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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소설 2018. 6. 14. 14:42

   1

   나에게 오늘은 소설이고 내일은 전기다. 낮은 문학이고, 밤에 나는 동물학자였다. 일할 때는 아마도 허구를 쓰고, 놀 때 어쩌면 난 인문교양서가 시키는 지침을 거꾸로 실행하는 청개구리다. 난 그처럼 비겁자고 허세꾼이며 삐에로다. 왜냐하면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라~고 말한다면 그야말로 식상한 변명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이 그렇고 결과가 증명한다. 무명이란 성과는 알고 보면 내 업보였다.
   그러니까 내가 잘하지 못했던 일들 때문에 난 성공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일과표, 일기, 새해의 다짐 같은 거. 사귀자─헤어지자─사랑한다... 한 번도 못 해 봤던 말들이다. 좋아한다느니 키스 먼저에 백허그? 밀림의 사자고, 연애론을 속삭이는 하이에나이자, 언더그라운드의 선수다. 그건 그렇고, 축하한다는 둥 고맙네 미안하다... 간지럽고 몹시 불편하다. 물론 과장이다. 살짝 불미스러운 진실이지만 사실은 사실이다. 허당의 추억은 한마디로 불가피한 영웅당! 난 정말 친구가 어제 새로 산, 것도 꽤 비싼 구두를 잃어버렸을 때 폭소를 참느라 쓰러질 뻔 했다. 아니, 참는 데 실패했다. 심지어 제빵 수업 중 동료의 뼈에 금이 갔는데, 나중 나도 모르게 딴 친구와 웃었다. 단둘이 달리기 시합하다 단짝이 넘어져 뼈가 부러지자 난 당황했고, 나중 그 때문에 추억이 쌓였다. 말하자면 나는 그런 인간이었다. 잔재주 가운데 하나를 큰 재주로 키우는 데 집중하지 못하고, 잔재주의 폭만 넓히느라 그 흔한 연애 한번 제대로 못해본 남자. 난 그러니까 로맨티스트 유형이 아니라 바람둥이과 늑대인 듯 하다. 때문에 나는 못하는 건 핑계대고 어려운 건 합리화시킨다. 특히 좋은 건 뒤로 다 미룬다. 하기 싫은 일도 될 수 있으면 슥~ 연기한다. 꿈, 희망, 사랑, 점성술 배우기, 천문대 구경, 인생관 정립, 신비론 쓰기, 환상의 섬 탐험하기, 깜짝 인기상 타기, 득점왕 하기, 끝내기 홈런, 그리고 모험. 그런데 쾌락적인 기쁨은 내일이 아닌 바로 오늘 실현시킨다. 마성의 쾌감은 미래에서 대출하여 오늘 이용했다. 예를 들어 뻔트, 으샤으쌰, 샤우트 창법, 무인도에 데려가고 싶은 숙녀와 물건의 순위 매기기! 그러니까 오늘 날 난 결국 플레이보이의 4대 요소나 툭하면 상상하는 공상가가 된 것이다. 무엇을 할 것인가 라는 오늘, 어떻게 살 것인가 라는 인생. 뭘로 봐도 난 걸핏하면 패자였다. 그래서 나는 줄이 달린 줄도 모르고 맛있는 치즈를 좋아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나는 그냥 2군도 감지덕지에 7부 리그로 만족하고, 허세를 다독이며 허영심만 길들이는 영원한 애송이로 살아야만 할 운명인가? 하면~ 꼭 그렇지는 않다! 왜냐하면 나는 무수히 져봤기 때문에 루저 마인드가 신기한 경지에 도달했고, 따라서 괜찮은 인문-교양서도 뚝딱 쓸 수 있을 만큼─적어도 선천적인 선별력과 후천적인 안목 하나 만큼은 어디서 절대 빠지지 않는─패배주의의 신세계를 깨우쳤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 넘어져도 일어날 테다. 오늘도 타석에 들어설 것이다. 마음이 젊네 어쩌네 라는 그 흔한 말은 말하자면 그것이다. 몸은 몰라도 정신 만큼은 현역일 것! 내게 패전의 경험은 곧 한밑천이었다. 고로 나는 오늘 집에서 소크라테스처럼 아니 아르키메데스던가... 옷을 벗고, 멋쟁이처럼 차려 입은 다음 밖으로 나갈 것이다. 그래서 나는 테슬라가 되어 타인의 마음 속으로 풍덩 들어갈 테다.
   아무리 그렇다고 내 타석도 아닌데 몰래 남의 타석에? 사람은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어야 한다. 그렇다고 숙녀의 마음을 뺐고 그녀를 사랑의 포로로 만들어 여심 속으로 들어가랬더니, 진짜로 타인의 입술을 훔치고 가방을 뺐는다? 영화 찍을 일 있나! 그래서 사람들은 나뉠 수 밖에 없다. 사랑의 춤을 추고 행복을 노래하며 이상을 꿈꾸자, 라고 하면 각자 생각하는 당근은 모두 제각각인 것이다. 그러니까 이 시대의 돈키호테여, 도대체 언제까지 사랑론을 완성하고 호박 마술관, NC 신비에 입장하지 못해 쩔쩔매며 불쌍하게 살아야만 합니까? 우리가 무슨 병풍 붙박입니까? 그러지 말고 당장 발길 가는대로 내 님을 만나러 미지의 낙원으로 떠납시다? 여러분! 으쌰으쌰의 속성을 꿰뚫고 선동가의 본심을 파악하는 데 어마어마한 수업료를 지불하신 분들의 우여곡절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시적으로 무턱대고 발길 가는대로... 가만 있자. 그 무슨 철 지난 유행가 가사도 아니고, 진짜로 눈길 가는대로 보고 손길 가는대로 나도 모르게 움직였드니, 아 글쎄 그 다음에? 그녀가 온다 온다, 교태 교태 애교 애교, 상큼 상큼 달콤 달콤, 윙크 윙크, 키스한다 키스한다, 포옹한다 포옹한다... 이런, 젠장! 워─워─워! 우리는, 차라리 우리는, 내일로 가는 기쁨의 마차에 무임승차합시다. 나는 이기주의자요, 친구는 이타주의자며, 이 세상은 황금만능주의의 시대라는 걸, 이제 그만 인정합시다. 아, 안 그렇습니까, 여러분? 순서가 그렇습니다! 동의하십니까, 여러분? 다 들립니다. 개미가 걷는 소리도 미생물이 밀애하며 나누는 험담마저두요. 묻지 말라는 둥 계속 하라는 둥, 적당히 지껄이라는 둥, 등등등. 안 그래도 거의 끝나갑니다. 네. 그럼요. 일단 그 규칙과 순리를 인정하고 나서 그 다음을 꿈꿔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지만 슬기로운 지성도, 아찔한 여복도, 충분한 황금과 재밌는 인생까지 몽땅 거머쥘 수 있는 것 아닐까요? (그런 바보 같은 질문이 어딨어!)
   그러니까 결론이 뭐냐구요? 할 말이 없으면 할 일을 하라는 것이죠. 할 말이든 할 일이든, 될 수 있으면 둘 중 하나는 있는 게 좋은 거니까요. 정말 둘 다 없고, 돈마저 없으며, 뭐든지 궁할 때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그건 거의 희박하죠. 모른 체하지 맙시다 그려. 네. 그럼요. 어제는 박카스, 오늘은 헤라클라스, 내일은 큐피트? 그건 뜬구름 잡는 얘기죠. 그럼요. 그러니까 심심하면 관망을. 네? 이건 도저히 내 길이 아닌 것 같다는 전망이 우세하면, 꿈을 바꾸기! 네? 변심이 죄는 아니니까요. 뻔트는 사랑 고백! 네? 인기는 운명의 개척. (딱)! 하루에 1번 사랑을 생각하기. (쩍) 1주일에 한번 복권 사기. (빡) 1달에 한번 나이트클럽 가기. (큭) 100일에 한번 점쟁이의 실력이 늘었나 가서 평가하기. 1년에 한번 동물원 가기, 뭐 진정한 사랑은 평생 단 한 번? 워─워─워!
   결국 결론은 플레이보이의 3박자로군! 보나마나 뻔함. 잘났어 정말! 참말로 한심한 한량 같으니라고. 거 참 웃기는 양반일세 그려. 그 무슨 봐도 그만 안 봐도 그만 같은 얘기. 아 됐고! 다 필요 없고, 내 인생 내 마음대로 할꺼야? (딱)! OK! 바로 그 답을 이끌어내기 위해 부단히 참고, 끈질기게 변죽만 울렸으며, 집요하게 깐족거렸음. 부디 스스로 깨닫게 하기 위해서 그 유별난 뜸을 들였음. 바로 그 깨우침을 위하여 주제라는 수박의 겉만 핥고, 결론이라는 화려하며 호화 찬란한 궁전 주위에서 알짱거리기만 했음. 그러므로 그 눈물겨운 고행은 결코 쉬운 게 아니란 걸 알아주시라? 애 쓴다 애 써!
   라~고 나는 칼럼인지 일기인지를 쓰기는 썼다. 그런데 너무 수준 미달이라서 어느 잡지계에도 도저히 보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음을 기약하며 무진장 끙끙댔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드디어 진짜 칼럼을 완성했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2

   제목: 달변가의 눌변
   내용: 나는 허구를 쓰다가 뭔가 다른 할 말이 떠올랐다. 때문에 내 문학적 글쓰기는 일순간 인문-교양으로 분야를 달리 할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의 주제는 다음과 같다.
   그냥 허당과 은근 허당의 차이. 그러니까 잠시만, 으잉, 시작부터 삼천포로 빠지자. 벌거벗은 임금님은 동화에서 스타였다. 하지만 현실에서 돼지에 진주목걸이? 참고로 난 뚱뚱한 사람을 좋아함. 딱 봐도, 그것 만큼 우낀 게 없다. 그 만한 페이소스와 격조의 하향화에 대한 비애감도 많지 않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에는 그랬다. 오늘은 뉴스가 없습니다. 지금으로부터 대략 10년 전에는 물론 계속 그래 왔고 향후에도 틈틈히 반복될 것이다. 무엇이? 바로, 1위 없는 2위가! 세계 3대 피아노 및 바이올린 콩쿨 같은 대회에서 심심치 않게 발표한다. 1년 전인가 올해던가도 그랬다. 올해의 어떤 상은 통과라고. 권위와 전통과 수준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안델센 동화에 나오던가 아니던가, 백설공주 그 얘기에서 인기는 차라리 계모가 독차지 한다. 스타워즈에서 다스 베이더의 존재감이 특별하듯이 말이다. 그래서 거울 하면 마법 거울이고, 요정 구슬 하면 현대판 어떤 동영상이다. 걸그룹만 1000이듯이 노벨상으로 누누이 거론되는 거장만 갸륵하게도 최소 1000명이다. 말도 안되는 뜬소문을 듣고 읽고 보면 진짜로 말도 안 나온다. 대체 그런 터무니없는 헛소리를 누가 퍼트렸는지는 몰라도. 하긴 전문가가 전문적인 단문을 쓰는데, 대체 아무리 읽어도 통 이해를 못하는 일? 비일비재하다. 그러니까 알게 되어 피식 웃으면 차라리 좋다. 그런 건 얼마든지 괜찮다. 오히려 미덕에 가깝다. 차라리 내가 다 고맙다. 그런데 뭔가 어중간한 걸 애들이 보고 배울 생각을 하면? 나중 알아서 스스로 가치 판단을 하겠지만, 아아, 아마도 앞이 조금은 캄캄하겠지. 설마 오늘 검색 순위 1위가, 내가 용돈을 주는 바로 그 녀석? YES! 드물게, 정말 드물게 문제아 중의 문제아의 아빠는 꼭 뭐다? 목사님! 그러니까 메트로놈이란 기본기는 무시되기 일쑤고 고전음악의 제1전성기는 이미 끝났는데, 서로서로 띄워주고 겸손하며 과찬이라고 손사래를 친다. 그러나 그것도 일반적 즐거움인 만큼 판이 커진 세상,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오히려 격식을 어기면 사람들은 즐거워하고, 막말을 하면 할수록 스타로 대접 받으며, 튀기만 해도 뉴스에 나오고 러브콜이 폭주한다. 그런데 너네들은 앞으로 반칙하면 안된다고 어떻게 애들에게 윤리를 가르칠까. 전문가이자 노동자, 예술가이자 광대, 상식적인 교양인이자 철 들지 않는 어른, 내가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는 조건하에서만 왔다 갔다 할 수 밖에 없다. 실정은 오락산업이 쥐고 흔들며 왕좌에는 황금께서 앉으셨으니까. 인간은 기본적으로 이기주의자니까. 자유와 평등도 모두 나를 기준으로 하는 것이니까. 그러니까 코메디언계에서는 코메디언은 코메디언인데 (자칭) 아티스트급를 제일 쳐주고, 예술가 업계에서는 연예인 성격의 예술가를 최고로 손꼽으며, 연예인은 또 큰 재주로 유명인이 됐으면 그 다음 잔재주로 마음껏 다재다능함 최소한 다양한 시도를 뽐내는 실정이다.
   이 작은 차이가 바로 성실한 타석가와 최고의 타격왕-홈런왕-득점왕의 차이다. 뭘 좀 아는 남자는 그 차이가 잘 보이는데, 문제는 남들도 그런가 하면 그건 썩 낙관하기가 쉽지 않다. 왜냐고? 왜냐하면 첫째 타고난 선별력이 일류가 아니고, 둘째 후천적으로 습득한 방대한 지식과 정보의 주류가 주로 일류였다고 말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DNA든 노력이든 둘 중 하나는 뛰어나면 좋겠지만 인간은 비교의 동물인 건 어쩔 수가 없다. 게다가 환경도 있다.
   예를 들어 설명해보자면 이렇다. 자기는 어려서부터 유난히 사투리를 말하기도 듣기도 어색하고 반갑지 않았다는 사람들이 있다. 더불어 그분들은 방언에 비해 표준어는 더 멋져보이고, 외국어는 더 더 멋져보이며, 자유자재로 다국어와 라틴어까지 구사하는 건 훨씬 멋져보일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인터넷으로 보는 짤막한 그런 웃긴 영상을 보면 또 사투리 코메디가 상당히 괜찮다는 걸 모르는 건 아니다. 사투리로 구사하는 최고의 입담, 꽤 재밌다는 걸 절대 부정하지 않는다. 드라마에 나오는 사투리는 미화된 걸 잘 알지만, 실제적인 사투리가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나는 뭔가 약간 호의적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왜 그럴까! 왜냐하면 그건 살면서 달변보다 눌변을 끝없이 감내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만약 그분께서 다비드는 다비든데 어디산 다비드, 또 어디의 3대 이빨과 함께 성장했다면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도, 느끼지도 않을 것이다. 외국어도 똑같다. 내가 영화에서 봤던 어떤 외국어는 내 마음속으로 쏙 들어왔다. 또 내가 드라마로 달콤하게 봤던 다른 외국어들 역시 배울 마음은 없을지라도 일단 볼 때는 이국적인 느낌 때문에 홀딱 반해버렸다. 나는 외국어에 대해서 독학도 다양했고 포기도 많았다. 가령, 평생 시골에서만 살았다랄지, 평생 바다를 보지 못한 사람, 평생 여름의 나라에만 살았던 사람들의 기분을 최고로 만들어주면 어떨까? 인종 전시장이라는 뉴욕에다─너 뉴욕 가봤어?─누굴 데려다 놓으면 두뇌의 어느 부위가 활달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소셜 네트워크란 게 그렇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사진을 찍고, 남반구와 북반구를 왔다 갔다 하며, 한번 동쪽으로 여행을 가면 끝까지 동쪽으로 가서 다시 원위치 되야지만 직성이 풀린다? 멋쟁이이자 풍류가라고 소문이 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그 정도가 아니라 젊은이인데 수더분한 시골 춘부장이라, 그분을 떠올려보자. 지인의 친구랄지 어떤 경로로 그분이 외국인을 만나서 외국어를 들었다고 가정해보자. 그럼 그 어떤 향수와 감정이 되살아날까? 그럴 리는 없다. 절대로 안 그렇지! 그래도 근접은 하고 염가로 기분은 느낀다. 멀리 갈 필요없이 인터넷이나 TV만 봐도 되고, 멀리 갈 필요없이 가까운 어느 거리만 가도 되는 건 굉장히 효율적인 방법이다. 장점은 확실히 있다. 아무튼 왜, 도대체 왜 그럴까? 왜냐하면 그대가 지척에서 들었던 그 외국어는 어쩌면 드라마식 표준어가 아닐 테고, 아마도 달변보다는 눌변에 가까울 것이기 때문이다. 발음이 세고 억양도 이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수려한 외모? 냉정하게 말해서 평범하면 다행이다. 그렇다고 흥분하지는 말자. 여자들은 뭐 어쩌고저쩐다면서 왜 우리 남자들은 오빠란 말에 떨리면 안되냐고, 그처럼 으샤으쌰해 봐야 나가봤더니 나 혼자 밖에 없을지도 모르니까. 어쨌든 말만 그럴 리는 없다. 글도 똑같다. 사람들은 옷에 대한 안목 하나 만큼은 뛰어나다. 각자 선호하는 패션 스타일이 다르지만 대표적으로 에르메스와 페라리를 싸구려라고 하지는 않는단 말이다. 그러나 사람은 각자 타고난 운명, 동물적 성향, 귀족적 기호가 각자 다 다른 법. 카인과 아벨, 클레오파트라와 마리아 클라스, 허세꾼과 헤라클레스 대회 3관왕, 나방과 나비, 한마디로 18-19세기와 MTV. 또 있다. 상식과 교양. 계속 있다. 사랑에 대해서 마음이냐 몸이냐. 고로 특별석이냐 보통석이냐는 적어도 개인적으로 나뉘는 게 당연하다. 그래서 가벼운 사랑에 대해서라면 백치미가 선호될 수도 있고, 친구끼리 사석에서 말할 때 속닥속닥거리며, 남녀 공히 정실은 최선을 추구하는 것이다. 남녀노소, 동서고금을 떠나서 사람들이 꺼려하는 표현을 단 몇 개만 꼽자면 이렇다.
   멍청하다, 무능하다, 못생겼다, 못됐다, 허접하다, 더럽다, 지저분하다, 짜증난다, 짜다...! 아동의 세계로 넘어가면 잘난 척 한다? 아는 척 한다! 유머라면 이쁜 척 한다? 끼부린다! 꼬리친다? 머머하는 것들은 확 그냥... 여기서부터는 각자 본격적으로 할 말이 많아지니까 멈춰야겠다. 경쟁심1에서는 잘난 척 하지 마라(도시에 사는 아동이 시골에 가서 애들과 만나는데 '주머니에서 손 빼라' 라는 말을 들었던 꼬마는 분명 있다), 경쟁심2에서는 누나들과 바텐더의 1위 선정에 따른 반응! 만 빼고.
   그러니까 소속사에서 신인 연예인에게 신신당부를 한다. 제발 입조심 좀 하라고, 제발 생각을 한 다음에 말을 하라고! 그러나 저 꺼림직한 낱말의 반대라고 해서 단순히 상중하로 분류하면 끝인가? 아니다. 절대 아니다. 적어도 예와 아니오가 확실한 사람이 있는 반면에 완벽한 0이나 1은 절대 없는 사람도 있으니까. 이처럼 살짝 훑어보기만 해도, 행간을 슬쩍 곁눈질만 해도 백화점과 시장의 차이는 한눈에 훤할 수 밖에 없다. 극명하게 차이가 난다. 단, 뭔가를 아는 사람에게는! 그런데 이처럼 달변과 눌변, 표준어와 사투리의 차이만 있냐, 하면 또 그렇지 않다. 달변의 세계로 들어가면 그 세계가 좀 넓냐! 약장수로 시작해서 단지 말만 많은 달변가, 즉 말로 먹고 사는 사람들의 화법을 듣고 보면 딱 그렇다. 한마디로 소통은 매끄러운데, 그런데 소통만 매끄럽다. 그 섬세함의 극명한 차이, 바로 그 방대함은 역시나 우리의 삶과 직결된다. 그것이 모여 인생이 된다.
   나이트클럽 특급 웨이터의 이름은 외국어로 '막살자'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정말로 우리네 인생이란 그래야 하는 것만 같다. 뭐? 막살라! 응? 막살라고! 표현이 좀 고급스럽지 않아서 그렇지 어떻게 보면 썩 틀린 말도 아니다. 이 세상에서의 단 1번뿐인 인생, 막살라, 마음껏 하고 보고 마시고 춤추며 뛰어 놀라는 게 왜 나쁜 견해일까? 나쁜 견해 아니다. 단지 <막살자> 그리고 <하고 싶은 일을 실컷 즐기며 사는 것>, 이 전자와 후자의 차이가 정말 어찌 보면 종이 한 장 두께 차이라는 점. 다만 그게 뭔가 이따금 석연찮고 애석할 뿐이다. 물론 아주 가끔 말이다. 그러므로 파릇파릇한 젊음과 함께 어른들도 상당수는 인간의 감정 기제에서 제일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인 자존심을 잘못 인지하며 살 공산이 크다. 자존심이란 단지 내가 최고, 그것만이 아니다. 지기 싫다 지면 기분 나쁘다는 것이 자연스러운 본능이고, 내가 최고라는 것도 물론 자존심이다. 그러나 다만 그것만으로 고급이기는 어렵다. 진짜 자존심이란, 왕이 사극에서 활약하는 왕이 진짜 왕인 것처럼 그런 것이다. 무사의 로망이요 문사의 꿈인 어떤 상을 내게? 드물게 벌어지는 일처럼 수상 거부랄지, 또는 수상 소감에서 나의 솔직함을 표명하는 것이다. 내게 이 상을 왜 줬는지 도무지 모르겠다고. 또 있다. 도로 사이클 대회에서 최근 급부상한 새내기가 1등으로 골인을 앞둔 상황, 만년 1인자였는데 현시간부로 2위나 3위로 골인을 앞둔 선수의 굳건한 결심과 확고한 판단! 저 인성이 되먹지 못한 놈에게 져서 2등인가 3등으로 골인할 바에야 차라리 난 골인하지 않겠다, 라면서 결승점 직전에 급브레이크를 밟아 게임을 포기하는 일. 바로 그런 걸 일컬어 자존심이라고 한다. (심심하면) 부러우면 지는 거다, 머머의 자존심, 솔직히 말해서, 너도 알다시피, 내가 봤을 때는... 속셈 뻔히 보이니까 떠볼 필요도 없는 관용어법처럼 자존심을 남발할 게 아니라. 응? 바로 그런 걸 자존심이라고 한다. 언제나 나는 최고 나는야 켄타우루스? 코흘리개 꼬마들도 그 정도는 한다. 하오나 그건 나쁜 것도 아니고 단지 인간의 본성이며 사회의 질서일 뿐. 때로는 우정을 1.1이나 1.2를 선호할 수 있듯이 말이다. 그래서 저명한 연설가는 또 사랑은 동등해야 함을 강조하기도 한다. 그렇듯이 뉴스만 봐도 틈틈히 나온다. 자수성가한 세계 부호 몇위라는 신성, 또는 작위가 기본인 뼈대 있는 가문의 귀족 출신이 택시 운전을 하는 얘기들 말이다.
   따라서 결론은 모순이다. 아니 아예 결론은 없다. 뭐야, 또 우리들 좋아하는 <없다>네. 허허 아 나 이거 정말, 세상에나. 칼럼니스트는 없다, 짠? 애독자를 띄울려다 결국 필자가 공중에 뜨고 말았다! 어제 본 영화에서도 그랬다. 막판에 공중 부양! (영화는 영화다 라는 관점에서만 봐도) 난 그 영화 괜찮게 봤다. 호러 장르를 자주 보고 싶지는 않지만 말이다. 그런데, 정말 그런데 호평이 있으면 악평이라고 왜 없겠나. 누군가 또 그랬을 꺼 아니냐고. 무슨 생선 같은 놈 하나 나와서 여자랑 연애하는 영화였다는 식으로...... 쩜쩜쩜! 설마 그럼 이 칼럼도? 내가 못 살아! 나도 알고 보니 잘난 척에 멋진 척, 따따부따 허세 작렬에 허영심 마법사였다니!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바로 관심 받고 싶어서 애걸복걸하는 문학계의 스티브 발머였다니! 심지어 무명! 어머머, 저런! 이거 좋아해야 돼, 기분 나빠해야 돼? 뭐 그건 그렇고,
   어쨌든 모순은 있다. 찬미와 허풍에 능하면 능할수록 성공할 가능성이 높고, 허당의 3박자를 성취할 가망성 역시 짙다는 것. 그러니 난 이제 꿈을 포기해야겠다? 한마디로 개 풀 뜯어먹는 영화다 라는 악평을 듣더라도, 감독님 절망하지 마세요! 이걸 지금 나보고 보라는 얘긴가 애들 장난도 아니고 어쩌고저쩌고, 에 한달 내내 쓴웃음만? 마냥 낙담하기엔 인생의 심오함과 우주의 성스러움에 송구스럽지 않은가! 때로는 쓴소리가 약이 되고 살이 될 수도 있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말 또한. 무슨 말 같지도 않은 걸 작품이라는 건 얼마든지 괜찮다만, 허나 차마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역설적 칭찬에 성급히 실망을? 타석 없이 득점왕은 없다! 시작이 반이다. 성공은 실패의 어머니다. 무엇보다 3루수는 천리안급 소머즈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자다가도 내 험담이라면 벌떡 일어났던 3루수도 일찍이 깨달았다. 아아, 돈을 번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구나 라는 진실을. 2부리그의 2군에서 팬클럽 때문에 축구한다는 친구도 있다. 아르헨티나 바람둥이한테 차였다고 남쪽을 보고선 오줌도 누지 않는다, 외국여행 중에 호주에서 스페인 마초를 알게 된 다음부터 나는 스페인에 대한 악감정이 생겼다? 인생 내내 그처럼 호탕한 자세로 살아갈 배짱이 두둑하다면, 부디 소신 있는 태도 변치 마시길. 친구보고 연예인병이라더니 알고 보면 내가 중2병이지 않을까, 한번쯤 생각해보기. 랍비도 취미 생활이 있고 신부님의 전공 서적에도 모순은 결코 적지 않다. 그걸 알면 된다.
   내 수준은 어디에 명함을 내밀 정도는 아닌데 일전에 어쩌다가 눈치를 챈 일이 있다. 그건 내 깐족과 아부의 능력을 친구가 부러워하더라는 것. 딱 부럽다고 하면 재수없고, 때에 따라 필요하단 걸 인정하는 정도. 썩 불편함으로도 모자라 적어도 얄밉고 꼴보기 싫어하며 시기한다는 점. 난 봤고, 최소한 내가 눈치 챌 만큼은 보였다. 뭐야 이거, 딱 봐도 내 자랑이잖아? 이런 젠장! 난 정말 알고보니 어디서 절대 빠지지 않는 가식덩어리구만 그래. 아무튼 어떻게 보면 이 세상도, 우리네 인생도 정말 모순이다. 그러니까, 거짓말을 잘하면 잘할수록 귀감이라니. 어떻게 그런 진실을 다들 모른 체하며 태연히 사는 걸까! 늬가 더 미워? 그러니까 양치기 소년들은 처음부터 인생의 목표를 연예인으로 정하고, 설령 연예인이 못될지라도 일부는 연예인병에 걸린 체로 사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냥 허당과 은근 허당의 차이, 성실한 타석가와 최고의 타격왕-홈런왕-득점왕의 차이, 자존심1과 자존심2의 차이, 일반인과 연예인의 차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는 좀처럼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걸 연구하며 분석하기는 더더욱 어려울 테고. 하지만 이렇게 별다른 결론도 없이 칼럼을 끝낸다? 거실에는 다큐멘터리를, 노트북으로 사라방드를 조용히 틀어놓고 이제 본격적으로 꽤 괜찮은 연애소설의 기막힌 반전을 구상할려던 찰나 TV는 고장나고 노트북은 바이러스가 걸리는 게 차라리 낫겠다. 밥을 먹다 마는 것도 아니고, 사랑을 하다 마는 것도 아니고. 어젯밤 꿈자리가 사납더니,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그래서 나는 드디여 결론을 생각해냈다.
   결론: 앞서 언급한 사정들 때문에 우리는 왜 그런가 하면서 서점에서 인문교양서를 잠시 뒤적일 수 밖에 없다. 아예 그 단계를 뛰어넘을 수도 있고. 그래서 누군가는 당대 최고의 자존심 거장들의 재롱을 지켜본다. 실체 없는 허상을 믿고, 사랑에 속고, 인생을 배우는 일? 꿈과 희망도 좋지만 자존심, 행간, 결과, 본심과 의중을 아는 게 먼저일 수도 있다. 2루타 치고 나가 견제구에 죽고, 홈런성 타구가 아깝게 잡히는 것보단 무모한 기습 뻔트로 청춘의 흥분을 되살려보는 건 어떨까. 감독한테 미운털 박히는 건 잊어버리고. 그러니까 또 누군가는 자존감을 극진히 포장하는 브랜드의 주식을 일찍부터 미리미리 사두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자신감 만세 부흥회는 오늘도 어디에선가 열릴 것이다.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할 수 있다! 말리고, 엮이고, 감기며, 언제까지 피동적으로! 그걸로도 모자라 툭하면 지는 비교에 무엇을 하고 어떻게 살면 안된다는 간접 설명만? 말하자면 그러니까 그 친구는 아직까지 여자친구가 없는 것이다. 응? 그러니까 그분이 안되는 거라고! 지는 건 지는 거고, 실패는 실패다. 망할 때 망하더라도 우리는 마땅히 그래야 하지 않을까? 주체는 나고 주어도 나며 동사도 능동태 말이다. 잡고, 넣고, 차고, 패를 돌리며, 밀고, 당기다가 마침내 쥐락펴락이 뭔지를 깨닫기! (단, 능동-피동과 별개인 '정분나다-바람나다'라는 논의는 따로! 정을 주고 사랑을 받고, 그러니까 뭐 또 그 놈의 사랑이라니) 설전과 고집과 자존심은 상당히 알아주는데 성과가 없어? NO! 또 검집만 애지중지 아끼며 평생 신부들러리만 설 게 아니라면! 아무리 짜리몽땅할지라도 검집에서 검을 뺐으면 무라도 썰자. 이 시간은 지나가버리면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까. 미루기가 아닌 머머하기에 열망의 실천을 더한 값, (딱) 그분의 고귀한 존함은 다름 아니라 실행력이다.
   그러든 어쩌든 세상 돌아가는 거야 그렇다 치고, 우리네 인생이 어디 남의 인생이던가! 자, 그럼 이제 우리도 낮에는 허세왕과 놀고, 밤에는 허영심의 신과 찐한 사랑을 나눠볼까나!



   3

   나는 내친 김에 칼럼을 하나 더 썼다. 결국 난 하다 하다 스포츠 칼럼을 쓰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꼭 어딘가에서 넌 그런 거 못하자나, 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단지 최근 관심사에서 축구가 어느 정도 비율 이상이다 보니 뭔가 할 말, 곧 말하고 싶은 뭔가가 생겼을 뿐. 아무리 그래도 느닷없이 스포츠 칼럼이라니 쩜쩜쩜! 각설하고 칼럼은 다음과 같다.
   제목: 축구 대회 (클럽 리그가 아닌 월드컵 기준)
   내용: 결론부터 말하자며 단기전 승패는 크게 세 가지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포지션.
   둘째, 선수 구성.
   셋째, 축구는 한방.
   (부가 설명)
   첫째는, 브랜드가 포지셔닝이고 인생은 내 마음대로이듯이, 선수 개개인이 포지션에 최적화되고 최상의 상태인가에 물론이라고 확답할 수 있다면 경기가 잘 풀릴 가능성 및 승리할 가능성이 그만큼 크다.
   둘째는, 선수 명단을 잘 뽑았냐에 따라 수비 범위와 공격 능력도 어느 정도 결정됨. 전문가는 선수단 구성의 조화만 봐도 예상이나 예측이 아닌 예언까지 가능함. 때문에 배당률도 영향 받고, 전문가의 과학적 추정이 최소한 절반은 적중함.
   셋째는, 축구는 단체 스포츠이니 만큼 협업도 중요하지만 이 세상은 슈퍼스타를 반기는 법. 따라서 출중한 공격수야 더없이 반갑다. 하지만 반짝 스타라고 이슬만 먹고 살수는 없는 법. 다시 말해 기본이 최우선. 그러므로 함께 움직이는 게 전제되어야 함.
   본론으로 넘어가자면 이렇다. 축구를 하고-보고-읽고-듣고-토론한다 라는 총량을 따졌을 때 나는 일 년 평균 몇 시간이다, 라는 관심도에 대해서 개개인이 상중하로 나눠지는 건 사실이다. 그런데 거기서 팬들의 의견이 심하게 분산되는 건 각자 호감의 대상이 다르고, 이성적인 분석보다 감정이 앞서기 때문. 따라서 그 다양성을 취합했을 때 절반은 설득력 높은 논리적 의견이고, 절반은 농담에 장난이며 놀이에 더 가깝다. 그에 더해서 일장연설. 우선 축구를 다른 스포츠와 비교해보자.
   첫째 농구. 농구와 축구는 공을 골대에 넣는 건 똑같지만 포지션에 대해서는 하늘과 땅 차이다. 말하자면 농구는 객관적으로 내가 수준급 다역할 선수면 자신감 만점에 결과도 만족이다. 예를 들어 마이클 조던은 거의 모든 포지션과 작전 수행이 가능했다. 그러나 축구는 포지션의 역할이 비교적 농구보다 절대적이다. 아울러 농구는 대인 마크, 축구는 포지션. 때문에 다른 스포츠가 아닌 축구를 하는데, 수비든 공격이든 포지션에 충실하지 못한다면, 경기장을 넓게 쓰지 못한다면 대체로 경기 결과를 긍정하긴 힘들다.
   둘째 배구. 배구는 포지션 강제 이동이 규칙으로 정해져 있다. 그래서 리베로라는 제도도 있고. 왜냐하면 배구는 공수 교대가 깔끔하고 무대가 작기 때문이다. 가령 한 게임이 총 50점으로 끝난다 그러면 똑같이 50번의 포지션 이동이 발생한다. 물론 어기면 반칙이다. 반면에 축구의 포지션은 규칙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효율을 위한 권장안일 뿐 지켜야 할 의무는 전혀 없다. 그러므로 공만 따라다니는 동네 축구는 규칙을 잘 이용하는 거다. 독학으로 일류가 되서 유명해진 웨인 루니? 동네 축구 출신이다. 또 축구는 공수 교대가 불규칙적이고 무대가 크다. 그래서 축구는 배구보다 포지션이 더 능동적이고, 배구의 세터에 해당하는 축구의 플레이메이커 역할이 배구 만큼일 수는 없다. 따라서 축구는 개인 포지션의 한계를 넘나들 정도로 많이&열심히 뛰는 팀이 이길 확률이 높다. 단기전에는 특히 더. 단, 내 포지션이 무엇인가를 잊으면 안됨. 단적으로 봤을 때 7부 리그는 동네 축구일 수 있다. 그런데 상위 리그는 역할과 위치가 분명한 고급 축구다. 그러나 다시 1부 리그를 보면 그건 아마도 격상된 동네 축구에 가깝지 않을까? 다시 말해 아동의 그림이 7부 리그면 2부 리그는 수준급이고, 다시 1부 리그는 어린이의 그림과 비슷한 값비싼 명화일 것이다.
   축구 단기전 대회 관전 포인트에 대한 거론을 반복하자면 이와 같다.
   1.선수 포지션
   2.선수단 완성
   3.당일 선수 명단. (근처 포지션에서 선수A + 선수B가 안 어울리는 조합으로 수차례 증명됐으면 그 둘을 함께 기용하는 건 가능한 한 피하는 게 좋음. 실험과 연습등 1-2-3은 준비 단계에서 끝내면 좋고, 뚜껑을 열고 난 다음에는 3번만 가능. 물론 역으로 부조화가 있으면 조화도 있음. <누구+누구>, 1승점을 안고 시작하는 것일 수도 있음 )
   4.현대 축구의 특징들. 미드필더 우위, (심리적) 압박, 수비 안정, 뻥-축구, 원터치 슛, 원터치 패스, 최적의 패스, 체격 축구, 유럽 축구. (게임 결과를 놓고 선수 개인에 대한 평가도 좋지만 개인에 앞서는 선행 조건을 따지는 게 우선! 미드필더가 우위였나? 글쎄요! 수비는? 그나마 선방! 그럼 공격은? 안 풀린 원인은 뭐니 뭐니 해도 미드필더 라인 문제이지 않을 런지. 거기다 수비 라인업 자체가 애초에 불안했다면 백약이 무효. 응원하는 팀의 공격이 안 풀린다? 원터치 패스가 되는가 안되는가, 최적의 패스가 반복되도록 공간이 형성되는가, 그처럼 뭔가 원인이 있다. 선수단 구성이 이상하다, 미드필더 라인업부터 밀린다? 경기가 쉽게 안 풀릴 확률 80%를 안고 시작하는 거다. 더군다나 현대 축구에서 수비만 아예 탄탄히 걸어잠그면 골 넣기가 여간해서는 힘들고, 베스트 주전이 몇몇 이탈된 체 출발해도 상당히 어렵게 시작하는 셈이다. 시작도 전에 주전 (줄)부상으로 전력에 공백이 생겼을 때 드디어 벤치에서 대타가 등장한다. 그렇게 해서 결과가 좋으면 다행이고 열정만으로 부족했으면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다. 고로 수비가 망하든 어쩌든 1~2실점 예상 된다면 미드필더에서 승부를 거는 건 무리수가 아닐 수도 있음. 그 수비-미드필더 라인업으로 1~2실점? 얘기는 많겠지만, 오히려 선방이지 않을까!)
   이와 같은 관전 포인트 외에 상대성, 경기 흐름, 작전, 변수, 분위기등 따질 건 많다. 하지만 그건 준비 다음의 얘기다. 축구는 배구나 농구와 달리 작전 타임이 없다. 전반전 끝났을 때 외에는. 그런데 경기 중간에 작전이 변경된다? 변경될 수는 있다. 그러나 그렇게 큰 의미와 막중한 영향이 있는 경우는 많지 않다. 오히려 선수 교체가 최선이자 유일한 작전 변경이라고 생각하는 전문가들 또한 적지 않을 것이다. 작전에 대한 얘기가 많기 때문에 하는 말인데, 작전의 1안이니 2안이니 그건 크게 의미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작전을 조율할 시간이자 경기 흐름이 확실하게 끊기는 시간은 전반전과 후반전 사이 딱 1번 뿐이기 때문이다. 그걸 아니까 경기 도중에 어떻게든 다그치고 알려서 작전 변경을 시도한다? 강경파랄지 돌부처급 감독 가운데 드물게는 이렇게 답하는 분도 계실 것이다. 없을 수가 없다.
   「의도는 지도 알지요. 열망이 뭐가 나쁘겠시요! 거친 그분들 말씀 번역하면 뭐겠서요? 응원인 거 지도 알지요. 왜 몰라요? 내래도 애호가이구 응원단 입장에서 응당 변화를 바라잖소. 그런데 나가요 감독을 해 보니 그렇습디다. 지도 집에서 과자 먹음시롱 TV로 경기 보며 그러고 싶소. 저마는 왜 저렇게 빨빨거리며 돌아댕기나 라고! 그렇지만 직업인으로 살아보시라요. 솔직히 지는 선수 생활 비리비리했더래요. 그래서 일찍 돌어섰시요. 그래서 선수 생활 접은 다음에 청소년팀 감독 10년, 아마추어3부 리그 수석 코치 10년, 프로 2부 감독 대리 10년, 1부 감독 20년까지. 그렇게 해서 뭘 깨달았는지 아시겠소? 경기장 안과 밖은 달라도 너무 다르구나, 그게 저절로 알아지대요. 아무리 심하게 관중이 뭐라고 해도 우리는 꿈쩍도 안한대요. 귓등으로 듣지도 않고 귓볼이 간지럽지도 않소. 일절 쳐다보지도 않아요. 눈길도 아까운데 뭐하러 쳐다보겠시요? 어쩌다 경기 끝나가는즈음 딱 한 번 째려보는 일 정도는 간혹 드물게 있겠지만요. 결론만 말하자면 그렇소. 작전 변경이요? 말도 하지 마시라요. 그래요. 말은 하지요. 이 말 저 말 참 많이도 해요. 지도 사람이니깐요. 그래요. 그렇지만, 그럼 뭐한대요? 그래 봐야 씨알도 안 먹히는 거래요! 그래서 한때 제 동업자였던 주제 무리뉴 감독이 축구도 작전 타임을 도입하자고 주장하기도 했더래요. 하 나 이거 정말! 한때 무리뉴 그 친구 나랑 눈도 마주치지 못했는데, 정말 많이 컸지요. 내 앞에서 눈 딱 깔았서요. 내가 막 밥도 사주고 술도 사주고 거의 내가 업어키웠다고 봐도 되더래요. 그러믄요. 그런데 지금 그렇게 크게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시아요? 그런데 내가 유소년 팀에 자리 알아봐주는 동안 갑자기 잘되기 시작하더니 연락을 뚝 끊더라구요. 의리 없는 놈 같으니라고. 어? 남자 대 남자로 그러면 되요, 안되요? 세상이 고처럼 냉혹한거래요. 암요. 뭐 그야 믿거나 말거나는 절대 아니래요. 당시 내 비서처럼 사는 녀석을 본 친구가 대체 몇명인데요. 아무리 그래도 지는 그아 면도 세워줬더래요. 누구 꼬봉이라 소문나면 쓰겠어요? 그러면 누가 좋다고 하겠어요! 왕년에 우리가 그랬는데 조제는 내 생각 안 나나 몰라요. 난 지금처럼 이따금 옛 생각 하더래요. 솔직히 난 갸 좋아했더래요. 주제가 왠지 귀여웠걸랑요. 그 친구도 날 무지 따랐어요. 그래도 잘되서 소식을 듣고 보면 흐뭇하더래요. 그 당시 녀석은 축구 밖에 몰랐더래요. 그렇다고 끄덕끄덕할 것까정 없어요. 왜겠어요? 왜냐하면 그때 주제는 여자한테 인기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래요. 허허허. 주제를 보며 오빠 오빠 하며 따르던 숙녀들도 날 한번 보고 나면 다들 생각을 고쳐먹었지요. 그 뿐만이 아니라 옛날에 내가 가르쳐준 전술과 특별히 주제한테만 전수해줬던 선수 관리법을 아직도 써먹고 있더래요. 허허허. 감회가 새롭더래요. 그렇다고 다 지난 일인데 이제 와서 어쩌겠어요, 그냥 그렇단 말이래요. 그야 뭐 지나간 일이고. 아무튼 그렇기 때문에 지는 감독 생활 언제부터던가 그때부턴 그렇게 하지요. 선수들한테 감독인 지가 요구하는 건 기본기 위주로 딱 3가지, 한 경기에 그 3가지를 골라서 경기 시작부터 끝까지 내내 그것만 보는기라요. 오직 그것만 외치는 기라요. 딱 그것만 부르짓는 기라요. 그럼요. 프로라고 결코 기본기로부터 자유로울 순 없디요. 그래선 안되는 거래요. 기럼요. 그런데 하나 재밌는 건 뭔지 아시겠어요? 그건 무엇인고 하니, 바로 셋도 많더라는 점이래요. 그래요. 하나 둘이 딱 좋아요. 그치만 사랑할 때 들뜨는데 경기할 때 어떻게 흥분하지 않겠어요? 그래서 내는 묵주 여럿 해 먹었더래요. 적어도 3박스는 될 거래요. 그라믄요. 흐흠. 이제 좀 직업인의 심정을 아시겠시요? 물론 저랑 정반대로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더래요. 그런데요... 설마 녀석들이 날 엿먹일려고 일부러... 뭐시여? 이 자식들을...! 흐흠. 그러니까 무리뉴는 뜨고 난 아직꺼정 이 바닥에서 찾는 사람이 많지 않다? 뭐 어떻든 난 그 냥반 하나도 부럽지 않소. 구러믄요. 네? 제 이름을 알고 싶다구요? 제가... 구단에서 쫓겨난 건 아니지만 거장도 아니래요. 그러니까 비밀이래요. 허허허허허.」
   곧 경기 중 작전 변경에 대한 서술자의 생각은 다음과 같다. 경기 중 작전 타임이 몇 번 있을까? 스포츠마다 다르다. 작전 타임이 많다, 작전 타임이 적다! 예를 들어 전자로는 음... 구간 구간이 짧으면 모두 작전 타임이니까 전자가 대부분이다. 야구, 농구, 배구, 미식축구등. 그리고 중간은 아이스하키요, 후자로는 축구가 거의 유일하다. 미래는 몰라도 지금은 그렇다. 오히려 축구가 그 속도감 때문에 규모가 커졌을 수도 있다. 어쨌든 전자는 작전이 경기 중간에 변경되어도 주효할 가능성이 있고, 후자는 작전 변경을 시도해도 그렇게 적용되거나 성공하기는 힙겹다고 생각한다. 물론 면밀한 과학적 조사는 거치지 않은 체 단순히 그럴 것 같다는 추측일 뿐이다. 아무튼 현실은 그럴지라도 마땅히 준비했던 걸 시도하는 건 좋고, 변화도 필요하며, 내용을 점검해 코치진 의사를 선수에게 전달하는 것도 옳은 일이다. 하지만 경기장에서는 연습했던 작전을 모두 기억하기도 힘들고, 구사도 어려울 뿐더러 제일 잘하는 작전만 실행하기도 벅찬 실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작전이 변경되기도 힘들고, 변경되어도 효과가 금새 나타나기를 바랄 수도 없다. 곧 전술 역시 이미 준비 단계에서 끝나는 거다. 결과만 보더라도 선수들은 대체로 경기를 시작하면 백지로 돌아가서 뛰는 셈이다. 음악가가 줄리어드 음대를 수석 졸업한 다음 연주회를 하든 뭘 하든 매번 배운 지식대로만 곧이곧대로 하며 살지는 않는다. 그래서 토너먼트 대회에서 준비만으로 이미 절반은 결과가 정해진 채로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감독이 명장이면 좋고, 선수의 소속팀 활약 역시 뛰어나면 좋다. 그러나 더 앞선 기본은 <1.선수 역할>에 알맞는 최적의 <2.선수단 구성>이다. 여기서부터 애매하다면 특급 도박사는 흡사 귀신처럼 슥 발을 뺀 줄도 모르게 빼버린다. 그처럼 1번에 따라서 2번이 합리적으로 구성되어야 하고, 1번에 따라서 3번을 유의하고 작전을 짜며 연습이 이뤄져야 한다. 1번에 따라 손색없는 2번이 갖춰졌고 준비가 중간은 됐다, 만약에 그렇다면 경기에서 끌려가더라도 언제나 희망은 있다. 끝나기 전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야구는 9회말 2아웃부터다. 저 1-2-3이 모두 흠잡을 데 없으면 지고 있든 이기고 있든, 일단, 경기가 재밌다! 반면에 1-2-3 모두 어째 뭔가 이상하면 점수와 관계 없이 경기가 재밌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러면 필경 희망도 뿌옇다. 설령 미드필더와 수비 불안은 감안하더라도 경기가 심상치 않다, 만약 그렇다고 해서 미드필더나 수비를 빼고 공격수만 3명 더 기용하면 그건 모험이라기보다는 경기를 거의 포기하는 거나 다름없다. 작은 무대에서, 개인이, 또는 축구에서 시간이 촉박할 때 어쩌다 최후의 카드일 수는 있지만, 그게 아닌데도? 그건, 이도 저도, 아니다. 이판사판은 예술이라면 몰라도 정신력이 집합되는 스포츠에서는 쉽게 통용될 리는 없다. 야구에서 수비진에 모두 투수만, 공격할 때 모두 뻔트 전문 요원만? 그러면 그건 '그런 얘기는 나라도 하겠다'가 아니라, 진짜로 우익수가 내 대신 우리 회사에 출근하게 되고 나는 우익수 자리를 꿰차게 되는 거다. 스포츠 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지는 건 좋다. 적어도 나는. 다만 스포츠가 아닌 코메디, 재계에서 영화 찍고, 기초학문의 건재─아티스트의 자존심─오락산업의 번영이 제각기 혼동되는 일은 바라지 않을 뿐이다. 마담과 마님을 착각해선 곤란하니까. 그러나 막상 소란스러워진다면? 그럼 '으쌰으쌰는 뭐다'라는 미스테리아 편집장의 억측이 충분히 타당하다는 게 증명되는 건가? 아니면 품위란 게 존재하듯이 인간은 부끄러움도 수치심도 느낀다, 고로 인간은 한낱 동물에 지나지 않는 게 아니라 인격을 지닌 존엄한 개체다 라는 실증에 다름 아닐까! 아니다. 다 아니다. 단지 준비부터 불안불안했다는 게 중요하고, 나는 준-서포터즈 조마조마의 일원이지만 회원 자격 박탈을 코앞에 두고 있다는 게 더 중요할 뿐.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험을 걸 수 밖에 없는 처지도 있다. 그래서 처음부터 3번을 전위적으로 구성하는 경우도 어떻게 보자면 흔하다. 왜냐하면 약자야 밑져야 본전이니까. 그렇더라도 좋은 방법은 절대 아니다. 팬들도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라는 전후좌우 사정을 참고하여 말하는 게 더 어른스러운 거다. 그게 아니라 이러쿵저러쿵? 애들은 차라리 웃으면서 논다. 초딩을 보고 초딩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다 아니까. 그런데 어른은 어른인데 답 없는 어른일 땐 초딩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어른들은 철들면 재미없다는 거네. 아무리 그래도, 전력과 상대성에 주전 줄-부상으로 빠진 채 시작하는 건 기대를 반틈은 내려놔야 결례가 아니다. 알고 보면 축구 만한 정신 스포츠도 없다. 이론과 실재에 대한 말들이 많을 때는 그 종목의 규모를 보면 된다. 자본! 뉴스만 봐도 장난이 아니네? 정신력 싸움 장난 아니라는 증거다. 때문에 의욕 대비 효율이 낮거나, 투지는 높은 반면 감독의 전술이 적중할 가능성은 팬들의 예감에 부응하기 힘들 수도 있는 것이다. 일단 그대가 봤을 때 저 2번과 3번부터 내 마음에 들지 않고, 지극히 상식적으로만 봐도 뭔가 어중간하다? 결과는 환호성보다 쓴웃음에 더 가까울 공산이 크다. 선물옵션이 아닌 채권으로 수익률 20퍼센트면 초대박, 감독으로 팀을 30퍼센트 개선시켜도 극찬감, 그러나 말도 많고 준비도 많았던 단기전의 뚜껑을 딱 열었는데 어째 뭔가 애매하다 그래서 급하게 팀 전력을 40퍼센트 끌어올린다? 그랬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니까 다른 방법을 찾지 않을 수 없다. 예를 들어 오로지 잘하는 무엇에만 집중한다랄지, 후반 끝나기 20분 전에 총력전 등등. 물론 강자의 반전과 약팀의 봉기는 생각보다 훨씬 짜릿하다. 그래서 스포츠란 게 재미있고. 그렇기 때문에 문득 떠오르는 의문점은 두 가지다.
   첫째, (나랄지 그분께서) 언제부터 축구를 그렇게나 사랑했다고, 어? 내가 가난한 이유도, 내가 실연당한 까닭도, 평소에 항상 심심하다랄지 불행한 동기마저 모두 축구 때문일까? 아마도 아니기를 바란다! 기도해야 한다면 기도하겠다.
   둘째, 축구는 그렇게 잘 알고 좋아하며 관심이 많은데, 그런데 도대체 왜 <막살자>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인생을 산다>라는 차이의 기준은 그렇게 들쑥날쑥할까. 이기주의와 이타주의가 동일하기를 바랄 수는 없지만 나와 남을 보는 기준을 일부러 꼭 턱없이 낮춰야만 하는 건 아니다. 그러니까 유독 왜...! 그 만한 열의의 반틈이면 난 정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또는, 눈 딱 감고 나는 무엇을 해서는 안되는 것일까! 어른들 태반은 성장기에 엄마의 잔소리 때문에 귀에 못이 박혔을 것이다. 늬가 그렇게 공부를 했다면... 라고.
   사석에서야 뭔 말인들 못하겠냐마는 난 혹시 익명이라고 말을 평소에 심하게 하는 건 아닐까? 오늘도 난 운전은 사고만 안 내면 그만에, 대인관계야 의사소통만 되면 그만이며, 어쩌면 막사는 밤의 황제를 동경하는 건 아닐까! 막사는 사람이 있으면 막말자(막말하는 자)라고 왜 없겠나. 꽃이 예쁘고 과일이 탐스러운 게 다가 아니다. 꽃은 시들고 과일은 흙으로 돌아갈 운명. 나 좋을 때만 자본의 논리를 옹호하며 살기엔 차마 동물에게 미안한 일이다. 토크쇼에 아티스트를 모셔 놓고 놀리며 깐족거릴 수는 있다. 그러나 남의 집 귀한 딸을 데려다 사랑을 잘못 가르치는 건 다른 문제다. 일단 사랑은 어른이 꼬맹이한테 핀잔 주듯이, 뭘 가르치고 닦달하며 다그치는 방식이 전부면 곤란할 것이다. 그렇게나 사랑을 잘 아시는 분이 왜 갑자기 또 사랑을 들들 볶냐구요? 글쎄요! 그 이유를 낸들 알겠수? 그런데 대관절 왜 지금 그런 격언이 생각나는 것일까. 암닭이 울면 어쩐다느니, 마누라? 여편네? 여자와 북어는 이틀에 한 번씩은...! 그러니까 왜 그런 말이 생겼냐, 대관절 그 경구는 어떻게 모르는 사람이 드물 만큼 유명해졌냐, 시대착오적이라는 둥 반론할 가치도 없다는 둥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단지 도대체 왜, 내가 대체 어떻게 그런 속담을 알고 있는지, 다만 그것이 설핏 의아할 뿐!
   뭐 그건 그거고, 이와 같은 이치처럼 축구에 대해서도 우리의 생각과 불평은 위와 같은 기본 사항을 전제로 다듬어진 것인가, 하면 그건 좀처럼 낙관하기 어렵다. 세상의 모순에 손해 보고 플레이보이의 3박자에 밑지고 살 수는 있다.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 라는 말도 좋다. 하지만 하나 뿐인 인생을 막살기엔 인간의 삶이 너무 시시해지는 건 아닐까? 그래서 남은 방법은 많이 뛰고, 경기장을 넓게 쓰며, 한방을 성공시키는 수 밖에. 결과야 어떻든 승자에겐 박수를 패자에겐 격려를! 왜냐하면 진 건 진 거고 열심히 한 건 열심히 한 거니까. 왜냐하면 내가 이 세상에 알몸으로 태어나서 최소한으로 뭔가를 기여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까지는 생각하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선거권 행사는 뒷전인 반면 정치에 불만만 가득한 모습은 썩 아름답진 않을 테니까.
   말하자면 철들지 않음은 구단의 성적 저조에 구태여 올라타지 않으면 된다. 관전, 분석, 연구, 전망은 얼마든지 좋다만 정도가 지나치면 그런 게 되는 것이다. 우리 아빠가? 내 아들이? 또는 어떻게 그녀가! 라고. 그래서 누구는 투정과 응석은 양떼처럼 일기장으로 잘 몰고, 누구는 게임하고 넣고 뛰고 던지며 골프장을 걷는 걸로 쌓인 걸 풀며, 누구는 머머접습니다 라며 새로운 분야를 탐색하기도 한다. 그리고 내 친구처럼 오직 바와 나이트클럽을 전전하는 것 말고는 인생의 낙이 없는 사람도 있다. 타고난 건 어쩔 수 없음. 주색에서 술은 전혀 취미가 없고, 능글능글한 유부남이 된지 오래된 데다가 집에서도 손을 놓은지 꽤 됐으며, 자녀의 귀감은 일찍이 포기한지 오래 된 남자. 찾아보면 꼭 있다. 허나 아이 좋아라~ 라는 '감격의 순간을 상상하기'는 공상가만의 습관이 아니다. 하오나 <워매 좋은그~>는 무엇이 있을까는 굳이 논하지 말자. 우리의 친구들 중에 걸출한 물건들이 좀 많았나. 달리 보면 이렇겠지. 엘리트 위주인 교우 관계가 회전목마라면 우리는 롤러코스터를 탔던 거네. 아닌 땐 굴뚝에 연기 날까 라고도 하지만 세상에는 추문을 내가 일부러 퍼트리고 다닐 수도 있고, 또 뜬소문이 진짜일 수도 있다. 나는 절대 아빠처럼 살지는 않을 테야 라는 소년의 다짐은 먼 훗날 '웬걸!' 이라는 감탄사로 바뀌지 않는다, 에 나는 베팅할 마음 없다. 나는 아빠 같은 남자랑 결혼할 꺼야, 라는 소녀의 인생관은 엄마의 영향으로 슬기롭게 수정될 수도 있다. 하지만 나중 그랬던 숙녀가 내 친구 같은 남자를 만나지 말란 법도 없다. 딱 봐도 정숙하고 반듯하며 착실한 요조숙녀는 지금껏 어땠고 앞으로도 어쩔 것이다? 역시 희대의 도박꾼들이 크나큰 아량을 베풀어 날 어떤 자리에 슥 끼워주더래도 딱 잃어도 괜찮을 만큼만 베팅하고 싶다. 철들지 않았어도 어른들은 이 세상을 모를 수 없으니까 말이다. 그래도 숙녀의 요염함과 응큼함, 허영심이 구사하는 허세에 대해서는 침묵하겠음. 손을 입술에 대고 자크를 잠그는 몸짓! 왜? 턱짓. 놀라기는! 표정 아주 예술이구만. 허허허허허. 그러니까 한 분은 얼굴이 빨개지고, 한 분은 눈을 흘기며, 다른 한 분께서는 어머나 깜~짝 놀라시네? 저런! 그게 다가 아니라, 어허, 고수는 이쪽에 다 계셨구먼유. 아이고, 몰라 봬서 죄송헙니다. 허허허허허. 뭐 그럴 수도 있지요. 어찌되었든 진정한 포커페이스란 무엇인가를 알겠구먼유. 한수 제대로 배웠습니다. 캬~ 더블린의 3대 명물이야 뭐야? 네? 뭐라구요? 저기 저분 더럽게 재미없고 심심한 남자라구유? 심지어 가난하다? 난 정말 몰랐구먼유. 허허허허허. 왜냐고는 묻지 않겠소이다. 허허허. 이러니까 나는 매번 속아도 속아도 부족하다네. 허허허허허. 흐흠. 농담이고, 뿐만 아니라 다큐멘터리를 보면 어렵게 사시는 분들 얘기도 많이 나온다. 물론 내 안의 응어리랄지 어떤 뭔가를 건전하게 풀기도 하는 반면 어떤 분들은 그걸 인터넷에서 만나 설로 풀기도 한다. 또는 아예 꿍하며 불만을 속에 많이도 담고 성실하게 사는 상남자 유형도 꽤 된다. 각자 성격이 제각각인 에너지를 푸는 방식이 다른 것이다. 그러나 넘어지면 일어나면 된다. 방황은 할 수 있다. 철부지 방탕아의 치기는 이따금 극구 말려도 소용없다. 해결책은 시간을 주는 것뿐. 도와줘야 하는 일도 있고, 스스로 이겨내는 게 좋을 때도 있다. 당근과 채찍은 상반되듯이 말이다. 슬럼프를 벗어난 내가 지금 방황하는 친구를 다독일 수도 있고, 오히려 신경을 끄는 게 도와주는 것일 수도 있다. 사람들은 어쩌다 유혹에 넘어가 '에라 모르겠다'식 행동을 할 수도 있고, '어차피 이렇게 된 거'라는 시절을 겪을 수도 있다. 내일은 없다, 오늘을 살자! 내일은 없다니 오늘을 살자라... 대충 같은 말인데 어감은 확 다르다. 뒤집으면 어감은 달라도 어차피 같은 말이다. 양치기 소년이 나중 소설을 쓸 수도 있고, 피노키오는 어른이 되어서도 뻥을 달고 사는데도 불구하고 순진하게 툭하면 속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인생은 장기전이요, 사랑은 롱런이고, 환상론의 시작은 뻔트다. 여자가 해피엔딩을 왜 싫어하겠나. 유대감은 무엇이고 나와 남의 차이점은 어떤지를 깨닫다 보면 살면서 나와 비슷한 사람도 만날 수 있다. 가령 20대와 40대가 사이좋게 같이 하고 싶은 걸 하며 살되, 절실히 원할 때랄지 딱 긴요할 때만 나이트클럽 '막살라' 웨이터를 소개시켜 주면 되는 식이다. 즉 호감과 비호감, 미덕과 악덕은 단지 순서라는 한 끗 차이 때문일 수도 있을 테니까.
   그러므로 축구를 잘 모르는 사람 입장에서 봤을 때, 클럽 대회보다 월드컵이 더 재밌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지구촌 최고 전문가들의 축제인 월드컵이 클럽 대회보다 때로는 현저하게 전문성이 떨어지니까. 으쌰으쌰! 열은 좋고 운도 많이 작용하니까. 일례로 업사이드는 적고 박진감은 넘친다? 당연히 재밌지 왜 아니겠나. 그러니까 매니아들은 챔피언스리그 생방송을 고집할 수 밖에!



   4

   나는 새로운 술집을 탐방했다. 문화계를 산책하는 척 하면서 늘 여심을 탐구했다. 숙녀의 아름다움을 향한 열정은 대망에 대한 동경심 만큼이나 화끈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사랑론을 탐색했다. 여복에 대한 농심의 탐닉은 해도 해도 끝이 없었다. 왜냐하면 최신 판타지─미스테리─스릴러를 탐지하며 예술에 취미를 붙여도 그건 그때 뿐이니까.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웃자고 한 얘기고, 언제나 심심함에 대한 핑계에 불과하다. 찐한 연애에 대한 끝없는 목마름이 아니 어떻게 인생관의 전부일 수 있단 말인가. 내가 언제 플레이보이를 질투했나, 아니면 한량의 3박자를 독학했나. 나는 행운을 과신하지 않은 것처럼 운명을 믿지도 않았다. 점성술을 배운다면 또 모를까 노력도 없이 우연을 조수로 거느릴 수는 없는 일이니까. 허세를 남발하고 단지 허영심을 남용한다고 이 세상이 사랑과 행복을 모두 내게 안겨줄 만큼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누가 모르겠나. 그러므로 나는 부러움을 얄미워하며 선망을 길들이고 멋진 미래를 추측만 할 게 아니라, 미지의 기대주를 발굴하며 놀라운 꿈나라를 탐험해야만 한다. 그러니까 오늘을 살아라, 아니면 그냥 막살자? 그게 아니라 나는 어렵게 결심했다. 천사가 애용하던 요술봉, 요정이 편애하던 마술 지팡이, 더불어 전설의 마녀가 아끼던 솜방망이를 현현시킬 판도라의 상자를 만들어내기로. 그런데 불세출의 추리로 엮인 천상의 문학을 답답한 사무실에서 완성한다? 잘 완성되지 않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나는 분위기를 바꾸고 흐름을 띄우기 위해서 떠나기로 했다. 기대는 체념으로, 예감은 절망으로 뒤바뀔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판돈을 걸어야만 하는 숙명의 순간이니까.
   목적지는 집에서 가장 가까운 무인도다. 개인전은 사랑이고 단체전은 우정. 전자는 여자와 후자는 남자와? 라고 농담했지만 떠남에 대해서도 내게 규칙은 있었다. 곧 멀리 떠나는 건 간접 경험, 가까운 데는 직접. 일과 놀이에서 아무래도 일이 우세했다. 때문에 나는 멀리 갈 처지가 아니었다. 핑계 같지만 필기구나 노트북만 있으면 아무 때나 어디서나 그 어떤 주제로도 글을 막 쓸 수도 없었다. 못 만나본 숙녀들이 너무 많은 점과 못 해 본 사랑이 막대하다는 것.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닥치는 대로 따라하며 배우고 믿고 돌아다니던 방랑의 시절은 조금 지났다. 게다가 100대의 자동차를 소유한다면 모를까 100명의 첩을 거느려야 하는 것도 아니다. 멋진 관광지 100곳에 직접 가 본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그건 TV 보기로 대체할 수 밖에 없었다. 우정이 사랑과 거의 흡사하듯이 사랑도 여행과 상당히 비슷한 일면이 없잖아 있기 때문이다.
   갔다 온 얘기가 만약 멋지다면 칼럼으로 공유할 테다. 그러나 그저 그렇다? 오히려 그럴지도 모른다. 에라 모르겠다, 그걸 가지고 말도 안되는 허구이자 이상한 문학으로 만들어버리기.
   그런데 무슨 떠나기 전에 말만 말만 그냥... 이제 쉿! 말은 그만 하고, 떠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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