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랑스러운 그대들 요정이시여, 내가 너에게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줄께요. 천사님들아 복음과는 또 다른 무척 신나는 이야기를 이제 들려주마. 그러니 잠시 귀를 기울여주지 않겠니? 궁금한 기분에 따른 경청의 대가는 결코 실망스럽지 않을 테니 말이야. 나중 기쁜 마음이 은근 오래도록 지속된다면 그건 정말 그 얼마나 짜릿하겠냐고. 안 그런가, 응? 설혹 기묘한 몰입의 열매가 기대 이하일지라도 섣불리 낙담하지 말 것을 미리 당부하네. 흥미로운 보너스는 즐비하고, 뜸 들인 결실이 새콤할 2탄은 충분히 상상 이상일 테니까. 그러니까 달콤한 예감이 합당하며 지극히 유익한 이유를 여기서 알려줄까? 뭐, 그러자고. 못할 것도 없지 않은가! 그건 바로 이 때문이지. 왜 줄을 서서 대기중인 2탄 3탄이 기대되서 참을 수 없는가 하면, 그건 시간 낭비가 아닌 걸로도 모자라 내게 마음을 한번 빼앗기고 나면 몸은 저절로 따라올 수 밖에 없기 때문이라네. 허허허허허.
자, 어떤가? 비밀스런 요술 상자의 뚜껑을 열까, 열지 말까? 정녕 마술 모자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궁금하지 않단 말인가? 하지만 미리 걱정하진 마시게. 과욕은 금물일 수도 있지만 야망까지 갈 거도 없고, 어? 뻔트로 홈런을 칠 수도 있는데 대체 뭐가 걱정이란 말인가! 뭘 계약하고, 사고, 사인하며, 가입할 필요가 전혀 없단 말일세. 그러니 일단 들어보란 말일세. 헤헴. 그처럼 선생께서, 어 그래 신사 양반은 물론이고, 어이쿠야 나리님마저 야수에게 딱 발목 잡히거나 그대가 갑자기 괴물이나 요괴로 변하지도 않을 테니까. 허허허!
어머나 저런, 이걸 어떡한담? 솜사탕 같은 환상을 잠깐 소개만 했는데, 벌써 이렇게 관객이 구름처럼 운집해버렸다니. 이걸 어쩌면 좋아! 안되겠군 안되겠어. 서둘러야겠군 그래. 아님 그냥 다시 비밀을 조용한 숲 속에 은글슬쩍 은닉시켜버릴까? 그럴까요? 허나 몇몇 도끼눈을 외면할 만큼 난 그렇게 매정하지도 담력이 용맹하지도 못하네요. 허허허. 그러니 이제 그만 우리는 신기한 꿈나라로 떠나가-봅시다요.
2
희망 찬 의욕은 행복한 전개를 부른다. 그런데 갈망은 새롭지 않을 수도 있고, 전개는 심심한 발단 2.0으로 대체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난한 청춘도 아름다운 사랑도, 따분한 일상마저 인생의 절정을 맞이할 수 밖에 없는 운명. 때문에 열정에 들떠 우왕좌왕하는 야생마도, 권태와 싸우고 목표 없음에 낚이거나 병풍에 절망하는 경주마도 밝은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나 삶은 천상 재미없고, 일하기는 더 재미없으며, 그렇다고 놀기만 하면 놀다 지치기 마련이다. 따라서 우리는 행동해야 한다.
우리는 봄바람이 불면 꽃씨를 뿌리고, 썰을 풀며, 사랑을 해야 한다. 여름이면 에메랄드빛 해변이 당신에게 손짓한다. 그렇지만 떠나지 않은 채 집에서 낮에는 TV 밤에는 NC, 틈틈이 인터넷과 술잔으로 고독한 인생을 달래도 괜찮다. 그리고 가을이 오면 연애 편지를 써야 하고, 겨울비가 내리면 가죽점퍼를 입어야 한다.
어머머머! 그런데 지금은 행운아의 엉덩이가 근질근질하고, 요조숙녀가 로맨스를 상상하는 바캉스-철? 젊어서는 놀아봐야 하고, 인생은 유행을 선도해도 되며, 늦바람이 무섭든 어쩌든 마음이 젊으면 그만이다. 그래서 나는 혼자서 무작정 바닷가로 떠났다.
그런 다음 결과만 말하자면 나는 실망했다. 호텔 생활도 그저 그랬다. 글도 잘 안 써졌다. 완전 재미없었다. 더군다나 무서운 공포영화를 원해서 봤는데, 그 결과 기분이 영 아니게 됐다. 그렇게 해서 나는 2박 3일 일정을 급히 마무리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뭐야! 그런데 집으로 오자마자 존티에게 연락이 왔다. 뭐라고? 떠나자고! 나는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곧바로 은빛 백사장, 원숭이가 매달려 있는 야자나무, 청순한 비키니─고급 요트─연분홍빛 암청색 낭만이 가득한 그곳으로 떠났다.
3
「수줍은 과일─부끄러운 꽃─아름다운 숙녀여. 나도 모르게 그 향긋함에 감탄하여 그대 고운 화사함을 절로 칭송하게 만드는구료. 처음부터 찐한 애정을 논할 수는 없고 자, 나와 함께 낭만적인 연애를 한번 해 보지 않겠소? 화답은 그 눈흘김만으로 충분하다오. 허허허. 왜냐하면 내가 진짜로 원하는 건 나의 인생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그런 뭐랄까, 어떤 미약한 욕구의 실현이기 때문이라오. 물론 보너스는 사랑론이겠죠. 들어볼까 들어보지 말까, 그 망설임이 문제라면 낭자께서는 이미 로맨티스트에게 절반쯤 넘어온 거나 다름없소. 그 환한 웃음이 명백한 증거이지 않소이까. 보아하니 우리가 만난 건 아마 운명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소. 그러나 아가씨께서 나 같은 예언가를 만난 걸 일종의 행운으로 받아들인다면 그때 비로소 우리 만남은 숙명적인 인연으로 발전할 것이오. 낭자는 말이오 미묘한 첫인상에 대한 섬세한 느낌, 저 놈이 사기꾼인가 아닌가 설마 날 한 번 어떻게 해 보겠다는 건가, 어쩜 내 속마음이 들통난 건 아닌가 싶도록 독심술이 대단한 듯 하오. 아니 그렇소? 따라서 나는 애초에 그런 말일랑 듣지 않을 걸 미리 알고 있었소. 그게 대체 무슨 말이냐구요? 무슨 말이겠소,
어딜 넘봐? 겠지!
그렇다고 여자 마음을 빼았았으면 이러쿵저러쿵, 벌써부터 다그치진 말기 바라오. 다짜고짜 요술로 시작할지 고급스런 농담을 선보일지 숙녀의 의중을 간파함이 먼저일 테니 말이오. 그러니까 우리의 신비한 여심은 소신의 관상 보는 재주가 뭐 그런대로 봐줄 만 하니까, 아무나 미인을 귀찮게 하면 더없는 결례일 테니 이처럼 더없이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소이다. 어머 어머머머, 이 코 끝에 땀 좀 보시오. 내 말 했잖소. 허허허. 그러니 내게 기회를 주시는 너그로움을 베풀어주시지 않겠소? 보아하니, 그대는 금전운보다 연애운을 더 알고 싶은 모양이로구만. 혹시 내가 헛다리 짚지 않았나 모르겠소만, 날 속일 생각일랑 품지 말기를 바라오. 왜냐하면 이미 우리는 마음이 통했기 때문이지요. 허허허. 그런데 경치가 멋지고 분위기도 좋고 뜻밖의 구애도 기쁜데, 우리는 죄송하지만 그대의 이상형과는 거리가 멀다구요? 그렇다고 우리가 나이트클럽에서 우연히 만나 급하게 친해진 사이도 아닌데, 못 이긴 척 서로를 알아가느니 확실한 게 좋지 않을까요? 부드럽고 섬세하고 포근하며 다정함도 좋지만, 서론이 너무 어려우면 관객이 하품하는 법.
따라서 저기 보이는 S바에서, 아니 O카페에서 우리 함께 청춘과 사랑과 저 하늘의 아름다운 별 그리고 바람...」
「이 아저씨들 뭐니?」
두 명 중 한 명은 반틈은 넘어왔는데, 나머지 한 명이 까칠한 그녀라...! 얘는 성격이 별로 그러지 않아도 될 관상인데...! 그러니까 그 왈가닥 말괄량이는 이어폰을 끼고서 못 들은 척 하다가 이제야 나선 것이다. 이어폰 끼고 있어도 볼 건 다 보고, 들을 건 다 듣는데도 말이다. 정말로 그렇다. 헤비메탈을 이어폰으로 듣고 있어도 실제로도 들리고 상황 파악도 다 될 테니까. 상황을 요약하자면 우리가 에너지를 제대로 소모하니까 뭐, 이제 와서? 참 나!
「그러니까. 듣자 듣자 하니까 뭔 얘긴지 하나도 모르겠네. 넌 알겠니?」
「......」
「야. 가자. 뭔 대낮부터 횡설수설이니? 늬가 여기 미남들 많다며? 다 어디로 숨은 거야? 흥!」
「내가 언제!」
1차 시도는 여지없이 실패했다. 그래서 우리는 2차 시도를 감행할 수 밖에 없었다. 1차와는 정반대로 곧 대사를 짧고 세련되게. 그러나 2차도 역시나-였다. 여기서 우리는 기로에 서게 됐다.
4
우리는 기쁨을 탐구하고, 행복을 예감하며, 젊음을 추구했다. 그래서 잡을 듯 잡을 듯 도전자의 미망에 부채질하는 환상이라는 나비를 사로잡았을까? 그랬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니까 우리는 '즐길 수 없다'라는 고귀한 관점, '만족하면 끝이다'라는 지고의 목표 같은 건 아마도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무슨 밝은 미래로 행진하는 이상주의자도, 심오한 비밀을 애타게 연구하는 몽상가도 아닌데, 그런데 전문가의 자세와 고수의 태도를? 그건 우리에게 어쩌면 부적절한 편협함이고 어울리지 않는 옷이었다. 그러므로 나와 존티는 추리력, 호기심, 상상력, 감수성, 허영심과 질투 같은 평범한 심리학 대신 대타를 믿어보기로 했다. 우리는 감독과 코치와 1.5군 2진들이 앉아있는 벤치의 표정들을 모르는 게 아니다. 사람인 이상 어떻게 모를 수 있겠나! 그나저나, 신나는 해변에서 백방으로 노력해봐야 모두 남의 집 잔치일 뿐이었던 것이다. 연인들의 다정한 속삭임, 최소한 기타 반주와 함께 연가를 부르고, 수영복을 입은 채 바차타를 추며, 저 공원 너머에서는 청춘의 특명이라며 캠프파이어가 한창이었다. 마성의 허풍꾼과 누굴 만나든 모두 신부들러리로 만들어버리는 신기한 능력의 숙녀는 이미 타인에게 아름다운 연인이었다. 때문에 별들이 웃고, 바람이 노래하며, 분위기가 고혹적인 해변가에서 우리는 생음악으로 유행가조차 부를 수 없었다.
그러니까 다 됐고 그 대타란 무엇인가, 우리는 저기 보이는 저 V 바에 들어가기로 했다. 우리는 심심한 발단에 체념하고 무정한 전개에 실망했으므로, 따라서 우리는 방자한 직감에 기댈 수 밖에 없었다. 우리가 무슨 비정한 문제아도 아니고 말이다.
5
그런데 어찌 이런 우연이! 우리가 찾은 V 바에서 정말 기적처럼 마라를 만나고 말았다. 그래서 합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조용조용)야 마라가 여기 어쩐 일이야? 안 온다며?」
「(조용조용)내가 어떻게 알아? 산으로 간다고 했는데... 어떻게 된 거지?」
「오빠. 다 들려. 산으로 가면 오빠를 너무 풀어주는 것만 같아서 다시 바다로 왔지. 나 잘했지? 실은 여기 사는 친구한테 연락와서 오게 된 거야. 나도 오빠들이랑 거리를 두고 싶었지 왜 아니겠어? 안 그래? 아 저기 온다. 쟤들이야. 여기 사는 내 친구들. 미모 끝내주지? 어머머머! 벌써부터... 욕심내지 말기다. 응?」
이러쿵저러쿵. 어쩌고저쩌고. 그녀들끼리 인사를 나눴고 또 나와 존티와도 통성명을 나눴다. 그런데 문제는 마라의 친구들은 바로 우리가 푸른 해변에서 실례했던 바로 그녀들이었다. 아니 어찌 이런 일이... 어떻게 이런 일이!
「와! 오빠 또 뵙네요?」
「뭐? 너 우리 오빠들 알아? 벌써 구면이라고? 얼마나 친한 건데? 어떤 사인데? 어서 말해봐. 응? 뭐하고 있어?」
「하나씩 물어봐 얘. 적어도 초면은 아니지. 심지어 운명적 만남이었을 테고. 호호호. 그렇죠?」
마라의 친구들이란 다름 아니라 여자 꼬시기 1차 시도하며 만난 숙녀들이었다. 그럼 그녀들은 먹잇감이 아니라 트로이 목마였나? 아닌가! 몰라. 복잡하다. 괜히 1번 실패하고 2번째에 성공할 뻔 하다가 또 실패. 그러다 3차로 망신! 우리는 기분이 말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 만남은 길지 않았다. 마라네는 일정이 빽빽했는지 어디로 가기로 했단다. 그래서 우리는 헤어졌다.
6
존티와 나는 바를 나와서 정처를 정할 수 없었다. 1번은 연습이고 2번째는 기분이었다. 다시 말해서 첫 번째는 장난이었고 두 번째는 그저 분위기만 파악한 거였다. 그러나 아직 여유는 있었다. 1차 실패 2차 실패, 그러다 딱 연패의 절망감을 딱 날려버린 채 3차 시도에 성공할 테니까. 그래서 우리는 마라네와 합류할 마음은 전혀 없었다. 그러다 결국 우리는 저기 보이는 조용한 카페에 들어가기로 했다. 왜냐하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기필코 어느 애처로운 여심을 꼬시기로 작정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천혜의 휴양지에서 아름다운 이 시절, 낯선 만남이라는 희망을 절대 포기할 수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조금은 촌스런 찻집에 들어가서 자리를 잡았다. 존티가 내게 말했다.
「저기 보이는 언니들 외로워 보이지 않니? 뭐랄까 허영심은 미래지향적이고, 욕망은 슬픈 로맨스를 꿈꾸는 듯 하며, 저 청초한 눈망울엔 질투심 풍성한 애교가 가득하잖니. 안 그래? 우리는 아마 사랑을 하게 되지는 않겠지만 내일의 우정을 약속할 수 있는 것 아닐까?」
「그래? 그럼 갔다 올께!」
잠시 후. 나는 숙녀 두 분을 모시고 존티에게 왔다. 녀석은 이게 뭐냐는 표정을 지었다. 완전 의외였고 완전 깜짝 놀랐으니까. 그런데 존티는 프로였다. 최소한 빙그레 하면서 입이 귀에 걸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곧바로 존티는 씩 웃었고 슥 인사말을 건넸다.
「이름은 모르는 게 좋겠죠? 나이는 묻지 않겠어요. 문학과 헤어진지도 오래됐으니 운명이니 뭐니 간지러운 말은 일기장에나 쓸 생각입니다. 물론 저는 비밀이 꽤 많은 남자랍니다. 허허허. 아니 그런데, 대체 얘는 어떻게 아시죠? 딱 봐도 초면인 것 같은데.」
「내가 먼저 여쭤봤거든. 저기 저 주크박스에서 우리가 마치 멜로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부딪혔을 때 말이야.」
「뭐라고... 뭐라고 살며시 물었는데?」
「우리, 구면 아니냐고!」
그녀들과 나는 구면이 맞았다. 왜냐하면 방금 전 바에서 카페로 올 때, 중간에 아이스크림을 사기 위해 푸드 트럭 앞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 동안 빛나는 눈빛을 교환했으니까. 바로 그때 아가씨 1이 아가씨2를 내 쪽으로 밀었다. 그런데 아가씨2는 운동신경이 뛰어난 숙녀였다. 그래서 우리는 아무 일도 없었고, 각자 아이스크림을 사기 위한 임무에 충실했다. 물론 세한 분위기, 싸한 기대감, 약간 설레는 기분은 내버려둔 채. 이런 긴장감이 선행된다면 이건 잔칫상이 거의 차려진 거나 마찬가지다. 그녀들은 신데렐라의 유리구두를 신었고, 나는 동화를 썼고. 그녀들은 치즈요 나는 줄만 잡아당기면 그만인 거지. 바로 이런 걸 호박이 제 발로 굴러온다고 하는 것이다. 이를 테면 이런 식이지. 나는 시내에서 걷고 있는데 갑자기 카페에서 아는 누나가 뛰어나와서 내게 인사해. 여행 동호회에서 만나 얕은 친분이 쌓인 그분이 반갑게 아는 체 하면서 말한다.
「와, 어디 가요? ...(저기 안에 있는 누군가를 암시하며) 내가 여자친구 소개시켜줄까요?」
기여도는 미미하겠지만 이런 확률 때문에라도 창가 자리의 선호도는 높을 수 밖에 없다. 물론 이 비유는 내 체험이었다. 더구나 기묘한 우연처럼 비슷한 시기에 바로 그 자리에서 중학교 때 잠깐 불타는 우정이었다가 내 말실수로 멀어졌던 친구를 마주쳤던 장소이기도 했다. 아울러 여자1이 여자2를 미는 경험을 받아 본... 받아보지 않은 사람 처지에서는... 이러니까, 바로 이래서 나는 자랑이라는 인간의 자연스런 행위에 대해서 민감할 수 밖에 없다.
뭐 그건 그렇고, 그런데 존티는 심술을 차마 참을 수 없었다.
「저기 언니들! 얘 약혼녀 있대요.」
「이 친구가 원래 이렇게 싱겁죠. 허허허. (조용조용히) 늬 여자친구한테 들킬까 봐 겁나지 않니?」
허허허허허. 그렇다고 우리가 섭섭하게 알게 된지 얼마 되지도 않아 벌써 남남이 되기로 합의할 수는 없었다. 더 친해지도록 협의하지는 못할망정. 그래서 우리는 벌써 친구가 되어버린 것이다.
말하자면 카페 내부에 구름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달님이 웃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그녀는 하늘을 쳐다본다. 이때 고개가 시선을 따라가지 않은 채 부동이다? 아울러 표정이 바빠진다? 심지어 우아한 목선을 고고히 유지하며 원래 그런지 긴장해서 그런지 음료를 마시는데 심상치 않다? 그러니까 음료를 마시는데 시선이 자유롭다니! 첫인상이 어쨌나는 몰라도 최소한 첫눈 오는 날 만나고 싶은 남자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존티의 핸드폰에 에밀리와 로즈마리는 사뿐히 저장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7
「얘 영! 쟤들 보내고 우리끼리 나이트클럽이나 갈까?」
「뭐 영? 나 지금부터 영이니? 가만 있어봐. 내 친구 중에 영이란 녀석이 있나 없나? 아 맞다. 야 존티! 너 전에 그랬자나. 나이트클럽 이제 다시는 가지 않겠다고.」
「아 나 이거 정말. 내 진짜 이름을 말하면 어떡해? 그리고. 늬가 어딜 봐서 영이야? 얘가 또 은근 친구를 가지고 노네. 너 날 방금 들었다 놨니? 어? 내가 동네 북이니 아님 축구공이니?」
「오빠들. 다 들린다. 그러고 보니 저 오빠는 혼잣말이 습관인가 봐 얘. 안 그러니? 그 있잖아, 전에 알던 그 오빠.」
「빙고! 그 이상한 허세남 말하는 거지? 약간 비슷하네. 어쩜 생긴 거도 비슷한 거 같지 않니?」
「어머 어머! 어머머, 어머머머! 진짜 진짜. 웃으니까 완전 똑같다. 혹시 그 오빠의 형 아닐까?」
「아님 빚쟁이?」
「호호호. 그런데 오빠. 오빠 춤 잘춰?」
「나 춤 잘 추냐고? 말하는 본새를 보아하니 (딱)! 착한 여자네. 왜, 오빠 춤 잘출 거 같니, 못 출 거 같니? 궁금하진 않겠지. 그럴 꺼야. 하지만 미안하게도 말이야 오빠도 그 답을 썩 듣고 싶진 않네. 왜냐하면 나는 순진한 여자랑 일행이 되서 함께 나이트클럽에 가는 건 딱 질색이거든.」
「늬가?」
「넌 왜 그렇게 엇박자니? 설마 일부러 그러는 거니? 너 진짜! 너 아직도... 날 버리지 마. 같이 가자! 응? 허허.」
「와! 둘이 많이 친하나보다. 얘 얘. 사랑과 닮은 우정의 느낌이 아니라 애증의 그림자가 보이지 않니?」
「그러게. 어쨌든 우연히 만난 인연치고 오랫만에 말이 통하는 것 같지 않니?」
「뭐야? 그럼 우릴 꽉 막힌 아저씨로 예상했단 말이야?」
「그게 아니라, 좋은 말이야. 응? 좋은 평이라고. 아무튼 우리 이만 헤어지자. 오빠 안녕.」
「어 음 그게 아 허허, 신데렐라도 아니고 모범생 숙녀였군. 그럼 일찍 일찍 들어가셔야지. 부모님 기다리시겠네.」
「어머머. 어떻게 알았어? 진짜로 엄마 아빠 기다리시는데.」
「뭐야 그럼. 여기 살 리는 없고 가족 여행?」
「휴양지에서 허랑방탕한 남자 만날지도 모르니까 조심하라며 걱정하시거든.」
어제 우리는 이처럼 헤어졌다. 2 대 2. 무슨 청춘 드라마도 아닌데, 해피엔딩도 열린 결말도 아닐 텐데 어중간한 구도로 말이다. 어쨌든 어제 우리는 건전하게 만나서 건전하게 헤어졌다. 그리고 영과 존티, 즉 나와 존티는 나이트클럽에 가지 않을려고 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왠지 분위기 때문인지 기분 때문인지 가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았으니까.
8
오늘 우리는 다시 만났다. 나, 존티, 에밀리 그리고 로즈마리. 이렇게 넷이서. 사이좋게. 오손도손. 흐흐흐흐흐. 허허허허허.
「안녕. 와! 밤에 보는 거랑 완전 다르네. 야 오빠들 연예인이구나. 완전 몰라보겠는데.」
「이건 칭찬이니 조롱이니? 왜 그런지 난 자꾸 뭔 낯선 얘기를 들으면 생각이 많아져. 혹시 사춘기일까?」
「갱년기가 아니기를.」
「뭐?」
「외국어도 아닌데 의역할 필요 있니? 그냥 들리는 대로 들어. 괜히 듣는 사람 혼자서 어감을 꼬지 말고.」
「그런데 오라버니들 어제 나이트클럽은 들르셨어요?」
「허허허. 갔을까 가지 않았을까? 맞춰봐.」
「저 오빠가 춤을 잘출까 잘추지 않을까? 미안. 추측하기 싫으네요. 안 봐도 알겠네. 딱 보니 선호하는 자리는 미러볼 밑이나 스피커 근처. 살짝 핑~ 돌면 높은 데 올라가는 유형. 안 그래?」
「뭐야! 어떻게 알았어? 아니, 어떻게 알았지!」
「어떻게 알긴 뭘 어떻게 알아! 그냥 보면 아는 거지.」
「그러니까 이 오빠도 술 마시면 주목 받고 싶어한다고? 그래도 나은 거네. 평소에도 그러는 건 아니란 말이자나.」
「음. 맞다. 그렇게 해석할 수 있겠다야. 그래도 클럽에서 샴페인 취향에다 자꾸 무대랄지 높은 데 올라갈려고 하는 습성은 말이야. 내가 봤을 때 그건 옛날 우리집에서 키우던 개가 그랬어. 완전 딱 그랬어. 뭐야? 이 오빠, 얼굴은 말상인데 개과라고!」
「아 정말!」
「워─워─워! 왜들 그러시나 살살 하자. 살살, 응? 그런데 해변에 왜 이렇게 이상한 무늬가 많이 보이지? 요즘 저게 대세인가?」
「오빠 몰랐어? 요즘 기저귀 무늬가 유행이자나. 야자수에 원색에 과감한 무늬, 고급스런 패턴, 깔끔한 모양, 무난한 디자인? 요즘 누가 그렇게 입니. 지금은 누가 뭐래도 기저귀 무늬가 최고야. 설마 모르는 거 아니지?」
「어....어. 그럼. 깜빡 하다 챙겨오는 걸 잊어서 그렇지, 우리도 그거 완전 좋아해. 그럼. 오빠들을 뭘로 보고 말이야. 안 그러니? 허허허.」
「아 나 이거 진짜. 또 혼잣말할 수도 없고. 아 답답해.」
「어?」
「왜? 왜?」
「저 오빠는... 이제 알겠다. 약간 삐딱한 타입이네. 어떻게 그런 하늘이 주신 재주를! 오오! 놀라워라.」
「뭐야 아까는 연예인에 지금은 베베 꼬인 아저씨라... 미안하네 미안해. 우리가 영화배우 뺨 치게 생기지 못해서. 아 정말! 그치만 우리는 막 뭐냐, 생긴대로 노네, 그런 말까지는 하지 않아. 그럼. 지킬 건 지킨다고. 못해서 안 하는 게 아니니까.」
「그건 그렇고. 에밀리와 로즈마리는 어제 뭐했니? 그냥 새근새근 잠들었을 것 같진 않은데... 아마도 축구를 보지 않았을까?」
「와, 대박! 오빠 어떻게 알았어? 우리 진짜로 축구 봤어. 정말이야. 와, 딱 맞추니까 기분 좋은데. (일일이 손가락을 세는 시늉을 하면서) 새로운 만남, NC, 쾌락, 환상, 추억 만들기, 나중 달콤하게 회상할 수 있는 전적등 그 모두를 다 놔두고 스포츠 관람을 선택한 여자라... 우릴 괜찮게 봤다는 거네. 안 그러니?」
「그러니까. 오오 기분 좋은데. 어떻게 알았지? 우리가 가끔은 3부 리그 경기장에 가서 소리지르는 취미가 있다는 걸 말이야.」
「왜, 전에는 무슨 가짜 이름이나 푼수니 뭐니 그런 이름표라도 달고 다녔나 봐?」
「우와! 그건 또 어떻게 알았어, 오빠? 대박! 완전 신기해.」
「어떻게 알기는 뭘 어떻게 알아? 그냥 찍었지 뭐. (그런데 뭔 말이야?) 축구 시청도 그렇고, 너네는 그런데 왜 그렇게 우리를 용한 점쟁이처럼 띄워주니? 내가 무슨 입만 뻥끗하면 어떻게 알았녜! 참 나! (아니 내가 먼저 띄워줬나? 헷갈리는데!) 산과 바다, 둘 중에 어디로 갈래? 하나, 둘, 셋 하면 말하기. 자, 하나 둘 셋! ~해서 간발의 차이로 뒤늦게 말해놓고 어쩜 우리는 이렇게 잘 통할까? 이제 보니 얘네들 수다 스타일이 뭔지 알겠네.」
「그러니까 오라버니 말씀인즉슨, 우리처럼 흔들고 베팅하며 말꼬리 잡고 늘어지는 화술에는 '우리는-화법'이 잘 통하지 않는다. 뭐 그 얘긴가?」
「어머머머. 너네 그거 어떻게 알았니? 별꼴이야 정말! 흥! 그런 거 좀 모른 체 하면 안되니? 우리 있잖아 너무 갑자기 친해지면, 그럼 얘, 곤란해. 정든단 말이야. 뭐야 뭐야. 너네들 속으로, 그럼 정분나지 뭐! 라고 생각했지?」
「어쩜 정말, 치! 심지어 원만한 진행이 아니라 원맨쇼? 이렇게 2 대 2로 도시에서 만나서 만약 이랬다고 생각해봐. 저 오빠 당장 우리 집까지 쳐들어오겠네! 아아, 각자 손을 펴서 손바닥을 지면과 수평으로 하여 손차양을 하겠군. 각자 생각들 참 많을 꺼야. 허허허. 정말 그랬던 적이 누가 누가 있을까?」
「그런 애정은 오래 못가! 설령 있었어도 재미도 없고, 추억도 없고, 완전 기분만 꽝일 테지. 남는 게 없어. 휙~!」
「맞어 맞어. 진짜 그래. 그치만 아닐 수도 있고. 호호호.」
키득키득 여자들끼리 웃는다.
「아 뭐야? 자기들끼리 신났다 정말. 이대로 끌려가면 어? 정말 그러다가는 돈 쓰고 욕 먹고 독박쓰는 수가 있어. 그럼 안돼. 그렇지, 영?」
「화제를 돌리려면 늬가 돌리지, 왜 리모콘을 내게 주니? 나보고 악역을 맡으라고? 내가 그러라면 못할 줄 아니? 그런데 있잖아. 어디서 얘네들 부모님께서 우리 얘기를 모두 듣고 계신 건 아닐까?」
「아니야. 아마도 아닐 꺼야. 아니기를 바래. 다만 이 친구들 부모님이 아니라, 그분이 누구시든, 오오, 다만 마라만 아니기를!」
「이러니 내가 채널을 돌릴 수 밖에. 내가 필요하면 전화해!」
내가 필요하면 전화해, 는 그녀들이 대동한 책 제목이었다.
「전화하긴 뭘 전화해? 이렇게 같이 있는데.」
존티는 못 말려!
9
「존티 넌 좀 이럴 때 가만히 있지 않으면 안되니? 그러니까 늬가 항상 마... 편집장한테 구박을 받는 거 아니냐고! 아 쫌! 응? 얘네들이 눈부신 해변에서 하루종일 내내 일광욕만 하겠니? 그럼 우리는 하루종일 매끈한 피부에 뭐, 앞 아니 등? 허허허. 우리가 무슨 돌쇠도 아니고 내내 선크림만 발라주고, 음악 선곡하고, 음료수 사가지고 와서 대령하며, 이혼한 친구 얘기나 들려줘야 하겠니? 정말 그러고 싶어? 클림트나 에곤 쉴레 또 뭐야, 아직도 마네와 모네의 값비싼 화보집을 간직하라고? 벌써 스무 살 때 뗐는데? 봐 봐! 그러니까, 응? (눈썹 위로)! (쉭─쉭─쉭)! 저 보라고. 그래서 저 무늬 저 그림이 유행하는 거 아니냐고. 그러니까 뭔가 살짝 애매한 친구들이 은근슬쩍 플레이보이의 3요소를 선취하는 거야. 그러니까 대체 왜, 어? 그게 다 너 때문 아니니! (쯧쯧쯧) 이 자식이...! 그러니까, 그 어떤 응큼함과 미화로 포장된 사심, 어중간한 컨셉, 신비주의 취향으로 시작했다가 푼수과로 탈바꿈한 바로 그런 애매한 친구들에게 토크쇼와 잡지의 러브콜은 폭주할 수 밖에. 그게 바로 오락산업이 선호하는 최적의 먹잇감이라고. 왜? 그게 다 너 때문이란 말이지. 허허허허허. 모른 척 하지 말아 이 친구야. 능청도 재미없어. 어리광도 안 통해. 앙탈은 늬 꺼 아니라고. 응? 유년기에 일기도 귀찮아서 안 쓴 주제에 뭐 이제 와서 뒤늦게, 어? 밥 먹듯이 취미를 바꾸겠다고? 장비병은 허세 아니면 허영인데. 그런데 얘는 뭐지? 그걸로 인맥에 활용하던가, 작품 소재로 쓰던가, 뭐라도 해야 된단 말인데. 가만 있질 못하는 타입이군 그래.」
「아 그만해 어? 그만! 야, 영! 너는 이미 내 본명을 밝혔어. 난 훌러덩 발가벗겨졌다고. 아, 부끄러워라! 누구도 뭘 더 궁금해하진 않지만 말이야. 하지만 봐 봐. 난 널 지켜주고 있다구. 어? 그게 너와 나의 차이점이야. 그렇다고 늬가 하수란 말은 아니야. 우리끼리 이러지 말자 친구. 잘나가다가 왜 그래? 친구여, 그러니까 유명한 콤비들이 슬럼프에 빠지고 사춘기 소년들이 그런 거나 공부하잖아. 막 록그룹 1기 2기 3기 누가 들어가고 누가 나오고, 그런 거나 달달 외우고 말이야. 그래서 나중 그분들이 20년 30년 40년 지나서도 두고두고 지식 자랑하는 거 아니냐고. 왜, 내 말이 틀려? 너도 딱 그 꽈야! 어? 그러니까 말하자면, 나도 다 알아. 에밀리는 레이먼드 카버를 들고 나왔고, 로즈마리는 레이먼드 챈들러를 선택했다는 거. 뿐인가? 레이먼드 카버는 하트퍼트 대학원 문학 박사 출신이자 대표작은 대성당, 제발 조용히 좀 해요,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들. 수식어는 리얼리즘의 대가, 체호프 정신을 계승한 작가요 그가 타계한 날짜에는 정확히 8이 세 개 들어가고, 시간에는 완벽하게 7이라는 숫자가 3개 들어갔으며, 이미 살아 생전 일~찍 거장의 반열에 올라간 작가였어. 때문에 그의 추종자들 상당수가 7번 결벽증에 빠졌다는 것까지. (끄덕끄덕)! 내가 왜 몰라? 나보다 20세기 세계 문학에 대해 더 잘 아는 있는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감히 나는 큰소리 치지 않겠어. 난 그럴 깜냥이 못되니까 말이야. 어때 나 좀 겸손해 보여?」
「존티 오빠. 제발 조용히 좀 해요! 가당 택도 없는 소리, ~까지는 아니겠지만 말이야.」
「네 오빠. 플리즈~! 응? 게다가 오빠가 표지를 착각했다는 거. 로즈마리는 레이먼드 카버를 골랐지만 내가 여기 들고 온 건 레이먼드 챈들러가 아닌데 어떡하지? 어머 미안해라! 내가 어쩌다 이런 실수를 했지? 보란 말이야, 내가 들고 온 건 SF계의 수다쟁이라고 불리는 코니 윌리스의 그 뭐야, 역사상 가장 낭만적이고 유쾌한 시간 여행 이야기! 곧 제목은 이름하여, 개는 말할 것도 없고! 그러고 보니 내가 괜한 짓을 했네. 그럼 또 저 오빠 그 말 하고 싶어하는 거 아니야? 아이언 메이든의 어떤 노래하며, 어느 가문의 문양이 어떻고 어떤 국기의 모양에 얽힌 사연들을 솰라솰라! 아아 (설레설레)! 오빠는 정말 시대를 막론하고 2인자 호칭을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전무후무한 연설자시군 그래. 안 그러니?」
「그럼 오빠가 바로 그 스토아 학파? 오오 세상에나, 맙소사!」
「헤헤헤. 실은 우리 있잖아. 오빠야. 우리가 이 책을 가지고 온 건 말이야 일부러 그런 게 아니야. 실은 있잖아, 저기 카페에서 어쩌다가 정말 우연히, 영화에서 007 가방이 바뀌듯 진짜로 우리가 원래 가지고 올려던 책이 딱 바껴버렸어. 우리 꺼 일회용 백이 그렇게 흔한지 어디 미처 생각이나 했겠니?」
「그렇다니까. 그런데 마라가 누구야? 누구지?」
「그러게. 누굴까? 그런데 있잖아 오빠. 오빠 혹시 힙스터 아니야? 아 촌스러워! 뭐야, 오빠 X 세대였어? 오오, (우웩)! 정말 구려 완전 손가락 오그라든다, 윽윽, 아뿔사! 오빠 갑분싸 알아, 갑분싸? 관종은? 하긴 발음부터 약간 이상하다 했다. 뭐야? 그러고 보니 우리 아빠랑 말하는 게 완전 똑같잖아? 워워, 저런! 족보 따져봐야 하는 거 아닌가 몰라. 정말로 우리 아빠랑 동창이면 어떡하지! 그렇지만 농담이 심한 건 맞지만 우리 벌서 그처럼 친해진 거 아니야? 아무튼 우리가 오빠 좋아하는 거 알지? 몰라주면 서운하다 오빠.」
상황은 급작스럽게 이상해졌다. 그래서 존티는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할 말은 많지 않았고.
10
「영. 너한테 리모콘 맡겼다간 정말 큰일나겠다. 아아 이거 정말 창피해서 어떡하나. 사태가 도무지 수습이 안되네. (설레설레)! 그건 그렇고, 어제 축구는 어떻게 봤니? 에밀리는 딱 보니까 분석적으로 봤을 것 같고, 로즈마리는 좋아하는 선수한테 집중해서 본 듯 한데, 어때?」
「안 보다가 축구를 보게 되니까 처음에는 할 말이 엄청 많았는데, 본지 얼마나 됐다고 금새 재미없어졌어. 벌써 싫증났나봐. 난 이게 문제라니까. 넌 어때 에밀리.」
에밀리가 다음과 같이 말을 시작했다.
「프리미어 리그 뻥축구를 이제 어떻게 무시하나, 그 생각했지. 이미 대세이자 기준이며 모범이 되어버렸으니까. 것두 오래 전에! 자본의 흐름이 그러니까. 인류 역사상 천재의 절대다수는 중류층과 중상류층이었어. 그렇듯이 메이저리그 통계를 보면 대충 총 자본 순위 10에서 3위 정도 팀의 성적이 제일 좋았다는데, 축구도 딱 그래. 축구도 스포츠니까 거의 대부분 과학이라고. 그렇지만 나도 프리미어 리그가 많이 좋은 건 아니야. 경기 패턴이 항상 비슷하거든. 그래서 경영자들이 딱 좋아할 리그이기는 하지. 군더더기 없고, 속도는 굉장히 빠르며, 힘이 넘치니까. 그렇지만 뭐랄까 거긴 너무 범생이들의 리그 같아서, 그래서 인생이랑 다르니까, 풍운아의 시각으로 보자면 재미가 없다는 거야. 한마디로 재미없는데 재미있어. 그게 뭐냐고? 보면 알아. 자본이 그쪽으로 다 몰리고 있어. 그러니까 완전 각박하지. 변수를 허용하지 않는다고. 그럴 꺼면 차라리 게임을 하는 게 낫지 않을까? 거긴 좀비처럼 무조건 뛰어야해. 오차가 없어. 내가 축구선수면 아아, 아마 축구를 하기 싫어질지도 모를 정도로 말이야. 야구는 벤치클리어링이 있고, 아이스하키는 아예 특별 시간에다 전담 요원이 정해져 있어. 그런데 축구는? 반칙을 어느 정도 포용하는 스포츠야, 그런데 모순되게도 스피드는 절대 포기하지 않아. 그러니까 2부 리그 3부 리그 보면 1 대 1 상황에서 시원스레 돌파하는 경우가 거의 없어. 그래서 드물게 개인기가 돋보이면 짜릿하지. 그렇지만 뻥 차고 뻥 넣으면 그게 뭐야? 그걸 바로 뻥축구라 하는 거라고. 응? 일반인들도 축구를 직접 해보면 알아. 수비, 미드필더, 공격. 크게 셋으로 나눠서 제일 힘든 게 뭐야? 미드필더거든. 일반인 입장에서 말이야. 조금 열심히 해야 한다 치면 미드필더는 거품을 물 수 밖에 없으니까. 그런데 선수들은 또 다르겠지. 그런데 프리미어 리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누구든지 거품을 물어야 해. 그래서 딱 경기가 끝나면 평점 몇. 여지 없어. 딸리면 밀려나는 거라고. 그래. 냉정하지. 효율에 최적화되어 있으니까. 그래서 뭔가 심심해. 어쩌면 비열해야 할지도 몰라. 살아남을려면 말이야. 남미계 스타 선수들이 가도 적응하기 꽤 힘든 시장이지. 어쨌든 축구를 볼 게 아니라 차라리 배구를 볼 걸 그랬어.」
에밀리의 말을 듣고 로즈마리 왈,
「에밀리. 그럴 꺼면 차라리 축구 얘기 책을 하나 내지 그러니? 정말로 그 수준이면 책 한 권 얘기 금방 나오겠네. 그거 대충 재미있게 정리해서 뚝딱 출판하면 뭐야? 베스트셀러! 당장 유명인에 등극하는 거라고. 스타가 뭐 별거니? 재능이 돋보이고 인성이 됐으며 끼가 있으면 유명해진다? 아니야 아니야. 딸랑딸랑─뿌잉뿌잉─새콤달콤! 응애응애 삐악삐악을 누가 누가 잘하나야. 운도 좋고 재능도 중요하지만 절반은 노력이라고. 그러니까 그 노력이 뭐냐, 예술성? 아니야. 연기력? 열심히 하면 대충 될 수 밖에 없어. 일반인에게 몸무게와 비례하는 스포츠인 마라톤에 도전하라고 해서 정해진 각본대로만 실험하면 95퍼센트가 완주해. 그게 뭐 대단하다고! 자랑을 누가 누가 잘하느냐, 얼마나 나대느냐, 어떻게 튀느냐, 쉬지 않고 빨빨대며 돌아당기느냐, 결국 얼마 만큼 설치느냐의 문제라고. 물론 일정선 이상의 재능은 기본일 테고. 그래서 수십 년 내내 최고의 자리를 유지했던 연예인에게 물어 보면 그래. 간혹 보면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이 있어. 만약 자녀가 향후 연예인이 되고 싶다고 한다면 어떻게 생각하시냐고. 토크쇼에서 물어보면 자기는 반대하는 부류라고 명확히 밝힌다고. 바로 앞서 말한 이유 때문에 말이야. 1번 만류하면 다시 생각해도 그 길이 내 길이다, 2번 말렸는데 다시 생각해도 하고 싶다, 그럼 3번 째도 자기는 말리겠다 쩜쩜쩜. 그거라고. 그래서 흔히 들리는 신인의 각오를 떠올리게 된다니까. 초심을 잃지 않겠다는 둥, 뻔트든 홈런이든 길이길이 무대에 남는 예술가를 존경한다는 둥, 자기는 롱런하는 게 꿈이라서 언제까지라도 예술만 하며 살고 싶다는 그 흔한 다짐들. 하도 들어서 입만 뻥긋하면 뭔 얘기를 할지 전부 다 알어. 안 들어도 알아. 그래서 연예계 소식을 모아서 전하는 방송이 재밌기도 하고, 한편 그걸 대체 왜 보지 라는 생각도 자아내게 한다네. 안 그렇겠어?
일류대 나와서 인문교양적 소양이 뛰어나고, 상식과 교양미 넘치며, 어디에 살고 누구를 만나며 어떤 생활 반경을 벗어나지 않는 상류층 남자의 얘기를 사석에서 들어봐 봐. 어설프게 1.5군이나 2범주로 친한 게 아니라 매우 가깝게 사석에서 얘기를 들어보라고. 그럼 그분들께서 뭐라고 얘기하겠어? 물론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그 뭔가를 배울려고 학습하고 흉내내며 화장술을 연습하는 숙녀들과, 또 처세술을 연마하며 솔깃한 인생의 비밀들이 가득한 얘깃거리를 찾고 수다에 관하여 단연 최고의 사연들에 목말라 하시는 여인들. 전자와 후자에게 진짜 바이블이 뭐야, 여성잡지1과 여성잡지2 아니냐고! 라~고 말씀하시겠지. 그런데 응당 드라마와 책을 챙겨볼 만큼 한가한 분들은 많지 않으니까, 짤막한 동영상 위주로 보면서 정보와 요점만 중요시 되니까 그걸 보지 않는 분들도 많지. 요컨대, 그분들의 생활 철학은 이래. 잔지식만 챙기고 나는 길들여지지 않겠다! 뭐라고? 얍삽하게 TV를 제멋대로 켜고 끄겠단 말이지? 어디 가만 두나 보자, 라면서 전문가들께서는 또 채널을 돌리는 초능력을 선사하시겠지. 어떻게? 배보다 더 큰 배꼽 같은 사은품으로! 햄버거를 사면 뭐가 딸려온다? 비매품 장난감! 그 옛날 마이클 잭슨처럼 음반을 팔 수 있는 가수가 어디 또 나오겠어? 아니면 U2나 누구 누구처럼 티켓 팔아서 먹고 살 수 있는 예술가가 대관절 몇이나 되겠냐고. 그래서 음반을 사면 복권처럼 번호가 고유한 소장용 뭔가가 함께 팔리지. 그거 살려고 똑같은 앨범을 팬들은 사고 또 사게 되니까. 그걸 상술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어. 하지만 달리 보면 마케팅 기술이자 예술의 원동력인 협업과 모방, 아이디어일 뿐이야.
잡지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지성인이 볼 때 솔직한 심정은 그래. 너와 나의 마음이 썩 다르지 않다는 점, 너도 알고 나도 안다는 것! 그러니까 지성인이 무엇을 볼 때? 여성잡지1과 2의 애독자를 볼 때 말이야. 하지만 장광설이 특기인 허풍꾼과 답도 끝도 없는 허세남이 있다면 또 그녀들 세계라고 그런 예가 왜 없겠나. 가만 있는 주위 사람들을 모두 신부들러리로 만들어버리는 푼수과, 보는 사람 듣는 사람 아는 사람 입을 딱 닫게 만들어버리는 영심이! 있다니까. 에이, 알면서! 난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면서 손사래를? 어림 없는 표정은 한번 더 놀래야하지 않을까. 내가, 내 친구가, 내 동생이, 그 누가... 우와 어떻게 연예계 소식이라면 모르는 것이 하나도 없을까, 완전 연예계통이네! 그 업계 관계자라면 미덕일 테지만, 일반인께서? 그 역시 악덕이 아니라 자유이자 취미이듯 그분의 천생연분은 말수가 적고 삐딱한 시선 일색인 낭군님일지도.
그렇지만 말이야 이런 관점도 있겠지. 운동선수, 연예인, 예술가, 정치인을 모두 함께 유명인이라고 통칭하는 건 틀리지 않아. 하지만 오락산업이 이 세상을 좌지우지 한다고 나까지 아티스트의 자존심을 포기한다? 뭔가 다를 수는 있어. 생각해볼 만한 문제니까. 가령 단연 1인자로 손꼽히는 축구 스타가 나이가 들면서 밀려나는 이유는 체력 때문이야. 힘 그리고 속도! 실력이 수준 이상이라는 전제에서 말이야. 그래서 주전으로 뛸 수 있는 절충선을 유지하면서 점점 자본력이 내려가는 곳으로 건너가는 거지. 그건 한마디로 모범이야. 당연히 귀감이라고. 그러니까 월드컵 같은 단기전에서 감독의 역량에 대해서 왈가왈부할 수 밖에 없어. 주전 위주, 전성기 감안해서 오름세 위주, 무조건 포지션 위주로 선수단을 구성해야 돼. 그런데 축구 인생 전반기에 아무리 명팀이라지만 벤치에만 주로 앉아있던 브랜드라... 이름값도 좋지만 하락세 명단들 위주라... 포지션을 수비만 왕창 공격만 왕창? 축구는 원래 속도 게임인데, 것도 단기전인데 과학적 통계로만 봐도 열세면 지는 건 당연해. 그러니까 프리미어 리그와 변방의 3부 리그를 보면 제일 큰 차이 중 하나가 그거야. 그것은 단연코 첫째 패스의 속도, 둘째 체력! 학교 다닐 때 농구-야구-축구를 많이 해 봤으면 알 꺼야. 우리는 일단 폼이 좋아. 폼만은 선수와 거의 동급이지. 그런데 멋지고 기술도 좋고 동네에서 알아주는 팀인데도 불구하고, 정말 이상하게 꾀죄죄하고 상당히 이상한 아저씨들 동네팀과 만났는데 대패한 경우. 복장도 그렇고 장비도 그렇고 호감 가는 인상도 아닌데, 뭘로 봐도 허접하지 않은 우리와 붙어서 대승을 하다니. 당시에는 참으로 이해되지 않는 일이었지. 패인을 분석하며 뭘 추정하고 싶지도 않았어. 그저 운 나빠서 우리가 그냥 몸만 푸느라 대충 했기 때문에 그럴 꺼라면서 잊어버렸다고. 정말 그런 이해되지 않는 일이 있다니까. 폼으로 최고인 우리와 완전 못생기고 촌스런 동네 아저씨들 간의 대결. 그런데 우리가 대패! 왜, 무엇 때문에? 거긴 멋이 없거든. 폼이 꽝이야. 재미까지 없을 수도 있어. 그런데 속도는 빨라. 특히 패스. 간결한 패스가 일품이지. 패스의 100가지 방법 가운데 딱 최적의 패스가 반복돼. 그런데 당시 우리가 어떻게 이길 수 있었겠어? 패스라는 기본기가 지켜지면 그럼 체력도 아끼고 실리도 얻고 잇점이 완전 많아. 옛날이 아니라 지금, 현대 축구에서 그동안 유행했던 용어들대로만 했다가는 뒤쳐질 수 밖에 없어. 최고의 미드필더진을 자랑해서 10년 동안 전성기를 누렸던 스페인 대표팀, 청소년 축구선수에게 완벽한 모범이야. 그렇지만 황금 세대는 늙어. 비교적 젊은 친구보다는 덜 빠르겠지. 게다가 요즘 대세가 뭐야? 뻥축구와 원터치 슛&원터치 패스야. 과학적으로 다른 스포츠의 장단점을 축구에 많이 차용한다고. 그럼 또 수비는 지역방어와 대인방어를 혼용하는 방법이 있겠지. 포지션에 대해서 축구는 엄준한 규정 자체가 없으니까 말이야. 작전1은 미드필더 건너 뛰면 되고, 작전2는 미드필더 막으면 돼. 그런데 미드필더를 건너뛰기가 쉽나? 당연히 어렵지. 그래서 관건은 공수 전환이라는 절호의 찬스를 살려야 한다는 것. 특히! 축구는 작전 타임이 제일 적은 종목이라는 점. 때문에 작전 변경이 잘 안 먹히는 것처럼 경기가 진행중일 때는 우리가 하고자 하는 전술 역시 잘 통하지 않아. 그럼 어떻게 하냐? 다 방법이 있지. 곧 흐름이 잠시 멈출 때! 반칙이나 코너킥 같은 세트피스 말이야. 물론 그것도 원터치 슛과 원터치 패스지. 당연히 그거만 반복되면 재미없어. 채널 돌아가. 사랑처럼 인기도 식으면 어떡하나? 고로 자본도 따라서 빠져 나갈 공산이 크다고. 그러니까 막는 방법도 다 있겠지. 어떻게 없을 수가 있겠나. 골퍼가 공을 치면 대충 그 공의 구질은 10개야. 그처럼 축구공이 중앙으로 옆으로 넘어오는 궤적도 몇 개 안돼. 그러니까 점유율 80퍼센트에 멋진 쇼와 페어플레이니 뭐니 다 이겨도, 점수가 지면 진 거야. 졌는데 무슨 말이 필요하겠나. (딱) 한방! (쉭─쉭─쉭!) 그래서 결과는 이미 처음부터 정해진 거나 다름없어. 그러니까 챔피언스 리그에서 명감독들이 울상을 지으며 껌이나 쩍쩍 씹으면서 어떻게 해볼 수가 없기 때문에 정말로 보기 불쌍하게 되는 이유가 뭐야? 이미 처음부터 절반은 승부가 정해진 거니까 그렇다고. 감독 얼굴을 차마 못봐주겠네? 따라서 압박이니 전원 공격에 전원 수비니 아트사커니 뭐니, 내가 이번에 선정한 현대 축구의 슬로건은 이거야. 축구는 게임이다, 축구는 시뮬레이션이다, 축구는 과학이다! 어지간한 전술이니 작전이니 선수단 구성이니? 애들이 게임에서 이미 다 해 봤어. 별별 구성을 다 경험했다고. 뭐야, 그런데 현대 축구 슬로건이 지금 왜 나왔지? 다시 돌아가서,
그처럼 축구계에서는 슈퍼스타가 A지역 1부리그 명팀, 다시 B지역 1부, 또 C지역 2부, D지역 3부 이렇게 차츰 소속이 변하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점이야. 물론 그걸 역순으로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경우도 있고, 일부러 출신지 리그가 아니라 세계를 돌며 C급 D급에서만 돌아다니는 것처럼 몇 가지 경우의 수가 있겠지. 그러나 그건 스포츠! 또 고전음악을 전공했다가 재즈랄지 유행가 시장에서 활약하는 예술가도 있는데, 그 반대는 드물어. 가령, 한 시대를 풍미했던 유명 록그룹의 드러머가 나중 성직자로 변신하는 일. 유명 예술가가 뒤늦게 학사-석사-박사 과정을 공부하는 일. 그렇지만 희박한 예를 제외하고 사람은 유명세를 싫어할 수 없는 법. 그러니까 '돈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라는 전제를 비꼬지 말던가, '없어'를 남발하는 허세꾼으로 살지 말던가, 유명하면 장땡이라며 밥 먹듯이 슬로건을 변용하지 말던가! 어쩜 그래야 하지 않을까? 시시각각 변덕에 변심에 그러면서 자긴 또 여자의 마음을 좋아하네 재밌네? 굳이 오락산업에 일조한다는 걸 광고하는 의미로 은퇴하고 은퇴번복하고, 은퇴하고 은퇴번복하고! 사랑은 변하고, 팬심도 변하며, 유행도 시대따라 바뀌는데 변신이라고 왜 무죄이면 안되는가? 안되지! 안되도 한참 안되지. 왜냐하면 <막살자─막살라> 웨이터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산다>라는 포지셔닝은 적잖이 다르기 때문. 코메디언이 글을 써서 작가라는 타이틀을 얻은 다음 계속 작가에 전념할 수도 있어. 식당 주인이 될 수도 있고, 숙박업계에 진출할 수도 있어. 그걸 대관절 누가 뭐라 하겠나, 뒤늦은 꿈의 실현이자 개인의 자유일 텐데. 그런데 예술가가 잘나가다가 중간에 유명인으로 활약해서 나는야 합리주의자 대스타, 마에스트로 아티스트? 그 둘의 차이점이 대체 뭘까? 그건 나도 잘 모르겠지만 그 순서에 따른 불편함이란 게 있단 말일세. 광대는 아마데우스가 아닐 테니까 말이야. 그러니까 십대에게 요절한 천재는 멋져보일 수 밖에.
달리 보자면 말이야 이를테면 이런 예가 있겠지. 꼭 자타공인 가왕으로 불리지는 않을지언정 오랫동안 한 장르를 꾸준히 주름잡았던 컨츄리 가수. 물론 그분도 엄연히 마에스트로야. 왜 아니겠나. 그런데 그분께서는 연예계에서 다방면으로 활약하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주업은 노래지. 고전음악을 애호하던 어쩌던 무대에서 노래 부르기는 내 천직이니까. 그런데 어느 날 그분이 어려워지지. 한마디로 끔찍한 빚더미에 올라앉아 구설수에 오르는 일. 그래서 인터뷰랄지 지인을 만나던지 사석에서 이렇게 말하겠지. 아아 하늘은 딴따라에게 크나큰 부는 허락치 않는구나, 오오 너는 그냥 즐겁게 노래나 부르면서 살라는 뜻이구나 라고. 그럼 또 삐딱한 시선들이 좀 많나? 어? 뭐라 뭐라 뭐라,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세상. 이 세상사는 말이야 그처럼 그 어떤 뭔가 애매한 순서, 차례라는 게 있더란 말일세. 그냥 무조건 나는야 종합예술가, 나는야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유일한 후계자요 내 애인이 진정한 모나리자 미소의 승계자다? 뮤지컬의 원조인 오페라의 본 고장 유럽에서는 이미 옛날부터 그랬어. 오페라 공연 도중에도 잡답하고 떠들고 돌아다니며 잠자고 코골고, 그러다 갑자기 대스타의 아리아? 언제 그랬냐는듯 떠들썩한 열광을! 그러다 요즘 평판이 별로 탐탁지 않은 배우가? 아주 신난다구, 야유 하느라 말이야. 이미 몇 백 년 전부터 그랬단 말일세. 그러니까 팬들도 그 모냥이니까 아티스트까지? 내게 유리할 때는 아티스트의 자존심, 또 적당히 불리할 때는 요트가 안 팔리니까 여기서 웃고 저기서 웃기고? 그래서 나는 말이야 괴물 신인이든 연예계의 귀여운 초보자든지 초심에 대해서 한마디할 때, 뭐랄까 유독 신경 쓰인다고나 할까? 솔직히 지겹고 지긋지긋하고 판에 박은 듯 식상하지 않을 수 없는 포부! 그래서 발라드 가수의 일부 팬은 그렇게 말하지. 오빠 여기서 깐족 저기서 깐죽, 어제는 누굴 깎아내리고 내일은 누굴 놀리며, 오빠 그냥 노래만 하면 안되요? 라고! 그리고 또 작가 줄리언 반즈는 E.M. 포스터를 보고서 그랬어. 뭐라 그랬더라, 적당한 시점에 절필을 했다는 뜻으로 말했는데. 다작과는 거리가 있었지만 E.M. 포스터가 동성애자라서 그랬을까? 그 양반 인품에다 점잖은 성정에 웬만하면 그렇게 논평하지 않을 텐데 말이야. 그럼 음악계에서도 차이코프스키를 몹시 꺼려하는 분들도 틀림없이 계실 테군. 그러니까, 농부가 꽃을 언제 따고 과실을 어느 시기에 수확한다? 그렇지. 상품 가치가 제일 높을 때! (딱) 그처럼 바람둥이는 숙녀에게 마음에도 없는 감언이설을 늘어놓는 건 단지 습관이자 예의며 생활일 뿐. 뭐 아무튼, 때문에 난 정말 그 어떤 불쾌감이라는 가시 방석에 앉아 있는 기분이야. 물론 어려서부터 삐에로가 되고 싶어서 유명해진 사람들도 있겠지. 재능을 뽐내면 반기고 돈도 벌고 유명해지고 기분도 좋은데, 안 될 게 뭔가! 어디 유명인만? 유명인과 친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일반인은 든든하다랄지 어깨가 무거울 수도 있겠지. 적어도 기분은 좋다고.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자, 내가 어디 숟가락을 얹을 만한 꽤 괜찮은 잔칫상 어디 없나? 워매 좋은그~, 아이 참말로 환장하겠시유~, 완전 끝짱 거 마 미쳐버리는거래요, 그처럼 심하게 좋을 정도로 거저인 다 차려진 잔칫상 어디 없나 이 말일세!
아무튼 결론은 그래 오빠. 오빠. 내가 말을 너무 많이 해서 미안해. 그렇지만 입이 트였는데 어떡해? 나도 자주 이러지는 않아. 그렇지만 내 이번에 오빠한테 큰 빚을 진 셈치고, 나중 한턱 거하게 낼께. 막 점쟁이들이 그래. 그분들이 딱 그러더라니까. 나랑 친해지면 자기들은 뼈도 못추린다고. 단, 내가 이처럼 입이 한번 트였을 때만! 뭐 어쨌든 결국 사람은 시시때때로 자주 변하든 안 바뀌든 처음부터 지향점은 뭐다? (딱), 그렇지 트로피지! 목표는 트로피다 행복도 트로피다, 그 말이라고. 그거라고. 바로 그거라니까. 그 트로피를 거머쥘 천부적인 소질을 타고나지 못했다, 게다가 천운도 따라주지 않는다, 아울러 천직은 재미없다, 뿐만 아니라 천성은 단조다, 하오나 대망은 귀찮고 야심마저 날 가만 놔두질 않는다, 아 나 정말 이거 참 허허 뭐가 이렇게나 많아? 그러니까 관상? 말할 것도 없고 별자리운은 따질 것도 없으며 타로점마저 별로다, 심지어 친구의 허세로도 모자라 (드물지만) 여자친구의 허영심까지? 뚜껑도 그냥 뚜껑이 아니라, 그건 바로 왕뚜껑이라고 해야 하겠지. 그렇게만 보자면 삐딱한 시선은 얼마간 정당해보이지 않니? 그렇게 보니까 또 설득력 있어 보이는군. 허허허. 어때, 벌써부터 커피포트 끓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지 않아? 허허허허허. 딸랑딸랑~ 왜 갑자기 어디서 웬 방울 소리가 들리지? 간질간질~ 어머어머 왜 등판이 이렇게 가려운데! 삐악삐악, 내가 무슨 병아리야? 이건 또 뭐야, 눈을 비비고 아무리 봐도 저기 보이는 저 물개박수는 환각이 아니란 말이네! 오오 반짝반짝, 아아 반짝반짝, 드디어 워워, 마침내 저 45도 각도에서 그분이 내려오시는구나! 두둥~! 음하하하하하하. 푸하하하하하하. 으하하하하하하. 짜잔~!
농담이고, 그러므로 연말의 스포츠 시상식은 애교야. 타격왕, 타율왕, 타석왕(있나?), 홈런왕, 방어율왕, 득점왕 등등등. 그러니까 못 먹는 감 찔러나 본다고 막 던져서 얻어걸리는 것처럼 인생은 똑딱이 카메라일 수도 있고, 순정-순애보-최고의 사랑처럼 인생은 최적의 타겟팅일 수도 있어. 뭐야 그런데, 먹기 싫은 밥에 재나 뿌리지 말지 라는 반칙왕은 뭐냐고? 그걸 내가 어떻게 알겠나! 각자 자기 인생 사는 거지. 나 잘난 맛에 사는 거도 바쁜데 거기다 남의 인생까지? (설레설레)! 아하, 바로 그래서 남자들이 '없다'를 좋아하는구나. 왜냐하면 나는 자존심은 세지만 그에 반해 인기-성적-황금으로 최고일 리는 없고, 얄미운 건 많고, 심지어 부러우면 지는 거니까.
따라서 교훈은 아마도 홈런보다 뻔트겠지? 아닐 수도 있고. 어쩌면 그럴 수도 있고. 선택은 내가 책임도 내가. 시대는 바뀌고 오락산업뿐만 아니라 시장경제는 품위보다 자본의 논리가 우선이니까. 고로 타인의 인생을 깎아내려서 내 인생이 아름다워질 수 있다면 얼마든지! 하오나, 그래도 싫은 건 싫은 거고, 샘통이다 뭐다 전문용어는 건재함.」
「로즈마리. 너 지금까지 그렇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대체 어떻게 참았니? 와! (엄지척)」
「그럼 오빠는 흑심을 어떻게 참는데? 무슨 특별한 비법이라도 있으면, 부디, 내게 한수 가르쳐주지 않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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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네킹과 정서를 공유했다. 천사의 허영심을 상상해봤다. 그로써 나는 현실적 환상주의를 창시할 수 있을까? 그럴 리가, 그랬으면 얼마나 좋을까! 결국 나는 내 마음 속에 가득한 헛바람을 냉정히 측정했다. 때문에 나는 내 인생의 숙명, 그것의 변화를 한발 앞서 어느 정도 추측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도시의 허세와 환상머신에 대한 헛된 예감 때문에 미스테리아 사무실에 들락거렸다. 또 해변의 낭만과 여행의 들뜬 분위기, 광란의 전개를 찾기 위해 이렇게 마라의 남자친구인 존티와 단짝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약간 안 어울리는 우정이었다. 서로 선호하는 슬로건도 다르고, 좋아하는 포지셔닝도 정반대였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른가는 생각하기도, 말하기도 귀찮을 뿐이다.
어쨌든 존티의 애마는 도시마, 곧 그는 사랑을 키우고 문화를 즐기며 향락을 소비하기 위해 도시로 돌아갔다. 그러나 내가 거칠게 올라탄 유니콘의 이름은 모험마. 즉 나는 로즈마리와 에밀리의 빈말을 잡고 늘어졌다. 그럼으로써 그녀들이 사는 동네로 출발하기로 했다. 그것도 함께 말이다. 세상을 알 만큼 알면서, 허허허, 이 오빠 앞에서 넙쭉 빈말을? 그녀들의 단순한 실수인지 나의 어설픈 최면 요법에 따른 성과인지는 몰라도, 결과적으로 보자면 나는 인생이랄까 여행의 동반자를 갈아치운 꼴이 되었다. 로즈마리의 애교와 에밀리의 내숭이 살짝 마음에 흔쾌히 괜찮은 인상을 남기지는 못했지만, 뭐 그런대로 참신한 '발단의 탈출'이었다.
그러고 보니 존티와의 작별 인사가 꽤 어색했다. 꼭 어딘가에 끌려가는 동물 마냥 녀석의 안색이 영 봐줄 만 하지 않았으니까. 그래도 그렇게 못 이긴 척 마라의 수하로 돌아갈 꺼면 내 허름한 웨건과 너의 그 매끈한 컨버터블을 바꿔줄 것이지...! 라~고 푸념만 하면 안된다. 마침내 지루하고 길고 따분했던 발단을 벗어났으니 흥분을 가라앉히고 나는 그 다음을 생각해야만 한다.
아아, 내일은 어떤 행복이 내 앞에 펼쳐질까! 그것은 꺼뻑 매료될 만큼 고혹적일까? 아니면 그 얼마나 기쁘고 즐겁고 한없이 재미있을까! 아무튼 나는 쓸쓸한 절망에 관한 일말의 가능성 같은 건 까맣게 잊은 채 꿈 같은 새 희망을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12
나는 존티를 떠나보낸 후 짐을 챙겨 그녀들과 합류했다. 아마도 두 아가씨는 유복한 성장 환경에서 자랐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혼자서 공상에 취해 그녀들의 행복한 부모님을 뵈면 뭐라고 인사말을 건네야 하나를 생각했다. 그런데!
「부모님은...?」
「도시에 계시지.」
「같이 왔다며?」
「뻥이었어! 설마, 그걸 믿진 않았지?」
「어? 어! 그럼. 다 알고 있었어. 에이 속기는.」
처음에 시원한 바람을 맞이하며 상쾌한 전경에서 즐거웠던 여행은 목적에 충실해야만 했던 것일까? 어째 새롭게 시작된 '친구네집 놀러가기'라는 떨리는 전개가 어째 시작부터 뭔가 불안불안했다. 기분은 조마조마하며 누군가 내 귓볼 근처 머리카락을 잡아 끄는 듯했던 것이다.
한편 그녀들이 타고 온 차는 이름이 크레도스였다. 크레도스1. 내가 견적을 예상하고 전망을 살피고 다망함을 추론하는 데는 일가견이 있다고 자부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나름 대충 사람 보는 눈은 있는 편이다. 그래서 난 대충 그녀의 차, 사는 동네, 옛 남자친구들의 약력 하며 뭘 좋아하고 무엇을 즐겨 보고-입고-먹는지 예상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애당초 벌써부터 남의 다리를 긁는 격이라니! 그럼 앞으로 즐거운 여정과 흥미로운 절정으로 치닫는 게 아니라 아예 장르가 바껴버리는 건 아닌가 심히 걱정되기 시작했다. 크레도스라... 아 맞다. 내 친구 척키가 그 옛날에 그 차를 몰았다. 이건 딱 봐도 한마디로 위장술이 분명했다. 으리으리한 사유지에 들어갔다 나오는데 광고하기는 싫었던 거지. 으하하하하. 누굴 속일라구? 그래서 괜히 나는 또 과거가 연상됐다. 추억도 직업체험도 뭐도 아닌데 딱 1달 택시 드라이버를 했던 기억. 당시 내가 몰던 차는 크레도스2였다. 그 일을 그만둘 당시 하필 같은 회사 동료가 모는 소나타3의 뒤를 내가 박았던 사고가 있었다. 그리고 나중 직업이 틈틈히 바뀔 때 아르바이트로 대리운전을 잠시 했었다. 그때도 일이 있었다. '무슨 포터'라는 픽업트럭이 내가 운전 중이던 손님의 차 '세라토'를 옆에서 부딪히고 도망간 일. 그외 자잘한 건 생략하고, 그럼 순서가 나온다. 크레도스2로 내가 백허그, 무슨 포터 트럭이 세라토의 볼에 (기습)키스, 그럼 이제는... C2에서 C1이었으니까 마침내 -C의 차례일까? 망상도 재미없다. 차라리 비타민 C를 먹고 놀이공원에 가서 범퍼카나 탄다면 몰라도! 그러니까 나는 여태 환상머신1도 못 만들었는데, 그런데 그녀들은 미완의 신비와 행복의 추구니 천상의 사랑을 모두 품어 안은 환상머신2를 혹시 벌써? 영화 1탄도 나오기 전에 2탄이라니 거 무슨 개 풀 뜯어 먹는 소리인지, (설레설레)!
우리는 그처럼 새로운 일정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에게는 여행2일 테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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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에밀리와 로즈마리가 사는 동네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녀들은 뭔가 일정이 있다면서 초원에서 뛰노는 양마냥 날 내버려둔 채 어디론가 떠나갔다. 그곳은 딱히 흠 잡을 데 없는 별장이었다. 와, 얘네들이 이런 데 사는 구나 라고 생각했다. 여기서라면 명작을 절로 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니까 그녀들은 무책임한 방임자가 아니었고, 나는 피노키오가 아니었다. 이제 나는 위대한 작가였던 것이다. 그렇지만 처음부터 글이 잘 써질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동네도 돌아다니고 사유지도 돌아다니며 핑핑 놀았다. 집사와는 친하지 않았다. 그럭저럭 하루를 보내고 이틀 째가 됐다. 그녀들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나도 썩 관심도 없었다. 이 집이 내 집 같았으니까. 그러다 나는 뭔가 할 일을 해야 하니까 일을 하기 시작했다. 우선은 칼럼을 썼다. 먼저 에밀리가 말했나 로즈마리가 속삭였나, 그녀들의 수다에 영감을 받아서 다음과 같은 칼럼을 썼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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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러브콜
내용: 여러분, 스포츠 선수가 은퇴 후 꼭 감독을 해야 한다는 사랑법은 그 어디에도 없답니다. 그분들이 은퇴한 다음 전혀 다른 일을 하거나 유명인으로 활약한다고 보통은 특별히 비난 받지는 않죠. 같은 논리로 과학자가 부업으로 모험가를 병행해도 무방하겠죠. 역시 작곡가가 그림 그리는 일에 양다리를 걸쳐도 썩 손가락질 받을 일은 아닐 테죠. 하오나 선생님이 조류학이라는 전공과 동물론이라는 본업을 취미나 사랑 때문에 지나칠 정도로 소홀히 한다면 그건 다른 문제예요. 다시 말해 법관이 조각가로 전업한다면 모를까 윤리학자가 밤에 화류업까지? 그건 생각 좀 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법복을 벗고 애정 고백을 번복하며 사랑의 맹세가 깨진다면 모를까, 야구 선수가 축구장에 놀러가서 한다는 응원이... 오오 저런!
어머머머머머 세상에나!
과거가 전남편이 되고, 방황 때문에 전직이라는 인생 경험이 소중하다면 그건 얼마든지 타당한 일이다. 그러나 조강지처와 전-여자친구가 양립한다는 건 결코 아름답지 않은 일. 따라서 철들지 않는 건 개인의 자유일 테지만, 바람둥이와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뭐가 다르냐고 따지는 일만은 꾹 참자! 꿈, 인기, 황금, 사랑─대타는 행복 아님 주색과 재미?─라는 플레이보이의 4대 요소에 근접했다고 해서 인생은 다가 아니니까. 이기고 지며 좋아하고 미움 받는, 승패의 네 가지 경우의 수 뿐만 아니라 지는 게 이기는 일도 있으니까. 루저 마인드로 대성하는 일도 드물게 존재할 테니까 말이다. 그처럼 속궁합만이 아니라 어울림과 친밀감, 조화, 화음에 대해서 이 세상은 우리에게 참으로 많은 걸 가르쳐준다. 쉬운 예로 우정은 멀티태스킹이 권장되며, 단짝은 어차피 단짝이 깨질 날을 생각해서 당시 애틋했으면, 그리고 사랑은 유일하기를! 하나 더. 말하자면 지금의 행복에 무조건 감사하라, 그래야만 한다 같은 설교문을 훔치지는 않겠다. 다만 인생에서 몽정기와 권태기, 직업, 전성기와 어려운 시절의 소원과 좋아하는 무엇과 대망 및 생각은 그때 그때 다름을 충분히 감안할 것. 아울러 타인 뿐만이 아니라 내게도 야망과 시기심, 질투심, 이타심,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내고 또 받고 싶은 마음이 공존한다는 걸 스스로 인정했으면! 그러면 정말 거짓말처럼 탁월한 원리도 보이고, 타인을 이해하며, 무엇보다 나를 바로 알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 당장... 늦었으면 내일 나는 아는 오빠한테 E.M. 포스터의 '전망 좋은 방'을 선물하면 어떨까? 딱 그렇게 실행했어, 그런데 오빠왈 이미 봤다는 둥 그런 영화 완전 짜증난다는 둥 내가 제일 싫어하는 어쩌고저쩌고? 워─워─워! 그래서 나는 오늘 투잡이 다 뭐야, 큐피트이자 디오니소스 심지어 프로메테우스가 되어 내 친구 난봉꾼과 술꾼을 만날 약속을 잡았다. 결국 나에게 우정은 꽉 막힌 수다쟁이뿐이요, 사랑은 모르는 게 원체 많은 푼수라도 스쳐지나간 게 다행인 것일까? (진짜로 그렇다는 말이 아니라!) 아무튼 후자의 마음씨가 고웁다면 전자라고 왜 심성이 착하지 않겠나. 다만 기복이 심한 게 탈이겠지만. 어쨌든 답답한 상남자를 뺀다면 친구의 50퍼센트.. 60? 70? 어쨌든 대다수가 사라지고, 누구나 신부들러리로 만들어버리는 푼수가 아니면 아는 여자는 0으로 수렴된다? 아아 (설레설레)! 심지어 넌 너 밖에 몰라 라며 여자친구와 헤어졌는데, 위로 받을 사람이라고는 남의 말을 통 듣지를 않는 친구라... 심지어 조증에 걸린 숙녀를 만나서 에너지까지 빨린다? 총체적 난국이 따로 없군 그래.
추신. 나약한 인간의 일례가 이렇다면 다만 그대의 삶은 훨신 아름답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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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을 하나 완성한 다음 나는 핑-하며 반짝였던 착상이 퐁-하며 발동이 걸리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래서 내친김에 칼럼을 하나 더 쓸 수 밖에 없었다. 이번에는 좀 더 심오한 글쓰기를 시도했다. 결국 나는 어느새 정들었기 때문일까? 나는 칼럼니스트라는 조금은 무료한 직분에 언제까지나 소홀하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아무튼 칼럼의 제목은 신은 있을까, 없을까! 였다. 그런데 그와 같은 주제와 내용을 쉽게 정한 건 아니었다. 빙빙 돌다 돌다 겨우 깨달았다. 아하 이번 주제는 바로 그것이구나 라고. 곧바로 내용을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제목: 신은 뭐하시나, 허풍꾼을 혼내주시지 않고.
내용:
첫째, 신화의 시대
둘째, 소비의 시대.
첫째에서 어떤 직접 증거는 많고도 많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첫째와 둘째의 중간에서!) 크리스마스와 칸타타 외에도 익히 아는 지식들. 그 옛날에는 한마디로 신들의 세상이었다. 때문에 먼 옛날에는 공룡과 영장류가 함께 살았듯이, 신과 인간이 공존했다고 가정할 수도 있다. 물론 신화적인 의미로 말이다. 그러나 이 세상은 원래 인간의 세상인 법. 따라서 인간이 신의 영역에 근접하던가, 아니면 신은 신들의 세상으로 돌아가던가, 둘 중 하나만을 원하게 됐다. 그것이 올바른 질서일 테니까. 그 결과 인류 역사는 인간들끼리의 역사로 남았다. 첫째는 말 그대로 신과 인간의 공존, 첫째와 둘째의 중간은 누가 누가 어떤 성자와 신이 왔다 갔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교양이 되었다. 왜 그래야만 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 후 과학이 발달하고 문명이 발전했다. 그런 결과 신화적인 설화와 전설과 문화는 그것대로, 또 인간은 무인 우주선을 태양계 밖으로 내보냈다. 나도 내가 뭘 말하고자 하는지 몰랐는데, 아하, 이제야 알겠다. 주제는 뒤늦게 정해졌다. 그것은 바로 신이다. 다시 말해, 신은 있냐 없냐!
<신은 있을까 없을까>
주제가 은근히 출연했는데, 아아, 본론은 얼마나 길지 아득하다. (설레설레)! 신은 있냐 없냐, 곧 주제가 주제인지라 따질 게 많다. 그래도 부딪혀 보면 된다. 하면 된다. 하는 데까지 해서 최대한 정리하면 대충 요점은 나올 테니까. 가 보자. 자, 일단 먼저
1.왕.
2.왜 신은 세상의 불합리함을 모른 체 하는가.
3.문명은 이처럼 여러 문제점과 함께 발전할 수 밖에 없었는가 라는 의구심.
먼저,
1.왕. 이름이 왕인 사람도 있지만 여기서는 왕이라는 신분을 뜻한다. 지금은 몰라도 옛날 세상은 정말 좁은 세상이었으니 만큼 인정해주는 명성이라고 해 봐야 '신분' 딱 하나였다. 못 올라갈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는 속담은 피라미드 시대에는 일반적이었고, 지금은 냉소주의자한테나 어울리는 투정일 것이다. 옛날에는 알아주는 직업도 한 손으로 꼽았다. 그 외 나머지는 딴따라, 민초, 하층민과 집시, 한마디로 평민 끝. 그래서 옛날에는 왕과 피어가 최고였다. 그러나 그건 그때 얘기. 그래도 왕이라는 전통과 문화는 신화의 시대가 아닌 소비의 시대에도 일부 공존되고 있다. 그러나, 그건 얼마든지 가능하나 왕권 주도적이라는 그림은 현대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오락산업에서만 일컫는 왕이 대체 몇 가지인데! 그러니까 지금은 존중할 형식과 재밌는 사극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한마디로 왕은 신이 아니다. 신처럼 경원하며 신처럼 찬미할지언정 말 그대로 왕은 단지 머머-처럼일 뿐이다. 문단의 요점은 이렇다. 왕은 신이 아니고, 신이 있다면 하늘의 관점은 왕을 비롯한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 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왕이 이승을 떠나게 되면 하늘나라에서도 왕은 아니라는 것. 다음으로 소-주제로 넘어가서,
2.왜 신은 세상의 불합리함을 모른 체 하는가! 신은 죽었다 라는 철학자의 말은 말 그대로 철학적 담언이고, 그보다 현대에 훨씬 걸맞는 표현은 그것이다.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하지만 <막살라-막살자-막산다>와 <하고 싶은 걸 하고, 좋아하는 걸 즐기면서 마음껏 인생을 향유하다>의 차이는 우선은 인간 각자가 알아서 판단할 문제다. 개인의 자유이자 각자의 인생이다. 그런데 드물게 어떤 생태계의 문제라거나 뭔가 경종을 울려야 한다거나 라는 이유로 이 둘의 차이에 대해서 물음을 던지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 만약 그런 계기가 있다면 당연히 인간의 몸은 신의 숙주로 활용될 것이다. 만화영화나 마블 코믹스 영화처럼 그렇게 나타날 리는 없다. 그건 새와 네발짐승과 물고기만 봐도 쉽게 이치를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만약 뭔가 신성함의 힌트를 하늘에서 땅에게 알려줘야 한다면, 그건 기적적으로 은밀하게 탄생해 은근히 출연하여 알려지며 신성을 띄지 않을까? 물론 직접적으로 딱 나타나서 확실히 알려주면 얼마나 좋겠나. 당연히 옛날에는 그랬을 것이라고 추정해 볼 수 있다. 곧 옛날에는 간접 보다 직접이라는 방법이 선호됐다. 몇 번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 차이는 첫째와 둘째만큼이나 시대에 좌지우지되기도 한다. 첫째와 둘째의 중간쯤에 기적으로 기록된 성모 마리아의 기적이 지금은 더 이상 기적이 아니다. 당시는 기적이었겠지만 지금은 과학일 뿐이다. 왜냐하면 첫째는 피라미드가 대세였고, 둘째는 과학을 필두로 오락산업이 왕좌에 올랐으니까. 물론 첫째와 둘째의 중간은 종교일 테고. 따라서 첫째일 때는 일종의 직접 증거가 가능했을 거라고 가정할 수 있다. 가령 세계 7대 불가사의랄지 무수한 과학의 빈틈들 말이다. 신이 있든 없든, 함께 했든 아니든 우리의 삶에 커다란 의미는 없다. 먹고 살기도 바쁘고, 인생을 아름답게 포장하기는 더 바쁘니까. 설령 그럴지라도 왜 그렇게 누군가는 의심할 수 밖에 없는지를 유추해봐도 괜찮을 것이다. 그걸로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신을 오해하게 만들지는 않을 테니까. 그래서 만약 저 둘째인 지금과 미래에 그 어떤 전설과 기적이 가능하다면 그건 그 옛날처럼 직접 증거가 아니라 간접 증거의 현현이어야 합당한 이치이지 않을런지! 왜냐하면 경제만 해도 상도덕이 있고, 정치만 해도 권력 분립이 존재하며, 사랑이 인생의 전부냐 아니냐고 진짜로 심각하게 따지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이 정도면, 왜 신은 대체 세상의 불합리함을 모른 체 하는가에 대해서 속 시원한 설명으로는 어림도 없겠다.
그러니까 왜 신은 세상의 불합리함을 비정하게 모른 체 하느냐고? 일단 질문을 거꾸로 생각해보자. 궁금하지만 도저히 정답을 모르겠다, 그래도 알고 싶다? 그러면 여러 방법이 있을 테지만 지금 사용되는 방법은 질문에게 반문하기다. 친구의 궤변은 절반쯤 우정의 결례가 아니다. A가 말한다. 내가 먼저 물어봤자나 라고. 그럼 B는 너가 먼저 물어봤으니까 너가 먼저 대답해야 한다구, 라고 답한다. 연령층을 더 낮춰도 된다. 그럼 애들 사이에서 억지에는 거울이 특효약이다. 심술에는 반사요 심통에는 에코다. 그래서 어른들은 애들처럼 게임의 규칙을 바꾼다면서 인생관의 틀을 바꾸지만 매번 돌아오는 건 대체로 과도한 카드값이다. 그건 뭐 그분들 소관이고, 우리는 질문의 모래시계를 뒤집어 봅시다. 곧,
왜 신은 도대체 세상의 불합리함을 알은 체 하면 안되는지를!
그렇게 한번 가정을 해봅시다. 자, 신이 세상사의 수많은 모순을 만약 알은 체 한다면, 그래서 신이 수시로 개입하며 끼어들고 중재한다면! 만약 그렇다면 애초에, 처음부터 인간을 지금보다 더 완벽하게 만들지 뭐하러 이처럼 불완전하게 만들었을까! 신은 인간을 사랑하기 때문에 개입을 안해야 옳지, 신화의 시대처럼 막 그냥 막 어쩐다면 그것은 말 그대로 신화가 되는 것이다. 즉 신이 비정하기 때문에 신은 없기 때문에 개입을 안하는 거라고 보는 시각이 있으면, 반대로 신은 오히려 인간을 사랑하기 때문에 개입해서는 안된다는 견해도 있을 수 있다. 개인의 의견이야 어떻든 인간이 절반쯤은 놀랍도록 완벽하고 절반쯤은 답답할 정도로 불완전한 것은, 인간의 생태계로 보자면 매우 자연스러운 일임에 틀림없다. 실제 유사한 비유는 수없이 증명됐다. 동물의 세계에 인간이 개입하는 일은 동물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신이다. 얄짤없다. 동물에게는 말이다. 그래서 인간이 동물의 세계에 관여한 결과 동물들이 행복했을까? 그럴 리가 있나, 동물님들이 행복하기는! 북극곰을 살리며 동물 구호 단체의 활동도 갸륵하기는 하나, 전체적으로 봤을 때 동물들은 시선을 떨굴 수 밖에 없는 일이다. 아니 그런가? 아기 돼지로 시작해서 대물을 잡고 싶은 상남자들의 꿈은 공통되며, 대체 몇 마리의 애완동물이 버려지는가! 차마 끝이 없다. 그 구체적인 예는 이루 말도 못한다. 그러니까 동물-중심적인 관점에서만 보자면 동물 농장에 신적인 인간은 개입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동물 뿐만이 아니라 유전자 조작 기술은 미래가 아니라 엄연히 현재다. 벌써 자동차는 하이브리드가 있고, 식물은 GMO가 있다. GMO가 무엇인지 굳이 의인화하지는 맙시다. 그처럼 우리는 일상적으로 햄버거나 스테이크를 먹고, 의약품 생산을 위해 하늘색 피를 가진 갑각류를 괴롭히며, 점점 보금자리를 잃어가는 것으로도 모자라 로드킬을 당하는 동물의 명복은 기원 받기도 어렵다. 동물에게는 미안하지만 인간으로써 일부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때문에 동물의 행복만 놓고 보자면 인간은 동물계에 관여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동물의 생태계를 위해서 말이다. 그러므로 신의 무소식은 곧 전능함의 실수도 아닐 테고, 신성함의 방임도 아닐 것이다. 그 어떤 뭔가 이유가 있을 테니까. 고로 <신은 인간 세상에 개입해서는 안된다> 라는 명제는 설득력을 얻는다. 단, 그 인간 세상이라함은 이승을 뜻하니까 저승은 또 다를 거란 추론은 결코 무논리가 아닐 테고. 그러나 드물게 신이 조용조용히 몰래 인간계에 왔다 갔다거나, 또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알도록 딱 한 번 왔다 갔을 수도 있다. 그럼 그렇게 신성한 존재가 지구에 강림하는 경우가 드물게 존재한다면 그건 두 가지로 나뉠 수 있다. 그 두 가지는 이렇다. 신이 인간의 몸으로써 인간과 사귀는 직접적인 초능력자던가, 아니면 인간의 몸으로써 간접적인 초능력자던가. 다시 말해서 X맨 영화에 나오듯이 그 초능력 즉 신의 일반적인 힘을 레이저를 막 쏘고 염력을 쓰며 얼리고 불을 뿜고 하늘을 나는 형태로 선보일 것인가, 아니면 신의 마음을 인간의 언어로 구현할 것인가. 전자던가 후자던가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전자가 무엇이었나를 우리는 상식으로 알고 있고 교양으로 공인됐다. 그외 성선설에 대해서 후세에 알려졌을 텐데 직역과 의역 및 실천 또는 마음가짐에 대해서 개인차가 있을 뿐이다. 곧 신화의 시대는 훨씬 옛 시대이자 전설이라고 가정하고, 기원전이었던 Anno Domini 곧 기원후였던지 당시는 지금의 과학에 준하는 기적과 현재의 만화영화와 살짝 비슷한 초능력이 일부분 함께 했을지도 모른다. 그처럼 인류사의 문맥을 살펴보니 다음과 같은 3단 논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 1번 신은 인간 세상에 개입하지 않는 게 옳다, 2번 그런데 천사 같은 인류애와 요정 같은 애인이 있듯이 드물게 인간의 몸을 숙주로 삼아 현현할 수는 있다, 3번 고로 만약 그렇다면 모세랄지 그런 어떤 기적적인 우연들과 수많은 사연은 만화나 마블류 영화와 똑같아서는 안될 것이다. 왜냐하면 어떤 브랜드는 우선 온전한 인간의 몸이어야 할 테니까. 이마에 눈이 하나 더 있거나, 탄소 기반인가 의심스러운 백안의 거인을 아름답다고 여기긴 힘들 테니까 말이다. 따라서 지구인이 우주에 나갈 때는 반드시 우주복을 입듯이, 외계인이 지구에 방문한다면 그래야 하지 않을까? 개미의 부지런함을 동화로, 꿀벌의 맹목적 규율은 생물학적 속담으로, 동물들의 건강한 생태계는 다큐멘터리로 보전하기를! 지구의 주인은 원래 동물이었는데, 세상의 주역으로 인간이 대두되면서부터 멸종 위기 동물은 점점 늘어만 간다. 나아가 북극곰은 생존을 걱정하며 남극 얼음마저 녹고 지구는 점차 더워져간다. 동물의 입장을 모르지 않는 인간은, 신이 인간 세상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주기를 바랄 수는 없는 것이다. 신─인간─동물! 신과 인간의 관계, 인간과 동물의 공존이라는 맥락을 이해하고 원리를 무시하지 않는다면 신이 어쩌고저쩌고 같은 불만은 응석과 투정쯤으로 치부됨은 어쩌면 그저 당연한 일. 지구의 역사에서 몇 번의 대멸종과 몇몇 신비를 모두 함께 일컬어 종교에서 '전지전능'이란 수식어를 붙이지, 무조건 X맨 영화처럼 뭐 어떤 상상력을 갖다붙일 수 있기 때문이 아니다. 예를 들면 신은 어디서 뭐하고 있나, 그 어떤 모순을 보고도 가만 있는 걸 보면 신은 없는 게 분명하다, 늬가 신이면 난 신 할아버지다 등등. 의역과 직역 같은 이치가 그래서 더더욱 설득력을 얻는다는 점. 땅의 개미들과 실험실의 쥐들만 생각해봐도 쉬이 지나칠 수 없는 일리다. 그렇다면 지금에 어느 영화2편이 개봉한다면, 다시 말해 먼 훗날 그분께서 재림한다면? 만약 그렇다면 인간과 외계인의 기적적 첫 만남과 거룩한 재회가 똑같아서는 안될 것이다. 아니 왜! 어째서 그 둘이 똑같아서는 안될까? 왜냐하면 첫째 인간이 어느 만큼 신성함의 성과를 자발적으로 이미 이룩했기 때문이고, 둘째 신은 인간의 육신으로 현현하여 인간을 (완곡하게 말해서)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면 그건 아름다운 일일 것이기 때문이다. 곧 간곡하게 표현하자면 신은 인간을 이해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칸타타 가사의 화답으로 말이다. 그러니까 신은 인간의 무엇을 이해해야 할까? 일단 떠올려봐도 그분은 다음과 같은 일들을 이해하면 좋을 것이다.
인간의 구강이 언제 화염방사기처럼 작동하는지를.
남자가 언제 변신하고 여자가 왜 유체이탈을 하게 될지도 모르는지를.
신비를 알며 환상을 믿고, 애호하는 무언가에 퐁~ 빠지면 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지를.
자존심과 부러움은 대관절 어떻게 다른지를.
모든 문화-예술-교양에서 만고불변의 1등은 왜 사랑인지를.
인간은 언제 삿대질을 참고 어떻게 뚜껑이 열리는지를. 그리고
핑~ 그 오묘한 신호음의 단추는 어떤 육하원칙에 의해서 눌려지는지를.
어디서 진공청소기를 편애하고, 커피포트는 무슨 생각으로 인생을 사는지를.
도대체 왜 나이트클럽의 이름은 호박이고, 인기 초특급 웨이터의 1-2위는 에르메스와 막살자인지를.
그러나 인간은 앙증맞은 이타심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까지.
누군가 이해했으면 좋을 일은 작심하고 찾지 않아서 그렇지 간략히만 선출해도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온다. 가령,
여러 불충족들. 우선 운명(가난, 빈곤, 불행, 불운, 필멸, 재난...), 사회 부조리(불의, 불화, 불결, 불법, 무법, 범죄, 악덕, 악연, 악역, 비양심, 희생, 타임머신 즉 후진성, 분쟁, 저질, 불량, 열악한 환경...), 감정-재능-본성(억울함, 원통함, 혐오감, 슬픔, 분노, 무례, 방종, 야만, 비윤리, 부도덕, 추남, 선녀, 촌스러움, 눌변, 불만족, 무능, 무명, 가학성&피학성, 사디즘&마조히즘, 원죄 또는 샤덴프로이데, 쌤통, 비관, 열등감, 자만심, 오만함, 시기, 질투, 재수 없음, 투정, 시건방, 뻔뻔, 황금만능주의, 물욕, 식욕, 색욕, 명예욕, 사리사욕...), 병(불편, 질병, 장애, 트라우마, 꾀병, 머머증, 신드롬...) 그리고 배보다 배꼽이 더 커서는 안된다는 것까지.
그래야 너와 내가 재차 놀라는 것 아닐까? 인간이 프랑켄슈타인이라는 괴물을 만들긴 만들었구나, 아아 고 기특한 녀석 참 물건이로구나! 라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인간은 신기한 존재다. 우주는 신비하다. 시간마저 휘어진다. 사랑은 고체가 아니고, 행복은 기체와 다르며, 재미는 액체로 스며들 수 있다. 고로 어쩌면 인간과 신은 양측이 서로 <있다-없다> 따지며 다툴 것이 아니라, 우주 바깥에 무엇이 있을까 같은 철학적 상상을 매끄럽게 다듬으면 더 멋질 것이다. 왜 인간과 외계인의 첫 만남과 거룩한 재회가 똑같지 않을까, 이런 연유로서 조금은 알 듯 모를 듯 하다. 시간의 탄생까지 추정한 인간인데, 왜 신은 세상의 불합리함을 비정하게 모른 체 할 수 있냐고, 골 세러모니만 할 게 아니라. 아마도 과학적 현상으로 규명할 수 있을 테지만 그 우연, 어쩌면 어느 성모 마리아상이 바로 그래서 피눈물을 흘리지 않았을까?
치킨을 먹든 안 먹든 내가 키우는 강아지와 교감하고, 집사가 고양이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하는가 하지 않는가? 그것이다. 그렇다. 인간만 신을 찬양하고, 인간만 신을 공경하며, 인간만 신을 찬미하라는 법은 원론적으로 인간 생태계에 어울리지 않는다. 물론 인간의 야성만 따졌을 때 말이다. 그 무엇이 필요할 수는 있지만 주객이 바뀌면 인간이 옛날처럼 신을 위해 살게 된단 말이다. 겉으로 신을 위해 사는 간악한 위선자와, 자기 인생을 사는 선량한 무신론자랄지 그냥 단지 무소속 촌부라던지, 그 둘 중에 뭐가 낫고 누가 누가 좋은가는 말할 필요가 없는 일이다. 종교의 목적은 선의 실천을 위한 것이고, 두 마리 토끼의 대상과 무슨 3박자니 4 뭐니 그 목표 역시 개인의 자유인 것이다. 인간은 신을 사랑해야 한다 라는 좌우명을, 인간은 응애응애 태어나면서부터 노래를 부르나? 아니다. 절대 아니다. 어림없는 얘기다. 그렇게 태어나도록 인간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신이 인간을 만들었나 아닌가, 그건 확답할 수 없지만 인간만 보자면 인간은 그렇게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는다. 그건 곧 처음부터 그렇게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얘기다. 인간이 현재와 같이 이 모양 이 꼴이라면 그건 분명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인 것이다. 모태신앙은 있을 수 있지만, 그건 얼마든지 유익하다만 그것과 이건 주제 자체가 다른 거다. 그렇듯 신이 인간을 온전히 이해함으로써 고귀한 인간성과 거룩한 우주와 신기한 예지를 우리 인간이 납득할 수 있는 문자로써 그 뭔가가 새롭고 신비하게 구체화될 수 있다면 그 만한 미덕은 더없이 값질 것이다. 형언할 수 없을 만큼 고귀할 것이다. 바로 이와 같은 이유 때문에, 신은 세상의 불합리함을 모른 체 하는 것 아닐까? 바로 이와 같은 이유 때문에, 아주 먼 훗날 외계인이 지구에 나타난다면 그 2편은 1편과 똑같아서는 안될 것이다. 그러나 사랑처럼 미래는 모르는 것이다. 1차 다음에 2차가 완전 다를 수는 있는데, 그런데 또 뜬금없이 3탄에서 갑자기 복고풍으로 1번 방식을 아예 초특급으로? 우리는 드라마와 영화를 너무 많이 봤다. 정말 너무 많이 봤다. 자, 이 정도면 저 2번의 답변에 대해서 어느 만큼 구색을 갖췄을까? 나름 자신하기는 어렵다. 그래도 일단 넘어가자. 그 다음으로는 문명은 이처럼 여러 문제들과 함께 발전할 수 밖에 없었는가, 그 차례다.
(휴~)
(쉬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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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문명은 이처럼 여러 문제들과 함께 발전할 수 밖에 없었는가! 일례로 옛날에 강자는 제국주의를 찬성했고, 약자는 제국주의를 극렬히 반대했다. 한마디로 약육강식의 논리일 테니까. 그런데 완전하게 소비의 시대로 넘어와서는 어떤가? 시대가 바뀌면 세상도 바뀐다. 그 흐름에 자연스럽게 편승했다면 그건 OK! 인간의 일이 동물과 똑같아서는 안되겠지만 문명사라는 건 그런 거니까. 그러나 그 흐름에 부자연스럽게 후발주자로 나섰다면? 그건 왜 세계 제패의 흐름을 멈추게 만들었냐는 주장이 부각되는 것처럼 주객이 전도되는 일이다. 그건 곧 왕도 신이고 나도 신이고 너도 신이며, 신이 아닌 사람은 이 세상에 하나도 없다는 말과 도대체 뭐가 다르단 말일까. 우리는 법치국가, 다만 우리가 바깥을 향할 때는 무법 국가? 오 세상에나! 선점과 발명의 시대에는 옳고 통용되는 논리였다. 단, 그때에만! 그래서 옛날에는 다 그림을 만들었다. 너네들이 우리에게 뭔가를 요청한 걸로 하자 라며. 내부자를 길들이는 건 일도 아닐 테니까. 문명사를 따졌을 때 라디오도 TV도 인터넷도 없던 세상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밖에서 오든가 안에서 일어서든가, 의 차이일 테니까. 그처럼 <문명의 발달이 어느 능선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창안-발전-개혁등과 함께 그 어떤 불미스러움도 같이 가야 했다>. 그러다 지금은 대체로 안정기에 접어든 것일 텐데, 지구는 타임머신이니까 아직 현재진행형인 곳도 있다. 어쨌든 생각의 다양성 때문에 발생하는 극단적인 어불성설은, 지금도 제국주의의 전성기란 말과 대체 뭐가 다르다는 말인가, 말을 바꾸자면 그와 똑같다.
그렇지만 꺼림직한 사안은 그 뿐만이 아니다. 민간인 학살은 국제법 위반이자 비윤리적 사태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전쟁이란 참혹의 극치를 뜻하는 것. 때문에 민간인이 군인의 요청이든 명령이든 자발적이든 어쩔 수 없던지, 민간인이 확실하게 난민이 되거나 아니면 확실하게 군복을 입던가 그래야 옳다. 달리 보자면 아무리 어려워도 국가를 버리고 도망만 가는 게 능사가 아니라, 국가 안에서 국가의 재건을 위해 싸우던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 게 옳음으로 보자면 그 정의가 더 앞선다. 일례로 베트남은 옛날에 그랬다. 그 뿐만이 아니라 그런 예는 수없이 많았다. 그런데 지금은 국제 뉴스에 난민이 단골이다. 규모도 장난이 아니다. 정말 어쩔 수 없어서 고향을 떠난 사례도 있겠지만, 너무 일찍 조국을 져버린 일은 없을까? 희망이 없으니 등을 돌릴 수 밖에 없었을까? 단지 잠시 떠나서 관망 후 복귀를 꿈꾼다면, 그렇다면 가까운 곳으로 가도 되지 않을까? 가까운 곳에 평화로운 곳은 없을까? 꼭 험난한 경로를 통해서 문명의 선두주자 쪽으로만 가야 하는 것일까? 네? 정말 그것만이 정답일까? 아프리카는 어떨까? 중동 연합은 대체 왜 후보군에도 들지 못할까! 괴테가 사석에서 아담과 이브의 직계 후손 뭐라 뭐라고 옛날에 그랬다. 그가 말한 그곳에서는 지금 국방의 의무에 대해서 남녀가 평등하다. 아기는 여자만 낳을 수 있으니까, 또 논점을 벗어난 거니까 넘어가자. 그쪽 이야기면 아랍 연맹과의 불화에 대해서 논해야 하는데, 그걸로만 최소 3년을 공부한 다음에 조심스럽게 입을 떼야 하기 때문에 넘어간다. 그러니까 그 대신에 여기서는 남녀 이야기가 어쩔런지.
옛날에 요한 볼프강 폰 괴테가 그랬다. 그분 말마따나 아담과 이브의 직계 후손, 어, 직계 후손이 뭐 어떻다고 했다. 당시부터 여러 일들이 있었는데, 최근만 보자면 그 직계 후손들이 사는 곳에서는 여자도 군복을 의무적으로 입는다. 특정 지역의 남녀가 그러한데, 어른들이 느끼는 세상은 썩 그렇지 않다. 남자가 썰을 풀고 씨를 뿌리듯 부풀리고 과장한다고, 여자도 똑같이 만인에게 공평하게 꼬리를 흔든다? 적당히 그러는 건 좋다만 지나치게? 쉬쉬, 소문난다 소문나. 애들이 알까 무섭다. 왜 남자와 여자의 성-그래프가 다른지, 왜 우리의 엄마는 내가 어렸을 때 나를 데리고 외간남자를 만났는지, 한번쯤 생각해 볼 문제다. 남자는 내가 걸출한 플레이보이가 될 수 없다는 무의식적 슬픔이 있을 수 있는 반면, 여자는 자기가 좋아하는 남자에게 그렇게 고백하는 게─하고 싶다거나 못하는 게─일반적이다. 내가 만약에 남자로 태어났으면 이 여자 저 여자 다 따먹고 다녔을 거라고! 그러니까, 남자의 갈비뼈를 떼어서 여자를 만들었는데, 왜 남자는 여자의 꽁무늬를 쫓아다녀야 할까? 제 발로 아무 데나 막 굴러다니는 호박 같은 숙녀의 눈빛은 대관절 어떠할까? 시대의 비교로 시작해서 신의 의미를 차분히 논해야 하는데, 그런데 난민 얘기가 나오더니 뜬금없이 무슨 뒤꽁무늬? 거 참 나, 참말로 산만하구만 그래. 어쨌든 돌아가서,
국가 안에서 도저히 피할 데가 없을 때, 국가의 질서가 말도 못하게 흐트러지기 전에, 그 어떤 노력이 선행되는 게 먼저다. 그렇다면 거슬러 올라가서 여러 원인들까지 따져봐야 하지만 일단은 그렇다. 그럼 전쟁이 끝나서 비둘기가 돌아오면 바깥으로 나갔던 민간인도 비둘기처럼 다시 고향으로 돌아올까? 가령 A 지역을 민간인이 떠나 B 지역에서 난민으로 정착한다, 그런데 B 지역에서도 내전이 발생한다, 그러면 그 민간인은 다시 C 지역으로 옮겨가야 하는가? 아님 또 D로 옮겨가야 할까! 그럴 가능성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쉽게 말해 난민은 (비교적이 아니라 제일) 잘사는 나라로 입국을 시도하는 게 일반적이다. 종교가 사람을 위해 생겼는데, 타임머신의 관점 때문에 또 이권이 얽히고 구시대적 체제에 부딪히고... 저런! 크게 봐서 해법은 쉽지 않다. 지구촌 민주주의의 백분율 증가, 화석연료 고갈(약 50~200년 예상), 종교적 안정─지역 안정─경제적 안정등 요구되는 조건은 많고도 어렵다.
난민? OK, 난민! 난민이라는 어려운 주제가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진보와 보수에 치우치지 말고 거대한 시각으로 살펴보는 게 정의로울 것이다. 왜냐하면 현재 국가라는 단위로 봤을 때 빈부의 격차가 크듯이 세계라는 단위로 볼 때 타임머신처럼 문명의 격차는 엄청나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인류애와 세계관과 이기주의를 교훈으로 교화하는 지구 학교에서 교장도 없고, 학칙도 없으며, 존경스런 교권 즉 모범스런 교육적 권위도 기대만큼은 아니다. 뿐만 아니라 학생들은 각양각색이다. 문제아도 있고 반항아도 드물지 않으며 펑크족에 훌리건과 휴학생도 있다. 뿐인가? 전학생도 있고 어떻게 보면 퇴학생감은 없나 모르겠다. 이래가지고는 문제 해결은 쉽지 않다. 엄청 오래 걸릴 게 뻔하다. 일단 왜 그렇게 일이 복잡하게 얽혀버렸는지 간략히 살펴보자. 대충 1900년을 기점으로 그때까지 약 몇 백년 동안 유럽은 세계의 90퍼센트를 지배했다. 1900년을 기점으로 유럽은 그동안 대단한 전리품과 함께 엄청난 이득을 챙겼다. 물론 문명의 발전에 막대한 기여도 했다. 한마디로 유럽은 진취적인 학생이었다. 노예제도도 (완전 대충만 따져서) 1900년으로 종료됐다. 모든 이권과 실속하며 문화-예술의 전성기마저 유럽이 온전히 독점했다. 유럽의 식민지 개척이라는 그 진취적 기상이 없었다면 가전제품의 발명도, 산업혁명도, 원소기호도, 의학이니 사회니 정치니 모든 문명의 발전은 이토록 과거에 비해 현격하게 발전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딱 1900년을 넘어서면서 고전음악의 전성기가 거의 끝나가는 것처럼 제국주의 전성기도 끝났다. 그런데 그 끝물에 하필 제1차-제2차 세계대전이 발생한다. 독일-일본-이탈리아, 또 줄을 잘못 서서 몇몇 협업자로 인해 세계가 시끄러웠다. 그 999개의 참상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이라는 국가도 탄생했다. 물론 진짜인지 연기인지 개인의 자유이기 때문인지 999에서 1을 더하지 못하게 왜 막았냐며 일각에서는 시위를 하기도 한다. 그것까지 말릴 수는 없다. 자유의 시대이자 소비의 시대이니 말이다. 어쨌든 중동의 시끄러움이 그때부터 꼬였다. 중동은 잠시 후에 얘기하고, 현재의 난민처럼인가는 몰라도 어떻게 어떻게 해서 유대인은 세계로 퍼졌고, 주로 유럽에 흩어져 살았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유대인은 약 2천만명에서 1천만명으로 줄었고, 그 1천만명의 절반은 세계로 흩어졌고 절반은 현재의 이스라엘에 정착했다. 문화-예술-교양을 잘 아는 지성인이라면 유대인에 대해서 옛날부터 왜 그토록 얘기가 많았냐는 걸 모르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렇다고 해도 재주가 좋다, 수완이 뛰어나다, 영리한 친구들이다 정도면 되는데 그렇게 문제가 크게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데 대충 1950년쯤 제2차 세계대전이 종료되면서 승전국들이 결정한다. 무엇을? 세계로 퍼진 유대인 말고 유럽에 남은 유대인들을 그들의 고향으로 이주시키자 라고. 그래서 굴러온 돌은 박힌 돌을 빼내게 된다. 여기서 굴러온 돌은 유대인이고 박힌 돌은 팔레스타인이다. 물론 아주 아주 옛날은 유대인의 고향이 현재의 이스라엘인 것은 맞다. 그러나 그건 아주 아주 옛날. 그래서 현재까지 시끄럽다. 중동연합에서 이스라엘을 국가로 흔쾌히 인정하는 나라가 있나, 없나? 없다!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말하자면 그들끼리 사이가 안 좋다. 화목하지 않단 말이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은 기독교-카톨릭과도 친하지 않다. 더군다나 2000년 전에 자신들을 국제적 난민으로 만들었던 로마제국의 후손인 로마는, 카톨릭-기독교를 박해했다가 다시 카톨릭이 국교가 됐다. 그 후 지금은 공식 국교가 아니지만, 교황과 추기경을 쑤두룩하게 배출하는 암묵적 카톨릭 국가이자 카톨릭 명가다. 왜 유대교와 구교-신교가 구약성서 빼고는 남남일까? 왜냐하면 쉽게 말해 옛날에 당한 게 있기 때문. 십자군 전쟁만 해도 언제-언제-언제 학살도 있었고 축출도 있었다. 그건 먼 옛날이고 2차 세계대전 때 홀로코스트도 종교와 민족을 떼놓고 말하기는 힘들다. 원론적으로 기원 0년이 태동한 당사자를 보는 관점이 정반대. 즉 기원 0년을 한쪽은 강림, 한쪽은 불인정. 그건 그렇고, 다시 말해 유대인은 옛날에 고향에서 세계로 특히 유럽으로 흩어졌다가, 다시 현재의 이스라엘로 모이게 됐다. 최선은 없고 차선도 어려우니 가능했던, 일종의 타협이었고 모종의 해법이었다. 그러나 이슬람교권 국가에서 봤을 때는 어떻게 보자면 차악일지도 모를 결정이었다. 그러나 역사로써 이미 정착이 됐다. 유대인을 난민으로 보자면 역사적으로 참 오랫동안 멀리 떠났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격에 해당하는 난민이다. 어렵고도 어려운 문제지만 인도주의적으로 그들의 원래 고향에 정착했으니, 괴테가 말한대로 아담과 이브의 직계 후손은 지금 사는 곳을 에덴으로 만들면 된다. 자, 이처럼 난민의 가장 대표적인 예시라고 할 수 있는 유대인 사례를 겨우 어렵싸리 설명했다. 그럼 현재의 난민은 어떤가? 현재의 난민은 제2차 세계대전 그 이후에 발생한 난민이다. 유럽이 세계에서 취득한 이권이라는 역사적 사실이 분명하니 만큼 그들의 행동은 인도적이었다. 지구상에서 진보적 견해는 유럽에서 제일 먼저 꽃을 피웠으니까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어머나! 시간이 점점 흐를수록 그 규모가 장난이 아니네? 당연히 문을 좁힐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 규모가 되고 보면 우리가 듣고 말하며 읽을 때는 난민이지만, 규모로만 보자면 후천적으로 내 국적을 선택할 수 있다는 뜻으로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솜방망이에 가까울지도 모를 국제법적으로 난민을 어느 정도 만큼 받는 건 말 그대로 인도주의다. 그러나 그 인도주의는 한마디로 어느 정도까지다. 어느 정도를 넘어서면 정치권에서 소란스럽게 이르기를 난민과 이민의 구분은 모호해져버린다고 할 것이다. 망명을 막론하고 이민의 경우 일정 조건 이상이라는 기준선이 있다. 또 난민의 경우 극단적으로 유대인의 사례가 있었다. 그런데 시대적으로 엄청난 규모의 지속적 발생이라는 국제적 난민 문제가 새롭게 대두된 것이다. 이민─망명─난민에 대해 인문교양서를 쓸 만큼에 준하는 연구가 선행되지 못한 체 어쩔 수 없이 시간에 쫓겨 칼럼을 쓴다마는 잔지식만 총동원하자면 이와 같다. 현재의 난민 문제는 옛날의 이민이랄지 수용 가능 범위에 해당하는 난민의 범위를 넘나든다는 점. 실제 그렇다. 제1차-제2차 세계대전으로 말미암아 발생한 난민은 세계 각지로 퍼졌다. 그런데 그건 수용 가능했다. 또 필요로 했다. 당시는 각국에서 이민도 많이 받아야 했고 나라별로 경제성장률이 지금과는 비교도 못했으니까. 대충 19세기와 20세기를 기점으로 유럽의 세계 장악력이 반대쪽으로 넘어오면서 미국과 일본만 해도 경제성장률이 20%, 30%, 50% 막 그랬다. (지금은 몇 퍼센트인가!) 대충, 불성실하게 대충, 정말 터무니없이 대충 따졌을 때 말이다. 하지만 썩 틀린 말도 아님을 우리들이 왜 모르겠나. 불미스러운 일 뿐만 아니라 나의 가난함과 심심함까지 감정적으로 대처하지 않는 어른이라면, 자고로 역사적 사실을 건조하게 원리로써 살필 줄 알아야 한다. 아닌 말로, 그거 다 조상님들이 하신 일들 아니냐 그 말이다. 아니 그렇소? 흐흠, 네네, 유럽이 그렇게 세계의 패권을 반대쪽에 넘겨준 이유는 한마디로 말해서 인구 때문. 프랑스 + 영국 = 일본 X 3 = 미국. 그리고 지금 중국은 후발주자로써 분발하고 있다. 줄을 선 공룡들을 제외하고도 말이다. 인구만 보자면 천재의 비율이 조금 실망스러울 수도 있는데, 말 그대로 중국은 후발주자다. 이미 끝나버린 제1차 미술의 전성기와 흡사하게 세계에 기여할 수는 없으니 향후 뭔가 다른 걸 기대할 수 밖에. 그래도 저번에 어느 전문가께서 알파고한테 연패이자 완패한 건 조금 낙심할 만한 일이다. 뭐 그럴 수도 있다. 아무튼 유럽이 1900년 이전에 누렸던 달콤한 이권이 풍부했던 것과 별개로, 현재의 난민을 받아주는 건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고 합리적으로 인도주의에 해당한다. 하지만, 하루 이틀도 아니고 언제까지나 무한대로 받아줄 수는 없는 일이다. 난민을 인도적으로 대하는 건 옳은데 난민 문제 역시 그거다.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면 곤란하다는 것. 난민을 수용하고 배려하는 건 좋지만, 난민 천국이라! 뭔가 잘못된 천국이다. 그래서 난민 난민 하면 그냥 단순히 뭐 나는 어떻게 생각한다, 그 이전에 왜 이렇게 일이 복잡해졌는지, 어떻게 더욱 사태가 심하게 꼬여버렸는지, 그렇다고 앞으로 낙관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우선 아는 게 먼저다. 그걸 알고 난 다음에 깨닫는 게 합리적인 순서다. 아하, 그래서 이 일이 이만저만한 그런 어중간한 난제가 아니구나 라고.
1차로 나는 너무 일찍 국가를 버리지는 않았는지
2차로 피치 못할 사정이라면 주변국은 안되는지
3차로 중세의 집시랄지 현대의 까다로운 조건에 부합하는 이민처럼 난민 천국의 기준선이 낮춰지는 건 아닌지
4차로 일이 커진 데 가장 책임이 중차대한 종교에서 응분의 역할은 했는지, 앞으로 할지
5차로 그 종교는 현대적인지 아니면 타임머신처럼 아직 그 뭔가가 과거에 머물러 있는지
6차로 여러 이권이 어떻게 얽히고설켰는지
7차로 분파가 세세하다면 서로 존중은 몰라도 너는 너 나는 나, 가 되는지
8차로 내부에서 다수가 원하는 민주화와 자유와 행복을 왜 누군가 나서서 반대하고 협력하는지
9차로... 그만 그만
지금은 국적도, 이름도, 사랑까지 내 의지로써 원한다면 바꿀 수 있는 세상이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함이 비교적 우세했던 중세가 아니다. 신분의 굴레, 없거나 약하다. 가고 싶은 데는 어디든 갈 수 있다. 어디로 여행 가지 마라, 구시대적 체제다. 일시적 불매운동, 단순한 해프닝이자 초보적 발상이다. 1인자를 풍자할 수 없고, 정책에 군소리할 수도 없으며, 지금은 오직 왕만 떠받들어야 하는 그런 세상이다? 그게 과연 현실일까 문학일까 아니면 타임머신일까! 그래프로 따졌을 때 자유의 가치는 무엇보다 존중 받고 있다. 우리에게는 의사 표현의 자유가 있다. 직업도 내 마음이다. (막살라는 뜻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은 뭐든지 할 수 있다. 나중 절망할 수도 있지만 꿈은 자유다. 야망도 무료다. 행복도 내 맘이다. 가방을 고르듯 친구를 선택하고, 우정에서 배우며 희망을 기도 드리고 나는 사랑할 자유가 있다. 짝사랑하는 그녀가 내 마음을 받아주지 않을 수도 있는데, 연가를 부르고 사랑의 시를 짓는 것 역시 자유다. 현대는 자유의 시대란 말이다. 노예의 자유를 제한했던 옛 시대가 아니란 거다. 교양도 좋지만 무식해도 괜찮다. 정치적 자유 또한 보장된다. 적절한 쾌감은 몰라도 타락에 빠지고, 방탕에 물들며, 재산을 탕진해도 되냐고? 얼마든지! 그걸 말리는 업종도 따로 있다. 그게 꿈일 수도 있고, 그로써 먹고 살 수도 있으니까. 타고난 한계는 있지만 남녀라는 성까지 바꿀 수 있다. 유인선은 태양계내 무인선은 태양계 바깥까지 갔는데, 마녀사냥이 지금 어딘가에서? 14세기에서 17세기에 유럽의 여러 나라와 교회가 이단자를 마녀로 판결하여 화형에 처하던 일. 마녀사냥. 현재 어딘가에서 종교의 자유가 금기시된다면 그건 곧 자유의 지옥이다. 그러면 난민의 천국이 대중매체의 헤드라인을 날이면 날마다 장식하게 되는 것이다. A에서 B까지 가는데 길을 막고 종교가 돈을 받는다? 그건 둘 중 하나다. 워렌버핏이 찬양하는 사업 방식이던가, 아니면 산적이던가! 신앙이 비즈니스이자 산업과 닮을 수 밖에 없는 건 불가피하다. 하지만 시대착오적인 설교랄지 부조리에 대한 종교계의 방관, 종교계의 폐해에 대한 뒷짐, 종교가 시대보다 선행하지는 않아도 괜찮다만 관망도 아니고 심하게 뒤쳐진다면 그건 뭔가 잘못되도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종교는 물론 사람도 마찬가지고 세상사가 오락가락하는 건 괜찮다. 이기주의와 이타주의, 존중과 비방─박수와 야유─너는 너 나는 나. 다양성이 바람직하다면 끼리끼리도 존중 받아야 한다. 패셔니스타가 화려하듯 바흐 스폐셜리스트도 나쁜 게 아니다. (개)허세가 적당하면 나쁘지 않은 것처럼 산뜻한 허영심도 괜찮은 것이다. 아니 뭐 바쁘면 그럴 수도 있지 라면서 의복에 대한 격식을 생략하는 친구와 대망을 실현한 친구가 장례식에서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눌 수야 있지만, 그 우정이 꼭 영원해야 하는 건 아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심하게 뭔가가 일방적이라는 건 시계가 거꾸로 돌아가 마녀사냥은 현실이다, 라면 그건 심각하게 생각 좀 해봐야 한다. 우리는 알아야 한다. 빠삐옹이 왜 그렇게 자유를 갈망했는지를!
괜히 난민 때문에 세계의 패권까지 언급했는데, 어차피 논해버린 까다로운 주제 조금만 더 얘기해보자. 제국주의의 호시절과 발명-선점-창조의 제1전성기를 유럽과 미국이 모두 누려버렸기 때문에 후발주자인 중국 같은 경우는 달리 옛날 같은 만찬을 기대할 수 없다. (고전음악의 제1 전성기만 강조하고 과장해서 그렇지 그때 창시가 있었다면 지금은 창업도 있고, 또 그 중심으로 틀을 바꾸면 지금과 같은 논조의 빛은 약해진다) 그건 기정사실이다. 당연히 후발주자 입장에서는 억울하다. 유럽은 전성기에 세계의 90퍼센트를 꿀꺽했는데, 미국도 영역과 선점과 동맹을 합하면 세계 반틈과 일정 수준 이상의 지구 전지역에 직업인을 주둔시키는데, 아니 글쎄 후발주자는 어떡하라고? 생각해보자, 그 어마어마하게 남아도는 힘을 도대체 어디다 써야 할까? 그렇다. 꼭 어디서 폄하하고 깔보고 그래서 하는 말이 아니라 어차피 남은 가능성이라고는 넷 밖에 없다. 첫째 아프리카, 둘째 중동, 셋째 남미, 넷째 소-개체 국가. 그렇다고 동맹도 교류도 아닌 M & A? 직접 식민지를 경험해봤기 때문에 그 아픔이 어느 정도라는 걸 그 누구보다 잘 아는데, 그런데 그 서러움을 되돌려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남은 건? OK, 우주 밖에 없다는 말이다. 경제적으로 장악해서 사극에 나오듯이 속국의 형태가 재현될 수도 있는데─역사적으로 옛-중국은 그 방법을 선호했다─그건 아마도 한계가 있다. 왜냐하면 인문경제학자들이 연구를 하고 또 해서, 민족과 전통과 인습과 언어가 일관된 공동체끼리 사는 게 그 모두가 가장 합리적이라고 결론 내렸기 때문이다. 무수한 통계와 연구로써 말이다. 어쨌든 1900~1950년을 기점으로 선험자와 후발주자의 차이는 너무나도 크다. 영국 여왕은 신이 아닌데도 영국 여왕에게 충성한다는─적어도 이론적으로라도 받드는─나라가 지구상에 몇 곳이다. 그런데 후발주자, 중국은 왕이 없는 채 근대로 넘어왔으니 논외로 치고, 일본은 자국 내에서만 왕을 하늘의 왕으로 존경하며 충성하는 형국이다. 최소한 형식적으로는. 무슨 발명이니 기원이니 그 또한 유럽에서 전부 다 선취해버렸다. 그처럼 고전음악의 제1전성기는 완벽하게 끝나버린 것이다. 앞으로는 또 모른다. 앞서 말한 왕에 대한 의미를 따졌을 때 캐나다와 호주와 뉴질랜드가─이미 남부럽지 않고 또 필자 역시 많이 부러워하는 독립국이지만─앞서 말한 의미로 완전무결하게 독립할지 어쩔지를. 그러든 어쩌든 분명한 건 두 가지다. 첫째, 왕은 신이 아니라는 점. 둘째, 전통을 아끼고 왕실이라는 가문을 존중하는 것과 별개로 왕권은 시간에 비례하여 줄면 줄었지 절대 늘 수 없다는 것. 그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 정도도 모르는 푼수는 그다지 썩 많지 않다. 푼수라... 지나친 표현임을 인정한다. 그래도 푼수과가 재밌기는 재밌다. 허허. 흐흠 그건 그렇고, 선험자와 후발주자의 차이를 간략히 비유하자면 한껏 과장하자면 보나파르트 나폴레옹과 아돌프 히틀러의 차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 정도다. 진짜로 딱 그 정도다. 인간이 신의 영역에 근접해서 문명이 이 만큼 발전한 것은 좋다면, 그런 반면 그늘도 결코 만만치 않았다는 뜻이다. 그런데 철들지 않는 어른들이 좀 많나. 한쪽에서 왜 99에서 1을 더 채우지 못했음을 성토하는 규탄이 있으면, 다른 한쪽에서는 또 초딩 같은 어른들도 있다. 그러니까 뭐라고? 우리는 제국주의의 전성기처럼 바깥으로 진출하여 타국을 수탈하고 억압하지 않았다 라고. 그렇게 생각하는 견해는 일견 옳은 듯 보이지만, 사실만 따지자면 타당하지만 지극히 초보적인 역사적 사실 접근 아닐까? 왜냐하면 사실만 놓고 보자면 사실은 사실이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그건 안한 게 아니라 못한 것이기 때문이다. 조상님들이 뭔가를 하고 안하고는 지금 사람들이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뿐만 아니라 조상님들 시대에서도 조상님들의 리더만이 안이냐, 밖이냐를 결정할 수 있었다. 심지어 에너지가 차고 넘칠 때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것이지, 에너지가 그만그만한데 밖으로 나간다? 어림도 없는 일이다. 시도 자체라는 포부도 품지 못하는 거다. 꼭 진취적 본능이네 어쩌네 솔직히 말해서 그건 그냥 뭔가 있어 보일려고 꾸민 말이다. 그런데 소 뒷걸음질 치다 뭔가를 잡았을 수도 있고. 글쎄요, 인간의 본능은 역량이 되면 창을 들고 역량이 부족하면 방패를 든다. 바로 그게 사람의 본성이고 인간의 본능이다. 사랑의 묘약으로 말미암아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고, 후라이팬이 꼭 요리하는 데만 쓰이라는 법도 없다. 펜, 포크, 요술봉, 마법 수정구슬, 삐에로복, 리모콘 그리고 기저귀 등등. 오늘 우리는 무엇을 집어들고 그걸 어떻게 사용해야 할까! 일단 구시대의 성과에 대해서 결과적으로 현재를 내게 유리하도록 합리화하기만 하는 것은 역사학자─문화인류학 선생─교양인─상식─지성인의 자세가 아니라 여리고 순진한 학생의 태도다. 구시대의 성과가 많으면 많은대로 박물관에 쌓인 건 많은 데 비해 적으면 적으니까 도덕적 고결함을 취한다? 어떻게 보면 허세고 어떻게 보면 초딩에 가까운 좁은 시각이다. 미녀를 선점하면 좋고 아니면 허풍! 숙녀들의 인기를 독차지하면 겸손이요, 숙녀들은 쏙 빠지고 어중간한 유명세라면 따따부따! 내가 표준어와 3개 국어 구사 가능하면 하늘에 감사하며 재능을 선용하여 인생을 누리겠지만, 난 겨우 표준어조차 아무리 해도 안된다? 일평생 방언 딱 하나만이 내가 검집에서 뺄 수 있는 짜리몽땅한 명검이다? 그러면 그렇게 말할 수 밖에 없다. 살아보니 그럴(표준어를 구사할) 필요가 전혀 없더라고 말이다.
(휴~)
(쉬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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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의 국가 가사들을 면면히 살펴보면 하나같이 비슷한 패턴이 많다. 밝은 멜로디를 바탕으로 어쩌자 어쩌자 하늘의 태양, 희망을 어쩌자 어쩌자! 그럴 수 밖에 없는 역사 때문일 것이다. 그건 곧 인류의 세상사는 인간의 생애와도 흡사하다는 반문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오락산업의 변천사는 세계사의 축소판이고, 세계사의 축소판은 인생의 줄거리인 것만 같다. 만약 내부의 에너지 총합이 예상 결과에 불리하다면 무지개 너머의 보물섬으로 모험을 떠나서는 안된다. 이미 가능성 없는 게임이니까. 때문에 문명사를 보면 오랫동안 일관되게 확장 정책에 국력과 국운을 걸었던 제국은 대체로 승산이 허락한다는 조건 하에서 역사를 바꿨다. 그처럼 나 자신이 영웅의 탄생도 아니고, 천재의 활약과도 연을 맺지 못했을 때 내가 탄 말은 관광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조랑말로 판명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기 싫고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내가 탄 말은 거포마가 아니라, 처음부터 나의 애마는 오직 뻔트마일 테니까. 따라서 우리의 조상은 비밀결사단을 안 한 게 아니라 못한 거였고, 우리는 슈퍼스타가 될 수 있는데 마다한 게 아니라 단지, 못된, 것 뿐이다. 애초에 조연감으로도 어중간할 테니까 말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지. 나는 유명해지고 싶은 마음 없어, 라는 선언은 호사─풍요─행복이라는 인간의 궁극적 목표에 대해서 행운도, 재능도, 운명마저 날 피해 간 다음에 딱 말하기에는 뭔가 막 쪼잔하고, 뭔가 막 비겁하며, 하지만 뭔가 막 귀여운 변명이다. 대패─연패─참패로도 모자라 패배주의의 금자탑을 쌓은 다음 좋아하는 그녀 앞에서 망신을 당하니까, 포커페이스도 실패했겠다 최소한의 여복마저 간당간당하겠다, 그래서 「나는 이기고 싶은 마음 전혀 없었어. 어차피 그냥 놀아준 것 뿐이었으니까. 내가 그거 이겨서 뭐한다고!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얻겠다고 말이야. 의미 없어! 안 그래?」 ......뭐지? 뭐야! 어라~ 뭐라고? 정말 뭐야! 이건 대체 뭘까! 아아 (설레설레), 오오 결국 그 말 밖에는 할 말이 없다. 야 야 떴어 떴어, 피해 피해, 고개 숙여 고개 숙여, 딴 데 봐 딴 데 봐! 어라~ 그러니까 갑분싸 갑분싸라고? 뭐야 이거, 지들이 언제부터 그렇게나 일을 열심히 했다고! 그러니까 뭐 부러우면 지는 거다? 그거 너무 유치하지 않나. 뻔트~처럼 짧아서 좋은 게 있듯이, 속마음 뻔하면서 너무 간결하게 뭐 어쩐다라.. 그건 너무 속 보이는 일이다. 그래서 살짝만 늘려보자. 어떻게? 부러우면 지는 거다, 지는 게 이기는 거다, 이기면 부러움에 관한 명언을 읊지 않아도 되고 부러우면 어쩐다며 뚱할 필요마저 없는 거다 라고. 어차피 언제 어디서 어떻게 태어난다는 걸 내 의사로 선택하여 태어나는 것도 아닌데, 굳이 자기 합리화의 격을 필요 이상으로 심하게 낮출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단, 농담이나 으쌰으쌰라면 몰라도 무계획으로 열정을 내세우는 게 좋을 때가 있는 것과 별개로, 자유가 좋긴 좋다만 너무 막사는 건 아닐까 싶은 것처럼 오직 튀는마만 선호하겠다면─물개박수라도 대만족이라면 또 몰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아직 저 3번에 대해서 명쾌히 수긍하기 힘들다, 이성은 알겠는데 감성은 약간 갸우뚱하다? 다르게 또 짧게 재차 설명하자면 이와 같다. 넌 왜 그것도 모르니 야 임마 그 쉬운 걸 이해하지 못하면 어떡하니, 라면서 면박을 줄 수야 없지 않겠나! 만약 누군가 그와 같은 단계라면 두 가지만 바로 알면 된다.
첫째 숲과 나무. 둘째, 가치 판단의 틀을 정물화로 제한할 것인가. 셋째, 시대의 차이. 첫째에서는 이렇게 볼 수 있다. 난민이니 뭐니 현재의 인류애적 관점에서 봤을 때 제국주의는 참극이었다, 그러니 그건 인간의 야만성이 표출된 걸로 가정하고. 그럼 발명, 탐험, 창안, 인상주의, 오페라, 피타고라스의 정리, 세계 위인전은? 난민에 대한 인류애적 관점에서 봤을 때 그건 천사들의 축제에 필적하는 성과다. 문명은 그 둘을 따로 떼서 발전시키지 않았다는 게 첫째의 요점이다. 그리고 둘째. 둘째는 표집 틀을 어떻게 볼 것인가의 차이다. 현재로부터 100년이나 몇백 년 전까지만 놓고 판단할 것인가, 아니면 인류사를 통틀어 고찰할 것인가! 전자로 보면 카드게임처럼 뒷면만 보이는 추가 패를 1개 받았을 때는 다이아몬드요, 또 1개 받았을 때는 하트다. 그런데 후자로 봤을 때 지금은 한마디로 기적이자 평화의 시대다. 응애응애 삐악삐악. 지금도 기저귀를 찬 건 똑같지만 이제는 걸음마를 시작한 셈이다. 인류가 싸우지 않은 시기가 거의 없이 99.99퍼센트를 살아오다 드디여 두 발로 일어섰으니까. 앞으로 기저귀를 뗄지 다시 옛날로 돌아갈지는 쉽게 장담할 수 없지만 말이다. 식인종과 야만인도 인류의 조상이었고, 세계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다큐멘터리 동물의 세계와 완전한 판박이였다. 올림픽이 다시 시작된 이후로 판이 새롭게 바꼈는데 뒷북이 문제됐듯이, 여전히 정서적 시간이 물리적 시간을 못 따라가는 경우는 썩 귀하지 않은 실정이다. 그래서 둘째의 요점은 이렇다. 의식과 무의식을 오르내리는 음성적인 본성을 일평생 제어해야 하는 건 인간의 운명. 아울러 이성과 감성은 남자와 여자처럼 뗄래야 뗄 수 없는 사람의 성질. 내게 유리하냐 불리하냐, 로보트처럼 건조하게만 행동할 것인가 예술가처럼 촉촉하게 볼 것인가, 우리는 그 균형과 조화를 잃지 않기. 그러니까 우리는 문명사에서 독립해서도 안되고 지구의 역사와도 이별할 수 없다. 그러므로 박물관이라는 인류의 기원을 상식에서 제외하지 않은 채 전공을 선택하고, 교양을 논하며, 즐거운 인생과 함께 할 것.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우리는 천사와 악마의 숙주도 될 수 있고, 이 세상마저 천국과 지옥의 식민지가 될 수 있을 테니까. 마지막으로 셋째. 셋째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한마디로 1900~1950년을 기준으로 봤을 때 그 이전은 노예제, 그 이후는 난민에 대한 인도주의. 지금 기준으로 노예제는 받아들일 수 없고 말도 안되는 일이지만, 당시는 달랐다는 점. 당시의 노예제는 현재의 은행, 부동산, 증권, 정당정치, 오락산업과 하나도 다를 게 없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질서였다는 점. 그러니까 당시라면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인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적 세상인가. 지금도 애첩을 총애하니 어쩌니 농담하는데, 시녀를 짝사랑했다는 광대의 운명을 논함은 뭔가 너무 애잔하지 않을까? 그 시녀는 끝끝내 광대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은 채 궁녀로 뽑혀간 걸로도 모자라 암투, 음모, 책동이 흉흉했던 시국이었을 뿐더러 산적과 해적마저 직업인 세상이었을 테니. 하물며 타임머신이 발명되어 벌써 상용화되었어. 그래서 뭘 좀 아는 남자들은 미래로 떠나지만 플레이보이에게 명함도 내밀지 못했던 우리까지 그럴 수야 있나. 너만 가냐 나도 간다, 가 아니라 우리는 거꾸로맨. 따라서 내 친구는 가서 300명을 거느렸다길래, 뭐야 그 허접한 놈이 뭐라고? 나는 3000을 목표로? 아니지 아니지 그건 아니지. 소수정예로 30을 위해 딱 돌아가. 먼 과거로 딱 돌아간다고. 그런데 타임머신의 오류! 그걸 타고 과거로 딱 돌아갔는데 하필 내가 하사 받은 숙주는 그 뭐야, 막 모비딕에 몇 장면 비추지 않았던 그분이라고? 저런, 오오 이럴수가!
얘기가 너무 길어졌다만, '신은 있냐 없냐' 를 따졌을 때 합리적으로 어떻다는 결론은 앞서 나왔다. 따라서 난민이라는 정말 까다로운 난제에 대해서도 인간은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꼭 해법을 찾아야만 할 것이다. 세계의 패권은 말이다, 어느 정도 인구와 비례했다. 그렇다면 현재 후발주자와 벤치의 잠룡들이 훗날 야욕을 착하게 발현하면 좋겠지만 미래는 모르는 것. 유럽에서 GDP 대비 군사비가 2퍼센트를 넘는 국가가 한 자리수에서 두 자리 수로 왔다 갔다 했다는 걸 미래에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추세만 봐도 남자들은 고개를 끄덕끄덕한다. 미래를 무턱대고 긍정만 할 수는 없지만, 만약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다고 가정했을 때 어떻게 보자면 지금의 난민은 그나마 다행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필자가 딱히 지성인은 아니니까, 게다가 헤라클라스의 도움도 받지 못하므로, 따라서 앞서 말한 해법 외에 달리 뾰족한 묘안 그 신의 한 수는 제시하지 못하는 바이다. 딱 하나 첨언하자면 이렇다. 대체로 보수적 관점보다 근소하게 진보적 관점을 편들지만, 개인적으로 말 그대로 근소하게 그럴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차근차근은 현실 안주와 혁명의 아마도 중간일 테니까. 흔히, 언론에서 보편적 관점으로 경제를 말할 때 국가 안과 밖에서 빈부의 격차를 가끔씩 얘기한다. 실제 사실만 따지고 보자면 말도 안된다. 하지만 가난해도 행복하고, 빈곤해도 마음이 여유로우며, 지금의 평민은 그 옛날 옛적 왕의 머리 꼭대기에서 문명의 이기를 누린다. 동화 주인공은 물론 만화영화처럼 살고 있다. 그건 그렇지만, 경제적 관점에서 빈부의 격차가 말이 안된다면, 세계 200여개 나라라는 관점에서 타임머신도 말이 안된다. 그래서 시리아 난민 문제 같은 경우는 단순히 힘으로써, 정의만으로 해결하기 어렵다면 좀 더 보수적 관점에서 생각해보는 게 좋지 않을까 라는 의구심이 생긴다. 예를 들면 러시아든 누구든 모두 손을 떼는 게 제일 좋은 해법이지 않을까 그런 의견 말이다. 하지만 꼬여도 어떻게 그렇게 꼬이다니...!
나는 이슬람교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어차피 이슬람교도 유대교, 카톨릭교, 기독교, 또 불교와 똑같은 종교일 뿐이다. 그렇다면 수니파니 시아파니 다 좋다. 다만 유럽에서 이미 옛날 옛날에 시행착오를 겪었던 일들을 되풀이하지 말기를 기원한다. 모방은 예술의 시작이지만 구태를 답습함은 설혹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가는 일일지도 모르니까. 몇 세기 전에 이미 수없이 실험해봤던 대운하를 21세기에 느닷없이 이상하게 흉내냈다가(그 때문은 아니지만) 현재 죄수복을 입게 된 어느 정치인처럼 굳이 선험자의 과오까지 답습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얘기다. 뭘 본받고 벤치마킹하며, 이건 따라하고 저건 흉내내지 않는 게 좋겠다는 충분한 과정은 싹 다 무시하고, 선험집단의 과정을 전부 따라하면 분란은 엄청나고 공분은 식을 줄 모를 수도 있다. 그러니까 이슬람교의 교황과 이슬람교의 존경 받는 고관대작들은 대체 무엇 때문에 남의 종교도 아닌 내 종교가 얽힌 사태를 수수방관하실까! 네? 아니 그렇소? 그러고서도 이슬람교의 교황과 이슬람교의 존경 받는 고관대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의견을 외부로 알릴 수 있는 입이 있으면 말씀을 좀 해 보십시요. 그렇게 딴청 피우지 마시고 말입니다. 물론 표현이 거칠고 말이 심했다만 중동의 종교적 안정이 꼭 유럽의 옛날처럼 흘러가는 것만 같아 뭔가 마음에 걸려서 하는 말이다. 적어도 말이다, 종교 순위 TOP 3에 드니까 노파심 같은 기우에서 하는 얘기라는 거다. 어찌 되든 뭔 상관이냐고 최소한 '관심도 없다'라는 입장은 아니라는 얘기다. 그렇지만 이건 또 다시 인간이 신성함을 실현할 시기가 될 수도 있다. 위기는 곧 기회인 것. 왜냐하면 중동 연맹은 이슬람교가 절대 나쁜 종교가 아니라는 걸, 중동도 그런대로 사람 살기 좋은 곳이라는 사실을─이미 현재도 낙원이겠지만─앞으로 똑똑히 차차 여실히 증명하면 되기 때문이다. 하면 된다. 그런 노력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절대적 선이다. 신의 할아버지도 반대 안한다. 해서 나쁜 일도 아니다. 그렇지만 말일세 거 왜 꼬여도 어떻게 그렇게 꼬여버렸지? 대체 왜 하필 어떤 우연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는가는 몰라도, 출생지 번지수─음력생일─전화번호─육각별─C2─죄수번호─어떤 시점... (911은 관계가 있나 없나, 노아의 방주는 또 뭐고) 이스라엘만 해도 말 한마디 꺼내기도 어려운 실정인데... 오오, 헤라클래스여! 넌 도대체 어디서 무얼하고 있는 게냐, 이 무정한 놈아!
(휴~)
(쉬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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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나왔으니 하는 얘기인데, 언뜻 끼여든 '종교' 라는 소-주제까지 이왕 이렇게 된 김에 좀 더 알아보자. 명색이 칼럼인데 뭔가 애매한 일부 종교의 차이에 대해서 간략히 집고 넘어가잔 말이다. 소-주제는 이것이다. <유대교, 기독교-카톨릭교는 과연 어떻게 다른가!> 자, 출발한다. 유대교는 '구교-신교'의 모태인 서기 0년을 신의 인간계 데뷔로 인정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단적으로 그대들이 찬송했고, 그대들이 동경하며, 그대들이 원하던 그런 멋진 강림이 아니었기 때문. 이처럼 서기 0년을 신의 강림으로 인정할 수 없기 때문에 각자 보는 시각 자체가 다르다. 서기 0년이라는 발단을 유대교는 신성 모독, 이슬람교는 신의 강림이 아니라 성자 또는 예언자 즉 다시 말해 2인자로 보고, 동시에 2인자들 중에서도 서열은 그 후세 예언자에 밀림, 그리고 기독교-카톨릭교는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앞서 말한 2번과 3번에 대해서도 유대교 입장에서는 2000년 전에 봤을 때 그리고 그 후 지금까지도 내내 결격 사유가 많았다는 일관된 교의는 결코 변치 않는다. 2000년 전 당시 문제의 인물을 보아하니 외모도 볼품 없고, 어떻게 봐도 그만그만한 인간에 가깝다. <유대교>와 <기독교-카톨릭교>의 가장 큰 차이점은 단연 그거다. 후자는 기원 0년 때문에 강림을 (아마도) 1번으로 보는 거고, 전자는 기원 0년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강림을 0번으로 본다는 점. 그러니까 당시 곧 지금으로부터 약 2000년 전인 기원0년의 상황이 좀 그랬다. 기원전 0년쯤 그조차도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제국의 식민지였다. 그래서 신의 데뷔에 대해서 기대감이 팽배했다. 로마제국의 압제도 벗어나고 전성기를 되찾고, 한마디로 인간도 영웅급이 있는데 신의 강림이라면... 오오, 아아, 저기 저 45도 각도에서... 그렇게 된 것이다. 그러나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곧 사실만 봤을 때 기원 0년이라는 결과는 꽝! 완전 꽝! 강림이라면서 해 준 게 하나도 없다. 자신들을 위해 뭐 하나 대단찮은 업적을 선물하지 않았다. 이렇다 할 지원은 커녕 도움이 하나도 안됐다. 말로는 사랑과 자유와 평등 같은 입바른 소리만 반복됐겠지. 딱 봐도 그렇거든. 무엇이? 당시 로마제국의 식민지였던 지금의 이스라엘에서 보기에, 그분의 외형이. 지금의 이탈리아 남자처럼 로마제국 기사들은 미남이었을 텐데, 딱 봐도 비교되거든. 유대인 남자는 물론이요 여자들부터 좋아라 했겠네. 퍽이나? 뭐야 이거, 아니다. 절대 아니다. 우리가 원하는 신성함이 아니라고. 일단 이마 정중앙에 눈부터 우리랑 똑같이 2개잖아. 이마 중앙에 하나가 더 있어야 하는데. 그래서, 참 내 이거 영... 그렇게 된 거다. 그래서 유대교의 이스라엘은 대-실망함. 당연히 신으로 인정을 못하게 됐다. 그래서 유대교의 입장으로 보자면 실제 강림은 아직까지 전무. 지구에서 신은 보도 듣도 못했음. 그래서 구교-신교의 기준선도 높지만 유대표의 율법은 잘 아시다시피 더더욱 훨~씬 험준하다. 뿐인가? 자그마치 1000년 2000년 동안 난민이었는데 하늘로부터 이렇다 확증은 단 한 번도 없고, 선택 받은 민족의 특혜도 없고... 십자가 모양도 크리스마스도 부활절도 싫고... 구교-신교와도 안 친한데 서력이랄지 12라는 기준이나 일주일 단위 같은 표준은 따를 수 밖에 없고... 록그룹 주다스 프리스트는 또 뭐야... 워워 헤라클레스 인기 좋네, 그 어딘가에서 헤라클레스를 간절히 바랄 테니까. 2000년 전에 유대교는 그렇게 봤다. 그분이라, 선량할 테지만 초능력을 발휘할 신격이 아니라 무능한 인격에 지나지 않다고 봤다. 한마디로 루저! 그런데 그분께서 오히려 유대교 교리와 다른 설교까지 하시네? 그러므로 땅땅땅 십자가행! 그리하여 알다시피 십자가 모양이 지금처럼 유명해졌고, 2000년이 지난 현재 이스라엘에서 십자가 모양은 거의 금기시됐다. 반대로, 유럽에서 십자가 문양을 국기로 만든 데는 몇 곳인가! 그렇다면, 신이 유대교의 마음에 들려면 과연 어때야 하는 것일까? 유대인이 신을 찬양하는 것과 별개로, 신도 유대인의 눈높이에 맞춰야 할까? 익히 공감하듯이 어느 레스토랑에 가면 물리적인 눈높이를 맞춘다면서 주문을 받을 때 점원은 자세를 낮춘다. 그렇지만 눈높이는 물리적인 게 다가 아니다. 꿇다의 피동사격인 꿇린다 라는 뜻이 뭔가, 심리적인 눈높이를 뜻한다. 그처럼 신은 스스로 알아서 인간 특히 유대 민족에게 심리적인 눈높이를 맞춰야 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그건 곧 신은 이땅에 나타날 때 비리비리하고, 허접하며, 찌질하게 나타나면 절대 안되고 거의 SF처럼 나타나야 된다는 논리인 것일까? 앞으로 그랬으면 얼마나 좋을까! 따라서 A-1, A-2, A-3......는 각자 소 닭 보듯 닭 소 보듯 하는 것이다. 아니, 유대교 대 기독교-카톨릭의 대립처럼 보인다. 아니, 그냥 다 각자도생일 뿐이다. 여타 분파는 논의에서 제외하고도 말이다. 중요한 건 이거다. 논리적으로 보자면 그 가운데 1개만 맞을 수도 있고, 1개도 맞지 않을 수 있고. 그리고 하늘의 관점을 추론해본다면 딱히 논평하기 곤란하다. 왜냐하면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딱1개 찍어서 너를 진정한 후계자로 인정하겠다, 적어도 그러지는 않을 듯 하니까. 과학자는 말했다.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고. 일반인도 사석에서 논한다. 신은 초딩이 아닐 거라고! 선택 받은 민족은 하늘이 정한 게 아니라 인간이 만든 이론 아닐까? 오스트리아에는 캥거루가 없고, 신의 은총이라는 뜻의 미들네임으로 유명한 모차르트는 잘스부르크에서 태어나 빈에서 영면했다. 하늘로부터 선택 받은 민족과 음악 천재의 탄생, 그건 좀 다른 문제인 듯 하다. 적어도, 만약 신이 있다면 모두를 사랑하지 초딩처럼 누구만 편애하고 딸랑딸랑─뿌잉뿌잉─응애응애─반짝반짝, 한쪽만 특혜를 주시지 않기를 바란다. 옛날 이 고장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 악덕 건설회사 회장님이 허허허, 한마디로 난놈이었다. 부장의 인상이 마음에 안 드니까 그분왈, 사원한테 늬가 오늘부터 부장해. 야, 너 부장! 내일부터 너 사원해 라고 말이다. 그렇게 하루 아침에 부장과 사원은 뒤바꼈다. 고로 신이 아닌 인간은 자기가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는 결론을 자각할 수 있다. 요약하자면,
유대교 카톨릭-기독교 이슬람교
종교별 탄생 순서: 1 2 3
경배하는 신의 대상: 하느님 하느님 & JC 하느님
신의 인간계 데뷔 인정: X O X *
신의 인간계 데뷔 횟수: 0 1 0
신의 인간계 데뷔 시각: 강림을 기다림 재림을 기다림 기다리지 않음
경전(공통): 구약성서 구약성서 구약성서
경전(차이): ** 탈무드 신약성서 *** 코란
* 2인자 자격의 강림은 인정
** 그 외에도 많은데 대표적으로
*** 카톨릭은 몇 가지가 추가됨
와, 뭐가 이렇게 복잡하나. 이러니까 A-1, A-2, A-3............ B-1, B-2, B-3............ 무신론이나 무소속을 고집하거나 신성함의 신자만 들려도 고개를 돌리는 사람은 없을 수가 없다. 문명사가 그렇게나 시끄러웠으니까. 하오나, 종교계에서 추구하는 이상이 서로 너무 다르다고 했을 때 그 모두를 슬기롭게 판가름하는 기준은 간단한다. 더없이 간단한다. 지극히 상식적으로, 이성적으로, 합리적으로 제3자가 봤을 때 자유와 평등과 사랑이라는 이념에 위배되는지 아닌지를 따져보면 된다. 의역과 직역도 그런 의미다. 자성은 쏙 빠진 채 오직 내 믿음만 신성하다면 그건 과학도 부정하고, 일주일─12달─서력 기타 등등, 나 믿고 싶은 것만 믿고, 나 좋아하는 것만 신성함을 고집하면 그게 무슨 신의 가르침인가? 내게 유리한 과학과 표준과 기준은 다 받아들이고, 불리한 건 전부 다 배척한다? 그건, 말이, 안된다. 상식적으로 봤을 때 뭔가 이상하다. 이성적으로 생각해도 뭔가 이상하다. 합리적으로 따져봐도 뭔가 이상하다. 가령 종교의 자유는 좋다만 배교를 처단함은 예외다? 마녀사냥처럼 중세에는 그랬다. 그런데 이 또한 타임머신이다. 이 역시나! 종교라는 것은 한마디로 그런 개념을 위한 거다. 자유, 평등, 사랑, 행복, 도덕, 윤리, 상식, 교양, 미덕, 선행등! 그 뭘로 따지더라도 제일 중요한 건 각 종교만의 독특한 교리가 아니다. 절대 아니다. 왜냐하면 진정 최고의 가치는 바로 이런 개념일 테니까. 자유, 평등, 사랑, 행복, 도덕, 윤리, 상식, 교양, 미덕, 선행등! 어차피 그게 그거라고?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소리다. 제3자가 상식적으로, 이성적으로, 합리적으로 봤을 때 그 무언가는,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안된다? 그건 문제가 있다는 거다. 무언가가 또는 더 많이 분명 문제가 있다는 거다. 하늘에서 저런 일반적인 관념과 부합하지 않는 일을 위해서 신성함이니 뭐니 그런 수식어가 사용되는 것을, 만약 당신께서 그대가 신이라면 좋아하시겠습니까? 그건 말이 안된다. 하지만 인간의 입장에서는 그 역시 자유다. 다시 그 자유 안에서 배교를 불인정하기도 하고. 종교사는 곧 희생과 순교와 전쟁의 역사였으니까. 그러나, 신은, 초딩이, 아니다! 신의 인간계 데뷔 횟수에 대해서만 따져봐도 그렇다. 0─1─0! 이건 뭘까? 여기서 1은 말이 된다. 그러나 0은 말이 안된다. 왜냐하면 신은 단 한 번도 확실하게 내가 신이다 라고 지상에 출연하지 않았는데, 그런데 인간이 신의 계시를 받아서 이러이러한 사연이 신의 마음이다 라고 주장하는 건 말 그대로 인간만의 주장이기 때문이다. 그건 견자나 성자보다는 예언자나 예술가에 비교적 더 가까운 일이다. 저 0과 1의 차이는 단순한 차이가 아니다. 하나의 신앙이 저 1을 근거로 하면 다른 건 몰라도 신학에 대한 명분이 생긴다. 그런데 하나의 종교가 오직 저 0에 기반한다면 그건 신학이라는 근거보다는 신-업에 가까워지는 일이다. 그 다음으로, 종교의 총체적 근간을 이루는 경전을 따졌을 때 공통된 절반은 모두 종교적이다. 그런데 나머지 절반은 각자 지향점과 목표층 및 추구하는 이상이 다르다. 그래서 기원 0년 이후 나머지 절반에 대해서 각자 다른 길을 간다. 그 나머지 절반에 대해서 제3자의 블라인드 테스트를 거치자면 그건 우화, 신학, 문학, 율법, 무슨주의의 성격이 짙어 보일지도 모른다. 곧 사람으로 따지자면 출신은 같은데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아가는 듯 하다. 때문에 제3자 시점으로 보자면 이와 같다. 신의 강림이 0이기 때문에 지극히 보수적인 관점에 머물렀거나, 신의 인간계 데뷔 때문에 기원 0년이라는 신학적 근거가 타당해지므로 종교가 현대적으로 발전했거나(물론 폐해도 함께일 테고), 아니면 예언자 관점으로 시작해서 사회운동처럼 종교화됐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이 모두는 종교이기 때문에 교도는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무조건 믿음. 그래서 결론은 모두 신앙이라는 거다. 물론 이성적으로 따졌을 때 여기서 집단지성의 활용도는 일부분 차이가 있다. 그리고 무엇이 내 마음에 드는지는 개인의 몫이자, 역시나 한 발짝만 걸치는 것 또한 개인의 자유다.
대충 1500년쯤의 마녀사냥과 대충 1990년에 발표된 살만 루시디의 소설 악마의 시! 여기서 그 둘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는 따지지 말자. 자유와 물리적 시간이 항상 동기화 된다고 볼 수는 없으니까. 신데렐라의 유리구두가 누구에게나 맞지는 않을 테니까. 그런 개인차가 아니라 규격 같은 표준을 따져보자면 이렇다. 현재 최소한의 기준은 법이고, 과거 피라미드의 정점은 종교인 지역이 많았다. 문명사에서 식민지와 자유는 정확히 반비례했으니까. 그리고 카톨릭-기독교가 현대의 기초, 문명의 기준이 되기까지 말도 못할 값을 치뤘다. 그런데 타 종교에서 의식-문화-상식 및 교양에 대해서 아직 서력 현재 시점보다 뒤쪽에 치우쳐 있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종교의 기원이 앞서는 쪽에서 무조건 이해해야 하는가, 아니면 이슬람교 그것도 교파 알력 다툼이 안정되지 않는 상태에서 누군가 앞서 중세적 시간에 해당할지도 모르는 의식을 개선시켜야만 하는가, 이도 저도 아닌 제3자는 자기 마음대로 뭘 보고 듣고 읽지도 말하지도 말아야만 하는가! 그것에 대해서 다른 건 몰라도 지나친 간섭만은 자제해야 한다. 내가 잘나고, 내가 떳떳하고, 내가 착한 데다, 나는 대인배이자, 나는 종교의 목적이 말하는 선의를 실천하는 교양인인데 그런데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내가 믿는 신성함이 모독됐다고 행동에 나선다? 그렇게 따지자면 개인 이기주의라는 인구수 모두가 충돌할 수 밖에 없다는 논리다. 요컨대 서력이라는 물리적 시간은 일치하는데 정서적 시간은 일치하지 않는다는 뜻일까? 그렇다. 딱 그렇다. 때문에 일반적 의식의 격차가 생기는 건 당연한 이치. 따라서 A에서는 아직 노예제도, B에서는 난민에 대한 인도주의. (때로는 소 뒷걸음질 치다 쥐를 잡을 수도 있다. 여기서 소의 뒷걸음질은 과장이고, 쥐는 원리다) 그러므로 A에서는 살만 루시디의 '악마의 시'를 비롯한 여러 사례를 당사자 입장에서는 일부분 합당하게 여길 수도 있다. 그런데 문제가 무엇이냐, A에서 문명의 이기와 인류의 축복 같은 풍요로움까지 모두 아직도 노예제도의 시점에 머물러 있지는 않다는 것. A에서 그럴 리는 절대 없다. 따라서 B-C-D에서 이해하며 받아들일 수 없는 A의 폭거-야만-비윤리는 결코 정당하지 않다, 라는 판정은 명백히 옳다. 만약 그 타당함이 싫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면 A에서는 정서적 시간이 앞서는 B-C-D의 미래적 잇점을 절대 취하면 안된다. 그건 정의롭지 않은 일이자 남자답지 못한 일이다. B-C-D에서는 A를 후진적이라고 치부하지 않는데─무의식과 의사 표현의 자유에 따른 개인차는 있을지언정─A에서 물리적 시간과 정서적 시간의 차이에 따른 권리만 주장한다? 그건 정확히 어린아이에 해당하는 관점이다. 국제 사회의 일원이라는 의무는 소홀히 하며, 더딘 정서적 시간의 권리로써 앞선 물리적 시간의 잇점만 취하는 일이다. 동물농장에서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라는 표어를 진짜로 직역하며 인생을 산다, 실수라면 몰라도 매번 그 방식이 반복된다? 그러면 그건 기저귀 모양이 유행할 수 밖에 없다는 정당성을 부른다. 그러니까 A에서는 (물론 일부겠지만) 유독 뒤쳐진 정서적 시간을 끌어올려야 하고, BCD에서는 그런 A의 사정을 조금은 참작하여 설득하려는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 라~는 생각을 만약 포샤라면 발표하지 않았을까? 왜냐하면 물리적 시간과 정서적 시간의 차이 뿐만 아니라 그 어떤 괴리와 모순은 결코 적지도 않고, 공동 2위랄지 패자-부활전 명단조차 차마 우열을 가리기 힘들기 때문. 허나 포샤는 포샤고 허풍대회는 허풍대회. 고로 샤일록이라면 대체 다수결의 원칙과 선착순방식에 대해서 언제 이기주의자인가, 그러나 그 역시 피가 초록색이나 파란색은 아니므로 샤일록도 우리와 똑같이 선량한 이타주의자임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라~는 문제는 헤라클레스조차 벅차하지 않을까? 아니다. 헤라클레스 정도면 전혀 아니다. 그래서 헤라클레스의 그 신통방통한 솜씨 때문에 아직까지도 어디선가 헤라클레스 대회의 명맥은 유지된다. 물론 여기서 샤일록은 진짜로 육각별 도형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러든 아니든 신이 인간계 데뷔를 했든 안 했든, SF가 영화든 전설이든 현실이든 우리의 할 말과 할 일은 아마도 훨씬 구체화된다. 어디서라는 지역, 왜라는 영문, 어떻게 그렇게 꼬여버렸냐 라는 사연, 그럼 우린 과연 무엇을 해야 하는가 라는 동기 부여, 그리고 내가 언제부터 일을 그리도 열심히 했냐 라는 세계관, 누가 내 치즈를 옮겼냐 라는 인생론까지 어쩌면 몽땅 일망타진해야 하지 않겠냐 이 말이다! 그건 그거고 나는야 모르겠다 에라 오늘도 놀자, 라면서 물개박수나 바라고 남의 다리나 원없이 긁겠다면 몰라도. 허나 철들면 재미없다고 진짜로 속 시원하게 남의 다리나 긁으면서 평생을 산다면 그 역시 개인의 자유. 그런데 그게 농사꾼─난봉꾼─술꾼─도박꾼─해결사─행운아처럼 일개 개인의 삶이라면 괜찮은데, 그게 아니라 파급이 커지면 바로 2001년 911 사건이랄지 전쟁까지 발생할 수 있다는 점. 안 그러면 재미없으니까 철들지 않음, 응애응애 삐악삐악! 전자와 후자는 구분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된다.
그런데 남녀만 해도 마음의 결이 다르고 사랑은 변하기 일쑤인데, 톰과 제리라고 말이 (쉽게) 통할 리는 없다. 하지만 지금이 어려운 시절도 참혹한 시대도 아닌데 굳이 부정과 비관과 불행만 추구해야 하는 건 아니다. 좋아하는 걸 추구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랑하며 인생을 살기에도 바쁜 세상. 인간이 1000년을 사는 것도 아닌데 오늘도 일희일비를? 물론 이론은 그렇겠지만, 여심은 신비하고 그런 여자의 꽁무늬를 좇는 남자의 마음이 진짜 미스테리. 그래서 신이 만약 있다면, 신은 SF처럼 인간계에 나타나면 인간을 절대로 이해할 수 없다. 신이 인간을 이해하지 않는 건 괜찮다만, 신이 인간을 애틋하도록 이해하지 않는다면, 그럼 혹시 인류가 도퇴될지도 모른다. 아니 대체 이거 뭐야, 걸작이라고 힘들게 만들어왔더니 글쎄 이렇게 조잡하고 쪼잔하며 제멋대로다? 인류는 공룡처럼 멸종할 수도 있다. 그래서 공룡처럼 멸종하지 말아라 하면서 진짜로 공룡처럼 강림이랄지 재림할 리는 없고─뭐 인간 주제에 감히 신에게 걸리버 여행기를 따라하라고 명령해?─똑같은 형상으로 암행어사처럼 슥~ 왔다가 넛지의 강도를 달리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막사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 의식이 뒤쳐지고 비윤리적인 후발주자, 망나니 같은 인간이랄지 불량배처럼 행동하는 선험자들에게 단지 힌트만 알려줄 테지. <이승에서 원 없이 막 사시고, 저승에서 봅시다> 라고. 인간의 육신으로 태어났으니 인간에게는 최소한 지구가 난장판이 되지 않을려면 <두고 봅시다>라는 암시가 요구되어야만 하는 것 아닐까? 또 신이 아예 신비주의 포지셔닝으로 일관하여 영원히 일절 그 어떤 어중간함과 애매함도 비치지 않는다면 그 또한 무심하고 비정한 일일 것이다. 그러니까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미리미리 주의하자. 내 친구가 신의 책사인지, 내 마누라가 천사이자, 저 비리비리하고 허접한 지인이 요정일지도 모르니 그 말만은 우리끼리만. 여편네와 북어는 이틀에 한 번 씩은...! 옛말에 펜은 칼보다 강하다 라는 말이 있다. 이 또한 직역과 의역으로 나뉜다. 직역하면 틀리고 의역하면 맞다. 예술은 긴데 반해 짧은 인생, 오늘도 누군가는 천국행-지옥행을 예약할지도 모른다. 그것도 칼이 아니라 펜으로! 그래서 우리는 실컷 인생을 누리고, 마음껏 개인의 자유를 즐기며, 속 시원하게 현실과 허구를 누려야 한다.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내 기분이 꽝이라며 자칫 울컥할 수야 있지만, 무조건 타인을 미워하고 억지로 얄미움만 받기만을 추구하지 않아도 된다. 종교도 그와 똑같은 이치다. 종교의 목적은 무엇일까? 한마디로 도덕이자 윤리다! 그렇지만 미켈란젤로의 조각상을 가르키면서도 우리의 생각은 어딘가로 떠날 수 있으며, 흑심은 동하기 마련이자, 종교는 물론 종교인마저 살면서 흔들리고 헷갈릴 수도 있다. 안 그러면 거짓말이다. 종교를 빙자하여 문명사에서 슬픔-야만-비윤리를 양산해냈던 예가 좀 많더냐. 일단 오락산업만 해도 거느린 추종 세력이 결코 만만치 않다. 경제, 학문, 예술, 허당계, 삼류 친구들, 동화, 기분파, 무신론 그리고 교양과 상식 등등등. 아무리 그렇다고 인격이 떠받들어 신격으로 기원 0년이라는 기준을 만들었던 종교는, 화가와 음악가와 작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던 신앙은, 돈은 돈이고 인기는 인기일 테지만, 그것의 목적을 망각하면 안된다. 내가 사랑에 빠졌던 찰나, 내가 인생을 멋지게 살기로 결심한 초심. 같은 얘기다. 교왕이 국왕과 동격이었던 옛날 세상에서는 종교가 피라미드의 최정점에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전혀 아니다. 현재는 법이라는 최소한의 보호망 안에서 사랑, 행복, 자유, 이상, 화합, 평화 이런 걸 추구해야 한다. 신에게는 개개인이 모두 똑같은 사람이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러면 신은 그 개개인의 자유를 다만 존중할 뿐. 그저 개개인이 사랑스러울 뿐. 부디 개개인이 행복했으면! 따라서 A도 존중 B도 존중. 그런데 A는 종교인 B는 무신론자. 그렇다면 B의 무신론도 그럼 A에게는 신성 모독일까? (엄밀히 따져서 A는 적어도 그렇게 받아들인 예가 적지 않았으나, 인격이 아닌 신격도 그와 같을까? 설레설레!) 혹시 A의 구시대적 관점은 B와 C 뿐만 아니라 D에게 누는 아닐까? 이미 기준과 표준을 비롯한 문명의 기반은 B와 C쪽에서 다 닦아놨다. A쪽에서 그게 싫다고 몰상식이랄지 어떤 야만성을 실현한다면 그건 전-예술계가 찬양하고, 수많은 일반인들이 우러르며, 고전음악 제1전성기의 특혜까지 한몸에 받았던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이 아니라 아돌프 히틀러가 되는 것이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나 요한 세바스찬 바흐가 아니라! 더더군다나 A의 경전을 근거로 A는 평화, 관용, 자유, 행복, 이상, 사랑 등 좋은 내용이 전혀 어렵지 않게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굳이 법리 해석 공방처럼 티격태격할 필요가 전혀 없이. 그런데... 왜...? 물론 전부가 아니라 일부일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 세상에 황금 왕좌에 왕이 앉았나? 영국 여왕이 세계의 여왕일까? 아니다. 전혀 아니다. 관심도 없고, 무슨 일을 하는지 알고 싶지도 않다. 슈퍼스타 소식도 안 보는데, 그 무슨! 규칙적으로 손님 맞고 기념사진 찍으며 행차하는 게 전부인데, 사극을 본다면 또 모를까 나까지 물개박수를? 그러든 어쩌든 지금은 오락산업이 명명백백한 1인자인 세상이다. 그래서 일부가 소란스러우면, 언론은 역할에 충실할 뿐이며, 이제는 소셜 네트워크가 거들고, 그래서 소란스러움을 발생시켰던 일부가 아니라 언제나 선량한 편인 나머지 교파에 대한 오해를 살 수도 있고, 그렇다면 남은 건 복잡해지는 일만 남은 셈이다. 한편, 기원 0년 로마제국의 식민지였던 이스라엘에 신의 인간계 데뷔가 있었나, 없었나 확답은 못하겠다. 내가 그걸 어찌 알겠나. 다만 이 미천한-못나고-허접하며-거렁뱅이 같은 서술자 뿐만 아니라 지극히 상식적인 제3자에게 당신이 만약 신이라면 A에서 태어나면 어떻겠냐 라고 묻는다면! 만약 그런다면 그분의 아량이 넓다면 또 모르지만 이성적으로 따졌을 때 그건 아니 될 일이다. 왜냐하면 인류 역사상 딱 1번이라는 신이 영험함이 있다는데, 겉으로 봐선 비리비리하고 그 어떤 영험함도 들쑥날쑥하고, 뭐야 어떻게 이런 허접한 루저가 무슨 신이라고, 신이 이 모냥일 리는 없어! 라면서 어떤 문양이 지금처럼 유명해질 수 밖에 없었던 전력이 있으니까 말이다. 일례로 카톨릭-기독교는 그런 일들을 이미 옛날 옛적에 많이도 겪었다. 그 경험이 (아직은?) 불충분한 타 종교계라면 어쩌면 그런 일들이 현재-진행형일 수도 있다. 그들이 무조건 착하고, 아름답고, 예쁘고, 영리하고 뛰어나서 일찍 뭔가를 싸우고 숙달하며 깨달았다는 게 아니라 한마디로 살만 루시디의 소설 '악마의 시' 같은 사례에 대해서 응당 선험자들이란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프로테스탄트가 대체 어떤 길을 걸어왔는가를 간략히라도 알 필요가 있다. 이미 무수한 예술로써 증명된 사안 아니냔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학교에서 과목을 배운다. 또 모든 덕목에는 역사라는 게 있다. 종교? 종교사! 미술? 미술사! 세계? 세계사! 상식적으로 지금 시대에 마녀사냥은 말이 안되는 일이다. 난민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그 가운데 일부는 자기는 비둘기가 돌아와도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돌아가면 뭐 어떻게 될 게 뻔하기 때문이니까. 이걸로 봤을 때 타임머신 문제가 이럴진데 한 단위 안에서 빈부의 격차라... 어쩌면 그건 행복한 비명인 듯 하다. 그러니까 교양은 우리에게 묻는다. 신과 인간의 사귐으로 발생했던 일들은 무엇이 있는지 아느냐고. 몰라도 된다. 그걸 내가 왜 알아야 하는데? 왜 안 되겠나! 모른다고 불이익을 받지도 않고, 조용히만 있으면 대체로 무식이 탄로날 일도 없다. 그보다 사람은, 중간은 가는 게 더 중요하다. 나아가 신학을 체계적으로 공부하는 건 전문가의 역할이고, 구도적으로 학습하지 않더라도 자기가 종교인이라면 적어도 종교의 목적을 바로 안 다음에 종교적 행동에 나서야 한다. 존엄한 인간의 태도와 상식적인 현대인의 자세를 몽땅 내버리고서 감정적으로 흥분만 할 게 아니라. 종교에서 말하는 신! 그 신이 있나 없나는 몰라도 현재까지 신의 인간계 데뷔를 0으로 보는 종교는 최소한 그건 알아야 한다. 신은 초딩이 아니라는 신격을! 만약 신이 있다면 그 신은 종교의 목적을 실천하기를 바라지 내 종교만을 위한 비상식적 행동을 좋아하며 기다리지는 않을 것이다. 딱 원하는 구원자상으로 선택 받은 민족과 무던히 모독에 민감했던 종교계 앞에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신이 진짜로 막 헤라클래스처럼 나타나면 딱 만화영화지 그게 무슨 신인가. 일어서면 구름 위로 머리가 나타나는 모습으로 강림? 재림할 리도 없다. 까치발을 디디면 오존층보다 더 크고, 실례를 하면 용암이 춤을 추면 태풍이, 입김을 불면 오로라가 노래를 부르니까 동물들이 때로 모여들까? 그럴려면 애초에 병풍들만 선발하고 신부들러리만 키우지 지구 생태계를 이렇게 만들었을 리는 없다. 그걸로도 모자라 태평양 마리아나 해구 바닥에 용궁이 있고, 호수와 바다에 빠진 보물이니 뭐니 타이타닉까지 건져줄까? 심지어 탄소 기반으로 만들어진 생명체가 아니니까 제2, 제3, 제4의 지구를 왔다 갔다 하며 우리의 심부름꾼을 자처할까?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정말 과학적인 지구의 역사를 몰라서 하는 얘기일까? 그러니까 45억년 동안 완전 심심했다가 이제야 달콤한 문명과 같이 놀 만큼은 똑똑한 영장류가 출연했다고 좋아하실까? 최소한 그렇다고는 말 못하겠다. 그러나 단언컨대 <시간의 탄생마저 추정한 99.999...무한대의 과학> + <천문학적인 확률로써 일종의 우연이랄지 외부의 간섭> = 윈윈, 아마도 이렇지 않을까? 어쩌면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종교가 과학의 힘을 부정하지 않듯이 과학도 신의 부재를 증명할 수 없으니까. 종교마저 SF 같은 신을 바라는데 과학이라고 왜 무신론을 옹호하면 안되겠나. 그러나 무신론자의 글을 읽고 말을 들어봐도, 단지 남자처럼 말이 세고 여자처럼 말만 길 뿐이다. 알맹이는 없다. 허나, 시도는 좋다. 다양성이란 건 다른 게 아니니까. 그런 철학적 시도를 할 수 있다는 건 재능이다. 아무나 못한다. 내 인생을 잘 산다는 뜻이고, 엄밀히 따져 현대적 교육의 은혜를 입었으니까 가능한 일이다. 더 나아가 사고 방식이, 어디식이 아니라면 기대하기에 수월하지 않은 성과일 수도 있다. 이처럼 각자 개인의 생각이 다르듯 종교도 마찬가지다. 각자 자기 영역만 지키면서 소 닭 보듯 닭 소 보듯 하는 식이다. 그처럼 양측은 상대의 무용함을 자신만만하게 입증할 수 없다. 게다가 그 논쟁이 그렇게 재밌지도, 그다지 생산적이지도 않다. 과학도 우주라는 범위 바깥에는 무엇이 있고, 시간의 탄생 보다 앞서는 그 뭔가를 확실히 밝힐 수 있다면 굳이 유신론과 척질 필요는 없다. 다시 말해 인간이 충분히 도덕적이라면 종교는 필요 없다. 전혀 필요가 없다. 오직 과학이면 충분하다. 법 없어도 살 사람들만 모인 인간계라면 대관절 뭐가 문제일까. 하늘나라는 혹시 심심할지도 모른다며 공상하고, 재밌는 시절이 있는 반면 일부 슬픈 소식도 우리네 인생과 함께 함이 인간의 운명인 것처럼 세상은 요지경이라면서, 이 땅은 설마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것 아닐까 같은 명상이라고나 할까? 하오나, 그건 단지 사색가의 걱정은 팔짜일 뿐! 법 없어도 살 사람들만 모인 지상이자 성선설이라는 가정법은 세상사를 절대 책임져주지 않는다. 원리가 그렇듯 순서도 이렇다. 신화가 먼저였고, 그 다음 종교가 인류사의 주역이었다. 그 결과, 교리는 영역을 물리적으로 넓혔으며 교세를 시간적으로 확장하여 문명의 기틀까지 마련했다. 그러나 인기상은 오락산업에게 빼았겼고, 신인상은 허당에게 세상사의 이치는 과학에게, 라틴어 경구 같은 정신마저 자본의 논리에 밀려 교리는 더없이 너그로워질 수 밖에 없었다. (법을 어기면 처벌 받고 교리를 어기면 처벌 받지 않아야 정상인데, 아직인 곳은 논외로 하자) 그래서 최소한에 해당하는 인간의 존엄성은, 율법의 여신 테미스와 대신 제우스 사이에서 태어난 정의의 여신 디케에게 그 상징성이 부여됐다. 그러나 그건 말 그대로 최소한의 지침일 뿐. 그래서 도덕-인성-예의-가정교육-인습-신앙-예술-문화-교양 및 상식은 과학과 한 팀인 것이다. 그처럼 대타들이 쟁쟁하지 않다면 과학 혼자 활약하는 원맨쇼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라는 논리는 충분히 타당하다. 그러니까, 인간이 충분히 도덕적이라면 진정 종교는 필요가 없다. 전혀 필요가 없다. 만약 그렇다면 오직 과학이면 충분하다. 법 없어도 살 사람이라는 선인은 만나봤어도(꿈에서!), 교리 없어도 살 사람이라는 말은 못 들어봤다. 지금은 종교의 시대가 아니라 소비의 시대이니까. 교양은 물론 사회-경제-정치-문화 등등 모두 과학은 필수고 종교는 선택인 세상이다. 곧 실정마저 과학과 예법이랄지 그에 준하는 개념과의 혼인이고, 신앙은 뒷전으로 밀린 모습이다. 하나의 공동체랄지 이익 집단이 옛날에는 국가로 발전했고 종교로 승화됐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전혀 아니다. 그처럼 종교는 이미 과목이 아니라 교양이랄지 상식 또는 선택 사항이다. 제 2의 도약이 발생한다면 몰라도 일단 사회가 과학적이고 우리가 도덕적이면 뭘 믿지 않아도 얼마든지 괜찮다. 인생 역시 무신론으로 충분하며, 세상 또한 과학으로 충분하다. 우승 트로피의 기원이 왜 컵인지, 13일의 금요일이라는 영화 제목과 캐롤송의 들뜸을 모른 체 즐겨도 된다. 그래서 진짜로 과학만 알면, 학교의 정규 과정만 대충 알고 이해할 수만 있다면 인생을 사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물론 행복한 인생의 최저점이 그렇다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종교를 믿느냐 안 믿느냐, 의역이냐 직역이냐, 과학이냐 아니냐가 진정 중요한 문제일까? 아니다. 그 보다도 전체적인 원리에 대한 이해가 교양에 스며드는 것. 이기주의와 이타주의의 균형. 착한 사회와 개인의 자유, 그 전자와 후자의 조화. 그 모두를 먼저 알고서 그 다음에 '나는 어떻게 생각한다'가 나와야 한다. '나는 어떻게 생각한다'가 먼저 조명 받고 유명해지면 나중 챙피하며 손가락이 오그라들지도 모른다. 그 차례 때문에 교육 방식에 대해서도 인생의 전반기 때 불만은 많을 수도 있다. 그 차례 때문에 이 세상은 바보들의 잔치인 듯 느껴진다. 그처럼 다니는 교회를 옮기고, 종교를 바꾸며, 취미도 갈아치우고, 사랑이 변하는 것은 물론, 주거지를 옮기며, 직업을 교체하는 것. 모두 자연스러운 일일 뿐이다. 그렇다고 진짜로 뭐든 한발짝만 걸치고, '막살라'와 '하나 뿐인 인생 나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산다'를 혼동하라는 말이 아니라! 그와 함께 법은 최소한이어야 할 테고, 될 수 있으면 법은 제일 나중에 만나는 게 좋다. 이처럼 동전의 양면처럼 상반되는 과학과 종교, 그렇지만 인간이 신성함에 근접하는 갸륵한 능력으로 이처럼 문명이 발달했는데, 그 순기능만 있을 리는 절대 없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 두 개념은 상호보완적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적어도 동물의 세계 같은 다큐멘터리만 봐도 답은 나온다. 상호배타적이어서는 안될 것이라고. 그래서 이해는 하고 납득이 된다. 허나, 아무리 그렇다고는 해도 오락업도 모자라 신까지 기저귀를 차라고? 아니다, 그건 정말 아니다! 제3자 관점으로만 봐도 그걸 대체 누가 좋아하겠나.
다시 과연 0이냐 1이냐로 돌아가서. 실제로 기원0년 이전, 곧 기원전의 주장들은 겹치는 구전과 기록들이 유독 많았다. 여러 신화들, 설화, 전설, 민간신앙. 한두 개가 아니다. 딱 그 후에 거기서 신의 인간계 데뷔 1을 기반으로 하면 신성의 증거와 신학적 근거까지 얻게 되는데, 신화 다음에 신의 인간계 데뷔가 전무하다면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다는 게 된다. 확실한 게 있나? 하나도 없다! 단지, 인간의 주장을, 신의 말씀이라고? 그건, 말이, 안되는 일이다! 알에서 태어난 사람이 대체 몇 명인데, 자기는 외계에서 왔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또 얼마고! 기원 0년 이전까지 딱 그것만 인정하거나, 기원 500년 1000년 후의 인간의 예언만 믿는다면 샤머니즘에서 신학으로 발전하다 중간에 맥이 끊겨버린 것과 같은 이치다. 달리 설명할 수도 있다. 신의 인간계 데뷔가 0이냐 1이냐 그 한 끗발 가지고 아웅다웅인데, 그럼 신을 외계인으로 비유해보면 이해가 쉽다. 그러면 아주 간명하게 납득이 된다. 외계인이 지구에 0번 나타났냐, 1번 나타났냐! 0인가 1인가는 몰라도 최소한 인간과 외계인이 신호를 교환할려면 천문학과 물리학등 과학의 힘이 그 근거가 되야 한다. 그래야 천동설은 허구라는 걸 알 수 있고, 우주는 확장중이며 나이가 젊다는 것까지 알게 되며, 외계의 신호를 기다리기만 하기보다 외계로 신호를 보낼 수도 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단지 주술과 레인메이커와 점쟁이의 점지만으로 알에서 태어난 사람과 외계에서 왔다고 주장하는 자칭 외계인을 믿어야만 하다니! 그런 중에도 틈틈히 천문학을 따르고 물리학을 애용하는 건 또 뭘까! 신은 그 누구도 아무도 듣도 보도 못했는데, 나는 알에서 태어났다 나는 신의 계시를 받았다 나는 외계에서 왔다? 신학을 넌센스 퀴즈와 동일시할 만큼 현대인은 순진하지 않다. 그러면 신성함이라는 근거 자체가 없다는 뜻이다. 공룡학─공룡업─공룡론도 모르겠고, 공룡의 화석이니 뭐니 진짜 공룡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는데, 공룡은 어떻다? 그건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아니 대체, 납득이 되야지 납득이! 아니 그런가? 무슨 논리적으로 말이 되던가, 합리적으로 이해가 되던가, 직관적으로 일리가 있던가, 이성적으로 충분히 타당한 이치로써 제3자를 명쾌히 만족시켰나? 하나도 아닌데 그걸 대관절 어떻게 받아들이라고! 괜히 살짝 흥분한 감이 없잖아 있다만, 모두 그 긍정적인 의미와 유익한 효과와는 별개로 이치에 대해서만 논하느라 이처럼 부득이 떽떽거린 점 깊이 사과 드리는 바이다. 여기까지 듣고 나면 유대교에 대해서 좋게 봤는데...... 그럴 수도 있다. 그렇지만 유대교-이슬람교를 깎아내리고자 일부러 어떤 차이점을 부각한 게 아님을 밝힌다. 왜 견해 차이가 클 수 밖에 없는가, 를 간략히 올바르게 알자는 의도에서 얘기가 길어졌을 뿐 다른 의도는 전혀 없음을 이해해주시길. 설명이 썩 난해했거나 부득이 허접했다면, 그런데 어쩌다 읽었기 때문에 시간 낭비까지 그 손해가 막심하다면 온화한 용서를 청하옵니다. 상감마마 통촉하여주시옵소서! 전하─독자는 곧 전하다─성은이 만극하옵나이다!
(휴~)
(쉬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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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와 신에 이어 문명사 가운데 껄끄러운 예시를 좀 더 알아보자. 누구나 과학을 옹호하지만 인간이 야만인이 아닌 이상 근대사의 무질서를 아는 것은 교양이니까. 그 상식은 다시 신이 있냐 없냐 라는 고찰에 대하여 도움을 줄 테니까 말이다. 우선, 민간인은 만약 전쟁 범죄를 싫어한다면 전시에 확실함을 선택하는 게 천 번 만 번 옳다. 일단 전쟁의 논리만 보자면 그렇다. 구시대의 사례를 보면 이런 예도 있다. 일반인의 그 어떤 불확실함은 또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그것도 엄연한 반칙이다. 사랑만 양다리가 있나! 게다가 여러 모순 가운데 그래도 뭔가 걸려서 예술계에서 패자가 승자를 찾아가 사죄한다? 모양새도 이상하고 승자도 썩 그렇게 탐탁스레 여기지도 않는다. 남녀의 사랑에 대해서도 내 마음 편허자고 작별의식을 꼭 거창하게 해야 하는 건 아닐 테니까. 그래서 사례는 인용되고 연구되며 기억되는 게 맞지만, 어떤 형식은 반복되지 않는 게 나아보이기도 한다. 사과를 하는 측, 사과를 받는 측, 누구나 꺼림직한 건 사실이니까. 까마득한 옛날 일이니까 말이다. 그러니까 남자들은 술 한 잔 먹고 풀고, 또 영 어울리지 않는 우정은 자연스럽게 멀어진다. 그런 순리 때문에 내게 유리한 건 기억하고 내게 불리한 건 까마득히 잊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여자들은 옹졸하다는 말이 아니다. 구도가 어쩌건 그래도 시민단체는 옳은 일을 해야 하고, 환경단체도 사안의 경중을 따질 줄 알아야 한다. 1인자의 잘못 하나 때문에 최소 100년간 100 X 100가지가 참 길게도 떠들썩할 수도 있으니까. 그것으로 말미암아 후손들은 (미미하게 심리적으로) 꾸부정하고, 또 다른 후손들도 나란 놈이 뭐 그렇게 잘났다고 겉으로는 태연해도 속으로 미세하게 께름직하며... 물론 과장해서 하는 얘기이자 어디든 크고 작게 역사의 굴레에 엮여 있겠지만 말이다. 한편, 몇백 년 전에 서구 열강들의 식민지였던 미국이 독립하기 전에도 시끄러웠다. 진취적 기상이라는 유럽 정신이 온전히 옮아갔기 때문에 식민지의 후손일지라도 미국인은 화성 식민지라는 표현을 아낌없이 쓴다는 사실, 결코 쉽게 간과할 수 없는 일이다. 괜히 남의 대륙에서 영국군과 프랑스군과 스페인-네델란드가 싸우고, 탐험가를 비롯해서 사방팔방 꼿힌 깃발은 말도 못했다. 그 후 덴마크 탐험가가 발견한 알라스카는 구-러시아가 미국에게 팔았다. 그 다음에 미국은 일본에게 알라스카를 빼았겼다. 다시 미국은 잃었던 알라스카를 되찾았고. 하오나, 어딘 안 그렇겠나! 각 나라의 국사책을 보면 사정은 다들 비슷비슷하다. 지금도 잠재적으로 분리와 독립에 대해서 미묘한 갈등의 사례는 바람둥이의 전적처럼 저 멀리까지 줄을 서서 대기중이다. 물론 타임머신은 그 역시 관장하기 때문에 언어와 민족, 종교, 문화권에 민감한 것이다. 때문에 공룡과 고래 사이에 위치한 돌고래의 입장은 더더욱 다를 수 밖에 없다. 가령 이와 같은 다큐멘터리에서 공룡과 고래는 EU와 러시아고, 돌고래는 동유럽이다. 그처럼 빈부의 격차는 타임머신의 격차로 이어진다. 그러니까 학생들이 공부해라 공부해라 라는 부모님 말씀을 잘 실천하기 어려워하는 것이다. 그런데 근대만 그랬냐? 아니다. 그 말은 곧 기원전 27년부터 시작했던 로마제국을 불과 얼마 전까지 따라했다는 얘기다. 세상에나! 물론 로마제국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도 마찬가지였을 테고. 그럼 이제 앞으로는 좀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고 지금 미식축구를 보는 사람들이 앵글로색슨족이나 샹송을 부르는 사람들을 보면 울컥하나? 그럴 리는 없다. 치를 떠나? 아니다. 그쪽을 보고서는 오줌도 누지 않을까? 다 아니다. 캐나다 총리의 농담이 왠지 모르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래서 캐나다 여행 금지? 아니다. 외교는 괜찮지만 대국만 가져야 할 장난감을 쿠바가... 쿠바 관광 금지? 아니다. 전혀 아니다. 왜냐하면 지금은 그런 세상이 아니니까. 또 대충만 봐도 비슷비슷하게 생겼다. 그래서 우리가 학교에서 과목을 배우고, 부모님과 박물관에 가며, 애인과는...... 어디를 가면 좋을까! 동물원? 미술관? 이상한 모텔 이름만은 말하지 말아주시라. 캘리포니아 호텔 같은 유행가 제목은 괜찮지만, 그러나 다른 건 안 됩니다! 쉿! 그러나, 그 외에도 미심쩍은 문제와 껄끄러운 모순들은 차고 넘친다. 두더쥐는? 산업 스파이는? 제1차-제2차 세계대전 때 줄을 잘못 서서 곤혹스러워진 경우도 많다. 그리고 또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는 대체 왜 파리에 있을까?(인문교양에 대한 관심은 이런 데서 싹틀 수도 있다. 현재는 그렇고 먼 미래에는 또 다를 테고) 만인이 부러워하는 캥거루의 나라에서 연간 실종자 숫자는?(인구밀도가 낮은데 사막에 신기루를 세울 수는 없다) 남미 곳곳에서 국경 분쟁은? 나는 거기까지 모두에 대해서 안다-박사님이 될 수는 없다. 내 일을 못하니까. 도저히 시간이 없으니까. 산책도 해야 하니까 말이다. 그래도 가택감금은 재밌다. 그러나 사실은 다름쥐 쳇바퀴를 도느라 쫓고 또 쫓긴다. 신은 있냐 없냐, 를 따지면서도 이렇게 갈팡질팡하는데. 그러므로 내가 만약 제우스라면 인류 최악의 12 난제를 해결했다는 바로 그 헤라클레스를 부르고 싶다. 그래. 정말 그렇다. 진짜로 그렇다니까. 혼자는 힘들다. 혼자는 외롭고 혼자로는 벅차다. 그야 어쨌든, 그런 애매한 현대성의 빈틈과 모순과 별개로 적기라는 흐름은 극단적으로 냉엄할 뿐이다. 문명사가 냉혹하지 않다면 올림픽도 다시 시작될 필요도 없었고, 다시 제국주의의 경쟁 시대로 되돌아가던 인간이 이 세상에서 야만적으로 살든 어쩌든 모두 상관 없을 테니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그 어디를 가든 언제가 되든 최소한의 불행은 불가피했다, 불가피하다, 앞으로도 일정 부분 그럴 것이다 라는 말인데...! 그럼 그 불행조차 2.0으로 틀고 줄이며 감수해야 하는 운명적 자세를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다시 소-주제인 왕으로 돌아가자. 옛날까지만 해도 왕이 최고였으니까. 지금은 너도 나도 다 최고일 테고, 뒤늦게 어떤 간접 증거가 존재한다면 그건 아마 역피라미드의 지혜를 제시할 테니까 말이다.
그처럼 옛 시대의 왕은 권력의 최정점에 위치했다. 통치권자─국왕─교왕이라는 3요소가 중복되기도 했고, 거기에 추가로 교황도 있고 교주는 물론 꼭두각시가 된 왕도 얼마든지 가능했으며, 미켈란젤로나 아마데우스와 보나파르트 같은 천재들도 꾸준히 탄생했다. 그러니까 대하드라마에 나오는 왕은 신일까? 아니다. 왕은 신이 아니다! 단, 신이시여 여왕을 지켜주옵소서, 라는 건 얼마든지! 인간의 일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일일 테니까. 그래서, <신화의 시대>가 아닌 <소비의 시대>에 국왕이란 명성 그 과거의 영광은 절대로 쇠락하지 않았다, 라고 한다면 대관절 어느 누가 찬탄하며 좋아할까! 내 인생은 내 것인데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아직도 제국주의의 관념으로 살 수는 없다. 물론 그래서 세상이 바껴도 너무 바뀌니까 뭔가 애잔할 수도 있다. 제왕 전성기에 어땠는지를 대관절 왜 모를까 라는 시각을 뒤틀면, 저 신화의 시대에 인간 군상을 어떻게 취급했나는 왜 모를까다! 그처럼 세상이 바껴도 너무 바뀌니까 왕은 곧 일종의 뭐랄까, 그래, 최고의 가문에 다름 아니라는 사정으로 인지하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사석에서 하는 말뿐만이 아니라 이성적으로만 봐도 썩 틀린 말도 아니다. 무엇보다 그러냐 안 그러냐, 를 넘어서 아예 관심도 없다. 이 세상에 물개박스의 종류가 도대체 몇 개인데 말이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유럽 연합에서 각 국가의 수장들은 함께 모인다. 세계의 통치권자들도 만나고, 친하며, 교류한다. 그걸 한마디로 외교라고 한다. 그리고 국왕이 존재하는 국가가 있고 없는 나라가 있다. 그 유무는 별개로 하고, 예부터 유럽에서는 왕실과 왕실의 혼맥이 드물지 않았다.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일 테고. 그러나 지금도 그럴까? 지금은 아마도 훨씬 덜할 것이다. 아니면 카메라를 돌려보면 그렇다. 달리 표현하자면 왕은 외로워보인다는 것. 그럴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고고함은 오드리 헵번 같은 영화배우의 것일 테니까. 왜냐하면 인기는 유행따라 바람따라 바부낄 테니까. 왕관은 귀공자의 몫일지 모르지만 왕좌는 오히려 오락산업 마음대로일 테니까. 그래서 드물지만 저 혼맥의 생리는 지금 세상에 가문끼리, 기업가끼리, 계층끼리 대신한다. 또 통치권자는 하늘이 내린다고도 하지만 그건 말이 그렇다는 거다. 단지 말이. 왜냐하면 신은 인간 세상에 개입해서는 안되는 것이니까. 논리적으로도 그렇고, 도의적으로도 그렇고, 신성함으로 봐도 그렇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에도 누가 누가 잠룡이 될까 눈치 싸움은 사방팔방 각별하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막살자로 인생 포지셔닝을 바꾸고, <어차피 이렇게 된 거...>라는 시절에 안주하기도 한다. 아예 '에라 모르겠다' 라는 슬로건조차 기분파는 슥 도난당한지 오래일 수도 있다. 봐봐 벌써 누군가는 빙그레 웃고 있지 않냔 말이다.
그러나! 바로 그 무-개입 원칙이 존엄하니까, 그래서 그 어떤 무분별함의 기준선이 위험에 직면할 때 그러면 신은 인간 세상에 드물게 개입할지도 모른다. 타임머신은 영화가 아니라 현실일 테니까. 그래서일까? 어떤 종교계에서는 여전히 신의 SF 같은 인간계 데뷔를 기다린다. 또 다른 데서는 아예 기다리지 않는다. 그 어디서는 1600년대에 현실이었던 주홍글씨가 21세기와 동기화되기도 한다. 그것으로 인하여 평행이론이랄지 머머설이라며 인터넷은 우리들의 놀이터가 된다. 다시 누군가는 자유와 행복과 생존을 위해 고국을 버리고 선험자들의 나라로 떠난다. 그 버려진 고국은 애국심을 고취시키려고 노력했을 테지만 구시대적 이해관계가 얽히고설켜서 언제 비둘기가 돌아올지 예상하기 힘들다. 또 입헌군주제가 현대로 순탄하게 계승된 일부 국가에서는 형식과 전통을 위해 왕실 행사를 주기적으로 매스컴에 노출한다. 우리가 하는 일은 이게 전부예요 라면서 광고를 하더라도, 물개박수를 누구나 반기지 않더라도, 그것은 국가의 할 일이자 국격의 의무다. 이승에서 단위 바깥까지, 저승에서까지 왕일 수는 없을 테니 지극히 합당한 인습이다. 그리고 UN이니 EU니 국제적인 협력 체제는 구색이 갖춰졌고 실제 많은 활약을 한다. 그렇지만 그건 미래인이 봤을 때 얼핏 절반쯤만 기능적으로 보여질 수도 있다. 그래서 과거 언제부터 현재까지 국제적 질서는 개별 국가의 안위를 완벽하게 보장해주지 못한다. 때문에 각자 제2, 제3의 방책은 현존할 수 밖에 없다. 인간에게는 운명이, 점쟁이에게는 직업의식이라는 소명이 있다. 곧 동물의 세계에는 다큐멘터리라는 생태계 질서가 존재하는 법. 고로 우리 모두가 뉴턴식으로 만류인력의 법칙을 착안할 수는 없다. 따라서 우리는 사과나무 밑에서 사과가 운 좋게 떨어지기만을 기다려서는 안될 일이다. 머머하는 법을 알고, 장미꽃밭을 찾고, 그 어느 새로움을 상상해야 한다. 신이 나타나서 모든 것을 해결해줄 것이다? 꼭 믿거나 말거나는 아니지만 모든 것을 해결해줄 수 없었다 라는 사례는 있었다. 단, 이승에서는! 그처럼 신앙은 믿을지언정 그와 같은 순진한 발상을 믿으면 곤란하다. 신학을 공부하며 신업의 종류가 발전함과 별개로, 인생과 세상사는 신을 믿는 것과 엄연히 별개의 문제다. 신이 강림해서 모든 것을 해결해줄 것이다, 만 믿고 있었다면 이스라엘은 아마도 현재와 같지 않았을 것이다. 신화의 시대에서조차 최고신은 사이 좋게 3부분으로 나뉘어 이 세계를 관장했다. 그러면 소비의 시대에 어떤 가상의 존재가 이승과 저승을 모두 좌지우지한다 라는 가설은 어쩌면 너무 픽션인 것만 같다. 하지만 우리가 꼭 기적을 바라고 당첨을 확신하여 복권을 사지는 않듯이, 구태여 과학적이지 않은 개념을 무조건 반겨하지 않거나 수학적이지 않은 미신에 내 인생을 온전히 맡겨서도 곤란할 일이다. 러시아 속담에 이런 게 있다. 이왕 취할거면 여왕을 취해라! 실제 사례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드물지도 않을 것이다. 그리고 신은 인간계에 일반적으로 개입하지 않는 게 원칙이다. 그래야 한다. 인간이 원하는 대로, 하라는 대로, 시키는 대로 신이 꼬붕처럼 행동할 꺼라면 애초에 인간을 이렇게 만들지도 않았을 테고, 개입하더라도 적어도 SF처럼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루저에 가깝다면 몰라도. 따라서 인간의 일은 단지 인간의 일. 그런데 문제는 세상사를 보는 시각과 상식적인 의식, 각자의 시간 개념이 물리적으로 공통되지 않았다는 점. 또한 미래는 모른다는 것까지. 신이 있든 없든 신은 초딩이 아닐 테니까, 고로 설령 은밀히 놀러왔다가 인간을 은은하게 이해하며 넌지시 물음표와 느낌표를 전달할지도 모른다. 몇 천 년에 한 번이든 어쩌든, 그때가 되면 하늘은 인간 세상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는 않겠지만, 어떤 식으로든 경고할 수도 있다. 그러면 땅은 하늘의 뜻을 알아야 할 테고. 그야 어쨌든 인간의 본능은 스스로에게 유리함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고의 제1원칙은 이기주의다. 그것은 달리 말해서 자유다. 그런데 자유와 자유의 만남은 우정과 사랑도 있지만 갈등도 있다. 그래서 법이 있고 도덕도 있으며, 인성을 배양하는 예술과 가정교육도 있고, 윤리 과목과 종교까지 있다. 그런데 앞서 논했듯이 구시대적 정서와 물리적 시간이 충돌할 수도 있다.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신성 모독의 경우만 따지자면 이렇다. 신이 신성 모독에 대해서 무방하다는데, 무슨 느와르 영화도 아니고 중간 보스 건너뛰고 괜히 쫄따구와 삥발이가 인상 팍~? 신학과 영화라... 다큐멘터리라면 몰라도 엄한 장르를 부여하기엔 적잖이 찜찜한 일이다. 내가 응애응애 하며 태어나기 전에 인간의 형체로 완성된 곳은 자궁이냐 알이냐, 나는 외계인이냐 지구인이냐, 우리는 사랑하기 위해 태어났냐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났냐. 그 외에도 알쏭달쏭한 질문은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다. 그처럼 역발상의 도움을 빌리자면 이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십자가가 한 번 있었다면, 나중에 그건 X자일 수도 있을 거라고. 신이 인간의 모습으로 강림하지 않는다면 그건 신도 아니고 인간도 아닌, 한마디로 괴물이다. 그걸 누가 신으로 보겠나! 인간만 해도 무슨 증후군 그런 예는 많다. 2명의 사람이 그 어딘가를 공유해서 한 사람으로 태어난 예는 꽤 된다. 그런데 인터넷이나 TV라면 몰라도 그런 실 사례를 직접 본다면 사람은 누구나 멈칫할 수 밖에 없다. 그 역시 그러한데 말도 안되는 이상적인 신의 형상이 현존한다면, 그러면 아마도 우리가 그 생명체를 과연 신으로 볼까? 절대로 그럴 리는 없다. 신도 그렇게 나타날 리도 없다. 인간과 인간의 사랑이 아니라 약간 이상한 사랑을 다룬 영화만 나와도 일부에서는 그런다. 무슨 삐리한 생선 같은 놈 하나 나와서 여자랑 연애하는 이야기였다나 뭐라나! 뿐인가? 아직도 동성의 사랑마저 인간의 일이냐, 법이냐, 인도주의냐. 말도 많고 탈도 많다. 그마저도 신은 괜찮다는데? 그러면 어떻겠나, 짜잔~, 하며 뚜껑이 열릴 차례다. 괜히 우리끼리 잘 살고 있는데 뭐하러 여기까지 와서 훼방을 놓느냐면서, 그 단계로 보자면 원론적으로 신의 인간계 데뷔를 아예 기다리지도 반기지도 않는 어떤 종교계의 교리가 설득력을 얻는다. 아무튼 마블 만화처럼 진짜로 레이저가 나가고, 얼리고, 입에서 화염방사기처럼 불을 뿜는 건 말이 안되는 얘기다. 그래서 영광과 찬양의 총량으로 따졌을 때 피라미드의 꼭지점은 한 번 찍었으니, 또 하나의 가정법을 상상한다면 어차피 같은 방식이 아니면 괴물 밖에 안되느니 이번에는 구도를 바꾸는 방법 뿐이다. 역삼각형 말이다. 그 두 개의 삼각형을 겹치면 육각별이다. 그런데 현재의 별이라 함은 오각별을 뜻한다. 나중은 몰라도 지금은 그렇다. 또 두 삼각형을 달리 겹친다면 모래시계랄지 미술 교과서에 나오는 이중적 그림일 테고. 이와 같은 의미로 말미암아 신은 신성 모독에 대해서 인격과 동일하게, 어디서 감히 인간 주제에..., 라고 하시지 않을 것이다. 아하 그게 바로 인간의 감정이로구나 라고 느낀다면 몰라도. 따라서 신이 SF다운 모습으로 현현하지 못한다면 그건 이기주의도, 이타주의도, 사랑과 환상과 신비함마저 모두 놓치는 어리석음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재차) (조금은) 루저에 가깝게?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신마저 그럴진대 나는 왜 막살면 안될까! 신마저 신성 모독이 아무렇지 않다는데, 왜 자유와 방종이 같으면 안될까! 논리의 함정에 빠지기 보다, 우리는, 차라리 웨이터와 친하고 바텐더에게 별명을 붙여주자. 분명한 건 우리는 그런대로 중간만 가면 되고, 적당히 착하게만 살면 그만이라는 것. 어찌 됐든 인생은 한시적인 것. 또 사람은 일종의 피조물인 것. 그런 의미로 보자면 개나 양이나 말과 소, 새, 돼지는 인간과 하등 다를 게 하나도 없다. 하나도! 피라미드는 삼각형인데 모든 사람이 내가 최고라면 그게 역피라미드지 무슨 스포츠 토너먼트 그래프란 말인가. 따라서 어른은 초딩이 아닌 이상 <신은 있다 없다, 직접증거 간접증거>의 경우의 수를 굳이 따져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꼭 해야겠다면 그건 어디까지나 개인의 자유. 왜 안되겠나! 다만 굳이 거기다 피도 눈물도 없는 법률의 논리를 적용시킬 필요가 있을까? 우리는 알몸으로 태어나서 흙으로 돌아갈 뿐일 텐데! 무엇보다, 왜냐하면 인간 생애 그 다음에 대해서는 아는 게 별로 없을 테니까. 다만 육신은 그럴 테고 나머지는 잘 모르겠다.
사람들은 누구나 이런 상상 해 봤을 것이다. 이 드넓은 우주에서 지구와 비슷한 행성이 있을까, 없을까? 내 생각으로는 있다. 제2, 제3의 지구는 분명 있을 것이다. 없을 수가 없겠지. 뭐 한 70개 있을지도 모른다. 알고 봤더니 70억개? 아직까지는 확인할 길이...! 또는 그쪽에서는 우리를 그렇게 볼 수도 있을 테고. 그렇다면 종교에서 말하는 예를 들어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일들이 100퍼센트 구현된다 구현되지 않는다, 그건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만약 신이 인간 세상에 개입하지 않을 정도로 인간계가 잘 유지된다면 우리가 아는 의미로 지옥은 이 우주의 어떤 제2의 지구에서 태어나는 일일 수도 있을 테니까. 물론 패자부활전에서 뒤쳐졌을 때 말이다. 자, 그럼 우리는 내 인생에서 윤리─인성─행복─사랑 즉 의무방어전의 의미를 새롭게 수정해봐야 하지 않을까? 세상사를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이 말이다.
끝으로 딱 하나만 부연 설명하자면 이렇다. 원래 주제는 <신은 있을까 없을까>였다. 그런데 끝날 때 되서 딱 보니 아이고머니나! 아 글쎄 주제에 대해서 반쪽짜리 논술 답안지만 제출한 셈이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논리의 전개는 어쩔 수 없이 유신론을 전제로 진행됐기 때문이다. 하여 결론은 낙제점. 그래서 본인 스스로도 아쉽고, 독자님께도 더없이 송구스럽다. 그게 왜 그렇게 됐냐면 그건 아마도 이 죄인이 그 둘을 헷갈렸기 때문일 것이다. 그건 바로, <막살라 막살자> 그리고 <좋아하는 놀기에 집중하고, 하고 싶은 일하기에 몰입하기. 즉 적당한 범주 안에서 마음 가는 대로 뻔트 대며 인생을 즐겁게 살기!>. 후자가 너무 길면 이렇게 바꿀 수도 있다.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하기! 뭘 좋아하는지 하고 싶은지 모르면 탐구하기! 한마디로 욕망에 솔직하기! 일단 전자와 후자가 꿈의 대화를 나누고, 협업하여 아름다운 이상으로 행진하기를 꼭 바라는 건 아니다. 전자는 과학이요, 후자는 입바른 소리란 말도 아니다. 역시나 전자가 상남자의 결과론도 아닐 테고, 후자도 꼭 윤리이자 예술이며 종교인 것도 아니다. 게다가 억측과 망상의 방법을 빌릴 필요도 없이 다큐멘터리 동물의 세계는 우리에게 이렇게 얘기한다. 전자는 게임의 법칙일 뿐이요, 후자는 소년의 꿈─한량의 시─낙관주의자의 노래일 뿐이라고. 내가 그렇게 생각한다는 말이 아니라 말 그대로 다큐멘터리의 주역들인 사자, 치타, 표범, 재규어, 하이에나 그리고 호랑이 같은 육식동물 뿐만 아니라 초식동물과 식물의 유전자까지 마음대로 편집하는 어떤 영장류가 사석에서 가르쳐주는 인생의 비밀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 어른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그 억지스런 농담이 도무지 말도 안되는 궤변이라고 어떻게 무시할 수 있단 말인가. 하오나 이왕이면 후자가 전자를 포용하고, 전자가 후자를 배척하지 않기를. 좀 더 꾸미고 포장했을 때 그 둘은 어떻게 보자면 최고의 명콤비일 수 없는 것일까? 어쨌든 타인의 사랑을 지지하고 그대의 행복을 응원한다만 웨이터 에르메스씨와는 이미 우정을 나눴고, 웨이터 막살라씨와는 친해진지 불과 얼마 되지 않았으므로, 따라서 나는 반쪽짜리 논술 연습 밖에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오늘만 날인 건 아니다. 때문에 무신론에 대해서 나름 고민하고 게으르게 학습할 계획은 있다. 그 독학이 반의 반틈이라도 순조롭게 이루어진다면,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본 주제로 칼럼 2를 발표할 날이 아마도 있을 것이다. 대타 등장을 반길 팬이 과연 몇이나 되겠냐마는. 아무튼 그러기를 바란다.
그런데 내가 대체 어쩌다 이 밑도 끝도 없는 주제를 건드렸지? 감당할 자신도 없고 깜냥도 못되면서! 누가 아니래? 그건 어쩜 내가 아마도 어제 가짜 뉴스에 낚였기 때문일 것이다. 익살끼 넘치는 농담이든 그저 번득이는 말장난이든, 아마도 사적인 유머에 나 혼자 월척인 척 한 거지. 아닌가? 아니다. 그럼 뭐지? 아하! 난 또 다시 예언가의 영역이 궁금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애초에 연구할 만큼 연구했던 위인들 꽤 된다. 아테네로 시작해서 피렌체도 있고, 음악 도시 빈에 몇 명, 지금은 실리콘밸리까지. 구체적으로 스웨덴보리즘, 니콜로 파가니니, 니콜라스 테슬라, 아인슈타인 또 발명가와 예술가와 탐험가와 더불어 마젤란 은하를 관측할 수 있는 기술들 하며. 아차 중요한 걸 빠트렸다. 하나 더. 곧 (딱) 조르주 심농까지! 그와 더불어 이제는 노스트라다무스까지 연구해야 하다니! 그걸 해, 말어? 일도 안 풀리고 놀기도 바쁜데, 품위 유지는 어렵고 관망은 타인의 팔짜이므로, 따라서 나는 어복이 아니라 일복 때문에 이처럼 로즈마리와 에밀리한테 딱 달라붙게 된 것이다. 것도 싸구려 본드처럼 말이다.
뭐 어쟀든 나는 그래도 그녀들이 운영하는 소셜 네트워크의 소개말이 '미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일지도 모르니까 긴장감의 끈을 놓지 않았다. 의심의 고삐를 바싹 당길 수 밖에 없었으니까. 뭐 아무리 그래도 기상학-기상업-기상캐스터도 좋지만 레인메이커라...? 내 화법이 잘 먹이질 않는다면 로즈마리와 에밀리를 용한 점집에 데려가 보는 수 밖에.
어쨌든 우리는 그렇게 녀석들의 아지트로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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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미 발동이 걸려버렸기 때문에 2루 돌고 3루를 돌아서 홈으로 뛸 수 밖에 없었다. 홈에서 멋지게 아웃이 되던 어쩌던 말이다. 그래서 작성한 일기는 다음과 같다.
제목: 일기
내용: 권태로운 일상은 날 환상의 세계로 데려다주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다. 가만히 앉아서 판도라의 상자를 선물 받고, 밑도 끝도 없이 행운의 파랑새와 친구가 되는 일은 꼬마들도 재미없어 할 테니까. 그러니까 나는 고기 잡는 방법을 독학하고, 청초한 숙녀들과 상큼한 미녀들이 제 발로 다가오도록 최면술을 연마해야 할까? 미남들의 러브콜이 폭주한다는 공상가는 내 본분이 아니다. 한껏 꾸민 요정과 예쁜 천사와 발가벗은 아가씨들이 내게 막 때로 달려오는 상상에도 난 일절 취미 없다. 전혀! 하지만 숨겨진 보물이 가득한 곧 나만 알고 있는 알라스카의 어느 계곡 탐사를 포기한 건 아니다. 그러나 지금 내게는 초정밀 척키 인형도 없고, 여태껏 최고급 할로윈 축제에 단 한번도 초대 받지 못했다. 그렇다고 마법사의 부엉이와 말하는 갈매기가 등장하는 영화를 보고 싶은 것도 아니다. 말하자면 낭만적인 욕망과 숙녀의 변덕, 청춘의 대망까지 다 잊어먹은 것이다. 저런, 어쩌다가? 그걸 내가 알겠수 형씨가 알겠수! 그러니까 그게 다 삶의 그래프 때문일까? 요컨대 우리는 잔소리를 듣고 또 들으며 성장하고, 애인의 감미로운 속삭임에 기쁨을 감추지 못하다가, 마누라의 들들 볶는 잔소리를 피해 집을 나서며 어느 옛 속담을 생각한다는 그런 인생론! 그러다 어떤 신비감을 추론하기 위해 최신판 미스테리아를 읽었는데, 애독한 결과 히스테리아로 그 어떤 애칭을 변경하게 되는 일? (설레설레)! 행복관이라는 어느 고풍스런 술집에서 뭔가 있어 보이는 (여)바텐더와 친해졌고, 나는 허울 뿐인 한량으로 보이지 않기 위해 사심을 고이 내려놓고서 단골이 되어 그녀와 어떤 뭔가 농밀한 친밀감을 쌓았는데, 어느 날 행복관에 떡하니 붙여진 안내문!
「여-바텐더 없습니다. 바텐더 남자입니다.」
심지어 오늘은 뚜뚜뚜뚜─, 내일은 잘못 거신 번호거나 번호의 주인이 바꼈거나. 뭐라고? 노노노노노노노!
그래서 나는 분위기 괜찮은 철 지난 유행가를 듣는다. 잡지계의 추종과 오락산업으로부터의 구애를 피해서 말이다. 맙소사! 그런데 그 노래는 요절한 천재가 작곡한 연가였다. 매일 같이 하루에 커피 40잔 - 담배 4갑과 함께, 메피스토펠레스와 결별한 살리에리를 애태우는 심정으로 생애를 불태웠던. 결국 나는 매마른 감성이 너무 갑자기 촉촉해진 것일까? 그 무슨 영화로운 낙원과 희망의 나라를 바란다고. 참 나! 아무튼 미지의 그대는 사랑이 인생의 전부일 것이다.
뭐야! 그러면 나는 인생에 대한 용병술과 예술을 향한 열정을 모두 여심에게? 저런! 그런데 왜 우리는 오빠라는 말만 들으면 미쳐버리는 것일까? 고로 여자의 마음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 미스테리다.
그러니까 나는 거짓말쟁이요, 우린 모두 질투의 화신이자, 나의 정체성 2.0은 욕심쟁이가 틀림없다. 좌우지간, 이처럼 다 큰 어른이 그저 재밌고 좋아서 혼자 숨어서 일기 쓰는 일이 얼마나 되겠나. 좋아한다 라는 미명 하에 하나 같이 돈 벌고, 유명해지고, 자랑하고 싶어서 만방에 이름을 알릴 뿐이지. 만약 그게 안되거나 못할 때 딱 그 시점에 우리는 <없다!>를 남발하는 것이다. 외국어는 몰라도 표준어조차 하면 좋고, 내가 못하면 그러는 것이다. 난 나다 이 세상을 살아보니 그럴 필요가 전혀 없더라, 라고. 그러니까 열등감과 자존심이 비례하는가는 몰라도 최소한 친한 건 맞다. 그럼.
하지만 인생은 그렇게 보내기엔 너무 짧지 않을까? 재미없는 친구에게 발전을 독촉하며 기를 살려주고─너나 잘해?─내내 삼류들 병풍에, 허당들 신부들러리만 고집하는 것 말이다. 한마디로 기를 받기 위해 어떤 젊음과 어울렸는데, 오히려 기 빨리고 활기 잃고 주늑 들며 거금까지 워워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돈 쓰고 욕 먹고 독박 쓰는 친구나 나나! 그러므로 이제 드디여 정신을 차릴 때도 됐다. 그럼. 나도 다 알고 있다. 그 모든 세상의 비밀을 다 알고 있다. 단지 모른 척 연기하느라 무척 힘들었을 뿐이다. 자, 따라서 이제야말로 찬란한 꿈의 환상극을 써볼까?
아니다. 오늘까지만 더 방황하자. 아예 며칠 더 놀자. 왜 안되겠나. 진공청소기 발명가의 오묘한 생애를 이미 연구할 만큼 했고, 환상머신의 완성을 코앞에 두고 있는데! 무엇보다 자유는 거룩한 거니까 말이다. 그러니까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나는 차 욕심이 없는 남자다. 진짜다. 나는 차 욕심 없다. (뭐시여? 또 없다 잖아!) 아니다. 잘못 말했다. 나는 욕망이 적당히 있다. 나는 욕구에 적당히 충실하고, 욕심을 적당히만 실현한다. 관건은 솔직함과 윈윈과 적당히-니까. 그래서 나는 테슬라 주식을 샀다. 나는 마이크로소프트를 쓰고 있지만, 맥이라...! 나는 인터넷에서 애플사 임직원의 뒤를 캤다. 뒷조사를 열심히 했다. 그런 결과, 와~ 오오! 이거 이거 완전 난봉꾼에다 영심이 하며 어떻게 살았고 속으로 뭔 생각을 하시는지... 와 아조 말도 못한다. 말도 못해. 아무튼 그건 그거고, 내가 찾는 단골 카페는 시애틀. 나는 마르크 샤갈의 어떤 작품을 사기 위해 돈을 모으는 중이다. 또 나를 애주가이자 위스키 매니아 반열에 올려놓은 술은 발렌타인 21년산. 리투아니아에 내 개인 별장이 있고, 자카르타에는 친구가 시드니에는 애인이, 토론토에는 내 팬클럽이 살고 있다. 그리고 나는 스위스에서 영화배우 누구와 사진을 찍었고, 네델란드 시인협회에서 공식 초청을 받았다. 좋아하는 감독은...
뭐라고? 이런, 젠장! 뻥이다. 다 거짓말이다. 죄다, 싹 다 (개)구라다. 허영심 놀이도 짜증난다. 이젠 완전 지겹다. 뜬구름 잡는 몽상은 지긋지긋하다. 가난이라면 신물이 난다. 진짜 그렇다는 말이 아니라 어 음 아, 그건... 예술의 원동력일 수도 있다. 나 좋다는 여자도 많았고 돈 버는 방법도 아는데, 고집스럽게 헝그리 정신만? 두 마리 토끼는 호박처럼 제 발로 찾아오고, 플레이보이의 7공주까지 따논 당상인데, 굳이 득도의 길을 고집하시겠다라...! 순정만화의 고객층은 순수하고, 사극에 중독될 시기는 내 통제권을 일부러 저쪽으로 떠넘기지 않아도 된다. 순진한 우유를 좋아하고 달짝지근한 초코우유를 애정하는 건 얼마든지 괜찮지만 말이다. 뭐 어쨌든 나란 인간은 그 뭔가를 당해도 싸다. 아직 인생을 더 배워야만 한다. 에딘버그바에 밀린 외상값이나 갚아야 한다. 포트 엘리자베스가 고향인 어느 숙녀와의 친교는 냉정히 끊어야만 한다.
아, 그럴 게 아니라 좋게 나도 유행을 따르고 대세에 합류하는 게 좋겠다. 그게 편허겠단 말이다. 그래서 나는 코끼리 팬티에서 애용품을 기저귀 무늬 팬티로 바꾸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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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캐츠비에 나오는 대저택과 비등비등한 별장에서의 생활은 기대 만큼 떠들썩하며, 신나고 재밌지는 않았다. 그래도 딱히 불만족스럽지는 않았다. 나름 수영도 하고 일광욕은 물론이요 사진도 찍고, TV도 보며, 잡지도 읽고 글도 쓰고... 그래 봐야 집에서 하던 일과와 다를 게 별로 없었다. 뭐야 이거!
그런데 셋째 날이 되어서 나는 식사 후 혼자서 산책을 다녀왔다. 그렇게 내 방에 딱 들어섰는데, 아무래도 뭔가 분위기가 이상했다. 그리고 내 노트북 앞에서 그녀들은 서성거렸다.
「너네 내 일기 봤지?」
머뭇머뭇. 눈빛 왔다 갔다. 속마음을 들킨 듯한 조금은 수줍은 표정.
「봤네 봤어. 어때 어때? 별로야 별로야? 말 좀 해 봐. 응? 말 좀 해 보라구. 재밌지 재밌지? 다른 거도 보고 싶지 않니? 그 다음이 궁금하지 않아? 아니라고? 어쩜 그럴 수 있니! 아니지? 아닐 꺼야.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게 생긴 건 아니니까. 너네는 매정한 그런 비련의 여주인공 스타일이 아니란 말이지. 그러니까 내가 봤을 때는 말이야, 아마도 살짝 궁금할 꺼란 거지. 어쩌면 많이 그럴 수도 있고. 나 같으면 보고 싶어서 잠을 설칠 텐데. 응? 하긴! 그래서 그래서, 그 다음에 그 다음에, 어떻게 됐어 어떻게 됐어? ~같은 수다도 드라마가 아니라 꽤 근사한 소개팅이나 밀월여행 정도나 되야 궁금하겠구나. 그것도 단짝이 있을 때! 그러므로 너무 부담 같진 마. 응? 빈말이 아니라구. 오빠도 다 눈치가 있어요. 네? 그게 무슨 대수라고. 나 이래 봬도 호탕해. 상남자들 세계에서는 덕망이 두텁다고. 응? 배짱도 두둑하고 가난한 편 치고는 의리도 있어, 얘! 그래도 편지를 들킨 것보단 낫네. 안 그래? 그렇긴 해도 말이야 이거 영 찜찜한데. 정말 그렇단 말이 아니라, 오빠가 마음이 넓어서 그렇지 속좁은 남자라도 됐어 봐. 만약 아량이 요만~한 소심-남이 이런 상황이라면...」
그러면서 나는 촌스런 장난처럼 손바닥을 펴서 그녀에게 내밀었다. 그런데 이건 또 뭐야! 그녀는 이미 속옷의 위와 아래를 사전에 치밀히 준비하기나 한 것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내게 봉투를 내밀었다. 오히려 두툼하지 않네? 이걸 어쩐담...! 그래서 나는 일단 그 봉투를 받았다. 그 위압감과 호기심과 말려드는 흐름, 난 그만 딱 엮여들고 말았던 것이다. 그 다음 나는 저절로 봉투 속에 뭐가 들어있을까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막 알고 싶어서 미칠 것만 같았다. 선물을 야생 동물처럼 자기만의 공간으로 가져가서 몰래 확인할 수는 없으니, 따라서 나는 슬쩍 조심스럽게 봉투 안을 엿봤다. 그녀들 앞에서 말이다. 물론 실눈을 뜨고서. 마치 중간에 추가로 받은 카드패를 슬로우비디오 기술처럼 살피듯이. 원하는 패가 아니면 일주일을 쫄딱 굶겠다는 눈빛으로. 일주일이 다 뭐야!
그런데 어머나! 그 안에는 큰 거 한 장이 들어있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눈이 똥그래졌다. 뭐야 이거! 손이 떨렸다. 그냥도 아니고 부들부들! 또 발가락 사이에 땀이 났다. 어떻게 이런 일이... 세상에나! 그것도 살짝이 아니고 많이 큰 거? 이게 웬 떡이야!
물론 이때 또는 어떤 상황에서 그럴 수도 있다. 현찰을 예상했는데, 손편지가 들어있다? 때에 따라 또 사람에 따라 그 편지를 확 찢어버리거나, 옆에 있으면 그냥... 농담이고, 현찰과 손편지는 바뀌면 곤란하다는 것이다. 현찰의 힘이란 게 그런 거니까.
아무튼 나는 덜컥 겁이 났다. 그래서 나는 하마터면 이렇게 말할 뻔 했다.
「너 뭐냐, 천문학자라도 돼냐?」 라고.
그러나 나는 임기응변에 능숙하지 않았다. 하지만 또 썩 서툴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는 다음과 같이 응답했다.
「이건... (으쓱)?」
「(으쓱)!」
「(따라하지 말고 말을 해, 말을!)」
「(원고료를 요구한 당사자는 당신이자나. 누가 모를 줄 알아? 우리 보고 보게끔 방치한 거! 이거 왜 이래? 누굴 바보로 아는 거야?)」
「(뭐가 어째?)」
「(그러니까 말을 해. 본색을 드러내라고. 뭐야? 뭐냐고! 많아서 거북해 아님 적어서 실망이야? 전자야 후자야!)」
「(그걸 꼭 내가 내 입으로 말을 해야겠니? 우리 사이가 정말 이 정도 밖에 안 되니? 솔직히 하나 고백하자면 난 말이야. 진짜 이런 구성은 도저히 자신이 없어. 아예 개인전이던가, 아님 단체전이던가. 내가 제일 까다로운 구성비에 아 나 정말 이거 원 참, 응? 기가 막혀서... 아 글쎄 거기 딱 걸려버렸지 뭐니?)」
그러나 우리는 그처럼 계속 눈빛으로 무언의 대화만 나눌 수는 없었다. 바로 그때!
「우리는 한번 준 건 돌려받지 않아. 응? 오빠!」
워워 뭐야 워워 이거... 카리스마 끝짱! 나는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아무래도 이건 말이다, 내가 잘못 걸린 것만 같았다. 아니면 내가 상대를 잘못 골랐거나. 그게 그건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뭐 두고 보면 알겠지. 그나저나 천국에서 뚝 떨어진 이 품위-유지비를 어떡한담? 어떻게 해야 어른스러운 행동일까! 보통 영화 주인공들은 이 상황에 어떻게 처신하더라? 천재들이라면 과연 어떻게 할까! 무엇보다 우선 얘네들은 날 뭘로 본 거지? 조수? 비서? 이방? 애인감? 보디가드? 아니면 뭐 내시? 아 나 이거 정말 보자 보자 하니까 누굴... 차분해야 한다 차분해야 한다. 이런 뜻밖의 전개일수록 나는 신중해야 해. 진짜, 신중해야 해. 신나는 절정이랄지 심심한 불가사의는 커녕 짜증나는 발단으로 되돌아간다면 무척 곤란할 테니까. 그 섭섭한 패턴을 또 다시? 아아 (설레설레)! 지금 지난 날의 으쌰으쌰를 회상하거나 다가올 으쌰으쌰를 상상하며 흥분할 시기가 아니다. 그건 정말 아니다.
아무튼 다 모르겠고. 눈 딱 감고 챙겨? OK! 그게 좋겠다. 빙고! 복잡하게 생각할 게 뭐 있어? 그래도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인데, 아차-싶지만, 아직은 기분이 리더다.
좌우지간 필름을 몇 구간 당기자.
(영차영차) (영차영차)
사람은 재력이 생기면 지력도 덩달아 커지는 것일까? 그보다는 아마 통이 커질 것이다. 때문에 나는 환희의 영감을 깨달을 수 없는 대신 모든 걸 잊고 이 시절을 즐길 수 밖에 없었다.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도록 4차원을 뒤흔들어버리는 재미를 만끽했다. 우리 모두 함께 말이다. 이건 진짜 우연처럼 내게 당도한 행운의 염력이었으니까. 심지어 그건 마력이었다. 숫자는 의미없었다. 나는 여성잡지1과 여성잡지2를 양쪽에 끼어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바로 그런 옴짝달짝할 수 없는 풍운아가 됐다는 판정만이 거의 유력한 분석일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일단 셋이서 함께 하이틴 드라마를 찍는 것처럼 즐겁게 또 정신없이 놀러다녔다. 먹고, 마시고, 구경하며, 영화 보고, 돌아다니다가, 나이트클럽에 입성하기까지. 그것도 단 하루에 신비와 호박이라는 이름의 NC를 1차 2차로 들렸다. 도저히 체력 때문에 사람 뿅-가게 만드는 인기 최고의 돈텔마마 클럽까지는 갈 수 없었고.
22
나는 벌써 그녀 집에서 일주일을 보냈다. 나도 이렇게 낯선 휴가가 길어질 줄은 미처 몰랐다. 큰맘 먹고 그녀들과 한 달을 지내봐야겠다고 생각치도 않았고, 마음 단단히 먹고 놀라운 절정을 기다리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비밀스런 모험을 소망한 결과가 이거란 말인가, 그러면서 나는 점점 집으로 가고 싶어졌다. 그때였다.
로즈마리의 집에 압류 통보문을 붙이러 담당 사무원들이 들이닥쳤다. 드라마에서 익히 봤고 실제로도 한두 번 겪은 일인데, 이렇게 뜻밖의 장소에서 그 일을 경험하니 왠지 기분이 이상했다.
그러다 태양은 중천에 떠올랐고 점심을 훌쩍 지나서 나는 그녀의 아빠를 만나게 됐다. 차분한 대화를 나누던 중 나는 알게 됐다. 곧 그녀가 나에게 준 봉투에서 봤던 그 한 장. 그 한 장의 고액권에서 0의 숫자를 아마도 그녀가 착각한 듯 했다는 걸. 내가 그녀의 아빠와 나눈 대화가 자세히 기억나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줄거리만 간추리는 걸 독자님께서는 너그러이 양해해주시기를. 마치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신나는 절정으로 치닫지 못함을, 칠칠맞지 못하게 말썽꾼에 지나지 않게 된 결과를 용서해주시기를 바란다. 아, 이 찜찜한 기분이란! 차라리 좋게 집에서 세 가지 소원과 무인도에 데려가고 싶은 3순위나 공상할 걸 그랬나? 그러니까 나는 심심한 인생에 참신한 재미를 알선해주는 뚜쟁이 역할에 여지없이 실패한 것이다. 당시를 회상해보면 나는 실은 그때 정신이 핑~하면서 살짝 돌아서 내가 어떻게 대처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쩐지, 어딘가 모르게 이상하게 돌아간다 그랬다. 그럼 셋이서 함께 신나게 놀았던 품위 유지비와 그 유흥비는 모두 내 주머니에서 나간 셈이네. 아무리 대궐 같은 집이라지만 압류 통보문이 붙여지고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지 나도 모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렇다 할 내색도 할 수 없었다. 이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그렇다. 나는 어른스럽게 행동해서 내가 말이 통하는 뭐랄까, 어떤 신사다운 남자임을 그녀의 아빠에게 증명해보이는 일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마라에게 전화 해서 급전을 요청할 수 밖에 없었다.
요약하자면 로즈마리인지 에밀리인지 그녀 가운데 한 명이 부모님 심부름을 잘못 수행한 결과일 뿐이었다. 아, 맞다! 존티와 함께 해변에서 2 대 2로 즐겁게 대화할 때 어떤 책이 들어있는 손가방이 007 가방처럼 바꿔치기 되었지? 맞네, 그렇네. 아하, 그렇구나. 뭐야 그럼! 이번에는 그녀들 엄마-아빠가 맡긴 2개의 봉투가 뒤바뀐 건가? 알 게 다 뭐야!
다음 날 아침 나는 집에 갈려고 그녀 가족과 인사를 나눴다. 그녀의 아빠가 보이지 않길래 먼저 로즈마리와 말을 나눴다.
「그런데 에밀리는 어디 갔니?」
「글쎄 어디 갈 데가 있다고 얘기한 것 같은데. 기집애. 어디로 갔지? 혹시 오빠는 에밀리의 행방에 대해 뭐 아는 거 있어?」
그걸 나한테 물어보면 어떡하니, 이... 이... 로즈마리야! 아무리 생각해도 이제 보니 얘도 좀 이상한 숙녀인 듯한 느낌이 든다. 그렇든 어쩌든 나는 어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그녀의 아빠에게 인사했다.
「그동안 신세가 많았습니다. 나중 참치 낚시 한번 같이 가시죠. 그럼 전 그만 돌아가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로즈마리! 나 갈께. 에밀리에게 인사 못하고 간다고 전해줘. 그럼.」
그렇게 우리는 헤어졌다. 그런데 로즈마리 아빠의 심상치 않은 인사말이 왠지 마음에 걸렸다.
「난 멀리 나가지 않겠네. 자네도 아마 그리 멀리 가진 못할 걸세. 그래도 한번 시도는 해봐야겠지? 그래도 나쁠 건 없을 테니까. 흐흠.」
뭔 말이지? 아무리 생각해도 아리송하기만 했다. 그렇게 나는 그 고장을 벗어났다.
난 정말 애들처럼 너무 철없이 놀아버렸다. 너무 많이 돌아다녔고 괜히 빈말을 물고 늘어져서 그녀들의 일상에 폐를 끼쳤다. 이제 다시 내 생활의 본 궤도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그러니까 내가 바란 건 무엇이었을까? 빠라면 집 근처에도 있고, 술집은 많고도 많은데. 하물며 해변이라면 당일치기도 얼마든지 가능했다. 해변에서 만난 그녀들에게 난 무엇이었나. 고수? 하수? 유혹자? 모사꾼? 풋내기? 궤변가? 장사꾼? 다 아니고, 아마도 아는 오빠일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난 그냥 말이 통하는 바텐더와 독대하며 차분한 대화를 나누고 싶었던 거네. 허허허. 그녀의 옛-남자친구를 딱 맞추고, 결혼운도 봐주고, 기분 괜찮으면 혹시 손금까지? 그건 아니야 아니야. 아무튼 그 쉬운 걸 이제야 깨닫다니! 그렇지만 바텐더와 말을 섞다 보면 난 또 감정의 교감에 흔들려서 그녀의 과거를 감지할 수 밖에 없는데...!
참 나 내가 무슨 허당계의 초보자도 아니고 어찌 단골로써 점원에게 정직히 찬란한 미래를 예언할 수 있겠나. 울상을 짓건 교만해지던 정답만 읊어주면 오히려 역공이 거세질 수도. 그보다 내가 반가운 손님이 아닐 수도 있을 테고 말이다. 오히려 무난한 손님이면 그나마 다행이게? 그런데 내가 죄락펴락 할려고 했는데 어쩌다 난 들려졌다 놔지면? 저런 저런! 그래서 자고로 타인의 운수를 봐줄 때는 말이다 꼭 이래야 한다. 불길한 슬럼프를 살짝 예고해주며, 오늘의 심복과 내일의 충복은 다를 수도 있다는 귀뜸을 살짝 흘려야 재밌는 법. 인복을 관측하고 사랑운을 추정함은 독이 될 수도 있으니, 당사자 입장에서 때로는 모르는 게 약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천재 보고 바보 친구들만 파도타기 해서 사랑을 만나라고 추천해서는 절대 안됨. 인생이란 자고로 변수를 예측하며, 궁합을 따져보고 불행이 날 스스로 피해가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 그런데 더없이 심심하던 시절 다행스럽게도 왕-호박이 제 발로 걸어서 나에게 오네? 그러니 행운아는 운명을 지지하고, 플레이보이는 3가지 기본 공식의 성과를 과장하며, 로맨티스트는 숙명적인 누군가를 사랑할 수 밖에. 그러니까 일절만 하시라, 요점이 뭐냐구요? 허세와 허영심과 허풍과 젊음 말고도 우리가 아끼며 애정해야 할 건 많고도 많다는 점. 동경심, 감수성, 호기심, 질투, 통찰력, 선망, 소원, 새 희망, 헌 꿈, 잊혀진 대망, 고개를 떨군 야망까지. 그러니 불쾌한 여건은 핑계에 불과하고 상쾌한 기분으로 일하기에 집중하세나!
23
나는 산골 도로를 지나던 중 검문소 앞에서 멈추게 됐다. 아니 이런 데 왜 이게 있지?
나는 성실하게 검문에 임했고, 검문은 끝났다. 그래서 나는 출발할려고 했다. 그런데 검문소의 문이 슥 열리더니 웬 상급자로 보이는 사람이 손짓을 했다. 그래서 나는 잠깐 멈칫했다. 그러더니 그 사람이 사무실을 나와 내게로 다가왔다. 그런데 알고 봤더니 그는 나의 옛 친구인 레너드였다. 와, 누가 봐도 모범생이었던 그 친구가 왜 여기에? 하긴 두더지는 나비가 못 되라는 법 있나. 뭔가 사연이 있을 테지. 그렇게 우리는 감격적인 해후 다음에 통상적인 대화꽃을 피웠다. 나는 아예 차를 저쪽에 주차시킨 다음 녀석과 뭔 꿍궁이를 꾸밀 작정이라도 한 것 마냥 이러쿵저러쿵 수다 삼매경에 빠졌다.
내 기분은 옛날로 돌아갔기 때문에 나는 집에 갈 생각일랑 새까맣게 잊어먹었다. 그래서 둘이서 녀석의 작전 구역에서 거닐며 그럭저럭 시간을 보냈다. 비밀 작전이니 뭐니 특수 장소도 알려주고, 알고 보니 녀석은 아는 것도 많고 재밌기까지 하니까 그야말로 완전 달변가였다.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변할 수 있지, 그럴 정도로 말이다. 그래도 나는 돌아가야 하고, 따라서 우리는 이별해야 했다. 그래서 나는 딱 돌아갈려고 했다.
그런데 저쪽에서 우르르 우르르 보디가드 병력을 대동하고서 웬 중년 여인이 내게로 다가왔다. 대화를 나눠본 결과, 그녀는 로즈마리의 엄마였다. 대화의 중요 대목만 요약하자면 이와 같다.
「그 양반이 가끔 좀 그래요. 내 대신 사과하리다. 많이 언짢았수? 이거 정말 신수 훤한 예술가 양반에게 결례를 범했다니. 안되겠구만.」
그러더니 그녀는 (딱) 하면서 비서에게 사인을 보냈다. 물론 그녀는 사복 차림이었고 비서로 보이는 사람은 군복을 입고 있었다. 잠깐만! 비서로 보이는 분의 계급이...... 뭐야? 내가 알기로는 그게 그거고 저게 이렇다면... 뭐야 이 아줌마는 별이라는 말인데? 맙소사! 뭔가 느낌이 세했다. 기분이 이상했고, 이건 그거였다. 일명, 갑분싸!
사인을 받은 비서가 우리쪽으로 007 가방을 들고왔다. 그러다 로즈마리 엄마는 비서에게 한마디 했다.
「부담스러워 할까?」
원래는 내 귀에 안들려야 할 말 같은데, 내 청력이 좋은 건지 아님 바람의 방향 때문인지 나도 모르게 그 말을 듣고야 말았다. 그러더니 그녀는 007 가방을 돌려보냈고 내게 흰 봉투를 내밀었다. 오오, 카리스마! 나는 하는 수 없이 봉투를 열어봤고 거기 들어있는 한 장의 액수를 확인하고야 말았다. 그건 로즈마리가 처음 내게 주었던 한 장에 0이 하나 더 붙어있었다.
「젊은이. 내 성의라고 생각해주었으면 좋겠소. 어떻게, 로즈마리와 약혼식을 정식으로 올리면 어떻겠소? 그야 뭐 그저 그런 흔한 사랑은 아닐 테니, 그건 차차 생각해봅시다.」
뭐라고?
난 뭐가 뭔지 하나도 알 수 없었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차에 탔다. 그런데 차가 시동이 안 걸리네? 바로 그때 로즈마리가 저쪽에서 멋진 최고급 컨버터블을 몰고서 내게로 질주해 왔다. 저런! 난 이제 꼼짝없이 여기 정착해서 그녀에게 사랑은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행동하며 살아야 하는 것일까? 얼씨구! 저기 보이는 내 옛 친구 레너드를 비롯해서 군인 아저씨들은 복장을 훌러덩 벗더니 로즈마리 엄마에게 모두 봉투를 하나씩 받고서 재빨리 흩어졌다. 나는 이거 정말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그나저나, 로즈마리 엄마가 내게 줄려던 007 가방에는... 설마 제일 첫 장만 진짜일 리는 없고, 만약 내게 준다면 난 하나도 부담스러워 하지 않았을 텐데. 좀 전에 설레발 좀 떨 걸 그랬나 싶었다. 아 맞다. 그런데 007 가방에 화폐가 아니라 만약... 밀가루가? 게다가 그걸 나보고 가지란 말이 아니라 날 심부름꾼으로 알면... 안돼 안돼. 어쨌든 나는 다시 로즈마리의 집에 복귀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나는 아니 우리는 일단 셋이서 함께 하이틴 드라마를 찍는 것처럼 즐겁게 또 정신없이 놀러다녔다. 에밀리는 중간에 어디로 갔다가 오다가,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었다. 그처럼 우리는 먹고, 마시고, 구경하며, 영화 보고, 돌아다니다며 시트콤 주인공이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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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의 인연은 거기까지-였다.
내가 로즈마리를 떠난 이유를 심각하게 설명하는 게 좋겠다. 왜냐하면 로즈마리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인가는 몰라도, 나는 <이 바보 같은 녀석 - 이런 머저리 같은 놈>이 확실할 테니까. 허허, 농담이다. 아무튼 왜 그럴 수 밖에 없었는가, 를 충분히 검토할 만큼 그 동기가 내 장담하지만 아마 재미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입식 교육을 졸업한 내가 대체 왜, 스위스로 떠난 아인슈타인도 아니고 사춘기 소년처럼 논술 답안지에 아무 얘기나 막 쓰는 기분이지? 그건 나도 모르겠고 누구도 알고 싶지 않는 문제이므로, 따라서 넘어가자.
자, 내가 로즈마리를 떠난 이유! 왜 그랬을까? 왜 나는 그녀의 애정을 배신했을까? 어느 추남이 그녀를 너무도 좋아했는데, 그녀의 가시 때문에 그녀는 곧 배반의 장미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그야 에밀리가 어디로 갔건 그건 에밀리의 자유고, 로즈마리의 애정사야 로즈마리의 인생이다. 우선 내가 로즈마리를 떠난 이유를 바로 알려면 왜 우리가 친해졌는지를 알면 된다. 그러니까, 왜 우리가 친해졌을까? 왜 우리가 친해졌는지를 알려면 왜 우리가 만나게 되었을까를 알면 된다. 왜 우리가 만나게 되었을까? 우리는 운명론자이기 때문에? 최근에 운명주의라는 동기 부여가 인기이기 때문에? 왜 우리가 만나게 되었을까를 알려면...... 이런, 젠장! 이런 고약한 능청꾸러기 같으니라고. 것 참 무슨 망나니의 후원자도 아니고, 지금은 궤변의 황금기라고 광고라도 하는 건가? 타락─탕진─방탕의 길로 빠질 수는 없고, 마키아벨리적 뭔가도 없는 데다, 플라톤을 읽어도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으니, 그래서? 손가락 끝에서는 레이저가, 입에서는 화염이, 다시 전망을 살폈으면 손바닥을 펴서 그녀를 공중에 띄우고 여심을 읽어 한발 앞서 나간다? 이런 젠장, 또 또 여심 여심 아 쫌! 휴~ 다시 처음부터 정리해 보자.
왜 로즈마리와 에밀리라는 그 찰떡 콤비를 알게 됐고, 이상한 일과 따사한 호사와 고혹적인 낭만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을까? 우리가 만나게 된 건 존티와 내가 그녀들을 꼬셔서고, 이상한 전개는... 그건... 설마 내가 빈말을 물고 늘어졌기 때문에? 그래서 일부러 끝까지 가 보자! 라며 전진도 후퇴도 없이 전개라는 미로에 갖혀버린 것 아닐까? 혹시 진짜로...! 맙소사, 세상에나! 진짜, 진짜로 그랬을 수도 있다. 무슨 미스테리 TV 프로그램에 보면 새벽 2시에 날마다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7년 내내 전화가 걸려오는 일, 7년 내내 그 어떤 방식으로든 내게 행운의 편지가 전달되는 일. 있다. 그런 일이 정말 드물게 있다. 그런데 알고 봤더니, 범인을 잡고 보니 어떻게 그처럼 허무하다니. 같이 술을 먹어주지 않아서랄지 같이 놀아주지 않아서 삐졌다라나 뭐라나. 정말 사소한 일에 빈정상해서 그래서 그 황당한 일을 꾸민 사건. 여기, 저기, 거기서 잘 찾아보면 있다. 전수조사해서 모아보면 적지도 않다.
그러니까, 그처럼... 내가 빈말을 잡고 늘어졌다고 그녀가 오기를? 어쩌면 진짜로 그랬을 수도 있다. 와, 등에 식은땀 쭉 나는데! 워워, 소름 돋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뭐 어쩐다더니... 워워 이런 내가 잘못 걸린 거 아니야? 내가 대어를 낚은 줄 알고 있었는데, 반대로 내가 낚인 건가? 그럼 낚시꾼 입장에서는 나의 이 비리비리한 허접함을 보고서 실망이 정말 말이 아니었겠군 그래. 그 어부가 그러니까 에밀리와 로즈마리 일당이라니! 하긴 처음부터 나는 그녀의 내면을 읽었다. 그녀들의 영혼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나는 다 알고 있었다. 그런 애처로운 순정과 가슴 절절한 사랑이라면 어쩌면 일이 이처럼 꼬이고 또 꼬일 수도 있는 것 아닐까? 라고 추론하며 억측하는 단계에 접어들어 난 이미 발을 뺄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따라서 나는 그녀의 마음을 작게나마 공감할 수 있고, 조금이나마 그 떨리는 여심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좋아한다고 먼저 말할 수 없는 사람도 있을 테니까. 아니 흔하니까. 어떻게 여자가 먼저 대놓고 구애에 나선단 말인가. 꼬리를 먼저 흔들지도 않고 다짜고짜 먹잇감을 물어? 뭐! 그게 여잔가? 어? 농담이고. 그러니까 물론 뉴스에야 나올 수도 있지만 숙녀가 발가벗고 돌아다니면 오 땡큐, 내 여자가 만약 그런다면 오오오 제발, 또는 남자가 그런다면 변태? 바나나는 벗겨먹어야 제맛이지만, 굳이 호박이 제 발로... 그걸로도 모자라 심지어 부록과 사은품과 고대 궁중 연애술까지? 만약 그런다면 극구 마다할 남자가, 어? 그게 남잔가? 그러니까 뭘 좀 아는 남자를 좋아하는 여자는, 아무리 푼수 같은 여자도 맹추나 쑥맥보다는 여심을 요리할 줄 아는 남자를 선호하게 마련이다. 첫사랑인가,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인가, 사정은 그때 그때 다를 테지만 말이다. 여자를 다루는 재주, 숙녀를 배려하는 태도. 전자와 후자는 앞에서는 다를 테지만 등 돌리면 똑같아진다. 와!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누가 아니래! 좌우지간 호박이 제발로 굴러온다라... 벌레 먹은 사과가 더 맛있을 수도 있다. 몰래한 풋사랑이 오히려 찡할 수도 있으니까. 하늘이 주신 사랑에 눈물이 핑 돌면 좋겠지만 나비는 커녕 파리도 날리지 않을 수도 있을 테니까. 그러든 어쩌든 썩은 과일은 먹으면 탈난다. 그 중에는 동화처럼 독사과도 있다. 선악과에 준하는 미끼도 흔하다. 나이키는 상표고 주피터는 이름일 뿐이다. 판도라라는 머신명도 이미 어디서 선점한지 오래다. 아무리 그래도 남자가 여자 마음을 빼았았으면, 그녀의 마음을 휘저어놓았으면 그 다음 순서가 뭔지 모른 체 하면 안된다. 마님과 돌쇠의 불륜을 과연 사랑으로 볼 것인가는 논외로 하고, 사극에서 양반은 첩을 거느렸듯이 이 시대에 우리는 낭만적 사랑을 다스릴 줄 알아야 하니까. 남자는 그래야 한다. 동성애를 지지함과는 별개로 말이다. 그렇듯, 우리는 만나면 금새 친해진다. 우리는 누구든지 만나면 금방 친해진다. 우리는 누구든지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다. 우리는 선녀를 좋아할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단 말이다. 자, 숙녀들이여 컴온? 워─워─워! 어중간한 나이트클럽의 오픈발에 과연 내가 선발대가 될 것인지, 아니면 의전으로써 친구를 먼저 보내본 다음 행차를 고려할 것인지, 그때 그때 다르다. 아무리 그래도 우리라고 무조건 오빠라는 말만 들으면 미쳐버리는 게 아니다. 남자는 무조건 밖에 나가야 한다, 남자는 폼이다, 아무리 그런다고 진짜로 밤에 잘 때도 양복을 입고 자는 건 아니란 말이다. 무슨 나비가 뉴튼도 코페르니쿠스도 아니고 사과나무 밑에서 입 벌리고서 낮잠 자겠다고? 호박이 제 발로 굴러오기를 바란다면 최소한 입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을 할 줄 알아야 한다. 꽃밭이 어딘가는 알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양의 탈을 쓴 늑대가 되어야 한단 말이다. 달리 말하자면 우리는 여심을 실망시키는 짓은 여간 해서는 싫어한다는 말이다. 그녀가 애타게 몸과 마음과 통장과 사연과 사랑까지 나에게? 그걸 모른 체 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는 굴러온 호박을 발로 걷어차는 건 남자의 본분이 아니다. 안 그런가? 안 그렇다! 드문 사례는 없을 수 없을 테니까. 그래도 보통은 그렇다. 어디 그게 남자냔 말이다! 덜렁덜렁 고추 달린 남자가 할 일이 아니단 말이다. 밥 먹듯이 정말로 밥 먹듯이, 일생을 커졌다 작아졌다 커졌다 작아졌다, 그런 남자가 철들지 않는다면 몰라도 그게 아니라 치졸하다? 쪼잔하다? 비열하다? 극악무도하다? 야금야금 야심도 아니고 깐족깐족 유머도 아닌,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뭐야! 그런데 이도 저도 아니다가 대체 왜 나왔지? 아무튼,
내가 눈치가 없어도 너무 없었다. 그녀의 좋아함이란 감정은 커지고, 퍼지고, 확산되고, 많아져서 날 옴짝달싹 못하도록 사랑의 포로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돌이켜봐도 내가 먼저 꼬리를 흔들었고, 멍멍멍 멍멍멍멍 짖었으며, 그녀의 인사말과 빈말이라는 바지가랭이를 으르릉컹컹 흡사 개처럼 물고 늘어졌다. 누가? 내가! 아하, 오오, 이런 이런! 그거로구나. 이제야 알겠다. 오오 그거였구나 그거였다. 와 그거였다니. 그러니까 요컨대 이런 식이지. 단, 완벽하게 널 붙잡지는 않겠다, 왜냐하면 사랑의 완성을 위해 그대도 이만큼 다가와주어 최소한의 성의는 보여야 하니까.
(딱)! 이거다. 이거라고. 바로 이거였어. 이거라니까~!
왜 몰랐을까. 나는 이 쉬운 사건의 전개를 대체 왜 몰랐을까! 내 마음이 약해서도 아니었고, 내가 너무 이기적이었기 때문도... 아니었으면 좋겠고, 아마도 진짜로 내가 사랑에 빠져버렸기 때문은 정말 아닐 것이다. 아아 바로 그래서 그런 거구나. 따라서 이제 나는 그녀와 사랑의 행복에 골인할 수 없다면, 함께 인생 드라마를 즐기며 뻔트도 대고 반칙도 하며 골 세러모니를 연습할 수 없다면! 그러면 내가 먼저 조용히 떠나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바로 이래서 나는 짧은 인사말이 담긴 엽서와 (돈?)봉투를 책상 위에 남긴 채 이른 새벽 조용히 그곳을 떠난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이번에는 진짜로 집에 도착하기에 성공했다. 진짜로 내 집에 도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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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꾼의 성실함과 어부의 부지런함은 청새치에 필적할 만한 대물을 잡고 싶은 욕심에 근거한다. 나는 결국 일할 때는 농심이고 놀 때는 흑심이었다. 다듬어 말하자면 사랑과 자유와 환상과 신비를 갈망하는 일, 상상과 현실을 결합하여 행복의 모티브를 구성하며 놀기. 나는 전자에 성공했는데 성과가 볼품없었고, 후자에 실패했지만 여심을 이해하고 사랑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게 된 것이다. 그러든 어쩌든 벌거벗은 숙녀들이 우연을 빙자해 내게로 막 달려올 일은 만무하다. 그렇다고 내가 직접 목동의 마음으로 양떼를 몰며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래서 릴리도 비비안도 오빠의 이런 본심을 알게 되면 실망할 수도 있다. 날이면 날마다 기뻐할 여복과 좋아할 어복만 상상한다니, 그럼 그렇지 이 오빠 좋게 봤더니 오빠 안되겠네? (그래서 결국 그 자리를 로즈마리와 에밀리가? 아아, 오오, 이런!)
따라서 늑대는 절묘한 시기와 최적의 상황이 아니면 본색을 드러내면 안된다. 그러나 내내 관망만 하다가는 연극이 시작된 줄도 모르게 막을 내릴지도 모른다. 더더군다나 전망에 먹구름이 잔뜩 끼는 일도 드물지 않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양의 탈을 써야만 하는 것이다. (진짜로 꼭 그러라는 의미가 아니라!) 저 하늘의 별을 따다 드리고 꽃 길만 걷게 하겠다는 달콤한 세레나데는, 적어도 지금은 진심인 것이다. 여자의 마음과 절친한 변덕은 그저 애교로 볼 수 있듯이, 사랑은 권태를 길들이고 변심을 극복하느냐 마느냐, 그건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심을 간직한 야생마는 푸른 들판을 신나게 달리고 싶어한다. 왜냐하면 즐거움과 부러움의 분위기 가운데 선망이란 잔풀을 마구 뜯어먹고, 허영심이라는 수다의 본능에 충실한 숙녀들의 첫인상에 대한 잔상으로 인하여 너무도 이 가슴이 찡하기 때문. 그러나 명화는 비싸고, 방랑벽은 유목민에게나 어울리며, 세상은 아무한테나 눈부신 플레이보이의 4대 요건을 허락하지 않는다. 고로 사랑은 모르는 것처럼 인생은 내 마음이다. 애첩을 총애함은 사극에나 나오는 것. 그런데 이와 같은 건실한 세계관은 그렇다쳐도 못내 아쉬운 사랑론은 대관절 어쩌란 말이더냐. 그러니 인생은 진공청소기와 커피포트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남녀의 마음은 뫼비우스의 띠가 아니고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아니다. 꼭 그런 건 아니다. 왜냐하면 대망은 우리에게 명령하니까. 뭐라고? 익숙한 행복도, 새로운 행운도, 놀라운 우연과 처녀의 마음 같은 숙명도 일단 먼저 내 걸로 만들고 보라고! 말하자면 우선 사랑이 앞서고 변심은 나중 문제라는 것. 따라서 인생을 낭비하지 아니함은 뭐가 됐든 일단 뻔트를 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방망이가 솜방망이면 어떡하지!
좌우지간 문제가 무엇인고 하니, 나는 에밀리와 로즈마리 그 명콤비의 수작에 놀아난 다음 슬럼프에 빠져버렸다는 것이다. 난 정말로 뭘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집에서 단돈 얼마 즉, 중고 노트북─최신 핸드폰─마음에 쏙 드는 CKC 양복 1벌─괜찮은 운동화 1켤레만 딱 살 수 있는 금액만으로 영화가 뚝딱 완성된, 그런 저예산 영화를 한 편 감상했다.
제목은 The Batt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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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마음은 변심과 친하다. 때문에 남자는 여자의 변덕 하면 특유의 몸짓을 보인다. 단, 포커페이스에 일부러 실패할 때만. 그러나 천부적인 독심술을 타고난 농심에게 여자의 심리는 결코 미스테리가 아니다. 그래서 때로는 플레이보이가 여자를 유체이탈시키고, 때로는 은근 허당이 숙녀를 공중부양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세월은 야속해서일까? 상큼한 꽃은 시들기 마련이며, 잘난 척 일색인 험담가의 달변은 녹스는 걸로도 모자라 너저분한 사기에 연루되어 일인의 왕뚜겅이 만인의 유쾌함에 일조할 수도 있다. 그러니까 욕심이 크면 배당률도 높기 마련. 따라서 우리는 눈살을 찌푸리면서까지 재능의 부재에 절망하지 않아도 된다. 기쁨은 잔재주를 편애하며 행복은 가까이 있는 법. 그러므로 유행은 변하고 사극에서 왕은 업적도 업적이지만 새로움을 그렇게도 극진히 총애하는 것이다. 고로 나는 거포가 아니네, 스트라이커감도 못되네, 페이스메이커나 리베로 근처에도 못 갔으며, 홈런타자는 꿈도 못 꾼다며 낙심하지 않아도 된다.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옛말에 틀린 거 하나 없다지만 그건 새로운 진리의 발견, 위대한 법칙의 창안일 수는 없다. 구식과 신식은 다른 거니까. 뭐와 뭐는 개 패듯 어쩐다랄지, 개 눈에는 뭐만 보인다, 사자는 파리로부터도 제 몸을 보호할 줄 알아야 한다, 개 팔자가 상 팔자다 등등. 때와 상황에 따라 딱 좋기도 하고 꽤 부적절한 경구들은 수없이 많다.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고, 그렇게. 그러든 어쩌든 너무 길다. 그래서 짧게 가자. 상남자는 대망과 친해야 한다? 너무 길다! 그러니까 줄이자. 이렇게 말이다.
뻔─트!
마법에 걸린 듯 뭐든 한 발짝만 담그고, 어디 숟가락만 슥 얹을 잔칫상 있나 없나 항상 희번덕거리기만 하라는 말이 아니라, 한마디로 관망. 예상. 관측. 측량. 추리. 탐지. 취미냐 업이냐. 독학이냐 아니냐. 일하느냐 노느냐. 그래도 시작은 뻔트! 그래서 나는 오늘 미스테리아 사무실에 방문하기로 했다.
영차 영차, 어기어차 어기어차, 이영차 이영차! 나는 벌써 미스테리아에 도착했다. 그런데,
뭐야 이거!
원래 미스테리아의 경리는 샐리다. 그런데 샐리의 자리에 지금 에밀리가 앉아있네? 그러니까, 뭐, 선수 교체? 참 나! 별개 다 날 가지고 노네. 별꼴이야 정말! 잘한다 잘해!
심지어 에밀리는 대체 어디서 배웠는지, 마라의 가슴 안으로 손을 넣는 마술을 선보이고 있었다. 뭐, 가슴 안으로 관통하지 않아도 좋으니 나도 따라서 시연을? 이런, 젠...아 이제는 말할 힘도 없다. 지친다 지쳐! 그러든 어쩌든, 여기서 밀리면 끝이다. 말리면 헤어나올 수 없다. 엮이면 망하는 거다. 감기면 난 최면에 빠져버리는 거니까. 멈춰야 한다. 멈춰야 한다. 그런데 입이 떼지지 않는다. 입이 떼지지 않는다. 잘 들리지도 않는다. 잘 들리지도 않는다. 도저히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도저히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서 그녀에게 물어봤다.
「에밀리. 너 그거 어디서 배웠니?」
「어, 왔어? 오랫만이네. 이거 아직 완성되지 않은 마법이라 들키면 안되는데. 그런데 들켰네?」
「오빠. 나 오늘 취직했어. 샐리가 알고 봤더니 명문 어디를 나왔네? 나랑 동문이지 뭐니! 동창 = 친구, 까지는 따지지 마세나. 허허. 아무튼 나 오늘부터 미스테리아 경리니까 오빠 나한테 잘 보여야 한다는 거 알지?」
「아아, 올 게 왔다!」
「뭐라고?」
「아니야. 아니야.」
탐문은 필요하지 않았다. 나는 정체불명의 감시망을 벗어날 수 없었다. 인생이란 게 원래 뛰어봐야 부처님 손바닥 위인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신비머신에 갇혀버린 건 뭐랄까, 내가 그동안 거짓말을 너무 많이 했기 때문 아닐까? 물고기를 너무 많이 잡았을 리는 없을 테니까. 따라서 나는 아침에는 피노키오, 낮에는 예언가, 저녁에는 플레이보이, 밤에는 아르키메데스? 거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말장난이란 말인가. 응큼한 상상력과 번지르르한 말솜씨는 써먹을 데도 없을 뿐더러, 이미 애초에 비리비리했고 제대로 써먹지도 못하고 녹슬어버렸다. 이런 능글맞은 표정을 겸비한 방탕아 같으니라고. 그야 어쨌든 이 일을 과연 어쩌면 좋단 말인가! 이 착잡한 기분을 도저히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달리 뾰족한 묘수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뭘 꼭 멋진 말을 하며 특별함을 선사하고 그렇게 대처해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한껏 고양된 천상의 느낌이 썰물처럼 쑥 빠져버렸기 때문에, 미묘한 갈등에 따른 의뭉스러운 전개가 밀물처럼 날 가만 놔두질 않았던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그래서 나는 다시 관망하며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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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추론함은 행운을 좋아함만 못하다. 왜냐하면 꿈은 상상하기를 애정하며 마음은 몸보다 선행하고 싶어하는데, 꿈과 논리라... 그건 너무 짠하고 찡하며 가슴이 뭉클해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소원을 키우고 야망을 탐지하여 성공을 성취할 재능이 풍부하다면, 그 반대일 수도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존심에 민감하고 가만 있는 부러움을 귀찮게 하는 것일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왜냐하면 현실에 만족하고 내일의 행복을 기대함은 각자 생각이 다를 테니까. 그러니까 우리는 허영심의 친구인 선망과 친하고, 새로움을 지망하며, 유복함을 사랑해도 된다. 그런데 자존감에게 미안해지는 일은 종종 발생한다. 뿐만 아니라 유혹은 도처에 널려있다. 심지어 낙천적인 삶의 자세는 쾌락을 편애하는 인생의 태도와 왕왕 불화를 일으킨다. 그러나 찬란한 미래를 꿈꾸는 새 희망을 미워해서는 안되는 것.
따라서 타락한 삼류도, 가난한 플레이보이도, 재미없는 허당도 탐욕을 제어해야 한다. 사랑의 환상을 믿어야 한다. 또 허풍 대회에 출전하면 좋을 것이다. 하지만 내게 부적절한 인생론을 싫어할 수는 있다. 그래도 된다. 그러든 어쩌든 우리는 좋은 말로 공상과 멋과 낭만, 어중간한 의미로 눈독과 군침과 사심에서 무한정 멀어지면 곤란하다. 그래야만 우리는 미녀를 정복... 아니 아니, 건전하며 다정한 행복에 지각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러므로 나는 꿈 깨, 난 또, 겨우─고작, 말도 안돼, 같은 몽상에 지레 겁먹지 않기로 했다. 그렇다고 막살지도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이번에 선택한 미지의 이상이자, 다정한 꿈꾸기는 바로 파티였다. 그처럼 이번에, 무모한 베팅의 대항마인 뻔트가 엄선한 이름은 바로 파티였다고. 뭔가 대단한 방책도 장르도 아니고 고작 파티라니, 라고 의아해 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 단계에서 나는 뭔가 심란한 마음을 진정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친구들과 만나 기분을 풀기 위해 파티에 가기로 했다. 그런데 파티는 파티인데 이번에는 포커 파티였다. 진 사람이 이긴 사람의 소원 들어주기. 우리는 가끔 인생이 재미없을 때 그런 게임을 한다. 그처럼 타이틀이 걸렸기 때문에 풍운아에게 중간은 없는 법. 따라서 올인은 운명이었고, 전망은 선명해졌다. 그런데 그 화창한 결과는 내 마음을 과연 흡족히 찬양했을까?
아니다. 뭔가 잘못 됐다. 왜냐하면 파티장에 도착한 다음 뭔가를 알게 됐으니까. 너무 갑자기 줄거리를 건너뛴 점은 무척 송구스럽다. 아무튼 나는 파티장에 도착했다. 그런데 남자애들은 하나도 없고 모두 여자뿐이었다.
아하!
나는 느꼈다. 편 가르기에서 녀석들에게 나는 밀린 거라고. 하지만 인기를 마다할 수도, 그녀들한테 날 좋아하지 말라고 야단칠 수도 없는 느릇이다. 내 품행 때문인지 아니면 극심한 편파성 때문인지, 결국 남자친구들끼리 으쌰으쌰를 기획해서 어디로 떠난 거네. 대체 어디로 떠났을까? 나만 쏙 빼놓고! 뭐하고 있을까? 나만 쏙 빼놓고! 약간 외람되지만 뒤늦게 나도 합류할까? 나만 쏙 빼놓고! 그러면 날 받아줄까? 내가 무슨 떨이도 아니고, 나도 별로 마음 없다! 이처럼 행복은 예고되었는데, 한편 으쌰으쌰에 끼지 못했기 때문에 그녀들은 내 불편한 감정을 눈치채버렸다. 그처럼 허공을 응시하는 내 표정을 보며,
「오빠 뭐해?」
「저 황홀히 뭔가를 추측하는 눈빛. 심하게 그 어떤 이상을 갈구하는 인상. 전형적인 예술가의 시선이지. 내가 알아. 그럼. 알아도 아주 잘 알지. 나도 한때 그랬으니까. 허허허. 인생이라는 그림에서 풋사랑은 대망의 동반자인 걸 내가 왜 몰라. 그걸 내가 모르면 대체 누가 아는데! 허허허 농담이고. 그런데 저건 말이야, 뭐랄까, 그래. 예술가는 예술간데 가난해.」
「게다가 무명이야.」
「심지어 늙었어.」
「못생겼다고까지는 하지 말자.」
「OK!」
「옳소이다.」
「얼씨구.」
「어디 그 뿐이겠어? 그런데, 영감은 바닥났어.」
「호호호호호.」
「흐흐흐흐흐.」
「결론은 아티스트가 아니라 늑대의 눈빛이구만 그래. 너네들 잘한다 잘해. 그렇지만 약해. 아직 아니야. 뭔가 좀 더 끌어올려야 하는 것 아니니?」
「오빠. 우리도 그럴려고 했는데, 그냥 구경꾼으로 남기로 했어. 왜? 가냘퍼보이자나. 우리에게 매가리없이 잘생김은 1.5군 그것도 대타감이거든. 감독이 중용하지 않으면 끝까지 그냥 대타로 대기하기만 해야 하는 거라고. 허허허. 더군다나 우리가 하이에나의 혼탁한 욕망을 어떻게 모를 수 있어? 그렇다고 오빠 보고 하는 얘기는 아니야. 그렇게 멋쩍어 할 것까진 없다고. 실은 말이야, 달콤한 꿈과 야릇한 상상은 우리 전공일지도 몰라. 엄밀하게 보자면 환상적인 향응이 무엇인지 우리도 다 알고 있거든. 어떻게 모를 수 있겠어. 그러니까 오빠 빼고 다른 오빠들끼리 어디 간 줄 알어? 아아, 안타까울 지경. 우리가 또 정보망이 좀 좋니? 정말로 남자들의 열광적인 꿈과 음란한 공상, 그 끝은 어디일까?」
로즈마리의 얘기를 들은 에밀리는 두 손을 들어, 30도 40도 각도로 한 손은 뻗고 한 손은 덜 뻗어, 어떤 경배 드리는 손짓으로 날 가르켰다.
허걱! 나 보고 어쩌라고! 나는 그래서 지갑을 꺼내서 손가락에 살짝 침을 묻혀서 몇 장 꺼내는 걸로 시작해서, 눈을 살짝 가늘게 뜨며 인상 슬쩍 찡그리며 아예 뭉칫돈을 그녀들한테 전달하는 시늉을 선보였다. 그... 그... 한 장을 가져왔다면 단지 시늉만은 아니었을 텐데, 뭐 아쉽다는 건 아니다. 오오! 그런데 뭐야 이거? 리액션 완전 좋은데! 정말로 반응이 꽤 괜찮았다. 의외로 말이다.
아, 로즈마리와 에밀리는 이미 시트콤 군단에 이름을 올려버렸다. 이쯤 되면 뭐 비밀결사단이라도 만들자는 건가? 그렇지만 나는 여기가 아니라 비키니 파티에 갔어야 했다. 그런데 누가 그런 데로 날 불러줘! 누가 아니래. 꿈 깨자. 어쨌든 저 말하기를 좋아하는 성격들. 천성이 밝군. 너무도 발랄해. 뭐가 저렇게 좋을까? 이건 또 뭐야! 아니, 벌써 나는 그 옛날 어느 교수님의 대사를 따라하고 있다니! 오오 이럴 수가! 아아 세상에나! 맙소사! 아무튼 그녀들은 자기들이 상대방에게 기 받도록 만드는 재주가 각별하다고 내게 주장했다. 그런데 내가 봤을 때 그 반대인 듯 했다. 나만 봐도 벌써 기를 빨리고 있으니까. 기를 받기는 뭘 받어! 그런데 그 순간,
「오빠. 내가 단편영화 하나 찍었거든. 물론 감독은 나. 조연출도 나. 촬영과 편집도 다 나야. 그래 원맨쇼. 재기 발랄함과 즉흥적인 천재성은 내 편이니까. 언제까지, 어? 나풀나풀 나비 같은 사랑에 혹해서 좋았다가, 싫었다가, 다시 공연히 걱정했다가, 또 다시 들떴다가 마지막에는 변해버린 애정에 체념한 숙녀 역할? 그건 내 성에 차지 않아. 그건 아니야. 그건 아니라고. 그래서, 어때? 오빠는 내가 만든 영화가 궁금하지 않아? 얘네들은 다 봤어. 물론 극찬했고 말이야. 여기서 오빠만 안 봤어. 그런데 제목은 없어. 내용은 있고. 그런데 이 영화를 본 사람은 말이야......」
「얘 얘. 그만 그만. 쉿! 쉿! 안 돼. 안 된다고. 응?」
「뭐야? 아 뭔데 그래?」
「아무것도 아니야. 그거 보면 오빠랑 얘랑 결혼하게 된다는 예언도, 신기한 초능력이 생긴다는 가설도, 광란의 모험에 빠져 허우적대며 마법의 구두를 신게 된다는 저주도, 모두, 없어. 다만 이건 있다. 맞네. 그러네. 인생이 바뀔 듯한 신비감. 기꺼이 환상머신을 사랑할 테다 라는 소망. 현실을 망각하게 되는 미지의 최면. 그리고 요술 공주가 천명하는 궁극의 행복감까지. (딱)! (쉭─쉭─쉭)! 어때? 응? 보고 싶어, 보고 싶지 않어?」
「너의 그 단편영화에 대한 애착은 이미 다정해버렸는데, 그런데 어떻게 내가 보고 싶지 않을 수 있겠니? 그러니까 그걸 보면 경망스런 회상을 씻을 수 있다고? 활기찬 의욕의 부품과 천재적인 착상의 바쁨은 덤이고? 나도 다 알고 있었어. 벌써 소문이 자자하더구만. 각종 영화제에서 벌써부터 초청 받은 거 아니니? 나중 말이야, 오빠가 어디 가서 막, 어? 그런데 대실망했지 뭔가! 라~고 추문을 퍼트리고 다니지는 않을 테니, 마음 놓으시게. 응. 그래. 일단 보자. 먼저 보게. 어서 보자고. 아 대체 뭐길래......」
나는 파티장에서 노트북을 들고 구석지의 구석지를 찾아갔다.
28
수상쩍은 직감은 불길한 모험의 시작을 예감했다. 하지만 추측되는 불행은 감수할 정도를 훨씬 상회했고, 다행스러운 재미는 기쁘게 측량할 만큼이었다. 따라서 나는 우연찮은 탐방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망설임은 잠시였고 행동은 결연했다. 미지의 쾌감을 연상시키는 향수는 뭔가를 캐내고자 하는 욕망을 자극했으니까. 그러나 내가 봤던 단편영화는 꿈의 호텔도 낙원의 이상향도 아니었다. 처음에는 뭔가 있을 듯 해서 좋았는데, 결국 괜히 혼자 좋다 말았다.
한마디로 그녀의 단편영화는 그랬다. 제목은 있었고, 내용은 없었다. 재미도 더럽게 없었다. 또 없다-였다.
그렇지만 기존의 머머하는 법을 전혀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꽤 신선했다. 퍽 새로웠다. 솔직히 많이 흥미로웠다. 내 친구들 얘기와, 내 주변의 장소와, 내 친구의 목소리로 나레이션에 뭐에 뭐에, 그랬으니 재미가 없을 수 없었다. 그래도 평점을 후하기 주기는 아까웠다. 그러나 나는 그녀들한테 거짓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영화 완전 재밌다, 내가 지금까지 본 단편영화 가운데 단연 최고다, 라고 말하면 조롱으로 받아들일 테니 적당하게 칭찬했다.
그 후 우리의 파티는 괜찮았다. 나는 호강했고, 나는 남자들의 으쌰으쌰로 좌천되지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경솔한 일이...! 왜냐하면 에밀리의 그 요상한 마술을 어느새 로즈마리는 물론 다른 친구들도 따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끝까지 믿지 않을려고 했다. 그럴 수는 없으니까. 그런 말도 안되는 속임수로 내가 막 놀라고, 흥분하며, 신기해 한다라... 어떻게 보면 그건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마술적 신비주의는 내 분야인데, 그런데 그녀들이? 아니 될 말이다. 그 대단함을 딱 인정하는 순간 난 비 맞은 생쥐가 되어버리는 거니까. 어디 그 뿐인가? 얌전한 인생 내내 어떤 기회를 기다렸다가 깡총거리며 참지 못한 채 신비 속으로 뛰어들었다가 절망한 토끼로 전락하는 거다. 그런데 문제는 난 어느 때부턴가 벌써 그녀의 마술을 부러워하고 있었다는 점.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앙코르~!」
「뭐, 앙코르?」
「오빠한테도... 통할까?」
「정말! 그래도... 될까?」
「아니야. 우리 그건, 하지 말자.」
「그래. 그건 정말 아니다. 거기까지는, (손짓 노노노노노) 아니야 아니야.」
「아니긴 뭐가 아니야? 나 기분 상했어. 주제 넘게 보이고 싶지 않아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난 괜찮다구. 내가 괜찮다는데, 아니 왜? 왜 나한테는 안 통할까 봐 겁나? 그런 거야? 어? 허허허허허. 그런 거네. 정말 그런 거네. 푸하하하하하. 으하하하하하. 음하하하하하하하. 내 그럴 줄 알았다. 그럼 그렇지. 난 또 뭐라고!」
「오빠 지금 우리 놀렸어요?」
「놀리기는. 아니야 아니야.」
「그게 그거잖아요.」
「아 아니라니까. 크크크크큭. 키키키키킥. 호호호호호.」
일은 그렇게 시작됐다. 난 완전 말려버린 것이다. 처음부터 엮여들도록 작전이 치밀하게 구상됐을 테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그렇게 착착 감겨버릴 수 있지? 게다가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고. 그런 밑도 끝도 없는 속임수를... 아니 어떻게!
잠시 후. 나는 로즈마리의 손이 내 가슴을 통과하여 그녀의 어떤 손동작을 거울로 본 순간! (딱) 막 에밀리의 허벅지가 대리석으로 보였고, 누구의 얼굴은 말 머리로 보였으며, 또 누구는 꼬리가 아홉개라며 내가 막 숫자를 세게 되었다. 심지어 평소의 내 흑심 때문이었을까? 누군가는 새의 머리, 개의 몸, 소의 꼬리를 결합한 체로 날 보고 있었다. 자길 안아주라는 거야 어쩌란 거야! 그처럼 나는 정신을 잃고 쓰러지고 말았다. 나는 쓰러진 줄도 모르게 쓰러진 거였다. 환각은 꿈으로 스르르륵~ 연결되어버렸으니까.
29
나는 최근 친구들을 만나 사랑가를 부르고 이별주를 마셨다. 그러나 타인의 연애사가 내 삶의 주된 관심사일 수는 없었다. 친교의 정다움으로 우정의 의무를 다할지언정 때로는 가식이 최선일 때도 있을 테니까. 때문에 나는 유난히 연애소설을 애독하거나 멜로드라마를 즐겨 보지는 않았다. 단지 어느 삼류 인생의 한량 은퇴식에 갈 것인가, 아니면 사교적인 가면무도회에 얼굴을 비출 것인가, 둘 중 무엇을 선택할까 고민했을 뿐. 하지만 그 둘 다 별로일 거라고 나는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즐거운 인생 행복한 기쁨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해봤다. 재밌게 사는 법을 알려주는 동기부여 강연회에 가볼까, 아니면 바람둥이의 3박자를 완성하도록 도와주는 학원에 등록해볼까. 미래를 점성술에 의탁하고 순진한 여-바텐더를 꼬시기 위해 기를 쓰느니, (그건 또 그 나름의 의미는 있겠지만) 차라리 이러는 게 나을 것이다. 조류학을 공부하고, 환상론을 연구하며, 오락산업의 한 지류에 도전하는 일. 그렇게 나는 아마추어 대회에도 나가보고, 프로 세일즈맨도 해 봤으며, 허풍 대회까지 주최해 봤다. 그러나 다 소용없었다. 그러니까 만화책을 읽으며 일광욕을 하기 위해 해변으로 떠나봐야, 별은 쏟아지지 않고 여복은 쭉지를 펴며 전성기를 맞이하기 어렵다. 귀빈관이라는 이름의 술집에 단골이 되고, 르누아르와 모네-마네가 걸려 있는 골프장에 들락거려도, 스타벅스와 버거킹 점원은 날 짝사랑해주지 않았다. 새침한 기집애 얄미운 그녀! 그렇다고 이제 와서 내가 직접 유니폼을 입을 수도 없었다. 심지어 뒤늦게 게임에 취미를 붙이고 소비에 중독되어 봐도 재미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나는 이처럼 심난한 내 마음을 글로 써봤을까? 써도 너무 많이 써서 문제였다. 괜히 속으로 흐뭇하게 만드는 그 '다'자로 시작하는 낱말들을 떠올리기도 이젠 귀찮다. 일기도 질렸다. 가택감금도 짜증난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건 여행 밖에 없단 말인가? 만약 그렇다면 그건 너무 시시하다. 왜냐하면 진짜로 그렇다면 그건 둘 중 하나일지도 모르니까.
헛살았거나 막살았거나!
따라서 나는 이제야말로 드디여 기발한 신비주의를 창시하기로 했다. 새로움의 끝, 색다름의 무한함, 신기함의 마지막, 놀라움의 무궁무진함을 위하여!
그러나 환상적인 새로움은 푼수끼 가득한 여주인공이자 어떤 상남자의 짜디짠 인색함마냥 나에게 다정하지 않았다, 라~고 체념하면 어떡하지? 그건 그때 가서 보기로 하고 나는 일단 무엇을 할 것인가 생각만 할 게 아니라, 뭐라도 저지르고 행동하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행동하기로 딱 마음을 정하고서 눈을 떴는데, 나는 로즈마리네 집에서 도망칠 때 만났던 레너드의 작업실에서 눈을 떴다. 이상한 마술에 걸려서 반나절의 반쯤인지 아닌지 그 시간이 통채로 날라가버린 것이다.
그 다음에 레너드의 인기척이 들려서 나는 아무런 생각없이 뒷문으로 도망갔다. 왠지 들키기 싫었기 때문에 몰래 도망쳤다.
그리고 나는 전화로 존티를 불러냈고 집으로 돌아갔다.
30
오늘 아침에 나는 늦잠을 잤다. 그렇게 일상을 시작한 다음 커피를 마시며 생각했다. 내가 사무실에 들린지가 오래 됐음을. 그래서 나는 사무실로 출발했다.
사무실에 도착했다. 저번에 누구더라 이름이 잠시 떠오르지 않는데, 그 친구 때문에 괜히 헛바람 들어서 나는 이미 일을 저질러버렸다. 그 파란색 레이저 설비, 완전 최저가 저급 설비를 내 사무실에 설치한 것이다. 그래서 버튼을 누르면 저처럼 파란색 레이저가 보이게 된다. 물론 그걸로 지켜야 할 입이 떡-벌어질 만한 뭔가는 없다. 전혀 없다. 이걸 대체 뭐라 그러냐? 바로,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일이라고 한다! 그래도 괜히 나는 흐뭇했다. 그 다음에 그 다음에, 그래서 그래서... 뭐 어떻게 되지는 않았다. 목 부분이 늘어진 허름한 티셔츠와 애기 기저귀 무늬 팬티, 실크 블라우스, 체크무늬 면바지. 그것이 죄수복인가 아닌가는 몰라도 내가 하는 일은 그랬다. 외계인이나 좀비가 나오는 영화를 보고, 타임머신이 등장하는 미스테리아를 읽으며, 환상머신을 특별하게 꾸밀 거짓말을 쓰고 있었다.
세상은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A는 독학해도 되고, B는 학원이 좋으며, C는 경험자의 조언이 최고라고. 때문에 나는 어렸을 때 그렇게 생각했다. TV는 내게 어떤 막연한 내일의 행복을 예고해주었고, 따라서 나는 푸른 바다 위의 분홍색 보트 같은 다가올 장밋빛 인생을 추리했다. 그 후 내가 습득한 건 두 가지로 나뉘었다. 첫째 그동안 습득한 예술-문학-오락산업의 가르침 - 어른 흉내내기 및 잔지식, 둘째 바람둥이의 허풍과 한량의 농담. 그 결과 나는 전자와 후자는 큰 차이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나 세상은 저절로 인생의 비밀을 터득하게끔 내게 결코 인자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분위기 좋은 NC의 황홀한 쾌감과 친구 파도타기, 그리고 운명적인 사랑을 위한 방황을 지속할 수 밖에 없었다. 재밌는 미래를 예측함과 숙녀를 향한 탐구심만으로 즐거운 인생은 이루어질 수 없을 테니 말이다. 그렇게 해서 나는 지금 플레이보이의 4대 요소를 어느 정도 이루었을까? 그랬으면 얼마나 좋겠나! 그렇다고 썩 불만족스런 성적표라며 딱히 불쾌해 하는 건 아니다. 그런데 세상사를 쥐락펴락하는 인생론을 논하면서 무슨 3박자니 뭐니 그 얘기가 왜 나왔지? 허허허. 아 글쎄 내가 그 이유를 진작에 통달했다면 지금 그랬을지도. 즉 직접 칼럼을 쓰는 게 아니라 자서전을 대필시킨다랄지, 아마도 동기 부여 비디오도 찍고, 어쩌면 에로... 아니 멜로영화나 시민-환경 단체를 이미 후원하고 있었겠지.
그래서 하는 말인데, 나는 이미 순서가 틀려버렸다. 그러니까 나는 듬직한 학력도, 출중한 경력도, 아찔한 지성과 눈부신 미녀와의 찐한 연애 등등 저 3인지 4인지를 모두 놓쳐버렸다. 안타깝게 라고 거짓말도 차마 못하겠다. 그렇지만 남은 건 있다. 이를테면 잔재주와 인생 경험, 배우 수업 같은 것들. 이처럼 나는 투정 어린 수다도 아니고, 소망이 귀여운 취미 바꾸기도 아니며, 억측과 불만으로 가득 찬 일기도 아닌 뭔 이상한 글을 쓰는 작가가 되어버린 것이다. 왠지 모르게, 어딘가 모르게, 뭔지도 모르게 말이다. 하지만 나는 내가 쓴 인문교양서가 나오면 자필 사인을 기다리는 친구와 동생들도 있고, 멋진 연애소설의 탄생을 애원하는 단 몇십 명의 팬클럽도 거느렸다. 흐흠, 흐흠! 그러나 팬클럽 회장 롭과 나는 어느새 술친구가 되었고, 그 간사한 우정으로 판단하건대 고 앙증맞은 인기마저 나의 허망한 착각임을 알게 됐다. 거 참 나! 그래도 나는 아직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게 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정녕 어떻게 살고 싶은지조차 아직도 잘 모른다. 그러나 나는 뭔가를 어떻게 생각하고 인생이란 무엇이다, 정도는 말할 수 있다. 빙고!
그러므로 나는 이제 정말로, 진짜 본격적으로, 장난이 아니라 심각하게 환상론이라는 누보 로망을 쓰기로 했다. 하다 하다 스포츠 칼럼계에 기웃거리고, 너네들 진짜 가지 가지 한다면서 또 타인의 부탁을 넙죽넙죽 잘도 들어줄 게 아니라. 말하자면 나는 여자들에게 사랑의 완성을 묻기 위하여, 남자들에게 행복의 정복을 따지기 위해서 새로운 장소로 떠나기로 했다.
또?
아무튼 이번에는 그 어떤 신기루를 만날 것인가, 과연 기대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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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는 행복한 마음으로 기쁘게 일하기, 일과가 끝나면 다정한 눈빛으로 사랑을 노래하며 놀기.
전자와 후자가 반복되는 타성은 그에게 뭔지 모를 따분함을 안겨주었다. 때문에 청년다운 심심함은 그 축 쳐지는 눅눅함을 선명한 휴식이랄지 달콤한 놀이로 바꾸고 싶어졌다. 유난히 떠나고 싶은 충동은 심하지 않았고 딱히 축하 받을 일도 없었다. 그렇다고 운명이 원망스럽지도 않았다. 하오나 달리 애원할 새로움은 없었으니 놀러갈 약혼식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하긴 남의 집 잔치는 재미없다. 차려입기도 귀찮다. 흔히 보면 꼭 약혼식 같은 거창한 예식장에 한번도 가보지 못한 어른들이 딱 이와 같은 하찮은 투정을 하기 마련이다. 그러고서 인터넷에서 드라마에서 또 본 건 있어가지고 과장된 허영심으로 소셜 네트워크나 블로그에 또 뭔가 얘깃거리를 만들어 올린다. 타인의 투정을 평가하고 현대인의 불만을 풍자한다. 그것도 절반쯤 놀이니까. 그렇지만 고개를 돌리게 만드는 일도 있긴 하지만, 현대를 사는 행복의 전파자로써 그 모두를 썩 불건전한 생활 방식으로 치부할 수만은 없다. 좌우지간, 그러다 그는 문득 도나가 생각났다.
그렇지. 도나가 있었지. 특유의 발랄한 태도 때문에 그는 친구 도나가 보고 싶어졌다. 그 해맑은 웃음. 그 쾌활한 명랑함. 때로는 정숙하고 도도하며, 어쩌다 조증에 허언증까지. 천진하게 재잘대는 그 모습. 그건 어떻게 보자면 요정이고 어떻게 보면 순정만화 주인공이 분명했다. 그러므로 본인이 백번 양보해서 호의를 보이고, 환심을 사며, 주변에서 집적거림이 옳은 일일 것이다. 왜냐하면 자기가 오빠니까. 더구나 그녀가 그런 구도를 바랄 테니까. 그래도 사랑을 직접적으로 가르쳐주지는 않을 테다. 하지만 최소한 좋은 남자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는 역할을 마다할 수 없다. 아무튼 가까워질 수도 멀어질 수도 없는 은근 기묘한 친분은 이미 쌓여버린 것이다. 그처럼 그녀는 그에게 잠시나마 동화 속 공주님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딱 도나에게 연락할려고 했다. 그런데 묘한 우연의 일치처럼 바로 그 순간 그녀에게 전화가 왔다. 마침 연정의 텔레파시가 통한 것일까? 그치만 그녀의 어조로 판단하건대 썩 희망적이진 않았다.
「오빠 뭐해?」
「응. 난 있지...」
그녀는 그에게 말할 기회를 일절 허락하지 않았다.
「벨! 문 안 열어? 오늘 오빠 당번이야. 지나가다 봤어. 오빠! 벌금 또 낼 꺼야? 조, 너 지금 뭔 생각하는데? 뭐 하고 있었어, 오빠! 뭔 생각하다 잊어먹은 거야? 아무리 생각해봐도 수상한데. 단란한 유흥의 몰입자 같으니라고. 오빠. 베를리오즈 신경 좀 쓰자. 응? 게다가 내가 일부러 오빠 끌어들인 거도 아니다. 어쨌든 내가 오늘 친구들 데리고 들릴 수도 있어. 내가 특별히 오빠 생각해서 상속녀 아니면 이혼녀, 둘 중 하나는 데리고 갈께. 둘 다 데려갈 수도 있고. 그런데 못 갈 수도 있어. 농담이고, 어서 가보시게나. 알았지 오빠? 그럼 끊는다. 청소 내 마음에 들면 깜짝 선물 생각해볼께.」
뚝-!
도나는 조의 마누라가 아니다. 그런데 꼭 오래 같이 산 여편네라도 되는 것처럼 자기 할 말만 하고 전화를 뚝 끊어버렸다. 그래서 조는 겨우 그녀의 목소리만 들었다. 하지만 달리 만감이 교차하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아, 벨! 벨은 베를리오즈의 약칭이다. 베를리오즈는 조를 포함해 마음 맞는 친구들끼리 결성한 아지트 이름이다. 사설 카페니까 뭔가 있어 보일려면 입구에 수트 입은 8 대 2 가르마 아저씨와 가죽점퍼 입은 단발머리 락커를 최소 2명 이상 배치해야 하는데, 그건 일단 연기한 상태다. 이러다 흐지부지될지도 모르지만 엄연히 지금은 당번을 돌아가면서 맡아야 했다. 출자는 20명 정도였고, 운영비는 출자비로 사둔 주식의 배당과 일부 주식 매매 수익금으로 충당했다. 영화 찍을 일이 추억이라면 이런 아지트 놀이는 놀림감도, 불운의 화근도 아닐 것이다. 물론 시작은 으쌰으샤였다. 그런데 초심의 의도와는 달리 살짝 삐걱거리기는 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그런대로 쓸 만한 아지트였다.
조는 아지트로 갔다.
멀지도 않았다. 벌써 도착했으니까.
그렇게 청소를 마치고 친구들을 맞이할 준비는 끝났다. 그런데 오늘따라 너무도 한가했다. 다들 바쁘나 보지 뭐.
와, 그런데 이게 뭐야?
그는 어떤 숙녀의 일기장을 발견했다.
주인이 누구인지 알아야 보관하고 돌려줄 수 있으니까 어쩌다가 공책을 펼쳐보게 됐다. 그래서 그는 자기도 모르게 눈 딱 감고 딱 1쪽만 읽어버렸다. 그 일기는 다음과 같다.
2
제목: 일기
내용: 날짜는 쓰기 싫음. 날씨는 흐림.
처음 만나 손을 잡고 연애를 시작하여 기념일을 암기했는데, 어느덧 혼자서 이별가를 부르는 일. 만약 마음이 오고 갔다면 그건 어쩌면 사랑일 것이다. 미처 내 마음이 선심인지 애정인지 아니면 흑심뿐인지 잘 모르겠다면 이제는 전-애인이나 풋사랑 둘 중 하나일 테고. 오래 지나서 이름을 기억하고 얼굴을 떠올리며 전화번호를 잊지 못하니까 사랑했다, 사랑 받지 못했다? 아마도 확률은 우리 편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해석은 내 마음대로일 테고 무의식은 고집이 세니까. 그런데 사석에서 오가는 우정의 대화를 모를 만큼 세상은 우리를 마냥 순진하도록 가만 놔두질 않는다. 허당의 친구들조차 도저히 그러는 법이 없다. 그래서 이번에는 동심으로 기분을 맞추고, 괜찮은 유행가를 생음악으로 불러서 분위기를 띄우면 어떨까? 참 좋을 때다! 즉 아름다운 시절. 비꼬는 게 아니다. 꼭 창창한 젊음이 아니더라도 사랑은 만인에게 공평하니까. 그러나 큐피트가 우릴 도와줄지 어쩔지 한발 앞서 예상하긴 결코 쉽지 않다. 그러니까 사랑도 조금은 뭐랄까, 재밌는 익살꾼의 스포츠 응원이 점차 아유로 바뀌는 것처럼 살짝 결과론일 수도 있다.
따라서 사랑은 놀이로 시작해서 일이 될지, 아님 그 반대처럼 진행될지 아리송할 뿐. 아무튼 사랑을 아름답다고 했던 사람은 내가 아니다. 만일 내가 그랬다면 단순히 따라했을지도 모르고. 그야 어떻든, 다만 이처럼 마땅한 문제 제기는 지극히 합당한 일. 그러든 어쩌든 사랑이란 주제는 오락산업에서 만고불변의 1인자. 고로 신기한 사랑으로 행복한 인생에 도달하는, 아하, 놀라운 사랑론이라는 책이나 써볼까? 그런데 그렇게 해서 꽤 유명해지면 적잖이 피곤해질 텐데... 그냥 그러지 말자! 내가 못해서 안 하는 게 아니니까.
어쨌든 오늘 누군가는 그 남자의 마음을 쥐락펴락할 것이다. 또 누군가는 잡을 듯 잡을 듯 거의 여심을 잡았으나, 여체는 잡을 뻔 잡을 뻔 하다 끝내 잡히지 않기 때문에 오늘도 골머리를 끙끙 앓을 것이다. 안 봐도 뻔하다. 그야 어떻든 그분들 인생이고 타인의 팔자 소관. 그러니까 지금 남 걱정할 때가 아니다. 참 나! 일하기가 잘되면 놀기가 안 풀리고, 허언증이 완치되니 불면증이 도지고. (설레설레)! 인생은 쉬운 게 아니듯 사랑도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다만 뭐는 아무나 피우는 게 아니다, 의 뭐는 생각치 말자.
결론은 잠이 오지 않는 깊은 밤, 측은한 늑대의 마음은 대략 세 가지를 생각할 것이다.
첫째, 잠을 자야 하니까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양 세 마리......
둘째, 오-땡큐! 는 그만 잊자. 완전히 잊자. 끝까지 잊자.
셋째, 마음 속에 고이 간직한 순정의 사랑을 측량하는 상상.
그런데 사랑의 감정과 열매가 그 얼마나 달콤하다고, 그 얼마나 신비롭다고, 그 얼마나 적나라하다고 또 다시 사랑을 들먹인단 말인가. 행복한 내일로 떠나는 꿈나라의 티켓 하며 참 유난스럽다. 쯧쯧쯧!
3
이번 만큼은 궁금증이 발생했으면 군말 없이 선뜻 이실직고하기로 하죠. 왜냐하면 듣고 싶어요 선생님 첫날밤(첫사랑인가 첫키스던가) 얘기해주세요, 에 대한 노림수는 소녀의 애원이 아니라 기분파의 귀여운 저주를 불러올 수도 있기 때문.
요점만 말하자면 아지트 베를리오즈는 조용했다. 마침 진짜로 다들 바쁜 듯 했다. 그리고 그날 들린다고 했던 빈말을 도나는 지켰다. 도나는 B에 친구 두 명을 데리고 왔다. 그럼 한 명은 상속녀 한 명은 이혼녀? 중의적인 추정을 멋 모르고 아낌없이 발설하면 맞이할 결과는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 그래서 조는 힘겹게 인사만 나눈 후 꾹 참고 함구했다.
「오빠. 일기장 같은 거 못봤어? 아, 저기 있다. 그래. 그렇다니까. 내가 봤다니까. 오빠 그 일기 얘가 쓴 거야. (눈인사) 다 읽었어? 시간 넉넉했을 텐데! 농담이고, 안 봤지? 그럴 꺼야. 그렇지만 봐도 상관없어. 왜냐하면 그거 책으로 만들어 팔 거니까. 하긴 글 먼저 읽고 막 멋대로 화사한 풍경을 바탕으로 눈부신 아가씨의 미모를 상상한 건 아니겠지? 만약 그랬다면 어떡하지? 실망이 이만저만하지 않을 텐데!」
그러면서 그녀들끼리 꺄르르 웃으며 즐거운 분위기 일색이었다. 뭐 어떻든 사실은 사실이니까 그는 도나의 의견에 반론을 표명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다. 그렇다고 진짜로 체념했다는 뜻은 아니고. 어떻게 더 친해질 가능성이야 좀 더 지켜봐야 하지 않겠나. 남녀 사이란 원래 그런 거니까. 정녕 뭔가 애매한 숙녀가 볼수록 매력인 경우가 적지 않으니까. 여성잡지1의 절반이 괜히 화장술과 변장술인 게 아니다.
「이런 말 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말이야, 오빠가 한 남자를 알거든. 친구들까지 하면 그쪽도 삼총사야. 아무튼 그 친구가 일기 하나는 정말 끝장나게 잘 써. 크아! 막, 사랑의 나라는 바보의 세계라며 아아~ (설레설레) 말도 마. 그런데, 어떻게 오빠가 그 친구 소개시켜줄까? 말만 해. 정말 괜찮은 친구들이라니까.」
「오빠. 남자 이야기는 하지도 마세요.」
내 행운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챙겨야 하는데, 난 그 기쁨의 파도타기에 물의를 일으킨 것만 같았다. 아마도 난 그녀들에게 내가 비운의 노력파란 사실을 들키기 싫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4
그는 이랬다. 날씨가 맑았다가 흐렸다가, 분위기가 밝았다가 흐려졌다, 기분이 좋아졌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나빠지기도 했다. 그러나 즐거운 일하기는 특별히 기쁘지도 딱히 싫지도 않았다. 이따금 사는 낙이 없다거나 일상이 재미없을 수는 있어도 일은 그렇지 않았다. 그런데 정말로 일하기가 순조롭고 언제나 몰입할 정도로 신났느냐, 하면 꼭 그런 건 아니었다. 곧 간사한 기분처럼 조금은 지겨운 일하기 역시, 좋았다가 나빴다가, 딱 그랬던 것이다. 그래서 사랑도 일일 수 있듯이 놀기도 그저 그럴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좋은 농사꾼에게는 나쁜 땅이 없다고 대어를 향한 열망은 변치 않았다. 부귀영화에 묻어가는 인복도 필요치 않았고, 기쁜 여복도 정중히 사양했다. 그런데 정말로 그랬는가, 하면 그럴 리가 있겠나. 그는 플레이보이의 3박자에 대한 칼럼을 쓰다가 마침내 진짜로 토끼를 키우기까지 했다. 내 마법으로 너에게 날개를 달아주마 라며 밑도 끝도 없이 모성애까지 느껴졌다. 그러나 토끼가 사람일 수 없듯이 어떻게 토끼로부터 대리만족을 듬뿍 바라겠나. 단지 기분전환이라면 몰라도. 게다가 토끼가 어느새 주인 행색을 하며 살고 있었다. 심지어 그는 토끼를 모방했다. 그래서 그는 토끼를 분양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그는 깨달았다. 자기는 일하기를 너무 심하게 좋아하는 건 아니다 라는 진실을. 곧 그 역시 행운을 타며 오르락내리락한다는 운명선이 있음을 알게 됐다. 쾌조의 출발이 막판 대역전과 다정한 한짝이기는 여간 해선 어렵듯이. 따라서 새로운 작전은 명확해졌다.
일은 잘될 때까지 기다리기. 복덩이 호박이 제 발로 굴러올 때까지 버티기. 못 견디게 아름다운 사랑은 기다리는 즐거움을 위하여 애절하게 그리워하기. 고로 오늘만 있는 것처럼 재밌게 놀기가 최고라는 결론이 옳았다. 그런데 좋은 일에는 마가 낀다고 부어도 부어도 차지 않는 밑 빠진 독 마냥 부족한 품위 유지비는? 그래서 JS는 여느 때처럼 늠름히 발걸음을 사무실로 돌리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렇다고 기분이 지긋지긋하지도 않았고, 팔짜가 유난스레 밉지도 않았다. 그가 변치 않는 심심한 분위기에 신물이 날 리가 있나. 긍정 대 부정의 몇 대 몇 비율이 어떻다는 이론을 잘 아니까. 그래서 일상적인 불쾌감이 썩 싫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사무실로 가는 길에 조는 전화를 받게 됐다.
그건 톰의 전화였다.
「조, 잘 지내? 자주 연락하지 못하네. 저번에 만나기로 하고서 내가 약속 어기고. 미안 미안. 일이 자꾸 그렇게 되네 친구. 나중 한꺼번에 갚을 날이 오겠지. 그러니까 기대해도 좋아. 그런데 정작 나중에 가서 내가 널 실망시키면 어쩌지? 만일 그렇게 된다면 늬가 내게 3 대 3 소개팅을 주선해주면 되겠다. 에이, 괜히 걱정했잖아. 별일도 아닌데 말이야. 허허허. 어떻게 된 게 말이야, 오랫만에 연락해 놓고 나 혼자 쓸데없는 얘기만 주저리주저리 늘어놓고 있군. 아차, 내 정신 좀 봐. 그렇지만 걱정하지 말라구. 친구. 놀이공원에 같이 놀러가자는 부탁은 하지 않을 테니까. 그런데 표정이 왜 그래? 너 지금 웃기는 웃는데 그거 썩은 미소지? 우리끼리 그러기야? 안 봐도 뻔하다야. 아, 맞다. 너가 저번에 쓴 칼럼 나도 읽었어. 와, 이제 곧 축구 저널리스트 하는 거야? 어떻게 내가 하고 싶은 얘기만 딱 골라서 썼니? 우린 뭔가 통하는 게 있다니까. 그런데 혹시 3부 리그에서 연락오지 않았니? 그거 읽고 나서 감동 받았다며 우리 팀 감독을 맡아달라고 말이야. 조! 우리 있잖아, 그분들 밥그릇은 건드리지 말자구. 너도 알잖아. 내가 경기장 가서 응원하다 보면 사람이 어떻게 변하는지 말이야.
그나저나 얘기 들었지? 나 실연당한 거 말이야. 게다가 업친 데 덥친 격으로 나 회사 그만뒀어. 어차피 회사 옮길 때가 됐거든. 나도 뭐랄까 말단에서 다시 시작하고 싶다고나 할까? 말로만 이럴 게 아니라 우리 언제 한번 만나자. 우리들 으쌰으쌰한지도 오래 됐잖아? 언제 한번 달려야지. 응? 아 그런데 나 통화 길게 못하겠다. 갑자기 스카우터와 약속이 잡혀버렸거든. 나도 먹고는 살아야 할 꺼 아니니. 그래서 하는 말인데, 다음에 내가 하늘의 별을 따주든 공룡이나 고래를 잡아주던지, 선물도 하고 너 끔찍하게 챙길께. 그럼. 너 사냥 안 해 봤지? 투우장도 안 가봤지? 형이 일정 다 준비해놨거든. 그러니까 이번 딱 한 번만 베를리오즈 당번 대타 부탁한다. 응? 너도 알잖아. 내가 부탁할 사람이 어디 있니? 내 친한 친구라고 해 봐야 세 명 밖에 더 있니? 불쌍한 친구 동냥하는 셈 치고 이번 한번만 당번 부탁할께. 너가 어려울 때 내 사정 봐주는데 내가 나중 장외 홈런 치면 어떻게 널 모른 체 할 수 있겠니? 나 나중에 그럴 꺼야. 인터뷰할 때 늬 존재를 알릴 거라구. OK?
형이 항상 늬 생각하고 있는 거 알지? 정 붙일 데 없고, 사는 낙도 그저 그렇고, 사랑마저 아직인 남자. 그러나, 여자들의 영원한 이상형! 캬~!
내가 굳이 이런 얘기까지는 하지 않을려고 했는데, 음 그게 있잖아, 이왕 말이 나온 김에 한말씀 드리자면 이와 같다네. 너 시향에 누구 아는 사람 있니? 형이 또 거기 골드-회원이잖냐. 그렇다고 콧대 높은 제2바이올린 수석이나 도도한 쳄발리스트와 만나자는 얘기가 아니야. 어차피 화장 지우면 다 똑같아. 그러니까 우리가 누구니, 어? 아지트 베를리오즈에서 환상교향곡을 듣는 게 아니라 대망의 뻔트를 논하는 친구들 아니니! 응? 그러니까 모나리자 미소의 추종자로써 내가 시향 사무실 경리 아가씨 두 명이랑 2 대 2 소개팅 준비해뒀다. 푸하하하하. 음하하하하하. 허허허허허. 잔치상은 다 차려진 거나 마찬가지야. 넌 그냥 슥 숟가락만 얹으면 돼. 알겠니?」
와! 그는 톰이 이렇게나 말 많은 친구인지 예전엔 미처 몰랐다. 그야 어쨌든, 심연에 도사리고 있는 야망이 어떻고 허풍에 대한 신심이 어떻건 그는 발길을 아지트 B로 돌릴 수 밖에 없었다.
5
미지의 행복감. 가슴 뭉클한 사랑. 눈부신 흥미와 다정한 재미에 둘러싸인 빡빡한 일정. 그리고 처음 알게 된 기막힌 비밀. 친애하는 사교와 귀찮은 인기 하며 놀라운 호사와 신기한 사치! 그는 덧없는 꿈 같은 헛된 상상에서 그만 빠져나오지 않으면 안되었다. 베네치아 무슨 광장에 놀러간다면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일급 소매치기를 만날지도 모른다. 어쩌다 앤트워프에서 이방인으로써 외롭거나 리스본에서 뜬금없이 스토커로 추궁 받느니 좋게 집에서 블로그나 하는 게 낫다, 라고 그는 생각했다. 신나는 탐험을 좋아하고 뜬금없는 전개에 말리고 엮이는 주인공 심리? 떼도 옛날에 뗏다는 건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렇다고 스스로 가택감금에 사무실에서 과거의 비운에 조소를, 타인의 비범함에 질투를, 자신의 평범함에 절망을? 아니 될 일이다. 그래서 그는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자 라고 결정했다. 고로 그는 오늘은 사무실로 출근할 게 아니라 식물원에 구경가자고 생각했다.
딱 그처럼 식물원으로 가기 위해 집을 나선 순간 포르토피노 동생인 이브에게 전화가 왔다.
「오빠. 오빠. 사랑하는 내 오빠. 아 글쎄 릴리가 나한테 뭐라고 그랬는 줄 알아? 어떻게... 걔가 나한테 뭐라고 그랬는지 아시나요, 오라버니! 체. 말도 안 나온 다니까. 하도 흉하게 하고 다니길래 내가 아는 여성잡지1식 자식을 모조리 전수해주고, 여성잡지2에서 미쳐 못 다룬 특종을 특별히 걔한테만 조심스레 알려줬는데, 그런데 뭐라고? 허 참 나! 내가 아는 오빠들 은밀히 전부 소개시켜줬더니 아 글쎄, 뭐가 어쩌고 어째? 얘가 은근 사람을 들었다 놓고 그러네. 허! 어이 없어.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괘씸하다니까. 글쎄 릴리가 뭐라고 그랬냐면, 오빠. 오빠가 객관적으로 누구 잘못인지 판단을 내려줘. 걔가 나 보고 그랬다니까.
뭐, 어디서 그 짝을 찾을 수 없을 만큼, 내가 그 정도로 잘난 척─아는 척─멋진 척이라고? 오빠, 그게 말이 돼? 그게 무슨 말이야, 그 무슨 개 풀 뜯어 먹는 소리냐고! 누구보다 오빠가 날 잘 알잖아. 응?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걔가 나한테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응? 오빠. 친구로써 그게 할 말이니? 참 나! 또 뭐라더라? 맞다! 언제 어디서나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내가 뭐 재수없다나? 내가 유난 떨기로 세계 최고가 되겠다는 신념을 지녔다나? 그 못생긴 년이 잘한다 잘한다 챙겨줬더니, 이제 와서 뭐라고? 별꼴이야 정말! 아 이쁜 척은 지가 다 하면서, 뭐라고? 아 그래 안 그래? 오빠. 이러니 내가 열 받지 않게 생겼니?
릴리 그것이 은근 맹한 거 같아도 꼭 보면 조목조목 할 말은 다 한다니까. 자기 실속은 절대 놓치지 않아. 눈치를 줘도 일부러 따박따박 딴소리하고. 꼴 보기 싫어. 게다가 걔 얼마나 응큼한 줄 알아, 오빠? 꼬리는 또 얼마나, 하! 말도 마 말도 마셔. 애교는 내가 걔보다 한 수 위지만, 객관적으로 그건 오빠도 인정하는 거니까. 그런데 있잖아 오빠, 내숭은 내가 걔 따라가지도 못해. 그러니까 오빠도 미리미리 조심하는 게 좋을 꺼야. 뭐야! 오빠 지금 그 생각했지? 둘이 싸우는 모습 정말 볼 만하겠다 라고. 바보 같은 소리는 하지도 마! 내가 걔 가만 둘 거 같아? 어림없어!
이런 말 하기는 차마 부끄럽지만 말이 나온김에 하자면 이래. 말하자면 내가 언제 한번 오빠들 앞에서, 아무튼 자세한 걸 차마 말할 수는 없고. 음, 오빤 그냥 내 설레발 만으로 짐작만 하고 있어. 그런데 오빠! 오빠 책 나왔어? 응? 난 친구들한테 벌써 자랑해놨는데. 그런데 아직이면 어떡해! 내 전-남자친구는 히포크라테스의 후예, 친구는 큐레이터, 동생은 내셔널지오그래픽 저널리스트, 오빠는 바람둥이, 그리고 구색을 갖출려면 소설가도 한 명쯤 있어야 할 거 아니야? 오빠도 알잖아. 말상 아나운서에 원숭이상 관상가, 개상인 동화작가와 고양이상인 회사원등 내가 아는 친구들이 좀 많니? 게다가 그 친구들이 얼마나 잘나가는데. 심지어 후작이랑 백작도 있어. 난 끼지도 못해. 여자들 모이면 어떻다는 거 오빠도 모르진 않을 꺼야. 뭐, 다이아몬드? 어떻게 무리해서... 아니야 아니야. 이번에 나도 루쏘로 확 바꿔버릴까? 그래도 더 이상 허영심의 애정은 감당이 안돼. 인기 없는 허세라면 또 모를까!
아무튼 농담이고, 오빠 책 나오면 자필 싸인 1호는 나다 오빠? 알지? 그러니까, 설마 오라버니께서 정숙한 처녀의 마음을 몰라주시지는 않겠지요. 아닐 꺼야. 오빠가 그렇게 막돼먹은 한량은 아니니까 말이야. 오빠는 말이야 내가 아는 남자 중에 제일로 성격이 좋거든. 호호호. 더군다나 오빠는 나대는 탕자도, 돌아온 싱글도, 설치는 험담가도 다 아니고, (딱)! 내 오빠니까. 더구나, 젊은 게 한밑천인데 좀 가난하면 어때? 원래 크게 될려면 한때 비리비리하고 고생도 좀 하고 그래야 하는 거야. 그래야 나중 그림이 딱 나온다니까. 오빠도 잘 알잖아? 내가 오빠 관상만 대충 봐도 대성할 부류라니까 그러네. 걱정 마, 응? 오빠. 오빠 방금 봤어? 내 윙크 말야. 오빠 천리안이잖아. 아아, 부끄러웠구나. 이해할께. 호호호. 호호호호호.
오빠. 그런데 있잖아. 우리가 만날 수 없었다면 오빤 어쩔 뻔 했어? 하긴 내가 좀 예쁘긴 하지. 내가 특별히 오빠니까 친구 흉도 보고 내 자랑도 맘 편히 허고 그러는 거라고. 알겠수? 우리 오빠가 왜 모르겠어! 그런데 오빠 또 뜬금없이 막 그런 말 할려는 거 아니지?
타인의 인생론은 타인의 인생론에 불과하단다. 완전한 네 것이 아니면 그때 뿐인 거지. 물론 뭘 좀 모르다는 가정 하에서만!
어때? 오빠 성대 모사 좀 비슷했어? 정말로 비슷했냐고? 응?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봅시다요. 그런데 내가 알기로는 있잖아, 막 그러거든. 뭘 좀 아는 남자 가운데 몇몇은 귀여운 숙녀가 남자 흉내내며 남자처럼 말하는 걸 완전 좋아하거든. 물론 좋은 얘기도 삼 세 번이라고 특기를 남발하면 안되겠지. 그런데 내가 뭔 얘기를 할려다가 여기까지 왔지? 대체 여긴 어디야! 오빠한테 분명 할 말이 있었는데... 뭐였지? 뭐였더라?
아 맞다. 생각났다. 그거였구나. 오빠 있잖아. 내가 친한 친구 약혼식이 있다는 걸 깜빡했지 뭐니? 그래서 말인데......」
겨우 이 정도로 조의 뚜껑이 열릴 수는 없었다. 아직 간의 기별도 안 찼으니까. 어림도 없지. 고작 이런 웃음과 간지러운 뻔트 정도로 조가 한마디 한다? 꿈에서는 할 수 있다. 아마도 이런 대사를!
「와, 정말 너네들 가지 가지 한다!」
결국 그가 가진 카드 패는 약간 시든 청춘이었고, 그건 낙장불입 때문에 노심초사 매사 망설일 수 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심지어 이브의 부탁을 차마 거절할 수도 없었다. 따라서 그는 오늘도 아지트 베를리오즈로 향했다. 마치 식물원은 애초에 가기 싫었다는 것처럼.
6
변덕스러운 성정. 툭하면 싫증내기 좋아하는 성미. 했던 말 또 하고 또 하는 발랄함. 게다가 남의 흉 보는 걸 싫어한다는 자평과 모순되는 행동들. 그리고 사랑의 전적. 우정에 대한 활약상. 그 밖에 소원. 일기. 대망. 그리고 행복한 인생. 때로는 불운까지 속속들이 나를 알 수 있는 예술적 실체를 말 이외의 것으로 구체화하기.
열거한 내용은 무엇일까? 성격 테스트 결과도 아니고 하고 싶은 일도 아니다. 꺼려하는 목록도 아니고 도전해야 할 새로움도 아니다. 이건 단지 비슷한 것들끼리 질서 있게 그룹 편성을 할려다가 미뤄둔 메모일 뿐이다. 곧 JS에게 할 말은 외로움과 생각하기에서 발생했고, 그것은 다시 저런 목록과 같은 할 일의 자료로 발전했다. 그런데 항상 그 과정이 매끄럽게 진행되는 건 아니었다. 여의치 않게 사교가 길어지거나 남의 집 잔치에 들러리를 서거나, 아니면 일과표가 지켜지지 않아 선율이 뚝 뚝 끊키는 일이 발생했다. 그럼 그는 때로는 색다른 발상이 떠오르기도 하고, 때로는 일하기 싫어졌다. 물론 놀고 싶은 욕구는 그 모두를 가뿐히 압도했다. 그렇다고 마냥 놀아도 되느냐, 하면 놀 수는 있는데 그러면 안된다. 어린애들은 노는 게 일이지만 어른은 다르니까. 따라서 그는 책사의 지략을 갈망했다. 그러나 당나귀의 잔머리도 아쉬울 뿐. 그렇지만 자다가 봉창을 두드리든 여심에 살며시 노크하던 어쩌던지 타석은 기회와 만나는 법. 허허허, 어찌나 딴생각이 많았는지, 허허허. 하지만 재미도 없는데 내내 타석에 들어서다 슬럼프에 빠지느니, 차라리 일이 안 풀릴 때 놀거나 쉬는 것도 꽤 괜찮은 방법일 수 있다. 여복이 자칫하면 방탕이란 샛길로 빠질 수 있듯이 일복은 밑도 끝도 없이 꾀병을 불러왔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새로운 장소에서 일하며 신선한 발상을 얻기 위해 하워드의 친구 소유로 되어 있는 별장으로 갈 예정이었다. 이미 사전에 얘기를 마쳐서 언제 가기로 했는데 그날이 바로 오늘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딱 발걸음을 내딛던 찰나, 샐리가 그를 찾아왔다. 조는 집 앞에서 샐리를 만났기 때문에 깜짝 놀랐다.
「오빠 얼굴에 뭐라고 씌여있는 줄 알아?」
「뭐라고 읽었는데? 한번 들어나보자. 재밌겠는데.」
「(남자 목소리를 흉내내며) 날 좀 내버려둬요. 제발요!」
「뭐야? 이제 점성술은 숙달했고 독심술 차례니? 우리는-화법은 도저히 안되겠으니 건너뛰고, 연애시를 외우기는 귀찮고, 응? 과학 지식을 숙지할 수는 없다. 고로 남의 마음이나 엿보자?」
「아이 참! 오라버니. 혹시 마술에 걸리신 거 아니에요? 오빠는 말 많은 남자도, 까칠한 캐릭터도, 속 좁은 남자도 아니잖아. 그런데 왜 갑자기 우스꽝스런 깜짝숀데? 혹시 저번에 말한 그 마술사 만난 거 아냐? 그 왜 있잖아, 오빠가 손을 그 사람 가슴 속으로 집어넣어서 다른 손과 수갑을 채웠다는 그... 속임술? 최면? 아닌데. 뭐지? 어쨌든, 오빠 눈빛이 거 어째 너무 응큼한 거 있지? 요염함은 여자 껀데 어떻게... 혹시, 설마...」
「뭔 소리야? 너가 정말 날것의 살아생전 당시 본능이 뭔 줄 알기는 아니? 어? 너 아프리카 가 봤어?」
「아프리카? 아니! 그럼 오빠는 가 봤니?」
「아니.」
「난 또! 그럼 그렇지. 그렇게나 훌륭하신 분이 비비안의 집에 몰래 침입하셨다?」
「뭐? 너가 그걸 어떻게 알아?」
「뭘 어떻게 알아? 농담이야 농담. 오빠 진짜로 비비안 좋아해?」
「좋아하긴 뭘 좋아해! 그런데 너가 어떻게 알아? 내가 비비안 블로그에 들어간 거!」
「뭐, 오빠가 비비안 블로그에 들어갔다고?」
「아니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라, 아 우리 아지트 베를리오즈를 말했던 거라고. 지금 말이 헛 나왔다 오빠가. 아무튼, 얘가 지금 오빠를 뭘로 보고. 허 참!」
「혹시... 오빠 내 일기 읽은 거 아니지?」
「내가 늬 속옷 무늬를 어떻게 아니?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뭐-뭐... 뭔 소리야? 내가 늬 일기를 왜 읽어? 내 일기 쓰기도 옛날에 귀찮았는데. 그런데 여기는 어쩐 일이야? 너 혹시 나 좋아하니, 라고 오빠한테 물어볼려고 오진 않았을 테고. 그게 아니면 오빠 내 마음 알잖아, 그런데 나한테 왜 그래? 손은 이미 잡았자나. 키스도 했잖아. 포옹까지 뜨거웠어. 분위기 좋았다구. 그런데 왜 그렇게 뜸을 들이는데? 왜 내 마음을 몰라주는데? 라~고 따질려고 온 것도 아닐 테고. 거 뭐, 거뜬히 빠져나오기는 좀처럼 어려운 음모라도 있는 거니? 정말 그래?」
「흥! 뭐가 어째?」
「와! 너 그거 아니? 너 째려볼 때, 완전 이뻐! 끝장 멋져! 장난 아니야. 응? 나 있잖아? 막 떨려! (끔뻑끔뻑) (엄지 척!)」
「오빠 지금 나 놀리는 거니?」
「내가 지금 널 놀리냐고?」
「아 나 이런 정말 바보 같으니라고. 질문을 들었으면 답을 해야지 질문을 따라하면 어떡해? 오빠가 앵무새니? 우리 지금 드라마 찍냐고!」
「어머나. 내가 그랬나? 지금이라도 정상으로 돌아가면 되지 뭐. 드라마가 날 이렇게 만들었나 봐. 그런데 뭐라고 물어봤지? 뭐였드라...」
「아 됐어! 다 됐고. 오빠. 내 부탁 하나만 들어줘. (뭐-뭐-뭐, 뭔-탁? 아아, 드디어, 올 게 왔구나. 정말 너네들 가지 가지 한다!) 나 오늘 장례식 가야 해. 갑자기 발생한 일이야. 그래서 말인데, 오빠가 베를리오즈 내 당번 딱 한번만 대타로 나서줘. 왜, 내가 이런 부탁하면 안 돼? 내가 지금까지 오빠한테 들인 정성이 얼만데? 어? 어디 한번 읊어볼까? 심지어 내가 아는 오빠의 비밀은 또 어떻고! 어? 나보다 더 오빠 비밀을 잘 지켜주는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진짜로 있으면 비겁하게 숨지 말고 내 앞으로 당당히 나와보란 말이야! 어? 난, 자신 있어! 그게 말이야... 음... 내가 어디다 적어놨더라, 파일이 따로 있을 텐데. 파일명은...」
「이거 진짜 보자 보자 하니까... 오빠가 그 정도 밖에 안되는 사람이니? 넌 오빠를 그렇게 밖에 안 봤니? 오빠 대인배인 줄 알잖니! 어? 오빠 몰라? 안 그래도 나 방금 딱 거기 갈려던 참이었어. 오히려 잘됐네. 안 그래도 최근에 말이야. 오빠가 유독 거기만 가면 글이 잘 써져. 일이 잘 된다구. 게다가 베를리오즈에서 누가 데려온 쪽집게 예언가도 만났어.」
「어머, 정말이야? 다음에 나 한번 소개시켜줘. 어쨌든 내가 지금 시간이 없어서. 나 먼저 갈께. 다음에 꼭 밥 한번 같이 먹자. 아님 한잔 꺾던가. 응? 아니 그보다는 차라리 선물이 나을까? 아, 저번에 오빠가 그랬지? 뭐 갖고 싶다고. 그게 좋겠다. 그런데 그게 뭐였지? 내가 혹시 잘못 들었나, 아님 다른 데서 들은 건가? 어쨌뜬 뭐 하나 생각해나 오빠. 내 마음 알지? (윙크) 그럼 안녕.」
그는 결국 샐리의 청탁을 들어줄 수 밖에 없었다. 얘기를 나누다 보니 그냥 어쩌다 자기도 모르게 딱 그렇게 되어버렸다. 묘한 뒷맛이 남지만 중간에 거절할 수도 없었다. 지금 다시 샐리를 불러서 나도 급한 약속이 있다면서 사정 딱한 건 알겠지만...이라면서 따따부따 떠들 수도 없었다. 심지어 샐리가 약속한 적절한 보답이 무엇일지 그 설레는 예감이 벌써부터 자길 들었다 놨다 했다.
웬일일까! 그는 정말 B로 가고 싶어졌다.
7
스코트랜드의 한적한 최고급 휴양지에서 무반주 첼로 조곡을 들으며 새로운 인문교양서를 구상하느냐. 아니면 애들에게 끌려가서 해리포터 박물관에서 길을 잃은 채 우연히 마주친 낯선 여인에게 첫눈에 반하느냐. 그는 기로에 서 있는 게 분명했다. 일하기냐 놀기냐, 사무실이냐 베를리오즈냐, 뻔트냐 홈런이냐! 자신은 그러니까 대형 스트라이커일까 아니면 퇴출을 앞둔 리베로일까. 우익수일까, 아니면 우익수 뒤통수를 쳐다보는 그냥 동네 아저씨일 뿐일까. 그도 아니면 그러기는 싫은데, 어릴 땐 거포를 꿈꿨지만 인생은 뻔트도 쉽지 않다는 걸 뒤늦게 인정해야만 하는 것일까?
그래서 그는 갑자기 미래가 궁금해졌다. 그 희망찬 내일이 꼭 찬란한 미래일 꺼란 보장은 없지만 뭔가 어떤 새로움 2.0이 필요했다. 절실했다. 지금 이 판국에 갈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내 앞날을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점쟁이 말을 들으면 기분은 좋다만 그는 또 그런 데 혼자 가는 건 싫어했다. 혼자 가면 재미없으니까.
그러니까, 과거를 감안하고 자질을 자문하며 탐욕을 관찰하면, 그럼 내 미래를 알 수 있지 않을까? 굳이 삼류 점쟁이에게 복비를 상납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합리적인 의구심은 타당할지언정 그렇다고 일일이 직접 경험으로 그 뭔가를 깨우칠 필요는 없다고 그는 생각했다. 모두 다 알면 재미없을 테니까.
그러다 그가 내린 결론은 이랬다.
이제 드디어 베를리오즈로 자진 출근!
감을 믿어본 것이다.
앙심-양심-선심 가운데 우리의 친구는 복수가 아니다. 동심도 옛날 얘기다. 흑심은 야만성도 문명도 예술도 문화도 사랑도, 그 모두에 거미줄을 걸치고 있다. 그러니까 우리의 사랑은 질투심도 크리스마스 카드도 아니고 대체 뭐지? 인생의 제1우정이 뻔트일 수는 있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궁극적 환희가 오직 쾌락뿐일 수는 없다. 그래서는 안되니까. 그렇든 어쩌든 제2의 행복감과 제3의 모험심은 누가 뭐래도 줄 달린 치즈를 끌어당기는 열정과, 줄 달린 치즈에 끌릴 수 밖에 없는 친화력인 건 아무도 부정하지 않는다. 저기요? 쉿!
그런데 이게 대체 뭔 소리야? 어쨌든 그는 호기심이 발동했다. 왜 최근 이런 일이 끊이질 않고 일어나는지 알고 싶어졌다. 뭔가 느낌이 세했다. 1번은 기본이고, 2번은 우연이며, 3번은 인내다. 그런데 대타 4번 연속? 쓰리 뻔트 아웃도 아니고 뭐야 이거! 그건 한마디로 무언의 예고일 것이다. 누가 자기한테 승부를 거는 신호가 틀림없다고, 이런 노골적인 암시를 눈치채지 못할 만큼 자기가 그 정도까지 바닥은 아니라고 자신한 것이다.
그렇게 그는 그들의 아지트 베를리오즈로 갔다.
베를리오즈로 가는 길에 특별한 일은 없었다.
조는 마침내 그곳에 거의 도착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역시나 그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딱)! OK! 이거야. 이거라고. 이거라니까. 바로 이런 거지! 쉭─쉭─쉭!
「완전 대박!」
이게 대체 뭔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이제 정체를 모르는 상대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승부의 구도가 형성된 것이다. 그러니까 숨겨논 보석 같은 잠재적인 비밀은 대체 무엇일까? 그 끝에 과연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이번에 진짜로 드라큘라를 만나고 유령을 조우하게 되는 것일까? 생애 최초로? 그러다가 자신이 좀비로 변신하는 일이 있더래도 이건 도저히 거절할 수 없는 도전이었다. 안 그래도 의무방어전을 기다리다 기다리다 지쳐서 이제는 그 어떤 꿈과 희망과 전야제는 생각도 안 했는데, 그런데 손에 진땀나는 대결이라니!
그래서 그는 오늘은 케익을 사서 혼자 먹고, 이튿 날 향수-옷-지갑-슬리퍼-복권-행운권-트럼프 카드-양말등을 잔뜩 사서 포장한 다음 리본을 묶고 자신에게 선물하기로 했다. 왜냐하면 아마 이건 장기전이 될 것 같다는 떨리는 예감 때문이었다.
어쨌든 그는 오늘도 포르토피노의 B 대타 부탁을 들어주었다.
8
그처럼 네 번째, 다섯 번째, 여섯 번째 그는 아지트 B의 당번 부탁을 매일 들어주게 됐다. 그래서 그는 오늘로 7일 연속 B에 출근하게 됐다.
물론 그의 혼잣말은 차츰차츰 바뀌게 되었다.
처음에는
「와, 정말 너네들 가지 가지 한다!」
그 다음에는
「어쭈 이것 봐라!」
또 다음에는
「OK! 이건, 분명, 뭔가 있어!」
그렇게 7일째 연속 출근하게 됐다. 그런데 오늘은 그에게 전화가 걸려오지 않았다. 왜냐하면 오늘은 아지트 베를리오즈에서 파티가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즉 모두 함께 모이는 날이었다. 그러니까 오늘은 당번이 없었다. 그래서 조금 과장하자면 그의 기분은 이랬다. 다리가 엄청 후들거림! 장난 아님! 얘네들이 과연 오늘 내게 어떤 비밀을 실토할까? 아니면 계속 모른 체 할까? 뭔가를 말한다면 그건 고백일까 증거일까 조짐일까. 아무리 고민해봐도 그건 결코 예측하기 힘들었다. 악마적 상상력도 스포츠처럼 결국 결과론에 불과할지도 모를 수식어이자 농담에다 예의일 테니까.
그렇게 아지트 베를리오즈의 파티는 분위기가 점점 무르익었다. 기분 좋은 음악이 쉬지 않고 이어졌으며, 다채로운 구경거리와 얘깃거리가 즐비했다. 그녀들의 멋진 복장 때문에 조는 눈이 다 호강했다. 그래서 이 다음 그 어떤 2탄에 대한 기대감은 쉴 새 없이 쇄도하다. 그런데 너무 긴장했기 때문일까? 그의 감수성은 배겨나질 못했고, 추리력마저 처량하게 힘을 잃어버렸다. 바로 그때 친구들의 솔깃한 대화가 들렸다.
「우리 그냥 아지트 접는 게 어떨까?」
「너도 그렇게 생각하니?」
「오빠도?」
「여기서 그 생각 안 해본 사람 있으면 손!」
어디에 가면 두 명 중 한명은 진짜로 이름이 '손'으로 끝난다. 머머스키도 똑같고 내가 아는 실바만 도대체 몇 명이냐고.
「내가 있잖아, 우리처럼 친한 친구들 모이는 클럽에 저번에 갔다 왔거든. 우리랑 비슷해. 사교 모임이지. 아지트를 운영하는 거도 똑같아. 그런데 가서 보니까 뭐랄까 우리랑 너무 다른 거 있지? 일단 우리처럼 당번제가 아니야. 거긴 진짜로 입구에 떡대 좋은 아저씨들이 딱 지키고 있어. 귀에다 뭐 꼽고. 헤어스타일도 완벽한 8 대 2 가르마. 그 업계 하수가 아니라며 딱 얼굴에 씌어 있더라고. 난 그 다음 들어가서 분위기 보고 느꼈지. 아, 회원비 장난 아니겠구나 라고. 따라서 아무나 받아주지 않겠구나 라고 느꼈지. 특히나 여긴 입이 가볍고 싼 위인은 절대 없겠다는 그런 뭐랄까 동경심이라고나 할까? 그런 생각이 나도 모르게 들더라니까. 거긴 음악도 우리처럼 이런 유행가가 아니야. 재즈도 아니고 클럽 음악도 아니야. 2중주 3중주 4중주, 게다가 생음악. 그것도 예식 같은 데서 연주하시는 분들도 아니야. 그분들을 깎아내리고자 하는 의도는 없지만, 아마도 회원의 친구분들인 것 같더라고. 거기 회원 친구면, 음, 대충 예상이 되더라고. 더구나 대화는 어찌나 고상한지. 나 그날 괜히 따라간 거 같았어. 내가 그날 마음 먹고 꾸미지 않았다면 그날 난 마음이 꿇려서 울었을지도 몰라. 그래서 거기서 갑자기 친해진 누군가에게 난 진짜로 물어볼 뻔 했다니까. 너 원래 말을 그렇게 세련되게 하냐고. 본심을 드러내라고. 어? 넌 근사한 사람 아니면 원래 상대하지 않는 거냐고. 그러다 정말로 그럴 것 같아서 조금 취했을 때 먼저 나왔어. 내가 있을 곳은 아닌 듯한 그런 뭔가가 느껴졌으니까. 그래서 말인데, 어차피 아지트를 그렇게 즐길 게 아니라면 이렇게 형식적으로 당번 맡기 싫어서 서로 미루면서까지, 어? 꼭 그렇게까지 베를리오즈를 운영할 필요가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
「난 완전 동의해.」
「나도 적극 동조.」
「대-찬성.」
「아마도 뭔가 변화는 필요해.」
「우정을 걸고 판돈을 키우는 건 왠지 불안한 건 있어. 그래. 뭔가 비정상적이란 거 나도 알고 있었다구. 누군들 안 그렇겠어? 누가 곗돈 갖고 튀었다는 어르신들 이야기네, 소란스러운 파혼에 한때 최고의 사랑이었는데 10년 소송으로 이어지는 게 다 뭐겠니? 그래, 돈이야! 돈이라구. 우린 지금 어쩌면 소녀의 사교 생활과 소년의 야망을 뒤늦게 흉내내느라 정작 내 인생에서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불필요한 일을 아웃소싱하지도 못한 체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일 수도 있다구. 그렇다고 정말 불필요한 사교이자 허접한 가식이란 말은 아니고.」
「난 그렇게 생각해. 차라리 불규칙적으로 시시각각 다르게 어울리는 게 낫다고. 약간은 TV 시트콤과 다르게 말이야. 우리가 억지로 지속하는 아지트는 아마도 너무 초보 같아. 그래, 하수! 아예 애들 장난도 아니고, 유소년의 어른 흉내도 아니며, 어른들의 철들지 않는 으쌰으쌰 그런 잊혀진 열망에 대한 투정도 아니고. 이건 정말,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니?」
「여기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 있으면 손!」
웃음. 그 가운데 웃지 않는 사람은 딱 한 명 밖에 없었다. 물론 그분도 웃긴 웃었는데 환한 웃음은 아니라는 거!
그러다 조는 개인적인 대화를 나누면서 알게 됐다.
「무슨 소리야? 너가 베를리오즈에서 일하고 싶다면서 자청했잖아?」
또 다른 친구는 이랬다.
「내가? 아니 뭐야, 뭘 트집 잡고 싶어서 그렇게 고단수를 쓰는데? 그런다고 내가 짜증낼 거 같니? 우리가 사귀는 사이도 아닌데 직접 화법 아니라고 내가 뚜껑이라도 열릴 것 같아?」
그러니까 그는 대번에 깨달았다. 엇그제 만나서 당번 대타를 부탁한 샐리만 진짜고, 나머지는 모두 전화로 가짜 부탁을 했다고. 또 가짜로 자기 전화를 받았다고.
그래서 그는 생각했다. 바로 이렇게.
「아! 내 사무실이 오래 비었구나!」
조는 곧바로 애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서 사무실로 갔다.
가서 브로커를 만나던 뭔가 변화를 감지하던, 그 뻔트에 사용된 방망이가 금-방망이인지 솜-방망이인지 뭔가를 캐내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다.
9
그는 자기 사무실이 보이는 가로수 밑에 도착했다.
그런데 아무 준비도 없이 빈손으로 다스베이더를 만난다? 마침 저 앞에 웬 지팡이가 보였다. 어느 노인께서 버린 건지 아니면 동네 똥개가 물어다 놨을지 모르지만 그는 꼭 그게 필요했다. 뭔가 악마적인 술수가 절박했지만 뚜렷한 대책은 없었다. 그냥 이대로 부딪혀보는 수 밖에. 맨발의 청춘에게 거창한 준비는 왠지 모르게 반칙처럼 느껴졌으니까.
그는 사무실 앞에 도착했다. 그러고서 문을 열었다.
핑~! 신비한 효과음이 들릴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그게 아니라 뭔가 애매한 느낌 때문에 불안불안했다.
그런데 웬 대형 물안경 같은 게 대롱대롱 문 바로 앞에 매달려 있네? 그는 그걸 착용했다.
보였다. 드디여 보였다. 마침내 영화에서만 보던 그 파란색 레이저 선을 보게 된 것이다. 실제로 암스테르담에서 대도에게 뭔가가 털렸다, 코펜하겐 시립 미술관에서 무엇이 단 몇 분 만에 도둑맞았다, 라는 소식을 살면서 한 번쯤 듣게 된다. 그것과 약간 다른 얘기지만 말하자면 이런 식이다. 살면서 뒤늦게 베트남 국수에 꼿혀서 한 달 내내 베트남 국수만 먹던가, 헬싱키에 땅을 사놓고 룩셈부르크에 세금을 내며, 우르과이를 응원한 김에 몬테비데오로 여행을 떠나고, 마다가스카르의 어느 특급 사교계 명부에 이름을 올린다? 여행지에서 사랑을 할 수도 있지만 운명 교향곡이 어떻게 탄생했을까를 생각하면 된다. 삼천궁녀는 TV 보기로 대체하면 되는 것이지 꼭 몰몬교의 시계를 거꾸로 돌릴 필요까지는 없지 않을까? 어쨌든 영화에서 우리는 보게 된다. 어떤 명화를 훔치는 장면을. 무수히 봤고 익히 감상했다. 그럼 관계자들은 도둑님께서 편히 가져가시라고 어설프게 대처할까? 그럴 리가 있나. 특수 레이저 설비가 가동되고, 원자력 무슨 그런 감지 장치에, 기계식이네 전자식이네 별의별 첨단 장비가 총동원된다. 그래서 얼마 이상의 명작들은 대부분 무조건 가택감금이다. 그분들은 여행을 싫어하신다. 그런데 바로 그 이렇게 저렇게 불규칙적으로 구성된 파란색 선들을 실제로 보게 되다니.
오오, 세상에나!
그는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 뻔 했다. 당연히 파란색 선 하면 빨간색 선이 떠오른다. 그건 뭘까? 뭐겠나! 우리들이 또 어디서 본 건 있어가지고 특수부대 작전 장면에 대한 고급-저급의 감별은 눈에 훤하다. 그걸로만 보자면 우린 모두 최선의 연애술사다. 그걸로만 보자면 우린 모두 잔지식이 꽤 어중간한 신비주의자에게 아픔을 안겨주었던 차악의 연애 상대다. 아울러 그걸로만 보자면 우린 모두 내놓으라 하는 당대 최고의 다이아몬드 감정사인 것이다. 뭐 그건 그렇다 치고,
와, 이건 한마디로 천사의 기쁨과 악마의 환희였다. 지금 이 순간 만큼은 내가 바로 피렌체 지하 세계를 좌지우지 하는 거물이었다. 적어도 기분만 따지자면 그는 당장 세계 500대 부호에 이름을 올렸다. 플레이보이의 천국까지는 얼마나 더 가야 하나요? 그는 한마디로 3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플레이보이계의 전설이었다.
그러니까 시방 누군가 자기를 어떤 신흥 단체의 후계자로 지목했으며, 그 명맥은 유서 깊고, 저기 보이는 '황금 마네킹 상점'은 진품으로 바꼈다? 아무리 어깨뽕이 튀어나온 걸 감안하더라도 그건 너무 심했다. 정말 그랬다. 자긴 무슨 거창한 후계자감도 아닐 테고, 저 그림이 진품으로 바뀔 리도 없고, 게다가 파란색 선들... 이건 분명 꿈 아니면 장난일 것이다.
그런데 아뿔사!
저기 걸린 그림은 '황금 마네킹 상점'이 아니었다.
그건 바로 화가 이름도 작품명도 까먹은 대단한 명화였다. 다시 말하자면 황금...도 고귀지지만 (다만 현물 가치로만 따져서) 거기서 한두 계단 더 올라간 것이다. 저 끝내주는 걸작의 이름이 뭐였더라? 생각나지 않았다. 다시 말하지만 내 사무실의 그림까지 바꿔치기 했다고? 그럴 수가!
이걸 누구한테 의뢰하지? 조가 아는 탐정은 없었다. 그럼 인맥을 보자면 마라나 포르토피노나 몇몇 친구들한테 부탁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가 그들한테 들을 말은 뻔했다.
「나한테 맡겨! 라고 할 줄 알았니? 꿈 깨 이 친구야!」
또는
「내가 무슨 말을 할지 뻔히 알면서!」
아무튼 이건 돌아가는 일의 규모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란 건 분명했다. 그래서 그는 잠깐 공상도 했다가, 자기가 사무실에서 대체 어떤 일을 하고 무슨 생각을 하면서 지냈는지 돌이켜봤다. 그건 이랬다.
10
비밀에 탐닉하는 습관, 허풍에 혹하는 태도, 미지의 동경심을 추적하는 자세. 추리소설에 대실망하고 세상만사에 속고 또 속아도 그 버릇은 좀처럼 버리기 힘들다. 왜냐하면 사람 마음이란 게 원래 쉽게 들뜨고, 흔히 혹하며, 간혹 내 몸에서 공중으로 떴다가 타인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퐁~! 만약 곧잘 그런다면 그건 셋 중 하나다. 첫째 아티스트병, 둘째 상사병, 셋째 난봉꾼. 아! 넷째도 있겠구나. 바로, 여자의 마음! 또 있다. 상남자의 으쌰으쌰. 그건 아닌가? 아무튼 그건 결코 흔치 않은 일. 그래서 우리는 천재적인 악상을 일반적으로 외부에서 찾게 된다. 어떤 생명수를 마시고 무슨 신비론을 믿으면, 엎드려 잘 때 아침마다 몸이 공중으로 30센티미터 뜰 것이다? 귀가 쫑긋쫑긋 기대감이 똘망똘망 눈빛이 초롱초롱! 청순한 임팔라를 눈독 들이는 흑심 명단은 화려한 걸로도 모자라 치밀하게 빼곡하여 빈틈이란 차마 찾아볼 수가 없는 법이다. 따라서 고결한 선망은 무해하고 불가해한 허영심은 삶의 기쁨을 부풀리지만, 결국 인생은 이기주의자들의 다큐멘터리다. 속느냐 속이느냐, (추위에 덜덜) 떠느냐 (사랑의 예감에) 떨리느냐, (타인의 손바닥 위에서 내가) 쥐어졌다 펴지느냐 아니면 내가 직접 쥐락펴락하느냐! 고로 인생이란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절반쯤은 전적이나 다름없다. 단기전도 거의 뻔하다. 뻔하지 않은 반전도 꽤 괜찮은 건 드물다. 더군다나 심하게 남발된다. 물론 고혹적인 인생과 아름다운 사랑, 고르고 또 고르다 향기로운 꽃이 시들어가는 일편단심 순애보랄지 헛똑똑이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럼 뭘 하나! 익히 아는 친구들은 물론 새로운 얼굴은 항상 그의 환심을 사며, JS는 TV만 보면 NC 생각이 났고, 언제나 바나나─망고─사과─오렌지─딸기─포도─파인애플 쩜쩜쩜 과일 생각 뿐인데!
그러므로 그는 이제야말로 정물화를 본격적으로 그릴 시기라고 각성했다. 그가 사무실에 걸어둔 그림, 제목에 마네킹이 들어가는 명화의 모작도 그래서 샀던 것이다. 저 그림 속의 마네킹에게 생명력을 부여해주는 마법사가 되고 싶었으니까. 그래서 그는 마침내 환상론에 대한 구상에 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뭐야, 그림이 바꼈네? 전에 걸 도둑맞았다고 가정하더라도 그건 모작이니까 일단 넘어가고, 새롭게 대타가 등장했는데, 지금 장난해? 그는 이렇게 한마디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아 내가 과연 인생을 헛살지는 않았구나. 그렇다고 다른 분들은 헛살았다는 말이 아니라!」
11
「안녕하세요. 옆 사무실 주인이시죠? 반갑습니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저는 제라드라고 합니다. 보시다시피 하는 일은 행위예술이구요. 아 참 ! 그 특수안경 써보시니까 어떤가요? 멋지죠? 내 그럴 줄 알았어요. 허허허허허.」
오 이런!
아 그럼 여긴 조의 사무실이 아니라 그 옆 사무실이었단 말이군. 저런! 환상극의 생리가 매번 이런 식이면 곤란한데...! 그럼 원래 사랑과 인생과 세상도? 사무실 착각만 해도 받아들여 진정할려면 한숨이 몇 번 필요하니 그건 다음 기회에. 왜냐하면 헛되든 값지든 결과가 실망이든 체념이든 기대와 기다림, 추측, 관망을 빼면 통 재미가 없을 테니까 말이다. 어쨌든 진정한 신비 그 미지의 낙원이 코 앞, 곧 진짜 행복한 세계의 목전에 다다른 줄 알았는데, 아뿔사! 그런데 그 마술사 아저씨의 복귀? 뭐야, 그런데 아저씨가 몰라보게 젊어졌는데?
「안녕하세요. 조라고 합니다. 깜빡 하다가 제 사무실인 줄 알고서 저도 모르게 들어와버렸네요. 실례가 많았습니다.」
「에이 무슨! 제가 진작 초대할려고 했는데 미처 기회가 없었다 뿐이죠. 너무 바쁘셔서 그런지 통 얼굴을 뵙기 힘들더라구요. 허허허허허.」
「그런데 제라드. 전에 제가 알던 그 마술사 아저씨인 줄 알았는데... 긴 듯 하면서 아닌 거도 같고. 아니라고 하긴엔 너무 닮았고. 솔직히 약간 당황스럽습니다. 어떻게 그 할아버지가 갑자기 젊어지신 것인지 무척 의아하군요. 혹시 제가 아는 그분 맞나 여쭤봐도 될까요?」
「아! 일전에 아빠가 신기술을 선보이신 분인가 보군요. 아쉽지만 저는 그분의 아들입니다. 아빠는 새로운 마술을 터득하시기 위해 어딘가로 떠나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아버지와 다른 길을 가고 있구요. 가슴 속에 손을 넣고 어쩌고! 저는 마술 자체를 못합니다. 그렇지만 돈버는 재주가 조금 있어서 이처럼 꼭 하는 일이 뭔지 의심스러울 만큼은 여유롭게 산답니다. 허허허허허. 방금 특수안경을 써보시니까 어때요? (벽면의 버튼을 누름) 안경을 벗어도 이렇게 어두운 상태에서 파란색 레이저가 보이게 할 수도 있죠. 그렇다고 레이저 때문에 인체가 손상되거나 그러지는 않습니다. 그 옵션은 꽤 비싸더라구요. 물론 살짝이라도 건드리면 (딩동~) 이처럼 제 핸드폰으로 바로 연락이 오죠. 당연히 파란색 레이저를 안 보이게 할 수도 있구요. 그러니까 지금 이 마당에 궁금한 건 두 가지시군요. 첫째, 대체 왜 이런 쓰잘데기 없는 기기를 여기에 설치했냐, 뭐 값나가는 보물이라도 있냐. 둘째, 이 파란색 레이저 시스템의 가격은 얼마냐! 첫째에 대해서 말씀드리자면 첫째는 차차 우리의 친교가 돈독해지면 그때 가서 알려드리죠. 너무 쉬우면 재미없지 않습니까. 허허허. 그리고 둘째는 저거 얼마 안 해요. 네. 그럼요. 단돈 십 만원입니다. 허허허. 제 사무실에 신기한 게 정말 너무나도 많은데 하나씩 구경해볼까요?」
「아, 너무 일찍 진도를 빼는 건 저도 썩 어색하군요. 손도 잡고 백허그도 하고, 미술관이랑 동물원도 같이 가 보고 싶어요. 아 물론 그러고 싶은 숙녀 명단이 공책 세 권이라 그 말씀입니다. 허허허허허. 아무리 저급할지언정 농담을 진담으로 받아들이시면 사정 참 딱하게 급변하겠죠. 허허허허허. 뭐 어쩌다 저도 벌써 형씨의 가짜 웃음을 따라하고 있군요. 제가 원래 따라하는 걸 좋아하기는 했지만 이렇게 서둘러 흉내내는 정도는 아니었는데. 아 이거 정말 무척 당황스럽군요. 실은 독학 그만둔지 한참 됐거든요. 그런데 선생께서는 왕년에... 과거가 잘 보이진 않는군요. 허허허. 오늘의 기는 이미 어디서 다 빨려버렸나 봅니다. 허허허. 어쨌든 우리는 초면인데, 그런데 설마 절 풋사랑만 좋아하는 한량으로 보시는 건 아니겠죠?」
「그러니까 뻔트로 롱런하기? 성급한 사랑은 오히려 제 전공입니다. 허허허허허. 이거 이거 당숙과 몇 마디 나눠보니 꽤 말이 통하는 거 같군요. 뭐 아무튼 그렇죠. 심심한 발단과 궁금한 전개도 없이 미완의 절정? 재미없죠. 굳이 제발로 오겠다면야 마다하진 않겠지만 말이죠. 허허허허허.」
조는 마술사 아빠의 아들인 제라드와 헤어진 다음 두 가지 일을 했다.
첫째, 사무실에 명패를 달았다.
둘째, 파란색 레이저 기기의 가격을 알아봤다.
그러고 보니 조의 사무실은 몇 호실이다, 사무실 이름은 뭐다 그런 게 없었다. 그래서 이참에 B라고 간략히 정했다. 임시로 정했을 수도 있고 한동안 변치 않을 수도 있다. 그건 중요한 건 아니고 왜 그렇게 즉흥적으로 이름을 지었냐, 에 대해서 알아보자면 이와 같다. 그는 뭔가 반투명한 예감이 거의 적중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건 무엇이냐면 친구들과 좋은 듯 싫은 듯 유지하고 있는 아지트 베를리오즈가 얼마 안 가서 문 닫을 것 같다는 예상이었다. 결말은 거의 가까이 온 거나 다름없었다. 실제 아지트가 존속한다, 사라진다에 내기를 할 필요까지는 없을 것이다. 다만 가짜 이름을 대충 짓듯이 그는 책상 위 작은 달력을 쭉 찢어서 흰 면에 B라고 써서 사무실 문짝에 붙였던 것이다.
그리고 둘째에 대해서는 3군데 공산품 판매장에 직접 방문해서 알아봤다. 그건 제라드의 얘기와 달랐다. 제라드가 농담했는지 어쨌는지 0을 하나 빼먹은 듯 했으니까. 그러니까 그게 얼마 안 한다고? 단돈 십 만원이라고? 알아보니 그건 백 만원이었다. 그것도 최저가가. 나머지는 모두 거기서 0을 하나 또 붙였다. 말하자면 최저가라고 할지라도 적당한 위스키 한병 값이 아니라 노트북 한대 값. 그는 괜히 알아봤다고 생각했다.
그 후 일주일 경과.
그들의 아지트 베를리오즈는 정말로 그 시점으로 프로젝트는 종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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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예비하고 사랑을 기다리며 열정을 아끼기. 그렇게 정작 내일의 행복을 추측만 하다 설레는 기대는 제풀에 지쳐 낙담하기? 차라리 그럼 다행이게? 반-재산을 탕진하기는 어제로 충분했다. 그러니까 오늘은 달라야 한다. 그러나 또 달콤한 예감이 발목을 잡네? 이걸 베팅을 해, 말어! 그런데 알고 봤더니 재산 목록 1-2-3호 모두 변변치 않음. 한밑천이었던 멋진 인생에 대한 기특한 열망도 이제는 흐리멍텅함. 그래서 때를 기다려야 할까? 하지만 파랑새가 어깨 위에 앉고 행운의 구름을 탈 기회가 어디 자주 오나! 큐피트와 솔로몬은 우군이고 아르테미스도 비너스도 모두 내게 사모의 손짓을 할 때까지 기다려야만 할까? 그러니까 플레이보이의 3박자는 청신호가 아니었고, 결정적으로 그는 플레이보이 그림자 언저리에도 못갔다. 그렇다고 벌써 절망을? 그러기엔 그동안의 시도와 방황과 고민도, 공상마저 아까울 뿐. 곧 인문교양적 단념도 문학적 무모함도 여의치 않다면 타협책은 있다.
따라서 후궁은 뻔트다. 못 먹는 감 찔러나 본다고, 그건 곧 새로운 시도. 그렇게 열의를 다 바쳐 헤밍웨이의 노인이 놓쳤던 대물을 딱 거의, 정말 거의, 조금만 더 거의 잡을 듯한 중요한 순간! 그런데 막판에 죽 쑤어 개 주는 일이? 이런, 젠장! 그래서 그는 다 됐고, 딱 정직해지기로 했다. 스스로에게 솔직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막살지 않는 한도 내에서, 하고 싶은 일과 좋아하는 꿈의 간곡한 부탁을 모른 체 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그래서 1차 시도한 결과는 무엇일까? 그건 바로 친구들에게 연락해서 뭐 도와줄 일이 있나 없나, 확인하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아지트 베를리오즈는 문을 닫았지만 대타 생활의 습관 때문에 뭔가 너무 허전했기 때문이다. 속고 또 속고 구워삶아지고 구워삶아지다보면 습관이되고, 생활로 정착하며, 그러다 인생이 된다. 사랑이 시작된 건지 끝난건지 거 어째 그런 뭐랄까, 어찌 딱 정확히 설명하기 힘든 그런 심정 있지 않나.
「핀. 나 뭔가 허전한데 혹시 나만 그럴까? 어차피 오래 가지 못할 거란 거 모두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막상 없으니까 왠지 짠해. 넌 안 그래? 어 안 그래, 라고만 답하지 말아줘.」
「조.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안 그래도 전화 할려고 했는데, 연락을 받았으면 답을 줘야 할 꺼 아니야. 애들이 핸드폰 메신저로 연락도 하고, 전화도 했고, 또... 찾아가진 않았네. 뭐야! 수소문하고 어쩌고 그거 다 뻥이었어? 의리 없는 놈들 같으니라고. 우정이네 뭐네 그래도 전화 안 받으면 끝이란 말 아니야? 그렇다고 쫓아다니면 귀찮아 할 테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는 말이네? 이 시대의 사랑은 그처럼 너무 멋이 없어. 기다릴 줄 몰라. 전부 타석주의라고. 남의 집 잔치는 일정조차 잡히지 않았는데, 너도 나도 모두 다 숟가락 올릴 궁리만 하고 있는 식이지. 안 그래? 제라늄에게 마음이 있으면 의사를 타진하고, 취향을 비교해보며, 연애의 줄거리를 추론해봐야 하는데, 오래 기다리며 그리움을 애틋하게 키우면서 말이야. 그런데 그러기도 전에 남남이 된다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곧바로 제 갈길 가는 거야. 이미 전부터 프리지아와 들국화는 물론 들장미까지 후보군에 있었으니까. 없어도 어떻게 만들고 어디 가면 쉽게 만나. 1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라면서 떠들석한 헤드라인 뽑더래도 팬들이 거포를 진짜 좋아하는 건 아니라고 봐. 다들 뻔트, 대타, 2군, 차선 등등 다 속으로 딴 생각만 하고 있어. 왜? 왜냐하면 플레이보이의 3박자 그 규모가 옛날과 비교도 안될 만큼 커졌으니까. 그런데 내가 지금 널 벌 세우고 뭔 얘기를 하고 있지? 내 정신 좀 봐!
아무튼 어서 우편함이나 확인해 봐. 저번에 말했던 회원제 아지트에 우리 모두 초대 받았으니까. 아 뭐해 이 친구야? 정신 차려. 그날이 바로 오늘이라니까!」
뭐야 이거! 이제 진짜로 미칠듯이 즐겁고 너무도 재밌고, 도대체 그곳은 어떤 신비감을 아름답게 포장하는지 궁금했던 그들만의 잔치. 그 회원제 아지트라는 축제의 현장에 초대된 것이다. 가장 행복한 시간은 바보 상자와 노는 때, 배보다 더 큰 배꼽인 보너스는 인터넷이라며 가택감금을 합리화했던 발단은 드디여 판이 다른 사교계로 진출을 앞두고 있었다.
진짜로 그곳은 어떤 사람들이 모인 곳일까? 정말로 8 대 2 가르마에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올 것 같지 않은 덩치 큰 아저씨들이 지키고 있을까? 알고 보면 그분들도 수트발에 기세만 그런 건 아닐까? 어떻게 애들한테 말해서 그분들 신상 명세를 말하게끔 유도해볼까? 아니면 내가 직접 호기를 부려서 살살 긁고, 방방 나대며, 뻥뻥 웃음을 터트리다가 살짝 깐족으로 건드리면! 그러니까 한번은 이타심을, 한번은 자존심을, 또 한번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던 운명적인 꿈의 좌절에게 팔짱 끼기. 그처럼 꼭꼭 숨겨두었던 속마음을 어떻게든 끌어내볼까?
조는 벌써부터 헛바람이 잔뜩 주입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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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일하기에 다정했고 놀기에겐 무례했다. 오히려 형편이 그에게 무정하다고 해야 옳겠지만 아무튼 꿈은 현실에 무심했다. 그리고 허세와 허영심은 친하지 않았고 서로 불편해했다. 때문에 남은 건 불쾌감, 심심함, 우물쭈물하다가 미스터 막살라조차 만나지 못했다 라는 묘비명을 공상하는 것뿐. 고로 그는 성과가 빈약할 수 밖에 없었다. 사랑은 바보에게 유리할 수도 있는데, 곧 행복한 일하기는 둔재에게 불친절했다. 그러니까 채찍만 남고 당근은 대체 어디로 갔을까? 너구리에게 빼았겼을까, 다람쥐가 가로채 갔을까! 줄이 달렸을지라도 황금 같은 치즈를 구경이라도 해 봤으면. 하긴 그가 살면서 추구했던 노선은 늘 그랬다. 이기고 기분 좋고 살짝 미안해하기 보다, 지고 기분 나쁘고 속 편하기. 합리화하고 띄워주며 트로피를 거머쥐어도 마땅찮은 이 마당에 할 말은 아니지만─아니지만? 뻔트면 대만족 아닐까!─지면 당연하고 이기면 행운이다? 밑져야 본전이라고 좋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달리 말하자면 절실함을 반틈만 거는 열망은 비겁한 거다. 다른 말로 맥없는 인생. 번역하면 꿈은 없다?
맙소사!
그래서 그는 이번에는 달리 가기로 했다. 작게 걸고 작게 잃는 뻔트보다 왕창 걸로 왕창 따는 한방으로! 왕창 걸면 왕창 잃을 수도 있다는 걸 왜 모르겠냐마는, 모험이란 게 별건가. 그래도 그러다 진짜로 훅-가면 어떡하지? 그런 소심함과 순진함 때문에 혹시라도 짜리몽땅할지도 모를 명검을 검집에서 슥 뺄려다가 다시 넣었다. 살짝 폼만 잡다 만 것이다. 그런데 무엇에 대해서? 저런! 악역도 모르고, 작전은 없고, 목표마저 없다라! 대략 난감하다. 한숨이 다 나온다. 이러다 뭔가 불길한 까마귀 울음 소리라도 듣는다면 기분 싸해지다 못해 괜히 슬퍼지는 거 아니야?
그래서 그는 더 심심해지기 전에 미리 선수치기로 했다. 바로 사설 클럽에 놀러가는 것. 괜히 예비 후보를 가만 놔두고서 엄한 데서 괴물 신인을 찾았구만 그래. 어쨌든 회원제 아지트에 초대 받았는데, 이미 잔칫상은 차려진 거나 다름없었다. 멋진 영화에 나오듯이 너무 아름다운 예식에 참석한 다음 집으로 돌아오면서 차 안에서 남녀가 짧게 한마디씩 하게 될지도 모르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였다. 비교되던 어쩌던 알고 깨우치며 믿음이 다가 아니란 걸 느껴야만 했다.
조는 그곳으로 서둘러 출발했다.
조는 회원제 클럽에 도착했다.
입구에는 정말로 와! 결코 허술하지 않은 전문 보디가드 몇 분께서 떡 하니 버티고 있었다.
그래서 뭐 어떻게 어떻게 까다로운 진입 과정을 거친 다음 파티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들어간 다음 어떻게 놀고 무엇을 구경했으며 왜 놀랄 수 밖에 없었나, 에 대해서 간략히 요약하자면 이와 같다.
한마디로 그곳은 기대 만큼은 아니었다. 똑같은 사람이고 똑같은 형식이지만 단지 좀 더 세련되고, 살짝 우아하며, 조금 고상할 뿐. 월등하게 근사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둘 중에 어떤 물에서 놀고 싶냐 라고 사람들에게 고르라고 한다면 답을 굳이 듣지 않아도 될 테고.
무엇보다 저번에 누가 그랬나. 고전음악 그것도 실내악을 생음악으로 연주하네 어쩌네? 그런 데도 있겠지만 여긴 오늘 어떤 기획 때문인가는 몰라도 음악이 중간에 멈췄다. 흔히 아는 클럽 음악이 하나, 그리고 파란색 레이저 쇼와 함께 하는 영화음악이 다른 하나. 그랬다.
그런데, 어머나!
조는 자기 옆 사무실에 입주한 제라드와 꼭 빼닮은 사람을 보게 됐다. 자기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그는 제라드거나, 또는 내가 취했거나! 둘 중 하나였다. 그렇더라도 아무리 봐도 그는 너무나도 비슷했다. 그러니까 파란색 레이저와 제라드라...! 이건 정말 예사롭지 않은 전개였다. 그건 어쩌면 믿음직한 수확일 것이다. 별볼일 없는 뻔한 오락성만 성행하는 현실에서 유달리 신기한 환상의 기별이? 나중에 속든 당하든 몇 푼 잃든 어쩌든, 지금은 짜여진 각본에 시달리고 봐야 했다. 그게 옳았다. 그는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게임에 꽉 붙들렸고 자기도 모르게 그 기묘함에 스며들게 되었다. 그러니까 어쩌다가 자기도 모르게 동화되어 버린 이건 뭐랄까, 막판의 반전이 단단히 일러주는 힌트였다. 그럼 힌트가 날 안아주세요 하면서 알몸으로 구애하는데, 그걸 모른 체 한다? 그건 행운아의 임무를 방기하는 셈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이 바로 뻔트를 댈 차례인 것이다. 그것도 최적의 시기이자 절호의 찬스! 그래서 환희에 도달하면 좋고, 만일 허무를 부화한다면 묵묵히 받아들이면 그만이며, 하다 못해 확실한 줄거리를 깨우친다면 그 또한 꽤 괜찮은 서곡과 본극일 것이다. 그래서 그는 심하게 흥분하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대체 왜 일이 이렇게 진행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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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줄거리를 간추려보자면 이렇다.
아지트 베를리오즈의 당번을 서로 미뤘다. 그러다 나는 대타 전문 요원이 되었다. 그런데 누가 중간에 끼어들었다. 그 정체불명의 조커는 조이스틱을 쥐고 있다. 그래서 그는 삐에로가 된 척 연기하며 이 납득이 어려운 작전의 설계도를 미리 상상해봤다. 따라서 리모콘은 조가 쥔 셈이 되었다. 그런데 그 브로커는 예상보다 강력한 상대다. 그러다 사무실에서 한번 속았다. 그것도 제대로 속았다. 그리고 제라드를 만났다. 그렇게 1막은 마감했고 다시 2막이 이렇게 시작됐다. 그러나 2막부터는 지휘자가 바꼈다? 그는 제라드일까? 그러든 어쩌든 지금은 이래야 한다. 저번에 아지트 베를리오즈에서 괜히 잔머리를 굴리다가 사무실로 가서 깜빡 속았지만, 이번에는 한번 더 꼬아야만 한다. 앞서가야 한다. 그래야 한다. 따라서 그는 결론을 내렸다. OK!
자, 이번에는 폐막한 아지트 베를리오즈로 가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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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는 문 닫은 아지트 베를리오즈에 도착했다.
외관상 특별히 이상한 점은 포착할 수 없었다. 그런데 소리가 안 들리고, 불빛이 없었다 뿐이지 내부에서는 뭔가 요란스레 파티가 열리는 듯 했다. 꼭 그건 뭐랄까 바쁘게 수화로 의사소통을 하고 자기들끼리 막 폭소를 참고 히히덕거리는 것만 같았다.
그는 별안간 아찔해졌다. 얘네들은 내 친구들인데, 앞서 사설 클럽에서 함께 놀던 친구들은 뭐지? 그는 끽소리 없이 불안감에 휩싸였다. 그는 그럴 의도가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공포감을 붙잡게 된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결말의 실마리는 멀고도 멀었다. 어떻게 하지?
다시 한번 몰래 바깥에서 그들을 관찰하니 이번에 새로운 뭔가가 보였다. 얘네들의 시선이 정상적이지 않고 촛점이 흐렸던 것이다. 게다가 모두 티셔츠를 입고 있는데, 티셔츠 중앙에 정사각형으로 그림이 있었다. 저번의 환각 증상이 기억났다. 심지어 그는 갑자기 자신의 허벅지에 미세한 통증을 느꼈다. 설마, 앞뒤 하나도 안가리고 맨살이 대리석을 바뀔려고 그러나? 그는 켄타우루스도 아니고 그리핀도 아니었다. 그러니까 당연히 광마도 광견도 아니었다. 그런데 저 좀비 같은 인물들은 대체 뭐고, 내 다리의 통증은 또 뭐란 말인가! 뭐 하나 뚜렷하게 이해할 수도 없었고, 뭐 하나 속 시원히 설명이 가능한 일도 없었다. 좀 전까지만 해도 사설 클럽에서 이국적인 정취 하며 분위기 좋았는데, 왜 갑자기 장르가 바꼈버렸을까? 게다가 주인공은 조. 그런데 조연도 없고 너무도 쓸쓸했다. 이 사건을 해결하지는 않아도 된다. 그러나 뭐가 뭔지는 알고 넘어가야 한다. 그걸 가능하게 할 희귀한 소질은 내게 없다. 고로 조는 조력자를 필요로 했다. 평범한 운명 그런데 남다른 사랑,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라 3막이 어떻게 되던 어쩌던 그는 브로커 제라드를 끌어들일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조는 서둘러 자기 사무실로 피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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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사무실에 도착했다. 옆 사무실에 제라드도 있었다. 그는 다짜고짜 제라드에게 말했다.
「제라드. 같이 갈 데가 있어요. 같이... 가 줄 거죠?」
「네? 지금 저와 고스터 버스터즈 놀이를 하자는 겁니까? 못할 거도 없죠!」
물론 처음에 살짝 의심이 들긴 했다. 여기의 제라드와 사설 클럽에서의 제라드는 동일 인물인가 라는. 아마도 둘 중 하나가 분신은 아닐 것이다. 뿐만 아니라 당연히 순간 이동도 아닐 테지. 그렇다고 조가 유체이탈을 해서야 쓰나. 그는 일단 제라드와 한편이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그는 제라드와 함께 아지트 베를리오즈로 갔다. 물론 조는 속으로 뭔가 믿는 구석이 있었다. 아무리 자긴 아니라고 해도 제라드도 마술사 아빠의 2세다. 따라서 썩어도 준치란 말이다. 그래서 뭔가 이 받아들일 수 없는 사태에 대한 어? 납들할 만한 설명. 가슴을 뻥 뚫어줄 만한 진단. 막힘없는 해법. 사뭇 존경스러운 복안. 그 동안의 재미없음을 충분히 만회할 수 있는 그 뭔가를 꺼내놓을 것이라고 굳건히 믿었다. 그 무언가가 아무리 말도 안되는 황당한 설명일지라도 그는, 그걸, 받아들이기로 했다. 세상의 비웃음쯤은 두렵지 않았다. 이 안타까운 심정이 애절하다면 그건 해피엔딩을 부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그들이 아지트 베를리오즈에 도착해서 어떤 비밀을 알게 됐을까?
결과야 어떻든 제라드에게 자기중심주의에 대한 일종의 반작용은 흑마술이 아니라 장비였다.
곧 그는 특수안경을 챙겨간 것이다.
제라드는 조에게 특수안경을 주었다.
그는 특수안경을 쓰고서 아지트의 내부를 살폈다.
그걸 착용한 채 내부를 보니 다들 어두컴컴한데 음악도 없이 춤을 추고 논다니. 정말 이상한 건 어떤 원리인지는 몰라도 미러볼과 정반대식으로 작은 여러 개의 불빛이 개개인을 비추고 있었다. 그런데 그 불빛은 파란색 레이저가 아니라 빨간색 레이저였다. 바로 우리가 영화에서 숱하게 봤던 바로 그 불빛.
「아시겠어요?」
「...」
「봤죠?」
「뭐죠?」
「뭐긴요. 좀비지!」
「됐다 그래.」 라고 조는 말할려다가 손으로 자기 입을 틀어막았다. 말소리를 듣고 좀비가 쫓아오면 어떡하나. 또 제라드의 헛수고를 실망시키면 어떡하나. 그래서 이렇게 말했다.
「그렇군요!」
좔좔좔. 제라드는 입에 침도 안 바르고서 이상한 얘기만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렇게 계속 놀자고? 시작은 그가 했지만 제라드는 본론을 즐기고 있네? 결국 조는 외롭게 혼자서 속으로만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결론만 요약하자면 그분들은 좀비가 아니다. 또 조가 사설 클럽에서 착각한 일 때문에 괜히 자기 친구들의 분신이 여기서 노는 줄 알고 괜히 제라드를 끌어들인 것이다. 다시 말해 아지트 베를리오즈는 이미 사무실 주인이 바꼈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이 파티를 열고 있었다. 아 나 이런 진짜! 뭐 그가 제라드를 데려오기 전에 혼자서 그들을 볼 때 뭐 어쨌다고? 얘네들의 시선이 정상적이지 않고 촛점이 흐렸던 것이다? 원래 사람들은 술 취하면 긴장감이 풀리면서 자연스럽게 그처럼 된다.
그러나 하나의 의문은 남았다. 예전의 그 당번 대타는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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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사무실에서 일기를 썼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사탕발림 악마의 꾀임은 광고다. 오락산업의 유혹을 참아내느라 고생한 당신, 에메랄드빛 해변으로 떠나라? 어쩜 마지막에 딱 속아 넘어가는 게 더 바보란 말인가! 그런데 부뚜막에 먼저 올라가신 얌전한 고양이님의 인생론을 들어보자면 꼭 그렇지는 않음. 사적인 허세와 공적인 농담은 살짝 다른 거니까. 그렇듯 천국과 지옥 외에 연옥도 있고, 영화에는 시간 여행이 있다. 그러나 내 인생에서 손꼽을 만한 환상과 기막힌 전개는 아마도 드물 것이다. 정말로 거의 없다. 있어도 절반은 뻥이고 대부분 과장이다. 그처럼 현실에서 신비를 원하는 것보다는 기대치를 살짝 낮추는 게 낫다. 그처럼 현명함은 비싸지 않다. 다만 쾌락이 강할 뿐. 그런데 축제의 노래는 흥겹고 분위기 좋은 장미꽃밭은 날 애타게 기다리는데, 친구의 기분을 외면하는 것도 말이 안된다. 그건 정녕 로맨티스트답지 않은 일. 그래서 우선 배짱이처럼 놀고, 과연 내일도 또 놀 것인가는 그 다음에 봅시다? 당장 기쁘고 행복할 수야 있겠지만, 그러나 그것도 심심함의 고급 해결책과 인생의 비밀은 아닌 것 같다.
따라서 나는 사랑과 우정이라는 익숙함보다 지금은 환상극이라는 허구의 새로움을 추구하기로 했다. 그럼으로써 기대할 수 있는 직접적인 실익은 이를 테면 품위 유지비의 발생이다. 또 분홍빛 예감 같은 간접적인 효과는, 뭐랄까, 복리랄지 아마도 플레이보이의 4대 요소일 것이다. 말이 난 김에 하는 말이지만, 별반 나을 것 없는 사교보다 어쩌면 행복한 일하기가 세간의 구설수에 오르는 최적의 방법일 수도 있다. 그런데 알고 봤더니 나는 해도 해도 무명에 내가 만든 극 중에서 주인공은 무능, 무도장은 폐업? 보아하니 말을 타기는 탔는데 뭔가 잘못 탄 거 아닌가! 근사한 문학마인 줄 알았는데 알고 봤더니, 오오, 아티스트병에 걸린 걸로도 모자라 상태가 몹시 안 좋은 조랑말? 심지어 치유 불가 치료 불능! 나는 단지 허풍대회에 재미로 참가하고자 했는데, 출전하고 봤더니 글쎄 로데오 경기? 거 참 나 미치고 환장하겠구만 그래. 그래서 세상에서 하는 말이 최대의 기쁨은 뻔트고, 지금이 좋을 때라고 한다. (물론 후자는 익히 아시겠지만 전자는 글쎄요...!)
자, 우리의 어려운 결심이 과연 흥미진진한 호시절인지 아닌지 탐구하며 알아보는 노력은 최소한 해 봐야 하지 않을까? 지금 몰입하는 할 일, 좋아하는 취미, 하고 싶은 할 말, 신경써도 별거 없는 핸드폰, 기다려지는 일정, 멋내고 꾸며봐야 그만그만한 자화상, 예뻐할 새로움을 찾기, 뻔한 만남 지겨운 일상 등등등. 아무리 그래도 천상의 기쁨보다 지상의 인생이 적어도 더 극적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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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는 집에서 칼럼을 썼다. 제목은 정하지 않았다. 내용은 이렇고.
행복한 미래를 꿈꿈으로 우리는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어제라면 구리빛 자랑 은색 겸손을, 오늘은 금빛 내일을 향한 열망을! 따라서 낙관주의란 그런 것이다. 눈부신 대어는 언제나 상상 속에서 현존하고, 소 뒷걸음질 치다 쥐 잡을지도 모른다는 점. 고로 건강하고 밝고 자신감 뿌듯한 긍정은 장밋빛 인생과 부합하는 태도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세상살이 내 마음과 같기는 결코 쉽지 않은 법. 마침내 영화로움 끝장인 영원한 사랑에 사뿐히 안착했는데, 그런데 그때서야 여복이? 아니 그럴 꺼면 풍년이 내게 좀 일찍 오든가, 아니면 환상마─신비마─낭만마─교태마─그냥 애마 등등 헛것에 현혹되지 않던가! 하지만 그건 배부른 투정. 왜냐하면 그러니까 늬가 여자가 없는 거야 그러니까 늬가 안되는 거라고, 라는 말을 곧잘 들을 것 같은 사람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럴 만 하니까. 뭐라고?
뭐가 어쩌고 어째?!
그러므로 세상만사 우리네 인생은 스피노자의 사과나무가 있는 반면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도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그러니까 천운보다 노력이 선행되는 게 좋고, 어복보다 물 들어왔을 때 노를 젓는 '일복에 대한 성의'가 먼저일 것이다. 그렇다고 복잡하니까 난 다 모르겠고, 난 내 마음대로 할 거야? 자칫 잘못하면 그분께 딱 발목 잡힐지도 모른다. 쉬쉬하는 가운데 어쩌다 저명해지신 그분의 존함은 바로, 쾌락마! 짜잔~! 그래서 얄밉지만, 아쉬우니까, 숙녀에게 천사표라는 말을 실제 들어본 친구에게 조언을 구한다? 그럴 꺼면 그분은 진작 클라우드 나인에 입성하셨을 테다. 그렇게 해서 야망을 성취할 수 있다면 대체 뭐가 문제겠나. 자질부터 속 좁은 남자는 많은 반면 말이 통하는 남자, 뭘 좀 아는 남자는 눈 씻고 찾아봐도 안 보이니까 그럴 수 밖에. 그래서 남은 형편은 이러함. 자존심 고급, 어설퍼도 허세는 상급, 허풍은 미완성, 허영심은 여성잡지와 드라마를 양쪽에 궤차기!
고로 사랑의 비밀과 인생의 마법은 본인 스스로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안 그런가? 인문교양서에 나오는 얘기는 다 거기서 거기, 유명인들은 태반이 허당에 내가 모르는 지식이 어딨고, 왜 나는 대체......? 워─워─워!
그러므로 우리는 기본부터 다시 배워야 한다. 내가 최고라고 생각했는데 최고는 무슨! 그래서 오늘부터 손글씨로 일기를 쓰고, 소셜 네트워크에서 노는 힘을 덜어 블로그 운영하기. 글이라면 고전을 읽고 말이라면 우리는-화법을 터득하기. TV는 채널만 잘 돌릴 게 아니라 끄고 켜기를, 곧 치고 빠지기. 무엇보다 NC는 '이 밤을 찢어버리자' 라는 자세로 입장해서는 곤란함. 그 심정 충분히 이해하지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걸 어른들이 모르면 누가 알겠나. 신부들러리들의 축제란 바로 그런 거니까. 기쁨의 아리아가 울려퍼지고 가면을 쓰며 축배를 드는 사교 클럽이 진짜라더라? '여심이란 무엇인가'는 진짜로 화초를 키워보면 깨닫게 된다. 크든 말든 방임하며 나만 막 놀기 바쁘면 화분은 꽃을 피우지 않는다.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라고도 하는데, 하지만 그건 나중 얘기고 화병이 꽃을 먼저 쫓는 것이다. 연애는 꽃이 줄 달린 치즈로 화병을 유혹하는 격이다. 그렇다고 사과가 뉴튼을 만나기는 쉽지 않겠지만. 그러든 어쩌든 고수는 호박을 제발로 움직이게 만드는 피리 부는 사나이! 하수는 에너지 낭비 돈 낭비, 우정도 사랑도 그만그만에 독박 쓰기? 그야 뭐 짚신도 제 짝이 있고 각자 숙명을 위해 노력할 뿐. 그런데 잠깐만. 뭐야 그럼 값비싼 정물화는 큰 의미가 없는 건가? 드물게 가짜도 있고 그래서 모조품도 흔한 건가? 과일은 꼬리가 아홉이듯이, 꽃병 위에 꽃 아니냐 이 말이다. 그러니까 어르신께서 애첩이 즐비했던 사극을 즐겨보시는지도.
어쨌든 속성 숙달도 좋고 천재의 독학도 대단하지만, 기본이 최고다. 남자는 폼이라는 둥 인생 한방이라는 둥? 그건 한마디로 농담이다. 행운의 여신도 기본을 찾아다니시는 것이다. 메트로놈, 쨉, 가랑비, 일과표, 슬로건, 마음가짐 같은 것. 사랑도 행복도 그분들을 결코 싫어하고, 싫증내며, 실망시키지는 않는 법이다. 단, 여간해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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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리와의 인연은 무도회에서 시작되어 몰래한 사랑으로 발전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녀와의 우정을 사교계에 나가 낙관론을 펼칠 만큼 자랑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녀와의 연정을 이미 비비안에게 발설해버렸고, 비비안과의 친분을 릴리한테 떠벌린 거나 다름없었다. 고로 그녀들끼리의 친교가 내게 어떤 불이익을 가져다줄지 나는 너무도 궁금해서 견딜 수 없었다. 정말 알고 싶어서 참을 수가 없었다. 왜 그런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그러나 결과만 말하자면 릴리와 비비안은 단짝이 됐다. 설마 릴리는 비비안에게 홀딱 빠졌고, 비비안은 릴리에게 첫눈에 반해버렸을까? 누가 알겠나! 그와 별개로 내가 받은 카드는 무관심이었고, 난 결국 낙동강 오리알 신세로 전락했다. 꼭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생각은 없었다. 그렇다고 다 된 밥에 코 빠트리는 일도 아니었다. 그런데 결과는 막상 두 마리 다 놓친 거나 다름없었다.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다 나의 인생관은 아직도 제대로 정립되지 못한 거였다. 그것만 보자면 나는 철들지 않은 게 분명했다. 때문에 적어도 재밌기라도 해야 했다. 하지만 처한 형편과 열띤 반응은 꽝이었다. 철들지 않기에 대해서는 성공했는데, 뭔가 잘못 성공한 거다. 빙고! 따라서 나는 진짜로 철들지 않은 친구들과 어울릴 수 밖에 없었다. 요컨데, 비록 한심하다 할지라도 으쌰으샤 말이다. 그래서 나는 한동안 릴리와 비비안을 피해 다녔다. 릴리와 비비안이 나의 빚쟁이도 아닌데 말이다.
그러나 나는 릴리-비비안 단짝과 거리두기에 여지없이 실패해버렸다. 왜냐하면 음악 페스티벌에서 그녀들과 딱 마주쳐버렸기 때문이다.
「어머 이게 누구야? 오빠! 우리가 가자고~가자고 조를 땐 안간다고 했잖아? 딱 잡아 뗐잖아. 무정하게 말이야. 오빠가 어찌 그럴 수 있어? 어머나, 그런데 어떻게! 말씀 좀 해 주시지요! 뭘가 설명이 필요할 듯 하지 않나요? 이 오빠 혹시 허언증? 친애하는 오빠가 우릴 따돌릴 거라는 걸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오빠 왜 그랬어? 응? 양심에 찔릴 것 없는 꽤 괜찮은 명분이나 그 흔한 핑계라도 대보란 말이야. 응? 당연히 그래야 하는 거 아닌가?」
「아, 그게 말이야. 음, 그러니까 그게 있지. 어, 내 말은 뭐랄까... (딱) 아 그래. 다시 갈려고 스케쥴을 조정한 다음 전화를 했어. 바로 전화를 했다고. 가방이라면 몰라도 오빠가 콘서트 표를 살 마음은 있었거든. 그래. 정말이야. 믿어줘. 절대로 거짓말이 아니야. 진짜라구. 응? 오빠 알잖아!」
「전화 안 왔는데. 넌 전화 왔니?」
「아니. 하지만! 굳이 잘잘못을 가릴 필요가 있을까?」
「아! 있잖아. 응? 있잖아 조금 전에 말이야. 난 너네들을 못 알아봤어. 왜냐하면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지. 물론 전에도 그 아름다움은 유명했지만, 소문이 자자했으니까, 우리가 서로 뜸한 사이에 어떻게 저렇게 예뻐질 수 있지? 막 그러면서 이건 분명 환상은 환상인데, 뭔가 잘못 구현된 환상이라고 판단했거든. 응? 정말이야! 게다가 얘네들이 날 비밀 정보원쯤으로 알면 어떡하지? 라는 걱정. 오해하면 어쩌나 싶은 심려. 그래도 조금은 친했는데 멀어지면 어떡하나 싶은 근심. 응? 겨우 이만큼 친해지는데 그 얼마나 가슴 조렸는지 알기는 아니? 그런데 내가 어쩌다 이렇게, 어? 한심하게도 구차한 변명이나 늘어놓는 시시한 남자가 되버렸지? 이건 완전 전에 없던 일인데.」
나는 제대로 수모를 당했다. 어떻게 둘이 그처럼 친해졌냐고 추궁할 수도 따질 수도 없었다. 왜 오빠 마음을 흔들었냐고 힐난해서도 안되는 일이었다.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녀들의 싱그러움을 치켜세우는 것뿐. 달리 내가 낭만을 지지하겠나, 나의 어떤 억울함을 호소하겠나. 그처럼 나는 그녀들의 시중을 들 수 밖에 없었다. 어떻게 보면 내가 잘하는 일이자 좋아하는 일은 바로 그것 아니었을까? 제발 아니기를! 그때 그때 다를 테니까. 그래서 난 깨달았다. 아, 1 대 1로 만날 때가 호시절이었구나 라고. 그처럼 내 기분은 완전 그것이었다. 용용 죽겠지!
「우린 오빠가 꽃다발이라도 들고 나타날 줄 알았는데. 완전 의외인데! 조금은 실망이라고. 그치?」
「응. 그래 그래. 정말 그래.」
「오빠는 어쩜 낮이 아니라 밤에 만나야 하는 남자일까?」
「오빠한텐 외람되지만 알 건 알아야 하니까. 너 혹시 나 몰래 오빠 만나...지는 않았지? 에이 설마!」
「뭐가 설마야? 그러니까 네 말은 내가 낮에 널 만나고, 밤에 오빠를 만났다?」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라」
「아니긴 뭐가 아니야? 얘가 얘가 누굴 멍청이 바보로 아나?」
「뭐-뭐, 뭐가 어째?」
「뭐가 어쩌긴 뭐? 딱 보니 날 바보 멍청이로 보는 거네. 누가 모를 줄 알아? 얘가 보자 보자 하니까」
「뭐-뭐라고? 너 말 다 했니?」
나는 안 그래도 옐로카드를 받은 거나 다름없는데, 그녀들의 뾰족한 감정을 부드럽게 달래주지 못한다면 그 다음은... 아 안돼 안돼. 그래서 난 소매를 걷어올리는 시늉을 하며 딱 중재에 나설려고 했다. 그런데!
「오빠. 속았지? 그랬지?」
「속았네. 완전 속았네.」
「아아, 오빠 완전 순진하다.」
「오오, 이 오빠 너무 착한 거 아니니?」
뭐! 뭐가 어쩌고 어째?
남자에게는 성격 좋고, 여자에게는 자상하고 친절하며 다정한데, 그런데 그 남자는 청교도적이거나 가난하다? 우정이 돈독해지는 거야 문제 없으나 사랑이 깊어지면 어떡하나! 걱정이 만약 현실이 된다면 그녀는 인터넷 검색으로 시간을 보낼지도 모를 일. 그러니까 얘네들은 날 진짜 친오빠쯤으로 생각하는 것만 같았다. 이걸 받아들여, 받아들이지 말아? 나는 경건한 마음과 불순한 상상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그런데 다들, 이거 끝까지 볼 꺼야?」
「단체로 왔다면 모를까, 그건 아니겠지!」
「그렇지?」
「그럼. 아, 오빠는?」
「나?」
「오빠. 그러지 말고 우리 오랫만에 당구나 치러 가자. 왠지 모르겠는데 갑자기 당구가 치고 싶어졌어. 오빤 어때?」
「좋은데. 그런데 어떻게 알았어? 난 사실 시끄러운 음악 들으니까, 뭐랄까, 아마데우스나 들으며 가발 쓰고서 당구공이 굴러가는 걸 보고 싶었다고나 할까? 왜냐고? 나도 몰라!」
「그럴 줄 알았어. 나도 딱 그랬거든. 오빤 우리랑 완전 잘 통한다니까.」
그래서 나는 얼렁뚱땅 릴리와 비비안의 조수인 듯 그녀들을 따라서 당구를 치러 갔다.
2
우리가 가까운 당구장에 도착해서 한 일은 좀 유별났다. 당구장에서 따끈한 피자를 시켜먹었고, 카드놀이를 했으며, 차를 마시며 수다를 떨었으니까. 게다가 그곳에선 정말로 쾨헬 152번 쾨헬 525번, 클라비코드로 연주되는 K.545번, 정격연주 버전의 K.550번 같은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얘네들은 이처럼 분위기 고혹적인 사교 클럽을 대체 어떻게 알았던 걸까? 궁금했지만 어떻게 알았느냐고 막상 물어보자니 것도 좀 이상했다. 때문에 물어볼 수 없었다.
「오빠. 있잖아 오빠. 내가 아는 친한 언니가 있는데, 그런데 그 언니가 요즘 외롭거든. 어떻게, 사랑의 다리를 놔줄까? 응? 소개시켜줄까, 소개시켜주지 말까?」
「아 맞다. 그 언니? 나오라고 해. 응? 은근 말이 통할 거 같은데! 안 그래? 그 언니 완전 코메디언이잖아. 몸매는 슈퍼모델. 얼굴은 영화배우? 설마 어디 가문이랄지 막 상속녀 그런 건 아니겠지? 그래도 또 몰라!」
뭐라고? 나는 마침내 이상한 환상을 경험하고야 말았다. 바로, 시간이 무던히도 느려지는 현상을! 이루 말할 수 없이 들뜨다 못해 마침내 나는 공중에 뜨고 말았다. 붕~! 명백한 빈말이자 뻔한 아첨이란 걸 누가 모를까. 그건 부인할 수 없는 완벽한 아부였다. 내가 판단했을 때는 그녀들끼리 친해진 건 어디까지나 나의 주선이었고, 그래서 설핏 미안해졌을지도 모른다. 난 2인자, 3인자 계속 밀려나도 상관없지만 말이다. 그러든 어쩌든 나는 기분이 좋았다. 왜 그런지 알 수 없었다. 알고 싶지도 않았다. 흡족했고 기뻤다. 설레며 행복했다. 뿌잉뿌잉 반짝반짝에 나는 속으로 그랬다. 응애응애! 새콤달콤 딸랑딸랑에 난 그만 하마터면 겉으로 진짜 그럴 뻔 했다. 뭐라고? 삐악삐악이라고! 하지만 내가 세울 체면이 어디 있고, 잃을 평판이 그 얼마나 듬직하겠나. 걸출한 늦깎이 신인으로써의 욕심이 뭐 그렇게 대단하겠나 말이다. 고로 나는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변덕쟁이가 되었다. 그러나 딱히 이해할 수 없는 일도 아니었다. 나아가 거듭 내내 의아해하기만 할 정황도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너무 서두를 건 없다고 말할려고 했다. 그런데 딱 그 순간!
「그냥, 미루자. 응? 그 언니는 원래 사랑의 약자이기를 자처하는 여자라서, 까딱하면 바람둥이한테 넘어갈 수가 있어. (뭐야 날 벌써 한량쯤으로 상정한 건가?) 그러니까, 우리 좀 더 괜찮은 대안을 생각해보자구. 괜히 서두를 꺼 없으니까. 괜찮지, 오빠?」
괜찮긴 뭐가? 나는, 너 같으면 괜찮겠니, 라고 대답할 수는 없었다. 뭐야, 난 그러니까 대타 등번호도 뺐기고 2군으로 밀려난 거잖아? 이처럼 돌아가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그래서 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분께 뭐랄까, 아마도 괜한 인연을 강권하진 않는 게 좋겠지? 오빠도 다 알고 있어. 내가 대타로 나갈 마음도 없고. 글쎄요. 바보짓이란 걸 내가 왜 몰라! 이게 다 순전히 장난이란 것까지. 안 그래? 표정이 왜 그래? 아 농담이야 농담!」
갑자기 분위기 이상해졌다. 이건 아마도 얘네들과 내가 대화하는 법, 그에 앞서 사고 방식에서 약간 차이가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어색함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분위기 전환에는 또 비비안께서 일가견이 있다. 그런데, 얘가 살짝 심도 있는 주제를 건드렸다. 그러므로 문단을 띄워서 그게 무엇인가 알아보자.
3
「오빠. 내가 인터넷에서 봤는데, 왜 그 짧은 분량으로 감동적인 막 그런 거 흔하잖아. 그런 걸 봤거든. 그런데 있잖아 거기서 그러더라고. 미녀와 야수의 멋진 사랑을 설명하면서 정말 잘 어울린다, 과정도 과정이지만 나중 잘 살더라, 남녀 사이란 저래야 하지 않냐, 라고 하더라고. 여자 보고 왜 결혼했냐, 라고 물으니까 여자 왈. 말할려고 결혼했다! 여자 보고 주군은 좋아요, 나빠요, 괜찮아요 라고 물으니까 여자 왈. 좋고 싫은 게 어딨어요, 잘 어울리느냐 잘 어울리지 않느냐 뿐이지. 라고 하더라고. 물론 그 얘기를 연설자 혼자서 다 얘기해줬지. 고맙게도 말이야. 그런데 듣고 보니 일리가 있어. 나도 모르게 끄덕끄덕하더란 말씀. 다 보고 나서는 나도 그랬다니까. 아 천생연분이구나 라고. 나도 그래야겠다 라고. 그런데 정말 그럴까? 자, 이쯤해서 오빠의 탁월한 고견을 말씀해주지 않겠소?」
「얘가 못보던 사이에 은근 말발이 늘었네. 허허허허허. 그게 말이야. 음... 정말, 그렇겠니? 물론 정말 그렇기를 바래. 왜 아니겠어.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겠지? 그럼. 음... 그러니까 그 질문은즉슨, 설마 몰라서 묻는 건 아니겠지? 알면서 묻기를 호칭하는 용어를 까먹었는데, 알면서 묻기. 그거 좋아. 그렇게 하면 돼. 아주 좋아. 잘하고 있어. 비꼬는 게 아니야. 매우 좋은 자세야. 우린 모두 삶의 연습생이자 아름다운 인생의 지망생이니까. 응? 아 뭘 물어봤지? 아, 좋은 만남의 특별한 사례. 어? 그런데 내가 뭘 말하려고 했지? 아, 큰 그림.
오빠 속 좁은 남자 아니다. 알지? 하지만 대인배인가는 확실치 않아. 그런데 또 청순가련 스타일 숙녀의 호감을 마다할 리는 없겠지. 난 그처럼 단지 아차상을 편애하고, 깜짝 출연이랄지 선물을 선호하며, 찬사에 약하다고나 할까? 저런! 뭐야 이거. 그거 전형적인 속 좁은 남자잖아? 젠장! 아무튼,
선-칭찬 후-꾸중, 후-칭찬 선-꾸중. 전자와 후자의 차이에 대한 전문용어를 까먹었는데 말이야. 오빠가 뭘 자꾸 까먹어. 허허허. 아무튼 오빠는 그 차이를 피해 갈께. 틈틈히 얘기할 꺼니까. 단적으로 말해서 앞서 말한 얘기는 어떤 화법이다? 그렇지, 여성잡지2 방식! 여성잡지2가 그러니? 이를 테면 가설을 정하고, 측정할 수 있는 건 측정하며, 관찰과 관련된 이론을 전수조사해서 예상과의 차이를 공개하여 내 것과 비교하고, 추정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처음의 예측은 타당했나, 표본은 합리적이었나, 그래서 어떤 결과를 얻었는가, 따라서 남은 과제는 무엇인가 까지 우리에게 소상히 고자질할까? 아니겠지. 아닐 수 밖에 없지. 왜냐하면 그러면 그건 학술 논문이지 여성잡지2가 아닐 테니까. 여성잡지2를 폄하하는 게 아니야. 사람들이 집에서 TV를 보지 논문을 읽지는 않거든. 일평생 남편의 식습관을 감수했더니 어떻더라, 혹시나 둘 중 하나가 밤에 잘 때 이를 가니까 평생 그 소리를 감내하는 마음을 아시나요? 그런 얘기를 사람들은 TV, 라디오, 인터넷, 일상적인 대화로 하잖아. 좋은 거야. 좋은 거라고! 단지 내가 그 뭔가를 제어를 할 수 있느냐, 대화의 주도권과 인생의 통제권이 내게 얼마나 자애롭느냐는 따로 생각할 문제고. 응? 그러니까 귀가 펄럭펄럭해서 얻은 지식의 중요성을 따지고 감동의 지속성을 예견해보란 말일세. 내 말은 그거야. 사랑이란 뭐다? 그래~, 사랑은 모르는 거다! (딱)! 남녀가 사랑을 하더라도 그 사랑의 미래를 예견하면서 하느냐, 내일은 없다냐. 응? 다른 말로 하면 그거야. 첫째,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하고 마음껏 새로운 취미에 도전하며, 실컷 이성을 만나... 그건 넘어가고, 젊음이여 이상의 날개를 펼쳐 싱그런 꿈을 꾸자. 그리고 둘째, 막살자! 뭐, 막살라~? 허허허. 요컨대 첫째와 둘째의 차이가 뭘까? 내가 하면 첫째고 남이 하면 둘째일까? 그건 너무 이기적이니까, 아마도 아니겠지? 어쨌든 얘기가 곁으로 빠질려니까 다시 돌아가자구. 음. 그러면 돼. 잠시 한눈팔 수도 있으니까. 여자는 대화가 산만해도 되고 남자는 한눈팔면 안되느냐, 까지는 따지지 마세나 그려. 허허허허허. 아! 남자는 한눈팔고 남자가 여자 말 다 들어주고? 통과!
얘기가 길어지는데 좀 더 간명하게 설명하는 게 좋겠군. 먼저 결론만 말하자면 이거야. 여성잡지2식 화술과 인문교양적 밑줄긋기의 차이를 바로 알라! 물론 인문교양 분야에서 관찰-분석-가설-추정-실험-사례 연구-이론화를 거친 확률은 꽤나 미미하겠지만.
앞서 비비안이 인상적으로 느꼈던 얘기는 일리 있는 사례를 듣고, 믿고, 이해하며, 공감했던 거야. 물론 그건 틀리지 않지. 게다가 재밌지. 또 좋은 얘기야. 그게 어디 나쁜 얘기니? 아니거든. 나는 그런 설득력 높은 웅변의 능력을 높이 산다네. 딱 납득이 되거든. 응? 난 솔직히 그게 매우 부러워. 당연히 나도 그런 사람이 되면 좋겠지. 응당 그러고 싶어. 하지만 고풍스러운 표현으로 말하자면 신은 내게 그런 재주를 주시지 않았다네. 달리 말하자면, 하늘은! 응? 음. 인간의 육신은 엑스맨이 아니니까. 그래서 중요한 게 이거야 (똑-똑-똑). 나는 미래에서 왔다, 나는 외계인다, 이거라고. (똑-똑-똑)! 뭐, 오빠 피는 초록색이냐구요? OK! 세계 3대 케찹 브랜드에 대해서 얘기해줘, 말어? 삼천포는 때 되면 갈 테니까 하던 얘기나 마저 하세나. 흐흠. 그런데 부러운 게 지는 거면 인생 내내 우리는 대체 몇 번을 지는 걸까? 꼬맹이 장난 같은 얘기는 아동님들께 맡기세나. 그것까지 뺐으면 우리 어른들이 너무 없어보이지 않을까? 왜냐하면 우리는 그 다음을 얘기해야 하니까. 그런데 그건 1부터 10에서 2나 3 의 좋은 측면만 부각한 거야. 인생은, 세상은 말이야, 사랑이란 그런 게 아니거든. X축의 일부분만 얘기한다고 끝? 그럴 리가 있나. Y축 Z축 계속 말하자면 한도 끝도 없으니까. 미녀와 야수의 연애에서 단지 좋은 장면만 말한다? 그 감상법은 크게 세 가지야. 첫째, 우리 비비안이 앞서 경험한 그런 방법. 둘째, 뮤지컬 미녀와 야수를 본다. 셋째, 나머지. 그거야. 다시 여기서 얘기는 비유적으로 흘러가야겠지. 그러니까 무엇으로? 그래~ 다큐멘터리로!
내가 어디서든 막 나서기 좋아하지도 않고 밉상으로 찍히지 않게 중간은 가. 하지만 그건 다시 말하자면 그냥 그만그만한 거야. 때문에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비리비리할지도 모르고. 그러니까 다른 누가 아닌 바로 오빠가 그렇다고. 내가 꼭 이런 말까지는 하지 않을려고 했는데, 그런데 이걸 어쩌지! 어머나, 이미 말문이 트여버렸네? 그래서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이지만, 긴 얘기는 하지 않겠어. 단지 왜 맹수들이 잡은 물고기한테 밥을 주지 않는지만 빼놓고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왜냐, 왜냐하면 그 친구들은 먹이감을 잡을 때─딱 고 순간─오직 그 때만 최선을 다해야 하기 때문이야. 딱 그 찰나에 집중하여 혼신을 힘을 기울여야, 그래야 겨우 먹고 사는 거라고. 그래도 확률은 썩 신통치 않아. 나도 재수없는 건 꺼림직하지 왜 안 그렇겠니. 그래서 차마 이런 말까지는 하고자 할 의도가 전혀 없었어. 응? 전혀! 그렇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할 말은 해야겠군. 그건 뭐냐면 앞서 말한 최선을 다한다는 게 뭐냐, 얼마나 드물 정도로 귀하냐, 그걸 말하고자 챙피를 무릅쓰고서 오빠가 총대를 매겠다 그거라네. 자, 이쯤하여 오빠의 쓰라린 패배담을 한번 들어보시겠나? OK! 내가 어디서 못됐다는 얘기도 안 듣지만, 그와 똑같이, 말발이 좋다는 말도 못들어. 전혀 듣지 못하지. 어디 근처에도 못 가니까. 내가 무슨 응석왕도 엄살의 2인자도 아니고 뭐, 뻔데기 앞에서 주름 잡을 일 있니? 더군다나 오빠는 있잖아 싸움도 못해. 어차피 그걸 진짜 잘하는 것보다 말로 이기는 게 낫거든. 져도 말로 푸는 게 낫지, 본인이 으쌰으쌰 바람 넣을 땐 언제고 지면 꿍하니 삐지고 돌아서서 가버리는 친구? (설레설레)! 남자들이 항상 그런 건 아닌데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될 수도 있어. 원래 그렇다거나, 우정에서 넘버3가 됐다거나, 연패든 뭐든 기분이 꿀꿀하다거나 그 때문에 말이야. 그럼. 걔다가 다 거기서 거기야. 우리가 뭐 선수도 아니고 법은 괜히 있니. 스포츠를 즐기는 건 괜찮은데 힘든 건 TV로 보면 돼. 그럼. 아울러 뭘 못하는 게, 비겁한 게 때로는 낫다는 걸 남자들은 크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네. 남녀의 정, 가족의 사랑, 친구 사이 우정에서는 하나 주고 하나 받는 게 현명할 이치일 수 있어. 그렇지만 밖에서는 오히려 굽히고 져주는 게 나을 때가 꽤나 적지 않거든. 세상사란 게 원래 그래. 오빠가 전에 그랬나 안 그랬나. 어디 원뻔치 무슨 투터치? 그거 다 뻥이었어. 그래도 내 여자를 위한 기사도는 건재하고. 그래서 오빠가 포르토피노 몽키스패너와 친하다네. 저번에 봤지? 그 매가리 없이 잘생긴 친구. 걔가 걔야. 그걸로도 모자라, 라 페라리! 그렇지만 오빠가 키 빼고 다 가진 옛 친구를 버린 건 아니야. 내가 이래봬도 의리는 있다~! 왜 그런 사람들 있지? 모 아니면 도, 친구 아니면 적. 오빠는 그 정도는 아닌데 그런 사람 뿐만 아니라 오빠 친구들 중에 또 우리는-화법의 대가들이 좀 많았겠니? 까마귀 가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마라, 라고도 하지만 또 그게 살아보니 꼭 그렇지는 않더라고. 변변치 못해도 작가 인생으로 보자면 내가 걔네들 추억을 무단으로 빼았기도 하니까 말이야. 뭐 사람 사는 게 그렇지. 흉내내고 배우고, 학습하며 가르치고, 속이고 속고. 아무튼 말발이라면 난 어디 가서 명함도 못 내밀어. 그럼. 노력은 하는데 깐족도 잘 늘지 않고, 허풍도 늘 그자리. 인기를 바라는 욕심은 가난처럼 매양 루저 마인드와 한 쌍. 그러니까 오빠는 귀는 두 개, 입은 하나, 그림자도 하나! (딱) 사랑도 하나! 허허허허허. 그니까 동점이라고! 응? 무승부! 철들지 않으면 재밌고, 철들면 재미없고! 시시각각 변하는 둔갑술은 정말 드물 테고 말이야. 그처럼 오빤 딱 중간이야. 그런데 오빠가 어제를 돌아보면 그런 말을 들었던 적이 아주 드물게 있었어. 그건 언제일까? (딱) 그래~ 술집에서! 그리고 여자에게. 그것도 남의 짝인 숙녀에게 말이야. 앙큼한 그녀에게 내가 아마 막 그렇게 보였나봐. 어떻게 화려한 언변으로 뭘 좀 어떻게 분위기를 좋게 가져가 볼까, (내 옆에 앉은) 내 파트너 얘를 어떻게 한번 해볼까 라는 늑대로 보였겠지. 에고머니나! 내 탐욕을 그녀에게 딱 들켜버렸네? 동심이 기본인 오빠의 본심이 흑심으로 돌변했던 아주 희귀한 순간이겠지. 그래서 그녀가 나 보고 그랬다고. 와, 저 오빠 말발 장난 아니다! 라고. 그렇지만 내가 그런 말을 평소에도 들을까? 아니지! 원래 나는 그런 사람일까? 그럴 리가 있나! 그래도 어쩌면 숨겨진 재능이랄지 타고난 소질이 뺀질뺀질 나설 적기를 탐색 중이다? 그럴 턱이 있나, 어림도 없지. 다시 말해, 내가 그 전에랄지 그 후로 또 그런 말을 들었던 적이 과연 있을까? 오오 제발, 아아 있었으면, 그럼 정말 정말 좋겠네! 그거야. 그거라고. 결국 당시 그녀는 효과음을 들었구만 그래. 핑~! 먹이감을 포착한 맹수의 번득이는 눈빛 말이야. 나도 나야. 뭐랄까 전망이 좋았다고 할까? 귀엽고 치마 입었고 분위기 좋고, 나도 모르게 그냥 뭔 말을 하는지도 모르게 그냥 밑도 끝도 없이 얘기했던 게 전부야. 하나도 기억나지 않아. 아니, 생각나는 건 단지 몇 마디 정도. 하하하하하. 그게 다라고. 열이 좋다는 건 그런 걸 말한다네. 물론 좋은 계기이자 아름다운 만남이었다면 난 아마 분명히 다른 뭔가로 어필했을 테고 말이야. 사람은 있잖아 눈의 흰자위가 많기 때문에 내 감정을 타인에게 들키기 쉬워. 하지만 단점은 곧 장점. 나도 남의 감정을 읽고 친해질 수 있다는 점. 그래서 어디서 뭐깨나 끼고 뭘로든 꽤 알아주는 사람들이 오히려 또 잘 속아. 그러니까 어떤 전문가들이 또 슥 접근하게 마련이지. 말이 쉽지 포커페이스? 그게 결코 쉬운 게 아니거든. 그건 그렇고, 그런데 또 종이 한 장 차이로 자기가 자기 입으로 그러는 친구들이 있어. 자기는 여자를 (진지하게) 만날 때는 최선을 다한다 라고. (딱) 걘 어쩜 허당일 공산이 적지 않아! 아무래도 고수이긴 힘들다고. 평소에 허세로, 그것도 어설픈 허세로 힘 다 빼는데 진짜로 여자 앞에서? 최선을 다하긴 최선을 다해. 그건 맞아. 그런데 뭔가 잘못 최선을 다한다고나 할까? 그거야. 바로 그거지. 여자가 아무 데서나 흥분하지 않듯이 우리도 아무 때나 인상 팍 쓰지 않는다는 거. 살며시 알아주면 고맙겠군. 허허허허허. 가만 있어 봐. 뭐야. 뭐야 이거! 또 내 자랑이잖아? 이런, 젠장! 그런데 우리가 뭔 얘기하는 중이었지? 아, 그래. 늑대와 양의 사랑. 호랑이와 여우의 연애. 한참 신나게 그 얘기하던 중이었군 그래. 하던 얘기 마저 하자면 이래.
세상 편하게 낮잠을 자는 사자. 뭐 재미난 일 없나 여기 기웃 저기 기웃 하며 돌아다니는 표범. 3일 내내 굶어서 완전 배가 고픈 치타. 그곳의 생태계는 생존 경쟁으로 돌아가. 문명인의 생활보다는 비교적 전장에 더 가깝다고. 무엇을 감상하고 경험하며 삶을 즐기는 그런 평안하며 아늑하고 포근한 세계가 아니란 말일세. 그러니까 정말 굶주릴 대로 굶주린 하이에나라고 왜 없겠니? 그거거든. 그러니까 그 광활한 아프리카에서 단지 엇그제 처음 만난, 즉 약간 평범하지 않은 하이에나와 지극히 유순한 임팔라가 첫눈에 반했다? 처음에 홀딱 반한 걸로도 모자라 영원한 사랑을 한다더라? 지금, 우리가, 동화를 얘기할 나이일까? 오빠가 억지로 애들 옷을 입으면 그건 웃길 수도 있는데, 어떻게 보면 망측할 수도 있어. 응? 나이값은 해야 할 꺼 아니냐고. 개그나 인형극을 한다면 몰라도 말이야. 그거야. 그거라고. 그렇지만 오빠 얘기나 모습이 추접스럽진 않지? 혹시라도 만약 그렇다면 고갯짓을 하거나 발을 들어. 손을 들면 시선이 움직이니까. 응?
1688년 1월 29일에 스톡홀름에서 태어나 1772년... 몇 일이더라... 또 까먹었네. 어쨌든 런던에서 영면한 그분. 천국을 체험했다는 엠마누엘 스웨덴보리. 물론 그분이 영향을 받은 사람들도 쟁쟁해. 플라톤, 아이작 뉴튼, 아리스토텔레스, 르네 데카르트. 또 누구와 친하고 무엇을 주장했으며 어떤 예지를 고안했다더라, 좋아 좋다구. 그러나 그건 쉽게 말해서 예언가야. 더 자세히는 모르겠는데, 내가 아는 한도 내에서는 그래. 물론 내가 뭔가를 잘못 알았다면 내가 틀렸고 당신이 옳소 라고 해야겠지. 다시 말해 분야가 집중되지 않았고, 일반적이지 않았으며, 넓고 특별했어. 그러니까 스웨덴보리주의의 창시자지. 그렇지만 최면술과 신비학은 프란시스 베이컨, 갈릴레오 갈릴레이, 앙투안 라부아지에, 루이 파스퇴르 등이 모범적인 사례라 할 수 있는 실험의 정량 다음에 이론과 학문으로 이어지는 정식 학문과는 약간 거리가 있어. 그러니까 오빠가 하고 싶은 말을 대략 예견할 수 있겠지? 무슨 얘기인지 충분히 추론할 테니까 말이야. 왜 이렇게 오빠 얘기가 길어지게 됐는지 그 설계도를 관측해보면 좀 더 재미있을 꺼야. 그럼. 다시 말해 신비학, 환상론, 최면술 등등, 그게 있잖니,
대학교 이전의 교과 과목에 그런 과목들이 있니? 없어~! 그럼, 대학교에 전공 과목은? 당연히 없지! 약간 걸쳤다랄지 엇비슷한 건 있을 수 있어. 적어도 학교에 모임이나 동호회는 있겠지. 점쟁이를 시피보는 게 아니야. 나도 때로는 점쟁이한테 기대고 싶다고. 친하고 싶단 말야. 그렇지만 운수를 점치는 기술이 종교의 아성을 훌쩍 넘은 사례가 있었다면 내게 살짝 귀뜸해주시면 고맙겠네. 아, 옛날에는... 우리는 미래를 바라보세나. 허허허허허. 그러니까 여성잡지2는 뭐다? 오락산업에서 탄탄한 주류지. 그럼 지금은 단적으로 그와 비견하지만 비교 자체를 하지 않는 인문교양은? 그래~ 학문이야. 오빠가 너네들의 팬이자 지류이듯이. 그 차이라고. 말과 글의 차이도 살짝 비슷해. 물론 예술은 양쪽에 한 발씩 담그고 있을 테고. 다시 그건 오락산업이 좌지우지할 공산이 크고. 그거거든. 비비안이 들었던 얘기에서 시험 대상의 분포, 관찰의 기간, 측정 지표의 합리성, 추정치의 변화 정도, 따라서 결론은 뭐다, 라는 얘기가 나오니? 그게 나와? 그럴까? 아니지. 절대 아니지. 언뜻 들으면 비슷하게 들릴 수는 있지만, 나올 수가 없지. 왜냐하면 동기부여 강연회와 논문 발표회랑은 다른 거니까.
맹수는 아무리 순결한 초식동물을 잡더라도 최선을 다해. 왜? 성공확률이 결코 높지 않으니까. 잡아도 그만 안 잡아도 그만, 이 아닌데도 그 정도야. 인기물이나 유행과 볼거리처럼 '봐도 그만 안 봐도 그만'이 아니란 말씀. 초식동물 입장 뿐만 아니라 맹수 쪽에서 봐도 죽느냐 사느냐거든. 안 그렇겠어? 연애할 때 뭔 말을 못해! 결혼해서도 누구나 행복하기를 원하지, 일부러 마누라 싫어하는 일만 골라서 하는 남자가 어딨겠나. 드물게 그런 분들이 계실 수도 있겠지만 말이야. 말이 잘 통하느냐가 강조됐다, 그래서 인상적이었다? 단지 그것만 떼어서 보자면 좋아. 그렇지만 내 현실도 그와 같기는 힘들겠지. 그러니까, 그 반대 급부의 예를 들어볼까, 들어보지 말까? 말이 통했는데, 그런데 알고 보니 말만 통했다더라? 남자들은 바보가 아니야. 그렇다고 여자는 바보겠니? 아니거든. 이미 엄마와 아빠가 어떻게 산다는 걸 익히 봤잖니, 응? 화병만 두둔하고 꽃과 과일을 편들지 않는 게 아니라고. 하나만 보고 혹해서? 인생이 무슨 복권이니! 만화영화에서는 코끼리가 꿈과 신통력 때문에 청력기관으로 하늘을 날 수 있어. 그러나 실제로 우주선이 태양계 안과 바깥으로 여행할 수 있는 건 과학이라고. 응? 학문이자 상업이고 문명이자 지성의 위력이겠지. 말이 통한 남자가 나는 평생 딱 1명이었고 그분은 내 낭군님이시다? 원인을 밖이 아니라 내 안에서, 곧 말이 안 통하게 생겼다는 건 왜 생각 안하는데! 말이 통한 남자는 일생 딱 1명이었는데, 아니 글쎄 그분은 '...나는 왜 평생 이 모양 이 꼴로 살아야 하냐' 라는 말이 목구멍에 턱 걸리는 남자라니! 우리는 살면서 운명을 탓할 수야 있지만, 최소한 우군으로써의 행운을 부정하지는 않지 않나? 남자는 바보가 아니야. 아니. 아니다. 그냥 남자가 바보인 걸로 하자고.
그러므로 웃고 넘길 오락-교양-상식-농담-연예계-예기-잔지식-말발과 내 것으로 만들면 좋을 다아이몬드-명대사-포지셔닝-밑줄긋기-고품격. 전자와 후자는 구분할 줄 아는 게 좋지 않을까?」
그러다 음악이 바뀌고 분위기도 차분해진 다음 5분쯤 지나서 릴리가 그랬다.
「오빠. 이제, 가도 돼!」
「응? 어. 안 그래도 약속을 잊고 있었네.」
나는 없던 약속을 생각해냈다. 그럴 수 밖에 없었으니까. 내가 꼭 단물 빠진 풍선껌은 아니겠지만 신부들러리라는 역할을 망각해서는 안되었다. 지성의 전당에서 수업이 끝난 후 학생들이야 얘기꽃을 피운다지만, 시간 강사는 시간이 남아돌지 않으니까. 먹고 살아야 하니까. 뿐만 아니라 학계도 마냥 조용하고 모든 게 좋은 건 아니니까.
그렇지만 나는 나의 낙오를 쉽게 수긍하기는 힘들었다. 그러나 그런 내 마음을 내 편한대로, 순진하게, 솔직히 내색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전화기를 만지작거리면서 서둘러 녀석들과 헤어졌다. 간신히 나의 부자연스러움은 들키지 않았지만,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나는 오늘도 패자라는 걸 직감했다. 눈치 없는 남자는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였던 것이다. 어쩐지, 뭔가 잘 돌아간다 했다.
그렇게 돌아서서 거리에 나와 내가 내뱉은 혼잣말은 이랬다.
「목장을 탈출한 집토끼, 꼴 좋다.」
또 혹시라도 그녀들이 이렇게 말할까 봐, 언뜻 기분이 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머머, 별꼴이야.」
4
나는 일하기의 생산성을 추산했다. 그 결과 신나게 놀기의 가능성을 따져봄이 좋으리라는 결론이 나왔다. 그래서 나는 할 일을 유보한 채 할 말을 위해 여자를 만날까, 아니면 으쌰으쌰를 하러 남자를 만날 것인가를 고심했다. 일단 표면적인 목적은 그럴지라도 기대하고─기다리고─임박하며─경험하고 나면 절실히 깨닫게 될 것이다. 무엇을 깨닫게 될까? 듣고 듣고 또 듣기만 할 것인가, 아니면 술 마시고 또 마시며 뭔 얘기를 했는지 도통 기억도 못하던가를! 아마도 둘 중 하나겠지. 때문에 지금 시도해볼 만한 괜찮은 방도는 이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첫째, 새로운 만남.
둘째, 혼자 놀기.
그러므로 나는 내 안의 지킬과 하이드가 논쟁할 필요 없이 그 두 가지 보기를 모두 충족시킬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를 생각했다. 고민 끝에 나는 그분의 욕구를 간파해냈다. 고로 나는 일타이피보다 1차, 2차 방식을 선호하기로 했다. 그것은 곧,
두 번째는 극장에 가기였고,
첫 번째는 '극비 외계인 현존설 설명회'라는 강연회를 구경하는 것이었다.
어느 한량의 기분 전환을 위한 구실치고는 너무 뻔한 명목이지만 왠지 재밌을 것 같았다. 극장에서 영화 보는 건 손쉬운 일인데, 그런데 무슨 어떤 강연회? 처음에 나는 어느 벽보를 보고 그 행사를 알게 됐다. 황당무계하지만 하긴 예전부터 무척 궁금하긴 했었다. 도대체 어떤 정신 나간 친구들이 그런 강연회에 참석하는지를.
뜸 들이지 말고 이틀에 걸친 두 가지 임무의 결과만 말하자면 이랬다. 극장에서 영화 보기는 그런대로 재밌었고, 무슨 이상한 강연회는 때 맞춰서 가봤더니 아하 하면서 알게 됐다. 주제만 기괴하며 그럴싸했지 책과 CD를 팔고 회원 가입 받는 평범한 동기부여 강연회라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나는 괴짜이기를 사양한 채 집으로 돌아왔고, 다시 심심해졌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뭔가 아차-싶다. 왜냐하면 거기서 혹시 아는 사람이라도 만났다거나, 그곳으로 명랑하게 발길을 옮기는 내 모습을 어느 지인에게 들켰다면! 그럼 난, 저런 머저리 같은 놈이 됐겠지. 농담이고, 그렇다고 나는 그분들을 정말 그렇게 기인쯤으로 치부하는 건 아니다. 충분히 존중하고 또 비밀 단체나 무슨 다단계니 영화 같은 이야기도 그렇게 파생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하여튼 그건 그거고, 지금 남 걱정할 때가 아니다. 행복한 글쓰기와 재밌게 놀기, 그 둘을 화해시키던가 두 마리 토끼를 일망타진하던가 해야만 하니까. 아니면 내가 그냥 희대의 플레이보이로 활약한다? 거 무슨 마음에도 없는 그런 실없는 얘기를! 허허허허허. 허허허허허.
그나저나, 윌과 폴과 핀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나는 녀석들에게 전화했고 통화해서 만나기로 했다.
5
윌, 폴, 핀 그리고 나. 이렇게 넷이서 만났다.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그런데 왜 하필 그곳에서 만났을까? 왜냐하면 모두 꾸밀 필요가 없었으니까.
「또 너냐!」
「내 소원은 너가 여자랑 같이 나오는 걸 보는 거다. 응?」
「쟤 몰라서 그런 말 하냐? 사람들 연애할 때 두 가지로 나뉘는 거 잘 알면서. 첫째 사귀는 사람 생기면 친구랑 연락을 딱 끊는 유형, 둘째 그렇지 않은 유형. 쟤는 첫째잖아. 그러니까 지금은 우리가 아쉬운 건가?」
「섭하게 너무 그러지 말자. 난 너네들 밖에 없어.」
「그런데 여긴 왜 이렇게 남자들 뿐이 없지?」
「왠 줄 아니?」
「왜 그러는데?」
「왜냐하면 같은 술집이라도 여자들은 근사한 레스토랑에 가는 법이거든. 주위를 둘러 봐. 한마디로 여긴 편하게 오는 데잖니. 그럼 도도한 숙녀들은 다 어디로 갔냐고? 말했잖아. 입장할려면 갖춰 입고, 적당히 차분해야 하는 곳 말야. 응? 예약 먼저 그리고 왠지 까다로운 커트라인이 존재할 것만 같은 그런 데 말이야. 세련된 음악. 고상한 테이블 매너. 격조 높은 레스토랑의 이름은 진짜로 격조. 거기서 한번 들어보렴. 웨이터가 3개국어 완벽하게 하는 걸로도 모자라, 딱 봤는데? (설레설레)! 이 자식이... 쉿! 뭐랄까, 이 연애 오래 못 갈 꺼 같다 왠지 힘들 꺼 같다, 막 그런 느낌? 그래서 내가 그 뒤로 포도주 안 먹잖아. 아니. 지금은 괜찮아졌어. 그러니까 내가 포도주를 한동안 안 먹은 거네. 허허허. 게다가 자리가 자리인지라 싼 거 시킬 수도 없었어. 참 나. 아 말도 말어. 말도 마.」
「그건 얘 말이 맞어. 정말 그런 데 가서 보면 90퍼센트가 여자야. 시간에 따라서 약간 다르긴 하지만 제일 바쁜 때 빼고는 대체로 그래.」
「그럼 뭐 우린 뒷골목에서 달리고, 멋쟁이들은 고품격 사교 클럽에 드나들고? 우리도 상위 리그로 진출해야 하는 거 아닐까? 늦었으면 어때! 거기서 걔네들도 그럴 거 아니야? 남자들은 다 어디 갔을까! 라고. 특히 멋진 남자. 응? 우리 아니냐고! 아닌가?」
「하긴 그녀들은 만나자 해서 만나면 얘기가 길고, 우리는 만나자 해서 만나면 뭐 우리끼리 할 얘기도 많지 않고. 우리 정말 이런 조합으로 너무 많이 본 것 같지 않냐? 너네들 지겹다. 너네들이라고 내가 얼마나 지겹겠니. 응? 말을 안해서 그렇지, 나도 다 내 주제를 안다네. 응? 너무 그처럼 빤히 쳐다보지 마세나. 그래서 하는 말인데, 이제 우리 그만 보는 게 어때?」
「넌 그렇게 생각해? 그럼 넌 빠지고. OK! 그럼 숫자 홀수니까 대타 불러서 짝수 맞추면? OK! 아주 좋아! 딱 좋아. 자, 우리끼리 좋은 데 갈까? 그럼 되겠네.」
「뭐 임마? 이 자식이... 나도 데려가 줘! 응?」
웃음.
「여기서 난 먼저 일어날께.」
「벌써?」
「뭐가 벌써야? 해가 졌자나!」
「아 이 친구야, 달이 떴지 않나! 응?」
「작가다운 발언이시네. 오늘은 달릴 기분이 아니라네.」
「내가 남의 일기 엿본 얘기 해줄려고 했는데. 듣고 싶지 않니?」
「듣고 싶지 않아. 내가 누누히 말했잖아. 그런 얘긴 우리가 아니라 여자한테, 응? 말이 아니라 글로!」
「그래~ 그거야. 그런 거 말고, 응? 마돈나의 침실을 염탐했다거나 탐하던 '프리마돈나의 사생활'에 내가 엮였다거나. 응? 그런 걸 말하라고 이 바보야. 아무튼, 착각하지 마. 내가 프리마돈나를 탐했다는 게 아니고, 그분들의 사생활은 전혀 궁금하지 않으니까. 다음에 꼭 그런 얘기를 들려주기를 바란다, 그 말이라고 내 말은. 아무튼 나 먼저 일어설께. 내일 소풍 갈 준비해야 되거든.」
「너도?」
「내가 아는 여동생들 소개시켜줄라고 했는데. 부르면 바로 와!」
「혼자서 상대하시게. 건투를 비네.」
「여자가 당황하는 최고의 장면 세 가지도 있어. 알고 싶지 않니?」
「인터넷에 올려. 그렇지만 댓글은 없다는 거. (윙크)」
「야! 좋은 데 간다며? 혹시 나만 빼놓고 너네들끼리 갈려는 거 아니야?」
「어허. 우리가 아직도 그런 델 가야겠니?」
「그래. 오늘은 여기서 헤어지자. 안녕.」
「야! 야! 나이트! 나이트! 어? 나이트클럽!」
뭐야? 애들은 얼굴 보자고 해서 만난 다음 진짜로 얼굴만 보고 헤어졌다. 그럼 나 혼자 오늘 기나긴 으쌰으쌰의 여정을 기대하며 상상했다는 건가? 뭐야 이거! 의리 없는 놈들 같으니라고. 놀이가 이러면 일도 이럴 껀데. 난 걱정이 이만저만하지 않았다. 기분이 꽝이었다. 그래서 나는, 새가, 됐다!
우리는 알고 있다. 기막힌 쾌락이 무엇인가, 재밌는 기쁨이 어디에 있는가를. 아울러 우리는 행운을 축복하고 사랑을 열망한다. 그러나 허구는 몰라도 삶은, 무턱대고 행복한 결말을 추구하지 않는 법이다. 왜냐하면 희망찬 내일은 오늘에 몰두함으로써 오는 거니까. 그래서 우리가 좋아하는 건 색다른 즐거움이고, 바라는 건 신선한 새로움이다. 그리고 차선으로 익숙한 만족이 있다. 따라서 우리에게 노는 것이 으쌰으쌰라면, 나에게 일하기는 기막힌 전개의 창안이었다. 혹시라도 절망적인 절정과 실망스런 피날레가 끝판에 버티고 있다 할지라도 할 일은 거의 착상이 전부였다. 그런데 빠져드는 추리와 심취할 수 있는 영감이 아무 때나 친절하게 날 찾아오지는 않았다. 그래서 내게 놀기는 곧 일하기가 되었다. 고로 오늘도 생각없이 막 놀자, 내일은 없다? '막살라'는 나이트클럽 웨이터 이름일 뿐. 관망이 어떻고 전망을 살피건 어쩌건 최소한 숙취는 괴롭다. 주위에 보면 꼭 그런 남자 있지 않냔 말이다. 여자 없으면 얼굴도 비추지 않는 친구. 하지만 난 적어도 그런 쫀쫀한 남자는 아니다.
따라서 나는 일단 많은 걸 생각하지 말고 우정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런데 우정이 또 쉬운 게 아니다. 옆문으로 들어가서 1.5군으로 만족할 것인가, 친구 파도타기로 알게 되어 뒷문으로 빠져나갈 것인가. 생각할 게 많다. 인간관계라는 게 그런 거니까. 그래서 우선 나는 날 먼저 바로 아는 게 먼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난 또 공상을 했다. 그래서, 나는 과연 철든 어른인가 영영 철들지 않는, 그럴 수 없는 풍운아인가? 라는 진실을 확인하고 싶어 안달이 나 있다고나 할까! 뭐라고? 환장할 일이 따로 있지, 세상에! 말로만 고뇌하는 숙명론자에 이상을 꿈꾸는 몽상가? 하루는 심술쟁이 하루는 장난꾸러기라니. 괘씸한 응석쟁이가 따로 없구만 그래. 그래서 내가 내린 결론은 이랬다. 좋게 일이나 하자!
6
일과 놀이. 그 둘은 다정한 흥정 끝에 끈끈한 우정으로 성사됐다. 내가 그렇게 만들지는 않았다. 다만 어쩌다 그렇게 됐을 뿐. 왜 이런 모습이 되었는지는 별님에게 물어봐야 할까, 바람에게 청탁해야 할까. 그러든 어쩌든 아직은 일과 놀이가 끝짱나는 흥행까지 도달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런 몰입도라면 어쩌면 인기와 황금은 무의미할 수도 있다. 아니다. 꼭 그런 건 아니다. 왜냐하면 사랑과 행복은 물론 품위 유지와 척지고는 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일할 때 일하고 놀 때 노는 지인들과 친하게 지낼 수 밖에 없었다. 내 삶이 뭔가 잘못된 게 아니라면, 나는 사교로부터 드라마를 배우고 한량과의 친분으로 내 인생은 좀 더 즐거워질 것이다. 그래서 날 사모하는 아가씨들은 줄을 서서 대기하며, 당장 내일부터 피하고 숨어야 할 만큼 행복한 비명이 날 귀찮게 할 리는 없을 것이다. 정말로, 흥미로운 인생의 웃음꽃이 활찍 필 일은 딱히 없었다. 그런데 심심한 발단 끝에 상상도 못했던 전개는 뜻밖에도 날 주인공으로 만들고야 말았다.
그건 무엇인고 하니, 여기서 자상한 설명의 뜸을 들일까 말까? '난 또 뭐라고!' 만큼은 듣지 않아야 하니까 즉시 사연을 밝힙시다. 네. 도저히 그 영문을 알 수 없는 새로움은 바로 스토킹이었다. 바로, 마라의 남자친구인 존티의 스토킹! 그러니까 존티가 날 따라다닌다고? 아니 왜!
처음에 내가 최근 읽고 있는 유령이 등장하는 소설, 또 근래 봤던 오컬트 공포 영화 때문에 내가 뭔가 잘못 봤으리라고 추정했다. 그런데 난 헛것을 본 게 아니었다. 때문에 난 혹시나 했다. 설마 존티가 날 영매의 능력자로 아는 걸까? 혹시 쟤에게는 내 안의 그분이 보이는 걸까? 나는 볼 수 없지만, 존티는 내 어깨를 밝고 서 있는 악령을 미리 스케치하지 않았을까!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래서 나는 미행의 순간을 들키면 존티가 거북해할까 봐, 지나가는 척 하면서 돌발 행동으로 우연히 존티를 맞딱드렸다.
「오 존티! 웬일이야? 요즘 너무 바쁜 거 아니야? 혹시 내가 너한테 돈을 안갚았다거나 크게 실수한 거라도 있니? 저번에 헤어지기 전에 그랬자나. 조만간 다시 모이자고. 왜, 빈말이었어? 내가 툭하면 인스타그램에 막 그런 말을 올리니까? 여심의 수습자는 방탕의 옹호자를 동정했다. 그런데 댓글은 안달리고! 한심해 보였을 수도 있어. 충분히 그럴 만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마라를 골탕먹이고 싶은 고의적인 속셈을 내가 품고 있다는 걸 꼭 확인해야겠니? 아무리 그래도, 이 세상은 멍청한 악당과 인기만 쫓는 허당들, 뻔한 이야기 천지야. 그 말은 곧, 나도 그렇고 그런 허당이란 말이지. 요컨대, 난 늬가 부러워! 심하게 좋아보이는 호사에 대한 간지럽게 부끄러운 질투심. 너만 보면 확 살아난다니까. 너도 알고 있지? 그렇지? 말 해. 응? 말하라구.」
아마 존티도 무척 당황했을 것이다. 내가 왜 그랬지? 존티는 날 정말 바보-멍청이-얼간이-밥통으로 알았을 꺼 아니냐고. 마라가 혹시 얘의 본모습을 알고서 좋아한다고 했을까? 막 그러면서! 그렇지만 이해심 넓고 아량이 넓기로 어디서 절대 빠지지 않는 멋진 남자 존티라면 어쩜 그렇게 이해했을지도 모른다. 이 녀석이 요즘 연극배우 하기로 결심했을 거라고.
그야 어쨌든 존티와 대화하면서 난 별다른 정보를 얻지 못했다. 그래서 이건 분명 마라를 만나서 물어봐야 될 일이라고 생각했다. 때문에 나는 존티와 헤어진 다음 미스테리아로 갔다.
7
나는 환상문학 (격월간)잡지 미스테리아에 도착했다.
「마라. 할 말 있어.」
「할 말? 오빠가 할 말이라니. 긴장되는데. 심각한 거야? 안 그랬으면 좋겠는데. 허물없는 우리 사이, 뜬금없이 서먹서먹하게 만들지는 말자. 응? 오빠! 그러니까 그 할 말이란 게 대체 뭔데 그래?」
「그건 말이야. 아무것도 아닌 일을 가지고 유난 떠는 걸로 보여질 수도 있는데, 그런데 알게 된 이상 말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아서. 그래서 널 찾아왔어.」
「아 뭔데 그렇게 뜸을 들이고 그래?」
「(눈을 지긋이 감고, 고개를 젖히고......)」
「나 부루퉁한 거 안 보여? 봐 봐, 벌써 입이 튀어나왔자나. 잘하면 내가 오빠를 한 대 칠 수 있어. 그러니까, 어서, 말해. (딱)! (쉭─쉭)」
「빙빙 돌리지 말고 당장 말할께. 혹시라도 듣고 나서, 응? 논리 없음이랄지 억지부리기로 치부하면 안된다. 그럼 정말 곤란해. 응? 자, 그걸 미리 염두에 두고 시작하자고. 그런데 굳이 대질심문까지는 필요치 않아. 영화 찍을 일 없으니까 말이야. 혹시라도 내 얘기를 글로 쓸 거라면 사양할께. 음, 그러니까. 솔직히 말해서 마라에게 나는 의문투성이일 수도 있어. 왜냐하면 나에게 넌 의뭉덩어리니까. 허허허허허. 하하하하하. 농담이고. 그러니까 내 말은 중압감을 내려놓으라는 말이야. 그렇다고 너무 보채지도 말고 말이야. 응? 너 지금 그 생각했지? 이 인간이 또 시작했네! 밑도 끝도 없이 아무 데서나 누구한테나 습관처럼 뜸을 들여? 이 녀석을 그냥 콱... 라고 생각했어. 확실해. 오오 오오, 웃었어 웃었어. 맞지? 맞지? 다 알고 있어. 그럼. 오오, 여차하면 눈에서 레이저 나가겠는데? 그럼 이제 우리도 마블 주인공 되는 거야? 응?」
「그만. 아 쫌 그만! 이제나저제나 결론이 나오나 아무리 기다려도 안 나오네. 아 용건이 뭐야? 뭐, 골드바 그런 거 필요해? 어떻게, 하나 마련해 줘? 아님 회사 차원에서 그랑프리 트로피라도? 잡것! 어? 오빠도 보아하니 딱 그 꽈야.」
「그-꽈? 뭔-꽈!」
「입으로는 화염방사기, 눈에서는 레이저. 솔직히 말해 봐. 오빠의 숨겨진 취미는 혹시 셀프-세차장 가기 아니야? 맞지? 그렇지? 그러네. 딱 그러네. 그러니까 위는 화염방사기 아래는 세차장 뭐 그 거시기. 고로 어제는 난장판 오늘은 깽판? 추억이 어쩌느니 그날을 회상하고 이러쿵저러쿵. 그거 다 거짓말이었군 그래. 뭐야? 그럼 오빠들 으쌰으샤는, 설마, 개판?」
「개...뭐? 아니야. 아니라고. 아 나 정말 이거 이거 존티가 도도한 숙녀의 고결한 마음을 너무 이상하게 물들여놨군 그래. 아 진짜 우리가 아무리 친한 사이라지만, 응? 아가씨 입이 그렇게 거칠어서야 쓰나. 이거 정말 어떡하지?」
「속물! 저 저 저 눈에 띄고 싶어 하는 본심, 저 저 저 튀어보이고자 하는 욕망, 저 저 저 주목 받고 싶은 애원. 외로워질 명분 마련하지 말고, 지금 당장, 냉큼 말해!」
「말할께. 어. 말한다구. 즉답! 어? 그래. 안 그래도 말할려고 했다고. 사실은 말이야. 존티가 날 미행해. 미행? 내가 뭘 잘못했다고! 내가 무슨 슈퍼스타도 아니고, 대체 왜? 왜 하필 존티는 새로운 취미가 스토킹이냐고! 내 말은 바로 그거야. 음. 그럼. 자, 마라의 설명도 좋고 해명이랄지 반박이랄지, 뭔가 알고 있다면 알려줘. 내게 말해 봐. 응? 사실의 논거가 내게는 없으니 너한테는 있다는 거잖아. 미약한 단서라도 좋으니, 그러니까 오빠한테 뭔가 넌지시 얘기를 해주지 않으렴?」
「난 또 뭐라고. 오빠. 있잖아. 존티 왜 그래?」
「존티가 뭐? 저번에 다퉜다가 화해했잖아?」
「존티 원래 그래? 걔 완전 초딩이야!」
「몰랐니?」
「알긴 알았는데, 너무 심하니까 그러지.」
「그게 왜 그러냐면, 내가 그랬어. 철들지 마라고. 푸하하하하하하. 웃지지... 그러니까 조금 더 길게 설명을, 음. 왜 그렇게 느꼈는지를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존티가 있잖아. 존티! 존티는 그래. 걔는 입만 열면 뻥이야. 절반은 거짓말이라고. 그건 뭐 나도 알고 있어. 적응됐고. 그런데 문제는 이거야. 그 인간은 내 말은 또 곧이곧대로 믿어. 심심하면 남을 속이면서 자긴 무턱대고 남을 믿네? 자기는 직접화법을 좋아한다면서 꼭 보면 중요한 판국에 가서는 간접화법에 딱 넘어간다니까. 아마도 존티가 여자의 의중을 빛의 속도로 얼른 눈치채더라도 설명 방식이 마음에 안들면 일부러 반대로 하는 것처럼, 사기꾼도 애초에 크게 벗겨먹을 생각은 없었던 거 아닐까? 처음부터 홈런이 목표일 리는 없어. 시작은 뻔트였을 꺼 아니냐고! 그런데 어머나 용케 순진한 양반이 걸렸네? 딱 져주고 신뢰 쌓으며, 친해지고 크게 가는 거지. 한방에, 훅~! 안 그래? 그러니까 나한테 잔-뻔치만 날리면 뭘해, 딴 데서 한방 것도 큰 걸로 얻어맞는데! 안 그래? 평소에는 그래. 길고도 긴 수다를 잘 들어주고 분위기도 잘 맞춰줘. 자기 싫어하는 거랑 지는 비교에 대해서는 슬쩍 돌려서 얘기하는 걸 꺼려하더라도, 진득하니 듣고 기다리며 배려하지 왜 안하겠어. 나도 알아. 주관이 뚜렷하고 자의식 강건하며, 자존심 특히 센 사람들의 특징을 나라고 왜 몰라? 내가 당사자인데! 존티가 응? <넌 너 밖에 몰라!> 라는 말을 못 해서 안 하는 게 아니라는 거! 나도 안다구. 내가 바로 그 당신이지, 왜 아니겠어? 다, 모두, 알아. 그럼. 그럼 일관되게 항상 그러냐? 하면 꼭 그렇지는 않아. (딱)! 이거야. 이거라고. 자기는 괜찮은 음식점 가서 그래. 걔가 그 요리사랑 친해. 친한 건 좋아. 그리고 또 그 요리사 앞에서 요리사 띄워주는 것도 잘해. 그럼 뭘해? 어디는 뭘 어떻게 한다, 뭐는 어디 게 좋다, 이건 뭐가 단점이다, 어디는 값과 품질 그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나느니 뭐라느니, 어? 이게 뭐야! 대놓고 앞에서 있는 흉 없는 흉 다 보면서 꼬박꼬박 단골이라고? 젠장! 요리사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롤러코스터를 타는데, 가만 보면 옆에서 참 난감하지 않을 수가 없어. 그러니까 3부리그 응원단은 조마조마, 평판은 간당간당, 대망의 성취는 비리비리! 농담이고. 아 그래, 안 그래? 어? 나 좋을 때 간접화법, 나 싫을 땐 직접화법? 반대인가, 아니 맞네. 어허, 저런! 그게 뭐겠어? 사기당하기 딱 좋은 거 아니냐고. 정말로 꼭 보면 플레이보이의 3박자를 어느 정도 성취하고 인생의 굴곡을 잘 아는 친구들이 말이야, 가만 보면 그래서 빚쟁이가 되는 거 같아. 안 그래? 유려한 말솜씨를 뽐내며 언변이 화려하고, 옷차림이 세련되며, 잔재주가 방대하면 뭘 해? 어설픈 농담에 딱 속아넘어가는데! 이 세상은, 호인에서 아차 하면 호구라니까. 응? 지가 무슨 스쳐지나갔을 뿐인 저질 스캔들의 주인공이야 뭐야? 나 원 참, 맙소사! 돈키호테 납시셨구만 그래. 나보고 햄릿형이라느니 뭐라느니, 자기는 노스트라다무스라는 둥 나는 마법사의 조수라는 둥. 그럼 뭘하냐고. 딱 속아넘어가는데! 자기가 그렇게 뻥이 심하면 남들도 그럴 꺼라고는, 응? 대체 왜 생각 못하는데! 못살아 정말. 말릴 수가 없다니까 그래. 사랑? 처녀의 비위를 끔찍하게도 잘 맞추는 재주가 좋으면 뭘해. 심심하면 한눈파는데! 아아, 나는 언제나 하늘을 보며 별님과 대화하고 저 하늘의 별을 따나! 내 이럴 게 아니라 그 인간을 확 그냥...」
「워─워─워!」
이건 뭐야! 난 혹시라도 막 그러면서 미스테리, 스릴러, 호러 드라마. 딱 그런 장르를 예감했는데, 결과는 유치한 장난도 아니고 부장님 개그도 아니고. 거 무슨 아 나 이런 젠장!
어쨌든 이 허탈한 실정 때문에 좋은 점 하나와 나쁜 점 하나가 생겼다. 좋은 점은 그거였다. 마라가 존티한테 그랬다고 했단다. 난 나중 JS 오빠가 소개시켜주는, 딱 점지해주는 남자와 끝없는 사랑을 할 수도 있다고. 어머머, 뭐야 정말? 그리고 나쁜 점은 이미 말했듯이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고, 뚜껑을 열어보니 허당 존티의 실체뿐이란 점. 뚜껑을 열었는데, 차라리 또 다른 뚜껑이 나왔으면 몰라. 나 참! 아무튼 그로써 존티의 스토킹 그 뚱딴지 같은 해프닝은 마무리 됐다.
8
나는 새로운 취미를 갖게 됐다. 그것은 화초 키우기. 마당 한쪽에 장미, 수선화, 카네이션, 팬지와 튤립을 키우기 시작했다. 칸나 씨앗은 대타이자 애장품으로 아껴뒀다. 꽃씨를 구했을 때 그런 생각 당연히 들었다. 이게 혹시 잭과 강남콩처럼 마구 커버리면 어떡하나 라는. 그러나 그런 일은 없었다. 내가 아는 동화래야 남들도 다 아는 정도였고, 나는 공상에 그다지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때문에 별다른 기대는 없었다.
그렇게 한달쯤 꽃을 키웠나, 키우자마자 꽃은 피지 않았다. 하지만 내 이럴 줄 알았다며 차라리 과일을 키울 걸 그랬나, 싶지는 않았다. 그래도 내 딴에는 유별난 애착을 보이며 애틋한 정성을 쏟았다. 딱히 한 일은 없었지만 말이다. 왜냐하면 꽃이 피면 얘기하고 싶은 욕심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이 일을 소셜 네트워크와 블로그에 자랑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식물학을 향한 지대한 관심과 조류학자라는 잊혀진 꿈, 가정적인 남자임을 뽐내고 싶었을 뿐이겠지. 그러므로 뭔가 결과는 있어야 하니까 나는 그동안 애정을 듬뿍 전하며 1일, 2일, 3일... 막 그렇게 사진도 찍어서 열심히 인터넷에 올렸다. 심지어 식물이 알아들을지는 모르겠지만 나름 천국의 노래를 들어보지 않겠니, 라면서 막 칼 필립 엠마누엘 바흐도 들려주었다. 더불어 아침-점심-저녁 틈틈히 꽃들과 사랑의 인사를 나눴다. 이따금 달콤한 탄산수도 주고 행복한 연애시마저 읊어주었다.
그렇게 30일 속성 과정 끝에 드디여 꽃이 피었을까? 그럴 리가 있나! 초급 정원사의 도둑놈 심보는 고배를 마셔야지 별수 있겠나. 그러나 유명인들의 노련한 경험담처럼 황금─인기─행복(주색인가?)이라는 허당의 3요소를 잊어버리니까 어느 날 요술처럼 내 앞에 그 뭔가가 나타나더라, 라는 막연한 예측은 가능했다. 그러니까 어떤 예측을 누가? 바로 꽃들의 아빠인 이 미련한 농부가! 꽃은 언제 피어도 필 테니까, 난 아마도 농부의 진짜 심정을 알고 싶었나 보다. 그처럼 어쩌면 나는 애초에 꽃씨를 뿌려서 화초를 키우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왜냐하면 내가 정작 품었던 농심은 아마도 흑심이고, 꽃밭은 여심일 것이며, 사랑 고백과 팬클럽 관리 대신에 하는 수 없이 진짜 꽃씨를 뿌렸다가 갸우뚱하고 있으니까. 차라리 과일을 키워서 황금 사과가 열리면 딱 따먹을까, 차마 그런 생각까지는 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래서 나는 진짜 꽃들이야 때 되면 자기들 알아서 피든 어쩌든 할 테니까, 차라리 화사한 꽃다발을 아는 동생들에게 선물하기로 했다.
그러니까 난 단지 오빠라는 말만 딱 한 번 듣고 싶었을 뿐, 바라는 건 거의 없었다. 따라서 나는 그냥 나를 향한 친교와 호혜주의, 사소한 선물하기 같은 다정한 사교의 일반론을 절대 모른 체 하면 안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샐리에게 전화했다. 환상문학 잡지 미스테리아에서 경리 일을 잘하고 있나 라는 관심을 애써 외면할 수는 없었으니까. 참고로 저번에 마라를 만날 때 물어봤는데, 그땐 샐리가 출장갔다고 했다. 경리가 출장을? 그야 거기 편집장 소관이니까 뭐 그런 걸로. 아무튼, 그러니까 얘가 혹시 대망의 미완성을 망각한 채 현재의 탐욕만을 논평하며 발꼬락을 꼼지락꼼지락? 난 냉큼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뚜─ 뚜─ 뚜─!
뭐 진짜로 바빠서 못 받았을 수도 있다. 꿈나라로 떠났을 수도 있고.
그래서 난 다시 아는 동생 도나에게 연락했다. 와, 그런데 받네! 그래서 어떤 제안을 했다. 그랬더니 하는 말이 글세,
「싫은데!」
하는 수 없지.
그리고 나는 일부러 포르토피노의 동생에게 먼저 연락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녀석은 나한테 넘버2가 아니라 꼭꼭 숨겨놓은 에이스 카드니까. 그러나 지금은 연락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연락했다. 그리고 답변을 들었다. 그런데 원하던 답은 아니었다. 포르토피노의 동생인 이브는 친구들이랑 캠핑 가서 놀고 있다고 했으니까.
이쯤 되면 더 연락을 해서는 안될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는 어쩔 수 없이 사무실로 향했다. 바로, 일하기 위해서.
9
나는 즐거운 인생에 냉소적인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문제는, 항상 그런 건 아니지만, 뭘 해도 재미가 없다는 거. 그게 다 행복한 사랑에 회의적이기 때문일까? 역으로 생각하자면, 이렇게 심심함의 호위를 받고 따분함의 애모를 듬뿍 받는 까닭은 아마도 영화로운 여복이 임박했기 때문 아닐까? 삶이 권태로운 이유가 어찌됐건 그건 어쩌면, 임박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라는 말을 들어도 쌀 만한 억측이다. 그러니까 이 뜻 모를 허전함의 원인이 대체 다 뭐란 말인가. 아! 복권을 사고 행운을 점치며 주색과 함께 도박에 빠지지 않아도 알 듯 모를 듯 하다. 거리에서 시선이 돌아가며 어떤 숙녀의 꽁무늬를 쫓아가고, 방탕과 퇴폐와 백치미에 흠뻑 젖지 않아도 감이 온다. 이제 알겠다. 그 느낌은 아마 흥분의 전조와 흥미진진한 징후일 것이다. 그래서 뜸 들이지 말고 냉큼 밝히자면 그 아리송할 만한 동기는 한마디로 길일, 역시 길일이다. 곧 내가 신기한 모험의 최적임자라는 사연과 명분은 필요치 않다는 말.
따라서 내가 지금 해야 할 일은 그것이다. 아름다움이란 유니콘을 색출하고, 기쁨이란 불여우를 알현하며, 신비로움이란 페가수스의 흠모를 받는 일. 그러니까 그게 대체 뭐냐고? 말하자면 때가 된 것이다. 공을 차든 야수성을 되찾든 아니면 기분파로 거듭나던, 열정을 쏟고 찌릿-짜릿함에 몰입할 수 있는 바로, 으쌰으쌰! 샤갈의 마을에 눈이 내리던지 말던지, 클림트의 그림에 나올 법한 마담과의 약조를 파기하던 어쩌던, 나는 뭉크의 절규를 따라하며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를 만나야만 했다. 그러므로 나는 당장 모네의 그림 속 주인공 같은 여인과 데이트를 해야 하는데, 그런데 그게 또 여의치 않다. 왜냐하면 행복한 눈물을 흘릴 건지 말 건지, 즉 으쌰으쌰의 종목도 계획도 동지도 뭐 하나 정해진 건 없으니까.
때문에 나는 불현듯 떠오른 김에 곧바로 출발했다. 그곳이 어디냐면 불과 얼마 전에 그녀들과 함께 방문했던 당구장으로. 고전음악과 당구, 완벽한 단짝이다. 그런데 그 자연스러운 궁합을 이제야 경험하다니. 나는 동행인은 필요 없고 혼자서 그곳에 다시 찾아갔다.
당구장의 이름은, 블리자드! 그런데 블리자드가 뭔 뜻이었더라? 그건 차차 알아가면 된다.
나는 그곳에 도착해서 알게 됐다. 아, 여기다! 내가 자주 들러야 할 곳은 바로 이곳이라고. 분위기도 분위기였지만 나는 알던 친구들을 만나고 새로운 모험을 할 필요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마침내 그곳으로 출근했다. 물론 나는 손님이었고 친분의 발화 대상은 사장님이 아닌 점원이었다.
방문한지 1일, 2일, 3일이 지났다. 오늘이 며칠 째인지도 모르겠다.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점원1, 점원2, 점원3과 나의 교분이 두터워졌다는 것만 중요할 뿐. 나는 최근 판타지의 실행자, 미스테리한 관객, 로맨스 작가등 뭐 하나 제대로 하고 있는 게 없었다. 그러나 이곳에서 나는 예고없이 찾아온 행복을 예감했다. 사랑이 싹트는 시절은 혹 지금이 아닐까 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지금은 연정이 꽃피는 시간이었다. 단순히 좋아하고 속마음과 관심사가 무엇인지를 알고 싶어하는 감정, 그 파릇한 감정에 눈 뜨는 순간은 바로 지금이었다.
그러니까 무엇 때문에?
점원1-2-3과 친해진 걸로도 모자라 점원3의 (또렷또렷한? 낭랑한? 애처로운!) 대사 때문에!
우리는 금방 친해졌고, 나는 그녀들에게 호언장담을 했다. 오빠가 멋진 남자 1-2-3을 소개시켜주겠다고. 그래서 그녀들은 뭐라고 반응했을까? 당연히 꺄악-하며 신나게 호응했다. 그런데 점원3이 보인 어색함은 전혀 사심 없는 내 태도를 떨리게 만들었다.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왜냐하면 아무리 눈치가 없는 어른이라고 하더라도, 신앙에 귀의한 늑대이자 마지막 사랑에 안착한 하이에나라고 하더라도, 그 말을 듣고서 아무렇지 않다면 그건 정녕 수컷이 아니기 때문이다. 간략히 그곳에서 통하는 나의 애칭만 말하자면 이랬다. 나는 그녀들에게 이상한 신사로 불렸다. 왜냐하면 나처럼 혼자 오는 손님도 없었을 뿐더러 왠지 모르게 그렇게 느껴진다면서 그녀들이 그냥 그렇게 정했기 때문에. 궁상맞은 신세 추잡스러운 행색도 아니었으니까 아주 틀린 말도 아니었다.
그렇게 나는 날이면 날마다 물어봤다. 어떤 스타일의 남자를 좋아하냐고! 물론 꽃다발도 사서 들고 갔다. 어디 꽃다발만? 나는 본색을 드러냈다. 나는 큐피트로 변신한 것이다. 실없는 잡담으로 경계심을 무마시키고 나서 우리는 은근한 거리감마저 종식시켰다. 나는 노트북을 켜서 나의 모든 것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주로 내가 아는 동생들의 멋진 모습을 은근슬쩍 보여주었다. 어머 페라리가 보이네? 쟤는 언제 요트를 배웠지? 뭐야 저 후배가 언제 재즈 피아노를 배웠지? 하면서. 나는 그랬다. 몇 번이냐고. 찍으라고. 둘이 잘 어울릴 것 같다고 말이다. 그러나 나는 굳이 유들유들한 농담을 막무가내로 밀어붙이고자 하는 의도는 요만큼도 없었다. 일단 그녀들이 좋아하는 남성상을 파악하는 것이 주요 목적이었으니까.
그런데, 점원3 왈!
「난 이상한 신사 좋은데!」
나는 그 말을 듣고 아찔했다. 퐁~! 신비로운 효과음은 내게 오묘한 초음파로 다가와 부드러운 환희와 섬세한 사랑 그리고 놀라운 감동을 피어나게 했다. 핑~! 오랫만에 들어보는 너무도 충격적인 고백이니까, 도저히 그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우리는 살면서 솔직하기가 어쩌면 쉽지 않을지도 모르니까, 안 그러게 생겼나! 휘리리릭~! 나는, 떨렸고 어찌해야 할지 몰라서 주춤했다. 난 마치 정신병자처럼 환청을 실제로 듣고 있었다. 오빠라고 부르렴, 네 오빠, 저기 선배님, (여동생인데) 형 형, (남자 후배들은 자기들끼리 속닥속닥) 야 야 교수님 친구가 여기 뭐하러 왔데?, 아 술값내주로! 곧 있으면 그와 같은 배역이 나타나서 환청은 환각으로 발전할 것만 같았다. 딩동댕~! 나는 정말로 가슴이 벌렁벌렁해서 기분이 아주 이상했다. 벌...뭐? 아 글쎄 마음이 심하게 설렜다고! 그러니까 난 지금 뭔가 조치를 취해야 하나? 이 떨리는 만족감을 대체 어떡한단 말이냐. 딱 맞춰 클레멘티의 소나티네라니. 이건 한 편의 서정시이자 발레극이었고 오묘한 사랑의 신호였다. 그러므로 나는 정신 나간 열애의 끝을 상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제 정말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단 말인가? 더 다가오든가, 아님 확실하게 멀어지든가! 암묵적인 호소 때문에 난 설렜고, 때문에 심심함은 말끔히 말소되어버렸다. 따라서 나는 그 다음의 뭔가를 제시해야만 했다. 어떡한담? 이제 어떡하지! 그러면 일단 그녀들 명단 역시 나의 엑셀 파일에 기록해서 관리를 해야 하는 것일까? 그걸 그녀들이 알게 된다면 퍽이나 좋아하겠다. 하지만, 들키지 않으면 그만 아닐까? 더구나 그게 왜 나쁜가! (설마 나도 그렇게 어디서 관리되고 있나?) 나는 침체된 호기심이 마침내 자극 받았다. 플라토닉 환상과 확실한 신비가 발동할 듯 말 듯 행복의 기미가 엿보이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나는 그곳에서 사랑의 화신이 된 듯 했다고 하여, 마냥 뿌듯해하면서 우쭐할 수 만은 없었다. 왜냐하면 이 애정의 신호를 문학으로 승화시킬 결심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곳에 발길을 끊어야만 했다. 그러나 아쉬웠다. 예전에 이와 똑같은 일이 있었는데, 그때가 기억난다. 제복과 얼굴하며 치마 밑으로 광휘를 비췄던 대리석 다리가 생각난다. 유난히 뽀얀 피부. 그만. 당시 그녀와 사귈 걸 그랬나 싶었다. 진짜 그만. 당시 날 좋아했던 그녀... 뭐야 이거, 또 자랑이자나? 이런, 젠장!
그래서 나는 쩨쩨한 남자가 아닌 씩씩한 사람이기로 했다. 당분간 절대, 혼자서는, 그곳에 들리지 않기로 한 것이다. 그런 다음 나는 한 편의 아름다운 로맨스 소설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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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소박한 기질을 좋아하고 털털한 성격을 칭찬한다고 하여, 여자가 당장 들뜨고 계속 설레며 자꾸자꾸 더더욱 수수해지고 오직 소탈함만 추구한다? 그래서는 좋은 다음을 보장 못함. 우정과 사랑은 거의 똑같다고 하니까 친구에게 하듯이 애인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부추긴 위인에게 내 사랑을 빼았기지나 않으면 다행!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만화영화가 아니고, 젊은 날의 사랑이 꼭 청춘 드라마인 것은 아니다. 꽃의 아름다움에 벌꿀의 부지런함이 반응하듯이, 여자의 애교에 농심이 동화되어 구애하는 건 애정의 신호. (참고로 벌굴의 성별은 어떻다고 하며 진짜 동물 늑대도 순애보를 뽐낸다고 함) 그러나 연애의 시작이 사랑의 완성일 순 없는 법. 사랑의 고귀함 그 절반은 뭐니 뭐니 해도 찐한 사랑이니까. 산을 올라가면 산을 내려와야 하니까. 누군 걸어도 걸어도 산은 저 멀리 있고, 누군 뭐 봉우리 몇 개를 손쉽게 점령했다더라 까지는 생각하지 말자. 그래서 세간의 익숙한 표어는 이렇다. 사랑은 다이아몬드, 행복은 페라리, 웨이터 이름은 에르메스! 그러나 항간에 떠도는 속설과 속세에 파다한 풍문은 또 꼭 그렇지는 않음. 그러니까 어떻게 다를까? 바로 이렇게 다르다. 바텐더 이름은 막살자, 우정은 내 남자친구한테 껄떡대지마 이년아, 인생은 으쌰으쌰!
자, 이쯤하여 까레라 세일즈맨의 연애술에 쓰윽 넘어간 숙녀의 육성 고백을 들어볼까, 들어보지 말까? 과감히 생략하고. 그러니까, 우리는 지금까지의 전적이 부족한 걸까, 아니면 불만족스러운 걸까! 그도 아니면 이제 진짜로 가슴 절절한, 애절하다 못해 이름만 들어도 코 끝이 찡한, 생각만 해도 울컥하는 그런 사랑을 시작해야 하는 걸까! 그런데 내가 아무리 사랑론을 학습하고, 인생관을 고민하면 뭐하나. 친구1은 아티스트병에 친구2는 왕자병, 그럼 나도 이참에 신부들러리를 사양해야 하나? 안 그래도 외로운데 의리마저 잃으라고! 때문에 우리는 부러움을 인정하기 망설이며 단짝을 교체하고, 애인마저 바꾸기를 주저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하오나, 우리는 허풍과 어복의 친분을 결코 과소평가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에게 단순한 친절함과 돌쇠식 자상함은 어디까지나 하수의 기초. 바로 그래서 나는 남성잡지 사장인 내 친구 조지와 무도회에 갔다. <물 반 고기 반>은 고수에게 재미없는 게임이니까, 정말로 촌스런 그런 곳을 딱 골라서 행차했던 것이다. 굳이 몇 명이 가는 게 제일 좋은가, 까지는 생각하지 말고. 아무튼 한가한 일상은 TV, 신나는 젊음은 NC. 나는 전자에서 후자로 탈바꿈한 것이다.
그래서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한마디로 성비가 꽝이었다. 어떻게 불균형이어도 그렇게 불균형할 수 있지? 너무도 의아했다. 그렇다고 정말로 얌전한 처녀와 풋사랑의 불장난을 꿈꾼 건 아닌데, 남모르는 흥분감이 아예 없던 것도 아니었다. 오랫만에 작심 하고 왔는데, 그런데 참으로 인상적인 하루라니! 그럼 그렇지. 분홍빛 행복감에 볼모로 잡혔던 기대감은 결국 꽝으로 결론나고 말았다. 내가 하는 일이 다 이렇지 뭐, 라면서 체념하며 주책없는 아저씨가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조지와 나, 이렇게 단둘이서 나이트클럽은 절대 가지 말자고 암묵적으로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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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랫만에 일기를 썼다.
제목: 아 뭐하는 거야? 가만히 좀 있어.
내용: 나는 화장실에 갈 때마다 겁이 났다. 왜냐하면 화장실 거울로 매번 나를 봐야 했기 때문이다. 내가 무슨 어디 악동도 아닌데, 그렇다고 눈을 까는 것도 뭔가 이상한 듯 했다. 둘 다 어정쩡한 것이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은 무엇일까? 이랬다. 저게 어디 예술가의 얼굴인가! 일부러 딱 삼류들만 시샘하고, 짝사랑 받을 궁리에 남의 행복이나 가로채는 주제에, 응? 꼴에 예술 한다고, 흥! 라는 비웃음이 진짜로 들리는 것만 같았다. 일부는 실제로 듣기도 했다. 하긴 딱 봐도 영화배우감인데 빚쟁이 세일즈맨도 있다. 어디 가나 누굴 만나나 일단 얼굴로 먹고 들어가는 무서운 얼굴도 있다. 그런데 알고 보면 완전 순둥이! 호인도 그런 호인이 없지. 적당히 친하며 이빨만 잘 까... 그분의 진가를 알아주고 숨겨진 열망을 한 수 앞서 극찬하면? 극진한 대접은 따논 당상인 순진한 마초. 그처럼 도시의 고독한 사냥꾼은 새고샜다.
그런데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지인들은 날 가만놔두질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내 주위의 숙녀들이 내게서 기대하는 게 무엇인 줄 모를 수 없으니까. 심지어 새롭게 등장한 새 얼굴들은 마치 누군가 꼭 엄선이라도 미리 한 것만 같았다. 한마디로 나에게 제7의 전성기가 돌아온 것일까? 전성기는 무슨! 그래 봐야 다 빛 좋은 개살구다. 왜냐하면─난 그러고 싶은 마음이 전혀, 일절 없지만─내가 그녀들의 사랑을 모두 받아 줄 수도─귀찮아 귀찮다고─한꺼번에 모두 데리고 살 수도 없기 때문이다. 무슨 프로젝트 같은 거 하면서 엇비슷하게 흉내나 내보자고 하더라도 난 딱 거절할 것이다. 왜냐하면 싫으니까. 으잉~, 노노노노노노노!
그래서 나의 복안은 무엇일까? 뭐겠나, 집중이지. 흑심은 잠재웠지만 사심은 남았으니까. 고풍스런 친교마저 마다할 순 없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예측했던 그녀들의 고백은 다름 아니라 결혼식장에 같이 입장해서 자기 손을 신랑에게 인계해달라? 뭐가 어쩌고 어째! 어머머, 신부들러리를 그렇게나 잘 서신다면서요? 이거 정말 보자 보자 하니까...! 웬걸, 따라서 나는 예술가의 자존심은 내일로 연기했다. 그래서 나는 오늘 흥겨워야 마땅하고, 때문에 작가의 허영심을 전면에 내세울 수 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나는 당분간 허영심을 괴롭히기로 했다. 일명 가택감금! 자칫하면, 들뜬 허영심의 유혹에 냉혹한 이성은 덥썩 덜미를 잡혔다, 가 될지도 모르니까 나는 허영심의 고삐를 바짝 움켜잡았던 것이다. 녀석은 그래서 일복이 넘쳐날 수 밖에 없었다. 어복이니 여복이니 잡은 물고기가 어쩌고저쩌고? 원 세상에! (설레설레) 어머나 망측해라. 자, 영심아? 상상해봐! 딸기와 복숭아를. 떠올려보라구. 맛난 바나나를 벗기는 장면을 말이야. 앗, 방금 그거 사과향 아니니? 그러니까, 당근 전문점과 사과 과수원을 통채로 샀으니까, 빠져나갈 생각일랑 말고 진득하니 일을 하자꾸나. 일을! 알겠니? 여복 대신 일복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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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상이 습관이듯이 회상도 일이다. 그처럼 나는 일기로 소망을 구체화시키지 못한 점을 후회했다. 또 유치한 실연이든 사랑에 실망하든 멋진 연애의 부족함에 가슴 아파했다. 아울러 도전했던 꿈의 시시함이 못내 아쉬웠다. 그렇다고 언제나 그렇다는 건 아니고 단지 일시적인 상념에 불과했다. 결단코, 나는 자랑하고 싶어서 작가가 된 건 아니다. 하지만 어느 때 보면 내가 하는 일은 꼭 그랬다. 늘 그렇다. 다름 아니라 두고 두고 지난 날을 아쉬워한다는 듯이 유난 떨기. 펄펄 뛸 듯이는 아니지만 은근 투정이 심하고 어영부영 어리광부리기. 아마도 그건 내 특기가 아닐런지. 내가 만약 평범한 여자로 태어냈다면 어디서 허영심으로 절대 빠지지 않는 떼쓰기 여장부가 됐을지도 모른다. 혹시라도 잔재주 대신 허세와 자존심이 남들보다 각별했다면 자의식 과잉을 주체하지 못했을 테고. 그러니까 시도 때도 없이 예쁜 척, 툭하면 잘난 척할 수야 없는 일. 고로 난 어쩌면 뭘 또 겸손하게 자랑할까, 내내 그 생각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못 봐줄 만큼 유치하면 어떤가? 못 견딜 정도로 솔직하면 또 어떻고! 때문에 값싼 허풍 일색인 '할 말'은 행복한 글쓰기인 '할 일'과 이미 친해진 거나 마찬가지다.
따라서 나는 이제부터, 뭐 언제는 안 그랬다고, 못 말릴 동심의 천진함과 측정하기 곤란한 열정의 돈독한 친교를 위해서 소환하기로 했다. 누구를? 2군에서 뚱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군 다크호스를 불러내기로 한 것이다. 곧 그분의 등번호는 7번, 이름은 흑심을 이겨낸 낭만파 모험가! 왜냐하면 무턱대고 허당계에 씨를 뿌리는 플레이보이가 될 수는 없는 일이니까. 하지만 사랑의 찬가를 부를 뻔 하다 한눈팔고, 기쁜 인생 신기한 세상의 설을 풀지 못해 끙끙대며 속앓이만 해서야 쓰겠나.
그래서 나는 정말로, 진짜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비비안의 블로그에 들어가보기로 했다. 알고 보니 그녀 역시 비밀번호를 하나만 쓰고 있었던 것이다.
로그인 성공.
비비안의 블로그에 내 마음이 도착함.
일기 부분으로 들어감.
내용을 읽음.
곧바로 나는 비비안의 최신 일기를 읽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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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노래하며 행복을 꿈꾼다. 친구는 많고 사랑은 흔하다. 고요한 밤 별님에게 기도하며, 책읽기를 시도한다. (누군가 말하길) 신사를 제대로 묘사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는 헨리 제임스 읽기를 포기하기. 그러나 다시 회심 후 꾹 참고 읽기를 계속 한다. 그러다 고전음악 듣기가 슬슬 지겨워지면 명화 속에 나올 법한 미남들이 즐비한 NC에 행차할 때가 됐다는 얘기다. 그러나 꾸미고 준비하고 이동하며, 웃고 떠들며 신나게 놀기? 아무래도 귀찮다! 무도회장을 나오는 어떤 기분은 너무도 익숙하니까. 그래서 우리는 잡지를 읽거나 TV를 켠다. 초대 받은 수영장 파티가 따분해서, 이미 여러 번 속았으니까, 바쁜 척 거짓말도 했다. 그제 했던 젊음의 행진은 피곤하기만 했고, 어제 시도했던 해변의 질주와 낯선 타인에게 말 걸기? 이런 말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더럽게 재미없었다. 왜 여자가 먼저 말 걸면 못쓴다는 무슨 성문헌법이라도 있단 말인가! 아무튼 뒷모습 하나는 최고였는데, 저기요! 꿈이라면 때리고 싶었을 수도 있지만, 상식적으로 그건 말이 안되니까, 교양을 갖추어 길을 물어봤다.
내가 찾던 환상은 결국 가짜였고, 복권에 대한 기대는 역시 언제나 상술의 환영. 그래서 나의 허영심은 미스테리─판타지─스릴러 때로는 어드벤처와 액션 장르 사이에서 갈팡질팡할 뿐. 그러나 수심 가득한 투정은 일기장에. 그리고 고상한 작품 구상은 내일로 미뤄야 한다. 왜냐하면 내 친구들? 아는 오빠들? 내게 바라는 게 정확히 무엇인지 모르겠으나 그분들과의 약속이 바로 오늘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또 수다 3시간? 이번에 정신 차리라고 똑부러지게 얘기를 해줄까, 해주지 말까? 그러니까 늬가 남자친구가 없는 거라고! 만약 그랬다가는 감당 못할 토라짐에 이어 나의 사교 생활은 공룡들이 살았던 쥐라기 시대로 후퇴하고 말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도 나는 꾹 참고 귀여운 동생, 예쁘장한 숙녀, 상큼한 후배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기 위해서 약속을 잡았다. 극장 앞에서 오빠들을 만나기로 했다. 1차 커피, 2차 영화 쥬라기 공원 관람, 3차 드라이브. 지갑은 빵빵하지 못했을지언정 계획은 완벽했다. 새로운 애교도 준비했다. 그러므로 입 튀어나온 집토끼는, 드디여 본격적으로 물 만난 플레이보이로 대변신을? 대변신은 무슨! 나는 많은 걸 바라지 않았다. 아아, 그렇게 개인전 및 실내 스포츠에 대한 욕망은 꿈도 꿀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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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비비안의 읽기를 읽자마자 번득이는 착상을 주체할 수 없었다. 내 마음이 미지의 낙원을 동경하든 황홀한 자유를 갈망하든, 내 몸은 나도 모르게 비비안으로 빙의되어버렸다. 뭐랄까 비비안의 마음과 동화되고 싶은 그런 심정이었다고나 할까? 그러니까 왜! 왜냐하면 솔깃한 얘기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빠져나가지 못했으니까. 곧 비비안의 일기를 읽었는데 내 안의 그분은 그야말로, 느낀 거지! 그것도 제대로. 곧 불러도 불러도 꿈쩍을 않는 호기심도, 부드럽지만 쓸모없는 감수성도 깊은 잠에서 깨어난 거다. 나는 내 주인님의 기지개를 만류할 수 없었다. 조금은 그녀의 무책임한 고백이 궁금하기도 했다. 나는 지적 호기심이 반응했고, 그녀는 동심이 춤을 추고.
자, 그럼 반박의 여지가 없는 내게 최적화된 운명론이 무엇이라는 그녀의 수다를 잠시만 들어볼까? 난 벌써 손에 땀이 나며 무자비한 환상을 예상했다. 오오, 이건 정말 초유의 느낌 곧 난생 처음 경험하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나는 결국 숙주로써 내 몸을 그녀에게 내어주게 됐다. 물론 나는 남다른 고상함을 바탕으로 걸핏하면 세련된 궤변을 들먹이는 만담가는 아니지만, 그녀는, 그녀는 날 이용할 줄 알았던 것이다. 딱히 마음에 쏘옥 들진 않지만 그런대로, 아쉬우니까, 쓸만 했던 거지. 이건 바로 내가 내 안의 신비로운 정체성에게 신비한 사랑의 의뢰인이기를 자처한 결과였다. 예언가가 웅변하는 쾌청한 희망이니, 불행한 운명이 낭만적 환상을 만나다느니, 긴말 필요없고 당장 그녀가 미친듯이 어떤 일기를 쓰는가 지켜보기로 했다. 그것도 비비안의 블로그에 말이다. 칸만 띄워서 곧바로 그것을 옮기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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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되지 않는 아티스트병을 앓는 삼류 주제에 나는 과연 뼛속까지 작가인 것일까? 결과만 봐서는 답하기 썩 애매한 질문임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난 단지 위선자요 연기자며 사색가일 뿐이니까. 나는 인문교양서와의 타협에 실패했고, 희망하던 추리소설은 서두조차 쓰지 못했다. 게다가 칼럼니스트로써 신망을 잃었으며, 있는지 없는지 그 존재조차 의문스러운 팬들은 낙담한지 오래다. 그럼 난 이 불행을 타개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렇다. 상금이랄지 우연히 찾아온 보물 보따리로 마음껏 소비하며 신나게 놀 궁리, 그 밑도 끝도 없는 욕망을 먼저 버려야 한다. 그러니까 뚜껑 없는 파란색 애마를 타고서 이탈리아 남부 해안선을 드라이브하는 건 다큐멘터리 시청으로 대체해야 한다. 다정하고 섬세한 경리의 사랑과 버거킹이나 스타벅스 점원으로부터 짝사랑 받기, 허영심 쩌는 특급 미녀와 그것도 저급한 연애를? 이제는 플레이보이의 4대 요소에 대한 무분별한 미련을 버릴 때도 됐다.
고로 이제 그만 가난한 예술가이자 의뭉스러운 몽상가라는 운명을 받아들이자. 작명가는 내 천운, 작가는 내 천직, 허무맹랑함은 내 천성. 친구, 있다. 아름다운 꿈? 매일 꾼다. 어쩜 하늘이 내려주신 것이 아닌가 착각할 만한 천사와의 떨리는 사랑? 단지 희망찬 미래로 연기했을 뿐이다. 슬럼프는 기회고 심심함은 행복이다. 그런데 돌아온 탕자 마냥 그 뚱한 표정은 대체 뭘 뜻한단 말인가! 내가 무슨 삐악삐악 병아리인가, 아님 응애응애 꼬맹이인가. 아 그러니까 인형극을 찍을 것도 아닌데 커다란 탈과 눈물이 무슨 색정증 환자의 그것 마냥 뿜는 장난감은 왜 사고 난리인가.
어쨌든 미녀 대회는 남의 집 잔치고, 난 허풍 대회 출전 자격조차 얻지 못했다. 반신반의할 필요없다. 이제부터 진짜로 행복해지면 된다. 생상스의 백조를 들으며 행복한 글쓰기, 나중 값비싼 포도주와 20세기 희대의 명화로 보답할 것이다. 밤의 제왕이라는 목적은 과욕일망정 여기서의 밤은, 곧 찬란한 목표는 새로움의 끝이었다.
그러나 낮의 기쁨은 밤의 즐거움으로 연결된다. 바나나는 노랗고, 노란색은 페라리, 페라리 하면 주세페 베르디의 오페라 아리아가 떠오른다. 곧 잘 쉬어야 일도 잘한다. 공부가 제일 쉽고 일할 때 노는 것처럼 재밌을려면, 정말 그럴려면 혼자서 고독을 즐겨야 한다. 그럴 수 있다. 나는 할 수 있다. 못할 거도 없다. 아르키메데스도, 아르테미스도 난봉꾼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의 다망함은 약간의 식탐, 약간의 낭만, 약간의 들뜬 분위기를 찾아 소풍을 떠났다. 그것은 요정들이 깜짝 놀랄 만한 뭐 그런 대단한 나들이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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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시 정체성2에서 정체성1로 복귀했다. 그리고 오늘은 주말이다.
주말만 되면 찾아오는 모험에 대한 막연한 욕구. 이번 주말도 약속 없음은 어김없이 내 마음에 노크했다. 때문에 내 배알은 긴장했다. 넉살도 약해졌다. 심정은 은연중 아마 뭐랄까, 맹해졌다고나 할까? 역시나, 미지의 신비를 향한 동경심은 번득였다. 그러나 한가함에 대한 푸념만 공허할 뿐. 그래서 나는 혼자서 3부 리그 축구 경기를 보러 갔다. 물론 가기 전에 당연히 망설였다. 왜냐하면 객관식 문제처럼 내게는 3가지 보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건 무엇이냐면 바로 이렇다.
첫째, 단편영화를 찍는다는 생각으로 무작정 번화가를 돌아다니기. 그러면서 이색적인 발상과 신들린 영감을 찾고, 색다른 장면을 기억에 담으며, 하나도 새롭지 않은 일상을 잔상에 남기기. 둘째는 동물원 셋째는 미술관이었다.
그러나 나는 세 후보군을 퇴짜놨고 뻔트를 댔다. 그리하여 축구 경기를 보고 온 결과만 말하자면, 그냥 그랬다. 차라리 집에서 축구 게임을 할 걸 그랬나, 아니면 (자칭)훌리건 '조마조마' 친구들에게 연락할 걸 그랬나, 그도 아니면 경기장에 무심코 난입하여 제지당하든 체포당하든 그럴 걸 그랬나 싶었다. 물론 농담이다. 그렇다고, 내가 다시는 3부 리그 경기를 보러 가나 봐라, 라고 투덜거리지는 않았다. 때문에 황금 같은 주말이 또 이처럼 흐지부지 지나가는구나 라면서 조바심이 일었다. 엉덩이가 근질근질하면서 뭔가 생산적이고, 뭔가 새로우면서, 뭔가 신기한 경험을 하고 싶은 외향적 충동은 알력 다툼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누구와? 집에서 편히 평균율이나 듣고, 좋게 백마의 기사나 읽고, 발가락을 만지던 손으로 과자를 집어먹으며 (자빠져) TV나 보자는 내성적인 성정과! 하지만 정말로 이렇게 괜히 기분 좋은 주말이 그냥 지나가버리면 너무도 섭섭할 것만 같았다.
따라서 나는 칠판에 적었다. 미리미리 이럴 때를 대비해 칠판을 준비해 놓음. 뭐라고 적었냐면 바로 이렇게 적었다.
1.소원
2.갈망
3.애증
달랑 명사만 쓰면 즐거운 여행과 숙녀들의 짝사랑 때문에 행복한 고민과 달콤한 골머리를 앓아야 한단 말이냐, 하면 꼭 그건 아니다. 하지만 글로 적어서 주말을 재밌고 보람차게 보내고 싶은 심난한 욕심을 구체화시키고자 하는 의도는 끝끝내 결실을 맺었다.
고로 나의 행동은 소기의 성과를 가져왔다. 생각해보니까 저건 다른 말로 변환이 가능했다. 그건 이와 같다.
1번은 소비
2번은 해변에서 일광욕
3번은 새롭던지 지겹던지 어쨌던 만남이었다.
(딱)! 이거다. 바로 이거다. 그래서 나는 무작정 부딪혀보기로 했다. 내가 18살 미소년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좌우지간 저 1-2-3 카운트다운의 결과는 갔다와서 옮기던가, 별볼일 없으면 일기에나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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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악마의 약혼녀 같은 칼럼은 다 잊고 깔끔하게 새 출발하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타성을 따돌렸고 권태와 싸워 승리했다. 솔직히 나는 그 녀석과 다툴 생각이 없었다. 왜냐하면 쾌락이 절대 강자라는 걸 잘 아니까. 그러나 한판 뜨자며 자꾸 내 주위에서 알짱대는데 나보고 어쩌란 말인가. 녀석을 덥썩 껴안고 와락 키스를? 하도 귀찮게 하길래 나는 녀석을 가뿐히 쓰러트렸다. 만약 녀석과 다투지 않고 적당히 협상했다면 난 분명 이랬을 것이다. 지겹고 미루고 따분하다 못해 딴청 피우며, 투정에 불만에 한눈팔기! 다른 말로 매너리즘? 안될 말이다. 그래서 나는 남자답게(이 표현이 어째 뭔가 망설여지는군) 녀석과 정면 승부를 펼치기로 했다. 결과는 나의 낙승. 한판 붙어보니 내 상대도 안되었다. 별로 대단치도 않은데 틈만나면 아무 때나 불현듯 출연하고, 어디서나 불쑥 나타나는 불청객. 별것도 아니면서 말이야, 응? 유명인에게 연예인병이 있다면 일반인에게는 권태가 있다. 그런데 그 구분은 명확치 않다는 걸 살다보면 알게 된다. 조증도 궁금증도, 이기심도 시기심도, 오손도손 우리와 교분이 두텁다. 허당이 허풍을 끊겠나, 똥개가 영역 표시를 끊겠나. 왜냐하면 심리학적으로 우린 모두 광대이자 아티스트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권태는 내 앞에서 권세를 뽐내다가 큰코다쳤다. 허허허허허. 허허허허허. 으하하하하하하!
그런데 그 말은 다 뻥이다. 순 거짓말이란 말이다. 나는 타성에게 완패했다. 또 졌다. 왜 안지나 했다. 질 걸 미리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 빙글빙글 돌아가는 나이트클럽의 미러볼이란 약발이 떨어진 것일까, 아니면 청순한 숙녀가 상큼한 어조 그 낭랑한 목소리로 우리 상남자들 심금을 울리는 <오빠>를 듣고 싶어서 그랬을까. 나는 그게 아마도 내가 일을 너무 많이 했기 때문에 상태가 좀 안 좋아졌을 것이다, 라고 짐작했다.
따라서 나는 이 시점에서 분위기 반전을 시도해야만 했다. 그래서 꺼내든 카드가 무엇인고 하니, 그건 바로 조커인 줄 알았는데 꽝이었다. 곧 친구에게 한턱낼려고 있는 폼 없는 폼 다 잡았는데, 그런데 듣게 된 말은 점원 왈! 감사합니다, 가 아니라 손님 (체크카드) 잔고 부족인데요, 혹시 다른...!
말하자면 나는 놀 수 있는 경비가 부족했다. 모델비가 없어서 자화상을 그렸다는 화가처럼, 칼럼 왜 안 쓰냐는 마라의 보챔은 콜로라투라 소프라노의 아름다운 아리아였던 것이다. 그러니까 싸움닭은 야생마로 변신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일뿐이 모르던 경주마는 마침내 미친 개가 되어 혼자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누구나 알다시피 여행의 분류는 세 가지다.
첫째, 놀러간다
둘째, 쉬러간다
셋째, 기분 전환 및 겸사겸사
여행까지 구색을 맞추기 위해, 타인의 빈말에 동조하려고 친구들은 모두 커플인 여행에 정말 마지 못해 솔로가 응했다가 어떻게 됐다더라, 같은 일도 있다. 그처럼 아마 내 여행의 목적은 네 번째였을 것이다. 이를 테면 빠삐용의 휴가라고나 할까. 살짝 과장하자면 떠나서 7주 동안 이어질 쾌활함과 7개월 동안 지속될 활기를 내 덜덜대는 체력과 바꿀 생각이었다. 그렇게 될려나는 모르겠지만. 그런데 갔다 와서 여행기는 흥미롭다고 느꼈을 때만 쓸 것이다. 재미없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가지도 않은 것처럼 모른 체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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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두까기 인형, 사면 된다. 우피치 미술관? 책이나 TV로 보면 된다. 가 봐도 별거 없다. 요즘 떠오르는 상큼한 숙녀 누구? 화장 지우면 다 똑같다. 서머싯 몸의 조언은 잊을 수 없지만 대체로 거기서 거기다. 여자도 말한다. 남자를 보며, 그 놈이 그 놈이라고. 동률이다. 인기 있는 그녀들의 연애사를 연구하고, 허영심을 탐구하며, 궁극적 욕망을 알고 나면? 어쩜 실망할지도 모른다. 뭐, 대실망? (설레설레) 아니기를! 어디 가 봤냐, 뭐 해 봤냐, 무언가 괜찮은 걸 써 봤냐, 사지 마 하지 마 왜냐하면 막상 갖고 나면 별로니까, 원래 욕구란 그런 거거든, 차라리 헛된 충동을 달래던 그 시절이 낫긴 나았어! 라~며 허세로 유난 떠는 친구? 안 보면 그만이다. 그러나 다시 보면 반갑다. 보고 싶어도 볼 시간도 없다. 그러니까 봐 주고 우정을 2.0으로 발전시켜도 어차피 나중 각자 인생을 즐기느라 자주 만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일찍 알수록 좋다. 무엇을? 바로 우리에게 자랑은 중증이고, 질투는 본능이며, 나보다 자존심이 센 사람 찾기는 일도 아니라는 점을! 병적일 정도로 잘난 척 하는 위인 역시 결코 드물지 않다는 것을! 삶은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자의식이 고위급인 두 사람이 만나면 그 결과를. 자존심왕 둘이 만나면 보기는 이와 같다. 첫째 친해진다, 둘째 싸운다, 셋째 소 닭 보듯 닭 소 보듯 한다, 넷째 나머지. 그러나 결국 그분의 본심은 그것이다. 내가 너보다 우월하다고? 너는 너고 나는 나다고! 물론 당신은 멋진 남자니까 패배를 인정하고 승자를 깎아내리지 말라고 한다.
따라서 어른들은 이미 다 알고 있다. 바로 인생은 학예회라는 것을. 세상은 그처럼 천재들의 경연장이다. 질문을 받으면 말을 돌리고, 말 돌리면 말 돌리는 거 싫어한다고 압박하며, 이유를 말할 때 습관적으로 뜸을 들이고, 관계를 지속시킬 때 자꾸만 애태우는 일. 우정으로부터 사랑을 가로채지는 않더라도 말은 툭하면 맞받아치기. 기분 나빠하지 않게 넌지시 돌려서 말했더니 글쎄, 직접화법이 아니라며 상남자 뚜껑 열리는 일. 모두, 우리의, 일상이다. 은색 플룻과 금빛 트럼펫이 딱 있다고 치자. 그럼 꼭 그런 사람이 있다. 부를 줄도 모르면서 독학이 어떻다느니, 내 관심사와의 유사점을 찾고 없어도 만들어서 화제를 축구로 슬며시 돌리는 양반! 있다, 없다? 있다! 적지도 않다. 웃기는! 어머나 최고급 테니스 채가 보이네? 들을 말은 뻔하다. 어떻게 응~ 테니스 채 잡을 줄이나 알어, 라면서 대결은 시작되고 억지로 져줄 때까지 승부는 영원히 지속될 수도 있다. 진짜로 그래서 10년 내내 일 빼놓고는 그것만 했다는 사람, 왜 없겠나. 그분들께서 놀 때는 그래도 또 일 하나는 똑부러지게 한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그래서 그 흔한 인문교양서와 장편소설의 기술과 속임수는 그것이다. 곧, TV 채널 돌리기! 따라서 생산자와 카피라이터 그리고 오락산업이 우리에게 채널을 돌리는 만능의 권한을 부과하는 일, 그건 즉 당근이자 채찍이다. 우리가 무슨 집토끼인가 산토끼인가, 아니면 자칭 플레이보이? 술꾼은 술 좀 작작 마시라며 아동이 타이르고, 허풍꾼은 뻥의 수준을 높이길 애호가가 기원한다. 다시 말해 어른들이 잘 속고, 또 무슨 일이든 슬쩍 한 발만 담그는 이유는 그것이다. 하수는 고수 따라하기, 고수는 하수 주니어 길들이기, 다시 얄개들은 이기주의자로써 애청하며 이용하고 나중엔 결국 쓰다 버리기! 뭐? 결국 물고 물리는 접전이구만 그래! 그러므로 행복의 시대에 사는 우리는 그 뭔가를 착각하고 있다. 유익한 속셈의 승리와 유복한 재능의 부재를 극복함, 뚜렷한 자의식과 선명한 주관의 멋진 행동주의! 요컨대 그것은 단 두 가지로 축약해서 말할 수 있다. 즉 TV 채널을 맘대로 돌리느냐, TV를 내 맘대로 켜거나 끄거나냐!
말하자면 우리는 후자보다 전자가 우위를 점하는 능력이라고 날 달래고, 다독이며, 긍정하는 건 어닐런지! 하지만 1.2 정도 수준의 준-단짝을 영입하고, 새로운 취미를 즐기는 일이 과연 어느 버튼인가는 꽤 애매하기만 하다.
끝으로 하나 고백하자면 최근 겪은 일을 기록한 건 모두 진짜다. 딱 하나만 빼고. 나는 비비안의 블로그에 접속하지 않았다. 그녀를 제대로 알아야 큐피트로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다면서, 그래서 뭐 어떻다는 말인가! 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건 차마 시도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저번에는 우연이었지만 이번에는 어느 선을 능동적으로 넘는 일이기 때문이다. 기특한 일일까? 아니다. 칭찬 받아야 마땅할까? 전혀 아니다. 당연한 일일뿐. 하지만 그거 빼고는 모두 실제로 있었던 일임을 밝힌다. 그런데 가상으로 들어가본 비비안의 내면 세계는 부인할 수 없이 완전한 환상이었다. 분위기가 딱 좋았고, 가슴이 뿌듯했으며, 기분이 우쭐했다. 마음이 만화영화의 주인공처럼 사뿐사뿐 춤을 추는 것만 같았다. 나는 비밀의 상속자가 된 듯 했으니까 말이다. 사람이 갑자기 성공하거나 유명해지면 세상과 타협하거나 불의에 굴복거나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애를 먹듯이, 나도 유혹에 넘어가지 않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다는 것을 고백하는 바이다.
이렇듯 일은 몰라도 놀이에 대해서라면 난 지금 (알량할지는 몰라도) 요령이 생겨 시간도 벌고 재미도 배가됐다. 하지만 아직 일에 대해서는 아직도 모르겠다. 내가 이 일을 정말 좋아하고, 열정에 따라 행동하며, 최선의 성과를 생산하는지를. 세상을 차차 알아가고, 인생의 비밀을 종종 탐구하며, 사랑의 원리를 왕왕 추적할 수 밖에. 아침을 흑심으로 시작한다랄지 거리에서 뭔가에 눈독을 들이며 혼자 법석을 떨 수는 있다. 상냥한 여심에 몰지각한 주인공의 이야기를 쓸 수도 있고. 그러나 나는 낙천적인 운명론자로써 현실과 꿈과 희망을 빤히 응시할 것이다. 언제까지라도. 아무리 뻔할지라도. 왜냐하면 사랑의 의미를 알고 행복의 가치를 믿기 때문에. 말은 그래 놓고, 오늘도 번듯하게 반나체 여인의 사진을 감상할지, 감상하지 않을지 선뜻 자신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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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오늘은 소설이고 내일은 전기다. 낮은 문학이고, 밤에 나는 동물학자였다. 일할 때는 아마도 허구를 쓰고, 놀 때 어쩌면 난 인문교양서가 시키는 지침을 거꾸로 실행하는 청개구리다. 난 그처럼 비겁자고 허세꾼이며 삐에로다. 왜냐하면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라~고 말한다면 그야말로 식상한 변명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이 그렇고 결과가 증명한다. 무명이란 성과는 알고 보면 내 업보였다.
그러니까 내가 잘하지 못했던 일들 때문에 난 성공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일과표, 일기, 새해의 다짐 같은 거. 사귀자─헤어지자─사랑한다... 한 번도 못 해 봤던 말들이다. 좋아한다느니 키스 먼저에 백허그? 밀림의 사자고, 연애론을 속삭이는 하이에나이자, 언더그라운드의 선수다. 그건 그렇고, 축하한다는 둥 고맙네 미안하다... 간지럽고 몹시 불편하다. 물론 과장이다. 살짝 불미스러운 진실이지만 사실은 사실이다. 허당의 추억은 한마디로 불가피한 영웅당! 난 정말 친구가 어제 새로 산, 것도 꽤 비싼 구두를 잃어버렸을 때 폭소를 참느라 쓰러질 뻔 했다. 아니, 참는 데 실패했다. 심지어 제빵 수업 중 동료의 뼈에 금이 갔는데, 나중 나도 모르게 딴 친구와 웃었다. 단둘이 달리기 시합하다 단짝이 넘어져 뼈가 부러지자 난 당황했고, 나중 그 때문에 추억이 쌓였다. 말하자면 나는 그런 인간이었다. 잔재주 가운데 하나를 큰 재주로 키우는 데 집중하지 못하고, 잔재주의 폭만 넓히느라 그 흔한 연애 한번 제대로 못해본 남자. 난 그러니까 로맨티스트 유형이 아니라 바람둥이과 늑대인 듯 하다. 때문에 나는 못하는 건 핑계대고 어려운 건 합리화시킨다. 특히 좋은 건 뒤로 다 미룬다. 하기 싫은 일도 될 수 있으면 슥~ 연기한다. 꿈, 희망, 사랑, 점성술 배우기, 천문대 구경, 인생관 정립, 신비론 쓰기, 환상의 섬 탐험하기, 깜짝 인기상 타기, 득점왕 하기, 끝내기 홈런, 그리고 모험. 그런데 쾌락적인 기쁨은 내일이 아닌 바로 오늘 실현시킨다. 마성의 쾌감은 미래에서 대출하여 오늘 이용했다. 예를 들어 뻔트, 으샤으쌰, 샤우트 창법, 무인도에 데려가고 싶은 숙녀와 물건의 순위 매기기! 그러니까 오늘 날 난 결국 플레이보이의 4대 요소나 툭하면 상상하는 공상가가 된 것이다. 무엇을 할 것인가 라는 오늘, 어떻게 살 것인가 라는 인생. 뭘로 봐도 난 걸핏하면 패자였다. 그래서 나는 줄이 달린 줄도 모르고 맛있는 치즈를 좋아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나는 그냥 2군도 감지덕지에 7부 리그로 만족하고, 허세를 다독이며 허영심만 길들이는 영원한 애송이로 살아야만 할 운명인가? 하면~ 꼭 그렇지는 않다! 왜냐하면 나는 무수히 져봤기 때문에 루저 마인드가 신기한 경지에 도달했고, 따라서 괜찮은 인문-교양서도 뚝딱 쓸 수 있을 만큼─적어도 선천적인 선별력과 후천적인 안목 하나 만큼은 어디서 절대 빠지지 않는─패배주의의 신세계를 깨우쳤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 넘어져도 일어날 테다. 오늘도 타석에 들어설 것이다. 마음이 젊네 어쩌네 라는 그 흔한 말은 말하자면 그것이다. 몸은 몰라도 정신 만큼은 현역일 것! 내게 패전의 경험은 곧 한밑천이었다. 고로 나는 오늘 집에서 소크라테스처럼 아니 아르키메데스던가... 옷을 벗고, 멋쟁이처럼 차려 입은 다음 밖으로 나갈 것이다. 그래서 나는 테슬라가 되어 타인의 마음 속으로 풍덩 들어갈 테다.
아무리 그렇다고 내 타석도 아닌데 몰래 남의 타석에? 사람은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어야 한다. 그렇다고 숙녀의 마음을 뺐고 그녀를 사랑의 포로로 만들어 여심 속으로 들어가랬더니, 진짜로 타인의 입술을 훔치고 가방을 뺐는다? 영화 찍을 일 있나! 그래서 사람들은 나뉠 수 밖에 없다. 사랑의 춤을 추고 행복을 노래하며 이상을 꿈꾸자, 라고 하면 각자 생각하는 당근은 모두 제각각인 것이다. 그러니까 이 시대의 돈키호테여, 도대체 언제까지 사랑론을 완성하고 호박 마술관, NC 신비에 입장하지 못해 쩔쩔매며 불쌍하게 살아야만 합니까? 우리가 무슨 병풍 붙박입니까? 그러지 말고 당장 발길 가는대로 내 님을 만나러 미지의 낙원으로 떠납시다? 여러분! 으쌰으쌰의 속성을 꿰뚫고 선동가의 본심을 파악하는 데 어마어마한 수업료를 지불하신 분들의 우여곡절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시적으로 무턱대고 발길 가는대로... 가만 있자. 그 무슨 철 지난 유행가 가사도 아니고, 진짜로 눈길 가는대로 보고 손길 가는대로 나도 모르게 움직였드니, 아 글쎄 그 다음에? 그녀가 온다 온다, 교태 교태 애교 애교, 상큼 상큼 달콤 달콤, 윙크 윙크, 키스한다 키스한다, 포옹한다 포옹한다... 이런, 젠장! 워─워─워! 우리는, 차라리 우리는, 내일로 가는 기쁨의 마차에 무임승차합시다. 나는 이기주의자요, 친구는 이타주의자며, 이 세상은 황금만능주의의 시대라는 걸, 이제 그만 인정합시다. 아, 안 그렇습니까, 여러분? 순서가 그렇습니다! 동의하십니까, 여러분? 다 들립니다. 개미가 걷는 소리도 미생물이 밀애하며 나누는 험담마저두요. 묻지 말라는 둥 계속 하라는 둥, 적당히 지껄이라는 둥, 등등등. 안 그래도 거의 끝나갑니다. 네. 그럼요. 일단 그 규칙과 순리를 인정하고 나서 그 다음을 꿈꿔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지만 슬기로운 지성도, 아찔한 여복도, 충분한 황금과 재밌는 인생까지 몽땅 거머쥘 수 있는 것 아닐까요? (그런 바보 같은 질문이 어딨어!)
그러니까 결론이 뭐냐구요? 할 말이 없으면 할 일을 하라는 것이죠. 할 말이든 할 일이든, 될 수 있으면 둘 중 하나는 있는 게 좋은 거니까요. 정말 둘 다 없고, 돈마저 없으며, 뭐든지 궁할 때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그건 거의 희박하죠. 모른 체하지 맙시다 그려. 네. 그럼요. 어제는 박카스, 오늘은 헤라클라스, 내일은 큐피트? 그건 뜬구름 잡는 얘기죠. 그럼요. 그러니까 심심하면 관망을. 네? 이건 도저히 내 길이 아닌 것 같다는 전망이 우세하면, 꿈을 바꾸기! 네? 변심이 죄는 아니니까요. 뻔트는 사랑 고백! 네? 인기는 운명의 개척. (딱)! 하루에 1번 사랑을 생각하기. (쩍) 1주일에 한번 복권 사기. (빡) 1달에 한번 나이트클럽 가기. (큭) 100일에 한번 점쟁이의 실력이 늘었나 가서 평가하기. 1년에 한번 동물원 가기, 뭐 진정한 사랑은 평생 단 한 번? 워─워─워!
결국 결론은 플레이보이의 3박자로군! 보나마나 뻔함. 잘났어 정말! 참말로 한심한 한량 같으니라고. 거 참 웃기는 양반일세 그려. 그 무슨 봐도 그만 안 봐도 그만 같은 얘기. 아 됐고! 다 필요 없고, 내 인생 내 마음대로 할꺼야? (딱)! OK! 바로 그 답을 이끌어내기 위해 부단히 참고, 끈질기게 변죽만 울렸으며, 집요하게 깐족거렸음. 부디 스스로 깨닫게 하기 위해서 그 유별난 뜸을 들였음. 바로 그 깨우침을 위하여 주제라는 수박의 겉만 핥고, 결론이라는 화려하며 호화 찬란한 궁전 주위에서 알짱거리기만 했음. 그러므로 그 눈물겨운 고행은 결코 쉬운 게 아니란 걸 알아주시라? 애 쓴다 애 써!
라~고 나는 칼럼인지 일기인지를 쓰기는 썼다. 그런데 너무 수준 미달이라서 어느 잡지계에도 도저히 보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음을 기약하며 무진장 끙끙댔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드디어 진짜 칼럼을 완성했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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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달변가의 눌변
내용: 나는 허구를 쓰다가 뭔가 다른 할 말이 떠올랐다. 때문에 내 문학적 글쓰기는 일순간 인문-교양으로 분야를 달리 할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의 주제는 다음과 같다.
그냥 허당과 은근 허당의 차이. 그러니까 잠시만, 으잉, 시작부터 삼천포로 빠지자. 벌거벗은 임금님은 동화에서 스타였다. 하지만 현실에서 돼지에 진주목걸이? 참고로 난 뚱뚱한 사람을 좋아함. 딱 봐도, 그것 만큼 우낀 게 없다. 그 만한 페이소스와 격조의 하향화에 대한 비애감도 많지 않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에는 그랬다. 오늘은 뉴스가 없습니다. 지금으로부터 대략 10년 전에는 물론 계속 그래 왔고 향후에도 틈틈히 반복될 것이다. 무엇이? 바로, 1위 없는 2위가! 세계 3대 피아노 및 바이올린 콩쿨 같은 대회에서 심심치 않게 발표한다. 1년 전인가 올해던가도 그랬다. 올해의 어떤 상은 통과라고. 권위와 전통과 수준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안델센 동화에 나오던가 아니던가, 백설공주 그 얘기에서 인기는 차라리 계모가 독차지 한다. 스타워즈에서 다스 베이더의 존재감이 특별하듯이 말이다. 그래서 거울 하면 마법 거울이고, 요정 구슬 하면 현대판 어떤 동영상이다. 걸그룹만 1000이듯이 노벨상으로 누누이 거론되는 거장만 갸륵하게도 최소 1000명이다. 말도 안되는 뜬소문을 듣고 읽고 보면 진짜로 말도 안 나온다. 대체 그런 터무니없는 헛소리를 누가 퍼트렸는지는 몰라도. 하긴 전문가가 전문적인 단문을 쓰는데, 대체 아무리 읽어도 통 이해를 못하는 일? 비일비재하다. 그러니까 알게 되어 피식 웃으면 차라리 좋다. 그런 건 얼마든지 괜찮다. 오히려 미덕에 가깝다. 차라리 내가 다 고맙다. 그런데 뭔가 어중간한 걸 애들이 보고 배울 생각을 하면? 나중 알아서 스스로 가치 판단을 하겠지만, 아아, 아마도 앞이 조금은 캄캄하겠지. 설마 오늘 검색 순위 1위가, 내가 용돈을 주는 바로 그 녀석? YES! 드물게, 정말 드물게 문제아 중의 문제아의 아빠는 꼭 뭐다? 목사님! 그러니까 메트로놈이란 기본기는 무시되기 일쑤고 고전음악의 제1전성기는 이미 끝났는데, 서로서로 띄워주고 겸손하며 과찬이라고 손사래를 친다. 그러나 그것도 일반적 즐거움인 만큼 판이 커진 세상,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오히려 격식을 어기면 사람들은 즐거워하고, 막말을 하면 할수록 스타로 대접 받으며, 튀기만 해도 뉴스에 나오고 러브콜이 폭주한다. 그런데 너네들은 앞으로 반칙하면 안된다고 어떻게 애들에게 윤리를 가르칠까. 전문가이자 노동자, 예술가이자 광대, 상식적인 교양인이자 철 들지 않는 어른, 내가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는 조건하에서만 왔다 갔다 할 수 밖에 없다. 실정은 오락산업이 쥐고 흔들며 왕좌에는 황금께서 앉으셨으니까. 인간은 기본적으로 이기주의자니까. 자유와 평등도 모두 나를 기준으로 하는 것이니까. 그러니까 코메디언계에서는 코메디언은 코메디언인데 (자칭) 아티스트급를 제일 쳐주고, 예술가 업계에서는 연예인 성격의 예술가를 최고로 손꼽으며, 연예인은 또 큰 재주로 유명인이 됐으면 그 다음 잔재주로 마음껏 다재다능함 최소한 다양한 시도를 뽐내는 실정이다.
이 작은 차이가 바로 성실한 타석가와 최고의 타격왕-홈런왕-득점왕의 차이다. 뭘 좀 아는 남자는 그 차이가 잘 보이는데, 문제는 남들도 그런가 하면 그건 썩 낙관하기가 쉽지 않다. 왜냐고? 왜냐하면 첫째 타고난 선별력이 일류가 아니고, 둘째 후천적으로 습득한 방대한 지식과 정보의 주류가 주로 일류였다고 말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DNA든 노력이든 둘 중 하나는 뛰어나면 좋겠지만 인간은 비교의 동물인 건 어쩔 수가 없다. 게다가 환경도 있다.
예를 들어 설명해보자면 이렇다. 자기는 어려서부터 유난히 사투리를 말하기도 듣기도 어색하고 반갑지 않았다는 사람들이 있다. 더불어 그분들은 방언에 비해 표준어는 더 멋져보이고, 외국어는 더 더 멋져보이며, 자유자재로 다국어와 라틴어까지 구사하는 건 훨씬 멋져보일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인터넷으로 보는 짤막한 그런 웃긴 영상을 보면 또 사투리 코메디가 상당히 괜찮다는 걸 모르는 건 아니다. 사투리로 구사하는 최고의 입담, 꽤 재밌다는 걸 절대 부정하지 않는다. 드라마에 나오는 사투리는 미화된 걸 잘 알지만, 실제적인 사투리가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나는 뭔가 약간 호의적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왜 그럴까! 왜냐하면 그건 살면서 달변보다 눌변을 끝없이 감내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만약 그분께서 다비드는 다비든데 어디산 다비드, 또 어디의 3대 이빨과 함께 성장했다면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도, 느끼지도 않을 것이다. 외국어도 똑같다. 내가 영화에서 봤던 어떤 외국어는 내 마음속으로 쏙 들어왔다. 또 내가 드라마로 달콤하게 봤던 다른 외국어들 역시 배울 마음은 없을지라도 일단 볼 때는 이국적인 느낌 때문에 홀딱 반해버렸다. 나는 외국어에 대해서 독학도 다양했고 포기도 많았다. 가령, 평생 시골에서만 살았다랄지, 평생 바다를 보지 못한 사람, 평생 여름의 나라에만 살았던 사람들의 기분을 최고로 만들어주면 어떨까? 인종 전시장이라는 뉴욕에다─너 뉴욕 가봤어?─누굴 데려다 놓으면 두뇌의 어느 부위가 활달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소셜 네트워크란 게 그렇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사진을 찍고, 남반구와 북반구를 왔다 갔다 하며, 한번 동쪽으로 여행을 가면 끝까지 동쪽으로 가서 다시 원위치 되야지만 직성이 풀린다? 멋쟁이이자 풍류가라고 소문이 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그 정도가 아니라 젊은이인데 수더분한 시골 춘부장이라, 그분을 떠올려보자. 지인의 친구랄지 어떤 경로로 그분이 외국인을 만나서 외국어를 들었다고 가정해보자. 그럼 그 어떤 향수와 감정이 되살아날까? 그럴 리는 없다. 절대로 안 그렇지! 그래도 근접은 하고 염가로 기분은 느낀다. 멀리 갈 필요없이 인터넷이나 TV만 봐도 되고, 멀리 갈 필요없이 가까운 어느 거리만 가도 되는 건 굉장히 효율적인 방법이다. 장점은 확실히 있다. 아무튼 왜, 도대체 왜 그럴까? 왜냐하면 그대가 지척에서 들었던 그 외국어는 어쩌면 드라마식 표준어가 아닐 테고, 아마도 달변보다는 눌변에 가까울 것이기 때문이다. 발음이 세고 억양도 이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수려한 외모? 냉정하게 말해서 평범하면 다행이다. 그렇다고 흥분하지는 말자. 여자들은 뭐 어쩌고저쩐다면서 왜 우리 남자들은 오빠란 말에 떨리면 안되냐고, 그처럼 으샤으쌰해 봐야 나가봤더니 나 혼자 밖에 없을지도 모르니까. 어쨌든 말만 그럴 리는 없다. 글도 똑같다. 사람들은 옷에 대한 안목 하나 만큼은 뛰어나다. 각자 선호하는 패션 스타일이 다르지만 대표적으로 에르메스와 페라리를 싸구려라고 하지는 않는단 말이다. 그러나 사람은 각자 타고난 운명, 동물적 성향, 귀족적 기호가 각자 다 다른 법. 카인과 아벨, 클레오파트라와 마리아 클라스, 허세꾼과 헤라클레스 대회 3관왕, 나방과 나비, 한마디로 18-19세기와 MTV. 또 있다. 상식과 교양. 계속 있다. 사랑에 대해서 마음이냐 몸이냐. 고로 특별석이냐 보통석이냐는 적어도 개인적으로 나뉘는 게 당연하다. 그래서 가벼운 사랑에 대해서라면 백치미가 선호될 수도 있고, 친구끼리 사석에서 말할 때 속닥속닥거리며, 남녀 공히 정실은 최선을 추구하는 것이다. 남녀노소, 동서고금을 떠나서 사람들이 꺼려하는 표현을 단 몇 개만 꼽자면 이렇다.
멍청하다, 무능하다, 못생겼다, 못됐다, 허접하다, 더럽다, 지저분하다, 짜증난다, 짜다...! 아동의 세계로 넘어가면 잘난 척 한다? 아는 척 한다! 유머라면 이쁜 척 한다? 끼부린다! 꼬리친다? 머머하는 것들은 확 그냥... 여기서부터는 각자 본격적으로 할 말이 많아지니까 멈춰야겠다. 경쟁심1에서는 잘난 척 하지 마라(도시에 사는 아동이 시골에 가서 애들과 만나는데 '주머니에서 손 빼라' 라는 말을 들었던 꼬마는 분명 있다), 경쟁심2에서는 누나들과 바텐더의 1위 선정에 따른 반응! 만 빼고.
그러니까 소속사에서 신인 연예인에게 신신당부를 한다. 제발 입조심 좀 하라고, 제발 생각을 한 다음에 말을 하라고! 그러나 저 꺼림직한 낱말의 반대라고 해서 단순히 상중하로 분류하면 끝인가? 아니다. 절대 아니다. 적어도 예와 아니오가 확실한 사람이 있는 반면에 완벽한 0이나 1은 절대 없는 사람도 있으니까. 이처럼 살짝 훑어보기만 해도, 행간을 슬쩍 곁눈질만 해도 백화점과 시장의 차이는 한눈에 훤할 수 밖에 없다. 극명하게 차이가 난다. 단, 뭔가를 아는 사람에게는! 그런데 이처럼 달변과 눌변, 표준어와 사투리의 차이만 있냐, 하면 또 그렇지 않다. 달변의 세계로 들어가면 그 세계가 좀 넓냐! 약장수로 시작해서 단지 말만 많은 달변가, 즉 말로 먹고 사는 사람들의 화법을 듣고 보면 딱 그렇다. 한마디로 소통은 매끄러운데, 그런데 소통만 매끄럽다. 그 섬세함의 극명한 차이, 바로 그 방대함은 역시나 우리의 삶과 직결된다. 그것이 모여 인생이 된다.
나이트클럽 특급 웨이터의 이름은 외국어로 '막살자'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정말로 우리네 인생이란 그래야 하는 것만 같다. 뭐? 막살라! 응? 막살라고! 표현이 좀 고급스럽지 않아서 그렇지 어떻게 보면 썩 틀린 말도 아니다. 이 세상에서의 단 1번뿐인 인생, 막살라, 마음껏 하고 보고 마시고 춤추며 뛰어 놀라는 게 왜 나쁜 견해일까? 나쁜 견해 아니다. 단지 <막살자> 그리고 <하고 싶은 일을 실컷 즐기며 사는 것>, 이 전자와 후자의 차이가 정말 어찌 보면 종이 한 장 두께 차이라는 점. 다만 그게 뭔가 이따금 석연찮고 애석할 뿐이다. 물론 아주 가끔 말이다. 그러므로 파릇파릇한 젊음과 함께 어른들도 상당수는 인간의 감정 기제에서 제일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인 자존심을 잘못 인지하며 살 공산이 크다. 자존심이란 단지 내가 최고, 그것만이 아니다. 지기 싫다 지면 기분 나쁘다는 것이 자연스러운 본능이고, 내가 최고라는 것도 물론 자존심이다. 그러나 다만 그것만으로 고급이기는 어렵다. 진짜 자존심이란, 왕이 사극에서 활약하는 왕이 진짜 왕인 것처럼 그런 것이다. 무사의 로망이요 문사의 꿈인 어떤 상을 내게? 드물게 벌어지는 일처럼 수상 거부랄지, 또는 수상 소감에서 나의 솔직함을 표명하는 것이다. 내게 이 상을 왜 줬는지 도무지 모르겠다고. 또 있다. 도로 사이클 대회에서 최근 급부상한 새내기가 1등으로 골인을 앞둔 상황, 만년 1인자였는데 현시간부로 2위나 3위로 골인을 앞둔 선수의 굳건한 결심과 확고한 판단! 저 인성이 되먹지 못한 놈에게 져서 2등인가 3등으로 골인할 바에야 차라리 난 골인하지 않겠다, 라면서 결승점 직전에 급브레이크를 밟아 게임을 포기하는 일. 바로 그런 걸 일컬어 자존심이라고 한다. (심심하면) 부러우면 지는 거다, 머머의 자존심, 솔직히 말해서, 너도 알다시피, 내가 봤을 때는... 속셈 뻔히 보이니까 떠볼 필요도 없는 관용어법처럼 자존심을 남발할 게 아니라. 응? 바로 그런 걸 자존심이라고 한다. 언제나 나는 최고 나는야 켄타우루스? 코흘리개 꼬마들도 그 정도는 한다. 하오나 그건 나쁜 것도 아니고 단지 인간의 본성이며 사회의 질서일 뿐. 때로는 우정을 1.1이나 1.2를 선호할 수 있듯이 말이다. 그래서 저명한 연설가는 또 사랑은 동등해야 함을 강조하기도 한다. 그렇듯이 뉴스만 봐도 틈틈히 나온다. 자수성가한 세계 부호 몇위라는 신성, 또는 작위가 기본인 뼈대 있는 가문의 귀족 출신이 택시 운전을 하는 얘기들 말이다.
따라서 결론은 모순이다. 아니 아예 결론은 없다. 뭐야, 또 우리들 좋아하는 <없다>네. 허허 아 나 이거 정말, 세상에나. 칼럼니스트는 없다, 짠? 애독자를 띄울려다 결국 필자가 공중에 뜨고 말았다! 어제 본 영화에서도 그랬다. 막판에 공중 부양! (영화는 영화다 라는 관점에서만 봐도) 난 그 영화 괜찮게 봤다. 호러 장르를 자주 보고 싶지는 않지만 말이다. 그런데, 정말 그런데 호평이 있으면 악평이라고 왜 없겠나. 누군가 또 그랬을 꺼 아니냐고. 무슨 생선 같은 놈 하나 나와서 여자랑 연애하는 영화였다는 식으로...... 쩜쩜쩜! 설마 그럼 이 칼럼도? 내가 못 살아! 나도 알고 보니 잘난 척에 멋진 척, 따따부따 허세 작렬에 허영심 마법사였다니!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바로 관심 받고 싶어서 애걸복걸하는 문학계의 스티브 발머였다니! 심지어 무명! 어머머, 저런! 이거 좋아해야 돼, 기분 나빠해야 돼? 뭐 그건 그렇고,
어쨌든 모순은 있다. 찬미와 허풍에 능하면 능할수록 성공할 가능성이 높고, 허당의 3박자를 성취할 가망성 역시 짙다는 것. 그러니 난 이제 꿈을 포기해야겠다? 한마디로 개 풀 뜯어먹는 영화다 라는 악평을 듣더라도, 감독님 절망하지 마세요! 이걸 지금 나보고 보라는 얘긴가 애들 장난도 아니고 어쩌고저쩌고, 에 한달 내내 쓴웃음만? 마냥 낙담하기엔 인생의 심오함과 우주의 성스러움에 송구스럽지 않은가! 때로는 쓴소리가 약이 되고 살이 될 수도 있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말 또한. 무슨 말 같지도 않은 걸 작품이라는 건 얼마든지 괜찮다만, 허나 차마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역설적 칭찬에 성급히 실망을? 타석 없이 득점왕은 없다! 시작이 반이다. 성공은 실패의 어머니다. 무엇보다 3루수는 천리안급 소머즈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자다가도 내 험담이라면 벌떡 일어났던 3루수도 일찍이 깨달았다. 아아, 돈을 번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구나 라는 진실을. 2부리그의 2군에서 팬클럽 때문에 축구한다는 친구도 있다. 아르헨티나 바람둥이한테 차였다고 남쪽을 보고선 오줌도 누지 않는다, 외국여행 중에 호주에서 스페인 마초를 알게 된 다음부터 나는 스페인에 대한 악감정이 생겼다? 인생 내내 그처럼 호탕한 자세로 살아갈 배짱이 두둑하다면, 부디 소신 있는 태도 변치 마시길. 친구보고 연예인병이라더니 알고 보면 내가 중2병이지 않을까, 한번쯤 생각해보기. 랍비도 취미 생활이 있고 신부님의 전공 서적에도 모순은 결코 적지 않다. 그걸 알면 된다.
내 수준은 어디에 명함을 내밀 정도는 아닌데 일전에 어쩌다가 눈치를 챈 일이 있다. 그건 내 깐족과 아부의 능력을 친구가 부러워하더라는 것. 딱 부럽다고 하면 재수없고, 때에 따라 필요하단 걸 인정하는 정도. 썩 불편함으로도 모자라 적어도 얄밉고 꼴보기 싫어하며 시기한다는 점. 난 봤고, 최소한 내가 눈치 챌 만큼은 보였다. 뭐야 이거, 딱 봐도 내 자랑이잖아? 이런 젠장! 난 정말 알고보니 어디서 절대 빠지지 않는 가식덩어리구만 그래. 아무튼 어떻게 보면 이 세상도, 우리네 인생도 정말 모순이다. 그러니까, 거짓말을 잘하면 잘할수록 귀감이라니. 어떻게 그런 진실을 다들 모른 체하며 태연히 사는 걸까! 늬가 더 미워? 그러니까 양치기 소년들은 처음부터 인생의 목표를 연예인으로 정하고, 설령 연예인이 못될지라도 일부는 연예인병에 걸린 체로 사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냥 허당과 은근 허당의 차이, 성실한 타석가와 최고의 타격왕-홈런왕-득점왕의 차이, 자존심1과 자존심2의 차이, 일반인과 연예인의 차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는 좀처럼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걸 연구하며 분석하기는 더더욱 어려울 테고. 하지만 이렇게 별다른 결론도 없이 칼럼을 끝낸다? 거실에는 다큐멘터리를, 노트북으로 사라방드를 조용히 틀어놓고 이제 본격적으로 꽤 괜찮은 연애소설의 기막힌 반전을 구상할려던 찰나 TV는 고장나고 노트북은 바이러스가 걸리는 게 차라리 낫겠다. 밥을 먹다 마는 것도 아니고, 사랑을 하다 마는 것도 아니고. 어젯밤 꿈자리가 사납더니,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그래서 나는 드디여 결론을 생각해냈다.
결론: 앞서 언급한 사정들 때문에 우리는 왜 그런가 하면서 서점에서 인문교양서를 잠시 뒤적일 수 밖에 없다. 아예 그 단계를 뛰어넘을 수도 있고. 그래서 누군가는 당대 최고의 자존심 거장들의 재롱을 지켜본다. 실체 없는 허상을 믿고, 사랑에 속고, 인생을 배우는 일? 꿈과 희망도 좋지만 자존심, 행간, 결과, 본심과 의중을 아는 게 먼저일 수도 있다. 2루타 치고 나가 견제구에 죽고, 홈런성 타구가 아깝게 잡히는 것보단 무모한 기습 뻔트로 청춘의 흥분을 되살려보는 건 어떨까. 감독한테 미운털 박히는 건 잊어버리고. 그러니까 또 누군가는 자존감을 극진히 포장하는 브랜드의 주식을 일찍부터 미리미리 사두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자신감 만세 부흥회는 오늘도 어디에선가 열릴 것이다.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할 수 있다! 말리고, 엮이고, 감기며, 언제까지 피동적으로! 그걸로도 모자라 툭하면 지는 비교에 무엇을 하고 어떻게 살면 안된다는 간접 설명만? 말하자면 그러니까 그 친구는 아직까지 여자친구가 없는 것이다. 응? 그러니까 그분이 안되는 거라고! 지는 건 지는 거고, 실패는 실패다. 망할 때 망하더라도 우리는 마땅히 그래야 하지 않을까? 주체는 나고 주어도 나며 동사도 능동태 말이다. 잡고, 넣고, 차고, 패를 돌리며, 밀고, 당기다가 마침내 쥐락펴락이 뭔지를 깨닫기! (단, 능동-피동과 별개인 '정분나다-바람나다'라는 논의는 따로! 정을 주고 사랑을 받고, 그러니까 뭐 또 그 놈의 사랑이라니) 설전과 고집과 자존심은 상당히 알아주는데 성과가 없어? NO! 또 검집만 애지중지 아끼며 평생 신부들러리만 설 게 아니라면! 아무리 짜리몽땅할지라도 검집에서 검을 뺐으면 무라도 썰자. 이 시간은 지나가버리면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까. 미루기가 아닌 머머하기에 열망의 실천을 더한 값, (딱) 그분의 고귀한 존함은 다름 아니라 실행력이다.
그러든 어쩌든 세상 돌아가는 거야 그렇다 치고, 우리네 인생이 어디 남의 인생이던가! 자, 그럼 이제 우리도 낮에는 허세왕과 놀고, 밤에는 허영심의 신과 찐한 사랑을 나눠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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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친 김에 칼럼을 하나 더 썼다. 결국 난 하다 하다 스포츠 칼럼을 쓰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꼭 어딘가에서 넌 그런 거 못하자나, 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단지 최근 관심사에서 축구가 어느 정도 비율 이상이다 보니 뭔가 할 말, 곧 말하고 싶은 뭔가가 생겼을 뿐. 아무리 그래도 느닷없이 스포츠 칼럼이라니 쩜쩜쩜! 각설하고 칼럼은 다음과 같다.
제목: 축구 대회 (클럽 리그가 아닌 월드컵 기준)
내용: 결론부터 말하자며 단기전 승패는 크게 세 가지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포지션.
둘째, 선수 구성.
셋째, 축구는 한방.
(부가 설명)
첫째는, 브랜드가 포지셔닝이고 인생은 내 마음대로이듯이, 선수 개개인이 포지션에 최적화되고 최상의 상태인가에 물론이라고 확답할 수 있다면 경기가 잘 풀릴 가능성 및 승리할 가능성이 그만큼 크다.
둘째는, 선수 명단을 잘 뽑았냐에 따라 수비 범위와 공격 능력도 어느 정도 결정됨. 전문가는 선수단 구성의 조화만 봐도 예상이나 예측이 아닌 예언까지 가능함. 때문에 배당률도 영향 받고, 전문가의 과학적 추정이 최소한 절반은 적중함.
셋째는, 축구는 단체 스포츠이니 만큼 협업도 중요하지만 이 세상은 슈퍼스타를 반기는 법. 따라서 출중한 공격수야 더없이 반갑다. 하지만 반짝 스타라고 이슬만 먹고 살수는 없는 법. 다시 말해 기본이 최우선. 그러므로 함께 움직이는 게 전제되어야 함.
본론으로 넘어가자면 이렇다. 축구를 하고-보고-읽고-듣고-토론한다 라는 총량을 따졌을 때 나는 일 년 평균 몇 시간이다, 라는 관심도에 대해서 개개인이 상중하로 나눠지는 건 사실이다. 그런데 거기서 팬들의 의견이 심하게 분산되는 건 각자 호감의 대상이 다르고, 이성적인 분석보다 감정이 앞서기 때문. 따라서 그 다양성을 취합했을 때 절반은 설득력 높은 논리적 의견이고, 절반은 농담에 장난이며 놀이에 더 가깝다. 그에 더해서 일장연설. 우선 축구를 다른 스포츠와 비교해보자.
첫째 농구. 농구와 축구는 공을 골대에 넣는 건 똑같지만 포지션에 대해서는 하늘과 땅 차이다. 말하자면 농구는 객관적으로 내가 수준급 다역할 선수면 자신감 만점에 결과도 만족이다. 예를 들어 마이클 조던은 거의 모든 포지션과 작전 수행이 가능했다. 그러나 축구는 포지션의 역할이 비교적 농구보다 절대적이다. 아울러 농구는 대인 마크, 축구는 포지션. 때문에 다른 스포츠가 아닌 축구를 하는데, 수비든 공격이든 포지션에 충실하지 못한다면, 경기장을 넓게 쓰지 못한다면 대체로 경기 결과를 긍정하긴 힘들다.
둘째 배구. 배구는 포지션 강제 이동이 규칙으로 정해져 있다. 그래서 리베로라는 제도도 있고. 왜냐하면 배구는 공수 교대가 깔끔하고 무대가 작기 때문이다. 가령 한 게임이 총 50점으로 끝난다 그러면 똑같이 50번의 포지션 이동이 발생한다. 물론 어기면 반칙이다. 반면에 축구의 포지션은 규칙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효율을 위한 권장안일 뿐 지켜야 할 의무는 전혀 없다. 그러므로 공만 따라다니는 동네 축구는 규칙을 잘 이용하는 거다. 독학으로 일류가 되서 유명해진 웨인 루니? 동네 축구 출신이다. 또 축구는 공수 교대가 불규칙적이고 무대가 크다. 그래서 축구는 배구보다 포지션이 더 능동적이고, 배구의 세터에 해당하는 축구의 플레이메이커 역할이 배구 만큼일 수는 없다. 따라서 축구는 개인 포지션의 한계를 넘나들 정도로 많이&열심히 뛰는 팀이 이길 확률이 높다. 단기전에는 특히 더. 단, 내 포지션이 무엇인가를 잊으면 안됨. 단적으로 봤을 때 7부 리그는 동네 축구일 수 있다. 그런데 상위 리그는 역할과 위치가 분명한 고급 축구다. 그러나 다시 1부 리그를 보면 그건 아마도 격상된 동네 축구에 가깝지 않을까? 다시 말해 아동의 그림이 7부 리그면 2부 리그는 수준급이고, 다시 1부 리그는 어린이의 그림과 비슷한 값비싼 명화일 것이다.
축구 단기전 대회 관전 포인트에 대한 거론을 반복하자면 이와 같다.
1.선수 포지션
2.선수단 완성
3.당일 선수 명단. (근처 포지션에서 선수A + 선수B가 안 어울리는 조합으로 수차례 증명됐으면 그 둘을 함께 기용하는 건 가능한 한 피하는 게 좋음. 실험과 연습등 1-2-3은 준비 단계에서 끝내면 좋고, 뚜껑을 열고 난 다음에는 3번만 가능. 물론 역으로 부조화가 있으면 조화도 있음. <누구+누구>, 1승점을 안고 시작하는 것일 수도 있음 )
4.현대 축구의 특징들. 미드필더 우위, (심리적) 압박, 수비 안정, 뻥-축구, 원터치 슛, 원터치 패스, 최적의 패스, 체격 축구, 유럽 축구. (게임 결과를 놓고 선수 개인에 대한 평가도 좋지만 개인에 앞서는 선행 조건을 따지는 게 우선! 미드필더가 우위였나? 글쎄요! 수비는? 그나마 선방! 그럼 공격은? 안 풀린 원인은 뭐니 뭐니 해도 미드필더 라인 문제이지 않을 런지. 거기다 수비 라인업 자체가 애초에 불안했다면 백약이 무효. 응원하는 팀의 공격이 안 풀린다? 원터치 패스가 되는가 안되는가, 최적의 패스가 반복되도록 공간이 형성되는가, 그처럼 뭔가 원인이 있다. 선수단 구성이 이상하다, 미드필더 라인업부터 밀린다? 경기가 쉽게 안 풀릴 확률 80%를 안고 시작하는 거다. 더군다나 현대 축구에서 수비만 아예 탄탄히 걸어잠그면 골 넣기가 여간해서는 힘들고, 베스트 주전이 몇몇 이탈된 체 출발해도 상당히 어렵게 시작하는 셈이다. 시작도 전에 주전 (줄)부상으로 전력에 공백이 생겼을 때 드디어 벤치에서 대타가 등장한다. 그렇게 해서 결과가 좋으면 다행이고 열정만으로 부족했으면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다. 고로 수비가 망하든 어쩌든 1~2실점 예상 된다면 미드필더에서 승부를 거는 건 무리수가 아닐 수도 있음. 그 수비-미드필더 라인업으로 1~2실점? 얘기는 많겠지만, 오히려 선방이지 않을까!)
이와 같은 관전 포인트 외에 상대성, 경기 흐름, 작전, 변수, 분위기등 따질 건 많다. 하지만 그건 준비 다음의 얘기다. 축구는 배구나 농구와 달리 작전 타임이 없다. 전반전 끝났을 때 외에는. 그런데 경기 중간에 작전이 변경된다? 변경될 수는 있다. 그러나 그렇게 큰 의미와 막중한 영향이 있는 경우는 많지 않다. 오히려 선수 교체가 최선이자 유일한 작전 변경이라고 생각하는 전문가들 또한 적지 않을 것이다. 작전에 대한 얘기가 많기 때문에 하는 말인데, 작전의 1안이니 2안이니 그건 크게 의미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작전을 조율할 시간이자 경기 흐름이 확실하게 끊기는 시간은 전반전과 후반전 사이 딱 1번 뿐이기 때문이다. 그걸 아니까 경기 도중에 어떻게든 다그치고 알려서 작전 변경을 시도한다? 강경파랄지 돌부처급 감독 가운데 드물게는 이렇게 답하는 분도 계실 것이다. 없을 수가 없다.
「의도는 지도 알지요. 열망이 뭐가 나쁘겠시요! 거친 그분들 말씀 번역하면 뭐겠서요? 응원인 거 지도 알지요. 왜 몰라요? 내래도 애호가이구 응원단 입장에서 응당 변화를 바라잖소. 그런데 나가요 감독을 해 보니 그렇습디다. 지도 집에서 과자 먹음시롱 TV로 경기 보며 그러고 싶소. 저마는 왜 저렇게 빨빨거리며 돌아댕기나 라고! 그렇지만 직업인으로 살아보시라요. 솔직히 지는 선수 생활 비리비리했더래요. 그래서 일찍 돌어섰시요. 그래서 선수 생활 접은 다음에 청소년팀 감독 10년, 아마추어3부 리그 수석 코치 10년, 프로 2부 감독 대리 10년, 1부 감독 20년까지. 그렇게 해서 뭘 깨달았는지 아시겠소? 경기장 안과 밖은 달라도 너무 다르구나, 그게 저절로 알아지대요. 아무리 심하게 관중이 뭐라고 해도 우리는 꿈쩍도 안한대요. 귓등으로 듣지도 않고 귓볼이 간지럽지도 않소. 일절 쳐다보지도 않아요. 눈길도 아까운데 뭐하러 쳐다보겠시요? 어쩌다 경기 끝나가는즈음 딱 한 번 째려보는 일 정도는 간혹 드물게 있겠지만요. 결론만 말하자면 그렇소. 작전 변경이요? 말도 하지 마시라요. 그래요. 말은 하지요. 이 말 저 말 참 많이도 해요. 지도 사람이니깐요. 그래요. 그렇지만, 그럼 뭐한대요? 그래 봐야 씨알도 안 먹히는 거래요! 그래서 한때 제 동업자였던 주제 무리뉴 감독이 축구도 작전 타임을 도입하자고 주장하기도 했더래요. 하 나 이거 정말! 한때 무리뉴 그 친구 나랑 눈도 마주치지 못했는데, 정말 많이 컸지요. 내 앞에서 눈 딱 깔았서요. 내가 막 밥도 사주고 술도 사주고 거의 내가 업어키웠다고 봐도 되더래요. 그러믄요. 그런데 지금 그렇게 크게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시아요? 그런데 내가 유소년 팀에 자리 알아봐주는 동안 갑자기 잘되기 시작하더니 연락을 뚝 끊더라구요. 의리 없는 놈 같으니라고. 어? 남자 대 남자로 그러면 되요, 안되요? 세상이 고처럼 냉혹한거래요. 암요. 뭐 그야 믿거나 말거나는 절대 아니래요. 당시 내 비서처럼 사는 녀석을 본 친구가 대체 몇명인데요. 아무리 그래도 지는 그아 면도 세워줬더래요. 누구 꼬봉이라 소문나면 쓰겠어요? 그러면 누가 좋다고 하겠어요! 왕년에 우리가 그랬는데 조제는 내 생각 안 나나 몰라요. 난 지금처럼 이따금 옛 생각 하더래요. 솔직히 난 갸 좋아했더래요. 주제가 왠지 귀여웠걸랑요. 그 친구도 날 무지 따랐어요. 그래도 잘되서 소식을 듣고 보면 흐뭇하더래요. 그 당시 녀석은 축구 밖에 몰랐더래요. 그렇다고 끄덕끄덕할 것까정 없어요. 왜겠어요? 왜냐하면 그때 주제는 여자한테 인기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래요. 허허허. 주제를 보며 오빠 오빠 하며 따르던 숙녀들도 날 한번 보고 나면 다들 생각을 고쳐먹었지요. 그 뿐만이 아니라 옛날에 내가 가르쳐준 전술과 특별히 주제한테만 전수해줬던 선수 관리법을 아직도 써먹고 있더래요. 허허허. 감회가 새롭더래요. 그렇다고 다 지난 일인데 이제 와서 어쩌겠어요, 그냥 그렇단 말이래요. 그야 뭐 지나간 일이고. 아무튼 그렇기 때문에 지는 감독 생활 언제부터던가 그때부턴 그렇게 하지요. 선수들한테 감독인 지가 요구하는 건 기본기 위주로 딱 3가지, 한 경기에 그 3가지를 골라서 경기 시작부터 끝까지 내내 그것만 보는기라요. 오직 그것만 외치는 기라요. 딱 그것만 부르짓는 기라요. 그럼요. 프로라고 결코 기본기로부터 자유로울 순 없디요. 그래선 안되는 거래요. 기럼요. 그런데 하나 재밌는 건 뭔지 아시겠어요? 그건 무엇인고 하니, 바로 셋도 많더라는 점이래요. 그래요. 하나 둘이 딱 좋아요. 그치만 사랑할 때 들뜨는데 경기할 때 어떻게 흥분하지 않겠어요? 그래서 내는 묵주 여럿 해 먹었더래요. 적어도 3박스는 될 거래요. 그라믄요. 흐흠. 이제 좀 직업인의 심정을 아시겠시요? 물론 저랑 정반대로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더래요. 그런데요... 설마 녀석들이 날 엿먹일려고 일부러... 뭐시여? 이 자식들을...! 흐흠. 그러니까 무리뉴는 뜨고 난 아직꺼정 이 바닥에서 찾는 사람이 많지 않다? 뭐 어떻든 난 그 냥반 하나도 부럽지 않소. 구러믄요. 네? 제 이름을 알고 싶다구요? 제가... 구단에서 쫓겨난 건 아니지만 거장도 아니래요. 그러니까 비밀이래요. 허허허허허.」
곧 경기 중 작전 변경에 대한 서술자의 생각은 다음과 같다. 경기 중 작전 타임이 몇 번 있을까? 스포츠마다 다르다. 작전 타임이 많다, 작전 타임이 적다! 예를 들어 전자로는 음... 구간 구간이 짧으면 모두 작전 타임이니까 전자가 대부분이다. 야구, 농구, 배구, 미식축구등. 그리고 중간은 아이스하키요, 후자로는 축구가 거의 유일하다. 미래는 몰라도 지금은 그렇다. 오히려 축구가 그 속도감 때문에 규모가 커졌을 수도 있다. 어쨌든 전자는 작전이 경기 중간에 변경되어도 주효할 가능성이 있고, 후자는 작전 변경을 시도해도 그렇게 적용되거나 성공하기는 힙겹다고 생각한다. 물론 면밀한 과학적 조사는 거치지 않은 체 단순히 그럴 것 같다는 추측일 뿐이다. 아무튼 현실은 그럴지라도 마땅히 준비했던 걸 시도하는 건 좋고, 변화도 필요하며, 내용을 점검해 코치진 의사를 선수에게 전달하는 것도 옳은 일이다. 하지만 경기장에서는 연습했던 작전을 모두 기억하기도 힘들고, 구사도 어려울 뿐더러 제일 잘하는 작전만 실행하기도 벅찬 실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작전이 변경되기도 힘들고, 변경되어도 효과가 금새 나타나기를 바랄 수도 없다. 곧 전술 역시 이미 준비 단계에서 끝나는 거다. 결과만 보더라도 선수들은 대체로 경기를 시작하면 백지로 돌아가서 뛰는 셈이다. 음악가가 줄리어드 음대를 수석 졸업한 다음 연주회를 하든 뭘 하든 매번 배운 지식대로만 곧이곧대로 하며 살지는 않는다. 그래서 토너먼트 대회에서 준비만으로 이미 절반은 결과가 정해진 채로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감독이 명장이면 좋고, 선수의 소속팀 활약 역시 뛰어나면 좋다. 그러나 더 앞선 기본은 <1.선수 역할>에 알맞는 최적의 <2.선수단 구성>이다. 여기서부터 애매하다면 특급 도박사는 흡사 귀신처럼 슥 발을 뺀 줄도 모르게 빼버린다. 그처럼 1번에 따라서 2번이 합리적으로 구성되어야 하고, 1번에 따라서 3번을 유의하고 작전을 짜며 연습이 이뤄져야 한다. 1번에 따라 손색없는 2번이 갖춰졌고 준비가 중간은 됐다, 만약에 그렇다면 경기에서 끌려가더라도 언제나 희망은 있다. 끝나기 전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야구는 9회말 2아웃부터다. 저 1-2-3이 모두 흠잡을 데 없으면 지고 있든 이기고 있든, 일단, 경기가 재밌다! 반면에 1-2-3 모두 어째 뭔가 이상하면 점수와 관계 없이 경기가 재밌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러면 필경 희망도 뿌옇다. 설령 미드필더와 수비 불안은 감안하더라도 경기가 심상치 않다, 만약 그렇다고 해서 미드필더나 수비를 빼고 공격수만 3명 더 기용하면 그건 모험이라기보다는 경기를 거의 포기하는 거나 다름없다. 작은 무대에서, 개인이, 또는 축구에서 시간이 촉박할 때 어쩌다 최후의 카드일 수는 있지만, 그게 아닌데도? 그건, 이도 저도, 아니다. 이판사판은 예술이라면 몰라도 정신력이 집합되는 스포츠에서는 쉽게 통용될 리는 없다. 야구에서 수비진에 모두 투수만, 공격할 때 모두 뻔트 전문 요원만? 그러면 그건 '그런 얘기는 나라도 하겠다'가 아니라, 진짜로 우익수가 내 대신 우리 회사에 출근하게 되고 나는 우익수 자리를 꿰차게 되는 거다. 스포츠 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지는 건 좋다. 적어도 나는. 다만 스포츠가 아닌 코메디, 재계에서 영화 찍고, 기초학문의 건재─아티스트의 자존심─오락산업의 번영이 제각기 혼동되는 일은 바라지 않을 뿐이다. 마담과 마님을 착각해선 곤란하니까. 그러나 막상 소란스러워진다면? 그럼 '으쌰으쌰는 뭐다'라는 미스테리아 편집장의 억측이 충분히 타당하다는 게 증명되는 건가? 아니면 품위란 게 존재하듯이 인간은 부끄러움도 수치심도 느낀다, 고로 인간은 한낱 동물에 지나지 않는 게 아니라 인격을 지닌 존엄한 개체다 라는 실증에 다름 아닐까! 아니다. 다 아니다. 단지 준비부터 불안불안했다는 게 중요하고, 나는 준-서포터즈 조마조마의 일원이지만 회원 자격 박탈을 코앞에 두고 있다는 게 더 중요할 뿐.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험을 걸 수 밖에 없는 처지도 있다. 그래서 처음부터 3번을 전위적으로 구성하는 경우도 어떻게 보자면 흔하다. 왜냐하면 약자야 밑져야 본전이니까. 그렇더라도 좋은 방법은 절대 아니다. 팬들도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라는 전후좌우 사정을 참고하여 말하는 게 더 어른스러운 거다. 그게 아니라 이러쿵저러쿵? 애들은 차라리 웃으면서 논다. 초딩을 보고 초딩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다 아니까. 그런데 어른은 어른인데 답 없는 어른일 땐 초딩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어른들은 철들면 재미없다는 거네. 아무리 그래도, 전력과 상대성에 주전 줄-부상으로 빠진 채 시작하는 건 기대를 반틈은 내려놔야 결례가 아니다. 알고 보면 축구 만한 정신 스포츠도 없다. 이론과 실재에 대한 말들이 많을 때는 그 종목의 규모를 보면 된다. 자본! 뉴스만 봐도 장난이 아니네? 정신력 싸움 장난 아니라는 증거다. 때문에 의욕 대비 효율이 낮거나, 투지는 높은 반면 감독의 전술이 적중할 가능성은 팬들의 예감에 부응하기 힘들 수도 있는 것이다. 일단 그대가 봤을 때 저 2번과 3번부터 내 마음에 들지 않고, 지극히 상식적으로만 봐도 뭔가 어중간하다? 결과는 환호성보다 쓴웃음에 더 가까울 공산이 크다. 선물옵션이 아닌 채권으로 수익률 20퍼센트면 초대박, 감독으로 팀을 30퍼센트 개선시켜도 극찬감, 그러나 말도 많고 준비도 많았던 단기전의 뚜껑을 딱 열었는데 어째 뭔가 애매하다 그래서 급하게 팀 전력을 40퍼센트 끌어올린다? 그랬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니까 다른 방법을 찾지 않을 수 없다. 예를 들어 오로지 잘하는 무엇에만 집중한다랄지, 후반 끝나기 20분 전에 총력전 등등. 물론 강자의 반전과 약팀의 봉기는 생각보다 훨씬 짜릿하다. 그래서 스포츠란 게 재미있고. 그렇기 때문에 문득 떠오르는 의문점은 두 가지다.
첫째, (나랄지 그분께서) 언제부터 축구를 그렇게나 사랑했다고, 어? 내가 가난한 이유도, 내가 실연당한 까닭도, 평소에 항상 심심하다랄지 불행한 동기마저 모두 축구 때문일까? 아마도 아니기를 바란다! 기도해야 한다면 기도하겠다.
둘째, 축구는 그렇게 잘 알고 좋아하며 관심이 많은데, 그런데 도대체 왜 <막살자>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인생을 산다>라는 차이의 기준은 그렇게 들쑥날쑥할까. 이기주의와 이타주의가 동일하기를 바랄 수는 없지만 나와 남을 보는 기준을 일부러 꼭 턱없이 낮춰야만 하는 건 아니다. 그러니까 유독 왜...! 그 만한 열의의 반틈이면 난 정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또는, 눈 딱 감고 나는 무엇을 해서는 안되는 것일까! 어른들 태반은 성장기에 엄마의 잔소리 때문에 귀에 못이 박혔을 것이다. 늬가 그렇게 공부를 했다면... 라고.
사석에서야 뭔 말인들 못하겠냐마는 난 혹시 익명이라고 말을 평소에 심하게 하는 건 아닐까? 오늘도 난 운전은 사고만 안 내면 그만에, 대인관계야 의사소통만 되면 그만이며, 어쩌면 막사는 밤의 황제를 동경하는 건 아닐까! 막사는 사람이 있으면 막말자(막말하는 자)라고 왜 없겠나. 꽃이 예쁘고 과일이 탐스러운 게 다가 아니다. 꽃은 시들고 과일은 흙으로 돌아갈 운명. 나 좋을 때만 자본의 논리를 옹호하며 살기엔 차마 동물에게 미안한 일이다. 토크쇼에 아티스트를 모셔 놓고 놀리며 깐족거릴 수는 있다. 그러나 남의 집 귀한 딸을 데려다 사랑을 잘못 가르치는 건 다른 문제다. 일단 사랑은 어른이 꼬맹이한테 핀잔 주듯이, 뭘 가르치고 닦달하며 다그치는 방식이 전부면 곤란할 것이다. 그렇게나 사랑을 잘 아시는 분이 왜 갑자기 또 사랑을 들들 볶냐구요? 글쎄요! 그 이유를 낸들 알겠수? 그런데 대관절 왜 지금 그런 격언이 생각나는 것일까. 암닭이 울면 어쩐다느니, 마누라? 여편네? 여자와 북어는 이틀에 한 번씩은...! 그러니까 왜 그런 말이 생겼냐, 대관절 그 경구는 어떻게 모르는 사람이 드물 만큼 유명해졌냐, 시대착오적이라는 둥 반론할 가치도 없다는 둥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단지 도대체 왜, 내가 대체 어떻게 그런 속담을 알고 있는지, 다만 그것이 설핏 의아할 뿐!
뭐 그건 그거고, 이와 같은 이치처럼 축구에 대해서도 우리의 생각과 불평은 위와 같은 기본 사항을 전제로 다듬어진 것인가, 하면 그건 좀처럼 낙관하기 어렵다. 세상의 모순에 손해 보고 플레이보이의 3박자에 밑지고 살 수는 있다.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 라는 말도 좋다. 하지만 하나 뿐인 인생을 막살기엔 인간의 삶이 너무 시시해지는 건 아닐까? 그래서 남은 방법은 많이 뛰고, 경기장을 넓게 쓰며, 한방을 성공시키는 수 밖에. 결과야 어떻든 승자에겐 박수를 패자에겐 격려를! 왜냐하면 진 건 진 거고 열심히 한 건 열심히 한 거니까. 왜냐하면 내가 이 세상에 알몸으로 태어나서 최소한으로 뭔가를 기여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까지는 생각하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선거권 행사는 뒷전인 반면 정치에 불만만 가득한 모습은 썩 아름답진 않을 테니까.
말하자면 철들지 않음은 구단의 성적 저조에 구태여 올라타지 않으면 된다. 관전, 분석, 연구, 전망은 얼마든지 좋다만 정도가 지나치면 그런 게 되는 것이다. 우리 아빠가? 내 아들이? 또는 어떻게 그녀가! 라고. 그래서 누구는 투정과 응석은 양떼처럼 일기장으로 잘 몰고, 누구는 게임하고 넣고 뛰고 던지며 골프장을 걷는 걸로 쌓인 걸 풀며, 누구는 머머접습니다 라며 새로운 분야를 탐색하기도 한다. 그리고 내 친구처럼 오직 바와 나이트클럽을 전전하는 것 말고는 인생의 낙이 없는 사람도 있다. 타고난 건 어쩔 수 없음. 주색에서 술은 전혀 취미가 없고, 능글능글한 유부남이 된지 오래된 데다가 집에서도 손을 놓은지 꽤 됐으며, 자녀의 귀감은 일찍이 포기한지 오래 된 남자. 찾아보면 꼭 있다. 허나 아이 좋아라~ 라는 '감격의 순간을 상상하기'는 공상가만의 습관이 아니다. 하오나 <워매 좋은그~>는 무엇이 있을까는 굳이 논하지 말자. 우리의 친구들 중에 걸출한 물건들이 좀 많았나. 달리 보면 이렇겠지. 엘리트 위주인 교우 관계가 회전목마라면 우리는 롤러코스터를 탔던 거네. 아닌 땐 굴뚝에 연기 날까 라고도 하지만 세상에는 추문을 내가 일부러 퍼트리고 다닐 수도 있고, 또 뜬소문이 진짜일 수도 있다. 나는 절대 아빠처럼 살지는 않을 테야 라는 소년의 다짐은 먼 훗날 '웬걸!' 이라는 감탄사로 바뀌지 않는다, 에 나는 베팅할 마음 없다. 나는 아빠 같은 남자랑 결혼할 꺼야, 라는 소녀의 인생관은 엄마의 영향으로 슬기롭게 수정될 수도 있다. 하지만 나중 그랬던 숙녀가 내 친구 같은 남자를 만나지 말란 법도 없다. 딱 봐도 정숙하고 반듯하며 착실한 요조숙녀는 지금껏 어땠고 앞으로도 어쩔 것이다? 역시 희대의 도박꾼들이 크나큰 아량을 베풀어 날 어떤 자리에 슥 끼워주더래도 딱 잃어도 괜찮을 만큼만 베팅하고 싶다. 철들지 않았어도 어른들은 이 세상을 모를 수 없으니까 말이다. 그래도 숙녀의 요염함과 응큼함, 허영심이 구사하는 허세에 대해서는 침묵하겠음. 손을 입술에 대고 자크를 잠그는 몸짓! 왜? 턱짓. 놀라기는! 표정 아주 예술이구만. 허허허허허. 그러니까 한 분은 얼굴이 빨개지고, 한 분은 눈을 흘기며, 다른 한 분께서는 어머나 깜~짝 놀라시네? 저런! 그게 다가 아니라, 어허, 고수는 이쪽에 다 계셨구먼유. 아이고, 몰라 봬서 죄송헙니다. 허허허허허. 뭐 그럴 수도 있지요. 어찌되었든 진정한 포커페이스란 무엇인가를 알겠구먼유. 한수 제대로 배웠습니다. 캬~ 더블린의 3대 명물이야 뭐야? 네? 뭐라구요? 저기 저분 더럽게 재미없고 심심한 남자라구유? 심지어 가난하다? 난 정말 몰랐구먼유. 허허허허허. 왜냐고는 묻지 않겠소이다. 허허허. 이러니까 나는 매번 속아도 속아도 부족하다네. 허허허허허. 흐흠. 농담이고, 뿐만 아니라 다큐멘터리를 보면 어렵게 사시는 분들 얘기도 많이 나온다. 물론 내 안의 응어리랄지 어떤 뭔가를 건전하게 풀기도 하는 반면 어떤 분들은 그걸 인터넷에서 만나 설로 풀기도 한다. 또는 아예 꿍하며 불만을 속에 많이도 담고 성실하게 사는 상남자 유형도 꽤 된다. 각자 성격이 제각각인 에너지를 푸는 방식이 다른 것이다. 그러나 넘어지면 일어나면 된다. 방황은 할 수 있다. 철부지 방탕아의 치기는 이따금 극구 말려도 소용없다. 해결책은 시간을 주는 것뿐. 도와줘야 하는 일도 있고, 스스로 이겨내는 게 좋을 때도 있다. 당근과 채찍은 상반되듯이 말이다. 슬럼프를 벗어난 내가 지금 방황하는 친구를 다독일 수도 있고, 오히려 신경을 끄는 게 도와주는 것일 수도 있다. 사람들은 어쩌다 유혹에 넘어가 '에라 모르겠다'식 행동을 할 수도 있고, '어차피 이렇게 된 거'라는 시절을 겪을 수도 있다. 내일은 없다, 오늘을 살자! 내일은 없다니 오늘을 살자라... 대충 같은 말인데 어감은 확 다르다. 뒤집으면 어감은 달라도 어차피 같은 말이다. 양치기 소년이 나중 소설을 쓸 수도 있고, 피노키오는 어른이 되어서도 뻥을 달고 사는데도 불구하고 순진하게 툭하면 속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인생은 장기전이요, 사랑은 롱런이고, 환상론의 시작은 뻔트다. 여자가 해피엔딩을 왜 싫어하겠나. 유대감은 무엇이고 나와 남의 차이점은 어떤지를 깨닫다 보면 살면서 나와 비슷한 사람도 만날 수 있다. 가령 20대와 40대가 사이좋게 같이 하고 싶은 걸 하며 살되, 절실히 원할 때랄지 딱 긴요할 때만 나이트클럽 '막살라' 웨이터를 소개시켜 주면 되는 식이다. 즉 호감과 비호감, 미덕과 악덕은 단지 순서라는 한 끗 차이 때문일 수도 있을 테니까.
그러므로 축구를 잘 모르는 사람 입장에서 봤을 때, 클럽 대회보다 월드컵이 더 재밌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지구촌 최고 전문가들의 축제인 월드컵이 클럽 대회보다 때로는 현저하게 전문성이 떨어지니까. 으쌰으쌰! 열은 좋고 운도 많이 작용하니까. 일례로 업사이드는 적고 박진감은 넘친다? 당연히 재밌지 왜 아니겠나. 그러니까 매니아들은 챔피언스리그 생방송을 고집할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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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새로운 술집을 탐방했다. 문화계를 산책하는 척 하면서 늘 여심을 탐구했다. 숙녀의 아름다움을 향한 열정은 대망에 대한 동경심 만큼이나 화끈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사랑론을 탐색했다. 여복에 대한 농심의 탐닉은 해도 해도 끝이 없었다. 왜냐하면 최신 판타지─미스테리─스릴러를 탐지하며 예술에 취미를 붙여도 그건 그때 뿐이니까.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웃자고 한 얘기고, 언제나 심심함에 대한 핑계에 불과하다. 찐한 연애에 대한 끝없는 목마름이 아니 어떻게 인생관의 전부일 수 있단 말인가. 내가 언제 플레이보이를 질투했나, 아니면 한량의 3박자를 독학했나. 나는 행운을 과신하지 않은 것처럼 운명을 믿지도 않았다. 점성술을 배운다면 또 모를까 노력도 없이 우연을 조수로 거느릴 수는 없는 일이니까. 허세를 남발하고 단지 허영심을 남용한다고 이 세상이 사랑과 행복을 모두 내게 안겨줄 만큼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누가 모르겠나. 그러므로 나는 부러움을 얄미워하며 선망을 길들이고 멋진 미래를 추측만 할 게 아니라, 미지의 기대주를 발굴하며 놀라운 꿈나라를 탐험해야만 한다. 그러니까 오늘을 살아라, 아니면 그냥 막살자? 그게 아니라 나는 어렵게 결심했다. 천사가 애용하던 요술봉, 요정이 편애하던 마술 지팡이, 더불어 전설의 마녀가 아끼던 솜방망이를 현현시킬 판도라의 상자를 만들어내기로. 그런데 불세출의 추리로 엮인 천상의 문학을 답답한 사무실에서 완성한다? 잘 완성되지 않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나는 분위기를 바꾸고 흐름을 띄우기 위해서 떠나기로 했다. 기대는 체념으로, 예감은 절망으로 뒤바뀔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판돈을 걸어야만 하는 숙명의 순간이니까.
목적지는 집에서 가장 가까운 무인도다. 개인전은 사랑이고 단체전은 우정. 전자는 여자와 후자는 남자와? 라고 농담했지만 떠남에 대해서도 내게 규칙은 있었다. 곧 멀리 떠나는 건 간접 경험, 가까운 데는 직접. 일과 놀이에서 아무래도 일이 우세했다. 때문에 나는 멀리 갈 처지가 아니었다. 핑계 같지만 필기구나 노트북만 있으면 아무 때나 어디서나 그 어떤 주제로도 글을 막 쓸 수도 없었다. 못 만나본 숙녀들이 너무 많은 점과 못 해 본 사랑이 막대하다는 것.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닥치는 대로 따라하며 배우고 믿고 돌아다니던 방랑의 시절은 조금 지났다. 게다가 100대의 자동차를 소유한다면 모를까 100명의 첩을 거느려야 하는 것도 아니다. 멋진 관광지 100곳에 직접 가 본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그건 TV 보기로 대체할 수 밖에 없었다. 우정이 사랑과 거의 흡사하듯이 사랑도 여행과 상당히 비슷한 일면이 없잖아 있기 때문이다.
갔다 온 얘기가 만약 멋지다면 칼럼으로 공유할 테다. 그러나 그저 그렇다? 오히려 그럴지도 모른다. 에라 모르겠다, 그걸 가지고 말도 안되는 허구이자 이상한 문학으로 만들어버리기.
그런데 무슨 떠나기 전에 말만 말만 그냥... 이제 쉿! 말은 그만 하고, 떠날 시간이다.
1
사랑의 목표는 다정한 인사가 아니다. 그 목적이 어떠하건 사랑의 완성과 별개로 사람들이 말하는 사랑의 본론은 다양하다. 다채롭고, 변화가 심하며, 신비롭다. 쉽게 말해 사랑은 욕망의 충족, 본능의 발화, 인생의 축복, 소망의 실현, 운명의 장난, 달콤한 속삭임, 종족 보존 본능의 구현, 추억 만들기, 행복한 연애등 어렴풋하고 불투명하다. <나는 왜 사랑을 하는가?> 그리고 <좋아하니까 사랑한다!>. 전자와 후자 사이에는 단순하게 수학적인 등호 성립은 결코 쉽지 않다. 특히나 사랑하던 당시를 떠나 시간이 오래 지나서 봤을 때는 말이다. 그래서 사랑이란 말이 일단 달달하고, 향긋하며, 한없이 애매하기만 하다. 때문에 애정이든 어정쩡한 우정이든 섣부른 뻔트든, 아니면 진실한 사랑이든 그 모두를 우리는 그냥 사랑이라고 통칭하는 것이다. 1번이든 9번이든 그냥 다 사랑. 어느 청순한 아가씨가 절대 잊지 못하는 그런 유일한 사랑과 웬 플레이보이의 스무 번째 사랑을 견준다면 그건 너무 짠하고, 애잔하며, 통속적이지 않냐는 거다. 그런데 이처럼 사랑이라 명명해도 썩 어색하지 않은 은밀한 오묘함의 신호와 증거가 무엇이냐 하면 이와 같다. 미소, 눈인사, 환한 웃음, 들뜬 마음, 일편단심, 유혹, 윙크, 똑똑 마음에 노크, 팔짱, 애교, 최면을 거는 키스의 몸짓 손짓 눈짓, 하트 뿅뿅! 뭐 처음부터 빽허그? 큰일날 소리! 그러든 어쩌든 수채화 같은 연한 사랑이든, 오다 가다 만난 풋사랑이든, 그도 아니면 값비싼 명화 같은 찐한 사랑이든 사랑의 시작이 무엇이냐? 그것은 바로 스케치다! 빈센트 반 고흐가 까마귀와 태양을 대충 그렸을까? 그럴 리는 없다. 베토벤은 괴팍한 성격에다 연습벌레였고, 유명한 현대 작가들의 계기는 이랬을 수도 있다.
첫째, 리더스 다이제스트 읽기
둘째, 킨제이 리포트
셋째, 52주 소설가 되기 같은 입문서를 우연히 발견.
여기서 첫째는 생활이고, 둘째는 운명이며, 셋째는 뭐냐 하면 그건 다름 아닌 뻔트다. 맞다. 진짜 그렇다. 그래서 사랑도, 기본은 쨉이고 원리도 뻔트가 전부다. 드물게 지독한 예술혼과 미친 인생, 한량의 질주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처럼 뻔트는 닐이 대고, JS는 뻔트 사인만 보냈다. 물론 이미 닐은 그의 친구들 인맥에 섭렵됐다. 그네들 우정에 엮였단 말이다. 그러나 세상일은 마음 같지가 않은 법.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개가 받는다고 릴리의 마음은 누가 뭐래도 여자의 마음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욕심이 부엉이와 같을지언정 장비발에서 포르토피노에게 턱없이 밀렸다. 열세도 그냥 열세가 아닐 테지. 그래서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의도도 그렇고 저의는 물론 순수한 마음까지 그의 역할은 사랑의 다리를 놓는 거였다. 그런데 어쩌다 사랑의 훼방꾼? 두고 볼일이다.
2
그는 릴리와 만나기로 했다. 그래서 그녀가 일하는 미술관으로 찾아갔다. 그렇다고 그가 그녀를 꼭 다급히 만나야만 하는 이유가 절박했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았다. 단지 약간의 심술이라고나 할까? 정작 포르토피노를 릴리에게 소개시켜준 사람이 누군데 사랑이 되든 추문이 되든 그는 일선에서 물러나야 했다. 옳은 모범, 일반적인 수순은 그래야 했다. 그러나 닐과 릴리의 우정이 또 내내 마음에 걸렸다. 행여나 닐과 릴리의 사랑이 결실을 맺기라도 한다면 그땐 정말 포르토피노는 신부들러리도 뭣도 아니게 되니까. 설마 릴리와 포르토피노가 어정쩡한 사이라는 협정을 맺었을 리는 없고, 이 일을 어떡한담!
그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명랑한 현실주의자였으나 한순간에 푸념의 실행자로 변신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니까 결국 이 상황을 허세 예찬자와 몽매한 사랑꾼의 연애로 몰고 가겠다고? 아니면 자신은 뭣도 모르는 바보가 되어 뭘 좀 아는 남자를 한 명 더 끌여들여 상큼한 청춘 드라마를 더럽히겠다는 내막이라도 품은 것일까? 하지만 아직 사랑의 피날레에 대한 징조는 전무하다. 전개가 방방 뛸듯이 기쁘든, 절정이 속수무책으로 응~ 꼼짝없이 사랑의 환희에 굴복할 정도든, 아직은 그에 대한 근거는 턱없이 부족했다. 어쨌든 JS는 공손한 전언자이자 사랑의 대변인 역할에는 뾰로통한 심정으로 거부 의사를 밝힌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와 릴리는 만났다. 가까운 카페에서 샌드위치를 함께 먹으면서 간단히 공복을 건너뛰었다. 그 다음 찻집에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어머나. 이게 누구야! 견디기 어려운 행복을 예감케 하는 방문자시네?」
「응? 릴리가 요즘 뭘 읽고 있지? 아니면 유행하는 멜로드라마에 빠지기라도 하신 건가? 견디기 어려운 행복... 뭐라고? 오빠 부담스럽게 그러기야? 믿을 수 없는 행운을 선물하는 선구자 같으니라고. 얄미운 여주인공! (윙크)」
「계속, 이렇게 가자는 거야? 응, 오빠.」
「아니. 그건 아니고. 널 어린애 취급할 수야 없는 것 아니겠니? 그리고 말장난은 릴리가 먼저 시작했잖아. 오빠가 뭔가 긴요히 할 말이 있었는데 너 때문에 잊어먹었단 말이야.」
「뭐! 뭔데? 응? 뭔데 뭔데? 오빠가 내게 무슨 할 말이 있을까? 고백이야 아님 폭로야? 아니면 뭐, 내 나이 스무 살, 그런 깜짝 선언?」
「오빠가 용기를 발휘해 볼까? 그런데 그건 안돼. 왜냐하면 난 네게 용서 받아야 하니까.」
「뭐라고? 왜, 오빠가 내 비밀이라도 캐낸 거니? 뭔데 벌써부터 안도의 한숨이야? 아 정말 궁금하네.」
「그런데 있잖아. 나 떨려. 너무 망설여져.」
「잡것!」
「어?」
「아니야. 아무 말도 안했어.」
「......」
그는 하는 수 없이 못 들은 척 할 수 밖에 없었다.
「오빠. 숙녀 앞에서 위기를 모면할 생각을 하는 건 아니겠지? 내가 오빠의 할 말을 듣고 뭐 오빠를 경멸이라도 하겠니, 아니면 오빨 때리겠니? 안 그래?」
「응? 응!」
릴리의 턱짓.
그는 눈썹을 위로.
릴리는 어깨 으쓱.
그는 엄지와 검지로 C 모양을, 또 이어서 모든 손가락을 한 점에 모은 듯이 부르르 떨면서...
「지금 수화 하니? 아님 뻔트 사이이니? 나 가슴 졸이며 기다리는 거 안 보이세요?」
그는 릴리의 전례 없는 애원을 모른 체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쇠뿔을 단김에 빼기로 했다.
「릴리, 있잖아. 그게 말이야. 음. 저번에 내가 잠깐. 너의 일기를. 읽었어.」
「뭐?」
엄지 척!
릴리의 샐쭉한 표정.
흥분의 열기.
「아 그건 깜짝 놀랄 만한 우연의 장난 같은 일이었어. 난 또 톰이 쓴 건 줄 알고 말이야. 미안. 미안. 정말 미안.」
그때 흐르는 J.C. 바흐의 오르간 듀엣 작품 번호 18번이 왠지 슬프게 들렸다. 그리고 릴리는 불현듯 어린아이 같은 쾌활함을 회복했다. 아주 잠깐 제이크는 그렇게 생각했다.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욕망의 대가는 애통하다고. 그런데 어떤 고비라도 넘은 것일까? 릴리의 얼굴은 싱글벙글 제이크는 히죽히죽!
「할 수 없지.」
「릴리. 오빠... 때릴려는 거 아니지? 그렇지? 오빠... 용서하는 거다!」
「듣기 싫다.」
「이쁘면 다니?」
「바보!」
「내가? 그럼 넌 공주. 아, 진짜라니까. 정말이야. 응? 여기서도 릴리 저기서도 릴리. 우리 친구들 사이에서 지금 막 응? 장난이 아니라니까 그러네.」
「당신은 사람 설레게 하는 데 뭐 있군요!」
「아, 그게, 음, 그, 어... 어떻게 입이 떡 벌어지는 비밀이라도 대령할가요, 아가씨? 분부만 내려주십시요. 책사는 제 천직이고, 지는 선망의 계획자이자 운명의 집행자랍니다. 전 어쩜 공주님을 위해서 태어났다고나 할까요?」
「아 됐고!」
장난기 섞인 목소리, 의뭉스러움 다분한 표정, 괴상함 가득한 분위기. 작품으로 감상한다면 모를까 직접 체험하기엔 영 달갑지 않은 기분.
「보여줘.」
멈칫멈칫.
「정말로?」
「응. 정말로!」
머뭇머뭇.
「여기서?」
「응. 여기서!」
「그런데, 어디를?」
「뭐?」
「아, 무엇을?」
「뭐긴 뭐야 오빠 일기지.」
「내 일기? 나 일기 안 쓰는데.」
「그래서 안 보여주시겠다?」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라...」
「오빠. 마음의 문을 열지 않으렴!」
뭔 소리지? 제이크는 잠시 착각에 빠졌다. 왜냐하면 추궁의 위력과 명분의 선명함 때문에 릴리가 잠시 남자로 보였으니까. 옅은 환상에 밑도 끝도 없이 돌입해버린 거다. 그래서 그는 다음과 같은 패배의 예감을 떠올렸다.
멋진 농담과 뜬구름 잡는 허풍 때문이었을까? 너무나도 재밌고 웃겨서 견딜 수 없을 지경이어야 옳은 일이었다. 듣는 사람이 평생 미소도, 여자도, 분위기도 모르는 목석 같은 남자가 아니라면 말이다. 그런데 저 심각한 표정은 대체 뭐란 말인가. 하지만 재미없다면 그뿐. 지나간 사랑이야 아름다웠다지만 유감스럽게도 제2의 농담과 제3의 허풍은 타석에 들어서야만 하는 운명. 그 희망 찬 결과가 비록 쓰리뻔트 아웃이든 삼구삼진일지라도.
그런데 릴리의 나직한 발언은 제이크의 환각을 쨍그랑~ 깨트리고 말았다.
「써!」
「뭘 써?」 라고 반문할려는 찰나!
릴리는 노트북을 펼쳐서 그에게 들이밀었다.
「오빠. 써!」
「뭐, 그러니까 닥치고?」 라고 물어볼려다가 다음과 같이 물어봤다.
「릴리가, 오빠 마음을 마침내 읽었구나. 축하해! 그리고 고마워! 안 그래도 그럴 참이었는데. 허허허허허. 허허허허허. 허허허허허.」
릴리는 팔짱을 낀 채 제이크의 썩은 미소를 만끽했다. 그리고 제이크는 인간의 비애를 통감했다. 처녀의 마음을 몰래 엿본 죗값으로 뭐, 재능 기부? 이건 아마도 사랑의 시작 아닐까? 가슴 뛰는 사랑, 못 견디게 기쁜 인생의 노래. 그런데 앞에는 악마의 조소. 제이크는 숙명의 순종자.
그는 왼팔에 새겨진 가짜 문신, 화살에 찔린 심장 문양을 매만진 다음 곧바로 작업에 착수했다.
「아. 카페 음악을 다른 걸로 신청하는 게 어떨까?」
릴리는 말없이 노트북에서 프란츠 자버 리히터의 D장조 트럼펫 협주곡을 틀었다. 그리고 그는 이어폰을 낀 채 칼럼인지 일기인지 정체가 불분명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3
내가 좋아하는 일들의 수효는 항상 풍년이었다. 관심 가는 대상 역시 언제나 만선이었으며, 하고 싶은 일과 이루고 싶은 꿈 또한 적지 않았다. 호기심과 감수성은 하루가 멀다 하고 번갈아가며 날 들볶았다. 판타지에 대한 동경심이라고 왜 빠지겠나. 또한 낭만을 향한 춘몽 역시 언제나 아첨 일색이었다. 어떤 숙녀가 자길 좋아하는지 좋아하지 않는지 간파할 때도 훨씬 지났다. 그러나 나는 허세를 떠받들질지는 않았다. 다만 허영심과 영합했다 뿐이지 뻥이 심하거나 허풍을 남발한 것도 아니었다. 남들 만큼만 열심히 살았고 큰 슬럼프가 있었지만 손가락질 받은 일 딱히 없었다. (거포여, 골-세러모니는 잠시만 자제해다오. 다 똑같은 쇼맨쉽과 환호성, 너무 단조롭지 않냔 말이오) 그러니까, 그래서 결국 남은 건 단지 부러움뿐? 그렇다고 내 인생에서 플레이보이의 3요소가 영 불만족스러웠다고 누굴 탓하랴! 친구 때문에 부정의 구름을 탔네 세상이 날 도와주지 않았네, 라면 그건 나이키와 아마존께서 기가 찰 노릇일 테니까. 그러면 헤르메스와의 우정은 깨지고 큐피트는 도망갈 테니까. 그처럼 대망은 커녕 소망마저 잡힐 듯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신기루였고, 푸념과 소원으로 가득 채울 일기마저 쓰지 않았으니까, 따라서 정답은 아마도 자책일 것이다. 그러니까, 과연 무엇이 문제였나 왜 나는 뻔질나게 사랑을 추종했지만 여복은 내게 턱없이 부족했나, 그래 봐야 연구 결과는 썩 신통치 않을 뿐. NC 같은 환상관에 출입하며, 어설프게 어른 흉내나 내고, 인생론을 펼쳐보며 사랑을 고민해 봐도 나는 멜로드라마의 주인공감이 아니었다. 점쟁이를 닦달해서 인생이 활짝 꽃 피며 출세할 수만 있다면 철학관으로 당장 달려가지 않을 사람이 이 세상에 누가 있겠나. 끈기 대신 변심이, 인내력보다 변덕이 앞서니까, 통상 겉멋만 따라하다 포기하며 단념은 쉬웠을 뿐이니까, 그래서 수박 겉 핥기 같은 인생으로 흘렀을지도 모른다. 그 결과 한눈팔기는 지금 더 흔하고. 하긴, 호감에서 비관으로 흐르지 않고 또 다른 호감 내지 심심함으로 가는 게 미덕이자 낙관적인 삶의 자세인 건 맞다. 다만 큰 재주 하나 없이 잔재주와 잔지식만 늘리며 장비에 대한 선망만 부푸는 게 문제겠지만. 그걸 혹시 이 세상에서는 운명이라고 하는 걸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지. 그런데 알고 보니, 뭐랄까 나는 평균 이상이라고 하면 재수없으니까, 확인은 중요하지 않지만 일단 남들 만큼에 해당하는 허당의 3박자를 경험했다는 걸 어느 날 문득 깨닫게 됨. 적어도 냄새를 마약탐지견처럼 정말 귀신 같이 킁킁 맡던가, 바텐더 대회 세계 챔피언의 칵테일을 시음한 정도라고, 관대함을 배려할 이유가 왜 없겠냔 말이오. 최소한 패배는 많았으니까. 결과적으로 보면 일확천금을 주고도 불가능한 값진 인생 경험은 일종의 배우 수업 아니었을까? 물론 딱히 어디서 공증 받지는 못하겠지만, 얼렁뚱땅 어떤 전문가로 입봉할 수도 없을 테지만. 하오나 최소한 몇몇 분야에서는 명실공히 열정이 작게나마, 응? 잠시라도 충분했다. 더구나 타인의 호언은 거짓말이 적어도 반틈, 보통은 배보다 더 큰 배꼽 마냥 사은품이 더 비싼 잡지처럼 뻥이 다란 것도 진작 깨달았다. 그래서 세상이란 원래 그런 것인가 라는 사춘기 소년 같은 의구심을 품을 수도 없었고, 응석도 하루 이틀이지 참말로, 뜬금없이 몽정기 정력가로 환생한 듯한 사랑만 맹목적으로 쫓아다닐 수도 없었다. 하물며 동물들도 낮잠을 자는데 무슨 탐정이라도 된 것 마냥 어설픈 소문의 진상을 파헤치는 일을, 그것도 내가? 직업인의 할 일을 빼았다가 자칫하면 상도덕 얘기가 나오게 됨. 바나나 껍질을 밝고 넘어지거나 새똥을 맞는 봉변은 어쩌면 다 그 때문임. 그와 같이 나는, 한없이 사랑스러운 애인의 이름이 희망인 건 맞지만 뒤늦게 유치원복을 입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나는 릴리를 사랑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릴리에게 포르토피노가 대체 어떤 인간인지 그 실체를 낱낱히 보고할 테다. 뿐인가? 닐의 온갖 비밀과 추문과 단점을 낱낱히, 아조 소상히 아뢰올 것이다. 누구에게? 아 릴리에게! 오오, 릴리가 보고 싶다. 그러나 문제는 그게 아니다.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그건, 내가 릴리를 보고 있어도 보고 싶다는 것! 으윽~~! 하지만 이 내 순정을 어떻게 하겠나. 그래서 나는 당장 릴리와 만날 약속을 잡았고, 지금 그녀를 만나러 집을 나선다.
4
자칼이 나타났다. 자-뭐? 자칼! 들었으면서 못 들은 척, 읽었으면서 잘못 읽었나 시치미 떼지는 말자. 어른의 어리광은 아동을 불편하게 만드는 심각한 월권 행위이니까. 자칼. 늑대과이면서 코요테처럼 생겼고 아마도 개와 비슷한 동물. 그런데 자칼이 한적한 동네에 왜? 그건 바로 JS가 사는 블록에 월이란 친구가 이사왔는데, 그가 키우는 자칼이 그곳을 탈출한 것이다. 그렇다고 자칼이 사건의 발단을 암시하는 것인가, 하면 그건 아니다. 단지 보기 드문 특별한 친구일 뿐. 다른 건 없었다. 잠깐, 자칼이 나타났다? 비슷한 말이 있다. 바로, 늑대가 나타났다! 똑같네. 주어만 빼고 완전 똑같네. 그러고 보면 양치기 목동은 어쩌면 바람둥이 기질이 다분한 소년인 듯 하다. 왜냐하면 대충 봐도 최소로 잡았을 때 양치기견 1마리에 양 100마리, 그리고 푸른 초원과 시원한 바람과 파란 하늘로는 만족을 못한다는 말이니까. 안 그런가? 글쎄유! 그러니까 아름다운 부인 1명에 행복한 가정을 경영하며 자그마치 애마 100대를 보유한 유명인에 대한 스캔들은 이따금 오락산업을 떠들썩하게 도배하고, 미녀들의 수다와 한량들의 관심을 쥐락펴락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다 결국 가짜 뉴스로 판명날 수도 있지만 말이다.
그건 그렇고 한편, 릴리는 제이크가 쓴 일기를 읽으면서 흐뭇한 심정을 드러내지 않을려고 안간힘을 쓰는 듯 했다. 그러던 중 그녀는 핸드백을 뒤지더니 지갑을 놓고 왔다면서 제이크에게 심부름을 시켰다. 그는 기꺼이 미술관으로 달려갔다.
그 찰나를 틈타 릴리는 제이크가 쓴 일기를 자신의 소셜 네트워크에 올렸다. 나 오늘 고백 받았다나 뭐라나!
제이크는 릴리와 헤어졌다. 물론 릴리와의 본격적인 연애를 시작한 것도 아니었다. 뭐야 또 어정쩡하게 아는 오빠와 아는 동생? 참 나!
5
다시 그는 따분한 일상으로 돌아왔다. 무슨 일을 하지? 꼭 뭔가를 해야 하나? 해야 함. 그처럼 그는 아무 이유 없이 야생마의 자유를 동경했고, 영문도 모른 체 경주마의 청춘을 갈망했다. 부푼 열망으로 충만한 인생관을 바람직한 인생과 일치시키고 싶은 막연한 욕구를 어떻게 길들이지 못한 체, 역으로 자기가 고삐를 잡혀버렸으니까. 그 세련된 기술을 보유한 기수가 대체 누군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서 그는 자기 사무실에서 자신의 팬페이지에 들어가 보기로 했다. 그 웹페이지에 방문해보니 거긴 없어지지 않았더라. 자신의 팬페이지는 아담하고 깨물어줄 만큼 앙증맞을지언정 한마디로 건재했다. 유쾌한 수선화, 젊은 장미, 사랑스러운 연분홍색 작약꽃, 우아한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북숭아빛 카라, 아기자기한 발랄함과 귀여운 생기가 풍성한 들국화는 물론 데이지, 팬지, 히아신스, 베고니아, 과꽃... 그리고 은은하며 수줍고 은근 어여쁜 안개꽃 등등. 그처럼 사람을 식물로 비유하자면 거긴 꽃밭 일색이었다. 그러나 꽃처럼 아름다운 숙녀들로 대만원인 가운데 그의 팬클럽은 멈춘지 오래였다. 실은 회원수도 별로였다. 완연한 꽃밭인데도 불구하고 꽃밭은 꽃밭인데 그건 단지 허상에 불과한 꽃밭이었다. 꽃향기는 허사였고, 꽃들의 파릇한 실체는 허망이었으며, 꽃들의 기척과 자취는 허랑한 흔적에 지나지 않을 뿐. 그는 괜히 팬클럽에 방문했던 것이다. 인기에 대한 갈망은 실망과 절망과 책망으로 끝났으니까.
그렇듯 일과표는 잘 지켜지지 않았지만 심심한 날들은 계속되고 있었다.
6
JS는 한동안 미스테리아 사무실에 들르지 않았다. 왜냐하면 마라에게 새로운 남자친구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야 마라의 개인사지만 왠지 마라의 전문가다운 면모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기 싫었다고나 할까, 사랑의 천재 앞에 연애에서 문외한이 나타나면 실례라고 생각했을까? 그건 단지 핑계에 지나지 않고, 아마도 새색시의 홍조를 빗대어 작품 속에서 가상 인물을 고생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성숙한 숙녀티가 물씬 풍기는 샐리와 헤라 같은 마라, 그 둘이 잘 지내나 궁금하기도 해서 그는 미스테리아에 오랫만에 방문했다. 그런데 하필 가는 날이 장날이었을까. 마라가 남자친구 존티와 싸운 듯 했다. 샐리도 딱 보니 남자를 잘 모른 것 같고. 샐리는 겉으로 힐끗 봐선 첫인상이 완전... 아니 어릴 때 모범생과 썩 친하지 않았을 듯 보이지만 그녀는 연애 감정이 마음 속에 가득한 숙녀였다. 괴팍한 구애를 뿌리치느라 여전히 여성잡지1만 애독하는. 실은 그 때문에 뭔가가 더 꼬일 테지만. 아무튼, 그런데 옆에서 가만히 듣고 보니 싸울 만한 상황인 것 같았다. 그래서 그는 슬쩍 대화에 참여했고, 졸고 있는 미친 개의 꼬리를 밟는 당혹스런 원인이 과연 무엇이었을까를 함께 고민했다.
「어디서 다퉜는데? 혹시 패밀리 레스토랑 그런 데 아니니?」
「맞아. 거기야. 밝은 분위기였다고. 오빠. 그런데 싸웠어. 마음 같아서는 확 그냥 그 인간 머리끄댕이를 잡고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라는 대사는 우리 엄마 꺼지만, 나도 그렇게 변하면 정말 어쩌지 라는 생각에 그만 울컥했어. 샐리. 너 뭐 하니? 티슈 하나 건네주는 센스, 몰라?」
「어. 어. 여기. 여기. 그런데 언니 눈물 하나도 안 나네. 언니 핸드백에 있는 점안액 갖다 줄까?」
「뭐라고? 그럼 이 상황에 코피가 나야겠니? 그러니까 늬가 남자가 없는 거야. 응? 이 상황에...」
「그건 말이야. 음. 내가 봤을 때 서로 마음이 딴 데 가 있는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그럼 뭐가 중요한데?」
「왜 내 얘기를 끝까지 듣지도 않고 다짜고짜 그 인간은 화부터 내냔 말이지, 내 말은.」
「맞아. 그거야. 그거라고. 딱 그거야.」
「혹시 존티가 내내 TV 본다고 뭐라고 했니?」
「어머머. 맞아. 그거야. 그거라고. 오빠. 어떻게 알았어?」
「그런데 넌 그 말을 1번 꼬고 2번 꼬며 빙빙 돌려서 말했지? OK! 또 2시 방향에서 생일 축하 노래 부르고 있었지?」
「방향은 다르지만 그랬긴 그랬지.」
「아마도 그랬을 꺼야. 존티는 그날 슬리퍼를 신었고, 마라는 모짜르트의 쾨헬 467번 2악장이 은은하게 들리는 그런 곳에서, 응? 격식을 갖춘 복장의 신사 숙녀들만 모인 데서 식사를 하고 싶었을 꺼라고. 생각만 해도 설레는 데이트? 그거 말이야. 그렇지 않니? 그런데 어머나 존티는 왠지 그날따라 피곤한 듯 하네? 어젯밤에 나 몰래 으쌰으쌰라도 있었나 싶게 말이야. 그래서 연인은 눈높이를 낮췄고, 애인은 삐졌으며, 결국 남자가 화내니까 싸웠네. 맞지?」
「어머머. 어떻게 알았니? 딱 그랬어. 누가 아니래!」
「심지어 존티는 그런 유형 아니니? 음 존티가 왼손잡이니까 스테이크가 나오면 나이프를 왼손, 포크는 오른손. 그렇게 스테이크를 먼저 다 잘라놓은 다음, 나이프를 내려놓고서 포크를 왼손으로 옮겨서 본격적으로 (딱)! 맞지?」
「맞아. 그거야. 그거라고. 완전 그래.」
「언니. 그런데 있잖아. 난 아까부터 이해할려고 하는데 말이야, 아무리 생각해도 왜 싸웠는지 도무지 모르겠어. 하나도. 통 그 이유를 모르겠다고. 당신은 아시나요?」
「아 보면 모르겠니? 그날 서로 장르부터 달랐잖니. 복장부터 달랐구만. 마라가 그날 어땠을까 생각을 좀 해 볼까? 옆에는 쇼팽 스페셜리스트, 앞 테이블에는 운동화 유명 브랜드의 디자이너 출신 무슨 본부장. 또 주위 손님들로 자본가에 조명 예술가니 학자에 과학자와 유명인들로 즐비하기를 꼭 바라지는 않았을 꺼야. 그렇지만 결과만 놓고 보면 그랬잖아. 그와는 정반대로 자칭 밤의 세계 실력자니 사랑의 해결사니 또 무직자에─무직자가 나쁘다는 말이 아니야. 괜히 혼자 멈칫하는 건 자존감이 내려갔다는 신호이니까─야심가와, 바텐더의 사랑을 듬뿍 받는다고 혼자 말하고 혼자 박수 치는 어느 귀인. 그리고 이상하게 그날따라 이런 거지. 동네에서 유명한 주색가 한 분과 그 동네에 놀러온 그의 친구 색마의 행차. 응? 이미 상황이 불안불안했구만 그래.」
「그래서 그래서?」
「그 다음에 그 다음에?」
「우리 마라가 존티를 어떻게 다그쳤는데, 설득? 인색한 야심가다운 태도? 인문학적 어조? 아마도 시작은 다정했을 거라고. 그럴 꺼야. 그러나 고양이가 말하면 강아지가 알아 듣니? 자꾸 고개만 갸우뚱갸우뚱 하던가, 아니면 짖거나 쫓게 마련이야. 그렇잖아? 또는 개보다 고양이가 더 크면? 그걸 뭐라 하느냐,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하지! 사치품 광고를 보세요. 표범이나 치타를 바로 그래서 고급 브랜드에서 귀찮게 하는 거야. 출연료도 주지 않고서 말이야. 사치품이라, 그 말도 사회지도층이랑 똑같은 말이군. 전자는 소득 하위 기준, 후자는 옛날 기준이니까. 아무튼, 그렇지만 그 애정은 마라가 정말 오래 기다렸던 사랑이라고. 응? 그렇고 그런 연인이 되긴 싫었겠지. 누군들 안 그렇겠어? 그래서 마라는 어떤 화법을 구사했을까? (딱) 나름 상위 리그로 올라간다는 게 그만 여성잡지2 방식 화법이겠지. 왜? 엄마와 아빠를 참 오랫동안 지켜봤으니까. 맞지? 문제는 거기서부터야. 응? 거기서부터라고. 마라가 만약 진정한 여성잡지2의 타켓 연령층이었다면 아예 손을 놨을지도 모르지. 포기할려면 일찍 포기하는 게 현명할 수도 있으니까. 남자는, 남자는 문학적으로 설명하며 새로운 트로이아의 목마를 연상시키면 시선은 돌아가고 관심은 산으로 가게 마련이야. 그래서, 딴 여자 쳐다보지 말라고 하면 쳐다보지 않던? 아니거든! 응? 아니야. 절대 아니라고. 여자가 세이렌에 약한 것처럼 남자에게는 대놓고 인문교양서처럼 직접적으로 말해야 된단 말이야. 물론 간접적으로 띄워주면 왜 마다하겠나! 그런데 내가 어디서 들었네, TV에서 뭘 봤네, 어떤 교양서를 읽었는데 이런 얘기가 있더라, 내 친구 누구는 어쨌다더라, 또 어떻게 아는 언니가 이랬는데 말이야 어쩌고저쩌고. 응? 그게 이기는 비교가 아니라 결국 지는 비교야. 그럼 남자는 집중력이 흐트러질 수 밖에 없다네. 물론 인내력이 대단한 마초나 아찔한 지성의 소유자도 있겠지. 하지만 막 그때가 되면 내 남자가 객관식 몇 번인가쯤은 아는 게 좋지 않겠니? 1번 참는다, 2번 경청한다, 3번 딴청 피운다, 4번 말을 돌린다, 5번 말을 빼았는다, 6번 짜증내거나 화낸다, 올커니 7번 웃긴다 등등. (뭐 놀고 있네?) 존티는 잘해줄 때 한없이 잘해주지만 막판에 아쉽게도 6번이란 말이지. OK, 빙고! 빙빙 돌며 간질간질 그렇게 알라딘의 램프와 마녀의 요술구슬을 슥삭슥삭 애무했는데, 그런데 글쎄 알고 봤더니 그건 하이에나의 발바닥이라거나 사자의 코털이더라? 그거라고! 응? 그거야~! 그게 아니라 딱 찍어서 머머하지마, 머머해라, 머머하지 않으면 안된다, 머머는 머머다, 머머증은 머머로 치료해라, 우리 머머하자, 라고 말하는 게 좋지 않냐 이 말이야. 한마디로 식사할 때 TV 보지 마, 찐한 사랑할 때 말하지 않기, 소풍 가서 일하지 않기, 그렇게. 그처럼 딱 직설적으로 말하면 될 걸 가지고, 빙빙 돌며 1번 꼬고 2번 꼬고 3번 채워서 꼬며, 틀고 비틀며, 그래서 아무리 듣고 참다 참다 끝까지 들어도 결론이 없네? 짜잔~! 두둥~! 커피포트는 발동이 걸리다 못해 부글부글 날 좀 봐주라며 절규를 할 수도 있단 말일세. 응? 그게 뭐냐, 뭐겠나 변신이지. 여자가 심신 분리가 된다면 남자는 변신을 하니까. 허허허허허. 그 소란스러운 분위기에서 연인이 가까워지기 전에 먼저 식사를 해 보라는 얘기를 어디서 들었다는 둥 어쩐다는 둥, 그럴 게 아니라. 응? 내가 아는 언니의 친구의 누구는 남자의 식사 예절이 어떻길래 훗날 어쨌다가 끝내 어쨌다더라? 직설적인 남자가, 상황도 상황인 데다 일 때문에 스트레스도 이만저만하지 않았는데, 심지어 그것도 연인과 동격이 아닌 상황에 뭔가 열세에 몰리고 또 몰리면 욱하는 거지 그냥. 왜 나는 이러쿵저러쿵, 왜 너는 어쩌고저쩌고, 그 시작부터 끝까지를 죄다 말하려고 하지 말고. 응? 딱 결론만! 핵심, 요점만 말이야. 정말 긴~ 수다를 들어줄 분위기는 따로 있으니까 말이야. 안 그래? 그날 보니 마라가 슬슬 존티를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었구만 그래. 존티도 알고 보면 멋진 남자잖아? 그런데 왜? 왜 그랬을까? 왜냐하면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신경 쓰이는 쨉이 쉬지 않고 계속 날라왔으니까. 매에는 장사가 없는 거거든. 그때 그때 다르긴 하겠지만, 존티가 비교적 싫어하는 거 세 가지를 알려줄까, 알려주지 말까? 알려줄께. 것도 공짜로! 응? 오빠나 되니까 이런 얘기도 해주는 거야!
첫째 간접, 둘째 간섭, 셋째 지는 비교!
그런데 그 세 가지를 한꺼번에 정반대로 얘기했던 걸로도 모자라 그날따라 존티를 유혹하는 숙녀들은 자꾸 그의 시선을 빼았네? 결국 존티 뚜껑만 열리는 결과를 가져왔군 그래. 짜증은 존티가 내고 상처는 마라가 받고! 그래, 안 그래? 응? 아, 그래 안 그래? 마라도 아마 알고 있었을 걸. 존티의 짜증 지수가 슬슬 상승한다는 걸. 전두엽 측두엽처럼 사람 얼굴 표정만 분석하는 뇌 부위가 바빠졌겠지, 왜 아니겠어. 모를 리가 없을 테니까. 다만 김 빠진 맥주처럼 본인 기분이 고개를 숙였으니까 명백한 계산 착오. 꼬리 아홉 개에 눈치 빠른 마라가 전조를 얕잡아봤군 그래. 그 분위기에선 TV도 보고 떠들며 약삭빠르기도 해야 하는데 말이야. 안 그래? 존티는 참다 참다 50, 60, 70 계속 올라가는데 마라는 상심한 기대 때문에 10, 20, 30으로 잘못 판단한 결과가 아닐런지. 왜냐하면 완전한 '갑자기'는 드무니까 말이야. 결국 마라는 울고 존티는 미안했을 테지만, 마라 대신 뻔트 전문 대타가 나섰다면, 즉 남자들끼리 으샤으쌰였다면 얘긴 달라. 많이 다르겠지. 그럴 거라구. 슬그머니 간지럽히고 살살 깐족대며 꾹꾹 부아를 돋군다면! 그럼 아마 존티는 그랬을지도 몰라. 으쌰으쌰 잘 나가다 지갑을 땅바닥에 집어던졌을 수도 있다고. 그거야. 그거라고. 그래도 애정이 있고 사랑이 뜨거우니까 티격태격이라도 하지. 엄마들 봐 봐! 그거야. 사랑이 그렇다니까. 한때 나이트클럽 이름으로 괜히 그게 유명했겠니? 엄마한테 말하지 마! 뭐? 그럼 또 웃긴 모텔 이름이 나와야 하는데... 통과!
남자는 당근 아니면 채찍이야. 응? 줄 달린 치즈로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어서 줄을 살살 끌어당기든가, 아니면 줄을 꼬아서 묶고 던져서 걸리면 영차영차 끌어당겨야 한다고. 농심을 꼬신다고 끝이 아니지. 여심도 방심하면 안돼. 왜 잡은 물고기한테 밥을 주지 않느냐고 다그칠 게 아니라 밀었다 당겼다, 들었다 놨다, 쥐었다 폈다 그래야 한다고. 그러니까, 그러면 나중 어떻게 된다? 어떻게 되긴 뭘 어떻게 돼! 참고 참고 또 참고 도를 닦고 하다 하다 기도까지 했던 남자는, 바로 떠나야지. 어디로? 파도를 타러! 뭐하러? 게임기 앞에던가, 공을 차고 어디다 넣고 때리고 소리 지르며 마시고 달리며 으쌰으쌰하러! 한 번씩 풀어주던지 스스로 참고 또 참았던 울분을 풀러 나들이를 갔다 돌아와야 하는 거라고. 엄마의 잔소리를 평생 들었는데 애인 말이라고 항상 축사로 들릴 리는 없단 말일세. 인생에서 내내 패자였는데 애인 앞에서 또 패자로써 버릇처럼 주늑들라고? 게다가 축사가 도통 길어야지. 안 그렇소, 상남자들이여? 내 말이 틀렸소? (손을 귀에)! 들린다 들린다, 오오, 통곡이 들린다. 손차양을 만들어 천리안으로 남정네들의 원성을 살피고 나니, 뭐 진짜 그렇다고? 집이도? 댁두? 형씨마저? 믿었던 선생까지 말이오? 이 세상의 뭇남성들이여, 예? 우리 모두 다 함께...... 하오나 괜히 또 으쌰으쌰에 나갔다가 외로울 수 있으니, 워─워─워! 아무튼 너무 길어. 너무 길다고. 심지어 결론이 뭔지도 모르겠어. 즐거운 청춘 시원한 바람 푸른 바다, 오오, 그대여 우리 함께 케익처럼 부드러운 사랑과 아이스크림처럼 달콤한 행복을 위해 다채로운 카네이션 꽃밭에서 운수 좋은 날 만나요? 뭐야 그게! 뭐냐고? 내가 옛날 어느 여름 날 바닷가에서 어떤 여인네를 꼬실 때 써먹다가 퇴짜 맞은 바로 그 방법이잖아, 낭자 어쩌고저쩌고. 아아, 뒷목! 오오, (눈을 지긋이 감고서 검지와 엄지를 미간에)! 얘가 얘가 날 여자로 아나, 날 대체 뭘로 보는 거야! 그게 말이야, 응? 그게 말이야, 시적인 느낌인 건 맞지만 요청에 화답하는 결과는 상남자의 펑퍼짐한 불평이라고. 응? 간결하게 콕 찍어서, 언제 어디서 만나자. 얼마나 좋아? 처음에야 나도 나도 막 그러면서 머머한 척 그게 남자란 거, 잘 알잖니! 사랑은 '나도'로 시작했다가 '나는'으로 바뀌는 게 사랑이란 거. 알면서 왜 그래? 그댈 어떻게 한 번 해 보겠다, 그게 사랑이지 왜 사랑이 아니겠어! 다만 행복이 너무 짧아서 문제겠지만. 사랑의 미로여, 이 세상에 하나 밖에 둘도 없는 내 사랑아, 어쩌고저쩌고 남녀의 사랑은 오묘한 것 신비한 마술 이러쿵저러쿵? 남자와 여자는 사랑이기도 하지만 앙숙도 그런 앙숙이 없지. 아, 그래 안 그래? 내가 뭐 틀린 말 했나! 그렇지만 또 숙녀의 기분을 맞춰준다고 허풍 대회 3관왕의 강력한 후보자답게 우리의 존티는 고고한 희망에게 결례를 범하는 일과 정략적인 친화가 부끄러운 까닭, 황금빛 리본 얘기를, 그녀에게, 살며시? 만약 그렇다면 그녀께서 퍽이나 좋아하시겠네! 응? 정녕 여자의 변심은 무죄인 걸까! 그러니까 어떤 남자에게 여자는 해괴한 미스테리일 테고, 또 다른 남자에게 사랑은 인생의 목표가 되는 거라고. 방탕에 대한 애착과 퇴폐에 약한 본능을 업계에서, 또 매가리 없이 생긴 미남과 내 말 잘 들을 것 같은 사랑의 바보를 상큼한 숙녀들께서 가만 놔둘 리가 없다고. 응? 반짝반짝 뿌잉뿌잉 샤방샤방 새콤달콤, 어떻게 꼬시고 어떻게 넘어왔든 일단 내 애인이 됐으면, 응? 어디서 물어왔든 내 남자가 됐으면 그 남자를 귀여운 허영심의 적임자로 낙찰시켰으면 말이야, 난 원숙한 조련사가 되어서 그때부터는 여성잡지1과 2도 좋지만, 다큐멘터리를 보고 때로는 인문교양서처럼 말하는 법을 알아야 한단 말일세 이 친구야. 흐흠! 아무리 그래도, 우리는 말이야, 다 빠져나가는 방법이 있긴 하겠지만 말일세. 허허허허허! 허허허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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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한마디 없이 가난한 청춘에서 행복한 점잖음, 인자한 유복함으로 옮겨간 어느 부자들은 지구 한쪽에서 그런다. 우리에게 세금을 더 걷어달라고! (법이 뒤에서 우리를 든든히 받춰주는 우군의 역할이냐, 아니면 법은 현실이 잘 따라오기 벅찰 만큼 앞서 가는 리더이어야 하냐, 라는 주제는 논외로 하고) 그런데 다시 지구 반대편에서는 나의 만족을 빼앗길까 봐, 나의 다망함이 흠집날까 봐, 오직 부유함의 존속에 유익한 정당과 정치인만 해바라기처럼 바라보는 일도 있다. 그것도 일평생. 값진 부를 쟁취해서 난 이미 양반이니, 우정을 봐라, 수평은 해변에나 가서 보라는 세상이다. 씨를 누가 뿌렸든, 사과나무의 주인은 바로 나, 나머지는 둘 중 하나다. 동화의 나라에 살던가, 만류인력의 법칙에 따라 시장경제의 지배를 받아 돈을 쫓고 사과나무 그늘에 누워 입 벌린 체 사과가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수 밖에. 윤리는 모르겠고 도덕은 초등학교에서나 배우는 과목일 뿐, 정의는 지나가는 개도 쳐다보지 않는다는 건가? 아니다. 과장이 심했다. 괜히 중산층에게 미안해진다. 그래도 생각이 꽉꽉 막힌 어른과 구식 탱탱 묵은 사고방식으로 여자에게 뭔가를 가르칠려고만 하는 남자는 좋아할 래야 좋아할 수가 없다. 하긴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인생, 험한 세상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그만이라는 사고가 만인의 심연에 팽배하는 걸, 미네르바가 뭐라 하겠나 무지개의 여신 이리스가 따지겠나. 암닭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하늘 같은 서방 곧 남편에게 (절대) 복종한다, 어디서 여자가, 라는 구식 탱탱 묵은 사고 방식. 결코 옛날 얘기가 아니다. 그래서 겉으로는 진보인 척 차선으로 보수이자 속으로는 첩들이 즐비했던 과거를 동경하는 남자, 그분은 앞뒤 보지 않고 어떤 텃밭에서 벗어나지 않는 일이 결코 드물지 않다. 적어도 마음은 그런 실정이다. 여기서 보수라면 때로는 최선이거나 때로는 차선의 보수인지, 아니면 사극에서 하인과 노비와 애첩을 거느렸던 보수인지, 전자와 후자의 구분이 퍽 애매하다. 왜냐하면 내가 진짜 보수라는 외침이 쇼맨쉽이자 오락이고, 유행이자 마케팅이며, 건실한 포지셔닝일 테니까. 왜냐하면 내 친구 중에도 밤의 제왕은 있으니까. 왜 그런 현상이 드물지 않을까? 왜냐하면 현재 기준으로 보수인 구-정치성과 구-정체성으로 살아오신 '아빠 따라하기' 때문이다. 즉 자녀의, 아빠 따라하기! 동생이 그런다. 형의 세세한 습관 하며 형 뒷모습을 딱 보니까 완전 아빠랑 똑같네 라고. 그럼 형은 그럴 테지. 뭐라고!
「뭐 임마?」
핑~! 난 장래 절대 아빠처럼 살지는 않을 테다, 라는 사람을 제외하고(그런데 살아보니 웬걸?) 정치 관념은 후세에게 첫째 아빠, 둘째 현재성 그 둘을 오락가락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 아빠는 어쩌면 둘 중 하나일 수도 있다. 첫째 평생 이상한 사람들에게 표를 행사하고 매번 후회했거나, 둘째 사는 동안 놀랍도록 돈을 못 버셨거나. 결국 우리들의 아빠도 선량하고 착하지만 말만 하이에나에 적당치 허세만 늑대였지 정글에서 단지 쥐과에 지나지 않은 것만 같다. 너무 측은한 진실이지만 결과적으로 딱 그런 실정이 절대 아니라고 그 누가 부인하겠나. 우리의 아빠는 대체 어떤 인생을 사셨길래 생각이 옛날에 머무르기 쉬운 것일까? 사고체계가 구식이라는 전제로 하는 말이 아니라, 미래에서 이곳으로 오지 않은 이상 무릇 사람은 내 생각과 행동의 양식 그 보편적 결과가 아주 진보적이기는 거의 어렵다는 뜻이다. 다 그렇진 않겠지만, 그래서 아빠는 어쩌면 여전히 30년, 40년, 50년 전의 사고방식에 그대로 머물러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본인이 그게 좋다면 그건 스스로에게 옳은 일이다. 다만 타인이 그 옆에 가까이 가면 불편할 뿐. 괜히 착하고 점잖으신 어르신만 오해할 게 아니라, 주변의 우리 친구들만 둘러봐도 된다. 우리의 친구들 중에 어느 자리에 가서, 자기가 제일 말을 많이 하고 돋보이며 분위기를 주름잡지 못하면, 그러면 토라지고 삐져서 중간에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사라져버리는 친구는 없을 수가 없다. 내가 주인공 1등이 아니면 쌩하니 혼자서 집에 가는 남자! 우리 주위에 있다, 없다? 있다! 분명 있다. 그렇게 기가 꺾이면 한동안 꿍해서 연락도 안한다. 꼴아도 이만 저만 꼴은 게 아니겠지. 그러니까 어째서? 왜냐하면 내가 하면 분위기 좋게 띄우는 건데, 남이 하면 나대고 설치는 거니까. 안다-박사님의 마음에 안드니까. 내가 조명 받지 못했으니까.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딱 그거다. 그분께서는 언제 어디서나 포커페이스도 일부러 안한다. 모든 걸 다 내게 맞추라는 뜻이니까. 내 마음에 안드는 걸 예의상 웃어주고 어쩌고 그런 허례허식 다 필요없다는 말이다. 무슨 사람이 금본위주의인가, 좋으면 남고 싫으면 떠날 수 밖에. 남아도 좋아서 남는 사람이 얼마나 된다고. 그분께서 어쩔 수 없는 자리에서 1인자로 주목 받지 못하면 얼굴 표정은, 아 말 말자. 만약 그런 분들이 어느 모임에 2명 이상이다, 싸움 난다. 분야가 어디다? 고개를 돌리지 않을 수 없게 될지도 모름. 그분이 요청하는 단짝 우정을 거절한다? 드디어 올 것이 온 거다. 고상함이란 것도 그렇다. 난 우아함이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어머나 글쎄, 능글맞다니! 허세 지수 100, 승부욕 지수 100, 경쟁에만 특화된 우정, 마음으로 시작되지 않았고 나중 잘살 수도 있는데 훗날 삐걱대는 사랑, 모두 같은 이치다. 원래 그런 유형이었다가 직간접 경험으로 수치를 낮추기도 한다. 스스로 겪어보니 썩 보기 좋은 모습이 절대 아니란 걸 깨닫게 되니까. 그런데 내 인생이 어디 남의 건가? 그런 분이 미꾸라지처럼 승승장구하다가 아 글쎄 자기는 비교도 안되는 지수 200을 만났다? 하수가 조용히 잊혀지는 건 단지 시간 문제일 수도 있다. 고수도 미끼를 물면 낚이는 거다. 사이코머시기도 마찬가지다. 1퍼센트가 있으면 0.1, 0.01... 차원이 다른 분은 오히려 조용한 법이다. 그래서 비슷한 친구를 만나게 되거나, 아예 주변에 예스맨만 두거나 하는 그런 몇몇 사례가 있다. 그건 타고났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 사람 착해 보이길래 결혼에 골인했는데 나중 알았다? 원래 남녀는 판이하게 다른데, 그분이 특별한 분이라니. 부부끼리 어디를 가더라도 거리를 두거나 모임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는 게 다 그런 거다. 특별한 음식의 은-뚜껑을 열었는데 어떻다거나, 포장을 풀러 박스를 열었는데 스프링 달린 권투 글러브 하며, 각각 비슷하면서 다를 테지만 프로의 세계란 알고 보면 적지 않게 그런 식이다. 1등은 몰라도 아차상과 인기상과 신인상 역시 드물 테니까, 때문에 프로의 세계란 냉정한 거다. 그러므로 그곳은 치열하다 못해 비열할 수도 있다. 그러니까 때로는 행복한 개인이자 때로는 지금 인기 방영중인 대하드라마, 그리고 미래인이 보는 사극에서 불쌍한 민초는 말로만 쥐락펴락한다. 어떻게? 머머계라고도 했다가 머머판이라고도 했다가! 친구에게는 놀고 있네, 남자친구나 남편에게는 잘 한다 잘 해, 건너편을 보며 잘들 논다, 어딜 보며 하는 말은 또 그런다. 참 잘 돌아간다고! 그러나 미운정 때문일까 동종업계 직업 의식 때문일까. 삐그덕거리는 것 같아 보여도 지켜보면 어떻게 어떻게 또 잘 넘어가고 잘 돌아간다. 그 심한 예는 그거다. 야구에서 벤치클리어링! 지켜보는 관중은 동공이 확대되며 사태를 지켜본다. 어떠면서? 팝콘을 우걱우걱 막 씹어먹고 맥주를 캬~ 연거푸 마시면서! 경기장에서 멀리 보이건 집에서 편안히 TV로 보건 장면은 난동이다. 일단은 난장판이고 세상은 요지경이다. 그러나 카메라 기술이 좀 좋나. 잘 보면 그런다. 삐─ 삐─ 악역의 선봉은 이름값 되고 서열이 낮은 분 먼저. 신삥은 분위기 잡기. 아이스하키에서는 아예 역할이 정해져 있다. 그렇지만 그분들 사이에서 중진과 원로는 복화술은 언제 배우셨는지 글쎄 눈치껏 속삭인다. 이 정도 했으면 됐다, 자 자 우린 동업자다 뭐다, 뭐 적당히 하고 들어가자고 말이다. 설마, 여기서 끝을 보자? 대인배라는 데 왜 조그만 일에만 분개하실까. 그 허세 다 어디 갔나요! 다혈질이 알고 보면 귀엽다. 리모콘 버튼 누른 사람은 따로 있는데 뭐야 난 로보트? 그분께서는 야구를 하실 게 아니라.. 역시나, 어디서 스카웃 제의 임박한 거다. 그처럼 프로가 절반은 쇼고, 그 쇼의 자본은 오락산업이 굴리며, 오락산업의 규제는 표를 많이 받는 사람들이 만든다. 때문에 표를 많이 얻기 위한 삶과 정치학과를 졸업한 이른 출발, 뭘하든 초심을 잃지 않는 인생, 인기가 식었을 때 평점들이 근소하게 일치하기는 아무래도 쉽지 않은 것이다. 비단 정치 뿐만이 아니라 프로의 세계란 게 그렇다. 일에서는 매정하고, 사랑에 대해서 다소 무정하거나, 일 외엔 무심해야 할 만큼 알고 보면 냉혹하다는 점. 체력과 마음 모두 자칫 방심하면 미끄러질 수 밖에. 그런데 전성기는 롱런하기 쉽지 않고, 슬럼프는 귀하지 않으며, 열화와 같은 2군과 꿈나무들은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런 데다 한눈팔기 쉬운 유혹도 많고, 명성이 쟁쟁한 현역들이라고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고 싶은 마음 왜 없겠나. 그래도 놀이보다는 일이니까, 비전문가가 아니라 전문가니까, 물 들어왔는데 노를 젓지 않을 수는 없으니까 냉정할 수 밖에. 어디 그 뿐이랴, 꼬마들도 속은 다 있다. 그분들이라고 세상 살이가 쉽지 않다는 걸 왜 모를까. 그래서 때로는 일부러 아마추어의 세계에 남는 일도 있다. 또는 원했던 프로 진출이 좌절되면 합리화하거나 다른 방도를 모색하던가, 곧 그 다음이란 게 있다. 아마추어의 대표적인 예가 무엇인가, 올림픽이다. 프로의 예는 스포츠 프로 리그와 스포츠 복권과 외교, 아마추어는 올림픽과 우정과 사랑? 꼭 그렇지 않다는 걸 속 깊은 어른들이 어떻게 모를 수 있겠나. 그렇다고 아마추어 리그라고 언제나 깨끗하고 고결하기만 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 더 나은 진짜 기쁨은 아마도 취미다. 취미의 끝이 무엇일까? 영원한 환희도 드물게 있겠지만 보통은 그거다. 머머 접습니다! 그런데 장비 얘기가 뜬금없이 왜 나왔지? 아무튼, 어느 분야의 속성을 지켜보면, 어떤 사람의 말과 행동을 관찰하면 알게 된다. 유난히 자주 무의식적으로 애용하는 몸짓이 뭐다, 유별나게 자주 반복하는 말이 뭔지는 1범주 안쪽으로 접근하면 금새 파악된다. 내가 봤을 때는, 늬 말마따나, (대답할 때) 예-예-예-예-예. 왜 그런 말이 유독 자주 쓰이고 돋보이는지, 생각을 하면 알 수 있다. 아 진짜 그런 분 못 보셨습니까? 자기는 신부들러리나 병풍 아니면 절대로 상대 안하는 사람요? 웃기는! 허걱, 뜨끔? 물론 그 자체로 죄악은 아니다. 단지 허세 지수처럼 골목대장 증세가 50 근처냐 아니냐, 완전 심하다면 자기 병수발 드는 딸랑이와 깔깔이들을 위해서 나머지에서 응분의 보상을 실행하는가가 중요할 뿐. 연예인병은 연예인만 걸리는 게 아니니까 말이다.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건 역시 운명일 테고. 그러니까, 저 친구가 여기에 뭘 타고 왔지? 가만보자, 뭐야 저런 아니 페라리잖아, 이런 젠장! 흐흠, 자네 학교는 어딜 나왔는가? H 나왔습니다, C 에서 무얼 전공했습니다, 뭐-뭐...뭐라고! 이 자식이... 허허허허허! 뭘 모르는 남자, 속 좁은 남자, 생각이 구식 탱탱인 남자, 그 3가지에 대해 나는 어느 정도일까. 흐흠, 난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고 자신하게 자부하긴 아마도 쉽지 않다. 하지만 인생 선배인 이상 내가 최소한 따듯한 마음이라도 주고 싶고, 어디서 고루한 부장님 취급 받으면 당연히 내 기분이 편치 않다는 것. 그건 결코 이상한 현상은 아니다. 또 장래 나는 딸의 남자친구에게 '너네 부모님 뭐하시니?' 라고 묻지 않는 어른이 되고 싶은 거야 멋진 남자가 되고 싶은 청춘들의 자연스러운 욕심이다. 그래서 은연중 어떤 배경을 말하게끔 하는 것보다는 딸이 스스로 잘 알아서? 그 정도 이기심이야 인간적인 감정이자 돈독한 유대감이 왜 아니겠나. 다시 돌아와서,
그러니까 우리가 중심을 잡고 무분별한 변화를 경계하며, 잠룡을 선발하고, 하늘이 내린 대권을 견제하며 보좌하지 않는다면! 만약 우리마저 딸랑딸랑 언제나 물개 박수만 친다면 사회는 10년이랄지 1세기를 앞서갈려고 하며, 폭주하던가 어지럽던가 혼란을 맞이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만 보수고, 나만 진정한 보수이며, 우리야말로 격조 높은 일관성과 탄탄한 보수성을 견지한다는 논리네! 단지, 우리만! 분석하면 90퍼센트는 다 그래프에서 제1범주에 해당하는데, 따따부따 따따부따 (설레설레)! 주입식 교육을 받고 폐쇄적이고 과도하게 통제된 사회에서 성장하여 재밌는 지옥과 심심한 천국은 어떻다는 농을 하건, 그 반대의 교육 방식으로 자유롭고 풍요로운 환경에서 자라서 더 재밌는 인간계는 무엇일까를 고민하건, 아빠는 아빠 스타일일 수 밖에 없다. 아울러 A에서 보수가 B에서는 표면적으로 진보에 가까운 듯 보일 수도 있고, B에서 보수가 A에서는 0.5세기 전의 사고방식에 불과할 수도 있다. A와 B의 차이가 어디 적은 차이일까. A에서 보수는 그냥 보수인데, B에서 보수는 '보수의 보수'를 보수라고 하는 걸 내내 지켜봐야 하는 일. 피곤한 사회이지 않을 수 없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한다는 말이 있다. 국사는 어쩔 수 없었고, 세계사는 틀렸다는 생각! 혹시 그건 옹졸하고 편협한 시각 아닐까? 이른바 큰일 한다는 사람이 속이 그렇게 좁아서야 쓰나. 무슨 상남자들 으쌰으샤도 아니고, 어리석고 쩨쩨하며 시시한 허당 대회라도 출전할 일 있나. 애들 배우는 산수 같은 그런 관념대로라면 그 역의 논리 역시 합당하지 않을 이유 왜 없겠나!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여러분, 사학자와 정치외교학과 교수요? 정치인 비서의 졸개에 불과합니다 여러분!」 애들 장난 같다. 야 우익수 나 대신 늬가 우리 회사 출근해라, 그 말과 똑같다. 무엇보다,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어디까지나 조건부로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다. 그러니까 어떻게? 내가 생각하는 대의의 잇속에 내가 포함된다는 가정하에서만, 나는 그 일리가 옳다고 생각한다 라고. 그때는 어쩔 수 없었다, 따라서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게 옳다? 현재,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당사자가 되어보니까 그게 어디 마냥 기쁘고 한없이 즐겁웁디까? 보수의 보수의 관점이 방종이 아니라 자유라면 그 선수 역시 대를 위해 희생되는 소가 될 수도 있다, 라는 명제도 성립한다. 다른 대의를 위해서는 그 자유가 드라큘라의 만찬이 되는 일은 현실에서는 사극으로 적잖이 증명됐고, 가상으로써는 허구로 무수히 재현됐다. 더군다나 인간은 시간의 기원도 알아냈고, 인류의 시초도 명문화했으며, 생물학과 천문학처럼 신의 영역에도 근접했다. 살면서 그런 일을 간혹 구경하기도 한다. 정치 중심지에 살거나 어쩌다 그곳에 갈 일이 생겨서 거리에 내가 떴는데, 어머나, 무신호로 특급 의전 및 호위와 함께 기나긴 자동차 행렬이 지나가는 일. 국빈이나 누군가 방문했구나 라고 예상한다. 그건 지극히 합당한 일이다. 그러나 옛날에 고을의 경찰서장만 되도 그랬다. 그분의 출퇴근 시간에 말단 경찰관은 그야말로 비상이다. 왜냐하면 직속상관의 출퇴근이 무신호로 완수되어야 하니까. 그것도 날이면 날마다! 그때를 회상하며 오늘 술잔을 드는 당시 삥바리들, 기억이 새록새록할 것이다. 물론 옛날 일이다. 그런데 그걸 뭐라 하냐, 법이 아니라 관례라고 한다. 현재가 아닌 언제적 관례 말이다. 그런데 지금도 그래야 한다? 세상에! 언제적 사고방식으로 지금을 사시는 분이길래... (설레설레)! 실제 사극만 봐도, 유럽 역사만 봐도 지금의 주지사-도지사-시장-군수 정도면 명칭부터 달랐다. 도대체 뭐라 불렀을까? 왕이라고 불렀다, 왕! 왕은 직책이 왕이니까, 그러므로 왕의 말은 곧 법이었다. 그렇다고 작은 단위에 왕은 딱 하나, 끝? 그럴 리가 있나. 몇몇만 빼놓고 왕과 똑같은 권세를 누린 귀족들도 적지 않았다. 그 세세한 권력이 어땠나를 문학으로 보자면 빅토르 위고를 읽어보시길. 뿐인가? 지역에 따라서는 암행어사라는 제도도 있었겠지. 당시 다수였던 피라미드의 저층은 정말 죽쑤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사극만 봐도 돌쇠의 사랑이 뭐 어떻게 됐다거나, 테스 같은 여자 하며, 돌쇠와 마님의 불륜이 사랑인가 에로인가는 허허허 참 어중간하다. 지금의 사극이 당시는 현실이었으니까. 물론 교왕의 권한이 막강했던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교황이 그날따라 적당히 청결하게 꾸민 빈자의 맨발을 씻겨준다. 구식은 다 나쁘고 전통은 모두 고루하다는 말이 아니라, 변화의 바람은 때로는 극적이고 때로는 자연스러웠단 뜻이다. 옛날이 좋았던 것도 있다. 대표적으로 제1전성기가 만료된 고전음악, 무슨파 무슨파 명화의 부흥기, 익히 아시는 문사들 하며! 쉽게 말해 옛날에는 마차의 시대였다. 마차나 가마가 길을 가면 길을 비켜야 했다. 누구 행차시다 길을 비켜라 라고. 그러나 지금은 그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자동차와 인간, 누가 힘이 센가? 당연히 자동차가 세다. 따라서 자동차가 간다 길을 비켜라? 자동차는 강자이고 인간은 약자니까 고로 인간아 길을 비켜라? 각자 가는 길이 정해져 있지만, 약자만을 위한 세상이 되서도 않되겠지만, 비교적 시대적으로 지금은 약자를 챙겨야 하는 세상이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한다는 생각을 주입시키고 최면을 걸며 따따부따 외쳐야만 하는 옛날 세상이 아니란 말이다. 아마도 주입식 교육의 단점이 그래서 특히 부각된 것만 같다. 그런데도 난 싫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부분만 보고 듣고 외치겠다, 인간의 일이든 만들어진 신화든 전설의 고향도 다 싫다? 거 참 말 많네! 그러나 대체 어디까지가 수용 가능한 극단의 쇼고 표출 가능한 사견이냐, 그 또한 분명치는 않다. 그건 어쩜 문명의 발전 속도에 의식이 발빠르게 적응하기 벅찬 이유를 깨우치게끔 우리의 의표를 찌르며 옆구리를 건드리는 하늘의 기표일 수도 있다. 첫째 다양한 생각과 다채로운 인성, 둘째 강제성이 있는 법, 셋째 강제성이 없는 신앙. 여기서 이 셋의 한계가 무엇인가는 명확해보인다. 때문에 미래는 달라야 한다. 고로 그 셋의 한계를 넘어서는 미지의 무엇인가가 있지 않을까? 라는 합리적 의문 역시 타당한 이치다. 그러나 아직도 지구는 타임머신이다. 그래서 내일을 긍정해야 하는 건 맞지만 때가 되면 어떤 철이 가까와 오고, 사람들은 황금을 쫓으며, 행복은 나비처럼 시시각각 우리를 헷갈리게 만든다. 좌우지간, 하물며 <가마와 화살과 칼>에서 <호박마차와 총과 산업혁명>의 시기를 건너뛴 채 현재에 이른 지역의 정치권, 광대와 마술사와 협잡꾼에 상인으로 대성할 자질이 범상치 않은 사람들이 유독 그 업계에 많이 진출할 수도 있다. 그래서 어떤 가난한 예술가는 어른들의 특징에서는 생각의 완고함 대신 놀라운 통찰력과 슬기로운 지성만, 청춘에서 배운다면 으쌰으쌰가 응애응애로 들릴지라도 꿈을 향한 열망과 사랑과 인생을 고민하는 앳된 기상, 또 어린애로부터 천진난만함과 하나를 가르켜주면 열을 아는 천재성과 말랑말랑한 호기심을 본받고 싶을 수도 있다. 그렇게 아빠의 DNA를 물려받은 나는 최소한 반틈은 아빠와 판박이일지도 모른다. 아빠의 생각과 말과 지혜와 사상이 그대로 내게 전해진 것으로도 모자로 평생 보고 배운 거지. 심지어 먹고 사는 문제와 더불어 아마도 2군에 내려가 있는 약간 불만족스러운 야망마저 계산에 넣는다면? 나이 들면서 정치에 등 돌리는 사람이 하나 둘 늘어나는 경우는 그래서 생긴다. 애국심이란 단어가 왜 나쁘겠냐마는 보수란 단어의 어감이 왜 그처럼 들리는 것일까? 나는 보수고 너는 보수가 아니다 라고! 내가 진짜다 라고! 야 야 떴어 떴어, 피해 피해, 보지 마 보지 마! 애들이나 어른이나. 고대 그리스에서 공공연히 퍼졌던 동성연애만 해도 그 주제를 그럭저럭 편히, 단지 말을 꺼내는 데만 2000년이란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아직도 천동설을 믿고, 머머설은 일상이며, 미래가 아닌 과거로 돌아가기 위해 타임머신을 동경함도 자유자 교양이라고 주장하는 세상이다. 예술이요 문화이자 매스컴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인생이 딱 그렇다. 물에 술 탄 듯 술에 물 탄 듯! 그 원인은 아마도 그럴 것이다. 우리가 각박한 현실과 동화되기는 어쩜 힘겨울 수도 있고, 어쩌면 우리가 지망하는 이상은 복잡한 세계와 약간은 가는 길이 다를 것이므로, 따라서 아차-하면 민중은 옛날 말로 사회지도층 곧 돈과 권력의 선도자에게 (은밀히? 정당하게!) 조종될지도 모른다는 것. 적어도 광고와 오락산업에는 길들여지니까 말이다. 보수라는 낱말도 사랑처럼 애매한 명칭이 되어버린 오래다. 간접 정치의 한계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내 인생이 먼저인 건 맞겠지만, 하나 같이 양반과 백작과 신사와 (부유한) 보수킹만 바라면 대체 나머지는 누가 하나? 1세기 전의 보수는 틀리고, 반 세기 전의 보수킹은 옳다? 모순! 왜냐하면 그 시각으로 보자면 옳은 후자가 틀린 전자에 속했으니까. 사실만 봐도 시대적 정치성은 미래가 아닌 사극으로 역주행했으니까. 일관성은 필요없고 내가 좋아하는 부분만 보고, 듣고, 말하고 싶다는 얘기나 다름없다. 과거는 과거지, 일부 과거는 어쩔 수 없고 일부 과거는 미화하는 건 지혜롭고 현명한 관점이 아니다. 보수의 보수에서도 나름 인품을 갖추고 호감 가는 분도 있다. 저분이 득세한다면 나중 지켜보고 싶다, 그런 인물도 찾아보면 있지 왜 없겠나. 그런데 꼭 어쩌다 보면 이방 역할이랄지 내시, 탐관오리를 연상케 하는 건 아닐까 같은 일이? 뭐 대하드라마 찍나! (설레설레)! 하긴 이방과는 내 주변에도, 내 친구 중에도, 우리 주변에도 있다. 이 비율과 그 비율이 일치하지는 않겠지만, 이방과 코메디언은 어쩜 종이 한 장 두께 차이에 불과하겠지만 말이다. 절대 쉽지 않은 분야, 그게 바로 정치다. 특히, 현대 정치! 넌 임마 어떻게 된 녀석이 그것도 못하냐, 야 나와 나와, 이런 멍충이 같으니라고. (그런 다음 본인이 해 보니까...) 효과음~~! (누가 시켜줄 리도 없겠지만 그냥 웃자고 하는 말로) 쉽게 생각해도 연예인, 유명인, 예술가... 이런 거 하라면 하겠는데, 그런데 정치가? (갸우뚱갸우뚱) (설레설레)! 그 만큼 어려운 일임이 틀림없다. 그래서 역할이 막중하니까 유혹과 죄인과 논란도 많을 수 밖에. 아무리 그래도, 연예인 자질이 돋보이는 일부 정치인들은 그래서 자기가 무슨 스티브 발머인 줄 안다. 일부는 시끄러울 행동과 말이 무엇인가 골라서, 그 가치를 따져서 그것만 한다. 30년 전 활약했던 보수에게 큰 절을 하고 걸핏하면 옛날 얘기를 하는 일이 드물지 않다. 심심하면 박물관을 들먹이고 걸핏하면 목에 핏대를 세우며 같은 편마저 면박을 주기 일쑤다. 하루라도 험담을 듣지 않으면 잠을 못자는 사람도 뭐 있을 수는 있겠지. 그러니까, 소음은 튀는-마가 제일이다. 괜히 그분들 때문에 어려운 길 가는, 한 자리수 지지도 직업인들마저 한 푸대에 담는 것 같아 차마 얼굴을 못 들겠다. 동네에 돌아다니는 생쥐였다면 콱 그냥... 워─워─워! 게다가 미래의 주인공이 누구인데 젊은이는 정치에 무관심이요 오히려 노인의 최대 관심사가 그것이다. 사극에서 사회지도층의 연기가 인상적으로야 보인다지만 그건 당시 백분율로 1퍼센트의 1퍼센트의 2퍼센트였다. 그런데 지금도 우리는 피라미드의 최상층만을 바라보며 살고 있다. 말이 나왔으니 하겠지만, 쉽게 말해 부자는 누가 득세해도 큰 상관없다. 별다른 걱정이 없다. 차라리 유니폼 입은 사람들이 힘들다면 몰라도. 피라미드의 판을 짜는 건 옛날 말로 사회지도층이고, 그 설계도에 따라 부지런히 움직이는 일은 평민들이 한다. 그 중간에 누가 있냐? 졸부가 있고, 한량이 있으며, 그런 데 관심 하나 없는 평범한 낙천주의자가 있다. 이것 또한 모순이다. 공부를 많이 해서 학식과 지식과 상식이 풍부하며 부유한 교양주의자는 세상을 아니까 정치를 논하며 내 세금을 더 걷어달라고 해야 하는데, 실정은 그 반대에 가깝다. 이기적인 관점으로 바라볼 가능성이 훨씬 크다. 물론 그게 권리고 자유이자 평등이지만. 그런데 역으로 선량하고 성실하지만 옛날 말로 평민은 시키면 시킨대로 (결과적으로 보자면) 다할 수도 있고, 아예 관심이 없던가, 아니면 (성-머시기 그런 뜻이 아니라) 착한 여자는 온순하고 순진하며 어떤 장르를 좋아하니까 말하면 곧이곧대로 다 믿는다. 왜 지구가 타임머신이겠나, 지금도 어느 시골에 가면 어느 집에 앤디 워홀의 자화상이 걸려있지 않을까? (과정과 원리가 그렇다 뿐이지 이걸 만약 비꼬는 걸로 받아들인다면 몹시 섭섭하고 서운한 일) 옛날에는 신분이라도 따졌고 오늘 날 사석에서 인품을 거론한다지만, 다만 졸부면 그만인 세상. 부디 나까지? 이건 아니다. 정녕 이건 아니야. 자, 그래서 나도 덩달아 인기와 황금만을 추종하자? 이번엔 선동말고 딴 걸 해 볼까! 그래도 일단 밤의 방탕과 탕자의 타락은 피하고 보자. 그러나 문명의 이기와 호사의 목마름, 풍요로운 대망을 실현한 행운아들의 가르침이 차고 넘치는 세계. 그렇다고 산속으로 들어갈 수도 없다. 바다로 떠나기도 귀찮다. 북극곰을 살리는 좋은 일은 이미 누군가 하고 있다. 그러면 난 정말 어떻게 해야 하는가 라고 JS는 생각했다. 고로 그는 깨달았다. 난 아직 더 배워야 한다고. 난 아직 뭔가를 더 보고 듣고 느끼며, 믿은 다음에 더 속아봐야 정신을 차릴 거라고. 그래서 그는 동물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친구 델을 만나러 갔다.
그는 델의 집에 도착했다. 그런데 델은 보이지 않았다. 그때 전화가 왔다. 화상 통화로 델의 변화를 보니 뭐야 이거! 지금이 어느 땐데 그 옛날 히피를 흉내내는 걸까? 상태가 이거 원...! 델은 약속을 깜빡 잊은 채 여행을 떠났다고 했다. 그래서 미안하다며 자기 집에서 푹 쉬었다 가라고 했다. 뭐든지 마음껏 쓰고 보고 먹고 입으라며 자기 살림을 거덜내도 된다고 했다. 누가 거덜내라면 못 거덜낼 줄 알어? 허허허허허! 그건 그렇고, 애지중지 돌보던 동물들은 통 보이지 않았다. 뭐야 설마 잡아먹었을 리는 없고, 델이 동물로 변했을 리도 없고. 대관절 어떻게 된 일이지? 아무튼 그는 델의 집을 통채로 차지할 마음은 요만큼도 없었으나 당분간 휴가를 떠난 델을 대신해서 그곳에서 정박하기로 했다.
그날 하루는 델의 집 냉장고가 탐욕의 돌파구였고, 별다른 일 없이 하루를 마감할 것처럼 시작은 순조로워 보였다.
8
암만해도, 그는 천재 예술가다. 그런데 그가 간직한 재능은 이랬다. 화가의 권태, 음악가의 타성, 작가의 나태, 허당계의 유혹, 플레이보이의 무명, 칼럼니스트의 가난까지. 그러나 실연은 어제 얘기. 내일은 다를 것이다. 그러기를 바랬다. 왜냐하면 오늘의 꿈과 희망을 위해 '행복한 일하기'와 '재미있는 놀기' 사이에서 항상 갈팡질팡하기 때문. 하지만 환상의 추산을 탐지하며 행운의 발명을 추측하는 일로 내내 사무실에 앉아있을 수 만은 없었다. 그래서 그는 혼자 놀기 싫어서 델의 집에 놀러온 것이다. 그런데 델은 부재중? 빈집에서 델이 된 듯 살아보는 것도 그닥 나쁘지 않은 체험이라고 생각했다. 그럴 수 밖에 없었으니까.
몇 시간이 마치 며칠인 것처럼 델의 공간을 염탐하며 그는 알게 됐다.
첫째, 이 일이 은근 아니 딱 완전, 막 진짜 진짜 재밌다는 것.
둘째, 델은 심약한 풍운아이자 감성적인 로맨티스트라는 것.
그의 책상 위에 막 덕지덕지 포스트잇과 사진들이 붙여져 있으니까. 거기 씌여진 문장은 이랬다.
꿈의 쾌청함을 요망하고 행복의 탐탁함을 소망하자.
뭐라고?
또 집에서 혼자 술 마시고 쓴 게 아닐까 의심스런 낙서도 보였다.
진짜 꿈은 평생 놀고 먹기요, 가짜 꿈은 열망으로 똘똘 뭉친 광마일 테지만, 보아하니 멋지게 사는 둥 마는 둥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오, 이런!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누구한테 선물 받았는지는 모르지만, 아 기록이 있구나. 귀여운 친구 세라가 선물함 이라고. 녀석 이젠 연애도 하는군, 라고 그는 흐뭇한 웃음을 감추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델이 시집을 읽는다? 해가 이미 서쪽에서 뜨고 있는 건 아닐까? 이번 여름에는 진짜로 남반구에 가서 살아봐야 할까 보다.
어머나, 이건 또 뭐야? 시집에다 낙서도 적어놨네!
1.인생이란 패배에 익숙해지고, 연애를 학습하며, 떠오르는 공상을 말이든 행동이든 밖으로 끄집어내는 것. 그러다 황당한 신비주의를 믿고 사람에 속고, 대망을 거의 정말 잡을 뻔 말 뻔 하다 결국 놓치는 것.
2.사랑을 위한 사랑이 꼭 아름다운 사랑의 성공작만큼 행복의 현현을 보장하는가, 하면 꼭 그렇지는 않다. 물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창창한 미래는 누구도 모르는 거니까. 핑크빛 성에 너무 일찍 눈을 떴거나 때 이르게 조숙했던 어른들은 때론 이처럼 조언할 테니까. 인생에서 사랑에 지각하는 게 어쩌면 나을 수도 있다고 말이다.
3.내가 좋아하는 D는 여심의 생동감과 여체의 아름다움에 너무 애착한 나머지, 그는 결국 흑심과 밀착하고야 말았다. 어저면 사랑마저 집착에 지나지 않을까 라고 의심할 경지에 이르르고야 말았던 것이다.
어쭈! 이것 봐라. 푸하하하하하하. 아이고! 얘 알고 보니 아 글쎄, 낭만주의자? 그래요 그래, 뭐 그럴 수도 있어요. 하긴 우리들끼리 진지한 얘기를 한 적이 뭐 얼마나 있었나? 통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러니까, 델에게 문학적인 재주가? 맙소사! 그 마초가? 세상에나!
반나체 여인의 대형 브로마이드가 벽에 떡하니 붙어있을 줄 알았는데, 이건 완전 의외였다. 그는 정말 델의 핀잔이 들리는 것만 같았다.
「아니, 그걸 몰랐어? 어떻게 모를 수 있지!」
그야 뭐, 세상사를 논하고 사랑을 점치며 아름다운 문학을 꿈꾸는 건, 델의 사생활이고! 델의 새로운 정체성을 탐색하며 은밀한 즐거움에 도취하는 건 내 자유다? 살짝 미안했지만 언제까지라도 함구해야 만할 비밀일 뿐이었다. 그러나 제이크의 그 거리낌없는 탐닉 행각은 도저히 멈출 줄을 몰랐다. 아마도 오늘 잠 다 잔 건가? 그럴 생각을 할 겨를이 없음.
그는 한두 가지만 구경하고 그만둘려고 했다. 처음에는 진짜 그랬다. 솔직히 관심도 없었다. 그렇지만 무심결에 빠져들어서 깔깔, 낄낄, 껄껄 뜻밖의 기쁨과 신선한 발견의 흥분감은 장난이 아니었다. 의외의 놀라움이 뻥뻥 터졌고, 순수한 기쁨이 빵빵 터졌다. 도무지 멈출 래야 멈출 수가 없었던 것이다. 혹시 델은 나처럼 자기 안의 그분을 흠모하는 게 아니라, 델은 때때로 둔갑술이라도 부리는 것만 같았다. 혼자 놀면 심심하니까 그랬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델이 인형이나 여성잡지나 화장하기에 기대겠나. 아 정말 고독한 그 마음을 에로비디오에만 의탁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그래서 제이크는 이미 치졸함의 경지를 너머서서 우정의 파탄 그 조마조마한 경계에까지 근접하고야 말았다. 그야 예의상 하는 말이고 그것도 이해 못하는 우정이라면 진작 여장을 하는 게 낫긴 낫을 꺼다.
아닌가? 아니다! 여자가 속이 좁다는 뜻이 절대 아니다. 비유가 세련되지 못했음을 인정한다. 그러니까, 여자는 속 좁은 여우고 남자만 대인배일까? 그럴 리가 있나. 그럴 턱이 있겠나. 만약 여자는 속 좁고 남자는 대인배라면, 대인배는 왜 그렇게 뚜껑이 자주 열리나! 아 글쎄 대인배라면서? 포커페이스는 뭐 진짜로 포커할 때만 필요한 건가! 지는 비교가 대인배에게는 소 귀에 경 읽기니까, 그래서 대인배는 비교 자체를 싫어할까? 속된 말로 솔직히 까놓... 리본 풀고 포장을 연 다음 말해서, 대인배는 이기는 비교에 환장한다. 대관절 다혈질이 하는 일이 뭐냐, 속 좁은 여우들 꽁무늬나 쫓아다니는 일 아니냐구요. (떡!) 이 세상의 모든 숙녀들이여, 내 말이 틀렸소? 아 말이야 바른 말 아니냔 말이오. 이게 어디 보통 일입니까? 네? 이러고서도 우리 인간들이 만물의 영장이라며 큰소리칠 수 있냐, 그래도 되느냐 이겁니다, 제 말은. 이러고서도 남자로 비유되는 동물들인 늑대와 하이에나와 개에게 우리가 챙피해하지 않아도 괜찮을까요? 이러고서도 여자로 의인화되는 여우와 양과 고양이 앞에서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떳떳한 척 군림해도 좋은가, 이 말입니다. 이건 아닙니다. 이건 아니예요. (쿵!) 숙녀여, 이게 어디 그냥 조용조용히 묵과할 일에 지나지 않을까요? 네? 우리는, 우리는 이 중차대한 일을 그냥 보고만 넘어갈 순 없는 겁니다. 그래서는 안되니까. 그럴 수는 없으니까요. (땅!) 보자 보자 하니까 누굴 뭐 보자기로 아시나! 이게 어디 쉬쉬하며 넘어갈 문제냐, 제 말은 그 말입니다. 우리는, 대인배의 소심함을, 대인배의 말 같지도 않은 허세와 말도 안되는 허풍을, 절대, 좌시할 수, 없습니다. 그럼요. 그렇다고 꼭 허영의 왕국을 건립하자, 그런 얘긴 아닙니다만, 이제 드디여 때가 되었습니다. (빡!) 우리는 많이 기다렸습니다. (빡!) 우리는 오래 지켜봤습니다. (뻑!) 우리는, 이제는 더 기다릴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때가 되었으니까요. 그럼요. 어디 이래서야 아름다운 세계─즐거운 인생─신비한 사랑, 그게 가당키나 하겠냔 말이오, 네? 그러니까 사랑 노래를 부르면 뭐합니까? 풋사랑만 사랑인 줄 아는데! 안 그렇수? 안되겠소. 여러분! 이 얘기를 듣는다면 그대 여자들이여, 우리 행동합시다. 네? 아 이참에 우리 모두 다 함께......
워─워─워!
으쌰으쌰 다음의 경우의 수를 잘 아시지 않습니까. 허허허허허. 허허허허허! 어쨌든 주제는 그게 아니니까, 위스키 3병이냐 수다 3시간이냐 다 거기서 거기니까, 일단 넘어가자. 통과!
나도 무선 마우스를 쓰는데 얘도 무선 마우스를 쓰네? 아 그래도 노트북은 너무 깔끔한데! 원래대로라면 델은 노트북 겉에 덕지덕지 스티커로 도배를 해야 정상일 것이다. 하지만 연애하는 델이라면... 그는 마음 놓고 델의 사생활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그처럼 그는 델의 집에 몰래 침입한 곰이자 자칼이며 너구리였다. 그러나 분명코 델에게 허락을 받았고, 결단코 델의 마음을 녹일 수단은 무궁무진하게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다 괜찮다는 말!
그러다 제이크는 끝내 소파 구석에서 웬 스타킹을 발견했고, 거실 구석에서 호피 무늬 블라우스를, 심지어 패션쇼에나 나올 법한 여자의 대리석 허벅지까지 올라오는 부츠를 마당에서 보게 됐다.
9
어라~! 설마. 녀석이 결혼까지...?
그건 그렇고 그는 이번에는 진짜 마지막으로 델의 노트북만 딱 구경하고 탐색을 끝마치기로 했다. 특별한 경험은 그만하면 충분했고, 궁금증이란 마법도 한밑천 해소되었다. 그런데 델의 노트북은 상표가 델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델은 팔짜의 개척자란 말이군. 그야 어쨌든 백조의 노래는 대미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승리의 포도주에 도취한 채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노트북에 귀하게 숨겨져 있을지도 모를 이상한 영상 때문에 뭐 군침이라도 흘린다는 뜻은 아니고.
뭐야, 이건!
델의 노트북은 비밀번호가 걸려 있었다. 그는 그냥 노트북을 덮을까 하다가 혹시나 해서 딱 한 번만, 진짜로 딱 한 번만 시도해보기로 했다. 그는 패스워드를 입력하는 빈칸에 입력했다.
「난비밀번호」
룰루랄라~ 환상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주인님!
델은 정말로 비밀번호를 그렇게 설정해놨고, OS는 켜졌으며, 델이 특별히 설정해놓은 인사말에 그는 코 끝이 찡해졌다. 눈물이 핑 돌 뻔 하다 말았던 것이다.
그는 며칠 전 이런 일을 겪었다. 집에서 혼자 술을 마시다, 어두운 방에다 병 따개를 놓으러 갔는데 어두껌껌한 방에서 스탠드 옷걸이를 유령으로 착각해서 기겁을 했었다. 와, 소름이 소름이... 장난 아니었다. 그런데 딱 그와 비슷하면서도 또 다른 전율감은 제이크를 가만놔두질 않았던 것이다.
그는 초등학생 때 누나의 책상 서랍 안을 구경하며 신비의 세계를 엿보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좀 더 성장하여 중학생 때는 형이 자기 책상 서랍 안을 검사하는 일이 이따금 있었다. 얘가 뭔가 이상야릇한 걸 숨기고 있지 않을까 라는 듯이. 그런데 당시 그는 우리 반 친구에게 빌렸나 어쨌나, 야한 잡지를 어떻게 구해다가 책상 서랍 안인가 밑인가에 숨겨놨었다. 그때 형한테 걸릴지 어떨지 조마조마했던 기억이 생생했다. 당시 다행히 들키지는 않았다. 그런데 다 큰 어른이 되어 그는 이제 다시 초딩의 마음으로 돌아간 것이다. 아동이 되어 미지의 희망을 꿈꾸고, 신나는 모험을 떠나는 기분을 되찼았던 것이다. 오오, 그러니까 부활! 이를테면 우주는 신비요 지구는 과학에다 시간의 기원은 신화이자 사랑이 기적이라면, 이와 같은 짜릿한 탐정 따라하기는 환생 아닐까?
그래서, 은근히 궁금했던 어떤 이상한 영상 파일 같은 게, 쑤두룩하더라? 그런 일은 없었다. 컴퓨터는 대단히 깔끔하게 사용되고 있었다. 별다른 게 없었다. 즐겨찾기도 몇 개 되지 않았고, 회사일에 관련된 파일들만 많았다. 그렇게 별다른 게 없길래 그는 컴퓨터를 끌려고 했다. 그는 솔직히 실망했다. 그러다 딱 하나 뭔가를 발견해냈다. 그건 무엇인고 하니 바로 델의 일기였던 것이다. 이건 뭐랄까 제이크는 직업이니까 글이 안써지는 걸 예민하게 생각하는데, 델은 글이 멈추지 않는 걸 고민하는 느낌이랄까. 뭔가 그런 게 있었다. 읽어보니 말이다. 자기는 글을 쓰기 싫다고, 나 일 안해, 라며 강짜를 부릴 수는 없으니까 이곳까지 왔다. 그런데 델은 알고 보니 괴물 신인급에 해당하는 글쓰기 소질이 있다고? 그는 끙끙대며 전전긍긍함이 이만저만 심한 게 아니었다. 그러던 중 좀 괜찮은 수준의 글을 찾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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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의 거리는 아름다운 환상으로 우리를 유혹한다. 기분파 숙녀는 나이트클럽에 입장하고, 낭만파 연예인은 TV에 나오며, 가난한 예술가는 단지 한발 늦게 토끼처럼 유행을 뒤쫓는다. 투우장에 목마는 없고, F사 P사등 애마는 턱없이 비싸다. 장밋빛 로맨스는 애타게 불러도 대답이 한 박자 늦고, 산책하는 강아지는 냄새 맡느라 중년의 주인을 무시하기 바쁘다. 젊은 그대의 마음은 아마도 광고 속에 있고, 플라톤의 이름만 아는 이 시대에 사랑은 즉흥적이다. 그리고 행복은 노는 건지 입는 건지, 먹고 마시며 노래 부르는 건지 자꾸 헷갈린다. 환상관과 도박장과 경마장 그리고 무도회에서 사람들의 기분은 천국과 지옥을 오고 간다. 소비와 함께 하는 현대에 새콤달콤 키스는 다양한 환희며, 뿌잉뿌잉 윙크는 짜릿한 쾌락이고, 등번호는 가짜에 가슴 뭉클 빽허그는 다름 아닌 주색이다. 별로인가? 별로다! 다시 시작하자. 아니다. 재미없다. 환상의 나라로 우리를 이끄는 사랑의 바보가 인생을 알겠나, 사랑과 친하겠나. 세상에서 보고 배운 게 뭐 대단하다고. 그런 천치에 백치며 머저리는 초딩이고, 그의 사랑은 사춘긴가? 그러니까 내 인생은 나 머리에 꽃 한 송이 꼿았다-네. 재수 좋다. 아니, 재수 없어. 염치 있네. 아니, 염치 없군. 그러니까 말이야, 허영의 탐구자와 자유로운 교양가는 물론 아가씨 꽁무늬만 졸졸 쫓아다니는 늑대들마저 깨물어 베어 먹은 사과 모양이 대체 뭘 의미하는지도 모르는 주제에 그런 무늬 브랜드의 노트북을 쓴다고? 그래도 된다. 왜 안되겠나. 나만 쓰라는 법도 없으니 말이다. 그건 바로 오디세우스가 헬레네에게 준 수정구슬, 곧 미래를 보는 눈을 뜻한다. 또 다른 의미도 있고. 그렇지만 실은 나도 알게 된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지식임을 고백하고 싶다.
라~고 나는 천진난만한 감상주의자처럼 공상했다. 소상히 아뢰옵자면, 벅찬 젊음 치사한 꿈 비뚤어진 인생 아니꼬운 세상, 라며 불평하는 유치한 천덕꾸러기는 사양해야 할 테니까. 그래서 나는 델의 생일 날 델에게 델표 노트북을 선물했다. 그러나 오빠는 통 반응이 신통치 않았다. 내가 별로인 건가? 아닌데. 델은 특히나 내 뒷모습을 보면 획 도는데! 아니면 델에게 또 다른 여자가? 하긴 델이 미인계에 약하지. 선녀라도 잘만 꾸며놓으면 아마 꺼뻑 넘어갈 걸? 왜 아니겠어! 그는 참말로 사랑이라면 환장하는 인간 남자니까. 한마디로, 정상! 그래도 그렇지 날 아직까지 고이 놔두다니.. 그 인간을 그냥 당장...! 어쨌든 나는 더 연구해야 한다. 델을 더 탐구하며 그 녀석을 어떻게 요리할지 심도 있게 고심해야만 한다. 왜? 왜냐하면 그 녀석은 내 꺼가 되어야 하니까. 그러나 또 모른다. 그가 나한테 딱 넘어온 다음부터 내 마음이 바뀔지 말이다. 실상 나는 그런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 델은 다를 꺼라며 안심했다. 그런데 왠지 돌아가는 분위기가 세-하다. 그러니까 델도 드라마네. 난 원래 드라마를 잘 보지 않는데, 어쩌다 관심 가는 드라마가 생겨도 처음에만 혹하다가 몰입도가 처참히 하향한다. 그래서 몇 편 보다 말기 일쑤다. 그러면 델도 롤러코스터 같은 남자가 아니란 말인가? 하긴 난 롤러코스터 같은 남자는 사양한다. 내가 좋아하는 남자는 회전목마 같은 남자니까. 만약 델이 행동을 결정하지 못한다면 난 그의 마음만 받을까, 아니면 그의 키스만 이끌어낼까, 것도 아니면 백허그 딱 한 번으로 만족하고 끝낼까. 나도 모르겠다. 나도 모르겠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나도 날 잘 모르겠다고. 그러니까 남자가 자기 속마음을 활짝 열어야 하는데, 그 인간들이 말이야, 어? 다들 숙녀를 어떻게 한 번 해 볼 생각이나 하니까 그게 진짜 문제라고. 설마 델도 지금 발정기란 말이야? 뭐 언젠 아니었겠어! 하긴 델의 여자 관계를 보아하니 1단계, 2단계, 3단계로 딱 정해져 있단 말이야. 뭐야, 지금 그 인간 혹시 딴 여자 만나고 있을까? 그러고 보니 델도 플레이보이의 4대 요소를 이미 어느 정도 너머선 게 분명해. 만화영화 같은 상상을 좋아하지만, 내가 아무리, 그림책은 그만큼 동경하지 않는 낙천주의자라지만, 응? 아무리 봐도 내가 아까워! 응? 내가 훨씬 아깝다고! 그동안, 지금까지, 내가 어떻게 참았는데! 말이야 바른 말이지. 누구보다, 무엇보다, 적어도 델보다 내가 많이 아까워! 그럼. 더군다나 난 남자를 좋아하는데 델은 이제 보니 델이 좋아하는 건 여자가 아니라 바로 동물이네. 그러니까 내가 넘버2도 아니고 그 인간에게서 2군으로 밀려났던 게로군. 이럴 수가! 내가 어쩌다 이렇게 감이 떨어졌지? 그게 다 누구 때문이다? 심심하면 사랑에 들떠 사교계에 드나들며, 치료되지 않는 아티스트병 때문에 무턱대고 스타의 후임자에 이름을 올렸던 과거의 나 때문이다. 맞다.
결론은 나왔다. 나도 델처럼 행동해야 한다고. 이제 작전명은 정해졌다. 일명, 거울! 부제는 반사. 델의 친분 만큼만, 내 친화력은 델과 동일하게, 그것이다. 이미 글러먹은 연애는 아니지만 이런 어정쩡한 연애, 어떤 기승전결이 펼쳐질지 이미 다 아는 나니까. 내가 뭐 남자 밝히는 응큼한 숙녀도 아니고 말이야. 안되겠다. 움츠러든 자존감을 올려야겠다. 자, 이제 무도회에 얼굴을 비춰야 할 시간이 임박했다. 가자. 요한 쉬트라우스 3세를 만나러!
11
뭐야 이건!
그럼 아까 책꽂이에서 봤던 무슨 명문 여학교의 졸업 앨범은 델의 여자친구 게 아니었다고? 속옷과 스타킹과 롱부츠 하며... 그럼 이 집은 델의 집이 아니고, 이 노트북도 이 일기마저 델이 쓴 게 아니란 말이네! 그런데 이 기분은 도대체 뭐지? 오오 이런 느낌 처음이야! 제이크는 이 미지의 아가씨 때문에 그녀를 더 알고 싶은 애정에 포근히 빠져버렸다. 신비로운 요술에 홀린 듯한 사랑에 빠졌고, 때문에 그녀의 마음을 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만일 그걸 사랑이라고 해도 된다면!
그 순간 바깥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저런!
아마도 집주인이 들어올려는 것 같았다. 그는 재빨리 자신의 물품들을 챙겨서 이리 갈까 저리 갈까, 갈팡질팡하다가 뒷문으로 빠져나갔다.
그는 원래 이랬다. 탐나는 매력을 간직한 새콤달콤 깜찍-숙녀와의 사랑을 꿈꿨다. 동시에 신나는 모험을 간구했고, 언제나 행복한 이상을 탐지하고자 했다. 그런데 정작 결과는 그와 같은 이상적 애인의 그림자만 품게 됐다는 것. 황홀한 꿈 속에 앙증맞게 빛나던 소원, 어쩐지 어쩐지 이루어질 것만 같았던 게로군. 그런데 실현되긴 실현됐는데, 어째 거 왜 영 뭔가 잘못 실현된 기분.
그는 여차여차해서, 어쩔 수 없이 톰과 제리에 나오는 바로 그 톰처럼 이러이러해서 옆집으로 건너갔다.
참으로 빨리도 델의 집에 입주한 것이다.
12
그는 인생을 배우고, 사랑을 믿었으며, 행복을 누렸다. 환상을 꿈꾸고, 신비를 상상했으며, 낭만을 추구했다. 희망의 찬가를 좋아했고, 열정의 대상은 매번 바꼈다. 그러나 노래 부르고 춤 추는 즐거움도, 그림 그리고 글 쓰는 기쁨도, (돈을) 쓰는 쾌감과 소비하는 쾌락을 뛰어넘기는 힘들었다. 꽃들이 반기고 별들이 노래하는 조증은, 탐스런 과일이 풍성한 인생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 허풍은 통 늘지를 않았고, 허세는 불행했으며, 허영심만 미풍과 풍문을 양쪽에 꿰찰 뿐이었다. 그러면서 오빠라는 말에는 늘 귀가 쫑끗! 열광스런 황금마차는 동화책에나 나오는 것. 그러니까 선동가냐 허당이냐, 작가냐 한량이냐 라는 정체성만 의심스러울 뿐. 신나는 전개가 펼쳐질 수 있는 그런 뚜렷한 대책은 항상 부재중. 이 일을 과연 어쩌면 좋을꼬! 그런데 문득 '열려라 참깨!' 와도 흡사한 그런 놀라운 일이 그에게 발생했다? 발생하지 않았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었다. 중이 제 머리를 못 깎는다고, 그래서 그는 스스로 나설 수 밖에 없었다.
따라서 그는 델의 집에서 행복한 기분까지는 아니어도 최소한 호기심이 자유로워야만 했다. 그런데 결과는 1박 2일 도둑놈 신세였다니!
그는 따분함이라는 복병은 완벽하게 제압했다. 그런데 문제는 범법자가 됐다는 점. 하지만 달리 큰 소란은 없었다는 것까지. 이건 결코 사소하지 않은 시련이었다. 아니다. 완전 재밌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판이 뒤집어진 거지. 가슴이 두근두근 딱 좋았는데, 드라마의 장르가 느닷없이 바꼈으니까. 그는 어쨌든 얼굴을 모르는 어느 숙녀의 비밀을 알아버렸다. 천하에 둘도 없을 행복과 어디서 그 짝을 찾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사랑의 애틋함을 그녀 몰래 알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그녀에게 실토한다? 쉽지 않았다. 델과 자기는 우정인데, 어쩌면 델과 그녀는 사랑인데, 그런데 밑도 끝도 없이 델의 친구가 도둑놈? 달리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런데 그 순간,
딩~동!
아, 그녀다!
나가보니 진짜 그녀였다.
그런데 그녀는, 오오, 실망스럽지 않았다. 전혀!
아마도 이건 숙명일 것이다. 여기서 도망가면 남자도 아닌 거지.
「어머머! 델... 오빠는요?」
「아, 전 델의 친구입니다. 델이 없는 동안 집을 지켜주기로 해서...」
「그렇구나. 델 오빠의 친구. 그럼 오빠라고 불러야겠군요? 맞잖아요! 아빠라고 부를 순 없으니까요.」
「그건, 그렇겠죠.」
「오빠. 저 좀 도와주세요. 집에 누가 들어온 것 같아요. 어서요!」
그렇게 해서 제이크는 낯선 여인의 집으로 다시 들어갔다. 기분이 이상했다. 과거의 자신 그 유령의 정체와 흡혈귀의 흔적을 탐지하는, 현재의 자신이라니! 그렇다고 솔직히 전후좌우 어떻게 된 일이라며 사정을 전부 말할 수도 없었다. 아무리 잘 설명한다고 하더라도, 이건 릴리의 일기를 읽고 또 자기의 일기를 릴리에게 선물하고 그 정도의 윤곽을 넘어서는 일이었다. 그런데 제이크는 그녀의 일기를 읽었고... 그는 그녀에게 큰 빚을 진 것이다. 이만저만 옹삭한 게 아닌 아주 까다로운 빚. 고분고분하게 해명하고 차분한 어조로 침착하게 잘 설명을 하는 게 제일 좋을 것이다. 그러나 그 정도로 처음 만난 여인의 마음을 안정시키며 조목조목 사려 깊게 설명한다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또 그럴려면 자기의 과오를 전부 내 탓이라고 밝혀야만 했다. 왜 눈치없이 멈추지 못했는가 까지 설명할 수는 있는데, 그녀가 이해해줄지는 미지수였다. 힘 닿는 데까지 노력한다고 할지라도 델의 입장이 또 이상하게 되어버린다. 이건 정말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였다.
아아 나는 세상만사에 능통한 속인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그냥 바보였다니! 저런 머저리 같은 놈! 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런데, 그새 서로 정이 들었나?
결국 그는 그녀의 마음을 안심시켰고, 그녀를 잘 설득시켰다. 웬 괴짜가 낯선 여행지를 여행하다가 술 취해서 빈 집에 몰래 잠깐 들렀다 갔을 거라며.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 무엇으로? 애타는 애정 속태우는 사랑, 애처로운 여심 딴청 피우는 농심으로. 델을 핑계로 그는 그녀와 급속도로 가까와진 것이다. 그녀의 이름은 비비안이었다. 비비안? 속옷 브랜드 이름인지 값비싼 옷 명칭인지 아무래도 좋았다. 이제 델은 필요없었다. 델은 허당계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는 푼수고 신부들러리를 하기에도 변변치 못한 놈이었다. 사색가에게 쉽사리 수긍이 가지 않는 모험욕은 언제나 그의 아킬레스건이었다. 그러나 고비를 넘겼다. 그래서 그는 사랑을 흥정하는 모험가로써 괜찮은 주인공으로 낙점 받았다. 또 스타로 환대되는 현몽 때문에 마음의 안정을 되찾았다. 델의 정력을 측정할 일은 없겠지만 비비안의 애정은 측량한 거나 다름없었다. 그러므로 벌써부터 희망 찬 운명관을 발전시키는 행복한 분위기. 곧 그는 기분이 다시 좋아졌다.
그럼 이제 항구의 하늘에 사는 별들의 이상을 탐지해야 할까, 그녀의 마음을 빼았아야 할까. 그것만 남게 된 것이다.
13
사랑은 너무 많고, 황금과는 친하지 않으며, 다정한 여복은 남의 얘기다. 이상의 무지개는 모르겠고, 그러면 과연 어떻게 해야 하느냐! 그게 문제였다. 아무래도 상쾌한 멜로디는 떠오르지 않았으므로, 따라서 그는 에메랄드빛 지중해로 떠나기로 했다. 그런데 날씨가 별로였다. 그러므로 떠나지 말기로 했다. 그래서 고민했다. 집에서 수영장 파티를 열 것인가, 유쾌한 소풍을 떠날 텐가, 아니면 일광욕과 파도타기를 즐길 것인가로. 그 결과 고심 끝에 결정했다. 추근댐과 집적거림이 아닌 상쾌한 전망이 있고, 여유로운 관망이 좋은 해변으로 떠나야 겠다고. 즉 3번이 간발의 차이로 낙찰된 것이다. 그래서 그는 떠났다.
하지만 일광욕은 지루했고 해변 분위기도 그만그만했다. 그래서 그는 다시 그 반대로 떠났다. 멀리 떠나지는 않았다. 교환 일기를 주고 받지는 않았지만 릴리를 만나러 미술관에 갔고, 또 우연히 지나가는 척 하면서 비비안을 만나러 갔다. 미스테리아 사무실에 틈틈히 들리는 것도 빼놓지 않았다. 자기 팬사이트 회장인 롭이 언제 만나자고 했지만, 언제 밥 한 번 먹자며 만남을 살며시 미뤘다. 남성잡지 사장인 조지의 칼럼 청탁도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그렇더라도 아무 까닭도 없이 내내 바깥으로만 돌 수도 없는 일이었다. 자기가 최근 어떤 삶을 살았는가. 아침에는 동심, 오전엔 열정, 4시의 권태, 이어서 저녁에는 향락을 뿌리치기. 그리고 밤에는 흑심. 그 다음에 꿈은 야한 꿈? 언제쯤 사랑의 시를 짓고, 누구와 멋진 인생을 논할 것인가! 그는 다시 일하기 위해서 사무실로 출근했던 것이다.
그는 사무실에 도착했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에서는 음표들이 떠다녔고 시상이 웃음꽃을 피웠으며, 귀여운 아기 천사는 꽃밭에서 상큼한 요정들을 유혹하는 몸짓으로 그를 반기고 있었다? 그 반대였다. 일상은 다시 심심한 발단으로 복귀한 것이다. 잃어버린 꿈, 이루지 못한 대망, 한물간 취향 그런 것들.
그 순간 전화가 왔다.
「늬 집 앞에 누가 와 있던데. 지나가다 봤어. 몰랐니? 뭐라더라. 약혼녀라고 하던가? 아닌가? 아니, 이혼녀라고 했나 과부라고 했나. 아무튼 누가 널 찾아왔다구.」
그는 비비안과의 데이트는 나중으로 미룬 채 급히 집으로 갔다.
집에 도착했다.
그런데 뭐야, 아무도 없잖아!
그는 깨달았다. 속았다는 걸.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왜냐하면 자칼을 사육하는 월에게 비슷한 장난을 친 일이 기억났기 때문이다. 뭐야 그러니까 달콤한 복수? 그는 미리미리 릴리와 친한 숙녀들에게 보낼 크리스마스 카드를 쓰기로 했다.
집에서 허탕을 친 다음, 그는 다시 사무실로 돌아갔다.
사무실에 도착했다. 그런데 문이 잠궈지지 않았네? 자기가 깜빡 잊고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아리송했다. 그러든 어쩌든 사무실은 그대로였다.
단, 책상 위에 새 일기장이 놓여진 것만 빼면!
이건 혹시 릴리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럼 누가? 설마 비비안일 리는 없고. 일단 넘어가자 라고 그는 생각했다.
14
그 후 아무 일 없이 일주일이 지났다. 여행에서 돌아온 델에게 연락이 왔다.
「비비안과 인사했지? 그런데 있잖아. 비비안이 집에 도둑이 들었데. 없어진 건 전혀 없는데, 비비안이 뭔가 찝집해서 탐정을 고용했나 봐. 곧 있으면 지문 감식 결과가 나온다던가, 아마 그런 것 같아.」
「뭐? 정말이야?」
「아니! 뻥이야! 푸하하하하. 재밌지?」
「아, 장난치지 말고. 진짜냐고.」
「농담이야. 장난이라고. 그런데 왜 정색하고 그래 이 친구야? 아무래도 너의 반응이 수상한데. 왜 그래? 웃거나 시큰둥해야 정상인데, 왜 반짝 성을 냈지? 너가 진짜 비비안네 집에 몰래 들어간 거 아니니? 에이, 설마! 아닐 꺼야. 그럴 리가.」
「뭔 소리야? 그만 놀려. 만나기로 해 놓고 내뺀 건 너라구. 그냥 넘어갈 생각 마. 응?」
「알았어 임마. 내가 그렇게 쫀쫀한 놈은 또 아니잖냐. 아, 그런데 있잖아. 비비안이 널 몹시 보고 싶다고 하던데. 만난지 얼마나 됐다고 그녀의 마음을 빼았은 거니? 나한테도 좀 알려줘. 어떻게 해야 여자의 마음을 훔칠 수 있는지를 말이야. 응?」
그는 델과의 통화를 마쳤다. 상상은 자유이긴 하지만 공상은 병이었다. 신기한 인연 및 놀라운 만남이 혹시 쇠고랑으로? 소심한 열정 대담한 실행 그건 모두 델이 시킨 거나 다름없는 건데... 혹시 다 델이 작전을 짠 거 아니야? 뒤틀린 심사는 다시 그를 한없는 불안 속으로 내몰았다. 그는 정말 사서 걱정하기엔 일가견이 있었으니까.
나의 사랑은 결코 허언이 아니며 내 인생 역시 허풍이 아니다. 고로 나는 허당이 아니다? 아니긴! 그는 벌써 델에게 말려들고 있었다. 이게 그러니까 어떻게 된 일이지? 우연 치고는 너무 치밀한 엇갈림인 것만 같았다. 참 딱하다 아니 할 수 없는 인기와 빌털털이 신세를 절대 외면해선 안된다며 그는 스스로에게 일침을 가해도 모자를 판국에, 누명이 아니라, 명백한 범법이라...! 어떡하지? 이 일을 대체 어쩌면 좋지? 아니면 그냥 단순한 델의 장난이란 말인가?
그는 다시 몽상가가 되어 코끼리 날개를 펄럭이며 저 푸른 창공을 훨훨 날아가는 이카루스가 됐다. 그랬다가 이카루스의 생애가 해피엔딩이 아님을 잘 알기 때문에 고전음악을 들으면서 가면무도회를 상상했다.
뭇남성들이라 하면 새로운 숙녀에게 친절함과 다정함과 찬미를 선물하기 좋아할 것이다. 왜냐하면 남의 떡이 커 보인다는 어떤 인간적이고도 숙명적이자 뭔가 타고난 듯한 슬픔을 기억하기 때문. 왜냐하면 첫사랑의 소네트와 아름다운 사랑의 세레나데를 (곧잘)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그것이 일시적이냐 아니냐, 습관적이냐 아니냐, 그에 따라 바람둥이와 뭘 모르는 남자로 구분될 수도 있다. 물론 그 사이에는 플레이보이의 3박자가 굳건히 자리잡을 테고. 그건 마치 빛의 3원색처럼 만사에, 만물에, 만인에게 공통된 본능일 뿐. 다른 말로 하면 페라리를 탄 큐피트, 에르메스를 입은 비너스, 무대에 선 박카스인 것처럼. 그러나 최고의 사랑은 오직 딱 하나. 곧 현재의 사랑과 현재의 행복인 것. 그래서 우리는 CD 패션모델과 까레라를 어떻게 한번 양쪽에 꿰차고 싶어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따라서 우리는 안델센과 라 트라비아타와 상대성 원리도 좋지만 1등은 1번에 1인이니까 가벼운 유희와 즐거운 오락을 가까이 해야만 한다. 가령 그 중에 두 가지. 첫째 복권업의 행운, 둘째 점쟁이의 세계관. 고로 단테에게 베아트리체가 있었든 JS는 새파란 청춘이 광속으로 성숙해지기 전에 철없는 모험을 감행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무모한 도전 끝에 미남의 사인을 받는다고 시작이 전부였다. 그처럼 그가 이번에 선택한 색다름은 그랬다. 바로, 릴리와 비비안의 대면! 자기만 쏙 빠지고 여자들끼리 결판을 지으라는 무대책 작전.
유능한 야망가의 천재적인 재주가 없다면 노력만이 살길이다. 그는 릴리에게 갖은 공을 들였고, 비비안도 애타게 연락과 선물 공세와 섬세한 마음으로 소셜 네트워크까지 공략했다. 아울러 소셜 네트워크 상에서 그는 우정의 다리가 되어 릴리와 비비안의 친교를 설정해놨다. 있었는지도 모를 전성기의 부흥은 꿈도 꿀 수 없고, 지금은 비비안과 만나기 전으로 돌아가야만 했으니까.
그러다 그는 신기한 묘안을 하나 생각해냈다.
그는 낑낑거리며 고민한 끝에 간단히 최근의 불안불안한 고뇌를 해결한 듯 하여 기분이 다시 좋아졌다. 그 어떤 열렬한 애정이든 행복한 미소─아름다운 육체─어여쁜 마음의 정복이든 그는 이제 은퇴할 때가 됐다고 판단한 것이다.
방심으로 시작된 소심한 모험은 의심으로 변했다. 그건 델의 농담으로 다시 상심으로 바꼈고, 그는 그녀들의 변심을 놓고 자신의 연애운을 점쳐보기로 한 것이다. 딱히 좋은 방법이라거나 지극히 합당한 찬사를 받을 만한 일은 아니었다. 지성의 아찔함을 느낄 수도 없었고, 단지 얄팍한 (개?)수작일 뿐이었다. 그러고서도 공상하기의 천재라고 자부할 수는 없지만 또 썩 그렇게 나쁜 방도도 아닌 듯 했다. 아무래도 릴리와 정분이 나든 비비안과 애정 행각을 펼치든, 그건 그에게 과분한 사랑일 테니까. 결국 릴리 말마따나 제이크는 <잡것>이었다. 너 나 할 것 없이 그녀들의 사랑을 애타게 기대하며 기다리는 후보들 쑤두룩한데, 참 잘 돌아가는 드라마였다. 하긴 점잔 빼며 어정쩡하게 어장 관리만 하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기쁜 노래 젊은 희망 꽃 피는 봄날, 아무리 그래도 결을 봐야 궁금증은 해소될 테니까. 베팅하며 판을 키우고 박자가 바꼈으면, 판을 엎을 게 아니라 결과는 확인해야 하니까. 우리가 바라는 게 애틋한 간청일지 아닐지, 우리가 좋아하는 게 천상의 행복과 닮았는지 아닌지, 어쨌든 육체의 고귀함이 대리석 때문인지 아닌지를 알고 봐야 하니까 말이다.
그래서 그는 다음과 같은 일기인지 연애 편지인지 애매한 손편지를 릴리와 비비안 앞으로 보냈다. 물론 릴리에게는 편지 안에 비비안 이름을 넣었고, 비비안에게는 릴리의 이름을 적었다. 그래서 약속 장소에 나오면 그녀들끼리 담판을 짓는 거고, 아니면 예전으로 돌아가는 것. 그도 아니면 그녀들은 작정하고 그의 넘버1이 되기 위해 장기전에 돌입할 테고.
으하하하하하하. 푸하하하하하하. 음하하하하하하하!
15
릴리(비비안)에게.
마음은 꽃 피는 춘삼월, 의욕은 계절의 여왕 5월, 환히 웃는 기대는 연분홍색 장미요, 뭔가 쎄한 예감마저 헤비메탈 그룹이 노래하는 락-발라드 11월 겨울비였다. 그런데 뭐야, 결과는 강아지가 탐내며 애지중지 정성을 들여서 단물 다 빠진 웬 개뼉따귀? 이런, 젠장!
그러고 보니 나 제이크는 인생에서 성과가 빈약했다. 보아하니 발단 항상 발단이었다. 말하자면 시작하자마자 해피엔딩인 셈이지. 다시 시작이다. 이제부터 꿈을 기억하며, 사랑을 기록하고, 애정을 믿고, 이상을 구체화하면 된다. 일이든 놀이든 둘 중 하나가 잘되면 다른 하나도 잘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아무리 할 말이 떨어졌어도 나는 할 일을 모른 체 할 수는 없었다. 미리 겁먹지 말고 결과야 어떻든 나는 그러기로 했다. 소처럼 일하고, 꿀벌처럼 난봉을 부리기로. 단, 후자는 뭔가 애매하니까 그 열정이 향할 분야는 차차 정하는 걸로! 그러나 아직 정해진 계획표는 없었다. 그러니까,
로맨스와 신비로 가득한 기쁨의 행진을 위해서 내가 할 일은 무엇일까? 꽝이 뻔한 복권 사기, 보고 또 본 다큐멘터리와 심심한 오락과 식상한 영화뿐인 TV 보기. 결론 뻔한 나이트클럽, 결말은 애초에 다 아는 으쌰으쌰. 그런 익숙한 레파토리 말고 과연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러던 어느 날 아무런 재미도 감동도 없는 일상이 이어지던 중 나는 한 여인을 알게 됐다. 그녀를 알게 된 순간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너무도 떨려 눈 앞이 캄캄했다. 그녀는 정말로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가 아닐까 그렇게 생각했다. 어떻게 이런 눈부신 요정이 내 앞에 나타날 수 있지, 난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믿을 수 없었다. 이건 분명 비너스의 현시가 아니면 대체 뭐란 말인가. 이거야말로 한없이 보고 듣고 상상만 하던 바로 그 사랑이란 말인가? 하늘은 내 은밀한 소망을 들어주신 걸까? 어떻게 이런 매혹적인 존재가 지금 내 앞에! 오오 주피터여! 사랑은 유일한 축복, 행복은 달콤한 인사. 릴리(비비안)를 알게 되어 너무도 기쁘다. 방방 뛸 듯이 즐겁다. 이제 진짜로 내 인생이 재미있게 행운의 황금마차를 타고서 저 놀라운 내일로 달려갈 것만 같았다. 릴리(비비안)와 함께 하는 시간은 지고의 천국이 분명했다. 릴리(비비안)를 알았기 때문에 나는 인생의 아름다움을 알았다. 듣고, 읽고, 생각하면 떨리는 그 이름 릴리(비비안)! 오오, 영혼의 고결함이여! 아아, 사랑의 신비로움이여! 달콤한 공상 탐스런 단꿈, 그것은 릴리(비비안)와의 만남으로 환희의 낙원 같은 현실로 실현되었다. 릴리(비비안)에 대한 내 마음은 아마 저 하늘이 가장 잘 알겠지? 아니야. 저 바다도 저 하늘도 저 신비로운 별님들도 내 마음을 모르실 꺼야. 아아 자유의 바람이 불어온다. 그녀를 보고 싶다. 안되겠다. 릴리(비비안)를 만나러 가야겠다. 지금 당장!
난 진정 릴리(비비안)을 만나기 전에는 껍데기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왜냐하면 우린 애인 사이니까. 오오 대리석 대리석!
그녀가 온다 온다. 눈빛이 마주친다 마주친다. 껴안는다 껴안는다. 키스한다 키스한다.... 아아 그만 이제 그만!
아무튼 그녀의 이름은 릴리(비비안)이다. 다시 불러본다. 가만히, 릴리(비비안)이라고!
그렇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 삶은 더없이 초라했다. 완전 재미없었고 완전 심심했다. 어떻게? 바로 이처럼!
다음은 내가 그녀를 만나기 전에 쓴 낙서다. 예전부터 이걸 그녀에게 꼭 보여주고 싶었다.
하늘에는 태양이 있고, 시간에는 젊음이 마음에는 사랑이 있다. 회상 속에 추억이 있듯이 요술 수정구슬 속에는 미래가 있다. 그러면 아름다운 시절인 지금 우리 가슴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렇다. 그분의 이름은 심심함이다. 그래서 즐거운 열정으로 뭔가를 해 볼려고 했는데, 그런데 그게 또 여의치 않다. 바텐더의 친절함으로 패배주의를 확인하고, 호기심은 실망하기 일쑤며, 장비에 대한 욕심은 언제나 우리를 놀리고 약 올리며 불편하게 만들기 좋아한다. 술 마시고 노래 부르며 춤을 추어도 통 재밌지가 않다. 그 빈도가 비교적 느는 걸 나이들었다고 하고. 살다보면 그럴 때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살면서 새로움을 추구한다. 너무 적극적으로 추구하다가 뭔가를 탕진할 수도 있지만 말이다. 사극에서 제왕이 단정한 취미를 편애하고, 신선한 애첩을 발굴하며, 각별한 예술을 총애하듯이 새로움은 늘 우리에게 손짓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감수성은 곧 영원한 청춘이며, 허영심과 허풍은 우정을 대신하고 사랑을 대체하는 진정 신기한 좌청룡 우백호인 것이다. 그러던 중 뜻밖의 색다른 기쁨과 유별난 행복은 어느새 나에게 바닥나버렸다. 일명, 깡통! 다른 말로 꽝! 얍~ 하며 주문을 외워서 짠~하며 변신했는데 하필 생쥐인 거지! 그래서 나는 하는 수 없이 자크 오펜바흐의 오페라 하이라이트를 들으며 난 어딘가로 정처없이 떠났다. 그처럼 내가 향한 곳이 어디냐, 그곳은 바로 릴리(비비안)의 마음이다.
추신.
1.릴리(비비안) 우리 어디서 만날까?
2.참고로 난 우리가 운명적으로 거기서, 언제 만났으면 좋겠어.
3.애끓는 내 마음을 전하며!
1
기대는 떨리고 예감은 설레며 고조된 분위기는 행복하지만, 기다림은 이해할 수 없고 그리움은 무의미한 일. 아마도 그건 사랑은 아닐 것이다. 그럼 무엇일까? 첫째 변심, 둘째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일! 첫째는 새로운 애인의 등장으로 만인에게 사랑 받았던 로맨틱 코메디 여주인공의 잊혀짐이고, 둘째는 찾아가지 않아 순번이 넘어가는 거액 복권 당첨금일 것이다. 그런데 대체로 첫째는 가능한 일이고, 둘째는 대체로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나온 말이, 불가능을 꿈꿔라! 그러나 인문교양서에 나온 말대로 살았더니 난 언제나 신부들러리에 시도 때도 없이 병풍이다? 그러니까 자기 합리화가 대세고, 허세와 허영심은 항상 엎치락뒤치락이다. 따라서 인생이 가르쳐준대로 가능한 일 먼저, 우선 순위 따져서, 하루에 중요한 할 일은 한두 가지만 착한 일도 하나만! 그랬더니 글쎄 웬 뜬금없는 초현실주의자의 등장으로 내내 공들였던 상큼한 숙녀는 그 바람둥이 같은 작자에게 마음을 홀딱 빼았겨버렸다더라, 라는 일이 심심치 않게 발생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요즘 세상은 남의 잔치상에 슥 숟가락을 얹는 술수가 난무하고, 가려우면 남의 다리일지라도 일단 먼저 긁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남의 다리를, 그것도 피나게 긁는데 왜 이렇게 시원하지? 누가 아니래! 혹시, 설마 그건 타인의 가려운 델 긁어주는 게 아니라 살살 부아를 돋우는 일일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음. 아무튼, 바로 그래서 붉은 장미를 예찬하며, 노란 카네이션의 향기를 칭송하고, 연분홍색 튤립을 먼저 한번 따고 보기도 한다. 그러니까 잡은 물고기와 함께 나중 어떤 드라마를 찍을지는 몰라도 그건 그때 문제고, 일단 우리는 행동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왜? 왜냐하면 액면이라는 자존감, 베팅이라는 자신감, 실력이라는 자존심, 행운은 내 편이라는 자만심, 그런 거 따질 거 없이 일단 으쌰으쌰가 먼저니까! 품위 따지고, 격식에 얽매이며, 고급스러운 농담을 동경하다가는 먹고 살기 힘들어질 수도 있으니까. 그처럼 미래의 책임은 모르겠고 우선 황홀한 고백, 공작새의 황금마차와 마치 사실인 듯한 거짓 환상 그 가짜 사이렌으로 누군가의 관심과 그녀의 마음을 우선 먼저 살짝 꼬시고 보는 식이다. 그러다 내 또 다른 일정의 시간이 임박하면 파랑새는 다시 딴 뻐꾸기 둥지로 날아가버리는 거지. 그런 일련의 행태가 여심에서 나타나면 변덕이라 하고, 사극에서는 변절이요, 연애에서는 특히 철들지 않는 허당의 인생에서는 늦바람이라고 한다. 뭐, 늦바람이 더 무섭다? 사랑은 바람이 아닐 테지만 그대 마음은 바람일 수도 있겠죠. 그렇다고 농심과 여심의 중간이 동심이냐 흑심이냐 까진 따지지 맙시다 그려. 그처럼 영심이 앞에서 어떻게 보면 유익한 습관을 무익한 악습이라며 대놓고 명명하다가는 큰코다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 먼저 올라가는 게 차라리 낫겠네? 그래서 시공을 초월하여 인기가 시들지 않는 놀라운 유행은 뭐니 뭐니 해도 바로 비밀이다. 그러면 오락산업이 환영하고, 여성잡지1이 끌고 여성잡지2가 밀며, 남성잡지마저 찬양하고 열광하는 바램, 그건 다만 오직 꿈에 불과할지도 모를 나의 비밀은 무엇일까? 과거는 과거일 뿐! 하오나 꼭 그렇지는 않을 수도 있는 법. 그건 그렇고
자, 이제 나의 신비한 비밀을 새롭게 만들어볼까? 그런데 그 비밀이 신기하지 않고 식상하면 어떡하지? 나중 실패가 겁나서, 기록적인 타율을 달성하지 못할까 봐 두려워서 1군 승격을 마다할 수는 없는 법. 나올 때 두상이 커피포트가 되더라도 '우리는' 화법의 대가들이 모인 내일, 우리는 우리들의 비밀을 만들기로 했다. 그래서 우리가 갈 곳은 어디냐, 다른 어떤 신기루가 아니라 그곳은 바로 나이트클럽이다. 오랫만에 옛 친구들끼리 만나기로 했는데 짧게 클럽, 이 아니라 대중에게 좀 더 관대하고 만인에게 너그로운 NC에 출두하기로 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장소는 핑계에 불과했고 본론은 우정의 돈독함을 확인하자는 것이었다. 옛 친구들과 오랫만에 만난다? 생각만 해도 짜릿했다. 물론 진짜 그 정도까지는 아니고.
어찌 됐든 원대한 목표는 없었다. 다만 목적은 기분 전환. 단지 상속액이 장난 아닌 아가씨나 상처 받은 이혼녀를 만나고 싶은 의도는 일절 없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표적은 다름 아닌 그런 여인? 그러니까 아침에는 순진한 말괄량이에, 점심에는 도도한 숙녀요, 저녁에는 맹랑한 야성녀? 그건 별들에게 물어볼 일이고, 우선 행차하는 몸짓과 표정만 봐서는 특급 웨이터와의 교분은 두터웠고, 요긴한 정보는 더할 나위없이 솔깃했으며, 나이트클럽 이름조차 임의의 길조이자 과분한 기쁨이 분명했다. (소곤소곤, NC 이름이 뭐 에덴이라고? 에이 설마! 그럼 혹시 에뎅, 아님 에돈? 약해. 어쩌면 에덴2? 쉿!) 뿐만 아니라 여자들한테 분에 넘치는 인기를 받았던 TV 드라마가 막 종영한 것은 (뻔할 뻔자?) 보나마나 길일이었던 것이다.
2
나는 친구들을 만났다. 한때 정기적으로 날짜를 정해서 만나던 시절도 있긴 했었지만 당시 난 슥 발을 뺐다. 왜냐하면 그건 너무 아저씨 같은 일이라고 느꼈으니까. 다들 추구하는 장르가 다르고 좋아하는 여성상도 차이가 심하니까, 허풍 대회 출전을 종용할 수도 없고 너무 자주 봐도 안될 듯 했으니까. 모이면 야생마와 사냥마와 경주마는 물론 유니콘에 켄타우루스에 막 말만 많고 소란스럽고 덤앤더머 일색인데, 그런데, 꼬박꼬박? (설레설레)!
하지만 오랫만에 친구들을 보니 반가웠다. 모이기 전부터 우린 오늘 어디에 가야 한다 라고 정하고 만났다. 하지만 만나자마자 그곳으로 갈 수는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일단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 적당한 술집에 들어갔다.
참고로 말하자면 얘들 멤버가 바로 걔네들이다. 옛날에 바에 함께 우르르 몰려갔는데 남자 바텐더와 여자 바텐더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고, 저쪽 구석 바에 여자 손님이 혼자 있었다. 이때 여자 바텐더는 우리와 여자 손님 사이를 왔다 갔다 했고. 그런데 우리가 마침 여-바텐더에게 물었다. 우리 중에 제일 돈이 많아보이는 사람이 누구냐고. 그랬더니 그녀는 고맙게도 날 꼽았지 않나. 으하하하하하하. 아니, 허울 좋은 과부라고 웃을 일이 아닌가? 아닌 게 아님! 그건 아마 그날 옷차림과 함께 나의 과묵함과 가장된 폼 때문에 빚어진 여-바텐더의 크나큰 착오에 불과한 그분의 실수가 명백했다.
「너 얼굴이 더 커진 거 같다.」
「뭐 임마?」
「넌 요즘 어떻게 사니?」
「나? 어떻게 살긴. 가택감금 중이지.」
「아아, 그 놈의 가택감금!」
「야, 너. 왠 독서? 그 사진만 댓글이 없던데. 왜지?」
「봤냐?」
「너 왜 그 작품 제목이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인 줄 아니?」
「그건... 아직. 왜인데?」
「나도 몰라.」
「누구답다. 우리 친구 맞네.」
「얘들아. 그러지 말고 우리 새로 나온 어벤져스나 보러 갈까?」
「내가 너네들이랑 왜 영화를 봐야 하는데? 그래야 하는 이유 10가지만 대 봐. 그럼 한번 생각해 보지.」
「너는 아직도 그런 영화 보냐? 그런 영화 보면 어떻게 되는 줄 아니? 멍청해져! 지금은 몰라도 나중 시간 지나 봐라. 생각이 어떻게 바뀌는 줄 보게.」
「만화만 못해서 그렇지 마블이 뭐 어때서! 너 학교 다닐 때 공부 못했지? 안 봐도 뻔하다.」
「그러니까 늬가 안되는 거야. 응? 그러니까 늬가 여자가 없는 거라고. 그게 다 널 위해서 해주는 얘기라고. 어? 나나 되니까 이런 진심 어린 조언을 하지, 나 아니면 누가 찌질한 너한테 직언하겠냐? 너무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말고, 어? 그러니까 늬가 지금 이러고 있는 거야. 얘가 얘가 어쩌다 이렇게 됐지? 너 옛날에 잠깐 잘나갔잖아! 세상일은 참 알 수 없단 말이야.」
「그러는 넌 뭐 누가 얼마나 알아주냐? 너 저번에 그 어디야, 바텐더 마돈나가 널 꼴찌로 찍었잖아?」
「인정. 그거 딱 한 번! 하지만 나 활동하면 사정은 달라 이 친구야. 어? 딴 데서 날 알아주지 왜 안 알아줘? 나 이래뵈도 딴 데 가면 팬클럽 있어 임마. 그건 그렇고. 넌 또 뭐냐! 늬가 뭐 패밀리 가이에 나오는 피터 그리핀이냐? 만화영화 찍을 일 있니, 왜 갑자기 배가 나오는데?」
「이제부터 포근한 남자를 좋아하는 여자를 공략하기로 했다. 됐냐? 그래도 말이야 내 살결이 얼마나 매끄러운 줄 아니? 만져 봐. 내 배는 부드럽자나. 응?」
「(옆에서 그 친구 배를 만져보더니) 어! 진짜!」
「그럼 뭘해... (위를 보며, 설레설레)」
「그 뿐이니? 자고로 마른 장작이 잘 타는 법이라니까.」
「마르.. 뭐?」
「옆에서 보고 있으면 참으로 답답~허다. 어? 내가 다 속이 답답해.」
「오오 그런데 있잖아. 늬가 웬일이니? 워워, 바쉐론 콘스탄틴!」
「늬가 그게 바쉐롱 콘..., 그 뭔지 싸구려 모조품인지, 보면 아냐? (쯧쯧쯧)!」
「이거 바쉐론 맞아. (효과음!) 선물 받은 건 아니고. 형이랑 내기해서 이겼어. 오늘 하루만 빌리는 걸로. 그래. 나 일부러 너네들한테 자랑할려고 이거 차고 나왔다. 미안하네 친구들. 이제 그럴 때도 됐잖아? 아직도 남의 슈퍼카 앞에서 사진 찍으며 막 소문낼 일 있니? 언제까지 우리가 그렇게 놀아야 하는데? 헤드라인 딱 떠오르지 않냐 이 말이야. 건방진 그 친구, 결국 허영심 공주를 만났다더라! 그렇게. 응?」
「그런데 있잖아. 너네 형 혹시 중고 시계 매니아니, 아니면 시계 판매점 하시니?」
「쟤네 형 그 세계적인 시계 브랜드 회사 임원이잖아. 그 바닥에서 꽤 유명해.」
「뭐야, 진짜야?」
「아니, 뻥이야!」
「......」
「왜, 혹시 너네 아버지 시계 기술자시니?」
「어. 몰랐냐? 하긴 모르는 게 당연하지.」
「......」
「......」
「......」
「......」
한편 뭐가 뭔줄 늬가 보면 아냐 라고 따졌던 친구는 분위기 반전을 노렸다.
「(핸드폰 사진을 보여주며) 얘들아 얘 어떠니? 요즘 얘 괜찮지 않냐?」
「누구?」
「누군데?」
「걔 남자 많데.」
「어. 성격 장난 아니라고 하더라.」
「모처럼 관심 가는 괜찮은 언니가 생겼는데, 그렇게 말하면 난 뭐가 되니? 너 같으면 기분 좋겠냐!」
「틀린 말이 아니잖아. 응? 그럼 늬가 다음에 복수해. 그럼 돼. 차라리 쟤가 누가 좋다고 하면, 늬가 걔랑 사겨. 그럼 되겠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넌 저번에 선수 쳤잖아? 밑도 끝도 없이 연예인 누가 옛날에 늬 친구였다며? 아니 친구도 아니고 너보다 한 수 아래였다고 했잖아! 또 저번에 셋이서 같이 내려올 때. 입만 열면 야 차 좋지 차 좋지 그랬는데, 누구야 졸리면 교대로 운전하자 그랬더니, 졸면서 끝까지 운전해. (하하하) 더 늦게 가는 차 하나도 없어. (하하하) 그러다 사고 났잖아. (하하하)」
「그런데 더 웃긴 거. 그러다 막 피 질질 흘리면서 다들 술 마시러 갔잖아! (하하하)」
「근데 그러다 나중 누구 길에서 잔 거 같은데.」
「어허. 사둔!」
「아니지?」
「아니긴 뭐가 아니야? 걔가 얘야. 한때 애들 사이에서 유명했다, 쟤 허세가. 듣고 보고 느끼지 않은 애가 없었으니까. 아 모른 사람이 없었다고. 그 영화 뭐드라... 매그놀리아던가, 아닌데. 아무튼 인터넷도 핸드폰도 없던 TV 시대에 백화점에서 어느 숙녀가 그랬지. 이 가방 얼마짜리에요 이 가방 얼마짜리에요. 그런데 그 대사를 왜 남자가 치냐고! 그것도 하필 내 친구가! 아 나 이런 세상에나! 그런데 너 그때 대체 왜 그랬냐?」
「나라고 뭐 일부러 그랬겠냐? 내가 그러고 싶어서 그런 줄 아냐? 어?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그러고 싶었어. 지금이라고 그다지 다르지도 않고. 제 버릇 개 주겠냐, 타고난 허세가 어디 가겠냐고! 그럴 꺼면 차라리 옛날이 좋았는데. 지금은 아는 척 해 봐야 검색하면 금방 들통나고, 잘난 척 해 봐야 바텐더 보기에도 민망하걸로도 모자라, 센 척을 어떻게 하냐 이 몸에. 더군다나 우기기도 귀찮다. 게다가 어쩌다 발동이 걸려도 누가 내 허풍에 귀 기울여 들어주지도 않는다. 아 슬퍼! 그땐 아마도 두가지 이유 때문이었을 꺼야. 첫째 타고난 상급 허세, 둘째 주위에서 부추김 제대로 받았거든. 가만 있자! 그러는 넌? 환희의 궁전 행복의 성에 이쁜 공주와 토끼 같은 애들을 놔두고서 우리한테 뭐, 세컨을 소개시켜 줘? 넌 어떻게 된 애가... 아니 어떻게 붙어도 붙어도...! 걔도 걔다. 뭔 얘기하는지 오늘 뭐했는지 어제 뭔 얘기를 했는지 다 고자질하고 자랑하는데, 쟤는 중계방송 해설자와 주인공 그렇게 1인 2역을 뛰는데, 우리 앞에 나서고 싶었을까? 그러고서 자긴 숙녀다! 그게 뭐야? 아직도 의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여심의 그 심오한 속내를 대관절 어떻게 알겠나. 첫째 나는 그 남자를 사랑했다, 둘째 그는 날 사랑하지 않았다, 셋째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사랑이 조건부로 1번에서 3번을 왔다 갔다 하는 건 나중 문제고, 일단은 몰래한 사랑도 사랑은 사랑이니까. 여자의 우정이라고 뭐 다르겠니? 사석에서 여자들끼리 뭔 얘기를 하는지 듣고 보면, 제대로 알고 나면, 진정 그 뭔가를 깨닫게 되지. 남녀는 성만 다르지 똑같은 사람이란 걸 말이야. 무엇보다 그걸로 분간이 되니까. 친하냐, 안 친하냐로. 하긴 첫사랑의 이니셜이 반복된다거나, 사춘기에 TV로 본 단막극의 제목에 나오는 빛깔과 몇몇 기억 때문에 훗날 똑같은 색상의 속옷을 사는 일도 있고, 어릴 때 아빠가 애용하시던 듀퐁의 그 신비한 효과음 때문에 장래 또 D로 시작하는 어떤 애정에 빠지게 되는 일. 썩 드문 일은 아니잖아. 그처럼 처음에 연하를 만났더니 계속 어쩐다더라, 유부남을 어쩌다 알게 됐는데 인생 내내 유부남만 어쩐다더라? 아아 (설레설레) 여심은, 여심은 미스테리야. 우리에게 영원한 미스테리!」
「어쭈! 여자의 마음으로 빠져나갈 생각 마. 폭로전이라면 나도 할 말은 많다. 응? 넌 내가 입만 뻥~긋하면 아주 그냥, 어? 알지? 어? 허허허허허. 그래, 안 그래? 어? 왜? 등에 식은땀 쭉 나냐? 벌써 쫄았니? 저거 봐 저거 봐. 손가락 꼼지락거리는 거. 넌 안돼~! 어? 넌 나한테 안된다고! 응? 넌 내가 입만 뻥~끗하면 아주 그냥, 어? 그리고! 넌 또 뭐야?」
「난 아무말도 안했잖아?」
「지금은 말을 해야 할 거 아니야! 안 그래? 지금 이 상황은 선언해야 하는 때야, 아니야? 어? 난 늬 편이라고. 왜? 내가 아는 비밀이 훨씬 많으니까. 너 원래 그렇게 맹한 애 아니었잖아? 얘가 어디 가서 절대 말발로 빠지는 애는 아닌데, 왜 그러지? 너 쟤한테 뭐 책잡힌 거 있냐? 꿈인지 생신지 몰라도 아프리카에서 물소를 잡아먹었는데, 그 물소의 피가 뭐 금색이야? 아니면 늬 입술이 금색이냐? 금색 립스틱이 어딨어! 아니 진짜 얘가 왜 이렇게 입이 무거워? 입에 무슨 금테 두른 거도 아닌데.」
「뭔테? 아 나 이런 이런! 너무 갔다. 어? 너무 갔어. 얘네들 가지 가지 한다 정말.」
「워─워─워. 애들처럼 자꾸 그럴래? 어떻게 너네들은 변한 게 하나도 없냐? 얘 봐 봐, 얘. 너네들이 자꾸 그러니까 얘처럼 허접한 친구들이 어부지리로 숙녀의 인기를 한몸에 듬뿍 받는 거 아니냐고. 이러니까 소 뒷걸음질 치다 쥐 잡는 게 드물지 않은 일이 되버렸다구, 이 친구들아. 어? 그래, 안 그래? 어? 어설프게 타석에 들어갈려고 여기 잠깐 저기 기웃 그러다가, 2군에 내려가는 수가 있어. 어? 심지어 2군에서 슬럼프에 빠져 봐라. 그땐 정말 옷 벗을 각오 해야 된다고. 제발, 벤치에 앉아 있는 이 형 생각도 좀 하자. 응? 너네들 알다시피 나 정상이야. 건강하다고. 어? 나도 알아. 내가 왜 몰라! 오는 여자 막지 않고, 가는 여자 붙잡지 않는다는 허당의 신조를. 하지만. 그러면 뭘 해! 호박이 제 발로 굴러오지를 않는데. 내가 언제 오는 여자를 막았냐? 어? 내가 오는 여자를 못 오게 막았냐고! 아니라고, 어? 아니야 아니라고!」
「......」
빵빵 웃고 뻥뻥 농담이 터졌으면 또 한 친구를 살며시 다독이며 격려하는 모습. 이건 우정일까 우정이 아닐까! 만일 우정이라면 1인자는 누구란 말인가.
「그나저나 이젠 으쌰으쌰할 일도 없다.」
「누가 아니래?」
「그러든 어쩌든 얘네들 소식이 영 늦네 늦어. 누가 아저씨 아니랄까 봐 말이야. 응? (딱)! 걔 누구랑 사귄데. 그 있지, 별명 이상한 애.」
「뭐?」
「별명이 뭔데 그래?」
「모르면 그냥 계속 몰라라. 알려고 하지 말고. 알아서 좋을 게 없는 거거든.」
「아니 뭐야, 긴가민가했는데 아 글쎄 뭐라고? 넌 딴 걸그룹이나 알아봐라. 새로운 얼굴을 물색하라고.」
「그럼 뭘해. 애정은 식고 관심은 금방 바뀌는데. 걸그룹만 1000개야.」
「아 그래도 마누라를 바꿀 수는 없잖냐.」
「야 늬가 그렇게 말하면 어떡하냐? 쟨 뭐가 되니? 쟤는 바꿨잖아, 마누라! 얘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말 좀 가려서 하자. 응? 농담이 그렇게 저급해서야 어느 여자가 좋다고 하겠니, 어?」
「그런데 너 원래 그런 옷 안 입었잖아? 단추가 왜 그렇게 많니? 그거 커프.. 그게 너랑 어울린다고 생각하니?」
「너무 그러지 마라. 얘 요즘 형편 풀렸잖아. 저번 모임에 제비복 입고 왔잖아!」
「뭐라고? 늬가 무슨 음악의 아버지냐?」
「뭐? 그건... 칭찬인지 악담인지 영 구분하기가 까다롭지만 내 기분으로 판단하건대, 뭐가 어째?」
「(TV를 가르키며) 난 요즘 쟤가 재밌더라. 표정만 봐도 웃기지 않냐?」
「쟤 있잖아. 그렇고 그런 술집에 가면 뭐라더라, 소문이 썩 아름답진 않던데. 동물이 된다고 하던가 뭐라던가 그러더라고. 그러고 보니 저 친구도 너처럼 개상이네.」
「멍멍. 멍멍멍. 넌 말상이야!」
하이파이브.
「그런데 왜 갑자기 아보카도가 먹고 싶지? 칵테일을 마시고 싶어서 그런가, 아님 나만 그런가? 아니다. 아이스크림 위에 에스프레소를 끼얹어 만드는 아포가토가 먹고 싶어. 하나 더. 복숭아 푸딩도!」
「뭐 복숭아 푸딩?」
「너 오늘 생일이니?」
「이제 알았냐?」
「......」
「......」
「......」
「우리끼리 얘기하지 않아야 할 주제랑 챙기지 않아야 할 일이 하나씩 있다는 거, 너도 잘 알잖니?」
「그러게. 괜히 분위기 세해진다.」
「아. 짠해.」
「그건 그렇고, 야 너 헤어스타일 바꾸니까 영화배우 누구 닮았는데? 오오, 괜찮네.」
「아, 그래? 허허허허허. 허허허허허. 야, 뭐 먹고 싶어? 자동차는 안되니까 가방만 빼고 뭐든 말해. 뭐든지. 응? 말만!」
「그런데 있잖아. 그분 가셨어. 예전에. 꽤 됐지? 심한 우울증이었다지 아마. 미안 미안. 깜빡 했다야. 늬가 이해해.」
「뭐 임마?」
「아 참 나, 얘네들 얘기하는 거 하고는. 이래가지고서야 어디 화장실이나 맘대로 가겠냐? 하 나 이거 원.」
「우리 너무 그러지 말자. 얘 저번에 굳건한 중주주였던 종목 있잖아. 그거 어떻게 된 줄 아니? 상장 폐지됐어. 한방에, 훅!」
「......(고개를 살며시 돌리고 올려서 눈 감고)...」
「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 푸하하하하하하.」
「넌 또 뭐야?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고, 어? 늬가 더 미워!」
「연애할 때마다 뻔트만 대더니 결국 어정쩡한 종목에 뻔트대다 망했구만. 그러지 말고 우리도 이제 그만 장타자로 거듭나자. 어? 살면서 거포 한 번쯤 해봐야 하는 거 아니니? 모자 벗으면 머리 다 날라갔을 때, 아 다 늙어서 뚜껑 없는 빨간 차 탈 꺼냐고.」
「야 야. 여기서 이러지 말고 우리 나가자.」
「어디 가게?」
「어디든!」
「그렇지. 우리가 오라는 데는 없어도 갈 데는 많지.」
「그러자. 여기 더 있으면 괜히 우리 흔들린 우정 되기 십상이겄다. 우리도 젊음의 행진을 해야 할 꺼 아니야!」
나온 다음.
「그런데 우리가 왜 나왔지?」
「그러니까.」
「어디 가지?」
「이제 우린 어디로 가야 하지?」
우린 벌써 어디에 가서 뭘 해야 할지도 잊어버린 것이다. 그렇게 어떡하다 겨우겨우 가기는 갔다. 친구들끼리 나이트클럽을 말이다. 그랬더니 역시나 들어갈 때와 나올 때는 완전 딴판이었다.
그러나 즉석 만남이 영 꽝은 아니었다. 어떤 여인이 날 보고 이상형이라면서 내 핸드폰을 주라더니 자기 번호를 입력해주었다. 게다가 딱 봐도 조신하며 단정한 숙녀처럼 보였다. 밝고 상냥하며 다정한 것으로도 모자라 공부도 좀 했을 것 같고, 언니들과 재밌는 성장 환경에서 자란 것처럼 보였다. 그런 그녀가 날 보며 이상형이라니? 적어도 장난은 아닌 듯 했다. 내게 이와 같은 일이 그 전에 있었나? 그건 모르겠고, 지금 난 꿈 속에서 우주선을 타고 있었다. 그렇다면 내 친구들 반응은? 보나마나 죽상에 울상이자 절규였다.
그런데, 그럼 뭘 하나! 나이트클럽에서 그녀의 일행과는 만난지 5분도 안되서 헤어졌고, 우리가 나이트클럽에서 나와서 내가 그녀에게 전화했을 때 그녀는 내 전화를 받지 않았다. (미리 시점을 앞서가서 미래를 고백하자면) 다음 날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3번째로 전화를 걸었나 걸지 않았나는 모르겠다. 아무튼 괜히 좋다 말았다. 차라리 이상형이네 뭐네 그런 빈말 필요없으니 아예 만나지 않았다면 모를까, 괜히 들떴다가 나만 꽝이 되어버렸다. 더 기분 나쁘게 말이다.
이처럼 녀석들과는 더 이상 기대할 게 없었다. 뭘 더 바라겠나. 그렇지만 편하고 재밌고 즐겁다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각자 나름대로 착해지고 싶은 방탕자요, 이 분위기에서라면 타락한 정력가로 자처하기를 주저하지도 않고, 서슴없이 인생의 방랑자로써 으쌰으쌰를 끝 모를 환희로 몰고 갈 배짱만은 풍족할 테니까. 따라서 인생의 전성기가 부활하듯이, 아름다운 사랑의 꽃 한 송이가 환생하는 것처럼 우리는 제3의 행진을 약속했다. 그러나 떠나자 라며 곧바로 행동하지는 않았다. 말은 안 해도 이제는 각자 관록미 넘치는 풍운아쯤으로 자길 자평하는 건 습관이고 생활이자 하나의 철칙일 테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으쌰으쌰를 다음 날로 연기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3
다음 날 약속 장소에 나와 보니 역시나 나 혼자 밖에 없었다. 물론 나는 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다. 전날에 녀석들의 시큰둥한 반응하며 세상 물정을 논하다 배가 산으로 가는데, 그런데 내가 오늘을 기대했겠나. 철없던 사랑을 말할 수 없는 친구라면 나는 반틈만 믿는다. 때문에 나는 오늘 실망하지 않았다. 눈치 없이 살기엔 이 세상은 너무 거칠다. 아직도 순진한 건 아닐까 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애기 냄새가 나는 나라고 모를 리는 없었다. 어떻게 하나도 모른 체 깜박 속을 수 있겠나. 무슨 바보도 아니고 말이다. 나도 다 생각이 있었다. 녀석들 얼굴만 보고도 음흉한 속내인지, 타산적인 심산인지, 당돌한 셈법으로 골똘히 잔꾀를 부리고 있는지 훤히 꿰뚫고 있으니까. 그런데 일부러 속아준 거 치고는 말이 너무 많다. 역시나 속은 건 속은 거였다. 하지만 어제 우리들이 토의한 주제였던 톰은 분명 미스테리였다. 톰은 우리처럼 허당에 기분파였는데 어느 날 갑자기 연락을 끊었다. 벌써 한참 지난 일이다. 더 이상 뻔트와 쨉뿐인 세상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다는 귀뜸도, 더 이상 심심함과 재미없음만으로 가득찬 인생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는 선언조차 없었다. 그런지 어언... 아무튼 그런 톰에 대한 근황을 누군가 알아낸 것이다. 소문난 정보통이 믿을 만 한가는 몰라도 일설에 의하면 톰은 부자의, 부자의, 부자가 되었다고 했다. 한때 인기 최고의 웹사이트였던 마이스페이스의 친구란에 항상 떠 있던 바로 그 톰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성공했다나 뭐라나. 이젠 잊혀져서 잘 기억나지도 않는 마이스페이스. 거기서 만인의 친구, 그 친구 이름이 톰 맞나? 넘어가자. 그러든 어쩌든 그런 뜬소문은 믿거나 말거나! 난 그냥 단지 톰이 보고 싶었을 뿐이다. 그렇다고 녀석과 내가 함께 나눈 무슨 특별한 추억도 없었고, 유달리 각별한 일화를 함께 만든 기억도 없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난 톰이 보고 싶었다. 그래서 빈말 뿐인 약속임을 알고서도 나 혼자서 톰을 찾아가기 위해 길을 나선 것이다.
언제 밥 한 번 먹자, 연락할께, 읽고 줄께, 시운전만 해볼께, 입고 줄께...? 돌아오는 건 둘 중 하나다. 빈손이던가, 찢어진 청바지요 망가진 장난감이던가. 허나 그건 연락이 됐을 때, 즉 우정이 유효함과 동시에 한창일 때 얘기다. 사랑이 신기하고 다망한 쾌락도 다양하며, 이별은 흔하고 (딱!) 이혼은 연예계의 특종이다. 그런데 사교라고 해바라기처럼 나만 보고 있을 리는 없다. 모르긴 몰라도 난 아마 누군가의 넘버 쓰리일 것이다. 반짝이는 고흐의 별이 내 인생에 뜰란가는 몰라도 말이다. 그러나 비록 내가 넘버3일지라도 뭔가 느낌이 왔으니까 나는 톰을 만나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애들이 알려준 톰의 주소지로 찾아갔다. 일부러 연락은 미리 하지 않았다. 집 근처를 지나가는 척 하면서 우연처럼 슥 연락했는데, 반갑다는 둥 어쩐다는 둥. 작전은 이미 구상 끝났으니까.
그렇게 나는 떠났고,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 톰을 만나게 됐다.
4
나와 톰은 그림 앞에 서서 대화를 나눴다. 그 그림은 파블로 피카소의 '창가에 앉은 여인'이었다.
「어렵게 구했어.」
「그러니까. 이게 진짜라고?」
「가짜일 리는 없겠지 아마? 어떤 작품인지 알겠니?」
「알지 왜 몰라! (멈칫) 내가 그것도 모를 줄 아냐? 그런데 넌 옛날에 이런 데 취미 없었는데.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무슨 일은. 단지 세상을 조금 돌아다녔고, 때로는 삶이 떠들썩했지. 그래도 난 내 인생을 지나치게 포장하거나 비호할 생각은 없어.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지. 꿈을 잊고 대망을 동경하던 추억조차 희미해져 갈 때, 그때 만약 행운의 여신이 나와 함께 한다면 꿈은 이루어진다고. 그런데 이제는 알 거 같아. 목표를 이루든 못 이루든,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걸 말이야.」
「친구. 장난이 좀 심해...서 좋아. 딱 좋아. 그렇지만 말이야, 뭐랄까 열망의 방향이 너무 일찍 시든 거 아니니? 너가 무슨 고가 미술품 수집상이야?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우리 친구들 다 그만그만했잖아. 안 그래?」
「그렇지. 믿기지 않지? 하긴 나도 아직 실감나지 않으니까. 그런데 명작들을 몇몇 소장하고 나니까 드는 생각이 뭔 줄 아니? 뭐랄까 동물원의 원숭이가 된 것 같다고나 할까! 얘네라는 존재가 내 자아를 잠식하고, 난 그냥 그렇고 그런 사교적인 순응자가 된 것만 같아. 그래. 정말 그래. 옛날처럼 놀자면 난 널 평균 이하라고 놀리고, 넌 날 허영의 황금기라며 빈정대야 정상이지. 그렇지만 지금 와서 보니 이처럼 황금이란 황금은 아낌없이 내 편으로 만들고 보니, 그게 좀 뭔가 허전하네? 그렇다고 주늑들지는 마시게나, 친구. 자넨 내게 얼마든지 독설을 퍼붓고 약 올려도 되는 지위란 걸 유념해주면 좋겠어. (멈칫) 나도 원래 징징대는 스타일은 아닌데, 그래도 이제는 새로운 도전을 모색해야 할까 봐. 왜냐하면 풍요를 누리고 사치를 일삼는 호사가 더 이상 재미없어졌으니까. 사랑은 미련하고, 우정은 떨떠름하며, 소원도 없고 대망도 없어. 그래. 난 다시 '없다'를 좋아하는 마초로 돌아간 거야. 달리 보자면 야성을 되찾았으니까 기뻐야 정상인데, 실제는 또 다른 거 있지! 그렇지만 꽤나 성공한 친구들 얘기를 들어보니까 이건 단지 의례적인 단계일 뿐이래.
(나는 '야! 나도 말 좀 하자!' 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망설여졌다. 왜냐하면 톰은 세네카요 소포클레스였고, 난 응애응애 아기별이자 교양학의 애호가일 뿐이었으니까)
그러나저러나 저번 모임에 나도 불러주지 왜 안 불렀니? 사람 서운하게 말이야. 너네들 혹시 내 흉 본 건 아니지? 그 녀석이 말이야, 문란했던 사생활을 청산하고 새 인생을 시작했다던데, 예컨대 꼭 그렇지는 않겠지만 말이야. 뭐 그럼 어때! 그러지 말고 우리 한바탕 찐하게 놀아볼까? 아니다. 옛날에는 이 말이 허세였지만 지금은 약간 거드름 피우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으니, 그건 다음에. 아, 맞다. 너 글 쓴다며? 얘기 들었어. 오, 작가네 작가! 멋지다. 응? 난 늬가 부러워. (부럽긴 뭐가 부러워! 내가 할 소리를! 너도 마감일에 쫓겨 봐라. 그런 말 나오나 보게. 그 말은 곧 기복이 있다는 것. 사람 사는 건 어떻게 보면 다 거기서 거기 아니겠나)
그런데 어떡하지? 융숭한 대접도 못하고 난 일정이 밀려서 출장 가면 좀 길어질 듯 한데. 너 그러지 말고 여기서 마음껏 쉬다 가. 응? 뭐 작품 구상을 해도 좋고, 순수한 초현실주의 순결한 이상주의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해봐도 되고 말이야.」
톰은 자신의 미술관인지 집인지, 또는 휴양소인지 정의내리기 썩 애매한 별장을 맡긴 채 도시로 떠났다. 이건 정말 생각지도 못한 횡재였다. 난 솔직히 녀석과 할 말이 많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불가능한 행복은 시시한 뜬소문, 쩨쩨한 추문이 아닌 생소한 행운을 하나 더 선물했다. 그건 다름 아니라 톰의 여비서가 바로 엇그제 나이트클럽에서 내 핸드폰에 전화번호를 입력해준 그녀였던 것이다.
5
나는 꿈을 탐색하며 사랑을 애원하고 환상을 동경했다. 하지만 마음 속엔 온통 흑심뿐. 아니다. 그건 뻥이다. 난 아직 동심을 간직했고 여전히 따라하기를 좋아했다. 오죽했으면 앙리 마티스의 '목련 옆의 오달리스크'를 살 수는 없으니까 어떤 밑도 끝도 없는 공상을 했겠나. 그런데 어쩌다 명작을 수집하는 옛 친구를 만나서 나 혼자 남의 빈 집을 지키고 있다니. 내가 뭐 멍멍이인가? 멍멍 멍멍멍, 주인님을 기다리는 멍멍이냔 말이다. 톰은 양치기에 목장 사장이자 돌아온 풍운아요, 난 양치기견 아니면 피노키오? 이런, 젠장! 그래도 딱히 속이 뒤집힌다거나 톰이 많이 부럽지는 않았다. 나도 이곳이 마음에 들긴 했다. 그래서 내 딴에는 한동안 여기서 진득히 지내면서 작품 구상을 할려고 했다. 단단히 마음 먹고 소재와 인물관계도 하나 정도는 완성해서 돌아갈려고 생각했다. 톰이 내 휴가를 승낙했건 빈말에 불과했건 그건 신경쓰지 않아도 될 만큼 우린 친했다. 그러나 난 톰의 비서인지 여자친구인지, 아니면 큐레이터랄지 직업적 동료인지 모를 그녀를 모른 체 할 수는 없었다. 자꾸 신경이 쓰였다. NC에서 만난 일을 톰에게 고자질하면 안될 것 같고, 그렇지만 내 입은 자꾸 근질거리고.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했다. 그런데 그녀는 내 앞에서 계속 알짱알짱, 난 그녀 옆에서 꾸물꾸물. 이거 이거 또 이러다 우물쭈물하면 역시나 백댄서가 될 게 불을 보듯 뻔한데! 까딱하면 애정 상담하게 생겼으니 뭔가 결단이 필요했다. 그렇다. 솔직히 털어놓자면 큐피트가 되고 싶네 어쩌네, 그거 다 뻥이었다. 물론 지금 심정만 그렇다는 거다.
그처럼 내가 잔머리를 심하게 굴리고 있을 때 내 결심을 도와주는 사건이 하나 있었다. 그건 다름 아니라 그녀의 일기였다. 그녀의 이름도 난 아직 모르지만 어정쩡한 우리 사이 때문인지 그녀는 미술관 같은 톰의 사무실을 자주 비웠다. 그래서 난 뚤레뚤레 구경하다 어쩌다 뭔가 낙서 같은 걸 읽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건 그녀의 일기였던 것이다. 원래 내 계획은 두말할 것 없이 그랬다. 달콤한 공상을 엄연한 현실로 도모하려고 노력하기! 그러나 그녀의 일기를 읽은 다음 난 내 처지를 깨달았다. 난 사랑의 훼방꾼이자 애정의 2인자요 삼각관계의 화신이란 걸. 그래서 난 다음과 같은 숙녀의 일기를 읽고 나서 집으로 돌아갔다. 그녀의 일기는 다음과 같다.
매체: 일기
내용: 기쁨으로 장식하고, 흥미로 포장하며, 즐거움으로 꾸민 다음 낭만이란 향수를 뿌리고 요술거울을 보며 새빨간 욕망 립스틱을 바르고서, 그 다음에 뭘 할까? 멋진 애인이라도 만들기 위해 소개팅에 나갈까, 눈부신 해변에서 은빛 백사장을 맨발로 나 혼자 걸을까. 아직 첫눈이 오긴 멀었지만 미리미리 크리스마스 카드나 써볼까? 아니다. 더렵혀도 괜찮은 새하얀 도화지를 사고, 투정과 응석과 불만으로 가득 채울 어리광 일기를 써야 한다. 아니, 그보다는 차라리 사랑 노래를 듣는 게 낫겠다. 기억나는 멋진 생일잔치도 없었고, 추억은 죄다 으쌰으쌰였고 우정은 전부 다 허당에, 애절하고 황홀한 진짜 사랑 한 번 제대로 못해봤으니까. 아마도 그이는 오셀로의 대사를 곧잘 읊으며, 레오폴트 모차르트를 듣고, 그림만 보고도 도나텔로와 보티첼리를 구분할 수 있겠지? 아마도 라흐마니노프를 들으며 롤리타를 읽고, 어쩌면 산타페에도 가봤을 거 아니냐고. 그런데 난 뭐야, 아이 라이크 쇼팽? 아니나 다를까, 책상 위에는 여성잡지1 취미는 짝사랑, 수다에서 소외 받긴 싫으니까 하는 수 없이 시시콜콜한 드라마도 챙겨 보고, 현재에서 기대할 건 빤하며, 내일을 향한 예감은 팍팍하기만 하다. 그 뿐만이 아니다. 클럽은 물이 별로고, 도박장은 아름답지 않으며, 뭘 해도 재미가 없어. 이 일을 어쩌면 좋니! 아무리 그래도 사교계에 나가 연예계 얘기로 인생을 낭비할 수는 없으니 복권이나 사자. 이게 다 그 인간 때문이다. 그 엉터리 같은 마술사 수업 잘 받다가 플레이보이로 전직한 놈. 톰과 나의 관계를 엉망으로 만들지도 모를 드라큘라. 그야 어쨌든 신인상은 만화영화를 많이 본다고 주어지지 않고, 인기상은 TV 보기와 안 친하며, 특별상은 가망성이 더없이 초라하기 때문이다. 홈런은 필요없다. 애초에 평범한 인생은 7부 리그였다는 걸 이제 알았으면 된 거다. 아차상처럼 짜릿하고 깜짝상처럼 놀라운 건 어쩌면 신기한 뻔트마에 불과할지도 모르니까.
그나저나 톰은 왜 날 좋아하지 않는 걸까! 내가 얼마나 톰을 사랑하는지 그이가 알기는 알까? 모를 꺼야. 그에겐 그림 밖에 없으니까. 그러니까 상황이 개선될 여지가 있냐 하면 그렇다고 여건과 전망 또한 썩 신통치 않다. 더군다나 웬 뚱딴지 같이 생긴 녀석이 나타났다. 분위기 좋은 NC에서 조명발에 술기운에 처음 본 그 남자한테 딱 고백했는데, 하지만 난 막 그걸 꿈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그 인간이 여기에 떡 하니 나타나다니. 이럴 수가! 세상에나! 어떻게 이럴 수 있지? 말도 안돼. 난 이제 누굴 사랑해야 하는 걸까? 어떡해 해야 하지? 왜 갑자기 그 덜떨어진 녀석이 톰과 내 앞에 나타났냐고. 우리 사이를 방해하기 위해서? 그러니까 누가 보낸 거야? 내가 눈이 삐었지. 그런 얼간이한테 술 취해서 당신은 내 이상형이라면서 막 겁도 없이 유혹을 했다니. 이제 보니 영 지찔하게 생겼구만. 그런데 그런 허접한 남자가 톰의 친구라고? 근본도 없고 돈도 없어 보이고 되먹지 못한 놈 같으니라고. 아휴 이걸 그냥...! 워─워─워! 참자. 내가 참지 누가 참겠나. 하지만 난 왜 갑자기 그이에 대해서 궁금해 하냐고! 이런 날 나도 이해할 수가 없는데, 이제 어쩌면 좋을까. 사랑에 빠지면 날아갈 듯 하고, 기분이 살랑살랑 봄바람처럼 떠다니며, 동시에 나오는 솜사탕처럼 끝없이 달콤하다는데, 그럼 난 사랑이 이미 진행 중인데 또 다시 사랑에 빠진 걸까? 그럼 하나는 순애보 하나는 순정? 그러니까 멀티태스킹? 난 어쩌면 좋아! 난 마음의 준비도 안됐는데 벌써 멜로드라마의 주인공이라니. 톰은 아직 넘어올려면 꽤나 시간이 필요할 듯 한데 이 이름도 모르는 작자가 날 짝사랑하겠다고? 어딜 넘봐! 그래도 어떻게 보면 살짝 귀엽긴 하네. 그럼 이건 내가 두 남자를 양쪽에 꿰찬 구도가 되는 건가? 야─호! 농담이고, 하오나 내가 그동안 톰을 얼마나 사모했는데, 새로운 애정이라니. 이 일을 대체 어쩌면 좋아! 벌써 세상은 아름다워 보였는데, 이제는 더 아름다워 보이란 거야 뭐야? 사랑이 왔는데 또 왔다니, 아 정말 나 보고 어쩌란 말이냐 사랑아! 사랑아, 내게 친절한 요술을 베풀어주지 않겠니!
6
나는 톰의 세계에서 벗어나 우리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손을 씻고 잠시 머뭇거리다 내 사무실로 갔다.
사무실에 도착해서 나는 일과표를 작성했다. 그런 다음 음악을 틀었다. 하이든의 G장조 바이올린 협주곡. 아, 그런데 그녀의 이름이 기억났다. 릴리! 톰과 릴리가 떠오른다. 괜찮은 한쌍이라고 생각한다. 나무랄 데 없이 잘 어울리는. 그 가운데서 내가 괴로운 아픔의 화살을 쏘는 큐피트로 버틸 수는 없었다. 큐피트는 천벌에 대해서 엄격하고, 관찰자로써 심한 피로감을 느끼거나 낌새가 영 이상하다 싶으면 사랑을 냉각시키는 화살도 쏘는 심술쟁이다. 그는 영원한 장난꾸러기니까. 항상 사랑하기만 부추기는 재미없는 독촉자인 것만은 아닌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톰과 릴리는 아마도 나의 은혜에 힘입어 고비를 넘긴 것 같다.
그런데 이게 뭐야! 나는 톰의 집에 핸드폰을 놓고 왔다. 젠장!
이제 그곳에 다시는 방문하지 않기로 했는데... 나는 딱 한 번만 갔다 오기로 했다.
빈손으로 가기는 어색하고, 혼자 생각한 작별의 선물로 리델 파토마노에서 새롭게 출시한 와인잔을 들고서 톰의 집으로 갔다. 와인잔이 너무 예쁘고 깜찍해서 내가 갖던가 아니면 톰의 집에서 얼추 중형차 1대 짜리 이짝 저짝하는 와인을 대접하라고 따지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라디오를 들으면서 콧노래도 흥얼거리다 톰의 집에 도착했다. 그렇게 딱 녀석의 사무실로 들어설려던 찰나, 아뿔사!
이건 뭐야! 톰이 릴리를 입고 있는 걸까, 릴리가 톰의 내부로 들어가는 걸까? 드넓은 창문으로 보이는 이 괴상한 장면으로 봤을 때 그저 그런 흔한 사랑의 장면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건 대체 뭐지? 무슨 영화를 찍는 것도 아니고, 둘이 하나로 결합하다니! 나는 왜 내 앞에 자꾸 이상한 요술들이 등장하는지 의구심을 품게 됐다. 그야 어쨌든 마술적 사실주의를 동경하고, 사실적 마술주의를 흠모하는 예술가로써 나는 결코 판타지나 SF에 의존적일 수는 없었다. 이건 절대 믿을 수 없었으니까. 무슨 말이 되는 얘기도 아니고, 날 언제까지 해맑은 정서 안에 가둬놓을 생각인가? 뭐니 뭐니 해도 나의 장르는 역경을 이겨낸 에로이고, 새롭게 도전해야 할 분야 역시 로맨틱 코메디가 아니라 새빨간 에로였다. 그런데 톰 + 릴리? 이건 아니다. 이건 아니야. 결론 났다. 명쾌한 결론이. 얘네들과 친하면 안되겠네. 나는 깔끔하게 마음을 접었다. 핸드폰이야 새로 장만하면 그만이다. 이런 상례를 벗어난 말 같지도 않은 일을 믿을 내가 아니다. 사람을 뭘로 보고 말이야! 나는 살면서 다단계 마케팅에는 걸려들지 않았고(계기만 없었을 뿐이지만), 무슨-교랄지 무슨-도 같은 어중간한 특이 종교에는 잠깐 붙잡혔다가 잘 탈출했다. 그런데 뭐 밑도 끝도 없이 톰 + 릴리? 지금 나랑 장난하나!
나는 얘네들과의 유쾌한 교제를 딱 포기했다. 새 핸드폰은 조만간 장만하기로 결심한 체 나는 집으로 돌아갔다. 뿌연 꿈, 선명한 현실, 불투명한 미래 가운데 집중해야 할 게 무엇인가는 자명하니까. 무엇보다 나는 고난을 타개하고서 다음과 같은 나의 이상과 예지를 꾀해야만 하니까.
청춘의 꿈, 젊음의 꽃, 신비한 열정, 흡사 마법에라도 걸린 듯한 행복감, 충분한 황금, 넘치는 기쁨, 재밌는 사랑, 쾌활한 모험, 즐거운 희망, 유쾌한 추측 그리고 환영 받는 인기까지.
7
몽환적인 황홀경에 대한 갈망은 판타지 장르에 대한 열광적인 애호를 불러왔다. 그래서 나는 톨킨이니 뭐니 특별판 CD와 장난감을 보면 보이는대로 수집했다. 그러나 그건 길게 가지 못할 동심과 일시적인 허영심에 불과할 뿐이었다. 그래서 변심은 필연이었다. 따라서 나는 매력, 마력, 요술, 과학을 막론하고 극적인 우연을 추구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진짜라며 내 안의 그분께 최면을 걸었다. 하지만 뜻밖의 행운과 숙녀의 짝사랑, 희망의 구현은 여간해선 말을 듣지 않는 고집 센 비글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지만 기발한 전개는 날 내내 심심한 발단에 머무르도록 방관하지 않았다. 바로 누군가 날 미행한다는 사실을 아마도 내가 뒤늦게 눈치챘던 것이다. 나는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지 파헤치며 탐구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겨우겨우 초조함을 잠재우고, 가까스로 다급함을 다스렸다. 동정심을 갈구하는 조바심을 한사코 엑셀 파일이나 메모장에 가둘 만큼 삶의 요령은 습득한지 오래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내가 볼 게 뭐가 있다고 미행을! 살다 살다 별의별 일을 다 겪네. 하지만 꽃 들고 기다리거나 구름 위를 걷는 느낌이라는 연예인병과는 또 다른 묘한 쾌감으로 흥분했음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이런 기분 처음이니까 말이다.
그건 일단 차차 해결하기로 하고 나는 친구들한테 전화로 물어보기로 했다. 톰이 뭔가 미심쩍었으니까. 느낌 세한 직감을 어떻게 외면하겠나, 이 상황에.
그런데, 아 맞다, 전화기! 나는 핸드폰을 새로 살려고 하다가 자동차 안에서 핸드폰을 발견했다. 뭐야 이거! 분명 없었는데. 어떻게 된 일이지? 확실하게 기억하는데. 그래서 찾아러 갔던 거고. 그런데, 어떻게 얘가 여기 있을 수 있지? 그야말로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내가 잘못 봤었나... 아닌데. 그럴 리가 없는데. 그렇지만 핸드폰 하나 가지고 순간-이동을 따질 수는 없으니까, 귀찮게 새로 살 필요도 없으니까 잘됐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곧바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있잖아. 어제 톰을 만났거든. 그제 우리 얘기했던 톰 말이야. 딱히 약속도 없고, 바람도 쐬고 올 겸 해서 가서 만나고 왔어.」
「그래? 여전하시던? 그 양반 지금도 노익장을 과시하시나? 자랑할 게 많지 않을 텐데. 그래도 우락부락하고 힘 좋고 기세도 어디서 절대 안 빠지고. 그래 맞어. 그 냥반이 딱 그런 경우겠네. 남자는 나이가 들면 힘이 밑에서 위로 올라가는 부류. 아닌가? 뭐 거기까지 내가 확인할 일은 없고. 그러고 보면 말이야, 남자는 나이가 들어도 힘이 밑에서 위로 꼭 올라가는 건 아닌 것 같아. 안 그러니? 난 솔직히 언제 어느 때라도 오빠란 말을 들어도 별반 느낌이 없어. 그럼. 왜 티 많이 나니?」
「그게... 뭔 소리야! 내가 말한 톰은 그 우리 친구를 말하잖아. 8 대 2 가르마에 웃긴 얘기 자주 하던 그 친구. 집에서 이상한 거 보다가 부모님한테 딱 현장을 들킨 그 녀석 말이야.」
「뭔 얘기 하고 있어? 그때 날라차기로 때린 선생이 톰이고, 얻어맞은 다음 그 둘이서 서글서글한 구닥다리 웨건 타고 병원 갔던 친구는 닐이잖아. 기억 안 나? 왜, 톰이 친구 먹제?」
나는 뭔가 일이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잘 기억나질 않는 반투명한 추억을 어떻게 할 수도 없고... 헛된 기대와 불쾌한 예감을 한방에 날려버릴 묘안 같은 건 일절 떠오르지 않았다. 게다가 미행까지 당하고 있었다. 심지어 <톰 + 닐>이라는 약간 불쾌함과 동시에 더 알고 싶은 듯한 신기함은 안정적인 기억으로 이미 자리를 잡아버렸다. 만에 하나라도...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절대 아니야, 딱 아니라고! 내가 뭔 생각을 하는 거지? 처음 본 순간 릴리가 마음에 쏙 들긴 했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그녀가 자꾸 내 앞에서 알짱알짱댄다고 그녀의 마음을 받아줄 수는 없었다. 나 또한 본색을 드러내고 싶지도 않았고. 당치도 않은 일이지.
아무튼 전망은 감상적인 기색이 완연했고, 팔짱 낀 관망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세상은 빙글빙글 인생은 헤롱헤롱!
8
파우스트는 메피스토텔레스에게 빚을 졌다. 그리고 사람은 인생에서 꿈을 찾고 판도라에서 자유를 찾아 탈출한 희망을 자꾸 혼동한다. 무엇과? 사과, 꽃, 호박, 벌, 소원, 팬지, 코스모스, 들국화, 소풍, 여행, 연애, 대망, 타성과 권태 그리고 행복과! 이처럼 운명을 통해서 사랑과 춤을 추는 인간에게는 세상에게 언젠가, 어떻게 돌려줘야 할, 그에 상응할지도 모르는 어떤 아름다움이라는 채무가 주어졌다. 때문에 인간이 보이저2호를 은하계 바깥으로 여행시켰듯이─보이저 1호던가? 아무튼 엇그제 화성의 내부 탐사를 위해 또 무인선이 발사된 것처럼─지구에서 괴물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 그것이 실험실에서 탈출하면 프랑켄슈타인이요(뛰어봐야 부처님 손바닥 위일 테지만), 극적으로 꾸며지면 아바타 같은 영화요, 의학으로 보자면 생명공학일 것이다. 짜릿한 탄산 음료수도 비슷한 이치다. 그러나 아침엔 피노키오요 밤에는 난봉꾼일지도 모를 양치기 소년이 항상 외계인의 채권자인 것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화폭을 살피며 악보를 읽고 사연을 알아야만 이해될 이 세계의 숙명일 테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프로메테우스가 천상에서 불을 이 땅으로 가져왔듯이 간결한 표어와 특별한 포지셔닝, 오늘의 역할과 내일 낙찰될 복권 당첨금의 사용처 그 등번호를 정해야만 한다. 적어도 친구의 관상을 따지거나 애인과 사랑의 운수를 점쳐보는 일은 만물 가운데 유일하게 인간에게만 허락된 기쁨이란 걸 잊으면 안된다는 말이다. 때로는 커피포트가 바빠지며 행복이 짦아질지도 모르지만. 아무리 그래도, 당장 재산 목록의 금은동은 변변치 못할지언정 무인도에 데려가고 싶은 무언가에 대해서는 상상의 자유를 얼마든지 누릴 수 있단 말이다. 따라서 나는 당장 거리에서 선의의 행사는 모른 체 할지라도, 내가 짊어진 시지프스의 할 일을 야박하게 모른 체 할 수만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빈둥빈둥 놀 게 아니라, 뭐 적당히 놀고 틈틈히 뭘 알고 믿고 노래할지라도, 나는 칼럼을 써야만 했다. 그래, 칼럼을. 그러나 글이 도무지 써지지 않았다. 고로 내가 들고 있는 패는 선망이지만 액면은 2군에서 만년 대기였다. 그런데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왜냐하면 친구들이 자꾸만 같이 놀자고 날 내내 귀찮게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가 사랑에 절망하는 숙녀처럼 내 발등을 찍고 싶어 했을까? 그럴 리가 있나, 그럴 턱이 있겠나! 나는 물 만난 물고기마냥 신나게 놀았다. 클럽도 가고 여행도 떠났으며 허당의 3박자와 한량의 4대 요소를 맹렬히 추종했다. 그래서 성과는? 결국 난 플레이보이임이 증명됐고, 결과는 하나도 없었다. 이런, 젠장! 허영의 종착지는 허망이었고, 허세의 끝은 허탕이었다. 따라서 나는 결심했다. 괴로운 글쓰기든, 불쾌한 구상이든, 불행한 으쌰으쌰든 새로운 경험이라는 쓸 거리를 위해서 베품을 요구하는 호혜주의자가 되기로! 그래서 내가 한 일은 바로 이랬다. 곧, 지금 할 일은 푸른 해변에서 일광욕 하기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뚝딱 준비를 마쳤고, 현장에 도착했다.
그런데 일광욕에 들어가자마자 누군가 사자의 코털을 건드렸다. 물론 나는 내가 전화를 받는 자세와 고개의 부드러운 각도까지 어딘가에 보고 될 것이란 걸 모를 리는 없었다. 그러니까 당연히 전화 통화의 도청도 감안하고서 전화를 받았다.
「오빠. 나야 릴리. 우리 만나!」
뭐? 아직은 우리가 편하게 말을 놓는 사이가 아닌데. 그녀의 목소리만 봤을 때 이건 뭐랄까, 둘이서 한 편이 되어야만 하는 일인 듯 했다. 인연이 아니네 가는 길이 다르다는 둥, 그건 다 쓸데없는 헛소리이자 구차한 변명이었다. 릴리의 다급한 다가섬만 봐서는 이건 분명 기분 좋은 일이 틀림없으니까.
그렇게 한두 시간 경과.
내가 일광욕하는 장소에 나타난 릴리의 차림새는 더 기분 좋은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매끄러운 대리석을 마음껏 시원하게 노출하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내가 뭐랬을까?
「오, 땡큐!」
「뭐라고?」
「아니, 아무 말도 아니야.」
「아닌데. 오빠가 분명 뭐라고 했는데. 뭐라고 했지?」 얘가 혹시 듣고서도 못 들은 체? 오오, 내숭까지! 잘들한다, 어? 잘들 만났네!
좌우간 그녀는 할 얘기가 있어서 온 게 아니라 싱그러운 살결과 아름다운 몸매를 자랑하러 왔을까? 난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고 흥분감을 감출 수 없었다. 안 그러게 생겼나. 내 이럴 줄 알고 흰색과 빨간색 라인이 경쾌한 하늘색 수영복을 미리미리 준비해뒀던 것이다.
「오빠. 나 미행당하고 있어. 오빤... 아니지?」
나는 릴리의 말을 듣고 잠깐 헷갈렸다. 왜냐하면 그녀의 대사에서 어미에 등장한 물음표는 적어도 세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건 무엇인고 하니
첫째, 파파라치를 붙인 범인이 오빠냐.
둘째, 오빠에게도 설마 미행이 붙었냐. 그리고
셋째, 날 사랑하냐!
「너...도?」
「어머나! 이거 보통 일이 아니네! 안 그래 오빠?」
「내가 누누히 강조했어, 안 했어? 톰 그 인간을 조심하라고!」
「뭔 얘기야? 오빠랑 나랑 눈빛만 나눴지 말을 막 많이 섞진 않았자나? 안 그래? 교감은 있었지만 대화는 별로 없었다고! 응? 그건 그렇고. 이제 우리 어떡하지?」
「그러니까 이게 다 나 때문일까, 아니면 우리의 친밀감 때문일까? 아니면 우리가 오빠라는 말만 들으면 미쳐버리는 플레이보이의 3요소를 꿰뚫고 있기 때문일까? 우리네 인생 최대의 행복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건 탁월한 명언으로 증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건 곧, 여-바텐더 없습니다!」
「아, 뭔소리야? 장난하지 말고. 오빠! 나 심각해! 응?」
「나도 심각해. 늬가 좋다면 나도 좋아!」
「그러니까. 혹시... 톰일까?」
「당연하지. 아니면 누구겠니?」
「글쎄다. 대체 왜?」
「왜겠어, 사랑과 우정 때문이지. 그거 말고 더 있겠니, 내 말은 그 말이지. 얘가 얘가 바깥은 성숙한 숙녀인데 마음은 아직 소녀네. 응? 난 사랑을 아직 몰라요? 내가 봤을 때 톰은 완숙한 상남자고, 굶주린 하이에나이자, 희대의 플레이보이야. 알겠니? 쉽게 말해서, 나보다 한 수 위, 아니 아니, 차이가 아주 많이 나. 그럼.」
따라서, 방법은 하나였다.
삼자대면!
9
모험가에게 행복-추구권의 실천은 모험이다. 사랑론은 로맨티스트의 철학이고, 사색가에게 꿈과 희망은 행복이다. 그림은 액자가 운명이고, 꽃은 정물화에서 화병과 천생연분이다. 젊음의 욕망과 인생의 즐거움은 NC와 TV, 허당의 3박자 그리고 기타로 분산된다. 술꾼에게 환상관은 술집이고, 우정은 철들지 않는 것이며, 고독한 도시인에게 바텐더는 최고의 친구일 수도 있다. 슬럼프를 쾌락으로 탈출하고 권태는 인생의 전환점이 될지도 모른다. 그처럼 나의 할 말은 일기장을 필요로 했으며, 나의 할 일은 누가 뭐래도 행복한 글쓰기였다. 그래서 나는 호기심, 상상력, 감수성, 엉뚱한 몽상을 무시하거나 하대하면 안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분들의 소박한 요구 사항이 무엇인가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보니 그건 깜짝 놀랄 만한 반짝 선언은 아니었다. 그건 단지 지금까지 못해 본, 안 해 본 일을 하자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제의에 불과할 뿐이었다. 바로 그래서 내가, 아니 아니, 우리가 선택한 장르는 로맨스이자 스릴러였고 미스테리였다. 뭐라고? 통과! 그처럼 우리의 행동은 바로 삼자대면이었다.
나와 톰과 릴리! 삼자대면한 결과 톰은 우정과 사랑을 위해서는 그럴 수 밖에 없었다며 진심을 토로했다. 그런데 분위기는 급-반전됐다. 톰과 릴리가 말다툼을 시작한 것이다.
「늬가 내 그림 가져갔냐?」
「아니다.」
「솔직히 말해.」
「아니다. 아니라고.」
「그럼 왜 그림이 바꼈냐? 내가 모를 줄 알았니? 그건 뭘로 설명할 건데?」
「뭔소리야?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얘가 오리발 내미네. 너 한번 혼나볼래? 어?」
「오빠! 내가 하나만 알려줄까? 내가 만약 제3자에게 마음이 있다면! 그럼 오빠 어떻게 할래? 응? 사랑은, 모르는 거야. 응? 내가 오빠처럼 시도 때도 없이 내내 G스팟만 생각하는 줄 알아? 내가 뭐 몽정기 소년인 줄 아냐고. 꿈 깨, 이 양반아! 오빠의 비밀을 아는 단 한 사람은 바로 나야. 어? 나라구. 내가 꼭 인생의 쓴 맛과 단 맛에 대해서 직접 알려줘야만 하겠어? 오빠야말로 솔직히 말해봐. 사랑의 기쁨과 슬픔보다 오빠한테는 그림이 전부라는 걸 말이야. 그렇자나! 안 그래? 아니면 아니라고 말을 해 보라구. 어? 왜 말을 못해? 어? 왜 말을 못하는데? (릴리는 일부러 톰이 말을 못하게 거세게 몰아붙이며 아무말이나 막 계속 지껄... 열변조로 톰의 심란한 마음을 요리하고 있는지, 대관절 누가 알겠나!) 그리고 바지 지퍼는 왜 반쯤 열려 있는데? 지퍼 올리다가 셔츠가 사이에 끼었네? 잘한다! 어? 가지가지 한다. 응? 애쓴다 애써. 박수라도 쳐줄까? 어~라! 심지어 오늘따라 셔츠가, 아이고야, 밝기도 해라. 너 누구 만나고 왔니? 뭐가 그렇게 급했니? 이 오빠가 그림 얘기로 위길 빠져나갈려나 본데, 어림없어! 어? 그리고 늬가 뭐 TV에 나오는 DJ라도 되는 줄 아냐? 어? 따라할 걸 따라해라. 챙피하지도 않냐? 응애응애 응애응애, 뭐 아코디언 연주하냐? 악기는 다룰 줄 아는 거 하나라도 있긴 있니? 하긴 늬 주제에 악기가 왠 말이니. 그러면서 뭔 또 제복은 좋아하고 벨트에도 조예가 깊지 아마? 봐도 재미도 없고 극장에서 내내 졸면서 말이야, 판타지만 나오면 억지로 꼬박꼬박 극장으로 달려가서 꼭 봐요. 누가 늙었다고 트집잡을까 봐 일부러 그러는 거 누가 모를 줄 아니? 뻔~해! 너 옛날에도 그랬지? 반지의 제왕도 재미 하나도 없으면서, 막 광고물 옆에서 사진 찍어서 올리고. 뭔 포터도 험한 말 억지로 참아가면서 사귀는 애랑 완전 싫어도 보러가는 거, 심란한 고역이었지? 다 알아. 응? 다 안다구. 속으로는 할 말이 많았을 꺼야. 왜 아니겠어. 그러면서 마블이 어쩌고저쩌고? 아 나 이거 정말, 아주 웃기지도 않는다. 어? 게다가 술도 못 마시는 상남자면서 뭐, 나랑 술로 한판 붙자고? 뜨긴 뭘 떠! 이 오빠가 주제도 모르고 말이야. 다 치아쁠라. 확 마 그냥 피부 누렇게 뜨게 만들어버릴까 보다. 얘기 길어져봤자 내 입만 아프니까, 아 됐고!
그 그림, 주인 따로 있어. 그것만 알고 있어.」
「릴리. 너 말 다 했니? 너! 날, 사랑하지 않니?」
뭐야?
톰과 릴리의 말싸움은 너무도 길고 유치하며 듣기 민망해서 여기서 줄일 수 밖에 없다. 아아, (설레설레)!
한편 말이 나왔으니 하겠지만, 나도 톰에게 따질 게 있었다. 그건 두 가지였다. 첫재 넌 왜 내 친구 행색을 했냐, 둘째 톰과 릴리 너네 둘이서 무슨 어디 무대에서 꽁트를 선보일 일 있니. 첫째는 즉시 말로하면 그만이었고, 둘째는 말할 수 없는 비밀이었다. 좌우지간 지금은 톰이 릴리와의 말다툼 때문에 체력을 많이 소진한 상태고 심리적으로 불안정했기 때문에 나의 역공은 최적의 시기를 맞이한 거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나는 고삐를 쥐어서 막 다그쳐야 했다. 그러나 나는 역으로 고급스럽게 살살 설득하기로 마음먹었다.
「톰 있잖아. 내가 초등학교2학년 때던가... 대충 그즈음이었을 꺼야. 수업이 모두 끝난 다음 우리 반에서 나랑 친하지 않은 애가 그러더라고. 한 서넛쯤이 모여서 그 가운데 한 친구가 그랬어. 얘가 로보트 장난감 멋진 거 사준다고 하니까 같이 구경하러 가자고. 그렇게 말한 친구는 넘버2쯤 됐겠지. 그래서 결과는 그랬어. 내내 돌아만 다니고 장난감 가게 앞에서 자기들끼리 이 장난감은 어떻고, 저건 어떻고, 계속 어쩌고저쩌고. 또 자리를 옮겨서 다른 장난감 가게 앞에서 이러쿵저러쿵. 아 뭐야 그러니까 사줄 꺼야 말 꺼야, 라고 나는 묻지도 않고 그냥 집에 간다며 그 일행에서 슥 빠진 일이 있어.
그게 이 일과 꼭 관계된다는 말은 아니야. 그리고 내가 너한테 꼭 설명을 들어야만 하는 일이 있다고 확실하게 말하기가 망설여져. 그러나 굳이 호박이 제발로 굴러온다면, 응? 내게 신비한 사연이 설명된다면 난 이해할 자신 있어. 그 어떤 놀라운 곡절이라도 말이야. 난 정말 너의 마음을 공감하고 싶다구. 그렇다고 듣고 나서 내가 화를 내겠니, 아니면 혼자 당사자의 마음도 몰라주고 곡해하며 떠나버리겠니. 그런 일은 없을 꺼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네.」
내가 그 다음에 참지 못하고 이렇게 말할려고 했다. 왜 내게 거짓말했냐고! 이 인간아, 왜 가난한 나한테 뻥을 쳤냐고! 내가 알던 톰은 날라차기하던 선생님이었는데, 대체 어떻게 친구 톰으로 인지하도록 최면을 걸었는지를 꼭 좀 알려달라고 말이다. 그랬더니 톰이 뭐라 그러는지 아십니까? 아 글쎄,
「알게...됐니? 미리 얘기하지 못해서 미안해! 차마 어떻게 엄두도 나지 않았으니까. 이 말을 하면 네가 믿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지금은 말해야만 하는 시간. 이젠 때가 됐거든. 사실 말이야, 우린 미래에서 왔어. 응? 우리는, 미래에서, 왔다고! 사람은 누구나 아빠에게 물려받은 성품과 엄마를 꼭 빼닮은 천성이 있는 법. 그처럼 미래 세계에서 그 둘이 분리되는 일이 일어나거든. 항상 그런 건 아니고 특수한 경우에만. 여기서도 지금 그렇자나. 특별한 때 심신이 분리되는 현상 말이야. 그런데 타임머신의 고장 때문에 어떻게 우리만 이렇게 네 앞에 나타나버린 거지. 끝까지 남남으로 살아도 상관없지만, 그러면 우린 다시 미래로 돌아갈 수 없어서,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너한테 거짓말한 거야.
그런데 한 가지 더! 우리는, 나 톰과 얘 릴리는 바로, 너의, 미래라는 점. 그게 중요해. 그럼.」
뭐-뭐, 뭐라고? 장난이 너무 심한 거 아닌가! 이거 무슨 농담도 아니고... 이건 뭐 취미마도 공상마도 아닌 광마의 출연인가? 그럴지도! 이 냥반이 시방 날 애마부인으로 아나? 회전목마 만큼 즐겁지도 않고 신수도 그만그만헌 웬수 같으니라고! 그렇지만 우린 그새 정 들었을까? 나는 톰과 릴리가 그닥 미워보이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농락 당하는 듯한 기분도 없잖아 있었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어리버리한 사기꾼에게 걸려들었거나, 풋내기 약장수와 놀아나고 있다고.
그런데 엇그제 내가 본 장면은 대체 뭐란 말인가! 이건 내가 아는 세상의 비밀과 지식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일이었다. 지금까지 인류의 섭리에 축척된 운명의 행복과 불행으론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걸 나보고 믿으라고? 그런데, 왜!
나는 일단 세 가지를 느꼈다. 첫째, 장난도 농담도 아닌 듯 했다. 둘째, 내게서 뭘 얻고자 하는 의도는 적어도 없는 것 같았다. 셋째, (딱)! 이거다. 이것이다. 난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없이 그냥 속아주면 되는 거였다. 자유를 갈망하는 똥파리던지 찬란한 사랑의 화신이던지, 아직은 배후의 비밀이 나비인지 나방인지 불분명했다. 때문에 좀 더 지켜보는 수 밖에 없었다. 그처럼 내가 내내 혼자서 작품 구상을 하면서 뭐라 그랬나. 이랬지 않느냔 말이다.
「나는 참신한 발단에 관심을 갖고, 유별난 전개에 흥미를 느끼고 싶었다. 그러다 어쩌면 새로운 절정은 해피 엔딩으로 이어지지 않고 춤추는 요술 구두를 신게 될지도 모르지만. 속으로는 찬밥 더운밥 가릴 단계가 아니었으니까.」
그러니까 릴리의 여러 행적이 모두 연기였다고? 고로 난 결심했다. 어디까지 가나 보자고! 그러므로 난 일단 톰과 릴리의 드리블에 놀아나고 장단에 맞추어 춤을 추기로 다짐한 것이다. 내가 그렇게 생각할 동안 톰은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아직 믿기지 않지? 하긴, 어떻게 그럴 수 있겠니. 그건 차차 생각해보기로 하고. 아무튼 난 네게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되거나 편의를 제공한다랄지 뭔가 허무맹랑한 설명에 대한 성의를 표하고 싶어. 믿음을 강요하지는 않겠지만 내 발언의 진실함만은 성의 표시가 필요하다, 이 말이지. 왜냐하면 나는 일말의 신뢰라도 얻기를 바라니까. 너의 긍정적인 부응을 원하단 말이야. 그래서 하는 말인데, 저 애마를 네가 타는 게 어떻겠니?」
그러면서 톰은 까레라의 키를 내게 건넸고, 톰은 릴리의 차에 타고서 그들은 날 유유히 떠나갔다. 뭐야 이거? 뭐긴 뭔가, 야호지!
그런데 녀석들이 떠나간 다음 난 느꼈다. 내가 해야 할 말을 못했버린 걸 말이다.
「미래인이여! 현재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10
나는 집에서 최근 돌아가는 드라마가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를 고민했다. 그러던 끝에 난 답을 찾아냈다.
Q: 이건 혹시 모두 내 팬들의 장난 아닐까?
A: 아니다. 팬 사이트에 내가 막 놀라는 표정과 극적 장면들의 패러디가 양산되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Q: 릴리의 남자친구는 왜 자기를 톰이라고 했을까?
A: 그는 톰을 가장하지도, 사칭하지도, 역할극을 벌이지도 않았다. 그는 톰이 맞다. 왜냐하면 그의 본명은 닐이었고, 닐은 나중 톰으로 개명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삼자대면할 때 내가 사진을 찍어서 내 옛 친구들에게 보여준 결과 그는, 과거의 닐이자 현재의 톰이 맞다는 걸 확인했다. 또 졸업앨범이랄지 기타 수많은 자료를 수집해서 그가 <닐 → 톰>이 확실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사실은, 결정적으로 릴리의 고발이 주요한 역할을 했다. 끝으로 톰이 왜 미래에서 왔다고 했는지, 진짜로 미래에서 왔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이에 대해서 릴리는 묵묵히 함구했다.
Q: 내 친구들은 어떻게 톰의 소식과 집주소를 알아냈을까?
A: 그건 그냥 녀석들이 관심사가 다양하고 발이 넓어서 알았을 뿐 숨겨진 내막 같은 건 없었다.
Q: 그럼 노란색 까레라는?
A: 버틸 때까지 버티자!
Q: 그럼 이 애절한 드라마에서 난 정말로 주인공이란 말인가?
A: 아마도 그럴 리는 없겠지? 아니면 1.5군이던가!
모든 의혹은 해소됐다. 그후 나는 본격적으로 릴리와 친해졌다. 연락을 점점 많이 하다가, 자주 하다가, 매일 만나게 됐다. 톰은 톰대로 바빴다. 그런데 초반의 설렘은 그리 길게 가지 못했다. 행복은 정말 잠깐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러던 중 정말로 꺼림직한 전개가 발생했다.
나는 릴리와 밀월 여행중에 경찰의 단속에 걸렸던 것이다. 까레라가 도난 차량으로 등록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와 릴리는 경찰서에서 조서를 작성한 다음 대기했고, 영화 한 편 볼 만큼의 시간이 흐른 후 톰이 나타났다. 그래서 나는 반갑게 톰을 맞이했다. 그러나 톰은 내게 말했다. 자기는 톰의 일란성쌍둥이 동생 닐이라고. 자기 형 톰은 후계자 수업 때문에 현업에 복귀했다고 했다. 뭐라고? 저런 저런! 그럼 까레라는?
그렇게 톰의 자리에 새로운 임자가 나타나서 모든 상황이 정리됐다.
하나, 톰은 영영 종적을 감췄고 닐이 그의 모든 것을 대신했다.
하나, 릴리는 실업자 신세가 됨.
하나, 닐의 요청으로 까레라는 반납했다. 그러나 사라진 톰의 특명 때문에 사무실에 걸려있던 그 그림, 바로 그 걸작을 나는 양도 받았다. 그러나 나중 릴리와 대화하던 중 알게 됐다.
그건 진품이 아니라는 걸.
11
유혹은 세련된 근사함을 노래하게 만들고, 탐욕은 고상한 우아함을 좋아하도록 유도한다. 무도회는 멋쟁이를, 미술관은 교양인을, 동물원은 어린이를 유인하듯이. 그처럼 지금 내게 얍-같은 주문은 필요하지 않았다. 가슴 뭉클한 욕망은 어느새 뿅-하며 날 지배하는 줄도 모르게 지배해버렸으니까. 그런데 문제는 황당한 분위기였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왜냐하면 톰과 까레라는 한순간에, 그냥 단박에 날 확~ 떠나가버렸으니까. 눈 깜작할 사이에 휙! 아예 그게 더 나빴다. 당연히 그게 더 바쁘지. 왜 아니겠어? 줬다 뺐는 게 어딨나! 내가 무슨 애완견인가, 날 길들이게? 얼굴이 개상이랄지 드센 팔짜가 포니나 코뿔소 혹은 코끼리과일지는 몰라도 일단 내가 원한 건, (딱) 집사였다! 그럼, 집사. 그런데, 내가 무슨 두루마리 화장진가? 착착 말리고 또 말리게! 웃기고 자빠졌네. 나무 같은 운명으로 태어나 꽈배기처럼 꼬일 팔자를 감내하게? 인생과 문학이 유복하도록 술술 풀리는 게 아니라 난 그냥 껍질을 벗겨도 벗겨도 끝이 없는 것만 같았다. 그럼 화장지가 아니라 날 양파로 본 거 아니야? 저런! 우리가 무슨 영화 제목이냐고, 짜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지금 나랑 장난해? 어라~ 나 그런 사람이야 라는 말이군! 그러니까 도대체가 말이야, 내가 무슨 아령이냐고! 왜 날 들었다 놨다 하는데? 어? 결국 줄 달린 치즈를 살살 끌어당겨서 자기 세력이 되도록 꼬신 다음, 뿌잉뿌잉 어설픈 기쁨조는 릴리 달랑 한명에 불과했고, 심지어 행복은 짧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날 물 먹여? 내가 뭐 '물 먹는 하마'라는 상표명의 제습기라도 되느냔 말이야. 그 인간 톰은 날 출입문으로 알았던 거다. 입이 떡 벌어지는 궁전의 고전적인 초대형-문에 정확히 '당기시오' 라고 써 있는데, 꼭 뜬금없이 나타나서 문을 확 밀고 들어오는 남자. 그는 바로 톰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 애무도 없이 처음부터 본론이 뭐야. 우리가 무슨 막장 드라마를 찍냐고. 알 거 다 아는 어른들끼리 말이야, 기승전결이 있어야 할 꺼 아니냐고! 커피를 준비하고 찻잔과 함께 물을 뎁혀서 그것이 끓으면 차분한 실내악과 함께 한 잔의 그윽한 향기를 음미해야 하는데, 고상한 대화는 온 데 간 데 없는 걸로도 모자라 꼭 그걸 따로따로 하는 사람들이 있다. 팝콘 사오라니까 진짜 팝콘만 사오거나 콜라도 없이 최저가 햄버거만 달랑 들고 먹는 남자. 닭 가슴살이랑 단백질 보충제만 먹다가 특식으로 딱 한번 핫도그를 먹었으면서, 요원한 최고급 스테이크? 그거나 그거나 다 거기서 거기다란 말이지! 우유와 달걀과 밀가루 과자를 먹었으면서, 나 케익 먹었다-네. 톰도 그랬다. 분위기도 없고 상대방 기분도 모르며, 밑도 끝도 없이 전진만 하는 남자. 그는 바로 톰이었다. 아무렇게나 쥐었다 펴며, 두드리고, 막다뤄도 얼마든지 괜찮은 게임기 조이스틱으로, 날 아나 본데! 이제야말로, 어? 마침내 본격적으로 내 반격이 시작될 서막이 울려야만 했다. 잘 울릴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서 내내 저기압으로 마음이 붕-붕 떠다녔던 나는 릴리를 찾아갔다. 이 때가 아마 그 일이 있고 난 다음 3일 후나 됐을 것이다.
나는 릴리가 새로 취업한 미술관에 도착했다. 릴리는 그곳에 오자마자 넘버2가 된 것처럼 보였다. 그 업계에서 나름 콧방귀나 뀌는 듯 했다. 그러든가 말든가!
「이게 누구야!」
「누구긴 누구야? 내가 왜 왔는지 알지?」
「오빠. 우리 격없이 말이야, 빡빡하게, 응? 너무 그러지 말자. 응, 오빠.」
「아 됐고. 저번에 톰이랑 너랑 한참 다퉜자나! 진품은 어딨는데?」
「진품? 아, 그거! 어딨긴 어딨어? 처음부터 없었는데!」
「빼돌렸다느니 뭐라느니 그건 또 뭐고?」
「빼돌리긴 빼돌렸지. 그러나 그래 봐야 어차피 위작 A급이냐 B급이냐 그 차이 밖에 없어. 그러니까 오빠 수중에 들어오게 된 건 B급이란 말이지. OK?」
이건 또 뭐야? 어쩐지 처음부터 일이 우스꽝스럽게 돌아간다 했더니, 쯧쯧쯧!
「릴리. 너 이미 알고 있었지?」
「몰랐다면 어쩜 거짓말이겠지?」
그러면서 릴리는 웬 카드를 하나 슥 내밀어 탁자에 놓았다. 나 보고 챙기라는 의사 표현인 듯 했다.
「오빠. 넣어둬.」
「뭔데?」
「신용카드. 아! 무제한.」
「뭐? 내가 이걸 왜 받어? 하지만. 혹시 톰이? 그럼 또 호의를 무시하면 것두 예의가 아니니까 일단 뭐.」
「오빠, 이제부터 나만 믿어!」
「내가 널 어떻게 믿어? 일단 뭔가 설명이 있어야 할 꺼 아니야, 어? 설명이!」
「아 그러니까, 뭐 영화에 나오는 그렇고 그런 전개처럼 닐과 내가 한패냐고? 그래서 톰을 어디 구석진 정신병원 같은데로 보냈냔 말이지!」
「알긴 아네! 그래도, 톰은 말이야. 응? 톰과 사랑이 얼만큼 진전됐나 모르겠지만, 당연히 우리의 우정이 먼저라고.」
「아 그래서 우리의 장르를 꼭 확인하고 싶으시다? OK! (조용조용한 어조로) 오빠랑 내가 갈 데가 있어.」
「뭐?」
얘가 지금 나랑 꽁트를 하자는 건가, 라는 의문을 난 도저히 잠재울 수 없었다. 설마... 혹시 진짜로 미래에서 온 건 아닐까? 릴리가 심각한 어조로 어딜 가자는 건, 뭐랄까, 타임머신을 타자는 뜻 아닐까? 이거 정말 돌아가는 분위기가 영 심상치 않았다. 난 결국 잘 안 돌아가는 잔머리를 전력으로 굴리고, 총력을 동원해서 잔꾀를 부려 놀라운 대처법을 고안해낼 수 밖에 없었다. 그래 봐야 내 발상은 한계가 빨랐다. 예상 밖으로 너무 재빨랐던 것이다. 어차피 지금 내 입장에서, 지금 이런 상황에서, 내가 가진 패는 영 변변치 않았으니까.
그러니까 릴리에게, 늬가 앞장서! 라고 큰소리칠 것인가 아니면 꼬리를 내리며 순순히 따라갈 것인가. 우리는 살면서 틈틈히 이런 난처한 상황에 직면한다. 바로 이 때 운을 잘 타면 즐거운 인생으로 뜨는 거고, 운을 잘 못 타면 험악한 인상으로 표정은 찌푸려질 수 밖에. 아예 첫인상부터 잘 풀리지 않는 경우라고 왜 없겠나. 누구라도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잘 생기고, 적당히 성실하고 잘 놀고 일도 잘 하는데, 그런 남자라도 유독 남자에게만 인기를 끌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그런 사례의 말단에는 물론 무서운 얼굴이 떡 버티고 있을 테고. 그야 어쨌든 우리는 살면서 난제에 부딛히면 둘 중 하나에서 자연스럽게 순리를 따르기만 하면 된다. 다른 말로 중간만 가면 됨. 그런데 의욕이 지나쳐 꼭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정말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이처럼 인생은 둘 중 하나다.
첫째 신부들러리냐, 둘째 마술사의 조수냐!
전자는 튀지 않는 게 예법이자 상식이고 교양이다. 그러나 후자는 돋보이고 튀며 예쁜 걸로도 부족해 섹시해야 상한가요 파죽지세다. 둘째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명망 높은 마술사가 사기꾼으로 전락하는 건 한순간이다. 평판이란 게 그렇다. 살을 빼기는 힘들어도 찌는 건 금방이다. 말은 쉽고 실천은 어렵다. 그처럼 전자와 후자는 완벽하게 동전의 앞면과 뒷면이다. 헷갈리면 큰일나는 거다. 그런데 꼭 보면 평소에는 잘 하다가도 정작 중요한 순간만 되면, 그래, 의욕이 지나쳐서 전자와 후자를 헷갈리는 경우가 꼭 보면 드물게 없을 수가 없단 말이다. 친구에게는 <잔말 말고 따라와> 라는 듯이 행동해도 그건 놀이요, 재미이자, 기쁨이며, 예의다. 그런데 애인에게도? 아아, (설레설레)! 그러니까, After You! 다른 말로 <그대 먼저>는 적어도 두 가지 의미가 있다는 것. 첫째 의전, 둘째 공포-스릴러 영화에서 선발대 말이다. 이쯤에서 웃어야 하는데, 이제 완전 감동할 때가 됐는데, 그런데 반응이 왜 이렇지? 영 시원찮네! 그건 아마도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일 것이다. 병풍이 좋은 의도로써 (통속적인 표현으로 말하자면) 나댔다거나, 악의없이─의욕 넘쳐서─정력이 왕성해서─으쌰으쌰 분위기가 너무 너무 좋아서 신부들러리가 (속된 말로) 설쳤기 때문. 간혹 일언반구도 없이 가만 있는 존재 자체가 밉상일 수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 그 구체적인 예는 무엇이 있을까, 굳이 예는 들지 말자. 우린 모두 각자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기억만 해도 셀 수 없을 테고, 뒷목 잡는 사람은 물론 배꼽 잡고 웃는 사람은 정말 한두 명이 아닐 테니까.
그래서 나는 릴리의 그 마지막 속삭임을 듣고 난 다음에 그랬다. 기대감이 부풀었고, 떨렸으며, 한편으로 겁이 났다. 침을 꿀꺽 삼켰고, 양손을 비비며 슥삭슥삭, 눈동자가 똥그래졌다. 액면은 하트 스트레이트플러시를 위해 만반의 준비가 갖추어진 것이다. 이제 진짜로 뭔가 재미난 일이 날 막 신나는 모험으로 데려가는 건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내가 할 일은 업혀가기를 기다리는 일일 뿐. 인생이란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 먼저 올라가고,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일과 같다? 같을 수도 있고 꼭 그렇지는 않을 수도 있지만, 지금은 무엇보다, 바로 마술 같은 세트장이 통채로 우리 손에 쥐어진 거나 다름없었다. 그러므로 행동대장은 릴리였고, 나는 상큼발랄 조수였던 것이다.
12
톰은 멀리 가지도 못했다. 놀랄 만한 비밀도 없었다. 신비감은 미미할 뿐이었다. 암시는 날 허천나게 실망시켰고, 전조는 날 밑도 끝도 없이 위축시켰다. 조만간 난 깡통이 될 운명이란 말인가? 꿈에도 생각 못할 반전을 기대하는 수 밖에.
톰은 바로 아버지의 거대 사업체인 오락산업의 한 축, 그 거미줄 토너먼트의 한 선인 바로 놀이공원 경영을 위한 후계자 수업을 받고 있었다.
어디서? 놀이공원에서! 어떻게? 유령의 집 매표원으로 말이다. 그러니까 누가? 그래 톰이!
식견의 박식함, 견해의 폭넓음, 경탄할 만한 업적. 그와 같은 교양의 탄탄한 배경이 특정한 전문 분야가 아닌 든든한 연애사를 가르키는 일. 다름 아닌 그것이 바로 톰의 전공이었다. 원래는 그랬다. 물론 내가 까레라를 빼았기기 전까지는. 딱 그때까지만.
「나, 안되...보이니?」
「그럼 잘돼...보이겠니! 미래에서 온 거 맞네. 내 마음이 아주 살살 녹는다 살살 녹아. 응? 정말이야! 아, 재밌다. 너무 재밌다. 아주 신나네. 완전 신난다. 기뻐서 춤이라도 추고 싶네. 기쁨의 찬가라도 부를까?」
혹시나 막 넘어진 오뚜기 처지에서 보자면 앞선 대사에 대해서 드물게 울적할 수도 있다. 사람이 어려운 사정에 처하면 자기도 모를 만큼 액면을 오판하고, 배려를 오독하며, 유머를 고깝게 듣게 될 가능성이 증가하는 건 자연스런 인간의 본성이니까. 그러나 그게 아니다. 그게 아니야. 촌년인가 아닌가 쓱 속마음을 떠보고, 매표원을 무시하며, 배달원을 깔보는 게 아니다. 신사의 지성을 가늠하며, 허당의 허풍을 평가하고, 허영심의 리듬과 질투심의 박자를 리드하기도 다 귀찮고 벅차기만 하다. 그나저나 나한테 행복하라고 말해준 사람은, 맞다. 이제 와서 말이지만 설령 빈말일지라도 내게 행복하라고 얘기해준 사람이 그러고 보니 지금 딱 떠오르는 사람은, 에에 가만 있자. 뭐야? 저런! 배달원 밖에 없잖아! 아니, 그러고 보니 정말이네. 대체 이게 다 어떻게 된 일이지? 어쩌다가 내 인생이 이렇게 됐단 말인가. 하긴 나도 남한테 행복하세요, 그대의 인생에 행운이 깃들길 바랍니다, 세상은 당신께 친절을 베풀었기를, 그대 품에 사랑과 행복을, 형씨는 인상이 아주 시원합니다, 그대의 웃는 얼굴을 보니 내 마음이 다 흡족하네요, 그리고 사랑해 등등등. 으~~~윽! 버터 듬뿍 듬뿍 바르고, 참기름 붓고, 오글거리며 느끼한 대사를... 그렇고 보니 나도 해 본 적이 없다. 별로 없다. 거의 없을 것이다. 아니 일절 없다. 아니 어떻게, 세상에 이럴 수가! 심지어, 생일 축하해 라는 예절조차! 오오, 맙소사! 그게 무슨 삶의 큰 비밀도 아니고, 대단한 통찰력을 요구하는 일도 아닌데, 큰 돈 드는 것도 아닌데, 그런데 내가 왜 이렇게 살 수 밖에 없었지? 나도 모르겠다. 나도 모르겠어. 어쩌다 이렇게 되어버렸는지 말이다.
아무튼 그건 그렇고, 나는 놀이공원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숙녀랄지 목소리까지(까지!) 듣는 사람 오들오들 떨리게 만드는 전화-상담원과 찐한 사랑 한번 제대로 해봤으면, 정말, 소원이 없겠다. 돌아보면 나 좋다는 여자들 가운데, 손을 펴서 수평으로 눈썹에 붙이고, 고개를 젖히며 시선을 저 멀리~! 얼굴은 좀 어 그게 약간 음 귀여워도, 그래. 흥이 많은 걸로 치자면 또 한 물건, 아니 아니 아리따운 숙녀가 있었는데 그녀와 찐한 사랑이라도 해볼 걸 그랬나? 영원한 사랑의 포로가 되어야 한다는 맹세는 대부분 드라마에서 듣고 소설로 읽는 걸로 만족할 뿐이니까 말이다. 결국 본심은 그거로군. 찐한 사랑은 남몰래하고, 연한 사랑은 만인에게 자랑할 수 있는 수채화로 그리겠다고! 바로 그래서 파블로 피카소의 찐한 유화 앞에서 뭔가 있는 듯한 어조로 솔깃한 대사를 읊었던 톰에게 내가 특별한 친밀감을 느꼈던 것일지도. 그러니까 그 말은 곧 플레이보이의 4대 요소는 <묻지 마>요, '은근 허당(!)'과 함께 마지막 춤을? 요염한 고양이가 조숙했기 때문에 부뚜막에 일찍 올라가든, 외로운 공주요 순진한 양이 뒤늦게 사랑의 신비감을 진정으로 깨닫게 되든, 고양이의 목적지는 결국 늑대 머리 꼭대기란 말이네. 고양이만 그런 게 아니라 하이에나도 이기주의자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으니까. 이타주의야 넌 어디 갔니? 표범과 치타도 역시 대외적으로는 지평선을 동경하며 화목을 꿈꾸는 듯 하지만, 알고 보면 그분들도 2인자는 꺼려하고 우정 앞으로 단짝을 신청했다가 거절당하면 사랑 고백보다 훨신 씁쓸하기는 마찬가지니까. 무엇보다 잡은 물고기한테 밥을 주지 않는 사자는 배부르면 낮잠을 자야 하니까 말이다.
13
가슴 찡한 직감을 만족시키는 예감은 불길한 예언을 이겨내고야 말았다. 하지만 짜증났던 전적인 얼만데! 고로 은근한 복병 그 패배주의의 잠재력을 결코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밝은 전망을 외면하며 제 발로 굴러오는 행운의 실존을 푸대접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운명적인 결정을 미룰 수도 없는 일이었다. 나중 그것이 가짜 요술거울로 밝혀질지 몰라도 우선은 조명 앞에서 멋진 모델이 되어 아름다운 포즈를 취할 수 밖에 없었다. 재수 없는 건 재수 없는 거지만 지금은 누가 뭐라 해도, 바로 꿩 대신 닭이었다. 왜냐하면 깜짝 놀랄 만한 새로움과 기가 막히게 환상적인 변화는 내 삶에서 부재중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페라리를 꿈의 애마로 영입하기 요원할 때, 에르메스씨를 알현하는 건 꿈도 꾸기 어려울 때 얘기! 친구는 큐피트고 사랑은 비너스며, 아르테미스라는 별명의 숙녀는 총애 받을 애첩으로 대기중인데, 일기장에 간질간질한 소망과 시시콜콜한 푸념만 기록할 수는 없는 일. 그러므로 특급 햄버거 브랜드를 창시하며, 시대를 초월할 생명수의 창업 멤버가 되고, 플레이보이의 3박자를 떡 주무르듯 할 수 있는 일, 그 간접적인 방법은 단연코 버크셔 헤더웨이의 주주가 되는 일이다. 그러니까 멜로드라마를 애정하고, 유행가를 애청하며, 유행을 애용하고, 인기를 추구하며, 재미에 탐닉하는 것도 좋지만, 그러나! 그러나 상식이란 무엇보다 그런 것이다. 일찍부터 경제 뉴스에 익숙하고, 인문교양서와 친하며, 화폐 관념이 뚜렷할 것. 그 기준으로만 보자면 미안하지만 문학은 2순위네. 그러니까 교양인은 많은데 지성인을 드물지도 모름. 대개 보면 인생에서 출발선이 늦었거나 살면서 방황을 많이 겪었거나 타고난 재능과 안목이 고유하지 않다면 단순한 시소의 원리를 즐겨야 할 놀이가 아니라 2세 교육에 대한 강박감으로 인식할 수도 있다. 곧 시소의 한쪽은 내 인생 내 사랑 내 즐거움이요, 시소의 다른 한쪽은 뭐겠나 슈퍼주니어지. 그건 그렇고, 따라서 객관적으로 봤을 때 현실성 심하게 떨어지는 초현실적 주관을 만족시키는 방도는 그분을 만나는 것이다. 그건 정말 뻔트마를 타는 것처럼 촌닭에게 살며시 업혀 가는 일. 그런데 그 촌닭은, 촌닭은 촌닭인데 황금알을 낳는 촌닭! 바로 그런 신기한 이상을 무어라고 하느냐, 다비드는 다비든데 어디산 다비드라고 한다. 그래. 다 좋다. 왜 나쁘겠나. 그러나 그분을 대체 어떻게 만나겠다는 건가! 대체 어디서 옷깃을 스치겠다는 것인가! 맞다. 그게 문제였다. 그래서 나는 나 스스로 딱따구리가 되는 방법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너구리요 두더쥐이자 디기딕디기딕~ 포니가 하루 아침에 다이애나 같은 파랑새로 변신하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인가. 당연히 어려운 일이다. 어려워도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겠지. 여간 해서는 가망성은 0에 가깝다. 그러니까 결론은 허영심을 떠받들고, 질투심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리며, 낭만적 감성을 기분 좋게 만들고, 호기심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과연 어찌 해야 하는가? 나는 어엿한 모험가로써 행동하는 수 밖에 없었다. 갑옷과 방패와 그런대로 쓸 만한 조랑말에 비해 초라하기 짝이 없을 정도로 창이 짜리몽땅할지라도 말이다. 그러든 어쩌든 좌우지간, 검갑에서 뺀 명검이 귀에서─코에서─머리 위에서 수증이가 삑삑─빡빡─뽀락뽀락─뿌락뿌락 발산될 정도 만큼 상상외일지라도 칼을 뺐으면 무라도 자르고 볼 일이었다. 그래서 나의 다음 행보는 바로 포르토피노 몽키스패너를 만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까레라는 톰의 동생 닐에게 뺐겼지만, 내게는 릴리에게 받은 블루라벨인지 골드인지 뭔지 그 카드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포르토피노에게 거하게 풀코스로 대접하기 위해 녀석을 불러냈다. 그래서 일단 향긋한 차를 마시는 걸로 시작했다. 그런 다음 어디로 갈까 행선지를 정하지 못한 상태에서 포르토피노와 나는 카페를 나올려고 했다. 그런데,
「손님. 카드 한도 초과인데요. 혹시 다른 지불 수단이 있으신지요.」
뭐라고? 그럼 그렇지! 그런데 릴리가 일부러 그랬을 리는 없다. 하지만 결과는 일부러 그런 거나 마찬가지였다. 이런 젠장!
14
톰은 놀이공원에서 매표원으로 일하고 있다. 릴리는 큐레이터로써 미술관에 적을 두고 있다. 둘 다 오락과 문화, 즐거운 인생과 아름다운 예술의 중역으로 열심히 살고 있는 듯 했다. 그럼 이제 난 뭘 해야 하지? 닐과 새롭게 친분을 쌓을 수는 없고, 환상 문학 잡지 미스테리아에는 그동안 너무 많이 들락날락해서 한동안 발길을 끓기로 했고. 그럼 혼자 남은 난 어떡한담! 그래서 일을 해야 하는데 그 일이란 게 되다가도 안되고, 안되다가도 되는 것 같아서 참 종잡을 수 없는 사랑처럼 사람 헷갈리게 만든다. 때문에 난 최근 한가지를 깨달았다. 그건 바로 불운의 연속은 새로운 운명을 불러온다는 논리. 과장된 억지 같은 포장을 생략하자면 불쾌감의 연속은 새로운 환희, 뜻밖의 착상을 불러온다는 원리라고 할 수도 있을 테고. 그야 뭐 뭔가 있어보일려고 생각해낸 말일 뿐이지만, 그래도 칼럼에서 다루기에 그럴싸한 소제인 건 부인할 수 없는 얘기다.
그건 그렇고, 젊은 무명의 지나친 열정을 잠시 가라앉히고서 여행이나 떠날까? 아니면 좋게 사무실에나 가서 지구의 자전이 느려져서 발생하는 얘기들을 다루는 TV 드라마나 볼까. 나는 이처럼 극복하기 어려운 심심함과 마냥 겨루기만 할 게 아니라 녀석을 따돌리고, 독려하고, 핀잔을 주며 놀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곧 나는 첫째로 닐이 출강하는 대-동기 부여 강연회에 구경 가기로 했고, 둘째 포르토피노와 NC에 놀러가기로 했다. 이번에는 2박자 댄스와 블루스가 번갈아 연주되는 그런 곳이 아니라 본격적인 젊음의 클럽을 목적지로 정했다. 첫째는 내 인생의 현재 스코어, 즉 행복과 불행의 득실을 따져봐야 마땅하기 때문에 꼭 필요한 일이었다. 그리고 둘째는 저번에 우연히 만난 릴리와 같은 상큼한 숙녀를 포르토피노에게 소개시켜줘야 하는 책무가 날 코너로 몰아가고 있었으므로, 따라서 난 생각을 실천에 옮기기로 했다. 왜냐하면 뾰족한 대책, 뚜렷한 복안이 없다면 강공은 가장 기초적인 방법이니까. 다른 말로 밀어붙이기. 나중 속 시원하게 차이는 게 낫지 멀뚱히 지켜보기만 하다가 삼구삼진? 그건 아니다. 그건 아니야. 벌써부터 혹시 모를 기대감에 부풀었고, 난생 처음 환상적인 신비감으로 똘똘 뭉친 아가씨를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예감으로 벌써부터 나도 모르게 떨려왔다. 난 관심 없지만, 포르토피노와 어울리는 짝을 만들어줄지도 모른다는 느낌은 날 세한 분위기로 고조시켰다. 그것은 정말 예측할 수 없는 파티일 테고, 질투심을 유발했으며,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당연한 욕망을 자칫하면 들킬지도 몰라, 라는 초조한 심정 같은 건 어디에도 들킬 일은 없었다. 그러다가,
「내가 재밌게 해줄께!」
라고 날 내내 귀찮게 하는 깜직한 숙녀를 아는 동생으로, 아마도 세상에서 제일 애매한 관계가 아닐까 단언하지 않고는 못배기는, 그런 아는 동생이 생기면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기로 했다. 나는 어쩌다 이렇게 움직이기로 결정했을까 라는 그 생각의 흐름에 대해서 추적해봤다.
사람은 살면서 부단히 뭔가를 하거나 어딘가에 가야 한다. 먹고 자고 놀거나, 학교에 가거나 회사로 출근하는 것처럼. 최소한 개처럼 짓든가 고양이처럼 이기적이어야 한다. 그건 왜일까? 왜냐하면 재미없는 삶을 운명이란 말로 변명하거나, 즐거운 인생과 행복한 사랑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이 내 팔자를 자존심이 과연 못 이긴 척 허락할 것인가, 라며 고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먹고 사는 일일 수도 있고, 신나는 인기거나 따분한 일상일 수도 있다. 다른 말로 하면 인생을 낭비하지 마세요, 슬렁슬렁, 유유자적일 것이다. 그런데 그러기 싫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로는 말로써만 합리화하는 방법인 허세랄지 선망이 깜짝 구현된 듯한 허영심, 또 대리만족이나 스트레스 해소, 기분 전환의 방법이 있다. 둘째로는 사표를 내고 이혼을 결심하거나, 제2의 모험을 다짐하고, 제3의 쾌락에 굴복하여 방탕해지거나, 제4의 환상을 찾아 일시적으로 타락해지는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가 아주 좋지도 않고 썩 불만족도 아니다? 그냥 그대로 가면서 때를 기다리는 수 밖에 없다. 어설픈 베팅 곧 즉흥적인 출전은 화를 자초할 수도 있는 법. 다른 말로 관망 또는 깐족, 이직 고민 즉 뻔트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세상이 신기한 게 뭐냐면 이 첫째와 둘째 외에도 인생의 변수를 미리미리 준비하거나 뜻밖에 전혀 예상치 못한 대타를 조우할 수도 있다는 것. 날 싫어하게 만드는 법 같은 검색어와 관련한 핑계 연구랄지, 행운과 우연 그리고 숙명이 바로 그것이다. 그렇다고 고마운 행운과 다정한 우연이 어디 흔하냔 말이다. 따라서 결론은 행동 밖에 없다. 만약 나중 후회에 따른 절망을 감수하기 싫다면! 그의 인생은 불행했다고 평가 받기 싫다면! 본인이 봐도 내 인생이 재미없고 시시해지기 싫다면 말이다. 그래서 작정한 나의 거창한 행동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내일 눈부신 성과를 거머쥘지, 모레 노란 바나나 껍질을 밟고서 느닷없이 미끄러질랑가는 몰라도 나의 행동은 바로, 일과 놀이였다.
다시 말하자면, 낮에는 동기 부여 강연회 그리고 밤에는 포르토피노와 NC. 곧 낮에는 일, 밤에는 사랑과 우정의 두 마리 토끼 잡기. 전자는 장소랄지 방법의 변화, 후자는 종목의 새로움. 곧 전자는 야생마요, 후자는 경주마에 사냥개이자 어쩌면 목마를 쫓는 광마일지도 모른다. 때문에 비록 나의 친애하는 애마가 나중 알고 봤더니 글쎄 광견으로 밝혀질지는 몰라도, 꿈과 희망은 언제나 우리의 인생을 이끄는 쌍두 마차란 진리는 변치 않는다. 이처럼 나에게 창은 펜이고 조랑말은 열정일 뿐. 고로 몽키스패너를 핑계로 나는 닐에게 살갑게 접근하기로 마음먹었다. 나중 삶에 대한 애정과 새로움을 향한 욕망이 지나쳐서 재미없음-싫증-포기라는 클린업트리오 필패 카드를 남발할지도 모르지만. 그래서 나중 애달프도록 반가운 황금마차의 문을 열었더니 염원하던 사랑과 행복은 타고 있지 않고, 그 자리에 대신 건방진 허세와 뻔뻔한 허영 뿐이라면? 그건 그때 가서!
1
일기. 날짜 없음.
어른에게 거짓말은 습관이고, 남자는 없다는 걸 좋아한다. 숙녀에게 사랑이 인생의 전부라며 속삭인 다음, 남자는 뒤돌아서서 친구들과 사랑에 대해서 절대 얘기하지 않는다. 만약 어느 연인이 헤어진다면 이럴지도 모른다. 동화풍 행복론으로 보자면 서로 축복 받는 미래를 기원해주는 게 좋겠지만 장조가 있으면 단조도 있는 법. 여자는 일기장에 그 인간이 불행해졌으면 좋겠다고 고백할 수도 있고, 남자는 모처럼 비싼 술을 시켜 놓고 바에서 마담에게 이렇게 말한다. 사랑은 없어 라고. 바텐더는 깜짝 놀란다. 3병맨에 바에서 인기 없고 짠돌이로 소문났는데 비싼 술이라니, 뿐만 아니라 주제가 사랑이라니 막 그러면서. 이어서, 여자는 무시 받거나 대화의 맥이 끊기는 걸 싫어하지만, 남자는 없는 걸 좋아한다. 저 하늘의 별따기? 필요 없어! 내가 좋아하지 않는 일? 관심 없어! 사랑은? 없어! 그게 끝이 아니다. 남녀의 우정은? 있을 리가 있나. 역시나 남자의 소신은 '없어'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인생을 알고, 세상을 보며, 사랑을 믿든 안 믿든 (남자) 어른들은 그걸 가능하다고 생각할 만큼 순진하지 않다. 도덕은 도덕이고 윤리는 윤리지만, 살아보면 욕망에 대해서 무조건 악의적일 필요가 없다는 걸 알게 되니까. 많은 얘기는 필요치 않다. 내 친구 중에 척키만 봐도 되니까. (삼류)대학 여자 동창 중에 녀석의 마수에 넘어간 친구가... 그러니까... 쉿! 그런데 사과를 딴 것도 아니고 튤립을 꺾은 것도 아님. 하지만 꿈틀꿈틀 꼼지락꼼지락 진도는 나감. 걔가 원래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숙명을 타고났다. 그러니까 남녀의 사랑 뿐만 아니라 그 뭔가는 여자도 문제고 남자도 문제다. 그 친구는 진짜로 척키 인형을 닮았고 키도 작고 음흉한데, 말은 많고 정신은 산만하다. 이리 갔다 저리 갔다 이거 했다 저거 했다, 이리 갔다 저리 갔다 이거 했다 저거 했다! 나와는 단짝이었고. 그런데 고상한 그녀들이 대체 왜 척키에게 절반쯤 넘어갔을까? 왜냐하면 몇 명인지는 몰라도 전부 다 우정 때문이었다. 그래 우정, 그것도 남녀의 우정! 그처럼 여자들이 애시당초 소녀 시절 품은 사랑의 소망은 청초한 숙녀가 되어 어차피 분산될 수 밖에 없다.
첫째, 척키과
둘째, 야수파
셋째, 꽃 들고 기다리는 해바라기형
넷째, 무섭게 생긴 카리스마
물론 보기를 계속 드는 건 일도 아니다. 다섯째, 가련한 예술가 유형. 여섯째, 돈만 많은 남자. 일곱째, 돈만 빼고 팔방미인. 여덟째, 얼굴과 키 빼고 다 가진 남자 등등. 게다가 소개팅에 나가면 실상 어디산 다비드는 기대 만큼의 인기는 없다. 어중간한 막 그렇게 애매하고 매가리없이 생긴 무난한 남자가 차라리 인기가 더 많다. 여자는 원래 착하게 생긴 미남과 내 말을 잘 들을 것 같은 다정한 남자를 좋아하니까. 숙녀는 그런 남아와 부드러운 포옹을, 달콤한 키스를 꿈꾸니까 말이다. 그런데 그 앞에서 이 허세 저 허세? 허영심도 엄연히 본능이고 학습이자 공력이다. 그러니까 결과적으로 이상적인 기분파도, 자상한 신사과도, 재밌고 웃긴 개그맨도 아닌 엉뚱하게도 척키 같은 노력파가 어부지리로 소 뒷걸음질 치다 쥐를 잡는 일이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진짜로 그렇다. 왜냐하면 거울아 거울아, 여자들은 일평생 거울만 봤으니까. 화장하고 거울 보고 얘기하랴 공부하고 일도 하며... 난 그래서 거리에서 여자를 보면 제일 먼저 그 생각을 한다. 아, 저 화장과 꾸밈은 2시간 짜리구나 라고. 그런데 또 수다 3시간? 통과! 그게 나쁘다는 뜻도 아니고 남자가 여성잡지1에 능숙한 여자를 싫어할 리가 있나. 하긴 그렇게 긴 시간이 소요되나, 으쌰으쌰 신나게 놀다가 다음 날 모이기로 했는데 나와보니 나 혼자 밖에 없드라? 그거나 그거나! 그건 그렇고, (삼류)대학 여자 동창 중에 녀석의 마수에 넘어간 친구가... 하나, 둘, 셋... 쉿! 이미 엄마요 아내이자 신앙인이든 무소속이든 문화와 함께 하는 정숙한 주민이고, 건전한 사회를 위해 기도하는 교양인일 텐데, 지난 일은 지난 일로. 그렇지만 옛날에 그 만큼 친했고, 꾸준히 척키가 노력했으며, 열심히 공들였으므로 뭔가가 가능했던 거다. 그러든 어쩌든 이제는 척키도 늙었을까? 아니다. 왜냐하면 영원한 현역일 테니까. 그처럼 남자 뿐만 아니라 여자에게서도 사랑과 우정의 정의는 명확치 않는 일이 드물지 않을 수도 있다. 몸과 마음이 분리되기도 하며, 못 이긴 척 넘어가기를 바랄지도 모르고, 끈질긴 구애에 넘어가는 연애사가 대체 왜 내게는 없냐며 마음 아파하는 숙녀도 분명 결단코 있을 테니까.
여자 입장에서 선을 확실히 그어야 하는 문제에 대해서 나는 척키와 빚어진 옛날 일을 생각하면 때로는 어떤 아득함을 느낀다. 대타로 나가 뻔트 홈런을 쳤는데, 묘하게 찐한 풋사랑은 지울 수 없는 수치심을 끝으로 한낱 우정의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만약 그때 척키가 선을 넘었다면! 그래서 척키가 나몰래 다른 친구에게 자랑했고, 파도가 이어졌다면? 시작은 달라도 그런 엇비슷한 일이 우리 주위에 잘 찾아보면 있을 수도 있다. 다른 뭔가로 시작된 일이 12번 또는 13번의 파도를 쳤고, 언니의 슬픔이 여동생의 우울증으로 이어졌으며 나중 그녀의 가족은 몰락했고, 저 중에는 성공하든 유명세든 출세한 사람도 생겼다는 어떤 일화. 그래서 여자도 단호할 땐 단호하고, 앙칼질 땐 앙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잊고 이겨내며 넘어졌다 일어나는 게 진짜 중요하니까 말이다. 그 때문일까? 나는 왠지 모르게 드럼 치고, 근육을 키우는 육체미 넘치는 숙녀와 거친 스포츠를 즐기는 여자가 멋져 보인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뭐랄까 경의에 가깝고 이상형에서는 덜 가까울 것이다. 뭐, 둘 다? (쉿) (조용조용) (소곤소곤) 이따 우리끼리...! 농담이고, 뭐 농담이 아닌 것 같은데? 진짜로 농담이고, 원래 남자는 보통 그런다. 어릴 땐 화려한 여자가 멋져 보이다가 점점 세상사에 노숙해지며 단정한 여성미를 선호하기 마련. 어쨌든 여자가 마음은 햄릿형 남자에게 주고, 몸은 프랑켄슈타인과 연애하는 일도 그래서 가능한 거다. 그런데 뭔 얘기를 하다가 유체이탈이라는 주제로 넘어왔지? 이러다 공중부양까지 가는 거 아닌가 몰라! 아, 남녀의 우정. 그건 한마디로 말이 안된다. 그래서 우정은 그와 비슷한 사랑이란 감정에게 양보하고, 남녀는 사랑이 아니라면 우정이라기보다는 친교라고 표현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굳이 막장 드라마의 특별판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 스페인어 방언을 공부해야 하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바람둥이는 본능적으로 그런다. 정실은 가능한 한 최대한 이쁜 여자를 선호하고, 바람은 이쁜 척 하는 여자를 편애한다. 드물게 글씨체가 예쁘다며 반하는 남자도 있긴 하고. 그러나 모든 남자는 바람둥이가 아니다. 더군다나 불륜을 남자 혼자 완성할 수야 있나! 불미스러운 사랑이든 우연한 남녀의 우정이든 남자에게 바람둥이 기질은 아마도 선천적이겠지만 아무나 바람 피는 것도 아니고, 누구나 그러지도 못한다. 사랑의 맹세를 잊을 수야 있나! 그래서 남자는 보통 카사노바에게 명함도 내밀지 못한다. 고로 남자는 플레이보이를 부러워한다. 그러나 선망은 본디 여자의 것. 질투는 물론 변덕까지 여자의 재능. 뭐, 변심은 사랑의 운명? 넘어가자. 뿐만 아니라 남자는 부러우면 지는 게 아니라 애초에 패자이자 숙녀의 이상형과 거리가 먼 경우가 많음. 그러므로 남자는 결국 허풍꾸러기가 될 수 밖에 없다. 지는 비교는 당연히 싫어하고. 그처럼 둘 중 하나가 아니라 둘 다다. 그러나 모순은, 농담도 거짓말이고 여자는 고급스런 농담에 매혹된다는 점. 그러니까 오늘은 어떤 남자가 무슨 거짓말을 했을까? 영웅담 아니면 한눈팔기겠지! 보나마나 뻔하다. 착한 일 1개는 생략해도 못말리는 뻥은 참지 못했을까? 어쩌면 누가 아니랄까 봐 먼저 선수쳤을 수도 있다. 대체 어떻게? 그 중에는 실제로 하는 말도 있고, 실제로 하지 못하는 말도 있다. 아 그러니까 어떻게? 난 차 욕심 없어, (누가 넌 불행해 라고 단정할까 봐) 난 행복해 난 행복해, (허당의 3박자를 갈망하는데) 난 돈 욕심 없어, 그리고 때로는 저 그렇게 꽉 막힌 사람 아닙니다 까지!
그러나 결론은 그게 아니다. 나도 본격적으로 욕망을 드러내고 싶다는 거다. 그건 대체 어떤 욕망일까? 바로, 나도 계산한 줄 안다 라는 말하기! 그런데 나중, 누군 뭐 슥 먼저 나가면 기분 좋을 줄 아냐? 너 같으면 좋겠냐? 라고 내가 막 삿대질하면서 따지면 어떡하지!
2
JS는 이번에는 아예 샐리에게 자기가 쓴 일기를 손수 보여주었다. 검사를 받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왠지 모르게 그녀를 요정으로 길들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뭐라고? 숙녀가 타인의 일기를 읽으면 훨씬 도도해지며 동화의 나라를 전전한다는 특수한 이론이라도 발표됐나! 어쨌든 그는 골상학에 정통하고 라파엘로의 그림 속 인물을 쏙 빼닮은 관상가로써 샐리의 사랑운을 점쳐줄 수는 없었으므로, 고로 그녀의 상냥한 내숭과 진심 어린 아양을 시험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샐리는 그 일기를 읽고 나서 뭐라고 했을까? 교환 일기라도 쓰자고 했을까, 아니면 JS를 아예 바보 취급 했을까. 그녀는 그의 일기를 숙녀의 환심을 사기 위해 만들어낸 풍문쯤으로 경시했다. 그래서 그는 실망했다. 그러나 겉으로 그런 체 했고, 속으로는 쾌재를 불렀다. 왜냐하면 샐리는 애교 넘치는 교태의 여왕으로써 자기를 이미 허당계의 총아이자 사교계의 기대주로 인정함을 눈치챘기 때문이었다. 결국 그는 허당학에 정통한 허세론자라는 2인자 딱지를 벗어버린 거나 마찬가지였다. 세속적인 욕망 이기적인 쾌락을 충족시킬 수는 없었으나, 재산을 탕진하고 인생이 타락해버린 호사가는 아니었으니 절반쯤 성공이었다. 그것만으로 분에 넘치는 행복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무턱대고 샐리 앞에서 춤을 출 수도, 워매 좋은그 라며 찬탄을 금치 못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본 체 만 체 하는 권위를 앞세우며 그녀와 거리 두기에 들어갔다. 너무 성급하게 친해지면 안되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그는 그 외에 특별히 재미난 일이 없었다. 역시나 심심했을 뿐.
남자의 세계는 밝고 쾌활하며 흥미롭다. 그런데 그건 거짓말이다. 어제까지는 행복했고 오늘부터는 더 행복할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뻥이다. 대체 멋진 모험은 어디에 있을까? 도박장에 있을까 공원에 있을까! 아마도 술집에는 없을 것이다. 셀 수 없이 확인했고 무수히 속았으니까. 그렇다고 비밀 클럽에? 과장 광고에 넘어가면 안된다. 어쩌면 미지의 환상은 무지개 너머에 존재하는 게 아니라 멋진 공상 속에나 숨어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문제는 그것이다. 그토록 기대하던 찐한 연애의 부재, 가슴 조리며 고대하는 흥미진진한 약속의 실종, 또 예감이 들떠서 살짝 흥분하는 축제와 무도회에 초대 받지 못했다는 것. 그래서 좋게 광고에 현혹되고 영심이의 구애에 못 이긴 척 넘어가야 할까? 이상은, 포기할 수 없는 소유욕과 근사한 화장품을 애인에게 선물하고 싶은 자존심 같은 것. 화장품? 그는 물거품 같은 대망보다는 차라리 소망이 낫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
그러나 짧은 인생 이처럼 내내 몽상에 끌려다니느니 차라리 야망을 잡으러 떠나자, 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런데 떠나기가 싫었다. 왜냐하면 목표가 막연했으니까. 목적이 불확실하니까. 여비가 간당간당하니까 말이다. 따라서 그는 두 번 다시 쓸데없는 궤변에 헤롱거리지 말기로 했다. 그야 어쨌든, JS는 하루는 샐리가 자기의 사무실 앞에서 기다릴 줄은, 하루는 이브가 미스테리아 사무실 앞에서 기다릴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그는 정녕 싫었지만 어깨 뽕은 튀어나올 수 밖에 없었고, 아티스트병은 치료될래야 치료될 수가 없었던 것이다.
3
「지금이 무슨 온갖 비밀 결사대가 난무하던 18세기니, 아니면 우리가 우스꽝스런 소년 탐험대니? 여기가 무슨 프랑켄슈타인을 만드는 연구소라도 되는 줄 아냐고! 얘가 아직도 정신을 못차리고 꿈결 같은 상상의 세계에 살고 있네. 큰일인데! 왜, 없는 비밀이라도 만들어서 갖다 바치랴? 꿈 깨고 좋게 현실로 그만 나와 이 친구야. 그럴 때도 됐다. 차라리 그럴 꺼면 우리도 클럽에 놀러가서 좋게 스캔들이나 만들자구. 마음대로 될런지는 모르겠지만. 응? 시도는 한번 해 봐야 할 거 아니냐고! 아 그런데 말 나온 김에 응? 이참에 한번 가...볼까?」
「어디, NC?」
「그래~」
「이 사람이, 얘가 사람을 뭘로 보고... 갈까? 좀 늦은 감이 없잖아 있는데!」
그들은 나이트클럽에 갔다.
그러나 성과는 전무했다.
나오면서 짓는 울상마저 전처럼 판에 박은 듯이 똑같았다.
이처럼 JS는 포르토피노와 어쩌다 친해졌다. 그런데 사겨보니 그 점이 참 좋다고 생각했다. 다른 건 다 몰라도 포르토피노는 페라리 얘기를 묻지 않는 이상 통 하지를 않는다는 것. 허나 더 좋은 건 둘 다 페라리를, 애마 뿐만 아니라 어떤 차이가 덜 심할수록 비교적 친분에 더 유리하다는 걸 누가 모를까. 그 정도 공감대는 너도 알고 나도 아는 일!
거 왜 보면 그런 친구가 있다. 친하고, 술도 잘 사고, 착하고, 사람 좋고, 으샤으쌰 잘 놀고 잘 어울리는 친구. 그런데 그 우정은 친구의 작은 단점을 감안하고 유지해야 한다는 것. 1급 허세랄지 극심한 고지식, 고루한 취향, 뾰족한 자존심, 자발, 촐싹, 제멋대로─막무가내─고집불통, 방탕, 말이 오고 가며 대화하는 게 아니라 그냥 무조건 내가 아는 정보와 내 일과표만 읊는 친구. 열거한 사항에 대해서 최소 5가지 이상에 해당하는 친구가 남자들에게는 간혹 있을 것이다. 우정에 대해서, 곧 서열에 대해서 남자들 생각은 같을 수가 없다. 나나 되니까 저 인간 돌봐주고, 접어주며, 생각해주지 나 아니면 대체 누가... 바로 그것이 마초의 우정이니까. 그럼 같이 만나서 으쌰으쌰한 결과는 어떨까? 앞에서는 웃지만 돌아서면 기분이 세한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그 친구 입장에서는 억울하다. 그럴 만도 하다. 그런데, 아니 어째서? 왜냐하면 돈 쓰고, 욕 먹고, 독박 쓰는 거니까! 유심히 살펴보면 알 수 있다. 간혹 가다 주파수가 이상하게 튄다. 그래서 딱 시간 되면 또 뭐라 뭐라 일장 연설을 시작한다. 그럼 듣는 사람은 또 그런다.
「아, 또 시작이구나!」 라고.
들을 땐 맥락을 파악하기 힘들도록 횡설수설이니까, 앞에서 얘기하면 울상일 테니 말을 돌리는 게 좋다. 이번주 로또 샀냐고! <난 어때>에 대해서 누가 아니라고 하든? 라고 답할 수는 없으니까. 듣고 보면 그런 얘기다. <자기는 야망 그런 거 없다, 나는 허세 그런 거 안 키운다, 난 호색가 그런 거 싫어한다, 난 모든 권위를 다 내려놨다, 내가 언제 그런 적 봤냐, 나 모르냐, 친구들 만나서 내가 더 쓰든 어쩌든 난 그게 좋다, 나는 돈 벌어서 늬들한테 쓰고 이렇게 사는 게 좋다, 무엇보다 난 부러운 거 없다, 난 현재에 만족한다, 난 차 욕심 없다, 내가 뭐 못할 줄 아냐, 내 스타일 아니면 나는 다 관심 없어, 나 약속시간에 늦는 거 싫어하는 거 알지?> 듣고 보면 결론은 한마디로 그거다. <난 돈 욕심 없어!> 그 한마디를 빙빙 돌려서 한 얘기 또 하고, 또 하고, 또 하고, 계속 한다. 맨정신에서도 말이다. 술 취해서 기분 좋으면 아예 그런다. 그럼 자기를 부러워하지 말지 그랬냐고! 옆에서 입도 뻥긋 안 했는데 혼자서 연극했다 코메디했다 영화를 찍고 꽁트를 하며, 아주 웃기지도 않는다.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말을 입에다 모터라도 단 듯이 말한다. 맙소사, 어떻게 딱 그런 말들만 골라서 하는지 너무나 신기하다. 정신 연령이 막 스무 살도 아니고 딱 몽정기에서 멈춰버린 유형이다. 술 마시는 속도는 날 따라와라, 내가 편안하게 식사하실 때는 옆에서 절대 잔소리하지 말아라, 어디 가든 뭘 먹든 다 전부 나 하자는대로 하자, 등등. 그래서 그 부류는 여자에게 인기가 없다. 잠깐 반짝했는데 당나귀 청춘 시절이었음. 이런 유형은 여자 입장에서 보자면 한마디로 버티기 힘들다. 사겨도 작별은 정해진 수순이고, 이혼은 숙명이다. 답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알고 보면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꾹 참고 사시는 여인네들, 꽤 된다. 아무튼 친구의 자동 재생 허세를 듣다 듣다 못 참아서 주변에서 슬슬 피하면 어떻게 될까? 술집에 가서 돈 주고 할 수 밖에 없다. 정신과 전문의의 조언을 구할 필요도 없이 뻔하다. 만약 얘가 일기를 쓴다면 씌여질 내용은 투정 아니면 불만이 전부다. 절반은 욕일지도 모르니까. 그래서 아마도 안 쓸 것이다. 이런 친구는 말이 아니라 그냥 개다, 들개! 심지어 좋아하는 여자라면서 사진을 보여주는데, 사진을 봤더니 글쎄 얼굴이 안보인다. 뒤통수를 평가하라는 건가? 남자들 잘 아는 용어다. 일명, 도촬! 뒤에서 비스듬히 찍은 거다. 도시의 굶주린 늑대요, 먹이를 찾아 세상을 헤매는 하이에나이자, 주연들 변두리만 떠도는 조랑말이다. 첫사랑이 어쩌고저쩌고 연애가 이러쿵저러쿵 대부분 쓸데없는 얘기고, 이 남자의 머리 속 주된 생각은 어제도─오늘도─내일도 오직 그것이다. 딱, 하나! 과연 그건 무엇일까? 바로,
「오, 땡큐!」
그분도 연상하기를 좋아하는 장난꾸러기니까. 물론 이 또한 좋은 친구이자 각별한 우정이지만 말하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꿈이 있다는 건 선이 아니라 악일까? 아니다. 그런데 왜 대망을 터부시하면서 로또는 일생의 취미고, 소극적으로 긴밀히 자산 관리 꼼꼼하게 다 하나. 그러면서 안그러는 척! 재수없어. 돈이 좋기는 좋네 라는 말도 못해, (직접적으로) 난 돈 욕심 없어 라는 말도 안해. 차라리 나 그렇게 꽉 막힌 사람 아니다, 라고 하면 웃기라도 하지. 그 대신 빙빙 둘러서 이리 갔다 저리 갔다, 이 말 했다 저 말 했다, 똥개였다면 콱 그냥 발로, 워─워─워! 농담이고, 그러니까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고 좋아하는 술 원없이 사줘서 마담과 짜서 녀석을 꽐라를 만들 치밀한 작전 계획은 대기중이다. 그건 그렇고, 말하자면 돈 욕심 있는 건 죄일까? 그럴 리가 있나. 이 세상에 돈 욕심 없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왜 어느 시간이 되면 요술에라도 걸린 것마냥 따따부따, 따따부따, 방정을 참지 못하는 것일까? 뭔 병인가! 왜일까? 왜냐하면 그건 천성이고 취미이자 고독 그리고 기분 때문이다. 그러니까 돈 쓰고, 욕 먹고, 독박 쓰는 거다! 뭐니 뭐니 해도 외로운 허당이니까. 무엇보다 돈 욕심이 있다, 없다? 있으니까! 돈 욕심 없기는, 개~뿔! 많을랑가는 몰라도 적어도 허세만큼은 있으니까. 그 욕심마저 없어봐라, 허세 보기 불쌍해지는 걸로도 모자라 허열마저 고개 푹~ 숙일 것이다. 그런데 말을 가만히 들어도 들어도 자기는 돈 욕심이 없데! 뭐야, 덜렁덜렁 고추 달렸는데 불규칙적으로 여자들 그거 무슨 마법에라도 걸리는 건가? 이런, 젠장! 그렇지만 얘도 인정 많고, 존재감 있고, 치고 빠질 줄도 안다. 으쌰으쌰라면 선두 주자다. 그래서 자기 좋다는 여자도 드물지만 있긴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거다. 자기는 어리고, 엉덩이와 가슴 크고, 직업 좋고, 이쁘고 착한 여자를 좋아한다는 것. 그렇지만 거울을 보면 훵한 머리카락, 거친 피부, 자칭 조각 미남이던 얼굴도 갔고, 사람들의 시선을 느끼면 알 수 있으니까 눈은 많이 낮아졌다. 그래서 어리고, 엉덩이와 가슴만 크면 만사 OK다! 하지만 그녀들에게 그분은 삼촌이고 아빠인 경우가 많다. 연예인병에 걸린 일반인의 전형적인 사례다. 아조 불치병이다. 착하면 뭐해, 그냥 허당인데. 웃자는 의도로 말해서 그렇고 허당 중의 상허당이 봤을 때는 그렇다는 말이다. 하지만 JS의 친구도 바보가 아니다. 아무한테나 그러는 게 아니다. 아무 때나 그러지도 않는다. 또 친구가 농담과 장난과 습관을 받아주지 누가 받아주겠나. 곧 이런 유형의 넉살인지 허세도 받아줄 만한 1범주 안짝의 친구에게만 이상한 친밀감을 표시한다. 드물게 핸드폰 전화번호부의 2범주 그룹에 해당하는 성격 좋은 친구에게 들이댈 수도 있는데, 그 친구는 성격 좋다는 얘기를 왕왕 듣는 사람이라 또 그럭저럭 이해하고 넘어갈 것이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그날따라 분위기 세하게 3범주 저쪽의 지인에게 그랬다가는 어떻게 될까? 아무 일도 없을 수도 있고, 나중 소심하게 돌려받을지도 모른다. 만약 종종 그랬다가는... 아아 (설레설레)! 사람은 이처럼 각자 민감한 구석이 있기 마련이다. 누구는 어떤 욕심에 대해서 강박관념을, 누구는 고소공포증, 누구는 건망증, 또 수전증과 건망증도 있다. 그러나 머머증이면 오히려 나을 것이다. 병이 있다거나 장애가 있거나 불우한 환경이랄지 딱한 사정이라고 없을 수는 없을 테니까. 따지고 보면 원인은 스트레스다. 짜증 지수가 오르락내리락하다가 임계치를 넘어서면 최면술사의 (딱) 소리를 듣고서 로보트가 되는 식이지. 그리고 소원은 그거다. 지금보다 한 단계든 열 단계든 그저 좀 더 잘 사는 것. 잘 먹고 잘 살고, 한마디로 웰빙! 그게 전부다. 제2의 인생 목표도 없고, 꿈에 대한 원대한 장기 전략도 필요없으며, 제7의 전성기가 부응하여 각종 조명과 화려한 거울을 바라는 것도 아니니까. 단지, 좀 더 좋은 여건에 풍요로운 처지에 부분별한 사치를 누구도 아닌 바로 내가 제어할 수 있는 위력을 갖고 싶어 한다는 점. 그거 말고는 없는 선량한 동네 아저씨에 불과하니까 말이다.
JS는 그래서 허세 상급에 동등히 맞설 수는 없기 때문에 그랬다. 혼자 속으로 웃거나 샐리와 함께 흉보거나! 그는 지존이다, 어디서 굴러왔는지 몰라도 데굴데굴 뭔가가 굴러오셨다는 둥, 응? 멍멍~ 멍멍멍~! 알고보니 초승달이 뜨거나 회사에서 짜증나는 일이 있으면 꼭 짓는다는 걸 알게 됐다는 둥, 촌닭님께서 이번에 뭐라고 하셨다, 이번에는 허당 누구에게 새로운 얘기를 들었다, 개 풀 뜯어먹는 거도 아니고 그분께서 뭐라 하셨는지 너 아니? 아 글쎄 쩜쩜쩜...! 그렇게 말이다.
아, 잠깐! 그런데 남자의 우정이 일부 이럴진대, 웃자고 일부러 흠잡아 이러할 터, 그럼 여자의 우정은? 아아, 바로 그래서 그때 만난 그 숙녀께서 그리 말씀하셨구나. 이제 알겠다. 이제 알겠어.
뭐 어쨌든 JS는 허세의 패자, 허영심의 왕자로 군림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칼럼을 써서 돈을 벌어야 했다. 그가 이번에 쓴 컬럼은 이처럼 주제가 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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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돈 욕심 그리고 강박증
내용: 멜로드라마에서 듣기 어려울지도 모르는 말, 돈독. 지나치지 않을 땐 돈 욕심. 실현되면 호사와 풍요요, 부족하면 이루지 못한 야망이고, 기분 따라 분위기 따라 가난도 됐다가 특별한 사랑도 될 수 있는 것. 그처럼 아동의 소원과 유년의 상상, 숙녀의 선망, 남자의 대망은 물론 소소한 행복까지 좌지우지하시는 분. 어쩌면 사랑의 감정 그 위에서 존경 받으실지도 모르는 경이로운 존재의 이름은 바로 돈이다. 그 실체는 복잡하지도, 대채롭지도, 추상적이지도 않고 그냥 돈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람들의 그것에 대한 느낌과 응대와 생각은 시시각각, 가지각색, 변화무쌍이다. 나는 친구 녀석이 왜 하필 돈 욕심에 대한 강박증에서 벗어날 수 없는지는 모르겠지만─모르긴 뭘 모르겠나─그와 별개로 나는 돈을 좋아했다. 지금도 좋아한다. 돈을 사랑했고 돈을 동경하며 돈과 친하고 싶었다. 풍족하면, 사석에서 하는 말로 지갑이 빵빵하면 일단 보고, 듣고, 입고, 놀고, 뭘 하든 하는 수준이 비교적 월등해질 것이다. 눈높이도 올라가고, 씀씀이도 늘어나며, 내 여유가 생기니까 주위에 베풀 수도 있다. 없을 때부터 알게 모르게 가능한 방법으로, 그게 더 좋긴 좋겠고. 더군다나 돈으로부터 자유로우면 시간을 살 수 있고, 하고 사며 놀 수 있는 한도가 눈에 띄게 늘어난다. 한도가 좁은 것과 안 그런 것은 큰 차이가 있다. 어떤 여자들의 드문 우정처럼 친구의 비교 하위와 열등감에 대해서만 칭찬하지는 않겠지만, 그동안 친구로부터 호혜를 받았던 만큼 그 우정의 성격을 똑같이 되돌려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든 어쩌든 분풀이처럼 비춰지지 않기를 바랄 수 밖에. 하지만 살짝 재수없을지라도 졸부이고 싶은 마음은 변함없다. 솔직함이 손가락질 받을 일이라면 엄숙히 손가락질을 받고 싶다는 거니까. 그래도 일류 도박사가 아닐지라도 오히려 카드게임처럼 얹고, 더하고, 곱해서 베푸는 일은 문제도 아닐 테지. 만약 지금에 비해서 나중 형편이 훨씬 풍족해진다면 말이다. 만약 그렇게만 된다면 도량을 베풀었던 친구의 화법에 거울을 비추면서 자, 이제 그 조명 늬가 받아봐라! 라면서 나도 설마 그렇게 되면 어떡하지? 친구와 똑같이 심심하면 '너 같으면 기분 좋겠냐' 라면서 난 어쩌고저쩌고 그러면서 허세로 친구의 머리 꼭대기에 올라서는 일. 어떻게 하는 일인지 꼭 좀 알려야 한다면 그건 일도 아니다. 로또만 당첨된다면 아주 그냥, 라는 게 바로 허세다. 다만 허세는 상황에 따라 들쑥날쑥 리듬만 타면 된다. 그러나 나의 소원은 그게 아니었다. 결점일 수도 있지만 달리 보면 장점일 수도 있는 친구의 허세를 굳이 되돌려줄 필요가 있겠나. 그게 아니라 나는 지성이면 몰라도 재력은 자신의 어렸을 때 나쁜 기억 같은 일을 사전에 차단하는 데 일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나는 '돈 욕심'이라는 주제에 대해서 차라리 허세 대신에 허영을 택한 것이다. 뿐인가? 다망과 다몽만으론 부족할 테니 여차하면 다작과 다변은 상시 대기중이었다. 그와 같은 미지의 가능성을 부러워할 수 밖에 없는 습관은 아마도 타고났을지도 모르겠고.
그러든 어쩌든 그건 재미도 없고, 주제도 아니며, 관심도 없으니까 나의 어렸을 적 나쁜 기억이 뭔가를 알아보자면 이와 같다. 5살은 아니고 7살? 아니 6살이었나. 대충 그만했을 때 나는 옆집에 사는 남자애와 같이 놀았다. 옆집 사는 남자애는 동생이었고. 그렇게 둘이 집 앞에서 놀다가, JS는 또 TV에서 본 걸 따라한다며 (걸레부분이 빠진) 밀걸레 자루 같은 걸 돌리다가 봉이 옆집 꼬마의 귀를 타격하게 됐다. 그래서 옆집 꼬마가 펑펑 울길래 우리는 같이 그 애 집으로 갔고, 부모님을 만났다. 달래든 안심시키든 내 잘못이고 울음은 그쳐야 했으니까. 그래서 그 애 부모님인 옆집 부부가 나와서 사랑스럽고 귀여운 아들이 엉엉 우는 걸 본 거다. 딱 보자마자 그 애 아빠는 일언반구도 없이 내 뺨을 다짜고짜 후려쳤다. 그 우악스런 어른의 거칠고 커다른 손으로, 힘차게 말이다. 그 일은 일종의 불상사였지만 불행 중 다행이라면 지금 이렇게 멋진 척 글을 쓰는 일. 그래도 어린이가 그렇게 맞을 때 기분은 완전 꽝이었다.
철썩~!
곧바로 거침없이, 나는 그분께 좋은 얘기를 듣지 못했다. 그 애 아빠는 택시기사셨고, 일하다 낮에 집에 오셔서 쉬시는 중 하얀 와이셔츠를 입고 계셨다. 당연히 꼬마의 엄마는 말리셨고. 나는 그러고 보면 택시와 인연이 많다. 중학생 때 독서실&야구 일원이었던 동네 형들과 최신 영화를 보러 어느 형 집에 우르르 몰려 갔을 때, 그 형 누나들에게 손꼽혔던 일. 그 형의 아빠도 택시운전수였고, 그 가운데 인정 못하던 친한 형의 아빠도 택시운전수였으며, 함께 살며 같이 성장했던 사촌형의 아빠 곧 외삼촌도 택시운전수였고, 나도 나중 택시운전수를 잠깐 했었고─택시 회사 사장과 대판 싸운 일은 넘어가고─내 형도 그 업계에 한동안 몸담았던 기간이 있었다. 그건 그렇고, 그 뒤로 그날 일을 나는 영원히 함구했다. 집에 가서도 말하지 않았고 장래에 친구는 물론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그 뒤로 일기처럼 혼자 소셜 네트워크에 낙서처럼 적은 게 전부였다. 그거 하나 빼면 옆집 동생의 아빠한테 나는 영원한 죄인으로 남은 거였다. 그래서 내가 그 일에 대해서 느낀 점은 세 가지다.
첫째, 사람 수준
둘째, 동네 수준
셋째, 사회 수준
첫째는 인품-인격-인성일 테고, 둘째는 돌려 말하지 않자면 돈과 관계된 것이다. 셋째는 시대가 그랬다. 저런 일을 공감하는 걸 넘어서서 비슷한 경험자를 찾는 건 전혀 어렵지 않은 일일 테니까. 수평보다 수직을 존중했던 시대. 권력과 돈이 전부인 사회. 지금이니까 인권이네 언론의 자유네 뭐네 의사 표현이 자유롭고, 글과 말의 구분이 모호할 수도 있지만 당시는 알고 보면 단언컨대 참말로 구식이었다. 모든 게! 하지만 추억은 향수를 부르고,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고, 회상은 예술적 착상과 친할 수도 있다. 곧 누구나 사춘기와 침체기가 있듯이 하나의 과정이라는 뜻. 그때가 아마 존 매켄로, 보리스베커, 카트리나비트가 현역이던 시절인가 그랬을 것이다. 얘기하자면 말도 못할 셋째는 논외로 하고 첫째와 둘째에 집중해서 논하기 전에 저 1-2-3이라는 큰 그림의 원리만 간략히 살펴보고 넘어가자. 뜸들이지 말고 칸도 띄지 말고 곧바로 말이다. 1에서 3으로 갈수록 선택은 어려워지고, 3에서 1로 갈수록 변화는 쉬워진다. 1~3 모두 좋은 쪽으로 비교적 편차가 좁은 걸 뭐라 하냐, 건강하다 윤택하다 잘산다 라고 한다. 떵떵댐과 호의호식이라 표현할 수도 있지만 근소한 차이는 있을지언정 어차피 똑같은 웰빙일 뿐. 그리고 도시와 시골의 인프라스트럭쳐가 거의 균등하면 선진국이고, 한 종목에서 고급과 보급형의 차이가 월등한 건 다름 아니라 내 친구 이름들이다. 가령 조니워커, 발렌타인, 듀어스, 잭 다니엘스 등등. 또 3의 수준이 경직됨에서 밝고 다채로움으로 바뀌는 건 발전이라고 한다. 갑자기 바뀌면 혁신이요 뒤돌아 봤을 때 조금은 실소가 나오는 건 시대상 때문이라고 한다. 보수란 게 그렇다. 하늘과 땅을 왔다 갔다하고, 99퍼센트는 모두 보수며, 토끼식이든 거북이식이든 진보라면 몰라도 퇴보가 아니면 다행이란 점. 그러나 거꾸로 가는 건 보수가 아니다. 당시 보수 하자는대로 요술지팡이가 효과음을 발생시켰다면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건 별로 없었을 것이다. 허나 사랑은 아픈 만큼 성숙해지며, 인생은 시련을 거친 다음 진정코 세상의 원리를 깨닫게 된다. 신비한 환락이 무엇인가, 환상머신은 어디에 숨어있는가, 내 님은 속으로 무슨 생각을 주로 하며, 행복의 의미는 무엇인가 라는 주제와 수다는 물론 오답까지. 게다가 명검은 부단한 담금질을, 만선은 끈질긴 시행착오를, 풍년은 추운 겨울을 필요로 하는 건 만고의 진리다. 싸구려 위스키라고 우습게 보나 섭섭해도 유분수지, 어디 딱 그것만? 맥주든 뭐든 막 띄엄띄엄 본다는 게 아니라 호호호, 그러니까 여복은 행운과 천생연분인 것이다. 뭐 그건 그렇고 말하자면, 쉽게 말해 첫째는 BMW─BWV─페라리─에르메스고, 둘째도 그것이다. 단지 다른 점은 첫째는 개인이고 둘째는 집단이라는 점만 다르다. 첫째가 모여서 둘째가 된다. 첫째라는 지성과 교양, 쾨헬 번호에 대한 취향 그리고 탁월한 안목도 중요하다. 하지만 돈이면 백작도 공작도 밤의 제왕까지 되는 세상, 그보다는 돈이 더 중요하다. 그러면 왜 지적 능력과 예술적 구미와 도덕적 인품보다, 돈이 더 중요할까? 왜냐하면 후자에 대한 내 만족도에 따라 전자는 어느 정도 영향을 받거나 조금은 변하기 마련이니까. 물론 첫째가 중간 이상이 된다는 전제 하에 말이다. 게다가 포장하고 가면 쓰고 적당히 연기하면 자서전도 대필할 수 있고, 동기 부여 비디오도 만들 수 있으며, 자선재단 하나 뚝딱 만드는 건 일도 아니다. 삼류 드라마의 그 흔한 (평)대사가 뭔가, 돈으로 안되는 일 어쩌고저쩌고다. 그처럼 현대의 신은 돈이 아닐까 라는 의아함 때문에 내 친구도 돈을 그렇게나 극렬히 부정하는 것 아닐까? 그러니까 절대 부정은 절대 긍정이라며, 이따금 사회의 범죄와 개인의 사랑이 혼동되는 일은 현실과 허구에서 왔다 갔다 한다. 사실이 그렇다. 피자 배달원의 경험 뿐만 아니라 택시업계도 저 첫째와 둘째에 따라 팁은 거의 정비례할 수도 있다. 최소한 말이 통하고, 법을 지키며, 선을 넘지 않는 확률이 비교적 높거나 낮을 수 밖에 없다.
자, 그럼 논설이 건조하고 평론이 재미없을 시간이 되었으니 살짝만 삼천포로 빠져볼까? 뭐 그럽시다, 쉬어가지 못하란 법도 없으니! 그러니까, 그렇게 돈이라는 개념이 중요한데 대체 왜 그처럼 JS의 친구는 돈에 대한 욕망을 터부시했을까? 왜냐하면 한마디로 허세, 다른 말로 충족되지 못한 야망 때문. 속으로는 탐미와 환희와 쾌락과 기쁨과 딸랑딸랑, 뿌잉뿌잉, 반짝반짝, 새콤달콤 그 사정없는 기쁨과 끝장나는 재미와 내 방식의 즐거움에 환장하는데, 그런데 나는 거침없는 기분파에 무욕에 금욕주의자다? 순진하네, 착하구만! 모순이 이만저만하지 않음. 정신의학과 교수님의 강의식으로 설명하자면 이럴 것이다. 원인은 아마도 결핍이다. 찐한 사랑의 경험은 아마도 전무하고, 그렇다고 순수한 사랑의 꿈을 접을 수는 없으며, 허세는 되는데 허풍이 안되니까, 그러므로 남자들 세계에서 쌓인 게 많은 것이다. 쌓여도 이만저만 쌓인 게 아닐 테지. 알고 보면 아마 말도 못할 걸! 끈끈한 우정이란 자랑의 형식, 뽐냄의 규칙, 과시의 층위가 고만고만해야 성립하기 쉽다. 뽐낼 줄도 알고 때에 따라 배짱도 두둑하며, 허세부릴 때 허세부려야 너도 좋고 나도 좋다. 개처럼 벌어 정승처럼 쓴다, 라는 말도 좋지만 이왕이면 정승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쓰는 게 더 좋지 왜 안 좋겠나. 하오나, 너무 많은 걸 바랄 수는 없고 격이 높으면 웃기기도 힘들다. 제약이 많으니까. 허세는 리듬만 타면 되고 나설 때와 참거나 물러설 때만 구분하면 그만이다. 그게 바로 중간이고 미덕이다. 그처럼 친구뿐 아니라 동료를 비롯해 여러 교분 또한 허당의 3박자가 서로 그만그만해야 교분은 돈독하며 안정적일 것이다. 적어도 관심사나 잇속, 목적, 친교 중에 적어도 하나의 공통점은 꼭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마음이 딱 맞거나 오래 사겼거나 혈연, 혹은 속셈이 있을 테고. 곧 그분들만의 리그에서는 농담이자 장난이며, 허풍에 영웅담이고, 절반은 사실인데 경주마 사이에 당나귀나 조랑말이? 길을 잃고서 멋모르는 야생마가? 웃고 넘길 질서가 누군가에게는 한마디로 뻠프질이 된다. 남 비위 맞추는 일이 아니라 놀이일 뿐인데 그게 안되니까 가면을 써야만 한다. 프로 1단부터 9단이 주류인데 아마추어가 명함을 내밀겠나 어쩌겠나. 다 된 밥에 코 빠졌다고 일부러 교묘히 져주는 건 사석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프로와 아마추어는 방망이부터 다르다. 알류미늄이냐 나무냐 그렇게. 만약 특기가 뻔트라면 솜방망이! 그 이질감의 쉬운 예가 뭐냐, 동성애자다. 남자 세계에서는 허세 지수가 극심하게 낮거나, 허세는 되는데 허풍이 안되는 남자도 마찬가지. 영심이 세계는 말할 것도 없고. 그럼 그처럼 오래 참고 오래 상처 받은 정체성의 소유자는 겉으로 태연한 척 연기했던 제2의 자아 때문에 쌓인 울분을 어떻게든 풀고 발산하게 된다. 곧 채워지지 못한 욕망을 실현할 수는 없으니까, 그러므로 참 듣기 이상한 허세는 또 어딘가를 향해서 으샤으쌰 뻠쁘질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그분은 어쩌면 동물의 천국 아프리카를 동경할 수 밖에. 그러나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사회생활에서 어떤 식으로든 으쌰으샤는 피할 수 없는 법. 하루는 동료가 얘기한다, 오빠 나 사랑해? 라고. 또 하루는 딴 친구가 말한다, 내가 오빠 이럴려고 만나? 신입도 거든다. 오늘 어떤 장면을 내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야 말았다고 말이다. 낄 데 안 낄 데를 가리고, 빈말 참말도 잘 구분하며, 할 말과 할 일과 해야 할 역할에 충실하며 정도껏 성실히 살았던, 나는, 정작 바보처럼 언제나 듣고만 있어야 하다니! 혹시 내가 세상을 잘못 살았던 건 아닐까, 설핏 때로는 그런 의문이 든다? 에이~ 그 정도의 문제가 아니다. 뿐인가? 이따금 전문 바텐더가 아니라 아르바이트 바텐더조차 자길 3병맨이라며, 까도남 - 까고 싶은 도시의 남자라며 대놓고 놀린다. 동네 북이 따로 없는 거지. 이젠 뭐 술집에도 오지 말라는 거야 뭐야? 어? 뭐가 어째? 사람 미치는 일이다. 물론 그분께만. 아마추어 허세남은 귀에서 피가 나고, 커피포트는 쉴 줄을 모르며, 아조 환장허고 미치는 거지. 하루 이틀도 아니고 말이다. 그런데, 응? 사연이 그러할 터, 그런데~, 아아 만족스럽지는 못하더라도 <허세-연애사-허풍>이라는 그 허당의 3박자 가운데 조촐하게 허세 딱 하나만? 결국 남은 건 자존심뿐! 게다가 허세도 허세 나름. 변덕스러운 취향과 갈대 같은 허영심, 봄바람처럼 설레는 자존감과는 다르지만 거 참!
자, 한번 생각해보자. 방탕과 건전 사이에서 중립을 지키며 트집 잡기 애매하게 양다리를 걸치는 플레이보이의 3대 요소가 뭔가? 그건 바로 황금, 주색, 인기 그 세 가지다! 단, 주색을 술과 여자로 나누면 4대 요소. 각자 하나 빼고 하나 넣고, 편집은 엿장수 맘대로. 그런 상남자의 꿈에 대해서 걔는 평범한 형편─친한 친구들 사이에서 최소한 꿇리지는 않음─적당한 평판─호인이냐 탕자냐, 호인이다─그외에... 오, 저런! 거친 남자 세계에서 어중간한 허세와 뻣뻣한 자존심뿐이라...! 자고로 허풍의 한 유파는 이런 것이다. A라는 남자가 살면서 미녀1명과 선녀9명을 만났다고 치자. 그런데 B라는 남자는 미녀0명과 선녀1명을 만났다고 하자. 예를 들어서 말이다. 일단 허세로 치면 둘 다 상급이다. 허세의 품위가 아니라 허세의 정열이! 그러나 허풍은? A가 미녀10명을 만난 건 기정사실이고 B는 재밌어도, 지겨워도, 짜증나도 틈틈히 일생 동안 A의 허풍에 실소로 일관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A는 허세와 허풍이 다 되는데, B는 허세도 어설프니까. 실제로 B의 또 다른 친한 친구들을 보면 A 유형이 대세다. 말 한두 마디만 들어봐도 견적은 금방이니까. 그러니까 이처럼 연애사가 되는 허세와 연애사가 안되는 허세가 만나면 승자는 과연 누굴까? 답은 생략하기로 하자. 이미 들었다 놨다 밀었다 당겼다 다 해놓고서, 뭐-뭐라고? 통과! 그렇다고 관심사가 다양하지도 않을 테니 진퇴양난이군. 결론은 허세꾼과 바쿠스가 되는 방법 밖에는 없을까? 결과적으론 YES! 사실이 그렇다. 뿐만 아니라 둘 다 좋아하니까. 이 일을 대체 어쩌면 좋을꼬, 대관절 그분을 누가 위로해주지? 친구 아니면 마담인데, 둘 다 각자 인생을 살아야 하니까 답은 <성에 차지 않는> 사랑이든 뭐든 스스로 찾는 수 밖에. 가령 오래 공들였고, 프로팀 구단주는 아니지만 본인이 아마추어 동호회 창단주며, 돈과 나이와 지분과 연줄등 뭘로 봐도 본인이 최상일 테니, 축구단 조마조마같은데서 깍듯하게 대우 받는 수 밖에. 그런데 뭐 자기는 모든 권위를 다 내려놔? 완벽한 권위주의자에 어중간한 황금만능주의자다. 여자 후배들과 친구의 여자친구나 아내들이 하나 같이 나를 착한 오빠로 인정한다며, 사실은 사실이니까, 자화자찬? 그건 좋다마는, 왜 나쁘겠나, 그런데 중요한 건 여자를 못 꼬셔! 허풍꾼들 앞에서 몸은 어른인데 마음은 유치원생, 더욱이 표정은 불쾌하고 심정은 거북한 그림. 꼭 허풍의 종결자가 아닐지라도 내막을 상상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충전된 화염방사기와 바쁜 커피포트를 어떻게 하지도 못한다. 전적도 안되고, 허풍도 안되며, 평점심마저 일생 완패-연패-석패-참패-전패였다. 인생은 짜증나고 세상은 말세다. 그래서 스무 살 이전을 시골에서 보냈던 고향 친구에게 자주 연락해서 귀찮게 하는 수 밖에 없다. 그 친구는 내성적이고 말이 그다지 많지 않은 친군데 딱 이런 식이지. 쌓이고 쌓이고 또 쌓여서 하는 말이, 내가 따따부따 어쩌고저쩌고 그런데 도대체 왜 나는 이 모양 이 꼴로 살아야 하느냐? 라는 말이 목구멍에 턱하니 막히듯이, 그분은 '나는 돈 욕심 없어'라는 말을 돌리고 돌려서 하고 또 하고 또 하고 계속 할 뿐이다. 덤앤더머의 최고봉이 따로 없다. 원래 상남자들 대화가 절반은 이렇다. 20년 사귄 우정인데 서로에 대해서 잘 모르는 구석이 굉장히 많은 경우가 다반사다. 사랑 뿐만 아니라 우정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다. 운명조차 때로는 새로움을 선호하기도 한다. 오늘 친한 이 사람들과 내가 10년 후에도 친할 수 있을까? 모르긴 몰라도 지금과는 많이 다를 것이다. 그래서 지금 잘해줄려고 하는데 그 인간이 꼭 내 성질을 건드린다 어쩐다, 오늘도 어딘가에서 마초들은 티격태격일 것이다. 안 그러면 재미가 없으니까. 철들면 안되니까 말이다. 그건 그래도 사람은 분위기도 맞추고, 각자 기분도 고려하며, 상대의 마음도 떠볼 줄은 알아야 한다. 신데렐라의 유리구두가 내게 맞는다고 남들도 다 맞는 게 아니니까. 이처럼 남이 바다로 가든 산으로 가든 어쩌든 큰 관심 없는 게 상남자의 규칙인데 무슨 시도 때도 없이 나는 돈 욕심 없다, 나는 돈 욕심 없다? 그게 대체 뭐하는 쇼인지 숙녀의 마음으로써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하오나 그것도 어떻게 보면 행복일 수 있다. 아니, 복에 겨운 거다. 행복의 비명이 따로 없는 일이다. 그게 바로 인생을 대하는 밝은 자세이자 세상사를 바라보는 관점이니까. 어쨌든 허영심은 이처럼 허세의 작동 원리를 분석할 줄 아느냐, 모르느냐에 따라 행복의 아리아가 2박자인가 3박자인가로 구분될 수 밖에 없는 운명. 곧 그 흔한 촌년의 반쪽짜리 사랑을 간직할 것인가, 아니면 세련된 프리마돈나로써 순애보와 인기와 조명과 함께 고결한 사랑까지 모두 독차지할 것인가로 나뉜다. 허세의 작동 원리를 모르고서는 발레리아의 근사한 행복은 모래성 같은 허상이거나 부러움과 질시에 대해 강박증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저급 허영심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그대 친애하는 영심이시여! 꼭 그런 건 아니지만 때에 따라, 아는 게 힘이랍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저 첫째 '사람 수준'을 둘째 '동네 수준'이 리드하는 원인은 무엇일까? 했던 말 또 할 수는 없으니까 이제는 다른 이유를 또 하나 들겠다. 남자에게 야망은 2가지다. 첫째 꿈의 완성, 둘째 자아 실현. 첫째는 돈으로 할 수 있는 일이고, 둘째는 돈으로만 승부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예를 들어 첫째는 1장짜리 자동차, 1장짜리 건물, 1장짜리 그림, 1장짜리 비밀을 사면 되는 일이다. 그러나 둘째는 그게 아니다. 내 마음에 드는 영화를 만들고, 대중의 인기를 한몸에 받는 유행가를 짓고, 이 정도면 자타공인 천재의 작품이요 희대의 걸작이라 칭송하면 썩 부끄러울 만한 사랑의 시를 쓸 수 있다는 것! 그게 바로 둘째다. (용어는 살짝 부정확하거나 개인차가 있을 수 있지만 그건 필자 잘못이고, 그 차이에 대한 의미를 이해하는 수완을 발휘하자) 하지만 둘째가 꼭 그처럼 재능을 필요로 하는 성격의 이상주의만 인정하는 건 아니다. 적당히 나 좋아하는 일을 하고, 즐겁게 놀며, 세상을 알아가는 일도 둘째라고 할 수 있다. 곧 사람에 따라 첫째와 둘째가 완벽히 동등할 수도 있고, 교집합이 있을 수도, 완전히 다를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내 안의 현실적 환상과 미지의 이상조차 일치하지 못하기 때문에, 고로 첫째보다 외부 환경 요인이라는 둘째와 함께, 파도타기로 알게 된 허당 사교계의 영향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게 꼭 나쁘게만 볼 수도 없다. 예술업으로만 놓고 봐도 그건 알고 보면 값진 인생 수업일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아무튼 꿈의 완성과 자아 실현의 평균은 뭐 적당히 겹친다 가정하고, 왜 드라마와 사석에서 우정과 사랑이 돈을 자꾸자꾸 귀찮게 하며 돈-돈-돈하는지 그걸 유추해 보자면 아마도 이럴 것이다. 즉 다음과 같은 질문에 대해서 나는 명쾌히 YES라고 단언할 수 있는가? 라는 것. 질문은,
나는 현재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가?
나는 지금 내가 하고 싶었던 일에 종사하는가?
대답이 '네'면 행복도, 희망도, 꿈도, 사랑도 다 가까이 있을 가망성이 크다. 그러나 대답이 '아니오'면 몇몇 유형으로 나뉘겠지만 아마 이렇게 말할 공산도 아예 없지는 않다. 어떻게? 나는 돈 욕심 없어, 나는 차 욕심 없어, 나는 행복해 나는 행복해! 나만 행복해, 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는 불행하다, 누가 그럴까 봐 지레 겁 먹고 그러시나? 아마도! 그런데 아무래도 그 말이 거짓말이라는 점, 듣고 또 듣고 수없이 듣다보면 알게 된다. 오늘도 어느 숙녀는 그 말을 들으면서 한숨을 쉬실 테고, 그녀의 엄마는 이미 달관과 환멸의 경지에 다다랐을 수도 있다. 즉 내가 좋아하는 돈과 호사와 사치와 기쁨에 대해서 나는 욕망이 없다고 부정하는 건 허세남의 투정 어린 습관일 뿐이다. 또는 나는 실제 썩 행복하지 않지만 나는 행복하다며 거짓말을 하는 부류도 있다. 나아가 괜히 따따부따 떠들거나, 내가 좋아하는 돈과 호사와 사치에 대해서 그걸 비틀기도 한다. 그러니까 어떻게 비틀까? 앞서 나는 싫어한다, 욕심 없다, 행복하다 그처럼 비꼬든 고급이든 그건 어떻게든 내게 얽매인 문제니까, 그러므로 이제는 발전해서 그 욕망을 구기고 망가뜨려서 남에게 전가하는 것이다. 이를 테면 너 좋아하는 돈, 너 좋아하는 사랑, 늬가 그렇게나 사랑하는 푸아그라, 너가 환장하는 굴요리, 늬 좋아하는 품위, 그게 나 때문일 줄 아니? 너 여기서 빠져라, 그렇게! 방탕도 똑같다. 방탕이라는 자유의 통념에서 자유로운 남자는 많지 않다. 물론 아저씨 기준으로 말이다. 아니면 산속에서 자연인으로 살던가 또는 유명해지는 방법 밖에 없다. 방탕의 기준은 논할 필요없이 여자가 알아야 할 건 그거다. 그 황홀한 밤의 세계가 클럽이냐 클럽이 아니냐. 여기서 나뉜다. 첫째, 앞장서서 데려가는 캐릭터 즉 리더이자 선동가. 둘째, 따라가는 동참자. 셋째, 으쌰으쌰 1차와 별개로 난 아니야 유형. 넷째, 넌 아직도 머머하냐 라고 반문하는 대가. 허세의 특징은 뭐냐, 욕망을 거꾸로 뒤집기다. 난 좋아하고 하고 싶은데, 그런데 난 욕심 없다 라고 말하기처럼. 여기서 허세는 1, 3, 4번이다. 여기서 3번도 어차피 그 세계에 흠뻑 젖은 거나 마찬가지다. 이미 옛날에. 유명해져서 건전하게 살던가, 유명하고 싶은 마음 없으니까 제약도 없이 자유롭게 살던가. 전자인 2번 허영심일 것인가, 후자인 뭘 모르는 1&3번일 것인가 그 차이. 묻지도 않는데 유독 '없다'라는 말을 유난히 많이 한다? 완벽한 강박증이다. 이미 남자 세계를 오래 알았고, 3번인데, 소년은 아니지만 아직 드라마식 사랑을 포기할 수 없다? 욕망의 탈출구가 때로는 1년 365일 술과 담배일 수도 있다. 그러니까 허풍꾼들 앞에서 입도 뻥끗 못하며 억지 미소 썩은 미소와 함께 담배만 퍽퍽! (설레설레) 그런 허세는 곧 허열이다. 그래서 술에 대해서는 가위손 같은 손끝의 그 극심한 섬세함을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 또 여기서 셋째는 민감한 부분에 대해서 자기는 한발 쓱 빼는 부류다. 그 기준은 물론 돈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리고 넷째는 허세의 부정, 허세의 욕망 전가처럼 본인은 이미 옛날에 단계를 달리해서 4차원으로 탈출했다는 식으로 격상하는 일.
어린애에게는 삶이란 곧 놀이지만, 어른에게는 놀이도 좋지만 일이 어떻게 보면 더 중요하다. 마치 여자에게 사랑이 전부라고 속삭여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평생 직업이던 증권업자가 어느 날 목수로 변신했다더라 같은 일. 돈을 버는 일보다 좋아하는 일 때문에 빚어진 일이다. 우리는 내가 진짜 좋아하는 일을 처음부터 운 좋게 만날 수도 있고, 왜 이제야 나타나셨나요 라는 듯이 뒤늦게 접견할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끝끝내 조우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인생이란 그런 거니까.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가,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하는가가 왜 중요하냐면 대답이 YES냐 NO에 따라 그 사람의 태도도, 자세도, 관성도, 성깔도, 마음씨도, 개성도, 다정한 성품과 자상한 배려와 정다운 본성까지, 그렇다 인생까지 모두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예를 많이 들 필요도 없다. 앞서 나왔듯이 택시운전이라는 일만 봐도 그렇다. 택시운전을 하고 싶었고, (시간이 좀 걸렸을지라도) 좋아하게 되었으며, 나름 적당히 낙천적으로 만족해하며 일하는 택시운전수를 만나면 손님은 대체로 기분이 좋다. 말을 나누면 서로 말이 통한다. 기분 언짢을 일이 드물다. 오해가 발생할 가능성도 줄어든다. 그런데 어쩔 수 없이, 하는 수 없이, 하기 싫고 좋아하지 않지만 먹고 살려니까 택시운전을 그만두지 못하는 택시운전수를 만나면 손님은 뭐랄까, 다른 사람은 몰라도 누군가는 어쩌면 그분의 눈치를 본다. 팁을 이만큼 밖에 못드려 죄송합니다, 말 섞기를 별로 좋아하는 것 같지 않으면 침묵해야 하는가도 파악하고, 인상과 표정을 참고해서 대화의 방향과 주도권마저 포기할 수도 있다. 그 YES와 NO의 차이는 완전 판이하게 다를 수 밖에 없다. 인문교양서를 보지 않아도 사람들은 잘 안다. 어떤 일이 힘들고, 어렵고, 이직률이 높은지를. 어른들은 모르는 일이 거의 없다. 헤픈 말괄량이와 쉬운 호박의 비율이 비교적 어디서 누가 누가 높은가, 그 역시 관상과 NC 분위기만으로도 대번에 알아채는 천재들의 경연장이 어디냐, 바로 우리가 사는 이 세상 아니겠나. 그런 험한 인간계 거친 세상에서 밀리고 떨어지고 차여서 나는 이 일을 한다? 허세 지수가 드높다면 몰라도 안 그러면 별로 말을 많이 하고 싶지는 않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좋은 얘기는 나오기 힘드니까. 하지만 그 일을 내가 하고 싶었고, 좋아했고 그래서 나는 그 일을 한다? 상황은 180도 다를 수 밖에 없다.
내 친구 중에 트럭운전수가 있다. 얘는 고1때 나랑 친했다. 나는 농구를 즐겨했고 얘는 그림을 잘 그렸다. 나는 학교 농구부 유니콘 11기 소속이었다가 자진 탈퇴해서 무명이라는 팀을 친구들끼리 창단한다고 해서 선배에게 꾸중을 들었다. 그런데 그 친구는 미술부에서 활동했다. 또 나는 리치 블랙모어를 흉내낸다면서 집에서 최저가 전기기타 스트라토캐스터의 플랫을 깎을 때 그 친구는 내 부탁으로 수업시간에 록그룹 딥 퍼플의 연필화를 그렸다. 둘 다 공부는 못했다. 난 처음에만 반짝했다가 그래프가 어쨌는데, 그 친구는 음 어 넘어가자. 그런데 나중 그 친구는 마라톤 선수 출신 아내를 만나서 행복한 가정을 이뤘고, 꽃집을 하며 부케가 만들어지면 웨딩 사진 연필화를 그려준다. 그치만 본인의 본업은 트럭 운전이다. 그것도 대형 트럭. 옛날부터 그 일이 하고 싶었기 때문에 그 친구는 그 일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자세히는 모르지만, 적어도 싫어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JS는 찰스 부코스키가 일했던 우편 업계에서도 잠시나마 잔뼈가 굵었다. 비정규직으로 맛만 본건데 당시 만난 트럭운전수들도 쉽게 말해서 둘로 나뉘었다고 느꼈다. 밝냐, 어둡냐로! (그렇지만 꼭 밝고, 친절하고, 억지로 웃으라는 말이 절대 아니다. 말의 의도 글의 논조는, 이왕 인간계에서 사람으로 사는 이상 그 언제나 고슴도치로 살겠다면 몰라도 그 어떤 불이익은 감소하는 게 낫다는 거다) 일과가 끝나고 현금 박치기 포커를 치느냐, 다른 취미를 갖느냐로. 가난해도 재밌고 대화가 되는 트럭운전수가 있는 반면에, 가난하지는 않은데 자기가 자기 입으로 자기는 집이 몇 채인 자산가라면서 앞 동네 여자와 자기가 바람 피는데 궁합이 끝내준다느니 어쩐다느니 허세 장난 아닌 트럭운전수도 있었다는 걸 체험했다. 그게 그렇다. 나는 지금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가? 그 답에 따라 긍정이냐 부정이냐 그 차이는 확연할 수 밖에 없다. 보통은 적당할 테지만, 그러니까 조증도 아니고 허언증도 아니고 강박증의 명령에 따라 로보트처럼 따따부따하는 친구도 있을 수 밖에. 그러니까 결론은 평서문이 아니라 질문이다.
나는 지금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가?
내 일은 옛날에 과연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었을까?
나는 내 일에 어느 정도 만족하는가?
내가 진짜 좋아하는 일은 무엇일까?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이 일을 할 때 기분이 괜찮은가? 적어도 보람은 있는가!
직업과 이상이 일치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분명한 건 그거다. 우리는 이처럼 일에 대해서 산에 오르기 전에도, 오르는 중에도, 정상에 등극해서는 물론 내려오면서도 스스로 저런 질문들을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는 점. 아, 또 하나! 상대방의 성격을 파악하기 좋은 방법으로 우유를 옷에 엎지른다거나 뿜는다거나, 웨이트레스와 종업원을 대하는 예법, 자기는 과거 키우던 동물을 버렸다는 고백을 쓴 일기, 그 사람을 알 수 있는 자기 방의 모습, 음악은 무엇을 좋아하고 영화의 취향은 어떻고, 내일이 있다 또는 없다, 게임형인지 불만형인지 허세형인지, 그것도 아니면 막살자는 부류는 아닌지에 더불어 또 한 가지 가상의 지표가 생긴 것만 같다. 사람의 성품을 판가름하는 새로운 방법은 어쩌면 공상만으로 가늠해볼 수 있지 않을까? 그 친구는... 저분은... 이 냥반은... 과연 내 아들딸이 엉엉 울면서 귀를 붙잡고 옆집 꼬마와 함께 날 찾아온다면 옆집 꼬마에게 내가 어떻게 대할지를 말이다. 그러니까 꿀밤을 먹인다? 이걸 그냥 확... 할려다가 참고 참으며 말은 사근사근하게 하지만 어금니를 꽉 다물고 있는다랄지, 뺨을 살며시 쓰다듬거나 머리를 기분 나쁘게 밀어버리는 유형도 아주 없을 수는 없을 것이다. 나도 조카 둘이 어릴 때 여동생이 우니까 남자-오빠의 머리를 살짝, 아주 살짝 밀면서 싸우지 말라한 적이... 저런, 그러고 보니까 있었네. 어머머, 다음 번에 비상금까지 털어서 용돈을 대폭 인상해야겠군. 뭐 별수 있나!
결론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첫째, 대놓고 말은 못하지만 은연중, 나 돈 욕심 없다? 속 시원하게, 있다─많다─겁난다(?)라고 솔직히 고백하기. 곧 허세를 달래기!
둘째, 포커도 아니고 삶은 올인이 아님. 고로 야망도 좋지만 일단은 소망 먼저! 즉 목표 설정하기의 소박함과 심원함의 비율과 왜를 깨닫기.
셋째, 내 생각과 행동 일거수일투족은 모두 기록되고, 기억되며, 교감된다는 것. 사랑은 물론 우정도 거울이고, 만물은 연결되어 있으며, 세상은 돌고 돈다는 점까지.
5
정력가에게는 흑심과 욕망이, 사랑의 바보에게는 꿈과 희망이 기본이다. 그리고 선동가와 허당과 난봉꾼은 황금과 쾌락을 맹렬히 추종하는 사냥꾼이다. 장소는 상관없다. 도시에 살면 도시의 촌놈, 시골이면 촌닭, 만약 여자라면 촌년. 그런데 사랑이라는 남녀의 대결 구도는 대등하기 어려운 법. 서로 약자로 자처하며 균형이 안정적이면 사랑의 완성이요, 대게는 앞서거니 뒤서거니다. 그래서 사랑의 행복은 짧고 강렬하던가 또는 그 반대던가, 둘 중 하나일 수도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인생의 어느 시점에 깨닫게 될 것이다. 사랑의 발단─전개─절정은 금방일 뿐더러 일반적이고, 사랑의 결말이 진짜 실력자라는 것을. 그래서 조마조마, 그만그만, 해피엔딩, 절망적인 체념이 모두 사랑론임을 알고서 사랑을 시작한다면 사랑은 어려울 수 밖에! 그러나 뭐가 뭔지도 모른 체 사랑에 빠져도 쉽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그처럼 인생은 우리에게 언제, 어떻게, 누구와 사랑에 빠질 것이라며 극적인 운명의 상대를 미리 점지해주지도, 살짝 귀뜸해주지도 않는 얌체와 같다. 그러면 대체 그 아름다운 큐피트의 역할은 누가 누가 맡을까? 그 중임은 사람이 맡는 게 아니라 뻔트 같은 작전이, 예술적 소양과 고상한 교양미도 좋다만 그보다는 우연과 사교가 맡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어른들이 평판 관리를 하고, 인문교양서에서 하는 말로 2-3범주에 해당하는 지인에게 도움을 받는 일이 심심치 않다고도 한다. 고로 사교계의 꽃과 숙명을 노래하는 예언가, 하다못해 돌팔이 점술가는 물론 아리따운 숙녀를 찬미하는 솜씨가 남 다른 허풍꾼이 인기가 좋을 수 밖에 없다. 물론 그 위에는 그분들을 조종하고 쥐락펴락하며 리모콘을 누르면서 즐거워하는 로맨티스트가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것. 인생의 묘미는 그와 같이, 사랑처럼 날 다 보여주지 않는 것이다. (딱) 비장의 카드는 남겨두는 센스, (윙크)! 그러니까 결국 우정은 내가 위고, 인생은 오리발이며, 사랑은 신비주의인 것이다. 단, 배려는 숙녀 먼저, 수컷은 서열 정리. 무서운 얼굴 대회의 인기상과 여자들의 이상형 그 두 마리 토끼는 함께 붙잡기 힘들겠지만.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허세가 남발되고 허영이 남용되는 초급 세계의 논리일 뿐이다. 그러니까 고급은 몰라도 대관절 중급은 뭐냐고요? 그야 어쨌든 일반 상식은 대중에게 맡기고, 격조 높은 인생론과 신기한 동기 부여, 놀라운 환상머신은 마술사의 뒤집힌 모자와 만날 아담한 성의와 조촐한 미소를 필요로 한다. 그러니까 이 시대 최고의 인문-교양서 그 극적인 제목은 다름 아니라 바로 허영심 2.0! 마침내, 두둥~, 개봉박두~!
여기까지가 그가 뚝딱 완성한 칼럼이다. 제목은 사랑론 2.0! 그도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하지만 칼럼 쓰기도 재미없었다. 그래서 마라가 그를 이제 대놓고 놀렸다.
「너 칼럼 처음 쓰니?」
그러면 JS는 이렇게 답했다.
「이런 느낌 처음이야!」
듣고만 있을 샐리가 아니다. 걔는 미스테리아 경리 일을 취미로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잘들 논다 잘들 놀아.」
그렇지만 이건 시트콤이 아니었고 그곳은 지성의 전당도 아니었다.
「샐리. 너 학교 다닐 때 인기 없었지?」
「내가 왜 인기가 없어? 보여줘?」
「정말 보여주게?」
「보여주긴 뭘 보여줘! 또 뭔 생각하니? 아 정말 못말려.」
JS는 어딘가 모르게 여자들과 놀면 겉도는 느낌이란 게 있었다. 기분은 들뜨고 분위기는 좋은데 뭐랄까 그 다음이 없다고나 할까? 그러니까 그의 속셈은 그것이었다. 단체전은 남자와, 개인전은 여자와. 전자는 우정 후자는 사랑. 그러니까 지금 재미가 없지. 그래서 그는 일단 한 명을 떼어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대로 실천했다.
마라가 없는 틈을 타서 샐리와 미용실에 가기로 한 것이다.
읽다가 딴 생각하시는 분들을 위해서,
마라를 따돌리고서, JS와 샐리는 미용실에 갔다.
어디에? 미용실에!
6
「뭐가 고민이니, 혹시 변비? 딱 보니 그거네. 눈빛을 보면 알 수 있거든, 라~고 말하면 거짓말이고 한두 가지 생활 습관만 파악하면 긴지 아닌지 정도는 쉽게 알 수 있어. 아 진짜로! 운칠기삼인 종목처럼 점쟁이도 다 말발로 먹고 들어가는 거야. 하지만 고수를 만나기는 힘든 법. 나이트클럽에 들어갈 때는 웃지만 나올 때는 어쩌니? 아무래도 표정이 좋긴 힘들거든. 아 그러니까 진작 날 찾아오지 그랬어, 이 사람아! 이거 이거 알고보니 순 맹탕이네 이 친구. 나랑 친해지기는 힘들어도 한번 내 세이렌을 듣고 판도라의 사연에 공감하고 나면 응? 헤어나올 래야 헤어나올 수가 없다네. 알겠나?
있잖아, 비달 사순 들어봤지? 최고로 잘나가는 미용실에서 여자들한테 인기 만점인 그분들에게 내 헤어스타일을 맡기면 내 기분은 어떨까? 한마디로 환상이지! 왜? 모르긴 몰라도 그냥 보기만 해도 좋거든. 어딘가 모르게 지켜만 봐도 막 빨려드는 것 같다고나 할까? 뭔 말인지 알겠지, 응 그런 거거든! 내 머릿결을 맡겨보지 않은 사람은 그 황홀감을 도저히 알 수가 없겠지. 그런데 그 마술이 도대체 어디서 나오니? 손에서 나와, 바로 이 손.
(악수!)
춤의 종류는 많은데 남녀의 조화로 이루어지는 춤에 대해서 사람들은 그렇게 말해. 누가? 무도인들이 말이야. 딱 10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그런 기회에 환상적인 고수를 만나면 뭐라고 해야 할까, 다리에 힘이 풀린다고나 할까? 진짜 주저앉는 사람도 있데. 일단 말이야, 손만 딱 잡으면 느낌 알거든. 손맛부터 다르니까. (미소&눈 감고 상상하며&설레설레) 응? 그게 다겠니, 오줌싸는 사람...까지는 없겠지. 허허허. 넘어가자고!
(하이파이브!)
자, 이제 다음을 이어가 볼까! 그러니까 대관절 왜 이상형을 보는 걸로 만족하고, 주인 있는 달마시안과 비싸서 엄두도 못내는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보기만 해도 좋냐고? 아하, 그러니까 왜냐라는 말씀! 왜냐하면 다른 건 다 생략하고,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단언컨대, 그 아찔한 감정의 발동 때문이지. 응? 핑~하는 그 즉각적인 신호! 착착 감기는 손맛! 환상머신의 작동 말이야. 그때가 되면 찰칵~ 하면서 효과음이 진짜로 들린다고 하더라고. 물론 여기서 둘로 나뉘지, 그 진가를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으로. 그걸 모르는 사람은 단지 보는 것만으로는 별 감정 없어. 한마디로 뭘 모르는 남자. 그러나 그걸 아는 사람은 제대로 신호가 오는 거지. 확 그냥 필 받는 거라고. 왜? 그 다음을 상상할 수 밖에 없거든. 예고편은 즉각 떠오를 수 밖에 없으니까 말이야. 회상하며 공상하고 추측함으로도 모자라 내가 주인공이라면 어떨까 라며 미래의 가능성을 타진할 수 밖에 없어. 어? 엮이고 말리며 물리는 게 뭐 다른 게 아니야.
꼭 들어맞는 비유는 아닌데 크게 세 가지로 나뉘지. 첫째, 물고기를 잡았다가 다시 풀어주는 낚시꾼. 둘째, 물고기를 잡은 다음 반드시 그 맛을 음미해야 만족하는 경우. 즉 잡았으면 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부류. 어차피 인간 세상은 다큐멘터리 아니겠어? 셋째, 셋째는 뭐겠니? 뭐긴 뭐야, 잡은 물고기에게는 밥을 주지 않는다지. 요컨대 첫째는 야생마, 둘째는 사냥마, 셋째는 경주마 라고 이름 붙일 수도 있겠군. 셋째는 어디로 가셨나는 모르겠지만 일단 첫째와 둘째는 모처럼 목마로부터 해방되어 자유를 만끽하시겠군. 곧 그 말은 물고기가 동격의 물고기를 만나는 게 아니라 다른 종류의 생명체를 만나는 것처럼, 앞서 말한 경험이 물고기가 이종의 인어공주를 만나는 것마냥 신기한 경험이라는 말이지. 좀 더 쉬운 예를 들어볼까? 약이라면 소싯적 인생이 꼬였거나 일가견이 있었던 사람이 드라마에서 약에 취한 연기를 본다랄지 음 또 뭐가 있을까? 담배를 끊은지 오래 된 사람이 누군가의 담배에 불을 붙이는 순간을 바라 봐. 그러면서 느끼는 그 뭐라 말할 수 없는 비현실적 기실감이라고 해야 할까? 뭐 아무튼 그런 게 있어. 나도 다른 분야에서 몇 번 듣긴 들었지. 그때가 되면 응? 샤르륵 아라송해진다네. 허허허허허. 야생 동물이 밀림에 살면서 만약 인간의 음식에 잠시 길들여졌다가 다시 온전한 야생으로 돌아갔다고 가정해 보자구. 그럼 다른 맹수가 하늘에서 떨어진 고기를 포식할 때 그걸 바라보면 그 과거 기억의 기묘한 소환이 20년, 30년을 간다구. 굳이 어려운 전문용어로 설명하진 않겠어. 그건 생략하자구.
약간 옆길로 샜지만 다 비슷비슷한 얘기야. 음 그럼. 용어가 약간 불분명하긴 한데 그 기력인지 뭔지 같은 게 있거든. 그건 누구나 악기를 5년 10년 연주해 보면 알 수 있다네. 독학하면 다른 취미에서도 속성으로 그 기분을 느낄 수 있고. 아아, 이거구나! 라고 말이야. 아가씨, 바둑 프로기사에게 딱밤 맞아봤어요? 맞지 마. 절대 맞지 마. 소스라치게 거절하라고. 왜냐면 장난 아닐 테니까. 응? 아 말도 말어, 말도 마! 내가 맞아봤자나. 그래서 그때 나 기절했자나. 응? 아, 여기, 응? 내 이마 여기, 만져 봐! 어디? 넘어가! 시간 지났어. 다음 기회에. 그러길래 뭘 망설여? 아 그러니까 이마를 내줄 때 만져야지. 어?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입술을 내줄 수야 없는 거 아니겠어! 내가 이마를 만져보라고 했지, 언제 이마에 키스해달라 그랬나? 참 나 정말~! 이마에 키스하면 뭐 데리고 살아야 한다는 관습이라도 있는 줄 아시나, 거 참! 나도 다 어디에 가든 누굴 만나든 존재감 있어! 어? 이거 왜 이래! 나도 사랑의 유혹자요, 대망의 열정가며, 코끼리 같은 청력의 소유자라고. 얘가 얘가 아직도 뭘 모르네, 응? 아무튼 일단 넘어가고. 음, 어디까지 했지? 아, 그래. 전문가의 손길을 타면 음식 맛부터 달라 이 양반아. 맛부터? 아니 재료부터! 또 뭐가 있을까? 있다, 그림! 기회가 된다면 화가에게 손을 잡혀 봐. 악력 장난 아닐 걸? 그런다고 무조건 손 잡기를 건너뛴 채 연애하면 나중 살짝 아쉬울 수도 있으니까 그건 참고하고. 잠깐만 시각장애인...이라고 하면 높임말이 아닌가, 아무튼 기의 관록이란 게 그래. 그런데 예외는 있어. 오빠 봐 봐, 응? 오빠! 힘이 밑에서 위로 올라오지 않잖아. 아 그러잖아? 뭐, 보여줘? 떽~! 아무튼, 그건 왜일까? 왜냐하면 외부에서 그 부족한 기를 충당하니까 그런 것 아니겠냐고! 열의 원리라는 게 원래 그런 법이거든. 다른 사람들도 예술적 착상을 떠올리는 방식은 다 비슷비슷해. TV, 라디오, 잡지, 걷기, 독서, 대화, 소셜 네트워크, 다리 떨기, 모방, 사교 그리고 사랑. 에 또 전문가의 세심한 손길, 노장의 섬세한 손맛하면 또 뭐가 있지? 아 또 있구나. 가령, 술꾼! 그분들도 시선의 분위기와 고개의 각도 또 술잔을 꺾는 자세부터 다르긴 한데, 그런데 그건 약간 다른 거야. 그건 좀 따라하고 본 받기에 애매하지. 내 방식을 터득하는 게 차라리 나아. 어쩜 훨씬. 아무리 그 바닥의 선수일지라도 그건 경우가 다른 거거든. 그건 잘하면 멋이 아니라 중독이 되니까. 무엇보다 그건 노력의 문제라기 보다는 참는 의지가 더 중요한 분야라서 주신 디오니소스께서 함부로 타이틀을 빼았기기 싫어하신다네. 응? 게다가 습관도 다 비슷해. 한 말 또 하고 또 하고, 계속 하는 거! 읽고 보고 듣고 놀고, 즉 정보의 습득보다 말하기가 중요시되는 분야니까 말이야. 그 시장에서는 단순히 뭘 아느냐와 뭘 모르느냐랑 큰 상관관계가 부족해. 몰라도 아는 게 되고, 알아도 모르게 되기 십상이거든. 아 그리고 말이야. 손금은 건너뛰자고. 왜? 다음이 있으니까! 허허허허허.
아 그런데 뭔 말 하다가 여기까지 왔지? 그래 변비. 그런데 그걸 말도 안했는데 어떻게 알았느냐! 보면 알지. 우리는 뭐든지 그냥 보기만 해도, 듣기만 해도 딱 그냥 대번에 알아버리거든. 응? 우리는 말이야! 운동 안하고 입 짧고 생활이 불규칙적이고, 뭐 그런 몇 가지. 보면 보여. 그럼 위는 수다 아래는... 여기까지. 그러니까 난 이제 어떡하냐고? 많이 먹어. 그럼 돼. 그럼 하나는 해결되는데 그 대신 살찐다고? 풍만한 여자를 좋아하는 남자를 만나! 멀리서... 찾지 않아도 되겠지? (윙크&끄덕끄덕) 그럼 돼. 뭐야 그런데 내 주위에 괜찮은 남자가 없다고? 영 시원찮은 허당들뿐이라, 오 단추구멍뿐이라, 그럼 외모만 보지 마! 그런데 알고 보면 더 실망이라구? 에이, 마음에 드는 남자가 있어도 착착 말리게 만들지를 못하네. 맞지? 맞네! 완전 맞네. 꼬리 흔들기는 왠지 모르게 자존심이 허락치 않고, 딱히 팔짱 끼는 시늉조차 할 만한 기회가 엿보이지 않는군. 얘 가만 보니 내숭이 없네. 얘 완전 은근 허당이구만. 괜찮아 괜찮아. 번지수를 잘 찾아왔으니까. 그대의 인생은 말이야, 지금까지와 그리고 지금 이후로 나뉘게 될 꺼라네. 알겠나? 오빠만 믿어! 어머머 이것 봐라, 언니 어제 꿈꿨구나. 정말로 그분을 만났구나. 아 그럼 키스도 했겠네? 앙큼한 숙녀 같으니라고. 혼자서 아주 야무졌겠다? 웃는 거 봐. 괜찮아, 우리 사이는 얼마든지 쪼개도 되니까 말이야. 아 글쎄 야한 꿈 꿨으면 진작 그렇다고 실토할 것이지, 응? 꼭 이렇게 들켜야 속이 후련하니? 얘가 얘가 아주 보통내기가 아니네 그래. 그런데 있잖아? 공주님 말해보세요. 아 털어놔 이 가시내야! 꿈속에서 만났던 그 늑대인지 여우인지는 꼬리가 붉은 빛을 띄었니 아니면 은회색이었니? 잘 생각해 봐! 그래~ 그거야~ 그러라고~! 잠시 후 그 여우를 만나러 갈 테니까 기대하고 있어. 응? 딱 기다려! 허허허허허. 푸하하하하하하. 어허 속마음을 알고 보니 말이야, 아 도도한 여인께서 내숭이 영 마음에 내키지 않는다라... (딱)! 그건 있잖아, 물론 타고나면 좋겠지만 사는 동안 내 결점에 내내 심하게 강박을 느끼며 살 필요까진 없어. 자존심이네 우월감이네 열등감이네, 그게 다 뭐니? 비교, 그것도 상대적인 비교로 발생하는 거거든. 자존감과 자신감 그리고 허세가 괜히 있는 게 아니거든. 그래서 바로 세상에는 말이야, 나처럼 지금 당신께 마법의 동기 부여를 하는 주술사가 필요한 법이고. 엄밀히 따지면 그것도 분명 하나의 학문과 산업이라고. 응? 인생이란 알고 보면 신기한 거지. 요술이 따로 없어. 음 아무튼 하던 얘기로 돌아와서, 후천적으로 숙달될 수 있는 본능을 타고난 것 가운데 하나를 뭐라고 하냐, 바로 애교라고 하지. 애교! 허허허허허. 자, 따라서 해 봐. 오빠! 그래, 오빠. 어이쿠, 그래~ 그거야. 그거라고! 잘하네, 응? 그거라니까~! 그러니까 어떻게 그렇게 내 문제를 잘 아느냐고? 어떻게 알긴 뭘 어떻게 알아! 늬가 쓴 일기를 읽었으니까 알지.」
그래서 JS와 SF가 당도한 곳은 어디냐, 바로 미용실이었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속담을 맹신했을까 아니면 헤어드레서의 용모에 혹했을까. 그보다는 아마도 시나리오는 미리 정해져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미용실에서 위치한 구도만 봐도 어떻게 된 일인지는 훤히 알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단순히 위치만 보고도 열 가지를 파악한다. 그 미용실의 1인자 HP, 미안하지만 휴렛 팩커드는 아니고, 유감스럽게도 해리 포터도 아니며, 핫 팬티는 아닐테니까 본명은 핫스퍼 피츠버그! 그런데 그의 이름이 중요한 게 아니라 말했다시피 미용실 내부의 그림이 문제였다. 결국 JS는 미리 사전 작업을 다 해놓은 상태에서 오늘을 기다렸던 것만 같다. 어쭈, 카운트다운 다 셌겠구만 그려. 허어 이것 봐라!
그러니까 작전의 개요를 살펴보자면 이랬다. 우선 그곳의 1인자를 파악하고, 그 다음에 몇 번 들려서 그분과 친분을 돈독히 쌓은 다음, 미용실이 한 달 중 가장 한가한 시간을 골라서 방문. 그래서 JS가 욕심대로 1인자의 손길을 타겠다고? 아님, 절대 아님! 그럴 리가 있나. 그게 아니라 그 영광은 선심 쓰듯 SF에게 살며시 양보하고, 자기는 특급 조수가 초급 헤어드레서로 입봉하는 제물이 되겠다는 것. 그런데 바로 여기서 중요한 게 뭐냐면 후자가 전자를 바라보겠다는 것. 뭐라고? 캬~~! 으아, 그야말로 기막힌 속셈이군. 이건 뭐야, 이건 정말 마성에 다름 아니다. 내 공감각의 만족을 위해서 이 모든 이야기는 철저히 계획되었다? 저런! 처음부터 치밀한 각본대로였군 그래. 의도는 바로 그것이었다. 응큼한 본심은 자상한 아량으로 누구도 모르게 슥 옷을 바꿔 입게 된 거지. 누구도 모르게? 알면 어때! 누가 아니래? 오, 제발! 동심이 배우기 걱정이고, 2인자가 따라할까 봐 겁난다.
누구나 아시겠지만 전문가는 헤매지 않고, 힘들이지 않으며, 매우 간결하게 작업을 완수한다. 한마디로 깔끔하다. 더없이 산뜻하니까. 즉 환상에 빠질 듯 하자마자 컷트는 끝나버린다. 난 거북이를 원했는데 주어진 우승컵의 상품은 아 글쎄 마법 토끼? 오 세상에나! 내 기대 곧 화염방사기는 딱 발사되었는데, 결과는 막 그냥 커피포트도 아니고 주전자는 이제 겨우 예열조차 안됐다? 맙소사! 최고라는 게 그렇다. 아쉽다. 너무 아쉽다. 완전 아쉽다. 진짜 섭섭한 거지. 드라마 대사는 그런다. 하늘을 봐야 별을 따지 라고. 그러나 현실은 하늘을 봐도 별을 따기 힘든 경우가 꽤 많다. 에이, 알면서! 꿈이 그렇다. 황금도 그렇다. 마음에 쏙~ 드는 아트박스는 설레지만 내 것이 아닌 경우가 많다. 사랑이 그런 거니까. 우머나이저도 그래서 잘 팔린다. 물론 그때 그때, 또 상황따라 인연따라 다르기는 할 테지만 말이다. 하물며 우연조차 내 편이 아닌 경우가 태반이다. 그러므로 말로 만족하고 처지를 합리화하는 건 어른들의 장기다. 허세와 허영심은 우리의 영원한 친구인 것이다. 인생 한방이다? 훅가기 좋아하는 사람이 어딨겠나, 한발 쓱 담구며 플랜B를 미리 미리 준비할 수 밖에.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그만그만하고 비리비리하며 완만한 인생 곡선을 선호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또 다를 수도 있는 것이다. 바로 그래서 사람들이 광고에 속아주고 합리주의를 선호하는 것이다. 지갑은 검소하며 시간이 없거든. 응? 선택과 집중! 나아가 누려야 할 호사는 많고, 세상은 넓으며, 인생은 가난하든 인기가 있든 둘 중 하나거든. 하물며 친구는 멋도 모른 채 날 촌년-촌닭이라고 놀린다? 이런 젠장, 지는 얼마나 잘났길래! 두 마리 토끼를 잡게 되면 어쩌다 아티스트병에 걸릴 수도 있는 거지만, 일반적으로는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볼 수 밖에 없는 것. 그게 바로 인생이다.
농담이고, 그는 실패작이 될 열의가 가득했고, 시원하게 그분과 연애할 용의마저 있었다. 삭발조차 두렵지 않았던 것이다. 그처럼 제사에는 관심이 없고 젯밥의 순번이 올 뻔 하다가 약올리듯 스쳐지나감도 무섭지 않았으니, 헤어 스타일은 몰라도 작전을 망칠 염려 그 가능성은 심각하게 낮을 수 밖에. 물론 하다 하다 안된다는 가정하에 말이다. 더더군다나 필요하다면 가발이라도 쓸 용기까지 충만했던 것이다. 미용실 조수 생활 몇 년만에 그것도 업계 최고이자 대단한 명성의 고수들 사이에서 귀동냥으로, 눈썰미로 배운 동화 같은 요술을 이제는 내 손으로? (딱) 특별한 날이네! 완전 특별헌 날. 오늘은 기념일이다. 어찌 됐든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다. 흥분되지 않으면 거짓말이다. 그 순간을 나중 언제까지라도 기억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인생을 막살지 않듯이, 그분들도 손님 머리카락이 내 머리카락이 아니라고 막-자를 순 없기 때문에. 누구나 그러지는 않으니까. 그래서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러나 나는 차분하다. 아니 기쁘다. 게다가 기분이 좋다. 분위기는 더할 나위 없다. 더구나 색다른 구경도 했네? 뿐만 아니라 SF에게 사려 깊은 호의를 베풀었고, 그분의 가위손을 찬찬히 그것도 이상적인 거리에서 바라보며 느낀 흡족함은 이미 기억에 아로새겼네? 심지어 보기 좋은 떡이 맛이 좋다고, 그건 꽤 부적절한 비유일 수도 있겠지만 어찌 됐던지 과일은 빛나고 오묘하며 꽃은 향기롭기까지? 말 다 했다. 말 다 했어. 따라서 JS는 눈으로 만족함과 동시에 그 사각사각, 슥슥슥은 물론 그분의 사교 생활까지 추측하는 그야말로 공감각의 낙원, 마술의 고향, 유령의 성에 사뿐히 입성하게 됐다. 짝사랑은 애달프지만 그이를 먼발치서 보기만 해도 좋고, 상사병은 도저히 아련한 꿈속에서 빠져나오기 힘든 경지 바로 그것 아니냔 말이다. 그런데 희망찬 미래와 꿈 같은 현실을 양쪽에 꿰찼다? 총애하던 투명인간 애첩을 거느린 체 요정과 천사와 뛰놀며 한눈팔다 풋사랑의 뻔트를? 이런, 젠장! SF에게는 신비감의 맛만 보게 만들고─맛배기야 뭐야, 사람 놀리는 것도 아니고─자기는 그냥 환상의 왕국에서 그것도 환희의 왕좌에 앉았다? 악마의 쾌감이라는 왕관을 쓰든 말든 너 혼자 다 해먹어라 죄다 해먹어라, 에잇~!
알고 보면 인생에서 크게 부도덕하지 않고서, 특별히 얌체가 아니면서, 밉상으로 낙인 찍히지 않고서도 이기심과 이타주의의 경계를 어떻게 잘 줄타기하면 이처럼 가끔 황홀경에 빠질 수 있는 것 아닐까? 예전 조마조마에서 활동했던 이유가 정녕 이건가? 막 갖다붙이기엔 자연미가 영 아슬아슬하군 그래. 아무리 그래도, 어찌 보면 그건 인생사의 묘미가 될 수 없다고 그래서는 안된다며 화들짝 반박할 수 만은 없는 일이다. 보아하니 설득이란 이런 걸 말하고 무승부, 윈윈이란 이렇게도 이루어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러므로 그가 속으로 외웠던 주문은 아마도 이랬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낮잠 자는 토끼, 달려라 거북이!
저런! 결국 상황 봐서 뻔트란 말이군. (어깨 으쓱!)
7
JS가 최근 획득한 성과는 특별하지 않았고, 발단의 탈출은 요령부득이었다. 어딘가에 애원할 수도 없었고, 누구에게 애걸할 수도, 어떻게 자발적으로 이 심심함을 해결하기를 바라며 하늘에 간청할 수도 없었다.
그 외에 그는 <듀퐁과 말보로>라는 술집에 들락날락했고, <롤스로이스와 셰퍼트>라는 카페의 단골이 되었다. 포르토피노를 비롯하여 샐리와 이브와 함께하는 사랑과 우정의 복잡한 인물 관계도에서 슥 한 발을 뺀 구도를 원했으니까. 화살표가 오고 가고 그것도 좋지만 우선은 일이 먼저였기 때문이다.
그러다 그는 뭔지 모를 작품 구상을 떠올리며 희희덕거리다, 엉뚱한 착상과 우스꽝스런 영감 때문에 조소하며 심란해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미스테리아 사무실로 향하고 있었다. 마음은 어느 푸른 신세계로 떠났는지 모르겠지만 몸은 딱 환상 문학 장르에 배정된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그런데 그날따라 또 이브는 미스테리아 사무실 앞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JS는 부담스러워졌다. 그렇다고 자기 머리를 삭발할 수도 없었고, 포르토피노에게 고자질할 수도, 이브를 설득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우유부단한 작가이자 종합예술의 모방자인 JS를 가만놔둘 이브가 아니었다. 그녀는 눈치도 빠르고, 젊고 예쁘고 부자였으며, 자신의 마음을 여실히 증명하고 싶어했다. 그래서 그는 사무실 앞에서 그녀에게 들키기 직전에 부랴부랴 옆 사무실로 들어갔다. 그는 예전에 건축설계도를 보고서 두 사무실 사이에 임시로 막힌 문이 있다는 걸 미리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다 생각이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가 방금 들어간 사무실은 입주 안내용으로 빈 사무실을 공개해 놓은 상태란 원인도 그의 재빠른 행동에 주효했던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몰라도 그 사무실에는 이방인이 있었다.
「누구신지... 무슨 일로 방문하셨나요?」
「아, 그게 그러니까... 옆 사무실로 간다는 게 그만 잘못 들어왔네요. 어떡하죠? 그런데 말이죠. 지금은 제가 뭔가 딱한 사정 때문에 여기서 곧바로 나가면 안되는 거거든요. 제가 지금 나가면 들켜요. 딱 걸린다구요. 제가 무작정 그녀를 피한다고 한들, 그녀가 애처로운 연정을 쉽게 포기할 수는 없겠지만요. 그렇다고 마음을 받아줄 것도 아니면서 한술 더 떠 딴 남자를 소개시켜주겠어요, 어쩌겠어요? 사랑이란 게 원래 그런 것 아니겠어요? 잘 아시잖아요. 아 그런데, 어머머 글쎄 제가 낯선 분께 괜한 말을...」
「아, 괜찮습니다. 이해합니다. 설마 절 그렇게 꽉 막힌 사람으로 보시는 건 아니겠죠? 제가 무슨 악덕 업주인가요, 아니면 퇴폐의 정복자인가요? 지금은 누가 뭐래도 사랑의 시대 아닙니까! 그렇다고 제가 선생께 다짜고짜, 설마 지금 바람 피우시는 건가요? 라고 물어볼 수도 없는 일일 테구요. 물론 저는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어떻게 보면 기만적인 자유주의자에 가식적인 위선자입니다. 원래 세상이란 게 마냥 축제 분위기에 들떠서 사랑에 설레고 우정을 신뢰하며 자본의 전망만 믿을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나요?
(딱) 지금 속으로 그 생각하셨죠? 이 인간 뭐야! 아 나 정말 괜히 사무실 한번 잘못 들어왔다가 귀에서 피가 나게 생겼네. 얘기를 귓등으로 들을 수도 없고, 거 원 참. 아무튼 이 인간 참 말 많단 말이야.
(쉭─쉭─쉭) 웃었어 웃었어. 와, 설마했는데 진짜로 그렇게 생각하셨군요? 호박을 피할려다 수박을 만난거군요! 뭐 어쨌든 이것도 인연인데 우리 통성명이나 합시다. 저는 멜이라고 합니다. 멜 게이츠. (악수)
형씨 이름은 말씀하시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이미 알고 있으니까요. 아, 다름 아니라 제가 오늘 그것도 방금 미래를 볼 수 있는 요술의 최후 3단계를 막 숙달한 참이거든요. 정말이에요. 제 얼굴을 보세요. 이게 어디 거짓말할 얼굴인가요? 전 이미 선생이 제 사무실로 들어올 줄 알고 있었답니다. 제가 이 신공을 완성함으로써 저의 그 귀신도 깜짝 놀랄 만한 무공은 정확히 세 가지로 나뉘게 됐죠. 제가 딱 어떤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의, 첫째 과거가 보인다, 둘째 그 사람의 미래가 보인다, 셋째 과거와 미래가 다 보인다! 형씨는 딱 운 좋게도 셋째군요. 그렇다고 믿으시란 말이 아닙니다. 더군다나 저 돈 많아요. 그럼요. 일단 의심의 먹구름을 저 멀리 보내버리기 위해서 무엇을 하면 좋을까요?
(가만히 생각하다가 그는 음악을 틀었다)
아르칸젤로 코렐리의 바이올린 소나타 12번. 오늘 이 음악 들었죠? 아니... 혹시 내일인가? 아닌데 오늘인데. 절 속일 생각일랑 하시마슈. 우리 속이고 속고 그러지 맙시다. 네? 여자 마음을 울리면 못써 이 사람아. (그러다 그는 핸드폰으로 검색해서 척키 포스터를 그에게 딱 들이밀면서) 얘 알죠? 제가 진짜 왜 이러는지 몰라서 이래유?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냐구요? 선생. 차근차근 하나씩 합시다. 바쁜 것도 아닌데 서두를 필요 있나요? (그러면서 그는 사무실 출입문을 열어 고개만 슬쩍 내밀어 바깥의 동향을 살핀다)
자, 이제부터 시간을 젭시다. (그러면서 그는 스톱워치 10분을 작동시킨다) 형씨. 진짜 비밀 진짜 환상을 설마 싫어하지 않죠? 나한테 왜 그러냐구요?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우리는 인연이다, 그리고 나는 오늘 드디여 유령의 마술을 완성했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뭔가를 보여드리겠단 건 아닙니다요. 리시브─토스─스파이크! (빡)! 저는 그처럼 속 시원하게 딱 3박자만으로 진짜 미스테리를 증명하겠습니다. 기분 좋으면 말입니다, 빈틈이 보이면 세터가 상대측 빈자리에다 슥 그냥 공을 밀 수도 있구요. 그건 물론 운이 좋아야겠죠? 그럼요. 아 잠깐만. 진짜라고 하지 않으면 다 가짜인 건가? 이러니까 세일을 하면 안되고, 진짜는 광고를 할 필요가 없는 거겠죠. 이러니까 우리 같은 도사들은 자꾸자꾸 숨을 수 밖에 없다니까 정말. 아무튼 선생께서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오직 뻔트만 대셨군요. 눈치 보고, 사인을 훔치며, 잇속을 관측하며, 승산을 따지고, 간질간질 응애응애 삐악삐악? 언제까지 바에서 바텐더를 괴롭히며 TV로 뻥-축구만 볼겁니까? 원터치 슛에 질려서 또 다른 리그를 봤더니 정말 고집스럽게 중앙 돌파만? 그러지 말고 우리 이참에 통쾌한 역전 드라마 하나 만듭시다, 네? 우리 같이 말입니다. 리시브─토스─스파이크! (빡)! 기억하세요. 막판엔 후위 공격입니다. 잊으면 안됩니다. 네? 아니, 말이야 바른 말이지. 우리가 언제까지 인생론을 들먹이고, 환상머신에 속고, 판타지에 짜증내며, 되지도 않는 허세를 참다 못해 사랑이란 나비에 맨날 차여야 합니까? 우리가 무슨 축구공입니까 배구공입니까? 안 그래요? 인생이 무슨 장난입니까? 소심한 열정─순진한 사랑─신비한 환상─낭만적 모험─엄선된 쾌락까지, 좋아요 다 좋다구요. 그렇지만 미켈란젤로가 무엇을 그렸고, 스피노자가 팬지 같은 희망에 대해서 어떤 글을 썼으며, 영화에서 간혹 우연찮게 만나는 추억의 유행가가 우리에게 손짓하는 무언의 정결함을 이제 깨달을 때도 되지 않았을까요? 그러나, 그러나 순결한 인사, 다정한 열정, 격렬한 사랑도 좋습니다. 나쁠 리가 없지요. 그럼요. 하지만 이제 정말 우리가 반전에 놀라고 우주의 광활함에 신기해 하며 인간의 운명에 황홀해했다가 끝에 가서는 무뎌지는 진짜 이유를 알아야 하는 것 아니냐 이 말입니다, 제 말은. 우리가 언제까지, 네? 인생이 한낱 허당의 쾌적한 3박자인지 한량의 대단한 4대 요소인지 그건 알 수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생각은 그때 그때 다른 거니까! 라~는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말에 내 이 두 귀가 솔깃해야 하냐, 네? 우리가 무슨 부채도 아닌데 왜 우리만 휘둘려야 하냐, 제 절규는 바로 그걸 말하고 있습니다.
자, 마침내 시간이 가까와 오고 있습니다.
오늘은 누가 뭐래도 리시브입니다. 네? 리시브! 따라서 해보세요. 리시브!
네, 유감스럽게도 명랑한 우정과 청순한 사랑 사이에서 고민하시느라 힘드셨다는 것 다 압니다. 잘 알아요. 그러니까 오늘은 리스브만요.
그러나! 내일 혹시 전개와 절정이 한꺼번에 공개될지도 모르니, 긴장하셔야 합니다. 꼭요! 허허허허허.」
그 다음에 그는 티셔츠를 벗더니 자기 가슴을 가리켰다. 곧 티셔츠를 벗었는데 또 티셔츠가 있었고, 그 새하얀 티셔츠의 중앙에는 정사각형으로 작은 화분이 프린트되어 있었다. 그게 뭐야? 이런 허접한 돌팔이 약장수를 내가 믿을 줄 알어? 라는 생각이 오늘 그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래서 JS는 그 미심쩍은 마술사의 이름도 듣자마자 잊어먹었다. 그분은 하고 싶은 말을 했으면 된 거고, JS는 이브를 피해서 잠시 시간을 벌었으면 된 거다. 하나 주고 하나 받은 거였다. 기브 앤 테이크! 그러든 어쩌든 그것은 JS와 MG 곧 멜 게이츠의 첫 만남이었다.
설마 그 둘의 만남이 TV로 생중계될 일은 없겠지만 그렇게 친구가 되어 나중 또 모른다. 함께 NC에 갈 정도로 굳건한 우정을 쌓을지도. 내일은 우리에게 미지수이니까.
미래는 사랑처럼 모르는 거니까.
8
사랑이란 무엇일까? 남부럽지 않은 사랑은 혹시 염치없는 행복일지도 모른다는 것. 짧은 사랑과 어중간한 연정은 논외로 하고, 사랑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환상에 빠져 정신없이 신비로운 상태. 그러나 사랑의 절정감은 인생의 꽃이니 만큼 기승전결은 없을 수가 없다. 어쩌면 천사를 희롱하는 게 아닌가 라는 기쁨은 악마를 조롱하는 듯한 상심으로 선회할지도 모르니 말이다. 그런데 미리 사랑의 절망감에 겁을 먹을 수는 없으니까, 우리의 의무는 아마도 사랑을 해야 하는 것 아닐까? 살면서 사랑 받기만 기다리다가는 꽃은 시들고, 과일은 벌레가 먼저 먹으며, 황금 물고기는 웬 꾀죄죄한 허당이─찌질한 마초가─재수없는 영심이가 냉큼 채갈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그러나 인생은 딸랑딸랑 아부와 새콤달콤 찬미, 반짝반짝 인기, 뿌잉뿌잉 칭찬, 보글보글 재미만이 전부가 아니다. 따라서 '운명이란 무엇인가'를 탐구하며 신기한 숙명, 머머증을 이겨낸 환생감, 암담한 슬럼프를 극복한 부활, 찬란한 내 님을 기다릴 줄 아는 지혜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그렇지만 내내 기다리기만 하다가는 재미가 없다. 그래서 그는 결심했다. 하지만 고민 끝에 그가 방문한 장소는 예상 밖이었다. 사교계, 무도회, 오페라 극장, 투우장, 경마장, 도박장, 미술관, 동물원도 아니고 하물며 술집도 아니었다. 그곳은 바로, 어디긴 어디겠나. 미스테리아 사무실이었다. (이런, 젠장?) 왜냐하면 아직은 작품 구상 중이었기 때문에 자기 사무실로 갈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미스테리아 사무실 앞에 도착했다. 이브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면 그는 사무실에 들어가서 인사를 나눈 다음 샐리와 함께 자리에 없는 마라의 흉을 보던가, 그 반대던가를 해야 했다. 그런데 어제의 기억은 그의 발길을 저절로 옆 사무실로 끌게 했다. 그러지 않을려고 했는데 정말로 알 수 없는 힘이 자기를 살살 잡아당기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는 지금 딱 물고기였고, 줄 달린 치즈였던 것이다.
오늘은 두번 째 날이었다. 리시브─토스─스파이크 그리고 (빡)!에서 토스 차례! JS와 MG는 만나서 담소를 나눴다. 얘기는 많지 않았고 차만 마셨다. 그리고 오늘은 리시브─토스─스파이크! 에서 토스의 날이란 걸 서로 확인했을 뿐 별다른 사건은 없었따. 아 (빡)!이 빠졌음.
내내 지루할지라도 기어이 그는 MG가 뚱딴지 멍청이이자 허접한 약장수요 즉흥적인 쾌락에나 몰두하는 미련곰탱이란 걸 확인하고만 싶었다. 왠지 모르게 그걸 확인해야만 속이 시원한 것만 같았던 것이다. 그런데 뜬금없이 셋째 날 무슨 영문으로 가능한 일인지는 알 수 없지만 진짜로 환상을 마주할 수 있을까? 어설픈 반전을 만난다면 대중이 할 일은 둘 중 하나다. 짜증 아니면 신경질. 물론 감탄도 드물게는 있겠지만 말이다. 그러니까 토스는 비리비리할지라도 어떻게 갑자기 얼렁뚱땅 후위에 있던 선수가 공중으로 뛰어올라서 어찌된 셈인지 모르겠지만 진짜 마술을? 그런 일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아니 없다. 확실히 없다. 있을 수가 없으니까.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이런 느낌 처음이야? 그는 기어코 MG가 허당이란 걸 확인해야만 밤에 두발 뻣고 편안히 잠들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처럼 둘째 날은 뭔 일 없이 헤어졌다. 아, 아니다. 뭔 속임수인지는 몰라도 마술이 있긴 있었다. 그건 바로,
복부에 정사각형으로 빈공간을 보여주는 마술이었다.
어제 그분이 가슴에 화분 사진이 새겨진 티셔츠를 보여줬다. 그건 오늘 일 때문이었다.
오늘은 그가 똑같은 장면을 보여줬다. 그런데 어제와 오늘의 차이점은 분명했다.
즉 어제는 티셔츠에 프린팅된 화분 사진이었고, 오늘은 그의 가슴에 정사각형으로 구멍이 뚤려서 그의 뒤에 있는 화분이 그 뚫린 구멍으로 보였던 것이다.
그래서 JS는 일단 저급한 마술은 아니었기 때문에 아닌 척 하면서 살짝 박수만 쳤다. 속으로는 꽤 놀랐다. 많이 놀랐다. 솔직히 다리에 힘이 풀렸고 오줌을 지릴 뻔 했다. 도대체 어떤 속임수인지 코앞에서 보고도 감을 잡을 수 없었으니까.
뿐만 아니라 MG는 그에게 요청했다. 그래서 JS는 손을 그 안으로 넣어봤다. 진짜 넣어졌다.
말도 안돼! 아니 어떻게... 세상에 이런 일이! 게다가 그의 몸에 뚤린 빈 공간의 정사각형 둘레에는 인체의 생물학이 그대로 재현되고 있었다. 거기서 더 나아가 그는 손을 넣은 다음 다른 손으로 그 손을 잡아봤다. 그래서 잡혔다. 자기가 잡은 손은 남의 손이 아니었다. 이건... 뭐지? 한마디로 장난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기절할 수도 없었다.
이거야말로 미래의 흥분감일까? 아니라고 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호기심에 감수성이 합세했다. 그런데 그건 악마의 호기심과 괴물의 감수성이라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선망의 대상이자 욕망의 상징이며 허영심의 표적, 애교로 유혹하고 교태로 떨리게 만들며, 사랑으로 꼬셔서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 남자는, 원래대로라면 바로 포르토피노였다. 그런데 포르토피노한테는 미안하지만, 지금은 MG가 최고였다. 왜 아니겠어? 기가 막혀서!
그는 마침내 셋째 날을 기대하게 되었다. 벌써 고대하며 그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예감이 실망으로 결판나더라도 이제는 염원했던 셋째 날을 확인하지 않고서는 못살 것만 같았다.
9
그렇게 둘째 날은 마감되었다.
그는 그날 집으로 가서 수갑을 입수했다. 어떻게 어떻게 구했고, 제일 싼 것보다 최저가에서 2단계 위로 샀다. 그러나 적당히 구실을 하고 기능은 가능했다. 그거면 됐다. 준비는 마쳤다.
그리고 마침내 셋째 날이 되었다. 그는 그곳으로 갔다.
도착했다. JS는 MG를 만났다. 자, 드디어 셋째 날! 그래서?
그래서 탐욕스러운 호기심의 대단원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고뇌하는 꾀돌이 양반이 진짜로 뭔가를 보여줬을까? 그 냥반이 짜잔~ 얍! 그런 건 없으니까 또 입이 근질근질하다는 듯이 수다로 때울려는 속셈일까? 그러니까 지금은 의뭉스러운 논리주의자와 밑도 끝도 없는 요술쟁이의 대결 구도인가? 그러든가 말든가! 결과야 어쨌든 결과를 보는 일만 남았다.
말이 났으니 하는 말인데, 모르긴 몰라도 아마 억제할 수 없는 탐구심은 그 값을 치뤄야 할 테고, 리시브─토스─스파이크인지 허당의 3요소인지 뭔지도 다 쓸데없는 수작이란 걸 확인하게 될 게 뻔했다.
그야 어쨋든 스파이크 곧 셋째 날은 둘째 날과 똑같았다. 멜은 어제 했던 마술을 오늘도 재현했다. 이제 신공이 바닥난 거지. 더 보여줄 게 없었던 거다. 그럼 그렇지! 그는 들릴 듯 말 듯 혼잣말을 내뱉었다.
「내 그럴 줄 알았어!」
그래서 JS는 오늘도 그의 몸속으로 손을 집어넣었고, 곧바로 뒷주머니에서 수갑을 꺼내서 자신의 양손에 스스로 수갑을 채우는 데 성공했다.
그는 이윽고 감미로운 쾌감을 음미하며 달콤한 행복을 만끽했다. 왜냐하면 그 속임수가 어떤 원리로 가능했는가를 곧 있으면 확인할 수 있을 테니까. 그게 아마 순진한 생각이었는가는 몰라도 어쩌면 이브와 이 냥반은 한패일지도 모른다는 점, 간과하고 넘어가기에는 돌아가는 일이 심상치 않았다. 뭐라고? 그가 짝사랑 받는 낌새를 느끼며 은근히 기뻐했지만 보아하니 목적은 딴 데 있었고, 그처럼 이브는 마법사의 조수였으며, MG의 최면은 성공했다더라? 아직은 몰랐다. 아직은 몰랐다. 그렇다면 나의 조력자는 누구일까, 샐리일까 마라일까. 포르토피노는 주연이면 몰라도 조연감은 아닌데! 라면서 그는 현황과 내일의 전개에 대해서 심하게 헷갈려하고 있었다.
그러다 이상하게 JS는 실실 졸음이 왔고, 멜이 뭔 얘기를 하는데 뭔 얘기를 하는지 통 종잡을 수 없었으며, 그의 말이 점점 느려지다가 그는 잠에 빠지고야 말았다.
10
그는 미스테리아 사무실 소파에서 깨어났다. 그의 왼손과 샐리의 오른손에 장난감 수갑이 채워져 있었다. 마라는 그의 오른손에 또 다른 장난감 수갑을 채울려는 찰나였다. 이 일이 다 어떻게 된 일이지? 그녀들에게 물어봐도 난 사랑을 몰라, 난 아무것도 몰라 라는 눈치였다. 그러다 그는 생각이 났다. 리시브─토스─스파이크 다음에 빡이!
「빡!은?」
「뭐? 뭔 빡?」
「아니... 그... 빡이 등장할 차례였는데...」
「오빠 그게 대체 뭔 소리야?」
「그러니까. 빡이라니! 빡이 뭐지?」
「몰라. 빡? 빡이 뭐야. 오빠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를 하고 그래?」
뭐야? 빡은 어디 갔어? 빡! 아 나 이거 진짜 빡치겠구만, 라는 속마음을 그는 말로 할 수가 없었다. 무슨 이런 빡 같은 일이 다 있나, 라는 말을 어떻게 할 수 있냔 말이다.
그래서 그는 곧바로 옆 사무실로 갔다. 그러나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건 분명 귀신에 홀린 일이나 다름없었다. 굶주린 까마귀 가엾은 너구리처럼 그는 꺼벙한 표정을 지을 수 밖에 없었고. 그렇지만 샐리와 마라를 모른 체 할 수만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자기 빼고는 아무도 모르는 그 일은 일단 관망으로 넘기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샐리와 마라를 동시에 상대하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고로 그는 다시 캐릭터가 변했고 장르가 바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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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심은 어린이의 미덕, 허영심은 흑심의 악덕? 전자는 맞지만 후자는 글쎄요. 왜냐하면 그건 친한 어른들끼리 사석에서 웃고 떠들기에 꽤 괜찮은 화제일 테니까요. 따라서 허당에게 허세는 타고난 본능일 뿐이고, 허풍은 어떻게든 늘 수 밖에 없다는 거네. 고로 어른 세상은 순 거짓말쟁이들의 잔치라는 것. 그건 바로 오락산업이 승승장구하는 타당한 이유. 그러므로 사랑이 영원할 거란 믿음과 비밀스런 흠모의 연정은 어쩌면 갈대와 같은 여자의 마음과 닮았다. 그래서 우리는 처음부터 사랑의 종류를 예견하고, 본심을 가늠할 수 있는 독심술을 깨우쳐야만 한다. 남몰래 만나 세월이 야속한 그런 말없는 사랑인지, 수줍은 풋사랑이 아니라 짧은 행복과 극적인 뻔트에 대만족하는 풋사랑인지, 그도 아니면 풀꽃 반지도 좋고 다이아몬드도 굳이 극력히 마다하지 않는 사랑인지를! 자, 그럼 누구... 아 맞다. 샐리와 이브. 그녀들 사랑의 미래를 예견해보면 되겠네. 하지만 그건 전망을 보아하니 초라한 복비를 핑계댄다 치고, 그러니까 살짝 요술 수정구에 비치는 사랑의 예고편만 보는 게 더 재미있을 것이다. 그래서 내일의 영상에 비치는 두 남자, 누군지 몰라도 그분들의 흑심을 측량해봤더니 아 글쎄? 그 애정을 순수하다고 해야 할지, 불결하다고 해야 할지 꽤 아리송하군 그래. 대체 이 일을 어쩌면 좋지?
그는 오늘도 그렇게 하루 일과를 마치고서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기분이 세했다. 그래서 집으로 가는 길에 마음을 바꿨다. 자기의 개인 사무실에 들리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마음을 바꿨다. 거긴 내일 가기로 했다. 언제나 순수한 기쁨과 쾌활한 생기를 선사하는 여자, 또 여자, 아아 여자에게 얽매이다가 사랑과 야망이 내 손 안에 있소이다 라며 헛소리를 하기엔 오늘은 너무 활약이 많았기 때문이다. 오늘 일의 핵심은 그거였다. 마술사의 뚫린 가슴에 손을 집어넣어 자기의 다른 손과 수갑을 채운 일. 아예 그 기억이 훌러덩 날아가버린 일. 시간을 누군가에게 도둑맞은 일 말이다. 아무튼 도둑 맞은 당사자는 자기였고, 그 소중한 속임수를 갖고 떠나간 도망자를 찾는 일은 새로운 임무였다.
그는 일단 오늘은 쉬고 심기일전한 후 내일 뭔가를 하더라도 뭔가를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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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그는 자신의 개인 사무실에 도착했다. 샐리는 기다리고 있지 않았다. 오늘따라 어딘가 모르게 그는 샐리의 그 말이 듣고 싶었다.
「나한테 뭐 하고 싶은 말 없어?」
사무실에서 그는 혼자 일하며 하늘색 티셔츠를 인터넷으로 구입했다. 왜냐하면 자신의 환각 증상을 치료하기 위해서. 무슨 증상? 그는 당연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의 가슴이 어쩌다가 훵하면 습관처럼 쳐다봤으며, 그러다 어느 때는 자신의 가슴이 뻥 뚫린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간혹 정말로 가슴부터 배꼽 정도까지 빈 공간이 보이기도 했다. 완전한 환상이자 완벽한 환각에 해당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가 구입한 하늘색 티셔츠에 인쇄된 사진은 애플 맥북 사진이었다. 노트북 겉면에는 백설공주가 탐스러운 사과를 정색하며 집을려는 모습이 그려진.
그렇게 3일쯤 지나서 JS는 맥북 사진이 정사각형으로 인쇄된 하늘색 티셔츠를 입고서 샐리를 만나기 위해서 약속 장소로 나갔다. 그곳에는 샐리가 젤리라는 친구와 함께 먼저 기다리고 있었다. 인사를 나누고 일상적인 얘기를 나눴다. 그런데 하필 샐리의 친구 젤리가 JS와 똑같은 그림의 티셔츠를 입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티셔츠의 색상은 달랐고. 그녀가 입은 티셔츠는 바탕색이 살색이었다. 그래서였을까? 그는 자기도 모르게 저절로 손을 젤리의 가슴 쪽으로 가져갔다. 그러다 그걸 넘어서 손은 통과하지 못하고 옷을 살짝 매만지게 됐다.
「어머, 어머머! 오빠 왜 이러세요?」
상황은 얼렁뚱땅 넘어갔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원래 그는 쾌락의 열정에는 무심했고, 연애론에 관심이 많았다. 그러나 그런 개인사는 지금 하나도 힘을 쓰지 못했다. 완전 무용지물이었고 지금은 환각 증상이 그를 지배했다. 곧바로 옆 테이블에서 어느 손님이 맥북을 007 가방에 담는 장면을 보자마자 그는 환상에 빠졌다. 그래서 카페에서 나갈려는 손님을 붙잡고서 그랬다.
「제 블럭을 돌려주세요...」
역시 그 상황도 얼렁뚱땅 넘어갔다. 그 뒤로 샐리 그리고 샐리의 친구 젤리와 헤어졌다.
그는 집에서 또 사무실에서 혼자 장난감 수갑으로 곰인형과 자신을 묶어놓기도 했고, 미스테리아 사무실에서 그 놀이를 같이 하자고 조를까 말까를 고민했다. 그러다 우연의 일치인지 뭔지 포르토피노에게 연락이 왔다. 락 페트시발에 같이 가자는 거였다. 이미 약속도 다 정해놨고 모든 준비는 끝났다고 했다. JS는 몸만 오면 되고 샐리도 이브도 다 가기로 했다고 한다. 이번에는 썰렁한 분위기를 타파하여 친분을 쌓자는 목적이었다. 록 페스티벌? 축제 분위기는 엉뚱한 청춘에게 호소력을 행사했다. 무기력하게 행복한 밤의 왕국에서 방황할 수도 없고, 무정한 여심을 다정한 허영심으로 바꿀 줄 아는 재주도 바닥났으니 이제 할 일은 그것 밖에 없었다. 그는 곧바로 친구들과 함께 하기 위해서 그곳으로 갔다.
결과만 말하자면 그들은 만났고, 록 페스티벌은 멋진 음악회였다. 드넓은 야외에서 한꺼번에 수많은 공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춤을 추는 사람들, 풀밭에서 얘기하며 먹고 마시고, 연인들끼리 목마 태우며 사진 찍고 행복한 낙원과 다름없었다. 그런데, 아뿔사!
하필 록그룹 사진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은 사람이 많았던 것이다. 게다가 칙칙폭폭놀이까지! 심지어 말뚝박기 놀이까지 목도했다. 그는 결국 쓰러지고 말았다. 환각이 도져서 기절할 수 밖에 없었다. 친구들과 놀며 추억을 만들고 우정을 키울려고 했는데, 혹 뗄려다 뿔을 붙인 결과를 맞이하고 말았다. 그가 사교 생활이 문란한가 건전한가, 건실한 희망을 꿈꾸나 좋은 차를 몰고 막 돌아당기며 막사는 젊음을 원하나, 그건 몰랐지만 사랑이라는 달콤한 환희의 예식은 남의 잔치였다. 열광적인 갈채도 타인의 차지였고, 욕심 많은 귀염둥이도 남의 별명이었다. 너 나 할 것 없이 기쁜데, 기절했다 깨어난 다음, 자신만 구석에서 찌그러져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살다 살다 별의별 환각을 다 경험한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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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말 안 했어? 아 그런 일이 있었으면 진작 나한테 물었어야지, 이 친구야! 혼자서 많이 고생했겠네? 어쩜 좋아. 응?」
포르토피노는 역시나 좋은 친구였다. 록 페스티발 모임은 끝났고, 다음 날 포르토피노의 집에서 단둘이 차분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바보 같은 말이지만 포르토피노는 자기가 그 마음의 병을 치료해주겠다고 장담했다. 심지어 그 요술까지 숙달할 수 있게 만들 수 있다고 큰소리쳤다. 많이 나간 거 치고는 너무 자신만만했다. 뭔가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일까? 그런데 알고 보니 포르토피노는 기분 내키는 대로 책임감도 없이 막 내뱉은 말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어떻게 그런 인상 깊은 우연이! 첫째 날, 둘째 날, 셋째 날 그렇게 JS의 마음을 뺐어버린 마술사는 바로 포르토피노의 옆집에 살았던 것이다.
인생은 무상하고, 사랑은 변하기 쉬우며, 성공은 어렵다. 그러면 뭘 해도 재밌고, 사랑 받는 귀염둥이로써 인기에 시달릴 정도로 출세할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떻게 해야 할까! 포르토피노 같은 친구를 만나면 된다. 일명 포르토피노마 타기! (뭐? 놀고 있네!)
그야 어쨌든, JS는 천박함에 부정적이었고 저속한 걸 싫어했다. 그러나 누굴 만나느냐에 따라 다른 얘기였다. 소망의 떠나감은 불만일 수도 있고, 탐구심에 대한 애착도 그때그때 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미 포르토피노와의 우정은 굳건했고, 우정의 2인자로 마술사까지 자신의 알찬 인맥에 포함시킬 수 있다는 기대감에 환각은 이미 치유되어버렸다. 그들은 함께 옆집으로 갔다. 그리고 마술사를 만났다.
「반갑습니다. 눈빛으로 판단하건대 저와는 가는 길이 다르신 것 같군요. 그렇죠? 설마 제 요술을 믿으신 건 아니겠죠? 그럴 리가! 우리가 딛고 서 있는 이곳이 유토피아가 아니듯이 저는 영화에나 나오는 그런 황당한 요술사가 아니랍니다. 생각해보세요. 어떻게 인간 세상에서 만화영화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겠습니까. 혹시 방금 전에 심즌가족이라도 보신 건 아니겠죠? 현역이었다면 몰라도 저는 은퇴한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뭘 숨기고 어쩌고 그러지 않습니다. 그럼요. 아, 그 소식 들으셨죠? 세기의 마술사 데이비드 커퍼필드가 까다로운 소송에 발목잡혔다는 뉴스 말입니다. 아 그 친구로 말할 것 같으면, 한때 저와 경쟁 관계에 있었는데, 많이 컸죠. 그럼요. 실은 그때 제가 많이 봐줬어요. 하는 말도 그렇고 수법도 그렇고 꽤 귀여웠기 때문이죠. 속으로 응큼한 생각을 많이 하는 친구였어요. 갖가지 욕망도 듬뿍 넘쳤구요. 실은 그게 아니라, 제가 그의 조수를 짝사랑했기 때문이죠. 유명한 요술사나 권위적인 도박사, 냉철한 승부사까지 우리끼리만 아는 어떤 비밀 하나를 알려드릴까요? 그건 바로 마술사 조수의 미모, 도박사의 사생활, 승부사의 재산 내역과 실력이랄지 유명세는 어느 정도 비례한다는 점이죠. 때문에 저는 커퍼필드의 조수에게 홀딱 반하고 말게 된 것이죠. 네 그럼요. 한번 걸려드니까 거 정말 빠져나올 수가 없더라구요. 사랑이란 게 원래 그런 것 아니겠어요? 그래서 원래는 제가 당시에 더 알아줬는데, 그냥 은근슬쩍 제가 슥 2인자로 내려왔었죠. 저 아니었으면 어림도 없었겠죠. 제가 만약 그때 빡하며 고집부렸다면 녀석은 내내 제 빛에 가려서 투정이나 늘었겠죠 뭐. 정 서운하면 제 엉덩이에 키스라도 하든가 했을 테구요. 그건 그렇고 간략히 요점만 말씀드리자면, 그렇게 행복한 결혼 생활이 얼마간 계속된 다음 우린 운명적으로 결별을 하게 되었답니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우린 서로 행복한 미래를 기원해주는 사이로 남았구요.......」
포르토피노와 JS는 마술사의 집을 나와서 다시 포르토피노의 집으로 돌아왔다. 마술사는 은퇴했고 더군다나 부인과 이혼했다? JS는 결코 눈속임 마술을 가르쳐주라고 조를 수가 없었다.
「그런데 있잖아. 마술사의 전부인이 말이야, 남자였데!」
뭐?
그는 이제 남은 일은 하나라고 생각했다. 그건 무엇일까? 뭐겠나, 따라하기지! 상대는 마라였다. 제일 맹한 여자이기 때문은 아닐 테지만 1차로 마라에게 최면이 통하느냐, 마느냐! 그에 따라 그 정체 모를 신공이 나에게도 가능할 것인가가 달려있었다. 그것이 성공해야지만 샐리에게 또 이브에게 시험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슬슬 작전을 실행했는데, 결과는?
작전 대실패! 그는 거의 맞을 뻔 했다. 내용은 이랬다. 첫 번째 날 리시브는 더없이 완벽했다. 그러나 그게 끝이었다. 상대는 걸려들래야 걸려들 수가 없었고, 그에 앞서 티셔츠는 그냥 티셔츠일 뿐이었다. 그는 다시 소년의 마음으로 돌아갔다. 그건 마치 아는 형이나 선배에게 이런 얘기를 들은 기분이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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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랑 얘기하니까 어때, 재밌지?」
그 말을 듣기 전에 그처럼 느꼈다가,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마음을 통채로 들킨 것처럼 깜짝 놀랐는데, 그런데 그 다음이 없다는 거. 이게 바로 허당의 특징이다. 그 다음이 없어.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그러니까 남는 건 뭘까, 허세 밖에 없다. 만약 허풍에 일가견이 없다면, 3박자인지 4대 요소가 충족되지 않았다면 말이다. 허영심 뚜껑 열리게 만드는 바로 그것. 뭔가 있는 듯 해서 듣고 봤더니 글쎄 그래서 그래서, 그 다음에 그 다음에, 그런데? 그러나 그 다음이 없어. 아무것도 없어. 있어도 때리고 싶게 만드는 결과 뿐.
하긴 그는 자기도 그런 기억이 하나 있던 걸 떠올렸다. 형이 꼬셔줄께 어쩔께 큰소리 뻥뻥-쳤다가, 남자 후배랑 둘이서 먼 길을 걷다 걷다 지쳐서 후배는 따지고 사이는 서먹해진 일.
「형이 말 건다면서요? 아 꼬셔준다면서요!」
그것도 그럴 만한 일이었다. 파도 소리 들리는 해변가라면 어떻게 뭔 배짱으로 미녀도 아닌 적당한 선녀를 골라서─그게 더 어쩐다고? 워-워-워!─아가씨 아름답소 어쩌고저쩌고 했을 텐데. 그런데 이건 뭐 분위기도 없고 차가운 회색 도시에서 맨땅에 헤딩을... 그건 도저히 어려운 일이었으니까. 게다가 밤도 아니고 대낮에. 보이는 건 전부, (설레설레)! 결국 본인도 허당이란 걸 부인할 수 없었다. 그분들은 언제까지라도 영원한 허당으로 남을 수 밖에 없다. 그러니까 왜, 대관절 어째서? 왜냐하면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실제 없으니까. 그래. 맨발의 청춘!
둘째, 원래 없는 걸 좋아하니까.
사랑은? 없어! 으쌰으쌰의 의리는? 없어! 참말의 목적, 의도, 목표점? 없어! 돈 욕심 없고 차 욕심도 없고, 또 뭐가 없지? 멋진 옷, 좋은 구두, 그럴싸한 호사? 싹 다 필요 없어. 나는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식으로 봤을 땐 적어도 그렇다. 그래서 그건 단지 의식주요 이동수단일 뿐, 호모 사피엔스가 옷을 걸쳤을 뿐 그게 뭐 대단하다고? 단, 오직 취득 불가능할 때에만! 가능성에서 내 능력 밖이면 관심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음. 그처럼 못 오를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 라는 속담을 실천하는 건 합리적인 행동일 수도 있지만 <꼬끼요꼬꼬댁>일 수도 있다. 일단 앞면을 보자면 맞는 말이다. 광고에 나오는 모든 곳에 직접 가고, 광고에 나오는 좋은 소비재를 다 사며, 아름다운 숙녀를 모두 사랑하며 죄다 데리고 살아야 하는 건 아니니까. 그렇지만 뒷면을 보자면 쩨쩨한 합리화일지도 모른다. 부러우면 진다 라는 허세가 허영심의 이상형일 리는 없으니까. 참고로 바나나는 까서 먹는 재미로 먹는다. 그런데 벌써 알몸을 드러낸 바나나? 재미없다! 깐 바나나 또 까는 것도 아니고, 참 나! 하오나 바나나가 피망이나 브로콜리가 아닌 이상 그 본래 맛이 어디 가지는 않겠지요? 만화영화 주인공들이야 애인이 있고 싸워야 할 악당도 존재하지만, 고독한 도시의 남자에게 아프로디테는 어쩔 수 없는 그림의 떡! 그렇다고 돌아온 싱글 일명 돌씽에게 수업을 받는다? 자존심이 허락치 않음. 아마도 형편없는 낭설에 불과하겠지만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라이벌 누구는 이미 바나나 다음에 코코넛을? 오오, 저런! 바나나 껍질을 밟을 뻔 밟을 뻔 하다 용케 피했는데, 뭐야 이거, 머피의 법칙? 살다 살다 내가 다 새똥을 맞다니, 요즘엔 새들도 사람 가려 가며 실례를 하시나! 사정이야 딱하지만 지엄한 형편이 그러하니, 그러니까, 미녀를 다른 누가 아닌 내가 만날 수 없다면? 그녀들은 말하면 속고 아는 건 그만그만한, (딱!) 백치가 된다. 장난하냐 내가 어디 사는데 거기 지리 내가 제일 잘 알아, 라며 시지프스를 프로메테우스로 잘못 알은 체 인상 팍─팍 쓰며 빡─빡 우기는 상남자가 나중 어떻게 손바닥을 뒤집을까? 와~ 말도 못한다! (설레설레) 한마디로 역대급! 그건 명백히 '아는 척' 강박증이다. '잘난 척' 증후군에 대해 특히 웃긴 경우는 그거다. 10살 20살까지 어항에서 살다가 어른이 되어 넓은 세상을 알게 된 부류. 어항의 예법 곧 '잘난 척 하지 않기'가 나쁘다는 게 아니다. 다만 내가 하면 꿈을 펼치는 거고 남이 하면 꼴불견에 잘난 체 한다니, 주의할 점은 그거니까. 개그맨 보고 '웃겨 봐!', 은행원 보고 '돈 세 봐!' 라면 그건 무례다. 농담이라고 주장하는 술꾼에게 쓱 말리면 말린 사람도 생각 좀 해 볼 문제다. 진짜로 웃기고 진짜로 돈을 세서 만인을 웃기는 현자가 최고겠지만, 아무래도 그건 힘들고. 이미 세 바꾸 반 돈 선량한 호기에 대항해 냉철한 이성에 입각하여 디오니소스 대 헤라클래스 구도를? 어디 가 봤어 너 뭐 해 봤냐 라는 허세가 아니라, 진짜로 어디이자 격조의 한복판인 격조 레스토랑에서는 그런다. 할리우드의 신성이네 고전음악계의 거장이네 골프계의 전설, 테니스 세계 몇 위? 소 닭 보듯 닭 소 보듯 한다. 아예 쳐다 보지도 않는다! 싼 게 비지떡이네 싸구려가 합리주의일 수도 있네 라는 말도 과감히 생략된다. 괜히 지방에서 일반인이 유명인에게 같이 사진 찍어요 사인해주라, 해서 불가피하게 어쩌다 거절당하면 참지 못하고 뭔가 한 마디 톡 쏘는 모습과는 정반대로 말이다. 그처럼 자기 할 말만 하고 통화를 갑자기 뚝 끊는다? 우리 마누라에요, 내 여자친구네! 내게 유리하면 프라이버시, 내게 불리하면 유명인의 도덕성? 하긴 나도 언제 갑자기 치사해질지 결코 장담할 수가 없다는 걸 왜 모르겠나. 뭐 그건 그렇고, 말하자면 엎드려 절 받을 수 있는 절호의 찬스를 못 말리는 행운아가 왜 마다하겠나! 계기랄지 한방 또는 회심의 역전 드라마는 바로 그런 데서 싹트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그것도 종이 한 장 차이다. 친구가 공판장에서 일하는 건 아는데, 어판장의 그 뭐라 그러지 아하 경매 수신호를 늬가 정말로 할 줄 안다고? 너 웃겨 봐 야 돈 세 봐, 라는 의미가 아니라 신기해서 한번 해 보라고 요구하는 건 친구의 특권이고, 다시 그 특권을 슥 무시하며 말을 돌리는 것도 우정의 속성이다. 그 종이 한 장 차이를 잘 아는 사람이 어려운 처지에서 나중 대성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가난한 환경에서 성장하여 부자로 출세하더라도 사람 좋고 재밌고 친해지고 싶은 사람은 차마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러니까 출발선부터 신사인 계층과의 차이를 무마할 수 있는 게 뭐냐, 자질이고 학습이며 사극과 고품격에 대한 안목이다. 옛날 말로 가정교육, 다른 말로 공감능력, 신기한 상상력, 놀라운 친화력도 같은 이치다. 후천적인 감식안, 갈고 닦은 변별력, 나중 촌스런 취향으로 유명해질 수도 있다. 그런데 그래 봐야 타율이 낮아지면 낮아졌지 절대 높아지기는 힘들다. 귀족성이란 무엇이냐에 대한 묘사, 그것에 절반은 실패했다고 하는 헨리씨 정도면 그나마 양반일 것이다. 그래도 알고 보면 촌닭이 재밌긴 재밌다. 인기는 진공청소기가 독차지할지라도 분위기는 촌닭이 띠우니까. 다만 말수가 적은 편인데, 속에 싸인 건 많은 반면 야망의 실현은 적잖이 불만족인 촌닭은 꽤 애매모호함. 모두 제각각인 이기주의 100, 1000, 10000이 만나면 과연 어떻게 될까? 동물농장의 세상만사에서 제1의 대망에 대하여 나는 뒤쳐졌다, 고로 나는 슬프다 난 불행하다? 성공의 가치는 거기도 있지만, 삶의 의미를 생각한다면 제2의 꿈과 제3의 행복을 찾는 것이 진짜 인생이다. 그리고 여자는 촌년이 비교적 근소하게 착한 반면 대신에 시녀는 할 말이 많다. 왜냐하면 싸인 게 많으니까. 싸여도 이만저만한 게 아니니까. 말이 통했던 남자는 일평생 넓게 쳐서 손으로 꼽고, 향기로운 꽃이 피었는데 나비가 다 웬말이냐, 파리마저 날리지 않는다? 옆 테이블에서 야 야 가서 말 걸어봐 뭐라고 이 자식이 지금 장난하냐 에이 못생겼네, 라는 말이 다 들릴 만큼 내 귀가 밝다? 오늘은 달리는 수 밖에 없다. 어느 장르를 너무 밝히는 게 아니라 내 귀가 너무 밝으니까 건강하니까 청순하니까. 그러니까 오늘은 음악이 멈추지 않는 2박자 무도회에 가야 하는 것이다. 아 글쎄 지금 안 그러게 생겼나? 그래서 남자들이 양주 3병일 때 그녀들은 수다 3시간이다. 그렇다고 여자라고 모두 비너스요 모나리자에 아를르의 여인이 아님. 말 몇 마디 섞어보면, 아이고~아이고 끄덕끄덕! 남녀 둘 다 똑같은 사람이니까. 아아, 그런데 너무 멀리 갔다. 대체 여기가 어디지? 내가 여기까지 왜 온 거야! 정말 어디까지 간지조차 모르겠다. 아무튼, 거 참 말 많네!
다시 주제로 돌아와서, 또 뭐가 없을까? 즉, '없다'는 또 뭐가 있을까? 아하, 사랑하면 찐한 사랑이지. 그럼 사랑에 대한 욕망도 없겠네? (딱)! '없다'의 예가 벌써 끝날 리가 있나. 예술 생활을 위한 명분과 교양인을 위한 문화? 필요 없어! 낭만적인 선망 그리고 꿈과 희망? 없어! 세상에 공짜가? 없지! 남녀 사이의 끝은? 있겠어요?! 우리에게 동심이? 맞을래! (남녀의) 우정? 있을 턱이 있나!
간혹 우리 동기들은 굳건한 우애와 멜로드라마풍 감성, 플라톤 사상의 논의도 가능함과 동시에 플라토닉에 대한 공감, 종교적인 신뢰, 뿐만 아니라 큐피트의 역할이니 뭐니 뭔 말을 하더라도 알고 보면, 어? 알고 보면 사랑의 화살표는 난무하고 그 가운데는 승자도, 패자도, 떠돌이도 각양각색으로 존재할 수 밖에 없다. 아직도 모르는 사람만 바보인 거지. 눈치 없게 말이다. 말은 사랑의 신호에 대한 욕심이 없다는데, 몸은 언제나 흑심! 누군가 객관적인 제3의 인물이 머머 몇기 최고의 동기들을 각자 대면 상담을 하고서 실상을 알고 나면, 말도 못하는 거지. 남녀가 혼재된 동기 사이에서만 그런 게 아님. 일단 동성일지라도 셋, 넷을 넘어가면 편은 생길 수 밖에 없는 운명. 셋, 넷까지는 (적어도 그때 당시는) 끈끈한 우정으로 으쌰으쌰할 수 있는데 그게 그리 길게 가기 힘듦.
첫째는 뭐 돈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을 수 있다, 잘난 사람은 잘난대로 살고 못난 사람은 못난대로 살면 된다, 그러든 어쩌든 첫째는 어쩔 수 없다 치자. 그런데 둘째는 뭐냐, 그건 어? 그건 정말 아니다? 순진하시긴! 빈말과 참말의 비율을 화자와 청자가 자꾸 혼동한다는 것, 어른 세상의 논리를 굳이 논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이런 얘기 하나도 재미없는데 요 앞에 서커스단이나 구경 갔다 올까? 에이 가지 말자.」
근사한 인문교양서를 쓴단지가 언젠데 말만, 말만 그냥 미래학자가 따로 없다. 그렇지만 그런 분들이 또 타석감은 좋다. 타율이 다음과 같기는 힘들겠지만. 정말 다음처럼 뻥뻥 터트리는 달변가와 감동도 웃음도 뭐든지 다 안겨주는 홈런왕이 있다면 그 재주를 유명세와 연애사에 쓰지 어설픈 술자리에서 에너지를 낭비하지는 않는다. 시간 남으면 밑밥을 뿌리는 건 취미고. 동물의 왕국에서 맹수들이 느그적느그적 내내 자고, 놀고, 쉬고, 걷고, 헤매며 사냥에 실패하는 이유가 다 있는 거거든.
「너 요즘 책이, 특히 소설이 왜 안 팔리는지 아니? 왜냐하면 매체의 고유 영역에 대한 수준 그 나아갈 길을 잊어버렸기, 잃어버렸기 때문이야. 너 한번 생각해 봐. 상남자들이 좋아하는 게 뭐야, 그래 <없다>야. 응? <없어>라고. 니체가 뭐랬니? 원래 마초가 없다는 걸 좋아하는데, 니체는 뭐랬는지는 알고, 그런데 니체는 안 읽었고, 오락산업이 퍼트리는 제목들만 알아. 그가 동전의 앞뒷면 같은 창조와 파괴에 대해 뭐라 설파했는지 어땠는지 관심이 없어. 응? 머머 접습니다 다음에 새로운 취미, 심심함 다음에 뜻밖의 행운, 이직과 이사, 또 이별 다음에 찾아오는 새로운 사랑이 과연 니체의 철학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어? 내가 그걸 왜 알아야 하는데! 그게 인생의 포지셔닝일 테니까 말이야. 그처럼 말이야, 왜 그 말이 탄생했는지는 모른 체 그 말을 했다는 상식만 아는 게 어느새 현대인의 교양이 되어버렸다고. 응? 그게 무슨 교양이니! 장난해? 아니잖아! 한 번뿐인 인생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거랑 막사는 건 다른 거거든. 우정은 <내일은 없다>와 사랑은 <막살자>와? 어허, 이거 이거 큰일날 소리를! 설마... 그렇게 살고 싶은 건 아니지? 아닐 꺼야. 그런데 이 친구 왜 이렇게 좋아해? 아, 그만 웃어! 한때 놀았다, 그땐 나도 잘나갔다, 방황하던 시절이 있었다, 거침없는 열정을 주체하지 못하던 젊음 그건 결과적으로 쨍한 사랑의 전적으로 남았다! 라~는 의미로 웃자고 말하는 막살자와 진짜로 막사는 것. 전자와 후자가 어떻게 같을 수 있겠니! 안 그래? 막산다는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게 하나 있지. <왜 팀을 엘리트로만 구성하면 안되는가> 라는 인문교양서의 흔한 주제, 한 번쯤은 들어봤지? 읽어 봤나는 몰라도 최소한 들어는 봤을 꺼야. 그러든 어쩌든 읽으나 마나 뭔 얘기할지 알잖나. 입바른 얘기, 기교가 뛰어난 글발, 뭔가 있어 보이는 이론 같은 거. 괴짜도 필요하고 똑같은 생각들만으로는 진전이 어렵다, 드물게 보면 문제아들이 일 낸다, 소속감이니 취약성이니 방향성이니 어쩌고저쩌고. 정말 그럴 것 같아? 아니야~. 천만의 말씀! 물론 그 말도 맞고, 옳고, 뛰어난 분석이지 왜 아니겠니. 그런데 있잖아, 그건 한마디로 포장이고 미화며 변명일 수도 있어. 스포츠리그를 봐 봐. 7부 리그가 잘하니 1부 리그가 잘 하니? 연봉 비리비리한 무명이 모두 나중 영웅 되니? 일류대 나온 친구가 똑똑하니, 삼류 대학에서 공부 안하고 겉돌며 막살았던 친구가 똑똑하니? 왜 숙녀는 멍청하다는 표현에 유독 민감하니? 경력이 어중간한 사람들과 일하는 것과 뭘로 봐도 최고인 사람들과 일하는 것과는 하늘과 땅 차이야. 팀워크가 어쩌고저쩌고 그건 다 갖다 붙인 이유일 뿐이고, 실제로 뭘로 봐도 최고만으로 구성원을 뽑고 드물게 예외를 두는 건 최고는 막살아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응? 아닌 말로 막사는 사람을 위한 서비스와 제품을 만드는데, 그런데 한번도 막살아보지 않은 최고들과 진짜로 막산다는 게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진짜로 막사는 분들을 위해서> 뭔가를 만든다? 결과는 좋을 수도 있어. 확률로 따졌을 때 타율만 유지하면 되니까, 타석으로 승부하는 게 세상사의 법칙이니까. 응? 그러다 하나 얻어걸리기만 하면 되는 거거든. 주가야 오르락내리락하는 거고. 달리 문제될 건 없다고. 그러나 경쟁은 치열한데 타율이 낮으면 밝은 내일은 기대하기 힘들 수 밖에 없겠지. 진짜로 막살았다가 전혀 다른 경로로 회사를 옆문으로 들어오고, 얼렁뚱땅 팀에 스카웃되고, 그런 인재들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한 책들은 나오고 또 나오고 계속 나와. 즉 정상적으로는 뭘로든 최고 인재가 훨씬 좋아. 천사요 요정이자 절세미녀인 정실 1명에 첩 100명. 응? 비유가 좀 그렇지만 일이란 건 그 반대로 최고 요원 100명을 뽑고 듬성듬성 최고가 아닌 유형도 뽑는 것, 그 규칙을 따르지 않는 회사는 별로 없어. 안 그래? 빈틈을 메꾸고, 최고들을 견재하며, 희안한 스트레스를 발생시키고, 최고가 만든 게 진짜 최고냐며 따질 수 있는 역할이 필요하니까. 색다른 발상, 특이한 제안, 기묘한 상상력이 그렇게 만들어지니까. 그런데 4번 타자가 슬럼프에 빠져 비리비리하고 1군들이 맥을 못추면 뭐다? 연패라고 응? 연패! 딴 데 가면 일류로 대접 받을 2군들이 필요한 이유고, 극적인 드라마를 새롭게 쓰는 대타와 밑도 끝도 없이 뻔트로 홈런 치는 뻔트마가 절실한 때가 오기를 기다리다가 경쟁사에게 수싸움에 밀리거나 운 나쁘면 뭐겠냐고. 응? 주가 폭락이야! 영리하고 똑똑한 최고들로만 모였으면 대체로 일도 잘하고, 분위기도 좋고, 성과도 뛰어나. 그렇지만 그 말은 곧 장님 코끼리 만지는 격일 수도 있다 그거거든. 막살아보지도 못한 주제에 뭘 안다고 막산다는 건 뭐다, 내일은 없다가 뭔 줄 아세요, 사랑은 있을까 없을까, 따따부따 따따부따? 실소를 부를 일이지. 애들 장난 같은 일이니까. 뭘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응애응애 삐악삐악, 응? 너무 막산다 막살자, 말이 좀 그러니까 비유를 딴 걸로 들어도 돼. 이를 테면 십대, 십대를 위한 서비스! 또는 쟁쟁한 브랜드가 매출은 대부분 20대 이후로부터 거둬들이고 20대 미만에게 최면을 거는 일 같은 거. 최고들이 모여서 10대를 위해 최면을 건다면서 회의하고 연구하고 그래 봐야, 10대가 봤을 땐 그건 그냥 웃기는 일일 수도 있단 말이야. 어른들은 일단 꼰대거든. 화법과 말투, 쓰는 어휘는 다르겠지만 꽉 막힌 꼰대와 동경하는 꼰대가 나뉘긴 하겠지만, 어쨌든 아재는 아재고 꼰대는 꼰대야. 어른들이 세상을 살아보면 스무 살이 응애응애로 보일 수 밖에 없다는 걸 느끼는 것처럼, 젊은이 입장에서 봤을 때 어른의 말은 의도야 좋지만 개구리가 올챙이 적 생각 못하는 거거든. 자기는 그렇게 안 살았으면서, 자기의 생각은 그만의 것이고, 다른 사람은 다른 개성이 있는 거니까. 친구끼리야 늬가 잘났냐 내가 잘났냐 그건 우정이고, 학예회에서야 연기자들이 깨물어줄 만큼 예뻐보이며 즐겁겠지만 큰 재주 1개와 잔재주 100개의 차이를 누가 모르겠니! 바로 그래서 극비에 진행하는 최고의 프로젝트를 엘리트로만 구성하면 어쩌고저쩌고 그러는 거라고.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들도 그래서 나오는 거고. 갖다 붙인 이유와 화려한 수식어, 기가 막힌 미사여구, 지금이 소비의 시대라고 과장 광고마냥 인문교양서도 실패작의 양이 느는 만큼 명작이 늘지는 않아. 그건 그다지 비례하지 않는단 말일세. 학업을 포기하고 인생도 길을 잃고 사랑은 실종되며 그런 막사는 시절이 없었던 사람은, 막사는 게 뭐다에 대해서 말은 할 수 있지만 진짜로 막사는 게 뭔지 몰라. 말만 많지 하나도 몰라. 뭐라 설을 풀고 글로 유명하며 연예인 행세를? 에이 웃기지도 않는다. 애들 장난도 아니고 말이야. 물론 막살았던 경험이 벼슬도 아니고 자랑이 될 수는 없지만, 최소한 막산다는 본질이 뭐다에 대해서만 말하자면, 막살아보지도 못한 주제에 꼴에 막사는 게 뭐다? 장난해? 어? 장난하냐고! 그분들은, 막산다는 것에 대해서, 눈꼽 만큼도 몰라. 응? 스포츠팬의 야유야 웃기고 그냥 넘길 일이겠지만 잘 알지도 못하면서 따따부따 따따부따? 난 말일세, 그건 정말로 누구 엉덩이에 키스를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네. 자, 그럼 이제 누구 엉덩이에 키스를 하면 좋을까, 는 나중에 생각하고 아무튼! 그건 본인에게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세계 7대 불가사의 같은 일이나 다름없어. 왜? 왜냐하면 막산다는 직접 경험을 해본 적이 없으니까 말이야!
하지만~! 그게 왜 우리 잘못이야? 하라는대로 했을 뿐인데, 우리 보고 뭘 어쩌라고! 윗 물이 맑아야 아랫 물이 맑은 법. 다 어른들 말을 듣고서 적당히 노력하고, 적당히 착했을 뿐이잖아. 맞잖니! 그렇지만, 너 모험 해 봤어? 안 해 봤잖아. 뭐 으쌰으쌰? 그게 무슨 모험이야! 참 나. 유명한 작가들이 고전의 그늘에서 벗어나기가 쉽니? 아니거든 다 아니거든. 영화를 볼까 소설을 읽을까, 만화영화를 볼까 소설을 읽을까, 드라마를 볼까 문학과 친해질까, 나가서 놀까 아니면 여자친구를 위해서 연애시를 외울까, 책을 읽을까 술을 마실까, 최신 유행가를 들을까 하이든─브루크너─빌라로보스 또는 마리아 칼라스를 들을까? 뭘로 해도 안되거든. 아니 상대가 되야 뭔 말을 하던가 말든가 할 꺼 아니냐고. 안 그래? 그런데 신인 작가들은 절반이 그래. 기본의 '기'자도 몰라. 태반이 그래. 처음부터, 유명해지기 전부터 연예인병에 걸려 있어. 애초에 돈과 인기만 추종한다구. 다 그렇다는 게 아니라, 학계와 업계가 한 우물에 혼재되니까 어쩔 수가 없어. 문학도 결국은, 나중은 모르겠지만, 기초 학문일 뿐이라구. 지금 세상에서는 말이야. 18세기, 19세기를 봐 봐. 지금보다 만 분의 1, 100만 분의 1 만큼 밖에 작품이 만들어지지 않았어. 그런데 수준은? 왜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냐, 다 돈 때문 아니겠냐고! 지금 모차르트가 나오니, 피카소가 태어나니? 예술의 전성기는, 없어 라는 표현을 좋아하는 취향 만큼이나, 한마디로, 끝났어. 응? 말만 예술이고 절반은 오락이자 게임일 뿐이야. 다른 말로 시간 때우기! 요즘 친구들이 히포크라테스를 얘기하니 유벤타스를 아니? 베아트리체나 타이스의 명상곡 그런 거 관심 하나도 없어. 역시나 여기서도 '없어'가 인기라고. 안 그래? 왜? 머리만 아프거든. 따분하거든. 재미가 없거든~! 실상 별 도움도 안되고 그런 얘기하면 따분한 사람이란 시선을 받게 되거든. 사람들도 원하는 건 다름 아닌 쾌락인 경우가 많고, 오락산업도 쾌감에 따른 뇌과학을 기반으로 우리를 길들일 뿐이라구. 그래서 애들 말할 때 잘 들어보면 강하고 압축된 표현을 선호하는 것 같아. 머머가 없다, 머머하면 끝이다 끝난다, 끝짱이다-이건 옛날 건가? 또 빡친다 어쩐다 등등. 말도 줄여. 개구리도 올챙이 때 똑같았어. 두더지가 개구리로 변신하는 게 아니라 똑같이 올챙이 시절을 거쳤을 뿐 다른 건 없다고. 뭐? 또 없다네. 없다 강박증 없다 트라우마! 아무튼 그런데 어른들은 그분들을 위해서 뭔가를 또 계속 만들어야 해. 그분들이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노는지도 잘 모르는데 그분들이 가지고 놀 장난감을 말이야.
그렇지만! 그 말은 곧 뭐야, 지금은 허당들이 뜰 수 있는 최적의 시기라는 것. 위기는 곧 기회야. 지금 만큼 허당이 떵떵거리며 유명세를 얻을 기회는 돌아보면 한 번도 없었지 않을까? 앞으로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렇다는 거야. 소질을 잘 찾아서 재능을 키우고, 실력을 발휘하여, 행운을 내 편으로 만든다면? 어떻게 잘 하면 한 분야에서 인기도 얻고 돈도 벌 수 있는 절호의 찬스라는 말씀! 임도 보고 뽕도 따고, 일석이조. 응? 얼마나 좋아! 아 그렇잖아? 그렇게만 된다면 (간접적으로) 난 돈 욕심 없어, (직접적으로) 난 유명해지고 싶은 마음 없어 라고 말할 필요가 없게 되는 것 아니니? 난 관점만 바꿨을 뿐인데, 세상을 바꾸고 싶은 심오한 포부 같은 건 일절 없었는데, 어쩌다 나의 삶과 인생이 바뀌는 일. 불가능한 게 아니라는 점 말이야. 뭐 그건 그렇고,
세상일은 그렇다 치고, 이참에 우리도 새로운 공기청정기 하나 장만할까? 옆집도 샀다며! 그렇다고 친구를 바꿀 순 없는 것 아니겠어? 아 정말 솔직히 말해서 우리 동기들 만큼 학벌 되고, 교양 있고, 옷 잘 입고, 뚜껑 없는 차는 세컨드고, 또 잘 놀고, 사교계에서 잘나가며, 품위와 급이 되는 친구들이 어디 흔하니?」
물론 인공지능이 뽑은 대화는 농담으로 넘기고, 허당의 현실을 돌아보자. 현실!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OK, 공기청정기를 주제로 정하자. 공기청정기? 진짜로 살 사람은 진짜로 사고, 안 살 사람은 말만 많다는 거! 아 말도 말어 말도 마. 세상일이 그렇다. 부자가 되는 사람, 애매한 사람, 머머하는 법 같은 책만 왕창 읽거나─책과는 담 쌓고 잔지식으로 무장하며 말발만 화려하거나 말수 없이 빈정거리거나─또는 동기 부여 강연회만 엄청 쫓아다니고 막 이리 갔다 저리 갔다 열만 왕성한 유형. 살면서 정직했고, 착실하며, 귀가 얇지도 않았는데 셋 중 3번인 부류도 있다는 것. 아니 그게 아니라 훨씬 많을까? 그럴지도 모름. 그런데 나는 돈 욕심 없다며 따따부따, 따따부따! 돈 뿐만이 아니다. 공부도 그렇고, 영화감독 되기도 그렇고, 작가 되기 머 하기 머머하지 않기, 연애하기도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결국 넷 중 하나네.
첫째, 페라리를 산다.
둘째, 페라리를 못산다. 그러나 사고 싶다. 솔직히 부럽다. 하지만 포르토피노 몽키스패너와 친하다.
셋째, 말로만 요트를 샀다 팔았다 샀다 팔았다, 따따부따 깨방정! 에르메스 하나도 부럽지 않다.
넷째, 침묵. 곧 듣기 먼저, 분위기 먼저, 전망 먼저.
여기서 관심 없어는 응당 3번. 그런데 라 페라리를 샀다가 망한 건 뭐냐구요? 빡! 하지만 구태여 합리화하자면 입이라도 살아 있어야지 안 그러면 재미도 없고, 열도 가라앉으며, 로또 복권 뿐만 아니라 기분까지 꽝된다. 고로, 결론은 <없다>다. 대세는 <없다>니까. 다른 말로 하자면,
형, 철들지 마세요!
15
한편 나는 대체 왜 안되는 것일까 라는 자책과 의구심, 열망, 동경심, 신비감과 소망은 JS를 가만 놔둘 리가 없었다. 리시브─토스─스파이크 그렇게 3박자를 흉내내야 하는데... 빡이 뭔지를 느껴야 하는데... 그런데 남은 건 허당의 3박자인지 4대 요소조차 어림없으니,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이런, 젠장! 그러면 혹시 모르니까 이번에는 다르게 가볼까? 투수처럼 오랜 기간 준비해서 대망을 실현시킬까? 그런데 마구는 남들도 다 던진다. 게다가 기본기를 어느 세월에 익히나. 축구의 플레이메이커니 배구의 세터니 그는 아무리 봐도 한마디로 헤드라인감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니 인생이 거포냐 뻔트냐, 둘 중에서 당연히 뻔트일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큰 재주냐 뻔트냐, 올인이냐 액면이냐! 재주는 많은데 그런데 다 잔재주뿐! 큰 재능 딱 하나와 10분이 다 뭐냐는 말솜씨도 없이 말이다. 심지어 돈도 없고! 그렇다고 우정의 수준은? 친구 파도타기는 둘 중 하나다.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원숭이가 받는다 곧 꼼지락꼼지락, 그리고 오늘도 허세 언제나 허당!
그가 기쁨에 흥분하는 상큼한 숙녀와 애교 넘치고 수줍어하는 처녀를 양쪽에 거느리고 싶어했는가? 전혀 아니다! 그렇다고 그가 막살기를 원했나, 밤의 제왕으로 핑크빛 사교계에서 군림하기를 바랬나? 그것도 아니다. 그럴 리가 있겠나. 것도 아니면 따분한 삶에 싫증내며 가난한 인생에 불쾌해 했을까? 아니다. 정반대였다. 그는 심심함의 무한함과 무안함에 하나도 지겨워하지 않았고, 인기 없음에 지긋지긋하다는 투정도, 뭘 해도 재미없다며 그 무료함에 신물이 난다고 응석부리지도 않았다. 단지 예술을 좋아했고, 오락을 즐겼으며, 문화를 애호했다. 정말로? 진짜로! 그런데 그 뭔지 알 수 없는 허전함은 대체 뭐란 말인가? 본인도 알 수 없었고, 그 누구도 속시원히 머머증이랄지 어떤 증후군이라며 진단해줄 수 없었다. 그러니 어쩔 수 없었다. 조증이란 카드는 바닥났고, 불리하다 싶으면 대타 허언증을 부를 수 밖에! 좌우지간 궁극적으로 막판의 후속책은 하나였다. 이제 남은 일은 바로, 닥치고 쓰기!
16
그에게 남은 일은 이제 본업 밖에 없었다. 그는 정말 처음에는 미친듯이 썼다. 바로 이렇게.
시작.
사랑은 유치해서 행복하다.
청춘은 심심해서 재미없다.
낭만은 드물기 때문에 값지다.
허영심은 선망을 탐애한다.
인생은 사랑과 야망 사이에서 방황한다.
일기는 소녀의 기쁨이고, 소년은 일찍부터 으쌰으쌰에 열중한다.
어른은 블로그 같은 나만의 몰입감에 애착을 느낀다.
인간의 3대 기본욕구니 매슬로우의 5단계 인간 욕구니 그도 좋지만 세상을 알게 되면
인간의 인생에 대한 욕망을 내가 새롭게 개편할 수 있다는 걸, 그래도 된다는 걸 알게 된다. 바로 이렇게!
꿈, 취미, 호기심, 행복에 대한 열망, 아니면 뭘 해도 재미없다거나 나 돈 욕심 있다는 솔직함으로!
완성도니 결점이니 지적은 다 블로킹 된다. 왜냐하면 어지간한 건 행복에 대한 열망이나 솔직함에 다 때려넣을 수 있으니까. 그리고,
미지의 열망은 불행한 내일마저 질투한다.
유쾌한 꿈은 은밀한 희망을 동경한다.
그러나 만족은 멀리에 있고, 인기는 도저히 손에 잡히지 않는다.
잡힐 듯 말 듯, 안길 뻔 말 뻔도 아니다.
내가 타인을 쥐락펴락하는 게 아니라
세상이 나를 들었다 놨다 밀었다 당겼다-한다.
황금은 오직 상상에 현혹될 뿐 나와 친하지 않은 것이다.
끝.
바로 이런 생각들이 JS를 괴롭히고 있었다. 공상가는 그의 운명이니까.
뭐, 그러니까 상념과 권태 그리고 타성? 이건 아니다. 이건 아니야!
그는 공책을 찢어서 구기고 물어뜯어 뭉쳐서 던졌다.
그러나 포기할 수는 없었다. 또 썼다.
시작.
열정을 지향했으나 허영만 남았고, 건강한 쾌락을 갈망했지만 잠깐의 관능감 다음에는 역시나 체념이었다. 그럼 이제 방황과 고난은 충분할 테니까 행복을 예감해도 되는 것일까? 아니다. 왜냐하면 숙명이 허락치 않을 테니까. 따라서 다음 투수는 사랑, 그것도 가련한 사랑이었다. 몽상가의 다망과 다몽증, 다정과 허언증 그리고 내 친구 공상은 영 쓸데없는 것 같아보여도 그건 행운을 부르는 재주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전망은 불투명했다. 기쁨의 기대는 선명하지 않았으니까. 그러므로 이제......?
끝.
그러나 그 다음이 없었다. 행동, 성과, 실천에 대한 다음도 없었고 새로움도 없었다. 이건 아니다. 이건 아니야!
그는 공책을 찢어서 구기고 물어뜯어 뭉쳐서 던졌다.
그러나 포기할 수는 없었다. 또 썼다.
시작.
쾌락의 날개를 펼친 사랑의 뭉개구름이 향하는 종착지는 과연 행복일까, 절망일까? 그 황홀한 낙원은 기쁜 인생일 수도 있으나 때로는 원망스런 카드값일 수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유복한 환경에서 자란 귀여운 아동은 촉망 받는 청춘이 되어 꺼뻑 반할 만한 숙녀와 홀딱 사랑에 빠졌는데, 결국 노상 낭만의 대가는 미리 당겨 쓴 황금의 독촉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처럼 이별한 결과, 사랑의 전리품은 쓰디쓴 카드빛이라면... 청춘은 짠한 것이 되나? 오늘은 돈을 내일은 사랑을, 라는 낙서는 한 편의 시가 될지도 모를 일. 지금은 몰라도 어쩌면 그 또한 더 나은 미래와 더 아름다운 사랑과 더 재밌는 인생을 위한 것일 수도 있을 테니, 실망은 절제를 불러야 할 것이다. 아닌 말로 젊음의 이별이 중년의 이혼보단 나을 테니까. 그렇지만 알고보면 돌싱의 모험이야말로 진정 즐거운 인생이더라?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원래 인생이란 무책임한 예언가와 애꿎은 점쟁이의 우정인지 사랑인지, 그런 꽤나 아리송한 친교 같은 것 아니더냐. 그런데 정말 그럴까? 진짜로 그러든 아니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허당의 3박자와 한량의 4대 요소를 기꺼이 탐구하는 노력은 기본 중의 기본일 것. 그러니까 누구에게? 오오 남자에게! 응? 캬~, 남자! 왜냐하면 남자의 인생은 뭐니 뭐니 해도 허당의 3박자와 플레이보이의 4대 요소로 얼마간 축약되어 평가될 수 있느냐가 즐거운 인생의 중요한 척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진짜로 누굴 만나서 너는 허당의 3박자를 얼마나 갖췄냐, 당신은 플레이보이의 4대 요소가 뭔지 아세요 라고 눈치없이 물어보면 곤란함. 많이 곤란함. 그러나 무슨 3박자니 4대 요소니 그거 결코 만만히 볼 거 아니다. 한창때 남아의 기상에 대한 그와 같은 숙연한 진리를 대체 그 누가 알려주겠나! 호메로스가? 자고로 호메로스가 시성으로 불렸던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허나 단점도 있다. 바로, 품위가 있어도 보면 졸린다는 점. 젊잖은 신사여서 호메로스를 가까이 하는지, 호메로스를 가까이 했기 때문에 점잖고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 다음으로 허당의 3박자와 플레이보이의 4대 요소를 단테가 가르쳐줄까? 단테를 끌어내리지 말고 선생께서 올라가시지! 그도 아니면 친한 친구가? 친구의 자존심과 열과 기 살려주기 놀이도 재미없다. 그건 바로 저명한 칼럼니스트이자 삼류 작가나 되니까 알려주는 인생의 비밀인 것이다. 그렇다고 진짜로 어디서 투표하며 공론화하지는 말 것.
끝.
그러니까 서두로 이렇게 낚아서 어떻게든 이야기를 풀어간다라... 식상했다. 재미없었다. 이건 아니다. 이건 아니야!
그는 공책을 찢어서 구기고 물어뜯어 뭉쳐서 던졌다.
그러나 포기할 수는 없었다. 또 썼다.
시작.
인생이란, 뭇남성들로부터 따끔한 시선을 받는 아가씨의 심정이 웬 허풍꾼을 만나 허풍꾼 2세를 낳는 것? 별로 그럴싸하지 않네. 다시! 인생이란 미니스커트를 입은 숙녀의 기분과 전재산을 털어 뚜껑 없는 자동차를 산 허당의 운명적 만남 같은 것! 그나마 좀 낫군. 뭐, 다시? 인생은 바나나껍질, 사랑은 선물 상자를 열면 튀어나오는 스프링 달린 권투 글러브, 광고는 악마의 속삭임, 거짓말은 천사의 실수! 뭐, 다~시? 안 해. 안 해. 안한다고!
끝.
아아, 인생이란? 긴 말 필요 있나. 인생론은 없다-지! 뭐, 막살자? 듣자 듣자 하니까, 뭐가 어쩌고 어째!
그는 공책을 찢어서 구기고 물어뜯어 뭉쳐서 던졌다.
그러나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계속 붙잡고만 있을 수도 없었다. 그래서 일단 접었다. 안될 때는 다른 일을 하는 게 정답이니까.
17
그는 하는 수 없이 마법사를 찾아갔다. 날 수제자로 받아줄 때까지 그분의 집 앞에서 텐트치고 살테다 라는 각오를 품고서.
그렇게 마법사의 집 앞에 도착했다. 그런데 도착해서 보니 그분은 이미 이사를 갔고 종적을 감춘 다음이었다.
저런!
이제 정말 어떡하지? 어떡하긴 뭘 어떡하나!
빠져든다 빠져든다 빠져든다, OK 빠져들었다? 그런데 빠져들긴 빠져들었는데 이미 빠져나왔다!
그는 신기한 마술이 진짜라는 걸 아는 장본인이었기 때문에 결코 그 신비한 환상을 잊을 수 없었다. 따라서 그는 이제 발걸음을 서점으로 옮기게 되었다. 독학을 시작하기 위해서.
그곳에서 웬 낯선 숙녀를 탐하며 말을 걸고 환심을 사며 수작을 거는 MG의 진면목을 발견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는 일단 책 10권부터 사기로 작심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