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출근길. NB는 회사에 거의 도착하기 직전이었다. 건물에 들어서기 직전.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잘못 들었는가 싶어 갸우뚱하며 뒤를 돌아다봤다.
「맞네. 맞어. 여긴 웬일이니?」
그는 사무엘. 얘가 언제 적 친구더라? 모르면 거짓말. 그런데 거짓말처럼 잘 생각이 나질 않았다. 그는 어떻게든 생객해낼려고 애를 쓰는데. 그런데 얘는 말이 많았다. 멈추지를 않았다. 그래서 그는 귀가 울렸다. 이명이 들렸다. 그건 마치 군복 입고서 운동장에서 뙤약볕 아래 훈시를 듣던 중 아찔함을 느껴 주저앉는 느낌과 흡사했다. 딱히 약하지도 달리 어디가 아프지도 않지만, 어딘가 모르게 핑~ 도는 기분. 미치광이가 아니라 지극히 정상적으로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는 왠지 모르게 어떤 치부를 들켜버린 것만 같은 의아한 감정에 휩싸였다. 모를 수가 없는데 왜 생각이 나질 않는 걸까. 그리고. 무엇보다 얘는 왜 이렇게 말이 많은 걸까. 이명이 들리는 동안 녀석은 주저리주저리 계속 떠들고 있었단 말이다.
「그런데 설마. 나 기억 안 나니? 그런 거니? 정말? 어머머 얘. 서운하다. 섭섭하다고. 난 이처럼 반갑게 알은 체를 하는데 넌 어쩜 그렇게 매정할 수 있니? 궁색한 변명이라면 하지도 마 얘.」
장소가 바뀜. 그는 사무실 소파에 앉아있다.
비발디/소나타 d단조 RV14 (리코더 연주 버전).
좀 전에 그 친구는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찻집에서 아르바이트를 같이 하던 동료였다. 그런데 걔는 어떻게 자기 이름을 기억하지? 그는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데. 얼굴만 겨우겨우. 그렇다고 상욕을 퍼부어대겠나 생선 대가리 같은 놈이라며 외면하겠나.
어쨌든 사무엘은 건너편 대각선 방향에 자기 사무실이 있다고 한다. 나중 다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그렇게 헤어지고 시간은 지나서 낮 3시가 되었다. 그는 한번쯤 고민했다. 18세기 로코코 회화의 대표주자였던 바토의 그림 주인공이 내지를 것 같은 탄성을, 본인이 내지를 일도 없고. 착상은 별다른 소식이 없고. 뜬금없이 낭트 칙령이 떠오르는데 그게 뭔지는 기억도 안 나고. 가, 말어! 녀석 사무실에 놀러 가냐고 마냐고.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사무실 초인종이 울렸다. 문을 열어보니 사무엘이었다.
그런데 사무엘의 양편으로 미녀 2명이 있었다. 팔짱을 낄려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고.
그래서 나눈 대화. 별거 없었다.
사무엘이 데리고 온 아가씨들은 모두 사무엘 사무실에서 일하는 경리라고 했다. 1명은 경리 1명은 비서. 자기들은 지극히 사무적인 관계고. 사무엘은 지독한 가톨릭 신자로써 사랑하는 아내가 있고.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막 그러면서 사무엘은 얘네들 지금 외로운데 너 한번 만나볼래? 라면서 슬슬 바람을 넣기 시작했다. 그래? 그놈의 뻠쁘질! NB는 속으로 번호표 발급 기계를 사서, 나도 경리나 뽑아볼까 어쩔까 그 궁리 중이었는데. 이게 웬 떡이야?
변치않을 사랑의 맹세. 떨릴 줄 알았는데 유치한 사랑 고백. 그렇지만 눈물 흘리는 여자 여자 여자. 신성한 사랑 사랑 사랑.
그런데~!
바로, 여기까지는 그가 오늘 생각해낸 소설 줄거리 초입일 뿐이었다. 뻥! 곧 거짓말이라고. 어젯밤 꾼 꿈에서 꺼림칙한 지인이 나타나서 어쩌고저쩌고. 그것을 대충 노트북에 기록했던 거. 그게 전부.
뻥. 또 뻥. 언제나 뻥 항상 뻥. '젊어서 놀자'와 '막살자'는 엄연히 다른 것. 그러나 젊어서 노는 것도 뻥. 막살자 웨이터의 <잘 해 드릴께>도 뻥. 대망에 분홍빛 꿈을 희석시키기. 그거도 다 뻥.
그럼 뭐야, 만성적 허언증? 이런 젠장! 판 깨는 데 뭐 있는 남자가 다름 아닌 나? 저런 저런! 얼굴에 핏기가 싹 가시게 만드는 일이 바로 이거네.
그렇게 그는 오늘 별다른 성과없이 퇴근길에 이르게 됐다.
그렇다고 그냥 이대로 괴상한 만족감과 홀대받은 패배감을 떠안고서 집에 가기는 싫었다.
남의 비위 맞추기도 지겹고. 호시탐탐 눈독을 들이기도 재미없고. 일하기는 지쳤고. 놀기도 재미없고.
비밀 엄수는 무슨, 비밀도 없는데. 지긋지긋한 드라마. 갈 데까지 가버린 전개. 음탕한 감정은 다 남의 얘기. 욱하는 질투심을 달래줄 숙녀도 옆에 없고.
그렇지만 정말 이상스러운 호기심은 이미 그를 카페 단골로 만들어버렸고.
터벅터벅. 그는 어쩔 수 없이 단골 카페로 향했다.
2
주말이 되었다. 특별한 오늘만의 일정은 없다. 아, 있다. 오늘 나는 톰을 만나기로 했다. 옛 친구 톰. 옛? '새로운'에 대척되는 어감이 느껴지니까 '옛'은 떼는 게 좋겠다. 그냥 친구면 친구지 무슨. 아니다. 일단 하이에나인지 촌닭인지 먼저 구분해야 한다. 양치기와 늑대조차 구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럼 톰은? 촌닭도 그런 촌닭이 어딨나. 그렇지만 또 알고 보면 촌닭이 인기가 괜찮다. 그분들이 꽤나 재밌거든. 팔색조와 어울리면 심하고 조잡스러운 할 말이, 적어도 나중 발생하기 마련이거든. 그렇게 나는 카페에서 톰을 만났다.
장소는 카페 . 톰과 나.
익숙한 악취가 아니라 천연재료로 만든 비누처럼 생소한 향기.
음악은 하이든의 합시코드와 현을 위한 협주곡 G장조 Hob.18:4
나는 미리 카페 사장을 구워삶아 놓았다. 유행가만 들으면 인생이 너무 뻔하니까 뭐 어째야 한다면서.
그렇다고 톰과 나는 우정의 친교를 나누지, 사랑의 본능을 견주고 맞춰봐야 할 사이는 아니지만. 왠지 모르게 색다른 분위기를 바랐다고나 할까? 그러든가 말든가. 넘어가고.
「늬가 그 옛날 떠들썩하던 소셜 네트워크 www.myspace.com의 그 톰이냐?」
「오랫만에 만났으면 안부를 묻는 게 순서 아니니? 뭔 뜬금없이 마이스페이스 타령이야?」
「그래? 그럼 푸른빛 갈망이 이루어지리라는 점괘라도 꺼내놓든가. 너 돈 많아? 여기 늬가 살 거지?」
「너 요즘 어렵니? 아님 몰리니! 누구한테 쫓겨? 아님 뭘 해도 재미가 없거나. 원래 안지 오래된 친구들은 대화가 심심해야 정상 아니니?」
「그럼 뭐 새로운 여자라도 소개시켜 주려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왜 너가 하니? 혹시 내 마음을 읽었니?」
「앗! 말 나온 김에 (딱)! 너 내가 아는 동생들 소개해 줄께. 너 아직 혼자지? 그렇지? 그러니까 늬가 여자가 없는 거야. 알어? 그러니까 늬가 사랑을 모르는 거라고. 누굴 원하는데. 말만 해. 말만 하라고. 그냥 장난하듯 우리 옛날에 농담하듯 말만 하라는 얘기가 아니라. 진짜로. 진짜로 소개시켜 준다니까?」
「세상 오래 살고 봐야겠구만. 너한테 비싼 술을 다 얻어먹을 줄이야! ~라는 말은 아니지만 너가 웬일로 나한테 소개팅을?」
「소개팅? 선 아니고?」
「거 참 나! 이왕 인심 쓸 꺼면 시원하게 쓰던가. 갑자기 또 인색해지면 난 어떡하니. 적응이 안되잖아?」
「뭐 그건 그거고. 자, 핸드폰을 봐 보자. 노트북도 꺼내서 구글 연락처랑 애플 연락처랑. 온라인에 저장된 거 말고 엑셀 파일 꺼는 동기화 안 해놨지. 우리가 어디 촌닭처럼 핸드폰 잃어버리면 친구들 연락처 죄다 잊어버리는 그런 아저씨는 아니잖아. 안 그래?」
「너 설마 나 떠보는 거 아니지? 그렇지? 좀 있다 거 무슨 막 딱 그 뭐냐. 금욕이냐 방탕이냐. 대망은 멀리 있고 사랑의 황홀경은 지연되고. 심심함은 해소되지 않고. 모험심도 충족될 수 없고. 또 권태. 정답은 대리만족과 합리화뿐이던가. ~라는 식으로 얘기할 꺼면 애초에 시작을 말고. 응?」
「얘가 얘가 속고만 살았나. 부쩍 꼰대지수 올라가게 왜 이래? 어? 이거 왜 이러냐고.」
「왜 이러긴 뭐가 왜 이래! 늬가 항상 뜸 들이고 뻔트대고 깐족거리며 잔뻔치만 날리는 잔재주꾼에 불과하니까 그러지. 시원하니 그냥 회심의 어퍼컷도 아니고. 모자 벗겨지는 헛스윙이나, 장외홈런도 아니고. 거포도 아니고 리베로도 아니고.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내가 그걸 좀 많이 봤냐고. 안 그래 이 친구야?」
「늬가 여자의 승부욕을 잘 모르시나 본대. 내가 다 믿는 구석이 있으니까 하는 말 아니야. 어?」
그냥 농담으로 시작했는데 나는 지르지 않으면 안 되는 순간에 직면하고야 말았다. 그러니까 얼렁뚱땅 승부사. 여기서 더 베팅을 지속하다간 톰이 내게 연락을 일절 끊을 거 같고.
하여, 못 먹는 감 찔러나 본다고 나는 최근 급속히 친해진 그녀를 떠올렸다. 여성환상 1.5 편집장 사라!
그렇게 나는 사라를 불러냈고. 사라와 톰을 짝지어준 다음 나는 빠졌다.
3
뜸 들이지 말고 즉각 소개팅 주선자로서 관망의 시선을 밝히자면 이렇다. 둘 다 서로 별로인 듯. 톰도 사라가 별로고. 사라도 톰이 별로고. 아닌데. 내가 봤을 땐 꽤 괜찮을 듯해서 그 둘을 소개해 준 건데. 왜 싫지? 왜 싫냐고? 뭘 그렇게 쟤냐고. 맞춤복 맞출 일 있어? 참 나! 그 말은 곧 사랑이 그만큼 오묘하다는 거 아니야? 그래? 사랑? 사랑이 대체 뭔데.
사랑이란 무엇일까. 처음 보자마자 호감 활짝~ 웃음 빵긋~ 그래서 오빠 오빠! 그게 사랑일까 아닐까. 연애사상 획기적인 혁명과도 같은 1.0 미만이라는 발견. 그게 세상 사람들이 일컫기를 첫눈에 반했다고 부르는 감정일까 아닐까. 아아 내 꺼 하고 싶다 내 꺼 하고 싶다! 홀딱 반했다 홀딱 반했다 오늘도 오늘도! 심지어 임자도 없냐고? 있는지 없는지 그건 관심도 없고. 바로 그런 게 사랑일까 아닐까. 그래 봤자 나도 모르게 이미 불러버렸거든! 사랑이 이처럼 순식간에 꽃필 수도 있는데. 그런 사랑만 있는 건 아니다. 사랑의 시작이 까다롭고 어렵고 미스테리하고. 둘 중 한 명의 여자가 바라는 게 아니라, 실행하는 사랑. 피동적이 아니라 능동적인 사랑. 사랑받기 대 사랑하기. 7 대 3이냐 3 대 7이냐. 아니면 동등하게 5 대 5냐! 그처럼 어중간한 사랑은 뭔가 어떻게 보면 미련하고, 어찌 보면 한결같다. 무엇보다 사랑의 뒤끝은 기나길고 기나길고 기나길다. 말이 많아도 너무 많기 때문에, 귀가 타고 귀에서 피가 나는 것처럼. 사랑의 뒤끝이 (손차양) 차마 보이지가 않는 것이다. 곧 그녀들이 선망하는 사랑은 두 가지로 나뉜다고 보면 된다.
첫째, 사랑
둘째, 정
처음 보자마자 오빠란 말을 들어봤든 아니든. 필자가 보기에 여자의 사랑은 남자랑 다르다. 180도 다르다. 남자는 촌닭과 뱁새와 늑대들은 어떨랑가 몰라도. 우리가 봤을 때 사랑은 1명의 애첩이냐 아니면 99명의 정실이냐다. 앗! 반대로 말했다. 1명의 정실이냐 99명의 후궁이냐. (뭐 999?) 곧 우리에게 사랑은 1퍼센트라는 말. (평균을 말하자면 늑대의 사랑은 가능성 반반). 그런데 여자는? 시작부터 한 수 접고 들어오는 거다. 애초에 시작부터! 호박이 제 발로 굴러온다고. 어디로? 호박 터미널로! 차 떼고 포 떼고 말 떼고, 그다음 게임 시작. 프로가 접어주는 것도 아니고 아마추어가 선심 쓰듯 그렇게 시작하자는데. 그럼 그게 사랑인가 사랑이 아닌가. 아마추어와 프로가 게임이 되냔 말이다. 프로가 차 떼고 포 떼고 말까지 떼도 게임이 될까 말까인데, 그 반대로? (몸짓)! 그걸로도 모자라 사랑이냐 정이냐, 조차 헷갈리고. 중간에 마음이 바뀌고. 뒤끝은 또 그 얼마나 긴데. (절레절레). 사랑의 종류는 또 얼마나 많냐고. 앞면을 보자면 마음 약한데, 뒷면을 보자니 독해도 어쩜 그렇게 독하다니. (절레절레). 정들기는 쉽고 정 떼기는 힘들고! 세상사를 알게 되고 닳아지며 인생을 살다 보면 알게 된다. 첫 단추 끼기가 힘들다 뿐이지, 그다음부터는 고속도로라는 걸. 정들면 아니 정들지 않아도 대면만 자주 해도 불륜 가능성 50퍼센트듯. 사랑이 아름답지 못할 가능성도 반반. 여자 역시 풋사랑을 작정하거나 더티 러브를 예견하면서 시작하기도 하고. 곧 <사랑이냐 정이냐> 그거 먼저 여자는 판단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 냉정할 땐 냉정하고, 마음 약하면 미련한 사랑에 대한 대가는 2배 4배 8배일 수도 있고. 묵과하면 값을 치를 수밖에 없다. 여자는 그렇고 공을 다시 남자 쪽으로 넘겨 보자.
객관적으로 봤을 때 여자에게 남자친구감과 남편감이 약간 다르듯. 그렇듯 남자가 정실감과 맺어졌냐 아니냐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 여자에게 1.0미만─1.0─1.5─2.0의 차이가 결코 사소하지 않듯. 그런데 왜냐! 왜냐하면 다음과 같은 영문 때문. 누군가는 정실다운 정실이면 목숨을 걸고 정실과의 사랑을 지키려고 노력하겠지만. 말 그대로 그 사랑에 최선을 다하고, 말 그대로 그 사랑에 전념하겠지만. 그렇지만 남자가 (꽃과 화병 및 그림과 액자라는 객관성에 비추어) 1.0 미만의 정실이 아니라 1.5나 2.0과 결합했다? 긴말 필요 있나. 결과는 몰라도 가능성은 폭등한다. 늑대와 참새, 촌닭과 촌년이라는 균등함. 그게 아니라 파랑새와 뭐, 팔색조와 뭐. 라는 객관성에 비추어 말이다. 더더군다나 1.0 미만일지라도 거기서 또 나뉜다니까요. 허허. 절레절레. 그러든 어쩌든. 우리에게 사랑은 더티 러브와 찐한 사랑과 풋사랑일 뿐. 뭐? 하여간에 중요한 핵심이 나와버렸다. 제아무리 바람둥이라도 바로 이 지점에서 나뉜다는 것. 즉 1번에 1이냐 아니냐. 딴 여잘 만나도 현재와 끝내고 만나냐 아니냐. 남자는 손가락 까딱할 힘만 있어도 달콤한 과실을 탐내는 것. 통상적으로 남자에게 사랑이란 둘 중 하나.
첫째, 남의 떡이 커 보이느냐.
둘째, 그림의 떡이냐!
(뭐 여자도?)
바로 그래서 천생연분과 플라토닉이 중요하다는 거다. 바로 그래서! 그게 아니면 어차피 여성잡지 2식 사랑이요 현실적 애정일 뿐. 여자 그리고 사랑. 말 길어지게 만드는 구만. 어차피 사랑이 해피엔딩과 동떨어진 결말로 치달을 거라면. 그렇다면 특히 여자. 여자는 그럼 내 맘에 드는 남자를 골라서 호시절이라도 겪어봐야 하는 것 아닐까? 어차피 젊음의 호황과 성 그래프의 구간은 합치하지 않을 테니까. 짝사랑받기라는 애정복은 빈약할지라도 정말 괜찮은 짝사랑쯤은 해 봐야 하는 거 아니냐고. 물론 대충 살자 뭐 그런 말이 아니라. 내 맘에 쏘~옥 드는 남자. 그런 남자한테 꼬리를 흔들고 싶은데, 현실을 보아하니 자꾸 뱁새와 하이에나와 촌닭이 기웃기웃. 뭐 그건 그렇고. 관 두자 관둬. 여자들끼리 여자의 여우짓이 다 보이듯. 꼴 보기 싫은 여우짓이 찬찬히 구분되듯. 남자도 그냥 단순한 흑심과 사랑쯤은 구분되고도 남겠지요. 여기까지. 아니 하나만 더. 내가 아는 오빠의 사랑관이 무엇인지 아시나요? 한마디로 이렇다는 거. (딱)! 쉭──쉭──쉭!
벌레 먹은 사과를 깎아 먹냐, 벗겨먹냐, 날로 먹냐!
뭐, 통째로? 이 냥반 이거 이거 큰일 날 소릴 하시네. 어? 그렇다고 여기서 끝이냐, 하면 뭔가 시원섭섭하니까 새콤달콤 뭔가 약간 껄쩍지근하지 않냐구요. 그래서~ 조금만 더. 진짜로. 금방 끝남. 무엇에 대해서냐면 음 가만있자. OK~ (딱)! 이상한, 참 이상한 만남에 대해서 조금만 더.
<나 사랑해?>라고 단 1번도 남자한테 물어보지 못한 여자. 물론 어디서. <자기야 사랑해!>라고 1번도 프러포즈해 보지 못한 남자. 물론 꽃다발이든 박스만 다이아몬드를 연상시키던 어쩌던. 거짓이든 참이든 7번 정도가 아니라. 그런데 그게 아니라 그 말을 하고 듣는 일을 밥 먹듯이 하는 사람들은 과연 어떤 기분일까. 그렇듯 무덤덤하게 반복되면 사랑한다는 의미의 가치가 증폭될까 아니면 깎일까. 그런 엉뚱한 공상쯤은 이제 졸업할 때도 됐다. 괜히 그분들께서 밖에서는 뻥뻥 터트리며 인기를 한 몸에 받는 그분들께서, 어? 괜히 집에만 들어가면 시무룩 시무룩 갤갤갤 비리비리 연기하듯 아픈 척 그러시는 게 아니니까. 원래 남녀는 말이 안 통해야 정상이니까. 사랑이 싹트며 희망찬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 꽃피는 시절이 아니라. 오래 사귀어보면 알게 된다. 남녀는 일단 말을 섞기 시작하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걸. 남녀가 말을 섞으면 섞을수록 커피포트가 바빠질 만반의 준비를 한다는 걸. 헤어드라이어기는 발동 걸리기 직전. 진공청소기 전성기는 생각도 안남. 말이 통하는 남자? 그거 다 뻥이었음. 다 거짓. 죄다 가짜. 다 뻥. 몽땅 뻥. 뭘 좀 아는 남자? 그녀를 위해, 본능적으로 숙녀 마음을 띄우기 위한 반사신경에 불과. 정말로 그렇다는 말이 아니라. 그게 아니라 그 흔한 사랑을 바로 알자는 뜻. 험한 인생 거친 밀림 야비한 세상사. 물러빠지도록 소심하고 물러터지도록 순진하고. 곧이곧대로 믿고 마음 약해서 거절도 못하고. 험난한 다큐멘터리에서 보호색도 약하고. 장미는 가시가 뭔 줄도 모르고. 세상 물정 어둡고 요령 부족하고. 그러면 안된다는 거다. 그러면 안된다고.
좌우지간 한번 큐피드는 영원한 큐피드다. 물론 이건 웃자고 한 말이고. 한번 패자는 영원한 패자라느니 두더지네 불여우니 뭐니. 뭐든 명암은 있고 동전의 암면 뒷면과 일장일단이 있단 말씀.
4
나는 오늘도 그렇게 카페로 출근했다. 저녁에 말이다.
오늘은 자칼을 키우는 내 친구 윌을 만나기로 했다. 만났다.
「넌 옷이 그게 뭐니? 너 옷 그거밖에 없어? 내가 하나 사 줘?」
「내 옷을 늬가 왜 사줘? 싫어. 됐어. 딱 됐다고. 그러는 넌 그게 뭐니. 늬가 그처럼 이마 깐 모습은 난생 처음 본다. 너한테 올백 스타일이 어울린다고 생각하냐? 늬가 무슨 알 파치노냐? 어? 뭐 영화 대부 찍냐고!」
「그럼 넌 알 카포네냐? 넌 말이야. 그래서 안 되는 거야. 어? 그래서 늬가 나처럼 여자가 발에 채일 수 없다고. 알겠니? 넌 헤어스타일은 잉위 맘스틴인데 헤어스타일만 잉위 맘스틴이야. 알아? 그리고 내가 오늘 널 왜 만나자고 한 줄 알어? 너한테 참한 숙녀를 소개해주려고 했으니까.」
「뭐? 그럼 그렇다고 말을 하던가.」
「했잖아. 방금.」
「흐흠. 허허. 나 같은 스타일을 소개받고 싶단 여자는 흔치 않은데. 정말 흔치 않은데. 누구지? 그 숙녀가 대체 누군데? 그 용안을 뵙는 행운의 날. 설마 오늘이니? 아님 내일! 1주일은 너무 멀다. 너무 멀어. 나 오래 못 기다려준다고. 너 나 알지?」
「어떻게 알았어? (눈짓) (눈썹 위로) 쟤야!」
「뭐?」
후광을 안고서 포니는 등장했다.
그런데 내가 포니를 어떻게 알던 사이더라? 아는 동생들이 한두 명이어야 말이지. 그러니 쉽게 떠오를 수가 있나. 그냥 대충 때려 맞춰서 보면 다 친한 척할 수밖에. 그럼 막 수천 명과 친하게 지내시는 분들은 그분들과 다 어떻게 알아보는 걸까. 그분들도 다 그냥저냥 넘어가는 걸 꺼다. 아님 복잡해서 어떻게 사나. 그러다가,
그렇게 난 또 슥하니 빠졌다. 눈치 없이 계속 구경할 수도 없고. 천하의 말썽쟁이조차 쩔쩔매는 피곤한 스타일을 자처할 순 없으니까.
그런데 말이야, 포니가 혹시 윌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다면? 맞불 작전을 펼칠 것이냐 대리전이 유효할 것이냐. 허당으로 하여금 패배 욕구를 자극하는 먹잇감의 등장. 즉각 내가 대타로? 출연진 누가 정했나 몰라도 나쁘지 않네 라는 말을 듣고 싶은 사람은 따로 있을지 몰라도. 나는 사무실에 가서 <루드비히 반 베토벤의 현악 삼중주 Eb major op.3>을 들으면서 일이나 하기로 했다.
5
단위 기간 대비─수준작? 대작? 유화?─작품량 1위인 빈센트 반 고흐. 어떤 기준으로 봐도 1등은 뭘로 따지든 주로 항상 파블로 피카소인데. 동료 화가 왈 건드리지 않은 분야가 없다며 재수 없는 놈이네 뭐네. 손만 까딱해도 작품인 그분들께서 질투하지 않을 수 없도록. 그런데 사후에 유명해진 거나 앞서 기준이나. 타율을 따지자면 파블로가 빈센트한테 안된다는 점. 아는 사람은 안다. 그러니까 왜 파블로가 빈센트한테 타율에서 졌을까? 그건 아마 파블로가 생전에 유명해졌기 때문일 수도 있으나, 그보다는 파블로가 아니라 빈센트가 비정상이라는 까닭이 훨씬 믿음직스러운 답변이다. 미술가치고 파블로 피카소만큼 성실한 사람을 찾기는, 어쩌면 찾지 않는 게 낫다는 걸 교양인치고 모를 수가 없거든. 때문에 져도 진 게 아니라는 점. 단지 반 고흐가 그림에 미쳤을 뿐이라는 점. 그럼 빈센트는 광인이었을까 괴물이었을까? 뭐, 광마? 뭐, 미친...? 심오한 예술을 논하는데 얼토당토않은 농담이 웬 말! 넘어가고. 그럼 도대체 빈센트는 어떻게 경기당 득점률 1이라는 마의 벽을 넘을 수 있었을까. 그는 정말 어떻게 0점대 방어율이라는 전설을 구가할 수 있었을까. 정답은 요컨대, 천직을 만난 것. 뿐만 아니라 그것도 거의 반 세기나 살아버린 다음에 말이다. 그전까지, 빈센트는 알고 보면 한마디로 그냥 동네 아저씨. 단, 50살이 다 되어 화가라는 천직을 갖기 전까지만. 붓을 잡기 전까지는 10여 개 직업을 전전했던, 우리 주위에 흔하디 흔한, 그렇고 그런 그냥 동네 아저씨. 단, 물감을 만지기 전까지는. 인생 모르는 거다. 직업과 전공은 일치하기도 쉽지 않거니와, 사랑도 모르는 것처럼.
그와 같은 잔지식에 근거하여. 우리는 이 사랑 이 일 이 행복감이 내가 정말 원했던 것인지 아닌지. 그건 몰라도. 딱 몰라도. 그래도 왠지 모르게 소망이 이루어질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감. 적어도 더 심심해지지만은 않을 거라는 막연한 예감. 아마도 바닥을 찍고 걸스카우트 단원 출신 숙녀를 만나, 다름 아니라 꿈에서 만나 야한 꿈을 꿀 것만 같은 기분. 어쩐지 그럴 것만 같다는 느낌. 그런데 뭘 믿고? 법석을 떨고 있네. 누구 맘대로? 내 말이!
그런데 인생은 정말로 모르는 걸까? 오늘 퇴근하려고 사무실을 나섰는데 문을 열자마자 친구 델의 얼굴을 보게 될 줄이야.
「오, 델! 웬일이야?」
「웬일은. 친구를 보고 싶었나 보지 뭐.」
그렇게 우리는 카페로 발길을 옮겼다.
「친구. 나 할 말 있어.」
「뭔데?」
「나 외로워.」
「너가 외롭다고? 난 더 외로워.」
「장난 아니라. 진짜로 고독하다고.」
「진짜로? 난 더 고독해. 너 그거 아니? 나 오늘도 한마디조차 못했다는 거. 오늘만이면 다행이게? 내가 1주일에 정다운 대화를 몇 마디하는 줄 알기는 아니?」
「그럼 오늘도 화장실에서 명상하다가 쿠퍼액 흘러나왔니?」
「쿠, 뭐? 넌 우리 철학적인 대화 중간에, 어? 형이상학적 진보와 낭만적 보수와 이상적 급진에 대해 토론해도 부족헌 마당에, 뭐? 늬가 그러니까 여자가 없는 거야. 알아?」
「알긴 뭘 알아! 네가 전에 그랬잖아. 나 여자 소개해준다고. 그런 말 했어 안 했어? 내 여자 늬가 책임진다며!」
「내가? 내가 그런 말을 왜 했지? 혹시 딴 사람이 그렇게 말한 거 아니니?」
「그런가? 아닌가?」
「날 우습게 보는 거니?」
「너 원래 웃껴.」
「그래?」
「그런데 우리가 뭔 얘길 하는 중이었지?」
「글쎄. 우리끼리 얘기하는데 무슨 주제가 중요하니?」
「중요하진 않지.」
「아니야. 중요해. 무척 중요해.」
「됐고. 친구야. 나 외로워. 어? 외롭다고. 아무튼 똑똑히 들어. 2번은 없으니까.」
「무섭게 왜 이래? 늬가 내 마누라라도 되냐?」
「이 놈의 여편네가,」
「아니 이 사람이,」
「이 양반 이거 이거 허허.」
「이거 이거 뭐? 너 정말 이러기냐? 정말 이러기야? 어? 우리끼리 이러기냐고.」
「정말 외로워? 정말로 외로워? 나 참고 있어. 나 많이 참고 있다고.」
「난 더 참고 있어. 너보다 더 외롭고, 더 훨씬 더 많이 참고 있다고.」
「그래? 그런데 뭘 참는데?」
「어? 야! 갑자기 허를 찌르면 어떡하니? 느닷없이 쑥 들어오면 어떡하냐고. 노크 몰라? 그런데 말이야. 넌 그런 말도 못 들어봤잖아?」
「무슨 말?」
「」
「왜 웃어?」
「뭐 꼭 이유가 있어야 웃니? 인생은 기쁘고 세상이란 아름다운 거 아니겠어? 유행가의 영원한 주제가 뭐니, 사랑 아니겠어?」
「그런데 뭔 사랑. 플라토닉?」
「플라토닉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카페의 음악은 자연스럽게 바뀌었다.
1. 요한 다비트 하이니헨의 칸타타 <장미 주위로 벌들이 날고>.
2. 메탈리카가 카피한 노래 원곡인 삼인조 록밴드 버찌는 아니고. 어쩌다 라디오에서 들으면 반가운 레너드 스키너드.
1에서 2로 말이다. 바텐더한테 우리 중에 누가 제일 돈이 많을 것 같냐 라는 난제를 던질 때. 그때 과연 괜찮은 음악은 무엇일까. 거 참 나 아직도 제일 돈 많을 꺼 같은 남자로 뽑혀서 기분 좋았던 때나 공상하고 말이지. 당시 월급 못 받고 누굴 보필하고 잘 돌아가던 시절. (절레절레)! 그 여 바텐더도 바텐더지. 보는 눈이 그렇게 읎나.
그야 어떻든 나는 윌이 외롭다길래 또 역시나 아는 동생을 불러냈다.
POPULAST 집안 딸내미인 마리온은 마침내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부르자마자 달려 나왔다.
미지의 세계로 우릴 데려다 줄 환상머신을 만들려다 오늘도 딴청 피우느라 정신없는 미래파 칼럼니스트.
나는 그렇게 어깨가 축 쳐진 채 쓸쓸히 집으로 갔다. 큐피드는 무슨 재미 하나도 없구만 그래, 라는 혼잣말을 내뱉으며.
6
나는 헛된 큐피트 생활에 종지부를 찍기로 했다. 왜냐하면 애들 반응도 시큰둥하고, 성과도 그만그만하며, 보람도 없었기 때문이다. 지들 짝은 지들이 찾아야지, 나 심심하기도 바쁜데 지들 행복을 왜 내가 책임져! 무엇보다 옛말에 이르기를. <중매는 잘하면 술이 석 잔이요, 못하면 뺨이 석 대>라고 하지 않나. 최소한의 기준선을 만족한 친구들을 소개해줬기 망정이지. 내 친구처럼 이모가 결혼 상대로 소개해준 여자와 그날 만나자마자 별을 따는 일. 결혼을 약속하는 의미이자 실제 금슬 좋은 부부로 길이길이 행복할 커플이 아니라면, 그래서는 아니 될 일. 그와 같은 제비를 아는 동생한테 소개해줄 수는 없고. 하이에나도 거르고. 뱁새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남자만 까다롭게 볼 수 있나. 여자도 남자 귀를 태울 여자인가 아닌가. 아예 정숙하거나 아니면 시원시원하거나. 그게 아니라 이도 저도 아닌 그 뭐야, 줄 듯 말 듯 애태우기만 하는 재수 없는 암캐까지. 그런 분들도 다 사람 봐 가면서 쥐락펴락하는 거다. 애초에 딱 봐도 구미호네 의전녀네, 초반에 대번에 눈치채면? 차면 그만! 우리는 초장에 끝내고 만다고. 나는 사랑 아니고 너도 사랑 아니고, 안녕. 어쨌든 남자만 까다롭지 않겠죠. 여자도 마찬가지. 싸움닭인지 수다쟁이인지. 착한가 착하지 않은가. 따질 거 많고 내게 돌아오는 개이득도 없고. 재미도 없고. 염세주의에 대한 애착심은 부쩍 상승하는 거 같고. 희망찬 미래에 대한 기대감은 멀어져 가는 듯하고. 고심은 어느새 쥐도 새도 모르게 나를 자꾸 뒷골목 후미진 술집으로 이끄는 분위기고. 이건 아니다. 이건 아니라고. 나는 뭔가 변화와 새로움을 갈구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7
핀란드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남성은 사업 때문에 집을 나서고, 여자는 남에게 보이기 위해 외출한다. 필자가 그렇게 말한 게 아니라, 어디 속담일 뿐이란 말이다. 그럼 남자는 3D 1인칭 게임이고, 여자는 2D 2인칭 게임이란 말인가? 천동설처럼 2D로 난 가만히 제자리걸음을 하면 전체 화면이 움직이는 것처럼? 그럼 모든 게 내게 최적화되어 돌아간단 말이잖아! 그런데 이런 이치를 논하면 또 여자들 싫어하는데. 여자는 남자한테 잘 보이기 위해서 화장을 한다, 라는 말에 그 얼마나 발끈하냐고. 전 세계 여자들이 아주 그냥 대동 단결하는데. 그렇지만 찬찬히 이치를 따지고 보면 왜, 어떻게 그거 다 나뉘지. 칼럼에다 빼도 박도 못하게 결론은 이미 내렸고. 그래도 숙녀를 우리는 아껴야 하는 것. 위해야 하는 것. 찬미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 그래서 정작 그녀들을 변호할려는데 그러는데. 그러다 아아 이거 안 되겠다, 라며 나가떨어지면 어떡하냐고. 그럼 여자가 4D, 5D...로 진화하려면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그럼 다시 한번 속담을 인용하면 된다. 자, 무엇을 예로 들까. 옳지 그게 좋겠다. 체코슬로바키아,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분리되기 이전에 만들어진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추켜세우는 자는 팔기를 원하고, 깎아내리는 자는 사기를 원한다. 어떤 여자가 미인인가 하면 여자들 평가에 귀기울여 보면 된다, 뭐 그 말인가? 여자들이 여자를 볼 때 칭찬하면 그만그만이요 심하게 깎아내리면············ 쉿! 여시 같은 년이네 불여우 같은 년이네. 남자한테 꼬리 치며 여우짓하는 저, 저, 저... 쉿! 여자 편들려다가 매만 벌고 말았군 (절레절레). 허허.
그럼 정말 그녀를 위하려면 어떡해야 하냐고. 겉으로 아끼는 척 위하는 체, 의전에 예우에 레이디 퍼스트! 그거 다 뻥인데? 진짜로 어떡해야 하냐고. 어떡하긴 뭘 어떡하겠나. 게임에 나오듯이 장비, 조수, 애완견, 마법사일 것인가 사랑의 바보일 것인가 선택하면 그뿐. 달리 어쩌겠나. 사랑이 인생의 전부라는데. 아니면 뭐 시집가? 나 할 일 있어 할 거 있다고, 라면서 흥분했던 여대생 4학년 언니가 기억나네 또. 어쨌든 우리가 그녀들처럼 수다 3시간을 실천할 수는 없으니. 따라서 남자는 집에 있으면 안 된다, 우리는 무조건 밖으로 나가야 한다. 그래서 NB는 무작정 바깥으로 나갔다.
뭐야, 그런데 갈 데가 없네! 오란 곳은 없어도 갈 곳은 많다, 라는 격언을 따르기도 이젠 지친다 지쳐. 갈 데는 많아도 오라는 곳은 없다, 라면서 재미없음을 합리화하기도 힘 빠진다 힘 빠져. 그럼 이제 어떡한담?
어떡하긴 뭘 어떡하나. 아쉬우면 동네 친구지. 만만한 게 동네 친구 핀 밖에 더 있나. 핀뿐이 없지. 그럼. 그런데 핀은 뭐하는 작자였더라? 그야 그건 핀의 인생이고. 내가 뭐 핀의 마누라도 아니고. 알게 뭐야!
그렇게 나는 핀을 만나러 갔다.
핀을 만났다.
「너 저번에 했던 말 기억하지?」
「무슨 말? 리무진? 리무진 빌려달란 거? 혼자서 어디 가게?」
「바다 보러. 왠지 답답해서.」
「혼자? 궁상맞게 그게 뭐냐! 같이 가자. 까짓 껏 안될 건 뭐니. 오늘 일은 내일 하자, 주의는 아닌데. 오늘 마침 비번이지 뭐니.」
그렇게 해변까지 가는 길.
리무진 안에서 우리는 할 말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몇 마디 나누긴 했다. 우리가 내외하는 사이는 아니니까.
「요즘 어때! 어떻게 살았니?」
「나? 뼈 빠지게 일해도 알거지지 뭐. 그러는 넌?」
「나도! 그래도 입에 풀칠은 해. 숨만 쉬고 사는 것 같아도 나름 쾌락마도 타고.」
「그런데 있잖아. 뭘 해도 재미없는 내가 이상한 걸까?」
「알면서 왜 그래! 허허. 농담이고. 남들도 다 그래. 그렇지만 겉으로 아닌 척. 재밌는 척. 잘난 척할 뿐이라고. 알잖아?」
「몰라. 남들 생각을 내가 어떻게 아니. 내가 날 사랑하기도 바쁜데. 내가 남들을, 수많은 여자들 그 여심을 사랑하기에도 버거운데.」
「잉? 너, 설마, 여자 생겼니? 그런 거니?」
「어떻게 알았어? 얘가 얘가 가만 보면 눈치 하난 끝내준단 말이야. 아아 못 당해. 못 말린다고. 여간 해야 말이지.」
「정말로 사랑에 빠졌어? 그런 거야? 장르는 뭐고! 연한 사랑 아니면 찐한 사랑. 벌써, 지렸니?」
「벌써, 뭐? 그런데 어떻게 알았어! 농담이야. 그런데, 설마 너도?」
「뭐 너도? 넌 지렸네. 난 아니다. 응? 난 아니라고.」
못 말리는 대화. 재미 하나도 없었다.
우리는 바닷가에 도착했다.
그런데 할 일이 없었다.
「우리가 여기 왜 왔을까?」
「비수기인가 보지 뭐.」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어 2시 방향.」
「어디? 어디? 이 자식이...!」
「아아 성가신 애인도 없고 귀찮은 약속도 없고.」
「그러니까, 껀수?」
「아 맞다.」
「뭐가?」
「너 여자친구 생겼다고 하지 않았니? 나 내려주고 넌 여자친구 만나러 가는 게 어떠니?」
「(딱) 그러지 말고. 같이 가자. 셋이 같이 놀게.」
「예전이라면 몰라도 이젠 빈말에 안 넘어가기로 했어. OK? 노땡큐라고.」
「빈말 아니야. 나도 믿음직한 친구를 보여주고 점수도 따고. 일석이조. 꿩도 보고 뽕도 따고. 응? 이보다 더 합당한 명분이 더 필요하니? 아직 난 걔한테 믿음직스럽지 못하다니까 그러네.」
「그래?」
우리는 도시로 떠났다. 나, 핀 그리고 핀의 여자친구. 이렇게 셋이 함께 놀기 위해서.
8
우리는 만났다. 카페에서. 굳이 핀이 거길 고집했다.
나, 핀, 핀의 여자친구인 크리스티. 그런데 어떻게······! 크리스티는 피앙세와 느낌이 완전 비슷했다.
「내 여자친구 못생겼지?」
「날 먹이는 거니? 그런 말 해도 되는 상황과 아닌 상황이 있다는 거. 잘 알잖니. 날 맥이는 거네. 그러네.」
「미안. 그런 말 나도 꼭 한 번 해 보고 싶었거든. 하고 나니 속이 다 후련하다야. 아주 그냥 속 시원하다고. 허허허.」
「넌 그 말이 그렇게 하고 싶었니? 사람 참 특이하구만 그래. 별의별 소망을 다 보겠어.」
「그런 말 들을 수 있는 사람도 역시 정해져 있다는 거, 나라고 왜 모르겠니. 그런데 있지 자기야, 다음엔 그 말을 어떻게 해야 나도 한번 들어볼까. 뭐 그건 차차 생각하고. 어쨌든 그럼 이제 난 그만 빠질게. 재밌게 보내. 행복한 저녁. 아름다운 밤. 갈께. 크리스티양. 다음에 봬요. 안녕.」
「야. 가긴 어딜 가?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나 약속 있어. 일도 있고. 바쁘다니까.」
「바쁜 거 좋아하시네. 너 한가한 거 다 알아. 마라랑 사라한테 다 들었어. 이거 왜 이래? 형편 뻔한 거랑 포크가 주방 어디에 있는지, 에로비디오를 언제 마지막으로 봤는지. 사귄 여자들 하며 좋아하는 여성상까지 훤히 꿰뚫고 있는 우리끼리. 어? 이러기야? 아 그리고 하나 더! 아까 바닷가에서 했던 말. 얘가 내 여자친구라고 했던 거. 그거 뻥이야. 아 진짜로. 얜 내 사촌 여동생이야. 크리스티. 너가 뭔가 물증을 보여줘. 핸드폰으로 소셜 네트워크라도 보여주라고.」
바로 그때 카페 음악은 거짓말처럼 바뀌었다. 바로, 헨델의 오라토리오 <삼손>(Samson) HWV57 중 아리아 빛나는 세라핌.
「정말...이야?」
「진짜라니까 얘가 속고만 살았나.」
「진짜예요 오빠. 오빠야! 그리고 하나 더. 제가 오빠 소개해달라고 핀한테 졸랐거든요. 이건 비밀로 해야 하는데 어쩌지? 벌써 말해버렸네.」
설마 진짜야?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속았거나 아니면 괜히 들떴거나. 그래서 나는 사람이 이상해졌다. 어떻게? 진지한 말 상투적인 말 결론 없는 말, 무엇보다 엄~청 길고 긴 화법을 참고자 하는 기인으로. 질문자를 즉각 후회하게 만드는 다변가의 성미란 바로 그런 것인데. 나도 모르게 그처럼 바뀌어서 뭔 말을 꺼낼까 말까 망설이고만 있었다. 뭐랄까 그럴싸한 플레이보이로서 자존심 상하는 일일 수도 있는데. 그런데 난 마치 12살 소년이 되어버린 것만 같았다. 왠지 모르게 크리스트의 눈매에 빠져버렸다고나 할까. 정말로. 까딱하다간 그녀한테 홀딱 반해버릴 것만 같았다. 아니 이미 반해버렸나? 설마 피앙세가 얘로 변신했을 리도 없고. 그렇다고 미래의 마누라를 애물단지 취급할 수도 없고. 무엇보다 나는 의리맨이고. 뭐, 예스맨? 그럼 이제부터 암호명은 무엇일까. 암호명 같은 소리나 하고 자빠졌네. 웬 뚱딴지같은 소리나 하고 자뿌라지지 말고. 가던 길 가자면. 그런데 바로 그 순간. 핀은 놀기 좋아하고 첫눈에 반하기에, 마침내 이골이 난 걸까? 드디어? 왜냐하면 먼저 간다고 했기 때문이다. 진짜로 바쁜 일이 있다면서.
그렇게 핀은 갔다.
핀은 갔다고.
대체 몇 가지 감정이 뒤섞였을까. 일단 핀이 야속하기도 하고 녀석한테 고맙기도 하고. 그렇다고 앞에 계신 숙녀를 어떻게 한다...? 아 어떻게 한다 하고 싶다 라는 뜻이 아니라. 그러니까 아까부터 달콤한 바닐라인지 시나몬 향이 느껴졌다 그 말이다. 설마 나는 「넌 너 밖에 몰라.」 라는 말을 들어도 싼 소년인가? 그걸 누가 궁금해하겠나. 알게 뭐라고.
「오빠. 저 알죠?」
「예? 알긴요.」
「네? 왜 오빠 높임말 써? 우리 말 놓기로 했잖아. 그랬잖아.」
「어? 어. 어. 그렇지요어. 예~~어. 응. 응? 응.」
「오빠. 내가 재미난 거 보여줄까?」
그러면서 그녀는 내게 일기장을 보여줬다. 거기 쓰인 내용을 일부만 발췌하자면 이렇다.
여자세계의 1군 2군 법칙. (뭐 1군 2군 법칙?)
여자세계 1군 2군 법칙이란 무엇인가.
- 1군: 1군이 적극적이고 활동적이면 지지를 얻고 인기를 받어. 호감이 구해진다고. 전폭적인 응원이든 열렬한 갈채던 잔잔한 관심이던. 크고 적다 뿐이지 전체적으로 반론은 없지. 좋아하니까. 바라니까. 기다렸으니까. 그리우니까. 그런 반면 1군이 소극적이고 순진한 선녀다? 그냥 1군. 그런데 그런 1군이 뭔가 어째 좀 나댄다거나 아가씨들 사이에서 12살이요 십대들 무리에서 5살이다? 그냥 치부하고 만다. 쟤 좀 상태가 안 좋나 보다 라고. 소심녀든 맹녀든 1군은 1군. 준치는 썩어도 준치이듯.
- 2군: 정력적인 활동력은 왕성하지만 중간은 간다, 끼리끼리. 뭘로 봐도 보통, 역시 끼리끼리. 그런데 2군으로써 아가씨들 사이에서 12살이요 십대들 무리에서 5살처럼 나댄다? 설친다? 빨빨거리고 기웃거린다? 암컷 싸움닭이다? 누가 제지해도 제지한다. 남자는 몰라도 여자는 그 꼴 좋게 봐 넘길 숙녀는 그리 많지 않다는 것. 남자는 몰라도 여자는 안다. 모를 수 없으니까.
「별로 재미없지?」
「푸하하하. 허허허. 호호호. 재밌어. 웃기네. 즐겁다고.」
「오빤 거짓말도 못하네. 여자 마음 설레도록 할 줄 모르는 거 같진 않은데. 내가 마음에 안 드는 건가. 그럼 있잖아. 내가 더 재미난 거 보여줄까?」
그러면서 크리스티는 가면을 벗었다.
드라마에 나오듯 초정밀 얼굴 가면. 그걸 크리스티가 벗었다고.
나는 영화에 나오는 가면은 말 그대로 드라마나 영화에서만 봤지 실제로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와~! 그런데 이게 누구야? 아까는 크리스티였는데, 아직 친해졌는지 긴가민가했지만, 지금은 사라였다.
여성환상 1.5 편집장 사라. 목소리도 본래대로 돌아왔다.
「아 이제 살겠다. 너 한번 속이려다가 입 돌아가는 줄 알았다야. 아주 혼났다고.」
「깜짝 놀랐잖아?」
「뭐 깜짝? 별로 놀란 눈치가 아닌데. 어때. 속으니까 좋니? 너도 나 저번에 한번 속였잖아.」
「내가? 내가 언제!」
「아니라고? 그럼 너 아닌가?」
「됐고. 정신 나간 사람처럼 그리 날 빤히 쳐다보지 말고. 수상쩍다 그러지 말라고. 정들게 왜 이래? 막 가자는 태도야 뭐야! 그러지 말고. 우리 편집장 모임에나 같이 가자. 딴 애들은 다 지들 남자친구 데려오는데. 난 데려갈 애가 없잖니. 실한 놈 어디서 당장 물어올 수도 없고. 넌 낚인 거야. 나한테 말린 거라고. 그러니 이왕 감긴 김에 갈 데까지 가자. 어? 뭔 으름장이 더 필요하니. 아무려면 어떻습니까. 네? 너도 심심했잖아. 아니면 시내 가서 여자라도 꼬실 거야? 어이 플레이보이 양반. 이제 그만 허당계에서 졸업해. 우리랑 놀게. 잘해 드릴게. 팬클럽 못지않도록, 어? 사심 없이, 좋아해 드린다고. 자, 가자!」
그래서 나는 얼렁뚱땅 편집장 모임에 따라가게 됐다.
9
파티장에서 어땠냐고? 말도 마시라! 분위기는 괜찮았는데. 그런데 사라가 가면을 한번 더 벗었다. 곧,
크리스티 → 사라 → 크리스티!
뭐 하자는 건지 참 나.
뿐만 아니라 미녀들은 다 짝이 있었고. 심지어 크리스티는 엄청 취해서 추태를 부렸다. 날 가지겠다나 뭐라나.
형세를 보아하니 파티도 더럽게 재미없었다. 성과도 없었다. 괜히 따라간 거다. 아울러 크리스티가 사라인지, 사라가 크리스티인지.
속는 거라면 이젠 이골이 났다. 크리스티가 아주 못생긴 건 아닌데, 어중간해가지고 말이야. 딱히 벌레 먹은 사과과도 아니고.
아무튼 곱지 않은 눈초리로 찍히기도 싫고. 끈적끈적한 시선이네 유들유들한 넉살 넘치는 말발이라는 둥. 능글맞은 칼럼니스트로 판명되긴 뭐해서 나는 혼자 조용히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렇다고 달리 갈 곳이 있나. 만취한 크리스티는 친구들이 챙겨주던가 말던가.
그렇지만 걔가 날 좋아하니까... 아니야 아니야. 우린 처음 만났잖아? 게다가 난 이미 좋아하는 사랑이 있고. 아니야 아니야.
괜히 헛된 공상 때문에 뒤가 켕기는구먼 그래.
이 몹쓸 놈의 흑심. (절레절레). 반복된 패배감의 잔재. 하지만 건강한 애정이 뭐가 나쁘다고. 어쨌든 정체성을 잊어버린 선망은 갖다 버리기로 했다.
질척 질척한 심심함을 떠벌리고 구질구질한 재미없음을 부풀리기, 도 이젠 흥미 없으니까. 뻥도 재미없고. 졸지에 허풍마저 더 재미없어져 버렸다.
에잇~ 괜히 좋다 말았네. 처음부터 재미없으면 말이라도 안 하지. 전개로 넘어가려다가 꽝. 그래서 나는 당분간 크리스티와 거리를 두기로 했다.
아직 친구라도 부르기도 애매하고 말이다.
10
사람들은 무작정 K.309 C장조 소나타를 Vlado Perlemuter처럼 내가 연주하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기도 하다. 그렇지만 어차피 불가능한 것 이왕 돌아갈 수 없다면. 그래서 시점을 좀 더 구체적으로 따져보자면 아마도 사랑에 빠질 찰나가 더 그리울 수도 있다. 뭘 해도 재미없었던 스무 살도 괜찮고. 그러니까 광마이자 광견에 내 광기를 어디에 쏟아부어야 할지 몰랐던 철부지 시절. 헤어스타일만 헤비메탈. 그렇게 10년 경과. 그러던 어느 날. 왠지 좋은 숙녀. 어딘가 끌리는 아가씨. 어쩐지 얠 평생 사랑할 것만 같다는 느낌. 두근두근 떨리며 벌렁벌렁 들뜨다가. 그러다 마침내 마음은 뭘 해도 붕붕 둥실둥실 떠다니던 그때. 그렇지만 사랑이 식지 않았다면. 아니 보고 듣고 먹고 뭘 해도 할 수 있는, 몸만 썽해도 행복한 지금도 썩 나쁘지는 않은 것. 공상도 지겹고 뭘 해도 재미없고. 집 사무실 집 사무실. 공부하지 않아도 되는 어른이 됐는데. 그런데 권태는 지긋지긋하고 일은 해야 하고. 뭐, 말이 그렇다고 거고.
그렇게 오늘 하루가 시작되어 나는 갔다. 어디로? 어디긴 어디겠나. 사무실이지. 운명적인 사랑이고자시고 일이나 하자라는 듯이. 마음을 빼앗겨 사랑의 포로가 되어버렸다는, 애정에 관한 몽상이 기껏 찐한 사랑에 대한 기대감이라니 (절레절레). 아니야. 아니지. 옛날 넷이서 스키 타러 갔을 때 밑간 된 고기를 조물조물─오물오물─주물럭주물럭 반죽하고 있을 때
「(허들 제자리 뛰기) 오빠. 내가 내가 아무나 좋아하고─이 부분은 잘 생각이 나지 않아 편집됨─그런 줄 알아? 뛰어갔다 와야지. (뛰어갔다 온 다음) 꺄악. 으윽. 오빠 지금 느껴!?」
뭐, 느껴? 느끼긴 뭘 느껴! JS 기억나지? (절레절레) 막대사탕 하나 선물 받았다며, 이러니까 우리가 오빠를 좋아하지! 드라마 CSI를 즐겨 본다던 그녀. 처음 만났을 때 립스틱 바르는 모습을 보여주거나, 팔짱 끼는 시늉을 하면 100퍼센트인데. 마치 그처럼 계속~ 직진. 내내 직진. 끝까지 직진. 특히, 얼굴! 옆에서 보면 코끝과 입술과 턱끝 라인이 완전한 직선. 어느 각도에서 봐도 흠 하나 잡을 데 없는 얼굴. 말상인 동시에 개상. 태어나서 그런 관상은 한 번도 못 만나봤는데, 제 발로 굴러온 호박 넝쿨이야 뭐야. 물론 약간 완전함에 미달하는 각도도 찾으면 있겠지만. 이미 처음 만나기도 전에, 미니홈피 사진만 보고도 홀딱 반해버린 얼굴. 내가 바로 그 얼굴을 그 얼마나 좋아했는데. 좋아하는데. 길이길이 사랑해 줄 건데. 얼굴 얼굴 또 얼굴. 밀로의 비너스상이랄지 유명한 고대 석상과 명화를 보면 대부분 거의 직선인 경우가 참 많다. 코끝부터 위로 이마 위 머리카락까지 거의 직선. 그런데 JS는 반대로 코끝과 입술과 턱끝이 측면에서 보면 완전한 직선. 완벽한 직선. 이마는 오똑. 그리고 입체형. 아아, 아찔 아찔 잘생 잘생! 그러니 천상천하 유아독존으로 숨어살 수밖에 없지. 얼굴 얼굴 또 얼굴. 그런 얼굴이 바로 길에서 할머니를 마주쳐 지나가더라도, 대번에 뒤돌아보게 만드는. 단박에 입이 벌어져 감탄하게 만드는 바로 그런 얼굴이다. 그게 아닌 경우를, 여자 다루는 기술이 출중한 남자가 말하기로, 젊음에 기인한 아름다움이라고 하는 것. 포장이 나쁜 거도 아니고, 젊음은 빛나는 것이지만 미학과 의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예술로 구현한 작품들을 보시라. 그 수많은 명화와 대리석들! 완벽하고도 완벽한 황금비에서 벗어나는 건 별로 없다. 너무 멀리 가버렸네. 다시 돌아와서.
남녀의 연애에서 단, 그건 있다. 사랑학에서 처음 만나 립스틱 바르는 모습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건 하수. 말하자면 코앞에서 직접 보여주는 건 50점이요, 거울을 이용해 앞모습과 뒤-측면-전면부를 동시에 보여주면 효과 만점. 그대여 기억하시나요. 그처럼 영원히 직진. 사랑이란 당신 표정을 속속들이 훔쳐보는 것. 잠자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은데 그렇게 됐다 치고. 렘수면 과정부터 지켜보다가 눈을 뜨면 눈빛 마주친 다음 시선 피하기. 시간과 일생 관계없이 변함없는 그런 애정. 호전적인 싸움닭처럼 직접적이지도 않고. '할 말 없지?'라며 사랑의 전의를 뚝 떨어지게 만드는 허영심의 바보 형극과도 거리가 멀고. 여자가 생색내는 거 싫어하듯. 그렇듯 남자 플레이보이는 못난 허영심이 얄팍한 여우짓과 결합하는 걸 아마도 좋아하지 않는다. 어쩌면 상남자 늑대 어느 이상은 보통 싫어할 테고. 하이에나가 들끓어 외톨이를 고집하는 맹녀라면 몰라도. 그게 아니라 날파리 끓는 걸 인기로 착각하며 전적이 유난스럽던 영심이라면 말이다. 그런데 이게 다 언제 적 회상이야 (절레절레). 진실은 어린 아이나 바보가 말할 수 있다는데, 내가 말할 수 있는 진실이란 고작 이런 건가? 그러든가 말든가.
됐고. 일이나 하자.
자, 보자. 가만있자, 허허. 오늘은 왠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네?
그렇게 얼렁뚱땅 해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기울었다.
그러므로 일과는 마감됐고 약속은 없고. 그래서 나는 단골 카페로 향하는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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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카페에 도착했다.
손님은 없었다. 아직 손님이 없었기 때문인지 마담은 이런 노래를 듣고 있었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12번 A장조 K414.
그리고 어딘가에서 가장 순한 치즈향이 풍기길래 그게 피자 향인지 빈티지 와인과 어울리는 숙성치즈인가 궁금해졌다.
잠깐. 빈티지 와인? 차라리 싸구려가 나을 수 있다. 게다가 빈티지라고 해 봐야 100퍼센트도 아니다. 어디 쪽은 75퍼센트 어디쪽은 85퍼센트던가. 그 이상 함유되면 그걸 빈티지라고 하니까. 이를테면 1972년 산 이름 길다란 포도주? 1972년산 포도가 90퍼센트 들어있으면 많이 들어있는 거다. 심지어 전문가들도 눈 가리고 아웅 하면 속이기에 재밌어진다. 내가 꼭 그걸 못 먹어서 그러냐, 그렇다. 먹고 싶은데 그림의 떡이라서 그러냐, 정말 그렇다. 농담이고. 재미없는 잡담 그만하고.
어쨌든 내가 무슨 천진난만한 소녀나 청순한 숙녀도 아니고. 마담은 날 애청자요 시청자이자 팬클럽쯤으로 여겼을까? 마담과 바텐더와 웨이트리스 그렇게 1인 3역을 쥐락펴락하는 그 여인네는 날 잡자마자 아이구야 잘 걸렸다! ~라면서 마침내 내 귀에서 피가 나도록 만들었다. 그렇게 난 귀가 타고야 말았다.
그 별책 부록이 도대체 무엇인지. 기왕 이렇게 된 거 솔직히 그분께 들은 얘기를 옮겨보자면 이렇다. 길지 않다. 금방 끝난다. 단 몇 마디만. 진짜로 단 몇 마디만. 여자로 빙의해서 몇 마디만 들은 걸 그대로 옮기자면 이와 같다. 들은 그대로 토시 하나 안 틀리고 옮기자면 이와 같다. 이마도 진짜로 길지 짧을지는 미리 장담하긴 뭐하니까 일단 문단을 띈다. 벌렁벌렁 벌써부터 손에 땀이 쥐어지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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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담의 연애사 고백은 칼럼 <로맨티스트의 연애관>으로 따로 묶었다. 내용이 만만치 않고, 지금은 기승전결을 이어가야 하니까.
단지 그 속죄록인지 수기인지 인생론인지를 한 8시간 됐나? 내내 들었다는 점만 알고 넘어가자.
자, 그렇게 마담의 얘기는 끝났다. 드디어 끝났다. 마침내 끝.
························끝························!
드디어 끝났다. 마침내 끝났다고. 속이 다 후련하다. 속 시원하다. 캬~! 뿅 갔다. '뿅 간다 뿅' 게임 중에 콜라 몇 캔 연속 먹고 피 토하는 기분이다. 귀는 이미 타버렸다. 귀에서 피가 났다고. 허를 찌르고 속는 정도가 아니라. 그게 아니라 귀가 타버렸고 귀에서 피가 나버렸다고. 물론 이 긴 얘기를 어찌 한두 시간 만에 할 수 있겠나. 그날 마담은 단골이 멋져 보였겠다, 이미 점찍어뒀는지도 모르고. 발동 걸렸겠다 탄력 받았겠다, 가게 문 일찍 닫고. 카페에서 밤에 서로 술 마시며 얘기하고 얘기하고 얘기하고. 일방적으로 얘기 듣고 얘기 듣고 얘기 듣고. 남자들 그 기분 아실 거다. 이 여자를 오늘 어떻게 한번 해보려고 하는데, 오늘 당장 얠 자빠트려보려고 하는데. 그런데 여자가 말술! 뭐? 포기해도 일찍 포기하는 게 낫다는 거. 어느 남자께서 모르시겠나.
························절레절레························!
~라는 마담의 넑두리? 여-바텐더의 육성 고백? 숙녀의 이실직고? 사극에 나오는 죄인의 자백? 못 말리는 말괄량이의 원맨쇼야 뭐야! 뭔지 몰라도 두 가지는 분명했다.
첫째, 우리는 친구가 됐다. 안 그럴 수 있겠나!
둘째, 주객전도. 그야말로 손님과 주인이 바뀐 거지. 바뀐 거라고.
안 그럴 수 있겠나. 처음부터 내가 마음에 들었으니까 자기 인생 얘기를 참 많이도 털어놓은 거고. 여자는, 웃으면, 끝이라니까 그러시네. 우리는 누구든지 만나면 만나자마자 친해진다. 특히 여자! 첫인상부터 만나자마자 오빠라고. 언제부터고자시고 그런 거 없다. 보자마자 오빠라니까 우리는. 아무튼 마담 이름은 RUMER ROSE. 뭐 R2? 이니셜 더블은 1900년대 초중반 만화영화에서나 유행했는데 난 복고풍 구닥다리야 뭐야? 구식 탱탱 묵은 1.5냐고 뭐냐고. 나 갖기는 어중간하고 남 주기는 아까운 그런 남자가, 바로 나? 인기 없는 늑대와 뱁새와 하이에나 입장에서야 그게 얼마나 부러운 역할인지 말도 못 하겠지만. 왜? 말을 하면 자랑질이고 말을 안 하면 어복─여복─돈복─행복등은 몰라도 몸만 썽해도 축복이라는 고마움을 모르는 거고. 그럼 자랑을 해도 문제고, 너무 겸양 떨면 그게 더 재수 없다고 하고. 뭐 어쩌란 말인가. 나보고 어쩌라고요! 농담이고. 말이 길어졌는데 넘어가고.
친밀한 우정은 은근한 사랑의 가능성을 껴안고 시작. 사랑과 우정 사이의 그 은밀한 긴장감. 내일의 더티 러브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낭만적인 로맨스 감성의 도전욕? 불끈불끌! 일단 루머와 친해졌으니. 나중 어떤 남자를 소개해줄지 아닐지. 일단 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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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팬이 뜨겁다고 뛰다가 불 속에 빠진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 전자의 격언에 따라 신중할 것이냐, 아니면 후자처럼 베팅해야만 할 최적의 시점인가. 그런데 프라이팬? 프라이팬 하면 어렸을 때 동네에서 개구쟁이 3인조. 그중에 막내의 엉덩이가...... 뭐야 또 더블에스! 어떻게 매번 결론은 그쪽이라니, (절레절레). 초등학생 1 때 짝꿍 더블에스의 지적질. (걔도 풀네임 이니셜이 더블에스). 초등학생 2 때 같은 반 더블에스의... (절레절레). 바르다 발리다, 들볶다 들볶이다, 닦달하다 닦달-당하다, 밀고 당기다 밀려지고 당겨지고. 쥐락펴락을 하냐 당하냐의 차이처럼. 그처럼 의도적으로 고의로 본 것이 아니라 얼렁뚱땅 봐 버린 장면. 들어버린 명대사. 동심에 각인된 이브의 무엇. 아아, 더블에스 더블에스 더블에스. 더더군다나 1층 SS 목욕탕─2층 SS 여자 독서실─3층 SS 남자 독서실까지. 것까지 더블에스자나? 젠장!
이와 같은 사연을 팬클럽 회장 롭은 도대체 어떻게 알아버린 것일까. 무슨 일인고 하니 그건 바로 별장 더블에스를 롭이 NB에게 소개한 것이다. 그는 몹시 흥분할 건수도 없고, 매력 만점녀도 묘연하니. 그래서 솔직히 말하자면 부러워하고 싶다는 속마음의 남자, 유혹하며 밑밥을 까는 여자. 전자와 후자로부터 잠시 떨어져 자기 혼자 명상의 시간을 갖고 싶었을까? 그러든가 말든가.
분위기 처지기 전에 그는 곧바로 출발했다. 별장 더블에스로 말이다. 무슨 술집 이름도 아니고, 뭐? 무슨 그런 자주적인 선망 같은 이름을 다 보네. 가서 헛다리 짚든 보물을 물어오든. 더 이상 말은 필요 없었던 것이다.
영차영차 영차영차 영차영차
영차영차 영차영차 영차영차
영차영차 영차영차 영차영차
아자아자 아자아자 아자아자
나는 별장 더블에스에 도착했다.
그런데 주소지는 맞는데 더블에스가 아니네? 롭에게 전화했다.
「롭. 더블에스란 별장이 없는데?」
「없다고? 아 맞다. 거기 없어졌어.」
「뭐?」
「원래 전개는 그렇게 시작되는 거야. 작가 양반. 게임은 지금부터라고.」
그렇게 롭은 지 할 말만 하고 뚝 끓었다. 뭐야? 얘도 내 여편네야 뭐야? 지 할 말만 하고 뚝 끓어버리기. 남편들 머리에서 스팀 푸쉬쉬쉭~~~!
그래서 나는 하는 수 없이 근처에 아담하고 그냥 그런대로 괜찮은 별장에 들어갔다.
별장 이름은 다스 칼튼. 다스 칼튼? 그러거나 말거나.
그때 루머에게 전화가 왔다. 루머? 아, 카페 사장 루머. 말 더럽게 많은 숙녀. 하룻밤에 만리장성을 쌓은 그녀. 그렇지만 잠은 자지 않고, 그럴 수도 없고.
「뭐해?」
「너 마누라 흉내내기 하니?」
「너야말로 영감탱이처럼 왜 그래?」
「내가?」
「그래. 뭐하냐니까. 오늘 약속한 그날이야. 공연 보러 가기로 했잖아. 3인조 무명 락밴드 공연. 설마, 약속 까먹었니?」
「아니. 금방 갈게. 가서 전화할게.」
나는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 장장 5시간 아니 한 8시간 연속으로 수다를 들었으니. 중간에 막 졸면서 술 마시면서 화장실 가서 찬물로 세수하고 어쩌고. 그 중간에 약속까지 했나?
그야 어떻든 별장 괜히 빌렸잖아? 돈 아깝게! 무를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약속을 어길 수도 없고. 하긴 롭이 소개한 별장도 아니고. 왠지 모르게 땅기운이 나랑 맞는 거 같지도 않고. 난 아니지만 루머가 날 보고 싶어 하니. 뭐 상담을 다시 하던 어쩌던. 락 콘서트에나 갔다와야지 별수 있나.
~라는 심정으로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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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처럼 놀고, 학생처럼 배우며, 어른처럼 사랑하기. 그런데 그게 옳은가 아니면 비현실적인가. 그렇든 아니든 우리는 놀 때는 놀고 일할 때는 일한다. 일할 때도 논다는 둥 왕년에 좀 놀았다는 둥 뻥치고 자랑하는 일. 여자들은 싫어하지만 우리는 아니다. 회전목마만 타면 심심하니까 롤러코스터도 타야 한다는 뜻이지, 뽐내고 어쩌고 허풍 대회에 나가자는 말이 아니고. 그리고 우리는 철들지 않고 자유롭기 좋아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럴 수 없다. 어릴 땐 놀기 반에 공부가 반이었다면, 어른 땐 또 다르다. 사랑이 인생의 전부던가 아니면 일하기가 반이던가. 그게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나이 듦에 따라 웃음─재미─상상력─친구─모험심 등 점점 줄어드는 게 많으니까 어쩔 수 없다. 재산과 가정과 조촐한 행복 등 지킬 게 많아지니까 하는 수 없다. 하지만 X축 나이가 많아짐에 따른 장점도 많다. 일례로 기쁨의 총량과 다양한 경험. 텔레비전과 인터넷 등 여기저기서 습득한 잔 지식.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간접경험과 직접 경험의 배분과 타율이 적절한 균형을 찾는다는 점. 그런데 Y축 값을 뭘로 따질 것이냐에 따라 인생은 나체로 춤을 출 수도 있고, 목청껏 노래부를 수도 있다. 때문에 Y축 값을 <돈> 같은 개념으로 설정하면 얼굴이 쾌활함과는 약간 거리감이 있을 수 있다. 그렇다고 현실적 가치를 외면하고 나에게 이롭고 유익한 값만 Y축에 설정하자니 사람이 순진해지고, 사랑은 추접스럽고, 우정은 유치해진다. 따라서 NB는 그 고민 끝에 Z 축이라는 미지의 신비값을 가정해봤다. 하여 그 Z축 값이란 게 무엇인고 하니, 그건 바로 루머와 놀러 가기로 한 약속이 생각났던 것이다. 락 콘서트. 얼마만이던가. 괜히 들떴다. 그래서 나는 루머한테 전화를 걸었다.
「루머. 뭐하니?」
「뭐하긴. 친구랑 소풍 왔어. 난 지금 비키니 입고 있고.」
「정말?」
「아니. 뻥이야.」
「허허. 그러지 말고 우리 락 콘서트 가기로 했잖아.」
「아 그거? 믿었니? 뻥인데! 설마... 아니지? 그러지?」
「어? 어.」
「친구. 우리 거 너무 빡빡하게 굴지 말자고. 응? 어쨌든 나 바쁘니까. 나중에 통화하자. 알았지? 안녕.」
그녀는 전화를 뚝 끊었다. 뭐야 이거? 뭐냐고!
난 새가 됐다. 개인지 말인지 난 마치 한 마리 족제비인 것만 같았다. 옛날에는 일시적으로 제비라도 됐지. 그런데 이게 뭐냐고. 지금은 뭐냐고. 참 나! 웃기고 자빠졌네. 웃기지도 않다.
말도 안 되지. 말 같지도 않은 일이라고. 루머한테 몇 번을 당하는 거야. (절레절레). 루머가 미친 거야, 아님 내가 미친 거야? 순진하시긴!
그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딱) 키스! 윙크. 포옹. 부드러움. 포근함. 다가온다 다가온다 설렌다 설렌다 곱다 곱다 벗는다 벗는다...... 이런 젠장!
그렇지만 찐한 사랑 늦둥이. 숫처녀. 맹녀. 어느 각도에서 봐도, 아아 아아! 말상 + 개상. 고로 나중 몰아서 쌍코피. 들린다 들린다. 진짜 들린다 들린다. 히치콕 영화 효과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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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회에서 연사는 말한다. 여자와 대화할 때는 단 몇 마디만 기억하라고. 가령,
그래? 정말? 어머머 진짜로? 그랬단 말이지? 어떡하니! 걔 뭐니. 기타 등등.
다른 말로 앵무새 따라 하기. 맞장구만 쳐주라는 말. 즉 구구절절 설명하려들지 말고, 잘 듣기만 하라는 뜻. 나는 귀 기울여 듣고 있다, 누가 뭐래도 난 네 편이다 라는 믿음감. 난 원래부터 경청하는 걸 좋아한다, 그런데 너처럼 재밌고 예쁘고 착한 여자가 꺼내 드는 이야기? 그건 복음이다 난 열광한다 완전 좋다 미칠 듯이 기쁘다, 까지는 아니래도 표정 몇 개와 말 몇 개 돌려막기만으로 얼마든지 그녀를 만족시킬 수 있다나 뭐라나. 또 있다. 또 있다고. 자긴 미녀와 야수라는 액자&명화 조화로움을 감수한 건, 단지 이 남자라면 내 말을 많이 들어줄 것 같다─우리는 얘기가 통하니까─그래서 이 남자라면 대화를 날마다 많이 다정하게 나눌 수 있을 것 같아서 나는 결혼했다?
누굴 바보로 아시나! 우리가 낮잠 자는 토끼도 아니고 괜히 거북이처럼 고지에 깃발을 꼽으려고 영차영차 달렸게? 우리가 뭐 멍청하다고 대어를 잡기 위해 그 사투를 마다하지 않았겠냐고. 여복의 평균 곧 전반기 전적을 보아하니 썩 만족스럽기는 이른데. 그런데 연애사의 압도적인 단독 1등 감께서 제 발로 날 찾아오셨다? 최우선 순위로 우리는 강연회의 연사 빰 칠 정도로 그녀에게 맞춤복이 되어드리지. 웃을 일이 아니고. 그녀의 추종세력이자 팬클럽에다 때로는 비서 때로는 보디가드. 뭐든 못하겠냐고. 하루는 팝콘 신드롬 같은 남자로 착각하게 만들었다가, 어느 날 갑자기 깜짝 선물은 기본에다 은근히 그녀를 공주 대접하는데? 은밀히 그녀 마음보다 한 발짝 앞서가는데? 어느 여자라고... 말 말자고 말 말어. 우리가 여자 다루는 기술로 1등을 손꼽는 대회에 나가도 셀 수 없이 나갔는데. 그런데 거 뭐 무슨 여자와 대화할 때는 이러쿵저러쿵, 뭐가 어쩌고 어째? 어? 왜 노신사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는데. 왜! 일반적으로 뭔가 도움되는 인생의 철학을 말씀하시겠지만. 그렇지만 우리들끼리 있을 때. 그땐 진짜를 얘기하시지 않냐고. 뭐라고? 자긴 이 세상에서 여자랑 대화하는 게 제일 싫다고! 뭔 말인 줄 하나도 모르겠다고. 정신 사납다고. 돌아버리겠다고. 내 귀를 보라고. 날 보라고. 걸어 다니는 부처가 바로 나라고. 어? 그래서 잡은 물고기한테는 밥을 주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지. 자기가 왜 체육관에 나가는 줄 아냐고 따지시지 않게 생겼냐고. 샌드백을 마누나라고 생각헌단 말씀이시겠지. 그 정신 산만함 때문에 미쳐버리고 돌아버리고 까무러치다, 꾹꾹 눌러 참은 인내심을 체육관에서 푼다고. 허허허. 진짜로 그렇다는 말이 아니라. 허허허허허. 하늘을 봐야 별을 따지? 항상 새로운 별만 따고 싶지는 않겠지만. 그렇지만 했던 얘기 똑같은 얘기 시시콜콜한 얘기 하고, 하고, 또 하고, 또 하고, 끝없이 하고! 그 분야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숙녀와 사귀어보고, 살아보고, 만나보시라. 말도 마시라니까 그러네요. 말로 먹고 사는 그 냥반들이 왜 바깥에서는 뻥뻥 터트리며 인기 만점인데, 집에만 들어오면 그냥 꽁지 감춘 똥개처럼 시무룩시무룩 갤갤갤 비리비리하냐고. 어?
~라는 사연 때문에 나는 최근 부쩍 말이 없어졌다. 아직 이 은근함이 뭔 일인지 눈치채지 못한 분들을 위해서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가만 보니 그건 바로 인공지능 척키 아니 인공지능 지니가 말이 많아도 엄청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최근 사무실에 가기 싫어졌다. 일을 못하니까. 쉬지도 못하니까. 생각도 못하고 자꾸 귀찮게 하니까. 그렇다고 부들부들한 피부가 있나 마음을 녹여주는 애교가 있나. 찰랑거리는 웨이브 머릿결이니 섹시한 속눈썹이니 더 섹시한 하이힐이니. 그런 거 일절 없고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말만 많아. 어? (절레절레).
그래서 나는 여성환상 1.5에 놀러 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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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면한 숙제를 은근슬쩍 모른 체할까, 아니면 갈기갈기 찢어버릴까. 심술궂은 칼럼니스트로써 재미난 일은 없고. 재미없음과 권태와 심심함은 슬그머니 얕잡아 보이기 일쑤. 미로 속의 쥐는 치즈로 보상해 줄 때 학습 능력이 향상되듯. 채찍이든 당근이든 퍼진 기를 충전하기 위해 난 좀 쉬어야만 했다. 별안간 음탕한 추문에 휩싸이면 그땐 어떡하지? ~라는 공상도 이젠 재미없어진지 오래니까. 그렇게 단골 술집에 갔다가 또 말하기 좋아하고 나서기는 더 좋아하는 루머양 같은 여잘 만나면 어떡하지? 입을 놀리고 털어도 한 번씩 쉬어줘야 하는데 거침없이 속사포처럼 밤새 얘기할 수 있는 수다꾼. 걸리면 큰일 나는 다변가. 살다 보면 으쌰으쌰도 할 수 있고 1달에 딱 1이면 뭐 어떤가. 그런데 그런 분과 평생을 함께 살아야 한다고? 만약에 내가 그분과 그래야 한다라......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시작해서······ 이런 젠장!
공상은 그쯤 하면 됐고.
여기는 파티장이다.
서사가 들쑥날쑥하니까 줄거리를 되짚어 보자면 이렇다.
A. 무료한 일상. 퇴근길에 카페 방문.
B. 주선. 톰과 사라.
C. 주선. 윌과 포니.
D. 주선. 델과 마리온.
E. 쉬어가기
F. 핀과 소풍. 바닷가. 핀의 여자친구를 만나기로 함.
G. 핀/나/크리스티 만남. 핀이 중간에 떠남. 크리스티는 가면을 벗음. 곧 크리스티는 사라였음. 여성환상 편집장 모임에 따라감.
H. 파티장. 재미없음. 컴백홈.
I. 사무실 일하기.
J. 단골 카페 도착.
K. 바텐더 루머의 수다에 귀가 타버림.
L. 롭의 소개로 별장 더블에스로 떠남. 도착해보니 별장이 없어짐. 다스 칼튼이라는 별장에 입주.
M. 집. 루머의 약속은 뻥으로 결판남.
N. 여성환상 1.5 놀러 가기.
그래서 나는 여성환상 사무실에 도착했고.
어쩌고 저쩌고 해서 걔네들 회식하는 파티장까지 따라갔다.
그런데 웬 누추한 극장식 카바레를 빌렸네? 누추해도 좋았다.
다만 나는 클럽 음악이나 베테랑 유행가 가수의 3박자나 4박자 음악을 원했다.
그런데 또 고전음악.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트리오 소나타 C장조 BWV529 오르간 독주.
다음에 하이든의 아리아 ‘홀로 생각에 잠겨’(Solo e pensoso) Hob. 24b:20
일할 때는 좋은데 여기서까지.
나는 거기서 여성환상 1.5 편집장 사라의 또 다른 모습을 보고야 말았다.
걘 아마 작정하고 망가지기를 원한 듯했다.
미친 척 4차원이냐 원래 돌아이냐. 것도 아니면 막말 머신? 뿐더러 복장 갖추고서 원맨쇼?
그런데 내가 대체 여길 왜 따라왔지? 난 그렇게 할 일 없고 인기도 없는 남자였나?
장미꽃밭을 먼발치서 쳐다보며 군침 흘리는 늑대라면 차라리 핑계라도 댈 거 아니냐고.
여기서 말이지, 풍요 속 빈곤이 뭔 말이냔 말이지.
까마귀 울음소리 다음에 곧바로 까마귀 웃음소리.
김이 모락모락~ 열 받아 머리 위로 스팀이 지글지글 끓는 소리.
뚜껑 열려 귀에서 코에서 푸쉬쉭 경적소리 뱃고동 소리.
아아 (절레절레 절레절레)!
「넌 뭘 몰라도 한참을 모르시네.」
「뭐, 나?」
「아니 오빠 말구요. 그래? 그래서 어떻게 됐어? 그 남자는 뭐래?」
난 또 뭐라고.
「조용해. 시끄러워. 닥치라고. 어? 가만있어. 딱 가만.」
「네? 저 말이에요?」
「아니요. 오빠 말구요. 이 가시내 응큼한 거 좀 봐. 얘 너 속으로 어떤 생각을 하는 거니? 어디 한번 얘기나 들어보자.」
쟤들 뭐야?
난 느꼈다.
난 여기서 혼자라는 걸.
그래서 혼잣말을 읊었다.
「여기서 끝내자.」
그렇게 나는 파티장 밖으로 나갔다.
심지어 아무도 몰랐다. 내가 나가는지를.
잡지도 말리지도 잘 가라는 인사도 없었고.
또 한발 늦은 셈이었네. 이제라도 빠졌으면 된 거지 뭐.
17
그렇게 나는 여성환상 1.5 직원들 파티장을 나왔다.
그런데 여기가 어디야? 한참을 헤매다 나는 거리에서 누굴 만나버렸다.
그건 누구냐, 바로 대학교 동창이었다. 1학년 때 안면은 알고 눈인사는 나눴나?
그래 봤자 긴 얘기는 물론이거니와 짧은 몇 마디도 나눠보지 못했던 여자 동창.
옆에는 그녀의 동생인 듯했다. 아니 딸인가? 조카인가? 후배인가? 혹시 걔를 네게?
「어머머. 너 맞지? 맞지? 그렇지?」
「어. 앤젤. 너가 여기 웬일이니?」
물론 나는 이름을 찍었다. 걔가 앤젤인지 아닌지는 잘 기억나지 않았다. 안중에도 없었지는 않겠지만. 그래서 틀려도 괜찮은 이름 같은 귀여움으로 난 그녈 떠본 것이다. 뭐야, 그런데 맞네?
「어머머. 날 기억해주다니. 너 있잖아. 그때 언제지? 그래 맞어. MT 갔을 때. 낮에 막 구르고 어쩌고 단체활동하는데. 너랑 네 단짝이랑 둘만 몰래 빠져나갔잖아. 그래서 산으로 갔잖아. 그래서 늬 단짝이 널 업고 왔던가, 아님 애들이 널 뜸어왔든가. 너 아직도 술 약하니? 그러니? 당시 너 완전 냉혈인간에 인사불성되어서 우리들이 막 달려들어서 늬 차가운 몸을 주물러줬어. 열심히. 어머머머 얘 얘 그때 생각난다. 하필 남자 몸을 주물러도 뭐 늬 허벅지가 인형도 아니고. 호호호. (얘 얘 아줌마가 다 됐네) 우리들 사이에서 넌 인기 괜찮았으니까. 다들 막 그랬는데... 더 자세한 얘기는 하지 말자. 그러자고.」
그렇게 해서 나는 앤젤과 앤젤의 동생과 함께 그녀의 집에 놀러 가기로 했다.
멀지 않았다. 근처였다. 그런데 이때 눈치를 챘어야 했다. 자기 집에 놀러 가자는 게 아마도 빈말일 가능성이 크다는 걸.
그렇게 나는 그녀들과 그녀의 집에 도착했다.
뭐야, 그런데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었다.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아버님께서 말씀하셨다.
「우리 앤젤이 집에 남자를 데려온 적은 처음이라네.」
「네?」
「자네 얘랑 밖에서 만났나? 그러니까 내 말은 사귀었냔 말이지.」
「아니오 아니오. 학교에서 본 게 마지막입니다. 학교 다닐 때는 물론 지금까지 대화를 나눠본 적이 전혀 없습니다. 오늘이 처음입니다. 그럼요.」
「아 그렇게 정색을 하면 어떡하나. 얘가 남자를 집에 처음 데려왔다니까 글쎄. 응?」
「네?」
난 뭘 해도 어설펐다.
제라드가 장난친 건 아닐까?
그다음에 우리의 만남은 유야무야 됐다. 곧 눈치가 없는 나조차도 이제 그만 가야 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러니까 괜히 간 거네. 괜히 갔어. 동창이 자기 집에 놀러 가잔다고, 학창 시절도 아닌데. 친하지도 않았는데.
주저 없이 덥석. 뭐냔 말이지.
그렇게 동창네 집을 나오면서 인사하고 어쩌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그처럼 격심한 패배감을 안고서 나는 동네를 배회했다.
어디가 어딘 줄도 잘 모르겠고.
그런데 꺼칠한 기분에 따라 내 발걸음은 날 웬 사막으로 데려가버렸다.
뒤범벅된 감정은 다시 단출해졌다. 즉 집에 돌아가려면 어찌해야 하냐는 것.
닥치는 대로 써먹을 경우의 수도 없고. 전화는 먹통이요 주위를 둘러보니 보이는 건 없고.
그러다 나는 웬 자판기를 발견했다.
거기서 청량음료를 뽑아서 마셨다.
그때 웬 뚜껑 없는 스포츠카가 다가왔다.
거기서 상남자가 내렸다.
인상은 괜찮았다.
그분도 자판기에서 청량음료를 뽑아서 마셨다.
그러다 얼렁뚱땅 인사를 나눴다.
「그런데 여긴 웬일로. 여기까지 어떻게 오셨을까? 걸어서 오셨을 리는 없고.」
「네? 그게 그러니까 뭐 어쩌다가. 어찌어찌 뭐 그냥 그게...」
「댁은 혼자 왔나 몰라도 전 아니지요.」
「네? 그럼 일행은요?」
「걸어서 간다길래 의사를 존중해줬죠. 그럼요.」
「여기서 저기까지 걸어간다고요?」
「농담이에요 농담. 아 뻥이라구요.」
나는 마치 다큐멘터리에서 인기 좋은 최상위 포식자가 된 기분이 들었다.
영혼이 요절할 뻔하다가 천사로 환생하는 기분도 느껴졌다.
환상머신을 만들 생각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몰라도. 지금은 도시로 돌아가는 게 급선무였다.
오늘 밤 뭔가 좋은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매혹적인 희망. 그런 건 필요 없고 일단 돌아가야만 했던 것이다.
사냥감이냐 사냥꾼이냐. 사랑받느냐 사랑하느냐. 속고 속이고 정신없는 세상사.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었으니까.
18
뛰기. 우쭐감에 어깨 뽕이 튀어나와 엷디엷게라도 거드름을 피울 것 같다, 게을러질 거 같다 싶으면 뛰는 게 좋다. 시선 받기를 즐기느냐 어깨뽕조차 예술로 바꾸느냐, 각자 스타일은 다르겠으나. 그렇지만 쉬고 걷고 놀면 모를까 발동 걸렸으면 달려야 하니까. 고로 괴상한 버릇 같은 일은 아니다. 더군다나 땀을 흠뻑 흘리고 나면 사람은 대체로 기분이 좋아지기 마련. 그럼 또 그걸 보고 오락산업이 가만있겠나. 때로는 잡초를 밟고, 이따금 사람을 당기고 들고 기분을 구름 위로 보내버린다. 지금 교묘히 점잔 떤다느니, 선생 거 너무 겸손해하시지 않아도 좋소, 물 들어왔으니 노 저어야지 지금 뭐하시고 있냐는 둥. 말하면 말한다고 뚜껑 열린다, 말 안 하면 말 안 한다고 놀리냐는 둥 뭐라는 둥. 트집 잡고 흠결을 파고드는 건 일도 아니니까. 게다가 듣고 보니 썩 틀린 말도 아니거든. 보자 보자 하니 어딘가 모르게 내가 너무 거만한 건 아닌가, 초심을 살짝 잊은 건 아닌가. 한 번쯤 점검해서 나쁠 건 없거든. 이 양반이 지금 보자 보자 하니······ 뭐가 어쩌고 어째? 시작은 다툼과 불화! 그런데 나중 사랑은 꽃피고 친교의 열매 그 과즙이 달콤한 일. 사람 사는 세상, 그걸 보고 살맛 난다느니 어쩌느니 하는 거니까. 이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고. <아니며 말고> 옐로카드를 아무 때나 누구한테나 남발할 수는 없고. 뭐 어쨌든 이번에 NB가 꺼내 든 으쌰으쌰이자 관심 가는 궁금증이 무엇인고 하니 그건 이랬다.
새로움! 저 소프트웨어를 내 하드웨어에 깔면 과연 제대로 작동할까? 주시안을 영구적으로 바꾸거나, 사고방식을 한시적으로 지동설에서 천동설로 바꾸는 일. 드물긴 하겠으나 아주 불가능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정말로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 운영체제 안에다 맥 OS를 심을 수 있을까? 즉 다중 운영체제. 전두엽은 안드로이드, 전전두엽은 최선을 다하자, 측두엽은 매킨토시 운영체제, 좌뇌 대충 살자, 우뇌는 막살자. 농담이고. 소프트웨어 버전이 높다고 무조건 좋지 않듯 저단계 수준의 소프트웨어 장점만 쓱 흡수하기. 그게 정말로 될까? 공작새 아동이 커서 백조 어른이 될 수 있냐고. 삐악삐악 노란색 병아리였는데 나중 알고 봤더니 꽥꽥 추억의 만화영화처럼 도날드 덕이었다더라? 아니 어떻게!
그런데 그게 왜 갑자기 궁금했냐고? 왜긴 왜겠나. NB는 자기 블로그 유입 검색어를 보고 아하~ 한 거지. 바로, 남녀 비율에서 여자가 많은 나라 세계 TOP 10! 뭐? 소파에 자빠져 세계 최고로 거만한 자세를 잡고 TV를 볼 때. 그럴 때 한 장면. 개인주의가 만연한 선발&중견주자권에서 1.5든 3.0이든 원어민으로 사는 예능인. 그러다 어른이 되어 중견주자권에서 후발주자권으로 건너간 힙합가수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아니, 사실이고 예는 흔하디 흔할 뿐. 그렇게 중견주자 사람이 외모가 비슷하게 생긴 후발주자권에 오면 후발주자권 언어로 말이 통한다. 그래? 그럼 인간적으로 남자 대 남자로, 후발주자권 남자들끼리 솔직히 말해서 제일로 궁금한 게 무엇일까? 흑심의 의도가 아니라 문화적 차이 같은 의미로, 농담으로, 오래는 아니어도 당분간 친해지자는 뜻으로. 그건. 그건. 그건 잠자는 큐피드의 얼굴을 훔쳐보는 프시케의 호기심을 들먹일 거 없이. 바로 (딱) 더티 러브를 꿈꾸는 촌뜨기의 의아함은 단연 그거다. 그게 뭔가, 뭐긴 뭐겠나. 쉿! 두말할 필요 없이 압권은 단연 그거다. 그게 뭘까? 뭐긴 뭐겠나.
「누구씨. 와~ 그럼 거기서... 망고 바나나 딸기 파인애플 다 따먹었겠네요? 우리끼리니까 듣는 사람 아무도 없으니까. 비밀 무덤까지 안고 갈 테니까. 그러니까 제발 말씀 좀 해보세요. 완전 개방적일 거 아니냐구요. 네? 아 글쎄 땅 짚고 헤엄치기 아니냐고요! 아님 누워서 떡 먹기?」
~라고 노골적으로 물어볼 수야 없는 거지만. 그렇지만 엇비슷하게 이 여자 저 여자 다 꼬시고, 이 꽃 저 꽃 막 그냥 항상 꽃밭에서 돌아다니시느라 바쁘셨겠네요? 단도직입적으로 꿀벌이었어요 아님 벌새랄지 말벌이었어요? 어떤 여자 좋아해요? 고추 달렸는데 여왕벌일 수야 없는 것 아닌가요? ~라고 직접적으로 물어보진 않겠지만. 우리끼리 조용조용, (소곤소곤), 한 번쯤 정말로 그럴까? 라는 생각 안 해보면 바보이자 비정상에 푼수다. 아니 그런데 그게 아니라. 진짜로? 남녀 비율이 4 대 6 이라고? 왜? 진짜로? 아니 어떻게? 라트비아랑 동유럽 어디 어디 하며 막 그냥.
뭐야! 물 반 고기 반이잖아? 단, 우리에게는. 완전 노다지가 아니고 뭐냐고. 신천지도 이런 신천지가 없잖아! 황금으로 가득 찬 보물섬이 바로 그거라고. 손만 까딱해도 전부 다 다이아몬드라고. 제비랑 파랑새랑 팔색조들에게 천국이 바로 그거구만. ~라고 과장하진 않겠으나. 다시 말하자면 모종의 문화적 차이와 일종의 유머일 뿐. 그런데 소프트웨어 얘기를 하다 이 얘기가 왜 나왔지? 왜 갑자기! 아무튼 넘어가고.
그래서 NB가 시도한 독학이 무엇인고 하니, 그건 바로 아직 없었다. 정해지지 않았다. 새로움은 꽝이었고 변화는 0이었다. 젠장!
따라서 그는 오늘도 고개를 떨군 채 묵묵히 사무실로 향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