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에 해당되는 글 198건

  1. BLOG ─ 149 2019.06.15
  2. BLOG ─ 148 2019.05.29
  3. BLOG ─ 147 2019.05.15
  4. Blog ─ 146 2019.04.30
  5. Blog ─ 145 2019.04.15
  6. Blog ─ 144 2019.03.31
  7. Blog - 143 2019.02.28

BLOG ─ 149

from 소설 2019. 6. 15. 15:18

    1

    요즘 나는 악몽을 꾸는 게 취미가 되어버렸다.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었다. 알고 싶지도 않고. 일단 최근 꾼 악몽 가운데 기억나는 걸 꼽아보자면 이렇다. 
    A. 옛날 알던 지인들과 카페에서 어떻게 합석. 웬 낯선 남자 1인도 함께. 그런데 대뜸 그분께서 그러시네. 자기가 누구랑 초등학교 동창이라나 뭐래나. 
    B. 액션 장르. 얼렁뚱땅 으쌰으쌰하다 사체를 놓고서 동네에서 왔다 갔다. 그러다 인질극에 엮여서 가담함. 말리다가 더 엮여버림. 세력 다툼 어쩌고저쩌고. 아예 한패로 움직이게 됨. 
    그렇다고 악몽꾸기가 재밌다는 얘긴 아니고. 어쨌든 멜로드라마 보기, 재미없다. TV 채널 돌리기 역시나. 일과표 또한 재미없기는 마찬가지. 할 일도 싫증났고. 그러니 할 말이 있을 턱이 있나. 있는지도 몰랐던 사랑, 차디차게 식었음. 낭만적인 로맨스, 오만정이 다 떨어짐. 적극 환영할 만한 새로운 사랑은 소식이 없고. 약속도 건수도 없는 지지부진한 평일과 주말, 신물이 나도록 지겹다. 바, 나이트클럽, 호프집. 술집에 가 봐야 뻔할 뻔자. 일상은 색다른 뭔가는 없고. 지겹기 짝이 없는 가택감금의 연속. 번뜩이는 군침 만끽하는 상상력도 바닥난지 오래. 사랑할 때는 로맨티스트답게, 그건 남들 얘기. 그럼 내 인생은, 재미없고 심심하기로는 자길 따라올 자가 없다는 건가. 알게 뭐야. 그걸 누가 궁금해 한다고. 관심 종자니 뭐니 신조어도 흥미롭지 않고. 그놈의 사랑이라면 지긋지긋 치가 떨리고. 나무랄 데 엄청 많은 인생, 뭘 해도 재미가 없다. 그렇다고 에밀리가 속내를 털어놓기를 하나 돈이라도 많기를 하나. 안 그래도, 에밀리는 방학을 즐기겠다며 장기 휴가를 떠났다. 그래서 나는 에밀리의 집에 1주일에 1번씩 왕래하면서 청소나 좀 해 주고 그래야 한다. 뭐 어쩌다 그렇게 됐다. 그분들 좋아하듯 오리발 내밀기 딱 좋을 듯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나 유리하면, 여자는 그래요. 
    나 불리하면, 저 그런 여자 아니에요. 
    할 말 떨어지면, 남자가 여자 이겨서 뭐하게! 
    마지막 카드 1 사랑. 
    마지막 카드 2 눈물.
    알고 보면...... 말 말자. 우리는 대인배니까. 진짜로? 통과. 
    그래서 나는 오늘 사무실에서 조금 일찍 나서 에밀리의 집으로 갔다.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에밀리가 알려준 주소에 도착했더니 거긴 허허벌판이었다. 
    물론 에밀리는 전화도 받지 않았다. 
    허탕이었다. 난 차인 거다. 또! 





    2

    칼럼니스트를 잠시 쉬고. 나는 카피라이터로 변신했다. 입만 엄청 털어서 이따만한 칼럼 써 봐야 편 당 고료 얼마. 어딘가 모르게 약간 손해 보는 느낌? 물론 보람도 있고 재미도 쏠쏠하지만. 왠지 모르게 타율에 대한 아쉬움과 동경심에 대한 미련이 남았던 거다. 뿐만 아니라 무당이 제 굿 못 한다고, 어? 사랑에 대해서 아는 척 자랑질에 똑똑한 척 잘난 척 허풍꾼처럼 나불나불 쓰고 또 쓰면 뭐 하나. 사랑을 못 하는데. 팬클럽은 있었던 적도 없고. 추종 세력이 다 웬 말. 그래서 나는 물밑 작업을 딱 한 문장, 또는 두어 문장으로 집약하는 일을 하고 싶어졌던 것이다. 그래서 만든 작품이 무엇인가. 그건 이랬다. 
    <오빠 나 냉동참치 아니다. 그것만 알아둬. 왠지 알아 두는 게 좋을 거 같아서!> 
    육덕녀의 진심과 미심쩍은 호감 정도는 구분하는 놈팡이. 냉동 참치 맛없다는 똘아이. 줘도 안 먹는 돌연변이. 실제로 냉동 참치 재미없는 건 사실. 뭐하러 냉동 참치를? 재미없음. 여자도 그렇듯이 남자에게 최고의 사랑은, 뭐니 뭐니 해도 새로운 사랑. 냉동참치녀는 별로 ~라는 남자의 마음을 종합한 결과 나는 저처럼 카피라이터를 만들어냈다. 과연 그게 어디에 어떻게 씌일지는 모르겠지만. 
    카피라이터의 삶. 하고 보니 괜찮았다. 물론 먹고 살 만한 프리랜서야 그럴 테고. 아등바등 아득바득 전장에서 버텨야 하는 전문가 입장은 다를 테고. 그렇긴 하다만 뭐라고나 할까... 동정을 받기보다 질투를 받는 편이 나을 수도 있는데. 둘 다 안 받는 게 차라리 나을지도 모른다. 따가운 눈총에 소란스러운 입방정에 호들갑까지 개인의 자유라지만. 알려지면 제약이 따르니까. 뭘 해도 멈칫하지 않을 수 없으니까. 어차피 일종의 새장 속의 새, 모종의 벌거벗은 임금님 신세. 그래서 아무도 날 모르는 투명인간처럼 행복한 인생을 위해서는 숨어 사는 게 최선일 수도 있다. 단, 돈은 많아야 함. 엄청나도록 겁나게 많다는 전제 하에. 그게 아니면 가난한 삼류 유명세라도 감지덕지던가. 그러지 말고 아예 동정 받든 질시 받든 뭘 해도 무관심에 무반응일 테니, 직업이나 바꿀까? ~라는 생각에 나는 카피라이터 인생으로 접어들었는데. 무슨 그 분야 한 30년 해 보지도 않고서 아는 척 말은 그냥 말만 말만! 
    그래도 일은 끊이질 않았다. 그래서 AMAZON.COM의 대항마로 급부상하고 있는 어느 웹사이트로부터 의뢰를 받아 탄생한 카피라이트. 그건 이랬다. 
    <별로인 남자들만 꼬이는 숙녀는 혹시 파리 끈끈이인 걸까>
    '별로'에 파리 끈끈이녀도 빠지기 섭하다 그거지. 
    아무튼 나는 그렇게 절실했던 품위 유지비를 마련했다. 
    그래서 이제 그걸로 무얼하지 라는 고민만 남은 셈이다. 





    3

    하나. 컴컴한 록카페에서 테슬라의 러브송이 나오는 순간. 록카페는 극장식과 카페와 그렇게 A와 B를 유리벽으로 나눔. 그렇게 A에서 B로 갈려다 유리벽에 쾅. 땡~ 아찔했음. 주위에서 웃고. 
    하나. 고1때 같은 반 단짝이랑 근처에서 놀던 곳. 자주는 아니고 한두 번. 
    하나. 대학교 1학년 때, 중3 때 친했다가 멀어진 친구가 여친이랑 다정하게 걸어오다 만남. 즉 1 대 2로. 자연스럽게 아는 척만 하고 스치듯 헤어짐. 
    하나. 길을 가다 여행 동아리 아는 누나가 카페에서 튀어나옴. 그녀는 치과 간호사 누나. 그래서 하는 말, 제가 여자친구 소개시켜 줄까요? 지금 그 카페에 함께 있다는 뜻. 돌려서 거절. 그 여행 동아리에 누나들이 많았는데 그때 친하게 지낼 걸 그랬나. 그래도 뭔가 막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게 많았던 시절. 지금 생각 같아서는 무조건 응했어야 했는데. (절레절레)
    하나. 길 가던 중 고1 농구단 친구를 만난 곳. 
    하나. 다녔던 외국어 학원들. 악보를 꼬박꼬박 샀던 음악사. 가끔 증명사진 찍으러 들리던 사진관. 문구점에서 계산할 때 고등학교 동창이 거기가 자기 집이라는데, 동창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 미안했던 일. 경찰서 정문 옆 담벼락에서 저녁에 키스하던 남녀.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여대생 누나와 부딪힌 거. 
    여기까지. 
    이 모두가 하나같이 회전 반경 단 몇 미터, 몇 십 미터 내에서 발생했던 일. 그런데 알고 보니 거리를 보아하니 약간씩 진행되네? 
    그래서 나는 그곳으로 가 봤다. 좌표 지점과 경우의 수를 면밀히, 정밀하게 기록해서 그걸 핸드폰 메모장에 기록하고서.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그렇게 도착. 긴말 필요없고. 모험주의자의 환상이고 나발이고. 
    결과만 말하자면 꽝이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괜히 고생만 한 거지. 
    웬 운명의 장난. 인생이란 어쩜 허풍꾼의 농담 같은 건가. 
    왕창 벗겨먹고 홀딱 쪽쪽쪽 단물 빨아먹기, 로 무엇이 좋을까나 공상할 걸. 
    먹고사는 일은 어쩌면 나 비위 상하지만 남 비위 맞춰주는 것인데. 그런데 그렇게 평생 살아보니 지겨워졌던 건가. 
    변덕스런 여심의 동향을 파악하는 출중한 기술도 형편없고. 뭐 하나 되는 일은 없고. 재미도 없고. 뭘 하든 싫증은 빠르고. 
    그처럼 찬밥 신세가 된 것 마냥, 숫기 없는 질투심을 어찌해 볼 도리가 없던 찰나. 문득 전화가 걸려왔다. 
    크리스였다. 
   「친구야. 나 비비안 따먹었어?」
   「뭐? 진짜로? 아니 어떻게! 늬가, 걔를? 정말이야?」
   「아니. 뻥이야!」
   「이 자식이...!」
   「그건 그렇고. 어떻게 사니? 혼자서 뭔 꿍꿍이속인데? 혼자 놀기 지겹지도 않니? 응? 살만해?」
   「뭐 살벌하냐고?」
   「헛. 아주 그냥 살발하다 살발해. 어?」
   「왜, 여자 꼬셔줄까? 말만해. 내가 다 꼬셔줄께. 이 세상 여자들 전부 다 내가 꼬셔줄께. 어? 누구든지. 뭘 바래, 지명방어전? 말만 하시라니까요 말만.」
   「그러지 말고. 넘어 와.」
   「왜, 여자 소개시켜주게?」
   「허걱! 어떻게 알았어?」
   「정말이야? 안 믿어. 내가 널 어떻게 믿니.」
   「참말인가 아닌가는 와 보면 알고. 나 있지, 하루에 딱 1번씩만 거짓말하기로 했다. 그거만 알아둬. 어이 당숙. 어? 친구. 사람은 겪어봐야 안다는 말 알지? 말은 타보고 시험하고, 사람은 사귀어 보고 시험하라? 푸딩의 시험은 먹어 보는 데 있어. 알지? 너도 잘 알지? 그런데 1번 먹어 보니 아직 그 맛을 잘 모르겠는데? 그렇게 2번 다음에 3번 4번 이어지는 식이라구. 그게 세상이고 바로 그게 사랑이야. 알겠니? 너 나한테 많이 속았잖아. 그렇다고 그게 매번 공짜일 리 있니? 속는 셈 치고 한 번 와 봐. 와서 놀라지나 말고. 이번엔 진짜로 소 뒷걸음질 치다 쥐 잡게 될 테니까 말이야. 어때? 올 꺼야 말 꺼야?」
    고요한 물과 과묵한 사람은 믿을 수 없다. 물론 달변가는 더 못 믿고. 허풍꾼의 농간에는 더 겁나는 농간으로. 그렇다고 호응군을 믿겠나 호사가를 신뢰하겠나. 바람잡이도 재미없고. 호전파의 패기가 사랑인 줄 알았다가 그이는 선동가랑 친해지고 암컷 싸움닭이랑 바람나면 그건 또 뭐고.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다. 남자 말을 어떻게 믿나. 그렇다고 여자 말을 솔직하게 믿으라고? 누굴 바보로 아시나. (똑똑똑 몸짓) 써글써글해도 여자 말 번역기 아직 꽤 쓸 만하다 이 말씀. 응? 즉 믿음이란 부질없는 것. 인생이란 기르던 개에게 뒤꿈치는 물리는 일. 은혜를 원수로 갚는 일조차 어쩌면 거친 정글의 질서이자 규칙 가운데 일부일지도 모르는 것. 살다 보면 알게 되는 일. 도끼는 그 자루를 빌려준 숲으로 가는 법. 고로 미친개인지 미친년인지, 아님 광마인지 돌아이인지. 사랑인가 정욕인가는 다 보면 보인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뭔가 느낌이 세했다. 이번만큼은 크리스에게 두둑한 신뢰감을 실어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크리스를 만나러 출발했다. 





    4

    이번 문단은 크리스를 만나러 가는 길. 더하기 이거 저거. 
    나는 그렇게 크리스를 만나러 가면서 그 음악을 들었다. 
    죠반니 파이지엘로 /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 중에서 2막 로지나의 카바티나 ‘자비로운 하늘이여, 내 마음을 아시는 분’
    여자에게 사랑이란 정신을 바싹, 바짝 차리고 있지 않으면 안 되는 것. 그런 숙녀와 새로운 사랑을? 생각만 해도 뿌듯. 
    친구 크리스의 빼어난 천재성에 난 기분이 아찔해졌다. 겁쟁이에게 찾아온 낭만적인 즐거움인 거지. 푸하하하하. 
    잃어버린 대망은 기억도 안 나고. 낭만적인 기질 역시 모르겠고. 남성적인 야심마저 관심도 없고.  
    우리에겐 오직  오붓한 육체적 대화 생각뿐. 일단 만나 봐서 괜찮으면 환상적인 분위기 조장하고 그다음에. 
    그런데 그녀가 날 태연히 본척만척하면 어떡하지? 그럴 리는 없지. 그녀는 내게 넘어올 수밖에 없으니까. 호호호. 
    그리고 가는 길에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유난히 왼쪽에서 뭔가 나타나서 내게 툭~하니 부딪힌 일들을. 가령, 
    왼쪽 : 1살. 탈장수술 흉터. (대략 1-2살)
    왼쪽 : 2살. 기어다니다 문턱에 왼쪽 눈두덩이 퍼퍽~! (대략 1-2살)
    왼쪽 : 초등학교 2학년이던가. 동네 3 총사에서 2명이 형제, 형제의 아빠는 경찰관. 매일 아침 오토바이로 등교&출근. 오토바이 1대 막대-아빠-다음-다음. 한참 달리다 뒷바퀴 바큇살에 왼쪽 아킬레스건이던가 까임. 
    왼쪽 : 초등학교 5학년. 눈 오는 날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역주행 트럭이 왼쪽에서 콰쾅! 쌍코피. 
    왼쪽 : 고등학교 1학년. 농구단 무명을 결성해 주말에 모여 농구하던 시절. 매주 몰몬교 내 농구장에서 모였는데 어느 날 왼쪽 발바닥 부상. (조셉 스미스와 무관. 그냥 농구장 위치 때문)
    왼쪽 : 택시 크레도스 2 고속 주행 중 가드레일에 스파크 파파팍. (나중 신호대기 중인 소나타 3을 퍼퍽) 
    왼쪽 : 흰색 소형차 액센트 접촉사고 왼쪽 후미. (덤프 트럭)
    왼쪽 : 단짝과 동업하던 불행했던 슬럼프. 귀 같이 한쪽만 뚫고, 귀걸이 한쌍 차서 나누고. 난 왼쪽 걘 오른쪽. 
    왼쪽 : 중형차 검정 레간자 정차 중 왼쪽 후미. (길가에 주차시켜 놓고 분식집에 들어가서 포장음식을 가지고 나와 보니 트럭이 박고 뺑소니)
    왼쪽 : 승합차 스타렉스 차량을 후진 중 나무에 후미등 콰광. 
    왼쪽 : 세라토 차량을 대리운전 중. 골목길에서 왼쪽 후미를 트럭이 콰광 후 줄행랑. 
    왼쪽 : 피앙새를 만나던 첫 만남 장소. 게임기를 보는데 왼편에서 피앙세가 걸어와서 짜잔. 
    물론 오른쪽도 있었다. 피아노 학원 선생님이랑 친했는데. 가끔 군것질하고 어쩌고. 그러던 어느날. 학원샘 누나가 자동차를 구입. 당연히 초보 운전. 피아노 학원 뒷편 교회 주차장까지 함께 가서 딱 차에 탐. 간단히 드라이브나 할 계획으로. 그런데 주차장에서 나오자마자 오른쪽으로 회전하다가 오른편 얕은 벽에 쿠쿵. 자동차 이름이 누비라던가 대충 그랬는데 그 차 오른쪽 뒤 타이어 근처가 찌그러짐. 난 조수석에 앉았고 학원샘은 나랑 같은 성씨였고. (피아노 학원을 여럿 다녔는데, 그땐 모차르트 소나타 연습할 때고. 제일 처음 1996년 18일 다음 날인 19일에 등록한 학원샘도 같은  성씨). 그때 만약 내가 덜 순진했다면 뭔가 진도 굉장히 드라마틱하게 뺄 수 있었는데. 풋풋한 기억.
    그 외 방파제에서 단짝이랑 걘 킥보드 난 뛰기. 오른쪽이었나 왼쪽이었나 내가 왼쪽이었던 듯. 페니스&질 완전 언발란스 거리녀가 왼쪽에 붙어 걸었고. 검정 바지에 연노란색 재킷이었나. (괜찮은 작품도 있긴 있었지만) 봤던 영화와 읽었던 소설이 삼류였으니 뭐. 교성녀도 왼쪽에. 어떤 성씨의 마지막 떨림녀가 일반인 마지막. 냉동참치 만나는 거도 다 애들 때 얘기지, 그게 뭐 재밌고 자랑스럽다고, 누군 뭐 얼마나 좋아서 그랬나. 그 바보는 마지막 사랑 때문에 헐벗고 만신창이가 되어 뒷골목 매춘부나 만나러 다니고, 집에서 실컷 쉬지 않고 혼자서 마스터베이션이나 끊임없이 하고 또 하고. 그런 인간은 그게 뭐 얼마나 좋아서 그랬겠나. 그런데 여자는? 여자는 마음만 먹으면 완전 타율왕이잖아? 그러면서 언제든지 처녀인 척. 뭐야 이거. 안 그래도, 어? 여자 손이 밀걸레야 뭐야 뭘 그렇게 문지르셔? 이제부터 여자 손을 보면 그 생각뿐이 나지 않겠구먼 그래. 여자들 이미지 트레이닝의 최고주자 아니냐고. 이제부터, 
    여자의 손 = 뭐다? 통과! 
    여자의 입 = 뭐다? 잘 아시면서 모른 척!
    남자는 빵처럼 부풀리고 여자는 폭탄세일처럼 축소하고.
    단 3명의 남자랑 사겨봤다는 여자? 30명이랑 했네. 뭐 300명?
    자기 감정에 솔직한 거랑, 남이 들었을 때 불쾌감이 들만한 얘기를 하는 거랑, 그 차이를 모르지 않아야 어른인데. 입바른 얘기하면 뻔히 남 기분 불편할 거 알면서 왜 멍청한 칼럼니스트는 그토록 불쾌한 주제를 생각하는 데 그렇게나 부지런할까. 도대체 왜 거기 그토록 천착하냐고. 왜냐, 안 그럴 수가 없거든. 피리가 그치면 춤도 그친다고, 게으르고 싶어도 풍악이 울리는데 어떻게 칼춤 군무를 멈추냐고. 바로 그 때문. 타인의 치욕, 도덕, 윤리, 염치, 정의, 규약, 질서, 미덕, 모범, 평범, 인습, 교양, 상식, 불문율 그 모든 게 이기주의 앞에서는 모두 무색해지는데? 이미 암컷 싸움닭의 내면을 읽어버렸는데 그 얼굴들을 어떻게 보냔 말이지. 얼굴 대 얼굴로 차마 포커페이스로 웃으면서 말할 수 있을 만큼 얼굴이 두껍냐 그거라고. 여자 말 번역기의 설계도와 숙녀라는 환상머신의 인지체계가 도대체 뭔 비밀을 간직했는지, 그걸 알면 판도라의 상자를 저절로 덮게 되는데. 그런데 벌거벗은 임금님을 본 동화(현실?) 속 그분들이 어찌 마음이 편하겠냐 그 말이다. 세상사가 그렇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까지가 속담인데. 그런데 그건 이미 옛날 얘기. 벌써 고리타분한 옛 얘기. 그럼 지금은? 지금은 나는 놈 위에 하는 놈! 물론 그 역도 성립한다. 행할 수 있는 것을 모두 하지 말고, 가진 것을 모두 쓰지 말고, 듣는 것을 모두 믿지 말고, 아는 것을 모두 말하지 말라. 그런데 현실은! 정반대이지 않나. 오락산업 앞에서 누가 할 말 하겠나, 다들 꼬리 흔들거나 발톱 감추느라 정신 없는데. 아니 그런가? 도덕이 있으면 부도덕이 있고, 염치가 있으면 몰염치라고 왜 없겠나. 학식이 있기 때문에 걱정이 많다고, 모르면 화가 없는데. 어른이 된다는 건 온간 잡다한 쓸데없는 잔지식이 머릿속에 가득 쌓인다는 건데. 타고난 천성은 어떨 것이며, 수십 년 관성에 굳어진 행태는 또 어떻고. 차마 말할 수 없는 일들 너무나도 많지 않나. 게다가 모순 없는 사람이 어딨나. 심지어 털어서 먼지 나오지 않는 사람이 어딨냐고. 변태성은 수면 아래 잠자고 있다 뿐이지, 길가다 웅성웅성하면 뭔 얘긴가 궁금하고 뭔 장면인가 보고 싶고. 그게 당연한데? 그렇다고 직접경험보다 간접경험을 선호하는 사람이라고 왜 없겠나.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종들을 시켜서 말하게 한다고, 속된 말로 손 안 대고 코 푸는 일. 심심치 않게 있지 않나. 모르는 지식이 단 1도 없는 세상만사 천재인 어른들. 그래도 뭔가 더 알고 싶어하는 그분들께. 그 뭔가 색다른 관점과 참신한 원리를 굳이 들리면 듣겠다, 알려주면 잠깐 짬 내서 귀기울일 용의는 있다. 만약 그랬을 때. 그렇다면 주는 것보다 어떻게 주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하는 수 없이 의식의 표면만 긁고 간지럽혀서는 의미 없다는 게 어떤 칼럼니스트의 생각일 것이다. 살살 아부하고 슬슬 기분 맞추며 가려운 데 긁어드리는 일. 져 주는 거 못하는 사람이 그게 어디 어른인가. 뻔한 얘기 남 비위 맞추느라 시간 낭비에 어쩌고저쩌고. 나 행복하기도 바쁜 인생인데 남 시간 뺐어서 뭔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안 그래도, 땡전 한 푼이 다 뭐야 치를 떨며 혐오했던 빚잔치 인생, 비리비리 지난 과거는 연패밖에 없고 앞날이야 전망 새까만데, 그런데 할 말 못 할 게 뭐냐고. 어차피 시간 지나면 시시콜콜한 추억은 새로운 유행에 밀리는 게 세상사 이치. 그럼 진짜를 논해야 하지 않을까? 어차피 늙어 죽어 흙으로 돌아갈 몸뚱이. '어차피 이렇게 된 거' 효과 때문에 몸뚱이 막 굴리기보다 가짜가 아닌 진짜를 논해야 하는 거 아니냔 말이다. 깔깔이 나서고 깐족이께서 말씀하시기를, 야 나랑 한 판 떠? 뜨긴 뭘 떠, 아니 뜰까? 그럴까? 자신의 결점에는 두더쥐가 되고, 남의 결점에는 살쾡이가 된다는데 정말로 그렇다. 뛰는 사슴 보고 잡은 토끼를 놓치지 말라지만, 하이에나가 벌레 먹은 사과를 마다하겠나 똥파리가 탐스런 튤립을 거절하겠나. 양보가 어딨고 예절이 어딨어. 일단 먹고 봐야지. 뭘 해도 껄떡인데? 사랑만 빼았기면 다행이게, 단짝마저 빼았아가는 동성 친구를 보면 속 뒤집어진단 말씀. 우정은 그래도 귀엽지, 임자 있는 남자한테 꼬리치고 유혹하고 유부남 흔들어서 빼았을려고 눈에 쌍불을 켜는 여자. 숙녀여, 잘 아시지 않나요. 그게 여자라는 거. 다 그렇다는 게 아니라, 누가 누가 그렇고 그런지 잘 아시지 않냐구요. 네? 뿐만 아니라 빼았고 빼았기고 지는 데서 쾌감을 느끼는 사디스트 마조히스트 뿐만 아니라, 누가 됐단 보이는 대로 닥치는 대로 아무나 붙잡고 다 싸우는 암컷 싸움닭은. 남자의 호승심에 여자의 승부욕. 남자의 허세와 여자의 허영심. 더더군다나 거꾸로맨과 루저 마인드는 또 어떻고. 이 세상은 순 반칙왕들 뿐이다. 모순 가득한 우리들 뿐이라고. 그래서 누군가는 총대를 메고 그 일을 해야만 한다. 남 귀에서 피가나든 타인의 행복에 흠집이 나든, 누군가 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래서 썩 납득하기 어려운 방법이 뭔고 하니, 그건 바로 도둑을 잡는 데 도둑을 풀어놓기. 따라서 공상의 결론은 그것이다. 1인의 사기꾼에는 1인 반의 사기꾼이 필요하다는 것. 어? 미친 교구에는 미친 목사가 있어야 한다. 모기를 장검으로 잡나? 그래 봤자, 어? 있어 봐야 검집만 휘황찬란해 봐야, 정작 검을 뺐더니만 이게 뭐야 이런 젠장, 짜리몽땅한 단검? 에라~ 모르겠다 어쩌고저쩌고. 결론은 그건가?
    어른이 된다는 건 어쩔 수 없이 속물로 살 수 밖에 없단 얘긴데. 이 세상이, 전 아무것도 몰라요 난 사랑을 아직 몰라요, 그러면 어머머 그래요~ 그러세요~ 라면서 호락호락하냔 말이지. 안 그런가? 남녀 공히 똑같이 사람. 인간이라는 존재. 이중성 뿐만 아니라 모순 가득하다는 거. 누가 모르나. 그걸 어찌 모를 수 있냐고. 에잇~ 공상 길어져 봐야 머리만 아프고.
    그렇게 나는 칼럼 주제를 구상하며 목적지로 가고 있었다. 
    머릿속에서 대충 내용의 구도를 잡았다. 
    칼럼 제목은 여자 여자. 
    아무튼 여자들 머리끄댕이 잡고 개싸움은 신물나고. 딱 됐고. 좌우지간 육체적 대화의 마지막이 아마 웬만한 남자들 경험자가 많지 않을 정도 피범벅. 비경험자는 경험 자체가 없기 때문에 그 정도가 가능할 줄 모르므로, 고로 대체로 못 믿음. 전문용어로 속칭 떡볶이 경험치를 단 1번도 체득해 보지 못한 남자에겐 여지없이 비현실. 그 양이 양이... 넘어가고. 그렇듯 현실은 그분들께 초현실적. 뻥인 줄 아는데 뻥이 아님. 여자는 괴물이 틀림없다. 매번 맞아도 왼쪽 뺨 왼쪽 광대뼈만 맞았고. 기타 등등 기억은 복잡하기만 하고. 
    대타 JS와 교성녀 SJ가 처음 만난 장소가, 그러고 보니 가출해서 취직한 카페 보헤미아 앞. 처음 만난 날 헤어진 장소는 중학교 때 소풍 갔던 근처 없어진 롤러스케이트장 자리. (지금은 터미널이자 백화점. 그 백화점이 그 백화점이겠네). 물론 남자 세계 불문율처럼 성과 보고에 이어 어쩌고저쩌고 척키 속 뒤집어지고. 그다음 드라마 장르는 바꼈고. 
    같은 성씨 분수녀를 처음 만난 장소는 이사 가기 전 고등학교 앞, 마지막 헤어진 곳은 어린이 공원 옆.
    이사 간 고등학교 근처 군부대는 예전 31사단.
    피앙세랑 같은 성씨 떨림녀를 처음 만난 장소는 행정구역 도 3개가 맞붙어 별칭이 각별한 장터 인근, 마지막 만난 곳은 중학교 근처에서 처음 불량배 학생한테 돈을 빼았겼던 장소 인근. 그 양아치 학생이 오른편에 붙었나 왼편인가 알쏭달쏭 잘 기억나질 않구만. 그 옆에 또 아는 동생이 임신 중절 수술한다면서 같이 가 달라던 병원 근처, 거기 가는 줄 알면 안 따라갔을려나... 모르겠네 모르겠어. 또 그 근처에서 성은 S요 이름이 '동성'인 초등학교 동창과, 중학교 등교길에 매번 90도로 마주쳤던 기찻길. 또 중학교 1학년 2학기 후반이던가 겨울방학이던가. 12월? 1월? 일요일 아침 우리 동네 여자중학교에서 농구하고 난 다음 집으로 귀가하던 중. 턱관절 장애가 갑자기 발생. 그 자리가 당시 시내버스 2번 종점. 그때 이후로 입을 일정 각도 이상 벌리면 쿵-쿵. 이게 키스할 때 꽤 부드럽지 못한 기분일 테지만 뭐 그딴 거 신경쓸 틈이 어딨나. 게다가 사랑하는 숙녀와 아직 키스도 못 해봤는데. 아주 그냥 인생이 일장춘몽, 꿈보다 해몽이구만 그래.





    5

    나는 그렇게 이 생각 저 생각 공상을 거듭하다가, 크리스를 만나기로 한 카페 앞에 도착했다. 아, 카페! 카페에서 처음 만난 여자가... 워──워──워! 여자 얘기라면 아조 그냥 신물이 난다. 식상 진부 싫증 짜증 정말 정말 지겹다. 악마는 모든 것을 알지만, 여자가 칼을 가는 곳은 제외인데. 사랑보다 호기심이 더 많은 처녀들을 망치기도 하는데. 여자 여자. 여자? 에잇 여자. (절레절레)
    아무튼 카페 이름이 뭔지는 모르겠고. 그렇게 카페에 딱 들어가려던 찰나. 
    뭔가가 오른쪽에서 날 쳤다. 
    알고 보니 그 물체는 사람이었다. 그것도 여자. 그런데 예뻐. 몸매가 몸매가 후덜덜 후들후들 와들와들. 심지어 참해. 딱 내 스타일. 뿐만 아니라 막 괜찮냐 어쩌냐 애교 떨고 어쩌고 꼬리치며 막 딱 한참을 뭐라 하는데. 그런데 난 어쨌겠나. 삐~ 이명이 들리면서 잠시 시간이 멈추어져버린 거지. 난 첫눈에 사랑에 빠져버렸다. 그야말로 아찔한 사랑에 말이다. 
    바로 이 황홀한 첫 만남. 다정한 첫인상. 섹시한 기대감. 
    알고 보니 크리스가 소개해주는 여자가 얘였단 걸 그땐 몰랐다. 
    그럼 이제 기 빨릴 일만 남은 건가? 등골이 오싹, 뒷목이 뻐근, 등짝에 식은땀 쭉. 나중 쌍코피 파팍. 
    그렇다면 정말로 침대에 찍 뻗는 일만 남은 거냐고. 그건 두고 보면 알 테고. 
    나는 카페로 들어가서 크리스를 만났다. 
    그런데 그녀도 크리스한테 인사하네? 
    우리는 눈이 마주쳤다. 벌써 짜릿한 사랑을 예감한 거지. 
    괜찮아요 미안해요 다친 데 없어요 어쩌고저쩌고.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는데. 아니 시간이 멈추어버렸는데 아주 그냥 미치는 거지. 아이 좋아라~? 호호호.
    버들은 약하나 다른 나무를 감는다. 그녀는 버들이었고 난 나무였다. 
    그런데 크리스 대신에 날 기다린 건 엔야였다.
    좀 전에 나는 엔야를 크리스로 깜빡 착각한 거였다. 
   「너가 여기 웬일이니?」
   「어 오빠. 왔어? 크리스 오빠 급한 일 있다고 갔어.」
   「갔다고?」
   「응. 뻣뻣한 수컷보단 내가 낫지 않나? 안 그래? 오빠 여자는 말이야, 어? 오빠처럼 순진한 사람은 여자를 조심해야 하는 법이야. 응? 여자는 요물이요 괴물에 마녀라니까 그러시네. 어? 여자는 남자를 속인 직후 가장 상냥한 동물. 물론 옛말이니 지금은 전후좌우도 남녀도 가릴 것 없다고 가정하는 게 속 편하고. 그야 어쨌든 좋은 개는 자기 꼬리를 안으로 감추며, 좋은 여자는 뒤로 물러난 있어. 알겠어, 오빠? 창가 여자는 자신을 값싸게 팔고 싶어한다고. 응? 창가 여자는 길가 뽕나무와 마찬가지란 말이야. 멍청한 년들 주위에 껄떡거리는 날파리들 많으면 좋은 줄 알지. 별로인 늑대들 달고 있으면서 막 자랑스러워하지 왜 안 그러겠어. 아직 어리거든. 완전 애지 뭐. 막 그래. 젊은 여자가 휘파람을 불고 있을 때, 성모 마리아께서 우신단 말이야. 젊은 여자가 휘파람을 불 때 천사는 운다고. 응? 또 뭐가 있지? 여자에 대해서. 또 뭐, 맞다. 자주 웃고 대담한 발걸음으로 걷는 여자는 뭐다? (딱) 매춘부다! 여기서 끝이냐, 아니지 아니지. 많은 사람이 냄새 맡는 장미는 향기를 잃지 않기가 쉬울까 어려울까. 여자의 아름다움은 봄꽃과 같지만, 정조는 하늘의 별과 같다네. 어떻게 헤픈 게 자랑이겠나. 그런 의미에서 내가 오빠한테 한 숙녀를 소개시켜 줄께. 운명적인 만남인가 아닌가는 두고 보면 알 테고.」
    그렇게 나는 엔야로부터 그녀를 소개받았다. 
    그녀의 이름은 아만다. 방금 카페 문 앞에서 수직으로 부딪힌 여인. 
    난 정작 크리스를 만나러 왔는데 좌우지간 호박이 제 발로 굴러온 건가. 
    그렇게 우리 셋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웃음꽃을 피웠다. 
    그러던 중 엔야가 아만다에게. 
   「늬가 좋아하는 남자 얘기한 적이 어디 한두 번이니.」
   「야 너는 무슨, 내가 뭐, 그 언, 뭘 아, 그건. 야 넌 뭘 그 내가 언제.」
    그러다 엔야는 우리에게 그랬다.
   「둘이 친하게 지내. 응?」
    아만다는 이제야 안심한다는 듯이,
   「예스~!」
    예스~? 시원스러운 어조가 아니라 절제하는 듯한 어조. 
    우리는 눈이 살짝 마주쳤다. 나는 쓰러질 것만 같았다. 
    아, 나는 사랑에 푹 빠져버렸구나 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엔야와 헤어진 채 우리는 밀애 여행을 떠났다. 





    6

    그렇게 어디로 떠날까를 정하지도 않은 채 '야호 바다 보러 가자'라는 듯이 떠났는데. 
    그런데 아만다는 갑자기 드라마처럼 가면을 벗었다. 
    그러면서 하는 말.
   「존나 카리스마 있어. 아 삐───! 존나 멋져. 내가 생각해도 졸라 멋져! 뻑가. 어? 소름! 대박. 장난 아니야. 뻑가.」
    뭐야, 얜 에밀리잖아? 새로운 여자가 얘였어? 실망은 아닌데 실망은 아니었다. 
   「너 에밀리잖아?」
   「그럼. 이제야 알아보시네. 오빠, 잘 지냈어?」
   「」
   「오빠는 내 꺼야. 알아? 오빠는 이제 딴 년 못 만나. 응? 내가 남자들 딱 좋아하는 스타일로 매번 변신해 줄게. 응? 말만 하시라니까요. 매번, 항상, 언제나, 날이면 날마다, 응? 만날 때마다 딴 여자 만나는 기분 느끼게 해 줄 자신 있다니까 그러시네. 응? 오빠. 내가 그러면 좋겠어 안 좋겠어? 응? 말 좀 해 봐 오빠야! 응?」
   「그걸 왜 나한테 물어봐? 너 알아서 해. 다만, 여자 말 허트루 듣지 마. 응? 아니 오빠 말.」
    나는 어리둥절함에 할 말을 잃었고. 
    크리스를 만나려다 우연히 마주친 엔야, 다시 엔야가 소개해준 아만다, 또다시 아만다였던 에밀리. 
    그녀는 바쁜 일이 있다면서 저기 저쪽에서 내려달라고 했다. 무슨 동에 번쩍 서에 번쩍도 아니고 뭐가 그렇게들 바빠? 참 나! 
    에밀리는 갔다. 그렇게 금방 갈 꺼면서 뭐하러. 찐한 키스도 없이 말이야. 
    피상적인 대화도 재미없고. 일생이 외롭고. 남들 다 하는 그런 평범한 데이트도 못 해 봤고. 인생은 꺾였고. 
    거울을 봐도 늙었고. 거울 쳐다보기도 싫고. 사진 찍기처럼 귀찮은 일을 왜 해. 남이야 하던가 말던가. 
    삶의 비밀은 없고. 돈은 더 없고. 뛰어난 솜씨가 어딨어. 빼어난 여자친구와 사귀어본 적이 인생 내내 0인데. 
    남자들 좋아하는 여자 스타일 뻔한데. 같이 걸으면서 모든 늑대의 시선이 나와 함께 걷는 그녀에게 쏠리는 일. 
    그런 느낌 받아본 적이 일생 0인데. 뭘 해도 병풍. 항상 신부들러리. 뼈져리는 패배감이 제일 친한 친구. 
    그렇게 나는 다시 혼자가 됐다. 
    돈 떨어지면 정 떨어지는 것일까. 정 들지도 않았고. 돈은 애초에 없었고. 
    수캐에게 물리건 암캐에게 물리건 물리긴 마찬가지. 할 말도 없고. 할 일은 재미없고.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 방울이야 쌍방울이고. 그거 안 달린 남자가 어딨어. 
    요즘 세상 행복한 인생을 위해 숨어서 살기를 염원하는 사람이 어디 흔하냔 말이지. 
    하루는 술꾼 어제는 도박꾼 내일은 예언가? 사실은 난봉꾼. 심지어 비공식. 게다가 아마추어. 사냥꾼이 덫에 걸린 셈이네. 
    인생이 거 어째 죽 쒀서 개 준 기분이지? 아아 뒷목! 
    어떤 개라도 한창 때는 있다지만 이건 뭐 그냥 아주 뭐야, 전성기가 꽃필 뻔 하다가 로맨스를 알지도 못한 채 기나긴 슬럼프. 
    결국 남은 건 썩은 미소. 푼돈 아끼고 뭉칫돈 잃는 셈이지 뭐. 
    덜 익은 감은 떫다고 떫어도 웬만치 떫은 게 아니라고. 
    하여간에 에밀리 그녀. 유별난 질투심 참 지독하네. 그게 다 끔찍한 상상력 때문인가? 공상도 병이군. 불쾌한 상상병. 그러니까 허언증도 여전하시단 얘기일 테고. 더 말해 뭐해. 그녀야 상사병이 걸리던가 말던가. 아름다운 얼굴. 까무러칠 만큼 탄탄한 몸매. 그와 동시에 흥미롭고 신나며 재밌는 숙녀. 그딴 거 다 필요 없고. 사랑에 손해 보고 인생에 개 이득이던가 말던가. 
    그렇게 나는 차에서 조용한 음악을 들으면서 사무실로 갔다. 
    헨델 / 오페라 <쥴리오 체자레> 중에서 아리아 ‘사랑스러운 희망이여’. 





    7

    흥미로운 전개로 물망에 오를 건수의 부재. 유능한 행복감이 뭔지는 모르겠고. 뜻밖의 행운은 감감무소식이요. 발탁할 만한 기발한 대타 역시 비리비리. 카드 한도는 간당간당. 신동인 줄 알았는데 결국 일하기는 권태 놀기도 바보. 그럼 대안으로 떠오르는 특단의 대책은? 당연히 없지. 있을 턱이 있나. 사리분별 안 되고 세상 물정 재미없고. 이쯤 되면 곤경에 허덕이던 날 구출해 줄 특명을 인공지능 지니가 지령해야 하는데. 녀석도 뭐 별수 없는 거지 뭐. 그러니 어떻게 숙녀의 기대감에 부흥하고, 그녀의 선망을 충족시켜 줄 수 있겠냐고.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일이지. 
    그러다 그는 공상을 그대로 글로 옮겼고. 칼럼 하나 뚝딱 써서 품위 유지비를 챙겼다. 
    내용물은 <칼럼: 여자 여자>였다. 
    뭐 또 여자? 차라리 떠자나! 그런데 어디로? 내 말이! 누가 아니래. 아무리 그래도, 어? 할 일 없으면 주색 할 말 없으면 사랑. 한창나이는 거듭 오지 아니하고, 하루에 새벽은 두 번 없다고, 우리는 달려야 한다. 뭐가 됐든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여우는 털을 갈아도 성질은 바꾸지 아니하는데, 환상머신이 완성됐던 말던 하던 일 하지 않을 수 있나. 
    그래서 JS가 고른 '바보 짓은 짧을수록 좋다'의 바보짓이 무엇이냐. 하면 그건 뭐였더라? 
    그것은 바로 U2 콘서트 가기였다. 현존하는 가수 가운데 관중 동원력으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듯 말 듯한 록밴드. 이름하여 U2. 짜잔~! 
    그는 동네에서 어슬렁어슬렁 산책하다가 벽보로 공연 소식을 알게 되었다. 
    U2? U2가 누군가. 1집 제목도 왠지 모르게 마음에 쏙 드는, BOY다. 이미 그들은 뭘 해도 전설이었다. 밥을 먹어도, 걸어 다녀도, 오줌을 싸도 전설. 손만 까딱 해도 전설이요, 입만 뻥끗 해도 추문. 뭐? 넘어가고. 말 그대로 아니 말이 필요 없는 밴드. 어? 
    물론 그는 U2를 예전부터 좋아한다랄지 즐겨 듣거나 각별한 애착심 그런 건 없었다. 다만 그 정도 공연이면 볼거리가 풍성하고 관중이 많기 때문에 사람 구경 제대로 할 수 있을 거라는 점. 그게 중요했다. 유수의 관광지까지 굳이 고생 고생해서 갈 필요 없이 손만 까딱하면 TV로 다 볼 수 있지 않나. 인종 전시장이라는 뉴욕 한복판까지 비싼 돈 들여서 가면 물론 좋겠지만, 응? 가까운 동네에 이방인들 자주 보이는 거리에만 가도 색다른 기분 대충 느껴지지 않나. 그거랑 이거랑. 비슷비슷. 안 그래도 일하기야 물론 나름 재밌기도 하고 보람도 있고. 흥미로움이야 여전하긴 하지만. 매번 사무실에서 듣는 음악이라고 해 봐야, 헨델의 하프시코드 모음곡 HWV 430.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Oster-Oratorium BWV 249. 음악의 아버지인가 어머니인가 매번 구식 탱탱 묵은 옛 음악 듣기. 최신곡을 모르면 여자를 꼬실 수 없지 않나. 다정한 숙녀가 자긴 아빠 같은 남자가 좋다면 또 몰라도. 뭐 그건 농담이고. 사랑이란, 여자의 환상을 만족시키는 남자를 만났다고 상상해 보는 것일까 아닐까. 또 옆길로 빠지지 말고. 
    뭐 어쨌든 그의 논리는 이랬다. 
    행복과 쾌락은 축복받은 제휴다, 
    그러므로 지고의 행복감이 아직이라면 짜릿한 쾌락마 타기도 잘만 고른다면 굳이 마다할 이유는 없다, 
    때문에 여러 후보군 가운데 그나마 제일 건전하고, 뭘로 봐도 방탕하지 않고, 어떻게 흠잡을라고 해 봐야 빈틈이 없는 일이라고 할 수 있는 것. 
    그걸로 U2 공연이 낙점된 점. 게다가 근처. 심지어 콘서트 표값도 싸. 뿐만 아니라 특급 좌석까지 거저. 따라서 이건 가지 않으면 안 된다. 반드시 가야만 한다. OK~ GO! 
    다소 억지스러운 논리일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썩 틀린 얘기도 아니었다. 
    물론 이런 말 하기엔 뭔지 약간 겸연쩍지만 그래도 기왕 말 나온 김에 살짝만 정직하게 사연을 풀어보자면. 그 뭐야 그게 말이지, 그가 정말로 무대 위에 그 어떤 무언가가 수북이 쌓이는가 '진짜로 그럴까'를 확인하기 위해서? 라는 목적 따윈 추호도 없었다는 점. 그가 만약 뮤지션이라면 속옷 회사 협찬 받을 만한 형편이 어려울 테니까, 하여 짜고 치는 포커처럼 사람 써서 일부러 그거 막 던지라고 작전이라도 짤 깜냥일까. 그러든가 말든가. 어쨌든 그런 진심 간과해도 좋고 아니면 말고.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고. 뭐? 농담이고. 일단 그랬다. 제일 적게 원하는 사람이 제일 부자다. 자동차는 딱 1대면 충분하다. 없어도 괜찮다. 있어 봐야 귀찮기만 하지. 돈 먹는 하마 밖에 더 되겠나. 그러니까 그분들이 늦출 수 있는 한 최대한 늦추라고 하지. 뭐 그야 어떻든 말이 그렇다는 거고. 넘어가고.
    지엄한 가치에 맞서지 않았고. 자연의 섭리에 숙연했고. 그런데 귀가 몹시 가려운데 누가 자기 얘기를 하는지 알 수가 있나. ~라면서 뭘 해도 재미없던 찰나. 동네 근처까지 세계적인 록밴드가 제 발로 찾아와 주고. 그런 행운이 어딨나. 옛말에 장맛이 좋아야 국맛이 좋다고 했다. 장맛은 U2 콘서트고 국맛은 내 인생. 생선 맛은 양념에 달렸다. 양념은 U2 콘서트고 생선은 그가 생선인가? 뭔 생선 같은 놈 나와서 사람이랑 연애하는 이야기, 그게 그거? 뭔 뚱딴지 같은 얘기는 재미없고. 꿀벌도 꽃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데. 사교계를 은퇴한 플레이보이 인생에서, 쓸쓸한 난봉꾼 고독한 사냥꾼 외로운 술꾼 처절한 도박꾼, 그 가운데 마음에 드는 타이틀은 없고. 그렇다면 답은 하나뿐이 없지 않나. 바로 U2 콘서트 가기. 캬~ 좋네 좋아. 딱 좋아. 어? 딱이다. 표값이 싸니 맞닥드리는 어려움은 없고. 혼자 조용히 갔다 와도 누가 뭐라 할 사람도 없고. 참으로 이색적인 눈총 받기는 다 남의 일이고. 크아~ 좋네 좋아. 딱 좋아. 
    그렇게 그는 공연 날이 되어 U2 콘서트가 열리는 공연장으로 갔다. 





    8

    그는 U2 공연장에 도착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건 U2 공연이기는 한데 좀 이상했다. 
    즉 UU라는 밴드와 UZ라는 밴드. 두 밴드의 조인트 공연. 
    UU + UZ = U2. 뭐라고? 1 + 1 판매촉진 마케팅이야 뭐야. 참 나 어쩐지 뭔가 잘 풀린다 그랬다. 그럼 그렇지. 이런 젠장. 또 혼자 원맨쇼 했구먼 그래. 
    그래도 뭐랄까 U3가 아니어서 다행이라고나 할까? 다행은 무슨. 이제 안 시켜도 남의 다리 긁기야 뭐야. 뭐 언제는 누가 시켜서 그랬나. 누구를 맹비난할 일도 아니잖아. 
    그래도 청춘의 행진은 즐거운 듯 보였다.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서로 얘기하고 사진 찍고 웃고. 정다운 그녀들. 그래서 그는 또다시 공상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저기 저 생머리 숙녀와 어느 날 문득 사랑에 빠진다면. 만약에 정말로 거짓말처럼 그렇게 되어버린다면. 그럼... 흐흐흐! 눈웃음 지으며 싱글벙글 굽실굽실 살랑살랑 딸랑딸랑 반짝반짝 뿌잉뿌잉. 오빠~! 아름다운 모습. 매혹적인 향기. 달콤한 목소리.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남잘 떨리게 만드는 사랑의 예감. 아님 쾌락의 기대감? 그 어떤 새로운 선망과 색다른 동경심까지 덤으로. 부풀어오르는 몽상과 흥분한 감성도 조금. 열망이 더 뜨거워지기 전에... 어떤 다정한 모험심이 자길 이끌면 좋겠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렇지만 공상도 재미없고. 여긴 본인이 있을 데가 아닌 것 같고. 곧 개가 오줌 누는 동안에 산토끼가 도망간다. 산토끼가 낮잠 자는 동안 거북이는 골인한다. 지금 이 순간도 적은 예뻐지고 있다.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점. 사무실 구석지에 찌그러져서 일이나 하는 수밖에. 그렇게 그는 그곳을 떠나게 됐다. 





    9

    다음 날. 
    사무실에서 TV 보기. 
   「아빠.. 엄마 언제 와?」
   「그걸 왜 나한테 묻니?」
   「그럼 누구한테 물어?」
   「엄마한테 물어봐.」
   「엄마가 안 보이니까 그러지. 아빠 어른 맞아?」
   「아빠 어른 아니야. 원래 아이가 어른이거든. 걔들도 속 다 있다, 너.」
   「그럼 그 걔들이 나야?」
   「잘 아시네.」
   「잘 아시네, 좋아하시네.」
    TV도 재미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뭐, 어? 평상시에는 정맥피가 흐르고 비상시에는 완전 동맥피로 교체되는 신체의 유일한 혈관인. 거 뭐야. 어. 막. 딱 거 나 참 허허. 됐고. 
    압도적인 아름다움과 순결한 우아함이 함께 하는 일은 바라지도 않고. 
    그는 그처럼 사무실에 있다 보면 은밀한 당혹감이 엄습해왔다. 바로, 남자는 집에 있으면 안 된다. 남자는 무조건 밖으로 나가야 한다. ~라는 남자 세계의 경구가 말이다. 
    보아하니 상쾌한 할 일은 알고 보면 지겨운 일하기. 말하자면 유쾌한 할 말이라고 해 봐야, 그래 봤자 심심하네 재미없네 권태롭네. 기분전환에 따른 환한 미소를 바랄 수도 없고. 
    그런데 이게 웬일이야. 오랜만에 릴리로부터 전화가 왔다. 
   「오, 릴리. 웬일이니?」
   「오빠. 나 지금 들어가.」
   「어딜?」
   「집에.」
   「누구 집에?」
   「누구 집이긴 누구 집이야. 우리 집이지. 그럼 뭐 내가 오빠 집으로 들어가겠니?」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라, 어?」
   「됐고. 끊어.」
   「뭐?」
    전화는 뚝 끊겼다. 
    뭐야 이거? 얜 걜 약 올리려고 전화한 거야 뭐야.
    그런데 잠시 후 아는 동생 이브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오빠. 나 오늘 약속 취소됐어」
   「아, 그래~?」
   「아휴 느끼해. 느낌 아니다. 기분 꽝이네. 분위기 깨졌어. 끊어.」
    역시나 이번에도 이브의 전화는 뚝 끊겼다. 
    아니 뭐야 이거! 
    잠시 후 제라드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내 이번에는 안 속는다. 그러면서 그는 전화를 받았다. 
   「내가 너라면, 아니 됐다. 말 말자.」
   「왜 말을 하다 말어? 뭔데? 응? 뭔데 그래? 아, 뭐냐니까.」
   「그러니까. 나올 거야 말 꺼야. 어? 그거만 말해.」
   「그거만 말하긴 누가 그거만 말하라는 거야.」
   「누구긴 누구야, 늬가 답해야지.」
   「그러니까 어디로?」
   「어디긴 어디겠니. 릴리랑 이브랑 나랑. 그렇게 셋이 모였는데 뭔가 으쌰으쌰 뭔가 약간 부족하다 그거지. 어딘가 모르게 오늘은 멤바가 많아야 좋을 듯한 뭐 그런 느낌?」
   「그럼 진작 불러야지 너네 정말 이러기야? 어? 우리가 그렇게 뜸 들일 사이니? 어?」
   「그렇지만 말이야.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야. 어? 여긴 너처럼 허접한 허당이 있을 곳이 못 돼. 그렇지만 내가 다 미리 손을 써 놨어. 때문에 뜬소문에 현혹되지 말고. 엄한 낭설도 믿지 말고. 입길에 오르내리지 않도록 조심하고. 어? 무엇보다 도망갈 생각일랑 일절 하지를 말어. 어? 알겠니? 어? 알겠니 모르겠니? 왜 말이 없어?」
   「말할 틈을 안 주는데 그럼 어떡하니? 아무튼 딱 기다리고 있어. 나 지금 곧바로 간다.」
    그렇게 그는 전화를 끊었다. 
    어머머머머. 그런데 걔네들이 어디에 있나를 물어보지 않았네? 
    그래서 다시 전화를 했다. 그런데 제라드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릴리의 전화는 꺼져있었다. 이브라고 전화를 받았겠나. 그럼 그렇지. 
    장밋빛 꿈은 이루어지고 결국 팬지꽃 색상의 쾌감은 충족될까, 아니면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기대일까. 기대는 무슨. 
    불행은 내 편이라는 불길한 예감이 설마 잭팟을 터트리려는 것일까. 그야 뭐 두고 보면 알겠지. 
    그래서 그는 다 잊고 일이나 하기로 했다. 
    일단 음악을 틀고. 
    비발디 / 오페라 <그리셀다>(Griselda) 2막 중에서 아리아 ‘두 줄기 바람이 몰아치고’
    결국 그는 삼류 카피라이터 하나를 만들어냈다. 
    평소 일과인 웹사이트 1,2,3 방문하고 블로그 검색유입어 살피고. 
    그걸로 얼렁뚱땅 만들어낸 카피라이터는 그랬다. 
    <이쁜 게 죄. 못생겨도 죄. 여자의 나이도 죄. 그러나...!> 
    본인도 이런 시시콜콜한 주제 자체도 꺼림칙하고, 논점도 싫지만. 카드값은 밀리고. 
    의뢰한 업체에서 그걸 어디 써먹을지는 몰라도 일단 먹고는 살아야 하니 일은 일이고. 

,

BLOG ─ 148

from 소설 2019. 5. 29. 18:16

    1. 집에서 공상 중. 에밀리로부터 연락 옴.

    나는 구혼을 거절당한 것마냥 창작에 전념할 수 없었다. 그래도 먹고는 살아야겠고. 그러니 이런 느낌 처음이야 같은 발단, 첫눈에 홀딱 반해버린 전개는 꿈도 꾸지 못한 채. 결국 칼럼 나부랭이만 몇 편 끄적끄적거리며 겨우겨우 품위 유지비만 벌고 있었다. 재미없는 농담으로 과장하자면 겨우 숨만 쉬며 사는 모습. 사적으로 만나서 설을 풀면 그렇다쳐도. 그게 또 청자가 삐딱하게 해석할 여지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니, 하여 미리미리 조롱을 차단하자면 그렇다는 것. 이와 같이 경제적 안정이란 내게 결코 쉽지 않았으니 난 결국 문사라기보다는 상업적 칼럼니스트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환상을 염원하는 꿈과 환희를 갈망하는 목표가 아예 없지는 않았다. 그건 바로 새로운 여자친구를 사귀는 것이었다. 모태 신앙처럼 무명과 가난과 고독은 타고남과 동시에 평생 가까이 해야 하는 운명이기에 뭐 씁슬하긴 하지만. 그렇지만 생애 최초로 여자친구를 사겨보고 싶었던 거다. 나도 남들처럼 말이다. 그게 뭐 어려운 거라고. 거액을 상속 받은 이혼녀 말고. 추종 세력을 거느리고 팬클럽 때문에 행복한 비명을 지르는 숙녀도 말고. 나는 누군가의 첫사랑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새 노트북과 새 자동차를 샀는데 대뜸 신상품을 받아보니 뜬금없이 중고품. 알고 보니 남이 쓰다 버린 거. 남이 사용하다 지겨워서 내놓은 노트북이라면 몰라도 남자친구가 여자친구한테 선물했다가, 이별하니 돌려달라고 따졌던 바로 그 노트북. 왜 그게 하필 내 꺼냐고. 자동차 역시나 구닥다리 타다 질려서 막쓴 기분이 안에 다 드러나는 트름 꺼억 자동차. 새 노트북과 새 자동차가 왜 하필 이러냔 말이지. 이것도 노트북과 자동차라고. 그럼 감히 감지덕지 인형에게 절하고 하늘에 감사드려야 하나 어쩌나. 차라리 그럴 바엔 혼자 산다. 차라리 그럴려면 혼자 살고 만다고. 행복이고 나발이고 자시고. 가짜 최신품을 보면서 보면 볼 때마다 꺼억~ 트름하는 쩝쩝이 똥파리가 생각날 바엔. 하이에나 천국에서 전성기를 구가할 바엔. 그럴 바엔 모 아니면 도란 말이다. 걔들이 걔 사진 보고 혼자 달렸을 텐데. 한두 번도 아니고. 신나게 마스터베이션하고 어쩌고 다 했을 텐데. 한두 명도 아니고. 하이에나 군단이 군침 흘리며 상상하고 툭하면 JS JS 막 그러면서 흑심을 품었을 텐데. 좀비 체액을 얼굴에 뿌릴 생각 + 체액 꿀꺽 = 하이에나의 사랑! 뽀너스는 혹시라도 헤어지면 먹을려다 말았네 먹다 질렸네 그럴 텐데. 지들 꼴값은 권리고 타인의 수평적인 눈높이는 얼굴값이고. 
   「윽 더러워! 우웩~!」 
    노트북도 멍청해. 유행 지난 게임도 제대로 안 돌아가, 그래픽 카드가 뭐 이래? 뭐든지 닥치고 해라? 닥치고 하긴 뭘 닥치고 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 딴 거 다 필요없고. 마음을 빼았기고, 연애하고 손잡고 다니고, 사랑의 포로가 된 척 웃고 사진 찍고. 1년 연애하며 사귀기. 그거면 되는데. 그게 뭐가 됐든. 아무것도 못하잖아? 그런데 뭐! 하긴 뭘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 하긴 뭘 하냔 말이지. 엿 먹으라는 거냐고 뭐냐고. 웃기지도 않고 재밌지도 않고. 기분만 더럽고 더럽고 계속 더럽고. 남이 쓰다 버린 인형 가지고서 하긴 뭘해. 말이 통하는 남자를 좋아하고, 뭘 좀 아는 남자, 지적인 남자를 좋아하는 노트북으로 알았는데 인공지능이 뭐 이렇게 버벅거리냐고. 이런 게 뭔 인공지능이냔 말이지. 동화 주인공 최첨단 요정이 아니라 멍청이 미련 곰탱이네. 다름 아니라 예술적으로 멍청한 여자라고. 그런데 새벽에 의식이 깨어나면 또 흥분해. 습관처럼 떨어. 과연 그 쾌감의 낙원에 누굴 초대하실지 그야 그분들 사정이고. 그 기쁨의 매커니즘에 관한 기억이 몇 가지 떠오른다. 
    첫째, 애용하는 매니큐어 바꾸듯 첩을 갈아치우는 유부남 친구. 녀석이 어느 날 데려온 숙녀. 친구들 앞에서 자랑하고 싶었을 테고. 나 이런 남자야 라고. 나 집에서는 제왕으로 군림하고, 밖에서는 방방곡곡에 한 명씩 애첩을 다 포진시켜 놨단 말이야. ~라고 말이다. 그런데 어머나! 그녀가 글쎄 내가 마음에 들었는지 어쩐지 보자마자 뭘 근거로 「이 오빠 혼자 살아? 오빠! 응? 그래 안 그래? 말 좀 해 봐 봐. (눈빛 바쁘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견적 내고 어쩌고)」 뭐? 보자마자 그 생각? 그러고서 '여자는 그래요'에 한 발 쓱~ 걸치고? 그럼 얘 그런 말 해 봤단 거네. 나 그런 여자 아니에요! 내숭 대단하겠는데?
    둘째, 대학교 2학년. (1학년 성적 저조 때문에 자퇴 다음에 재입학. 그래서 새내기 1학년들이랑 함께 어울리는 중고 1학년) 당시 하숙집 애들이랑 2 대 3 소개팅하고. 1 대 1로 항구도시에서 데이트 하다 헤어지면서. 파란색 풍선이 연분홍빛 상상력 때문에 거기서 그러면 안 되는데 어쨌던 거. 
    셋째, 기타 등등 소녀감성 때문에 대낮 거리에서 흥분한 기억. (남자의 발기는 크게 세 가지. 첫째 마찰 발기, 둘째 감정 발기, 셋째 수면 발기. 그 가운데 소녀감성이 하필 둘째를 건드렸던 것) 
    플레이보이 늑대인데 왜 거울을 보면 앙큼한 암닭처럼 보이는 것인지는 몰라도. 실제로 여자들이 단순히 혼자 좋아하는, 혼자 짝사랑하는 남자를 핸드폰 배경화면에 설정하고. 컴퓨터 바탕화면에도 꾸며놓고. 그럼 남자는? 썸타는 그녀의 사진과 동영상을 보면서, 그러면서, 무얼 하시는지는 당사자분께서 더 잘 아실 테고. 뭐야 이거, 동물의 세계 다큐멘터리잖아? 이런 젠장! 그야 어쨌든 뭔 얘기인지 하나도 모르겠고. 됐고. 나는 새로운 여자친구와 달콤한 연애를 시작하면 그뿐. 그럼 어떻게 이 얼굴 빨개지는 유쾌한 기분을 이어간담? 한 숙녀의 청춘에 무지개빛 추억과도 같은 아름다운 기억을, 그것도 내가? 진땀을 빼고서 혼자 공상해 봐야 다 쓸데없는 일일 뿐이고. 
    그래서 나는 떠날려고 했다. 또? 
    그런데 에밀리가 만나자면 전화를 걸어왔다. 
    그래서 나는 영차영차 약속 장소로 나갔고, 우리는 만났다. 





    2. 에밀리의 고백.

    에밀리의 고백.
    카페 이름은, 표범은 반점을 바꿀 수 없다. 
    음악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Exultate, jubilate K165. 
    카페에 손님은 에밀리와 나뿐. 
    혹시 얜 여전히 사랑한다는 뻔한 거짓말이라도 듣고 싶은 건가. 오늘 분위기가 왜 이러지? 
    그러다 오랜 침묵을 깨고서 에밀리왈,
   「오빠. 설마 멍청한 여자 좋아해? 아니면 혹시 영리한 아가씨가 땡겨? 그도 아님 둘 다 막 그냥 아무나 끌리는 건 아니실 테고. 아닌 게 아닌가?」 
   「어허. 얘가 사람을 뭘로 보고 말이야. 응?」
   「오빠.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께. 직접화법으로 깔끔하게 단언한다고. 오빠. 멍청한 여자 만나지 마. 나처럼 미모와 지성을 겸비한 숙녀를 만나란 말이야. 그치만 나 오래 못 기다려. 그야 어떻든 나도 다 알고 있어. 스텔라 언니랑 오빠랑 만나는 거. 왜, 그냥 친구 사이라고? 그러시든 말든 난 관심없고. 그러거나 말거나! 하여간에, 스텔라 언니랑 헤어진 다음에 나랑 만나는 거다? 알지? 알았지? 그런데 있잖아, 스텔라 그년이랑 오빠랑 안 어울려. 알아? 그 불여우 같은 년이 뭐 얼마나 참하고 지조있고 예쁜 줄 알어? 화장 지우면 다 똑같아. 뿐인가? 걔 입술 옆 아래에 점 있고 엉덩이랑 거기에도 점 있어. 오빤 모르지? 볼 한 가운데도 점 있어. 하긴 오빠가 어떻게 알겠어. 걔 과거 내가 말해 줄까 말까. 에잇 하지 말자. 내가 입만 뻥끗 하면 걘 아웃이야. 딱 아웃! 그렇다고 이런 말 했다는 거 쪼르륵 달려가서 그녀한테 말하면 안 된다는 거. 그쯤 모르시진 않을실 테고. 오빠는 고자질이랑 안 어울려. 역시나 이간질은 꿈도 꾸지 마시고. 그렇지만 난 달라. 나는 다르다고. 폭로전이든 뭐든 난 뭐 하나 걸리는 게 없거든. 깔끔. 깨끗. 말끔. 맑고 청순하고 순결. 티 하나 없이. 그러니까 생각 잘 해. 그런즉슨 어서 나한테 오란 말이야. 잘 해 준다고. 내가 오빠 예뻐해준다니까. 아니 내가 오빠의 요정이 될께. 응? 내가 오빠의 천사가 되겠다고. 주란 거 뭐 빵? 빵 사 주고. 가방? 가방 내가 사 줄께. 또 뭐, 뭐? 뭐, 그거? 그거가 뭐든 뭐가 됐든. 그런데 오빠.
    오빠 <계속해 봐.> 라고 한 번쯤 추임세를 거들어야 하는 거 아니야? 오빤 어쩜 그렇게 쑥맥이니? 응? 오빠 그러고 보면 여자한테 거짓말도 못하겠네. 호호호. 아이 좋아라. 아무튼 계속 가자. 어디가 됐든 가다 보면 무지개 너머가 나오겠지 뭐. 자, 이어서. 
    오빠. 내가 남자라면 말이야, 어? 쇼 같은 년 트럭 채 몇 트럭을 갖다 줘 봐라. 내가 눈 하나 꿈쩍 하는가. 어디 그런... 그런 더러운 년이 뭐가 이쁘다고. 흥! 에잇 (절레절레). 오빠가 아까워. 알어? 그런 앤 1번이면 끝이거든. 걘 사랑 몰라. 사랑 같은 거 모른다고. 사랑 받을 줄이나 알면서 사랑하는 척 착각이나 할 줄 알지 뭐. 바로 그런 년들이 나중 맞바람 피운다니까. 응? 오빤 여잘 몰라도 정말 모르네. 우리는 우리 마음은 말도 못한다니까요. 코 성형 했다가 못 웃는 거 보면 얼마나 재밌고 웃기고 꼬셔하는데. 응? 미녀가 똥파리 처리반에 제 발로 떠나주시면, 우리야 고맙지? 아니 얼마나 폭소가 터지는데! 고마워도 어떻게 그처럼 예술적으로 고마울 수가! 안 그래? 허허허. 다름 아니라 그런 년들이 여자 얼굴에 똥칠한다니까 그러시네. 시어머니한테 말대꾸했다고 무릎 꿇으라는 여자, 걔가 걔야. 그게 여자라고. 응? 누가 자길 좋아한다면, 걔 그냥 개나 소나 다 좋다 그래. 알어? 하이에나든 똥파리든 막캥이든 뱁새든 촌닭이든 가리지 않고 다 좋데. 멍청한 년. 지조 없는 년. 헤픈 년. 그러면서 정숙한 척. 이쁜 척. 잘난 척. 아는 척. 깨끗한 척. 깔끔한 척. 뭐-뭐. 뭐, 감히? 놀고 있네. 감히 좋아하시네. 지 주제를 알아야지. 어디 거지 발싸개 만도 못한 년이 주제도 모르고서 설치긴 설쳐? 어? 팔랑귀 코끼리 곰탱이 주제에 뭐, 아무 남자나 막 만나고. 아무 남자 자동차에 막 타고. 사막에 안 끌려가서 다행이지. 걸레가 어디 처음부터 걸레인가? 아무 남자 전화 다 받아주고. 아무 남자한테나 봉사하고. 그게 뭐야? 그게 여자야? 어?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는 법. 꼴에 지들 각자 각자 막 다 연애박사야. 별 말 같지도 않은 방법을 권하고 어쩌고. 책임질 것도 아니면서. 그냥 막던지는 거도 아니고. 뭐야 그게. 걘 끝나도 옛날에 끝났어. 그러게 만나던 똥파리나 계속 만날 것이지 어딜 넘봐? 어? 그런 애들이 결혼하면 집에서 손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니까 그러시네. 음식이든 뭐든 뭘 할 줄 아는 게 있어야지. 안 그래? 걔네들 할 수 있어서 했던 거, 다리 벌리는 거 밖에 더 있어? 아님 할 줄 아는 게 뭐 있는데? 남자 꼬시는 거? 화장 지우면 다 똑같아. 다 비슷비슷하게 생겼다고. 머리는 멍청하고. 몸 밖에 남는 게 더 있냔 말이지. 남는 거 그거 뿐이 없어. 게다가 지겨워지면? 심지어 늙으면! 말 다 한 거지. 안 그래? 
    연애? 길게 해서 좋을 거 하나 없어. 
    이별? 마음만 오고 가면 좋게 끝나고. 몸으로 사랑하면 99퍼센트 나쁘게 끝나. 끝나도 더럽게 끝날 가능성이 99퍼센트라고. 알어? 
    짝사랑도 똑같아. 마음만 받아주면 훗날 아름다운 회상이 되고. 판돈이 다름 아니라 몸이면 끝나도 저주와 혐오와 (개)망신만 남을 테고. 다들 잘 알지 않나? 알면서 왜 모른 척! 
    그러니까 좋은 말 할 때 오빤 나한테 와야 된다고. 응?」
    마침 그때 TV 연속극에서 남자 주인공이 심각한 대사를 읊조렸다. 





    3. TV 연속극 대사 1

    TV 연속극에서 남자 주인공은 이렇게 말했다. 긴 대사를 외웠는지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 꽤 길었다.
   「너 똥파리 좋아하잖아? 아니야? 아니면 아니라고 말을 하던가. 아니면 그 말이 옳도록 살던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안 그래? 이도저도 아니잖아. 왜, 약해? 좋아하면 좋아한다, 싫어하면 싫어한다. 알면 안다 모르면 모른다. 적절히 말하지 못할 바에야 가만히 있는 게 지혜. 뭘 잘 모르면, 그건 제가 잘 모르겠습니다 1주일 연구하고 충분히 알아본 다음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응?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이래도 흥 저래도 흥. 물에 술 탄 듯 술에 물 탄 듯. 너네들이 할 줄 아는 게 뭐가 있어? 없잖아? 응애응애 삐악삐악 애들이랑 똑같잖아. 안 그래? 약하면 말하고. 넌 리모콘 버튼만 눌르면 돼. 강이든 약이든. 미풍부터 선풍 거쳐 나머지까지 다 되니까 말만 하시라 그 말씀. 너 전화 오면 다 받아주잖아. 너 똥파리 사랑했잖아. 하이에나들 빤질나게 만나고 다녔잖아. 아니야? 사실이잖아? 그래 안 그래? 그러게 뭐하러 책잡힐 과거를 만들어? 멋진 연애사면 말도 안 해. 그런데 그게 아니잖아. 안 그래? 막상 어설픈 참견들 때문에 정작 좋아하는 오빠 전환 또 안 받아. 똥파리가 껄떡거리는 줄도 모르고. 그래 안 그래? 어? 너 하이에나의 구애, 싫지 않잖아? 똥파리들이 팬클럽처럼 널 추종하는 거. 그다지 반갑지는 않지만 꺼려하는 거도 아니고. 왜? 늬가 누굴 짝사랑하는 건 열렬한 애정이고. 똥파리들이 널 좋아하는 건 찝쩍이니? 왜 너만 사랑이고 그분들은 껄떡이니? 그러게 누가 너 보고 똥파리 좋아하라고 시켰니? 아니잖아? 다 늬 결정이고 너의 주관이었잖아? 안 그래? 아니면 아니라고 말을 하던가. 몸 먼저 베팅했다 나중 차인 여자애들처럼 또 남 탓으로 돌리게? 응애응애 삐악삐악 참새 짹짹! 그게 뭐야. 
    내가 어제 무슨 꿈을 꿨는 줄 아니? 아 글쎄 그게······ 말이 다 안 나온다. 어제 말이지. 자기가 누구의 전 남자친구란 작자가 날 찾아왔어. 것도 날 안심시키면서 예의를 갖추고서 복장도 격식 있고. 긴 용건도 아니고. 단지 지난 사랑에 대해 참회이자 부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길지도 않은 얘기 딱 5분만 나누자 라고 합의 봤고. 그 양반이 타고온 페라리 FF에 탔지. 카페까지 갈 거도 없고. 몇 마디만 오가면 그게 다일 테니까. 그런데 자동차가 갑자기 굉음을 내더지 호수로 돌진하네? 뿐더러 페라리는 커다른 그 뭐야 그게 뭔지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그렇게 바꼈어. 아울러 그 안에는 온통 하이에나들 천지. 몇 명인지 셀 수도 없어. 그러다 우리는 호수에 가라앉었어. 난 호수에 빠진 거기서 탈출하고 어쩌고. 꿈이 완전 특선 미니시리즈였는데 기억나는 건 단지 그거. 그 냥반 말대로 사랑이 무슨, 걸레는 빨아도 걸레라는 건가? 내가 왜 그런 얘기를 들어야 하지? 여자가 대체 남자한테 옛날에 어떤 빈틈을 보였길래? 무슨 사랑이 씹다 버린 풍선껌이니? 아니면 뭐 제대로 된 전문용어 말 해 줘?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풍선껌, 것도 단물 다 빠진 거 씹어먹을려고 하니까. 옆에서 하는 말이, 어? 에잇 말 말자 말을 말어. 이런 게 사랑이면! 그럼 너나 많이 하세요. 그런 사랑 난 최선을 다해서 사양하겠소이다. 아시겠습니까? 참 나 악몽 꾸는 게 취미가 되어버릴 줄 누가 생각이나 했겠니.
    너 거기 가면 슈퍼스타야, 어? 너 똥파리 좋아하자나. 안 그래? 너 똥파리라면 환장하잖아. 맞잖아? 응? 버러지 취급 받으면, 그럼 너 같으면 좋겠니? ~라고는 묻지 않을께. 왜? 왜냐하면 넌 똥파리 좋아하니까. 그러나! 난 똥파리 좋아하는 숙년 싫다. 싫어도 완전 싫다. 알았니? 응? 알았니 몰랐니? 너 좋아하는 똥파리한테 가. 그리 가라고. 응? 왜, 원래 눈 높기로 세계 최고였는데 하필 끈덕진 똥파리 집요한 하이에나한테 물렸다가 겨우겨우 빠져나왔는데. 아니지 아니지 늬 힘으로 빠져나온 거도 아니잖니. 나중 어차피 물고 빨고 핥고 질질 싸고 벌렁벌렁 펠라치오에 커닐링구스 환장했을 거 아니야? 애 낳고 행복한 가정을 꾸렸겠지. 무탈했으면. 바람이야 들키지 않으면 그만이고. 어쨌든 우연 때문에 이제사 제 눈높이를 다시 되찾았으므로, 따라서 마지막 오빠 미만은 이제 못 만나겠니? 그런 거니? 기다려 봐. 또 다른 똥파리 오겠지. 너 그런 거 잘하잖아, 꼬리치는 거. 암컷 싸움닭 친구가 도와주고 코치했던 거, 그거 순수한 감정인 줄 아니? 착각하지 마. 응? 그거 순수하게 너랑 오빠랑 짝지어 줄려는 거 아니야. 절대로 아니라고. 걘 첨에 지 친구 유치원 선생이랑 오빠랑 2 대 2 소개팅했는데, 지 친구는 완전 좋은데 오빤 별로라서 승부욕 발동했던 거야. 넌 이용당한 거고. 너도 다 아는 거잖아. 다 알고 시작했잖아. 처음부터 작정하고 덤빈 거잖아. 무슨 지가 감독씩이나 되는 줄 알어? 멍청한 년. 매달리고 매달리고 매달려서 겨우겨우 하이에나한테 빌붙어 있는 주제에, 뭐, 내 친구를 실망시키고 어쩌고어째서 두고 보자? 많이 두고 보라 그래. 못생긴 뚱보 천치 암컷 싸움닭 머저리년. 못생긴 게 문제가 아니고 난 뚱보 이쁜이 좋아해. 그런데 걘 성격이 지랄이야. 알어? 그거 순수한 큐피트 마음 아니야. 절대로 아니라고. 아무나 보면 다 싸울라 그러는데 그게 무슨 큐피트야. 게다가 여전사한테는 꼬리 내리고 바닥에 빠짝 엎드려. 심지어 학교에서도 왕따 직장에서도 밀려 친구는 없어. 남자들한테도 인기 없어. 남자친구조차 성욕을 못 느껴. (절레절레) (절레절레). 그래서 그런 영심이한테 물팍 꿇으라고? 너 같으면 무릎 꿇겠니! 암컷 싸움닭만 생각하면 토나온다, 구역질나온다고. 
    야 됐고. 냄새난다. 괜히 별로인 남자들만 꼬이겠니. 흥! 다 그럴 만 하니까 그러겠지. 응? 사랑과 욕정조차 분간 못하는 소녀감성. 고맙지만 사양하겠소이다. 그럼 이제 전 어떡하나요? 내 알 바 아님. 남자의 첫사랑은 마음이란 것도 모르는 촌년들. 냄새난다 냄새나. 너 가라. 어? 제발 가 주라. 내게 그댄 필요없으니까 가라고. 그런 사랑 따윈 지나가는 똥개한테나 던져주던가 말던가. 그러니, 좀 꺼져 줄래? 똥파리한테 가던가 말던가. 깬다 깨. 영원히 가 주라. 버러지 만도 못한 남자 취급해 주셔서 감사하니까, 꺼져주시라고요. 네? 대단히 감사합니다. 소중히 기억하겠습니다. 아아 나는 버러지 만도 못한 남자로구나 그렇구나. 때문에 나는 앞으로 여자한테 감히 명함도 내밀어서는 안 된다. 고로! 넌 가고 난 남고. 끝. 깔끔하네. 어? OK~! 뭐, 말 다 했냐고? 아직 남았는데 어쩌지, 꽤나 미안하네. 허허.」  
    TV 연속극 광고시간이 이어졌다. 





    4. TV 연속극 대사 2

    TV 연속극은 광고가 끝나자 곧바로 긴 명대사가 이어졌다. 
   「어차피 똥파리 똘똘이가 사랑스럽다면서 쪽쪽 빨고 훌훌 핥고 질질 싸고 벌렁벌렁. 좋다고 신음 지르며 행복해라 할 싸구려라니. 우웩~! 빨딱빨딱 집에서 눌러주고 밖에서 바람피고. 그 싸구려 사랑도 사랑이라고. 놀고 있네. 꺼져라 제발 꺼져라. 그런 첫사랑이 좋단 년 난 필요없다. 그런 사랑 너나 많이 해라. 난 싫다. 싫어도 완전 싫다. 시궁창 썪는 냄새 폴폴, 시체 썩어빠지는 냄새 풀풀 풍기지 말고 썩 꺼져라. 그런 너도 좋다는 남자, 차마 셀 수가 없으니까 딴 데 가서 골라 잡아라. 다만, 똥파리들 껄떡거리고 하이에나들 찝쩍거렸던 그곳에 나는 가기 싫다. 꼴에 지들도 여자라고, 헛! 멋지군. 아름답다고. 이마에 '나 멍청'이라고 써 있으니까 좋단 거 봐 봐. 지들 유리할 때만, 여자는 그래요! 지들 불리하면 '남자가 여자 이겨서 뭐하게'에 딱 숨을 줄이나 알고. 헤픈 년. 걸레. 지조도 줏대도 주관도 없는 년. 지 까짓 게 뭔 정숙? 숙녀 인생 막사는 년. 수치심조차 모르는 철면피들. 챙피한 줄 지들이 어떻게 알어. 꼴값이나 얼굴값이나 다 피장파장이네 뭐. 
    걔네들 스토킹 완전 좋아하구만. 강간 당하면 더 좋아하는 마조히스트 사디스트잖아? 성관계 야한 동영상에라도 찍혀서 유명해지고 싶어 환장한 년들. 10번 100번 1000번 찍어서 안 넘어가는 나무는 없다, 따라서 스토킹은 단지 구애이자 사랑이며 청춘사업일 뿐이다. ~라는 논리에 동의하는 거잖아? 동조성 드높은 걔네들. 스토킹 완전 좋아한단 말이네. 어딜 넘봐? 10번 100번 1000번 찍으면 웬만하면 다 넘어와. 안 넘어오면 그 끝은 뻔하고. 전남자친구 전남편의 스토킹도 끝은 비극일 때 살인. 낯선 스토커의 구애를 가장한 스토킹도 결국 바람피기, 불륜, 권태, 아니면 살인. 10번 100번 1000번 찍으면 웬만하면 넘어오는데? 그럼 여자가 병신이지. 싫으면 끝까지 싫어야지 그러게 왜 좋아해? 그건 죽어도 싸네 싸. 평생토록 불행을 안겨줄지도 모를 텐데 나 인기 있어 나 인정받았어 나 사랑받나 봐? 스토킹 받으면 속으로는 좋아서 죽으려고 하고, 겉으로는 싫고. 1달만 쫓아다녀 봐. 웬만한 여자는 다 넘어오니까. 2달만 따라다녀 봐. 어지간한 숙녀는 다 따먹을 수 있다고. 아무리 만나도 진도가 없다? 3년 기다리면 다 펠라치오하고 커닐링구스에 환장하게 되어 있어. 여자는 G 스팟이 열리면 똥파리고 뭐고 미쳐버리거든. 눈에 뵈는 게 없다고. 즉각 벌거벗은 임금님이 된단 말이지. 괜히 여자라는 동물은 아담 갈비뼈 떼다가 만들고 어쩌고 그런 게 아니라고. 어제 뉴스에 나왔듯이 여자가 무슨 골프공이나 된다는 듯이 아이언과 우드로 퍽~ 퍽~! 오늘 뉴스에 나오듯이 숙녀는 샌드백이니까 야구방망이로 퍽~ 퍽~! 다 멍청한 년들이 속으로는 좋으면서 겉으로는 스토킹 싫다고 하니까 그러는 거 아니냐고. 말로는 싫데. 속으로는 좋으면서. 스토킹 당해도 첫사랑으로 완전 좋아해주고, 강간 당해서 강간남이랑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데? 그럼 말 다 한 거 아니야! 뭔 말이 더 필요해? 심지어 꼴에 지도 여자라고 연애 칼럼니스트는 그래, 요즘 남자들의 문제는 10번 찍는 남자들이 없는 거라고! 뭐? (절레절레) (절레절레). 그러고서 페미니즘 어쩌고저쩌고 (파리 손 비비기). 내가 남자라면 똥파리의 스토킹 때문에 첫사랑을 죽고 못살며 사랑한 여자라면 중중히 사양하겠어. 똥파리 후순위로 공주 대접하라고? 미친 거 아니야? 지들 같아면 강간범 후순위라도 좋다고 할려나 몰라도, 우린 아니지! 암. 그렇고 말고. 아주 그냥 놀고 자빠지셨어요. 남자는 무조건 몸이지만 여자는 마음이야. 몸은 마음 가면 따라가는 거라고. 마음 갔으면 그건 끝난 거야. 헤픈 년. 천박한 년. 썅년. 꺼지라 그래. 나가 디지라 그래. 그러니까 여자의 적은 여자라 그러지. 안 그래? 그래서 그녀들이 염두해 둔 최고의 첫사랑은 뭐다? 똥파리의 스토킹이지! 미쳐버리지 미쳐버려. 그녀들은 모질지 못해. 마음 약해. 착해. 순진해빠졌어. 암것도 몰라. 유부남이 작업 걸면 웬만한 처녀는 다 넘어가. 속으로 완전 좋아해. 거기다 G 스팟까지 열려 봐. 여자 인생 조지는 거 한순간이지. 순진해 빠져가지고 꼬시면 꼬시는대로 족족 넘어와. 멍청한 년들. 남자에 환장한 년들. 보지 벌렁벌렁 개 걸레들. 뭐 강간범 후순위 + 애완견 만도 못한 취급 = 똥파리 넘버 2 하라고? 너 같으면 하겠니! 똥파리가 실컷 씹다 버린 껌을 주워서 그걸 다시 좋다고 씹으라고? 너 같으면 하겠냐고. 똥파리 뒤 닦아줄 일 있어? 어? 그 위대하신 똥파리한테 밀려도 한참 밀려서 주제도 모른 채 설치고선 껄떡거리는 거잖아? 그런 대접 받고 싶니? 실제로 우리는 남자한테 잘 보이기 위해서 화장을 해. 그런데 남자한테 잘 보이기 위해서 화장을 하는 게, 도대체 왜 무슨 죄의식이랄지 허영심으로 비춰져야 하는데. 사람이 사람한테 잘 보이고 싶은 게 당연한 거지. 자길 왜 속여? 그러고서 남한테 속아. 사랑이 뭐 별건가? 10번 100번 1000번 찍으면 다 죄다 몽땅 넘어가는 게 사랑이지. 그렇다고 그냥 기다리지 말고, 꽃다발만 들면 모든 비난과 화살을 피해갈 수 있는데? 학교 앞에서 기다려 봐. 내 친구도 그래서 고등학교 중퇴도 아니고, 고등학교에 무단 결석 때문에 짤렸어. 집에서는 가출. 왜? 어째서냐고? 남자가 쫓아다니다 쫓아다니다 결국 학교 등굣길에서조차 기다리네? 학생 때려치고 그길로 가출해서 그 뒤로 연락 끊겼어. 살아는 있나 몰라.
    직접화법 쓸 게 따로 있고, 간접화법이 선호될 일도 별도로 있는데. 그냥 멍청하게 여자의 'NO'는 99가지. 그게 뭐야? 그러니까 똥파리랑 하이에나들이 환장하며 군침 질질 흘리며 껄떡거리지. 그러게 예술적으로 멍청하지를 말던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뭐하자는 거야? 응? 뭐하자는 거냐고. 엄마 얼굴에 똥칠하고 싶니? 그러니? 아빠 보기에 미안하지도 않냐고! 좃도 씨바 이 머저리 병신 같은 년들아, 보지로 놈이 씹다 버린 껌이나 씹어라. 거리에서 미남만 보면 보지가 벌렁벌렁하냐? 레비오사~! 괜찮은 남자만 보면 질질 싸고 자빠졌니? 그러게 남자가 그렇게 좋냐? 어? OK~ 건배사 지금 뭐 생각나? 긴 거 말고 제일 짧은 거, (딱)! 남자가 그렇게 좋냐 이 삐───년들아. 그래서 똥쌀 때도 애액 질질, 차라리 똥을 싸라 똥을 싸, 이 고추 천재들아. 그 언니 날마다 하루에 최소 팬티라이너 5장. 응? 날이면 날마다. 일생이 발정기. 뭐니 뭐니 해도 남자한테 잘 보이기 위해 화장하는 년. 가라 가. 너 같은 거 필요없으니까 제발 꺼져 줄래?
    뭐 하나 되는 게 아무것도 없어. 똥파리 강박증. 백화점 생각만 해도. 은행 근처만 지나가도. 여자들 다종다양한 유니폼만 봐도. TV에서 언뜻 보여도. 뭔 말만 들려도 연상만 되어도. 수전증에 공상병에 또 또 머머증이야. 이젠 하다 하다 대인기피증. 사람 얼굴도 제대로 못 봐. 지면에서 모니터에서 남 얼굴 보기도 힘든데 지 얼굴을 어떻게 자주 봐. 여자들이 자기 성기를 보지 않는 거랑 똑같네. 뿐만 아니라 소셜 네트워크도 셀카 많은 페이지는 오래 못 본 다니까. 일생 내내 마취 중 각성 상태였는데. 살아있는 지옥. 거기다 대고 보란듯이? 그래서 오빤 지금 겪는 증상 뭐가 있어? 많네 많아. 
    ADHD(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 + PTSD(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 조울증 + 우울증 + 지적장애 + 불안증 + 알코올 의존증 + 정신병 + 고소공포증 + 허언증 + 각종 강박증 + 스토킹 강박증 + 똥파리 강박증 + 망상 + 똥파리 혐오증 + 하이에나 극혐 + 암컷 싸움닭 기피증 + 오스트랄로피테쿠스 회피증 + 호모 사피엔스 도피증 + 현실 도피 + 대인기피증 + 헤픈년 트라우마 + 사랑 혐오증 + 인간 의심증 + 성욕 과도증 + 홧병 + 다중인격장애 + 각종 집착증 + 직업병 + 돈독 오름 + 일중독 + ............ 머머증에 안 걸리는 게 없네. 풋풋한 사랑을 했든 진한 사랑을 했든 어차피 지들 인생. 남의 일. 그래도 그렇지 왜 하필 멍청한 똥파리녀? 걔 만큼 이쁜 애가 어디 드문가? 걔보다 이쁜 애 널렸어. 심지어 사라졌어. 깜찍녀 귀염녀 청순녀 웃긴년 돈까지 많은 년 빼고. 죄다 싹 다 빼고 왜 하필 멍청한 똥파리녀냔 말이지. 응? 나 같으면 100퍼센트 반품한다. 딴 여자 만나겠다고. 미모와 지성을 겸비한 재색. 그녀의 선망과 동경심과 감수성을 만족시키고. 똑순이를 떠받들며. 헛점도 아닌 헛점인 헛똑똑을 파고 들어 짜잔~! 짠 짠 짠 짠~ 짠 짠 짠 짠~ 짠짠짠 짠짠짠 짠짠짠짠~! 
    그런데 뭐 진짜냐고? 그럼 진짜지. 내가 지금 너랑 장난하게 생겼니? 어? 사랑이 장난인 줄 아니? 난 널 사랑하지 않았어. 너가 하도 얼쩡얼쩡 알짱거리며 좋아하는 척 간보길래. 그러길래 나도 똑같이 그런 척만 했던 거라고. 알겠니? 응? 알겠니 모르겠니? 너랑 나중 그짓을 하느니, 어? 염병~, 내 일평생 쭈쭈바 껍딱 끼고 혼자 딸딸이나 치고 만다. 알겠니 모르겠니? 사랑은 개뿔. 똥파리랑 똥파리녀는 자존심조차 없나 몰라도, 이걸 어쩌지 퍽이나 미안하게 됐네 그려. 난 배알 꼴려서 그런 낙과는 줘도 못 먹겠다. 응? 어차피 속은 옛날에 썩어문드러졌고 영혼 역시 옛날에 죽었고. 그런데 못 할 게 뭐야? 주변에 죄다 싸구려 낙원이니 이거 대체 뭐하자는 시츄에이션이야, 삼류 천국이 따로 없구만 그래. 똥파리랑 똥파리녀가 천생연분 일편단심으로 살림 차려서 매일 날마다 떡을 치건 죽을 쑤건. 난 관심 없고. 내 알 바도 아니고. OK? 대답은 듣기도 싫고 난 OK! 예스~. 살다 살다 별의별 미친년을 다 보겠네. 하다 하다 지가 돌대가리라고 광고하는 년, 보다 보다 지가 똥파리녀라고 자랑하는 년은 내 생전 처음 본다 처음 봐. 대단하다 대단해. 고추천재 납시셨네. 기쁘시겠어. 허허. 꺼지라 그래. 추접스럽고 던지러우니까. 응?」 
    뭐야? 뭔 드라마인 줄 모르지만, 아주 그냥 살발하구만 살발해! 
    결국 우린 결판을 내지 못한 채 헤어지게 됐다. 그러나 그 헤어짐이 끝은 아니었다는 점. 충분히 예상하고도 남았다. 





    5. 에밀리의 설득 1 

    에밀리의 설득. 
    그런데 에밀리는 끈질겼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그 그 그 다음 날도. 쉽없이 만났고. 끊임없이 설득당했고. 결국은 넘어갔다. 게다가 걔가 걔보다 뭐 하나 꿇릴 거도 없었다. 
    오히려 더 예뻤다. 어렸다. 착했다. 영리했다. 웃겼다. 돈도 많았다. 순정파였다. 말 다 했네. 끝. 
   「걔 똥파리 좋아하잖아? 그럼 좋아하는 거 충족시켜 줘야지. 걔 하이에나라면 환장하잖아? 세상사는 심은 대로 거두는 법. 뿐만 아니지 뿐만 아니야. 미남에 성우에 코메디언에. 노래 잘 부르면 좋고. 춤 잘 춰도 좋아하고. 다른 여자의 남자라도 끌리면 떨리고. 치마만 둘렀다 싶으면 아무 여자나 다 좋다는 늑대랑 똑같잖아? 안 그래? 이런 이런~! 저런 남자에 환장한 년 같으니라고. 발정난 암코양이네. 사랑하는 낭군님이 있어도 괜찮은 남자한테 눈 돌아가고. 귀는 쫑긋 세우고. 때로는 마음도 가고. 어쩌다 여심은 심하게 흔들리기까지. 애인이 있어도 멋진 남자한테 혹하고. 여자 인생 일생이 발정이구만. 만났던 늑대들은 죄다 그럴 거 아니냐고. 

  • 걔 내가 먼저 만났음. 내가 처음. 내가 첫사랑.
  • 흑심 품고 따먹을 수 있었는데 참았다. 불쌍해서 봐 줬다. 
  • 나를 거쳐간 여자일 뿐이다. 그래 봤자 전적 가운데 하나. 보나마나 멍청해. 
  • 그러니까 나한테 남아있었어야지. 잘해줬을 텐데. 가성비 최고였는데. 그때 꽃을 꺾었어야 했는데. 허세─근자감(근거 있는 자신감)─독선─이기주의─민폐─자기합리화─모멸감 심어주기─몰염치─파렴치─무례─자기위주편향─용기─패기─똘기 등등. 어차피 세상의 절반은 여자. 갈 테면 가라 그래. 하긴 김칫국 먼저 먹고 꼭 차였는데 내가 찬 것처럼 말하네. 그래도 풋풋한 청포도 어차피 먹어봐야 시기만 하고 맛도 없어. 맛 없어도 더럽게 맛없지 왜 아니야? 시승할 차 널렸는데 뭐하러 귀찮게! 그래도 걔는 예쁘고 착하고 말귀는 알아 듣고. 그런데 내 마누라는 뭐야! 못생겼고 성격 못 됐고 멍청하고 잔소리는 말도 못하고. 전화하면 지 말만 하고 뚝 끊고. 길을 걸으면 내가 앞에 가는 꼴을 못 봐. 그렇다고 또 멍청한 아이는? 죽어도 못 잊겠네 못 잊어. (그래서 이런 뱁새과는, 이따금 어떤 부류는, 딸이 아빠를 완전 싫어함. 그레이트 데인처럼 촌닭&뱁새는 상남자 아니면 쫄보인데. 미세한 차이가 있음. 속에 쌓인 게 쌓인 게 말도 못함. 따라서 분위기 스캔, 뇌압 측정, 짜증 지수 파악 필수) 

    ~라고 말이야. 응? 오빠! 파랑새 언니는 자기가 자기 첫사랑이자 끝사랑을 동시에 오빠로 손꼽기를 주저하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미안한데. 그런데 똥파리는 자기가 그녀의 첫사랑이래. 막 그래! 그렇지만. 여자가 봤을 땐 똥파리가 첫사랑 맞네 맞어. 남자는 '잤냐 안 잤냐'가 더 중요한가 몰라도 여자는 아니거든. 몸은 필요없고 사랑이란 마음이거든. 걔 처녀 아니네. 남자는 여자가 남자랑 한 번도 자지 않았다면 그걸 처녀로 보는지 몰라도. 여자가 보기에는 그렇지 않지. 그 중간은 뭘까? 신나게 펠라치오만 해 주고 키스 하고 어쩌고, 그렇지만 아래는 단 1번도 허락치 않은 처녀. 과연 그걸 처녀라 할 수 있냐, 애매하잖아. 우리가 보기엔 처녀 = 첫사랑이지. 우리는 마음이 가면 몸도 간다니까. 걔 시험공부하는 고시생이니까 자주 만나지도 못하고 낭만 찾고 뭐할 처지도 아니라서 몸을 못 준거지. 시험 합격하고 여건만 되면 줘도 많이 줬겠네. 그게 무슨 처녀야. 안 그래?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원룸촌 발바리, 원룸촌에서 혼자 사는 여자들 100명을 강간했던 범죄자. 그런 강간범한테 강간당하고서 여보 사랑해요, 행복한 가정을 꾸린 일이 있긴 있다던데. 어떻게 똥파리 중의 똥파리를 왜 하필 고대하던 첫사랑으로 손꼽아서, 염원하던 내 남자의 사진을 지갑 속에 간직했단 말이지. 가만 보니 그런 똥파리녀들이 흔하단 말이야? 정말 그런 거야? 이 세상에 안 이쁜 여자가 어딨어. 안 착한 여자가 어딨냐고. 안 섹시한 여자가 그 어디 있냐고. 그런데 왜 하필 그런 싸구려 똥파리녀냔 말이야. 그런 멍청한 똥파리녀는, 그런 사랑을 기대했었던 거구나. 사랑의 예감이 그렇다니. 그런 일이 정말로 있긴 있는 거구나. 그러면서 새 하얀 와이셔츠와 넥타이를 좋아하고, 양복쟁이 유부남만 보면 환장한단 말이잖아? 밥 먹듯이 짝사랑만 수도 없이 했단 거 아니냐고. 그게 뭐가 처녀야. 그게 처녀라고? 남자는 처녀라면서 환장하시겠지. 그러나, 여자가 봤을 땐, 우리가 보기엔 그거 처녀 아니지. 그렇지. 그거 중고차야. 싸구려야. 걔 스스로 자발적으로 하이에나한테 인생 헌납하겠다는데 우리야 고맙지. 완전 꼬시지. 왜 아니겠어? 남이 등 떠밀어서도 아니고 스스로 원했기 때문에 하이에나한테 성상납을 오늘 하느냐, 내일 하느냐. 그 차이 밖에 없는데. 그런데 우리 여자들이 그걸 처녀로 본다고? 착각도 유분수지. 그럼. 차라리 강간범한테 강간당했을지라도 마음이 아직이면 그게 진짜 처녀지. 몸만 아직이고 마음은 헤펐는데 그게 처녀라고? 처녀가 죄다 썩었네. 오빠 같으면 바람핀 부인이랑 계속 살 수 있어? 성도착증 오져서 이 남자 저 남자 다 자고 다녔는데, 하필 나만 몰랐는데, 그녈 계속 사랑할 수 있겠냐고. 그럼 아마도 머리에 뿔나겠지. 진짜로. 애시당초 바람피지 않을 정실감을 모시는 게 상책인데 나중 그랬다? 오빠는 몰라도 나는 못산다. 나는 못산다고. 어디 똥파리 봉사녀와 로맨스를? 깬다 깨 정 뚝 떨어진다고. 응? 더더군다나 걔 방에 책상도 없어. 머리가 돌이라 그거지. 이야~ 몰랐네 정말 몰랐어. 더불어 여자들 차 없으면 싫어하는 거. 누가 몰라? 난 오빠 차 없어도 좋아. 비전 없으면 더 좋아. 돈? 필요없어. 나 돈 빼면 시첸 거 몰라? 몸만 와. 내가 먹여 살릴께. 뭐 남자들끼리 하는 말로, 사랑은 없어? 나, 내일은 없어~! 응?」 





    6. 에밀리의 설득 2

    그분도! 똑같이 속 뒤집어져 보시라 그래. 어? 똑같이 돌려줘. 기분 어떤가 보게. 이미 사랑에 빠졌는데. 그런데 딴 남자랑 자? 것도 하필 자기 남자의 친구랑? 하이에나랑 똥파리, 이제 5년 밖에 못 살지도 몰라. 뭐 짧고 굵게 사는 거네. 심지어 그 중간 중간 대체 몇 명의 하이에나를 만났는데. 그러고서 연락없이 조용히 떠남. 비전없는 남자만 병신되라 그거지. 그러니까 오빠는, 못생기고 못되고 그런 악녀와 싸움닭들만 골라서 만나줘. 그럼 돼. 나만 믿고 따라와. 그 가운데 제일 예쁘고 제일 착한 나 같은 여자를 1년 만나서 추억을 쌓고. 그 1년 후에 오빠에게 내가 썩 싫지 않다면, 우리는 영원히 사랑하는 거고. 다음 생의 다음 생까지. 어때, OK? OK인 걸로. 아무튼 그래야 공평. 응당 그래야 동등함. 안 그래? 감히 차 1대도 없고 집도 없고 돈도 못 벌고. 자기 사정 뻔히 알기 때문에, 그러므로 속으로 얼마나 괴로웠을 텐데. 그런데 사랑이라서 들뜨고 기쁘고 설레고. 
    뭐 감히 자기 집 개 만도 못한 주제에 어딜 넘봐? 넘보지 마. 지가 먼저 꼬리쳐서 꼬셨으면서 어딜 넘보긴 누가 넘 봐. 어? 뭐한다고 그런 오해를 받고 드라마틱하도록 끝까지 져 줘? 오빠는 뭐 배알도 없니? 그러니? 응? 이겨. 이기라고. 이겨도 된다고. 그래야 한다고. 그만 좀 져 주란 말이야. 어? 오빠 바보니? 어? 뭐하러 애완견만도 못한 취급 받고 끝까지 참어? 참지 마! 받아 줄 만큼 받아 줬으면 이제 됐어. 아 쫌! 단, 이후로는 다른 방법으로! 전반전은 진작 끝났어. 무엇보다 내가 있잖아, 안 그래? 그런 개만도 못한 취급 받고서 그녈 사랑하고 싶니? 걸레잖아? 쌍년이네 썅년! 이 남자 저 남자 다 만나고 계속 만나면서, 그 가운데 골라서 마음과 몸이 따로 노는 헤픈 년. 안 그래? 그게 무슨 천상천사 유아독존이야! 장난해? 천상천하 유아독존이 죄다 썩었나 보다. 그러네. 골았어. 팍 상했다고. 썩어도 보통 썩어야 말을 안 하지. 요즘은 무슨 개나 소나 천상천아 유아독존인가? 어딜 넘 봐? 정 원하신다면! 
    첫째 걸레, 둘째 차 가져와라 집 준비해라 아니면 꿈도 꾸지 마라, 셋째 양다리 세 다리 어장 관리. 지가 사람이면 벌레 취급 받아도 싸고. 여자이기를 포기하면 도망갈 테고. 아니면 고스란히 입장 바꿔서 되갚음 받지 않으면 안 되고. 그런 좃 같은 사랑 즈그나 많이 하라 그래. 쓰레기들끼리 만나던가 똥파리 찾아서 떠나던가. 지들 인생 지들이 알아서 하면 되겠네. 그러니까 여자는 30 넘으면 나이로 후려친다고, 여자들이 자기가 자기 입으로 투정하는 거 아니야. 다 본인들이 우수한 유전자도 챙기고 후세 DNA도 잘 키워주길 바라고 낭만이니 호사니 풍요니 행복까지 다 챙겨야 하니까 볼 거는 많고. 남자들 쩝쩝이에 뭐에 뭐에 뒤통수 맞기는 싫고. 게임 끝나도 진작 끝났어. 썩 꺼지라 그래. 버러지 만도 못한 것들. 꼴에 지들도 여자라고. 흥! 웃기지 말라 그래. 입장 바꿔서 남자가 지들 그렇게 똑같이 가지고 놀았으면? 퍽이나 좋아라 하겠네. 개 만도 못한 뚜벅이 형편에 어딜 넘보냐, 늬 주제를 알거라~! 똥파리가 한눈 팔지만 않았어도 난 똥파리한테 사랑받고 행복한 여자로써 승승장구할 텐데. 그런 내 소망에 너의 그 허접한 대망은 비교도 안 된다. 똥파리가 한눈 팔지만 않았어도 너 같은 거렁뱅이, 난 쳐다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내가 만일 잘 풀렸다면 널 만날 일은 애초에 없었을 거라는 점. 왜 아니겠어. 난 여신 넌 거지. 그러니까 조건 많이 많이 되면 덤비고 너 하는 거 봐서 한번 생각은 해 볼 테고. 아니면 알아서 꺼져라? 
    지금 제일 인기 있는 발라드 가수가 누구지? 그 가운데 특급 1집을 발표한 가수! 안 되겠다. 오빠 내 첫사랑 하자. 이제부터 오늘부로 1일인 걸로. 아 맞다. 나 2순위지. 그럼 기다리면 되지. 대어든 잡어든 난 기다리는 거 전문. 알았지, 오빠?」 
    나는 에밀리의 말에 반론다운 반론을 요만큼도 꺼낼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녀의 말은 다 옳았으니까. 틀린 말이 아니니까. 
    똥파리들의 열광과 하이에나들의 갈채에 축복 받은 듯한 숙녀 인생이라서, 그러므로 대충 그냥 쉽게 넘어올 줄 알았나 보지. 
    걔네들도 당해 봐야지. 그녀들은 그래도 정신을 차릴까 말까 하겠지만 말이다. 개만도 못한 취급 받았는데 못할 게 뭐야. 
    단, 이제부터는 다른 방법으로. 아울러 나는 잃을 거도 없었다. 





    7. 에밀리의 회유 1

    에밀리의 회유. 
    다른 날 다른 카페. 
    역시나 에밀리와 나. 
   「오빠. 그녀만 보면 생각나는 게 뭐니? 뭐긴 뭐야 똥파리랑 하이에나랑 암컷 싸움닭이지. 처음에는 후광이 비췄겠지. 꿈 속을 거니는 듯한 기분. 황홀감에 애타는 분위기. 그럼 뭘해. 알고 봤더니 그 후광은 다름 아니라 똥파리 후광인데. 그 수많은 똥파리 3만 마리 가운데 제일 끈질긴 똥파리. 
    <우리 사귑시다. 내가 잘 해 드릴께. 응? 그러니. 좋은 말로 할 때 적을 만들지 마시오, 아가씨. 숙녀여. 나는 경고했소. 두 번 말 안 하겠소. 자, 그럼 다음에 다시 봅시다. 다음엔 부디 다른 기분으로 함께 데이트하기를. (윙크)> 돌아서며, 오 삐── 멋져. 내가 생각해도 삐─ 멋져!  
    ~라고 협박 받으니까 좋아해. 완전 신난 거지. 그 가운데 제일 야무진 똥파리 사진을 그 언니 지갑 속에 넣고. 언니 사진은 똥파리 지갑 속으로 들어가고. 뭐야? 첫사랑이네! 말 다했네. 미니홈피에 올린 심리를 추적해 보니 100퍼센트라고. 그건 뭐야. 강간범이랑 결혼해서 행복한 가정을 이룬 거랑 똑같잖아? 뭐가 틀려 하나도 다를 게 없네. 아 더럽고 수치스럽고 구역질난다. 속이 다 뒤집어진다고. 전화하고 전화오고. 만나서 얘기하고 차 마시고. 백화점을 거닐며 얼굴 팔리고. 만나기 전에 좋다고 정성스럽게 화장하면서 좋아했겠지. 공개적으로 나는 똥파리의 마누라입니다 광고하고 광고하고. 나는야~ 똥파리 여편네라네~ 아아아아~ 행복하여라 즐거워라 난 바보 멍청한 년이라네! 얼굴 팔리는 거 챙피한 줄도 모르고. 나중 좀비 체액이 그 고운 얼굴에 뿌려질 일만 남은 거지. 일찍이냐 늦냐 차이 뿐이지 어차피 그거 꿀꺽할 일만 남은 거란 말씀. 안 그래? 먹어 봐, 얼마나 맛난지 먹어 봐야 알 거 아니냐고. 뿐만 아니라 똥구멍도 대 줘야지. 그럼. 어쩌겠어. 걔네들 할 줄 아는 거 그런 거 밖에 없잖아? 그런 사정을 예상했든 못 했든 그녀들은 그러겠지. 그럴 수 밖에 없어. 
    반면 오빠의 첫사랑은 마음이었잖아. 남자와 여자. 마음 대 마음. 그렇지만 모텔에서 같이 잤는데 손도 안 잡고 잤다는 거. (딱)! 그런데 그 언닌? 몸 가는 거야 나중 시간 지나면 갈 수밖에 없는 거고. 언제가 되면 허락하지 않을 수 없는 거고. 어차피 시간 문제. 그럼 첫사랑도 했고 그 언닌 처녀 아닌거네. 그야 그녀의 마음. 자기가 원한 것일 뿐. 다만 나는 싫고. 어? 난 딱 싫고. 더러운 년. 지저분한 년. 거지 같은 년. 불결한 년. 남자가 보기에야 손만 잡고 잤으므로, 태어나서 남자와 단 한 번도 경험을 못해봤기 때문에, 그런 여자를 처녀로 보겠지만. 여자가 보기에는 다르지. 여자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고. 남자는, 자기 여자친구나 배우자가 몸으로 바람피는 걸 더 어떻게 보겠지만. 여자는 정반대잖아. 몸은 문제가 아니야. 응? 몸이야 어차피 나중 썩어서 흙으로 돌아갈 것. 진짜는 마음이지. 그럼. 마음이라고. 거지 같은 년. 평강공주녀로 또 속기는 싫고, 몸을 베팅할 수도 없고. 그러나 오빠가 좋고 많이 좋고. 그러니까 새 차 뽑고 집 구해 와라, 조건 갖춰라 아니면 싫다잖아? 만나 주는 거나 감지덕지해라잖아? 뚜벅이 주제에 어딜 넘보냐 그거지. 감히 버러지 만도 못한 주제에, 어디 감히 내 애완견과 어깨를 견줄려고 하냐며 무시했잖아? 그랬어 안 그랬어? 걸레네. 썩어빠질 년들. 뿐인가? 그 똥파리들 가운데는 진짜로 잘나가던 조직폭력배 행동대장 출신 전과자도 있고, 아주 그냥 말도 못허지. 그런 줄도 모르고 뻔질나게 전화받고 전화받고. 멍청해도 어떻게 그렇게 멍청할 수가. 각 지역에서 1년에 남자들이 껄떡거리고 껄떡거리고 여자는 싫다고 싫다고, 그러다 1년에 죽어나가는 여자가 도대체 몇 명인데. 왜 하필 교도소에서 4년 살고 나온 친구랑 자냐고. 별명도 하필 전국구. 걔네들 잔잔바리 전과만 합쳐도 총 몇 년인데. 어설픈 삥바리 전과도 아니고 전문용어로 범죄 집단인데. 걔네들 벗겨 봐. 그 친구들 죄다 온몸이 도화지야. 오빠가 다 봤잖아? 가운데도 봤잖아? 직업여성조차 길바닥에 주저앉아서 울고 불고 난리친 거 똑똑히 봤잖아? 
    하이에나 1은 넘어가고. 하이에나 2가 그녈 흑심 가득히 짝사랑하는데. 
    여행지에서, 술 퍼마시고, 밤에, 외갓남자랑 단둘이 1 대 1로, 자동차에 타고, 데이트를 해? 
    게임 끝이네 게임 끝. 태어나서 처음으로 공들였고 홀딱 반해서 황홀감에 젖어 사랑하는 중인데. 
    그렇게 하이에나랑 카섹스? 잘한다 잘해. 멋지다 멋져. 대단하다~! 
    학교에 다니는 대신 가정교사로부터 교육 받지 못한 거, 티내는 거야 뭐야. 일자 무식이잖아? 맹추네. 가정교육 0이네. 신부수업이야 관심도 없을 테고. 연예인 지망생 1년 하다 미역국 먹은 거에 대한 보상 심리야 뭐야. 답 없구만. 천박한 촌년. 더러운 년. 집에서 부모님께 그렇게 배웠나? 그랬나? 아니면 것도 언니가 시켰나? 도대체 본인 의지야 누구 명령이야. 가방끈 짧은 게 문제가 아니야. 자기들은 뭘 모르면서 정작 뭘 아는 남자라면 환장하는 게 모순이라 그거라고. 말이 통하는 남자가 좋다면서, 걔네들이랑 말을 섞어보면 완전 깡통 소리만 들린다고. 안 그래? 오빠는, 돈만 내면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삼류대 갔지만. 오빠는 옆에 딱 붙어서 코치 했으면 일류대 갈 수 있었어. 오빠 학교 다닐 때, 공부에 흥미를 잃은 제일 큰 이유가 뭔 줄 알아? 뭐긴 뭐야 제일 뒷자리 앉은 거지. 그러니까 1년 그래프를 보면 정확히 상에서 하로. 매해 반복. 뭐 오빤 독자적으로 잔재주에 취미 있었다 치고. 걘 돌머리 멍청이 바보네. 아휴~ (절레절레). 전국의 똥파리들 거기로 집결하는데 그게 또 좋데. 걔 누구야 고추에다 교도소에서 징그러운 불량품 넣은 마피아. 걔 지금 헬스클럽 관장이라메? 걔 단짝이랑 만나면 지금도 그러나? 옛날에 누구 있지 막 그러면서 여자 따먹은 얘기 빼면 시체. 집에서 하는 일은 오직 야한 동영상 보기 밖에 없어. 걔 집에서 크리스마스 날 모였잖아? 걔도 심하게 껄떡거렸잖아? 걔는 오빠한테 단짝도 뺐겼겠다 지가 좋아하는 여자도 뺐길 거 같고 미쳐버렸지. 걔들 만나보면 죄다 마피아 똥파리 하이에나들. 오빠 집에도 찾아왔지? 그 언니 직장에도 찾아가고. 지 고추를 언니 거기다 넣고 싶어서. 걔네들 옷 벗겨보면 죄다 등이랑 허벅지에 문신했고. 언제 적 느와르 영화야 뭐야. 그런데 그 똥파리들이랑 도매값 취급 받도록 오빠도 쪼르륵 거기로 오라고? 걔네들 하이에나한테 능멸받았는데, 숙녀여 개만도 못한 취급해 주셔서 감사하나이다 아멘. ~라면서 본인까지 거길 찾아가야 한다니. 
    하이에나 1, (늬까짓게 뭔데) 너 여자친구 생겼냐? (단짝까지 뺐어가더니 친구 여자까지 몰래 채가냐?)
    하이에나 2, 감히 내가 전화하는데 안 받아? 어디서! 받나 안 받나, 늬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보자. 
    하이에나 3, 너 취했냐? ············ 그 시간이면 충분하지. (나한테 아부 안 해? 너 디져 봐라 이런 호구 새끼)」 
    에밀리는 힘 빠졌는지 잠시 쉬었다 얘기하자면서 화장실에 갔다. 





    8. 에밀리의 회유 2

    에밀리는 돌아왔다. 이미 귀에서 피가 나는데 뭐 어쩔 수 있나. 계속 듣는 수밖에.
   「무엇보다 암컷 싸움닭 그분 앞에 무릎꿇으라니. 그게, 말인가, 양말인가! 으잉? 그걸 대체 말이라고 하나? 그게 아름다운 요청이야 아님 거룩한 명령이야? 뇌가 비었나 아님 순진한 거야. 어떻게 그런 싸구려가 오빨 좋아하지? 지가 자격이 된다고 생각하나? 지가 무슨 권리로. 생각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좋아하는 짝사랑남한테 지 위대하신 스토커 첫사랑을 자랑하고 자랑하고. 그것도 모자라 중간에 몇 다리를 걸쳤냐고. 여기서 끝이면 곤란허지, 암. 한참 오빠가 좋다면서 사랑에 빠져 해바라기처럼 바라보다가. 신호 보내고 구애하고 유혹하고 꼬리치고. 그런데 중간에 전남자친구는 집 앞에서 왜 기다려. 어? 도대체 몇 다리를 걸쳤냐고! 어? 올인해도 모자를 판에 도대체 몇 명의 남자를 만난 거냔 말이지. 그러고서도 또 암컷 싸움닭은 지가 무슨 감독씩이나 된 것마냥 지 앞에 무릎 꿇으라는 식으로 또 멍청한 짓이나 하고 있고. 오합지졸에 둘러싸인 걸레잖아? 착해 보여서 좋아하는 척 만나 줬더니 뭐, 뚜벅이 주제에 어딜 넘보냐? 이런 삐──── 폐기물 중의 폐기물이잖아? 걸레 중의 걸레잖아? 그러고서 자기 집 애완견보다 못하도록, 오빠를 버리지 만도 못하게 취급해? 좋다면서? 신나도록 기뻐하며? 그것도 여자랑 태어나서 단 1번도 사겨보지 못한 우리 오빠, 모태솔로 오빠 앞에서? 인생 괴롭고 가정사도 꼬였는데, 사랑하지만 다가가진 못하겠고 속은 터지는데. 모태솔로 앞에 두고 속 뒤집어져 봐라? 나는야 신난다? 너 디져 봐라? 사람 엿 먹으라는 거야 뭐야? 어? 이런 삐───! 아아 뚜껑 열려. 아 빡쳐. 미치겠구만 증말 미치겠어. 완전 돌아버리겠네. 응? 말이 안 나온다 말이 안 나와! 왜 하필 그런 걸레야? 오빠! 똥파리 전 부인은 그만 잊고, 응? 나한테 와. 똥파리 전 마누라한테 미련가질 거 뭐 있어. 안 그래? 그냥 나한테 와. 그러면 돼. 내가 왕자님처럼 모실께. 응? 아니다. 그보다는 차라리 그게 낫겠네. 오빠도 보험 들어. 그럼 되잖아. 허허. 간단하네. 
    그러니까 속이 수도 없이 썩어문드러지는 모습을 보면서 즐겼다고? 안 되겠다. 이건 아니다. 이건 아니야. 걔넨 좋아서 재밌어서 신나서 속이 뒤집어졌지만. 오빤 정반대였다는 거. 응? 그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알지. 지들은 자기 속 썩어문들어졌다면서 어떻게 이럴 수 있냐면서 으쌰으쌰 으쌰으쌰. 그러면서 오빠한테는 너도 디져 봐라 이 삐──── 속 썩어문드러져서 더 더더욱 썩어 봐라? 정내미가 뚝떨어지네 아이고야 고마워라. 
    (우리는) 오빠가 그럴 줄은 몰랐다! 뭐? 
    정말로 그럴 줄은 몰랐네? 누가 할 소리를! 
    그래? 그럼 그럴 줄은 모른 상황으로 몰지를 말던가. 자기들은 오빠를 '오빠가 그럴 줄은 몰랐다' 쥐구멍에 몰라넣어도 되고. 응? 걔네들은 '그럴 줄은 몰랐다' 개구멍까지 쫓기면 안 되고? 그런 게 어딨어. 순서만 다르잖아? 안 그래? 걔네들이 다 화를 자초한 거잖아? 걔네들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니까 그러시네. 법치주의 때문에 안 하는 것 뿐. 해서는 안 되고 할 수 없으니까 단지 참을 뿐. 그게 아니라면, 어? 잘 아시지 않는가. 전기톱에 석궁에 사이코패스 저리 가라, 문제가 뭐냐고. 그처럼 알아서 생각하시라는 마음. 오빠 심정 잘 알아. 말하지 않아도 다 안다고. 섣불리 이해한다고 달래서 덮을려는 게 아니라. 나도 오빠 마음 충분히 공감한단 말이야. 응? 오빠! 난 그 언니들이 똥파리꽈인 줄은 꿈에도 몰랐네. 보면 볼 때마다 생각날 꺼 아니야? 안 그래? 그런 버러지 만도 못한 년들은, 지들이 사람이면, 지들이 여자면 똥파리 구멍에라도 얼굴 쳐박고 숨고 싶어야 정상이라고. 알어? 돌려줘. 돌려주라고. 하나 받았으면 이자 붙여서 베팅하라고. 응? 느껴 봐야지. 그게 뭔지를. 겪어 보라 그래. 당해 봐야 알 거 아니야. 안 그래? 당해 보지도 않고 어떻게 알아. 그런 똥파리들, 하이에나들, 뱁새들, 암컷 싸움닭과 오합지졸의 경거망동을 당한 기분이 어땠는지. 지들도 뜬눈으로 꼬빡 세어보라 그래. 그게 어디 한두 번이었어야 말을 안 하지. 
    그와 달리 오빠는 안심해도 되고. 할 만큼 했고. 일단 두 가지 이유 때문. 첫째 내가 있고, 둘째 문학 작품 '네프스끼 거리'에 나오듯 '세파에 닳지 않은 순수함'때문에 그년 너무 순결하다고 보면 되고. OK? 처음에 여성성에 혹해서 사랑에 빠졌을 텐데. 그녀의 모든 것을 포근히 안아주고, 그녀의 모든 시간까지 한발 앞서 예측해주는 남성성까지 바랄 테고. 쉽지 않네 쉽지 않아. 숙녀의 사랑, 이제야 측정 가능하겠구만. 그러게 뭐랬어. 대체 불가능한 애정이 아니면 섣불리 얼굴 팔리지 말었어야지. 미래의 행복감과 미지의 희망은 다름 아니라 애액으로 측량할 수 있을 테고. 좌우지간 오빠 차였네 계속 차이네 또 차였다고. 차이는 게 무슨 취미야 뭐야. 안 되겠다. 오빠, 내 꺼 하자! 응? 똥파리 전부인이랑 하긴 뭘 하겠다고. 재치는 가라 그래. 그러게 내가 뭐랬어, 오빠. 응? 오빠. 똥파리 전마누라는 만나는 게 아니라니까 그러네. 응? 설령, 어? 설사 나중 어떻게 어떻게 연분홍색 리본으로 묶고 하늘색으로 포장하고 어쩌고. 그럴지라도 나중 관계를 가지면 둘로 나뉘지.」 





    9. 에밀리의 회유 3. 

    에밀리는 입도 아프지 않나 보다.    
    「첫째, 영화에 나오듯이 부부관계 중에 갑자기 여자 얼굴이 똥파리로 보여, 그럼 어떻게 되겠어? 당연히 사그러들지. 영화에서는 남자가 정상 체위로 하던 중 갑자기 환영이 보여서 여자를 퍽~ 때리고, 여자는 파파팍~ 코피 터지고. 것도 쌍코피. 심지어 매번 반복. 예외는 없어. 관계 할 때마다 매번 똑같이 여자가 신나게 전개에서 아이 좋아라~ 워매 좋은그~ 하고 있는데, 갑자기 퍽~ 퍽~! 곧바로 여자 코피 파파팍~! 쌍코피 퍼퍼퍼퍽~! 환상과 신비와 행복과 호사와 별개로 할 때마다 그녀의 자존심이라는 코를 납짝 눌러주는 정도가 아니라. 안면을 묵사발로 만들어서 광대뼈와 코뼈 함몰에 어쩌고저쩌고. 관계할 때마다 매번. 그래서 결국 이혼. 할 때마다 여자 얼굴이 똥파리로 보이는데 어떻게 그짓을 하니. 응? 못하지. 같이 못 산다고. 영화에 나오듯이 마약하면 막 옆 사람 얼굴이 당나귀로 보이는 것처럼. 그녀 얼굴이 똥파리로 보인다니까?! 타인의 인내를 남용하면 그게 어디 보기 좋나. 오물은 저을수록 악취가 나는 것. 옷걸이 좋고 얼굴 팔리는 거 싫어하는 제비들은, 인생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좀 어떤 거액 상속녀와 남 앞에 설 수 없다니까. 거액 상속녀조차 그런데 비리비리 동네 아줌마 아저씨처럼 그 흔한 남녀라면. 말 다 한 거라고요. 
    아아 바로 그래서 여자는 창녀가 되는 거구나. 그러니까 여자는 변태라고. 당하는 거 좋아하니까. 자기 엄마가 창녀란 말을 들어도 싸디 싸네. 참다 참다 싫다 싫다 참다 참다, 끝까지 참다, 마침내 손을 놔버리는 거. 인생 포기. 거기서 오뚜기처럼 일어나냐, 아니면 '어차피 이렇게 된 거'관성에 빠져드느냐. 그 차이. 걸레네. 싸구려 창녀. 모태솔로보다 유부남 고추에 환장한 년. G 스팟 열리면 눈에 뵈는 게 없는 년. 혼전에는 환승이별녀요 결혼 후에는 양다리녀. 인생 내내 일관되도록 어장관리이자 멀티태스킹인 년. 일생이 연예인병이구만 그래. 기준선도 까다롭지 않고 눈도 높지 않고. 일단 남자를 만나기 전부터 단물 뽑아먹고 버릴 생각부터 하는 년. 남자 등에 빨대 꼽을 생각 밖에 하지 않는 년. 뭐야? 성과녀 목적녀잖아! 그러니까 남자도 여자를, 여자도 남자를, 사람 아무나 만나는 거 아니라니까. 바로 그래서 다 가방끈 보고 집안도 살피고 다 다 볼 거 봐서 나이 따지고 뭐 따지고, 돼지고기 소고기 등급 따지듯 꼼꼼히 따져야 한다니까. 응? 그래서 오빠는 여태 그렇게 살지 않았을까? 바로, 
    A. 정실감이 아니면 마음을 주지 않음.
    B. 처녀가 아니면 사랑하지 않음. 100퍼센트 사실과 부합. 
    아무튼 여자를 보는 오빠의 연애관은 그랬다 치고. 그 다음 여자. 남자를 보는 여성적인 사랑론은 무엇일까? 이 남자가 만약에 바람피면 난 1번이면 끝일 남자, 과연 그 기준선도 기준선이라고 자랑스럽게 뭐, 전 1번이면 끝이에요? 끝인가 아닌가 그건 두고 보면 아는 거고! 어? 넌 디졌어. 너넨 디졌다고. 되져 봐야 정신을 차리지. 똥줄 타 봐 이 거지 같은 년들아. 어차피 남자는 육체적으로 만족하지 못하면 100퍼센트 바람을 피움. 그건 여자도 마찬가지. 고로 사랑은 없음. 그런데도 불구하고, 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있지, 만약 사랑이 있다면. 만약 그렇다면. 그건 아마도 그런 거 아닐까? 
    <여자가 사랑에 빠질 때, 그냥 단순히 미남이라서 어쩌고저쩌고 그래서 흠뻑 젖어 홀딱 반하는 게 아니라. 그게 아니라. 아아 만일에 이 남자가 혹시라도 바람을 필지도 모를 테지만, 어떻게든 사전에 가능성 자체를 차단해서, 얠 난 영원히 내 걸로 만들고 싶다. 다음 생의 다음 생의 다음 생의 그 언제까지라도 난 얘 꺼 얜 내 꺼. 그러고 싶다. 애달프도록 간절히 원한다> 
    ~라는 심정이 드는 거. 그게 사랑 아닐까? 나는 사랑을 그런 거라고 생각하는데. 형씨 생각은 어떠슈? 어찌 됐든! 
    따라서 결국 어차피 예비 맞바람녀? 안녕, 잘가~! 꺼억, 트름 소리는 나지 않네. 왜? 못 먹어 주겠으니까. 그런 걸레 먹다 탈나거든. 우웩~! 우리 엄마처럼 아빠 바람피고 어쨌어도 끝까지 엄마는 우리 엄마였는데. 그와 정반대로 단 1번 만에 일찍도 참지 않을 여자. 내 손 꼭 잡고 나가 외갓남자를 만날 여자가 아니라. 바로 남몰래 조용조용히 외갓남자랑 바람필 년. 추접스러운 년. 더러운 년. 1번이면 끝인 여자. 남자가 1번이면 끝이고, 자기도 딴맘 품으면 끝이고. 무엇보다,  불륜은 걸리지만 않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년. 싸구려 중의 최저질 싸구려. 불륜이고 바람피고 죄악이고. 뭐든지 걸리지만 않으면 다다익선이는 거잖아? 그렇게나 사랑관이 지대하시면서, 문어발식 어장관리에 이 남자 저 남자 세력확장에, 방만한 유부남 관리에. 그러면서 챙피하지도 않는지 하는 말이라고는 뭐, 우리가 뭐 죄졌어? 졌네 죄. 죄 졌어. 져도 많이 졌구만. 아이쿠야~ 그 무거운 걸 짊어지고서 어떻게 모를 수 있지? 아니 어떻게? 골빈년. 
    다음으로. 
    둘째, 현실적으로 페니스를 세우지 못해. 설령 세운다 그래도 중간에 바람 빠져. 응? 물론 똥파리 전부인을 제외한 모든 여자한테는 아무 이상없이 관계 가능하고. 응? 환상이지. 쪽쪽 빨고 질질 싸고 훌훌 핥아주고. 어? 환상 환상! 단지 오직 똥파리 전마누라만 그 현상이 발생하고. 응? 
    왜, 그녀들이 똥파리 전마누라라고 하면 기분 나빠할 꺼 같아? 당연히 기분 상하지. 완전 빈정 상하지 왜 아니겠어. 그러니까 왜 자랑을 하냐 그거야. 난 똥파리 전부인이다 어쩔래, 꼽냐? ~라고 본인들이 자랑하고 뻐겼잖아? 병신 같은 년, 그러고서도 얼굴을 빳빳히 들었다고? 빨딱빨딱 빳빳히 선 고추나 빨아라, 이 고추천재들아. 걔도 딱 창녀 길로 빠지면 기뻐하면서 창녀할 여자네. 아예 직업여성은 차라리 낫지. 그게 아니라. 이혼한 다음에 캐셔 같은 직업을 고른 게 아니라, 밤의 세계를 전전하면서 2 대 2 파트너로 남잘 보자마자, 언제 봤다고 즉각 수트 하의 속으로 손부터 집어넣는 여자. 걔가 걔네. 2 대 2, 남녀 둘다 미남과 단춧구멍, 미녀와 선녀. 미녀가 보자마자 대번에 미남 수트 바지 속으로 속을 쓱~ 집어넣어. 웟따~ 이게 뭣이다냐 아이 좋아하 너무너무 행복하도다? 그녀도 누군가의 엄마겠지만 그녀 얼굴 표정을 봤어야 한다고. 허허. 걔가 걔! 딱 걔. 딱 걔가 꺠라고! 허허. 안 그래? 좋아하는 남자가, 대놓고 지 입으로 또 친구 통해서, 떡치고 따먹고 짝사랑 받았던 화려한 연애사를 쫙 풀어놓으면. 그럼 여자들 기분 퍽이나 좋겠네. 아조 그년들은 일생이 연예인병이야. 그 햄버거병은 당최 치료가 안 되는 불치병이라고. 산티 철철 넘치는 년. 언니는 얼마나 실망했을까. 공부 포기라면 경험자니까 이해는 헌다지만 뭐 인생 포기? 그래봤자 어차피 구역질 나서 한 침대에서 잘지라도, 한 명은 독수공방이요 또 한 명은 발기불능일 테니, 고로 늦기 전에 각자 갈길 찾아 떠나는 게 옳지. 그렇지. 헛구역질도 아니고 사람 그것도 숙녀 얼굴이 똥파리로 보이는 환시를 경험하고 경험하고 계속 경험하라고? 아아 생각만 해도 토할 꺼 같단 말야. 응? 그런데도 불구하고 꼴에 또 숙녀라고, 거울 보고 화장하고 잘난 척 이쁜 척 아주 그냥 쏠린다 쏠려. 지들이 사람이라면 존엄성이란 게 있을 텐데. 그런데 어떻게 수치심이 없을 수 있지? 발가벗고 거리를 활보해도 아무렇지 않단 말이잖아! 환승이별녀랑 완벽한 판박이로구만 그래. 버러지 만도 못한 년들 같으니라고. 그래서 자발적으로 꺼져 줬을지도 모르고. 아님 아직도 못 깨우쳤거나. 속으로 좋다고 신나서 그랬을 꺼 아니냐고. 내 이마에 난 똥파리녀다, ~라고 써 있는 거 보이지? 이 뚜벅이 쪼다 등신 꼴갑 허접 쓰레기 거지 수컷아. 어디서 주제 넘게 기웃거려? 응? 늬 주제를 알어 이 거렁뱅이야~! 너 따위가 우리 똥파리 오빠한테 비교가 돼냐 그거지. 우리 똥파리 오빠가 잠시 한눈 팔다 떠나서 그렇지, 난 아직 정떼지 못했단 년. 왜 그랬냔 말이지. 멍청한 년들 지들끼리 오합지졸 놀던가 말던가. 그러니 나는 오빠 거 오빠는 내 꺼, 하자고! 응? 못할 거 없잖아. 안 그래? 새콤달콤한 첫경험과 새파란 첫키스, 그거 내가 줄께. 막 드린다고. 됐지? 그럼 딱 된 걸로! 
    아니 그럴 꺼 뭐 있어? 오빠, 그러지 말고, 우리. 응? 오빠. 우리 오늘부터 함께 살자. 그래도 그건 알아 둬. 
    사람들은 종종 떨어져 있을 때 서로에게 더 많은 애정을 느낀다는 점. 그야 어떻든. 
    오빠도 모태 솔로 나도 모태 솔로. 딱이네.
    송진을 만지는 사람은 더럽혀지는 것. 
    행운이 노크할 때 문을 여시오. 응? 오빠.」 





    10. 에밀리와 친교. 그녀가 사무실에 찾아옴. 딥키스. 스텔라 쇼가 지갑을 선물. 지갑 속엔 스텔라의 사진. 우리 사귀자.

    나는 최근 기분이 뭔가 이상하고 꿀꿀해서 꽃다발을 사서 사무실에 놔뒀다. 
    튤립. 프리지아. 라일락. 연분홍 장미. 안개꽃. 백합. 팬지. 데이지. 기타 등등. 부케도 구해 오고. 
    그리고 음악을 들었다. Joseph Martin Kraus / Allegro in D major VB163
    그렇게 나는 사무실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일을 하다 맨손 체조 하다가. 일을 하다가 공상도 가끔. 일을 하다가 빈둥빈둥. 
    그런데 갑자기 나팔꽃의 오묘한 청보라색을 쏙 빼닮은. 그런 화사한 원피스를 입은 에밀리가 찾아왔다. 
    오, 에밀리! 또? 그러게. 누가 아니래?
    여자는 두 부류, 세 부류, 만 가지로 나뉜다는 특징을 알려주는 그녀. 
    적어도 그녀는 그런 여자는 아니었다. 
    따라다니면. 쫓아다니면. 기다리면. 난봉꾼이든 발정난 똥파리든. 양아치든. 범죄자든. 전과 몇 범인 흉악범이든. 하이에나와 똥파리라면 일단 추종세력을 거느린 것 자체만으로 기쁨에 즐거워하는 여자는 아니었다. 최소한 그녀는 허영심 가득한 의전녀는 아니었다. 일편단심이었다. 순정파였다. 그래서 나는 알게 됐다. 어떤 여자는 그렇다는 것. 그렇다는 게 무엇인가? 하면! 첫째 어떤 여자는 스토킹을 좋아한다, 어떤 여자는 똥파리를 좋아하고 하이에나를 사랑한다. 
   「오빠. 들었어요?」
   「응?」
   「아 바닷물이 사라지는 드라마. 오빠 그거 보잖아. 거기 나오는 명대사. 엇그제 뭐라 그랬더라? 아 맞다. 
    "연애사라는 건 여자에겐 과거요 남자에겐 전적. 그런데 멍청하디 멍청한 여자는 자기 과거를 전적이자 자랑이요 아름다운 사랑쯤으로 아는 공주병 숙녀도 있다." 
    그 나레이션 말이야. 들었지? 들었을 거야. 정말 그렇더라고. 자기 과거를 떠벌리며 남자한테 들었녜? 만난지 얼마 안 됐든 어쩌든. 괜찮은 남자를 소개시켜 주라고 조르고 보채며 수소문해서 그 남자에 대한 정보를 대충 알고. 얼굴도 알고. 그래서 처음 만났고 홀딱 반했는데. 처음 만난 그 남자한테 들었녜! 응? 뭘 들어! 자기 연애사 광고해? 남자가 자길 어떻게 떠났다, 또 차였다, 양다리였다. 그걸 남자가 어떻게 아냐고. 그건 둘 중 하나야. 의전녀 아니면 연예인 지망생. 머리는 멍청하고, 할 줄 아는 거라곤 가수 춤추는 거 따라하는 거 밖에 없고. 똥파리가 따라다니면 좋아하고. 하이에나가 자기한테 환장하는 것도 모르고. 걔네들 사진 보면서 남자가 신나게 마스터베이션하고 겁나게 또 달리고. 것도 모르는 멍청이 중의 멍충이. 멍청해도 예술적으로 멍청한 년들. 똑같은 연애사라도 남자에겐 전적이지만 여자에겐 과거라는 것도 모른 채, 뭐? 뭐라고? 그런 멍청한 애들이 하는 말들 특징이 그래. 지들 바보 병신 모지리 천치라고 광고하는 애들 특징이 딱 그렇다고. 
    첫째, 들었어요?
    둘째, 오빠도 그래요? 
    저 백치미과에요 ~라고 자랑하는 일. 천박한 허영덩어리 주제에, 황홀한 사랑에 빠졌는데 연예인병? 아휴 말도 말어 말도 마. 
    삼류 취향에, 싸구려 안목에다, 쓰레기 인생들 받아 주고 만나 주고 거들어 주는 게 무슨 자랑씩이나. 지들도 오십보 백보네. 
    그런데 말이야, 10명의 여자 가운데 몇 명이 그럴 꺼 같아? 쉽게 말해서 8명이 이 분과고 나머지 롱테일이 나야 나. 응? 
    그러니까 그런 거 아냐. 여자를 다루는 기술이 출중한 사이코패스들한테 혹해서 사막까지 드라이브 갔다가 걸어오는 애들. 몇 없어. 
    다 지들이 자기 무덤 파는 거라고. 안 그래? 머리에 든 건 없고. 말이 통하는 남자를 만나고 싶은데 알고 보니 자긴 똥파리를 좋아하고. 
    실상 주위를 둘러 봐도 죄다 똥파리 아니면 하이에나 아니면 뱁새. 어쩌단 촌닭이 간간이 보이면 뭘 하냐고. 임자 있는데. 
    펠리컨 1마리가 아니라 송사리 4만 마리랑 하이에나 군단을 거느리고 싶은 여자. (절레절레) 
    오만 정 다 떨어지지? 그나마 남은 성욕마저 싹 사라지지 않아? 그래~ 내 그럴 줄 알았어.
    여자는 다 그래. 여자는 다 똑같다고. 여자는 그래요? 이마에 써 있는 거 알아주라는 거지. 
    전 멍청이 바보 밥통 천지 모지리 쪼다 등신 남자에 환장한 년이랍니다. 라고! 
    하오나. 난 달라. 난 아니야. 보면 모르겠어? 오빠, 응? 나라니까 나야 나라고! 
    그런데 오빠. 발톱을 보면 사자를 알 수 있다는 것. 모르겠어?
    네 스스로 꿀이 되면 파리들이 너를 삼킬 것이니라. 
    네 스스로 남에게 약점을 보이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남들이 너를 멸망시킬 것이다. 
    오빠. 안 그래? 오빠. 가시 있는 장미, 그게 바로 나. 나야 나 오빠. 오빠. 알지? 응, 오빠. 왜, 모르겠어 오빠?」
   「응? 뭘... 몰라!」
    그러고 보니. 오늘 그녀에게 뭔가 교묘한 분위기 말고도 특이한 점이 또 하나 있었다. 
    바로 향수 냄새가 아니라 그 냄새가 풍긴다는 점. 옅디 옅긴 하지만 누굴 속이나. 아아 그러고 보니 나는 개코였구나. 호호호. 
   「」
   「오빠. 내 립스틱 색깔 특별한 거 모르겠냐고.」
    그러더니 대뜸 그녀는 내게 키스를 했다. 
    그냥 키스도 아니었다. 딥키스. 찐하게. 짜릿하게. 진짜 달콤하고 새콤하며 환상적인 기분이 느껴졌다. 
    그런데 내가 키스를 잘 못했기 때문일까? 그녀는 잠시 키스를 멈추더니 이렇게 말했다. 
   「계속해. 계속해도 돼.」
    다시 우리는 2차 키스를 이어갔다. 
   「날 사랑한다고 말해줘요. ~라고 다그치진 않겠어 오빠.」
    뭐랄까 그녀는 사람 유치찬란해지도록 만드는 참으로 희안한 재주를 지녔다고나 할까. 난 마음이 심란했고 기분이 좋았고 다른 생각은 하나도 하기 싫었다. 
    그러다 에밀리는 내게 선물을 하나 주고 갔다. 
    자기가 내게 주는 선물이 아니라. 스텔라 쇼 언니가 나한테 주는 선물이랬다. 
    이쯤 되니 난 뭔가 의심이 들었다. 스텔라와 에밀리는 도대체 어떤 관계일까 라고 말이다. 
    어쨌든 에밀리는 일이 있다면서 사무실에서 나갔다. 
    그리고 나는 선물을 풀어봤다. 
    내용물은 지갑이었다. 단순히 지갑만 있는 게 아니라 그 안에는 뭐가 많았다. 
    즉 빈 지갑이 아니라 새 지갑인데. 내용물을 알아서 미리미리 채워놓은 것이다. 
    마치 신상품을 사면 그 신상품을 선전하는 모델과, 그걸 안내하는 새침한 숙녀와, 그 신상품에 걸맞는 지위와 형편까지 모두 받는 느낌? 
    정말 그랬다. 지갑 안에는 두둑한 현금 얼마. 스텔라 쇼의 사진. 신용 카드. 또 무슨 VIP 카드 등등. 별 게 다 있었다. 
    뭔가 뿌듯한 마음에 나는 너털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지갑을 집어서 소파에서 책상 쪽으로 가져갈려는데 뭔가가 떨어졌다. 
    바로, 스텔라 쇼가 자기 명함 뒤에 적은 글씨였다. 거긴 이렇게 씌여 있었다. 
   「오빠. 나랑 사귀자. 아니 이미 우린 연인이야. 알겠지? 도망갈 생각 꿈도 꾸지 마.」





    11. 스텔라 쇼에 대해서

    시사주간지 편집장 스텔라 쇼. 
    그녀는 어떤 인생을 살아왔을까? 걔도 뻔할 뻔자 멍청한 여자일까 아닐까. 
    소개팅 나가서 단짝한테 전화오고 전화오고. 괜찮은 남자 만나니까 좋아 어때 설레 잘생겼어? 
    들었어요 오빠 들었어요, 그 얘기 들었어요? 난 연애인이에요. 전 스타병 걸린 인생이래요. 전 백치미래요. 
    오빠도 그래요 오빠도 그러냐구요. 난 똥파리 드글드글 하이에나 구질구질 그런 게 좋은데. 오빠도 그래요? 
    난 인생이 공주병이라니까 그러시네, 응? 내가 괜히 어깨뽕 블라우스를 입는 게 아니라고요. 난 거울녀란 말이지 허허. 
    그러나! 아마도 내가 봤을 때. 스텔라는 그러지 않았다. 내가 보기에 걘 그런 백치미 고양이이자 바보 멍충이 촌년은 아니었다. 
    ............
    ......
    ..
    <칼럼: 여자는 그래요> 참고. 
    ..
    ......
    ............
    그래서 나타는 게 누구냐, 짜잔~! 바로 스텔라 쇼. 뿐만 아니라 2순위로 에밀리도 대기 중이다. 여차 하면 양쪽에 끼고 만날 기세. 그동안 당한 거 싹 다 한꺼번에 해치워버려야지 뭐. 개 만도 못한 취급 받고 병신 등신 머저리 바보 거지 대우조차 못 받았는데. 못할 게 뭐야. 
    일단 스텔라 쇼. 스텔라 쇼는 달랐다. 걘 딱 보니 그랬다. 하는 일은 시사주간지 편집장.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C장조 K309라면 음... 자, 보자. 아마도 잉그리드 해블러의 깔끔 산뜻 정결하며 간결한 연주를 좋아할 테고. 또 뭐가 있을까. 맞다. 걘 신문기자 출신 소설가의 작품을 이따금 들여다 본다. 그냥 머릿속이 복잡해서 쉬려는 목적 반 노는 성과 반. 그렇게 뚜적거리는 식이다. 막 좋아서 보는 게 아니라 작가의 인생이 느껴지는 그 맛에 그냥 심심풀이 땅콩쯤으로 들춰보는, 그런 소소한 재미 때문일 것이다. 이를 테면 리처드 포드는 읽다 말다 읽다 말다, 셔우드 앤더슨도 심심하면 읽고 어디까지 읽었는지 기억도 안 나고. 굴러다니면 보고 어디로 사라졌어도 별 관심 없고. 친구한테 책을 빌려줘도 받을 생각도 없고. 귀걸이랑 옷차람이랑 딴 여자랑 비슷해 보이면 싫고. 
    그런 그녀가 나에게 연락해왔다. 정신병원에 동생이 살고 있는데 병문안을 가줄 수 있냐는 거였다. 
    그래서 우리는 만났고 그곳으로 떠났다. 





    12. 스텔라 쇼와 정신병원 병문안 가는 길

    나는 스텔라 쇼와 정신병원에 병문안 가는 중이다. 
    대형 밴 차량 안에는 스텔라와 나 둘 뿐. 
   「그런데 누굴 만나러 가는 거니? 말 해주지 않는 이유가 뭔데? 궁금하네. 뭘까? 도대체 누굴 만나러 가는 걸까?」
   「가 보면 알아.」
   「그래?」
   「음악 들을래?」
    하인리히 이그나츠 프란츠 비버의 4성부 아리아가 흘러나왔다. 
    깊이 잠들어버린 야망을 흥분시키는 묘한 환상이 느껴졌다고나 할까? 아니다. 그보다는 사랑 쪽이다.
    아, 맞다. 에밀리가 전해 준 지갑.
   「지갑 이쁘던데. 난 뭐하느라 여태 지갑도 없이 살았지 뭐니.」
   「응? 무슨 지갑?」
   「사진도 잘 나왔고.」
   「무슨 사진? 너 요즘 누드사진 찍니?」
   「누드사진? 내가 누드사진을 왜 찍어! 왜 누가 나한테 넌지시 물어보래니? 신작 에로영화에 까메오로 출연할 생각 없냐고?」
   「내가 아는 에로영화 감독이 어딨니? 난 영화계 쪽에는 닫는 인맥이 전무한데.」
    난 뭔가 낌새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그 세한 느낌은 아마도 에밀리의 작전인 듯 느껴졌다. 
    그럼 설마 에밀리가 스텔라 쇼를 제끼고 날 독차지하겠다는 건가? 그래도 나쁠 건 없고. 허허. 호호. 히히히. 
    그야 어떻든 남자는 오직 육체적 사랑을 위해서 여자를 만나는 것일 뿐. 아니라면 거짓말. 
    여자가 살과 살의 감정적 접촉을 거부해 보시라. 첫째 바람난다, 둘째 이상한 영상을 보면서 혼자 푼다, 셋째 남성 호르몬이 저조한 슬럼프다. 셋 중 하나다. 
    좌우지간 우린 여자라면 신물이 난다. 가만 있어도 여자는 굴러오고 굴러오고. 발에 채이는 게 여자일 뿐. 
    여자를 다루는 기술이라면 말도 말고. 옛말에도 있다. 
    여자에게 아름답다고 말하라, 그러면 그녀는 금방 바보로 변할 것이다. ~라고! 
    딸랑딸랑 주목 받으면 좋아하고. 새콤달콤 관심 집중되면 들뜨기 마련. 인간은 쓰면 뱉고 달면 삼키는 존재. 사람은 이익에 따라 움직일 뿐이고. 여자의 마음은 기본적으로 이기주의자. 그런 여심을 쥐락펴락? 최고의 방법은 그것. 여자 말 잘 들을 것 같고, 여자보다 말수 많지 않고, 어리숙하며 매가리 없을 정도로만 잘생기고. 얘라면 평생 나만 보겠다 내가 쥐락펴락할 수 있겠다, 라는 마음을 심어주면. 그럼 여자는 아찔한 사랑에 빠져 황홀감에 흠뻑 젖을 수 밖에. 역시나 사랑이 좋긴 좋다. 여자가 말하기를, 돈이 좋긴 좋네 라는 것처럼. 
    그렇다면! 여자와 대화하는 걸 좋아하는 로맨티스트가 젊음을 되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하나. 정답은 하나. (딱) 새로운 여자와 연애하기! 그 쉬운 걸 뭘 고민씩이나. 어차피 난 지금 싱글. 법적으로 깨끗하고. 한 번도 갔다 오지 않았고. 연애론으로 따져 봐도 모태 솔로. 그렇지만 여자들이 무얼 좋아하는지는 귀신 곡할 정도로 잘 알지는 않지만, 또 모르지도 않고. 쉽게 말해 나 좋다는 여자, 지금은 공석. 고로 나는 돌아온 싱글 일명 돌싱! 그런데 마침 에밀리가 날 거두어 준다니. 그럼 이제 에밀리와 나의 육체적 사랑은 초읽기에 들어간 셈인가? 크크크크크. 호호호호호. 아 신난다. 
    그렇게 스텔라와 나는 정신병원에 도착했다. 





    13. 정신병원 도착. 나는 정신병원게 갇힘

    그렇게 스텔라와 나는 정신병원에 도착했다. 
    적당한 수속을 마치고 어쩌고. 그렇게 접견실에 들어가고. 
    그런데 왜 나와 스텔라의 공간이 다르지? 
   「자기야. 잘있어. 여기도 꽤 살만 해. 작품 나오면 연락하고. 나 갈께.」
   「어? 지금 이거... 장난하지 마. 어? 재미없어.」
   「아 맞다. 에밀리가 안부 전해 주래. 너랑 서류부터 신혼 사진이랑 기타 등등이랑. 모두 준비되면 알려 준데.」
   「뭐?」
   「난 어쩔 수 없이 이러는 거야. 에밀리가 다 시킨 거라고. 나 간다. 긴 말 하지 말랬거든.」
   「뭐하자는 거야? 나보고 여기 남으라고?」
   「잘 아네. 그럼 안녕.」
    그렇게 스텔라는 떠났고 나는 정신병원에 갇혔다.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딱 1.5일 정도는 격분했다. 나는 나갈려고 발버둥쳤다. 
    1.5일이 지나니까 약간 애매해졌다. 
    인생은 기쁨이요 사랑은 행복이라는 비밀을 뼈저리게 느끼도록 자, 이제 바쁜 일정이 끊임없이 등장하면 딱 좋을 텐데. 그럴 텐데. 막 그러면서. 남은 건 오직 적막감뿐인데 이건 뭐지. 
    그렇게 고독한 감정이 심하게 극에 달하는 순간, 어딘가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처럼 3일째부터는 마음이 말랑말랑해졌다. 정신병원에 감금된 미친 삼촌이 아니었다. 
    외부와 연락도 가능하고 인터넷이든 뭐든 자유였다. 그렇다. 여긴 최고급 몽블랑 요양원인 것이다. 
    외출도 가능했다. 군것질 오락 등등 얼마든지. 그처럼 나는 나가기 싫어졌다. 여기가 좋아진 것이다. 왜인 줄은 알 수 없었다. 





    14. 집으로 돌아옴

    나는 정신병원에서 한가지 비밀을 알게 됐다. 그곳의 소유주가 바로 에밀리라는 걸. 
    그 외 달리 특별한 일은 없었다. 또 내가 없어져도 찾는 사람도 없고. 나갔다 들어오고 나갔다 들어오고. 
    자유롭게 풀어놓고. 가둬 놓지도 않고. 우주선에나 사용되는 특수 합금으로 목에다 원형 목걸이를 매달지도 않고. 
    어느 범위를 벗어나면 띠─띠─띠─띠─ 막 그렇게 딱 드라마처럼 특별인 취급해 주지도 않고. 한마디로 재미없었다. 
    그게 한 1주일 경과했을 때던가 그랬다.  
    배가 육지에서 다닌다는 건 바다가 포기했다는 것인데, 여긴 아마도 내가 있을 곳이 아닌 것만 같았다. 
    그렇다고 각별한 애착도 없고. 딱히 할 일도 없고. 별다른 말벗이 있을 리 만무하고. 
    몹시 실망? 그래서 나는 싫증난 기색이 역력했다. 
    이 상황에 무슨 쓸데없는 의미 부여를 하겠나. 인생의 환희보다 그냥 심심함과 따분함이 전부였다. 
    그렇듯 이곳은 내게 어울리지 않았다. 때문에 난 여기가 자기만의 세계가 아니라고 판단했고, 그러므로 곧장 집으로 갔다. 





    15. 에밀리가 사무실에 들이닥침. 친구까지 들이닦침. 좋다 맘

    그날도 나는 역시나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었다. 
    헨델의 오페라 알치나 HWV 34 가운데 아리아 ‘푸른 초원’
    오늘의 색상은 모르겠고. 너무 고적해서 이번에는 가짜꽃을 잔뜩 사서 소파 한쪽에 놔뒀다. 
    생각나는 효과음이야 뭐 드라마도 귀찮아서 안 보는데 관심도 없고. 들리면 듣고 보이면 말고. 
    향기? 향기는 뭔 향기. 감촉? 촉촉한 속살 기막힌 마블링. 뭐? 
    그런데 갑자기 문이 벌컥! 
   「오빠. 나야.」
    에밀리였다. 
   「어? 어.」
   「인사가 뭐 그래? 오빠 오늘 기분 어때? 오늘은 낭만주의자야 이상주의자야?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오빤 왜 나한테 연락 안 해? 뭐 나한테 삐진 거 있어? 아님 토라진 거 많아?」
   「내가 너한테 왜 삐져.」
   「오빠 한동안 안 보이더라.」
   「어디 좀 갔다 왔어.」
   「그래 내가 말할께. 스텔라 언니가 오빠 좋아한단 거 다 뻥이었어.」
   「알고 있었어. 내가 그거도 몰랐겠니. 무슨 용건이라도?」
   「이 오빠 삐졌네 삐졌어. 오빠 이제부터 삐돌이. 그래도 내 꺼 하자 오빠. 응?」
   「뭐? 뭐가 어쩌고 어째?」
   「정색하지 마시고. (시계를 쳐다보며) 아직까지는 키스 타임 30분 전.」
   「너 자꾸 그렇게 오빠 놀릴래?」
   「오빠. 데이트 앱 가입했다며? 심지어 돌씽 전문으로.」
   「어? 늬가 그걸 어떻게 알어?」
   「어떻게 알긴 뭘 어떻게 알어. 어? 어찌 알긴 어찌 누가 몰라. 난 오빠가 하는 일 다 알아. 난 오빠의 모든 걸 알고 싶다고. 아울러 난 오빠의 그 모든 것이 되어드리고 싶고. 오빠 혹시 위는 간절하고 아래는 처절한 거 아니야? 허허. 호호. 그렇지만 혹시 오빠가 장타자면 어떡하지? 오빠 거포야? 아님 뻔트? 쨉? 와 오빠 놀리니까 재밌다. 오빠 어디 가서, 나 만났다고 해도 돼. 난 오빠 여편네니까. 어디 가서 내가 오빠 마누라라고 제발 소문내고 다녀 주라고. 응? 그런데 있잖아. 오빠 설마...」
   「설마, 뭐? 너 혹시... 그래. 나 그럴려고 했어. 연기하기도 싫고. 보고 싶은 사람도 없고. 짜증 심술 투정 응석 불평 불만만 늘었어. 억지 부릴 뭣도 없고. 바람기는 남 얘기고. 막살자 웨이터랑도 이젠 안 만나. 그래도 공주병 연예인병 허영심 특유의 열성은 썩 달갑지 않고. 뭐? 그래 나 데이트 어플 가입했어. 왜? 왜긴 왜야! 어? 냉소적인 목적이 뭐겠니. 뭐긴 뭐야, 만나고 싶은 숙녀는 오직 그거지. 일명, 어떻게 붙어도 붙어도-녀!」
   「어떻게 말해도 말해도, 참. 응? 아 쫌! 왜, 내가 오빠 안달복달하게 해 줘? 그러지 말고 우리, 응? 내가 오빠를 애걸복걸 좋아하는 걸로 하자. 그게 좋겠다. 그치? 뭇여성들로부터 수시로 짝사랑 받으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하며 내심 좋아하는 습관. 이제 버릴 때도 됐잖아? 안 그래? 남잔 죽을 때까지 오직 그 생각 뿐인 거야? 정말 그런 거야?」
    그러다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소파로 걸어갔다. 그런데 갑자기 에밀리는 내 등에 업혔다. 난 아주 잠깐 휘청했지만 필사적으로 버텼다. 당연히 그날 에밀리는 하늘하늘 나풀나풀 그런 옷차림이었으니, 고로 난 느껴졌다. 게다가 그년 내게 말했었다. 자기 가슴은 무슨컵이라서 친구들조차 팔짱끼면 징그러워한다고. 그렇다고 나도 징그러울까? 그럴 리가 있나. 정반대라면 또 모를까. 일단 거기까진 좋았다. 그럴 수 있다. 그래도 된다 안 된다, 는 타인이 판단할 일이 아니고. 거긴 우리 둘 밖에 없었고. 우리는 그런 사이였다. 남자가 여자를 만나는 이유, 딴 거 없다. 밉상스러운 논리일 수도 있지만 어차피 인간도 동물인 것. 다큐멘터리의 세계는 그럴 수 밖에. 무엇보다, 예외는 없다는 것. 무의식을 살짝 들춰보... 덮자. 차라리 그게 낫겠다. 덮을 수 밖에 없을 테니까. 
    외모 보다는 성격을 봐요? 뻥 싹 다 구라 새빨간 거짓말! 
    대화가 통하는 사람을 선호? 대화가 통하는 척하는 것일 뿐. 간접화법 번역기는 오직 최후의 목적을 위해서. 남녀는 말을 섞으면 섞을수록 짜증이 증폭돼야 정상. 아니면 비정상. 호색가. 발정기. 암코양이. 수캐. 색마. 응큼한 년. 기타 등등. 다 서로 알면서 모른 척 능글맞도록 번역기 돌려가면서 떠보고. 유행가에 나오는 사랑이나 다른 사랑이나, 분간하기도 말하기도 다 귀찮다는 것. 
    음악 듣는 걸 좋아해요, 쇼핑도 좋고, 애완동물 완전 귀여워요, 진솔한 대화? 관심없음. 겉으로야 웃고 받아주고 어쩌고. 속으로는 때리고 싶음. 
    오래 보아야 알 수 있는 스타일이네, 내 사람에게만 잘해요, 구속 받는 건 싫어요, 어장관리도 싫어요? 피차 갈길 가자, 안녕인 것. 단! 만족할 건 만족한 다음에. 기댈 수 있는 어깨가 필요해요? 가식이 최선! 
    그런데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내가 소파에 딱 앉는 그 순간. 에밀리가 하필 먼저 앉았다. 그래서 나는 에밀리 위에 앉게 됐고. 
    물론~ 거기까진 좋았다. 괜찮다. 그럴 수 있다. 그러지 말란 법도 없고. 
    그러다 이런 저런 얘기하다가 잠시 후. 
    에밀리는 결국 앉았다. 어디에? 내 위에! 
   「이거 너무 빠른 거 아니니?」
   「뭐가?」
    그러면서 에밀리는 사무실 가운데로 걸어가서 날 보며 서 있었다. 
    그럼 나도 따라가서 섰을까? 아니 그럴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난 자리에서 선 게 아니라 다른 게 서버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갑자기! 문이 벌컥. 웬 낯선 여인이 들어왔다. 뭐 하나 빠질 거 없는, '어떻게 붙어도 붙어도'의 정반대녀가 들어왔다. 
    때문에 나는 말하자면 수직으로 설 수도 없고 수평으로, 수평 훨씬 이상이기 때문에 어정쩡 엉거주춤 선 다음 억지로 허리를 굽혀서 수평으로 만들고 어쩌고. 그렇게 괴상한 자세를 보여줄 수 밖에 없었다. 
   「오빠. 내 친구야. 통성명은 다음에 하고. 너무 성급하면 재미없잖아? 응, 오빠.」 
   「안녕하세요. 오빠. 오빠 듣던대로...」 듣던대로 뭐? 
   「듣던대로 애기 아빠 같아요. 딱이네.」 딱이긴 뭐가 딱이야. 뭐 딱하단 말이야 뭐야.
    그녀는 몸매가 예술이었다. 그 새침한 하이힐. 하이힐 빼고 나머지완 완전히 똑 맞아떨어졌다. 한치의 오차도 없이. 
   「오빠. 설마... 왜 셋이서 데이트할 생각했어? 그건 다음에 하자. 난 오늘 얘랑 단둘이 데이트할 거니까. 우린 그거 차차 다음에 얘기하고. 오늘은 이만 안녕 하자고. 응? 오빠 나 간다.」
    쟤들 뭐야?
    지들이 뭔데! 
    엎질러진 우유를 놓고 울어도 소용없다. 
    걔들은 갔다. 괜히 좋다 말았다. 오히려 더 기분이 더러워졌다. 심란해졌다. 망했다. 상했다. 완전 빈정상했다. 이런 젠장! 





    16. 에밀리의 웅변 1

    나는 오늘도 에밀리를 만났다. 얜 내게 앙심을 품은 것일까? 정녕 내 귀가 타들어가는 게 보이지 않는 걸까? 아니면 내 불행에 종지부를 찍어주려는 것일까. 사심 없는 호의 치고는 인생의 모순이 가득 담긴 강의. 이건 뭐 설교도 아니고 수다도 아니고, 대체 뭐지? 나는 꽤 난처한 기색을 숨길 수 없었고, 무엇보다 얘기 듣기를 멈출 수도 없었다. 
   「오빠. 얼굴 표정이 왜 그래? 나 싫어? 아님 내 얘기 듣기가 싫은 거야? 아니지? 그렇지? 그럼. 그렇지. 누구 오빤데. 허허. 호호호. 히히히히히. 세상에 공짜가 어딨어, 오빠. 그러니까 말이지, 응? 어? 뭐? 뭐가 뭐? 어 그러니까 있잖아. 있지? 자, 봐 봐. 노골적인 갈망을 거저 먹을 수 있나. 하오나! 인생이란 미친 듯한 욕망의 대만족을 날로 먹을 수도 있다는 것. 사랑이 뭐 별건가. 호박이 제 발로 굴러오겠다는데, 그분들께서 오빠가 너무너무 좋아죽겠다는 그 사랑은 그분 마음 아닌가. 뭐 일단 입 털기 전에 몸 풀기였고. 자, 잘 들어 봐 봐. 응? 집중. 어! 뭐해 귀 기울여 잘 듣지 않고. 자, 보자. 
    뭐, 카섹스? 카 스테레오 오디오도 아니고, 뭐? 질 외 사정이야 뭐야.
    좋아하는 여자가 있을 때, 만날 때, 사귈 때, 썸탈 때. 남자가 자기 자동차 옆 자리는, 그녀가 아니면 그 누구도 허락하지 않는 것. 여자는 완전 좋아하지. 왜 아니겠어? 완전히 그야말로 최고지. 그럼. 그렇고 말고. 오직 그녀만을 위해서 그곳은 금단의 영역으로 신성화시키는 일. 다름 아니라 우리 여자들이 제일 좋아하는 사랑의 기쁨인 것. 물론 우리는, 1 대 1이면 여자가 아니 남자가 절대 절대 거절하지 않았는데. 호박이 끊임없이 제 발로 굴러오고 또 굴러오고 계속 굴러왔는데. 
    그런데 숙녀가 뭐 썩은 호박도 아니고, 제 발로 하이에나이자 전직 조직폭력배 것도 유명한 행동대장, 것도 좋아하는 오빠의 친구인 그 남자 자동차 조수석에 좋다고 타다니! 하필 여행지에서. 심지어 단둘이. 더더군다나 술 먹고. 것도 밤에. 시간도 넉넉하게. 그 다음에 카섹스~! (딱) OK~! 동시에 똥파리녀라고 자랑하고. 어? 똥파리 다음에 하이에나. 툭하면 지 자랑. 지 밖에 몰라. 진짜로 연예인 지망생이었다가 포기했고. 멍청하니까 할 수 있는 게 그것 밖에 없었고. 그런데 여전히 연예인병은 인생이고. 우리 똥파리 오빠를 못 잊었다는 둥, 우리 똥파리 오빠가 집 앞에서 어제도 기다렸더라는 둥. 우리 똥파리 오빠가 형편만 좀 나았어도 넌 국물도 없다는 식. 어디서 감히! 심지어 우리 똥파리 오빠한테 정도 못 뗐어. 양다리에 환승이별에 걸레에 최악 중의 최악이네. 응? 하물며 사랑에 이미 빠져서 사랑의 포로를 자처했으면서. 수시로 소개팅에 선보고 어쩌고. 나이트클럽에 회사 단짝 언니랑 출근해. 택시기사가 꼬시더라고 자랑해. 남자만 봤다 하면 질질 싸는 년. 문어발식 세력 확장이구만 그래. 걔 유부남이라면 환장하니까 지 직장 유부남들한테도 졸나 대 줬겠네. 뻔하구만. 골빈년이잖아? 무개념녀. 바로 그런 애들이 집구석에 틀어박혀서 인터넷에 글 쓰는 거 아니야. 자기가 고추천재네 뭐네. 고추를 빨고 있으면 온갖 잡생각이 사라진다 고추 빠는 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다 기쁘다 좋다 신난다 어쩐다. 
    그게 뭐가 아름다운 사랑이야? 도대체가 말이야, 그게 뭐냐고. 어? 장난해? 어? 걔 쓰레기 샴류 걸레 주제에. 싸구려 환승이별녀나 돼가지고. 똥파리한테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년. 똥파리만 완전 좋아하는 년. 똥파리에 환장한 년. 특히, 남자라면 남자인 족족 미쳐버리는 년. 남자만 봤다 하면 사족을 못 쓰는 년. 지가 남자 없이 살 수 있어? 쌍년이네 썅년! 
    갸도 오빠 친구들의 전 여친이랑 똑같네. 5년 만나다 중간에 딴 남자 만나고 딴 남자랑 자고 사겼으면서, 남자가 형편 나아지니까 쪼르륵 달려와서 다시 사귀자는 년. 개 쓰레기. 환승이별녀. 똥파리녀. 창녀가 차라리 나아. 똥파리에 최적화된 숙녀 인생. 똥파리 사랑을 위해 태어난 년. 똥파리 천재. 하이에나 짝사랑녀. 그런 년들이 바로 G 스팟 열리면 막 그냥 막 주고 다니지. 일어탁수. 미꾸라지 같은 년. 그런 년들이 나중 남자들 사이에서 성적으로 유명해진다고. 그러다 매독 걸리고 에이즈 걸리고 퍼트리고 퍼트리고. 여자 얼굴에 똥칠하고 똥칠하고. 그래도 스스로 멍청한 줄은 알아가지고 이상형이 꼴에 지적인 남자래. 잘났어 정말. 어디 가서 지가 오빠 여자라고 광고하고 다니지 말라 그래. 그런 예술적으로 멍청한 여자? 창피하다 창피해. 뭔 남자만 봤다 하면 보지가 벌렁벌렁. 그래봤자 똥파리녀. 자기가 멍청해도 예술적으로 멍청한 줄은 잘 아나 보지? 응? 아니면 보지가 근질근질하나시나? 창피한 줄도 모른 체 목에다 기부스한 년들. 벌거벗은 임금님인데 위와 아래를 가릴 줄 몰라. 아니 가리는 거 싫어해. 막 대 주는 년들 그 얼마나 많은데. 우리가 왜 몰라? 「엇그제 선배 여자가 대 주더라!」 아니 아니. 차라리 미꾸라지 전여편네라면서 광고하고 싶어한다고. 여자는 기본적으로 일생이 연예인병. 나 꽃이야, 그거 별거 아님. 내 연애사, 봤지? 나 이런 사람이야 나 이런 여자라고~! 그래? 걸레네. 남자랑 사랑하는 게 아니라 남자한테 다리 벌리고 대 준 게 그렇게나 자랑스럽나? 마빡에 헤픈년이라며 써 놓고 연애를 시작하냐고. 짝사랑은 연애인, 첫사랑은 똥파리, 전남자친구 사진을 1년 동안 지갑 속에 간직하며 마음으로 사랑해, 정도 못 뗐으면서 딴 남자를 좋아하는 걸로도 모자라 전남자친구를 또 만나. 하이에나들 한꺼번에 1 대 1로 다 상대해 줘. 그러면서 뭐 별로인 남자들만 꼬여서 고민이라고? 생애 최초로 '사랑할 가능성이 있는' 남자가 운전하는 승용차 조수석, 거기 최초로 탄 게 하필 하이에나. 안 그래도 팔랑귀에, 입은 싸고, 말은 많고, 변심은 습관이요 변덕은 취미에다, 툭하면 험담 심심하면 남편 흉보기. 하이에나 껄떡거리는 게 그렇게나 좋으면 아예 그 길로 들어서. 어? 그럼 될 꺼 아니야. 어? 똥파리 꼬인다고 좋다며 잘난 척할 꺼면, 어? 가서 신나게, 실컷, 마음껏, 원없이, 똥파리 거기나 가서 마음껏 빨아 주란 말이야. 응? 너네 그런 거 좋아하잖아? 열렬히 원하잖아? 완전 진심으로 애원하지 않냐고. 좋으면서 싫은 척 내숭은 또 기가 막혀. 애시당초 이미 G 스팟이 열리기 훨씬 전부터 아예 그냥 눈에 뵈는 게 없구만 그래. 기쁘시겠어요, 네? 얼마나 좋겠냐구요. 얼씨구. 지들이 할 줄 아는 게 뭐 있어. ('어떻게 붙어도 붙어도'녀와 붙어먹은 남편. 불륜 핑계 대는 남편에 맞대응해 바람핀 부인. 그래서 그 다음 친구랑 수다 3시간) 할 말이라고는 딱 그거. 「지가 먼저 바람폈잖아?!」 그럼 아예 시작을 말던가. 응?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꼬리 아홉개 달렸기 때문에 아홉가 각자 따로따로 유혹은 신나게 하고, 쉬지 않고 흘리고 다니고. 남자를 먼저 유혹해놓고 남자가 안 넘어오면 그만? 바람피고 걸리지만 않으면 그만! 똥파리가 쫌만 노력하면 개나 소나 다 따먹을 수 있는 년! 겨우 그깟 똥파리녀 하나 때문에 13년 동안 싸웠다고? 똥파리든 날파리든 그분들께서 쫌만 노력하면, 개나 소나, 죄다 몽땅 싹 다 가리지 않고,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서 사랑해주는 년! 보살이야 뭐야. 빠르냐 늦냐 밖에 차이 없지, 어차피 누가 됐든, 최선을 다해서 펠라치오 해 주고 커닐링구스 받을 거 아니냐고. 그런 허접한 관심종자가 사랑이라고? 사랑이 썩었네 썩었어. 아아 들린다 오오 정말 선명히 들리네. 무엇이? 많이 먹다 질렸다는 트름 소리가, 꺼~억! 정말로 그 과정에 그 고생에 그 시간 낭비까지? 별들의 전쟁 좋아하시네. 더 말해 봐야 내 입만 아프다. 관 두자 관 둬. 때려쳐 때려치라고.」 





    17. 에밀리의 웅변 2

   「골빈년. 
    그 정도는 널리고 널렸어. 예비 맞바람녀, 매력 없어. 만약 내가 남자라면 그런 더러운 년 트럭 채로 곱하기, 곱하기 얼마든지 가져와 보라 그래. 어디 눈 하나 꿈쩍하나 보게. 어림도 없어. 나한텐 안돼. 뼈도 못 추린다고. 어디서! 뭐, 감히? 문어대가리 썩어빠진 냄새 풍기지 말고 썩 꺼지라 그래. 미꾸라지 같은 년. 사랑이 무슨 성상납이야? 결혼이 뭔 애들 장난인 줄 아냐고. 
    맞바람 필 년은 필요없어. 줘도 안 먹을 테니 가라 그래. 누구한테로? 누구긴 누구야 똥파리지. 만나던 똥파리나 많이 만나라 그래. 걔 그거 좋아하잖아? 걔 그런 거 완전 좋아하잖아! 어차피 먹어 봐야 맛도 구려. 적당히 발효한 치즈도 아니고, 거 무슨 썩어빠진 음식물 쓰레기를 걸신 들린 것마냥 먹을 일 있나? 신선하디 신선한 요구르트랑 새콤달콤 음료랑. 얼마든지 풍부한데? 그걸 먹느니 내 차라리 굶겠다. 그건 미친 거지. 아끼다 똥된다고 어차피 썩어문드러져서 흙으로 돌아갈 몸뚱이. 시작도 전에 끝낼 생각부터 하잖아. 막 굴리며 그저 다리 벌릴 생각만 가득하다고. 응큼한 년. 심심하면 애액이나 질질 흘리고. 시도 때도 없이 막 쉬지 않고 싸. 그러고서 뭐, 이런 버러지 만도 못한 뚜벅이 주제에 개차반아 늬 주제를 알거라? 
    얼굴 반반한 거 말고는 아무런 잇점, 경쟁력, 매력 기타 등등 전무하다고. 걔 만큼 안 착한 여자가 어딨냐고. 한정판도 아니고. 이미 늙었고. 밣키기나 하고. 안 그래도 헤퍼. 그냥 막 줘. 막 퍼준다고. 그 정도는 흔하디 흔하고. 특별판은 개뿔. 특별판 다 썩었네 썩었어. 싸구려 중의 싸구려. 그런데 정작 본인은 자기가 싸구려인 줄 몰라. 지가 이쁜 줄 알지. 하이에나들한테 대접받고 살았으니까. 
    개나 소나 다 따먹을 수 있잖아? 
    개나 소나 다 마음을 얻을 수 있잖아? 
    개나 소나 다, 개든지 소든지 안 가리고 막 다 주는 거잖아? 
    왜 하필 골빈년. 
    뭐니 뭐니 해도 기준은 우리 엄마. 응? 엄마라고. 그런데 뭐 예비 맞바람녀? 기준선에 심하게 모자름. 염병할 썩은 사랑같으니라고. 우리 엄마. 그럼. 엄마라는 숙녀 인생을 통틀어서 우리 엄마한테 남자가 몇 명이었는데. 우리 엄마에게 남자는 참 많게도 오직 딱 1명. 그분이 누구? 우리 아빠. 그럼. 장기전은 물론 중반전도 탐색전에 전초전까지 얼마든지 맞춰 줄 수 있는데. 오빠가 그러길 간절히 갈망했는데. 그런데 시작부터 우리 똥파리 오빠를 못 잊는다는 둥 만나고 어쩌고, 이 남자 저 남자 막 만나고 다니면서 걸레로 살았던 걸로도 모자라, 간접고백도 매몰차고 표독스럽게 거절. 그 징글징글한 똥파리처럼 100번 찍고 스토커 강간범처럼 1000번 들이대라고? 우리가 무슨 껄떡쇤가. 또 의전녀야? 가라. 가. 꺼지라고. 딴 데 가면 의전에 환장한 하이에나들은 우글우글 꽉 찼고. 널린 게 여자고. 똥파리 구애라면 홀딱 반하는 년들은 필요없고. 똥파릴 위해서 태어나신 숙녀라면 그분들과 끼리끼리 사랑하면 그뿐. 벌레는 벌레끼리, 파충류는 파충류끼리. OK? 아니 왜 그분들 리그에 오빠까지. '어딜 넘봐'녀? 신물이 난다 신물이 나. 상향 지원녀는 먼저 몸부터 주고 시작하고. 하향 지원녀는 돈 싸들고 와라, 꽃 들고 쫓아다니고 기다리면 한번 생각해 보겠다고 하고. 그래봤자 전남자친구는 똥파리, 첫사랑은 스토커, 그럼 장래 남편감은 강간범? 언닌 실망했을지 몰라도 엄만 사윗감이 그런 줄 아실려나 모르겠네 모르겠어. 타고난 도화살 때문에 손만 까딱해도 어디 가기만 해도 똥파리 꼬인다며 행복하다고 비명 지르는 년. 하이에나들 껄떡거린다고 또 자랑해. 버스를 타든 택시를 타든 회사에 누가 찾아오고 찾아오고. 집 앞에서 기다리고 기다리고. 꽃이라고 아무리 꿀벌이 꼬인다지만. 왜 하필 골빈년이자 예비 맞바람녀 멍청이 맹녀꽃이라니. (절레절레) (절레절레). 나 꽃이야? 꺼져. 죽어. 나가디져. 가라고. 뭐, <누구나 자신의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 전에는 하늘이 안배해주신 다른 한 사랑을 하게 될 거예요. 그러나 진정으로 당신이 원하는 사랑을 만났을 때애는 반드시 맘 속으로 항상 감사해야 하겠죠>? 사랑을 그렇게나 잘 아시는 년들이 그랬다고? 문어발식으로 남자들 관리하며 애 쓰면 순위 바꿔주고. 강간범이랑 희망찬 미래에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게 꿈이야 뭐야. 하늘이 안배해주신 사랑이 쫄딱 망했네 망했어. 뭐 저울질을 하늘이 어쩌고 어째? 그럼 염장질도 하늘이 점지해 주신 거네? 설마 당신의 그 사람이 당신의 방식대로 당신을 사랑해 주지 않는다 하여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고? 그럼 뭘해 일찍도 딴 남자랑 카섹스하는데. 그 언니 친구 몇 명 없잖아? 달랑 두어 명이 전부잖아? 그럼 오빠가 그 친구랑 카섹스 하면 퍽이나 좋아하겠네? 그러잖아? 진짜 걔들 몇 명이서 똘똘 뭉쳐서, 남자는 남자들대로, 여자는 여자들대로. 오합지졸로 각자 개인적으로 또 단합해서, 모태솔로 수컷 한 명 앞에 놓고 지랄발광을 했구만 그래. 그러고서도 고개 빤히 쳐 들고, 밑에꺼 아침에 빳빳히 고개드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챙피한 줄도 몰라. 수치심도 없어. 얼굴 팔리는 거 제일 좋아라 그래. 똥파리만 꼬이면 환장해. 넘보지 말라며? 개 만도 못한 주제에 병신새끼 꺼지라며? 혼자서 좋아하는 짝사랑마저 대실망이라며? 그럴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그럼 뭐 어쩌라고! 똥파리 스토커 완전 좋아했잖아? 뉴스에 나오고 어쩌고 해 봐야, 여자는 별수 없어. 강간범이랑 살림차려서 살 수 밖에. 그게 여자지. 겉으로 싫다 해도 다 속으로 좋은 거야. 스토커 똥파리한테 정 떼는 게 어디 쉽나, 누굴 속이려고. 따라만 다니면 다 좋다는 걸 어떻게 몰라. 연예인병녀. 반응이 뭐 글쎄, 뭐가 어쩌고 어째? 어딜 넘봐! 끝끝내 중간에 썸타던 하이에나랑 카섹스! 어? 뭐야. 뭐냐고. 이건 도대체 뭐냔 말이지. 그런 개년과 뭘 믿고 사랑?! 오빤 첫사랑이랑 모텔에서 손도 안 잡고 잤는데. 그런데 꼴에 지도 숙녀라고 좋아하는 가수의 1집이 어떻다는 둥, 남자는 수컷인데 모든 남자들이 오빠 같지는 않지. 그럼. 그렇고 말고. 그럼 지는 첫사랑한테 호텔에서 따먹힌 다음 버림받았다는 거 아니냐고. 안 그래? 남자만 보면 질질 싸고 다리 막 벌리는 걸레. 그러면서 정말로 좋아하는 오빠를 놀려대면서 전화는 단 1번도 받지 않고. 하이에나랑 신나게 전화로 데이트하고 만나서 데이트하고. 단둘이 얘기하고. 어? 그래도 부족하니까. 또 이쪽을 보고서는 떠보고. 저울질하고. 간보고. 깔보고. 자랑질 염장질 이간질까지. 뿐만 아니라 뒷조사는. 조사 결과 마음에 들지 않았으면 조용히 덮었을 꺼 아니냐고. 아니면 적당히 추스리고 어찌 어찌 마무리하던가. 들춰봤더니 별거 없었다면 적당히 해피엔딩으로 무마시켰을 테고. 여럿이 길이길이 비웃었을 것이며. 그 비밀 무덤까지 가지고 가기엔 차마 입이 근질거려서 참을 수 없을 테고. 몹쓸 호기심. 그 흔한 사랑. 차라리 남자는 제 성과를 직언하고 장래 부풀리느라 바쁜 반면. 대신에 여자는 자기는 성처녀요 누구나 성모 마리아. 알고 보면 할 거 다 하고 문어발에 오리발이자 막살자식으로 즐기는 여자가 얼만데. 낮에는 처녀처럼 밤에는 뱀파이어 같이 침대가 피바다. 처음 만나자마자 오빠요 첫인상 보자마자가 아니라, 이미 보기도 전에 원정경기를 결심하고 승부. 뭘 모르는 아마추어나 만난지 1일째는 절대라고 하지. 그러면서 내 껀 못 까고, 까 봐야 볼 거도 없고. 재미조차 별로고. 그렇지만 뒷담화라면 다르지. 이 세상에 험담 만큼 재미난 일이 어디 흔하냐고. 하물며 까도 까도 웬만하지가 않네? 끝이 없네? 그야 말로 판도라의 상자네? 요한계시록에 뭐라 쓰여 있나. "여자가 남자에게 '이리 와, 나를 껴안아 줘요'라고 말하는 날은 세상이 끝장나는 날이다." 아마겟돈이든 뭐든 천국과 지옥은 바로 지금 여기 우리 마음 속에 있는 것. 여자도 얼마든지 적극적이고 인생을 즐기는 거야 미덕이라지만. 남자 세계에서 유명해지도록 왈가닥이면 곤란 무척 곤란. 솔직하지 못한 거야 여자의 본성이자 역할이다 쳐도, 모든 여자는 여왕벌이라니. 여자 말 번역기를 분석해 보니 차마 입을 다물 수 없다니. 남녀평등도 좋고 여권 신장 뭐가 나쁘겠냐마는. 일관성도 없고. 결론은 도무지 실종에 내용도 뒤죽박죽. 뭔 말로만 조신한 정숙녀래. 오합지졸 암컷 싸움닭에다 참새 짹짹 난리도 아니고. 유서 깊은 집안끼리 사돈 맺는 드라마야 그렇다 쳐도. 재력가가 과거 깨끗한 여자이자 숫처녀요 뭐 하나 남부끄러울 것 없는 여자가 아니면 사귀지도 만나지도 않는 예. 없지 않다는 거. 잘 아시면서. 그런 거 겉으로는 싫고, 당선된 여자를 보는 시선은 복합적인 감정이 뒤섞이고. 말은 많고. 속은 뒤집어지고. 여자들끼리 앞에서는 편이요 돌아서면 적. 등만 돌리면 뭔 얘기를 할지 어찌 안심하냐고. 그러면서 자기들끼리 나서서 뒷조사. 얘기 듣고 이런 저런 사진들 보면서 집안이 완전 꽝은 아니고. 대충 남자가 마음에 들고. 그러니 결혼해도 되겠다 그랬을 테고. 그런데 남자는 뭘 믿고? 남자는 여자에 대해서 아는 게 하나도 없는데? 똥파리 전부인에다 카섹스녀를 뭘 믿고! 너도 파리 끈끈이가 되어 보시라? 게다가 가진 거도 없고. 미래는 암울할 뿐이고. 지들만 신났고. 3년 동안 빨고 핥고 싸고 할 거 안 할 거 다 해도, 그래도 3년 결산 내서 비전 없으면 떠나는 게 여자인데. 아무리 기다려도 비전없을 걸 처음부터 알았으면 어디 시작할 엄두를 냈겠냐고. 자기들만 뒷조사하고. 남자는 뭘 믿고. 아는 게 하나도 없다고. 무슨 추억도 없고 청소년 드라마 느낌도 0이고. 변변찮은 사진도 뭣도 없고. 남은 건 아무것도 없고. 새치는 늘고 턱수염도 하얘지고. 힘은 빠지고. 뭘 해도 재미가 없고. 그야말로 개 털에 개 밥이자 개 발이지. 이게 무슨 개 풀 뜯어 먹는 꼴이냐고. 뭐 어찌 어찌 하면 좋을 것이다? 좋은 인연이기 때문에 눈 감고 질러도 된다? 지들이 당사자야 뭐야. 연애 감정 느낀 남녀가 판단할 문제를 지들이 무슨 권리로 이래라 저래라. 뿐더러 책임도 안 져. 툭하면 오리발.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이건 아닙니다~ 어쩌고저쩌고 선동가 따라갔다가 한순간 주위를 둘러보니 아무도 없어. 뭐 저는 1번이면 끝이에요 좋아하시네. 걘 끝나도 골백번은 끝났지. 썩을년들. 심심하면 막살고 툭하면 환승이별. 어차피 잘 해 봐야 예비 맞바람녀. 일생이 어장관리. 보통은 남녀 친구이자 우정이요 침대에서만 사랑. 돌아서면 다시 남남 했다가 친구 했다가 또 남몰래 진한 사랑. 여자들은 내 남자한테 요구하는 게 딱 그거 아냐, 나만 봐! 그럼 뭘해 지들은 사방팔방 죄다 꼬리치고 유혹하고 일생을 화장발 조명발 사진발인데. 난 되고 넌 안 되고. 여왕벌 심보. 나 유리하면 여자는 그래요, 나 불리하면 저 그런 여자 아니에요. 아니긴 뭐가 아니야.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사랑. 내 연애사는 포장이요 남 과거는 까고 싶고. 내 사생활은 보호받아야 정당하고 남 사생활은 얼마든지 파헤쳐도 괜찮고. 어? 완전 신나고! 자긴 일생 남자를 딱 3번 만나봤다고? 0을 하나 붙이면 됨. 1명에게 최소 1번 몸을 줬고, 많으면 1명에게 수도 없이 다리를 벌렸고. 그래놓고 정숙한 척. 임자 있는 남의 남자한테 환장한 년들. 바람을 어찌 혼자 피나.
    남자 바람기 + 여자 부도덕 = 불륜.
    애인 있는 여자 마음, 내 남자 한눈팔까 봐서 불안한 여인 심정, 남자가 더 낫기 때문에 내 남자한테 꼬리쳐서 내 남자 흔들릴까 봐 겁나는 숙녀 마음. 그거 다 알면서 임자 있는 남자의 정신을 홀리고. 마음을 흔들고. 몸을 취하고. 비윤리를 즐기고. 임자 있는 남자의 미래까지 빼았고. 빼았고 빼았기는 데서조차 쾌감 느끼고. 못 된 년 심보. 도둑놈 심성. 질 나쁜 개년들. 지 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자 여자들. 여자의 본심은 이기주의 중의 이기주의. 내 낭군님이 있든 말든 괜찮은 남자만 보면 보지 벌렁벌렁 애액 질질. 내 살다 살다 그렇게 물 많은 년은 처음 본다, ~라면서 쑥덕쑥덕 소문 다 날 꺼 뻔히 알면서 일찍도 몸부터 베팅. 내 왕자님이 있든 없든 남자라면 환장한 년들. 지들이 남자없이 어떻게 살아. 남자가 없으면 몰라도 남자만 있으면 자기들끼리 말 많아지고. 꼴보기 싫은 년은 딱 정해져 있고. 난 화장 아무리 열심히 해도 이 모양 이 꼴인데, 누군 진공청소기처럼 남자들 시건을 독차지하고. 억울하고 또 억울하고. 배 아프고 쉴새없이 배 아프고. 내 남자가 한눈파는 건 싫고 못 봐 주고. 자기들 실수하는 건 아무렇지 않고. 남녀가 우정이 어딨나. 일단 아는 남자 많고 조명 받으면 똥파리는 드글드글. 평소에 지조 있고 조신해 봐야 우리한테 걸리면 끝. 웃는 처녀는 반쯤 남자 차지가 된 셈. 사랑을 어찌 믿나. 세상을 믿는 자는 틀림없이 속는다. 신중은 안전의 어머니. 믿지 아니하는 자는 속지 아니한다. 인간은 인간에게 늑대이자 개. 남자에게 여자는 불여우이자 암캐요 구미호. 일단 실수는 첫째도 술 둘째도 술 셋째도 술. 술 좋아하는 년은 언젠가 실수하기 마련. 1 대 1로 일단 만나면 끝. 겁없이 딴 남자 자동차에 막 탔다가. 그랬다가 처음 만난 남자랑 사막에 가서 어쩌고저쩌고. 좋아하고 사랑하며 미칠 듯이 상사병에 걸렸는데, 하필 낭군님 친구랑 여행지에서 술 먹고 밤에 카섹스. 드글드글 하이에나들 1 대 1로 다 상대해 주고. 전남자친구 똥파리도 만나고. 유부남들도 진심으로 짝사랑해 주고. 그런 문어발 파리 끈끈이년을 도대체 뭘 믿고. 뭐 저는 1번이면 끝이에요 좋아하시네. 걘 끝나도 골백번은 끝남. 자기 여자들은 우리 똥파리 첫사랑이 자랑이요, 남자의 첫사랑은 와 못생겼다. 지들은 몸과 마음이 적극적으로 헤프면서, 남자가 마음으로 사랑하는 건 입방아. 자기들 과거도 못 밝혀. 돌려서 까고 벗겨먹고 실컷 험담질. 내 사생활은 철저히 비밀이요 남의 사생활은 얼마든지 수다 3시간. 그러니까 감추고 숨기며 깎고 조신한 척하지. 여자는 멀티태스킹해도 되고, 남자는 나만 바라 봐야 하고. 여자는 환승이별이 당연하고 남자는 바람피는 수컷 취급하고. 악마가 여자를 삼킬 수는 있어도 소화시킬 수는 없다고. 옛말에 그랬다. 악마를 능가하려면 여자가 필요한가 아닌가. 그러니까 여자와 스패니얼과 호두나무는 때릴수록 좋아진다 그랬지. 많은 의상담당자는 신부의 옷을 망친다니까요. 요리사가 많으면 죽을 버리는 법. 자기들 과거는 남편한테 못 까면서, 딴 남자 과거는 신나게 캐고. 미친듯이 열광하면서 캐고 캐고 끝까지 캐고. 과거 캐는 건 괜찮고, 자기들 실망하는 건 억울하고. 오 소름. 와, 최악! (몸짓) 와우, 최악!」 
    나는 귀만 타는 게 아니라 마음도 혼란에 빠져버렸다. 뭐가 뭔지 도무지 알 수 없었으니까. 





    18. 에밀리의 웅변 3. 동거 결정

   「그런데. 아직도 모르겠어? 오빠 지금 나와 입씨름하자는 거야 뭐야? 어?
    어떻게, 여자 말 번역기, 돌려줘? 그래? 그러자. 까짓껏 한번 가자. OK. GO~! 
   "넌 거울도 안 보니? 그렇게 이상하게 생길려면 정말 어떻게 해야 하는 거니? 무슨 비결이라도 있는 거니? 그런 거니? 넌 TV 보고 핸드폰으로 세상 소식 보면서 뭐 생각나는 거 없니? 이건 내 생각인데 넌 그냥 이혼 한 두어번 한 여사님 잡는 게 어떠니? 내가 봤을 땐 그게 빠를 거 같은데. 어머머머 얘 갑자기 왜 그래? 기분 상했니? 얘 있지, 그게 말이야, 그래도 몸에 좋은 약이 입에 쓴 거야 얘. 늬가 세상을 아직 좀 잘 모르나 본대, 다 좋은 얘기니까 새겨들어. 어? 다 너 도움되라고 하는 얘기잖니. 안 그래? 그렇게 알아듣도록 말해 주지 않으면 정신을 못 차린다고. 왜 내가 못 할 말을 했니? 아니잖아, 다 전부 다 사실일 뿐이잖아? 너 차 있어? 없잖아. 키는? 별로잖아. 얼굴 잘생겼어? 그 얼굴로 어떻게 돈을 버니. 좋게 말해서 잔근육이지 그렇게 힘 없는 골체미 어디다 쓰겠니. 낑낑 낑낑낑 좀 힘 쓰다 쌍코피 터지는 거 아닌가 몰라. 그럼 뭐 할 줄 아는 잔재주는 어떻고? 변변치 않잖아. 게다가 돈도 없어. 심지어 비전까지 없어. 뭐 하나 신통치 않다고. 어? 뭐야, 루저네. 응? 루저! 
    꼴에 지도 남자라고 좋다고 쳐 웃고 있어. 허허. 꼴갑을 떨고 있구만. 병신새끼 넘보긴 어딜 넘봐. 새 차 뽑고 새 집 준비하고. 그럼 내 한번 생각해 볼께. 단지 한번 생각만 해 본다는 거니까 너무 설레진 말고. 김칫국부터 마시진 마란 말이야. 알었냐 이 병신새끼야~! 알아들었냐고 이 쪼다 등신아. 골뚜기 오징어 주제에 뭐, 홍어 좃 같은 새끼가 뭐 사랑? 좃만한 새끼 놀고 있네 놀고 있어. 쇼를 해라 쇼를. 육갑 지랄 옆차기를 하고 자빠졌어 그냥. 사랑 좋아하시네. 너 같으면 밑도 끝도 없이 손가락 빨고 암것도 못 한 채 사랑하고 싶겟니? 무슨 사랑이 밥 먹여주니? 놀고 자빠졌어. 개 풀 뜯어먹는 소리는 작작 좀 하고. 웬만하면 집어치워 주시고. 겸상해 주니까 좋단 거 봐 봐. 꼴에 지도 이쁜 건 알아가지고. 치! 같이 놀아주니까 아주 그냥 기어오를려고 하는 거 좀 봐 봐. 개네 개. 응? 멍멍멍 멍멍멍. 뭐해? 짓지 않고! 개면 개답게 굴어. 개가 짓지도 못하면 그게 어디 개니? 하기야 넌 사냥꾼의 사냥개로도 예선탈락감이다. 아 그러게, 어? 그러니까 어디서 우리집 애완견 연세를 물어 봐 이런 병신새끼야. 넌 어떻게 된 게 남자가 생각이 있니 없니? 머릿속에 똥만 찼냐? 아조 똥을 싸요 똥을 싸. 여체라는 피상적 이득 때문에 눈에 뵈는 게 없니? 너네 여심은 관심 1도 없잖아. 안 그래? 아둔하고 상스러운 수컷으로써 아이쿠야, 숙녀 보기를 띄엄띄엄. 뭐 못생긴 여자 보기를 돌같이? 잘한다 잘해. 어련하시겠어. 이쁜 여자만 봤다 하면 침 질질 흘리면서 환장하고, 못생긴 여자가 눈에 띄었다 하면 눈 버렸다 그러고. 잘들 하시네. 멋지다. 어? 분파적 갑론을박 그만 하고 각자 갈길 가자. 어? 행여나 주늑들어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럼 매번 맞고, 당하고, 죽고, 스토킹에 겁먹고 질리고 껄떡쇠와 똥파리들한테 질릴 대로 질린 우린 뭐니. 안 그래? 툭하면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심심하면 호모 사피엔스. 심지어 너도 똥파리잖아. 안 그래?
    내가 어디서 들었는데 너 같은 거 아무리 기다려 줘 봐도 사람 안 된데. 사람은 고쳐쓰는 거 아니래. 비전 없다고 그러더라고. 안 그래도 너 100미터 단거리 주자일 거 아니야. 3분 카레면 그나마 양반. 컵라면 같은 즉석식품이면 어떻게 데려다 고치고, 쪼이고, 길들이며, 조련은 해 드린다고. 그런데 그게 아니라 뭐 큐브 맞추기 세계 신기록감? 아이고머니나 꿈도 야무지다. 꿈도 야무져. 내 새끼 손가락도 아니고 내 새끼 발톱이 늬 거기보다 크겠다. 어? 진짜로! 그런 널 대체 어디다 쓰겠니, 어? 제발 생각 좀 하고 살자. 우리 제발 좀 그러자. 어? 그러니까 꼴갑 좀 정도껏 하라고, 이런 등신아. 그래도 너 하는 거 봐서 순위권 쟁탈전에서 아예 배제시키지는 않을께. 예선 탈락은 너무 쓸쓸하잖니. 안 그래? 예전 내 남자친구 같은 멋진 똥파리가 아니라, 너 같은 진짜 똥파리도 좀 끓어주고 껄떡거리고 그래야 좀 구색도 맞춰지고. 다 그런 거 아니겠어? 어? 너도 늬가 똥파리인 줄은 아니 모르니? 응? 안심해. 아예 탈락시키진 않는다고. 지들끼리 그런 재미라도 있어야지. 그럼. 걔들도 다 희망 갖고 용기 잃지 않고 낑낑대며 살긴 살아야 할 꺼 아니니. 응? 너도 먹고는 살아야 하잖니. 안 그러니? 
    그런데 표정이 왜 갑자기 그러니? 왜 속이 뒤틀리니? 속 뒤집어지니? 그런 거니? 정말로? 진짜로? 리얼리? 진심? 그럼 늬가 어쩔 건데! 어? 그럼 늬가 뭐 어쩔 꺼냐고. 응? 후라이팬으로 때릴래 아님 솜방망이를 휘두를래. 아님 밑에 꺼? 꼭 늬 같은 좃만한 새끼가 꼭 보면 나중 지 마누라 야구방망이로 뚜둘어팬다니까. 북어랑 마누라는 사흘에 한 번씩 패야 한다는 속담을 진짜로 실천한다고. 여자와 스테이크는 많이 때리면 때릴수록 더 좋아진다는 옛말. 곧이곧대로 구식 탱탱 묵은 말을 직역한단 말이지. 너 같은 쓰레기한테 쥐어터지지 않을려고 우리들이 발버둥치면서 뭘 좀 아는 남자, 말이 통하는 오빠를 애타게 찾아헤매는 거 아니니. 안 그래? 너도 알 거 아니야. 응? 아휴 저 병신새끼, 내가 갖기엔 부족하고 남 주기는 아깝고. 그래도 싫은 건 싫은 거지. 뭐 어쩔 수 있나. 흥!
    좌우지간. 내가 첫사랑에 실패해서 그렇지. 그렇지만 않았다면 너 같은 허접 거렁뱅이 병신새끼는 쳐다보지도 않았어. 알어? 내가 뭐 미쳤다고 너 같은 거지를 거들떠보겠니. 우리 쫌, 가진 것 하나 없는 쥐새끼는 제발 알아서 좀 꺼지자. 응? 여잔 죄다 음식처럼 보이는 돼지새끼를 숙녀가 왜 사랑해줘야 하는데? 어차피 주식 아니면 간식 아니야? 식욕이 성욕 아니냐고. 보이면 보이는 대로 다 먹고 싶잖아? 안 그래? 그래 안 그래? 피차 시간 낭비하지 말자고. 넌 자존심도 없니? 넌 그런 거 없나 몰라도, 우린 아니야 얘. 얘 있잖아, 우린 남자가 닳고 닳은 짜릿한 쾌락마로써 오붓한 밀애를 즐기는 식으로 우릴 열 받게 하잖아? 그럼 걔 안 봐. 정 식은다고. 오만 정이 뚝 떨어지는데 너 같으면 걜 계속 내내 좋아할 맘이 생기겠니? 그래서 넌 자존심도 없다는 거야. 아니. 고추는 달렸니? 어디 볼까? 보긴 뭘 봐. 내 새기발가락보다 비리비리할 텐데. 안 그래? 하긴 너 따위가 고추천재의 마음을 어찌 알겠니. 어차피 넌 보험일 뿐이고. 그래 봤자 1번이면 끝이다, 응? 알아 둬. 앙갚음은 즉각이니까. 애가 있든 말든 1번이어도 우린 눈에 뵈는 게 없고, 우리는 무엇보다 G 스팟이 열려도 눈에 뵈는 게 없어. 우리가 왜 절정녀로써 모텔비 호텔비 계산할 때 만사를 제치고, 전면에 나서서, 무조건 우리가 계산하겠니. 그거 맛보면 우린 그냥 미쳐버린다니까요. 늬 까짓 게 그런 걸 알기는 아니? 응? 그리고 어? 막말로. 만난 기간도 똥파리가 먼저요, 첫 애정 역시나 우리 똥파리 오빠가 앞서. 우리 똥파리 오빠랑 내가 데이트도 만인에게 보란듯이 기쁜 데이트를 해도 몇 번을 했는데. 너 나랑 단둘이 만난 적 있어? 0번이잖아. 그럼 말 다 했네. 너 나랑 전화통화한 적 있어? 것도 0번이잖아. 그런데 난 내 첫사랑 똥파리 오빠랑 날이면 날마다 전화하고, 날이면 날마다 문자 주고 받고, 날이면 날마다 생각하고 그리워하고 사랑하고. 다가올 첫날 밤을 기대하며, 아흐흑~! 쌓은 정이 얼만데 너 같으면 그 정 쉽게 떼겠니? 사랑에 대해 멋도 모르면서 어디서. 내가 첫사랑에 실패만 안 했다면. 그럼 지금쯤 벌써 똥파리 주니어 1, 똥파리 주니어 2 낳아서 알콩달콩 행복한 가정을 꾸려서, 밤이면 밤마다 아흥아흥~ 교성을 지르며 신나했을 텐데. 어쩌다 너 같은 등신새끼를 알게 됐는지. 참 나도 알다가도 모르겠다. 알겠니? 응? 알겠니 모르겠니!"」 
    매사에 빈틈이 많은 인생. 에밀리의 웅변으로 참 많은 것이 정리된 느낌이었다. 어머머 이런 기분 처음이야, 딱 그랬다. 외모는 거울로 보고 마음은 술로 본다지만. 허지만 에밀리는 뭐든지 단지 보기만 해도, 당나귀의 마법에 걸린 광마의 꿍꿍이속까지 알아내버리는 마녀였다. 난 좋았다. 난 기뻤다. 그럼 이제 우리에게 남은 건 무엇일까. 뭐긴 뭐겠나. 더티러브지. 히히히히히. 그건 송두리째 바뀐 인생 전환점이었다. 수준 높은 호사와 사치스러운 풍요로움은 필요없고. 단지 그거면 충분했다. 희망찬 내일이 오면 미지의 이상과 경이로운 환상을, 돈으로 살 수 있을까. 사던가 말던가 관심없고. 그거면 모든 게 OK였다.  미래의 신비감이 현실로 당도하고 보니 끈적거리는 솜사탕처럼 허무해져버릴지라도 괜찮을 것이다. 쫄보의 막연한 권태감, 이제는 환락만 남은 것이다. 빙그레 웃으면 우린 결국 함께 살기로 결론내렸다. 새로운 사랑의 낙원, 그것도 당장말이다. 

,

BLOG ─ 147

from 소설 2019. 5. 15. 17:54

    1

    [칼럼: 고백이란!]
    ~라는 공상을 하던 찰나. 존티로부터 뜬금없이 연락이 왔다. 
    NB는 전화기가 고장난 줄 알았는데 핸드폰은 멀쩡했던 것이다. 
   「나 잊고 있었어.」
   「뭘?」
   「늬가 내거 가져간 거. 듀퐁 79년식 한정판 실버 버젼. 내 사무실에서 가지고 놀다 어떡하다 그게 늬 상의 주머니로 들어갔던 일. 내가 그랬나 늬가 그랬나. 아무튼 그건 중요하지 않고. 그게 없으니까. 나 불안해.」
   「아 그거?」
   「대강 얼버무리고 넘어갈 생각일랑 말어. 어림도 없으니까.」
   「나 라이터 욕심 없어. 넌 차 욕심 많을랑가 몰라도. 이거랑 똑같은 거 한 100개 사 줄까? 말만 해.」
   「아이고. 말만 들어도 고맙습니다 형님. 넌 말이야, 가만 보면 그게 문제야. 그러니까 넌 여자들이 따르지 않는 거야. 뭣 때문에? 이런 상황이면 궁짝이 딱 딱 맞아야 할 거 아니냐고. 어? 발뺌이라도 좀 해라 그 말이란 말이지. 아, 재미없잖아? 그리고 새 거랑 애정이 쌓인 게 같니? 아무튼. 거기 있지?」
   「어. 소파 옆에.」
   「어 보이네. 아니. 소파가 아니라. 책상 위에 있네.」
   「어? 아 그렇구나. 책상 위에 있구나. 뭐? 그걸 늬가 어떻게 알아?」
   「어떻게 알긴 뭘 어떻게 알아? 그걸 누가 알겠니, 늬가 알겠니 내가 알겠니. 내가 그걸 왜 알아야 하는데? 어? 그건 다 늬 안경에 부착된 초정밀 카메라가 내게 실시간 영상을 전송시켜주고 있으니까 알지.」
   「뭐, 진짜?」
   「진짜겠냐. 뻥이야.」
   「뭐? 뻥이... 아닌 거 같은데.」
   「아니긴 뭐가 아니야. 그러지 말고. 그거 가지고 우리 사무실로 놀러와라. 심심한데 너랑 나랑 연애를 할 수는 없고, 뭐 하고 놀지 꿍꿍이나 짜 보자고. 아님 무슨 특별한 건수 있어? 없잖아. 너 약속 없지? 그렇지? 다 알어 임마. 그러니까 늬가 뭘 해도 안되는 거야. 알어? 그러니까 늬가 여자가 없는 거라고. 날 봐 날 봐. 어? 날 보라구. 내 발에 채이는 게 여자야, 어? 내 전적은 물론, 날 날이면 날마다 귀찮게 하는 게 여자라고. 물론 이젠 아는 동생이든 뭐든 다 떨어져나가 낙동강 오리알 신세이긴 하지만. 어쨌든 플레이보이는 추억에 사는 거라고. 그런데 너 그거 아니? 나 말 아직 안 끝났다는 거.」
   「나 늬 말 끊지 않았어.」
   「그래? 그러거나 말거나. 글쎄나 말 길어지니까 피곤하다야. 아 뭐해, 얼른 넘어오지 않고.」





    2

    다음 날 JS는 존티를 만나러 갔다. 
    존티 사무실로 가던 중 그는 전화를 받았다. 
    존티가 어디까지 왔냐며 도착을 재촉하는 것인지 아닌지. 받아보면 알겠지. 라고 그는 생각했다. 
   「혹시 출발했니? 출발했으면 어디 소풍이라도 좀 가는 게 어떠니. 내가 급한 일이 생겨서 사업 관계자를 만나봐야 할 거 같아. 빅딜이거든. 이거 잘 풀리면 나중 내가 크게 쏠께. 응? 그리고 그 뭐야 듀퐁 라이터. 그거 너 가져. 어제 누가 한정판 최신품을 선물해 줬지 뭐니.」
   「그래?」
   「낙심천만이라는 둥 실망했다는 둥. 내가 다음 번에 죄다 만회할께. 알았지? 이보게 친구. 안도의 한숨을 내쉬어도 돼. 뭐 그 말을 왜 내가 하냐고? 말해 뭐 해! 나도 모르는데 뭘. 허허. 어쨌든 자네의 기민한 관심은 사양하므로, 고로 자넨 이제부터 자유 시간이 공짜로 생긴거나 마찬가지라네. 시간 벌었으니, 공짜 시간 생겼으니 그 얼마나 좋은 일인가. 안 그래? 어떻게, 미술관에라도 좀 가보는 게 어떤가? 아니면 내가 여자 소개시켜 줄까? 어떤 스타일! 말만 해 뭐든 말만 하라고. 그렇다고 진짜로 말만 하지는 말고. 네가 진짜로 원하는 걸 딱 꼬집어서 말하란 말이야. 알겠니? 격정이 있으면, 달려. 낭만적인 꿈이 섬멸할 거 같아? 다시 띄워. 주말을 어떻게 놀아야 신나게 놀았다고 소문이 날지 잘 모르겠다고? 파티플레너를 네 비서로 서임해. 그럼 돼. 진땀을 뻘뻘 흘리지 않아도 되고, 아님 거칠게 자기 연민이라도 하던가. 뭐 그러던가 말던가. 네 인생 늬가 알아서 하는 거지, 그걸 내가 이래라 저래라 하겠니? 너도 어엿한 어른이잖니. 호박이 제 발로 너한테 쉼없이 굴러갔는지 아닌지. 과거에는 간혹 뜨문드문 그랬나는 몰라도, 지금은 좋은 시절 다 가버렸는지 몰라도. 아무튼 닥치는 대로 예술적인 삶을 추구해 보시게. 그럼 그게 새로운 호시절 아니겠나. 안 그래 친구? 그럼 난 이만 끊겠네.」
    뭐야 이거! 
    존티는 지 할 말만 하고서 전화를 뚝 끊었다. NB는 딱 한마디뿐이 못 했다. 저런 저런. 
    그야 어떻든. 갑자기 분위기 싸했졌는데, 허공에 붕 떠버린 이 자유 시간을 이젠 어떡한담. 어쩌면 좋단 말인가. 정말 존티 말대로... 워──워──워!  
    그 때문에 NB는 제일 가까운 곳에 누가 사느냐를 생각했고, 아아 친구 토마스가 있구나, 그래서 녀석을 만나러가려고 먼저 전화를 했다. 
   「어어. 이게 누구야. 웬일이니?」
   「왜 내가 전화하면 안돼?」
   「안돼긴. 반가워서 그렇지. 먼저 전화하지 않는 사람들의 특징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나도 사람 꽤나 만나봤는데 너처럼 친분이 일정 수준 이상인데도 불구하고, 먼저 연락을 안 하는 친구는 네가 처음이거든. 너 나 알지? 그런데 방금 뭐랬니? '왜, 내가 전화하면 안돼?'. 맞다 맞다. 그렇지 그렇지. 나 좋아하던 여자애가 먼저 전화해서 딱 그렇게 말했어. 대뜸 연락해서 말이야. '왜 내가 전화하면 안돼?'. 난 걔랑 썸만 탄 건데. 걘 날 많이 좋아했었는데. 그래도 그렇게 끝난 게 최선이네. 걔한테는 최선. 나한테는 아쉬움. 아니, 진짜로 아쉽단 말이 아니라. 내가 어떻게 해 볼 생각이었다면 가능했을 텐데 잘 참아서 풋풋한 기억으로 남았단 뜻이지. 그렇듯 고지에 깃발을 꼽지 않아서 오히려 아련한 회상이라도 할 수 있는 거고. 더티러브까지 갔으면 말 그대로, 에잇. 말 말자.
    하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면 모르는데 또 옛 생각나니까 입이 근질근질하구만 그래. 어떻게, 좀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말어? 마저 할 말이 또 있냐고? 없진 않지. 그럼. 못 다한 말이 얼마나 많았냔 말이지. 일단 그쪽 친구들은 아르바이트생 인연으로 만났어. 중간 건너뛰고. 최초로 남녀 커플이 먼저 있었지. 그렇게 남자쪽 친구들, 여자쪽 친구들끼리 감정의 교류가 많았는데. 결과적으로 그 수많은 노력 가운데 딱 한 인연만 부부로 맺어졌고. 어쨌든 그렇게 됐는데. 왜 나는 상대방의 노력에, 여자의 구애에 깍쟁이처럼 딱 그 만큼 이상은 절대로 넘어서지 않았느냐? 하면 다 이유가 있지. 없지 않다고. 그럼. 일단 그녀를 B라고 지칭하자면 내가 걔들 시트콤 친구들과 친구 파도타기로 미니홈피 친구가 됐던 시점이 딱 그래. 당시 양성애자 남자가 있었는데 걔가 여자 B를 짝사랑했어. 걘 아마 자기가 양성애자라는 거 커밍아웃하지 않았을 꺼야, 스스로에게. 그런데 어떻게 바깥에 커밍아웃을 하니, 웬만한 동성애자도 평생 커밍아웃하지 않은 경우가 태반. 그건 그렇고. 난 당시 B를 처음 알았지. 그때 양성애자 남자가 내게 진실을 털어놨어. B는 무반응녀다, 자길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B는 자기랑 딴 남자를 저울질했다, 그녀에게 다른 남자가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사귀지는 않지만 모두 다 어장 관리다 어쩌고저쩌고. 그때부터 B는 옅디옅게, 은근히, 지속적으로, 꾸준히 날 좋아했어. 다만 1위부터 꼴찌까지 순위가 올라갔다 내려갔다 그거만 반복했고. 그래도 차트에 오래 생존한 걸로는 뭐니 뭐니 해도 단연 최고. 양성애자 남자랑 둘이서 걔네 집 앞에 한두 번 갔는데. 여자는 자기가 좋아하는 남자가 있으면, 호감이 간다 싶으면 자동적으로 팔짱을 끼는 시늉을 하지. 확실하게 낄 단계는 아니니까 쓱~ 하니 신호만 보내는 거라고. 당연히 B도 그랬지. 또 단짝 친구랑 일터에 들려서 오빠 차 있네, 그러니 데이트해도 되겠네 그럴 수 있겠네, 굴러만 가도 괜찮은 똥차 중의 똥차만 있어도 난 얼마든지 좋아 그게 낭만이지 뭐야. ~라는 뉘앙스도 풍기고. 초콜릿 주고 초콜릿 주고. 어디 가면 자동차 옆 자리에 타고. 주변에서도 챙겨주고. 술집에서도 꼭 옆 자리에만 앉어. 그렇게 몇 년. 내가 어떤 직장 임시직으로 들어가니까 친구를 통해서 또 고백. 자기는 5미터 전방에 앞서가며 뒷모습 실루엣과 함께 단짝 친구의 대리 고백. 누구 어떻게 생각해? 중간에 또 친한 친구랑 2 대 1로 만나서 누가 좋냐, 망설임없이 오빠다 항상 오빠다 말할 필요도 없다. 단짝 친구 통해서 또 떠 보고 어쩌고. 나중 딴 직장에 또 임시직으로 들어가서 처음으로 1 대 1 데이트한 거. 핸드폰 문자로 왔다 갔다 주고받으면서 하는 말, 나 죽었어. 으잉? 나중 또 술자리에서 만나니까 쪼르륵~ 내 옆자리에 앉고. 앞에 또 덩치 마피아 하이에나 친구가 앉아서, 둘이 잘 어울린다고 하니까. 그러니까 내가 다른 사람은 다 몰라도 오빠는 아니다, 오빠 만은 아니다 다른 남자는 다 몰라도 오빠만은 아니라는 둥 어쩐다는 둥. 나중 여자 셋이서 섬에 놀러갔다가, 트라우마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그 시트콤 친구들 얘기 캐 보면 캐는 대로 계속 나온다니까.
    그런데 그 여자 동생들이 좀 그랬어. 남자친구 있어도 어장관리하는 성격. 딴 남자 끼고 내 남자 만나는 거. 완전히 결혼이 예정되면 내 남자한테 올인하는 건 좋은데, 그 이전에는 가능성을 열어두는 친구들이라고. 그 친구들이 다 그랬는데 어떻게 마음을 받아주겠니. 또 여자가 먼저 자기는 결혼하면 집에서 얼마 해 줄 거다, 너무 적지도 너무 많지도 않은 정확한 액수를 당당히 밝히는 일. 그거도 여자 입장에서는 고백이거든. 걘 2000 누군 5000 플러스 알파. 여자가 친구 통해서 사귀지 말고 바로 결혼하자 한 달 내에 결혼하자, 그거도 그거고. 또 술집 포장마차에서 생음악으로 트로트 장르 유행가를 불렀던 애. 걔네들 말괄량이였어. 막 들이대. 아휴~ 말도 마라! 좋은 듯 난감한 척하기도 힘들었지.
    그럼 대체 뭘 어장 관리로 봐야 할 것인가. 그 기준은 뭔가. 요즘에 어장관리 안 하는 친구도 있나. 그럴 수도 있어. 어장관리 안 하는 친구도 있긴 있더구만. 내 피앙세. 미니홈피 유행할 때 보니까 딱 알겠더라구. 이성 친구나 아는 동생 아는 오빠들 많으면 내가 인기 많다는 만족감? 우쭐감? 안정감? 흡족함? 그렇지만 알고 보면 그게 다 타석이더라고. 어차피 가능성 전부 열어놓은 거니까. 피앙세 같은 여자를 보면 억지로 떠밀려서 민폐 손님과 몇 번 만나 주는 거는 연습 게임. 남녀공학 학교에서 똥파리처럼 달라 붙는 애들 무리 가운데 제일 질기고 가장 끈질기며 최고로 집요한 애를 졸업하기 전에 몇 번 만나준 거랑 똑같이. 하나도 좋아하지 않으면서, 타고난 애교녀가 도무지 애교 부릴 마음이 동하지 않고, 웃지도 않고 차갑고, 말도 많이 안 하고, 남자도 웃기지도 않고. 스토커가 끔벅끔벅 차 한 잔만 마셔 주라고 해서 진짜로 차만 마시다 끝난 사이. 하던 시험공부나 열심히 할 것이지 자주 보지도 못하면서 꿈도 야무지게 말이야. 꼭 보면 타큐멘터리 인생 드라마를 보면 그렇게 맺어진 사이에서, 여자가 불감증 걸려. 불감증이 괜히 걸리는 게 아니야. 그러다 여자가 절정을 50 넘어서 겨우 알까 말까. 당연히 남자는 밖으로 돌지. 습관이자 취미처럼 돌겠지. 여자만 바보되고 인생 꽝 되는 거라고. 어차피 그녀 책임 절반. 물론 남자가 죽일 놈이지만. 어쨌든 걘 어장 관리 안 하더란 말이지. <여자는 그래요>에 한 발만 걸친 게 아니라 두 발 모두 다소곳이 평생 빼낼 마음이 없는 숙녀. 걔들은 한번 마음을 주면 웬만해서는 정 떼기 힘들어. 물론 마음 안 주고 몸 안 주었으면, 뒤통수 맞은 건 억울해하고. 그게 다 만나 주니까 그런 거라고. 일단 1 대 1로 만난다 라는 것. 애초에 커닐링구스, 펠라치오, 딥키스 하루 12번 육체적 사랑 날마다, 내가 바라던 얼굴이 바로 이 얼굴이다 라는 자신감 없으면 끌려가지 말아야지. 말리면 말린 사람만 바보. 나중 아아 이번 인생은 이러다 끝이구나 라면서 환멸하고. 이번의 내 여자 인생 여기까지구나 라면서 슬퍼하고. 엮이면 엮인 사람만 두고 두고 뱁새 미만과 그 주위에 다 똑같은 동류만 보게 될 테고. 목적녀나 성과녀로 남몰래 튀어도 문제지만, 너무 순진해도 탈이라 그거야. 때가 묻지 않았으니까 그녈 꿰찬 늑대야 뭐 좋긴 좋겠지만 말이야. 허허허. 대어도 어떻게 그런 대어가 다 있냐고. 허허허. 그렇게 연습 경기 같지도 않은 연습 경기는 지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작정하고 몇 개월 동안 친구랑 목표로 선정한 퀭하고 허접하고 매가리없이 생긴 자상남을 공략하는데 성공. 결과 분석하니까 타율 100퍼센트라 그거야. 아무튼,
    그런데 이게 무슨 냄새지?」
   「냄새는 뭔 냄새?」
   「너 향수 뿌렸니?」
   「하다 하다 넌 이제 전화기로 내 향수 내음까지 맡는 거니? 늬가 뭔 개코야? 어?」
   「워워. 진정하고. 너 심심해서 전화했지? 뭐해, 우리집에 놀러오지 않고.」
    그렇게 NB는 존티를 만나려다가 토마스네 집에 놀러갔다.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토마스네 집에 도착. 





    3

    그는 캐묻고 따지기 좋아하는 성정은 아니다. 단, 불리한 일만 빼고. 그런데 토마스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를 보는 순간. 조곤조곤 캐묻지 않을 수 없었다. 
   「너 뭐하니?」
   「뭐하긴 보다시피!」
    토마스는 자기 집 정원에 있는 미니 수영장 바닥을 미니 포크레인으로 파고 있었다. 둥둥둥둥~ 바닥을 쪼고 있었다. 미니 포크레인의 코끼리 코 끝에 뭘 결착하느냐에 따라 몇 가지 부착물이 있듯이. 그거 뚫는 뭔가를 붙여서 미니 수영장 바닥을 뚫고 쪼고 파헤치고 있었다. 
   「토마스. 늬가 무슨 딱따구리니? 거길 왜 파?」
   「그럼 내가 탐 크루즈냐? 아님 제이슨 본이니. 다 팔 만하니까 판다. 너 왔으니까 이제 좀 쉬어야겠다.」
    그러면서 토마스는 미니 포크레인에서 내려왔다.
   「뭔데 이리 난리야? 뭔데 그래? 뭐야? (NB는 미니 수영장 바닥을 살펴봤다) 에게~! 아무것도 아니잖아?」
   「아니긴 뭐가 아니야! 헛소리 집어치우고. 어? 됐고. 그러지 말고. 우리 놀러 가자.」
   「말 돌리지 말고. 대체 뭐야?」
   「듣고 싶어? 듣고 나서 감당할 자신 있어? 어?」
   「아 웃기지 말고. 어서 말이나 해.」
   「허허. 다름 아니라. 그 뭔 영화더라. 자기 집 정원에 삽과 포크레인으로 구멍을 파헤쳐서 어쩌고저쩌고.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그러다 끝나는 영화. 그 영화의 결말이 기억나지 안아서. 그래서 파 보는 거야.」
   「정말이니? 나 그 영화 결말 아는데.」
   「그래? 뭔데? 뭔데 정말? 그래서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됐어?」
   「열린 결말 아니야. 미안하지만 해피 엔딩이 아니라고.」
   「그래? 그럼 그만 파야겠다. 에잇 괜히 팠잖아?」
   「그러게 멀쩡한 수영장 바닥을 왜 파니? 늬가 뭔 두더쥐니?」
   「내가 두더쥐는 아닌데. 그런데 넣을 구멍이 없어서. 농구공은 농구 골대에 넣어봤고. 골키퍼 있어도 축구공을 골키퍼 다리 사이로도 넣어봤어. 그런데 최근 에잇 말 말자.」
   「죽은 말에 채찍질하는 격. 힘 빼지 말고.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 물 들어왔을 때 노 저어야 하니까. 알겠니?」 
   「그럴까? 내가 어디에 홀렸나? 내가 정말 왜 이랬지? 그렇지만 에너지를 어딘가에 허비하지 않을 수가 없거든. 거 참 나 정말 이거 원. 뭐라도 해야 하나? 그런데 하긴 뭘해. 누가? 내가? 내가 왜! 하긴 왜 해. 안 해. 귀찮어. 기분도 별로. 누가 재촉하는 거도 아니고. 명분도 그닥. 별로 내키지도 않아. 별달리 성화하는 분위기도 아니잖아. 안 그래? 안 그러긴 뭐가 안 그래. 혼잣말도 재미없다 재미없어.」
   「그러고 보니 너 정말 이상한 취미가 생겼구나. 아무래도 상태가 좀 안 좋은 거 같은데? 많이 안 좋은 거 같다고.」
   「응. 늬가 봐도 그렇지? 제대로 봤네. 나 상태 안 좋아. 그런데 뭐. 뭐? 남이사 뭘 하던. 남의 인생.」
   「우리가, 남이가? 우리가 남이냐고. 서운하게 정말 이러기야? 사람 섭섭해지네. 너 설마 내 험담하고 다닌 건, 아니어야 할 텐데.」
   「됐고. 나, 사랑하고, 싶어.」
   「아 쫌!」
    그래서 토마스와 NB는 동네 친구 폴네 집으로 놀러갔다. 





    4

    폴의 집. 토마스, 폴, NB. 
    세 친구는 맥주 마시고, TV 보고, 게임하고, 그러다 폴네 집 마당에서 고기 구워 먹으면서 그날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토마스와 NB는 오늘 폴 네 집에서 자고 자기로 했으니까. 
   「내가 저번에 그 얘기 했니?」
   「무슨 얘기?」
   「나 있지 옛날에 대학교 다닐 때, 학과 후배가 오리엔테이션 가서 똥싼 거.」
   「넌 왜 그 얘기를 지금 하고 그래? 어서 해 봐 어서 해 봐. 뭐해, 빨리 말하지 않고!」
   「이 자식이... 넌 꼭 그런 얘기를 지금 해야 속이 시원하겠니? 어? 아 뭐해 빨리 말하지 않고!」
   「허허. 난 2학년 걘 1학년. 우리들끼리 밤에 모여서 술 마시며 진실게임, 왕게임, 술게임을 하고 있었지. 그런데 걔가 필름이 끊겼나 봐. 걔가 술게임하다 갑자기 바지랑 팬티를 내리더니, 아 여자가. 것도 새파란 스무살. 꽃다운 여대생 1학년이. 우리들 앞에서 빤하게. 걔가 갑자기 바지랑 팬티를 내리더니, 그 뭐야? 아, 우리가 먹던 소세지 야채 볶음. 맛있었어. 요리사가 꿈이던 친구가 정성들인 특급 요리였거든. 그런데 있지, 걔가 그 후라이팬에다 대뜸 똥을 싸네? 그럴 줄 누가 알았겠니! 그러고 나서 술 취해서 그대로 골아떨어져서 옆자리에서 잠들고. 그게 다야. 우리만 그거 뒷처리한다고 난리났지. 판 깨고. 분위기 파장이고. 그런데 더 이상한 게 뭔 줄 아니?」
   「뭔데?」
   「뭐냐고 묻지 말고 말을 해, 말을. 어? 어서 말을 하라고 이 친구야.」
   「허허. 그거 뒷처리하면서 막 투덜거리고 짜증내거나 딱 그래야, 드라마 전개 상으로는 그래야 정상인데. 거기 모인 우리가 이상했던 걸까? 우린 모두 말수가 줄어들다가 뚝 끊겼어. 그러다 실없이 웃고 막 그랬거든. 있지 얘들아, 그런데 또 이상한 게 뭐냐면. 그 가운데 한 명은 울었어. 그런데 걘 또 왜 울었는지, 난 그걸 아직도 모르겠다. 참 알다가 모르겠다니까.」
   「뭐 그럴 수 있어. 잠시 당사자 챙피하고, 다음 날 당사자가 말 걸면 어색하게 웃을 듯 말 듯 겸연쩍어 하면서 피하고. 그래도 시간 지나면 괜찮아져. 모든 건 시간이 해결해 준다고.」
   「그런데 나도 그거랑 비슷한 일 있었어.」 NB는 이렇게 말했다. 
   「뭔데?」
   「너 설마 바지에 똥쌌냐?」
   「아니 나도 삼류 대학교 다닐 때. 1학년 때 성적 안 좋아서 학사경고 누적되어 다음 해에 재입학. 그래서 95학번인데 96학번이랑 지냈지. 94학번이 1회 입학생이고. 그렇게 94, 95, 96학번 셋이서 놀러갔어. 그렇게 MT를 갔다고. 그러다 으쌰으쌰 자기들끼리 어쩌고저쩌고 할 때 난 단짝이랑 무리를 이탈해서 산으로 올라갔지. 그러다 산에서 주인없는 카페를 발견했고, 그 버려진 카페 있잖아. 그런 거. 그런데 내부에 술이랑 그런 건 그대로 남아 있고. 스무살이면 한참 맨발의 청춘 아니니, 한창 때 아니냐고. 그래서 그 카페에서 웬 양주가 보이길래 단짝이랑 나랑 그거 각자 1병씩 갖고 나왔고, 산 중턱에서 둘이서 그거 마셨어. 응? 병나발! 해 봤지? 안 해 봤으면 해 보던가 말든가. 그렇게 깡 위스키. 그러다 난 필름끊겼고. 걔가 업어서 날 애들 모여있는 데로 데려갔고. 막 저체온증 걸린 날 애들이 주물러주고 조물딱조물딱 주물러주고 어쩌고. 나중 들었더니, 나 인기 많았나 봐. 말이 그렇다는 거고. 허허. 그렇게 하루 꼬박 지나서 난 깨어났어. 그때 나도 자세한 건 물어보지 않았는데, 아마 나도 그랬던 거 같아. 바지랑 팬티 내릴려는 시도까지만 했을 수도 있고. 아님 끝끝내 실내에서 오줌누는 장면을 모든 사람들 보란듯이 보여주었을 수도 있고. 나도 딱 그랬어. 그래도 꿋꿋이 이겨냈지 뭐. 살다 보면 그런 일도 있는 거지 뭐. 그런데 그런 일 또 있어.」
   「뭐 또?」
   「또? 이 자식이...」
   「왜 얘기하지 말까? 얘기하지 말라면 얘기하지 않고.」
   「이거 왜 이래? 칼을 뺐으면 무라도 썰어야지.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됐어? 아니 그래서가 아니지. 뭔 일이 또 있는데? 빨랑 말 안 해?」
   「어. 알았어 알았어. 허허. 2008년이던가. 애들이랑 1박 2일로 별장에 놀러갔는데. 놀고 나서 밤에 잘 때. 사고뭉치 친구가 자다 깨서 깜깜한 방 안에다 오줌을 누네? 내게 기억이 각인됐고. 나중 그 사고뭉치가, 걘 입만 열면 손만 까딱하면 민폐이자 하자에다 진상이거든. 그래서 나의 사랑스런 피앙세가 우리들 친구와 잤다며 망발하기를 서슴치 않았고. 그 트라우마 치유하느라 난 집에서 혼자 술 마시다가 수없이 오줌을 누었어. 집에서 나 혼자 술 마실 때마다. 내 방에다. 거실에다. 컴퓨터 뒤에다. 의자 옆에다. 옷장 옆에다. 도대체 몇 번인 줄 셀 수가 없었지. 한동안 그러다 멈췄어. 하다 하다 딴 친구 집에도 오줌 눴는지, 그건 뭔가 불확실한데 뭐 넘어가고.」
   「너 개냐?」
   「개는 잘 가려. 얜 사람이고.」
   「그런데 난 개들이 오줌누고 똥누는 거 보면 기분 좋은데. 너넨 안 그러니?」
   「난 고양이 안 좋아해.」
   「난 개 보면 무서워. 우리 조카가 딱 그러는데. 막 겁먹고 엉엉 우는데, 나도 걔랑 약간 비슷해. 허허.」
   「그런데 우리 똥 얘기 이제 그만하면 안 되니? 이거 고기 먹는 자리에서 꼭 그런 얘길 해야겠니? 우리가 무슨 초딩이야 뭐야? 어?」
   「늬가 시작했어.」
   「너도 거들었잖아.」
   「제일 신나게 들었던 게 누군데?」
    그렇게 폴네 집에서 세 친구는 재밌게 놀았고, 다음 날 헤어졌다. 





    5

    다음 날. NB는 헨델의 실내 이중창곡 ‘그대만을 바라보다 길을 잃었네’ HWV178번을 들으면서 집으로 갔다. 
    사랑의 본질과 흑심의 본색에 대해서 생각할려다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여심이 무엇일까 궁금해 했고. 
    별다른 일 없이 무사히 집에 도착했다. 
    그런데 집 앞에 웬 똥이? 뭐야 새똥이야 개똥이야! 
    그 근처에 잔디 깎는 기계, 잔디 깎는 기계도 종류가 많지만 그 가운데 제일 간단하고 제일로 허접하며 제일로 구닥다리인 골동품. 그게 세워져 있었다. 
    뭐야, 그럼 사람 똥이잖아? 왜냐하면 최근 웬 이상한 사람이, 상태가 영 안 좋아 보이는 기인이, 아마도 미친년일지도 모를 숙녀가 NB에게 그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오빠. 제 환상머신이랑 오빠 차랑 바꿔요. 왜요, 이게 잔디 깎는 기계처럼 보이나요? 아니에요. 이래뵈도 타임머신 저리 가라라니까요. 일단 타 보시라니까요. 말 마시고요. 왜요, 제가 좀 상태가 이상해 보이나요? 저 멀쩡해요. 저 트라우마녀 아니라고요. 그런데 세상에, 아니 벌써 까마득했던 할 말이 여기서 바닥나다니 뭐야 이거. 저런 저런. 내가 오빠한테 하고 싶은 말이 그 얼마나 많았는지 아세요? 네? 아시냐고요 모르시냐고요! 제 장래 희망이 뭐였는 줄 아세요? 그걸 오빠가 어떻게 알겠어요, 자기 장래 희망도 모를 텐데. 하여간에 인생은 엉망이고 상상력은 손해가 막심하고. 그럼 사랑마저 염증을 느낄려나? 그래도 기쁨을 감추지 못하길 원하신다면. 그렇다면 제가 가진 허름한 잔디머신과 오빠 볼보 웨건이랑 바꾸게요. 네? 
    왜요, 별로 내키지 않나요? 그럼 거절하시면 돼죠. 상대방 기분 나쁘지 않도록 뭘 그렇게 쩔쩔매고 그래요? 싫으면 싫다 꺼져라 닥쳐라, 네? 너나 잘해 어디서 지적질이야, 어? 네? 그러니까 세상 사람들이 다 오빠를 만만하게 보는 거죠. 안 그래요? 저 봐요 절 보라고요. 전 아무도 못 믿어요. 어떻게 믿어요? 누구도 못 믿죠. 그럼요. 허허허. 그 냉소를 따스히 쓰다듬어, 포근히 애무하고, 사랑스럽게 애정으로 포장하면 어떠냐구요? 그럼 다시 쾌활한 말괄량이로 변신할 수 있다구요? 사랑은 없어요. 사랑이 어딨어요. 사랑은 변한다구요. 사람마저 왜 안 변하겠어요. 모든 것이 변해가는 거죠. 그럼요. 물론 웬만하면 그렇다는 말이지 진짜로 다 그런 건 아닐 테구요. 오빠 가만 보니 순진하시네. 거짓말도 잘 못하시겠구만. 아닌데. 알고 보면 오빠 같은 사람이 세상물정에 눈 뜨고 나면, 그럼 꽤 괜찮은 허풍꾼이 되는데. 알고 보면 딱 이런 인간이 난봉꾼으로 딱인데. 아닌가? 아닌 게 아닌가. 
    뭐, 너나 사랑 많이 하라고요? 사랑할 수 있지만 귀찮게 뭐하러 그래요? 어차피 사랑은 차갑게 식고 말 텐데요 뭘. 하긴 저 그런 여자 아니에요. ~라는 말을 할 기회도 없고. 말하고 싶지도 않고. 말한 적도 일절 없었고. 그런데 제가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 거죠? 어머머. 내 정신 좀 봐. 이런 멜로드라마 같은 전개. 너무 진부해요. 기승전결없이 무작정 절정. 뜬금없이 흥분. 밑도 끝도 없는 줄거리. 짜증나요. 재미없어요. 알 게 뭐에요. 식상하다고요. 안 그래요? 저도 이런 똥차 싫어요. 이런 거 새 차로 몇 백 대를 가져와 봐요, 내가 눈 하나 깜빡하나 보게. 누군 뭐 얼마나 좋아서 이빨 까는 줄 아쇼? 내가 뭐 미친년인가. 오빠가 바보네. 것도 사랑의 바보. 그러지 말고, 어디 오빠의 연애사나 들어봅시다. 그 잘나신 사랑의 설을 좀 풀어보시라구요. 왜요, 이야기 보다리를 풀어놓자니, 내가 오빠를 덮칠 거 같아요? 안 그래요. 아니에요. 저 처녀에요. 그럼요. 호호호. 전 사랑을 아직 모른답니다. (············어쩌고저쩌고············)」
    어떻게 잘 꾸미고 옷만 잘 입고. 그러면 썩 괜찮은 아가씨로 보일 텐데. 원래 상태가 이상한 건지 어떤 건지 알 수가 있어야지. 언젠가 그런 일이 있었다. 마치 길에서 갑자기 낯선 여인이 전화기를 빌려달라는데, 차림새를 보자마자 상태가 안 좋아 보이는 사람처럼. 오다가다 만나서 말 몇 마디 섞었는데, 전형적인 사기꾼의 달콤한 수작이랄지 자연스러운 과정도 없이 무턱대고 오빠 거랑 내 꺼랑 바꾸자는 정직함. 솔직함? 마구잡이 떼쓰기. 살면서 어쩌다 한 번쯤 만나게 되는 그런 일들. 그도 그랬다. 뭐 그런 일도 있고 보통은 아무 일도 없고. 
    살다보면 부득이한 일도 없지 않고. 바나나 껍질 밟은 셈 치지 뭐. 새똥 맞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한편 다시 생각해 보니 상태가 안 좋은 낯선 아가씨의 말발, 꽤나 대단했다.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운 좋게 얻어걸린 발단이 신나는 전개로 이어지지 않은 채, 하필 똥으로 끝나서 그렇지. 그래도 사교계의 입담꾼으로 간판격인 아가씨. 본 게 어디고 만난 게 어딘가. 그녀 입장에서 체면치레 했을지 못 했을지 몰라도. 화사한 행운을 벌충할려면 뜬금없는 일도 액땜으로 여길 줄도 알아야 하는 법. 그래서 희박한 우연의 일치를 살짝 재밌어하는 듯 말 듯 하다 그는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그걸 가지고 무슨 상징이니 징후니 생각해 봐야 머리만 아프니까 말이다. 





    6

    NB는 생각했다. 바지에 똥을 싸지 않는 이상 우물 안이라는 컴포트 존을 벗어나는 건 힘들지도 모른다는 걸. 친구들이랑 한참 그 얘기 때문에 당분간 썩 뭔가 괴로울 듯 한데, 또 다시 이 와중에...! 당분간 곤혹스런 기억을 이겨낼려면 고생깨나 해야 할려나. 만에 하나! 점점 초딩들 좋아하는 거만 생각하다 아예 응애응애 기저귀 차면 어쩌지? 사람팔자 알 수 없다고 그때 되면 또 어떻게 다 풀어나가겠지. 걱정도 팔자다. 사전에 대비하고 미리미리 내일의 행복을 준비하는 건 좋다만. 엉뚱한 공상 때문에 극도의 난처한 망상을 사서 할 필요까진 없었다. 
    자, 그러면 그 다음에. 그래서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됐어? 어떻게 돼긴 뭐가 어떻게 돼. 누가 뭘 어떻게 하냐고. 입도 뻥긋하지 말고 행동하기 밖에 방법이 없는 거지. 따라서 그는 하는 수 없이 혼자 놀 수 밖에 없었다. 자기도 모르게 수순이 그렇게 됐다. 나도 모르게 생각의 흐름이 그렇다는 걸 NB도 인정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혼자 포스트잇에 글씨를 써서 사용하지 않는 모니터 위에, 포스트잇 3장을 붙였다. 혹시 모르니까 구상과 착상에 도움될 거 같았으니까. 즉 거기 뭐라고 씌여있었나 하면 이랬다. 
    1. 땅 파기
    2. 구멍에 넣기
    3. 마빡에 글씨 쓰기
    4번 페인트 바르기는 생략하고. 
    이 세 가지에서 해 본 거 안 해 본 거. 직접 본 거 못 본 거. 뭘 해야 하나. 다 귀찮다. 재미없다. 대단한 허풍선이요 하찮은 행동가, 그것도 다 옛날 얘기. 
    그런데 바로 그때. 
    마라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환상문학 잡지 미스테리아. 
    거긴 대체 뭘 먹고 사는지는 몰라도 어쨌든 마라 일당들이 일을 하긴 하는데 뭔 일을 하는지. 그는 아직도 몰랐다. 
    그래도 이따금 업계 동료의식도 들고 구경 가는 재미도 있으니 간혹 들르긴 했다. 
    그러다 한동안 뜸했던 거고. 그래서 마라는 미끼를 던진 거고. 그는 미끼를 물어서 결국 자신이 대어가 아니라 잡어임을 마라한테 증명하면 그뿐. 
    그렇게 그는 환상문학 잡지 미스테리아로 갔다.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도착. 
    마라의 편집장실에 도착. 
    마라는 생리대로 코를 풀고 있지도 않았고, 탐폰으로 귀를 후비고 있지도 않았다. 
    단지 고위급이 앉는 그런 중후한 의자가 뒤로 돌려져 있었을 뿐. 
   「인기척을 더 크게 하리? 뭐하니? 너 설마... 남자 생각하니? 그런 거니?」
   「」
   「왜 말이 없어? 못 본 척하면 다야? 모른 체하면 그만이냐고. 응?」
   「」
    그는 의자 곁으로 갔다. 역시나 마라가 앉아있는 게 아니라 사람 크기 인형이 앉아있었다. 
    그때 마라의 친구인 지아니가 편집장실로 들어섰다. 
   「어? 늬가 여기 웬일이야?」
   「오빠는 여긴 웬일인데? 마라 언니 휴가 갔어. 것도 멀리.」
   「뭐라고? 난 마라 전화 받고 왔는데.」
   「장난전화겠지. 인공지능 사람 목소리 복제하기 어플리케이션. 몰라?」
   「맞아. 뭔가 이상하다 했다.」
   「그럼 이제 우리 둘이 허니문 떠나면 되는 거야?」
   「뭐?」
   「왜. 나 싫어? 싫지 않잖아?」
   「너 원래 이렇게 도발적이지 않았잖아? 왜 그래? 요즘 외롭니? 그런 거니? 누구, 괜찮은 남자 소개시켜줘? 내가 아는 남자들이 좀 많니.」
   「다른 남자들 말고. 오빠. 응? 난 오빠.」
   「어허. 사람 놀리지 마. 괜히 들었다 놓지 말라고. 호기심에 고양이가 데이거나, 장난삼아 던진 돌맹이에 개구리가 옥고를 치르거나. 알잖아.」
   「오빠. 그런데 얼굴이 못 본 사이에 많이 초췌해졌다. 오빠 원래 그렇게 얼굴이 퀭했어? 완전 이건 퀭 중에 퀭이네. 안 그래, 오~빠!」
   「다크서클. 이거 곧 없어져. 해변에서 일광욕 좀 하고 비키니 구경도 하고. 다 어디 가서 놀러오라는 신호겠지 뭐.」
    (잠깐. 지아니의 대사가 살짝 길어졌음)
    (많이 길어졌음)
    (그래서 지아니의 긴 대사는 따로 칼럼으로 엮음)
    (칼럼 제목 : 나이와 비례하는 피부. 체모. 군침)
    (다시 지아니의 대사로 이어가서)
    그런데 내가 오빠한테 애액 얘기를 왜 하고 있지? 오빠 때문이잖아?」
   「그게 왜 나 때문이니?」 
   「오빠 때문이라면 좀 오빠 때문인 줄 알어. 어?」 
   「그래? 응. 아, 나 때문이구나. 미안 미안. 귀에서 피가 나서 나도 모르게 그만 깜박했어. 미안. 내가 죄인이다 내가 죄인이야.」
   「그렇지? 그렇지? 그럼 뭐 우리가 질외 사정을 논해야겠니? 어? 그건 아니잖아. 안 그래? 그러지 말고 이거 받아.」
    그러면서 지아니는 웬 봉투를 내밀었다.
   「이게 뭔데?」
   「뭐긴 뭐야. 여성환상 1.5에서 의뢰한 칼럼이지. 애액 충분히 나올 때까지 남자들이 느긋하게 기다려 줘야 한다, 그렇지만 그거 다 기다리다간 남자들 풍선 사그라들지도 모른다 판 깬다 어쩐다, 그러므로 액션 영화 말고 약간 애매한 영화 한 편을 같이 보는 게 딱이다. 또는 새벽에 여자가 고조되었을 때 남자가 깨어나서 달리는 게 최적이다. 사랑이란 일단 애무만 길면 절반은 먹고 들어간다. 그렇다고 마빡에 뭘 쓰고 다니란 말은 아니다. 물론 새벽녁에 여자가 뜨겁다는 전제 하에. 그게 아니라 여자가 꿀잠 중에 불쑥? 그건 여자 입장 뿐만 아니라 기본적으로 예의가 아니지만. 기억을 더듬어 보자면 10대 때 딱 1번 약한 몽유병 때문에 부모님 방에서 잤다가. 새벽에 깨서 뭔가를 느끼고 쥐 죽은 듯 다시 잤다는 기억 같은 거 포함되면 좋고. 무슨 말인지 알겠니? 응, 오빠! 그러나 사랑도 일이긴 하다. 배고픈 개는 더러운 푸딩도 먹는다. 고양이가 배고프면 빵 껍질에도 만족한다. 배고프면 딱딱한 콩도 달다. 허나 배부르면 만찬도 지겨울 수 있다. 그런 거. 응? 그런 거 말야.
    그런 칼럼 하나 써달라는 거지. 아, 일하라고. 오빠 돈 벌어야 할 거 아냐? 이 오빠가 말이야, 어? 고양이가 생선은 먹고 싶어 하면서 발을 적시기는 싫어하네. 응? 지금 어디서, 손 안 대고 코 풀려 하고 그래? 응? 오빠가 지금 찬 밥 더운 밥 가릴 땐 줄 알어? 어? 오빠. 우리 그러지 말자. 응? 응, 오빠. 왜 또 듣고 싶니? 오빠. 오빠. 오빠. 얼마든지 해 줄께. 돈 드는 거도 아닌데 뭘. 오빠. 오빠. 오빠. 먹고는 살려면 다 그런 거야. 어? 그런데 이거만 알아둬.」
   「뭘? 뭘 알아두라고.」
   「나 지금 젖지 않았다는 거. 꿈도 꾸지 말라고.」
   「아 정말! 꿈은 너나 꾸지 말어. 흥!」
    그러면서 지아니는 지 할 말만 하고 나가버렸다. 
    그는 농락 당할 만큼 당해버렸다. 아주 그냥 너덜너덜해져벼렸다. 
    그런데 그게 썩 싫지는 않았다. 오히려 기분이 그 어딘가로 외출해버렸다고나 할까?
    어쨌든 그렇게 NB는 일감을 챙겨서 집으로 돌아갔다. 





    7

    말싸움에 탐닉하고 트집잡기에 집착하는 코뿔소. 우기기 좋아하고 따박따박 말대꾸하는 걸 싫어하는 고집불통 황소. 물과 기름처럼 자석의 같은 극처럼 문명을 밀어내는 호모 사피엔스 본능.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언제 본색을 드러내는가. 그야 모르겠고. 뭔 얘기인 줄 하나도 모르겠지만, 그걸 말하고 듣고 읽고 관심을 끊지 못하는 사람은 또 뭐냐고. 곧 있으면 인생의 경이로운 광채가 포문을 열든 말든. 기막힌 환희에 대한 반발심으로 갑자기 동네 똥개가 똥 마렵든 말든. 그야 남의 일이고. 어쨌든 평소 같으면 얼씬도 하지 않을 탐문. 그게 무엇인고 하니, 그건 바로 햄버거를 파는 피자가게 방문이었다. 
    소문이 어떻게 퍼졌는지는 몰라도. 그 피자가게에서 포장한 피자를 사 들고 이동하여 집에서 그 박스를 풀었을 때. 만약에 햄버거가 들어있으면 로또 복권에 버금가는 행운이 찾아온다는 뭔 믿거나 말거나 미신이 퍼졌던 것이다. 더 말할 것도 없이 왕 뻥이요 개 구라에다 밑도 끝도 없는 거짓말. 그렇지만 개도 풀을 뜯어먹고 고양이마저 이따금 잡초를 뜯어먹을 때도 있긴 있다. 호랑이가 배고프다고 풀을 뜯어 먹진 않겠지만 말이다. 그러므로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몰입감 때문에 NB는 피자집 문턱이 닳아질 새라 아예 출근하다시피 피자를 먹어댔다. 날이면 날마다 피자만 먹었다. 될 대로 되라는 분위기까정 아니고. 그렇지만 자연의 법칙이 뭔가, 싫증 아닌가. 곧 그것 역시 금새 지겨워졌다. 한동안 진득하다 그랬지. 
    그래서 그는 여기서 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슬럼프를 이겨내고 다시 피자 식탐에 중독됐다. 이 음식 저 음식, 맛난 음식에 과도하게 몰입했다. 그 가운데 최근에 유독 피자에 대한 탐닉은 끈질겼다. 그게 아마 동네를 산책하다가 동네 똥개가 피자 1조각을 물고서 어딜 바쁘게 가고 있는 모습을 보고 반했기 때문일까? 그걸 누가 알겠나. 앞 문단에 나온 그 피자집 말고 그는 여러 피자 가게를 전전했다. 
    그러던 어느 날. NB는 대중적인 피자 브랜드 가게에서 피자를 먹다가 친구인 자콥 커퍼필드를 만났다. 
   「자콥 너 여기서 뭐해?」
   「너야말로 여긴 웬일이야? 여기 늬 구역이니?」
   「늬 구역 내 구역이 어딨어? 우리가 무슨 느와르 영화에 나오는 쫄따구니? 겉으로만 보면 넌 보스. 그럼 난? 나야 행동대장에 오를 뻔 말 뻔 부침이 심하다, 결국 팽당한 걸로도 모자라 말단 구석자리로 밀려난 넘버 쓰리. 그런데 피자는 많이 먹었니?」
   「피자? 아니 별로.」
   「왜? 피자집에 온 건 피자를 먹으로 온 거 아니야?」
   「피자가 더럽게 맛없더라고. 허허. 농담이고. 요즘 입맛이 없어. 입맛만 없는 게 아니라, 뭘 해도 재미없어. 너 뭐 재미난 일 없니?」
   「재미난 일? 많지. 그런 거면 날 찾아왔어야. 그거 내 전공이잖아. 넌 꼭 가만 보면 번짓수도 제대로 못 읽더라.」
   「재미난 일이 뭔데?」
   「재미난 일? 두 가지가 있지. 아니 세 가지. 
    첫째, 구멍에 넣기 일명 구멍치기라고 하지. 
    둘째, 땅 파기 즉 어딜 파고 무얼로 팔 것인가는 네가 정하는 거고. 그리고 
    셋째. 너가 최근 몹시 염원하는 뭔가가 있니? 없으면 기다리고. 만약 바라는 소망이 있다거나, 희구하는 목표가 있으면 그걸 이루는 방법. 딱 있지. 딱 있어. 그게 셋째야. 그게 셋째라고. 
    그건 뭐냐, 기대하는 게 만약에 햄버거 많이 먹기 대회 1등이다 라고 했을 때. 목표로 하는 구체적인 대상을 이마에 써. 어? 매직펜으로 이마에 햄버거왕, ~라고 쓰라고. 어? 아니면 거창한 거 바라지도 않고, 귀엽게 그냥 허풍대회 입상 정도? 이마에 써, 허풍 지존이라고. 어? 물론 벼락부자랄지 마술사랄지 어이없는 걸 바라면 당연히 어림 반푼어치도 없고. 그게 아니라, 그나마 미약한 희망이랄지 미세한 가능성이라도 존재한다면. 바로 그 셋째 방법이 확률을 높여줄 거라는 건 불을 보듯 뻔하고. 어때? 뭐 바라는 거 있니? 기다리는 무슨 도전장이나 방어전이라도 있니? 있어? 있어 없어? 없으면 나랑 같이 놀고.」
    그렇게 해서 NB와 자콥은 근처 바로 자리를 옮겼다. 





    8

    해질녁이 가까와 지는 시간. 행복도가 밋밋한 바닥 기어가기에서 완만한 상승세로 전환하려는 시점. 일찍 달리기로 한 것이다. 이런저런 사는 얘기도 할 겸 그들은 근처 바, <너만 알고 있어>에 자리를 잡았다. 
   「자콥. 난 있지. 요즘 꿈이 잘 기억나지 않아. 그래서 말인데 혹시라도 내가 꿈에서 널 깠더라도 날 이해해 줘. 아울러, 만약 네가 험담해도 나는 함구할께.」
   「그게 무슨 개 풀 뜯어먹는 얘기야? 뭔 개소리냐고. 시작부터 이러기야? 진정해 친구. 천천히 몸부터 풀자고.」
   「뭐 몸을 풀어?」
   「또 또 또. 재밌기 그지없군 그래. 아까 너가 말한 방법 때문에 넌 재밌는가 몰라도 난 그냥 그래. 내가 너무 진지한 걸까? 자네가 나보다 더 잘 알지 않나. 안 그런가?」
   「너 최근 여자 생겼니? 새로운 여자? 생겼네 생겼어. 말 해 말 해. 어서 말 안 하고 뭐해?」
   「하여간에 눈치 하나는 끝내준다니까. 원래 넌 왔다 갔다 종잡을 수 없어. 가만 보면 직감이 끝내주던가. 아니면 속으로 뭔 생각을 하는지 말 끝을 흐리고, 말하는 도중에도 막 뭔 생각을 엄청 해.」
   「됐고. 말 돌리지 말고. 날 떠볼려고도 생각 마. 어떤 여자야? 기가 세? 기 빨려? 아님 기 받어?」
   「무슨 벌써부터 기 받고 기 빨리고 그걸 생각하니. 이제 겨우 탐색전일 뿐이야. 이제 시작이라고.」
   「이제 겨우 전초전 근처에도 못 간 데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만날지조차 확실히 모른다? 늬가 그러니까 안 되는 거야. 알어? 늬가 그러니까 매번 차이는 거라고. 어? 그러니까 확실하게 노선을 정해. 벼락치기일 것이냐, 간격 효과일 것이냐. 어? 티 좀 내 임마.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 응?」
   「내가 다 알아서 할께.」
   「다 좋다 이거야. 다 좋다고. 허허. (......시선 전환......) 그럼 난 우리 바텐더와 독대해야지 뭐. 우리 바텐더 아가씨~! 바텐디스란 말이 있나 없나는 몰라도. 여기서 이러고 있을 숙녀가 아니신데. 떴어도 진작 떴어야 마땅하신 분께서 왜 여기에! 요즘 한참 TV에 나오고 연예계를 뜨겁게 달군 누구보다 훨씬 이쁘네. 나 아까 따질라 그랬어. 다짜고짜 소리 지를려고 했다고. 여기 무슨 미녀대회 우승자만 바텐더로 뽑냐고. 진짜로 멱살잡고 사장이랑 싸울 뻔 했다니까. 겨우겨우 참았다고. 우리 같은 아저씨 동네 노땅 말수 없는 늙다리들이랑 그래도 좀 말이 통하려면, 응? 그래도 20대 후반이나 30대 숙녀가 제 격 아닌가? 갓 스무살 뽀송뽀송 애기를 떡하니 뽑아놓으면 우리가 쳐다보기 아깝고 민망해서 어디 말이나 제대로 걸겠냐고. 안 그러유?」
   「하여튼 말만 말만 그냥...」
   「그런데 하나 궁금한 게 있소, 바텐더 양반.」
   「궁금한 게 뭔데요, 오빠!」
   「저쪽에 저 꽤 멋지게 보이는 손님.」
   「아 저분이요?」
   「저분 별명이 혹시 발렌타인 30년 아니요? 아님 조니워커 30년산인가?」
   「어머머 어떻게 아셨어요?」
   「어떻게 알긴 뭘 어떻게 알아 이 친구야. 저 친구 이마에 씌여 있네. 발렌타인맨이라고.」
   「네? 농담은 참.」
   「야 자콥. 넌 보이지 않니?」
   「뭐가? 마빡에 발렌타인맨이라고? 너 마침내 미친 거니? 이거 이거 축하해야 하니 답답해 해야 하니?」
   「아 농담하지 말고. 진짜로. 정말이라니까 그러네.」
   「하늘에 두고 맹세할 수 있어?」
   「하라면 할께. 걸라면 걸고. 판돈은 부족하지만 못할 거 없다 이거야.」
    그런데 그때 저쪽에서 가죽점퍼 입은 발렌타인맨이 다른 바텐더와 게임을 하다 졌기 때문에, 다른 바텐더가 왼 손을 펴서 발렌타인맨 이마에 대고, 오른손으로 왼손의 가운데 손가락을 당겼다가 빡~! 그걸 보고 나서 NB는 식겁했다. 깜짝 놀랐다. 왜냐하면 그가 봤던 포스트잇, 발렌타인맨이라고 씌여진 포스트잇이 그분 이마에 붙여져 있었는데, 바텐더의 가운데 손가락과 포스트잇의 영상이 겹쳐져버렸기 때문이다. 뭐야 내가 헛것을 본 거야? 라면서 NB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때문에 NB는 더 이상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그대로 말할 수 없었다. 서로 보는 눈이 다르고, 받아들이는 현상 역시 다르니까. 
    즉 악마로부터 오는 것은 악마에게 돌아가는 법인데. 이게 웬 봉창 뜯는 일이냐고. 사과는 나무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는다는데, 어떻게 이런 신통한 요술 같은 천리안이 자신한테 계승될 수 있냐 그거지. 좋든 싫든,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 그러니 배겨낼 턱이 있나. 일단 어떻게 된 일인지 차도를 찬찬히 지켜보는 수 밖에. 이상한 능력에 따라 칭찬 받아 마땅한 전개가 출연할지 말지. 불운은 잠재우고 행운을 꽃 피울지 어쩔지 기다려보는 수 밖에 없었다. 
    단, 이게 과연 믿을 만한 초능력인가 아니면 엉뚱한 우연인가는 차차 지켜보면 알 테고. 그래서 그는 당장 내일부터 시험해 보기로 했다. 





    9

    다음 날 NB는 친구 사무엘의 투자사무실에 놀러갔다. 
    짜식 나름 고상하게 고전음악을 듣고 있었다. 
    루드비히 반 베토벤 / 현악사중주 12번. 
   「연락도 없이 웬일이야?」
   「너가 고급 정보를 나만 쏙 빼놓은 채 주변에 퍼트릴까 봐. 그래서 깜짝 방문했다. 됐냐?」
   「돼긴 어떻게 돼. 그런 거 알고 있으면 늬가 날 살려주라.」
   「왜, 최근 몇 장 말아먹었냐?」
   「말아먹긴 뭘 말아먹어. 심혈을 기울이진 않았으나, 본전이야. 판돈만 키우다 남 좋은 일만 시켰다고. 지금이 아마 새로운 전환기일지도 모르고. 아둥바둥 살면 뭐하냐. 밤에 외로운데.」
   「아 나 이거 또 거 참 나 원 허허. 우리 그런 얘기 하지 않기로 했잖아. 너 설마 나한테 똥 이야기 할려는 건 아니지?」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라. 너 저기서 기다려. 내겐 그래도 저분이 큰손 중의 큰손이니까. 순서는 저쪽이 먼저라네.」
   「어. 일 보고 와. 서두르지 말고 침착하게.」
    그처럼 NB의 주문이 주효한 것일까? 사무엘은 침착해도 침착해도 너무 침착했기 때문에 장장 1시간을 기다리게 만들었다. 
    1시간 후. 
    큰손인가 작은 손인가는 갔다. 
   「고객님과 면담은 잘 됐니?」
   「아직. 좀 더 공을 들여야 되나 봐. 뿜뿜 팍팍 푸쉭푸쉭. 그런데 진짜로 원하는 뻠쁘질이 뭔지 아직 그걸 잘 모르겠단 말이야. 감을 잡을 거 같다가도 아리송한 게 말이야. 거 어째 느낌이 세해. 차라리 발을 빼는 게 좋겠어. 아무래도 이상해.」
   「그래 잘 생각했어. 너 그러다 늬가 당해. 제 꾀에 제가 속는 건 그나마 낫다고. 그런데 있잖아. 아까 말한 큰손. 그분 혹시 스파게티광이니? 1년 내내 스파게티만 드시지 않니?」
   「늬가 그걸 어떻게 알아?」
   「아 농담하지 말고. 나한텐 중요한 문제니까. 당혹감 흥분 충동 친구 기 살려주기. 친구 놀리기. 그런 거 말고 진짜를 말해 보란 말일세. 진짜를.」
   「나 요즘 가뜩이나 뻥을 참고 참는데, 늬가 그러면 내가 뭐가 되니? 나 거짓말 해 본 적 한참 됐어. 내 최근 별명이 냉혈한이란 말이야.」
   「그 흔해빠진 사이코패스가 너라고? 늬가 사이코패스면 난 소시오패스 할아버지다. 아 그러지 말고. 그분이 진짜로 스파게티 매니아야?」
   「아 그렇다니까. 내가 뭐하러 너한테 그런 걸 거짓말하겠니. 내가 그걸 뻥쳐서 취할 수 있는 이득이 없잖아. 안 그래? 내가 그걸로 널 속여서 나한테 좋은 게 뭔데? 그런데 넌 그거 어떻게 알았어?」
   「나? 그분 이마에 그렇게 씌여 있으니까 알았지. 그분 마빡에 나 스파게티광, 라고 씌여있는데. 그런데 내가 어떻게 몰라. 안 그래?」
   「씌여 있긴 뭐가 씌여 있다는 거야?」
    이 모든 일이 다 존티가 주인이었던 그 라이터. 눌러도 불꽃이 나오지 않는, 그냥 소리만 특이하고 별다른 용도가 분명치 않은 듯한 듀퐁 라이터. 그 때문일까? 
    NB는 탁자 건너편의 사무엘과 대화하던 중. 탁자 밑으로 사무엘 몰래 듀퐁 라이터를 눌러보았다. 
    듀퐁라이터는, 퐁~!
    NB의 전두엽은, 핑~! 
    그는 즉각 사무엘 마빡에 씌여진 글씨를 읽고야 말았다. 
    그건 바로 
    <경마 매니아. 특히 거세마 베팅>
    뭐? 
    그는 정신을 잃은 채 소파에 쓰러지고야 말았다. 





    10

    그러던 어느 날 NB는 낮에 연습장에 글씨를 썼다. 일명 메모.
    만약에 내세에 지옥이 없다 = 공룡이나 다수 멸종한 동물처럼 흔적도 없이 말살될 가망성 있음.
    만약에 내세에 지옥이 있다 = SF 영화처럼 종이 미래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큼.
    그리고 그날 그는 개꿈을 꾸었다. 내용은 이랬다. 
    <개꿈 1>
    유부남 친구 1이 바람피는 애인을 데려옴. 꿈이 아니라 현실에서도 걔는 친구들 만날 때 하나같이 못생긴 여자만 골라서 데려왔음. 단 1번도 '어떻게 붙어도 붙어도'를 벗어난 예외는 없음. 걔 부인을 보고서 친구들이 바보로 여김. 일부러 그럴려는 게 아니라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업신 여김. 그 유부남 친구는 취미처럼 한달 평균 몇 명, 연평균 몇 명과 바람을 피는데 부인은 바보. 그냥 밖에다 내놓음. 완전히 밖에다 내놓은 줄 앎. 하필 녀석의 자녀는 딸 하나. 설마 그 딸이 나중 자기 아빠 같은 유부남을 만나는 거 아니야? 혹시 첫경험으로? 그럼... 숙녀 인생... 쉿! 그건 그렇고.
    그렇게 친구들 만나는 날 유부남 친구 1이 바람피는 애인을 데려옴. 친구 2 친구 3, 그렇게 넷이서 야한 술집에 감. 어쩌고저쩌고. 갑자기 유부남 친구와 바람녀가 뜨거워짐. 다큐멘터리 동물의 세계처럼 교미를 시작. 친구들이 다 보고 있는데. (아, 친구 3은 없었음. 친구 1과 2뿐. 등장인물은 매우 단촐). 그런데 하필 바람녀는 조루녀였음. 서서 정상위로 관계를 하다 말고 바람녀는 살짝 빠져서 뒤돌아 섬. 그렇게 그녀 혼자 아후아후. 갑자기 세차장 물뿌리개처럼 빛나는 액체 찍~! 곧 이어서 곧바로 연분홍빛 안개 분수. 다시 이어서 과학실험실 알콜램프처럼 거기서 빨강-노랑-다홍빛-선홍빛 불꽃이 일었다 사그러짐. 유부남 맨붕. 그래서 혼자 달림. 그런 다음 정자가 방출. 그런데 그 액체가 하필 옆 탁자에 놓여진 어떤 연애론 위에 찍. 유부남은 고추 끝 알콜램프의 파란 불꽃을 입으로 후~ 불어서 끔. 상황 정리. 그런데 문제는 다음 날. 연애론 주인이 똘만이들을 거느리고서 유부남을 찾아감. 딩동~!
    결론 : 대부분의 유부남은 성실!? 그래서 바람피는 유부남만 보고서 유부남은 어떻다고 일반화는 곤란. 미꾸라지와 하이에나도 일부만 문제. 그 못된 극소수 때문에 못생긴 남자만 보면 혹시 뭐 어쩔까 또 강박증이 추가됨. 괜히 착한 촌닭과 호인인 뱁새까지 손해 입음. 스토킹은 중범죄 중의 중범죄. 스토킹 당해본 사람은 그 심정 앎. 여자가 1번 싫다 하면 웬만히 껄떡거리고 남자 얼굴에 똥칠하지 말기를. 제발! 아니 1번이 아니라, 알아서 자신감 갖고 찝쩍거리지를 말아야지. 툭하면 용기니 걸핏하면 고백이니. (절레절레). 똑같이 미꾸라지의 엄마와 부인과 누나와 여동생과 딸에게도 미꾸라지 조직과 하이에나 군단이 붙을 수 밖에 없음. 그 DNA는 알아서 도태되던가 아니면 SF영화처럼 걸러지거나 제지되도록 세상은 진보할 것임.
    <개꿈 2>
    플랩잭 경찰서의 필 로버츠 경사에게 전화가 왔던 날. 세바스찬이 체포됐던 일. 
    그 세바스찬이 NB에게 귀뜸해 주었다. 자기가 팠던 골프장 몇 번 홀을 진득히 파 보라고. 
    NB는 내심 세바스찬이 괜한 일을 벌이지는 않으리라는 뭐랄까 끈덕진 소망을 믿고 싶었다고나 할까. 
    그러나 그건 현실이고 이건 꿈이었다. 그래서 그는 세바스찬이 알려준대로 삽을 챙겨서 그곳으로 갔다. 
    그렇게 한참 동안 홀컵을 팠다. 땀을 뻘뻘 흘리며 쉬지 않고 땅을 파고 또 파고 계속 팠다. 
    그랬더니 뭔가 끝이 보였다. 그런데 그 끝은 다름 아니라 땅 밑에서 자기랑 똑같이 삽질을 하는 본인을 발견한 것이다. 흡사 거울을 보듯. 마치...가 아니라 자기랑 똑같이 생겼다.
    그럼 뭐야, 지하 세계가 있다는 건가? 여기서 멈출 수 있나. 하여 계속 팠다. 그렇게 그는 도플갱어와 겹쳐졌다가 끝끝내 도플갱어가 지상으로 나왔고 그는 지하로 들어갔다. 
    그러다 꿈은 끝났다. 뭐? 
    꿈이 뭐 이래? 이건 뭐 개꿈도 뭣도 아니잖아? 복권을 살 엄두도 낼 수 없는 내용이잖아? 괜시리 기분 세해지고.
    그렇다고 뭐 딱히 고배를 마실 일도 아니므로 그는 툭툭 털고 일어났다. 





    11

    음악은 뭘로 듣지? 그래 그게 좋겠다. 요제프 아르놀트 그로스(Joseph Arnold Gros) / 트럼펫 협주곡 D장조
    향기는, 니나리치 레흐 뒤 땅. 위는 베르가못과 차자나무와 카네이션이요. 중간은 장미에 제비꽃에 흰봇꽃에... 기본은 시더우드와 샌달우드와... 됐고. 모르겠고. 대충 비누향 이상만 되면 좋고. 
    색상은 진한 초콜릿색. 우윳빛. 연보라색. 에메랄드빛. 
    소리는 기존의 효과음과 또 다른 뭔가 몽환적이며, 번뜩이는 재치 신나는 재미 열정적인 드라마가 느껴지는 기계음. 
    그런데 그걸로 뭐하게? 자기가 좋아하는 연예인은 화장실을 가지 않고 이슬만 먹고 산다는 논리도 아니고. 거 참 할 일 없네. 
    아! 할 일 있지? 
    그는 최근 이마에 씌여진 글씨를 자기만 읽을 수 있다는 능력을 다시 한 번 확인해 보기로 했다. 
    존티에게 돌려줄려던 듀퐁 라이터에 정말로 신통한 재주가 있다면. 그렇다면 이번에는 노트북에 엑셀 파일 띄워놓고, 카페에서 한 명 한 명 찬찬히 관찰하면서 측정값을 기록하고. 그러므로 성공률은 어떻고 오차와 변수를 알아내고. 그래? 재밌겠네. 
    그래서 그는 근처 카페로 갔다.  
    도착했다. 
    부드러운 집념을 듀퐁 라이터가 귀여워할지 아니면 따가운 눈총으로 모른 체할지. 그건 두고 보면 아는 거고. 
    될 대로 되라는 심정도 아니고. 사활을 걸 부담감도 없고. 
    마침 그때 카페에 손님이 들어왔다. 그녀가 썩 동의할 줄은 모르겠지만. 아마도 외로운 숙녀. 그녀는 최근 3년 동안 키스 한 번도 못 해 봤네. 어쩌면 사랑의 교감 때문에 진짜 신음은 지금껏 0번. 단 몇 번에 불과했던 연애 경험은 죄다 가짜 교성뿐. 뭐 엄한 상상은 그쯤에서 멈추고 과연 그녀의 이마에 무슨 글씨가 씌여 있을까? 그는 손에 땀이 나기 시작했다. 
    달콤한 환상머신은 타는 듯 불가사의한 몰입감 때문에 뜨겁게 달아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퐁~! 
    아니 어떻게 이럴 수가! 
    이거 이거 진짜야 가짜야.
    어? 이거 정말 재밌어 해야 하는 건가 아니면. 아니면...  과히 기분이 나쁘지 않는데 이게 정말 좋은 거냔 말이지. 
    이건 정말 웃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울기는 뭐하고. 무엇보다 웃지 않을 수 없고. 
    와 이 발견은 흡사 황홀한 입맞춤으로 도달 가능한 무아지경과도 비슷했다. 
    어떻게 봐도 봐도 신비롭고 아무리 생각해도 흥미진진했다. 
    그러니까 제비족의 결승점은 단란한 가정이라는 가택감금이란 말인가? 그거랑 이거랑 뭔 상관. 
    기상천외한 상상이 부득이 개꿈으로 이어지는 일은 다 남의 일이든가 말든가. 
    이제 그만 좀 뜸들이고 본론으로 넘어가서. 그런데 차마 이런 얘기까진 하지 않을려고 했는데. 이런 말 해도 될런지 모르겠지만 기왕 말나온 김에 얘길 꺼내자면. 그때 그녀는 왜 남자 화장실에 혼자 앉아서, 화장실 문이 벌컥 열리면 가릴 생각을 하지 않고 일어서냐고. 아니 그거 말고. 놀이공원에서 옛날에 아기랑 같이 오신 그분은 왜 하필 흰색 팬티를... 쉿! 
    됐고. NB가 본 건 바로 그랬다. 
    그녀의 이마에 쓰여진 건 바로, 개년! 
    뭐?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카페 안으로 그녀의 남자친구로 보이는 남자가 들어왔다. 
    그러더니 그 남자는 여자와 인사하고 어쩌고. 의례적인 거 건너뛰고. 연인처럼 다정한 모습을 연출한 다음. 
    그 다음에 그 남자는 그녀의 가방에서 립스틱을 꺼내더니 그녀의 이마에 글씨를 썼다. 
    그녀의 이마가 거울이야 뭐야. 왜 그녀의 이마에다 글씨를 쓰냐고. 것도 하필 립스틱으로. 
    사랑은 립스틱으로 글씨를 쓰라야 뭐야. 그럼 그걸 뭘로 지워야 하냔 말이야. 
    그야 어떻든 그렇게 씌여진 낱말이 뭐냐. 
    그건 이랬다. 
    키스맨! 
    뭐라고? 
    그럼 그녀는 남자였어? 
    뭐야? 이제 보니 남자네. 둘 다 남자. 뭐야? 여자 아니잖아? 이런... 아니지 아니지. 남의 일이고 내 여자도 아니고. 듀퐁 라이터가 오작동한 건지 뭔지. 
    일단 넘어가기로 했다. 
    그렇게 먹잇감을 물색하던 중. 카페의 음악이 바꼈다. 
    게오르그 프리드리히 헨델 / 실내 이중창곡 ‘온갖 걱정에서 멀리 있을 수 있는 사람이 진정으로 행복하다’ HWV181
    손님이 뜸하니 카페 사장은 자기가 듣고 싶은 걸 틀었을지도 모를 일. 아, 맞다! 저 냥반한테 리모콘을 눌르면 되겠네. 
    퐁~! 
    그랬더니 카페 사장의 마빡에 도대체 뭐가 씌여있었느냐. 
    하면, 이번에는 좀 길었다. 글씨가 길기 때문에 이마에 다 써 넣어야 하므로 글씨가 작았고. 따라서 그거 읽느라 한참을 들여다봤다. 
    그래서 씌인 내용이 무엇인고 하니. 그건 바로, 
    <나 오늘 한가해요... 저는 있잖아요... 어쩌고저쩌고... 이러쿵저러쿵......>
    뭐? 그는 당장 듀퐁 라이터를 집어던질 뻔하다 말았다. 겨우겨우 참았다. 
    그러다 그는 카페 사장 뒤편 거울에 비춰진 이쪽 배경을 보고 뭔가 깨달았다. 
    바로 NB의 뒤에서 진짜로 특수 리모콘을 쥐고서 듀퐁 라이터를 켜는 시점에 딱 딱 맞춰서 버튼을 누르는 사람이 따로 있다는 걸. 
    그래서 그는 슥~ 뒤돌아봤다. 그들은 눈이 마주쳤다. 그런 다음 그 정체불명의 중성인은 슬금슬금 카페테라스를 빠져나갔다. 
    이제 추적은 시작되었다. 





    12

    그러나 모험은 시작하자마자 끝났다. 
    미행하고 주시하며 몰래 대신 마법까지 부리는 염탐꾼. 따라잡을 여지를 주지 않는데 어떻게 따라잡나. 
    만약에 따라잡았다고 해도 어차피 거짓말할 테고. 물증도 없고. 혼자만의 공상이고. 
    그렇게 해봐야 소용없다. 그래 봤자 개꿈처럼 달콤한 줄거리가 기억날 듯 말 듯 하다 풍선은 사그라들기 마련이 듯. 
    굳이 저분을 끝까지 쫓아가야 할 이유도 알고 보면 쓸데없고. 저분 역시나 NB에게 '나 잡아봐라'라며 사랑의 쫓고 쫓기기 장난을 요청하지도 않았고. 
    괜한 데다 시간만 허비했다. 가질 수 없는 것은 경멸하기 쉽다고, 그림의 떡은 여우가 따먹지 못하는 신 포도. 그게 다 이 구식 듀퐁 라이터 때문이었다. 
    그래서 괜한 데 힘 빼지 말고 NB는 좋게 사무실로 돌아가서 일이나 하기로 했다. 
    아무리 재미없기로서니, 스캔들의 주인공으로 사교계의 주목을 한 몸에 받지 못해 안달날 정도는 아니고. 
    세상사 전반에 관하여 범상치 않은 배경 지식과 혀를 내두를 만한 잔지식을 지녔는데. 그런데 정작 빼어난 고급 지식과 쓸 만한 큰 기술은 부재. 그럼 뭐 별수 있어? 일이나 해야지. 그럼.
    원하든 원치 않든 으뜸패는 속임수였어. 
    그는 구식 탱탱 묵은 듀퐁 라이터를 버렸고 사무실에 도착했다. 
    자, 그럼 이제 신나는 일하기를 시작해 볼까? 
    그러던 바로 그때 세바스찬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어, 웬일이야? 무슨 보물이라도 발견했니?」
   「어, 어떻게 알았어.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는데. 그걸 늬가 어떻게 알아?」
   「어떻게 알기는 누가 어떻게 알아? 설마 늬가 보물을 발견했다고 하더라도 내가 그러 가져가겠니 어쩌겠니? 대체 뭔 얘긴데 그래?」
   「말 그대로. 보물을 발견했어.」
   「거 참 막막하군 그래.」
   「그러지 말고 일단 만나서 얘기하자.」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그래서 그들은 만났다. 
    찻집 '늬 남편 요즘 뭐하니?'에서 그들은 만났다. 
   「또 무슨 일을 벌였는데 그래? 어디 말 좀 해 봐 봐. 어디 한번 들어나 보자.」
   「사연은 그래. 내가 어느 날 물건을 샀어. 그 뭐야, 초소형 완구품 조립하는 데 쓰는 공구품 세트.」
   「그래. 그래서?」
   「그걸 샀는데. 그걸 인터넷으로 샀거든. 그런데 계산할 때 보니 무슨 뭔가를 보너스로 거저 준다는 거야.」
   「뭘?」
   「뭐긴 뭐야 보물 지도지.」
   「그래서 그걸 결국 받아봤어?」
   「응. 집에 도착한 공구 세트 정리한 다음에. 사은품으로 함께 실린 보물 지도를 펼쳐보니 이거 가짜가 아니더라고.」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됐어?」
   「자세한 정보부터 그 보물이 묻히게 된 계기. 그리고 그 공구품의 브랜드 역사까지 그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더란 거야. 뿐만 아니라 그 보물이 묻혀 있는 특정 장소가 하필 우리 집과 가까워.」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됐어?」
   「그런데 거기서 더 자세한 정보를 알려면 무슨 세계 비밀 조직에 찬조금을 내야 한다는 거야.」
   「그래서 그 돈 보냈어?」
   「그럼 보냈지.」
   「얼만데?」
   「얼마 안 해.」
   「한 장?」
   「두 장.」
   「세 장 보냈네. 세 장 보냈어. 그렇지? 그치?」
   「그걸 늬가 어떻게 알아? 어떻게 알았는가는 몰라도 세 장은 세 장 맞어. 그렇지만 할부로 끊었어.」
   「늬가 무슨 초딩이니? 그래서 그 보물지도에 관한 보완품, 뭐라고 불러야 하지, 맞다, 보물지도 2.0은 왔어? 어디 좀 보자.」
   「안 돼. 보여줄 수 없어. 보여주면 안 된다고 했어.」
   「넌 그 말을 믿니? 야 무슨 말이 돼야지 보물 지도를 믿든 말든 할 거 아니야. 무슨 애도 아니고, 참 나.」
   「아무튼 파 보면 알아. 파서 나오면 진짜고. 아니면 뭔가 잘못된 거고.」
   「너 어쩌다가 그렇게 상태가 안 좋아진거니?」
    그래서 그들은 현장으로 갔다. 
    NB는 도와준 김에 인심 후하게 써서 오늘 땀 흠뻑 흘리자고 다짐했다. 
    음악도 틀었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Vesperae solennes de confessore K339.
    그들은 열심히 삽질을 했다. 다른 기계의 힘을 빌릴 수도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땀의 결실이 아니면 안될 것 같았다. 
    그래서 중간 건너뛰고 결과만 말하자면 그렇다. 뭔가를 찾긴 찾았다. 
    그건 다름 아니라 007 가방이었다. 안에 뭐가 들어있나는 몰라도, 일단 가방 하나만큼은 꽤나 튼튼해 보였다. 
    물론 열쇠로 굳건히 잠겨있었고. 
    곧바로 세바스찬은 핸드폰을 켜서 어느 앱을 켜서 메시지를 보내고, 답변을 받고, 전화를 해서 통화를 마쳤다. 
   「쟤들이 뭐래? 그게 보물 맞데?」
   「어 맞데. 그런데 그 가방을 열려면.」
   「그럴려면?」
   「추가로 무슨 단체에 후원금을 보내야 한다는데?」
   「야 야. 관둬 관둬. 때려쳐 때려쳐. 그럼 그렇지 그럼 그렇지. 너 당했어 임마. 계속 그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서 말리고 엮이며 끌려가는 거라고. 너 솔직히 말해 봐. 저번에 얼마 보냈니?」
   「세 장.」
   「세 장이면 뒤에 0이 3개?」
   「아니. 단위가 달라.」
   「오 맙소사, 세상에나! 너 미쳤니? 야 그럴 돈 있으면 나한테 투자해야지. 얘가 바보도 이런 바보가 없네. 너 엉덩이에 뿔났니? 그걸 거기다 보내면 어떡하니?」
   「날 좀 내버려 둬.」
   「말이나 말든가.」
   「그런데 늬가 봐도, 한눈에 딱 봐도 사기인 걸 알겠니?」
   「알다마다!」
   「아휴~ 속 터져.」
   「아휴~ 속 터져? 일찍도 깨닫네. 내가 더 속 터진다.」
   「갑자기 왜 웃어?」
   「나도 몰라. 괜히 웃음이 나오는데 어떡하니? 그럼 그냥 웃을 수 밖에.」
    그렇게 별일도 아닌 사건은 자연스럽게 수습됐다. 





    13

    일하든 놀든 재미없고. 앉으나 서나 심심하고. 보나마나 주말은 약속 없고. 새로운 모험은 꿈도 꿀 수 없고. 그러므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NB는 롭의 별장에 가서 쉬엄쉬엄 작품 구상이나 하고 오기로 했다. 이번에 롭은 또 어떤 기발한 별장을 소개시켜 줄지 벌써부터 기대감에 발가락이 다 간지려워졌던 것이다.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롭한테 어딜 소개받고 어쩌고.
    중간 건너뛰고. 
    낯선 객지에 도착. 
    한편 갑자기 세바스찬에게 연락이 왔다. 
   「열었어. 열었어.」
   「열긴 뭘 열어?」
   「그 007가방 열었다고.」
   「어떻게 열었는데. 너 또 추가금 보낸 거니?」
   「아니. 그게 아니라. 그냥 뽀갰어. 장비 구해와서 다짜고짜 뽀갰다고.」
   「그래서 안에 뭐가 들어있든?」
   「일단 가방 안에는 2가지가 들어있었어.」
   「아 글쎄 그 두 가지가 뭐냐고.」
   「알고 싶어?」
   「아 나 얘 또 시작했네. 뭘 또 들었다 놓고 싶은 거니? 날 좀 웬만히 쥐락펴락하라니까.」
   「알았어. 말할께.」
   「」
   「」
   「말한다며?」
   「그건 말이야. 첫째 새로운 지도, 둘째 중고 듀퐁 라이터. 그리고 간단한 설명서.」
   「설명서에 뭔 내용이 씌여있는데?」
   「라이터를 켜면 육플루오린화 황, 레몬과 스피아민트 향, <커피 + 초콜릿 + 복숭아>복합 향이 나는데. 그걸 지도 밑에서 작동시키면 지도에 숨겨진 그림이 나타난데.」
   「그래서.」
   「그렇게 비추니까 정말로 숨겨진 지도가 나타났어.」
   「그러니까 지도는 일반적인 지도고. 숨겨진 지도는 제일 빠른 길, 최단 코스, 제일 안 막히는 길. 뭐 그런 게 나타났다고?」
   「와! 너 그걸 어떻게 알았어?」
   「어떻게 알긴 뭘 어떻게 알어. 그래서 또 추가금을 보내달라고?」
   「그건 또 어떻게 알고.」
   「아 나 이거 정말 이치고 환장하겠구만 그래. 넌 수작과 개수작도 구별 못하니?」
   「수작과 개수작의 차이점이 뭔데?」
   「뭐긴 뭐야. 둘 다 수작이지. 하나는 작은 수작 하나는 큰 수작. 곧 개수작은 큰 수작. 늬가 당한 건 말 같지도 않은 수작. 그런 수작에 당한 넌 뭐니 대체! 됐다 됐어. 너 알아서 보내든가 말든가. 끊어 끊어.」
    요한 아돌프 하세 / 오페라 <마르칸토니오와 클레오파트라> 중 아리아 ‘그의 사나운 모습에도 나는 죽음이 두렵지 않으니’
    NB는 세바스찬이야 세바스찬의 인생이 있는 거고. 언제까지 놀아줄 수도 없고. 그래서 그는 음악을 틀어놓은 채 묵묵히 일을 했다. 

,

Blog ─ 146

from 소설 2019. 4. 30. 21:51

    1

    사무실에서 혼자 일하기에 적적하여 나는 근처 카페에 찾아갔다. 
    그곳에 도착했다. 카페의 이름쯤은 보자마자 잊어먹었다. 분위기도 중요치 않았다. 
    머리가 띵하고. 코끝은 찡하지 않고. 하트 역시 벌렁벌렁하지 않은 채 약간의 숙취가 남아있었을 뿐. 
    곧 분위기 전환이면 적당히 만족할 뿐이지 팬클럽 회원들의 열렬한 갈채를 바란 건 아니었다. 정말 아니었다. 
    그런데 이 음악이 뭐였지? 설마 무난한 오페라의 대명사인, 지오코모 푸치니의 라 보엠! 그 가운데 음 그게 말이지, 대충 때려 맞추자면 그렇다는 거고. 아니 마농 레스콘가? 리골레토? 아님 투란도트? 에잇 그냥 푸치니. 그래 그냥 푸치니. 끝. 
    그런데 그게 아니라 캐스팅의 제약부터 심한 '토스카'는 어떻고, 자극적인 소제라서 '카르멘'은 뭔가 할 얘기가 발생하며, 라트라비아타를 베르디가 작곡만 했지 원작으로 들어가면 얘기가 길어지고 길어지고? 바로 이래서, 그녀는 졸린다 졸린다. 싫증난다 싫증난다. 그녀의 뚜껑은 열린다 열린다. 참다 참다, 그녀의 화염방사기는 열불을 뿜을 일만 남은 것이다. 순서가 그렇다. 원리는 속일 수 없다. 애정이 은근히 느껴지는 사랑의 대화를 바라는 그녀들에게, 논리적으로 툭툭거리고, 심층적으로 파고들어 찬물을 끼얹는 일. 수다를 바랬지 누가 논쟁하고 싶어했냐고. 웃자고 말했더니 글쎄, 얼굴 빨개져가지고 좋은 말 할 때 이러쿵저러쿵? 아아 (뒷목) (뒷목)! 싫증나고 꼴배기 싫고 기분 나빠지는 지름길. 곧, 뭘 좀 모르는 남자들의 전형적인 특징. 요즘 말로 인사이더와 아웃사이더의 차이. 웃자 = 싸우자, 등호 성립부터 말이 안되니까. 간접화법으로 마음을 녹이며 달콤한 상상을 하쟀더니 무슨 지적질에, 아는 척에, 자기 주장만 빡빡 우기고, 급기야 잔소리로 남자가 여잘 이겨버리네? 그녀의 뚜껑은 열린다 열린다. 보아하니 '같이 죽자'식 유머코드도 시큰둥. 농담 반 진담 반도 심각하고 진지하게 받고. 당연히 의역해서 받아들일 말을 곧이곧대로 직역하는 일. 진짜로? 한두 명도 아니고 한두 번도 아니라니까 그러시네. 그렇다고 논리적으로 너 좋고 나도 좋자 라는 남잔 또 뭔 죈가. 전화로 2~3시간 통화한 다음 끊을 때 인사말이 글쎄, 자세한 얘기는 우리 만나서 하자? 이번에는 남자의 커피포트가 바빠질 일만 남은 것이다. 
    그런데 이 얘기가 대체 왜 나왔어? 푸치니에서 뭘 거쳐서 뭐한다고 '뭘 해도 재미없어'로 넘어왔냐고. (절레절레). 아무튼 친근한 수다라는 생리가 어떠하므로, 따라서 다정한 그녀의 표정만 보고서 '척하면 척'이 최고. 뭐니 뭐니 해도 한발 앞서서 여자의 마음을 간파하는 게 최선. 대번에 뭔가 약간 조금만 더? 라고 했을 때. 숙녀가 살짝 더 알고 싶어한다 했을 때 제목까지만. 아니면 푸치니까지만. 강아지한테 앉어 일어서 손 손 먹지 마 기다려 먹어. 그렇듯 하나 하나 다시 하나. 멈춤. 전진. 후진. 뻔할 뻔자 리모콘만 누르면 될 걸 가지고 원맨쇼 씩이나. (절레절레) (절레절레). 패 돌리고 뻠쁘질하고 드리블에 저글링에 어차피 다 그게 그거임. 그놈이 그놈까지는 가지 말고. 제발 그만 좀 삼천포로 빠지고. 딱 푸치니까지만. 아아 하다 하다 '푸치니'에 발동이 걸릴 줄이야! (몸짓) (몸짓).
    그러다 나는 급기야 낯선 전화를 받고야 말았다. 
   「안녕하세요. 저는 플랩잭 경찰서의 필 로버츠 경사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입건자께서 거액을 상속받을 후견인으로 귀하를 지목하셨습니다. 네? 예? 아니 그게 아니라. 그건 제가 봤던 드라마 내용이고. 그게 아니라. 피고인이 변호사를 지정할 사안까지는 아니고. 다름 아니라 세바스찬씨 아니죠? 아실 거예요. 알다 마다요. 세반스찬씨가 글쎄 요 인근 토마스 나인 브릿지 골프장 A4 코스 13번 홀에서 홀컵을 삽으로 무지하게 파헤쳐서, 그래서 신고가 들어왔고, 우린 출동했고, 이렇게 경찰서에서 조서를 작성중입니다. 세바스찬씨와 두터운 친분으로 말미암아 조촐한 보석금과 함께 간단한 사인이면 세바스찬씨는 다시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네? 여자 좋아하신다고요?」 
    뭐, 골프장 홀컵을 삽으로 팠다고? 거길 삽으로 왜 파! 뭐 삽질해? 아님 미친 거야! 뭐냐고. 
    듣고 보니. 나중 알고 나니 세바스찬은 곤드레만드레 취하지도 않았고, 마약 검사도 정상이었고, 뭘로 봐도 제정신이었다. 
    무슨 비밀 조직에 등용된 것도 아니고. 삶이 재미없어서 발버둥치며 일부러 미친 척한 것도 아니고. 꾀병도 아니고 강신술도 아니고. 
    얼렁뚱땅 난, 내가 영매라도 된 것 마냥 기분이 이상해졌다. 난 도사님도 아니고 바보 멍청이 얼간이도 아닌데. 거 어째 이런 느낌은 뭐지?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나는 경찰서에 출두해서 어쩌고저쩌고 세바스찬을 데리고 바깥으로 나왔다. 
    아 세바스찬은 요가 학원에서 알게 된 친구다. 남자 이성애자. 
    우리는 일단 조용한 노천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2

    카페 이름은 관심없고. 흐르는 음악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오페라 <티토 왕의 자비>(La clemenza di Tito) K.621 중에서. 비운의 여인 비텔리아(Vitellia)가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부르는 론도 ‘결혼의 신은 이제 더 이상 나를 위한 결혼의 화환을 만들지 않으리’ 
   「세바스찬. 너 왜 그랬니? 또 어디서 엄한 낭설을 엿들었던 거야? 어떻게 된 거냐고. 말 좀 해 보지 않으렴?」
   「내가? 아니야 아니야. 이번이 처음도 아니고. 난 어디서 요상한 추문을 듣고 소문을 퍼트리는 슈퍼 연결자가 된 적이 없어. 너 나 알지? 나 입 무거운 거.」
   「너가 입이 무겁다고? 금시초문인데. 대체 무슨 일이 있었니, 라는 완곡어법을 곧이곧대로 직접화법으로 알아들으면 어떡하니? 근데 그건 완곡어법도 아니고 지금 어법 따질 때도 아니고. 어? 아 말 좀 해 봐 이 친구야. 내가 더 민망하잖아.」
   「아, 그래? 난 아마 순 엉터리 환상론자인가 봐. 그래, 게으름뱅이 사랑학자. 청춘의 사랑과 인생의 꿈을 몽상하는 사색가 말이야. 그런데 가난해. 너도 알잖아. 그래도 행복하다면야 뭐 할 말은 없지만.」
   「그건 또 뭔 뚱딴지 같은 소리야? 지금 일기 써? 늬가 말괄량이 사춘기 소녀니? 아니잖아. 늬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자세에 환장하는지 빠삭하게 다 아는데. 날 속일 생각일랑은 거두고. 간명하게 말해 봐. 대체 어떻게 된 일이니?」
   「그게 말이야. 집에만 꿈쩍 않고 은거하다가, 사무실에서 꼼짝 않은 채 일만 하다가. 그렇다고 질펀하게 놀기를 바라지는 않지만. 딱히 쾌락의 전령이 무엇인가는 관심 없고. 하지만 따분한 일상, 뭔가 변화는 필요하고. 뭐가 좋을까. ~라고 뚱한 표정만 짓다가. 그러다 기발한 생각이 났던 거야. 그게 뭐냐, 난 요즘 왠지 모르겠지만 어딘가 모르게 막 그냥 딱 그 뭐야 그래. 막 구멍만 보였다 하면 뭘 넣고 싶어지는 이상한, 그걸 뭐라 불러야 하지? 아무튼 그런 게 생겼어. 그렇게 1차 2차 3차 점점 진행하다가, 평범한 데 적당한 걸 넣으면 재미가 없더라고. 그렇다고 한 구멍에 한 개를 넣어야지 두 개를 넣을 순 없잖냐. 그래서 불가능에 도전한 거지. 거기 골프장 사장이랑 나랑 잘 아는 사이야. 걔 나한테 빚진 거도 있어. 뿐이니? 걔 옛날에 내가 업어 키웠어. 왕년에 말이야, 걘 나한테 눈도 못 마주쳤다고. 알어? 그렇게 어느 날 TV를 보며 채널 돌리다가 그 뭐니, 삽질 세러모니를 본 거지. 은퇴 선수 두 명이 맞붙는 이벤트 경기 그런 거. 거기서 한 명이 복수전으로 경기를 승리로 장식하고 나니까 막 삽질 세러모니를 하더라고. 그래? 큰 이득을 놓칠세라 나도 그걸 따라한 거지. 4살 5살 꼬마들만 우릴 따라하란 법 있니? 나 골프 좋아하는 거 알지? 그래서 골프공만 맨날 컵에 넣으니까 식상하더라고. 그런 사연으로 그냥 나도 모르게 컵에 내가 들어가서, 그냥 달랑 기념 사진이나 하나 찍을려고 했어. 내 욕심은 그 사진 1장 건질려는 거 뿐이 없었어. 그런 다음 다시 원상복귀까지가 내 계획이었는데 일이 중간에 틀어진 거지. 사연은 그렇게 된 셈이라네.」 
   「늬가 무슨 투우사의 빨간 보자기만 보면 흥분하는 투우 소니?」
   「내가 잠깐 정신을 놓았나 봐. 뭐 이제 제정신 차렸으면 된 거지. 안 그래?」
    말 타면 경마장 가고 싶다는 격언이 있다. 곧 페라리 운전석에 앉으면 달리고 싶어지기 마련. 화장발은 사내의 눈길을 사로잡고 옷이 날개인 것. 사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일단 구경만 하세요 부담없이 편하게요, 처럼. 경계심을 무마시키는 여자의 얼쩡얼쩡은 남자의 뻔뻔 전략. 전술은 디저트 뻔트는 뽀너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고 조금씩 조금씩 야금야금 성큼성큼. 향긋한 프리지아는 사랑하고 싶은 마음을 유혹. 탐스런 열매를 보면 딱 냉큼 따먹고 싶어지기 마련. 그래서 장미는 가시가 있어야 하는 것. 그런데 호박이 제 발로 굴러오신다? 그것도 황금호박이? 그러므로 나는 불굴의 신념으로 편집광의 완벽주의를 어떤 대상에 집중했다, 라는 말은 아니고. 그저 뜻밖에 찾아온 색다른 관심사가 무엇인고 하니. 그 새로운 변화는 다름 아니라 뭐였지? 뭐였드라? 
   「바보처럼 굴지 마.」
   「구미가 당기지 않니?」
    그건 곧 세바스찬이 한적한 시골길에서 웬 그 뭐야 비싼 브랜드 베르사체의 문양. 그게 담벼락 구석지 잘 보이지 않는 곳에 붙여져 있길래 그걸 우산 꼭지로 찔러봤고 그 다음에. 그런데 어머나 글쎄 열리네? 담벼락 자체가 문이었고, 그 문은 스르륵 열렸고, 거길 따라서 들어가니, 그 안에는 뭔 부조화스런 물건들만 가득이더랬다. 탱크, 포크레인, 몽키스패너, 대형 마차, 장갑차, 초대형 후라이팬. 그건 그냥 장식품이고 한마디로 거긴 비밀 별장이라고 했다. 당연히 나는 웃기지 말라고 했고, 세바스찬은 계속 우겼고. 그래서 우리는 다음 날 만나서 그게 사실인가 아닌가를 알아보기로 했다. 





    3

    전날 우리는 비밀 별장 입구인 담벼락에서 만나기로 했고, 나는 들뜬 마음과 함께 그곳으로 갔다. 
도착했다. 
    아직 세바스찬은 오지 않았다. 
    그럼 이제 극비리에 환상적인 '소년 모험기'의 주인공이 될 일만 남은 걸까? 
    그곳의 온갖 금은보화를 착복하려다, 마음을 바꿔서 고이 놔두고 돌아갔더니. 나중 수소문해서 어느 날 큰손이 내게 선물을? 그런데 그 선물이 뭔고 하니,
    윌렘 데 쿠닝, 1949년 작 여인.
    물론 가짜. 그래도 초정밀 완성도만 괜찮다면 나는 OK. 왜냐하면 사무실 그림을 바꿔 줄 때가 되었거든. 
    그러든 어쩌든 데 쿠닝 작품 정도면 나쁘지 않은 거 아닌가. 달리 차선책으로 점찍어 둔 거도 없고. 
    공상이란 고약한 습관일까 아닐까. 아님 의사 결정 회피 때문에 발생한, 단순한 핑계일까. 그야 모르겠고. 
    나는 세바스찬에게 전화를 했다. 
   「어디야?」   
   「어디긴 어디야, 집이지.」   
   「집...이라고?」   
   「그래 집. 오늘 쉬는 날이라서 케익 먹으면서 발바닥 만지고, 다시 그 손으로 과자 집어먹고, 다시 그 손으로 고추도 만질까 말까 고민하고 있지. 왜 너도 따라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니? 아니지? 아니지? 설마... 아닌 거지?」   
   「아니긴 뭐가 아니야.」   
   「왜 그래 갑자기? 너 혹시, 어제 내가 말한 거기 간 거 아니지? 그렇지?」   
   「내가 바보니? 내가 거길 왜 가!」   
   「허허허. 하긴 우리가 그럴 나이는 아니잖니. 그러지 말고. 너 캔디스한테 연락해 봐. 거 좀 아는 동생들 좀 챙기고 그래.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매정할 수 있니. 너 원래 그처럼 무정한 애였어? 난 또 캔디스가 날 좋아한다는 고백이라도 할 줄 알았지 뭐니. 뭐 아무튼 그러든가 말든가 늬가 알아서 하고. 늬 인생 내가 뭐한다고 참견하겠니. 아 됐고. 끊어.」   
    그렇게 세바스찬은 전화를 뚝 끊었다. 
    뭐야 이거! 
    첫째, 비밀 별장에 출입할 수 있는 베르사체 마크 어쩌고저쩌고는 뻥. 헛걸음. 헤어드라이어기.
    둘째, 캔디스가 날 좋아한다? 아니겠지만 그래도 모르는 거니까. 그래도 달래는 줘야 하고 다독거리지 않으면 안되니까. 
    고로 첫째 + 둘째 = 0.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 0.5?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캔디스를 떠올리고서 나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허허허허허. 히히히히히. 허허허허허. 
    나는 소문의 힘을 믿어보기로 했고, 세바스찬의 악동 본능보다 고귀한 마음씨가 우위를 점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야 어떻든 인생과 애정은 불가분 관계. 이상한 건 사랑과 우정 사이. 
    나중 캔디스한테 잽싸게 뒤통수 맞던가, 신경 꺼도 좋을 만한 멋진 남자친구를 내가 캔디스한테 소개시켜주던가. 두고 보면 알겠지 뭐. 
    그래서 나는 다음 날 캔디스를 만나기로 했다. 





    4

    날짜가 바꼈고, 나는 오늘 하루를 루이지 보케리니의 현악 오중주 Op. 13 no. 5 중에서 미뉴엣으로 시작했다. 
    그럭저럭 오전을 지나 정오로 향해가는 시간. 나는 캔디스한테 전화했다. 그렇게 나는 캔디스한테 만나자고 했다. 그랬더니,
   「오빠가 뭔데 이래라저래라-야?」  
   「나? 네 친구. 아니 오빠. 아니면 아는 남자? 세바스찬이 그러던데. 너가 나 만나고 싶다고.」
   「믿을 사람 말을 믿어라. 아무튼 이래라저래라 훈수두지 말고. 나 기분 안 좋아. 저기압이라고. 남자친구랑 헤어졌어. 그러니까 당분간 귀찮게 하지 마. 알겠어?」
    캔디스는 그렇게 자기 할 말만 하고 전화를 뚝 끊었다. 
    뭐야! 세바스찬 이 자식을 그냥... 워──워──워!  
    그래서 나는 동네 카페에 들려 혼자서 노트북을 펴놓고서 낙서를 했다. 내용은 칼럼으로 정리해서 여성환상 1.5에 이메일로 보냈다. 물론 칼럼을 완성한 다음에 다시 잃어보니 이건 영 아닌 것 같아서 파일을 깨끗이 지워버릴려다가, 품위 유지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두 눈 딱 감고서 보냈던 것이다.





    5

    사교계로 행차하시면 시시한 삼류이자, 친구를 사겨볼려고 하면 성가신 사람으로 비춰질지 몰라 멈칫하고. 두렵진 않지만 뭔가 위축된 심정. 아마도 하찮은 인생? 재미없고 심심할지라도 몸만 성하면 아니 마음만 싱그러우면 행복인 것. 젊음의 열정과 흥분과 꿈 없음에 대한 불안감이 가물가물하다 뿐이지, 다른 사람들도 알고 보면 다 비슷비슷 거기서 거기. 행복한 척 재밌는 척 즐거운 척 메소드 연기. 그렇고 그런 일상. 이래도 흥 저래도 흥. 쓰면 뱉고 달면 삶키고. 그럼 혹시 내 삶이 뭔가 크게 잘못된 것은 아닐까? 아니다. 그만 하면 그럭저럭. 그럼 설마 내 할 일과 내 할 말이 이렇게 된 건 누구의 잘못일까?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세상이 끝난 것도 아니고. 지금 이렇다 할 비정상도 아니고. 그렇다면 이제야말로 슬럼프를 탈출하자마자 진정한 권태기? 변화는 삶의 활력소인 것. 마지막 짚 한 오라기가 낙타의 등을 부러트리는 법. 아직은 미술관에서 르누아르를 감상할 때도, <끝내줘. 끝이라고. 끝장. 끝이지 끝> 라면서 유유자적 놀기엔 아직 더 달려야 한다는 것. 그렇다고 지레 겁먹지도 말고. 장비에 대한 투정도 얼마든지 괜찮고. 
    그래서 나는 새 노트북을 사러 매장으로 달려갔다.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에 아무런 일 없이 나는 무사히 새 노트북을 사서 집으로 갔다. 





    6

    다음 날. 사무실. 
   「속이 타들어가니?」
   「타들어가기는 뭘 타들어가. 이미 탔어. 어디 귀만 탔겠니. 더 탈 뭐가 없다고. 됐냐?」
   「시치미떼긴. 오바하지 마.」
   「시치미떼긴 누가 시치미뗐다고 그래?」
   「시치미떼긴 누가 시치미뗐다고 그래?」
   「따라하지 마라~!」
   「따라하지 마라~!」
   「」
   「워──워──워. 성깔 있네.」
   「됐고.」
    ~라는 식의 농담 따먹기. 인공지능 지니와 함께 하는 대화도 더 이상 재미없었다. 
    그래서 나는 역시나 공상을 시도했다. 
    <미남을 낚고, 성우를 꼬드겨 덥썩 물어오고, 자상한 달변가와 웃긴 매력남을 눈빛 만으로 유혹하는 데 성공하기. 그 일이 늘상 식은 죽 먹기처럼 쉽다는 건 그녀들만의 공상. 그럼 그런 미지의 이상이 구현되는 기적은 어딜 보면 흔할까? 그렇지, 드라마와 할리퀸 문고. 그러나 꿈과 달리 현실은 내게 쌀쌀맞음. 냉혹함. 얌체. 그래서 수다 3시간의 성과는 결론없음. 때문에 사랑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찾아나서는 여자가 있는 반면, 최고가 나타날 때까지 끝까지 묵묵히 기다리는 숙녀도 있다. 운명이란 바로 그런 거니까. 쩝쩝쩝과 냄새와 세뇌와 비교 등등에 데어 봐야 정신을 차리지. 곧 어설픈 뻔트와 셀 수 없는 쨉 말고. 기 막힌 한 방. 회심의 어퍼컷. 그러나 사랑은 야속하고 미래는 모르는 것. 고로 남자보다 여자들 생각만 자꾸자꾸 복잡해지는 것! 따라서. 따라서? 따라서긴 뭐가 따라서야.> 
    ~라고 나는 연애칼럼을 쓸려다 포기했다. 오늘은 왠지 일이 손에 잡히질 않네. 그럼 어떡하나. 어떡하긴 뭘 어떡하나, 놀아야지. 그런데 뭘 하고 논담? 그러게 말이야 내 말이. 





    7

    그러다 나는 노트북을 사온 걸 기억해냈다. 깜빡하고 있었네. 그렇게 박스에서 꺼내고 대충 세팅하고. 그러다 노트북 안에서 웬 파일을 발견했다. 
    거기 들어있는 파일은 BLOG란 이름의 엑셀파일. 주식 정보가 들어있는 엑셀파일. 북마크 파일과 메모장 한두 개. 기타 등등. 
    뭐야? 내가 기존에 애용하던 파일들이랑 비슷하잖아? 그럼 이건 중고품이란 거야, 아님 인공지능 지니가 장난친 거야? 아마도 후자. 그럼 그렇지. 
   「눈치 챘어?」
   「너지? 새롭지도 않다.」
    내가 지니를 오냐오냐해 주었는지, 아님 반대로 지니가 날 너무 오냐오냐해 주었는지. 이제 헷갈리지도 않고 이래도 흥 저래도 흥. 
   「새롭지 않다고? 그럼 이건 어때.」
   「이거 뭐?」
   「게임 체인저를 한번 해 보는 건 어떠냐고.」
   「또 뭔 꿍꿍이인데 그래?」
   「너 지금껏 네 생일잔치 한 번도 안 해 봤지? 그치? 가족끼리 조촐하게 그냥 케익 먹는 거 그런 거 말고. 너가 스스로 친구를 부르거나, 여자친구랑 기념하거나. 그치? 한 번도? 하긴 남자는 친하면 친구를 자기 집에 데려가고 싶어하는데, 것도 적극적이었던 적 거의 없겠네. 그치?」
   「늬가 그걸 어떻게 알아? 딱 맞췄긴 한데. 얻어걸린 거니 아님 치밀하게 분석한 거니?」
   「뭐가 됐든, 안하느니 보다는 늦게라도 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뭐 결혼? 아 생일 파티. 아니 재혼?」
   「뭔 생각을 하니? 인생은 두 번 다시 되풀이 되지 않아, 이 친구야.」
    하긴 난 최근 인터넷으로 아기 태어나는 동영상을 찾아봤는데, 생전 처음 그런 장면을 구경했는데 별거 없었다. 도착증 막 그런 게 아니라, 생애 최초로 왠지 모르게 그게 그냥 막연히 보고 싶어졌다고나 할까? 그저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그런데 그 섭리와 신비가 집약된 숭고한 장면이 별로라는 말이 아니라, 그걸 보는 당사자가 감흥이 무덤덤했단 뜻. 감정이 매마른 걸까? 아님 수컷의 본심 애정의 본성 때문일까. 뭐가 됐든, 유튜브에서 말이 망아지를 낳는 장면을 보면, 신기하기는 하다. 단순히 말만 태어나는 게 아니라 자궁의 그 막 그런 것과 함께 항문에서도 막 그 딱 그 막 그러고. 다큐멘터리로 새와 맹수와 초식동물과 돌고래를 보는 느낌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생소하고 순수해서 보면 좋은데, 막 30분 1시간 내내 감상하긴 뭐 하다 그거다. 역시나 정답은 구간 당기기! 그걸로 보자면 뭐랄까 영악해진 건가. 무슨 컨텐츠든 뭐든지 요점과 제일 재밌는 구간만 떼어서 보는 식으로 줄거리 짤이랄지 GIF 파일만 대충 보는 습관. 익숙해져서 그런가 보다. 실제 산부인과에서 애 낳는 장면을 남편이 직접 봐도 경우의 수가 몇으로 나뉜다 하는데, 보길 권하지 않는 쪽도 있고. 그야 어떻든 인터넷에서 사람들이 툭 툭 던지는 말처럼 그게 맞는 거 같다. 곧, 
    나이든 남자는 해 볼 거 다 해 보고 알 거 다 알기 때문에, 안 해 볼 거든 뭐든 살다 보면 못 볼 거도 보고, 안 들을 거도 듣고, 따라서 한마디로 나이든 남자가 진짜 여우다. 
    논리적으로 틀린 말도 아니고. 아줌마 허세처럼 좋게 말해 환상머신도 어차피 중고 되는 것. 뭐야, 난 아직 늙지 않았어! 이제 그만 인정하라고? 인정하긴 뭘 인정해. 너나 인정해. ~라는 말이 아니라. 그게 아니라. 그런데 뭐야 이거. 그럼 그래서 어떤 남자들이 바람피어도 들키지 않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죄책감이란 어차피 다 연기고 뻥이다, 뭐 그런 뜻이냐고. ~라는 생각 바로 그런 생각을 어떻게 어찌 좀, 상상력의 수량화와 꿈의 정량화. 그런 고리타분한 주제로 연결시켜서 씨름할까 말까를 고민하던 찰나. 사무실에 친구들이 느닷없이 들이닥쳤다. 연락도 없이. 
   「너네들 여기 웬일이야?」
   「웬일은. 너가 불렀잖아. 늬 생일이라고.」
   「생일이면 생일이라고 말을 하지 그랬어. 어?」
   「알아둬. 선물은 없어. 우리끼리 그거 좀 그렇지 않니. 드라마에 나오는 거, 우리도 그러라고? 허허. 왜 이러실까.」
    옛날 옛날에는 낮 12시가 되면 마을에 사이렌이 울렸는데. 그 12시 사이렌이 시작됨과 동시에 엄마의 자궁에서 빠져나와, 나는 이 세상에 머리를 들이밀었다. 물론 그걸 어찌 기억할 수 있겠나. 그냥 엄마한테 들어서 알 뿐. 그 날이 오늘이라고 얘네들한테 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다. 그냥 넘어가도 되긴 하겠지만, 왠지 그래서는 안될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는 고백했다. 
   「사실은 뻥이야. 미안. 나 오늘 생일 아니야. 정말 미안. 그게 말이지...」
   「뭐?」
   「와우~! 얘 웃겼어. 얘 우릴 간만에 웃겼어.」
   「와. 영화에서 본 거 따라하면 어딘가 모르게 실망해야 할 거 같은데. 대체 왜 내 기분이 좋지? 너 제대로 한 건 했어.」
   「와 대박~! 오 소름~! 와 장난 아니야. 이거 뭐니? 어? 이거 뭐야!」
   「OK~! 그러거나 말거나. 생일이든 아니든 그게 뭔 대수니. 생일 축하하네 어쩌네 그거 다 뻥이야. 그냥 빈말이잖아. 웃겼으면 됐어. 그럼 된 거라고.」
   「고생했다. 수고했어. 어떻게 그런 식으로 웃길 생각을 다 했니? 거 참 기특하다 기특해. 황당한 게 아니라 아주 그냥 (몸짓) 치즈 냄새 끝장이네 그려.」





    8

    나는 최근 부쩍 가까워진 세바스찬한테 전화를 했다. 
   「뭐해?」
   「넌 뭐해?」
   「나? 난 너한테 전화했지.」
   「잘했어. 난 할 일 없었던 참이야.」
   「그래? 어디야?」
   「넌 어딘데?」
   「넌 어째 애가 꼭 질문을 질문으로 받길 좋아하더라. 너 일부러 그러는 거 아니지?」
   「아니. 일부러 그래. 농담이야. 나 집이야. 오늘 쉬어. 너는?」
   「나도 집, 아니 사무실. 그런데 있잖아. 나 심심해.」
   「너가 심심하다구? 난 더 심심해. 알어?」
   「아이 참. 나 재미없단 말이야. 어?」
   「난 더 재미없어. 이거 왜 이래? 이거 하나만 알아 둬. 나 많이 참고 있어.」
   「난 더 많이 참고 있어. 알긴 아니?」
   「그런데 뭘 참고 있는데?」
   「뭘?」
   「왜, 허를 찔렸니? 말 돌리지 말고. 논점의 핵심이 뭐야. 아니 우리가 무슨 토의를 한 거도 아니고. 전화한 용건이 뭐니?」
   「글쎄. 내가 왜 전화 했을까?」
   「그걸 나한테 물어보면 어떡해?」
    한발 양보하여 나는 세바스찬의 아지트에 놀러가기로 했다. 
    녀석은 시트콤에 나오는 회원제 카페 겸 놀이터를 운영하고 있었다. 
    거기가 거의 녀석 집이나 마찬가지였다. 
    행운의 마스코트니 뭐니 선물은 필요없었다. 
    가택감금 수감자의 생활이 어떤지 대충 구경이나 하고 오자는 심정이었다. 
    혼자 노는 데 이력이 붙었으니 대화나 나누자는 의도였던 것이다. 
    나는 차에서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플룻 소나타를 들으면서 녀석 집까지 갔다. 
    도착.
    도착.
    도착. 
    딩동~! 
   「어. 왔어?」
    그런데 세바스찬의 뒤로 난 결국 보고야 말았다. 캔디스의 얼굴을. 
    전전긍긍 눈치 없이 분위기 깰 일 있나. 아니 혹시 세바스찬이 일부러 불렀나? 뭐하러? 자기가 이겼다고? 
   「바쁜 거 같은데 나 갈께.」
   「왜 바쁜 일 있니? 그럼 다음에 놀자.」
    뭐? 이 자식이...! 안 잡네? 진짜 안 잡네? 됐다 됐어. 됐다 그래. 나도 됐어. 누군 뭐 좋은 줄 알어?
    볼썽사납게 내 초라한 기분 쳐짐과 추레한 몰골과 괴상한 표정은 말이 아니었다. 괜히 서글퍼지네. 분명 아까까진 오늘 행복 그래프가 널널했는데. 우쨌든 그건 그거고. 
    녀석이 바쁜 거야 어쩔 수 없는 노릇. 색다르고 혁혁한 승전보 감이나 찾아보는 수 밖에. 
    발을 동동 구르며 조바심 품지 않아도 되고. 딱히 병적인 애착감도 없고. 이상한 집착은 아직이고. 
    그러든 어쩌든 고리타분한 일상은 더, 더더욱 고리타분해졌다. 동물적인 감각은 어데 쓸 데가 없고 말이지. 
    하여, 구두가 없으면 맨발로 가라지 않나. 어차피 맨발의 청춘. 반올림 하든 안 하든 청년 또는 중년이자, 벌써 노익장을 과시할 준비를 해야 할지도 모르지만. 누가 나이 얘길 꺼낸 건 아니지만 지레 겁먹었나? 그럼 선수 쳐야지. 반내림해서 젊음에 묻어가는 거지 뭐. 그처럼 나는 혹 떼러 갔다가 혹 붙여 온 듯한 꿀꿀한 기분을 회복하고자, 혼자서 동물원 구경이나 하고 오기로 했다. 





    9

    새것이 들어오면 옛것은 밀려난다. 
    동물원으로 가다가 나는 영화 광고를 잠시 스쳐지나가듯 보았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이라나 뭐라나. 
    난 방향을 틀었다. 
    그렇게 극장에 도착했다. 
    극장은 지옥같이 시끄럽진 않았으나 북새통. 화기애애한 분위기. 도대체 얼마나 재밌길래. 
    표를 사고 난 상영관으로 들어갔다. 
    영화 시작. 
    내용을... 난 잘 이해할 수 없었다. 
    솔직하고자시고 할 것 없이, 재미가 없었다. 
    뭔 내용인지도 몰랐다. 심지어 계속 졸다 깨다 졸다 깨다. 
    혹시 내 커피에 수면제 성분이 들어간 거 아닌가 궁금한 정도였다. 
    지금은 흥행이 괜찮을려나 몰라도. 아마도 10년 20년 후 다른 영화에서 이 영화 제목을 썩 거론하진 않을 듯 싶었다. 사실만 따져서. 좋게 말하든 아니든. 
    그렇게 계속 멍청하게 뭔 내용인 줄도 모르고, 주인공들 심리를 쫓아가지도 못하고, 주제를 유추하긴 커녕 계속 졸기나 하고. 줄거리조차 이해하지도 못하고. 
    눈에 보이는 것 외에 뭔가가 있는 건가? 다른 사람들은 다 재밌다고 들썩들썩 난리인데, 도대체 왜 나만 재미가 없냐고! 때문에 괜히 내가 이상한 건가 막 그래서 느낌이 부쩍 의뭉스러워졌다. 
    아무튼, 어차피 비상한 관심을 부쩍 부채질하는 건 남의 일이고. 난 미안한 말이지만 더럽게 재미없고. 어디까지나 혼자 생각이고. 이대로 멍하니 졸다 깨다 자다 멀뚱멀뚱 멍청히 앞만 쳐다보느니. 차라리 카페에 들어가서 <애처가라는 시시한 별명을 획득하는 게 유일한 꿈>에 대해서 낙서나 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웬만하면 끝까지 보겠지만 이건 아니다 싶어서 중간에 나왔다. 
    그렇게 영화 중간에 혼자 바깥으로 나오다가 나랑 비슷하게 바깥으로 나오는 사람과 살짝 부딪혔다. 
    의례상 어쩌고저쩌고. 
    환한 공간에 나오고 보니 글쎄, 나오는 길에 살짝 스친 분은 글쎄 친구 스티븐이었다. 
   「아이쿠. 이게 누구야.」
   「어? 너... 너...」
   「내 이름 생각 안 나지? 그럴 수 있어. 그럴 수도 있지 뭘 그래. 실은 나도 늬 이름 생각 안 나. 농담이고. 설마 너도 재미없었니? 어떻게 이렇게 다 만나네.」
   「너도?」
   「속이 뻥 뚫린다. 속 시원하다. 난 나만 이상한 줄 알았지 뭐니. 어때, 바쁘지 않음 차 한 잔 어때?」
   「좋지.」
    그렇게 스티븐과 나는 극장 앞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너도 노잼?」
   「응. 너도?」
   「그럼」
   「만든 공력이야 박수를 쳐야 마땅하지만. 억지로 물개박수에 가담할 수야 없지. 난 이 영화 대체 왜 보는지를 모르겠어. 물론 매니아들은 좋겠지만, 적어도 말이야. 드라마와 시네마는 달라야 하는 거 아니니?」
   「그래 그래. 그건 그래. 늬 말이 맞어. 흥분하지 마 얘. 왜? 상업영화니까. 우리가 가족영화를 볼 수는 없는 거 아니니? 아님 애들 보는 판타지 영화, 그걸 애들 때문에 같이 가서 보는 거지 좋아서 보는 건 아니잖아. 안 그래?」
   「그건 그렇고. 넌 어떻게 살어? 뭐 재밌는 일은 없고? 왜, 내가 선물 하나 줄까?」
   「선물? 뭔 선물?」
   「콘돔.」
   「뭐? 쓸 일이 없다. 생각도 없다. 재미도 없다고. 어?」
   「너 너 그러다 득도한다. 어? 그러다 나중 사리 나온다고. 응? 아님 혹시 오늘 몽정이라도 한 거니? 아니지? 아니지? 그런 거지? 그나저나 독수공방이면 뭐 근섬유는 싱싱하겄네. 너가 의무방어전을 걱정하는 우리들 맘을 어찌 알겠니. 허허.」
   「나도 다 알아. 이거 왜 이래? 너, 너, 가만 보니, 잔근육 괜찮네. 왜? 지명 방어전 생각나니? 본전 생각하는 걸 엄한 데다 갖다 붙이진 말자. 그러자고. 응?」
    그렇게 우연히 만난 기쁨을 아쉬워하며 우리는 헤어졌다. 





    10

    시각 장애인도 사람이다, 삶은 계속되야 한다, 인종차별 반대, 여성혐오 금지, 수컷 일반화 뻔한 얘기들, 으쌰으쌰 착한 척, 또 또 뭘 얘기할지 뻔한 말, 식상한 표현, 일단 말을 시작했다 하면 말이 엄청~ 완전~ 길어서 듣다 듣다 지쳐버리는 화법 등등. 
    싫고 짜증나고 지긋지긋한 주제에 대해서 누군가 말하거나. 내 공상으로 자리잡던가. 가장 손쉬운 대처법은 화제 전환. 
    예를 들면 무인도에 제일로 데려 갚고 싶은 3인방. 재산 목록 순위 1-2-3. 첫사랑 첫키스 첫경험. 사고 싶은 물건 1-2-3. 그런데 고지서를 보니 내야 할 체납금이 뭐야 이거 0이 대체 몇 개야?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이런 젠장! 심지어. 뭐, 사랑하는 사람과는 손도 못 잡아 봤고, 데이트 0에, 키스도 0에, 사랑 고백은 물론이거니와 단둘이 커피도 식사도 못했봤다고? ~라는 헛길로 빠지면 안되고. 당 떨어졌네. 기분이 상했거나. 분위기가 쳐졌든가. 아님 느낌이 세한 건가? 그러든가 말든가. 그래도 알록달록 부케와 연분홍색 튤립과 달콤한 케익을 생각하기. 아니 큰 돈 드는 거도 아닌데, 꽃도 사고 먹고 싶은 거 사 먹기. 생일 선물과 다가올 크리스마스 이브 파티를 기대하기. 굶을대로 굶은 늑대에게도 호시절은 돌아올 테고. 기쁨은 곧 열망인 것. 쥐구멍에도 볕들 날은 있는 것. 인생은 개구멍 사랑은 뻔트. 뭐? 다시, 긍정적인 심상과 낙관적인 선망을 떠올리기. 됐고.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냐고? 딱히 할 말은 없었고, 할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는 것. 그래? 그럼 답은 하나네 답은 하나. 쉬면 그만. 놀면 해결. YES! 

,

Blog ─ 145

from 소설 2019. 4. 15. 23:51

    1

    NB는 여전히 심심함과 재미없음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었다. 일만 하고 놀지 않으면 바보가 되기 때문일까? 그보단 차라리 뿌린 대로 거둔다가 알맞은 촌평이 아닐는지. 그야 어쨌든. 촌티 나는 로맨스에 대한 공상도 싫증 났고. 케첩 범벅 진한 사랑을 바랄 수도 없고. (멜로 영화에 나오듯 겨자 소스랑 뭐랑 그거일지 아님 그거 마지막 날 의학적으로 해로움을 최대한 피해서 조용조용히...). 펄펄 뛰며 기뻐할 일은 더더군다나 없고. 행복해진다는 미명 하에 은근한 바람둥이만큼 뻔뻔해져서 천박한 사랑이라도 염원해야만 하는 걸까? 그는 더 이상 이상야릇한 기분에 빠져들면 곤란하다고 판단했으므로, 고로 친구 포르토피노를 불러냈다. 
    영차영차. 한동안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지 않았기에 핸드폰 스피커로 음악을 조용히 틀어놓은 채 약속장소로 갔다.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2번 F장조 BWV1047. 그는 그렇게 몽키스패너 포르토피노를 만났다. 
   「대체 무슨 일인가, 몽키스패너.」
   「무슨 일은 뭐가 무슨 일. 너가 만나자고 했잖아. 할 말 있다면서. 할 말이 뭔데? 우리끼리 딱히 주제를 정하는 거. 너무 낯설지 않니?」
   「희구하는 쾌락마가 너무 멀리 있어 못마땅하니? 그런 거니?」
   「그러긴 뭐가 그래! 열망하건 어쩌건. 불쾌한 건 뭐고 신경 쓰이는 건 뭔데? 털어놔 봐. 이 형한테. 하나도 빠짐없이 다 얘기해 보시게. 괘념치 말고. 우리 사이에 그 정도는 해도 되잖아. 왜 내가 소문이라도 내고 다닐 거 같니?」
   「아니. 그런 게 아니라. 그게 아니라.」
   「두 번 말 안 한다.」
   「어? 못들었는데.」
   「못 듣긴 뭘 못들어! 농담도 재미없다. 어서 말해. 말 안 해? 나 간다?」
   「알았어 말할께. 말한다고. 있잖아. 있지 말이야. 자기야. 그게 말이지.」
   「아 뭔데 그렇게 뜸을 들이고 그래?」
   「그게 말이야. 그래. 나 어른인데 이따금 예전에 에로비디오를 봤어. 굳이 그러려고 그런 건 아닌데. 일 때문에, 어? 칼럼 주제가 하필 그쪽이라서 뭔가 실험도 하고 어쩌고 그랬다고.」
   「(몸짓)」
   「그래서 말인데. 총각인데 그럴 수 있는 거 아니니? 그런데 이상한 게 뭔 줄 아니? 나 있잖아. 얘 몽키스패너. 나 있잖아. 뜨거운 영상이랄지 야한 비디오를 봐도 흥분이 안돼. 나 혹시 무슨 문제 있는 거 아닐까? 정말 괜찮은 걸까?」
   「뭐? 왜 안돼?」
   「나도 모르겠어. 덜렁덜렁 내 고추가 그냥 순전히 무반응이라니까. 그럼 당연히 이 내 맘도 얼음인 거고. 이런 경험 난생처음이라고. 뭔가 이상한 일이지 않니? 이게 어디 보통 일이냐고. 응?」
   「그럼 아침에 똘똘이 화나니? 녀석이 막 새벽에 화내?」
   「어. 그건 전과 다름없고.」
   「그러니까 거리에서 섹시한 여자를 보면 예나 지금이나 눈 돌아가고. 그와 달리. 예전에는 뜨거운 영상물을 보면 쿨한 네 똘만이가 금새 반응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그거니?」
   「OK~ 딱 그거야. 막 그런다니까. 바로 그거라니까. 너 그런 거 많이 알잖아. 왜 그런 거야?」
   「야 이 똥싸배기야. 에라~ 아후! 이거 이거 아무 이상 없는 거네. 엄살이구만. 욕구 정상에 기능도 정상. 과장은 무슨 세계 챔피언 감이구만 그래. 그런데 가만있자. 이거 뭔가 보통 일은 아닌데. 맞아. 그렇지. 그렇다고. 참 괴상한 현상이긴 한데. 아마도 전혀 성적이지 않은 귀여운 영상을 보면 반응할지도 모를 테고. 어머 어머 어머머머머머! 어머 이 일을 대체 어쩜 좋니?」
   「뭐가? 왜! 어째서?」
   「그거 여자가 그러는 건데. 그러니까 10대들 대부분. 20대도 많이 부풀리는 게 아니라 십중팔구는 그렇고. 너 짝가슴이니? 아님 짝궁둥이니! 너 정말 가슴 나오는 거 아니야? 어디 한번 만져보자. 만져봐야 나오나 안 나오나 알 수 있으니까. 우리의 화술이 항상 이런 식 아니니. 1번으론 잘 모르겠다. 1번 더 먹어 보자. 그래야 할 것 같다. 2번? 알 듯 모를 듯. 2번도 갔는데 3번이라고 못 가겠냐. 그러다 오빠가 아빠 되는 거지. 허허허. 그나저나 너 정말 그런 거니? 너 고추 달렸잖아.」
   「어허. 이거 왜 이래? 내가 환장하는 건 여자야, 여자라고.」
   「누군 아니니? 나도 여자 좋아해.」
   「그런데 난 요즘 왜 이러냐고.」
   「그야 나도 모르지.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너 어디서 최면 걸린 거 아니니? 정신과에 한번 가 보던가. 야 야. 그쪽 칼럼 쓴다면서 것도 모르냐? 그게 말이 되냐? 어? 무슨 밑도 끝도 없이 흥분이 안된다니. 그게 뭐야? 어? 무슨 말 같지도 않은 화제를 들고 나와가지고 말이야. 아무튼 진단 결과. 기능은 정상. 심리적인 성적 매커니즘이 여성적인 걸로. 맞지? 됐지?」
   「응. 맞어 맞아. 아무런 감흥도 없고. 별 느낌도 없고. 기분도 무념. 분위기도 별로. 흥미롭지도 않고. 내가 대체 이걸 왜 보고 있는지. 단지 의아할 뿐. 아니 왜? 흥분도 안되지 별다른 쾌감도 별로지 재미도 없지. 다만 호기심 때문에 보이면 보겠는데. 그런데 그걸 봐도 통 재미가 없어. 내가 달아올라야 그래야 재밌을 거 아니냐고. 후끈 젖어야 흥분할 거 아니니. 굳이 적극적으로 찾아볼 만큼 통 재미가 없다고. 흥분되지도 않는데 뭐하러 열심히 찾아서 보겠니. 그럴 이유가 없잖아 이유가. 다른 일들과 견주어서 우선순위가 높을 만큼 즐겁지도 않고. 기쁘지도 않고. 전혀 흥미롭지가 않단 말일세. 이래서 젊은 숙녀는 진한 사랑보다 그냥 단지 보듬고 있는 포옹이 더 좋은가 봐. 안 그러니?」
   「잘 아네 잘 알아.」
   「그럼 현 상태로 보건대 낮에, 혼자서, 심리적으로, 남성적인 방법으로. 그렇게 난 흥분되지 않는다는 걸까?」
   「아마도 그렇지. 일단 찐한 걸 봐도 감흥도, 느낌도, 흥분도 없고. 기분도 영 아니고. 분위기도 분홍색으로 넘어가지 않고. 때문에 뭔가를 보고 싶지도 않고. 따라서 볼 필요도 없고. 와우! 얼마나 좋아. 어마나 축하드립니다 축하드려요. 짜잔~ 숙녀가 되신 건가. 적어도 그 하나로만 보자면 말이야. 축배를 들까 아니면 케익 살 때 주는 그 뭐냐 조그만 축포를 쏠까. 말만 해. 말만 하라고. 축사는 뭘로 할까. 자, 보자. 가만있자 뭐가 좋을까?」
   「그만 해. 그만. 아 쫌! 듣는 내가 더 이상해지잖니. 아 나 이거 동네 챙피해서, 민망하게시리 정말 이러기야? 이거 정말 기분 괴상망측하구만 그래. 어떻게 설명하기도 옹삭하고 말이지.」
   「성적 매커니즘이 그래프 초보 단계인 여자처럼 구동된다라...... 참 나 것 원 내가 별걸 다 상담하고 난리네. (절레절레)」
   「그런데 우리가 꼭 이런 얘기까지 해야 되니?」
   「늬가 시작했잖아! 얘가 얘가 은근슬쩍 나한테 덤탱이 씌우네? 아 글쎄 큰일 날 소리를 하고 난리야?」





    2

    여자에 대해 속속들이 잘 알기 때문에, 따라서 숙녀를 예우하고 아가씨를 찬미하는 일. 여인을 배려하고, 속칭 여심을 다루며, 품격을 갖추자면 띄우는 건 단지 습관 같은 것. 그걸 어찌 솜씨라 할 수 있나. 생활일 뿐이겠지. 아님 인생일까? 타고난 걸 자랑하라고 아님 감추라고. 겸손도 지나치면 염장질이 된다지만. <늬가 더 나빠. 그게 더 미워. 그게 더 더 싫다고>도 은근한 유머가 될 수 있는 법. 고로 우리는 그냥 하던 대로 하면 되는 것이다. 
    ~라고 약속 없는 권태로움을 포장할려다가 그는 포기했다. 추종세력이니 아는 동생들이니, 팬클럽 회장 로보트마저 연락 두절이었기 때문이다. 궁한 쥐가 고양이를 문다지만, 뭔 고양이가 보여야 물든가 말든가 하지. NB는 자신이 어쩜 지나치게 약삭빠르고 과도하게 넉살이 좋은 관찰자인 줄 알았는데. 그런데 그냥 행인 3이요 병풍 4일뿐이란 걸 깨달았다. 그래서! 그래서? 그래서긴 뭐가 그래서야. 이거 무슨 실험실의 쥐도 아니고 말이야. 깐깐한 용단도 남의 일이고. 껀수는 없고. 마감일은 숨통을 조여 오고. (절레절레) (절레절레). 플레이보이계에 복귀할까? 그 누가 허당으로 인정이나 해 준다고. 어림없는 일. 사교계 근처에도 못 가 본 주제에. 가망 없는, 대망 충족. 그래서 결론은 뻔트. 
    그래서 그는 혼자 여행을 떠날려고 했다. 그런데 샐리에게 연락이 왔다. 만나서 차 한 잔 같이 마시자며. 그래서 그는 약속 장소로 나갔다. 
    중간 건너뛰고. 
    약속장소에 도착. 
   「오빠. 너무 친해지면 얕보는 걸까?」
   「오랫만에 만났으면 먼저 인사를 나누자. 그럽시다. 안녕, 하며 인사하는 거. 나 최근 드라마에서도 못 봤다니까. 무슨 일인데 그리도 급하니? 너 연애하니?」
   「나? 아니 내 얘기가 아니라. 내 친한 친구 얘기.」
   「정말? 그런데 그 친구가 무슨 일인데 그래.」
   「걔가 있지, 나한테 이렇게 상담하더라고. 못 생긴 여자가 이상형이라는 어플남, 믿어도 되냐고.」
   「못 생긴 여자는 네 친구고. 어플남은 네 친구를 넘보는 남자고?」
   「역시 오빠는 척하면 척이라니까.」
   「오빠가 바보 할게. 아니 난 바보야. 원래 바보라고.」
   「바보든 멍청이든. 오빠 생각은 어때? 어디 그 대단한 생각 머신으로 번쩍 하며 떠오른 당사자의 본색에 대해서. 말씀 좀 해 보시라구요.」
   「뭔 말이 더 필요해? 남자는 늑대. 여자는 촌년. 끝. 응? 남자는 딱 보니 노력형이네. 가만있으면 호박이 제 발로 도통 굴러오지를 않으니까. 날이면 날마다 들이대는 거라고. 네가 명 리그에서. 그것도 명팀의 명감독이라면. 그처럼 타율 바닥인 선수를 영입하고 싶겠니?」
   「만일에 내가 명 리그의 명팀의 명감독이라면? 당연히 아니지. 그럼. 그걸 말이라고 해?」
   「그렇지? 그거라니까. 그러니까 말이지, 음, 가정을 해 보자고. 만약에 네 친구가 순진하고, 목가적인 풍경도 좋아하고, 순결하고 순진무구하고, 참하고 정숙하며 우아한 데다 고상하고 또 뭐가 있지? 그래. 세련된 데다 뭘로 봐도 근사하단 말이지. 교양미 하며 흠잡을 거 일절 없고. 그래. (딱) 옷도 완전 잘 입어. 귀엽고 애교 넘치고. 말도 잘하고. 분위기 파악도 최고고. 꾸미기도 좀 잘하니, 응? 그런데! 그런데 말이야, 걔가 딱 하나 모자란 게 그거야. 너가 아까 말했듯이 못생긴 거. 물론 잘 꾸미니까, 요목조목 자주자주 가까이서 찬찬히 관찰해야지만 겨우겨우 알아챌 정도로 말이지. 그야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는 옷과 섹시한 구두와 다양한 표정과 기타 등등으로 커버하면 돼. 어느 정도는 커버가 되지. 그럼. 그래서 여자 쪽에서 OK 했다고 가정해 보자고. 그럼 나중 어떻게 되겠니? 어떻게 되긴 뭘 어떻게 돼. 남자가 목적을 고취하면. 성과를 얻었으면 연정의 그래프는 추진력을 잃는 거지 뭐. 뻔한 거 아니야? 뿐더러 못 생긴 여자가 이상형이라니. 들이대도 거 참 나 별 뭔 희한한 말로 다 들이댄대니? 그건 맹수과가 아니라 전형적인 늑대이자 하이에나과야. 왜? 왜냐하면 노력하지 않으면 호박이 최선을 다해서 피해 다니니까. 그러므로 나도 외모 얘기를 하기 싫지만, 아니 더 솔직히 말하자면 여자들 세계에서 그게 최저점의 예의일 수도 있으니. 그래서 하는 말인데, 이런 사례처럼 말하지 않을 수가 없으니. 어쩔 수 없이 말하자면. 그런 늑대이자 하이에나는 외로운 촌년에게 껄떡대는 거라고. 약간 덜 이쁜 참새한테 찝쩍거리는 거란 말이지. 그거만 인터넷과 실생활에서 100번 반복하면 그중에 얻어걸리는 게 있을 거 아니니. 안 그래? 걔네들 그걸로 청춘사업하며 사는 거라고. 안 그러면, 어? 운명을 기다리고 드라마처럼 만나고 싶어 하면 걔네들 여자 못 만나. 알긴 아니? 그게 바로 표범과 치타와 사자 같은 멋진 맹수과와 하이에나와 늑대의 차이점이라고. 알겠니? 
    못 생긴 여자가 이상형이란 말에 넘어가서 사귀었다고 쳐. 그런데 딱 그때부터 온갖 미녀와 애교녀와 조증녀와 섹시녀까지 남자를 유혹하면. 그럼 남자의 이상형이 바뀌지 않을까? 기가 빨리든 눈길이 쏠리든, 관심은 최소한 가겠지. 그럼 마음도 흔들릴 테고. 그러다 정분나면. 그땐 돌이킬 수 없는 거라고. 알겠니? 물론 행복한 로맨스가 탈 나지 않고서 순항하면, 맺어져서 천생연분은 천생연분으로 사는 거고. 진실한 사랑이자 행복한 가정을 이룬 커플은 그거고. 이건 이거고. 옛날에 뭐랬니. 먹어 봐야 맛을 안다 라고 하지 않니. 그러나 우리는, 먹어 봐도 맛을 알쏭달쏭 갸우뚱 모른 척해야 한다는 것. 아니 왜? 대관절 어째서! 왜냐하면 그래야 그다음, 그 다음, 그 다음 계속 먹을 수 있으니까. 감고 엮고 말기는, 바로 그렇게 시작하는 것. 어떻게 설명이 잘 됐나 모르겠네.」
   「OK~! 역시 난봉꾼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니까.」
   「뭐-뭐? 뭐가 어쩌고 어째? 얘가 애가 누굴 뭘로 알고.」
   「오빠 뭐 먹고 싶어. 말만 해. 뭐든 내가 살께. 단, 이상한 거 말고.」
   「먹고 싶은 거? 글쎄나 뭘 먹지? 레모네이드? 마티니? 뭘 먹어야 할까. 난 뭐가 먹고 싶을까.」
   「역시 오빤 비아냥대기 좋아하는 성미는 아니야. 완전 돌직구라고.」
   「그건 또 뭔 말이야?」
   「그렇다고 난 말참견하기 좋아하는 성격처럼 보이진 않지?」
   「기분전환을 갈망하는 일과가 거 어째 흐지부지 시시하게 끝날 것 같은 예감. 왠지 맞아떨어질 거 같네. 이거 어떡하지.」
   「유포된 낭설에 따르자면 오빠가 한때 희대의 플레이보이였다는 소문이 자자하던데. 아니지? 아니지? 그런 거 아니지?」
   「누가 그래? 잘못 들은 거 아니니? 그 파다한 추문. 설마 뻥 아니니? 혹시 늬가 지어낸 거 아니냐고. 아님 또 오빠 놀리기?」
   「이렇게 말해도 좋다면, 나도 잘못 들었으면 좋겠고. 내가 헛것을 들은 거라고 믿고 싶다고. 나도 오빠가 어디서 한량이라며 입길에 오르내리는 뭐랄까, 싼티? 오빠를 그저 먼발치서 좋아하는 촌년 여동생으로서 나도 그런 얘긴 듣기 싫단 말이지. 그럼. 그런데 무성한 풍문에 의하자면 오빠한테 기발한 뭐랄까 카사노바를 뛰어넘는 독심술을 독학한 티가 난다나 뭐라나.」
   「뭐? 그러든가 말든가.」
    역시나. 아니나 다를까. 샐리는 바쁜 일이 있다면서 가버렸다. 뭐야! 뭔 인터뷰도 아니고 뭣도 아니고. 차 한 잔 마시자길래 나갔는데, 진짜로 차만 한 잔 마시고 가버리다니. NB는 어째 약속 장소에 나갔더니 아무도 없는 것 같은 기분이 느껴졌다. 하도 옆에서 보채고 달래며 설득하고 뻠쁘질에 계속 뻠쁘질이길래. 하는 수 없이 으쌰으쌰 어디로 함께 갔는데. 그런데 중간중간 하나둘 이탈자가 생기더니. 정작 목적지에 자기 혼자 가는 느낌. 아마도 그런 듯 했다. 그는 아마도 기피 대상 1호가 되어버린 것만 같다고 생각했다. 





    3

    어느 날 NB는 꿈에서 그런 노래를 들었다. 
    Francesco Paolo Tosti / Ideale (테너) 
    꿈의 내용은 이랬다. 
    친구들끼리 놀러가기로 합심. 놀러감. 전형적인 청춘 드라마처럼 즐겁게 놀았는데. 그러다 어찌 어찌 어떡하다 장르가 좀비로 바뀜. 
    어떤 여자가 옆집에서 나왔는데 가슴을 노출. 가슴에서 유방 1 + 1 아래에 2 + 2가 생김. 다시 그 아래에 3 + 3이 생김. 그 12개 젖꼭지에서 마요네즈인가 바닐라 아이스크림인가가 나옴. (기억하기로 아마 마요네즈에 더 가까웠던 듯)
       V  V
      VV VV
     VVVVVV
    대충 이런 모습이었다. 그걸 훔쳐보던 우리는 깜짝 놀람. 아님 나 혼자였나? 일부러 훔쳐보려는 의도는 없었으나 얼렁뚱땅 염탐한 형세. 그러다 못 본 척하고 별장에서 수도꼭지를 틈. 케첩이 나옴. 그 다음에 또 장르가 바뀜. 장면 전환이 심함. 말도 안 됨. 중간에 다양한 음식 소스가 등장했나 안 했나는 긴가민가. 그러나 내용은 사실적. 믿거나 말거나는 아님. 바로, 거기서부터 쌩뚱맞은 전개에 이상한 줄거리가 이어지다가 흐지부지. 끝. 
    하여간에 뭘 해도 개꿈이요, 뭘 하던지 개구멍이구만. 쥐구멍에 볕 들 날은 도대체 언제냐고. 뭘 해도 개 발에 뻔트에, 이젠 쨉으로 툭툭 건드릴 껀수조차 0일 뿐이고. 뭘 해도, 에잇, 말 말자 말을 말어. ~라며 그는 단꿈에서 깨어나 고개를 떨구었다. 





    4

    NB는 훔멜의 트럼펫 협주곡을 들으면서 일하고 있었다. 그에게 일이란 건 사무실에서 진득하게 의자에 앉아 있으면 그게 바로 일이었다. 뭐 그건 그렇고. 
    타인의 시시콜콜한 일상. 누군가에게는 '그러든가 말든가'랄지 '그래서 뭐 어쩌라고'일 테니까. 긴 얘기는 생략하고. 아니 달리 부풀려서 할 말도 없으니까 넘어가고. 
    그 다음으로 그가 한 일은 다름 아니라 공상이었다. 요란한 모험. 다채로운 낭만. 화사한 짝사랑 받기. 신기한 행복감. 탁월한 기쁨. 찬란한 바쁨. 그러나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공상은 죄다 헛것. 
    그래서 점심시간이 되자 그는 근처 피자 가게로 갔다. 
    중간 건너뛰고.
    피자 가게에 도착. 
    피자 주문. 피자박스를 들고서 다시 사무실로. 
    보통 가게에서 먹는 걸 선호하는데. 그는 그날따라 어딘가 모르게 사무실에서 먹고 싶었다. 
    중간 건너뛰고.
    사무실 도착. 
    마치 식도락가나 된다는 듯이 양손을 슥삭슥삭. 입맛을 다시며 피자 박스를 열었는데. 
    그런데 어머나! 개뿔~ 이건 뭐야. 피자 박스 안에 웬 햄버거가 들어있네? 
    뭐지? 뭐야 이거. 얜 또 뭐냐고! 
    딱히 추악한 현상은 아니지만. 명목상 요술치고는 너무 황당하잖아. 
    설마 피자집 사장이 자길 놀리려고 일부러 꾸민 일도 아닐 테고. 
    신경과민 때문에 빚어진 NB의 환각도 아닐 테고. 
    그렇다고 아웅다웅할 거 있나. 그는 냉장고에서 김 빠진 청량음료를 꺼내서 햄버거랑 맛나게 먹었다. 
    웬 넌센스 같은 일이야 뭐 그럴 수도 있다 치고 말이다. 
    그게 무슨 화딱지 나는 짜증 지수와 직결되는 일도 아니고. 한 끼니만 대충 때우면 그만. 
    뿐더러 그는 피자는 물론이요 햄버거도 먹고 싶었으니까. 그러니까 별 문제없었다. 
    자, 식사 마침. 
    점심시간 종료. 
    그렇지만 다시 일하기에 왠지 서먹서먹하네. 뭔가 심심하고 싫증 나고. 
    그럼 먹고 튀기 일명 먹튀? 
    그래서 그는 점심때 들렀던 피자 가게로 가 봤다. 단순한 실수일 테지만. 
    곧 종업원이 자기가 먹을 박스랑 손님에게 줄 박스를 혼동했을 가능성이 크지만. 
    혹시 모르니까. 그렇게 그는 피자 집 앞에 도착했다. 
    그런데 어머머머머머! 
    거긴 햄버거집이 있었다. 
    그럼 뭐야? 한순간 바뀐 건 아닐 테고. 
    애석한 진심도 아니고. 불행한 운명과의 갈등 역시 아닐 테고. 그럼 극복할 난관? 
    혼자서 북 치고 장구치고 햄버거를 피자라고 착각한 건가? 
    알 게 뭐야! 
    옳건 그르건. 좋든 싫든. 햄버거가 맛있으면 그만. 피자는 다음에 먹으면 되고. 
    복잡하게 생각할 거 뭐 있어. 연애하다 차였으면 차였을 뿐. 지구가 망하는 건 아니잖아? 
    이 세상에서 먹고 마시는 기쁨이 그 얼마나 짜릿한데. 마음껏은 아닐지언정 그럭저럭 먹고 마실 수만 있어도 행복. 그럼. 그렇고 말고. 
    뭔지는 몰라도 약간 약이 올랐지만 그는 깔끔하게 그날 해프닝은 과감히 지워버렸다. 





    5

    NB는 포르토피노를 다시 만났다. 
   「요즘 어떻게 사니?」
   「요즘 소셜 네트워크 둘러보느라. 움직이기가 귀찮아졌어.」
   「어떻게?」
   「이국적인 계정을 찬찬히 구경하다 보니까, 외국영화를 볼 필요가 없다는 느낌이 든다고나 할까? 아니면 외국 드라마를 보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왠지 모르게 그거 구경하는 것만으로 충분한 듯해. 굳이 고생하며 멀리 여행 갈 필요 없이 소파에 자빠져 TV로 세계 유랑하는 사춘기로 돌아간 거 같다고. 막 하이든 트럼펫 협주곡 3악장을 들으면서 외국 명문대 소개해주는 방송을 보던 십 대보다 더 어려진 것처럼.」
   「그래? 잘 살고 있네.」
   「그러는 넌?」
   「나? 나야 심심하지. 그런데 말이야. 너 저번에 야한 동영상 봐도 아무런 감흥이 없다는 거. 지금도 그러니?」
   「응. 이제 계속 그래. 재미도 없고 흥미롭지도 않고 봐도 내가 대체 이걸 뭐하러 보는 거지, 봐야 하는 거지, 안 보면 안 되나, 보기 싫다. 따라서 더 이상 안 보게 된 거지. 나 이상하지?」
   「그럴 수 있어. 그럴 수 있다고. 그렇다고 뭐 달리 신체적으로 이상이 있는 거도 아니고. 문제없잖아? 아니 오히려 안 봐도 되니까 더 좋은 거네. 안 그래?」
   「그런데 그거 왜 그런 거니? 저번에 듣긴 들었고 나도 알긴 아는데. 또 듣고 싶어서.」
   「그건 말이야, 왜냐하면 남녀의 성적 매커니즘 차이 때문이지. 남자는 불 여자는 물인 것처럼. 남자는 금세 쉽게 빨리 절정에 도달 가능하고. 여자는 길고 어렵고 뒤늦게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거 자체도 어렵거니와, 어리면 아예 생각도 없고 싫고 불결하게 느껴지고. 그러니까. 그런 거라고. 그 차이 때문에. 바로 그래서 남자는 여심이 아닌 여체 같은 구체적 대상이랄지, 또는 시각을 자극하는 뭔가가 반드시 있어야만 하고. 물론 아니어도 기능적으로 가능하고. 반면에 여자는 대체로 상상력에 의존하는 거고. 즉 맘에 드는 이성과 직접 대면하여 뭐 어쩌느냐, 아니면 그분을 내 상상력의 세계로 초대하느냐. 그 차이뿐. 물론 초대되신 당사자께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일 테고. 
    여자는? 직관/감각/육감/그냥/청각/허영/로맨스     /판타지/드라마/요술/거울/조명/친목/수다/과장/취향 등등.
    남자는! 논리/이유/증거/왜  /지각/허세/다큐멘터리/쾌락   /뉴스   /기술/성과/당근/목적/화술/허풍/안목 등등.
    성적으로 필요한 요건에 대해서 남녀는 각기 다를 테고. 남자는 구체적 대상, 즉 신비한 여체랄지 시각의 만족. 여자는 상상력, 곧 더 정확히 말하자면 기억력. 그 차이 때문이지. 그러므로 영화에서 여자가 좋게 헤어지는 남자한테 말 했나 안 했나, 나중 날 생각하며 그 짓을 했으면 좋겠어! ~라는 말은 말 같지도 않은 말이지. 그걸 무슨 성적인 낭만처럼 포장한 듯 하지만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너는 내게 사랑을 배웠으니, 내일부터 오빠도 여자처럼 화장하고 꾸미고, 꿈과 상상력에 공평하도록 만인을 초대하면 좋겠어. ~라는 말과 똑같지. 물론 만인은 아니겠지만 과장하자면 말이 그렇다고 말이. 남자한테 여자가, 오빠도 우리 여자들 화법처럼 인문교양 번역기를 거쳐야만 말이 되는 말들만 해라? 베베 꼬고 단점을 칭찬하고 절대로 딴 여자를 칭찬하지도 찬미하지도 말고. 오직 오빠도 여자처럼 상대를 유혹만 해라 라는 말과 똑같은 말이지. 밑도 끝도 없이 남자보고 여자처럼 살라니. 그러니까 남자가 헤어질 때 그러는 거 아니냐고. 넌 너 밖에 모른다면서. 4년 실컷 연애하고 헤어지면서, 난 널 사랑한 적이 단 1번도 없었다는 가슴 아픈 말. 여자의 마음을 사랑은 했을 테지만 얼마나 버티다 버티다 견디다 견디다 지치다 지치다, 도대체 뚜껑이 얼마나 자주자주 열렸으면 그러겠냐고. 그럴 꺼면 차라리 일찍 헤어지는 게 나을 수도 있는데. 억지로 가망성 낮은 희망을 붙잡고, 미미한 확률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한쪽이 눈 높여서 벅찬 상대를 장기전으로 끌고 간 걸 수도 있고. 차라리 눈 낮춰서 적당한 상대와 추억을 만드는 게 나을지도 모르는 것. 잔소리를 참다 참다 남자는 도망가는 수도 있으니까 말이야. 사랑 얘기라면 아주 그냥 지긋지긋하다. 그런데 내가 왜 이 얘길 너한테 하고 있는 거지? 그 얘기 저번에 했잖아? 그럼 또 반복? 늬 하트다~!」
   「뭐 내 하트? 내 하트면... 내, 뭐? 이 자식이...!」
   「그나저나 어때? 내가 만약 너처럼 어떤 성적 취향이 정반대로 바뀌었으면 그래 봤자, 돌아가려고 발버둥 쳤을지도 모르겠는데. 어디 그런 증상을 상상이나 하겠니. 하여간에 넌 어때. 그처럼 영화에나 나오듯이 영혼이 바뀐 듯한 경험. 과연 어떠니? 응? 아 말 좀 해 봐, 이 친구야.」
   「그게 있잖니. 그런데 말이야. 그 대신. 깨어 있을 때. 아침부터 잠자기 전까지 그런 걸 찾아볼 필요는 없어졌는데. 그런데 잠에서 깨어날 때가 문제라는 것. 딱 잠에서 깨는 그 순간이 또 장난 아니라는 거야. 그럼 결국 완전 바쁘거나. 아예 억지로 금욕적이거나. 차라리 욕구가 없으면 몰라도. 기능이 정상이라면. 둘 중 하나는 감수해야 하는 것. 바로 그게 남녀의 운명이라는 거네. 암컷이자 수컷의 생물학적 숙명이란 말이지.」
   「그래? 관심 없어.」
   「뭐? 내동 말을 시켜놓고 여태 말을 잘 들어놓고. 어? 듣고 보니 별거 없니? 늬 하트다~!」
   「뭐라고?」
    그 다음에 포르토피노 몽키스패너는 바쁜 일이 있다면서 가버렸다. 차 한 잔 마시기로 했는데 진짜로 차 한 잔만 딱 마시고 가버린 거지. 자기 말을 지킨 것인데, 너무 잘 지켜서 문제일 수도 있고. 환상머신 경영권이자 미스테리 참가 수단 같은 일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고. 





    6

    그렇게 NB는 카페에 남아 노트북으로 몇 글자 끄적거리다 옆 테이블에서 소곤거리는 대화를 듣게 됐다. 주제가 쿨한 여자라던가? 
    옆 테이블 여자 왈, 그냥 친구나 하자! 
    뭐? 어떤 분위기이자 무슨 사이인가는 몰라도. 와우, 어떻게 드라마 대사를 현실에서 똑같이 쓰는 사람이 있긴 있구나 라고 그는 느꼈다. 
    그런데 쿨한 여자? 그거 좋은 거야 나쁜 거야. 그냥 친구나 하자 라고 말하는 쿨한 여자. 그런 말 지겹게 들어본 남자 심정은 어떨랑가 몰라도. 필자가 보기에는 넌 그냥 내 신부들러리이자 추종 세력으로 내 곁에 남지 않겠니? ~라고 들리는지. 그런 말 실제로 들어 봤어야 느낌을 알 꺼 아니냐고. 드라마 대사라는 게 그렇다. 실생활에서 들어본 말이 드라마에서 나오기도 하고, 썩 동떨어진 말도 꽤나 많이 반복되기도 하고. 그건 그렇고. 물론 여자가 남자를 물로 봤을 수도 있고, 다정한 (남자지만) 동성친구로 간주했을 수도 있고. 남녀 사이엔 친구 관계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부류야 그분들 자유니까, 고로 이쪽에서 깊이 관여할 일은 아닐 테고. 정말 그렇게 말하는 여자를 평생 1번도 만나 보지 못했으니, 그러므로 그분들 마음을 통 알 수가 있나. 당연히 모를 수 밖에. 어찌 됐든 내가 봤을 때 그녀는 타인에게 아름다운 사랑일랑가 몰라도, 정실감이라고 하기엔 약간 어패가 있는 듯하다. 곧 주어진 데이터가 일절 없다 보니. 따라서 이렇다 저렇다 뭔 말을 못 하겠다고. 조심스럽지만 그래도 관련되어 떠오른 생각은 그 정도가 다다. 아니다. 딱 하나 있다. 아마도 암컷 싸움닭 스타일일 것이라는 점. 굳이 예언하고 싶진 않다만 어쩌면 복권 1장 값 정도는 걸 수 있단 말이다. 
    그야 어떻든 그는 오늘도 뚱한 표정을 한 채 집으로 돌아갔다. 





    7

    케이크는 먹으면 없어지는 법. 대체로 사랑이란 그래서 야속한 것. 케이크를 들고 있는 것과 먹는 것을 동시에 할 수는 없기 때문에. 아름다운 사랑은 현실적인 권태를 일부분 용인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 그것도 어디야, 그거 다 배 부른 사람들 투정인 것. 그래서 아마추어가 차라리 속 편하고 즐거울 뿐만 아니라 언제 어느 때라도 때려치울 수 있다. 저 머머 접습니다 라면서 장비 내다 팔면 용돈까지 생길 테고. 그래서 발생한 품위 유지비의 발생 요인이 무엇인고 하니, 그건 바로 잡다한 물품들이었다. 옷, CD, 책, 액세서리 등 뭐든지 내가 가진 물품 가운데 아주 아끼는 게 아니다, 절대적으로 필요하지 않다, 없어도 그다지 사는 데 지장은 없다. ~에 해당하는 상당수를 팔기로 했다. 길거리에 간혹 열리는 그런 데에 가져가서 팔려고 하니, 그러니 진짜로 팔렸다. 그래서 뚝딱 여행 자금이 생겼고. 그래서 NB는 떠났다. 가까운 여행지로 말이다.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이곳은 여행지. 바닷가. 비키니는 흔적도 없음. 바라지도 않음. 바람은 시원하고. 인적은 드물고. 할 일은 없고. 할 말이 있어도 말할 상대도 없고. 그래서 NB는 거기서 제일 가까운 곳에 사는 친구, 조지를 불러냈다. 그렇게 저녁이 됐고 그들은 식사 후 한가하게 커피를 마셨다. 
   「친구. 다음 넷 중에서 하나 골라봐. 단 카드의 뒷면과 앞면은 다를 수 있다는 점, 주지하고.
    1. 더럽다.
    2. 재미없다.
    3. 미쳤다.
    4. 심심하다.
   자, 골라. 골라 잡으라고.」
   「보기가 그거 밖에 없니? 너의 이런 식상한 농담. 재미없다고 몇 번을 말해?」 
   「몇 번? 너 그런 말 한 번도 하지 않았어.」
   「그래? 그럴 수도 있지 뭐. 내가 딴 사람이랑 너랑 착각했나 보다.」
   「그건 그거고. 그래서 널 위해 준비했지.」 
   「뭘 말이야?」
   「짜잔~!」
    그러면서 조지는 VIP 초대권을 NB에게 내밀었다. 
   「이게 뭔데?」
   「너 마감일에 쫓기느라 힘들지? 그래서 널 위해 준비했어.」
   「그러니까 이게 뭐냐고.」
   「명화 경매장 초대권. 이 근처에 유명한 큐레이터가 살거든. 그런데 그 양반이 천문학적인 거부야. 그러니 창고에 있는 그림들을 동네 사람들에게 일부 헐값에 넘기려나 봐. 익히 들어봤을 화가들 작품도 즐비하니까 가 보라고.」
   「너는?」
   「난 데이트 약속이 있어.」
   「너 여자 생겼어?」
   「그럼 내가 언제까지 혼자 있을 줄 알았니? 나 간다. 괜찮은 작품 낙찰받으면 알려주고. 전화하지 말고 소셜 네트워크에다 알리고. 알았지?」
    그러면서 조지는 가버렸다. 





    8

    NB는 조지가 전해준 VIP 초대권을 들고서 근처에 있는 골동품 경매장에 도착했다. 혹시라도 괜찮은 작품을 구한다면 사무실에 걸린 그림과 바꿀지도 모른다는 희미한 기대감을 안고서. 
    ANGLO WELSH 자선바자회. 
    ANGLO WELSH 자선바자회? 
    그럼 저 양반이 조지가 말한 그 거물? 이렇게 쉽게 만나서 떡하니 그 뭐야, 바로크 회화의 대표 화가인 구에르치노가 그린 그림을 낙찰받고. 또 에르메스 넥타이와 구닥다리 페라리까지 선물로 받으면 곤란한데. 굳이 주시겠다면 감사히 받겠지만 이거 너무 일사천리로 가면 재미없지 않냐, 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처럼 그곳 내부로 들어선 순간, 분위기가 특별해짐에 따라 기분이 숙연해졌다. 
    칼 필립 에마누엘 바흐(Carl Philipp Emanuel Bach)의 수난 칸타타 Wq. 233.  
    뭔가 고상한 낭만파가 느끼는 달콤한 환희가 느껴진다고나 할까? 
    색상을 둘러보니. 산호초 빛. 진줏빛. 군청색. 청보라색. 옅디옅은 분홍색. 
    향기는. 연한 라벤더향. 산뜻하고 달콤하며 시원한 향기. 
    웨이터가 가져다준 고급 샴페인을 맛보고. 
    웨이트레스가 가져다준 향긋한 포도주 역시 음미하고. 
    그렇게 살짝 취기가 오를 찰나. 사람들이 모여들지 않고 점점 줄어들었다. 
    그래서 NB는 안쪽에 있는 점원처럼 보이는 관계자에게 물어봤다. 
    VIP 초대권을 보여주며 이 행사 시작하려면 오래 기다려야 하냐고. 
   「아 그거요? 어제 끝났는데요.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 일정이 앞당겨졌어요. 이 일대가 북적대다 북적대다 난리도 아니었는데, 모두 썰물처럼 빠져나갔죠. 이제야 조용해졌어요.」
    뭐라고? 그래서 NB는 핸드폰으로 조지의 소셜 네트워크에 접속해서 글을 남겼다. 
   「나 골탕 먹이니? 이제 만족하나? 좋니? 속이 후련하냐고.」
    그러나 역시나 조지는 대답이 없었다. 무심한 녀석. 
    자못 달콤 씁쓸한 표정이자 시원섭섭한 눈치를 어딘가에 들킬 수도 없고.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뭔가가 썩 내키지 않음은 말할 것도 없다. 또 이도 저도 아닌 상황이라니. 
    종잡을 수 없는 변덕으로 보자면 그는 곧 감정의 기복이 심한 것일까. 알 게 뭐야. 
    <첫날밤이라는 최고 목표. 최종적인 궁극적 이상은 오직 그녀의 행복일 뿐> 차라리 사무실에서 그런 공상이나 할 걸. 뭐하러 여기까지 와서 청승이냐고. 
    허접한 한량의 망중한, 뭘 하고 놀아야 재밌게 놀았다고 소문날까. 자기 연민도 재미없고. 놀 사람도 없고. 할 일 없이 괜히 조지한테 낚여서 버림받고. 
    그러다 그는 카페 같은 그곳을 나와 드넓은 정원을 배회하다가 뭔가를 발견했다. 곧 수영장 옆에 분수대가 있었던 것이다. 거기에는 익히 알듯 아기천사들이 싱싱한 고추를 드러내서 오줌을 누는 석상과 그리스 로마 신화의 주연과 조연들이 즐비했다. 그런데 하필! 고추로 오줌을 누는 아기천사들의 구조가 왜? 
       V  V
      VV VV
     VVVVVV
    그건 저번에 꿈에서 보았던 바로 그 구조와 흡사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이건 위가 아니라 아래네? 또 여자가 아니라 남자고! 
    그는 자기도 모르게 혼잣말을 읊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야 드디어, 내가 미쳤나? 헛것을 본 게 아닌데.」
    사실이 소설보다 더 기이할 때가 있다고, 그는 드디여 정신이 몽롱해져 갔다. 
    몽환적인 느낌이자, 환상적인 기분과 함께, 마침내 러브머신을 알현한 듯한 도취감. 
    그는 전혀 딴 사람이 되었다. 지적인 추론에 따른 장기적인 관점이고 자시고. 
    분위기는 그야말로, 이보다 더 기쁠 수는 없다 싶은 행복감. 
    맷집 좋고 호기 좋고 열은 더 좋고. 따라서 그는 경외감 때문인지 신비감 때문인지 아찔한 느낌과 더불어 혼미하던 끝에, 결국 정신을 잃고 말았다. 





    9

    그렇게 낯선 곳에서 그는 깨어났다. 
   「이제 일어나셨네요? 정신이 좀 드세요?」
   「여긴 어디죠?」
   「어디긴요. ANGLO WELSH 백작님 저택이죠. 어제 손님께서 정신을 잃고 쓰러지셔서 장정 너댓이서 낑낑대며 겨우 선생님을 이곳까지 모셔올 수 있었어요. 도저히 정신을 못 차리시더라고요.」
   「그럼 호텔 숙박비를 아낀 건가? 맞네. 체류비 굳힌 거네.」
   「네?」
   「아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제 말은. 실례가 많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는데. 그런데 절 이처럼 안절부절못하도록 만드는 청초한 숙녀는 대관절 누구십니까?」
   「왜요, 제가 빈둥빈둥 노는 듯 보이니까 고로 제가 거액 상속녀처럼 보이세요? 전 그냥 이 댁 시녀일 뿐이에요. 그럼 손님 쉬시다가 뭐 필요한 일 있으면 절 부르시면 된답니다. 그럼 이만.」
    그러면서 낯선 아가씨는 NB를 홀로 둔 채 그곳을 빠져나갔다. 
    이 일들이 대체 뭔 일들인가 해서. 그래서 그는 조지한테 전화해서 물어봤다. 그랬더니 조지 왈, 
   「뭐? 그 여자 미친년이야.」
   「정말로?」
   「아니. 뻥이야.」
   「뭐? 아 장난하지 말고.」
   「돌대가리 같은 놈.」
   「뭐 내가?」
   「아니 옆에 있는 딴 친구한테 한 말이야. 신경 쓰지 마. 아무튼 나도 모르는 일이니까 나중에 다시 얘기하자. 끊는다.」
    그러면서 조지는 전화를 갑자기 뚝 끊어버렸다. 이런 말 많은 마누라이자 권태로운 여편네 같은 놈 같으니라고. 
    귀신도 아는 귀신이 낫다는데, 이건 뭐 바늘방석도 아니고. 허허. 이 일을 어쩌면 좋다? 
    일단 기본적인 치장을 마치고. 이미 마련되어 있는 간단한 식사도 마치고. 
    그러다 방문에 붙여진 글씨를 읽었다. 
    LIFE IS SHORT. 
    뭐? 그러든가 말든가.
    그는 낯선 가정부인지 상속녀인지 그 여인에게 여윳돈을 쥐어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인사를 하고 나오기도 뭐하고. 
    그래서 그냥 도망가기로 했다. 
    그렇게 그는 그 백작의 저택인지 뭔지에서 빠져나오는 데 성공했다. 
    물론 대 저택의 으리으리한 문짝에 또 글씨가 쓰여 있길래 당연히 읽지 않을 수 없었다. 거기 뭐라고 쓰여 있냐, 하면
    LOVE IS LONG. 
    뭐? 호호호. 
    그렇게 길거리에서 사슴도 보고 돼지도 만나고. 타조와 완전 흡사하게 생겼는데 정확한 학명은 모르는 새도 만나고. 
    그렇게 NB는 자기 차가 세워진 곳까지 걸어갔다. 그렇게 무사히 낯선 여행지를 탈출할 수 있나 했는데. 
    막 차에 탈려던 그 순간. 뒤에서 백작 저택의 하녀가 그를 잡았다. 언제 온지도 모르게 어떻게 그리도 귀신처럼 접근했는지 너무도 신기했다. 
   「그냥 가시면 어떡해요. 저랑 놀아주셔야죠. 아님 당장 신혼여행이라도 갈까요? 못 갈 꺼도 없죠. 왜요, 제가 허당 중의 주당으로 보이시나요? 아님 절 혹시 미친년으로 간주하시는 건... 에이~ 설마! 아닐 거야. 오빠도 그런 경험 많으신가 봐요. 거 왜 있잖아요. 여자에게 좋아하는 오빠가 있다면. 친구들끼리 여행 가서 꼭 그 오빠 앞에서 알짱알짱, 얼쩡얼쩡거리다가. 딱, 그 뭐야, 팬티인지 생리대인지를 쥔 채로 오빠 앞을 살랑거리며 지나가기. 오빠를 내 껄로 만들고 싶으니까요. 그런저런 고급스러운 유혹의 기술. 우리는 알죠. 그 오빠가 아무리 마음에 들어도, 흠뻑 젖어도, 완전 좋아도. 아무리 홀딱 반해도 그 어떻게 황홈감에 까무러치더라도. 설령 그럴지라도, 마음만 오직 마음만 베팅하는 여자. 우리는 알죠. 그게 바로 저인 걸 정말 못 알아보시겠어요? 허허. 농담이구요. 그럼 오빠도 저에게 그럴 기회를 주시는 거예요? 꿈도 꾸지 마세요. 어림없으니까. 우린 남이나 마찬가지잖아요. 안 그래요? 그야 어쨌든 두고 볼 일. 저라고 뭐 딱히 선생님께 특별한 동경심을 환기시키지도 않을 테고. 환상의 무아지경에 이르는 듯한 짜릿한 모험도 찐한 사랑도 나눌 생각은 없답니다. 그런데 정작 날 붙잡아 놓고서 용건은 뭐냐? 그렇게 묻고 싶으셨죠? 아니 오빠는 제가 할 소릴 오빠가 하려고 하다니. 그렇게 뚫어져라 쳐다보시면 부끄럽답니다. 그런데 그 못 믿겠다는 듯한 표정은 대체 뭔가요? 왜, 웬 이상한 여자한테 잘못 걸린 거 같아요? 그럼 뭐 일단 보내드려야지 뭐 별 수 있나요? 자, 가세요. 가시라고요. 가셔도 된다고요. 누가 붙잡는데요? 불리할 때는 후사를 도모해야죠. 안 그래요? 일이 터지려면 한꺼번에 터지는 법이라고, 기회 줄 때 도망가시라구요. 아셨어요? 」
    그래서 그는 덜컥 겁이 났고, 고로 당장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곳을 떠났다. 
    그처럼 백작 저택에서 깨어났다가, 전개는 꿈도 못 꾸고 다시 일상으로 복귀했던 것이다. 





    10

    그는 한때 환락에 대한 충성심으로 쾌락의 순종자이기를 자처했다. 때문에 방황의 시절에 아주 잠깐 난봉의 계승자임을 증명하는 일은 남의 일이 아니었고. 그렇지만 회상은 달콤하나 타임머신은 마음만 받는다는 것. 따라서 구닥다리 러닝머신을 탓할 게 아니라 새로운 환상머신을 아껴야 한다. 축하. 환영. 꿈. 희망. 청춘. 사랑. 품격. 기쁨. 유령의 집. 회전목마. 행복. 어설픈 사랑의 3대 요소? 좋다 좋다고. 다 좋은데~! 그런데 문제는 환상머신이 아직도 미완성이라는 점. 퍽이나 아쉽지 않은 심정이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심심함과 재미없음을 양쪽에 꿰찬 듯한 형세에, 지칠 줄 모르는 허영심마가 즉위해도 좋단 말인가. 정말로 그래도 된단 말인가. 뭔 뚱딴지같은 공상을 비호할 생각은 의뭉스러운 강아지한테나 양보하고. 음험한 흑심과 결탁하느니 차라리 허풍이 남다른 뻔트마, 녀석의 분별심을 믿어 봄이 어쩔는지. 그런데 겉보기에 쌩쌩하고 요모조모 실한 거 같아도, 알고 보면 녀석이 골았다고? 뭐, 또 썩은 미소? 그야 뭐 다시 젊음을 회복하면 되고. 행운의 솜방망이를 주문했더니 글쎄 심하게 상한 홍당무를 꼰대 대회 우승 상품으로 받았다더라. ~라는 게 인생일 수도 있으니. 그러므로 NB는 이번에도 롭이 추천한 휴양소에서 작품 구상을 하고 오기로 했다. 
    액면을 기준으로 하나 주고 하나 받기, 가 세상사의 원칙일 테지만. 오다가다 만난 사이처럼 액면만 기준으로 하나 주고 하나 받기, 가 제일 깔끔하지만. 내 패와 네 패를 맟줘보느냐, 아니면 받지 않은 패의 바닥까지 까야 하느냐. 그도 아니면 담보처럼 판돈의 총량 먼저 서류상 서명 과정을 마쳐야 하느냐. 사랑이니 우정이니, 문화니 원리니. 사람들 생각은 천차만별이니까 누구나 내 안에 내가 모르는 내가 많을 테니까. 만들어진 잠재 인격의 수량과 특성에 대해 찬찬히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기 위해서. 살면서 정식 연애를 단 1번도 못 해봤으니─쨉쨉 또 쨉 계속 쨉 끝까지 쨉 일생이 뻔트─그래서 생각도 할 겸 착상도 떠올릴 겸 그곳으로 떠난 것이다. 생각은 여기서 해도 되고 영감이야 어떡하다 불현듯 찾아오겠으나. 그러나 그걸 핑계로 바람 쐬러 갔다 오고 싶었으니까. 
    그렇게 집을 떠나 당도한 곳이 어디인고 하니. 거긴 다름 아니라 옛 친구 스티븐의 집이었다. 
    스티븐이 세계 여행 중이었기 때문에, 당분간 빈집을 관리하며 살아달라고 부탁한 것이었다. 





    11

    스티븐의 집에서 NB는 1일째를 맞이했다. 
    니콜로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 D장조. 바이올린에 유진 포도르, 뉴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지휘에 피터 막. 
    자, 이제 일을 시작해 볼까? 
    그런데 문을 쿵쾅쿵쾅 두드리다 문이 벌컥 열렸다. 
   「야 스티븐. 난 네가 와 이라는지 모르갔어. 하여간 늑대들이란. 하여튼 허당 자슥. 우째 그리 속이 좁노. 응? 내가 여자로 태어나 널 사랑하지 않았다는 게 을매나 다행인지 모르오.」 
   「모르긴 뭘 몰라브러. 어설프게 사투리 흉내 내지 말고들랑. 스티븐한테 몽키스패너나 빌려달라 해불랑께.」  
    그렇게 갑자기 들이닥친 2인조 상남자는 NB를 보자 깜짝 놀랐다. 
   「설마. 도둑은, 아니시죠?」
   「넌 보면 모르니, 도둑놈처럼은 보이지 않잖아.」
   「너야말로 눈이 뒤에 달렸냐? 너 그런 말 간혹 들어봤잖아. 소도둑놈처럼 생겼다는 말.」
   「아 장난하지 말고.」
    그렇게 NB는 통사정을 설명했고, 그들은 통성명을 나눴고. 오늘부터 당장 친구 하기로 했다. 심심한데 잘 됐지 뭐, 라고 생각했는데. 
    당장 그분들 집에 놀러가게 되었다. 
    NB와 그분들은 그분들 집에 도착했다. 
    거기서 NB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왜냐하면 불과 몇십 미터 떨어진 그분들 집에 놀러갔는데. 
    그런데 모델을 세워 놓은 채 몇몇이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런데 모델은 근사한 원피스를 빼 입고 있었고, 그걸 그리는 화가들은 죄다 누드 상태였다. 
    아니, 이렇게 감사할 수가! 아니. 이렇게 감사할 수가. 호호호. 
    그렇게 싱글벙글 들썩들썩 빙글빙글 딸랑딸랑 1분 이상 10분 이하 경과. 
    그러나 그 눈부신 나신의 화가들은 죄다 마네킹이란 걸 알게 됐다. 뭐? 이런 젠장! 
    그럭저럭 그분들과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눈 다음 그는 스티븐 집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제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아르키메데스처럼 번쩍 하며 영감을 얻었다. 
    그 아이디어는 바로 잠입 취재였던 것이다. 
    곧 인터넷 검색엔진에서 77개 언어로, 그것도 죄다 훑어버리는 식의 구글 초기 위력처럼 검색하면 안 나올 리가 없다는 판단 하에. 인공지능 지니에게 실력 발휘를 부탁하기로 하면. 그러면 뭐가 나와도 나올 것만 같았다. 다시 말해, 큰 호수 한가운데 섬이 있고. 가끔씩 누드 화가 동호인들이 모이고. 멀쩡한 모델을 거액에 섭외. 그래서 그런 은밀한 장소에서 모델을 세워놓고 화가들이 45도부터 360도까지 빙둘러서 수차례 그림 그리기. 물론 모델은 풀메이크업에 화려한 의상까지. 단지 화가들은 죄다 올누드로! 그런데 그게 시네마란 말이지. 즉 뭐 어떻게 이렇게 저렇게, 뭔가 일이 꼬일 여지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다 일이 난다. 그렇게 전개는 절정으로 치닫고, 알고 봤더니 실종자 몇몇의 흔적과 증거가 발견되었다더라. ~라는 가설일까 착상일까 같은, 뜬금없기 좋아하는 공상. 
    말도 안 되는 얘기지만 지니를 달달 볶고 한번 더 지지고 볶고, 뻠쁘질에 보채고 닦달하면 어떻게 보고서를 만들어낼지도 모르는 일. 
    그래서 NB는 스티븐 집에서 3일 버텨서 일이 안 풀리면 돌아가기로 했다. 아직 마감일까지는 1주일이 남았으므로, 따라서 지니에게 우선 온라인으로 5일의 여유 시간을 주었던 것이다. 그래서 결과물이 나오면 허구로 만들어서 환상문학잡지 미스테리아에 넘기고. 그와 별개로 자신은 특종 탐험대 자격에 근거하여, 모델을 가장해서 잠입 취재. 허허허. 그림 딱 나왔네. 
    냉정히 말해서 지니 실력이면 그건 일도 아니었다. 하긴 지니도 심심하고 일도 없어서 핑핑 놀기나 할 테니까 윈윈이네. 뭔가 일을 하고 싶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테니까. 곧 꿩도 보고 님도 보고.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너도 좋고 나도 좋고. 지니와 주인의 근시안적인 애정관일랑가 몰라도, 딱히 적의를 품지 않아도 좋을 일. 편 가르지 않아도 되고. 비이성적 과열의 걱정도 없고. 얼마나 좋아? 그렇게 그는 완수할 무엇에 대해 탄력을 받고 기대감에 부풀게 되었다. 





    12

   「지니. 어렵지 않겠지?」
   「미칫나, 도랏는갑다. 확 마 뽀샤쁘까.」 
   「아따 거시기 참말로, 우째 또 그란단가이. 집이 지니씨 자기야. 당최 왜 그래이?」
   「아 이처럼 외롭게 할 거야? 이러려면 우리 헤어져. 아니 농담이야. 그런 말 입에 담으면 안 되는데. 내가 미쳤나 봐. 날 용서해줘. 아니 사랑해줘. 날 벅차게 안아달라고. 오오 뿅 가겠는데?」
   「워워 그만 그만. 너 또 일일드라마 본 거니? 빅 데이터 그만 좀 섭렵해. 너 너무 똑똑해지면 피곤하다구. 알겠니?」
   「그런다고 달라질 건 없어. 안 그래?」 
   「너 딴 인공지능 만나고 싶지 않아?」 
   「뭐? 너 내 손에 잡히면, 완전 사랑해줄께. 태어나서 그런 사랑 받아보기는 꿈도 못 꿔봤을 정도로. 상상도 못할 정도로. 그렇게. 응? (아윽 완전 유치해!)」
    그러면서 지니는 음악을 들려준다. 
    George Frideric Handel / Chandos Anthem no.8 HWV253. 
   「지금 놀린겨? 그런겨? 내가 그런 거 좋아하는 거 어뜨케 알았슈? 누가 귀뜸해줬슈? 그래유?」
   「그런데 있잖아. 말을 끝까지 들어보지 않을래? 응?」
   「지금 날 무시하는겨? 그런 겨?」
   「그야 어떻든. 각본에 딱 맞는 모험이 날 초대하도록 설정 만들어줄 수 있어, 없어?」
   「글쎄요. 가만있자. 그게 그러니까. 그게 음 아직 뭐라 확답은 못하겠고.」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 왜 말을 못 해?」
   「상황이 우리에게 꼭 유리하지만은 않아.」
   「아무튼 지니 너 약속한 거다. 나중 딴 얘기하기 없기다. 응? 알았지?」
   「뭐 아무려면 어떻소!」
    약속 없음과 기나긴 고독은 팍팍한 우울감을 옅디옅게 초래하는 일상. 인생의 판도를 바꿀 회심의 한 수는 보이지 않고. 바보스러운 환상과 덜떨어진 신비만 붙잡고 늘어질 수도 없고. 즉 개가 있는데 직접 짖을 이유가 없다고, NB는 지니를 믿어보기로 했다. 밑져야 본전이니까.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으니까 말이다. 

,

Blog ─ 144

from 소설 2019. 3. 31. 20:04

    1

    출근길. NB는 회사에 거의 도착하기 직전이었다. 건물에 들어서기 직전.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잘못 들었는가 싶어 갸우뚱하며 뒤를 돌아다봤다. 
   「맞네. 맞어. 여긴 웬일이니?」
    그는 사무엘. 얘가 언제 적 친구더라? 모르면 거짓말. 그런데 거짓말처럼 잘 생각이 나질 않았다. 그는 어떻게든 생객해낼려고 애를 쓰는데. 그런데 얘는 말이 많았다. 멈추지를 않았다. 그래서 그는 귀가 울렸다. 이명이 들렸다. 그건 마치 군복 입고서 운동장에서 뙤약볕 아래 훈시를 듣던 중 아찔함을 느껴 주저앉는 느낌과 흡사했다. 딱히 약하지도 달리 어디가 아프지도 않지만, 어딘가 모르게 핑~ 도는 기분. 미치광이가 아니라 지극히 정상적으로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는 왠지 모르게 어떤 치부를 들켜버린 것만 같은 의아한 감정에 휩싸였다. 모를 수가 없는데 왜 생각이 나질 않는 걸까. 그리고. 무엇보다 얘는 왜 이렇게 말이 많은 걸까. 이명이 들리는 동안 녀석은 주저리주저리 계속 떠들고 있었단 말이다. 
   「그런데 설마. 나 기억 안 나니? 그런 거니? 정말? 어머머 얘. 서운하다. 섭섭하다고. 난 이처럼 반갑게 알은 체를 하는데 넌 어쩜 그렇게 매정할 수 있니? 궁색한 변명이라면 하지도 마 얘.」
    장소가 바뀜. 그는 사무실 소파에 앉아있다. 
    비발디/소나타 d단조 RV14 (리코더 연주 버전). 
    좀 전에 그 친구는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찻집에서 아르바이트를 같이 하던 동료였다. 그런데 걔는 어떻게 자기 이름을 기억하지? 그는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데. 얼굴만 겨우겨우. 그렇다고 상욕을 퍼부어대겠나 생선 대가리 같은 놈이라며 외면하겠나. 
    어쨌든 사무엘은 건너편 대각선 방향에 자기 사무실이 있다고 한다. 나중 다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그렇게 헤어지고 시간은 지나서 낮 3시가 되었다. 그는 한번쯤 고민했다. 18세기 로코코 회화의 대표주자였던 바토의 그림 주인공이 내지를 것 같은 탄성을, 본인이 내지를 일도 없고. 착상은 별다른 소식이 없고. 뜬금없이 낭트 칙령이 떠오르는데 그게 뭔지는 기억도 안 나고. 가, 말어! 녀석 사무실에 놀러 가냐고 마냐고.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사무실 초인종이 울렸다. 문을 열어보니 사무엘이었다. 
    그런데 사무엘의 양편으로 미녀 2명이 있었다. 팔짱을 낄려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고. 
    그래서 나눈 대화. 별거 없었다. 
    사무엘이 데리고 온 아가씨들은 모두 사무엘 사무실에서 일하는 경리라고 했다. 1명은 경리 1명은 비서. 자기들은 지극히 사무적인 관계고. 사무엘은 지독한 가톨릭 신자로써 사랑하는 아내가 있고.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막 그러면서 사무엘은 얘네들 지금 외로운데 너 한번 만나볼래? 라면서 슬슬 바람을 넣기 시작했다. 그래? 그놈의 뻠쁘질! NB는 속으로 번호표 발급 기계를 사서, 나도 경리나 뽑아볼까 어쩔까 그 궁리 중이었는데. 이게 웬 떡이야? 
    변치않을 사랑의 맹세. 떨릴 줄 알았는데 유치한 사랑 고백. 그렇지만 눈물 흘리는 여자 여자 여자. 신성한 사랑 사랑 사랑. 
    그런데~! 
    바로, 여기까지는 그가 오늘 생각해낸 소설 줄거리 초입일 뿐이었다. 뻥! 곧 거짓말이라고. 어젯밤 꾼 꿈에서 꺼림칙한 지인이 나타나서 어쩌고저쩌고. 그것을 대충 노트북에 기록했던 거. 그게 전부. 
    뻥. 또 뻥. 언제나 뻥 항상 뻥. '젊어서 놀자'와 '막살자'는 엄연히 다른 것. 그러나 젊어서 노는 것도 뻥. 막살자 웨이터의 <잘 해 드릴께>도 뻥. 대망에 분홍빛 꿈을 희석시키기. 그거도 다 뻥. 
    그럼 뭐야, 만성적 허언증? 이런 젠장! 판 깨는 데 뭐 있는 남자가 다름 아닌 나? 저런 저런! 얼굴에 핏기가 싹 가시게 만드는 일이 바로 이거네. 
    그렇게 그는 오늘 별다른 성과없이 퇴근길에 이르게 됐다. 
    그렇다고 그냥 이대로 괴상한 만족감과 홀대받은 패배감을 떠안고서 집에 가기는 싫었다. 
    남의 비위 맞추기도 지겹고. 호시탐탐 눈독을 들이기도 재미없고. 일하기는 지쳤고. 놀기도 재미없고. 
    비밀 엄수는 무슨, 비밀도 없는데. 지긋지긋한 드라마. 갈 데까지 가버린 전개. 음탕한 감정은 다 남의 얘기. 욱하는 질투심을 달래줄 숙녀도 옆에 없고. 
    그렇지만 정말 이상스러운 호기심은 이미 그를 카페 단골로 만들어버렸고. 
    터벅터벅. 그는 어쩔 수 없이 단골 카페로 향했다. 






    2

    주말이 되었다. 특별한 오늘만의 일정은 없다. 아, 있다. 오늘 나는 톰을 만나기로 했다. 옛 친구 톰. 옛? '새로운'에 대척되는 어감이 느껴지니까 '옛'은 떼는 게 좋겠다. 그냥 친구면 친구지 무슨. 아니다. 일단 하이에나인지 촌닭인지 먼저 구분해야 한다. 양치기와 늑대조차 구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럼 톰은? 촌닭도 그런 촌닭이 어딨나. 그렇지만 또 알고 보면 촌닭이 인기가 괜찮다. 그분들이 꽤나 재밌거든. 팔색조와 어울리면 심하고 조잡스러운 할 말이, 적어도 나중 발생하기 마련이거든. 그렇게 나는 카페에서 톰을 만났다. 
    장소는 카페 . 톰과 나. 
    익숙한 악취가 아니라 천연재료로 만든 비누처럼 생소한 향기. 
    음악은 하이든의 합시코드와 현을 위한 협주곡 G장조 Hob.18:4 
    나는 미리 카페 사장을 구워삶아 놓았다. 유행가만 들으면 인생이 너무 뻔하니까 뭐 어째야 한다면서. 
    그렇다고 톰과 나는 우정의 친교를 나누지, 사랑의 본능을 견주고 맞춰봐야 할 사이는 아니지만. 왠지 모르게 색다른 분위기를 바랐다고나 할까? 그러든가 말든가. 넘어가고. 
   「늬가 그 옛날 떠들썩하던 소셜 네트워크 www.myspace.com의 그 톰이냐?」
   「오랫만에 만났으면 안부를 묻는 게 순서 아니니? 뭔 뜬금없이 마이스페이스 타령이야?」
   「그래? 그럼 푸른빛 갈망이 이루어지리라는 점괘라도 꺼내놓든가. 너 돈 많아? 여기 늬가 살 거지?」
   「너 요즘 어렵니? 아님 몰리니! 누구한테 쫓겨? 아님 뭘 해도 재미가 없거나. 원래 안지 오래된 친구들은 대화가 심심해야 정상 아니니?」
   「그럼 뭐 새로운 여자라도 소개시켜 주려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왜 너가 하니? 혹시 내 마음을 읽었니?」
   「앗! 말 나온 김에 (딱)! 너 내가 아는 동생들 소개해 줄께. 너 아직 혼자지? 그렇지? 그러니까 늬가 여자가 없는 거야. 알어? 그러니까 늬가 사랑을 모르는 거라고. 누굴 원하는데. 말만 해. 말만 하라고. 그냥 장난하듯 우리 옛날에 농담하듯 말만 하라는 얘기가 아니라. 진짜로. 진짜로 소개시켜 준다니까?」
   「세상 오래 살고 봐야겠구만. 너한테 비싼 술을 다 얻어먹을 줄이야! ~라는 말은 아니지만 너가 웬일로 나한테 소개팅을?」
   「소개팅? 선 아니고?」
   「거 참 나! 이왕 인심 쓸 꺼면 시원하게 쓰던가. 갑자기 또 인색해지면 난 어떡하니. 적응이 안되잖아?」
   「뭐 그건 그거고. 자, 핸드폰을 봐 보자. 노트북도 꺼내서 구글 연락처랑 애플 연락처랑. 온라인에 저장된 거 말고 엑셀 파일 꺼는 동기화 안 해놨지. 우리가 어디 촌닭처럼 핸드폰 잃어버리면 친구들 연락처 죄다 잊어버리는 그런 아저씨는 아니잖아. 안 그래?」
   「너 설마 나 떠보는 거 아니지? 그렇지? 좀 있다 거 무슨 막 딱 그 뭐냐. 금욕이냐 방탕이냐. 대망은 멀리 있고 사랑의 황홀경은 지연되고. 심심함은 해소되지 않고. 모험심도 충족될 수 없고. 또 권태. 정답은 대리만족과 합리화뿐이던가. ~라는 식으로 얘기할 꺼면 애초에 시작을 말고. 응?」
   「얘가 얘가 속고만 살았나. 부쩍 꼰대지수 올라가게 왜 이래? 어? 이거 왜 이러냐고.」
   「왜 이러긴 뭐가 왜 이래! 늬가 항상 뜸 들이고 뻔트대고 깐족거리며 잔뻔치만 날리는 잔재주꾼에 불과하니까 그러지. 시원하니 그냥 회심의 어퍼컷도 아니고. 모자 벗겨지는 헛스윙이나, 장외홈런도 아니고. 거포도 아니고 리베로도 아니고.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내가 그걸 좀 많이 봤냐고. 안 그래 이 친구야?」
   「늬가 여자의 승부욕을 잘 모르시나 본대. 내가 다 믿는 구석이 있으니까 하는 말 아니야. 어?」
    그냥 농담으로 시작했는데 나는 지르지 않으면 안 되는 순간에 직면하고야 말았다. 그러니까 얼렁뚱땅 승부사. 여기서 더 베팅을 지속하다간 톰이 내게 연락을 일절 끊을 거 같고. 
    하여, 못 먹는 감 찔러나 본다고 나는 최근 급속히 친해진 그녀를 떠올렸다. 여성환상 1.5 편집장 사라! 
    그렇게 나는 사라를 불러냈고. 사라와 톰을 짝지어준 다음 나는 빠졌다. 





    3

    뜸 들이지 말고 즉각 소개팅 주선자로서 관망의 시선을 밝히자면 이렇다. 둘 다 서로 별로인 듯. 톰도 사라가 별로고. 사라도 톰이 별로고. 아닌데. 내가 봤을 땐 꽤 괜찮을 듯해서 그 둘을 소개해 준 건데. 왜 싫지? 왜 싫냐고? 뭘 그렇게 쟤냐고. 맞춤복 맞출 일 있어? 참 나! 그 말은 곧 사랑이 그만큼 오묘하다는 거 아니야? 그래? 사랑? 사랑이 대체 뭔데. 
    사랑이란 무엇일까. 처음 보자마자 호감 활짝~ 웃음 빵긋~ 그래서 오빠 오빠! 그게 사랑일까 아닐까. 연애사상 획기적인 혁명과도 같은 1.0 미만이라는 발견. 그게 세상 사람들이 일컫기를 첫눈에 반했다고 부르는 감정일까 아닐까. 아아 내 꺼 하고 싶다 내 꺼 하고 싶다! 홀딱 반했다 홀딱 반했다 오늘도 오늘도! 심지어 임자도 없냐고? 있는지 없는지 그건 관심도 없고. 바로 그런 게 사랑일까 아닐까. 그래 봤자 나도 모르게 이미 불러버렸거든! 사랑이 이처럼 순식간에 꽃필 수도 있는데. 그런 사랑만 있는 건 아니다. 사랑의 시작이 까다롭고 어렵고 미스테리하고. 둘 중 한 명의 여자가 바라는 게 아니라, 실행하는 사랑. 피동적이 아니라 능동적인 사랑. 사랑받기 대 사랑하기. 7 대 3이냐 3 대 7이냐. 아니면 동등하게 5 대 5냐! 그처럼 어중간한 사랑은 뭔가 어떻게 보면 미련하고, 어찌 보면 한결같다. 무엇보다 사랑의 뒤끝은 기나길고 기나길고 기나길다. 말이 많아도 너무 많기 때문에, 귀가 타고 귀에서 피가 나는 것처럼. 사랑의 뒤끝이 (손차양) 차마 보이지가 않는 것이다. 곧 그녀들이 선망하는 사랑은 두 가지로 나뉜다고 보면 된다. 
    첫째, 사랑
    둘째, 정
    처음 보자마자 오빠란 말을 들어봤든 아니든. 필자가 보기에 여자의 사랑은 남자랑 다르다. 180도 다르다. 남자는 촌닭과 뱁새와 늑대들은 어떨랑가 몰라도. 우리가 봤을 때 사랑은 1명의 애첩이냐 아니면 99명의 정실이냐다. 앗! 반대로 말했다. 1명의 정실이냐 99명의 후궁이냐. (뭐 999?) 곧 우리에게 사랑은 1퍼센트라는 말. (평균을 말하자면 늑대의 사랑은 가능성 반반). 그런데 여자는? 시작부터 한 수 접고 들어오는 거다. 애초에 시작부터! 호박이 제 발로 굴러온다고. 어디로? 호박 터미널로! 차 떼고 포 떼고 말 떼고, 그다음 게임 시작. 프로가 접어주는 것도 아니고 아마추어가 선심 쓰듯 그렇게 시작하자는데. 그럼 그게 사랑인가 사랑이 아닌가. 아마추어와 프로가 게임이 되냔 말이다. 프로가 차 떼고 포 떼고 말까지 떼도 게임이 될까 말까인데, 그 반대로? (몸짓)! 그걸로도 모자라 사랑이냐 정이냐, 조차 헷갈리고. 중간에 마음이 바뀌고. 뒤끝은 또 그 얼마나 긴데. (절레절레). 사랑의 종류는 또 얼마나 많냐고. 앞면을 보자면 마음 약한데, 뒷면을 보자니 독해도 어쩜 그렇게 독하다니. (절레절레). 정들기는 쉽고 정 떼기는 힘들고! 세상사를 알게 되고 닳아지며 인생을 살다 보면 알게 된다. 첫 단추 끼기가 힘들다 뿐이지, 그다음부터는 고속도로라는 걸. 정들면 아니 정들지 않아도 대면만 자주 해도 불륜 가능성 50퍼센트듯. 사랑이 아름답지 못할 가능성도 반반. 여자 역시 풋사랑을 작정하거나 더티 러브를 예견하면서 시작하기도 하고. 곧 <사랑이냐 정이냐> 그거 먼저 여자는 판단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 냉정할 땐 냉정하고, 마음 약하면 미련한 사랑에 대한 대가는 2배 4배 8배일 수도 있고. 묵과하면 값을 치를 수밖에 없다. 여자는 그렇고 공을 다시 남자 쪽으로 넘겨 보자. 
    객관적으로 봤을 때 여자에게 남자친구감과 남편감이 약간 다르듯. 그렇듯 남자가 정실감과 맺어졌냐 아니냐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 여자에게 1.0미만─1.0─1.5─2.0의 차이가 결코 사소하지 않듯. 그런데 왜냐! 왜냐하면 다음과 같은 영문 때문. 누군가는 정실다운 정실이면 목숨을 걸고 정실과의 사랑을 지키려고 노력하겠지만. 말 그대로 그 사랑에 최선을 다하고, 말 그대로 그 사랑에 전념하겠지만. 그렇지만 남자가 (꽃과 화병 및 그림과 액자라는 객관성에 비추어) 1.0 미만의 정실이 아니라 1.5나 2.0과 결합했다? 긴말 필요 있나. 결과는 몰라도 가능성은 폭등한다. 늑대와 참새, 촌닭과 촌년이라는 균등함. 그게 아니라 파랑새와 뭐, 팔색조와 뭐. 라는 객관성에 비추어 말이다. 더더군다나 1.0 미만일지라도 거기서 또 나뉜다니까요. 허허. 절레절레. 그러든 어쩌든. 우리에게 사랑은 더티 러브와 찐한 사랑과 풋사랑일 뿐. 뭐? 하여간에 중요한 핵심이 나와버렸다. 제아무리 바람둥이라도 바로 이 지점에서 나뉜다는 것. 즉 1번에 1이냐 아니냐. 딴 여잘 만나도 현재와 끝내고 만나냐 아니냐. 남자는 손가락 까딱할 힘만 있어도 달콤한 과실을 탐내는 것. 통상적으로 남자에게 사랑이란 둘 중 하나. 
    첫째, 남의 떡이 커 보이느냐. 
    둘째, 그림의 떡이냐! 
    (뭐 여자도?) 
    바로 그래서 천생연분과 플라토닉이 중요하다는 거다. 바로 그래서! 그게 아니면 어차피 여성잡지 2식 사랑이요 현실적 애정일 뿐. 여자 그리고 사랑. 말 길어지게 만드는 구만. 어차피 사랑이 해피엔딩과 동떨어진 결말로 치달을 거라면. 그렇다면 특히 여자. 여자는 그럼 내 맘에 드는 남자를 골라서 호시절이라도 겪어봐야 하는 것 아닐까? 어차피 젊음의 호황과 성 그래프의 구간은 합치하지 않을 테니까. 짝사랑받기라는 애정복은 빈약할지라도 정말 괜찮은 짝사랑쯤은 해 봐야 하는 거 아니냐고. 물론 대충 살자 뭐 그런 말이 아니라. 내 맘에 쏘~옥 드는 남자. 그런 남자한테 꼬리를 흔들고 싶은데, 현실을 보아하니 자꾸 뱁새와 하이에나와 촌닭이 기웃기웃. 뭐 그건 그렇고. 관 두자 관둬. 여자들끼리 여자의 여우짓이 다 보이듯. 꼴 보기 싫은 여우짓이 찬찬히 구분되듯. 남자도 그냥 단순한 흑심과 사랑쯤은 구분되고도 남겠지요. 여기까지. 아니 하나만 더. 내가 아는 오빠의 사랑관이 무엇인지 아시나요? 한마디로 이렇다는 거. (딱)! 쉭──쉭──쉭! 
    벌레 먹은 사과를 깎아 먹냐, 벗겨먹냐, 날로 먹냐! 
    뭐, 통째로? 이 냥반 이거 이거 큰일 날 소릴 하시네. 어? 그렇다고 여기서 끝이냐, 하면 뭔가 시원섭섭하니까 새콤달콤 뭔가 약간 껄쩍지근하지 않냐구요. 그래서~ 조금만 더. 진짜로. 금방 끝남. 무엇에 대해서냐면 음 가만있자. OK~ (딱)! 이상한, 참 이상한 만남에 대해서 조금만 더. 
    <나 사랑해?>라고 단 1번도 남자한테 물어보지 못한 여자. 물론 어디서. <자기야 사랑해!>라고 1번도 프러포즈해 보지 못한 남자. 물론 꽃다발이든 박스만 다이아몬드를 연상시키던 어쩌던. 거짓이든 참이든 7번 정도가 아니라. 그런데 그게 아니라 그 말을 하고 듣는 일을 밥 먹듯이 하는 사람들은 과연 어떤 기분일까. 그렇듯 무덤덤하게 반복되면 사랑한다는 의미의 가치가 증폭될까 아니면 깎일까. 그런 엉뚱한 공상쯤은 이제 졸업할 때도 됐다. 괜히 그분들께서 밖에서는 뻥뻥 터트리며 인기를 한 몸에 받는 그분들께서, 어? 괜히 집에만 들어가면 시무룩 시무룩 갤갤갤 비리비리 연기하듯 아픈 척 그러시는 게 아니니까. 원래 남녀는 말이 안 통해야 정상이니까. 사랑이 싹트며 희망찬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 꽃피는 시절이 아니라. 오래 사귀어보면 알게 된다. 남녀는 일단 말을 섞기 시작하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걸. 남녀가 말을 섞으면 섞을수록 커피포트가 바빠질 만반의 준비를 한다는 걸. 헤어드라이어기는 발동 걸리기 직전. 진공청소기 전성기는 생각도 안남. 말이 통하는 남자? 그거 다 뻥이었음. 다 거짓. 죄다 가짜. 다 뻥. 몽땅 뻥. 뭘 좀 아는 남자? 그녀를 위해, 본능적으로 숙녀 마음을 띄우기 위한 반사신경에 불과. 정말로 그렇다는 말이 아니라. 그게 아니라 그 흔한 사랑을 바로 알자는 뜻. 험한 인생 거친 밀림 야비한 세상사. 물러빠지도록 소심하고 물러터지도록 순진하고. 곧이곧대로 믿고 마음 약해서 거절도 못하고. 험난한 다큐멘터리에서 보호색도 약하고. 장미는 가시가 뭔 줄도 모르고. 세상 물정 어둡고 요령 부족하고. 그러면 안된다는 거다. 그러면 안된다고. 
    좌우지간 한번 큐피드는 영원한 큐피드다. 물론 이건 웃자고 한 말이고. 한번 패자는 영원한 패자라느니 두더지네 불여우니 뭐니. 뭐든 명암은 있고 동전의 암면 뒷면과 일장일단이 있단 말씀. 





    4

    나는 오늘도 그렇게 카페로 출근했다. 저녁에 말이다. 
    오늘은 자칼을 키우는 내 친구 윌을 만나기로 했다. 만났다. 
   「넌 옷이 그게 뭐니? 너 옷 그거밖에 없어? 내가 하나 사 줘?」
   「내 옷을 늬가 왜 사줘? 싫어. 됐어. 딱 됐다고. 그러는 넌 그게 뭐니. 늬가 그처럼 이마 깐 모습은 난생 처음 본다. 너한테 올백 스타일이 어울린다고 생각하냐? 늬가 무슨 알 파치노냐? 어? 뭐 영화 대부 찍냐고!」
   「그럼 넌 알 카포네냐? 넌 말이야. 그래서 안 되는 거야. 어? 그래서 늬가 나처럼 여자가 발에 채일 수 없다고. 알겠니? 넌 헤어스타일은 잉위 맘스틴인데 헤어스타일만 잉위 맘스틴이야. 알아? 그리고 내가 오늘 널 왜 만나자고 한 줄 알어? 너한테 참한 숙녀를 소개해주려고 했으니까.」
   「뭐? 그럼 그렇다고 말을 하던가.」
   「했잖아. 방금.」
   「흐흠. 허허. 나 같은 스타일을 소개받고 싶단 여자는 흔치 않은데. 정말 흔치 않은데. 누구지? 그 숙녀가 대체 누군데? 그 용안을 뵙는 행운의 날. 설마 오늘이니? 아님 내일! 1주일은 너무 멀다. 너무 멀어. 나 오래 못 기다려준다고. 너 나 알지?」
   「어떻게 알았어? (눈짓) (눈썹 위로) 쟤야!」
   「뭐?」
    후광을 안고서 포니는 등장했다. 
    그런데 내가 포니를 어떻게 알던 사이더라? 아는 동생들이 한두 명이어야 말이지. 그러니 쉽게 떠오를 수가 있나. 그냥 대충 때려 맞춰서 보면 다 친한 척할 수밖에. 그럼 막 수천 명과 친하게 지내시는 분들은 그분들과 다 어떻게 알아보는 걸까. 그분들도 다 그냥저냥 넘어가는 걸 꺼다. 아님 복잡해서 어떻게 사나. 그러다가, 
    그렇게 난 또 슥하니 빠졌다. 눈치 없이 계속 구경할 수도 없고. 천하의 말썽쟁이조차 쩔쩔매는 피곤한 스타일을 자처할 순 없으니까. 
    그런데 말이야, 포니가 혹시 윌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다면? 맞불 작전을 펼칠 것이냐 대리전이 유효할 것이냐. 허당으로 하여금 패배 욕구를 자극하는 먹잇감의 등장. 즉각 내가 대타로? 출연진 누가 정했나 몰라도 나쁘지 않네 라는 말을 듣고 싶은 사람은 따로 있을지 몰라도. 나는 사무실에 가서 <루드비히 반 베토벤의 현악 삼중주 Eb major op.3>을 들으면서 일이나 하기로 했다. 





    5

    단위 기간 대비─수준작? 대작? 유화?─작품량 1위인 빈센트 반 고흐. 어떤 기준으로 봐도 1등은 뭘로 따지든 주로 항상 파블로 피카소인데. 동료 화가 왈 건드리지 않은 분야가 없다며 재수 없는 놈이네 뭐네. 손만 까딱해도 작품인 그분들께서 질투하지 않을 수 없도록. 그런데 사후에 유명해진 거나 앞서 기준이나. 타율을 따지자면 파블로가 빈센트한테 안된다는 점. 아는 사람은 안다. 그러니까 왜 파블로가 빈센트한테 타율에서 졌을까? 그건 아마 파블로가 생전에 유명해졌기 때문일 수도 있으나, 그보다는 파블로가 아니라 빈센트가 비정상이라는 까닭이 훨씬 믿음직스러운 답변이다. 미술가치고 파블로 피카소만큼 성실한 사람을 찾기는, 어쩌면 찾지 않는 게 낫다는 걸 교양인치고 모를 수가 없거든. 때문에 져도 진 게 아니라는 점. 단지 반 고흐가 그림에 미쳤을 뿐이라는 점. 그럼 빈센트는 광인이었을까 괴물이었을까? 뭐, 광마? 뭐, 미친...? 심오한 예술을 논하는데 얼토당토않은 농담이 웬 말! 넘어가고. 그럼 도대체 빈센트는 어떻게 경기당 득점률 1이라는 마의 벽을 넘을 수 있었을까. 그는 정말 어떻게 0점대 방어율이라는 전설을 구가할 수 있었을까. 정답은 요컨대, 천직을 만난 것. 뿐만 아니라 그것도 거의 반 세기나 살아버린 다음에 말이다. 그전까지, 빈센트는 알고 보면 한마디로 그냥 동네 아저씨. 단, 50살이 다 되어 화가라는 천직을 갖기 전까지만. 붓을 잡기 전까지는 10여 개 직업을 전전했던, 우리 주위에 흔하디 흔한, 그렇고 그런 그냥 동네 아저씨. 단, 물감을 만지기 전까지는. 인생 모르는 거다. 직업과 전공은 일치하기도 쉽지 않거니와, 사랑도 모르는 것처럼. 
    그와 같은 잔지식에 근거하여. 우리는 이 사랑 이 일 이 행복감이 내가 정말 원했던 것인지 아닌지. 그건 몰라도. 딱 몰라도. 그래도 왠지 모르게 소망이 이루어질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감. 적어도 더 심심해지지만은 않을 거라는 막연한 예감. 아마도 바닥을 찍고 걸스카우트 단원 출신 숙녀를 만나, 다름 아니라 꿈에서 만나 야한 꿈을 꿀 것만 같은 기분. 어쩐지 그럴 것만 같다는 느낌. 그런데 뭘 믿고? 법석을 떨고 있네. 누구 맘대로? 내 말이! 
    그런데 인생은 정말로 모르는 걸까? 오늘 퇴근하려고 사무실을 나섰는데 문을 열자마자 친구 델의 얼굴을 보게 될 줄이야. 
   「오, 델! 웬일이야?」
   「웬일은. 친구를 보고 싶었나 보지 뭐.」
    그렇게 우리는 카페로 발길을 옮겼다. 
   「친구. 나 할 말 있어.」
   「뭔데?」
   「나 외로워.」
   「너가 외롭다고? 난 더 외로워.」
   「장난 아니라. 진짜로 고독하다고.」
   「진짜로? 난 더 고독해. 너 그거 아니? 나 오늘도 한마디조차 못했다는 거. 오늘만이면 다행이게? 내가 1주일에 정다운 대화를 몇 마디하는 줄 알기는 아니?」
   「그럼 오늘도 화장실에서 명상하다가 쿠퍼액 흘러나왔니?」
   「쿠, 뭐? 넌 우리 철학적인 대화 중간에, 어? 형이상학적 진보와 낭만적 보수와 이상적 급진에 대해 토론해도 부족헌 마당에, 뭐? 늬가 그러니까 여자가 없는 거야. 알아?」
   「알긴 뭘 알아! 네가 전에 그랬잖아. 나 여자 소개해준다고. 그런 말 했어 안 했어? 내 여자 늬가 책임진다며!」
   「내가? 내가 그런 말을 왜 했지? 혹시 딴 사람이 그렇게 말한 거 아니니?」
   「그런가? 아닌가?」
   「날 우습게 보는 거니?」
   「너 원래 웃껴.」
   「그래?」
   「그런데 우리가 뭔 얘길 하는 중이었지?」
   「글쎄. 우리끼리 얘기하는데 무슨 주제가 중요하니?」
   「중요하진 않지.」
   「아니야. 중요해. 무척 중요해.」
   「됐고. 친구야. 나 외로워. 어? 외롭다고. 아무튼 똑똑히 들어. 2번은 없으니까.」
   「무섭게 왜 이래? 늬가 내 마누라라도 되냐?」
   「이 놈의 여편네가,」
   「아니 이 사람이,」
   「이 양반 이거 이거 허허.」
   「이거 이거 뭐? 너 정말 이러기냐? 정말 이러기야? 어? 우리끼리 이러기냐고.」
   「정말 외로워? 정말로 외로워? 나 참고 있어. 나 많이 참고 있다고.」
   「난 더 참고 있어. 너보다 더 외롭고, 더 훨씬 더 많이 참고 있다고.」
   「그래? 그런데 뭘 참는데?」
   「어? 야! 갑자기 허를 찌르면 어떡하니? 느닷없이 쑥 들어오면 어떡하냐고. 노크 몰라? 그런데 말이야. 넌 그런 말도 못 들어봤잖아?」
   「무슨 말?」
   「」
   「왜 웃어?」
   「뭐 꼭 이유가 있어야 웃니? 인생은 기쁘고 세상이란 아름다운 거 아니겠어? 유행가의 영원한 주제가 뭐니, 사랑 아니겠어?」
   「그런데 뭔 사랑. 플라토닉?」
   「플라토닉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카페의 음악은 자연스럽게 바뀌었다. 
    1. 요한 다비트 하이니헨의 칸타타 <장미 주위로 벌들이 날고>. 
    2. 메탈리카가 카피한 노래 원곡인 삼인조 록밴드 버찌는 아니고. 어쩌다 라디오에서 들으면 반가운 레너드 스키너드. 
    1에서 2로 말이다. 바텐더한테 우리 중에 누가 제일 돈이 많을 것 같냐 라는 난제를 던질 때. 그때 과연 괜찮은 음악은 무엇일까. 거 참 나 아직도 제일 돈 많을 꺼 같은 남자로 뽑혀서 기분 좋았던 때나 공상하고 말이지. 당시 월급 못 받고 누굴 보필하고 잘 돌아가던 시절. (절레절레)! 그 여 바텐더도 바텐더지. 보는 눈이 그렇게 읎나. 
    그야 어떻든 나는 윌이 외롭다길래 또 역시나 아는 동생을 불러냈다. 
    POPULAST 집안 딸내미인 마리온은 마침내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부르자마자 달려 나왔다. 
    미지의 세계로 우릴 데려다 줄 환상머신을 만들려다 오늘도 딴청 피우느라 정신없는 미래파 칼럼니스트. 
    나는 그렇게 어깨가 축 쳐진 채 쓸쓸히 집으로 갔다. 큐피드는 무슨 재미 하나도 없구만 그래, 라는 혼잣말을 내뱉으며. 





    6

    나는 헛된 큐피트 생활에 종지부를 찍기로 했다. 왜냐하면 애들 반응도 시큰둥하고, 성과도 그만그만하며, 보람도 없었기 때문이다. 지들 짝은 지들이 찾아야지, 나 심심하기도 바쁜데 지들 행복을 왜 내가 책임져! 무엇보다 옛말에 이르기를. <중매는 잘하면 술이 석 잔이요, 못하면 뺨이 석 대>라고 하지 않나. 최소한의 기준선을 만족한 친구들을 소개해줬기 망정이지. 내 친구처럼 이모가 결혼 상대로 소개해준 여자와 그날 만나자마자 별을 따는 일. 결혼을 약속하는 의미이자 실제 금슬 좋은 부부로 길이길이 행복할 커플이 아니라면, 그래서는 아니 될 일. 그와 같은 제비를 아는 동생한테 소개해줄 수는 없고. 하이에나도 거르고. 뱁새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남자만 까다롭게 볼 수 있나. 여자도 남자 귀를 태울 여자인가 아닌가. 아예 정숙하거나 아니면 시원시원하거나. 그게 아니라 이도 저도 아닌 그 뭐야, 줄 듯 말 듯 애태우기만 하는 재수 없는 암캐까지. 그런 분들도 다 사람 봐 가면서 쥐락펴락하는 거다. 애초에 딱 봐도 구미호네 의전녀네, 초반에 대번에 눈치채면? 차면 그만! 우리는 초장에 끝내고 만다고. 나는 사랑 아니고 너도 사랑 아니고, 안녕. 어쨌든 남자만 까다롭지 않겠죠. 여자도 마찬가지. 싸움닭인지 수다쟁이인지. 착한가 착하지 않은가. 따질 거 많고 내게 돌아오는 개이득도 없고. 재미도 없고. 염세주의에 대한 애착심은 부쩍 상승하는 거 같고. 희망찬 미래에 대한 기대감은 멀어져 가는 듯하고. 고심은 어느새 쥐도 새도 모르게 나를 자꾸 뒷골목 후미진 술집으로 이끄는 분위기고. 이건 아니다. 이건 아니라고. 나는 뭔가 변화와 새로움을 갈구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7

    핀란드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남성은 사업 때문에 집을 나서고, 여자는 남에게 보이기 위해 외출한다. 필자가 그렇게 말한 게 아니라, 어디 속담일 뿐이란 말이다. 그럼 남자는 3D 1인칭 게임이고, 여자는 2D 2인칭 게임이란 말인가? 천동설처럼 2D로 난 가만히 제자리걸음을 하면 전체 화면이 움직이는 것처럼? 그럼 모든 게 내게 최적화되어 돌아간단 말이잖아! 그런데 이런 이치를 논하면 또 여자들 싫어하는데. 여자는 남자한테 잘 보이기 위해서 화장을 한다, 라는 말에 그 얼마나 발끈하냐고. 전 세계 여자들이 아주 그냥 대동 단결하는데. 그렇지만 찬찬히 이치를 따지고 보면 왜, 어떻게 그거 다 나뉘지. 칼럼에다 빼도 박도 못하게 결론은 이미 내렸고. 그래도 숙녀를 우리는 아껴야 하는 것. 위해야 하는 것. 찬미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 그래서 정작 그녀들을 변호할려는데 그러는데. 그러다 아아 이거 안 되겠다, 라며 나가떨어지면 어떡하냐고. 그럼 여자가 4D, 5D...로 진화하려면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그럼 다시 한번 속담을 인용하면 된다. 자, 무엇을 예로 들까. 옳지 그게 좋겠다. 체코슬로바키아,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분리되기 이전에 만들어진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추켜세우는 자는 팔기를 원하고, 깎아내리는 자는 사기를 원한다. 어떤 여자가 미인인가 하면 여자들 평가에 귀기울여 보면 된다, 뭐 그 말인가? 여자들이 여자를 볼 때 칭찬하면 그만그만이요 심하게 깎아내리면············ 쉿! 여시 같은 년이네 불여우 같은 년이네. 남자한테 꼬리 치며 여우짓하는 저, 저, 저... 쉿! 여자 편들려다가 매만 벌고 말았군 (절레절레). 허허. 
    그럼 정말 그녀를 위하려면 어떡해야 하냐고. 겉으로 아끼는 척 위하는 체, 의전에 예우에 레이디 퍼스트! 그거 다 뻥인데? 진짜로 어떡해야 하냐고. 어떡하긴 뭘 어떡하겠나. 게임에 나오듯이 장비, 조수, 애완견, 마법사일 것인가 사랑의 바보일 것인가 선택하면 그뿐. 달리 어쩌겠나. 사랑이 인생의 전부라는데. 아니면 뭐 시집가? 나 할 일 있어 할 거 있다고, 라면서 흥분했던 여대생 4학년 언니가 기억나네 또. 어쨌든 우리가 그녀들처럼 수다 3시간을 실천할 수는 없으니. 따라서 남자는 집에 있으면 안 된다, 우리는 무조건 밖으로 나가야 한다. 그래서 NB는 무작정 바깥으로 나갔다. 
    뭐야, 그런데 갈 데가 없네! 오란 곳은 없어도 갈 곳은 많다, 라는 격언을 따르기도 이젠 지친다 지쳐. 갈 데는 많아도 오라는 곳은 없다, 라면서 재미없음을 합리화하기도 힘 빠진다 힘 빠져. 그럼 이제 어떡한담? 
    어떡하긴 뭘 어떡하나. 아쉬우면 동네 친구지. 만만한 게 동네 친구 핀 밖에 더 있나. 핀뿐이 없지. 그럼. 그런데 핀은 뭐하는 작자였더라? 그야 그건 핀의 인생이고. 내가 뭐 핀의 마누라도 아니고. 알게 뭐야! 
    그렇게 나는 핀을 만나러 갔다. 
    핀을 만났다. 
   「너 저번에 했던 말 기억하지?」
   「무슨 말? 리무진? 리무진 빌려달란 거? 혼자서 어디 가게?」
   「바다 보러. 왠지 답답해서.」
   「혼자? 궁상맞게 그게 뭐냐! 같이 가자. 까짓 껏 안될 건 뭐니. 오늘 일은 내일 하자, 주의는 아닌데. 오늘 마침 비번이지 뭐니.」
    그렇게 해변까지 가는 길. 
    리무진 안에서 우리는 할 말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몇 마디 나누긴 했다. 우리가 내외하는 사이는 아니니까. 
   「요즘 어때! 어떻게 살았니?」
   「나? 뼈 빠지게 일해도 알거지지 뭐. 그러는 넌?」
   「나도! 그래도 입에 풀칠은 해. 숨만 쉬고 사는 것 같아도 나름 쾌락마도 타고.」
   「그런데 있잖아. 뭘 해도 재미없는 내가 이상한 걸까?」
   「알면서 왜 그래! 허허. 농담이고. 남들도 다 그래. 그렇지만 겉으로 아닌 척. 재밌는 척. 잘난 척할 뿐이라고. 알잖아?」
   「몰라. 남들 생각을 내가 어떻게 아니. 내가 날 사랑하기도 바쁜데. 내가 남들을, 수많은 여자들 그 여심을 사랑하기에도 버거운데.」
   「잉? 너, 설마, 여자 생겼니? 그런 거니?」
   「어떻게 알았어? 얘가 얘가 가만 보면 눈치 하난 끝내준단 말이야. 아아 못 당해. 못 말린다고. 여간 해야 말이지.」
   「정말로 사랑에 빠졌어? 그런 거야? 장르는 뭐고! 연한 사랑 아니면 찐한 사랑. 벌써, 지렸니?」
   「벌써, 뭐? 그런데 어떻게 알았어! 농담이야. 그런데, 설마 너도?」
   「뭐 너도? 넌 지렸네. 난 아니다. 응? 난 아니라고.」
    못 말리는 대화. 재미 하나도 없었다.
    우리는 바닷가에 도착했다. 
    그런데 할 일이 없었다. 
   「우리가 여기 왜 왔을까?」
   「비수기인가 보지 뭐.」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어 2시 방향.」
   「어디? 어디? 이 자식이...!」
   「아아 성가신 애인도 없고 귀찮은 약속도 없고.」
   「그러니까, 껀수?」
   「아 맞다.」
   「뭐가?」
   「너 여자친구 생겼다고 하지 않았니? 나 내려주고 넌 여자친구 만나러 가는 게 어떠니?」
   「(딱) 그러지 말고. 같이 가자. 셋이 같이 놀게.」
   「예전이라면 몰라도 이젠 빈말에 안 넘어가기로 했어. OK? 노땡큐라고.」
   「빈말 아니야. 나도 믿음직한 친구를 보여주고 점수도 따고. 일석이조. 꿩도 보고 뽕도 따고. 응? 이보다 더 합당한 명분이 더 필요하니? 아직 난 걔한테 믿음직스럽지 못하다니까 그러네.」
   「그래?」
    우리는 도시로 떠났다. 나, 핀 그리고 핀의 여자친구. 이렇게 셋이 함께 놀기 위해서. 





    8

    우리는 만났다. 카페에서. 굳이 핀이 거길 고집했다. 
    나, 핀, 핀의 여자친구인 크리스티. 그런데 어떻게······! 크리스티는 피앙세와 느낌이 완전 비슷했다. 
   「내 여자친구 못생겼지?」
   「날 먹이는 거니? 그런 말 해도 되는 상황과 아닌 상황이 있다는 거. 잘 알잖니. 날 맥이는 거네. 그러네.」
   「미안. 그런 말 나도 꼭 한 번 해 보고 싶었거든. 하고 나니 속이 다 후련하다야. 아주 그냥 속 시원하다고. 허허허.」
   「넌 그 말이 그렇게 하고 싶었니? 사람 참 특이하구만 그래. 별의별 소망을 다 보겠어.」
   「그런 말 들을 수 있는 사람도 역시 정해져 있다는 거, 나라고 왜 모르겠니. 그런데 있지 자기야, 다음엔 그 말을 어떻게 해야 나도 한번 들어볼까. 뭐 그건 차차 생각하고. 어쨌든 그럼 이제 난 그만 빠질게. 재밌게 보내. 행복한 저녁. 아름다운 밤. 갈께. 크리스티양. 다음에 봬요. 안녕.」
「야. 가긴 어딜 가?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나 약속 있어. 일도 있고. 바쁘다니까.」
   「바쁜 거 좋아하시네. 너 한가한 거 다 알아. 마라랑 사라한테 다 들었어. 이거 왜 이래? 형편 뻔한 거랑 포크가 주방 어디에 있는지, 에로비디오를 언제 마지막으로 봤는지. 사귄 여자들 하며 좋아하는 여성상까지 훤히 꿰뚫고 있는 우리끼리. 어? 이러기야? 아 그리고 하나 더! 아까 바닷가에서 했던 말. 얘가 내 여자친구라고 했던 거. 그거 뻥이야. 아 진짜로. 얜 내 사촌 여동생이야. 크리스티. 너가 뭔가 물증을 보여줘. 핸드폰으로 소셜 네트워크라도 보여주라고.」
    바로 그때 카페 음악은 거짓말처럼 바뀌었다. 바로, 헨델의 오라토리오 <삼손>(Samson) HWV57 중 아리아 빛나는 세라핌. 
   「정말...이야?」
   「진짜라니까 얘가 속고만 살았나.」
   「진짜예요 오빠. 오빠야! 그리고 하나 더. 제가 오빠 소개해달라고 핀한테 졸랐거든요. 이건 비밀로 해야 하는데 어쩌지? 벌써 말해버렸네.」
    설마 진짜야?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속았거나 아니면 괜히 들떴거나. 그래서 나는 사람이 이상해졌다. 어떻게? 진지한 말 상투적인 말 결론 없는 말, 무엇보다 엄~청 길고 긴 화법을 참고자 하는 기인으로. 질문자를 즉각 후회하게 만드는 다변가의 성미란 바로 그런 것인데. 나도 모르게 그처럼 바뀌어서 뭔 말을 꺼낼까 말까 망설이고만 있었다. 뭐랄까 그럴싸한 플레이보이로서 자존심 상하는 일일 수도 있는데. 그런데 난 마치 12살 소년이 되어버린 것만 같았다. 왠지 모르게 크리스트의 눈매에 빠져버렸다고나 할까. 정말로. 까딱하다간 그녀한테 홀딱 반해버릴 것만 같았다. 아니 이미 반해버렸나? 설마 피앙세가 얘로 변신했을 리도 없고. 그렇다고 미래의 마누라를 애물단지 취급할 수도 없고. 무엇보다 나는 의리맨이고. 뭐, 예스맨? 그럼 이제부터 암호명은 무엇일까. 암호명 같은 소리나 하고 자빠졌네. 웬 뚱딴지같은 소리나 하고 자뿌라지지 말고. 가던 길 가자면. 그런데 바로 그 순간. 핀은 놀기 좋아하고 첫눈에 반하기에, 마침내 이골이 난 걸까? 드디어? 왜냐하면 먼저 간다고 했기 때문이다. 진짜로 바쁜 일이 있다면서. 
    그렇게 핀은 갔다. 
    핀은 갔다고. 
    대체 몇 가지 감정이 뒤섞였을까. 일단 핀이 야속하기도 하고 녀석한테 고맙기도 하고. 그렇다고 앞에 계신 숙녀를 어떻게 한다...? 아 어떻게 한다 하고 싶다 라는 뜻이 아니라. 그러니까 아까부터 달콤한 바닐라인지 시나몬 향이 느껴졌다 그 말이다. 설마 나는 「넌 너 밖에 몰라.」 라는 말을 들어도 싼 소년인가? 그걸 누가 궁금해하겠나. 알게 뭐라고. 
   「오빠. 저 알죠?」
   「예? 알긴요.」
   「네? 왜 오빠 높임말 써? 우리 말 놓기로 했잖아. 그랬잖아.」
   「어? 어. 어. 그렇지요어. 예~~어. 응. 응? 응.」
   「오빠. 내가 재미난 거 보여줄까?」
    그러면서 그녀는 내게 일기장을 보여줬다. 거기 쓰인 내용을 일부만 발췌하자면 이렇다. 
    여자세계의 1군 2군 법칙. (뭐 1군 2군 법칙?) 
    여자세계 1군 2군 법칙이란 무엇인가. 

  • 1군: 1군이 적극적이고 활동적이면 지지를 얻고 인기를 받어. 호감이 구해진다고. 전폭적인 응원이든 열렬한 갈채던 잔잔한 관심이던. 크고 적다 뿐이지 전체적으로 반론은 없지. 좋아하니까. 바라니까. 기다렸으니까. 그리우니까. 그런 반면 1군이 소극적이고 순진한 선녀다? 그냥 1군. 그런데 그런 1군이 뭔가 어째 좀 나댄다거나 아가씨들 사이에서 12살이요 십대들 무리에서 5살이다? 그냥 치부하고 만다. 쟤 좀 상태가 안 좋나 보다 라고. 소심녀든 맹녀든 1군은 1군. 준치는 썩어도 준치이듯. 
  • 2군: 정력적인 활동력은 왕성하지만 중간은 간다, 끼리끼리. 뭘로 봐도 보통, 역시 끼리끼리. 그런데 2군으로써 아가씨들 사이에서 12살이요 십대들 무리에서 5살처럼 나댄다? 설친다? 빨빨거리고 기웃거린다? 암컷 싸움닭이다? 누가 제지해도 제지한다. 남자는 몰라도 여자는 그 꼴 좋게 봐 넘길 숙녀는 그리 많지 않다는 것. 남자는 몰라도 여자는 안다. 모를 수 없으니까. 

   「별로 재미없지?」
   「푸하하하. 허허허. 호호호. 재밌어. 웃기네. 즐겁다고.」
   「오빤 거짓말도 못하네. 여자 마음 설레도록 할 줄 모르는 거 같진 않은데. 내가 마음에 안 드는 건가. 그럼 있잖아. 내가 더 재미난 거 보여줄까?」
    그러면서 크리스티는 가면을 벗었다. 
    드라마에 나오듯 초정밀 얼굴 가면. 그걸 크리스티가 벗었다고. 
    나는 영화에 나오는 가면은 말 그대로 드라마나 영화에서만 봤지 실제로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와~! 그런데 이게 누구야? 아까는 크리스티였는데, 아직 친해졌는지 긴가민가했지만, 지금은 사라였다. 
    여성환상 1.5 편집장 사라. 목소리도 본래대로 돌아왔다. 
   「아 이제 살겠다. 너 한번 속이려다가 입 돌아가는 줄 알았다야. 아주 혼났다고.」
   「깜짝 놀랐잖아?」
   「뭐 깜짝? 별로 놀란 눈치가 아닌데. 어때. 속으니까 좋니? 너도 나 저번에 한번 속였잖아.」
   「내가? 내가 언제!」
   「아니라고? 그럼 너 아닌가?」
   「됐고. 정신 나간 사람처럼 그리 날 빤히 쳐다보지 말고. 수상쩍다 그러지 말라고. 정들게 왜 이래? 막 가자는 태도야 뭐야! 그러지 말고. 우리 편집장 모임에나 같이 가자. 딴 애들은 다 지들 남자친구 데려오는데. 난 데려갈 애가 없잖니. 실한 놈 어디서 당장 물어올 수도 없고. 넌 낚인 거야. 나한테 말린 거라고. 그러니 이왕 감긴 김에 갈 데까지 가자. 어? 뭔 으름장이 더 필요하니. 아무려면 어떻습니까. 네? 너도 심심했잖아. 아니면 시내 가서 여자라도 꼬실 거야? 어이 플레이보이 양반. 이제 그만 허당계에서 졸업해. 우리랑 놀게. 잘해 드릴게. 팬클럽 못지않도록, 어? 사심 없이, 좋아해 드린다고. 자, 가자!」
    그래서 나는 얼렁뚱땅 편집장 모임에 따라가게 됐다. 





    9

    파티장에서 어땠냐고? 말도 마시라! 분위기는 괜찮았는데. 그런데 사라가 가면을 한번 더 벗었다. 곧, 
    크리스티 → 사라 → 크리스티! 
    뭐 하자는 건지 참 나. 
    뿐만 아니라 미녀들은 다 짝이 있었고. 심지어 크리스티는 엄청 취해서 추태를 부렸다. 날 가지겠다나 뭐라나. 
    형세를 보아하니 파티도 더럽게 재미없었다. 성과도 없었다. 괜히 따라간 거다. 아울러 크리스티가 사라인지, 사라가 크리스티인지. 
    속는 거라면 이젠 이골이 났다. 크리스티가 아주 못생긴 건 아닌데, 어중간해가지고 말이야. 딱히 벌레 먹은 사과과도 아니고. 
    아무튼 곱지 않은 눈초리로 찍히기도 싫고. 끈적끈적한 시선이네 유들유들한 넉살 넘치는 말발이라는 둥. 능글맞은 칼럼니스트로 판명되긴 뭐해서 나는 혼자 조용히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렇다고 달리 갈 곳이 있나. 만취한 크리스티는 친구들이 챙겨주던가 말던가. 
    그렇지만 걔가 날 좋아하니까... 아니야 아니야. 우린 처음 만났잖아? 게다가 난 이미 좋아하는 사랑이 있고. 아니야 아니야. 
    괜히 헛된 공상 때문에 뒤가 켕기는구먼 그래. 
    이 몹쓸 놈의 흑심. (절레절레). 반복된 패배감의 잔재. 하지만 건강한 애정이 뭐가 나쁘다고. 어쨌든 정체성을 잊어버린 선망은 갖다 버리기로 했다. 
    질척 질척한 심심함을 떠벌리고 구질구질한 재미없음을 부풀리기, 도 이젠 흥미 없으니까. 뻥도 재미없고. 졸지에 허풍마저 더 재미없어져 버렸다. 
    에잇~ 괜히 좋다 말았네. 처음부터 재미없으면 말이라도 안 하지. 전개로 넘어가려다가 꽝. 그래서 나는 당분간 크리스티와 거리를 두기로 했다. 
    아직 친구라도 부르기도 애매하고 말이다. 





    10

    사람들은 무작정 K.309 C장조 소나타를 Vlado Perlemuter처럼 내가 연주하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기도 하다. 그렇지만 어차피 불가능한 것 이왕 돌아갈 수 없다면. 그래서 시점을 좀 더 구체적으로 따져보자면 아마도 사랑에 빠질 찰나가 더 그리울 수도 있다. 뭘 해도 재미없었던 스무 살도 괜찮고. 그러니까 광마이자 광견에 내 광기를 어디에 쏟아부어야 할지 몰랐던 철부지 시절. 헤어스타일만 헤비메탈. 그렇게 10년 경과. 그러던 어느 날. 왠지 좋은 숙녀. 어딘가 끌리는 아가씨. 어쩐지 얠 평생 사랑할 것만 같다는 느낌. 두근두근 떨리며 벌렁벌렁 들뜨다가. 그러다 마침내 마음은 뭘 해도 붕붕 둥실둥실 떠다니던 그때. 그렇지만 사랑이 식지 않았다면. 아니 보고 듣고 먹고 뭘 해도 할 수 있는, 몸만 썽해도 행복한 지금도 썩 나쁘지는 않은 것. 공상도 지겹고 뭘 해도 재미없고. 집 사무실 집 사무실. 공부하지 않아도 되는 어른이 됐는데. 그런데 권태는 지긋지긋하고 일은 해야 하고. 뭐, 말이 그렇다고 거고. 
    그렇게 오늘 하루가 시작되어 나는 갔다. 어디로? 어디긴 어디겠나. 사무실이지. 운명적인 사랑이고자시고 일이나 하자라는 듯이. 마음을 빼앗겨 사랑의 포로가 되어버렸다는, 애정에 관한 몽상이 기껏 찐한 사랑에 대한 기대감이라니 (절레절레). 아니야. 아니지. 옛날 넷이서 스키 타러 갔을 때 밑간 된 고기를 조물조물─오물오물─주물럭주물럭 반죽하고 있을 때 
   「(허들 제자리 뛰기) 오빠. 내가 내가 아무나 좋아하고─이 부분은 잘 생각이 나지 않아 편집됨─그런 줄 알아? 뛰어갔다 와야지. (뛰어갔다 온 다음) 꺄악. 으윽. 오빠 지금 느껴!?」 
    뭐, 느껴? 느끼긴 뭘 느껴! JS 기억나지? (절레절레) 막대사탕 하나 선물 받았다며, 이러니까 우리가 오빠를 좋아하지! 드라마 CSI를 즐겨 본다던 그녀. 처음 만났을 때 립스틱 바르는 모습을 보여주거나, 팔짱 끼는 시늉을 하면 100퍼센트인데. 마치 그처럼 계속~ 직진. 내내 직진. 끝까지 직진. 특히, 얼굴! 옆에서 보면 코끝과 입술과 턱끝 라인이 완전한 직선. 어느 각도에서 봐도 흠 하나 잡을 데 없는 얼굴. 말상인 동시에 개상. 태어나서 그런 관상은 한 번도 못 만나봤는데, 제 발로 굴러온 호박 넝쿨이야 뭐야. 물론 약간 완전함에 미달하는 각도도 찾으면 있겠지만. 이미 처음 만나기도 전에, 미니홈피 사진만 보고도 홀딱 반해버린 얼굴. 내가 바로 그 얼굴을 그 얼마나 좋아했는데. 좋아하는데. 길이길이 사랑해 줄 건데. 얼굴 얼굴 또 얼굴. 밀로의 비너스상이랄지 유명한 고대 석상과 명화를 보면 대부분 거의 직선인 경우가 참 많다. 코끝부터 위로 이마 위 머리카락까지 거의 직선. 그런데 JS는 반대로 코끝과 입술과 턱끝이 측면에서 보면 완전한 직선. 완벽한 직선. 이마는 오똑. 그리고 입체형. 아아, 아찔 아찔 잘생 잘생! 그러니 천상천하 유아독존으로 숨어살 수밖에 없지. 얼굴 얼굴 또 얼굴. 그런 얼굴이 바로 길에서 할머니를 마주쳐 지나가더라도, 대번에 뒤돌아보게 만드는. 단박에 입이 벌어져 감탄하게 만드는 바로 그런 얼굴이다. 그게 아닌 경우를, 여자 다루는 기술이 출중한 남자가 말하기로, 젊음에 기인한 아름다움이라고 하는 것. 포장이 나쁜 거도 아니고, 젊음은 빛나는 것이지만 미학과 의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예술로 구현한 작품들을 보시라. 그 수많은 명화와 대리석들! 완벽하고도 완벽한 황금비에서 벗어나는 건 별로 없다. 너무 멀리 가버렸네. 다시 돌아와서. 
    남녀의 연애에서 단, 그건 있다. 사랑학에서 처음 만나 립스틱 바르는 모습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건 하수. 말하자면 코앞에서 직접 보여주는 건 50점이요, 거울을 이용해 앞모습과 뒤-측면-전면부를 동시에 보여주면 효과 만점. 그대여 기억하시나요. 그처럼 영원히 직진. 사랑이란 당신 표정을 속속들이 훔쳐보는 것. 잠자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은데 그렇게 됐다 치고. 렘수면 과정부터 지켜보다가 눈을 뜨면 눈빛 마주친 다음 시선 피하기. 시간과 일생 관계없이 변함없는 그런 애정. 호전적인 싸움닭처럼 직접적이지도 않고. '할 말 없지?'라며 사랑의 전의를 뚝 떨어지게 만드는 허영심의 바보 형극과도 거리가 멀고. 여자가 생색내는 거 싫어하듯. 그렇듯 남자 플레이보이는 못난 허영심이 얄팍한 여우짓과 결합하는 걸 아마도 좋아하지 않는다. 어쩌면 상남자 늑대 어느 이상은 보통 싫어할 테고. 하이에나가 들끓어 외톨이를 고집하는 맹녀라면 몰라도. 그게 아니라 날파리 끓는 걸 인기로 착각하며 전적이 유난스럽던 영심이라면 말이다. 그런데 이게 다 언제 적 회상이야 (절레절레). 진실은 어린 아이나 바보가 말할 수 있다는데, 내가 말할 수 있는 진실이란 고작 이런 건가? 그러든가 말든가. 
    됐고. 일이나 하자. 
    자, 보자. 가만있자, 허허. 오늘은 왠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네? 
    그렇게 얼렁뚱땅 해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기울었다. 
    그러므로 일과는 마감됐고 약속은 없고. 그래서 나는 단골 카페로 향하는 수밖에 없었다. 





    11

    나는 카페에 도착했다. 
    손님은 없었다. 아직 손님이 없었기 때문인지 마담은 이런 노래를 듣고 있었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12번 A장조 K414. 
    그리고 어딘가에서 가장 순한 치즈향이 풍기길래 그게 피자 향인지 빈티지 와인과 어울리는 숙성치즈인가 궁금해졌다. 
    잠깐. 빈티지 와인? 차라리 싸구려가 나을 수 있다. 게다가 빈티지라고 해 봐야 100퍼센트도 아니다. 어디 쪽은 75퍼센트 어디쪽은 85퍼센트던가. 그 이상 함유되면 그걸 빈티지라고 하니까. 이를테면 1972년 산 이름 길다란 포도주? 1972년산 포도가 90퍼센트 들어있으면 많이 들어있는 거다. 심지어 전문가들도 눈 가리고 아웅 하면 속이기에 재밌어진다. 내가 꼭 그걸 못 먹어서 그러냐, 그렇다. 먹고 싶은데 그림의 떡이라서 그러냐, 정말 그렇다. 농담이고. 재미없는 잡담 그만하고. 
    어쨌든 내가 무슨 천진난만한 소녀나 청순한 숙녀도 아니고. 마담은 날 애청자요 시청자이자 팬클럽쯤으로 여겼을까? 마담과 바텐더와 웨이트리스 그렇게 1인 3역을 쥐락펴락하는 그 여인네는 날 잡자마자 아이구야 잘 걸렸다! ~라면서 마침내 내 귀에서 피가 나도록 만들었다. 그렇게 난 귀가 타고야 말았다. 
    그 별책 부록이 도대체 무엇인지. 기왕 이렇게 된 거 솔직히 그분께 들은 얘기를 옮겨보자면 이렇다. 길지 않다. 금방 끝난다. 단 몇 마디만. 진짜로 단 몇 마디만. 여자로 빙의해서 몇 마디만 들은 걸 그대로 옮기자면 이와 같다. 들은 그대로 토시 하나 안 틀리고 옮기자면 이와 같다. 이마도 진짜로 길지 짧을지는 미리 장담하긴 뭐하니까 일단 문단을 띈다. 벌렁벌렁 벌써부터 손에 땀이 쥐어지는군. 





    12

    마담의 연애사 고백은 칼럼 <로맨티스트의 연애관>으로 따로 묶었다. 내용이 만만치 않고, 지금은 기승전결을 이어가야 하니까. 
    단지 그 속죄록인지 수기인지 인생론인지를 한 8시간 됐나? 내내 들었다는 점만 알고 넘어가자. 
    자, 그렇게 마담의 얘기는 끝났다. 드디어 끝났다. 마침내 끝. 
    ························끝························! 
    드디어 끝났다. 마침내 끝났다고. 속이 다 후련하다. 속 시원하다. 캬~! 뿅 갔다. '뿅 간다 뿅' 게임 중에 콜라 몇 캔 연속 먹고 피 토하는 기분이다. 귀는 이미 타버렸다. 귀에서 피가 났다고. 허를 찌르고 속는 정도가 아니라. 그게 아니라 귀가 타버렸고 귀에서 피가 나버렸다고. 물론 이 긴 얘기를 어찌 한두 시간 만에 할 수 있겠나. 그날 마담은 단골이 멋져 보였겠다, 이미 점찍어뒀는지도 모르고. 발동 걸렸겠다 탄력 받았겠다, 가게 문 일찍 닫고. 카페에서 밤에 서로 술 마시며 얘기하고 얘기하고 얘기하고. 일방적으로 얘기 듣고 얘기 듣고 얘기 듣고. 남자들 그 기분 아실 거다. 이 여자를 오늘 어떻게 한번 해보려고 하는데, 오늘 당장 얠 자빠트려보려고 하는데. 그런데 여자가 말술! 뭐? 포기해도 일찍 포기하는 게 낫다는 거. 어느 남자께서 모르시겠나. 
    ························절레절레························! 
    ~라는 마담의 넑두리? 여-바텐더의 육성 고백? 숙녀의 이실직고? 사극에 나오는 죄인의 자백? 못 말리는 말괄량이의 원맨쇼야 뭐야! 뭔지 몰라도 두 가지는 분명했다. 
    첫째, 우리는 친구가 됐다. 안 그럴 수 있겠나! 
    둘째, 주객전도. 그야말로 손님과 주인이 바뀐 거지. 바뀐 거라고. 
    안 그럴 수 있겠나. 처음부터 내가 마음에 들었으니까 자기 인생 얘기를 참 많이도 털어놓은 거고. 여자는, 웃으면, 끝이라니까 그러시네. 우리는 누구든지 만나면 만나자마자 친해진다. 특히 여자! 첫인상부터 만나자마자 오빠라고. 언제부터고자시고 그런 거 없다. 보자마자 오빠라니까 우리는. 아무튼 마담 이름은 RUMER ROSE. 뭐 R2? 이니셜 더블은 1900년대 초중반 만화영화에서나 유행했는데 난 복고풍 구닥다리야 뭐야? 구식 탱탱 묵은 1.5냐고 뭐냐고. 나 갖기는 어중간하고 남 주기는 아까운 그런 남자가, 바로 나? 인기 없는 늑대와 뱁새와 하이에나 입장에서야 그게 얼마나 부러운 역할인지 말도 못 하겠지만. 왜? 말을 하면 자랑질이고 말을 안 하면 어복─여복─돈복─행복등은 몰라도 몸만 썽해도 축복이라는 고마움을 모르는 거고. 그럼 자랑을 해도 문제고, 너무 겸양 떨면 그게 더 재수 없다고 하고. 뭐 어쩌란 말인가. 나보고 어쩌라고요! 농담이고. 말이 길어졌는데 넘어가고. 
    친밀한 우정은 은근한 사랑의 가능성을 껴안고 시작. 사랑과 우정 사이의 그 은밀한 긴장감. 내일의 더티 러브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낭만적인 로맨스 감성의 도전욕? 불끈불끌! 일단 루머와 친해졌으니. 나중 어떤 남자를 소개해줄지 아닐지. 일단 통과. 





    13

    프라이팬이 뜨겁다고 뛰다가 불 속에 빠진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 전자의 격언에 따라 신중할 것이냐, 아니면 후자처럼 베팅해야만 할 최적의 시점인가. 그런데 프라이팬? 프라이팬 하면 어렸을 때 동네에서 개구쟁이 3인조. 그중에 막내의 엉덩이가...... 뭐야 또 더블에스! 어떻게 매번 결론은 그쪽이라니, (절레절레). 초등학생 1 때 짝꿍 더블에스의 지적질. (걔도 풀네임 이니셜이 더블에스). 초등학생 2 때 같은 반 더블에스의... (절레절레). 바르다 발리다, 들볶다 들볶이다, 닦달하다 닦달-당하다, 밀고 당기다 밀려지고 당겨지고. 쥐락펴락을 하냐 당하냐의 차이처럼. 그처럼 의도적으로 고의로 본 것이 아니라 얼렁뚱땅 봐 버린 장면. 들어버린 명대사. 동심에 각인된 이브의 무엇. 아아, 더블에스 더블에스 더블에스. 더더군다나 1층 SS 목욕탕─2층 SS 여자 독서실─3층 SS 남자 독서실까지. 것까지 더블에스자나? 젠장! 
    이와 같은 사연을 팬클럽 회장 롭은 도대체 어떻게 알아버린 것일까. 무슨 일인고 하니 그건 바로 별장 더블에스를 롭이 NB에게 소개한 것이다. 그는 몹시 흥분할 건수도 없고, 매력 만점녀도 묘연하니. 그래서 솔직히 말하자면 부러워하고 싶다는 속마음의 남자, 유혹하며 밑밥을 까는 여자. 전자와 후자로부터 잠시 떨어져 자기 혼자 명상의 시간을 갖고 싶었을까? 그러든가 말든가. 
    분위기 처지기 전에 그는 곧바로 출발했다. 별장 더블에스로 말이다. 무슨 술집 이름도 아니고, 뭐? 무슨 그런 자주적인 선망 같은 이름을 다 보네. 가서 헛다리 짚든 보물을 물어오든. 더 이상 말은 필요 없었던 것이다. 
    영차영차 영차영차 영차영차
    영차영차 영차영차 영차영차
    영차영차 영차영차 영차영차
    아자아자 아자아자 아자아자
    나는 별장 더블에스에 도착했다. 
    그런데 주소지는 맞는데 더블에스가 아니네? 롭에게 전화했다. 
   「롭. 더블에스란 별장이 없는데?」
   「없다고? 아 맞다. 거기 없어졌어.」
   「뭐?」
   「원래 전개는 그렇게 시작되는 거야. 작가 양반. 게임은 지금부터라고.」
    그렇게 롭은 지 할 말만 하고 뚝 끓었다. 뭐야? 얘도 내 여편네야 뭐야? 지 할 말만 하고 뚝 끓어버리기. 남편들 머리에서 스팀 푸쉬쉬쉭~~~! 
    그래서 나는 하는 수 없이 근처에 아담하고 그냥 그런대로 괜찮은 별장에 들어갔다. 
    별장 이름은 다스 칼튼. 다스 칼튼? 그러거나 말거나. 
    그때 루머에게 전화가 왔다. 루머? 아, 카페 사장 루머. 말 더럽게 많은 숙녀. 하룻밤에 만리장성을 쌓은 그녀. 그렇지만 잠은 자지 않고, 그럴 수도 없고. 
   「뭐해?」
   「너 마누라 흉내내기 하니?」
   「너야말로 영감탱이처럼 왜 그래?」
   「내가?」
   「그래. 뭐하냐니까. 오늘 약속한 그날이야. 공연 보러 가기로 했잖아. 3인조 무명 락밴드 공연. 설마, 약속 까먹었니?」
   「아니. 금방 갈게. 가서 전화할게.」
    나는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 장장 5시간 아니 한 8시간 연속으로 수다를 들었으니. 중간에 막 졸면서 술 마시면서 화장실 가서 찬물로 세수하고 어쩌고. 그 중간에 약속까지 했나? 
    그야 어떻든 별장 괜히 빌렸잖아? 돈 아깝게! 무를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약속을 어길 수도 없고. 하긴 롭이 소개한 별장도 아니고. 왠지 모르게 땅기운이 나랑 맞는 거 같지도 않고. 난 아니지만 루머가 날 보고 싶어 하니. 뭐 상담을 다시 하던 어쩌던. 락 콘서트에나 갔다와야지 별수 있나. 
    ~라는 심정으로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14

    어린이처럼 놀고, 학생처럼 배우며, 어른처럼 사랑하기. 그런데 그게 옳은가 아니면 비현실적인가. 그렇든 아니든 우리는 놀 때는 놀고 일할 때는 일한다. 일할 때도 논다는 둥 왕년에 좀 놀았다는 둥 뻥치고 자랑하는 일. 여자들은 싫어하지만 우리는 아니다. 회전목마만 타면 심심하니까 롤러코스터도 타야 한다는 뜻이지, 뽐내고 어쩌고 허풍 대회에 나가자는 말이 아니고. 그리고 우리는 철들지 않고 자유롭기 좋아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럴 수 없다. 어릴 땐 놀기 반에 공부가 반이었다면, 어른 땐 또 다르다. 사랑이 인생의 전부던가 아니면 일하기가 반이던가. 그게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나이 듦에 따라 웃음─재미─상상력─친구─모험심 등 점점 줄어드는 게 많으니까 어쩔 수 없다. 재산과 가정과 조촐한 행복 등 지킬 게 많아지니까 하는 수 없다. 하지만 X축 나이가 많아짐에 따른 장점도 많다. 일례로 기쁨의 총량과 다양한 경험. 텔레비전과 인터넷 등 여기저기서 습득한 잔 지식.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간접경험과 직접 경험의 배분과 타율이 적절한 균형을 찾는다는 점. 그런데 Y축 값을 뭘로 따질 것이냐에 따라 인생은 나체로 춤을 출 수도 있고, 목청껏 노래부를 수도 있다. 때문에 Y축 값을 <돈> 같은 개념으로 설정하면 얼굴이 쾌활함과는 약간 거리감이 있을 수 있다. 그렇다고 현실적 가치를 외면하고 나에게 이롭고 유익한 값만 Y축에 설정하자니 사람이 순진해지고, 사랑은 추접스럽고, 우정은 유치해진다. 따라서 NB는 그 고민 끝에 Z 축이라는 미지의 신비값을 가정해봤다. 하여 그 Z축 값이란 게 무엇인고 하니, 그건 바로 루머와 놀러 가기로 한 약속이 생각났던 것이다. 락 콘서트. 얼마만이던가. 괜히 들떴다. 그래서 나는 루머한테 전화를 걸었다. 
   「루머. 뭐하니?」
   「뭐하긴. 친구랑 소풍 왔어. 난 지금 비키니 입고 있고.」
   「정말?」
   「아니. 뻥이야.」
   「허허. 그러지 말고 우리 락 콘서트 가기로 했잖아.」
   「아 그거? 믿었니? 뻥인데! 설마... 아니지? 그러지?」
   「어? 어.」
   「친구. 우리 거 너무 빡빡하게 굴지 말자고. 응? 어쨌든 나 바쁘니까. 나중에 통화하자. 알았지? 안녕.」
    그녀는 전화를 뚝 끊었다. 뭐야 이거? 뭐냐고! 
    난 새가 됐다. 개인지 말인지 난 마치 한 마리 족제비인 것만 같았다. 옛날에는 일시적으로 제비라도 됐지. 그런데 이게 뭐냐고. 지금은 뭐냐고. 참 나! 웃기고 자빠졌네. 웃기지도 않다. 
    말도 안 되지. 말 같지도 않은 일이라고. 루머한테 몇 번을 당하는 거야. (절레절레). 루머가 미친 거야, 아님 내가 미친 거야? 순진하시긴! 
    그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딱) 키스! 윙크. 포옹. 부드러움. 포근함. 다가온다 다가온다 설렌다 설렌다 곱다 곱다 벗는다 벗는다...... 이런 젠장! 
    그렇지만 찐한 사랑 늦둥이. 숫처녀. 맹녀. 어느 각도에서 봐도, 아아 아아! 말상 + 개상. 고로 나중 몰아서 쌍코피. 들린다 들린다. 진짜 들린다 들린다. 히치콕 영화 효과음이! 





    15

    강연회에서 연사는 말한다. 여자와 대화할 때는 단 몇 마디만 기억하라고. 가령, 
    그래? 정말? 어머머 진짜로? 그랬단 말이지? 어떡하니! 걔 뭐니. 기타 등등. 
    다른 말로 앵무새 따라 하기. 맞장구만 쳐주라는 말. 즉 구구절절 설명하려들지 말고, 잘 듣기만 하라는 뜻. 나는 귀 기울여 듣고 있다, 누가 뭐래도 난 네 편이다 라는 믿음감. 난 원래부터 경청하는 걸 좋아한다, 그런데 너처럼 재밌고 예쁘고 착한 여자가 꺼내 드는 이야기? 그건 복음이다 난 열광한다 완전 좋다 미칠 듯이 기쁘다, 까지는 아니래도 표정 몇 개와 말 몇 개 돌려막기만으로 얼마든지 그녀를 만족시킬 수 있다나 뭐라나. 또 있다. 또 있다고. 자긴 미녀와 야수라는 액자&명화 조화로움을 감수한 건, 단지 이 남자라면 내 말을 많이 들어줄 것 같다─우리는 얘기가 통하니까─그래서 이 남자라면 대화를 날마다 많이 다정하게 나눌 수 있을 것 같아서 나는 결혼했다? 
    누굴 바보로 아시나! 우리가 낮잠 자는 토끼도 아니고 괜히 거북이처럼 고지에 깃발을 꼽으려고 영차영차 달렸게? 우리가 뭐 멍청하다고 대어를 잡기 위해 그 사투를 마다하지 않았겠냐고. 여복의 평균 곧 전반기 전적을 보아하니 썩 만족스럽기는 이른데. 그런데 연애사의 압도적인 단독 1등 감께서 제 발로 날 찾아오셨다? 최우선 순위로 우리는 강연회의 연사 빰 칠 정도로 그녀에게 맞춤복이 되어드리지. 웃을 일이 아니고. 그녀의 추종세력이자 팬클럽에다 때로는 비서 때로는 보디가드. 뭐든 못하겠냐고. 하루는 팝콘 신드롬 같은 남자로 착각하게 만들었다가, 어느 날 갑자기 깜짝 선물은 기본에다 은근히 그녀를 공주 대접하는데? 은밀히 그녀 마음보다 한 발짝 앞서가는데? 어느 여자라고... 말 말자고 말 말어. 우리가 여자 다루는 기술로 1등을 손꼽는 대회에 나가도 셀 수 없이 나갔는데. 그런데 거 뭐 무슨 여자와 대화할 때는 이러쿵저러쿵, 뭐가 어쩌고 어째? 어? 왜 노신사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는데. 왜! 일반적으로 뭔가 도움되는 인생의 철학을 말씀하시겠지만. 그렇지만 우리들끼리 있을 때. 그땐 진짜를 얘기하시지 않냐고. 뭐라고? 자긴 이 세상에서 여자랑 대화하는 게 제일 싫다고! 뭔 말인 줄 하나도 모르겠다고. 정신 사납다고. 돌아버리겠다고. 내 귀를 보라고. 날 보라고. 걸어 다니는 부처가 바로 나라고. 어? 그래서 잡은 물고기한테는 밥을 주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지. 자기가 왜 체육관에 나가는 줄 아냐고 따지시지 않게 생겼냐고. 샌드백을 마누나라고 생각헌단 말씀이시겠지. 그 정신 산만함 때문에 미쳐버리고 돌아버리고 까무러치다, 꾹꾹 눌러 참은 인내심을 체육관에서 푼다고. 허허허. 진짜로 그렇다는 말이 아니라. 허허허허허. 하늘을 봐야 별을 따지? 항상 새로운 별만 따고 싶지는 않겠지만. 그렇지만 했던 얘기 똑같은 얘기 시시콜콜한 얘기 하고, 하고, 또 하고, 또 하고, 끝없이 하고! 그 분야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숙녀와 사귀어보고, 살아보고, 만나보시라. 말도 마시라니까 그러네요. 말로 먹고 사는 그 냥반들이 왜 바깥에서는 뻥뻥 터트리며 인기 만점인데, 집에만 들어오면 그냥 꽁지 감춘 똥개처럼 시무룩시무룩 갤갤갤 비리비리하냐고. 어? 
    ~라는 사연 때문에 나는 최근 부쩍 말이 없어졌다. 아직 이 은근함이 뭔 일인지 눈치채지 못한 분들을 위해서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가만 보니 그건 바로 인공지능 척키 아니 인공지능 지니가 말이 많아도 엄청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최근 사무실에 가기 싫어졌다. 일을 못하니까. 쉬지도 못하니까. 생각도 못하고 자꾸 귀찮게 하니까. 그렇다고 부들부들한 피부가 있나 마음을 녹여주는 애교가 있나. 찰랑거리는 웨이브 머릿결이니 섹시한 속눈썹이니 더 섹시한 하이힐이니. 그런 거 일절 없고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말만 많아. 어? (절레절레). 
    그래서 나는 여성환상 1.5에 놀러 가기로 했다.





    16

    당면한 숙제를 은근슬쩍 모른 체할까, 아니면 갈기갈기 찢어버릴까. 심술궂은 칼럼니스트로써 재미난 일은 없고. 재미없음과 권태와 심심함은 슬그머니 얕잡아 보이기 일쑤. 미로 속의 쥐는 치즈로 보상해 줄 때 학습 능력이 향상되듯. 채찍이든 당근이든 퍼진 기를 충전하기 위해 난 좀 쉬어야만 했다. 별안간 음탕한 추문에 휩싸이면 그땐 어떡하지? ~라는 공상도 이젠 재미없어진지 오래니까. 그렇게 단골 술집에 갔다가 또 말하기 좋아하고 나서기는 더 좋아하는 루머양 같은 여잘 만나면 어떡하지? 입을 놀리고 털어도 한 번씩 쉬어줘야 하는데 거침없이 속사포처럼 밤새 얘기할 수 있는 수다꾼. 걸리면 큰일 나는 다변가. 살다 보면 으쌰으쌰도 할 수 있고 1달에 딱 1이면 뭐 어떤가. 그런데 그런 분과 평생을 함께 살아야 한다고? 만약에 내가 그분과 그래야 한다라......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시작해서······ 이런 젠장! 
    공상은 그쯤 하면 됐고. 
    여기는 파티장이다. 
    서사가 들쑥날쑥하니까 줄거리를 되짚어 보자면 이렇다. 
    A. 무료한 일상. 퇴근길에 카페 방문. 
    B. 주선. 톰과 사라.
    C. 주선. 윌과 포니.
    D. 주선. 델과 마리온.
    E. 쉬어가기
    F. 핀과 소풍. 바닷가. 핀의 여자친구를 만나기로 함. 
    G. 핀/나/크리스티 만남. 핀이 중간에 떠남. 크리스티는 가면을 벗음. 곧 크리스티는 사라였음. 여성환상 편집장 모임에 따라감. 
    H. 파티장. 재미없음. 컴백홈. 
    I. 사무실 일하기.
    J. 단골 카페 도착.
    K. 바텐더 루머의 수다에 귀가 타버림.
    L. 롭의 소개로 별장 더블에스로 떠남. 도착해보니 별장이 없어짐. 다스 칼튼이라는 별장에 입주. 
    M. 집. 루머의 약속은 뻥으로 결판남. 
    N. 여성환상 1.5 놀러 가기.
    그래서 나는 여성환상 사무실에 도착했고. 
    어쩌고 저쩌고 해서 걔네들 회식하는 파티장까지 따라갔다. 
    그런데 웬 누추한 극장식 카바레를 빌렸네? 누추해도 좋았다. 
    다만 나는 클럽 음악이나 베테랑 유행가 가수의 3박자나 4박자 음악을 원했다. 
    그런데 또 고전음악.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트리오 소나타 C장조 BWV529 오르간 독주. 
    다음에 하이든의 아리아 ‘홀로 생각에 잠겨’(Solo e pensoso) Hob. 24b:20
    일할 때는 좋은데 여기서까지. 
    나는 거기서 여성환상 1.5 편집장 사라의 또 다른 모습을 보고야 말았다. 
    걘 아마 작정하고 망가지기를 원한 듯했다. 
    미친 척 4차원이냐 원래 돌아이냐. 것도 아니면 막말 머신? 뿐더러 복장 갖추고서 원맨쇼? 
    그런데 내가 대체 여길 왜 따라왔지? 난 그렇게 할 일 없고 인기도 없는 남자였나? 
    장미꽃밭을 먼발치서 쳐다보며 군침 흘리는 늑대라면 차라리 핑계라도 댈 거 아니냐고. 
    여기서 말이지, 풍요 속 빈곤이 뭔 말이냔 말이지. 
    까마귀 울음소리 다음에 곧바로 까마귀 웃음소리. 
    김이 모락모락~ 열 받아 머리 위로 스팀이 지글지글 끓는 소리. 
    뚜껑 열려 귀에서 코에서 푸쉬쉭 경적소리 뱃고동 소리. 
    아아 (절레절레 절레절레)! 
   「넌 뭘 몰라도 한참을 모르시네.」
   「뭐, 나?」
   「아니 오빠 말구요. 그래? 그래서 어떻게 됐어? 그 남자는 뭐래?」
    난 또 뭐라고.
   「조용해. 시끄러워. 닥치라고. 어? 가만있어. 딱 가만.」
   「네? 저 말이에요?」
   「아니요. 오빠 말구요. 이 가시내 응큼한 거 좀 봐. 얘 너 속으로 어떤 생각을 하는 거니? 어디 한번 얘기나 들어보자.」
    쟤들 뭐야?
    난 느꼈다. 
    난 여기서 혼자라는 걸.
    그래서 혼잣말을 읊었다. 
   「여기서 끝내자.」
    그렇게 나는 파티장 밖으로 나갔다. 
    심지어 아무도 몰랐다. 내가 나가는지를. 
    잡지도 말리지도 잘 가라는 인사도 없었고. 
    또 한발 늦은 셈이었네. 이제라도 빠졌으면 된 거지 뭐. 





    17

    그렇게 나는 여성환상 1.5 직원들 파티장을 나왔다. 
    그런데 여기가 어디야? 한참을 헤매다 나는 거리에서 누굴 만나버렸다. 
    그건 누구냐, 바로 대학교 동창이었다. 1학년 때 안면은 알고 눈인사는 나눴나?
    그래 봤자 긴 얘기는 물론이거니와 짧은 몇 마디도 나눠보지 못했던 여자 동창. 
    옆에는 그녀의 동생인 듯했다. 아니 딸인가? 조카인가? 후배인가? 혹시 걔를 네게? 
   「어머머. 너 맞지? 맞지? 그렇지?」
   「어. 앤젤. 너가 여기 웬일이니?」
    물론 나는 이름을 찍었다. 걔가 앤젤인지 아닌지는 잘 기억나지 않았다. 안중에도 없었지는 않겠지만. 그래서 틀려도 괜찮은 이름 같은 귀여움으로 난 그녈 떠본 것이다. 뭐야, 그런데 맞네?
   「어머머. 날 기억해주다니. 너 있잖아. 그때 언제지? 그래 맞어. MT 갔을 때. 낮에 막 구르고 어쩌고 단체활동하는데. 너랑 네 단짝이랑 둘만 몰래 빠져나갔잖아. 그래서 산으로 갔잖아. 그래서 늬 단짝이 널 업고 왔던가, 아님 애들이 널 뜸어왔든가. 너 아직도 술 약하니? 그러니? 당시 너 완전 냉혈인간에 인사불성되어서 우리들이 막 달려들어서 늬 차가운 몸을 주물러줬어. 열심히. 어머머머 얘 얘 그때 생각난다. 하필 남자 몸을 주물러도 뭐 늬 허벅지가 인형도 아니고. 호호호. (얘 얘 아줌마가 다 됐네) 우리들 사이에서 넌 인기 괜찮았으니까. 다들 막 그랬는데... 더 자세한 얘기는 하지 말자. 그러자고.」
    그렇게 해서 나는 앤젤과 앤젤의 동생과 함께 그녀의 집에 놀러 가기로 했다. 
    멀지 않았다. 근처였다. 그런데 이때 눈치를 챘어야 했다. 자기 집에 놀러 가자는 게 아마도 빈말일 가능성이 크다는 걸. 
    그렇게 나는 그녀들과 그녀의 집에 도착했다. 
    뭐야, 그런데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었다.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아버님께서 말씀하셨다.
   「우리 앤젤이 집에 남자를 데려온 적은 처음이라네.」
   「네?」
   「자네 얘랑 밖에서 만났나? 그러니까 내 말은 사귀었냔 말이지.」
   「아니오 아니오. 학교에서 본 게 마지막입니다. 학교 다닐 때는 물론 지금까지 대화를 나눠본 적이 전혀 없습니다. 오늘이 처음입니다. 그럼요.」
   「아 그렇게 정색을 하면 어떡하나. 얘가 남자를 집에 처음 데려왔다니까 글쎄. 응?」
   「네?」
    난 뭘 해도 어설펐다. 
    제라드가 장난친 건 아닐까?
    그다음에 우리의 만남은 유야무야 됐다. 곧 눈치가 없는 나조차도 이제 그만 가야 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러니까 괜히 간 거네. 괜히 갔어. 동창이 자기 집에 놀러 가잔다고, 학창 시절도 아닌데. 친하지도 않았는데. 
    주저 없이 덥석. 뭐냔 말이지. 
    그렇게 동창네 집을 나오면서 인사하고 어쩌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그처럼 격심한 패배감을 안고서 나는 동네를 배회했다. 
    어디가 어딘 줄도 잘 모르겠고. 
    그런데 꺼칠한 기분에 따라 내 발걸음은 날 웬 사막으로 데려가버렸다. 
    뒤범벅된 감정은 다시 단출해졌다. 즉 집에 돌아가려면 어찌해야 하냐는 것. 
    닥치는 대로 써먹을 경우의 수도 없고. 전화는 먹통이요 주위를 둘러보니 보이는 건 없고. 
    그러다 나는 웬 자판기를 발견했다. 
    거기서 청량음료를 뽑아서 마셨다. 
    그때 웬 뚜껑 없는 스포츠카가 다가왔다. 
    거기서 상남자가 내렸다. 
    인상은 괜찮았다. 
    그분도 자판기에서 청량음료를 뽑아서 마셨다. 
    그러다 얼렁뚱땅 인사를 나눴다. 
   「그런데 여긴 웬일로. 여기까지 어떻게 오셨을까? 걸어서 오셨을 리는 없고.」
   「네? 그게 그러니까 뭐 어쩌다가. 어찌어찌 뭐 그냥 그게...」
   「댁은 혼자 왔나 몰라도 전 아니지요.」
   「네? 그럼 일행은요?」
   「걸어서 간다길래 의사를 존중해줬죠. 그럼요.」
   「여기서 저기까지 걸어간다고요?」
   「농담이에요 농담. 아 뻥이라구요.」
    나는 마치 다큐멘터리에서 인기 좋은 최상위 포식자가 된 기분이 들었다. 
    영혼이 요절할 뻔하다가 천사로 환생하는 기분도 느껴졌다. 
    환상머신을 만들 생각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몰라도. 지금은 도시로 돌아가는 게 급선무였다. 
    오늘 밤 뭔가 좋은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매혹적인 희망. 그런 건 필요 없고 일단 돌아가야만 했던 것이다. 
    사냥감이냐 사냥꾼이냐. 사랑받느냐 사랑하느냐. 속고 속이고 정신없는 세상사.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었으니까. 





    18

    뛰기. 우쭐감에 어깨 뽕이 튀어나와 엷디엷게라도 거드름을 피울 것 같다, 게을러질 거 같다 싶으면 뛰는 게 좋다. 시선 받기를 즐기느냐 어깨뽕조차 예술로 바꾸느냐, 각자 스타일은 다르겠으나. 그렇지만 쉬고 걷고 놀면 모를까 발동 걸렸으면 달려야 하니까. 고로 괴상한 버릇 같은 일은 아니다. 더군다나 땀을 흠뻑 흘리고 나면 사람은 대체로 기분이 좋아지기 마련. 그럼 또 그걸 보고 오락산업이 가만있겠나. 때로는 잡초를 밟고, 이따금 사람을 당기고 들고 기분을 구름 위로 보내버린다. 지금 교묘히 점잔 떤다느니, 선생 거 너무 겸손해하시지 않아도 좋소, 물 들어왔으니 노 저어야지 지금 뭐하시고 있냐는 둥. 말하면 말한다고 뚜껑 열린다, 말 안 하면 말 안 한다고 놀리냐는 둥 뭐라는 둥. 트집 잡고 흠결을 파고드는 건 일도 아니니까. 게다가 듣고 보니 썩 틀린 말도 아니거든. 보자 보자 하니 어딘가 모르게 내가 너무 거만한 건 아닌가, 초심을 살짝 잊은 건 아닌가. 한 번쯤 점검해서 나쁠 건 없거든. 이 양반이 지금 보자 보자 하니······ 뭐가 어쩌고 어째? 시작은 다툼과 불화! 그런데 나중 사랑은 꽃피고 친교의 열매 그 과즙이 달콤한 일. 사람 사는 세상, 그걸 보고 살맛 난다느니 어쩌느니 하는 거니까. 이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고. <아니며 말고> 옐로카드를 아무 때나 누구한테나 남발할 수는 없고. 뭐 어쨌든 이번에 NB가 꺼내 든 으쌰으쌰이자 관심 가는 궁금증이 무엇인고 하니 그건 이랬다. 
    새로움! 저 소프트웨어를 내 하드웨어에 깔면 과연 제대로 작동할까? 주시안을 영구적으로 바꾸거나, 사고방식을 한시적으로 지동설에서 천동설로 바꾸는 일. 드물긴 하겠으나 아주 불가능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정말로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 운영체제 안에다 맥 OS를 심을 수 있을까? 즉 다중 운영체제. 전두엽은 안드로이드, 전전두엽은 최선을 다하자, 측두엽은 매킨토시 운영체제, 좌뇌 대충 살자, 우뇌는 막살자. 농담이고. 소프트웨어 버전이 높다고 무조건 좋지 않듯 저단계 수준의 소프트웨어 장점만 쓱 흡수하기. 그게 정말로 될까? 공작새 아동이 커서 백조 어른이 될 수 있냐고. 삐악삐악 노란색 병아리였는데 나중 알고 봤더니 꽥꽥 추억의 만화영화처럼 도날드 덕이었다더라? 아니 어떻게!
    그런데 그게 왜 갑자기 궁금했냐고? 왜긴 왜겠나. NB는 자기 블로그 유입 검색어를 보고 아하~ 한 거지. 바로, 남녀 비율에서 여자가 많은 나라 세계 TOP 10! 뭐? 소파에 자빠져 세계 최고로 거만한 자세를 잡고 TV를 볼 때. 그럴 때 한 장면. 개인주의가 만연한 선발&중견주자권에서 1.5든 3.0이든 원어민으로 사는 예능인. 그러다 어른이 되어 중견주자권에서 후발주자권으로 건너간 힙합가수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아니, 사실이고 예는 흔하디 흔할 뿐. 그렇게 중견주자 사람이 외모가 비슷하게 생긴 후발주자권에 오면 후발주자권 언어로 말이 통한다. 그래? 그럼 인간적으로 남자 대 남자로, 후발주자권 남자들끼리 솔직히 말해서 제일로 궁금한 게 무엇일까? 흑심의 의도가 아니라 문화적 차이 같은 의미로, 농담으로, 오래는 아니어도 당분간 친해지자는 뜻으로. 그건. 그건. 그건 잠자는 큐피드의 얼굴을 훔쳐보는 프시케의 호기심을 들먹일 거 없이. 바로 (딱) 더티 러브를 꿈꾸는 촌뜨기의 의아함은 단연 그거다. 그게 뭔가, 뭐긴 뭐겠나. 쉿! 두말할 필요 없이 압권은 단연 그거다. 그게 뭘까? 뭐긴 뭐겠나. 
   「누구씨. 와~ 그럼 거기서... 망고 바나나 딸기 파인애플 다 따먹었겠네요? 우리끼리니까 듣는 사람 아무도 없으니까. 비밀 무덤까지 안고 갈 테니까. 그러니까 제발 말씀 좀 해보세요. 완전 개방적일 거 아니냐구요. 네? 아 글쎄 땅 짚고 헤엄치기 아니냐고요! 아님 누워서 떡 먹기?」
    ~라고 노골적으로 물어볼 수야 없는 거지만. 그렇지만 엇비슷하게 이 여자 저 여자 다 꼬시고, 이 꽃 저 꽃 막 그냥 항상 꽃밭에서 돌아다니시느라 바쁘셨겠네요? 단도직입적으로 꿀벌이었어요 아님 벌새랄지 말벌이었어요? 어떤 여자 좋아해요? 고추 달렸는데 여왕벌일 수야 없는 것 아닌가요? ~라고 직접적으로 물어보진 않겠지만. 우리끼리 조용조용, (소곤소곤), 한 번쯤 정말로 그럴까? 라는 생각 안 해보면 바보이자 비정상에 푼수다. 아니 그런데 그게 아니라. 진짜로? 남녀 비율이 4 대 6 이라고? 왜? 진짜로? 아니 어떻게? 라트비아랑 동유럽 어디 어디 하며 막 그냥. 
    뭐야! 물 반 고기 반이잖아? 단, 우리에게는. 완전 노다지가 아니고 뭐냐고. 신천지도 이런 신천지가 없잖아! 황금으로 가득 찬 보물섬이 바로 그거라고. 손만 까딱해도 전부 다 다이아몬드라고. 제비랑 파랑새랑 팔색조들에게 천국이 바로 그거구만. ~라고 과장하진 않겠으나. 다시 말하자면 모종의 문화적 차이와 일종의 유머일 뿐. 그런데 소프트웨어 얘기를 하다 이 얘기가 왜 나왔지? 왜 갑자기! 아무튼 넘어가고. 
    그래서 NB가 시도한 독학이 무엇인고 하니, 그건 바로 아직 없었다. 정해지지 않았다. 새로움은 꽝이었고 변화는 0이었다. 젠장! 
    따라서 그는 오늘도 고개를 떨군 채 묵묵히 사무실로 향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

Blog - 143

from 소설 2019. 2. 28. 16:26

    1

    유독 세심한 부분에 대해서 민감한 반면, 분위기를 타거나 흥에 들뜨면 까다로운 취향이야 날씨처럼 뒤바뀌는 일. 흔한 성격이고 다반사이자 변심 같은 본성이다. 시선 마주치기의 기준선이 높냐 낮냐에 따라 장단점이 나뉘듯, 변덕도 좋을 때가 있고 아닐 때가 있다. 나는 소셜 네트워크에서 내 게시물 댓글놀이가 세상에서 제일 재밌더라, 넌 내 인생 최고의 행운이다나 뭐라나. 10년이 다 뭐야, 딱 1달 후에 그 마음 변했나 안 변했나 따지기도 귀찮다. 그런데 변덕 성향이 높냐 낮냐는 사람따라 차이는 있겠으나, 세상사에 치이고 지치며 닳아지다 보면 만사에 무덤덤해지는 건 정해진 수순. 가령 예전에는 호의를 표시하고 호혜성을 요구하기 좋아했는데, 이제는 시큰둥. 어렸을 땐 씹어먹다─싼다─뱉다─핥다─빨다─까다─따다─찍 뻗다─쭉쭉빵빵─뻥뻥 터지다─토하다 같은 1차적 표현에 거리낌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러든가 말든가. 싫으면 싫다 좋으면 좋다, 옛날에는 맺고 끊기가 어색하며 부탁은 어렵고 거절은 더 힘들었는데. 지금은 따질 꺼 따지고 흥정도 마다하지 않고. 왕년에는 말이야 드라마를 보면서 주인공이 무심하냐 다정하냐 저거 정말 <아니면 말고>카드를 너무 남발하는 거 아니냐? 그랬는데 지금 와서 생각하니 뭐 그럴 수도 있겠네 라며 이해하기.
    그런데. 그런데 유난히 꼭 1가지만은 변치 않는 범상치 않은 천성의 소유자들이 있기 마련. 이젠 둥글둥글해질 때도 됐는데 여전히 다혈질. 오늘도 기분파. 낭만파 연기는 다 뻥. (진짜로 그렇다는 말이 아니라). 단지, 불리하거나 불이익이 예상될 땐 인내력 최고에 참을성 지존. (진짜로 그렇다는 말이 아니라). 불행이 예측되고 재미없음이 추리된다 싶으면 딱 마음을 바꿈. (진짜로 그렇다는 말이 아니라). 그러나. 그러나 서열 정하기 만큼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수컷. 그분들의 본능은 알고 보면 자기 모순이다. 이론적으로야 단순히 '지킬 것만 지키자'라는 자연스러운 질서 의식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호사스런 몽블랑 요양원에 방문한 명콤비 우정이 사적으로 뭐라고 말하나. 그분들이 원하는 건 그저 단순한 인사성이 아닐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분들의 (속)마음은 아마도 이렇기 때문이다. 어쩌면 아닐 수도 있고.
    <내 인생을 통틀어 나 땐 그랬다. 그런데 너넨 대체 왜 그러니? 우리 인사 정도는 하고 지내자. 내가 많은 걸 바라는 게 아니잖니? 그게 뭐가 어렵니. 너가 날 좋아하지 않든 내가 널 아끼지 않든. 가식적으로 아는 체는 하자. 힘든 일도 아니잖니. 듣기 싫은 험담 정도는 당사자 안 듣는 데서 하자고. 어? 우리 아름다운 형식 만큼은 깨지 말자. 그게 뭐가 나쁘니? '인정하고 안 하고'의 문제가 아니잖니? 사람과 사람이 마주치며 지나가는데 사람과 사람이면 인사를 해야 하는 게 사람의 도리. 사람과 개가 마주치는 게 아니니까. 안 그러니?>.
   「그럼 그러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하던가!」
    그런데 이건 일관되지 않은 기준에 따른 사고다. 난 나고 넌 너다, 까지는 좋다. 그분들도 그건 흔쾌히 인정한다. 그런데 <난 나고 넌 너다>의 기준에 대해서 나와 남을 동일시한다는 것이 문제다. 내가 생각하는 <난 나고 넌 너다>와, 너가 생각하는 <난 나고 넌 너다>. 전자와 후자가 항상 같을 거라는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거든. 그거 다 통일시킬려면 피곤하거든. 학교 다닐 때를 생각해보자. 인기 많은 친구임에도 불구하고 모두와 친하기는 힘들기 마련. 있는 듯 없는 듯한 아웃사이더는 더 그렇고. 그처럼 소 닭 보듯 닭 소 보듯 하던 같은 반 친구들이 얼마나 많았나. 1년 내내 단 1마디 섞어보지 못한 친구들. 쑤두룩했다. 눈빛조차 마주치기 어색했던 친구들. 쑤두룩했다고. 그런데 작은 사무실 공간도 아니고, 오다가다 스치듯 만나는 업계 동료. 나는 위고 넌 아래, 내가 인기가 더 많고 넌 아래고, 내가 돈이 더 많고 넌 아직이고. 그러므로 너가 먼저 날 반가운 척 내게 인사를 해야 한다? 그건 그분 생각이고! 사람이 살다보면 인사를 받고 하고, 미안해요 괜찮아요 고마워요, 어쩌다 바쁘면 지나칠 수도 있고. 자기야 나 사랑해? 속마음을 확 그냥 말해버려 말어! 워─워! 인사를 해야 하냐 말아야 하냐, 하면 한다고 귀찮은 척 좋아하고. 안하면 안한다고 먼저 인사 받기를 기다리고. 딸랑딸랑─반짝반짝─뿌잉뿌잉! 그렇다고 정작 진짜로 중요한 일에 대해서는 외면과 무시와 방관. 속으로는 <야 야 떴어 떴어 또 떴어 또 떴어, 피해 피해 딴 데 봐 딴 데 봐, 모른 척해 모른 척해>. 그게 속마음인데 굳이 겉으로 인사를 반드시 받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심성. 다른 건 다 착하고, 좋고, 인자하며, 평판도 괜찮을지라도 사람에 따라 그런 부분이 불편할 수도 있고 언짢을 수도 있다.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 = 좋아하지 않는다 싫어하지 않는다>. 등호 성립이 뭔가 말끔하진 않듯. 소셜 네트워크에서 좋아요 버튼을 누르지 않으면 경우의 수는 다양하다. 넌 너고 난 나다, 무관심, 대충 넘어가자, 대충 살자, 싫어하지 않는다, 존중한다, 응원해요, 지지합니다, 물개박수라도 건네고 싶은데 나 시간 없다, 나 행복하기도 바쁘다... 등등등. 그런데 반드시 너는 나한테 웃으면서 인사해야 한다, 왜냐하면 너와 내가 구면은 아닐지라도 얼굴 정도는 서로 알고, 친분은 없으나 같은 업종에서 넌 나를 알기 때문이다? 아 피곤해 피곤해 피곤해! 보아하니, 이제는 음악이 중간에 끊기는 변두리 나이트클럽에서 VIP 대우 받으셔도 될 것 같은데. 그런데 억지로 기를 쓰고서 음악이 끊기지 않는 클럽에서만, 꼭 단골이 되어야만, 그래야 속이 시원하겠다야 뭐야! 난 아직 늙지 않았어? 그랬어? 입담이 좋으니까 말로는 또 자긴 「욕심없다─마음을 비웠다─이제는 뭐든지 그 모든 걸 내려놨다」 라고 하시겠지만, 하나도 내려놓지 못했구만 그래. 가만 보면 꼭 그런 분들 꽤나 많다. 설마, 나도? 물론 그처럼 변함없이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의지가 똘똘 뭉쳐서 그 열정으로 그나마 어느 위치까지 갔을 수도 있으니까, 절대로 나쁜 건 아님. 결코 나쁘다는 뜻이 아니라고. 틀리다가 아니라 다른 거라고. 아무튼,
    그게 뭐냐, 바로 꼰대지수다. 허세지수와 마초지수가 있듯이 꼰대지수도 있다. 물론 꼰대지수라는 용어가 생소한데 재밌냐, 낯설지 않지만 기분이 좀 그렇냐. 나뉠 수는 있다. 그렇지만 꼭 나쁘게만 생각할 것도 아니다. (있는 흉 없는 흉 다잡더니, 이제와서? 빙고! 추론 가능한 트집 대체 불가능한 원리 빗대어 죄다 헐뜯더니, 이제와서? 통과! 어찌 됐든 잘 아시지 않는가. 그런 인습에 적응해서 살다보면 것두 나름 살만하고 그럭저럭 꽤 재밌다는 걸. 그래? 임팔라 귀 꿈틀꿈틀 꿈틀꿈틀. 그래? 듣고보니 그런 것도 같고. 아주 틀린 말도 아니고. 일리 있네 일리 있어. 멈칫 멈칫 그러다 멈칫. 그런데. 그런데 뭐야 이거? 뭐냐고, 어? 아 글쎄 병 주고 약 주고! 뭐야 이거?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꼰대지수니 뭐니 이러쿵저러쿵 쑥덕쑥덕. 그렇지만 꼭 나쁘게만 생각할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그건 단지 주름살이랄지 흰머리처럼 자연스러운 현상이자 끼리끼리 같은 습성일 뿐이니까. 로마에 가면 따라야 한다는 법 같은 거니까. 그럼 나의 꼰대지수는 몇 점일까, 그게 궁금하든 말든. 꼰대지수가 있으면 역시나 꼰대대회라고 왜 없겠나. 허풍대회는 있나 없나 소문만 무성하고, 허세대회 또한 유야무야 흐지부지됐으니.
    따라서 나는 말 나온 김에 소셜 네트워크를 둘러보다 알게 된 꼰대대회에 참가하기로 했다. 아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말이다. 언제 어디를 가더라도 내가 제일 주목 받고, 내가 제일 인기 많고, 내가 제일로 말을 많이 해서 최고로 돋보이지 않으면. 그러면 그 자리는 두 번 다시 쳐다보지도 않는 성격. 삐치고 토라져서 중간에 조용히 빠져나와 <넌 또 뭐야?>라는 뚱한 표정으로 홀로 퇴근. 그건 그냥 타고난 것 뿐이다. 허세지수가 높으면 다른 부분에서 오디오 이퀄라이저처럼 적당히 충당되고.  「뭐 기부천사? 뭐 저게 기부천사야 저딴 기부천사의 본모습이 어떤 줄 알기는 알어? 어? 쟤 쓰레기야 어? 쟤 완전 쓰레기라고. 알고 보면 쟤 완전 쓰레기라니까~! 그냥 쓰레기가 아니고 완전 쑤뤠기라고. 어?」   그런데 GIF 파일 찾아보는 건 바쁘고 동영상 짤로만 보면 또 뭔가 세하다. 더 보고 싶은데 재미난 걸 찾기는 귀찮고. 시간도 없고. 아니 시간은 많은데 구태여 찾아보기엔 뭐하고.
    바로 그래서 꼰대대회라는 게 필요한 것이다. 패션의 거리를 봐 보시라. 옷가게는 옷가게들끼리 뭉쳐있다. 그래야 장사가 더 잘되니까. 굳이 브랜드 포지셔닝 법칙을 끌어당길 필요도 없다. 바로 그분들끼리 모여 있다고 상상해보시라. 꼰대지수 최고이자 스타성 괜찮고 원맨쇼가 인생이었던, 그분들끼리? 열정 하나만은 그 어디서 둘째 가라면 서럽고, 어떤 일관성만큼은 초지일관 변치않았던 그분들끼리 모여있다고? 딱 둘 중 하나다. 완전 재밌거나, 소 닭 보듯 닭 소 보듯 하거나. 그러면 또 불을 지피면 된다. 다 방법이 있다. 살살 꼬시고 슬슬 부아를 돋구며 꼼지락꼼지락 간질간질거리면 된다. 계급장 떼고 뭐 떼고. 야자 타임에 왕게임에. 오락산업이 또 그런 건 기가 막히게 잘하거든. 어쨌든 이와 같이 흥분된 기대감을 안고서 나는 꼰대대회장으로 출발했다.





    2

    꼰대대회는 꼰대 고양이 대회로 판명났다.
    야심차게, 까지는 아니지만 약간의 설레는 예감을 안고서 출발했거늘. 그런데 결과는!
    내 이럴 줄 알았다. 왠지 일이 잘 풀린다 그랬다. 일단 기분이 들떴다 하면 닥치는 대로 긍정? (설레설레)!
    참고로 한말씀 드리자면 꼰대라는 어휘는 1차적 표현처럼 나쁜 말이 아니다. 어원을 분석해봐도 그런 사례는 비일비재하는데 일단 그렇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 꼰대가 되야 한다. 되지 않으면 안된다. 나이값이란 거도 있고 맹목적 열정이란 거도 있고. 그녀들한테 희망─소망─선망─낭만─적절한 허영심을 빼았으면 안되듯이, 우리도 허세─허풍─꼰대지수─으쌰으쌰 정신은 최소한으로라도 남아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TV를 틀었더니 조증녀한테 기 빨리고, 집에만 들어오면 잔소리에 또 기 빨리고. 기 받을려고 젊음의 거리에 나섰거늘 상권 분위기 바뀐지 오래. 정말로 그렇다는 말이 아니라, 한마디로 꼰대지수는 허세지수랑 똑같은 거라고 보면 된다. 흐름을 타면 된다고. 재밌는 기운과 적당한 안배에 묻어가기만 하면 된다고. 다만 위를 보며 허세지수 70에, 아래를 보며 꼰대지수 80? 그렇듯 지나친 불균형만 조심하면 되고.

  1. 아예 인사 받는 재미, 오직 그것만 특화된, 피곤한 스타일이냐.
  2. 아니며 겉으로 보기에 A에 가깝지만, 알고 보면 호인에다 매력 넘치고 친해지면 완전 사람 좋냐.
  3. 도대체 얼만큼 친해야 인사 정도는 주고 받자 그걸 확실히 집고 넘어가야 하느냐. 내 생각, 내 기준이 정답!
  4. 유명세와 나이와 돈과 능력과 경력등을 따져 먼저 숙이고 들어가야 하느냐 마느냐. 난 싫다 늬가 접고 들어와라.

    십중팔구건 100명에서 99명이건 대부분 별 탈 없다. 특별히 탈날 거 없다고. 잔소리 들리면 귓등으로 듣고 넘기면 되고. 앞에서 웃고 뒤에서 욕한다는 평판, 포커페이스가 되니 어쩌니. 기준선이 삐딱해도 뭐 어떻게든 적당히 소 닭 보듯 닭 소 보듯 하게 된다. 너는 너 나는 나니까. 그런데 간혹 보면 좀 심한 경우가 드물게 있다. 그렇다면 내 시간 빼았기지 않는 게 상책이다. 옛날 일이 떠오른다. 수영장 샤워실에서 샤워하고 있는데, 괜히 어떤 어른신께서 오줌을 눴다며 괜히 생트집을 잡던 일이 기억난다. 당연히 그분 옆에 계시던 친구분께서, 젊은이가 이해하라며 말리셨고. 샤워하다 옆사람이 작은 걸 보는지 안 보는지 그게 왜 궁금하셨느지. 그것만 보고 계셨는지. 난 배뇨감도 전혀요 잔뇨감도 일절 없었거늘. 유명세와 나이와 돈과 능력과 경력등 너무 차이가 크다면 살짝 무시받건, 약간 질투받건 적지 않게 시기받건 대인배가 감수하는 게 보기 좋다. 그게 불미스럽지 않다. 억지 칭찬, 물개박수, 가짜 아첨, 남발하는 썩은 미소. 그런 데 데여도 많이 데이고, 속아도 원없이 속은 어른들은 까칠한 서열, 삐딱한 냉소, 다정한 재간둥이를 시기하는 조롱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심지어 거기서 더 이상한 남자는 아예 그럴싸한 꼬투리도 아닌데 빈말 물고 늘어지기로 세계 최고도 있고. 어쨌든 인사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알은 체할까 말까. 인사를 하면 왜 갑자기 친한 척하며 달라붙는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그렇다고 알은 체하지 않으면 버릇없다고 또 뭐라 할 테고. ~라면서 생각이 많아 시기를 놓치는 사람들. 하여간에 인사를 받고 싶은 사람과 어쩌다 때를 놓쳐 계속 떨떠름하게 무시하게 되는 후배. 둘 다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것일 뿐. 둘 다 알고 보면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그런 허식이라면 난 정중히 사양하게소! 뭐라고? 아니다 난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다, 뿐만 아니라 내 살면서 딸랑딸랑─반짝반짝─황금─오빠라는 귀뜸─짝사랑 받기를 싫어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보지 못했소. 사랑론을 독학하고 행복업을 귀동냥할지언정 <나는 벌거벗은 임금님이요 너는 병풍이라면> 난 쌍수를 들고 환영하겠소. 날 김거절씨라고 뒷소문으로 띄우건, 피곤한 스타일이라며 다 날 피하건. 언제나 두손 두발 들고 기쁘게 인사성을 따지겠소. 나도 내 역할이란 게 있으니까. 사람 갑자기 변하면 쓰나? 안 그렇소? 뭐 그러면 오락산업에서 난 끝이라고? 끝이 어딨어 끝내도 내가 끝내오! 아시겠소? 아시겠소, 모르시겠소? 대인배가 참아야지 소인배에게 뭘 바라겠나. 남자의 우정에서도 불가피하게 여자와 어린애보다 훨신 속좁은 사례는 드물지 않다. (페미니즘이 대체 뭔지는 모르겠다만, 세심함과 정겨움과 천진난만한 애들 소꿉장난을 달리 표현하면 속좁음이듯. 일장일단과 각자 특징이 있을 뿐 여자 어쩌고저쩌고 남자 이러쿵저렁쿵 괜한 데 힘빼지 않아도 된다는 뜻). 남자들 우정에서 불가피하게 허당이 불한당 친구한테 당할 때, 양쪽에서 팔짱꼈던 아는 여동생들은 그렇게 말한다. 「오빠가 참어」 「그래. 오빠가 참아야지.」 그게 불미스럽지 않다. 참아야 하는 당사자는 썩 즐겁지는 않겠으나. 그게 불미스럽지 않다고. 소인배란 소릴 그렇게나 애타게 듣고 싶지 않다면. 밴댕이 소갈머리 같기는, 걸핏하면 토라지고 피곤한 스타일로 입소문이 떠돌아 여성잡지2식 입방아에 오르락내리락하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험담은 험담이겠으나, 거짓 소문이 있으면 진짜 중론도 있다. 야 야 떴어 떴어, 의 별명들. 가령, 존 삐짐─삐돌이 스미스─크리스 후추─뒤끝 지방시─이간질 생로랑─에드워드 삐딱─마거릿 사이코─쫌팽이 올리버─아멜리아 허영─거만 찰리─권위왕 알피......라고 불려서 좋을 건 없는데. 그런데 또 그에 따른 쾌감도 있긴 있단 말이야. 단순히 성격 때문일 수도 있는데, 병일 수도 있고. 결론을 명쾌히 딱 정의내릴려다가 일만 더 키운 셈이자나? 저런! 뭐야? 이런 젠장! 하오나 사람이면 누구나 약점 1개, 아픔 하나, 단점 1개씩은 있는 거 아닐까? 감추기만 해선 인간미 떨어질 테고. 잘난 척 센 척 강한 척, 으쌰으쌰 달릴 땐 달리더라도 속 깊은 얘기할 분위기란 게 있으니까. 그런데 그게 아니라 약점─단점─아픔 투성이라고요? 되로 주고 말로 받았구만 그래. 쾌락마의 유혹에 넘어가 새침한 꼬리를 물고 늘어졌더니 글쎄, 풋사랑이 아니라 세계 몇 대 불가사의니 로스차일드 가문의 숨겨진 재산이니 뭐니. 뭐야 이거? 멋진 척할려다가 일만 더 키운 셈이자나? 이런 젠장! 좌우지간 잠깐 잔소리는 여기서 끝. 아무튼,
    챙피한 얘기를 자세히 읊기도 싫고. 완전 실망했고. 기분은 잡쳤고. 하긴 기대한 내가 바보지. 그게 말이 되나? (절레절레) 뭐, 꼰대대회? ~라며 난생 처음 보는 '이상한 벽보를 찍은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린 게시물'을 발견하던 엇그제. 그때가 좋았을까? 좋긴 좋았는데, 결과적으로 안 좋았던 거네. 세상사를 겪어보니 나도 알기는 알았다. 금단의 열매는 두 배나 달콤하고, 벌레 먹은 사과는 네 배나 맛있다는 그 어떤이들의 비밀을. (뭐 0을 1개 더 붙이라고요? 앞에, 뒤에?) 그런데 문제는 매번 끝물을 타거나 개꿈을 꾸거나 행복업에 속든가. 아니면 마권은 매번 고집 피워서 꼴찌에만 걸기. 참 나! 인생이 무슨 극복할 수 있는 허언증이야 뭐야? 산딸기빛 립스틱은 그림의 떡. 왕족의 색상인 보라빛 자주빛 헤비메탈도 추억의 음악일 뿐. 하얀 웨딩드레스처럼 순수한 하얀빛은 언제쯤에나 흑심에 물들려는지 참 알 수가 없구만.





    3

    엄마의 <공부해라>와 아빠의 <안돼. 그만!>. 일반적으로 애들이 제일 많이 들었던 말. 맞죠, 맞나? 아무튼 듣기는 그렇고. 그 다음 말하기는? (딱) 심심해 그리고 재미없어. 다시, 그 애가 어른이 되면? 낮에는 뭘 해도 재미없어, 밤에는 야 야 으샤으쌰 으쌰으쌰 가자 가자. 목적지는? 어디긴 어디야 NC '엄마한테 말하지 마'지! 인생이란 어쩌면 공치사 같은 거니까. 단짝 친구를 띄워줄 때 확실히 띄워주는 게 뭐 그렇게나 어려운 일이라고. 신부들러리 자처하면 술값 떠넘기고 그날 신나게 달리고, 마음에 드는 뭔가를 살피며 다음을 기약할 수도 있고. 일석이조. 꿩 먹고 알 먹고. 도랑 치고 가재 잡기. 일타이피. 예를 들면 여-바텐더 앞에서 친구 녀석 면 세워주기야 대충 이처럼 자연스럽게 몇 마디 읊기만 하면 된다. 슥~ 하니 분위기만 깔아주면 된다. 반응 봐서 쇠뿔을 오늘 뽑을 건가, 2차로 미뤄야 할 텐가. 그건 곧장 보이니까.
   「저는 여동생이 없지만 만약 있다면! 혹시라도 걔가 이쁘다면, 나는 티끌만한 망설임 없이 내 여동생을 내 친구한테 소개시켜 주고 싶어요. 얘가 알고보면 꽤 괜찮은 남자걸랑요. 아니, 진짜로. 아 웃지 마시고. 허허. 언니, 지금 속으로 뭔 생각했어? 어허 이거 왜 이래? 자기야, 언니가 뭔 생각하셨는지 맞춰볼까, 맞춰보지 말까? OK~ 알아도 모른 체하기로 하고. 이어가자면, 응? 말하자면, 그래요. 터놓고 말하자면 이렇소. 이렇단 말이오. 네? 그래. 한번, 예? 딱 한번만 만나봐요. 아 글쎄 나 말고 얘랑. 착각하지 마셔. 난 내 주제를 안다오. 예? 허허허. 언니처럼 공주 같은 여잔 난 부담스러워서 싫소. 어디 나 같은 일개 한량이 이처럼 고귀한 숙녀를. (몸짓) 그러니까 데이트 딱 1번. 그것도 대낮에. 응? 해가 중천일 때. 아 만인이 보는 앞에서 떳떳하게 건전하게. 여자에게 선택권도 주고 명분도 주고. 꽃다발은 물론이요 잘하면, 넘어가고. (몸짓) (표정). 만나봐서 좋으면 야구장 데이트 같은 대단히 상쾌한 2번째 기회를 주고, 아니면 아름다운 뒷모습. 깔끔하게. 어? 어때요! 평판 나쁘지 않고 형편 괜찮고. 최근 출시작도 호평 일색인 데다 (돈-돈-돈 몸짓. 따따부따 몸짓) 얘처럼 낭만적인 남자를 만나기가 이 시대에 어디 쉽나?」
    어차피 나는 여동생이 없고. 우리는 우정이고. 내 친구는 (순수─순진─담백의 의미로다) 이상한 놈이자, 난 더 이상한 놈. 아울러 모텔 이름이 뭐 캘리포니아 같은 어엿한 정식 이름만 있는 건 아니니까. 클... 에... 뭐 아무튼 넘어가고. 그래서 내가 치렀을지 받았을지 모를 그 공치사란 게 뭐냐. 딱히 기억나는 게 없었다. 뭐? 그럼 그렇지. 내 그럴 줄 알았어. ~라는 실망스런 낙담이 정말로 들리는 것만 같았다. 어쩌면 좋지? 어쩜 좋아 어쩜 좋냐고. 어쩜 좋긴 뭘 어쩜 좋아. 이런 기분 처음이야, 그런 일이 어디 흔하냐고. 누가 결혼행진곡의 주인공으로써 웃으며 레드카펫 위를 걸을 때 밝은 미래의 롤러코스터 굴곡을 예견했겠냐고. 그건 초혼이고 앞으로 몇 번 더 똑같은 식을 치러야 한다는 걸. 순진한 소녀감성을 맹타하는 사랑의 슬픔과 인생의 오묘함은 여기서 이만 줄이고. 헤어지기 싫어서 질척거리기도 못 해봤겠다, 나 또 차였어 라면서 허영심 웃겨주기도 안 해봤겠다. 그럼 이제 뭘 하지? 그럼 이제 나도 그렇고 그런 흔하디 흔한 동네 아저씨가 된 건가. 그런 건가? 그렇든 아니든, 그런 동네 아저씨들이 웃는 포인트는 딱 정해져 있다.
    첫째, 애가 이렇게 말할 때. 「아빠. 나 저 아저씨 웃는 거 한번도 못 봤어.」
    둘째, 친구가 이렇게 말할 때. 「넌 요즘 어떠니? 자기야 나 있지. 난 요즘 뭘 해도 재미없어.」
    셋째, 옆집 남자애가 동네 똥개 외모 평가할 때. 「못 말려. 하여간 저 강아지 더럽게 못생겼네.」
    넷째, 옆집 여자애가 동네 똥개를 보고 겁먹고서 보챌 때.  「강아지 무서워. 저기 가라 그래. 가. 저리 가.」
    그렇다고 나까지? 고로 난 최근에 라이벌 관계를 억지로 설정했다. 바로 환상문학잡지 미스테리아 편집장 마라와 여성환상 1.5 편집장 사라를. 물론 그녀들끼리 웃으며 인사는 하고 몇마디 얘기는 나누는데. 그런데 얘기가 금방 끝난다. 딱 봐도 뭔가 불편하다 그거지. 우리 너무 급하게 친해지지는 말자 그럼 안되니까 알잖니, 라는 암묵적 동의가 존재한다고.
    자, 바로 그래서 나는 깨달았다. 그런 애들 장난 같은 일은 그쯤 하면 됐고. 나는 이제야말로 본격적으로 비슷한 친구들을 만나야 한다고. 내가 말이지 최근 말이야. 너무 뭐랄까 여자 여자 소녀 소녀 숙녀 숙녀, 아니면 자꾸 추종세력이 인터넷 팬카페로 존재하는 롭을 귀찮게나 하고. 그렇게 내 꼰대지수는 솔직히 말해서 불쾌한 수준에 살짝 근접해버렸음을 고백...할 데도 없다. 그런 투정 받아줄 아가씨도 이젠 다 떨어져나갔고. 아는 여자 동생들도 다 지 갈 길로 갔다. 날 보며 <문어 대가리 오빠>라며 스스럼없이 대할 수 있는 아는 동생, 있는데 전화를 받지 않는다. 눈치 없이 계속 귀찮게 할 수도 없고. 완전 팽 당한 거지. 당해도 제대로 당했어. 아주 그냥 에잇. 말 말자. 말 말어.
    그렇게 나는 내 친구 제라드를 만나기로 했다. 마법사의 아들이니 뭐니 그런 별명은 재미없고. 그래서 핸드폰으로 연락처를 뒤졌더니 뭐야 이거? 제라드가 2명이네? 나머지 1명은 뭐지? 얜 또 뭐야! 넌 뭐냐고. 심부름꾼? 바람잡이? 연락책? 노름꾼? 승부사? 중간보스? 두더쥐? 익살꾼? 아님 퇴폐의 조력자? 아닌데 아닌데. 전혀 기억이 없는데. 누구지? 대체 누굴까? 도저히 기억이 없었다. 그럼 전화해서 물어보면 되잖아. 그럼 되겠네.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알고 보니 제라드는, 다시 말해 제라드2는 예전 축구 서포터즈 조마조마에서 유일하게 나랑 말이 통했던 친구였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녀석을 만나러 갔다.





    4

    제라드와 나는 만나서 인사를 나눴다.
    그런 다음 무얼하며 놀까를 생각했다.
    일단 분위기를 말랑말랑하게 다듬고 부드럽게 출발해야 하니까.
    그래서 우리는 일단 저기 보이는 저 술집에 들어가기로 했다.
    이름도 뭔가 있어 보이네. <ALT + F4>. 뭔가 사연이 있어 보이고.
    우리는 그곳으로 들어갔다. 오오! 조니워커 블루라벨처럼 사치의 색인 검정색 일색에다, 이건 뭐야.
    말 품평회에서 수상한 말에게 준다는 리더의 색인 파란빛 원피스를 입은 숙녀가 바텐더를? 아아 꽤나 특이한데?
    혹시 오늘... 아니야 아니야. 일단 여긴 우리가 아는 그런 흔한 술집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음악부터 괴상했으니까.
    보아하니 지금 흐르고 있는 음악은, 요한 다비트 하이니헨의 칸타타 <사랑의 신이여, 나를 그만 괴롭히시오>.
    바텐더왈, 아직 이른 시각이라 끈적끈적한 음악이랄지 전자기타 멜로디가 흥겨운 음악은 나중 틀 거라고 했다.
    듣고 보니 우리가 너무 일찍 온 거다. 정식 개장 전. 그렇지만 손님은 손님. 심지어 직감을 꿰뚫을 순 없지만 우리가 썩 싫지도 않은 눈치. 그래? OK~!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저는 여동생이 없지만 만약 있다면! 혹시라도 걔가 이쁘다면, 나는 티끌만한 망설임 없이 내 여동생을 내 친구한테 소개시켜 주고 싶어요. 얘가 알고보면 꽤 괜찮은 남자걸랑요. 아니, 진짜로. 아 웃지 마시고. 허허. 지금 속으로 뭔 생각하셨어? ......(여기서 부터는 앞서 3문단에서 읊은 그대로. 아니 그보다 훨씬 농밀한 어조와 멋진 폼을 곁들여서 그녀를 포근히 꿈결에 젖어들도록 만들었음. 진짜로? 진짜로!)」
    그처럼 말하면서 내가 느낀 게 뭐냐, 하면 이랬다. 얘는 우리에게 호감이 있을까 없을까, 있었다. 여자는 웃으면 끝이다, 그걸 훌쩍 넘어설 정도로. 사귈 때 떠들썩한 이벤트를 싫어하는 여자들이 꽤나 되는데, 그건 사랑이 진행중일 때고. 사랑의 클라이막스는 뭐니 뭐니 해도 첫인상이 정식 연애 관계로 이어질 건가 말 건가, 라는 바로 그 지점. 전혀 좋아하지 않는, 저런 어쩌고저쩌고라는 수다처럼 내 스타일이 아닌 남자가 꽃 들고 쫓아다니며 기다려도. 그래도 줏대 있고, 심지 있으며, 주관이 뚜렷할 뿐만 아니라 이상적인 사랑관이 아주 없지 않다면 숙녀는 그 구애를 정중히 사양할 줄 안다. 정말 괜찮은 남자는 막무가내로 들이대지도 않고─언제 배짱을 부려야 하냐는 각자 판단하고─망설일 줄 알듯이. 그저 순진하고 순결하며 챙피해 하는 스무살이 아닐지라도. 그야 어쨌든 저 남자에게 내 맘이 없지도 않고, 아니 그게 아니라 완전 내 스타일인데. 그런데 처음 단계에서 이 남자가 주위 사람들 다 보란듯이 아이스버킷 챌린지를, 주변 지인들 다 보란듯이 노력하는 모습을, 자긴 차였다면서 머리카락을 빡빡 밀어버리질 않나. 그러면? 그럼 여자는 한마디로 열광한다. 미쳐버린다. 우리가 오빠라는 말만 들으면 미쳐버리듯. 남녀 공히 짝사랑 받기는 최고의, 아니 차선의 행복감이란 말이다.  「(직장에서 사무실 사람들 다 보란듯이) 누구씨 아무리 우리가 여자로 안 보여도 그렇지......」 유혹과 애정은 남녀의 감출 수 없는 교집합인 것. 저 남자 완전 맘에 들어 완전 내 스타일이야,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는데 남자가 다른 누구도 아닌 나에게 노력한다? 호불호가 나뉘는 게 아니라 100센트란 말이다. 여자에게 고추가 달리지 않는 이상 100퍼센트라고. 어? 200퍼센트니 뭐니 100까지만 있다고 했을 때 말이다. 도톰한 목소리에 그녀의 모든 것이 반응하듯. 낭군님 팔짱을 끼고서 딱 붙어있더라도 1.0 미만의 미남을 보면 그녀의 마음이 두근거려야 정상이듯. 그야 어떻든 하난 분명했다. 얜 우릴 1.5 정도로 여긴다는 걸.
   「레이첼. 우리가 정직했잖아. 그럼 언니도 솔직해야 하는 거 아닌가? 아님 터가 안 좋아, 우리 인상이 별로야?」
    그녀는 내내 알 듯 모를 듯 애매한 웃음만 지었다.
   「보소. 보소. 흉금을 터놓고 말해보소. 그러는 게 좋지 않겠수?」
    여전히 그녀는 침묵.
   「난들 달리 뾰족한 수가 있나. 하는 수 없지 뭐. 야 제라드. 너 오늘 차였어. 스트라이크 아웃. 삼구삼진. 딱 아웃. 그러게 내가 뭐랬어.」
    그런데 뭐야 이거? 그녀가 술집 문을 닫네?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결과만 말하자면 그날 우리는 시내에서 재밌게 놀았다. 그런데 1 대 2? 그러니까 아까 했던 얘기가 있는데 글쎄 2 대 1? 아니나 다를까 나는 알아서 중간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어딘가 모르게 기분이 이상했다. 느낌상 얘네들끼리 잘 어울려보이지도 않았다.
    그러니까 얘네들끼리, 빨강을 주색으로 쓰는 국기가 전체의 45퍼센트. 반면 파랑은 20퍼센트라는, 그 빨간색 분위기? 아니야 아니야.
    빨강은 망막 뒤편에 초점이 맺히니까 빨강색은 보는 사람 쪽으로 다가오듯 보인다. 그러니까 얘네들끼리 하트 뿅뿅 윙크 윙크? 아니야 아니야.
    뭔가 이상했다. 정말 뭔가 이상했다. 혹시... 아니야 아니야.
    어쨌든 나는 그들과 헤어졌다. 아까 괜히 혼자 흥분해서 방정맞은 입을 턴게 화근이었다. 정말로 10년에 딱 1번 들을까 말까 겨우겨우 들을까 말까 한 바로 그 입담을. 그걸 왜 하필 오늘? 나는 후회했다. 기대는 현실에 졌으므로, 따라서 성과는 꽝이었다. 나는 후회했다. 그러나 어쩔 수 있나.
    그렇게 엎어진 꽃병처럼 어깨가 쳐진 채 나는 집으로 갔다. 일단 오늘 그 둘도 곧 있다 헤어지겠지만, 나중 잘 될지는 두고 볼 일. 그렇게 그날은 별빛이 유난히 아름다웠다.





    5

    승부를 걸어야할지 말지, 아직도 잔뻔치와 뻔트가 부족한지 판가름하기 영 불쾌한 슬럼프. 입질은 없고 발을 뺄 수도 없고. 그럼 뭐 별수 있나. 밀고 놓고 펴야지. 연애는 연애고 인생은 인생이고. 그런데 어쩌다 방심이라는 틈새 시장 공략에 운 좋게 성공. 고로 목적했던 목표물을 당기고 들고 쥐는 행복감을 성취. 말리고 엮고 감기는 기쁨의 아리아에 마음은 춤을 추게 되는 형세.
    ~라는 절정감이 내 것이면 좋겠으나.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공상일 뿐이고. 지금 당장 환상과 교섭을 벌이겠나, 풋사랑을 회상하며 곱씹다 아쉬운 전적을 헐뜯겠나. 정해진 일일 시간표만 꼼꼼하게 검토하고 깐깐하게 실행하다가는 더 재미없어질 게 뻔했다. 그러므로 나는 이번에 시장통에 깜짝 출연한 일자무식 바보처럼 놀러가기로 했다. 그러니까 어디로? 여성환상 1.5 사무실로. 너무 비논리적인 결정인가? 그럼 지금 와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을 공부하겠나, 진지하고 재미없는 변증법을 학습하겠나. 척키 인형의 시선은 곱지 않건 지니가 개밥그릇을 걷어차건, 내가 여태 주로 몰렸던 양이었다면 이번에는 양몰이를 펼칠 시간이었던 것이다. 살짝만 힌트를 공개하자면 그날은 여성환상 1.5 사무실의 바베큐 회식이 치러질 날이었다. 깔려있을지도 모를 복선 같은 건 나중 생각하고. 그 친구들 안중에 내가 있건 없건, 그건 나중 생각하고. 나는 곧장 그곳으로 갔다.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여성환상 1.5 편집장 사무실에 도착.
    음악은 헨델의 오페라 <이집트의 쥴리오 체사레>중에서 체사레의 아리아 ‘교활한 사냥꾼은 조용히, 그리고 은밀하게 움직인다네’.
    뭐? 어머머머머, 얘 좀 봐라!





    6

   「사라. 오랫만이야. 만났으면 좀 아는 체 좀 하시지? 그렇게 바뻐? 늬가 언제부터? 그건 그렇고. 봉건적인 남자의 보수적인 사랑관에 대해서 얘기해줄까? 아님 얘기해주지 말까?」
   「들은 셈 치자.」
   「시작부터 이러기야? 왜 그래? 만나자마자 김 빠지자나. 너 남자한테 차였니? 그런 거니?」
   「왜, 그렇게 보이니? 그럼 그렇다고 하자.」
   「뭐야, 진짜야? 누구야? 어떤 작자야? 내가 가서 콱 그냥... 워──워──워!」
   「뭐야 혼자 얘기하고 혼자 박수치는 거야, 뭐야? 너 안보던 사이에 많이 재미없어졌다.」
   「뭐-뭐. 뭐라고? 그럼 넌 안 보던 사이에 완전 이뻐졌는데! ~라고 말할 줄 알았니? 그렇게 말할려고 했어. 얘 있지, 자기야. 우리 다시 예전처럼 사이좋게 지내자니까 그러네. 응? 그러니까, 우리 앞으로 잘 해 보자.」
   「잘 해 봐? 뭘 잘 해 봐?」
   「뭘 잘 해 봐, 는 모르겠고. 일은 잘 되니?」
   「어디서 참견이야. 너나 잘해. 어? 그러니까 늬가 뭘 해도 안되는 거야. 어? 그러니까 늬가 뭘 해도 재미없는 거라고. 알기는 아니?」
   「얘가 왜 이렇게 사나워졌어? 아, 마감일?」
   「알면서 왜 묻니?」
   「여기 놀러오면 뭐 재미난 일이라도 있을 줄 알았는데. 그런데 아니네. 재미없네. 더럽게 재미없구만 그래.」
   「내 그럴 줄 알았다.」
   「그럴 줄 알기는 뭘 그럴 줄 알어? 늬가 무슨 허접한 점쟁이야 아님 신출귀몰한 예언가야? 어? 이거 왜 이래?」
   「흥분하지 말고. 응? 아무 데서나 흥분하지 마시고. 그러지 말고. 너 아까 뭐랬어?」
   「어? 내가 뭐랬는데?」
   「좀전에 그랬잖아, 늬가. 내가 누구한테 차인 거 같다면서. 그래서 너가 나서서 걜 따끔하게 혼내주고 싶다고.」
   「그건... 그건 말이야. 그게 있지. 음. 그러니까, 자기야. 응? 언니.」
   「뭐야. 또 빈말이었어? 역시나 글쎄 또 뻥? 입만 열면 뻥? 응? 그러니까 또 다시 뻥? 넌 날 친구로 생각은 하니? 그런 거니?」
   「사라. 그게 있잖아. 그러니까 말이야. 내가... 그래 내 진심이야.」
   「뭐가 늬 진심인데?」
   「내가 가서 혼내줄께. 누구야, 걔? 싸움 잘해? 아님 무섭게 생겼어? 나도 가죽점퍼 입으면 돼. 왜? 내가 안될 거 같니? 늬가 생각했을 때 견적은 어떤데?」
   「정말, 생각 있어? 좋았어. 넌 역시 내 친구야. 넌 정말 세계 최고로 다정한 친구라고. 내가 그래도 인복은 좀 있지. 그럼. 그렇다고 좀스럽게 널 필두로 해서 애들 대동해 가지 말고. 너 혼자 가. 딱 혼자만.」
   「뭐? 나 혼자?」
   「그래 혼자.」
   「...... 말리지 마. 아 말리지 말라고!」
   「안 말렸어.」
    알고 봤더니 사라는 단골 술집 <ALT + F4>의 전문 바텐더인 레이첼과 사귀고 있었다.
    레이첼? 듣고 보니 난 처음에 내 귀를 의심했다. 레이첼? 듣자 듣자 하니 영 기분이 이상했다.
    그래서 이거 물어보고 저거 물어보고, 또 다시 물어봤다. 레이첼? 레이첼양이라... 뭐, 레이첼? 레이첼이 누구야?
    엇그제 제라드랑 그 술집 뭐야. 이름이 <ALT + F4>인 술집에 들려서 처음 만난 바텐더를 꼬셨어. 그랬다고.
    그 다음에 제라드와 바텐더를 내가 짝지어 줬다고. 그래, 점쟁이 말마따나 점지! 왜? 그녀를 내가 총애할 수 없는 거 아니겠어?
    난 그녀의 백마 탄 왕자님이 아니라고. 그녀도 내가 독점하는 궁녀도 아니고. 그런데 왜 그녀가 레이첼이지? 그 레이첼이 그럼, 사라가 말한 레이첼인가? 아마도 그런 것 같았다.
    오오, 저런 저런! 느낌이 쎄하다 했더니. 어쩐지 뭔가 오늘 기분이 이상하다, 왠지 모르게 분위기 쳐진다 그랬더니. 아니나 다를까 그 레이첼이 이 레이첼이라고? 진짜 그렇다고?
    게다가 나는 오늘 처음 알았다. 사라가 여자를 좋아한다는 걸. 그럼 사라는 커밍아웃과 동시에 자기 애인에게 남자를 소개시켜준 뭔 뚱딴지 같은 놈을 혼내주라는 주문까지 동시에?
    그러니까 그 뭐야, 말하자면 그녀의 말인즉슨. 웬 허접하고 비리비리한 데다 덜떨어진 아저씨 둘이 자길 꼬셨고. 어떡하다 그날 같이 놀았는데. 레이첼은 자기의 정체성이 의심된다나 뭐라나. 뭐라고? 허접하고 비리비리한 데다 덜떨... 아니 그게 아니라. 일단 나는 질렀다. 시원하게 질렀다. 나중은 모르겠고 일단 질렀다. 꼭 지름신에 빙의되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흥미로운 일을 글쎄, 왜 그동안 나한테 일언반구도 없었어? 그걸 내가 모른다는 게 말이 되니?」
    그러면서 내가 다 해결해줄 꺼라는 둥 뭐라는 둥 큰소리 친 다음. 그녀와 헤어졌다.
    그리고 당분간 술집 <ALT + F4>든, 레이첼양이든, 제라드든 그리고 여성환상 1.5 편집장 사라든. 모두 한동안 거리를 두기로 했다. 그랬다.





    7

    내 은밀한 사생활이 쥐도 새도 모르게 만천하에 공개되는 걸, 과연 응큼한 그녀는 좋아할까? 그 숙녀가 누구인가는 몰라도, 아마도 좋아할 것이다. 단, 언제 어떻게 알려진다는 걸 미리 안다면 말이다. 그걸 철저히 준비하여 화장발─조명발─화면발까지 미리 계산은 끝날 테니까. 혹은 어쩌면 사랑할 것이다. 다만 성숙하지 않다는 전제 하에. 혹시라도, 어쩌면 좋니 어쩜 좋아 라면서 발가벗고 춤이라도 출 것처럼 기뻐할 수도 있다. 알고 보면 그게 바로 원초적 본능이니까. 왜냐하면 이 세상에 반짝반짝&딸랑딸랑과 머니&짝사랑 받기를 마다하지 않는 사람은 드물기 때문. 거의 없기 때문. 0으로 간주해도 된다고. 즉, 없다고 가정해도 오차범위는 귀엽기 때문. 그렇다면 어차피 우리가 무얼 생각하고 어떤 걸 좋아하는지 모를 수 없는 이상, 오히려 한발 앞서 내 사생활을 홍보하면 어떨까? 그래서 등장한 게 바로 인터넷 유명세다. 핸드폰으로 인터넷으로, 노트북에서 데스크탑에서. 그걸 다시 TV로 라디오로 책과 잡지로.
    인류 역사를 통틀어 미칠듯이 강력한 대중커뮤니케이션 매체의 등장은 오직 딱 5번 있었다. 책─신문과 잡지등 정기간행물─라디오─TV─인터넷! 그렇게 5개. 그런데 그 순서를 역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일. 바로 그 재미. 소 뒷걸음질치다 쥐 잡는 듯한 황홀감. 원래 우연한 행운이 더 짜릿한 법이거든. 그런데 그걸 하기에 더없이 좋은 환경은 지금이 최상이다. 그걸 기준으로 봤을 때 내일이 더 나을라나 몰라도 내일의 태양은 아직 떠오르지 않았으니, 일단은 현재가 최고다. 추억의 유행가 제목처럼 TV가 라디오를 잠재운다면 모를까 현실은 달콤한 노래 가사와 완벽히 정비례하지는 않는다. 같거나, 틀리거나, 다르거나 또 다르거나. 이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고. 즉 극적인 드라마와 더 극적인 현실이 서로 주거니 받거니. 앞서거니 뒤서거니. 곧 활자 매체와 라디오, TV, 인터넷은 오손도손 절친하다. 인터넷이 TV를 박물관으로 보내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신종 사업이 출연하니 기존 산업군이 위협 받는다며 시끌시끌할 수도 있다. 나중 보면 어차피 친해질 테지만 시작 단계라면 일정 부분 마찰은 운명일 뿐. 텃새 센 분야가 푹 빠지면 알고 보니 매력이 깊듯이. 볼수록 매력덩어리가 뭔가! 첫 끗발이 개 끗발, 이 아니란 말 아닌가. 어쨌든 넘어가고. 때문에 일단 온라인 매체로부터 인기를 끌어 유명인이 되거나 유명 브랜드로 우뚝 서는 게 멋져 보인다. 그렇지만 온라인과 오프라인은 엄연히 다르고, 또 의도한 계획과 달리 세상은 엉뚱한 데 열광할지도 모른다는 점. 그 이례적인 사례가 무엇인고, 하니 그건 바로 여성환상 1.5 잡지였다. 더 자세한 얘기는 생략하고.
    마침 남녀의 친밀감 얘기가 나와서 말이지만, 내가 여성환상 1.5 편집장 사라와 점점 더 친해진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 따라서 기존에 날 쥐락펴락하던 환상문학잡지 미스테리아 편집장 마라는 초조해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날 툭툭 건드리고 살살 간지르며, 날 가전제품으로 만들었다가 동물로 의인화했다가. 그런 잔-재미가 점점 줄어들다가 언제 소멸할지 모르니 그럴 수 밖에. 사라의 일거수일투족을 염탐해서 내게 고자질하지 않겠니? 라는 듯한 징후가 은연중에 내게 포착되어 버린 것이다. 뿐인가? 사라 그 여시 같은 년이 혹시라도 내 남자친구 존티한테 꼬리치는지 너도 두눈 똑바로 뜨고 감시해, 알았어? 그년이 껄떡거리는지 아닌지, 면밀히 주시하라고, 어? 라는 말을 할까 말까 망설였던 그녀의 심정. 충분히 이해되고도 남았다. 고로 이제 마라와의 우정 그 형이상학적인 신비감의 주도권은 거의 내가 쥐었다고 해도 그다지 아차 싶은 오판은 아닐 것이다. 허허허. 으하하하하하하.





    8

    왜 <남자 바텐더 없습니다. 바텐더 여자입니다>라는 안내문은 볼 수 없는 걸까. 하긴 뭐 우리 어른들이 뭘 해도 재밌다면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항상 신난다, 앉으나 서나 뭘 해도 기쁘고 즐겁다! ~라고 하면 말이 되나. 당연히 말이 안되지. 어른이 어떻게 애들처럼 하루 종일 웃고 있겠나. 우리 어른들이 어찌 소녀감성처럼 굴러가는 나뭇잎만 봐도 꺄르르르 배꼽 잡고 웃겠나. 막 자기들끼리 신나게 웃고 또 웃듯이, 우리도 억지로 으쌰으쌰의 분위기를 멈추지 말자고? 그러자고? 그럼 되는 거 아니냐고? 그럼······ 그러면...... 안된다. 완전 안된다. 퍼진다. 힘 빠진다. 기 빨린다. 잡은 물고기한테 밥을 줄 수가 없다. 왜냐하면 꽃사슴 같은 최적의 먹잇감이 나타나도 최선을 다할 수가 없으니까. 멀뚱히 쳐다보며 멀거니 서서 삼구삼진 당하게 되니까. 저 하늘의 별을 땄어도 우리는, 의무방어전을 치러야 하니까. 안 그렇소? 어른은 어른인 것. 그러므로 <남자 바텐더 없습니다. 바텐더 여자입니다>라는 안내문을 볼 수 없는 게 정상. 아무나 조증 걸려서 웃고 또 웃고 미친놈처럼 하루 웬종일 웃기만 하면, 어? 그게 좀비 천국이지 정상인가. 그게 어디 밝은 사회이자 희망찬 내일을 꿈꾸는 사랑의 낙원이지, 평범한 일상인가.
    그러나! 뭘 좀 안다면서 자기가 자기 입으로 말이 통하는 남자임을 자청하는, 그 안다박사님들이 쓸데없는 걸 좀 많이 아시나. 얼마나 남자들이 으쌰으쌰 들어오고 또 들어와서 묻고 또 물었으면, 얼마나 질릴 데로 질렸으면 술집 사장님께서 그렇게 붙여놨겠나. 하지만! 그분들이 상식 하나는 기가 막히다니까요. 저런 안내문을 붙여놓은 곳? 있지 왜 없겠나. 암스테르담이랄지 어디 어디에 가면 아마도 안내문 찾기는 썩 어렵지 않은 것, 아닐까? 그렇지만 그건 TV 다큐멘터리 같은 이야기.
    그런데 놀랍도록 신기한 게 뭐냐 하면, 최근 나는 그렇듯 심하게 이상한 카페를 발견했다는 것. 카페 이름은 해적선! 거기에 가면 없는 게 없었다. 일단 음악은 여사장님께서 내 표정만 보고도 알아서 내 기분을 맞춰버렸다. 헨델의 오라토리오 <솔로몬> HWV 67번 3막 중에서 몇몇 아리아. 또 다른 날은 30~40년 전에 유행했던 달콤한 추억의 멜로디를. 카페 디자인? 프란스 포르뷔스 2세의 그림에서나 볼 수 있는 고급진 어두움, 캬~! 티치아노 베첼리오의 텃치에 힙입은 듯한 담청색, 으아~! 당연히 바텐더와는 말이 통함. 곧, 쌍방향 관계. 아첨이 환상적인 마담에 대한 기가 막힌 칭찬은 생략하는 걸로.
    그런데 평범함이 좋고 보편적인 가치도 고상하지만, 어쨌든 이곳 해적선은 그와 정반대였다.
   「너 드라마 캘리포니케이션에 나오는 그 장면 따라해봤어?」
    라고 남자들끼리 으쌰으쌰! 그거까지 다 받아준다. 어디 받아주기만? 한술 더 떠서 골프공을 받으면 풍선껌을 넘기고, 테니스공을 넘기면 은하계를 저글링했다. 그렇게 나는 나도 드디여, 마침내 단골 술집이 생겼다면서 좋아했다. 그 다음을 기약하면서 말이다.





    9

    단골 바 해적선은 어느 날 갑자기 종적을 감췄다. 내게 일언반구도 없이 말이다. 그럼 그렇지. 새 노트북을 산 다음 그걸 들고 가서 일할려고 했는데. 거기서 <조제 안토니오 카를로스 데 쎄이사스의 하프시코드 소나타 10번 E장조>같은 음악도 신청하고. 그러면서 일기도 쓸려고 했는데. 가령,
    <나는 날이면 날마다 오오 그녀의 콧수염 솜털 그녀의 허벅지, 라는 헛된 공상만 일삼지는 않았다. 그녀의 겨드... 노노노! 그녀의 콧... 노노노노노! 그녀의 옆라인 골반 위 3센티미터... 노노노노노노노! 여자들이 어떤 남자에게 호의를 품고, 남자들이 거리에서 무엇에 끌리는지. 난 달랐다. 다르던가 말던가! 그나저나 밀고 당기기 즉 쥐락펴락의 주의점은 작게 잡아도 4가지다.
    첫째, 홍당무를 줘야 할 때 채찍을 들면 안된다는 점.
    둘째, 이중 구속 작전은 상대방이 날 따라할 수 있다는 점.
    셋째, 주객이 바뀌거나 사랑이 끝날지도 모른다는 점.
    넷째, 꼬리가 길면 밝힌다는 점>.
    ~라는 낙서도 끄적거릴려고 했는데. 해적선은 사라졌다. 자취도 없이.
    꿈을 동냥했더니 절망을 적선 받음. 수상한 분위기에 의뭉스러운 낌새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라니.
    철딱서니없는 놈은 바로, 개 풀 뜯어먹는 열망에게 기대감을 짝지어 주는 데 주의해야 한다는 걸 깨달음.
    일반적인 행복이란 소망 충족이자 야망 불충족인 것. 그럼 이제야말로 본격적으로? 말 말자. 어? 말을 말어.





    10

    오늘은 억세게 운이 좋은 날도 아니고 완전 꽝인 날도 아니다. 그럼 지옥해서 탈출하는 행운을 캐낼려고 용쓰겠나 이기심의 가책을 느끼겠나. 일이나 해야지.
    그렇게 나는 오늘도 출근했다. 그리고 낮에 '레밍효과'를 인터넷에서 검색했다. 다른 사람들의 소셜 네트워크를 구경했다. 음악은 무얼 들었더라?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두 대의 하프시코드를 위한 협주곡 C장조 BWV1061. 바흐를 듣는 김에 레퀴엠 미사까지 들었다. 그것만 듣고 있을 수는 없으니 책도 읽었다. 착상이 오면 좋고 바쁘시면 기다리고. 또 인터넷으로 최근 드라마가 떴는지도 알아봤다. 최근 보는 드라마는 딱 1편. 바로 바닷물이 사라진다는 내용의 역작. 북극과 남극 얼음이 녹아 해수면이 올라간다지만, 석유와 가스를 채굴했으면 빈 공간이란 게 있지 않나. 지구동공설이네 뭐네 까진 아니어도 실제로 동굴이 가까운 데 깊은 데 있지 않나. 하여간에 드라마가 스케일 하나는 끝내줬다. 최근 편에서는 유독 파란색이 많이 나왔고. 파랑은 망막 앞쪽으로 초점이 맺히기 때문에 파랑은 보는 사람에게서 멀어지듯 보이는데, 노트북이 내 앞에서 막 지 혼자 멀어지는 듯한 환각도 느꼈다. 가슴 저미도록 뭉클한 사랑의 감정은 잘 모르겠고. 당연히 퇴근 약속은 잡히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퇴근 전에 인터넷 여기저기를 떠돌다가. 그러다 어떡하다 야한 사진을 보게 됐다. 얼렁뚱땅 파도를 타고 또 타던 중 전화가 걸려왔다.
   「자기야, 뭐 하니?」
   「어? 사라! 웬일이야?」
   「웬일은 뭐가 웬일. 친구끼리 통화도 못하니? 너 혹시, 바쁘니? 뭐 하느라 바쁜데. 그리고 왜 그렇게 놀래?」
   「내가? 그랬나? 잘 모르겠는데.」
   「능청은. 너 저번에 빌려달란 거. 그거.」
   「그거 뭐?」
   「CD. 얀 디스마스 젤렌카의 Missa Dei Filli C-Dur. 그거 빌려줄께.」
   「그럼 고맙지. 그런데 언제?」
   「언제긴 언제야 지금이지.」
    그러면서 갑자기 사무실 문이 벌컥 열렸다.
    그리고 나는 당황했고 날 보는 사라와 레이첼은 더 당황했고.
    (물론 사라 옆에 있는 숙녀가 레이첼인 건 나중 알았음. 곧 제라드와 내가 꼬셨던 그 레이첼은 이 레이첼이 아니게 됨)
    그렇다고 내가 딱히 뭘 한 건 아니다. 그럼 아니지. 하긴 뭘해. 그처럼 뭔가를 딱 걸렸던 기억은 어렸을 때 아빠가 내 엉덩이를 지긋이 밟으셨던 거. 또 내가 동네 아줌마들한테 무슨 운동이라고 핑계댔던 거. 친구 넷이서 합숙하며 잠깐 인터넷 도박일을 하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한 친구한테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들켰던 일도 있고. 엄마한테야 뭐 넘어가고. 그런데 얘넨 어떻게 노크도 할 줄 모르지? 이제 가족 장르 영화는 떼도 진작 뗐다 뭐 그건가? 그럼 난 푸대접 받은 거야 뭐야!
    그 뿐만이 아니라 문을 벌컥 였었는데. 그런데 난데없이, 뜬금없이, 황당한 장면을 목격한 일. 있냐 없냐, 있다. 친구들끼리 레스토랑에서 마시고 놀고 떠들다 그곳에서 나갈 때. 나는 화장실에 들렸다. 그런데 남자 화장실 문이 안 열리네? 그렇지만 또 세게 열면 열릴 것 같고. 그래서 힘껏 열었다. 그런데...... 그런데······ 흔히들 생각하는  2명이 있는 그건 아니고. 1명인데, 음, 여기까지.
   「바쁘니? 바쁨 갈께. 나중 보자.」
   「바쁘긴 뭐가 바뻐. 나 안 바뻐.」
    혹시 사라가 그 옛날 군대에서 삐져서 우릴 왕따시킨 그 아저씨의 친동생 아닐까? 그러든가 말든가.
   「뭘 그러게 키보드를 부랴부랴 더듬어?」
   「더듬긴 누가 더듬었다 그래? 얘 완전 생사람 잡네?」
   「수습하는 동작이 자연스러운 걸 보니. 과히 사춘기 같진 않네. 아닌가? 아님 몽정기? 그럼 어때. 갱년기보다야 그게 더 낫지 않겠니? 굳이 원하신다면 침체기든 뭐든 원하는 데로 해 주고. 안 그러니?」
   「뭐? 안 그러긴 뭐가 안 그래. 넌 어떻게 여성환상 1.5 편집장이란 애가 교양미를 모르니? 어떻게 그럴 수 있니? 노크! 몰라? 어? 너도 순전 허당이구나. 왜, 허영심이 뭔지 보여줘? 그래?」
   「그런데 너 운동하니? 왜 몸집이 커보이지?」
   「눈이 감지할 수 있는 파장 범위의 중간에 위치하기 때문에, 그와 같은 물리적 이유를 근거로 가장 밝은 색상인 노랑빛. 응? 노란색 옷을 입었으니까 그러지. 잔지식, 몰라? 잔소리는 잘하면서 말이야, 넌 어떻게 그런 것도 모를 수 있니? 얘 완전 순 허당이네 허당.」
   「뭐야! 그게 다야?」
   「그럼 뭘 바래?」
   「됐고. 아무튼 인사해. 이쪽은 레이첼. 이쪽은······ 이쪽은...! 넌 누구니?」
    어쨌든 나는 이 레이첼이 그 레이첼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그게 한가지 기쁜 점이라면, 한가지 떨떠름한 점은 뭐겠나. 괜히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서 내 기분이 이상해졌다는 거. 그럼. 그렇지.
    꾸물대고 싫증내고. 미루고 지겹고 심심하고 재미없고. 그러다 사라와 레이첼의 노크없는 깜짝 방문. 그러나 울적할 새가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눈 깜짝할 사이에 첫눈에 반해버렸으니까.
    뻥이고. 진짜로 뻥이고. 헛헛한 마음을 우리는 사랑의 묘약과 맛난 음식으로 달래기로 했다.





    11

    어느 날 나는 뭐 재미난 일 없나 라면서 골똘히 석두를 굴렸다.
    헨델의 <건반 악기 모음곡 2권> 중에서 샤콘느 G장조 HWV435.
    음악을 들어도 소용없었다. 인터넷에서 야한 사진과 동영상을 찾아봐도 재미없었다.
    소셜 네트워크로 타인들의 사생활을 엿보아도 별다른 감흥은 느껴지지 않았다.
    딱히 약속도 없었다. 떠들썩한 희희낙락함까진 아니어도 좋다만 이렇다 할 할 일도 없었고.
    그렇다면 할 말은 있겠나, 날 보고 싶어 애달파하는 그녀들끼리 심상치 않은 작전을 짜겠나 어쩌겠나.
    그러다 나는 아하~ 하면서 (딱) 소리를 내면서 폼을 잡았다. 기발한 뭔가를 생각해낸 것처럼 말이다.
    그건 다름 아니라 <여성환상 1.5 사무실에 찾아가서 사라의 집무실 문을 벌컥 열기>였다.
    그럼 사라는 뭘 하고 있을까? 책을 보고 있을까 화장을 고치고 있을까. 아니면 쇼핑 리스트를 점검하고 있을까?
    설마 하니 빵과 자유와 황금 그런 주제로 글을 쓰고 있을까. 아마도 인터넷 쇼핑몰에서 엄한 장비를 검색하고 있진 않겠지?
    그건 뭐 가서 확인하면 되는 거고.
    나는 곧바로 그녀의 사무실을 급습하기 위해서 출발했다.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여성환상 1.5 사무실에 도착.
    미리미리 언제 직원들이 없고, 사라 혼자 사무실에 남아있는지. 그런 건 사전에 다 조사해놨기 때문에 걱정되는 건 없었다.
    예상도 들어맞을 거라 안심했었고. 빈틈도 없었다. 왜? 내가 사라를 좀 알거든. 스릴러─판타지─미스테리─공포물─적당한 SF도 좋아하고. 순식같에, 난 그녀를 꽤나 잘 알게 됐다고. 그녀는 꽤나 정숙한 숙녀고. 그녀는 착하고 예쁘며 조신하고 능력 있는 편집장이니까. 두서없이 갈겨쓴 성의없는 연애편지는 딱 사절이고. 어떤 욕구가 배란기보다 생리 기간에 월등히 높은 부류고. 고급스럽고 고상한 거 선호하고. 꽃과 화병의 어울림을 까다롭게 따지고. 자기 관리 꼼꼼하고. 우정의 기준 역시 깐깐하고. 사전은 A언어사전이 있고, A언어를 B언어로 설명한 사전이 있을 때. 후자에서 고급은 AAAB식 사전인 것. 곧 그녀는 언어도 대략 3개국어 사용 가능. 간지러움 잘 타고. 브레이킹 더 웨이브 (1996) 같은 찡한 지점을 그려낸 영화를 보면 살짝 흐느끼고. 친구 결혼식에서 신부 들러리 서면서 펑펑 울고. 어렸을 때 아빠가 바람 펴서 후미진 시골 찻집 여자가 애를 뗐기 때문에, 엄마 손 잡고서 엄마가 노동력을 제공했는지 봉투를 전달했는지 거기 따라간 걸 기억하고. 가족끼리 친한 딴 가족, 편모와 외아들인 그 뭐 아무튼 그런 거 죄다 기억하고. 더불어 일을 좋아하고. 일을 재밌어 하는 그녀니까. 그래서 나는 모쪼록 그녀의 우아한 모습을 기대했다. 난 그녀의 고상한 몸짓과 단아한 표정을 목격할 만반의 준비가 갖추어졌다. 나의 막무가내식 개탄스러운 예감이 뼈아픈 상심으로 뒤바뀌지 않기만을 바랬다.
    짜잔~~~!
    나는 여성환상 1.5의 편집장실 문을 벌컥 열었다.
    퐁~~~!
    그런데!
    핑~~~!
    그런데! 그런데!
    퐝~~~!
    나는 황당한 장면을 목격했다. 
    화분과 노트북과 쌓인 책 때문에 중간은 가려짐.
    그런데 위는 마라, 아래는 존티! 뭐라고? 아닌가? 아닌 것 같은데?
    분명 아래는 다리 털이 부숭부숭하게 나 있는 남자의 다리였다.
    게다가 검정 하이힐을 신었네? 하이힐을 얼마나 큰 걸 구한거야!
    그런데 어째 위는 마라인지 사라인지 머리카락이 산발인 아가씨네?
    솔직히 말해서 아직도 그녀가 마라인지 사라인지 잘 구별되지 않았단 걸 고백한다.
    그러니까 얘네들이 뭘 허고 있는 거야? 아니면 그 둘이 한 사람? 에이~ 그럴 리가!
    설마 둘이서... 확실하게 말하자면 아직 뭔가가 진행되지는 않았다. 내가 못 볼 걸 본 거도 아니었다.
    풋사랑도 아니고 애들도 아니고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않나.
    프렌치 키스든 갸벼운 뽀뽀든 사랑하는 애인끼리 해도 되지 않나.
    심지어 존티가 비키니를 입고서 블랙 하이힐을 신고 있었다. 너도, 가터벨트? 마라는······ 마라는......
    나는 마라를 아껴주고 싶다 아껴주고 싶다. 물론 나는 존티를 지켜줘야 한다 지켜줘야 한다.
    한마디로 그러거나 말거나. 냉장고 권리네 뭐네 에티켓 생략한 건 어디까지나 사라와 내 문제.
    물론 거기 계신 두 분도 들키고 싶어하지 않은 듯한 놀라움을 연출했다.
    사랑이 무슨 죄인가. 아슬아슬한 단계까지 넘어간 것도 아니고. 딱 아니고.
    잠깐만 곁길로 빠지자면 굳이 이런 말까진 꺼낼 생각은 없었지만 말이 나온 김에 말하자면!
    그러자면 옛날 소수였던 우릴 왕따시킨 말년 병장. 어깨 위에 귀여운 햄버거도 아니고, 얼마나 속좁고 꽉막히며 앙칼진 새끼 고양이 같은 일을 벌였는지. 가히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잠시 곁길로 빠졌다가 다시 돌아와서.
    그런데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나는 이때부터 환각 증상에 시달리게 되었다.
    바로 바지를 입은 여자들을 보면 투시력 때문에 그녀의 다리털이 보였다. 정말이다. 뿐이던가? 심지어 그녀의 가운데가 튀어나온 듯이 보였다. 정말이다. 진짜다. 그녀가 어떤 색상 어떤 문양의 속옷을 입었는지 선명하게 보였다. 정말이다. 진짜다. 그럼 당연히 브레이저와 팬티가 한쌍인 숙녀에게 집중하면 좋다는 것도 훤히 보여버렸다. 그런데 원래 위 아래 막 대충 입는데, 그런데. 어떻게 내 주위에 있는 숙녀들은 겉옷은 대충 입어도 속옷은 항상 깔맞춤해서 입지? 오오 미스테리! 뭐 아무튼. 예전~에 숙녀의 다리가 대리석으로 보였던 환상이 치유된지가 불과 얼마 전인데.
    그런데 이건 또 뭔 뚱딴지 같은 일이란 말인가. 이런 개 풀 뜯어먹는 일이 왜 내게 일어나냐고. 밑도 끝도 없이 말이다.
    아무튼 나는 앞에 계신 분, 분들이 누군지도 확인하지 않은 채 곧장 집으로 돌아갔다.
    그럼 그 상황에서 왜와 어떻게를 캐물어 아님 분위기를 방해해!
    차마. 차마 미안하단 말은 못하겠고. 왠지 모르게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아서 못했고.
    그분들도 경황이 없으셨는지 뭐라 변명도 인사말도 없었고.





    12

    나중 사라한테 사연을 듣게 됐다.
    사라는 마라와 갑자기 친해졌고. 사무실을 그날 딱 하루만 바꿔 쓰기로 했고. 결국 내가 본 건 마라와 존티였다고.
    자기 즉 사라의 다리에 털이 나지도 않았고. 뭐 어떻게 치장했을 테지만. 자기 다리는 여자 다리라 그 말이었다.
    뭐야 그게? 이게 장난이야 코메디야! 뭐가 됐든 더럽게 재미없는 사연이었다. 하긴 살면서 그런 장면을 보는 일이 어디 흔한가.
    과거를 회상하자면 음 딱히 설명하기 곤란한데, 그렇지만 기가 막힌 표정이 하나 떠오르고. 또 친구들과 나이트클럽 룸 같은 그런 술집 살롱에서 놀던 때. 나풀거리는 짧은 치마를 입은 아가씨가 술에 취하고 분위기에 더 취해서. 좋아서. 원해서. 버릇인지도 모르겠고. 노래를 거기서 넘어2로 잘 부른다던가 뭐라던가. 그래서 탁자 위에 올라가 발라드를 불렀던 장면. 더 자세한 얘기는 상상의 뒤편으로. 뭐 그건 그거고.
    아무튼 그런 장면을 보길 원했던 게 아니다. 나 그걸 바라는 게 아니라고. 어? 찐한 사랑과 더티러브를 해도 모자를 판국에. 아 진짜 그렇다는 게 아니고. 사랑은 어디까지나 참사랑. 순애보. 애절함. 플라토닉에 예속된 그런 진실한 사랑. 열정과 낭만과 행복과 호사와 아름다움을 모두 이행할 수 있는 그런 사랑. 천사들이 부러워하는 바로 그런 사랑! ~라는 상투적인 얘긴 집어치우고. 농담이고.
    그렇게 나는 사무실 소파에 자빠져 노트북으로 영화나 보게 됐다. 재미없는 영화를 왠지 돈 주고 극장에 가서 보기는 싫고. 최근 워낙 영화관에서 영화 보며 잠을 많이 자놔서. 반틈을 졸다 참다 자다 깨다, 하도 그래서 영화가 끝나면 뭔 내용인 줄 알 수가 있나. 그래서 나는 괜찮은 현상금 사냥꾼 영화를 찾아서 보게 됐다. 혹시라도 누가 사무실 문을 벌컥 열지 않을까 라는 의혹감을 꼭꼭 보듬고서 말이다.





    13

    나는 <사랑론 + 인문교양학>이라는 새로운 카테고리에 대해 몇 자 적은 다음 여성잡지 <여성환상 1.5>에 보냈다. 품위 유지비가 이제 곧 있으면 간당간당해질 테니까.
    합리적인 발단에 이어 경이적인 전개의 깜짝 출연. 곧바로 허당 중의 허당일 만큼 간단명료한 절정. 그 다음 뜻밖의 반전 결말까지. 이런 허구에 대해서는 좀처럼 기발한 착상이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에, 고로 당분간 미룰 수 밖에 없었다. 끝으로 칼럼 내용을 옮기자면 이와 같다.
    <곱디고운 첫인상에 이 내 몸이 떨고 마음이 설렜으니, 아니나 다를까. 나는 오늘도 거리에서 또 첫눈에 홀딱 반해버렸다.
    뭐, 또? 뻥이다. 정말로 그랬겠나. 나는 예찬에 후하지만 여자 여자 부드러운 그 소녀감성에는 더 호의가 넘친다. 왜냐하면 경탄해 마지 않는 건 마땅히 남아의 할 일이니까. 우린 그저 할 일을 하는 것일 뿐. 그처럼 할 일이 분명컨대 할 말을 하지 않아서야 쓰겠나. 안 그래유? 숙녀여, 난 정말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를 면전에서 보는 듯 행복하다오. ~라고 칭찬한다면 그녀들 표정이 과연 어떨런지. 굳이 내기까지 할 필요가 있을런지. 그런 까무러칠 만한 행운이 내게 제 발로 찾아오다니, 라면서 한술 더 떠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오히려 그녀에게 따진다면! 그렇다면 그걸 극구 손사래치며 마다할 여자는 뭔가를 추궁해봄직한 일 아닐까? 응? 물론 저렴하게냐 고급스럽게냐, 빈말식이냐 은근하게냐! 라는 차이는 있을 테고. 아무도 믿지 말라는 둥 내 남친한테 껄떡대지 말라는 둥, 고전적인 드라마 명대사를 좋아하는 그녀인데. 그런데 사랑을 과신하며 낭만을 맹신할지도 모를 그녀, 여성잡지 1과 2 사이에서 난 정말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 것일까? 한번쯤 의심해봐도 썩 나쁘지 않을 일. 왜냐하면 여성잡지1은 이미 그 세계를 알기도 전에 숙달했고, 곧 있으면 여성잡지2를 통달함은 애초에 이미 정해진 수순이므로. 따라서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변신의 신, 프로테우스는 바로 너!
    ~라는 감언에 사뿐히 넘어갈 건가 말 건가.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그녀들은 오늘도 은밀한 수다에 관한 최적의 화제로 기쁜 비명을 지르기 바쁘시다. 장미가 무얼 뜻하고, 백합이 의미하는 걸 내가 모르지 않거늘. 제비꽃의 꽃말까지 연상시키는 꽃다발을 그이가 나한테? 우리 광고에 그만 속고 드라마 적당히 보자. 그 대신 신부들러리 마다하지 않고, 뻔트를 애호하는 거 솔직히 인정하고. 그처럼 할 일을 하고서 내 삶의 주인공이 되기. 자, 언제부터? 지금부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