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는 본색을 드러내고 자시고 할 활기가 떨어졌다고 해도 과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어찌 된 영문인지 몰라도 여태까지만 보자면, 잔소리 얻어들을 복부터 부족하기 때문일까? 괜한 잔병 탓에 최근 시름시름 앓기만 했을 뿐. 이 일을 대체 어쩌면 좋을까. 어쩌긴 뭘 어째. 병원 가서 처방받고 약 먹고 나으면 그만이지. 무슨 애도 아니고 그 엄살 누가 귀엽다고 봐주겠냐고. 일단 봐줄 사람도 없고 말이지. 그 때문일까? NB는 이젠 정말로 비실비실 어리버리한 슬럼프가 당도한 걸 통감하고 말았다. 왜 아니겠나. 일만 하다 바보가 되어버린 꼴이지. 그러므로 이와 같은 더럽게 재미없는 일상을 탈출하려면 혼자 힘으로 어렵다고 결론 냈다. 그래서 그는 동네 친구 폴에게 전화를 걸었다. 함께 놀기 위해서.
「폴. 뭐해?」
「뭐하긴. 일하지.」
「일? 일 재미없지? 너, 일하기 싫지?」
「아닌데. 일 재밌는데. 일하기 좋아. 공부도 재밌었거든. 괜히 일 잘하는 사람 부추기지 말고 심심하면 딴 친구나 알아봐. 나 바쁘니까 이만 끊을께.」
뚝. 이 자식이...!
그런 한편. 질투가 날 정도로, 의뭉스러운 환상머신은 유쾌한 기분과 상쾌한 만족감을 왜 내게 선사하지 않는 것일까. 라는 공상에 빠지려던 찰나 크리스티가 NB의 사무실로 찾아왔다.
「크리스티. 연락도 없이 웬일이야?」
「왜, 난 여기 찾아오면 안 돼?」
「누가 안된데? 누구야? 어? 그 인간 누구냐고. 싸움 잘해? 걔 나한테 걸리면 가만 안 둔다고 전해.」
「뭐 그건 그렇고. 오빠. 아니 정말. 어? 나한테 왜 그래?」
「아 저번에 남자 소개시켜주려다 만 거? 너 아직도 그거 담아두고 있었니? 애들한테 얘기 못 들었어? 너한테만 그럴까? ~라고는 생각해보지 않았니?」
「그건...」
「나한테 왜 그래? 또 자기중심적 사고체계. 그렇게 하도록 만드니까 그렇지. 안 그래?」
「그런데 있잖아. 오빠. 나 할 말 있어.」
「뭔데?」
「오빠, 큰일났어.」
「아 뭐냐고 그게?」
「나 남자친구 생겼어.」
「어? 정말?」
「응.」
「그럼 걔 만나러 가지 여긴 왜 왔니?」
「오빠 놀려주려고.」
그러면서 크리스티는 온 지 5분도 채 되지 않아 돌아서서 가버렸다. 쟤 뭐야?
그러다 잠시 후.
동네 친구 켄트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어. 친구. 켄트지 너가?」
「그럼 내가 켄트지 칸트냐? 그건 그렇고. 너 중병에 걸렸다며?」
「내가?」
「그럼 중병에 걸린 게 너지 나냐?」
「그건 또 뭔 소리야? 어디서 헛소문을 듣고서 그러는데?」
「헛소문? 장안에 소문이 쫙 퍼졌는데 숨길 거 없어 친구. 병은 알면 반틈은 치료된 거랬나?」
「어디서 뭔 얘기를 들었는데 그래?」
「네가 희귀 난치병이랬는데. 후천성 면역 적혈병? 아닌데. 뭐랬더라? 위궤양? 아닌데. 혹시 광견병이랬나? 아닌데. 그건 사람이 걸리는 게 아닌데. 아 맞다. 췌장암. 아니다. 교묘세포종이라던가?」
「어디서 개 풀 뜯어먹는 소리를 듣고서 난리긴 난리야? 컴퓨터로 치면 그냥 잔고장일 뿐이야. 시간 조금 지나면 다 좋아져.」
「그래? 그럼 다행이고. 쾌차하길 빌어 친구.」
그러면서 켄트는 전화를 뚝 끊었다. 말은 되풀이되면서 커지기 마련이라더니 참 내.
심심함으로 볼 장 다 본 건가? 재미없음으로 갈 데까지 간 거 아니냐고. 도대체 언제 올 것이 오냔 말이지. 어? (절레절레)!
아직 퇴근하기 전까지 마음을 잡고 일을 해야 하니까 그는 분위기를 전환했다.
안토니오 비발디 / 2개의 합창을 위한 <딕시트 도미누스> RV594
(일부 예외 빼고는) 아무리 높이 나는 새라도 먹이는 땅에서 찾는다. 뚜벅뚜벅 영차영차. 보고 읽고 듣고. 항상 그렇듯이.
그렇게 어느덧 해는 기울어 노을이 멋진 저녁이 찾아왔다.
그렇게 그는 동네 아지트로 갔다.
화면 전환. 동네 아지트 도착.
화면 전환. 동네 아지트 도착.
「친구. 뭘 그렇게 꾸물거리고 있어? 대체 속으로 뭔 생각을 그리 하는데 그러냐고. 응?」
「아니 뭐 그냥. 이 생각 저 생각 하는 거지. 아! 너네들 한동안 안 보이던데 무슨 일 있었어?」
「그럼. 아 맞다. 너한테 말 안 했구나. 우리 3 대 3 소개팅했어. 결과가 어떻게 됐을까?」
「어떻게 됐는데?」
「꽝 됐어. 근데 중요한 건 우리가 3 대 3 소개팅을 또 했다는 거. 허허허허허.」
「나만 빼고? 너네 정말 이러기야?」
「너가 전화받지 않길래 급히 대타 투입했지. 그러게 누가 전화 안 받으래?」
「전화 안 왔는데?」
「부재중 알림이 뭐 늦게 뜨거나 착오가 있을 수 있어. 어쨌든 넘어가고. 그래서 소개팅 결과 어떻게 됐을까?」
「어떻게 됐는데?」
「걔네들이 그러더라구. 단번에 결정하기 힘든 황금비라고. 네가 좀 듣기 거북하겠지만 기왕 말이 나왔으니 대충만 말하자면 그렇다네. 뭐가 그러냐, 바로 이대로 몇 번 더 만나보자는데?」
「3 대 3으로?」
끄덕끄덕!
「계속?」
끄덕끄덕!
「선수 교체는?」
「당연히 없지.」
「」
「왜 말이 없어?」
「나 원래 말 없는 남자야.」
이상한 미소를 남긴 채 그렇게 남자 친구들은 걔네들끼리 또 딴 데로 가버렸다.
NB는 생각했다. 쟤네들은 3 대 3으로 소개팅 연타이자 장타를 날리는데 난 뭐야! 무슨 거대기업 드림팀 이사회도 아니고 말이지. 여자애들은 또 뭔 꿍꿍이야? 말은 타서 달려봐야 알고, 사람은 친해봐야 안다. 그건 그렇지만 이젠 그 흔한 탐색전조차 전멸? 뿐만 아니라, 아니 됐고. 갑옷을 입어도 돼지는 여전히 돼지에 불과하다. 그럼 트로이의 목마는 말이 아니라 알고 봤더니 개더라? 알 게 뭐야.
그러더니 사라가 지나가면서 이렇게 말했다.
「오빠. 요즘 인공지능 지니는 한가해? 할 일 되게 없나 보지? 겁나게 한가하대? 그 잘난 환상머신은 아꼈다가 뭐에다 쓸 건데?」
NB는 즉흥적으로 대꾸할 말 3가지 가운데 최고의 유머와 밉지 않은 풍자가 돋보이는 답변을 적극 맞받아치려는데.
그런데 이미 사라는 저만치 지나가버렸다. 저년이...!
허허. 시치미 뗄 일은 물론 조롱받을 일도 없는 요즘. 뭘 해도 애간장 탈 일은 절대 없었다. 결코 읎어. 그럼. 홀딱 반할 만한 새로운 관심사가 어딨나. 바랄 걸 바래야지. 그래서 이처럼 정처없이 또 아지트를 찾아왔는데. 아, 그러면 뭘 해! 내가 다시 여기 오나 봐라, 라고 말할 뻔 말 뻔 하다 그는 무작정 그곳을 나왔다.
2
핏줄은 속일 수 없다던가? 여우를 못 잡아먹어 안달이 난 늑대의 마음, 나에게 없지 않았다. 솔직하고 자시고 아니라면 거짓말. 허나 단지 굶주리기만 할 리가 있나. 나를 태워주는 당나귀는 나를 뒷발로 차는 암말보다 더 가치가 있다는 게 세상사라지만. 전부 몽땅 남들 얘기. 아니면 뻥. 꿈속의 신비감이 불러일으킨 이상한 기분 그런 게 어딨어. 개꿈조차 기억도 못하기 일쑤. 인생은 장밋빛 만은 아니라는 걸 내 모르는 바는 아닌데. 모든 날이 잔칫날일 리도 없고. 아닌 게 아니라 권태에게 완패당하여 더럽게 재미없음에 흠뻑 젖은 셈이지 왜 아니겠어. 아니다. 쓰잘데기 없는 공상만 일삼아봐야 득 될 거 하나 없다. 모르진 않아. 다 안다고. 광고는 상투적인 수다 대잔치, 홍보(PR)는 누가 네 칭찬하더라 라는 것. 여자들은 후자 같은 사랑 이야기를 좋아한단 걸 왜 몰라? 그럼 뭘 해! 내 인생 이야기가 재미없으니까 툭하면 남 얘기나 찾아보는 수밖에. 그래 봤자 작은 냄비가 빨리 끓질 않나, 어? 흠을 잡는 사람이 물건을 사게 된다고 충동구매에 가뜩이나 부족한 품위 유지비를 낭비하질 않나. 이건 아니란 말이지. 속물적인 지성인이 마땅히 감수해야 할 질타 같은 스캔들. 현실감 많이 떨어지는 낭만적 모험가가 뭇 여성들로부터 받는 질투심. 그런 거 모르겠고. 자, 드디어 때가 되었단 말인가? 그런데 어떤 때가. 또 뭘 자빠트릴 잔꾀를 궁리하시게. 됐고!
그래서 나는 무작정 뛰쳐나가려고 했다. 집 사무실만 오가는 일상에서 어디든 좋으니 뭔가를 해야 하니까. 그런데 오라는 데가 있긴 있나?
~라던 찰나 마침 딱 맞게 환상문학잡지 아, 격월간 미스테리아 편집장 마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오, 마라. 웬일이야?」
「웬일은 무슨. 우리 사무실 아직 문 닫지 않았단 소식 알려주려고.」
「어련하시겠어. 안 봐도 스카우트 제의 뿌리치는 게 취미인 편집장인데.」
「농담할 기분 아니고. 월초 월말 나 바쁜 거 알지? 용건만 간단히 하자고.」
「너도 노래 1절만 선호하니? 대체 본론이 뭔데 그래?」
「잔말 말고. 너 잔병 다 나았지? 내 대학 후배가 있는데 곧 너네 사무실로 찾아갈 거야. 한동안 잘 부탁해.」
「부탁? 뭔 부탁?」
「걔 너한테 문학 배우고 싶데.」
「걔? 나한테? 뭘 배워? 왜? 왜 하필 나야?」
「왜긴 왜야. 걔가 널 찍었으니까 그러지. 의뭉스러운 이유는 너네끼리 따지든 말든 난 모르겠고. 문하생 청탁한 대신 원고료는 2배로 올려줄게. 됐지? 이만 전화 끊는다.」
뚝.
얜 꼭 지 할 말만 하고 전화 뚝 끊는다니까. 하긴 마라도 세상사에 심지 굳은 여심이 살짝 닳아졌을까? 그래도 걔 앞에서 누가 늙었다느니 뭐라느니 하면 완전 싫어한다.
그건 그거고. 그런데 뭔 뚱딴지같은 소리지? 무슨 생? 뭐하러? 혹시 스파이? 그야 관상 보면 알 테고.
바로 그때 사무실로 노크도 없이 어느 숙녀가 불쑥 찾아왔다.
「오빠야? 사진보다 못생겼네. 에잇!」
「네?」
「오빠네. 생긴 건 꼭 석상 조각가처럼 생겼는데 뭐 그럴 수 있어.」
「그럼 그대는 마라의 후배?」
「그대? 오빠 고전을 너무 많이 봤네. 왜, 요즘 몰리에르 3부작이라도 읽고 계셔?」
「뜨아! 어떻게 아셨죠?」
「어떻게 알긴 뭘 어떻게 알아. 그냥 찍었지. 돌팔이 점쟁이도 그건 하겠다. 척하면 척이지. 응? 왜 요즘 부인과 사이가 안 좋나? 머머리스?」
「아니 그렇게 심한 말을! 그런데 당신은 진정 마라의 후배 맞소?」
「마라? 아 마라. 난 마라 언니의 8촌쯤 되나? 아무튼 말은 들으셨을 테고. 자, 악수나 합시다. 난 마고. 아저씨는? 뭐 딕? 그래 딕 해. 어이 딕 선생. 지금부터 선생은 내 오빠, 나는 오빠의 문하생. 관계 정리됐죠? 그러니 날 넘볼 생각은 마시고. 자, 뭐부터 하지? 일단 첫날이니 축배 먼저 들까? 그러지 말고 우리 바로 일부터 할까요? 난 뭘 하면 돼 오빠?」
생기발랄하고 활기 넘치며 쾌활한 젊음. 좋긴 좋은데 난 너무 당황스러웠다. 이 일을 대체 어쩌면 좋담? 속으로 좋으면서 호들갑은 무슨! 그래도 말이야, 혹시라도 기 받으려다가 기 빨리면 어떡하냐 그 말이지. 뭔가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려다 뜬금없이 낯선 여인의 출연이라니. 난 갑자기 개꿈에서 깨어난 낭만적인 이상주의자가 된 것만 같았다. 이 무슨 개뼉따귀 같은 일인지 뭔지야 뭐 두고 보면 알 테고. 보아하니 나도 세상사에 부대끼며 깨달은 게 있긴 있다. 말하자면 관상을 보긴 보는데. 늘상 헛다리 짚는 게 걸리긴 해도. 어차피 개 두 마리는 하나의 뼈를 나눠 먹을 수 없다. 그런데 무슨 개소리 같은 공상?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라고. 어? 애인의 마음에 호응함을 넘어서 생각이 일치하고 싶은 욕구를 어찌 하냐를 고민해도 부족할 판에. 밑도 끝도 없이 무슨 뭐 문하생? 내게? 왜? 뭐하러? 그래서 난 빠짝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말하자면 자고로 말이야, 어? 세상사란 그런 것. 뼈다귀 하나에 두 마리 개가 싸우는 동안, 다른 개가 그것을 물고 달아나는 것. 그럼 얘 이름이 뭐였더라, 아 마고. 마고? 지가 무슨 여왕 마고야 뭐야? 아무튼 얘가 두 마리 개가 개 풀 뜯어먹는 말장난 하는 동안 개뼉따귀 물고 도망가는 불여우? 뭐 긴말 필요 없고. 꽃이라고 다 향기로운 건 아니다. 장미인지 튤립인지 그도 아니면 팬지인지 나중 정체를 드러내던가 말던가. 난 내 할 일만 하면 되고. 거 뭐 혼자 적적하던 차에 잘됐지 뭐.
「오빠. 어이 딕! 오빠 뭔 생각을 그리 하슈? 그러지 말고 전초전 삼아 시작부터 너무 빡빡하게 굴지 마시고. 기분 풀러 우리 클럽이나 갈까요? 에잇 까짓것 갑시다 뭐.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는 거죠. 안 그래요?」
3
1시간 후.
마고와 나는 클럽에 들어갔다.
그런데 알고 보니 거긴 마고가 아는 친구들이 적지 않았다.
당연히 평균 연령을 깎아 먹는 게 좀 걸리던 찰나 다행스럽게 마고가 내 옆구리를 찔렀다.
「오빠. 마고는 30분 있다 집에 들어갈 거니까 오빠는 마라 언니랑 놀아. 뭐해 안 가고?」
내 이럴 줄 알았다. 어쩐지 느낌 세하더라.
그날 나는 물주만 됐고 뭔 일은 없었다. (절레절레)
4
지금까지 살다 살다 이토록 재미없는 심심함은 처음이었다. 정말로? 뻥이다. 이런 느낌 처음이야! 아 글쎄 뻥이라니까. 항상 그랬을 뿐. 늘 그랬다. 그러고 말고. 왜 아니겠어. 두 팔 벌려 환영할 환희를 포기한 지 이미 오래. 신나는 모험과 까무러칠 신비는 두 손 두 발 들고 잊었다. 아니 어찌 내게 이런 일이? 놀랍지도 않다. 허리띠를 졸라맬 수밖에 없는 현실, 안 그래도 별로 하고 싶은 일도 없었다. 드라마 주인공도 아닌데 무슨 운명에 반항해 아님 꿈을 향한 열망에 고분고분할 일이 있나. 그냥 뭘 해도 재미없을 뿐이지. 삶의 허무 진작 알았다. 인생의 비밀이 어딨어. 신나는 기쁨의 끝장을 볼 것만 같은 예감, 부디 실망감으로 결판나지 않기를 바라는 건 순진한 생각. 말만 그럴 뿐 흔하디 흔한 상심이라는 결판이 뭐 별건가. 이상의 꿈을 품은 개열망은, 돌다 말아버리는 바람개비 마냥 급 싫증을 내기 일쑤. 옛말에 신발이 맞으면 신으라지만 일단 신발이 없어. 동화 속에 나오는 춤추는 구두, 애들조차 관심도 없고. 그렇지만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는 것. 썰물과 썰물은 이어지지 않는다. 그 사이에는 반드시 밀물이 있다. 때를 기다려야 한다. 그런데 언제까지? 내 말이 그거라니까. 참 내 별 무슨 거 참 나 젠장. 됐고.
그러므로 나는 새로운 음악을 들었다. 바로, 사베리오 메르카단테 / 오페라 - “이칠리오, 당신을 사랑해요!”
뭐? 기껏 한다는 특단의 대책이 뭐 겨우 음악 듣기? 그것도 고리타분한 고전음악? 그러니까 여자가 없지.
아침부터 콧노래를 부르며 샤워한 다음 미용실에 갔다가 선물을 사고 향수도 뿌리고. 그럼 뭘 해? 약속이 없는데.
인기는 다 남 얘기. 건수, 없어. 돈, 있겠나. 정력? 왕성하면 뭘 하냐고. 어?
~라면서 혼자 일하기 싫어 투정 부리던 바로 그때. 여지없이 문하생 마고는 출근했다.
「안녕 선생님. 그런데 오빠 표정이 왜 그래? 얼굴 좀 펴. 어? 오빠가 무슨 인상파야 기분파야? 내가 마음에 든다면 마음에 든다고 말을 하던가. 어? 꿀 먹은 벙어리처럼 그게 뭐니. 응? 그러지 말고 일단 음악부터 틀자. 오빠. 칼 필립 엠마누엘 바흐의 Magnificat Wq215번 있어? 없으면 CD 주문하고. 아니다. 그거 내가 선물해줄게. 아 그게 좋겠다. 도메니코 치마로사 / 오페라 비밀 결혼 - 아리아 제목은 모름.
오빠. 그런데 며칠 굶었수? 왜 그리 힘이 없어? 남자가 그리 매가리 없어 보여서야 쓰나. 응? 아 잠깐! 오빠 지금 그 생각했지? 쟨 대체 누가 보냈지? 뭐하는 앤데 저렇게 말이 많아? 입 아프지도 않나 몰라. 그치? 다 알아. 난 오빠를 딱 보기만 해도 뭔 생각을 하는지 다 안다니까. 허허. 간혹 틀릴 수도 있겠지만 말이야. 뭐 틀리면 어때. 응? 그렇다고 틀렸다면서 오빠가 왜 내 마음도 몰라주냐며 막, 어? 목에 핏대 세우며 나한테 따지겠어 어쩌겠어. 안 그래? 와, 오빠 얼굴 빨개졌다. 혹시 야한 생각했어? 좋을 때네. 그래도 돼. 아니. 되고 안 되고, 가 아니라 그거 오빠 맘대로 안 되는 거잖아. 안 그래? 다 알아. 왜 내가 모를 거 같아? 아니야. 아니란 말일세. 허허. 어 근데 이거 뭐지?」
어느새 그녀는 책상 위 포스트잇에 적어놓은 뭔가를 읽고 있었다.
「코끼리 팬티. 당나귀 슬리퍼. 호피 무늬 내의. 워터픽. 마우스. 안경. 최고급 무접점 키보드. 주간지. 월간지. 타이레놀. 음 이건... 아~ 쇼핑 리스트? 이 오빠도 딱 보니 그런 사람이네. 오빠 소원 그거지?」
「내 소원?」
「맥북 쓰지도 않을 거면서. 구입한 다음에 와 나도 이제 스타벅스 갈 수 있게 됐다며 인스타그램에 인증샷 올리는 남자. 그렇지? 안 봐도 뻔해. 그렇지만 말이야, 오빠, 응? 이 세상이 그렇게 만만한 게 아니야. 응? 일단 그거 하나는 명심해. 무엇을? 쥐가 고양이를 쳐다보고 웃을 때는 반드시 근처에 쥐구멍이 있다는 거. 그럼 우리의 개구멍은? 내 알 바 아니겠지 뭐.」
「쥐구멍은 뭔 얘기고 개구멍은 왜 갑자기?」
「몰라. 나들 아나. 별님에게 물어 봐. 물론 별님의 답변은 그렇겠지만. 응? 묻지 마세요! 뭐 안 그래도 눈화장 하기 귀찮은데, 어? 내가 왜 그런 시덥잖은 주제까지 신경써야 하는데. 그냥 넘어가. 오빤 그렇게 생각이 많은 게 탈이라니까. 응?」
「그런데 넌 대체 정체가 뭐니?」
「정체? 뭔 정체?」
「넌 누구냐! 그 말이지...요.」
「오빠, 그걸 꼭 내 입으로 말해야 하니? 그래. 그러자. 아니. 그러기 싫어. 아니. 아니? 뭐가 아니야. 에잇 몰라. 다 모르겠다고. 알아서 뭐해? 몰라도 돼. 왜 알아야 해? 누가? 내가? 그러니까 뭘? 뭐긴 뭐야. 아무것도 아니지. 그렇다고 그게 꼭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아니란 것만 알아둬.」
난 마고와 대화를 하면 듣는 역할만 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질문을 해 봐야 본전도 못 찾는다는 거 딱 봐도 모르겠나.
그렇다고 꼭 마고의 장단에 놀아나는 이 상황이 심하게 싫다는 건 아니다.
「오빠. 왜 말이 없어? 이제 더 이상 나랑 할 얘기 없어? 아님 나랑 말하기 싫은 거야? 아~ 지금은 일할 시간이다? 여기는 사무실이다? 넌 네 주제를 알아라? 우리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다? 그래. 쉬는 시간까지 조용히 있지 뭐. 나도 말 많이 하기 싫어. 어? 이거 왜 이래? 누군 뭐 자청해서 다변가가 된 줄 아시나? 뭐 좌우지간 우리의 동지애는 차츰차츰 돈독히 또 소중히 키워가는 걸로 하자고 친구. 아 오빠.」
그렇게 마고의 2번째 수업 같지 않은 수업은 끝났다.
5
그리고 다음 날.
「오빠. 뭐 비장의 묘책 같은 거 없어? 날 유명하게 만들어야 할 거 아냐. 어? 이처럼 아름답고 어여쁜 숙녀가 있는데 그녀의 지성과 미모를 만방에 알리지 않는다면 그건 단지 우리 둘만의 손해일까? 오빠 칼럼니스트 맞아? 마라 언니한테 듣기로.」
「마라 년한테, 아니. 마라 언니한테 듣기로?」
「내가 어디 아무한테나 언니 말을 전할 거 같아? 난 고자질 취미 없어. 오빠가 뭔가 나한테 자발적으로 책잡히든가 아니면 뭔가 어중간한 빌미를 줘야, 아니다. 재미없다.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라 오빠 나한테 뭐 가르쳐줄 거 없수? 정말?」
「음 그건 말이야 지금은 생각 중이야.」
「뭔 생각? 육체적 사랑 생각?」
「어허. 너에게 어떤 장르가 어울릴까. 그거. 응? 딱 그거. 그러니까 말이야, 그 흔한 유행가 가사 쓰는 법을 가르쳐주면 넌 나중 금세 잊히거든. 인기? 다 거품이야. 물론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 뭔지는 내 알 바 아니지만 말일세. 그래서 난 네게 빈첸초 벨리니의 오페라 <청교도>에 나오는 그 뭐야 멋진 아리야 있지. 뭐더라? “난 아름다운 아가씨라네”. 그런 어떤 재주를 발굴해내고 싶은데. 그게 정녕 쉬울까? 너가 독학에 실패했던가. 아니면 우리 둘 다 별 볼 일 없는 스승과 제자던가. 그도 아니면 관계 설정을 다시 하던가. 일단 뭘 할지 생각하는 중이라 그거란 말이지. 음.」
「생각 좋아하시네. 핑계는 그럴싸해. 그치만 변명만 그럴듯하면 뭘 해. 그러니까 해가 바뀌든 크리스마스가 돌아오든 매번 공상에 빠져있지.」
「어허. 생각 중이라니까 얘가 정말. 그래도 그건 잊지 마. 그건 꼭 알아둬야 하니까.」
「뭘?」
「뚱뚱한 여자가 노래 부르기 전까지는 오페라는 끝난 게 아니다. (몸짓)」
「하여간에 말은 뭔가 있을 듯하다가 딱 그냥 거기서 끝나. 그래서 지금도 혼자지. 누가 아니래.」
「뭐, 다른 거? OK~! 적은 건 적은 거다.」
「적은 건 적은 거다? 그게 뭐야?」
「남자들이 좋아하는 게 뭔 줄 아니? 왜 새끼마담이 남자들과 말이 잘 통하는 줄 아냐 그 말이지. 남자들 꿈이 뭐게? 대망 그런 거 말고. 현실적인 거. 타고난 재주가 망대한 친구들 말고. 평범한 남자들의 꿈. 그분들의 웬만한 열망. 응? 대부분 20대의 삶. 인생을 논할 계제가 아니겠지. 그렇다고 친구들끼리 사랑을 얘기할까? 남자는 남사스러워서 그런 말 못 해. 안 해. 왜 해? 쑥스럽기보다 싫지. 그게 진짜니까. 그럼 남자가 20대 중반을 넘어서 후반 지나고 30대. 그리고 40대 남자들과 꽤 진솔한 얘기를 나눠본 데이터베이스. 그 솔직한 속 얘기의 통계를 알려줄까? 그분들의 꿈은 뭔 천문학적인 재력도 좋긴 좋겠으나, 지극히 현실적으로 그분들 속마음을 끄집어내면 거의 다 그래. 그게 뭐냐, 바로 그거지. (딱)~! 오빠 왜 결혼 안 해? 라고 묻는다면. 진정 사랑하는 사람 어쩌고저쩌고는 다 입바른 얘기고. 죄다 사석이 아닐 때 있어 보이려고 하는 말들일뿐이고. 남자, 어? 상남자인 이상 그 맨발의 청춘들이 품는 꿈은 거의 다 그래.」
「아 뭐가 그래? 빨랑 말 안 해? 오빠. 뜸 좀 고만 들여. 어?」
「그분들의 꿈은 좋은 차 타면서 인생을 즐기며 여자들 좀 만나보고. 놀러 다니고. 돌아다니고. 그러다 결혼이야 뭐 때 되면 하던가, 지금은 딱히 절실히 해야겠다 라는 생각은 없다. 라는 게 그분들 본심이라고.」
「뭐야! 그게 <적은 게 적은 거다>라고? 뭔 남자 마음이 그렇게 쪼잔해? 밴댕이네. 무슨 위인전에 나오란 말이 아니라. 희망. 소망. 사랑. 행복. 긍정적이되 비관조의 냉소도 모르지 않다. 단 3줄짜리, 좋아하는 영화의 줄거리 같은 인생을 살고 싶다. 뭐 그러 거도 아니고 뭐, 뭐가 어쩌고 저째? 그러니까 야망이 그렇게 퇴색하기 마련이지. 어떻게? 남자가 태어났으면 말이지~ 어~ 3년 5년 사귄 여자친구와 결혼은 거의 정해진 거나 다름없으니까, 어? 남자가 태어났으면 말이지~ 그다음에 쩜쩜쩜. 차마 하지 못하는 말. 그래서 남자들이 사랑이라는 단어조차 입에 담기에 낯부끄러워하지. 안 그래? 양심에 찔리거나 허세가 어설프거나. 빈수레가 요란한 법이거든. 응? 뭐 적은 건 적은 거다? 이런 약장수 오빠를 다 만나게 되는 내 인생은 또 뭐란 말이야. 응? (절레절레)」
「아직 실망하긴 일러.」
「글쎄요. 과연?」
「허허허. 그 반대도 있지.」
「그 반대?」
「적은 게 많은 거다.」
「적은 게 많은 거다?」
「응. 한마디로 성실한 남자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사는 여자. 나중 애들 출가하고 은퇴한 다음에 부부끼리 다정히 전국 자동차 여행을 다니던가. 캠핑카 몰면서 대륙을 돌아다니던가. 그도 아니면 계절이 바뀔 즈음 위아래로, 분기에 1번 좌우로 여행을 떠나는 노부부. 그런 게 사랑 아닐까?」
「뭐? 그게 적은 게 많은 거다고? 이런... (표정)! 오빠 정말 순 돌팔이 아니야?」
「그게 다 너 생각해서 하는 말이라 그거야. 재미없는 훈수 뻔한 농담 누군 뭐 하고 싶어서 하는 줄 아니? 너구리 굴 보고 피물돈 내어 쓴다고, 어? 남자 잘 만나란 얘길세 이 친구야. 허허허.」
결국 마고의 3번째 출근은 오늘 마지막을 예고하게 되었다.
정말로 그녀는 다음 날 출근하지 않았다.
내 그럴 줄 알았지. 대충 예감 못한 건 아닌데. 그런데.. 어째 기분이 좀 세했다고나 할까?
그러다 마침내 4번째 날에는 마고 대신 선물만 잔뜩 배달됨. 그리고 내 노트북이 없어짐. 설마 그녀가?
6
그런데 알고 봤더니 결근한 마고가 내 노트북을 들고 튄 게 아니었다. 겉모양이 대충 비슷한 노트북이 서로 바뀐 것일 뿐.
즉 내 노트북을 마고가 자기 것일 줄 알고 가져갔고, 지금 사무실에 그녀의 노트북이 있었다.
물론 마고의 신기한 허영심은 내 사탕발림 립서비스 취향과 썩 다르지 않았다. 그러니 그녀의 구미가 반영된 노트북은 새 노트북이고, 고로 안에 담긴 건 아무것도 없는 깡통.
그럼 그녀의 노트북만? 내 노트북도 똑같았다. 그렇지만 바뀐 건 바뀐 것. 그러므로 나는 마고를 찾으러 갈 정당한 명분이 마련된 셈이네?
~라면서 나는 그녀에 대해 뭘 잘 알지도 못하면서 무작정 마고를 찾으러 떠나려고 했다.
그렇게 무심코 사무실 문을 열고 떠나려던 찰나, 문을 열자마자 나는 환상문학잡지 마라를 대면하고야 말았다.
「야. 너 어디 가? 혹시 도망간 마고를 찾으러 가기라도 할 셈이니?」
「뭐? 어떻게 알았어?」
「진짜로? 늬가 마고의 마음에 뭔 지분이 있는데?」
「왜, 난 마고와 친하면 안 되니? 내 노트북과 마고 노트북이 바꼈어. 그래서 우리는 만나지 않으면 안 돼.」
「마고가 어디 사는 줄은 알아? 그녀 집안이 얼마나 대단한 줄 알긴 아냐고. 그리고. 넌 뭔 마고가 신비로운 마을에 사는데 네가 그녈 찾아서 딱 동화 주인공이 되고 뭐 환상극이라도 찍을 줄 아니? 걔 집 여기서 5분 거리야. 몰랐지? 이제 알면 뭘 하니. 오늘 이사 간다는데.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
「당연히 모르지.」
「그런데 어떻게 만나려고. 늬가 무슨 돈키호테냐?」
「난 만화영화 주인공이 아니야.」
「아니긴 뭐가 아니야. 그거 이리 줘. 내가 걔 만나서 바꿔줄게.」
「안 돼.」
「왜?」
「어제 그 영화 봤거든. Population 436.」
「그거 다 뻥이야. 넌 옛날에 영화를 너무 많이 봐서 문제였고, 지금은 최신 드라마 최신 음악 최신 유행을 하나도 모른다는 게 문제야. 알아?」
「그걸 내가 왜 알아야 하는데!」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설마 네가 마고를 감싸고도는 비밀은 설마 사랑의 축복?」
「나 남자 좋아해. 걔랑 나랑은 친척이고. 가만 있어 봐, 8촌이야 16촌이야? 아니. 학교 선후배던가? 왜 이렇게 헷갈리지. 착각인가? 아닌데. 뭐 그건 그렇고. 그럼 넌 뭐 흑심 때문이니? 또 껄떡? 이제 좀 웬만치 숙녀들한테 찝쩍거려라. 아주 그냥 지겹다. 어?」
「뭔 소리야? 난 여자 보기를 돌멩이 보듯 한다니까 그러네. 늬가 뭘 잘못 아나 본데~」
「시끄럽다. 나 간다.」
그러면서 마라는 마고의 노트북을 빼앗아서 가버렸다.
하긴 미친 양이 늑대에게 고해할 리가 있나. 세상 끝까지 따라갈 환상이 허당에게 인정사정 봐줄 리 있냔 말이다.
꾸물대다 공상하다 빈둥거리다 그냥 동네 단골 술집에나 들리는 거지. 행운아의 방력과 정절을 지키는 사랑이야 TV만 틀어도 날이면 날마다 나오는 것.
신기할 거 하나 없다. 아무리 기다려도 기별이 없는 행운아의 낭만감과 사랑의 환상이라는 팡파르는 내게 썩 관대하지 않단 말이다. 아직 때가 아닌 건가?
만약 그렇다면 오긴 온다는 거잖아? 젠장. 그럼 뭘 해, 어? 당나귀를 좋아하는 자는 당나귀가 된다고, 난 어느새 숙녀들보다 허영심에서 한수 위를 점령해버린 것이다.
허허. 왜 아니겠어. 한 마리 토끼를 쫓고, 한 마리 말을 타기. 원래 그게 정석인데. 바로 이래서 난봉꾼은 떡밥을 뿌리고 기업은 브랜드 라인확장의 함정에 빠져드는 것일까?
그러든가 말든가 관심 없고. 지나쳐 버린 바람으로 풍차는 돌지 않는다. 포기할 건 포기하고.
그러면서 어느새 나는 의류업자의 명언을 기억하고 있었다. 바로 패션업계에서 잔뼈 굵은 남성복 매니저의 명언은,
"소비자가 파란색 옷을 원한다. 파란색 조명등을 켜라."
언년인지 몰라도 아니, 한놈만 걸리기만 해 봐라 라는 굶주린 하이에나의 울부짖음이야 뭐야. (절레절레)!
7
나는 오늘 일을 마친 다음 딱히 할 일이 없었다. 그렇다고 집에 가서 씻고 어쩌고 소파에 자빠져 TV 채널 돌리기는 왠지 싫었다. 그러다 마침 우연히 약속이 잡혔냐, 하면 아니었다. 그래서 내가 행동에 나서 톰을 우리 동네로 불러냈다. 그렇게 우리는 동네 찻집에 자리를 잡았다. 나는 에스프레소 톰은 카푸치노. 지가 언제부터 카푸치노를 먹었다고. 하여튼 분위기를 따지고 자시고 하기도 귀찮고.
「톰. 어떻게 지냈어?」
「알잖아? 나 인기 많은 거. 바빴어. 여자라면 이젠 신물이 난다고 친구. 들었어?」
「너나 많이 들어.」
「아 맞다. 최근 너에 대한 신비스러운 소문들이 장안에 자자하던데? 아 진짜로.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일들. 그런데 왜 주인공이 너니?」
「거 듣던 중 놀라운 소식인데. 대관절 뭔 일인데 그래? 듣고 놀라 자빠질지 아닐지 몰라도 일단 들어나 보자. 자, 말해 보셔.」
「잭이 몽블랑 만년필을 사려고 백화점에 들렸는데 너랑 정말 똑같은 사람을 봤데. 어떤 묘령의 여인과 함께 하길래 뭔가 불륜 냄새가 났다던가? 뭐라고나 할까 어딘가 모르게 아는 체하면 안 될 것만 같은 느낌? 그렇지만 알고 봤더니 너랑 99퍼센트 닮았는데 1퍼센트가 부족했데.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그처럼 똑같이 생겼는지 등에서 땀이 쭉 났데. 그분 혹시 너의 도플갱어 아닐까?」
「도플갱어 같은 소리나 하려면 가서 풀이나 뜯어먹어. 그건 닮은 사람이 아니라 나야. 나도 백화점에서 잭 봤어. 난 그때 혼자였고 반대로 잭이 연상의 여인과 함께 있었지. 뭐 신비스러운 소문? 네 떠들썩한 입담도 다 녹슬었나 보구나. 뭐 허당의 줄거리라는 게 매번 그렇지. 이해해. 그럴 수 있어. 그럼 고대하는 희망이 있겠니 흠모하는 연정을 꿈꾸겠니. 그렇다고 우리가 무슨 여성잡지사에 취직할 수도 없잖아.」
「너의 거취와 잭의 동선이 뭐 겹쳐서 오해할 수도 있지 뭘 그렇게 비아냥대? 너 요즘 욕구불만이니? 왜? 성생활이 마음에 안 들어? 아니면 아직도 궁금한 게 정말 정말 많은 거니? 어 그래. 발정기 뭐 그런 거?」
「뭐? 너 정말! 너 어디 가서 내 평판에 흠집내고 다니지 마. 늬가 그러니까 여자가 없는 거야. 알아? 그러다 잠깐 아는 여자가 있으면 뭘 하니, 어? 뻔트를 대도 한때 친했던 숙녀가 그러잖아.」
「뭐라고?」
「오빠 어디 가서 내 남자친구라고 하지 마.」
「늬가 들었어?」
「어. 접때 셋이 같이 있었잖아.」
「」
「너 요즘도 그러니?」
「뭘?」
「너 여자 좋아한다는 거야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건데. 그런데 친구랑 둘이 있으면 꼭 늬 피부가 부드럽다면서 늬 통통 불룩 튀어나온 배꼽 근처 배를 만져보라고 하잖아. 그러면서 친구 배를 만지면서 내 피부가 늬 피부보다 더 부드럽다고 하잖아. 어? 그러니까 늬가 여자들한테 그런 소리를 듣는 거야. 세계 허세 대회 챔피언, 아직 포기 못했니? 그래?」
「왜, 패자부활전 같이 나가볼 생각 없니? 있으면 말해.」
「그건 그렇고. 내 하나만 충고하자면, 야. 우리끼리 그래도 되는 거 아니냐. 얼굴 좀 펴. 나나 되니까 다 너한테 이런 얘기 해주는 거야. 여자들 생색내는 거 (개)싫어한다는 거 너도 잘 알잖아. 그렇지만 우리가 여자냐? 어? 우리가 여자냐고. 너 그거 명심해라. 딴 건 몰라도 그건 알아두라고.」
「뭘?」
「개는 뼈다귀를 주어 만족시키고 여자는 거짓말로 만족시켜라.」
「뭐? 이 자식이 듣자 듣자 하니까...!」
「하나 더.」
「또 뭔데?」
「더러워진 도화지를 넘기면 곧 그게 긁지 않은 복권이란 거. 인생이 원래 그래.」
「원래 그러긴 뭐가 원래 그래?」
「좀 웃어라. 어? 왜 그래? 싫든 좋든 현 애마는 하필 질펀한 방탕마이기 때문에, 고로 당시 쾌락을 격렬히 사모할 수밖에 시절이 그립던 거니?」
「하여튼 말을 말자. 말을 말어.」
「그래? 그러면 음악이나 듣자. 주인장. 여기 손님도 없는데 딴 음악 들으면 안 될까?」
그렇게 우리는 도메니코 치마로사의 진혼곡을 듣다가 뭔가 기발한 발상을 떠올렸냐, 하면 그럴 리가 있겠나.
우리는 할 말이 많지 않았는데 톰이 정적을 깼다.
「기왕 나이도 먹고. 우리도 화려한 여자 관심 없고. 너도 나처럼 단정한 숙녀를 만나는 게 어떠니?」
그러면서 톰은 지갑을 꺼내 사진을 한 장 내게 보여주었다.
그런데 그 사진 속의 여자는 다름 아니라 바로 마고였다.
「내 여자친구야. 어때? 괜찮지?」
「너 얘 알아?」
「알다마다. 우리, 어제, 했어.」
「해? 했다고? 뭘? 아, 뭘 했어? 어서 말 안 해?」
「낭만적인 사랑을 가꾸자는 약속. 우린 순수한 연인이야. 네가 봐도 딱 그럴 거 같지 않냐?」
「그럼 뭐 난 불결한 솔로니? 거짓말 마.」
「거짓말인 거 어떻게 알았어?」
「정말이야?」
「정말이겠냐. 너도 좋은 사람 있으면 만나 봐. 정 외로우면 내가 소개해줄 수도 있고. 네가 여잘 아직 잘 모르나 본대, 어? 사랑이란 가능성의 예술이야. 너 아직도 연애론에 대해서 막 집에서 혼자 공상하고 그러니? 또 그러다 낙심하면 행복업에 매달리고. 그래? 더티러브를 향한 늑대의 맹목적인 갈증? 상상이야 뭔들 못하겠어. 순진한 쾌락마의 열망? 타성 개척자니 신비 혁신가니 이상한 낙서나 끄적거리지 말고. 세상으로 나와. 어? 언제까지 숨어 살 거야? 어? 쯧쯧쯧.」
「기가 막혀서!」
「너 이제 보니 바보구나. 늬가 생각해도 그렇지? 그럴 거야. 왜 아니겠어.」
「좋을 대로 생각해.」
왠지 모르게 아름다운 사랑 가운데 하필 더티러브의 감흥이 떠오를 듯 말 듯 한 이 기분. 내가 얠 왜 불러냈지? 이럴 거면 차라리 아는 동생들과 함께 즐거운 겨울을 함께 하는 건데 말이야.
8
나는 오늘 닐을 만났다.
닐이 자기 새 여자친구라며 지갑 속 사진을 보여줬다.
그런데 그녀는 톰의 새 애인과 얼굴이 똑같았다.
그렇다. 둘 다 마고. 닐의 여친도 마고. 톰의 여친도 마고.
이걸 말해줘, 말어?
해야 돼, 말아야 해?
이 때문일까? 예전에 한번 그런 일이 있었는데 그 기억이 떠올랐다.
후배가 신혼 때던가 아니면, 결혼 전에 결혼할 여자라며 자기 애인을 소개해주던 자리던가.
아무 생각 없이 대충 몇 달 전에 그 후배가 만나던 여자 얘기를 꺼냈던 적이 있다.
말 그대로 불과 몇 달 전. 난 그래서 걔가 걔인 줄 알았다.
즉 그 여인이 그 여인. 그런데 후배의 얼굴색이 확 바뀌네?
와~! 나는 내게 타인의 안색을 새파랗게 질리도록 만드는 재주가 있다는 건 그날 처음 알았다. 미리 후배에게 물어볼 걸 그랬나...
그렇지만, 설마 하니 불과 서너 달인데 그 사람과 그 사람이 동일 인물이 아닐 꺼란 생각은 못했으니까 뭐 넘어가고.
그런데 웃긴 게 뭐냐면 남자든 여자든 현재의 사랑이 중요하니까 그건 그렇다만.
여자의 판타지를 결혼 후까지든, 과거의 연애사 전적들을 현재는 물론 미래까지 끌고 가겠다는 여잔 뭐지?
좌우지간 닐에게 말해 줄 수도 없고. 또 언질을 주자니 뒷맛은 물론 뭘로 봐도 여러 명 괴로워질 거 같고. 와, 진퇴양난!
뭐 아무튼 문단 요약하자면 이런 식이다.
<닐을 만남. 닐이 새 여자친구라며 지갑 속 사진을 보여줌. 그런데 걔도 마고>
9
윌을 만남.
윌이 새 여자친구라며 지갑 속 사진을 보여줌.
그런데 걔도 마고.
뭐라고?
10
잭, 롭, 델, 폴, 핀, 스티븐, 켄트를 모두 1 대 1로 만남.
걔네들 새 애인도 모두 마고.
뭐?
11
나는 마라를 만나 따졌다.
따지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니까.
「대체 어떻게 된 일이니?」
「내가 묻고 싶거든.」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데...」
「나도 걔 안 지 얼마 안 돼. 너 뭔 생각해?」
「오죽하면 내가.」
「나도 네 비밀 많이 안다는 거,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 혹시 너 그 정도로 멍청한 건 아니지?」
「지금 우리가 이럴 때가 아니야. 어? 사안이 정말 중차대한 거라고. 어?」
「말해 뭐해?!」
「할 수 없지 뭐. 남에게 맡길 수 없어. 우리가 직접 뛰는 수밖에.」
「어떡하자고?」
「자기야. 윤허하여 주시옵소서.」
「설마 너랑 나랑 탐정조라도 짜자, 그거니?」
「딩동~! 빙고.」
「세상 사람들이 다 너 같은 줄 알아?」
「너도 원하고 있어. 너 자신을 속이지 마.」
「웃지 마. 웃을 일이 아니니까.」
「그런데 어떻게 이런 일이 우리에게! 말도 안 돼.」
「그나저나. 응? 너 왜 우리 사무실에 뻔질나게 드나들지 않는 거니? 왜 여기 맘에 드는 사람이 없어서 그래? 솔직히 말해봐. 그랬으면 좋겠어.」
「지금 그 얘기가 아니잖아?」
뭐 아무튼 이렇게 마라와 나, 우리는 생각지도 못한 정탐을 하게 됐다.
그래. 잠복근무. 말로만 듣던 영화로나 보던 바로 그 잠복근무 말이다.
12
마라와 나는 마고네 집 앞에서 잠복근무를 시작했다.
1일째 날 꽝.
2일째도 꽝.
3일째 역시나 꽝.
슬슬 우리는 지쳐갔다.
「마라. 지금 우리 잠복근무 중이야. 무슨 Ruggiero Ricci의 정통파 파가니니 연주? 그래. 고전적인 거 좋아하는 건 알겠는데, 그럼 뭐 너만 정통파고 딴년들은 다 비정통파라는 거니? 어? 지금 우리가 한가하게 음악 감상할 때냐고, 어? 팔자 좋네. 풉」
잠복근무! 말이 쉽지 말이 쉬워. 드라마에서 보는 건 줄거리만 보여주는 거고.
그걸 직접 해 보면 장난 아니다. 장난 아니라고.
그래서 맨손 체조나 할까 라면서 나는 잠시 자동차 바깥으로 나가 몸을 풀고.
식료품점에서 먹을 걸 사 가지고 오는 마라가 딱 자동차 옆에 왔을 때.
마침 마고의 집에서 누가 나오고, 또 누군가 마고의 집으로 들어가고.
한편 본 게임이 시작되자 마라는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이 교차했던 것일까?
요의를 느껴 참을 수 없는 그녀는 자동차 옆에 쭈그려 앉아 오줌을 누었다.
난 그걸 모른 체 단안 망원경으로, 또 쌍안경으로 마고의 집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한 손으로 바닥을 짚고 있었는데 뭔가 축축한 물이 손을 적시네?
어딘가 모르게...가 아니라. 많이 따듯하네? 정말 많이 뜨듯하다니!
뭐야 이거, 이런 이런... 영화에서만 봤었는데!
그 물은 그냥 물이 아니었던 것이다.
저년이......! 설마, 일부러?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잠복근무 1주일 경과 후 알게 됐다.
비밀을 알게 됐다고.
바로, 마고는 1명이 아니라 10명이었음. 10명 여자가 함께 사는데. 그런데 집에서 나올 때는 10명 모두 마고, 집 안에서는 개개인.
변장술급 화장으로 밝혀짐. 요컨대 뭔가 사연이 있는 게 분명했던 거지.
그 줄거리는 과연 무엇일까...는 다음 이 시간에.
13
마침 포르토피노가 맨얼굴 투시경을 발명.
영화에 나오고 장난감으로 절찬리에 시판 중인 그런 거처럼.
미용용 가면 같은데, 딱 쓰면. 쓰자마자 화장하지 않은 얼굴이 보여지는 짜잔~!
그 이름도 기가 막힌 맨얼굴 투시경!
그걸 환상문학잡지 미스테리아 독점 사은품으로 찬조하기로 계약하기 앞서, 여성환상 1.5에서 미리 손을 씀.
뭔 시시콜콜한 내용들은 비즈니스 관계자들한테나 중요하고.
본 소설 줄거리와 크게 관련 없는 내용이니까 그건 여기까지.
14
나는 톰을 만났다.
새끼 양처럼 굴면 늑대에게 잡아먹힌다고 했던가?
하이에나 득실득실 그 가운데서 돋보이는 늠름한 맹수인 사자를 닮은 톰.
왠지 모르게 오늘 톰은 새끼 양처럼 보였다.
마침 찻집에서 절묘한 시점에 극적인 음악이 흘러나왔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 오페라 <마술피리>에서 밤의 여왕의 아리아 “두려워 마라, 사랑하는 내 아들아!”
「톰. 내가 엉뚱한 걸 물어봐도 너 나한테 뭐라 하지 않을 거지?」
「어? 어떻게 내 비리비리하던 정력이 갑자기 제7의 전성기를 되찾을 수 있었나, 그게 궁금한 거니?」
「아 진짜 진지한 거야.」
「뭔데 그래?」
「내가 설마 이걸 물어봐도 너 그렇게 반문하지 않을 거지? 늬가 그걸 왜 궁금해하냐? ~라고 말이야!」
「일단 묻기나 하셔 이 양반아. 대체 뭔데 그래?」
「너 여자친구 사랑해?」
「내 여자친구? 사랑? 아직 애인이라고 부르기엔 좀 뭐하지. 뭐라고나 할까, 탐색전? 사랑은 모르는 거잖아. 뭐 첫눈에 반한 사이는 아니니까. 그렇다고 볼수록 매력녀라 하지 않을 수도 없고.」
「그럼 너 말이야, 네 여자친구 맨얼굴 본 적 있어?」
「맨얼굴?」
「어. 화장 전혀 하지 않은 맨얼굴.」
「아직이지.」
「아직이라고?」
「저 하늘의 별을 땄으면 봤겠지. 아니면 걔가 화장법 강의하는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렸으면 볼 수도 있을 텐데, 나름 뒷조사까지 할 생각은 못 해봤는데?」
「그럼 그렇지. (딱) 너 걔 오래 만날 생각. 아마도 자신 없지?」
「」
「웃는 거 보니 그렇군.」
「알면서. 척하면 척이군.」
「사랑의 장기전은 대충 3가지 따지면 구도가 예상되지.」
「그 3가지가 뭔데?」
「첫째,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느냐.
둘째, 남과 여 그 둘이 함께 아는 인맥이 없는 것보다 있는 게 장기전으로 갈 확률이 높다는 거. 아니면 대부분 뻔트요 풋사랑이자 단기전.
셋째, 현재의 사랑이 진심이자 진중하며 상대를 위한 사랑이라는 건 나중 미래에 과거를 돌아봐도 덜 아쉽다, 공개되어도 미련이 적냐 라는 것.
넷째, 첫 만남에서 진한 사랑까지의 기간이 짧은 것보다 긴 게 장기전으로 갈 가능성이 높음.
다섯째, 마음이자 몸과 시간 등 내 상당한 자원을 투입해서 사랑이 더럽게 끝났을지라도 후회할 자신이 없느냐.
여섯째, 현재의 사랑에 대해 줄거리와 함께 모든 시시콜콜한 얘기를 기록했을 때 멋지냐, 떳떳하냐, 창피하냐 라는 것.
일곱째, 그런데 3가지랬는데 벌써 일곱째? 이놈의 징글징글 지긋지긋한 사랑 얘기. 아주 그냥 신물이 난다. (절레절레)」
「그러니까. 그래서 우리는 사랑을 평생 단 1번도 논하지 않았던 건가 봐.」
「하여튼 널 책하자는 게 아니라. 본 게임을 장기전으로 왜 끌고 가지 않느냐면 불순한 사랑을 책망하잔 말도 아니야. 단순한 난봉꾼의 흑심이 아니라 너도 뭔가 이상한 낌새라고나 할까, 뭔가 어떤 께름칙한 조짐 같은 느낌? 딱히 불길한 건 아니겠으나 약간 느낌 세한 기분 때문에 도저히 그 일말의 불쾌함을 떨쳐버릴 수 없는 직감. 있었지?」
「아네. 넌 자료도 턱없이 부족한데 어떻게 눈치챘니? 그냥 찍은 거니?」
「찍긴 뭘 찍어. 네가 만나는 여자애들이 매번 특이한 애들이라서 이번에도 혹시... 그랬던 거니. 너 저번에 만난 애는 그랬잖아. 주로 스타벅스에서 만났다고 했지? 그 네 전여자친구. 걔가 그랬다며? 자기 노트북을 펴서, 엑셀 파일을 펼쳐서. 그래서 누구 누구 누구. 언제부터 언제까지. 주고받은 선물은 뭐. 만난 횟수와 학습한 진도는 어디까지. 애정 표현 농도와 주기는 얼마. 마치 임상실험 보고서랄지 치밀한 논문처럼 과거에 만났던 남자. 썸탔던 오빠. 사소한 짝사랑부터 찐한 사랑까지 그 모든 기록을 너한테 보여주던 여자가 누구? 늬 전여자친구! 그렇지? 그 진짜를 늬가 장난으로 알고 만났다가 너 몇 장 날렸니? 이번에도 느낌 세한 거, 너 몰랐니?」
「알았어.」
「일찍도 아셨네.」
「이제 난 어떡하면 좋니?」
「이제 넌 어떡하면 좋냐?」
「그래 내 말이 그거야.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딱 그거였다고.」
「그랬어?」
「어. 정말이야. 이제 난 어떡하면 좋을까?」
「방법이 있지. 형이 누구냐. 어?」
「뭔데?」
「공짜로?」
「내 아는 동생들, 팬클럽, 추종세력. 전부 싹 다 너한테 넘길게. 내가 걔네들을 나 혼자만 친교를 유지하나 앞으로 두고 보면 알 거 아니야. 응?」
「그래?」
「정말이야. 진짜라고. 너 나 알지?」
「좋아. 좋았어. 좋다고. 허허허. 그렇다고 내가 꼭 그걸 애달프게, 응? 아주 간절히 원한 적 일절 없다는 거, 너도 알지? 분명 늬가 자발적으로 그렇게 하면 어떻겠니, 그렇게 된 거다 너? 나중 오리발 내밀지 마?」
「걱정 붙들어 매 이 친구야. 그러니까 그 방법이 뭔데 그래? 어? 냉큼 말하지 못해 이 이 이, 개새끼. 돼지. 말. 코알라. 낙타. 하마. 앵무새.」
「그만해 그만. 늬가 그러니까... 그런데 여자들은 대체 널 왜 좋아하는 거지?」
「말 돌리지 말고. 방법이 뭐냐고. 어? 어서 말 못 해? 뜸 그만 들여라. 나도 최후의 카드라는 게 있어. 시트콤 애들 모조리 몽땅 불러서 폭로전 한 번 할까? 그럴까? 할까 말까? 말만 해.」
「알았어. 알았다고.」
발동이 언제 걸릴지 모른다는 핸디캡은 알다가도 모를 일. 그럼 순풍이 불어 신바람이 날 일은 아마도 훗날. 껀수 없을 조짐만 견고. 그러면?
~라면서 오늘을 기다려온 것일까?
매번 허탕만 치고 뒷북만 때리던 축구팀 서포터스 회장 롭이 일을 냈던 것이다.
알고 보니 롭과 포르토피노가 아는 사이. 그렇게 둘이 만나서 롭이 뜬금없이 떠오른 생각을 말했고. 포르토피노는 아차~ 하며 아르키메데스처럼 번뜩이는 착상에 정신이 번쩍듬.
그래서~ 포르토피노는 발명했음. 무엇을?
바로 맨얼굴 투시경을!
아직 시판까지 다다른 건 아니고 비밀 리에 완성에 거의 다다름.
「이거 이래도 되나 몰라.」
「지금 와서 안 친했던 야망에 미련을 갖는다고 달라질 건 없어.」
「엥? 그건 또 뭔 소리야?」
「후회하지 않는다고. 2가지. 응? 첫째, 뭔지 모를 그녀에 대한 비밀을 속 시원하게 알고 싶고. 둘째, 그걸 통쾌히 알 수 있는 방법이 뭔지를 당장 너한테 듣기를 애달프게 바란다는 거지.」
「재미없는 공상에 기반한 허구나 끄적거리기나 하던 칼럼니스트가 여자와 사랑에 대해 알면 얼마나 알겠어?」
「이 자식이... 어서 말하지 못할까? 죄인은 고개를 들라.」
「너 아직도 사극 즐겨보니? 요즘 뭐 보는데?」
「또 말 돌리냐? 뜸 또 들이고 패 안 까면, 발 빼는 수가 있어.」
「알았어 알았어. 이거야.」
그러면서 나는 포르토피노 앞에 그 맨얼굴 투시경을 내밀었다.
「이게 뭔데? 무슨 여자 화장 지운 모습을 단박에 볼 수 있는 맨얼굴 투시경이라도 되니?」
「헉! 어떻게 알았어?」
「진짜야? 와 대박! 와우~ 소름! 내가 기다렸던 게 바로 이거라니까. 이거야~ 어? 이거라고~! 어? 바로 이거였단 말이야~! 허허허허허. 하하하하하.」
「기뻐하긴 일러 이 녀석아.」
「어?」
「그건 단지 1탄이라고.」
「이게? 1탄? 그럼 제2탄은 뭔데?」
「마음까지 읽어. 영화에서 봤지?」
「캬~ 기가 막히는군. 캬~! 어? 으아~ 대단하다. 최고!」
「쉿! 비밀엄수. 알지?」
「알았어 알았어. 그녀가 만났던 남자와 연애 그리고 짝사랑이야, 조사하면 찾는 족족 다 나오는 거고. 이건 그야말로 신기술이지. 허허허허허. 하하하하하.」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 오페라 <마술피리>에서 밤의 여왕의 아리아 ”지옥의 복수가 내 마음에 끓어오른다"
찻집에서 우리는 조용히 음악을 감상하면 속으로 꿍꿍이를 공상하게 되었다.
15
마라와 나는 친구들 사생활에 깊이 개입하지 않기로 했다. 단지 마고 10인의 사연을 알게 되었을 뿐.
정상적인 성욕이 살다 보니 뭐 어떻게 맹숭맹숭 맹물처럼 심심해져 버린 여자.
남편의 머머불능.
부인의 불감증.
여자 무성애자.
권태 권태.
재미없음. 무관심. 질림. 기 빨림. 정력 감퇴.
육체적─성적─기능적으로 지극히 정상인데, 다만 성 그래프가 비정상적으로 바닥을 못 벗어나는 숙녀.
혼자서도 노력하고 애인과도 힘쓰고, 그래도 그냥 포근히 포옹하는 게 더 훨씬 좋다는 여자. 연애를 하는 족족 매번 불미스럽고 재미없고 뭐 어떻게 끝나서 괴로운 기억만 간직한 여인.
그 외 차마 자세히 설명하기에 낯뜨거운 내용들까지.
물론 지금까지 그 일이 과연 정말 그랬나 하는 건 아직까지 미스터리.
나중 친구들을 만나서 듣고 보니, 한 여자와의 공통 연애. 즉 마고(들)과의 연애는 그냥 적당히 썸만 타다 말았다고 한다.
그렇다. 체스가 끝나면, 왕도 졸과 함께 체스 통에 담겨진다.
그냥 그저 그런 풋사랑도 뭣도 아닌 식이었던 것이다.
그럼 이제는 진정코 아름다운 사랑을 하면 되는, 반드시 그래야 하는 인생.
그래서 만났고 진했고 어쩌면 더러웠던 사랑. 아마도 행복한 애정. 그래? 그럼 뭘 해. 응?
가득 찬 잔에 물을 더 채울 수 없다.
또 있다.
배부른 소는 풀을 뜯지 않는다.
또 없을 리가 있나.
욕심쟁이는 늘 부족하다.
뭐라고?
아하~!
바로 그래서...... <다들 순진하시네요>라는 인터넷 글. 분량도 적고 내용도 아무것도 없는데... 도대체 왜 그녀들의 다종다양한 잔소리가 그치질 않는지. 그거까지 설명해줄 만큼 고급스러운 여자말 번역기는 아마도 많지 않지 않을까? 그러거나 말거나.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그럼 뭣이 중헌디? 일단 뭔 소리인가 그건 듣고 나서 판단해야 하기 때문에, 우선 들어는 드릴께. 딴청 피우지 않는단 말이지. 따라서 먼저 명쾌한 결론이든 떠들썩한 다변이든 뭔지 모를 그 하고 싶은 말 줄거리나 풀어나 보시고. 이미 귀에서 피가 나게 생겼는데, 또? (절레절레).
16
글쓰기 때려쳤어? 뭐라도 가져와봐. ~라는 환청이 흡사 내 귀에 들리는 것만 같았다. 그와 같은 마라의 잔소리가 조용해질 만하면 다음 타자는 여지없이 여성환상 1.5 편집장 사라였다. 그녀는 뭐라며 날 다그쳤을까? 뭐긴 뭐겠나, 할 말 떨어졌지? 할 말 없지? ~라는 따끔한 잔뻔치였다. 누군 뭐 잔말 말고 맹렬하도록 축구팀 슬로건처럼 달리지 않았나 뭐. 그래? 일하기는 신경 끄자. 놀지 않으며 바보가 되니까. 주저앉는 것은 일어서려는 것이다. 그렇지만 춤추는 사람 모두가 즐겁지 않다는 걸 모르는 애도 아니고. 노래 부르고 먹고 마시고 쇼핑을 해도 재미없기는 마찬가지. 그래서 이제 어쩌지? 그래 봐야 심심한 타성과 재미없는 권태를 얕잡아봐도 별수 없을 뿐. 그렇다고 밋밋한 일상이 폄하된다 하여 별다른 느낌조차 없는 동네 아저씨인데 뭘 어떡하나. 그러면 답은 아마도 변화? 그렇다, 새로움. 그런데 뭘? 아니, 현실 안주가 뭐 어때서. 자기 합리화가 귀찮아질 시기도 진작 지났겠다 꼭 뭘 해야 할 필요도 없고. 이건 뭐랄까, 잔뜩 주눅 든 마음은 영락없이 자길 물오른 슬럼프라 불러달라는 것만 같았다. 환상인지 뭔지 신비고 나발이고 황홀감은 그저 동화 속 얘기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 그렇다고? 그러거나 말거나!
할 말이 있든 없든, 떨어졌든 꾹 참든 생각은 멈출 수 없는 것처럼. 놀기가 타석에서 내려오니 나는 일하기를 출전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맨날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던 어느 날. 마고가 날 찾아왔느냐, 하면 아니었다. 그럴 리가 있겠나. 그런 일은 없었다. 기대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사무실에서 평소처럼 일하다 놀다 쉬다 낮잠까지 잔 다음 나는 분위기 전환을 시도했다.
기분 바꾸는데 음악 만한 게 있나. 하여 고른 선곡은 다름 아니라,
조지 프레데릭 헨델 / Dixit Dominus RV 번호는 모름.
그럼 그에 걸맞은 할 일은? 우리는 놀 때는 놀고 일할 때도 논다. 농담이고.
더 이상 작품 구상도 따분하고. 책 읽기도 귀찮고. 일하기는 싫고. 공상은 짜증나고.
그래서 나는 인터넷에서 미술품 작품값을 알아봤다. 다음은 그렇게 검색해본 작품들 목록이다.
하워드 호지킨, 「로빈 데니 부부」
패트릭 헤론, 「수평적 띠 회화: 1957년 11월-1958년 1월」
「뭐 이렇게나 비싸? 거 참 더럽게 비싸네. 아니지. 내가 가난한 건가? 됐고. 관심 없어. 몇 달만 배우면 저런 거 나라도 그리겠다. 추상은 어떻게 구상은 어찌어찌. 그런 거 누가 못해?」
혼자서 푸념, 비꼬기, 연민, 골똘한 잔머리 굴리기마저 재미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리하여 나는 확인했다. 무엇을? 동쪽에서 떴던 해가 서쪽으로 져가는 것을. 그래서 나는 퇴근했다.
집으로 가던 중 딱히 저녁식사를 챙겨 먹을 생각은 없고. 카페에 들려 음악 듣고 창문 밖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싶어졌다.
그렇게 나는 어느 찻집으로 향하던 찰나.
누군가 뒤에서 날 부르는 목소리.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한데?
그렇게 딱 뒤돌아봤더니 그녀는 다름 아니라 바로 마고였다.
「오빠.」
「마고.」
「오빠. 나 안 보고 싶었어? 난 오빠 많이 생각했는데.」
「네가 어떻게... 가까이 오지 마.」
「오빠 왜 그래? 그 뒷걸음질은 설마 계산된 몸짓? 아니, 내가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봤나?」
「네가 숙녀라고? 거짓말 마.」
「오빠, 왜 그래? 혹시 뭐 잘못 먹었어? 이리 와. 이렇게 만난 거도 행운인데 같이 차나 한잔 마시자. 뭐 마실래? 카푸치노? 카푸치노 마실 줄이나 알아? 아니면 에스프레소? 설마 커피 끊은 건 아니겠지? 끊었으면 다시 마시면 그만. 왜 위스키 스트레이트 마실 줄 몰라? 헤어지는 방법이든 뭐든 내가 다 가르쳐줄게. 뭐 배우고 싶은 거 있음 말만 해. 누구 사귀고 싶은 여자? 내가 다 꼬셔줄게. 어? 내가 전부 다 꼬셔준다니까 그러시네. 응?」
그러면서 그녀는 내 팔짱을 꼭 끼고서 날 가까운 찻집으로 데려갔다.
나는 따라가지 않으려고 버티고 버텼는데. 그녀는 언제 웨이트 트레이닝 지옥 훈련이라도 마쳤단 말인가. 힘이 힘이 장난이 아니었다.
그렇게 우리는 찻집에 앉아 음료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며 한동안 침묵했다. 할 말이 많았기 때문이거나 아님 말하기 싫었거나.
아니나 다를까 어찌 된 셈인지 그녀는 또 어디서 배웠을까, 아님 독학했을까.
역시나 긴 대사다. 베테랑 연극배우야 천직이니까 그렇다 쳐도 관객 엉덩이에 뿔나기 딱 좋은 긴 대사. 응? (절레절레) 그러므로 문단 똑 떼서 가는 걸로. 그렇다고 꼭 각오 단단히 할 것까진 없고.
17
「긴말 필요없고. 오빠. 내가 오빠한테 귀여운 모습을 많이 보여주지 못해서 미안해. 내가 오빠한테 잘해주지 못했다고. 오빠는 나한테 표정이 많다고 그랬는데 난 신나게 딴놈들 만나러 다니느라 바뻤지. 난 그 때문에 기분 좋아 정신 못 차렸단 말이야. 얼이 빠진 거였어. 하다 하다 제2의 똥파리랑 아마도 CS까지 했다지? 긴말 필요없고.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알 거나 알고 각자 갈 길 갑시다 선생. 네?」
그러면서 그녀는 노트북을 펼쳐서 어떤 엑셀 파일을 보여줬다. 거기에 나온 내용은 대략 이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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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데이트 횟수 습성 애교(발휘) 내숭(표현) 비고
숙녀 인생 첫 남자 제프리 오스본 51 하이에나과
첫 자동차 데이트 오스카 커퍼필드 몇 번 똥파리과
첫 자동차 더블데이트 오스카 커퍼필드 몇 번 똥파리과
포근한 스킨십 0 아직
손잡고 걷기 0 아직
첫 키스 0 아직
첫 포옹 0 아직
첫 경험 0 아직
1 대 1로 통화한 남자 3명
1 대 1로 만나본 남자 30명
2번 이상 만나본 남자 60명
3번 이상 만나본 남자 90명
함께(1대1) 사진 찍은 남자 1명
지갑 속에 사진 간직한 남자 1명 종료
내 사진을 선물한 남자 1명 끝남
야한 속옷을 선물한 남자 0명 없음
회사에 찾아온 남자(1번만) 000명 ⅰ)
회사에 찾아온 남자(2번 이상) 00명 ⅱ)
집까지 따라온 남자 0명 ⅲ)
사소한 선물 주고받은 남자 몇-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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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첫사랑or마지막' 사랑의 친구까지 여럿 포함됨. 왜 여자의 판타지를 논할까? 그 모두를 창녀처럼 동시에 상대했으니까. 정신나간 시절.
ⅱ) 게다가 이마저 마지막 사랑의 친구까지 포함. 정신박약!
ⅲ) 심지어 마지막 애인을 사랑할 당시, 전남자친구까지 집 앞에서 달콤한 데이트. 마지막 애인의 친한 친구와 CS, 그리고 더블 데이트까지.
※ <사랑이고 나발이고 우리는 그런 거 관심 없다. 우리는 오직 돈 보고 결혼한다. 돈이 곧 사랑이다. 말하자면 공주병녀 거울녀 의전녀인 나는 너가 마음에 든다 딱 낙점. 때문에 나는 너와 최단 시간 내에 결혼하고 싶다, 아니 해야만 한다, 따라서 몇 장 챙겨놓으라?> 남 생각 요만큼도 안 하는 미친년. 지가 어떻게 살았는지, 자질은 어떤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설마 과거에 그렇고 그런 직업여성이었다는 의심은 하지 않더라도, 어? 아무것도 모르는데? 뭘 믿고? 무슨 근거로? 무슨 로또 복권 사서 결혼 후 희박하디 희박한 확률이나 기대하란 말이야 뭐야! 말하지 않아도 은연중 느껴지는 직감, 숨겨도 우연찮게 알게 되는 진실. 그것만 해도 감춘 게 그 정도인데? 그럼 육감은 나 몰라라 아이 좋아라 계속 놀아주겠나. 자존심 없는 남자라면 그러지. 껄떡쇠 하이에나 똥파리과라도 얼마든지 대어를 잡기 위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저자세로 일관한다고. 허나 그건 그 분들 얘기고. 1번 스토킹 당해보니까 지가 남자한테 껄떡거려서 스토킹해놓고. 하다 하다 뒷조사까지 해놓고서. 창녀처럼 멀티태스킹으로 동시에 전부 상대해 놓고서. 또 회사로 번호표 챙겨들고 동시에 찾아오너라? 면접 보고 결혼 상대 정하겠다? 그러게 미쳐도 좋게 미쳐야지. 미쳐도 곱게 미쳤어야지. 걔도 사극을 너무 많이 봤네. 이모 말 너무 많이 들었다고. 소녀감성들 허영심과 여성잡지 1 허세한테 둘러쌓여 안 그래도 멍청한 년 더 멍청해져서 그랬구만 그래. 자기 밖에 모르는 년. 남 생각 요만~큼도 안 하는 년. 어? 말 끝마다, 오빠도 그래요? 툭하면, 들었어요? 에라~...
※ 설마 이 정도 배포도 없이 사랑싸움을 더럽도록 걸었을 리는 없음. 괜히 져준 줄 알아?
비위 더럽게 좋은 거야 지 인생이니까 뭐라 않겠는데. 전남자친구랑 결혼하고 싶었으면서
매춘부처럼 껄떡거리는 늑대들 죄다 상대해주면서 미쳐버린 주제에, 어? 뭐 지금 와서 내 사랑을 되찾고 싶다?
뭐가 어쩌고 어째? 뻔뻔한 년. 똥파리에 최적화된 년. 하이에나를 위해 태어난 년. 첩도 아깝다.
18
「오빠. 롱아일랜드에서 파리까지 대서양을 최초로 공중 횡단한 사람은 누굴까?
정답은 찰스 린드버그. 그럼 2번째는? 아는 사람도 없고 누구도 관심 없어~!
다음으로, 나스탁 상장된 회사 테슬라의 1인자는? 엘론 머스크.
그럼 넘버 2는? 대체 그걸 누가 알고 싶어 하냐고!
이 노트북 그리고 아이폰 만드는 회사가 어디더라, 그래 애플. 브랜드를 만든 기업가와 회사를 키우는 경영자는 상반되기 마련인데. 시장이 좁으면 일반화가 우세하는 반면, 시장이 크고 넓고 깊으면 전문화가 답이라지만. 1만 년 1억 년 후 그래프로 보자면 지금은 그야말로 걸음마 시절일 테니. 뭐 집중화를 유난스레 고집하기 때문인지 순이익률이 월등한 애플사의 1인자가 스티브 잡스에서 팀 쿡으로 바뀌었다는 잔지식 정도야 오빠도 아실 테고. 그럼 애플사 실세인 2인자 이름이 누군 줄 알아? 응? 누구게? 응? 누구? 알면 어디 이름을 대보시던가! 몰라~ 당연히 모르지. 알 리가 있나. 세상 사람들은 약자를 응원하지만 돈은 강자에게 건다네 친구. 어이 선생. 얌전한 샌님. 그러니까 오빠 같은 아웃복서는 껄떡쇠 인파이터한테 순번이 밀리게 되어 있어. 어? 허허허. 그러게 미리미리 제때제때 사랑하지 않고 뭐했나. 응? 여자들이 오빠처럼 가난한 예술가 유형을 좋아하는 줄 알아? 있긴 있지. 사람에 따라 썩 싫어하진 않는다고. 퍽이나 기다리는 여자도 간혹. 아웃복서는 그러게 쨉이라는 기본기와 결정적인 한 방, 여자를 너무 기다리게 만들면 안 된다니까 그러네. 아무리 좋아하는 남자라도 여자가 어떻게 개침 군침 질질 흘리면서, 어? 숙녀가 남자한테 끈질기도록 찝쩍거리나. 못해. 해선 안되거든. 그럴 순 없는 거니까. 응? 여자이기를 포기하라고? 그렇겠는 안되지. 아닌 건 아닌 거라고. 그러게 잔기술 편애할 게 아니라 (돈 세는 시늉) 진즉에 그러게 일찍 큰 기술을 연마했어야지. 우리가 무슨 돈 버는 기계냐는 퉁명스러움 반 농담 반 말장난 일삼는 아저씨들 나중 하는 말들 다 똑같잖아. 허풍꾼들이 나중 허세 부리기 전에 일찍 잔재주를 착실히 통장잔고랄지 부동산이나 우량주와 연결시키지 않고 뭐하셨나요. 응? 그러니까 오빤 2번째 남자지. 뭘 해도 뭘로 봐도 첫째와는 멀어. 허허허허허. 아닐지도 모르지만 말이야. 여세를 더 이어갈까? 뭐 까짓것 그러자고. 안 될 거 뭐 있어? OK~!
인류 최초로 세계 일주에 성공한 탐험가는 누구? 마젤란! 그럼 2번째는? 왜 말을 못하니. 응? 왜!
오빠, 페이스북에서 마크 저커버그 말고 또 누구 아는 사람 있어? 있으면 이름이 대 보시던가. 응?
오빠. 회사 아마존에서 제프 거 머시기... 그래 제프 베조스 말고 아는 사람 있어? 있냐고, 어?
회사 디즈니에서는? 월트 디즈니 빼고 없지? 그치? 그럼 그렇지.
페라리는 페라리. 과르네리는 과르네리. 자, 우리 패션업계로 한번 가볼까?
루이뷔통, 에르메스, 샤넬... 거기서 얼굴 마담이 누군지 알아? 허허. 이거 봐. 이거 보란 말이야.
유행가는 차마 셀 수 없이 멋진 노래들이 나오고 또 나오지. 쉬지 않고. 끝없이. 그런데 고전음악가의 인기는? 불변. 영원. 일부러 고전음악광이 아니더라도 모차르트 같은 음악가가 또 나오기 어렵다, 힘들다, 불가능하단 거 누가 모를까!
사랑이란 10명을 만나서 그 가운데 최고로 괜찮은 사람과 함께 행복하면 좋겠지만, 그게 어디 말처럼 쉽나. 그래서 속으로 홀딱 반하지 않아도 적당한 상대와 연애를 하기 마련. 그런데 만나봤더니 여기저기 씨 막 뿌리고 다니는 난봉꾼이더라? 말이 그렇단 거고. 곧 이 남자 저 남자 10명 100명 막 다 만나보기 전에. 일찍 괜찮은 늑대 딱 찦어서, 덥썩 물어서 일찍일찍 마음에 절반쯤 드는 촌닭 딱 골라서 사랑을 하는 게 차선! 아~ 그게 왜 최선이 아니라 차선이냐? 10명 만나보고 엑셀 파일로 꼼꼼히 치밀히 세밀히 따져서 검토 마친 다음, 누구로 낙찰~! 그럴 수 없으니까. 그 간사한 셈 면밀한 연구 다 끝날 때까지 누가 진득허니 기다려준대? 똥차 보내고 페라리나 롤스로이스 올 줄 알았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더 똥차만 오길래, 아쉬우니까 어떻게 저번에 걔 다시 만나면 안 될까? ~하여 탐색전만 펼치다 헤어진 남자한테 1년 만에 연락한 숙녀. 간보는 저울질, 속 보이니까 그러지 마셔야지. 안 그런가? 안 그래도 그 일을 미리미리 하는 전문가들이 있지 않나. 마담뚜랄지 결혼정보업체. 그렇다고 그분들만 뭐 돼지고기 A+++ 소고기 특 B---라고 등급 매기시나? 개인적으로 혼자 몰래 속으로 그러지 않는 사람은 없어. 있어? 없어. 남자 얼굴 보지 않는다는 여자는, 즐겁고 기쁘며 신나는 숙녀 인생으로 살기를 포기하고, 그저 착한 척 하나에 내 모든 걸 거는 식이지. 먹고 싶은 거, 먹어서도 안 돼요. 하고 싶은 거, 해서도 안 되고. 딴 남자 쳐다봐서도 안 되고. 아무것도 하면 안 되고 그저 구애하는 첫 번째 남자한테 여자 인생 모두 헌납해서, 밖에서 신나게 바람피우고 다니는 남편 수발만 들어도 부족한 것. 그게 삐툴어진 허영심이란 그 말씀이지. 무슨 꼴값은 남들이 뭔 피해를 입고 주변 사람들 죄다 괴로워해도 나만 괜찮으면 꼴값이 권리고. 적당히 끼리끼리 만나고 지적인 남자를 좋아하면 뭐 얼굴값인가? 속으로 속물처럼 이 생각 저 생각 견주어보고 따져보지 않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어. 절대로 없어. 첫인상이 뭔데? 누굴 속이려고. 뭐 아무튼 남자는 그렇고.
그렇지만 우리 어른들이 암컷의 습성을 어찌 모르시나. 앞서 엑셀 파일에 나왔든 수컷의 습성도 뱁새, 촌닭, 하이에나, 똥파리, (여자의 마음을 잘 아는 치타), 팔색조, 성실한 벌새, 말 잘하는 앵무새 그리고 파랑새. 많고도 많듯이, 가 문제가 아니라. 남자는 단지 촌닭이면 촌닭, 늑대면 늑대. 달랑 성격 파악하면 그거 하나로써 남자는 일생 변치 않아. 인성에 따라 또 갑자기 떼돈을 벌어 사람이 확 바뀌는 변수는 예외로 치고 말이야. 그런데 여자는. 어? 여자는! 고양이, 양, 펭귄...... 촌년도 촌년 나름이겠으나 여자는 동화, 유행가, 댄스 따라 하기, 낭만적인 드라마 애호기, 여성잡지 1, 그러다 이모 스타일이 잘 아는 척 말하면 귀 쫑긋~ 세우면서 남자한테 환장한 년은 물론, 어? 여자는 천성 말고도 쉬지 않고 죽을 때까지 변하지. 그래서 사랑이란 상향지원 하향지원, 인파이터 아웃복서 말고도, 특히 여자, 여자는 기준선 고집하지 않으면 끝이야. 응? 여자는 선구안 어설프면 여자의 인생 뻔할 뻔자란 말일세. 아시겠나? 두고두고 후회하고, 두고두고 배아프고, 두고두고 질투나고, 두고두고 미련 갖고, 두고두고 속 뒤집어지고. 내 남자 있어도 내 남자 일생 데라고 살아도, 두고두고 그러지 하지 않을 수 없는 일부 여자의 일생. 살아보지 않으면 그맘 몰라. 혹시, 아슈? 몰라. 절대 몰라. 다만 추정, 추론, 예측, 가정은 할 수 있지. 실제 당사자의 마음과 그게 거의 99퍼센트 흡사할 수도 있고 말이야.
자, 예를 들어볼까? 내 친구 얘기.
20살 전후해서 숙녀 인생 첫 남자가 꽃 들고 쫓아다녀서 만난 이야기.
통계 산출하면 나중 잘 사는 짝들도 많아. 많지. 많다고. 그런데 비율은?
내 친구? 넘어가냐 마냐, 이모 말 따르든 말든 지 인생 지가 알아서 한다지만.
일단 넘어가더라도 딱 2가지로 나뉘어. 일찍 몸을 허락하느냐 마느냐로!
내 마음에 쏘옥~ 들어서 정말 완전 좋아서 미칠 것 같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냥 단순히 숙녀 인생 첫 남자이기 때문에 얼렁뚱땅, 어쩌다가, 무심코... 그냥저냥 몸 주고 마음 주고.
마음이 가야 몸이 가는 게 여자인데. 반대로! 빈틈을 보이기 때문에, 기회가 엿보이고, 고로 여심의 여지를 노출하니까 마음까지 따라간 내 친구. 가만있어 봐.
(손가락으로 세는 시늉). 회사에서, 집에서, 차에서...... 만난 지 일찍도 줬고 총 합해서 대체 몇 번이야? 그러니까... 에잇 말을 말자. 말을 말어.」
19
「그렇지만 실망하지 마 2인자 친구.
최초보다 나은 재포지셔닝도 최고가 될 수 있으니까. 쉬우면 재미없지. 안 그런가?
세계적인 광고제에서 상 받는 게 광고인들의 꿈인 데다, 광고회사 손님인 기업들도 그걸 반겨한다지만.
정작 브랜드 매출과 멋지고, 재밌고, 전문가 중의 전문가들이 만든 광고의 상관관계? 없어. 희박. 일관성 없이 엿장수 맘이 따로 없지.
물론 첫 번째로 등장하자마자 그녀의 마음을 냅다 빼앗아버리면 좋겠으나.
그 정도로 홀딱 반할 만한 이상형이 미칠 듯이 맹렬히 구애하는 남자를 만나는 숙녀는, 천 명 가운데 1명 있을 둥 말 둥.
그래서 나머지. 남자가 꽃 들고 쫓아다니고, 선물 들고서 기다리고, 차려 입고 또 꽃다발 들고서 따라다니는 남자들.
10번, 100번, 1000번, 3년 동안 집요하게 들러붙어 억지로 사귀어 잘 사는 비율 얼마. 나중 후회하는 여자 얼마. 다 정해져 있어.
100번? 100번이 뭐야, 단 3번만 쫓아다니며 껄떡거려도 냅다 넘어가기 바쁜 여자가 적을까, 많을까?
그래서 만나줬더니, 사귀어줬더니, 어쩌면 결혼까지 해줬더니~ 어떻다더라 라는 한탄?
(인식이 이 정도 되면 지 인생 포기한 거나 마찬가지니, 책임을 타인에게 떠넘긴다는 거 자체가 바보요 하수)
그렇게 3년 사겨줬더니 말이야, 어느 단골 바에 여자친구를 데려가서 하는 말.
"쟤가 너보다 더 예뻐. 훨씬."
하도 애걸복걸 찝쩍거리길래 만나줬더니, 여자친구 되어줬더니, 사귀는 사이가 이런 건지 확신 없고 그냥 일단 탐색전 상대만 되어줬더니. 지 형편 풀릴 때까지 기다려줬더니. 어? 글쎄 진도를 안 빼줬기 때문에, 고로 그새를 못 참고 딴년 만나는 남자. 아니면 나중 형편 풀리면 더 좋은 여자와 몰래 결혼 준비할 시점에, 평강공주를 차버리고 복수하는 남자까지.
맥도널드 아르바이트생 퇴근하기 기다리고, 쫓아다니고, 집까지 몰래 따라가고. 꽃 들고 쫓아다녀다 어떻게 사겼어. 넘어갔으니까. 그랬는데~ 어머나 버거킹에 새로 온 점원이 더 예쁘네? 갈아 타. 여자도 환승이별 심심치 않게 하잖아? 그러다 다시, 던킨도넛에 새로운 어린 아가씨. 지금까지 만나본 여자들 가운데 제일 예뻐, 최고로 어려, 애교도 장난 아니야. 내숭의 기술 역시나 끝내주네? 갈아 타. 뭐 만나주지 않으면 죽어버리겠다면 협박해서 만나주고 어쩌고. 권위에 굴복하고 줏대 없고 마음 약하고. 순진할 때 그럼 몰라도, 나중 일명 존못남(좃나...)의 말도 안 되는 구애를 받아줬더니 글쎄 뒤통수를 자기 쳤다면서 동네방네 소문내고 다니는 연예인병녀. 자랑도 풍년이지. 남자복을 공상하며 남자 생각만으로 시도 때도 없이 설레고 들뜨고. 그런 벌렁벌렁녀. 시작부터 끝까지 남 얘기하는 험담꾼 다변가들 마냥, 뭔 생각만 했다 하면 남자 생각인 여자. 입만 열면 남자 남자. 응? (절레절레)! 최고의 남자 4명이 나한테 동시에 구애하는 게 꿈인 숙녀의 이상. 여자의 판타지를 결코 싫어할 수 없는 여자의 본심. 연예인처럼 사는 게 꿈인데 과연 나란 처녀는 남자 1명으로 만족할 수 있을까? 그런 어떤 여자를 만나면 피본다는데. 정말 피 많이 보는 걸 점쟁이들이 아무리 돌팔이여도 만장일치로 점치긴 하긴 하던만. 응?
좌우지간 결론은 그거야. 따라서 오빠는 어떤 숙녀 인생 첫 번째 남자가 될 것이다. ~라는 나의 예언. 여자 노스트라다무스로 점쟁이 업계에 신선한 파장을 일으키며 새롭게 데뷔한 나의 당당한 첫 번째 예언이라고 치자 그거라고. 아시겠소 작가 양반?」
물론 나는 마고를 만나지 못했다.
방금 전 16, 17, 18 문단에서 신나게 떠든 얘기. 마고를 만나서 어쩌고저쩌고 주례사이자 지루한 설교, 식상한 연설 얻어들은 썰?
뻥. 다 뻥. 몽땅 뻥. 어? 개 뻥. 개뿔. 전부 뻥. 그냥 나 혼자 공상한 게 다였다.
물론 15 문단까지는 진짜. 그래서 말 나온 김에 하나 고백하자면 이렇다.
즉 나는 언젠가 마고를 우연히 만나게 되지 않을까 라는 어렴풋한 예감에게 내 마음을 살짝 내어주고야 말았던 것이다.
뜬금없이 밑도 끝도 없는 실토를 끝으로 본 연재 편을 마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