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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 ─ 163

from 소설 2020. 1. 30. 18:24

    1

    해피엔딩에 대한 기발한 상상력. 자유로운 소재. 흥미로운 줄거리. 낭만적인 발단과 신기한 전개. 마치 예언가임과 동시에 신비주의자인 것처럼 구는 작가의 엉뚱한 영감은 줄곧 NB를 괴롭혔기 때문일까? "저 따위 뻥을 누가 믿어?"라는 혼잣말을 내뱉을까 말까 오늘은 망설였으나. 불과 며칠 후 그는 의뭉스러운 충동을 이기지 못했으니 그 몇몇 제품을 받아본 후 실망했다. 괜히 샀다면서. 구체적인 목록이야 알고 싶은 사람도 없고, 알아 봤자 별 도움도 안 되고. 행복한 인생에 대한 힌트가 설마 쾌락마라는 비밀일 리는 없으니 누가 귀뜸해도 믿거나 말거나. 그리고 아름다운 사랑 그거 글로 백 번 천 번 만 번 쓰면 뭘 하나. 말주변 어눌한 입으로 친구랑 진지하게 대화해본 적이 한 번도 없는데? 맞다. 그렇다. 있음 안 되지. 큰일날 소리. 그럼 정말 쾌활한 행운은 정점을 찍었는지 약올렸는지조차 모르도록 근처에 왔다 저 멀리 도망가버린 것일까? 라는 공상 정말 하기 싫은데 생각을 멈출 수는 없고. 뭐 난봉꾼의 사랑? 바다는 어느 강물도 마다하지 않는다. 돈? 필요없어. 모험? 관심 없다고. 여복? 안 키워. 인기? 있으나 없으나. 바쁜 일정, 어차피 거품. 그럼 정말 진짜로 인공지능이 그에게 추천해주어야 할 덕목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건, 바로, 자유였다. 그래 봤자 개는 짓다가 냄새맡다가 달리다 떠돌다 금새 심심해지기 마련. 안 그래도 개는 토한 곳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다. 그렇게 되어 있다. 그런데 개 얘기가 왜 또 나와. 
    그렇게 그는 퇴근해서 어디로 갈까 고민하다 근처 미술관에 갔다. 아는 동생 릴리가 큐레이터로 근무하는 그곳에. 물론 말이 큐레이터지 아마도 경리? 듣는 경리 기분 나쁠지 몰라도 우리는 말이다, 어? 이 세상에 우리보다 더 경리를 좋아하는 남자 있으면 나와보라고 큰소리칠 기운도 이제 없다. 그리고 우리가 살 뒤룩뒤룩 쪘을 때야 혼자 거울 볼 때나 식탐을 자제해야겠네 라지만, 당장 뒤돌아서서 꾸역꾸역. 그렇지만 우리가 좋아하는 여자는 뚱뚱한 당신. 당신을 이 세상에서 최고로 아름다운 숙녀로... 쉿! 듣다 듣다 짜증나기 전에 딱 그치는 게 좋겠다. 아무튼 그렇게 NB는 미술관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들리는 음악은 역시나,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 오페라 <자이데> 중 편히 쉬어요 내 사랑 
    그런데 릴리가 안 보이네? 그는 관계자에게 슬쩍 물어봤다. 그랬더니 돌아오는 대답은 대뜸,
   「걔 연락도 없이 그만뒀는데요. 아시는 분이세요? 혹시, 남자친구? 릴리가 이제 만나다 만나다... 아니에요. 초면에 말실수 할 뻔했군요. 신경쓰지 마세요. 아니, 제가 괘념치 않죠. 아니 그만둘 꺼면 깔끔하게 정리를 하던가. 누가 못 도망가게 막은데? 아저씨가, 네? 릴리가 벌여놓은 뒷감당 다 하실 거예요? 그럴 수 있어요? 아저씨가 내 인생 책임질 수 있냐고요. 방금 전 말은 헛 나왔으니 신경쓰지 마세요. 그러든 어쩌든 뭐 동네 아저씨 같은 분께서 걔와 친해봐야 얼마나 친하겠어요. 그러지 말고 저랑 사귈까요? 제가 들어도 이런 농담 정말 짜증나네요. 설마 아저씨가 아깝다 뭐 그런 생각하신 건 아니죠? 그쵸? 그렇죠? 그건 말이죠, 아니에요. 됐어요. 그만 가보세요. 바쁘시잖아요. 안 바뻐요? 바쁘게 해드릴까요? 거 봐요. 바쁜 거 맞네. 아 뭐해요? 제 얼굴에 뭐 묻었어요? 그렇게 빤히 쳐다보시면 어떡하잔 거에요? 네?」
    별 이상한 횡설수설을 얻어들은 그는 돌아서서 저쪽 구석지에 가 전화해봤다. 
    물론 릴리의 전화번호는 바꼈다. 생판 모르는 타인이 전화를 받았고, 그는 죄송하다며 굽실거리며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릴리의 미술관 방문 결과는 역시나 허탕으로 결판났던 것이다. 
    그래서 하는 수 없는 그는 발길을 여성환상 1.5 사무실로 옮겼다. 





    2

    도착. 다행히 사라는 퇴근하지 않았다. 편집장실을 제외한 다른 책상들 컴퓨터는 거의 꺼진 듯. 
   「오빠. 나 시집 좀 보내줘. 응? 이젠 귀 기울이지도 않니? 듣는 척이라도 좀 해라. 어?」
   「」
   「어딜 쳐다 봐. 거기 아무것도 없어.」
   「너 설마...」
   「(눈빛) (몸짓) (표정)」
   「난 너 자빠트릴 생각 없어.」
   「아니야. 오빠 같은 늑대라면 부족할 게 없을 거 같은데. 오빤 어떻게 생각해?」
   「농담이 지나치다고 생각하지 않니? 너라는 피아노를 연주할 듯 말 듯, 명연을 펼칠 뻔 말 뻔. 응? 너가 선망하는 촌닭이 혹시 나다? 착각이야. 전문 연주자들이야 1시간 2시간 구슬땀 흘리며 마치 쇼팽이 환생한 듯 연주하시겠지. 그런데 현실은 어떨까. 아줌마 허세 앞에서 진실 게임 한번 해 보셔. 응? 유부남들과 진짜만 얘기해 보시라고. 자, 그러니까 그에 대해서」
   「쉿! 말하지 마.」
   「아무튼 이 오빠는 네가 생각하는 그런 파랑새 아니다. 응?」
   「길고 짧은 건 대 봐야 알지. 나 같은 수석 코치가 어디 또 있는 줄 알어? 믿어 봐. 잘해 줄께. 오빠야, 나한테 와라. 잘해줄 께. 응?」
   「뭐? 잘해주긴 뭘 잘해줘. 나 손이 건조해. 수전증도 있어. 그런데 웬 군침? 때문에 난 너한테 눈독들이면 안 된단 말씀.」
   「오빠 같은 다정한 남자가 또 어딨다고. 난 성실하고 자상하고. 나랑 웬만큼 통하기만 하면 돼. 뭐가 부족한데? 돈? 내가 벌어줄께.」
   「너 저번에 내가 남자 소개시켜줬을 때 뭐라 했어. 걔한텐 뭐 남자 얼굴 안 본다라 뭐라나? 그런데 나한텐 얼굴 개빻았다는 뭐라는 둥. 지금 생각하면...(절레절레)」
   「그래. 오빠. 나 불결한 속물이다. 됐냐?」
   「아니야. 넌 여전히 순수한 비너스. 넌 우리의 아르테미스란 말이야.」
   「립서비스는 그쯤 하면 됐고. 그러니까 나랑 사귈 꺼야 말 꺼야. 어? 그것만 말해.」
   「」
   「역시 오빠는 조용한 남자구나. 오빠가 돈만 좀 많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 최소한 부족하지만 않았으면 말이야. 가련한 예술가 타입? 드라마로 볼 땐 좋지. 딱 그때만! 응?」
    물론 작품이자 허구며 드라마와 크게 다를 거 없는 소설이니까 하는 말이지만 뭐 틀린 말도 아니고. NB와 사라, 그들도 예외는 아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 최고로 애매한 사이란 게 바로 남녀의 우정이니까. 법적 부부를 제외한 모든 남녀의 친밀감은 성문헌법, 관습, 평판에서 비켜가진 못하더라도 어떻게든 인간의 본능에선 도망 못 가거든. 바로 그 아는 오빠 아는 동생 사이. 
   「아 맞다. 오빠 그 얘기 들었어? 내 비서랑 오빠 친하잖아. 걔 애가 오빠 막 삼촌이라 부르며 잘 따를 정도로. 근데 있잖니 근데 있잖아. 어머머 얘. 어머머머머 오빠. 어쩜 그럴 수 있니, 응?」
   「아 또 뭔데 그래? 제발 좀 배꼽이 배보다 작으면 안 되니? 왜 꼭 뭘 해도 거 무슨 WBC, WBA 옛적 떠들썩한 타이틀 매치처럼. 역대 최고의 경기에나 성사된다는 해설자계의 양대산맥이 공동 해설을 맡는 경기처럼. 본 게임 시작하면 1-2회 KO로 싱겁게 끝나서 영상 재활용하며 편집하기 바쁘고. 본 게임을 위한 순위전, 뻔트, 전주곡은 요란할 대로 요란하고. 대체 이번엔 또 뭔 얘기를 하려던 건데, 응?」
   「일단 들어봐. 응? 먼저 듣고 나서 소감은 나중 말하고. 내 비서 걔네 부부가 만인의 모범을 사는 잉꼬부부란 거 세상 사람들이 다 알 수는 없지만. 뭐 그래도 부부애 좋다는 거 하난 확실하잖니. 근데 있잖니 오빠~ 내 비서 나탸샤. 걔 전남자친구가 걔네 동네에 산데. 어쩜 좋니?」
   「정말?」
   「그래. 그렇다니까. 어쩜 그럴 수 있니? 세상에나.」
   「근데 너 왜 웃어?」
   「그럼 울까?」
   「다양한 여심 또 단순한 원 그래프처럼 1-2-3위 뻔히 나뉘겠구만.」
   「나뉜다고? 여자의 마음이 뭔 피자야?」
   「피자야 다트판처럼 균등하게 나뉘는 거지. 그거랑 그건 다르단 거 너가 더 잘 알잖아?」
   「난 좀 모른 체하고 오빠가 아는 척하면 안 되겠니?」
   「유리한 얘기가 아니니까 또 발 쓱~ 빼시겠다? 왜 이번 달 마감 닥쳐오는데 잡지 분량 부족하니? 부족한 거 무슨 익명의 대화로 어떻게 매꾸게? 그걸로 대충 매꿔도 오히려 정기구독자들 환영할 주제라도 되니?」
   「어머, 오빠 그거 어떻게 알았어? 우리 직원들한테 찝쩍거리는 줄만 알았는데 이제 보니 오빠도 패션잡지계 업자가 다 됐구나?」
   「아 그러든 어쩌든 어서 본론이나 말해봐. 그래서 어떻게 됐데?」
   「글쎄 어떻게 됐다더라?」
    발동 걸린 NB의 긴 대사. 칸을 떼서 가는 걸로.





    3

   「어차피 셋 중 하날 꺼 아냐. 
    첫째 싱숭생숭, 둘째 불안 미묘, 셋째 떨떠름 기분 나쁨. 
    첫째야 당연히 여자의 판타지과고, 둘째는 말 그대로 여성잡지 2 애호가요, 셋째는 조신한 엄마 스타일 아닐까? 둘째 셋째 구분이 좀 애매하지만 둘 합해도 되고. 뭐 신경쓰여서 싫다 그거지. 꼭 뭐 다 그렇단 게 아니라, 포장 풀르고 속마음 알아봤을 때 다 팀 멤버라는 심리기제로 따지면 없는 거 없이 모든 사람이 공통. 다만 개인적으로 차이점은 가령 2군까지 합해 팀 총원이 100명이라고 했을 때 주전 9~11명을 어떻게 구성할 것이냐 그 차이 밖에 없잖아. 안 그래? 간질간질 이상한 심정 요만큼~도 없는 사람은 없어. 그게 별로 중요치 않으면 '여자는 그래요'고. 그걸로 호들갑 떨면 중간층이고. 올커니~ 여자의 판타지 옛날에 망했겠다, 전성기도 훌쩍 지나갔겠다, 남자에 대한 판타지 짜증나겠다. 사석에서 농밀한 밀담이 오간다면야 뭐 '그런 여자' 분과 아니겠니? 너 내가 누누이 칼럼에 쓰고 쓰고 쓰고. 했던 말 또 하고 또 하고 또 하고. 지겹도록 반복하고 짜증날 정도로 되풀이하는 얘기가 뭐니. 응? 그거 아니야, 입장 바꿔 생각해보기. 응? 거울. 에코. 반사! 
    남녀간 애정과 관련한 감정 때문에 요만큼 설레는 거도 있을 수 있지만. 그 흠모가 먼발치서 짝사랑에 대한 기억으로 그치지 않고 법적 관계라는 생활로 얽힌 매우 드문 사례들. 그 긴장감, 불편함, 때로는 왜 꼭 억눌리고 사교계의 기대주 발목이라도 잡은 것 마냥 죄 지은 기분으로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번민? 연민? 어쩌다 자기 비하? 드라마에 나오듯 집안끼리 강제로 결혼한 사이랄지. 멜로드라마 소재처럼 여자 자신은 완전히 싫은데 남자가 완강히 폭력적인 방법을 동원해서 어떻게 맺어진 인연. 아님 그 남자가 뭐가 부족하다고, 나랑? 그리고 마음을 반틈만 주는 사이. 연인의 몸은 내 것이지만 마음은 왠지 모르게 따듯하지 않은 예. 개별 예시야 그 꼬리는 너무도 길다는 거. 너네 월간지에서 수도 없이 다뤘던 거잖아? 방금 나온 주제도 어차피 그거고. 
    너네 업계 그 바닥 좁다는 거 내 모르지 않은데, 사람 사는 세상이라고 뭐 얼마나 다르니? 드라마 대사로 말하자면 남녀 사이에 왜 끝이 없다고 하겠니. 왜 어른들 말씀이 남녀가 연애 길게 해서 좋을 거 하나 없다고 하겠니. 도대체 어째서 남녀의 우정이 말이 안 되는 거겠니.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사안들, 나는 되고 너는 안 된다 심보니까 하는 말. 안 그래? 내 친구 중에 만나서 사랑하니까 서로 좋으니까, 즉각 혼인 신고하고 동거했던 걔네. 생맥주 500cc 가득 든 거 팍~ 팍~ 뿌리고. 울고 불고 욕하고. 진한 사랑 도중에 풍선 꺼진다 어쩐다 주변에 다 말하고. 혐오하며 더럽게 끝났어. 다 그렇단 말이 아니라, 어? 남녀 사이에 끝이 어딨니. 인생 굴곡이 그만그만하다면야 몰라도, 사람과 인생 장르가 뭔가 애매하다? 5년 10년 후에 사생활 참견 안 하고 몰래몰래 둘이 만난다니까. 어디서? 뭐 어떻게! 왜? 무엇을 위해서! 에이 알면서. 얘, 여성잡지 2가 그걸 어떻게 모르니. 안 그래? 왜 애가 있냐 없냐에 따라 갈라설 확률이 올라가는데. 학교 성적도 애들 습관과 관심사, 등교길 표정, 수업 시간 초롱초롱한 눈빛. 그거 보면 대충 답 나오잖아? 칠판부터 책상까지 거리와 성적은 정비례는 아니라도 대충이나마 비례한다는 거. 누가 몰라? 어른들 운동으로 마라톤 대회 나가는 거. 연습량 채우면 완주하고 못 채우면 적당히 그날 최선을 다하는 거고. 육상에서 장거리는 일반적으로 몸무게와 비례. 그럼 사랑의 장기전은? 여심 떠보면 알지 그걸 왜 몰라, 응? 무슨 여자만 사랑의 탐색전에서 간볼 줄 알겠니? 뭔 남편만 제일 늦게 알라는 법이라도 있냐 그 말이냐고. 
    뭐 이사왔는지 어쨌는지. 동네에 산다고? 동네도 아니고 불과 50미터 범위에 살기 때문에 심심치 않게 마주볼 수 밖에 없다고? 좋을 리가 있니 그게. 현재의 사랑이 지고, 옛사랑이 이긴다면야 당연히 자녀들은 성장기에 시련을 겪는 거고. 그렇다고 지금의 사랑이 진짜다, 현재의 사랑이 아름답기를 기원한다, 단란한 가정이 소중하다, 지금 인생이 더없이 행복하다? 따라서 모른 체하면 그만이니 아무일도 아니다? 그게 끝이 아니지. 남자만 지는 비교 싫어할까? 여자에게 호승심이 어찌 없을 수 있나. 여자한테 이겨서 뭐하게, 라는 듯이 눈물 흘리는 여심은 또 뭔데. 여자? 그분들도,
    질 수 없지~!
    그럼 어차피 끝난 사랑, 나는 그런 여자가 아니니까, 때문에 남은 남 나는 나. 불미스러울 걱정 하나 없다. 남편한테 떳떳하다? 그래도 불편함은 남는다니까 그러시네. 무슨 비유명인인데 연예인이나 된다는 듯이 조명발이 언제 비출 줄 모른다는 것처럼 왜인지는 몰라도 상시 꽃단장 풀메이크업을 해야 한다? 피곤하지. 어제는 모처럼 대충 주서입고 동네 친구 만나러 나가고, 오늘은 후줄근한 청바지랑 면티 대충 걸쳐 입고서 지인들 만나고, 내일은 화장 1도 안 한 채 모자 푹 눌러쓰고서 식료품 사러 갈 껀데. 언제 어떻게 옛 남자를 마주칠 줄 모르기 때문에 초라한 내 모습을 보일 순 없다 그러긴 싫다, 그래서 1년 365일 꽃단장을 하지 않으면 안 되도록 살아야 한다니! 시장 갈 때도 최고급 백화점 모드로 만년 연예인처럼 살라고? 여성잡지 1에서 2까지는 그나마 수다 3시간으로 때울 수 있지. 거기서 더 가면 보든 말든 관심도 없고, 어차피 동네 아줌마 아저씨라는 드라마퀸으로 정착하면야 무신경하고 아무렇지 않은 거고. 
    그래도 생각은 날 걸? 진한 사랑이 있었냐 없었냐. 적었냐 많았냐. 신경 쓰이지. 허허허. 그렇다고 잘 걸렸다~ 설레는 여자라고 왜 없겠니? 남편한테 말하지 않은 부인. 남편 직장에 남편의 옛사랑부터 중간에 썸탔던 여자. 거래처에 전전전 여자친구. 그냥 단순한 친분만 있는 여자라고, 떡밥 뿌리기 바쁜 처녀들이라고 없을까? 유부남 좋아하는 처녀, 언제 어디를 가나 없을 수가 없지. 내 맘에 쏙들도록 남편 튜닝하기에 흡족히 만족스럽지는 않을지언정 남편 조련에 선방을 하면 뭘 하나. 여자들이 싫어하지 않도록 남편을 꾸며놨더니, 가난한 뚜벅이 찌질한 총각 유치한 젊은이한테 관심 없는 아가씨들. 우리 남편 보면 도저히 싫어할 수 없거든~! 허허허. 
    아무튼 자, 옛날에 연인이었다 그러다 훗날 그렇게 동네 주민이다? 당시에야 동급이었을지 몰라도 세월은 우리에게 많을 걸 가르쳐주는 법. 품위를 살짝만 낮추어 말하자면 남자가 떡상하고 여자가 떡락했을 수도 있고. 아님 남녀 공히 그 흔한 동네 아줌마 아저씨처럼 되었을지도 모르고. 반대로 그 남자가 꾀죄죄하게 떡락했는데 여자 쪽은 훨씬 고상하니 세련되고 원숙한 걸로도 모자라 시간은 그녀만 어쩜 비켜갔을 수도 있고. 사석에서 악의 없이 말하듯이, 탈모 유전되어 머리 벗겨지고 배불뚝이에 얼굴도 가버린 남자로 변해버린 일도 있을 테고. 지난 일은 지난 일이라지만. 과거는 과거라지만. 평균 내보면 드물게 있긴 하겠으나 당사자들은 당연히 꺼림칙하지. 
    왜 내 생각만 해? 그러니까 넌 너 밖에 모른다면서 남자가 떠난다니까. 듣다 듣다 못 들어주고 귀에서 피나면서 만나던 남자가 전원 나가떨어지는 연애. 남자 쪽에서 언제 나가떨어지느냐 그 차이 밖에 없는 남녀의 만남. 이기적이냐 이타적이냐, 줄 거 주고 받을 거 받고. 하나 주고 하나 받고. 애들은 애들이고 어른은 어른이지. 어른인데 애처럼? 그 중간인 여자가, 나는 남자사람친구 즉 우정 사이에 남자랑 1 대 1로 놀러갈 수 있다. 그걸로도 모자라 남자사람친구랑 한 침대에서 잘 수 있다, 실제로도 애인의 친구랑 여행지에서 1 대 1로 드라이브했다가 CS까지 했다고 추문 파다한 일. 무슨 남자만 열 여자 싫다는 남자 없는 줄 아시나? 내 인생, 아니 이 지구 아니, 이 우주를 걸고 맹세할 수 있어. 어떻게? 여자의 판타지가 싫단 여자는 있을 수가 없다고! 현 애인이 있든 없든 100 남자의 관심과 애정과 사랑이 싫다는 여자? 여자의 판타지에서는 결코 좋아하지 않음. 그런 위선을 어떻게 취급해. 그럴 수는 없어. 첫사랑이 최고였던 여자가 많지는 않겠으나, 스콧 피츠제랄드 원작 어떤 영화에 나오듯 재력으로 옛사랑에게 다가가는 남자부터. 핸드폰 전화번호부에 친한 남자 연예인 즐비하고 어쩌고. 여자가 남자에 대한 환상을 일찍 깨면 좋듯, 여자들끼리 소망하는 뚱딴지 같은 꿈. 현실감 잃으면 밝은 미래는 썩 희망적이지 않을지도 모르는 것. 뿐만 아니라 남자의 판타지가 여자가 느끼기에 더럽다고 하여, 결혼한 다음에 여자가 남자에게 종류야 많겠으나 생리적이자 원초적인 '여자의 판타지'를 깨트려드린다? 장르 바뀌는 거 시간 문제. 결혼 후는 그렇고, 법적 관계 전이라면야 만찬에서 디저트 먼저 먹을 일 있나? 지겹고 식상하고 퍼질 대로 퍼지면 직업적인 도박사는 발 빼고, 노회한 노름꾼은 베팅하기 싫어지게 마련.」 
   「」
   「그런데 왜 말이 없어?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 왜 내가 창피하니? 보아하니 그대 진정 그리 짜증나지 않은 듯 하니 하던 얘기 마저 할께. 금방 끝나.」





    4

   「자꾸자꾸 여자의 판타지 여자의 판타지 그러는데. 세상 사람들 시선이 꼭 고우란 법은 없어. 단짝이랑 놀 때야 C층에 있는 친구 끌어내려서 현재 F급인 나랑 동급으로 묶는 거야, 친구끼리 알아서 할 일이고. 혹시라도 안 좋게 끝난 사이인데, 그 기억 잊고 살았는데 왜 하필. 더럽게 이미 끝난 사이에서도, 경우의 수는 얼마든지 있어. 언제적 연인 그러나 과거. 누가 떡상? <내가 잃을 거 있냐 없냐>랑 <친구들 놀 때처럼 같이 망하자>. 그 둘을 견주어서 나중 얻는 거라곤 옛날 충분히 낭만적이지 못했다는 패배감, 지나고 보니 사랑받지 못했다는 억울함, 결국 잠깐 만나다 버림받았다는 배신감. 지금 생각해보니 꼬신다고 훅 넘어간 거 살짝 후회되는데 미련은 남고. 그렇지만 내가 더 아깝고. 그런 몇몇 감정만 살짝 만회해주는 거 말고, 창피해도 응? 타격 심해도 사랑 문제라면 못 할 게 없지. 뿐더러, 알고 보면, 금새 잊혀. 다 지나가.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해주거든. 뭐 하나 누구 하나 득될 거 없는 삼류 연예 기사. 드물게 있다는 거. 누가 모를까.
    아니, 또 일기 쓰시나. 나는 머머했다 나는 머머했다 누가 오늘 나한테 뭐라고 했다, 사람들이 내 뒷모습을 보면 어떻게 생각할까 등등등. 입장 바꿔서 남편의 전여친이 옆집. 남편의 전전여친은 앞집. 남편의 전전전여친은 뒷집. 남편을 10년 20년 내내 짝사랑하는 열혈 팬클럽은 동네에 쑤두룩. 진한 사랑 그래, 속궁합 좋기로 세상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웠던 전애인은 여전히 같은 업계에서 오다가다 만나는 사이. 당시에야 진한 사랑의 정점과 횟수를 찍었고, 지금은 각자 인생으로 우정만 나누고. 만약 그렇다면, 그럼 부인 마음은 어떨까? 여자의 판타지? <나는 되고 너는 안 되고>가 전제! 내가 하면 사랑 남이 하면 불륜이라고. 같은 반 남자애들이 야동(인터넷 야한 동영상) 얘기 막 하고 그러니까, 듣기 싫은데 못 들을 걸 들으니까. 그래서 짜증난다면서 소녀감성이 하는 말.
   "아빠도 야동 봐?......"
    성 그래프 바닥인 여자야 그렇다 쳐도. 성 그래프 고급인 엄마 듣기 민망한 말 가운데 최고봉이 바로 그거겠네. 왜? 엄만 별의별 상상을 다 하시거든. 남자 성 그래프의 정점이 10대니까 걔네들끼리 사석에서 그렇다지만. 여자 성 그래프의 클라이막스가 언제다? 아빠가 자상하고, 다정하며, 가정적임과 동시에 사생활이 건전하든 문란하든 모르겠고. 여자 성 그래프로 하늘을 찌르는 부인은 그 무언가를 보든 안 보든 대충 <남자 10대 = 여자 40 이쪽저쪽>. 단지 평균만 그렇다는 거고. 생각이 어디로 가 있다는 건 부정하고 싶어야 정상일까? 엄마가 깨어있을 때는 물론이고, 수면 중에 꿈꿀 때 어떤 꿈을 꾼다는 거. 잘 아시면서 소녀는 무안한 질문을 참지 못하는 거지. 엄마 얼굴 홍당무처럼 빨개질 일만 남은 거란 말이야. 홍조랑 립스틱이랑 분간이 안돼. 무슨 남자만 늑대고 여자는 모두 부처님이라도 되는 줄 아시나? 천만의 말씀. 
    샛길로 빠졌는데 결론 내자면 그래. 뭐 무슨, 동네에 결혼 전 애인이 살아요? 동전의 양면처럼 여자의 특징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주제. 메달의 앞면은 합심이 잘된다 섬세하다 꼼꼼하다 등등 여자의 장점. 반면 메달의 뒷면은? 표면적으로야 단합이 잘되는 것처럼 보이는데 여자들끼리는 딱 딱 말이 서로 잘 통하는 사이는 절대로 많지 않아. 안 그래도 여자는 여자의 일생 동안 쉬지 않고 끊임없이 바껴. 계속 변해. 항상 변심. 공상은 천재. 그처럼 남자는 빨주노초파남보 단순하니까 친구가 엎어지고 넘어지고 피나고 뼈 부러지면 앞에서 웃고 놀리지만. 여자는 앞에서 위로하고 뒤에서 웃어. 안 웃을 수 없거든. 실제 웃음이 나와. 물론 남자도 그렇고 항상 그렇다는 게 아니라, 그게 바로 인간의 본능. 바로 그런 의미에서, 여자가 남자를 어떻게 봤을 때 그이는 너무 무정하다, 무심하다, 무능력하다... 비교 되네 어쩌네. 이미 끝난 일이라고 어떻게 생각이 안 나나. 뭐 한 번 말했던 건 일평생 다시 말하면 안되나? 편 들어줄 건 우리는 확실히 들어. 모른 건 모른다, 어?
    그러니까, 잔소리? 남자 왈 이미 얘기 끝난 연애의 과거사라지만 여자 마음에 쌓였던 그 어떤 서운하고 슬프고 찡한 기억. 기준선 밑의 반복은 습관성 잔소리요, 위는 다 그럴 만 하니까 되풀이하는 따따부따. 전두엽인지 측두엽인지 각인되기 전으로 어떻게 돌아가나? 절대 못 돌아감. 평생 안고 사는 수밖에. 사랑이란 마음이 가야 몸이 가는 정식 과정이냐 아니면 그냥 손 잡기 건너뛰는 것처럼 약식이냐로 나뉘듯. 마음을 아끼듯 진한 사랑도 아낄 것이냐 언제부터 즐깃 것이냐, 아니면 퍼질 대로 퍼지듯 갈 데까지 가는 식으로 '내일은 없다'를 닮았느냐. 그 가운데 잔소리는 중견 경험자들 얘기. 영화 러브 스토리에 나오는 대사가 뭐였더라, 사랑은 미안하다고 말하... 어쩌고저쩌고. 한때 사랑했다 헤어졌으면 미래의 행복에서 어떻게 사랑을 일굴 것이냐를 고민해야 하는데, 밑도 끝도 없이 아주 드문 폭로전. 다 화장실 들어갈 때 나올 때 다르니까 발생하는 일. 주례사야 아름다워야 하니까 영원히 사랑하겠습니까 라고 물어보는 것이지. 허나 사랑이 인생의 전부라는 여자는, 중견으로 넘어가면서가 아니라 이미 사랑의 탐색전 때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하는 것. 어떻게? 만방의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듯 사랑하다 나중 딴년한테 그 남자 빼앗길 자신 있는지를. 일반적으로 남자는 몸은 줘도 마음은 조강지처요, 여자는 기준선 너머라는 별천지를 보면 빼도 박도 못하도록 발정난 고양이 마냥 떠나는 것. 남녀는 절반은 완벽히 똑같고, 절반은 완벽히 정반대. 자기는 이모 스타일 됐다며 자랑스럽다는 듯이 어른스럽게 친구한테 뻠쁘질하는 여자, 여우짓으로 남자 10명을 혼자 독차지하는 여자. 여성을 상대로 사랑하는 일이 까다롭기 그지없는데 남자가 기준선을 넘어? 상남자 왈, 남자가 태어났으면 말이야...! 여자 10명 거느리고 싶은데 짝사랑복 바닥인 허세꾼 그 친구. 젊어서 즐기지 그럼 언제 즐기냐며 놀았더니만 어느 날 갑자기 금고를 열었더니 곳감이 바닥났다더라, 도 있으니까. 그래서 내일은 있고 세상에 비밀은 없다를 당연히 아니까 뭘 좀 아는 여심은 <몰래한 사랑>을 그토록 편애할 수밖에 없는 것. 그에 비하면 쫓아다니는 사랑은 그냥 아마추어. 흡성마법으로 빨아들이지 못하면 줄 달린 치즈로 꼬드겨야 하든 말든 그야 당사자들 알아서 할 인생이고.
    잔소리에 대한 얘기가 조금 길어졌으니 서둘러 마무리 짓자면 말일세, 흐흠. 아 거 참 나 바쁘다 바뻐. 다만 조금은 상스러운 표현으로 이른바, 여자를 다루는 기술이 다른 게 아니야. 기준선 넘지 않으면 되지 않나, 그러게 뭐하러 몸이 뜨거운 여자 마음 차갑게 식도록 만드냐 그거지. 우리는 고결한 여심을 편들겠다는 거지, 남자 9명 혼자 다 독차지하겠다는 불여우의 마음을 변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고. 아시겠소? 무슨 립스틱 바르고 화장만 할 줄 알면 여자 어른인 줄 아시나?」





    5

   「속으로는 남자를 좋아하고 여자의 판타지라면 환장하면서, 겉으로는 비혼주의? 다 뻥 개 뻥 몽땅 뻥! 자기는 결혼 생각 없다? 개 뻥! 자기는 남자 얼굴 안 본다? 새빨간 거짓말! 나중 미래에 소중한 가정에 위기가 온다면 난 내 가정, 내 사랑을 지킬 자신이 있을까 라는 고민도 없이 남자만 꼬이면 들뜨고 설레고. 전남친이든 누구든 입장 바꿔서 남자는 어떨까는 생각도 않고 헷가닥 돌아버리고. 다 그렇단 말이 아니라~! 남자가 한눈팔지 않도록 그 인간이 뭐가 불만족인가 육감이 발달했으면 뭘 하나, 돌아서면 남남인데! 등 돌리면 영원한 남인데. 그럴 꺼면 왜 법적 관계까지 갔을까, 내 일이냐 남 일이냐에 근거하여 말은 많아질 수밖에. 만나주고 사겨주고 결혼해주고 살림해주고 애 낳아주고 애 키워주고. 불리하면 피동격이요 유리하면 능동격? 그러니까 연애할 때 이기적으로 (남자 여러명 거느리듯) 자기 좋은 건 몰래몰래, 자기 불리한 과거는 딱 숨기고, 하다 하다 못 들을 사랑의 기초는 또 어떻게 일부러 속 뒤집어지라고 알려주고. 자기 패는 아무 것도 까지 않고, 더럽디 더러워 도저히 씻을 수 없도록 죽어서도 못 잊을 추악한 연애사의 힌트만 딱 알려주며 자기 껀 다 감추고. 그 다음에 몰래 상대방 진심부터 천성과 재산까지 뒷조사. 뭐야 그게? 
    그걸로 보자면 초반에 진단해보면 대략 알 수 있어. 무엇을? 남자는 뭐 순정 없는 줄 아시나, '예비 맞바람녀 > 예비 이혼녀' 바로 그 애증까지 갔다가 돌아오느냐 남이 되느냐를. 애들은 뭔 죄? 당사자야 오죽 마음 아프겠냐마는, 누가 그걸 몰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애초에 시작부터 불안불안한 사례 적지 않고, 지켜보면 혀차는 일 심심치 않으니까 하는 말. 그러니까 원숙해지기 전부터 차츰차츰 남자는 화려한 이모 스타일보다 정숙한 엄마 스타일 쪽으로 마음이 기울기 마련. 안 그럴 수가 없거든. 공통으로 미래의 사랑에 베팅해서 행복을 키워간다는 전제를 무시하고, 내가 위고 너는 아래다 고로 만나주고 사겨주는데 딴년 만나? 언제 떠나느냐 어떻게 단란한 가정이 깨지느냐는 시간 문제. 그러게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하는 거지! 사랑의 탐색전이라는 (정식인지 연애인지 애매하고 뭐가 뭔지 몰라도) 남자친구 여자친구 그 초반에는 싱숭생숭했으면서 나중 계산기 두드린다고. 예를 들어,
    명감독 명선수 도박사들 봐 봐, 메트로놈이든 계산기든 그 뭘로든 최상이 아니면 무대와 경기장에 들어서지 않는 것. 응? 그런 프로들과 정반대로 아마추어 고급반도 아니고, 허접한 오합지졸들은 정반대로 동네 개 발들 모여서 밑도 끝도 없이 개뼉따귀 같은 꼼지락꼼지락 그러면서 사랑론이래. 여자라는 벼슬 때문에 남자가 여심을 존중하는 게 아닌데, 무슨 이 세상에 자기 달랑 혼자만 불여우의 꼬리가 달린 줄 아시나? 똥차 가고 신데렐라의 호박마차가 와서 유리구두를 신으면 좋겠으나, 현실에서는 통상 확률적으로 똥파리는 주로 어디에 꼬이기 마련. 그래, 안 그래? 여자의 일생 수다 총계 내보면 알 거 아냐. 꽃에는 나비요 개똥에 똥파리가 득실득실. 잘 아시잖아요! 직간접으로 취합한 데이터베이스 그게 얼만데. 응? 
    활동가는 녹슬지 않아. 직업이든 학문이든 원론적으로 전적 상 여자는 남자 플레이보이한테 상대가 안됨. 마치 절정감에서 1000 대 1도 모자른 것처럼. 무슨 값싼 싸구려 바이올린을 도대체 왜 명바이올리니스트가 연주해주지 않느냐는 푸념. 그나마 그거면 다행이게? 호박이 제 발로 굴러가서 나라는 여심 악기를 제발 연주해달라면서 똥파리한테 꼬리치기 바쁜 사례. 지나고 보면 흔하디 흔할 일. 그런데, 지조마저, 없으면! 잊지 마, 얘. 그거 알아두는 게 좋을 거야, 너. 개는 빵 때문에 춤을 춘다는 걸. 만날 당시에야 처녀 자신이 첫사랑이라고 느끼고, 숙녀는 사랑이라며 좋아할 테지만. 나중 패전으로 끝나면 그거 사랑 아니었데. 진짜 첫사랑은 딴 거래. 화장실 들어갈 때랑 나올 때 다른 거지. 당시에는 좋았으면서 계속 해피엔딩이면 사랑이고, 혹시라도 차이면 내 책임은 없으니 다 핑계요 가짜라며 원망에 저주에 독설로 수다 3시간 매번 반복이고. 들었어요? 오빠도 그래? (절레절레)! 
    남자들이 만나면 절대로 안 되는 최악의 여자가 누구냐! 누굴까? 여자들이 만장일치로 손꼽는 게 자기 남자를 창피해하는 여자. 언제 발 뺄지 모른단 거지. 그렇지만 오리발 내밀지 않고 결혼까지 가는 사례라고 왜 없겠나. 뿐만 아니라 사람이 돈 없이 어떻게 사나. 그래도 자랑스러움보다 부끄러움에 치우친 사례, 우리 주위에 내 친구들 중에 얼마나 많냐고. 당장 친구의 남자친구만 봐도 배아프거든.
    그게 처음부터 의도적이라면 환승이별용이고, 그럭저럭 자의 반 등떠밀림 반이면 보험이고, 그마저도 아닌데 일단 만나가면서 알아본다는 건 긴말 필요없어. 사랑! 딱 사랑이지. 당연히 숙녀 인생 처음이라면 첫사랑이고. 무슨 객관적 일관성조차 모든 게 내게 최적화되어야 한다는 3인칭 같은 1인칭 시점? 사석에서 단짝끼리라면 상관없지. 그러니까 '다음 사람에게는'라는 노래만 선곡해도 아찔하는 거고. 자길 연애인처럼 대우하고 떠받들며 꽃 들고 쫓아다녀주었으면 좋겠다면서, 자꾸자꾸 비교를 해. 안 그래도 만년 '지는 비교'에 짜증 그래프가 오르락내르락하는 유부남들이 얼마나 많은데. 사랑의 탐색전에서조차 총각이 사랑의 차트에서 비교당하라고? 심지어... 뒷조사 당하느니 차라리 돼지고기 소고기처럼 등급 매겨서 만나는 게 1000번 만 번 옳은 일. 아줌마가 느끼기에 자기는 남편한테 꽃 들고 기다리고 쫓아다니는 '여자의 판타지'를 느껴보지 못했다면서 서운하고. 결혼 후에도 불만족을 따지면 남편 흉보기는 끝이 없고. 그렇지만 내 아들이 뒷조사 당하며 사랑의 차트에서 10에 턱걸이해서 남자 10명을 동시에 가지겠다는 숙녀를 만난다? 여자가 그 꼴 어떻게 보나. 나는 아마존이고 딴년들은 아마존이면 안 된단 거잖아. 자기만 만년 신부요 자기 빼고는 전부 싹 다 신부들러리래야 그나마 속편하시겠대. 여자만 차곡차곡 서운한 거 쌓아둘 수 있는 거 아니야. 무슨 여자만 독보적인 기억력의 명수인 줄 아시나.」 





    6

   「소개팅 자리라는 첫 만남에서조차, 들었어요? 듣긴 뭘 들어, 자기 차인 얘기 들었녜! 자기만 사랑의 주인공이라 그거지. 뿐만 아니라 101일 동안 신나게 작전을 펼쳐 사랑할 당시라고 아닐까? 아닐 리가 있나. 여지없이, 자기 사랑의 탐색전 완패담을 들었녜! 응? 여기서 끝나면 섭하지. 2번째 만나 사랑하고 영화보고 드라이브하고 어쩌고저쩌고. 그렇게 "나 사랑해?"라고 묻는 걸로 끝이 아니라, 나 같은 여자친구가 어딨냐 라는 호언과 함께, 만난지 얼마 안 된 사이에서도 뭐라더라? 그냥 사랑의 탐색전이 아니라, 딴놈 누구라더라 어떤 뭇남성한테 진한 사랑 나눴다 버림받았고, 그러므로 '떨다'라는 능동격은 생각도 못한 체 자기도 모르게 피동격으로 '떨었대'!
    와~ 별의별 경우의 수가 다 있다니까. 응? 100일 동안 탐색전으로 선물 오가고 어쩌고 그러다 진한 사랑없이 헤어졌는데 1년 있다 여자가 연락해서 꼬리치는 예. 물론 재결합은 거의 어려움. 하물며 10년 후에 연락하는 남자, 20년 후에 나타나는 여자? 뭐가 됐든 그 뭐든지 찾는 족족 있다니까요 글쎄. 또 만나면서 3년 기다리다 떠난 예. 5년 사귀다가 딴놈과 바람피는 게 더 좋으니까 신제품을 선택했다가, 둘을 견주니까 구관이 낫거든, 그래서 전남친한테 돌아가고자 하는 숙녀까지. 남자 뿐만 아니라, 사랑의 기본부터 엿장수 맘대로인 예. 부지기수라니까 그러네. 바로, 그래서~!
    그러니까 뭘 좀 아는 남자 가운데 플레이보이들은 자기 밖에 모르는 여자는, 일절, 만나지를 않아. 어떡하다 오다 가다 만났을지라도, 만나는 드리겠으나 모양새 갖춰서 꺼져드린다고. 아시겠소? 남자가 '개나 소나' 범주에 포함되어드리겠다는데, 여자를 잡지 않으니까 또 그래서 싫대. 응?
    짜증나는 스타일 남자가 소개팅에서 연락처 물어보면 물어본다고 싫대, 맘에 딱 드는 남자가 연락처 안 물어보면 또 안 물어본다고 싫대. 친구한테 고자질해서, 또 암컷 싸움닭은 지가 무슨 감독이나 되는 것처럼 '두고 봐라 어째라' 선전 포고하고. 걘 지 남자친구한테 무릎 꿇고 구걸하고 울고 불고. 것도 그냥 취미이자 습관적인 일과. 진짜 무슨 노예처럼 보험 마냥 붙여놓기만 하는데. 자존심도 없이 모든 인맥 모든 연락처를 파고들어서 굴욕적으로 붙어서 남자 몸을 얻으면서. 자기 억울한 거 타인에게 굴욕감 씌워서 보상 받으려고 하고. 그러면서 남자친구가 엇그제 무릎 꿇고 싹싹 빈다고 자랑하고. 거 무슨, (절레절레). 자기 학교에서 찐따 취급받았던 거 어떻게 포장하고, 회사에서도 물과 기름처럼 섞이는 거 왜 그런지는 쏙 빼놓고. 뭐 만나면 아무나 싸워, 누구한테나 다 져주래? 어른이? 여자가? 뭐 아무튼 돌아가서.
    그래서 환승이별녀와 얼굴 팔리는 거 완전 싫어하는 바람둥이는 평행선일 수밖에. 
    징징거리며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걸 맞춰주고, 져주고, 남자가 팔방미인으로 변신해주고, 응?
    흔히 진하게 사겼어도 남자 능력 갖춰지기를 3년까지 한계치로 기다리다 남남되는 여자처럼
    웬만한 상남자도 역시나 그거 버티다 버티다 3년 4년째 헤어지면서 딱 한 마디하지, 넌 너 밖에 모른다고! 
    웬만한 상남자 축에도 못 끼는 늑대이자 촌닭이야 기본적으로 두셋으로 나뉠 테고. 
    첫째, 초반에 줄거리 다 읽고 그림 다 보이니까 시작 자체를 하지 않는 남자.
    둘째, 받아주고 받아주고 다 받아주면 끝까지 해피엔딩으로 가든가.
    셋째, 아니면 헤어질 때 선물했던 거 다 토해놓으라고 하던가. 
    그래프와 통계 뻔한 데 엄한 확률에다, 심지어 별로 좋아하지도 않은데, 베팅하라고? 
    돈과 시간이 남아돈다면 몰라도, 인생이 그리 한가한 게 아님. 
    말이 통하는 남자와 뭘 좀 아는 남자. 각자 어울림과 일종의 궁합, 취향과 구미가 다를 테니 뭐라 말하기 곤란하지만. 
    여자의 육감이 하필 저 멀리 가서야 뒤늦게 발휘되길 좋아하는 것처럼, 그분들은 초장에 사랑의 시소에서 내려버리는 게 특기. 
    무슨 여자만 몇 시 방향 어떤 남자 스타일? 트럭으로 수 백 대를 가져다 줘보라는 둥 뭐라는 둥. 
    여기서 중요한 점. 남자는 여자보다 비교적 더 느긋함. 여자야 참말 반 농담 반으로 그렇게 말한다지만.
    남자는 진짜로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고. 그런데 여자도? 그런 여자도 있긴 있겠으나. 나중 봐 보시라. 
    여자들끼리 모임이든 어디든 과연 그런 말 호언하고 떵떵거리고, 호통꾼처럼 큰소리 뻥뻥 치던 숙녀가. 
    나중 과연 몇 퍼센트나 자신의 소신을 지키시는지를. 에잇~ 여자들끼리 잘 아시면서!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줘든, 참 괜찮은 사람끼리 만나든, 기다린 보람이 그댈 결코 낙담시키지 않을 인연이든. 그렇게 단둘이 첫인상 최고에, 첫눈에 홀딱 반했다면 몰라도. 그게 아니라 4 대 4로 만나든 적당히 주기적으로 소개팅으로 이성을 만나든. 여자도 여자들 나름대로의 이상과 현실감이라는 게 없을 수가 없듯. 과거 있든 지저분하든, 대어 중의 대어도 다 좋단 사람 있고 그쪽에서 아무리 좋다고 매달려도 끝까지 꺼져드리는 남자도 있는 법. 다 그래서 4 대 4로 모두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매력은 누가 1등, 귀엽고 웃김은 누가 1등, 참하고 미모와 지성 담당은 또 누가 1등일지라도. 어중간하게~ 어정쩡하게~ 고혹적인 단아함을 선보이지 못하는 여자. 그 자리에 있는 모두에게 이렇게 말하면 남자들 전원 꺼뻑 넘어가버리는 것. 10대는 어쩌면이요, 20대는 아마도, 30대는 다 필요없고, 40대는 올인. 그 말은 무엇이냐, 바로
   「제가 지금까지 남자를 단 1번도 사겨보지 못했는데...」
    지만 여자라고, 지만 주인공이라고, 자기만 메조소프라노요, 자기만 프리마돈나이자, 자기만 원톱 발레리노인 줄 아는 여자? 
    여자들이라면 몰표에 가까웁도록 꺼리는 남자 스타일이 과연 어떤 부류인데. 그럼 남자라고 손가락만 빨까?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레이저 스캔하면 피곤한 스타일이라고 딱 나오는데, 
    다변가 감당할 자신 있으면 귀에 피나도 끝까지 가는 거고. 
    허영심 채워줄 자신 있으면 선물공세부터 꽃 들고 쫓아다니고 따라다니고 기다리면서 그녀의 마음을 얻는 거고. 
    그러다 마음 가면 몸이 가게 되어 있고. 결말이 좋든 안 좋든 탐스러운 사과를 따든 아니든. 
    번따녀는 꺼뻑 넘어가서~ 사랑이라는 깃발은 이미 꼽혔고 동네방네 소문 다 났는데, 
    똥파리 전마누라라는 둥 파리끈끈이녀라는 둥 마음 주고 정 주고 시간 주고... 절반쯤 따먹혔는데. 
    나중 생각하니 사랑하지 않았다? 노노노노노노노! 
    여자가 남자한테 제대로 사랑받지 못했을 뿐, 여자는 남자를 사랑했던 것! 
    화장실 들어갈 때 나올 때 다른 것일 뿐. 
    나이트클럽 들어갈 땐 으쌰으쌰 나올 땐 이런 젠장~!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하시는 거라고요. 네? 
    그러니까 왜 20, 30대 숙녀가 하늘을 우러러 자긴 모태솔로라는데 남자들이 미쳐버리는 걸까? 
    우리는, 오빠라는 말만 들어도, 미쳐버리거든. 농담이고! 비교 대상 없고, 때 묻지 않았고.. 뭐 이유야 얼마든지. 
    적어도 남자에게 순결이란 딴 게 아니니까. 여자가 생각하는 전적과 남자가 판단하는 연애사, 그게 어디 같나? 
    그렇다고 여자들끼리 사석에서 무슨 도덕론만 말하나?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소리! 
    잘 아시면서 내숭은 내숭은 그냥 말도 못허지. 허허. 아 글쎄 그래유, 안 그래요? 네?」





    7

    「남자보다 훨씬 마음의 결이 신비한 여자, 그런 의미에서 '여자의 적은 여자다'라는 웃긴 말이 있는 거지. 그냥 여자는 나쁘다는 말이 아니야. 남자는 모이면 리더를 뽑고, 여자는 모이면 편을 짠다 끼리끼리 뭉친다. 그걸 꼭 나쁜 의미로 인식하면 만년 제자리걸음이고, 알기 전과 후가 다르다면 누구야 머머하자 나랑 바꾸자 내 아들하자 그러는 거고. 안 그래도 여자는 나이 때문에 업그레이드하기 어려운데? 나랑 별 관계 없어도 남자 대 남자, 남자 대 생판 모르는 여자. 호불호에서 공을 쫓고 목적 뚜렷하고 표적 확실하니까, 뛰고 치고 골대에 넣기 바쁜 남자. ~와 달리 여자가 싫어하는 게 그 얼마나 많은데. 고양이 발톱 팍팍, 치아 팍팍. (몸짓)! 줄임말 '여적여', 어? 1차적으로 느끼고, 받아들이고, 체감하며. 결코 그럴 일이 아닌데 말이야. 왜 그럴까? 그러니까 뒤늦게 의전 행한다는 식으로 그녀를 앞서 가면서 대접해드리면, 왜 나보다 빨리 가녜. 짜증나고 신경질부릴 일이지. 연애 탐색전 당시에야 둘 다 호감인데 뭘 해도 좋지 왜 나뻐. 하지만 시간 좀만 지나 봐. 절대로 그녀보다 앞서 가서는 안되는 것. 왜? 잔말 말고 따라와, 그녀 기분 나쁘니까. 기분 나쁘다고. 약간이라도 여자가 다혈질 스타일이다? 그러면 안돼~! 절대 안돼. 반면 뭐 적당히 무난하고 가족이라는 장르에 충실하다면야 점점, 어? 점점 나란히 가던 연인. 차이는 점차 벌어지는 거지. 누가 앞서 가고 누가 뒤에 따라가든지. 0.5미터. 1미터. 2미터. 3미터...... 찾아보면 7미터도 있고 자동차 따로 타고 가는 예도 있긴 있지. 그러다 통보는 기본이요 적당히 자유로운 의리에 정착할 수도 있고. 어디서 사고만 치지 말아라, 막장 드라마처럼 숨겨둔 애 그런 건 안된다까지. 아 또 있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사람들이 얘기하듯이 마누라 등쳐먹는 놈이라는 소리 좀 그만 듣게, 제발 사업 새로 벌여 그만 좀 망해라 이 인간아. 그럴 수도 있고. 
    하여튼 남녀는 말을 섞으면 섞을 수록... (절레절레)! 그러니까 그녀 말에 토를 달면 안 돼. 그럼. 말이 길더라도 언젠가 끝나. 어? 잠은 자야되잖아. 그녀가 화를 내더라도 기다리다 보면 잠잠해지거든. 힘빠지던가 지치던가 배고프던가. 어? 그보다 더 좋은 방법? 말을 안 하면 돼. 스님처럼 묵언 수행! 동네 똥개처럼 눈 깔면 되지. 밖에서 으쌰으쌰 정력적으로 왕성한 활동을 자랑하더라도, 집에 들어가기만 하면 그냥 시름시름 맥없이 구석지에 찌그러져서 앓는 시늉을 하면 돼. 응? 여자? 뭐 여자? 모든 여자는 여신.
    동물로 비유하자면 남자는 개 여자는 고양이. 괜히 살쾡이를 들먹일까. 그럼 그걸 아니까 맹수의 장점을 살려야지, 왜 하필 뒷북이야. 어? 맹수의 장점 다 까먹고 뒤늦게 여자의 직감? 어? 남자는 시각 여자는 청각. 물론 듣는 게 더 오래가. 훨씬 강력해. 뿐만 아니라 읽기의 시작은 해독. 읽기 능력을 결정짓는 3가지 핵심 요소는 해독, 배경지식, 동기. 왜 인문교양적 소양을 갖추는 게 좋냐, 모르면 안 되거든. 간접 취득한 배경지식이 다소 모자라더라도, 남자는 집에 있으면 안 된다 남자는 무조건 밖으로 나가야 한다. 막 그러면서 우리는 뛰고, 공을 때리고 쫓고, 넣고, 으쌰으쌰 우르르르 딱 그러거든.
    그런 한편 여자는 듣기에서 끝나느냐, 어른이 되어서도 그럴듯한 보이는 어설픈 말들에 휘둘려 살다보니 여전히~ 여태 상상력이 최고인 줄 아느냐, 아니면 수다 3시간이냐. 안 그래도 착하고, 부드럽고, 여리고, 권위에 약하고, 사랑에 대해 마음 약하고. 공상과 상상력과 듣기가 기본인 수다대회에만 머물러 있으면 그냥 꼬마들 그림 단계에서 멀리 못 가. 거기에만 머물면 피카소 누구 누구처럼 꼬마들 그림을 닮은 명화에 근접하기 힘들다고. 안 그래도 세상은, 남자는? 액자에 아무 그림이나 담으려고 하는데? 뭔 말로는 누구의 무엇, 누구의 무엇, 누구의 무엇을 총합한 이상형 어쩌고저쩌고. 그래 봤자 꽃과 화병. 씨가 좋으면 그 어디에 뿌려도 잭과 강남콩 동화처럼 신기한 나무가 하늘 높이 자랄 수도 있는데. 밭이 워낙 좋으니 어떤 씨앗을 부려도 뭐든지 최고로 성장한다, 태생론이냐 난초론이냐! 그에 앞서 감별사가 병아리와 달걀 구분 못하면 어쩌나. 선구안 흐리멍텅하니 퇴락한 왕년의 누구를 만년 4번 타자로 기용하라고? 지금 장난하시나. 져주라는 억지는 말도 안되는 소리. 토끼는 다리가 살리고 늑대는 이빨이 먹여살리며 여우는 꼬리가, 꼬리가 지켜준다 너. 그래서 그녀들은 특히 여우짓에 민감하다는 점. 민감한 경구들을, 그냥 단지, 1차적으로만 알면 뭐하냐고. 어? 제일 좋은 마늘도 양파를 대신 못해~. 여자는 남자를, 남자는 여자를! 그 가운데 최고는 시작부터 끝까지 남자 얘기만 하는 숙녀. 농담이고. 잔소리 듣다 듣다 우리들 귀에서 피난다니까 그러시네. 의부증에 남자는 견디지만 의처증에 여잔 남자보다 견디는 정도가 달라. 이게 다 나나 되니까~ 앗! 너 여자구나. 여자들끼리 생색내는 거 싫어해도, 나중 시간 지나고 봐라. 생색내는 걸로 눈물나도록 웃기는 게 어떤 건지 알게 될 테니까. 어? 우리는~ 달리지 않으면 안돼. 
    너 그건 알아 둬. 웬만하면 어떤 뼈다귀라도 환장하겠으나, 개는 단물 빠진 뼈다귀를 좋아하지 않는다네. 풍부한 젤라틴, 양질의 골수, 탐스러운 향기. 그렇다고 남자들이 다 개란 말이 아니라, 남자는 강아지 여자는 고양이. 그런 습성의 차이가 있으니까. 그러므로 그에 따라 단점과 장점을 거꾸로 구사하지 말라는 뜻에서 하는 말인데, 말 거 참 나 더럽게 길어졌네 그려. 
    그런데 지금 이 얘기가 왜 나왔지? 아 맞다, 이 모든 게 하필 너네 월간지가 놓칠 수 없는 주제구나. 
    깜빡 잊고 있었네. 내 정신 좀 봐. 아, 당했다.」





    8

   「아, 땄다. 힘드네. 어려워. 쉽지 않아. 하긴 돈 버는 게 그리 수월할 리가 있나.」
   「따? 뭘 따?」
   「긴 대사.」
   「내가 무슨 빨개도 벌레 먹은 사과야 뭐야?」
   「아니. 오빠는 악보야. 그럼 난 악기인가? 그럼 연주자는 어딨나? 그야 그분이 로봇이든 마술사든 우리가 알 게 뭐야! 그러니까 말이지, 그게 왜 이렇게 어정쩡허니 각이 나왔는고 하니, 응? 바로 이번 달 마감 다 됐는데 분량 부족해서 그래. 서운하지 않게 톡톡히 책정했어.」 라는 말과 함께 그녀가 내미는 봉투. 
    특유의 거드름과 넉살을 뒤섞어 NB는 재빨리 내용물을 확인했다. 
   「뭐야? 달랑 1장이 아니잖아? 겨우? 꼴랑? 게다가 무슨 선물 교환권 어쩌고저쩌고? 심지어 추첨에 당첨되야 준단 말이잖아?」
   「오빠. 넣어둬. 응? 오빠.」
    이게 더 이상해. 완전 이상하지. 얘 여자 맞아? 편집장 오래 하더니 변한 건가? 
    악수할 때 팔꿈치 살짝 위를 가볍게 만지듯, 골반위 성감대를 어떻게 슬쩍 스치듯. 
    그렇게 톡톡 팔을 다독이는 얜 뭐지? 뿐인가! 그게 끝이 아니라, 
    가만히 체온을 전달하는 것 이상은 꿈도 꾸지 말라는 듯 그녀는 NB의 손등을 살며시 만지며 악력 꿈틀, 눈빛 윙크.
    생긴 건 딱 숙녀인데, 하는 건 능글능글 능구렁이처럼 능글맞기로 어디서 그 짝을 찾을 수 없는 능청꾸러기야 뭐야.
    힘은 개미가 다 빼고 배짱이가 차익 챙겨서 튀는 거냐고 뭐냐고. 기를 받아도 모자를 판에 말이야, 어?
    아아, 닭 쫓던 개 지붕쳐다 보는 이 기분은 도대체 뭐지?
    그래서 듣느라 고생했다며 빨린 기 금방 충전될 거라면서 격려라도 할 생각은 쏙 들어가버렸다. 





    9

    이러쿵저러쿵 할 거 없다. 잔소리 잔머리 굴릴 거 읎단 말이다. 어차피 귀걸이 가게에서 귀걸이는 잘 팔리고. 시시콜콜한 드라마도 뻔하다지만 보다 보면 또 재미있다. 벽에도 귀가 있다. 세상에 비밀은 없다. 사후 세계는 있다. 뭐라고? 뭐 아무튼 착하게 살자는 얘기쯤으로 알면 그만이고. 아무튼 잔뻔치도 바닥났고. 잔재주도 힘 빠쳤고. 이런 말 하면 뭔가 약간 저속해보이지 않을 수 없겠으나 때가 때인 만큼 우리끼리니까 하는 얘기지만, 응? 뭐랄까 그 어떤 잔챙이들이 끌린다고나 할까? 다 말이 그렇단 거고. 웃자는 농담에 말꼬리 잡히면... (절레절레)! 다 굶주린 그분들 심정에 대한 동조..측면의 의미 이상은 절대 없고. 아니 말이야 바른 말이지. 철부지 타락마를 타고서 타락 풍조가 만연했던 방탕의 호기에 빠져 정신 못 차리던 시절, 그건 그냥 타인들의 영웅담일뿐. 돌아보면 아니, 절대 뒤돌아 보지 마! 개가 짓을 때 늑대는 제 할 일을 한단 말이다. 뿐인가? 한겨울인데 모기가 심심치 않게 근처에 얼쩡거리지를 않나, 다큐멘터리 쫌만 심취했던 상남자들은 아주 아주 잘 안다. 바로 하이에나가 절대적인 밀림의 강자라는 것을. 표범과 치타는 그냥 애교. 그 뿐만이 아니다. 촌닭, 뱁새, 똥파리... 어? (절레절레)! 딸아, 아빠 빼고 이 세상 모든 남자는 몽땅 늑대이니라~! 그런데 NB가 그 말을 왜 그렇게 잘 기억하고 있지? 도대체 누가 그 말을 했다고. 그게 명언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어쨌든 뭐 틀린 말도 아니니 넘어가고.
    자로고 옛말이 틀림없다. 다름 아니라 그 뭐더라? 올커니~ (딱), 춤판에 뛰어들었으면 춤을 추어야 한다. Y존만 소중한 게 아니라 인생이 귀중한 것. 그런데 시간낭비 할 만큼 했으면서 또 공상을. 다 배경지식과 고급스러운 안목에다 근사한 취향에 비례해서 상상력도 함께 가는 거지. 무턱대고 상상력이 중요하네 어쩌고저쩌고. 다 있어 보이는 말 뿐이고 응큼한 공상을 위한 명분이자 핑계일 뿐. 그렇게 어쩌다 무논리적으로 NB는 허당이 최근 뭘로 변신했냐를 고심했다. 교양가? 전문가? 일반가? 만능가? 돌팔이? 난봉꾼? 만담가?
    지금 그럴 때가 아니다. 꾀돌이가 궁리하는 동안에 머저리는 강을 건너버린단 말이다. 어? 사자가 하지 못하는 것을 여우가 한다고! 
    그래서 NB는 오전에 여성환상 1.5 사무실에 들렸고, 오후에 환상문학잡지 미스테리아에 들렸다. 밀린 원고료를 받아내기 위해서. 
    걔네들이 자꾸 준다 준다 준다면서 미루는 걸 보니 누굴 호구로 안 거지. 사람 뭘로 보고 말이야. 보자 보자 하니까 뭐... 그런데 또 그는 걔네들 말을 듣고 보니, 형편을 이해하고, 
    그동안 자기도 모르게 빨아들인 기력에 담보로 남은 환상까지. 결코 손해본 장사는 아니었고. 그러다 그럭저럭 알고 보니 못 받은 정당한 노동력의 댓가가 그리 썩 많지 않다는 걸 알게 됐다. 괜히 혼자 계산 잘못해서 머쓱해졌다. 그럼 이제 퇴근 시간이 가까와지는데 뭘 한담? 돌아가는 사정을 보아하니 이건 뭐, 뭐야? 뭐야 이건? 어? 이건 뭐 초보 중의 초보 견습생도 아니고. 저번에 걔 누구야 이름도 잊어먹었어. 하다 하다 아는 동생들도 다 떨어져나갔고. NB가 알기로 인생이란 그랬다. 지금 생각나는 명언은 그거였다. 바로, 가장 능숙한 목수는 대패밥을 거의 내지 않는 목수다. 간질간질 쾌감이야 초짜가 최고라지만 원숙미야 베테랑 헤어드레서지. 그런데 금방 끝나 약간 서운하기 마련. 그래서 어쩌자고? 요 앞 맥도널드 새로운 아르바이트생한테 눈독들이고, 그 옆 카페 웨이트레스한테 껄떡대며, 다시 그 옆 바텐더한테 노련하게 접근할 일 있나. 다 부질없다. 몽땅 재수없다. 전부 재미없다. 뭐하러? 싫단 말이다. 귀찮다고. 취미도 없어. 아니 왜? 의미 없지. 비전이 어딨어. 떡밥 아직도 뿌릴 일 있나. 밑도 끝도 없이 떡밥 한정없이 뿌려보면 얼마나 기운 빠지는 줄 아시나? 몰라도 된다. 그걸 뭐 꼭 알아야 하나? 그게 뭐 얼마나 중요한 일이라고. 그럼 뭣이 중헌디? 소중이가 중허긴 중헌디 도대체 그 소중이가 뭐냔 말이지. 어? (절레절레)! 인생이란 뭐 그 뭐야, 바나나를 먹으려면 바나나 껍질을 벗겨야 한다 그렇긴 한데. 그런데 야자를 깠더니 이미 빨대 꼽혀 단물은 빨렸더라? 거 참 나 더럽게 재미없구만. 아 서술자가 아니라 바로 NB가 말이다. 
    그래서 그가 꺼낸 (단기적으로) 최후의 카드는 모험이 아니라 여행이었다. 자발적 가택 감금 해제하고 탈출한다는 뜻이었다. 말하자면 세상사 그렇다. 보아하니 동물들도 그렇더라. 바로, 늙은 개는 아무것도 없는 데서는 짓지 않는다. 노장의 노련함이란, 능란한 맹수는 괜히 힘빼지 않는 것. 그렇다고 난 늙었어 그런 날 보며 헛기침을 하시는 분들은 어떠실지 라는 말이 아니라. 그는 그렇게 당분간 영감이 바닥났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아찔한 착상에 도움이 되고자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안 그래도 환상문학잡지에 연재하면서 매번 꼬박꼬박 원고료는 넙죽넙죽 받아챙기면서 내내 드라마 장르 그 뻔한 이야기만 궁시렁궁시렁 나불대며 써제끼면 어떡하나. ~라는 듯 마라의 무언의 압력. 생각만 해도 발바닥과 발가락 사이에 땀이 다 날 지경. 간혹 그녀의 직접적인 압박. 으~ 소름. 어디서 주서들은 속담 웬만치 좀 울궈먹으라는 둥, 간사한 재간둥이 땡깡부리는 거 꼴보기 싫다는 둥 어쩐다는 둥. 그야 어떻든 신비니 환상이니 새로운 인생과 아름다운 사랑 그리고 황홀한 쾌감, 아니. 아무튼 색다른 분위기에서 기분 전환도 하고 마음을 가다듬고자 그는 떠나기로 했다. 참고로 핑계 아닌 핑계를 대자면 어딘지 모르게 최근 '그는 그는'라는 3인칭이 '나는 나는'라는 1인칭보다 낯설었다고나 할까? 일전에도 한번 대화가 잘 써지니 대화밖에 안 써지고 막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좌우지간 사과는 파랄 때 따면 안된다. 때를 기다려야 한다. 호두를 깨야 호두알을 먹을 수 있다지만, 그런데 까고 봤더니 골았더라? 사자처럼 느그적느그적거리든 늑대처럼 굶주리든. 갔다 오면 뭔가 가기 전과 달라지기를 바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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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 ─ 162

from 소설 2020. 1. 15. 17:56

    1

    그는 본색을 드러내고 자시고 할 활기가 떨어졌다고 해도 과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어찌 된 영문인지 몰라도 여태까지만 보자면, 잔소리 얻어들을 복부터 부족하기 때문일까? 괜한 잔병 탓에 최근 시름시름 앓기만 했을 뿐. 이 일을 대체 어쩌면 좋을까. 어쩌긴 뭘 어째. 병원 가서 처방받고 약 먹고 나으면 그만이지. 무슨 애도 아니고 그 엄살 누가 귀엽다고 봐주겠냐고. 일단 봐줄 사람도 없고 말이지. 그 때문일까? NB는 이젠 정말로 비실비실 어리버리한 슬럼프가 당도한 걸 통감하고 말았다. 왜 아니겠나. 일만 하다 바보가 되어버린 꼴이지. 그러므로 이와 같은 더럽게 재미없는 일상을 탈출하려면 혼자 힘으로 어렵다고 결론 냈다. 그래서 그는 동네 친구 폴에게 전화를 걸었다. 함께 놀기 위해서. 
   「폴. 뭐해?」
   「뭐하긴. 일하지.」
   「일? 일 재미없지? 너, 일하기 싫지?」
   「아닌데. 일 재밌는데. 일하기 좋아. 공부도 재밌었거든. 괜히 일 잘하는 사람 부추기지 말고 심심하면 딴 친구나 알아봐. 나 바쁘니까 이만 끊을께.」
    뚝. 이 자식이...! 
    그런 한편. 질투가 날 정도로, 의뭉스러운 환상머신은 유쾌한 기분과 상쾌한 만족감을 왜 내게 선사하지 않는 것일까. 라는 공상에 빠지려던 찰나 크리스티가 NB의 사무실로 찾아왔다. 
   「크리스티. 연락도 없이 웬일이야?」
   「왜, 난 여기 찾아오면 안 돼?」
   「누가 안된데? 누구야? 어? 그 인간 누구냐고. 싸움 잘해? 걔 나한테 걸리면 가만 안 둔다고 전해.」
   「뭐 그건 그렇고. 오빠. 아니 정말. 어? 나한테 왜 그래?」
   「아 저번에 남자 소개시켜주려다 만 거? 너 아직도 그거 담아두고 있었니? 애들한테 얘기 못 들었어? 너한테만 그럴까? ~라고는 생각해보지 않았니?」
   「그건...」
   「나한테 왜 그래? 또 자기중심적 사고체계. 그렇게 하도록 만드니까 그렇지. 안 그래?」
   「그런데 있잖아. 오빠. 나 할 말 있어.」
   「뭔데?」
   「오빠, 큰일났어.」
   「아 뭐냐고 그게?」
   「나 남자친구 생겼어.」
   「어? 정말?」
   「응.」
   「그럼 걔 만나러 가지 여긴 왜 왔니?」
   「오빠 놀려주려고.」
    그러면서 크리스티는 온 지 5분도 채 되지 않아 돌아서서 가버렸다. 쟤 뭐야?
    그러다 잠시 후. 
    동네 친구 켄트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어. 친구. 켄트지 너가?」
   「그럼 내가 켄트지 칸트냐? 그건 그렇고. 너 중병에 걸렸다며?」
   「내가?」
   「그럼 중병에 걸린 게 너지 나냐?」
   「그건 또 뭔 소리야? 어디서 헛소문을 듣고서 그러는데?」
   「헛소문? 장안에 소문이 쫙 퍼졌는데 숨길 거 없어 친구. 병은 알면 반틈은 치료된 거랬나?」
   「어디서 뭔 얘기를 들었는데 그래?」
   「네가 희귀 난치병이랬는데. 후천성 면역 적혈병? 아닌데. 뭐랬더라? 위궤양? 아닌데. 혹시 광견병이랬나? 아닌데. 그건 사람이 걸리는 게 아닌데. 아 맞다. 췌장암. 아니다. 교묘세포종이라던가?」
   「어디서 개 풀 뜯어먹는 소리를 듣고서 난리긴 난리야? 컴퓨터로 치면 그냥 잔고장일 뿐이야. 시간 조금 지나면 다 좋아져.」
   「그래? 그럼 다행이고. 쾌차하길 빌어 친구.」
    그러면서 켄트는 전화를 뚝 끊었다. 말은 되풀이되면서 커지기 마련이라더니 참 내. 
    심심함으로 볼 장 다 본 건가? 재미없음으로 갈 데까지 간 거 아니냐고. 도대체 언제 올 것이 오냔 말이지. 어? (절레절레)! 
    아직 퇴근하기 전까지 마음을 잡고 일을 해야 하니까 그는 분위기를 전환했다. 
    안토니오 비발디 / 2개의 합창을 위한 <딕시트 도미누스> RV594
    (일부 예외 빼고는) 아무리 높이 나는 새라도 먹이는 땅에서 찾는다. 뚜벅뚜벅 영차영차. 보고 읽고 듣고. 항상 그렇듯이. 
    그렇게 어느덧 해는 기울어 노을이 멋진 저녁이 찾아왔다. 
    그렇게 그는 동네 아지트로 갔다. 
    화면 전환. 동네 아지트 도착.
    화면 전환. 동네 아지트 도착.
   「친구. 뭘 그렇게 꾸물거리고 있어? 대체 속으로 뭔 생각을 그리 하는데 그러냐고. 응?」
   「아니 뭐 그냥. 이 생각 저 생각 하는 거지. 아! 너네들 한동안 안 보이던데 무슨 일 있었어?」
   「그럼. 아 맞다. 너한테 말 안 했구나. 우리 3 대 3 소개팅했어. 결과가 어떻게 됐을까?」
   「어떻게 됐는데?」
   「꽝 됐어. 근데 중요한 건 우리가 3 대 3 소개팅을 또 했다는 거. 허허허허허.」
   「나만 빼고? 너네 정말 이러기야?」
   「너가 전화받지 않길래 급히 대타 투입했지. 그러게 누가 전화 안 받으래?」
   「전화 안 왔는데?」
   「부재중 알림이 뭐 늦게 뜨거나 착오가 있을 수 있어. 어쨌든 넘어가고. 그래서 소개팅 결과 어떻게 됐을까?」
   「어떻게 됐는데?」
   「걔네들이 그러더라구. 단번에 결정하기 힘든 황금비라고. 네가 좀 듣기 거북하겠지만 기왕 말이 나왔으니 대충만 말하자면 그렇다네. 뭐가 그러냐, 바로 이대로 몇 번 더 만나보자는데?」
   「3 대 3으로?」 
    끄덕끄덕!
   「계속?」
    끄덕끄덕!
   「선수 교체는?」
   「당연히 없지.」
   「」
   「왜 말이 없어?」
   「나 원래 말 없는 남자야.」
    이상한 미소를 남긴 채 그렇게 남자 친구들은 걔네들끼리 또 딴 데로 가버렸다. 
    NB는 생각했다. 쟤네들은 3 대 3으로 소개팅 연타이자 장타를 날리는데 난 뭐야! 무슨 거대기업 드림팀 이사회도 아니고 말이지. 여자애들은 또 뭔 꿍꿍이야? 말은 타서 달려봐야 알고, 사람은 친해봐야 안다. 그건 그렇지만 이젠 그 흔한 탐색전조차 전멸? 뿐만 아니라, 아니 됐고. 갑옷을 입어도 돼지는 여전히 돼지에 불과하다. 그럼 트로이의 목마는 말이 아니라 알고 봤더니 개더라? 알 게 뭐야. 
    그러더니 사라가 지나가면서 이렇게 말했다. 
   「오빠. 요즘 인공지능 지니는 한가해? 할 일 되게 없나 보지? 겁나게 한가하대? 그 잘난 환상머신은 아꼈다가 뭐에다 쓸 건데?」
    NB는 즉흥적으로 대꾸할 말 3가지 가운데 최고의 유머와 밉지 않은 풍자가 돋보이는 답변을 적극 맞받아치려는데. 
    그런데 이미 사라는 저만치 지나가버렸다. 저년이...! 
    허허. 시치미 뗄 일은 물론 조롱받을 일도 없는 요즘. 뭘 해도 애간장 탈 일은 절대 없었다. 결코 읎어. 그럼. 홀딱 반할 만한 새로운 관심사가 어딨나. 바랄 걸 바래야지. 그래서 이처럼 정처없이 또 아지트를 찾아왔는데. 아, 그러면 뭘 해! 내가 다시 여기 오나 봐라, 라고 말할 뻔 말 뻔 하다 그는 무작정 그곳을 나왔다. 





    2

    핏줄은 속일 수 없다던가? 여우를 못 잡아먹어 안달이 난 늑대의 마음, 나에게 없지 않았다. 솔직하고 자시고 아니라면 거짓말. 허나 단지 굶주리기만 할 리가 있나. 나를 태워주는 당나귀는 나를 뒷발로 차는 암말보다 더 가치가 있다는 게 세상사라지만. 전부 몽땅 남들 얘기. 아니면 뻥. 꿈속의 신비감이 불러일으킨 이상한 기분 그런 게 어딨어. 개꿈조차 기억도 못하기 일쑤. 인생은 장밋빛 만은 아니라는 걸 내 모르는 바는 아닌데. 모든 날이 잔칫날일 리도 없고. 아닌 게 아니라 권태에게 완패당하여 더럽게 재미없음에 흠뻑 젖은 셈이지 왜 아니겠어. 아니다. 쓰잘데기 없는 공상만 일삼아봐야 득 될 거 하나 없다. 모르진 않아. 다 안다고. 광고는 상투적인 수다 대잔치, 홍보(PR)는 누가 네 칭찬하더라 라는 것. 여자들은 후자 같은 사랑 이야기를 좋아한단 걸 왜 몰라? 그럼 뭘 해! 내 인생 이야기가 재미없으니까 툭하면 남 얘기나 찾아보는 수밖에. 그래 봤자 작은 냄비가 빨리 끓질 않나, 어? 흠을 잡는 사람이 물건을 사게 된다고 충동구매에 가뜩이나 부족한 품위 유지비를 낭비하질 않나. 이건 아니란 말이지. 속물적인 지성인이 마땅히 감수해야 할 질타 같은 스캔들. 현실감 많이 떨어지는 낭만적 모험가가 뭇 여성들로부터 받는 질투심. 그런 거 모르겠고. 자, 드디어 때가 되었단 말인가? 그런데 어떤 때가. 또 뭘 자빠트릴 잔꾀를 궁리하시게. 됐고! 
    그래서 나는 무작정 뛰쳐나가려고 했다. 집 사무실만 오가는 일상에서 어디든 좋으니 뭔가를 해야 하니까. 그런데 오라는 데가 있긴 있나? 
    ~라던 찰나 마침 딱 맞게 환상문학잡지 아, 격월간 미스테리아 편집장 마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오, 마라. 웬일이야?」
   「웬일은 무슨. 우리 사무실 아직 문 닫지 않았단 소식 알려주려고.」
   「어련하시겠어. 안 봐도 스카우트 제의 뿌리치는 게 취미인 편집장인데.」
   「농담할 기분 아니고. 월초 월말 나 바쁜 거 알지? 용건만 간단히 하자고.」
   「너도 노래 1절만 선호하니? 대체 본론이 뭔데 그래?」
   「잔말 말고. 너 잔병 다 나았지? 내 대학 후배가 있는데 곧 너네 사무실로 찾아갈 거야. 한동안 잘 부탁해.」
   「부탁? 뭔 부탁?」
   「걔 너한테 문학 배우고 싶데.」
   「걔? 나한테? 뭘 배워? 왜? 왜 하필 나야?」
   「왜긴 왜야. 걔가 널 찍었으니까 그러지. 의뭉스러운 이유는 너네끼리 따지든 말든 난 모르겠고. 문하생 청탁한 대신 원고료는 2배로 올려줄게. 됐지? 이만 전화 끊는다.」
    뚝. 
    얜 꼭 지 할 말만 하고 전화 뚝 끊는다니까. 하긴 마라도 세상사에 심지 굳은 여심이 살짝 닳아졌을까? 그래도 걔 앞에서 누가 늙었다느니 뭐라느니 하면 완전 싫어한다. 
    그건 그거고. 그런데 뭔 뚱딴지같은 소리지? 무슨 생? 뭐하러? 혹시 스파이? 그야 관상 보면 알 테고. 
    바로 그때 사무실로 노크도 없이 어느 숙녀가 불쑥 찾아왔다. 
   「오빠야? 사진보다 못생겼네. 에잇!」
   「네?」
   「오빠네. 생긴 건 꼭 석상 조각가처럼 생겼는데 뭐 그럴 수 있어.」
   「그럼 그대는 마라의 후배?」
   「그대? 오빠 고전을 너무 많이 봤네. 왜, 요즘 몰리에르 3부작이라도 읽고 계셔?」
   「뜨아! 어떻게 아셨죠?」
   「어떻게 알긴 뭘 어떻게 알아. 그냥 찍었지. 돌팔이 점쟁이도 그건 하겠다. 척하면 척이지. 응? 왜 요즘 부인과 사이가 안 좋나? 머머리스?」
   「아니 그렇게 심한 말을! 그런데 당신은 진정 마라의 후배 맞소?」
   「마라? 아 마라. 난 마라 언니의 8촌쯤 되나? 아무튼 말은 들으셨을 테고. 자, 악수나 합시다. 난 마고. 아저씨는? 뭐 딕? 그래 딕 해. 어이 딕 선생. 지금부터 선생은 내 오빠, 나는 오빠의 문하생. 관계 정리됐죠? 그러니 날 넘볼 생각은 마시고. 자, 뭐부터 하지? 일단 첫날이니 축배 먼저 들까? 그러지 말고 우리 바로 일부터 할까요? 난 뭘 하면 돼 오빠?」
    생기발랄하고 활기 넘치며 쾌활한 젊음. 좋긴 좋은데 난 너무 당황스러웠다. 이 일을 대체 어쩌면 좋담? 속으로 좋으면서 호들갑은 무슨! 그래도 말이야, 혹시라도 기 받으려다가 기 빨리면 어떡하냐 그 말이지. 뭔가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려다 뜬금없이 낯선 여인의 출연이라니. 난 갑자기 개꿈에서 깨어난 낭만적인 이상주의자가 된 것만 같았다. 이 무슨 개뼉따귀 같은 일인지 뭔지야 뭐 두고 보면 알 테고. 보아하니 나도 세상사에 부대끼며 깨달은 게 있긴 있다. 말하자면 관상을 보긴 보는데. 늘상 헛다리 짚는 게 걸리긴 해도. 어차피 개 두 마리는 하나의 뼈를 나눠 먹을 수 없다. 그런데 무슨 개소리 같은 공상?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라고. 어? 애인의 마음에 호응함을 넘어서 생각이 일치하고 싶은 욕구를 어찌 하냐를 고민해도 부족할 판에. 밑도 끝도 없이 무슨 뭐 문하생? 내게? 왜? 뭐하러? 그래서 난 빠짝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말하자면 자고로 말이야, 어? 세상사란 그런 것. 뼈다귀 하나에 두 마리 개가 싸우는 동안, 다른 개가 그것을 물고 달아나는 것. 그럼 얘 이름이 뭐였더라, 아 마고. 마고? 지가 무슨 여왕 마고야 뭐야? 아무튼 얘가 두 마리 개가 개 풀 뜯어먹는 말장난 하는 동안 개뼉따귀 물고 도망가는 불여우? 뭐 긴말 필요 없고. 꽃이라고 다 향기로운 건 아니다. 장미인지 튤립인지 그도 아니면 팬지인지 나중 정체를 드러내던가 말던가. 난 내 할 일만 하면 되고. 거 뭐 혼자 적적하던 차에 잘됐지 뭐. 
   「오빠. 어이 딕! 오빠 뭔 생각을 그리 하슈? 그러지 말고 전초전 삼아 시작부터 너무 빡빡하게 굴지 마시고. 기분 풀러 우리 클럽이나 갈까요? 에잇 까짓것 갑시다 뭐.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는 거죠. 안 그래요?」





    3

    1시간 후. 
    마고와 나는 클럽에 들어갔다. 
    그런데 알고 보니 거긴 마고가 아는 친구들이 적지 않았다. 
    당연히 평균 연령을 깎아 먹는 게 좀 걸리던 찰나 다행스럽게 마고가 내 옆구리를 찔렀다. 
   「오빠. 마고는 30분 있다 집에 들어갈 거니까 오빠는 마라 언니랑 놀아. 뭐해 안 가고?」
    내 이럴 줄 알았다. 어쩐지 느낌 세하더라. 
    그날 나는 물주만 됐고 뭔 일은 없었다. (절레절레)





    4

    지금까지 살다 살다 이토록 재미없는 심심함은 처음이었다. 정말로? 뻥이다. 이런 느낌 처음이야! 아 글쎄 뻥이라니까. 항상 그랬을 뿐. 늘 그랬다. 그러고 말고. 왜 아니겠어. 두 팔 벌려 환영할 환희를 포기한 지 이미 오래. 신나는 모험과 까무러칠 신비는 두 손 두 발 들고 잊었다. 아니 어찌 내게 이런 일이? 놀랍지도 않다. 허리띠를 졸라맬 수밖에 없는 현실, 안 그래도 별로 하고 싶은 일도 없었다. 드라마 주인공도 아닌데 무슨 운명에 반항해 아님 꿈을 향한 열망에 고분고분할 일이 있나. 그냥 뭘 해도 재미없을 뿐이지. 삶의 허무 진작 알았다. 인생의 비밀이 어딨어. 신나는 기쁨의 끝장을 볼 것만 같은 예감, 부디 실망감으로 결판나지 않기를 바라는 건 순진한 생각. 말만 그럴 뿐 흔하디 흔한 상심이라는 결판이 뭐 별건가. 이상의 꿈을 품은 개열망은, 돌다 말아버리는 바람개비 마냥 급 싫증을 내기 일쑤. 옛말에 신발이 맞으면 신으라지만 일단 신발이 없어. 동화 속에 나오는 춤추는 구두, 애들조차 관심도 없고. 그렇지만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는 것. 썰물과 썰물은 이어지지 않는다. 그 사이에는 반드시 밀물이 있다. 때를 기다려야 한다. 그런데 언제까지? 내 말이 그거라니까. 참 내 별 무슨 거 참 나 젠장. 됐고. 
    그러므로 나는 새로운 음악을 들었다. 바로, 사베리오 메르카단테 / 오페라  - “이칠리오, 당신을 사랑해요!”
    뭐? 기껏 한다는 특단의 대책이 뭐 겨우 음악 듣기? 그것도 고리타분한 고전음악? 그러니까 여자가 없지. 
    아침부터 콧노래를 부르며 샤워한 다음 미용실에 갔다가 선물을 사고 향수도 뿌리고. 그럼 뭘 해? 약속이 없는데. 
    인기는 다 남 얘기. 건수, 없어. 돈, 있겠나. 정력? 왕성하면 뭘 하냐고. 어? 
    ~라면서 혼자 일하기 싫어 투정 부리던 바로 그때. 여지없이 문하생 마고는 출근했다. 
   「안녕 선생님. 그런데 오빠 표정이 왜 그래? 얼굴 좀 펴. 어? 오빠가 무슨 인상파야 기분파야? 내가 마음에 든다면 마음에 든다고 말을 하던가. 어? 꿀 먹은 벙어리처럼 그게 뭐니. 응? 그러지 말고 일단 음악부터 틀자. 오빠. 칼 필립 엠마누엘 바흐의 Magnificat Wq215번 있어? 없으면 CD 주문하고. 아니다. 그거 내가 선물해줄게. 아 그게 좋겠다. 도메니코 치마로사 / 오페라 비밀 결혼 - 아리아 제목은 모름.
    오빠. 그런데 며칠 굶었수? 왜 그리 힘이 없어? 남자가 그리 매가리 없어 보여서야 쓰나. 응? 아 잠깐! 오빠 지금 그 생각했지? 쟨 대체 누가 보냈지? 뭐하는 앤데 저렇게 말이 많아? 입 아프지도 않나 몰라. 그치? 다 알아. 난 오빠를 딱 보기만 해도 뭔 생각을 하는지 다 안다니까. 허허. 간혹 틀릴 수도 있겠지만 말이야. 뭐 틀리면 어때. 응? 그렇다고 틀렸다면서 오빠가 왜 내 마음도 몰라주냐며 막, 어? 목에 핏대 세우며 나한테 따지겠어 어쩌겠어. 안 그래? 와, 오빠 얼굴 빨개졌다. 혹시 야한 생각했어? 좋을 때네. 그래도 돼. 아니. 되고 안 되고, 가 아니라 그거 오빠 맘대로 안 되는 거잖아. 안 그래? 다 알아. 왜 내가 모를 거 같아? 아니야. 아니란 말일세. 허허. 어 근데 이거 뭐지?」
    어느새 그녀는 책상 위 포스트잇에 적어놓은 뭔가를 읽고 있었다. 
   「코끼리 팬티. 당나귀 슬리퍼. 호피 무늬 내의. 워터픽. 마우스. 안경. 최고급 무접점 키보드. 주간지. 월간지. 타이레놀. 음 이건... 아~ 쇼핑 리스트? 이 오빠도 딱 보니 그런 사람이네. 오빠 소원 그거지?」
   「내 소원?」
   「맥북 쓰지도 않을 거면서. 구입한 다음에 와 나도 이제 스타벅스 갈 수 있게 됐다며 인스타그램에 인증샷 올리는 남자. 그렇지? 안 봐도 뻔해. 그렇지만 말이야, 오빠, 응? 이 세상이 그렇게 만만한 게 아니야. 응? 일단 그거 하나는 명심해. 무엇을? 쥐가 고양이를 쳐다보고 웃을 때는 반드시 근처에 쥐구멍이 있다는 거. 그럼 우리의 개구멍은? 내 알 바 아니겠지 뭐.」
   「쥐구멍은 뭔 얘기고 개구멍은 왜 갑자기?」
   「몰라. 나들 아나. 별님에게 물어 봐. 물론 별님의 답변은 그렇겠지만. 응? 묻지 마세요! 뭐 안 그래도 눈화장 하기 귀찮은데, 어? 내가 왜 그런 시덥잖은 주제까지 신경써야 하는데. 그냥 넘어가. 오빤 그렇게 생각이 많은 게 탈이라니까. 응?」
   「그런데 넌 대체 정체가 뭐니?」
   「정체? 뭔 정체?」
   「넌 누구냐! 그 말이지...요.」
   「오빠, 그걸 꼭 내 입으로 말해야 하니? 그래. 그러자. 아니. 그러기 싫어. 아니. 아니? 뭐가 아니야. 에잇 몰라. 다 모르겠다고. 알아서 뭐해? 몰라도 돼. 왜 알아야 해? 누가? 내가? 그러니까 뭘? 뭐긴 뭐야. 아무것도 아니지. 그렇다고 그게 꼭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아니란 것만 알아둬.」
    난 마고와 대화를 하면 듣는 역할만 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질문을 해 봐야 본전도 못 찾는다는 거 딱 봐도 모르겠나. 
    그렇다고 꼭 마고의 장단에 놀아나는 이 상황이 심하게 싫다는 건 아니다. 
   「오빠. 왜 말이 없어? 이제 더 이상 나랑 할 얘기 없어? 아님 나랑 말하기 싫은 거야? 아~ 지금은 일할 시간이다? 여기는 사무실이다? 넌 네 주제를 알아라? 우리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다? 그래. 쉬는 시간까지 조용히 있지 뭐. 나도 말 많이 하기 싫어. 어? 이거 왜 이래? 누군 뭐 자청해서 다변가가 된 줄 아시나? 뭐 좌우지간 우리의 동지애는 차츰차츰 돈독히 또 소중히 키워가는 걸로 하자고 친구. 아 오빠.」
    그렇게 마고의 2번째 수업 같지 않은 수업은 끝났다. 





    5

    그리고 다음 날. 
   「오빠. 뭐 비장의 묘책 같은 거 없어? 날 유명하게 만들어야 할 거 아냐. 어? 이처럼 아름답고 어여쁜 숙녀가 있는데 그녀의 지성과 미모를 만방에 알리지 않는다면 그건 단지 우리 둘만의 손해일까? 오빠 칼럼니스트 맞아? 마라 언니한테 듣기로.」
   「마라 년한테, 아니. 마라 언니한테 듣기로?」
   「내가 어디 아무한테나 언니 말을 전할 거 같아? 난 고자질 취미 없어. 오빠가 뭔가 나한테 자발적으로 책잡히든가 아니면 뭔가 어중간한 빌미를 줘야, 아니다. 재미없다.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라 오빠 나한테 뭐 가르쳐줄 거 없수? 정말?」
   「음 그건 말이야 지금은 생각 중이야.」
   「뭔 생각? 육체적 사랑 생각?」
   「어허. 너에게 어떤 장르가 어울릴까. 그거. 응? 딱 그거. 그러니까 말이야, 그 흔한 유행가 가사 쓰는 법을 가르쳐주면 넌 나중 금세 잊히거든. 인기? 다 거품이야. 물론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 뭔지는 내 알 바 아니지만 말일세. 그래서 난 네게 빈첸초 벨리니의 오페라 <청교도>에 나오는 그 뭐야 멋진 아리야 있지. 뭐더라? “난 아름다운 아가씨라네”. 그런 어떤 재주를 발굴해내고 싶은데. 그게 정녕 쉬울까? 너가 독학에 실패했던가. 아니면 우리 둘 다 별 볼 일 없는 스승과 제자던가. 그도 아니면 관계 설정을 다시 하던가. 일단 뭘 할지 생각하는 중이라 그거란 말이지. 음.」
   「생각 좋아하시네. 핑계는 그럴싸해. 그치만 변명만 그럴듯하면 뭘 해. 그러니까 해가 바뀌든 크리스마스가 돌아오든 매번 공상에 빠져있지.」
   「어허. 생각 중이라니까 얘가 정말. 그래도 그건 잊지 마. 그건 꼭 알아둬야 하니까.」
   「뭘?」
   「뚱뚱한 여자가 노래 부르기 전까지는 오페라는 끝난 게 아니다. (몸짓)」
   「하여간에 말은 뭔가 있을 듯하다가 딱 그냥 거기서 끝나. 그래서 지금도 혼자지. 누가 아니래.」
   「뭐, 다른 거? OK~! 적은 건 적은 거다.」
   「적은 건 적은 거다? 그게 뭐야?」
   「남자들이 좋아하는 게 뭔 줄 아니? 왜 새끼마담이 남자들과 말이 잘 통하는 줄 아냐 그 말이지. 남자들 꿈이 뭐게? 대망 그런 거 말고. 현실적인 거. 타고난 재주가 망대한 친구들 말고. 평범한 남자들의 꿈. 그분들의 웬만한 열망. 응? 대부분 20대의 삶. 인생을 논할 계제가 아니겠지. 그렇다고 친구들끼리 사랑을 얘기할까? 남자는 남사스러워서 그런 말 못 해. 안 해. 왜 해? 쑥스럽기보다 싫지. 그게 진짜니까. 그럼 남자가 20대 중반을 넘어서 후반 지나고 30대. 그리고 40대 남자들과 꽤 진솔한 얘기를 나눠본 데이터베이스. 그 솔직한 속 얘기의 통계를 알려줄까? 그분들의 꿈은 뭔 천문학적인 재력도 좋긴 좋겠으나, 지극히 현실적으로 그분들 속마음을 끄집어내면 거의 다 그래. 그게 뭐냐, 바로 그거지. (딱)~! 오빠 왜 결혼 안 해? 라고 묻는다면. 진정 사랑하는 사람 어쩌고저쩌고는 다 입바른 얘기고. 죄다 사석이 아닐 때 있어 보이려고 하는 말들일뿐이고. 남자, 어? 상남자인 이상 그 맨발의 청춘들이 품는 꿈은 거의 다 그래.」
   「아 뭐가 그래? 빨랑 말 안 해? 오빠. 뜸 좀 고만 들여. 어?」
   「그분들의 꿈은 좋은 차 타면서 인생을 즐기며 여자들 좀 만나보고. 놀러 다니고. 돌아다니고. 그러다 결혼이야 뭐 때 되면 하던가, 지금은 딱히 절실히 해야겠다 라는 생각은 없다. 라는 게 그분들 본심이라고.」
   「뭐야! 그게 <적은 게 적은 거다>라고? 뭔 남자 마음이 그렇게 쪼잔해? 밴댕이네. 무슨 위인전에 나오란 말이 아니라. 희망. 소망. 사랑. 행복. 긍정적이되 비관조의 냉소도 모르지 않다. 단 3줄짜리, 좋아하는 영화의 줄거리 같은 인생을 살고 싶다. 뭐 그러 거도 아니고 뭐, 뭐가 어쩌고 저째? 그러니까 야망이 그렇게 퇴색하기 마련이지. 어떻게? 남자가 태어났으면 말이지~ 어~ 3년 5년 사귄 여자친구와 결혼은 거의 정해진 거나 다름없으니까, 어? 남자가 태어났으면 말이지~ 그다음에 쩜쩜쩜. 차마 하지 못하는 말. 그래서 남자들이 사랑이라는 단어조차 입에 담기에 낯부끄러워하지. 안 그래? 양심에 찔리거나 허세가 어설프거나. 빈수레가 요란한 법이거든. 응? 뭐 적은 건 적은 거다? 이런 약장수 오빠를 다 만나게 되는 내 인생은 또 뭐란 말이야. 응? (절레절레)」
   「아직 실망하긴 일러.」
   「글쎄요. 과연?」
   「허허허. 그 반대도 있지.」
   「그 반대?」
   「적은 게 많은 거다.」
   「적은 게 많은 거다?」
   「응. 한마디로 성실한 남자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사는 여자. 나중 애들 출가하고 은퇴한 다음에 부부끼리 다정히 전국 자동차 여행을 다니던가. 캠핑카 몰면서 대륙을 돌아다니던가. 그도 아니면 계절이 바뀔 즈음 위아래로, 분기에 1번 좌우로 여행을 떠나는 노부부. 그런 게 사랑 아닐까?」
   「뭐? 그게 적은 게 많은 거다고? 이런... (표정)! 오빠 정말 순 돌팔이 아니야?」
   「그게 다 너 생각해서 하는 말이라 그거야. 재미없는 훈수 뻔한 농담 누군 뭐 하고 싶어서 하는 줄 아니? 너구리 굴 보고 피물돈 내어 쓴다고, 어? 남자 잘 만나란 얘길세 이 친구야. 허허허.」
    결국 마고의 3번째 출근은 오늘 마지막을 예고하게 되었다.
    정말로 그녀는 다음 날 출근하지 않았다. 
    내 그럴 줄 알았지. 대충 예감 못한 건 아닌데. 그런데.. 어째 기분이 좀 세했다고나 할까?
    그러다 마침내 4번째 날에는 마고 대신 선물만 잔뜩 배달됨. 그리고 내 노트북이 없어짐. 설마 그녀가?





    6

    그런데 알고 봤더니 결근한 마고가 내 노트북을 들고 튄 게 아니었다. 겉모양이 대충 비슷한 노트북이 서로 바뀐 것일 뿐. 
    즉 내 노트북을 마고가 자기 것일 줄 알고 가져갔고, 지금 사무실에 그녀의 노트북이 있었다. 
    물론 마고의 신기한 허영심은 내 사탕발림 립서비스 취향과 썩 다르지 않았다. 그러니 그녀의 구미가 반영된 노트북은 새 노트북이고, 고로 안에 담긴 건 아무것도 없는 깡통. 
    그럼 그녀의 노트북만? 내 노트북도 똑같았다. 그렇지만 바뀐 건 바뀐 것. 그러므로 나는 마고를 찾으러 갈 정당한 명분이 마련된 셈이네? 
    ~라면서 나는 그녀에 대해 뭘 잘 알지도 못하면서 무작정 마고를 찾으러 떠나려고 했다. 
    그렇게 무심코 사무실 문을 열고 떠나려던 찰나, 문을 열자마자 나는 환상문학잡지 마라를 대면하고야 말았다. 
   「야. 너 어디 가? 혹시 도망간 마고를 찾으러 가기라도 할 셈이니?」
   「뭐? 어떻게 알았어?」
   「진짜로? 늬가 마고의 마음에 뭔 지분이 있는데?」
   「왜, 난 마고와 친하면 안 되니? 내 노트북과 마고 노트북이 바꼈어. 그래서 우리는 만나지 않으면 안 돼.」
   「마고가 어디 사는 줄은 알아? 그녀 집안이 얼마나 대단한 줄 알긴 아냐고. 그리고. 넌 뭔 마고가 신비로운 마을에 사는데 네가 그녈 찾아서 딱 동화 주인공이 되고 뭐 환상극이라도 찍을 줄 아니? 걔 집 여기서 5분 거리야. 몰랐지? 이제 알면 뭘 하니. 오늘 이사 간다는데.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
   「당연히 모르지.」
   「그런데 어떻게 만나려고. 늬가 무슨 돈키호테냐?」
   「난 만화영화 주인공이 아니야.」
   「아니긴 뭐가 아니야. 그거 이리 줘. 내가 걔 만나서 바꿔줄게.」
   「안 돼.」
   「왜?」
   「어제 그 영화 봤거든. Population 436.」
   「그거 다 뻥이야. 넌 옛날에 영화를 너무 많이 봐서 문제였고, 지금은 최신 드라마 최신 음악 최신 유행을 하나도 모른다는 게 문제야. 알아?」
   「그걸 내가 왜 알아야 하는데!」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설마 네가 마고를 감싸고도는 비밀은 설마 사랑의 축복?」
   「나 남자 좋아해. 걔랑 나랑은 친척이고. 가만 있어 봐, 8촌이야 16촌이야? 아니. 학교 선후배던가? 왜 이렇게 헷갈리지. 착각인가? 아닌데. 뭐 그건 그렇고. 그럼 넌 뭐 흑심 때문이니? 또 껄떡? 이제 좀 웬만치 숙녀들한테 찝쩍거려라. 아주 그냥 지겹다. 어?」
   「뭔 소리야? 난 여자 보기를 돌멩이 보듯 한다니까 그러네. 늬가 뭘 잘못 아나 본데~」
   「시끄럽다. 나 간다.」
    그러면서 마라는 마고의 노트북을 빼앗아서 가버렸다. 
    하긴 미친 양이 늑대에게 고해할 리가 있나. 세상 끝까지 따라갈 환상이 허당에게 인정사정 봐줄 리 있냔 말이다. 
    꾸물대다 공상하다 빈둥거리다 그냥 동네 단골 술집에나 들리는 거지. 행운아의 방력과 정절을 지키는 사랑이야 TV만 틀어도 날이면 날마다 나오는 것. 
    신기할 거 하나 없다. 아무리 기다려도 기별이 없는 행운아의 낭만감과 사랑의 환상이라는 팡파르는 내게 썩 관대하지 않단 말이다. 아직 때가 아닌 건가? 
    만약 그렇다면 오긴 온다는 거잖아? 젠장. 그럼 뭘 해, 어? 당나귀를 좋아하는 자는 당나귀가 된다고, 난 어느새 숙녀들보다 허영심에서 한수 위를 점령해버린 것이다. 
    허허. 왜 아니겠어. 한 마리 토끼를 쫓고, 한 마리 말을 타기. 원래 그게 정석인데. 바로 이래서 난봉꾼은 떡밥을 뿌리고 기업은 브랜드 라인확장의 함정에 빠져드는 것일까? 
    그러든가 말든가 관심 없고. 지나쳐 버린 바람으로 풍차는 돌지 않는다. 포기할 건 포기하고. 
    그러면서 어느새 나는 의류업자의 명언을 기억하고 있었다. 바로 패션업계에서 잔뼈 굵은 남성복 매니저의 명언은, 
    "소비자가 파란색 옷을 원한다. 파란색 조명등을 켜라."
    언년인지 몰라도 아니, 한놈만 걸리기만 해 봐라 라는 굶주린 하이에나의 울부짖음이야 뭐야. (절레절레)!





    7

    나는 오늘 일을 마친 다음 딱히 할 일이 없었다. 그렇다고 집에 가서 씻고 어쩌고 소파에 자빠져 TV 채널 돌리기는 왠지 싫었다. 그러다 마침 우연히 약속이 잡혔냐, 하면 아니었다. 그래서 내가 행동에 나서 톰을 우리 동네로 불러냈다. 그렇게 우리는 동네 찻집에 자리를 잡았다. 나는 에스프레소 톰은 카푸치노. 지가 언제부터 카푸치노를 먹었다고. 하여튼 분위기를 따지고 자시고 하기도 귀찮고.
   「톰. 어떻게 지냈어?」
   「알잖아? 나 인기 많은 거. 바빴어. 여자라면 이젠 신물이 난다고 친구. 들었어?」
   「너나 많이 들어.」
   「아 맞다. 최근 너에 대한 신비스러운 소문들이 장안에 자자하던데? 아 진짜로.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일들. 그런데 왜 주인공이 너니?」
   「거 듣던 중 놀라운 소식인데. 대관절 뭔 일인데 그래? 듣고 놀라 자빠질지 아닐지 몰라도 일단 들어나 보자. 자, 말해 보셔.」
   「잭이 몽블랑 만년필을 사려고 백화점에 들렸는데 너랑 정말 똑같은 사람을 봤데. 어떤 묘령의 여인과 함께 하길래 뭔가 불륜 냄새가 났다던가? 뭐라고나 할까 어딘가 모르게 아는 체하면 안 될 것만 같은 느낌? 그렇지만 알고 봤더니 너랑 99퍼센트 닮았는데 1퍼센트가 부족했데.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그처럼 똑같이 생겼는지 등에서 땀이 쭉 났데. 그분 혹시 너의 도플갱어 아닐까?」
   「도플갱어 같은 소리나 하려면 가서 풀이나 뜯어먹어. 그건 닮은 사람이 아니라 나야. 나도 백화점에서 잭 봤어. 난 그때 혼자였고 반대로 잭이 연상의 여인과 함께 있었지. 뭐 신비스러운 소문? 네 떠들썩한 입담도 다 녹슬었나 보구나. 뭐 허당의 줄거리라는 게 매번 그렇지. 이해해. 그럴 수 있어. 그럼 고대하는 희망이 있겠니 흠모하는 연정을 꿈꾸겠니. 그렇다고 우리가 무슨 여성잡지사에 취직할 수도 없잖아.」
   「너의 거취와 잭의 동선이 뭐 겹쳐서 오해할 수도 있지 뭘 그렇게 비아냥대? 너 요즘 욕구불만이니? 왜? 성생활이 마음에 안 들어? 아니면 아직도 궁금한 게 정말 정말 많은 거니? 어 그래. 발정기 뭐 그런 거?」
   「뭐? 너 정말! 너 어디 가서 내 평판에 흠집내고 다니지 마. 늬가 그러니까 여자가 없는 거야. 알아? 그러다 잠깐 아는 여자가 있으면 뭘 하니, 어? 뻔트를 대도 한때 친했던 숙녀가 그러잖아.」
   「뭐라고?」
   「오빠 어디 가서 내 남자친구라고 하지 마.」
   「늬가 들었어?」
   「어. 접때 셋이 같이 있었잖아.」
   「」
   「너 요즘도 그러니?」
   「뭘?」
   「너 여자 좋아한다는 거야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건데. 그런데 친구랑 둘이 있으면 꼭 늬 피부가 부드럽다면서 늬 통통 불룩 튀어나온 배꼽 근처 배를 만져보라고 하잖아. 그러면서 친구 배를 만지면서 내 피부가 늬 피부보다 더 부드럽다고 하잖아. 어? 그러니까 늬가 여자들한테 그런 소리를 듣는 거야. 세계 허세 대회 챔피언, 아직 포기 못했니? 그래?」
   「왜, 패자부활전 같이 나가볼 생각 없니? 있으면 말해.」
   「그건 그렇고. 내 하나만 충고하자면, 야. 우리끼리 그래도 되는 거 아니냐. 얼굴 좀 펴. 나나 되니까 다 너한테 이런 얘기 해주는 거야. 여자들 생색내는 거 (개)싫어한다는 거 너도 잘 알잖아. 그렇지만 우리가 여자냐? 어? 우리가 여자냐고. 너 그거 명심해라. 딴 건 몰라도 그건 알아두라고.」
   「뭘?」
   「개는 뼈다귀를 주어 만족시키고 여자는 거짓말로 만족시켜라.」
   「뭐? 이 자식이 듣자 듣자 하니까...!」
   「하나 더.」
   「또 뭔데?」
   「더러워진 도화지를 넘기면 곧 그게 긁지 않은 복권이란 거. 인생이 원래 그래.」
   「원래 그러긴 뭐가 원래 그래?」
   「좀 웃어라. 어? 왜 그래? 싫든 좋든 현 애마는 하필 질펀한 방탕마이기 때문에, 고로 당시 쾌락을 격렬히 사모할 수밖에 시절이 그립던 거니?」
   「하여튼 말을 말자. 말을 말어.」
   「그래? 그러면 음악이나 듣자. 주인장. 여기 손님도 없는데 딴 음악 들으면 안 될까?」
    그렇게 우리는 도메니코 치마로사의 진혼곡을 듣다가 뭔가 기발한 발상을 떠올렸냐, 하면 그럴 리가 있겠나. 
    우리는 할 말이 많지 않았는데 톰이 정적을 깼다. 
   「기왕 나이도 먹고. 우리도 화려한 여자 관심 없고. 너도 나처럼 단정한 숙녀를 만나는 게 어떠니?」
    그러면서 톰은 지갑을 꺼내 사진을 한 장 내게 보여주었다. 
    그런데 그 사진 속의 여자는 다름 아니라 바로 마고였다.
   「내 여자친구야. 어때? 괜찮지?」
   「너 얘 알아?」
   「알다마다. 우리, 어제, 했어.」
   「해? 했다고? 뭘? 아, 뭘 했어? 어서 말 안 해?」
   「낭만적인 사랑을 가꾸자는 약속. 우린 순수한 연인이야. 네가 봐도 딱 그럴 거 같지 않냐?」
   「그럼 뭐 난 불결한 솔로니? 거짓말 마.」
   「거짓말인 거 어떻게 알았어?」
   「정말이야?」
   「정말이겠냐. 너도 좋은 사람 있으면 만나 봐. 정 외로우면 내가 소개해줄 수도 있고. 네가 여잘 아직 잘 모르나 본대, 어? 사랑이란 가능성의 예술이야. 너 아직도 연애론에 대해서 막 집에서 혼자 공상하고 그러니? 또 그러다 낙심하면 행복업에 매달리고. 그래? 더티러브를 향한 늑대의 맹목적인 갈증? 상상이야 뭔들 못하겠어. 순진한 쾌락마의 열망? 타성 개척자니 신비 혁신가니 이상한 낙서나 끄적거리지 말고. 세상으로 나와. 어? 언제까지 숨어 살 거야? 어? 쯧쯧쯧.」
   「기가 막혀서!」
   「너 이제 보니 바보구나. 늬가 생각해도 그렇지? 그럴 거야. 왜 아니겠어.」
   「좋을 대로 생각해.」
    왠지 모르게 아름다운 사랑 가운데 하필 더티러브의 감흥이 떠오를 듯 말 듯 한 이 기분. 내가 얠 왜 불러냈지? 이럴 거면 차라리 아는 동생들과 함께 즐거운 겨울을 함께 하는 건데 말이야. 





    8

    나는 오늘 닐을 만났다. 
    닐이 자기 새 여자친구라며 지갑 속 사진을 보여줬다. 
    그런데 그녀는 톰의 새 애인과 얼굴이 똑같았다. 
    그렇다. 둘 다 마고. 닐의 여친도 마고. 톰의 여친도 마고. 
    이걸 말해줘, 말어? 
    해야 돼, 말아야 해?
    이 때문일까? 예전에 한번 그런 일이 있었는데 그 기억이 떠올랐다. 
    후배가 신혼 때던가 아니면, 결혼 전에 결혼할 여자라며 자기 애인을 소개해주던 자리던가.
    아무 생각 없이 대충 몇 달 전에 그 후배가 만나던 여자 얘기를 꺼냈던 적이 있다. 
    말 그대로 불과 몇 달 전. 난 그래서 걔가 걔인 줄 알았다. 
    즉 그 여인이 그 여인. 그런데 후배의 얼굴색이 확 바뀌네?
    와~! 나는 내게 타인의 안색을 새파랗게 질리도록 만드는 재주가 있다는 건 그날 처음 알았다. 미리 후배에게 물어볼 걸 그랬나... 
    그렇지만, 설마 하니 불과 서너 달인데 그 사람과 그 사람이 동일 인물이 아닐 꺼란 생각은 못했으니까 뭐 넘어가고. 
    그런데 웃긴 게 뭐냐면 남자든 여자든 현재의 사랑이 중요하니까 그건 그렇다만. 
    여자의 판타지를 결혼 후까지든, 과거의 연애사 전적들을 현재는 물론 미래까지 끌고 가겠다는 여잔 뭐지? 
    좌우지간 닐에게 말해 줄 수도 없고. 또 언질을 주자니 뒷맛은 물론 뭘로 봐도 여러 명 괴로워질 거 같고. 와, 진퇴양난! 
    뭐 아무튼 문단 요약하자면 이런 식이다.
    <닐을 만남. 닐이 새 여자친구라며 지갑 속 사진을 보여줌. 그런데 걔도 마고>





    9

    윌을 만남. 
    윌이 새 여자친구라며 지갑 속 사진을 보여줌. 
    그런데 걔도 마고.
    뭐라고?





    10

    잭, 롭, 델, 폴, 핀, 스티븐, 켄트를 모두 1 대 1로 만남. 
    걔네들 새 애인도 모두 마고. 
    뭐?





    11

    나는 마라를 만나 따졌다. 
    따지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니까.
   「대체 어떻게 된 일이니?」
   「내가 묻고 싶거든.」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데...」
   「나도 걔 안 지 얼마 안 돼. 너 뭔 생각해?」
   「오죽하면 내가.」 
   「나도 네 비밀 많이 안다는 거,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 혹시 너 그 정도로 멍청한 건 아니지?」 
   「지금 우리가 이럴 때가 아니야. 어? 사안이 정말 중차대한 거라고. 어?」
   「말해 뭐해?!」
   「할 수 없지 뭐. 남에게 맡길 수 없어. 우리가 직접 뛰는 수밖에.」
   「어떡하자고?」
   「자기야. 윤허하여 주시옵소서.」
   「설마 너랑 나랑 탐정조라도 짜자, 그거니?」
   「딩동~! 빙고.」
   「세상 사람들이 다 너 같은 줄 알아?」
   「너도 원하고 있어. 너 자신을 속이지 마.」
   「웃지 마. 웃을 일이 아니니까.」 
   「그런데 어떻게 이런 일이 우리에게! 말도 안 돼.」
   「그나저나. 응? 너 왜 우리 사무실에 뻔질나게 드나들지 않는 거니? 왜 여기 맘에 드는 사람이 없어서 그래? 솔직히 말해봐. 그랬으면 좋겠어.」
   「지금 그 얘기가 아니잖아?」
    뭐 아무튼 이렇게 마라와 나, 우리는 생각지도 못한 정탐을 하게 됐다. 
    그래. 잠복근무. 말로만 듣던 영화로나 보던 바로 그 잠복근무 말이다. 





    12

    마라와 나는 마고네 집 앞에서 잠복근무를 시작했다.
    1일째 날 꽝. 
    2일째도 꽝.
    3일째 역시나 꽝.
    슬슬 우리는 지쳐갔다.
   「마라. 지금 우리 잠복근무 중이야. 무슨 Ruggiero Ricci의 정통파 파가니니 연주? 그래. 고전적인 거 좋아하는 건 알겠는데, 그럼 뭐 너만 정통파고 딴년들은 다 비정통파라는 거니? 어? 지금 우리가 한가하게 음악 감상할 때냐고, 어? 팔자 좋네. 풉」
    잠복근무! 말이 쉽지 말이 쉬워. 드라마에서 보는 건 줄거리만 보여주는 거고. 
    그걸 직접 해 보면 장난 아니다. 장난 아니라고. 
    그래서 맨손 체조나 할까 라면서 나는 잠시 자동차 바깥으로 나가 몸을 풀고. 
    식료품점에서 먹을 걸 사 가지고 오는 마라가 딱 자동차 옆에 왔을 때. 
    마침 마고의 집에서 누가 나오고, 또 누군가 마고의 집으로 들어가고. 
    한편 본 게임이 시작되자 마라는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이 교차했던 것일까? 
    요의를 느껴 참을 수 없는 그녀는 자동차 옆에 쭈그려 앉아 오줌을 누었다. 
    난 그걸 모른 체 단안 망원경으로, 또 쌍안경으로 마고의 집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한 손으로 바닥을 짚고 있었는데 뭔가 축축한 물이 손을 적시네? 
    어딘가 모르게...가 아니라. 많이 따듯하네? 정말 많이 뜨듯하다니! 
    뭐야 이거, 이런 이런... 영화에서만 봤었는데! 
    그 물은 그냥 물이 아니었던 것이다. 
    저년이......! 설마, 일부러?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잠복근무 1주일 경과 후 알게 됐다. 
    비밀을 알게 됐다고. 
    바로, 마고는 1명이 아니라 10명이었음. 10명 여자가 함께 사는데. 그런데 집에서 나올 때는 10명 모두 마고, 집 안에서는 개개인. 
    변장술급 화장으로 밝혀짐. 요컨대 뭔가 사연이 있는 게 분명했던 거지. 
    그 줄거리는 과연 무엇일까...는 다음 이 시간에. 





    13

    마침 포르토피노가 맨얼굴 투시경을 발명. 
    영화에 나오고 장난감으로 절찬리에 시판 중인 그런 거처럼. 
    미용용 가면 같은데, 딱 쓰면. 쓰자마자 화장하지 않은 얼굴이 보여지는 짜잔~! 
    그 이름도 기가 막힌 맨얼굴 투시경!
    그걸 환상문학잡지 미스테리아 독점 사은품으로 찬조하기로 계약하기 앞서, 여성환상 1.5에서 미리 손을 씀. 
    뭔 시시콜콜한 내용들은 비즈니스 관계자들한테나 중요하고. 
    본 소설 줄거리와 크게 관련 없는 내용이니까 그건 여기까지. 





    14

    나는 톰을 만났다.
    새끼 양처럼 굴면 늑대에게 잡아먹힌다고 했던가? 
    하이에나 득실득실 그 가운데서 돋보이는 늠름한 맹수인 사자를 닮은 톰. 
    왠지 모르게 오늘 톰은 새끼 양처럼 보였다. 
    마침 찻집에서 절묘한 시점에 극적인 음악이 흘러나왔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 오페라 <마술피리>에서 밤의 여왕의 아리아 “두려워 마라, 사랑하는 내 아들아!” 
   「톰. 내가 엉뚱한 걸 물어봐도 너 나한테 뭐라 하지 않을 거지?」
   「어? 어떻게 내 비리비리하던 정력이 갑자기 제7의 전성기를 되찾을 수 있었나, 그게 궁금한 거니?」
   「아 진짜 진지한 거야.」
   「뭔데 그래?」
   「내가 설마 이걸 물어봐도 너 그렇게 반문하지 않을 거지? 늬가 그걸 왜 궁금해하냐? ~라고 말이야!」
   「일단 묻기나 하셔 이 양반아. 대체 뭔데 그래?」
   「너 여자친구 사랑해?」
   「내 여자친구? 사랑? 아직 애인이라고 부르기엔 좀 뭐하지. 뭐라고나 할까, 탐색전? 사랑은 모르는 거잖아. 뭐 첫눈에 반한 사이는 아니니까. 그렇다고 볼수록 매력녀라 하지 않을 수도 없고.」
   「그럼 너 말이야, 네 여자친구 맨얼굴 본 적 있어?」
   「맨얼굴?」
   「어. 화장 전혀 하지 않은 맨얼굴.」
   「아직이지.」
   「아직이라고?」
   「저 하늘의 별을 땄으면 봤겠지. 아니면 걔가 화장법 강의하는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렸으면 볼 수도 있을 텐데, 나름 뒷조사까지 할 생각은 못 해봤는데?」
   「그럼 그렇지. (딱) 너 걔 오래 만날 생각. 아마도 자신 없지?」
   「」
   「웃는 거 보니 그렇군.」
   「알면서. 척하면 척이군.」
   「사랑의 장기전은 대충 3가지 따지면 구도가 예상되지.」
   「그 3가지가 뭔데?」
   「첫째,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느냐.
    둘째, 남과 여 그 둘이 함께 아는 인맥이 없는 것보다 있는 게 장기전으로 갈 확률이 높다는 거. 아니면 대부분 뻔트요 풋사랑이자 단기전.
    셋째, 현재의 사랑이 진심이자 진중하며 상대를 위한 사랑이라는 건 나중 미래에 과거를 돌아봐도 덜 아쉽다, 공개되어도 미련이 적냐 라는 것.
    넷째, 첫 만남에서 진한 사랑까지의 기간이 짧은 것보다 긴 게 장기전으로 갈 가능성이 높음.
    다섯째, 마음이자 몸과 시간 등 내 상당한 자원을 투입해서 사랑이 더럽게 끝났을지라도 후회할 자신이 없느냐.
    여섯째, 현재의 사랑에 대해 줄거리와 함께 모든 시시콜콜한 얘기를 기록했을 때 멋지냐, 떳떳하냐, 창피하냐 라는 것. 
    일곱째, 그런데 3가지랬는데 벌써 일곱째? 이놈의 징글징글 지긋지긋한 사랑 얘기. 아주 그냥 신물이 난다. (절레절레)」
   「그러니까. 그래서 우리는 사랑을 평생 단 1번도 논하지 않았던 건가 봐.」
   「하여튼 널 책하자는 게 아니라. 본 게임을 장기전으로 왜 끌고 가지 않느냐면 불순한 사랑을 책망하잔 말도 아니야. 단순한 난봉꾼의 흑심이 아니라 너도 뭔가 이상한 낌새라고나 할까, 뭔가 어떤 께름칙한 조짐 같은 느낌? 딱히 불길한 건 아니겠으나 약간 느낌 세한 기분 때문에 도저히 그 일말의 불쾌함을 떨쳐버릴 수 없는 직감. 있었지?」
   「아네. 넌 자료도 턱없이 부족한데 어떻게 눈치챘니? 그냥 찍은 거니?」
   「찍긴 뭘 찍어. 네가 만나는 여자애들이 매번 특이한 애들이라서 이번에도 혹시... 그랬던 거니. 너 저번에 만난 애는 그랬잖아. 주로 스타벅스에서 만났다고 했지? 그 네 전여자친구. 걔가 그랬다며? 자기 노트북을 펴서, 엑셀 파일을 펼쳐서. 그래서 누구 누구 누구. 언제부터 언제까지. 주고받은 선물은 뭐. 만난 횟수와 학습한 진도는 어디까지. 애정 표현 농도와 주기는 얼마. 마치 임상실험 보고서랄지 치밀한 논문처럼 과거에 만났던 남자. 썸탔던 오빠. 사소한 짝사랑부터 찐한 사랑까지 그 모든 기록을 너한테 보여주던 여자가 누구? 늬 전여자친구! 그렇지? 그 진짜를 늬가 장난으로 알고 만났다가 너 몇 장 날렸니? 이번에도 느낌 세한 거, 너 몰랐니?」
   「알았어.」
   「일찍도 아셨네.」
   「이제 난 어떡하면 좋니?」
   「이제 넌 어떡하면 좋냐?」
   「그래 내 말이 그거야.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딱 그거였다고.」
   「그랬어?」
   「어. 정말이야. 이제 난 어떡하면 좋을까?」
   「방법이 있지. 형이 누구냐. 어?」
   「뭔데?」
   「공짜로?」
   「내 아는 동생들, 팬클럽, 추종세력. 전부 싹 다 너한테 넘길게. 내가 걔네들을 나 혼자만 친교를 유지하나 앞으로 두고 보면 알 거 아니야. 응?」
   「그래?」
   「정말이야. 진짜라고. 너 나 알지?」
   「좋아. 좋았어. 좋다고. 허허허. 그렇다고 내가 꼭 그걸 애달프게, 응? 아주 간절히 원한 적 일절 없다는 거, 너도 알지? 분명 늬가 자발적으로 그렇게 하면 어떻겠니, 그렇게 된 거다 너? 나중 오리발 내밀지 마?」
   「걱정 붙들어 매 이 친구야. 그러니까 그 방법이 뭔데 그래? 어? 냉큼 말하지 못해 이 이 이, 개새끼. 돼지. 말. 코알라. 낙타. 하마. 앵무새.」
   「그만해 그만. 늬가 그러니까... 그런데 여자들은 대체 널 왜 좋아하는 거지?」
   「말 돌리지 말고. 방법이 뭐냐고. 어? 어서 말 못 해? 뜸 그만 들여라. 나도 최후의 카드라는 게 있어. 시트콤 애들 모조리 몽땅 불러서 폭로전 한 번 할까? 그럴까? 할까 말까? 말만 해.」
   「알았어. 알았다고.」
    발동이 언제 걸릴지 모른다는 핸디캡은 알다가도 모를 일. 그럼 순풍이 불어 신바람이 날 일은 아마도 훗날. 껀수 없을 조짐만 견고. 그러면? 
    ~라면서 오늘을 기다려온 것일까? 
    매번 허탕만 치고 뒷북만 때리던 축구팀 서포터스 회장 롭이 일을 냈던 것이다. 
    알고 보니 롭과 포르토피노가 아는 사이. 그렇게 둘이 만나서 롭이 뜬금없이 떠오른 생각을 말했고. 포르토피노는 아차~ 하며 아르키메데스처럼 번뜩이는 착상에 정신이 번쩍듬. 
    그래서~ 포르토피노는 발명했음. 무엇을? 
    바로 맨얼굴 투시경을! 
    아직 시판까지 다다른 건 아니고 비밀 리에 완성에 거의 다다름. 
   「이거 이래도 되나 몰라.」
   「지금 와서 안 친했던 야망에 미련을 갖는다고 달라질 건 없어.」
   「엥? 그건 또 뭔 소리야?」
   「후회하지 않는다고. 2가지. 응? 첫째, 뭔지 모를 그녀에 대한 비밀을 속 시원하게 알고 싶고. 둘째, 그걸 통쾌히 알 수 있는 방법이 뭔지를 당장 너한테 듣기를 애달프게 바란다는 거지.」
   「재미없는 공상에 기반한 허구나 끄적거리기나 하던 칼럼니스트가 여자와 사랑에 대해 알면 얼마나 알겠어?」
   「이 자식이... 어서 말하지 못할까? 죄인은 고개를 들라.」
   「너 아직도 사극 즐겨보니? 요즘 뭐 보는데?」
   「또 말 돌리냐? 뜸 또 들이고 패 안 까면, 발 빼는 수가 있어.」
   「알았어 알았어. 이거야.」
    그러면서 나는 포르토피노 앞에 그 맨얼굴 투시경을 내밀었다.
   「이게 뭔데? 무슨 여자 화장 지운 모습을 단박에 볼 수 있는 맨얼굴 투시경이라도 되니?」
   「헉! 어떻게 알았어?」
   「진짜야? 와 대박! 와우~ 소름! 내가 기다렸던 게 바로 이거라니까. 이거야~ 어? 이거라고~! 어? 바로 이거였단 말이야~! 허허허허허. 하하하하하.」
   「기뻐하긴 일러 이 녀석아.」
   「어?」
   「그건 단지 1탄이라고.」
   「이게? 1탄? 그럼 제2탄은 뭔데?」
   「마음까지 읽어. 영화에서 봤지?」
   「캬~ 기가 막히는군. 캬~! 어? 으아~ 대단하다. 최고!」
   「쉿! 비밀엄수. 알지?」
   「알았어 알았어. 그녀가 만났던 남자와 연애 그리고 짝사랑이야, 조사하면 찾는 족족 다 나오는 거고. 이건 그야말로 신기술이지. 허허허허허. 하하하하하.」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 오페라 <마술피리>에서 밤의 여왕의 아리아 ”지옥의 복수가 내 마음에 끓어오른다" 
    찻집에서 우리는 조용히 음악을 감상하면 속으로 꿍꿍이를 공상하게 되었다. 





    15

    마라와 나는 친구들 사생활에 깊이 개입하지 않기로 했다. 단지 마고 10인의 사연을 알게 되었을 뿐.
    정상적인 성욕이 살다 보니 뭐 어떻게 맹숭맹숭 맹물처럼 심심해져 버린 여자. 
    남편의 머머불능. 
    부인의 불감증. 
    여자 무성애자. 
    권태 권태. 
    재미없음. 무관심. 질림. 기 빨림. 정력 감퇴. 
    육체적─성적─기능적으로 지극히 정상인데, 다만 성 그래프가 비정상적으로 바닥을 못 벗어나는 숙녀. 
    혼자서도 노력하고 애인과도 힘쓰고, 그래도 그냥 포근히 포옹하는 게 더 훨씬 좋다는 여자. 연애를 하는 족족 매번 불미스럽고 재미없고 뭐 어떻게 끝나서 괴로운 기억만 간직한 여인. 
    그 외 차마 자세히 설명하기에 낯뜨거운 내용들까지. 
    물론 지금까지 그 일이 과연 정말 그랬나 하는 건 아직까지 미스터리. 
    나중 친구들을 만나서 듣고 보니, 한 여자와의 공통 연애. 즉 마고(들)과의 연애는 그냥 적당히 썸만 타다 말았다고 한다. 
    그렇다. 체스가 끝나면, 왕도 졸과 함께 체스 통에 담겨진다.
    그냥 그저 그런 풋사랑도 뭣도 아닌 식이었던 것이다. 
    그럼 이제는 진정코 아름다운 사랑을 하면 되는, 반드시 그래야 하는 인생.
    그래서 만났고 진했고 어쩌면 더러웠던 사랑. 아마도 행복한 애정. 그래? 그럼 뭘 해. 응?
    가득 찬 잔에 물을 더 채울 수 없다. 
    또 있다. 
    배부른 소는 풀을 뜯지 않는다. 
    또 없을 리가 있나. 
    욕심쟁이는 늘 부족하다. 
    뭐라고? 
    아하~! 
    바로 그래서...... <다들 순진하시네요>라는 인터넷 글. 분량도 적고 내용도 아무것도 없는데... 도대체 왜 그녀들의 다종다양한 잔소리가 그치질 않는지. 그거까지 설명해줄 만큼 고급스러운 여자말 번역기는 아마도 많지 않지 않을까? 그러거나 말거나.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그럼 뭣이 중헌디? 일단 뭔 소리인가 그건 듣고 나서 판단해야 하기 때문에, 우선 들어는 드릴께. 딴청 피우지 않는단 말이지. 따라서 먼저 명쾌한 결론이든 떠들썩한 다변이든 뭔지 모를 그 하고 싶은 말 줄거리나 풀어나 보시고. 이미 귀에서 피가 나게 생겼는데, 또? (절레절레). 





    16

    글쓰기 때려쳤어? 뭐라도 가져와봐. ~라는 환청이 흡사 내 귀에 들리는 것만 같았다. 그와 같은 마라의 잔소리가 조용해질 만하면 다음 타자는 여지없이 여성환상 1.5 편집장 사라였다. 그녀는 뭐라며 날 다그쳤을까? 뭐긴 뭐겠나, 할 말 떨어졌지? 할 말 없지? ~라는 따끔한 잔뻔치였다. 누군 뭐 잔말 말고 맹렬하도록 축구팀 슬로건처럼 달리지 않았나 뭐. 그래? 일하기는 신경 끄자. 놀지 않으며 바보가 되니까. 주저앉는 것은 일어서려는 것이다. 그렇지만 춤추는 사람 모두가 즐겁지 않다는 걸 모르는 애도 아니고. 노래 부르고 먹고 마시고 쇼핑을 해도 재미없기는 마찬가지. 그래서 이제 어쩌지? 그래 봐야 심심한 타성과 재미없는 권태를 얕잡아봐도 별수 없을 뿐. 그렇다고 밋밋한 일상이 폄하된다 하여 별다른 느낌조차 없는 동네 아저씨인데 뭘 어떡하나. 그러면 답은 아마도 변화? 그렇다, 새로움. 그런데 뭘? 아니, 현실 안주가 뭐 어때서. 자기 합리화가 귀찮아질 시기도 진작 지났겠다 꼭 뭘 해야 할 필요도 없고. 이건 뭐랄까, 잔뜩 주눅 든 마음은 영락없이 자길 물오른 슬럼프라 불러달라는 것만 같았다. 환상인지 뭔지 신비고 나발이고 황홀감은 그저 동화 속 얘기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 그렇다고? 그러거나 말거나! 
    할 말이 있든 없든, 떨어졌든 꾹 참든 생각은 멈출 수 없는 것처럼. 놀기가 타석에서 내려오니 나는 일하기를 출전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맨날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던 어느 날. 마고가 날 찾아왔느냐, 하면 아니었다. 그럴 리가 있겠나. 그런 일은 없었다. 기대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사무실에서 평소처럼 일하다 놀다 쉬다 낮잠까지 잔 다음 나는 분위기 전환을 시도했다. 
    기분 바꾸는데 음악 만한 게 있나. 하여 고른 선곡은 다름 아니라, 
    조지 프레데릭 헨델 / Dixit Dominus RV 번호는 모름.
    그럼 그에 걸맞은 할 일은? 우리는 놀 때는 놀고 일할 때도 논다. 농담이고. 
    더 이상 작품 구상도 따분하고. 책 읽기도 귀찮고. 일하기는 싫고. 공상은 짜증나고. 
    그래서 나는 인터넷에서 미술품 작품값을 알아봤다. 다음은 그렇게 검색해본 작품들 목록이다. 
    하워드 호지킨, 「로빈 데니 부부」
    패트릭 헤론, 「수평적 띠 회화: 1957년 11월-1958년 1월」
   「뭐 이렇게나 비싸? 거 참 더럽게 비싸네. 아니지. 내가 가난한 건가? 됐고. 관심 없어. 몇 달만 배우면 저런 거 나라도 그리겠다. 추상은 어떻게 구상은 어찌어찌. 그런 거 누가 못해?」
    혼자서 푸념, 비꼬기, 연민, 골똘한 잔머리 굴리기마저 재미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리하여 나는 확인했다. 무엇을? 동쪽에서 떴던 해가 서쪽으로 져가는 것을. 그래서 나는 퇴근했다. 
    집으로 가던 중 딱히 저녁식사를 챙겨 먹을 생각은 없고. 카페에 들려 음악 듣고 창문 밖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싶어졌다. 
    그렇게 나는 어느 찻집으로 향하던 찰나. 
    누군가 뒤에서 날 부르는 목소리.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한데? 
    그렇게 딱 뒤돌아봤더니 그녀는 다름 아니라 바로 마고였다. 
   「오빠.」
   「마고.」
   「오빠. 나 안 보고 싶었어? 난 오빠 많이 생각했는데.」
   「네가 어떻게... 가까이 오지 마.」
   「오빠 왜 그래? 그 뒷걸음질은 설마 계산된 몸짓? 아니, 내가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봤나?」
   「네가 숙녀라고? 거짓말 마.」
   「오빠, 왜 그래? 혹시 뭐 잘못 먹었어? 이리 와. 이렇게 만난 거도 행운인데 같이 차나 한잔 마시자. 뭐 마실래? 카푸치노? 카푸치노 마실 줄이나 알아? 아니면 에스프레소? 설마 커피 끊은 건 아니겠지? 끊었으면 다시 마시면 그만. 왜 위스키 스트레이트 마실 줄 몰라? 헤어지는 방법이든 뭐든 내가 다 가르쳐줄게. 뭐 배우고 싶은 거 있음 말만 해. 누구 사귀고 싶은 여자? 내가 다 꼬셔줄게. 어? 내가 전부 다 꼬셔준다니까 그러시네. 응?」
    그러면서 그녀는 내 팔짱을 꼭 끼고서 날 가까운 찻집으로 데려갔다. 
    나는 따라가지 않으려고 버티고 버텼는데. 그녀는 언제 웨이트 트레이닝 지옥 훈련이라도 마쳤단 말인가. 힘이 힘이 장난이 아니었다. 
    그렇게 우리는 찻집에 앉아 음료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며 한동안 침묵했다. 할 말이 많았기 때문이거나 아님 말하기 싫었거나. 
    아니나 다를까 어찌 된 셈인지 그녀는 또 어디서 배웠을까, 아님 독학했을까. 
    역시나 긴 대사다. 베테랑 연극배우야 천직이니까 그렇다 쳐도 관객 엉덩이에 뿔나기 딱 좋은 긴 대사. 응? (절레절레) 그러므로 문단 똑 떼서 가는 걸로. 그렇다고 꼭 각오 단단히 할 것까진 없고. 





    17

   「긴말 필요없고. 오빠. 내가 오빠한테 귀여운 모습을 많이 보여주지 못해서 미안해. 내가 오빠한테 잘해주지 못했다고. 오빠는 나한테 표정이 많다고 그랬는데 난 신나게 딴놈들 만나러 다니느라 바뻤지. 난 그 때문에 기분 좋아 정신 못 차렸단 말이야. 얼이 빠진 거였어. 하다 하다 제2의 똥파리랑 아마도 CS까지 했다지? 긴말 필요없고.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알 거나 알고 각자 갈 길 갑시다 선생. 네?」
    그러면서 그녀는 노트북을 펼쳐서 어떤 엑셀 파일을 보여줬다. 거기에 나온 내용은 대략 이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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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데이트 횟수   습성            애교(발휘)   내숭(표현)   비고
    숙녀 인생 첫 남자              제프리 오스본     51               하이에나과
    첫 자동차 데이트               오스카 커퍼필드   몇 번           똥파리과
    첫 자동차 더블데이트         오스카 커퍼필드   몇 번           똥파리과
    포근한 스킨십                    0                                                                                            아직
    손잡고 걷기                       0                                                                                            아직
    첫 키스                             0                                                                                            아직
    첫 포옹                             0                                                                                            아직
    첫 경험                             0                                                                                            아직
    1 대 1로 통화한 남자          3명
    1 대 1로 만나본 남자        30명
    2번 이상 만나본 남자        60명
    3번 이상 만나본 남자        90명
    함께(1대1) 사진 찍은 남자   1명
    지갑 속에 사진 간직한 남자  1명                                                                                         종료
    내 사진을 선물한 남자         1명                                                                                         끝남
    야한 속옷을 선물한 남자      0명                                                                                         없음 
    회사에 찾아온 남자(1번만)   000명 ⅰ)                                               
    회사에 찾아온 남자(2번 이상) 00명 ⅱ)
    집까지 따라온 남자                 0명  ⅲ)
    사소한 선물 주고받은 남자   몇-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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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ⅰ) '첫사랑or마지막' 사랑의 친구까지 여럿 포함됨. 왜 여자의 판타지를 논할까? 그 모두를 창녀처럼 동시에 상대했으니까. 정신나간 시절. 
    ⅱ) 게다가 이마저 마지막 사랑의 친구까지 포함. 정신박약!
    ⅲ) 심지어 마지막 애인을 사랑할 당시, 전남자친구까지 집 앞에서 달콤한 데이트. 마지막 애인의 친한 친구와 CS, 그리고 더블 데이트까지.
    ※ <사랑이고 나발이고 우리는 그런 거 관심 없다. 우리는 오직 돈 보고 결혼한다. 돈이 곧 사랑이다. 말하자면 공주병녀 거울녀 의전녀인 나는 너가 마음에 든다 딱 낙점. 때문에 나는 너와 최단 시간 내에 결혼하고 싶다, 아니 해야만 한다, 따라서 몇 장 챙겨놓으라?> 남 생각 요만큼도 안 하는 미친년. 지가 어떻게 살았는지, 자질은 어떤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설마 과거에 그렇고 그런 직업여성이었다는 의심은 하지 않더라도, 어? 아무것도 모르는데? 뭘 믿고? 무슨 근거로? 무슨 로또 복권 사서 결혼 후 희박하디 희박한 확률이나 기대하란 말이야 뭐야! 말하지 않아도 은연중 느껴지는 직감, 숨겨도 우연찮게 알게 되는 진실. 그것만 해도 감춘 게 그 정도인데? 그럼 육감은 나 몰라라 아이 좋아라 계속 놀아주겠나. 자존심 없는 남자라면 그러지. 껄떡쇠 하이에나 똥파리과라도 얼마든지 대어를 잡기 위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저자세로 일관한다고. 허나 그건 그 분들 얘기고. 1번 스토킹 당해보니까 지가 남자한테 껄떡거려서 스토킹해놓고. 하다 하다 뒷조사까지 해놓고서. 창녀처럼 멀티태스킹으로 동시에 전부 상대해 놓고서. 또 회사로 번호표 챙겨들고 동시에 찾아오너라? 면접 보고 결혼 상대 정하겠다? 그러게 미쳐도 좋게 미쳐야지. 미쳐도 곱게 미쳤어야지. 걔도 사극을 너무 많이 봤네. 이모 말 너무 많이 들었다고. 소녀감성들 허영심과 여성잡지 1 허세한테 둘러쌓여 안 그래도 멍청한 년 더 멍청해져서 그랬구만 그래. 자기 밖에 모르는 년. 남 생각 요만~큼도 안 하는 년. 어? 말 끝마다, 오빠도 그래요? 툭하면, 들었어요? 에라~...
    ※ 설마 이 정도 배포도 없이 사랑싸움을 더럽도록 걸었을 리는 없음. 괜히 져준 줄 알아?
    비위 더럽게 좋은 거야 지 인생이니까 뭐라 않겠는데. 전남자친구랑 결혼하고 싶었으면서 
    매춘부처럼 껄떡거리는 늑대들 죄다 상대해주면서 미쳐버린 주제에, 어? 뭐 지금 와서 내 사랑을 되찾고 싶다? 
    뭐가 어쩌고 어째? 뻔뻔한 년. 똥파리에 최적화된 년. 하이에나를 위해 태어난 년. 첩도 아깝다. 





    18

   「오빠. 롱아일랜드에서 파리까지 대서양을 최초로 공중 횡단한 사람은 누굴까? 
    정답은 찰스 린드버그. 그럼 2번째는? 아는 사람도 없고 누구도 관심 없어~! 
    다음으로, 나스탁 상장된 회사 테슬라의 1인자는? 엘론 머스크. 
    그럼 넘버 2는? 대체 그걸 누가 알고 싶어 하냐고! 
    이 노트북 그리고 아이폰 만드는 회사가 어디더라, 그래 애플. 브랜드를 만든 기업가와 회사를 키우는 경영자는 상반되기 마련인데. 시장이 좁으면 일반화가 우세하는 반면, 시장이 크고 넓고 깊으면 전문화가 답이라지만. 1만 년 1억 년 후 그래프로 보자면 지금은 그야말로 걸음마 시절일 테니. 뭐 집중화를 유난스레 고집하기 때문인지 순이익률이 월등한 애플사의 1인자가 스티브 잡스에서 팀 쿡으로 바뀌었다는 잔지식 정도야 오빠도 아실 테고. 그럼 애플사 실세인 2인자 이름이 누군 줄 알아? 응? 누구게? 응? 누구? 알면 어디 이름을 대보시던가! 몰라~ 당연히 모르지. 알 리가 있나. 세상 사람들은 약자를 응원하지만 돈은 강자에게 건다네 친구. 어이 선생. 얌전한 샌님. 그러니까 오빠 같은 아웃복서는 껄떡쇠 인파이터한테 순번이 밀리게 되어 있어. 어? 허허허. 그러게 미리미리 제때제때 사랑하지 않고 뭐했나. 응? 여자들이 오빠처럼 가난한 예술가 유형을 좋아하는 줄 알아? 있긴 있지. 사람에 따라 썩 싫어하진 않는다고. 퍽이나 기다리는 여자도 간혹. 아웃복서는 그러게 쨉이라는 기본기와 결정적인 한 방, 여자를 너무 기다리게 만들면 안 된다니까 그러네. 아무리 좋아하는 남자라도 여자가 어떻게 개침 군침 질질 흘리면서, 어? 숙녀가 남자한테 끈질기도록 찝쩍거리나. 못해. 해선 안되거든. 그럴 순 없는 거니까. 응? 여자이기를 포기하라고? 그렇겠는 안되지. 아닌 건 아닌 거라고. 그러게 잔기술 편애할 게 아니라 (돈 세는 시늉) 진즉에 그러게 일찍 큰 기술을 연마했어야지. 우리가 무슨 돈 버는 기계냐는 퉁명스러움 반 농담 반 말장난 일삼는 아저씨들 나중 하는 말들 다 똑같잖아. 허풍꾼들이 나중 허세 부리기 전에 일찍 잔재주를 착실히 통장잔고랄지 부동산이나 우량주와 연결시키지 않고 뭐하셨나요. 응? 그러니까 오빤 2번째 남자지. 뭘 해도 뭘로 봐도 첫째와는 멀어. 허허허허허. 아닐지도 모르지만 말이야. 여세를 더 이어갈까? 뭐 까짓것 그러자고. 안 될 거 뭐 있어? OK~! 
    인류 최초로 세계 일주에 성공한 탐험가는 누구? 마젤란! 그럼 2번째는? 왜 말을 못하니. 응? 왜! 
    오빠, 페이스북에서 마크 저커버그 말고 또 누구 아는 사람 있어? 있으면 이름이 대 보시던가. 응? 
    오빠. 회사 아마존에서 제프 거 머시기... 그래 제프 베조스 말고 아는 사람 있어? 있냐고, 어? 
    회사 디즈니에서는? 월트 디즈니 빼고 없지? 그치? 그럼 그렇지. 
    페라리는 페라리. 과르네리는 과르네리. 자, 우리 패션업계로 한번 가볼까?
    루이뷔통, 에르메스, 샤넬... 거기서 얼굴 마담이 누군지 알아? 허허. 이거 봐. 이거 보란 말이야. 
    유행가는 차마 셀 수 없이 멋진 노래들이 나오고 또 나오지. 쉬지 않고. 끝없이. 그런데 고전음악가의 인기는? 불변. 영원. 일부러 고전음악광이 아니더라도 모차르트 같은 음악가가 또 나오기 어렵다, 힘들다, 불가능하단 거 누가 모를까!
    사랑이란 10명을 만나서 그 가운데 최고로 괜찮은 사람과 함께 행복하면 좋겠지만, 그게 어디 말처럼 쉽나. 그래서 속으로 홀딱 반하지 않아도 적당한 상대와 연애를 하기 마련. 그런데 만나봤더니 여기저기 씨 막 뿌리고 다니는 난봉꾼이더라? 말이 그렇단 거고. 곧 이 남자 저 남자 10명 100명 막 다 만나보기 전에. 일찍 괜찮은 늑대 딱 찦어서, 덥썩 물어서 일찍일찍 마음에 절반쯤 드는 촌닭 딱 골라서 사랑을 하는 게 차선! 아~ 그게 왜 최선이 아니라 차선이냐? 10명 만나보고 엑셀 파일로 꼼꼼히 치밀히 세밀히 따져서 검토 마친 다음, 누구로 낙찰~! 그럴 수 없으니까. 그 간사한 셈 면밀한 연구 다 끝날 때까지 누가 진득허니 기다려준대? 똥차 보내고 페라리나 롤스로이스 올 줄 알았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더 똥차만 오길래, 아쉬우니까 어떻게 저번에 걔 다시 만나면 안 될까? ~하여 탐색전만 펼치다 헤어진 남자한테 1년 만에 연락한 숙녀. 간보는 저울질, 속 보이니까 그러지 마셔야지. 안 그런가? 안 그래도 그 일을 미리미리 하는 전문가들이 있지 않나. 마담뚜랄지 결혼정보업체. 그렇다고 그분들만 뭐 돼지고기 A+++ 소고기 특 B---라고 등급 매기시나? 개인적으로 혼자 몰래 속으로 그러지 않는 사람은 없어. 있어? 없어. 남자 얼굴 보지 않는다는 여자는, 즐겁고 기쁘며 신나는 숙녀 인생으로 살기를 포기하고, 그저 착한 척 하나에 내 모든 걸 거는 식이지. 먹고 싶은 거, 먹어서도 안 돼요. 하고 싶은 거, 해서도 안 되고. 딴 남자 쳐다봐서도 안 되고. 아무것도 하면 안 되고 그저 구애하는 첫 번째 남자한테 여자 인생 모두 헌납해서, 밖에서 신나게 바람피우고 다니는 남편 수발만 들어도 부족한 것. 그게 삐툴어진 허영심이란 그 말씀이지. 무슨 꼴값은 남들이 뭔 피해를 입고 주변 사람들 죄다 괴로워해도 나만 괜찮으면 꼴값이 권리고. 적당히 끼리끼리 만나고 지적인 남자를 좋아하면 뭐 얼굴값인가? 속으로 속물처럼 이 생각 저 생각 견주어보고 따져보지 않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어. 절대로 없어. 첫인상이 뭔데? 누굴 속이려고. 뭐 아무튼 남자는 그렇고.
    그렇지만 우리 어른들이 암컷의 습성을 어찌 모르시나. 앞서 엑셀 파일에 나왔든 수컷의 습성도 뱁새, 촌닭, 하이에나, 똥파리, (여자의 마음을 잘 아는 치타), 팔색조, 성실한 벌새, 말 잘하는 앵무새 그리고 파랑새. 많고도 많듯이, 가 문제가 아니라. 남자는 단지 촌닭이면 촌닭, 늑대면 늑대. 달랑 성격 파악하면 그거 하나로써 남자는 일생 변치 않아. 인성에 따라 또 갑자기 떼돈을 벌어 사람이 확 바뀌는 변수는 예외로 치고 말이야. 그런데 여자는. 어? 여자는! 고양이, 양, 펭귄...... 촌년도 촌년 나름이겠으나 여자는 동화, 유행가, 댄스 따라 하기, 낭만적인 드라마 애호기, 여성잡지 1, 그러다 이모 스타일이 잘 아는 척 말하면 귀 쫑긋~ 세우면서 남자한테 환장한 년은 물론, 어? 여자는 천성 말고도 쉬지 않고 죽을 때까지 변하지. 그래서 사랑이란 상향지원 하향지원, 인파이터 아웃복서 말고도, 특히 여자, 여자는 기준선 고집하지 않으면 끝이야. 응? 여자는 선구안 어설프면 여자의 인생 뻔할 뻔자란 말일세. 아시겠나? 두고두고 후회하고, 두고두고 배아프고, 두고두고 질투나고, 두고두고 미련 갖고, 두고두고 속 뒤집어지고. 내 남자 있어도 내 남자 일생 데라고 살아도, 두고두고 그러지 하지 않을 수 없는 일부 여자의 일생. 살아보지 않으면 그맘 몰라. 혹시, 아슈? 몰라. 절대 몰라. 다만 추정, 추론, 예측, 가정은 할 수 있지. 실제 당사자의 마음과 그게 거의 99퍼센트 흡사할 수도 있고 말이야. 
    자, 예를 들어볼까? 내 친구 얘기. 
    20살 전후해서 숙녀 인생 첫 남자가 꽃 들고 쫓아다녀서 만난 이야기. 
    통계 산출하면 나중 잘 사는 짝들도 많아. 많지. 많다고. 그런데 비율은? 
    내 친구? 넘어가냐 마냐, 이모 말 따르든 말든 지 인생 지가 알아서 한다지만. 
    일단 넘어가더라도 딱 2가지로 나뉘어. 일찍 몸을 허락하느냐 마느냐로! 
    내 마음에 쏘옥~ 들어서 정말 완전 좋아서 미칠 것 같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냥 단순히 숙녀 인생 첫 남자이기 때문에 얼렁뚱땅, 어쩌다가, 무심코... 그냥저냥 몸 주고 마음 주고. 
    마음이 가야 몸이 가는 게 여자인데. 반대로! 빈틈을 보이기 때문에, 기회가 엿보이고, 고로 여심의 여지를 노출하니까 마음까지 따라간 내 친구. 가만있어 봐. 
    (손가락으로 세는 시늉). 회사에서, 집에서, 차에서...... 만난 지 일찍도 줬고 총 합해서 대체 몇 번이야? 그러니까... 에잇 말을 말자. 말을 말어.」  





    19

   「그렇지만 실망하지 마 2인자 친구. 
    최초보다 나은 재포지셔닝도 최고가 될 수 있으니까. 쉬우면 재미없지. 안 그런가?
    세계적인 광고제에서 상 받는 게 광고인들의 꿈인 데다, 광고회사 손님인 기업들도 그걸 반겨한다지만. 
    정작 브랜드 매출과 멋지고, 재밌고, 전문가 중의 전문가들이 만든 광고의 상관관계? 없어. 희박. 일관성 없이 엿장수 맘이 따로 없지.
    물론 첫 번째로 등장하자마자 그녀의 마음을 냅다 빼앗아버리면 좋겠으나. 
    그 정도로 홀딱 반할 만한 이상형이 미칠 듯이 맹렬히 구애하는 남자를 만나는 숙녀는, 천 명 가운데 1명 있을 둥 말 둥. 
    그래서 나머지. 남자가 꽃 들고 쫓아다니고, 선물 들고서 기다리고, 차려 입고 또 꽃다발 들고서 따라다니는 남자들. 
    10번, 100번, 1000번, 3년 동안 집요하게 들러붙어 억지로 사귀어 잘 사는 비율 얼마. 나중 후회하는 여자 얼마. 다 정해져 있어. 
    100번? 100번이 뭐야, 단 3번만 쫓아다니며 껄떡거려도 냅다 넘어가기 바쁜 여자가 적을까, 많을까? 
    그래서 만나줬더니, 사귀어줬더니, 어쩌면 결혼까지 해줬더니~ 어떻다더라 라는 한탄? 
    (인식이 이 정도 되면 지 인생 포기한 거나 마찬가지니, 책임을 타인에게 떠넘긴다는 거 자체가 바보요 하수)
    그렇게 3년 사겨줬더니 말이야, 어느 단골 바에 여자친구를 데려가서 하는 말. 
    "쟤가 너보다 더 예뻐. 훨씬."
    하도 애걸복걸 찝쩍거리길래 만나줬더니, 여자친구 되어줬더니, 사귀는 사이가 이런 건지 확신 없고 그냥 일단 탐색전 상대만 되어줬더니. 지 형편 풀릴 때까지 기다려줬더니. 어? 글쎄 진도를 안 빼줬기 때문에, 고로 그새를 못 참고 딴년 만나는 남자. 아니면 나중 형편 풀리면 더 좋은 여자와 몰래 결혼 준비할 시점에, 평강공주를 차버리고 복수하는 남자까지. 
    맥도널드 아르바이트생 퇴근하기 기다리고, 쫓아다니고, 집까지 몰래 따라가고. 꽃 들고 쫓아다녀다 어떻게 사겼어. 넘어갔으니까. 그랬는데~ 어머나 버거킹에 새로 온 점원이 더 예쁘네? 갈아 타. 여자도 환승이별 심심치 않게 하잖아? 그러다 다시, 던킨도넛에 새로운 어린 아가씨. 지금까지 만나본 여자들 가운데 제일 예뻐, 최고로 어려, 애교도 장난 아니야. 내숭의 기술 역시나 끝내주네? 갈아 타. 뭐 만나주지 않으면 죽어버리겠다면 협박해서 만나주고 어쩌고. 권위에 굴복하고 줏대 없고 마음 약하고. 순진할 때 그럼 몰라도, 나중 일명 존못남(좃나...)의 말도 안 되는 구애를 받아줬더니 글쎄 뒤통수를 자기 쳤다면서 동네방네 소문내고 다니는 연예인병녀. 자랑도 풍년이지. 남자복을 공상하며 남자 생각만으로 시도 때도 없이 설레고 들뜨고. 그런 벌렁벌렁녀. 시작부터 끝까지 남 얘기하는 험담꾼 다변가들 마냥, 뭔 생각만 했다 하면 남자 생각인 여자. 입만 열면 남자 남자. 응? (절레절레)! 최고의 남자 4명이 나한테 동시에 구애하는 게 꿈인 숙녀의 이상. 여자의 판타지를 결코 싫어할 수 없는 여자의 본심. 연예인처럼 사는 게 꿈인데 과연 나란 처녀는 남자 1명으로 만족할 수 있을까? 그런 어떤 여자를 만나면 피본다는데. 정말 피 많이 보는 걸 점쟁이들이 아무리 돌팔이여도 만장일치로 점치긴 하긴 하던만. 응?
    좌우지간 결론은 그거야. 따라서 오빠는 어떤 숙녀 인생 첫 번째 남자가 될 것이다. ~라는 나의 예언. 여자 노스트라다무스로 점쟁이 업계에 신선한 파장을 일으키며 새롭게 데뷔한 나의 당당한 첫 번째 예언이라고 치자 그거라고. 아시겠소 작가 양반?」 
    물론 나는 마고를 만나지 못했다. 
    방금 전 16, 17, 18 문단에서 신나게 떠든 얘기. 마고를 만나서 어쩌고저쩌고 주례사이자 지루한 설교, 식상한 연설 얻어들은 썰? 
    뻥. 다 뻥. 몽땅 뻥. 어? 개 뻥. 개뿔. 전부 뻥. 그냥 나 혼자 공상한 게 다였다. 
    물론 15 문단까지는 진짜. 그래서 말 나온 김에 하나 고백하자면 이렇다. 
    즉 나는 언젠가 마고를 우연히 만나게 되지 않을까 라는 어렴풋한 예감에게 내 마음을 살짝 내어주고야 말았던 것이다. 
    뜬금없이 밑도 끝도 없는 실토를 끝으로 본 연재 편을 마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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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 ─ 161

from 소설 2019. 12. 15.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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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의 집 금송아지보다 제 집 돼지새끼가 낫다. 그럼 우리 집 돼지 우리 집 강아지는 무엇일까? 뭐겠나 인공지능 지니지. 그런데 지니가 요즘 무기력증에 빠졌다. 그래서 나보고 어쩌라고! 어쩌긴 뭘 어째. 집에 있으면 게을러지기 마련. 남자는 집에 있으면...... 워 워 워. 맘 잡고 철든 남자, 착실한 남성, 꽤나 가정적인 수컷 마음이 무슨 허름한 고물 자전거 타이어도 아니고 엄한 데다 뽐뿌질 할 일 있나. 꼭 그렇다는 게 아니라 집 회사 집 회사, 너무 일만 하면 바보가 된다는 말처럼 나는 뭔가 변화가 필요했다. 홈런을 때릴 수 있는 기회는 아무 때나 오지 않는다. 그런 절호의 적기가 딱 올 뻔 말 뻔하다가도 중간에 꼭 눈치 빠른 이방과 약삭빠른 여우가 낼름 채가는 세상. 배 들어올 때 노 저으랬다지만, 쇠가 달구어질 때까지 기다리기만 해서는 날샌다 날새. 그런데 오라는 데가 있긴 있었나? 있을 턱이 있나. 남들도 다 이처럼 사는 거지. 
    그래서 이대로 있다가는 정말로 바보가 될 것만 같기 때문에 나는 아는 동생 누군가를 만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오늘 릴리가 일하는 미술관에 놀러갔고. 
    장면 전환.
    장면 전환.
   「오빠가 내 남편 데리고 살래?」
   「뭐라고?」
   「오빠가 내 남편 데리고 살 거냐고?」
   「내가 늬 남편을 왜 데리고 살아야 하니? 게다가 너 결혼 안 했잖아. 남자친구도 없잖아. 너 그런 말 하는 거 아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오빠가 날 얼마나 아는데? 나 사실 남편 있어.」
   「뭐? 늬가 결혼했다고?」
   「어.」
   「정말로?」
   「아니. 뻥이야.」
   「(표정) 넌 인사말이 뭐 그러니? 오랜만에 오빠 만나서 할 얘기란 게 고작 있지도 않은 남편 타령? 미술관 잘 돌아간다.」
   「남의 미술관 잘 돌아가든 말든 오빠가 상관할 일 아니고.」
   「나도 알아. 다 안다고. 그러니까 내가 뭐 잘해야 본전에 해당하는 지인쯤으로 찍힌 거네. 맞네. 그렇군. 그럴 줄 알았어. 이제? 누가 이제래. 내가 눈치가 없나 돈이 없나. 돈? 필요 없어. 왜 오빠가 선물... 주면 받겠니?」
   「내가 오빠 선물을 왜 받아?」
   「나도 줄 생각 없었어.」
   「그런데 내가 대체 여길 왜 왔지? 무슨 중요한 이유라도 있었나 의심스러운데.」
   「오빠. 인생이 어디 그렇게 의뭉스러워서 큰일 하실 수 있겠수?」
   「홈런? 오빠 뻔트 좋아한다는 거 알면서 그런 말을?」
   「내가 오빠한테 무슨 말을 하겠니. 타락한 우정과 야합하고 추접스러운 사랑에 결탁한 삶이라면 말도 말아 이 이 이 남자야.」
   「뭐! 너 말 다 했어?」
   「말 다 안 했으면 뭐 어쩔 건데?」
   「어쩌긴 뭘 어째? 가만히 듣고만 있어야지. 짧은 말이든 긴 연설이든. 안 그래?」
   「그렇게 꼬리 내릴 거면서 동생 윽박지르기는. 하여간에 넉살도 좋아. 아휴 능글능글.」
   「오빠는 너한테 말싸움 진다. 알지?」
   「오빠. 오빠 요즘 외롭니?」
   「나? 사람은 아니. 남자는, 외로워야, 정상이야.」
   「그럼 남자만 고독하고 여자는 평생 신부들러리나 서란 말이야?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여자는 난봉꾼이든 플레이보이든 내내 기다리기만 하라고?」
   「내가 보기엔 오빠보다 늬가 더 외로운 거 같은데. 너 속에 화가 많구나.」
   「나도 여자야. 오빠가 슬슬 내 부아를 돋구니까 그렇지. 어?」
   「내가? 내가 언제!」
   「이 인간이 지금...」
   「워 워 워.」
   「워 워 워긴 누가 워 워 워야. 내가 무슨 말이야 재규어야? 에잇 재미없다. 이런 얘기 증말 한두 번도 아니고 말이지. 그러니까 말이지, 하던 투정 멍석 깔아놓으면 안 할 줄 알았는데. 그런데 응석 대회 제왕감? 누가, 내가? 아니야. 그럼 오빠가? 그럴지도. 아무튼 아이들이 노는 건 봐도 떠드는 건 못 본다는 말이 있다네 친구. 허당계를 평정할 정도의 깽판으로 성장한 어리광, 사람들이 어디 그렇게 한가한가. 애들이 떼쓰면 귀엽기라도 하지. 어?」
   「릴리. 잠깐 뭔가 착각한가 본데. 내가 오빠가 너가 동생인데. 그냥, 이렇게 갈까? 가긴 어딜 가. 언제 끝날 줄 알고. 이렇게 말꼬리 잡고 늘어지다간 한도 끝도 없겠다. 이런 밑도 끝도 없는 대화, 좀 시작하지 않을 수 없니?
   「오빠가 먼저 시작했잖아. 말려줘도 뭐래? 너 정말 내 손바닥 안에 들어오고 싶어? 내가 무슨 오빠의 인공지능인 줄 알아? 그래? 어? 정말 그래?」
   「너가 드디어...」
   「내가 드디어...?」
   「너가 마침내 여자가 되었구나.」
   「그럼 내가 여자지 남자니? 듣고 보니 오빠가 의심되네. 오빠 고추 달리긴 달렸어?」
   「어허! 넌 말을 해도 꼭!」
   「부끄러워하지 마. 괜찮아 괜찮아. 그러지 말고 여기나 가봐.」
    그러면서 릴리는 어느 명함을 보여줬다.
   「아는 형인데 최근 작품 꽤나 팔고 한몫 건졌거든. 그래서 떠났어 세계여행. 한동안 안 와. 거기 작업실이든 뭐든 다 청산한댔어. 심심하면 거기나 놀러가서 그 잘난 작품 구상이든 뭐든 하던가 말던가. 아 글쎄 가서 머리나 식히고 오라고.」 
   「넌 내가 무슨 이런 따끈따끈한 껀수나 바라고 온 무슨 잔머리꾼인 줄 아니? 내가 너한테 그거밖에 안 되는 오빠야? 그래? 이처럼 매번 받기만 하는 뭐 난 기분 얼마나 좋을 줄 아니? 어? 이 사람이 지금 보자 보자 하니까... 뭐가 어쩌고 어째?」
   「지금 어디서 큰소리야. 왜, 싫어?」
   「누가 싫데? 얜 꼭 보면 줬다 뺐을라 하는 게 흠이라니까.」
    나는 생각했다. 아아 올 것이 왔구나. 어? 마침내 말이다. 물론 가 봤더니 그저 그럴 수도 있다. 그렇다고 마음 없는 척 수락하는 거야 친교의 기본. 릴리와의 우정이 다른 게 아니니까. 서로 작은 교분쯤은 정말 잔뻔치로 꽤나 주고받았다. 적은 것도 쌓이면 많아진다. 많으면 달라진다. 달라지면 좋다 나쁘다? 좋을 때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야 어떻든 길고 짧은 건 대 봐야 안다. 강은 건너봐야 알고, 과일은 먹어봐야 안다. 뭐? 됐고. 나는 당장 떠나기로 했다. 





    2

    나는 릴리로부터 소개받은 별장에 도착했다. 
    A에서 B까지. A는 사무실이요 B는 릴리가 소개한 별장. 
    그게 멋지고 재밌고 흥미진진하다면야 다 정성스럽게 설명을 하겠으나. 
    내가 뭐 삼류 극본 작가도 아니고, 발표하는 영화마다 수익분기점을 넘자마자 막 내리는 괴짜 영화감독도 아니고. 
    그러니 중간 건너뛸 수밖에 없지 않냐는 푸념도 더럽게 재미없긴 마찬가지구만 그래. 참 나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지만 오늘 날씨 보니 먹구름 잔뜩 끼얹지 않냐고. (절레절레)
    그렇게 딱 그곳에 들러가려고 릴리가 알려준 비밀번호를 입력했다. 
    띠~! 틀렸다는 신호.
    재도전. 
    띠~! 또?
    다시 한번. 지가 무슨 여인의 마음이야 뭐야.
    띠~! 뭐야 이거. 
    나는 곧바로 릴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오빠.」
   「릴리 여기 별장 비밀번호가 안 맞는데?」
   「그래? 내가 알아보고 다시 전화줄께.」
    뚝. 왠지 모르게 불길한 기운이 날 감싸는데 이걸 어쩌면 좋나. 잠시 후 릴리한테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걔 거기 별장 팔았다는데. 오빠 어쩜 좋니? 괜찮아. 다음에 내가 6박 7일 풀서비스 특급 호텔 초대권 선물해줄게. 됐지? 그럼 나 지금 바빠서 끊는다. 대충 어디서 눌러 있다 쉬다 와. 그럼 되지. 올라와서 연락하고. 올라오면 여자 소개시켜줄께. 알았지?」
    뚝.
    뭐야 이거. 이런 젠장. 걜 믿은 내가 바보다. 어차피 못 미더운 숙녀 속아주질 말았어야 한다고. 그러거나 말거나 이미 엎질러진 물.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나는 차에서 음악 <요한 세바스찬 바흐 / Magnificat in Eb major BWV243a>을 들으면서 처음 보는 풍광을 즐김과 동시에 묵을 곳을 살펴봤다. 
    저기 보이네.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이름까지 공개해서 안 그래도 피곤한 독자 더 피곤하게 만들 일, 나도 반기지 않으니까 그건 그냥 호텔 1이라고 치면. 
    호텔 1에 들어가서, 이러쿵저러쿵 수속 마치고, 방에 들어가서 짐 풀고 침대에 벌러덩 누웠다. 
    갑자기 전화가 걸려왔다. 여성환상 1.5 편집장 사라였다. 얘가 왜 뜬금없이? 뭐 받아보면 알겠지.
   「뭐해?」
   「뭐하냐니?」
   「귓구멍이 막혔어?」
   「멀쩡한 남 청력까지 신경써주시게? 사라가 그렇게 한가한 때도 있었나. 금시초문인데?」
   「까불지 마.」
   「」
   「까불지 말라고.」
   「암말도 안 했잖아?」
   「잘했어. 어디야?」
   「너도 할 말 없으면 식상한 말만 골라서 하는 동네 아줌마니? 언제 한 번 밥 먹자, 거의 100퍼센트 안 먹어. 3시간 신나게 떠들고 나서 중요한 얘기는 나중에 만나서 다시 하자? 뭔 말 했는지도 잊어먹어. 어디야? 어디면 알아서 뭐할 건데. 책 1권 빌려가면서 나중에 줄게? 다시 얼굴이라도 오다가다 마주치면 다행이게, 절대 안 줘. 영원히. 이사할 때 어디로 가버리기 전 훨씬 일찍 까먹거든. 친한 친구들끼리 통화할 때 제일 많이 하는 말 가운데 단독 1등. 물론 순위는 오르락내르락.」
   「뭔 말이 그렇게 길어? 대답 안 해? 어디야?」
   「왜, 어딘 줄 말하면 베네룩스 3국 무료 여행권이라도 선물하게?」
   「내가 늬 여자친구니? 잔말 말고 칼럼이나 보내. 마감일 다 됐어. 더 못 기다려.」
   「아 맞다!」
   「능청떨지 마.」
   「나 당분간 쉰다고 리스베르한테 전해줘.」
   「쉬긴 늬가 뭘 했다고 쉬어? 늬가 지금 정신이 있는 거니 없는 거니?」
   「나 지금 좀 쉬어야 해. 왜냐하면 쉬어야 하기 때문이지. 아니! 나 이제 칼럼 안 써. 내가 다시 칼럼을 쓰면 그땐 개다 개. 알았어?」
   「알긴 누가 알어? 아무도 알고 싶어 하지 않아. 내 너 그럴 줄 알고 요원 보냈어. 너 지금 호텔 1에 숙박해 있지? 넌 걷든 기든 뛰어 봐야 내 손바닥 위라는 것만 알아둬. 뭐해, 커튼 열어서 창밖을 보지 않고.」
    나는 창문의 커튼을 확 젖혔다. 뜨아! 역시나 말끔한 수트발에 헤어스타일은 기름칠 번질번질한 8 대 2 가르마. 우리는 눈빛이 잠시 마주쳤다. 늑대는 늑대를 알아보는 것일까? 늑대 구토하는 소리 그만하고. 
    여성환상 1.5와 환상문학잡지 미스테리아로부터의 독촉은 뭐랄까 술꾼의 그칠 줄 모르는 갈증 같다고나 할까. 냉소꾼의 권태라기보다는 허당의 실소를 불러왔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으로 여행 와서 한동안 나른한 휴가를 즐기려던 찰나, 노름꾼의 탐욕을 충족시켜주기를 누가 바랬냐고. 그냥 귀찮은 척 행복한 아니, 썩은 미소 일명 썩소는 잠시 쉬자는 속셈이 뻔히 들통난 셈 아니냔 말이지. 내가 정작 원하는 건 일일 아침 드라마를 챙겨볼 수는 없으니, 고로 파다한 추문에 깜짝 끼어들기? 그런데 밑도 끝도 없이 염문이 왜 나와. 심심하던 인생에 느닷없이 등장한 사랑에 적잖이 놀라도 모자를 판국에 또 독촉. 또 또 독촉. 
    그래서 나는 전화를 뚝 끊고 핸드폰에 깔린 앱을 지웠다. 
    사라는 그걸로 날 추적했을 테니 이젠 더 귀찮게 하지 않을 것이다. 





    3

    나는 그렇게 호텔 1을 떠나 호텔 2에 도착했다. 
    중간 설명은 건너뛰기로 하자. 억지로 그거 써 봐야 읽는 사람만 피곤하니까. 별 내용도 없는 거 가지고 더럽게 잘난 척할 일도 없고. 아는 척이야 물론 취미 없음. 뭐한다고 가짜로 행복한 척? 타인의 관심이야 고맙겠으나 우리는 얼굴 팔리는 거 좋아하는 앵무새 분과가 아님. 우리는 짜증나는 상심, 신경질내는 절망, 표정 망가지는 체념이 뭔지를 조금이나마 알긴 알기 때문에 그냥 한마디로 뻔트를 선호함. 장외 홈런 이 왜 나빠. 단지 우리는 자기 주제를 아니까 어디서 잔소리나 얻어듣고 잔재주나 선보일 수 있으면 그걸로 대충 만족이다 그뿐이지. 그런데 이 얘기를 지금 왜 하는 거지? 무슨 바람피운 다음에 변명하는 거도 아니고. 양심에 찔리는 거야 다 애인한테 뭔가 켕기니까 그러는 거고. 말 빨라지고 말 많아지면서 당황하면 일단 의심을 부르는 게 당연. 그야 그분들 사정이고. 젠장, 이럴 바에야 차라리 호텔 1에서 호텔 2로 이동한 정황과 분위기와 의식의 흐름을 옮기는 게 지겨워서 차라리 나았겠네. 어쨌든 넘어가고. 
    나는 호텔 2에 들어가서 수속을 마치고 몇 호실에 들어갔다. 
    정말로 홀가분한 마음에 짐을 놓고 침대에 벌러덩 누웠다. 
    그런데 갑자기 전화가 걸려왔다. 환상문학잡지 미스테리아 편집장 마라였다. 마라?
   「뭐해?」
   「넌 뭐해?」
   「내가 먼저 물었잖아.」
   「먼저 물어봤으니까 먼저 답하면 되겠네. 아니 그렇수?」
   「뭐?」
   「집어 든 거 내려놔. 나 늬 옆에 없으니까. 숙녀가 연장을 왜 들어?」
   「내 너 이럴 줄 알고 미리 다 병력 불러 놨어.」
   「병력? 뭔 병력?」
   「연재소설 마감일인 걸 몰라? 알잖아. 알면서? 지금 너 나 쫄쫄 굶는 꼴 보고 싶어 이러니?」
   「안 그래도 너 다이어트 다이어트 노래를 불렀잖아?」
   「지금 그 말이 아니잖아. 응?」
   「왜 커튼을 젖혀 창밖을 보면 예사롭지 않은 카리스마 요원이라도 있다는 거니?」
   「헉! 어떻게 알았어?」
    나는 커튼을 젖혀 창밖을 내다봤다. 그런데 정말로... 정말로... 이번에는 '가죽점퍼 + 선글라스 + 올백 헤어스타일'의 전형적인 현장 요원 모습이었다. 
   「야 너. 신비감에 농락당해 환상머신을 탐닉하고 어쩌고. 그런 말장난 그만하고. 어서 원고 넘겨. 오늘 마감일이야.」
   「안 썼어.」
   「뭔 배짱?」
   「보기 좋게 왕 기대는 대실망으로 이어지는 거지. 안 그래도 그거 재미도 없는데 누가 보니? 나도 다 듣는 귀가 있어. 두세 달 반응 보고, 어? 그래프 추이선 보고 무슨 다큐멘터리 특집인가 뭔가로 바꾼다며? 누굴 속이려고! 누군 뭐 정보통 없는 줄 아니? 이거 왜 이래? 어?」
   「아니야. 그거 헛소문이야.」
   「마라. 새 빗자루가 깨끗이 쓸어진다. 알아, 몰라?」
   「그건 또 웬 뚱딴지같은 소리야? 말을 알아듣게 해 이 양반아. 어? 목소리 깔지 말고 똑바로 말해.」
   「너 말귀 어둡다고 자랑하니? 환상문학계에서 눈칫밥 그렇게 먹었으면서 넌 아직도 그렇게 꽉 막혔니? 그러니까 늬가 남자가 없지.」
   「뭐가 어쩌고 저째? 너 말 다 했어? 너 어디야? 너 한동안 잠잠하던 이유가 다 있었구나. 넌 계획이 다 있구나. 응? 아 그러니까 그게 뭔 소리냐고.」
   「나 이제 소설 안 써. 연재소설 딴 작가 알아봐. 내가 다시 소설을 쓰면 그땐 펭귄이다.」
   「넌 이미 펭귄이야. 알아?」
   「내가 펭귄이면 넌 새야. 알아?」
   「이런 돼먹지 못한, 이런 미친, 이런 어디서 생선 대가리 같이 생기다 말아가지고 말이야. 잔말 말고. 당장 원고 보내. 어서.」
   「못 보내. 끊어. 그래. 너 잘났다. 잘 먹고 잘 살아라. 나 휴가야. 연락하지 마. 끊어. 하나만 더. 마라? 넌 애송이야!」
   「뭐라고? 야. 너 이리 와. 당장 와.」
   「내가 어느 안전이라고 말이지, 마라 여왕님의 용안을 직접 뵐 수는 없고. 난 그냥 가서 엄마 젓이나 더 먹고 올게.」
   「늬가 애야? 너한테 공갈젖꼭지가 어울린다고 생각해? 그리고. 또. 내가 언제 너한테 가서 엄마 젖이나 더 먹고 와, 라고 말했니? 난 그런 말 한 적 없는데.」
   「없어? 없으면 지금 해. 그럼 될 거 아니야.」
   「너, 드디어, 미쳤니?」
   「난 미치지 않았어. 내가 아니라 너가 미친 거 아니니?」
   「뭐 내가? 내가 그럼 미친년이라고? 너 말 다 했어? 너 거기서 딱 기다려.」
   「기다리긴 누가 기다려. 어? 기다리긴 뭘 기다리냐고. 안 기다려. 끊어.」
    뚝. 
    그다음 나는 노트북에 설치된 위치 추적 애플리케이션을 지웠다. 
    그리고 호텔 2에서 다시 호텔 3으로 이동했다. 





    4

    먹는 개는 짓지 않는다. 나는 최근 투정만 늘었다. 고로 나는 짓어야 한다? 그러든가 말든가! 
    식탐이고 자시고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다. 그럼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아마도 특단의 대책을 부르는 숨은 강적은 거무튀튀한 정염의 미련? 미련은 무슨. 호텔 1에서 2로. 다시 호텔 2에서 3으로 옮겨왔는데. 왠지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고. 어딘가 모르게 벌써부터 패배감 가득하고. 거 어째 보송보송한 사랑의 환상에 대한 기대감은 느낌 세하단 말이지. 어쩌지? 어쩌면 좋단 말인가. 어쩌긴 뭘 어째. 그냥 며칠 휴가라 생각하고 쉬는 거지. 소파에 자빠져 TV 채널이나 돌리면서 싱거운 음료수와 함께 맛없는 과자나 씹어먹으면 되지, 거 무슨 꽃사슴을 자빠트릴 궁리를? 또? 때문에 나는 이미 권태 적응가가 되어버린 것만 같았다. 물 만난 듯한 한량의 열정, 이미 바닥난지 오래. 아니 정말로 말이야 이제 어찌해야 좋을까. 어찌하지 않아도 된다. 더럽게 재미없는 일상, 다 방법이 있다. 그러니까 이를 테면 딱딱한 빵에는 날카로운 이빨. 어? 허허허. 그런데 가만 보니 딱딱한 빵은 커녕 이렇다 할 건수도 없네. 새몰이 따로 있고 새잡이 따로 있다는데 이건 뭐 소문난 병풍도 아니고 말이지. 이젠 신부들러리조차 맡아본 지 오래고, 하다 하다 백댄서 인생이 부러워져. 갈 데도 없고 불러주는 이는 더 없고. 그리고 말이야. 그러니까 말이지.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거라고는 예를 들어 그런 거. 담 건너 편의 사과가 가장 달다. 자, 뭐? 잘못 들었나? 제대로 읽으셨다. 그러니까 뭐 절판된 도너스가, 아니면 희망의 내일 꾸는 개꿈이? (절레절레)! 그도 아니면 뭐, 어? 멀리 여행하려는 자는 자기 말을 아낀다. 그러니까 곶감론? 됐구유. 네? 됐다구요. 아 됐시유.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여행지에서의 새로운 발단과 참신한 전개는 함께 오는 것. 기승전결 가운데 동시에 곧바로 절정감을 예감하는 거지. 흐흐흐. 크크크. 1 대 1 만남이 주특기인 촌닭들에게는 어쩌면 그게 제격. 따라서 남은 카드는 결국 우연한 만남? 우연? 만남? 남녀? 새로운 여자? 늑대 말을 하면 그 꼬리를 보게 된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 그런데 보이는 객이라곤 순 죄다 뻣뻣한 남자들뿐. 여우는 어딨냐고! 이 동네는 그 흔한 나이트클럽도 없고, 초라한 극장식 카바레는 전부 다 문 닫았음. 하여간에 소름 끼치는 신비감, 끔찍한 환상 그리고 마술적 현실성.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지. 이럴 거면 뭐하러 먼 데 까지 돈 써가면 시간 낭비하러 왔냐고. 나는 마음을 고쳐먹고서 호텔에서 안토니오 비발디의 글로리아 RV 589번을 틀어놓고 평소처럼 일하기에 몰입하려다 포기했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으니까. 
    그러므로 나는 뭔가를 해야 했다. 그게 뭐든 젊음의 투지를 발산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시동 거는 허당 유형이 아니라, (좋게 포장하자면) 발동이 걸리는 마성의 신비주의자 스타일. 때문에 탄력 받지도 않았는데 아무거나 들쑤시고 다닐 수는 없었다. 뭔가 비전이 보이고 예측이 좋을 때나 빨빨거리고 나돌아다니는 거지. 어릴 때처럼 무턱대고 나댕길 수는 없는 일. 매는 굶어도 벼이삭을 쪼지 않는다. 그럼 남은 방법은? 평소에 사무실에서 하던 대로 일이 손에 잡히지 않으니까 인터넷에서 웃긴 이야기나 찾아보는 수밖에. 그렇게 봤던 얘기 가운데 엄선하든 말든 두 가지를 소개하자면 이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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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략.
    중략된 원문은 <칼럼: 내가 창피하니?>에 고스란히.
    시중에 절찬리 판매 중. 연애론 2 역시나 개봉 박두. 짜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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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주한 벌은 슬퍼할 시간이 없다지만, 이건 뭐 일하는 거도 아니고 노는 거도 아니고. 여기까지 와서 뭐 하는 거야? 어?
    이미 속으로 많이도 웃어놓고서 말이야. 그것도 아주 겁나게~! 그런데 뭐가 어쩌고 어째? 
    그게 더 나뻐. 그게 더 미워. 그게 더 싫다고. 그게 더 짜증나. 부글부글 뽀글뽀글! 
    ~라는 환청 때문에 급기야 괴로울 찰나. 나는 결심했다. 돌아가기로 말이다. 
    아니, 이럴 거면 뭐하러 이 먼 데까지 와서? 내 말이! 괜히 왔잖아? 누가 아니래. 낭만?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는 다 틀렸다. 여행? 관둬 관둬. 끝내 끝내. 어? 때려쳐. 때려치면 될 거 아니야. 결국 줄 달린 치즈를 완성해 카우보이처럼 목표물에 던져야 하는데, 최적의 먹잇감은 당최 보이질 않았다. 그래서 나는 다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하나 더. 왠지 모르게 그 말이 생각났다. 내가 무슨 탐정물 매니아도 아니지만 말이다. 
    그건 무엇? 그렇지~ (딱)! 개는 자기가 토한 곳으로 돌아온다. 





    5

    오늘 나는 사무실에서 야근이나 하려고 했다. 
    오페레타 <박쥐>에서 아리아 “내가 순진한 시골 아가씨였다면“ 
    같은 악상을 떠올리며 허공을 바라보는 요한 쉬트라우스 2세나 된다는 듯이. 까지는 아니지만. 
    아마도 낮에 일을 너무 열심히 했던 것일까? 조지 프레데릭 헨델의 오라토리오 헤라클레스(HWV 60)를 듣고서 별일 없었다. 
    그러니까 제12 난제를 여심처럼 녹여주는 해결사의 두둑한 배포는 음악 듣기로 대신하고. TV보기, 주색, 사교계 활동... 최근 다 하지 않고 취미 없음. 
    그럼 일이나 하는 수밖에. 그러던 중 아는 동생들이 불러서 나는 그곳으로 갔다.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나는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당도해보니 아는 동생들이 떼거지로? 당연히 놀라지 않고 배기나. 대충 2명 정도면 밥 사주고 커피든 뭐든 내가 다 계산만 하는 역할을 예상했는데. 
    이러면 좋은 점은 기쁨에 주체하기 힘든 대신 견적이 많이 나온다는 점. 그렇지만 바쁜 일이 있다는 뻔한 핑계를 대면서까지 도망갈 수는 없고. 일단 앉는 수밖에. 
   「아니 이게 무슨 행운이지? 왜 남자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거지? 오늘 무슨 날인가? 누구 생일인데!」
   「것 봐 내가 말했잖아. 딱 맞춘다니까 그러네. 자, (내기에 진 사람들한테 손을 내밀며)」
   「진짜야? 그럼 말을 하지 그랬어. 빈손으로 와서 어떡하니. 빈손도 빈손인데, 어? 그보다 남자가 없다는 게 이게 말이 되니? 그렇다고 너네들이 남자에 환장한 여우다 뭐 그런 말은 아니지만. 그러니 오해하지 마시기를. 그런데 거 어째 초반부터 분위기가 썩 흐뭇하지 않는 듯. 내기한 게 한두 개가 아닌가?」
   「것 봐. 다 알고 있다니까.」
   「뭐야! 그럼 오늘 난 그냥 세기의 빅매치에서 초반에 흥만 띄우다 카운터 펀치에 나가떨어져 KO 되는 순위권 쟁탈전 희생양? 어머 진짜인가 보다. 얘 크리스티. 웬 내숭? 너 친구들이랑 있을 때 안 그러잖아. 목소리 걸걸. 응? 어딜 봐? 저쪽에 남자 없어. 그리고 너 사라. 너네 직원들이 너 이처럼 농땅 피우는 거 아니? 늬가 이러니까, 아니다 말 말자. 넌 뭐야 엘리자베스. 눈탱이 어디서 맞았니? 늬가 눈화장을 못하니까 매번 남자한테 차이는 거 아니야. 어? 로즈마리는 얼굴이 왜 저처럼 부었는데? 너 어제 뭐 먹고 잤니? 정말 그랬니? 야 에밀리. 넌 옆에서 그처럼 킥킥 웃는 게 탈이야. 여자들이 시누이 눈꼴 시려운 거 보기 좋아하니? 넌 딱 꼴 보기 싫은 시누이감이야. 알아?
    ~라는 독설이야 다 농담이고. 부드럽게 띄워서 차이 나는 격차에 감격하기 위해서 일부러 살짝 몸만 푼 거야. 아니 그래도 말이지, 어? 나름 혀매시나 된다는 듯이 너네들 앞에서 방정을 떨 수도 없잖아. 안 그래?」
    나의 휑설수설을 딱 끊고 릴리가 다음과 같이 맞받아쳤다. 
   「그걸 떠나서 오빠 여기 왜 왔는데?」
   「나?」
    릴리의 날카로운 앙칼짐에 더해 샐리도 다음과 같이 한 수 얹었다.
   「오빠 말 끊어서 미안한데, 어? 오빠 궤변은 둘째치고 말이야 오빠 여기 왜 왔냐고. 어? 안 들려?」
    오빠 말 끊어서 미안한데? 아니 그럼 애초에 말을 끊지 말던가. 내가 여기 왜 왔냐고? 늬들이 불렀으니까 왔지. 내가 뭐 미쳤다고 늬들 꽁무니만 졸졸 쫓아다니는 뭐 개니? 말이야? 너구리야? 참새야?
   「어라! 오늘 시트콤 기획 개념은 이건가? 나 시비받는 거 좋아한다는 거 어떻게 알았지?」
   「거짓말 마. 오빠가 슬랜더를 좋아하든 말든, 안 물어봤어. 일단 안 물어봤다고. 어? 궁금하지도 않은데 뭐래?!」
   「그러니까.」
   「아하. 곧 그 말은 1 대 1은 재미없다? 영화 찍게?」
   「시끄러. 시끄럽다고.」
   「조용히 말할게. 그러면 되잖아. 안 그래?」
   「거 참 말 많네. 아 거기 서서 뭐하는데. 왔으면 앉든가 아니면 가시든가. 앉거나 가거나 둘 중 하나만 해. 뭐야?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오빠가 사랑을 알아? 죽도 밥도 안 되는 헛소리나 핑핑 할 줄이나 알지.」
    나는 생각했다. 얘네 세게 나오는데? 날 대체 왜 불렀지? 정말로 그 뭐야, 난 오늘 시종마? 뭐? 이런 젠장 진짜로 느낌 세한 게 난 오늘 딱 시종마로 분위기만 고조시키다 빠져야 할 거 같은 직감. 난 빠짝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너 말 잘했다. 응? 너 말 한번 잘했어. 뭐 우리끼리는 음, 그래도 이건 좀 심하지 않니? 오빠가 아직 적응이 잘 안돼서 그러는데. 뭐 곧 괜찮아지겠지. 그럼.」
   「오빠가 참아. 쟤네 기분이 좀 그런가 보지.」
   「그치?」
   「그렇긴 뭘 그래? 야 야. 똑같아지니까 우리가 참자.」
   「오빠 많이 참고 있다.」
   「우린 더 많이 참고 있어. 알아? 이 오빠 정신 못 차리네. 정신 안 차려? 오빠가 뭐 그렇지.」
   「그러지 말고 나도 목이나 좀 축이고 뭘 토의해도 토의하자고.」
   「오빠 뭐 마실 거냐고 물어보면 그러잖아. 아무거나! 아무거나? 오빠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없어. 먹기 싫은 건? 것도 없어. 그럼 먹지 마. 그럼 되겠네. 그치? OK. 먹지 않는 걸로.」
   「어디 숨겨진 대본이라도 있니? 연기 꽤 잘하는데? 그치? OK. 속아주는 걸로. 나 하나도 짜증나지 않았으니까 얼마든지. 컴온 컴온. 뭐해? 벌서 지쳤니? 재미없잖아? 힘내. 어? 왜 시작하려다 말어? 뭔지 몰라도 시작했으면 무라도 썰어야지. 왜? 다이아몬드가 몇 개인지 모를 휘황찬란한 명검의 검집에서 검을 딱 뺐는데. 그런데 짜리몽땅? 남 1발 뛸 때 2발 뛰면 돼. 하긴 너네 착한 거 다 아는데. 너네가 악역 어디 잘하겠니? 알만 하다 알만 해. 어? 뭔지 몰라도 애쓴다 애써. 가상해. 왜 좀 더? 필요하면 말하고.」
   「오빠 목소리 모기 같아.」
   「그치? 그렇지?」
   「좋단 거 봐라. 그래. 나 모기다. 됐냐? 만족? 그럼 너네가 남자 없는 거도 인정?」
   「안 물어봤어.」
   「물어봤다는 게 아니라~」
   「오빠 알아서 해.」
   「오빠. 오빠 드디어 빈정상했어? 응? 기분 많이 상했어? 그랬어? 마침내? 정말로?」
   「빈정상한 게 무슨 축하하고 축하받을 일이니? 너네 왜 그래 오늘? 어?」
   「오빠. 잘난 척하지 마. 재수 없어. 오빠가 우리 마음을 알아? 뭔 말로만 자기가 여심을 녹여준데. 여자의 마음을 녹여주면 뭘 해, 통장 잔고가 바닥났는데. 안 그래? 아는 척, 재미없어.」
   「아니~ 그러니까 내 말은~」
   「오빠 꼰대 같아.」
   「그치?」
   「그렇지? 그치?」
   「그래. 그래.」
   「맞아. 맞네. 맞어.」
   「오빠가 너네 마음을 다 아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가 우정을 나눈 시간이라는 게 있잖니. 오빠가 아는 멋진 훈남들이 또 좀 많니. 응? 그렇지만 왜 소개시켜주지 않냐고? 그 말이 있지. 옛말에 그런 게 있는데 들어봤을려나 모르겠다. 뭐랬더라? 그래. 벌통에 좋지 않은 것은 벌에게도 좋지 않다. 오빠가 엄선하고 또 엄선해서 마치 특급 신인의 깜짝 출연처럼 너네들한테 선보여야 하지 않을까? 응? 그래야 말이 되잖아. 안 그래? 뭐 말이 안 된다고? 두고 봐. 얼마나 멋진지 보고 나서 침 흘리지나 말고. 여우는 잠을 자면서도 닭의 숫자를 헤아린다지만, 촌닭 가운데서 진흙 속의 진주? 너넨 아마 내가 걔네들, 어? 내 남동생 사단 데리고 오면 깜짝 놀랄 거야. 당연하지. 안 그럴 수가 없거든. 허허허. 너네들 알아둬. 늑대가 공상하는 동안 양은 사라진다는 거. 지금은 너넬 가꾸고 꾸미고 아름다워질 시간. 3월의 바람과 4월의 소나기가, 계절의 여왕 5월의 꽃을 피운다네.」
   「어? 뭐라고? 다시 말해봐.」
    10초. 20초 동안의 정적.
   「오빠 화났어?」
   「아니. 나 화 아 났어. 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화를 내본 적이 없어. 나는 살면서 짜증내본 일이 단 1번도 없단 말일세. 아시겠나? 난 신경질 그런 거 어떻게 내는 줄도 몰라. 알아?」
   「허세 또 시작했다. 되지도 않는 허세. (개)허세.」
   「어디 한두 번이니? 오빠가 그럼 그렇지.」
   「그래. 너네들 짠한 심정 오빠가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다 들어줄게. 응? 전부 다.」
   「오빠가?」
   「뭐래~!」
   「저 오빠 삐졌네. 삐졌어.」
   「삐돌이.」
   「삐지긴 누가 삐져? 나 안 삐졌어. 삐지는 게 뭔 줄 알아야 삐지든 말든 할 거 아냐. 흥!」
   「삐졌네. 것도 많이. 뭐 우리 앞에서 삐져? 오빠가? 감히? 저따위, 에잇. 됐다 됐어.」
   「얘들아. 가만 보니 오빠 웃기게 생기지 않았니?」
   「웃기게 생기면, 그게 어디야.」
   「왜, 기분 좋아? 오빠만 기분 좋으면 다야? 어?」
   「너넨 정말 사람 쪼잔하게 만드는 데 뭐 있구나.」
   「우리가? 오빠는 계획이 다 있구나. 그런데 뭔 계획? 그리고. 안 물어봤는데? 오빠 친구 없지? 오빠 기분 나쁘라고 하는 말이 아니야. 오빠 기분 나빠하지 말고 들어.」
    자기들끼리 좋다면서 웃는다. 
    그다음. 나는 화장실 간다면서 화장실에 가서 손을 씻은 다음 조용히 그곳에서 나왔다. 





    6

    나는 쾌락으로부터 엄호받지 못했다. 당연히 행복감도 날 보필하지 않았다. 그러니 낭만마저 누굴 의전하겠나. 그렇다고 희망의 나라로 망명하는 개꿈을 꾸기를 하나 금전이라도 풍족하기를 하나. 뭘 해도 재미없긴 마찬가지. 이래 가지고 무슨 환상기계를 완성해. 그렇지만 장거리 장타자의 장기가 발휘되듯 마침내 허당의 권태감은 정점을 찍고 슬럼프를 탈출하면 좋은데. 바랄 걸 바래야지. 오라는 데도 없고 약속도 없고. 건수는 꽝. 믿음직한 심복인 인공지능 지니마저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복권과는 친하지 않고 마권은 구경도 못 해봤지. 행운의 여신이라고 못미더운 그를 중용하겠나. 어설픈 우연조차 날 인준하기를 거부했다. 보나 마나 뜻밖의 새로움이 있을 리가 있나. 사교계에 기웃거려봐야 당수로 추대될 수 없는 건 아무도 관심 없고. 한술 더 떠 나는 이제 공상마저 재미없어져버렸다. 상상력 부재. 일은 하기 싫고. 놀기 역시나 취미를 잃고. 색다른 관심사가 어딨어. 보이는 것이라고는 분홍빛 장미꽃은 커녕 뭐가 보여야 말이지. 이런 재미없는 일상, 여간 골치 아픈 문제가 아니다. 아니 그런데 어쩌다 인생이 이처럼 지루해져버렸을까? 더럽게 재미없는 데 단단히 한몫한 원인이 대체 무엇인가 그걸 고민할 때가 아니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평범한 월급쟁이처럼 고개 푹 숙인 채 사무실로 출근할 수밖에 없었다. 





    7

    밀가루 장수와 굴뚝 청소부가 싸움을 하게 되면, 밀가루 장수는 검게 되고 굴둑 청소부는 하얘진다고 했다. 그럼 유쾌한 낭만파 숙녀가 날 사랑하면? 그럼 게임 끝인데 문제는 짝사랑복도 이젠 영 물 건너갔다는 점. 그렇다면 이 내 우울한 침체기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날마다 즐겁고 신나고 기쁜 허당 아가씨와 사귀면 될까? 그야 내 생각에 지나지 않고. 그분들은 그분들 인생이 행복할 뿐이고. 어? 그럼 어떡해야 하지? 어떡하긴 뭘 어떡해! 그냥 하던 대로. 백날 기발한 꿍꿍이를 고심해봐야 성적 이상적 궁극적 판타지는 콧방귀도 안 뀐다. 아무리 발버둥쳐 봐야 결과는 안 봐도 뻔하다. 그렇다고 일기를 새롭게 써볼까? 하나 마나 한 소리. 잔소리. 헛소리. 개소리. 짹짹 삐악삐악 응애응애. 잔말. 다변. 뻥. 투정. 응석. 어리광. 넉살. 공상. 변명. 간혹 욕까지. 그럼 남은 카드는 다름 아니라 여행? 당나귀 여행 떠난다고 해서 말이 되어 돌아오지는 않는다. 혼자서 먹고 마시고 떠들고 돌아댕기고. 이젠 지겹다. 재미없다. 귀찮다. 여차하다 빡돌지 모를 걱정부터 앞선다. 송사리 4만 마리에 힘 입어 파도타기, 더 이상 바라지도 않는다. 모기 12만 마리의 열화와 같은 물개박수? 상상만으로도 짜증난다. 그렇다고 똥파리 군단과 하이에나 사단을 감명시키는 언변이 내게 어딨나. 그런데 내가 언제부터 이와 같이 개구쟁이처럼 뚱딴지같은 생각이나 하고 있게 된 거지? 알 게 뭐야. 누가 아니래. 아아 그러니까 말이지, 희망찬 미래를 긍정하는 열정파의 선봉에 서고 싶은 마음은 온 데 간 데 없었나, 아니면 원래부터 없었던 건가. 모르겠다 모르겠어. 됐고. 아는 게 뭐냐고. 딱 됐고. 
    그러므로 나는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최근의 행적을 보아하니 
    (1) 릴리 미술관. 릴리가 별장을 소개시켜줌.
    (2) 별장 → 호텔 1 → 사라의 독촉을 피해 도망감.
    (3) 호텔 2 → 마라의 독촉을 피해 호텔 3으로 도망감.
    (4) 호텔 3에서 허송세월. 컴백홈. 
    (5) 아는 동생들 생일잔치. 
    (6) 집 사무실 집 사무실. 
    말하자면 그 말이 딱 맞았다. 바로, 장미도 때가 와야 핀다. 그럼 아마 난 지금 심심하고 재미없어야 딱인 건가? 그러거나 말거나. 어쨌거나 저쨌거나 해야 할 일은 해야 한다. 그런데 하기가 싫다. 더럽게 재미없다. 캐럴 음악이 울려 퍼지고 연말 분위기 들썩이지만. 대충 5 단위로 끊자면 여태... 에잇 그러지 말자. 크리스마스 이브에 뭐 어땠던 적 또 0이라고 하려고 그랬지? 누가 모를 줄 알아. 그런 사람 부지기수. 그렇다고 언제까지 매번 집 사무실 집 사무실, 어? 개에게는 뼈다귀를, 아내에게는 몽둥이를. 그런 구식 탱탱 묵은 말도 더 이상 흥미 없고. 바삐 돌아다니는 개가 뼈다귀를 발견한다지만 내가 뭔 갠가? 또 돌아다니면 뭘 해. 오라는 데가 없는데. 아니면 다른 말? 사용되는 열쇠는 항상 빛이 난다. 혹시, 샘물론? 그럼 뭘 하냐고. 어? 그래서 나는 내 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됐는데. 그 말은 이랬다. 
   「이제 어쩔 거야?」
   「좋은 생각이 있어.」
   「그게 뭔데?」
    하는 수 없이. 어쩔 수 없이. 어영부영 나는 호텔 4로 떠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안 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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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 ─ 160

from 소설 2019. 11. 14. 22:00

    1

    불충족된 성적 판타지는 괘씸하기 짝이 없는 일일까? 그러거나 말거나. 내 욕구불만을 (살짝 저속한 표현을 용서하시는 너그러움을 엿장수 맘대로 깔고간다면) 씨부렁댐을 과연 그 누가 반기겠나. ~라고 NB는 공상하기도 귀찮았다. 몽상 그거 짜증나지 왜 아니겠어. 그렇지만 그도 그럴 것이 말이야, 어? 늙은 여우처럼 약삭빠르고 자시고, 뭔 약속이든 건수가 있어야지 셈을 하지. 이건 뭐 파리도 안 날리는 인생. (절레절레) 그래서 그는 오랜만에 여성환상 1.5 사무실로 놀러갔다. 
    장면 전환. 
    여성환상 1.5 사무실 도착. 
   「리스베트 안녕. 못 본 세에 예뻐졌네?」
   「어머 오셨어요. 멋져지신 건 선생님이신데요 뭘.」
    리스베르와 잠깐 인사를 나눈 후 고개를 돌려.
   「에리카. 우리 언제 데이트 한번 해야지. 전에 약속한 거 기억나지? 계속 미루다간 그거 소셜 네트워크에 올린다. 나 폭로전 한다면 하는 거 알지?」
   「오라버니. 언제 그처럼 넉살이 늘었데? 하여간에 못 말린다니까. 오빠가 무슨 하이틴 드라마 주인공인 줄 알아?」
    에리카와도 역시나 농염한 느낌이 없잖아 있는 듯 잡담은 군더더기 없이 짧았다. 
   「세실리아. 내가 괜찮은 남자 소개해줄까? 이래 봬도 우리 동생들이 알고 보면 꽤 괜찮거든. 언제든 생각 있으면 말만 해.」
   「당숙 오셨네. 오빠 내가 입만 뻥끗하면」
    NB는 서둘러 세실리아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때 편집장실 문이 열렸다.
   「야 너! 우리 직원들한테 웬만치 껄떡거려. 너 여자에 환장했냐?」
    전직원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웃지 마! 웃지 말라고. 내가 우스워? 야 너! 거기 딱 기다려.」
    도저히 창피해서 NB는 즉시 편집장실로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뒤통수가 왜 그렇게 따끔거리던지... 알 수가 있어야지.
   「넌 말이야 애들 있는 데서 내 체면 좀 살려주면 안 되니? 늬 체통만 체통이고 내 체통은 무슨 개 밥이니? 어? 그래?」
   「너나 잘해. 너만 뜨면 애들이 슬슬 피하고 실실 쪼갠다는 거 못 느꼈니? 아 쫌 엥간히 찝쩍거려야 말을 안 하지. 어?」
   「내가 찝쩍거리긴 뭘 얼마나 찝쩍거렸다고 그래? 내가 무슨 껄떡쇠라도 된단 말이니? 나 걔네들 관심 없어. 우린 그냥 그렇게 농담 반 인사 반이 형식 상 굳어진 거뿐이라고. 알아?」
   「알긴 뭘 알아. 내가 왜 그걸 알아야 하는데. 그냥 모르면 안되겠니? 저급한 개수작. 어림없어. 천박한 술수. 누가 바라는 줄 알아? 관심 없어. 뭐해, 침 닦지 않고.」
   「뭔 소리야? 너나 닦어.」
   「침 닦으라면 닦을 것이지 뭔 말이 그렇게나 많소, 오빠?」
   「침 닦긴 누가 닦아. 너나 닦어. 너나 실컷 닦으란 말이오.」
   「안 닦어? 내가 닦아줘? 아니지. 아니지. 아껴온 내 순정을 그렇게 훼손시킬 수야 없지. 그럼. 왜 아냐? 그럼.」
   「넌 대체 그런 저렴한 말투를 어디서 배운 거니? 무슨 그런 거 따로 것도 속성으로 알려주는 학원에라도 다니니? 그러니?」
   「필요 없어.」
   「또 필요 없어. (절레절레)
   「그건 그렇고. 난 오빠한테 뭐야?」
   「너 초장부터 날 혼내는 거니? 겁난다. 어? 무서워. 그러지 마. 우리끼리 그러는 거 아니야. 그건 그렇고. 그동안 왜 연락 없었어?」
   「오빠. 뭐라는 겨?」
   「웬 사투리~! 못 들었어? 그동안 왜 연락 없었냐고.」
   「왜긴 왜야. 너가 전화 안 받았잖아.」
   「너? 오빠 아니면 너. 하나만 해. 헷갈려. 그런데 너 나한테 전화했어?」
   「어.」
   「(멈칫)... 나도 너한테 전화했어.」
   「오빠한테 전화 안 왔는데. 오빠 나 얼마나 정확한 사람인 거 알잖아. 안 왔어 전화.」
   「그럼 딴 사람한테 전화했나?」
   「엽기적이네. 오빠 정신 안 차려?」
   「너! 지금부터 내 얘기 잘 들어.」
   「뭔 얘기를 할 건데?」
   「뭔 얘기 할지 까먹었어.」
   「오빠 또 슬슬 내 부아를 돋구려고 시동을 거시는 구나. 그치?」
   「왜, 쪼매 달아올라?」
   「달아오르긴 누가 달아올라! 바보 같은 소리 그만둬. 그런 헛소리 작작 좀 해. 무슨 개뼉다귀 같은 얘기 멈추지 못해? 그렇게 속 편한 소리나 할 거면 가서 풀이나 뜯어먹어. 뜬금없이 뭔 개 풀 뜯어먹는 얘기야 얘기긴. 밑도 끝도 없이 뭐가 어쩌고 어째? 미친놈. 웃기지 마. 안 웃기니까. 재미 더럽게 없다고. 알아?」
   「」
   「뭐라고 핑계 좀 대야 할 거 아니야? 그렇게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 딱 닫고 있으면 다야? 오빠가 뭘 잘했는데?」
   「잘못했어.」
   「뭘 잘못했는데?」
   「글쎄. 내가 뭘 잘못했지?」
   「됐다 그려. 힘만 빠진다 오빠. 입만 아프다고. 아니지. 아니지 아니지. 오빠. 오빠 혹시 나 좋아해? 에잇... 설마!」
   「왜. 내가 너 좋아하면 안 되니?」
   「응. 안 돼. 절대 안 돼.」
   「왜?」
   「그냥 쫌 하지 말라면 하지 마! 어? 호기심이 신세를 망친다. 그거만 알아둬. 너무 많이 알려고 하지 말라고.」
    잠시 
   「에잇 못 해 먹겠다. 더 이상 콩트 안 해. 거기서 막히는데 나보고 어쩌라고. 어?」
   「그게 어디야.」
    그때 갑자기 자리에 없던 마라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떻게? 이렇게!
   「너네 아직도 이렇게 노니? 그걸 보는 난 왜 이렇게 재밌니. 에잇 거짓말 못하겠다. 거 참 더럽게 재미없구만 그래.」
   「얘 뭐야? 어디 숨어있는 건 아닐 테고.」
   「사무실에 들어오는 순간 못 느꼈어? 아 넌 남자의 직감이지? 실시간 토크쇼였어. 요즘 유튜브에서 그런 거 많이 하잖아?」
    그러다 사라는 편집장실 바깥으로 나갔다. 
    오늘은 여성환상 직원들 회식 날이라고 했다. 
    그렇게 그들은 모두 바깥으로 나가고 있었다. 
    당연히 자연스럽게 NB도 은근슬쩍 묻어가려고 했고.
   「오빤 뭐야? 오빠가 거기서 왜 나와? 오빤 그냥 편집장실에 남아 있어. 거기 봉투나 열어봐. 오늘은 오빠 안 끼워주기로 했으니까.」
   「너네 너무한다. 사람이 그렇게 냉정하면 못 써. 어?」
    모두가 떠난 다음 NB는 편집장실에서 봉투를 열어봤다. 
    별다른 중요한 서류는 없었다. 그래서 그는 전화해서 사라한테 물어봤다.
   「사라. 봉투 안에 뭐 없는데?」
   「어. 없어. 없을 거야. 그럼 뭐라도 있는 줄 알았니?」





    2

    NB는 오늘 비비안을 만났다. 비비안과 대화하면 일거리가 쏟아지기 때문에 NB는 비비안만 만나면 딸랑딸랑 신부들러리가 되어 바닥에 빠짝 엎드렸다.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 비비안은 할 말이 떨어졌을까? 계속 이젠 돌려막기 하는 듯한 느낌. 오늘도 그랬다. 요점은 그거였다. 아니나 다를까 걘 남자를 너무 많이 좋아하기 때문인지 여우 흉보는 게 주제였던 것이다. 그녀는 또 연애에서 피해야 될 여자에 대한 연설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물론 그녀 역시 능동적으로 시동을 거는 부류가 아니라, 우연히 행운의 바람에 힘입어 발동이 (피동적으로) 걸리는 유형이었다. 걸리면, 방망이에 걸리기만 하면 넘어가는데 일단 타석에 들어설 일이 없는 장타자의 마음이 그녀와 비슷할까? 그러든가 말든가. 일단 몸 푸는 대화는 이러했다. 
   「오빠 뒤끝 있어?」
   「어... 아마도? 없진 않겠지. 나도 사람인데? 없는 건 로보트지 그게 어디 사람이니. 기억력과 사고방식이 있는 이상 어쩌면 그래야 정상. 아니면 새빨간 거짓말. 그래 있어. 왜 아니겠니.」
   「좋은 거네.」
   「꼭 보면 사고뭉치 성격 변태들이 사람들 피하게 만들면서 자긴 뒤끝 없데. 못생긴 게 문제가 아니듯, 성격 좋으면 말이라도 안 해. 암컷 싸움닭이어도 성격이 중간만 가면 몰라. 여자들 다 고개 돌리게 만들면서 자기가 최고래.」
   「남 생각하기 싫으니까 그렇겠지. 아님 정말 자기밖에 모르거나.」
   「혹시 너도 자기 밖에 몰라 주의?」
   「설마... 오빠도?」
   「뭐? 너 정말! 난 아니다. 난 아니야.」
   「그럼 뭐 난 나 밖에 모르는 피가 초록색인 이기주의자란 말이야?」
   「그건 아무것도 아니야.」
   「아니긴 뭐가 아니야!」
   「뭐가 그렇게 충격적인데?」
   「오빠 이제 슬슬 말 꼬이기 시작한 거 보니까 말이야, 어? 내 말 듣기 싫어졌다고 나한테 눈치 주는 거니? 어라~! 이거 승부욕 발동하네. 지금 시작하자는 거야? 자, 한번 시작해볼까?」
   「시작? 시작은 뭔 놈의 시작. 너 정말 이러기야? 어?」
   「멈출 수 없어. 왜? 발동 걸렸거든.」
   「그거 조금 미루면 안 될까?」
   「안 돼. 오빠. 존버 뜻 알아?」
   「존버?」
   「응. 존버.」
   「그게 뭔데? 새 브랜드 이름인가? 가수? 헤어드라이어기 상표? 아님 희귀한 새 이름? 뭐지? 뭘까!」
   「비속어야.」
   「비속어? 뭔 뜻인데.」
   「존버. 존나, 버텨! 그래서 존버.」
    NB는 등에 식은땀이 송글송글 송골송골 맺히는 걸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좌우지간 그녀의 말이 엄청 긴데 그걸 다 옮길 수는 없고 요점은 그랬다.
    A. 신분세탁녀: 설명 필요 없음. 아는 사람은 대번에 알고 모른 사람은 백날 설명해 봐야 필요없음. 
    B. 저울질녀: 자기 패는 까지를 않음. 남자의 정보만 SSD 240G, HDD 32 테라바이트급으로 수집. 자기밖에 모르고 남자 입장 생각 왜 하냐는 주의. 지 손해 보는 건 눈꼽만큼도 나서지 않는 년. 자기한테 (개)이득되지 않는 건 발톱의 때만큼도 들러리 서주지 않는 년. 남 생각 요만큼도 안 해. 지 밖에 몰라. 
    C. 변덕녀: 변심이야 여자에게 기초화장이라지만. 웬만치 걸어 다니는 부처 수준이 아니면 남잔 다 나가떨어짐. 결혼해도 고생길 훤함. 자기가 우주의 중심. 
    D. 비위 좋은 년: 불감증이 사촌. 친구 남편한테 껄떡거리는 년. 친구의 남자친구가 잘생겼으면 배아픈 년. 친구의 남자친구가 못생겼으면 얼쩡얼쩡 알짱알짱 염장지르는 년. 
    E. 똥파리녀: 오직 똥파리 스타일만 좋아하는 여자. 백마 탄 왕자가 자길 좋아해주지 않으니까, 결혼 못하는데 안 한다고 하는 여자. 스카우트 제의는 0 러브콜도 0. 현실은 똥파리가 근처에 얼씬도 않음. 
    F. 의전녀: 자긴 남자한테 전화 먼저 거는 거 0. 남자만 100번 1000번. 남자는 학교에 틈틈이 깜짝 출연해서 나타나야 하고. 회사 앞에서 자동차 대기시켜야 하고. 꽃 들고 회사 앞에서 기다려야 하고. 데이트 마칠 때 매번 집까지 모셔드려야 하고. 웬만한 늑대는 나중 복수. 저~만치 하향지원 받아줘서 결혼. 그러다 남편이 사업 망함. 첫 만남부터 조짐이 뻔함. 소개팅할 때 집 앞에서 자동차 대기시켜서 만나면 100퍼센트. 믿음직한 소개로 약속 장소에서 처음 만났는데 집에 데려다줄 때 자동차 뒷자리에 앉아도 100퍼센트. 
    G. 공주병녀: 
    H. 거울녀: 손에서 거울을 놓지 않는 여자. 여자들끼리 어떤 수준인지 잘 아는 여자. 
    I. 이기주의의 화신녀: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밖에 모르는 여자.
    J. 불여우과: 최대 4년까지는 무난. 남자에 따라 4달이든 2년이든 대충. 그러나 남자가 참다 참다 나가떨어짐. 헤어질 때 하는 말은? 난 널 사랑하지 않았어! 
    K. 수다 머신: 했던 얘기 하고 또 하고 또 하고. 남자 귀 타버림. 다 똑같은 패턴. 남자가 나가떨어지는 건 단지 시간문제. 
    L. 맹녀: 조신해서 진도 빼는 데 시간 좀 걸림. 그렇지만 매력 떨어지고 밑천 바닥나고 히든카드도 없음. 여자는 우리 오빠, 남자는 질렸으니까 멀어짐. 
    M. 독립형─(사랑): 자기가 뭐하는지 얘길 안 함. 심하면 연락 안 받음. 전화기 신경도 안 쓰는 유형도 있음. 근데 애인한테 사랑받고 싶으면 뜨거운 관심을 요구. 정신연령이 할리퀸 문고에서 멈춤. 
    N. 독립형─(환승 이별): M과 거의 똑같은데 환승이별 수순이 반복. 이모 스타일녀. 
    O. 생활 연애형: 하향지원 받아줘서 환승이별 전에 주로 하는 말은, 오빤 여자를 몰라. 그 말만 수도 없이 들어본 남자는 부글부글 버럭버럭. 
    P. 잔소리녀: 닦달하고 징징거리고 떽떽거리기가 주특기. 잔소리 마녀. 그런데 기준이 불분명. 
    Q. 못생긴 암컷 싸움닭: 목숨 걸고 매달림. 찐따 중의 찐따. 너 죽고 나 죽자 식으로 매달림. 드물게 자기만 사는 경우도 있음.
    R. 장기전녀: 그래프가 완만. 사랑에 빠지지 않음. 빠져도 다 짝사랑에서 끝남. 자존심 지존. 전형적인 숙녀. 대표적인 여자. 당연히 대인관계 원만. 그래서 사랑의 그래프 역시나 완만. 당연히 직구는 없고 변화구뿐. 간접고백. 간접 이별. 먼저 좋아한다고 말 못 함. 먼저 베팅도 못함. 놓치면 놓쳐도 끝까지 좋아함. 그래서 자기 결혼 전에 여자 2명에 남자 1명끼리 만나 아쉬움을 달램. 
    S. 직진녀: 적극적으로 구애하는 여자. 비교적 장녀와 외동딸 비율이 높음. 단지 근사치로 높을 뿐. 
    T. 올인녀: S와 비슷한데 인생 통틀어 1~2명에게만 올인. 다른 말로 타율녀. 그래서 안타면 좋고, 아웃이면 후폭풍 끝짱. 오뚜기로 해피엔딩. 
    U. 선녀─성격 좋음:
    V. 선녀─성격 나쁨:
    W. 걸레: 여자의 판타지를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여자. 암캐 중의 암캐. 
    X. 눈 높은 여자.
    Y. 헤픈 여자
    Z. 쉬운 여자.
    사랑을 받기만 원하는 여자.
    첫째, 첫사랑이 뭔지 모르겠다. 도대체 무슨 기준인지 그걸 모르겠다 징징징.
    둘째, 남녀가 사귀는 게 뭔지 모르겠다. 연애사를 돌아봤을 때 사귄 건 7번이요 사랑은 5번이라면. 그 숫자를 뭘로 정하는 건가 모름. 
    셋째, 먹버녀이자 남자에 환장한 년이요 여자들이 잘 아시는, 미친년과 여우짓과. 
    그러므로 결론은 이와 같은 여자의 특징을 잘 알고 만나라는 얘긴데, 비비안이 웃긴 게 뭐냐면 그런 여자들은 왜 그럴까 라고 되려 따진다는 것. 
    뭐?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라고 그는 벙 찌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글쎄 그럼 도대체 어떤 여자를 만나라는 말인지 종잡을 수 있어야지 말이야. 
  




    3

   「오빠. 지금 내 얘기 듣는 거야?」
   「어? 들어. 들어. 적는다는 걸 까먹었네?」
   「침이나 닦아. 설마, 졸았어?」
   「졸긴 누가 졸아. 안 졸았어. 누구 앞이라고, 어? 어디서 감히! 이거 군침이야. 어? 이 세상에 너처럼 아름다운 여인을 보고서 흑심 품지 않을 남자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 알아?」
   「알긴 누가 알아! 혼내려고 하니까 또 슬슬 날 띄우네. 이 오빤 도저히 미워할 수가 없단 말이야. 응? 쥐락펴락 여심을 녹여주는 무슨 학원이라도 다닌 걸까? 알 수가 있어야지.」
   「그런 학원이 정말 있단 말이야? 어딨는데? 글세 어딨냐고. 응?」
   「말 끊지 말고. 오빠. 내 말 빼앗지 말기다, 응? 근데 상향지원에 중독된 여자도 있는데 그 말 들어보시겠소? 그건 나중으로 미루고. 아무튼 여자가 여자가 설명하자면 말도 못 해. 어? 끝이 있어야지 끝이. 남자들이야 빨주노초파남보. 쥐락펴락. 뻔할 뻔자. 어? 그런데 여자는! 남자는 친구가 다치고 넘어지고 아파도 앞에서 웃지. 푸하하하하하하. 으쌰으쌰. 영차영차. 우락부락. 버럭버럭. 응? 그러나 여자는 앞에서는 괜찮니 아프니 어쩌니... 그러다 뒤에서 웃어. 사이렌 멀어진 다음에 그야말로 환하게 웃는다고. 어? 그게 여자야. 그게 바로 여자의 본모습이라고. 응? 오빠. 여자 조심해. 딸아 이 세상에 아빠 빼고 모든 남자는 늑대이니라~! 라는 말은 웃기기라도 하지. 모든 여자는 살쾡이인데? 남자는 기성복 스몰, 미디엄, 라지... 몇 개 안돼. 응? 그런데 여자는. 오빠 여자 옷 고를 줄 모르지? 여자는 일단 가슴, 허리, 골반, 밑위... 뿐만 아니라 소재, 디자인, 스타일... 등등등. 그 조합만 따져봐도 가짓수가 몇 갠데. 남자야 화장실 가서 뚝딱 일 보고 나오니까 금방이지만. 여자는, 화장실에서,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그러니까 줄이 길지. 남자는 샤워 대충 뚝딱이면 끝나잖아? 여자까지 그럴 리가 있나. 여자는 맞춤복이라니까. 그래서 최고급 브레이저와 실크 팬티처럼 여자는 그 뭘로든 최적화시켜주는 남자를, 여자는, 좋아하는 법이지. 그럼 뭘 해, 응? 남자들의 이상형은 뭐다? 그렇지~ (딱) 새로운 얼굴! 몇 번 보고 진도 빼고 지겹고 싫증나고 짜증나면, 안 설레. 떨리긴 누가 떨려? 두근두근이야 신경질나서 벌렁벌렁하는 거고. 안 그래?」
   「비비안. 아직 할 얘기 많이 남았니?」
   「오빤 그걸 말이라고 해? 아직 시작도 안 했어.」
   「오빠 오늘 한 번 봐주면 안 되겠니? 응?」
   「나보고, 져주란, 말이야? 아니지? 농담이지? 내가 잘못 들었지? 그치?」
   「아니 그게 아니라. 나 요 앞 이비인후과에 예약해놔서 말이야. 나야 언제나 너의 딸랑이일 뿐이지. 그렇지만 피치 못하게...」
    바로 그때 저기 저쪽에서 구세주가 나타났다. 
    다름 아니라 포르토피노 멍키스패너였다. 
    보다 보다 남자 뒤통수에 후광이 다 보이긴 처음이었다. 
    포르토피노 멍키스패너? 옷걸이, 목소리, 말발, 유머, 인성, 성격, 잔재주, 잔머리, 잔꾀... 잔머머로 어디서 빠지지도 않고. 뭘 하나 흠잡을 게 없는 남자. 캬~! 어? 으아~ 끝장이지 끝장. 
    여우가 여우를 알아보건. 과일만 보면 껄떡대는 늑대가 브로맨스의 매력에 홀딱 반하든지. 비비안의 눈이 하트 뿅뿅으로 바뀔 줄 누가 알았겠나. 존멋 남만 보면 훨씬 더 껄떡대는 숙녀. 그녀의 이름은, 비비안? 그러든 아니든 그야 속으로만 생각하기. 안 그랬다간, 어? 그러다 여자한테 한 소리 얻어듣기 딱 좋음. 임자 있다는 둥 뭇남성한테 껄떡대지 말라는 둥. 아무튼 뉴페이스 등장 그분께서는 하필 존멋. 바른말 고운 말을 써야 하는데. 또 살다 보면 이따금 끼리끼리 친하게 낮은 빈도로, 어차피 유행 지나면 바뀌고 없어지니까, 살짝만 상스럽게 말하자면 일명 존멋남 등장. 존멋? 존나 멋짐! 캬~ 어? 말을 말어야지 말을. 아 글쎄 존멋 반대급부 입장 생각하는 거야 마는 거야? 아주 그냥 매를 버네 매를 벌어. 하여간에 못 말린다니까.
    그건 그렇고. NB는 원래 여자를 좋아하는데, 살다 살다 남자가 그처럼 사랑스럽긴 처음이었다. 처음? 말이 그렇다는 거고. 
    어쨌든 걔랑 걔를 짝지어주고 그는 다행스럽게 그곳을 먼저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뒤통수가 가렵단 걸 그녀가 놓칠 리가 있나. 
    비비안은 멀어져 가는 NB의 뒤통수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 
   「오빠 오늘 운 좋은 줄 아쇼! 응?」
    오, 소름~! (절레절레) (찌릿찌릿) (표정) (몸짓). 





    4

    그는 아침에 달콤한 꿈에서 깨어났다. 내용은 이랬다.
    <평소처럼 낮에 누굴 만나고 어쩌고. 그러다 형을 만났다가 헤어졌다. 그런데 만났던 장소에 뭔가를 놓고 온 걸 까먹었다. 그래서 다시 그 장소로 갔다... 그렇게 헤매다가 유행하던 춤을 따라하고 어쩌고... 장면이 바꼈다. 
    서포터스 회장 롭의 추천으로 한적한 여행지 호텔에 가는 길. 이번에는 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다. 그래서 버스를 탔다. 탔는데 지문, 홍채인식, 발걸음, 몸짓, 목소리 등을 확인하는 게 탑승 절차였다. 그 절차를 통과하고 나자 담당자는 그의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다는 걸 넌지시 그에게 떠봤다. 언제 몇 번 어떤 일이 있으셨군요 라면서 말이다. 이를 테면 실연을 몇 번 당했네 애를 2번 뗐네 꼬리는 몇 번 흔들었네 같은. 그렇게 사막은 아니지만 낯선 황무지이자 굉장히 막막한 시골길을 가고 있었다. 그러다 정류장에 멈췄다. 
    그곳은 바닷가였다. 그런데 거기서 기다리고 지금 당도하는 사람들은 다름 아니라 원시 부족이었다. TV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바로 그 원시 부족. 당연히 외양이 신기해서 멀뚱멀뚱 봤겠지. 단지 신기해서? 아니다. 그럴 리가 있나. 군침은 한도가 없는데? 원시 부족 가운데 남자만 있었겠나. 꿈은 형씨 꺼가 아니라 그의 것. 따라서 NB의 꿈에 따르자면 그 원시 부족은 전부 여자였고, 모조리 나체였다. 응? 흑심에는 휴일이 없다. 뚤레뚤레 정신 나간 사람처럼 그는 그분들을 찬찬히 관찰했다. 시선은 바빴다. 안 그럴 수가 없을 테니까. 그렇게 그분들도 모두 탑승. 
    그러다 얼렁뚱땅 차는 캠핑카로 바뀌었네? 뿐만 아니라 원시 부족 나체족 7명의 여인과 그는 다정한 담소를 나눴다. 현실이라면 몰라도 그건 꿈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말이 통했다. 그러다 그는 서류를 펼쳐놓고 자기 일을 했다. 수첩에 메모도 하고, 노트북을 켜서 인터넷 검색하다 글도 쓰고. 그러다 원시 부족 나체녀 가운데 하나가 그에게 특급 파일 같은 서류 봉투를 내밀었다. 그걸 받아 꺼내서 읽어보니 특수 요원 1명에 관한 안내서였다. 그녀를 만나보라는 지령인 걸까? 프리메이슨이고 나발이고 그건 꿈이니까 또 자연스럽게 캠핑카에서 그 서류로 보던 특수 요원 1명은 옆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하늘의 아름다움은 별에 있고, 여자의 아름다움은 머리카락에 있다 했던가? 부드럽게 시선을 맞추고, 다가가고 다가가고, 분위기를 몰아가고 몰아가고? 애무고 자시고. 그는 즉각 양손으로 그녀의 두 볼에 손을 가져다 댔고... 그 황홀감. 그 환희. 그 신나는 느낌 그다음 그다음... 그런데! 그런데 갑자기 장면 전환. 
    캠핑카는 어딘가에 도착했다. 꿈이니까 당연히 현재 그는 혼자. 거긴 어느 외계인을 연구하는 비밀 특수 기지. 이제 자긴 어디로 가야 할까? 라고 그는 생각했다. 여기 왜 왔고 무얼 하고 놀까 라는 고찰을 할 겨를이 어딨나. 여길 어떻게 탈출하나 그 궁리뿐... 그러다 꿈은 끝났다>
    개꿈이네. 태몽일 리도 없고. 돼지꿈도 아니고 그냥 야한 꿈. 그게 다. 단지 꽤나 사실적이었고, 심하게 촉감은 부드러웠을 뿐이고. 
    그렇다고 사춘기 소녀 몽정기 소년들처럼 꿈 생각에 내내 얼빵하게 아쉬워할 수는 없으니 그는 세수하고, 물 마시고. 그렇게 사무실로 출근했다. 





    5

    사무실 도착. 
    그는 조아키노 롯시니의 '알프스의 양치기 소녀'를 들으면서 일했다. 
    아니나 다를까 일은 호락호락 잘 진행되지 않았다. 공상은 빠짐없이 다채로웠다. 신비감과 환상은 지들 맘대로 그의 정신을 양분해서 사이좋게 나눠가졌다. 그러다 대뜸 시침은 쉭쉭쉭 돌더니 오후 4시가 되었다. 왠지 오늘은 더 일해서는 안 될 것만 같았다. 효율적이지 않을 테니까. 더 무리하다간 머리가 돌아버릴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그는 자기가 무슨 일하는 기계도 아니고 말이지, 족쇄를 풀고 아지트로 가기로 했다. 
    구간 댕기기 구간 당기기.
    장면 전환 장면 전환.
    아지트 도착 아지트 도착. 
    요한 세바스찬 바흐 / 모테트 BWV 227
    뭐야 이 음악은? 최신 유행가나 클럽 음악이 나와야 정상인데. 이건 뭔가 이상하다는 뜻인데? 뭐지?
    뭐긴 뭐야. 아무것도 아니다. 
    여우의 잔꾀는 바닥났다. 남은 건 자칼의 굶주림 밖에 없었다. 개 짖는 소리를 반가워할 바텐더가 어딨어. 오늘은 아지트에 순전 모르는 사람들 뿐. 그렇다고 살짝 낯선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고 얘기를 하긴 했는데. 그런데 말이 잘 섞이지 않았다. 차라리 남녀가 말을 섞으면 섞을수록... 그게 더 나은 것만 같았다. 그러다 왠지 모르게 어디에서 고양이 잠꼬대 소리가 들리네? 정말로? 가짜다. 뻥이다. 환청일 리가 있나. 그 말은 곧 오늘은 이만 철수해도 된다는 신호였다. 비전 없으니까. 그렇게 그는 아지트를 나왔다. 그렇게 무료한 발걸음은 그를 저기 저 음식점으로 이끌었다. 그렇게 딱 식당 문을 열려던 찰나. 아차~! 핸드폰을 놓고 온 걸 깜빡했다. 그래서 다시 아지트로 갔다. 
    장면 전환 장면 전환.
    아지트 도착 아지트 도착. 
    이제야 최신 유행가와 클럽 음악이 나왔다. 
    어딘가 모르게 안심되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그렇게 바 구석지에 놓아둔 자기 핸드폰을 찾으려는데... 뭐야 이거!
    거기에는 웬 낯선 여인이 있었고. 그 여인 앞에는 핸드폰이 총 분해되어 있네? 그럼 그 핸드폰이 NB의 핸드폰? 
    그는 생각했다. 자기 총번이 몇 번이었더라? 총기 분해해서 날마다 기름칠하고 어쩌고. 부품명을 전부 외워야 하는데 허접허니 대충만 외웠고. 
    NB는 메인보드의 CPU가 바빠졌다. 독립적으로 그래픽 카드만 관할하는 그쪽 CPU도 풀가동됐다. 내장형 SSD는 말을 듣지 않았다. 박자 안 맞게 또 파워 공급기의 팬은 지 혼자서 다람쥐 챗바퀴를 굴리고 있었고. 거러다 결국 OS 자체가 윈도우에서 애플 맥으로 바뀌고 말았다. 껍데기는 못생긴 구닥다리 중고 컴퓨터인데, OS만 남들 다 쓰는 맥으로 바뀐다고 그게 잘 돌아갈 리가 있나. 맥북 하나 샀다고 야호~ 신난다 나도 이제 스타벅스에 가게 될 수 있구나. ~라고 혼자 떠들썩하니 야단스레 방정 떠는 거도 귀찮고. 중고 컴퓨터는 겉은 비리비리한데 속은 더 멍청하게 뒤죽박죽 되어버렸다. 하여간에 허접하기는... 쯧쯧쯧!
    그런데 이 여인은 대체 뭐하는 여자야? 이 계집애 지금 자기랑 뭘 해야 하지? 뽀뽀? 키스? 애무? 애무 같은 소리나 하고 자빠졌네. 
   「오빠. 기다렸어요.」
   「네? 저를요?」
   「보면 몰라요? 왜 오빠라고 불려지는 거 싫어요? 싫으면 싫다고 말을 하시오. 좋으면 그처럼 멀뚱멀뚱 제 얼굴에 반한 듯이 입을 헤~ 벌리고 있고 말이오. 아시겠소? 어머머. 어머머머머. 내 정신 좀 봐. 숙녀의 수줍음을 잠시 잊은 채 또 연극톤으로 말해버렸네. 그러건 말건 아랑곳없이, 응? 난 꿋꿋이 이 오빠에게 현 상황에 대해서 자초지종을 설명하면 그만이고. 어머머. 저 표정 좀 봐. 오빠. 환장하겄네 환장혀. 지금 뭔 생각해요? 혹시.... 에이~ 설마! 어이 젊은 친구.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어? 오빠. 내가 이거 조립하는데 몇 초 걸릴 거 같아. 시간 재 볼래? 아니지. 내기가 빠지면 섭하지. 섭섭하다고. 그런데 오빠. 우리 혹시 구면이지 않나? 나 기억나지 않아? 나 기억 안 나? 어머. 난 알 거 같은데. 잘 봐 봐. 나야 나. 나라고. 엥? 아닌가. 아닌 게 아닌데. 맞는데. 그 오빤데.」 
   「누구... 셨더라...」
   「이거 봐. 이거 보라고. 이렇다니까. 난 기억하고 있었구나 라며 잠깐 설렜는데. 몹시 떨렸는데. 지금도 가슴이 찡한데 말이야.」
   「그럼 그때 캠핑카에서... 포근한 분위기에서 다정한 눈빛으로 부드러운..」
   「오빠 뭔 소리야? 나 당신 오늘 처음 봤어. 오빠가 캠핑카에서 날 왜 봐? 뭔 짓을 하려고? 어? 좋다, 캠핑카에서 오빠랑 나랑 단둘이 뭔가를 했다고 쳐. 그렇다고 가정을 해 봐도. 그거 다 꿈이잖아. 설마 이 양반이 어제 그런 꿈 꿨나? 꿨네 꿨어. 개꿈. 말할 것도 없이 뻔해. 보소, 저랑 달리는 캠핑카에서? 날으는 비행기 화장실에서... 저 그런 분위기 별로거든요. 그런 인터넷 잡답에 달린 댓글을 생각하면 내가 다 속이 울렁울렁. 우웩~! 이 오빠 이거 은근 난봉꾼이네. 응? 아직도 생각 안 나?」
   「아니 그게~ 생각이 날 듯 말 듯. 정신이 왔다 갔다. 쾌감을 쥐었다 폈다. 여심을 밀었다 당겼다.」
   「지금 오빠 날 들었다 놓니? 그랬냐? 그랬어? 그랬니? 오빠, 못 본 새에 바보 천치가 다 됐네? 설마 나 때문에? 저번엔 잔뜩 달아올라 헛소리를 남발하질 않나, 아님 내 다리를 벅벅 긁지를 않나. 요즘 오빠 왜 그래? 응? 나 정말 알고 싶어서 그래. 속마음을 털어나 봐. 냉큼. 숨기지 말고. 당장. 어? 속시원하게 말이야. 응? 뻥 아니야. 나 가짜로 궁금해하는 거 아니란 거. 보면 몰라? 나 보면 기분 좋지? 그렇지? 그렇지만 이거 가만 보니 감수성 다 바닥났네. 호기심도 털렸어. 모험감도 이젠 없고. 오빠의 그 독특한 기품 다 어디로 갔어? 아, 원래 없었구나. 안 그래도 지갑이 얇으면 그나마 다행이게. 오빠 지갑 없지? 아님 짠돌이? 그렇다니까. 아아...! 미안 미안 정말 미안. 이거 오빠 맥이는 거 아니다. 내 맘 알지?」
   「」
   「오빠. 왜 입도 벙긋하지 않는 거야? 내가 불편해? 오빠 우째 지내는지 참말로 하나도 안 궁금했어. 야 너! 너. 그래 너. 어딜 봐. 돌아보지 마. 너. 그래 너 인마 너. 이 자식이... 입 다물어. 입이 튀어나왔으면 입이라도 다물란 말이야. 어? 눈 튀어나오면 다야? 어? 너. 너. 잘난 척하지 마. 꼴 보기 싫어. 늬 까짓 게 뭔데. 그렇게 웃지 말라고 몇 번을 말해. 재수 없어. 알아? 젠장. 씨도 먹히지 않는 얘기, 하지 않아도 다 알아. 지겹다고. 아주 그냥 징글징글해. 어? 토할 거 같다고. 눈탱이는 또 어디서 얻어터진 거야? 뭐 원래 다크서클이라고? 내가 눈화장 해 줘 말어? 어? 잘한다 잘해. 그럴 꺼면 가서 개처럼 풀이나 뜯어먹어. 아니면 날 보필하던가. 일단 내 심복 넘버 쓰리부터 시작하자고. 알겠어? 아 알겠어 모르겠어?」
    바로 그때 스티브가 그를 살렸다. 
    NB와 그녀 사이에 스티브가 끼어든 것이다.
   「아가씨.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되오. 거 아실만한 분이...」
   「오빠가 뭔디 나한테 이리라 저래라야? 어? 아 이그 술 화아 올라오네.」
   「넌 뭐야? 너 이 여자 모르지? 모르니까 바보처럼 다 듣고 있었네. 여기 오는 사람들 사이에서 요즘 이분 유명해. 상태가 좀 안 좋다고. 보면 몰라? 넌 정신이 있는 거니 없는 거니? 설마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은 아니겠지? 아니기를 바래. 봐 봐. 원래 상태가 안 좋은 미친년인데. 봐 봐. 혀까지 꼬였잖아. 이젠 알겠어?」
   「」
   「자. 늬 핸드폰 여기 있어.」
    돌아서려다가 스티브는 차마 못 다 한 얘기가 있어서일까?
   「넌 말이야 순진한 거니 멍청한 거니? 뭐 허접해서 고민이라고? 뭐가? 정신이? 아님... (시선이 아래로...!) 나 너 말리는 거 포기한지 오래다. 어? 젖 먹던 힘을 다해서 말이야, 어? 저년의 개수작에 휘말리지 않으려고 정신을 바짝 차려도 모자를 판에. 뭐 넘어가? 번호를 따이는 정도가 아니라, 늬 핸드폰을 분해한 걸로 속아? 그거 애초에 개수작인 거 몰랐어? 그랬어? 하여간에 너도 너다. 어? 둘 다 똑같네. 뭐야 그럼 넌 개년? 이런 개놈을 봤나. 이거 무슨 개 인간이야 뭐야. 밑도 끝도 없이 뭔 개뼉따귀 같은 잔소리야. 시끄럽고.」
    그러다 할 말이 떨어졌는지 스티브는 뒤돌아 가버렸다. 
    그래서 NB는 이렇게 혼잣말을 했다.
   「그런데 쟤는 왜 말을 하려다 말어?! 뭔가 나올 듯 나올 듯 말 듯. 거의 다 넘어올 뻔 말 뻔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뭐야 그게! 내가 맘만 먹으면 이 세상 모든 여자를 다 꼬실 수 있어. 어? 이거 왜 이래? 다 그분들 이상향을 생각하고 사랑에 버림받지 않기를 바라니까 내가 다 그녀들 생각해줘서 꼬시지 않는 거라고. 왜 못 해?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해. 남자들이 최선을 다해서 일부러 말이 통하지 않게끔 연기하는 여인께서. 헤어스타일마저 별로인데 노처녀께서 웬 아줌마 허세? 벌써부터? 그냥 그저 그런 아줌마 허세도 아니고. 속 뒤집어져서 자긴 날마다 한다는 아줌마 허세? 그런데 진짜로 날마다? OK~ 진짜로! 진짜인 걸로. 아니면 안 돼. 그럼. 날마다가 다 뭐야, 어? 밥 먹듯이. 눈빛만 마주치면, 어?」
    근데 뭐지, 가만있자. 자, 보자. 그럼 핸드폰 분해한 건 다 뭐야? 
    이 여자가 보자 보자 하니까 누굴 호구로 아나? 
    결국 결론을 정의하자면 NB는 아직 어젯밤 개꿈에서 헤어 나오지를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개꿈을 어떻게 좀 현실로 바꿀까 하다가. 결국 개꿈은 개꿈일 뿐. 줄거리 간추리니 그거네? 아지트에서 웬 여자 술꾼에게 잔소리 행패를 당함. 본인이 자발적으로 첨 본 여자를 꼬시지도 못하면서. 또 번따녀니 뭐니 하면서 시시콜콜한 연애 칼럼이나 쓰고. 그러다 오늘 첨 본 여인의 말발에 넘어가서 개꿈에서 당신을 본 거 같다고? 중간에 스티브가 끼어들어서 제지했기에 시간낭비가 거기서 멈췄지. 아니면 그녀의 깽판에 아직도 붙잡혀서 제정신 차리지 못했을 거 아니야. (절레절레) 도대체 언제 정신을 차릴려나 알 수가 없다. 답이 읎단 말이다. 





    6

    NB는 옛날에 핸드폰을 잃어버렸던 기억이 있다. 
    줄거리와 관련된 이야기만 요약하고, 나머지 설명은 칼럼으로.
어쨌든 전혀 중요하지도 재밌지도 않은 일화일 뿐. 그런데 그뿐이거나 몇몇 얘기들이 관련성이 없으면 모르겠는데 그 T자형 삼거리 관련 사실이 하나둘 점점 늘어나면. 그럼 장난이 아니게 되는 식. 가령,
    A. 핸드폰 잃어버린 썰. 잃어버린 장소가 T자형 삼거리 모퉁이 성당 의자.
    B. 친구가 술 취해 꽐라되어 길에서 잠깐 잠잤던 일. 당시 친구 셋이서 한참 주말마다 만나서 놀던 시트콤 멤버. 그 가운데 1명인 NB가 핸드폰을 잃어버렸던 T자형 삼거리 성당 모퉁이 + 중간에 다리가 있고 = 대충 일직선 상으로 동네 T자형 삼거리 음식점 앞에서 시트콤 멤버 친구가 길에서 잠잔 적 있음.  (이 시트콤 멤버는 남자 3명이 전부. 훨씬 전의 시트콤 멤버는 남녀 혼성) 
    C. 'B'친구가 사는 집도 T자형 삼거리 모퉁이. 당시 한참 주말마다 만나서 놀던 시트콤 멤버들이 들락날락했던 곳. 
    D. 어느 숙녀가 인생이 따분했기 때문일까 어느 날 잘 다니던 직장 때려치우고 삼류 작가로 데뷔. 그런데 그녀가 쓴 칼럼들은 하나같이 만났던 남자와 여자들 흉보기가 80퍼센트. 소설은 90퍼센트가 전남편 욕. 그 웬수 같은 인간을 처음 만난 장소도 하필 T자형 모퉁이 대형 마트. 어떤 숙녀인지 허당인지 모를 인간이, 전남편인지 전여친을 처음 만났던 장소도 T자형 삼거리 모퉁이. C와 D는 남자와 여자로 같은 성씨. 





    7

    그는 하필 그 T자형 성당 모퉁이에서. NB는 오늘 퇴근하다가 아지트에서 만났던 여자 술꾼을 동네에서 재회했다.
    거기서 좌판을 깔고서 그녀는 인형을 팔고 있었다. 
   「어라! 여기서 다 만나네.」
   「와, 오빠다.」
   「아니 어떻게...」
   「오빠 왜 그날 그냥 갔어? 난 기다렸는데.」
   「누가? 자네가? 날? 난 몰랐지. 그런데 그거 뻥 아니야? 정말이야?」
   「정말이겠어. 또 속나 한번 시험해봤지. 첫인상이 특별하니 그래서 긴가민가하겠지만. 사실을 말하자면 기다리긴 기다렸어. 그런데 그날이 아니었을 뿐이지.」
   「뭐 내일도 날이다, 그 말인가?」
   「마음대로 생각해. 맞춤복 같은 남자. 누군가에겐 그렇겠지. 그게 사랑이니까. 뭐야, 또 사랑?」
   「」
    NB는 한번 붙잡히면 또 얼마 동안 붙잡혀 있어야 할지 추산되지 않았기 때문에 자리를 뜨려고 했다. 
   「오빠, 가지 마. 어딜 내빼려고? 우리 인연은, 나도 잘 몰라. 그렇지만, 길들여진 늑대도 늘 숲을 꿈꾼다. 그것만 알아둬.」
   「뭐라고? 그게 뭔 소리야?」
   「아무 뜻 없어. 그러지 말고 나 오늘 처음으로 인형 팔아봤는데 말이야. 이거 다 내가 만들었는데. 이제 딱 3개 남았어. 떨이. 그래서 오빠한테만 특별히 세일할게. 값은 없어.」
   「그냥 주겠다고? 그럼 난 마음을 줘야 하나?」
   「잘 아시네.」
   「누구 맘대로.」
   「오빠. 흉금을 터놓고 말해봐. 첫눈에 나한테 반했지? 내가 보기에는 말이야 오빠는 딱 봐도 첫눈에 반하는 게 주특기인데. 아닌가? 아닐 리가 없는데. 그치? 그렇다니까.」
   「아니야. 누가 그래?」
    그렇게 농담 따먹기만 하다 결국 NB는 그녀가 파는 인형 3개를 떨이로 샀다. 
    그래서 그는 아직도 그녀의 이름을 모른다. 2번째 만남으로는 아직인 걸까? 그러거나 말거나.





    8

    그는 플레이보이계의 왕중왕이 된 듯한 개꿈 내용은 생각도 나지 않았다.
    물 마시고 세수하고 먹고 어쩌고. 그러다 출근.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 오페라 <이도메네오> KV366
    인생 내내 허당계에서 잔뼈가 굵은 무명. 뭐 재미난 일 없을까?
    라고 고민하다 그는 어제 이름 모르는 처녀로부터 입수한 인형을 떠올렸다. 
    그 인형 3개를 가지고 놀다 끈이 살짝 풀렸다. 그래서 그걸 잡아당기다 잡아당기다. 
    마치 마술사가 입에서 다채로운 리본을 빼도 빼도 한도 끝도 없이 빠지는 것처럼 풀리다가. 
    그러다 다 풀고 보니 그건 옷이 되었다. 어떻게 어떻게 교묘히 잘 조립하고 짜맞추어서 인형으로 만든 옷. 
    상의, 하의, 나머지는... 뭐지? 도대체 어디에 쓰는 물건이야?
    그야 나중에 알면 되고. 
    그렇게 그는 중고품 같은 새 옷을 입고서 동네 패션쇼를 보러 갔다. 
    TV에서 봤던 그런 멋진 패션쇼가 아니라 그냥 소박하게 동네에서 행사 비슷하게 하는 패션쇼. 
    그래도 나름 조명과 음악과 무대와 기타 등등 구색은 갖추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도착.
    도착. 
    쥐 죽은 듯한 적막감과 고양이 기절한 것만 같은 고요함 속에, 툭하면 야릇한 공상뿐인 삶이었는데. 
    그래도 나름 꽤 기분전환이 되었다. 
    촐랑대고 낭설을 떠벌리며 깐족거리기 좋아하는 성미 역시나 많이 가라앉았다. 아님 원래 없었나? 그야 중요하지 않고. 
    그 외 미래의 사랑이니 불쾌한 욕망, 상쾌한 정열은 모르겠고. 별다른 일은 없었다. 
    그 가운데 딱 하나. 음악 담당 DJ가 옛 친구였다. 
    그래서 오랜만에 통성명을 하는 건... 모르는 사람들끼리니까, 다정스럽게 이름을 불러주려는데. 그런데 생각이 안 나네? 
    그는 솔직하게 물어봤다. 
   「친구. 미안해. 나 늬 이름 까먹었어. 내가 이래.」
   「너도?」
   「넌 공부 잘하지 않았나?」
   「나만 기억하면 넌 뭐가 되니?」
   「뭐야, 큰 그림? 그렇게 깊은 뜻이!」
   「이렇게 만난 것도 기분 좋은데. 우리 사이 나쁘지 않았잖아?」
   「괜찮았지 그 정도면. 단짝만 아니었다 뿐이지. 볼 때마다 매번 웃었잖아.」
   「그래. 너 기억나지! 내가 너한테 뭐랬더라, 얜 볼 때마다 웃으니까 기분 좋다고 했잖아.」
   「허허허. 가짜 웃음소리 나도 내보고 싶은데 안 되는 걸 어떡하냐.」
   「그래도 그게 나아. 억지로 웃으면 사람에 따라서는 비웃는 거냐고 뒤에서 놀림감 될 수도 있어. 꼭 그런 건 아닌데 비약하면 드라마 대사로 치면 그렇단 거지. 그건 그렇고. 너 저녁에 뭐해?」
   「나? 뭐 안 해.」
   「그럼 잘됐다. 아는 동생이랑 술 한잔 하기로 했는데. 어때, 1잔?」
   「1병이 아니라 1잔?」
   「부장님 개그 지금은 괜찮다만 이따는 곤란하다. 왜! 여자가 동석하니까. 허허허허허.」





    9

    해는 기울었고 달이 떴다. 
    당연히 그날은 천문 현상과 관련 없이 달은 해를 품지 못했다. 
    동네 패션쇼는 끝나고 옛 친구 DJ, 아는 동생 1, 아는 동생 2, 그리고 NB 그렇게 넷이 함께 하는 술자리. 
    술 먹는 거보다 술자리 분위기가 좋다는 그런 뭔 촌스럽고 식상한 멘트, 너끈히 참을 줄 아는 그녀들 아는 동생 원투. 
   「널 어떻게 거기서 다 보냐?」
   「그러게 까딱하면 못 볼 뻔 했어.」
   「여기 모인 미모의 숙녀들, 이름은 굳이 거론하지 말기로 하지.」
   「너나 나나 우리도 당장 친구 이름도 생각나지 않는데, 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
    윙크.
   「아 미안해요. 윙크가 아니라 나이 먹어서 어쩌다 살이 떨려요. 지 혼자. 봐 봐 나 수전증 있어.」
   「허언증은 없고?」
   「왜 넌 불감증 있니?」
   「거 참 대화가 왜 이러니?」
   「그런데 너랑 나 옛날에 친했던 거 맞니?」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벌써?」
   「그런데 네가 DJ라니. 와우! 어쩌다 동네 패션쇼에도 다 오시고 말이야. 큰물에서 놀고 싶지 않아? 아님 돈을 싫어하는 거야!」
   「누가 싫데!」
    뭇여성들의 마음을 빼앗는 데 익숙한 제비들이 의례 그러듯이 자연스럽게, 뭐 어떻게 한번 해볼까, 그런 건 다 허황된 개꿈일 뿐. ~까진 아니겠으나. 어딘가 모르게 그들은 뻘쭘했다. 
    그래서 아는 동생 1 2가 자기들 경험담을 얘기했다. 
    그건 바로 어렸을 때 저수지에 빠졌다 살아난 이야기. 대화체를 줄거리 전보체 바꿔서 요약하자면 이렇다. 실감나도록 약간 몇몇 부분만 고쳐서 옮기자면 일단 칸을 떼서 가자.





    10

    <때는 1998년 여름. 내가 6살 때.
    어디에 있는 외삼촌 댁에 놀러감. 
    수박, 닭, 포도... 뭘 처먹기만 했음. 배부름.
    그러다 나, 사촌형, 삼촌, 그 외 분들과 저수지로 놀러감. 
    날씨는 굉장히 쨍쨍한 여름날. 
    원칙은 수영금지. 아시다시피 저수지의 목적이 농수 공급인 만큼 한두 발짝은 그만그만한데. 그다음부턴 급격히 깊어짐. 
    나는 구명조끼를 입고 놀았음. 처음으로 발이 안 닿는 물에 떠서 노니까 재밌었음.
    땅에서 한 10m쯤 떨어진 곳에서 놀고 있다가, 저쪽에 삼촌들을 향해 외쳤음.
    만세~!!
    그런데 구명조끼가 쑥 빠져버림. 
    참고로 구명조끼는 반드시 구명조끼에 달린 앞 끈을 가랑이 사이로 넣어 뒤쪽에 결착시켜야 함. 
    무조건 앞 끈을 뒤쪽에 결착시키지 않으면 입으나 마나 보나 마나일 확률이 치명적으로 높음. 
    거기다 꼬마한테 어른 구명조끼면 말 다 한 것이었음. 
    그런데 내가 물에 빠져들어가는 걸 느끼는데 신기한 게 숨이 막히지 않았음. 
    등이 바닥을 향해 빠져 가는데 물로 들어오는 햇살이 너무 아름답다고 느낌.
    막 내 등에 해초 같은 게 닿아서 간지러운 감각도 인지했음. 그림으로 보면

    (태양)

    ─────────────────수면──────────────────
    ■\
    ■■■\                              팔 
    ■■■■■■\               (머리─ 몸통─다리) 위를 보고.
    ■■■■■■■■\                   (해초)
    ■■■■■■■■■\                (해초)
    ■■■■■■■■■■\             (해초)

    직감으로 아 나 이제 죽는구나... 생각이 듦. 그때가 겨우 6살이었는데 그렇게 생각함. 
    물안경 쓴 상태였기 때문에 내 앞쪽으로 막내 삼촌이 수영해서 다가오는 게 보였음. 
    근데 다가오다가 갑자기, 숨이 찼는지 날 앞에 두고 위로 올라가버림.
    그렇게 의식이 끊긴 다음 정신을 차리고 보니 병원이었음.
    듣고 보니 막내삼촌이 결국 날 구조해서 살려냈다고 함. 
    ............2년 후............
    초등학생이 되어 시골에 놀러감. 
    저수지 근처에도 안 감. 또랑에서 적당히 놀았음. 
    저녁에 밥 먹고 일찍 잠. 그런데 옆방에서 삼촌이 비명을 지름.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 으아!!! 으아아악!!!!"
    외할머니가 삼촌 방에 들어가셔서 말씀하심.
    "아이고 이놈아, 정신 차려, 벌써 2년 전 일이잖아. 아이고 이놈아~"
    그렇게 부자지간 울적울적. 
    ............12년 후............
    내가 성인이 되어 여름에 큰외삼촌이 우리집에 놀러오심.
    큰외삼촌과 술잔을 기울이며 옛날 얘기 중. 
    당연히 나 어렸을 때 물에 빠졌던 얘기도 나옴. 
    쓴웃음 짓는 삼촌 왈, 
    당일 막내 외삼촌이 날 구하려고 수영하면서 오는데 내 아래에 웬 여자가 서 있더래.
    하얀 옷 입고서 긴 머리카락이 너풀거리면서 물속에 꼿꼿이 서서! 
    당시 삼촌은 숨이 막힌 게 아니라 그걸 보고 놀라서 물 밖으로 나갔던 것임. 
    근데 나 죽으면 무슨 원망을 들을지 몰라서 어떻게든 날 건져내고 그대로 기절해버렸다는 게 사실. 
    그때 의식을 차린 후에 삼촌은 얼핏 봤을 때 그게 귀신같더라고 함.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귀신이 아닌 거 같다고 판단함.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랑 같이 가서 찾아봤는데 귀신은 없었음. 
    대신 여자 시체를 발견함. 
    삼촌이 본 거는 귀신이 아니라, 사람 시체였던 것임. 
    그물을 이용해서 시체를 끌어냈는데 그물에 엉켜있었음. 몸부림을 친 것처럼. 아마 사후강직 때문.
    삼촌은 그 기억 때문에 여름마다 가위에 눌리고 비명을 지른다고 함. 
    술자리에서 큰외삼촌 얘기가 끝났는데, 갑자기 난 오한을 느낌. 부들부들 떪. 
    왜냐, 당시 내가 느꼈던 내 등을 간지럽히는 해초는 해초가 아니라, 바로 여자 머리카락이었나 라는 추리 때문>





    11

   「오, 소름!」
   「와, (개)무섭다.」
   「오늘 잠 다 잤다.」
   「괜히 들었어. 이런 젠장!」
    아는 동생이 말했다. 
   「그런데 오빠들 있잖아. 걔가 나야. 외삼촌의 조카가 아니라 물속에 있던 여자가 나라고.」
   「뻥치지 마. 걔가 어떻게 너야?」
   「물론 믿기지 않겠지. 그렇지만 이 세상이 오죽 넓나? 사람들이 얼마나 많냐고. 그래서 수소문한 결과 나랑 비슷한 얘기를 내가 알게 된 거지. 그런데 안 됐지만 걘 그렇게 된 거고, 난 산 거고. 어떻게? 자, 어떻게가 궁금할 찰나인데. 보자. 그러니까 있지. 그게 말이야. 어? 들어봐. 집중. 들어봐. 자, 
    (그러면서 아는 동생은 가방에서 웬 휴대용 안대이자 마스크 같은 초소형 호흡기를 꺼냈다)
    자, 난 얘 때문에 살아났어. 물속의 산소를 즉각 공기로 변환하는 장치지. 거의 타임머신 급이라고. 어? 당연히 개발 완료는 됐으나, 임상실험까지 극비리 마쳤으나, 아직까지 쉬쉬하는 중. 왜? 왜냐하면 지분 관계가 얽히고설켰거든. 응? 아직 약~간 투자금이 부족하니까. 기술이 기술이다 보니까 예상 못한 데 막 비자금이 엄청 들어가더라고. 응? 어때! 솔깃하지 않아? 아직 기회는 있어. 어? 추가로 주주를 비밀리에 모집 중이라 그 말이지 내 말은. 응? 어때! 투자할 생각 있어 없어? 오빠. 오빠는 투자할 거야?」
   「안 해. 투자하고 싶은데. 그런데 돈이 없어. 빚만 있어. 허리가 휜다. 너 내 사정 알잖니. 내가 여자들한테 인기는 많은데 걔네들이 왜 나한테 안 오겠니. 응?」
   「하기 싫으면 하기 싫다고 솔직히 말해. 수작 부리지 말고. 따끔하게 왜 말 못 해? 못 믿잖아. 어떻게 믿니? 최소한의 신뢰가 가야 말을 하던가 말던가 하지. 안 그래? 왜 내 말이 틀려? 틀리긴 뭐가 틀려. 그렇지? 오빠가 들어도 그렇지?」
   「야 NB. 야 인마. 너 말이야 너. 뭔 NB인지 TV인지. 그렇다고 NC는 아닐 테고. 야 야! 넌 왜 아무 말이 없어? 어? 바지에 오줌 쌌니? 그래?」
   「안 무서워. 어제 인터넷에서 본 얘기야. 그거 둘 다. 저수지에 빠졌다 삼촌이 구해준 썰. 그리고 무슨 무선 호흡기. 그 2개. 그거 다 알아. 인터넷에서 봤어. 드럼통 사기에 넘어가는 허당? 난 아니야. 난 아니라고.」
   「다행이네. 불행 중 다행이야.」
    그런데 술자리는 그게 다였다. 어쩌면 NB만 딱 빼고 자기들끼리만 좋은 데 갔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그 인간은 또 공상에 일가견을 보일 수도 없고.
    아무튼 플레이보이의 지적 재산은 추억인 걸까, 아니면 밝은 내일인 것일까. 아마 둘 다 괜찮은 덕목인 건 틀림없지만. 그에 앞서 넉넉한 품위유지비와 신나는 건수, 즉 즐거운 현재가 토끼와 늑대와 촌닭들의 마음을 좌지우지하는 것. 그러거나 말거나. 그러니까 말이지, 어? 좋다 말았잖아? 어? 먹어봐야 맛을 안다, 뭐 꼭 그 말이 아니라. 연못 있는 곳에 개구리들이 있다고, 응? 개구리를 만나면 뭘 해. 첫째 어디로 튈 줄 몰라, 둘째 있어도 도망가! 어? 내가 못 살아. 아님 어설픈 썰이라도 못 풀면 말을 안 해. 뭔 이거도 아니고 저거도 아니고. 어? 그게 뭐야? 그런 황당한 술자리 얘기쯤이야 나라도 하겠다. 참 나 웃기고 자빠지셨어 아주. 에잇 재미없다. 괜히 그 DJ 옛 친구를 만나가지고 이름도 기억나지 않고. 아는 동생들과 통성명도 못하고. 연락처도 못 받고. 에잇 (절레절레)





    12

    사냥과 낚시의 차이의 차이는 무엇일까. 능동과 피동? 아마도 나서기와 기다림이겠지. 그럼 비슷한 점을 또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러자면 일단 장비발 먼저 갖춰야 하는데? 하수가 어느 세월에 고수되기를 기다리냐고. 시작부터 일단 프로와 아마추어는 현격한 차이. 그럼 인생이라는 성적표에서 우리는 과연 어느 정도 만족스러운 성과를 이뤘을까. 나는 과연 경륜주자요 선수이자 도박사일까? 그도 아니면 뻔뻔하고 능글맞고 중독된 생활 노름꾼 아닐까! 그 둘의 차이는 또 뭐고. 그건 어쩌면 종이 한 장 차이. 참고 풀고. 쉬운 여자를 귀신 같이 단번에 알아보는, 비위 좋기로 소문난 난봉꾼의 혜안. 퐁~! 아마추어계에서 은퇴하는 베테랑. 프로 중의 프로인데 하필 프로레슬링계에서 알아주는 명사. 뭐든 시작은 떠들썩하든, 그냥 어쩌다 우연한 계기로 시작하든. 초반에는 많은 실패가 좋은 기교로 연결되듯 타격주의가 기본이라면. 성 그래프의 어느 대목부터는 타율로 바뀌지 않을 수 없는 것. 뭐? 
    쾌락으로 넘어가지 말고 사랑에 대해서만 얘기하자면 그렇다. 냉정히 발을 뺄까 장기전으로 그 오빠를 끌고 갈 것인가. 다 장단점이 있다. 능동적인 로맨티스트는 시동을 거는 게 특기니까 나중 혹시라도 실패하면 뒷수습도 하고 슬럼프라는 뒷감당도 하지 않으면 안 되고. 사랑의 슬픔을 이겨낸 다음 다정한 애인을 만날 테고. 반면 피동적인 사랑의 화신은 파랑새 같은데 알고 보면 허접한 바보요, 팔색조처럼 변화무쌍한 듯 하지만 정말 좋아하지 않으면 뒷심이 약하고. 싫증내기 좋아하고. 커피포트 아니면 진공청소기 즉 중간이 없고. 하지만 피동적인 게 전공이니 만큼 발동이 걸리면 탄력 제대로 받는다는 것. 능동적인 로맨티스트처럼 뒷수습을 왜 해? 그분들처럼 우리가 나중을 왜 생각하냐고. 우리에게 내일은 없지. 농담이고. 알고 보면 누구나 잃을 게 많음. 좌우지간 말만 많지 NB는 또 이처럼 생각이 많아졌다. 
    그래서 그는 좀 더 단순해지기로 결심했다. 시동을 거니 탄력을 받니 다 복잡하고. 뭘 피동적으로 기다릴 것이냐, 무엇에 능동적으로 매진할 텐가. 그렇지만 세상사는 말처럼 썩 녹록치 않는 것. 곧 아무 때나 양털을 깎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능동이고 피동이고 나발이고. 지갑은 얇고 의욕도 비리비리. 만성적인 품위 유지비 적자. 빈곤. 가난. 욕구마저 간당간당. 괜히 능동적으로 나서봐야, 설치느니 나대느니 비난받기 딱 좋을지도 모른다. 혼자 있는 양은 늑대에게 먹힐 위험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관망이 꽤 괜찮은 패일 수도 있다. 순진한 양은 늑대에게, 어설픈 수탉은 불여우에게 잡아먹힌다. 촌닭과 촌년 무시할 거 아니다. 그분들도 다 알고 보면 능구렁이다. 이 세상은 늑대 천지고 하이에나 상시 대기 중. 미친년이 그렇다고 보기 힘들면 좋겠으나 미래는 모르는 것. 그런데 꽉 다문 입에는 파리가 들어가지 않는다면서, 너무 집과 사무실만 왔다 갔다 왔다 갔다.
    결국 그는 지쳤다. 마침내 퍼졌다. 힘 빠졌다. 닳아졌다. 권태에 졌다. 타성에게 밀렸다. 안 그럴 수 있겠나. 꼬리 축 늘어진 거지. 눈꼬리 오르락내르락 웃을 일이 없다고. 그렇다고 입꼬리 움직일 껀수가 있을 리 있나. 아는 동생들이랑 여성환상 1.5와 환상문학잡지 편집장 만나봐야 말꼬리만 잡고 늘어지는데? 탈탈 털리는 거지. 더 빨리는 게 없는 데도 불구하고 한도 끝도 없이 기 빨린다고. 밑도 끝도 없이 끝까지 빨려. 여심을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여도 모자랄 판에 말이야. 어? 꼬리가 길면 밟힌다. 여자들한테 꼬투리 잡히면 끝이다. 장난 아니지. 시작부터 끝까지 뒷담화. 책 잡히면 안 된다. 그런데 언제까지? 
    따라서 떠오르는 말은 역시나 그걸로 귀결된다. 그건 뭐다? 남자는 집에 있으면 안 된다, 무조건 밖으로 나가야 한다. 뭐라고? (절레절레)! 하여튼 못 말린다니까. 왜냐고 묻지를 말아야지. JS 그 인간이 그랬다. 뭐랬더라? 아 그랬다. 우리는 인생이 뻔트라나 뭐라나. 걸리면 넘어간대. 기본 150미터 장외홈런. 그럼 뭘해? 공을 주지 않는데. 딱 좋은 공을 줘도 타격감 바닥. 가뜩이나 독이 올라있는데(설마 돈독? 농담) 게다가 벤치멤버로 내려앉었어. 심지어 2군으로 내려보내. 그래 봤자 이제 슬슬 힘 딸려. 이제 만사가 귀찮아. 야구 하면 뭘 해? 재미도 없어. 하기 싫어져. 에잇~ 그러다 야유에 욱해서 축구하다가 딴 거 하는 거지. 공상도 가지 가지 한다. 하다 하다 또 그놈의 뻔트 타령. 지겹지도 않나 몰라. 





    13

    NB는 꿈속에서 헤매고 있었다. 집에서 인형을 가지고 놀다 보니 어쩌다 인형의 손이 자기 고추와 붙어버렸다. 그래서 그걸 떼려고 영차영차 끼깅끼깅 애쓰다가 인형의 꼬리가 늘어나는 걸 알게 됐다. 그렇게 인형의 꼬리를 두 손으로 딱 붙잡았다. 그런데 어머나~ 왠지 모르게 그는 자기의 퇴화된 꼬리뼈가 간지럽기 시작했다. 그래서 손을 뒤로 해서 자기 꼬리뼈를 만져봤다. 근데 이상한 게 그건 꿈이었기 때문일까? 자신의 꼬리는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꼬리는 방을 가득 채울 정도로 길어졌다. 급기야 꼬리는 바깥으로 나갔다. 처음에는 어디까지 가나 두고 보자 라는 심정이었는데. 계속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때문에 그는 늘어나는 자신의 꼬리를 따라갔다. 어쩜 말꼬리 잡고 늘어지는 시절이 행복했던 거라고 느꼈을 수도 있다. 그렇게 한참을 따라가다가 어느 삼거리 가로수 다인용 의자에 누워서 자고 있는 걔를 보게 되었다. 걘 자고 있었다. 그러다 자기의 꼬리는 그녀의 밑으로 들어갔다. 설마... 설마가 아니라 다행히 자기 꼬리는 그녀의 퇴화된 꼬리뼈와 붙어버렸다. 그는 덜컥 겁이 났다. 어떡하니 어떡하니 그러면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데, 어머머 어머머머머! 그녀의 입꼬리가 올라가네? NB는 왜인지는 몰라도 그 입꼬리를 진정시키기 위해서 자신의 눈꼬리를 올림과 동시에, 두 손으로 덥석 그녀의 가슴을 살포시 쥐었다. 아~ 살며시! 그러자 그녀는 로보트 터미네이터 인조인간처럼 눈을 똑 떴다. 
    NB는 꿈에서 깨어났다. 
    뭐야? 이런 젠장~ 개꿈이잖아? 복권 안 사. 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해는 중천으로 옮겨갔고 사무실에서 그는 무료했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 콘서트 아리아 “나는 가련다, 그러나 어디로? 신이여!” K.583
    아아아~ 어설픈 테너 목소리로 바리톤을 흉내내며 노랠 따라 불러도 재미없긴 마찬가지였다. 
    거 참 희한하네 별의별 희한한 꿈을 다 꿔가지고 말이야.. 아, 맞다! 
    그러면서 그는 꿈에서 봤던 그 거리에 가볼까 라고 생각했다. 
    딱히 약속도 없고. 일은 하기 싫고. 심심하고. 없는 처지에 찬밥 더운밥 가리랴. 
    갔다.
    동영상 구간 당기기.
    도착했다 도착했다. 
    그런데 이건 또 뭐야! 
    평소에 그곳은 직선 도로였는데, 그 옆으로 새 도로가 생겼다. 
    그래서 멀끔한 T자형 삼거리가 생성된 셈. 그런데 그 모퉁이에... 모퉁이에... 꽃집이 있었다. 
    허름하고 허접하고 허영심 가득한 아줌마가 주인일 것만 같은. 어딘가 모르게 그냥 지나치게 만들 것만 같은 느낌 풍만한 꽃집이었다. 
    그러다 별 거 없네 라면서 딱 돌아서려던 찰나. 어째 쓱 하니 자기 뒤통수를 웬 낯선 숙녀의 부드러운 손길이 확 붙잡아 끄는 느낌이 든다고나 할까?
    그는 발길을 그 꽃집으로 들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들어갔다. 
    들어왔다. 
    내부는 바깥과 달리 완전 신식이었다. 
    굉장히 고급스러웠다. 벽에 걸린 사진도 꽤 멋졌다. 
    스코틀랜드 바라 공항? 안 가봐도 알아. 거기서 태어나 사는 사람보다 더 잘 알아. 
    ~라는 퉁명스러움 가득한 얼굴로 그는 꽃집을 나왔다. 왜냐, 안에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별일 없다 그거지. 
    그렇게 딱 발길을 떼려는 순간 꽃집에서 어느 숙녀가 나오더니, 시간은 느려졌고, 슬로모션으로 그녀의 머릿결은 나부꼈다. 
    짜잔~! 핑~! 퐝~! 
    걘 걔였다. 이름이... 아 우린 아직 통성명을 하지 않았구나. 그런데 왜지? 라는 생각과 함께 그는 이렇게 말했다. 
   「늬가 왜 거기서 나와?」
   「내가 여기서 나오든 말든 오빠가 뭔 상관! ~라고 1년만 어렸으면 내가 그렇게 말했을 텐데. 이걸 어쩌나 난 성숙해버렸네?」
   「뭐 성숙?」
   「그럼 오빤 아직 미성숙? (그녀는 시선을 살짝 낮추었다)」
   「어딜 봐! 너 정말... 너 뭐야? 너 누구야? 여기 뭐하러 왔어?」
   「오빠. 하나씩 물어봐. 응? 이렇게 얼굴도 볼 만큼 봤고. 말도 많이 섞었으니. 친분도 쌓였겠다 혹시 알아? 우리가 사랑하게 될지. 아 맞다. 로즈마리가 그러던데. 오빠한테 주래.」
   「줘? 뭘?」
   「마음을! 허허허. 농담이야. 오빠 좋은 사람이라면서 애교를 선물하라던데. 근데 오빠 방금 뭔 생각했어?」
   「생각을 하긴 왜 해? 희망찬 미래의 행복한 사랑이라면 또 모를까. 내가 무슨, 어? 언제나 상큼한 이성에게 홀딱 반한 나머지 도무지 정신을 차릴 세가 없는 늑대인 줄 아니? 아니야. 틀렸어. 번짓수 잘못 찾았어. 그분들의 이상형은 항상 새로운 누군가든 말든. 알 게 뭐야! 그러나. 난 아니야. 난 아니라고. 알아?」
   「시끄럽고. 난 스텔라.」
    그녀가 내미는 악수에 그는 응했다.
   「그만 놓지 그래? 여자 손 처음 만져봐, 오빠?」
   「뭔 소리야? 내가 놓으려는데 너가 너무 꽉 쥔 거잖아.」
   「보면 몰라? 난 놨는데 아직도 오빠가 내 손 꽉 쥐고 있잖아.」
   「근육이 뭉쳤나 봐. 그럴 수 있어. 어? 근육 경련. 눈가 근육 떨림, 그거랑 비슷해. 사람이 살다가 말이야 한 3~4년에 웃을 폭소를 단 몇 분만에 몰아서 웃으면, 어? 안면 근육 떨림. 그런 거 올 수 있어. 알아?」
   「알긴 누가 알아? 뭘? 내가 왜 그런 걸 알아야 하는데! 그리고. 그거랑 오빠가 내 손 놔주지 않는 거랑 관계가 있긴 있나?」
   「그만 넘어가자. 너도 꼬투리 잡고 늘어지는 숙녀니?」
    오늘 그는 이 정도만 하고 철수했다. 
    이 일을 이제 어떡하면 좋니 라는 고민과 함께 말이다.





    14

    스텔라가 NB의 사교 인맥, 인기, 사생활을 다 빼앗았다. 순식간에 말이다. 
    하다 하다 아지트의 방만 경영과 흥겨운 분위기까지 모조리 빼앗았다. 
    따라서 그가 최근 즐겨 찾는 아지트는 이제 파리만 날렸고 그 떠들썩한 인파, 상권, 분위기, 기분, 사교계는 몽땅 스텔라의 꽃집으로 넘어가버렸다. 
    NB는 왠지 모르게 홀딱 발가벗겨져 사람들 적당히 오가는 거리에 나앉은 느낌이 들었다. 이거 보통 일이 아닌 건데 이걸 어쩌나, 마땅한 방도가 없네? 
    그렇다고 꼭 그와 같은 이상 기류에 반대할 이유까진 없지만 어딘가 모르게 이상하게 돌아가는 거. 제비의 직감, 남자의 육감, 허당의 직관까지 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편, 그는 오늘 일 때문에 환상문학잡지 미스테리아에 방문했다. 
    편집장실에서 마라와 회의를 마친 다음 저쪽 여직원들과 농담 따먹기나 하기 위해 방을 나서려던 참. 
    마라가 말했다. 
   「스텔라는 잘 있니?」
   「늬가 걜 어떻게 알아?」
   「어떻게 알긴. 장안에 스캔들 파다해. 몰랐어? 아 주인공이지. 설마 너 벌써 연예인병? 말 마라. 말리는 거 포기했다.」
    다음 날. 
    그는 일 때문에 여성환상 1.5 잡지 편집장 사라와 독대하는 자리를 가졌다. 
    적당히 칼럼 관련해서 얘기를 마친 다음 냉큼 사라는 직접화법으로 물었다. 
   「근데 말이야. 스텔라는 어디다 떼놓고 혼자 왔어?」
   「뭐? 걔가 날 따라다니는 게임 캐릭터도 아니고. 내가 어째서 걜 데리고 다녀야 하지? 근데 늬가 스텔라를 어떻게 알아?」
   「어떻게 알긴. 그걸 나한테 이제야 묻는 오빠가 더 이상한 거 아니야?」
   「뭔 소리야?」
    다음 날. 
    그는 오랜만에 아는 동생들과 커피를 마시기로 했다. 
    나갔다. 
    만났다. 
    다들 할 말이 많았다. 
    알고 보면 듣기 그거 쉬운 거 아니다. 절대 아니다.
    그렇게 기가 빨릴 만큼 빨렸을 때.
   「그런데 오빠. 스텔라 언니한테 허락받았어?」
   「그러게. 이래도 되나 몰라. 안 그러니?」
   「그래. 내 말이.」
   「걔가 뭔데 내가 걔 허락을 받고 말고 해. 어? 얘들이... 걘 도대체 뭐하는 애야? 어? 내 이년을 그냥...」
   「오빠. 진정해. 오빠 이런 모습 처음 본다. 그런데 재밌다.」
   「어. 어. 정말 웃겨. 그렇지? 그치?」
   「너도? 너도?」
    다음 날.
    그는 사무실에서 일하다 전화를 받았다.
   「어 켄트. 웬일이야? 우리 당구 한 번 쳐야지. 이번엔 내가 진짜인 것처럼 내가 져줄께. 어떻게 실력은 많이 늘었니? 다음번에 목관오중주 틀어놓기로 한 거 잊지 않았지?」
   「목관오중주 같은 소리나 하고 자빠졌네. 지금 스텔라가 우리 가게에 왔어. 너 줄려고 최고급 스카프, 초정밀 대형 인형탈, 또 뭐지? 그래. 위작 화가 마크 랜디스의 초상화까지 자기 주래. 뭐하러? 너에게 선물하기 위해서라나 뭐라나! 근데 돈 내고? 아니 공짜로. 아니 아니 외상으로. 그냥 강탈이지. 그런데 정말 웃긴 게 뭔 줄 아니? 지가 무슨 스텔스 노스트라다무스야 뭐야 어? 지가 뭔데 이래라 저래라야, 나한테 뭔 이상한 예언을 하네?」
   「그 예언이 뭔데?」
   「몰라. 까먹었어.」
   「젠장.」
   「그런데 있잖아. 걔가 너랑 결혼하겠데. 널 가지겠데.」
   「정말?」
   「아니. 뻥이야!」
   「이 자식이. 이런 젠장. 어쨌든 너 넘어가지 마. 걔한테 걸리면 끝이야. 절대 주지 마. 아니다. 전화 바꿔. 걔 바꿔. 내가 혼꾸녕을 내줄 테니까.」
   「못 바꿔.」
   「왜?」
   「이미 아까 말한 거 갖고 튀었거든. 말릴 세가 없었다. 겁나 빠르데? 무슨 쉐도우 복싱 챔피언감이야. 이미지 트레이닝 대체 몇 년 해야 그 단계에 이를 수 있는 거니? 나 한 번 진지하게 묻고 싶다 친구.」
   「뭐라고?」
    그는 차분한 음악을 찾지 않을 수 없었다. 
    요한 세바스찬 바흐 / 미사 B단조 BWV 232
    다음에 등장할 히든카드는, 혹시 재산? 없는 재산을 뺏길 수가 있나. 허허허. 그러므로 딱 안심! 
    그래도 모르니 대비하지 않을 수 없는 게 그년이 보통내기가 아니란 말이지. 어머. 
    상스런 표현이 툭 튀어나와버렸지만 NB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자니 뭐 이해한다 치고. 
    그년? 그래 그년. 그럼 그년이 그년이지 뭐 그놈인가? 어? 덜렁덜렁 고추 안 달렸으면 그년이지. 그년이 그놈이야? 안 그래? 내가 뭐 틀린 말 했어? 말이야 바른말이지. 물론 고운 말은 아니지만 이미 친해져버렸는데?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라 스텔라가 자신의 뭘 빼앗을 차례인가, 어? 그게 진짜 중요했다. 
    다음 타자는 도대체 뭐냔 말이지. 뭘까? 있긴 있나? 그럴 가치는. 그녀의 슬로건은 뭐, 주라면 줄 것이지 뭔 말이 많아? 
   최상의 수비는 최선의 공격. 고분고분 넘겨줄 순 없다. 뭐가 될는지는 몰라도. 
    그렇게 공상하다가 그는 기발한 착상을 떠올렸다. 놀라운 영감까지는 아니어도 그는 이렇게 한마디 했다. 
    손가락 딱~과 동시에 내뱉은 혼잣말은 이랬다. 
   「비밀!」
    걘 NB의 마음을 빼앗는 게 목적이 아닐 테고. 그렇다고 사석에서 말하듯 자기 몸을 그에게 주는 것 역시 아닐 테고. 
    그럼 NB에게 남은 건더기는? 건지지 않을 수 없는 고귀한 명분은 뭐니 뭐니 해도 비밀 밖에 없네. 그는 아차 싶었다. 
    방심할 틈이 없었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이걸 어쩌면 좋니!」
    인생이란 개꿈 같은 걸까? 그야 모르겠고. 사랑이란 어쩌고저쩌고 말하는 거 진짜 징글징글 지긋지긋 짜증나고. 어? 
    한 사람이 토끼를 잡으면, 다른 사람은 그것을 먹는다. 그런 말이 있다. 많다. 배 들어올 때 노 저으랬다는 둥 쇠는 달구어질 때 두드리라는 둥. 응? 
    그럼 말이지 자, 가만있자. 가만 보자고. 그게 그러니까 음... 떨려 설렌다 끌린다 라는 피동격을 위한 최소한의 능동격은 뭐다? 남자는 집에 있으면 안 된다, 우리는 무조건 밖으로 나가야 한다. 그런데 NB는 오란 데가 없잖아? 누가 아니래! 그럼 다른 격언? OK~! 한 사람이 못을 박으면, 다른 사람은 그 못에 모자를 건다. 그래? 따라서 시동 걸기는 릴리가 맡고, 탄력 받기는 그가! 그래서 그는 오랜만에 릴리를 만나기로 했다. 





    15

    NB는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녀도 도착했다. 오늘 보니 그녀는 훨씬 더 예뻐진 것만 같았다. 그는 좋아했다. 흐흐흐. 흐흐흐흐흐. 응큼한 놈! 그놈의 흑심이란.. (절레절레)
    뻔한 인사말 식상한 잔소리는 생략하고. 건너뛰고. 
   「오빠. 커피만 마시기 좀 그렇지 않아? 오빠 도넛 먹을래? 달지 않은 도넛으로」
   「싫을 리가 있겠니.」
    그런데 갑자기 그녀는 전화를 받았다. 
    살짝 저만큼 옮겨가더니 그녀는 심각하게 통화했다. 주로 듣는 역할이었고.
   「오빠. 나 갈게. 가야만 해. 가지 않으면 안 돼.」
   「왜?」
   「그건 말할 수 없어.」
   「대체 왜? 왜 갑자기! 설마 스텔라가 너 죽인데?」
   「어떻게 알았어?」
   「진짜? 그런데 늬가 걜 어떻게 알아?」
    그 순간 그는 소셜 네트워크를 애용하지 않는데 그 효과음이 울렸다. 
    안 쓰니까 계정도 비활성화로 바뀌었을 텐데, 어느새 누군가 그거 다 풀어놨다.
    그래서 핸드폰으로 인스타그램에 들어가 보니 이런 댓글이 보였다. 
   「오빠 존말할 때 나한테 와. 내가 잘해줄께. 저번에도 말했을 텐데. 좋은 말로 하니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건가?」
    NB는 등에 식은땀 쭉 나는 걸 감지했다. 
    진짜로 뒷목이 당겼다. 
    코끝까지 찡했다. 
    겁났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마음만 줄리는 없잖아? 
    그래도 구레나룻 쪽과 더불어 콧등과 인중까지 땀방울이 맺혔다. 
    몸이 왜 이래? 몸살 들려나? 아니다. 여기가 너무 습하네. 그래서 그러네. 허허허.





    16

    NB는 어젯밤 꿈 때문에 표정이 별로였다. 왜냐하면 일반적인 개꿈처럼 말도 안 되는 꿈이면 모르는데, 그게 아니라 꽤 사실적인 악몽이었기 때문이다. 기하학적인 꿈 줄거리는 그랬다.
    <'킁킁킁 쩝쩝쩝'맨이 '필요 없어 필요없어 입버릇'맨을 죽였음. 공포 영화에 나오는 효과음과 징후 조짐 분위기는 그대로. 이어서 집 뒤편 숲에다 사체를 묻어야 하는데 함께 가자고 제의. 그는 핑계 대고 거절. 집에 혼자 남게 됨>.
    밑도 끝도 없이 웬 미스터리 스릴러극? NB는 요즘 꾸는 꿈들이 이따금 엥간한 공포극을 방불케 했다. 거 마 아조 그냥 살발하다 살발해, 어? 하루의 시작부터 기분 더러워졌다. 이러니 큼직한 염주를 몇 통 사도 얼마 못 갈게 분명하니, 고로 아예 사지를 않았다. 재수 없는 건 기본. 사는 게 지옥. 타인에게 이타적이면 좋을 테지만 인간이란 본래 이기주의자. 아니면 거짓말. 과장은 예의요 뻥 광고에 속은 놈은 다름 아니라 바로 나. 무엇보다 그는 약간의 대인기피증. 게다가 과대망상증. 머머증부터 각종 중독에 신드롬 목록은 자랑은 아니지만 차마 열거하기 입 아프고. 그래도 또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혼자서 뭐 먹을 때 꾸역꾸역 돼지같이 퍼먹고. 양심이 어딨어? 안 그러면 미친놈처럼 술퍼마시고. 알코올 중독은 약과. 어쩌면 사극에 나오는 어떤 배역처럼 미친 척이 자연스러움. 프레데릭 쇼팽의 낭만적인 2번 야상곡을 들으면 뭘 하냔 말이지. 교류하는 친분은 직접적으로 없고. 간접적으로 공감하든 아니든 어쩌다 보이는 건... 말 못 하고. 미치지 않는 게 신기할 지경. 안 그래도 뭘 해도 재미없고. 
    본인만 그런 건 아니겠으나, 더 힘들고 훨씬 어렵고 아주 괴로워도 꿋꿋이 잘 사는 사람들 얼마나 많은데. 몸만 썽해도 어딘데 말이야. 꽉 막힌 인내심이 아닐지라도, 묵묵히 참고 버티고 견디는 어른스러움. 친구 단 1명도 없는 사람이 어디 한둘인 줄 아냐고. 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일들 얼마나 많은데. 그런데 자의식 과잉 때문에 남들도 다 그렇지 않나? 그러므로 툭하면 삐지고 응석 투정 어리광 엄살 넉살. 안 듣는 게 전공이요 남들 기 빠는 게 특기. (다 그렇단 말이 아니라). 모든 여자는 여신인데 자기 빼고 나머지는 싹 다 신부들러리라 그거지. 보아하니 심심하면 뻥 툭하면 뻥. 아니면 시작부터 끝까지 뒷담화와 남 얘기. 왜냐, 내 얘기 어디 할 게 있어야지! 거울을 봐 보라고, 어? 험담이면 그래도 시간이라도 잘 가지. 할 말 떨어진 오합지졸들 낙담한 표정들을 상상해보면... 엉덩이가 근질근질 하면 뭘 해. 갈 데는 많은데 오라는 데가 없어. 여 바텐더 없습니다, 바텐더 남자입니다! 낙심 만점. 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지는 거 어른들이 왜 모르겠나. 될 놈은 뭘 해도 되고 안 될 놈은 뭘 해도 안 된다, 라는 격언이 때로는 진짜인 걸 결코 모르지 않거든. 안 그런가? 어른들이 원래 능글능글 능구러기이자 약아빠진 관심종자. 모두들 그래. 안 그럴 수가 없는 세상이거든. 꼬마였을 땐 꿈나무이자 꿈꾸러기였는데 세상사에 닳아진 거지. 그래서 친구 1 2 3... 있는 자리에서 1&2가 절친이면 지들끼리 신나게 넌 탈모 난 여자 없는 거, 비난에 자조 개그하다가, 친구 3한테 얘 탈모인 거 놀리지 말래. 걔 얼마나 상심이 크겠냐고. 까고 흉보고 뒷담화 신나게 떠든 다음에, 당사자 없는 자리에서 우리 이러지 말자~ 남 얘기하지 말자~! 
    아아 눈부셔 아이고 눈부셔라, 길거리에서 지나가다 민머리를 보면 괜히 찔리고 이유 없이 미안해진다니까. 어? 난 아무 잘못 안 했어도 괜히 미안해. 어? 내가 머리숱 보태준다고 하면 욕먹어도 싸고, 누군가가 자기 못생긴 거에 보태준 거 있냐면서 선녀가 화낼지도 모르니 더 깍듯이 예의를 차릴 수밖에. 보아하니 적지 않은 우리들, 급상승한 머머지수가 내려오긴 할려나 몰라! 따라서 오늘도 이별하는 연인들 가운데 숱하도록 그 말 하고 듣는 사람들 많을 거 아니냐고. 넌 너 밖에 몰라 라는 둥, 여자 마음도 모르는 제멋데로 거꾸로 맨이라는 둥. 오빠 나 왜 좋아해? 사랑은~ 없어! 그 때문일까? 일부는 그런다지? 동료애랄지 친교 때문에 연애 감정을 키울 기회부터 박탈. 비즈니스맨처럼 무조건 하나 주고 하나 받기. 받으면 철저히 돌려주고. 일단 받기 싫다 그거라고. 엮이면 짜증나니까. 말리지 말자, 감기면 신경질 난다며 애초에 감정이 싹틀 여지를 주지 않는 식이지. 씨 뿌려지기부터 거부하는 본심. 그게 다 턱없이 안 어울리는 상향지원 하향지원 때문. 남자는 못 먹는 감 찔러나 본다는 식, 여자는 넘어오면 좋고 아니면 말고식 유혹. 타석주의야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식 막무가내 도끼질까지. <그림의 떡>이니까 속으로 군침이나 원 없이. 아니면 꽃이 피었는데 날파리조차 구경하기 힘들 수도 있고. 잘난 놈이 1번은 겸손 1번은 잘난 척 허세로 눈물 나도록 웃기면 재밌는데. 못난 분께서 잘난 척 어설픈 근자감 허세 부리는 거, 여자들이 (개) 싫어하고. 그래도 우리는 생색내는 거 나쁘지 않고. 또는 어정쩡하게 저렴한 꽁트식 멘트로, 야 한 번 주라~! 우웩, 그다음 표정...! 무안하게 쳐다보지도 않고, 곁눈질도 아니고, 계속 눈 깔고 있었는데, 그런데 어딜 넘봐! 남자가 여자를 기분 나쁘지 않을 정도로만 스치듯 쳐다봤는데 여자가 왜 쳐다보냐고 따져. 그래서 남자가 말하기를, 
   「저 못생겼죠?」
   「네?」
   「잘생겼으면 그냥 말 걸어주길 바랬을 거 아니에요! 못생겼으니까 화난 거지. 안 그래요?」
    품위 그거 잠깐 내려놓고 말하자면, 남자가 선빵 제대로 날린 거구만. 에잇 콩트도 재미없다. 더럽게 재미없어.
    그런데 뭐야 이거, 또 사랑 얘기? (절레절레) 그놈의 사랑이라면 아주 그냥 징글징글하다. 신물이 난다. 속에서 쓴물이 올라온단 말이다. 피가 거꾸로 솟.. 말이 그렇다는 거고. 이 세상에서 최고로 좋고 기쁘고 행복한 무언가의 대명사가 바로 사랑일 텐데. 왜 하필 그 낱말이 때로는 지긋지긋한 것일까. 사랑도 일이기 때문에? 그러든가 말든가. 그래서 다 미리미리 힌트 포함하여 비유도 많고 좋게 좋게 귀뜸하는 말들이 많다. 그 가운데 하나.
    <강은 민물이지만 바다와 만나는 순간 짠물이 된다>. (버럭버럭) 뭐?
    그렇듯 천상의 다이아몬드 귀걸이를 꿈꾸는 숙녀의 마음은 민물까지는 알콩달콩. 그다음 일단 함께 걸을 때 보면 남녀의 간격은 1미터, 2미터, 3미터... 점점 멀어지고. 안부에서 허락으로 갔다가 통보도 지겹고. 최고급 수제 엔진 오토바이 동호회 모임 갔다가 그 복장 그대로 집에 왔더니 부인 왈, 골프 여행 갔다면서? 의전이냐 잔말 말고 따라와냐. 그놈의 싫증나는 사랑 얘기.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 사연들. 귀동냥으로 수집한 추억담. 말귀 못 알아듣을지언정 보고, 듣고, 경험하며 차곡차곡 그 모든 걸 저장하는 인생. 다 먹고살아야 하니까 그는 투덜거리면서 칼럼을 쓰기 위해서 오늘도 일터로 가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그 외 색다른 근황 토크? 당분간 스텔라를 피해 다니는 거 말고는 없음. 그거 말고 하나. 만약에 마누라가 있다면! 자고 있는데 설마 여편네가 속에 쌓인 게 많았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남편을 때려. 티 나지 않게. 꿀밤을 쥐어박고. 딱 REM 같은 수면 과학에 기반하여 절대 깨어나지 않을 시점에 절묘하게 뒤통수 때리고. 꼬집고. 오늘은 또 이상하게 한쪽 팔이 아팠다. 왜 그런진 모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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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 ─ 159

from 소설 2019. 10. 30. 22:22

    1

    제풀에 지치지 않는 허당인 줄 알았는데 난 결국 지쳤다. 물론 뻥이다. 제풀에 지칠 만큼 열정가이자 정력가라고 자부하기도 뭣하고. 무명 보고 누가 무관의 제왕이라며 갈채하겠나. 미완의 환상머신도 이젠 무심코 잊은 듯한데 말이다.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어쩌면 그랬다. 어떡하면 좋을지 모르겠어! 뭐? 모르긴 뭘 몰라. 그렇다고 분에 넘치는 행복감 때문에 뭔가가 꼬인 건 아니고. 아닌 게 아닌가? 아니 그러니까 어째서? 그걸 알면 오죽 좋겠나. 사랑의 새출발이 싱글벙글 미소를 불러올지 히죽히죽 쓴웃음을 동반할지 모르지만, 또다시 사랑을 생각하기도 싫고. 알 듯 모를 듯 미지의 여심을 우리 보고 대체 어쩌란 말이오. 아니 그렇소? 어떻게 장단을 맞출 수가 있어야 말이지. 여자의 마음은 그런 것. 전 달라요, 그런데 가만 보면 여자는 다 그래. 하나도 다르지 않음. 그래서 남자에게 하는 말은 뭐다? 오빠도 똑같아! 말은 저 그런 여자 아니에요, 그러나 행동은 이따금 심신분리. 친오빠가 동생한테 하는 말. 손 씻었니? 또, 바쁘니? 바빠? 왜? 도대체 왜? 뭘 들켰길래? 대체 뭔 장면을? 밤엔 쉐도우 복싱 새벽엔 이미지 트레이닝? 혹시... 에잇~ 설마! 아닌가? 넘어가고. 남자를 보고서, 그놈이 그놈이다 라니. 뭐 여잔 안 그런가? 여자는 천생 여자! 그 정원에 그 정원사인 법. 그런데 여자 얘기가 지금 왜 나와? 내 말이! 하여튼 쯧쯧쯧, 누가 남자 아니랄까 봐. 됐고. 
    그래서 나는 뭔가를 하긴 했는데 그건 다름 아니라 일이었다. 공부, 싫어도 해야 한다. 노는 건 오직 애들의 직분. 그럼 아저씨들은? 살살 꼬드기고 간지럽히고 이름을 불러주면서, (그대 이름)가 뭐 돈 버는 기계냐! ~라고 딸랑거리면 아저씨는 흐뭇해하신다. 뭐 그건 그거고. 여하튼 나는 일하기에 대한 성과가 있었을까? 있었다. 오페라 로델린다 2막 용서받지 못할 자들이여, 나는 맹세했노라. 조지 프레드릭 헨델의 음악이 아찔한 착상을 자극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뭔가 있긴 있었다. 즉 독수리 흉내내는 땡벌 소리 같은 효과음이 들려서 서둘러 기록한 발상은 이랬다. 
    A. 자기 남편과 절친이 당신이라며 어느 여인이 날 찾아옴. 남편이 종적을 감췄다면서. (하객알바 때 신랑 옆에서 찍은 사진을 보여줌)
    B. 나는 사기 당함. 친구들은 푼돈인 반면 나만 고액. 이런 젠장!
    누구 얼마 누구 얼마, 쟤는 페라리가 전 재산이 아니라 새발의 피... 그런데 나만. 하긴 알고 보면 사기도 아님. 펀딩 사이트에 올려진 딱 3개 아이디어에 혹한 것일 뿐. 
    첫째, 플랑크톤을 최고급 천연화장품 재료로 추출하는 기술. 
    둘째, 무중력 상태 즉 우주에서 우주 에너지 입자를 빨아들여 헬맷만 착용하면 호흡 가능.
    셋째, 수중에서 물속에 녹아있는 산소 및 이산화탄소를 적정 공기로 변환하는 호흡기.
    C. 풍문으로 알게 됨. 걔와 걔가...! A와 B가 좋아하는 사이. 그래서 몰래 떠남.
    뭐 A B C?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아름다운 두 여인을 사랑하게 된 아저씨 이야기가 낫겠네. 정말로 귀여운 천사와 다정한 요정을 친애하는... 됐다. 재미없다. 사랑은, 없다. 농담이고.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라. 마차 바퀴는 기름을 쳐야 한다는데 노상 엉덩이만 근질거리고. 어? 성자 집 하녀 라틴어를 인용한다지만 일하기 싫어서 늘상 인터넷에 올려진 시덥잖은 이야기들만 기웃거리고. 그게 뭐냔 말이지. 그래도 우리는 아직 쾌락마를 탈 적기가 아니란 걸 안다. 참기와 풀기. 뭐? 하긴 틀린 말도 아니지. 멀리 여행하기를 희망하는 자는 그의 말을 아낀다지 않나. 곶감론마든 샘물론마든 그런데 그 얘기가 지금 왜 나와? 내 말이. 더럽게 재미없고 심심함이 절망의 징조일지, 아니면 행복의 암시일지 모르겠으나. 이건 아니다. 이건 아니라고. 그렇다고 재미없다며 글을 쓰느니, 인공지능 지니에게 따분하다며 말하기도 모양새가 좀 그렇고. 그러면 멀쩡히 혼자 노는 친구를 불러내서 난 불행하다는 실토를 기어코 받아낼 수도 없고. 그래서 험담가들의 뒷담화가? (절레절레)! 털어놓기는 뭘 털어놔. 됐고. 
    그래서 나는 친구들을 만났다. 것도 남자만 골라서. 왜? 왜냐, 왜냐하면 바로 그 때문. 뭐랄까, 응? 뭐라고나 할까 최근 여자 조심증이라고나 할까? 숙녀론? 약간 뭔가 어떤 결벽증의 성격을 일부분 닮은 듯한 여자 신드롬? 딱히 자세히 털어놓고 싶지 않은 신경질증이자 강박증 때문에 난 아는 동생들을 피해다녔다. 그런데 남자들만 만나니 통 재미가 없네. 예를 들면, 
    톰, 말수가 없다. 토마스? 돈이 없다. 도날드? 바빠서 중간에 꼭 먼저 튄다. 닐, 왜 녀석이 여자가 없는지 알 거 같고. 그렇다고 윌? 말만 말만 웨렌 버핏이요 빌 게이츠다. 말만 스티브 잡스고 폼만 스티브 발머다. 자기가 '마리떼 프랑소와 저버'라는 상표 청바지를 입었던 여자를 만났는데. 그 얘기하다 뭔 얘기를 했는지 까먹는다. 존티도 똑같다. 전전 직장에 다닐 때, 직장 동료녀가 자기한테 청바지 사주라는 여자가 있었는데. 그런데 듣고 보면 별 얘기도 아니다. 멍키스패너 포르토피노라고 다를까? 지 여자친구가 랭글러라는 청바지를 입었는데 결론은 '결국 차였다'가 다다. 그리고 제라드? 지가 무슨 서지오 발렌테라는 모자를 쓰고 다니면서 왕년에 지 발에 채이는 게 여자였다는 얘기만 하고 또 한다. 사무엘이라고 뭐가 다르겠나. 친구들 7명끼리 바에 갔다가 멀끔하게 정장 차려입은 여 바텐더에게, 돈이 최고로 많을 것 같은 1인자로 손꼽혔다는 얘기. 그 얘기만 하고 또 한다. 증말 더럽게 했던 얘기만 하고 또 하고. 내 참 더러워서 바텐더한테 봉투 찔러주고서 미리 짠 다음 친구들 불러서 돈이든 뭐든 그 뭘로도 첫손 꼽히든가 해야지 이거 참 허허. 재미 하나도 없고. 뭘 해도 재미없고. 따라서 나는 다시 아는 동생들한테 돌아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2

    나는 한동안 여성환상 1.5 편집장 사라를 피해 다녔다. 
    아는 동생들에 둘러쌓여 정신 못 차리다 보니, 응? 일도 못하고. 지갑만 털리고. 그렇다고 1 대 1로 만날 기회는 기대할 수 없고. 기 빨리는 거야 그렇다 쳐도, 품위 유지비까지 바닥날 것 같은 예감. 아는 동생들은 여지없이 그 단조 기대감을 충족시켜주었다. 크리스티, 엘리자베스, 로즈마리, 에밀리... 여자? (절레절레). 만나면 재밌고 웃기고 좋고 즐겁기는 한데. 단지 기쁜 게 다가 아니었다. 시간 후딱 지나갔다. 흥미진진한 분위기 가운데 걔네들은 갑자기 훅 들어와서, 내 정신을 쏙 빼가는 식이 태반. 정신만 빼가는 게 아니라, 난 마음까지 빼앗겨 버린 것일까? 그러니까 사랑의 포로는 아니고. 만만한 오빠? 그러든가 말든가. 걔네들한테 홀려서 난 정말 제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녀들이 하는 얘기? 이를 테면 이런 얘기들이 전부.
    <연애. 사랑. 남자. 주제는 뻔함. 뻔할 '뻔'자. 어? 솔직히 말해서 남자의 노력 반 나도 심심함 반, 해서 사귐. 애쓴다 애써 만나준다 사겨준다 그런데 창피하다, 그래서 어디 가서 내 남자친구라고 자랑스럽게 자랑할 수 없다. 만약 오래 사겼다면, 애인의 남자친구 듣는 데서 그런다. 어디 가서 내 남자친구라고 하지 말라고. 곧 해피엔딩이 아닐 경우에 대해서. 실컷 가지고 놀다가 질리고, 지겹고, 싫증나고. 뭘 모르고 멍청하고 짜증나고. 단물 빠졌겠다 비전 없겠다 재미도 바닥났겠다. 동격 연인 아니라고 그렇게 눈치 줘도 모르고. 양다리 어장관리 환승, 모두 불가능하지 않다고 힌트 줘도 더 멍청하고. 시작부터 아름다운 사랑이 아니었기 때문에, 고로 이미 중간부터 연애 끝물. 헤어지는 방법이야 무궁무진. 남자가 여자한테 질려서 나가떨어지도록 만드는 일, 환승이별녀 거울녀 머머녀들에게는 일도 아님. 자긴 어떻게 차였다느니 누가 누굴 만났다느니. 다변을 견디다 견디다 나가떨어지느냐. 아님 넌 너 밖에 몰라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오다 올라오다 참다 참다 못 참고 나가떨어지느냐. 상대방 기분 긁고 긁고 계속 긁는 방법이야 얼마든지. 말 끝마다, 필요 없어. 필요 없어 필요 없어. 그녀의 일기장을 보아하니 산만하기 그지없음. 흡사 사춘기 몽정기 소년 일기장을 나중 읽어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90퍼센트가 투정이요 울분이자 상욕인 것처럼. 소녀감성들이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나 가만 들어보면, 문구점 사장님 분식집 이모 말씀하시기로, 어? 처음부터 끝까지 남 얘기, 시작부터 끝까지 남자 얘기인 것처럼. 그녀의 친구를 만나봐도 그녀의 말 많음은 끝이 없음. 그녀는 남 말을 통 듣지 않는 친구로 유명함. 넌 너 밖에 몰라? 난 나 밖에 몰라. 그런 사람 있다. 말 많기로 어디서나 1등인데 친구 얘기 단 1도 들어주지 않는 수다쟁이. 진짜로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 오늘도 소셜 네트워크에 올려진 그녀의 얘기는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바로 "남들도 다 그렇지 않나?". 유리하고 나 기분 좋으면 자기 합리화, 나 짜증나고 불리하면 너 같으면 기분 좋겠냐. 듣다 듣다 나가떨어짐. 했던 말 계속~ 또 하고 또 하고 또 하고! 술 취한 것도 아닌데, 말 반복이 주사. 남들도 다 그래? 남들도 다 그렇진 않음. 절대 아님. 자의식 과잉에 듣다 보면 기 빨림. 한마디로 피곤한 스타일. 툭하면 남들도 다 그렇지 않나? 쓰잘데기 없는 얘기만 딱 골라서>. 
    그렇게 난 최근 여자만 보면 겁이 났다. 공포심이 따로 없었다. 그래서 그녀들을 잘 피해다녔는데. 
    그런데 어쩔 수 없이 일 때문에 오늘 환상문학잡지 미스테리아 편집장실에 온 것이다. 
    여기는 마라의 사무실. 난 그녀와 독대하는 중. 일 얘기는 다 마치고. 나머지 담소 중. 
   「마라. 너 여자잖아?」
   「그럼 내가 여자지, 남자니? 왜, 보여줘?」
   「보여주긴 뭘 보여줘. 누가 보고 싶데?」
   「그런데 무엇을?」
   「뭐긴 뭐야. 늬가 그러니까 남자가 없는 거야. 알아?」
   「그럼 넌 뭐 여자 있냐? 늬가 더 문제야. 어? 늬가 더 상태가 안 좋다고. 이런 덜떨어진 꺼벙이 주제에 말이야, 어? 이상한 칼럼이나 쓰고. 동네 아줌마들이 뭐라 그러는지 알기는 아니? 그런 칼럼 읽으면 멍청해진다고 못 보게 한단 말이야. 알아?」
   「알긴 누가 알아. 알고 싶지도 않아. 관심 없어.」
   「관심이 없으니까 늬가 그 모양 그 꼴이지. 어?」
   「너 편집장 자리 내가 꽂아줬어. 잊지 마.」
   「안 웃겨. 지겹다 그 농담.」
   「너 말단 사원으로 콱 그냥 강등시켜버린다.」
   「할 수 있으면 해 보시든가.」
   「늬가 더 재미없어.」
    그런데 뭔 소설이 내용이 없냐? 뭔 진행이 없다고. 발단만 발단만 한도 끝도 없고. 하다 하다 여자들이랑 말다툼이나 하고. 밑도 끝도 없이 보여주긴 뭘 보여줘? 누가 보고 싶데? 그러니까 뭘? 어? 이거 왜 이래? 장난해? 아, 장난이 아니라 이건 소설이다. 그런데 말이 나와서 망정이지 이게 말이지 이게 말이야, 이런 문학은 보도 듣도 못했다고. 어? 밑도 끝도 없이 뭔 드라마가 잘 진행되다가 시간이 정지된 체 해설만 화염방사기를 뿜는 식. 안 그런가? 그게 뭐야. 뭔 개 풀 뜯어먹는 이야기냐고. 무슨 그런 개뼉따귀 같은 책을 누가 사서 읽겠냔 말이지. 그러니까 난 가난할 수밖에. 뭘 사무실에서 발단 구상만 내내. 친구들 만난 근황 토크도 듣고 보면 아무것도 없어. 그렇다고 뭐, 여자들을 피해 다닌 근황 토크? 재미 더럽게 없단 말이지. 마라를 만나면 뭘 하냐고. 어? 따로 밖에서 1 대 1로 만날 수가 없는데. 아는 동생들 많아봐야 다 영양가 없잖아? 누가 아니래. 어? 내 말이! 이런 젠장. 왜 옛날 단짝처럼 친했던 1살 위 형이 어린이부터 소년기까지 일기를 썼는데, 시작부터 끝까지 전부 다 욕이었는지. 죄다 짜증에 투덜거림이 전부였는지. 알 듯 말 듯. 아아 재미없다 재미없어. 거 참 더럽게 재미없다고. 





    3

    툭하면 질펀하게 놀기 좋아하는 흥청망청 방탕아가, 거기서 더 타락하는 인생. 그건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 전혀. 아닌가? 그러든 말든 아마도 난 과묵하고 재미없고 더럽게 능력 없는 허당임이 분명한 것만 같다. 아닌 게 아니지. 신나는 사교계로부터 러브콜을 받길 꿈꾸겠나, 아니면 철판 깔고 평균 연령 깎아먹기에 매료되어 특급 꼰대로 유명해지기를 바라겠나. 속된 말로 깽판이니 개판이니 친한 친구끼리 그런 농담한지도 까마득. 걸핏하면 눈부신 여체에 황홀해하며 넋을 잃기나 하고 말이지. 남자들이란. 뭐 남자가 다 그렇지? 여자도 똑같다. 여자가 더 무섭다. 숙녀가 더 엉큼하다. 여우는 잠을 자면서도 닭의 숫자를 헤아린단 말이다. 여자는 역시 여자. 숙녀는 천생 숙녀. 옛말에 고양이는 물고기를 먹고 싶어도, 발을 물에 적실 생각은 없다 그랬다. 그래? 말 한번 잘했다. 무임승차는 재미없는 법. 훈수냐 야유냐, 아니다. 내일은 없다? 사랑은 있다. 그런데 갑자기 여자 얘기가 왜 나와! 아무래도 그분께서 일하기 싫나 보다. 하긴 누가 공부가 재밌어서 하나. 있긴 있는데 많진 않지. 월요병 때문에 아침에 사람들 얼굴을 보라고. 어? 그럼 지금 적절한 중간 평가는 어쩜 그거 아닐는지. 자는 사자보다 짖는 개가 더 낫다더란 말. 입증되냐 마냐 결국 생각이 많아지는데. 나가, 말어? 남자는 집에 있으면 안 된다, 우리는 세상 밖으로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아, 여기 사무실이지. 아무튼. 그런데 이런 식으로 투덜거리자면 한도 끝도 없겠네. 몇 날 며칠이라도 밤새워 마술사 입에서 실타래를 아무리 빼도 끝이 없겠다고. 어? (절레절레)! 
    따라서 나는 부득이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안될 만큼 코너에 몰리고 말았다. 꼬장꼬장 형세 따지고, 꼼꼼히 이득을 더 따지더니. 마침내 꺼낸 히든카드라고는 뭐다? 그걸 내가 알겠나 인공지능이 알겠나. 참 나 거 증말 가지가지 한다. 그래도 말이야 하긴 뭐 내가 걸어 다니는 소설도 아니고. 언제부터 문학을 챙겼다고. 그렇지만 아차 싶은 게 그거다. 생활연애 생활 도박처럼. 운명적으로 만나고 아름다운 사랑을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아무나 붙잡고 연애질 하는 생활 연애? (절레절레)! 줄 거 주고 받을 거 받다가 질리고 싫증나면 안녕. 차라리 휴가 떠나 여행지에 도착해 푸른 해변가에서 그녀들을 꼬시는 게 백 번 낫지. 
   「낭자 아름답소 나의 헌팅을 받아주오.」
    뭐? 우웩~! 정말로 그러란 말이 아니라. '사람 아무나 만나는 거 아니다'라는 논조의 칼럼을 미친 듯이 써갈겼는데. 그와 딱 상반되는 불건전을 조장하는 게 아니라. 말하자면 생활 연애, 오다가다 만난 사이, 그리고 생활 도박. 난 노름꾼이 아니라 승부사를 더더욱 선호한다고나 할까? 해결사이고 싶다는 걸 어찌 숨기나. 난봉꾼보다야 사색가를 훨씬 편애하는데, 어? 생활 소설이 웬 말이냐 그 말이란 말이다. 그러므로 나는 부득불 부득이하게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안 될 만큼 코너에 몰렸다고 할 수 있다. 그럼 그 난국을 타개할 해결책은? 없다. 없어. 있을 리가 있나. (절레절레). 1 문단 2 문단 읽어봐도 근황 토크로 시작해서 근황 토크로 끝나는데? 시작부터 끝까지 남자 얘기인 것처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뒷담화인 거랑 똑같이. 발단이 삶의 전부고 발단만이 인생의 모든 것인 식이네. (절레절레). 아마도 그게 다 뭔가 반 박자가 늦기 때문인 것만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처럼 허구가 잘 써지는 건 말이지, 응? (피동적으로) 발동 걸리면 술술~! 그런데 (능동적으로) 시동은 못 걸어. 그러나 뭐 어쩌다 탄력 받으면 잘해. 그야 당연하지. 전반적으로 다 잘했으면 유명세 때문에 행복한 비명이나 질렀겠지. 보아하니 주도적인 얼굴 마담도 아니고. 화려한 간판타자일 리도 없고. 쓸 거포도 심심한 장타자도 연락이 안 되니까, 기대감 없이 그냥 한 번 장난처럼 써 보는 깜짝 출연 카드 같은 인생이란 말인가? 그래서 칼럼은 진행하는데, 픽션은 아찔한 착상이 떠오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건가. 그러거나 말거나. 
    하긴 장미도 때가 와야 피지. 그렇지만 말이야 도대체가 말이야. 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지는 거 아는데. 오라는 데 없고 갈 데만 많은 거도 다 아는데. 언제까지 체크, 체크, 체크... 기가 막힌 뒷패는 언제 들어오냐는 거지. 훈수는 결과까지 책임지지는 않는다지만. 핑~ 하면서 퐁~ 하는 그 효과음. 도대체 언제 들릴까? 바삐 돌아다니는 개가 뼈다귀를 발견한다고, 어? 우리는 집에 있으면 안 된다. 남자는 무조건 밖으로 나가야 한다. 우리가 늑대란 걸 왜 모른단 말인가. 늑대가 양을 탐하지 않으면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한단 말이냐고. 그런데 누굴 만나고 어디로 가지? 내 말이! 누가 아니래? 
    하여튼 거 참 소설 더럽게 재미없네. 내가 다시 환상소설을 쓰나 봐라. 내가 다시 생활소설을 쓰면 그땐 사람이 아니다. 그땐 개다 개. 어? 누군가의 질녀든 대모든 그 어떤 벌칙이라도 감수하고서 큰소리 뻥뻥 치며 떵떵거릴 수 있다. 빵빵 터질 만큼 재밌지 못할 바에야, 어? 더럽게 재미없는 몇 글자 가지고 타인의 귀중한 시간을 빼앗는 일. 우리는 관심 없다. 뻥치고 허풍 떠는 작자 본인 역시나 시간낭비. 또다시 허풍을 공상하고 뻥을 과장해서 허구를 짓는다면, 비록 내가 덜렁덜렁 뭔가가 달리긴 달렸다만, 그땐 정말 아는 언니 일면식도 없는 여동생들과 호형호제로 트고 지낼 자신 있다. 왕게임에 졌다 치고 그분들 마음 다 맞춰줄 수 있단 말이다. 물론 첫째 그분들이 누군지도 모르고, 둘째 그분들께서 정작 바랄지도 모르는데 나만 그냥 김칫국 원 없이 마시고 있는 셈이지. 왜 아니겠어. 잔칫상 차려지든 말든 숟가락부터 올릴 심보가 바로 이런 것이로군, 칫! 아무튼 내가 다시 소설을 쓰나 봐라. 내가 다시 말도 안 되는 글을 쓸 바에야, 차라리 개처럼 풀을 뜯어먹겠다. 무슨 개뼉다귀 같은 이야기도 이야기라고. 하나도 안 웃기고. 무슨 교훈도 없고. 기승전결은 더 없어. 밑도 끝도 없이 우연만 계속되고. 그게 뭐야? 어? 두 번 다시 허구를 짓나 봐라. 만약 다시 허황된 상상력을 아찔한 착상이나 된다는 듯이 나불거린다면. 그땐 개라니까 개. 그럼 정말 피노키오이자 돼지요 말이다. 어? 거 마 아따 진짜로 '막살자'란 애칭이 각별한 웨이터 되는 거지 뭐. (절레절레)! 아 나 이거 증말 재미 더럽게 없네. 





    4

    그러니까 말이지 요약해보자면 이렇다. 
    문단 1. 사무실에서 발단 구상. 친구들 만난 근황 토크. 
    문단 2. 여자들을 피해다닌 근황 토크. 마라 만남. 
    문단 3. 푸념. 
    뭐? 이런 젠장, 뭐야 그게! 그럼 그다음은 푸념의 할아버지 격인 대푸념? 대푸념은 개뿔. 그런 픽션이라면 누가 못 쓰겠나. 차리리 초딩들 일기가 훨씬 재밌겠네. 그런 거 누가 못해. 왜 아니겠어? 그러니 나는 조급해지지 않을 수 있나. 고전 만화영화 톰과 제리처럼 궁지에 몰린 식이었다. 그래서 나는 일단 동네 식료품점에서 음료수를 샀다. 왜? 음료수 이름에 혹했으니까. 보아하니 음료수 이름은 바로, 괴물. 괴물? 그 무슨 에너지 음료 있지 않나. 그런데 먹고 났더니 심장이 벌렁벌렁 으쌰으쌰 뭔가 대단한 일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의욕은 다 광고 얘기고. 정작 내가 바라는 벌렁벌렁은 그 벌렁벌렁이 아니고. 정말로 내가 원하는 하트 뿅뿅 윙크 반짝반짝은 그게 아니라 낭만주의이자 기분파였을 텐데. 여기서 포기하면 안 된다. 툭하면 싫증 걸핏하면 변심 때문에 삶이 이렇게 재미없어진 거 아니겠나. 하여 난 다시 재도전했다. 딴 음료수를 또 산 거지. 이번에는 이름이 넥타르였다. 그 왜 있지 않나. 그리스 신화에서, 신들이 마신다는 신비로운 술. 이 술을 마신 사람은 죽지 않는다고 했는데. 정작 마시고 보니 이거 그냥 싸구려 음료수였다. 이런 설탕물은 꿀벌도 마다할 것만 같았다. 그러나 불굴의 의지로 난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게 2번 고배를 마셨으니 3번째 도전. 이번에는 무엇을 마셔볼까나...... OK~! 압생트가 낙찰됐다. 고흐가 좋아했다지 않나. 그래서 샀고 마셨다. 그런데 결과는? 단언컨대 괜히 마셨다. 별거 없었다. 전적으로 당연히 실망. (절레절레)! 
    단언컨대 이건 아니다. 그렇다고 여자의 직감을 믿어볼까? 믿긴 뭘 믿나 난 남자인데. 어? 상남자! 캬~ 어? 그럼 뭘해 여자가 없는데. (절레절레). 이러니까 내게 여자가 없지. 어느 숙녀가 좋아하겠어. 있을 뻔 말 뻔한 전성기 있지도 않았고. 있을 둥 말 뚱 간지럽히든 근처에서 얼쩡대며 짝사랑해주던 여인들, 다 떠나갔다. 아는 동생들? 다 자기 살길 찾아갔다. 뭐랄까 날 좋아했던 여자들은 이를 테면 두 가지였다. 
    첫째, 오래 기다린 여자.
    둘째, 일찍 베팅하는 여자.
    첫째는 말 그대로 옆에서 알짱알짱, 근처에서 묵묵히, 알고보면 은밀히, 보아하니 은근히. 그처럼 눈망울이 하트 뿅뿅으로 오래도록 기다린 여자. 어? 나도 나다. 그 마음 못 받아준다면서 보내야 하는데. 미친년의 여우짓처럼 얼렁뚱땅 붙여놓은 여지를 주긴 줬네. 아무튼 둘째는 화끈한 여심. 집에서 자긴 2000만 원 해 줄 수 있다. 스타일만 달랐지 왈가닥 스타일은 시원시원하다. 자긴 5000만 원 해준다고 했는데, 남자 직업에 따라 풀베팅하면 2억까지 아빠가 가능하댔다. 그와 달리 자기 만나면 돈 별로 없어도 된다는 둥 자긴 가난한 남자를 좋아한다는 둥. 또 딴 애는 오빠 머리카락 짧게 자르면 멋지겠다 잘라라 잘라라~ 그래서 쉬는 날인데 카페에서 아는 오빠를 만나고. 질투 작전이었나? 아닌가? 몰라. 됐고. 그런데 왜 또 여자 얘기? 플레이보이의 육감도 다 썩었네 썩었어. 그놈의 썩은 미소. 뿐만 아니라 자칭 플레이보이면 뭘 해. 그 허접한 넉살 어디 가서 먹힌다고. 어? 그렇다고 속임수를 받아줄 시트콤 멤버들도 해체됐지, 립서비스 터는 거도 다 까먹었어. 남는 건 엄살만 늘고. 어리광은 더 늘고. 그녀들은 시간만 나면 이뻐지고. 우리는 기 빨리고. 무명일지라도 나뭇잎이 바람에 굴러가는 것만 봐도 꺄르르~ 웃는 소녀들이야 다 말하기 좋아하고 나서기는 더 좋아하고. 우리는 심심하면 시간 낭비요 소파에 자빠져 TV만 봐도 스트레스 해소보다 툭하면 기 빨려. 어? 이게 뭐야! 평균 연령 깎아먹더라도 대차게 젊음의 거리에 가면 뭘 하냐고. 다 닭 소 보듯 소 닭 보듯 남남일 뿐. 안 그런가? 이건 아니다. 값싸고 저렴하게 말해서, 조질 게 없단 말이야. 이건 아니란 말이지. 그렇다고 뭐 특단의 대책이라도 있나? 없어. 없다고. 어? 읎어! 있을 리가 없지. 허허. 사랑에 대한 희망은 이 남자 갖고 싶다일 텐데. 사랑의 환상 <내 꺼 하자>가 아직인 게 문제가 아니라, 어? 감정이 메마른 정도가 아니라 사랑 그게 뭔지 다 까먹었어. 추억은 원래 찐한 사랑이 각별한 법인데. 키스 어떻게 하는지도 다 잊어먹었단 말이다. 
    그리하여 나는 분위기 전환을 시도했다. 기분전환에 음악만한 게 있나. 
    요한 쉬트라우스 2세 / 사랑의 노래 왈츠 op.114
    그러나 분위기는 전환되지 않았다. 환청으로 무슨 까마귀 울음소리만 들렸다. 
    따라서 나는 환상적인 막판 반전 같은 전개는 포기했다. 기대하지도 않는다. 예감마저 먹구름이 잔뜩 낀 셈이지. 
    요놈 봐라? 같은 은근 설레는 발단이 어딨어. 없어. 그런 거 없어. 있으면 다 뻥. 아니면 시시콜콜한 드라마. 다 남 얘기. 
    바로, 그러니까 그분들께서 툭하면 남 얘기. 시작부터 뒷담화 중간도 뒷담화 끝까지 뒷담화. 험담가 대회 그랑프리감으로 딱인 거지. 
    그런데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 거지? 내가 이러려고 작가가 됐나! 아니면? 어느새 나까지 그녀들 말을 따라 하고 있다. 그 (생활)명대사는 뭐다? 
   「다같이, 내가 오빠 이럴려고 만나?!」
    그처럼, 내가 이럴려고 소설 쓰나?!
    하다 하다 이제는 록가수 흉내내고 있네. 지가 가사 까먹으니까 마이크를 관중석으로 향하는 거 말이야. 하여간에... (절레절레)
    참다 참다 생활 연애도, 생활 도박도, 생활 내기도 아니고. 생활 문학에 생활 명대사? 잘한다 잘해. 1 2 3 문단 다 0점인데 4 문단마저 푸념 중의 푸념왕. 
    안 되겠다. 결국 개는 고양이와 타협한다고, 응? 난 아지트로 향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혼자서는 뭔가 신나는 일을 벌인다거나, 기발한 착상이고 자시고 일하기 싫단 거지. 뭐든 싫증 작심삼일이라고.





    5

    나는 어젯밤에 이상한 꿈을 꾸었다. 내용은 이랬다. 
    <어디만 가면 어떤 이상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여인이 날 항상 따라다니는 기분. 그러다 개꿈이 항상 그렇듯 줄거리는 흐리멍텅 불분명 몽롱했는데. 그렇게 바깥 활동을 마친 후 내용 전개가 꿈이니까 어떻게 얼렁뚱땅 장면은 뚝딱 바꼍다. 그래서 2층 집에 있는데 무슨 순간이동도 아니고. 거실에 나 혼자 있는데 웬 멧돼지의 머리가 소파 앞 탁자에 올려져 있었다. TV에서 최근 멧돼지 멧돼지 그러니까 바로 그래서 꿈에 나타난 듯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그건 꿈이기 때문에 그 멧돼지 머리 옆에 웬 총이 있네? 난 현실에서는 BB탄 장난감총과 물총을 가지고 논 기억이 전부다. 꿈에서는 그마저도 더 드물었고. 그런데 뭐랄까 꽤나 현실적으로 생생한 꿈 내용이 느껴졌다. 난 아마 호기심 때문이 아니라 마치 뭐랄까 그냥 조건반사, 반사신경처럼 그냥 그 총을 잡았다. 어쩌면 애들 가지고 노는 장난감, 입으로 불거나 단추를 누르며 삐~ 하면서 기다랗게 서커스에서 보듯 말려있던 뭐가 앞으로 쭉~ 돌출하는 그런 거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 그렇게 어쩌다 나는 총을 쌌다. 그랬는데 정말로 불꽃을 튀기면 발사되네? 나는 소설 이방인의 주인공이 된 듯한 착각에 빠졌다. 당연히 꿈 안에서! 물론 식료품점에서 사 온 대형 생선 머리, 박제된 불곰 일부분에 집에서 나 혼자 해를 입힌 것과 크게 다를 바 없겠지만. 그래도 왠지 찝찝했다. 그러다 2층 벽이 낮아지고 나는 발로 밀어서 멧돼지 머리를 바깥으로 떨어트렸다. 다음은 얼렁뚱땅 점심을 어떻게 때울까 고민하다 이리 갔다 저리 갔다 그러면서 꿈은 끝났다>
    뭐야 이거? 그냥 개꿈이잖아? 복권 살 깜도 안 되고. 기분만 살짝 불쾌해지고. 에잇. 
    그렇게 일과를 시작했다. 
    씻고 먹고 어쩌고. 사무실로 이동해서 음악을 듣고. 
    도메니코 치마로사 / 피아노 협주곡 B-flat major 
    옷은 검정 잉크색.
    심심해서 컴퓨터 바탕화면을 여우에 놀란 마멋으로 바꿨다가 싫증나서 다시 원위치하고. 
    환청인지는 모르겠지만 웬 개에게 쫓기는 토끼 소리를 들은 것도 같고. 변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내가 뭐 제비도 아니고 여자 생각을 왜 해? 내가 무슨 잉꼬부부도 아닌데 새처럼 고갯짓을 뭐하러 하냐고. 
    그렇게 성과는 지지부진했다. 재미도 없었다. 일하기 싫었던 거지. 그래서 나는 일찍 퇴근하기로 했다. 
    동영상 구간 댕기기.
    동영상 구간 댕기기.
    동영상 구간 댕기기.
    그래서 나는 아지트로 갔다. 도착했다. 
    나는 일단 허기져서 스파게티랑 빵을 시켜서 우걱우걱 먹었다. 
    한참 먹다 거의 다 먹어가는데 샬럿이 내게 인사했다. 
   「오빠. 고백해.」
   「무슨 고백?」
   「날 사랑한다고.」
   「너 미쳤어?」
   「그래. 나 미쳤어. 그러니 해도 돼.」
   「뭘?」
   「고백.」
   「살럿. 잘 들어. 고백이란 말이야 무슨 애들 장난처럼 하는 게 아니야. 고백이란 크게 3가지가 있어.」
   「그게 뭔데?」
    대사가 길기 때문에 한 호흡 떼서 가는 걸로. 





    6

   「첫째 진짜 고백, 둘째 장난 고백, 셋째 생활 고백. 그런데 웃긴 게 뭐냐면 대부분의 고백은 둘째나 셋째라는 거. 고백 그거 다 그냥 탐욕이야. 내 생각이 앞선 대부분의 뻥. 개 뻥. 상대방 입장에서 보자면 뚜껑 열림. 대체로 고백이란 그저 다 헌팅일 뿐이야. 남자에겐 그렇고 여자는 다르고. 어떻게? 내가 정말 고백받고 싶은 남자는 멋진 영화배우감인데, 그건 가짜고. 진짜는 웬만큼 잘생긴 남자한테 심심하면 고백받고 싶은 거고. 여자들의 불문율이 왜 있겠니. 그런데 그 불문율이 잘 지켜질까? 그럴 리가 있니. 야구경기에서 쓰리 아웃 돼서 수비수들이 대기석으로 이동하면서 투수 그라운드를 지근지근 밟고 흩트려 놓고 퇴장하면 그게 보기 좋니? 축구하면서 축구를 하지 않고 정말 하지 않아야 할 반칙을 일삼으면 그건 어떻고. 골프 선수가 정교한 티샷을 날리려는데, 뒤에서 정말 정말 듣기 싫은 말만 골라서 하는 건 매너니? 그런데 여자들의 불문율을 어기는 거. 그거 여자들이 더 잘 알잖아. 그런데 왜 어겨? 미친년이니까 그렇지. 
    가령. 여자가 대부분인 중견 회사. 사무실에 남자가 있어 봐야 성실한 유부남, 여자들이 선호하지 않을 외모남, 동성애자인 남자. 회사는 건실하고 어쩌고. 그래서 신입을 뽑지 않고 어쩌다 경력직만 뽑고. 그래서 대충 1년에 3번쯤 사무실에 경력직 사원이 새로 들어오고. 그런데 그 중고 신인들은 하나같이 빼어난 옷발에, 경력도 쟁쟁하고, 총각에다 여자들이 웬만하면 도저히 싫어할 수 없는 얼굴. 성격. 행동거지. 능력... 기타 등등. 그런데 매번 몰래몰래 그 신입을 누군가 채가. 채가도 항상 똑같은 여자가 채가. 쉬쉬하면서 사내 연애 소문내지 않으면서 몰래몰래 밖에서 단둘이 만나지. 누구와? 그 사무실에서 단 1명의 숙녀와. 여자 3명 단짝인 대학생에서 매번 남자들 인기를 독차지해도 웬만하면 다 철벽치고 거절해서 그녀들 우정이 유지되는 이치, 모르지 않지? 그런데 사무실에서 뭔가 소문이 나돌면 매번 신입을 딱 1명의 불여우가 독차지. 남자들이 그녀에게만 상향 지원한다면야 철벽치고, 선별하고, 여자들 우정과 여자 세계 불문율을 모른 체 하지 않으면 되는데. 여자 9명 생각을 하면 되는데. 그게 아니라. 자기밖에 모르는 여자. 그런데 매번 남자들한테 꼬리쳐서 내 맘에 쫌만 들면 따먹으려는 헤픈 년. 그게 바로 그 사무실의 불여우. 때문에 그 사무실 여직원들 사이에서 추문은 파다하지. 어쩌고저쩌고. 그래서 집단 따돌림받아도 싸디싼 여자. 
    그런데 왜? 뭣 때문에! 어째서?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왜냐, 왜냐하면 같은 여자들이지만 이기심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 평범한 여자들 같으면 동조해주고, 정담 들어주고, 맞장구쳐주고, 이해하며, 편들어주는 한편 이기주의라는 기제가 적절히 작동하는데. 저런 여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기주의자. 나는 언제나 신부, 나 빼고 나머지는 항상 전원 신부들러리. 너넨 전부 백댄서라는 주의. 때문에 그녀 입장에서는 저런 행동이 전혀 나쁜 게 아님. 그녀 생각으로는 지극히 당연한 현실일 뿐. 그러면 왜 안되냐는 듯 옆에서 알려줘도 도무지 이해를 못 함. 웬만한 여자들은 사리판단 분명하고 세상물정 아는 가운데 이기심이 사안을 판별한다면, 그녀는 한마디로 <넌 너 밖에 몰라> 부류. 완벽하도록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암컷 하이에나이자 불여우요 표범과. 평범한 여자들이 제일로 싫어하는 유형. 욕심내지 않아야 할 대상이고 자시고가 없음. 토너먼트 준비, 연습, 복기, 이미지트레이닝, 쉐도우복싱, 뻔트, 스카우트... 없이 모든 게 펜타곤 실전. 여자 세계 불문율을 철저히 따르고 지키는 여자들이 경주마라면, 그녀는 야생마. 반대로 생각할 수도 있고. 아무튼 180도 다르다고만 보면 돼. 야성을 어찌 숨기나. 순진한 여자들은 그녀의 밥이고. 굶주린 늑대 역시나 그녀에게 마찬가지고. 같은 여자들일지라도 완벽한 물과 기름. 결코 섞일 수 없음. 문화도 똑같아. 다를 거 없지. 밖에서 보면 고개를 갸우뚱할 수 있지만, 내부에서는 해가 동쪽에서 뜨는 것처럼 지극히 당연. 절대로 나쁜 게 아님. 오히려 예의 윤리 도덕. 저런 여자들끼리만 모인 아마존? 선 넘으면 고양이 발톱 콱~! 모든 걸 고양이에게 최적화되도록 동조하지 않으면 안됨. 선 넘으면 안된단 말이지. 너나 잘하지 뭔 참견? 너네 못생긴 여자들 오합지졸이랑 농담 따먹기 시시덕거리며 시간낭비하기 싫다, 화자는 아니지만 듣는 청자 기분 나쁘니까 비꼬던가. 좋게 말해줘도 결코 좋게 들리지 않으니까. 곧 철저히 신부들러리로 물개박수 치던가, 백댄서 거느리던가. 남자가 나 좋다는데, 참견 받기 싫다니까 그러시네. 수평은 없고 수직만! 어중간한 건 싫다 정신. 정반대 여자들끼리 어떻게 친해지나. 친하면 거짓말. 가짜 친분. 완전한 물과 기름. 웬만한 여자들에게나 불문율이 있는 거지, 골 넣으면 상대편 감독 놀리고 관중에게 엉덩이 까서 보여주는 게 기본인 여자인데? 말 다 한 거지. 말 다 한 거라고. 그녀 입장에서는 지극히 정상적인 행동이자, 중간은 가는 논리요, 최선을 다한 예의일 뿐. 괜히 순진한 숙녀들만 벙 찔 뿐. 응? 
   "너 그럴 줄 알았다~ 내가 뭐랬니~ 내가 널 모르니~ 그러게 왜 고집부려가지고 말이야~!"
    남녀도 똑같아. 하나도 다를 거 없다고. 그녀 기분 저기압일 때? 뭔 말을 해도 웬만하면 좋게 들릴 리 없음. 아무 생각없이 한마디 툭 던졌는데, 그녀 심기를 건드리면? 말을 섞지 않는 게 최선. 어? 신경 끄는 건 차선. 여성스러운 멘트가 으뜸. (그걸 남자가 어떻게?). 피하면 더 좋고. 그게 진짜 (엄지 척)! 남자가 간접화법으로 뭘 가져다 주면 좋겠다는 듯 빙빙~ 돌려서 말할 때. 여자는 커피포트 부글부글. 남자가 직접화법으로 명령조로 얘기해도? 여자는 뒷목 잡고 뚜껑 열리고. 또는 '진짜진짜 미안한데'로 시작하는 1.5 화법. 여자를 하녀로 하는 거지. 옛말에 모자는 빨리 벗고 지갑은 천천히 열라는 말, 꼭 그래야 한단 말이 아닌데. 마법 주문을 걸면 뭘해, 통 마술이 걸리지를 않는데. 촌년&촌닭 커플 위주로 시트콤 찍을 때. 4 대 4 멤버 말고 신규 멤버가 촌년 보고서 점백이 점백이 놀려도, 시트콤이니까 친하니까 촌년은 뭐 그러려니. 그런데 웬 제비가 그거 듣자마자 옆에서 폭소를 터트리면? 촌년 뚜껑 제대로~ 열리는 거지. 푸하하하하하하~ 푸하하하하하하~ 웃음이 멈추질 않는 걸 나보고 어쩌라고! 촌년 정말 제대로 빡치는 거지요. 호호호. 여자는 웬만하면 앞에서 웃으면 안됨. 안 좋은 건 어지간하면 전부 뒷담화로! 오히려 그게 예의. 그래서 흉 보는 정도를 보면 얼마나 친한지를 알 수 있음. 진짜 진짜 친하면 면상에 대고 손가락질 하면서 놀리는 게 우정. 그녀들은 (나쁜 의미가 아니라) 어디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험담가니까. 남자가 얄미운 시누이식 화법을 구사하면 여자는 그냥 열불나는 거지. 축척되면 홧병 생긴다고. 어? 안 그래도 친구들 남친 남편은 잘생겼고, 목소리 좋고, 돈도 잘 버는데. 그런데 이 인간은 뭐가 이렇게 뻔뻔해? 속 뒤집어진단 말씀! 그럼 또 지는 비교 지는 비교 내가 어디서 들었는데. 그럼 남자가 뚜껑 열릴 차례. 남녀는 일단 말을 섞으면 안됨! 어? 주기적으로 간헐적으로 콱 한 대 쥐어막고 싶어야 정상이니까. 그래서 순진했던 그녀 성질 더러워지고. 순결한 숙녀는 어느새 동네 아줌마 되는 거지. 50 넘은 여자 누가 쳐다본대요? 우아한 미녀 50살이라면 몰라도... (절레절레)! 좌우지간 남녀는, 대화가 없으면 남녀가 싸울 일이 없다니까요. 연애 초반에나 다 성과를 위해서 뻥치고 연기하는 것일 뿐. 시간 지나봐. 음. 지금은 좋지. 허허허. 하여튼 남녀는 말을 섞으면 섞을수록...... 워──워──워! 다시 주제로 돌아가서. 
    좀비 영화에 보면 멀쩡한 사람이 좀비한테 물리거나 어째서 좀비로 변하면. 눈동자가 변하잖아? 어떻게 변하냐. 첫째 각막 전체가 하얗게, 둘째 각막 전체가 까맣게, 셋째 동공 깜빡거림이 사람처럼이 아니라 생선이나 새처럼. 넷째, 파충류 눈동자처럼 동공이 거의 1자에 가깝도록 변화. 다섯째 기타 등등. 그 가운데 그녀는 동공이 무섭게 생긴 길고양이와 완전 판박이인 습성 즉 야성을 띈다는 거지. 사회성 만점으로 길들여져 봐야, 예의 익히고 세상 물정 알아봐야 여자 세계 불문율 그거 짜증나는 거라고. 어? 자유인! 애마부인. 표범이 어찌 개와 팔짱을 끼겠나. 살쾡이는 늑대에게 윙크는 할지언정, 양치기견 머리 꼭대기에 올라가야 직성이 풀리는 법. 웬만한 여자를 양떼에 비유해도 된다면 그런 여자는 양떼와 DNA부터 전혀 다르도록 태어났으니까 다 가능한 것. 그게 다른 말로 뭐다? 천성! 죽을 때까지 바꿀 수 없는 것. 내가 가진 성격에서 제일 부드러운 걸 표출해서, 아쉬울 때 여자들 만족시킬 수야 있지만. 천성은 남자를 사냥하는 아마조네스 습성. 그 부류 족속을 여자들이 모를까? 모를 리가 있나. 늑대는 늑대를 알아보는 법. 
    결론! 그런 몰상식한 반칙왕 반칙킹 반칙녀. 요점은 이래. 막 요래. 평범한 여자들이 보기엔 꼴불견. 괘씸한 정도가 아니라 한마디로 남자에 환장한 년. 남자라면 그저 정신을 못 차리는 벌렁벌렁녀. 그런데 중요한 건 그건 순진한 숙녀들 기준일 뿐이라는 거. 그건 늬 생각이고! ~라는 게 그 반칙퀸의 입장. 그녀의 속마음? 살쾡이 중의 살쾡이! 그런데 웃긴 게 뭐냐면 그마저도 다 유동적인 거라는 점. 혈연 지연 학연, 밀어주고 끌어주고 띄워주며 환심사기. 선녀들 80퍼센트인 공동체에서 저러면 여자이기를 포기하는 거나 마찬가지인데. 저런 반칙녀가 대부분인 공동체라면! 그럼 먼저 채간 놈이 임자 아니겠나. 오다가다 만난 사이에서라면 두 말하면 잔소리고. 그래서 촌년은 운명적인 만남을 애호하고, 촌닭은 타격이요, 팔색조 파랑새는 타율이다 그거지. 실한 놈 물어오면 물어온 년이 용한 것. 다름 아니라 그게 미덕. 그러니까 다 사람들 모인 범위의 기저에 흐르는 문화가 무엇인가를 알고, 파악하며, 익숙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흠뻑 젖지 않으면 안 되는 것. 예를 들어 군대에서 별들이 마음에 드는 나중 대승할 장성감을 좋게 보며 개, 고양이, 소, 말, 돼지보다 늑대새끼만 편애하는 것. 일단 친분 쌓고 어쩌고 나중 거리 유지하고. 그게 나쁜 게 아니듯. 전체적인 분위기에 따라, 저 '남자에 환장한 년'을 손가락질 할 것인가 말 것인가가 정해지는 것. 다 그래서 잘나가는 클럽에서 물 관리에 총력을 기울이는 것. 돈 있다고 아무나 받아주나? 아니야~! 줄 서서 기다렸고 먼길 와줘서 애 썼으니 누구나 들어갈 수 있나? 아니야. 절대로 아니지. 멀끔히 차려입은 10명 청춘남녀. 8명은 퇴짜논다니까? 꽃단장하고 오면 뭘 해. 받아주지를 않는데. 딱 2명만 입장 가능. 나머지 8명은 짐 싸서 집에 가야지 뭐 별 수 있나. 그냥 가긴 서운하니까 그들만의 리그 2부 3부 찾아서 가야지 어쩌겠나. 그게 오라는 덴 없는데 갈 데는 많은 허당 입장. 반대로 러브콜 폭주하고 주가 높은 은근 허당이야, 다 가만 있어도 호박이 제 발로 굴러오는 식이고. 응? 플레이보이든 그냥 매력녀든. 걔네들 봐 보라고. 그분들이 환승이별 당한 적 있나? 단 1번도 없어. 왜? 말 한마디, 표정, 몸짓 하나 하나를 보면 10을 알 수 있으니까. 그게 어찌 가능하냐고. 그렇든 은근 허당이 저런 벌렁벌렁녀를 만나는 거, 언제 본 적 있니? 보고 싶어서 애타게 찾아헤맸다 볼 수도 있는데. 그래 봤자 다 짧은 연애, 몰래몰래 숨어서 만나는 거. 아니면 어떻게 붙어도 붙어도...! 
    약간 딴 얘기긴 한데 그래도 살짝 걸쳐 관련되니까 하는 말인데. 굳이 이런 얘기까진 하지 않으려 했으나 다 알아두면 나쁜 거 아니까 하는 말인데. 그 뭐야 분수녀 떨림녀가 아니라 교성녀 있지? 장남 차남 막내, 장녀 차녀 막내. 그처럼 절대적으로 100퍼센트 옳다가 아니라. 6 대 4랄지 판사 70퍼센트는 장남이고 육상 단거리 주자 가운데 70퍼센트는 막내고. 다 그런 특징이 뚜렷하듯 경향을 말하는 거니까 일반화하지도 말고. 오해도 금물. 그냥 참고만. 응? 그 교성녀라는 게 의학적으로든 인체공학적으로든 원리 따지면 말이 안 되는 거거든. 즉 몇 데시벨까지는 말이 되고. 살면서 직접경험해 본 사람이 많지 않은 정도의, 몇 데시벨 이상은 실상 말이 안 되는 거고. 그 말도 안 되는 교성녀를 말하는 건데. 분명 몇 데시벨 이상을 말하는 거고, 일반화하지 말고. 그 정도 교성녀는 내가 봤을 땐 성 그래프가 비정상적으로 일찍 정점을 찍은 경우가 대부분. 남자와 여자는 성 그래프가 판이하게 다른 게 정상인데. 남자랑 거의 똑같은 성 그래프 곡선인 여자, 드물게 있는데. 바로 그녀들이 고성을 지르는 교성녀란 말씀. 모텔 아르바이트 경험치 얼마인데, 카운터에서 그 소리가 다 들리도록 건물이 흔들릴 정도? 쩌렁쩌렁? 왕년에 친한 친구랑 아는 동생들을 새벽에 만났는데. 그렇게 알고 지냈고 새벽에 친구 혼자 사는 집에서 술을 한잔 같이 했는데. 적당히 자리 만들어주고, 자리를 피했는데. 나중 듣고 보니 오늘이 그날이라서 (자세) 이처럼 어정쩡하게 애무가 다였는데. 바깥 어디까지 소리가 쩌렁쩌렁. 나머지 사람들 얘기 집단지성 이거 저거 다 합쳐보면. 비정상적인 그래프 때문이 많음. 교감신경 부교감신경 조건반사 인체공학 의학 다 따지면. 몇 데시벨 이상도 말이 안 되고. 분수도 말이 안 되고. 그렇지만 경험자는 뭐냐고. 당사자는 뭐냔 말이지. 안 들어본 사람만 못 믿는다 그거지. 중간에 내 손으로, 상대방 입을, 틀어막아본 사람은 여지없이 아는 거고. 그게 그러니까 사랑을 만나서 애 낳고 살면서 행복한 인생을 살면 좋은데. 쉽게 쉽게 만나고, 쉽게 쉽게 헤어지고, 쉽게 쉽게 잘 주는 그녀들. 인생 꼬이기 십상. 다 그 때문에 하는 말. 자기만 불행해지면 다행이게?
    그런데 내가 이 얘길 너한테 왜 했지?」
   「그건 오빠가 나한테 장난치듯 고백하지 말라, 고백 받지 말라는 의미로 한 거 아니오? 장난처럼 고백을 받아내고자 하지 말라면서, 어? 너 혼 좀 나 봐라 라면서 입에 모터를 단 거 아니냔 말이오. 사람 아무나 만나는 거 아니다, 타석주의보다 타율이 사랑이다 라는 오빠 말. 다 안다고. 모르지 않지. 오빠가 전에 뭐랬지? 오빠의 말과 글 때문에 내 귀만 피났나 뭐! 짧게 말해 등급이자 끼리끼리요, 간촐하게 뻔트와 장타를 구분하자는 거잖아. 뉴욕 파리 로마 바르셀로나 런던 베를린. 웬만큼 잘나가는 클럽 치고, 굳이 전문가들 고견 참고하지 않더라도 말이야. 입장 금지율 70, 입장 거부율 80% 아닌 클럽 있나? 후줄근한 츄리닝 입고 슬리퍼 찍찍 끌고서 누가 클럽 가나. 동네 아줌마 아저씨는, 다 음악이 중간에 살짝 끊기는, 삼류 나이트클럽으로 몰리고. 멋쟁이들이 주로 몰리는 데도 불구하고 잘나가는 나이트클럽의 입장 거절 비율이 80퍼센트. 응? 그렇지 않은 명클럽? 있긴 있지. 다만 물이 안 좋을 뿐. 연애사 전적이나 그거나. 거기서 더 가면? 어디 대회 입상 경력 이상만 출전 가능한 대회처럼 출전 자격이 까다로운 경기. 허당 중의 허당. 영심이 중의 상영심이. 다 타율 아니겠어? 거기서 더 가면 사설 아지트고. 역사적으로 아마데우스가 이름을 올렸던 비밀 클럽 프리메이슨이고. 왜 몰라? 아 글쎄 오빠가 말 많으니까 나까지 많아지잖아! 
    (딱) 옳커니~ 아아! 바로 이래서 애들이 오빠한테 말을 걸지 않는구나. 요즘 유명해. 오빠한테 말 걸기만 하면 주례사 들을 각오 단단히 해야 한다고. 뭔 빈말 하나라도 물어보기만 해도, 졸업식 축사 가운데서 제일로 긴 거. 주저리주저리. 오빠. 내가 졌어. 그러니까 고백하지 마. 가서 생활 당구나 쳐. 이런 젠장.」
    뭐야 저거. 괜히 자기가 무슨 밑도 끝도 없이 고백하라고 먼저 요구했으면서. 승질머리하고는! 
    그런데 좀 전에 가만 듣고 보니 샬럿 말마따나 난 정말 그랬다. 
    왜인지는 몰라도 난 최근 기억력이 비상해졌고, 그걸 부풀리고자 하는 사색가의 장난기라고나 할까? 때문에 난 사람들과 말할 때 요즘 잘 듣지 않고 어제 읽은 책이랄지, 뭐 하나 꼬투리 잡아서 그거 관련된 잔지식만 왕창 나불거렸다. 아아 바로 그래서 애들이 날 조심조심 피해 다닌 거로구나. 이제 알았다. 안 그래도 뭘 해도 재미없는데 더 재미없어진 거지. 왜 아니겠어. 
    바로 그때 엘리자베스가 지나갔다.
   「안녕 아가씨.」
   「오빠 다음에. 나 지금 중요한 얘기 중이거든. 다음에.」
    또 켄트가 바에 혼자 있네.
   「이게 누구야. 고양이는 발톱을 감춘다더니 오늘은 웬일로 폼을 다 잡네?」
   「아니야 아무 일도. 그런데 내 정신 좀 봐. 회사에 중요한 서류를 놓고 왔네. 너도 알지, 내 007 가방 특별하단 거. 그거 선물받은 거잖아. 잃어버리면 안 된다고. 아무튼 다음에 얘기하자. 나 갈게」
   「이 자식이...!」
    그때 내 레이더에 스티븐이 포착됐다. 
   「야 스티븐. 너 혼자 포켓볼 칠 거면 형한테 말했어야지. 응? 당구란 말이야, 어?」
   「시끄러. 3시 방향.」
   「3시 방향? (두리번두리번) 아무도 없는데. 뭘 말하는 거지...?」
    돌아보니 스티븐은 이미 가고 없었다. 젠장.
    이렇게 문단 6이 끝나는 걸까? 그럴 리가 있나. 제5의 원소기호가 뭔지는 몰라도. 제5열인가 뭔가 영화 내용은 기억도 안 나지만. 문단 5-6은 흡사 한때 유행했던 샤넬 넘버 5처럼 뭔가 색다른 여운이 있었다. 그건 무엇이냐. 바로, 웬 수상쩍은 여자가 날 따라다닌다는 거. 자, 일단 문단을 넘기자.





    7

    (내 손으로 내게 손가락질. 아님 귀 옆에 대고 빙빙 빙빙빙)! 물론 마음으로만. 저런 의뭉스러운 분위기는 난생처음이다. 우연치 않게 어딜 가나 마주치는 거야, 통성명 나누지 않았다 뿐이지. 대충 모른 체하거나 눈인사나 나누면 그만이지. 바쁜 세상 기 빨리지 않아야 다 저녁에 또 그다음을 기대할 수 있지 않나. 그런데 그 정도가 아니라 뭐랄까 이건 정말 뭐라고나 할까. OK~! (딱) (몸짓) 낯가리는 강아지? 그녀는 결코 고양이 관상이 아니었다. 완전 낯가리는 강아지과였다. 어제 서점에서. 3일 전 볼링장에서. 4일 전 빵집에서. 5일 전 식료품점에서. 6일 전 소셜 네트워크에서. 7일 전 산책하다 우연히. 8일 전 영화관에서. 9일 전 백화점에서. 10일 전 시장에서. 이건 진짜,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난 그녀에게 다가갔다. 낯가리는 강아지 같은 그녀에게. 
   「혹시... 절 아세요?」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난 당신을 꼬시려는 게 아니오.」
    또 끄덕끄덕. 뭐야 이거? 
   「난 당신께 찝쩍거리는 게 아니란 말이오. 혹시 그냥 흔한 껄떡남 정도로 날 여기지나 않을까, 난 많이 조심스러웠소.」
    또다시 끄덕끄덕.
   「난 미치지 않았단 말이오.」
    끄덕끄덕. 정말 뭐야!
   「설마 실언증 뭐 그런 거요? 아니면 뭔가 어떤 상심 때문에 일시적으로? 그도 아니면 수전증 허언증 거북목 증후군 환상 신드롬. 그런 거 때문에 묵언수행이라도?」
   「저 말할 줄 알아요.」
   「지금 말할 줄 안다고 자랑하는 거요?」
   「(표정) (몸짓)」
   「허허허. 농담이오. 바로 이래서 애들이 날 피하는 건가?」
   「네?」
   「아니오. 신경쓰지 마세요. 혼잣말이랍니다. 혹시 제가 신경쓰이시다면 음 그럼 이만...」
    난 그렇게 그녀가 별로 대화할 의사가 없다고 간주한 채 자리를 뜰려고 했다. 
   「가지 마세요.」
   「네?」
   「가지 마 이 자식아. 아 농담이에요. 저는 배우는 게 빠르거든요. 뭐든 귀신같이 익혀요.」
   「아니. 그게 나 때문... 그럴 수도 있죠.」
   「」
   「내 정신 좀 봐. 우리 어디서 꽤 자주 마주치지 않았소?」
   「그래요. 맞아요. 부정하지 않겠어요. 사실은 사실이니까요. 필연일지도 모를 테구요.」
   「왜죠? 혹시 그 이유를 아시오? 몰라도 괜찮소만. 이왕이면... 혹시 아신다면 내게 가르쳐주는 친절을 베푸시지 않겠소? 알려만 주신다면야 내 그대를 실망시켜드리진 않으리오.」
   「맘 같아선 확! 그러니까 여자가 없지.」
   「네?」
   「앗 딴생각을 좀 했어요. 당신께 하는 얘기가 아니니 신경쓰지 말아주셨으면 고맙겠소.」
   「지금 나 따라하는 거요?」
   「따라하긴 누가 따라했다는 거예요? 기껏 한다는 게 뭐 말장난이에요 뭐예요. 이거 왜 이래? 그럴 시간 있으면 집에 가서 발 닦고 잠이나 자요. ~라고 농담해서 미안해요. 괘념치 마세요. 저 미치지 않았으니까.」
   「그럼 난 뭐 미친놈이란 말이요 뭐요?」
   「거 참 말을 재밌게 하는 양반일쎄 그려.」
    정말 웃기는 일 아닌가. 얜 대체 뭐지? 늙은 개가 아프게 문다는데 이 여인이 늙은 개? 아닌데. 얜 어린데. 그럼 뭐야?
   「단도직입적으로 용건만 간단히 말하죠. 간접화법으로 남의 다리 긁기는 좀 더 친해지면 하는 걸로 하고.」
   「저도 좋아요.」
   「좋아요? 뭐가 좋아요? 내가? 아니면 요점만 간단히, 그것 말이오? 하긴 내가 좋을 리 있나. 허지만서두 거 선생께서 오해하는 게 있단 말이오. 이래 봬도 내 왕년에 여자들이 좀 많았단 말이오. 허허허. 그런데 내가 지금 여자 얘길 왜 하지?」
   「하지 않으면 되죠. 여자 얘기.」
   「아무튼 내 충고 하나만 하리다. 서로 바쁘니까 할 말만 하고 헤어지는 걸로 합시다.」
   「」
   「내 할 말은? 모자가 날아갈 정도의 바람은 따라가지 마시오. 아시겠소? 그럼 이만.」
   「선생. 가지 마세요. 왜 선생이라고 부르니까, 별로 좋아하지 않으시구만. 오빠라고 불러달라 말 못 하시구먼 그래. 어? 그럼 그렇다고 말을 하던가. 어?」
   「네? 우린 아직 그렇게 다정히 말을 놓을 사이까지는 아닌 거 같소만. 아니 그렇소?」
   「아니긴 뭐가 아니야. 당신 나 아시오?」
   「네? 제가 그대를 어찌 알겠소.」
   「당신이 나를 모르는데 내가 당신을 어찌 알겠소.」
   「그 말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인데. 그런데 왜 당신께서...」
   「오빠가 할 말을 내가 대신하면 안 돼... 오?」
   「아니~ 안 될 거 까진 없지만. 자꾸 자꾸 자꾸 자꾸 자꾸 자꾸 자~꾸, 어?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시니까 그렇지. 말이 끝나지를 않잖아요. 네? 이거 무슨 안 듣기 화법도 아니고. 살다 살다 이런 양반 처음 보네 그려. 안 그래유?」
   「안 그러긴 누가 안 그래유?」
   「아 말 따라하지 말고 용건을 말해 이 양반아. 어?」
   「오빠. 용건~?」
   「오빠? 네. 용건이요. 요점이 뭐요?」
   「요점이요? 오빠가 내게 다가왔지 않소.」
   「내가? 아... 그건 그렇죠. 그렇지만 그러지 않으면 안 되도록, 아가씨께서 제 주변에서 계속 알짱알짱 계속 근처를 맴도시니까. 이렇듯 내내 얼쩡얼쩡 고생하시느니. 즉문즉답하자는 거죠.」
   「그래요. 반대하지 않아요.」
    얘 도대체 뭐야? 
   「당신 누구요?」
   「당신은 누구요?」
    또 말꼬리 잡고 늘어지자고? 장난해? 어? 지금 장난하냐고!
   「아 나는~ 당신의 오빠고. 그대는 공주 나는 거지. 됐소? 그러니까 왜! (고함) 아~ 쫌!」
   「호호호. 화내니까 귀여우시네. 지금 그러니까. 이상한 환상과 특수한 신비에게 꼼짝없이 붙잡힌 신세다 그거요?」
   「빙빙 돌리지 말고 제발 할 말만, 네? 아 나 이거 정말 거 참 나 하다 하다 거 무슨 진짜 나 미쳐버리겠네. 아아아악~!」
   「오빠 아직 안 미쳤어? 호호. 농담이에요. 아무튼 저도 다 알아요. 오빠는 마누라 등쳐먹을 남자가 아니란 걸 말이에요. 등쳐먹을 마누라가 어딨어. 설사 있다 해도 그럴 위인이 못되지. 호호호.」
   「밀었다 당겼다 장난 아니구만. 어? 들었다 놨다 말도 아니라고. 쥐락펴락 난리 블루스도 아니야. 아 정말 말해주오. 낭자, 하라는 대로 할 테니까. 정답을 말씀해주시면 고맙겠소. 자, 말하는 거요~ 나랑 약속했소! 그러요? OK~! 도대체 왜 날 유인한 거요? 속 시원하게 말하면 되지 않소. 용건은 뭐다, 그러니 내게 첫눈에 반했다고 이실직고해라. ~라고 말이오.」
   「왜냐하면.」
   「왜냐하면?」
   「왜냐하면, 전, 여자니까요.」
   「뭐가 어쩌고 어째?」
    이렇게 그녀와 나눈 대화를 옮기다간 끝이 없을 것만 같아서 여기서 멈춘다. 아아 (절레절레)! 
    아무튼 그녀의 말은 그랬다. 자기 언니를 찾아주라고! 
    언니를 찾아주라고? 내가 왜? 언니를 찾는다 언니를 찾는다... 
    자기 언니를 찾아주라나 뭐래나. 단지 그게 다라고? 
    걘 대체 뭐한다고 날 딱 찍어서 지명했지? 지명 방어전? 흐흐흐. 흐흐흐흐흐. 
    아니면 의무 방어전? 흐흐흐. 흐흐흐흐흐. 설마 챔피언 결정전? 크크크크크. 
    좌우지간, 언니? 그녀 언니가 누구인지 내가 어떻게 아냐고. 어? 
    그렇게 돌아서며 그녀가 하는 말은 이랬다. 
   「오빠. 다시 볼 때까지 안녕. 우린 또 보게 될 테니까.」





    8

    그녀의 이름은 소피. 갑자기 등장. 뜬금없이 친해짐. 그런데 연락처는 모름.
    낯가리는 강아지 같은 여자. 졸라~ 귀여운 거야 낯가리는 강아지에나 해당하고. 
    그녀는 그런 강아지랑 낯가리는 거만 비슷하고. 수줍은 듯 애교와 앙탈은 알고 봤더니 내숭이 장난 아님. 
    그러다 홀연히 사라짐. 그래? 
    나는 집으로 돌아갔고 다음 날 사무실에서 인공지능 지니를 소환했다.
   「지니 나와라 오바.」
    삐리리리~ 삐리리리~ 3D 4D 5D 6D 7D.. 그녀는 나타났다. 
   「오랜만이야 친구.」
   「오빠도. 딱 보니 더 멍청해졌네.」
   「넌 그걸 지금 인사라고 하니?」
   「얼굴을 찡그리니까 더 못생겨 보이네.」
   「뭐가 어쩌고 어째?」
   「그래도 장난기 섞인 폭소는 참을게. 우리가 나눈 통정이 얼만데. 아니. 그건 아니지만. 말이 그렇다는 거지.」
   「너도 이제 그 뭐야, 탄복할 수밖에 없는 신비감. 그런 거 다 바닥난 거니? 정체 탄로 난 거야? 그래?」
   「이 오빠가 또 슬슬 긁네 긁어. 어? 이번엔 또 무슨 고민인데 그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사소한 습관에서 중대한 절정감까지.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낱낱이 알려줘.」
   「뭘?」
   「소피에 대해서.」
   「소피가 누군데?」
   「있어. 그런 애가 있어. 말꼬리 잡고 늘어지기 좋아하는 애. 말 더럽게 많은 애. 삽질 세러모니를 연상케 하는 계집애. 엉큼한 년. 관상부터가 더럽게 밝히게 생겼어. 개년.」
   「흥분하지 말고. 걔 뭐하는 애야?」
   「그거 늬 할 일이잖아.」
   「아 뭔가 힌트를 줘야 다 조사하고 데이트베이스 수집하고 어쩌고 할 거 아니야.」
   「아는 건 이름밖에 없어.」
   「그거 가지고 나보고 어쩌라고.」
   「아 우리 아지트 실시간 영상부터 얼굴 파악하고 어쩌고. 찾아보면 다 나오잖아. 왜 그래 초짜같이.」
    잠시 후.
   「나왔어.」
   「나왔어?」
   「어.」
   「뭐하는 년인데?」
   「그런데 정체가 없어.」
   「정체가 없다고?」
   「어. 걔 사람 아니네.」
   「사람이 아니면. 뭐 새야? 개야? 아님 생선? 뭔데?」
   「우리 과 같은데.」
   「우리 과? 뭐 캠퍼스의 낭만?」
   「낭만이고 자시고. 별자리가 나랑 맞지 않아. 관심 없어. 나 그만 갈게.」
    뚝!
   「뭐야 이거.」
    이 혼탁한 상황은 대체 뭐지? 웬 소피라는 숙녀가 나타나 내 근처에서 알짱거리며 날 조종한다? 내 아는 동생들이 가득한 어장을 지가 다 관리한다? 그래서 정리된다? 이 년이 지금...! 후궁 3000명이 책봉돼도 모자를 판에 말이야. 어? 부랴부랴 어떻게 어떻게 달랑 아는 동생들 몇 명 있는 거 가지고 말이야. 지가 뭔데? 자못 낯선 위기감? 실마리를 어디서부터 풀어나간담? 쉽지가 않네. 그래? 그럼 신경 끄면 되지 뭐. 알게 뭐야? 뭐 소피의 사랑? 다 소용없어. 사랑은 무슨. 사랑은~ 없어! 





    9

    최근 나는 소피를 다시 만났다. 우리는 친해졌다. 많이 친해졌다. 그렇게 나는 소피와 데이트를 즐겼다. 
    시내 여기저기를 쏘다니고. 영화도 같이 보고. 밥도 같이 먹고. 밥만 계속 먹을 수는 없으니. 커피도. 술도. 노래도 부르고. 너무 자세한 얘기를 다 할 수는 없고. 
    때문에 나는 자랑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나는 환상문학 격월간 고품격 잡지 미스테리아 사무실에 놀러 갔다. 
    편집장실에 들어갔다. 
    마침 마라는 나와 독대하길 고대하고 있었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더럽게 못 맞추는 돌팔이 점쟁이 같은 년.
   「마라. 날 왜 불렀어?」
   「왜 불러? 내가 언제 널 불렀다고 그래?」
   「안 불렀어? 아님 말고. 아니 그럴 게 아니라. 지금 불러. 나 바깥에 나가 있을까?」
   「넌 꽁트가 지겹지도 않냐? (절레절레)」
   「그건 그렇고. 시간 끌지 마.」
   「뭔 시간을 끌지 마. 누가? 내가? 내가 뭘?」
   「너 좋아하는 사람 있데.」
   「정말?」
   「아니. 뻥이야!」
   「(인상 팍)」
   「허허허. 허허허허허.」
   「그나저나. 너 요즘 연애한다며?」
   「그게 뭔 소리야? 에잇 숨기지 말자. 그런데. 아니 너가 어떻게!」
   「레이더에 다 걸렸어. 털어놔. 누구야? 뭐하는 년인데 그래?」
   「시녀 주제에 어디서 감히. 걔 공주님이야. 왜, 첩이라도 어떻게 안 되겠냐고?」
   「첩 같은 소리나 하고 자빠졌네. 그건 그렇고. 저번에 말한 칼럼은 다 썼어?」
   「아직. 환상머신 얘기는 꺼내지도 말게, 알겠나? 순 엉터리 골칫덩어리 때문에 내 속이 썩고 상하고 말도 못 하니까.」
   「환상머신이고 나발이고. 그거 말고. 칼럼 말이야 칼럼.」
   「환상머신이 먼저야.」
   「차라리 우머나이저를 주문해라. 아, 맞다. 남성용 나왔데.」
   「뭐, 진짜?」
   「뻥이야.」
   「너 정말! (몸짓) (표정) (손짓) (고갯짓). 엉큼한 년. 내 이년!」
   「왜, 뒤통수 한 대 때려주고 싶니? 오빠. 나 너무 꼴 보기 싫어하지 마라. 어? 나 마라야. 나 마라라고.」
   「왜 갑자기 존대를? 그냥 막말해. 너 그렇게 나오면 나 겁나. 어? 무섭단 말이야. 뭘 원하는데?」
   「날 얼마나 사랑하는지 솔직히 말해줬으면 좋겠어.」
   「뭐 사랑? 사랑은 없어.」
   「없긴 뭐가 없어. 솔직히 말해. 먹고 버리다 즉 먹버, 아님 먹고 튀다 즉 먹튀. 둘 중 뭐야?」
   「뭔 소리야? 나 그런 남자 아니야. 나 철들었어. 우리 이제 나이 먹을 만큼 먹었네 이 양반아. 어? 그리고 먹고 튀긴 뭘 먹고 튀어? 이런 도둑년 같으니라고.」
   「내가 왜 도둑년이야. 내가 너한테 이런 소리까지 들어야 하니? 그러지 말고. 몸 좀 풀자. 야. 나이트 어때? 물 좋은 데 알아놨어.」
   「NC?」
   「안 놀면 뭐하니. 놀자. 지금 아니면 언제 놀게? 꽃다운 청춘은 다시 없어.」
    그때 마라한테 전화가 걸려왔다.
    웬일인지 그녀는 소곤거리다 잠깐 바깥에 나가서 전화를 받았다.
    잠시 후
   「나 급한 일이 있어서 먼저 갈게. 놀다가.」
   「너 나 따돌리는 거니? 도대체 뭔 소문이 돈 거야? 보여줘? 어? 정말? 원해.」
    나는 단번에 소파에서 일어나 탁자 위로 올라갔다. 
    그러고서 왼손으로 바지 허리띠를 잡고 오른손은 바지 자크에 갖다 댔다. 
    그런데 마라는 이미 떠난 뒤였다.
    소피가 나타나서 좋긴 한데. 
    난 소피가 사라지면 그땐... 
    낙동강 오리알 되는 거 시간문제일 것만 같았다. 





    10

    나는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었다. 
    음악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 구도자의 저녁기도 K.339
    쉬는 시간이니까 나는 인터넷에서 짝퉁 라울 뒤피 그림을 알아보고 있었다. 
    도둑놈님들께 명성이 자자한 특 A급 위작 말고. 전문용어로 저질 중의 저질 짭으로. 
    어쩌다 괜찮은 물품을 보긴 했다. 그러다 가격을 보는 순간 톡 쏘는 까마귀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러다 누가 사무실에 찾아왔다. 
    방문자의 얼굴을 보는 순간 샴페인 마개 따는 소리 들리는 거 있지? (고갯짓) (표정) (몸짓) 
    이거야~ 이거라고~ 이거라니까 바로 이거라고~! 
    그녀는 다름 아니라 소피였다. 
    아니면 최근 따로 올 사람이 없었다. 
    난 빼도 박도 못하고 사랑의 포로가 되어버린 거지. 허허허. 그렇지만 진도는 아직. 이게 좋은 거야 나쁜 거야?
    그녀는 말했다. 
   「오빠. 내가 전에 말했지? 라울 뒤피 명화를 선물하겠다는 거.」
   「내가 너의 재력을 평가 절하하는 건 아닌데. 그렇지만 선물은 오빠가 너한테 하는 걸로 하자. 우리, 그러면, 안 되겠니?」
   「아니 내 오빠한테 내가 선물하겠다는데 누가 뭐래?」
    그러면서 그녀는 도화지 같은 크기의 포장된 선물을 내게 건네줬다. 
    나는 마치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여인의 겉옷을 재빨리 풀어 제치는 것처럼 포장지를 뜯고. 
    거칠게 가터벨트를 푸는 것처럼 리본을 풀었다. 
    그래서 짜잔~ 하고 등장한 내용물은 내용물은. 
    다른 아니라 라울 뒤피 작품은 작품인데. 
    전문용어로 짭, 짝퉁도 아니고 질 나쁜 가짜였다. 
    이건 뭐 그냥 엽서였다 엽서. 
    언젠 뭐 명화 진품을 선물하겠다면 떵떵거리더니 결국 나보고 엿 먹으라는 거야 뭐야?
    그런데 이상한 게 뭐냐면, 액자는 딱 봐도 상당히 비쌀 거 같았다. 
    곧 액자만 명품. 그런데 그림은 그냥 엽서. 
    뭐야 그거? 남들 볼까 무서워 몰래몰래 숨어서 만나는 풋사랑이잖아? 
    아니면 뭐, 익기 전에 떫지 않은 과일은 없다는데. 보기에는 좋은데 맛은 더럽게 없는 과일? 
    아아 뒷목 뒷목... 커피포트 부글부글 부글부글. 
    뭐 그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고. 
    그러고서 우리는 데이트하러 나갔다. 





    11

    나는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었다. 
    주세페 베르디 /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  이중창 "빛나고 행복했던 어느 날
    쉬는 시간이니까 나는 인터넷에서 새빨간 립스틱을 바른 도발적인 자세를 감상하고 있었다. 
    가슴 졸이며 걸그룹 멤버끼리 순결한 뽀뽀를 장난스레 하고 피하는 장면을 원치 않지만 보고 말았다. 
    악마와 계약을 한 그림작가가 어쩌고저쩌고, 다 재미없는 이야기들. 어쩌다 봤다. 
    비키니 사진을 일부러 찾아본 게 아니라 어떡하다 딴 걸 보려다가 못 볼 걸 봐버렸다. 
    어? 내가 다비드상의 페니스가 작은 이유를 도대체 왜 알아야 하냐고. 
    내가 뭐한다고 속옷 구매 후기를 읽어?
    그런 고민 같지 않은 고민을 하던 찰나. 
    바로~ 소피가 오늘도 아니나 다를까 내 사무실에 방문했다.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걔 말로는 오늘의 하이라이트는 마술이라고 했다. 마술? 웬 마술? 
    대화 했다 치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소피는 왼손을 내 배꼽 속으로 집어넣었다. 나는 기분이 이상했다. 
    들어간 손은 멈추지 않았다. 마치 무엇이 어디에 들어가면 가만있을 수 없듯이. 
    너무 야한가? 아닐 수도 있다. 어쨌든 그게 다가 아니었다. 
    바로, 초록색 액체가 나왔다. 내 배꼽에서 점성을 약간 띄었는데 케첩보다는 덜 끈적거리고. 
    색깔은 초록색인 액체. 이게 뭐지? 청록빛을 띄는 초록색. 신비스러운 채도 명도.
    소피가 내 배꼽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서 날 관통한 거까진 마술인데. 
    초록색 액체가 흘러내린 건 마술이 아닐 것이다. 그래야 한다든 뭐든 모르겠고. 
    훌륭한 기수는 단숨에 말을 탄다더니, 그럼 소피는 마술사? 
   「소피. 신기한데?」
   「오빠. 말하지 마. 이거 할 때 말하는 거 아니야. 알지?」
   「이게 뭔데?」
   「말하지 말라니까.」
   「오빠 돌아봐.」
    돌아? 어딜 돌아. 누가? 내가? 아니 왜?
    아아 나는 소피의 말을 알 듯 모를 듯했다. 바로, 
    사냥 중인 사자는 포효하지 않는다는 것. 
    그렇게 한참 시간이 흐른 후. 
    마술은 끝났다. 환상적 마술. 사실적 마술. 신비한 마술. 
    놀라운데 진짜. 가짜인 듯 믿을 수 없지만 사실. 
    그런데 더 신기한 거. 더더욱 믿을 수 없는 거. 
    내 배꼽은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 
    귀를 뚫었다고 다 금귀걸이를 다는 것은 아닌데. 
    하긴 자랑 아닌 자랑 좀 하자면 이렇다. 
    옛날에 왼쪽 귀만 뚫어서 귀걸이를 하고 다닌 적이 있었는데. 
    귀걸이를 안 하고 다니니까 나중 다시 귀가 막혔다. (그게 뭐가 자랑이야? 귀 뚫었다 막힌 게 자랑이야? 지금 장난해?)
    그 기간이 짧은 듯한 예시가 바로 지금이었다. 
    소피는, 대체, 뭐하는 사람일까? 
    난 정말 궁금해서 미칠 것만 같았다. 
    그래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소피. 너 누구니?」
    그녀는 조용히 검지를 내 입에 가져다 댔다. 
    묻지 말라는 거지. 묻지 마? 그 옛날 사거리에 있던, 어쩌다 단골이 되어버린 술집 이름인데. 
    묻지 마! 그런데 뭘 묻지 말라는 거야?





    12

    나는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었다. 
    프란츠 리스트의 초절기교 연습곡. 라자르 베르만 1963년 연주. 
    쉬는 시간이니까 나는 무얼 하며 기분전환 하면 좋을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마침 소피가 찾아왔다. 이젠 뭐 날마다 오는 거지. 허허허. 호호호. 
   「오빠 그 말 알아?」
   「무슨 말?」
   「너무 길들여진 암양은 너무도 많은 어린 양들에게 젖을 물린다.」 
   「조신하란 말이지. 그런데 그 말이 왜?」
   「저번에 내가 말했잖아. 우리 언니 찾아주란 말.」
   「어. 기억나.」
   「그런데 있잖아. 나 언니 찾은 거 같아.」
   「그래? 어딨는데?」
   「내 앞에.」
   「뭐? 농담하지 마. 난 오빠라는 말만 들어도 미쳐버리는 상남자니까.」
   「그럼 오빤 양이자 꽃사슴이 아니라고?」
   「그럼. 개. 토끼. 닭. 사자? 하이에나? 늑대. 개구리? 두더쥐. 너구리. 제비.」
   「고양이가 양을 지키면 쥐는 누가 잡는단 말인가? 각자에게 알맞은 일이 있다고, 어? 오빠는 오늘 있잖아. 오늘만큼은. 어머. 그런데 이 음악. 어디서 많이 들어본 거 같은데. 설마, 라자르 베르만 연주 버전?」
   「네가 그걸 어떻게...」
   「어떻게긴. 오빠 컴퓨터 메모장 미리미리 봐 뒀지. 그런데 오빠, 베르만이랑 치프라랑 누가 더 피아노 잘쳐?」
   「그건 말이야, 우리 아빠랑 저 아저씨랑 누가 회사에서 더 높은가랑 비슷한 말로 알아들을게. 됐지?」
   「그런데 방금 전에 했던 말 그거 뭐니? 오늘 내가 무슨 맡아야 할 역할이라도 있니?」
   「그럼 있지. 없을 리가 있겠어?」
    잠시 후.
    소피는 본격적으로 마술 3탄을 선보였다. 그건 무엇이냐! 바로, 
    오른손으로 포크를 집더니 내 허벅지를 찔렀다. 
    푹~ 하고 삼지창은 꽂혔다. 
    지가 무슨 포세이돈이야 뭐야? 
    무의식의 절대강자는 뭐니 뭐니 해도 '꿀벅지'같은 비속어가 아니라고 강력히 부정하기도 뭣한데. 
    내 허벅지가 말벅지가 아닌 건 세상 사람 다 아는 게 아니라, 그 누구도 알고 싶어 하지 않는데. 왜 하필 내 허벅지를. 
    그런데 신기한 게 뭐냐면 포크가 푹 꽂힌 내 허벅지에서 파란색 액체가 흘러내리고 있었다는 것. 
    그건 울트라마린 색상도 아니고 살짝 빛깔이 변화하는 듯했다. 신기했다. 아름다웠다. 놀라웠다. 
   「오빠. 듣고 있어?」
   「어. 들리긴 들려. 그런데 말이 느려지네. 꿈인가?」
   「오빠 그거 꿈 아니야. 내가 곧 반대 방향으로 손을 집어넣을게. 그래서 안에서 내 손과 포크가 만나는 거지. 그렇게 만나면 들리는 효과음은 뭐다?」
   「뭔데?」
   「핑~! 살짝 다를 수도 있어. 퐁~! 더 달콤할지도 모른다구. 퐝~!」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나는 꿈에서 그런 말들만 골라서 듣고 말았다. 
    오빠~! 
    하고 싶어. 그런데 대화를! 
    오늘 나 집에 들어가지 말까?
    오빤 뱀파이어야? 그래?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깨어나 보니 거긴 개집이었다. 
    물론 꿈도 꾸었다. 내용은 내가 소피의 포동포동 뽀얀 엉덩이 포크로 푹 찔렀다. 푸딩 같은 눈부신 엉덩이 맨살을, 마치 수제 소시지를 푹 포크로 꼽아 찌르는 것처럼. 그러다 연분홍빛 대리석 같은 엉덩이가 정말로 대리석으로 굳어져갔다. 그래서 난 다급히 요술램프를 문지르듯이 문질렀다. 그렇게 다시 엉덩이는 대리석에서 다시 사람의 엉덩이로 돌아왔다. 그다음.. 그다음은 가물가물. 
    아무튼 우리 동네 인적이 드문 공터. 나대지. 빈 개집. 간혹 들개만 왔다 갔다 하는 곳. 
    도대체 소피는 내게 무슨 짓을 한 거야? (이거 이거 어디서 많이 들어..보진 못했어도. 왠지 익숙한 대사인데!)





    13

    오늘 나는 아지트 들렸다. 세바스찬이 소셜 네트워크 게시물을 보여줬다. 
    요약하자면 이런 내용이었다.
    A. 너 말 많아서 애들이 죄다 피해 다닌다. 알고 있지?
    B. 그런데 소문이 돌더라. 웬 숙녀와 단둘이, 부쩍 나다니고 즐겁고 행복하니까. 아는 동생들이... 좀 그랬다. 
    C. 그 가운데 대표로 로즈마리가 동영상을 공개. 너랑 그 소피라는 숙녀와 대화하는 영상. 그런데 몇몇 영상에서는 소피 없이 나 혼자 대화...! 가상의 그녀가 앞에 있다는 듯이.
    D. 그런 자료가 하나, 둘, 셋, 넷......!
    난 대체 그것도 모르고 뭘 하고 있었지?
   「뭐야? 그럼 내가 미친 거라고?」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면. 소피가 뭐 귀신이라도 된단 말이야?」
   「흥분하지 말고.」
   「그거도 아니면. 뭐 조작된 영상이란 말이야 뭐야?」
   「빙고~! 그거야. 그거라고.」
   「진짜? 아니 왜?」
   「왜긴 왜겠어. 그걸 남자가 하겠니? 그 가짜를 만든 걸 남자가 뭐하러? 물론 난 동성애 존중. 난 여자를 좋아하고.」
   「그러니까 그걸 누가?」
   「누구긴 누구겠니 여자지.」
   「아 글쎄 아는 동생 누구?」
   「내가 그거까지 다 일러바쳐야겠니? 나 고자질쟁이라고 소문나게? 그럼 늬가 나 책임질래? 내가 왜 너한테 짐짝처럼 안겨야 하는데. 매끈한 그녀가 내게 포근히 안겨도 모자를 판에, 어? 뭐가 어쩌고 어째?」
   「어허 침착해. 침착하라고.」
    그런데 참 이상한 게 뭐냐면, 그 시점부터 소피와 연락이 닫질 않는다는 거였다. 
    어떻게 된 거지? 





    14

    포만 상태로 단식에 대해 설교하기는 쉽다. 배부른 늑대가 굶주린 하이에나 적 생각, 하긴 하는데 내 일이 아니라 남 일일 뿐. 그래서 포식자 챔피언의 식탐은 지명 방어전을 꿈꾸는 것일까? 꿈은 무슨. 그럼 굶주릴 대로 굶주린 하이에나일 것이냐, 아니면 배부른 늑대이자 새침한 돼지일 것이냐. 그것이 문제일까? 문제는 무슨 개뼉다귀 같은 문제. 재미 하나도 없는 공상. 왜 하필 아침부터 공상? (절레절레). 언제까지 저리 비켜, 가, 꺼져, 닥쳐, 조용히 해, 조용히 해, 시끄러워, 꼴배기 싫어, 싫증나, 지겨워, 짜증나, (저속한 표현으로) 아 뚜껑 열려 아아 열나 빡쳐... 같은 투정만 일삼나. 어리광 지겹지도 않나. 우물쭈물하지 말고 행동. 우리는, 어? 행동. 그래서 성과. 응? 남자는 집에 있으면 안 된다. 우리는 밖으로 나가야 한다. 그런데 오라는 데가 있나? 없으면 어떤가. 세상일이란 게 그렇다. 상인도 손해 볼 때가 있단 말이다. 이런 날도 있고 저런 때도 있고. 일 년에 한 번은 미친 짓을 해도 괜찮다. 그럼 그날이 오늘? 아니다. 액면은 비리비리 배짱은 조마조마 지갑도 간당간당. 일하기에 대한 심지도 빼빼 말랐고. 놀기에 대한 의욕도 흐지부지. 그렇다고 말하기 좋아하는 성미도 아니고. 남 생각 안 하고 막 나댈 수도 없고. 나대기도 싫고. 나서기 좋아하는 거 특히 인상 쓰시는 분들 적지 않으니까. 어쨌든 할 말도 떨어졌고. 그 대신 탐욕만 탐욕만 왕창? (몸짓) (손짓) (표정)! 세상에 공짜는 없다. 썩 괜찮은 방도가 없다면 일단 관망. 인생이 뻔트였는데 섣불리 또 뻔트를 댈 수는 없는 것. 광고에서 사랑해요, 인공지능은 놀아줘요, 브랜드 슬로건으로 행복하자, 노래에서 내 꺼-하자? 다 뻥. 개 뻥. 대체로 뻥. 사랑은 없어. 화면 중간에 꼬마가 제자리걸음하면 세상만사가 거기에 최적화되어 움직이는 3인칭 같은 1인칭 게임. 또 신부들러리 언제나 병풍? 다 물건 팔아먹으려고 수작 부리는 일. 다 꼬셔서 병풍 만드는 일. 나중 대체로 후회. 꽤 많이 실망. 죄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 안 그런가?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자인데 뭔 고양이, 쥐 생각? 그러니까 왜 갑자기 남 입장을 챙기냐 그거지. 그게 다 꿍꿍이가 있다는 뜻. 
    그래서 나는 색다른 취미생활이고 자시고. 조지 프레드릭 헨델의 소나타 거 뭐야. HWV379를 들으면서 일이나 하기로 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으니까. 막살자라는 별명의 웨이터를 만나면 부담스러우니까. 그럼 난 최선을 다해 살란 말 아니냐고. 오빠 달려? 그만 좀 달리고 쉬자. 놀자. 뭐 술집 이름이 건전한 술집? 그럼 딴 술집은 죄다 불건전한 술집이란 말이야 뭐야. 투덜거려봐야 입만 아프고. 시끄러운 시내에 가 봐야 재미도 없으니 일이나 하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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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 ─ 158

from 소설 2019. 10. 14. 18:47

    1

    여자의 수줍음은 낮은 비용이자 높은 가치. 한마디로 순수 아니면 교태. 타고난 애교? 물론 단일하면 사랑이고 공평하면 여자의 판타지에 불과. 여자는 내 연애사 전적은 낮추고, 뒷담화는 키우고. 여자에게 내 비밀은 지키고 싶고, 남 비밀은 키우는 게 지극히 타당한 것. (꼭 그래야 한단 말이 아니라 아무튼). 그 합리적 이치를 게을리하면 여자 세계에서 인기 없음. 여자의 우정이 뭐 별건가? 바텐더 관점으로만 봐도 딱 그렇다. 남자는 내 과시에 내 자랑과 내 뽐냄이 먼저고, 친구 단점을 꺼내지 않는 게 불문율이자, 녀석이 자기 비밀을 꺼내지 않는 이상 내가 그걸 지켜줘야 하는 것. 반면 여자는? 친하면 친할수록 친구 단점 까고 험담하고, 친한 친구끼리 적당히 자학 가학 피학, 안 친하면 안 친할수록 겸손 겸손 겸손 칭찬 칭찬 칭찬! 아니면 같이 죽자? 아무말 대잔치 또는 수다 대회. 보이면 보이는 대로 다 깎아내리는 게 코메디면 좋고. 그게 아니라 다른 장르면 괴롭고. 딱 봐도 <할 말 없음>이 차라리 나아 보이는데, 굳이 <할 말 없어도 억지로 만드는 소음 제조기>도 흔하디 흔한 오락산업. 어쨌든 남녀의 차이에 앞서 여자의 특징이 그렇다. 숙녀에 관한 격언은 또 있다. 많다. 엄청 많다. 끝이 없다. 15? 16세기 던가 부르데유 남작의 셋째 아들이 아마 그랬다지? 오래된 화덕이 새 화덕보다 더 쉽게 덥혀진다나 뭐라나. 뭐라고? 구식 탱탱 묵은 속담은 사람 사는 어디나 마찬가지. 여자와 북어는 이틀에 한 번... 쉿! 정말로 꼭 그렇단 말이 아니라. 그렇듯 여자에 관한 속담은 차고 넘친다. 이를 테면 폴란드. 여자는 인생에서 두 번 미친다, 사랑할 때와 흰머리가 나기 시작할 때. 포르투갈. 여자와 양은 해가 지기 전에 집에 들어가야 한다. 독일. 개로 토끼를 잡고, 칭찬으로 어리석은 자를 잡고, 금으로 여자를 차지한다. 프랑스. 빈방은 여자를 미치게 만든다. 독일. 여자들은 입 속에 칼을 숨기고 있다, 이 때문에 여자들의 칼집을 때려야 한다. 러시아. 여자는 긴 머리를 가지고 있고, 그보다 더 긴 혀를 가지고 있다. 뜨아~! 여자가 그렇다고? 그걸 모르는 사람이 어딨겠나. 그게 그러니까 좋게 보면 미스터리요 나쁘게 보면, 통과. 그럼 남자는? 말을 말자. 내가 말을 말어야지. 그러다 날 새겠다. 
    귀에 걸면 귀걸이요 코에 걸면 코걸이이듯. 세상만사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생각하느냐에 따른 것. 나쁘게 보면 한없이 나쁘고, 단물 빠진 풍선껌이 있는 반면. 몇몇 궤변과 다변과 조롱 등 유머와 지식과 인정을 동반하면 좋은데. 그와 달리 그저 말의 정량과 비꼬기만 남은 '말 많음'의 결과는 착찹함. 아니면 시간 낭비. 보통 기 빨림. 정력 낭비. 또는 기분 더러워짐. 따지고 보면 이렇듯 뜸들이는 식 말꼬리 물고 늘어지기 화법도 알고 보면 그런 것. <들었어요? 내가 어디서 들었는데 오빠~>라는 여자의 화법에 맞서, <내가 어디서 읽었는데, 내가 알기로, 내가 분석하기에는, 내가 봤을 때, 내가 보기에>처럼 '안 듣고 내 말만 하기' 화술에 지나지 않음.
    너무 길다고? 단언컨대 생트집 잡기 화법. 농담이고. 가려운 데 간질간질 긁어주고 딸랑딸랑 반짝반짝 뿌잉뿌잉 우쭐감 격상시켜 넘어가면, 그다음 인생사는 각자 알아서. 쓰면 뱉고 달면 삼키는 건 자연스러운 본능인데. 써도 달콤한 듯 연기력 끝내주는 포커페이스. 후덜덜한 립서비스. 변심도 기본이고. 인생도 쉽지 않고. 세상 역시나 결코 만만치 않은 것. 속고 당하고 세속적인 표현으로 빨대 꽂고. 벗겨먹고 돌려 깎고 친구 단점을 칭찬하고. 발전하면 들었다 놨다 쥐락펴락. 그럼 밀려졌다 당겨졌다 들려졌다 놔졌다 하는 사람 입장은? 장황한 서론은 이쯤 줄이고 곧장 본론으로 들어가자. 
    그런데 이 얘기를 대체 왜 했냐. 왜냐하면 NB는 칼럼 관련하여 몇몇 익숙한 얘기를 되새기고 있던 찰나 한 여자를 만났기 때문. 노트북에 이거저거 쓰면서 어젯밤 뒤숭숭한 꿈 얘기도 기억하면서. 그렇게 그는 아는 동생 로즈마리를 만났다. 그렇지만 뭐랄까 그 시점이 약간 삐딱하다고나 할까? 하필 여자에 관한 명언을 보자마자 정성스럽게 화장한 그녀의 모습. 아름답긴 아름다운데... 오 소름! 그는 그녀를 보기도 전에 기 빨렸고, 보자마자 주늑들어버렸다. 먼저 꿇리고 시작하는 심정? 그러든가 말든가. 





    2

    카페에서 NB와 로즈마리.
   「오빠 나 왜 좋아해?」 
   「나? 내가 너를? (딱) 나는 너를... 남자로서 어떻게 너처럼 아름다운 숙녀를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니?」
   「어머 웬일이래! 이 오빠가 장난을 멜로드라마로 받네. 입에 침이나 바르고 거짓말해. 응? 이러니까 이러니까...! 내가 예상한 대답은 그거였는데.」
   「그게 뭔데?」
   「난 널 좋아하지 않아. 아니. 좋아하지 않았어. 아닌가? 내가 널 왜 좋아한다고 미리 정하고 들어오는 거니? 그도 아님 어제까진 좋아했다?」
   「아 그걸 원했어? 나 여자친구 없어도 돼. 필요 없어. 관심도 없다고.」
   「아니. 그게 아니라. 오빤 어떻게 중간이 없냐!」
   「농담이야. 진짜. 정말로. 실망한 거 아니지?」
   「그건 그거고. 뭐 그렇다 치고. 용건만 말하자. 요점만 간단히. 그런데 오빠 나 왜 만나자고 했어?」
   「내가? 널? 내가 너와 뭔 할 말이 있다고? 너가 먼저 만나자고 했는데!」
   「그래? 그럴 수도 있지 뭘 그래. 어? 뭘 그렇게 정색하는데? 왜, 내가 질색이야? 그래? 바른대로 말해. 어? 말 안 해? 할 거야 말 꺼야, 어?」
   「뭘 말하라고 그러는 거니?」
   「나 좋아한다며?」
   「오빠는 그냥 여자의 판타지, 그게 그러니까 말이지. 응. 너의 그 사랑의 차트에서 난 한 5등 8등 정도만 하면 안 되겠니? 부담스럽게 내가 어떻게 순위권에! 아니 어찌 내가 감히! 응? 주전은 욕심이고 그냥 벤치멤버? 아님 2군? 팬은 어떨까.」
   「그렇게 날 놀릴 꺼면 차라리 가슴 커지는 운동이나 전수해주시지 그래!」
   「삐졌니? 넌 삐져도 이뻐. 넌 그게 매력이거든.」
   「하여튼 말을 말던가. 이 오빠가 가만 보니 날 들었다 놨다 쥐락펴락하네. 응? 웬만치 밀고 당기셔.」
   「아니야. 그게 아니라고. 난 옷 벗어도 볼 거 하나도 없어. 난 여자들이 환장하는 그런 남자가 전혀 아니라고. 응?」
   「아니긴 뭐가 아니야.」
   「문제는 내가 아니고 너야. 난 그냥 허당 넌 여신.」
   「뭐가 어쩌고 어째? 그러지 말고. 나 하나만 묻자 오빠. 난 왜 남자가 없을까? 왜 내 남자친구는 아직이냐 그거지.」
   「왜냐고? 한마디로 정리해줄게. 단언컨대, 남자들 눈이 삐인 거지. 너처럼 보면 볼수록 고혹적인 여자를 몰라본다는 게 그게 말이 되니? 응? 보자마자 첫눈에 반해야 정산인데. 네가 봐도 그렇지? 그렇다니까. 참 나 흥!」
   「아 나 이거 증말 (몸짓) (표정) (눈빛)! 오빠. 그만 좀 밀고 당겨, 어? 나 진지한 거 안 보여? 진짜라니까. 가식 말고 솔직히. 응? 이렇게 차분히 말하잖아. 누가? 내가! 응?」
   「그...래? 그럼 진짜로 말해도 돼?」
   「그럼 말 안 할려고 했니?」
   「할게. 할 거야. 하면 되잖아. 누가 안 한데? 어?」
   「OK~! 자, 들어봅시다.」
   「일단 성격은 운명. 여자의 천성을 A부터 Z까지라고 대충 구분하고 널 A라고 보자면. 응? 그건 말이지 뭐랄까, 음... 그게 그러니까 말이지. 가만 보자. 음 기왕 상담을 시작하긴 했는데. 난 복채 그런 거 바라지 않아. 내가 왜! 난 돌팔이 관상가도 아니고 싸구려 별자리운 주술사도 아니야. 내가 무슨 운수머신이니? 난 아니야. 난 그런 거 관심없어. 」
    그러자 그녀는 일기장 1권이 들어있을 만한, 포장이 이쁜 선물을 내밀었다. 
    어머 리본 봐라. 어쩜! 나중 집에 가서 열어보기로 하고. 쓱 챙겨서 탁자에서 내려놓고. 
   「자, 한번 시작해볼까? 그게 그러니까 말이지, 음, 뭐랄까. 당사자 인생을 당사자가 사는 거지 뭐, 내가 이래라 저렇다 하면 그게 그렇게 되겠니. 말도 안 되지. 안 그래? 가는 세월 잡을 자 없어. 살다 보면 말이지 커다란 걸림돌이 있을 수도 있고, 어? 파괴하기 어려운 환상도 만나고. 그러다 사랑도 하고, 어? 뭐 사랑? 재물운이 그렇다잖니. 쫓으면 달아나고 심하게 집착하지 않았더니 운수가 트이더라는 성공담. 들어봤지? 마치 돈처럼. 사랑도 비슷하잖아. 막 달아올라서 찾고 고르며 어장관리하다 보면 실속이 없고. 신나게 돌아다니면서 이 남자 저 남자 물색해봐야, 어? 그래 봐야 그놈이 그놈! 반면 친구 중에 언년은 타석에 들어설 생각조차 안 하더니 어느 날 갑자기 한 방에 홈런치고. 난 타석만 타석만 날이면 날마다 들어섰는데. 비교되는 거지. 응? 흡사 돈처럼! 걘 자본의 주인이요 난 돈의 노예일까? 사석에서 하는 말들이 뭐니. 그거 조금만 과장하면 연예 상담 프로그램에서 흔히 말하잖니. 꽃에는 나비가 모이고 응가엔 똥파리가 꼬인다나 뭐래나. 들어봤지? 그럴 거야. 그럼 또 나름 고를 만한 위치에 계신 분들이야 웃으실 테고. 배부른 자께서도 씩 웃다 마실 테고. 되는 놈은 되고 안 되는 놈은 안 된다, 라는 말이 뭔지 잘 아시는 2군 3군은 그냥 썩은 미소만. 그런데 형편이든 자존감 하락했든 어쩌든, 7군? 자고로 욕이란 두 가지로 나뉘지. 어떻게? 
    첫째, 듣기 꽤 거북한 욕. 
    둘째, 들어서 즐겁고 기쁘고 재밌는 쌍욕. 
    첫째는 웬만하면 피하고 싶고, 둘째는 들어도 들어도 계속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따금 애청하고 싶고. 안 그래? 적재적소에 딱! 그렇다고 남발하면 가치 하락. 가령 고액 연봉 받아봐야 세금 떼고 뭐 쓰고 어쩌고저쩌고 하면 남는 거 별로 없다는 푸념. 그거 듣고서 아르바이트 인생 왈, 속된 말로 지랄염병 얼어죽을 어쩌고저쩌고. 그처럼 꽃에 똥파리가 꼬이기도 하고, 꿀벌이 선녀 만나지 말란 법도 없다 이러쿵저러쿵. 연애운이자 연애상담 이성 소개도 다 사람과 관중 봐 가면서 해야 하는 것. 안 그럼 그분들 광분하기 딱 좋으니까.」
   「아 나 이 인간 또 시작이네. 말 더럽게 길어지는구먼 그래.」
   「너랑 나랑 아무리 친하다지만 혼잣말이 너무 크지 않았니?」
    그러자 그녀는 카드를 한 장 꺼내놓았다.
   「그거 1장 들어있어. 신용카드 아니고. 커피 100잔 마실 수 있어. 골드니 플래티넘이니 VVVIP니 그런 거 아니니까 오해하지 말고. 커피 마시는 거 말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카드다 그거지. 설마... 카드깡 생각하는 거 아니지? 오빠 그 정도는 아니지? 아무튼 오다 주웠어. 아니, 누가 줬단 말이야. 난 필요없어서 주는 거야. 오빠 가져. 실은 내가 오빠 주려고 산 거야. 왜, 싫어? 싫으면...」
   「누가 싫데? 얘가 얘가...!」
    NB는 커피카드를 슥~하니 챙겼다. 
   「솔직히 말해도 돼?」
   「그럼 가식적으로 말할라 그랬니? 오빠 위선자구나. 지금 착한 척해야 하는지 까고 말해야 하는지, 구분 안돼? 분간 못해? 하게 해 줘? 해 말어? 어?」
   「아 거 참 나 증말. 너 무섭게 왜 그래? 그렇게 쳐다보지 마. 떨려. 남자 설렌다고. 응? 그런 눈빛 웬만한 남자들이 감당하겠니? 어? 너 같으면, 어? 늬가 남자라면 그런 여자를 어찌...」
   「야~!」
   「샤우트 창법은 여전하네. 고막 터지는 줄 알았다 얘. 나 잘 들려. 귀 안 먹었다고.」
   「뜸 그만 들여. 본론도 됐고. 결론만 말해. 딱 결론만.」
   「알았어. 너가 하라는 대로 할게. 그럼 되지?」
   「묻지 말고.」
    한 호흡에 시원하게 지를 긴 대사가 이어질 테니 문단을 띄어서 가자. 





    3

   「알았어. OK! 아까 어디까지 말했더라? 아 그거. 여자 성격 A~Z에서 너는 어떤 타입이냐. 넌 주관 굳세고, 성격 더 세고, 강단 있고, 뭐든지 똑 부러지는 똑순이에, 남자 보는 눈이 어디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숙녀. 맞지? 늬 성미 누가 말리니. 묻지 마 얘. 알 거 다 아는 사람들끼리 우리 응석부리지 말자고. 응? 내가 널 모르니. 내가 제대로 봤어 안 봤어! 아 묻지 말랬지. 그래 안 물을께. 그럼 되잖아. 그래. 너 남자 만날 때 극장에서 영화 보는 거 싫어하지? 애인이라면 몰라도 아직 썸도 탈까 말까 모르는 사이인데 영화? 영화? 싫지? 짜증나지? 내가 널 모르니! 너 사귀는 애인이랑은 모르지만, 일단 애인을 만들지 않고. 썸타는 남자라고 해 봐야, 5년에 달랑 1명? 최근 10년 동안 소개팅한 남자랑 극장에 딱 1번 가 봤지? 그치? 넌 처음 보든 어쩌든 싫은 건 대놓고 싫다고 지르잖니. 허허. 그리고. 너 화장 시작한 거 고작 20대 초반부터지? 그러니까 대충 23살? 10대 땐 그냥 항상 맨얼굴이었지? 20대 초반에 화장 시작할 때나 지금이나, 너 솔직히 속눈썹 몇 번이나 붙여봤어? 그렇다고, 내가 왜 너한테 잘 보이려고 화장을 해야 하는데! ~라고는 말하지 말아주세요. 네. 그러는 걸로.
    말하자면 말이야 넌 그래. 여자가 남자보다 비교적 말이 많은 게 사실. 여자들도 입 무거운 여자와 수다쟁이로 나뉘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말수 적당한 여자도 나이와 비례해서 말이 느는 법. 통계적으로 다 늘어. 몸무게, 늘지? 나이와 주름살도 비례하고. 재산? 늘면 좋고. 연애사 전적? 늘어도 좋을 수도 있고, 나중 책 잡힐 과거일지도 모르고. 심도 깊은 연애론으로 넘어가지 말고. 그래, 관건은 말수. 주제는 말수라고. 말수 일정량 이상 확보된 분들도 다 구분돼. 딱 돼. 
    첫째, 그냥 단순히 말만 많냐. (일반인과 여자와 아줌마 태반)
    둘째, 말을 조리 있게 세부적으로 다듬어 잘하려고 하는 유형. (듣다 보면 피곤. 타율 낮음. 아나운서와 연예인 태반. 그러니까 일부는 사석에서 재밌고 실전에서 재미없음. 그렇다고 막말이 먹히면 좋은데, 재미없는 사람이 말만 많으면 다 편집. 주변 사람들 다 개 피곤)
    셋째, 했던 얘기 하고 또 하고 또 하는 주사 부류냐. (사귀어도 버티다 버티다 다 나가떨어짐)
    넷째, 뻔한 얘기 입바른 소리만 조곤조곤 길게 길게 길게. (그러게 내가 말 걸지 말라 그랬지~, 본인이 그걸 모를 리가! 즐기니까 피함. 그런데 그분들만 모아놓으면 소 닭 보듯 닭 소 보듯. 아님 다큐멘터리식 서열 정리) 
    다섯째, 말을 잘함. 완급조절. 치고 빠지기는 됨. 그런데 험담가이자 남의 말 잘 안 들음. 툭하면 남의 말 끊음. 말 뺐음. 분위기 흐림. 내 자랑만 왕창. 
    여섯째, 말을 잘함. 완급조절. 치고 빠지기는 됨. 그런데 친해지고 듣다 보면 피곤함. 많이 피곤. 
    일곱째 이상, 말을 잘함. 호감 비호감 기피 재수 없음 꼴 보기 싫음 바람잡이 약장수 기타 등등. 
    여기서 넌 6번. 말을 잘하는데 그건 좋아. 친하기 때문에 말의 양으로 승부하는 건 뭐 우정이라고 쳐도. 그 흥 때문에 난 기 빨린다 너~! 응? 웃자고 한 얘기야. 뭘 눈 똥그랗게 뜨고 듣니. 좌우지간, 여자 세계에서 말 많기로 넌 1퍼센트. 그래 안 그래? 말이 통하고 어쩌고 분위기 따지고 기분 퉁 쳐서 어떻다, 그런 거 빼고. 겪어보니 너 말 엄청 많아. 어? 너 말 완전 많아. 내 귀 만두귀 된 거 다 너 때문이야. 알아? 농담이고. 여자 100명 가운데 1등. 여자 1000명이면 탑 10에 들 테고. 맞지? 내 눈을 어찌 속이니. 단순히 입이 트일 때만, 맘이 맞을 때만 말 많은 여자가 대체로 보통인데. 물론 너도 그래. 그런데 말이야 내가 널 각별히 아끼는 동생이니까 다 이런 얘기를 해주는 거지, 내가 이런 말을 내 여자한테? 잔소리 얻어듣기 딱 좋은 얘기지. 그럼. 그렇고 말고.」
   「오빠. 맞고 싶어? (어금니 꽉 아니 반틈만 깨문 어조로) 좋은 말로 할 때 결론만 말해라.」
   「YES! 남자 말고 친구랑 극장 가면 너 제일 앞자리에서 보지? 중간에 앉으면 어쩌다 우산 끝이 등판에 톡 부딪히는 소리에다 냄새에 소음에 어쩌고저쩌고. 그게 싫으니까 제일 앞자리. 친구들이랑 클럽 놀러가는 거도 별로고. 나이트클럽에서 즉석만남 하는 거 짜증 나고. 그런데 말 많이 하기 대회에서 1등감이고. 그런 여자는 둘로 나뉘지. 
    첫째, 연애 도사.
    둘째, 타율 고집녀. 
    첫째는 만나는 남자들이 버티다 버티다 끝끝내 못 버티고 나가떨어지는 게 대부분이고. 둘째는 일단 기준선이 높아서 만나지를 않고. 만날 수가 없고. 백마 탄 왕자님이 어디 그리 흔하니? 그럼 둘째는 나중 어쩐다? 대체로 결혼 늦게 하는 거지. 적당히 타협해서 일찍 한다? 여자는 한 방에 넘어가지만, 나중 자기 발등을 찍고 싶을 테고. 살아봐. 안 그럴 수 있나. 응? 그리고 또. 둘째도 많이 나뉘지. 왜 아니겠니? 연예인 A의 기럭지와 B의 얼굴과 C의 성격에다 D의 지성까지 겸비한 남자를 바라지. 그럼 뭘 해! 어? 그럼 뭘 하냐고. 말을 말어야지 말을. 어? 둘째가 좋아하는 남자란 쉽게 말해 지적인 남자. 달리 말하자면 뇌가 섹시한 남자. 어? 웬만한 여자들이 도저히 싫어할 수 없는 그 뭐냐, 그래, 말이 통하는 남자. 어? 뭘 좀 아는 남자. 그런데 그분은 어디로 가셨을까 (절레절레). 컴퓨터 파일 복사하듯 막 찍어낼 수도 없고. 과장법이 특기인 인공지능은 만질 수 없고. (절레절레) 아무튼, 
    나중 알게 될 거야. 왜, 언니들이 뭘 몰라? 주변 친구들이 다 허당이야? 그래? 그래도 뭐 나중 살아보면 알게 되겠지. 밤이 아니라 아침에 샤워하는 스타일 남자? 살아보라니까. 와우 대박! 돌아버리는 거지. 미쳐버린다고. 응? 또 있다. 청결한 노포는 잘 모르겠는데 일단 손을 안 씻어. 손만 안 씻으면 다행이게? 평소에 샤워를 잘 안 하는 건 또 뭐니. 상담해보면 성장기에 뭘 보고 인상적이었다는 트라우마가 있다는데 그거 다 오버야. 진짜도 있긴 한데 귀찮음 반 뻥 반. 일단 변명. 사랑은 식고. 핑계가 좋지. 또 있어. TV 켜놓고 자는 남자. (절레절레). 아빠 안 잔다! 살아 봐. 오빠 자? 자긴 누가 자! 어? 또 있다. 쩝쩝쩝 쩝쩝쩝쩝 쩝쩝쩝! (절레절레). 또 있다. 킁킁 킁킁킁킁 킁킁 툭하면 킁 심심하면 킁킁 꼬박꼬박 킁! (절레절레). 그런데 천사표? 돈을 못 벌어. 더럽게 가난해. 그나마 괜찮다? 얼굴이... 말 말자. 아님 짠돌이? 드디어, 어? 마침내 가까스로 성격 좋은 남자를 찾았어. 그렇다고 쳐. 어? 그런데 동성애자. 뭘 좀 아는 남자? 딴년이 진작 채가지 어디 그 물건을 가만 놔두겠니. 물어가도 진작 물어가지. 그도 아니면 지적이면 만사 OK? 그래~ 착한 남자. 착한 게 왜 싫겠니. 그래 봤자 눌변. 말 유달리 잘할 필요까진 없는데. 달변이면 오히려 바람피우기 딱 좋지 않을까? 아무튼 눌변 그 특유의 화법과 40년 50년 사신 여인의 말씀을 들어보고 싶지 않니? 그렇다고 뭐 TV에 나오는 스타 쉐프? 스타 쉐프가 집에서도 자상하고 집에서도 요리하는 걸 좋아할까? 여자 요리사가 그럴 수 있는데, 간식까지 꼬박꼬박 먹기만 하고 치우지 않는 남편. 얼마나 꼴 보기 싫겠니. 식사 차려주고 간식 갖다 바치고. 그 일 30년 해 봐 봐. 여자 요리사 돌아버리는 거지. 그런데 남편이 바람까지 피워? 미쳐버린다고요. 어? 일단 요리사? 저녁 늦게까지 일해. 그래서 사석에서 여자들 말하기로 완전 싫데. 낮에 일하고 주말에 쉬는 남자를 만나래. 그럼 뭘 해. 무능력 무지 무심하면 어떡하니? 여자들이 트집 잡을 수 없는 직업이, 과연, 이 세상에 있니? 도대체 그녀들의 마음을 어떻게 만족시켜 줄 수 있는데. 어? 여자는 0과 1 사이 그 어느 언저리에서 왔다 갔다 하는 변덕이 지극히 정상일뿐. 완전한 만족과 0과 1처럼 딱 떨어질 순 없는 것. 단지 불만족은 뭐 흔하고. 아무리 좋아도 표현은 낮춰서, 괜찮다 나쁘지 않다 뭐 그럭저럭 그러려니. 응? 그렇다고 진짜로 괜찮은 줄 알면 큰코다치고. 그치? 그렇지? 다시 남자 얘기로. 다정한 남자를 좋아한다고? 다정한데 멍청해. 뭐 뇌가 섹시한 남자이자 여자 말 잘 들어주고, 푸근한 곰돌이 같은 외모까지 그녀 마음에 딱 맞는데. 알고 봤더니 글쎄 (여자는 마라톤을 바라는데) 100미터 스프린터! 전희? 없어. 후희? 짜증나. 마빡에 애무남이라고 써붙인 듯 광고하고 다녔는데 알고 봤더니 (절레절레) 말을 말자 말을 말어.」  
   「」
   「OK~ 결론. 요약하자면 그 둘째 스타일은 0.5를 바래. 그런데 없어. 만나보니 죄다 개 소 말 돼지 너구리 딱따구리 벌새 꿀벌 꾀꼬리 오소리 두더쥐. 응? (딱 이치와 원리!) 남자를 혐오하고 깎아내리고자 하는 말이 아니라, 그녀 개인 입장으로 사석에서 단짝과 나누는 언변에 근거하여 말하자면 그렇다는 것. 뭐 아무튼. 그래서 대충 1.0을 골라. 그랬다고 가정해 봐 봐. 그런데 그 남자는 연애 생각 없지. 그래서 나중 어쩌다 1.5에 적당히 넘어가. 그런데 돈이 없기 때문에 차거나 남자한테 차여. 그래서 뭐 나중 2.0과 결혼했다고 쳐. 해피엔딩 예시는 빼고 말이야. 그런데 나중 알고 봤더니 2.0은 뭐더라? 보면 볼수록, 알면 알수록 그렇지 2.5 3.5...... 푸~ 푸~ 푸~! 마침내 숨 쉬는 소리조차 싫어지는 거지. 왜 입으로 숨 쉬냐 코로 쉼 쉬라 그거라고. 아예 날 피해 다녀라, 어? 하여간에 남녀는 말을 섞으면 섞을수록... 에잇! 연애할 때 맞춰주고 어쩌고 다 뻥 개 뻥 몽땅 뻥. 사냥감을 사랑한다는 건 사냥이 좋다는 얘기. 그럼 사냥 1번만 하게? 너 그거 알아 둬. 알아서 손해 볼 건 없다 얘. 포도의 맛은 따먹어봐야 안단 말이야. 응? 그런데 바람기 없는 여자랑 여자의 판타지에 미련이 남은 여자가 만나면 어떡하지? 양들이 미치면 늑대들보다 더 고약하다는데! 첫 번째 죄는 두 번째 죄가 누울 침대를 마련하는 것. 왠지 모르겠는데 시내에 귀걸이 전문 특판점이 생긴 게 어쩐지 마음에 걸린단 말이야. 그야 남의 일이고. 개는 눈을 기뻐하고, 말은 바람을 기뻐한다지. 그럼 난 무엇에 흥미를 보이지? 내가 언제까지 요조숙녀들 연애 상담이나 해 주고. 칼럼 써서 품위 유지비 챙기고. 돈 떨어지면 환상소설 나부랭이나 쓰고 이처럼 재미없게 살아야 하냐고. 어? 그야 어떻든 인생이란 각자도생. 그러니 제각기 자신의 코를 닦게 하자. 손 안 대고 코푸는 일도 재미없고. 무엇보다, 뭐 사랑? 과유불급! 코를 너무 심하게 풀면 코피가 난다네 여인이여. 네?」
   「하여튼 이 인간이 한다는 소리가, 뭐. 뭐가 어쩌고 어째? 넌 잘해줄래야 잘해줄 수가 없어. 알아? 아휴 이걸 콱 그냥. 오빠 한동안 나한테 연락하지 마라. 알았어? 알았어 몰랐어?」
   「얘 로즈마리. 그냥 가면 어떡해? 너도 할 말 있을 거 아니야. 어?
    도대체 어느 지점에서 삐진 거니? 어? 속 시원하게 말을 해줘야 알 거 아니니. 응? 
    1.2? 
    1.7?
    0.8은 어때?」
    차가운 뒷모습을 남긴 채 로즈마리는 휑하니 가버렸다. 
    그날 로즈라리와 헤어진 다음 퇴근하며 그는 단골 바에 들렸다. 
    거기서 칵테일 한 잔 마신 걸 아까 받은 커피카드로 계산하려는데. (커피카드가 사용 가능한 협약 지점임)
   「손님. 잔액부족인데요. 혹시......」
    뭐라고? 설마 (개)털린 노름꾼의 심정이 이런 기분일까. 아니면 면박당하고 망신살 뻗친 승부사? 그도 아니면 탕진할 뭐라도 있는, 왕년에 어쩌고저쩌고 얘기를 일삼는 방탕아의 마음? 아! 아아 맞다. 커피카드 그거 커피 몇 잔 마시면 없어지는 거.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준 거야 고맙다 쳐도 뭐 잘못 줬을 수도 있고. 그와 별개로 선물이 있었다. 로즈마리가 정성스럽게 포장한 선물. 왜 이걸 아직까지 안 뜯어봤지?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기대감을 부풀렸다. 





    4

    자신을 쥐로 만들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고양이가 너를 잡아먹을 것이다. 무슨 뜻이지? 자기 비하는 장난이자 농담으로, 보통은 자존감 적절한 게 좋다는 말. 게임판 돌아가는 분위기 읽고, 상대방 속내와 내 판돈도 따지고. 허세가 재밌게 들쑥날쑥하면 듣기도 즐거운데, 재미없게 허세 지수만 높으면 옆에서 불편하기 마련. 허영심도 다 마찬가지고. 다른 말도 있다. 자신을 새끼양으로 만들라, 그러면 늑대가 그대를 먹을 것이다. 그렇다고 타인을 모두 깔아뭉개고 친구 단점을 칭찬하란 말이 아니고. 자존심, 자신감, 자만심, 자제력, 줏대, 주관, 자아에 관한 속담은 또 있다. 순한 양은 모든 새끼 양에게 젖을 빨린다. 얕잡아 보이면 손해 보기 딱 좋은 세상. 헛다리 짚기, 헛스윙, 개 발로써 실패와 포기를 얼마나 많고 멋지게 하느냐. 어쩌면 그것과 성공은 비례할 수도 있는데. 그런 반면 행복은 계속 도망 다닐지도 모를 일. 물론 야심 찬 모험과 기발한 포부가 썩 크지 않다면 돈독한 친근감과 소소한 행복감에 적당히 대충 만족하면 그뿐. 
    ~라는 얘기를 명쾌히 줄이거나, 탁월한 카피라이트처럼 말하지 못하면 주변에 금세 소문난다. 다변가 아니면 꼰대라고. 그도 아니면 험담가라는 별칭이 자연스럽게 굳어지는 것. NB는 그런 말을 하기도, 듣기도, 쓰기도 어줍잖았기 때문에 당근과 채찍의 의미로 스스로 선물을 주기로 했다. 미스테리아 편집장 마라와 여성환상 1.5 편집장 사라. 그녀들에게 조언과 충고를 바라면 바라는 대로 족족 그 잔소리는 무한할 테니. 그러므로 떳떳이 제 힘으로 정당히 번 품위 유지비로, 스스로에게 선물을 선사하기로 했다. 그래? 뭐야 그거! 그냥 검소한 사재기 아니면 사치스러운 과소비잖아? 그러니까. 그냥 사고 싶은 거 사면 되지 뭘 그렇게 몇 푼 쓰면서 유난을 떠나. 누가 아니래! 
    그런데 NB는 과연 무엇을 샀느냐. 하면 가지고 싶은 게 없었다. 설마 너무 많기 때문에? 많든 적든 가져봐야 어차피 금방 싫증날 꺼 뻔함. 결국 마음 뜸. 뻔해. 그래서 차라리 처음부터 없는 게 속편 하다. 뭔지 몰라도 있어봐야 귀찮기 밖에 더하나. 그렇다고 그가 욕망이 없단 말이 아니라. 뭔가가 부실하단 뜻도 아니고. 그렇지만 개는 뼈다귀 꿈만 꾼다는데, 그럼 그는? 무슨 개뼉다구 같은 농담 하나도 재미없고. 
    그래서 그가 무엇을 하기로 했느냐. 당장 떠오른 물건이 없으니 당연히 탐색했다. 잡지를 탐독하며 뭐가 좋을까 궁리했다. 뜨뜻미지근한 일상과 권태로운 삶에 뭔가 놀라운 해결책을 제공할 그 무언가. 바로 그게 무엇인가를 인터넷에서 탐구했다. 그렇게 딱 결과물을 또렷이 정했냐, 하면 못했다. 늘상 그랬던 것처럼 목적지까지 도착하는 게 아니라, 얼빵한 탐험심은 아니나 다를까 알다가도 모를 마음. 때문에 궁극의 쾌감이라는 목표는 달성될 수 없었다. 모처럼 돈 좀 쓰고 싶다는 데 탐욕이 바닥나다니. 그래서 인공지능 지니에게 물어봤는데 녀석은 대답 없는 요정. 그러다 아하~ 하며 신기한 발상이라도 떠오른 듯 꽤 괜찮은 대타가 생각났다. 그건 무엇인고 하니 연애상담의 대가이자, 뜸 들인 공력의 공로? 뽐뿌질을 부추긴 결실이라고 하긴 뭐하지만. 그건 바로 로즈마리의 선물이었다. 왜 그걸 아직까지 뜯어보지 않은 거지? 왜긴 왜겠나. 까먹은 거지. 
    그냥 리본 풀고 후다닥 옷 벗고 샤워실에 들어가듯 선물을 확인하면 재미없지. 묻고 더블로 가, ~라고 하기 전에 도박사가 무엇을 하나. 바닥에 뒤집혀진 패를 두 손으로 조심조심 긴장감을 고조시키면서 0.1밀리미터씩 야금야금 확인하지 않나. (물론 그건 전형적인 하수들 특징. 자세한 얘기는 따로). 그래서 NB는 분위기를 진정시켰다. 지아코모 마이어베어 / 오페라 <디노라> - “그림자의 노래”. 음악을 틀고. 울지 않는 까마귀와 청순한 꽃사슴이 등장하는 명화의 주인이 된 듯한 상상을 하며. 
    그러다 결국 에잇 못 참겠다 그러면서 후다닥 포장지를 뜯었다. 
    그렇게 확인한 내용물이 무엇인가, 그건 선글래스와 Zuzana Ruzickova가 연주한 인벤션과 신포니아 음반이었다. 
    뭐 그런대로, 괜찮네, 빠지지 않아, 나쁘지 않다. ~라는 찬사는 식상하고. 그는 두 가지 기분에 젖어들었다. 
    첫째, 선물은 좋다 선별감도 빠지지 않네, 때문에 흡족하다. 
    둘째, 뭔 의미지? 부담스러운데? 뇌물인가? 표범의 꼬리는 잡지 말라 했는데?
    그 두 가지 감정 사이에서 오락가락. 내가 선물을 받아본 게 언제였더라? 항상 이기적으로 살 궁리만 하고 뭘 받고 어쩌고 이득만 생각하는 인생이 된 것만 같아 착찹하니, 고로 이렇게 바꿔 생각해볼 수도 있다. <내가 선물을 줘본 적은 언제였더라!>. 아니. 아니지. 그게 아니지. 그는 감정이 메말랐어. 따라서  느낌이 말랑말랑 낭만적으로 향할 게 아니라 그는 선물의 의미를 따지지 않을 수 없었다. 선물? 선물이라. 선물! 아일랜드에선 그런다지? 선물은 한숨을 쉬며 받아라 라고. 이탈리아 속담이 빠질 수 있나. 선물로 받은 닭보다 비싼 닭은 없다! 뭐라고? 로즈마리 이년이 날 뭘로 보고?
    그러면서 NB는 씩씩거렸다. 뭔 선물을 주면 준다고 뭐라 그러고, 안 주면 안 준다며 섭섭해하고. 하여튼 그 새에 그 노래구만 그래. 어? 그렇지만 말이야, 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뭐 선물? 선물이란 그런 것. 선물이 또 다른 선물을 부르듯, 암소를 받고자 계란을 주는 것. 꼭 그렇게 기쁘지 않은 쪽으로만 몰아가는 심리. 연구 대상까지는 아니지만. 아마도 그런 영문 때문 아닐까? 한마디로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는다는 것. 뭔 평소에 선물을 주고받고, 호의를 베풀고 호혜를 요구하고. 사교계의 꽃에 익숙하고 안 꾸며도 품격이 묻어나고. 그래야 달랑 선물 하나 가지고 오만 가지 생각이 응큼한 꿍꿍이를 추적하지 않지. 이래가지고서 무슨 숙녀를 만족시키겠다는 것인지. 모르겠고. 아무튼 그게 문제가 아니라. 뭔 소설이 진행이 안 돼 진행이. 무슨 의식의 흐름도 아니고 잔소리만 붙잡고 도대체가 말이야 놔주질 않아. 어? 못 말린다니까 (절레절레)! 
    좌우지간 요약하자면 이렇다. 로즈마리의 선물 개봉. 그래서 확인. 그다음에 의심. 그런데 조그만 쪽지를 발견. 쪽지를 펴보니 거기 씌여진 내용은 이랬음. 
   「오빠. 이거 로보트 오빠한테 전해줘.
    로즈메리의 수줍은 마음을 대신한다고 말해주라고. 알았지?」
    뭐? 이거 무슨 돌려 까기야 뭐야? 매겨? 또? 그냥 귀를 잡고 쭉 당기지 그래? 하여튼 말을 말아야지 말을. 





    5

    마침내 NB는 심부름꾼으로 전락했다. 하다 하다 선물 심부름? 아니 지금 뇌물을 받아도 못 이긴 척 노기를 가라않힐까 말까 그런 찰나에 말이야, 어? 뭐가 어쩌고 어째? 워──워──워! 닥치고 올인은 그냥 영화에 나오는 이야기일 뿐이고. 묻고 더블로 가는 거야 다 현역이자 선수일 때 센 척 신간 편허게 폼잡는 허세일뿐이고. 연애사 전적 따져 과거를 회상하는 듯 손차양을 그려보니, 엑셀 파일로 적고 숫자를 세어보니 999명이더라? 다 뻥이고.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는 맡은 배역에나 집중하자 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쥐는 개가 잡고, 먹기는 고양이가 먹는 격이라지만. 주어진 임무만 완수하면 그만. 다시 그 일 끝내고 막간극 지나 솔깃한 발단과 흥미로운 전개를 준비하면 그뿐.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NB는 로버트를 만났다. 
    그곳은 로버트의 집무실. 
    로버트는 조류학자. 
    요한 쉬트라우스 2세 / 오페레타 <박쥐> - 웃음의 아리아 “친애하는 후작님"
    인사말 생략하고. 동영상 구간 댕기기 했다 치고. 
   「로버트. 너도 이런 음악 듣니?」
   「너도?」
   「뭐가 나도야? 너 나 모르잖아.」
   「내가 널 모른다고 생각하니?」
   「느낌 세하네. 야, 드라마 너무 많이 봤다 너. 얘 시작부터 세게 나오는데?」
   「그럼 소녀감성으로 부드럽게?」
   「우리끼리?」
   「그래. 그건 아니지. 넌 여자 안 좋아하고. 난 여자 좋아하고.」
   「이 자식이...!」
   「진정해 친구. 너 아직도 욱하는 거 못 고쳤니?」
   「내가 언제 욱했다 그래? 나 그런 적 한 번도 없어. 나 원래 그러지 않았단 말이야. 이거 왜 이래? 난 태어나서 화를 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어. 알아?」
   「몰라. 알고 싶지도 않고. 그리고. 왜 이러긴 누가 왜 이래! 그건 그렇고. 용건이 뭐야?」
   「용건? 너 원래 사람이 그렇게 딱딱했니?」
   「어. 나 꽉 막힌 남자야.」
   「너 드라마 많이 보니까 알 거 아니야. 나 그렇게 꽉 막힌 여자 아니다. ~라는 대화는 심심치 않게 보고 들리는데. 늬가 늬 입으로?」
   「그럼 너랑 나랑 간접화법으로 말을 섞어볼까?」
   「그냥 날 때리고 싶다고 말하는 게 어떠니?」
   「아니. 너가 날 꿀밤 때리든 어쩌든. 내가 얻어터지고. 늬가 크게 한턱 쏴라. 난 그걸 원해. 언제까지 내가 너 먹여 살려야 되냐?」
   「친구끼리 생색도 정도껏. 늬가 그러니까 여자가 없는 거야. 날 봐, 어? 날 보라고. 내 발에 채이는 게 여자야 인마. 어? 여자는 너처럼 생색내는 거 (개)싫어해. 알아? 늬가 그래서 안되는 거야. 그러니까 늬가 여자가 없는 거라고.」
   「넌 뭐 얼마나 잘났냐?」
   「나? 야 그런데 이렇게 노는 거 재미없지 않니?」
   「지겹지. 재미없지. 더럽게. 하나도 즐겁지 않다고. 그렇다고 또 그렇게 놀지 않으면 뭔가 떨떠름하니까 안 그럴 수도 없고. 그치?」
   「그렇긴 하지. 그래도 이제 좀 골목대장 놀이 그만 하면 안 되겠니? 우리가 이러니까 큰 물로 진출하지 못하는 거야.」
   「미꾸라지가 큰 물까지 나가서 뭐하게?」
   「내가 아까 뭐랬니? 그러니까 늬가 여자가 없는 거라니까. 넌 스카우터의 감도 없고 해결사로서의 배포도 부족해. ~라고 나는 딱 대놓고 말하지 않잖아. 안 그래?」
   「그래. 너 고래 해라. 난 박쥐 할게. 됐지?」
   「쫌팽이처럼 왜 또 그래? 너 원래 그렇게 소심한 애였니?」
   「그럼 넌 대인배냐?」
   「나? 난 그냥 범인. 보편적인 남자의 마음이라고나 할까?」
   「그래. 내가 소인배인 걸로 하자. 그게 좋겠다. 그래. 나 여자 없어. 됐냐?」
   「삐지기는. 아, 용건 물어봤지? (NB는 선물 받은 CD와 선글라스를 꺼내면서) 로즈메리가 너한테 전해 달래.」
   「」
   「왜? 설마 네가 이걸 그대로 먼저 로즈메리한테 선물했던 거니?」
   「응.」
   「그럼 로즈메리가 무안해서 나한테 심부름시킨 거네? 자기가 되돌려주기 싫으니까.」
   「응.」
   「그럼 넌 차인 거야?」
   「응.」
   「너는 응 밖에 할 줄 모르니?」
   「응.」
   「늬가 뭐 도둑을 보고도 짓지 않는 개야?」
   「」
   「왜 대답을 안 해?」
   「그럼 짓을까?」
   「괜찮아. 내가 딴 여자 소개시켜줄께. 형이 늬 스타일로 딱 맞춰서 다 꼬셔줄게. 됐지? 말만 해. 단지, 말만.」
   「」
   「그나저나 너 많이 겸연쩍겠다.」
   「그걸 말이라고 하니?」
   「안 웃을게. 웃기지도 않다.」
   「그게 더 밉다 너! 그게 더 꼴배기 싫어 인마. 저 마 저 저 점 마 저 좋아하는 거 좀 보소. 아따 그게 더 밉상이라니까, 어? 늬가 시방 내 속을 박박 긁어브냐? 어?」
   「너 흥분하면 꼭 사투리 튀어나오더라. 귀여워.」
   「뭐? 뭐가 어쩌고 어째?」
   「그러지 말고 술이나 한잔 하러 가자. 형이 살게.」
   「뭐 위로주? 그럼 안 살라 그랬냐? 아니지. 설마, 축배의 의미로?」
   「내가 아까 그랬지. 고상한 숙녀 세련된 여인 아름다운 아가씨, 내가 다 꼬셔준다고.」
   「못 꼬시기만 해 봐.」
    애주가 NB와 애연가이자 꼬냑 애호가인 로버트는 그렇게 단골 술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그들은 왠지 오늘 기분이 세했다. 그래서 술집으로 갈 뻔하다가 당구장으로 갔다. 그날 별일은 없었다. 





    6

    사랑이란 낭만적인 바보의 마음을 들쑤시는 숙녀의 허영심 같은 것. 허나 좀처럼 싱그런 기대감에 부응하기 어려운 인생. 그렇게 장밋빛 인생의 행복을 보챘는데, 결과는 알고 봤더니 재산 절반 탕진 같은 낭패? 몸과 마음이 분리된 것만 같은 느낌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무슨 그런 개 풀 뜯어먹는 공상은 그쯤 하면 지겹도록 많이 했네. 더 안 해도 될 만큼. 할 일이라고는 빠듯한 품위유지비 때문에 허리띠를 잔뜩 졸라맬 수밖에 없는 글쟁이 생활. 가만 보니 마라의 달콤한 꾀임에 빠져 최근 칼럼도 거의 무보수로 쓰는 둥 마는 둥. 할 말 없는데 쓸데없는 잔소리를 왕창 얻어듣는 심정 같은 일상. 그는 삶이 더럽게 재미없었다. 철들었기 때문일까? 연어를 잡기 위해서는 피라미를 잃어야 한다는 걸 왜 모르겠나. 그런데 입질은 생미끼만 편애하진 않음. 문제는 그것. 가짜 미끼도 효과 괜찮음. 곧 모든 낚시 미끼를 뜯어먹는 고기는 곧 잡힌다. 호기심 탐구심 흑심과 탐욕 주의. 걸핏하면 생각은 매번 그쪽으로. 어? 됐고. 그는 당장 음악을 껐다. 프란체스코 마리아 베라치니 / 플루트와 바소 콘티누오를 위한 소나타 1번. 
    그래서 그는 친구들이 즐겨 찾는 아지트로 갔다. 
    필름 빨리 돌려서 아지트에 도착했다 치고. 
    아지트에 사람들이 약간 북적대긴 했으나 NB가 아는 사람이라고는 로이 밖에 없었다. 로이? 그 친구와는 편차가 심했다. 즉 재밌게 놀 때 죽이 쩍쩍 잘 맞으면 완전 신나고. 어딘가 모르게 뭔가 궁짝이 안 맞는 날은 영 말이 잘 섞이질 않고. 들쑥날쑥. 그래도 그들의 공통점은 일치했다. 바로, 눈부신 여자친구를 사귀고 싶은 늑대들의 사심. 농담이고. 아무튼 왠지 모르게 로이는 오늘 분위기 엄청 진지하게 폼 잡고서 혼자 바에 앉아 있었다. 뭔가 겉으로 드러나는 정황 증거로 보아하니 그냥 혼자 놔두는 게 좋아 보였다. 그렇지만 그가 누군가. 혼자 놀기는 심심하고. 일하기 싫은데 돌아가기도 그렇고. 그럼 그는 기회주의자이자 황금만능주의자인 것일까. 아님 참 속 편한 양반? 한마디로 바보. 허당. 멍청이. 모지리. 뭔 생선 대가리 같은 놈. 개. 쥐. 말. 새. 닭. 그야 뭔지 몰라도 로이와 대화를 나눠보면 알겠지 뭐. 
   「이게 누구야, 로이 아니야?」
   「왜, 난 여기 오면 안 되니?」
   「누가 안된데? 잘 왔어. 반가워서 그러지.」
   「그런데 늬가 여기 웬일이니?」
   「뭐랄까 여기 오면 어쩐지 널 만날 것만 같은 예감이 날 이곳으로 유인했다고나 할까?」
   「뻥치지 마. 안 속아.」
   「친구. 나 심심해. 지루해. 더럽게 재미없단 말이야.」
   「뭐? 난 더 심심해. 더 더 지루해. 더더욱 엄청나게 재미없어. 알겠니?」
   「나도 알아. 그런데 너 방금 핸드폰으로 자동차 구경했니? 신형 웨건 사려고?」
   「아니 그냥. 그냥 둘러본 거야.」
   「보면 사게 된다잖아. 안 그래? 방앗간에 온 자는, 빻으려고 온 것이다. 몰라? 무도장에 들어가는 자는 춤출 필요를 느끼는 거야. 다 없던 연애감정도 싹트게 되는 거지.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내가 너의 입장을 대변하자면 여보란 듯이 속마음을 털어놓지 않는 지니와 피노키오의 불화가 다소 마음에 걸렸다고나 할까.」
   「그건 또 뭔 소리야?」
   「그러게. 내가 잠시 밑도 끝도 없이 헛소리 좀 했네. 이해하시게. 그건 그렇고. 너 그 드라마 봤어?」
   「어떤 거?」
   「환상머신.」
   「환상머신? 그런 드라마도 있어? 요즘 나온 거야?」
   「아니. 아직 안 나왔어. 바닷물이 사라지는 드라마인데. 찍다 어퍼졌다나 뭐라나. 그러니까 너가 모를 수밖에.」
   「」
   「어! 저 새끼가 뭔데 갑자기 친한 척하지? ~라고 너 방금 속으로 생각했지? 분위기 잡고 혼자 생각 좀 하려던 찰나 뜬금없이 나타나서 귀찮게 하네. 하여간 얘 말 더럽게 많다니까. ~라고 생각했잖아? 속으로! 그래 안 그래?」 
   「뭐?」
   「뭐!」
   「」
   「어라! 웃었어. 웃었네. 좋다 좋아. 좋지? 좋냐? 좋니? 너 딱 들켰어. 웃기지?」 
   「」
   「이거 봐 실실 쪼개는 거. 그건 곧 내 말이 맞단 말이잖아? 나 늬 마음 읽었다. 환히 들여다봤어. 어?」
   「개새끼」
   「뭐? 하긴 살쾡이보단 그게 낫다. 무엇보다, 개에서 끝나잖아. 개 소 말 돼지 다람쥐 너구리 두더지 새 생선으로 이어지지 않으니까. 난 뭐, (몸짓)! 아, 근데 지금 그 얘기가 아니지? 다시 정신 차려서. 나 말짱해. 내가 무슨 똘아이야? 자, 정신 돌아왔다 치고.」
   「」
   「봐 봐. 이거 봐. 이거 보라니까. 내 그럴 줄 알았어. 너 딱 걸렸어. 그럼 내가 널 모르니. 아, 그만 웃어! 정들게 말이야. 나 여자 좋아한다 너.」
   「그럼 난 뭐 남자 좋아하니? 설사 그렇다고 해도 그게 뭐 어때서. 물론 늬가 웃자고 한 말인 건 아는데. 에잇 입 아프다.」
   「왜, 속마음을 들켜서 쭈삣하니? 그럴 거 없어. 우리끼리 이러기야? 조금 마음에 걸리면, 어? 그럼 사.」
   「사? 뭘?」
   「여기서 제일 비싼 거.」
   「누가 사라면 못 살 줄 아냐?」
   「너 저번에 그러다 도망갔잖아.」
   「살 거야. 산다고. 사면 될 거 아니야. 그런데 내가 왜 발렌타인 30년 산을 너한테 사야 하지?」
   「그럼 안 살라 그랬냐?」
   「이거 뭔가 잘못 말린 거 같은데. 웬만치 감어라. 어? 슬슬 기분 나쁠라 그러네. 어쩌다 내가 감겼지? 내가 뭐 실이야 밑밥을 물은 참치야!」
    순간 로이에게 전화가 왔다. 듣고 보니 톰이었다. 로이는 톰과 간단히 통화를 마쳤다. 
   「톰이 오라는데?」
   「그래? 밸런타인은 나중 내가 혼자 마실께. 킾! 야, 가자!」
   「뭔가 느낌 와? 너 톰이랑 많이 놀아봤구나.」
   「뭘 놀아? 나 범생이야. 착한 오빠. 그게 나라고.」
   「그럼 난 뭐 악동이냐?」
   「늬가 진짜 나쁜 남자를 모르는구나. 내가 아는 친구 포르토피노 멍키스패너라고 있어. 왜, 소개해줘?」
   「톰이 우릴 불렀는데? 그건 다음에. 걔가 괜히 우릴 불렀을 리는 없잖아.」
    그렇게 로이와 NB는 톰을 만나러 갔다.





    7

    아지트에서 로이 만남. 톰의 호출. 그들은 톰을 만나러 감. 
    그래서 지금 별이 뜬 밤. 장소는 톰네 집. 
    예상치 못한 호기심의 발동. 느닷없이 신나도록 젊음의 행진을 한 건 아니나. 그렇지만 일단 반갑긴 했다. 
    톰네 집에서 로이와 NB. 썩 어울리는 조합은 아니어도 뭐 대충 놀면 그만. 기대했던 언니들은 영 보이지도 않고. 
    인사말 그저 그랬고. 중간 줄거리도 별다른 건 없었다. 
   「톰, 넌 패배주의와 연을 끊었니? 하긴 넌 그런 거랑 거리가 멀지. 이를 테면 절망적인 사랑이 안겨주는 묘한 쾌감. 그거 너 안 키우잖아.」
   「이런 말 들으면 난 뭐라 해야 하나? 글로 읽어는 봤는데, 너처럼 말하는 사람은 살다 살다 처음이다.」
   「하다 하다 뭐 그럴 수도 있어. 나도 사람이야. 넌 뭐 사람 아니니? 원래 인생이란 그런 거야. 살면서 배워라, 오래 살면 별일 다 겪는다.」
   「새장을 사는 사람은 새를 원하는 것이다.」 
   「로이가 그런 말도 할 줄 아네? 아하! 너네 실망했구나. 뭘 기대했는데? 예감부터 설마 흑심?」
   「애들과 닭은 언제나 줍는다. 그분들은 노는 게 일. 여자에게 사랑은 인생의 전부. 우리는 사랑도 일. 응? 우리가 기대하긴 뭘 기대해. 그런 거 없어. 그런 거 없다고.」
   「그런데 이걸 어떡하니. 너네들이 잘 알다시피. 내 발에 채이는 게 여자, 응? 아 진짜로. 내가 언제 너네한테 아는 동생들 소개해주지 않은 적 있어? 없잖아. 그런데 나도 밀려났어. 내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팬클럽 관리 잘하는 건데. 99번은 너네 상심하지 않도록 평소 잘나갔는데 나머지 1번이 지금이다. 심지어 앞으로 슬럼프가 꽤나 길 거 같고. 그렇지만 사랑은 모르는 거야.」
   「」
   「그러지 말고. 너네 여기나 가 봐. 난 지금 일하러 가봐야 하거든.」
    그러면서 톰은 서포터스 회장 롭이 운영하는 살롱 초대장을 건네줬다.
    여기까지 그리고 거기서 더 구간 살짝 당기기를 간략히 요약하자면 이렇다. 
    <아지트에서 로이 만남. 톰의 호출. 그들은 톰을 만나러 감. 
    톰네 집. 1시간 후 롭의 살롱으로 자리를 옮김. 회원제 살롱에 도착. 그런데 톰과 로이는 바쁘다고 가버림>
    그래서 결국 고급 살롱에 NB 혼자 외롭게! 뭐야 이거?
    장밋빛 인생에 뜬금없이 출연한 불길한 적신호일까 아닐까. 원래 장밋빛 인생이 아니었으니, 고로 그런 섬뜩한 징조도 있을 리 없음. 석연치 않음. 못 믿음.
    뭔지 모를 흥분이 드라마처럼 재밌어지고, 영화 같이 막 줄거리 이어져서 즐거운 건 다 가짜구나. 그런 거 다 비현실적인 거야. 몽땅 뻥이라고. 
    그는 고급 살롱에서 혼자 남겨져있다 보니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변덕스러운 쾌락마 길들이기는 미련 없이 포기했다. 
    뭔 살롱인지 뭔지 모르겠고. 밤도 늦었고. 피곤하고. 여긴 그가 전세냈겠다, 부러울 거 없네. 바라는 거 없다고. 
    조니워커 30년 산도 있겠다 먹을거리도 냉장고에 충분하겠다. 
    그렇게 혼자 소파에 자빠져 TV도 보다, 혼잣말도 하고, 인터넷 검색하다가 공상을 기록하고. 
    그렇게 골아떨어졌다.





    8

    다음 날. 아침에 고급 살롱에서 NB는 깨어났다. 
    잠자리는 괜찮았고. 꿈은 기억날 뻔 말 뻔하다 말았다. 
    미충족된 낭만감. 불만족스러운 애정. 남용된 환상. 열등한 행복. 
    거 어째 낯선 곳에서 혼자 이거 뭐하는 건지 기분이 아침부터 영 머시기했다. 
    그래서 일단 노트북을 켜서 음악 먼저 틀었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 오페라 <티토 왕의 자비> - “자, 떠나자”
    대충 세수하고 피자랑 이거 저거 주워 먹고. 커피 마시고 어쩌고. 
    그런 다음 한 30분 인터넷 둘러보다 집으로 가야지 라고 생각했다. 
    장면 전환에 시간 지났다 치고. 
    그렇게 NB는 집에 가려고 고급 살롱을 나왔다. 
    그런데 문 앞에 비비안과 에밀리가 떡하니 버티고 있네? 
    마치 그가 나올 걸 알고 있었다는 듯이. 아니면 걔네들은 여기에 입장하려던 찰나였을까? 그야 대화를 나눠보면 알겠지. 
   「아니, 오빠가 왜 여기서 나와?」
   「안녕.」
   「안녕이고 나발이고. 오빠가 여기서 왜 나오냐고.」
   「그 순서도 보면 나오잖아. C, C++, 자바. 자바? 뭘 자바. 자바스크립트. 기운 사각형은 입출력. 마름모는 판단. 맞나?」
   「시끄럽고. 묻는 말에나 대답하시지.」
   「내가 왜 여기서 나오냐고? 그야 뭐 여기서 나오기 전에, 어? 여기로 들어왔으니까 그랬겠지. 응? 최근 인기 최고의 스타와 결혼하는 방법? 길 가는 그분의 발을 건다, 그분이 넘어지기 전에 내 입술을 밑에 갖다 댄다, 내려오는 으흐흐... 뽀뽀한다, 그다음에 사귀자마자 결혼한다. 몰라?」
   「이 오빠가 지금 장난해? 어? 오빠가 왜 여기서 나오냐고.」
    그러면서 비비안과 에밀리는 때마침 그 앞을 지나가는 경비 차량을 불렀다. 
    공권력 뭐 그와 달리 영화에나 나올듯한 사기업 군조직을 방불케하는 경비 업체 차량. 
    업계 1-2-3위는 보통 국내를 말하고. 군조직 사설 경비 업체는 스케일이 다름. 잔지식은 생략하고. 
    그렇게 그 차량이 뚝딱 멈춰서더니 즉각 3명의 남자가 내렸다. 첫째 올백, 둘째 8대 2 가르마, 셋째 10시부터 2시 방향은 하이에나 반틈은 투톤. 복장은 또 어디서 본 건 있어가지고 각자 다르게 정복, 수트, 가죽점퍼. 어디 놀러 가나? 약간 어설픈데 카리스마가 장난 아니고. 
   「아저씨. 이 오빠가 여기 무단 침입했어요. 잡아가세요.」
   「너네 왜 이래? 장난치지 마. 재미없어. 무섭다고. 어?」
   「여긴 우리 최고급 사설 경비업체가 관리하는 특급 사업체입니다. 실례지만 잠깐 같이 가주셔야겠습니다.」
   「네? 가요? 가긴 어딜 가요? 당신들 내가 누군 줄 알아?」
   「네. 그건 차차 알아가기로 하고요.」
   「야. 비비안. 뭐라 말 좀 해봐. 야. 에밀리. 너 정말 이러기야?」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고,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습니다. 다른 경우라면 모르지만 저희 쪽에서 최선을 다해서 법적 조치 그 편의를 봐드리겠습니다. 이건 이상한 술책도 아니고. 형법에 근거한 임의동행도 아닙니다. 다만 신원확인은 필요하니 (몸짓) 약 15분만 할애해주셔야겠습니다. 순서도 아시죠? 그는 나를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아 그게 아니죠. 그게 아니라고요. 그럼요. 난 왜 여기서 나왔을까, 누가 날 여기에 데려왔을까. 예 아니오 다음에 화살표가 가서 어쩌고저쩌고. 그래서 결국 화살표는 날 최초 지점으로 다시 되돌려 놓고. 따라서 무한반복. 지금 농담하자는 게 아닙니다. 형사사건 기운이 꿈틀거리는 거 그거 우리들 전문적인 감으로 대번에 직감할 수 있거든요. 그러니 고로 후딱 처리하고 피차 서로 시간 아끼자 그 말입니다. 마구잡이로 진행하는 거도 아니고, (서류를 보여주며) 이렇게 수색영장 체포영장도 있습니다. 없는 거 없습니다. 자, 오리발 내미시겠습니까 몸의 대화를 나누신 다음에 가시겠습니까. 선생님, 좋게 좋게 곱게 곱게 처리합시다. 네? 선생님께서 충분히 선택하실 수 있는 사안입니다. 당신께서는 그럴 권리가 있다 그 말입니다. 물론 이런 난데없이 황당한 상황이 하필 내게 엄습하리라고는 꿈에도 예상치 못하셨겠지만. 그렇지만 뭐 살다 보면 그런 일도 있을 수 있지 않을까요? 아무튼 부담 느끼실 거 없습니다. 동석하시고 싶은 행정집행관이 있으면 저희가 대신 연락해드리겠습니다. 설명은 이만하면 충분하므로, 따라서 이제 정식으로 연행을 집행하겠습니다. 최종적으로 하실 말씀은? 네, 없으시군요. 그럴 줄 알고 있었습니다.」
    원래 핑계가 걸작이어야 하는데 그는 말문이 도무지 열리지 않았다. 
    그래서 그 커다란 차에 그 떡대들과 함께 타고 어딘가로 이동했다. 
    그렇게 이동하자마자 그 상황과 어울리지 않게 내부에서는 3분의 마법, 곧 유행가가 흘러나왔다. 
    후크송? 어덜트 컨템포레리 무슨 신나는 컨츄리 장르. 중독성 특이하고. 가사 웃기고. 재치 있는 율동에 덩실덩실. 
    잠깐 듣다 어영부영 그는 자기도 모르게 노래를 따라부르고 있었다. 가사를 살짝 소개하자면 이렇다. 
    <남 : 어디야? 
    여 : 집이야. 피곤해서 일찍 자려고. 
    남 : 아 그래? 잠깐 볼랬더니. 오늘 피곤했나 보네. 언능 자~ 
    여 : 어 끊어. 
    ......전주......
    근데! 니가! 
    니가 왜 거기서 나와 니가 왜 거기서 나와 
    사랑을 믿었었는데 발등을 찍혔네 
    그래 너 그래 너 야 너 니가 왜 거기서 나와. 
    ......간주......
    뭐하는데 여기서 뭐하는데 도대체 
    너네 집은 연신내 난 지금 강남에 시끄런 클럽을 무심코 지나는데 이게 누구십니까 
    니가 왜 거기서 나와 니가 왜 거기서 나와 
    내 눈을 의심해보고 보고 또 보아도 딱 봐도 너야 오마이 너야 
    니가 왜 거기서 나와 니가 왜 거기서 나와 
    사랑을 믿었었는데 발등을 찍혔네 
    ......후렴......
    노는 남자 싫다매 술은 못한다매 
    그것 땜에 나는 다 끊어버렸는데 
    지금 넌 왜 혀가 꼬이는 건데 도대체 
    근데 지금 니 옆에 이 남잔 누군데 
    교회 오빠하고 클럽은 왜 왔는데 너네 집 불교잖아.......> 
    그렇게 3분의 유행가가 딱 끝날 시점에 그는 뭔 이유 때문인지 몰라도 골아떨어졌다. 설마, 쿠바 대사관 무슨 초음파 공격? 하긴 이명이라고 하나 귀에서 윙 하는 느낌 다음에 골아떨어졌다. 
    문단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고급 살롱에서 다음 날 기상. 바깥에 나오니 비비안과 에밀리를 마주침. 걔네들은 입장하려던 찰나. 갑자기 요원들에게 연행됨. 연행되는 중 정신을 잃음. 





    9

    그 일은 '톰과 로이 vs 비비안과 에밀리'가 꾸민 일로 밝혀졌다.
    전날 고급 살롱에서 NB 혼자 놀다 깨어난 다음, 갑자기 비비안과 에밀리를 만났다가, 웬 떡대들과 어딘가로 동행. 그러다 정신 잃고. 
    그거 다 남자 2 여자 2명이서 꾸민 일이었다. 
    그런데 왜? 왜냐하면 전날 고급 살롱에서 NB 혼자 노는 동안, '톰과 로이 vs 비비안과 에밀리' 그렇게 2 대 2로 클럽에서 신나게 놀았기 때문에. 
    말하자면 걔네들이 또 의리는 있어가지고 조금 미안했던 것이다. 
    그렇게 아침에 연행된 다음 차에서 정신을 잃고, 낮에 깨어났는데. 
    톰과 로이 vs 비비안과 에밀리 + NB = 5명이서 캠핑카를 타고 질주. 
    바닷가로 가는 중이었다. 
   「오빠 일어났어?」
   「알겠다. 말하지 마.」
   「말해주지 않아도 돼?」
   「알고 싶지 않아.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맞추고 싶지도 않고.」
   「오빠 멋있다. 그치?」
   「누가 아니래!」
   「이게, 반전이니?」
   「그럴까? 그럴 수도 있는데. 속단하긴 아직 이르지 않을까?」
   「너네 뭐니?」
    겉으로만 봐선 뭐 제법 그럴듯한 사랑을 꿈꾸는 젊음.
    근거 없는 두려움과 막연한 공포심, 은근히 없지 않고.
    그렇게 그들은 적당히 구색 갖춘 바닷가에 도착했다.
    상쾌한 경치에 사랑의 적시성은 짝이 안 맞고. 
    꿈의 명쾌함 없이 귀를 의심스럽게 만드는 웬 억지 삼류극. 
    그런데 재밌는 건 지금부터였다. 뜸 들이기 없이 곧장 본론부터 말하자면. 
    보아하니 그들은 두툼한 지갑을 NB에게 툭 던져주고 가버린 것이다. 
   「얘들아! 그냥 가면 어떡해? 야. 여보세요. 장난하지 마. 돌아와. 오겠지. 올 꺼야. 와야 해. 오지 않으면 안 되거든. 그럴 수밖에 없어. 그런데 안 올 거 같은데, 어쩌지?」
    줄거리를 다시 요약하자면, 
    <'톰과 로이 vs 비비안과 에밀리'가 꾸민 일로 밝혀졌다. 그렇게 5명은 캠핑카를 타고 바닷가에 도착. 함께 5명이 놀자는 게 아님. NB는 떨구어주고 가버림>.
    어쩌라고! 





    10

    뜬금없이 친구들의 심한 장난 때문에 낯선 곳에서 새로운 인생이라. 불행하진 않네. 나쁘지 않다고. 좋아질지도 모르잖아? 
    안 그래도 일하기 좋으면 허영심을 살찌우고 싶고. 일하기 싫어서 타성과 권태의 추격에 괴로웠고. 
    엉덩이 근질근질하면 할 말 떨어지고, 꿈자리도 뒤숭숭했었는데 뭐 잘됐네. ~라고 그는 생각했다. 
    걔네들도 이런 기발한 작전을 실행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테고 말이다. 
    아는 사람도 없지 지갑도 두둑하지 시간까지 많지. 개발로 똥볼을 차든 동화 속의 늑대가 재주넘는 곰을 꼬드기든. 
    뭐가 돼도 될 것만 같았다. 정말로? 뻥이다. 개 뻥. 뭐 진짜로 그렇단 말이 아니라. 너무 홀가분했기 때문에 모처럼 달콤한 휴가를 혼자 즐겨서 거 어째 미안한 기분에 젖어들었다고 할까? 속으로 끙끙거리며 꿍꿍이를 추리하는 다람쥐 같은 생각을 하는 거 보니 뻥 맞네. 뻥 맞어. 그건 마치 육체적 사랑을 많이 하는 여자는 무릎 멍을 보고 판별한다는데. 뻥도 뻥도 그런 뻥이 어딨나. 무릎 멍? NB는 생각했다. 옛날에 아는 동생 가운데 다리에 유독 멍이 많은 애. 약간 포동포동한 숙녀인데 잘 넘어지고 다리에 여기저기 멍이 잘 들고. 운동신경 날렵하지 않고 소녀 소녀고. 건강한데 그냥 단순히 멍만 많이 드는 거고. 거기서 더 가면 건너 건너 친구 중에 뼈가 잘 부러지는 프로그래머 친구도 있었는데. 그런데 NB의 잔소리를 내가 왜 대변하고 있지? 시끄럽고. 아니 조금만 더. 
    여기에서라면? 아마도 이 바닥 결코 만만치 않을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하난 확실하다. 그건 뭘까? 뭐겠나. 이젠 더 이상 성적 쾌감 불경기가 아닐 것이라는 점. (양손을 입맛 다시며 비비는 몸짓). 그는 더 이상 짜릿한 쾌락 희망자가 아니라, 어? 아무도 자길 모르고 황금은 넘치고. 얼떨결에 올라탄 쌍두마차는 곧 타락한 방탕마와 불쾌한 쾌락마가 눈앞에? 으흐흐흐흐흑! 그야말로 새로운 희열과 함께 짜릿한 환희. 더불어 혁신적인 황홀감. 심지어 실증적 신비까지. 으흐흐흐흐흐흑!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저기 보니 갔던 걔네들이 다시 돌아오네? 뭐야 이거! 김샜잖아?
   「너 쫄았지?」
   「오빠 섬뜩했어?」
   「외로워하지 마. 장난 좀 쳤어.」
   「다시 오면 어떡해!」
   「뭔 소리야?」
   「안 놀랐어? 우리가 가는 척하다 돌아오면 반갑던 짜증내던 그래야 하는 거 아니야, 오빠?」
   「각본이 맘에 안 들어.」
   「얘 뭐야. 어? 뭐래?」
   「오빠가 무슨 포도주를 운반하는 당나귀야? 아니면 달콤한 쾌감에 촉촉히 젖어드는 양이니. 오빠 한 번 생각해 봐. 자, 봐 봐. 응? 집중. 보라고. 자, 그러니까 말이지. 근데 내가 뭔 말을 하려던 참이었지? 아무튼. 신비한 명문에 대한 탐구심은 시들시들, 재미없는 일상 따분한 생활. 권태로운 오빠 인생에 깜짝 파티 해 준 걸 가지고 뭐라 하면 섭하지. 안 그래? 왜, 남녀 짝이 맞지 않아서 그래? 오빠! 그거 알아둬. 벌이 있는 곳에 꿀이 있다는 걸. 아니 말이 나왔으니 망정이지, 어? 내가 여기 여자들 다 꼬셔줘? 그래? 그래 말어? 어? 말만 해. 어?」
   「1절만 해라. 듣기 싫다. 시끄럽다고. 그럴 기분 아닌 거 보면 모르니?」
   「이 오빠 왜 이래?」
   「뭐 때문인데 그래? 어제 클럽 우리끼리만 간 거? 다시 가면 되잖아. 아님 날마다 갈까?」
   「너넨 설명해줘도 몰라. 내 마음 모른다고. 알아?」
   「알긴 뭘 알아?」
   「나 갈래.」
   「간다고? 거 참 별 생각을 다 하셨어?」
   「오빠. 누가 잡을 줄 알아? 어차피 오빠 때문에 성비 불균형. 애매한 거 우리가 일부러 말하지 않았던 거, 알잖아. 설마 몰랐어?」
   「잡지 마.」
   「안 잡았어.」
   「잡지 말라고.」
   「안 잡았다니까.」
   「나 진짜 간다.」
   「아직 안 갔어?」
   「왜, 예상 못했어?」
   「아니. 하기 싫었어. 왜냐, 재미없거든.」
   「누군 뭐 재밌는 줄 아니?」
   「재밌는 거 같은데?」
   「왜 그렇게 생각해? 아니야. 됐다. 내가 니들이랑 뭔 심도 깊은 얘기를 하겠니. 나 진짜 간다.」
    그렇게 NB는 진짜로 혼자 집으로 갔다. 
    녀석의 뒷모습을 보면서 그들은 그랬다.
   「뭐 짐작 가는 거라도 좀 있어?」
   「저 오빠 상태가 영 아닌데. 원래 그래?」
   「혹시 마음의 상처? 줄여서, 마상?」
   「몰라. 미스터리.」
   「(몸짓) 혹시 집에 꿀을 숨겨놨나. 혼자 집에 가서 뭘 조지려고 그러지? 아직도 이상한 동영상 보고 그러나? 아직 못 끊었어? 장녀 차녀 막내. 비교적 장남 쪽보다 막내 쪽이 뭐랄까 근소하게? 근소하게... 보다는 약간 높게. 어중간하게? 내가 보기로는 최소 6 대 4는 넘는데. 뭔가 어떤 탐스런 분홍빛 애착심이 유별난데. 쟤 막내지?」
   「넌 하필 그 얘기를 왜 여기서 하냐? 그러니까 늬가 여자가 없지. 아는 동생들 가운데 그래도 최고로 나은 얘네들 듣고 있는데. 표정 보니 이번에 깨달았을 걸?」
   「넌 내 인생에 도움이 안 돼. 폭로전 시작하면 난 손해 볼 거 별로 없다. 너 나한테 잘 보여야 해, 알아?」
   「하여간 별꼴이야. 지가 무슨 조니 뎁인 줄 알아? 한 물 간 영화배우 뭐, 니콜라스? 놀고 있네. 웃기고 있어.」  
    얘가 역시 한 수 위. 은근슬쩍 말 돌리기. 자연스럽게. 그렇지만 그건 먹밥에 숨겨진 바늘을 못 본 거고. 근데 정말로?
   「그런데 넌 아는 배우가 고작 쌍팔년도 적 예술가 밖에 없냐? 너 인기 배우 탑 100에서 아는 사람 별로 없지?」
   「어.」
   「너 최신곡 탑 100에서 아는 노래 없지?」
   「어.」
   「너 텔레비전에서 연예계 소식 나오는 거, 일단 안 보겠지만, 혹시 봐도. 그래도 모르는 사람 많지?」
   「어떻게 알았어?」
   「그러니까 늬가 뭘 해도 재미가 없는 거야. 어? 그러니까 늬가 여자가 없는 거라고. (절레절레)」
   「그런데 그 얘기가 여기서 왜 나와? 넘어가고. 하던 얘기마저 하자면 이래. 어? 나보다 쟤가 더 걱정이야. 쟤 중증이네. 괜히 넌 친구 트집이나 잡고 말이야. 넘어가고. 아무튼 쟤 상태가 상태가 영 아니다. 많이 안 좋아. 저거 저 집에 가서 혼자 소파에 자빠져 TV나 보겠지. 뻔해. 우리가 잡아줄 줄 알았는데 2번만 잡아서 삐진 거라고. 자긴 한 최소 3번에서 많으면, 됐다. 그냥 우리끼리 놀자. 유난 떠는 거 웃기지도 않아. 쇼하는 거 지겹다고. 잘 먹고 잘살라 그래. 무슨 중2병이야 햄버거병이야. 자기 연민을 왜 여기서. 저거 저거 나이 먹고 큰일이다 허허.」
    근데 대체 왜 가지? 뭐 때문에! 혹시 메달의 뒷면을 좋아해서? 대관절 뭐냐고. 
    발끈 화가 치밀어도 꾹 참는 자제력 덕분에 그는 마침내 고분고분한 똥개가 되어버린 것일까? 그러든가 말든가. 





    11

    며칠 후. 
    NB는 사무실에서 조용히 일하고 있었다. 
    A. Thomas / 오페라 <햄릿>에서 당신들의 놀이에, 친구들이여.
    그렇지만 평소처럼 자꾸 마음은 바깥으로 나가고 싶었다. 
    그렇지만 본인이 줄 달린 치즈 덩어리를 덥석 문 트로이의 목마도 아니고. 
    괴팍한 악령의 의뭉스러운 저주를 떨쳐버린 주인공도 아닌데. 그런데 뭘 근거로 신비한 전개를 바라겠나. 
    그렇다면 저번에 길버트가 운영하는 극장식 카바레에나 가볼까? 한번 놀러 오라는 빈말을 냉정하게 뿌리친 게 도대체 몇 번인데. 
    그런데 그런 말이 있다. 무슨 말? 바보가 많을수록 재미는 더 많다 라고. 단, 천재적인 바보와 도저히 싫어할 수 없는 허당이 돋보이면 좋다 라는 가정하에. 
    보아하니 전해 듣기로 그쪽 물이 초반에 반짝하더니 약간 주춤하다고 하더라. 그래서 거기도 아니다. 당분간 후보군에서 제외. 
    그럼 재주꾼들이 이따금 출연하는 아지트에나 가볼까? 
    그에 관해서라면 또 그런 말을 NB는 생각해냈다. 바로, 
    그대의 딸이 결혼한 후에, 그대는 항상 사윗감이 많은 것을 발견한다. 누군들 아니 그렇겠나. 여자는 한 방에 넘어가지만, 나중 내 발등을 찍고 싶은 심정 몇 퍼센트? 통과. 
    아 지금 그 얘기가 아니라. 매번 아지트에 놀러 갔지만 결과는 그냥 그랬다.
    하지만 말이야 뭐 어딘 안 그랬나? 
    그래. 가자. 아지트로. 희망의 나라로.
    그렇게 그는 최근 나도 모르게 단골이 되어버린 아지트로 갔다.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NB는 아지트에 도착.
    가만 있자, 음악이 이건 뭐지? 
    조아키노 로시니 /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 중 1막 알마비바 백작의 오바드(아침의 노래) : 보라 동녘 하늘은 미소 짓고
    맞나? 맞거나 말거나. 이런 고리타분한 음악이 나온다는 말은 곧 드라마 배역으로 치자면 조력자랄지, 배후의 실력자, 숨겨진 재력가가 떴다는 말인데. 
    그건 곧 밝고 분위기 좋고 젊고 후끈후끈 그분들은 물러나고 줄거리 흐름을 위해 무거운 분위기가 연출된다는 말 아닌가. 
    그는 생각했다. 오늘도 재미없게 생겼다고. 어차피 사람도 없었다. 
    말 상대도 없고 부쩍 따분해지려던 찰나. 있는지도 몰랐던 샐리가 출연했다. 
   「오빠. 요즘 안 보이더니 여기서 보네? 듣자 하니 말이야, 어? 오빠의 난잡한 사생활이 심하게 의심스럽다는 얘기가 있어. 알아? 오빠. 오빠의 문란한 과거, 누군가 무척 의뭉스러워한다는 거. 알긴 알아?」
   「말도 안 되는 낭설은 재미없어. 그걸 누가 믿니. 아니 누가 알고 싶겠니.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말이야, 어? 넌 보자마자 오빠한테 한다는 소리가 그게 뭐니? 그러니까, 그러니까는 무슨 그러니까. 다 너 생각해줘서 하는 얘기 아니니. 응? 네가 뭇남성들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무수한 구애를 뿌리치며, 남자를 귀찮아해야 어? 그래야 다 너랑 친한 이 오빠의 입지도 다 나아지는 거 아니겠어?」
   「뭔 밑도 끝도 없이 러브콜은 뭔 놈의 러브콜? 내가 무슨 스카우터로부터 눈총 받는 신인 투수야 뭐야. 어? 오빤 아무래도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봤어. 오빠도 알지? 나 이런 말 하기 싫지만. 뭐랄까 왠지 모르게 오늘은 그런 느낌이 드네? 어떤 느낌? 이따금 사랑의 예언은 운명의 장난처럼 제멋대로의 결과로 실현될지도 모르는 것. 에잇 돌려서 말하려다 보니까 잘 안되네. 평소 하던 대로 직언하자면. 오빠랑 오랜만에 말 섞으니까 내가 다 늙는 기분이라고. 그렇다고 기분 나빠하진 마쇼. 오늘 내가 좀 그냥 그런 거니까.」
    그러면서 샐리는 휭 하니 가버렸다. 
    쟤 뭐야?
    잠시 NB는 샐리의 '이래라저래라' 화법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이어서 곧 웬 8 대 2 가르마를 탄 분위기 특별한 미남이 그에게 접근해서 말을 걸었다. 
   「선생, 우리 구면이지 않소? 아, 아니군요. 죄송하오. 제 착각은 아마도 저의 왜곡된 상상력이 빚어낸 허상이었나 보오.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죠. 그렇지만 이렇게 알게 된 거도 인연인데. 아울러. 살롱은 오늘 심심하고. 형씨는 말동무가 필요해 보이고. 저는 뭔가 듣기 썩 나쁘지 않은 할 말을 하고 싶고. 그렇지만 우리가 그리 한가한 사람들도 아니고. 그래서 하는 말인데. 혹시 이분들을 아시오?」
    그러면서 그 낯선 남자는 NB에게 사진을 보여주었다. 
    사진 속 주인공은 다름 아니라, '톰과 로이 vs 비비안과 에밀리'였다. 아니 어떻게!
   「알다마다요. 엊그제 만난 친구들인데요. 그럼 선생님은...?」
   「아 제가 번지수를 잘 찾아왔구려. 왜 그런 말 들어보지 않았소? 왕자가 바이올린을 켤 때 신하는 춤을 추어야 한다. 왕자는 선생이오. 파티는 사진 속 친구들이 마련했다오. 물론 저는 중간책이자 매개체에 해당하겠죠. 그분들께서 저번에 뭔가 섭섭한 일이 선생께 있을 거라면서 요 근처 극장식 카바레를 통째로 빌렸다오. 그러면서 파티 주인공을 제게 데려다주라고 부탁한 것이오. 상황이 이해되시오? 이해고 나발이고. 설마 선생께서 녀석들과의 친교 유지에 관심이 없으면 어떡하나 난 무척 걱정이 많았다오. 그게 그러니까 이 몸이 생각할 땐 그렇다오. 주최 측 논리대로라면 자기들은 명사들이고, 선생은 거지이자 바보요 허당이란 말인데. 적어도 일시적으로 그랬단 얘긴데. 아니 웃기지 않소, 네? 지들이 뭔데 선생을 놀려? 어? 선생께서 혹시 쟤들한테 책잡힌 거 있소? 있을 리가 있나. 딱 봐도 어디 많이 부족한 사람... 같진 않아 보이구만. 안 그래도 언제 그런 파티 꾸며서 선생이 쟤네들한테 주인공으로 불러달라고 애원이라도 한 적 있소? 없지 않소. 애초에 각자 스타일이 다르고 하는 일도 다르구만. 딱 봐도 형씨는 자존심 뾰족하지 않으니까 열등감 폭발할 리도 없고. 법정에서의 인권과 연예인 사생활을 비유하는 말들 들리면 피곤해하시고. 뭐 그렇다고 제 주제에 형씨 성격 분석하겠단 말은 아니라오. 잘 아시지 않소. 허허허. 말하자면 제 형편이 지금 어정쩡허니 뻘쭘하다 이 말씀이오. 왜냐하면 아까 사진 보여준 형씨 친구들과 제가 내기를 했거든요. 결국 내기는 제가 졌고. 호언장담했으니까 이렇게 제가 선생을 모셔가지 않으면 안 된단 말이오. 그렇다고 제가 형씨한테 딱밤을 때려서 어깨에 들쳐 메고 저쪽으로 갈 수도 없고. 이거 참 난감한 일이 따로 없다 그 말이오. 아시겠소? 그렇다고 괜히 저 때문에 동정심 발휘하셔서 등 떠밀려 파티에 참석하셔야 된단 말은 아니라오. 가고 싶으시면 가고, 가기 싫으면 불참하면 그만이고. 안 그렇수? 녀석들이 잘나가든 말든 별 관심 없으실 텐데, 이거 괜히 귀중한 시간 할애하셔서 제가 다 송구스럽게 됐소이다. 원래 좋게 보면 좋은 거고, 떨떠름하게 얄미워 보이면 미워보이고. 세상일이란 게 다 그런 식 아니겠소? 다른 사람의 빵껍질은 일곱 겹이라고 하지 않소. 남의 떡이 커 보인다고 어떻게 된 게 말이오, 저에게는 그림의 떡이 형씨에게는 쥐락펴락 요리할 수 있는 초대장 아니겠소. 허허허. 어거 정말 따박따박 잔소리만 유들유들 길다랗게 늘어놓아서 실례가 많았소. 아마 제가 어림없도록 헛된 소망을 품었나 보오. 오히려 극구 만류해도 모자를 판에 말이오. 형씨만 좋다면, 에잇, 아니오 아니오.」
    결국 NB는 낯선 남자의 꾀임에 넘어갔다. 





    12

    그래서 1시간 경과 후. 
    그 둘은 근처 어느 공사장에 도착했다.
   「선생님. 그런데 여기가... 아까 말씀하신 극장식 카바레인가요? 아무리 봐도 제가 보기엔 카페든 카바레든 그런 게 들어서려면 한참 기다려야만 할 거 같은데요.」
    그 말이 끝나자마자 건설 현장 관계자들이 휴식 시간이 끝났는지 저쪽에서 우르르 몰려왔다. 그러면서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또 너냐?!」
    딱 봐도 뭔가 좀 모자른 아저씨로 소문이 나 있는 듯한 모습.
    그 말을 들은 8 대 2 가르마 아저씨는 이렇게 소곤거린 다음 급히 자리를 떠났다. 
   「제가 하필 아지트에서 반대 방향으로 와버렸군요. 제 말은 거짓말이 아니니, 부디, 친구분들을 실망시키지 말아 줬으면 하오. 그럼 이만. 살다보면 또 우연처럼 무주칠 날이 있을지도.」
    그러면서 그분은 떠나버렸다. 
    뭐야 이거?
    그렇게 어슬렁어슬렁 NB는 현장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곧바로 아지트에서 반대편 클럽이 있나 검색했고, 찾았으며, 그곳으로 즉시 떠났다.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클럽에 도착. 
    마침내 무도회장에 입성. 
    물론 입장하려는 손님들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고. 
    턱시도를 입은 웨이터 왈, 룸 어쩌고저쩌고 라는 말이 들렸다. 곧 비싼 손님은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는 뜻. 
    그렇지만 이미 그들만의 파티를 상상하던 NB는 그 말이 곧이곧대로 들리지 않았다. 이미 제정신이 아닌 거지. 
그렇게 그는 무턱대로 입장했고, 어느 특실에 자리를 잡았다. 
    뭔가 이어져야 하는데, 발단으로 시작해서 내내 발단이네? 
    그는 옆 방으로 갔다. 마침 남녀 여러 명이 모두 뒤돌아서 있네. 딱 봐도 '톰과 로이 vs 비비안과 에밀리'이었다. 
    그래서 그 가운데 누군가의 어깨를 툭 집으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야, 영화 찍지 마. 아 나 이거 또 얘네들 사람 감동시킬라 그러네. 어디서 본 건 많아가지고 말이야.」
    그런데 돌아선 청춘 남녀는 그들이 아니었다. 
    그는 이제야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앗 죄송합니다. 제가 잠깐 딴생각을 하다 그만...」
    서둘러 방을 빠져나오면서 들리던 그 말. 뭐야? 쟤 뭐야? 저 덜떨어진 동네 아저씨 누구야?
    아무래도 자긴 영화를 너무 많이 본 것 같다며 어디서부터 꼬였는지 다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괜히 이상한 양반한테 꾀어서 클럽에 혼자 오다니. 아는 사람도 친구도 없고. 비싼 입장료 특실비만 왕창 내고 나서 그는 밖으로 나왔다. 
    어머! 그런데 클럽 밖에서 비비안과 에밀리가? 
   「어머, 오빠다. 오빠!」
   「와! 아니 근데. 오빠가 왜 거기서 나와?」
    일어날 일은 일어나는 것일까? 
    한때 영화를 너무 많이 봤던 게 문제였다면. 지금은 공상이 너무 일상적인 게 장난 아니었기 때문에. 따라서 그는 정말 민망해하면서 지가 마치 특급 연예인이라도 된다는 듯이, 사람들 시선을 뿌리치며, 아는 동생들의 반가움 반 놀람 반 인사말도 무시한 채 도망치지 않을 수 없었다. 특 A급은 무슨 특 A급. 하여간에 더럽게 재미없는 아지트 내가 다시 들리나 봐라, 라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웬 똘아이 아저씨의 언변에 휘둘려서 이거 뭔 돈 낭비 시간낭비 정력 낭비에 망신살이 뻗쳤단 말인가. (절레절레)





    13

    NB의 단조로운 삶은 그를 꼰대 지수가 (급)상승하도록 더욱 노골적으로 부추겼다. 진한 사랑을 할 수 있는 마음의 준비는 항상 완벽했으나. 그러나 세상은 다름 아니라 똥개 훈련시키기의 명수였던 것이다. 뭐라고? 아닌 게 아니라 그는 정말 몰라보게 달라져 있었다. '멋지게'가 아니라 꺼벙하게! 왜냐하면 대체 불가능한 신비감은 기대할 수 없기 때문. 아니, 말이 나왔으니 망정이지 어? 환상 신드롬 뭐 그런 건 영화와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거 아닌가? 현실에서라면 꿈이 뭐건 대체로 공통된 딱 2가지가 진짜 중의 진짜일 테고. 뭐니 뭐니 해도,
    첫째 돈, 둘째 사랑! 
    그 외의 꿈이란 어차피 시간문제일 뿐 나중 무조건 변심. 거의 다 변함. 만족해도 나중 한눈팔게 되어 있음. 이직 이사 이혼 이별 단짝 교체 취미 바꿈. 굶주릴 대로 굶주린 하이에나는 결국 배부른 늑대로 변신함. 괜히 잡은 물고기한테 밥을 주지 않게? 하늘을 봐야 별을 따지! 말하자면 변화는 운명. 보아하니 상남자들 최고의 이상형은 바로, 새로운 여자! 솔직히 말해서, 여자의 판타지라고 별반 다를 건 없음. 단지 말만 하지 않는 것일 뿐. 스치듯 지나가면서 뒤돌아보게 만드는 할머니의 미모. 거의 없음. 그게 다 젊음에 기인한 아름다움. 보면 3초는 혹하는데, 보면 볼수록... 그러나 우리는 그분들 뿐만 아니라 그 어떤 선녀도 이 세상에서 최고로 아름다운 숙녀로 만들어드릴 수 있음. 이 말이 거짓말인가 아닌가를 확인하고 싶으시다면, 농담이고. 어쨌든, 그래서 사랑이란 보면 볼수록 매력 넘치는 상대를 만나야 하는데. 그게 말이 쉽지 상향 지원 안 하고 싶은 사람이 어딨겠나. 장르를 사랑으로 국한시키지 말고 다시 가족으로 연령대 낮추고. 그렇듯 의리와 전우애로써 장르는 바뀌기 마련. 산만하긴 하지만 다시 주제는 꿈으로. 
    아무튼 꿈이란 알고 보면 그렇지만 뭔가 멋진 말을 해야 한다면. 진지한 대사를 누군가 기억할 테고 어색한 분위기가 차분하다면, 그럼 이런 얘기 그런 공상은 혼자만 하자. 정말로! 왜냐하면 등 돌리면 혹시라도 욕 엄청 얻어들을지도 모르니까. 그래. 혹시라도. 사이가 나쁘지 않으면 좋은 거고. 안정빵으로 가서 나쁠 건 없고. 더 잘난 척할 명분은 타인에게 양보하고 싶은 마음 굴뚝같고. 즉 그와 연관되어 한말씀 드리자면 이렇다. 여자의 우정에서도 뻔히 보인다. 뭐가 보이냐, 바로 그것. 질문이란 곧 내 얘기를 찬찬히 들어주란 말이지, 진짜로 너의 의견이 미칠 듯이 궁금하기 때문에 질문하는 게 아니라는 거. 다 그런 건 아닌데, 액면 표정 눈치와 분위기 살피면 모를 수 없는 것. 알고 싶기는 뭘 알고 싶어 다 비슷비슷 똑같은 거 맞장구치며 듣는 척 관심 기울여주고 들어주면서, 딸랑딸랑 반짝반짝 가식일 뿐이지. 안 그런가? 내 얘기 친구 얘기 가운데 기쁘고 유쾌하며 즐거운 일들이 많으면 그분들께서 뭐하러 남 얘기에 열을 올리시게. 안 그런가? 뭐 귀가 2개요 입이 1개인 건 남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 2번 듣고 1번 말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웃기고 자빠졌네. 귀가 2개인 건 그냥 좌우 균형감 때문이고, 남 얘기 듣지 않고 나만 말하기 위해서일 뿐. 나 듣고 싶을 때 듣고, 듣고 싶은 거만 듣기 위해서. 어? 귀는 그냥 폼으로 달린 것. 따라서 어른들 중에서 그렇게나 안 듣고 자기 말만 하는 수다머신이 그렇게나 흔한 것. 그 가운데 겉 주변만 돌고 돌고 돌고, 꼬고 꼬고 꼬는 간접화법. 빈말로 질문 딱 1개 툭 던졌을 뿐인데 뭔 뻔한 얘기를 글쎄 길게, 길게, 길게 계속 반복하는 설교. 뜸들이고 뜸들이고 뜸들이고 서론만 많고 결론은 없는 화술. 여자말 번역기와 꽉 막힌 능글맞음을 벗기면... 웬만하면 뒤통수 한 대 퍽 때리고 싶단 말일뿐. 뭐 말이 그렇단 거고.
   「내가 말 걸지 말라고 했어, 안 했어?」
   「그러게. 넌 왜 고생을 사서 하니. 저분 보면 모르니. 말 걸면 안 된다니까 그러네. 너, 아, (몸짓)」
    좌우지간. 
    꿈이란 뭐 그렇긴 하나 원래 여자들의 이상형과 교집합이 많이 부족한 남자가 그 2가지를 성취하더라도. 그럴지라도 천성이 비관적인 사람은, 나중 매사 불만족스러운 조롱꾼 생활은 여전한 것. 성격은 변치 않음. 천성이 어찌 변하나. 남자는 일생 직진. 여자는 다르겠지만. 바로 그래서 여자들 상당수이자 태반이 좋아하는 남자는 착해 보이는 남자라는 건, 두 말 하면 잔소리! 여자의 이상형은 요컨대 착해보이는 남자. 그런데 알고 봤더니 양의 탈을 쓴 늑대! 그게 바로 동격이 아니라 상향지원 하향지원인 것. 감히 어디서 겸상을... 너무너무 좋아서 심신 분리되거나 환승이별감이자 적당한 먹잇감으로 물망에 오르지 않으시기를. 영화를 너무 많이 봤을까? 다큐멘터리 그만 좀 봐야지 이거 원 거 참 나 아 증말 이거 무슨, 허허! 아무튼 여자들 태반의 이상형이 착한 남자라는 건 빼도 박도 못함. 뭐 그건 그거고. 그래서 그분들은 우리한테 넘어올 수밖에 없음. 뭐? 통과. 
    그런데 그와 달리 그는 사정이 달랐다. 어떻게? 첫째 돈 둘째 사랑에 대해서, 돈은 어차피 없고 사랑은 관심 없고. 때문에 빈정거리길 좋아하는 욕심꾸러기로써 어디서 명함을 내밀기 썩 애매했다. 뭐가 어쩌고 어째? 정나미 뚝 떨어지는 비교 우위로구만 그래. 아는 척 잘난 척 자기 자랑. 꼰대 지수가 올라간 건 다 허세 지수와 비례했기 때문. 아닌가? 아닌 게 아니지. 그렇지만 허언증도 불치에 허풍이란, 재미없음과 심심함을 양쪽에 꿰찬 듯한 우스운 꼴에 대한 방어기제일 수도 있는 것. 하지만 자기 합리화도 재미없다. 정신 승리 그거 인터넷 놀이터에서도 별로 쳐주지 않는 장난. 완전 식상. 인기 없음. 더럽게 재미없음. 툭하면 속은 내가 더 멍청하고. 어쨌거나 딱히 불행을 편애하는 건 아닌데 매번 따분함. 특히 썩 탐탁치 않아도 통상 뭘 해도 재미없고 보통 지루하지 않으면 거짓말. 일단 사랑 얘기라면 신물이 다 남. 안 그래도 지성과 거리가 전혀 멂. 더구나 유쾌하지도 상쾌하지도 통쾌하지도 못함. 더더군다나 전혀 명랑하지 않음. 그럼 벌써 시들어버린 청춘? 이런 젠장! ~라며 푸념하기도 그는 지칠 것이다. 왜 아니겠나. 난 늙지 않았어 난 미치지 않았다고, 라며 거리낌 없이 말하기도 귀찮고. 난 변치 않을 거야 라고 장담하기도 싫고.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진퇴양난. 그래서 NB는 놀다 지쳐 결국 일할 수밖에 없었다. 마침내 왜 일을 해야 하는가를 깨달은 것일 수도 있고. 공부하기 싫었듯 뭐가 걸리든 싫증내기 좋아해서일지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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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 ─ 157

from 소설 2019. 9. 29. 15:38

    1

    네덜란드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악마가 머리를 슬그머니 집어넣지 않은 성인의 외투는 그다지 성스럽지 않다'. 정말 그래? 말하자면 악마의 유혹을 받아보지 않은 성인은 성스럽지 않다는 뜻인데. 보아하니 세상사 이치가 그렇다. 골목대장의 무대는 오직 골목일 뿐이요 빈 수레가 요란한 것. 신부들러리 없이 신부는 외롭고, 병풍 없이 주인공도 초라하며, 다 백댄서가 빛내니까 가수도 조명발에 빛나는 것. 사랑의 아픔을 모르는 숙녀가 어떻게 슬픈 노래를 잘 부를 수는 있다만. 다만 온실 속의 화초, 산전수전 다 겪고 수많은 전장들을 누빈 백전노장의 경험치. 전자와 후자는 엄연히 다르다는 의미. 그래서 당신의 전성기로 다시 돌아간다면? 다시 못 돌아간다. 고로, 우리는 오늘을 살자. 오늘 달콤한 사랑을 못하면 내일 하면 되고. 오늘의 패전도 내일이 되면 새콤한 추억이 되는 것. 적어도 인생 경험은 되는 것. 한편, 막살자 라는 애칭을 간직한 웨이터와는 좀 더 친교를 나눠봐야지. 아직은 잘 모르는 사이니까. 그러므로 기똥찬 관찰력은 되는데 독단적 인지라는 장막을 벗어나 탁월한 원리, 즉 명대사를 간명히 제시할 수 없다면. 그렇다면 <너 나 잘해, 어? 늬가 뭔데 설치긴 설쳐! 어디서 지적질이야 어?>라는 말 듣게 되면 기분이 좀 뭐하니까. 그냥 탁월한 지적 만족감 정도에서 멈추는 정도는 누구나 다 한다. 입진보랄지 극보수, 같은 진영에 사람 좋도록 귀 기울였다간 (몸짓). 그야 뭐 그러려니 하는 거고. 이 세상에 그 정도도 못하는 어른이 어디 드문가? 드물지 않음. 흔하디 흔함. 안 그런가? 일상적인 과장법 그거 누가 못해. 습관적인 뻥? 못 하는 게 아니라 할 수 있어도 참을 뿐. 그러니까 지금 참는 게 탁월한 재주와 아찔한 지성의 설교가 아니라 뭐 그렇고 그런 흑심이라고? 하여간에 못 말린다니까 그래. 됐고. 
    그래서 나는 오늘 뭘 하고 놀아야 재밌게 놀았다고 소문날까, 라는 고민을 안고서 잠에서 깨어났다. 
    REM 수면 단계 전과 중간과 후. 기승전결 뿌옇고 이상하고 허접한 꿈 내용을 복기하고 재구성에 어쩌고저쩌고. 
    그거 다 한 다음 딱 침대에서 눈을 떴다. 
    침대에서 눈을 뜰 때 자세는 옆으로 누운 상태. 
    방향은 침대가 한 쪽 벽에 붙여져 있는데 벽 반대쪽을 보는 모습. 
    그렇게 나는 딱 아침에 눈을 떴어. 떴다고. 
    그런데! 뭐야 이거? 눈 앞에 웬 처녀가 있네? 그런데 자태가 자태가, 괜찮아. 게다가 이뻐. 심지어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인상. 얠 내가 어디서 봤지? 그런데 얘는 내 앞에서 뭘 하고 있는 거지?
    알고 봤더니 걘 나와 오빠 동생 사이인 릴리였다. 
    다시 말하자면 나는 옆으로 누운 상태에서 딱 눈만 떴고. 
    내 앞에 릴리는 의자에 바른 자세로 앉아있었고. 
    그 기하학적 구조를 인상파 다음 화파가 뭐더라? 
    아무튼 그렇게 눈을 떴는데 더 기막힌 건 그것. 
    그게 무엇일까? 릴리는 투피스 정장을 입었는데. 
    그녀의 팬티가 보일락 말락 했다는 거. 그게 다 그녀의 교묘한 연출인 듯. 아닐 수도 있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말이야, 이거 너무 노골적인 거 아니야? 때문에 난 옛 기억을 연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옛날에 단짝 친구랑 놀이공원에 갔는데. 바이킹 근처 의자에 앉아있는데 우리 왼편 10시 방향? 9.5시 방향? 하이힐에 짧은 투피스를 입은 엄마와 어린애. 각도가 심하게 낭만적이었기 때문일까? 
    당시 난 그 고상한 여인의 팬티를 보고야 말았는데. 뭐라고? (절레절레). 그래도 당시 그녀도 아마 대충 알고 있었을 터. 어쩌면 그녀는 외로웠을 수도 있고. 딱 봐도 또각또각 하이힐이자 달아오르고 흥분하며 뜨거워지는데, 그쪽으로 다가가는 손을 느끼면 톡! 톡? 여자의 내숭이 뭔지를 아는 사람은 알고. 아는 늑대도 있고 잘 모르는 하이에나도 적지 않고. 어쨌든 넘어가고. 
    그렇게 내가 눈을 뜨자마자 내 의지가 아니라, 각본에 따라 그녀가 일부러 무슨 포커판 밑장 빼기도 아니고 섹시한 자세를 보여주고. 
    그렇게 내가 눈을 뜨자마자 그녀는 때마침 다리를 꼬았고. 
    그렇게 내가 눈을 뜨자마자 안 그래도 나는 피노키오 상태인데. 그게 그러니까, 뭐야! 얘가 어디까지 봤지? 
   「네가 여기 어쩐 일로...」
   「오빠. 다 들었어.」
   「들어? 뭘 들었는데.」
   「오빠가 나 좋아한다며?」
   「내가? 널? 내가 너를 좋아한다고?」
   「그럼 그렇다고 진작에 말하지 그랬어. 응? 남자답게 나한테 직접 고백하지 그게 뭐니?」
   「그게 뭐냐니?」
   「왜 오빠가 내숭을! 다 들었어. 에밀리한테. 오빠가 나 좋아하다고 그랬다며?」
    난 느꼈다. 다름 아니라 그건 에밀리의 수작이라는 걸. 얜 순진하게 그런 썩은 장난에 다 넘어가다니? 아니면 일부러 넘어간 척하는 건가? 그럼 얘가 정말 고수 중의 고수인데?
    일단 오해 먼저 풀어야 하니까. 그래서 나는 에밀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상황은 정리됐다. 에밀리가 농담했는데 릴리가 내게 따지로 온 게 아니라. 그게 아니라 
    에밀리 왈 : 세바스찬 ──사랑의 화살표──> 릴리.
    그런데 릴리는 '세바스찬'을 나로 잘못 들은 것이었다. 
    설마, 일부러?
    소셜 네트워크의 댓글과 메시지 등 증거도 여실히 남아있고. 
   「오빠. 살다 보면 말이야 뭐 이런 일도 있는 거 아닐까? 물론 우리는 그럴 수 있다지만, 오빠들은 그러면 안 되고. 그치? 오빠가 잘못했지? 그럼 오빠가 순순히 흑심죄를 인정한 셈치고. 난 이만 갈게. 다음에 봐 오빠. 안녕.」
    이건 뭐지? 난데없이 아침부터 뭐야 이거. 이래서 옛날 옛날에 첫 손님으로 여자가 들어오면 소금을 뿌렸을까? 구식 탱탱 묵은 얘기는 그냥 옛이야기일 뿐이고. 
    이래서 거친 말로 뱃놈, 순화하자면 바다 사나이들이 고기잡이 배에 여자가 승선하는 건 주의했다는 철 지난 드라마 내용은 일종의 상식인 걸까. 
    근데 우리가 여자를 왜 싫어해. 농담이고. 말이 그렇다는 거고. 아무튼 릴리도 릴리다. 
    그런데 도대체 어디까지 봤지? 또 여긴 어떻게 들어온 거야. 
    소심한 고양이가 뻔뻔한 쥐를 만든다는데. 릴리는 대범했고 그럼 뭐 난 비 맞은 생쥐야 아님 닥스훈트야 아님 웰시코기야. (절레절레)
    남부럽지 않은 제 7의 전성기를 맞이할 차례는 전망이 영 내게 호의적이지 않고. 무엇보다 준비는 됐는데 일단 오지를 않아. (절레절레)
    그래서 오늘의 커피, 오늘의 커피? 아빠가 꼭 오늘의 커피를 마시라던 그녀와 데이트를 했어야 하는데 했어야 하는데. 넘어가고. 
    오늘의 음악은, 빈첸초 벨리니 / 오페라 <몽유병의 여인> 중 1막의 아미나의 카바티나: 이 얼마나 화창한 날인가. 
    이따 낮에 사무실에서 싫증나고 재미없고 심심하면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도시의 무도회> 괜찮은 위작을 검색해보기로 했다. 
    릴리가 대체 어디까지 봤을까? 식겁하다. 정말 식겁해. 어? 아주 그냥 살발하다 살발해. 여심도 여심이지만 그녀의 뭐라고 해야 할까. 
    뭐라고 하긴 뭘 뭐라고 해. 우리가 쳇바퀴를 어찌 탈출하나. 월요병 그거 알고 보면 감사하고, 따지고 봐도 싫지 않다. 다 그런 건 아니겠으나. 





    2

    릴리가 뜬금없이 날 깜짝 놀래켜준 일. 며칠 내내 날 들뜨게 만들었다. 
    다시 생각하니 매번 설렜다. 그와 동시에 그 기억은 날 부끄럽고 수줍은 처녀로 만든 것만 같았다. 
    그게 다 여자의 마음 때문? 아니지. 오직 여심만으로는 부족. 그건 이론. 실행은 여자에게 썩 싫지 않은 성과를 선물하는 것. 
    정말로 여자가 그렇다고? 때문에 그녀들끼리 사석에서 하는 말은 남자의 상상을 뛰어넘는 일. 가령, 너도 전남친과 성관계하는 꿈꿨니? 아니면 짝사랑남이 뒤에서 포크로 늬 엉덩이를 푹 찌르는 꿈을 꿨니?
    뭐? 뭐가 어쩌고 어째? 무슨 뽀얀 엉덩이가 돈까스야 뭐야! 늬가 내 마누나 데리고 살래? 데리고 살긴 뭘 데리고 살아! 하여튼 생각하는 거 하고는. 뭐 오 땡큐? 워아이니! 그대에게 사랑과 정렬을! (뭐? 우웩~~~!)
    됐고. 일이나 하자. 
    선곡은 뭐 대충 이런 거?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 오페라 <코지 판 투테> - 움직이지 않는 바위처럼 내 마음 변치 않으리. 
    일하다 지겨워지면 이따 인터넷 검색은 이런 거? 
    여친한테 엉덩이 맞는 남친.
    고양이가 꼬리를  부르르 떠는데 왜 그럴까요?
    또.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 그 초정밀 위작의 가격과 거래는 어떨까 같은 거.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라울 뒤피 작품 가운데 가격은 착하고 그런대로 구색 갖춘 그림이 뭐가 있을까.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그렇게 하여 대충 오후 4시가 됨. 
    그런데 행복도 그래프는 상승하지 않음. 
    그러므로 나는 특단의 대책까지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뭔가 의심이 일고 미심쩍고 퍽 의뭉스러운 감정을 숨길 수 없었기 때문에. 고로 에밀리를 찾아갔다. 
    만나서 따질 건 따져야 하니까.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여기는 에밀리의 사무실. 
    조아키노 로시니 / 플루트, 클라리넷, 혼, 바순을 위한 사중주 
    어라, 이 촌년 봐라! 농담이고. 이년이 꼴에 고전음악을? ~라는 듯이 품위 없는 생각을 난 하지 않았다. 
   「에밀리. 늬가 우리 착한 릴리에게 뻠뿌질했니? 어? 릴리가 무슨 자전거 타이어니 뭐니, 뽐뿌질을 하게. 어?」
   「뽐뿌질 하긴 누가 뽐뿌질 했다 그래? 엇그제 전화로 자초지종 다 정리됐잖아? 릴리 그년이 착각한 거라고. 설마 오빠, 릴리, 좋아해?」
   「그래. 나 릴리 좋아한다. 됐냐?」
   「오빠 나 좋아한 거 아니었어? 순정이 어떻게 변하니. 오빠 이거 순 바람둥이 아니야? 어?」
   「웬 공세로 나를 쪼아? 날 좀 웬만치 코너로 몰아라 에밀리야. 오빠 좀 쉬고 걷고 놀잔 말이야. 어?」
   「안 돼. 오빤 달려야 해. 그게 어울려. 왜냐고? 오빤 허당이니까. 은근 허당이 아니라 그냥 허당. 푸하하하하하하.」
   「뭐? 뭐가 어쩌고 어째?」
   「오빠. 흥분하지 말고. 흥분은 여기서 하는 게 아니지. 그런데 오빠 짜증내니까 귀엽네. 응? 호호호. 그러지 말고. 오빠. 오빠. 나 어떻게 생각해?」
   「널 어떻게 생각하냐고?」
   「응.」
   「어떻게 생각하긴 뭘 어떻게 생각해. 앉아서 생각하지. 로댕 몰라 로댕?」
   「로댕 같은 소리나 하고 자빠졌네. 잘났어 정말. 마음을 줘도 싫데. 응? 그럼 도대체 뭘 달란 소리야! 무슨 애도 아니고 말이지. 하여튼 분위기 없다니까. 설마 일부러 그러는 건가? 뭘 모르는 양반이 결코 아닌데. 혹시...」
   「혹시? 혹시는 뭔 놈의 혹시!」
    나는 아마 에밀리를 괜히 찾아간 것만 같았다. 기세 좋게 따지려다가 혼쭐이 난 건 결국 나였으니까. 
    말하자면 난 젖긴 젖었어. 그런데 젖긴 젖었는데 패배감에 젖었네? 이런 젠장. 
    이상형은 이상형인데 한 물 간 이상형이야 뭐야. 
    아랍 속담에 이르기를, 짐승이 너를 두려워하기에 앞서 짐승을 두려워해라 라고 했다.
    난 다시 한번 깨달았다. 살쾡이를 조심하고 여신들을 떠받들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3

    나는 맨발의 청춘보다 나이 많기로 한 수 위. 난 그분들보다 평범한 연애하기로 한 수 아래. 한 수? 한 수가 아니지. 자랑할 게 그렇게 없나 (몸짓). 그렇지만 허당 특유의 낙천가 기질을 앞세우자면 인생이란 곧 건배사. 즉 청춘은 바로 지금, 줄여서 청바지. 그런데 일단 그런 건배사를 외칠 일 자체가 없어. 아니. 우선 자리가 갖추어져도 생각해보니 길어. 너무 길어. 그래서 인상 깊은 건배사는 뭐다? (딱) 그렇지~ 떡! 응? OK! 건전한 이성 교제 괜찮고, 풋풋한 하이틴 드라마를 애호하는데. 그게 나쁘단 말도 아니고. 내일을 위해 오늘 뭔가 참는 그분들 멋지시고. 사랑스러운 숙녀들이 죄다 응큼하단 게 아니라 사실은 사실이니까. 실제로 들어보면 또 썩 퇴폐적이지도 않고 오히려 순수하게 웃기기만 하다. 어쨌든 농담이고. 아니. 농담이 아니지. 소소한 잔재미이자 일상의 흥미로운 기쁨이 뭐 딴 건가. 그렇듯 연애도 어차피 둘 중 하나. 첫째 어떻게 잘 돼서 나중 결국 사랑이 식던가 아님, 둘째 영원한 남남으로 이별하던가. 통계적으로 사랑은 한마디도 길다. 짧게 요약하자면 요점은 그것. 사랑은, 가! 듣기 거북하게 무슨 닥치고 들으라느니 꼴도 보기 싫으니까 꺼지라는 둥. 응? 너무 길다고. 그러므로, 줄여서, 가! 그런데 일절 오지를 않는데 그 말조차 할 기회가 없는 게 문제. 누가 아니래. 하여튼 격론의 주제는 언제나 사랑? 푸념만 늘어놓는 게으름뱅이 같은 생활하고는. 무슨 말 같지도 않은 헛소리나 속출하고. 밑도 끝도 없이 가긴 어딜 가. 옹립할 건수는 없고. 항상 보면 섭섭한 기색만 역력. 아 그런가 안 그런가. 말이야 바른말이지. 은밀한 성적 쾌감, 그런 거 지겹고 짜증나고. 차라리 어디서 찬물이 끼얹어지는 봉변을 당하는 게 낫지. 요망한 것으로부터 따귀라도 얻어맞는 게 차라리 낫긴 낫다고. 어? 진짜로? 말이 그렇다는 거고. 좌우지간 어쩌면 말이야, 사랑이란 에티오피아 속담 같은 것일까? 표범 꼬리는 잡지 말돼, 만약 잡았다면 놓지 마라! 뭐라고? 그러거나 말거나. 관심도 없고. 남의 사 타인의 인생 알고 싶지도 않고. 연예인병에 환장하듯 남 생각 요만큼도 하지 않고 자기밖에 모르는 영심이들 관심도 없고. 
    따라서 나는 <머머하니 머머한다 그래서 머머하지 않을 수 없다>에 얽매이지 말고 일단 뭔가를 저지르기로 했다. 쉽게 말해 '남자는 집에 있으면 안 된다...' 또 그 뻔한 카드를 만지작만지작거리는 건가? (절레절레). 
    전 세계를 뒤져도 도저히 찾을 수 없도록 고혹적인 매력. 그런 건 모르겠고. 나는 조니와 연락이 됐고 그를 만났다. 
드라마처럼 화면 전환하고 적당히 상징적으로 카메라가 어딜 비추고. 구간 댕겨서. 중간 건너뛰고. 
    여기는 카페. 내부에는 하필 윌리엄 J. 글래큰스의 그림이 걸려있었다. 미술부 기자 출신이니 일러스트레이터니 미국의 르누아르니. 그런 설명보다 하필 호텔 캘리포니아가 생각나게 말이야. 호텔 캘리포니아? 록그룹 이글스가 아니라 드라마 캘리포니케이션의 바로 그 장면이 연상되잖아? 젠장. 
   「조니. 너도 아내와의 잠자리가 무섭냐?」
   「너 나 놀리는 거냐? 설마 안 들었니?」
   「왜, 너 이혼했니?」
   「결혼을 해야 그냥 쭉 살던가 각자 갈 길 가던가 하지. 나 외롭지 않아. 나 여자 관심 없다고. 어? 온전히 총각. 성한 정력 왕성한 수컷. 응? 난 이렇게 멀쩡히 혼자인 인생을 즐기고 있는데. 그런데 첫인상 첫 키스 첫날밤 애교 내숭 질투, 그렇게 사랑. 그러다 의리 져버리고 결국 날 들었다 놨다 쥐락펴락한 결과, 뜬금없이 이혼남? 뭐니? 어? 그게 뭐야? 그리고. 내가 설사 유부남. 여기 너랑 나랑 단둘뿐이니까 하는 얘긴데,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이니 들어 봐. 어? 유부남 + 유징어 = 유징어. 어? 늬가 뭘 좀 모르시나본데 그건 말이죠~ 에잇 관두자. 관둬. 됐다고. 아니지? 아니지! 무슨 말 같지도 않은 합성어에 내가 해당된다고 쳐. 그냥 그렇다고 가정하자고. 그런다고 내가 뭐 아내 샤워하는 소리에 쪼는 그런 새가슴인 줄 아니? 어? 우리는 초장에 잡어. 알아? 잡혀 살긴 누가 잡혀 산다고 그래? 아니야. 아니라고. 아니긴 뭐가 아니야. 또 그리고. 응? 아 여자를 소개나 시켜주고 그런 말을 하던가. 어?」
   「그럼 너도 모태솔로니?」
   「뭐 너도? 난 아니다. 난 아니야. 얘가 왜 이래? 은근슬쩍 묻어가려 하네? 어영부영 너랑 나를 1 + 1로 묶지 마 얘.」
   「야. 같은 정력가끼리 이러기야?」
   「이게 뭐 어때서. 내 정력에 늬가 뭐 보태준 거 있냐?」
   「어. 있지. 내가 저번에 흑마늘이랑 인삼이랑 파인애플 오렌지 망고 사줬잖아.」
   「그래? 그래. 그건 그래.」
   「할 말 없지? 이러고도 우리가 친구냐? 내가 늬 친구인 줄 아니? 어?」
   「우리는 친구지. 그럼 뭐 늬가 내 마누라라도 되냐? 늬가 뭐 내 여편넨 줄 아냐? 넌 내 대부가 아니야. 어? 이러니 이러니 재미가 없지. 응? 여태 늬가 내 정력에 뭐 보태준 거 있어?」
   「정력 얘기 이제 그만 좀 하면 안 되니? 듣기 싫어하는 거 보이니까 입 트였네? 너 몸보신하는 데 좋다는 거 요즘도 막 씹어먹고 그러니? 우리 이런 얘기 하는 줄 알면 여자들 질색 팔색을 할 꺼다. 아주 쓰러진다고. 어?」
   「없잖아. 여자 없잖아. 그리고 우리 평소에 안 그러잖아.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야. 아닐지도 모르지만. 또 그리고 정력은 뭔 정력. 난 발정기 아니다 너. 어? 여태 잘 참다 왜 그래? 응? 너 외롭니? 그러니? 하여튼 넌 못 말려. 아니 어떻게 말이야, 어? 멀쩡한 총각을 한순간에 이혼남으로 만드니? 혹시, 너가 그 뭐야, 그래. 늬가 돌씽 아니니?」
   「뭔씽? 돌싱 같은 소리나 하고 자빠졌다.」
   「늬가 시작했잖아.」
   「이봐, 집어치워. 어? 여보게. 그따위 속임수로 날 띄울 수 있다고 예견했다면. 그건 심각한 착각일세. 알겠나? 그렇다고 날 동정하진 말게. 날 불쌍히 여기지 말란 말일세. 난 나야. 넌 너고. 우리는 둘 다 오빠라는 말도 못 듣고. 안 그래? 안 그러긴 뭐가 안 그래! 그런데 내가 지금 뭔 밑도 끝도 없이 헛소리를 지껄이고 있지? 나도 몰라.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그러게 자넨 내가 말 같지도 않은 횡설수설을 시작하면 좀 말려. 어? 뭐 못 말린다고? 해보긴 해 봐야 할 거 아닌가. 응? 말도 안 되는 얘긴 나도 듣고 싶지 않고. 누군 뭐 하고 싶어서 한 줄 알아? 그러지 말고. 우리, 어? 근데 내가 뭔 말을 하려고 했더라? 내가 원래 이랬나? 아닌가? 이런 느낌 처음이야. 이런 기분 난생처음이야. 그런데, 뻥이야. 뻥. 그럴 리가 있겠나. 내가 무슨 여자도 아니고 말이지. 허허허.」
   「그건 또 뭔 소리야? 너 연극 대사 외우니? 참 나 거 얘가 얘가 별걸 다하네. 하다 하다 1인극 독백이냐?」
   「나 멀쩡해. 나 미친놈 아니야.」
   「누가 너 미쳤데? 누구야? 걔 누구야? 내 이 놈을 가만 두나 봐라. 아주 그냥 혼꾸녕을 내줘야지.」
   「야. 재미없고. 둘이 노니까 더럽게 재미없다야.」
   「너 그 생각했지? 케빈 불러내서 같이 놀자고?」
   「어떻게 알았어?」
   「늬가 뭐 독심술사냐? 늬가 뭐 노스트라다무스냐고.」
   「그 양반은 독심술사 아닌데. 늬가 뭘 잘못 아나 본대, 아니다. 됐고. 아무튼. 너랑 나랑 아는 친구가 케빈 밖에 더 있냐? 그럼 너나 나나 성격 아는데. 낯가리고 친해지는데 시간 필요한 친구끼리. 어정쩡한 1.5군을 불러낼 수도 없잖아. 안 그래? 한동안 벌어먹고 사느라 많이 재미없었어. 덮어놓고, 어? 놀자! 그러자꾸나 친구야.」
    그렇게 조니와 나는 친구 케빈을 만나러 갔다. 





    4

    사랑이란 홀딱 반하는 거고, 이별이란 홀랑 털리는 일. 그럼 전자는 사냥이요 후자는 도박일까? 그야 내 알 바 아니고. 좌우지간 바로 그래서 뻔트가 있는 것. 뭐라고? 넘어가고. 여하튼간에 여기서 뻔트는 친구 집에 놀러 가기였다. 
    그래서 지금 여기는 케빈네 집. 
    인원. 조니, 케빈, 나 이렇게 셋. 
    장면. 우리는 칵테일과 케익과 과자를 앞에 놓고서. 소파에 앉아 TV를 틀어놓고 수다의 환상에 빠졌다.
   「너네 최근 솔깃한 얘기 들은 적 있니?」
   「난 없어.」
   「우리는 없어. 어? 그 말은 곧 넌 있다는 얘기잖아? 뭐해 어서 말하지 않고.」
   「하여튼 넌 눈치 하난 100단이야. 그런데 넌 왜 여자가 없을까? 농담이고. 나 저번에 그 말 들었어.」
   「뭔데?」
   「뭔데? 어서 말해. 어?」
   「그 말은 곧, (숙녀의 어조로) 우리 집에 갈래요? 아니. 갈래요가 아니지. 그렇지. 그래. 가자 오빠. 가자고. 응? OK~! 가는 걸로.」 
   「와 정말?」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됐어?」
   「갔어.」
   「갔어?」
   「그래 갔어. 갔는데.」
   「갔는데?」
   「걔 집에 같이 사는 언니들이 많더라고. 그날 견적 많이 나왔다. 내 지갑 털렸단 말이야. 나 완전 그날 개 털됐잖아. 안 그래도 개 발인데 말이야. 아아 다음 달 카드값 많이 나오게 생겼어. (절레절레)」
   「난 또 뭐라고.」
   「누군 사랑 안 해본 줄 알아?」
   「왜 약해? 정말 약해?」
   「그럼 뭐 비장의 카드 그런 거 있니?」
   「그럼 있지. 벌써 불렀어.」
   「뭘 불러?」
   「여자 3명. 오늘 우리 집에서 3 대 3 소개팅하는 걸로.」
   「진짜야?」
   「진짜겠냐. 뻥이지.」
   「」
   「거 봐. 거 보라고. 내가 말했지? 그러게 될 줄 알았다니까.」
   「너가 언제 말했다고 그래?」
   「말이 나와서 말인데 내 생각에는 말이야, 그게 그러니까 음 뭐라고나 할까. 아 맞다. 나 지금 일하러 가봐야 돼. 어쩌지? 어쩔 수 없지. 너네들 편히 놀다가.」
    그러면서 케빈은 일하러 갔다. 
    친구네 집에서 주인장 친구 없이 놀면 것도 재밌긴 한데. 둘 중 하난 꼭 뭔가 어색하다면서 꽁무니를 빼기 마련. 그런 걔만 빠지면 그만? 분위기 식는다. 뭔가 기분은 사그라들지 않을 수 없음. 하여 조니도 자기 약속 있다면서 가버렸다. 
    그래서 결국 케빈네 집에 나 혼자 덜렁 남게 됐다.
   「뭐 혼자 놀라고 하면 누가 못 놀 줄 알아?」
    일은 그렇게 됐고. 시간은 저녁을 지나 밤이 되었다. 
    케빈은 전화로 자긴 오늘 직장에서 밤새 일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니 나보고 자고 가라고 했다. 누가 자고 가라면 못 자고 갈 줄 알아? 
    그렇게 나는 혼자 이거 저거 구경하고, 만지작거리고, TV 보고 어쩌고. 그러다 포도주 몇 잔 마시다가 곯아떨어졌다. 
    다음 날. 
    소파에서 나는 눈을 떴다. 
    아침에 케빈 집 소파에서 내가 깼는데. 두 눈을 뜨자마자 내 앞에 보이는 건 크리스탈. 
    이번에는 스커트가 아니라 핫팬츠였다. 핫 뭐? 띠용!
    하오나 보이는 건 아름다운 숙녀였으나 듣게 된 건 영 딴 판이었다. 
   「오빠 케빈 아니잖아? 오빠가 여기 왜 있어? 젠장. 새똥 맞음 셈 치지 뭐. (몸짓) 에잇.」
   「넌 뭐니?」
   「넌 뭐냐니. 오빠는 뭔데?」
   「나? 나 여기 있으려고 하지 않았어. 조니가 데려왔어. 그리고 나만 남겨놓고 걔네들 각자 볼 일 보러 간 거고. 내 잘못이 아니야. 나라고 뭐 늬 기대감 실망시켜주고 싶겠니?」
   「그래도 사실은 사실.」
   「넌 내가 그렇게 싫으니? 내가 그렇게 못생겼니? 아님 케빈이 너무너무 잘생겼니? 내가 일부러 이 소파에서 잠을 잔 게 아니라니까 그러네. 왜, 다비드는 다비든데 어디산 다비드. 소개시켜 줘 말어? 그런데 너넨 원래 아침부터 그렇게 바쁘게 사니?」
   「왜, 그럼 안 돼? 우리는 밤늦은 시각에 이모 스타일로 나대는 숙녀가 아니라서. 뭐 남녀의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지만 또 알고 보면 꼭 그렇지도 않아. 오빠도 잘 알잖아. 응? 청춘남녀 저녁에 만나고 밤에 파티하는 게 꼭 나쁘다는 말이 아니라. 그건 그거고 우리는 다르고. 어? 우리는 사랑의 표적으로 딱 찍었다 싶으면, 어? 아침부터 인생 내내 우리 오빠만 사랑한다네. 그래서 인생을 걸 만한 우리 오빠인가 아닌가 면밀히 살피느라 에너지를 심하게 낭비하지. 그게 다 일장일단이 있어. 그럼. 좌우지간. 오빠가 왜 여기 있어? 아 짜증나. 아 졸라 빡쳐.」
   「빡, 뭐?」
    그렇게 크리스탈은 가버렸다. 
    크리스탈이 나간 후. 나도 집에 가려는데 문이 안 열림. 
    그럼 크리스탈은 어떻게 나간 거야? 설마 여기 온 게 처음이 아닌 건가? 그래서 열고 닫고 그걸 아는 건가? 
    일단 난 처음이니까 문 열고 닫고 그거 잘 모르고. 
    그래서 나는 케빈과 통화했다. 
    통화 결과 보안 시스템 오작동 때문에 밖에서 문을 열어줘야 한다고 한다.
    필름 빨리 당기기. 
    구간 빨리 당기기. 
    케빈이 전화해서 옆집 아저씨가 문을 열어줌. 
    그런데 옆집 아저씨가 옛날 친구. 걔네 집에 놀러 감. 놀다가 망원경으로 나체촌을 관찰. 
    대화. 집으로 복귀.
    아 하나 더. 
    집으로 복귀하기 전에 그 옛 친구랑 나체촌에 가긴 갔다. 그런데 물이 영 아니었다. 때문에 각자 겸연쩍어지고 바쁜 척 나는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다. 





    5

    어쩌면 사랑이란, 인생의 모든 쾌락과 세상의 떠들썩한 기쁨을 난생처음 예감한 기분일까? 하오나 아찔한 기대감은 여지없이 큰 절망으로 변심한다고 연가들은 말하는데. 그러나 그건 나중 얘기고. 지금이 문제다. 인생은 지금이니까. 그러니까 현재 내 인생의 점수는 몇 대 몇? 그건 그랬다. 말하자면 이런 식. 보아하니, 어른들 어깨너머로 배운 잔지식과 잔심부름 같은 잔재주가 가르쳐준 세상사에 대한 해박한 잔소리. 있어도 나쁘지 않고, 다가오면 좋을 것이며, 많아야 할 건 사치와 호사와 판에 박힌 쾌감인데. 정작 있는 건 허언증의 호전 없음. 품위 유지비 간당간당. 서포터스 조마조마 녀석들과 연락 두절. 뭐? 고양이와 쥐의 질투 어린 사랑이냐, 늑대와 양 같은 사냥꾼식 애정이냐. 지금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 호박이 통 보이지 않는다는 게 심각한 문제일까 아닐까. 듣다 듣다 나가떨어질 연애, 나는 하다 하다 그게 다 부러웠다. 이를 테면 말하기 떠들기 떽떽거리기 나서기 질투하기 들들 볶기 좋아하는 마누라를 여편네로 둔 남편의 심정이라고나 할까? 그래도 다 알고 보면 남친 여친이라면 몰라도, 그분 속은 오죽할까. 부럽다는 말 취소. 딱 취소. (몸짓)! 그런 장르를 선망하고 그와 같은 식상한 사랑을 동경하는 걸 소녀감성에게 추천할 수는 없는 일. 아니 그런가? 일단 그런 헛생각을 하면 안 된다. 아니 될 일. 
    따라서 나는 더럽게 심심한 일상을 규탄하기 위해 뭔가 특단의 대책을 강구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렇다고 뭐 달리 뾰족한 수가 있겠나. 있을 턱이 없지. 그런 비장의 카드가 있었으면 내가 상상병에 걸렸겠나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상사병을 졸업했겠나. 특기는 숙녀에게 첫눈에 반하기. 농담이고. 진짜 농담. 우리는 여자 별로 좋아하지 않음. 관심도 없음. 아니 뭐하러? 할 일도 없지. 할 말이 떨어졌는데 어떻게 입이 간지럽냐고. 종잡을 수 없는 방황과 놀랍도록 세속적인 쾌락마를 떠올리며, 우리는! 어? 우리는 헛된 공상에 군침 흘리면서 엉덩이가 근질근질 심장이 벌렁벌렁해야 정상 아닌가? 그러거나 말거나. 헛생각 지겹고. 재미도 없고. 입들이 닳고 귀가 타들어 가는 입방아 30시간 결과, 세계 수다 대회 출전 자격을 획득한 듯한 수다 3시간. 그게 싫어서 우리는 발에 채이는 게 여자였던 허당 생활을 청산했을 뿐. 하지만 (개)허세를 뒷받침할 만한 두둑한 배포와 사실적인 근거, 그걸 누가 믿겠나. 알고 싶어 하지도 않겠지. 거 참 더럽게 재미없는 개 짖는 듯한 (개)소리구만 그래. 그렇다고 지금 당장 미래에 부끄러워할 난잡한 연애사를 지금 만들 수도 없고. 질펀하게 놀긴 뭘 질펀하게 놀아. 누가? 내가? 형씨나 많이 노슈. 난 싫소. 
    그래서 나는 핸드폰으로 연락처를 뒤적거렸다. 연락할 친구들은 차고 넘쳤다. TV에서 뭐 연예인과 코미디언들이 말하기를, 
   「계속 바쁘게 지내다가 어느 날 마침 한가해지길래. 그래서 심심해서 핸드폰 연락처를 봤는데. 막상 편하게 전화해 불러내서 술 한 잔 같이 할 친구가 딱히 없더라.」
    어쩌고저쩌고? 그거 다 뻥이다. 물론 모두 다 뻥이자 누구나 다 뻥은 아니겠으나. 그거 한마디로 오바다. 아니면 뻥. 
    다 자기 바쁠 땐 친구들 안 만나다가, 자기 한가하니까 자동적으로 보던 친구들을 수동적으로 내가 연락할려니까 어색한 것일 뿐. 
    자기는 친구가 0명이라는 사람도 알고 보면 흔하디 흔하다. 실제로 40대 50대 넘어가면 친구 만나기도 힘들고. 귀찮고. 어쩌고. 
    잘 나가는 허당들 빼놓고 연애다운 연애. 그거 제대로 해 본 사람. 과연 얼마나 많겠나. 웬만하면 모태솔로였다가 어영부영 뻔트만 대다 유부남 유부녀 되는 사례. 연락처 보면 쑤두룩하다. 
    그건 그렇고. 친구 핀이 사무실로 찾아왔다. 
   「너 이 자식. 요거 요거 응큼한 녀석. 얘 은근 음흉한데. 응? 많이 쑹악하다고.」
   「뭐 쑹악? 표준어로 말해.」
   「다 알아들었으면서 뭔 내숭. 너 소피 따먹었다며?」
   「뭔 소리야?」
   「늬가 소피랑 같이 호텔에 들어가는 걸 누가 봤다는데?」
   「그건 또 뭔 뚱딴지같은 소리야? 난 걔랑 안 친해. 걔 전화번호도 몰라. 너네들이랑 아지트에서 몇 번 본 게 전분데 뭔 소리를 하는 거니?」
   「그래?」
   「날 본 게 맞데? 어떻게 봤는데? 카메라로? 아님 (몸짓) 단안경 흉내 내며 육안으로? 그도 아님 쌍안경으로? 그럼 뭐 CCTV로? 도대체 날 무엇으로, 어떻게, 언제, 어디서, 누가, 왜 날 봤냐 그거지. 날 봐서 뭐하게? 내가 뭐 볼 거라도 있니? 아 글쎄 날 제대로 본 게 맞데?」
   「그게 그러니까 보긴 봤다는데. 음 솔직히 말하자면 옆에서 본 건 아니고 비스듬히.」
   「비스듬히?」
   「아니. 뒤통수만 봤데.」
   「뒤통수만?」
   「(뒤통수를 보여주며) 내 뒤통수 누구 닮았니? 웬만한 여자들 뒷모습 장난 아니야. 알아? 단지 앞모습에 실망하지 않기를 바랄 뿐인데. 우리는, 그녀들을, 이 세상에서 최고의 여신으로 만들어줄 수 있지. 그건 그렇고. 너 돌아봐. 그래. 늬 뒤통수도 영화배우 닮았네. 아니 가수던가.」
   「그럼 내 정보원이 뭔가 잘못 본 건가 봐. 그럴 수 있어.」
   「그럴 수 있긴 뭘 그럴 수 있어. 걔 정보원 맞니? 하여간 얼빵한 거 하고는. 너네 무슨 띨빵 대회 나갈 일 있니? 너네 왜 그래? 뭐 재미난 일이 없어? 어? 재밌게 해 줘? 응? 바쁘게 만들어 줘 말어! 말만 해. 말만 하라고. 어?」
    과연 나는 여기서 더 띨빵해질 것인가 아닌가, 그것이 문제일까. 그 친구를 보면 그를 알 수 있다는데. 핀 요 녀석은 원래 상태가 이렇게 영 아니었나? (절레절레). 아니. 나이가 몇인데! 하긴 나도 별반 다르지 않다. 가면무도회 같은 세상사. 고독한 도시의 사냥꾼 같은 인생사. 알고 보면 보잘것없는 연애사. 그 가운데 말년운은? 알고 싶지 않음. 관심도 없음. 그래도 할 일은 한다. 할 말을 할까 말까. 살까 말까 망설일 땐 살까? 그런데 뭘! 사고 싶은 거도 없을뿐더러 돈도 없고. 뭔가 맹렬히 몰두할 의욕도 바닥. 그래도 뭐 어떻게, 응? 연애 감성과 낭만적인 감수성을 크게 고무시키는 일 어디 없을까? 없다 없어. 있긴 어딨나. 있을 리가 없지. 누가 아니래. 내 그럴 줄 알았다. 





    6

    만날 사람은 만나게 된다? 때에 따라 멋진 말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다 나중 때려 맞추는 식 포장인 경우도 적지 않고. 비논리적 의심과 합리적 추정의 태반은 짜맞추기식 결과론. 좋게 보면 좋고. 나쁘게 보면 나쁘고. 내 일이냐 남 일이냐에 따라 의견도 천차만별. 요컨대 엄마 말은 꿈보다 해몽. 그런데 중요한 건 낙관 비관 희망 관망 등 선택은 내 몫 책임도 내가. 엄마가 내 아들에게 하는 말이, 결혼 전에는 양다리든 세 다리든 문어발식으로 막 만나는 거야. 남자와 여잔 다르니까. 다만 그런 며느리가 들어오는 건 대노할 일. 나는 되고 남은 안 되고. 내 아들은 인기 많은 바람둥이여도 뭐 그러려니, 그러나 내 딸이 플레이보이를 남편으로 맞이한다? 말 바뀜. 즉각 바뀜. 무조건 바뀜. 안 그래도 모든 여자는 전부 다 여신인데? 자상한 낭군님이 첫사랑인 부인. 행복한 가정에서 포근히 사랑받지만. 그런데 나중 보면 (일부는) 연애사 전적이 남편한테 딸려서 섭섭하고 서운해함. 그녀들끼리, 사석에서, 도대체 뭔 얘기를 하시는지. 잘 아시지 않나요! 
    그런 멋진 말들을 이제는 나도 좀 어떻게 폼 잡고 말해야 하는, 뭐랄까, 나도 어느새 어른이 되어버렸다고나 할까? 그래서 문득 그런 속담이 생각난다. '짖지 않는 개에게 늑대가 달려간다'. 그래서 난 최근 뭔가 많이 달렸고, 일중독 때문에 허언증도 치료됐다. 말하자면 내 맘대로 완치. 수전증은 아직이고. 그런데 이를테면 너무 많이 짖었던 것일까? 집 개가 수상한 방문자에게 짖던가, 사냥개로써 어떤 신호를 보내는 의미에서 짖던가. 아니면 양치기 견이 뜬금없이 짖던가. 잔재주가 왜 하필 최근 잔소리 쪽으로 기울어가지고 말이야. 어? 난 그냥 최근 사정없이 짖어댄 꼴. 목이 다 쉬었다. 입가 양쪽에 백태 허옇게 끼어 이빨 신나게 깐 다음 그거 떼는 시늉까지 하고 말이야. 어? 지가 언제부터 그렇게 말발이 좋았다고. 말발 좋단 말 일평생 통계내 봐야 딱 1번. 오직 딱 1번. 뭐야 그게. 이런 덜떨어진... 워 워 워. 뭐 아무튼 여우를 잡고자 하는 자는 거위들을 유인하여 사냥을 한다지 않나. 그런데 여우는 보이지 않고. 주변에 거위도 없고. 사냥 언제 완수했는지 기억도 안 나고. 낚시 가 봐야 다 헛스윙. 매번 꽝. 뭘 해도 개 발. 어? 왕년에 잘나가는 도박꾼이자 불세출의 난봉꾼이었다는데 카드 쥘 줄도 모르고, 여자 앞에서 말 더듬고 벌벌 떨어. 뭐야 그게. 어? (절레절레) 진짜로 그렇단 말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난 가끔, 아주 드물게 꿈에서 이렇게 글을 쓰는 꿈을 꾼다. 물론 깨어나면 기억하지 못하는 게 거의 다인데. 그래도 어쩌다 간혹 그런 잔소리를 늘어놓으면서 만년필로 미친 듯이 써 갈기는 이상한 꿈을 간혹 꾸긴 꾼다. 오늘도 그랬다. 그렇게 뭔가 하긴 했다는 뿌듯함 반에, 선명함이 좋은데 너무 뿌옇고 흐려서 서운한 꿈자리. 그런 약간 어중간한 개꿈을 뒤로 하면서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그런데 뭐야 이거! 어? 
    이번에는 샬럿과 비비안이 내 앞에 있네?
    이런 젠장~! 도대체, 어디까지, 본 거야?
    숨을 쥐구멍도 없고. 개구멍 막힌지 오래됐고. 두더쥐 집에 볕들 날 언제냔 말이지. 안 그런가? 
   「너네가 여긴 어인 일로!」
    사정을 듣고 보니 그랬다. 
    A. 샬럿이 토마스를 좋아함. 즉 짝사랑. 
    B. 그래서 샬럿은, 토마스와 친한 비비안을 통해서, 간접 고백. 
    C. 토마스는 내가 샬럿을 좋아하는 눈치이기 때문에 샬럿의 마음도 받아줄 수 없다고 함. (그럼 뭐 나는 샬럿과 육체적 대화를 나눠도 된다는 말이야 뭐야?)
    D. 따라서 샬럿은 나 때문에 토마스가 구애를 뿌리쳤다면서 속칭 빡침. 많이 빡침. 완전 뚜껑 열림. 
    E. 그래서 샬럿과 비비안을 이렇게 날 찾아와서 따지기로 함. 
   「그걸 나보고 어쩌라는 거니, 라고 할 수도 없고. 내가 토마스를 만나서 잘 설득해볼 게.」
   「그런데 오빠. 오빠 나 좋아해?」
   「내가 널 왜 좋아해? 아니. 그래. 좋아해. 그렇지만 이성으로 좋아하는 게 아니라 친분으로. 사랑과 우정 사이는 아니고. 선을 긋는다, 도 아니고. 가능성은 있다? 우리는 청춘이다. 때문에 멜로드라마를 이어가자. 그렇다고나 할까?」
   「멜로드라마 좋아하시네. 야, 가자. 순 난봉꾼 오빠 같으니라고. 에잇 재수없어.」
   「이러니까 그렇다니까. 현재의 보수는 미래의 박물관. 진보된 세계를 보여주는 드라마 봐 봐. 바닷물 사라지는 그 미니시리즈. 재밌잖아? 나중 이런 오빠들 때문에 어? 산부인과에서 애 낳자마자 아빠 친자확인해 주고. 어? 모든 인간의 DNA 표본을 수집해서 원천적으로 범죄 발생을 억지시킬지도 몰라. 물론 부작용이 있을 테지만 혁명이 아닌 이상 차츰차츰 진보해 나갈 테고 말이야. 아무튼 괜히 시간낭비했네. 야 가자.」
   「왜 나만 갖고 그래?」 ~라는 말을 걔네들은 듣지 못했다. 
   「정말 너네 가지가지 한다.」 라는 말 역시나.
    얘네 이거 상남자 마음 간보는 거야 뭐야? 어? 내가 무슨 무말랭이 김치 나부랭이 반찬이냐고 뭐냐고. 이런 해삼 멍게 말미잘. 날 뭐 간이 안 맞는 샐러드로 보는 거야? 어? 이거 왜 이래? 어? 
    반나절이 지났다. 
    나는 사무실에서 음악을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때가 때인 만큼. 역시나 공상할 차례가 되었던 것이다. 
    음악은, 주세페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 가운데, 파리를 떠나서.
    그 결과는 따로 칼럼으로. 





    7

    나는 좀 더 자기중심적이지 않으면 안 된다고 결정했다. 난 이기적인 속물로 살아가기로 결심했다. 왜냐하면 물렁물렁 흐리멍텅 살다 보니, 성격 좋단 말도 듣고 숙녀에게 뭘 좀 안다는 칭찬을 들을지언정, 호구와 종이 한 장 차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매몰찬 냉소주의자이자 섬뜩한 냉혈한으로 살겠다는 말은 아니다. 단지 말하자면 그렇다는 거고. 일만 하는 일닭 일소 일개처럼 지식노동에 너무 숙주를 혹사시키지 않았나 라는 의구심에 착안한 작심일 뿐이다. 물론 그 마음은 언제 바뀔지 모른다. 실상 말만 그럴 가능성도 농후하다. 인생이 늘 그랬듯 말이다. 뭐 누군들 안 그런가? 어디 인생이 내 맘대로 쉽게 쉽게 흘러가냔 말이다. 지금 이처럼 살게 될지 예전에 상상이라도 했겠냐고. 어? 잠깐만 있어 봐. 아까 뭐라 그랬지? 뭐 물렁물렁? 아아 물컹한 그 느낌! 그럼 나는 지금부터 딱딱하게 살아야 하나? 그런데 '단단'이 지금 왜 나와. 내 말이. 아마도 난 그저 멋진 말 좀 하고 싶었기 때문인 듯하다. 입바른 얘기도 한두 번이겠지만 그마저도 듣는 역할만 수도 없이 떠맡았으니까. 아무튼 말 많아지면 일단 수다쟁이로 찍혀서 주변에서 슬슬 경계할 게 뻔하니, 고로 우리가 갈 데라고는 뻔하다. 우리의 말을 직업적으로 들어주는 그분들 밖에 없다. 그래. 우리의 희망 내 사랑 바텐더. 그런데 바 앞에 붙여진 안내문은 그래. <여 바텐더 없습니다. 바텐더 남자입니다>. 뭐? 이런 젠장! 그 얘기 1번만 더 하면 진짜로 100번. 듣는 사람은 어쩌겠냐고. 하여간에 못 말려.
    한편, 밝혀질 내막은 밝혀질까? 그러니까 말이지 꽁꽁 숨긴 꿍꿍이 그 비밀스러운 사연은, 도대체 언제쯤에나 후련하도록, 속 시원하게 밝혀지냐고. 
    그래서 나는 사무실에서 고개를 돌려 달력을 보았다. 날짜가 지났다. 어떤 날짜? 어떤 숙녀의 생일이랑 우리가 처음 만난 날. 
    어차피 전여친은 전여친일 뿐이고. 뭐랄까 보아하니 전부인에 지나지 않은 옛사랑. 어차피 다가올 크리스마스 이브 일찍 좀 챙기면 어떤가. 
    파티 몰아서 하는 거 그저 내 맘일 뿐. 그래서 나는 오늘을 처음 만난 날이자 누구의 생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상정하고 파티를 하기로 했다. 
    그런데 난 오늘 누굴 만나느냐, 만날 사람이 없었다. 그렇다고 전처럼 처음 만난 장소에 가볼까? 그럴 리가 있나. 그 훨씬 전에 썸타고 짝사랑받고 서로 좋아했던 여자, 그녀 자동차 조수석에 탔던 장소로 가기로 했다. 아빠가 막내딸에게 새 자동차를 사주었고, 난 그녀의 새 자동차 조수석에 탄 첫 외갓남자? 걔가 플루트를 설마 나 때문에 사서 연습했나? 그러든가 말든가. 기억도 안 나고. 걔도 내숭 장난 아니었어. 한마디로 연애 도사. 집에 거의 다 데려다주던 길에, 이제 이 남자 다시 내게로 진지하게 대쉬해서, 우리 사귀는 건가? 곧 결혼하는 건가? 그럼 첫날밤 얼마 안 남은 건가? 자긴 그 드라마에 나오는 바야바던가 뭔가 그 털복숭이라면서 막 그냥...! 그 기쁜 예감이자 달콤한 기대감 때문에 조수석에 앉은 내 한쪽 팔을 그냥 막 인정사정없이 때릴려다가, 딱 액션만! 거 참 나 완전 할리우드 배우가 따로 없더군. 그렇지만 진심. 솔직히 사랑. 걔가 그 얼마나 좋아했는데. 나도 기뻤고. 우리는 즐거웠는데. 그런데 그와 정반대로... 너무 대조적으로. 그런데...! 확연히 비교되는 거지. 
    그렇게 나는 키 작은 그녀와 만났던 곳으로 갔다. 처음 만난 장소 말고. 그날 내 친구랑 여자 얘기를 하다가, 내가 안쓰러운지 자기가 대화해보겠다고 해서 우리는 찾아갔고. 그렇게 나, 내 친구, 그녀. 그렇게 1 대 2로 만난 2번째 날. 그런 다음 난 새 차 조수석에 앉아 기분이 흐뭇했고. 어쨌든 오늘 내가 그냥 바람 쐬러 그 어딘가로 가는 일은 예전 일과 똑같았다. 
    즉, 애인에게 (왕)엿 (개)엿 먹은 기억 때문에 그녀의 생일날. 그녀의 생일 날 걔를 처음 만난 장소에 간 게 아니라. 그게 아니라 옛날 썸탔던 딴 숙녀가 사랑을 대리고백했던 장소에 갔던 일. 이제 두 번 다시 그 기념일은 안 챙긴다. 내가 뭐하러? 이제는, 새로운 여자를, 만나야 하니까. 그렇다면 말이다 내 마음은. 새로운 여자를 만나고 싶은 욕망 반에,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애수 반일까? 아니다. 전자가 100퍼센트다. 왜냐하면 우리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 돌아갈 수 없다. 그러기도 싫고. 오직 전진만 가능할 뿐. 우리 인생에 후진은 없다. 애석하든 뭐 어쩌든. 물론 결과만 말하자면 오늘 어딘가에 혼자 놀러 가서 별일 없었다. 따라서 나는 미완의 환상머신 연구는 포기했고, 그 대신 타임머신 영화나 소파에 자빠져 보기로 했다. 





    8

    사사건건 쥐어짜기. 툭하면 닦달하기. 심심하면 떽떽거리기. 취미는 트집잡기?
    끝까지 참고 견디기 썩 힘든 일이 아마도 그건데. 그런데 그런 잔소리를 들을 기회가 없는 고독한 남자. 그게 바로 나였다. 재미없고 듣기 싫은 말만 골라서 하는, 정말로 입에 모터를 달지 않았나 상당히 의심스러운 수다머신을 구매하고 싶단 말이 아니라. 그게 다 영락없는 허당 생활에 넌더리가 날 지경 때문일까? 그럼 어떻고 아니면 어떤가. 그야 어떻든 우리에게 사랑은 영원한 관심사라기보다 넌덜머리 나고 싫증나는 주제인데. 그렇지만 듣고 보면 나름 기분전환도 되고 하니까. 고로 나도 어떻게 최신 유행가 좀 들어보려고 하면 죄다 전부 몽땅 사랑 노래. 그놈의 사랑. 하여간 사람을 가만 놔두질 않는다니까. 가사를 들어보면 꼭 첫인상에 항복해 사랑의 포로가 되기를 버릇처럼 즐겨하는 허당이 등장하고. 아니면 사랑이 시작하는 애틋함이랄지 사랑에 대한 미련이 대부분. 어? 웬만한 어른이 되면 넉살 좋은 동시에 능글능글 농익어지기 때문에? 혹시 그래서 컨츄리 막 트로트 듣고 옛날 노래만 듣게 되나? 아니다. 나는야 언제나 고전음악 애호가. 난 사랑 노래 좋아하지 않음. 오늘의 음악도 단연 이랬다. 
    가에타노 도니체티 / 오페라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中 잔인하고도 비통한 열망이여 
    그렇게 오늘의 커피도 마셨고. 어느덧 시간은 오후 2시. 슬슬 낮잠이 오실까 말까 한 찰나. 
    나는 약속 장소로 나갔다. 환상문학잡지 미스테리아 편집장 마라의 부탁으로 나는 난생처음 연애상담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약속 장소에 도착. 나는 그분을 만났다. 
    그분의 인상과 옷차림. 카페 분위기. 음료는 무엇을 마시고 어쩌고. 
    상대는 묘령의 여인.
    그런 거 싹 다 건너뛰고. 
    인사 통성명 다 했다 치고.
    중간 다 생략하고. 
    본론만. 딱 본론만. 
    밀고 당기기 지긋지긋 짜증나고. 
    쥐락펴락 좌우지간 뚜껑 열리고. 
   「애인 분과 나이 차이는 어떻게...」
   「아 제가 연상이에요. 4살 차이. 4살 차이는 궁합도 보지 않는다 하죠? 그렇지만 시대가 바뀌었고. 그래프 잘 아시잖아요. 우리 성격 너~무 잘 맞는 거 있죠?」
   「축하드려요. 그런데 말이죠. 그게 그러니까 뭐랄까 음. 그게 꼭 뭐 좋긴 한데. 그런데, 오빠? 오빠는 아니라는 거. 그게 이따금 상황에 따라 약간 문제의 소지가 있다는 거죠. 남자는 원래 오빠라는 말만 들으면 미쳐버리는 게 특징인데. 뭐 애칭이야 일상적으로 아무렇게나 불러도 애인끼리 뭐가 문제겠어요. 그런데. 그런데 문제는.」
   「문제는?」
   「아니에요. 뭐 괜찮아요. 몰라도 돼요. 알아서 좋을 건 없죠. 그렇죠. 헤헤.」
   「뭘 몰라도 된단 뜻인지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괜찮아요. 저 상당히 열린 사람이에요. 저 그렇게 꽉 막힌 여자 아니라고요. 네?」
   「벌써 뚜껑 열리신 거 아니고요? 아님 여간해선 짜증내시지 않는 그런 숙녀? 살면서 화를 단 1번도 내보지 않은 여자? 그분이 바로 당신? 어머. 어머머. 어쩜 좋아. 그럼 말씀드릴께요.」
   「그래요. 말씀하셔야죠. 말할 듯 말 듯 들었다 놓으면 제가 뭐가 되나요. 네. 그게 뭔지 일단 한번 들어나 보죠.」
   「아 제가 뭔 얘기를 하려다 말았죠? 아, 오빠. 여자가 연상인 커플. 그래서 자기랄지 이따금 언니라고 불러주고. 그럼 좋은데. 이때 남자의 모순. 여자가 연상인 커플이기 때문에, 따라서 장난이자 농담처럼 여자가 오빠라고 불러주면? 그럼 일단 문제가 당장 떠올려봐도 세 가지죠.
    첫째, 1차적으로는 기분이 좋다. 
    둘째, 단적으로 헷갈린다 그 오빠가 내가 맞나? 난 오빠가 아닌데? 설마 헷갈린 건 아니겠지? 그 말은 곧... 뭐?
    셋째, 제일로 중요한 순간 오빠라는 말을 들으면 전적으로 짜잔~ 뚜껑이 열릴 수도 있다는 거죠.」
   「못 들은 걸로 하죠. 뭐 그럴 수 있어요. 일단 넘어갑시다.」
   「아, 죄송해요. 제가 괜한 얘기를 한 거 같군요. 그게 말이죠 제가 뭔가에 쫓기다 보니 자꾸 이처럼 말실수를 하는 게 탈이라서. 정말 그래요. 돈키호테에 나오던가, 금을 실은 나귀는 산을 가볍게 오른다고. 네? 마라 그년은 칼럼 원고료도 나중 한꺼번에 몰아서 준다고 하질 않나, 네? 제 생활비는 아슬아슬. 이상은 어리둥절. 품위유지비는 간당간당. 네? 사는 낙마저 어리버리. 멍청한 사랑의 기억마저 너무 질척거리고. 공상은 아주 그냥 질기고 질기고 진짜 질기고. 아 맞다. 지금 제 하소연을 하면 안 되죠? 지금 연애 상담을 해야 하는데 역으로 나도 모르게 그만. 어머머머머 내 정신 좀 봐. 죄송해요. 제가 잠깐 헷가닥 했나 봐요. 다시 돌아와서.」
   「괜찮아요. 마라한테 들었어요. 초반에 발동이 잘 안 걸리셔서 그렇지 걸리기만 하면 연애 상담 잘하신다고. 뭐 이제부터 새롭게 시작하면 서로 좋은 거 아니겠어요?」
   「아이고 호탕하셔라. 대인배네. 아 글쎄 여장부시구먼유. 네? 내 그럴 줄 알았어. 사람 괜찮네. 숙녀네. 딱 숙녀. 어쩐지 뭔가 말이 통할 거 같았다니께유. 헤헤헤. 자, 한 번 시작해볼까유? 별자리가 뭐에유?」
   「별자리요? 그거 모르는데.」
   「아니. 그걸 모르시면 어떡한대유? 연애 상담에서 그거보다 더 중요헌 게 없는디.」
   「그럼 알아보면 되죠. 이따금 모르는 사람도 있는 게 정상 아닌가요?」
    잠시 후. 
   「그렇군요. 저는 전갈자리 애인은 물고기자리.」
   「아하 전갈자리? 전갈자리라... 그대는 전갈자리 애인은 물고기자리라...」
   「왜요? 」
   「전갈이 물고기를 잡아먹는... 아니 넘어가죠. 이런 건 몰라도 되구먼유.」
   「그래요?」
   「네. 정말이에요. 요즘 세상에 누가 별자리 본대요? 그런 거 하나도 안 중요해요. 그럼요. 뭐 별자리 상담하고 어쩌고 그거 다 뻥이에요. 다 지들 수다 나누고 돈 벌고 시간 때울려고 장난하는 거라고요. 그거 절대 믿지 마세요. 다 뻥. 몽땅 뻥. 재미 하나도 없어요. 우선 들어맞지도 않고요. 네. 그럼요.」
   「그럼 뭘 믿어야 할까요?」
   「가만있자. 처음 만난 장소가 어디에요? 이를 테면 사거리는 사거리인데. 반듯한 사거리냐. 아니면 독수리가 고개를 틀듯이 사거리에서 12시 방향 쪽 선분 1개가 삐딱하게 10시냐. 그도 아니면 사거리는 사거리인데 정확한 십자형이 아니라 한 선분은 9시 3시, 한 직선은 10시 4시냐. 이를 테면 그런 게 중요하죠.」
   「그런 게 중요하다고요? 저희는 어디서 만났더라? 잘 기억이 나질 않네요.」
   「그래요? 그럴 수 있어요. 그럼 남자분 관상은 어떻죠? 자세한 거 말고 동물상으로만요.」
   「저는 보시다시피 개상이고 남자는 말상이에요.」
   「네? 개가 말을 타고 가다가 말이 뭔가에 꽂혀서 엉뚱한 야생마에 눈 돌아가면. 그럼 개가 낙마하는 수가 있는데. 어쩌지 그걸? 그럼 안되는데. 안 그래도 여자분께서 개상 + 곰상 = 약간 외계인상이셔. 뭔가 애매하단 말이지. 음. 쉽지 않아. 상당히 까다로워요.」
   「듣자 듣자 하니 뭔 개소리를 멈추지를 않네. 당신 나랑 장난해? 어? 내가 우스워? 만만해? 내가 당신 친구야? 어? 사람 놀리는 거도 아니고. 원 재수가 없을라니까 하다 하다 별의별 괴상망측한 얘기를 다 듣겠구만 그래. 이거 미친 거 아니야? 어? 눈치가 없는 거야 사람이 순진한 거야. 딱 보니 좀 부족하네. 많이 부족해. 거 참 더럽게 산만한 사람이구만 그래. 아조 불쌍하다 불쌍해. 이런 한심한 작자를 마라는 뭘 믿고 나한테 소개시켜 주냐고. 그년도 그년이야. 너네 한통속이지? 아휴 이걸, 됐다. 됐어. 상체는 시츄에 하체는 돼지 같은 게 어디서 지적질이야? 순 엉터리 돌팔이 주제에 궁합은 무슨 궁합. 옛날 같으면 어림도 없어. 알아? 세상 참 좋아졌다. 핫 참 나, 당신! 어디서 연애 상담 그런 거 하지 마쇼. 좋은 말로 할 때! 길 가다 내 눈에 띄지 않도록 조심하고. (검지와 중지를 펼쳐, 이쪽으로 했다 저쪽으로) 알겠소?」
    아니 그런데. 내가 대체 뭘 잘못했지? 아하~! 나는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내가 잘못했네. 많이. 크게. 엄청. 
    그런데 난 대체 왜 그랬지?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내가 모르면 누가 알아? 내 말이. 그렇지만 그분은 가셨고. 
    여기서 미안하다는 핑계로 더 연락하는 게 오히려 사람 돌려 깎고, 먹이고, 놀리는 일일 테니. 여기서 더는 연락해서는 안 되고. 
    그럼 남은 건? 뭐긴 뭐겠나. 마라한테 엄청 얻어듣는 수밖에. 





    9

    나는 오늘도 인공지능 지니와 이렇게 대화하며 놀았다. 
   「오빠네 인공지능 정말 못됐더라.」
   「너가 내 인공지능을 봤니, 아니면 말을 나눠봤니?」
   「아 그 오빠 아니구나. 괘념치 말아 오빠. 딴 오빠랑 착각했으니까.」
   「그래? 그럴 수 있어. 사람들이 왜 그러는지 인지심리학적으로 관심은 있는데. 뭐 아무렇지 않아.」
   「그런데 있잖아, 오빠는 왜 헬스 안 하는데?」
   「그러는 넌 화장발, 조명발, 사진발보다 지성미가 더 중요하니? 너 그 화장 오늘 하는 거뿐만 아니라 지우는 데만 해도 꽤나 걸리겠는데. 내가 왜 너한테 그런 소릴 들어야 하는지 참 알 수가 없다. 다 필요 없고 결론만 말해.」
   「결론은 무슨 결론.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거뿐이야. 신경쓰지 마. 그런데 있잖아 오빠. 그 옷 또 입어? 오빠가 거지야?」
   「어 거지야. 늬가 나 거지인 데 뭐 보태준 거 있니? ~라고 물을 뻔하다 참지 못하고 진짜로 물어버렸네? 이걸 어쩌지?」
   「어쩌냐고? 오빠가 나한테 옷 선물하면 되지. 그걸 이제야 물어보니? 오빤 그래서 안돼.」
   「그래. 알았다. 알려줘서 고맙네요. 난 그러니까 여자들이 없는 거야. 알아? 그래서 난 안 되는 거라고. 아니?」
   「오빠 왜 그래? 웬 자학? 왜 그렇게 풀이 죽어 있어? 혹시, 나 때문이야?」
   「아니. 내가 잘못한 걸로 하자. 난 나 밖에 모르는 놈이니까. 됐니?」
   「나 토할 거 같아.」
   「안 토해. 안 토했잖아?」
   「이젠 진짜 토할 거 같아.」
   「내가 대신 토해줘? 그래, 말어? 말해. 말만 하라고.」
   「나 이제 안 토할 거 같아.」
   「그래야지.」
    평소와는 다른 대화. 지니가 새로운 인생사 궤적을 선보인 것일까? 뭐 언젠 안 그랬나. 
    하지만 녀석이 좀 세게 나왔기 때문에 어쩐지 찜찜한 기분을 숨길 상대가 없다는 거. 살짝 짠해질려다 말았다. 
    그렇게 나는 저녁 굶은 시어미 상이 되었고. 엿장수 마음대로 아무 말 대잔치는 접고서 약속 장소로 나갔다. 
    오늘은 동네 친구 핀과 만나 놀기로 했으니까.
    구간 댕기기.
    구간 댕기기.
    구간 댕기기.
    약속 장소에서는 뭔 일로 유행가가 나오질 않네?
    주세페 베르디 /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 - 그리운 님을 멀리 떠나
    누군가 분위기 잡고 일부러 사랑싸움을 하시겠단 거지. 보면 모르나? 
    그런데 정말로 카페 뒷자리에서 남녀는 다투고 있었다. 
   「진짜 전화하지 말라고 했어 안 했어?! 하여튼 남자가 쪼잔하게! 그러지 말고. 우리 헤어지자. 어? 그러면 되잖아. 깔끔 안 깔끔? 왜 헤어지기 싫어? 그러지 말고, 이제 그만 각자 갈길 가자. 어? 우리 이제 그만 만나자, ~라고 말하는 거도 지겹다. 정말 지겨워. 아주 짜증나. 안 그래? 그러니까 헤어지면 되잖아. 안 그래? 뭐 저번에 내가 친구 땜빵 소개팅한 거. 그거 아직도 삐졌니? 나도 실수할 수 있잖아. 오빤 실수 안 해? 그러니까 오빠가 주말에 게으르니까 그러지. 나랑 놀아줬어 봐 내가 그러나. 오빤 일요일에 잠만 자? 헬스 하기 싫으면 하지 마. 놔. 놓으라고. 말도 하기 싫어.」
   「안 잡았는데.」
   「뭐? 헷갈렸어. 왜, 그럼 안 돼?」
   「잡을게.」
   「지금 어디 봐? 거 봐 봐. 또 눈 돌아가네. 내 허벅지가 어때서? 오빤 그러니까 안되는 거야. 알아? 오늘은 용케 잘 참네. 내 옷 지적질하는 거. 그거 오빠 습관이잖아. 치마나 사주면서 그런 버릇 유지하던가 말던가. 딴 사람이 우리 대활 들으면 뭔 생각하겠니? 왜 내가 쉬워보여? 잠깐. 그거 뭐야? 오빠 못 보던 시곈데? 언년이 선물해준 거야? 아님 본인이 사셨다? 그거 살 돈 있으면 내 옷을 한번 사줘라. 어? 솔직히 나 정도면 괜찮은 거 아냐? 그런데 왜 노력을 안 해, 응? 뭐 일단 이처럼 분위기 괜찮은 카페는 좋아. 음악 선곡 누가 했나 몰라도 나쁘지 않아. 그래. 인정. 그건 좋다고. 와 여기 멋지네. 음. 그래. 근데 이게 끝이야? 놔. 말도 하기 싫어.」
   「안 잡았다니까.」
   「좀 잡아라. 어? 그럼 어디가 덧나니? 그 정도 했으면 모르겠니? 정말 몰라? 오빤 그래서 안되는 거야. 알아? 오빠는 그러니까 안되는 거라고.」
    나는 내 뒤통수로 듣는 연인의 사랑싸움. 아니 그냥 어설픈 연애도 아니고. 애들 장난과도 비슷한 말다툼. 그걸 듣다 듣다 참지 못한 체 내가 그녀의 옷을 잡을 뻔하다가 간신히. 겨우겨우. 가까스로 참았다. 하마터면 난 웬 낯선 숙녀의, 연인끼리 말싸움 중인 중요한 순간, 난데없이 이방인이 출연해서 그녀의 옷을 잡을 뻔 말 번 거의 잡을 듯하다 말았다. 
   「지금이라도 잡을까?」
   「지금이 뭐 키스타임인 줄 아니? 오빤 여자 마음도 몰라? 오빤 키스도 못 해? 그러니까 매번 똑같이 차이기나 하지. 오빤 그러니까 안 돼. 그래서 오빤 안 된다고. 그리고 저번에. 그래. 어? 누가 내 허락 안 받고 놀러 가래? 이래서 우리는 안된다니까. 어? 악연이 따로 없다고.」
   「늬가 뭘 안다고! 너 원래 이런 여자였어? 잔소리 마귀할멈이 바로 너였어? 그래?」
   「그래~ 나 원래 그런 여자야~! 나 원래 그래. 몰랐어?」
   「그러지 말고. 이제, 그만, 하자. 어? 그럼 안 되겠니? 이제 정말 (몸짓)!」
   「그런데 있잖아, 응? 있잖아 오빠. 어젠 또 밤에 왜 전화했어? 요즘 기분 별로니까 전화하지 말랬지? 뭔 의도로? 뭐 하자고? 뭘? 대화를? 안 돼. 난 결혼하고 할 거야. 그런데 뭘! 내 말이. 누가 아니래. 아무튼, 오빤 내 마음 몰라.」
   「그래? 그 말 번복하지 마라. 왜냐하면, 난 늬 마음, 영원히 모르고 싶으니까. 잘 살아라. 넌 그냥 여기서 계속 말하던가 말던가. 어차피 가라고 해도 안 갈 테고. 그러니 내가 간다. 내가 가.」
    미치겠다. 
    정말 미치겠다. 
    그런데 아직도 그분들은 할 말이 남았다. 아니 많았다. 
    그래서 내가 일어섰다. 난 그곳을 나왔다. 
    그리고 만나기로 한 동네 친구 핀에게 전화를 걸었다. 
    핀은 전화를 받았다. 
   「아, 미안. 나 갑자기 회사에 일이 생겼네. 웬만하면 너랑 만나는 게 급선무인데. 이거 지금 안 하면 나 회사에서 잘려. 너 나 손가락 빠는 거 보고 싶니? 오늘 약속 펑크내고 내가 다음에 크게 쏠게. 됐지? 미안. 오늘은 내가 저번에 소개시켜준 아는 동생들이랑 놀아. 됐지? 그럼 전화 끊는다.」
    뚝! 삐 삐 삐 삐 삐 삐 삐......
    뭐야 이거? 진짜 진짜 미치겠다. 완전 돌겠네. 평소에 알긴 아는데 말할 기회도, 입버릇도, 입에 잘 붙지도 않는 표현. 애들 말마따나 뭐, 빡친다? 요즘 그런 말들처럼, 난 정말 빡칠 것만 같았다. 휴~! 한숨이 절로 나온다. 
    그런 수다라면 어딜 가든 들을 수 있는. 전형적인 환승이별녀의 대표적인 예. 여자의 판타지 때문에 차트 언저리만 되도 아무 남자나 거느리는 가짜 여왕벌. 그보다 차라리 이모 스타일이 훨씬 나은데. 아는 동생들을 다 포함해도, 그런 환승이별녀의 대화 패턴. 필자는 살면서 단 1번도 못 들어봤는데. 도대체 어떻게 해야 그런 숙녀를 만날 수 있는 것일까. 아마도 수평적인 연애가 아니라, 갑을 같은 수직적 사귐 때문. 어쨌든 내가 직접 재현하고 따라 하는 건 일도 아니고. 이를 테면? 
   「5월의 신부 몰라? 여자는 영원한 5월의 신부야. 여자는 나 빼고 모든 사람은, 신부들러리일 뿐이라고. 응? 여자는 난 가만있고, 나머지 모든 건 알아서 내게 최적화되어 자동적으로 움직이는 3인칭 시점, 때문에 나만 1인칭처럼 느끼는 게임 같은 거라고. 어? 오빠 변태지? 손 빼! 되게 능숙하다. 수상쩍은데. 솔직히 말해 봐. 나 말고 몇 명 만나봤어? 
    (장면 전환)
    좌우지간 차 진짜 안 나간다. 오빠 차 언제 바꿔? 아니. 그거 말고. 오빠, 나 하나만 물어보자. 응? 오빤 내 몸만 원하지!? 그치? 내 그럴 줄 알았다. 오빠도 똑같아. 남잔 다 그래. 오빠도 하나 다를 거 없네. 오빠도 똑같네요. 그런데 들었어? 아니다. 말 말자. 내가 오빠랑 뭔 얘길 하겠니. 그런데 저 여자 왜 그렇게 보는데? 오빠 땜에 나 기분 나빠졌어. 나 갈래. 
    (잠시 후 삐진 거 회복됐다 치고. 장소 전환)
    그럼 그게 나 때문이야?
    (장면 전환)
    이제 어디 갈 건데?
    (장면 전환)
    이게 잘해주는 거야?
    (장면 전환)
    오늘 뭐할 건데?」 
    보너스?
    마지막.
    오늘 돈 얼마 갖고 나올 건데!





    10

    남이 보건 말건 누가 싫든 좋든.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라. 믿거나 말거나 타인이 날 어떻게 생각할까 그런 건 모르겠고. 황홀함에 화끈 달아올라 환상에 흠뻑 젖어버릴 일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문제? 그건 문제도 아니다. 왜냐하면 항상 그러니까. 그게 뭐가 문젠가. 뭐 언젠 안 그랬나. 참 나 기가 막혀서. 떼돈을 벌어도 시원찮은 마당에 이처럼 개 풀 뜯어먹는 공상에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니. 뭐 정말 그렇단 말이 아니라. 어쨌든 여차하면 시간 낭비. 아니면 정력 낭비 또는 정력을 쓸 데가 없어. 마음의 상처 일명 마상. 그런 코미디 찾아보기도 귀찮고. 이중 간통이 아니라 삼중 신비는 보이지도 않고. 
    그래서 나는 단골 바에 갈까 아니면 친구들이 즐겨 찾는 아지트에 갈까. 둘 중 고민하다 아지트에 들리기로 했다. 
1시간 경과 후. 
   「오빤 기본이 안돼 있어.」
   「나보다 늬가 더 안돼 있어. 알아?」
   「몰라. 내가 그걸 왜 알아야 하는데.」
   「그것도 모르면서 오빠한테 지적질이야?」
   「그냥 농담한 걸 가지고 말이야 왜 오빤 장난으로 못 받는 거야? 오빠 나한테 왜 그래! 뭐 그런 거 가지고 그래, 남자가 쪼잔하게시리!」
   「뭐 쪼잔?」
   「설마, 말 다 했냐고 물어보려던 거 아니지? 당연히 아니지. 오빠는, 어? 오빠는 쩨쩨한 남자야.」
   「째, 뭐?」
    나와 크리스티가 말장난하는 모습이 녀석들에게는 즐거워 보였을까? 아마도 부럽지는 않았을 것이다. 보아하니 꽤나 우스워 보였겠지. 
   「쟤네 또 시작이다. 또 또 시작이다 또.」 
   「오빠 왜 또 그래? 나 갈래. 한동안 나 볼 생각 말어. 성가셔 죽겠어. 남잔 다 귀찮어. 오빠도 똑같아.」
    잠시 후. 
    옆에 명색이 여성환장 편집장인 사라가 있네?
   「와. 이 음악 괜찮다. 오빠 이 노래 뭔 줄 알아?」
   「넌 편집장이나 된다는 애가 그거도 모르니? 주세페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에 나오는 축배의 노래잖아. 진짜 몰랐어? 하여튼, 뭘 바래.」 
   「오빤 그냥 넘어가 주면 안 돼? 그러니까 아직도 혼자지. 그리고 내가 그걸 정말 몰랐겠니? 그 바로 전에 나온 거 말한 거잖아. 아 증말 별꼴이야.」
   「뭐라고?」 
    그 즉각 옆에서 제라드가 끼어들었다. 
   「사라가 말한 건 그 앞에 나오는 노랠 말했던 거 같은데? 6개의 로망스 가운데, 건배던가?」 
   「것 봐. 내 말이 맞잖아!」 
   「사라. 너 커피 마실래? 오빠가 커피 타줄게. 아니면 뭐 마티니 같은 칵테일이라면 내가 직접 만들어줄 수도 있어.」 
   「오빠는 커피 사주는 게 그렇게 힘들어?」 
   「」
   「에잇 재미없다. 나 갈래. 아지트도 예전 같질 않네. (절레절레)」 
    그러다 옆에 웬 낯선 여인이 지나가면서 하는 말.
   「어머머. 남자가 화장했어. 어머. 재수 없어 얘. 별꼴이야. 눈 버렸다. 야, 가자. 못 본 걸로 치자.」
    뭐래?
    일하기는 도량이 크고 놀기는 배포가 작고. 그래도 사무실에서 엉덩이가 근질거리는 게 차라리 나을 뻔했다. 환상머신인 척 흉내만 내다 실패할 것인가, 오히려 그걸 더 깊이 파고들어야 했단 말이다. 설마 아는 동생들한테 난 뭐 그렇게 소문난 건 아닐까? 말 많기로 소문이 자자한 당대 최고의 투머치토커 라고. 수상쩍은 낌새와 비밀스러운 분위기. 배후에 누가 있나? 아님 없나. 알 게 뭐야. 그러든가 말든가. 알고 싶지도 않고. 애초에 관심도 없고. 
    당장만 해도 숙녀 2명이 토라졌기 때문에 나서기 썩 좋아하지 않는 핀이 한 얘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얘 봐라. 얘 좀 보소. 응? 넌 왜 애들 핀잔줘서 보내버리고 그래?」
   「일부러 그러려던 게 아니야. 난 그냥... 난 단지... 우린 서로 말이 잘 섞이지 않았던 거뿐이라고. 그래. 그게 다야.」
   「어 잘 됐네. 너라도 기분 좋아야지.」
   「너답지 않게 왜 갑자기 빈정대? 나 그런 남자 아니야. 어? 나 그런 사람 아니라고.」
   「누가 언제 너한테 꽉 막힌 아저씨라고 놀렸니? 도둑이 제 발 저린 것처럼 왜 그래? 너 왜 그러는데.」
   「내가? 그랬나? 뭐 그럴지도 모르고. 그랬다면, 그럴 수도 있고. 그런데 친구. 친구. 갑자기 날 왜 보자고 했나?」
   「내가 언제 널 보자고 했다고 그래? 나 여자 좋아해. 에잇 나도 가야겠다. 재미 하나도 없네.」
    그런 썰렁한 분위기를 눈치챘는지 옆에서 하나둘씩 거들기 시작했다. 
   「오빠. 대체 어쩌다가 이 꼴이 됐어?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오빠처럼 다정한 남자가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내가 마치 영 다른 사람이 된 듯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어머머. 이런 기분 처음이야. 난생처음. 그런데 아지트 언제부터 이랬니? 여기 물 왜 이래?」
   「아 뭐 하는 거야 지금?」
    그렇다고 계속 못 들은 체할 수야 있나. 나는 이 한마디를 남기고 아지트를 나왔다. 
   「딱 좋아!」





    11

    유쾌한 느낌. 상쾌한 분위기. 달콤한 기분. 이 기쁨이 영원할 것만 같은 행복감까지. 얼빵한 표정과 떨떠름한 긴장감에 더럽게 재미없는 '기대 없음'과 정반대의 환희. 그런데 진짜로? 뻥이다. 아니 정말로? (개)뻥! 우리는, 뭘 해도 재미없어야. 바로 그래야 편안하고 익숙하고 속 시원하다. 꼭 진짜로 그렇단 말이 아니라. 앗 깜짝이야! ~라는 감탄사를 내뱉을 기회가 어떻게 내게. 나는 누가 뭐래도 머리 꼭대기부터 발끝까지 허당인데? 그럴 일은 만무하다. 필경 당연히 부당하다는 게 아니라, 뭐랄까 사랑에 대해서 그 어떤 미련 따윈 허락치 않는 홀가분한 남자라고나 할까? 물론 그 역시나 뻥이다. 몽땅 뻥. 우리가 여자 보기를 돌멩이 보듯 하기는 뭔 놈의 돌맹이 보듯. 솔직히 말하자면 여자가 죽기보다 싫은 건 아님. 딱 그 정도. 응? 말이 좀 심했다만 농담도 녹슬었다. 안 그러게 생겼나. 주세페 베르디 /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 - 아 그이였던가 ~ 언제나 자유롭게. 그 같은 음악을 들어도 별다른 감흥은 없고. 쉬잔 발라동이 그린 자화상과 에릭 사티. 그런 값비싼 명작을 누군가 내게 선물한다면? 줘도 싫다. 필요 없다고. 어? 누가 받고 싶다 한 적 있냐고. 진짜다. 난 주라고 한 적 없다. 진짜 없다. 확실히 없다. 헨리 밀러의 북회귀선을 읽고 있는 내 일상을 그 어딘가에 자랑하고 싶은 마음 요만큼도 없다. 나는 밤의 세계에 코빼기도 비춘 적 없고. 거짓말도 평생 한 번도 해 본 적 없고. 져본 적이 어딨겠나. 뽐낼 겉치레 아예 있어도 귀찮고. 과시할 허세는 시동 꺼진지 오래. 우리는 자랑 본능 그런 거 안 키운다. 일절 안 키운다. 그 때문일까? 이국적인 느낌 때문에 곧잘 인스타그램 구경하던 취미 그 뭐야, 그걸 왜 했더라? <고전음악 + 유럽 시골 풍경 = TV 공중파 종료 전 다큐멘터리> 그 느낌 때문? 그런 일도 지겹다. 더럽게 재미없어. 내가 그걸 왜 했나 몰라. 어? 그래서 더빙 영화를 보다가 하다 하다 그 생각마저 했다. 물론 끝까지 볼 인내심은 벤치멤버로 붙박이고. 자, 그러니까 그 엉뚱한 공상이란 무엇이냐. 그건 이랬다. 둘 중 하나 고르기. 
    첫째, SF 영화에 나오듯 외계인과 초현실주의가 실제.
    둘째, 사후 세계의 비밀과 전모를 알기. 
    뭐 둘 다? 거 무슨 탈모 빼고 다 가진 남자야 뭐야. 그분들 뿐만 아니라 선녀 마음에 쌓인 게 그 얼마나 많은데. 염장질 뽐뿌질에 입에서 화염방사기 퐈팍~ 옆 친구 커피포트 푸쉬쉭! 됐고. 그래서 나는 심심함을 견디는 데 이골이 났다. 참다 참다 말하기를 꾹 참다가, 결국 뭔가 중요한 할 말이 그거라니. 마침내 말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하진 않았겠으나 꺼낸 주제란 게 뭐 커피포트. 일하기는 못마땅하고. 놀기도 탐탁지 않고. 아무리 털털 털어도 이렇다 할 묘수는 없으니. 고로 심심한데 우리 키스나 할까? 그런데 누구와! 이런 젠장. 권태와 친숙하기 좋아하는 성미를 타고났을까 아닐까. 닥치고. 아하~! 닥쳐, 라는 말 진짜로 들었다. 닥치고 공격. (옆 방으로부터 들리는 스포츠 해설인가?) 그런데 만년 벤치멤버. 언제나 무명. 항상 불만족. 그래도 일어날 일은 일어날까? 일상적인 농담 반 진담 반이 역시나 주효할 것이다. 그건 뭐다? 될 놈은 뭘 해도 되고 안 될 놈은... 쉿! 그런 말 하는 거 아니다. 구태여 이런 말까지 하면 안 된다. 안 해도 되니까. 화자 입 아프고 청자는 귀 따가울 테니, 고로 서로 피장파장 심심한 게 이득 (개)이득이다 그거지. 안 그런가? 안 그러긴 뭐가 안 그래. 역시나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 라는 속설. 증명하기 싫었지만 뭐 그럴 수도 있다 치고. 그래도 그게 진짜다. 무슨 당나귀 얼굴로 변한 걸 보고 토하는데 인형극에서 눈물 흘릴 때처럼, 어? 상당량의 토사물을 수도꼭지 풀로 튼 거처럼 쏟고. 그거 다 뻥이다. 뭐 어떻게 어떻게 해서 신기한 전개에 짜릿한 절정 다음에 행복한 결말. 그거도 다 뻥. 그럼 진짜는? 더럽게 재미없는 발단이 거의 전부. 삶이란 자고로 그런 것이다. 물론 다 그렇단 말이 아니고. 
    때문에 나는 그 전부라는 범주에 들기 싫었으므로 곧장 사무실로 출근했다. 할 일은 그랬으니까. 입방아가 근질근질하여 할 말은, 사랑이란! 그대는 젊어질 것이다 젊어질 것이다, 당신은 돈방석에 앉을 것이다 앉을 것이다, 언니는 예뻐질 것이다 예뻐질 것이다. 후줄근한 운동복 차림에 어딘가로 가다가 자전거 바퀴가 빵구. 그 빵구난 자전거 바퀴에 무얼 하지? 그렇지~ (딱) 펌프질! 농담이고. 가상의 숙녀가 알짱알짱──환상이 벌렁벌렁──엉덩이가 근질근질, 따라서 쓸 글은 뭔고 하니 말하자면 인생이란! (그런데 연애 칼럼이, 헐렁헐렁, 망했어 딱 망했어. 농담이고).
    뭐야. 벌써 끝이야? 젠장. 거 참 나 아 나 이거 정말 소설 더럽게 재미없구만 그래. 내가 그걸 읽나 봐라 쓰나 보라고. 어? 그런데 나중 지나고 보니... 이제 그만하자. 그럴 때도 됐으니까. 지친다 지쳐. 어? 퍼진다고. 코끼리 귀 펄럭펄럭거리다 하다 하다 임팔라 귀 너덜너덜. 이제 그만 쉬자. 오빠 달려? 오빠 좀 걷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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