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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독 세심한 부분에 대해서 민감한 반면, 분위기를 타거나 흥에 들뜨면 까다로운 취향이야 날씨처럼 뒤바뀌는 일. 흔한 성격이고 다반사이자 변심 같은 본성이다. 시선 마주치기의 기준선이 높냐 낮냐에 따라 장단점이 나뉘듯, 변덕도 좋을 때가 있고 아닐 때가 있다. 나는 소셜 네트워크에서 내 게시물 댓글놀이가 세상에서 제일 재밌더라, 넌 내 인생 최고의 행운이다나 뭐라나. 10년이 다 뭐야, 딱 1달 후에 그 마음 변했나 안 변했나 따지기도 귀찮다. 그런데 변덕 성향이 높냐 낮냐는 사람따라 차이는 있겠으나, 세상사에 치이고 지치며 닳아지다 보면 만사에 무덤덤해지는 건 정해진 수순. 가령 예전에는 호의를 표시하고 호혜성을 요구하기 좋아했는데, 이제는 시큰둥. 어렸을 땐 씹어먹다─싼다─뱉다─핥다─빨다─까다─따다─찍 뻗다─쭉쭉빵빵─뻥뻥 터지다─토하다 같은 1차적 표현에 거리낌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러든가 말든가. 싫으면 싫다 좋으면 좋다, 옛날에는 맺고 끊기가 어색하며 부탁은 어렵고 거절은 더 힘들었는데. 지금은 따질 꺼 따지고 흥정도 마다하지 않고. 왕년에는 말이야 드라마를 보면서 주인공이 무심하냐 다정하냐 저거 정말 <아니면 말고>카드를 너무 남발하는 거 아니냐? 그랬는데 지금 와서 생각하니 뭐 그럴 수도 있겠네 라며 이해하기.
그런데. 그런데 유난히 꼭 1가지만은 변치 않는 범상치 않은 천성의 소유자들이 있기 마련. 이젠 둥글둥글해질 때도 됐는데 여전히 다혈질. 오늘도 기분파. 낭만파 연기는 다 뻥. (진짜로 그렇다는 말이 아니라). 단지, 불리하거나 불이익이 예상될 땐 인내력 최고에 참을성 지존. (진짜로 그렇다는 말이 아니라). 불행이 예측되고 재미없음이 추리된다 싶으면 딱 마음을 바꿈. (진짜로 그렇다는 말이 아니라). 그러나. 그러나 서열 정하기 만큼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수컷. 그분들의 본능은 알고 보면 자기 모순이다. 이론적으로야 단순히 '지킬 것만 지키자'라는 자연스러운 질서 의식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호사스런 몽블랑 요양원에 방문한 명콤비 우정이 사적으로 뭐라고 말하나. 그분들이 원하는 건 그저 단순한 인사성이 아닐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분들의 (속)마음은 아마도 이렇기 때문이다. 어쩌면 아닐 수도 있고.
<내 인생을 통틀어 나 땐 그랬다. 그런데 너넨 대체 왜 그러니? 우리 인사 정도는 하고 지내자. 내가 많은 걸 바라는 게 아니잖니? 그게 뭐가 어렵니. 너가 날 좋아하지 않든 내가 널 아끼지 않든. 가식적으로 아는 체는 하자. 힘든 일도 아니잖니. 듣기 싫은 험담 정도는 당사자 안 듣는 데서 하자고. 어? 우리 아름다운 형식 만큼은 깨지 말자. 그게 뭐가 나쁘니? '인정하고 안 하고'의 문제가 아니잖니? 사람과 사람이 마주치며 지나가는데 사람과 사람이면 인사를 해야 하는 게 사람의 도리. 사람과 개가 마주치는 게 아니니까. 안 그러니?>.
「그럼 그러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하던가!」
그런데 이건 일관되지 않은 기준에 따른 사고다. 난 나고 넌 너다, 까지는 좋다. 그분들도 그건 흔쾌히 인정한다. 그런데 <난 나고 넌 너다>의 기준에 대해서 나와 남을 동일시한다는 것이 문제다. 내가 생각하는 <난 나고 넌 너다>와, 너가 생각하는 <난 나고 넌 너다>. 전자와 후자가 항상 같을 거라는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거든. 그거 다 통일시킬려면 피곤하거든. 학교 다닐 때를 생각해보자. 인기 많은 친구임에도 불구하고 모두와 친하기는 힘들기 마련. 있는 듯 없는 듯한 아웃사이더는 더 그렇고. 그처럼 소 닭 보듯 닭 소 보듯 하던 같은 반 친구들이 얼마나 많았나. 1년 내내 단 1마디 섞어보지 못한 친구들. 쑤두룩했다. 눈빛조차 마주치기 어색했던 친구들. 쑤두룩했다고. 그런데 작은 사무실 공간도 아니고, 오다가다 스치듯 만나는 업계 동료. 나는 위고 넌 아래, 내가 인기가 더 많고 넌 아래고, 내가 돈이 더 많고 넌 아직이고. 그러므로 너가 먼저 날 반가운 척 내게 인사를 해야 한다? 그건 그분 생각이고! 사람이 살다보면 인사를 받고 하고, 미안해요 괜찮아요 고마워요, 어쩌다 바쁘면 지나칠 수도 있고. 자기야 나 사랑해? 속마음을 확 그냥 말해버려 말어! 워─워! 인사를 해야 하냐 말아야 하냐, 하면 한다고 귀찮은 척 좋아하고. 안하면 안한다고 먼저 인사 받기를 기다리고. 딸랑딸랑─반짝반짝─뿌잉뿌잉! 그렇다고 정작 진짜로 중요한 일에 대해서는 외면과 무시와 방관. 속으로는 <야 야 떴어 떴어 또 떴어 또 떴어, 피해 피해 딴 데 봐 딴 데 봐, 모른 척해 모른 척해>. 그게 속마음인데 굳이 겉으로 인사를 반드시 받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심성. 다른 건 다 착하고, 좋고, 인자하며, 평판도 괜찮을지라도 사람에 따라 그런 부분이 불편할 수도 있고 언짢을 수도 있다.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 = 좋아하지 않는다 싫어하지 않는다>. 등호 성립이 뭔가 말끔하진 않듯. 소셜 네트워크에서 좋아요 버튼을 누르지 않으면 경우의 수는 다양하다. 넌 너고 난 나다, 무관심, 대충 넘어가자, 대충 살자, 싫어하지 않는다, 존중한다, 응원해요, 지지합니다, 물개박수라도 건네고 싶은데 나 시간 없다, 나 행복하기도 바쁘다... 등등등. 그런데 반드시 너는 나한테 웃으면서 인사해야 한다, 왜냐하면 너와 내가 구면은 아닐지라도 얼굴 정도는 서로 알고, 친분은 없으나 같은 업종에서 넌 나를 알기 때문이다? 아 피곤해 피곤해 피곤해! 보아하니, 이제는 음악이 중간에 끊기는 변두리 나이트클럽에서 VIP 대우 받으셔도 될 것 같은데. 그런데 억지로 기를 쓰고서 음악이 끊기지 않는 클럽에서만, 꼭 단골이 되어야만, 그래야 속이 시원하겠다야 뭐야! 난 아직 늙지 않았어? 그랬어? 입담이 좋으니까 말로는 또 자긴 「욕심없다─마음을 비웠다─이제는 뭐든지 그 모든 걸 내려놨다」 라고 하시겠지만, 하나도 내려놓지 못했구만 그래. 가만 보면 꼭 그런 분들 꽤나 많다. 설마, 나도? 물론 그처럼 변함없이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의지가 똘똘 뭉쳐서 그 열정으로 그나마 어느 위치까지 갔을 수도 있으니까, 절대로 나쁜 건 아님. 결코 나쁘다는 뜻이 아니라고. 틀리다가 아니라 다른 거라고. 아무튼,
그게 뭐냐, 바로 꼰대지수다. 허세지수와 마초지수가 있듯이 꼰대지수도 있다. 물론 꼰대지수라는 용어가 생소한데 재밌냐, 낯설지 않지만 기분이 좀 그렇냐. 나뉠 수는 있다. 그렇지만 꼭 나쁘게만 생각할 것도 아니다. (있는 흉 없는 흉 다잡더니, 이제와서? 빙고! 추론 가능한 트집 대체 불가능한 원리 빗대어 죄다 헐뜯더니, 이제와서? 통과! 어찌 됐든 잘 아시지 않는가. 그런 인습에 적응해서 살다보면 것두 나름 살만하고 그럭저럭 꽤 재밌다는 걸. 그래? 임팔라 귀 꿈틀꿈틀 꿈틀꿈틀. 그래? 듣고보니 그런 것도 같고. 아주 틀린 말도 아니고. 일리 있네 일리 있어. 멈칫 멈칫 그러다 멈칫. 그런데. 그런데 뭐야 이거? 뭐냐고, 어? 아 글쎄 병 주고 약 주고! 뭐야 이거?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꼰대지수니 뭐니 이러쿵저러쿵 쑥덕쑥덕. 그렇지만 꼭 나쁘게만 생각할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그건 단지 주름살이랄지 흰머리처럼 자연스러운 현상이자 끼리끼리 같은 습성일 뿐이니까. 로마에 가면 따라야 한다는 법 같은 거니까. 그럼 나의 꼰대지수는 몇 점일까, 그게 궁금하든 말든. 꼰대지수가 있으면 역시나 꼰대대회라고 왜 없겠나. 허풍대회는 있나 없나 소문만 무성하고, 허세대회 또한 유야무야 흐지부지됐으니.
따라서 나는 말 나온 김에 소셜 네트워크를 둘러보다 알게 된 꼰대대회에 참가하기로 했다. 아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말이다. 언제 어디를 가더라도 내가 제일 주목 받고, 내가 제일 인기 많고, 내가 제일로 말을 많이 해서 최고로 돋보이지 않으면. 그러면 그 자리는 두 번 다시 쳐다보지도 않는 성격. 삐치고 토라져서 중간에 조용히 빠져나와 <넌 또 뭐야?>라는 뚱한 표정으로 홀로 퇴근. 그건 그냥 타고난 것 뿐이다. 허세지수가 높으면 다른 부분에서 오디오 이퀄라이저처럼 적당히 충당되고. 「뭐 기부천사? 뭐 저게 기부천사야 저딴 기부천사의 본모습이 어떤 줄 알기는 알어? 어? 쟤 쓰레기야 어? 쟤 완전 쓰레기라고. 알고 보면 쟤 완전 쓰레기라니까~! 그냥 쓰레기가 아니고 완전 쑤뤠기라고. 어?」 그런데 GIF 파일 찾아보는 건 바쁘고 동영상 짤로만 보면 또 뭔가 세하다. 더 보고 싶은데 재미난 걸 찾기는 귀찮고. 시간도 없고. 아니 시간은 많은데 구태여 찾아보기엔 뭐하고.
바로 그래서 꼰대대회라는 게 필요한 것이다. 패션의 거리를 봐 보시라. 옷가게는 옷가게들끼리 뭉쳐있다. 그래야 장사가 더 잘되니까. 굳이 브랜드 포지셔닝 법칙을 끌어당길 필요도 없다. 바로 그분들끼리 모여 있다고 상상해보시라. 꼰대지수 최고이자 스타성 괜찮고 원맨쇼가 인생이었던, 그분들끼리? 열정 하나만은 그 어디서 둘째 가라면 서럽고, 어떤 일관성만큼은 초지일관 변치않았던 그분들끼리 모여있다고? 딱 둘 중 하나다. 완전 재밌거나, 소 닭 보듯 닭 소 보듯 하거나. 그러면 또 불을 지피면 된다. 다 방법이 있다. 살살 꼬시고 슬슬 부아를 돋구며 꼼지락꼼지락 간질간질거리면 된다. 계급장 떼고 뭐 떼고. 야자 타임에 왕게임에. 오락산업이 또 그런 건 기가 막히게 잘하거든. 어쨌든 이와 같이 흥분된 기대감을 안고서 나는 꼰대대회장으로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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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대회는 꼰대 고양이 대회로 판명났다.
야심차게, 까지는 아니지만 약간의 설레는 예감을 안고서 출발했거늘. 그런데 결과는!
내 이럴 줄 알았다. 왠지 일이 잘 풀린다 그랬다. 일단 기분이 들떴다 하면 닥치는 대로 긍정? (설레설레)!
참고로 한말씀 드리자면 꼰대라는 어휘는 1차적 표현처럼 나쁜 말이 아니다. 어원을 분석해봐도 그런 사례는 비일비재하는데 일단 그렇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 꼰대가 되야 한다. 되지 않으면 안된다. 나이값이란 거도 있고 맹목적 열정이란 거도 있고. 그녀들한테 희망─소망─선망─낭만─적절한 허영심을 빼았으면 안되듯이, 우리도 허세─허풍─꼰대지수─으쌰으쌰 정신은 최소한으로라도 남아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TV를 틀었더니 조증녀한테 기 빨리고, 집에만 들어오면 잔소리에 또 기 빨리고. 기 받을려고 젊음의 거리에 나섰거늘 상권 분위기 바뀐지 오래. 정말로 그렇다는 말이 아니라, 한마디로 꼰대지수는 허세지수랑 똑같은 거라고 보면 된다. 흐름을 타면 된다고. 재밌는 기운과 적당한 안배에 묻어가기만 하면 된다고. 다만 위를 보며 허세지수 70에, 아래를 보며 꼰대지수 80? 그렇듯 지나친 불균형만 조심하면 되고.
- 아예 인사 받는 재미, 오직 그것만 특화된, 피곤한 스타일이냐.
- 아니며 겉으로 보기에 A에 가깝지만, 알고 보면 호인에다 매력 넘치고 친해지면 완전 사람 좋냐.
- 도대체 얼만큼 친해야 인사 정도는 주고 받자 그걸 확실히 집고 넘어가야 하느냐. 내 생각, 내 기준이 정답!
- 유명세와 나이와 돈과 능력과 경력등을 따져 먼저 숙이고 들어가야 하느냐 마느냐. 난 싫다 늬가 접고 들어와라.
십중팔구건 100명에서 99명이건 대부분 별 탈 없다. 특별히 탈날 거 없다고. 잔소리 들리면 귓등으로 듣고 넘기면 되고. 앞에서 웃고 뒤에서 욕한다는 평판, 포커페이스가 되니 어쩌니. 기준선이 삐딱해도 뭐 어떻게든 적당히 소 닭 보듯 닭 소 보듯 하게 된다. 너는 너 나는 나니까. 그런데 간혹 보면 좀 심한 경우가 드물게 있다. 그렇다면 내 시간 빼았기지 않는 게 상책이다. 옛날 일이 떠오른다. 수영장 샤워실에서 샤워하고 있는데, 괜히 어떤 어른신께서 오줌을 눴다며 괜히 생트집을 잡던 일이 기억난다. 당연히 그분 옆에 계시던 친구분께서, 젊은이가 이해하라며 말리셨고. 샤워하다 옆사람이 작은 걸 보는지 안 보는지 그게 왜 궁금하셨느지. 그것만 보고 계셨는지. 난 배뇨감도 전혀요 잔뇨감도 일절 없었거늘. 유명세와 나이와 돈과 능력과 경력등 너무 차이가 크다면 살짝 무시받건, 약간 질투받건 적지 않게 시기받건 대인배가 감수하는 게 보기 좋다. 그게 불미스럽지 않다. 억지 칭찬, 물개박수, 가짜 아첨, 남발하는 썩은 미소. 그런 데 데여도 많이 데이고, 속아도 원없이 속은 어른들은 까칠한 서열, 삐딱한 냉소, 다정한 재간둥이를 시기하는 조롱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심지어 거기서 더 이상한 남자는 아예 그럴싸한 꼬투리도 아닌데 빈말 물고 늘어지기로 세계 최고도 있고. 어쨌든 인사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알은 체할까 말까. 인사를 하면 왜 갑자기 친한 척하며 달라붙는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그렇다고 알은 체하지 않으면 버릇없다고 또 뭐라 할 테고. ~라면서 생각이 많아 시기를 놓치는 사람들. 하여간에 인사를 받고 싶은 사람과 어쩌다 때를 놓쳐 계속 떨떠름하게 무시하게 되는 후배. 둘 다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것일 뿐. 둘 다 알고 보면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그런 허식이라면 난 정중히 사양하게소! 뭐라고? 아니다 난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다, 뿐만 아니라 내 살면서 딸랑딸랑─반짝반짝─황금─오빠라는 귀뜸─짝사랑 받기를 싫어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보지 못했소. 사랑론을 독학하고 행복업을 귀동냥할지언정 <나는 벌거벗은 임금님이요 너는 병풍이라면> 난 쌍수를 들고 환영하겠소. 날 김거절씨라고 뒷소문으로 띄우건, 피곤한 스타일이라며 다 날 피하건. 언제나 두손 두발 들고 기쁘게 인사성을 따지겠소. 나도 내 역할이란 게 있으니까. 사람 갑자기 변하면 쓰나? 안 그렇소? 뭐 그러면 오락산업에서 난 끝이라고? 끝이 어딨어 끝내도 내가 끝내오! 아시겠소? 아시겠소, 모르시겠소? 대인배가 참아야지 소인배에게 뭘 바라겠나. 남자의 우정에서도 불가피하게 여자와 어린애보다 훨신 속좁은 사례는 드물지 않다. (페미니즘이 대체 뭔지는 모르겠다만, 세심함과 정겨움과 천진난만한 애들 소꿉장난을 달리 표현하면 속좁음이듯. 일장일단과 각자 특징이 있을 뿐 여자 어쩌고저쩌고 남자 이러쿵저렁쿵 괜한 데 힘빼지 않아도 된다는 뜻). 남자들 우정에서 불가피하게 허당이 불한당 친구한테 당할 때, 양쪽에서 팔짱꼈던 아는 여동생들은 그렇게 말한다. 「오빠가 참어」 「그래. 오빠가 참아야지.」 그게 불미스럽지 않다. 참아야 하는 당사자는 썩 즐겁지는 않겠으나. 그게 불미스럽지 않다고. 소인배란 소릴 그렇게나 애타게 듣고 싶지 않다면. 밴댕이 소갈머리 같기는, 걸핏하면 토라지고 피곤한 스타일로 입소문이 떠돌아 여성잡지2식 입방아에 오르락내리락하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험담은 험담이겠으나, 거짓 소문이 있으면 진짜 중론도 있다. 야 야 떴어 떴어, 의 별명들. 가령, 존 삐짐─삐돌이 스미스─크리스 후추─뒤끝 지방시─이간질 생로랑─에드워드 삐딱─마거릿 사이코─쫌팽이 올리버─아멜리아 허영─거만 찰리─권위왕 알피......라고 불려서 좋을 건 없는데. 그런데 또 그에 따른 쾌감도 있긴 있단 말이야. 단순히 성격 때문일 수도 있는데, 병일 수도 있고. 결론을 명쾌히 딱 정의내릴려다가 일만 더 키운 셈이자나? 저런! 뭐야? 이런 젠장! 하오나 사람이면 누구나 약점 1개, 아픔 하나, 단점 1개씩은 있는 거 아닐까? 감추기만 해선 인간미 떨어질 테고. 잘난 척 센 척 강한 척, 으쌰으쌰 달릴 땐 달리더라도 속 깊은 얘기할 분위기란 게 있으니까. 그런데 그게 아니라 약점─단점─아픔 투성이라고요? 되로 주고 말로 받았구만 그래. 쾌락마의 유혹에 넘어가 새침한 꼬리를 물고 늘어졌더니 글쎄, 풋사랑이 아니라 세계 몇 대 불가사의니 로스차일드 가문의 숨겨진 재산이니 뭐니. 뭐야 이거? 멋진 척할려다가 일만 더 키운 셈이자나? 이런 젠장! 좌우지간 잠깐 잔소리는 여기서 끝. 아무튼,
챙피한 얘기를 자세히 읊기도 싫고. 완전 실망했고. 기분은 잡쳤고. 하긴 기대한 내가 바보지. 그게 말이 되나? (절레절레) 뭐, 꼰대대회? ~라며 난생 처음 보는 '이상한 벽보를 찍은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린 게시물'을 발견하던 엇그제. 그때가 좋았을까? 좋긴 좋았는데, 결과적으로 안 좋았던 거네. 세상사를 겪어보니 나도 알기는 알았다. 금단의 열매는 두 배나 달콤하고, 벌레 먹은 사과는 네 배나 맛있다는 그 어떤이들의 비밀을. (뭐 0을 1개 더 붙이라고요? 앞에, 뒤에?) 그런데 문제는 매번 끝물을 타거나 개꿈을 꾸거나 행복업에 속든가. 아니면 마권은 매번 고집 피워서 꼴찌에만 걸기. 참 나! 인생이 무슨 극복할 수 있는 허언증이야 뭐야? 산딸기빛 립스틱은 그림의 떡. 왕족의 색상인 보라빛 자주빛 헤비메탈도 추억의 음악일 뿐. 하얀 웨딩드레스처럼 순수한 하얀빛은 언제쯤에나 흑심에 물들려는지 참 알 수가 없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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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공부해라>와 아빠의 <안돼. 그만!>. 일반적으로 애들이 제일 많이 들었던 말. 맞죠, 맞나? 아무튼 듣기는 그렇고. 그 다음 말하기는? (딱) 심심해 그리고 재미없어. 다시, 그 애가 어른이 되면? 낮에는 뭘 해도 재미없어, 밤에는 야 야 으샤으쌰 으쌰으쌰 가자 가자. 목적지는? 어디긴 어디야 NC '엄마한테 말하지 마'지! 인생이란 어쩌면 공치사 같은 거니까. 단짝 친구를 띄워줄 때 확실히 띄워주는 게 뭐 그렇게나 어려운 일이라고. 신부들러리 자처하면 술값 떠넘기고 그날 신나게 달리고, 마음에 드는 뭔가를 살피며 다음을 기약할 수도 있고. 일석이조. 꿩 먹고 알 먹고. 도랑 치고 가재 잡기. 일타이피. 예를 들면 여-바텐더 앞에서 친구 녀석 면 세워주기야 대충 이처럼 자연스럽게 몇 마디 읊기만 하면 된다. 슥~ 하니 분위기만 깔아주면 된다. 반응 봐서 쇠뿔을 오늘 뽑을 건가, 2차로 미뤄야 할 텐가. 그건 곧장 보이니까.
「저는 여동생이 없지만 만약 있다면! 혹시라도 걔가 이쁘다면, 나는 티끌만한 망설임 없이 내 여동생을 내 친구한테 소개시켜 주고 싶어요. 얘가 알고보면 꽤 괜찮은 남자걸랑요. 아니, 진짜로. 아 웃지 마시고. 허허. 언니, 지금 속으로 뭔 생각했어? 어허 이거 왜 이래? 자기야, 언니가 뭔 생각하셨는지 맞춰볼까, 맞춰보지 말까? OK~ 알아도 모른 체하기로 하고. 이어가자면, 응? 말하자면, 그래요. 터놓고 말하자면 이렇소. 이렇단 말이오. 네? 그래. 한번, 예? 딱 한번만 만나봐요. 아 글쎄 나 말고 얘랑. 착각하지 마셔. 난 내 주제를 안다오. 예? 허허허. 언니처럼 공주 같은 여잔 난 부담스러워서 싫소. 어디 나 같은 일개 한량이 이처럼 고귀한 숙녀를. (몸짓) 그러니까 데이트 딱 1번. 그것도 대낮에. 응? 해가 중천일 때. 아 만인이 보는 앞에서 떳떳하게 건전하게. 여자에게 선택권도 주고 명분도 주고. 꽃다발은 물론이요 잘하면, 넘어가고. (몸짓) (표정). 만나봐서 좋으면 야구장 데이트 같은 대단히 상쾌한 2번째 기회를 주고, 아니면 아름다운 뒷모습. 깔끔하게. 어? 어때요! 평판 나쁘지 않고 형편 괜찮고. 최근 출시작도 호평 일색인 데다 (돈-돈-돈 몸짓. 따따부따 몸짓) 얘처럼 낭만적인 남자를 만나기가 이 시대에 어디 쉽나?」
어차피 나는 여동생이 없고. 우리는 우정이고. 내 친구는 (순수─순진─담백의 의미로다) 이상한 놈이자, 난 더 이상한 놈. 아울러 모텔 이름이 뭐 캘리포니아 같은 어엿한 정식 이름만 있는 건 아니니까. 클... 에... 뭐 아무튼 넘어가고. 그래서 내가 치렀을지 받았을지 모를 그 공치사란 게 뭐냐. 딱히 기억나는 게 없었다. 뭐? 그럼 그렇지. 내 그럴 줄 알았어. ~라는 실망스런 낙담이 정말로 들리는 것만 같았다. 어쩌면 좋지? 어쩜 좋아 어쩜 좋냐고. 어쩜 좋긴 뭘 어쩜 좋아. 이런 기분 처음이야, 그런 일이 어디 흔하냐고. 누가 결혼행진곡의 주인공으로써 웃으며 레드카펫 위를 걸을 때 밝은 미래의 롤러코스터 굴곡을 예견했겠냐고. 그건 초혼이고 앞으로 몇 번 더 똑같은 식을 치러야 한다는 걸. 순진한 소녀감성을 맹타하는 사랑의 슬픔과 인생의 오묘함은 여기서 이만 줄이고. 헤어지기 싫어서 질척거리기도 못 해봤겠다, 나 또 차였어 라면서 허영심 웃겨주기도 안 해봤겠다. 그럼 이제 뭘 하지? 그럼 이제 나도 그렇고 그런 흔하디 흔한 동네 아저씨가 된 건가. 그런 건가? 그렇든 아니든, 그런 동네 아저씨들이 웃는 포인트는 딱 정해져 있다.
첫째, 애가 이렇게 말할 때. 「아빠. 나 저 아저씨 웃는 거 한번도 못 봤어.」
둘째, 친구가 이렇게 말할 때. 「넌 요즘 어떠니? 자기야 나 있지. 난 요즘 뭘 해도 재미없어.」
셋째, 옆집 남자애가 동네 똥개 외모 평가할 때. 「못 말려. 하여간 저 강아지 더럽게 못생겼네.」
넷째, 옆집 여자애가 동네 똥개를 보고 겁먹고서 보챌 때. 「강아지 무서워. 저기 가라 그래. 가. 저리 가.」
그렇다고 나까지? 고로 난 최근에 라이벌 관계를 억지로 설정했다. 바로 환상문학잡지 미스테리아 편집장 마라와 여성환상 1.5 편집장 사라를. 물론 그녀들끼리 웃으며 인사는 하고 몇마디 얘기는 나누는데. 그런데 얘기가 금방 끝난다. 딱 봐도 뭔가 불편하다 그거지. 우리 너무 급하게 친해지지는 말자 그럼 안되니까 알잖니, 라는 암묵적 동의가 존재한다고.
자, 바로 그래서 나는 깨달았다. 그런 애들 장난 같은 일은 그쯤 하면 됐고. 나는 이제야말로 본격적으로 비슷한 친구들을 만나야 한다고. 내가 말이지 최근 말이야. 너무 뭐랄까 여자 여자 소녀 소녀 숙녀 숙녀, 아니면 자꾸 추종세력이 인터넷 팬카페로 존재하는 롭을 귀찮게나 하고. 그렇게 내 꼰대지수는 솔직히 말해서 불쾌한 수준에 살짝 근접해버렸음을 고백...할 데도 없다. 그런 투정 받아줄 아가씨도 이젠 다 떨어져나갔고. 아는 여자 동생들도 다 지 갈 길로 갔다. 날 보며 <문어 대가리 오빠>라며 스스럼없이 대할 수 있는 아는 동생, 있는데 전화를 받지 않는다. 눈치 없이 계속 귀찮게 할 수도 없고. 완전 팽 당한 거지. 당해도 제대로 당했어. 아주 그냥 에잇. 말 말자. 말 말어.
그렇게 나는 내 친구 제라드를 만나기로 했다. 마법사의 아들이니 뭐니 그런 별명은 재미없고. 그래서 핸드폰으로 연락처를 뒤졌더니 뭐야 이거? 제라드가 2명이네? 나머지 1명은 뭐지? 얜 또 뭐야! 넌 뭐냐고. 심부름꾼? 바람잡이? 연락책? 노름꾼? 승부사? 중간보스? 두더쥐? 익살꾼? 아님 퇴폐의 조력자? 아닌데 아닌데. 전혀 기억이 없는데. 누구지? 대체 누굴까? 도저히 기억이 없었다. 그럼 전화해서 물어보면 되잖아. 그럼 되겠네.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알고 보니 제라드는, 다시 말해 제라드2는 예전 축구 서포터즈 조마조마에서 유일하게 나랑 말이 통했던 친구였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녀석을 만나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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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라드와 나는 만나서 인사를 나눴다.
그런 다음 무얼하며 놀까를 생각했다.
일단 분위기를 말랑말랑하게 다듬고 부드럽게 출발해야 하니까.
그래서 우리는 일단 저기 보이는 저 술집에 들어가기로 했다.
이름도 뭔가 있어 보이네. <ALT + F4>. 뭔가 사연이 있어 보이고.
우리는 그곳으로 들어갔다. 오오! 조니워커 블루라벨처럼 사치의 색인 검정색 일색에다, 이건 뭐야.
말 품평회에서 수상한 말에게 준다는 리더의 색인 파란빛 원피스를 입은 숙녀가 바텐더를? 아아 꽤나 특이한데?
혹시 오늘... 아니야 아니야. 일단 여긴 우리가 아는 그런 흔한 술집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음악부터 괴상했으니까.
보아하니 지금 흐르고 있는 음악은, 요한 다비트 하이니헨의 칸타타 <사랑의 신이여, 나를 그만 괴롭히시오>.
바텐더왈, 아직 이른 시각이라 끈적끈적한 음악이랄지 전자기타 멜로디가 흥겨운 음악은 나중 틀 거라고 했다.
듣고 보니 우리가 너무 일찍 온 거다. 정식 개장 전. 그렇지만 손님은 손님. 심지어 직감을 꿰뚫을 순 없지만 우리가 썩 싫지도 않은 눈치. 그래? OK~!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저는 여동생이 없지만 만약 있다면! 혹시라도 걔가 이쁘다면, 나는 티끌만한 망설임 없이 내 여동생을 내 친구한테 소개시켜 주고 싶어요. 얘가 알고보면 꽤 괜찮은 남자걸랑요. 아니, 진짜로. 아 웃지 마시고. 허허. 지금 속으로 뭔 생각하셨어? ......(여기서 부터는 앞서 3문단에서 읊은 그대로. 아니 그보다 훨씬 농밀한 어조와 멋진 폼을 곁들여서 그녀를 포근히 꿈결에 젖어들도록 만들었음. 진짜로? 진짜로!)」
그처럼 말하면서 내가 느낀 게 뭐냐, 하면 이랬다. 얘는 우리에게 호감이 있을까 없을까, 있었다. 여자는 웃으면 끝이다, 그걸 훌쩍 넘어설 정도로. 사귈 때 떠들썩한 이벤트를 싫어하는 여자들이 꽤나 되는데, 그건 사랑이 진행중일 때고. 사랑의 클라이막스는 뭐니 뭐니 해도 첫인상이 정식 연애 관계로 이어질 건가 말 건가, 라는 바로 그 지점. 전혀 좋아하지 않는, 저런 어쩌고저쩌고라는 수다처럼 내 스타일이 아닌 남자가 꽃 들고 쫓아다니며 기다려도. 그래도 줏대 있고, 심지 있으며, 주관이 뚜렷할 뿐만 아니라 이상적인 사랑관이 아주 없지 않다면 숙녀는 그 구애를 정중히 사양할 줄 안다. 정말 괜찮은 남자는 막무가내로 들이대지도 않고─언제 배짱을 부려야 하냐는 각자 판단하고─망설일 줄 알듯이. 그저 순진하고 순결하며 챙피해 하는 스무살이 아닐지라도. 그야 어쨌든 저 남자에게 내 맘이 없지도 않고, 아니 그게 아니라 완전 내 스타일인데. 그런데 처음 단계에서 이 남자가 주위 사람들 다 보란듯이 아이스버킷 챌린지를, 주변 지인들 다 보란듯이 노력하는 모습을, 자긴 차였다면서 머리카락을 빡빡 밀어버리질 않나. 그러면? 그럼 여자는 한마디로 열광한다. 미쳐버린다. 우리가 오빠라는 말만 들으면 미쳐버리듯. 남녀 공히 짝사랑 받기는 최고의, 아니 차선의 행복감이란 말이다. 「(직장에서 사무실 사람들 다 보란듯이) 누구씨 아무리 우리가 여자로 안 보여도 그렇지......」 유혹과 애정은 남녀의 감출 수 없는 교집합인 것. 저 남자 완전 맘에 들어 완전 내 스타일이야,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는데 남자가 다른 누구도 아닌 나에게 노력한다? 호불호가 나뉘는 게 아니라 100센트란 말이다. 여자에게 고추가 달리지 않는 이상 100퍼센트라고. 어? 200퍼센트니 뭐니 100까지만 있다고 했을 때 말이다. 도톰한 목소리에 그녀의 모든 것이 반응하듯. 낭군님 팔짱을 끼고서 딱 붙어있더라도 1.0 미만의 미남을 보면 그녀의 마음이 두근거려야 정상이듯. 그야 어떻든 하난 분명했다. 얜 우릴 1.5 정도로 여긴다는 걸.
「레이첼. 우리가 정직했잖아. 그럼 언니도 솔직해야 하는 거 아닌가? 아님 터가 안 좋아, 우리 인상이 별로야?」
그녀는 내내 알 듯 모를 듯 애매한 웃음만 지었다.
「보소. 보소. 흉금을 터놓고 말해보소. 그러는 게 좋지 않겠수?」
여전히 그녀는 침묵.
「난들 달리 뾰족한 수가 있나. 하는 수 없지 뭐. 야 제라드. 너 오늘 차였어. 스트라이크 아웃. 삼구삼진. 딱 아웃. 그러게 내가 뭐랬어.」
그런데 뭐야 이거? 그녀가 술집 문을 닫네?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결과만 말하자면 그날 우리는 시내에서 재밌게 놀았다. 그런데 1 대 2? 그러니까 아까 했던 얘기가 있는데 글쎄 2 대 1? 아니나 다를까 나는 알아서 중간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어딘가 모르게 기분이 이상했다. 느낌상 얘네들끼리 잘 어울려보이지도 않았다.
그러니까 얘네들끼리, 빨강을 주색으로 쓰는 국기가 전체의 45퍼센트. 반면 파랑은 20퍼센트라는, 그 빨간색 분위기? 아니야 아니야.
빨강은 망막 뒤편에 초점이 맺히니까 빨강색은 보는 사람 쪽으로 다가오듯 보인다. 그러니까 얘네들끼리 하트 뿅뿅 윙크 윙크? 아니야 아니야.
뭔가 이상했다. 정말 뭔가 이상했다. 혹시... 아니야 아니야.
어쨌든 나는 그들과 헤어졌다. 아까 괜히 혼자 흥분해서 방정맞은 입을 턴게 화근이었다. 정말로 10년에 딱 1번 들을까 말까 겨우겨우 들을까 말까 한 바로 그 입담을. 그걸 왜 하필 오늘? 나는 후회했다. 기대는 현실에 졌으므로, 따라서 성과는 꽝이었다. 나는 후회했다. 그러나 어쩔 수 있나.
그렇게 엎어진 꽃병처럼 어깨가 쳐진 채 나는 집으로 갔다. 일단 오늘 그 둘도 곧 있다 헤어지겠지만, 나중 잘 될지는 두고 볼 일. 그렇게 그날은 별빛이 유난히 아름다웠다.
5
승부를 걸어야할지 말지, 아직도 잔뻔치와 뻔트가 부족한지 판가름하기 영 불쾌한 슬럼프. 입질은 없고 발을 뺄 수도 없고. 그럼 뭐 별수 있나. 밀고 놓고 펴야지. 연애는 연애고 인생은 인생이고. 그런데 어쩌다 방심이라는 틈새 시장 공략에 운 좋게 성공. 고로 목적했던 목표물을 당기고 들고 쥐는 행복감을 성취. 말리고 엮고 감기는 기쁨의 아리아에 마음은 춤을 추게 되는 형세.
~라는 절정감이 내 것이면 좋겠으나.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공상일 뿐이고. 지금 당장 환상과 교섭을 벌이겠나, 풋사랑을 회상하며 곱씹다 아쉬운 전적을 헐뜯겠나. 정해진 일일 시간표만 꼼꼼하게 검토하고 깐깐하게 실행하다가는 더 재미없어질 게 뻔했다. 그러므로 나는 이번에 시장통에 깜짝 출연한 일자무식 바보처럼 놀러가기로 했다. 그러니까 어디로? 여성환상 1.5 사무실로. 너무 비논리적인 결정인가? 그럼 지금 와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을 공부하겠나, 진지하고 재미없는 변증법을 학습하겠나. 척키 인형의 시선은 곱지 않건 지니가 개밥그릇을 걷어차건, 내가 여태 주로 몰렸던 양이었다면 이번에는 양몰이를 펼칠 시간이었던 것이다. 살짝만 힌트를 공개하자면 그날은 여성환상 1.5 사무실의 바베큐 회식이 치러질 날이었다. 깔려있을지도 모를 복선 같은 건 나중 생각하고. 그 친구들 안중에 내가 있건 없건, 그건 나중 생각하고. 나는 곧장 그곳으로 갔다.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여성환상 1.5 편집장 사무실에 도착.
음악은 헨델의 오페라 <이집트의 쥴리오 체사레>중에서 체사레의 아리아 ‘교활한 사냥꾼은 조용히, 그리고 은밀하게 움직인다네’.
뭐? 어머머머머, 얘 좀 봐라!
6
「사라. 오랫만이야. 만났으면 좀 아는 체 좀 하시지? 그렇게 바뻐? 늬가 언제부터? 그건 그렇고. 봉건적인 남자의 보수적인 사랑관에 대해서 얘기해줄까? 아님 얘기해주지 말까?」
「들은 셈 치자.」
「시작부터 이러기야? 왜 그래? 만나자마자 김 빠지자나. 너 남자한테 차였니? 그런 거니?」
「왜, 그렇게 보이니? 그럼 그렇다고 하자.」
「뭐야, 진짜야? 누구야? 어떤 작자야? 내가 가서 콱 그냥... 워──워──워!」
「뭐야 혼자 얘기하고 혼자 박수치는 거야, 뭐야? 너 안보던 사이에 많이 재미없어졌다.」
「뭐-뭐. 뭐라고? 그럼 넌 안 보던 사이에 완전 이뻐졌는데! ~라고 말할 줄 알았니? 그렇게 말할려고 했어. 얘 있지, 자기야. 우리 다시 예전처럼 사이좋게 지내자니까 그러네. 응? 그러니까, 우리 앞으로 잘 해 보자.」
「잘 해 봐? 뭘 잘 해 봐?」
「뭘 잘 해 봐, 는 모르겠고. 일은 잘 되니?」
「어디서 참견이야. 너나 잘해. 어? 그러니까 늬가 뭘 해도 안되는 거야. 어? 그러니까 늬가 뭘 해도 재미없는 거라고. 알기는 아니?」
「얘가 왜 이렇게 사나워졌어? 아, 마감일?」
「알면서 왜 묻니?」
「여기 놀러오면 뭐 재미난 일이라도 있을 줄 알았는데. 그런데 아니네. 재미없네. 더럽게 재미없구만 그래.」
「내 그럴 줄 알았다.」
「그럴 줄 알기는 뭘 그럴 줄 알어? 늬가 무슨 허접한 점쟁이야 아님 신출귀몰한 예언가야? 어? 이거 왜 이래?」
「흥분하지 말고. 응? 아무 데서나 흥분하지 마시고. 그러지 말고. 너 아까 뭐랬어?」
「어? 내가 뭐랬는데?」
「좀전에 그랬잖아, 늬가. 내가 누구한테 차인 거 같다면서. 그래서 너가 나서서 걜 따끔하게 혼내주고 싶다고.」
「그건... 그건 말이야. 그게 있지. 음. 그러니까, 자기야. 응? 언니.」
「뭐야. 또 빈말이었어? 역시나 글쎄 또 뻥? 입만 열면 뻥? 응? 그러니까 또 다시 뻥? 넌 날 친구로 생각은 하니? 그런 거니?」
「사라. 그게 있잖아. 그러니까 말이야. 내가... 그래 내 진심이야.」
「뭐가 늬 진심인데?」
「내가 가서 혼내줄께. 누구야, 걔? 싸움 잘해? 아님 무섭게 생겼어? 나도 가죽점퍼 입으면 돼. 왜? 내가 안될 거 같니? 늬가 생각했을 때 견적은 어떤데?」
「정말, 생각 있어? 좋았어. 넌 역시 내 친구야. 넌 정말 세계 최고로 다정한 친구라고. 내가 그래도 인복은 좀 있지. 그럼. 그렇다고 좀스럽게 널 필두로 해서 애들 대동해 가지 말고. 너 혼자 가. 딱 혼자만.」
「뭐? 나 혼자?」
「그래 혼자.」
「...... 말리지 마. 아 말리지 말라고!」
「안 말렸어.」
알고 봤더니 사라는 단골 술집 <ALT + F4>의 전문 바텐더인 레이첼과 사귀고 있었다.
레이첼? 듣고 보니 난 처음에 내 귀를 의심했다. 레이첼? 듣자 듣자 하니 영 기분이 이상했다.
그래서 이거 물어보고 저거 물어보고, 또 다시 물어봤다. 레이첼? 레이첼양이라... 뭐, 레이첼? 레이첼이 누구야?
엇그제 제라드랑 그 술집 뭐야. 이름이 <ALT + F4>인 술집에 들려서 처음 만난 바텐더를 꼬셨어. 그랬다고.
그 다음에 제라드와 바텐더를 내가 짝지어 줬다고. 그래, 점쟁이 말마따나 점지! 왜? 그녀를 내가 총애할 수 없는 거 아니겠어?
난 그녀의 백마 탄 왕자님이 아니라고. 그녀도 내가 독점하는 궁녀도 아니고. 그런데 왜 그녀가 레이첼이지? 그 레이첼이 그럼, 사라가 말한 레이첼인가? 아마도 그런 것 같았다.
오오, 저런 저런! 느낌이 쎄하다 했더니. 어쩐지 뭔가 오늘 기분이 이상하다, 왠지 모르게 분위기 쳐진다 그랬더니. 아니나 다를까 그 레이첼이 이 레이첼이라고? 진짜 그렇다고?
게다가 나는 오늘 처음 알았다. 사라가 여자를 좋아한다는 걸. 그럼 사라는 커밍아웃과 동시에 자기 애인에게 남자를 소개시켜준 뭔 뚱딴지 같은 놈을 혼내주라는 주문까지 동시에?
그러니까 그 뭐야, 말하자면 그녀의 말인즉슨. 웬 허접하고 비리비리한 데다 덜떨어진 아저씨 둘이 자길 꼬셨고. 어떡하다 그날 같이 놀았는데. 레이첼은 자기의 정체성이 의심된다나 뭐라나. 뭐라고? 허접하고 비리비리한 데다 덜떨... 아니 그게 아니라. 일단 나는 질렀다. 시원하게 질렀다. 나중은 모르겠고 일단 질렀다. 꼭 지름신에 빙의되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흥미로운 일을 글쎄, 왜 그동안 나한테 일언반구도 없었어? 그걸 내가 모른다는 게 말이 되니?」
그러면서 내가 다 해결해줄 꺼라는 둥 뭐라는 둥 큰소리 친 다음. 그녀와 헤어졌다.
그리고 당분간 술집 <ALT + F4>든, 레이첼양이든, 제라드든 그리고 여성환상 1.5 편집장 사라든. 모두 한동안 거리를 두기로 했다. 그랬다.
7
내 은밀한 사생활이 쥐도 새도 모르게 만천하에 공개되는 걸, 과연 응큼한 그녀는 좋아할까? 그 숙녀가 누구인가는 몰라도, 아마도 좋아할 것이다. 단, 언제 어떻게 알려진다는 걸 미리 안다면 말이다. 그걸 철저히 준비하여 화장발─조명발─화면발까지 미리 계산은 끝날 테니까. 혹은 어쩌면 사랑할 것이다. 다만 성숙하지 않다는 전제 하에. 혹시라도, 어쩌면 좋니 어쩜 좋아 라면서 발가벗고 춤이라도 출 것처럼 기뻐할 수도 있다. 알고 보면 그게 바로 원초적 본능이니까. 왜냐하면 이 세상에 반짝반짝&딸랑딸랑과 머니&짝사랑 받기를 마다하지 않는 사람은 드물기 때문. 거의 없기 때문. 0으로 간주해도 된다고. 즉, 없다고 가정해도 오차범위는 귀엽기 때문. 그렇다면 어차피 우리가 무얼 생각하고 어떤 걸 좋아하는지 모를 수 없는 이상, 오히려 한발 앞서 내 사생활을 홍보하면 어떨까? 그래서 등장한 게 바로 인터넷 유명세다. 핸드폰으로 인터넷으로, 노트북에서 데스크탑에서. 그걸 다시 TV로 라디오로 책과 잡지로.
인류 역사를 통틀어 미칠듯이 강력한 대중커뮤니케이션 매체의 등장은 오직 딱 5번 있었다. 책─신문과 잡지등 정기간행물─라디오─TV─인터넷! 그렇게 5개. 그런데 그 순서를 역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일. 바로 그 재미. 소 뒷걸음질치다 쥐 잡는 듯한 황홀감. 원래 우연한 행운이 더 짜릿한 법이거든. 그런데 그걸 하기에 더없이 좋은 환경은 지금이 최상이다. 그걸 기준으로 봤을 때 내일이 더 나을라나 몰라도 내일의 태양은 아직 떠오르지 않았으니, 일단은 현재가 최고다. 추억의 유행가 제목처럼 TV가 라디오를 잠재운다면 모를까 현실은 달콤한 노래 가사와 완벽히 정비례하지는 않는다. 같거나, 틀리거나, 다르거나 또 다르거나. 이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고. 즉 극적인 드라마와 더 극적인 현실이 서로 주거니 받거니. 앞서거니 뒤서거니. 곧 활자 매체와 라디오, TV, 인터넷은 오손도손 절친하다. 인터넷이 TV를 박물관으로 보내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신종 사업이 출연하니 기존 산업군이 위협 받는다며 시끌시끌할 수도 있다. 나중 보면 어차피 친해질 테지만 시작 단계라면 일정 부분 마찰은 운명일 뿐. 텃새 센 분야가 푹 빠지면 알고 보니 매력이 깊듯이. 볼수록 매력덩어리가 뭔가! 첫 끗발이 개 끗발, 이 아니란 말 아닌가. 어쨌든 넘어가고. 때문에 일단 온라인 매체로부터 인기를 끌어 유명인이 되거나 유명 브랜드로 우뚝 서는 게 멋져 보인다. 그렇지만 온라인과 오프라인은 엄연히 다르고, 또 의도한 계획과 달리 세상은 엉뚱한 데 열광할지도 모른다는 점. 그 이례적인 사례가 무엇인고, 하니 그건 바로 여성환상 1.5 잡지였다. 더 자세한 얘기는 생략하고.
마침 남녀의 친밀감 얘기가 나와서 말이지만, 내가 여성환상 1.5 편집장 사라와 점점 더 친해진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 따라서 기존에 날 쥐락펴락하던 환상문학잡지 미스테리아 편집장 마라는 초조해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날 툭툭 건드리고 살살 간지르며, 날 가전제품으로 만들었다가 동물로 의인화했다가. 그런 잔-재미가 점점 줄어들다가 언제 소멸할지 모르니 그럴 수 밖에. 사라의 일거수일투족을 염탐해서 내게 고자질하지 않겠니? 라는 듯한 징후가 은연중에 내게 포착되어 버린 것이다. 뿐인가? 사라 그 여시 같은 년이 혹시라도 내 남자친구 존티한테 꼬리치는지 너도 두눈 똑바로 뜨고 감시해, 알았어? 그년이 껄떡거리는지 아닌지, 면밀히 주시하라고, 어? 라는 말을 할까 말까 망설였던 그녀의 심정. 충분히 이해되고도 남았다. 고로 이제 마라와의 우정 그 형이상학적인 신비감의 주도권은 거의 내가 쥐었다고 해도 그다지 아차 싶은 오판은 아닐 것이다. 허허허. 으하하하하하하.
8
왜 <남자 바텐더 없습니다. 바텐더 여자입니다>라는 안내문은 볼 수 없는 걸까. 하긴 뭐 우리 어른들이 뭘 해도 재밌다면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항상 신난다, 앉으나 서나 뭘 해도 기쁘고 즐겁다! ~라고 하면 말이 되나. 당연히 말이 안되지. 어른이 어떻게 애들처럼 하루 종일 웃고 있겠나. 우리 어른들이 어찌 소녀감성처럼 굴러가는 나뭇잎만 봐도 꺄르르르 배꼽 잡고 웃겠나. 막 자기들끼리 신나게 웃고 또 웃듯이, 우리도 억지로 으쌰으쌰의 분위기를 멈추지 말자고? 그러자고? 그럼 되는 거 아니냐고? 그럼······ 그러면...... 안된다. 완전 안된다. 퍼진다. 힘 빠진다. 기 빨린다. 잡은 물고기한테 밥을 줄 수가 없다. 왜냐하면 꽃사슴 같은 최적의 먹잇감이 나타나도 최선을 다할 수가 없으니까. 멀뚱히 쳐다보며 멀거니 서서 삼구삼진 당하게 되니까. 저 하늘의 별을 땄어도 우리는, 의무방어전을 치러야 하니까. 안 그렇소? 어른은 어른인 것. 그러므로 <남자 바텐더 없습니다. 바텐더 여자입니다>라는 안내문을 볼 수 없는 게 정상. 아무나 조증 걸려서 웃고 또 웃고 미친놈처럼 하루 웬종일 웃기만 하면, 어? 그게 좀비 천국이지 정상인가. 그게 어디 밝은 사회이자 희망찬 내일을 꿈꾸는 사랑의 낙원이지, 평범한 일상인가.
그러나! 뭘 좀 안다면서 자기가 자기 입으로 말이 통하는 남자임을 자청하는, 그 안다박사님들이 쓸데없는 걸 좀 많이 아시나. 얼마나 남자들이 으쌰으쌰 들어오고 또 들어와서 묻고 또 물었으면, 얼마나 질릴 데로 질렸으면 술집 사장님께서 그렇게 붙여놨겠나. 하지만! 그분들이 상식 하나는 기가 막히다니까요. 저런 안내문을 붙여놓은 곳? 있지 왜 없겠나. 암스테르담이랄지 어디 어디에 가면 아마도 안내문 찾기는 썩 어렵지 않은 것, 아닐까? 그렇지만 그건 TV 다큐멘터리 같은 이야기.
그런데 놀랍도록 신기한 게 뭐냐 하면, 최근 나는 그렇듯 심하게 이상한 카페를 발견했다는 것. 카페 이름은 해적선! 거기에 가면 없는 게 없었다. 일단 음악은 여사장님께서 내 표정만 보고도 알아서 내 기분을 맞춰버렸다. 헨델의 오라토리오 <솔로몬> HWV 67번 3막 중에서 몇몇 아리아. 또 다른 날은 30~40년 전에 유행했던 달콤한 추억의 멜로디를. 카페 디자인? 프란스 포르뷔스 2세의 그림에서나 볼 수 있는 고급진 어두움, 캬~! 티치아노 베첼리오의 텃치에 힙입은 듯한 담청색, 으아~! 당연히 바텐더와는 말이 통함. 곧, 쌍방향 관계. 아첨이 환상적인 마담에 대한 기가 막힌 칭찬은 생략하는 걸로.
그런데 평범함이 좋고 보편적인 가치도 고상하지만, 어쨌든 이곳 해적선은 그와 정반대였다.
「너 드라마 캘리포니케이션에 나오는 그 장면 따라해봤어?」
라고 남자들끼리 으쌰으쌰! 그거까지 다 받아준다. 어디 받아주기만? 한술 더 떠서 골프공을 받으면 풍선껌을 넘기고, 테니스공을 넘기면 은하계를 저글링했다. 그렇게 나는 나도 드디여, 마침내 단골 술집이 생겼다면서 좋아했다. 그 다음을 기약하면서 말이다.
9
단골 바 해적선은 어느 날 갑자기 종적을 감췄다. 내게 일언반구도 없이 말이다. 그럼 그렇지. 새 노트북을 산 다음 그걸 들고 가서 일할려고 했는데. 거기서 <조제 안토니오 카를로스 데 쎄이사스의 하프시코드 소나타 10번 E장조>같은 음악도 신청하고. 그러면서 일기도 쓸려고 했는데. 가령,
<나는 날이면 날마다 오오 그녀의 콧수염 솜털 그녀의 허벅지, 라는 헛된 공상만 일삼지는 않았다. 그녀의 겨드... 노노노! 그녀의 콧... 노노노노노! 그녀의 옆라인 골반 위 3센티미터... 노노노노노노노! 여자들이 어떤 남자에게 호의를 품고, 남자들이 거리에서 무엇에 끌리는지. 난 달랐다. 다르던가 말던가! 그나저나 밀고 당기기 즉 쥐락펴락의 주의점은 작게 잡아도 4가지다.
첫째, 홍당무를 줘야 할 때 채찍을 들면 안된다는 점.
둘째, 이중 구속 작전은 상대방이 날 따라할 수 있다는 점.
셋째, 주객이 바뀌거나 사랑이 끝날지도 모른다는 점.
넷째, 꼬리가 길면 밝힌다는 점>.
~라는 낙서도 끄적거릴려고 했는데. 해적선은 사라졌다. 자취도 없이.
꿈을 동냥했더니 절망을 적선 받음. 수상한 분위기에 의뭉스러운 낌새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라니.
철딱서니없는 놈은 바로, 개 풀 뜯어먹는 열망에게 기대감을 짝지어 주는 데 주의해야 한다는 걸 깨달음.
일반적인 행복이란 소망 충족이자 야망 불충족인 것. 그럼 이제야말로 본격적으로? 말 말자. 어? 말을 말어.
10
오늘은 억세게 운이 좋은 날도 아니고 완전 꽝인 날도 아니다. 그럼 지옥해서 탈출하는 행운을 캐낼려고 용쓰겠나 이기심의 가책을 느끼겠나. 일이나 해야지.
그렇게 나는 오늘도 출근했다. 그리고 낮에 '레밍효과'를 인터넷에서 검색했다. 다른 사람들의 소셜 네트워크를 구경했다. 음악은 무얼 들었더라?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두 대의 하프시코드를 위한 협주곡 C장조 BWV1061. 바흐를 듣는 김에 레퀴엠 미사까지 들었다. 그것만 듣고 있을 수는 없으니 책도 읽었다. 착상이 오면 좋고 바쁘시면 기다리고. 또 인터넷으로 최근 드라마가 떴는지도 알아봤다. 최근 보는 드라마는 딱 1편. 바로 바닷물이 사라진다는 내용의 역작. 북극과 남극 얼음이 녹아 해수면이 올라간다지만, 석유와 가스를 채굴했으면 빈 공간이란 게 있지 않나. 지구동공설이네 뭐네 까진 아니어도 실제로 동굴이 가까운 데 깊은 데 있지 않나. 하여간에 드라마가 스케일 하나는 끝내줬다. 최근 편에서는 유독 파란색이 많이 나왔고. 파랑은 망막 앞쪽으로 초점이 맺히기 때문에 파랑은 보는 사람에게서 멀어지듯 보이는데, 노트북이 내 앞에서 막 지 혼자 멀어지는 듯한 환각도 느꼈다. 가슴 저미도록 뭉클한 사랑의 감정은 잘 모르겠고. 당연히 퇴근 약속은 잡히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퇴근 전에 인터넷 여기저기를 떠돌다가. 그러다 어떡하다 야한 사진을 보게 됐다. 얼렁뚱땅 파도를 타고 또 타던 중 전화가 걸려왔다.
「자기야, 뭐 하니?」
「어? 사라! 웬일이야?」
「웬일은 뭐가 웬일. 친구끼리 통화도 못하니? 너 혹시, 바쁘니? 뭐 하느라 바쁜데. 그리고 왜 그렇게 놀래?」
「내가? 그랬나? 잘 모르겠는데.」
「능청은. 너 저번에 빌려달란 거. 그거.」
「그거 뭐?」
「CD. 얀 디스마스 젤렌카의 Missa Dei Filli C-Dur. 그거 빌려줄께.」
「그럼 고맙지. 그런데 언제?」
「언제긴 언제야 지금이지.」
그러면서 갑자기 사무실 문이 벌컥 열렸다.
그리고 나는 당황했고 날 보는 사라와 레이첼은 더 당황했고.
(물론 사라 옆에 있는 숙녀가 레이첼인 건 나중 알았음. 곧 제라드와 내가 꼬셨던 그 레이첼은 이 레이첼이 아니게 됨)
그렇다고 내가 딱히 뭘 한 건 아니다. 그럼 아니지. 하긴 뭘해. 그처럼 뭔가를 딱 걸렸던 기억은 어렸을 때 아빠가 내 엉덩이를 지긋이 밟으셨던 거. 또 내가 동네 아줌마들한테 무슨 운동이라고 핑계댔던 거. 친구 넷이서 합숙하며 잠깐 인터넷 도박일을 하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한 친구한테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들켰던 일도 있고. 엄마한테야 뭐 넘어가고. 그런데 얘넨 어떻게 노크도 할 줄 모르지? 이제 가족 장르 영화는 떼도 진작 뗐다 뭐 그건가? 그럼 난 푸대접 받은 거야 뭐야!
그 뿐만이 아니라 문을 벌컥 였었는데. 그런데 난데없이, 뜬금없이, 황당한 장면을 목격한 일. 있냐 없냐, 있다. 친구들끼리 레스토랑에서 마시고 놀고 떠들다 그곳에서 나갈 때. 나는 화장실에 들렸다. 그런데 남자 화장실 문이 안 열리네? 그렇지만 또 세게 열면 열릴 것 같고. 그래서 힘껏 열었다. 그런데...... 그런데······ 흔히들 생각하는 2명이 있는 그건 아니고. 1명인데, 음, 여기까지.
「바쁘니? 바쁨 갈께. 나중 보자.」
「바쁘긴 뭐가 바뻐. 나 안 바뻐.」
혹시 사라가 그 옛날 군대에서 삐져서 우릴 왕따시킨 그 아저씨의 친동생 아닐까? 그러든가 말든가.
「뭘 그러게 키보드를 부랴부랴 더듬어?」
「더듬긴 누가 더듬었다 그래? 얘 완전 생사람 잡네?」
「수습하는 동작이 자연스러운 걸 보니. 과히 사춘기 같진 않네. 아닌가? 아님 몽정기? 그럼 어때. 갱년기보다야 그게 더 낫지 않겠니? 굳이 원하신다면 침체기든 뭐든 원하는 데로 해 주고. 안 그러니?」
「뭐? 안 그러긴 뭐가 안 그래. 넌 어떻게 여성환상 1.5 편집장이란 애가 교양미를 모르니? 어떻게 그럴 수 있니? 노크! 몰라? 어? 너도 순전 허당이구나. 왜, 허영심이 뭔지 보여줘? 그래?」
「그런데 너 운동하니? 왜 몸집이 커보이지?」
「눈이 감지할 수 있는 파장 범위의 중간에 위치하기 때문에, 그와 같은 물리적 이유를 근거로 가장 밝은 색상인 노랑빛. 응? 노란색 옷을 입었으니까 그러지. 잔지식, 몰라? 잔소리는 잘하면서 말이야, 넌 어떻게 그런 것도 모를 수 있니? 얘 완전 순 허당이네 허당.」
「뭐야! 그게 다야?」
「그럼 뭘 바래?」
「됐고. 아무튼 인사해. 이쪽은 레이첼. 이쪽은······ 이쪽은...! 넌 누구니?」
어쨌든 나는 이 레이첼이 그 레이첼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그게 한가지 기쁜 점이라면, 한가지 떨떠름한 점은 뭐겠나. 괜히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서 내 기분이 이상해졌다는 거. 그럼. 그렇지.
꾸물대고 싫증내고. 미루고 지겹고 심심하고 재미없고. 그러다 사라와 레이첼의 노크없는 깜짝 방문. 그러나 울적할 새가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눈 깜짝할 사이에 첫눈에 반해버렸으니까.
뻥이고. 진짜로 뻥이고. 헛헛한 마음을 우리는 사랑의 묘약과 맛난 음식으로 달래기로 했다.
11
어느 날 나는 뭐 재미난 일 없나 라면서 골똘히 석두를 굴렸다.
헨델의 <건반 악기 모음곡 2권> 중에서 샤콘느 G장조 HWV435.
음악을 들어도 소용없었다. 인터넷에서 야한 사진과 동영상을 찾아봐도 재미없었다.
소셜 네트워크로 타인들의 사생활을 엿보아도 별다른 감흥은 느껴지지 않았다.
딱히 약속도 없었다. 떠들썩한 희희낙락함까진 아니어도 좋다만 이렇다 할 할 일도 없었고.
그렇다면 할 말은 있겠나, 날 보고 싶어 애달파하는 그녀들끼리 심상치 않은 작전을 짜겠나 어쩌겠나.
그러다 나는 아하~ 하면서 (딱) 소리를 내면서 폼을 잡았다. 기발한 뭔가를 생각해낸 것처럼 말이다.
그건 다름 아니라 <여성환상 1.5 사무실에 찾아가서 사라의 집무실 문을 벌컥 열기>였다.
그럼 사라는 뭘 하고 있을까? 책을 보고 있을까 화장을 고치고 있을까. 아니면 쇼핑 리스트를 점검하고 있을까?
설마 하니 빵과 자유와 황금 그런 주제로 글을 쓰고 있을까. 아마도 인터넷 쇼핑몰에서 엄한 장비를 검색하고 있진 않겠지?
그건 뭐 가서 확인하면 되는 거고.
나는 곧바로 그녀의 사무실을 급습하기 위해서 출발했다.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여성환상 1.5 사무실에 도착.
미리미리 언제 직원들이 없고, 사라 혼자 사무실에 남아있는지. 그런 건 사전에 다 조사해놨기 때문에 걱정되는 건 없었다.
예상도 들어맞을 거라 안심했었고. 빈틈도 없었다. 왜? 내가 사라를 좀 알거든. 스릴러─판타지─미스테리─공포물─적당한 SF도 좋아하고. 순식같에, 난 그녀를 꽤나 잘 알게 됐다고. 그녀는 꽤나 정숙한 숙녀고. 그녀는 착하고 예쁘며 조신하고 능력 있는 편집장이니까. 두서없이 갈겨쓴 성의없는 연애편지는 딱 사절이고. 어떤 욕구가 배란기보다 생리 기간에 월등히 높은 부류고. 고급스럽고 고상한 거 선호하고. 꽃과 화병의 어울림을 까다롭게 따지고. 자기 관리 꼼꼼하고. 우정의 기준 역시 깐깐하고. 사전은 A언어사전이 있고, A언어를 B언어로 설명한 사전이 있을 때. 후자에서 고급은 AAAB식 사전인 것. 곧 그녀는 언어도 대략 3개국어 사용 가능. 간지러움 잘 타고. 브레이킹 더 웨이브 (1996) 같은 찡한 지점을 그려낸 영화를 보면 살짝 흐느끼고. 친구 결혼식에서 신부 들러리 서면서 펑펑 울고. 어렸을 때 아빠가 바람 펴서 후미진 시골 찻집 여자가 애를 뗐기 때문에, 엄마 손 잡고서 엄마가 노동력을 제공했는지 봉투를 전달했는지 거기 따라간 걸 기억하고. 가족끼리 친한 딴 가족, 편모와 외아들인 그 뭐 아무튼 그런 거 죄다 기억하고. 더불어 일을 좋아하고. 일을 재밌어 하는 그녀니까. 그래서 나는 모쪼록 그녀의 우아한 모습을 기대했다. 난 그녀의 고상한 몸짓과 단아한 표정을 목격할 만반의 준비가 갖추어졌다. 나의 막무가내식 개탄스러운 예감이 뼈아픈 상심으로 뒤바뀌지 않기만을 바랬다.
짜잔~~~!
나는 여성환상 1.5의 편집장실 문을 벌컥 열었다.
퐁~~~!
그런데!
핑~~~!
그런데! 그런데!
퐝~~~!
나는 황당한 장면을 목격했다.
화분과 노트북과 쌓인 책 때문에 중간은 가려짐.
그런데 위는 마라, 아래는 존티! 뭐라고? 아닌가? 아닌 것 같은데?
분명 아래는 다리 털이 부숭부숭하게 나 있는 남자의 다리였다.
게다가 검정 하이힐을 신었네? 하이힐을 얼마나 큰 걸 구한거야!
그런데 어째 위는 마라인지 사라인지 머리카락이 산발인 아가씨네?
솔직히 말해서 아직도 그녀가 마라인지 사라인지 잘 구별되지 않았단 걸 고백한다.
그러니까 얘네들이 뭘 허고 있는 거야? 아니면 그 둘이 한 사람? 에이~ 그럴 리가!
설마 둘이서... 확실하게 말하자면 아직 뭔가가 진행되지는 않았다. 내가 못 볼 걸 본 거도 아니었다.
풋사랑도 아니고 애들도 아니고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않나.
프렌치 키스든 갸벼운 뽀뽀든 사랑하는 애인끼리 해도 되지 않나.
심지어 존티가 비키니를 입고서 블랙 하이힐을 신고 있었다. 너도, 가터벨트? 마라는······ 마라는......
나는 마라를 아껴주고 싶다 아껴주고 싶다. 물론 나는 존티를 지켜줘야 한다 지켜줘야 한다.
한마디로 그러거나 말거나. 냉장고 권리네 뭐네 에티켓 생략한 건 어디까지나 사라와 내 문제.
물론 거기 계신 두 분도 들키고 싶어하지 않은 듯한 놀라움을 연출했다.
사랑이 무슨 죄인가. 아슬아슬한 단계까지 넘어간 것도 아니고. 딱 아니고.
잠깐만 곁길로 빠지자면 굳이 이런 말까진 꺼낼 생각은 없었지만 말이 나온 김에 말하자면!
그러자면 옛날 소수였던 우릴 왕따시킨 말년 병장. 어깨 위에 귀여운 햄버거도 아니고, 얼마나 속좁고 꽉막히며 앙칼진 새끼 고양이 같은 일을 벌였는지. 가히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잠시 곁길로 빠졌다가 다시 돌아와서.
그런데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나는 이때부터 환각 증상에 시달리게 되었다.
바로 바지를 입은 여자들을 보면 투시력 때문에 그녀의 다리털이 보였다. 정말이다. 뿐이던가? 심지어 그녀의 가운데가 튀어나온 듯이 보였다. 정말이다. 진짜다. 그녀가 어떤 색상 어떤 문양의 속옷을 입었는지 선명하게 보였다. 정말이다. 진짜다. 그럼 당연히 브레이저와 팬티가 한쌍인 숙녀에게 집중하면 좋다는 것도 훤히 보여버렸다. 그런데 원래 위 아래 막 대충 입는데, 그런데. 어떻게 내 주위에 있는 숙녀들은 겉옷은 대충 입어도 속옷은 항상 깔맞춤해서 입지? 오오 미스테리! 뭐 아무튼. 예전~에 숙녀의 다리가 대리석으로 보였던 환상이 치유된지가 불과 얼마 전인데.
그런데 이건 또 뭔 뚱딴지 같은 일이란 말인가. 이런 개 풀 뜯어먹는 일이 왜 내게 일어나냐고. 밑도 끝도 없이 말이다.
아무튼 나는 앞에 계신 분, 분들이 누군지도 확인하지 않은 채 곧장 집으로 돌아갔다.
그럼 그 상황에서 왜와 어떻게를 캐물어 아님 분위기를 방해해!
차마. 차마 미안하단 말은 못하겠고. 왠지 모르게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아서 못했고.
그분들도 경황이 없으셨는지 뭐라 변명도 인사말도 없었고.
12
나중 사라한테 사연을 듣게 됐다.
사라는 마라와 갑자기 친해졌고. 사무실을 그날 딱 하루만 바꿔 쓰기로 했고. 결국 내가 본 건 마라와 존티였다고.
자기 즉 사라의 다리에 털이 나지도 않았고. 뭐 어떻게 치장했을 테지만. 자기 다리는 여자 다리라 그 말이었다.
뭐야 그게? 이게 장난이야 코메디야! 뭐가 됐든 더럽게 재미없는 사연이었다. 하긴 살면서 그런 장면을 보는 일이 어디 흔한가.
과거를 회상하자면 음 딱히 설명하기 곤란한데, 그렇지만 기가 막힌 표정이 하나 떠오르고. 또 친구들과 나이트클럽 룸 같은 그런 술집 살롱에서 놀던 때. 나풀거리는 짧은 치마를 입은 아가씨가 술에 취하고 분위기에 더 취해서. 좋아서. 원해서. 버릇인지도 모르겠고. 노래를 거기서 넘어2로 잘 부른다던가 뭐라던가. 그래서 탁자 위에 올라가 발라드를 불렀던 장면. 더 자세한 얘기는 상상의 뒤편으로. 뭐 그건 그거고.
아무튼 그런 장면을 보길 원했던 게 아니다. 나 그걸 바라는 게 아니라고. 어? 찐한 사랑과 더티러브를 해도 모자를 판국에. 아 진짜 그렇다는 게 아니고. 사랑은 어디까지나 참사랑. 순애보. 애절함. 플라토닉에 예속된 그런 진실한 사랑. 열정과 낭만과 행복과 호사와 아름다움을 모두 이행할 수 있는 그런 사랑. 천사들이 부러워하는 바로 그런 사랑! ~라는 상투적인 얘긴 집어치우고. 농담이고.
그렇게 나는 사무실 소파에 자빠져 노트북으로 영화나 보게 됐다. 재미없는 영화를 왠지 돈 주고 극장에 가서 보기는 싫고. 최근 워낙 영화관에서 영화 보며 잠을 많이 자놔서. 반틈을 졸다 참다 자다 깨다, 하도 그래서 영화가 끝나면 뭔 내용인 줄 알 수가 있나. 그래서 나는 괜찮은 현상금 사냥꾼 영화를 찾아서 보게 됐다. 혹시라도 누가 사무실 문을 벌컥 열지 않을까 라는 의혹감을 꼭꼭 보듬고서 말이다.
13
나는 <사랑론 + 인문교양학>이라는 새로운 카테고리에 대해 몇 자 적은 다음 여성잡지 <여성환상 1.5>에 보냈다. 품위 유지비가 이제 곧 있으면 간당간당해질 테니까.
합리적인 발단에 이어 경이적인 전개의 깜짝 출연. 곧바로 허당 중의 허당일 만큼 간단명료한 절정. 그 다음 뜻밖의 반전 결말까지. 이런 허구에 대해서는 좀처럼 기발한 착상이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에, 고로 당분간 미룰 수 밖에 없었다. 끝으로 칼럼 내용을 옮기자면 이와 같다.
<곱디고운 첫인상에 이 내 몸이 떨고 마음이 설렜으니, 아니나 다를까. 나는 오늘도 거리에서 또 첫눈에 홀딱 반해버렸다.
뭐, 또? 뻥이다. 정말로 그랬겠나. 나는 예찬에 후하지만 여자 여자 부드러운 그 소녀감성에는 더 호의가 넘친다. 왜냐하면 경탄해 마지 않는 건 마땅히 남아의 할 일이니까. 우린 그저 할 일을 하는 것일 뿐. 그처럼 할 일이 분명컨대 할 말을 하지 않아서야 쓰겠나. 안 그래유? 숙녀여, 난 정말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를 면전에서 보는 듯 행복하다오. ~라고 칭찬한다면 그녀들 표정이 과연 어떨런지. 굳이 내기까지 할 필요가 있을런지. 그런 까무러칠 만한 행운이 내게 제 발로 찾아오다니, 라면서 한술 더 떠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오히려 그녀에게 따진다면! 그렇다면 그걸 극구 손사래치며 마다할 여자는 뭔가를 추궁해봄직한 일 아닐까? 응? 물론 저렴하게냐 고급스럽게냐, 빈말식이냐 은근하게냐! 라는 차이는 있을 테고. 아무도 믿지 말라는 둥 내 남친한테 껄떡대지 말라는 둥, 고전적인 드라마 명대사를 좋아하는 그녀인데. 그런데 사랑을 과신하며 낭만을 맹신할지도 모를 그녀, 여성잡지 1과 2 사이에서 난 정말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 것일까? 한번쯤 의심해봐도 썩 나쁘지 않을 일. 왜냐하면 여성잡지1은 이미 그 세계를 알기도 전에 숙달했고, 곧 있으면 여성잡지2를 통달함은 애초에 이미 정해진 수순이므로. 따라서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변신의 신, 프로테우스는 바로 너!
~라는 감언에 사뿐히 넘어갈 건가 말 건가.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그녀들은 오늘도 은밀한 수다에 관한 최적의 화제로 기쁜 비명을 지르기 바쁘시다. 장미가 무얼 뜻하고, 백합이 의미하는 걸 내가 모르지 않거늘. 제비꽃의 꽃말까지 연상시키는 꽃다발을 그이가 나한테? 우리 광고에 그만 속고 드라마 적당히 보자. 그 대신 신부들러리 마다하지 않고, 뻔트를 애호하는 거 솔직히 인정하고. 그처럼 할 일을 하고서 내 삶의 주인공이 되기. 자, 언제부터? 지금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