그런가?」
「응. 좌우지간 나 혼자였으면 그랬겠지. 뭐라고? 뻥이야! 라고 말이야. 그렇지만 너 보다시피 오늘 난 혼자가 아니잖니. 여기 이렇게 모스맨 연구의 권위자이신 제라드가 떡하니 버티고 계신데. 내가 설마 거짓말이라도 하겠니? 너가 속아넘어가서 내가 얻을 게 뭔데. 안 그래 친구?」
아 자식들이... 이걸 믿어야 돼 말아야 돼! 순간 잔꾀는 바닥났으나 잔머리 엄청 굴리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튼 중요한 소식 알렸으니 우린 갈께.」
「벌써 가?」
「그럼. 남자들끼리 뭐하게? 으쌰으쌰 노는 거? 이젠 그만 철들 때도 됐잖아 친구.」
「만나서 반가웠어 딕. 갈께. 아 맞다. 이거.」
그러면서 제라드는 웬 USB를 내게 건넸다.
「어차피 난 그거 필요없어.」
난 그때부터 비상한 호기심이 날 들었다 놨다 했기 때문에, 내 청력은 더 이상 작동할 수 없었다. 따라서 난 걔네들이 몇 마디 인사말을 건네며 가는데 이상한 오르간 소리밖에 들을 수 없었다.
16
나는 사무실로 돌아왔다.
일단 맨정신으로는 어려울 거 같으니. 저번에 사놓은 초록색 술을 따라놓고. 그건 싸구려라서 보기만 하고.
꽤 괜찮은 포도주를 따라셔 홀짝거리기 시작했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 오페라 <후궁탈출> 2막 - “아가씨의 마음을 얻으려면 상냥하고 친절해야지”
USB! Universal Serial Bus. UFO도 아니고 ABS도 아니고 USB.
도대체 이 안에 뭐가 들어있길래...!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단 말이야.
혹시 제라드가 그동안 만났던 여자들의 신상정보? 꼬신 방법? 에잇~ 아닐 꺼야. 그럴 리가 있나.
아니면 뭐 사무엘이 쓴 일기? 그러니까 굶주린 하이에나 풀 뜯어먹는 소리? 밑도 끝도 없이 사무엘이 일기를 왜 써. 나라면 또 모를까.
그렇게 난 뜬금없이 손에 쥐게 된 USB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왜 아니겠나.
(초식동물처럼) 풀을 먹는다면 늑대를 왜 안 기를 텐가. 늑대가 야성이 장난 아니니까 인간은 개와 친구가 된 거지.
이 USB는 그처럼 뭐가 튀어나올 줄 모르거든.
거짓말 조금 보태자면 그게 말이다, 난 그냥. 아아. 황홀감에 후끈 달아올라 여지없이 환상에 흠뻑 젖어버릴 신비한 경험. 꿈도 못 꾸고 있는 처지...까지는 아니고.
뻥이다. 그래. 뻥. 그냥 눈 딱 감고 보자. 그래. 그게 좋겠다.
그렇게 나는 USB를 열었다.
캬~!
와우~!
뜨아~ 와!
그 안에는 무슨 야한 사진과 야한 동영상이 가득 들어있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거기엔 웬 엑셀 파일이 있었다. 작성자 누구__작성 날짜__업데이트 날짜___기타 등등. 파일 정보는 그랬다. 아마도 제라드 말이 맞는 거 같았다.
그렇게 엑셀 파일을 열어봤더니... 와...!
1966년 11월 12일 웨스트버지니아 주 렌데닌의 묘지에서 모스맨을 목격한 사람들이 전부 기록되어 있었다.
A 이름
B 생년월일
C 태어난 시각? 빈칸도 꽤 있는 걸 모른 사람이 많거나 잊었거나일 테고. 또 혹시 고인이 되었으면,
D 사망일 (물론 대부분 빈칸)
E 주소
F 직업
G............... 그처럼 군인 출신은 입대일과 제대일. 행정기관에 기록된 호적사항. 여권내용. 기타 정보기관에서 조사할 수 있는 전부. 사설 탐정이 캐낼 수 있는 모든 것.
1978년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참사 직전, 1951년 시카고대지진, 1933년 중국 댐붕괴, 1978년 독일 탄광사고, 2007년 캐나다 몬트리올주의 주택화재까지도 목격자 모두.
체르노빌 사고만 해도 날짜 1986년 4월 26일, 시간 오전 1시 24분 (UTC+3)...
그렇게 엑셀 파일의 가로는 ABCDEFG...... 세로는 12345678910......!
물론 앞서 제라드의 말처럼 아무래도 많이 힘들었을 테니 중간에 포기했으므로 빈칸이 많았다.
특히, 2003년에도 어딘가, 2013년에 칠레. 1945년 8월 6일과 9일. 2001년 9월 11일 오전 8:46분... 현대사 큰 사건들 사이의 숫자 관계도 다른 엑셀 파일에 세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암호학의 기초, 중급, 고급, 최고급 외에 일반인이 쉽게 살필 수 있는 것. 바로,
ABCDEFGHIJKLMN......
12345678910......
EF =56년을 뜻하고 어쩌고저쩌고 별의별 내용들이 다 들어있었다.
제라드가 무슨 천문학적 부자도 아니고. 지도 먹고살아야 하니까 아무래도 포기할 수밖에 없는 규모인 것만 같았다.
그렇다고 이게 무슨 다음 타자 다음 타자... 막 전달하는 게임도 놀이도 아니고. 왜 이 물건을 내게... 이상했다.
그리고 내가 제라드랑 그다지 많이 친하진 않았는데, 이렇게 다시 만난 점도 그렇고.
저번에 사무엘이랑 레너드가 갑자기 제라드 얘기를 꺼내길래 약간 이상하긴 했는데.
뜬금없이 막 분위기 조성을 하질 않나, 안 하던 뻠쁘질을 하질 않나. 걔네들도 이상하고.
그렇다고 내가 이 일을 이어받아서? 아니다. 이건 내 일이 아니다.
느낌 세했으니까. 왠지 모르게 음침하고. 어딘가 켕기고 찔리고 뒷맛이 개운치 않고.
공포. 독기. 광기. 똘끼. 살기. 불운. 조짐. 불길. 그 배후에 있는 풍운아의 정체가 대체 무엇인지.
혹시, 광마? 나방? 나방인간? 나방인간의 예언? 계시? 암시? 묵시?
지들이 무슨 노스트라다무스의 방계 후손이야?
나방인간? 사랑은 나비인데... 가만 있자. 자, 사랑이 나방? 이건 느낌 쎄하다 그거지.
그래서 나는 깔끔하게 구석지에 USB를 방치했다. 그냥 잊었던 것이다.
간단하네. 깔끔하군. 좋다고. 됐어. 이 쉬운 걸 왜 몰랐을까. 허허.
17
희망찬 내일로 전진. 닥치고 일하기? 우리가 무슨 탱크도 아니고 말이야. 꼬마들도 이젠 세발자전거 보면 짜증낼지도 모르는데. 비효율적으로 아무 데나 갔다 돌아올 생각을 하면... (절레절레)! 그렇게 까먹은 돈은 얼마고 정력은 또 어떻고. 그러니까 열정적인 행진이 뭐가 나쁘겠냐마는, 아니 그러니까 그 사춘기 시절에 뭐하러 탱크 게임 서적을 훔쳤냔 말이지. 여심을 훔쳐도 모자른 마당에 말이야.
여심? 여자의 마음 뻔해. 자, 한번 그녀들의 마음을 알아볼까? 9시 방향, 꺼져. 10시 방향 아가씨가 뭘 생각하는지 훤히 보인다 보여. 짧네. 닥쳐! 11시? 나가! 12시는 자, 보자. 또 반했네. 또 반했어. 아조 그냥 툭하면 홀려. 다음으로. 12시 반, 개자식. 12시 40분, 어딜 넘보녜. 1시? 목소리 달콤한 남자들만 환영한다 그거지. 2시, 거울 보고 알아서 주제 파악 좀 해주면 안되냐 그 생각 중이라고. 3시, 똥파리만 꼬인다고 짜증내시며 친구랑 통화하시는구만. 4시 비켜 5시 저리 가 6시 이라 와!
여자랑 대화하면 재밌기야 재밌지만, 남자의 인생에서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는 일이란 바로 그거. 다 줄 거 주고 받을 거 받기 위한 연기일 뿐. 아니 그런가? 초반에야 다 서로서로 맞춰주고 동의하며 호들깝 떨기 바쁘지. 시간 쫌만 지나봐, 어? 사랑과 행복과 쾌감과 이상까지. 하늘, 바람, 별과 멜로드라마. 다 뻥. 몽땅 뻥. 허세 대 허영심의 대결일 뿐. 지 할 말만 하고 전화 뚝 끊는다는 둥, 지가 세상 최고인지 안다는 둥. 지 밖에 모른다거나 남 생각 요만큼도 안 한다거나. 우리는, 사랑에, 취미 없다. 그럼 뭐에 관심이 있을까? OK~ 새로움! 그런데 무엇에 관한? 라며 투덜거리고 있을 때.
레너드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친구 뭐 해? 너 혹시 끊었던 커피 마시고 있니?」
「어떻게 알았어?」
「진짜야?」
「응.」
「너 일하기 싫지?」
「넌 뭐 학교 다닐 때 공부 재밌었냐?」
「그건 그렇고. 얘기 들었지?」
「또, 들었어요? 너도 '들었어요'남이구나. 난 전염시키지 마라 제발.」
「아 농담하지 말고. 지금 어렵게 섭외하신 분이 옆에 계서서 그래. 들었어?」
「무엇을? 누구한테? 너 또 뻥치는 거 아니야?」
「모르는 척하지 말고. 들었지? 사무엘이 저번에 너 만났다던데. 제라드랑 같이.」
「뻥 아닌가 보네. 그럼 다행이고.」
「들은 게 맞네. 사무엘이 말했다 했으니까 걔 말마따나 들었네.」
「들었냐는 물음 빼고 말하면 안 되니? 제발 좀!」
「들었냐가 뭐 어때서! 귀가 있는데 어떻게 안 듣니. 어? 보는 눈이 있는데 어떻게 망사 스타킹에 반하지, 뭐 망사? 망사가 여기서 왜 나와. 내 말은 그게 아니라.」
「봤니?」
「뭘 봐? 스타킹? 내가 스타킹을 왜 봐야 하는 걸까? 안 보면 안 될까? 뭐야. 말 꼬이게 바람 넣지 말고. 됐고. 너네 사무실 앞이야. 안 그래도 너 퇴근할 시간 됐자나. 나오게 친구. 보면 아마 깜짝 놀랄 사람이 있을 테니까.」
「깜짝 놀랄 사람?」
「어. 깜짝 놀랄 사람. 너 깜짝 놀라서 바지에 오줌 싸지나 마라.」
「여자야?」
「(멈짓) 어...어.」
「말 더듬는 거 보니까 남자구나.」
「그래도 완전 깜짝맨이라니까. 혹시, 사무엘이 살짝 귀뜸해주지 않든?」
「무슨 브래드 피트라도 데려왔니? 데려오려면 주가 최상가치는 세끈 매끈 후끈, 어? 내가 흠뻑 젖을 수 있는, 어? 내가~ 어? 내가~ 어? 됐다.」
18
약 16분 후 카페에서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왜냐하면 레너드가 데려온 인물은 다름 아니라 리차드 기어였기 때문이다.
「인사해 서로. 이쪽은 제 친구 딕, 이쪽은 아시다시피 리차드 기어.」
「안녕하세요. 전 리차드 기어라고 합니다. 만나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뻥치지 마요. 댁이 리차드 기어면 나는, 나는, 어? 나는, 캘빈 클라인이요.」
「네? 지금 입고 계신 팬티가 캘빈 클라인이라구요? 유머가 남다르신 분이군요. 저 그처럼 약간 경박한 듯 하지만 한 3시간 후에 터지는 유머 좋아합니다. 연마되고 발동걸리면 그게 바로 고급스러운 농담이니까요. 허허허.」
「야 너 왜 그래? 내가 어렵게 만든 자리야. 이 녀석이, 너 왜 그래? 너 상태가 많이 안 좋아 보여. 너 어디 아프니? 열 있어?」
「넌 더 안 좋아 보여. 알아? 야 레너드. 내가 너 뒷조사한 거 알아 몰라?」
「너 내 뒷조사 했니?」
「아니. 뻥이야.」
「하여튼 증말...」
「야.」
「뭐?」
「내가 늬 속 모를 줄 아니? 미스터 리차드? 아, 미스터 기어. 기어? 초면에 실례입니다만, 거 대역을 부를 거면 적어도 B++급을 불러야지. 어? 야 레너드. 늬가 무슨 C++ 코딩 연습하는 프로그래머냐?」
「나 대학 때 컴퓨터 프로그래밍 전공한 거 늬가 어떻게 알아?」
「말 돌리지 말고. 너 또 그럴려고 그러지?
저번 USB는 복사본 일부였다.
그래서 연구를 하려면 자금이 더 필요하다.
너한테만 긴밀히 알려주는 건데 다른데 절대 발설하면 안된다.
그건 무엇이냐, 바로 모스맨 연구를 완성해서 펀딩 조성하고 드라마 연작 들어간다.
이미 드라마 연작 시나리오 거의 완성됐고 캐스팅 단계 들어갔다.
따라서 펀딩 조성 중.
잔말말고 딱 3장만 투자해라?」
「너 그동안 어려웠니? 너 원래 안 그랬잖아. 이 친구 때타기 전에 내가 챙겼어야 하는데. 너 능글맞은 거 알아 몰라?」
「설마, 내 말이 진짜니?」
「진짜겠냐. 약간은 비슷할 수도 있는데. 그냥 오랫만에 만나서 회포나 풀자 그거지.」
「남자끼리? 여자는?」
「너 아직도 여자 좋아하냐?」
「그럼 넌 뭐 남자 좋아하냐?」
「친구분들 심각한 대화 중에 끼어들어 송구스럽습니다만 전 이만 일어나야겠군요. 근처 극장식 카바레부터 바 개업식까지 갈 데가 많습니다. 이런 말씀 드려도 될런지 모르겠습니다만 이래뵈도 저 A급입니다. 허허허. 그럼 이만.」
그렇게 리차드 기어인지 기아인지 그 아저씨는 도망갔다.
「넌 저분 대체 왜 불렀어?」
「내가 불렀냐?」
「늬가 안 불렀으면?」
「지가 그냥 따라온 거야.」
「그래? 저 사람 자리에 없다고 책임 떠넘긴 거 아니고?」
「아니라니까.」
「」
「야. 나도 갈께. 널 만나도 통 즐겁지가 않다. 내가 널 왜 만났는지 모르겠다. 늬 꺼벙한 표정을 보니 내 인생이 더 허접해진 기분이라고. 알아? 안 그래도 원래 재미없었는데 널 보니까 더 재미없어졌어. 알아? 어? 늬가 그러니까 안되는 거야. 어? 늬가 그러니까 안된다고.」
「내가 아니라, 늬가~ 그러니까 안되는 거야. 어? 그러니까 늬가 여자가 없는 거라고.」
「친구. 나 여자친구 생겼어. 지금 여자친구 만나러 갈 꺼야. 따라서 이제 더 이상 너한테 '늬가 그러니까 여자가 없는 거야'라는 말 듣지 않게 됐다는 점. 굳이~ 축하받고 싶지는 않다. 허허. 아주 그냥 징글징글했다. 어? 지겹지도 않은지 나도 모르게 똑같이 따라하고. (절레절레). 야. 나 갈께. 다음에 보자. 아니. 한동안 나 볼 생각 접어라. 나 보기 힘들꺼야. 왜냐, 연애하느라 바쁘거든. 푸하하하하하하하.」
「저 자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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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는 양의 꽁무늬를 쫓는다, 는 인류 역사상 사랑의 가장 오랜 공식이자 공리. 그러나 남녀 공히 상대의 본심과 환상을 알고 나면 여지없이 꿈은 깨지기 마련. 그래서 간질간질 빈말과 딸랑딸랑 칭찬, 새콤달콤 아양 아부 교태 내숭은 부득불 불가피한 것. 그렇긴 하나 나이 들면 새벽에 눈이 번쩍 뜨이고 늙으면 만사가 귀찮아지는 게 순서. 때문에 못 해본 일과 달콤한 연애에 대한 탐구를 내일로 미룬다는 것은 기가 막힐 노릇. 시간이 없다. 인생은 딱 1번. 2번은 없다. 사랑도 없다. 뭐?
좌우지간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른다. 봄은 때 되면 돌아온다. 짝사랑복도 끝이 없다. 그렇긴 하다만 즐거운 미래에 대한 예감 좋은 전망은 내내 불투명하고. 또 그렇다고 생각 없이 한량처럼 마냥 새콤달콤한 쾌락마를 탐닉할 수도 없고. 그의 인생에서 지루함은 맹공을 펼치고 따분함은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아주 그냥 섬뜩할 정도, 어? 요란한 탐욕도 바닥났지 품위 챙길 판돈도 간당간당하지. 행운은 아름다운 숙녀의 아찔한 고갯짓처럼 깐깐하게 굴지, 뭐 하나 되는 일이 없었다. 빠른 생애사 전략의 달콤한 셈법. 지나고 보니 영웅담도 뭣도 없고. 소싯적 정식 연애가 어딨어. 행운아의 여복에 적잖은 타격을 논하기도 초라한 현실만이 끙끙 앓는 시늉. 대책 없음. 이 무슨 낙심한 풍운아 신세냐고.
잘 생각해보니 레너드와 난 원래 친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사무엘도 마찬가지. 모스맨 연구자 제라드도 그렇고. 그 일이 있었던 뒤로 환시는 모두 치유됐다. 그러던 중 어쩌다 거울을 볼 때, 내가 아니라 타인이 거울을 보고 있는데 그 거울 속의 타인 모습과 내 눈빛이 마주쳤을 때. 그런 일을 겪고 나면 한동안 저번 그 환시는 재발되곤 했다. 그러다 다시 정상으로 돌아오고. 내 인생은 역시나 더럽게 심심했던 것이다. 곧 차별화가 안되는 은행권 주식처럼 맹숭맹숭 심심한 남자. 주가는 내내 평행선일 텐데, 언제 대체 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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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물론 거기서 끝이면 재미없지. 한가지 더. 먹고사는 게 뭔지. 일만 하며 사느라 재미없는 건 둘째치고, 만나는 사람이 뻔했는데. 환상문학잡지 편집장 마라와 여성환상 1.5 대표 사라. 그런데 언젠가 마라와 대화하던 중 난 정말 이상한 말을 듣게 됐다.
「사라는 왜 요즘 얼굴 보기가 힘드니?」
「너 아직 못 들었니? 하긴 사라가 너한테 말하지 말라면서 드라마 관계자부터 심리치료센터장, 정신의학계, 요가학원 등 안 다녀본 데가 없을 정도였으니 말 다 한 거지.」
「걘 잡지나 잘 만들면 될 것이시 왜 자꾸 딴짓을 한데니? 걔 남자한테만 한눈 파는 게 아니구나. 걘 계획이 다 있구나. 어?」
「왜긴 왜겠어? 그게 다 너 때문이지.」
「나 때문이라고? 그게 왜 나 때문인데?」
「너가 걔네 사무실 들려서 자꾸 직원들한테 찝쩍거리고. 사라가 너한테 마음 있는 거 넌 알면서, 걜 실제로는 밀어내고 겉으로는 늬가 사랑의 약자인 것처럼 껄떡대고. 그게 뭐니 남자가. 하여간에 누가 쪼잔하다고 안 할까 봐서... 쯧쯧 잘한다 잘해.」
「그건 너가 잘 모르는 일이나 본대 다 우리끼리 좋게 돼 가고 있어. 내가 걔한테 남자 한두 명 소개시켜준 줄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라.」
「그럼 뭔가 문젠데?」
「사라가 널 볼 때마다 환시가 생긴데. 네 뒤로 너랑 똑같은 도플갱어가 겹쳐서 보인다나 뭐라나.」
물론 마라를 만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가까운 측근에게 들어서 알게 됐다.
마라도 사라와 똑같은 증상으로 한동안 휴직했다는 걸.
그럼 정말 그게 나 때문일까? 나는 실의에 빠졌으나.
또 모르지 사라가 어디서 여자말 역번역기를 개발하는지도.
그래도 꽤나 걸리는 일이란 걸 부정할 순 없고.
도대체 왜 그랬는지 더더욱 의뭉스럽긴 마찬가지고.
따라서 그는 최근 폭식에 빠졌다. 왜냐, 왜일까! 왜냐하면, 이유는 다음 문단으로 떼서 가는 걸로.
21
왜인고 하니 사나운 개도 개밥 앞에서는 온순해진다고 일단 배가 부르면 잡념이 없어지니까. 일단 먹고 봐야지. 다 먹고살자고 허는 일. 아닌 게 아니라 식욕이 충족되냐 아니냐에 따라 관계되는 일이 알고 보면 상당히 많다. 식욕, 스트레스와 큰 관계. 뭐니 뭐니 해도 먹는 게 만족스러운면 나머지 웬만한 만족-불만족 사항들, 욕구불만 쾌감만족들 거의 1~2단계는 이득. 가령 식욕이 평범에서 극도로 만족이라면, 식욕만 변화를 주었을 때 수치는 이렇지 않을까?
─────────────────────────
식욕 불만 불만없음 만족 대만족
놀기 D-- D++ C++ B++
일하기
건강
열정
의욕
사랑
미소긍정
친절자상
짜증지수
기분전환
문화생활
연애생활
─────────────────────────
식욕 해소만 변화를 주어도 나머지 전부 영향 받음.
그래서 미리미리 신경쓰고, 면밀한 관찰, 노련한 베팅이 필요. 그게 비즈니스면 접대&로비스트&승부사. 즉 초반에 통 크게 1번 만찬 대접하면 끝날 걸, 어쩌다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 막게 됨. 말하자면 뻔트부터 홈런까지. 틀을 경양식으로 짤 것인가, 아니면 속된 말로 초반에 비싼 술로 조지고 일찍 끝낼 것인가. 어영부영 폼잡고 풀코스로 갈려다가 죽도 밥도 안됨. 풋사랑도 마찬가지. 그리고 그걸 스스로에게 알뜰&세심하면 책략가&자기관리. 친한 사이면 티격태격. 나도 뽐낼 줄 안다, 누군 뭐 짠돌이고 싶어서 이러는 줄 아냐는 둥. 마초들이 미리미리 칭찬해주지 않으니까 생색내는 것. 어디 여자만 관심받는 것 좋아하겠나. 조련사로 사랑을 듬뿍 배풀어줘도 모자를 마당에 주인공병도 다 초반에나 신부들러리 서주는 것. 허세에 헛바람 넣기냐, 허영심을 들었다 놓기냐. 주도권 밀고 당기기. 초장에 잡으려다가 역공에 어퍼치기 당하느니 개에게는 개뼉따귀를. 송아지는 쓰다듬어주는 사람의 손을 핥는다. 개한테 개뼉따귀 던져줘 봐, 꼬리 살랑살랑 흔들고 아주 그냥 미쳐버리지! 아무튼, 그래서 채찍과 당근 작전을 반대로 하면 안됨. 어? 이러니 이러니 거꾸로맨과 숙녀는 사랑의 시소 잘 타다가 말을 섞으면 섞을수록... 샛길로 빠지지 말고. 하던 얘기인 배불리 먹기. 배 터지게 폭식하기로 돌아가서.
또 음주 역시나 식욕이 만족되느냐, 그럭저럭 입에 풀칠만 하냐에 따라 나뉜다. 평소 금주 절주 잘하는 사람들이야 예외라 치고. 개인적 이유와 원인 거론하지 않고, 습관적으로 알콜 의존 부류. 음주 욕구를 참는 수많은 방법이 있겠으나 딱 2가지.
A. 당일 저녁 폭식: 흡족 이상. 풍족 초과. 배 터지게!
B. 내일 아침 특식: 아침식사를 만족스럽게 억을 준비.
술 끊고 싶은 사람들이야 각자 찾고 끊고 각자 책이라도 몇 권 쓰실 수 있을 텐데. 끊는 방법 원 그래프에서 피자 조각 가운데 하나. 저녁 식사를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어쩌고. 그럼 밤에 별로 술생각이 없어진다는 것. 물론 말 그대로 원 그래프에서 사람들이 먹고 남긴 피자 겨우 1조각일 뿐이지만. 부페든 뭐든 맛난 사진 보면서 오늘 저거 먹기로 딱 찍는 일 역시나 꼬박꼬박 빼먹지 않고. 말 그대로 먹고 싶은 거 배 터지도록 먹으면. 여러 명이서 피자 한두 판 금새 거덜내겠으나. 그러다 입 짧은 숙녀들이 남긴 피자 1조각, 그 정도는 충분히 되는 방법이라던가 아니라던가. 그래도 최소한 그 1조각에 해당하는 정말 괜찮은 방법이든 말든, 살 잘 찌는 사람이야 몰라도 먹고 싶은 거 맘껏 먹는 게 정말 어딘데. 식욕이 만족되냐가 또 거기까지 촉수를 뻗치는데.
그렇긴 한데 그 방법이 더없이 딱 맞아떨어지는 약발 받는 부류. 없지 않다. 정말로. 고급스럽지 않다 뿐이지 먹힌다는 게 어딘데. 그래도 뭐랄까 좀 비겁한 방법이라고나 할까. 왜냐하면 적지 않은 사람들이 고단하랄지 권태롭다랄지, 괴로운 또는 재미없는 삶에서 시소 저울의 양쪽에 값싸게 도파민 얻는 방법에서 자기의 취미 말고 달리 양질의 재미랄지 색다른 쾌락, 그게 형편이 뭐하니까, 고로 주신 디오니소스의 도움을 받는 거 아니겠나. 그렇지만 것도 다 팔자 편한 얘기. 당장 품위 유지비도 빠듯한데 버는 돈 식비에다 절반을 쓰기엔 재산 증식이고 뭐고 정말로 먹고살기 빠듯해져서 큰일이란 말이다. 뭐 아무튼.
환자가 우유를 먹고 싶어 하는데 의사의 처방도 우유. 뺨 맞고 싶은데 누군가 철썩 부드럽게 연기하듯 싸대기를 쳐주었다? 그런데 무슨 여체의 신비와 여심의 부드러운 홍조도 아니고 그 말이 여기서 왜 나와. 무슨 어쩌고저쩌고 하면 잡생각이 없어진다는 웬 뚱딴지 같은 절반 조작된 글을 읽었던 기억이 쓱 급부상해서 기분 상해버리게 말이야. 그러나 저러나 시간이나 때우자는 식으로 무턱대고 방황하던 몽정기 시절, 지금은 아니다. 아닌 게 아닌가? 그러든가 말든가. 걸리면 좋고 아니면 말고식으로 막 그냥 떡밥 뿌리면서 방탕마를 타냐 마냐 단짝과 떠들던 그 옛날이 그 언제냐 그거라고. 뒤돌아봐야 아무 소용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과 즉 행동해야 하는 인생. 그래서 NB, 아아, 내가 결정한 전술이 무엇인고 하니 뭐였더라? 줄을 늘리고 줄이고 감고 묶어서 휙휙~ 돌려서 쓱 던져 애마의 목에 거느냐. 아니면 잔머리 굴려 치즈에 실을 달았는데 먹이에 미끼가 숨겨진 줄도 모른 채 거기에 혹해서 끌려가는 생쥐가 되느냐. 바로 그게 문제였던 것이다.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