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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소설
2018. 4. 15.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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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 일기를 썼다. 내용은 이렇다. 식상한 TV 재미없는 NC 무명 JS, 그리고 뻔한 꿈과 더 뻔한 희망. 남몰래 어른이 되어 아무도 모르게 숙녀의 기분에 동조하지만 인생은 불만족. 그렇게 날마다 커피 마시고 낮잠 자고 산책하고? 마침내 때가 됐다. 자, 신비와 환상의 천국으로 떠나자. 당나귀와의 우정, 불여우와의 사랑은 잠시 뒤로 미룰 것. 어제는 고독한 사색가요 오늘은 즐거운 모험가. 목표는 큐피트 로망은 카사노바. 그러나 삶은 결코 녹록치 않은 것. 예술은 따분하고 새로움은 바닥났으며 꿈은 포기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과 인생에서 제일 기쁜 행복은 도저히 잡히지 않는 나비와 같다. 하늘에 기도드려도 소용없다. 그렇다고 로빈슨 크루소나 돈키호테, 드라큘라, 랭보가 될 수도 없다. 바람이 불어도 행진곡은 깊은 잠에서 깨어나지 않는다. 그래도 나는 언제까지라도 꿋꿋이 환상머신을 발명하고 시간여행자를 꿈꿔야 할까? 차라리 해가 서쪽에서 뜨기를 바래라. 아니, 혹시 남반구는? 욕조의 물 빠짐이라도...! 꿈 깨자. 그러니까 좋게 호박을 반기고 과일을 탐하며 꽃향기를 쫓을까? 사춘기는 지났고 허당은 허다하며 첫사랑은 옛날에 끝났다. 그런데 젊음은 원래 허무한 것일까? 아니다. 아닌 게 아니다. 청춘은 본디 뭘 해도 재미없고 항상 심심한 것이다. 그게 정상이다. 아니면 상태가 안 좋던가 운이 좋던가. 잘 알면서! 그러니까 난 드디여 바보가 되어버린 것만 같다. 아니다. 머머 같다가 아니라 정말로 이미 바보가 됐다. 진짜로 그렇다. 축하할 일도 아니고 행운도 아니다. 왜 이렇게 되어버렸을까. 그러니까 어쩌다가. 그건 아마 내 안의 그분이 엄한 데 한눈 팔고, 괜한 데 눈독들이며, 습관적으로 그 뭔가에 군침을 흘리시기 때문 아닐까? 그걸, 대체, 누가 알겠나! 나까지 이처럼 기계적으로 글을 쓰는데. 그건 정말 누구도 관심 없는 일이다. 그래도 살짝만 추측해보자면 있다고 가정하고, 새로운 친구의 지혜로운 답변은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건 바로, 그러든가 말든가! 그 언젠가 전문가의 흰색 모자 쓰기를 꿈꾸며 자유와 사랑과 선망을 노래할 테다 라고 큰소리치지는 않았지만 나는 커서 뭐가 되겠다는 소망이 무엇이었는지는 기억이 하나도 안난다. 이건 대관절 어떤 인생일까? 한마디로 시시한 인생! 단편영화, 장편소설, 인문교양서, 유행가의 창작과는 멀어진 채 깜짝 신인상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솔직한 내 심정은 그렇다. 내 이럴 줄 알았다면 어떻게 에로영화계에서 조연으로 활약이라도 해볼 걸 그랬나 라는 아쉬움마저 남는다. 그러니까 어떻게 지금이라도 뚜껑 없는 좋은 차 몰며 돌아다니고 놀며 또 놀고 기웃거리고 빈둥거리며 인생을 허비하다가, 오빠 결혼 왜 안 해, 라는 추궁도 받고... 그래 볼까? 아니다. 인생의 전반기는 예선 탈락, 중반기는 로또복권 꽝이다. 이거 이거 그럴 만 했네 그럴 만 했어. 게임 제목이 크레이지 아케이드던가, 아니다. 카트라이더다. 옛날에, 괜히 너스레 한번 잘못 떨었다가 웬 초딩한테 충격적으로 험한 소리 얻어들었던 적이 있었는데. 이제 보니 그럴 만 한 것도 같다. 안되겠다. 나는 좀 더 체념하고 절망하며 상심해야만 한다. 바닥을 치고 저 푸른 창공으로 날아오르면 되니까. 하여간 어떻게든 박카스 부활에 대한 명분만 고심하다니. 하긴 인생은 놀 궁리고, 직장인의 기쁨은 '오늘 점심 뭐 먹을까'다. 또한 세상사란 만족이 부러움과 부족함을 양쪽에 꿰차는 일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아시나요, 공주님들! 참고로 질투와 부러움과 겸손에 대해서 잠시만 집고 넘어가겠음. 남자라고 썩 다르지 않음. 남녀 공히 우월감, 열등감, 욕심, 이기심, 이타심은 꼭 측정하며 실험하지 않더라도 은연중 알 수 있다는 것. 넌지시 비위만 맞추고 굽실굽실 딸랑딸랑 아부의 '아'자만 꺼내도 사람인 이상 인성과 성격의 파악에 대해 아예 깜깜할 수는 없음. 그걸 느낌으로 알면 직관이요 그 어느 불이익을 매번 당해도 당해도 부족하면 불쾌감이랄지 상심과 슬픔이고, 싱겁다 여리다 이해심이 많네, 성격 좋다는 둥, 심하면 호구일 수도 있다. 천성이 착하든 착하지 않든 모든 기준은 바로 나다. 나야 나, 나야 나! 타인의 조롱은 거북해도 나의 빈정거림은 내 입장에서 괜찮을 수 있듯이. 1번 꼬나 2번, 3번 꼬나 어차피 꼬는 건 마찬가지. 기본은 그렇다. 남자는 열등감은 듣기도 말하기도 싫고 우월감만 말하기 좋아하기 마련, 곧 지는 비교는 본성에 위배됨. 단, 멋진 남자 이전에는. 또 여자는 열등감을 말하기 좋아하고 우월감은 듣기를 원함. 응? 자연스럽게! 판에 밖은 찬미도 좋고 거짓 칭찬도 싫지 않음. 숙녀여 안 그렇나요? 나를 직접적으로 1번 낮췄으니 적어도 날 간접적으로 1번 띄워줄 뻔 말 뻔은 해야지 호인에, 걸작에, 명바텐더 아니겠어요!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8 대 2에서 8! 무엇이건 롱테일은 있다. 가령 어떤 여자는 친구의 열등감을 습관적으로 칭찬하고, 내 우월감을 말하도록 압박하는 숙녀도 있다. 비교해서 내가 밑이면 모른 체하고 내가 위면 상대의 열등감을 칭찬하는 그녀. 뭐, 내 우월감이 확실한 부분에 대해서만 시도 때도 없이 친구를 칭찬해? 그건 돌려서 매기는 거다, 매를 버네 매를 벌어, 옆에 있으면 확 그냥... 바로 옆 사람한테 살짝 윙크하며 아주 험악하게 화염방사기를 그냥! 이런 영심이는 허세-대마왕과 완전한 한 짝이군. 고급은 고급인데 참말로 별의별 고급이 다 있네. 그건 천동설 사고 방식이니까 가능한 거다. 지동설 사고 체계에서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있어도 아주 희박할 테고. 여자 세계가 이렇다. 아, 그럴 것이다. 남자 세상보다 훨씬 치열한 뭔가가 있을 것만 같다. 왜 그럴까 왜 그럴까? 그분을 가만히 사겨보고 찬찬히 관찰해보면 왜 그런지 딱 답이 나옴. 생각을 하면 원리를 깨닫게 된다. 그것만 놓고 보자면 차라리 주파수 혼선이 훨씬 낫다, 고양이 신경질보다는. 그분은 진짜-친구도 없고, 있어도 말이 안 통하며, 인기도 없고, 재수까지 없다. 하오나 그런 결점이 있으면 다른 측면에서 장점도 있다. 그렇긴 해도 일단은 밉상이다. 중차대한 흉은 아니지만 그래도 흉은 흉이다. 그래서 말이 통하는 친구를 만나기 어렵더라, 는 몰라도 말이 통하는 이성이 뭐 어떻더라 라는 말은 꽤나 주의해야 함.
의도치 않게 숙녀 입장에서 심하게 민감한 주제가 나왔으니 살짝만 추가 설명을 해야 겠다. 앞서 나왔듯이 그런 문제는 대체 어떻게 처신하는 게 좋을까 라는 여자들의 궁금증, 타당한 의문이다. 하여 슬기로운 공감을 심화시켜 정리를 해보자. 어려울 것 없다. 차근차근 문제를 풀어가면서 알아보면 되니까. 달력이 넘어가서 봄바람이 불면 말이다 만물은 소생하는 법이다. 꽃이 피고 농부는 씨를 뿌리며, 여심이 싱숭생숭할 때 농심은 설을 풀고, 알콩달콩 사랑을 속삭이며 그렇게 무럭무럭 성장하여 여름을 지나 가을이 되면 열매가 맺고 과일을 따고, 그러다 겨울이 되면 곰은 겨울잠을 잔다. 그 다음은? 민물로 회귀하는 성어는 곰한테 잡아먹힌다. 얌얌 얌얌얌 꿀꺽꿀꺽! 뭐 누구는 흉작이고 누구는 만선이고? 아, 지금 그 얘기가 아니구나. 돌아와서, 문제의 그녀는 바로 이런 여자다. 내가 (친구보다) 밑이면 모른 체하고 내가 위면 상대의 열등감을 칭찬하는 그녀. 곧, 내 우월감이 확실한 부분에 대해서만 시도 때도 없이 친구를 칭찬하는 그녀! 나 원 참, 괜히 또 그녀의 낯짝 아니 아니 용안이 궁금해지네 그려. (전하, 통촉하여 주옵소서~) 그렇지만 따지고 보면 그건 그리 희귀한 일은 아니라서 굳이 궁금해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예측함. 그러나 어설픈 추론은 여지없이 틀릴 수도 있음. 자, 만약 그렇다면 이제부터 내 예상이 맞나 틀리나 그 탄탄한 논거를 마련해 볼까? 즉 여자 세계에서 그런 얄미운 친구가 재수없이 습관적으로 촐랑거릴 때 대체 어떻게 하면 좋을까? (딱)! 방법은 4가지다.
- 져주기
- 똑부러지게 말하기 (기분과 사정을 고려해서 분위기 잡고 여건 조성해 딱 1번에! 단, 결과는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지거나 우정이 깨지거나, 둘 중 하나)
- 하나 주고 하나 받기
- 거울 즉 반사
1은 패배주의(착한 친구). 2는 모험(직접 화법). 3은 타협(단짝은 아니니까). 4는 초딩(못 믿을 친구니까. 남자라도 있어봐라 어떻게 되나 보게!). 여기서 3과 4는 약간 다름. 3은 그건 내가 접어주고 대신 다른 데서 양보하지 않기, 4는 똑같이 돌려주는 것 곧 그럼 느끼는 게 있을 테니까. 우정은 문제 없는데 사랑은 어려울 수도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건 뭐냐면 우정과 사랑은 판이하게 다른 점 빼놓고는 거의 똑같은 행위이자 똑같은 감정이라는 것. 따라서 우정을 잘 영위하면 사랑도 그럴 공산이 크다. 그 가능성은 정비례는 아니지만 최소한 반비례는 아니고, 기울기는 다를지언정 만족스런 인생과는 비례일 것이다. 동성 친구에게 우정의 신호를 보냈는데 사랑으로 화답 받는 일을 겪어보지 않더라도 우리는 알고 있다. 인기와 독점욕과 질투심은 인간의 본능이라는 것을. 사람이 황금을 싫어하지 않듯이 우정과 사랑이란 개념은 서로를 도저히 미워할 수 없는 숙명을 안고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그 둘의 교집합은 부정할 수 없을 만큼 꽤 많이 겹쳐있다는 것. 가까이는 동성애요 브로맨스고, 보통은 친교, 넓게는 뭘까 바로 외교요 사회성이며 세계관이다. 여심의 이상형이 일반적이듯 동성애의 사랑도 까다롭고 운명적이다. 그리고 모든 남자는 스토커에 변태에 무슨 범죄자가 아니다. 그런데 몇 천년 인간의 관습으로 아직은 동성애에 대해서 이성간 사랑만큼 관대하지는 않을 수도 있다. 사람의 생각은 틀린 게 아니라 달라야 정상이니까 흐름이 그렇다는 걸 알면 된다. 너무 멀리 가지는 말고 다시 우리의─내 안의?!─영심이에게 단독 조명을 비춰봅시다. 단점 없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하늘 나라에서 찾는다면 몰라도. 저와 같은 친구도 내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 빼놓고는 좋은 친구일 수 있다. 허세로 어디서 절대 안 빠지는 친구도 알고 보면 대체로 좋은 친구다. 그러건 어쩌건 내내 미루다가 나만 피곤해지는 건 1번이다. 네? 딱 1번! 그러니까, 안되겠다 라는 시점부터 앞으로도 계속 커피포트를 감수할 자신이 있다면 몰라도 그게 아니라면 답은 나머지 셋 가운데 하나다. 여자는 그런다. 친구의 약점을 말하고 놀리며 깐족을 거듭하고 내 열등감도 술술 뭐든지 말하는 게 8이라면 2의 여자는 그런다. <내가 사다리 타고 올라가서 나 위 너 아래>가 아니라 <가만 있는 친구를 겉으론 칭찬으로 위장한 채 허물을 들추어 내 자랑하듯이, 나는 가만 있고 친구는 한칸 낮추어 나 위 너 아래>. 가령, 요염한 고양이를 보시라! 호호호 멋진 남자가 깜짝 출연하면 긴장하지 않는 건 여자가 아니고, 친구들 중에 꼭 여우짓 하는 불여우가 있다! 반드시 있다. 그런데도 남자는 좋다고 들썩들썩! 진짜로 기분 좋으니까. 하하하하하! 그처럼 친구를 놀리고 스스로 나도 망가지고, 그게 여자의 8이라면 남자의 불문율은 그거다. 마음에 들든 약간 어중간 하든, (여)바텐더 앞에서 내 장점은 내가 말하고, 친구의 단점은 절대로 함구하기. 왜냐하면 남자라는 동물은 비교 자체를 싫어하는 게 아니라 지는 비교를 싫어하니까. 멋진 남자가 아니라면 남자 세계에서는, 나는 오직 내 장점만 말하는 로보트가 되어야 한다. 멋진 남자가 아니면 그처럼 2중으로 피곤해진다. 호박도 제 발로 굴러오기 힘든 걸로도 모자라 나는 나대로 따따부따 내 장점만 선전해야 하니까. 그 처지를 진정 이해하면 깨닫게 된다. 그처럼 원리를 따지고 보면 측은함과 동시에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무튼 1차적으로는 그렇다. 그러나 여자의 우정은 남자의 서로서로 '내가 잘났다 내가 최고다'식 귀 막기 놀이와는 방식 자체가 다르다. 그런데 여자들이여, 만약 저 문제가 우정인 친구가 아니라 사랑인 남자라면? 그것도 그냥 남자가 아니라 내 남편이면! 어 음 아 그-그땐, 그-그건 번지수가 틀렸다. 아마도 예언가보다는 변호사를 찾아야 하지 않을런지! 웃자고 한 얘기고 무릇 세상의 풍랑을 겪어보니 친구란 그런 것 같다. 한마디로, 함께 하자! 그럼 사랑은 같이 살자? 아아 또 그 놈의 사랑...! 우정 즉 함께 하자란 그런 거다. 남자는 나 혼자 뭐 어쩌기 싫다면서 향긋한 시가를 친구에게 슥 권하는 거지. 그럼 여자는? 뭐겠나! 기본적으로 남자가 위스키 3병이면 여자는 수다 3시간이지. 여자는 그처럼 깐족거리며 친구를 띄웠다가 놀렸다가 띄웠다가 놀렸다가, 그 대신 친구를 쥐락펴락했으니 그 전이든 후든 난 항상 내 열등감을 말하기 좋아함. 안 친하면 놀리지도 않고. 단, 예외는 있다. 신비주의 컨셉, 조증, 증후군, 트라우마, 비정상적으로 허영심 지수가 낮은 경우, 기타 등등. 그게 바로 여자다. 고추 달린 남자로써는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여자의 마음 말이다. 하오나 친교에 대한 남녀의 이치만 다를 뿐 심리 상태의 작동 원리는 둘 다 자연스럽다. 가령 우정으로써 친구를 놀리는 건 장난이고, 사랑으로 애인을 기쁘게 하거나 웃기고 싶은 욕심 때문에 어떤 분위기를 썰렁하게 만드는 건 농담이다. 또 못 웃기면 다음 기회에! 굳이 심리학자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다 알고 있다. 단, 서열이 중시되는 골목대장 놀이랄지 옷은 어떻게 입고 몸짓은 어때야 한다, 라고 알려주며 꼴찌를 영입하는 어느 언니들 그룹에서는 규칙이 다르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 상대의 마음을 너무 심하게 가지고 노는 것 아닌가 라는 농락도 있을 수 있듯이 사랑은 몇 가지로 구분될 수 있다. 마음으로 사랑하느냐, 머리로 사랑하느냐, 아니면 전자에서 후자로 또는 그 반대로 순서가 변하느냐로.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볼 필요없이 처음부터 진심이고 초심이 변치 않으면 좋겠지만 사랑이란 게 오묘한 게 뭐냐면 그거다. 우리가 사랑을 불렀든 사랑이 스스로 우리에게 왔든 그것은 변하기 쉽다는 것! 각자 방법과 속도가 다르듯 이분의 사랑과 저분의 애정을 견주어야 한다는 것. 마음이 약해서 연애 감정에 매료되었을 수도 있지만 내가 주체적으로 사랑을 한다기 보다는, 뭐랄까, 어쩌면 사랑이 내 운명을 이끌어가는 게 아닐까 라는 신기한 의혹까지. 그런데 대관절 이 그림은 또 뭐야? 그러니까 우정 상담의 결론은, 여자는 고추가 달리지 않았고 남자는 고추가 달렸기 때문에, 바로 그래서 그 둘의 사랑은 초반에(만) 열이 좋을 수 밖에 없다? 이런, 젠장!
결국 어른도 애랑 똑같다. 지 잘난 척, 아는 척, 센 척, 아무렇지 않은 척, 당당한 척, 그 척의 과잉이 심한 사람은 영 보기 싫다. 주위에 다 물어보시라. 그게 과연 꼴 보기 싫은지 좋은지를. 실제 잘난 사람이 유행 때문이든 분위기 때문이든, 또는 너와 나 웃고 즐겁고 기분 좋으니까 잘난 체 하는 건 한마디로 인정. 그건 비호감이 아니다. 열광이 아닐지언정 최저는 무관심일 테니까. 그건 곧 못 먹어도 고다! 왜냐하면 그건 척이 아니니까. 최소한 자랑이 얄밉지 않으니까. 호박이 제발로 굴러오고, 오색찬란하며 향기로운 꽃과 꿀처럼 달콤한 과일이 언제나 그댈 반기면 굳이 내 입 아프게 잘난 척할 필요가 하나도 없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입만 열면 그냥 아주...? 아아, (설레설레)! 밝은 자신감과 합리주의와 재수 없음은 모두 종이 한장 차이일 수도 있다는 걸 잊으면 그 인생은 곤란해지기 십상이고, 옆 사람은 피곤해진다. 그러므로 우리의 속마음은 만인에게 읽힐 수 밖에 없는 거니까, 내 이름을 만방에 알리건 어쩌건 적당히 착하고 적당히 성격 좋은 게 제일이다. 그런데 저 친절하지 않습니다, 나 성격 좋지 않음, 막 그러면서 기준선을 미리 낮춰놓고 대인 관계를 시작한다면 그처럼 만사에 나선다면, 속된 말로 나대면 어떡하지? 심지어 무섭게 생겼으면! 야 야 얘들아 얘들아, 떴어 떴어 피해 피해, 딴 데 봐 딴 데 봐! 좌우지간, 따라서 결론은 나왔다. 나는 인생을 쨉부터 다시 배워야 한다는 것. 그런데 뭘 또 독학해야 할지 그것이 고민이다.
2 공상은 과다했고, 심심함은 과도했으며, 타성은 과분했다. 미래의 과찬은 가망성이 희박했고, 행복은 복권을 사는 재미만으로 만족해하지 않았다. 아마도 그럴 순 없을 테니까. 또 아마존에서 나이키를 주문하고, 단골 술집에서 맥없는 허당이라고 푸대접 받든 존귀한 디오니소스로 귀빈 대접 받더라도 더 이상 즐겁지가 않았다. 헤르메스를 읽기보다 헤르메스를 사고 싶었기 때문일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막연한 억지일지도 모르지만 지금 내게 필요한 건 라 페라리나 복권 당첨, 돈 지오반니를 창작할 수 있는 재능이 아니다. 그건 어쩌면 보물섬으로 떠나는 모험, 곧 보물섬 지도의 발견일지도 모른다. 맞다. 지금까지 수다는 충분했다. 다정은 숙녀의 다변을 경청할 때나 절실한 건 아니겠지만 빽넘버 3번 '다망의 재미'는 특급 투수 허영심에게 결코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실력이 허접하면 명함도 내밀 수 없다. 그렇다. 그러므로 대타 빽넘버 7번 '열망의 실천'이 등장할 절호의 기회다. 그런데 느닷없이 상대측이 내놓은 패는 싸움닭 헬맷? 퍽을 그냥 줘, 말어! 아무튼 난 헛된 꿈을 계몽해야만 했다. 정계나 오락업, 사교계에 기웃거려봐야 친구도 없고 승산도 없다. 나 혼자 탁월한 고상함을 편애해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이다. 자그만 성과는 몰라도 대망의 실현은 덥썩 주어지기 어렵다. 그러면 대중의 총애를 받으려면 정말로 어떡해야 할까? 그러든 어쩌든 방법은 하나였다. 바로 걸릴지도 모르는 연예인병을 스스로 치유하고 가택감금을 해제시키는 일. 이목을 끌며 주목을 받느냐 마느냐는 다음 일이고, 우선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첫째, 남자는 집에서 빈둥빈둥 놀면 안된다. (그렇다고 가정적인 남자들이여 막 바깥으로 나가라는 말이 아니라) 둘째, 남자는 무작정 힘이 밑에서 위로 올라오면 곤란하다. 대신에 바깥의 어떤 열정과 기를 내게로 확 빨아들여야 한다. 셋째, 세상에 나가 '우리는' 화법을 뽐내며 '으쌰으쌰' 인생을 선동하기. 그러나 나는 누가 뭐래도 의연한 몽상가이자 황금의 추종자였다. 나아가, 활달한 다혈질은 아니지만 약간 상쾌한 열망가였다. 물론 공인은 받지 못했고. 그래서 내일 일은 모르겠고 하던대로 나는 경건파가 아니라 기분파로 남기로 했다. 따라서 나는 근사한 꽃다발과 달콤한 케익과 괜찮은 샴페인을 들고서 환상 문학 잡지 미스테리아 사무실로 갔다. 뭐라고? 하여간, 그럼 그렇지. 난 또 뭐라고! 나는 사무실에 도착했다. 최근 나는 내 개인 작업실에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지금 하는 일은 오직 구상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미스테리아 사무실로 가는 도중에 연락이 와서 잠시 친구를 만났다. 녀석은 사업에 실패했는지 사랑에 실망했는지 아주 불만이 많았다. 그런대로 괜찮은 친구인데 누구나 그처럼 침체된 시기는 있는 법이니까 나는 꾹 참고 묵묵히 녀석의 야유를 경청했다. 자기가 무슨 영화를 한 편 봤는데 그게 그렇단다. 그냥 생선 같은 놈 나와서 여자랑 연애하는 영화였다나 뭐라나. '미녀와 야수'나 '혹성탈출'은 최소한 포유류라도 됐고, '인어공주'는 다리까지 만들어서 인간하고 다를 바 없었고, '아바타'는 아예 종을 바꾸는 이야기며, 거북이를 자기가 키워봤는데 뭐가 어쩐다는 둥 기타 등등. 녀석은 현실에서 낭만을 기대하지 말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녀석이 지금 썩 괴로운 형편인가 보다 라고. 그럼 이때 할 수 있는 일은 그거다. 다독여주고 달래며 위로하기. 리모콘의 오뚜기 단추를 누르기 말이다. 그렇게 나는 환상 문학 잡지 미스테리아에 가는 길에 친구를 만났다 헤어졌다. 그런 다음 나는 사무실에 도착했다. 그런데 사무실에 편집장 마라는 없고 새로운 경리 아가씨만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샐리였다. 우리는 금새 친해졌다. 그러다 그녀와 대화하는 중 알게 됐다. 샐리는 미스테리아 사무실에 출근한지 꽤 됐고, 우리는 이미 여러 번 만났고 벌써 친했다는 걸. 내가 요즘 작품 구상하느라 잠시 착각했었나 보다. 뭐 그럴 수도 있다. 아무튼 우리는 반말하는 스스럼 없는 사이였다. 「이런 말 하기는 뭣하지만...」 샐리. 「그럼 말하지 마.」 「뭘 또 말하지 마? 우리가 또 그렇게 박하게 구는 사이는 아니지 않나? 우리가 무슨 남인가! 우리가 기둥서방과 조강지처 사이는 물론 아니야. 하지만 그렇다고 뭘 또 숨겨야 할 사이는 아니지. 안 그래? 응, 오빠.」 얘가 뭔 얘기를 할려고 이렇게 날 몰아세우지, 라는 의구심이 발생했다. 내가 잘못 안 게 아니라면 난 샐리에게 특별히 실수한 게 없다. 그럴 것이다. 아마도 그렇겠지? 그러기를 바래야지 뭐 별수 있나. 「오빠. 오빠 취미는 TV 보기야? 아직도 클럽 다녀? 오빠는 혹시 나도 불여우로 보는 걸까?」 「응? 새로운 취미는 없어. (혹시 나 일중독?) 클럽은 가고 싶지. (나도 막 어? 막... 으아 캬...) 하지만 제일 마지막으로 갔을 때 입장 금지 당했어.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어. 그러니까 난 아직 이해를 못하는 거지. 그리고 또 뭐라고 했지? 무슨, 불여우? 에이 무슨. 오빠는 샐리처럼 이쁜 여자친구 있으면 소원이 없겠다. 왜 그래요 숙녀여!」 「오빠. 미스테리아에 칼럼 기고하는 거 짜증나? 막 글 쓰기 싫고 그러지? 오빠가 지금 혹시 몽정기 그런 건가? 아닌데. 발정은 우리 집 강아지가 났는데. 어쨌든 오빠. 뭘 해도 재미없고 항상 심심한 건 맞지? 솔직히 말해서 재미없고 심심한 게 나쁜 거도 아니고 죄도 아니잖아? 안 그래요 오라버니!」 「어? 그건 그렇지. 그런데 어떻게 알았어?」 「오빠, 축하해. 오빠는 바보가 된 게 아니라 어려진 거 같아. 하긴 그게 그거지. 아니다. 바보는 사랑에 빠졌을 때나 되는 거고, 오빠는 이제야 뒤늦게 신묘한 어른들의 세상을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 혹시 오빠 이제 막 분홍색-다홍빛 신기한 성의 세상에 눈을 뜬 거 아니야? 그래, 생물학! 뭐 늦을 수도 있어. 그럼 지금 아담이 눈 뜰 때인가? 그게 뭐 어때서! 내 마지막 키스를 꼭 어디 동네방네 광고라도 하란 말이야 뭐야? 그러든 어쩌든, 전 오빠 응원합니다. 난 오빠 호감. 아, 생각해 봐. 강아지가 귀엽지, 응? 일단 생선아고 다르잖아. 그치. 자유와 사랑과 선망이 얼마나 좋은 건데. 그럼. 가만 있자. 내 동창 중에 잘하면 에로영화 감독 한 명쯤 있지 않을까? 왜 없겠어! 낙담하지 마 오빠. 체념하기엔 이르다구. 응? 호기심은 젊음의 특권란 말이야. 어머머, 오빠 이마에 여드름 났네. 거 봐 봐!」 마침내 난 알게 됐다. 미스테리아에 칼럼 변신술을 보낸다는 게 내 일기를 보냈다는 걸. 오, 저런! 그 오그라드는 유치하고 간지러운 일기를 대체 왜...! 그러니까 어쩌다가! 딱 보니 이미 샐리가 내 일기를 읽어버린 듯 했다. 아예 외워버린 것 같았다. 나 혼자 볼려고 그냥 낙서 삼아 끄적거린 일기인데. 그 뻔뻔한 투정은 남이 읽으면 절대 안되는 건데. 인간은 선천적으로 사랑하는 법을 아는 채 태어나는 것처럼 나 혼자 읽기 위해 쓴 일기는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모르는 내가 아닌데. 아니 대체 어떻게 이런 실수를 했을꼬. 아, 창피했다. 「오빠. 창피해하지 마.」 오오, 너무 부끄러웠다. 「오빠. 부끄러워하지 말라니까.」 난 샐리에게 약점을 잡힌 것일까? 「마라 언니한텐 비밀로 할께.」 뭐-라-고? 살아가는 일은 다른 게 아니라 무안함을 감수한 체 전진하는 일이다. 「난 오빠의 글이 좋아. 그건 내게 거의 마술이야. 오빠는 내 판타지 도서관이나 다름없으니까. 응? 그러니까 난 작가님의 팬이자 오빠의 여자친구지. 응? 오빠 같은 멋진 예술가 옆에는 원래 나처럼 아리따운 숙녀가 있어야 하는 법이야. 응? 세상에 나 같은 여자친구가 어딨다고 그래?」 샐리는 벌써 내 여자친구로 우리의 관계 설정을 새로해버렸다. 「난 그냥 무명으로 남을께. 드라마 제목도 있잖아. 내조의 여왕이라고. 대신에 오빠는 내 영원한 애인. 호호호. 농담이야. 정색하기는. 오오, 오빠 귀여운데. 응? 이제는 앙탈까지. 응? 저거 봐 저거 봐. 오빠 귀 빨개지는데! 어머머 저 얼굴의 홍조 좀 봐 봐. 호호호호호. 호호호호호.」 나는 샐리와의 키스는 추호도 꿈꾸지 않았다. 그런데 결과는 이렇게 맹수 앞의 불독처럼 되었다. 내가 뭔 말썽을 일으켰다고 말이야. 이런 일로 샐리에게 책잡힐 줄은 미처 몰랐다. 그러나 나는 이건 그냥 애인 가장 놀이에 지나지 않는다고 여기기로 했다. 안 그러면 내내 찜찜할 것만 같아서. 내가 그런 꿍꿍이 속으로 현실의 결산을 가늠하는 도중 샐리는 자기 집에 놀러가자고 했다. 친구끼리 무슨 턱없이 무리한 부탁도 아니고 그 정도 호의는 예의라면서 그녀는 내게 그랬다. 「오빠. 잔말 말고 따라와! 마라한테 확 다 얘기해버리기 전에.」
3
어느 날 갑자기 눈을 떴드니 바이런식 유명인이 되었더라, 가 아니라 나는 샐리의 시녀가 된 것이다. 때로는 애인, 때로는 조수, 때로는 친구. 이미 1인 다역은 시작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샐리. 그런데 어디까지 따라가야 집이 나오니?」 우리는 각자 차를 몰고 갔고, 나는 그녀에게 전화로 물어봤다. 「지금 정문은 통과했어. 조금만 가면 돼.」 뭐? 혹시 얘도 대문에서 현관까지? 에이, 설마! 나는 조마조마에서 활동할 때 친했던 그녀가 생각났다. 그러나 이름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걸로만 봐서는 난 바람둥이 기질이 다분한 것만 같았다. 딱히 명백한 근거는 아니지만. 아무튼 우리는 샐리의 집, 그것도 휴양관 접견실에 도착했다. 난 아무래도 여기에 잘못 끌려온 것 같았다. 「샐리. 너 혹시 옛날에 나 몰랐지? 그치? 이거 누가 시킨 거 아니지? 아닐 꺼야. 그럼.」 「왜 그래, 오빠? 긴장 풀어. 오빠가 의심이 많은 건가... 오빠답지 않게 그러기야?」 「응. 긴장 풀었어. 그런데 있잖아. 여긴 어쩌면 환상의 나라가 아닐까, 그런 느낌이 드는데. 앗! 이 음악은 혹시 작곡 빨리하기 대회가 있다면 금메달감인 가에타노 도니제티의 64번째 오페라 돈 파스콸레 서곡 아니니?」 「응? 아닌데! 미안해. 아니라서. 실은 이거 내가 작곡한 거야.」 아닌데. 맞는데. 나는 샐리가 잠시 자리를 비운 틈을 타서 핸드폰 앱으로 알아봤다. 그랬더니 글쎄 내 예측이 딱 맞았다. 그런데 뭐? 참 나! 나는 직감적으로 느꼈다. 또 다시 황당한 기승전결 같은 숙녀에게 낚였다고. 하긴 나도 마찬가지다. 나에게 발단은 '언젠가'다. 전개는 '혹시나'고, 절정은 '아마도 어쩌면'! 그럼 결말은? 뜬금없이 해피 엔딩! 아니다. 결말은 '역시나'다. 그건 밑도 끝도 없고 대책 없는 완결이다. 세상이 그렇고 인생이 증명하는 일이다. 이 가운데 열은 발단이고, 열정은 절정이다. 그러니까 나는 발단─절정─발단─절정을 원한건가? 결국 그 말이네. 커졌다 작아졌다 커졌다 작아졌다! 참 나! 뭐, 짝사랑─풋사랑─짝사랑─풋사랑? 호박 나이트클럽에 출근했다 그만뒀다 출근했다 그만뒀다가 낫겠다. 이건 무슨 마술 같은 효과도 없고, 장난꾸러기의 재미없는 장난 같은 상상이군. 바로 그때 편집장 마라한테 전화가 왔다. 「어. 마라.」 「어디야?」 「어디긴. 지구지.」 「칼럼은?」 「조금만 기다려. 거의 완성 직전이니까.」 「제때 제때 제출 좀 하자. 응?」 그때 샐리가 내게서 전화를 뺐더니 그랬다. 「너 누구니?」, 「그야 내 알 바 아니고. 뭐?」, 「난 이 전화기 주인의 여자친구다. 왜?」, 「아 됐고. 아 나 정말 얘 말 많네. 야! 내가 참을 테니까 흥분하지 말자. 아휴, 이제 그만 끊어라.」 그렇게 샐리는 마라와의 통화를 종료했다. 아마 마라는 미스테리아 사무실 경리 샐리인 줄 몰랐나 보다. 「오빠. 얘 참 말 많네. 안 그래? 지가 무슨 오빠 마누라야 채권자야? 어디서 독촉이야!」 「응?」 나는 뭐라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그때 갑자기 비서로 보이는 여자가 황급히 들어오더니 그녀에게 귓속말로 뭐라 뭐라 했다. 「오빠. 있잖아. 설명은 나중에 하고. 오빠 숨어 오빠 숨어. 어서 어서. 오빠 오빠 숨으라니까 숨으라니까.」 「응?」 나는 졸지에 익살극의 주인공이자 축혼가의 훼방꾼이 되어버렸다. 나는 지금 한가하게 사교가이자 야심가일 수 없게 된 것이다. 샐리가 당황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녀는 내게 그 오빠 성격이 장난 아니라고 했고, 나는 한눈팔고 해찰할 수 없었다. 숨으라니까 숨는 수 밖에. 그렇게 정체 불명의 사나이가 도착한 후 10분쯤 경과. 로맨티스트의 정서는 무시됐다. 그처럼 해결되지 않는 불확실성이 궁금하던 찰나 나는 커튼 뒤에 숨은 상태에서 바깥을 빼꼼히 살필려고 했다. 그러다 나와 그분의 눈이 핑~ 하면서 마주쳤다. 뭐야 이거! 그렇게 우리는 통성명을 나눈 다음 친구가 되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얻어맞지 않은 것이다. 휴~! 이름이 무슨 포르토피노 몽키스패너라나? 그런데 알고 보니 그는 이곳에 포르토피노 페라리를 몰고 왔으며, 본명이 포르토피노였다. 그럼 난 피오렌티나 식스맨이라고 해야 되나 라면서 고민하다가 말할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어디 몽키스패너는 알고 봤더니 다변을 자랑하는 수다쟁이로써 그녀를 짝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형씨 얘기 많이 들었소. 지의 완성은 블로그다, 라는 책의 작가라구요? 저는 코메디언들을 존경합니다. (뭐야, 그 말은 코메디언이 작가 흉내를 낸다는 뜻인가?) 나로 말할 것 같으면 하루는 명상가 하루는 교양인이죠. 선생이 글을 막 쓰지 않는 것처럼 나도 막 살지 않는다오. 상식은 내게도 있고 지성이라면 나도 어디서 썩 빠지지 않는다오. 왜, 못 믿겠소? 그렇다고 날 아는 척 깐족거리는 초딩쯤으로 여기지는 말아주시구료. 거 보아하니 살면서 여자 꽤나 울렸겠구만. (댁도 만만치 않아 이냥반아! 이거 왜 이래?) 전적과 명성이야 어떻든, 단언컨대, 샐리는 그만 포기하시죠. 남자가 말이야, 응? 숙녀를 진정 사랑하지 않는다면 애정을 양보할 줄도 알아야지. 거 안 그렇소? 알 만 하신 분이 말이야. 하긴 그렇게 꽉 막힌 양반 같지도 않구만 그래. 내 좋은 결과를 기대하리다. 그래도 되겠소? 고맙소! (뭘 고마워? 난 암말도 안했는데! 이 인간이 정말 보자 보자 하니까...) 허허허. 허허허허허. 웃기면 형씨도 웃으시오. 참지 마시고 말이요. 원래 내가 좀 웃기긴 하죠. 허허허허허. 아무튼, 저는 선생 같은 작가님들을 부러워합니다. (뭐야 이거? 이랬다 저랬다 하고!) 우리, 기분도 좋은데 샴페인 한잔 하겠소? 아 우린 친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샴페인을 발포성 와인이라고 하지만 아제는 딱 보자마자 내 마음에 들었소. 우린 남자 대 남자이자 떠오르는 듀오로 활약할 수 있을 듯 하오. 허허허허허. 아 그런데 아직은 해가 중천이군요. 샴페인은 다음에 합시다. 말싸움으로는 형씨가 날 이길려나 몰라도 술은 어림없소. 알겠수? 허허허허허. 그런데 형씨는 왜 말이 없소? 아, 맞다. 내가 통 말할 기회를 주지도 않았으면서. 내 정신 좀 봐. 허허허. 어떻게 분위기도 이상한데 우리 핀볼 게임으로 내기라도 하는 게 어떻소? 아마도 포커는 취미 없을 테고. 블랙잭도 관심 없는 샌님은 아니겠지만 천성이 내기를 좋아하시는 것처럼 보이요. 보아하니 타고난 승부사로구만 그래. 만약 아니라면 뭐 오늘부터 초보자 이어서 1주일 안에 천하의 도박사가 되보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겠지요. 아, 그러지 말고 우리 테니스나 한 게임 합시다. 참고로 난 태어나서 테니스를 딱 1번 쳐봤나? 뭐 이 정도면 공평한 승부 아니겠소? 거 승부사 양반. 어째 안색이 썩 좋아보이진 않구만. 혹시 불편하신건 아니겠죠? 걱정 마시오! 내가 운영하는 술집과 클럽에 초대하리다. 한번 왔다 가면 십 년은 젊어질 것이오. 농담이 아니라오. 참고로 그곳은 마초들 사이에서 악마의 쾌감, 끝없는 열광, 그 누구든 광란하는 밤의 지존으로 만드는 곳으로 꽤나 유명하다오. 허허허허허. 아직 소문 못 들었소? 곧 듣게 될 거요. 허허허허허. 아마도 실망하진 않을 거요. 거 혹시 허당계에서 맹활약하는 어설픈 숙녀들만 모아놓은 건 아니냐구요? 예끼~ 이 사람아! 황홀한 천사 1번부터 깜찍한 요정 9번까지, 대타로는 10년에 한 번 태어날까 말까 하는 절세미녀로만 줄을 서서 대기한다오. 그 대기자 명단, (눈썹 씰룩) 아 말 말어요 말 말어. 말도 못한다니까 그러네. 심지어 행운상에 당첨되면 실제 무인도에 동행할 수도 있소. 말만 하시오. 네? 말만! 자, 궁금하지 않소, 그곳이 과연 어떤 곳인지? 그리고 나란 사람은 정말 어떤 남자인지 알고 싶지 않냔 말이오. (지가 지 입으로 명불허전이네 뭐네 라는 말이야 뭐야? 잘한다 잘해!) 좌우지간, 선생과 나의 만남은 불운의 인연은 절대 아닐 거요. 왜냐하면 이걸 바로 미지의 운명이라 불러야 하기 때문이라오. 그건 뭐 차차 증명하기로 하고 이제 슬슬 테니스장으로 이동합시다.」 테니스 경기 내기는 아이스크림 사기였다. 결과는 내가 졌다. 생-초보자라는 녀석의 말은 순 거짓말이었다. 나는 패자가 됐고 초라해졌다. 그러나 이대로 물러나서는 안될 것만 같았다. 그러기는 싫었다. 그래서 우리는 핀볼을 했다. 나는 또 졌다. 다트도 했다. 나는 또 졌다. 그리고 이어서 영화처럼 무슨 증후군을 흉내내어 암산 시합도 했다. 또 졌다. 소셜 네트워크의 팔로워 수를 비교하기도 했다. 나는 역시나 고개를 숙였다. 강아지가 누굴 반기나 하다 하다 그런 게임까지 만들어서 했다. 심지어 음식 빨리 먹기도 했다. 나는 다 졌다. 모두 졌다. 나의 패배주의는 완성됐고, 나의 루저마인드는 건재했다. 그건 완패고 연패이자 전패였다. 그렇게 우린 친구가 됐고, 우리는 몇 일 후에 골프를 같이 치기로 약속한 다음 헤어졌다.
4
나는 포르토피노와 헤어진 다음부터 골프 연습장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친구한테 연락이 왔다. 손목이 삐어서 골프를 못치겠다고 한다. 더구나 이제 자기는 골프가 재미없어졌다고 했다. 심지어 골프를 접기로 결정했다나 뭐라나. 이런, 젠장! 그런데 난 왠지 우리가 좀 더 가까워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제 친해질 만 하니 발을 뺀다는 속셈은 적어도 없는 듯 했다. 하긴 녀석은 첫날 밤 얘기를 해줬던 내 친구와 닮은, 나의 새로운 친구다. 아, 첫날 밤 얘기를 해준 친구는 한두 명이 아니다. 허허허. 남자는 여자가 아니니까 말이다. 어쨌거나 앞으로 우리의 인연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모르겠지만 우린 이미 끈끈한 우정으로 엮인 것이다. 최근 활약을 예고편으로 요약하자면 이와 같다. 발단과 전개는 동시에 나타났다. 발단은 샐리였고 전개는 포르토피노였다. <기분 좋은 발단은 숙명적인 절정을 예고했고, 흥분되는 전개는 행복한 결말을 암시했다> 가 아니라 아직은 전망이 불투명했다. 따라서 좀 더 사태를 지켜보며 전세를 관망해야만 했다. 우왕좌왕 바쁘다가 재밌다가 흥미로운 일들이 연이어 날 괴롭히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런대로 평온했고 많이 심심하지는 않았다. 용케 딱 질색인 일들이 많지 않으니까 일하고 놀면서 적당히 삶에 큰 불만은 없었다. 막 딴생각하고 딴청을 피우며 한눈파느라 즐거운 인생의 주변만 겉돌지 않으면 된 거다. 그래도 문득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과연 지금 잘 살고 있나 라는 의혹 말이다. 나는 길조를 애정하고 행운을 갈망했다. 따라서 난 모험을 추구해야 옳았다. 그러나 나는 더 이상 낭만의 주동자도, 꼼짝없이 질투의 여왕을 좋아하게 된 사랑의 포로도 아니었다. 결국 난 알고 보니 엉터리 작명가이자 허세의 제왕에 다름 아닌 존재였나? 칼럼니스트라는 내 직분으로 보자면 난 아마도 허풍의 제물인 듯 하니까 그건 뭐 썩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그런데 왜 갑자기 불현듯 포르토피노는 내 앞에 나타난 걸까. 그는 나의 새로운 단짝이라는 예감은 거의 실현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우린 서로 은근 허당이라는 걸 인정하며 자평하고 직감했으니까. 하지만 고귀한 사랑은 드물듯이 함부로 갑작스런 우정을 온전히 신뢰하는 건 주의를 필요로 한다. 그러니까, 포르토피노가 좋아하는 샐리에게 난 흠모의 감정을 밀고 당기는 남자로 남아있어야만 하나? 그보다는 포르토피노를 쥐락펴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는 걸 그 어딘가에 고백하고 싶다. 난 너에게 때로는 좋은 친구이자 때로는 얄궂은 연적으로 순간 순간 깜작 변신할 테니까 바싹 긴장해, 라고 겁박한 적도 있으니 말이다. 그처럼 난 단지 중도 세력이자 무소속이었다. 나와 포르토피노는 우정, 나와 샐리는 우정 2.0! 사랑은 모르는 거니까. 그러므로 그건 숙명에 맡기기로 했다. 일단은 나와 포르토피노 그 남자 대 남자의 친분이 중요했다. 그렇다고 우리가 몇 년 뭐뭐 몇 년 뭐뭐 라면서 자기 이야기를 각자 많이 실토하는 사이는 아니다. 포르토피노와 난 그저 부담없는 친교를 나누는 정도일 테니까. 굳이 고급 살롱과 좋은 술집이나 싸구려 바에 데려가서 속마음을 파헤쳐보지 않아도 속으로 뭘 생각하는지 안 봐도 훤할 만큼 우리는 철없는 어른일 뿐이다. 때문에 우리는 서로 눈빛만 봐도 뭘 생각하는지 다 알 수 있었다. 독심술, 그거 별거 아니다. 허허허허허! 어쨌든 난 녀석을 만나서 '창창한 청춘'의 순진함과 무모함과 유쾌함을 되찾았다. 아닌가? 아니다. 그게 아니라 난 단지 그냥 딱 세 가지가 좋았던 거다. 첫째, 포르토피노 몽키스패너는 그저 얄팍한 허명이라는 점. 그러나 처음에는 별명을 듣고 살짝 쫄긴 했다. 왜 안 그랬겠나. 둘째, 포르토피노가 포르토피노 라 페라리를 몬다는 것. 셋째, 한껏 과장하자면 악마가 탐낼 만한 쾌락, 즉 녀석의 천리마를 같이 타고서 매일 함께 놀러다닌다는 점. 말이 났으니 말이지만 그 친구가 자기는 신선한 기운이 가득한 활기찬 삶을 산다고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딱 봐도 알만 했다. 뭘 해도 재미없어한다는 걸. 심지어 자기는 샐리를 좋아하는데 샐리는 내게 호감을 품기 때문에 꽤나 불편하고 불쾌하다는 것까지. 그러나 녀석은 우정과 사랑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고 싶어했다. 나도 그 친밀감에 덥썩 덜미를 잡히는 데 퍽 기분 나빠하지 않았고. 포르토피노 그 친구는 욕심이 많다기 보다는 뭐랄까, 재밌는 호인에다 돈이 많았다. 그럼 내게는 애매한 인기만 남았나? 인기는 무슨! 그처럼 녀석의 속내를 파악하는데 구태여 문학적인 관점이 나서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러든 어쩌든 우린 모두 흥망의 기복이 심한 인생, 내일은 모른다는 듯한 이 급작스런 브로맨스의 감정에서 허우적거리는 게 싫지 않았다.
5
나는 내 핸드폰 전화번호부에 녀석을 단순히 이름으로만 등록해뒀다. 왜냐하면 별칭이니 예명이니 것도 좋다만 난 아마 그 어떤 비상함을 감추고 아끼며 바텐더의 거짓없는 예우를 편애하니까. 옛날에 잠깐 그랬던 적이 있다. 핸드폰 전화번호부에 친한 친구들을 모조리 내 맘대로 정한 애칭으로 등록했던 일. 그랬더니 도저히 정신사나워서 안되겠더라. 그래서 그 후로 각종 소프트웨어에서 신 기능을 알리는 것처럼 잠깐만 별명을 등록하던지, 아니면 그냥 귀찮게 쓰고 바꾸고 지우고 고칠 필요없이 처음부터 이름만 등록하기로 했다. 타인도 그러겠지? 그런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게 정답이겠네. 어쨌든 그렇다면, 간혹 아주 특별한 경우에만 이름 대신에 쓰는 거지. 뭐라고? 바로, 진상이라고! 그런데 뭔 얘기를 하다가 글의 품위가 말의 다변으로 바꼈지? 나도 수다쟁이가 다 됐다. 아니면 음 그래, 외롭던가. 또는 아침에 일찍 눈이 떠지던가. 아닐 수도 있고. 아무리 그래도, 응석도 귀찮고 투정도 한두 번이다. 다 모르겠고 포르토피노한테 어디 가까운 데로 몇 일 캠핑이나 갔다 오자고 해야겠다. 왜냐하면 보아하니 아마도 나의 기수이신 그분께서 소풍, 그것도 봄-소풍을 가고 싶어하니까. 아무래도 내 이 접속사를 좋아하는 본능과 야박한 변덕, 미지를 탐닉하는 습성, 예민한 코끼리 귀 그 헤어나올 수 없는 업보에게 로마의 휴일을 안겨줘야 할테니까 말이다. 그런데 그러다 내가 변심하면 어쩌지? 그건 그때 가서! 우리는 놀러가기 위해서 만났다. 그런데 저번에 샐리에게 포르토피노에 대해서 험담을 살짝 풀어놓았기 때문일까? 나는 포르토피노와 대면한 순간 괜히 머쓱했다. 바로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녀석에게 미안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해 소풍에 대해 물었다. 그런데 그렇더라도 심한 트집은 아니었고, 흉볼 만한 교분은 이미 쌓였으며, 누가 봐도 어디에 내놔도 썩 빠지지 않는 화제인 건 분명했다. 아니다. 그건 미움 받기에 합당한 손색이었다. 고로 누가 누가 대인배인지, 누가 하수고, 누가 속 좁은 남자며, 누가 허당인지는 거의 밝혀진 거나 진배없었다. 「포르토피노. 자, 이제 떠나볼까! 그런데 어디로 가지?」 「그러게. 어디로 가지?」 「딱히 생각 안 해 봤는데. 샐리한테 물어볼까? 그래. 그게 좋겠다. 샐리랑 같이 가면 되겠네.」 「샐리는 가기 싫다는데. 여성잡지1을 정독할지 아니면 서정시를 낭독할지 몰라도 집에서 쉬겠다는데. 헉. 설마......」 「에이 무슨 소리야. 드라마퀸이 소풍을 왜 싫어해? 자고로 숙녀는 사랑과 여행을 여간해서는 마다하지 않는다네. 자네 여자를 잘 알지 않나. 자네는 숙녀의 헤어스타일만 딱 보고서도 그녀가 지금까지 남자를 몇 명 사겼는지 대번에 꿰뚫어볼 것 같은데. 물론 간혹 헛다리 집을 수는 있겠지. 아,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고 하지 않나. 아무튼 놀러가서 고기도 구워먹고, 캠핑 기분도 한껏 즐기고, 음 어 어, 또 뭘 하지? 그게 다인가? 그냥 가지 말까? 아니야. 꽃이 피고 봄바람이 불며 새가 지저귀는데, 우리도 인생을 즐겨야 할 거 아닌가. 가서 풍성한 모험을 하던지, 시원한 해변에서 처음 보는 미녀를 꼬셔서 찐한 연애를 하던지, 가기로 했으니까 가자구. 응? 그래. (멈칫 멈칫) (갸우뚱 갸우뚱) 그런데 어디로 가지? 그래. 우리 그냥, 샐리랑 같이 가자. 그녀가 우리들 꿈속의 행진 그 놀라운 행선지를 알려주겠지. 그럼 좋겠네. 와, 됐다. 그럼 되겠네. 그런데 너가 몇 번이나 가자고 했는데? 숙녀에게 예의상 일단 2번은 정중히 권해야 하는 거 아니니? 일단 내가 한 번 더 졸라볼께.」 나는 그렇게 샐리에게 전화했고, 샐리는 내 제안을 듣고서 덥썩 흔쾌히 수락했다. 뭐야? 저런! 이 일을 대체 어쩌면 좋을꼬! 마지못해 응하는 척 승낙한 것도 아니고... 그럼 포르토피노는 도대체 뭐가 되는 거지? 옆에서 다 듣고 있었는데! 뭐시여 이건? 나는 엉덩이에 악마의 뿔이 돋는 듯한 막 그런 이런저런 묘한 기분들 곧 만감이 교차함을 느꼈다. 그건 마치 라디오 애청자 엽서의 사연을 듣고서 그러는 거 같았다. 아 아 웃으면 안되는데 웃으면 안되는데, 그런데 사연은 아 글쎄... 아빠가 밖에서 술 드신 다음 집에 들어오셨는데, 세면대에서 발을 씻다가 다른 쪽 발을 같이 씻으면 빨리 씼겠다, 어서 자야 하니까, 라는 생각에 생각을 행동에 옮겼다가 공중부양을 하셨다나. 결국 사이렌이 울렸다는 바로 그런 얘기처럼. 아 아 웃으면 안되는데 웃으면 안되는데!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됐을까? 샐리에게 야유회는 취소됐다고 통보했고, 우리는 포르토피노의 집에 놀러가기로 했다. 생각해보니 썩 괜찮은 합의였다. 그런 반면 수다스러운 추억이니 편협한 동경심이니 그런 건 싹 다 날라가버렸다. 희비가 엇갈렸다. 그래도 할 수 없다. 샐리는 다음에 미스테리아 사무실에서 보면 되고, 포르토피노가 어떤 환희의 나라에 살고 있을지 막 궁금해졌다. 그래서 나는 다시 기분이 좋아졌다.
6
나는 포르토피노의 집에 도착했다. 포르토피노는 나보다 먼저 도착해서 수영장에 물을 채우고 있었다. 드넓은 정원과 멋진 전망으로 보아하니 포르토피노는 그런 남자인 것 같았다. 19세기 소설에 나오는 것처럼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은 신사. 그런데 일찍 외롭게 됐고, 다재다능함에도 불구하고 그 뛰어난 재기를 아끼는 듯한 삶. 뿐만 아니라 친족이라고는 까무러칠 만한 미모의 여동생뿐. 혈육이 다소곳한 만큼 친구는 적고, 돈은 많고, 할 일은 없고. 왠지 모르게 나는 내 예상이 절묘히 들어맞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의 예감은 이번에는 세하지 않았던 것이다. 기대 다음은 쉽게 말해 8 대 2다. 8은 실망 2는 흡족. 물론 2도 어떻게 보면 시큰둥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고, 따지고 보면 그마저도 역시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일 것이다.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다?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게 그거다. 그러나 포르토피노는 처음부터 날 낙담시키지 않았다. 왜냐하면 몽키스패너라는 허명이 진짜인가 몰라도, 적어도, 본인 소유 자동차의 모델명과 본명이 똑같다는 점 때문이었다. 더더군다나 녀석의 집에 도착해서 둘러본 결과 페라리는 캘리포니아 모델도 있었다. 나는 키스할 수 있는 입술이 하나, 그림자도 하나, 까이엔 즉 고추도 하나인데 이 친구는 최소한 페라리만 두 대인 남자였다. 난 곧바로 다짐했다. 녀석은 원래 덕망이 두터웠으므로, 따라서 우리의 친교는 외교적 우정으로 시작해서 엉덩이에 애교 점이 있는지 없는지까지 공유하는 교분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것을. 실제 포르토피노의 취향을 살펴보니 나와 비슷한 구석이 꽤 많았다. 그가 지금 읽는 책은 오노레 드 발자크의 13인당 이야기. 또 그는 보지도 않으면서 영화를 틀어놨다. 조그만 큐브 같은 기기에서 스크린에 영상을 투사하는 그거 이름이 뭐드라, 아무튼 그 영화의 제목은 거짓말의 발명. 옷장은 텅 비어있고, 불면증은 치료됐으며, 지금은 다몽증을 앓는 중이란 걸 굳이 숨기지는 않음. 그는 아마도 시적인 운명론자일 것이다. 아니면, 불가능한 낭만을 추구하는 이상주의자던가. 내가 미스테리아 편집장 마라에게 쏟았던 호의의 반만이라도 얘한테 정성을 들였더라면! 나도 못말리는 장난꾸러기가 다 됐다. 왜냐하면 엉뚱한 열의 밑도 끝도 없는 욕망을 언뜻 떠올리고도 얼굴이 빨개지지 않으니까. 어쨌거나 저쨌거나 지금 내 이런 가벼운 기분은 어쩌면 비밀스러운 행복감일 수도 있다. 아니면, 안된다. 「뭐해? 자, 수영복! 우리 집에 오면 수영을 해야 해. (윙크)」 윽, 뭐야 이건? 혹시 수영장 물이 빠지면 비밀 통로라도 드러날려나? 아마도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영화 같은 삶에 대해서 토론할 수도 없고, 할 말도 많지 않으니까 차라리 수영하기가 좋은 일일 것이다. 그렇게 허우적거리다 맥주를 마시면서 우리가 한 일은 그랬다. 바로, 샐리 흉보기.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저 앞에서 눈부신 비키니 미녀가 천천히 우리에게 다가왔다. 오 놀라운 자태의 오묘한 아가씨. 그녀는 뮤즈였고, 비너스였으며, 아프로티테이자 클레오 파트라였다. 아아 그녀는 에코였고 나의 수제자감이었다. 어머 어머 저 저 대리석 대리석...! 그녀는 글래머였고 나는 가슴이 절벽이었다. 그리고 포르토피노는 아무렇지도 않았고 나만 눈이 똥그래졌다. 장난 아니었다. 나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난 그냥 침을 흘리기 직전이었던 거다. 날이면 날마다 마감일에 쫓기고, 복권 꼴등에 절망하며, 뭘 해도 재미없었는데, 그런데 내 앞에 떡 하니 사랑의 화신이? 오, 땡큐! 「인사해. 이쪽은 내 동생 이브. 그리고 이쪽은 나와 샐리 그 천생연분을 위한 사랑의 가교 역할을 맡은 예언가. 아, 이름을 말하지 않았구나. 네 이름이 뭐였드라?」 「어? 내 이름?」 「그냥 오늘만 아담해. 넌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돼. 알았지? 내일 일은 내일 가서 생각하고.」 나는 정신이 아찔하고 마음이 아득하며, 영혼이 육신을 밀어낼 듯 말 듯 해서 즉시 바보가 되어버렸다. 왜냐하면 이브는 내 소설 속의 주인공이 되어야만 하니까. 그러므로 이 일은 나중 내 피앙세한테 절대 비밀로 해야 한다. 살다보니 재산이 늘어나는 게 아니라 비밀이 늘어나네? 가난해도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유쾌한 삶을 살면 그만! 인생은 행복이냐 불행이냐, 둘 중 하나 아닐까? 아니다. 왜냐하면 순애보냐 난봉꾼의 허풍이냐, 것도 아니면 나비처럼 훨훨 날으는 코끼리냐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옆에서 뭔 얘기를 하는 줄도 모른 채 웨딩드레스를 상상했다. 또 첫날밤을 떠올렸으며 내 지난 몽정기를 회상했다. 나는 지금 경주마도 아니고 야생마도 아닌 황홀한 목마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녀를 왜 이제야 만난 것일까? 그러니까 내가 사춘기 때 랭보의 시가 아니라 롱펠로우의 인생찬가를 외웠으면 내 인생이 달라졌을까? 그러든 어쩌든 지금 내 작가의 삶을 위한 수업료는 톡톡히 치른 셈이니 후회는 없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회오와 아쉬움은 시작하자면 끝이 없으니 그냥 남들처럼 후회하지 않는다며 폼 잡고 말하는 게 낫지 않을까? 진짜 그렇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건 허세요 허영심이다. 부러운데 부럽지 않다? 그거 다 거짓말이고 뻥이다. 남자의 본심을 여자는 죽었다 깨어나도 모르고, 여자의 속마음 역시 남자는 이해하기가 여간해서는 쉽지 않다. 이해와 공감과 유추를 위해 노력함이 아마도 최선일 테니까. 무엇보다 본인이 아니니까. 연극처럼 변장하든 몇몇 실험만 해 봐도 단지 그것만으로도 느낌은 이상해질 테니까 말이다. 입장 바꿔 생각한다는 게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은 아닌 것이다. 다른 건 몰라도 남녀는 각자 그러려니 하며 앞에서 웃고 뒤에서 인상 쓰면 그만이다. 아님 비웃어? 아니지. 남을 웃겨야지! 또는 앞에서 웃고 뒤에서 각자 알아서 하던가, 또는 그 반대로? 쉿! 우리는 짧은 행복과 행동하는 사랑도 존중하자.
사랑이란 게 정말로 신기한 거다. 남녀가 사귀기 시작할 때는 '나도'고, 점차 사랑의 콩깍지가 벗겨지면서부터는 '나는'이 압도한다. 처음에는 그녀를 꼬시기 위해, 마음을 빼았기 위해, 사랑의 대리석을 훔치기 위해서 여자들 세계의 질서인 동조성을 한껏 발휘해서 맞춰주고, 그래 의전을 행하고, 그 다음 10년 후? (10년이 뭐야!) 집에 들어가서 시무룩시무룩! 그러니까 시작은 진공청소기 나중은 커피포트! 왜냐하면 일평생 으쌰으쌰만 일삼던 그냥 허당이 하루 아침에 로맨티스트 역할극을 하는 건 생각처럼 그리 쉽진 않을 테니까. 한편, 바로크풍 음률이 물결치는 나의 청춘 스케치와 달리 우리가 놀고 있는 이 뻔트의 낙원에서는 최신 유행가에 분위기가 들썩들썩했다. 그 노래는 가사를 들어보니 무슨, 뿜뿜 네 앞에서 난 뿜뿜, 네게 줄께 뿜뿜 뿜뿜... 너만 보면... 무슨 말이 필요해... 보여줄께(뭘 보여줘?)... 한마디로 가사는 큰 의미 없었다. 가사는 그냥 한 역할일 뿐 나머지가 최고였다. 나는 안 그래도 이브 때문에 정신이 혼미하던 찰나에 더 정신이 없어졌다. 나는 엉덩이 들썩거리는 팝송도 좋아하니까, 괜히 혼자만 딴생각하느라 말이 안 통하면 안되니까, 제정신을 차릴 수 밖에 없었다. 이런 내 모습은 마치 그와 비슷했다. 남의 집 잔치에 놀러가서 가짜 초대장을 내밀며 쓰윽 입장한 다음, 향락에 들뜨고 꽃내음에 안달나며, 상큼한 유혹에 매료된 나이값 못하는 동네 아저씨가 된 것만 같았던 것이다. 힐끗 힐끗 훔쳐볼 필요도 없었다. 너무나도 무안하다면서 두 손으로 두 눈을 가린 다음 슥~ 손가락 사이로 엿보지 않아도 괜찮았다. 나는 포졸도 아니고 신부 들러리도, 조명 감독 조수도 아니었다. 겁쟁이의 투정과 사색가의 불만은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져버렸고, 지금은 애첩의 간청만 남았다. 미심쩍은 전율감─엉성한 직감─밑도 끝도 없는 공포감을 연구하며, 불러도 불러도 대답 없는 착상을 온종일 기다리지 않아도 괜찮았다. 왜냐하면 이제 드디여 샐리와 포르토피노, 나와 이브라는 그 기막힌 2 대 2 구도가 완성됐기 때문이다. 그러다 잠깐 마라를 끌여들여 긴장되는 삼각관계를 연출할 수도 있고. 그래. 응? 그래~ 맞아~ 맞다니까~ 그래~ 이거야~! 이거라니까! 이거라고! 내가 바란 건 그런 거였다. 사랑은 가난했고 행색은 불쌍하며 인생을 망쳤다, 의 정반대를 원했다. 이제 슬슬 다몽이 이루어지며 꿈의 신 모르페우스가 깜짝 놀랄 만한 공상이 실현되기 직전이었다. 오오 이브여, 당신은 누구십니까!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난들 알겠나! 「오빠. 노래 잘 불러요?」 「사랑한다고 말해주세요.」 「뭔 소리야, 너 왜 그래? 아, 작품 구상했나...! 이브가 묻자나. 노래 잘 부르냐고!」 「어, 노래? (머뭇머뭇) 어, 그게 그냥 조금.」 그런 다음 나는 아카펠라 동호회에서 활동했네, 최신곡 누가 부르는 거 내가 지었네 어쨌네 라고 했다. 그리고 수영장 파티는 곧바로 음란한 마술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우리는 문란한 탕자가 아니었고, 교양미를 추구하며 지극히 상식적이고, 아름다운 인생을 동경하는 사람이니까. 그날은 금요일이었고, 나의 탐색전은 어디까지나 조용조용했다. 샐리랑 셋이서 놀러가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그냥 다행도 아니고 천만다행! 만약 오늘 포르토피노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난 아마 그랬을 것이다. 혼자 야구장에 놀러가서 고함쳤겠지. 「야 우익수! 누구 엉덩이나 닦아라! 타구 소리는 들리고 내 말은 안 들리냐, 어? 이 바보야! 아 들었어 못 들었어? 아 누구 엉덩이 광나게 닦으라고! 야 야, 그러지 말고 차라리 늬가 내 대신 우리 회사에 출근해라. 그리고 내가 늬 자리 꿰차자! 우리 서로 바꾸자니까. 왕자와 거지 몰라? 자, 어때!」
그러고 보면 스포츠인도 그렇고 참 돈벌기가, 세상 살이가 절대 쉬운 게 아니다. 쉬운 일 하나 없네 하나 없어. 아 글쎄 그래서 더 의미가 있고 재미가 있다 뭐라 뭐라 따따부따, 라는 말이 이어지면? 쉿! 그녀의 마음이 바뀔지도 모르겠지. 꼭 그녀가 영심이에 변덕의 여왕이 아닐지라도. 그처럼 딱히 큰 일은 없었지만 행운의 여신께서 점지해주셔서 태몽을 기다리는 다몽증 환자에게 2 대 2 로맨스를 선물한 것이다.
7
나는 틈틈히 미스테리아 사무실에 들러 정탐을 했다. 왜냐하면 샐리에 관한 정보를 캐내어 포르토피노에게 전달해야 했기 때문이다.
원래 나는 뭐든 따분해야 정상이었다. 이를 테면 백조의 호수는 행복한 대신 끝없이 심심했다, 라고 해야 비정상이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돌변했다. 2 대 2 그리고 짜릿한 삼각관계. 허허허허허! 흐흐흐흐흐! 나는 이브의 환한 미소를 보고 싶은 마음이 너무도 간절했다. 그렇게 나는 바보 같은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다가 아주 중요한 정보를 생각해냈다. 「오빠 노래 잘 불러요?」 그래서 나는 목이 쉴 때까지 노래만 불렀다.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다. 그러다 알게 됐다. 나는 노래에 대해서 천부적인 소질은 타고나지 못했다는 것을. 목표가 멀고 시간이 충분하다면 독학으로도 가능하다. 그건 자신있다. 중간은 가니까. 끈기라는 게 그런 거니까. 그런데 지금은 뭐니 뭐니 해도 속성 숙달이 긴요한 순간이었다. 그러니까 난 학원을 알아볼 수 밖에 없었다. 아 잠깐, 개인 교습? 그건 비쌀 듯 하고 초보자한테 어울리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그때 전화가 왔다. 「이브가 클럽 가고 싶다는데. 샐리는 혹시 클럽을 좋아할까? 아니면 고풍스런 3박자 무도회를 선호할려나!」 「포르토피노. 오늘 이브 생일이니?」 「와! 대박! 어떻게 알았어? 와, 어떻게 알았지! 신기한데. 놀라워. 너 우리 말하는 거 엿들었니? 아닌데! 그럼 전화기가 켜져 있었나? 것도 아닌데!」 애인이 뭘 생각하는지, 바람 피는지 한눈파는지, 사랑이 식었는지 눈치채지 못하던 의심하던 어쩌던지, 사랑의 제1법칙은 그거다. 항상 레이더를 가동할 것! 상시 사이렌을 대기하며 오늘은 판도라의 상자인지 다아이몬드인지, 또는 생선인지 꽃인지, 적어도 그녀가 저기압인지 아닌지를 세심하게 살필 것. 그런데 뭐야 이거! 애인이 노래 잘 부르는 남자를 좋아하는 것 같았는데, 그런데 갑자기 클럽? 이거 이거 복고풍으로 춤을 출 수도 없고 큰일이었다. 막춤에 저질 댄스? 망하는 지름길이다. 그때 그때 다른데 지금은 아닌 경우니까. 연애의 논리는 남자를 괴롭게 했다. 사랑은 역시 피곤한 일이다. 그래서 나는 옛날에 광고를 흉내내며 카피라이트도 하나 지었다. 사랑도 일이다 라고. 그건 그렇고 그러니까 어떻게 갑자기 본격 무도인으로 변신하냐고! 차라리 창문 밑에서 세레나데를 불러달라 하시지...! 그렇다고 이브에게 난 춤 못 춘다고 솔직히 고백할 수도 없고, 나 춤 잘 춘다고 거짓말할 수도 없고. 그야말로 진퇴양난이로다. 그러다 나는 좋은 생각이 났다. 카드 게임에서 선두가 베팅을 받기만 하면 게임은 끝난다. 결과를 확인하는 일만 남은 거다. 그런 승부는 따도 적게 따고 잃어도 적게 잃는다. 재미도 아담하기 마련이다. 누가 이기든 망하든 망치던지 탕진하던지. 그러나 선두가 베팅을 받고 나서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베팅을 추가하면 게임은 계속된다. 밋밋한 게임의 재미는 느닷없이 흥미진진해지는 거다. (딱)! 이거다. 이거라고. 난 다시 포르토피노에게 전화했다. 「샐리가 볼링치자는데!」 그렇게 포르토피노 남매와는 의사 타진이 끝났다. 그런데 이제야 알았다. 정작 샐리의 목소리는 요만큼도 듣지 못했다는 것을. 아차! 어쩌지? 불이 발등에 떨어졌다. 나는 마음이 다급해졌다. 코너에 제대로 몰린 거지. 나는 서둘러 샐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샐리. 너 볼링 좋아하니?」 「아니. 볼링 접었어.」 「그래?」 「응.」 왜 접었어?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지금껏 성실하고 열심히 살았는데 난 왜 뚜껑 없는 차를 못타냐고 그녀에게 따질 순 없는 노릇이니까. 「그럼 있잖아. 너 혹시 라마 본 적 있니?」 「뭔마?」 아 나 이거 정말 거 원 참. 얘 또 나 입 아프게 만드네. 「아 라마! 낙타 비슷한 거. 아 글쎄 알파카 사촌. 얼굴은 기린, 몸은 양, 다리는 소. 그래도 몰라?」 하긴 처음부터 몰랐다면 나라도 모를 설명이었다. 알아도 더 헷갈렸을 테고. 「알아. 우리... 라마, 보러갈까?」 이렇다니까. 이거야. 이거라고. 나는 어깨뽕이 장난 아니게 튀어나오게 되었다. 어렵싸리 치유되었던 연예인병 다시 도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니. 그건 말끔히 치유됐고 새롭게 아티스트병 제2기가 진행중이었다. 내가 못살아! 「그래. 그거야. 그거라고. 그렇게 하면 돼. 잘 하고 있어. 이제야 좀 우리가 궁짝이 맞네. 허허허허허. 허허허허허.」
8
어인 일인지 우리 넷은 그렇게 라마를 보러 인근 농장에 도착하게 됐다. 나의 신출귀몰한 임기응변에 따른 신통한 결과였다. 그런데 라마는 표정이 많이 뚱했다. 뭐랄까 철학적이라고나 할까? 설마 저 녀석에게 신기가 있다거나 무슨 통찰력이 있지는 않을 테지만 말이다. 그건 아마 녀석이 많이 심심하기 때문일까? 그거야 뭐 라마의 인생사니까 우리는 어떻게 할 수 없는 거고. 각자 가는 길이 다른 거지. 그나저나, 샐리 넌 대체 볼링을 왜 접었어? 라고 다그치고 싶은 걸 난 겨우겨우 간신히 참았다. 왜냐하면 이렇게 2 대 2는 굉장히 애매한 조합이었기 때문이다. 왜 딱부러지게 설명하기는 힘든데 뭔가 이상하게 그런 어정쩡한 만남이 있긴 있다. 우리가 지금 그랬다. 완전 딱 그랬다.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었고. 이건 웃을 일이 아니다. 이건 정말 찐한 사랑도 아니고, 상큼한 풋사랑도, 애절한 짝사랑도, 단정한 우정마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들은, 향기로운 장미는 어디 가고 날카로운 가시만 남았다. 천사의 상상력은 다 뻥이고, 무지개의 희망은 뜬구름잡는 허풍에 불과했다. 거짓말은 어른의 인사요 우린 모두 그렇고 그런 사랑이었다. 역시 연애는 개인전이다. 바람둥이들은 아마도 그럴 것이다. 어설픈 추억 찾고 낭만을 탐구하다가는 돈 낭비 시간 낭비라고. 이도 저도 아니라고 말이다. 어쨌든 점잖치 못한 허영심은 뭔지 모를 선망 및 갈망과 뭐라 말할 수 없는 최고의 단짝이다. 따라서 우리의 목적지는 그곳이었다. 이제 남은 건 클럽 밖에 없었던 것이다. 궁짝궁짝 궁짝궁짝, 음악이 도대체 멈추질 않는 2박자 음악만 트는 클럽.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다. 자상하고 다정함과 동시에 고고한 한편 부추기고, 말 돌리기를 좋아하는 부류. 그러나 알고보면 은근 허당. 그 뿐만이 아니라 매번 당하는 역할. 하지만 재밌는 친구. 그러나 오르락내리락 컨디션 난조가 심한 친구. 그래서 절반쯤 호구. 하지만 알고보면 가난한 남자. 뭐? 이런, 젠장! 꿈 같은 사랑이 우리들의 희망이건 어쩌건 우리들은 웨이터 미스터 에르메스와 만나야 하는 운명이었던 것이다. 맞다. 그래도 뭐랄까 페라리를 타고서 에르메스를 만나러 간다? 형식적으로는 소원 푼 거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어째 이런 식이라면 꿈은 이루어지지 않은 편이 나을 수도 있고.
9 우리가 클럽에서 과연 천국에 당도한 듯 재밌게 놀 수 있었을까? 아니다. 결과만 말하자면 이렇다. 우리는 클럽에서 잘 놀다가 클럽의 성격이 황당하게 변하는 걸 지켜봐야 했다. 곧 고품격 클럽의 분위기는 일순간 물이 흐려졌던 것이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더라, 그건 아니다. 이미 고급 정보를 입수한 채 들렀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떻게? 내 말이! 이건 막 촌스런 나이트클럽인지 완전 구식 카바레인지 통 분간을 할 수 없을 만큼 분위기가 이상해져서 우리는 밖으로 나왔고, 우리의 조합 역시 영 애매했기 때문에 우리는 헤어졌다. 다시는 이런 조합으로 만나지 말자는 암묵적인 약조와 함께. 정말 지긋지긋하다 어쩐다 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또 한번 느꼈다. 클럽은 들어갈 때와 나올 때 기분이 같기 힘들다는 것! 아조 영 딴판이라는 걸. 새콤달콤한 행복이 보일락 말락 다정한 사랑이 내게 올 듯 말 듯 했지만, 찬란한 꿈과 유복한 희망을 거의 정말 거의 진짜 품을 뻔 하다 말았다. 그러나 아직 완전히 끝난 건 아니었다. 단지 별자리는 운명에게 친절했고 운명은 열망에게 다정했으나, 열망은 결국 행운과 친하지 않았다 뿐! 그러니 이제 앞으로 어설픈 의혹을 불식시키기 위해 당돌한 초연함을 발휘하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이브는 말이다, 결코 쉬운 여자가 아닌 듯 했다. 또 그렇다고 내가 그녀를 어? 뭐 그냥 쉽고 어떻게 생각하며 뭐 그 어찌 어 어 어떻게 한번 해보겠다는 마음을 품은 것도 아니다. 그-그녀는 정-정숙한 숙녀 나-나는, 나는 비-비밀스런 풍-풍운아! 그거면 됐다. 따라서 일단 상황을 지켜볼 수 밖에. 아무리 그래도 오오, 이브의 그 난생처음 경험하는 신비한 귀여움! 밝은 그녀의 사랑스럽게 반짝이는 눈웃음! 난 그녀만 생각하면 또 다시 무아의 경지에 빠져드는 사랑을 느꼈다. 그리고 천사와 함께 하는 행복한 그림을 상상했다. 그러다 욕망을 탐문한 결과 할 일을 고안해냈다. 그녀가 또 뭘 좋아한다고 했더라, 어떤 남자가 마음에 든다고 했지, 라면서 자꾸자꾸 그녀만 생각하고 있었다. 이건 정신 나간 생각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난 원래 바보였다. 전반적인 기질 문제일 수도 있다. 그러나 질투심에서 유발된 애정은 이미 인생에 대한 환상을 한껏 부풀려놓았다. 완전히 마음을 UFO에 태워서 안드로메다인지 어디인지까지 보내버린 거지. 이건 정말 최근 내게 빚어진 이상한 호사가 확실했다. 왜냐하면 말할 것도 없이 불쾌한 근심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으니까. 난 분명 그녀에게 미흡한 남자일 수도 있다. 또 내가 내 사랑, 내 영원한 애정, 내 하나뿐인 고결함, 나만의 황금 꽃, 이 세상을 다 줘도 바꿀 수 없는 애정, 내게 있어 단 하나뿐인 찬미의 대상, 지상의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격정적이고 벅찬 희망인 나의 피앙세를 모른 체 하겠다는 게 아니다. 나는 프로였기 때문에 작품에 관한 기념비를 세우고 싶었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 따라서 이건 요컨대 비밀의 탄생이었다. 그러니까 이 억누를 수 없는 호기심을 대관절 어쩌면 좋지? 이건 정말 아름다운 시절의 유쾌한 기분 때문에 빚어진 유복함인지, 끈질긴 불운에서 해방된 심정인지 도무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뭐니 뭐니 해도 이브는 나에게 그런 존재였다. 모호한 경외감! 시간 가는 줄 모르고서 나는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 기쁨의 감탄만을 간직한 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유일한 사랑을 하찮게 여기는 거 아니냐고? 아니다. 아마 나는 그녀가 내 블로그에 등장하는 특별한 선물쯤으로 생각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내가 과연 이브의 유니콘이 될려다 그만두고 싶었던 갈팡질팡은, 그러니까 대수로운 일일까, 대수로운 일이 아닐까? 난 내게 물어봤다, 왜냐고! 그래요? 왜지요? 그러니까 대관절 어째서 그랬냐구요. 왜냐하면 난 아마 싫증을 빨리 느끼기 때문인 듯 했다. 지난 삶을 돌아보니 정말 그랬다. 난 포기가 빨랐고, 싫증이 심했으며, 지겨움과 지루함을 언제나 양쪽에 끼고 살았다. 그래서였을까? 때문에 나는 연애다운 연애를 단 한 번도 못해봤다. 이제 보니 아마 그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플라토닉이냐 찐한 사랑이냐, 어정쩡함은 없고 선명하게 둘 중 하나였다. 정식이 없었다. 기준도 없었다. 남자라는 표준은 맞지만 한마디로 허당계의 대표 주자였던 것이다. 오직 뻔트만이 살길이라면서 살아온 듯 했다. 맞다. 그러니까 여자와 추억을 쌓을 일 자체가 없었던 거다. 그러고 보면 추억이란 건 여자가 졸라서 만들어지는 건가? 아니면 남자가 순진하던가! 기억나? 솔직하게 말해 줘! 뭐? 아아 오그라든다. 아니 그렇소? 완전 유치하다. 으으으, 초딩도 아니고 어린애 장난 같다. 하지만 안 그럴 수도 있다. 나 기분 좋다고 남들도 모두 기쁘고 즐겁고 신나는 건 아니니까. 자칫 자의식이 과잉되면 잠깐 그런 순간이 지나갈 뿐. 그런 기분이 혹은 잠시가 아닌지도 모르고. 아 저 사람 참 말 많네, 라는 일은 결코 드물지 않으니까 말이다. 어쨌든 나는 이브가 이번에는 정말 떨리는 수필을 읽으면 기분이 좋다고 하길래 난 또 어쩔 수 없이 임도 보고 뽕도 따고, 꿩 먹고 알 먹고, 마음을 뺐었더니 사랑도 행운도 황금까지 다 딸려 오더라는 일처럼 하는 수 없이 칼럼리스트라는 직분으로 돌아와서 글을 쓰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곧바로 작업에 착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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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인생론 내용: 시샘이라는 감정에 강박증을 느끼는 허세로 보나 선망에 상사병 같은 애착을 품는 허영심으로 보나 질투란 당혹스런 본능이고, 사랑은 유치한 열정이며, 남녀 공히 내 기분이 좋을 때 난 바보 같은 친구고 그렇지 않을 때 난 진공청소기를 부러워하는 허당이다. 그래서 다수가 싫어하는 커피포트로 낙인 찍히지 않을려면, 내내 세상사에 끌려다니고 오락산업의 리모콘에 조종되지 않을려면 최소한 추리소설을 애독하는 취미를 갖는달지, 사랑을 예견하거나, 적어도 상대의 마음을 떠볼 줄 알아야 한다. 인생은 모험에 대한 애호와 낭만을 향한 믿음이 전부가 아니니까. 따라서 사람의 감정을 읽은 다음 그이를 내 마음대로 마술사의 조수처럼 부리거나, 짜릿한 인기를 얻고 대망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상대의 마음을 붕 띄워야 한다. 악담이 취미인 고수를 조롱한 다음 즉각 그분을 호인으로 띄워주든지 적어도 날 하수로 자처할 줄 아는 게 어른 세상에서는 이로운 일이다. 고급은 아닐지언정 그건 진정 기술인 것이다. 주파수 혼선 되듯 각자 내 얘기만 할 게 아니라면. 여자들이 괜히 조명을 원하며 열등감을 습관처럼 실토하고 항상, 그렇구나, 정말이니, 좋겠네, 부럽다 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게 아니다. 그래서 왜 그런지 통 몰랐던 대인관계의 상식적인 교양 그 기본은 이렇다. 첫째 동조성, 둘째 거울 비추기. 물론 첫째의 부작용은 그것이다. 어느 날 봤더니 주변엔 순 허당뿐이거나─파도타기란 게 으레 그런 거니까─어떤 숙녀들처럼 친한 친구를 자주 바꾸는 일. 하지만 타고난 천성이기 때문에 바꾸기 힘겨운 첫째와 달리 둘째는 충분히 후천적으로 습득 가능한 기술이다. 그러니까 허당계의 명언을 기억할 겸 세상은 반기는 법이니까 돌아온 행운아의 영웅담을 과장할까, 과장하지 말까? 일단 나서기 좋아하는 수다쟁이의 고자질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자. 대신 내(그대) 어렸을 적 기억만 떠올려봐도 충분하다. 당신의 인생사에 그 모든 세상의 비밀이 온전히 다 담겨 있다. 그런데 참 이상한 건 뭐냐면 그거다. 내 삶에 모든 세상의 비밀이 다 있는데, 남의 삶과 사유가 표현된 작품을 보면서 우린 꼭 비슷하면서 다른 생각을 한다는 유대감-동질감-개성-연민을 느끼고 싶어한다는 점. 그러나 결과는 대체로 실망이다. 그러니까 베스트셀러는 시간 지나서 읽어 보면 차마 낯 뜨거워서 들여다 보기 어렵게 된다. 뭐 꼭 그 정도는 아니지만 말하자면 그렇다는 거다. 최신작도 한 달만 지나면 복고풍이다. 어떤 숙녀는 그럴 것이다. 안목과 취향이 어떻건 자기는 책을 아예 읽지 않는 친구라면 몰라도 베스트셀러만 주로 읽는 친구와는 절대로 사귀고 싶지 않다고. 가령 상류층이 베스트셀러를 읽는다? 조용히 웃지요! 책은, 옷으로 비유하면 된다. 옷장을 열면 옷은 100벌인데 딱히 마음에 드는 옷은 없습니까? (딱) 그거다! 심지어 에르메스와 페라리는 거의 무료다. 아마도 유명 패션소에 가 본 사람은 만 명 중 1명도 안될 테고, 거기서 VIP는 십만 명 중에 1명은 될려나 모르겠다. 그러나 격조란 건 귀찮게 어디로 쫓아가고 따라가며 기다릴 필요가 하나도 없다. 미술사에서 다시 못 올 최고의 황금기는 언제일까? 그럼 고전음악의 제1전성기는? 문학도 마찬가지다. 뿐만 아니라 그 시기는 모두 거의 비슷하게 발생했다.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지. 찰스 디킨스와 주세페 베르디는 친구였고,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사촌은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였으며,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딸과 에드바르 뭉크의 여동생은 동문이었다. 좀 더? 구스타프 클림트는 마농레스코와 토마스 하디의 최신작 작품을 애독했다더라, 더구나 피카소는 마법사를 읽고서 감명 받아 무도회에 가서 존 파울즈로부터 사인을 받고 사진도 같이 찍었다더라! 캬~ 이거다. 이거야. 자료 조사가 귀찮아 대충 설명해서 그렇지 과장은 맞지만 결코 망상에 억측이나 상상이 아니다. 따지고 보면 거의 사실과 흡사하다. 뿐인가, 지금 당장 유럽 어느 카페에 가보면 이런 명판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곳은 괴테와 모차르트와 고흐가 한 잔의 차를 즐기던 곳입니다, 하지만 셰익스피어는 그 향기를 영 탐탁치 않아했었죠 라고! 과연 이게, 정녕, 믿겨지는가? 그냥 이건 환상이지 환상! 어? 그야말로 장난이 아니었던 거다. 미스테리란 바로 이런 걸 미스테리라고 한다. 합리주의가 득세하는 세상이란 건 잘 알겠다만, 자본의 분배를 논하는 게 왜 나쁘겠냐마는 상류층은 남들과 다르게 사는데 처음부터 기본은 모른 체 연예인만─명목상의 연예인이란 말이 아니라─지망하는 건 문제가 있다. 기본만 따르고 정형을 추구하며 모범생이 되라는 말이 아니다. 그에 앞서 상식과 교양은 알고서 개성을 논해야 하지 않을까? 친절하지 않아도 된다. 굳이 성격 좋다는 말 들을 필요 없다. 어느 선에 크게 저촉되지 않는 한 내 인생 내 마음대로 살아도 된다. 기본기가 탄탄하지 않아도 되고 학벌이 훌륭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괜찮다. 다만, 다만 기본이 무엇이란 건 알고서 다양성을 추구해야 한다는 말. 그런데도 베스트셀러만? 영화로 나오면 볼 의향은 있다. 만약 평판이 괜찮다면. 그처럼 일반인이 매번 속고 헤매야 오락산업 관계자도 먹고 살며 나 같은 지성인도 그 가치가 상승한다. (뭐? 보자 보자 하니까!) 실제 괜찮은 파티에 가보면 이미 멋진 남녀는 그곳에 발길을 끊은지 오래이기 일쑤다. 유행을 선도하는 건 전문가 중의 전문가고, 유행을 뛰어넘는 분은 십대이자 고전이며, 유행에 내내 끌려다니는 건 누구? 그렇다, 소비자다. 세상은 그렇게 자본을 돌리며 산업은 매번 새로운 판을 짜느라 바쁜 것이다. 증권가를 생각해도 된다. 거기서 왕도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대기만성, 누가 싫겠나. 그러나 그럴 겨를이 없다. 한살이라도 젊을 때 놀아야 하는데? 만약 뒤늦게 대성했는데 그때 아프면, 또는 그때 드디여 눈부시게 빛나는 바로 그 뚜껑 없는 차를 딱 탔는데 모자를 벗으니 글쎄 머리카락이 송송도 아니고 다 날라갔네? 그런 거거든! 어? 인생이란 그런 거라고. 상남자의 요점은 그렇다. 아니, 젊을 때 신나게 놀고 방황하지 그럼 언제 노냐는 거다. 더구나 썩 틀린 말도 아니다. 내 친구만 봐도 절대 워렌 버핏을 따라하지 않는다. 왜일까, 청개구리라서? 아니다. 왜냐하면 당장 오늘 술값과 이번 달 쾌조의 유흥비를 장만하기 위하여 단타에 집중해야 하니까. 일명 치고 빠지기 말이다. 좋은 데 가고 싶거든. 단골 술집을 전전하고 의리 없는 마담보다 청순한 마담을 선호하거든. 그도 아니면 취미에 관하여 신형 장비를 사고 싶어서든가. 그렇다고 웨이터님을 위해 사려 깊게 짱돈을 준비하는 걸 어디 동네방네 소문낼 일 있나. 그렇게 올린 수익으로 친구가 사준 술을 먹어본 적이 있다. 느낌은? 그게 더 맛있더라! 더더욱 기분 좋더라! 훨씬 맛있더라! 한두 번이 아닌가? 저런! 왜 허영심 지수가 높은 여자의 비음이 각별히 특이할까 라는 남자들 얘기를 알 듯 모를 듯 했다. 벌레먹은 사과가 더 맛있다 라는 둥 어쩌고저쩌고, 영웅담 뺐기도 재미없다. 잠깐, 내 경험이 불미스러우면 그건 다 친구쪽으로 돌리는 방법이 있군. 결과적으로 내 친구는 돈 쓰고 욕 얻어먹고 독박 쓰는 건가? 아무튼 어차피 공짜술은 공짜술이고 하던 얘기로 돌아와서, 그러니까 스무 살은 나중 깨닫게 될 것이다. 인생은 절반쯤 사행성이자 운명에다 팔자며, 남자는 한 방이라고. 알고 보면 우리는 그 어설픈 인생 경구들대로, 딱 그대로 이미 살고 있는 것이다. 거 왜 많지 않나. 우리는 오빠라는 말만 들으면 쩜쩜쩜, 가는 여자 어쩌고 오는 여자 쩜쩜쩜, 남자는 뭐 여자는 뭐 등등. 그러므로 어른들은 내 인생을 꿈과 적당히 화해시킨 채 2세의 교육에 정성을 쏟을 수 밖에 없다. 내 인생의 지난 꿈과 희망은 기억도 안나고 난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는데, 그런데 넌 달라야 한다 젊음은 그런 게 아니란다? 뭔가 앞뒤가 맞지 않다. 정말로 어른이 더 애들처럼 사는 것만 같다. 결론은 그렇다. 팔자 좋은 베짱이가 아니라면 일할 때 일하고 놀 때 놀며, 적당히 놀고 적당히 쓰고 적당히 베풀 것. 단, 내 행동에 대한 1차적 책임은 나의 몫. 환경도 좋지만 그것이 전망과 견적보다 선행하기는 어렵다는 점. 세상은 동화보다 요지경에 가까울 테니까. 숙녀에게 나이를 묻지 않는 거야 좋다마는 서류의 예외 조항과 진실의 판단 근거를 잘 살피는 일에 맹하면 곤란하다는 것. 지구의 아름다운 문명이라는 풍요를 위해 그 어떤 숭고함이 있었고, 지금 있고, 언젠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점. 그 같은 성스러운 가치 장엄한 의미는 나중 분명코 갸륵히 보상 받아야 옳은 일일 것이다. 나아가 세상사 섭리에 따른 인간의 운명은 내세에 인간이 아는 의의와 인간이 모르는 개념으로 배상 받음은 타당한 이치. 따라서 인간사는 저곳의 실정과 어떤 존함과 섭정이 어떻건 제우스의 위엄으로 보장하고, 포세이돈의 별자리로 증명하며, 하데스의 이름으로 심판하여 책임져야 마땅할 것이다. 한편, 유별난 벌칙이라면 혹시 패자부활전? 의무방어전도 아직인데, 거 무슨! 앗 잠깐... 뭐-뭐시여! 벌써 끝나면 안되는데? 이걸 어쩐다...! 그럼 이건 소-결론이라고 치고 칸을 띄어서 다시 상류층 주제를 이어가 보자.
개천에서 용난다는 건 다 옛날 말이라면서 재능마, 취미마, 대중마, 타인마, 부모마등 난 아무 것도 올라타지 못했다? 내 머리 꼭대기에 고양이님이 앉아 있다? 동화 같은 백기사, 장난칠 때 흑기사는 다 다른 사람 얘기다? 베스트셀러를 보시라! 그건 일단 둘 중 하나를 증명하는 빼도 박도 못하는 증거다. 첫째, 상류층이 아니기 때문에 난 철저히 대중적이다. 둘째, 내가 무엇을 보고 듣고 읽고, 어떻게 살기 때문에 난 상류층이 아니다(또는 그 급이 못된다?). 문제는 뭐냐면 첫째든 둘째든 뭐가 됐든 모순이라는 점! 친구가 날 보고 촌닭이네 촌년이네 놀리면 내 기분이 좋을까? 아니다. 그럴 리는 없다. 그 반대다. 좋다면 거짓말이다. 민중은 개나 소와 말, 돼지와 같을 수도 있다 라는 얘기를 들으면 굳이 나서서 논박할 생각까지는 없더라도 썩 불편하시나요? 내 친구 중에 조지 오웰을 안 읽은 친구는 허다허다. 관심도 없다. 이론적으로는 작은 행복에 만족하던가 야망을 이루던가, 둘 중 하나여야 한다. 적어도 행운과 교분을 쌓을 만큼 노력은 해본 다음에 의견과 불평과 바램이 나와야 정상이다. 그게 순서다. 그런데 결과는, 냉엄한 현실은? 애시당초 소망은 안 키웠고, 일기는 싫든 좋든 거론하기 애매하며, 허세와 허영심은 내 책임 범위 바깥에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제는 내가 열망을, 열망이 나를 알기마저 어쩌면 띄엄 띄엄일 수도 있다. 웃음 짓는 친분을 쌓지도 않았는데 '다정한 행복아' 라고 불러도 왜 안 오냐고? 녀석은, 꼬리를 흔들 때는 언제고 왜 지금은 본 체 만 체일까! 속칭 개 무시요, 속담으로 개 닭 보듯 소 닭 보듯, 일반인의 화법으론 가는 길이 다를 뿐! 그럴 만 하니까. 또는 아닐 수도, 잘못 알고 있을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무엇보다 이쯤 되면 헛기침이 들려야 정상이니까! 뿐만 아니라 또 사랑은? 인생은 장기전이며, 성공은 공짜가 아니고, 사랑은 사랑은 모르는 거다. 필연적인 운명보다 어쩜 우연찮은 행운이 더 극적일 수도 있을 테니까. 남녀의 애정은 몰라도 인생의 행복은 아주 드물게는 말이다, 그 바닥에서는 추문도 슬쩍 눈감아준다. 게다가 극빈층만 아니라면 현대인은 중세의 왕이 상상도 못할 호사와 사치를 누리며 산다. 심지어 아라비안 나이트는 허구가 아니라 현실이다. 노력해도 안된다, 해도 해도 내 분야를 못찾겠다, 난 작심삼일이 오히려 좋다? 괜찮다 괜찮아! 올인해도 어렵다, 황당하게도 소 뒷걸음질 치다가 쥐 잡은 사람한테 우승컵은 돌아가더라? 좋다 좋아. 그니까 가능한 거다 고로 성공한 사람들 얘기 따라하지 말란 말도 일리 있고, 즐기라는 말 그거 다 뻥이라는 말도 맞으며, 과정을 즐겨야 한다는 말도 옳다. 어떻게 보면 사는 낙이 없다거나 뭘 해도 재미없고 항상 심심해 해야 지극히 정상일 수도 있으니까. 그렇다고 막 살라는 말이 아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삶의 진실, 인생의 원리, 세상의 비밀을 대체 몰라서 이럴까! 행복의 지조와 절개를 쾌락과 혼동해서는 대망이 진짜로 손에 잡힐 듯한 예감과 결코 친할래야 친할 수가 없다. 바로 그래서 우리는 뻔트마를 사랑한다! 그러니까 하고 싶은 말이 결국 내 사랑 개구멍이냐고요? 이건 뭐 바이브레이션도 아니고 샤우트 창법도 아니고, 막춤이야 뭐야! 뭐가 어쩌고 어째? 이 냥반이 이거 이거 듣자 듣자 하니까! 하여간 찌질한 허풍꾼의 엄살 하나 만큼은 알아줘야 한다니까. 하여간 한심하기 짝이 없는데 어떻게 들으면 또 재밌단 말이야. 자화자찬에 혼자서 북치고 장구 치고, 아주 잘한다 잘해! 그치만 원맨쇼도 다 이유가 있다. 농담이고 진짜 주제 인생론으로 돌아와서,
아무튼 험담마저도 상류층은 급이 다르고, 허당과 고수도 격이 다르다. 고급 사교계의 문은 만인에게 활짝 열려있다? 그럴 수는 없는 일! 쓰면 뱉고 달면 삼키는 건 만물의 이치, 촌년에게 촌닭이 최고의 배필이라고 하면 (열광적으로) 좋아할 당사자가 어디 있겠나. 수영복 트렁크에 슬리퍼 신고서 백화점이나 오페라 극장에 간다? 오랫만에 옛 친구를 만나야 하니까 꿇리기 싫어 한껏 신경 쓰고 갈 때처럼 치장한 다음 시장에 가는 일과 같다. 친구들한테 내 사랑을 소개하는 일만 해도 그분께서 선입견의 범주를 훌쩍 넘어선다면 분위기 세해지거나 부자연스럽지 않으면 이상한 거다. 우정의 기반은 경쟁 아니면 존중 즉 끼리끼리니까. 그런데 예를 들었던 가공의 숙녀 그분만 그럴까? 아니다. 선천적인 선별감은 타고나지 않은 채 후천적인 BMW와 다양한 인생 경험, 그리고 왕성한 지식욕, 저절로 알게 되는 세상의 원리, 그게 대부분이니까 글보다는 말이─또는 말 같은 글이─중요한 세상이 된 거다. 그런데 그럴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동물농장의 분포도를 보면 거의 동물 밖에 없기 때문이다. 양떼 목장에 양을 빼놓고는 양치기견과 심심해서 거짓말했던 양치기 밖에 없다. 새와 개는 언어부터 다르다. 어디 그것만? 남자와 여자조차 대화법도 생각도 다르다. 한번 생각해 보시라. 도시에 살면서 시장에 간다? 모순이다. (시골장에 가서 낮술 한잔 하고 싶다) 시골에 살면서 사회지도층이다? 부조화다. (사회지도층이란 말이 불편하실 텐데 그 표현은 근래 뜬금없이 튀어나온 게 아니라 등장하신지 몇 백년 됐음. 몇 천 년일 수도 있음) 또 나이트클럽에서 나비넥타이를 웨이터가 맨다? 불합리다. 어떻게 보면, 이해 못할 일이다. 등 돌리면 뭔 험담을 할지 모르는 친구가 어찌 보면 절반인데, 기쁜 일이든 슬픈 일이든 오랫만에 친구에게 연락을 한다, 그랬더니 친구의 속마음은? 또 없을 때 흉보면 기분 나빠하니까, 그건 싫다고 하기 때문에 만나서 얼굴 보면서 불만을 토로하면 그분은 울상이 된다. 이러지도 저리지도 말란 거다. 딸랑딸랑 새콤달콤 뿌잉뿌잉 반짝반짝, 그렇게 그 언제까지라도 날 넘보지 말란 말인가? 글쎄요, 많이 컸다! 세상사가 그런 것이다. 부조리는 너무도 많다. 마초도 몇몇으로 나뉜다. 남자는 말발만 좋으면 그만이다, 어쨌든 책은 읽을 필요가 없다, 다 아니다 나는 인문교양서를 써서 유명해질 테다 그래서 유명세도 얻고 돈도 벌테다 라고. 가령,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치즈에 줄을 매달아 슬슬 끌어당긴 사람이 옮겼지 누가 옮겼겠나. 그래도 꼭 보면 그 어느 유치한 어? 그 촌스러운 카우보이식 액션으로 꼬시면 은근슬쩍 넘어오는 숙녀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게다가 그건 나쁜 것도 아니고 운명이랄지 멜로드라마풍 사랑일 수도 있다. 어쨌든 역시나 옆길로 빠졌다만 돌아와서, 저 첫째와 둘째의 헛점을 비짚고 들어가자면 이렇다. 즉 허풍엔 더 큰 허풍으로! 값싼 농담에는 고급스런 농담으로! 뜻밖의 진심에는 의뭉스런 습관과 의심이란 전제와의 비교로! 그리고 신비한 허언증에는 더, 더더, 더더욱 환상적인 허언증으로! 그런데 이제 보니 그건 다 초딩들이 일상적으로 노는 방식에 다름 아니네? 맞구나, 세상에나! 그러니까 어른의 스승은 어린이라고 하는 것일까? 꼭 그런 건 아니다. 왜냐하면 아동님께서는 하고 싶고, 갖고 싶고, 되고 싶으며, 궁금한 일들이 많은 반면 어른들은 모르는 게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아마도 어린애가 거짓말을 시작하거나 어떤 영문과 무슨 모의 때문에 돈의 필요함을 절실히 깨닫는 그 시점의 애틋한 심정을 잊으면 안될 것이다. 난 어렸을 때 그랬다. 용돈을 정기적으로 받는 유형이 아니라 비정기적으로 모으는 쪽이었기 때문에 로보트 같은 장난감을 사고 싶어서 그랬다. 내가 돈을 모은다는 사실을 왠지 들키면 안될 것만 같아서 동전이 생기면 그걸 두세 개씩 화장지나 신문지에 쌌다. 소리! 일단 소리를 들키면 내 모든 걸 들킨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는지, 그땐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계속 그런 건 아니고. 어쨌든 우리는 인생에서 풋사랑이든 세례식이든 졸업식이든 금혼식이든 그도 아니면 파혼의 아픔이든 순수한 첫인상, 타산적인 열망, 지고의 환희든 뭐든 어떤 미지의 유익함과 삶의 의미를 간직해야 하니까 구강기, 아동기, 유아기, 소년기, 청소년기의 내 파릇함을 잊어버리면 안된다. 타인의 파릇함이랄지 어떤 무엇도 말이다. 적어도 내게 유리한 분위기를 좋아하거나 이기심은 내 인생의 독보적인 첫번 째 지침이니까. 그러니까 꼭 어린이가 아닐지라도 하루 1번 착한 일 하기, 또는 동심을 생각한다거나 밤 하늘의 빛나는 별을 보면서 우리는 살아가야 하는 것 아닐까?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흑심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보다는 말이다. 뭐 밤하늘의 빛나는 별? 별이 빛나는 밤에 저 하늘의 별을 보다라...? 하늘을 봐야 별을 따지, 라는 TV 드라마 대사가 거론되면 거친 상남자 친구들은 사석에서 어쩜 이렇게 대화하지 않을까? 「이미 땄는데 뭘 또 따? 잡은 물고기한테는 밥을 주지 않는 법!」 「나라면 이렇게 말하겠다. 꽃집이든 과수원이든 그대를 위해 천문관측소라도 차려드리겠소!」 「너도 뻔트면 대만족이냐? 하긴 아직 NC에 들어가기 전이니까. 들어가서 놀아 봐라. NC에서 나올 때 뭐라 하나 보게.」 「그대를 위해? 그대! 뭐 말하자면 그대가 인칭 대명사일 수도 있고 암호일 수도 있지.」 「난 사랑보다 우정을 믿어. 그렇다고 사랑이 의리란 말은 아니야. 그때 그때 다를 테니까」 「얘들아. 뭐 어찌 됐든 우리가 사는 이 별은 B612가 아니라 지구란 걸 잊지 마.」 「얘 명심하겠습니다요. B612 좋아하시네.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아직도 달에 가본 사람은 손에 꼽는다니까.」 「어허, 늬가 무슨 생텍쥐페리냐? 넌 또 뭐야, 왜 벌써 들어가게? 늬가 무슨 신데렐라냐!」 「뭐, 야 너 결혼했냐? 아니 어쩌다 그런 악수를 뒀나! 에잇~. 너 솔직히 말해봐. (소근소근) 너 집에 들어가기 싫지?」 「얘들아. 아 됐고. 예약해 뒀어. 일어서자. 자, 한번 놀아볼까? 이번엔 다를 꺼야. 왠 줄 아니?」 「쟤가 단골을 바꿨거든. NC를 호박에서 신비로 바꿨고, 전담 웨이터도 바꿨데. Mr.에르메스에서 Mr.막살자로. 이름 참 이상하지? 이름이 외국 사람 이름이라는데! 뭐라더라 무슨 뜻이 큐피트라나 뭐라나. 살짝 믿기지는 않지만 속는 셈 치고 한번 두고 보자고. 응?」 그러니까 도대체 어떤 마초들이 이렇게 말하냐구요? 넘어 갑시다. 갈 길이 바쁘니까. 아무튼 그래서 어떤 장르 영화를 보면 마초는 스르륵 꿈나라로 떠난다. 반지의 제왕? 내내 걸어만 다니다가 끝나는 영화다. 일부 분들께는 말이다. 게다가 저 하늘의 별을 따다 드리겠소, 꽃 길만 걷도록 하겠소, 손에 물 한 방울 안묻히도록 어쩌겠소 등등. 유행은 금방 바뀌고 달콤한 거짓말은 듣기에는 좋았지만 회상은 한숨을 부를 수도 있다. 세상사란 무릇 그런 것이다. 결론, 새로움을 지망했던 허망한 인생론의 요점은 이렇다. 행복의 기도문처럼 들리고 새로운 낙원처럼 보이는 것은 바로 광고라는 것. 옷이 날개요 이왕이면 다홍치마라는 것. 그럼 사랑 고백은 광고일까, 광고가 아닐까? 그처럼 깜짝 놀랄 듯한 매혹적인 진공청소기 광고를 보고서 덥썩 제품을 샀더니, 그런데 알고 봤더니 나중 그건 커피포트로 판명됐다더라? 그리 흔치 않은 일은 아닐 것이다. 암! 고로 만약 그렇다면 때가 된 것이다. 그러니까 어떤 때? 어차피 마누라를 바꿀 수는 없으니까 자동차를 바꾸든 애용하는 맥주 브랜드나 취미를 바꿀 때 말이다. 그러나 커피 마시는 생활 패턴을 바꾸든 새로운 운동화를 사던지 그것이 문제라면 차라리 나을지도 모른다. 단지 순수라는 우유와 새하얀 팬티 대신 톡 쏘는 콜라와 호피 무늬 패션을 편애해서 당신의 권태가 깔끔하게 해결될 수만 있다면 말이다. 하긴 그렇게 해결되기도 하고 끝끝내 미해결로 남기도 한다. 어쩜 우리는 무엇이든지 슬쩍 한발만 담구면서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애정을 털어버릴 만큼의 미봉책만 좋아하는 약삭바른 어른일지도 모르니까. 왜냐하면 지금은 뭐니 뭐니 해도 소비의 시대니까 말이다. 아 글쎄 그러니까 도대체 결론이 뭐냐고요? 그건 어쩔 수 없는 지면의 한계 때문에 필자의 졸작인 최신 인문교양서를 참고할 것. 거기 보면 그 모든 신통방통 처세술이 다 나와 있음. 전부 다! 완전 싹! 엮고, 묻고, 업히며, 쩍쩍 달라붙고, 착착 감기며, 귀에 쏙쏙 들어오는 바로 그런 달콤한 유혹의 사이렌과 미지의 판도라는 물론 드물게는 겁나는 메두사까지 모두 다. 다름 아닌 제목은, 열망의 뻔트. 부제도 있음. 기대는 실망 예감은 상심, 따라서 인생은 모르는 게 약일까 아는 게 힘일까?
from 소설
2018. 3. 31.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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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인생의 문은 활짝 열려 있다. 언제나. 그리고 누구든지 환영한다. 그러나 우리들은 보통 그 앞에서 허우적거리기 일쑤다. 왜냐하면 찬란한 사교계에 초대 받긴 했지만 그 초청장은 가짜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알고 보니 훨씬 멋진 제2호 행복의 문은 옆 동네에도 있고, TV에도 NC에도 있다. 심지어 투정과 엄살과 응석과 아양과 넉살마저 지겨워진다. 사랑은 식고, 유행가는 싫증나며, 슈퍼스타가 뭘 했다더라 라는 뉴스도 더 이상 재미없다. 새로운 관심사도 금새 식상해진다. 지나친 허세는 짜증나고 재미없는 허영은 익숙하지만 호기심과 감수성은 대타로 등장할려고 호시탐탐 대기중이다. 뻔트는 대만족이니까. 그래서 우리는 어복, 돈복, 남자복? 여복, 일복 즉 인생의 행운에 대해서 생각한다. 그러니까 교양학자와 점술가도 먹고 사는 것이다. 결국 사람은 이기주의자다. 적당히 이타적이되 사람들은 모두 이기주의자라는 진실을 사는 동안 잊으면 안된다. 하이에나, 늑대, 사자, 여우, 참새, 벌꿀, 생쥐, 고양이, 사냥개, 너구리등 모두 자신들의 이익을 최우선시하며 종족을 번식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눈독, 질투, 군침, 시기, 경쟁, 추억, 패배, 회상. 어른들은 누구나 심리학자감이다. 추측은 습관이고 공상은 취미다. 욕망은 영원하고 심심함의 친구는 쾌락이다. 그러나 우리는 방탕과 퇴폐의 유혹을 이겨내야 한다. 그 흔한 백치미도 여성잡지1일 뿐이다. 허당들의 잔치는 남성잡지고, 여성잡지2는 수다다. 기분이 꿀꿀할 때는 모두 실패고 권태며 허탕이다. 다 남의 행복이고 타인의 반짝반짝이다. 따라서 우리는 자기만의 비밀, 곧 나만의 궁전 가슴 뛰는 낙원 내 행복의 문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은 일반적으로 단란한 가정일 테지만, 예컨대, 어제는 정치 오늘은 문학 내일은 오락일 수도 있다. 그러나 보통은 사랑이다. 어느 날 그 사랑이라는 행복의 문을 열고 누군가 나타난다. 아아 그분은 천사다. 오오 눈부신 비너스다. 그녀는 정말 클레오파트라 뺨 칠 만한 미녀다. 그때부터는 세상은 동화고 에르메스는 가방이며 페라리는 마차다. 인생은 기쁨이고 세상은 아름다움이다. 그리고 나는 말이다. 그 말은 준마일 수도 있고 당나귀일지도 모른다. 설마 회전목마는 아니겠지만 혹시 가난하면 어떡하나? 그래도 괜찮다 괜찮다. 설령 그럴지라도 적어도 멋진 자동차 잡지 광고를 찍 찢어서 내 방 벽에 붙여놓을 수는 있다. 밝고 명랑하며 꿈과 희망은 언제나 함께 하니까. 멋진 행복의 조건을 소유해 봐야 그건 단지 이동 수단일 뿐이고, 차츰 귀찮아지며, 어차피 싫증날 테니까. 그래서 마침내 사랑은 결실을 맺는다. 아들이든 딸이든 그분은 공주님이요 왕자님이다. 슈퍼주니어의 탄생이다. 그러나 숙녀는 어느새 아줌마가 되어 있고 남자는 인생이 점차 재미없어진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남 얘기하기를 좋아하며─내 얘기만 할 수도 없지 않은가! 만약 이 세상 사람들이 모두 나는 나는 나는 하면서 내 애기만 한다면?─허구를 보고 읽고 때로는 라디오 드라마의 애청자가 된다. 그리고 갖고 싶은 쇼핑 리스트를 업데이트한다. 그러다 어느 험담을 싫어하는 작자는 뜬금없이 작가가 될 수도 있다. 그 인간은 본인의 작품이 환상 문학 잡지 미스테리아에 연재되기를 실눈을 뜨면서 노릴 것이다. 하지만 매번 예선 탈락한다. 나아가 이제는 칼럼도 안 써진다. 우량주식을 오래 갖고 싶고, 환상을 믿고 싶고, 인기를 끌며 사랑 받고 싶지만 언제나 사람들은 내가 언제 그랬냐는 듯 딴청을 피운다는 화제도 바닥났다. 할 말 없지 할 말 없지, 라고 말했던 옛날에 잠깐 만났던 영심이를 확 그냥 때리고 싶었는데 드디여 재미난 이야기와 간곡한 사연과 애틋한 곡절 및 할 말이 떨어진 것이다. 그래서 JS는 어떻게 했을까? 그는 이 당황스런 슬럼프를 학습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단 JS는 애용하는 머신과 신뢰하는 징크스 같은 건 없었다. 새로 만들면 몰라도. 그래서 그는 친구 하워드에게 전화했다. 그렇게 해서 예전부터 꼭 한번 방문하고 싶었던 무슨 창작 아카데미던가, 그곳의 실체를 안내 받았다. 적당한 추천장을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는 자기가 명작의 탄생을 차일피일 미루는 건 아닌가, 예술의 정열 그 전의를 불태우다가 방전됐을까 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바텐더의 조언처럼 특별히 요령 있게 딱 70~80퍼센트만 워밍업해서 일하지도 않았고, 썩 게으르지도 마음이 없지도 않았다. 그래서 고심해본 결과 이건 쉬는 시간 같은 경우인 듯 했다. 다른 말로 타성. 사교 생활에서 선심 쓰고 우정에게 생색내는 일과 관계없이 이건 광기를 가라앉히는 작전 타임이었다. 맞다. 삶을 돌아보며 인생을 중간 점검하고, 일기장을 촌스런 알록달록 표지에서 고급스런 가죽으로 교체하는 일. 자기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 사람들도 다 그런다. 자주 쓰는 마스카라 브랜드를 바꾸고, 차를 바꾸며, 이따금 애인까지 바꾼다. 새로움 그리고 변화. 지금이 적기다. 악마의 쾌감은 몰라도 천사의 영감을 위해서는 방식을 바꾸고 자리를 옆으로 옮길 것이 아니라, 아예 학생으로 돌아가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그래서 그는 아침에 사무실로 출근한 게 아니라 예술 아카데미로 등교했다. 그런데 그곳은 그의 기대와는 정 딴판이었다. 요즘 시대에 누가 순수한 사랑을 하고 누가 문학을 논하겠나. 초보자가 첫사랑에 빠지고 허당은 시간 때울려고 소설을 읽다가 만화로, 영화로, 음악과 취미로 건너뛰느라 바쁘다. 젊음은 오락과 심심함, 놀 궁리와 미래에 무슨 일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게 전부다. 우정과 사랑 사이에서 방황하며 멋진 추억을 많이 만들고 놀라운 인기를 획득하면 좋겠지만 실상 청춘은 그처럼 신나기는 어렵다. 기대에 부응하는 일과 욕구에 부합하는 대상은 많지 않은 것이다. 그처럼 적당한 시기에 과-점퍼를 입은 친구들이 모인 게 아니라 각자 분야에서 내놓으라 하는 당대의 쟁쟁한 전문가들이 제7의 신세계를 찾아서 모인 예술 창작 아카데미. JS는 생각했다. 차라리 기상 캐스터 팬클럽 모임이나 라운드걸을 구경하러 가는 게 좋을 뻔 했다고. 그는 유혹에 깜깜한 남자는 아니지만 싫증이 빠른 남자였던 것이다. 그래도 그는 한 달은 몰라도 일주일은 채우기로 했다. 하워드가 날 속일 리는 없고, 내가 혹시 잘못 찾아왔나 라는 의구심도 그를 간지럽혔지만 일단 그는 상황을 좀 더 지켜보기로 했다. 중간에 작전에 투입된 이상 대타 역할은 마쳐야 했고, 감독의 면도 살려줘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무슨 예술 아카데미는 일주일 후 폐교가 결정됐다. 따라서 그 아카데미 집단은 인근 예술대학 연예과와 합병하기로 잠정 결론났다. 그는 졸지에 연예인 지망생이 된 것이다. 물론 옆문이라는 출신에 맞게 나중 그들에게는 정식 학위 대신에 수료증이 증정된다고 한다. 그래도 그는 느꼈다. 학교 잔디밭에서 주위를 보니 그랬던 것이다. 사랑의 봄바람과 즐거운 분위기, 재밌는 인생이 시작될 듯한 기분, 열망, 유머, 활기, 밝음, 기쁨, 행복, 패션, 스포츠, 선동, 으쌰으쌰 그 모든 것이 함께 하고 있었다. 사랑도 행운도 인기도 품위도, 재미까지 다 놓칠지라도, 하다못해 그는 험담가 라더라 라는 헛된 풍문에 인상이 일순간 찌푸려질지라도 그는 한평생 소원을 이룬 것이다. 그 유감스러운 기쁨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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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혹은 말끔히 해소됐다. 일하기가 아닌 공부하기가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했으니까. 그러나 아직은 머머론을 읽었고 낯선 강의실에 들어가 생소한 과목도 청강했다. 또 숨겨진 데이트 장소를 염탐하며 젊은이들을 관찰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아직은 말이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JS는 수업이 끝나고 하교길에 들어설려고 했다. 그런데 웬 동호회인지 학과 모임인지 어느 청년들이 교정에서 실험이랄까 소개 비슷한 일을 벌이고 있었다. 공기를 도체로 활용하고, 액체에 정보를 입력하며, 피부에 생각을 표시할 수 있다길래 무슨 마술 동아리인 줄 알았다. 게다가 그는 전날 꿈에서 음료수를 쏟았는데 쏟아진 음료수에서 영화가 재생되는 기묘한 장면을 봤다. 때문에 그들이 옛 시골 장터에서 볼 수 있는 약장수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친구들은 미래과학부 학생이라고 했다. 그는 그래서 전과나 할까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일주일이 흐른 후 깨달았다. 내면의 그분께서 막연한 심술인지 일상적인 변심인지 그 때문에 그에게 명령을 내린 것이다. 이건 순전히 어설픈 체험이요 우스꽝스런 회상이자 신부들러리나 만년 조연에 불과한 일이라고. 그러므로 이런 시간 낭비는 그만두고 사무실로 가서 글이나 써라! 라는 지령이 떨어졌다. 맞다. 타인의 의뭉스런 연애사는 어차피 남의 일이다. 이건 완전히 다른 신비도 아니었다. 흔해 빠진 일을 모험이라 뭐라 칭송할 수도 없었다. 그는 정말로 발단─발단─발단─(느닷없는) 결말에 질릴대로 질린 것이다. 결국 그는 더 이상 학습에 열의를 느끼지 못했다. 학교에 다니기 싫어졌다. 그는 늘 그랬다. JS는 인생에서 항상 초보자였고 구경꾼이자 무조건 독학이었다. 영화의 독백으로 치자면 산전수전 공중전 어쩌고저쩌고. 그러나 그건 다른 말로 수박 겉 핥기다. 그렇지만 그는 그게 싫지 않았다. 솔직히 좋았다. 왜냐하면 강아지가 냄새 엄청나게 맡고 다닌 다음에 사랑을 만나고 뭔가 일을 내는 것처럼 천 번 만 번 수박 겉 핥기, 바로 그 다음에 진정한 환상을 독대하는 일. 알고 보니 그게 인생이었다. 전망을 보며 견적 내서 아니다 싶으면 차라리 일찍 그만두는 게 낫다. 물론 처음 생각은 언제나 대망이겠지만. 엇그제 그는 독서 중에 느꼈다. 꽤 괜찮고 은근 감동적인 문장이었는데, 내내 찾다가 포기했다. 어쨌든 마음이 바꼈기 때문에 무슨 아카데미의 수강생 자격으로 시작한 캠퍼스의 낭만은 포기했다. 아르바이트 한 달, 학원 한 달, 취미 한 달, 우정은 내 기분 좋을 때에 또 사랑은 줄곧 탐색전이 전부였던 것처럼. 그러니까 결국 지성의 전당은 그에게 입을 수 없는 아동복이자 발에 맞지 않는 유리구두였던 것이다. 환생은 가상이었고, 인기는 그냥 바쁨이었으며, 낭만은 착각이었다. 그의 현재 인생 과제는 아이스크림을 먹을 것인가, 위스키를 마실 것인가가 아니었다. 하루는 소개팅 하루는 여행도 아니었다. 나중 생각했을 때 탐욕으로 비쳐질지 모르지만 일단은 해야 하는 건 학습이 아니라 일이었다. JS가 그처럼 결심했을 때 바로 그 순간 때마침 첫인상이 괜찮았던 교우가 그의 옆으로 다가왔다. 딕 발렌타인. 그는 한물간 작곡가였는데 예술 아카데미는 그냥 재미로 나온 것 같았다. 「형. 이제 수업에 안 나올 거지?」 「허! 그거 어떻게 알았어?」 「어떻게 알긴. 그렇게 울상인데 모사꾼이 아니라 동네 꼬마라도 알겠다.」 「......」 그는 뭐라 할 말이 없었다. 「형. 그러지 말고 얘네들 공연이나 한번 보고 가. 응? 완전 재밌다는데! 정말이야. 차력단 발표회 끝나면 선물로 유니폼도 준다는데. 어디 유니폼만? 마치 후광이 비추는 것만 같은, 어? 어떤 뭇남성들일지라도 첫눈에 반하지 않고서는 못배기는 그 뭐라더라... 어, 맞다. 전단지를 나눠주는 그녀와 데이트도 하고 그 친구들과 소개팅도 준비되어 있다던데. 어때? 괜찮지 않아? 어차피 우리들 인생은 행운아의 별나라 모험 같은 것이잖아. 형. 그러지 말고 내 체면 한번 세워주쇼. 네? 우리가 그래도 연예과 아니냐 이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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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S의 근황은 이랬다. 코끼리 팬티, 샀다. 야생 펭귄 보러가기, 그건 무기한 연기했다. 예술 아카데미에 상심하고 연예과 수업 듣기엔 낙담했다. 다시 그는 사무실로 갈 수 밖에 없었다. 행복한 글쓰기를 위해서든 새파란 젊음을 책상에 앉아 그저 상상만으로 낭비하기 위해서건. 그렇다고 위대한 꿈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막 기다려지며 기대하게 만드는 행사도 없었다. 당연히 적당한 친교를 신나는 사랑으로 간주할 만한 숙녀들의 열띤 호응도 없었다. 일상은 비호감이고 엉겹결에 과-점퍼의 허망까지 깨달았다. 애시당초 그냥 허당에게 지성의 전당은 어울리지 않았던 것이다. 더군다나 무슨 연예과 씩이나. 누가 아니래. 그렇다고 짝사랑을 퇴짜놓을 수도 타인의 정사를 염탐할 수도 없었기에, 그는 막사는 사기꾼에 권태의 숭배자가 되어서는 안되니까 그는 결국 차력쇼를 보러 갔다. 행사장은 어설펐다. 어차피 그 친구들도 차력단 몇 기 라고 소개하고 몇 회 발표회 그럴 테며, 그들은 아마추어이자 JS가 원한 것도 오직 쨉이었다. 더구나 공연도 무료다. 관객이 자기 혼자일 리도 없고 보다가 재미없으면 적당히 빠져나오면 그만일 것이다. 그는 미처 앞으로 다가올 아름다운 환상, 살면서 거의 만날 수 없는 진짜 신비감을 예상할 수 없었다. 그 친구들이 얍 하면 일행이 모두 지구 반대편으로 순간 이동할 리도, 짠 하면 누군가의 옷이 벗겨지거나 유체이탈을 증명할 수도 없을 것이다. 차력쇼의 가장 멋진 모습은 아마도 노력하는 모습, 멋진 쇼맨쉽, 웃긴 진행일 것이다. 그는 모든 기대를 내려놓은 채 자, 시작해봅시다 라는 마음으로 공연을 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JS는 마술사의 조수 역할은 누가 맡나를 관찰했다. 나이트클럽은 음악으로 분위기를 압도하며, 선수는 실력으로 승부한다. 여성잡지1은 화장발을 가르치고, 여성잡지2는 슬기로운 허영심을 조장할 수도 있다. 공연은 조명발, 비전문가는 장비발, 대타는 행운의 여신에게 간청한다. 추산이 그렇다. 그게 세상사의 일반적인 원리다. 그런데 여기는 뭔 미리 둘러대지도, 사전에 꾸미지도, 비장의 조커를 준비하지도 않은 듯 했다. 아무리 봐도 없었다. 그는 즉각 사태를 파악했다. 이건 말로 시작해서 말로 끝나는 서커스라고.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은 풍만한 미녀 역할은 없다는 걸 간파했다. 그럼 뭐야? 진짜로 뭐 순간이동이라도 하겠다는 거야 뭐야! 그러다 공연이 시작하자마자 그는 관객 가운데 차력 참가자로 당첨됐다. 진행자의 논리적인 설득도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아니 대체 믿지를 못하지 않냐, 왜 고객님을 의심하게 만드느냐, 그러니까 우린 다르다 라는 것이었다. 「선생님. 제가 선생님을 만약 순간 이동시킨다면 선생님께서는 그 기술을 믿으시겠습니까? (딱) 대답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신사분께서는 숙녀들께 인기 꽤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왠지 모르게 질문에 알맞는 답을 해주실 것 같지는 않네요. 여러분, 그렇죠? 제가 동네 서커스단 공연을 구경하던 유년기 소년일 때 딱 이랬답니다. 이분과 완전 똑같았어요. 아, 묻지 마세요. 제 나이요? 저 여자친구 없어요. 연봉요? 그런 걸 알아서 뭐합니까! 지금 순간이동을 하냐 마냐, 그게 중요한 판국에 말입니다. 안 그렇수? 어쨌든 저도 이분과 완전 똑같았어요. 네. 그럼요. 하긴 당사자야 절박하죠. 나 그렇게 한가한 사람 아니다. 순진하고 순박하며 순수한 말과 순결한 이야기 말고, 어서 그 보따리 안에 들어 있는 메두사인지 괴물인지를 냉큼 보여달라, 라는 애원의 눈빛! 제가 어렸을 때 그 앞에서 막 3시간 기다리다 결국 바지에 오줌 쌌어요. 네. 100퍼센트 실화죠. 그럼요. 아~! 아직도 기억나. 그 냄새. (설레설레) 그렇다고... (실눈을 뜨면서 시선을 밑으로) 아직 분위기가 무르익지 않았군요. 네, 당연하요. 허허허. 허허허허허. 하긴 눈으로 못 보면 믿기 힘들죠. 어떻게 믿어? 마음을 빼았긴 다음에, 아니면 돈을 강탈당한 다음에? 세상일이란 게 그렇죠. 그래서 다들 슬쩍 한 발만 내밀고 있어요. 언제든지 발뺌할려고. 저기 분홍색 모자에 흰색 티셔츠 입으시고 방금 웃으시는 분, 네 그대 말입니다. 들어오시기 전에 그러셨죠? 재미없기만 해 봐라, 내 당장 도망갈 테니까 라구요. 허허허. 뭐 저도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건 뭐 어쩔 수 없죠. 네. 그럼요. 속고 속이는 세상 잔꾀와 귀뜸과 소문과 험담이 전부인 듯 하죠? 세상을 알고 보면 말이에요. 뭔가 분위기 잡고 그분의 마음을 홀딱 빠져들 게 만들려면 꼭 어디서 나타났는지 웬 수다쟁이 아줌마가 판타지를 방해하죠. 매번 그래요. 옆에서 어느 동네 아저씨는 또 한술 더 떠서 거든다니까요. 자기가 다 먼저 겪어봤다나 뭐라나. 그러면 또 허접한 친구들은 막 좋다고 웃어요. 네? 막 박수치면서요. 허허허. 하여튼! 그러나, (딱)! 그건 뭐예요? 그렇죠. 그건 모두 훈수와 복권과 병풍이죠. 이 놀라운 인간 세상에서 사람의 인생에서 우리가 행복을 오백 년을 누립니까, 천 년을 누립니까? 우린 정말 언제까지 가난뱅이 아니면 구경꾼이어야 하냐고요. 여우 같은 이성, 생쥐 같은 부지런함 그 둘이 만나서 쾌락의 벅찬 기쁨과 어리둥절한 황홀함, 그걸 한번 보고 듣고 만져봐야 하는 것 아닙니까? 가짜 환상이 아닌 진짜 신비! 네? 돈 내고 잠깐 재미있을 뻔 하다 마는 오락, 뻔한 이야기 형식적인 감동 식상한 농담, 이제 지겨울 때도 됐죠. 여러분, 어때요? NC에 들어갈 때는 웃고, NC에서 나올 때는 웁니다. 사람에 따라 짜증과 질투와 허영심이 선두에 나서기도 하죠. 그렇지만 언제 어디서나 실망스런 첫인상을 만회할 기회란 게 있는 법이죠. 그럼요. 일생에 한번은 기적과 조우해야 하지 않겠어요? 하지만 우리 차력단은 새출발을 하지 않겠습니다. 왜냐하면 타율이 자신 있거든요. 그럼요. 확, 그냥, 응? 자, 선택하시죠. 선생께서 하실 일은 고르는 것 말고는 없답니다. 신출귀몰이든 불가사의든 그건 모두 우리가 개발한 가상머신이 대령해드릴 것입니다. 설마 기존에 알고 계시던 그런 차력쇼나 흔한 카드 마술을 예상하신 체 참석하신 건 아니겠죠? 그럼요. 다음 생에서도 절대 잊을 수 없는 판타지의 주인공이 되실 거라고 굳게 약속드립니다. 한정판이다 뭐다, 뭘 사라 어째라, 가입을 해야 한다 입소문이 필요하다, 그런 자질구레한 일들일랑 남들에게 양보하세요. 왜냐하면 당신께서 할 일이란 오직 가상머신을 고르는 일일뿐이기 때문이죠. 자, 앞에 보이시는 가상현실 기기가 보이실 겁니다. 첫째, 헬맷형. 둘째, 가상현실 안면 마스크. 셋째, 특수 선그라스. 넷째, 쌍안경. 앞선 것일수록 강도가 세며 미래로 떠나는 성격입니다. 이렇게 환상머신의 주인공이 되셔서 꿈과 희망의 세계로 떠나기 직전 제가 드릴 말씀은 이렇습니다. 축하합니다 대단히 축하합니다~! 그러나, (딱)! 그곳에서는 다를 것입니다. 그대를 영접할 하늘의 선녀와 대천사 일동이 모두 한목소리로, 이렇게, 외칠 것입니다. 바로 이렇게요. 미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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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S가 가상현실 기기 가운데 1번을 선택한 건 행운이었을까, 분운이었을까? 그건 불쾌감도 아니고 비운도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건 결과적으로 지구상에서 경험할 수 없는 진짜 체험으로 판명되었기 때문이다. 농담조로 과장하는 말이 아니라 그건 말 그대로 미스테리였다. 가상머신 헬맷을 쓰고 나서 보고, 듣고, 구경하며 느낀 체험은 결코 최고의 행복도 최대의 환희도 아니었다. 그 시간 동안 미래의 동반자를 만난 것도 아니고, 희대의 난봉꾼으로 환생하여 이 과일 저 과일 막 다 따먹으며 알록달록 화사한 꽃들의 달콤한 벌꿀을 쪽쪽 빨아먹은 것도 아니다. 적당히 짜릿했고, 잠시나마 극성으로 재밌었으며, 들뜬 예감은 톡톡히 흥미로웠다가 다시 낙심하게 만들었다. 그처럼 그만그만한 경험이었다. 쉽게 말해 80점. 그러나! 맙소사! 세상에나 세상에나! 가상체험은 그다지 특별하지 않았으나 가상머신 헬맷을 멋은 다음이 장난 아니었다. 그건 그야말로 대반전이었다. 왜냐하면 가상머신 기기를 쓸 때는 차력 동아리 발표회 공연장이었는데, 헬맷을 벋을 때는 영화관이었기 때문이다. 극장에서는 엔딩 자막이 올라가고 있었다. 꼭 그 세대가 아닐지라도 인생과 내내 함께 했던 명감독 더블 에스씨의 최신작 영화가 마침 끝난 마당이었다. 그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이건 말이 안되는 일이니까. 이건 뭐 주최측의 농간도 아니고 차력사들의 장난도 아니다. 그런데 어떻게? 가상머신 기기는 당신의 두뇌와 감성적 접촉이 가능하도록 특별히 기기 내부에 오공본드를 발라놨다는 농담에 처음에는 피식하며 비웃었는데...! 가상현실 몰입도야 그냥 남들 다 아는 정도였고, 자긴 가만히 소파에 앉아 있었던 게 전부인데...! 그런데 어떻게, 말도 안돼! 그는 도무지 인정할 수 없었고 믿을 수도 없었다. 그래서 JS는 차력 동아리의 발표장으로 따지러 갔다. 이건 따져야 마땅하니까 말이다. 내내 평범한 인생이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신인 작가의 당선 소감 같은 경험을? 그는 분명 환상적인 모험의 주연이었지만 그 은밀한 기쁨을 얘기할 사람도, 진짜인지 가짜인지 판정할 심판도 뭣도 없었다. 때문에 그는 허세 대회에 나가 꼴등에서 두세 번째에 당선된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러나, 이제는, 마침내, 진짜 게임이 시작된 것이다. 사랑이란 그대만 생각하면 가슴이 뛴다 라고 말해야 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이건, 이건 그 내막을 파헤치기 위해 달리는 것 말고는 아무런 방도가 없었다. 제대로 낚여버린 것이다. JS는 살면서 그랬다. 그는 솔직한 일기를 좋아하고, 유명한 동화를 알았고, 고결한 사랑을 믿었다. 남들처럼 소소한 행복을 원하고 간지러운 인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나쁘지 않은 귀찮음은 대체로 꿈처럼 행복한 시간이었다. 뭐? 그러나 그는 탕자도 탕녀도 아닌 재수 없는 범인이니까 이상한 유혹에 매료되는 일이 흔했다. 따라서 몰입하고 따라가며 듣고 함께 할 때는 몰라도, 지나고 보면 모두 허랑하고 실속없는 방황이 거의 전부였다. 모두 가짜에 농담에 예선전에 할인이자 덤이고 뻔트였다. 누가 볼까 봐, 들을까 봐, 수근거릴까 봐 못해 본 구애와 도전이 아니라 인생은 그냥 심심함이자 평범함이었다. 고유한 개성? 나는 나는, 그래 봐야 '나도 나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대체로 그렇다. 그런데 마침내 진짜로 순간이동이라니...! 그는 이 생각 저 생각에 애인의 기뻐하는 표정을 상상하다가 처음 가상머신 기기를 썼던 발표장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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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은 허당이란 허당들은 모두 뒤섞여 활개치는 무도장이요 꽃밭이자, 축제고 학예회며 정글이다. 그래서 어디를 가든 분위기와 전망을 살피고, 누구를 만나든 타고난 천성과 숨겨진 속마음을 짐작해야 한다. 사랑은 변하기 쉽고, 어떤 믿음이든 예외가 있으며, 모순으로 가득찬 것 그게 바로 인생이다. 그처럼 인생이 어떻고 세상이 어떠하건 지금 당장 그의 관심은 그가 도대체 어떻게 순간 이동을 했는지 그 원리를 알아내는 것 밖에 없었다. 정말로 궁금해서 도저히 참을 수 없었으니까. 도착해보니 차력 동아리 발표회는 이미 끝난 듯 했다. 한가지 특이한 점은 이랬다. JS와 비슷한 용건으로 모인 사람들이 심하게 많은 듯 했다. 그들의 눈빛을 보면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정작 주인공들은 행방이 묘연했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끼리 모임을 결성하기로 했다. 그건 정말 굉장히 이상한 일이었다. 어떤 크나큰 사건에 개입되어 합심한, 곧 사기 당한 사람들의 모임은 아니다. 그런데 어째 이상하게 그것과 너무도 흡사했다. 뭐랄까 영혼을 일부 빼았겨버렸다고나 할까. 그 후 그분들은 체험의 기막힌 신비감 때문에 각자 다양하게 사건에 집착했다. 여러 검색어를 계정에 등록해서 알림 설정하고, 발표회 장소에 감시 카메라를 설치한 사람도 있었다. 직접 정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저명한 탐정을 고용한 사람도 있었다. 도대체 어찌된 일인지 결과만 남았고 과정은 실종된 일생일대의 미스테리에 모두 똑같은 의구심을 품게 되었다. 주인공의 상상도 아니고 최면도 아니다. 잠자다 꾼 꿈도 아니다. 공상도 아니고 말미에 직접 밝히거나 힌트만 남기는 액자식 픽션도 아니다. 완전 실화일 뿐이었다. 깜짝 반전으로 느낌표와 물음표를 가득 안겼지만 더 오묘한 미궁 속으로 빠져버리고 만 것이다.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단 말인가! 없다. 불가능하다. 그런데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겪었네? 심지어 나와 비슷한 경험을 했던 친구들이 으쌰으쌰한다? 말 다했다! 이건 완전한 환상이고, 완벽한 신비이며, 전설 같은 드라마이자 황홀한 진짜 SF다. 그는 일단 장면이 다시 관망으로 바꼈다는 걸 직감했다. 그렇다. 지금은 일종의 방학이었다. 억누를 수 없는 유쾌함과 달콤한 분위기는 다시 시든 꽃, 벌레 먹은 과일, 싫증난 연애, 낙 없는 삶 같은 재미없는 일상으로 변환된 것이다. 그래서 그는 동호인들이 만든 인터넷 사이트의 회원이 되어 주위에 말은 하지 못한 체 눈치만 살피며 새로운 정보만 기다리게 되었다. 그 모임의 이름은 물론 역시나 투박했다. 누가 지었나 모르겠지만. 가상현실 기기를 착용한 채 순간이동한 사람들의 모임.
6
어린이는 궁금한 게 많고, 어른은 아는 게 많다. 곧 어린이는 아는 게 적고, 어른은 궁금한 게 별로 없다. 어린이는 어른보다 웃음이 많다. 어른은 비교적 어린이에 비해서 주로 적다. 그러니까 무엇이? 가고 싶은 곳이. 하고 싶은 일이. 알고 싶고 되고 싶고 좋아하며 꿈꾸는 일들이 점점, 차츰, 슬슬 줄어든다. 할 말조차 적어지며 뜨거웠던 사랑까지 진정된다. 열망의 대상마저 한정된다. 그래서 돈이라도 많으면 좋겠지만 먹고 사는 일도 마냥 쉽지만은 않다. 그러므로 사랑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 먹고 마시며 놀고 춤추며 노래하는 바로 그게 인생인 것처럼 느껴진다. 꿈 많던 젊음도 멀어져 간다. 그러나 어른들은 변신의 귀재요, 요술을 부르는 천재며, 미지의 신세계를 동경하며 숙녀를 감동시키는 낭만주의자다. 하지만 남성적인 허풍과 여성스런 공상의 재능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어른들은 내가 좋아하는 제1의 취미이자 특기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싶어한다. 예를 들면 전문가 실력 뺨 치는 아마추어. 복권 당첨 인생 역전. 허송 세월 월척 특급. 하지만 대게는 장비가 딸리거나 실력이 형편없을 것이다. 그도 아니면 운이 없던가. 여기 기웃 저기 기웃 하며 아예 종목이 자주 바뀔 수도 있고. 따라서 우리는 제3의 새로움을 찾아서 떠나야 한다? 여행이다! 내가 진짜 원하는 삶을 살아라? 인문교양서다! 머머해라 머머하지 마라 같은 글을 읽지 말고, 내 말을 믿어라? 점쟁이의 예언이다! 자, 이 패턴으로 무려 3페이지 정도라도 수다로 거뜬할 테니 그건 그만 건너뛰자. 본론으로 넘어가서 남자답게 결론만 제시하자면─여자답다가 나쁘다는 게 아님─그런데 결론이 뭐였더라? 베베 꼬지 말고 그래. 귀뜸도 아니고 속 시원히 본론만 말하자. 그 멋진 변죽 그만 좀 울리며 뜸 좀 그만 들이고 용건만 딱 요약하자면 JS는 입이 근질근질거려 그만의 비밀을 발설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참을 수 없게 된 것이다. JS는 일단 첫 고백은 좋아하는 바텐더에게 하기로 했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그녀는 말없이 가게를 그만뒀다. 저런! 호의와 안녕과 우정은 다 가짜였나? 갖다 받힌 매상이 얼만데! 농담이고. 그렇지만 그는 금새 기분이 좋아졌다. 왜냐하면 저기 저 뉴페이스가, 그분의 친절과 고상한 응대, 부드러운 음색, 상냥한 눈인사가 앞선 단골 손님 전담 요원을 귀엽도록 살짝 능가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이름은 알렉시스 모스. AM은 남자친구가 있을까, 없을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그럼.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어?」 「그러니까.」 「그런데 그게 단지 딱 한 번이었다고?」 「응. 녀석들은 감쪽같이 종적을 감췄으니까. 왜인지는 아직까지 아는 사람이 없어. 조사하며 수사하고 수소문도 했지만 진도가 통 나가질 않았어. 성과가 전무했다고. 무슨 아차상이나 데이트하기 싫은 남자 3위에 바로 내가 뽑힌 일 같다고나 할까. 아직도 도무지 믿기지가 않아. 그게 어떻게 가능했는지.」 「오빠. 잘...하면 가능하지 않을까?」 「정체도 모르고 추적도 안되는데 어떻게? 재현은 불가능해. 그건 다시 크리스마스 카드에 적힐 꼬마의 소망으로 변해버린 미결 사건이라구. 대책 없는 미지의 낭만 같은 일.」 「아니야. 아닐 수도 있어. 그럼. 엑스맨 영화에 나오는 전동 휠체어. 그거 탄 상태에서 가상머신 헬맷을 써. 일단 그 휠체어를 안마 기기 같은 푹신한 소파처럼 만드는 거지. 그런 다음 장애인 이동 차량. 거기에 전동식으로 타고 내리는 거 봤지? 그렇게 해서 극장에 내리고 그 다음에 전부 다 평탄한 길만 이동할 테니까... 그런데 극장의 의자로 옮기는 게 관건인데. 그건 어떡하지? 그래도 모를 리 없을 텐데 이상하네. 걔네들 차력사가 아니라 밀수꾼 아니야? 지들이 무슨 이 시대의 마지막 신비주의자도 아니고 말이야. 응? 그게 뭐야! 사람 약 올리는 것도 아니고. 마음을 뺐었으며, 어? 계속 사랑하던가 사랑을 끝내던가 해야지. 뭐 흐지부지? 그건 매가리 없는 인상의 미남 같은 일이야. 듣기 좋은 말만 하는 남자인데 알고 봤더니 순 바람둥이에 능글능글하고 응큼한... 그런데 어쩌다 주제가 미스테리에서 남자로 바꼈지? 정말 이상하네. 좌우지간 그런 일은 그냥 두목을 잡아서 혼쭐을 내던가, 아니면 그냥 잊어버려. 응, 오빠. 그런데 오빠는 왜 결혼 안 해?」 「아아, 여자 입장에서 듣기가 아닌 말하기 좋아하는 질문은 역시나 그거구나. 오빠 왜 결혼 안 해! 남자들의 솔직한 심정은 그거지. 좋은 차 몰며 돌아다니고 인생을 즐기다가 천천히, 운명적으로 첫눈에 반하는 여자가 나타나면 바로 그때 가서 결혼할 거라고. 하오나, 난 아니야. 난 아니라고. 나는 일단 숙녀의 꿈에 지대한 관심이 있거든. 여자의 선망에 동조하며 조력하고 응원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적극 순응해야 하다고 생각하지. 허허허허허. 나중은 몰라도 적어도 말이야, 시작은 그래야 하지 않겠어? 내 특기로 말할 것 같으면 그거지. 말하자면, 걸핏하면 마력의 수정 구슬을 상상하며 애무하기. 오빠가 또 관상은 중급, 사랑운과 재물운을 보는 건 상급이야. 자네를 딱 보아 하니, 음 가만있자. 인생에 대한 황홀한 열정과 사랑을 향한 희열이 다양하기를 희구하는구먼 그래. 맞지? 아니라고 하지 마셔. 그리고 음, 얼굴은 말상. 꿈은 쉿, 고이 일기장에만. 왜? 오오, 저 부드러운 손에 포근히 키스해달라는 애처로운 눈빛! 송구스럽지만 그건 18세기식이야. 지금 우린 21세기를 사는 거고. 왜 서운해?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 그건 다 오빠의 철칙 때문이야. 난 말야, 처음 보는 숙녀의 손금을 볼 수는 없어. 아니 대체 왜? 왜냐하면 그녀의 미래가 한눈에 보이니까. 그냥 필름이 한번에 쫙 보여버리거든. 그래서 난 어디식 인사도 여간해서는 잘 시도하지 않는다네.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시게. 어여쁜 숙녀에 대한 예우니까 말이야. 음... 그리고 말이야. 그대는 친구는 많은데 지금 있잖아. 단짝은 어, 현재는 공석이네. 맞지? 내 눈은 못 속여. 절대로! 애인은 음, 굳이 정보를 캐내지 않더라도 알겠네. 너 쟤랑 사귀지?」 「와! 오빠 그거 어떻게 알았어?」 「뭐? 이...! 진짜야? 안돼. 안돼. 쟤 순전 허당에 방탕에... 아니 그러니까. 그게 말이야. 내 말은, 그런데 아까 뭘 물어봤지? 어. 결혼. 결혼은 남자들의 무덤이 아니지. 아니야.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아니라고. 누가 그래? 뭐 아무튼 그 인간들을 어디 가서 찾지? 헛된 정보를 캐낼 게 분명하지만 초보 탐정이라도 고용해 볼까? 아니다. 다 부질없는 짓이다.」 JS는 AM에게 나이 꽤나 먹은 아저씨로 바춰질지도 모르고, 역으로 JS에게 AM은 골키퍼가 퍽이나 마음에 들지 않는 숙녀였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물론 그녀의 대답은 농담일 가능성도 없진 않았다. 오늘 그는 느꼈다. 첫 비밀 고백은 꽝이라고. 그래서 그는 그날 일찍 집에 들어가서 잤다. 자다가 꿈을 꾸었다. 그가 꾸는 꿈은 길몽이나 악몽이 아니라 주로 개꿈이었다. 예를 들면 이렇다. 꿈에서 어떤 여자와 관계가 발전했는데 고요한 집에서 단둘이 있게 되었을 때, 그가 그녀에게 생삼겹살을 주니까 그녀가 덥썩 귀여운 강아지처럼 받아먹었다나 뭐라나.
7
그는 미스테리 탐사에만 매달릴 수는 없었기 때문에 다시 칼럼을 썼다. 그런데 이번에 기고한 곳은 색다르게 정치 주간지였다. 그도 때로는 도시인 때로는 촌부인지라 먹고 살아야 하니까. 하여 그는 그쪽 업계의 동향에 발맞추어 적당히 변죽만 울리는 식의 저급한 글로 짭짤한 수익을 올린 것이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목: 모순 내용: 모순이란 이런 거다. 사극에서 역모가 성공하면 그런다. 드물게 개국이랄지 영웅에 최소한 유명이고, 설혹 악명일지라도 미래의 일이다. 그러나 만약 역모가 실패하면? 죄인이다. 그래서 군률에서는 출신자의 나중 불명예는 아예 출신자 과거의 격상된 대우를 삭제하는 일도 있다. 또 정당에서는 지난 1인자의 당적을 제명하기도 한다. 으쌰으쌰할 때는 언제고, 예우란 게 있든 없든 가차없이 버리며, 다가올 정국 구상에 뭐 하나 도움도 안되니 불리한 일은 항상 딴청에 따따부따 따따부따로 일관한다. 인류 조상들이 대의를 위해 희생했는데 하물며 죄가 있으면 벌을 받는 게 옳고, 설령 빠져나갈지라도 황금을 챙겨서 저 세상으로 도망갈 수는 없다. 갈 때 가더라도 사람은 발가벗고 태어났으니 빈손으로 가야만 한다. 품위는 바라지도 않지만 초심이 흔들리면 어쩌다 자성은 자기도 모르게 포기할 수도 있다. 안에서는 그런데 바깥을 보면서는 또 당연하게 정의를 요구한다. 안에서는 칼로 밖에서는 펜으로? 그거 언제적 어디의 사고 방식일까! 차라리 펜2.0이 아닐거라면 그 반대가 낫지 않을까? 어항에서는 힘으로 연못에서는 말로라... 안에서 밖에서 다 당해 봐라. 그런 말이 나오나. 그건 재미없는 대하드라마다. 제발 현실이 아니기를. 만일 젊은 그대가 정치가를 꿈꾼다면 부디 품위를 갖춘 정치가로써 후세에 존경 받기를 바란다. 나아가 세계 제패를 꿈꾼 때늦은 제국주의 때문에 (예를 들어) 제3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러시아는 공영방송에서 바깥을 향한 참상 99는 단 한번도 다루지 않고, 그건 불문율이니까, 오직 내부의 슬픔 1만 다룬다. 심각한 불균형 아닌가 말이다. 완전 거꾸로 된 세상이 따로 없네. 그런 일을 먼저 많이 겪은 유럽은 결코 그렇지 않다. 자칫 오해할 소지가 있지만 그보다는 정말 왜 그럴까 라는 원리를 알고 싶은 게 먼저이지 않은지! (어느 지역 비알파벳 문화권의 장점에 대해서만 지금 당장 10권의 두툼한 교양서를 쓰는 일은 식은 죽 먹기지만 사안이 사안이니 만큼 생략하겠음. 주제에만 집중하기도 벅차니까. 아무튼) 제국주의를 먼저 겪은 선험자와 후발주자의 차이는 결코 작지 않은가 보다. 꼭 정치적으로 보지 않더라도 후발주자는 선험자와 달리 왕조 시대와 현대적인 체제 정착까지의 간격이 너무 짧았기 때문에 그런 것 아닐까 라는 의문이 든다. 활동 범위가 좁고 늦었으면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유달리 제한 사항이 많다. 그야 어떤 식으로든 차차 발전하기를 바라고, 정치 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세계사로 빠져서 논점이 흐려졌다만 다시 정치로 돌아가자. 남녀 사이에야 옛 사랑의 행복을 기원한다지만 정치 세계에서는 뭐라 말하기 곤란하다. 고개를 돌릴 수 밖에. 그러나 소식은 언제나 들리고 보이며 우릴 귀찮게 한다. 마냥 모른 체 할 수도 없다. 그래서도 안된다. 정치인이 다 그런 건 아닌데, 그런데 최고의 연예인은 언제나 정치인이다. 어설픈 진짜 연예인은 명함도 내밀기 힘들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유리할 때와 불리할 때에 따라 정계의 입장과 말은 수시로 바뀔 수도 있다. 신화에서는 미다스의 손 현실에서는 마이너스의 손, 그런 것처럼. 서론이 길었다. 본론으로 넘어가서, 군칙 및 당론과 달리 헌법은 기록이 기본이고, 신앙은 윤리가 우선이다. 최상은 도덕과 양심이지만 인간이 천사가 아닌 이상 최고는 개인의 인성과 사회의 관습 그리고 헌법이다. 군법이 민법보다 엄해야 하는 건 맞다. 그러나 심하게 구식이어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런데 이상한 건 타임머신의 관점에서 보면 어떨 땐 크고 작은 역모의 결과에 따라 명예와 불명예의 기준이 오락가락한다는 점. 때로는 하늘과 땅 차이가 된다. 논란이 많은 역사적 인물의 대표적 예는 그거다. 군복을 입다가 하는 일이 정치로 바뀐 경우. 그에 대해서 논란의 요점에 해당하는 일을 몇 가지로 간추릴 수 있다. 첫째 인생사 즉 과거사, 둘째 정치사, 셋째 역모 즉 자리에 오르거나 내려간 계기, 넷째 제 발로 내려왔는가. 사극은 드라마지만 사실을 기본으로 일부분 허구가 반영될 수도 있다. 현실도 사극과 비슷하다. 어쨌든 현실은 가깝든 멀든 언젠가 사극이 된다. 수필식으로 말할 때 옛날 그 당시 만일 어땠다면-이라는 가정법은 뭐 어떻다고 한다. 역사학자 토인비는 또 뭐라 말했고, 가정법은 예술적 상상력의 출발선이다. 그렇지만 더 중요한 건 그거다. 논란이 많은 역사적 사건이 만약 지금 일어난다면! 바로 그 가정법 말이다. 그게 바로 타임머신이니까. 옛날 사람들이 먹고, 입고, 하는 일들. 지금 보면 박물관식이요 다큐멘터리다. 불합리한 일이 비일비재한 세상, 이제 보니 어떤 역사적 논란의 인물이 필자의 과거 군부대 직속상관이었네? 아니 어머나 세상에나, 어떻게 이런 우연이! (그런데 작위를 박탈당했음) 하긴 세상사에 대한 의혹은 그 뿐만이 아니다. (그냥 대충이라도 언뜻 봤을 때) 내가 지지하는 정당의 지지율이 나중 혹시 5%, 10%를 넘게 된다면 설마 변하는 것 아닐까란 걱정. 아마도 지나친 기우는 아닐 것이다. 결코 쓸데없지도 불필요하지도 않을 테지. 지금은 소수를 대변하기 때문에 또는 순리를 내세우기 때문에 옳은 말을 하는, 할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실상 말하자면 딴은 먹고 사는 일이, 내 기분과 집단의 이익이 언제나 먼저일 테니까 어쩌면 그럴 공산이 크다. 사랑의 변심, 정치인의 신념과 논리. 누구나 전자와 후자를 꼭 직접 비교하고 싶지는 않을 테니까. 그래서 제일 안타까운 게 뭐냐면 일 잘하고 옳은 사람이 정치인인데, 정치공학적으로 정치력이 열세인 경우다. 또는 무소속의 소외감이랄지. 또 하나. 어떤 정치적 자리에 대해서 후보군을 슥 살폈을 때, 음 어 그게 아, 뭐라 말하기 곤란한 경우. 달리 보자면 그다지 귀감이 아닌데 술수와 변통에 따라 미꾸라지처럼 정계에서 오래 살아남는 일. 그거야 당사자 마음이요 피선거권자의 권리에 해당하지만 썩 안 그래도 되실 분 같은데 그런 분들께서 심심치 않게 건재하는 모습, 적지 않다. 그러니까 어떤 어른들께서는 최고의 오락과 드라마로 단연 정치를 꼽고, 정말 그래서 TV에서 드라마가 나오면 채널을 틀어 토론만 보시는 일이 꽤 된다. 사람들은 살면서 한 번쯤 생각해볼 것이다. 내가 만일 옥황상제라면 이라고. 이 세상에 비이성적인 일들이 많았어도 지난 일은 지난 일인데, 내게 유리한 이념은 어쩔 수 없다는 거고 내가 싫어하는 논조는 따따부따. 일관성도 정의도 타당함도 기준도 모두 제각각이라니. 그런데 타임머신에 환상머신에 좀비머신이 유행이라니, 나 원 참! 내게 이롭지 않으면 말을 돌리는 건 어른들의 특기일까? 인간은 참으로 신기한 존재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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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S의 고백을 들을 2번 타자는 바로 사람이 아니라 일기장이었다. 그는 학교 다닐 때 할 일에 소홀했고, 인생을 낭비했으며, 할 말도 없었다. 괜히 남의 다리나 긁고 다녔던 것이다. 학창 시절에 그는 공부를 못했다. 물론 시작은 좋았다. 초등학교 때 전교 최상위를 해 보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마는 초딩 얘기는 건너 뛰고. 중1때도 초반 성적은 상중, 그 뒤로 그래프 하향세. 해를 바꿔서 그 뒤로도 매번 똑같았다. 새 책과 새 친구들과 새로운 선생님에 새로운 기분일 때는 거의 항상 상중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시작만 그랬다. 옛날 방식 그런 환경을 따졌을 때 교실에서 맨 뒤에 앉는 거나 취미나 다른 일들을 감안해 봐도 그는 역시 열이었다. 시작. 기분파. 꿈. 호기심. 감수성. 뜬구름 잡는 이상의 선경과 미지의 세계를 동경하기. 곧 시작이 다였다. 시작이 전부였다. 그러니까 학창 시절에 공부도, 추억도 사랑도, 제대로 놀지도 못했다. 맞다. 다 못했을지라도 일기도 안 썼다. 다른 친구들은 뭐 안 그렇겠냐마는 말이 그렇다는 거다. 그러나 그는 원래 말수가 많지 않은 공상가 부류였다. 아닌가? 모르겠다. 그래도 친화력이 비교적 장기적으로 봤을 때 완만한 성장세를 보였으면 그만일 것이다. 딱히 세상에 불만족을 품지도 않았고, 내놓으라 하는 당대 최고의 바람둥이와는 전혀 거리가 멀다며 유감스럽게 생각하지도 않았다. 차력단의 흔적을 찾고 단서를 쫓아야 하는데 시시콜콜한 수다라니, 한심하다. 그건 그렇고 애꿎은 추억의 유행가를 회상하는 일과 일기 쓰기는 다음으로 미루기로 했다. 일단 그는 타인의 견해가 궁금했다. 대담에 탐문, 취조하며 비밀을 만방에 퍼트리고 다니는 일은 생각만 해도 어려워 보였다. 그래서 그는 커트와 도나를 불러내서 물어보고 싶었다. 친구들은 내 신기한 경험을 믿을 수 있겠냐고. 「마술도 아니고, 허풍도 SF도 아닌데 순간 이동을 했다고? 나도 알아. 괜한 호들갑은 아니란 걸 말이야. 자네가 그럴 친구가 아니지. 그럼. 진실이겠지. 믿고 싶을 꺼야. 나도 그러니까. 아마도 엄정한 사실일 거라고. 결론은 그래, 다 진짜였다고 해. 아니 그렇다고 치자, 가 아니라 진짜였어. 내 눈으로 본 것과 다름 없다고 인정해. 그런데, 물증이 없다? 증인이 사라졌다? 귀신에 홀린 것 같다고? 못 믿는 거 아니야. 그럼. 우리가 무슨, 언제 여자의 운명을 트집 잡았나 몽상가의 시적 감흥을 비꼬았나? 조용히 찾아오는 행운은 반기고, 떠나가는 섬세한 사랑은 거짓일까 아까울까 돌아올까, 우리도 그 정도는 점쳤고 그 만큼의 깜냥은 된다고. 그 뿐만이 아니라 우린 원래 사심 없는 대화를 나누는 사이잖니? 그런데 순간...이동? 유체이탈도 아니고, 순간이동? 에이~. 너무 많이 갔다. 응? 너무 많이 갔어. 이제 그만 돌아와 친구. 응? 넌 말이야, 차력 그런 거랑 어울리지 않아. 이미 그런 거 십대 시절에 다 떼지 않았니?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순간이동? 할 테면 하라지! 그러지 말고 우리 집에 가서 바닷물이 사라진 바다, 그 드라마나 보자구. 사람은 보통 둘로 나뉘지. 자기 집에 친구를 초대하는 친구와 자신있게 자기 집으로 친구를 부르지 않는, 못하는 유형. 호의를 베풀고 호혜를 요구하고. 어떤 부류일지라도 어른이 되면 삶을 재미있게 살게 되겠지. 목표를 향해 내내 달려야 할지 또는 평생 놀고 먹는 법을 연구하며 제2의 인생을 위한 복안을 강구하던 어쩌던. 다들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게 되고, 자기 좋아하는 삶을 사는 것 같아. 그런데, 왠지 아니? 안 그러면 인생이 시시해지니까. 안 그래도 사는 게 심심하고 일상은 무료한 법이거든. 환상, 판타지, 불가사의, 스릴러 그런 건 현실의 내 삶에선 거의 기대할 수 없는 거거든. 어때? 지금 우리 집으로 순간 이동하는 건! 차력사 친구들이 보여준 마술은 차차 생각해보기로 하자. 그게 진짜인지 가짜인지 누가 알겠어? 뿐만 아니라 어쩌면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그런 생각 들지 않니? 저 봐 봐! 도나의 우아한 동작, 다정한 어조, 매력적인 눈빛, 꿈결처럼 포근한 순간이동과 신기한 유체이탈을 선망하는 그녀. 아니 잠깐. 뭐, 뭐라고?」 바닷물이 사라진 바다는 재미없었다. 물론 이번 편만 재미없기를 바랬다. 커트와 마라와의 상담도 소득은 없었다. 그렇다고 그는 지금 이때 넘치는 기쁨을 꿈꾸고 막연한 새로움을 탐닉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그는 다시 동호회 홈페이지를 찾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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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현실 기기를 착용한 채 순간이동한 사람들의 모임. 그는 동호회 홈페이지에서 최신 정보에 혹하지 않을 수 없었다. 즉, 그 모두를 1차적으로 해냈다는 첩보를 입수한 것이다. 그 익명의 투고자가 쓴 글을 읽어보니 사건은 모두 1차적 노력의 결실이었다. 곧 예전에 미니 2층 버스가 한참 유행일 때, 45도 각도에서 직선형 또는 나선형 계단을 내려오던 게 인기를 끌던 일처럼 또 다른 유행을 불러올 전조로 보였다. 요컨대 유명인들이 애용하는 대형 밴 차량에 특수 설치를 하면 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진공 기능에 버금가는 서스펜션, 무중력 우주 기술이 가미된 쇽업앤쇼버. 그 모두가 하나의 거짓없이 1차적 기술로 일궈낸 환상이란 제보였다. 일체의 그래픽 기술도, 속임수도, 요술도 없이 만들어낸 땀방울의 결과. 그 모두를 알고 난 당사자들의 기분을 뭐라 예측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그 글은 조회수가 미미했고, 고로 댓글도 거의 달리지 않았다. 게다가 의견을 제시한 글쓴이조차 혹시 믿거나 말거나에 해당하는 개인의 의견일 수도 있다는 참고 사항을 정확히 고지했다. 합당한 근거를 바탕으로 제시한 추정이 아니라 아마 그렇지 않을까 라고 예상한 추측이었다. 뭐, 어쨌다고? 이건 뭐 좋은 징조도 아니고 나쁜 징조도 아니다. 기분 좋게 만드는 흥미로운 화제도 아니고, 사랑이 시작될 것만 같은 느낌의 일도 아니다. 괜히 기분만 싱숭생숭해졌을 뿐. 따라서 그는 그냥 그건 무시하기로 했다. 어쩌면 그는 최면에 쉽게 걸려들기에 적합한 감성의 소유자일지도 모른다. 맞다. 그렇다. 정말 그런 것 같다. JS는 불길한 예감을 특히 주의하기 좋아하는 냉정한 이성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의 관심을 끄는 비밀, 환상, 신비, 선망, 소원, 질투 같은 개념에는 약할 수 밖에 없었다. 마치 센 척 가장하기를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매끈한 가죽점퍼와 섹시한 하이힐, 멋진 컨버터블과 때로는 함께 하고 싶어하는 것처럼 그건 인생에 대한 오똑한 태도이자 자연스런 본성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지난 일은 일단 미뤄두기로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에 잠에서 깨자마자 그는 생각했다. 딕 발렌타인! 녀석을 찾아야 한다고. 차력 동아리가 아니라 녀석을. 그는 지금까지 목표를 잘못 정한 채 달려왔던 것이다. 맞다. 범인은 녀석이다. 그런데 어떻게 찾지? 그러다 그렇게 시간만 갔고, 그는 끝내 딕을 찾지 못했다. 그러든 어쩌든, 망상과 허언만으로 일생을 허송할 수는 없는 일. 긴 기다림이 다소 막막할지라도 밝은 행동과 선명한 실천을 위해 허영과 쾌락을 한사코 거절함이 옳다. 그러나 공식적인 인생관은 그럴지언정 아련한 안타까움도 내내 우리와 함께 한다. 왜냐하면 미련한 사랑, 애정의 슬픔, 삶의 뻔트를 통해서도 조촐한 성과는 물론 우린 항상 즐거움과 흥미와 교훈을 배우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언가에 대해 뭔가 아쉬우면 정들든 싸우든 혹은 연패를 하던 피하지 말고 일단 당당히 부딪혀 봐야 한다. 그래야 그 다음이 있으니까. 그래서 그는 좀 더 딕을 찾아보기로 했다. 너무 일찍 또 쉽게 포기하지 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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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번에 마라의 청탁으로 오랫만에 환상 문학 잡지 미스테리아에 칼럼을 기고했다. 그는 아마 칼럼니스트란 직책과 장편소설이란 꿈은 마치 '사랑과 야망' 그와 비슷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다. 제목: 인생론 내용: 날렵하고 민첩한 청춘들에게 물어보자. 젊음의 기분은 언제나 즐겁고 씩씩하며 상쾌한 것이냐고. 일단 과도한 긍정은 잠시 제쳐둔 다음 그분들의 솔직한 심정을 번역하면 아마 이럴 것이다. 뭘 해도 재미없다고! 항상 심심하다고! 멀리까지 보기 힘들다고. 미래는 잘 모르겠다고. 그런데 정말 이상한 게 뭐냐면 그거다. 스스로 다 숱하게 겪어서 잘 아시는 어른들은 매번 그분들께 다른 걸 기대한다는 점. 자기도 재미없고 심심했으면서 눈 똥그랗게 뜨면서 새파란 젊은이가 왜 꿈이 없냐고 이러쿵저러쿵. 본인도 그랬으면서 참으로 모순되게 말이다. 간혹 그런 일들이 있다. 꼭 그런 건 아닌데 말로 하느냐, 말하지 않느냐 라는 차이란 게 조금 있다.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이 들기 때문에, 난 패자였지만 당신께서는 아니길 바라네 뭐 그런 마음 때문일 것이다. 의도는 좋은데 인생의 경험이 월등하니까 태도가 멋지지 않은 일, 살면서 드물게 겪에 된다. 왜냐하면 우린 모두 이 세상이 아름답고 우리네 인생이 멋지기를 바라기 때문 아닐까? 아니다. 완전 아니다. 절대로 아니다. 그럴 리는 없다. 왜냐하면 신나는 파티와 분위기 좋은 무도회에 초대 받으면 당장 내 기분부터 언제 우울했냐는 듯이 좋아지니까. 바로 그 순간 만큼은 즐거운 인생, 재밌는 세상, 행복한 사랑일 테니까. 그처럼 인간의 삶은, 타인에게 거는 바램은 절반쯤 실망이고, 어차피 처음부터 큰 기대 없으며, 나의 예감이 커피포트로 변하는 건 불행이다. 그러므로 행복의 비밀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그건 불운을 피하고, 행운의 가능성을 높이며, 내가 진공청소기로 변신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과연 쉬울까 어려울까? 좌우지간 쉬우면 재미없고, 어려우면 헷갈리며,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 뚜껑 열리기 쉽상이다. 따라서 (행복한 인생이라고 하면 뭔가 거창해 보이니까) 삶의 기쁨을 위한 단순한 해법은 아마도 우선 전망과 견적일 것이다. 그래서 이성과 합리에 앞서 먼저 분위기를 읽고, 직관을 초빙하며, 상대의 기분과 속셈을 간파할 필요가 있다. 양 위에 개가 올라가도 되는지, 하이에나가 여우의 뒤꽁무니를 쫄랑쫄랑 따라가야 할 상황인지, 번잡하며 시끌벅쩍해서 싫으니까 또는 이번엔 당신이 선발대를 해보지 않겠냐는 듯 늑대는 표범을 앞장세워도 괜찮은지 같은 것. 고로 우리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걸 하고 싶고, 갖고 싶은 건 무엇이며, 적어도 소망과 대망의 차이는 알아야 한다. 그러나, 응? 그러나! 이미 아동부터 동요보다 유행가를 편애하며, 유년 때부터 어른들의 세상을 궁금해 하며 아빠 엄마의 참모습을 흉내내는데, 글쎄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가? 남녀의 인기와 애정운조차 부익부 빈익빈이다. 어떤 걸 하고 싶냐고요? 적어도 바텐더한테 칭찬 받거나 나이트클럽 앞에서 입장 제지 당하고 싶지는 않다. 어차피 나올 때 기분 뻔한데 애초에 입장 불가? 말 말자! 이미 스스로 다 아는데 어디 평균 연령 깎아먹는다고 소문낼 일 있나. 그러면 갖고 싶은 건? 극명하게 간추리자면 미스터 에르메스와 미스 페라리 까레라다. 물론 솔직함보다 거짓말을 택하는 사람도 없진 않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심지어 내 친구 중에 뭘 좀 아는 친구를 만난지는 오래 오래 됐고, 여러분 친구 중에 뭘 좀 모르는 친구는 그런다. 우월감은 말하고 싶어하며 열등감은 말하기도 듣기도 싫어한다. 완전 신경질에 아주 그냥 짜증나는 거지. 그러니까 어차피 사람들이 원하는 건 대게 비슷비슷하다란 말씀. 딸랑딸랑─반짝반짝─새콤달콤─뿌잉뿌잉! 그래서 쉽지가 않네 쉽지가 않아. 결론은 얘기가 길어지니까 필자가 쓴 책을 참고할 것. 그 중에 추천은 딱 2권만. 첫째, 인문교양서. 제목은 새로운 뻔트마! 부제는 할 수 있으면 규칙을 새로 쓰고, 못하겠으면 철저하게 표준과 모범에 근접해라. (그러니까 좋게 후반전에 눈치 작전 하라야 뭐야!) 둘째, 장편소설 새로운 대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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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 한두 달 지났나. 어느 날 그는 거리에서 누군가 유심히 자신을 응시하는 걸 느꼈다. 어떤 낯선 남자는 주의 깊게 그를 관찰하며 줄곧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가 가는 곳으로 계속 따라왔다. 빨리 걸으면 빨리, 천천히 걸으면 천천히. 쟤 뭐지? 라면서 그는 생각했다. 나한테 돈 받으러 올 사람은 없을 텐데. 그는 불안해서 결국 도망갔다. 쫓고 쫓기는 추격이 짧게 이어졌고 긴장감은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 배가되었다. 「형! 나야. 딕이라고. 딕 발렌타인. 형 뭐 잘못한 거 있어? 왜 영화를 찍고 그래!」 그는 DB였다. 아니 어떻게! 찾아헤맬 땐 없더니만 제발로 나타나다니. 쟤도 호박인가? 알고 보니 그는 차력 동아리와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딕의 집에 놀러가기로 했다. 멀지 않은 그의 집에 도착했다. 딕은 다짜고짜 자기가 발명한 특급 의자를 자랑했다. 자기가 취미로 어떤 기계를 만들었는데 알고 보니 그게 괴물이란다. 딕이 사용해보지 않겠냐며 넌지시 부추기는데 그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그의 권유를 받아들일까 말까, 못이긴 척 응할까 뿌리칠까. 고민은 쉽게 결정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형. 이게 뭔 줄 알아? 그냥 의자가 아니야. 형은 그냥 몸을 맡기기만 하면 돼. 다른 건 아무것도 필요치 않아. 첫째, 최고급 안락 의자. 둘째, 환상적인 흔들의자. 둘 중에 어떤 거? 물론 의자에 앉은 다음 착용하게 되는 가상머신 헬맷은 같은 걸 사용하게 돼. 그러니까 형 취향을 고려해서 고르면 돼. 그렇게 멀거니 제품을 응시하지만 말고 일단 앉아 봐. 응? 완전 끝내준다니까. 정말 장난 아니라고. 이건 말이야, 내가 장담하는데. 뭐랄까, 그래. (딱)! 우머나이저에 필적하는 좀비머신이라고나 할까! 그 놀라운 기적을 경험해 보고 나면 그때 비로소 알게 될 꺼야. 왜 내가 그처럼 이 신종 의자를 극찬했는지를. 아마 모르긴 몰라도 이런 경험은 일평생 한번도 못한 걸. 귀신 봤다는 사람들 있잖아. 진짜 확실한 유령의 실체를 본 사람은 거의 없어. 다 심신이 미약한 상태랄지 어떤 상상력과 불안감, 공상이 적합한 사람이랄지 귀신이 나타나기 좋은 환경. 그 모두가 함께 최적의 조건일 때 일시적으로 환영을 보고, 환청을 듣는 게 전부야. 그처럼 귀신 이야기가 과거에 존재했던 미신이랄지 어떤 해프닝이었다면 현대는 거의 모든 인간의 경험들은 장르로 구분 되고 있지. 그러나 내일은 아마도 다를 걸! 왜냐하면 형 앞에 있는 이 좀비머신 때문이지. 연예-오락 프로그램에 나오는 것처럼 그렇게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으로, 응? 그처럼 장난으로 끝나지 않아. 한마디로 이건 순간이동 기술의 구현이라고. 스타트랙 봤지? 그런 거야. 그런데 원래는 과학적으로 불가능한 게 맞지. 물리학 법칙에 위배되니까. 그러나 학계에는 아직 비공인 상태로 머물러 있지만 다중 우주론이라는 게 있거든. 그 이론을 적용시켰기 때문에 가상현실을 겪고 난 다음에 헬맷을 벋으면 아마도 다른 도시, 어쩌면 무인도에 도착할지도 몰라. 형! 무인도에 데려가고 싶은 3가지 정해뒀어? 하긴 재산 목록 1호-2호-3호가 어른들한테는 더 중요하지. 하지만 오늘 이후로는 진지하게 그 세 가지를 정하게 될 걸. 형은 나와 같은 괴짜를 만난 걸 행운으로 알아야 해. 일단 방식은 소풍으로 설정해놨어. 보너스로 시간 여행이나 카드로 만든 집에 당도할 수도 있을 꺼야. 어차피 미로를 탈출하면 되니까 지레 겁 먹거나 미리 당황하지 말고. 아 맞다. 형 지금 무슨 약 같은 거 복용하고 있는 거 없지?」 딕의 말을 듣자 하니 그건 심신 분리 기계라고 했다. 99퍼센트 개발을 마쳤는데 중간에 뭔가 어떻게 참여자의 적극적인 의지에 따라 낯선 장소에서 깨어나는 수가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가 누군가. 다른 누구도 아닌 가상머신 헬맷 때문에 순간 이동을 경험한 JS는 선뜻 DB가 개발한 의자에 앉아 정체 모를 헬맷을 쓸 수는 없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예전의 비밀에 대한 탐구심, 정체를 캐내고 싶은 욕구, 가상 현실에 대한 환상은 이제 일종의 트라우마로 변해버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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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주의에 대한 편애 만큼이나 세련된 향락. 그건 다름 아니라 아마도 소비일 것이다. 그런데 뭘 사지? 특별히 갖고 싶은 건 없고 탐나는 물건은 비싸고. 그러다 그는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JS는 최근 돋보기를 구입했다. 왕성한 호기심을 주체하지 못하는 아동처럼 탐구생활에 탐닉하기 위한 목적 때문은 아니었다. 그는 탐정이 아니라 작가니까. 돋보기는 단순히 화분에 살고 있는 곤충을 관찰하기 위해서 샀던 것이다. 그래서 만족했는가 하면, 실망하지는 않았다. 어른들이 이렇다. 매번 그렇다. 항상 그런 식이다.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 가 아니라 괜찮다 나쁘지 않다 지켜보는 중이다 아직의 상심의 전 단계다 라고 한다. 그래서 그는 관망이 아니라 실행을 했다. 대극장에서 오페라나 뮤지컬을 한 번도 못봤지만 이번에 큰맘 먹고 극장에서 노르마와 라 트라비아타를 필름으로 본 것이다. 그렇다. 단지 필름으로 말이다. 그래서 어떻게 됐을까? 결과는 넘어가자. 알고 나면 냉소를 부를 테니까. 몇몇 외국어라면 아마 단 한마디도 못하거나 못 알아먹지는 않겠지만 그는 딱히 근처에 경륜장이 없다는 걸 원망할 수도 없었고, 대귀족을 지망할 수도 애정 결핍을 어딘가에 토로할 수도 없었다. 최신 유행가를 즐기며 한껏 사치와 호사를 누리며 방탕에 빠질 수도 없었으니 심심함이란 카드의 뒷면을 궁금해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그는 낭만을 좋아하고 흥미로운 모험을 원했지만 아무 숙녀에게나 미쳐서 사랑을 애걸할 수는 없었다. 그러든 어쩌든 그가 구입한 돋보기는 그런 돋보기는 아니었다. 은밀한 소망을 남몰래 실현시킬 가능성을 탐색할 수 있는 마법의 돋보기. 그래서 그 다음에? 안 그래도 얘기를 꺼낼려던 참이었다. JS의 의도는 결국 그거였다. 돋보기에 대한 실망과 가상체험 트라우마에 대한 절망을 서로 퉁치기. 그러나 결과는 여지없이 실패. 그러니까 순간 이동에 대한 환상은 그 어떤 사랑의 아픔처럼 그에게 계속 패전의 기억으로 남게 된 것이다. 한 달쯤 지났나. 그는 미스테리아 사무실에 놀러갔다. 그런데 마라가 웬 헬맷을 쓰고 있네? 「그거 뭐니, 마라! 어디 대회라도 나가니?」 「응, 이거? 파마 기기나 그냥 단순한 헬맷처럼 보이지? 그런데 아니라네. 이건 바로 심신 분리 머신이니까.」 「뭐라고?」 「왜 그렇게 놀래! 너도 한번 해 볼래?」 「내가 그걸 왜 해?」 끝도 시작도 알 수 없는 사랑의 환희는 대체 어디에 있을까? 혼을 쏙 빼놓는 설변에 휘둘리다가 자기도 모르게 설득되어 웬 차력쇼에서 가상체험 헬맷을 썼던 게 모든 일의 화근이었다. 그가 원한 건 이랬다. 젊은 열정, 새로운 탐욕, 신선한 도전, 유쾌한 모험, 인생에 각인될 만한 흥미, 부담없이 재밌는 주말 여행, 아름다운 사랑, 도무지 해도 해도 질리지 않는 꿈꾸기. 그러나 그와 같은 밝은 소망은 벤치로 끌려내려갔고 대신 무섭게 등장한 대타는 이랬다. 억압된 욕망 힘없는 열정,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그런 뻥뻥 터지던 유머 감각의 실종, 가식적인 웃음, 세속적인 사랑의 실패, 한탄과 환멸, 색다른 친밀감 대신에 저 멀리 줄을 길게 선 머머증들. 그리고 신종 트라우마까지! 그렇다고 지구는 평평하다는 학설을 믿을 수도 없고 참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긴 달 착륙 조작설도 일리가 있긴 있다. 왜냐하면 달과 지구의 거리가 그야말로 장난이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주 공간이고, 게다가 갔다 왔을 뿐이지 특별한 성과는 기대에 못미쳤으니까. 아무튼 그런 뚱딴지 같은 화제는 초딩들한테 맡기고, 그래서, 이제 어떡하지? 라고 그는 생각했다. 어떡하긴 뭘 어떡하나! 선망도 질투도 상상도 다 물러나고 이제 남은 건 관망뿐이지. 그는 지금도 헬맷 쓴 사람을 보면 잠깐 멈칫 한다. 안 그럴 수 있겠나. 아이스하키 경기장? 갈 수 없다. 무슨 대회? 상상도 할 수 없다. 어른이 바지에 오줌 싸면 꽤나 보기 좋겠다. 따뜻한 어느 남쪽 나라로 여행이나 갔다 올까 라며 생각했다가 그는 깔끔하게 포기했다. 왜냐하면 갔다 온 경험자의 얘기가 그랬기 때문이다. 어디에 딱 내려서 거리에 나가니 와~! 세상에나 세상에나 저쪽에서 저쪽에서, 아 글쎄 헬맷이 헬맷이...! 따라서 그는 헬맷 트라우마의 타개책으로 특정 상품 중독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바로 자동차 경주 선수들이 입는 위-아래 일체형 유니폼! 여자들이 원피스를 입는다면 남자는 그런 유니폼을 입어야 한다. 살면서 한번쯤 가죽점퍼를 입고 싶은 때가 있는 것처럼, 남자가 어쩌다가 반-재산을 털어서 뚜껑 없는 차를 사는 것처럼 말이다. 또 각종 유니폼에 대한 이상한 욕구 때문에 변태머머증에 걸리면 안되니까 내 애인에게 이런 저런 그런 옷들을 선물하는 남자가 간혹 보면 드물게 있다. 그 얘기는 남자들끼리, 속닥속닥! 그처럼 그는... 자기가 말이니까 주력이 좀 딸리더라도 나름 열심히 달릴 수 있는 애마니까 내 안의 기수인 그분께 일체형 유니폼을 선물하는 게, 뭐?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도, 교양으로 따져서 납득이 안될지도,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는 일이지만 그와 같은 모종의 습관이 생겨버렸다. 어쩔 수 없었다. 그건 뭐 수요일은 코끼리 팬티! 그런 썩 나쁘지 않은 징크스에 불과할 테니까. 어줍잖은 전개도 절정도 없이 결말이 너무 갑작스럽지만, 그는 그 어떤 뚜렷한 성과에 대해서 그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끝.
from 소설
2018. 3. 15. 15:06
1 나는 최근 하고 싶은 일은 많았지만 할 일은 간소했다. 그 할 일의 하나는 글쓰기다. 그것에 대해서라면 일이 수월하든 어렵든 할 말이 없는 것보다는 많아야 결과가 발생한다. 왜냐하면 괜찮은 생각을 말로 바꾸고, 다시 세심한 선별을 거친 다음, 글로 옮기기에 나쁘지 않은 어떤 절실함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애절한 사랑처럼 나는 애틋한 감정을 동경하니까. 그런데 나는 할 말이 많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본시 입이 무겁고 공상이 전공이며 수다쟁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한테나 어디서나 머릿 속에 떠오르는 발랄한 상상과 허튼소리를 여과없이 모두 발설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 고자질에 이간질은 내 갈 길이 아니었다. 품위를 내팽게칠 수야 있나, 안 그래도 가난한데 지성과 고품격은 포기할 수 없는 나만의 행복한 기준선이었다. 때문에 나는 글쓰기에 대한 성과가 빈약했다. 그래서 하나의 추론이 퍼뜩 떠올랐다. 그건 바로, 내가 사는 동안 일기를 거의 쓰지 않았던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은 아닐까 라는. 여자친구가 생기면 어떤 말을 해야 하지, 그보다 우선 상대도 없는데 아니 너무 많은데 아니 넘어오고 나서 마음이 바뀌면 어떡하지, 그렇다고 무작정 다가갈 수도 없고, 대체 무슨 말로 구애에 나서야 하나, 차라리 속 편하게 유혹하는 게 더 재미있지 않을까 라는 사춘기 소년의 걱정과 망설임. 마치 그처럼 생각부터 말하기까지의 항진이 어려웠던 건 지금이나 옛날이나 마찬가지다. 따라서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변한 건 별로 없는 듯 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생각은 다시 이건 뭔가 변화가 필요하다는 신호 아닐까에 이르렀고, 그러므로 나는 그것의 발단에 해당하는 하고 싶은 일 즉 욕구를 줄이려는 노력을 어쩔 수 없이 지속할 수 밖에 없었다. 나이 들고 이거 이거 무슨 수도승도 아닌데 절제라니, 설마 이러다 금욕으로? 아니 될 말이다. 뒤늦게 2군에서 홈런왕을 차지해도 모자를 판에 어? 이미 다 큰 마당에 날마다 순수라는 우유나 마시고 응애응애 삐악삐악 동화책이나 읽으라고? 뭔가 좀 뒤바뀐 구석이 없잖아 있지만 지금 내게 적합한 표어는 그것이었다.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그렇다고 삼류에서 일류로 수직 상승하며 복권에 특급 당첨될 리야 있겠냐마는 어떻게 어떻게 부탁해서 과-점퍼를 공수해서 입는다면 또 모르겠지만 키에르케고르를 옆구리에 끼고서 괜히 인상 쓰거나 쇼펜하우어만 마냥 읽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 때문에 나는 그런 의혹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내가 간직한 동심의 사심은 혹시 흑심이 아닐까 라는 의심 말이다. 내가 상심을 어찌 부인하겠나. 그러나 그건 환상에 대한 지나친 욕심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고로 공상이 어느 날 갑자기 걸작으로 탄생하게 되는 항속성이 유지되든 어쩌든 나는 나를 탈출하든지 신선한 자유를 찾든지 그 어떤 새로움을 추구해야만 했다. 맞다. 새로움! 새로움에 대한 갈망 새로움에 대한 열망. 깜작 놀랄 만한 새로움. 이도 저도 안되면 조촐한 새로움이라도. 하다 못해 색다른 취미라도 어떻게! 응? 그렇다. 새 신발을 사든 새 헤어스타일을 고집하든 어쩌든 지금 내 안의 그분은 무조건 새로움을 추구하라고 내게 명령했다. 그처럼 그분의 요구는 새로움을 향한 행진이었다. 그래서 나는 군말없이 네, 알겠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나의 주인님이 그렇다고 내게 그리 친절하지는 않았다. 그분은 모르긴 몰라도 한껏 도도하며 허영심이든 뭐든 열정이 대단한 분인 듯 했다. 그건 좋다만 상황 봐 가면서 사랑을 하고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어야 하는데 그분은 전혀 그런 부류가 아니었다. 일하든 놀든 뭐든지 맹목적이었다. 다시 말해 그분은 야생마고 나는 경주마였다. 그분은 자유롭게 푸른 들판을 뛰놀며 노래 부르고 춤추며 노는 게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즐거움이란 성과를 위해서 질주하던가 낭만을 지망하며 품위 유지를 위해 돈을 벌어야 했다. 예술도 절반은 먹고 살기 위해 하는 것처럼 나는 칼럼이든 장편이든 뭔가를 궁리하고 영감이란 황금 과실을 따먹어야 했다. 그런데 나의 화폐 관념과 그분의 이상은 상충됐다. 나는 기다리고 사태를 관망하며 사안을 연구해야 한다고 판단하면, 그분은 당근과 채찍은 물론 어떻게 요술로 날 막 달리게 만드는 요술쟁이였다. 때문에 꼴찌가 분명코 예상되는 분야에서도 그분은 내게 확실한 환상과 선명한 신비를 채근했다. 난 그렇게 항상 뜻 모를 독촉에 시달리는 것이다. 어제도 그랬다. 나는 참으로 오랫만에 금주 기간을 마감하고서 차분히 술을 마셨다. 물론 그 목적은 쾌락 반 착상 반이었다. 그런데 그분은 벌써 기분이 저만큼 앞서갔기 때문에 막 들뜨고 기뻐서 날 페이스 조절에 실패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숙취로 고생하며 반나절을 그냥 허비해버렸다. 그러든 어쩌든 나는 그분의 지령을 따라야만 했다. 그런데 그분의 지엄하신 주문이 뭐였더라? 맞다. 그건 새로움이었다. 가만 있자, 그분께 어떤 새로움을 선사할까? 아무거나 선물할 수는 없고 강아지 키우기? 그건 너무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고 새로운 장비를 구입하는 일은 너무 식상하고, 새로운 장소로 놀러가자고 하면 지금 분위기로 봐서는 별로 좋아하시지 않을 걸로 예견했다. 그래서 나는 처음으로, 맞다. 생애 처음으로 나는 SF 소설 읽기를 시도하기로 했다. 정말 그런가? 정말로 SF 소설 읽기는 처음? 아니다. 잘 찾아보면 이미 시도했기 때문에 정확히 따지자면 처음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나는 누구보다 첫눈을 그리워하며 1번 작품을 애타게 좋아하는 천성에게 자유를 부여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첫날밤이었고 뭐든지 첫사랑이라고 생각했다. 그건 막연한 시도였지만 난 왠지 기분이 좋아졌다. 그러므로 지금 들고 있는 이 책, 필립 K. 딕의 걸작 역시 내게는 첫 SF 소설 읽기였다. 제목하여, 안드로이드는 전기 양을 꿈꾸는가? 꿈꾸든가 말든가! 누가 시킨 일이라고. 나는 밑져야 본전이니까 한번 새로운 일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그런데 읽은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부터 몹시 졸렸다. 아 내가 이래서 그동안 SF 소설을 읽지 않았구나 라고 깨달았다. 그러나 과연 누구의 명령인가. 나는 책과 함께 가방을 챙겨서 내 사무실로 출근했다. 나는 최근 약속도 없었고 일에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에 드라마, 모험, 액션, 판타지, 멜로, 로맨스 이런 장르는 멀리했다. 나야 팔짜 소관이라는 핑계로 사절했다고 하지만 바랄 걸 바래야지. 누가 시켜주지도 않을 테고 그분께 사정사정할 수도 없었다. 그처럼 나는 닥터 누구인 것처럼 사무실에 도착해서 SF 소설을 읽었다. 그런데 어디서 왠지 샴푸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아카시아 향기인지 고소한 빵 내음이 나는 것도 같았다. 혹시 저 그림 때문인가? 아닌데 그림을 바꿨는데. 나는 예전 그림을 팔고 사무실에 황금 마네킹 상점이라는 제목의 그림을 걸어놨던 것이다. 비전문가가 봤다면 여지없이 진품으로 착각할 만한 위작을 어렵사리 구했던 것이다. 진품을 사는 것보다 아마 그게 더 여려울 것이다. 그만큼 정말 힘들게 구한 작품인 것이다. 이 정도면 거의 전문가가 봐도 그 자리에서 모작 판정을 내리긴 어려울 수준이었으니까, 나도 꽤 흡족해 했었다. 그런데 나는 어디서 자꾸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에이 잘못 들었겠지 라면서 자꾸 그냥 넘겼는데 그런 소리들은 계속 들려오고 있었다. 「핑~!」 「얍~!」 「빵~!」 「짠~!」 요술봉을 휘두를 때 들리는 효과음인 것도 같고, 어떻게 들으면 실로폰 연주음의 행진곡 소리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다가 급기야 나는 까꿍이란 환청 다음에 오르골 자장가 멜로디를 진짜로 듣고야 말았다. 그건 도저히 본 체 만 체 모른 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어쩔 수 없이 벽에 걸린 그림, 황금 마네킹 상점을 떼어냈다. 그랬더니 글쎄 그곳에는 저 깊숙이 들어갈 수 있는 심연의 통로가 있었다. 원래는 단단한 콘크리트 벽면이 있어야 할 자리에 말이다. 나는 아뿔사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건 또 뭐야!」 이건 뭐랄까 하루도 빠짐없이 공상의 쾌감을 음미하며 몽상의 단꿈을 만끽했던 노력의 결실일까? 아니면 천 년에 한 번 열린다는 4차원으로 건너갈 수 있다는 비밀 통로란 말인가! 지킬과 하이드가 그동안 마찰이 잦은 우정이었다면 지금은 마침내 싸우다 정들어서 반짝반짝 초롱초롱 사랑의 눈싸움, 바로 그처럼 정답게 둘 다 눈이 똥그래지고 말았다. 오래 참았던 것이다. 그렇다. 마법에 걸린 영심이와 고집불통 4번 타자는 사랑했고 절묘한 합의점에 이른 것이다. 이건 뭐 이의는 전혀 없이 기쁘고 신나는, 토끼와 거북이의 허풍 대회에 버금가는 사건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곳으로 들어갔다. 그러지 않을 수가 없었으니까. 왜냐하면 유례없는 행복을 위한 절호의 기회를 차마 거절할 수는 없었으니까. 여자의 호기심 남자의 직감 같은 건 생각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이건 대책없고 재미없는 허구가 아니라 실화였고, 따라서 나는 풍운아의 계보를 이어 미스테리의 명맥을 후세에 길이길이 전해야만 한다는 총대를 메고야 말았다. 그건 마치 모텔 백야의 단골 사냥꾼이 졸지에 지옥의 사냥개로 돌변한 일과 다름 없는 일이었다.
2
나는 카페 안에 있는 맨홀 뚜껑을 열고 새로운 세상에 등장했다. 그곳에 도달하기까지 낮은 포복 높은 포복에다 중력의 뒤틀림을 모두 겪은 이야기는 생략한다. 다행히 카페 안에 인적은 드물었고, 그래서 나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손님인 척 그곳 분위기에 태연히 동화됐다. 그러다 차를 주문해서 마시며 사태를 사피고 주변을 관찰하며 전망을 지켜봤다. 그런 다음 알게 됐다. 그 세계와 전 세계의 차이점은 전혀 없다는 것을. 다만 딱 하나. 그건 바로 하반신이 대리석이라는 점. 나는 덜컥 놀라서 얼른 화장실로 달려갔다. 거기서 확인해보니 다행스럽게 팬티 안은 예전 그대로였다. 나는 하체가 대리석으로 변한 걸 깨닫고 팬티안의 정경이 무슨 애들 장난감 같은 고무라거나 특수 대리석이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그건 예전과 똑같았다. 그때 나는 당근 쥬스 색깔, 잔잔한 하늘색, 회항 경로, 이곳 세상에서 통용되는 사랑의 상규, 우격다짐이든 우물쭈물이든 내가 축구해야 할 목표는 무엇일까 같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나의 모든 주의력은 단 하나로 집중됐다. 그건 무엇이냐? 무엇이겠나, 순결이라는 상표의 팬티 안에 대리석이 아닌 그것의 건강이지! 내 허벅지가 대리석으로 바꼈는데 뻔트마의 깜짝 변신에 따른 불이익은 있나 없나를 확인해 봐야 하는 건 남자의 본능이자 사람의 본분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우머나이저는 구경도 못해봤다. 그러다 나는 알게 됐다. 그 동네가 우리 동네란 것을. 바뀐 건 정말 대리석 하체 빼놓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즐거운 모험이 시작될 뻔 하다 말았다며 실망했고, 음험한 상상력의 발동 때문에 얼굴이 빨개졌다. 그렇게 나는 멋쩍게 내 사무실로 돌아갔다. 글을 읽다가 집중력이 잠깐 떨어지는 데도 불구하고 계속 관성에 따라 읽기를 지속하신 분은 잠깐 하다 뭐지, 뭐지 그러실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나는 멀뚱멀뚱 내 사무실로 돌아갔다. 나는 사무실에 도착했다. 그 다음 나는 기분이 이상했고 이건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하면서 비몽사몽, 어리버리한 상태가 지속됐다. 그러니까 말하는 멧돼지도 아니고 하체만 대리석? 그러다 나는 저 소파 뒤에 걸려 있는 액자의 뒷면을 들여다볼까 말까 망설였고 잔뜩 겁을 먹었다. 따라서 나는 차마 액자를 들추지는 못했다. 그러다 도나에게 연락이 왔다. 왜 약속 장소에 나오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도나는 새로 사귄 친구다. 나는 마라의 친구를 파도타기로 공략했고, 그 중에 미모와 지성을 겸비할 뻔 하다가 아슬아슬하게 놓친 가련한 여주인공 비운의 숙녀 역할로 잘 어울릴 것만 같은 한 친구와 친해졌다. 그녀의 이름은 바로 도나였으며, 나는 그녀와의 약속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곧바로 약속 장소로 달려갔다.
3
「도나는 어떤 남자를 좋아하니?」 「어떤 남자? 그러니까 애정? 음 그런 남자. 우정은, 단짝이 많았던 남자. 사교성은, 성격 좋다는 말을 몇 번 들었던 남자. 남자에게, 넌 너무 예리해 라는 지적을 들었던 남자. 또 여자에게, 뭘 좀 아네 라는 은근한 칭찬을 들었던 남자.」 「우리 도나는 자꾸 뭔가를 들었던 남자를 좋아하는 구나. 하긴 진짜 성격이 좋다고 할지라도 그 사람들이 다 그런 말을 듣지는 않으니까. 뭔 말인지 알겠음. 그렇다면 내가 내 입으로 자랑하는 건 내 자유지만 도나의 마음에 들려면 타인에게 그 공증을 받아야 하는 구나. 그렇지? 하긴 그게 낫지. 밖에서 칭찬을 받는 게 낫지 굳이 내 입으로 입 아프게 말할 필요 없으니까 그게 훨씬 기분도 낫고 효율도 좋겠군. 그런데, 어렵다. 오래가겠다. 응? 얘 완전 겉과 속을 다 보네. 응? 왜, 내 말이 틀려? 그런 남자는 많지 않아. 그건 한마디로 남자가 내 친구에게 자기 여동생을 소개시켜 주고 싶은 바로 그런 남자야. 응? 남자들한테 물어보세요. 그런 남자가 많은가 많지 않은가를. 그러나! 그와 같은 신념이 일단 있다는 건 우선 반겨야 할 일. 난 그거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럼 있잖아. 하나 더. 싫은 남자에 대해서!」 「싫은 남자? 있지. 있어. TV, 라디오, 잡지에 나오는 하고 많은 얘기들 뿐만 아니라 날이면 날마다 등장하고 친구끼리 쉼 없이 말할 테니까, 음 그 중에 딱 하나만. 그건 바로 햄버거 먹을 때 콜라 없이 먹는 남자. 무슨 체험기 쓸려고 일하는 거야? 그냥 앞뒤 보지 않고 막 달리기 위해서만 사는 거야? 그게 뭐야! 오빠. 검소함과 짠돌이의 차이가 뭔 줄 알아? 그거야 그거. 용돈 아껴서 써야 하는 소년도 아닌데, 그냥 궁금하고 심심하니까 군것질하느라 값싼 햄버거 먹는 거도 아닌데, 남자들끼리 만나면 으쌰으쌰할 때는 척척 내. 응? 그런 분들도 남자 세계에서는 숨거나 피하지 않는다고. 곧 남자 사이의 우정은 별 문제없지. 중간은 가니까. 그런데 웬만한 봉급이나 전문가들 주급에 해당하는 돈은 사이좋게 잘 나누어 내거나 내가 사면서 응? 대관절 왜 햄버거는 꾸역꾸역 달랑 제일 싼 햄버거만 음료 없이 먹냐 이 말이야. 물론 혼자서는 그럴 수 있어. 안될 게 뭐야. 그래도 돼. 왜 안 돼? 하지만 분위기라는 게 있잖아. 혼자가 아니야. 기분도 괜찮아. 모험도 기다리며 달릴 수 있어. 그런데 노-콜라는 뭐 자존심이다 그건가, 밤에는 황제 낮에는 뭐 허당? 왕자와 거지 같은 동화가 아니라 엄연한 현실인데, 그건 아니지 않나! 나는 지금 검소함과 짠돌이의 그 종이 한 장 차이를 말하는 거라고! 응? 짠돌이란 낱말의 어감이 좀 어째서 그렇지 그건 나쁜 게 아니야. 사정 어려울 땐 아껴쓰는 게 당연하지. 그게 왜 나뻐. 지금 내 말은 그 말이 아니라고. 스푼과 나이프와 포크 각 10개씩 사용법을 아는 고풍스런 식사 예절을 도대체 왜 모르느냐, 그걸 따지는 게 아니라고. 응? 괜히 이런 주제 나오면 인상 팍 쓰는 남자, 왜 없겠어! 그보다는 나는 왜 그런 주제에 대해서 인상을 쓰는가, 를 먼저 알아야 하지 않을까? 주제와 원리와 행간은 뒷전인 체 내 즉흥적이고 습관적인 말로써 타인의 인상을 찌푸리게 하는 일이 이 세상에 좀 많나! 생활 다큐멘터리에 나오듯이 결혼식도 못 올리고, 집도 단칸방에, 그만그만한 일이지만 구슬땀을 흘리면서 열심히 일하고 또 성실하고 형편 뻔허고, 차도 없고 주로 걷고 아니면 대중교통만 이용하며, 그런데 밝고 해맑게 인터뷰하는 사람도 있어. 많아. 정말 많아. 그런데 그거도 아니고 남들 할 거는 다 해. 자존심도 최상이야. 인기는 없지만. 그런데 정작 햄버거 먹을 땐 최저가 햄버거만 달랑 들고 콜라 없이 먹는다? (설레설레) 노노노! 남자들 세계가 알고 보면 물을 흐리는 문제아들이 많아. 중간은 가도 뭘 모르는 허당들 천지야. 여자도 물론 마찬가지겠지만 말이야. 기분 좋을 때 분위기 좋은 자리에서 N분에 1 하기로 했다가, 그 날 지나서는 미루고 미루고 끝까지 미루어 상대를 포기하게 만드는 유형도 남자들 세상에서는 소문이 나. 그런 일 흔해. 왜냐하면 시간 길어지면 흐지부지니까. 돈 거래도 그래. 알고 보면 십중팔구는 빌리지 않아도 될 돈이야. 정말 필요한 의논이 아니라 그다지 불필요한 속사정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도 적합하지 않은데 맹숭맹숭한 호인은 또 빌려줘. 그러면 빌린 후 값지 않는 부류는 또 그쪽에 줄을 서게 돼. 응? 아무튼 햄버거 먹을 때 콜라 없이 먹는 남자! 그 비싼 술값과 아까운 벌금도 내면서, 최신형 기기는 어쩌다 덜컥 사면서 정작 햄버거 먹을 땐 최저가 햄버거에 심지어 콜라도 없이 먹어. 그거 대체 뭐지? 아, 슬퍼! 대체 그건 뭐지? 자학인가, 아닌데! 풍류일까, 그럴 리가 있나. 그럼 뭐 코메디? 웃기지도 않지. 그렇다고 그걸 행위예술로 봐줄 수도 없고. 중간은 없어 그냥. 천국 아니면 지옥이라고. 그건 정말 도대체 뭘까? 응? 고액과 지폐는 시원시원하면서 동전이라면 덜덜 떨어. 그거 반대로 되야 하는 거 아니야? 장비발은 괜찮은데 실력은 모자라도 돼. 그런데 유흥의 세계는 훤헌데 화폐 최저 단위 수수료는 벌벌 떨어. 오빠 있잖아, 나 세금 잘내는 걸로 상 받아야 한다는 거 알지? 어쨌든 그건 유행도 아니고 지금 세대의 행동 방식도 아니고, 뭐지? 그건 정말 이해하기가 너무 어려워. 차리리 그럴 꺼면 드라마에서처럼 대놓고 말하는 게 나아. 저 그렇게 꽉 막힌 사람 아니네요 라고. 하긴 것도 어느 정도 유복해야 그런 말이 나오겠네. 사람도 좋고 인성 안 빠지고 뭐 어디다 내놔도 손색없고 완전 자랑할 만하...지는 않을지라도 바로 그러니까 호박이 제 발로 굴러가지 않지. 괜히 그런 게 아니야. 남자가 바보가 아니듯 여자들도 바보가 아니야. 미남이 왜 싫겠어. 그러나 나랑 안 어울리게 몇 계단 위를 보지 않아 여자도. 남자가 말하는 중간과 여자가 말하는 중간은 너무 다르니까 그게 문제지. 또 그와 약간 다른 경우도 있어. 현재 형편이 굉장히 괜찮은 남자가 있어. 친구들 사이에서 소문이 나. 그래서 차도 자주 바꾸고 밤의 세계를 누비지. 신차 가격도 세세한 옵션에 따른 제일 마지막 자리까지 정확히 알아. 그런데 정작 술집에서 꽤 비싼 술 마시는 거야 그렇다 쳐도, 마담이 연말 선물을 신경 써서 챙겨주는 단골에다 정말 좋은 밤의 세계에서 계산할 때, 그때도 제일 마지막 자리 동전까지 정확히 받는다? 그건 또 정말 뭐지? 일부러 그 재미 때문에 고액권을 지갑에 넣고 다니는지도 몰라. 물론 여자들에 대해서도 사연을 모으면 많아. 남자든 여자든 애청자 엽서로 이런 얘기 모으면 아마 들어도 들어도 끝이 없을 걸. 알고 보면 이상한 사람들 꽤 많다니까. 내 주위에 드물 뿐이라서 그렇지.」 「아 그렇구나. 나는 도나가 아마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 거라고 짐작하고 있었는데 정말 그랬군.」 「미안 미안. 내가 좀 말이 많았지? 오빠 많이 피곤해 보이는데?」 「아 아니야 아니야. 끄떡없어. 멀쩡해. 나 원래 듣는 거 좋아해. 그럼. 거짓말 아니야. 정말이야. 진짜라니까. 나보다 더 지인과 친구의 말을 다소곳이 경청하는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그런데 왜 갑자기 카페에 손님이 막 쉴 새 없이 들어오지?」 「커피 맛이 괜찮나 보지 뭐. 하여간, 그렇지? 오빠가 그럴 줄 나도 알고 있었어. 내가 사람 볼 줄 안다니까. 오빠 표정 보니까 처음에는 조롱할까 달랠까 부러워할까 하더니만, 내 말에 적극 동조하는군. 좋았어.」 「허허허. 그런데 도나 있잖아. 혹시 너의 허... 허...」 「허, 뭐? 내 허벅지 혹시 대리석이냐고? 오빠 있잖아. 내가 마음만 착한 게 아니야. 응? 어떻게 보여줄 수도 없고 큰일이네. 아 너무 아깝다 내 청춘.」 「뭐? 어떻게 알았어?」 「뭘 어떻게 알아? 오빠 정말로 그렇게 물어볼 생각은 아니었지? 그렇지? 그럼. 에이 그걸 어떻게.」 그날따라 왠지 도나의 입술이 빛났지만 나는 도나의 허벅지가 대리석인지 대리석이 아닌지 더 이상 궁금해 하지 않기로 했다. 왜냐하면 그녀의 입술과 대리석은 아무런 관계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게 뭐야! 그 후 나는 도나와 헤어진 다음 실내 수영장과 해변에 놀러가서 확인했다. 그걸 단 몇 시간만에 뚝딱 헤치운 건 아니었다. 대충 2, 3일 정도 걸렸다. 그렇게 확인해 봤더니 대리석과 비슷한 하체들이 많고 투명하거나 반투명하거나 대체로 사람들의 다리가 대리석과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사람들의 하체가 대리석과 비슷했다 뿐이지 완전한 대리석은 아니었다. 바로 그 지점이 나와 다른 부분이었다. 내 다리는 대리석인데 왜 사람들의 다리는 단지 대리석일 뻔 하다 말았지? 왜냐고 사람들에게 물어볼 수는 없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상식적으로만 봐도 난 바보 취급을 받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이게 뭔 이상 증상에 따른 그런 뭐 대리석 허벅지 신드롬? 그러고 보니 이건 성장기 때 겪었던 감추고 싶은 그런 일과 비슷한 듯 했다. 오금과 허벅지와 엉덩이에 뾰루지가 약하게 또 심하게 났던 일. 청춘의 상징이라는 여드름도 얼굴에 났음. (참고로 손에 땀이 많다고 고민하는 젊음은 그게 좋은 현상이란 걸 나이 들면 알게 됨) 그러나 그건 보기 뭐한 피부병이었던 반면 이건 매끈한 대리석이었으니 이렇다면서 병원에 갈 수도 없는 일이었다. 따라서 나는 당분간 이 일에 꽤나 매달려야 할 수 밖에 없다는 예감에 휩싸였다. 나와 비슷한 사람들도 분명 있을 텐데 그들은 어떻게 찾고, 왜 대리석 다리로 변했는지, 또 왜 그런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구분되는지를 알아내고 싶어질 테니까. 정말 아무리 봐도 내 다리는 그리스 신들의 조각상과 또 다르게 그 색갈이 유난히 또렸함과 동시에 투명하다는 점을 확인했다. 막 실핏줄과 그 내부까지 보일 정도였으니 말이다. 내가 정말 뼛속까지 작가인가 그건 알 수 없었지만 핏줄은 보였고 그 밑도 어느 정도는 보였으니까 하는 말이다. 이로써 나는 알게 됐다. 뭘 그렇게 알게 된 게 많으냐고? 더 이상 알게 없어서 권태로운 것 보단 나을 수도 있음. 아무튼 SF 소설과 영화는 재밌을 수 있지만 SF 극의 주인공이 되면 그만큼 신기하지는 않다는 것을 나는, 알게, 됐다. 그렇게 나는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와서 할 말을 선출하고 할 일을 탐구하는 아저씨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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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커트에게 내 경험 SF를 고백했다. 커트는 도나를 통해 알게 된 친구다. 커트와 나는 내 사무실로 함께 가서 확인할 걸 확인하기로 했다. 「그걸 나보고 믿으라고?」 「아니야 아니야. 믿지 마. 왜 믿어! 그런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믿을 게 못 돼. 그럼. 난 뭐랄까 쾌락을 모면하고 위엄을 지키는 생활에 대해서 터무니 없는 싫증을 느꼈던 것 같아. 그래서 이 모두는 내가 원했던 점괘를 상상으로 막 그려낸 데 지나지 않을 거야. 대리석 다리? 이게 뭐 어때서! 말도 안 되는 SF는 믿을 게 못 돼. 난 이게 모두 엄정한 현실이라는 걸 전혀 의심치 않아. 그럼. 난 말야, 미쳐도 단단히 미친 그런 돌아이는 아니니까 말이지. 암. 내가 정신병자면 정신병원에 있어야지, 어? 여기서 어떻게 너랑 얘기를 하겠니!」 「그렇지? 장난이지? 나도 처음부터 농담일 거라고 예상했어. SF 그게 실제로 응? 말이나 되니! 차라리 우리, 인생은 아름답다고 간주하는 건 어떨까?」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좋다 싫다 좋다 싫다도 아니고, 하루는 모차르트와 모파상 하루는 베르디와 오 헨리를 끼고 사는 너가, 응? 대리석 다리에 비밀 통로라니? 일하기 싫은 교묘한 구실치고는 너무 황당하지 않니? 그렇자나, 너무 구식이자나! 그래서 하는 말이지. 그럼.」 「변명하고 싶지 않아. 공부하기 싫어서 꾀부리는 애들처럼 일하기 싫은 심정을 커트 너한테 이처럼 속절없이 들켜버리니 더없이 뜨끔한데. 하지만 난 진짜 시원섭섭해. 오히려 기쁘다구.」 「좋았어! 루돌프 주인공이 되다 같은 동화책 제목은 잊어버리고. 자, 친구! 오늘은 뭐하고 놀까?」 나는 기분이 나빴다. 왜냐하면 기분이 나빴으니까. 하긴 내가 생각해도 말도 안되는 소리처럼 들렸을 것 같다.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봐도 커트의 허풍을 내가 순진하게 다 믿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나는 지조없이 이름을 또 바꾸고 싶은 간절한 욕망을 조심스럽게 다스렸다. 그 대신에 나는 낸시에게 고백하기로 했다. 사랑 고백이 아니라 SF 고백을. 더구나 저 액자 뒤에서는 계속 내게 천상의 꽃향기, 페퍼민트-레몬그라스-유칼립투스, 상쾌한 스피어민트 내음으로 내게 뭔가 말을 건네는 것만 같았다. 향기는 정말 변화무쌍했다. 고급스런 바닐라향, 머스크향, 텐져린, 베르가못, 핑크베리, 네롤리, 체다우드, 로즈, 베티버, 화이트머스크, 시나몬, 바이올렛, 초록사과, 모로칸자스민, 불라리안로즈, 라이트재라늄, 샌달우드, 나르시스...... 보도 듣도 못했던 천상의 향기처럼 느껴졌다. 이건 정말 동네 아저씨의 영웅담도 허세남의 믿지 못할 뻥도, 소문난 말괄량이가 들려주는 어젯밤 이야기도 아니었다. 낸시와 나는 만났고 얘기를 나눴다. 낸시는 상담 후 진단을 고민하다가 처방을 말해주었다. 「만약 네 말이 사실이라면 믿기는 힘들지만 둘 중 하나는 가능하다고 봐. SF라는 게 원래 그렇잖니. 그 장르를 구분하면 두 가지야. 첫째 뭔가 잘하면 있을 법한 일, 둘째 아예 가망 없는 일. 첫째는 가능성이 있고, 둘째는 없어. 둘째는 말이야 아예 만화영화처럼 현실적으로 따졌을 때 말도 안되는 이야기라고. 응? 커트는 뭐라는데? 걔는 아마 그랬을 걸. SF는 꿈도 꾸지 말라고!」 「맙소사! 어떻게 알았어?」 「어떻게 알긴 뭘 어떻게 알아? 커트는 원래 그런 친구니까 그렇지. 아 나 얘 아직도 동심으로 가득차서 꿈으로 사랑을 하며 설레이는 마음으로 세상을 살려 그러네. 왜 그래 너? 어른은 진심만으로 사람을 만나면 안된다는 거, 모를 나이는 지나지 않았니? 어떻게 열정만으로 저기까지 뛰어갈 생각만 하니? 내가 생각하는 사랑대로만 사랑할 수 없다는 걸 왜 몰라!」 「그럼 난 이제 어떻게 할까?」 「넌 이제 어떻게 하냐니! 내가 늬 엄마니? 너 이제 어린이가 다 됐구나. 지금 내게 의지하는 거니? 일단 이건 내가 봤을 때 뭔가 잘하면 있을 법한 곧 말이 되는 SF야. 전혀 황당한 SF가 아니라. 알겠니? 따라서 내 추론이 맞다면 늬 말마따나 대리석과 액자 뒤 통로가 동시에 발생하지는 않아. 왜? 왜냐면 그건 만화영화 같은 일이니까. 사랑은 무턱대고 내 모든 걸 다 주는 게 아닌 것처럼. 그건 주제가 다르니까 왈가왈부하니는 말자고. 불행한 사랑은 청춘의 절망을 이겨내야 하는 오뚜기 같은 것. 지금 이건 말이야 미스테리는 미스테리인데, 문제는 미스테리의 망신이라는 것! (딱) 응? 그렇다고. 원맨쇼는 TV에나 나오는 거고, 현실에서 어떻게 대리석 허벅지와 액자 뒤 비밀 통로를 둘 다? 그건 말이 안 돼. 만약 그렇다면 우린 졸지에 외계인이 되는 거지. 그럼. 너의 그 신비감에 끌리는 본능은 잘 알겠는데 섣불리 환상을 믿지 말고 이성적으로, 어른스럽게, 이제야말로 추리력과 탐구심을 발휘해야 하는 시기란 걸 명심해. 응? 천사들의 합창은 다음에! 요정의 사랑을 노래하고 싶다고? 청혼을 거절 당하는 일은 나중으로 미루자. 그리고 내가 시키는 대로 해. 쾌활한 인생이니 눈물 젖은 일기장이니 그런 멜로드라마는 이제 그만 잊으라고. 정말 그럴 때도 됐자나. 그러니까 그렇게 겁 먹을 거 없어. 응? 이렇게 딱 액자 뒤를 보면... 액자 뒤를... 그게...」 낸시는 액자를 들어서 내려놓은 다음 액자 뒤에 있는 통로를 보고서 소파에 잠깐 앉아서 실신했다. 그렇다 액자 뒤에 통로가 있었다. 낸시가 깨어난 다음 우리는 그곳으로 들어가봤다. 그러나 멀리 가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그곳은 통상적인 배관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내 사무실로 돌아왔고 다시 액자를 걸어뒀다. 「그럼 이제 어떡하지?」 「어떡하긴 뭘 어떡해! 취직해. 그 카페에. 아님 평범한 손님인 척 가장하며 단골이 되라고. 너처럼 깜짝 출연하는 사람이 또 있을지 모르니까 말이야. 어쩌면 늬가 처음일 수도 있는데 아마도 마지막이 아닐지도 모르니까. 그래. 넌 그냥 대타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는 거라고.」 나는 낸시와 헤어진 다음 그 카페로 갔다. 도착했다. 그런데 카페 내부에는 내가 뚜껑을 열고 나왔던 그런 뚜껑처럼 보이는 장치는 바닥 어디에도 없었다. 뭐지, 이건 대체 뭐야! 것 참 이상하네. 내가 말이야 그래도 자칭 세상에 둘도 없는 선동가씩이나 되는데... 나는 완전 골탕 먹은 느낌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이거 이거 보통 일이 아닌 듯 했다. 그래서 나는 단단히 마음 먹고 다음 변화를 관망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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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믿기를 좋아한다. 바꾸어 말하면 사람은 믿고 싶어 하는 습성을 타고난 것이다. 달리 해석할 수도 있다. 그건 처음부터 믿고 끝까지 믿고 싶다, 속기 싫다 라는 뜻일 수도 있다. 만약 속더라도 가짜를 믿은 대가 즉 그 거짓 환상, 그리고 속고 난 다음의 실망 그 둘을 견주었을 때 무언가 극적이기를 바라는 것 아닐까? 적어도 전자와 후자의 등호보다 확실한 승패를 좀 더 선호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전자만 존재하는 세상이 아니라면! 그러니까 우리는 전자와 후자가 엇비슷하거나 애매하면 재미없어한다. 무승부? 하품 나온다. 경기장에서 아유하는 관중이, 연주회에서 인상 쓰는 관객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그걸 다 알기 때문에 미리 심심해하며 오늘도 TV를 켰다 끄고 내일도 핸드폰을 귀찮게 할 것이다. 적어도 친구와 수다를 나누며 우정을 확인하거나 사랑이든 공이든 뭔가 어떤 목적을 향해서 나아가고 달려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극장에서 남자친구에게 팝콘을 사오라고 시켰더니 진짜로 달랑 팝콘만 사오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속고 난 다음의 실망' 그 후자라는 반전이 더더욱 감동적이면 우리는 흥분하며, 해피엔딩이면 살짝(?) 놀라워한다. 때문에 여자의 호기심은 영화의 어떤 장르를 좋아한다. 젊은이 뿐만 아니라 드물게 고상한 노인께서도 추리소설을 읽으신다. 그러므로 사회는 서로 관측하고 속셈을 살피며 속마음을 추측하는 눈치와 빈말과 가식의 기술은 발달할 수 밖에 없고, 따라서 결국 사람의 생각은 이기적일 수 밖에 없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환희만 믿겠다, 밝은 기쁨과 짜릿한 쾌락과 찬란한 열락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나는 속기 싫다, 그러나! 다만 너는 나를 믿어야 하고, 나는 너를 의도치 않게 속일 수도 있다 라는 세상사의 이치를 우리는 깨우치게 된다. 어떤 어른은 내가 언제? 그럴지도 모르지만! 세상사의 이치? 그건 뭐 대단히 어려운 법칙도 썩 심오한 철학도 아니다. 믿음과 속음이 내게 유리하면 좋고 내게 불리하면 싫다 나쁘다, 바로 그것이다. 사랑의 맹세조차 영원하기는 힘들다. 하물며 모순은 빈번하고 내게 유리한 믿음과 속음에 대한 기준 역시 알프스 산맥의 북쪽과 남쪽은 약간의 차이가 있다. 인생에 대해서 위험 회피냐 즐거운 모험이냐 라는 관점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든 어쩌든 헛똑똑한 어른들은 매번 속는다. 몰상식을 꺼려하지만 비이성적이고, 비윤리를 타도하기를 원하지만 속절없이 최소한 소비에 대해서 비합리적이기 일쑤다. 믿는 건 본능이지만 믿는 것은 물론이요 속고 속이는 것도, 믿거나 말거나, 봐도 그만 안 봐도 그만, 심지어 무관심까지 모두 함께 인생이니까. 사람이란 동물은 원래 그런 거니까. 게다가 속인 자에게 온전히 책임을 지우기도 힘들고, 속은 자는 만인에게 사랑을 받아야 한다는 법도 없다. 속아도 알면서 속기도 하고, 처음부터 날 절묘하게 속여주라는 주문이 가능한 분야도 있다. 광고 속 카피라이트를 보라. 아빠의 잔소리와 할머니의 진언, 다 같은 말이다. 물론 <아무도 믿지 마!>가 있으면 <묻지 마>도 있고 <엄마한테 말하지 마>도 있다. 더군다나 속고 속이는 인생 그게 꼭 나쁜 것만도 아니다. 인간은 뻥도 좀 치고 허세도 적당히 허영심도 약간은 있어야 재밌고 너와 나의 미덕이 통한다. 그런데 미래에는 농담과 거짓말을 로보트가 밥 먹듯이 한다면, 그 녀석이 나보다 말발이 훨씬 뛰어나다면 장점도 있겠지만... 아 (설레설레)! 단지 장난스런 말과 행동 역시 너와 나 그 기준은 불명확하기 마련이다. 이를 테면 거짓 환상이라는 전자는 요컨대 사랑이고, 속고 난 다음의 실망이라는 후자는 다른 게 아니라 변심인 것이다. 변덕의 대명사가 무엇인가는 논하지 말기로 하자. 악마가 새로움을 좋아하듯이 천사는 아마도 변화에 약하지 않을까? 그나저나 시간은 늬 편 내 편이 없다. 조금은 핑계 같지만 그런 세상에서 살다보니 나는 엄살이 늘었고 넉살마저 발전했다. 어느새 응석과 더불어 얕고 옅게 재간만 키우는 익살꾼이 되어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이타적이기 어려운 세상에서 나라는 이기주의자는 어느 날 어떤 거짓말 같은 일을 믿게 됐다. 그것은 무엇이냐! 지금 내가 사는 세상에서 전 세상으로 돌아갈 수 없다면, 돌아갈 필요가 없을 만큼 판에 박은 듯이 똑같다면, 단지 하반신이 대리석이라는 점만 빼놓고, 내 사무실로 배달된 승마머신을 진짜 말로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신뢰감을 굳건히 품게 된 것이다. 물론 이런 내 공상 같은 꿈을 누군가 듣는다면 차라리 놀이공원의 회전목마가 말떼로 바뀌는 걸 바라겠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분은 그분이고 나는 나니까 나는 소신 있게 내 꿈을 믿기로 했다. 그럼. 내가 내 꿈을 믿어야지 남의 꿈을 믿겠나! 그런데 어떻게? 시작부터 일이 잘 풀리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일단 이 일은 유보했다. 그 다음에 나는 사무실에서 일을 할 만큼 하고 나서 쉬기로 했다. 나는 소파에 거만하게 벌렁 누웠고 TV를 켰다. TV에서는 최신 드라마가 재방송으로 나오고 있었다. 나는 가만히 지켜봤다. 그런데 뭐야 이건! 그 드라마의 내용은 바로 내 이야기와 비슷했다. 다른 점이라면 남의 카페를 인수한 사장이 장사도 잘 되지 않고 해서 이리저리 카페 내부를 살피다가 액자 뒤의 비밀 통로를 발견해서 미래의 자기 사무실 바닥 카페트 밑 비밀 문으로 나온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거기서는 한쪽 다리와 한쪽 팔만 대리석으로 변했고, 즉 신체의 절반은 인조인간으로 대체된다는 내용이었다. 물론 드라마는 등장 인물도 많고 사건과 달콤한 로맨스와 시간 여행 미스테리까지 포함된 명작이었다. 시청률도 기록적이었고, 장안에 모르는 사람 하나 없이 파죽의 인기를 끌고 있었다. 그런데 난 이제 알게 된 거지. 다리만 대리석 허벅지면 뭐하냐고! 이건 꼭 그런 농담인 듯 느껴졌다. 키 빼고 다 가진 남자! 참고로, 다비드의 출신을 또 걸고 넘어질 수는 없으니까. 그럼 뭐야, 내 쪽은 등장하는 청춘남녀도 그만그만하고, 재미도 교훈도 감동도 뭐 하나 볼 게 없다? 나는 어떻게 급한 데로 기획의도를 만들고 사무실 벽면에다 인물 관계도랍시고 포스트잇을 덕지덕지 붙이고 막 그래야 하나 라면서 고민 되기 시작했다. 색감으로 치자면 내쪽은 뿌연 회색에 우중충한 흑갈색과 고독한 검정. 저쪽은 부드러운 연분홍색, 고혹적인 청보라빛에다 진지한 파랑과 경쾌한 다홍빛으로도 모자라 오색찬란한 파스텔톤? 이런, 젠장! 아니 어떻게 이럴 수가! 누가 이런 일을 상상이나 했을까? 했겠지 해도 진작 했겠지. 나만 허구한 날 극도의 희망을 품으며 뭐든지 묘한 상쾌함에 짜릿해했지만 알고 보면 기대는 상심이었고 예감은 꽝이었다. 항상 그랬다. 공상만 쉬지 않았다 뿐이지 현실은 매번 생각보다는 대단치 않았던 것이다. 와, 드라마의 주인공은 신비한 첫인상에 흔치 않은 행운에 종횡무진 맹활약! 이쪽은 대리석 허벅지는 통 쓸 데가 없고, 어떻게 하면 승마머신을 대리석으로 아니 진짜 말로 바꿀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허황된 몽상이나 하고 있으니... 쯧쯧쯧! TV 드라마는 벌집을 쑤셔 놓은 거나 다름없었다.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 텐데. 아니다. 내가 누군가. 이럴 땐 그렇게 말하면 되는 거다. 역전승을 위한 상은 다 차려진 거나 마찬가지니 이제 숟가락을 올리는 일만 남았다고! 나는 어쩔 수 없이 구구한 사연, 구차한 변명, 변변찮은 말솜씨는 물론 들끓는 질투심을 안고서 미스테리아로 향했다. 그러고 보니 나도 나다. 매번 나는 아쉬우면 마라를 찾았다. 그렇지만 정치적 빌미든 어설픈 명분이든 친구 좋다는 게 뭔가. 게다가 이름하여 환상 문학 잡지 미스테리아 아닌가. 그런데! 미스테리아 사무실은 굳게 닫혀 있었다. 좋은 징조다. 마라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얘가 남의 이목을 신경 쓰나, 혹시 날 피하는 건가. 난 그냥 잠깐의 기분으로 이렇게 결론 냈다. 마라가 나를 싫어하나 봐! 라고. 그렇다고 오랫만에 바텐더와 재회할 수도 없었다. 속된 말로 깽판, 점잖은 말로 소심한 오해랄지 작은 실수가 있었기 때문에 당분간 피해가야 할 술집이 생긴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남자는 아니었다. 이건 단지 슬럼프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이번 호 미스테리아를 읽지 않은 사실을 떠올렸고, 격월간 이번 부 미스테리아를 사가지고 집으로 갔다. 나는 집에 도착해서 미스테리아를 읽으면서 알게 됐다. 사무실에서 봤던 TV 드라마의 원작이 미스테리아에 동시 연재되고 있다는 것을.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었다. 그래서 난 이렇게 느꼈다. SF는 무슨, 대리석 다리는 대리석 다리고, 중요 부위만 대리석이 아니면 천만 다행이자 나는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라고! 그렇지만 잠시 후 익살꾼에 능청꾸러기, 잠꾸러기 혼자 갖다 붙인 별명도 많은 데다 어째 거짓말이란 진실을 스스로 숨길 수 없어서 잠깐 불편했다.
6 재미없는 오락은 꽃이 피지 않는 과일인 무화과고, 팔리지 않는 상업은 외로운 꽃이자 영양가는 듬뿍 함유되어 있을지언정 좀처럼 탐스럽지 않은 과일이다. 그러므로 자극적인 놀이와 즐거운 유희와 심심하지 않은 오락만 내내 끼고 살았더니? 촌스러움에 물들고 인스턴스 식품에 찌들며 세파에 시달려 어쩌면 행복하지 못한 체 늙어갈 것이다. 아닐 수도 있고. 왜냐하면 대체로 인생은 허상이고 인기는 대게 허당기 같은 모래성처럼 부질없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게 어디겠냐마는. 그런 삶은 아 글쎄 환상은 남의 것, 행복은 허영, 신비는 허망, 어복은 말짱 꽝이더라 라고 할 수 있다. 그와 같은 진리는 바로 심심치 않게 들리는 소문이고 늘상 만나는 푸념이자 유익할 듯 무정한 훈계다. 그래서 어른들은 다정할 듯 하나 무익한 시간 보내기의 가치를 상승시키기 위해 오늘도 분주하다. TV 채널은 너무도 많고, NC는 고집스럽게 사람 가려서 받으며, 쇼핑도 오락도 예술마저 서로 날 선택하라고 난리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나부끼는 허당주의보를 안내삼아 오늘도 술집을 들릴 것인가 말 것인가 고민하는 삶을 산다. 어망은 비었고 약속은 없으며 (있어도 시시하고) 야망은 이미 옛날에 저 멀리 날 떠났으니까. 그래서 나는 어렵게 결심해서 읽기 시작한 SF 소설이나 마저 읽기로 했다. 나는 SF 소설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었다. 와! 처음으로 읽는 SF 소설을 완독했더니, 하기야 난 여태 첫키스도 못해봤으니 뭐 그럴 수도 있는 일이라고 여겼다. 그래도 아무리 생각해도 신기한 경험이었다. 아니 SF 소설이 이렇게 재미있다는 걸 예전엔 왜 미처 몰랐을까? 난 깜짝 놀라고 말았다. 여기까지의 이야기는 그럼? 그렇다. 내가 읽은 소설은 SF였고, 내 다리는 아직 대리석이었다. 굳이 허벅지를 바늘로 찔러볼 필요도 없었다. 그걸 왜? 누가 아니래? 더군다나 SF 소설은 하나도 재미없었다. 억지로 읽었다. 실은 다 읽지 못했다. 완독했고 감명 깊었다는 말은 뻥이다. 거짓말이란 말이다. 사실은 읽다 말았다. 대충 넘겨봤다. 그럼 그렇지. 이처럼 내 삶은 알라딘의 요술 램프가 아니라 그냥 보통 램프였다. 꼬리를 흔들 때가 있으면 꼬리를 감출 때도 있는 법이니 뭐 괜찮은 일이다. 아니! 차라리 잘됐다. 이참에 나는 무정한 아티스트병은 말끔히 치료되었다는 느낌에 사로잡혔다. 그래서 나는 다시 기분이 좋아졌다. 야호~! 그런 다음 나는 마땅히 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뭘 할까 생각하다가 서점에 가기로 했다. 나는 서점에 도착했다. 서점을 구경하다가 내가 읽은 SF 책이 보이길래 펼쳐봤다. 그런데 내가 읽은 내용이 아니었다. 그럼 난 대체 뭘 읽은 거지? 라면서 나는 다른 SF 소설들을 구경했다. 그러다 그 장르에는 어울리지 않는 <새로운 인생>이라는 제목의 책을 들고서 읽어봤다. 뭐시여, 그런데! 첫 페이지부터 나의 온 감각과 마술 같은 주의력을 사로잡았고, 거짓말 같은 몰입감을 선사했다. 그런 흡입력은 여태 보도 듣도 못했다. 난 도저히 빠져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예전에 어떤 추리소설을 읽으면서 1페이지와 2페이지를 사진 찍어서 소셜 네트워크에 두 장의 사진으로 올린 것처럼 나는 그 서두를 감성으로 숙독하여 이성에게 고지했다. 그 첫 페이지를 나는 대충 외워버렸다. 내가 숙지한 내용을 옮기자면 이와 같다. 제목: 새로운 인생 내용: 나는 첫눈을 좋아했고 낭만을 동경했다. 그러나 이제는 알고 있다. 그건 다름 아니라 첫날밤에 대한 욕망과 사랑이 고조되는 희망에 대한 기다림의 즐거움이란 것을. 춤추고 노래하며 웃고 떠들어도 기쁨과 재미는 내 곁에 머물 듯 머물 듯, 안길 뻔 하다가 스쳐지나갈 뿐이다. 마치 비논리적인 추측과는 달리 교묘하게 불행을 피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예언처럼. 그게 인생이니까. 사랑을 기대하고 행복을 예감하는 그 기분과 분위기가 절정이다. 나머지는 다 발단이고. 게다가 전개는 속임수다. 심지어 결말은 심심함 아니면 허무함만 남겨놓는 뻔한 책략이다. 그렇지 않은 생각은 잡념이고 말은 뻥이며 행동은 성과를 향한 집념이다. 그래서 우리는 절망을 따돌리고 체념을 조심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의 화신인 쾌락은 (우리를?) 날 가만놔두질 않는다. 더군다나 광고는 유혹하고 꿈은 변덕쟁이다. 나아가 사랑은 좀처럼 믿기 힘들고 이상은 더 믿기 힘들다. 영화도 재미없고 책은 대체로 읽어도 소용없다. 새로움을 탐색하는 데 지쳤고 추측은 어느새 지겨워졌다. 내게 남은 갈망이란 그런 것 뿐이다. 가령 일기장에 적고 싶은 그런 일들. 웬 낯선 풍문이 느닷없이 불어와서 지나가는 숙녀의 치맛자락을 들추면 부끄럽다는 듯이 손으로 눈을 가린 체 볼까 말까. (대놓고 보기에는 왠지 미안하니까?) 귀여운 강아지를 보며 기겁하는 어린이를 보면서 천진한 웃음을 꾹 참기. TV 드라마에 나오는 고양이라면 치를 떠는 아가씨와 자신을 비교하며 스스로 대견해하기. 나는 그처럼 젊었고 세상과 인생과 사랑을 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청춘은 멀어져가며 사랑은 부질없더라? 아니다. 나에게는 칼럼니스트라는 어엿한 직업이 있고, 숨겨놓은 환상머신이란 믿는 구석이 있으며, 지금 이렇게 장편소설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다음 목표는 SF다. 뜻대로 될지는 모르겠지만. ......여기가지가 첫 도입부였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 책의 저자는 나였다. 아니 이럴 수가! 난 그것도 모르고. 순간 옆에서 서점 직원의 투덜거림이 조용조용히 들려왔다. 아마도 그 책은 곧 밀려날 거라는 불길한 예고에 가까운 혼잣말처럼 들렸던 것이다. 게다가 장르도 허접한 방황기에 가까운 드라마인데 작가와 출판사가 억지로 우겨서 SF 쪽으로 잘못 분류되어 있다는 눈치였다. 하긴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 되나! 그러든 어쩌든, 내 다리는 아직 대리석. 나는 허당. 하지만 무작정 사랑에 굶주린 늑대로 돌변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상큼한 숙녀를 만난다면 분위기 잡고 읊을 명대사도 미리 다 준비되어 있었다. 그건 뭐 나의 그 국가대표 상비군의 지위 같은, 필수품에 해당하는 준비력이니까. 아니 신들린 애드립이라고 해야 할까? 우웩! 하여간 그건 바로 이런 대사였다. 「허영심의 논리는 선망에 대한 기쁨이자 아름다움이죠!」 꺄악~! 오그라들지 않을 수가 없네 그래. 아무튼 나는 승마머신을 진짜 말로 바꿀 궁리에나 매진하기로 했다. 그리고 할 일이 그랬다면 나의 할 말은 이랬다. 나는 어제를 조망했고 현재를 탐지했으며 다가오는 내일을 유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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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석 다리로 사는 삶, 아아 바로 이런 것이구나! 나는 이대로 침체된 생활에 안주할 수는 없었다. 때문에 뭔가 색다른 변화와 상쾌한 새로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웨건을 버전만 새 것으로 바꿀까? 그리고 그 점박이 이름이 뭐드라 달마시안, 맞나? 그 큰 개를 막 태우고 다니면서 공원의 여자들을 꼬실까? 그러나 아무에게나 추근덕거릴 수도 없고 쓸데없는 염문에 엮여서도 안되니까 전혀 다른 분야의 사람들과 어울려볼까? 그렇지만 잘 적응한다고 할지라도 운동도 같이 하고, 사우나를 가던 연애를 하던지 내 하체를 보여줄 기회가 분명코 있을 텐데...! 내내 피하면 의심이 증폭될 테고! 그러다 대리석 허벅지를 들키면 추방? 외면? 따돌림? 신비롭고 몽환적인 분위기와 재밌는 기분에 좋은 환경과 기쁘고 품위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당분간 혼자 놀 수 밖에 없는 상황이란 걸 직감했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멀리 여행을 갈 수도 없고, 얼굴에 화장을 할 수도 테니스를 배울 수도 없다. 그러므로 나는 기분 전환을 위해 동물원에 구경 갔다 오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나는 집을 나섰다. 아, 맞다. 집이 아니라 사무실을 나섰다. 그런데 사무실에서 나오자마자 웬 조랑말이 건너편에 있었다. 얘는 날 반기는 게 아니라 봄을 기다리나. 주인은 어디 가고. 혹시 얘가 다른 대리석 허벅지 인간의 주인인가? 그런 상상은 무익하고 숨겨진 내막을 괜히 들추며 소풍 분위기를 교란시키기 때문에 나는 냉큼 동물원으로 출발했다. 거기 가면 당나귀가 문젠가. 귀가 큰 동물들은 물론이요 온갖 동물을 다 볼 수 있는데. 게다가 근처 호수 공원에 가면 혹시 외로운 아가씨가 혼자서 한껏 멋을 내고 외롭게 걷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 그리고, 사무실 앞의 그 조랑말은 하체가 정상이었다. 맞다. 동물원의 동물들도 혹시... 에이 아닐 꺼야. 설마! 나는 동물원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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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에 도착하여 구경한 내용은 건너뛰겠다. 별다른 일은 없었으니까. 아, 있었다. 동물원의 동물들도 모두 하체가 대리석이었다. 코끼리의 허벅지도 대리석, 사슴도 치타도 늑대마저 모두 하체가 대리석이었다. 나는 당연히 투덜거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무슨 SF가 이래 그러면서. 그런데, 맙소사! 나는 깨달았다. 내 사무실 앞에서 만났던 조랑말인지 당나귀인지 그 녀석! 난 느꼈다. 비장의 카드는 녀석이 쥐고 있다는 것을. 그게 설령 원페어도 못되는 7번 다이아몬드일지 아니면 Q 투페어일지라도. 난, 이걸, 절대로, 놓치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놀라운 깨우침은 또 하나 있었다. 나의 대리석 허벅지는 혹시 동물의 사고 체계와 비슷하기 때문에? 즉 동물과 생각 및 행동이 비슷한 사람들만 다리가 대리석으로 변하는 현상은 아닐까란 궁금증은 막 날 애태우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그 조랑말이 어쩌면 이 모든 일의 전개는 기본이고 화사한 절정까지 날 데려다 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여담이지만, 원래 인생이란 게 그런 거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모든 물의와 사안, 유혹하는 듯한 눈웃음과 꼬리를 흔드는 듯한 뒷모습에 대한 잔상까지 사람들은 모두 모름지기 모든 일을 나 좋을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내게 유리한 해석, 내가 좋아하는 관점, 내가 최근 하고 싶었던 욕구와 마다할 수 없는 취향과 욕망, 나의 습관적인 축원과 소망이 모두 작용한 다음에 세상의 정보를 내 마음대로 판단하는 것이다. 그래서 기분이 중요하고 분위기를 따지며 제 발로 굴러가는 호박은 매번 그 영험한 경로가 딱 정해져 있는 것이다. 그 사랑의 봄바람마저 부익부빈익빈이기 때문에 세상사는 괜히 시끌시끌할 수도 있는 거고. 당시는 안 그랬을지라도 사람 생각과 기분이 들어갈 때 나올 때가 다르기 때문에 사랑과 변심과 추문의 기준과 표준마저 결코 고정적이지 않다. 기대했던 복싱계의 유망주가 챔피언 근처에도 못 가고 순위전 경기가 암담하다고 판단했을 때 코치는 새하얀 수건을 링 위에 던진다. 왜? 야 심판! 아니 심판님아 경기 그만합시다 라는 의미로. 양치기 소년이란 동화의 뒤를 이어 개 중에서 가장 영리하다는 개 양치기견, 다시 이어가면 양치기견이 모는 양, 그 양들의 털을 깎아서 만든 면 제품 가운데 대표적으로 무엇이 있냐? 바로 팬티가 있다. 그건 또 어쩌다 무대 위로 던져진다. 바로 그거다. 난 지금 사무실 앞에서 만났던 당나귀를 수건인지 팬티인지 아니면 무도회 초청장인지로 판단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 당나귀는 하체가 정상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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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무실 앞에 도착했다. 다행히도 그 조랑말은 그대로 날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 이 일이 세상에서 제일 바보 같은 짓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 특별한 기쁨을 말로 표출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바로 이렇게. 「존귀하신 당나귀님이여, 그대를 뵙게 되어 무한한 영광입니다!」 그런데 조랑말이 알고보니 고삐가 풀려 있었다. 그러다 조랑말이 움직였다. 계속 움직였다. 어딘가로 이동했다. 나는 따라갔다. 결국 조랑말은 동네를 몇 바퀴 돌다가 이윽고 원점에 도착했다. 그러니까 제자리? 이런 젠장! 그럴꺼면 뭐하러 동네를 빙빙 돌아. 뭐 몸 풀러? 뭘 하기 위해서 몸을 풀어, 설마! 하기야 당나귀도 당나귀만의 사정이 있는 거니까 나는 폭넓게 이해심을 발휘했다. 이럴 때 드넓은 아량을 자랑하지 언제 하겠나. 해묵은 대망과 낡은 포부는 이미 쿨쿨 겨울잠을 자고 계시는데 말이다. 그건 그렇고 나는 조랑말의 행동에 의미 부여를 하고 있었다. 조랑말이 있는 위치의 건물. 그건 2층 건물. 그곳에 입주되어 사람이 이용하는 사무실은 딱 하나. 이름하여 머머 철학관! (딱) 이거다. 이거라고. 이거라니까. 응? 이거야! 나는 도사를 만나 담판을 짓던 싸우던 어쩌던 결판을 내기로 했다. 아 잠깐. 내가 약간 혼동되어 그러는데 혹시 조랑말과 당나귀가 다르던가? 마치 치타와 표범처럼! 「나를 만나러 왔나? (뭐야 내가 만만해 보이나, 왜 대뜸 반말이야?) 자네, 왠지 그럴 것 같았네. 그대 같은 위인이 아니면 달리 찾아올 손님이 없었거든. 다 알고 있었어. 기다리고 있었는데 기대했던 대로...(헛기침)..., 음, 넘어가자고! 설마 내게 키스하러 온 건 아닐 테고. 무슨 일로 왔나? 돌팔이가 아닌 이상 당신이 딱 보고 알아봐야지, 아마추어도 아니고 뭘 그런 걸 새삼스럽게 물어봅니까 라고 생각하고 있군. (뭐야, 어떻게 알았어!) 허허허. 허허허허허. 이 양반이 내가 웃는다고 자네도 쪼개면, 어... 아 선생께서는 차분해야 내가 미래를 보는 데 도움이 된다 이 말이요. 음 아무튼 관상을 보아하니 방탕과 퇴폐의 옹호자는 아닌 듯 하구만. 그리고 짙은 화장과 천연덕스런 애교를 싫어하지는 않아. 옅은 화장이 특기인 청순한 숙녀의 홍조를 특히 좋아하고. 젊은이, 맞지? 저 봐. 벌써 입이 귀에 걸리기 직전이군. 좋아하기는. 어떻게, 응? 우리가 친구가 될 수 있을까? 내가 자네의 미래를 예언하면 심지어 그게 적중한다면 우리 함께 거동해야 하지 않냔 말일세. 아마도 그땐 바 보다는 클럽이 좋겠지? 내가 자네에게 요술 수정 구술 같은 말로써 내일을 보여준다면 자네는 내게 뭘 해 줄 텐가 이 말일세! 뭐 당장 답하란 말은 아니야. 차차 생각해 보시게. 응? 허허허. 가만 있자. 입구에서 제지 당하면 쪽팔리니... 아니 망신이니까 난 그때까지 젊음의 부활을 꿈꿔야겠군. 좌우지간 나는 어떤 기막힌 환생을 선물할 수는 없어. 별들의 속삭임과 바람의 그리움, 회상의 향기로 판단하건대 그런 말은 해줄 수 있지. 누구를 만나라, 뭘 하지 마라, 그건 사도 된다, 팔랑대는 귀를 주의해라 같은 말. 응? 그런데 보통 사람 같으면 엉덩이가 근질근질한지 사람이 정적이고 내성적인지 한눈에 보이는 법인데, 뭐야, 자넨 뭔가 이상한데. 그게 대체 왜 그러지...? 난 말야 모른 건 모른다고 말해. 괜히 아는 척 하지 않아. 내가 뭐 초딩인가? 내가 모르는 건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거거든. 그만큼의 충분한 사유가 커다랗게 있다구. 그렇다고 형씨의 정체성이 의심된다 그런 말은 아니고. 그 뭐랄까, 혹시 자네 허벅지는 뭐 대리석 그런 건가? 정말 있어 그런 사람. 새는 하늘을 날고 물고기는 물에 살지만 가끔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는 물건들이 꼭 있다고. 양서류도 있고 양서류 말고 또 무슨 류가 있지? 그게 그러니까 발뺌도 아니고 오리발도 아니고, 양다리야 뭐야. 응? 하마를 봐봐! 육지 호흡과 물 속 호흡이 다 된다고. 그건 뭐 연필도 되고 볼펜도 되는 투투펜이야 양면 점퍼야? 그게 뭐야, 헛 참 나! 어, 자네 그런데 그 옷 어디서 샀나? 핑크 팬더야 뭐야! 푸하하하. 무슨 펭귄도 아니고 대책 없는 분홍색이라니. 주책이야 정말. 하지만 괜찮아. 그럴 수 있어. 그래도 돼. 아니 어쩌면 우리는 좀 더 그래야만 하지! 내가 이래봬도 왕년엔 아동문학자였다고. 어디 글만? 동요도 작곡하고 동화에다 삽화도 그렸어. 아 그런데 대체 왜 자네는 내게 운수 보는 조건에 대해서 말하지 않나? (언제 말 할 기회를 줬어야지!) 내 운수 비싸 이 사람아. 응? 장난이 아니라 진짜로 많이 비싸다고. 내가 누군 줄 알아? 내가 바로 역대 잠룡들을 자리에 앉혔던 사람이라고. 응? 이 양반이 사람을 뭘로 보고 말이야. 사람은 절대 겉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 돼. 알겠나? 나의 소크라테스론을 읊어줘 말어? 점쟁이의 수다라고 절대 흘려듣지 말게나. 왜냐하면 점쟁이도 점쟁이 나름이니까. 내가 내 입으로 날 칭찬하니 좀 뭐하지만 은둔 생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는 자랑이라고. 나 같이 위대한 역술가를 어디 만나기 쉬운 줄 알아? ......」 아 나 이 양반 참 말 많네! 나는 그분의 열변 때문에 한마디도 하지 못한 채 얘기를 듣기만 하다가 쫓겨났다. 미래에 대한 예언인지 뭔지는 겨우 듣고서 내 발로 걸어나온 것이다. 복비도 많이 받더라. 장난 아니게. 그런데 그분께 들은 말 가운데 딱 하나 기억에 남는 게 있었다. 그 역술가가 대리석 다리를 아는지 모르는지 뭔가 낌새는 파악한 듯 했다. 눈치 하나는 기가 막히더군. 그러므로 그분은 뭔가 묘하고 애매한 파장을 남기는 듯한 덕담을 남겼다. 그건 뭔고 하니 현재 인기 리에 방송 중인 어느 드라마를 지켜보라나 뭐라나. 그 드라마의 주인공이 교체되기를 기다리라는 웬 의문의 메아리는 한동안 내 귓전을 떠나지 않았다. 쓸데없는 내용 일색이었지만 그래도 어르신의 인생 상담을 내가 귓등으로 듣지는 않았나 보다. 뭐야! 그러니까 결국 성과는 전무했다. 당나귀의 뒤를 밟을 때 느꼈던 유쾌한 궁금증과 새로운 기분은 모두 애인의 변심과 꿈의 변덕 같은 일로 결론 나고 말았던 것이다. 어쩐지 아주 잠깐 가차없이 황홀하다 했다. 그럼 그렇지.
10 필명으로 맞이하는 첫 번째 봄. 어젯밤에 어색한 기쁨을 꿈꿈. 기억나지 않는 춘몽은 냉큼 잊어버리기. 그리고 뭔가 흥미로운 일이 날, 막 나를 불현듯 재밌는 모험으로 이끌 것이란 수줍은 기대는 사양하기. 어설픈 뻔트는 적극적으로 마다하기. 그러는 가운데 나는 천사를 믿고 악마와의 마지막 춤은 잊었다. 사랑의 환상을 기억했고 오늘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말을 외웠다. 어쨌든 봄바람은 춥고 봄비는 차가울 뿐이다. 어김없이 늦잠을 잔 날은 낮술을 먹는다. 아니다. 꼭 그렇진 않다. 정말 그렇다고 하는 말과 글들은 다 뻥이거나 과장이다. 확실하다. 안 봐도 뻔하다. 그러든 어쩌든 인생은 허상이고 우상은 개구쟁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내일 모레 곧 우주여행을 떠날 테지만 그 언제까지라도 지구인은 달에 가지 않았다는 말도 안되는 머머설에 내내 혹할 것이기 때문이다. 단지 몇몇 속없는 철부지와 철없는 어른들은 말이다. 그처럼 나는 오늘도 낙서장에 몇 년 뭐뭐 몇 년 뭐뭐 라고 쓸려다가 말았다. 딱히 재미난 일이 없었으니까. 한편 나는 점쟁이의 조언대로 어느 TV 드라마를 내내 관심을 갖고 지켜봤다. 그러다 어느 날 여주인공이 교체된다는 뉴스를 보게 됐다. 그러나 나의 대리석 다리는 그대로였다. 이건 또 뭐야? 적지 않게 냈던 복비만 날린 건가? 그래서 나는 주인공의 다리가 기괴하게 변하는 SF 작품을 찾고 또 찾는 작업에 이르렀다. 그 일에 꽤나 오래 매달렸다. 그렇게 해서 나는 약 20편에 해당하는 작품을 수집했다. 그 작품들을 모두 감상한 다음에 딱히 비밀을 캐내지는 못했다. 그러나 검색으로 알게 된 미심쩍은 학계 보고 사항은 하나 있었다. 크게 관심 받지 못한 일설에 그런 내용이 있었다. 헤이즐럿향, 우유 단백질의 특정 성분, 아세트아미노펜 성분, 식용 색소 몇 호, 바키나움미르틸루스엑스, 레티놀아세테이트등을 특정 염색체 이상의 환자가 지속적으로 복용하면 어떤 환각 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아닌게아니라 나는 검색에 검색을 거듭하다가 그 보고 내용에 내가 최적화된 인물이란 걸 알게 됐다. 그런데 긴가민가 했고 정말 신기해서 펄펄 뛸 듯한 기분도 느껴지는 가운데 딱히 자축할 일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 후에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무심하다고 해야 할까. 나의 이성은 비밀스런 허영심을 신랄한 질투심으로 인도하지는 않았다. 나는 당분간 적잖이 무정했고 어리버리했으니까 소비랄지 박카스랄지 딱히 어딘가에 기대고 뭔가에 중독되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러다 그 다음 날! 나의 대리석 허벅지는 원상 복귀됐다. 마치 거짓말처럼 내 하체는 원래대로 돌아왔다. 나는 정상이었다. 와우! 난 정말 특별한 사건도 모험도 약속도 재미도 없는 심심한 생활에서 기쁨을 느꼈고 행복감에 뿌듯했다. 이토록 행복했던 적이 지금까지 없었다니 재미있지 않은가. 인간은 기쁨과 즐거움을 끊임없이 갈망하는 존재임이 분명하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날이면 날마다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거짓말을 하며 가식적으로 살 수 있단 말인가. 살 수 있다. 아무튼 나는 정말 누구도 믿지 못할 이상한 체험의 파도를 헤치고 나서 정상으로 돌아온 결과 심심함과 행복의 공통 분모를 깨우친 것이다. 흡사 오랜 빚 잔치를 청산하여 불행의 나락에서 탈출한 사람의 기분이 아마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불세출의 야생마를 길들여 고작 뻔트를 대도록 할 수는 없다는 비장의 복안을 착안해낸 건 아니었다. 그러면 행복은 마침내 발단, 환상은 이제 시작일까? 아직 좀 더 지켜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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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리석 다리가 믿음이 아니라 사실이었는데 그게 모두 환각 증상이었다니 하면서 몹시 의아해 하고 있었다. 참으로 신기한 일도 다 있네 하면서 지나칠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정상으로 돌아올 걸 알았다면 도나나 낸시의, 아쉬운대로 커트의 다리가 대리석인가를 직접 확인해 볼 걸 그랬나 라는 작은 미련도 없잖아 있는 듯 했다. 그나저나 나는 저 승마머신을 대체 왜 샀지? 괜히 TV 채널을 돌리다가 광고에 혹하며 빠져서 멍청히 보고 있다가 나도 모르게 결제한 결과였다. 보고 있을 때는 정말 효용 가치가 굉장할 것 같았다. 그러든 어쩌든 혹시 모르니까 승마머신이 나중 저 혼자 저절로 말이 되나 안되나를 지켜보기로 했다. 나는 내가 읽은 SF를 기억했고 내가 쓴 SF는 잊어버렸다. 별로 재미있지도 않았으니까. 그리고 나는 소멸이란 제목의 SF 영화를 볼 계획을 세웠으며 평소처럼 미스테리아 사무실에 놀러가기로 했다. 이번에는 아무 할 일 없이 그냥 놀러가는 것이 아니라 미스테리아에 연재됐던 드라마 원작의 작가에 대해 마라에게 몇 가지 물어본다는 목적이 있었다. 나는 미스테리아에 도착해서 내가 겪은 일종의 데자뷰 현상 같은 일을 내 친구의 일인 것처럼 마라한테 얘기해줬다. 당연히 마라는 그 친구와 친하게 지내지 말라고 내게 충고해주었다. 그리고 나는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TV 드라마의 원작이 미스테리아에 실리게 되었는지를 심문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앗, 심문이라기 보다는 추궁이겠구나. 그렇게 사무실을 염탐하고 마라의 기분을 짐작하다가 나는 우연히 확실한 단서를 얻고야 말았다. 그건 바로 마라가 책상에 앉아서 핸드폰의 사진을 보는 순간, 나는 소파에서 마라 뒤에 있는 작은 거울을 통해서 마라와 어느 도사가 같이 찍은 사진을 보게 되었다. 마라에게 꼬치고치 캐묻자 그녀는 내게 소상히 보고했다. 그 도사는 미스테리아에 작품을 연재했던 드라마 원작의 작가였다. 그러나 그 사실이 내게 특종일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내 대리석 허벅지는 원상복귀됐고, 도사의 예언이 엉터리든 아니든 나와는 이제 더 이상 무관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괜히 비싼 복비만 날린 거지. 그래도 그 맛에 점을 본다는 과분한 유쾌함에 이의를 제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나저나 하고 싶은 말이 뭐니? 눈동자를 이리 굴렸다 저리 굴렸다, 내게 뭔가 캐내고 싶은 일이 있는 것만 같은데. 아니지? 아닐 꺼야. 그럼.」 「그럼. 아니야. 너 내가 언제 실눈 뜨는 거 봤니? 난 궁금한 거 있으면 못 참는 성격이야. 에이 알면서! 만약 마라의 아름다움에 싫증이 났으면 싫증났다, 사랑이 식었으면 사랑이 식었다 라고 나는 거짓말을 못한다니까. 뭐 어째, 뭐? 그건 직언하는 게 아닌가. 그야 어쨌든 환상 문학 잡지 미스테리아는 절대 쉽게 질리는 잡지가 아니야. 그럼. 그거 하난 분명해.」 「잘한다! 응? 잘해.」
12 나는 새로운 쇼핑에 관한 고민에 빠졌다. 그건 바로 기존 승마머신을 팔고, 하체가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승마머신을 구입할까 말까 라는 문제였다. 아직은 머머 접습니다, 에 이르지 않았으니까. 어쩌다 건강에 관한 관심이라기 보다 충동 구매 때문에 벌어진 일이지만 뭔가 하나, 가령 대타 안타 같은 뜻밖의 기대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 나는 인터넷 세계를 돌아다녔다. 그렇게 오랫만에 필명 동호회에 들어갔다. 그곳에 가 보니 돌아가는 분위기가 정말 가관이었다. 왜냐하면 각자 들은 얘기가 아니라 본인이 본 사실에 대해서 일장 토론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도대체 뭐라고? 그러니까 내 다리가 대리석이다 아니다 왼팔이 나무로 되어있다 심지어 자라기까지 한다고 하더라, 아니다 그게 아니라 발바닥과 손바닥이 돌의 성분과 똑같다는 고백을 직접 들었다, 웃기지 마라 내가 직접 봤다 그 인간은 꼬리가 달렸더라! 또 있다. 목욕탕에서 날 마주쳤는데 어 그게 음 뭐 어째서 기겁을 했다나 뭐라나. 또 하나. 그 인간이 모텔 피노키오의 사장이라고 하더라? 나 원 참! 그걸 읽고 나는 느꼈다. 첫째, 재밌다. 둘째, 내 정체를 이 세상에 당당히 드러낼 테다─나는 유명해져야 한다─나는 자유를 찾고 싶다 라는 개인적이고 약간 장난스런 발상들 때문에 고심하다가 필명으로 남는 게 좋겠다며 회심한 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처럼 난 그런 밑도 끝도 없는 주파수 혼선 같은 대화와 주장들이 웃기다고 생각하는 한편 썩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 생각했다. 예를 들면 그걸 보는 당사자인 나만 진담으로 인지하고, 나를 제외한 동호인 모두는 농담인 줄 알면서 진지하게 장난하면서 놀고 즐기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 그러다 문득 그래볼까 라는 상상까지 하게 됐다. 곧 내 다리 사진을 찍어서 포토샵으로 조작해서 사진을 동호회에 올릴까도 생각해봤다. 그렇지만 우스꽝스런 흥미는 딱 여기까지였다. 현 회장이 물러나면서 대리석 다리의 실체를 벗기자 어쩌자 하면서 차기 회장 선출에 관한 안내문을 읽는 둥 마는 둥 하면서 나는 웹사이트를 닫았다. 그런 다음 나는 내 고유한 아이디를 검색 사이트에서 검색해보는 일을 했다. 재미없었다. 나는 어쩌면 시도 때도 없이 사랑을 입증할 궁리만 하는 로맨티스트가 아닐 것이다. 내 안에 존재하는 그녀의 하찮은 잔소리는 잠잠한 가운데 마침 심심함을 타파하라는 트집을 피할 수 있는 잔꾀도 바닥났다. 별안간 나는 사무실에 걸려있는 황금 마네킹 상점이라는 그림의 진품을 갖고 싶어졌다. 나중 또 모른다. 혹시라도 로또 복권에 당첨된다면 전재산을 올인해서 그만큼에 상당한 걸작을 구입하게 될지도. 꿈도 야무지게 말이야, 치! 그러면 다시 그 다음에 나는 금방 그 그림에 싫증을 내겠지. 그게 순서니까. 곧 순수한 애호가로써 딱 하나의 그림을 구입하는 일도, 가치 투자에 일가견이 있어서 대단한 진품을 사는 것도 내겐 여의치 않을 듯 했다. 모르긴 해도 아마 내 예상보다 비싸면 비쌌지 싸지도 않을 것이다. 대충 생각해봐도 뻔한 일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이 소비의 시대든 어쩌든 나는 아티스트병이 치유되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맞다. 그렇다. 이제야 내 안의 그분과 손발이 딱딱 맞네. 이처럼 나의 고상한 취미는 다름 아닌 공상이었다. 새로움은 언제나 그것에서 탄생했고 거기서 출발했다. 어디에든 누구에게나 자랑할 만한 고색창연한 색다름은 아닐 테지만. 하기는 지위에 연연하지 않는 고고함은 내게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나중 내 이력에 기록될 지금의 내 과업은 삼류 엑스트라이자 미스테리아 칼럼니스트일 테니까. 그러나 나는 뻔트로 빚어진 9회말 역전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사랑처럼 인생도 모르는 거니까. 오히려 그래야 더 재미있는 법이니까. 그래서 나는 도나와 낸시와의 친교에 대해서 질투를 부추기고 열정을 부채질하는 일은 진작 포기해버렸다. 그건 내 성미에 맞지 않는 일이니까 말이다. 나는 딱히 삶이 말할 수 없이 지겹지도 않았고 그다지 불행하지도 않았다. 더군다나 나의 말과 글은 아주 형편없지도 않았다. 선망과 만족 사이에서 방황하기는 하지만 난 아마 인생의 비밀을 깨우쳐버린 것만 같았다. 왜냐하면 자존감과 자기애 때문에 손발이 오그라들더라도 사람이 때에 따라서는 응당 그래야 한다는 걸 정말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사랑에 대한 은밀한 열망과 일상적인 우정과 불화하지 않아야 한다는 철학 외에도 내게는 또 하나의 사는 방법이 있었다. 그건 무엇이냐면 바로 난 미치지 않았고 내 삶은 별 문제가 없다면서 인생을 긍정하는 일. 사람들이 샤워를 마치면서 거울을 보는 것처럼 원숭이 박수를 치며 혀를 낼름거리며 꼭 어딘가에 군침을 흘리지는 않더라도 말이다. 내가 정말 원하는 이상이야 그 어딘가에 입도 벙긋 안 할 생각이긴 하지만. 뭐 평생 놀고 먹는 법에 대한 인문교양서는 왜 아직 완성하지 못했냐고? 나도 그러고 싶었다. 잠시 유보했을 뿐. 당연히 그마저 연기됐지. 그래서 나는 차츰차츰 지난 날의 나의 대리석 허벅지가 그리워졌다. 무슨 말도 안되게 말이야, 어? 누가 들으면 정나미 떨어지고 이 작가도 볼장 다 봤구나 라고 혼잣말하게 될지도 모르지만 내 솔직한 심정은 그랬다는 걸 고백하고 싶다. 무엇보다 그땐 뭐랄까 순수한 몰입감이 내 정체성들을 주도했으니까 나는 그 붕 뜬 느낌이 비밀스런 행운인지 정신 나간 사랑인지, 그것도 아니면 유별난 변덕인지 통 구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든 어쩌든 나는 정상으로 돌아왔다. 동시에 SF는 그저 장르임에 불과하다는 게 판명됐고. 때문에 비로소 나는 나 자신에게 달콤한 꿈을 선물할 수 있는 최적의 시기라고 판단했다. 그러니까 그 일은 무엇이냐, 바로 지금 SF에 도전하며 무진 애를 쓰기! 이제는 정말 어떻게 써야 할지를 알 듯 모를 듯 하니까. 번득이는 영감도, 신기한 소재와 까무러칠 만한 전개마저 뭔가 감이 올 것도 같고 오지 않을 것도 같았으니까. 그러므로 나는 주변의 언짢은 기색은 미리 걱정할 필요도 없고, 소속사 즉 미스테리아의 낙관적인 무관심과 칼럼 압박도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한편, 그나저나 하고 싶은 말이 뭐야? 라면서 나의 주인님은 날 막 귀찮게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난 이처럼 다정히 말해주었다. 「기대하지 마!」
from 소설
2018. 2. 28.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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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골에 조각가, 목재소, 고대 악기 제조라는 일에 대해서 모두 통달한 저명한 목수가 있었다. 목수는 어느 날 불현듯 시골 생활에 염증을 느낌과 동시에 얼핏 동종 업계라고 할 수 있는 종이 만드는 일을 하고 싶은 욕구가 발생함을 느꼈다. 왜냐하면 그 일은 종이와 돈과 포스터를 만드는 매우 보람찬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게 아니라 실은 TV로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혹해서 떠올린 생각이었다. 그는 그걸 일종의 외도가 아니라 꿈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그는 지금이라는 이 기회를 놓치면 살면서 나중 내내 후회할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는 먹고 자고 생활하는 작업실을 모두 정리했다. 도시로 떠나기 위해서. 그러나 실수로 큰 통나무 6개를 어쩌다 불도저로 황무지에 밀어버린 다음 나중 처리할려다가 그 일은 새까맣게 잊어버렸다. 그렇게 목수는 도시로 떠났다. 여기서 목수는 주인공이 아니고 이를 테면 지나가는 행인에 해당한다. 목수가 떠나고 그가 살던 작업실은 팔려서 논으로 바꼈다. 그리고 목수가 버렸던 6개의 통나무는 희안하게 황무지에서 화살표 모양으로 정렬된 채 남겨졌다. 그렇게 얼마나 장구한 시간이 흘렀을까. 나중 그 화살표가 가리키는 곳에는 최첨단 공법보다 100년은 앞서가는 건축 디자인으로 설계된 멋진 집이 지어졌다. 그리고 두어 번 집주인이 바뀌더니 어느 때부턴가 그 집은 빈집이 되었다. 더 이상 매매가 되지 않는 주인 읽은 집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 후 그 마을에 내려오는 불문율이 2가지가 생겼다. 첫째, 그 통나무 화살표가 가리키는 멋진 별장은 액운이 좋지 않다, 그래서 집값이 터무니없이 싸고, 몇몇 호기심 많은 부자가 이사왔다가 쓴맛을 보고 떠났다. 둘째, 일이 그렇게 된 발단 즉 통나무 화살표는 절대 건드려서는 안된다는 미신의 탄생. 옆 동네에 사는 감수성 높은 글쟁이가 그 일을 알고 가만 있을 양반이 아니었다. 그는 올커니 하면서 다큐멘터리 동영상을 만들었다. 일명 인터넷 펀딩. 내용은 어느 귀신 나오는 집에 입주 계획. 펀딩액을 극대화시키기 위해서 Jxxxs는 인터넷에 떠도는 괴담을 가져다 무단 인용하고, 어느 잡지에 새로운 7대 장소로 선정됐다느니 가지 말라는 곳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느니 하면서 펀딩 페이지를 한껏 부풀렸다. 나아가 그는 갖은 의혹을 증폭시키는 소문과 공포의 분위기를 가득 집어넣었다. 그래서 나중 입주하면 다큐멘터리와 영화를 찍겠다는 둥 뭐라는 둥 그러면서 있는 뻥 없는 뻥을 다 집어넣었다. 그래서 어떻게 됐을까? 인터넷 펀딩은 대실패. 그래서 JS는 본인이 직접 칼럼 일로 번 돈을 다 써서, 아니 자기 재산 절반을 투자해서 일을 꾸미기로 했다. 일단 그 집을 헐값에 구입했다. 다음으로 동물원을 운영하는 친구와 동물 보호 단체에서 일하는 친구를 꼬셨다. 작전의 날이 되자 그는 친구들을 데리고 하루 그곳으로 소풍을 갔다. 그런데 친구들은 차에서 내리지 않고 차 뒤에 타고 있는 동물들만 그곳에 내렸다. 곧 엘크와 무스는 바람잡이, 본격적인 기술자는 그리즐리 불곰! 그는 바로 마을에 미신으로 내려오는 화살표를 헝크려트리기 위해서 동물의 힘을 빌리기로 한 것이다. 일단 그는 사전에 미리 그 화살표 통나무에 곰이 좋아하는 호르몬과 벌꿀과 특수한 액체를 잔뜩 발라놓았다. 그래서 그 다음에 어떻게 됐을까? 결과는 대성공! 때문에 다음 날 마을의 미신을 건드렸다면서 동네는 발칵 뒤집어졌다. 그러나 사람의 횡포가 아닌 동물의 놀이라서 모두 강 건너 불구경하는 결과만 남았다. 결론은 작전 대성공. 그는 대저택에 입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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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속았다!」 JS는 깨달았다. 이곳에 무슨 특별한 사연은 없다는 것을. 그것도, 전혀! 그러니 당연히 유령이 있을 리가 있나. 비밀도 없었고 신비한 예감은 차가운 상심으로 결론 났다. 그는 생각했다. 이게 다 멀더의 헛소리를 순진하게 믿은 자기 책임이라고. 어떻게 이런 웃기지도 않는 행복이! 요즘 세상에 귀신이 어딨다고. 그는 다시 혼자가 됐다. 그러다 JS는 동네에서 생활 용품을 사고 파는 거리의 일일장에서 동네의 어느 처녀를 알게 됐다. 그는 텐트를 사러 갔다가 캠핑 테이블을 하나 샀다. 그때 자연스럽게 그녀와 대화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새로 이사 오신 박사님이신가요?」 「아 네. 그런데 박사는 아니구요.」 「박사나 선생이나 다 거기서 거기죠. 안 그래요?」 그는 안 그렇다고 했다가는 본전도 찾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초조감, 불안감, 조바심 때문에 맞장구를 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자 그녀는 마치 그를 탐문하기라도 기다렸다는 듯이 뭔가 중요한 정보라도 있는 것처럼 소곤거리며 물어봤다. 「이 동네엔 뭐하러 왔는가? 당신도 유령의 집이 궁금했소? (팔랑팔랑!) 거기 귀신 없어. 차라리 놀이공원에 가는 게 나을 텐데? 처음에는 헐값에 환상 체험의 주인공이 될지도 모른다며 좋아하지 않았수? 잠깐 행복했겠구만. 안 봐도 뻔해. 그렇다고 댁이 처음인 거 같나? 놀라진 마쇼! 선생도 거 모방심이 어지간하신가 보구먼 그래. 유달리 신비라면 쩔쩔매는 다 큰 어른들이 꼭 감쪽같이 걸려든다니까. 그러니까, 댁은 성공한 사람이유? 아, 돈 많냐고. 내가 미리 알았으면 심하게 만류했을 텐데. 설마 진짜로 나와 상담할 기회가 있었다면 또 몰라. 내가 막 부랴부랴 막차를 타라고 살살 부추겼을지도. (악수를 건네며) 나는 줄리엣이요!」 그들은 악수를 나눴다. 「저는 제...(그는 본명을 숨겨야 할 것만 같은 느낌에 거짓말을 하기로 했다) 존티입니다. 아 그런데 초면에 실례인지 모르겠지만 얼굴은 대학생인데 말은 완전 할머니, 아니 춘부장인뎁쇼!」 「뭐요? 실례인지 모릅니다 라면서 결례를 범해? 이거 이거 상습범이구만. 이 양반 이거 안되겠구만. 지금 내 피어오르는 미모를 칭찬해줘도 모자를 판에, 뭐라고? 날 지금 촌년이라고 깔보는 거요, 뭐요?」 「앗, 솔직히 고백하자면 처음 보자마자 경탄을 금치 못했어요. 네. 그럼요. 딱 제 이상형이었거든요. 그렇죠. 저는 첫눈에 반해버린 거죠. 네.」 「이 사람이 입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을 하네. 지금 사람 놀리는 거요? 아 됐고! 술 한잔 사쇼.」 「네?」 「뭘 그렇게 놀래, 이 사람아?」 그들은 가까운 카페로 들어가서 자리를 잡았다. 「유령의 집에 입주해서 이상적인 전개와 찬란한 결말 사이의 경이로운 절정을 기대했다면, 젊은이. 꿈 깨쇼! 그런 거 없다고 이 사람아.」 「정말...입니까? 새로운 미스테리의 떠오르는 중심지라고 알고 왔는데요?」 「무슨 끝물도 아니고 누가 그런 말도 안되는 풍설을 알려줍디까? 애들도 안 속아 이 양반아. 아니라니까 그러네 아 참 나. 여긴 그냥 평범한 시골이고 댁이 입주한 거긴 그냥 평범한 시골 별장이야. 왜 아니겠어. 만약 그랬으면 벌써 전문가들이 선수쳤겠지. 댁한테 순번이 넘어갈 리가 있겠냐 이 말이야. 안 그렇수?」 「하긴 동네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모습을 보고 저도 대충 눈치챘죠. 그럼요. 저는 바보가 아니거든요.」 「바보가 아니면? 다 속고 나서 바보가 아니다! 자화자찬이야 뭐야?」 「그게 아니라 사람 일은 모른다 뭐 그 말이죠. 네.」 「그럼 뭘 해? 세상 물정 모르는 바보는 이미 눈부신 사교계에 진출했구만. 하지만 젊은 날 시도할 수 밖에 없는 욕망은 도전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 아 젊을 때 도전하지 언제 그러겠소. 안 그러요? 속고 나서는 다른 얘기지만 그 전이라면 합리적인 이유, 타당한 근거, 새로운 방탕에 대한 정열은 물론 미래의 운명을 바꿔놓을 신성한 예언까지 있다면, 응? 이 내 두 손에 환락의 꿈이 정말 잡힐 것만 같다면 한번 모험해 볼만 하지 않겠냐, 이 말이네. 응? 그것이 비겁한 쾌락이든 단조로운 흥미든, 희박한 가능성일망정 만약 달성되기만 한다면 까무러칠 만한 놀라움이 기다리고 있다면 말이야. 실제 성공하면 아 글쎄 그럴 거 아니냐고! 그래~ 이거야~ 이거라고~ 이거라니까~ 푸하하하하하하! 그처럼 말이네. 허허허. 허허허허허. 이거 이거 귀 팔랑거리는 거 좀 봐. 아주 불사조의 날개가 따로 없구만 그래. (설레설레)」 동물로 치자면 그는 임팔라였고 비글이자 코끼리였다. JS는 이만저만 낙담한 게 아니었다. 말이 났으니 말이지만 어쩐지 처음부터 느낌이 이상했다. 악마의 섬뜩한 호기심 같은 게 느껴졌다고나 할까. 추상적인 선망은 무의미한 허세로 결판났다고나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실망이 전부는 아니었다. 아직 절망의 문 앞에서 초인종을 누르지 않았으니까. 왜냐하면 막연한 목표는 구체적인 목적 B를 불러왔으니까. 곧 그의 앞에 있는 줄리엣이 어떤 장밋빛 희망에 대한 그리움을 자극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아직 미신에 대한 진실한 애정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나아가 필생의 과업이 사랑이냐 행복이냐에 대한 확신도 없었다. 그야 어쨌든 저 무지개 너머에서 그를 기다리는 동심은 적어도 흔하고 단순한 쾌락은 아닐 것이라는 추산만이 그를 격려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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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S는 통장 인증서를 교체하다가 정체 불명의 뭉칫돈이 입금된 사실을 알게 됐다. 알고 보니 옛날에 일했던 인터넷 광고업 커미션 금액이었다. 자기가 그런 일도 했었나를 까마득히 잊고 있었는데 지난 기억과 짭잘한 보너스까지? 처음엔 좋았다. 이게 웬 떡이야 하면서. 그런데 생각하면 할수록 그는 인생의 뻔트와 경력상의 그 뭐랄까 굵직굵직한 영웅담이 아니라 자잘한 잔뻔치가 너무 많았다는 걸 새삼 느꼈다. 가랑비에 옷 젓는다고 그래서 그는 대성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게다가, 바로 그 때문에 뭐 하면 뭐 라는 명쾌함이 자기에게 턱없이 부족하지 않나 라고 생각했다. 첫 직업은 뭐, 지금까지 사귄 사람은 몇 명, 첫 차는 무엇, 직업, IQ, 키, 몸무게, 출신, 뭐 뭐 등등. 하나의 질문에 오직 한 개의 고유한 즉답이라는 똑부러지는 시원함은 남의 얘기인 것만 같았다. 그처럼 무엇에 대해서든 꼭 부언 설명이 필요하다는 점은 몹시 어정쩡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평생을 산다면 그 또한 쉽지 않은 인생일 것이다. 그는 그게 모두 자기 삶에 대해서 서류상 기록과 구두 진술의 불일치 때문은 아닐까 라고 생각했다. 정말 그랬다. 나는 인생에 대한 말과 글이 상당 부분 다르다! 때문에 나에 대해서 명징하게 설명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그러므로 나는 어떻다, 무엇이 좋고 어떤 건 싫다, 뭐가 하고 싶다 라며 표현을 잘 하지 못한다! 그래서 매번 말할 때마다 말꼬리가 흐릿하다? 다소곳한 여자도 아니고 무슨 그런 어불성설을...! 그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러면서 무슨 또 이 세상은 말과 글의 애매함 때문에 뭐가 어쩐다는 둥 이 핑계 저 핑계! 그래서 그는 생각했다. 그게 모두 불필요한 행동과 무분별한 단점일 리는 없다고. 따라서 그 어리버리함을 장점으로 바꾸면 그만이었다. 그러니까 어떻게? 그건 바로 뻔트냐 강공이냐 라는 작전을 확실하게 결정할 것. 지킬이든 하이드든 대기중인 누가 됐든 준비된 선수가 나설 것. 그것만 지켜지면 때와 상황에 따라 허언증이냐 우유부단증이냐, 뜬구름잡는 허풍이냐 달콤한 사랑 고백이냐, 만사가 분명해질 것만 같았다. 만약 그 기준만 분명하다면 어중간한 일은 더 이상 없을 듯 했다. 그러니 결국 관건은 정체성이었다. 가령 정체성이 겹치는 흔한 예가 무엇이냐? 그거다. 친구와 동업한다, 우정과 같이 산다, 처제가 사장이다 등등등. 설령 그럴지라도 공사를 구분하고 줏대를 지키면 된다. 대책없이 무턱대고 배짱을 부리느냐, 징징대고 투정 부리며 뜻밖의 간접적인 애원에 이끌려 가느냐! 결정도 쉽고 결과도 복잡할 일 하나 없을 것만 같았다. 사랑에 대해서 구애냐 유혹이냐? 행동마저 세상 편해질 수 있을 듯 했다. 그건 마치 뒤늦게 어른이 되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삶의 비밀을 알아버린 느낌과도 같은 일이었다. 결론은 그래서 기분 좋은 정체성의 원리도 알고 횡재에 가까운 보너스도 챙겼다? 완전 꿩 먹고 알 먹기였다. 최소한 아직까지는. 그는 최근 집이 2채가 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자기의 작업실이 집인 듯 느껴졌다. 작업실에서 일하다가 하루는 이쪽 집에 하루는 저쪽 집에. 기분이 이상했다. 그럼 그는 이제 부자가 된건가? 부자라는 낱말이 왠지 어색하긴 하지만 썩 만족스럽지 않은 몸짓과 뚱한 표정만 봐서는 아마도 아닌 듯 했다. 고로 그는 하나 중요한 점을 깨달았다. 2집 살림은 역시 힘들구나 라는 점을 말이다. 숫자에 강한 사람은 이때 당연히 세금을 생각할 테지만 그는 아무래도 그쪽과는 거리가 멀었다. 때문일 그의 공상은 역시나 2집 살림으로 이어졌다. 허허허. 그래서 그는 부의 축척이라는 주제를 떠올리고서 칼럼을 하나 작성했다. 결과는 별로였다. 아무래도 새로운 유령 별장에서의 앞날이 순탄치 않을 것만 같은 예감, 딱 그런 심정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할 것만 같은 기분만 부채질하고야 마는 일이었다. 내용은 이렇다. 쓰고 나서 읽어 보니 상업적 가치가 별반 뚜렷하지 않았다. 때문에 그는 이번에는 어딘가에 기고하지 않고 작문 노트에만 기록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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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피라미드론 내용: 피라미드의 원리가 왜 중요하냐! 왜냐하면 그것은 만류인력의 법칙을 정확히 준수하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그것은 원시인이 현 인류에 이르렀던 제1의 준칙과 질서였다. 그리고 중력은 지구 어디나 평등하다. 그러나 인위적인 힘이 작용하는 게 인간의 일. 때문에 피라미드 최고점이 고정적이면, 예컨대 우정에 대해서 수평은 없고 수직만 있다면 사과나무 밑에서 입 벌리고서 사랑을 기다려 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 과수원의 설계도에 이의를 제기해도 옹호 받기 어렵다. 오히려 때가 이르고 판단이 서투르면 1군에서 밀려나다 유니폼을 벗는 걸로도 모자라 그 인생은 행복의 반대편으로 갈지도 모른다. 그래서 얘기하는 게 큰 그림이랄지 생태계 같은 개념이다. 뜻을 넓혀보면 개념의 분량은 늘어난다. 산업에서 드물게 혁신이고 역사적으로 알려지는 혁명, 흔한 말로 발전과 진보와 보수, 그 다음으로 악행에 준할지도 모르는 관행과 퇴보에 가까울 수도 있는 준법(불법) 이행이 있을 것이다. 그러든 어쩌든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말처럼 숲이든 나무든 방향은 전진이고, 관건은 차근차근이다. 그렇다고 <차근차근>의 관점이 누구에게나 또 어디에서나 같을까? 그럴 리가 있나. <차근차근>을 생각하는 개인차와 기준과 보폭도 다르다. 심지어 타임머신의 개념 역시 상존한다. 그러므로 정답은 그것이다. 말과 글의 분리! 즉 서류의 우위. 글과 서류의 쉬운 예를 들자면 많다. 공부하고 일할 때 작성하는 문서 외에도 표준, 이름, 브랜드, 평판, 문화, 의식과 마음의 글일 수도 있는 양심등이 있다. 삶의 고단함 때문이든 형편이랄지 타성 또는 불문율 때문이든 으쌰으쌰의 총대를 메는 첫 번째 주자도 나고, 그 마지막 사람도 나다. 즉 처음과 끝은 모두 당신이다. 그 '내'가 모여 전체가 된다. 그런데 그 원리와 적용이 제멋대로라면 지킬 건 지켜야 한다, 자유, 방종, 무질서의 구분은 희미해져버린다. 그리고 그 일은 모두 법적으로 성년, 통상적으로 어른들이 한다. 어른이 되면 사람들은 사랑 우정 친교에 대해서 10명 100명 1000명, 그저 스쳐지나가는 10,000명보다 훨씬 많은 타인들을 만나면서 나와 남을 알게 된다. 허세와 허영심은 칸타빌레 정도면 된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자의식이 너무 세고 자존심이 아주 드높거나, 덤비는 경쟁 의식이 지나치고 열등감이 지나친 사람은 누구나 불편해 한다. 어른이 된다는 건 내 단점도 알게 되고 사교성도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되는 것이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곧 말과 글! 말은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실력이 는다. 언어구사력은 더딜지언정 듣고 보며 알게 되는 연륜이 쌓일 수 밖에 없다. 원치 않을지라도 그렇게 된다. 그러나 글은 절대 그렇지 않다. 그리고 현대는 말의 세상이다. 말은 듣기를 제외한 잔지식과 화술이 전부라고 착각할 수도 있다. 따라서 교양미로만 봤을 때 현대인은 인류 역사상 제일 똑똑할지라도 모범적이었던 옛 사람보다 그 방면으로 앞선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그 대신 눈치, 잔지식, 학문, 상업, 기교를 챙겼다. 그처럼 영리한 현대인들은 왜 언제나 <차근차근>의 구체성에 대해서 왈가왈부하는 것일까? 왜냐하면 개인에게 뿐만 아니라 세상만사 말과 글의 분리는 그 의식적인 구분이 적잖이 모호하기 때문이다. 마치 이론과 실제가 다른 것처럼. 글은 뒷전이고 말만 남은 게 아닌가, 이 세상은, 듣기는 딴전이고 말하기만 중요시 되는 듯한 면이 없잖아 있는 것이다. 심지어 글만 놓고 봐도 글 안에 말이 들어가고, 글의 성격이 모호한 경우가 적지 않다. 이를 테면 어록 같은 글도 있을 텐데 그런 글은 말을 주로 실어야 하는데 읽어 보면 정작 선구자의 말은 많지 않다. 작자 미상, 장르 불문 그런게 나쁘다는 게 아니다. 그래서 역피라미드처럼 기원전의 여러 신화와 세상 사람들의 모든 말이 전부 스며들었고, 먼 후대에 공저자가 불분명한 채 완성됐듯이 피라미드처럼 분파와 의견과 산업등이 방대해져버렸다. 게다가 좋은 일만 그걸 인용하냐 하면 꼭 그렇지는 않다. 그래서 배보다 배꼽이 더 커져버렸다. 때문에 괜히 생각 하나를 잘못 말했다가는 욱하는 반응도 발생할 수 있다. 사이코패스 성향의 예술가야 당대에 친절한 이웃사람으로는 불합격일지 모르지만 후대에 작품으로 보답한다. 하지만 역사상 성인들은 당대에 모범이었던 반면 후대에 남는 건 그거 밖에 없지 않나 라는 반성의 느낌이 든다. 정작 달은 놔두고 달을 가르키는 손가락, 태양은 도외시한 채 태양에 대해서 서로 다른 말과 글과 분석과 의견과 형식만 넘쳐나는 현실. 그래서 종교나 산업과 관계없이 달의 마음과 태양의 말은 호감이지만, 그 의도가 왜 나쁘겠나, 그건 정작 온데간데 없이 찾아볼 수가 없다. 모르긴 몰라도 당대에 당사자는 수평을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후대에 남는 건 그보다는 수직이다. 그래서 인상 쓰는 애호가는 주장이 너무 강하고 비호감이기 때문에 피할 수 밖에 없다. 실제로도 법이 위고 교리는 밑이다. 그게 엄정한 세상의 이치다. 교리도 한두 개가 아니다. 이 세상에서 착한 사람을 말할 때 일컫는 단 한 가지 관용구가 있다. 그건 무엇이냐, 무엇일까? 그거다. 법 없이도 살 사람! 설령 그런 칭찬을 듣는데 부족함이 없을지라도 정말 그런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교리 없이도 살 사람? 나는 살면서 그런 말은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왜냐하면 법이 1번이고 그 밑은 수평의 개념이니까 그렇지 않을까 라고 유추할 뿐. 신화가 먼저고 종교는 다음이듯이. 이를 테면 이기적으로 살되 이타적인 삶을 실천합시다, 그것이 세상과 세월의 풍파를 타면 (설레설레)! 그래서 현명한 종교가는 자기 인생을 살라고 설교할 것이다. 그래야 하니까. 인생은 1번이니까. 피라미드가 있으면 역피라미드도 있을 테니까 말이다. 문법으로 따져서 반대말이 있듯이 뭐든지 반대 개념이 있고 균형의 측면도 있다. 육체적 사랑에는 플라토닉이, 중력에는 무중력이, 그처럼. 이 세상은 인정이 다가 아니다. 그 최소는 헌법이다. 더군다나 모순이 모순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하긴 그렇기 때문에 장미의 이름도, 다빈치코드 같은 작품도 즐길 수 있으니까 나름 장점도 있다. 현재는 의무방어전 내세는 낙원 혹시라도 패자부활전, 같은 농담도 가능하니까 웃음도 하나 챙기는 거다. 아무튼 그 모든 이유가 뭐냐, 말과 글의 구분이 흐릿하다는 점이다. 거기서 또 들어가면 나뉜다. 말은 화법이 구분되고 속내와 상징과 은유는 물론 귀 막기까지 있다. 글조차 의역과 직역과 더불어 말까지 포용한다. 그래서 말과 글은 물과 기름처럼 애증의 관계일지도 모를 일이다. 글과 말, 공과 사, 정확함과 대충대충, 질서와 자유, 형식과 파격, 기본과 전위성, 현실과 이론, 은근함과 확실함 그리고 남과 여. 구분에 대한 악용이 아니라 <차근차근>에 대한 최적의 실현은 그 차이를 먼저 아는 것 바로 그게 최선 아닐까, 라고 생각한다. 단, 그에 대한 헛점 즉 반발에 따른 문제점을 먼저 철두철미하게 대비하고 가야 한다는 점이 있다. 물론 그게 이미 현실인 분야가 있고 적용이 까다로운 분야도 있다. 대표적으로 전자는 돈-권력-이권이 큰 분야 곧 경제 정치 사회 군사 그리고 산업, 후자는 일례로 사랑! 그 중간의 절묘한 파도타기, 그건 아마 오락산업이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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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날에는 마라와 마라의 남자친구, JS 아니 존티와 줄리엣 그렇게 넷이서 데이트를 했다. 참으로 묘한 조합임에 틀림없었다. 그들은 만났고, 식사를 함께 했으며, 찻집에서 차를 마신 후 헤어졌다. 그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그들은 정말 놀랍도록 말이 없었다. 모두 헤어진 다음 JS는 밤 늦게 미스테리아 사무실에 찾아갔다. 「뭐하는 놈이야?」 「뭐하는 놈이냐니? 백마 탄 왕자님이지 누구겠어? 그러는 넌?」 「뭐? 동네 친구야. 난 다 생각이 있어서 소개시켜주는 거라고. 내가 아무런 계획 없이 일을 꾸미는 거 봤어? 그러는 넌! 처음 선보이는 남자가 글쎄... 아 저런, 나 원 참. 말 말자. 응? 넌 어떻게 눈이 뒤통수에 달렸니? 얘가 가만 보면 은근 허당이라니까. 응? 멋진 남자 다 놔두고 고른 게 하필, 바보? 뭐 그런 말이라도 하고 싶은 거니? 외모는 속임수다! 아니면 남자 A의 심사가 뒤틀려서 약속을 어깃장 놓았기 때문에 대타로 나온 B였니, 그 남자는? 아아, 매력 치명적이야. 응? 마라가 다시 보이는 거 있지?」 「뭐가 어쩌고 어째? 별꼴이야! 나야 후보 넘버 7은 친구일 뿐이야! 알아? 어? 그러는 넌. 또 뭔 꿍꿍이로 어떤 허접한 수작을 부릴려는지 궁금한데!」 「나중 아마 나한테 고마워하게 될 걸. 두고 보면 놀랄 일이 벌어질 테니까 그렇게 알아.」 「그런데 있잖아. 예쁘장하니 조용한 그녀. 응? 다소곳하며 정숙해 보이는데, 그거 다 내숭이야. 알어?」 「왜 몰라? 다 알고 있어.」 「뭐라고?」 「너도 만만치 않던데?」 「나 웨딩드레스 입은 모습 본 다음에 후회해도 소용 없어. 너는 약혼녀가 어디 4차원에라도 사는 거니? 그 촌년은 또 어디서 초빙해 온 거야? 만약 내가 남자였고 늬가 내 단짝에다 그녀를 내게 소개시켜준다고 했다면 난 군말없이 사양했을 거야. (어깨 으쓱) 응? 사사롭게 뭐 햄릿 따라하기? 난 아니야. 그건 안 돼. 공과 사는 구분하자고 이 친구야. 알겠니?」 「마라! 거짓말하는 거 다 보인다. 응? 더 이상 인생에 기대할 게 없다는 생각을 바꿔. 바로 지금이야. 도대체 뭘 기다리는 거야!」 「언제는 실망이라더니 이젠 또 걱정하는 거니? 사람 헷갈리게 왜 이래? 하나만 해, 하나만! 나를 바보로 아는 거야 뭐야!」 「마라! 응? 제발 부탁인데, 렘브란트의 그림을 끌어들이지는 말자 좀. 응? 내 말 듣고 있니, 마라? 그 녀석 일기 읽어봤니? 남자는 남자가 보면 알아. 걔 완전 늑대야. 그것도 그냥 늑대가 아니라 굶주릴대로 굶주린 늑대! 응? 내가 뭐랬어. 달콤한 사랑이 시작됐다고 그냥 막 정신 못 차리지 말고, 시험을 해 보랬자나. 응? 짜증 테스트! 스트레스를 유발하고, 미끼로 유인하며 마음을 떠보고, 속셈을 추측하며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서 응? 쥐락펴락 들었다 놓기! 왜? 지금 그 사람을 놓치면 더 멋진 남자를 못 만날 것 같니? 사람은 비교의 동물이야. 아무리 풍요와 호사와 사랑과 행복의 왕국에 환상적으로 입주했다고 하더라도 지난 날을 회상하며 뭐 어쩌는 게 사람이라구. 그럴꺼면 나한테 오지 말이야 어쩌고저쩌고! 행복한 가정은 행복한 가정이고, 사랑의 전적은 또 다른 얘기란 말일세. 응? 지난 사랑은 다 쓸데없는 해프닝에 불과했고, 나는 당신을 만나기 위해 그 모든 사사로운 감정들이 필요했네? 앞에서는 그러지. 응? 앞에서는. 내가 괜히 환상문학 잡지 미스테리아에 연애 칼럼을 기고하겠나? 다 이유가 있어서 그러는 것 아니야! 알면서 왜 그래. 지나가버린 사랑의 미련, 현재의 아름다운 사랑, 내일 해야 할 숭고한 사랑과 감동적인 환상. 그 셋 사이의 등호가 각기 제각각일 텐데 만약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난다면 이 사랑을 더 멋지게 완성하겠다? 누가 됐든 그분께서 어쩌면 미완의 사랑을 바랄지도 모른다는 것. 그게 바로 사랑이야. 학창 시절 부푼 가슴으로 장밋빛 미래를 상상하며 꿈꾸는 미지의 사랑은 쇼팽의 야상곡 같은 거다 너~! 어른에게 그건 현실과 이상의 괴리일지도 모를 테니까. 응? 그래서 사랑은 무엇이다 라는 그 무엇에는 아마도 주인이 없는 것 아닐까요? 사랑은 본능이다. 사랑은 경이로움이다. 아니다 사랑은 새로움이다. 사랑은 모르는 거다. 나는 사랑을 아직 몰라. 사랑은 드라마다. 사랑은 오늘이다. 사랑은 돈이 아니다. 사랑은 식욕도 아니다. 사랑은 장난도 아니다. 사랑은 노력이다. 사랑은 참는 것이다. 사랑은 거짓말이다. 사랑은 낭만이다. 사랑은 유행가다? 해도 해도 끝이 없어. 응? 해도 해도 끝이 없다구. 한마디로 사랑은 둘 중 하나야. 사랑은 없거나, 사랑은 답이 없거나! 다만, 그대에게 사랑은 정녕 후자이기를! (윙크. 후~) 그러니까, 사랑해요? 바람둥이의 말버릇일지도 모를 일. 당신께, 사랑해 라는 고백이 부디 거짓말이 아니기를 바랄 뿐. 사랑해 라는 말과 사랑한다 라는 글이 생략된 사랑, 손 잡기를 건너뛴 사랑, 얼렁뚱땅 연애하다 정든 사랑이 알고 보면 태반이야. 주위 사람들 아는 지인에게 다 물어 봐. 얼렁뚱땅 사랑한 경우가 대부분일 테니까. 여자끼리는 만나서 그 남자 어때 라고 물어볼 테지만, 남자는 친구끼리 그 얘기 밖에 안 해. 몇 시 방향! 응? (눈썹 쓰윽) 게다가 남자는 원래 남부끄러워서 그런 말 하기 싫어한다구. 잘 못해, 응? 그럼. 사랑해? 에이, 그런 말을 어떻게 해. 만약 한다면 그거 다 뻥이야. 아니면 선수. 그것도 아니면 진실한 사랑. 그런 어른에게 사랑? 가장 난처한 단어임에 틀림없지. 아빠 사랑이 뭐에요 라는 아이의 물음? 뭐긴 뭐겠나 '엄마한테 물어 봐'겠지. 그렇다고 아이가 나중 커서 어쩌면 동화 작가가 될지도 모르지만 대체로 그럴 일은 없어. 왜냐하면 동요는 제끼고 유행가 먼저 부를 테니까. 따라서 아빠의 '곤혹스런 질문 피해가기'는 딸의 대사로 발전할 것이야. 아 그러니까 대체 무엇으로? 엄마한테 말하지 마로! 어쨌든 이번에 내 기획 중인 부록이 있으니까 나중 놀라지나 마셔. 응? 이제 옛 애인 좀 그만 잊고. 응? 날 좀 그만 좋아하라고 이 친구야!」 「하여간 말은 말은. 에라 인간아!」 소개팅 다음에 마라와의 회동을 마치고 그는 집으로 돌아왔다. 바로 그 유령의 집으로. 밤에 자면서 물론 귀신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 대신 현찰이라는 행운이 찾아왔다. 원래는 유령이 출현하면 다행이라고 점쳤는데 작전이 바뀐 것이다. 곧 JS는 다음 다음 날 인터넷으로 소셜 네트워크도 둘러보고, 출판사 페이지에도 로그인해 봤고, 통장 잔고도 확인해 봤다. 그런데 정체 불명의 금액이 또 입금된 것을 발견했다. 이번이 2번재였다. 낯선 공짜 수입이 2주째 입금. 그는 부지중에 살짝 들떴다. 그러나 아직 감탄하기엔 일렀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다. 그런데 또 통장에 유행가의 흥행 수당처럼 일정 금액이 입금된 것이다. 그는 생각했다. 이건 뭐지? 수상쩍은 금액이 내게? 그의 주위에는 사랑했다 라는 솜사탕이 떠다녔다. 게다가 희망한다는 말풍선도, 애정이라는 천상의 멜로디도 들렸다. 심지어 행복을 지망하고 낭만을 부러워하는 단정한 소원은 마침내 실현됐다며 팅커벨 요정이 속삭여주는 것만 같았다. 오, 3주 연속 정기적인 입금. 수입이 내내 들쑥날쑥했던 그저 그런 칼럼니스트가 아니라 이제야 비로소 고품격 작가가 된 듯해서 기분이 이만저만 좋은 게 아니었다. 그럼 그렇지. 조금 늦었지만 혹독한 지옥 훈련을 거친 다음, 기묘한 상상력 기상천외한 발상이 이제야 빛을 보는구나 라고 생각했다. 거짓말이 아니라 정말로 레드카펫을 밟으면서 우레 같은 환호성이 실제로 들렸다. 그런데 그건 환호성이 아니라 전화벨 소리였다. 「저쪽 출판사에서 연락 받지 못했니? 기대하지는 않았겠지만 운 좋게 말이야 근근히 책이 팔린다는데!」 그건 마라의 전화였다. 그랬다. 그건 인세였다. 그는 냉큼 서점으로 달려갔다. 그는 서점에 도착했다. 그런데 그의 책은 진열대에서 사라졌다.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쏟아지는 오락산업의 무수한 반짝임 때문에 이미 묻혀버린 것이다 아예 종적을 감춰버렸겠지. 그렇게 또 일주일이 지났다. 그런데 어머머! 제4주차 금액이 입금됐다. 누군가 장난치는 건가? 간혹 잊혀질 만 하면 보게 되는 뭐 사재기 그런 건가? 그럴 리도 없는데. 꽤 애매한 금액에다 대량 구매도 아니고. 대체 뭐지? 누구야! 그는 어딘가에 숨어서 이 모든 사건을 진두지휘하는 마에스트로를 만나서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이봐요. 숨길 필요 없어요.」 그러면 상대는 그러겠지. 「저런! 다 아시면서 뭘 그래요.」 이건 둘이서 잘들 논다, 가 아니라 혼자서 쇼-한다쯤에 해당하는 공상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도 이게 어디야! 기쁜 삶을 살며 행복해지고 싶은 욕구는 실현을 앞두고 있는 것만 같았으니까. 그러니까 이제 곧 가능한 한 신비로운 전개? 그 다음에 곧바로 새로운 꿈 새로운 행복 새로운 환희! 푸하하하하. 푸하하하하하하. 음하하하하하하! 일말의 뭔가 세한 느낌이 아예 없진 않았지만 그는 지금 이런 스무 살의 환상과 부푼 꿈에게 막 다급히 쫓기는 기분을 깨트리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그는 특별히 고대할 것 없는 일상에서 2주 3주 4주차 정기급여가 입금되고 있었고, 때문에 어느새 5주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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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JS에게 5주차 수입이 입금됐을까? 아니다. 이번엔 평범하게 가지 않았다. 행운의 여신이 내린 지엄하신 명령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번에는 달랐다. 그가 문학 수첩에 글씨를 크게 쓰기 시작한 것이 최근의 새로운 변화인 것처럼 그의 앞에 당도한 소식은 반복된 입금이 아니라 새로운 택배였다. 곧 5주차에는 처음 받는 커다랗고 무거운 소포가 먼저였고, 5주차 입금이 둘째였다. 그렇게 둘 다 그에게 닥친 전개였다. 그래서 이번에 선택은 본인 몫이었다. 절정으로 확 달아오르느냐, 아니면 발단으로 도망치느냐. 전자는 바보의 용기 때문에 가능한 모험이고, 후자는 풍운아의 꾸밈없는 성격 곧 소심함이었다. 아무튼 그는 언제까지라도 비상한 통찰력 순진한 연정 때문에 재미없는 지루함에 내내 머무를 수는 없었다. 따라서 이번에는 누가 뭐래도 바보퉁이의 어리석은 광기를 택했다. 그런데 소포에 무엇이 들어있나를 밝히지 않았구나. 배달된 소포 안에는 바로 자기가 쓴 장편소설이 뭉치로 들어 있었다. 저런! 그는 먼저 소포를 받았을 때는 이제 뭔가 정말로 흥미진진한 일들이 계속 발생할 것만 같아서 엉덩이가 들썩들썩했다. 그래서 해외 배송 업체 차량이 떠나가는 모습을 아련히 쳐다보기까지 했다. 상자를 열기 직전까지도 신비감은 극대화되었다. 이건 혹시... 이래서 이 유령 주택이 팔리지 않았던 것일까? 라면서! 하지만 소포의 내용물을 확인한 다음 오락가락하는 의심과 꾸물거리는 추리력은 끝끝내 미궁으로 빠지고야 말았다. 그러니까, 왜?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누가 보냈는지, 왜, 의도는, 속편은...! 도무지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 것이었다. 그후 그는 별장을 구입하기 전에 동물들의 힘을 빌려 작업했던 미신의 상징물은 별다른 변화가 없는지 살펴보러 갔다. 그런데 어머나! 화살표 통나무가 모두 사라졌다. 아주 홀연히 없어져버렸다. 더군다나 마을 사람들은 슬슬 그를 피했다. 당연히 친하지 않으니까 그랬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동네의 유일한 친구인 줄리엣도 바쁜 척 했다. 물론 알고 보면 진짜 바쁜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 외에 그는 팬클럽에서 알게 된 여동생들의 졸업식에 다녀왔다. 「오빠가 뭔가 얼빠진 사람 같은데. 뭔가 바쁜 일 있나?」 「아니야. 원래 이랬어.」 웃음소리. 그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7주차 되는 날이었다. 이번에도 입금은 변함없었고, 정확하게 소포가 배송됐다. 그러나 이번에는 해외 배송 전문 업체 차량이 떠나가는 것을 멀거니 바라보지 않았다. 바로 쫓아갔다. 추격은 두 가지가 있다. 대추격과 소추격. 당연히 지금은 소-추격! 물론 추격은 실패. 성공할 리가 있겠나. 그건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집에 돌아와서 JS는 소포를 확인한 순간 깜짝 놀랐다. 왜냐하면 보낸 사람의 주소지가 그에게 뭔가를 암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야 나타나셨군, 그분께서. 그 이름도 거룩한, 전조! 즉 내용물은 변함없었고, 보낸 사람의 주소는 버뮤다의 삼각지대였다. 이건 누가 봐도 정식 초대장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고민했다. 「가, 말어?」 어떡해야 할지 종잡을 수 없었다. 그러나 직감으로 깨달았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또 멀기도 멀었고 귀찮기도 했다. 경비도 간당간당했고. 그래서 일단 좀 더 관망하기로 했다. 일명 눈치 작전. 지금은 뭔가 유별난 흥정에 대한 판단 근거가 분명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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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일일수록 이기적이고 세상 모든 일에서 패배를 몰라야 하는가? 아니다. 우정에서는 매번 밑이고 단짝과 사랑은 뺐겨도 괜찮은 것일까? 꼭 그런 건 아니다. 어차피 살면서 패자가 되는 일은 부지기수일 테니까. 그때 그때 대처하면 그만일 뿐. 그건 그렇고 입금은 계속 됐고 책도 계속 배달됐다. 다만 다른 점은 매번 보낸 사람의 주소가 다르다는 것. JS는 참다 참다 12주던가 13주던가 소포를 받은 다음 그곳으로 찾아가기로 했다. 이번에도 역시 해외였는데 그나마 현재 자신의 거주지와 매우 가까운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굳이 이유 같지 않은 이유를 하나 덧붙이자면 이랬다. 그는 자기 아버지 형제가 몇 명인지를 정확히 알게 됐기 때문이다. 전에는 그냥 많다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왠지 모르게 그 정확한 숫자를 알고 싶어졌다. 마을의 화살표 통나무가 사라졌기 때문에 또 다른 미신이 필요했던 것일까? 슬럼프는 일단 탈출하고 보자는 심리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는 고향집에 3박 4일 일정으로 다녀왔고, 아빠한테 물어봐서 답을 알아냈다. 간 김에 엄마와는 거친 입담으로 격하게 정담을 나눴고. 본론으로 들어가서 막내인 JS의 아빠는 장남이다. 그런 아빠의 형제는 모두 12명. 곧 할아버지는 1분, 할머니는 본 마누라─어렵고 격의 있는 표현을 생략한 채 사실만 간출이자면─로부터 7명의 아들딸, 그 후에 기간이 겹치는 건 잘 모르겠고 총 3명의 후처가 있었음. (뭐?) 그래서 모두 합쳐 할아버지의 자녀는 총 12명. 그런데 후처의 딸을 이쪽 호적에 올린 것까지 합하면 도합 13명. 시시콜콜한 얘기지만 그는 궁금했다. 자기가 피앙세와 처음 만났던 날은 이상하게 왜 12.5 금요일이었는지를. 지나가는 얘기긴 하지만, 허구처럼 말해도 되고 남 얘기 하듯 읊어서 객관성을 확보해도 좋다. 왜냐하면 지나가는 얘기니까. 왜냐하면 베니씽현상은 거의 다 뻥이지만, 왕왕 전설이 사실일 수도 있을 테니까. 곧 3인칭 시점으로 보자면 가령 이런 식이지. 양력 12살이자 음력 13살인 중1때, 1학년 2반 34번인 학생. 그 소년은 나중 천 단위가 바뀌는 해에 육각형 부대 마크가 달린 군복을 벗고, 32살에 영원한 사랑을 만나게 되는데. 그런데 뭐가 꼬이고 또 꼬이고, 그렇게 어쩌다 34살에 동화에 나오는 벌거벗은 임금님이 될 수도 있다니. 설마 고추...까지? 저런! 듣기로니 3형제에서 막내인데 그 전에 유산된 1번이 있엇다나, 그럼 별자리는 또 어떻게 되는 거야. 에잇, 재미없다. 넘어가고.
그야 뭐 우연의 일치일 테고, 어쨌든 그는 소포를 보낸 주소지로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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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친 허세의 유혹에 굴복하면 엄살은 질투를 부르고, 과도한 허영심의 희망에 솔직하면 선망은 투정이 된다. 그게 버릇이 되면 응석쟁이 어른으로 자리매김하는 거다. 그래서 그는 이번에 대책없는 말썽쟁이를 거부했고, 고삐 풀린 흑심을 에너지로 응용하는 탐험가로 거듭나기로 했던 것이다. 그처럼 소포를 보낸 주소지로 찾아가는 길은 기분 좋은 나날이었다. 그는 그곳에 도착했다. 그곳은 자신이 입주했던 유령 주택과 거의 흡사하게 생긴 집이 자리하고 있었다. 또 바깥에는 임대 안내문이 붙여 있었다. 뭐야 이거! 직관은 그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소포를 보낸 다른 곳을 찾아가 봐도 모두 이와 똑같은 일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그래서 그는 목적을 변경했다. 몇 일 쉬면서 휴가나 즐기고 돌아가자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며 놀고 쉬는 동안 특별한 일은 없었다. 다만 동네 어르신과의 대화가 약간 특이했을 뿐. 그분을 만나서 그는 뭔가를 물어볼려다가 언어가 다를 테니까 통역 앱을 작동시킬려고 했다. 그러니까 그분께서 말씀하셨다. 「아, 뭐해 젊은이! 보면 몰라? 나는 딱 보니 알겠는데. 더구나 젊은이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우리가 뭐 몇 개국어 할 만큼 영리한 거 같지도 않고. 안 그래? 그래, 여긴 무슨 일로 왔나?」 그는 희안하게 같은 언어로 말하고 있었다. 그래서 JS는 그곳에 찾아온 목적을 착실히 설명했다. 「아 그래서 여기까지 왔다고? 또 한 명 걸려들었구나.」 「네?」 「아니야. 혼잣말이야. 자네가 왜 왔는지 안 봐도 알겠네. 저 유령 나오는 집! 그걸 알고 싶은 것이로구만. 저기 귀신 없어. 요즘 세상에 귀신이 어딨나. 응? 그런데 참 이상한 게 말이야. 자네처럼 낯선 탐방객이 다녀간 다음에는 꼭 우리 동네에 복권 당첨이랄지 집 나간 아이가 돌아왔다거나, 누군가 큰 시험에 합격하거나 이곳 출신 유명인이 출세하거나 그런 행운이 발생한다니까. 그럼 자네도 길조야! 그럼. 그렇고말고. 그건 어떻게 설명하겠냐 하면 내가 그걸 왜 설명해야 하는데? 난 못해. 안 해. 몰라. 모른다구. 차라리 내게 젊음을 되돌려주시게. 응? 동화 속 요정의 마술이라도 부려보란 말이야. 보아 하니 여기 도착하기 직전까지는 그랬을 꺼야. 사춘기로 되돌아 간 듯한 기분, 이제 막 운명적인 사랑에 빠져든 것만 같은 심정. 안 그래? 저번 사람도 그랬어. 무슨 일인지는 자세히 모르겠네만 어떻게 나도 살짝 끼워주면 안 되나? 하긴 그거야 엿장수 맘이겠지. 자네도 객인데 어찌 알겠나 이 말이야.」 그는 주목 받는 듯한 느낌이 온몸을 엄습했다. 그러나 운명적으로 새로운 사랑이 성사될 것만 같은 기분은 여지없이 허무감으로 뒤바껴버렸다. 그럼 이제 어떡한담? 그는 집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새로운 작전 수립을 꾀할 수 밖에.
9
JS는 키다리 아저씨 만화영화를 보는 소녀처럼 점점 참을 수 없는 공상에 빠져버렸다. 꼬박꼬박 스포츠 선수처럼 주급이 입금되고 소포가 배달되니 그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과연 어떤 극적인 사연이 기다리고 있을까, 기대와 예감은 격정적인 갈채와 앞날에 대한 우려를 동시에 불러왔다. 정작 본인은 어른이 됐기 때문에 그는 실은 판타지와 이미 작별을 고했다. 미스테리에게 꿈에서 안녕이라 말했고 본인 삶에 더 이상 가면무도회는 없다는 점을 절감했다. 줄리엣의 일과를 궁금해 하지 않았으며 로맨스를 꿈꾸거나 장래 희망을 변덕스럽게 자주 바꾸지도 않았다. 아침에 꽃을 사고 낮에 사무실에서 일했으며 밤에는 집에서 TV를 봤다. 색다른 관심거리는 없었지만 봄이 다가오고 있었고, 언제까지 이 우스꽝스런 해프닝이 이어질지 대관절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이상한 청춘이란 제목의 희곡을 쓰기 시작했다. 그는 달콤한 오페라 아리아를 들으면서 자기를 기다리는 새로운 열매란 과연 무엇일까에 대해서 상상해봤다. 그는 우선 예전에는 미처 꿈에도 몰랐던 작가의 길을 걷게 됐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건 마치 거짓말처럼 우발적인 호기심 때문에 시작된 일이었다. 자기는 옛날에 평범한 직장인이었고, 잠시 회사를 그만둔 후 휴지기를 갖게 되었다. 그러다 신문에서 52주 소설가란 책 광고를 보게 됐다. 그걸 보는 즉시 그는 눈이 똥그래졌고 무턱대고 그 책을 구입했다. 그러나 결과는 역시나! 하지만 그 일을 계기로 그는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다. 시작이 반이었으니까. 천리길도 한걸음부터! 운명이란 그처럼 화가는 관심도 없었던 소년의 낙서 같은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원래 사람들이 그런다. 사랑하면 너와 나는 운명, 이별할 때는 아름다운 뒷모습이면 좋은데 그게 아니면 악연이네 어쩌네 하며 치를 떠는 모습, 전혀 신기한 딴나라 얘기가 아닌 것이다. 대망이 행운의 순풍을 타면 그것 역시 운명이고, 태몽도 운명, 소소한 행복 역시 운명이다. 시작은 운명적인 만남, 타오르는 욕망을 절제하는 삶에 상심, 그리고 새로운 절망! 심지어 일하면서도 운명이란 제목의 관현악을 듣는다. 그러고서 밤에는 숙명이란 제목의 드라마를? 웬걸! 삶이란 원래 그런 것이다. 곧 점쟁이 맘대로! 그건 그렇고 지금 JS의 전주곡은 밑도 끝도 없는 몽상이 주도했다. 다시 말해 그 일을 꾸민 일당이 아마도 악당은 아닐 거라는 점. 어쩌면 52주 소설가란 책을 읽은 다음 나중 작가가 된 사람들의 모임이 만든 재단에서 벌인 사건일 것이라는 게 가장 유력한 추리였다. 그러니까 나중 그곳에서 주최하는 파티에 초대 받고, 나비넥타이를 매고서 어여쁜 숙녀와 3박자 춤을? 하오나 그는 재수 없게도 반전 역시 예상했다. 혹시 모르니까. 새로운 젊음이 이끄는 사랑의 끝은 웃음보가 터지는 낭만이 아니라 무슨 비밀 단체에서 꾸민 뭐 그런 일들 아닐까 라면서. 그런 뜬소문 같은 이야기야 이미 어렸을 때 떼도 진작 떼버렸지만 또 모른다 라는 의구심은 그를 자꾸자꾸 괴롭혔다. 그는 어떤 은폐된 계획을 캐내려 했지만 도저히 숨겨진 꼬리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우연히 자기 필명 동호회를 오랫만에 찾아갔다. 물론 인터넷으로. 그런데, 어머머 글쎄! 오, 저런... 맙소사! 이 일이 다 얘네들이 꾸민 일이란 걸 알게 됐다. 괴씸한 녀석들! 아니지 아니지. 그래도 잠시 그는 행복했다. 지상의 낙원은 없다는 걸 알게 됐지만 사랑의 은하수 근처까지는 갔다 왔다. 갔다 온 게 어디야! 최소한의 이득은 그를 만족으로 이끌었다. 역시나 대-만족은 뻔트의 차지였다. 홈런이란 건 한마디로 숙명에 해당하는 거고, 인생이란 다름 아니라 그런 이름들일 것이다. 개구멍, 음악이 중간에 간혹 바뀌는 호박 나이트클럽, 음악이 절대 끊기지 않는 신비 클럽, 샤우트 창법. 다시 말해 뻔트 더하기 말은 일명 뻔트마! 그리고 보너스로 사랑 또는 우정까지. 어차피 영웅적인 행동의 추구는 그의 스타일이 아니었으니까. 신세를 망칠 뻔 하지 않았으면 된 거였고, 어리둥절하면 그만이었다. 그는 흥분을 억누르지 못하고 어쩐 게 아니라 흥분을 가라앉혔다. 얌전한 체 행운을 부르는 주문에 대해서도 떠올려 봤다. 자기가 저번에 팬클럽 모임에서 으쌰으쌰 때문에 망신을 당한 일과 이번 해프닝으로 퉁치면 될 일이었다. 그들은 이미 친밀한 관계였다. 그는 벌써 얄궂은 고민은 사라져버렸고, 새로운 이야깃거리까지 얻은 결과를 맞이했다. 고명한 허당의 외부로부터 주어진 이성적 취미라고나 할까? 그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면서 다음에 대해서 생각했다. 대-실망은 대-실망이지만 좋은 느낌과 붕 뜬 기분과 한껏 신난 분위기까지 모두 부인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는 결심했다. 볼살이 경련을 일으키는 이 사연을 다음 타자에게 넘겨야겠다고. 유령 주택의 비밀을 알게 되고, 보물 지도를 발견한 다음, 그곳에 갔더니 인공 지능 슈퍼컴퓨터가 가동되고 있더라는 둥 이러쿵저러쿵 상상의 나래를 펼쳤는데, 이런 젠장! 그 경험을 다른 누구도 아닌 멀더에게, 아니지 자기가 멀더한테 당했으니 마라에게 넘겨야겠다고 다짐했다. 따라서 그는 별장을 팔기 위해서 부동산 마케팅 독학에 들어갔다. 그러나 독학이 웬 말인가. 마라의 팔랑귀가 있지 않은가. 그는 벌써 부푼 꿈과 부드러운 감상에 젖어들었다. 행복한 기억은 물론 최소 2배 시세 차익까지? 우스운 환상 순수한 기쁨은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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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S는 마라한테 별장을 판매했다. 그는 홀가분함과 동시에 시원섭섭했다. 쾌활한 기대가 날개를 펼치고 예감이 발랄하게 춤을 추는 듯한 행복감은 대충 막이 내리기는 했는데, 이대로 떠나가자니 뭔가 느낌이 세했던 것이다.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그는 원인을 찾아냈다. 그건 바로 동네 친구 줄리엣 때문이었던 것이다. 상큼한 그녀를 놔두고 그냥 우린 이대로 생이별을 하라고? 아니 될 소리였다. 줄리엣! 그녀의 성정은 그랬다. 다감한 청춘과 다정한 성정, 꼼꼼한 정서 털털한 성격. 정다운 심정에 약한 마음까지 그러나 센 척 야무진 콧대까지. 그리고 또 하나, 까다로운 취향. 그 뿐만이 아니라 바라는 건 사랑의 활기를 만끽하고 싶다? 한마디로 그녀는 천상 여자였다. 자기가 그녀를 어떻게 한번 해 보겠다는 뜻이 아니었다. 그의 마음은 어디까지나 로맨티스트의 순수함이었다. 사랑의 기쁨은 애정이란 감정에 대하여 그 어떤 뭔가를 부끄러워하고 싶다는 것. 누군가에게 그것은 지고의 희망일 것이다. 지금 그가 그랬다. 전에도 그랬다. 앞으로는 모르겠지만 그는 최소한 줄리엣에게 가르쳐주고 싶었다. 설혹 줄리엣이 그 책을 읽었을지라도 말이다. 남자들은 자꾸 여자들을 가르칠려고 한다나 뭐라나! 그러니까 그가 알려주고 싶은 인생의 비밀은 그런 것이었다. 유쾌한 생활의 연속인 세속적 행복. 진일보를 이루는 사랑에 빠지는 방법. 줄리엣 넌 혹시 그런 감정이 생활을 지배하지 않았냐면서 그녀를 설득하고 싶었다. 나에게 새로운 환경은 현재의 쾌락을 광고하고, 정당한 행복을 권유하며, 미래의 만족을 예고한다. 하지만 세상이 우리 손에 쥐어주는 건 결국 심심함! 그런데 난 이제 정말 운명적인 상대를 만고야 말았다. 그건, 바로, 너! 라~고 말할까 말까 고심하게 되었던 것이다. 「줄리엣. 남자친구 왜 안 사귀니? 어느 날 갑자기 깜짝 발표할려고?」 「차차 생기겠지. 왜? 꼭 있어야 하는 건 아니잖아. 오빠가 나 책임질 거도 아니고. 안 그래?」 「(멈칫) 줄리엣은 재밌는 남자가 좋아, 아니면 자상한 남자가 좋니?」 「재밌고 자상한 남자. 그건 왜? 소개시켜 줄려고? 소개시켜 주지도 않을 꺼면서 그건 왜 묻는데?」 「왜긴. 그냥 한번 물어봤어.」 「오빠는 싱거운 남자구나. 그런데 그거... 취조야 심문이야? 아니면, 알고 싶어요! 그러니까 나를, 그거야? 선물도 그렇고 이거 뭔가 수상한데? 말해. 어서. 왜 말 못해? 오빠 혹시... 떠나?」 「와! 어떻게, 알았니?」 「내 그럴 줄 알았어. 이 오빠도 1년도 못되서 떠나는 구나.」 「완전히 가는 건 아니야.」 「차라리 자주 연락하자고 말해. 응?」 「우리 앞으로 좀 더 친하게 지내자. 거리도 가까워.」 「금새 따라하기는. 왜 오빠는 바다가 지겨워졌을까?」 「실은 그게 아니라 유령이 나타나지 않아서지.」 「시세 차익. 그런 거 노렸구나. 오빠도 똑같아.」 「아니야. 난 달라.」 「다르긴 뭐가 달라. 완전 똑같구만.」 「기쁜 삶을 위해서라면 굳이 장소가 문제될 건 없어.」 「오빠 꼰대 같아. 왜 그래 실없이. 난 그래도 이제 조금 마음을 열려고 했는데. 오빠가 사진 찍기 같은 새로운 취미랄지 아니면 그림을 그리겠다거나 그랬다면 내가 흔쾌히 모델로 나설 수도 있었을 텐데. 아쉽다.」 뭐? 어떻게 떠남을 조금 연기할까? 라고 그는 생각했다. 「줄리엣. 셋 중에 하나 골라. 리우, 베네치아, 니스!」 「그건 왜?」 「오빠랑 놀러가게.」 「다큐멘터리 틀면 다 나오는데, 뭐 세계 3대 축제? 꼭 직접 가 봐야만 하는 건 아니지 않나. 안 그래? 오빠도 혹시 모든 여자를 직접 사겨보고 만나봐야 한다 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그럼. 난 아니야. 난 절대 아니라구.」 「오빠. 내 친구 소개시켜 줄까?」 「뭐?」 「새로운 친구 사귀기. 그 말 한 거야. 뭔 생각해, 오빠?」 「난 여전히 낯선 사람 만나는데 서툴러서 말이야.」 「오빠는 은퇴한 건가? 아직 상비군 뭐 그런 거 아니고?」 「얘가 이상한 감수성이 있는데! 몰랐던 매력이군. 멋져.」 「하여간 선물 고마워. 사람이 너무 갑자기 변한 거 같아 왠지 떨리는데. 오빤 나한테 너무 깍듯해. 오빠는 그렇게 생각 안해?」 「난 단지 너가 친애하는 행복감을 기꺼이 맞이하길 바랄 뿐이지. 그럼. (윙크)! 아시잖아요.」 「오! 기대하지 못했던 배려. 기분 이상해.」 「뭐?」 「이 오빠는 무슨 말만 했다 하면 생각이 많은 거 같아. 뭔 속셈이 그렇게나 많아? 응? 그거 혹시 흑심이야? 설마 설마 사자의 군침...!」 「음... 그건 오빠는 말이 많은 남자는 아니니까. 이제는 말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나 할까.」 「아하. 오빠는 전에 행동이 빠른 남자였구나. 그러니까 포옹도 건너뛰었다? 난 그래도 오빠가 이 시대의 마지막 낭만주의자인 줄 알았는데 풍기 문란에 흉내꾼에다 추근대는 행동주의자였구나.」 「무슨 소리야? 너가 아직 오빠의 진면목을 몰라서 하는 소리야. 난 너의 엄격히 절제된 질투심을 거울 들여다 보듯이 다 엿보고 있다구. 알겠니?」 결국 얼마 되지 않는 여흥을 뒤로 한 채 JS는 홈그라운드로 돌아갔다. 줄리엣과 이별했고, 나중 만나자며 꽤 미묘한 여운을 남겼으며, 유령의 집도 냉큼 팔아버렸다. 그러니까 그 집을 누구에게 팔았냐 하면 바로 환상 문학 잡지 미스테리아 편집장 마라에게 판 것이다. 그것도 2배를 훌쩍 뛰어넘는 시세 차익을 남겨서. 거기까지는 좋았다. 딱 거기까지는. 다시 시간이 반 년이 지나서 그는 알게 됐다. 그곳이 미스테리아 회원을 위한 별장으로 이용된다는 사실을. 더군다나 그곳에는 숨겨진 특실, 보물 지도, 얽힌 전설, 비밀 기능이 숨겨져 있었다는 것까지. 그 모두를 미스테리아에서 특집으로 다루었기 때문에 알게 됐다. 나아가 마라는 여성잡지2를 새로 창간하여 이제는 편집장에서 어엿한 창업자 및 발행인이 되었다. 그걸로도 모자라 멀더는 차를 바꿨다. 바로 애스턴마틴 DB11 볼란테로. 결국 JS만 제자리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기 때문에, 특별히 하고 싶은 말과 상대할 적수가 없었기 때문에, 괴로운 속사정을 토로할 우정과 사랑 사이에서 방황하는 누군가가 없었기 때문에 용돈을 벌기 위해 마라가 창간한 잡지에 칼럼을 기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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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녀에게 남자친구가 없는 이유 내용: 그녀에게 남자친구가 없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남자의 자존심에서 그 까닭을 찾아야 한다. 왜냐하면 드라마는 현실이 아니고 프리마돈나는 1명 잘해야 2명이기 때문이다. 남자의 자존심은 마치 상품의 구분처럼 상중하로 나뉜다. 상급 자존심은 무조건 좋은 게 아니다. 또 자존심이 너무 낮아도 재미없다. 마치 허세 지수 50 허영심 50처럼 자존심도 중간층이 이상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문제는 상급 자존심! 허나 자존심 빼고 나머지 여러 객관성이 상급 자존심에 걸맞게 고품격일 것인가? 그럴 리는 없다. 만약 그렇다면 화장품 브랜드는 자존심을 건드리지 자존감을 공략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상급 자존심은 둘로 나뉜다. 그것이 허세형인가 불만형인가. 우월감인가 열등감인가. 촌닭인가 뱁새인가. 자기 합리화인가 세상사 불만족인가. 빈수레 떽떽거림인가 잔지식파 빈정인가. 띄워주면 연예인병 깎아내리면 울보인가. 다만 만약 뭘 좀 아는 남자가 아니라면. 단 뭘 좀 알더라도 호박이든 꽃이든 그 무언가가 다정스럽고, 친절하며, 여성스럽게 애교라는 수완을 적극 발휘하여 기꺼이 제발로 다가갈 만하지 않다면! 남자에게 상급 자존심은 어차피 둘 중 하나다. 자존심만 남았냐, 아니면 타고난 성품은 어쩔 수 없다고 할지라도 그에 상응하여 교양과 예절과 인격등 월등한 자존심에 대응해서 여러 기교와 장점을 잘 살리는 삶을 사는가로. 아름다운 인생은 다른 색다른 뭔가가 아니란 말씀. 나아가 마초 유형에게 관망이란 어디까지나 의도적 저자세다. 때문에 그녀께서 만약 할 수 없이 자존심 센 남자를 만나야 한다면, 어쩔 수 없이 그래야 한다면 저 후자를 만나시기를. 현대 사회의 특징상 경쟁은 피할 수 없기 때문에 특히 경계해야 할 건 그거다. 상급 자존심과 가난, 낙담, 절망, 불우, 좌절, 고난, 불행, 채워질 수 없는 야망 같은 개념들. 나는 자존심이 세지 않다, 남들도 다 그런다는 변명. 자기 자신을 모르는 무지. 무능력이란 단어를 싫어하는 심정. 그리고 전자와 후자를 혼동하거나 후자 때문에 전자가 부각됐다는 글인지 말인지 불분명한 변호들. 하긴 어른이라고 투정과 응석을 양족에 꿰차지 말란 법은 없다. 마초의 불문율은 그거다. 그분들께 옆은 없다. 위나 아래만 있을 뿐. 뭐 0과 1만 있다고? 「그래 너는 허당처럼 0과 1로만 행동하고 살아라~」 뭐? 「너나 허수아비처럼 0과 1로만 행동하고 살아라! 나는 그녀에겐 0.5 바깥에선 1.5인자를 도맡을 테니까!」 그런데 여자의 우정은 남자와 완전 다를 것 같은데 겉모습만 그럴 뿐 전혀 딴판의 신세계는 아니다. 즉 심리학적으로만 봐도 절반은 동일하다. (절반이 어디야!) 재미있든 심심하든 수직이냐 수평이냐, 우정도 사랑처럼 시소 게임이니까. 그러나 남녀는 많이 다르다. 여자는 우월감은 듣고 싶어하고, 열등감은 말하고 싶어한다. 정말 그런다. 여자는 내 열등감을 내가 말하고, 내 우월감은 친구로부터 듣는다. 그러기를 바란다. 최소한 그랬으면 좋겠다-다. 반면 남자는 (내) 우월감만 말하고 싶어한다. 단지 그것만! 끝. 딱 끝. 그래서 간혹 드물게 친구들끼리 각자 마이크 쥐고서 각자 막 다 딴 얘기를 한다. 곧 라디오 주파수 혼선. 그런데 내가 아니라 친구가, 지인이, 옆에서 내 우월감에 대해서 말한다? 오, 땡큐! 겸손은 미덕이지만 그렇다고 부러 뜯어말릴 것까진 없는 일이다. 다만 포커페이스가 안되면 왜 날 칭송하는지 뭣 때문에 아부하는지 그 의중을 살필 필요는 있다. 뿐만 아니라 남자 곧 마초는 청자 입장으로써 내 우월감만 듣기를 원하지 나의 열등감은 말하기도 듣기도 싫어한다. 비교 역시 이기는 비교 밖에 원치 않는다. 마초가 왜 비교를 싫어하냐 하면 마초에게 지는 비교가 이기는 비교보다 (훨씬?) 많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초는 비교를 싫어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지는 비교를. 그처럼 겉으로 보면 남자의 우정은 다툼이고 여자의 우정은 친목이다. 때문에 다투지 않으면 남자는 재미없어 하고, 친함을 확인하지 않으면 여자 세계에서는 친교의 결례가 된다. 다시 말해 남자는 소란스러움을 즐기면서 목적을 향해 뛰고, 그녀들은 그런 남자들이 어? 그 작자들이? 그 인간들이! 그분들께서 대체 왜 그럴까에 대해서 토론하며 추측하고 얘기꽃을 피운다. 때문에 남자는 맥주 3명 여자는 수다 3시간. 다 그런 건 아닌데 대체로 그렇다. 따라서 남자의 말은 세고 여자의 말은 길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곧 남자는 허풍 여자는 수다! 여자 얘기 다 듣다가는 날 샌다. 글도 마찬가지고! 역시 곧이곧대로, 남자의 할 말을 믿고 할 일을 이해하다가는 내 말을 못하고 속기 쉽상이다. 무엇보다도 뻔트조차 대만족인데 서로 허당하겠다고 난리인데, 상황 판단을 거꾸로? 으쌰으샤해서 나갔길래 아무도 없고, 이번엔 다르겠지 하며 방관했더니 의리 없다고 소문난다. 훗날 풍문에 따르자면 비겁한 친구로 낙인 찍힌 걸로도 모자라 벌금 물기가 습관인 인성이라길래 그녀도 날 떠났다라 뭐라나. 까딱 잘못했다가는 병풍 서기 일쑤고 청춘 훅-가버리는 건 시간 문제다. 난 준비도 안됐는데 덜컥 어른. 아직 사랑다운 사랑도 못해봤는데 여성잡지 2! 친구 연애 상담만 하다가 추억의 유행가를 부르는 게 일상. 달팽이 요리도 못 먹어봤는데 어느새 은발의 신사가 될 수도 있다는 것. 그게 바로 인생이다. 그것은 곧 남자의 허풍과 여자의 수다! 그러므로 부럽지 않다 라는 남자의 허세 딱 하나에 대해서 숙녀에게는 판도라의 상자에 담긴 감정들이 수없이 많은 것이다. 선망, 허영심, 질투심, 감수성, 호기심, 상심, 체념 뭐 뭐 들어도 들어도 끝이 없는 그녀들만의 대담은 말이다. 그래서 남자가 봤을 때 괜찮은 여자는 첫째 신부 들러리라는 역할에 적극적인 여자, 둘째 착하고 예쁜 여자다. 그건 남자끼리 합심하여 아마도 반론의 여지가 별로 없다. 어쩌면 거의? 그러나 여자는 의견이 분분하다. 괜찮은 남자가 누구인가에 대해서. 곧 여자에게 괜찮은 남자라는 기준 자체가 애매한 것이다. 날 꽃으로 찬미하며 거울이 되어주고 조명을 비춰주며 선물 공세마저 마다하지 않는 남자가 최고일 테니까. 어머머 그런데 성실한 벌꿀도, 춤추며 노래하는 베짱이도, 재밌고 즐거우며 멋진 나비님들은 다 어디로 가셨는지 어설픈 파리마저 꼬이지 않는다? 조류 대백과는 다 엉터리인 것이다. 우리는 여자의 마음을 이해해야 한다 이해해야 한다. 그러니까, 괜찮은 남자는 누구일까? 그래서 그녀들끼리 함께라면 결론은 도출된다. 뭘 좀 아는 남자는, 바로, (내) 열등감을 말하는 남자 아닐까 라고! 그녀들끼리는 다정한 수다가 자연스럽게 그 어디서나 성토된다. 뭐 괜찮은 남자가 그렇다고? 과연 그럴까! 아니다.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리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는 맞는 말인데, 속속들이 빈틈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이렇다. 속셈이 시킨 말하기 곧 교묘한 화술도 있을 테고, 밑밥을 던지거나 에르메스 같은 화려한 공작새의 깃털을 내세우기 위한 사전 포석일 수도 있다. 또 있다. 바람잡이라는 조수 하나 달랑 놔두고 마술사는 객석에 숨는 것처럼 우월감을 위한 멍석을 까는 일일 수도 있으며, 것도 아니면 피곤한 스타일에 여간해서 통 잘 듣지를 않는 수다쟁이일지도 모를 일. 예시는 해도 해도 끝이 없다. 그 뿐만이 아니라 남자는 배짱 여자는 애교라는 (전래) 인습처럼 여자는 유혹하고 남자는 구애하는 전형마저 세월에 따라 조금은 약해진다. 모든 건 변한다. 때로는 사랑마저 식는다. 더구나 남녀의 우정과 사랑은 쉽게 말해 8 대 2의 법칙이 통용된다는 걸 누구나 크면서 알게 된다. 심지어 발레리나가 거울을 보면서 해야 하는 혼잣말, 넌 백조다! 이어서 그 비싼 입장권을 구입한 특A 좌석에 앉으신 그녀가 꿈속에서 했던 말, 어딜 넘봐? 그마저 영 딴 데서 애용될 가망성도 다분하다. 푸르른 청춘 하고 싶은 일들은 다망했는데, '망'자로 끝나는 불길한 낱말들은 인간사에서 불가피한 일이다. 그러니까 어느덧 세상의 원리를 모두 알아버렸네? 그러면서 부끄러운 척 무서운 척 공포영화를 보면서 그이의 팔짱을 꼬옥~! 고로 그녀들은 얘기한다. 아, 바로 그래서 우리들에게 멋진 남자친구가 없는 것이로구나 라고!
from 소설
2018. 2. 15.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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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요즘 왜 매사 재미없어 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내가 왜 허언증에서 무기력증으로 갑자기 옷을 갈아입었는가, 왜냐하면 나는 지킬 앤 하이드처럼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질투심으로부터 맹추격을 받든가, 새로운 관심사의 맹추궁에 시달리던가, 어쩌다 그 둘이 모두 갖추어져야만 뭔가 흥미로운 일을 벌일 만한 의욕이 발동하는 개구쟁이로 변해버린 것이다.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고, 도도하던가 꿍꿍이가 있거나 감수성을 자극하는 부뚜막이 보이던가 나타나던가, 그래야 하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지붕 위에서 일장 연설을 할려면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본다고 개라는 부동의 조연이 필수적인데 흥미를 유발하는 호기심도, 도발하는 여심에 자극 받는 동심도, 별다른 약속도, 변변찮은 친구도 없었다. 때문에 나는 극심한 권태에 시달리며 지루한 일상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녀들을 만나러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녀들? 그녀들은 저번에 팬미팅에서 알게 된 친구들을 말한다. 나는 그녀들의 해맑은 미소와 밝은 눈빛, 들뜬 분위기, 뭐든 재미난 일은 우리네 삶에서 끊이지 않는다는 듯한 웃음소리를 기억했다. 아이스크림 사주라는 둥 아빠라는 둥, 잡덕 별로라는 둥. 물론 나는 나름대로 혼자서 노력했다. 탐욕을 잠재우기 위해서. 우유부단증을 치료하려고. 영감을 애걸하고 심심함을 벌충하려고 말이다. 식상한 일상에 질질 끌려다니기는 싫었으니까. 하여 나는 블로그에 몰두했고 환상론을 탐독했다. 더 나아가 라디오 연속극을 애청했으며 TV로 스포츠 경기를 관람하며 나 혼자 편파 방송도 했다. 그러나 사랑은 실전이 아니라 모두 가상 체험이었다. 그걸로도 모자라 나는 세상에 둘도 없는 재주의 부재를 절감했고, 통장 잔고에 절망했다. 곧 항상 그래 왔듯이 또 심심해서 뭘 찾고 두리번거리며 어떤 냄새를 맡을려고 기민한 육감과 별의별 상상은 바빠진 것이다. 그러나 내내 놀기만 하지는 않았다. 약혼식이란 제목의 사랑론을 책으로 발간하기로 결심했다. 그렇지만 매번 그렇듯이 발단 다음에 또 발단이었다. 즉 진행이 영 신통치 않았다. 남다른 취미는 상상이요, 고전음악을 애청하고, 환상문학을 탐독하며, 다큐멘터리 동물의 세계를 정기 시청하는 가운데 언제나 새로움을 열망이라고 우겨 봐야 재미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나는 어쩔 수 없이 그녀들을 만나야만 했던 것이다. 명분은 마련됐다. 실행만 남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연락을 마쳤고 어디서 만나자는 약속을 잡은 다음 도시로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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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네들 어디 가고 싶니?」 「오빠 무슨 인사말이 그래요?」 「그러게. 꼭 집에서 재미없는 영화 볼 때 구간 당기기 그런 느낌 들지 않니? 멀리서 걸어오면서 어떤 인사를 나눌까 미리 상상하다가 정작 만나서는 몇 페이지 건너 뛰어. 너네들 어디 가고 싶니?」 그녀들은 모두 함께 웃었다. 「오빠는 우릴 남자로 알고 있어.」 「그러니까.」 「가긴 어딜 가?」 「보자마자 너네들 어디 가고 싶니?」 「아저씨 무안하시게 너무 그러지 말자.」 「아저씨? 그게 더 심한 거 아니니? 오빠! 우리가 오빠라 부르는 게 좋아요, 아저씨라 부르는 게 좋아요?」 나는 내가 왜 얘네들을 만나러 왔을까 라는 당혹감에 순간 아찔함을 느꼈다. 「오빠의 질문에 질문으로 대응하지 말고 우리가 답을 정하자. 클럽 어때 클럽!」 「클럽?」 「오, 클럽!」 「나 엄마 심부름 가야 하는데.」 「지금?」 「응. 지금.」 「그럼 얘 빼놓고 가면 되겠네.」 「아차. 나 있잖아. 우리 오빠랑 약속한 거 깜빡했다.」 「에이. 이 오빠 보고 실망했구나. 왜 너네 오빠랑 비교되니? 그럼 가지 말자.」 「가지 말긴 뭘 가지 마? 이 오빠 얼굴 봐 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우릴 만나 커피 몇 잔으로 때울려는 대망이 성공했다는 저 늠름한 표정, 보이지 않니? 너네들 왜 그래? 약해지면 안 돼! 응?」 「가자. 가야겠다. 갈 사람은 가고 나중 합류하고 싶으면 합류하고.」 나는 드디여 내가 말을 해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너네들 클럽... 가도 되니?」 「왜 못 가요, 오빠? 설마 돈 부족해서 그런 건 아니죠? 쟤 삼촌이 클럽 사장이에요. 우린 특별히 2배로 받을 걸요.」 일단 나는 찻집에서 혼자 나와 마라에게 전화를 했다. 왜냐하면 나는 요즘 칼럼이 잘 써지지 않아 여유 자금이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너 돈 떨어졌니?」 「돈이 왜 떨어져? 나 돈 많아.」 「돈 떨어졌네.」 「아니라니까. 늬가 내 마누라냐? 나 좋아하는 사람 있어.」 「누가 뭐래? 아무튼 칼럼 굳이 억지로 쓸려고 하지 마. 그리고 있잖아. 요즘 애들 뭐 좋아하는지 색다른 유행이랄지 뭐 그런 거 있음 알아 오고. 응? 그리고 있잖아. 내가 언제 한꺼번에 내 호의에 대한 화답을 요구할 꺼야. 알았니? 긴장해!」 「긴장하긴 뭘 긴장해? 무섭게 왜 그...러니. 너 자꾸 그럴래? 자꾸 그러면, 혼난다.」 「응. 혼날께. 나 혼 좀 내주라. 응? 넣었어.」 「응? 뭘 넣어? 넣다? 그러니까 뭘?」 「현금 보냈다고. 이번에는 제발 발단을 탈출하기 바란다.」 「아 참 나, 넌 왜 꼭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하고 그래? 그래도 일단 보낸 성의가 있으니까 최신 유행과 최고로 신난 기승전결을 안고서 돌아갈께. 딱 기다려. 응?」 「아 됐고. 그만 끊자. 우린 통화 너무 길게 하면 안 어울리니까. 안녕!」 뚝. 「얜 여자 애가 왜 이렇게 퉁명스러워? 딱 지 말만 하고 끊는 거 좀 봐. 앞으로 누가 데려갈지는 몰라도 고생 꽤나 하게 생겼네.」 그녀들과 나는 클럽에 갔다. 클럽은 재미있지 않았다. 그런데 술값은 많이 나왔다. 그러나 술은 많이 마시지 않았다. 그건 다 값비싼 특실 때문이었다. 나는 그날 원래대로라면 입장 금지를 당했어야 했다. 그게 정상일 것이다. 하지만 그녀들 말마따나 클럽 사장이 진짜로 누구의 삼촌인 듯 했다. 그래서 미리 얘길 해 놓은 것 같았다. 그리고 내가 알기로는 클럽에서는 춤을 심하게 추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어제 보니 꼭 그렇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그녀들은 춤을 매우 과격하게 추었기 때문이다. 그야 개인의 취향이니까 달리 문제될 건 없지만 특별한 점은 그거였다. 한 명은 스피커를, 한 명은 DJ 무대로, 한 명은 무도회장의 춤 추는 곳 정중앙을 독차지했다. 그래서 내가 물어봤다. 그처럼 기분 내는 것 보니 꼭 너네들 뭔가를 기념하는 것 같다면서 혹시 성년식이냐고.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녀들이 그랬다. 와, 어떻게 알았어요! 어떻게 알긴 뭘 어떻게 알아, 그냥 찍었구먼. 그외에 달리 재미난 일은 없었다. 아, 약속 하나만 빼면 말이다. 그 약속은 내일 떠나자는 다짐이었다. 어디냐고? 어디긴 어디겠나 바다지. 특별한 목적지가 아니라 페이스북 프로필에 좋아하는 대상으로 도시, 꽃, 소풍, 음악, 영화관이라면서 넓고 모호한 대상을 적는 것처럼. 당시 분위기는 좋았다. 야 바다 어때? 바다! 오, 바다? 와! 떠날까? 갈까? 가자! 와 재밌겠다! 즉 전형적인 으쌰으쌰였다. 곧 그건 술 마시고 한 약속이었다. 나는 꼭 술이 아니더라도 살면서 으쌰으쌰에 당할 만큼 당했기 때문에 당연히 지나가는 말로 알아들었다. 그 외에도 이유는 많았다. 우리는 미래를 약속한 사이가 아니었고, 나는 보디가드 역할을 성실히 수행했다. 즉 할 일은 마쳤다. 게다가 비공식 대리인으로써 밤의 세계에서 펼쳐지는 제2의 환희, 제3의 계산서까지 책임졌다. 더구나 우리는 1 대 1이 아니었다. 나는 눈치없이 계속 덩달아서 들썩거릴 게 아니라 이쯤에서 빠져야 할 적기라고 생각했다. 나는 시시콜콜 묻고 답해야 할 것과 이심전심을 적절히 구분할 줄 아는 남자여야 했으니까. 이심전심? 백조도 그런다. 자기 유리할 때는 묻고 답하기, 언어와 서류로 구체화되지 않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처럼,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통례 역시 묻고 답하기. 즉 말이 먼저고 말이 끝. 하지만 백조라고 이심전심이 없을 수야 있나. 이를 테면 숙녀여 손 잡아도 될까요? 아가씨 키스 해도 되겠습니까? 이건 코메디 소재로도 적합하지 않는 일이다. 그처럼 꽁트에서도 인기 없고 드라마에서도 잘 나오지 않길래 올커니 하면서 딱 어떻게 한번? 그러다 뺨 맞는다. 한 사람 인생에 평생 잊지 못할 추접한 기억과 끈질긴 저주를 남길 뿐. 그래서 눈치 없으면 고생 길이 훤할 것이다. 어딜 넘봐, 한 발 다가와 주세요! 그 둘의 분간이 그분들께는 애매할 테니 말이다. 아무튼, 때문에 나는 장래 어떤 일이 있을 줄도 모르고서 그녀들과의 약속을 깨버렸고, 인연을 외면했으며, 넝쿨째 굴러온 호박을 이건 또 뭐야 라면서 과감히 무시해버렸다. 하지만 난 나름대로 어른스럽게 행동했다면서 어줍짢은 득의를 성취한 듯 떨떠름한 미소를 짓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혼자 적당한 호텔에 입실했고, 다음 날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그날은 그렇게 잤다. 다음 날 일어나서 특별한 일 없이 하루를 보내고 나서 나는 빌리가 꼭 한번 놀러오라는 어느 해변에 위치한 호텔로 놀러가기로 했다. 바로 출발했다. 물론 놀러오라는 빈말에 덥썩 진짜로 놀러가면 적지 않은 실례일 테니까 나는 빌리의 인사말이 수차례 반복되기를 오랫동안 기다렸고, 그 간곡함을 심려 깊게 검토한 다음 내린 결정이었다. 아, 그런데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곳은 내가 첫 단편소설을 썼던 바로 그 호텔이었다. 빌리가 그곳 사장이라길래 처음에 난 선뜻 믿지 않았고, 가 본 적 있다고 말하지도 않았으며, 나는 빌리의 호의를 끝까지 불신했다. 그렇게 나는 행복한 일하기를 위해서 한적한 바닷가로 떠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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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왜 안 나왔어요?」 나는 그 멋진 휴양지에서 그녀들과 만나게 됐다. 그럴 줄은 꿈에도 몰랐다. 마치 약속이나 했다는 듯이 만나게 될 줄이야 상상이나 했겠나. 무심한 사랑 무정한 우정만은 피하고자 하는 미래에 대한 우리의 전망이 일치했기 때문일까? 일치는 무슨! 「뭔가 오해가 있나본데, 오빠가 쓴 일기를 읽어보면 알게 될 꺼야. 나는 무엇보다 이건 우리의 숙명이고, 이 우연을 아름답게 발전시켜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해.」 「오빠 일기를 우리가 왜 읽어요? 아니지. 보면 재밌겠는데!」 「어. 정말 그럴 것 같아.」 「아무튼 변명하지 마세요. 오빠.」 「얘들아. 이쯤 되면 반전은 필연 아닐까?」 뭐 아닐까? 「그래도 다행이지 않니? 우리도 신세지고는 못 사는 숙녀들인데 말이야. 구호라도 읊어주자구. 오빠가 돌아왔다! 왜 아무도 안 따라해? 에잇 재미없네.」 「오빠가 우릴 놀라게 해 주었으니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게 있어야 하지 않겠니? 해변이 우릴 부르는 구나. 오빠. 우리 사진 찍어줘요. 응?」 「오빠. 쟤 잘 부탁해요. 딱히 이상한 애는 아니니까 걱정 마세요. 안 그러니?」 「이 오빠 벌써 상상하는 거 아니니?」 「어떤 거? 욕심?」 「그러니까 동심이냐 흑심이냐. 여심일 리는 없고.」 「오빠 그만 놀리자. 혹시 모르잖아. 약혼녀랑 같이 왔을지 모르니까 말이야.」 「오빠 혼자 왔어요? 대답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아니 그럼 묻지를 말던가! 우리는 바닷가를 잠시 거닐다 들어왔다. 눈치없이 막 우겨서 해변의 낭만이라면서 맨발로 여기서부터 저 끝까지 갔다 오자, 그래야 한다? 나는 그런 인기 없는 허당이 될 수는 없었다. 더군다나 우리는 우리는 하면서 나는 글을 써야 하는데 진짜로 '우리는'이 생겨버렸다. 따라서 나는 이 전개를 필시 규명해야만 했다. 그녀들이 감격의 절정으로 날 초대할지 나의 끈질긴 발단에 대한 애착이 승리를 거둘지 지켜보아야 하니까. 그렇게 우리는 조찬 비즈니스 모임이 끝난 후 담소를 나누듯이 한 잔의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게 됐다. 「오빠. 왜 혼자 왔어? 낯선 만남 막 이런 거 바래서?」 「이 오빠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봤네.」 「아 오빠 작가지. 오빠는 아마 2시간 전에 이런 글을 썼을 것 같아. 새로운 취미에 도전하여 악기 연주에 실패했고 외국어 공부에 연패했다.」 「와, 어떻게 알았니?」 웃음소리. 「얘들아. 그래도 우리 오빠 글 쓰는 남자야. 나중 모른다니까. 오빠 유명해지면 그때 가서 친한 척 하지 말고 지금 실컷 놀려먹자!」 「그래도 가련한 예술가이신 우리 오빠 딱 봐도 가난해 보이지 않니? 오빠. 우리가 이제부터 적극 환대할께. 걱정하지 마. 솔직히 우리도 클럽에서 그렇게 비싸게 나올지 몰랐어.」 「진짜야 오빠.」 그러면서 그녀는 옆에 있는 친구의 옷을 뒤집어서 브랜드를 확인시켜준다. 소리내어 읽기도 한다. 머머. 메이드 인 머머. 그러고 보니 나는 그때부터 왠지 얘들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처음부터 심상치 않은 분위기는 감지했다. 그렇지만 뭔가 긴가민가 했고, 그래서 몸은 성년이지만 소녀 감성에 그냥 그만그만한 청춘으로 여겼는데 보아하니, 오! 나는 바보였던 것이다. 그렇다고 나는 유달리 마음의 갈등 심리적 압박에 시달리지는 않았다. 「오빠. 우리 어때? 남자친구 있을 것 같아, 없을 것 같아? 그러니까 말이 통하는 남자를 기달려도 괜찮은지 어쩐지 감정을 부탁하오. 장난스럽게 예언하지 말고 잘 봐 봐! 우윳빛 순결한 우리의 눈부신 애교를. 찬 밥 더운 밥 가려도 될 처지인지를 말이야.」 「사랑은 시시할 뿐이고 꽃다발도 하찮고 남자는 관심 없다고 박박 우겨대던 숙녀는... 아닌 듯 하오. 그러던 숙녀가 지금은? 남자 보기를 돌맹이 보 듯 한다? 아마도 그 반대 아닐까!」 「오빠의 허영심에 대한 취향 참 특이하시다. 오빠는 어쩌면 허세 머신 보다는 허영심 머신에 가깝겠구만!」 「나 이 오빠 업어보고 싶어!」 「업지 마.」 「알았어.」 「와! 세일러의 스타킹. 와!」 「야. 애들아. 나 오늘 한껀 했다.」 웃음 소리. 「그런데 있잖아. 앨리스는 어딨니? 너네 우정은 4명인데. 앨리스는 어디 갔지?」 「봐 봐! 항상 이렇다니까.」 「매번 이런 식이지.」 「남자들은 다 그래.」 「남자는 다 똑같아.」 앨리스가 뭐 어때서? 난 그냥 빈 자리가 궁금했을 뿐이다. 옛말에,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표가 난다고 했다. 그런데 어딘가 모르게 어째 거 왜 썩 어울리는 속담은 아닌 듯. 「와, 이거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악인데!」 「왠지 모르게 라벨 취향인 듯 해서 오빠가 신청했어. 기억해 줘, 린!」 「오빠가 무슨 노스트라다무스야 뭐야?」 곧이어 G.B. 페르골레지의 G장조 플룻 협주곡이 흘러나왔다. 「와, 이거 아는 사람 많지 않은데. 설마 이거도...? 오빠 우리 뒷조사했어?」 「어쩐지 너네들 행진의 흥미, 스무 살의 기쁨과 오빠의 행복한 무명 시절이 만나 구체적 신비감을 연출하지 않을까 해서, 그래서...」 「뻥이야! 아까 한 말 다 뻥인데. 미안 오빠!」 웃음소리. 그녀들은 아직은 낯선 남자에 대한 호기심이 자극 받아 장난기가 발동했다. 「오빠. 남자는 여자를 어떻게 꼬셔? 요정들의 축복을 받으며 천사와 행복한 미래를 약속한다, 뭐 이런 거 말고!」 「아까 말했지? 남자는 다 똑같다고. 할머니가 그러시잖아. 남자를 믿느니 옆집 똥개를 믿겠다고. 물론 그 놈이 그 놈이다, 꼭 그렇지는 않을 수도 있어. 그런데 남자는 비교적 여자보다 취향이 단순해. 위냐 아래냐, 곧 마음이냐 몸이냐거든. 간혹 드물게 말이야 이 오빠처럼 나이가 들어도 힘이 밑에서 위로 올라가지 않는 남자도 있긴 하지만 말이야. 물론 오빠 같은 남자의 소원은 그거야. 쾌남아, 몽상가, 사색가, 낭만주의자, 개그맨, 재력가, 시인, 테너, 화가, 기타리스트, 익살꾼에 그녀만을 위한 이중인격자까지 도맡아야 할 1인 다역은 해도 해도 끝이 없길 바라지. 진짜로! 하오나 그런 팔방미인이 어디 흔한가. 그래서 착하고 이쁜 여자를 좋아하는 남자의 단순한 안목과 달리 여자의 취향은 분산되기 마련이지. 벌써 봐 봐. 오빠 말에 빠져들고 있잖니. 응? 굳이 주문을 외우지 않더라도 말이야. 빠져든다 빠져든다 빠져든다, 얍! 빠져든다 빠져든다 빠져든다, 얍! OK, 빠져들었다~! (딱) 빠져들긴 뭘 빠져들어! 허허허. 자, 들어 봐 봐. 게다가 여자들이 좀 까다롭니! 여자의 아니오는 종류 10가지 방법 10가지야. 고로 여자의 아니오는 10 X 10 = 100이라고. 이게 좋을 때는 괜찮은데 문제는 안 좋을 때. 예시는 생략하는 걸로. 그럼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남자가 여자를 꼬실려면 여자를 알아야 하지. 그것도 대충이 아니라 아주 잘! 숙녀가 무엇을 좋아할까? 그래, 한정판! 만인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 특별한 것. 얼마나 좋아. 딸랑딸랑 천상의 쳄발로 음률. 반짝반짝 사랑의 다이아몬드. 빰빠라밤~ 즐거움과 풍요와 기쁨과 호사. 짜잔~하며 미스테리 느낌에 두둥~하며 풍선처럼 내 마음이 두둥실 떠다닌다면 왜 싫겠니! 그러나 거기까지는 좋아, 딱 거기까지는. 이때 모순은 스르륵 고개를 들고 부조리는 슬며시 끼여들겠지. 악녀와 심각한 영심이도 물론 있겠지만 여자는 원래 착해. 때문에 들리면 외우고 보면 좋아하며 자주 보면 정들어. 여자는 천상 여자거든. 여자는 순진하니까. 따라서 숙녀는 남자의 말에 속을 수 밖에 없는 숙명과 내내 불화를 겪어야 할지도 모른다네. 그래서 그녀들은 싸구려 큐빅을 진짜라고 믿고 진흙 속의 진주를 알아보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야. 사랑이 원래 그런 거야. 실체가 없거든. 고품격도 그렇거든. 대게는 거품이고 한정판은 상술에다 멍청하다고 하면 싫어하거든. 격조가 어중간하면 오히려 안 팔려. 그 모두가 본시 합리주의의 허상이라고. 응? 간명하게 말하자면 이렇게 따져보세나. 애인에게 동시를 헌정할 것인가, 에르메스를 선물할 것인가. 그녀가 만약 난 전자로 충분하다고 했을 때 사람 너무 정직하게 그녀 말을 딱 곧이 믿으면 돼, 안 돼? 만약 그녀 말을 철썩같이 믿었다가는 어떻게 될지 아아, 암담하네. 아 말도 말어. 그치만 허당들이 알고 보면 꽤 똑똑해. 그 친구들이 절대 허접한 게 아니야. 그 친구들은 그래. 한때 좌우명이 그랬을 꺼야. 남자는 폼이다. 남자는 살면서 한번쯤 남자의 로망 제1번을 성취해야 한다. 날뛰는 허세를 달래고 도망치는 숙녀의 마음을 붙잡기 위해 나는 돈을 벌고, 사랑론을 쓰고, 환상극을 찍고, 신비관을 개관하며, 허세를 위해 돈을 써야만 한다 라고. 여기서 두 갈래로 나뉘지. 허세는 찬란한 야망으로 도약할 것인가, 유감스런 염증에 내내 머무를 것인가로. 그러니까, 어쩌면 교양미는 타고나는 것 아닐까? 허풍이 진짜냐고 왈가왈부할 필요 없듯이 허영심의 꼬리는 일단 붙잡고 봐야 한다네. 솔직히 따져 보잔 말일세. 어? 허심탄회하게! 응? 가슴에 손을 얹고! 가... 음 그래. 나를 위해 자기 만족 때문에 매일 화장을 하지만 여자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왜 꼬리를 흔드나 흔들지 않나를! 내가 하면 애교에 여성스러움과 품위 유쾌함 발랄함 천진난만함이고, 내가 하지 않으면 어디서나 교태 부리고 아무한테나 천박하고 요염하며 누구에게나 꼬리치는 게 되는 건가? 그거거든. 남자는 그 모순을 파고든다네. 그 빈틈은 결코 보호색이 아니거든. 그건 한마디로 광고요 아름다움이며 사랑이거든. 뭘 좀 아는 남자는 그 부분을 무심코 애정할 수 밖에 없어. 왜? 사랑스러우니까! 그럼. 남자가 여자를 어떻게 꼬시냐고 물어보셨겠다... 농심은 여심에게 이렇게 접근한다네. 어복이 언제나 풍년이면 무슨 걱정이겠나. 항상 여복이 흉년이지 않더래도 남자는 여자를 좋아할 수 밖에 없어. 본능에 학습에 인생이 더해지는데 사냥법에 인색하다? 그럴 순 없어. 만약 그렇다면 그건 바보야. 그러하니, 이번에 내 바보들을 위해서 총대를 매겠네. 실연의 고통과 불행한 사랑이 있으면 노력하는 새로움도 있을 테니까 말이야. 자, 한번 시작해 볼까? 그녀의 인생을 통틀어서 여자에게 가장 친숙한 행위와 물건이 무엇인 줄 아나? 엄마 아빠, 아니지! 내 이름? 내 이름 만큼 특별한 건 없는데 그건 그 다음 얘기. 곧 그건 바로 거울 보며 화장하는 일과 거울 그 자체라네. 한마디로 여성잡지1! 여자의 반평생은 여성잡지1이야. 말로야 여자에게는 사랑이 전부라고 하지만 절대, 절대로 그렇지 않아. 남자에게 허세와 허풍이 있듯이 여자에게는 일평생 신부 들러리와 거울이 있다네. 응? 일평생! 여자의 인생은 사랑이 전부가 아니야. 절대 아니야. 난 물론 그 정도로 회의적이지는 않지만 조금 심하게 비약하자면 여자에게 사랑은 재산 목록 1호 2호 같은 것일 뿐. 그 이상이 되기는 힘들 수도 있다네. 그래서 뭘 좀 아는 남자는 여자를 볼 때 제일 먼저 여성잡지1을 생각해. 그 하위 분류야 드라마, 허영심, 교양, 푼수끼등 나눠지는 거고 일단은 여성잡지1이 전부야. 그걸 알면 그 다음은 행복과 기쁨과 과일과 꽃은 저절로 따라오게 되어 있어. 응? 자연스럽게 말이야. 그러면 그 다음은 무엇일까? 무엇이긴 내가 요술 거울이 되고, 마법의 수정구가 되며, 조명으로 카메라로 열연하는 것만 남겠지. 낮에는 오빠 밤에는 돌쇠, 오늘은 눈 앞에 아른거리는 얼굴 내일은 혀끝에 맴도는 이름. 좀 더 나아가자면, 바라건대, 바이런이 살아있다면 필경 구사했을 그런 열망 어린 어조까지. 그렇다면 그 예는 무엇이 있을까? 그녀의 인물화를 그려주는 일. 누드화 말고! 그녀를 사진 찍어서 인화하고 액자에 담아 선물하지 말고, 그 액자를 바라보는 내 일상이 어찌어찌해서 착오인 듯 고스란히 그녀에게 전해지기! 그녀는 가만 있어도 연예인이 되는 거야! 그게 바로 유체이탈이란 거지. 그녀를 주인공으로 책을 쓰고 영화를 만들며 기념하기. 이건 까딱 잘못하다간 한발 늦을지도 모르겠군. 그리고 어떻게 그 다음으로 허세와 허영심 대회에 대해서 말할까, 말하지 말까? 하지 말자구. 난 벌써 인기 없는 그냥 허당으로 찍힌 듯 하니까 말이야.」 내 장황설을 들은 그녀들의 반응은 묘하게 둘로 나뉘었다. 첫째, 이를 어쩌면 좋아? 둘째, 이 바보야! 나는 어쨌든 그녀들과의 기묘한 우연 이상한 인연 때문에 우리는 마침내 친구가 되었다. 진정한 친구. 우정이 언제 파탄날지 가늠할 수 없는 찐한 우정. 그런데 전체 인원이 다수다 보니 나는 '우리는' 화법을 자신있게 구사할 수는 없었던 점이 단지 아쉬울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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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호텔 사장 빌리와 함께 무슨 연주회 기념 만찬회에 참석했다. 그곳에서의 기승전결을 요약하자면 딱 하나 밖에 없었다. 다른 건 다 그냥 그랬으니까. 그것은 어느 중년 여인과의 대화였다. 내가 먼저 그 부인께 말을 걸지는 않았다. 그녀가 먼저 내게 이렇게 말했을 뿐. 「청년. 빌리 친구되나?」 「아 네 그럼요.」 「내가 우리 딸 소개시켜줄까? 우리 딸 예뻐!」 「아 네 그게...」 「전화번호!」 「......」 「뭐해? 어서 불러!」 그녀의 말을 분석하자면 이랬다. 첫째, 내가 예쁘다는 말이 아니다 내가 꽃이라는 뜻이 아니었다. 둘째, 외양이 수려했다. 꼭 뭐 어떻다 라는 의미가 아니라 그녀는 천상 여자였다. 자기를 꾸미고 가꾸는 데 유독 열심이라는 뜻이다. 사랑이 오래 되면 다른 거 없다. 남자에게 숙녀는 여자인가, 여자에게 남자는 남자인가, 단지 그뿐! 뭘 좀 아는 여자는 사랑이 오래 되어 편안함이 찾아오더라도 그 어떤 긴장감을 절대 내려놓지 않는다. 그게 바로 여자다. 그리고 셋째, 목적이 분명했다. 눈치가 느린 남자는 한 박자 늦게 의도를 깨닫고 눈치가 없는 남자는 뜬금없이 딴 여자를 꼬시다가 몇 년 뒤에 느닷없이 몇 년 전의 눈치를 간파할 수도 있다. 때문에 남자는 눈치가 빠르든 늦든 이상하든 모른 척 하든 확실함 대 은근함의 비율이 여자와 반대되는 수컷인 것이다. 아 그런데 둘째 이유에서 천상 여자? 사랑이 오래 지속될 수 있는 비밀에 대해서 그녀들에게 알려줄 걸 그랬나 라고 생각했다. 어디서든 짝을 보면 남자에게 여자가 천상 여자인가, 그게 매우 중요한 관건에 해당하는데 말이다. 그건 그렇고 나는 그 여인에게 하는 수 없이 전화번호를 빼았기고 말았다. 그리고 다음 다음 날 나는 연주회 기념 만찬회에서 만난 부인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호텔 커피숍으로 나오라는 전화였다. 나는 차나 한잔 마시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부인이 전화를 했다. 자기 대신 자기 딸이 나간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나는 호텔 커피숍에서 앨리스를 만났다. 앨리스는 물론 팬들과의 만남에서 알게 된 친구들 4인방 가운데 한 명이었다. 나머지 친구들이 그렇다고 그처럼 의리 없는 친구는 아니었다. 곧바로 옆 자리에 대기중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저렇게 사정을 알게 된 다음 우리는 그냥 웃을 수 밖에 없었다. 핑곗거리가 필요했을까. 부드러운 사랑에 대해 곰곰히 생각할 수도 없었고 우린 왠지 모르게 낯을 가리는 이상한 분위기에 휩싸이고 말았다. 그래서 나는 낌새를 눈치챘다. 아마도 그녀들끼리 좋은 데 가기로 했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다음과 같은 아리송한 말을 남긴 채 자리를 떴다. 「사랑은 온실 속의 장미에게 물어보고, 인생은 들판의 잡초에게 물어보게들.」 그 후 나는 도시로 돌아가서 작품 구상에 매달렸다. 최근 느낀 일이지만 나는 글을 쓰기 위해 도시에 들리는 것만 같았다. 물론 성과는 있었다. 나는 미스테리아 전속 연재 작가로 초빙된 것이다. 그러나 초빙 되자마자 해임됐다. 사례금 얼마는 뚝딱 내 통장으로 입금됐다. 그렇다고 괜히 자존심 세운다며 황금을 마다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위약금이라 치고 생활비를 아껴 쓰기로 했다. 그러면서 나는 휴양지에서 너무 일찍 돌아온 건 아닐까 라고 생각했다. 바닷가에 머물며 빈둥빈둥 놀다가 착상이 찾아오기를 기다려야 했었나? 라면서. 영감이 무슨 발 달린 호박은 아닐 테지만 말이다. 그처럼 다시 내 일상은 잔잔한 심심함으로 돌아왔다.
5
가난한 부자는 없지만 마음의 부자는 있다. 그처럼 무관의 제왕은 무관만 있고 제왕은 없는 거다. 전문가에게 그것은 심심함과 비운이다. 심심함은 가능성이고 비운은 불행이다. 가능성은 희망이고 불행은 가난이다. 그러니까, 가난한 희망? 그건 비전문가인데! 고로 전문가가 그렇다면 그건 둘 중 하나다. 내가 시대를 초월했던가, 유행과 오락산업과 시대가 퇴보했던가. 그런데 전자도 타임머신이고 후자도 타임머신이네? 그럼 마침내 난 양쪽에 타임머신을 꿰찬 건가? 이런, 젠장! 아저씨들이 재미없는 이유가 있다. 나는 아저씨다. 따라서 나도 재미없어야 하나? 그건 아니다. 그렇다면 아저씨가 재미있으면 될 것 아닌가? 아니다. 어차피 기쁨은 가라앉게 되어 있다. 마치 뜨거웠던 사랑이 언젠가는 식는 것처럼. 그렇다면 내가 주목하고 착안할 지점은 바로 그것이다. 이제야말로 뭔가 정말 슬슬 재미있어질 것만 같은 기분! 바로 그 순간의 비밀. 그런데 그게 나 혼자서는 여간해서는 잘 풀리지 않을 듯한 수수께끼 같은 것이다. 결국 난 재미없는 아저씨네. 그러니까 무엇이 재미없냐! 목적어는 필요 없다. 그냥 재미없다고 가정하고, 그분들 인생을 분석하자면 철없던 시절에는 그랬다. 사교 > 우정 > 사랑. 그런데 동네 아저씨가 되고 나면 그 등호가 반대로 바껴야 한다. 고로 그분들은 재미가 없는 게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안 그래도 풍요 속 불만족은 운명이었는데 지는 비교까지? 망신이고 꽝이자 연패다. 깐 바나나 또 까는 식이니까. 에잇 재미없다. 보아하니 난 아마도 그녀들과 즐거운 시절을 보내고 싶은 게로군. 말하자면 우리는 함께 해야 한다 그거네. 그런데 어떻게 만나지? 그녀들에게 연락을 할까 말까. 연락을 해서 친하게 지내는 건 식은 죽 먹기다. 다만 내가 삼류란 진실이 들통나는 건 시간 문제일 뿐. 그렇다고 연락을 하지 않자니 저번에 으쌰으쌰를 주동한 다음 결과적으로 선동자만 쏙 빠진 셈이 되어 그 일도 적잖이 미안했다. 때문에 내가 먼저 연락을 하는 게 옳은 일이다. 하지만 우린 왠지 잘 어울리지 않아야 정상인 듯한 기분, 나도 그걸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럼 이제 어쩌지? 그렇다. 선동이 특기인 나는 언제나 뭔가 애매하다 싶으면 무조건 관망을 택했다. 뭘 하든 전망을 살피고 견적을 뽑듯이 0과 1이 아니다 싶으면, 때가 이르든 늦든 매수 시점이 절호의 기회란 확신이 들지 않을 때 나는 언제나 기다렸다. 최적화를 애원해야 하니까 말이다. 곧 내게 있어 인생은 기다림이었던 것이다. 삶은 선택, 사랑은 모르는 것, 인생은 기다림? 어설픈 좌우명도 섣부른 광고 문구로도 못 쓸 말이로군. 그렇다고 무작정 기다릴 수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도시의 숙소 곧 기거하고 있는 호텔에서 TV를 틀었다. 채널을 돌리다 보면 간혹 재밌는 부분이 나온다. 그러나 딱 그 분량이 지나가고 나면 재미가 없다. 그러니까 다시 채널을 돌리는 일만 하고. 이처럼 TV 리모콘을 누르고만 있을 게 아니라 흥미진진한 전개라는 황홀한 사랑 고백과도 같은 전환이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인터넷을 했다. 인터넷을 하다? 명사와 동사가 그다지 잘 어울리는 것 같지는 않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나는 인터넷에서 출판사에 들어가 내 책이 얼마나 팔렸나를 확인했다. 사정은 썩 신통치 않았다. 그 변변치 못한 가난과 이겨내야 할 불우, 비리비리한 실망을 타개해야만 했다. 그래서 나는 문학 동호회와 각종 사이트 문화가 페이지를 넘나들며 열심히 글을 썼다. 가령 자유게시판에 내 책에 대한 소개글과 링크를 내가 쓰지 않은 척 하면서 글을 남겼다. 특히나 어떤 영화를 봤는데 기대가 컸던 만큼 절망에 이르렀다는 댓글에도 답글을 달았다. 어떤 책을 읽으면 그 식상함과 그 속은 기분, 돈 아깝다 잠잤다 잘 잤다 푹 잤다, 개연성은 어디 갔니 라는 글쎄요는 몽땅 날려버릴 수 있다면서 과장 광고를 했다. 그렇게 나는 딱 1일 동안 그 일을 하다가 포기했다. 그러다 다음 날 나는 인터넷 검색을 하던 중 어쩌다 내 팬클럽 페이지가 개설됐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별로 알려지지 않았는데 어떻게? 그러니까! 유명세는 전무한데 어떻게? 내 말이! 원래 인터넷이라는 게 그런 식이다. 게다가 난 그 바닥에서 잔뼈가 굵었다. 왕년의 흑역사가 있었고 관록미는 건재했다. 자세한 건 말할 수 없고. 원래 세상사라는 게 그런 식이다. 더더군다나 나는 어른이지만 내 상태는 몰라도 마음은 허접하고 찌질하기를 원치 않았다. 나는 어른일지언정 여자의 마음을 존중하고 스무 살이 부럽다는 감정에 대해서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어른이 되고 나면 10대의 기분을 모른다. 본인이 다 겪은 일일지라도 너무나 많이 이 세상에 대해서 알아버렸기 때문에 내 지난 시절, 그분들의 현재가 새롭지 않은 것이다. 회상은 삐악삐악, 추억은 응애응애, 기뻤던 일은 방황이었고 재밌었던 기억도 거의 쾌락이었다. 그러나 사는 동안 끝끝내 새로움을 포기하지 않고 마음이 청춘이라면 젊음의 분위기, 들뜬 느낌, 사랑에 빠진 듯한 기분과 조금은 동화될 수 있다. 곧 주인공이냐 주도적이냐, 이끌고 부추기냐 아님 따라가고 묻어가냐, 그 역시 중요하지만 염탐과 추측과 관망도 다 효과가 있다는 말이다. 그처럼 나는 내 필명에 대한 동호회의 활동을 지켜봤다. 1일, 2일, 3일...! 나는 딱 5일간 지켜봤다. 그래서 알게 됐다. 회원 수가 무려 백 단위를 넘었는데 딱 그 지점이 최고점이라는 걸 직감했다. 행복한 낙관주의자는 신기하고 놀라웠지만 향후 다가올 패배감, 낭패감, 체념, 커피포트를 굳이 확인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나는 지금 재미없는 비관주의자가 아니라 적당한 기회주의자, 유쾌한 이기주의자로 행동할 때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나는 현재 대기 중인 회원 목록을 보여주는 채팅 창에 애호가인 척 하면서 모임을 제안하는 글을 남겼다. 처음엔 장난이었다. 그런데 의외로 반응이 괜찮았다. 사람들의 의견은 이어졌다. 계속 이어졌다. 어느 팬 미팅은 재미있는데 어쩌면 재미없다 등등. 곧 그분들은 나와 달리 그런 경험에 꽤나 익숙하신 분들인 것 같았다. 그러다 누가 말했다. 「첫 창단 모임인데 덧치 페이 어때요? 어차피 작가님은 모르실 테고, 이건 앙꼬 없는 찜빵 아닙니까! 어설픈 첫날 밤 예행 연습 아니냐 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내 말은 덧치 페이로, 편한 마음으로 만나서 얘기하고 놀다가 헤어지자는 말이죠.」 와우! 난 좋았다. 10명 아니 5명도 좋았다. 나는 작가가 아닌 척 팬들의 심중도 읽고, 그분들의 솔직한 마음을 떠보며, 뭔가 멋진 전개를 바라는 어떤 아늑한 의향을 점쳐볼 수도 있을 테니까. 난 손해볼 일 하나 없다. 우리는 그렇게 약속을 했다. 비공식 누구 팬클럽 모임 1회를 언제, 어디서! 짜잔~!! 나는 기분이 좋았다. 길게 기다릴 것도 없이 모임일은 다음 날이었다. 이럴 수가!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오는구나 라고 생각했다. 허세 잔치 허영심 축제 허풍 대회 다 필요 없었다. 내게는 팬클럽이 전부였으니까. 그렇게 첫날 밤 아니 팬클럽 첫 모임일이 됐고 나는 그곳으로 나갔다.
6 약속 장소는 어느 카페였다. 동호회 채팅 창에서 누군가 강력하게 주장한 결과 그 카페를 통채로 빌리게 됐다. 분위기는 새로운 웹 서비스 발표회랄지 신제품 홍보회를 열어도 전혀 손색이 없을 듯 했다. 나는 그렇게 설레는 마음으로 동호인들을 기다렸다. 이름 하여 누구 팬클럼 모임. 조촐히 부제는 비공식. 게다가 1회. 음하하하하! 종잡을 수 없는 예감에 따르자면 힘 닿는 데까지 나는 처음의 기분을 믿어야 했다. 그러나 30분, 1시간, 2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내 마음은 울상으로 변해갔다. 결국 3시간을 꼬박 채운 다음에 나는 카페 대여료만 왕창 물고서 가게를 나왔다. 나는 살다 살다 이렇게 황당한 으쌰으쌰는 처음 본다면서 하는 수 없이 바로 그 몸짓과 기분과 표정을 짓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었다. 얼굴을 살짝 틀고, 눈을 지긋이 감고, 고개의 각도를 예각? 둔각으로 조금 변화를 준 채 행복해지고 싶은 열망에 대해서 생각하기. 지금 이때 내 머리 위에 단정한 자세로 자리할 그분은 누구실까? 첫째 참새 짹짹 참새 짹째, 둘째 천사의 머리 위에 그 뭐지 뭐더라 그런 동그란 거, 셋째 그렇지 (딱) 주전자! 나는 순진해도 너무 순진했다는 걸 깨달았다. 아 이럴 수가! 맙소사! 이런 젠장! 나는 그날로 짐을 싸서 하향했다. 나는 그렇게 집에 도착했다. 집에서도 왠지 기분이 꿀꿀해서 나는 내 사무실로 갔다. 나는 내 집무실에서 으쌰으쌰의 구분에 대해서 정리해 봤다. 으쌰으쌰의 보기 (내용 / 출연)
- 으쌰으쌰 1차에서 2차 기약. 으쌰으쌰 2차 실행 / 전원.
- 으쌰으쌰 1차에서 2차 기약. 으쌰으쌰 2차 실행 / 전원 빼기 1명. 즉 은근 허당만 선동 후 관망.
- 으쌰으쌰 1차에서 2차 기약. 으쌰으쌰 2차 무산 / 1명. 분위기에 휘둘려 그냥 허당 1명만 휑뎅그렁.
- 으쌰으쌰 1차에서 2차 기약. 으쌰으쌰 2차 무산 / 0명.
(필명) 누구 팬클럽 창단 기념회인가 뭔가는 누가 뭐래도 3번이었다. 2번으로 갈 수도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완전한 3번이었다. 그리고 최근 팬들과의 모임에서 사겼던 숙녀들과 클럽에 갔다가 여행 가자 라고 했다가 나만 쏙 빠진 일은 딱 2번이었다. 따라서 나는 헛똑똑이처럼 선동 후 관망이 은근히 재미있었길래 어설프게 첫날 밤 아니 팬클럽 1회 모임에서 1번을 바랬다가 여지없이 3번에 낙찰되고 말았던 것이다. 일명 꽝! 저런. 결국 허언증으로 물의를 일으키고 지나친 오지랖으로 문란을 초래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할 수 없는 일이다. 자업자득이지 뭐 누굴 탓하겠나. 농담 반 진담 반도 아니고 그냥 헛소리, 뻥, 거짓말을 나 혼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해석한 결과였다. 그러든 어쩌든 주인공은 나, 별 바보 같은 짓의 주연은 나였다. 맙소사 이런 개뿔! 우스꽝스러운 홀림 유쾌한 반함은 초인적인 애인의 출연을 예고하지는 못할망정 나의 무모한 좌우명은 새롭게 탄생한 것이다. 일명, 대망은 하늘에서 별 따기! 아마도 이 낙담에 대한 여파는 쉬이 가시지 않을 듯 했다. 동기 부여계의 제왕을 초빙하여 개인 교습을 받더라도 아무 효과 없을 것만 같았다. 이건 어쩌면 가까운 장래 에로비디오에 대한 패배를 암시하는 일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유익한 소명은, 만약 실현된다면 전혀 유해하지 않은 보람 찬 꿈꾸기였을 텐데 결과는, 결과는! 그럼 그렇지. 나는 다시 심심한 일상에 안착하고야 말았다. 서커스도 열리지 않았고, 기념일은 없었으며, 나는 고개를 잔뜩 숙이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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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집과 개인 집무실을 오가면서 다음과 같은 칼럼을 미스테리아에 기고했다. 이제 나는 삼류 작가, 글 쓰는 기계, 뜬구름 잡는 사색가이자 운명을 점치는 몽상가로 전락한 기분에 더없이 착찹했다. 제목: 재미있게 사는 방법. 내용: 빼빼 마른 뚱보! 뭐라고? 말이 안된다. 그처럼 작가가 그림을 그리고, 화가가 노래를 부르며, 가수가 글을 쓴다? 어울리지 않고, 멋지지도 않으며, 나댄다는 비난조차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그러지 않으면 새로움은 제한된다. 그래서 공상가의 할 일은 언제나 엉뚱한 상상이다. 그러나 허풍꾼은 허풍에서 영심이는 단꿈과 허언증에서 탈출하기가 쉽지 않다. 더구나 말로 먹고 사는 사람은 일하는 시간이 아닌데도 내 귀는 막고 타인의 청각은 피곤하게 만드는 직업병에 걸리기 일쑤다. 심지어 이 시대의 여러 사장님들은 직장에서 벗어나도 아내에게 지시, 자녀에게 성과를 종용하고, 친구와는 이해득실을 따진다. 그런데 그러지 않으면 행복과 인기, 기쁨, 풍요, 품위 유지는 멀어져 간다. 곧 현대인은 세련되고 고상하며 우아하기를 강요 받는 것이다. 광고에서는 너 때문이야 너 때문이야! 차분한 친구는 난 이렇게 생각해 이렇게 생각해. 기분파 친구는 모이자 달리자 놀자. 인문서적에서는 자꾸 머머해라 머머해라, 밑도 끝도 없이 머머하지 마라. 예능에서는 그러니까 늬가 안되는 거야 그러니까 늬가 안되는 거라고. 드라마에서는 나 사랑해 사랑 안 해? 피곤하다. 복잡하다. 헷갈린다. 어렵다. 그러니까 떠나자? 여행업자다. 우정은 경륜장에 가자고 꼬시며 바텐더는 스포츠 복권을 적극 추천한다. 모르겠다 다 모르겠다? 디오니소스의 유혹이다. 축제는 끝났고 취미는 재미없으며 색다른 관심사도 없다. 사랑엔 둔감하고 의욕은 바닥이다. 제일 쉬운 해결책은 식욕과 쾌락이다. 그러나 깜짝 놀랄 듯한 좀 더 재밌고, 좀 더 신기하며, 좀 더 끝장나는 환상을 찾아야 한다. 젊음의 행진과 열광의 퍼레이드는 계속 되어야 한다. 다만 그 청춘이 맨발이 아니기를! 그럼 뭐 유리구두? 그러니까 호박마차! 하지만 나이트클럽도 재미없다. 순 허당들 천지에 뭐뭐 100퍼센트? 다 뻥이다! 어른들은 모두 거짓말쟁이다. 그러면 가만 있을 그분이 아니다. 듣고만 있을 위인이 아니지. 팔짱을 끼든, 뭐가 어째요 라며 한판 붙자는 뜻인지 단지 시늉뿐인지 팔을 걷어붙이기까지는 서슴치 않고, 한 손으로 턱을 괴며 연인과 눈싸움을 하듯이 그대를 바라볼 것이다. 그러니까 누가? 다름 아닌 직업이! 그러니까 응석은 어른이 부리고, 어린이는 항상 심심하다. 전자는 일할 때 일하고 놀 때 놀아야 한다. 후자는 노는 게 일이다. 고로 언제나 즐겁고 항상 재밌있기는 아마도 어려운 듯 하다. 하지만 어느 불세출의 안다 박사님께서 그 신기한 법칙을 마침내 창안해내셨다. 10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하다는, 그 어려운 대업을 말이다. 그 책의 제목은, 평생 놀고 먹는 법! 게다가 책값도 싸다. 심지어 밑도 끝도 없는 이론도 아니다. 굳이 동기 부여와 낭만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뮤지컬을 보러 출두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책, 환상머신! 부제 평생 놀고 먹는 법은 절찬리 판매중. 2탄 신비론 역시 개봉 박두.
8 앨리스와 친구들은 내 사무실의 앞, 옆, 위 사무실로 이사왔다. 뭐야 이건! 「오빠가 오라고 했잖아!」 「오란다고 진짜 오냐?」 「저번에 여행 가자고 한 사람이 누군데!」 「그건, 그건 내가 잘못했지.」 「우리는 간다면 가고 온다면 와!」 「그런데 난 오라고 말한 기억이... 없는데. 이상하네.」 「또 모른 체 하기야? 이 오빠 안되겠네. 어떡하지? 기억나게 해 줘?」 「우리 오빠를 손 좀 봐야겠는데. 애들아 어떻게 생각하니?」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라. 그러니까, 왜 그러니 응? 우리 사이가 그 정도로 매마르진 않았지 않니?」 그렇게 우리는 일단 1층 찻집에서 차를 마시며 이 이상한 드라마를 어떻게 재밌는 시트콤으로 발전시킬지를 논하기로 했다. 「오빠 말해.」 「뭘 말해?」 「오빠 말하라구.」 「밑도 끝도 없이 뭘 말하라는 거야?」 「여자가 조심해야 할 남자.」 「여자가 조심해야 할 남자?」 「응. 여자가 조심해야 할 남자에 대해서 말해!」 「말해달라고 하면 말 못할 줄 아니! 말해줄께. 숙녀는 그런 남자를 조심해야 해.」 「어떤 남자?」 「무엇을 주저하시오?」 「이 오빠 또 시작했네. 생각을 정리하지 말고 말하면서 정리하세요 오빠야. 응?」 「OK! 여러 숙녀들의 경험과 이 세상의 모든 사랑론과 여성잡지1과 2를 통틀어서 이런 얘기들이 글로 화자됐나는 모르겠는데, 글과 말의 한계가 아마 그 지점이 아닐까?」 「그러니까 어떤 남자? 아 뜸 좀 그만 들이고! 아 쫌!」 「얘들 봐. 너무 보채는 거 아니니? 품위 없어 보여, 그러면. 안 그래도 간명히 가르쳐줄려고 했습니다요. 응? 이거 왜 이래!」 「아 그러니까 대체 어떤 남자를 우리가 조심해야 하냐고! 아 정말!」 「말할께. 말한다고. 숙녀는 있잖아. 숙녀는 손 잡기를 건너뛰는 남자를 조심해야 해.」 「뭐, 뭐라고?」 「와 이 오빠 전문가네.」 「이 오빠 안되겠네.」 「오빠는 무슨! 이 인간 무명으로 남아 있으면 큰일나겠구만.」 「누가 아니래! 이런 작자들이 빨간 사과 노란 자몽 향긋한 포도를 다 따먹고 다닌다니까. 가만 두면 안돼. 절대 안돼. 그럼. 이거 이거 순 난봉꾼이구먼.」 「이제 보니 그러니까 책이 안 팔리는구만.」 「그럴 줄 알았어. 왠지 느낌이 이상하더라고.」 「왜 그래? 그르쳐주라고 하길래 가르쳐줬구만.」 「어디 이유나 들어봅시다. 그러니까 왜? 왜 손 잡기를 건너뛰는 남자를 조심해야 하나요?」 「그건, 그건 책 사서 봐. 거기 나와 있어. 정말로 슬기로운 원리가 놀랍도록 지혜롭게 그리고 간결하게 설명되어 있어. 거기 모든 남녀의 비밀과 사랑의 심오함이 다. 응? 전부 담겨 있다구.」 「오빠. 그러니까 요즘 애들 인터넷 앱으로 막 낯선 만남 그런 거 하잖아. 응? 그런 식으로 만나면 월화수목금토일처럼 딱 월요병만 괜찮고 나머지는 다 꽝이야. 그러니까 그 유형에는 전형적인 늑대, 사냥에 굶주린 하이에나, 배고픈 사자가 득실거린다고 할 수 있지. 그 가운데는 말이야 만나자마자 슥 깍지 끼는 남자까지 있거든. 응? 언제 봤다고! 그런데 그때 여자도 둘로 나뉘어. 대체로 약간 어색하게 멈칫 하다가 차갑게 손을 빼는 숙녀가 대부분이지만 드물게 짧은 만남에 동의하는 여자, 아마도 없진 않겠지? 그래서 타석지상주의자는 아무 여자한테나 다 찝쩍거리고 누구한테나 꽃 들고 따라다니며, 바로 그래서 드라마에서조차 숙녀가 친구에게 그렇게 일침을 놓는 걸까? 내 남자친구한테 껄떡대지 마 이년아, 라고. 사석에서도 그러잖아. 아무때나 뭐 어떻게 벌렁벌렁한다는 둥 어쩐다는 둥. 응? 아무튼 그런 남자는 연애를 격식 있게 한다고 볼 수는 없지만 그래도 최소한 손 잡기는 실천한 것 아닐까? 아니겠지. 당연히 아니지. 그러면 그런 인간은 하수인가?」 「그러니까 늬가 안되는 거야. 응? 그니까 너가 안되는 거라고. 순진하시기는. 사랑은 있잖아, 멋진 사랑 고백이 아니야. 아는 사이든 어쩌든 정식으로 사랑 고백을 하는 남자가 실상 그리 많지는 않다고. 말로야 여자들이 손꼽는 최악의 고백 방법이 뭐라고들 하지만 그런 미숙한 사랑 고백이라도 받아 본 여자가 많을까, 아니면 적을까? 정답은 말하지 맙시다! 살면서 말이 통하는 남자를 만나는 게 어디 쉽겠니? 찬 밥 더운 밥 가릴 분은 나이트클럽도 가려서 간다구. 적어도 거기에 출근하지 않아. 그런데 꼭 뜬금없는 숙녀분께서 필요 이상으로 도도한 경우, 아마 남자보다 여자들이 더 잘 알지 않니? 그게 다 <어딜 넘봐?>에 대한 남녀의 기준이 같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 그래서 오빠가 아까 뭐랬니? 손 잡기를 건너뛰는 남자를 조심하라고 했잖아! 응?」 「이 오빠 안되겠네.」 「와 이 오빠 전문가네.」 「오빠 있잖아. 여자가 싫어하는 거 하나만 말해 봐.」 「여자가 싫어하는 거?」 「응. 여자가 싫어하는 거.」 「여자...는 그걸 싫어하지. 후회하네 어쩌네 그거 다 기분 탓에 하는 말이고, 그 위에 있는 게 진짜지. 즉 행동! 여자가 진정 싫어하는 건 그거지. 자기를 챙피해 하는 거. 남자들은 바에서 그래. 술값 내는 친구를 험담하면서 바텐더의 인기를 독차지하는 친구가 뭐라고 해도 남자들은 그게 다 으샤으쌰야. 왜 내가 챙피하냐 라고 소리치든 어쩌든. 그런데 여자는 자기 남자가 자길 부끄러워한다? 내가 바랬던 건 몰래한 사랑이라는 기쁨의 열애이자 찬란한 인생의 깜짝 발표였는데, 그게 아니라 꼭꼭 숨어서 만나야 하는 밀애라니! 하면서 그녀는 탄식할 수 밖에.」 「안되겠다. 하나 더 가자. 오빠. 여자가 싫어하는 거 하나 더!」 「뭐야 위스키 온더락스 한 잔 더도 아니고. 뭐지? 음. 여자는 거꾸로맨을 싫어하지. 참고 참고 참는 게 사랑일 수도 있지만 하다 하다 안되면 포기할 수도 있는 거꾸로맨의 거꾸로 행동. 그건 무엇이 있을까? 맞다 그거. 남자가 보디가드로써 날 호위하지 않고 나 보고 무거운 거 들게 만들 때. 그러면서 지는 몇 시 방향 몇 시 방향 눈이 돌아간다? 부글부글 삑삑삐! 앞서서 수색하고 탐방하며 때로는 시행 착오도 겪어야 할 개구쟁이 탐험가의 역할을 자기한테 떠안길 때? 부글부글 삑삑삐! 그런 다음 다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을 올려야 한다, 커팅식 행사에 명사로 나선다, 스포트라이트를 단독으로 받고 달콤한 케익 앞에서 꼬리 흔드는 강아지와 기쁨을 나누는 몫은 남자가 갖고 여자는 하찮은 상품으로 때우거나 뭐 가져오라고 시킬 때? 부글부글 삑삑삐! 요컨대 의전과 잔말 말고 따라와를 반대로 할 때. 뭐니 뭐니 해도 난 아직 사랑하는데 난 이제야 사랑을 시작할려는데, 그런데 난 꺾인 꽃이자 모래시계 모양으로 먹다 남은 과일이 되었을 때이지 않을까?」 「이 오빠 안되겠네, 가 아니라 되겠네.」 「이 오빠 은근 괜찮다. 그치?」 「여기서 멈출 순 없어.」 「그럼 있잖아. 여자가 좋아하는 남자에게 호감을 표시하는 방법 가운데 제일 무난한 건 뭐야? 숙녀는 사랑의 신호를 어떻게 보내는 게 더없이 여성스러울까? 어떤 호감의 표시가 가장 귀여울까?」 「팔짱 껴!」 「팔짱?」 「응. 팔짱! 단, 남자 입장에서 봤을 때는, 여자 입장에서 봐도 못 봐주기는 똑같겠고 아니 훨씬 뭐하겠고, 어쨌든 아무 남자한테나 팔짱을 끼는 여자가 아니라면! 아무한테나 꼬리 치는 숙녀가 아니라면 호감은 정확히 둘로 나뉘어.」 「이성을 좋아하는 호감이 둘로 나뉜다고?」 「그럼. 한번 생각을 해 보렴. 사모와 탐애가 같니? 사랑과 욕정은 달라! 플라토닉과 육체적 사랑이 어떻게 똑같니? 좋아한다와 사랑한다 역시 같지는 않잖아. 연애 상대의 1범주와 2범주가 다른 것처럼 말이야. 연정의 1범주 미만이 날 좋아하는 일이 결코 그리 자주 발생하지는 않아. 무난함과 이상형이 어떻게 같을 수 있냐고. 응?」 「그러니까 살랑살랑 봄바람이 불듯이 여심이 흔들리며 그 남자한테 끌린다 했을 때 내 마음을 표현하는 게 어떻게 둘로 나뉘냐고. 도대체가! 응?」 「첫째 마음 먼저, 둘째 몸으로 유혹하는 거! 그렇게. 첫째는 그래. 일단은 길게 가고 싶다는 말이겠지. 3달 만나고 차일지 3년 만나고 먼저 찰지도 모르겠지만 우선은 마음이 먼저야. 그 반면 둘째는 첫째 방법을 쓰기가 애매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좀 더 극적인 방법 다시 말하자면 그동안 자신의 경험 상 수확이 괜찮았던 타율에 근거한 방법이겠지. 여기서 첫째는 잘 아시다시피 교태, 애교, 여성스러움, 건강함, 밝음, 오빠, 콧소리, 미소가 있겠지. 괜히 막 남자 팔을 때리는 그녀의 행동, 귓가로 머리카락을 넘기는 행동, 어떤 몸짓, 오빠 라는 단어를 남발하기 등등. 그와 달리 둘째는 한마디로 여자의 상의와 하의의 엉덩이 부분을 남자에게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방법이고. 아직 여린 여심이라면 하이힐과 매끈한 살결과 굴곡진 머릿결과 화장술 및 요조숙녀의 특권등 그런 섹시함이 뭐가 나쁘냐, 젊음의 향기를 뽐낸다 거리를 아름답게 물들인다, 그게 뭐가 나쁘냐 라는 의문은 지극히 타당하지.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1.5! 응? 그건 딱 1.5야! 앞서 말한 둘째는 그게 아니라 말했듯이 노골적으로 그 방법을 구사한다는 것. 둘째 방법을 적극적으로 구사하는 여자들은 남자를 만나도 너무 많이 만났어. 비율이 9 대 1이랄지 8 대 2랄지 뭐 그럴 수도 있는데 대체로 그래. 그녀의 과거를 알고 나면 아아~! 말 말자. 응? 과일 망신 모과가 시킨다고, 그런 여자? (설레설레)! 말 말어! 물론 그런 여자가 트라우마 때문에 일시적으로 그런 시절에 처했을 수도 있고, 헤픈 여자도 이제는 엄마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하면 과거를 청산할 수도 있는데, 태생적으로 그런 여자도 있어. 그러면 남자들 사이에 소문 나지. 만인에게 사랑 받아 인기를 얻어서 유명해지는 게 아니라, 남자들한테 쉬운 여자로 찍혀서 유명해진다고. 그때 남자도 둘로 나뉘고. 생각해 봐. 그 옛날, 우리 주위, 누구 누구 누구! 남자가 조심해야 할 여자는 아마도 그분일 텐데 창이 있으면 방패가 있는 법. 또 하나의 이름이 생겨나겠지? 일명, 트라우마 치료사! 이와 같은 원리를 이미 알만한 사람은 알지 않을까? 그리고 1.5와 2의 차이는 퍽 정확하지 않을 수 있는데 적어도 당사자라면 결코 모를 수 없는 일이니까 굳이 부언 설명은 필요치 않고. 여자는 살며시 팔짱 끼고 싶다는 듯이 처음 만났을지라도 팔짱 끼는 시늉을 하거나 아는 사이였을 때 조심스럽게 팔짱을 끼면 그건 100퍼센트야. 웃으면 끝난다랄지 몇몇 징후로도 판단할 수 있고. 그런데 그게 아니라 둘째 방법이라... 요컨대 첫째는 결혼하고 싶다, 둘째는 단지 연애하고 싶다! 바꾸어 말하자면 첫째는 우리 연애하지 않을래요, 그대와 사귀고 싶어요, 저는 당신을 좋아해요, 단둘이 만나고 싶어요. 둘째는, 당신과 찐한 사랑을 하고 싶다 아닐까? 하나는 애정─순정─애원, 다른 하나는 유혹─색정─본능. 물론 사랑의 종류를 막론한 채 둘째가 무조건 나쁘다는 말이 아니야. 자존심의 효용처럼 둘째 방법을 먼저 구사해야 할 필요가 있을 수도 있으며, 나이트클럽의 분위기와 웨이터와의 친교가 뭐 나쁘겠나! 웨이트리스와의 다정한 눈인사, 멋진 바텐더를 사모하는 감정을 피해서 우리 모두가 어디 깊은 산속에라도 들어가 살아야 하는 건 아니니까 말이야. 나 그렇게 쉬운 여자 아니에요 라고 말하고 싶어하든 어쩌든, 도도하든 맹하든, 제 코가 석 자든 어쩌든 둘째를 유달리 좋아하는 여자, 천성은 타고나는 것인데 그런 여자가 왜 없겠나. 유행가에서야 사랑은 얄미운 나비인가 봐 라며 노래하지만 뒷골목까지 갈 것도 없이 그런 노래를 들으면서 사람들이 대체 뭐라고들 하나? 사랑은 나방이라느니 사랑은 없다느니 하지 않냔 말일세. 뿐만 아니라 또 숙녀가 아직 어리면 무턱대고 둘째 방법을 선호할 수도 있고. 아무래도 그녀는 이 세상도 남자도 내가 아는 것 이상은 알지 못하니까. 응? 그렇더라도 친구들과 많은 얘기를 나누면서 성숙한 아가씨로 성장하여 스무 살을 (훌쩍) 넘고, 남자와 세상과 인생을 알게 된 숙녀가 한 남자에게 관심이 있다? 호감이 간다? 어머나 난 어쩜 저 남자에게 끌린다! 어쩜 좋니 내 마음을 송두리째 빼았겨버렸네! 만약 그랬을 때 그녀가 다짜고짜 둘째 방법으로 그이를 현혹한다? 내 견지에서는 봤을 때는 말일세 그런 일은 거의 없다고 보네! 일찍 차이던가 짧은 행복으로 만족하고 싶다면 또 모르겠지만. 암. 그렇고말고. 만약 사랑을 측량할 수 있다고 한다면 당연히 둘째보다 첫째가 앞서겠지. 그건 두말하면 잔소리. 생각하고자시고 할 것도 없이 말이야. 이 세상에서 사람으로 살다 보면 유혹의 의미를 모를 수는 없는 법. 어른으로써 경제를 알고 사회에서 살아가다 보면 상업과 산업은 물론 이성적인 유혹은 그냥 일상적인 일이지 않나. 그 유혹과 저 유혹이 설령 같지는 않다고 할지라도 첫째와 둘째의 그리움을 마음의 크기로 따졌을 때 둘째는 당연히 반쪽짜리 하트겠지? 만약 첫째가 온전한 하트 뿅뿅이라면 말이야. 그처럼 둘째는 첫째한테 그걸로 따지면 상대가 안돼. 첫째가 A 포카라고 하면 둘째는 하트 에이스 원페어거든. 응? 물론 맹탕이라면 판돈도 넉넉하겠다 첫째에 대해 능동도 피동도 주거니받거니? 그때가 좋을 때지. 도박꾼은 둘째 가지고도 월척을 낚을 때 허당은 첫째 더하기 거물일지라도 포커페이스가 안되면 다 꽝이야. 말짱 도루묵이라고. 얼굴에 다 써지니까 말이야. A 포카? 그분께서는 손이 덜덜 떨리지 않더라도 동공이 확장되며 얼굴에 표가 다 나. 마치 거리에서 깜짝 놀랄만한 어떤 차림새의 아가씨를 본 듯이 말일세. 아무튼 농담이고, 우리는 뭐든 보면 금새 알지만 우리는 누구든 만나면 금방 친해지지만, 남자가 뭘 모르면 그 둘을 분간하기가 썩 어려울 수도 있어. 저 첫째와 둘째에 대한 구분은 살면서 간접적으로 깨닫거나 경험으로 체득하는 거야 가능할 테니 지금은 더 난위도를 올려보자고. 응? 우리가 무슨 사춘기 청소년도 아니고, 유행하는 외국어 노래를 듣고서 내국어로 채록하여 그걸 보며 또박또박 신나게 노래 부르거나, 연애시를 필사하며 사랑을 배울 수야 없지 않나. 여기서 말하는 2절은 바로 여성의 타고난 자질에 따른 자연스런 내숭과 저 둘째가 첫재처럼 가장하는 내숭, 그렇게 둘로 나뉘지. 그 둘을 분간하는 남자가 물론 뭘 좀 아는 남자일 수도, 또는 피곤한 스타일의 남자일 수도 있는데, 될 수 있으면 그대들께서는 전자를 만나기를 기원하겠네. 허허허. 그래도 사람 일은 모르는 거야. (눈썹 위로) 허허허허허. 그 다음은, 어떻게 괜찮겠어? 이때 인문학 도형처럼 4구분, 할 수 있겠어 못 하겠어? 첫째에서 내숭과 애교가 중간은 가능하다 가능하지 않다, 둘째에서 첫째로 연기가 가능하다 아니다 그건 정말 아니다 인생 직진이다, 그처럼 4구분 말이야. 이때 뭐가 그렇게 복잡해 하면서 뚱한 반응을 보이는 남자 투덜이 스머프, 첫째처럼 내숭과 연기로 어떤 남자가 도저히 안 넘어오길래 기어를 2단으로 올린 다음 저 둘째로 후련하게 그 남자를 어떻게 한번 해 볼려다가 그마저도 내내 거절하는 그 어디서 보도 듣도 못한 웬 이상한 남자 때문에 두껑 열렸던 그녀. 그분들께서 뭐 어쩔 수 있나. 추억을 회상하며 커피든 맥주 한 잔이든 원샷하는 수 밖에. 그렇더라도 정말 해도 해도 여자를 모르겠다는 남자보다는 여자를 아는 남자가 낫긴 낫지. 여자 입장에서는. 그분께서 바람둥이만 아니라면 말이야. 여자도 비록 패전일지언정 사랑의 전적이 있었던 게... 그건 남자 입장도 있으니 넘어가자구. 음. 바람잡이는 뭘 너무 많이 알거나 과도하게 행동하면 안되니까. 괜히 초장에 잘 잡았는데 누군가 주도권 뺐길지도 모르니까 말이야. 다른 게 아니라 그런 기억들이 모여 인생이 되는 거라고. 응? 잔-뻔치로 아무리 두들겨도 안넘어오는 사랑의 바보, 직접 만나보면 그 느낌을 알게 되는 법이지. 자, 예를 하나 들어보자구. 제1범주에 해당하는 남자와 연애 중인 여자가 그런 시기에 접어들어다고 가정해 봄세. 그 만남이 조금은 싫증나고 결혼까지 생각해야 하며 그런대로 정숙한 처녀일지라도 그녀는 괜찮은 남자가 나타났을 때 곧 제1범주 미만인 남자가 나타나면 둘째 방법을 자기도 모르게 이미 사용한 뒤야. 살짝 과장하자면 아마도 둘 중 한 명은 그럴 걸? 불현듯 나도 모르게 그러고 난 다음이니까. 원래, 여자의 세심한 손길을 타고 여자가 선호하는 구미에 들어맞도록 길들여지며 여성스런 성향에 적합하게 꾸며지는 경주마, 즉 총각 같은 야생마와는 달라도 뭔가 다른 유부남의 어떤 면모를 그녀들이 평가절하하기는 결코 쉽지 않거든. 응? 그렇다고. 그런데 유부남도 아닌데 한번 갔다 오지도 않았는데, 어머머 아 글쎄 그런 남자가 나타났다? 그건, 딱이거든! 정말로 (딱)! 그래서 둘째 방법을 자기도 모르게 이미 사용한 다음이게 돼. 순서가 그래. 왜냐하면 무엇보다 그녀는 여자니까. 안 그러면 첫째를 완벽하게 선호하는 숙녀거나 그게 아니면 그녀는 여자가 아니라 남자야. 당연하지. 물론 이 의견에 선뜻 동의하지 않는 남자는 여자를 잘 아는 남자일까, 잘 모르는 남자일까? 부디 그분께서 뭘 좀 아는 은근 허당이시기를! 남자도 그런 남녀의 통정을 알고 연애를 시작해야지 무턱대고 나중 나 뚜껑 열린다? 어차피 사랑은 하늘의 별을 세는 사랑에서 허영심을 선물하는 사랑으로 발전하기 마련이라네. 왜냐하면 사랑은 환상 같지만 결국 알고 보면 엄정한 현실이니까. 그건 어쩔 수 없는 거라고. 그 흔한 사랑들은 모두 알고 보면 단순한 애정, 가벼운 연애 감정, 그 시절의 호의, 사랑과 우정 사이일 수도 있어. 단순히 육체적, 감정적 호감일지도 모르고. 알겠니? 그럼. 오빠가 아까 뭐라고 했지? 그럼. 이 시대의 풍운아, 숙녀가 바라는 다정한 로맨티스트, 남아들이 추앙해 마지않는 희대의 바람둥이가 정말로 사랑이란 걸 하게 된다면 그는 그동안 손 잡기는 건너뛰었을지라도 이번에는 사람들 앞에서 그녀와 정답게 손 잡고 걷기를 바랄 꺼야. 그러든 어쩌든 그분도 남자야. 실제로는 백허그를 먼저 했을 수도 있고, 꿈속에서는 손 잡기를 건너뛸 수도 있다고. 응? 손 잡기고 나발이고, 아니 내 말은 품위도 품위지만 어떡하다 마음이 앞서면 그럴 수도 있다 그 말이라구. 알겠니?」 「알다마다요!」 「알다뿐이겠습니까?」 「실제로 주위에 물어 봐. 손 잡기를 건너뛴 엄마 아빠가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줄 아니? 그건 나도 직접 캐묻지는 않아서 잘 모르겠다만 결코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네. 손 잡기를 생략했던 남자가 사랑을 예감하게 되면 결혼하게 될 것 같다는 미래가 보여. 그러면 그는 그녀의 손을 잡고 싶어 할 수 밖에 없어. 그 반대로 매번 손 잡고 뭐 하고 분위기 찾고 어쩌고 곧이곧대로 순서를 따랐던 남자는 얼렁뚱땅 어느 날 보니 그럴 수도 있지. 아빠 뭐해? 사랑이란 게 바로 그런 거거든.」 「농담이죠?」 「왜 그래?」 「다른 게 아니라, 뭐랄까, 지금까지 거의 다 알고는 있는 얘기인데, 새로울 건 하나 없는데, 그런데 새롭다? 안 그러니?」 「어. 새로워!」 「너도?」 「나도!」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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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야 깨달았다. 일하러 가는 길이 이렇게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을. 지금 내 모습은 사람들이 월요일 아침 출근 길에 짓는 표정과 정반대였다. 그러니까 이건 뭐지? 새로 태어난 느낌이랄까? 외계인으로 환생한 기분이라고나 할까! 뭐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나는 막 이런 저런 계획이 소생하는 느낌 때문에 입이 귀에 걸리고야 말았다. 아마도 이런 내 바보 같은 인상을 누군가 본다면 꼭 그럴 것이다. 「무슨 좋은 일 있수?」 그럼 난 이렇게 대답하겠지. 「있고말고요!」 어떻게 저번의 으쌰으쌰에 대한 실망과 기억하지 못하는 약속을 만회하기 위해서 그녀들에게 개인적으로 선물을 줄까? 아니. 그건 그 친구들을 좀 더 알고 난 다음에. 그러면 이번에 신나는 여행을 떠나자고 제의할까? 그것도 일단 돌아가는 상황을 본 다음에. 아, 그게 좋겠다! 손 잡기를 건너뛰는 남자를 조심하라고 했으니까 그래야겠구나. 첫째, 손 잡기를 건너뛴다는 것은 곧 마음이 진심인가, 사랑인가, 어울리는 짝인가, 장기전인가 라는 걸 심도 깊게 진단하라는 뜻이었다를 말해주기. 둘째, 그야 어쨌든 오빠는 손 잡기를 건너뛰는 남자가 아니다, 게다가 나는 너네들의 운명과 재물운, 연애운에 대해서 말하고 싶은 심정을 도저히 참기 힘들다, 따라서 한사람씩 손금을 보자! 물론 둘째는 농담이고 첫째는 진담이다. 그래도 혹시 모른다. 분위기에 휘둘리면 으쌰으쌰에 엮이고 나면 첫째가 빈말이고 둘째가 참말로 돌변할지를 말이다. 아무튼 고백 게임은 차차 진행하는 걸로 하고 나는 내 사무실로 갔다. 물론 빈손은 아니었다. 화사한 꽃다발과 달콤한 케익을 두 손에. 그리고 마음에는 다정함과 순수함, 상냥함, 자상함, 황홀감, 동경심, 선망, 재미있는 이야기 보따리를 안고서. 그런데 사무실에 도착한 다음 나는 사태가 기쁨으로 진전하지 않고 왠지 난해함으로 이어질 듯한 육감을 느꼈다. 그녀들은 앞, 옆, 윗 사무실에 출근하지 않은 것이다. 음침한 발단이 물망에 오르다가 불쾌한 전개가 깜짝 발탁된 다음 곧바로 곤혹스런 절정이 간택될 것만 같은 느낌이 가득했다. 때문에 내 기분은 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뭐야, 떠날 때는 말없이야? 조증은 날 마다하고 허언증은 치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 일병마저 치료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허풍은 내내 저급한 바로 이 순간, 그녀들은 날 떠나간 건가? 그녀들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소셜 네트워크도 모두 묵묵부답이었다. 난 역시나 패자였다. 패자가 분명했다. 나는 건성건성 결과를 받아들였다. 언제는 뭐 안 그랬나, 막 그러면서. 그래서 나는 내 아지트로 갔다. 환상문학 잡지 미스테리아 지점으로. 마라한테 신입 여직원을 뽑으라며 닦달할 생각이었다. 면접관은 당연히 나고, 면접 기준 역시 내가 정하자 라면서 그녀를 설득할 생각이었다. 그런 꿍꿍이를 논리적으로 정리하다가 나는 미스테리아 사무실에 도착했다. 「어! 못 보던 반지네. 혹시, 다이아몬드?」 「넌 어떻게 바뀌고 변화된 걸 귀신같이 알아채니?」 「왜냐하면 모른 체 하면 서운해 할지도 모르니까.」 「그건 그렇고 칼럼은 썼어?」 「독촉이니? 그런데 어떡하니! 이제는 날 칼럼계에서 보기 힘들 꺼야. 장편만 쓰기로 했거든.」 「늬가 무슨 영화배우니? 생활 쪼들리면 다시 드라마로 돌아올 수 밖에 없을 걸, 이 친구야. 시네마 좋아하시네!」 「마라. 너 남자친구 생겼니? 나 몰래 어디 조용한 성당에서 혼인식이라도 올린 거니? 그러니까 지금 신혼?」 「내가 결혼을 하던 참치 캔 뚜껑을 따던 늬가 뭔 상관이야?」 「마라. 왜 그러니? 응? 나라구 나. 응? 쾌락과 의리의 결탁. 허세와 허풍의 대결. 자존심에 대한 강박감. 우월감에 집착하는 마초. 특히 이거. 응? 특히 이거. 영심이 길들이기! 허세왕 포기하기. 응? 칼럼 뚝딱 쓰는 건 얘 일도 아니야. 응? 조금만 기다려줘. 우리 사이에 정말 이러기야?」 「아무튼 넌 그게 문제야. 응? 꼬리가 길면 밟혀. 무대를 너무 넓히지 마시게나 이 칼럼니스트 양반아. 특히나! 너는 왜 글로 쓸 얘기를 말로 하고 그러니?」 「뭔 말이야? 너 나한테 정보원 붙였니? 아니면 뭐 꿩 대신 닭? 혹시 미스테리아 개편 그런 거라도? 우리는 의리로 똘똘 뭉친 사이라는 거 잊지 마! 더구나 사랑은 미지수 X라는 점 또한! 응? 하트 뿅뿅 윙크 반짝반짝 속삭임 새콤달콤. 응? 다음은, 다음은 연애소설이야. 멜로, 캬, 격정적 멜로! 기억하라구.」 「그러니까 늬가 안되는 거야. 응? 그래서 늬가 안되는 거라고.」 「안되긴 뭐가 안돼!」 얘가 왜 갑자기 신경질이지? 마라와의 만담도 더이상 재미없었다. 농담을 하자며 흥겹게 시작하지만 매번 개운하지 않은 듯한 진담으로 끝나는 느낌이랄까, 기분이 이상했다. 나는 앨리스가 보고 싶었다. 쇼핑이나 할까? 그녀들의 소식이 궁금했다. 일기를 쓸까? 그녀들의 안부가 걱정됐다. 동물원에 갈까 미술관에 들릴까? 먼 데까지 갈 필요 있나, 옆집 강아지랑 고양이나 보러 가야겠다. 나는 마치 펭귄이나 된 것처럼 뒤뚱거리며 미스테리아 사무실을 나왔다.
10
다음 날 앨리스의 엄마로부터 전화가 왔다. 친구들에게 전화해봐도 모두 모른다고 한단다. 「혹시 앨리스 어딨는 줄 알아요?」 난 모른다고 했다. 그녀는 내 딸이 아니다. 나아가 우리는 연인도 아니다. 친구는 몰라도 우리는 아직 교분이 완전 두텁지는 않았다. 그런데 앨리스는 어디 갔지? 앨리스와 친구들은 대체 어딜 갔냐고. 나는 직감으로 느꼈다. 지금 그녀들은 도망자, 나는 추격자, 우리는 꼬마들처럼 나 잡아 봐라 놀이를 해야 한다는 것을. 왜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냥 기분이 그랬다. 할 말은 없고 할 일만 남은 것이다. 그게 내 현재의 목표이자 꿈이고 희망일 것이다. 그냥 그러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대책 없이 친구 찾기를 위해서 도시로 떠났다. 도시에 도착해서 내가 한 일은 일단 전망을 살피는 일이었다. 우리 사이에서 누가 누가 돈을 많이 썼나를 계산했다. 우리의 우정을 측정했고 사랑의 가능성도 점쳐봤다. 유심히 들여다 볼 만한 패턴도 뽑아봤다. 우리의 짧았던 추억을 회상했고, 다가올 미래를 예견했다. 또 그녀들을 관찰했던 기억을 검토했다. 그녀들이 갈 만한 곳을 추리했고, 모든 결과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탐구했다. 결과가 나왔다. 나는 평범한 미행은 거부했다. 긴긴 탐방과 정밀한 조사는 불필요했다. 따라서 나는 우리들의 행복감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시간과 장소를 떠올려봤다. 막 많지도 않았다. 딱 4곳이었다.
나는 대형 종이 지도를 샀고, 그 네 지점을 표시했다. 그건 정사각형이었다. 자로 잰 듯이, 가 아니라 정말로 자로 쟀더니 완벽한 정사각형. 나는 서슴없이 그 정중앙으로 출발했다. 그렇게 하여 나는 그곳에 도착했다. 그곳은 인적이 드문 주택가이자 약한 상업지대였다. 그리고 나의 목적지에서 웬 회원제 카페가 운영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나는 다시 그녀들에게 전화했다. 모두 받지 않았다. 출입구에는 건장한 사내가 두 명 버티고 있었다. 어떻게 1 대 2로? 겸손하게 말하자면 승산이 많지는 않았다. 사실적으로 따지자면 이기는 건 어렵지 않았다. 어쨌든 내가 이길 테지만 녀석들과 소란을 벌이느라 힘을 빼면 다음 판에서 퍼질 게 분명했다. 그럴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당당히 마치 회원인 것처럼 들어갈려고 했다. 「회원증을 보여주시죠!」 「신입 회원이 계신다고는 미리 전해 듣지 못했는데요.」 나는 지갑을 펴서 미처 읽지 못할 만큼 휘익, 자세히 살피지 못할 정도로 그분들 코끝을 스쳐가듯이 쓰윽 그것을 보여줬다. 마치 나 이런 사람이야 라는 듯이. 그런 다음 나는 자연스럽게 슬그머니 입장할려고 했다. 역시나 서툰 방법은 통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일단 작전 상 후퇴하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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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음 날 차근차근 작전을 짜기 위해서 사무실로 출근했다. 왠지 그녀들을 찾는 모험은 길어질 것 같다는 예감과 함께. 그런데 나는 사무실에 도착한 다음 깜짝 놀라고 말았다. 왜냐하면 그녀들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정상 출근해서 태연히 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너네들 어떻게 된 거니?」 「어떻게 되긴 뭘 어떻게 되요?」 「어디 갔었어? 찾았자나! 얼마나 걱정했는데.」 「어머, 그랬어요? 어쨌든 이렇게 만났네!」 「오빠. 우리 사진 찍어줘.」 「그런데 있잖아. 오빠의 만족을 모르는 열망, 평생 동안 바라던 호사의 이면에는 혹시...?」 「오빠. 쟤 가슴 커졌어!」 「뭐래니. 가슴 크기와 지성은 반비례한다, 너 그 말할려고 했지? 그래. 나 멍청한 촌년이야. 됐니? 그래도 가슴은 커!」 웃음소리. 나는 이게 다 어떻게 된 일인지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다. 피노키오는 왜 탐스런 사과를 따먹었을까? 그러든가 말든가. 천하장사 헤라클레스는 어쩌다 먹음직스런 오렌지를 꿀꺽했을까! 최고의 허풍은 믿을 게 못되고, 최신의 권태는 바닥을 쳤다는 뜻일까? 곧 그건 이제 슬슬 슬럼프를 벗어날 신호로 해석할 수 있으니, 따라서 알록달록 물고기 4인방을 일망타진하여 사랑의 포로로 생포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 4인방은 이름하여 최대의 행복감, 전혀 다른 세상, 보이지 않던 열락, 상상 속의 환상! 모든 것은 정상으로 돌아왔다. 나는 다시 동네를 산책했고, TV로 다큐멘터리를 시청했으며, 인터넷으로 회전목마를 검색했다. 남성잡지를 관심 없는 척 애독했고, 요리학원에 다닐까를 고민했다. 물론 요리는 만들기보다 먹기 곧 염불에는 관심 없고 잿밥에만 맘이 있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그러다 나는 번화가에서 쇼핑하다가 괜찮은 보드 게임을 하나 샀다. 그녀들과 즐겁게 놀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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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이 됐다. 나는 아이스크림과 초콜릿과 꽃다발을 들고서 사무실로 출근했다. 이번에는 달랐다. 소식 두절로 그치지 않은 것이다. 바로 그녀들 사무실에 임대 안내문이 붙여진 것이다. 우리의 인연은 여기까지일까? 아니면 내가 한 발짝 다가가야 하는 것일까! 아니다. 다 아니다. 이건 도발이고 영화였으며 은근한 지령이었다. 고독이냐 낭만이냐, 난 당연히 후자를 쫓아야 했던 것이다. 애마 집착증에 빠질래야 형편도 궁색했고, 나는 천상 동화풍 모험가가 될 팔자였던 것이다. 처음에는 그랬다. 웬 떡이야! 우연히 들린 팬들과의 만남에서 그녀들을 알게 되다니 나는 환생한 것만 같았다. 그리고 우리는 아슬아슬하게 남남이 될 뻔 했다가 다시 만났다. 그래서 클럽에 갔고, 나는 으쌰으쌰 분위기를 띄워놓고 나만 쏙 빠졌다. 그러다 낯선 여행지에서 우연치고 믿을 수 없는 숙명처럼 우리는 만나버렸다. 그러다 나는 취중진담인지 뭔지 어떤 약속에 대한 기억은 새까맣게 잊어버렸다. 그러다 어쩌다 그녀들이 갑자기 날 떠났다? 이래서는 안될 일이다. 지금까지 행운아의 사랑은 도저히 잡히지 않는 무지개였고, 이 미스테리 월드에서 튀어나온 듯한 환상 머신 제작소를 탐험해 보자는 시상은 다 뻥이었다고 할지라도 이제는 내가 직접 나서야 할 시기였다. 그래서 나는 이제야 본 게임이 시작되었구나 라면서 도시로 떠났다. 그 네 곳 지점의 정중앙으로 출발한 것이다. 아마도 뜻밖의 신기함이 기다릴지도 모르는 그곳으로. 어쩌면 여왕벌이 살고 있을 것만 같은 그 중심점으로 나는 떠났다. 좌우명은 뭘로 할까! 사라진 호기심을 찾아라? 못 말리는 요술쟁이랄지 다른 별에서 온 탐험가에게 유식한 채 하는 목표는 하나도 필요하지 않았다. 꿈꾸는 거짓말쟁이의 남다른 상상력? 식상한 허풍 뻔한 잔소리! 지금은 오직 행동하는 것 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왜냐하면 사랑꾼에게는 사랑과 우정은 곧 할 일이자 인생이고 모험이니까.
13
나는 사각형의 중심점에 도착했다. 일단은 동네를 탐방하고 카페를 염탐했다. 그러다 분위기를 읽었고 낌새를 눈치챘다. 저번에 회원제 카페로 추정했던 나의 예상은 완전히 헛다리 짚기였다는 걸 알게 됐다. 보아하니 그곳은 어떤 지주회사나 거대 브랜드가 근처 구역 전체를 산 것 같았다. 인구가 점점 줄어가는 주택가 일대를 조금씩 매입하다가 전체를 산 다음 그 동네 그 상태로 이용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탐색을 마친 다음 저번처럼 좌표의 입구를 관찰했다. 그쪽으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들어가길래 나는 재빨리 후미에 붙어서 그들을 따라서 들어갔다. 고양이처럼 지켜만 보다가는 소득이 없을 듯 해서 나는 나도 모르게 따라서 들어간 것이다. 내부는 평범한 가정집이었다. 그런데 사무실로 개조해서 이용하는 듯 했다. 현재 회사로 쓰고 있고 오늘은 휴일인 듯 했다. 그렇게 첫 번째 집을 구경한 다음 출구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그런데 출구는 옆집으로 통하는 문 밖에 없었다. 입구와 출구 그렇게 둘. 그래서 나는 2번째 집으로 건너갔다. 그곳도 구조는 거의 비슷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3번째 집에 도착했다. 그러고 보니 그렇게 구역 전체가 연결된 것 같았다. 사무실 분위기를 살펴 보니 평범한 사무실이었다. 컴퓨터가 있고 개인 공간이 있고. 벽면에는 일종의 동기 부여용 좌우명이 걸려있었다. 아르키메데스는 말했다, 유레카! 전화기의 발명 1876년, 영화의 탄생 1895년, 텔레비전 1926년, 인터넷 1991년! 그러나 3분의 마법인 유행가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 사랑은 기적. 세계7대 불가사의에 보너스를 추가하자. 그것은 바로 환상 게임 미스테리아! 미스테리아는 소원을 들어주는 인생의 마법 등등등. 이대로 가다가는 끝이 없을 것 같아서 나는 겁이 덜컥 났다. 그래서 나는 그대로 왔던 길을 따라서 탈출했다. 그렇게 별 소득없이 나는 집으로 돌아갔다.
14
나는 집에 도착했고 괜히 갔다 왔다고 생각했다. 쓸데없이 시간 낭비만 하고 기분도 별로였다면서 투덜거렸다. 아무런 성과도 없었다. 기억나는 건 책상 위에 있던 목걸이 식별 카드. 거기에 뭐라고 씌여있더라? 임무 끝내기 개발 7팀, 미스테리아...! 그러다 저녁에 나는 미스테리아 사무실에 놀러갔다. 마라는 게임에 몰입하고 있었다. 「마라. 그거 무슨 게임이니?」 「어. 이거? 미스테리아란 게임이야. 우연히 알게 되서 한번 해 봤는데 한 1주일 하고 나면 질릴 것 같은데. 잘하면 2주 갈 수도 있고. 그런데 이상한 건 우리 잡지랑 이름이 같다는 거. 단지 그거 하나. 끝. 재미없다.」 「넌 어디 갔다 왔는데?」 「어디 갔다오긴 내가 어딜 갔다와?」 마라가 어떻게 알았지? 나 혼자 여기저기 쑤시고 다녔다는 걸? 괜히 혼자 헛소동만 벌이다 낙담한 채 돌아온 사실을 말이다. 그녀들은 모두 결국 날 떠나가버린 것 같았다. 그러니까 결론은 이렇다. 심심함은 강자, 쾌락은 승자, 허무는 내 운명이었다. 얇다 못해 듣는 즉시 모든 것을 기억해버리는 내 청력은 세이렌의 유혹을 이겨낼 수도, 따라할 수도 없었던 것이다. 나무랄 데 없는 행복감은 도저히 잡히지 않는 파랑새에 불과했다. 그래서 내가 하는 일은 항상 이런 식이다.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쾌락에 굴복하는 걸로도 모자라 핑계를 싸고도는 일! 미처 공상하지 못했던 마법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고, 사랑의 찬가 애처로운 연가도 이젠 다 귀찮아져버렸다. 나는 까칠한 당나귀였고, 동시에 소심한 고양이였으며, 또한 횡설수설 앵무새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꿈틀꿈틀 여심을 자극하라? 어디서 속지나 않으면 다행이고 혼자서 착각에나 빠지지나 않기를. 나는 집으로 돌아와서 다음과 같은 칼럼을 쓰다 포기했다. 사랑의 공작새란 제목의 미완성 칼럼. 그냥 버리기는 뭐해서 일기장에 쓰기로 했다. 누구는 내내 사랑을 동경하고 탐구하며 추측만 하고, 누구는 가만 있어도 사랑만 받고! 전자는 제 발로 굴러다니는 호박을 바라만 봐야 하고, 후자는 다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을 올릴 것인지 말 것인지만 고민하고. 후자에게 사랑은 꽃을 좋아하는 일이고, 전자에게 사랑은 무슨 과일에 걸신들린 건가? 마음에 안든다, 까지는 아니지만 부익부 빈익빈이다. 최소한 전자에게는 말이다. (그게, 늬가 더 미워?) 그래서 전자는 다짐한다. 야 안되겠다 안되겠다 이래서는 안되겠다 라면서. 전자는 서둘러 방법을 모색한다. 첫째, 꽃 들고 과일 기다리기. 둘째, 공작새의 깃털로 승부하기. 곧 여자들의 속눈썹과 화장술 및 1번 타자 애교 2번 앙탈 3번 요염 4번 자기애는 물론 숨겨둔 대타 비장의 카드 백넘버 7번 허영심처럼, 전자는 공작새의 가짜 깃털을 위해 번 돈을 다 쓴다. 아니 절반만 쓴다. 다 쓰면 거지 되니까. 그러나 드물게 올인도 있다. 예를 들면 에르메스와 페라리. 그리고 셋째. 셋째는 타석 지상주의. 곧 운명론. 나랑 말이 통하는 남자를 기다리기. 왜 나와 말이 통하는 남자가 없는 거지? 라면서! 스타 지망생의 애환은 미남을 좋아하며 소원을 유망하는 소녀의 마음과 같다. 단지 긍정과 밝음, 희망, 웃음과 다정한 태도와 반가운 자세도 좋지만 떨리는 영심이의 측은한 숙명은 그것일 수 밖에! 찬 밥 더운 밥 가릴 처지인가, 아닌가! 가희(歌姬) 토스카와 화가 카바라도시의 사랑을 그린 문학과 푸치니를 좋아하고 베르디를 편애하는 것으로 대신할 수 없는 사랑이기에. 듣고 보니 꼭 무슨 진공청소기도 커피포트도 아닌 어떤 이상한 생활용품 광고인 듯 하다. 맞다. 즉 상업 광고. 이젠 북 치고 장구 치고 원맨쇼가 유행인 세상이니까 어쩔 수 없음.
from 소설
2018. 1. 31.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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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애인이 사랑의 맹세를 나중 언젠가 어긴다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몇몇 경우의 수가 있다. 각자 인생을 산다랄지 반성하는 자숙 기간을 가진다랄지. 사람에 따라 나뉜다. 나는 1번이면 끝이다 난 이혼 자신 없어 등등. 그래서 처음이 중요하다. 사랑인가 연애인가 불장난인가 뻔트인가. 한쪽의 일방적 구애로 열망 없이 시작된 수동적 연애는 어쩌면 처음부터 불미스러운 미완의 운명을 갖고 출발하는 것일 수도 있다. 라~는 생각을 하던 중 조지는 여성잡지2 사무실에 도착했다. 그는 24시간이 모자라는 하루를 살지도 않았고, 최근 글을 많이 썼기 때문에 쉬면서 놀기도 하고 구경도 하며 바람을 쐬고 오기 위해서 도시로 갔던 것이다. 특별한 일정도 없었고 정해진 약속도 없었다. 그러나 딱 1가지 할 일은 있었다. 그것은 미스테리아 편집장 마라의 부탁이었다. 여성잡지2에 들려 어느 행사를 탐방해달라는 간청. 그들이 또 애청에 호응하며 화답을 요구하고 호혜를 베푸는 사이인지라 조지는 열 일 제쳐놓고 그곳으로 갔다. 실제로는 심심했지만 겉으로는 바쁘다는 듯이. 그곳에서 최소주의자 누구를 주인공으로 하는 독자와의 만남이 있다고 했다. 정해진 시간이 되었고, 적당한 기록도 남겼다. 행사는 끝이 났고 조지는 해야 할 일을 마쳤다. 때문에 왠지 모르게 기분이 이상해졌다. 흔히 말하는 도시에 나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것만 같은 공허감일 수도 있을 것이다. 또는 의식의 도착성, 낭만적인 동경심, 지적 감수성이랄지 부푼 허영심 때문에 빚어진 핑크빛 연애 감정 때문일 수도 있다. 혹은 충족되지 못한 로맨스에 대한 욕구 불만일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왜냐하면 이유는 많았기 때문이다. 외로웠고, 뭘 해야 할지 몰랐으며, 여성잡지2에서 칼럼을 의뢰 받기를 원했고, 여성잡지2의 경리 아가씨가 문득 궁금하다고 느꼈으니까. 실제 그곳 사무실에는 조지와 그녀, 그렇게 둘 뿐이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파티장으로 떠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지는 숙녀가 느끼기에 수작이랄지 어떤 실례를 시도하지는 않았다. 그는 다가오는 사랑의 윤곽이 선명하지 않을 때 의레 그렇듯 최소한의 할 말로 단지 분위기를 살폈다. 그리고 경리 아가씨의 기분을 짐작해 봤다. 그녀는 아마 마지막 데이트를 한지 약 3년을 훌쩍 경과했을 듯 했다. 게다가 남자를 잘 만나지 않지만 모처럼 귀하게 만났다 하면 딱 3년을 만나는 여인인 것처럼 느껴졌다. 뭘 근거로 그렇게 자신 하냐 라고 누가 묻는다면 조지는 아마 그럴 것이다. 딱히 예술적인 예감 상업적인 기대 때문에 하는 말은 아닙니다, 제 어설픈 추측에 따른 막연한 책임감은 너무 부담스럽거든요. 참 잘도 빠져나간다. 뭐랄까 태연하게 타인의 마음을 뻔질나게 드나든다고나 할까? 숙녀에겐 얄미울 만한 눈치, 깍쟁이 같은 개구쟁이로 판단될 여지가 있었지만 그는 확실하지 않은데 아무 과일이나 건들고 꽃이라면 다 좋아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심지어 그의 친구 중에는 뭐만 둘렀다 하면 정신 못차리는 친구도 있을 테고,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각계 각층에서 쟁쟁한 활약을 펼치시는 훈남들이 많을 것만 같았다. 어쨌든 그는 괜히 막 아무나 또 언제나 들이대는 남자가 아니었다. 가만 보면 그런 사람들은 딱 정해져 있다. 마초론으로 빠질 수는 없고 그가 왜 그랬느냐, 왜냐하면 조지는 도박꾼의 신중함, 마담의 친절함, 로맨티스트의 쾌활함과 혈색 좋은 시인의 상상력을 한몸에 부여 받은 남자였으니까.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는 그런 남자가 되고 싶었으니까. 그래서 그는 목적은 성취됐고 달리 할 일은 없었기 때문에 돌아갈려고 했다. 그랬더니, 「벌써 가시게요?」 벌써 가시게요? 그녀가 말했다. 그는 멈칫했다. 생각이 많아졌다. 이건 빈말일까 참말일까? 어조에 담긴 건 서운함인가 후련함인가? 몸짓과 표정으로 보자면 왜 아직도 안 갔냐, 아니면 나는 당신을 좀 더 알고 싶어요 인가? 억양으로 풍기는 느낌은 나 바빠요, 나 한가해요, 나 심심해요 에서 과연 어떤 것일까? 그는 무심코 마법의 정원을 거닐게 된 듯한 도취감까지는 아니지만 살짝 기분이 좋아졌다. 때문에 괜히 책꽃이에서 책을 한 권 꺼내 보았다가 몇몇 질문으로 그녀를 귀찮게 했다. 가령 물어본 질문은 이랬다. 혹시 엑셀을 잘 하냐, 여기 대표는 요즘 무슨 취미를 즐기는가. 그리고 그외 뭔가 귀뜸해 주고 싶은 말이 떠올랐는데 무례할지도 모르니까 물어보지 않았다. 미소가 밝다느니 어쩐다느니 라는 언급은 아마도 생략하기 어려웠었을 테고. 「시 쓰는 일은 어렵지 않아요?」 「네? 시요? 저는 시... 안 써요. 제가 하는 일은 문서, 숫자, 계좌 이체, 일정 확인, 회사 소셜 네트워크 관리... 이런 일이죠.」 「아 그렇군요. 내가 괜한 걸 물어봤네. 그런데 있잖아요. 오늘 기분은 어때요?」 「오늘 날씨요?」 「아니 내 말은 그러니까 사무실에 꽃이 없다, 안개꽃이나 아 요 앞에 꽃집에서 장식용 부케도 팔던데. 내가 사올 걸 그랬나? 아니! 굳이 꽃...이 필요 없겠네. 정말이네!」 「네? 그게... 무슨...?」 「와! 립스틱 랑콤이다.」 「어머. 어떻게 아셨어요? 와, 대박!」 어떻게 알긴. 그냥 찍었는데 하필 그렇다니. 조지가 더 놀랬다. 하지만 놀라지 않은 척 자신은 별다른 오해를 사고 싶지 않다는 듯이 그녀를 안심시키기 위해 노력했을 뿐 더 이상의 다가감은 자제했다. 방훼꾼은 해 본 일이 없었고, 훼방꾼도 특별히 소질은 없었기 때문이다. 어쩜 그녀는 벌써부터 조지를 원망하는 것일까? 그러나 아직 우롱당한 심정은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조지가 무슨 연애 비법을 달달 외운 남자도 아니고, 돈 주앙의 부활이라고 자부할 수도 없었으나 그녀는 어느새 조지에게 못 말리는 당나귀 공주님이 되어버렸다. 곧 조지는 내 친구 마술사 얘기를 해 줄까요? 까지 가기도 전에 어느새 서로 자연스럽게 말을 놓는 사이가 되었다. 사랑은 애정의 허상이요 흠모의 은유, 그런 이상한 말로 그녀의 정신을 헷갈리게 만든 것도 아니었다. 더구나 자기만의 번득이는 상상력 풍부한 감수성 기막힌 추리력을 대단한 것처럼 막 자랑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업무상 협업 관계도 아닌 그냥 인사만 나눈 사이에서 벌써 오빠와 동생이 되어버렸다. 그냥 어쩌다가 말이다. 원래 남녀 사이란 이처럼 오빠란 호칭이 자기로 변해가는 것이다. 이로써 조지는 이브와 우정을 나눌지 사랑을 가르쳐 줘야 할지 의도를 분명히 해야만 했고, 따라서 당분간 도시에 더 머무를 구실을 마련한 결과를 얻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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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조지가 앙큼하고 맹랑하며 깜찍한 것, 막 그러면서 혼자서 신나게 춤을 덩실덩실 추지는 않았다. 요망한 계집 이브여 이리 오너라, 라면서 그녀에게 전화하고 꽃 들고 기다리거나 막 귀찮게 하지도 않았다. 오빠라고 부르고 들으며 눈빛으로 아는데, 그는 전화번호를 물어보지 않았다. 그는 뭘 믿고 그렇게 자신 있냐, 왜 그처럼 뜸을 들이냐 라는 듯한 익살꾼의 안도감으로 직감했다. 그녀는 기다릴 것이라고. 하지만 그 예사롭지 않은 낌새는 그저 기다림까지만일 것이란 예측을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이때 필요하고 절실한 건 무엇일까? 숙녀의 꽁무늬를 쫓는 상남자의 음험한 본심은 후보군에 올리지 말자! 그렇다고 불길한 효과음? 그 장르는 아니다. 지금 등장하면 좋을 대타는 아마도 이렇지 않을까? 믿지 않았던 운명에 날 맡겨버릴 수 없는 심사, 그녀의 궁금한 마음에 살며시 노크하는 우연! 그래서 조지는 마라한테 호의를 요구했다. 행동으로 보여달라고 닦달했다. 내가 너 때문에 뭔 고생이냐, 고료가 많기를 하냐 그렇다고 유명세가 따라주냐, 아니면 네가 나에게 해외 출판업자를 소개시켜 주기를 하냐 그러면서. 나아가 그는 나도 친구 덕 좀 보자 라면서 여성잡지2에 칼럼을 실고 싶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그처럼 호되게 큰소리쳤다. 하긴 마라가 사람도 좋고 능력도 있고, 용한 점쟁이도 많이 알며, 괜찮은 왕자님이 나타나지 않았다 뿐이지 뭘로 보나 빠지지 않고 누구에게나 자랑하고픈 숙녀였다. 심지어 그들은 친구였다. 그 사랑과 우정 사이는 하찮은 열망인지 유치한 기쁨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랬더니 마라는 즉시 일을 따냈다. 마감일도 1일 전이었다. 그래서 조지는 뚝딱 칼럼을 작성해서 원고를 들고 다시 여성잡지2로 갔다. 그런데 그날 따라 여성잡지2의 경리 아가씨 이브는 결근했다. 어라 이 아가씨 좀 보소! 그는 아마도 당분간 이곳에 출근할 것만 같은 무언가 석연치 않은 신비감을 느꼈다. 지고의 애원은 곧 있으면 드러날 테니 그가 쓴 칼럼, 배보다 더 큰 배꼽을 확인하자면 이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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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늑대론 내용: 어떻게 보자면 세상에서 제일 인기 있는 세 가지는 그것이다. 모래성, 광고, 그리고 나이트클럽. 벌레 먹은 사과가 유달리 맛있다길래, 우리도 소심한 처녀 가슴에 사랑의 불을 지피자! 라고 다짐하면서 오늘도 허당들은 으쌰으쌰 달려간다. 어디로? NC로! 마음으로 사랑하면 풋사랑&짝사랑, 물심양면으로 하는 미친 사랑, 몸으로 사랑하는 불륜까지. 하지만 사랑도 역시 이론과 실제가 다르다. 사랑을 해도 과일 잘못 먹으면 배탈 나고, 그래서 먹은 약은 하필 변비약, 사랑을 못하면 의욕만 넘쳐서 멀뚱멀뚱 닭 소 보듯 삼구삼진 당해서 2군으로 미끄러지며, 그렇다고 또 안하는 놈은 뭐야. (단지 못 하는 형편은 이겨내자. 주어진 환경에서 다음을 꿈꾸는 게 낫지 건강한 자세가 아니라 매사 불평과 불만으로 똘똘 뭉친 사람이라면 주변에서 사람들 마음은 다 날 떠날 것이다. 나중 출세할지라도 남는 건 딸랑딸랑과 굽실굽실이요 뭘 해도 재미없을 테니까) 한마디로 사랑은 어려운 것이다. 때문에 그분들은 친구들과 사랑에 대해서 단 한 번도 말하지 않는 것이다. 금기해야 할 단 하나의 주제는 바로 그것이니까. 사랑은 무엇일까? 사랑은 내 것이다! 완전한 내 것. 내 마음에 쏘옥 드는 내 것. 단지 강요된 흡족함으로 끄덕거릴 수 없는 채 옷깃을 붙들려 끌려가서는 안되는 것. 사랑과 풋사랑은 다르며, 사랑은 삼류 나이트클럽의 즉석 만남과는 다른 것. 수동적이 아니라 내 몸과 마음이 적극적으로 그 모두를 원하는, 원해야 하는 것. 사랑은 거울과 조명과 같지 않다는 점. 그러므로 결혼 전 그 결혼이 인생의 좋은 결정일까 하는 의문과 간지러운 우울감이란 그림자는 작아질 수도 커질 수도 있을 것이다. 각설하고, 숙녀가 원하는 사랑은 뭘 좀 아는 남자의 사랑이다. 그렇다고 뭘 좀 아는 남자가 흔할까? 오페라글라스를 실제 사용해 본 남자가 몇이나 된다고. 그럴 리는 없다. 그럴 리는 없어. 여자가 때로는 몸과 마음이 분리되듯이 남자도 나뉠 수 밖에 없다. 눈치가 빠르면 견적 늦으면 뚤레뚤레! 뭘 좀 알면 은근 허당 그게 아니면 자발, 재롱잔치, 방황, 학예회, 내가 최고, 남의 다리 피나게 긁기, 일행과 보조를 못 마추다 길을 잃기, 숙녀는 의전을 바라는데 잔말 말고 따라와, 분위기를 못 읽고 꼬끼오꼬꼬댁, 어제도 오늘도 삐악삐악 참새 짹짹! 그러니 사랑이 쉬울 리가 있나. 때문에 사랑은 드물고 귀한 것이다. 고로 열정을 기울일 만한 가치는 충분한 것이다. 하지만 최고의 사랑이 있으면 더티 러브도 있는 것. 그래서 상남자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은 혹시 그게 아닐까? 첫째, 내가 오빠 이럴려고 만나? 둘째, 나 사랑해? 둘째의 물음표는 물음표가 맞는데, 그런데 첫째는... 물음표 대신 느낌표인지 마침표인지 또는 자문자답인지 거 어째 아리송하기만 할 뿐. 그러니까 남자들이 오빠라는 말만 들으면 미쳐버리지. 그분들이 괜히 숟가락 들 힘만 있으면, 문턱을 넘을 수만 있으면 뭐 어쩌는 게 아니라고. 그분들께서 좋아하는 게 그거거든, 다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 올리기. 그래서 사랑은 단지 대자연의 섭리 그것에 불과할지도 모름. 허풍이냐 허영심이냐. 좌-허세남 우-허당일 것인가. 미래주의자도 그다지 게다가 가련한 시인이라면 더더욱, 그렇다고 허울뿐인 로맨티스트는 헛소문 뿐임이 진작 들통났고. 심지어 멋진 남자의 추문이 끝나기를 기다리며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릴 수도 없다. 따라서 그녀는 언제나 외롭고 사랑은 주로 어렵다. 아니 그 반대인가? 사랑은 외롭고 그녀는 어렵다. 음 그게 좋겠다. 그러나 아무리 그럴지라도 나는 사랑을 아직 몰라 아직 몰라. 그래도 나도 안다. 설레는 사랑에 빠질 것 같은 예감, 더러운 사랑에 발목 잡힐 것 같은 불길함. 전자와 후자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것을. 그 둘이 많이 다르다는 것 정도는 나도 다 안단 말이다.
4 어떡하다 조지와 이브는 대화의 주제로 연예인병을 선택하게 되었다. 상사병도 아니고 뭐 연예인병? 그러게 말이다. 「연예인은 연예인병에 걸려도 돼. 단적으로 말해서 평판 대 작품이 2 대 8이거든. 연기를 잘한다 노래와 춤과 기량은 내내 최고다 언제나 새롭다, 라면 뭔가 조금 째째하든 뭔가 조금 시시하든 괜찮아. 누구나 침체기는 있는 법이니까. 거기서 좀 다른 방향으로 여자 관계 남자 관계가 복잡하든 어쩌든 괜찮다고. 개인의 인생을 벗어나는 일이라면 일이 커지게 마련이지만 그 정도가 아니면 적당히 흐름을 타겠지. 뭔가가 모범은 아닐 수 있지만, 왜 안돼? 젊으니까, 염문 혼자 만드는 거 아니니까, 사랑이 죄는 아니니까 괜찮아. 그런데 광고에 나오고 조명을 받고 외적인 재능으로 승부하는 업계가 아니라 작품이 대중성 순위로 직결되는 예술가의 경우는 연예인병에 걸리면 곤란하지. 왜냐하면 그러면 롱런은 가능해도 돈과 인기는 챙겨도 (시대를 뛰어넘는) 발전이 없기 때문이지. 허우적거려 봐야 내내 제자리거든. 인터뷰하며 사진 찍고 그럴 때야 두 마리 토끼를 잡으셨네 어쩌네, 그래 봐야 팬들 빼고는 돌아서면 잊어. 아예 처음부터 관심도 없지. 업은 예술인데 기예처럼 세대 바뀌면 촌스런, 구식 코메디언이 되는 식이라고. 대부분 작품의 운명은 탄생하는 순간 소비재 아니면 데이터베이스에 추가될 수 밖에 없어. 딸랑딸랑 반짝반짝 그래 봐야 다 빈말이고, 토끼도 아니고 거북이도 아니게 돼.」 「(소곤소곤) 와 완전 역대급 왕가슴이네 그래.」 「뭐라고?」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야.」 「달리 보자면 슬럼프가 오히려 원동력이 되기도 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 일, 수단이 목적으로 경도되는 일, 어쩌면 그 반대가 부자연스러운 일일 수도 있어. 시집 3권 발표 하나 영화 3편 만드나, 성공하건 실패하건 그 뒤로 나머지는 다 똑같은 거만 만들게 될 공산이 크거든. 입은 살았으니까 말로는 피카소든 카페 피카소 사장이든 뭐라 뭐라. 피카소가 안 건드린 분야가 있나? 말하는 거 듣고 글 쓰는 거 읽어 보면 와, 자만심 대단! 다 그렇다는 게 아니라, 이상하게 유명해지고 나면 스스로 그러는 거 같아. 나는야 세계 3대 기타리스트라네. 아니 내가 신장르를 만들었으니까 나는야 잉위 맘스틴이라네 어쩌네. 그래서 아마 1집만 좋아하는 1집 증후군끼리 만나는 친구들도 있을 걸? 애초에 출발부터 대형 신인이네 어쩌네 그래도 어항이든 아니든, 태생이 태평양의 참치요 대서양의 돌고래니까. 차라리 개봉 소리가 특이한 참치 통조림이 지금 시대엔 더 알아 주지 않을까? 스타워즈에 우주선 한두 개 나오니? 그건 인어공주가 아니야. 신화에 나오는 뭐 더하기 뭐가 아니라고.」 「(소곤소곤) 오오, 미스터 호스(Horse)!」 「아 쫌! 오빠 말 끊지 말고. 어디까지 했지? 아 거기까지. 그치만 도스도옙스키가 앓았던 간질 같은 독특한 질환을 일반인도 타고나는 건 드문데 예술가가 그처럼 특출나기가 어디 쉽겠니? 다 그냥 두런두런, 그만그만, 고만고만, 두루두루, 그럭저럭 먹고 사는 거야. 취미로 뛰는 팀 이름조차 조마조마겠지. 유명하면 예술이고 뭐고 일단 단 연예인이니까.」 「오빠 그런데 말이야. 오빠는 어떻게 그처럼 예술과 연예인에 대해서 잘 알아? 오빠 언제 연예인 지망생 그런 일 한 적 있어?」 「그건 비밀! 내 사랑이 그런 적이 있었다면 몰라도 난 아니지. 난 아마 은둔형 작가에 가까울 걸. 사실이 그렇자나. 필명으로 근근히 먹고 사니까.」 「오빠 그런데 있잖아. 오빠 내가 봤을 땐 말이야. 오빠가 연예인병에 걸린 것 같은데. 어쩌지? 우리 오빠 어떡하지? 이걸 어쩌나! 오빠가 연예인병? 어머머! 그것도 중증으로? 아아 심각해! 많이. 말도 말어 (설레설레)!」 「뭐, 뭐라고? 하지만 인정 못할 것도 없지 뭐. 알고 보니 그거 같아. 사람이니까. 사람이니까 그런 거라고. 연예인병도 먹고 자고 놀고 사랑하고, 그거랑 똑같을 뿐 전혀 다른 어떤 새롭고 희귀한 그런 증상이 아니란 말씀. 단지 그런 건 있어. 일반적으로 잠자기와 놀기는 동시에 할 수 없지. 그런데 가능과 불가능의 애매한 영역도 있을 수 있겠지? 유달리 먹으면서 걷기를 좋아한다랄지 먹기와 놀기를 사랑하기와 함께 하는 드문 욕구도 있을 테고. 그처럼 연예인병은 일종의 뭐랄까 샌드위치 같은 욕망의 일종에 지나지 않는다고나 할까?」 「아아 오빠 안 되겠네. 이 오빠가 말도 완전 연예인처럼 하네. 딱 똑같아. 와 장난 아닌데? 어쩌지? 이 오빠 어쩌지? 정말 어떡하지? 오빠를 정말 어떡하면 좋냐고!」 「그건 있잖아. 1800년쯤에 씌여진 글을 읽어 보면 알 수 있어. (뭐야 이젠 들리지도 않는 거야? 지가 무슨 베토벤이야 뭐야!) 그땐 연예인병 자체가 없었으니까. 지금처럼 스타가 많지 않았던 데다가 오락산업 자체가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구식인 반면 품위가 있었어. 실외에 나갈 때는 반드시 모자를 써야만 했거든. 안 그랬다가 미친 놈 소리를 듣게 될 게 뻔하니까. 지금이야 결혼식장에서나 볼 수 있는 하얀 장갑과 면사포? 당시엔 일상이었어. 완전 딴 세상이었지. 한번 생각해 봐. 면사포와 새하얀 면장갑이든 자수가 이쁘고 레이스 달린 망사 장갑을 날이면 날마다 껴야 한다? (좋겠네!) 글쎄! 어쨌든 당시에는 추기경이랄지 고위관직과 왕 빼놓고는 그 유명세를 알아 보는 사람, 술렁이는 환호, 미세한 눈치 그런 모든 흥분이 없던 세상. 그래서 당시에는 어느 유명인이 낯선 어딘가에 가서 내가 누구요, 라고 해도 <아, 그러요?> 라고 수긍할 리가 없기 때문에 시작부터 끝까지 작품과 개인은 어느 정도 분리가 보장되었던 거라고. 그때 만큼 몇 년에 한 번 나올 만한 예술가들이 지금도 나 여기 있소이다 그럴까? 아니지. 아니잖아. 그와 정반대지. 그럼. 그렇다고 내 뜻은 고전주의만을 숭상하겠다 그 말이 아니라 그런 고전적 특징 대신에 지금은 분야와 범위와 방법과 물량 그 모든 게 광활해졌다 그 말을 하고 싶었어.」 「내가 봤을 땐 말이야. 오빠는 안다-박사야. 아 제대로 걸렸네 제대로 걸렸네. 한동안 헤어나오질 못하겠구만. 상사병도 아니고 거의 난치병 아니 사랑의 불치병 수준이네 그래. (설레설레)」 어느덧 이브와 조지는 밖에서 스스럼없이 데이트하는 관계가 됐다. 어쩜 그 말이 실제로 들리는 것만 같다. 정말로 지극히 현실적인 환상처럼, '우리는 만나면 금방 친해져!' 라고. 애틋한 감정을 굳이 사람들에게 숨겨야 할 이유도 없었고, 동시에 주변에 나 요즘 누구 만나 라며 애써 광고하고 싶을 만큼 막 기분이 붕붕 떠다니지도 않았다. 곧 어중간하게 설렜고, 적당히 들떴으며, 딱 좋게 가슴이 두근거렸던 것이다. 그게 뭐야? 누가 아니래! 곧 그들은 더없이 진척이 더뎠는지 어떤지, 그도 아니면 연애의 정석을 따르지 않은 것인지 분간이 썩 애매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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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는 도시에서 만날 사람이 별로 없었다. 생활 반경이 그만그만하고 굳이 사람들을 만나서 얘기하며 사회적 활동이 활발하지 않다면 꼭 도시에 살지 않아도 된다. 게다가 요즘 세상은 그 어디든 전화, TV, 인터넷등 문명의 혜택은 거의 구비되어 있다. 하지만 사람 많은 곳에서 오래 버티지 못하는 사람은 한적한 장소로 피신하고, 조지처럼 도시의 불빛에 눈빛이 살아나는 수컷은 어떻겠나. 물 만난 물고기가 되는 거다. 아무리 그래도 혼자 놀면 덜 재미있을 것이다. 다른 친구들은 일하느라 바쁘고, 그래서 조지는 비교적 일을 적게 하고 일과 놀이가 꽤 겹쳤으며, 약간은 같은 업계에서 일한다고 볼 수도 있는 친구를 불러냈다. 밸런타인. 밸런타인은 조류학자이자 과학 칼럼니스트였다. 그런데 그들은 뭇남성들과 달리 사랑을 얘기하는 우정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아마 밸런타인에게 여자가 생긴 듯 했으니까 조지가 사랑의 조언자가 될 시간이었다. 「한정판 미끼든 황홀한 고백이든 그녀를 유혹하는 방법을 알고 싶다고? 방법 있지 방법 있어. 너는 세이렌이 되어 그녀를 코끼리로 만들어. 그러면 그녀는 어떻게 되겠어? (딱)! 마음이 둥실둥실 떠다니겠지. 일부러 발을 걸어서 그녀가 넘어지면 네 입술을 갖다 대서 뽀뽀하지 않아도 된다구. 그렇다고 유치한 방법이 싫다고 굳이 어려운 시도를 고집할 필요 없어. 그녀의 마음이 지면에 닫을 듯 하면 다시 살짝 띄워주고, 그렇게 리듬을 타고 사랑의 음률을 속삭이다가 그녀의 두 발이 실제로 땅에 딱 닫잖아? (딱)! 바로 그때 그녀를 헹가래하듯이 번쩍 들어올려. 막 힘껏. 그럼 그녀 기분은 어떻겠어? 깜짝 놀랜다고 깜짝! 그렇다고 진짜로 헹가래하지는 말고. 체력 봐 가면서 하고. 여자는 그래. 응? 여자는 그런단 말이야. 둘 중 한 여자는 마음에 드는 남자가 있으면 그 남자를 업고 싶어져. 일단 당연히 안기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처럼 내가 오빠를 업어보고 싶다는 마음도 있는 거야. 앞에서 안기든 뒤에서 백허그를 당하든, 여자가 남자를 업고 싶어하고, 실제로 나 저 오빠 업어보고 싶어 라고 말하며, 진짜로 업기까지 하는 여자? 매력 있어! 남자에게 뿐만 아니라 여자들 사이에서도. 오히려 그런 친구들이 여학교에서 인기 괜찮지. 그럼. 사실이 그래. 그러니까 일단 숙녀를 보자마자 파악을 하란 말야. 응? 애교, 앙탈, 내숭, 선망, 허영심 등등. 어? 알겠어? 그러다가 딱 뭔가 느낌이 와. 저절로 느껴져. 기분이 보이고 분위기가 들리며 미지의 낭만과 상쾌한 쾌활함이 막 느껴지는 순간이 오게 되어 있거든. 우리는 보면 알아! 바로 그때, 이렇게 그녀를 들쳐서 어깨로 안아 올려. 이렇게, 응? 그러면 그녀의 두 발만 공중에 뜨는 게 아니라 마음까지 붕 뜬단 말야. 알겠니? 그럼 그녀가 가만 있지 않겠지, 막 내려 주라고 내려 주라고 떼쓴단 말이야 어린애처럼, 응? 그럼 이렇게 한손으로 때려야지! 그런데 있잖아. 중요한 건 말이야. 이런 사랑의 행위를 구사해도 될 남자와 그런 열렬한 열정을 썩 마다하지 않는 도도한 여자, 그 둘의 관계. 그거 오판하면 안된다는 점! 그거 구분 못하다간 큰일난다. 응? 그 점 잊지 말고.」 「사랑의 기쁨에 흠뻑 젖기 위해서는 사랑의 슬픔을 감수하고 솜사탕 같은 사랑의 아이스크림 속으로 뛰어들라. 그 말이지?」 「잘 아네! 커튼콜은 맨 나중에 하는 거고, 일단 경주마를 골랐으면 베팅을 해야 한다, 형 말은 그 말이지. 드라큘라는 뮤지컬로, 핀볼 게임을 할려면 동전을 넣고, 일광욕은 아마 비키니를 찾기 위해 굳이 두리번거리지 않아도 되는 전망 좋은 해변에서 하는 게 괜찮겠지? 그녀 마음에 무지개가 뜨기 시작했으면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 기념 사진 찍어서 꼭 형한테 보여 주고. 내가 널 수제자로 여긴다는 점 잊지 말고. 응? 그런데, 신혼여행은 어디로 갈 건데? 그러니까 멘델스존이야 바그너야? 아니면 현대식? 드물게 주페도 있긴 하지. 아 됐고, 처음에 어떻게 알게 된 거니? 첫만남 말이야.」 「처음에? 서점에서 책을 한 권 샀는데, 무슨 독자와의 만남 그런 행사가 있다고 하는 거야. 그래서 그쪽 소셜 네트워크에 글을 남기고 어쩌다가 알게 됐어.」 「아. 작가?」 「아니. 출판사 직원.」 「뭐?」 「왜?」 「아니 그게 아니라, 내 말은 좋은 사람을 만나야 한다 그 말이지. 지금 와서 문학 소녀랑 풋사랑을 하면서 사랑의 편지를 쓸 수는... 그래도 되긴 하지만 음... 그분이 좋은 사람이 아니다 그런 말이 아니야. 안 그래?」 안 그렇긴 뭐가 안 그래? 「그런데 있잖아. 그녀가 좀 예뻐. 뭐랄까 뇌쇄적인 눈빛? 난 결국 그녀를 만나기 위해 지금까지 이상한 사랑만 했던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다니까.」 「그렇다고 애인한테 들키지 말고.」 「어? 누구한테 들키지 말어?」 「아, 너 애인 없지. 농담이야 농담. 아 정말 얘 감 떨어져서 큰일이네. 그녀에게 튤립 한 다발 안겨주는 거 잊지 말고. 아무튼 축하한다.」 (악수!) (흐뭇흐뭇) 그런데... 혹시... 설마! 「오랫만에 사랑을 하게 되니 뭐랄까, 그런 기분이야. 여자를 좀 아는 듯한 느낌. 세련된 말씨, 상냥한 어조, 고상한 태도와 숙녀를 존중하는 자세 그 모두를 그녀들은 과감히 일찍부터 꿈꾸더라! 그걸 알게 됐어.」 「미리부터 안심하지 말고. 바보처럼 굴면 안돼. 우린 응석받이도 개구쟁이도, 더 이상 장난꾸러기도 아니니까.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우리 뭔가를 하자. 응? 오랫만에 만났는데 뭘 하고 놀까?」 「그래? 그럼 여행 갈까? 동쪽 끝까지!」 「뭐? 너무, 멀어.」 「계속 가면 다시 제자리로 오는데. 그래도 대낮부터 취하기는 좀 그런데. 안 그래?」 「안 그러긴 뭐가 안 그래. 가자. 안될 게 뭐야. 형이 낮술에 대해서 가르쳐 줄 테니까. 어디 괜찮은 곳 아는 데 있니?」 「그럼. 나와 친한 웨이트레스가 있어. 남자 바텐더도 있고. 말만 해.」 「뭐야? 이거 순 난봉꾼에 한량이구만!」
6
밸런타인이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는 주간지에 조지는 칼럼을 기고했다. 짭잘한 품위 유지비에 걸맞는 글을 쓰기 위해서 조지는 기를 쓰고 고민했다. 결과물은 다음과 같다.
제목: 자존심과 자존감은 어떻게 다를까? 서문: 어떻게든지 잘 설명할지라도 듣고 읽을 땐 이해하는데 돌아서면 잊게 됨. 따라서, 지식을 내 것으로 체득하여 내가 타인에게 아주 간결히 설명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하나의 질문을 가설로 설정해서 그 질문을 풀어가면서 설명하겠음. 문제: 나는 A인가 A가 아닌가? 정답: 나는 A일 수도 있고 A가 아닐 수도 있음. 허나 인간의 본성은 나를 A로 믿을 것을 종용. 그러므로 나는 A? 나를 A라고 상정할 때 유리한 점도 있고 불리한 점도 있음. 단, 그에 따른 불이익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비교의 관점과 부러움이란 감정을 적당히 활용할 것. 나와 남을 비교하면 자존심, 나와 나를 비교하면 자존감! (부러움에 대해서는 필자가 쓴 소설에 자세히 나와 있음. 절찬리 판매중!) 설명: 잠깐, 나를 A라고 상정? 이는 부정적 의미가 아님. 비교를 하든 안 하든 '나는 최고' 바로 그게 자존심! 비교와 별개로 나는 소중하니까? 자존감! 자존심이 지나치면 '나만 최고'로 주위에서 불편. 자존심이 적당하면 '너도 최고 나도 최고 우린 모두 챔피언' 즉 주변에서 인기 있는 걸로도 모자라 처음 보는 사람까지도 호감. 실제로 그렇다. 멋진 남자는 이길 때 이기더라도 자신을 낮출 줄 알고, 접어줄 때 접어주며, 상대의 승리가 당신의 약점 때문 아니냐고 캐물으면 승자를 깎아내리지 말라고 함. 반면 빈수레는 요란하고, 빈수레가 아닐지라도 미숙하거나 친할 때 그럴 수는 있다. (남자는 꼬끼오꼬꼬댁─멍멍 멍멍멍─탐색과 정탐─야성이 지나치면 민폐, 고로 닭─개─늑대─하이에나. 반면 여자는 어디로 튈 줄 모르고, 극도로 예민하며, 생각이 많은 세침데기, 간혹 마귀 할멈 그러므로 개구리─고양이─여우─불여우. 단, 남녀 공히 상대를 촌닭, 촌년, 참새, 뱁새라고 하면 싫어함. 괜찮다고 해도 얼굴에 다 티가 남. 간혹 레이저가 발사되거나 커피포트의 수증기가 끊는 사람도 있음. 한두 번은 괜찮음. 친하면 두세 번까지 용인. 지나치면 매를 벌게 됨. 애용하면 우정의 결별, 남발하면 사랑의 파혼. 그래서 언제 어디서든 립서비스는 말도 못함. 가식은 예절이요 오락산업은 대세. 누구시든지 그분을 백조로 대접하면 짜증내는 척 할 수는 있어도 싫어하는 사람은 별로 없음. 여간해서는. 속으로 진짜 싫은 사람은 절대 없음. 딸랑딸랑 재밌어요 재밌어요, 새콤달콤 좋아해요 좋아해요, 간질간질 반했어요 반했어요, 반짝반짝 사랑해요 사랑해요 뿌잉뿌잉! 다만 수완이 어설프면 꺼져, 놀리냐, 원하는 게 뭡니까, 나 기분 좋으라고 하는 소리냐는 역공을 당할 수 있음. 그리고 내가 백조라며 스스로 광고하는 결례를 저급한 농담으로 포장하는 푼수의 사례도 심심치 않게 발생함. 다만 웃기면 용서됨. 돌아와서) 그러니까 나를 A로 상정하면 여자의 거울과 조명과 화장처럼 카메라 앞에 설 준비 완료. 곧 자존심은 어디까지나 비교를 전제로 하는 감정. 자존심은 언제나 비교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자존심이 지나칠 가능성이 상시 존재함. 자존심이라는 뜻 자체가 남에게 굽히지 않는다, 그럴 수 없다 라는 의미. 때문에 굳센 자존심의 친구는 누가 뭐래도 교만함─자만심─거만함─건방짐─열등감. 반면 자존감의 친구는 자족감─긍지─자부심─자기애─자신감 등등. 개인적으로 자존심과 자존감의 친구를 달리 볼 수도 있긴 하나 대략, 대충은 맞는 얘기다. 만약 그렇다면 설핏 자존심이 부정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단지 꿈의 원동력이랄지 고비를 넘는 계기랄지 시시각각 적재적소에 필요한 감정일 뿐이다. 전문가의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감정 가운데 하나가 바로 자존심이다. 문명의 기초는 수학이듯이 과거에 비해 현대는 거의 모든 학문이 과학과 스포츠를 닯는 경향이 있다. 단순히 동물들의 짝짓기만 봐도 인간을 뛰어넘는 과학을 옛날부터 실천해 왔으니, 달리 부가 설명은 사치 아닐까? 그처럼 어떤 학문이든지 자존심을 자극하는 코칭은 결코 빠질 수 없는 전문성에 불과하다. 또 자존심이 엄청 세면 주위에서 불편한 건 맞는 사실인데 또 그분들은 다른 덕목에서 그 부분을 감쇄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 그런 요령이 다소 부족하면 드물게, 또 어떻게 보자면 썩 드물지 않은 어느 사례일 테고. 야 야 떴어 떴어 피해 피해 딴 데 봐 딴 데 봐! 자존심은 그렇고 자존감을 간략히 알아 보자. 자존심과 달리 나를 A라는 소중함으로 인식하면 비교와 부러움을 너그롭게 포용할 수 있는, 곧 단적으로 자존감을 뜻함! 자존감은 타인에게 굽힌다 굽히지 않는다와 관계 없음. 나의 비교 상대는 오직 나! 과거의 나, 현재의 나, 미래의 나! 기분이 좋을 때의 나, 기분이 나쁠 때의 나! 나와의 비교는 그렇다 쳐도 남과의 비교는 이 세상에서 피할 수 없다. 그래서 자존감은 하찮고 자존심만 중시해야 하나? 그건 아니다. 예를 들어 보자. 그러니까 객관적 비교를 전제로 최상층이 많을까 적을까? 답은 무응답! 화장품 브랜드가 바로 그래서 자존감을 중요시하는 슬로건을 사용한다. <당신은 소중하니까!> (딱) 그거다. 자존심이냐 자존감이냐 감수성이냐 호기심이냐 동경심이냐, 그건 제품 개발 단계에서 먼저 정하고 들어감. 남자가 사랑을 시작하는 것처럼. 따라서 브랜드 슬로건은 공략층에 따라 나중 변할 수도 있고 실상 틈틈히 변경됨. 유행이 바뀌고 시간이 흐르는 것처럼. 좌우지간 자존심과 자존감의 차이는 비교 대상이 누군가만 따져도 매우 쉽게 분별됨. 요컨대 자존심은 객관적 비교다 그러나 그것은 자꾸 주관적으로 표출되기 일쑤다. 그래서 그게 지나치면 보기에 민망할 수도 있다. 반면 자존감은 나, 나와의 비교다. 정작 중요한 건 그거다. 나에게 부끄럽지 않을 만큼 노력한 다음에 졌다면 그건 져도 진게 아니다. 그처럼 자존감은 언제나 그대를 다독일 수 있는 감정이다. 자존심과 자존감은 어떻게 다를까가 설명되었으니 자존감에 따른 남녀의 차이 곧 그 문제만 간략히 살펴 보자. 자존감과 부러움이 겹치는 부분이 거의 없다는 게 남자의 문제. 그런 반면 여자의 문제는 자존감과 부러움의 교집합이 너무 크다는 것. 그래서 남자의 허세에 상응하여 여자는 질투와 허영심이 발달. <자존감과 부러움> 그 둘에 대해서 남자는 남남, 여자는 우정과 사랑 사이! 고로 그에 대한 권장안은 남녀 모두 자존감과 부러움의 관계를 적당한 친교로 설정할 것. 결론: 부러움 즉 선망이 적당하게 자존심과 자존감이라는 첩을 양쪽에 거느려야 정신 건강에 좋다 라는 말씀.
7
조지는 이브에게 엽서를 보냈다. 물론 가짜 엽서였다. 나머지는 다 진짜였는데 미리 살짝 거짓말을 했다. 여행 칼럼을 쓰기 위해 어디에 갔다, 그런데 너무 멋진 엽서를 팔길래 이브 생각이 났다 라면서 통화를 마쳤다. 물론 조지는 실제로 여행을 떠나지 않았다. 그저 장난스럽게 쓴 동시를 그냥 버리는 건 뭔가 아까워서 그녀에게 거짓으로 낭만을 선물한 거다. 왜냐하면 토끼의 낙천성과 베짱이의 유흥감, 거북이의 성실함은 물론 앵무새의 허풍과 파랑새의 밝은 천성까지,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는 남자, 그런 남자가 단지 가난하지 않기만을 바랬으니까. 엽서에 끄적거린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신비의 계단을 오른다. 환상의 문을 노크한다. 누구세요 누구세요 오셨군요 오셨군요 내 님이여 왜 이제야 오셨나요? 미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아, 제 조수에요 신경 쓰지 말아요. 못 믿겠다면 사랑의 나라라고 해 두죠. 그래도 미심쩍다면 희망의 꿈동산은 어떨까요? 말이 너무 많다구요? 마이크 내놓으라구요? 네,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답니다!
하지만 그대에게 할 말은 해야겠죠. 참을 순 없거든요. 사랑을 참다가는 상사병으로 발전하는 건 시간 문제거든요.
꿈꾸자 즐기자 좋아하자 인생을 찬양하자. 그런 다음 고백하자 그런 다음 고백하자. 당신은 무한한 행복감을 경험하게 될 테요. 내 그대를 위해 저 하늘의 별이라도 따다 드리겠소. 그대여 자, 우리 함께 떠나지 않겠소? 너와 나 함께 말이오! 우리 둘이서 다정하게 손 꼭 잡고 오즈의 마법사를 만나러 사뿐히 떠난다고 상상해 보오.
그런데, 어딜 넘 봐 라는 원칙은 무너진 채 거의, 거의 넘어갈 뻔 했는데 철썩!
(과장해서 철썩이고 무시 됐다, 웃었다, 웃음거리가 됐다, 망신당했다, 사람들에게 알렸다, 청각을 자극했고 나중 연상되고 어쩌다 암시되도록 기억을 남겼다는 자체는 절반쯤 넘어온 거나 다름없음)
그처럼 바람을 맞고 실패하자. 더 많이 더 크게. 바로 이 세상에서. 설혹 그게 뭐가 되고 싶고 하고자 하는, 푸른 꿈과 선홍빛 풋사랑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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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토요일. 조지와 이브가 데이트하는 날이다. 그들은 하필 대관람차를 타러 갔다. 그런데 대관람차가 공중에서 정지했다. 「오빠. 혹시 시간이 멈춘 건 아닐까? 정말 그런 걸까?」 「실은 오빠가 부탁한 거야. (부탁하긴 뭘 부탁해!) 오빠에게 주말의 고독은 바쁜 일상의 그림자였는데, 어쩌면 이리도 삶이 손바닥 뒤집는 것처럼 해맑게 뒤바껴버리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네. 이브! 이따 점 보러 가는 건 어때? 이브는 내일이 궁금하지 않니? 미래를 알고 싶지 않냐고! 오빠도 그쪽 공부를 좀 했어. 실제로 학위도 있고 학파, 스승, 소속, 묵계 그런 거 다 있다니까. 게다가 오빠만 자주, 곧 오빠가 가는 게 아니라 역으로 역술가가 오빠를 찾는 일도 있어. 절대로 정신 나간 소리가 아니야. 오빠 거짓말 안 하는 거 알지? 분홍빛으로 물들어 무지개로 변한 정열은 나중 어떤 환희를 불러올지 보면 알거든. 난 말이야, 이브를 보면 그런 게 느껴져. 이제껏 받아 보지 못한 애원, 동경하듯 애타는 사랑, 달콤한 행복을 함께 하고 싶다는 뜨거운 열망까지. 때문에 난 지금 이브와 함께 이렇게 공중에 떠 있다는 게 도저히 믿기지가 않아. 지금 너무나도 행복하거든. 이브는 안 그런 눈친데? 오빠가 좀 더 노력하는 수 밖에 없겠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정말 꿈인지 생시인지 헷갈릴 수 밖에 없는 거라고.」 「오빠. 어쩜 이건 불가능의 고도는 아닐까? 우린 설마...」 조지는 재빨리 그녀의 말을 가로챘다. 「우리는 사랑한다. 고로 우리는 존재한다!」 여기서 그들은 뭔가 어떤 분위기를 딱 잡을려고 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대관람차의 회전 운동은 다시 시작됐다. 덜커덕! 분위기가 깨져버렸다. 그러자 조지는 즉각 플랜B를 시행했다. 그는 그 즉시 영감이 떠올랐다면서 지금 바로 글을 써야만 하니 양해해 줄 수 있냐, 정말 미안하다, 이따 최고급 레스토랑 예약되어 있다, 그 다음에 점 보러 가자 라면서 본인의 일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 공중에서 말이다. 여자는 원래 남자의 나만 사랑할 것 같은 어리숙함, 귀여움, 성실함등에도 꽤 높은 점수를 부여하는 법이니까. 그건 나중 데이트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조지가 여성잡지1에 투고한 일기였다. 전문을 옮기자면 이와 같다.
9
일기 1월 24일. 그녀는 나의 어린 양이자, 순진한 사슴이며, 요염한 고양이다. 때로는 응큼한 마녀일 때도 있고, 이따금 타락한 천사가 되기도 한다. 진짜 타락한다 라는 말이 아니고, 정말로 응큼... 그건 맞는 말이다. 우린 지금 건강한 청춘이니까. 그럴 리는 없겠지만 혹시 우리의 사랑이 이별을 맞이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이라면 우리는 기쁜 추억을 간직한 채 헤어질 것이다. 나중 질질 짜며 회상할지라도 당장은 멋지게 이별할 것이다. 그게 남자고 그게 사랑이니까. 그런 다음 나는 웨이트레스에게 잠시 찝적거리든, 여자 바텐더한테 위로 받든, 내 남자친구한테 껄떡거리지 말라며 친구에게 따끔한 일침을 놓는 드라마를 보든, 해변에서 낯선 여인의 엉덩이를 훔쳐 보든, 아마도 단골 술집 마담에게 노래를 불러드릴 것이다. 그 제목은? 다음 사람에게는! 내 전-여자친구의 새로운 애인과 내가 친해져야 할 이유도 없고, 우리가 얽힐 인연일랑 정말 우연처럼 주어질지라도 멀어질 것이다. 서슴없이 마다할 테다. 왜냐하면 나는 지난 사랑에 대해서 아량이 넓지도 인정이 깊지도 무정하지도 무심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다만 하나, 나는 그분들의 사랑을 응원할 테고, 멀리서나마 막연히 사랑의 축복과 낭만주의자들 인생의 행복을 기원할 것이다. 그게 사랑이니까. 말은 이래 놓고서... 쉿! 나 뿐만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사람은 이처럼 사랑의 주인공도 되고, 잊혀진 첫사랑도 되며, 석연찮은 사랑의 패자일 수도 있다. 곧 사랑은 크게 나누어 단 3가지일 뿐이다. 그 중에 최선은 현재고, 최고는 나중 봐야 하며,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 우리는 그래야 한다. 만나게 된 천운에 감사하고, 스친 인연은 사랑이 궁금했기 때문이라거나 사랑을 '사람을 알아가는 과정'으로 인식했을 수도 있으며, 지켜줘서 고마웠을 수도 있는 것이다. 사랑은 정말로 흔치 않은 거다. 홀딱 반해서 환상에 풍덩 하며 빠지는 사랑을 평생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은 연애를 하고, 구애를 받고, 누군가를 사겨도 그건 사랑이 아닐 수도 있다. 그분은 아직 사랑이 뭔지 잘 모르는 상태일 테니까. 어쨌든 지난 사랑에 대해서 무엇보다 연인이 이 세상에 태어남으로 당신께 바라건대 그 탄생만으로 감사할 수 있는 사랑, 그게 진짜 멋진 모습이니까. 말은 이래놓고 나중 찌질한 모습을 보이고 허접한 기분이 탈로 나며 속 좁은 질투가 심하냐 귀엽냐, 그건 그때 판단과 행동 잘 해야 할 것이다. 멋진 남자가 되느냐 저질 수컷이 되느냐, 그거 한순간에 결정되며 두고 두고 구박 받을지도 모를 테니까. 오뚜기처럼 잘 성장해줘서 고맙다느니 곱고 아름다운 여인으로 자라주어 감사하다느니 언제 어디서나 어여쁜 숙녀일 수 있으며 엄마를 부르다가 엄마로 불려지는 경험까지 모두 어쩐다느니 하다가~, 응애응애 삐악삐악 꼬끼오꼬꼬댁 하는 순간 망하는 거니까. 상남자와 옹졸함이라... 허세와 허영이 결합된 뻔트마가 아니라면 그리 멋질 듯 하진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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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조지에게 특별한 날이었다. 왜냐하면 밸런타인이 자기의 연적을 만나러 가자고 했기 때문이다. 조지는 뭔가 느낌이 이상했지만 친구의 부탁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 조지는 판돈을 걸어야 패를 쥘 수 있다는 게임의 규칙이 마음에 안 들기 때문에 혼자 게임하는 남자가 아니었다. 우정에는 우정으로 사랑에는 사랑으로, 그는 그래야 한다고 알고 있었다. 그가 딱히 특정하게 고집하는 인생 표어는 없었다. 하지만 굳이 유추해 보자면 이런 슬로건에 대해서 썩 반대하지는 않을 것이란 느낌, 꼭 뭘 좀 아는 허당이 아닐지라도 쉽게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것. 따라서 예고는 몰라도 예언은 행복을 암시할 것! 어쨌든 조지와 밸런타인은 약속 장소로 가고 있었다. 그렇다고 밸런타인의 표정이 유달리 비장하다거나 그렇지는 않았다. 그래도 조지는 기분이 이상했다. 어떤 숙녀가 마음을 온전히 한 사람에게 집중하지 못하고 한 사내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지 알고 싶었다. 원래 여자는 그런다. 보기 드문 공상가, 부유한 사색가, 잘생긴 재롱꾼, 그 모두가 한몸에 합세한다면 요조숙녀는 그에게 반하고, 마음이 흔들리며, 사랑에 빠져 그만 사랑병에 걸리고야 마는 것이다. 그럼 혹시 밸런타인이 좋아하는 숙녀는 그런 남자를 잊지 못하는 것일까? 아마도 그럴 공산이 크다. 바로 그때 조지에게 문자가 왔다. 조지는 핸드폰을 확인해 봤다. 순간 소셜 네트워크로도 안내 알림이 떴다. 조지는 그날 이브와 저녁에 만나기로 했는데 이브가 갑자기 약속 시간을 앞당긴 것이다. 무슨 피치 못할 사정 어쩌고저쩌고...! 보통 목소리로 약속을 조율하거나 아니면 약속을 깨거나, 미루거나, 그런 일은 있어도 이렇게 무작정 언제까지 어디로 나와, 라고 통지하는 건 연인끼리나 하는 거다. 요컨대 사랑 싸움. 그런데 조지와 이브? 그건... 아니었다. 그렇다고 조지가 이브와 미래를 약속했냐? 그런 일은 없었다. 그렇다고 우리는 내일을 생각해서는 안된다 라며 밝은 희망을 꺼트리는 암시랄지 어떤 약정도 없었다. 그러든 어쩌든 관계는 무르익고 있었다. 물론 조지가 원한 건 밀월 여행이랄지 밀애, 떠들썩한 스캔들이 아니라 단지 단 한 번의 백허그 같은 일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멋지게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조지는 어떤 이상한 쾌락에서 탈출하고 마침내 홀가분함 그 자체로 환상에 이르는 그런 자유를 갈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먹고 살아야 했다. 또 직업과 함께 어렴풋한 열망을 멋진 글로 실현시키기 또한 해내야만 했다. 그래서 적어도 미스테리아 전속 칼럼니스트라는 직함만은 포기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그건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똑같은 운명일 것이다. 그래도 청춘의 실없는 변덕 같은 조지의 바램일지라도 그가 탈출하고 싶은 정형이 무엇인가를 짐작하자면 아마 이럴 것이다. 달콤한 연가 고혹적인 낭만 그 다음에 젊음의 행진이 이어져야 하는데 그러면 좋은데, 그런데 쾌락의 꾀임에 그만 굴복, 저런! 그건 그렇고 조지는 이제야 모든 줄거리가 선명해짐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이브가 통보한 약속 장소로 그들은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악마가 부추겨서 시작되고 천사가 도와준, 가슴 벅찬 행복감에 대한 단꿈들은 다 어디로 가버렸을까? 밸런타인은 자신의 연적이 조지란 사실을 알고 있을까, 모르고 있을까? 이브는 조지와 밸런타인이 친구 사이란 걸 알까, 모를까? 그렇든 어쩌든 분명한 건 이거다. 약속 장소에 상대방 주인공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는 점. 왜냐하면 그는 바로 조지이니까. 이 일을 어쩐다? 어떻게 하지? 조지는 무슨 생각을 그리도 골똘히 하는 걸까? 그때 밸런타인이 이렇게 말했다. 「그 친구가 뭐라고 할까? 그분이야 어떻든 나는 방법을 생각해 놨어. 준비물도 챙겨 왔어. 콜라캔 30개. 무슨 말 하는지 알지? 도와줄 거지? 알아 안다구. 고마워. 너 밖에 없어. 만나서 할 말도 당연히 준비해 뒀지. 형이 또 준비는 철저하잖냐. 만나면 그럴 꺼야.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을 읽어 봤냐고 물어볼 꺼야. 영화로 봤다 그래도 난 말없이 끄덕끄덕할 거라구. 거기 보면 꼬마들끼리 대결하는 장면이 나오거든. 대결에서 진 꼬마가 난 너무 멋져 보였어. 지는 법을 어려서부터 배우고 익힐 수가 있구나 그걸 느꼈으니까. 그런데 그 작품 맞나? 아닌가? 검색해 봐. 아니 그만 두자. 아니면 어때. 보나마나 그 친구는 잔지식파겠지. 게다가 난 미리 말할 꺼야. 당신에게는 승부를 거부할 권리가 있고, 사랑은 아름다울 의무가 있다고. 캬~! 멋진 말 같지 않냐? 왜, 유치하냐? 그럼 어때. 나중 보면 이것도 추억일 텐데. 어차피 미래는 모르는 거야. 그러니까 한번 생각해 봐. 그 친구가 어떤 태도로 나올지를 말야. 응? 가슴에 손을 얹고 한번 생각해 보라구.」 ...... ...... 「아, 내 가슴 말고! 진짜! 너 요즘 외롭니? 괜찮은 에로비디오 하나 알려줄까?」 지금 적절한 효과음이 무엇인가는 전문가가 제일 잘 알겠지만 최소한 개 짓는 소리만은 아니기를. 조지는 생각했다. 다행히 이브와 사진을 하나도 찍지 않았다고. 자기는 멋진 말, 특이한 행동, 고급스런 농담과 그윽한 취향등을 어떻게 하면 간접적으로 알려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느라 미처 사진 찍는 데는 행동이 이르지 못한 것이다. 「혹시 그 친구... 누군지 알아 볼 수 있니?」 「몰라! 내가 그걸 왜 알아야 하는데! 한발 앞선 짐작, 추리력이 철철 넘치는 추론,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이해력에 바탕을 둔 예측, 그와 같은 신통한 직감과 예리한 직관에 논리를 더한 관찰력. 꼭 그처럼 너무 앞서갈 필욘 없어. 그럼 피곤해. 드라마는 드라마고 난 나니까.」 ...... ...... 약속 장소. 2시관 경과 후. ...... ...... 번화가. 가로수 옆 2층 카페. 두 남자가 창가에 앉아 콜라를 마시고 있다. 가게에 주문했던 레모네이드, 망고 쥬스, 우유, 에스프레소는 일절 손도 대지 않았다. 시간이 길어져서 오렌지 주스 2잔을 또 시켰다. 그리고 그들은 말이 없었다. 콜라만 연거푸 마셨을 뿐. 그 콜라는 아마 맥주 맛이 났을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조지는 느꼈다. 다른 어떤 사람이 아니라 바로 자기가 그런 남자라는 것을. 그런 남자라 하면 이런 분을 뜻할 것이다. 떴다 허당, 피해 피해 도망 가 도망 가 딴 데 봐 딴 데 봐. 허당 주의보는 어제와 오늘은 물론이요 내일도 그 언제도 우리와 내내 함께 할 것이다. 적어도 초대 받지 않은 잔치에 나타나시지 않기만을 바랄 뿐. 무엇을 기대하리요...... 바로 그런 허당이 다름 아니라 바로 조지였다니. 그는 기분이 밸런타인보다 더 울적했다. 차라리 밸런타인은 어딘가 모르게 살짝 유쾌해 보였다. 조지는 평소에 원래 이런 생각을 하고 또 했다. 세상사에 실망하고 남자에 절망한 채 기쁨은 잃고, 추억은 떠났으며, 거울을 보며 눈부신 청춘이 고상한 우아함으로 넘어가는 건 아닌가 라~고 걱정하는 숙녀를 구해 내야만 한다고. 그러나 구원을 받아야 할 사람은 정작 자신이었다. 구원? 구원은 무슨. 그의 스타일은 구원 투수가 아니라 대타였고,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는 뻔트였다. 그런데 지금 여기서 뭘 허고 있는가? 발랄한 앙탈, 심술 궂은 애교, 명랑한 그녀들의 호기심에 활기를 불어넣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대체 여기서 뭘 하고 있냔 말이다. 맙소사! 그는 답답했다. 억울했고 기분이 몹시 꿀꿀했다. 어떻게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맥이 빠지는 입장이었지만 어디다 하소연할 수도 없었다. 점점 조지와 밸런타인의 기분은 간격이 멀어지고 있었다. 점점, 영영. 밸런타인은 기쁨의 회복으로도 모자라 쾌활해서 뭘 사달라든 다 사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조지는, 조지는! 그는 생각했다. 내 살다 살다 이렇게 뚜껑이 열려 보기는 처음이다 라고. 그건 너무도 이상한 경험이었다. 그렇다고 무조건 나쁜 감정이 전부는 아니었다. 또 딱히 긍정적인 건 뭔가 라고 설명할 수도 없었다. 그는 몇 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하는 그런 곤욕을 치르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 이건 돈 주고도 못 사는 경험일 것이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느꼈던 불길한 예감은 적중했지만 또 그만큼 기분이 완전 꽝은 아니었다. 다시 말해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차라리 교활할 걸 그랬나? 아님 비겁할 걸 그랬나! 내가 너무 회의적이었던 것일까? 난 정말 알고 보니 사랑에 미성숙했구나, 라고 조지는 생각했다. 그는 어쩜 사랑에 패자인 동시에 약자였다. 마음 속에 어떤 악상이 떠오르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추문의 목격자이자 추문의 주인공이 되버린 것만 같은 기분, 겪어보지 않으면 누구도 모를 것이다. 여심은 항상 스스로 찾아오기를 절대 마다하는 법이 없었을지 몰라도 하나 확실한 건 지금은 바로 그런 상황이었다. 「나 이런 기분 처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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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조지는 밸런타인과 멀어졌고 이브와는 남남이 됐다. 처음에 잠깐 고민하기는 했다. 뭐라고 잠깐이라고? 그야 당사자가 아니면 자세한 마음의 변화를 모두 알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삼자대면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우정을 잃고 미래가 불투명한 시랑을 한다? 아마도 나중 둘 다 잃을 공산이 컸다. 우정을 지키고 사랑을 포기한다? 그건 남자끼리의 문제가 아니었고, 조지가 권력을 행사하기엔 뭔가가 더없이 난처했으며, 더군다나 전적으로 이브에게 재량권을 위임하는 것 또한 그다지 아름다운 결정은 아닌 듯 했다. 어쩌면 이브를 궁지에 몰아넣기보다 조지가 두 발을 모두 빼는 게 모두에게 좋은 해결책인 것만 같았다. 맞다. 그게 가장 합리적인 방법인 듯 했다. 왜냐하면 각자에게 크고 작은 실망을 안겨줄 수는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의기소침한 자본가냐, 세침데기 깍쟁이 찌질이 선동가냐 그런 문제도 아니었다. 고로 궁극적인 이상은 조지의 쿨한 뒷모습일 뿐 다른 묘안은 전혀 필요치 않았다. 그래서 결국 물에 술 탄 듯 술에 물 탄 듯? 또? 얼마든지 타당한 반론이다. 혹자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다 된 밥에 코 빠트린 것 아니냐고. 아주 아닌 것은 아닌데 또 그렇게 썩 적절한 비유는 아닌 것 같다. 그럼 다음으로, 죽 쑤어 개 준 것 아니냐? 사랑이 무슨 식은 밥도 뜨거운 감자도 아니고, 나아가 연인을 개에 애인은 동물이라... 어찌 됐든 정답은 하나였다. 조지가 조용히 물러나는 것! 그뿐이면 그만이었다. 그는 냉정하게 생각했다. 자기보다 밸런타인이 이브를 더 열렬히 사랑할 것이라고. 이브 입장에서도 나중 보면 오히려 밸런타인이 더 나은 사랑의 주인공이었구나 라고 깨달을 것이라는 막연한 예측. 조지에게 그건 거의 뭐라고나 할까, 마치 어제 본 한 편의 드라마처럼 상상되기 시작했다. 처음의 예감과 기대치, 나중 사랑의 롱런과 밀도에 대해서 연구하며 그래프도 그리면서 인문학 책도 막 쓸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이 샘솟는 걸 그는 느꼈다. 그래서 조지는 사랑의 약자이기를 자처했고, 사랑의 삼각관계에서 자진 하차했다. 그 다음으로 조지는 무엇을 할 것인가? 조지는 하워드에게 찾아갔다. 왜냐하면 지금 집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왠지 뻔트 한번 제대로 못 대고 3부 리그로 밀려나는 기분과 같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는 하워드와 먼저 통화해서 약속을 잡고 만나고 그런 상투적인 순서를 따르지는 않았다. 녀석도 녀석 나름 생활 리듬이 있을 테고, 평소에 연락 한번 없다가 느닷없이 전화했는데 하필 어떤 골치 아픈 소란에 연루된 상태일 수도 있다. 만약 그렇다면 오랫만의 통화는 반갑기 어려울 테고, 그건 다시 다정한 만남으로 연결되기가 꽤 곤란할 수도 있을 것이다. 때문에 조지는 먼저 동태를 살피는 척 전화로 안부를 물었다. 나 어디 지나가는 길인데 생각나서 전화했어, 바로 그렇게. 실제로는 작업실 코앞까지 도착해 놓고서는 말이다. 그런데 우연의 일치일까 행운의 당첨일까. 조지가 슥 소식을 궁금해 하자 하워드는 그런 일을 미리 예견이라도 했다는 듯이 자기는 조지의 집 근처를 지나는 중이라고 했다. 거 잘됐네! 조지는 하워드와 작업실을 바꿔 쓰기로 했다. 당분간 색다른 환경에서 새로운 작품 구상을 하는 건 어떠냐 라고 운을 띄우니 하워드는 크게 반색했다. 거 듣던 중 반가운 제안이라며 흔쾌히 교환 작업을 수락했다. 그렇게 하여 조지는 하워드의 작업실에 입주했다. 특파원 조지는 입주 하자마자 글이 써졌다. 썩 훌륭한 생각은 아니었지만 그는 즉시 글자로 옮겨썼다. 왜 현대는 글이 아닌 말의 시대가 되었는가. 왜냐하면 밑에 있던 힘이 위로 올라가버렸기 때문이다. 남자는 나이가 들면 힘이 밑에서 위로 올라옵니다? 옛 시대에 양말을 신었듯이 지금도 양말을 신는다. 하지만 옛날에 바깥에 나갈 때는 항상 장갑을 끼고 모자를 썼는데, 지금은 대체로 그러지 않는다. 그게 바로 증거다. 서로 나서서 저요 저요 저요! 힘이 밑에서 위로 올라갔다는 빼도 박도 못하는 증거. 영롱한 사랑 고품격 신위 고결한 태도 숙녀를 위하는 자세, 도 좋지만 말발과 글발과 잔지식과 기교만 남은 세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대중 예술을 보시라. 너무 세련되고 고상하며 다 똑같은 맵시! 그래서 오늘도 고전주의자는 거울을 보며 수염을 매만질 것이다. 선그라스 수집에 장갑매니아? 여자는 구두를 수집해도 괜찮지만 타고난 취향, 유별난 감식력, 고유한 안목, 남다른 호기심은 양보해서도 포기해서도 안된다. 왕자로 변신한 개구리가 다시 늑대 세계로 돌아갈 수는 없으니까. 제목은 뭐라 할까? 칼럼으로 발전시키긴 어렵고 폐기하기도 아까우니 그는 문학 수첩에 제목을 이렇게 입력했다. 목마른 사랑이라고! (굶주린 욕정 저질 색욕 뭐 이런 제목을 언급할 수는 없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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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는 거의 도시인이 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일단 그는 다시 혼자가 됐다는 걸 깨달았다. 인간은 원래 이 세상에 태어날 때 빈손으로, 발가벗고, 앵앵 울면서 태어난다. 그런데 나중 커서는 자기가 이 세상에 어떻게 태어났는지 쉽게 잊어버린다. 가진 게 없다고, 로또 복권 말고는 희망이 없다고, 뭘 해도 재미없다고 투덜거리기. 어른들의 특기는 바로 응석인 것이다. 그것마저 애들한테 양보하기 싫은 것인지 세상이 우리를 그렇게 만든 것인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하여 그는 삶의 목표를 새롭게 설정하기로 했다. 행운아가 되고 싶은 열정. 사랑 받고 싶은 갈망. 행복해지고 싶은 욕망. 하트 뿅뿅 윙크 반짝반짝, 사랑의 주인공이 되기.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하는 상상을 즐겨하기. 좋아하는 일들을 즐기며 인생을 아름답게 만들기. 그런 다음 조지는 도시 생활을 즐겼다. 혼자라고 못할 건 없었다. 볼링장도 갔고 오리배도 탔다. 통 크게 단추 많은 고급 양복을 맞췄다. 왜냐하면 기성복이라면 아예 비싼 걸 사지 못할 바에야 CD 뭐 뭐가 아닐 바에야 줄자로 딱 딱 제서 이 세상에 단 하나 밖에 없는 나만의 옷을 맞추는 건 동화 같은 일이 틀림없다고 생각했으니까. 그처럼 넥타이와 커프스링크도 샀다. 그걸 입고서 제법 근사한 레스토랑에 갔다. 어디 이런 일이 자주 있겠나. 웨이터 몰래 음식 사진도 찍고 샴페인도 시켰다. 기분 제대로 낸 것이다. 혼자서. 옆에서는 은혼식 겸 식사를 하는 중년 부부도 있었다. 은혼식? 남녀의 어떤 그래프를 봤을 언제 만나야지만 끝없는 사랑 긴 행복에 이를 수 있을까, 도 생각했다. 여자는 일단 사랑을 시작하고 나서 나중 미래의 행복을 점쳐보지만 남자는 사랑의 종류를 미리 정하고 시작하는 것처럼 그는 사랑과 사람을 알아가며 친해지고 교감을 나누기도 전에 사랑에 대해서 과학적으로 생각해 본 것이다. 거기서 허세는 끝나지 않았다. 허영심도 탄력 받기 시작했다. 허당은 발동이 걸린 것이다. 공상하기 좋아하는 동경심 돋보이는 칼럼니스트의 추측은 그를 미술관과 박물관등 도심지 곳곳으로 데려갔다. 그런데 왠지 모를 허전함이 찾아왔다. 그래도 모른 체 했다. 그러다 거리에서 브라질리언 왁싱이란 간판을 읽었다. 먼 왁싱? 그거 원래 남자가 하기를 여자가 바라는 건데, 사람들은 뭘 몰라도 너무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긴 그게 이상적이긴 하지만 또 털 뽑힌 수닭이랄지 머리쪽만 빼고 나머지는 털을 전부 밀어버린 시베리안 허스키 사진을 상상하니 것도 뭔가 좀 슬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어쨌든 상장하지 않은 미래주식회사든 상장한 현재주식회사든 상관 없으니 이제 다음 순서로 뭔가 재미난 일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야만 마땅했다. 이제 진짜로 흥미진진한 모험이 탄생해야 하는데, 그런데! 하오나 세상 일이 그렇게 쉽다면 얼마나 좋으랴. 풍선은 웃고, 권태는 도망가며, 무기력은 졸고, 언제나 기적은 제발로 찾아오고, 여복은 내내 끊이질 않으며, 약속은 앞으로 세 달은 꽉 차 있고, 마음만 먹으면 타인의 마음을 뺐는 건 일도 아니다? 그게 말이나 됩니까! 곧 이제 그가 부닥친 현실은 꿈의 무도회에 입장할 수 있는 비밀 초대장이 아니었다. 단언컨대 그는 체류비가 간당간당해진 것이다. 어쩐지 무리한다 싶었다. 꼴에 발포성 와인은 무슨! 따라서 그는 하는 수 없이 품위 유지비를 챙기고 행복감을 건사하기 위해서 남성잡지에 기고할 칼럼을 쓰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다르게 가고자 했다. 그도 이제 세상을 알만큼 안 것이다. 잔지식은 보고 들어서, 전문지식은 학문에서, 여자는 세상에서, 큰 재주는 인생을 통해 있는 줄도 몰랐다가 어떡하다 우연히 습득될 수도 있다는 것까지. 그가 경험한 세상사가 다 뭐냐, 풍전등화가 아니라 대기만성이라는 점, 사랑은 장기전이라는 청명한 꿈을 믿고 싶었다. 때문에 소중한 인연과의 만남이 만약 늦어진다면 운명적인 만남의 가능성이 심하게 저하된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무릇 낙관적인 듯 하면서도 다소 사랑의 슬픔을 노래하는 듯한 시를 뚝딱 작성했다.
곧바로 그는 환상문학 잡지 미스테리아 편집장 마라를 겁박해서 국제적인 남성잡지에 자리를 마련했다. 그렇게 그는 마치 원시인이 물물교환을 하는 듯이 남성잡지에 원고를 실자마자 두둑한 고료를 받고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다음은 남성잡지에 실은 시의 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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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큐피트의 세레나데 여자를 알려면 여자를 이해해야 한다. 거꾸로도 명제는 성립된다. 여자를 이해할려면 여자를 알아야 한다. 단, '거꾸로'를 남발하면 헷갈린다. 악기 전시장에 스타인웨이&선스가 있으면 밤에 피는 장미도 있다. 상품 가치가 턱없이 부족한 망고는 어디로 갈지 누구한테 넘겨질지 모른다. 여자는 악기 남자는 연주자 라는 운명은 어쩔 수 없는 걸까? 어쩌면!
그녀가 좋아하는 라울 뒤피의 정물화에는 여러 모델들이 살고 있다. 선망 허영심 어딜 넘봐? 나 꽃이야! 유혹 작전 오리발 고양이...... 고흐의 해바라기 같은 작품은 1세기 동안 시골 농부의 창고에서 먼지 쌓인 채 빛을 보지 못할 수도 있고 어느 날 뜬금없이 경매장에 등장해서 사람들에게 신선한 헤드라인을 선사할 수도 있다. 미술 시장만큼 횡재 드라마가 잦은 곳은 없다느니 등잔 밑이 어둡다고 횡재도 그런 횡재가 없다는 둥 그러든 어쩌든 넌 아직도 여자를 명화 속의 꽃에 비유하냐, 아직도 그런 고리타분한 사람이 있냐 라는 핀잔은 일단 피하고 보자. 떴어 떴어 고개 돌려 고개 돌려 딴 데 봐 딴 데 봐! 우정과 사랑이면 몰라도 일이라면 그분은 피하는 게 상책이니까.
여자를 악기에 비유했을 때 남자 후보는 많고도 많다. 타락한 연주자, 꿀벌, 나비, 파리, 갈매기, 늑대, 하이에나, 강아지, 미술품 수집가 등등 아! 아직도 그런 고리타분한 사람이 있냐 라는 흉을 잡혀야겠다. 일명 사랑의 포로로 자수? 할 얘기가 남았으니까 매도 빨리 맞는 게 낫다고! 명화는 단번에 고급 미술관으로 직행할 수도 있고 차차 널리 유명해질 수도 있다. 때로는 칼럼니스트로터 가수, 노름꾼, 봉급쟁이, 삼류 작가, 농부, 아이스크림 가게 사장, 제빵사... 심지어 주인이 수차례 바꼈을지도 모른다. 물론 일편단심 민들레일 수도 있을 테고. 그럼 뭐 하나! 순애보의 대가는 정작 달관 혹은 이혼 둘 중 하나 아닐까? 수동적 사랑, 선택 받는 운명은 어쩜 뽑기에 가까울 수도 있다는 것 하여 섣부른 작별가가 오히려 나을 수도 있고, 그건 남자도 똑같은 심정! 무엇보다 꽃과 꽃병은 감탄스러울 수도 경악을 자아낼 수도 있다는 것 심지어 탐스런 사과와 연분홍빛 먹음직스런 복숭아는 인기가 많다. 초장에 동나든 초장에 잡히든 인기가 많은데 단지 아쉬운 건 수요와 공급이 불균형하다는 것. 그래서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 그래서 하다 하다 그분들은 산지까지 진출한다.
그래서 마침내 그분들은 손톱 정리 도구를 상비한다. 잘 때도 품고 잔다.
그래서 밑도 끝도 없이 씨 뿌리고 설을 풀기를 동시에 한다. (오, 제발!) 그래서 나무 밑에서 입을 벌리며 과일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는 뉴튼도 있고, 먼저 채 가는 사람이 임자라는 야수도 있을 테며, 이 세상에는 과일과 꽃과 명곡과 명화와 명작까지 제발로 걸러다니게 만드는 괴물 마술사까지 존재하는 법 꽃은 꽃일지라도 드물게 바람에게 냉혹한 꽃도 계절에게조차 야멸찬 꽃도 있을 테니까! 사랑은 원래 오묘한 것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 어쩌면 그래서는 안되는 것
내 님이 아니라는 가정 하에 그처럼 운명이 기구한 미술품을 상상해 볼까? 이 세상에 다빈치가 그린 모나리자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다비드는 다비든데 어디산 다비드는 별명이 '해리 포터의 여자친구'인 숙녀에게 발목 잡힐 수도 있다는 것 맞다. 그게 바로 사랑이다. 맞나? 맞다! 달콤한 과즙, 상큼한 케첩, 향긋한 프리지아 꽃다발은 놀라운 악상과 신기한 영감과 전전긍긍 애끓는 짝사랑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곁에는 군침으로 시작하여 대기자 명단은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는다. 흑심, 바람둥이, 천하의 난봉꾼? 카사노바의 후예! 가난한 시인, 페라리 타는 남자, 에르메스 입은 바텐더, 빚쟁이 작곡가까지 없는 직업 없는 별칭 없는 물건, 그야말로 없는 것 빼고는 다 있다. 그래서 남자들은 오늘도 분주하다, 숙녀의 마음을 빼았기 위해서 그런데 허당들은 언제나 허탕친다, 숙녀의 몸만 어떻게 한번 해볼려고 하다가 그녀에게 연가를 불러 주고, 미모를 찬양하며, 가방을 선물하고, 허영심을 측정해 보고, 미래의 희망으로 유혹하며, 게다가 내일의 행복에 대해서 그녀의 심금이 떨리도록 속삭여주고, 때로는 아이처럼 때로는 신사처럼 그녀를 웃겨주고 아껴주며 기다려준다. 언제든지 자나 깨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조명이 되어 준다. 밤이나 낮이나 카메라로 거울로 조수로 보디가드이자 테너로 매번 신출귀몰하게 변신하는 것. 그걸 무엇이라 하나, 구애라고 하나? 딩동댕!
허나 구애와 사랑이 동의어는 아니라는 점, 바로 알기. 우리는 반드시 그 차이를 알아야만 한다 알아야만 한다. 사랑은 애초에 출발이 뻔트일 수도, 뒷모습이 영 뭐한 집요함일 수도 있다는 것. 그걸 잘 모르니까 때문일까, 너무 잘 알기 때문일까?
그래서 사랑은 이 세상에 없다고 한다면 뭇남성이든 멋쟁이든 숙녀든지 누구든 웃게 된다. 사랑은 아름답기를 세상은 즐겁기를 인생은 행복했으면! 그리고 허당은 냉수 마시고 속 차리기를. A.저 하늘의 별이라도 따다가 그대에게 바치겠소 B.사랑은, 없어! A에서 B로 변하는 것을 무엇이라고 하냐? 잡은 물고기한테는 밥을 주지 않는 법!
그럼 뭘해! 그 시장도 부익부 빈익빈인 걸? 내 말이!
구애의 적기는 언제인가? 그녀의 마음이 약할 때! 그녀의 마음이 약하지 않으면? 세이렌이 되어 봄바람을 부를 것! 그 최적의 순간을 어찌 쉽게 알 수 있으리. 때문에 타석지상주의는 현대를 사는 남아의 운명 하지만 하수와 허당과 고수는 이때 갈리는 법 처음부터 타고나는 것 오르간 소리, 크리스마스 이브, 선물, 꽃다발, 편지, 딸랑딸랑 골든벨, 멍멍멍 골든 리트리버, 뭐 척키 인형? 방법은 많고도 많고 인기와 애정은 밑도 끝도 없다.
숙녀의 마음도 이해는 간다. 멋쟁이와 영화배우, 성우, 순정을 간직한 소년 같은 남자와 아찔한 지성에 웃기고 말까지 잘하며 뭐 하나 빠질 것 없는 팔방미인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나도 양심이란 게 있다, 올커니! 미지의 이상형을 굳이 마다하지는 않는다만, 하지만 이게 뭐냐! 꼬끼오꼬꼬댁, 어디로 튈 줄 모르는 개구리, 아무나 보면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 백조와 오리와 파랑새는 보이지도 않고 성실한 거북이조차 실종됐으며, 그 흔한 늑대와 하이에나조차 종적을 감춘걸로도 모자라 심지어 파리마저 날리지 않는다면? 저런! (절레절레) 우리는, 우리는 숙녀의 마음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숙녀의 마음을 이해해야 한다. 아침에 일어나서 거울 보고 화장하고 꾸미고 향수 뿌리고, 낮이 되면 다시 거울 보고 신상품 구두를 생각하며, 저녁이 되어도 다시 거울 보고 화장을 점검하며 도도하게, 뭘 하든 여성스럽게 고상하게 우아하게 산뜻하게, 공부도 해야 하고 돈도 벌어야 하며 친구와의 수다는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삶의 기쁨이자 인생의 동반자며 신성한 의무다. 그럼 밤에는? 그토록 정성스럽게 화장을 하고 또 하며 또각또각 하이힐을 신었는데, 그런데 그냥 곱게 집에 가기엔 섭섭하고 억울하며 슬프고도 아까우며, 그래 더없이 안타까운 일이다. 그래서 사람들 많은 시내에도 가고 싶고, 그래서 주목 받았으면 좋겠고, 미러볼이 반짝이는 나이트클럽은 언제나 대환영이라며 숙녀들을 기다린다. 게다가 이 세상엔 맛난 음식이 어찌 그리도 많은 것인지! 뿐인가? 남자들이 호박을 유달리 반긴다고 아무한테나 넘어가면 쓰나, 그럼 안된다. 내 남자친구와 단짝의 남자친구, 친구들의 남자친구는 비교되고 비교되며 비교된다. 질투심도 부러움도 경쟁심도, 그 모두가 여자들의 세계에도 있으니까. 그래서 친구에게 질세라 아무한테나 내 마음을 허락할 수는 없다. 본능 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그렇다. 남자는 열 명의 여자에게 다가가고, 여자는 열 명의 남자로부터 관심을 받고. 벌꿀은 그게 일이자 버릇이며 생활이다. 다 그런 건 아니다. 벌꿀은 그게 일이다. 이 꽃 저 꽃 그 꽃 다 찾아가고 마음껏 돌아다니며 쪽쪽 실컷 쪽쪽 달콤한 꿀을 쪽쪽쪽 배불리 빨아먹고 나서 그런 다음 벌집으로 돌아가기. 그러나 남자는 벌집이라는 공동체로 구태여 돌아갈 필요가 없다. 벌집은 인생이자 전적이니까. 하지만 여자는 딱 하나만 골라야 한다. 딱 하나만! 남자가 물량이면 여자는 선별력이다. 따라서 사랑에 대해서 남자는 부풀리고 여자는 감추며 축소한다. 여자는 사랑이 끝이 아니라 애를 낳고 기르는, 기본적으로 아이의 1차 양육자인 운명. (책임은 동등할지언정) 숫자에 대해서 여자는 남자한테 불리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여자는 한정판 최고급 에르메스에 집착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원래 꽃은 나다. 이때 모순이 발생한다. 나는 1인칭 원리는 3인칭 나는 꽃, 그래서 남자처럼 수량이 아닌 품질에 집착한다, 때문에 고품격을 추구한다, 따라서 최소량에 최고급 최신식을 추구해야 한다, 그래야 한다, 그런데 이때 모순이 발생한다. 나만 꽃이면 그만 아닐까? 인생 내내 오롯이 그래 왔으니까 나 외에 굳이 저 드높은 미남과 이상형과 미지의 낙원을 찾아 헤맬 필요 있나? 나는 꽃이고 천동설인데 말이야! 이때 모순이 발생한다. 여자라면 누구나 언제나 어디서나 미남을 꿈꾼다. 그녀도 그랬다. 그러다 누군가에겐 모순이 발생한다. 왜냐하면 목표점이 분산되기 때문. 그 시장 전문가의 고견으로 모순은 모두 정리된다. 업계의 생리를 굳이 알 필요 없더라도 남자가 원하는 건 비슷하고 적다. 그런 반면 여자는 원하는 건 비슷하고 적음과 동시에 다양하고 특별하며 확신도 어렵고 분산된다. 남자 뿐만이 아니라 여자도 살면서 점점 포기하는 게 많아진다. 고민도 많아진다. 주인공과 조명과 요술 거울과 호사와 그 모든 행복감에 대해서 미래에도 언제까지나 내가 1번일 것인가? 아니면 적당히 타협해서 애매한 1.5정도 위치에 스스로 만족할 것인가? (딱)! 이때 1-1의 사랑은 최고의 이상형 1-2는 (설레설레) 야수와의 연애 1.5는 수다를 부를 수 밖에 없는 체념이다. 장르를 말하자면 첫째는 로맨스, 둘째는 여성잡지1에서 여성잡지2까지, 셋째는 일일 드라마? 그러니까 그 비율은... 그 비율은 말하면 안된다 말하면 안된다. 왜냐하면 안 그래도 숙녀끼리 대담할 논제는 차고 넘치는데 그랬다간 상남자 뚜껑 열리는 건 시간 문제니까. 안된다. 안되는 건 안되는 거다.
우리는 숙녀의 마음을 이해해야 한다. (가짜) 조명과 (불만족스런) 거울을 일평생? 우리는 숙녀의 마음을 이해해야 한다. 낯 뜨거운 조명을 받아보시라 사리분별이 쉽지 않고 그림자 반대쪽은 잘 보이지도 않는다. 내내 미남을 원해서 나를 월등히 초과하는 미남을 얻는데 성공했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사람들이 두고두고 그럴 것 아닌가. 남자가 낫네 남자가 낫네! 많이! 훨씬! 언제 어디서 누구나, 그 언제까지라도! 난 만족했지만 평생 불만족할지도 모를 일이다. 반면 내 짝을 나와 동급도 상급도 아닌 이상한 남자로 골랐다. 그러면? 사람들이 두고두고 그럴 것 아닌가. 여자가 낫네 여자가 낫네! 많이! 훨씬! 언제 어디서 누구나, 그 언제까지라도! 사랑이 아니라 극명한 대비 효과를 노린 고도의 전략일까? 그걸 누가 알겠나! 더 이상 오선지에 음표를 그리지 않고 글도 만년필이나 구술로, 순수한 화가로써 먹고 사는 게 거의 힘든 세상 사랑조차 어쩌면 호사를 위한 배필, 적당한 조건의 결합, 빛나는 조명, 말 잘 듣는 돌쇠가 인기일지도! 우리는 숙녀의 마음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숙녀의 마음을 이해해야 한다.
반면 남자는 여자처럼 모순을 이겨낼 필요가 전혀 없다. 나름의 고충은 몰라도. 아프리카의 수컷 사자가 얼마나 과학적으로 암컷을 고르고 거느리는지 알면 사람이 기절할 정도다. 아프리카의 동물들과 달리 꽁트에서는 버려진 풍선껌이 부활하는 설정도 있다. 남자는 수컷이다. 남자는 과학이다. 남자는 다큐멘터리인 것이다. 여자는 암컷이다. 여자는 비과학적이란 말이 아니다. 여자도 다큐멘터리다. 여자는 거울 보고 조명 받으면 만족하시만 남자는 그 정도로 만족할 수 없다. 절대로 그럴 수는 없는 일. 남자는 조명 중의 조명, 누구에게나 조명이 되는 태양을 꿈꾸니까!
여자는 엄마고 남자는 아빠다. 멀리서 비밀을 캐내지 않아도 된다. 엄마와 아빠만 보면 거의 모든 남녀의 원리를 알 수 있다. 여자에겐 사랑이 인생의 전부이자 그래야 한다. 하지만 남자에겐 사랑이 인생의 전부라고 말해야 하는 배역의 충실함이 주어졌을 뿐 엄마 아빠를 잘 관찰하면 알 수 있는 일 여자는 멍청하다고 하면 싫어하고 남자는 지는 비교를 무척이나 꺼려한다. 곧 둘 다 똑같으면서 다르다. 달면 삼키고 쓰면 밷는다는 점은 완전 똑같다. 단지 남자는 모순이 적은 반면 여자는 모순이 잦고 많다는 차이뿐. 여자는 여성잡지1에서 여성잡지2로. 그게 어디 작은 차이인가? 어떻게 그처럼 변할 수 있을까? 아마도 그건 마치 고양이가 불여우로 변신하는 기적 아닐까? 반면, 남자는 남성잡지에서 남성잡지로. 하나도 변하지 않는다. 거의 똑같다. 원래 여자가 어렵다. 복잡하다. 변덕이 심하다. 여자의 마음은 답이 없다. 시시각각 변한다. 남자에게 영원한 미스테리 그건 바로 여자의 마음이니까. 아무튼
우리는 숙녀의 마음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숙녀의 마음을 이해해야 한다. 그처럼 여자는 해야 할 일도 많고, 할 말도 많으며, 생각조차 끝이 없는 것이다. 여자의 삶이 이렇듯 좀 어렵다 여간 까다롭지 않다 많이 복잡하다. 뭘 좀 아는 남자가 언제 갑자기 나타날 줄 모르기 때문에 긴장감은 한시도 늦출 순 없다 뭘 좀 아는 남자가 언제 갑자기 나타날 줄 모르기 때문에 그녀는 책도 읽고 교양미도 가꿔야 한다. 뭘 좀 아는 남자가 언제 갑자기 나타날 줄 모르기 때문에 내 님과 팔짱을 낀 순간이라도 긴장감을 부정할 순 없다. 아무리 그래도 하루는 길다. 밤에 화장을 지우고 씻고 젖은 머리카락을 말리려면 또 시침 1회전은 금새 돌아간다. 그렇게 지구가 태양 주위를 30번 40번 도는 동안 내 님을 만나면 다행인데 아직인 경우도 없지 않다. 우리는 숙녀의 마음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숙녀의 마음을 이해해야 한다. 왜 밤에 머리를 감느냐고? 바쁜 아침에 그럴 시간이 없거든. 게다가 화장품은 좀 많나 틈틈히 천연 재료인 과즙과 밀가루와 우유를 섞어 만든 반죽을 들고서 거울 앞에 서야 한다. 그럼 방 청소는? 빨래는? 취미는? 드라마는? 성적은? 삶의 기쁨은? 통장 잔고는? 광고에 샴페인에 나오네? 마음이 두근거린다. 마음이 두근거린다. 세상의 유혹은 끝이 없다 끝이 없다. 오늘 잠은 몇 시간 잘 수 있을까? 오늘 잠은 몇 시간 잘 수 있을까? 그렇다고 오늘만 날인가 내일도 그 일과는 거의 똑같다. 그렇다고 그게 다가 아니다. 여자는 한 달에 한 번 마법에 걸린다. 그래프 종류만 따져도 남자는 여자의 상대가 안된다. 게임도 안된다. 명함도 못 내민다! 게다가 숙녀는 아가씨가 전부가 아니다. 아기 엄마도 있고 우리 엄마도 있다. 우리는 숙녀의 마음을 이해해야 한다 이해해야 한다. 말은 그래도 목적은 딴 데 있고 생각은 앞서간다. 남자는 뭐니 뭐니 해도 성과거든. 결혼 전엔 쳄발로 동호회 결혼 후엔 위스키 동호회, 그처럼. 처음 만나 손을 잡고 포옹은 내일 할까? 아님 키스 먼저 할까? 백허그도 빠트려선 안되는데! 라면서 우리도 남자의 마음을 이해 받고 싶다 이해 받고 싶다, 라~는 투정은 금물이다. 그래도 남자는, 우리도 칭찬 받고 싶다 칭찬 받고 싶다. 그래도 남자는, 우리도 지는 비교와 이기는 비교의 황당한 균형만은 피하고 싶다 피하고 싶다. 여자들은 반성하라 반성하라 여자들은 반성하라 반성하라, 라~는 투쟁은 금물이다. 따라서 남자는 숙녀를 아껴야 한다 아껴야 한다. 그래서 천동설인 그녀들끼리는 만나면 할 이야기가 그리도 많은 것이다. 무려, 기본 6시간! 뭐, 뭐? 맥주 6병도 아니고 뭐 자세한 얘기는 다음에 만나서 다시 하자? 이런 젠장!
아무튼 결론은 이렇다. 그녀는 나만의 천사 나는 그녀만의 조수! 그녀는 스트라디바리우스 나는 그녀만의 전속 예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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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는 자신의 시를 기고했던 남성잡지에 찾아갔다. 왜냐하면 입금된 금액은 처음에 약속했던 원고료에 턱없이 모자랐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단 그곳 사무실이 가까웠고, 구경하고 싶었으며, 또 다른 복숭아빛 연애를 꿈꿨기 때문이다. 아무튼 가서 따져야 마땅한 일이었다. 마라는 그만 귀찮게 하고 새로운 사람과 담판을 짓기로 했다. 조지는 남성잡지 본사에 도착했다. 그런데 사무실에는 경리로 보이는 아리따운 아가씨 혼자뿐이 없었다. 알고 보니 그날은 국제판이었던 남성잡지가 거창한 행사를 주최하는 날이었다. 때문에 전 직원은 그곳으로 총출동하고 가냘픈 여직원 한 명만 달랑 남은 것이다. 조지는 서슴없이 원고료 완납을 부탁했다. 아니, 정당한 요구였기 때문에 당장 입금해달라고 청했다. 물론 태도는 정중하게, 속으로는 얼마 남지 않은 체류비에 불안불안. 그런데 의외로 남은 원고료를 즉시 입금해주었다. 오해가 있었다면서 그녀는 조지의 마음을 녹여주듯이 요리했다. 뭐야? 저런! 너무 싱거웠다. 조지는 그 일을 미리 예견이라도 했을까? 그런지 어쩐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저번과는 달리 이번에는 부케를 하나 사간 것이다. 그래서? 기어이 경리 아가씨와 조지는 정분이 나고야 말았다. 그게 뭐 어려운 일입니까? 조지의 표정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우리는 누구든 만나면 바로 친해져! 조지는 실제 그렇게 행동해서 결과로 증명한 것이다. 그녀는 이름이 나탈리라고 했다. 나탈리 역시 오랫동안 외로웠던 것 같았다. 따라서 그녀는 전체적인 분위기가 이랬다. 우리 사이에 이러기에요? 조지는 엉겹결에 월척은 잡은 느낌에 사뭇 흐뭇했다. 가까스로 어렵싸리 겨우겨우 평작이 아니라 난데없이 풍년이라... 싫지는 않았다. 누차 강조하지만 현대는 사랑의 시대인 점,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다. 뭐 언제는 안 그랬을까. 어쨌든 발뺌할 수도 없었고 애정의 발단이 시작됐으니 전개와 절정의 고조감을 거절할 수도 없었다. 봄바람이 불어 처녀의 마음이 싱숭생숭한 듯 하면 우리는 그녀의 마음을 사뿐사뿐 들뜨고 설레게 만들기 위해서 노래하며 포근히 안아줘야 할 사명감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조지는 마음에 사랑꽃이 피어 낮에는 홍조와 콧노래가, 밤에는 개꿈과 잠꼬대가 끊일 날이 없었다. 은근 허당임을 부인하기엔 벌써 글러먹은 것이다. 인생은 촌스러웠을지언정 생활은 책잡힐만 하지 않았고 취향도 흠잡을 데가 없었다. 언제나 꽃밭을 거니는 사람이었고 항상 호박은 그에게 제발로 굴러들어왔다. 어떻게? 넝쿨채! 조지와 나탈리는 다음 날까지 기다릴 것도 없이 그날 저녁 바로 데이트를 했다. 「오빠. 왜 사람들은 유행가를 듣지? 왜 그럴까?」 「왜냐하면 유행가는 3분의 마법이기 때문이지. 한번 생각해 보렴. 그보다 짧으면 뭐니? CM송이거든. 드물게 최고, 최장, 최상으로 인기를 끄는 CM송을 들으면 꼬마들은 신나고 초등학교 선생님들은 뚜껑이 열려. 날이면 날마다 '너 때문이야 너 때문이야' 한두 번도 아니고 1년 내내 그 노래만 불러대는데 어른들은 하는 수 없이 썩은 미소를 짓게 된다고. 그래서 광고는 광고, 연가는 연가, 보통은 사랑 노래를 듣는 거야. 그럼 그보다 길면? 그건 교향시! 요즘 누가 리하르트 쉬트라우스의 짜라.. 뭐 그 긴 노래를 날이면 날마다 다 듣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니? 안 그래? 달콤한 유행가가 날이면 날마다 쏟아져 나오는데 체코에 산다면, 슬로바키아에서 태어났다면 또 모를까 스메타나를 왜 들어? 안 그러니?」 「오빤 어떻게 그처럼 아는 게 많아? 내가 초딩이라면 아는 체 하지 말라고 했겠지만 난 숙녀니까 말할 수 있어. 이건 누가 뭐래도 유식한 거고, 누가 뭐래도 교양미이자 누가 뭐래도 상식이야. 그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오빤 어떻게 그처럼 아는 게 많아?」 「왜냐하면 까마귀의 사연을 읽고 별의 기쁨을 듣고 혜성의 안부를 궁금해 하기 때문이지. 허허허허허 하하하하하 푸하하하하하하! 로마에만 휴일이 있으란 법 있니? 축제의 밤은 바로 오늘이라네. 오빠가 사랑의 허풍을 짓는 이유는 인류가 거짓말을 시작한 이후로, 고귀한 요정이여, 내내 있어온 일일뿐 달리 특별한 까닭은 필요치 않아. 다만 오늘처럼 유별난 숙녀를 만나게 된다면 우리는 저 하늘에서 신성한 동기를 부여 받아 사랑의 꽃잎을 휘날리며 푸르른 강을 건너야겠지. 최소한 오늘 만큼은 있잖니 나탈리, 나는 천동설이고 싶다. 응? (눈빛 뿌잉뿌잉!) 신통한 투시력과 놀랍도록 정확한 예언력을 겸비한 오빠 같은 신비주의자는 그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의 행동과 눈빛을 보면 그가 어제 무엇을 했는지, 오늘 누구를 만날지, 내일 어떻게 바나나 껍질을 밝고 넘어질 뻔 하다 말지까지 모두 다 알 수 있어. 정말이야. 정말인지 아닌지 한번 봐 볼까? 저기 저 사선 줄무늬 넥타이를 맨 양반 보이지? 덥수룩한 수염을 어제 밀었네. 왜냐하면 어제부로 드디여 까마득한 빛을 모두 청산했거든. 이제 인생을 새출발하는 거지. 기분이 좋아. 완전 후련해서 날아갈 듯 할 테니까 말이야. 그리고 저기 보이는 저 연분홍색 주름 치마 입은 아가씨 보이지? 그녀는 어제 술값 바가지 썼어. 믿었던 친구한테 당한 거지. 아마도 복수를 꿈꾸고 있을 꺼야. 그리고 저기 저 청년. 보기에는 옷차림이 깔끔하고 단정한 태도에 미래를 구상하며 학문을 아끼는 듯한 눈빛? 그래 봐야 쟤 어제 에로비디오 봤어! 확실해. 난 보면 딱 알아. 딱 보면 안다고. 전부 다 맞출 수 있어. 오빠가 왜 점쟁이, 역술가, 환상가들을 찾아나서지 않는 줄 아니? 오빠가 그 일을 했거든. 그 뿐만이 아니야. 오빠가 만든 환상머신, 이미 특허 출원 끝났어. 게임도 다 끝난 거나 마찬가지라니까. 농담 아니야. 그런데 있잖아. 나탈리 혹시 집에 동화 책 있니? 내가 봤을 땐 있어. 확실해! 그래 안 그래?」 「어? 있어.」 「그래~. 그렇다니까. 계속 갈까? 이번 주말에 약속 없지?」 「응.」 「오빠랑 데이트하면 되겠네.」 「그럴...까?」 「OK! 나탈리 옷장에 새하얀 원피스 있지? 예 아니오로 대답하시오!」 「예.」 「나탈리 옆집에 사는 할머니는 친절하시지? 예 아니오로 대답하시오!」 「예.」 「나탈리는 맥주보다 와인을 좋아할 것 같은데? 이건 예 아니오로 대답하지 않아도 괜찮아.」 「그건... 와인을 좋아해야 하나? 난 맥주의 청량감이 요즘 왠지 좋은데.」 「그래. 그거야. 그거라구. 어제와 오늘까지는 그랬어. 그렇다구. 오빠가 방금 한 말은 미래를 내다본 거라니까. 나탈리, 집에 호피 무늬 치마 있지?」 「어.」 「허벅지까지 올라오는 부츠 있지?」 「어. 어떻게 알았어?」 「혹시 나탈리. 고양이 키우니?」 「안 키우는데.」 「키우면 안돼. 키우면 안돼. 아직은 안돼. 한없이 눈부신 아가씨? 아직, 아니야. 아직 아니라고. 일단 나탈리는 딱 봐도 고양이상이거든. 말상은 언제라도 개와 고양이를 키워도 돼. 그런데 고양이상은 그런 부분에서 유달리 조심할 필요가 있어. 다시 말하지만, 무척, 신중해야 돼. 함부로 듣지 마. 오빠 말 절대 함부로 듣지 마. 이런 중요한 얘기는 절대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야 할 그런 사안이 아니거든. 응? 그에 대해서는 오빠가 나중에 자세히 설명해 줄께. 그리고 말이야. 나탈리는 전에 사귀던 남자랑은 전부 풋사랑만 했지? 걔네들 허세 장난 아니었지? 쉽게 말해서 한다면 하는 남자가 아니었을 걸! 아마도 분명해. 딱 보인다니까. 어디의 대문호들이 사랑했던 무슨 반도로 이번에 놀러가자 어쩌자, 그래 놓고서 바쁘네 어쩌네 말만 말만 그냥, 아휴 말 말어. 뭘 할까, 에이 어쩐다. 핸드백 사러 가자 해놓고선 근처 빵집 주위만 서성이다 오고 그랬지? 안 봐도 훤해. 게다가 기억력은 왜 그리 답답한지. 날짜 같은 거 잘 기억 못했지?」 「아예 인생에서 지웠어.」 「잘했어. 잘했다구. 이제야 나탈리가 사랑을 조금 알아가는 거네. 그거야. 그거라구. 그거라니까!」 조지와 나탈리는 아니나 다를까 처음 만나서 그날 꽃을 선물하고 선사 받고, 극장에서 영화를 봤으며, 미래를 얘기하고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는 꽃과 꽃병의 인연에 대한 험담까지 공유했다. 하지만 조지는 상상도 못할 제7의 지상 천국을 안겨드리겠소 같은 무리수는 두지 않았다. 그는 바보가 아니니까. 조지는 정말로 낮에는 기묘한 현실을, 밤에는 우스꽝스런 환몽을, 그와 같은 허위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그는 도저히 꿈에서 헤어나올래야 헤어나올 수가 없었다. 무지개 너머엔 낙원이 기다릴지 백일몽은 물거품으로 밝혀질지 알 수 없었으나 지금은 코발트블루빛 환상 같은 일상이었다. 나탈리는 조지에게 첫사랑이었으며 그건 곧 작품으로 승화될 가능성이 농후했다. 값비싼 요트는 필요치 않았다. 지금 현재 조지는 사춘기였고 나탈리는 문학 소녀였다. 조지는 곧 있으면 성급한 사랑이란 장편소설을, 속성 연애라는 인문교양서를 출고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든 어쩌든 시간은 많았다. 이번에는 방해자가 없었으며 어떤 원인 때문에 추궁 받지도 않았고 촉망 받는 미래가 궁금할 뿐이었다. 희망으로 가득찬 설레는 황금마차를 타는 꿈을 꾸며 기나긴 행복감을 유망하면 그뿐! 그래서 조지는 그날 느긋하게 나탈리를 집으로 데려다 준 다음 하워드의 작업실로 퇴근했다. 기나긴 하루가 끝난 것이다. 나른한 행복감과 고단한 기쁨과 함께 이제는 돼지꿈을 꿀 차례가 된 것이다.
15 하워드의 작업실. 어느 날 토니라는 낯선 사람이 방문했다. 이방인은 자기가 주인이라고 주장했다. 토니라는 사람은 말했다. 그곳은 자기의 작업실이라고. 그의 주장이 맞는지 틀린지 확인하기 위해 조지는 하워드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 후 조지는 알게 됐다. 자기가 착각했다는 걸. 하워드는 예술촌에서 노란 굴뚝을 찾으라고 했는데 조지는 노란 대문의 집에 입실한 것이다. 즉 그곳은 굴뚝이 빨간색인 토니의 작업실이었다. 토니로 말할 것 같으면 그는 가련한 일러스트레이터. 본인은 자신이 화가라고 소개했다. 이렇게 만나게 된 것도 인연인데 라면서 토니는 만담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조지는 직감했다. 잔소리가 아니라 신통한 웅변술로는 얘가 자기보다 한 수 위라고. 그러다 얼렁뚱당 그들은 친해졌다. 때문에 조지는 하워드의 진짜 작업실로 피신하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그들은 사랑의 맹세가 아니라 우정을 약속했다. 그래도 향후 영원한 친구가 될 것인지는 두고 볼 일! 그러든 어쩌든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들은 서로의 상상력을 추정하고 재산 내역을 조사할 필요가 없었다. 조지의 현재 슬로건이 우리는 만나면 금방 친해져(!) 였다면, 토니는 그것인 듯 했다. 이 방 저 방 좋아도 내 서방이 젤 좋고 이 집 저 집 좋아도 내 계집이 젤 좋다. 그렇게 조지는 생소한 환경에서 색다른 착상을 떠올리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데 그들은 대체로 낮에는 직업적 동료였다가 저녁이 되면 술 친구가 되기 일쑤였다. 그게 싫지도 나쁘지도 않았다만 다만 뭐랄까 조지는 뭔가 이상한 예감에 발목이 잡혀서 어쩐지 약간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우리가 혹시 연적으로 꼬이는 건 아닌가 같은 생각, 뭔가 느낌이 희안했다. 혹시 내가 토니에게 기를 빨리는 건 아닐까 그런 걱정도 조지에겐 없지 않았다. 그래도 조지는 도시 탐험 체류비도 아끼고 새로운 예술적 착상을 기다리며 약간 들뜬 기분에 꽤 흡족했다. 곧 그는 동심과 흑심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잡기 위해 동화풍 행운의 주문을 자신에게 습관적으로 주입시키는 데 반해 세간의 크고 작은 불행은 문학적으로 표현했다. 평소에 토니는 작업실에서 몇 일 내내 기거하면서 일에 정진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조지가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잠은 본인 집에 가서 잤다. 그날은 노을이 다녀간 후 저녁 식사를 함께 한 다음 얘기꽃을 피우는 시간이 돌아왔다. 「형씨 뭐 재미난 일 없소?」 「재미난 일 말이오? 아, 그러고 보니 선생은 나랑 말투가 썩 비슷한 듯 하오. 내 주위에서 나처럼 머머하오 라며 옛 시절 추억의 드라마처럼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걸랑. 그런데 이상하게 선생이 구사하는 화법이나 어조나 몸짓까지 어쩜 나랑 그렇게 똑같은지 무척 신기해서 보면 볼수록 놀랍다오. 내게 재미난 일이라면 그게 바로 최신일 것 같소. 질문의 의도는 이방인을 위한 구경거리를 알려달라, 같이 한눈 팔 뭔가가 없나를 물어본 듯 하오만 썩 만족스런 답변이 되지 못해서 미안하오. 선생이 선처를 베풀어 줄 수 밖에 없겠소.」 「형씨도 참 싱겁기 그지없구만. 선처는 무슨. 이처럼 고즈넉한 작업실을 얻어쓰는 주제에, 오히려 내가 감사해도 열 번은 감사할 일이라오. 그런데 내가 그동안 사람들을 관찰하면서 느낀 점 가운데 하나는 그 사람에게 느껴지는 분위기와 그 사람의 말수는 대략 비례했소. 그 통계에 따른 느낌에 따르자면 형씨는 말수가 무척 적어. 일단 그렇게 보이오. 그렇게 판단된단 말이오. 그런데 어떻게 된 게 막 헷갈려. 저 양반 혹시 수다쟁이가 아닌가 그렇게 말이오.」 「허허허. 내 요즘 허당계의 관습을 깨트리기 위해 땀 좀 흘린다오. 정말 부단히 노력하고 있소. 뭔가 변화를 꾀하기 위해서 말이오. 세상에 모르는 일이 없는 어른이 되어버렸지만 그렇다고 새로움을 싫어할 리 있겠소?」 「거 말로만 그러지 마시고 괜찮은 음료 있으면 좀 내오시구료. 설마 아까워서 꼭꼭 숨겨놓고 싶어서 그러는 건 아니오?」 잠시 후 괜찮은 칵테일과 함께 했다. 「선생은 뭘 좋아허요?」 「뭐요? 그게 대체 뭔 소리요? 뭘 좋아하냐니. 나 여자 좋아하요. 됐소? 설마 형씨는... 우리끼리 대화라면 모르는데 설마 누가 우리 얘길 엿듣는 건 아니겠죠? 벽에도 귀가 있는 법이라서 흐흠.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게 무슨 죄는 아니지만 그처럼 막연하게 물어보시니 괜히 조심스러워지구만 그래. 거 왜 날 그런 사람으로 유추해 본 건 아니요? 다정한 사랑, 사랑스런 우정, 단짝의 귀여운 망신살을 바라고 있구나 라고. 가만 보니 형씨도 거의 역술가 수준이구만 그래. 형씨도 나와 같은 심정이겠지만 친구가 되서 반갑고 기쁘고 좋은데, 잘 아시다시피, 우리 같은 사람들이 좀 심심해. 몸에 좋은 최고급 요리라는데 통 맛이 없고, 무인도에 데려가고 싶은 단 한 사람이라는데 영 재미가 없네? 짜지도 시지도 맵지도 달지도 새콤달콤도 아니고 그렇다고 보기에 화려하지도 않고 영 심심하단 말이오. 편하고 다정한 반면 과도하게 싱겁단 말 혹시 한두 번 들어보지 않았수? 안 그렇소? 내가 봤을 땐 형씨는 성격 좋단 말을 좀 들어봤겠구만. 허허허! 보면 안다니까 그러네. 그렇다고 내가 무슨 본색을 드러내겠다, 반전을 꾀하고 싶다, 그건 아니라오. 내 얘기는 재미없으니 형씨 얘기나 좀 풀어놔보시구료.」 「내게 무슨 재미난 이야기 보따리가 있겠소? 떠들썩한 무지 혼란스런 허세 재능으로 오해 받는 질투심이라면 모를까. 교양미로 확립되는 허영심까지 말이오. 내가 입만 열면 이처럼 이상한 말만 하다 보니 그동안 여복이 초라했던 모양이오. 선생이 보기엔 안 그렇소?」 「내가 사람 속을 어떻게 알겠소? 젊음을 허비하지 않았겠구나, 딱 그 정도 밖에는 보이지 않소. 복채는 반대로 내가 내야 할 듯 한데, 말 나온 김에 형씨가 내 운수나 봐주구료.」 「운수 말이오? 못할 거도 없지. 정녕 그리 원하신다면 한번 시작해 봅시다 그려. 긴장하시오 선생. 뜨금하더라도 말이오. 음, 눈동자의 떨림으로 보아 하니 선생 통장 잔고가 어째 간당간당한 듯 한데, 일 좀 더 열심히 해야 하는 것 아니오? 선생은 말이오, 여심은 진공청소기처럼 무턱대고 빨아들이는데 재복에 대해서는 고장난 진공청소기가 아닌가 사료되오.」 「어떻게 알았소? 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 그처럼 찔러보지만 마시고 꿈속에서 행운의 여신이 알려준 복권 번호나 흔쾌히 알려주시구료.」 「내 그걸 어떻게 알겠소? 무슨 재주로! 이 양반이 밑도 끝도 없이 심통을 부리는구먼. 자고로, 더티 러브는 추접한 간청으로 시작되어 질척거리는 미련으로 끝났는 법이라오. 간혹 긴 행복 화목한 가정으로 아름다워질 수도 있는데 그게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은 아니지요. 그럼요. 선생 눈치를 보아 허니 최근 자잘한 시련을 당한 것 같은데. 안 그렇소? 내 관찰력이 아무리 녹슬었을지언정 그리 엇나간 진단은 아닌 듯 하오. 어떻소?」 「그렇게 보이오? 이 양반 이거 직업을 바꿔야겠구만. 딱 맞었소. 딱 맞었단 말이오. 그럼 나도 하나 묻겠소. 형씨는 최근 좋아하는 여자, 아니 홀딱 반해서 마음을 빼았겨버린 숙녀가 있는 듯 하오. 아무리 그래도 그 열정을 어떻게 숨길 수 있겠수? 그 화기애애한 애정은 도저히 숨기지 못하는 법이라오. 얼굴에 딱 씌여있구만. 머머한 듯 하오가 아니라 확실하구만 확실해. 100퍼센트야. 안 그러오?」 「아따 이 양반 이거 이거 안되겠구만. 직업은 당신이 바꿔야겠소. 그런데 이만 하면 탐색전은 끝났지 않겠소? 이제 그만 가면을 벗읍시다. 참 답답하오. 안 그렇소? 야 조지! 너 몇 살이야? 너 연봉이 얼마나 돼? 라고 꼭 묻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니라오.」 「뭐, 야 조지? 이런, 야 토니! 얻다 데고 삿대질이야? 뭐가 어쩌고 어째? 넌 몇 살이야? 넌 한 달 생활비가 얼마나 되는데? 너 한 달에 얼마 벌어?」 「우린 지금 남자에게 묻지 말아야 할 것과 숙녀에게 캐묻지 않아야 할 의구심에 대해서 둘 다 실토해버렸소.」 「뭐라고? 숙녀에게 캐묻지 않아야 하는 건 맞는데, 여기 숙녀가 어딨냐? 너 고추 안 달렸어? 얘 안되겠네. 이거 이거 순 가식덩어리구만. 늬가 그랬자나. 아무거나 다 물어보라구. 남자 대 남자로 얘기하자며? 거짓말이었어? 그냥 상남자 흉내낸 거였냐? 어? 늬가 그랬자나. 무슨 어려운 외국어로된 특수한 컴퓨터 프로그램도 기능과 위치를 전부 외워버려서 프로그램을 통채로 숙달해버렸다느니, 또 뭐 넌 종합예술가라고? 헤비메탈 명곡들을 악보 없이 전부 다 귀로 땄다며? 심지어 악기가 마음에 들지 않아 아예 악기를 직접 만들었다며? 게다가 너 5개국어 한다며? 그리고 너처럼 오직 옛날 방식으로 그림을 그리고 글과 곡을 쓰는 사람은 아마 없을 거라고? 예 순 허당이네. 어? 뭐, 묻지마? 묻지 말긴 뭘 묻지마! 얘 안되겠네. 그리고 나보고 작업실 1년 내내 쓰라며? 이제 와서 영 마뜩잖아? 언제는 간이고 쓸개며 다 내줄 듯 하더니만, 이제야 본색을 드러내시는군. 음. 야 안되겠다. 야. 한판 뜨자! 그냥 우리, 한판 뜨자.」 「한판 뜨긴 뭘 한판 떠! 나 안 떠.」 「아니다 아니다. 됐고. 그냥 내가 갈께. 내가 가면 될 꺼 아니야?」 「내 말은 그게 아니라. 아 정말!」 그때 조지는 웬 과자 봉지에 씌여진 광고 문구를 읽는다. 「집어 치워?」 「집어 쳐!」 「어~ 그래~. 이제야 성격이 나오는 게로군. 것도 아주 제대로. 집어 치울께. 갈께. 됐지?」 「아 내 말은 그게 아니라니까 글쎄. 아 진짜! 가지 마. 응? 가지 말아줘. 아 정말! 다 물어 봐. 다 얘기해줄께.」 「허허허. 우리 같은 사람들의 문제가 그렇죠. 말은 많은데, 의욕은 있는데, 실천과 행동과 성과와 뾰족한 대책이 없다는 점. 안 그렇소?」 「뭔 얘기야? 왜 또 갑자기 말을 바꿔? 묻고 싶다며? 진지한 얘기를 하자는 말 아니었어? 사람 헷갈리게 왜 그래?」 「형씨 왜 그러오? 농담이었단 말이오. 아니 빈말에 그처럼 홀딱 속아넘어가면 어떡한단 말이오? 그럼 내 입장은 뭐가 되오! 사람 무안하게시리. 아니 그렇소? 사람이 거 너무 솔직한 거 같아 걱정이야 걱정. 이거 이거 보아 하니 사람 염려하게 만드시는 재주가 썩 탁월하구만 그래. 농담이 지나치게 경솔했다면 내 사과하리다. 분위기가 너무 딱딱해서 게다가 형씨 속마음을 엿보고 싶었단 말이오.」 「흐흠. 흐흠. 아 됐고. 그럼. 선생이 한 수 가르쳐주구료.」 「진작 그렇게 나올 것이지. 그래. 뭘 말이오? 형씨는 뭘 알고 싶은 거요?」 「흐흠. 사랑에 대해서 가르쳐주시구료.」 「아~! 사랑?」 올커니! 조지는 이제야 걸려들었군 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뜨거운 커피가 식고 알쏭달쏭한 퍼즐을 풀 정도의 시간이 지난 후 어느새 조지가 토니에게 연애에 대해서 한수 가르쳐주는 형국에 이르렀다. 그걸 만약 사랑의 조언이라고 할 수 있다면. 그런데 있잖아요. 조지가 마치 어느 혼령에 씌기라도 한 듯이, 정말 유령이 조지의 육신을 점령해서 숙주를 내 것으로 만들었다는 듯이 전혀 다른 대화가 이어졌다. 그러므로 단락을 띄어서 가는 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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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적인 사랑을 상상하면 뭐가 생각나니? (......) 음, 넌 그런 사람이야! 아름답네. 멋져! 그럴 수도 있어. 그럴 수 있다구. 다른 거? 그래. 번화가에 가면 뭐가 보이니? 거리에서 넌 대체 뭘 제일 먼저 보니? (......) (딱) 음, 그게 너의 현재야! 그게 너의 마음이라고. 바로 그게 너의 본모습이지. 그럼. 응? (끄덕끄덕)! 뭐 그럴 수 있어. 그럴 수 있다구. 다르게 생각해 보자. 2번 실망 후 3연속 점프도 있을 테니까. 자, 다음 문장을 들으면 무슨 감정이 떠오르니? 늑대는 양을 잡아먹었다! (......) 응? OK! 그게 바로 너의 본색이야. 그게 너라니까~? 그게 진짜 너야! 그리고, 네가 만약 투명인간이 된다면 뭘 제일 먼저 하고 싶니? (......) 그거야~ 그거라고~ 그게 바로 너란 인간이지!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요술램프의 정령이 너한테 3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하면 무엇을 말할래? (......) 그거야~ 그거라고~! 너는 딱 거기까지야. 그게 바로 너란 인간이야. 알겠니?」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조지는 다시 말해 발동이 걸려버린 것이다. 다시 뜨거운 커피가 식을 시간이 지나갔다. 조금 전에 토니가 사랑에 대해서 알고 싶었기 때문일까? 이번에 토니는 첫사랑에 대해서 알고 싶어했다. 「첫사랑? 누구 얘긴데? 아니 말하지 마. 나도 그 정도 눈치는 있네 이 친구야. 이제까지 들어보지 못했던 사랑의 정의에 대해서 똑부러지게 알려주지. 그러니까 첫사랑에 대해서. 여자의 첫사랑은 둘로 나뉘지. 정말 마음이 갔냐, 단지 풋사랑이었냐로. 그 첫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가정했을 때 만일 전자라면 대체로 방황하고, 후자라면 거뜬히 잊어. 기억은 해도 하찮은 기억일 뿐이니까. 그 지점이 피동적인 사랑에서 능동적인 사랑으로 넘어가는 단계지. 헛똑똑이라서 처음에는 능동적으로 했다가 거꾸로 나중 피동적으로 사랑하는 경우도 있긴 한데, 다 그런 건 아닌데 어떤 고비를 넘어야 사랑이 무엇인가를 진짜 알게 된다고나 할까, 그런 혜안이 생기는 경험이 필요한 사람도 있어. 하여간 후자라면 거뜬히 잊어. 차라리 짝사랑이 훨씬 애틋했을 테니까. 응? 그럼. 내 님을 만나서 진정한 사랑을 하기를 원하니까. 그런데 전자인데 곧 여자는 마음이 갔는데 아파하지 않는다? 그럴 수는 없어. 절대 없다고! 특히 말이야, 여자에게 첫사랑이 일찍 오지 않았다, 그런데 마음이 갔다? (딱) 그건 거의 몸도 함께 가! 베팅은 얼마든지! 역으로 여자에게 첫사랑이 일찍 오지 않았다, 그런데 마음이 가지 않았다? (딱) 그건 거의 몸은 가지 않아! 그건 탐색전이 전부야. 간만 보다 마는 거라구. 토니, 중요한 거 나오면 적고 그래. 응? 방금 전에 나왔잖아. 중요한 가설 그런 걸 잊지 말라고. 응? <여자의 첫사랑 = 정말 마음이 갔냐, 단지 풋사랑이었냐> 그런 거 말야. 응? 이런 얘기 어디서 돈 주고 못 들어 이 사람아! 자, 강연을 이어 가자고. 토니. 형 말을 믿어라. 일단 숙지해. 딱 외우면 더 좋고. 자, 들어 봐. 여자에게 첫사랑이 일찍 오지 않았다, 그런데 마음이 갔다, 따라서 몸도 간다? 그래? 왜 그럴까? 왜 그런 것 같니? 왠 줄 아니?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여자에게 사랑은 몸과 마음이 함께 가는 것이기 때문이지. 여자는 원래 그렇거든. 미숙─조숙─대기만성─성숙에서 더더군다나 첫사랑이니까. 여기서 전자에서도 경우의 수는 있어. 정말 마음이 갔냐, 단지 풋사랑이었냐에서 말이야. 손도 안 잡고 잤다, 아니다, 어쩐다 등등. 두고 봐라. 여자는 전자에 대해서 나중 두고 두고 생각하니까. 그녀는 결코 잊을 수 없지. 아니 어떻게? 그럴 수는 없어. 허허허! 그렇더라도 이때 마음과 마음이 사랑했다면 문제될 건 없어. 내가 사랑을 했고, 상대로부터 사랑을 받았으니까. 방황을 해도 이겨낸다고. 그 아픔 때문에 사랑 산업은 영원히 호황이지. 사회복지로 직업을 바꾸거나 환경운동가가 되려고 꿈을 수정하거나 큰 방황, 오랜 시련의 시기가 필요할지도 모르지만 어떻든 이겨낸다고. 곧 마음을 주지 않았으면 사겨도 열정이 없었다면 헤어진 다음 금새 꿈 많은 소년, 들장미 소녀로 복귀해. 고로 마음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몸도 가지 않음. 물론 짧은 시간 철없는 마음에 많은 일이 있을 수도 있고. 조숙하면 거의 불장난이고 일찍 정착한 남자? 그런 여사님도 물론 하고 싶은 말씀들이 아마 많으실 걸! 아무튼 첫사랑이 마음과 마음, 서로 사랑했다면 문제될 건 없어. 내가 사랑을 했고, 상대로부터 사랑을 받았으니까. 방황을 해도 이겨낸다고. 그런데 문제는 서로 사랑했다면 모를까 나는 마음이 갔는데 상대는 그런 척만 했다 라는 경우. 다시 말해 남자가 사과나무에서 탐스런 열매가 쉽게 딸 수 있는 위치에 있길래 덥썩 과일을 따먹었다랄지 뭐 그런 예를 말하는 거야. 말이야, 어쩌고저쩌고, 다 뻥이고. 제사상에 올린 음식을 조상님도 아니고 냅다 똥개가 먼저 맛을 봐버린 일과...는 비유하긴 좀 그렇군. 아무튼 남자의 마음은 절반만 왔다, 즉 그 남자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 두둥~! 바로 이때 여자는 몸과 마음이 분리되는 시기를 겪게 되는 거야. 상남자에게는 짜잔? 웬~걸! 꼭 그런 건 아닌데 일종의 단계라고 보면 돼. 그래, 과정. 바로 이 부분이 남자가 이해하기 힘든, 뭐랄까 숙녀에게는 어떤 트라우마 같은 거거든. 으잉, 이해하기 어렵다? 내가 어떤 상황의 주인공이 되어 보면 이해하기 엄청 쉬워. 그럼. 최고의 짝으로 3년을 사겼는데 어는 날 갑자기, 날씨가 바뀌듯 여자가 이별 통보, 끝! 남자는 뚜껑 열린다. 왜냐면 사랑의 유효기간이 3년이네 뭐네 해도 자긴 30년도 문제 없고 300년 사랑을 바랬으니까. 남들 다 눈치채며 추한 소문이 날지라도 남편만은 모를 수 있듯이 당사자는 안도하니까 가능한 일. 영화에 나오듯 이미 남녀 공히 몇 년 후의 이혼 소송을 위해 몇 년 전부터 탐정을 붙이는 것과 달리 한쪽만 어느 날 갑자기 사랑의 패자? 라는 게 바로 그런 거다. 감쪽 같은 거다. 다만 남녀가 그 방식만 다를 뿐.
사랑에 대해서 남녀가 얼마나 견해 차이가 심한지 그건 상대가 되어 보지 않고서는 모르는 일이야. 해 달라는 거 다 해 주고, 안 간 데 없이 다 갔고, 더 이상 할 무언가가 없을 정도로 다 했어. 남자는, 하늘 같은 사랑으로 허영심의 왕국을 이루지는 못했어도 힘 닿는 데로 최선을 다 했다고. 그런데? 이별이 아닌 이혼이네! 이별은 이별인데 이혼 같은 이별이라니. 무슨 풍선껌을 3년 씩이나? 단물 빠진 그런 게 아니라 그녀는 혹시 사채업자가 아니었을까 라고 남자는 나중 회상할지도 모른다니까. 마른 오징어도 짜면 물이 나온다나 뭐라나? 몸과 마음이 분리되는 여자의 심정을 남자가 모르듯, 남자가 이때 얼마나 뚜껑이 열리는지 그 기분을 여자가 알 수 있을까? 절대 몰라. 알고 싶지도 않아. 그녀는 관심 없다고. 만약 그녀가 안다면 그녀는 남자게? 그녀는 몰라. 모른다구. 그녀는 고추가 안 달렸으니까 몰라. 이젠 타인이고 남남이며 옛 사랑일 뿐. 그건 말이야 '남자가 날 가지고 논 건가?'라며 짧게 만나고 차인 여자의 슬픔과 또 다른 슬픔이겠지. 그 남자에게는 말이야. 실컷 즐기고 청량음료 깡통처럼 차였네? 그처럼 차인 남자의 마음을 여자는 몰라. 그걸 알면 남자게? 모르는 게 당연해. 이해는 해도 공감은 하고 추정은 하겠지만 단지 그뿐. 남자가 짧은 만남의 실연에 따른 여자의 마음을 잘은 모르듯이 여자도 똑같아. 어찌 됐든 그렇게 작별한 다음 여자는 새로운 사랑에 대해서 마음이 열려 있을까, 닫혀 있을까? 활짝 열려 있어. 왜냐하면 옛 사랑은 종료 시점만 그랬다 뿐이지 마음은 이미 옛날에 닫혔으니까. 뭐, 뭐 여자는 그래요 여자는 1번에 1번의 사랑만 해요? 누구십니까? 안되겠네요. 우리는 만나야만 하군요. 세상에서는 바로 이런 일을 운명이라 부르죠. 그 용안을 한번 애타게 보고 싶군요! 그냥 넘어가선 안되겠구먼. 내 기어이 그분을 만나서 그냥 눈물 콧물 쏙 빼놔야겠구만. 단지 말로만 말이야. 아조 혼구녕을 내줘야겠어. 남자들 불문율이 뭐야, 남자는 임자 있는 숙녀라면 일단 고개를 돌려. 그럼 여자는? 여자도 물론 그러지. 자기는 골키퍼 있다고 골 안들어가냐고 말하는 그런 촌년은 아니라고 할 테니까. 하오나 말과 행동의 일치 그게 어디 쉽나? 여자의 특기는 꼬리 흔들기고 여자의 특권은 유혹인 법. 여자가 교태와 화장술과 애교를 타고난 걸로도 모자라 몇 십년을 갈고 닦았는데?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여자는 핑~ 하면, 마음이 반했다 하면, 그걸 갖고 싶어지는 게 여자야. 바꾸고 싶어하는 게 여자라고. 뺐고 싶어야 여자야. 아니면 그건 여자가 아니야.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건 확신해도 돼, 뭐라고 확신해도 돼냐고? 당연히 그건 고추 달린 거지. 그렇지 않으면 여자가 아니야. 그럼. 애써 참는다 뿐이지 참는 게 아니라 원래 그런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건 여자가 아니라 남자라네. 그럼. 흐흠. 얘기를 이어가자면 그런 반면 남자는? 여자가 사랑의 슬픔 때문에 몸과 마음이 분리됐다가 슬럼프를 탈출하듯이 남자도 그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할 수 밖에 없어. 그런 작별이 있고 나면 여자는 돌아서면 새 차고, 남자는 중고차로써 방황할 수 밖에 없다니까. 주변을 둘러 보면 이와 똑같은 사례, 살면서 보고 듣고 알며 심심치 않게 겪겠지. 그런데 그게 남의 일이니까 잘 와 닿지 않는다? 당장 내가 경험하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만약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라고 남자와 여자에게 물어 봐도 아마 똑같은 상황만 되풀이 될 듯한 말을 할 걸? 혹은 말은 틀려도 내가 주인공이 되면 둘 중 하나는 그와 똑같이 행동해. 다른 건 다 큰소리 쳐도 미래를 어떻게 큰소리치겠나? 아니 그런가? 미래는 모르겠고 지금 남녀가 같이 수다를 나누면 여자가 뭐라 하겠나? 남자 편든다고 해! 100퍼센트. 역으로, 연애할 때 여자가 헤어지지 않는 이유를 솔직히 말하면 남자는 슬퍼할 수 밖에 없다네. 똑같이 이거 저거 다 따져서 여자가 이혼하지 않고 그냥 그럭저럭 사는 심정, 남자는 딴 델 쳐다볼 수 밖에 없듯이 말이야. 여자는 남자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고, 남자에게도 여자의 마음이라면 그게 미스테리가 아니면 대체 뭐가 미스테리겠나. 남녀는 서로 다를 뿐 뭐가 틀린 건 아니니까. 사랑이 깊어지면 장기전도 그런 단점이 있다네. 다만 누구의 구애가 절실했냐 까지는 모르는 게 차라리 낫겠지. 단지 이런 사랑이라면 그건 이별보다는 이혼이 아닐까, 그렇게 헤아릴 뿐. 헤아려? 사랑이 스포츠는 아니네만 간혹 관전하는 재미가 쏠쏠하다고도 하지. 특히 여자! 특히나, 아줌마! 남자는? 여자 만큼은 아니야. 왜냐하면 남자는 성과니까.
남자는 그래. 내 성과면 좋고 그게 아니면 듣거나 말거나! 남자는 성과, 고로 내 성과냐 남의 성과냐. 그것이라고. 따라서 남자에게 사랑은 인생의 전부가 아님. 만약 남자에게 사랑이 인생의 전부라면 사랑 이야기를 왜 마다하고, 친구와 사랑이란 주제에 대해 거론하기를 대체 왜 거절하겠나? (내) 성과가 아니면 관심이 없다, 고로 남자에게 사랑은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그럴 수 밖에 없어. 사랑이 밥 먹여주는 건 아니거든. 사랑이란 바구니가 있으면 일하기와 사냥과 휴식과 놀이란 바구니도 있으니까. 남자는 원래 그래. 남자는 남의 사랑에 별 관심도 없고 알아도 재미 없어. 알고 싶지도 않지만 나중 내 말발을 위한 자료로 이용하기 위한 가치는 있지. 그건 중요하지. 그러나 남자와 달리 여자는 타인의 사랑 얘기에 관심이 지대하다네. 왜? 좋아하니까. 재밌으니까. 깊은 관심이 있으니까. 알고 싶으니까. 왜냐하면 여자에게는 사랑이 인생의 전부니까. 고로 여자는 내 사랑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적극적으로 신부 들러리를 자처한다고. 때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남자가 자존심일 때 여자는 자존감이니까. 사랑! 남자에게 사랑은 꽃이고 과일이자 물고기야. 그래서 두 가지 밖에 없어. 일단 잡고, 잡은 다음 물고기에게 밥을 주느냐 마느냐. 어떻게 잡을까와 줄까 말까 그 둘 밖에 없다고. 그런데 여자는? 여자에게 사랑은 노예야. 말이 좀 그런가? 그럼 애인 또는 사랑 머신이라고 하세. 그래서 여자에게 그 다음은 두 가지 밖에 없어. 사랑이냐 아니냐, 사랑이면 영원한 노예! 말이 좀 그런가? 끝없는 1인 다역으로 하세나. 허나 그게 끝이 아니야. 여자에게 사랑은 단편이 아니라 장편도 아니고 연작이야. 그것도 그냥 연작이 아니라 대-연작! 다음 생도 애인. 그 다음 생도 애인. 그 다음 그 그 그 그 그~다음까지. 설령 내가 지옥에 끌려가도 애인이 구출해 줘야 함. 아아 그게 뭐야! 주전자 오오 주전자를 절로 부르는구먼. 사랑은 결국 진공청소기가 아니라 커피포트였어! 정녕 이 세상의 사랑학을 새롭게 평정한다는 각오로 단언컨대, 여자에게 남자-복은 진실한 사랑이면 되는 거고, 진실한 사랑의 이상형은 1인 다역 슈퍼맨이라네. 물론 그건 단지 이상형일 뿐이고 여자는 사랑하면 만족해. 다시 말하자면, 사랑 받으면! 물론 그런대로. 여자에게 완벽은 없어. 그럼. 남자에게 사랑은 없듯이 여자에게 완벽이란 없다고. 농담이고, 그런 반면 남자는? 남자에게 여복은 곧 어복이야. 응? 그렇다고. 1인 다역 그런 거 없고 그냥 숫자라고. 대하 드라마에 나오듯이 응? 정실, 세컨, 숨겨둔 비서, 옛 여자, 새로운 여자, 회사 친구, 학교 친구, 친구의 친구, 공주병, 연예인병, 허언증, 첩, 애첩, 궁녀, 결국 몇 명의 궁녀. 친구들 중에 그런 얘기하는 친구 없나? 남자로 태어났으면 말이야~ 이러쿵저러쿵! 걔 분명 허세남이야. 보나마나 뻔해. 알고 보면 이해를 하면 그럴 수 밖에 없는 친구니까. 사람은 좋고 뭐 어쩔지언정 분석하면 다 이해가 돼. 그런 거라고. 그러니까 남자와 여자 그 둘이 사랑을 하면 어떻겠니? 서로 속셈이 다른데 어떻겠냐고. 그래~ 시작은 좋아. 그런데 대체로 시작만 좋아. 열 그래 열, 열정은 좋단 말이야. 대체로 열정만! 원래부터 남녀는 맞지가 않거든. 여자는 사랑을 공평하게 나눠준 다음 그 중에 튼실한 하나를 골라서 의전을 받는다 치면 남자는 그렇지 않아. 남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냥 꾼이야. 무슨 꾼? 그래~ 낚시꾼 술꾼 난봉꾼 도박꾼 재간둥이 기타 등등. 그러다 간혹 점쟁이! 남아는 밭에 씨를 뿌리고 고대의 웅변가처럼 설을 풀어야 하는 법, 우리의 할 일은 바로 숙녀의 마음 흔들기! 남자는 여자를 꼬실 때 여심을 빨아들일 때나 하트 뿅뿅 윙크 반짝반짝 속삭임 딸랑딸랑, 그러지 그 외에는 전부 그거야. 레이저, 화염방사기, 으샤으쌰, 전진, 행진, 커피포트, 몰입, 중독, 열 또 열 그런 거. 뛰고 잡고 넣고 때리고 뺐고 쏘고 어쩌고저쩌고. 그런 상남자일지라도 그분은 언젠가 때가 되면 잡은 물고기한테 먹이를 줘야 한다네. 꼭 셰익스피어처럼 말하지는 않겠네. 지금은 괜히 여심을 혹해야 할 시기가 아니거든. 여기 지금 자네와 나 빼고 여자 있나? 없잖아. 너 고추 달렸잖아. 그런데 왜? 맹수들이 괜히 느그적 느그적 놀고 뒹굴고 게으름 피우는 게 아니야. 문학 명언과 드라마 명대사를 읊을 시기와 상대가 따로 있는 거라고. 그때 쓸 힘을 지금 쓸 수야 없지 않나. 안 그런가? 아무튼 남자가 물고기를 잡았다고 쳐. 그렇게 가정해 보란 말일세. 그러니까, 그분은 언젠가 때가 되면 잡은 물고기한테 도대체 왜 먹이를 줘야 하냐? 왜냐하면 잡은 물고기한테 먹이를 줘야 하니까. 때가 됐으니까. 그녀만은 꽉 붙잡아야 하거든. 놓치면 안되니까. 안 그랬다간 쫓겨나거든. 이러니저러니 해도 마누라가 최거거든. 그녀가 변심하면 안되거든. 그처럼 남자가 정착하는 일련의 과정을 살펴 보면 그래. 그래서 실제로 벌꿀을 사고, 술을 즐기며, 낚시를 하고, 게임을 건전한 정도로 하는 건 부인할 수 없는 긍정. 평소에 여자가 융통성 잃어버린 채 곧이곧대로 이 세상 모든 것을 신부 들러리로 보지는 않듯이 말야. 그치만 취미와 연애는 전혀 동떨어진 개념이 아니라네. 무엇을 좋아하는가, 누구를 사랑하는가! 전자대로 후자를 하지는 않지만 학습, 응용, 본능, 인생이라는 공통점이 있어. 때문에 전자와 후자 간에 긴밀한 연관성이 발생하지. 애완견을 키우고 소비재를 사며 베팅감을 유지하는 것은 곧 여심을 쥐락펴락하는 기술과 조금은 직결된다는 것. 그녀의 관심을 스탕달의 연애론이나 작자 미상의 사랑론으로 유인한 다음 그녀의 호감을 사랑으로 쏠리게 만들기처럼. 황홀한 세계 3대 석양, 유럽 3대 성당, 세계 3대 기타리스트의 고향을 꼭 직접 가 볼 필요는 없어, 단지 TV로 보면 그만. 그런 아름다운 해변과 이국적인 정경을 과일과 꽃으로 비유하자면 간접적으로 보고 듣고 알면 그만이지 굳이 고생하면서까지 직접 가 보지는 않아도 돼. 그러나! 그러나 여행을 가서 견문을 넓히고, 그로써 글을 쓰고, 돈을 벌고, 유명해지고, 인생은 풍요로워진다? 곧 가난해서 가기 싫다가 아니라 공짜로 귀빈을 모신다? 호박이 제발로 굴러온다? 그거거든. 남자들 세상에서 체면도 서고, 행복과 도취감과 쾌락과 함께 인생을 알게 되는데? (딱)! 1인칭 운전자 시점이 아니라 3인칭 게임 시점이니까. 오늘은 사과 얌얌, 내일은 망고 우걱우걱, 그 다음은 포도 꾸역꾸역, 그러다 깐 바나나 또 깐다는 동생의 겁박까지. 그러므로 아빠는 말하지. 뭐라고? 도시의 고독한 사냥꾼들이 득실거리는 이 거친 세상에서 아빠 빼고 모든 남자는 늑대라고. 아빠만 빼고는! 혹시 그런 시 못 들어 봤니? 1절 나는 아직 목마르고 굶주린 야생마다. 나는 배당도 인기도 기쁨도 고만고만한 준마가 아니다. 나는 여전히 한마리 명마이고 싶다. 아니다 명마 맞다. 그럼! 그렇다고 지금 행복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다. 나는 행복하다. 단지 자유롭고 새도 개도 양은 물론 인간들과 절친한 무소속 뻔트마가 부러울 뿐. 아니 난 부럽지 않다 부러워한 적 없다 제발 날 좀 그만 부러워해라 이 놈들아! 제발 날 좀 그만 귀찮게 하란 말이다 이 친구들아! 남자의 삶이 이처럼 고달픈데 어느 숙녀는 다음 생에 다시 인간으로 태어날 수 있다면 자기는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고? 글쎄요... 앗 그럼 여자의 삶은 대관절 얼마나 애달프길래! 말도 마세요? 기수의 인생 역시 쉽지 않다는 점 나도 잘 안다. 그러나 지금 남 걱정할 때가 아니다. 가뜩이나 개와 고양이한테 서열이 밀리는 신세 나는 아직 목마르고 굶주린 야생마다. 나는 배당도 인기도 기쁨도 고만고만한 준마가 아니다. 나는 여전히 한마리 명마이고 싶다. 아니다 명마 맞다. 그럼! 2절
그녀는 마주 나는 말 그녀는 마권업자 나는 그녀의 조랑말 그녀는 놀이공원 사장 나는 회전목마 그녀는 눈치가 빠르다 눈치가 빠르다 무도회장의 특급 웨이터인 '트로이의 목마'에게 건네줄 짱돈 그녀에게 고스란히 상납했다 상납했다 아깝다 아깝다 나는 어쩜 마누라의 노예가 아닐까? 아니기를! 그러던 어느 날 아내는 아무것도 모른다 라고 내 이름을 바꿨다가 혼났다 많이 혼났다. 요즘 들어 체력이 예전 같지 않다. 그런데 오늘은 어떤 날? 바로, 의무 방어전! 혹시 샤워 소리를 듣게 되면 나만 그럴까? 히치콕 영화의 효과음 말이다. 나는 요즘 2세에게 세뇌시킨다. 너무 서둘러 조숙할 필요는 없다고. 소파에 누워 TV를 트니 다큐멘터리가 나온다. 뭐 종마? 저런! 채널을 트니까 영화가 나온다. 뭐 애마부인? 이런 젠장! 그처럼 인생 일관되게 먹이를 주지 않았는데, 때가 되면 줘야 하거든. 머리 위에 주전자를 올려야 하는 일이라고. 응? 밖에 나가면 하트 뿅뿅 눈빛 초롱초롱 시선 반짝반짝, 집에 오면 시무룩 시무룩 겔겔겔! 밖에서는 레이더 풀-가동 집에 오면 인상파. 밖에서는 숙녀에게 친절하자, 집에 오면 잡은 물고기한테 밥을 줘야 한다. 왜? 나는 대인배니까. 아빠 역할도 해야 하니까. 사랑 고백? 그거 다 뻥이야. 그 흔한 사랑 노래는 그럼 뭐냐고? 그냥 형식이지. 사랑은 어떤 거다 라고 살짝 알려만 주고, 실제 사랑을 해 보면 깜짝 놀라는 재미, 그런 게 있다고나 할까? 상업이 원래 전문가들이 모인 곳 아닌가, 응? 그분들만 먹고 살아야 하나, 2차로 3차로 품위 유지비가 다 어디에서 나오겠나? 경제란 다른 게 경제가 아니고 돈이 돌고 돌며 선순환을 일으키는 걸 바로 경제라고 한다네. 세상사가 그래. 사랑은 그런 거다 라고 알려 주고, 들려 주며, 묻고, 생각하자, 라면서~ 그 다음으로 사랑에 취하게 만들면 어떻게 되겠어? 그래~ 다시 사랑 고백 하는 거야. 사랑에 빠졌으니까. 그녀의 마음을 빼았았거든. 그런데 있잖아, 그거 다 뻥이야. 그렇게 돌고, 돌고, 도는 것 그게 바로 사랑이라네. 그러니까 사랑은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속삭이면 여자가 넘어와. 넘어오면 이제 사랑은 인생의 전부가 아닌 거지. 그거야. 그거라고. 사랑만 해서 어떻게 먹고 사니, 일을 해야 할 거 아니야 일을. 좌우지간 나만 아니 아니 남자들만 연승가도를 달렸느냐 하면 그건 아니야. 날 아니 아니 남자를 알았고 남자를 만났던 그녀들은 모두 화목한 가정을 꾸렸고, 행복한 사랑을 하며, 아름다운 인생을 산다네. 그걸 다 어떻게 아냐고? 물론 모르지.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연락해 볼까, 아니야 아니야. 그냥 그랬으면 한다, 말이 그렇단 얘기 아니냐고. 응? 말이! 아 그런데 그 얘기가 빠졌군.
그러니까 왜 여자가 그렇게나 연애 얘기라면 마냥 들뜨냐고? 왜냐면 공작새가 깃털을 펼치듯이 남자가 구애하며 광분하고 꽃 들고 기다리는 데서 기쁨을 느끼니까. 원래 여자가 그래. 그래서 남자는 몰라도 여자에게는 사랑이 인생의 전부라고 하지. 잠깐만. 설마 그럼 결별 소식도? 맙소사! 하기야 야수들은 그거 아니면 추억도 없겠네. 쪽팔린 추억도 추억은 추억이니까. 어차피 촌년이냐 혹시 모를 가능성이냐, 음 그럴 만도 하긴 하겠다. 아아 사랑? 그만 그만. 아 그건 있어. 야수가 그러는 게 아니라, 미녀가 그것도 그냥 젊음에 기인한 아름다움이 아닌 미녀가 적극적으로 구애하는 사랑. 능동적인 사랑인데 여자가 꽃 들고 기다리는 사랑, 캬, 그거 그거 보통 일 아니지. 그게 만약 집단 지성으로 똘똘 뭉친다? 아 말도 말어. (설레설레) 하긴 이와 같은 찐한 사랑을 하기도 어렵겠군. 내일을 생각한다면 말이야. 언젠가를 예견한다면 둘 중 한 명은 그렇게 사랑할 수 없을 테니까. 다음 생을 생각한다면 둘 중 한 명은 착하게 살고 싶은 것처럼. 최소한 누구나 중간은 가고 싶어하는 게 사람 마음 아니겠어? 다만 누가 아마추어고 누가 프로인가는 얘기하지 마세나. 대관절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고 하나! 그러니까 우리들은 만나면 사랑을 얘기하지 않지. 오늘은 예외겠지만 말이야. 아무튼 남자들 여자 조심해야해. 절대 쉽게 보면 안된다구. 여자는 남자 머리 꼭대기에 올라가 있는, 음, 요정이야. 까딱 잘못하다간 그 자리에 주전자를 올려 놓고 미남 꽃이 피어 있는 꽃밭으로 도망가는 나비, 그게 바로 여자니까. 차라리 그러면 다행이게? 제발로 정글로 들어가는 수도 있어. 그게 여자야. 응? 그게 바로 여자라고. 남자한테 여자는 절대 쉬운 상대가 아니야. 명심하게 이 친구야.
잠깐만 사랑에 대한 내 생각을 글로 읽듯이 읽어 줄께. 눈으로 읽을 글을 말로 한번 들어보시라 그 말이야. 그건 또 다른 일일 테니까. 자, 가 보자구. 뉴스에 나온다. 누구 누구 1년 후 성격 차이로 결별. 유명인이 아니라면 주위에서 그런다. 왜 그러냐 백년가약을 맺어라 어째라, 3년이 좋았다면 주위에서 헤어지지 말라고 한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 1년 만나며 탐색전만 한 것도 아니고, 3년 동안 30년의 추억을 만들었는데 그게 뭐냐, 그 아름다운 사랑 아깝지도 않냐 미주알고주알! 그런데 여자는 마음이 식었다. 돌아섰다. 이미 떠났다. 끝나도 진작 끝났다. 솔직히 내 마음은, 끝난 사랑이 슬리퍼라면 길거리에 헌신짝 버리듯 버리고 싶다. 그게 아니라면 그녀의 마음은 거짓이다. 완전 새빨간 거짓이다. 그러나 연기는 완벽하다. 그래서 이별하고 싶은데 사랑이 그래서야 쓰나, 의리는 뭐냐, 그럼 뭐하러 3년씩이나 끌었냐, 내가 악역을 맡기는 싫다, 따라서 어떻게 하면 차일 수 있을까 인터넷 검색을 하고, 하다 하다 그러므로 또 연애 상담을 한다. 물론 결론은 이미 정해 놓은 상태에서. 그럼 연애 상담자가 정말 지혜롭다면 얘길 들어주고 나서 상대가 원하는 답을 말해준다. 내가 생각하는 답이 아니라! 그런데 연애 상담자가 헛똑똑이라면 그걸 모아서 책을 낸다. 자기가 이 세상에서 연애와 사랑에 대해서 제일 많이 안다는 듯이. 헤어져라 제발 헤어져라 라며. 왜 안되냐 그거지. (그래도 성공은 실패의 어머니) 그녀의 친구들도 나뉜다. 당사자 없는 자리에서 뭔 말들이 오가는가 가만히 들어보면... 워워 호호호 쉿! 하여 답은 정공법이다. 어떻게 하면 차일 수 있을까 뭐라 뭐라 그거 다 쇼였고, 어차피 끝은 정면 돌파다. 그렇다면, 그럼 남자는 이 세상의 온갖 예쁜 꽃을 꺾고, 달콤한 꿀을 쪽쪽 빨아먹고, 신선한 과일을 모조리 다 따먹고, 괜히 잘난 척 하는 꽃과 과일은 물론이요 자기는 말이 통하는 남자를 살면서 단 한번도 만나보지 못했다 라는 여자는 아예 쳐다보지도 않고 눈길 조자 주길 마다하며, 마음껏 실컷 원없이 그래도 된다는 말과 뭐가 다를까? 좋을 땐 사랑 싫으면 우정, 평소에는 사랑과 우정 사이? 완전 좋네, 최고! 이런 사례가 어디 한둘에 지나지 않을까? 절대 그럴 리는 없다. 사랑의 패자는 말문이 막히는 일이니까 그 파장은 고요하기 힘들 수 밖에. 최소한 꽤 공통된 사연에 대해서 그 애청자 엽서와 일반인들이라면 누구나 들었을 법한 명대사를 직간접으로 셀 수 없이? 수차례? 살짝? 체득한 결과를 누군가는 소설로 쓴다. 만일 그게 아니라면 그분은 글 안 쓴다. 사랑을 해 본 통계도 좋긴 하다만 그거 다 듣다간 인생 훅 간다. 주어진 시간을 그처럼 쓸 만큼 누군가는 타인에게 너그롭지도 자신에게 자애롭지도 않다. 냉정할 때 냉정하고 엄할 땐 엄해야 하니까. 그러니까, 멋진 사랑을 직접 받아 본 최소 분량의 통계가 어느 정도 이상 구축된 어른이 많을까, 아니면 적을까? 답은 무응답! 내 이름을 걸고 무엇을 한다 글을 쓴다 라는 게 이런 거고, 브랜드가 바로 그것이며, 차인다는 게 바로 이런 거다. 적어도 누군가는 사랑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체 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그래서 사랑을 아는 숙녀, 뭘 좀 아는 남아는 사귈 때 그렇게 사귀지 않는다. 범죄자가 제발 날 잡아주세요, 사랑놀이처럼 나 잡아 봐라 그러듯이 친절하게 흔적을 남기길 좋아할까? 아니다. 그럴 리는 없다. 그처럼 사랑을 아는 숙녀, 뭘 좀 아는 남아는 사귈 때 미래를 예견하면서 사귀지 좀처럼 서툰 사랑은 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사랑은 내 모든 걸 아낌없이 주는 게 바로 사랑이라면서, 사랑하니까 바보가 되는 사랑? 전문가가 봤을 때 그건 아마추어다. 당연히 아마추어 정신이 아름답긴 아름답다. 그게 나쁘다는 게 아니다. 유치원생과 초등학생들이 어떻게 우정과 사랑을 배우는데? 어른들처럼 앞과 뒤가 다를 거라면, 차라리 그분들처럼 1주일에 1명과 썸타고 1달에 1명씩 사귀는 게 낫다. 풋사랑 및 짝사랑과 교집합 전혀 없이 찐한 연애를 한다? 그건 순진한 사랑이다. 아니면 불륜이다. 즉 육체적 사랑이다. 플라토닉은 천시 받는 거다. 아름다운 연애 지독한 사랑일 수는 있지만 순진해도 너무 순진하다. 또는 응큼해도 너무 응큼하다. 사랑이 아름답고 사람이 순진하면 그만일까? 당연히 그게 좋긴 하다마는 꼭 그렇지 않다는 것, 이 세상 그 누가 모를까! 사랑이 아닌 일에 대해서는 그래도 된다. 앞만 보고 달리는 자세, 오늘 하루만 생각하며 최선을 다한다는 태도, 모범이고 선이자 귀감이다. 무슨 특별한 목표가 이상이 아니고, 어떤 고귀한 상태가 꿈이 아니라 오늘 하루가 꿈이자 이상인 밝음, 건강함, 최선, 긍지. 누가 봐도 공익 광고다. 그런데 사랑도? 글쎄요! 뭘 좀 아는 어른은 사귈 때 미래를 예견하면서 사귀지 생각없이 사귀지 않는다. 우리는, 사랑일까? 서슴없이 사랑이라고 해야 할까! 우리는 나중 결혼하게 될까? 그건 모르는 거다. 결혼행진곡이 울려퍼지며 하객의 축복 속에 턱시도와 웨딩드레스를 입고서 행진하기 전에는 모르는 일이다. 그렇다고 결혼하면 끝이냐? 아니다. 시작일 뿐이다! 이 세상에는 그 끝이 없는 개념이 두 가지 있다. 무엇인지 아시나요? 첫째 숙녀를 향한 남자의 군침, 둘째 미남을 선망하는 여자의 눈독! 옛말에 그랬다. 열 남자 싫어하는 여자 없다고. 아 바꼈나? 안 바꼈다! 남녀의 사랑관이 다르다 뿐이지 남녀 공히 똑같은 인간일 뿐. 세상을 알고 인생의 격랑을 실감해 보면 알게 된다. 우와! 인간의 두뇌가 50퍼센트 정도는 완벽하게 유인원처럼 돌아가는구나 라는 것을. 애인이 있는 여자라고 남의 남자를 안 볼 것 같나? 아니다. 뭇남성들로부터 눈길과 대중의 인기와 애인으로부터 오늘은 충성, 내일은 사랑, 모레는 희망, 그 다음생까지 볼려다가 3년 지나서 흔쾌히 사랑을 버릴 수도 있다는 것. 그게 여자의 사랑이다. 물론 영원한 일편단심 순애보일 수도 있고. 3년씩 3번의 연애를 했던 여자? 미래를 예견하면서 멋지고 아름답고 예쁘게 사랑했을 수도 있지만 그게 아닐 수도 있다. 갈 데까지 간 걸로도 모자라 헤어진 남자랑 좋게 헤어진 게 아니라 3일 3달 3년에 해당하는 남자들을 수없이 안달나게, 뚜껑 열리게, 욕망에 불타오르도록 만드는 꼬리가 아홉 개 달리 불여우일지 그 누가 알겠나. 그게 여자고, 사랑은 모르는 거고, 현대일일지라도 그 속은 유인원과 비슷하다고 보는 게 현명한 일이다. 내일은 없는 사랑? 좋게 말하면 순진한 거고, 예리하게 말하자면 어리석은 거다. 사랑 노래를 부를 때야 바보 같은 사랑, 라랄랄라 샤랄랄라 왜 나쁘겠나. 그러나 사랑은 무지개도 은하수도 놀이공원의 자유이용권도 아니다. 사랑은 한마디로 모르는 거다. <내일은 없어, 사랑은 없다> 과연 내일은 없고 사랑도 없을까? 상식적으로만 봐도 내일은 있고 사랑도 있다. 여기서 쟁점은 내일은 없는 식의 사랑이다. 그것까지는 좋다. 아니. 좋다 나쁘다도 아니고 연인들끼리 자기들 알아서 할 일이지 마초적 표현으로 부러워할 필요도 없고 관심거리조차 못된다. 대-마초는 유별난 관심을 부여하긴 하겠지만. 꽃과 화병이 좀 그럴 수야 있다만 그게 내 일도 아니고, 연예인 지들끼리 좋아서 만나는 걸 내 친구는 왜 그리도 광분했던지 참 이해가 안됨. (왜 그럴까? 밑에 나올 그래프에서 1 영역 친구들이 주로 그런가 안 그런가 살펴 보자) 그런데 문제는 내일은 없는 식의 사랑 그것의 변심이다. 일상적인 변덕은 사랑에서도 변심으로 리메이크될 수 밖에 없다. '내일은 없어'식 사랑을 깎아내리고자 하는 말이 아니다. '내일은 없어'식 사랑의 장조는 영화 로마의 휴일이고, 단조는 보니 앤 클라이드다. 사랑은 모르듯이 미래는 모르는 거다. 미래는 없는 게 아니라 모르는 거다고! 사랑은 무엇일까? 사랑은 있다 없다 사랑하냐 사랑하지 않느냐, 가 아니라 사랑은 모르는 거다가 정답이다. 아카시아 나뭇잎과 장미 꽃잎을 뜯으면서 사랑의 체념과 열망 사이에서 안절부절 불안해 하는 게 사랑일까? 사랑이다. 그이는 날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얼마나 좋아! 그럼 육체적 사랑은? 사랑은 없어 학파가 얼마나 공고한지 잘 모르시니까 하는 말씀. 바람둥이가 언제 갑자기 한눈 팔지 모르는 것처럼 영심이가 밑도 끝도 없이 언제 갑자기 불현듯 등 돌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사랑은 무분별한 본능을 자제하는 의지를 높게 사야 하는 것이지 사랑을 위한 공작새의 깃털에만 혹하다가는 언젠가는 반드시 쓴맛을 볼 수 밖에 없다. 내 사랑이 최고라지만 그분이든 누구든 인간이라면 진공청소기와 커피포트를 꿰차고 있다는 점, 그걸 아는 어른들이 바로 그래서 괜히 들썩거리며 꼭 조숙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하시는 거다. 그러니까, 남자는 마초일까 마초가 아닐까? 그대에게 단언컨대 마초 아닌 남자는 없다. 그렇다면 여자는 영심이일까 영심이가 아닐까? 한마디로 여자는 영심이다! 안 그러면 여자가 아니다. 그건 100퍼센트 고추 달린 남자다. 안 그러면 여자가 아니다. 그처럼 남자의 마초성이 상중하에서 뭐냐, 여자의 허영심 지수가 50점 근처냐 아니냐, 그게 중요한 거다. (남자가 묻는다) 마초 어때요, (여자가 대답한다) 마초 완전 싫어요? 그런 묻고 답하기라 음 글쎄요 하수...는 아니시지만 성숙한 고수의 관점은 아니라는 거다. 사랑 사랑 사랑이라, 언젠가 우리는 헤어진다 그렇다면 지금 행복한 사랑을 하자? 논조는 좋다. 그러나 그 논조가 미래를 책임질 수는 없다. 게다가 생각은 바뀐다. 사람도 변한다. 심지어 사랑은 뒤도 보지 않고 가버릴 수도 있다. 가버리면 그뿐 영원한 남남이다. 말이야 지난 사랑의 행복을 바란다 어쩐다 라지만 그거 다 뻥이다. 사랑 노래에 나오는 얘기? 절반은 뻥이다. 현재의 내 사랑을 쥐락펴락하느냐, 밀었다 당겨지느냐, 능동이냐 피동이냐가 중요하지 뭘 바라고 어쩌고 그건 어중간하게 끝난 사랑에 감정이 남아있을 때나 잠깐 스치는 생각일 뿐이다. 한마디로 그거 다 뻥이다. 물론 다 그런 건 아니고 어차피 그거도 순위권만 메달인 셈이다. 지난 사랑은 굳이 애써 소식을 찾지도 않을 뿐더러 그 흔한 노래 가사에 나오듯이 그건 그냥 낙엽, 캔, 지난 사진, 옛 추억, 신던 신발 같은 거다. 사랑이 바로 그런 거다고! 사랑에 대해서 여자는 마음과 몸이 같이 가고 싶어하는 것처럼, (당신은) 나 사랑하냐고 묻는 것처럼, 비교적 끝난 사랑에게 손을 내미는 쪽은 남자다. 아쉬우니까. 그런데 그게 아니라 시작도 안한 사랑에게 여자가 1년 만에 뜬금없이 연락한다? 그냥 찔러보는 거다. 그분은 100퍼센트 의전식 사랑을 선천적으로 선호하는 여자다. 만약 그녀가 될쇠도 OK면 적당히 결혼에 골인하고, 그게 아니라 까다롭다면 늦게나마 막차를 타야하던가 어찌던가 해야 함. 그럼 이제 구체적으로 숫자를 놓고 따져 보자. 사랑을 숫자로. 남녀 공히 평생 100명을 사랑하는데 그 정도는 알고 나서 사랑을 논해야 옳지 않을까? 인간이 사랑을 얘기하는데 그쯤은 해 줘야 합당한 예의다. 안 그러면 다 똑같은 얘기만 반복하는 거니까. 뒷북이야 셀 수 없이 많은데 왜 여기서도! 3년 사귀고 헤어진 연인을 연구해 보자. 3년 만나고 여자가 남자를 찬 경우. 숙녀에게 물어보면 거의 다 그런다. 사랑하지 않으면 헤어지는 게 맞다고. 그렇지만 우리, 사랑 노래 가사에 세뇌당한 듯이 그처럼 연애 초보자처럼, 로보트처럼 말하지 말고 왜 헤어졌을까를 따져 봅시다. 여자는 그래요 여자는 그래요 쩜쩜쩜? 그런 얘기라면 남자들은 고개를 돌리니까요. 이건 낭만, 로맨스, 멜로, 감성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논리, 이유, 왜, 이성으로 따져 봐야 하니까. 유리할 때는 우리는 화법, 불리할 때는 여자는 그래요? 뭡니까 그게! 그러니까 왜 헤어졌을까를 따져 보자. 이건 내숭에 해당하는 문제가 아니니까 말이다. 남자가 뭘로 보나 괜찮고 여자와도 잘 어울리는데 대체 왜? 단지 사랑이 식어서? 아니다. 절대 아니다. 남자의 형편이 그만그만했기 때문이다. 헤어지지 않았을 때 그 남자의 미래 가치, 그리고 헤어졌을 때 나의 상품 가치. 3년 됐는데 이걸 따져 보지 않는다? 그 정도로 사랑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그리 많지 않다. 그만큼 사랑한다는 것은 달리 말하자면 내가 그 남자를 평생 먹여살려서라도 일평생 데리고 살고 싶다는 것이다. 그 만큼 여자가 그 남자를 사랑했으면 그녀는 남자를 절대 차지 않는다. 절대로! 뭘 모르는 숙녀, 특히나 자기는 말이 통하는 남자를 평생 한번도 못 만나 봤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여자! 그녀는 말한다. 여자는 그래요, 어떻다면 여자는 절대 남자를 포기하지 않는다나 뭐라나. 또 사랑에 대해서 아는 체 하시네! 누가 숙녀 아니랄까 봐. 사랑을 별로 받아보지 않은 사람의 이런 고무줄식 사랑론은 그래서 신뢰가 가지 않음. 얼마나 사랑하냐 라는 기준도 없이 그냥 맹목적으로 여자는 그래요? 뭔가 그게, 그게 대체 뭔 애들 소꿉장난 같은 응애응애 이론인가! 남자는 바보가 아니예요 바보가 아니라구요. 남자들이 마음에 드는 그녀라면 말이 얼마나 잘 통하게 변신하는데요, 네? 애정이 사랑인가, 연정은 흠모인가, 그 기준을 따지고 사랑이냐 아니냐를 논해야지 무슨 밑도 끝도 없이 여자는 그래요? 답답허다 답답해. 말이 안 통하게 생겼으니까 남자들이 노력을 하지 않았을 뿐. 남자가 그냥 바보인 걸로. (여자친구 없게 생겼네 라는 말을 들어 본 경험상 기분이 좋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썩 나쁘지도 않음. 그런 예상 전도 후도 침묵이었고. 그런데 여자는 또 다르네? 벌도 나비도 모두 다 말이 안 통해서 정중히 거절했다? 누가 봐도 객관적 구애의 과묵인데 누가 뭐래도 1군 최소 2군이란 뜻으로 자꾸 기억 나서 언급. 솔직한 남성 심리를 이처럼 제대로 밝히지 않으면 명쾌한 원리는 내내 장님 코끼리 뒷다리 만지기식일 테니까. 고로 외모 비하 그런 의도가 아니라 총대를 메고 하는 말임. 이건 정말 아니다, 일어서자, 따지자, 그래 함께 하자, 진짜 원리를 알자, 왜 그런지 생각해 보자, 듣고 싶다, 알고 싶다, 그래야 한다 어째야 한다, 가자 가자 갑시다, 그렇소 정말이요? 정녕 이건 아니다. 이거 정말 도저히 안되겠구만! 그렇다면 내가 앞장서겠소. 여자들은 미남을 좋아하면서 남자는 여자 얼굴 보면 안되냐? 옳소 틀리요? 만고의 진리 만물의 이치를 왜 뭐라 하는 거냐? 여자들은 거울 보고 화장하고 나 빼고는 전부 다 신부 들러리로 보면서, 허영심은 또 어떻고, 왜 남자들만 뭐라 하는 겁니까? 옳소 틀리요? 뭐야! 그런데 옆에 아무도 없네? 언제부터 그렇게 일을 열심히 했다고! 남자들 다 어디 갔어?) 이 세상에 사람으로 태어나 그 정도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쉬운 일은 쉬운 일이지. 다만 그런 사람은 좀 더 위를 볼 뿐. 만약 만나도 짧게 여길 뿐. 자, 숫자! 남자 먼저. 남자는 평생 100명을 사랑한다고 봤을 때 제1범주 즉 정실에 해당하는 여자는 꼭 붙잡는다. 붙잡아도 싫다고 하면 어쩔 수 없지만 하는 데까지는 해야 하는 범위다. 그게 아니면 남자의 표어는 그거다. <가는 여자 붙잡지 않고 오는 여자 마다하지 않는다!> 간단하다. 복잡할 거 하나 없다. 딱 봐도 0이냐 1이냐다. 그리고 여자. 여자의 제1범주는 앞서 나왔듯이 3년 사귀고 계약 해지하느냐 계속 가느냐, 그 정도가 제1범주다. 단지 그 정도! 딱 거기까지! 제2범주는 난 마음이 갔는데 상대는 몸만 왔다랄지, 그 반대랄지, 내가 짝사랑했거나 나이트클럽 인연이거나 단지 날 좋아했던 남자들이 그 언저리다. 여자의 제1범주는 사랑은 사랑인데 지독한 사랑은 아니다. 여자의 제1범주-사랑이 찐한 사랑이라고 그녀가 바라는 이상적인 사랑이라고 보면 곤란하다. 이처럼 남녀의 관점이 시작부터 틀리니까 말이 많은 거다. 남자가 봤을 때 남자 입장에서는 뚜껑 열릴 만 하다. 사랑이 무슨 보험이냐 라고! 물론 여자 입장에서도 할 말은 있다. 사랑을 키우고 꾸미고 추억을 만들며 그 사람이란 우주를 알아가야 하지 않느냐, 그게 아니라 사과를 따고 장미를 꺾고 그게 뭐냐, 만나서 연애를 해 보니 우리는 아름답게 이별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라는 게 여자의 입장이다. 남자 말 완전 맞다. 편드는 게 아니라 내가 무슨 보험도 아니고, 사랑 사랑 그거 다 거짓말이었냐 그렇게 받아들일 수 밖에. 여자 입장에서도 합리적인 이별이다. 만났고 사겨 보니 좋은 건 좋지만 사랑을 했으니까, 여기까지는 사랑이었지만 그건 여기까지고, 내 모든 인생을 다 걸어서 계속 가고 싶지는 않다, 이제 그만 이별하고 싶다 라는 의사, 존중 받아야 한다. 그 차이를 알아야지 그 흔한 사랑 노래와 드라마에서 알려주는 대로만 사랑할려니까 이론과 현실의 괴리, 남녀의 차이는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일 수 밖에. 따라서 차이는 그거다. 남자는 대어를 잡았고 여자는 보디가드에게 조명을 받았고, 남자는 잡은 물고기인데 잘해 줬는데 왜 가니, 여자는 조명이 시원찮고 요술거울도 아니며 카메라 각도가 나와 영 맞지 않다 호시절은 갔고 사랑은 식었다는 거다. 남자에게는 시작이 큰 의미고, 여자에게는 중간이 더 큰 의미인 거다. 여자가 제1범주 미만이 아니라 완전하게 제1범주로 시작한 경우. 여자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제1범주로써 연애도 결혼도 이혼도 가능하며, 나아가 도취감에 내일도 행복하던가 그리움에 오늘도 애상에 젖는다. 여자가 평범한 숙녀에 선녀라면 제1범주 미만의 사랑을 그윽하게 기대하기는 힘들다. 다만 더 솔직하게는 말하지 말자. 하오나 가식이 어디까지인가는 스스로 알아야 하는 법. 더 중요한 진실은 제1범주로서 행복한 인생도 달콤한 사랑까지 가능하다는 것. 사랑하느냐 사랑 받느냐, 다른 문제일 수 있으니까. 꿈은 그 미만일지언정 이상이 아닌 현실은 어디까지나 제1범주라는 걸 어느 숙녀가 부인할 수 있으랴. 남자의 능동과 여자의 피동이 다르듯이 농심과 여심은 같지 않기 때문에 이처럼 제1범주조차 남녀가 다른 것이다. 애초에 첫 단추의 기준부터 달랐을 뿐 멀리 보자면 결국 사랑은 차갑게 식느냐, 따스히 유지하느냐 그 둘 밖에 없다. 후자를 위해 노력하면 사랑을 아름답다고 하겠지만 전자처럼 한쪽에서 마음이 고개를 돌리면 그 사랑은 끝난 거다. 사랑 사랑 누가 말했나, 가 되는 것이다. 이별에 따른 사랑의 슬픔은 현재의 사랑인 토끼가 스스로 여유를 부리든 어쩔 수 없는 한계 때문이든, 그 흔한 말로 성격 차이 때문이든, 낮잠 자다가 미래의 사랑인 거북이를 따라잡지 못했던 것 아닐가? 결론적으로 목적에 따라 짧은 사랑으로 끝날 것인가, 소망과 선망에 부합하지 못해 중반에 대단원의 막을 내릴 것인가, 남자의 자존심처럼 여자의 기준선이 부동이라면 연인은 하루 아침에 남남이 되는 수 밖에. 참고 기다렸고 노력했지만 허영심 50점과 사랑? 초반에는 기분이 붕 떴기 때문에 사랑이 그 관계를 이끌었겠지만 말미엔 허영심쪽으로 시소는 기울었을 뿐 누굴 탓하랴. 그 원망을 남의 책임으로 전가하기엔 살아온 인생이 너무 초라해진다. 이 세상에 남녀는 많고, 사랑은 또 오며, 어떤 뒷모습은 다시 반복되지 않기를. 한 남자가 농담이 고만고만하면 심심하고 허세가 심하게 그만그만하면 영 재미없듯이, 여자 역시 허영심 50점은 숙녀의 자존감으로써 절대 포기할 수 없다. 단, 딱 하나의 예외는 있다. 그것은 저 제1범주 미만일 때! 그럼 여자는 어떻게 해서라도 인생을 걸고서라도 그 남자를 잡는다. 그게 여자다. 안 그러면 남자일 테고. 물론 사람 일인데 해피엔딩은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어설프게 여자는 그래요 쩜쩜쩜, 언니의 말에 혹해봐야 괜히 더 헷갈리기만 한다. 굳이 잘잘못을 꼽자면 여자 입장에서는 미래를 혼자만 예견하지 말고 남자에게 주술이든 주문이든 외웠어야 했고, 남자는 그녀의 허영심을 얕봤다랄지 눈치가 부족했을 수도. 결론은 남녀 모두 육체적 사랑에 치중한 결과 파경에 이름. 그건 이별은 이별인데 이혼이라 봐도 무방함. 그래서 3년 만의 파경이라면 여심에 대해서 딱 두 가지를 봐야 한다. 첫째, 그녀는 헤어지기 싫어하냐 아니냐 곧 제1범주인가 아니면 그 미만인가. 둘째, 그녀는 찬 밥 더운 밥 가릴 처지냐 아니냐. 이때 둘째인데 밀고 당기기를 하면 큰일남. 괜히 어설프게... 아 안돼 안돼 (설레설레)! 어정쩡하게... 아 안돼 안돼 (설레설레)! 다만 여자의 인생에서 그 이상의 사랑을 만날 수 있냐 없냐, 적당히 타협하느냐 끝까지 고집하느냐, 그건 여성잡지2를 읽는 분들의 말씀을 들어봐야 한다. 거기서부터는! 밀고 당기기에 대해서도 좋다 싫다가 있는 것처럼, 밀고 당기기를 해도 될 정도인가를 자주 착각하거나 정직한가도 있다. 미래를 예견하면서 사랑을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내일은 없다'식 사랑을 하는 사람도 있듯이. 그럼 탐색전은 누가 심하게 하고 애인을 까다롭게 고르는 위인은 대체 누구일까? 그건 제발 그녀들에게 맡깁시다. 남자들이여, 우리는 그 주제에 대해서 만큼은 부디 은근슬쩍 발을 뺍시다. 그것만 해도 기본 3시간이니까요. 맥주 3병도 아니고 나 원 참! 아무튼 좀 더 거시적으로 보자면 X축 품질, Y축 숫자. 컴퓨터 키보드의 숫자처럼 그래프에서 9등분. 이상향이라면 남자는 9 여자는 3. 상남자일지라도 호쾌한 친구들은 일단 최저층만 면해도 말이 통하니까 중층 이상인 4-5-6. 친하긴 친한데 말이 안 통하는 마초는 1. 옛 단짝 허세남은 4. 오래 사귀는데 차였던 남자는 아마도 2. 멋진 친구고 여자도 오래 사귀는데 유독 발목 잡히는 친구는 또 몇. 남자들 중에 4 이상은 허풍꾼이랄지 사색가에 그런 꾼인데, 그런데 여자들 중에 4 이상은... 아 (설레설레)! 그게 다 사랑이 요술을 부리는 거다. 아장아장 걷는 아이가 아침에 일어나면 어떤가? 누군가 봐 줘야 한다. 나 지금 일어났어 날 봐 날 봐, 그거다. 그럼 낮에는? 놀아 줘야 한다. 좀 더 큰 후-유아기 아동은 친구들끼리 놀고. 그리고 밤에는? 꿈나라로 떠나기 전에 다시 동화책을 읽어주거나 자장가를 불러 줘야 한다. 사랑도 이와 똑같다. 어디 사랑만? 여자도 그런다. 여자의 슬로건은 그거다. 나 만 봐! 간단하다. 자기는 언제나 거울을 보고 화장을 하는데 남자는 자기만 보라는 거다. 일, 일을 해야 하는데 말이다. 여자는 남자 보고 애기라 하는데, 남자가 봤을 때는 여자가 애기다. 공평하게 그냥 어른들은 다 애기다. 수완 좋고 기교까지 뛰어난데 어른들 응석이 응석도 어디 그냥 응석인가! 바로 그래서 여자에게 사랑은 인생의 전부라고 하고, 남자에게 사랑은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고 하는 거다. 사랑의 밀도와 통계로 주제가 넘어왔다마는 다시 순진한 사랑과 찐한 사랑, 프로와 아마추어에 대해서 하던 얘기 마저 하자.
올림픽이 있다면 프로 스포츠의 세계가 있다. 그 현격한 차이, 절대 심심한 정도는 아니다. 현재주의가 좋긴 좋다만 오로지 현재주의 때문에 시각이 좁혀진다면 나중 뒷모습은 글쎄... 멋지다고 미리부터 장담할 수는 없다. 연애라고 다 같은 연애가 아니다. 결혼 생활이라고 다 같은 결혼 생활이 아니듯이. 연애를 신혼 생활처럼 연애하면 그 연애는 분명 부부 생활은 아니다. 그 연애가 결혼은 아니다. 그러나, 그러나 그런 연애의 이별은 이혼과 하등 다를 게 없다. 하나도 다르지 않다. 완전 똑같은 일일 뿐이다. 말만 이별이지 그건 이별이 아니라 이혼이다. 엄정히 따져서 이혼이다. 사랑이 다 같은 사랑이 아니듯 이별도 다 같은 이별이 아닌 것이다. 형식은 이별이지만 실제론 이혼인 것이다. 짧은 사랑을 원하는 여자도 있고, 3년 사귄 다음 잘가라며 작별 인사를 하는 남자도 있듯이 단지 대표적으로 사랑의 슬픔 그 두 예를 들자면 이와 같음. 이런 연애 풍속도와 가장 흡사한 그래프는 무엇일까? 성에 관한 남녀 그래프다. 생물학과 사랑론은 어쩌면 비례할 수도 있고 반비례할 수도, 그때 그때 다를 수도 있는 것. 다만 남자는 내 사랑만을, 여자는 여성잡지2와 수많은 연구와 대담과 수다까지 그 차이. 1.풋사랑─2.찐한 연애─3.동거─4.부부! 이 가운데 3의 비율이 높은 지역은 4의 결별에 대해서 위자료가 많은 곳이다. 방어 진료가 높은 지역은 응당 의료 단가가 낮을 수 밖에 없고─당연히 장점 있으면 단점도 감수해야 함. 난 싫다 장점만 취하겠다? 이상 아니면 도둑 놈 심보다─아마추어들의 천국 즉 스포츠와 예술에 대해서 선수와 예술가들의 먹고 사는 일이 어느 정도 해결되고, 일반인들이 분담해서 그 시장에 합당한 금액을 지출하는 곳은 아마추어 시장이 튼튼한 환경을 바탕으로 원활히 돌아가듯이 말이다. (이를 알리는 일은 정보요, 차츰차츰-차근차근은 희망이며, 혁신처럼 번트 전문 대타에게 홈런을 자주 바라면 주가 하락임. 그런데 정보부터 뻔트까지 전부 어떻게 일관된 태도? 훌륭하십니다-다!) 그리고 2, 3, 4의 구분이 흐릿하지 않은 관념의 소유자는 누가 뭐래도 소년과 소녀다. 누구나 아는 얘기지만 그럼 하나 따져 보자. 남녀의 차이를 말이다. 이때 어떻게 다를까, 남녀가 어떻게 다를까? 남자가 사랑의 전문가라면, 전문가의 기준이 트집 잡힐 소지가 있으니까, 그래 남자 카사노바는 어떻게 사랑 할까? 1, 2, 3, 4 구분 없다. 그럼 문학적인 사랑을 하는 숙녀는? 이거 하나는 분명하다. 뭘 좀 아는 여자는 2 곧 찐한 사랑을 하더라도 확연히 구분을 한다. 2의 사랑과 3&4 같은 사랑을. 그분은 2를 하더라도 1같은 사랑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당연히 그녀 옆에는 누가 있겠나, 그래~ 영심이가 있지. 어차피 흙으로 돌아갈 육신 어쩌고저쩌고, 사랑이 무슨 죄도 아니고 행복은 누려야 마땅한 것 젊어서 노세 지금 사랑하자 이러쿵저러쿵. 영심이 뿐만 아니라 허세 대마왕도 아껴준다 지켜준다 그런 거 없다. 오직 전진 뿐이니까. 그러나 남자의 2, 3, 4에 대한 도전은 계속 될 것이란 예측은, 저 하늘에 사랑을 걸고서 단언컨대, 저절로 우리와 함께 한다. 아마 어쩌면 계속 되어야 한다. 옳다 그르다 정당하다 부당하다, 를 떠나서 그건 곧 수컷의 역할이니까. 단순히 사랑의 기쁨과 사랑의 슬픔만 걸린 문제가 아니니까. 그럴 수 밖에 없다. 1만 할 꺼면 전진은 탄력 받지 못한다. 뭐 좀 할려다가 시무룩 열정은 사그라드는 거다. 그분들이 바로 그러니까 밖에서 으쌰으쌰, 집에만 오면 병든 닭 마냥 시무룩 시무룩 골골 겔겔 끙끙! 따라서 여자의 1을 향한, 1을 잊지 않는, 동심을 기억하는 태도와 균형감, 예술이 사랑을 바라보는 관점, 사랑은 아름답다는 믿음을 잃지 않으려는 마음 때문에 그 손에 땀을 쥐는 줄다리기는 언제 어디서나 계속될 것이다. 인간의 종족 번식, 예술적인 밀고 당기기, 재밌는 연애, 연정에 대한 궁금함, 극적인 사랑 드라마까지 모두 그 긴장감과 균형감이 만들어내는 거니까. 그런데 2의 사랑과 3&4 같은 사랑을 확실히 구분하고 싶은 숙녀가 사랑을 어디 혼자 하나? 아니지 남자가 있어야 하지. 손뼉도 궁짝이 맞어야 치고,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 이성애자든 동성애자든 그외 롱테일이건 사랑은 둘이서 하니까. 때문에 2의 사랑과 3&4 같은 사랑을 확실히 구분하고 싶은 숙녀가 있으면 그녀에게 실망과 체념과 절망마저 안겨주는 사내도 있다. 그런데 그 역시 둘로 나뉜다. 그녀의 몸 그리고 그녀의 마음, 까지 남자가 정확히 양분하니까. 가만 있는 여심을 놔두고 지들끼리 아주 북 치고 장구 치고 난리도 아니네, 무슨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네? 누가 아니래! 즉 이때 뭘 좀 아는 남자라면 그녀의 허영심을 채워주기 힘들다? 1로 그친다. 딱 멈춘다. 절대 더 나아가지 않는다. 지금은 날 보면 이 애타는 애매함이 알밉겠지만 나중 두고 봐라, 그것이다. 그분은 결코 무리하지 않는다. 잠깐 재밌고 살짝 멋지더라도 2가 너끈히 가능할지언정 그녀의 몸을 정복하는 건 대수롭지 않은 일일지언정 나중... 아 싫다 싫어 그런 사랑이라면 내가 싫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마음으로 충분하니까! 숙녀여, 사랑의 마침표가 찍히지 않았다고 슬퍼하지 마시라. 어쩌면 사랑은 물음표로 충분할 수도 있다는 것. 사랑에 대해서 정말 저평가 받는 아마추어 정신은 그런 것 아닐까? 남자들은 알고 있다. 내가 최고라는 사실을. 그래서 지는 비교를 싫어하면서도 비교 자체가 싫다고 하는 자신의 모습을. 그처럼 숙녀도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 그건 무엇일까? 여자는 이 세상에서 자기 빼고는 전부 다 신부 들러리라는 것을! 왜냐하면 허세 20점인 남자 허영 30점인 여자가 있듯이 그렇지 않다면 촌년임을 자인하며 스스로 광고하는 일에 지나지 않을 테니까. 아니 잠깐만. 뭐야, 나 빼고는 싹 다 신부 들러리? 응, 나 빼고는 모조리 신부 들러리! 어머머, 세상에나, 와 대단하다 대단해! 그러든 어쩌든 왜 이렇게 됐을까? 현대의 사랑은 어쩌다가 대체 왜? 왜냐하면 그럴 수 밖에 없으니까. 누구나 핸드폰을 들고 있지 않는가. 그럴 수 밖에 없다. 그럼 핸드폰이 없었던 시대에는 어떻게 사랑을 했을까? 그땐 적어도 지금보다는 사랑이 순박했다. 당시라면 흐흐흐 흐흐흐흐흐 누군 참 좋았겠다. 어쨌든 유행가 가사의 차이가 바로 그래서 생겼다. 야생마 대 경주마! 그러니까 지금 야생마처럼 사랑하는 사람, 어쩜 바보일 수 있다. 하지만 난 정말 야생마 같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 그런 사랑을 하고 싶다, 라면 그건 내 인생을 걸고 미래를 담보로 사랑하는 것과 같다. 중간에 마음 바뀌면 온갖 핑계 합당한 이유가 달리겠지만. 그래도 내가 정말 좋아하고 내가 진정 원한다면 후회 없는 사랑도 가치 있다. 단지 지금은 모를 뿐. 무엇을? 미래를! 바로 그래서 알게 모르게 세간에서는 당나귀가 인기 있는 것이다. 하지만 어렸을 때 읽었던 당나귀가 나오는 동화책, 지금 간직한 어른이 몇이나 될까? 그렇다. 답은 그거다. 묻지 마세요! 그런데 뭐야, 그 당나귀가 뭘 좀 모르는 당나귀네? 이런, 젠장! (...휴...) 자, 글을 읽는 것처럼 말하느라 무척 힘들었네. 나이 드니까 아 이거 이거 정말 벅찬데? 그래도 나 여전히 건장해. 스틸 러빙 유~! 그처럼. 체력의 열세는 아마 내가 말을 너무 많이 해서 그런 것 같네. 그러니 책임져. 당신이 책임져. 형씨가 내 곤궁을 책임지라고. 허허 농담이고 정상에 거의 다 왔으니까 마저 했던 얘기나 계속 하세나 그려.
그러니까 여자는 사랑했지만 사랑 받지 못했는데, 심지어 내가 차였다? 졌는데 또 진 거야. 꽃과 호박은 스스로 제자리로 돌아가야 하는데, 난 사랑의 하수요 내가 차지도 못했다 라면 뚜껑이 열려야 정상이라고. 남자도 그렇자나. 지는 비교만 계속 당해 봐. 뚜껑 열리는 건 시간 문제에 지나지 않자나. 그런데 몸과 마음이 다정스레 함께 갔던 첫사랑 뿐만이 아니라 그런 거도 있어. 마음으로만 첫사랑, 쉽게 말해서 감정의 끈만 수년 내내 5년 10년 붙잡고 있었는데 사랑의 신호란 신호는 여자 입장에서 자존심을 다 내려 놓고 보낼 만큼 보냈는데, 그런데 남자는 애매하게 처신하기를 얼마. 또 얼마 내내 얼마. 그러다 그녀는 첫사랑 같지도 않은 첫사랑에 실패하고 이제야 신수 훤한 남자를 만나 진짜로 첫사랑을 한번 해 볼려고 하지. 그런데 어머나! 나는 몸과 마음이 갔는데 얘는 한발 슥 빼네? 그처럼 새빨간 사과와 샛노란 바나나만 따먹고 마네? 어머머! 바로 이때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 거야! 어떤 현상? 첫째 오빠 들었어? 둘째 몸과 마음의 분리. 5개월 10개월 좋아하며 그 남자에게 마음을 알리며 사진 찍어 간직하고 여자가 그 남자를 좋아하며 주위에 자랑하고 그럴지라도 사랑을 아는 여자는 그 사랑을 추억으로 간직하며 마음을 접어. 왜냐하면 그녀는 사랑을 아니까. 왜냐하면 그녀는 마음과 몸이 함께 가는 사랑만 했었고, 하고, 할 테니까. 여간 해서는 몸과 마음이 분리되지 않는다고! 토니. 너 그거 아니? 왜 남자들은 친구끼리 사랑을 얘기하지 않는 줄 아니? 단지 불문율이니까? 아니야. 당연히 아니지. 그냥 부끄러워서? 그분들이 그럴 분들이 절대 아니지, 그럼. 그렇다면 자라면서 아빠한테 사랑에 대한 설교를 통 듣지를 못했기 때문에? 그건 이유가 될 수 없어. 그렇게나 날이면 날마다 사랑 노래를 듣고 부르면서 사랑을 귀찮게 했는데 또 누굴 탓하시겠다고? 그건 아니야. 그건 아니지. 그럼 뭐야 유치원에서 사랑을 배우지 않았으니까? 그건 핑계도 헛소리도 근사한 풍자조차 될 수 없겠지. 그게, 뭐야 그게? 어? 저런, 저런! 토니, 들어보시게. 왜 남자들은 친구끼리 사랑을 얘기하지 않느냐, 왜냐하면 사랑에 대해서 남자는 그렇기 때문이야. 첫째, 남자는 몸과 마음이 함께 간다는 보장이 없고 둘째, 더욱이 남자는 사랑을 하기 전에 그 사랑의 종류를 시작과 동시에 정하기 때문이야. 그렇지 않을 수 없거든. 물론 근사치만 따져서 그렇다는 말이지. 그런데 여기에 보너스가 하나 붙지. 그럼. 그건 뭐냐? 고기도 먹어 본 놈이 잘 먹는다고 사랑도 사랑을 해 본 사람이 잘 아는 법이야. 그 시장도 정확히 부익부 빈익빈이라니까. 여자만 사랑 받기를 원할까? 아니야 절대 아니야. 남자도 자기를 좋아하는 여자를 좋아한다고. 여자도 똑같아. 아무리 신호를 보내네 어쩌네 해도 그 시장도 정확히 4구분 도형이지, 무슨 여자들이 신호를 독식하고 어쩌고 그런 거 없어. 그런 얘기하는 사람은 단지 선녀일 뿐. 남자A를 따라다니는 여자 어 음 그게 그럴 수도 있는데 거의 그럴 일은 없어. 똑같이, 무턱대고 여자는 자기에게 호감이 전혀 없는데 무작정 짐승처럼 달려드는 남자? 많지 않아. 1달 1년 내내 쫓아다녀서 아주 드물게 사랑을 얻는 일도 있긴 하지만 그건 처음부터 여자에 대한 견적이 나오니까 하는 일이겠지. 다큐멘터리에서처럼 하이에나는 맹해 보이는 초식동물에게 달려든다니까. 곧 남자도 사랑을 받는 걸 좋아해. 나만 쫓아다니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거든. 아프리카의 맹수들이 사냥해서 먹이를 먹을 수 있다는 보장 그 확률이 있기 때문에 달려드는 거지, 내내 허탕만 쳐 봐. 그건 뭐야? 그래 꼴까닥이라구. 종종번식에 실패! 종종번식과 사랑은 크게 다르지 않아. 완전 같지는 않아도 완전 다르지도 않아. 그처럼 사랑을 받는 걸 좋아하는 건 여자나 남자나 똑같다니까. 다만 여자들이 좋아하는 남자는 어차피 정해져 있어. 다시 말해 사랑을 받아 본 남자들도 많지 않아는 점. 원래 남자들은 으쌰으샤인데 더더군다나 사랑을 많이 받아 보지 못했다? 그래서 남자들끼리는 사랑을 얘기해서는 안된다네. 안 그래도 서로 마이크 들고 딴 얘기하는데, 원래 남자들 대화 자체가 덤앤더머인데, 그런데 나는 여자에게 사랑을 많이 받아 봤기 때문에 여복이 풍부한 내가 가련한 너희들에게 사랑의 설교를 하노라? 세상에 그런 바보가 어딨겠니! 간혹 코메디랄지 진짜 진지하다면 모를까, 만약 그런 푼수가 있다면 남자들끼리 잘도 그러겠니? 잘한다 잘한다 잘한다, 잘한다 잘한다 잘한다! 어떻게 해야 저 남자를 내 걸로 만들 수 있을까, 동영상이랄지 사진을 찍어서 간직하고, 플룻을 배우며 수컷 공작새처럼 여자가 깃털을 세우며, 롤리타처럼 아담하지만 성숙하며 청순한데 사랑을 아는 절세미녀가 일방적으로 구애를 펼치고, 내 변한 모습을 보여주고 내 새로운 헤어스타일과 몸짓을 선보이며, 첫사랑 남자에게 몸과 마음을 다 주며, 여자가 먼저 신호를 보내고 보내고 또 보내며, 수년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며 관심을 잃지 않고, 처음부터 치밀한 작전으로 시작해서 만인에게 만방에 저 남자 내 남자다 라며 증거를 모아 모아 모아서 소문 내고 또 소문 내는 바로 그런 사랑을 받아본 남자? 그리 많지 않다네. 나는 그런 남자인가? 그에 자신있게 네 라고 답할 수 있는 남자가 과연 몇이나 될까! 그렇게 사랑 받고 사랑해 본 남자가 많지 않은데 남자들끼리 만나서 사랑을 얘기한다?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내 친구들만 봐도 그렇게 사랑 받아 본 친구? 거의 없어! 아니 있긴 있나? 그래도 친구들도 둘로 나뉘더군. 그 어떤 사랑일지라도 여자를 알고 사랑을 하면서 살았다면 말이 통해. 대화가 시원스럽고 호쾌하다구. 그런데 그게 아니라 다른 건 다 중간인데 남녀의 정분에 대한 경험이 영 아니야. 남녀의 정분에 대한 경험이 영 아닌데 그런데 그 친구들이 또 허세, 자존심, 부러움에 대한 솔직한 감정(난 부럽지 않아─날 부러워하지 말든가─난 부러워한 적 없어), 지는 비교에는 또 얼마나 민감한데? 말도 못해. 아아, 말도 말어. 연애 경험이 소녀랄지 그냥 동네 아저씨인 친구? 그런데 상남자? 말이 안 통해. 완전 꽉 막혔어. 보고 있으면 답답해. 사정 알면 이해가 돼. 성격 봐도 알만 해. 인생이 참 심심하지. 그 앞에서 잘난 척 해서도 안돼. 그런데 자기는 잘났데. 남들이 평생 한두 명 사귈 단짝을 내가 몇 명 사겼는데. 단짝의 수와 밀도로 따지면 난 연예인병에 걸려도 돼. 암, 그렇고 말고! 그 깜짝 놀랄만큼 용한 통계에 따르자면 꼭 시골 출신이라서 그런 게 아니더라구. 왜 그런가 그 이유를 잘 모를 때, 대체 왜 그럴까 왜 그럴까, 막 생각해 봤어. 내내 고민했지. 단지 가난해서? 깡촌에서 태어나서? 집안 배경이 그만그만해서? 멋지게 생기지 못해서? 공부를 못해서? 잘 놀지를 못해서? 딱히 큰 재능이 없어서? 설마 그건 아닌가 정말 골똘히 생각해 봤는데, 그런데 다 아니더라구. 다 아니야. 아아 시골 출신 단짝 친구 보고 싶구먼. 그 친구랑 같이 그냥 단 둘이서 시합도 많이 했어. 그냥 여기서부터 저기 전봇대까지 뛰기. 내가 보통 한두 발짝 앞섰거든. 나 승 걔 패. 탁구도 가끔 쳤어. 나 승 걔 패. 또 소개팅도 2 대 2로 했지. 그런다고 나만 이기게? 나도 상대를 띄워주고 어쩌고 오거니 가거니 주거니 받거니, 잘들 논다! 다 옛날 이이야. 그렇게 우린 추억이 많았는데 그런데 녀석은 져도 웃어. 져도 웃었다고. 무슨 찌질하고 못났고 답답하고 속 좁고 허접한 그런 친구들과는 격이 달라 격이. 물론 그분들은 단지 친하니까, 그건 이해가 돼. 그런데 아무리 친해도 정신분석이 저절로 되니까 그게 문제지. 그분들과 으쌰으쌰할 때는 팀웍 좋고, 분위기도 괜찮으며, 기분까지 좋아. 곧 비정상만 문제야. 아무튼 그 녀석이 다닌 학교는 이름이 다 똑같았어. 다 동물 이름이었다고. 예를 들면 늑대초등학교 늑대중학교 늑대고등학교. 삼류 대학교를 안 갔으면 모르는데 오점이 남았지. 늑대대학교까지 다녔으면 딱인데 말이야. 아님 동네 이름이 늑대동인 곳으로 이사 가라고 할까, 이름을 아예 바꾸라고 할까? 뭐 지 인생 지가 사는 거지. 그럼 또 어떤 분들은 매정하네 어쩌네 그럴 텐데. 그렇다고 훈수 두면 또 아는 체가 되고. 뭘 해도 얄밉고, 뭘 해도 꼴 보기 싫고, 이러나저러나 재수 없는 거는 매한가지. 뭐 어쩌란 말이야? 나 보고 어쩌라고! 세상만사 '이래도 흥 저래도 흥' 그런 태도가 유리할 때가 있는 반면 너무 순진해서는 안되는 일이 있는 것처럼 퍽 여리거나 썩 어리다면 몰라도 자고로 어른이라면 뭐든지 원리, 원리, 원리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네. 그걸 알면 편하거든. 응? 가만 보면 괜히 배배 꼬는 친구들 있잖아, 또는 상황이랄지 어떤 여건이나 형편 때문에 그러는 행동들을 보면, 잘 이해를 해 보면 그럴 수 밖에 없는 친구들이 꼭 그래. 남자 세계에서 여자 경험에 대해서조차 그 유명한 피자 배달원의 경험과 정확히 똑같아. (딱) 완~벽하게 일치해! 하긴 그 세상도 부익부 빈익빈인데 하물며 롱테일이 2가 아니라 8인데 오죽하겠어. 사람이 장조인가 단조인가를 간파할 수 있는 손쉬운 예가 있어. 가령 오랫만에, 몇 년만에 친구들을 만난 자리. 딱 모임 날짜가 정해져서 다 같이 함께 하자, 그게 아니라 어떤 자리에서 우연히 만나. 그럼 느껴지는 게 뭘까? 와 애들 나이 들었구나 얼굴이 달라 보이네, 그거라고. 그걸 말로 해. 그럼 또 그 얘기를 듣고 가만 있을 친구들이 아니지. 바로 그때 누군가 그러겠지. 「그럼 늬는 안 그러냐?」 이 말을 웃으면서 하면 괜찮아. 다들 화술도 생각도 다르니까 그럴 수 있어. 그런데 그게 아니라 똑같은 말일지라도, 오오 차가워도 보통 차가운 게 아니네?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일 수 밖에! 그땐 아 하고 느껴지지. 오, 고슴도치형 인간이구나 라고. 그분이 친구와 어떤 대화를 하는가를 잘 관찰해 보면 예상과 정확히 부합한다네. 감정의 선두는 오직 자존심이니까. 그래도 나이들수록 많이 둥글둥글해지기는 해. 그분이 가난하면 불만족을 합리화하는 데만 사고력은 전력으로 가동되고, 부유해도 알게 모르게 선행을 실천하는 것과는 별개로 대체로 냉소적이야. 내 주변을 둘러보자구. 내 인생을 돌아보잔 말일세. 그런 사람이... 몇 명. 굳이 함께 어울리고 많이 만나 보지 않아도 돼. 단 몇 마디 듣고, 딱 한두 마디 섞고, 행동만 봐도 오차 범위 얼마라고 대번에 나온다네. 꿈, 일, 우정, 사랑등 부분적으로 자존심이 작동하는 게 아니라 매사 그런 식인 사람. 비율은 잘 모르겠지만 타고난 건 어절 수 없는 일인 법. 당사자 입장이 되어 보면 어차피 치타냐 표범이냐, 셜록 홈즈냐 괴도 루팡이냐, 카사노바냐 돈 주앙이냐거든. 서열, 이권, 목적, 기분이 전제되지 않았는데 따스함으로? 그건 있을 수 없는 일. 곧 특별한 악의는 없지만 기본 설정이 장조가 아닌 단조인 것이지. 인지 체계에 대해서 사랑스러운 여자에게 질투심을 기반으로 단점을 비롯한 견적이 산출되듯이 남자도 뭐를 보든 일단 비판적으로 먼저 보는 사람도 드물지 않게 있어. 다시 말해 남자라기 보다는 정확한 수컷의 관점. 구태여 그 범위를 벗어나는 전문용어를 떠올릴 필요없이 8 대 2 비율만 떠올리면 이해가 쉽지. 쉽게 말해 남자의 20퍼센트가 전체 여자의 시선을 독식하고, 여자의 20퍼센트가 남자의 관심을 독점해. 그럼 남자 8과 여자 8은? 부러워한 적 없다고 하던가 먼 산만 쳐다봐야 한다고. 호박이 제발로 굴러오지 않던가, 언제나 제발로 굴러다닐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되고. 차가운 남자 가운데 원래 천성이 단조던가 전문용어도 등급이 있을 테며, 일단 부러움이 싫은데 만사에 다정하다? 그건 말이 안되는 거야. 그 몇 가지가 집약된 입장이 만약 나라면! 병적으로 승리에 집착하는 반-패배주의자, 그래프에서 1영역, 백조보다 촌닭 성향이 월등히 높고, 야망은 충족되지 못했으며, 게다가 허세 상급에 자발에, 우정과 사랑을 말할 수 없는 남자다, 심지어 여간해서 뻔트가 다 뭐야 타석 등장조차 쉽지가 않다, 더더군다나 그렇게 평생을? 말 다 한 거라고. 응? 아 말도 말어. 그런데 간혹 그런 사람이 아닌데... 친교에서 자존심을... 절대 그럴 분이 아닌데? 그건 고슴도치형이 아니라 우정이 사랑인 경우. 더 자세히 말해 주세요? 저 여자 환장헙니다! 어쨌든 그런 남자만은 피하고 싶다? 어느 날 보면 그런 남자가 바로 내 남편! 어머머 우리 아빠네? 괜찮아. 괜찮다고. 책임감이랄지 일장일단이 있으니까. 나 기쁠 때는 완전 좋거든. 간질간질 딸랑딸랑 반짝반짝! 쉬운 일은 아니지만 눈치 보고 기분 맞추며 치고 빠지면 돼. 배우자만 뭐 달관하는 수 밖에. 그런데 그게 아니라 고슴도치 대 고슴도치로, 고슴도치의 언어를 익힌다? 그분들은 닭이든 고양이든 그쪽과 양다리가 가능하지만 그 반대는 오, 제발! 직업적인 전문성을 요구하는 일일 뿐더러 무슨 심리 치료사? 비서나 조수면 그나마 낫게! 야 야 피해 피해 떴어 떴어 딴 데 봐 딴 데 봐, 괜히 그러는 게 아님. 따라서 주변인은 그분을 구워삶고 요리하는 게 중요하지. 무조건 져 주지 않아도 돼. 하나 주고 하나 받고, 물물교환에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보너스로 치즈 달린 줄을 슬금슬금. 응? 그런다고 넘어오기가 쉽진 않지만. 어른들이 그냥 스무 살을 응애응애로 보는 게 아니야. 명색이 성년인데 인물 유형을 잘 분간...은 하는데 열, 열이 좋잖나. 응? 세상은 넓고 인생은 긴데, 뭘 해도 재미가 없거든. 벌써 스무 살부터 말이야. 2명은 안 그럴 수 있는데, 8명은 안 그렇다면 거짓말이야. 그럼. 당연하지. 각설하고 그러므로 고슴도치와 다른 동물은 기쁠 때는 몰라도 잘 모르는 채 무턱대고 감정을 나눌려고 하면 안됨. 그래서 1달 1년 탐색전이 필요하냐, 달랑 10분이면 견적 충분하냐 나뉠 수 밖에 없다고. 그분들은 그래. 10분, 1달, 1년 안되겠네? 돈으로도 안되겠네? 처음부터 보이는데 뭐 미쳤다고 그 시간을 공들이겠나. 그 시간이면... 뭐 그렇겠지. 그런데 타인, 지인, 일, 우정, 사랑, 가족에서 무감정으로 가능한 게... 그나마 일이겠군. 고로 여성잡지1에서 2로 간다는 것은 곧 양육과 조련을 양쪽에 꿰차는 일임에 다름없어.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소름 돋을 정도로 그렇게나 직감이 뛰어난 그녀들인데, 대체 왜 그처럼 남자 보는 눈이 없을까? 사랑이란 게 원래 그런 거니까요. 남자들이 괜히 취미를 즐기는 게 아니거든요. 언니가 내내 그랬으니까. 앞서거니 뒤서거니가 아니었으니까. 뭐니 뭐니 해도 선두 그룹만 편애. 후미 그룹은 잘 따라오나마나 그건 모르겠고 너희들 알아서 스스로 강하게 커라? 방목하고서 잘 크기를 바란다라, 삐툴어지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않을런지. 그처럼 언니의 대립 구도는 분명해. 언니는 천상 소녀니까. 숙녀는 곧 소녀 감성이냐 아니면 아줌마냐 그런 걸까? 딸이냐 엄마냐 그 말이구만. 직관 : 논리 감각 : 이유 육감 : 증거 그냥 : 왜 청각 : 지각 허영 : 합리 로맨스 : 다큐멘터리 드라마 : 뉴스 요술 : 기술 거울 : 성과 조명 : 당근 친목 : 목적 수다 : 화술 취향 : 안목 여성 비하, 머머주의 그런 말이 아니야. 딱 봐도 언니가 보는 세상은 뭔가? 동화야! 그래 만화영화. 개와 인간이 대화를 하고(얼마나 좋아?), 코끼리가 걷는 게 아니라 하늘을 날며(환상 아니냐고 환상!), 마법의 힘으로 몸의 크기와 모양을 자유자재로 변화시킬 수 있는 개 제이크? 그게 뭐가 나쁜가! 어? 다만 그 다음이 있을 뿐. 그 허구는 누가 어떻게 만드냐 그 말이야. 그러니까 그 나머지는? 그렇지. 약자는 도태될 수 밖에 없는, 생태계의 질서를 위해서는 그럴 수 밖에 없는 험한 세상이라고. 이와 같은 여러 개념들이 혼재된 바로 그런 세상. 서커스, 경마장, 동물원, 결승전, 암표상, 야생마 스카우터, 카바레, 밀림, 몰래한 사랑, 추문, 할로윈은 물론이요 사기꾼이 설계한 큰 판, 영화 장르 범죄, 운명적 시련, 세상의 부조리 등등. 그러니 이런저런 원리를 아는 게 좋겠나, 모르는 게 좋겠나. 최소한 왜 그럴까 궁금해 할 필욘 있어. 소녀가 헛똑똑이 숙녀가 될지 포근히 사랑 받을지는 가늠해야 하니까. 가령 롤리타 증후군이든지 뭐든지 대략 몇 퍼센트는 외모 차이가 전혀 없는 염소, 그건 있을 수 밖에 없다는 걸 꼭 직접 경험으로 알 필욘 없다는 말이야. 그렇다고 남자만 일반적인 동물 유형이 아닌 예외가 존재할까? 그럴 리는 없어. 여자들도 여자들이 무척이나 꺼려하는 여자, 없을 수가 없겠지. 쉽게 떠올려 봐도 후보군은 줄 섰어. 허영심 100, 질투 100, 공주병 100 등등. 그건 그래도 그럴 만 해. 옆에서 꺼릴 수 밖에 없는 타당한 이유니까. 그런데 그게 아니라 아무 말 없이 가만 있는 존재 자체가 밉상이 되는 당신, 그대와 나 우리는 반드시 만나야 한다 만나야 한다! 어쩌다 삼천포로 빠져서 천성으로, 다시 남녀의 차이로 가버렸네만 다시 남자의 우정으로 돌아가자면,
결론은, 내 사랑 바텐더 밖에 없어! 여건이 그런데 그런 친구들과 남자들끼리 사랑을 얘기한다? 그건, 미친, 짓이야! 그건 정말 미친 짓이라구. 당연히 그렇지. 내 친구들을 세 구분으로 나누자면 그래. 첫째, 사랑을 하고 받고 그에 대해 상중하에서 상인 경우. 둘째, 단지 육체적 사랑만 많이 해 본 친구. 셋째, 이도 저도 아니고 말만 많든가 아예 말수가 적든가. 바로 이 1, 2, 3에서 1이나 1.5와는 사랑 엇비슷한 얘기를 할 수 있어. 말이 통하니까. 그런데 그 나머지와 사랑을 얘기한다? 그건, 미친, 짓이야. 얘기를 해도 뭔 얘기를 해? 육체적 사랑 밖에 얘기할 수 없는데! 그럼 뭘해? 그래프 얘기하면 울기 직전인데! 그럼. 꼭 뭐 대화가 안된다 무조건 재미없다, 그게 아니라 말이 그렇다는 말이야. 그럼 남은 건 뭐겠어? 그렇지, 으쌰으샤! 그건 재밌거든. 그건 어디서 안 빠져. 원래 남자들이 그래. 그런데 일반인만 그런 게 아니야. 유명인도 보면 저 1이나 1.5는 뭘 좀 알아. 그런데 그게 아니라 2와 3이 사랑을 얘기한다? 그건 사랑의 근처만 서성거리거나 육체적 사랑만 말하거나, 둘 중 하나야. 본론이라고 해도 다 똑같은 얘기들. 그래서 난 허당들의 사랑 얘기는 통 재미가 없더라. 연예인병이 치유된 허당, 공주병을 이겨낸 영심이, 그 중에서도 사랑을 많이 받고 사랑을 많이 하고 게다가 뭘 좀 알아야지 그 사랑론에 내 마음이 두근거리지 그거 아니면 하나도 새롭지 않아. 싹 다 남의 다리 긁기라니까. 멋모르는 소녀, 순진한 숙녀, 맹한 아가씨, 유쾌한 선녀들은 혹할지 몰라도 우리는 보면 알지. 화자가 육체적 사랑의 경험만 풍부한 노인인지 사랑 받기 전문이 아닌 사랑 하기 전문이었던 선녀인지를. 원래 우리는 그래. 우리는 뭐든지 보면 알고, 우리는 누구나 만나면 금방 친해져! 우리는 원래 그래. 자, 질문?」 「그럼 여자의 몸은 언제 오는데?」 「예상했던 질문은 기대를 져버리지 않는군. 만나자마자 애제자군 그래. 좋은 질문이기는 한데 어째 거 영 머시기 하네. 우리가 무슨 사춘기도 몽정기도 아니고 왜 하필 질문이 그렇게 직접적이니? 그래도 질문에 자상하게 답을 하자면 이와 같지. 여자의 몸이 언제 오냐? 여자의 마음이 온전히 올 때! 그게 언제냐? 만난지 1일일 수도 1000일일 수도 있겠지. 또는 10년이 될지 언제가 될지 그 누가 알겠나. 그럼. 하루로 치면 1 10 100 1000 그렇고, 그런데 10,000일은 몇 년이지? 1,000일이 대충 3년이니까, 그럼 뭐야 30년? 그런 불여우가 있다고? 아 몰라 몰라. 그리고 이건 모두 사랑이 깊어지지 않았을 때의 얘기야. 다음으로 심화 과정이 궁금하다고? 그건 내가 쓴 책 사랑론을 읽어 보면 될 꺼야. 정말 쉽고 재밌고 새로운 이론이기 때문에 그건 유료야. 값어치를 충분히 하니까 그래야만 하거든. 그런데 정말 유료의 가치가 합당하다는 걸 요즘 사람들이 뭘 아나? 하지만 피동적인 사랑에서 능동적인 사랑으로 넘어간 여자들은 그런 가치를 알아 보는 법이거든. 하지 마 하지 마! 뭔 소리야? 아무튼 여자는, 처음 만나도 그 사람이 벌꿀인지 나비인지 아니면 난봉꾼인지 다 보이는 법이야. 여자가 무슨 바본가? 남자가 바보가 아니듯 여자도 바보가 아니라네. 그렇지만 마음이 흔들리고 설레며 두근거리다 가슴이 뭉클하다가 딱~ 마음을 빼았겨버리면 그땐 바보가 되겠지. 남자나 여자나. 왜? 사랑하니까! 뭐 과정이야 어떻든 설령 그럴지라도~ 다 방법이 있긴 하겠지만 말이야. 허허허. 허허허허허. 음하하하하하하!」 「여자의 몸이 언제 오냐? 여자의 마음이 온전히 올 때! 그게 언제냐, 그때 그때 다르다?」 「하나를 가르켜 주면 열을 아는군. 음 좋아. 그러면 남자가 아닌 여자 입장이라고 생각해 보자고. 응? 그래야 그나마 조금이라도 그 어떤 심정을 이해할려는 최소한의 예우 아니겠니? 그 사람이 되어 보지 않고서도 거의 그분의 마음을 알 수는 있는데, 다 알지는 못해. 정말 뭔가를 절실히 이해할려면 가면을 쓰고 가장무도회에서 발바닥이 닳아져라 춤을 쳐 봐야, 그나마 그분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겠지. 그럼. 자, 보자구. 봐 봐! 여자 입장에서 보자면 마음이 갔는데, 늬가 여자라면 마음만 보내겠니? 어? 그거야! 그거라고. 가령, 여자가 어떤 남자를 처음 만나자마자 마음을 주면 어떻게 되겠니? 그거야! 그거라고. 그런 다음 그녀는 생각이 많아지지. 왜냐하면 그녀는 그 남자를 잡아야 하니까. 잡고 싶으니까. 벌써 좋아하거든. 이미 사랑에 빠져버렸기 때문에 진작 게임 끝난 거거든. 게임 시작도 하기 전에 게임 끝난 거라고. 응? 그럼. 피치 못할 사정으로 떠나는 드문 예는 빼고 이때도 나뉘지. 어떻게? 1-1은 직구 1-2는 변화구. 뭐 그래프? 1-1은 Z 1-2는 역N자형 또는 M자형! 전자는 순진한 아가씨 후자는 성숙한 숙녀. 그럼 여기서 끝이냐? 그럴 리는 없어. 그럼. 그 다음으로 또 2가 있지. 2는 그래. 어머나, 세상에나, 만나자마자 이 남자 완전 마음에 들어. 처음 보자마자 홀딱 반했어. 그래 첫눈에 반해버렸다니까. 누가? 여자가 남자한테! 그녀는 숙녀니까 그녀를 남자라 가정한 채 표현하자면 그 남자는 그야말로 환장하는 거야. 침 닦아야 한다고. 그런데 이때 여자 2호는 목표가 금혼식이기 때문에 마음을 따라서 몸까지 가지는 않아. 마음은 갔는데 몸은 안 가. 작전이 수립되는 시점이 바로 이 지점이야. 알겠니? 핑~ 하면서 내가 사랑의 주인공이라는 걸 깨달았는데, 깨닫고자시고 할 틈도 없이 사랑 노래의 깜짝 주인공으로 발탁됐는데, 어쩌겠니? 이미 둥실둥실, 사뿐사뿐, 랄라랄라 마음이 붕붕 떠다니는데 어떻겠니? 그녀는 어떻겠냐고. 이때부터 안달나는 거야. 완전 안절부절 못하는 거지. 사랑도 그냥 사랑이 아니거든. 미친 사랑이자 상사병이란 게 바로 이런 거거든. 막 바빠진다고. 응? 그렇지. 1-1과 1-2는 처음부터 몸과 마음이 가는 사랑이라면 2는 몸과 마음이 분리되는 사랑이야. 2는 일부러 그 사랑을 아름다운 사랑으로 승화시키기 위해서 몸은 떼서 집에 꼭꼭 묶어놓는 식이지. 응? 그럼. 물론 1-1과 1-2도 길게 가고 싶고 잡고 싶지 왜 안 그렇겠니? 인연을 잡아서 하늘 같은 서방님으로 모시든 영원한 내 사랑으로 만들든, 욕심이 나지 왜 안 그렇겠니? 그녀라고 탐욕이 없겠니, 그건 아니거든. 시도는 하고 노력도 하며 주위에 상담도 하지. 그러나 이미 스쳐지나갈 운명이라면 어쩔 수 없겠지. 왜냐하면 야수와 미녀라면 몰라도 그 반대는 그런 사례를 상회하지 않는 법이니까. 여자의 몸과 마음이 분리된다고 해서 꼭 그게 사랑의 슬픔 때문은 아니야. 이처럼 사랑의 기쁨 때문이기도 하다고! 몸과 마음의 분리조차 남녀는 다를 수 밖에 없다는 점. 참 알고 보면 신기할 뿐이야. 킬리만자로의 하이에나와 초원의 맹수가 먹이감을 포착하면 남자는 그래. 첫째 몸과 마음이 분리되면서, 둘째 사냥에 실패하지 않기 위해 생각이 많아지며, 셋째 1번에 1가지만 하던 그이가 멀티태스킹에 능숙해지지. 바람을 읽고 후각, 청각, 시각, 촉각, 지각, 공감각, 육감을 총동원해도 성공률은 준수하기도 하고 저조하기도 하니까. 그처럼 먹잇감을 포착하면 바빠져. 성공을 위해서는 그럴 수 밖에 없으니까. 저번 사냥에서 졌는데 이번에 또 지라고? 바나나를 깠는데 또 까라고? 저번에 얼룩말의 뒷차기에 제대로 차여서 망신 된통 당했는데 또 당하라고? 그건 아니거든. 반면 우리의 꽃사슴은 정확히 두 지점에서 몸과 마음이 분리된다고. 첫째, 사랑의 신기루를 보게 되는 바로 그 순간! 그리고 둘째, 저 하늘의 뭉개구름이 솜사탕인 줄만 알았는데, 내 사랑은 샤르륵 입안에서 감미롭게 살살 녹아드는 아이스크림인 줄만 알았는데, 사랑은 뭐랄까 그 어떤 달콤한 케익 같은 신비감일 꺼라 생각했는데 어머머! 쨍그랑~ 하며 환상이 깨져버릴 때! 바로 그때 그녀들은 몸과 마음이 잠시 작별하는 현상을 겪게 된단 말일세. 잠시? 부디 아픈만큼 성숙해지기를! 알겠나? 어? 아, 알겠나 모르겠나? 뭘 그렇게나 인상 팍 쓰면서 고심하나? 또 여자 생각하고 있구만! (설레설레) 꽃은 그래. 내 꽃병이 안 이쁘다 못생겼다, 그럴지라도 괜찮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왜? 내가 꽃이니까! 꽃병은 꽃이 아니거든. 허나 꽃병은 내가 정물화를 그리는데, 내가 1인칭 게임 시점으로 활동하며 꽃을 선택하는데, 내가 과수원을 관리하며 내가 어장을 돌보며, 내가 화가 누가 그린 그림을 사는데, 그런데 꽃병과 부조화를 이루는 꽃을? 그 꽃병은 여간해서는 그리 못해. 일단 챙피하거든. 왜? 난 꽃병이니까! 잘나가는 클럽에 아무나 입장시킬 수야 있나, 그거라고. 남자는 그처럼 구분이 없어. 남자들은 남성잡지, 끝! 그런데 여자는? 일단 여성잡지 1과 2, 로맨스 할리퀸 문고, 드라마퀸, 수다파, 독서파, 기분파, 놀자족, 공주병, 허언증, 신부 수업, 내숭녀 등등 (절레절레)! 남자는 왜 그리 간단하냐? 왜냐하면 최선과 최고와 최상을 추구한다는 데 대해서 너와 내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지. 다 똑같거나 비슷해. 이왕이면 다홍 치마거든. 그러나 여자는 정확히 둘로 나뉘어. 이 세상을 다 줘도 싫은 건 싫은 거다와, 능동적으로 사랑하지 못하는 여자로. 또 있어. 처음에 내가 좋아하며 원하는 상품을 사는 여자와 그냥 광고에 속는 여자로. 여자는 둘로 나뉘지. 내가 좋아하는 일과 하고 싶은 꿈이라면 제일 좋은 걸로 제일 적게 갖는 여자와 찬 밥 더운 밥 가릴 처지가 아닌 여자로. 2분법은 계속 되겠네. 남자를 볼 때 남자를 사귀기 전에 내 기준선 안쪽으로 괜찮을 것인가를 미리 상상하는 여자와 아닌 여자로. 만약... 오 만일... 저 남자와 손 잡고, 포옹하고, 키스하며, 한 침대에서 아침에 눈을 떠 마주 보며 일어나고, 날이면 날마다 밤에 한 침대에서 같이 자며, 만인에게 저 남자 내 사랑이다 라고 자랑하며, 심지어 나는 저이를 닮은 아이를 낳고 키우며 행복한 가정을 꾸미며 가족 사진을 찍어야 한다, 그처럼 우리의 사랑을 만방에 알릴 수 있나, 그 모두에 대해서 나는 가능하다 가능하지 않다 라고 똑부러지게 선을 긋는 여자와 아닌 여자로. 고상한 여자와 촌스런 여자로. 미남을 좋아하는 거야 여자의 본능이고 본성이지만 진짜로 미남만 추구하며 좋아하는 여자와 이상한 남자를 좋아하고 애매한 이상을 간직한 여자로. 고대 그리스의 조각상과 로마의 신들이 어떻게 묘사되며 표현되는지 지대한 관심이 있는 여자와 통 관심이 없는 여자로. 남자도 답답할 꺼야. 정실로 뭐 그런대로 최선을 추구하는데 성공했지만, 아아 그분도 정말 답답할 꺼야. 그녀가 전자인 듯 하지만 나중 그녀의 촌스러움을 다 껴안고 찬미하여 딸랑딸랑 반짝반짝 굽실굽실, 아 (설레설레)! 아들 녀석이 누굴 닮아 이처럼 똑똑하지? 딸은 뭐 넘어가자고. 아무튼 결론은 전자는 속옷이 세트, 후자는 꽃과 꽃병에 대해서든 뭐든 너는 너 나는 나! 전자는 챙피함을 못 참는 것, 후자는 무감각해지는 것. 그 외에 또 롱테일과 심화 과정에 대해서는 내가 쓴 책을 사서 공부하고. 응? 그래. 선녀가 아무리, 제아무리 사랑을 잘 안다고 해 봐야 그거 다 간질간질, 응애응애, 삐악삐악 애들 장난 같은 그래, (딱), 초보자를 위한 그 흔한 입문서일 수도 있단 말이야. 응? 상업과 허영심과 질투심과 꿈과 전문가 세계가 결탁한 입문서가 무슨 사랑학 개론이랄지 놀라운 사랑론씩이나 되겠니? 그럴 수는 없어. 속된 말로 까 놓고 생각해 보자고. 허심탄회하게 마음을 열어 놓고 말이야. 너와 나, 우리가, 남자 대 남자로, 고추 대 고추로 사랑을 얘기하는데 뭐 소꿉장난할 일 있니? 그건 아니잖아. 터 놓고 말해서 선녀가 사랑을 많이 받았을 거 같니, 아니면 미남이 사랑을 많이 받았을 거 같니? 물론 선녀도 열심히 활동하면 빼어난 나비랄지 선녀가 꺼뻑 반할 듯한 그런 빛나는 벌꿀이 모여들진 않겠지. 그렇지만 최소한 곤충은 꼬일 수 있어. 왜냐하면 늑대는 그녀의 몸만 사랑하지 마음을 사랑하지는 않을 테니까. 피동이 아니라 능동으로 가도 마찬가지야. 미남과 선녀. 누가 지는 사랑을 많이 했고, 누가 누가 제발로 굴러다녔을 것 같니? 굼뱅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고 나는 언제라도 사랑에 솔직했다? 짝짝짝! 하오나 사랑하면 뭘 하니 사랑 받지를 못했는데! 사랑을 해 본 꼼지락꼼지락 통계가 정확할까, 사랑을 받아 본 불가사의한 통계가 정확할까? 그런데 허당들이 또 말은 좀 많니? 그래도 그분들도 뭐 먹고 살아야 할 꺼 아니야! 안 그래? 그럼. 왜? 이게 다 무슨 개 풀 뜯어 먹는 헛소리 같아? 그건 아니잖아. 뭔가 알맹이가 있잖아? 반짝반짝 쳄발로와 새콤달콤 오르골 멜로디에 포근한 마음으로 리본을 풀고, 포장을 뜯고, 상자를 열었더니 아 글쎄, 그 뭐야? 스프링 달린 권투 글러브가 삐용~ 하며 튀어나와서 주인공이 눈탱이 맞는 장면! 지금 그건 아니지 않니? 아니 한번 생각을 해보란 말일세 이 친구야. 풀밭에서 치타와 표범과 재규어와 하이에나와 늑대들이 느그적느그적 걷다가 쉬다가 맨날 잠이나 자고 핑핑 놀다가, 그러다가 딱 먹이감을 포착했어. 그건 뭐야? 그건 최고의 사랑일 수도, 구애라거나 애정의 장난 또는 그저 사랑놀이일 수도 있다고. 응? 사자가 배 고프다고 풀 뜯어 먹겠니? 그건 아니거든. 호랑이가 할 일 없이 원숭이처럼 열매를 핥고 새처럼 곤충을 쪼아먹겠니, 아니면 벌처럼 꽃의 꿀을 쪽쪽 맛나게 쪽쪽쪽 신나게 쪽쪽쪽쪽 빨아먹겠니? 그건 아니거든. 그처럼 맹수가 사랑을 잘 알겠니, 아니면 맹수들이 소 닭 보듯 닭 소 보듯 하는 코코넛과 들장미가 잘 알겠니? 그렇다고 그 코코넛과 들장미가 무슨 과일 중의 과일이고 꽃 중의 꽃이야? 아니야. 절대 아니야. 허당 중의 상허당이라면 모를까! 호랑이는 말일세 요만한 생쥐를 잡을 때도 최선을 다한 다네. 최선을! 단, 사자는 일단 배부르고 나면 그 어떤 먹이감들이 주위에 득실거려도 쳐다보지 않는다네. 다큐멘터리에 보면 실제 그런 장면이 나오지 않나. 맹수들과 초식동물이 그 얼마나 정답고 다정하게 어울리는데. 그런 일련의 원리를 뭐라 하냐? 잡은 물고기한테는 밥을 주지 않는다 라고 한다네. 사랑? 사랑은, 없어! 사랑이 만약 1인 1역이라면 사랑은 있지. 허허허 농담이고, 황홀한 고백? 그거 다 뻥이었어! 웃자고 한 얘기고, 사랑이 그처럼 어려운 건 다 그런 이유가 있겠지? 사랑 하면 정말 신물나게 하면서 반세기를 살았는데, 그제야 진정한 사랑이라는 신비한 호박 수프를 알게 된다면 그땐 바람둥이든 바람잡이든 이처럼 말할 수 밖에 없다네. 아마도 그렇겠지? 야호! 신나게 놀자! 도날드 덕를 찾아서. 사뿐사뿐 두근두근 궁짝궁짝 뿌잉뿌잉, 샤랄랄라 룰루랄라 랄랄라 룰루랄라 랄랄라~! 그처럼 말일세.」 하여간 넉살은! 조지의 너스레는 아주 나달나달해지다 못해 지긋지긋하기 직전까지 갔다. 토니 마음에 키스 마크가 아닌 스키드 마크가, 귀에서는 수증기가 뿜어져 나오고도 남았을 것이다. 뻠쁘질도 이런 뻠쁘질이, 토니도 인내력 대단함. 여심이랄지 말발이랄지 다 속셈이 있긴 하겠지만.
그들의 대화 잔치는 끝났고 토니는 집으로 돌아갔다. 조지도 나머지 시간을 알차게 보냈다. 그렇게 하루가 끝났다. 그렇지만 보람찬 하루가 지나갔지만 아직 다 끝난 건 아니었다. 그는 토니의 작업실에 누워 가만히 오늘 하루 들은 얘기들을 되새겨봤다. 토니가 고백한 사랑. 토니도 사랑할 자격이 있다. 그건 토니의 자유다. 그런데 토니가 좋아하는 숙녀를 설명하는데 어째 느낌이 묘했다. 뭔가 기분이 기묘했다. 게다가 나탈리와 데이트하면서 나탈리가 왠지 모르게 지난 사랑에 대해서 뭔가 간지럽게 운을 띄운다고나 할까, 어떤 그런 보이지 않는 긴 꼬리가 느껴졌다.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하지만 아직 밟힐 꼬리의 정체는 채 드러나지 않았다. 그런데 어딘가 모르게 그 둘이 연결되는 듯한 느낌, 그건 뭐지? 그건 대체 뭘까? 조지는 정말 어째 기분이 뭔가 쎄했다! 이거 이거 이상한데... 설마... 혹시...! 너무나도 기분이 괴상했다. 분위가 완전 이상했다. 엄청 쎄했다! 한마디로 철커덕 하는 낭패감 가득했다. 그 누가 그 희한한 기분을 재차 경험하고 싶을까. 상상에서라면 몰라도 또 다시 토끼도 아니고 거북이도 아닌 영 이상한 삼각 관계엔 빠져들긴 싫겠지.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겠지만 소란의 발생과 불협화음의 생산에 대해서라면 조지를 따라올 자가 없었나? 세상에, 그런 트러블 메이커가 어딨다고! 조지는 확신했다. 아아! 맞다! 걔가 걔구나! 오, 저런! 조지는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이제 토니와 나탈리에게 소개팅을 주선해야... 아니지 아니지. 괜히 나설게 아니라 슬그머니 빠지는 게 최상책이겠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는 낙향하는 수 밖에 없었다. 조지는 자기가 한 발 앞서 나가야 한다고 결심한 것이다. 그러나 이대로? 이 참담함은 어떡하라고! 그 울분이 서둘러 스스로 수습이 될까? 될 리가 없다. 따라서 그는 도시를 떠나기 전 최후의 뻔트는 무엇이 있을까에 대해서 고민하며 꿈나라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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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사랑에 대해서라면 모든 걸 통달했다. 상심의 답례는 성숙일 테니까. 심심한 사랑 탐욕스런 사색, 원없이 체감했으니까. 안도의 한숨과 체념의 한숨은 드디여 사랑하는 사이가 되어버렸으니까. 그러나 인생은 결국 아직 실망하기엔 이른 예고편 같은 것. 황홀함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그는 인생과 사랑과 행복의 비밀을 통채로 알아버린 것이다. 사랑학 박사라는 챔피언 벨트가 만약 있다면 그가 싹쓸이해서 자기 집 창고를 가득 채우고도 남았을 것이다. 매우 드물게 무대 위에 수북이 쌓일지도 모르는 그 어떤 무언가처럼! 게다가 사랑론이라는 학식에서도 조지는 어느새 권위자가 됐다. 심지어 사랑법은 전문가요 사랑의 마술에 대해서조차 세상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풍운아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마침내 사랑 머신이 된 것이다. 그가 쓰는 글도 사랑의 환상곡이었으며, 그 글에 등장하는 주인공들도 사랑의 화신이었다. 사랑 하면 고개를 쩔레쩔레 흔들며 더 이상 끓어오를 수증기도 바닥났다. 사랑의 조수, 사랑의 비서, 사랑의 경리, 사랑의 번호표 발부 기계는 물론이요 양쪽에 사랑1과 사랑2를 꿰차는 일도 이젠 지겨워서 못 견딜 지경에 이른 것이다. 그래도 그건 응당 일이었다. 말만 죽는 소리를 하지 그는 일을 사랑하니까. 심지어 일이 사랑이니까. 알고 보니 사랑은 그에게 하나의 정식 업이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직업이 사랑-업! 조지는 도시에서 하산하기 전에 할 일에 대해서 생각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이 있을까를. 짝사랑을 하고, 받고, 제발로 굴러오는 호박이라면 이젠 신물이 났다. (뭐?) 적어도 사람들의 심리를 원없이 관찰할 만큼 관찰했다. 웬만한 장편소설과 훌륭한 인문서적을 쓸 정도의 경험을 쌓았다. 사랑도 했다. 삼각 관계도 물론 체험했다. 그것도 사랑의 삼각 관계, 우정의 삼각 관계까지 많이 많이. 심지어 삼각 관계에서 1, 2, 3 모두 맡아봤다. 한두 번도 아니었다. 마다할 수도 없었다. 뿐만 아니라 마음 속에는 언제나 나만의 피앙세가 있다. 그럼 남은 건 뭐냐? 이제 그만 뻔트계에서 은퇴하라고? 그건 아니다. 뻔트 사인은 인생 내내 유효할 테니까. 대관절 그럼 이젠 뭐가 남았을까? 딱 하나 남은 게 있다. 아니 두 가지다. 첫째 조지 팬클럽, 둘째 누구 팬클럽에 참여해서 열광하기. 첫째는 딱히 바라지도 않고 이미 필명을 고집했기 때문에 불가능한 일. 주어져도 마다할 일. 그럼 남은 건 하나 밖에 없네. 그는 즉시 제일 가깝고, 그럭저럭 좋아하며, 가장 가까운 시간에 열리는 팬들과의 만남을 알아 봤다. 그분들께서 연예인병에 걸렸든 안 걸렸든 상관 없었다. OK, (딱)! 골랐다. 신선한 매력 절대 흔치 않은 기회라고 느꼈다. 왠지 이제부터 뭔가 흥미진진한 일들이 쉬지 않고 이어질 것만 같았다. 커피포트는 진공청소기의 전희이자 환희의 빛일 테니까.
가자 가자 사랑의 궁전으로! 좋아 좋아 자유가 좋아 새로움이 좋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몽상과 장미와 흑심을 부르는 요술쟁이라네. 행운의 구름과 희망의 바람이 느껴졌다. 그녀들의 상냥한 눈길 하며 빙글빙글 춤추듯 들뜬 기분이 이미 함께 하고 있었다. 건강한 사람의 태도는 적극적인 개척 의지가 필요한 것이다. 허황된 사랑에 인생의 길을 잃게 되는 일, 이제 지겨워질 때도 됐다. 획기적인 사건을 목도하기 직전이었고, 그럴 듯한 아름답고 재미있는 꿈에 대한 몽상에 조지는 홀리고 말았다. 팬클럽원들의 성원 어린 고백과 고해와 실토는 알고 봤더니 모두 나를 향하더라? 혹시 모른다. 눈물이 글썽거리는 황홀감에 아찔해질지 누가 알겠나. 팬클럽 중에 누군가 딱히 무어라 묘사할 수 없는 호감을 자신에게 느낀다면? 운명의 꾸준한 욕망, 그건 다름 아니라 바로 뻔트인 것이다. 그런데 혹시라도 일이 꼬여서 망신살을? 청승맞게 조바심은 무슨! 그는 당장 그곳으로 갔다. 우울한 기분은 관심 하나 없는 풍문에 던져버렸다. 곧 있으면 꿈의 정체성을 속시원히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뿐인 당신 어딘가 모자라는 구석까지 모조리. 남김 없이. 뜨겁게. 숨소리. 눈빛. 애타는 그리움. 옷을 벗는다 벗는다 다가온다 다가온다. 격정적으로 껴안는다 껴안는다. 그만! 그만 그만! 그는 헛생각을 집어치우고 냉큼 그곳으로 달려갔다. 기승전결 모두 완료됐다. 성과를 톡톡히 챙겼다. 팬들과의 만남은 성황 리에 끝났다. 뒤풀이 시간이 됐다. 뒤풀이도 끝났다. 다 끝났다. 그러나 팬들은 서운하다. 헤어지기 아쉽다. 뭔가 섭섭한 것이다. 그것도 아주 많이. 그런데 어머머 웬 동네 아저씨가 보이네? 어머머 쟤 뭐야! 조지는 자연스럽게 친구를 사귀게 됐다. 어린 친구들을. 밝고 쾌활하며 재밌고 웃긴 소녀와 숙녀와 아가씨들을 말이다. 우리는 만나면 금방 친해지니까, 라고 조니는 생각했다. 그곳 분위기가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오빠. 아이스크림 사주세요.」 「얘. 오빠가 아니라 아빠 아니니?」 「아빠면 어때? 잘생겼자나! 착하게 생겼네.」 「저게 잘생긴 거니? 우리 (가수명) 오빠들 두고 그런 소리가 나오니? 딱 봐도 순 허당이구만.」
「저게 착하게 생긴 거니? 의외로 저런 사람들이 은근 속이 시커매! 그걸 바로 양날의 검이라고 하는 거야. 딱 보니까 아침에는 늑대, 낮에는 수닭, 밤에는 하이에나구만! 안 그러니? 들춰보고 자시고 할 거 없이 그냥 허당이야. 어른들은 말하지. 사랑은 연필로 쓰라고! 뭐라고? 볼펜으로 쓰면 뭐 어쩌니까 어째라, 맞는 말이야. 맞지. 일리 있어. 그러나, 어차피 연필로 사랑을 써도 연필 속에 있는 것도 흑심일 뿐이야. 알겠니?」
「너 어쩌다 그처럼 사람 보는 눈이 그렇게 꽝이 되버렸니? 얘가 얘가 상태가 영 안 좋은데. 어떡하지?」 「난 찬성. 난 사실 너네들 시간 안된다고 했다면 난 혼자 오긴 싫었으니까 어떻게든 누굴 데려왔을 거야. 물론 1순위는 아빠. 2순위 엄마. 안되면 삼촌. 당숙까지는 안가기를 바랬고.」 「글쎄. 조금 애매하긴 한데. 그래도 누구 좋아하는지나 물어봐야 하니까. 딱 아이스크림만 먹고 헤어지자. 어때? 혹시 모르자나. 우리 (가수명) 오빠들이랑 독대하는 사이일지도 말이야.」 그들은 자리를 옮겼다. 아이스크림 가게에 도착했다. 조지가 뭐라고 했을까? 「너네들 먹고 싶은 거 다 골라. 전부 다! 이 가게라도 오빠가 사 줄께.」 「어머 정말이요?」 「와! 그래도 돼요?」 「야 야 골라 골라.」 「진짜 다 시켜 진짜로 다 시켜.」 「아니다 아니다. 야 배달 시켜 배달 시켜.」 이때까지는 분위기 좋았다. 아이스크림도 먹고 시시콜콜한 대화가 이어진 다음 마침내 누군가 명대사를 읊었다. 조지 보고 (가수명) 오빠들 중에 누구를 좋아하냐는 질문에 조지는 속없이 상큼한 여자 아이돌 이름을 댔다. 그러자, 그녀들의 그 표정, 오오! 그 얘길 듣고 뭐라 했을까? 의도적이든 아니든 결국 사달 내는 난동꾼은 도저히 미워할 수 없는 은근 허당이던가, 커피포트를 부르는 그냥 허당이던가. 「우린 잡덕 별론대!」 잡덕? 잡덕이 뭐지! 조지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더 작은 혼잣말은 일부러 못들은 체 할 수 밖에 없었다. 그 모두를 여과없이 모두 옮겨적어서도 안될 것이다. 그러니까 결국 그는 그 수많은 동물들을 다 놔두고 정체가 그것으로 밝혀진 것인가? 멧돼지 마침내 하산하다! 늑대, 하이에나, 닭, 개, 사자, 개구리, 고양이, 여우, 불여우, 호랑이, 오리, 캥거루, 곰, 참새, 기린, 코뿔소, 얼룩말, 무당벌레, 거미, 다람쥐, 너구리, 코끼리, 치타, 하마, 딱따구리, 꾀꼬리, 어린 양 등등 그 모두를 다 놔두고 왜 하필 멧돼지? 글쎄요!
조지는 깜짝 놀랐지만 겉으로 놀라지 않은 척 태연하게 평정을 유지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뭔덕? 처음 들었을지라도 대충 눈치껏 이해할 수 밖에 없었다. 때문에 귀에서 머리에서 수증기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그도 그였다. 하필 그 자리에서 그 깜찍하고 예쁘고 청순하며 발랄한 걸그룹을 얘기할 건 또 뭔가. 조지는 절망했다. 실망도 그런 실망이 없었다. 체념은 조지의 운명이었다. 그는 천상 하향해서 심심해 심심해 항상 심심해 막 그래야만 될 팔자였던 것이다. 시도 때도 없이 환상 모험? 초딩들도 짜증낸다. 그는 나이로만 봐도 기상천외한 상상력 번득이는 창의력은 이미 바닥난 것처럼 보인다. 하물며 모차르트가 부러워하는 음악성, 테슬라를 떨리게 만드는 탐구 정신? 우린 잡덕 별론대! 그가 그렇게 가짜로 만들어낸 그 수많은 이야기들. 백 개의 마술 천 개의 환상 만 개의 사랑, 다 뻥이었다. 흐흠...! 사랑은, 없어! 흐흠...!
그런데 말이야 왜 나는 뭘 해도 재미가 없을까? 칼럼니스트는 괴로우니까. 로맨티스트는 가난하니까. 매혹적인 사랑은 드문 거니까. 인생의 낭만과 흥미로운 일상과 짜릿한 일과표가 쉬울 리가 있나. 대체 어제의 내 꿈은 어디로 갔을까? 행복을 찾는 작가, 아무나 하나. 지금 이건 흑기사만 있고 공주는 없는 삶에 다름 아닐 것이다. 환상머신은 금요일에 작동되는데, 어떡하지, 금요일은 쉬는 날. 작명가는 내 친구 수다쟁이는 내 쫄병, 고집쟁이 소녀 상사병에 걸린 숙녀까지 날마다 날 귀찮게 하는 이쁜이들 때문에 바빠야 하는데 이제 모두 거짓으로 밝혀진 것이다. 들통나도 진작 들통났다. 그동안 무슨 일이 생긴 걸까? 별일 없었다. 그게 다 헛된 공상 때문에 빚어진 일일 뿐. 거짓말을 하면 코가 길어지고, 야한 상상을 자주 많이 하면 머리카락이 빨리 자라며, 커피포트가 바빠지면 레이저가 나간다는 사실을 알게 됐겠지 뭐! 어장은 비좁고 새장은 갑갑하다. 하지만 지금은 돌아가야 할 때. 무슨 염치로 도시의 사냥꾼 고독한 염탐꾼으로 남아있으리. 일단 철수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그는 도시와 시골을 오가는 활동만큼은 언제까지라도 내내 지속될 것이라고 예감했다. 오뚜기나 광대 같은 운명 자체가 복일 수도 벌일 수도 있다. 만약 그렇다면 이왕 벗을 수 없는 굴레라면 복으로 인식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심지어 오뚜기가 박쥐처럼 거꾸로 천장에 매달려 있을지도 모른다면! 그처럼 조지는 스스로 처지를 합리화하면서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양 세 마리를 세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는 쓸쓸히 터벅터벅 낙향하게 됐다. 그럴 뻔 말 뻔, 하지 않았고 곧바로 집으로 돌아갔다. 그가 도시에 등장할 때 아무런 마중이 없었듯이 배웅도 없었다. 단지 조지 혼자 고독했을 뿐.
18 반 년 후. 조지는 이따금 옛 친구를 회상했다. 우정과 함께 풋사랑까지. 설마 밸런타인과 나탈리, 이브와 토니의 빛나는 무언가가 이어지지는 않을까 내심 공상은 말려도 자꾸 그쪽만 바라보고 있었다. 두 개의 삼각 관계에 대해서 교집합이 빠졌기 때문에 안정적인 짝수겠다 불가능한 일도 아닐 테니까. 조지는 생각했다. 안되겠다 남녀의 사랑에 대해서 뭔가 정리할 필요가 있구나, 라면서 그는 사랑에 관한 칼럼을 쓰게 됐다. 그는 자기가 쓰고서 자기가 깜짝 놀랐다. 마침내 자화자찬하는 경지에 이르게 된 것이다. 혼잣말도 참을 수 없었다. 「와, 칼럼 한번 끝내주네!」
그런데 뭘로 끝내준다는 뜻이지? 그러니까! 그렇게 사랑의 칼럼을 완성해서 그는 나탈리가 일하는 남성잡지에 새로운 칼럼을 기고했다.
19
제목: 비교론 내용: 제목은 비교론이다. 큰-주제는 <바꾸자!>. 포괄하는 소-주제는 다음과 같다.
- '바꾸자' 라는 예, 그리고 왜 그런가
- 남녀의 일반적 차이1
- 남녀의 일반적 차이2
- 남녀의 사랑 차이
- 부러움에 대한 남자의 인식
- 호감과 선호의 차이(대중마와 유니콘의 구분)
- 비교
- 결론1
- 결론2
A.'바꾸자' 라는 예 & 왜 그런가? 자, 시작한다. 내가 고르고 선택하고 소유한 건 전부 아니 일부분 여자들이 탐냈다. 단지 속으로만 좋네 어쩌네 그게 아니라 보자마자 즉각적으로 행동했다. 예를 들면 이렇다. 그냥 탐낸 게 아니라 누나가 내 초소형 가방을 보자마자 표정이 완전 바뀌면서 누구야 바꾸자 가방 내꺼-하자, 남자친구한테 말해서 자리를 마련하여 오빠 아이팟이랑 내 꺼랑(크고 둔탁한 재생기랑) 바꾸자, 코코 샤넬의 글을 내가 미니홈피 일기장에 쓰니까 누군가는 내가 인용한 글마저도 자기 미니홈피로 베끼고! 뭘 하든 그 즉시 여자들은 내 안목에 비상한 관심을 기울였다. 낯선 자리에서도 이런 음악을 듣는 남자는 절대 없는데 그럴 수가 없는데 어떻게... 뭐 그런대로 완전 꽝은 아니네! 눈빛 한번이면 사람 속마음을 읽기는, 어렵다. 줄무늬 실크 소재가 아닌가 의심 되는 나풀거리는 셔츠를 입는 남자가 보이면 뭘 좀 아는 여자는 눈빛이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앞에서 오고 나는 걸어가면 단지 말 그대로 스친 게 전부일지라도 눈치는 다 드러난다. 그러니까 뭐 뭐라고, 옷을 검소하게 잘 입는 남자가 있다고? 나 소개시켜 줘! 뭐 뭐라고 뭘 좀 아는 남자가 늬 오빠의 친구라고? 나 소개시켜 줘! 만약 오빠가 내게 조금만 더 잘하면 내가 내 친구 소개시켜 줄 수도 있어, 올 듯 말 듯 정말 오랫동안 안 넘어오면 장기전도 뭐도 다 안 먹히면 어쩔 수 없이 밑밥이라도 뿌려놔야 하니까. 내가 새로 산 신발이 완전 마음에 드네? 형은 나한테 얼마 주고 즉시 나의 새 신발을 중고로 샀다. 사촌형도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결코 아닌데 그런 적이 단 한번도 없었는데, 와 누구야 이 구두 어디서 샀냐! 또 친구는 너 아부 잘하자나 누가 늬 깐족을 따라가겠냐. 또 내 외모의 특정 부분을 꼬집어서 친구는 단짝도 뺐겼겠다 뭐가 부럽다 어쩐다. 그 외에 비슷한 얘기는 학교 다닐 때도 친한 친구로부터 들은 적 없진 않다. 캘빈클라인 컬렉션을 입고 진 매장에 들리면, 어디에서 사람을 처음 보면 그의 9등분 신분을 단 몇 초 내에 눈치채는 것처럼, 점원 아가씨는 즉각 알아본다. 내 경험이다. 그건 아마 허영심이었고, 겐조 매장에 겐조를 입고 갔던 건 점원 아가씨의 환한 미소를 보고 싶었던, 혼자 상상했던 친교를 바랬던 음 어, 이런 뭐야 것도 허영심이었네. 그 때문에 내가 몇 년을 헤맸고 어떤 일들을 경험했는데! 곧 그분들은 내가 가진 장비와 자질을 부러워했을 수도 있는데, 그런데 그게 아니라 내게 뺐고 싶었던 건 물건이었고 탐났던 건 습성, 안목, 선별감, 큐레이션, 편집력이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분들께서 나한테 지는 건 그거 밖에 없으니까. 이루 말할 수 없는 행복은 대체로 짧았고, 우정은 드물었으며, 사랑은 더 드물었다. 난 그분들께 단 한 번도, 찾으면 나오겠지만, 주로 그러지 않았는데 왜 내게 간헐적으로 그러셨는지 의문이다. 의문? 의문 좋아하시네 완전 재수없다. 으웩! 그래도 찾으면 계속 나온다. 중1때, 누구한테서 좋은 향기가 나, 흰 바탕에 초록색 세로 줄무늬에 특히 어깨 뽕이 들어간 점퍼 - 주위에서 좀처럼 보기 드문 내 점퍼를 친구가 입고 돌아다닌 기억. 중1때, 누구는 우리 반에서 옷을 제일 잘 입는 거 같애, 알록달록하고 다채롭고 값싼 옷이 잠시 조금 넉넉했던 시절. 또 당시 같은 반 다른 친구는 교류가 전혀 없는 친군데 내게 다가와 뒤통수 쪽으로 손을 넣어 셔츠 상표를 확인하며 소리 내어 읽었던 친구도 그렇고 혹시 걔네 정체성이... 어쩌면! 또 누구야 나 평행봉 가르쳐 줘, 늬 얼굴에서 어느 부분이 어떻다, 쩜쩜쩜! 농구단 친구들도 꼭 뛰어나고 잘해서일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내가 너무 특이해 보였으니까 같이 어울렸다. 블로킹도, '얘 또 뒤로 점프한다'라며 혼잣말 먼저 한 다음에 슛블록했던 친구도 있었다. 결론은 그렇다. 여자들은 내가 가진 물품이나 취향과 안목과 자질이 탐났던 거고, 남자들은 원판 곧 타고난 외향이나 재주, 나의 장비, 매우 드문 이상함을 단지 특이하게만 느꼈던 거다. B.남녀의 일반적 차이1 '바꾸자'의 예가 그랬다면 <남녀는 왜 다른가?>를 알 필요가 있다. 남녀는 동일한 부분을 빼놓고는 다르다. 다르기 때문에 모를 땐 틀리다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건 매우 중요한 차이가 아닐 수 없다. 남자에게는 아마 이와 같은 '바꾸자'가 있다. 노래 부르며 노는 술집에서 친구야 파트너를 바꾸자, 언제 어디서 우리 자리를 바꾸자, 대타로 나가 뻔트 홈런을 쳤다는 소식을 듣고서 원래 역할로 돌아가자, 모임에서 귀찮은 직책 같은 바늘 방석을 바꾸자 등등. 그런가 하면 여자는 가장 쉬운 예로 옷을 바꿔 입는다랄지 몇몇 특징들이 있을 것이다. 그처럼 '바꾸자'와 '빌린다'에 대해서 무엇이 쪼잔하고 무엇이 관대한지에 대해서 남녀 차이는 확연하다. 그래서 이상한 나라의 어떤 농담은 아무리 생각해도 괴상할 수 밖에 없다. 남녀의 차이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 하는 풍자, 드물게 있다. (내 부인) 늬가 데리고 살래? 같은. 오 땡큐? 아니 괜찮아! 남자는 전자 여자는 후자? 무슨! 마치 '미녀-야수' 짝은 심심치 않게 보이는데 반해 '미남-선녀' 커플은 그 정도를 훨씬 밑도는 것처럼 남녀의 사고 체계가 다르니까 가능한 일이다. 남자가 여자를, 여자가 남자를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지점이 바로 여기다. 하루에 몇 시간 날 꾸미고 거울 보며 어쩌고, 그런 친구들과 어울리며 그렇게 수십 년? 남자라도 그렇게 산다면 인지 체계는 천동설로 작동할 수 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이론적으로 남자 A에 여자 A나 B, 남자 B에 여자......라면 남자 Z에 여자 A, 아주 설득력 없는 얘긴 아니다. 증명은 실존하는 걸로. 남녀의 차이 외에 사람들의 구분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사랑의 끌림, 우정의 친밀감, 사회적 친화력에서 눈치와 견적을 중요시 할 수 밖에 없다. <좋은 일─나쁜 일─혼자─함께>라는 4구분 도표. <머머하자─머머하지 마─내게 유리할 때─내게 불리할 때> 라는 4구분 도표. 또 있다. <말수가 많다─적다─인생 경험이 많다─적다> 이건 해도 해도 끝이 없겠네. C.남녀의 일반적 차이2 남녀의 차이로 공이 넘어왔으니 조금만 더 들여다 보고 넘어가자. 남자는 어항 속의 금붕어를 떠올리면 된다. 너무 작나? 이치를 살피려면 어항이 적절한 비유지만 뭐 베푸는데 인색할 필요 있나. 태평양에서 돌아다니는 초음파 삐리리리 돌고래랄지 그래, 늑대와 참새와 하이에나를 떠올리면 된다. 친구끼리 으쌰으쌰 하던가, 듣는 둥 마는 둥 각자 마이크를 쥔 모습. 둘 중 하나다. 남자는, 친구가 뭘 하든 큰 관심 없고 목적이 먼저다. 우정의 어제가 어떻든 단짝은 단짝이고 오늘의 성과가 중요시된다. 사랑처럼 미래의 꿈은 대화 주제로써 썩 부적합하다. 간혹 드물게 불문율이 주제로 등장할지라도 듣기 위한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말하기 위한 거다. 말 없는 녀석이 잘 들어주니까 그 친구는 듣기를 좋아하는 친구다? 아마도 그럴 리는 없다. 녀석의 귀조차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 귀에서 피나면 좋아하시겠다. 퍽이나! 물론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이 있듯이 듣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듣기만 좋아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래서 듣기를 좋아해야 하는 직업이 있는 것이다. 때는 밤, 일은 술, 노래와 춤이 함께 하거나 뭐 그런! 아무튼 그와 달리 여자는 그런다. 나는 동화 속 공주다. 동화는 천동설이다. 해님은 날 반기고 별님도 내게 손짓하며, 주위에 보이는 건 거울과 조명과 리포터와 카메라 기자와 무지개 일색이다. 세상은 아름답고 사랑은 날 기다린다. 친구와 나는 공주 대 공주다. 일단은 동격이다. 그런데 우리는 공주병이다. 물론 우리끼리만. 그래서 친구는 나와 똑같기 때문에 우리들은 동조성이 드높다. 내가 행진하는 건 TV나 게임 안에서 제자리 걸음, 나머지는 전체가 움직이는 것이다. 따라서 여자는, <나는 1인칭, 원리는 3인칭, 모이면 말만 6시간!> 그래서 여자의 일기를 읽어 보면 제일 흔한 표현은 그거다. 첫째, (1인칭) 나는 머머했다 나는 머머했다. 둘째, (1-3인칭 과거-현재 시점) 남들이 나보고 머머라 한다 누가 내게 그랬다, 친구가 내 구두를 보고 머머라 했다 어떤 미남은 내게 전혀 관심이 없다. 누가 나보고 표정이 많다고 한다. 사람들이 나보고 그런다. 사람들 속마음을 정말 잘 아는 것 같다고. 셋째, (1-3인칭 미래 시점) 내 립스틱 색깔을 그 남자가 어떻게 볼까, 사람들이 내 가방-내 엉덩이를 보면 뭐라고 느낄까. 넷째, (1인칭. 전후좌우 없이 다짜고짜) 처음 만나는 남자한테, 들었어요? 안부를 묻고 듣는 사이가 아닌 오빠한테, 들었어? 듣긴 뭘 들어! 여자는 모든 게 나를 중심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소풍이든, 거리든, 모임이든, 무도회든, 우정과 사랑이든 전부 거울이고 전부 조명이며 전부 카메라 렌즈다. 모든 건 나를 위해 존재한다. 그 모두가! 따라서 태생적으로 여자는 남의 말을 잘 믿고, 광고에 현혹되며, 타인의 글에 잘 속고, 순진하며 착한 것이다. 팔랑귀 같은 원리가 그럴 뿐 여자들이 바보라거나 멍청하다는 말이 아니다. 악녀도 있고 현명하기도 하며 어두운 숙녀도 존재할 뿐, 원리-원리가 그렇다는 거다. 남자는 바보가 아니듯 여자도 바보가 아니다. 단지 원리가 그럴 뿐! 그러든 어쩌든 언니는 오늘도 그런다. 언니는 원리를 알든 모르든 할 말은 해야 하니까. 뭔가 멋진 역할은 언니가 도맡아야 하니까. 어제 그랬던 언니, 언니의 말을 들었던 오늘의 동생, 지금 웃고 계신다. 방~긋 웃고 있다! 내 장담한다. 언니는 이렇게 말해야지. 「스무 살 때 반드시 해 봐야 하는 게 뭔 줄 아니? 그건 바로 사랑이야! 지나고 나면 너 후회한다. 지금이 얼마나 아름답고 즐겁고 소중한 시간인데. 지나고 나서 후회하지 말고 언니 말 명심해. 젊은 날, 꼭, 해 봐야 할 건 바로 사랑이라는 걸.」 「언니! 언니! 언니! 왜? 왜? 왜?」 결과는 안 봐도 훤하다! 그래서 여자는 나 꽃이야-인 것이다. 그럴 수 밖에 없다. 때로는 맙소사 과일도 됐다가, 때로는 어머나 호박으로 변신하는 꽃! 하지만 남자는 1인칭 시점 게임이다. <나는 1인칭, 원리도 1인칭, 모이면 3-1인칭>. 여자가 샤방샤방 샤랄랄라 반짝반짝 얍 얍 랄라랄라 룰루랄라 깜찍깜찍 샤라라라라라 라면, 남자는 우당탕탕 궁짝궁짝 쿵쾅쿵쾅 딱 딱 팍 팍 막 막 캬 캬 으아 으아 피우 슝슝 띵까띵까 뿌잉뿌잉 그것이다. 달라도 너무 다르다. 안 어울려도 너무 안 어울린다. 눈에 콩깍지가 씌이지 않는 이상 사랑은 기적이다. 그래서 이왕 사랑을 할 거라면 기적 같은 사랑을 만나는 게 더 좋다. 물론 1차적 이론은 그렇다는 거다. D.남녀의 사랑 차이 남녀의 차이가 나왔는데 남녀간 사랑에 임하는 자세, 사랑을 생각하는 태도에 대해서 논하지 않으면 섭섭허다. 바늘 가는데 실, 가야 한다. 왜 남자가 남자들끼리 사랑이란 주제를 얘기하지 않는지 여자도 알아야 한다. 이 세상에서 사랑과 제일 비슷한 것을 딱 하나만 꼽으라면 그건 단연 우정이다. 그처럼 거의 도플갱어이지 않나 싶은데,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남자는 우정끼리 사랑을 얘기하지 않는다, 얘기해서는 안된다? 어떻게 보면 그건 너무도 놀라운 일인 것이다. 고로 왜 그런가 원리를 아는 게 좋지 않을까? 자, 차근차근 알아가 보자. 어려울 거 없다. 시작이 절반이니까. 부러움이란 감정에 불친절한 남자에게는 허세와 허풍이 있다. 반대로 선망을 좋아하는 여자에게는 허영와 질투가 있다. 결국 동경심 대 가식, 소망 대 대망, 열망 대 야망인 것이다. 여자는 꿈이 먼저고 남자는 열정이 먼저다. 순서가 그렇다. 마음만 따지면 여자가 더 멀리 본다. 일단은 그렇다. 여자가 눈물 흘릴 때 남자는 같이 울지 않기 위해 참거나 아예 뜬금없이 콧물이 나는 식이다. 여자가 단꿈을 꾸다 침을 흘릴 때 남자는 양과 여우와 고양이한테 홀딱 반해 군침을 흘리는 식이다. 여자는 꿈 다음에 현실이 따라오지만, 남자는 현실의 범주 안에서 쾌락이든 과일이든 꽃이든 목표를 설정하는 식이다. 물론 그 둘의 공통점은 허당이고! 남자는 사랑의 가능성 A~Z에서 정실로 최상과 최선과 최신을 추구하고, 그 다음에 물량이다. 그 다음은 그 다음 문제다. 달리 말하자면 처음부터 사랑의 종류를 정하고 시작한다. 일단 사람을 만나 보고, 알아가고, 의견을 타진하며 교감을 나누면서 판단 근거를 수집하여 나중 결정한다? 여자는 몰라도 남자는 그럴 수 없다. 여자에게도 직관은 있다. 제7의 감각으로 따지면 여자가 남자보다 한 수 위다. 허나 그건 직감만 따졌을 때고, 대충 8 대 2만 그렇고, 집중력을 비롯해서 종목은 많고도 많다. 그처럼 여자는 어떤지 몰라도 남자는 처음부터 사랑의 종류를 정하고 시작한다. 풋사랑인지 공식적인 사랑인지 짧은 행복인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정확히 과학적이고 정확히 본능적인 접근법이다. 하지만 여자는 날 사랑해 주는 대상 A~Z에서 대체로 사랑이면 만족한다. 싫어도 설득되는 경향이 없진 않다. 처음에 한 남자와 사귀면서 좋은 사람인가 알아가며 여러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수다로 깨닫고 궁금증은 무한 반복되기 때문에 여자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하는 얘기 중에 하나는 그거다.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 줘! 어리고 순진한 여자는 사랑을 다 같은 사랑으로 인식하고 행동하지만 세월에 시달리면서 여자는 남자처럼 변해간다. 그래서 여자는 둘로 나뉜다. 순진하든 성숙하든 내가 원하는 사랑을 하는 여자와 사랑을 받는 여자로. 그런데 친구들과 남편에 대해서 얘기할 때는 이미 늦는 거다. 이미 미녀와 야수의 사랑에 더해서, 잡은 물고기한테는 먹이를 주지 않는 법이거든. 남자는 (지는) 비교를 싫어하거든. 그 때문에 여성잡지1과 여성잡지2의 간격이 발생한다. 남자는 그런(그딴?) 차이가 없는데 반해서 말이다. 알량하든 심오하든, 원리가 그렇다 원리가! 또 모순은 모순을 낳는다. 여자는 남자에 비해 품질을 따지고 중요시하지만 여자는, 내가 꽃이다. 고로 (남자도 그렇지만) 여자는 내가 A라고 상정할 수 밖에 없다. 때문에 사랑에 대하여 (어떤 의미로) 약자가 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따라서 여자가 사랑에서 내 취향과 달리 어떤 안목을 놓친 원인은 수동적으로 사랑한 결과다. 결과는 온전히 내 행동의 대가요 책임도 절반은 내게 있으며 그 사랑의 성과는 이별일 수도, 어떤 바람일 수도, 행복한 가정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자가 능동적으로 사랑이라는 감정과 행위에 임하는 경우 여자는 만족도가 높을 것이다. 알고 봤더니? 물론 그럴 수도 있다! 실제로 여자는 짝사랑, 풋사랑, 짧은 사랑, 불륜에 대해서는 꽤 능동적으로 사랑한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사랑의 맹세, 사랑의 다이아몬드, 사랑의 팡파르에 대해서는 수동적이다. 남자가 약자네 하수네 그래 보여도 사랑에서는 남자가 한 수 위다. 고로 1차전은 남자 승! 물론 그건 사기꾼과 고단수 전문가를 제외한 단기전을 말하는 거다. 그러나 사랑은 단기전이 전부일까? 하나의 리그에 속에 있지 않으면 그럴 수도 있다. 그럼 장기전을 좋아하는 여자의 사랑에도 베팅을 해 보자. 그 쉬운 옹호론을 알고 나면 남자의 머리 위에 주전자를 얹어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남자의 사랑은 현재다. 남자의 사랑은 무조건 현재다. 남자의 사랑 = 현재주의! 남자는 현재 사랑하느냐 사랑하지 않느냐, 그것만 있다. 쉽다. 간단하다. 전혀 어렵지 않고 전혀 복잡하지 않다. 0과 1이니까. 하지만 여자의 사랑도 현재가 전부일까? 그럴 리는 없다. 대체로 사랑에 대해서 남자는 능동적 여자는 피동적이듯이 여자에게는 '사랑을 받았는가'가 매우 중요한 명제다. 사랑을, 받았는가? 그 말이 뭔가, 과거형이다. 여자는 과거부터 미래까지, 아니, 다음 생에서까지 남자에게 1인 다역이라는 사랑을 요구하는 것이다. 어쩌면 노예도 포함되어 있을지 모르겠다. 여자도 똑같은 사람인데 실수도 하고 한눈도 팔지 왜 안 그렇겠나. 행동과 성과는 다를지언정 말이다. 여자는 알았고 만났고 느낌이 있었으며 사겼던 남자들은 전부 다 날 사랑했기 때문에 시간을 함께 했다고 생각하고 싶어한다. 사실은 다를지언정 그러기를 원한다. 우정이 일부다처제 사랑은 일부일처제, 가 만약 남성중심적인 생각이라면 그 반대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여자가 못해서 안 하는 게 아닐 테니까. 그처럼 여자는 '나는 사랑을 받았나─그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나는 그를 사랑했을까?'에 대해서 과거 시점부터 현재, 미래, 다음 생까지 보고 있는 것이다. 그처럼 사랑학 박사님이신 숙녀께서 대체 왜? 내 말이! 그걸 누가 알겠나? 맙소사! 나는 사랑 받는 꽃이자 최고의 과일이란 사실은 전제되듯이 여자에게 사랑은 우선 피동적인 것이다. 때문에 여자가 뭘 알고 나면 바로 그때부터 능동적으로 사랑하게 될 것이다. 처음부터 언제나 그렇게 사는 여자도 있긴 하겠지만. 사랑에 대해서 능동과 피동은 마음과 육체와도 같을 것이다. 플라토닉만 하거라? 그 무슨... 허허허! 육체적 사랑만 하여라? 진정한 사랑을 하고 싶나이다 아멘! (뭐, 오 땡큐?) 사랑에서 능동과 피동이 그렇기 때문에 축혼가는 은혼식 금혼식까지 이어지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바로 그 원리 때문에 여자는 역술가가 궁금하고 점쟁이와 친한 것이다. 완벽한 천동설에다가 마귀 할멈인지 뭔지 동화와 만화영화에 나오는 마법의 수정구술을 보는 것과 완전 똑같은 일이 바로 그것일 테니까. E.부러움에 대한 남자의 인식 소-주제는 여자의 '바꾸자'가 아닌 남자의 '부러움'으로 넘어간다. 살다 보면 팔짜가 바뀌는 (기존 삶과 비교해서) 1인자로 우뚝 서는 특별한 인기, 제2의 호사, 제3의 기쁨에 대해서 뭐랄까 딱히 많은 걸 바라지 않게 된다. 왜냐하면 새로운 인생에 대한 희망은 쉽게는 TV로, 주말에는 취미로, 밤에는 꿈으로 대신하니까. 무엇 때문에 그러냐면 인간의 삶에서 환상과 신비와 타임머신은 클라우드 나인이 아니라면 어쩜 여간 해서는 잡힐 듯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앵무새-여우 같은 헛된 기대에 불과할 테니까. 달리 말하자면 머머하면 좋겠다, 머머하고 싶다, 유명해지고 싶지 않다, 라는 태도에 대해서 우파나 좌익이 아니라 중립적이 된다고나 할까? 뭘 해도 재미없다, 매사 귀찮다, 많은 부분 원래 어른들은 그런 식이니까. 그런데 또 사람에 따라서는 '다음 번엔 반드시 머머할 테다'라며 굳은 의지를 구체적으로 표출하거나 <난 부럽지 않아─날 부러워하지 말든가─난 부러워한 적 없어> 라며 꼭 애들처럼 노는 어른들도 적지 않다. 왜냐하면 언제까지라도 이기고 최고가 되어서 지는 비교 대상 만큼은 결코 되고 싶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고로 남자의 마음은 전진이다. 전진! 매우 드물게는, 선동! TV에 나오는 유명하고 부유한 중장년층이나 되니까 젊음이 부럽다 어쩐다 그러시지 일상에서 주변을 둘러보면 할아버지께서 그런 말씀을 편하게 하시는 게 어디 쉽겠나. 백작처럼 모자를 쓰지도 않았고, 회장님처럼 리무진에 기사와 비서도 없으며, 유창한 말솜씨는 녹슬지 않았지만 의욕이 예전 같지 않은데, 그런데 체통까지 포기하라고? 그건 아니거든! 인생이 만족스러웠다, 행운은 내내 내게 친절했다, 행복은 있는 듯 없는 듯 멀어 보였지만 알고 보니 내 옆에 있었더라, 돌아보면 후회없는 삶이었다, 같~은 그 흔한 대사도 아마 말로 듣기는 힘들다. 글이라면 모를까. 그래서 일반인 어르신께서 주로 말씀하시는 솔직한 표현으로 가장 평범한 건 모르긴 몰라도 아마 이럴 것이다. 「난 부러운 거 없소. 내가 가진 작은 안락이면 난 만족한다오. 살면서 흥망성쇠의 롤러코스터와 길흉화복의 회전목마를 탈 만큼 탔단 말이오. 그러는 동안 난 무려 100명의 여자를 사랑했소. 흐흠 자세한 얘기를 하자면 날 새야 하니까, 심지어 0을 하나 덧붙여야 하니까, 내 스타일 애교는 감안해 주시구료. 내가 원래 사람이 좀 겸손해 이 친구야! 흐흠. 심지어 내 마누라는 날 아직도 좋아해. 내 말이라면 다 믿고, 항상 나만 기다리며, '미친듯이 좋아해' 라고 명령하면 정말 미친듯이 좋아한다는 듯한 시늉까지 한다니까 글쎄. 왜 안 믿기시오? 그게 나만의 착각인지 아닌지 그건 굳이 확인하지 맙시다 그려. 아 글쎄 내가 바쁘다니까 그러네. 이 강연료 공짜라고! 좌우지간 지금 현재 난 먹고 사는 데 아무런 불만 없소. (쉭─쉭─쉭) 매우 만족! 인생의 성적표는 어떨란가 몰라도 이제 와서 내가 뭘 더 바라겠소? 안 그러오? 보여 달라면 내 보여 드리겠소. 내가 그럴 의향도 없을 만큼 허접하고 속 좁은 남자로 보이요? 아니야 나 이래 뵈도 대인배야! 그러니까 뭘로 할까, 알통? 통장 잔고? 사진첩? 젊은 양반, 여기서 우리가 이럴 게 아니라 일단 갑시다. 어디로? 어디긴 어디야 이 양반아, 바텐더 앞으로지! 가서 남자 대 남자로 내기 한번 하잔 말이오. 왜, 겁나오? 허허허허허 허허허허허!」 와우! 그렇지 않은가? 실제로 난 그렇게 듣고 그렇게 느꼈다. 주위에서 부럽다 라는 말을 쉽게, 좋아서, 자주 하는 남자를 보신 적 있으신가? 나는 없다. 당장 떠오르는 남자는 없... 아니, 있다. 뭐여, 많나? 아닌가? 아무튼 있네. 그게 어디야! 허허허허허! 드물게 우정이 돈독했던 몇몇 친구들은 말이 좀 통하고 마음도 통했으니까. 허세가 말랑말랑했고 허풍도 반짝반짝 빛났으니까. 허세도 허풍도 1이든 99든 재미없어, 오르락내리락 유연하고 왔다 갔다 파도를 타야지. 그건 그렇고, 앞서 논한 여자의 <바꾸자> 라는 주제 때문에 남자의 <부럽다>까지 얘기가 넘어왔는데, 그런데 대체 정말 왜 그럴까? 왜 남자는 부럽다 라는 감정 만큼은 겉으로 드러내선 안된다는 듯이 사는 걸까? 혹시 부러움 총량의 법칙 같은 게 있어서 그런 걸까? 살면서 내가 받은 부러움이 어느 선을 넘어야만 부럽다 라는 표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걸까? 살면서 도무지 부러움을 받아보지 못했다면 부러움에 부자연스러워야만 하는 것일까? 모르겠다 통 모르겠다. 아마도 안 그런 남자도 있듯이 그렇게 타고난, 천상 남자이니까 그렇겠지, 라고 추측할 수 밖에! 그러므로 여자가 이따금 난 혹시 어디선가 영심이로 불리는 건 아닌가 설핏 걱정할 수 있듯이, 남자는 애나 어른이나 이승에서는 결코 허세에서 졸업하지 못할 것이다. 적어도 뭘 좀 아는 남자, 최소한 만인이 존경할 만한 인생이 아니라면 말이다. 아니 생각을 한번 해 보소! <부럽다> 하나가 투정, 불만, 불평, 패자, 연패, 패배주의, 나약함, 허세, 선망, 강박 관념, 열등감, 억압, 질투심, 굴육, 울분, 욕망, 대망, 이상, 뻔트, 홈런, 장외 홈런, 경외감, 행복감, 불가능, 불필요 등 대체 몇을 거느렸냔 말이오? 한두 명도 아니고 그게 대체 뭐냔 말이오. 애첩도 한두 명이고 난봉도 한 시절이지 거 무슨 이런 개뿔~! 바로 그러니까 <부럽다>는 여자에게 편애 받고, 남자에게 소외 받는 것 아닐까? 그 때문에, 즉 졌는데 또 지라고? 이런, 젠장! 내가 무슨 동네북이야 호구야? 그 때문에 남자에게 '부럽다'는 언제 어디서나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는 감정일까? 어쩌면! 덧붙여서 웃긴 얘기 하나만. 안 웃기다면 진 걸로 하겠음. 졌는데 또 지는 것에 대한 명대사 하나가 기억난다. 난 10살 형은 23살 둘이 13년 차이. 어릴 때 형이 놀리고 꿀밤을 놓고 그러면 내가 막 울던 시절. 그날은 형 친구가 놀러온 날이었다. 평소처럼 상황은 재현됐다. 그래서 난 또 엉엉 울면서 그랬다. 「내가 나중 커서 늬 삐─ 뚝 삐─브러~!」 그러자 형 친구가 형한테 웃으면서 그랬다. 「너는 삐── 또 삐──......!」 졌는데 또 진다는 건 마치 그런 것이다. (그래서 우리 형은 그 일이 미안했던지 몇 년 뒤 나한테 한참 인기 있던 가수의 콘서트 티켓을 사줬다. 바나나를 깠는데 또 까? 그것도 당일인가 하루 전인가 뜬금없이 티켓을! 어 뭐야 이거, 난 상상도 못했는데? 당시는 내가 아직 혼자 막 돌아다니며 그럴 시기가 아니어서, 당일 날 공연장 근처까지만 갔다 온 일이 있음) F.호감과 선호의 차이(대중마와 유니콘의 구분) 결론으로 넘어가지 전에 호감과 선호의 차이 곧 대중마와 유니콘의 구분에 대해서 알아 보자. '바꾸자' 라는 주제의 원인인 <내 걸로 만들고 싶다, 갖고 싶다> 그것은 단지 튀기 때문이 아니다. 그건 내 것으로 만들지 않을 수 없을 정도의 탐욕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당연히 그 층위가 있으면 그것의 이웃과 저위도 있다. 요컨대 단지 튀어 보이니까 마음이 동하는 호기심-감수성-호감도 있다. 단지 혹했다가 결제 후 결과는 대-실망! 흑백TV 시대 연주자랄지 마에스트로의 검버섯과 '잘한다 잘한다 잘한다'는 어쩜 종이 한 장 (두께) 차이일 수도 있으니까. 그 즉시 바꾸고 싶은 심정을 참지 못하는 것처럼 튀어 보이는 야생마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반응한다. 예를 들어 보자. 명화에 나오는 풍광에서처럼 오리 일색인 정경인데 그곳에 촌닭 한마리 뛰어들면 튀어보일 수 밖에 없다. 농장주가 봤을 때는 몰라도 강아지는 촌닭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자기가 백조인 줄 아시는군. 강아지가 그걸 보고 가만 있겠나. 때로는 그런 강아지도 있다. 그래도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지 못하는 강아지가 있다고 가정하자. 그 뚱한 강아지는 당장 수닭을 몰고, 뛰고, 냄새 킁킁 맡으면서 뒤쫓는다. 그럼 어떻게 될까?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본다! 내 친구인 진짜 촌닭이 스무 살 이전을 깡섬에서 살다가 도시의 대학교에 입학하니 그랬다. 풋풋한 대학생 시절, 세 명의 여자가 동시에 대쉬했다. 셋 다 암닭, 아니, ㅊㅗ... 청순한 여대생 상큼한 미녀가. 그럴 것이다. 초절정 미녀. 도시에서 자랐던 숙녀들에겐 신선해 보였으니까 그랬겠지. 단지 처음에는 멋진 경주마인 줄 알았을 테니까. 또는 야성적인 야생마. 그런데 알고 보니 제멋대로 허당 뭘 모르는 촌닭. 어쩌면 가부장적일지도 모르는. 그러니까 야생마냐 경주마냐, 그 둘 중에 무엇이냐? 야생마도 경주마도 둘 다 아니고 결국 당나귀! 여자가 무슨 유니콘을 바라겠나 왕자님을 바라겠나. 착하고 순진하며 다정한 그녀인데 중간만 가는 성실마 정도 되면 만족할 텐데, 웬~걸 당나귀라니! 동화라면 몰라도 남자친구로는 그다지? 그 역시 경험으로 깨달아야 할 수도 있다. 상냥한 호의와 감미로운 연애를 바라는 여자의 입장에서만 본다면 아마도 고삐 풀린 망아지로 보일 여지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만화영화 속의 당나귀, 친구의 남자친구 당나귀, 아는 오빠 당나귀,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당나귀라면 몰라도 뭐라고, 내 남자친구가 당나귀? 저런! 여자 입장에서는 그렇고 남자 입장에서는 일명 황홀한 경험. 뿅가는 순간. 그런데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전성기가 인생의 평균 이상인지 이하인지를 어떻게 알겠나. 모른다. 앞으로 내내 그럴 줄로만 알았겠지. 제7의 전성기는 커녕 제2의 전성기는 오직 로또 복권 밖에 없는 운명. 웃자고 하는 말이고 여자들도 그런다. 남자들이 쫓아다니거나 훔쳐보거나 그러니까 남자는 다 시시한 줄로만 알았다가 40 찍고 독수공방 50살 된다. 또는 내 마음에 쏘옥 드는, 남자 입장에서도 날 좋아하고 나랑 말이 통하는 그런 남자가 여태 단 한 명도 없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만약 반 세기만에 내 인생 최고의 왕자님을 만난다면 얼씨구 절씨구 환영하며 축복해야 할 일일 테고. 그래서 여자는 둘로 나뉜다. 그냥 허당에게 극성으로 만년 시달렸든 내내 능동적으로만 애타게 내 님을 찾아헤맸든, 골랐던지 선택 받았던지 여자에게 사랑은 둘로 나뉜다. 결국 수십 년 기다린 결과가... 어머머 세상에나! 여자 입장에서 말할 수는 없으니 객관적인 사실만 말하자면 이와 같다. 난 꽃이니까 어디서 보도 듣도 못한 화병과 짝이 되든 그윽한 꽃에 걸맞는 진귀한 화병과 조화를 이루든. G.비교 그럼 이제 '바꾸자'라는 주제의 친구인 비교로 가 보자. 바꾸자, 빌린다, 튄다, 돋보인다 등등 관심과 욕망의 정도에 따라 세상 모든 것은 비교될 수 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 날 것이다. 식욕, 수면욕처럼 비교는 인간의 본성이니까. 그 가장 쉬운 예는 순위다. 튀는 재주는 응당 긍정적인 의미도 있다. 순위와 대중 브랜드, 베스트셀러란 생면부지의 타인끼리 마주하는 긴장감 같은 것. 마시고 버리는 탄산음료 캔 같은 것. 애연가끼리 나누는 담소와 한잔의 커피믹스 또는 불 좀 빌립시다랄지 흔쾌히 고급 시거를 건넴으로 베푸는 호의 같은 것. 대천사와 마왕과 가왕은 물론 코메디의 왕과 뻔트의 신이 참석하는 오뛰꾸뛰르나 프레타포르테가 아닌 것. 허영심이 지향하는 지점은 바로 그 부분. 허세가 꿈의 디딤돌이 될 수 있듯이. 걷는 놈 위에 뛰는 놈,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나는 놈 위에 하는 놈, 하는 놈 위에 다시 새 판을 짜거나 리모콘을 누르는 놈 등등. 순위란 지극히 초보적인 상업 논리이기 때문에 바로 그래서 익명성도 존재하는 것. 따라서 한번 구름 위를 걷고 나면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제 발로 내려갈 리는 없는 것이다. 여간 해서는. 그건 곧 유명해지고 나면 양쪽의 잇점을 모두 취하기는 어렵다는 거다. 그래서 전문가 입장에서는 미운 놈 떡 하나 더 주는 거고, 하수는 애용 고수는 이용 대개는 소비, 오락산업이 굴러가면서 각자 제 이득을 취하는 것이며, 비전문가 처지에서는 유명해지고 싶은 마음 없다고 하는 게 차라리 속 편허다. 천상 그럴 수 밖에 없는 남자라면 말이다. 아마도 실제 우리가 자유를 누리는 기쁨, 비교를 통해 얻는 재미가 얼마나 크나큰 즐거움인지는 아마도 그 자유와 비교 본능을 잃어봐야 깨닫게 될 것이다. 마치 사랑처럼! H.결론1 구태어 정신분석을 할 필요도 없이 따지자면 여기까지는 자랑 같지만 자랑이다. 하오나 자랑의 이면을 들여다 보면 슬픈 사실이 하나 기다리고 있다. 큰 재주와 월등한 재능에 대해서 부러움과 찬탄만 받았던 게 아니라 잔재미, 안목, 취향에 대해서 주로 반응이 있었다는 점! 나 같은 사람이 그렇거든. 잔기술, 잔머리, 잔지식 그래 맞어 뻔트 전문이니까. 스스로 정한 애칭도 아예 뻔트마다! 이게 만약 자랑이라면 자랑으로 하자. 통상 보면 세상에서 큰 재주를 겸손하게 뽐내는 사람들은 박수를 받는다. 무대에서 인사를 한다. 러브콜이 폭주하고 부르는 곳도 애호가도 많다. 그런 사람들은 으레 TV에 나오고 음악이 멈추지 않는 클럽에 간다. 무도회에 초대를 받는다. 그럼 우리들은? 갈 데는 많은데 오라는 곳이 없다. 친구랑 만나면 서로 늬가 잘났네 내가 잘났네, 너나 잘해 내가 뭘 못하는데, 그러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우리는 음악이 2가지로 구분되는 나이트클럽에 가야 한다. 잘나가는 클럽에 입장을 시도하다가 저지당하기는 싫거든. 그래서 우리 같은 사람들은 웨이터 에르메스씨한테 찔러줄 일명 짱돈을 모아야 한다. 해도 해도 안되면 나비 넥타이를 매고서 NC에서 그분들과 기 싸움, 못 할 거도 없다. 그리고 소녀에게는 요술 거울이 있고, 숙녀에겐 뭇남성들의 눈길을 끄는 화장술과 옷발이 있다. 그래, 머릿결! 아가씨는 조명을 받고 유부녀에게는 1인 다역을 자청했던 신사랄지 돌쇠님과 소중한 가정이 있다. 그럼 난, 내겐 뭐가 있을까? 기억과 추억, 다행스런 취미, 행복한 사랑, 블로그와 신드롬, 목마른 일하기, 따분한 일상이 있을 런지. 따라서 잔꾀와 잔기술에 익숙한 소인 꽁생원은 질투심만 받아도 행복하니까, 포장 다음 화룡정점 그 연분홍색 리본은 단지 평범한 일상과 나른한 권태로 대신하는 걸로. I.결론2 사람 마음을 흔들고, 빼았고, 훔치며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며 홀딱 반할 수 밖에 없는 환상머신을 연구하는 일. 불가능에 도전할 수 있다면, 해도 된다면, 어릴 때 응애응애 커서도 삐악삐악 그 언제나 꼬끼오꼬꼬댁, 설령 그랬을지라도 이왕 뒤늦게 꿈을 꾼다면 못 오를 나무를 쳐다보면서 눈에서는 레이저가 입에서는 화염방사기의 달콤한 불꽃이 나가는 만화영화의 한 장면을 상상해 본다. 훨훨 꺼이꺼이 코끼리의 귀는 날개가 되어 해맑은 동심은 저 푸른 창공을 자유롭게 날아다닐 것이다. 따르릉따르릉 알람조차 들리지 않은 채 헤벌레 웃으며 꾸는 개꿈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침이나 안 흘리면 다행이겠지. 아무튼 오늘은 포르쉐 내일은 페라리 꼭 그렇지는 않지만 그럴 수는 없지만 바텐더에게 대우 받았고, 친구의 누나들이나 동네 형의 누나들한테 손꼽혔으며, 웨이터 에르메스씨와의 우정이면 충분한 거다. 후자가 아니라 전자만 바란다면 부자가 되나 안되나 똑같다. 그런데, 그분들은 후자의 경험 역시 아마도 불만족스러웠겠구나. 심지어 선천적으로 뭐 어떻다면... 아하! 때문에 어쩌면 바로 그래서 열 번 백 번 따라다니든, 유치장에 갖히든, 일확천금을 벌어서든, 오른쪽에 화사한 꽃을 왼쪽에 탐스런 과일을 놓은 채 꽃과 꽃병이 절묘한 누구-작 정물화까지 사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자본에 대해서만 빈익부 부익빈이 아니다. 세상의 이치는 똑같고 일리는 공평하다. 내게 유리하면 원리를 내세우고 내게 불리하면 빈정대는 일, 그리 드문 모습은 아닐 것이다. 나는 몸과 마음이 함께 가는 백조 같은 격조. 친구들과 애청자와 팬들은 이심전심! 미녀와 야수처럼 어떻게...라는 부인의 경악처럼 남아의 애원은 몸과 마음이 분리되는 호박 앞으로, 일동 차렷! 나는 못 부르고 못 하고 못 쓰며 못 꼬시며 못 만드는데,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서 읽고 나서 듣고 나서는 뭐라 뭐라! 곧 내가 바라는 건 유체 이탈의 감동, 그러나 정작 나의 습관은 골 세러모니! 한 번쯤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나의 본색은 동심인지 흑심인지, 내가 진짜 원하는 건 사랑인지 불륜인지를. 부익부 빈익빈도 원리랄지 과도한 부조리를 꼬집는 게 아니라면 천성에 따라 물 반 컵을 보듯 할 수 밖에 없다. 호박이 괜히 제발로 움직이랴, 그냥 허당만 그런 게 아니라 황홀한 꿀벌과 신기한 나비마저도 역시 선호하는 꽃은 따로 있기 마련이다. 그 세계 역시 빈익부 부익빈이요, 촌닭과 촌년은 동병상련이며, 홀아비 심정 과부가 모르면 누가 알겠소. 허당은 허당이 제일 잘 알고, 허세는 허세가 보면 고수인지 아닌지 대번에 판별되며, 허영심은 허영심이 제일 잘 아는 것이다. 늑대론과 함께 뭘로든 둘째 가라면 서러워 할 호박론만 봐도 그런 것이다. 고로 난 그런 원리를 좀 더 캐내야겠다. 좋든 싫든 그럴 수 밖에 없도록 새빨간 요술 구두를 신어버렸으니까. 오오, 그대여 들리지 않은가? 천상에서 들리는 저 청아한 트럼펫 멜로디가? 그렇지만 환청이 아니고 잘못 들은 것도 아니었다. 아까부터 음악을 틀어놓고 있었구만. 이런, 젠장!
from 소설
2018. 1. 20.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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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1월 19일. 안나 카레니나를 다시 읽을 것인가, 작사가 1위가 쓴 작사법 수필을 읽을 것인가. 한 개인의 답은 이렇다. 내 일을 위해서는 전자, 내 직업을 위해서도 후자. 다시 말하자면 전자는 나중 다시 정독하겠다는 뜻이고, 후자는 정독이 아니라 가볍게 읽겠다는 뜻이다. 사람들 의견은 각자 다 다르겠으나, 내 경우에는 직업이 설령 다를지라도 답변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안나 카레니나는 예술이고 작사법 수필은 뭐 합리주의라도 된단 말인가? 후자도 응당 위대한 예술가의 작품이니까 꼼꼼히 읽어 봐야 할 것 아닌가? 맞는 말이다. 그렇다. 맞다. 그런데 맞는 말임에도 불구하고 그럴 수가 없다 라는 점. 왜 그런가를 생각해 봤다. 어렴풋이 그런 느낌이다 그냥 기분이 그렇다, 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 봤다. 첫째, 순위에 오르내리는 유행가의 노랫말들이 지극히 현대적이다. 다시 말해 문학적이지 않고 일상적이다. 인터넷 메신저 친구, 동호회 만남, 2년째 사귀는 사랑도 있고, 우정도 분류별로 다양하며, 약속도 많고 파티도 모임도 바쁘고, 천상 인기 많은 사람 입장에서,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공통된 경험, 지극히 통계에 준하는 평상시 생활을 간추려 가사로 옮겨 썼다, 요점은 그거다. 곧 음악화 된다면 모를까 활자화 된다면 읽어야 할 가치는 뚝 떨어진다. 그 예술성이 저급하다 라는 말이 아니라 현대적인 대중 예술의 특징은 최소한 옛날 작품보다는 휘발성이 강하다고 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지금은 가사를 음미하고 외워서 부르는 시대가 아니라 듣는 동시에 다른 일을 하며, 그처럼 들어야 할 노래는 차고 넘치며, 듣고 외우는 게 아니라 듣고 잊어야 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그 무수한 노래를 모두 듣고 기억해야 한다면, 아 그건 그래서는 안된다. 끔찍해지니까. 둘째, 글이 아니라 말에 가깝다. 말은 들어야 하는 것이지 읽어야 하는 매체가 아니다. 좋아하는 배우의 인터뷰를 제일 보고 듣기 좋은 방법은 TV 연예 프로그램을 통해서 보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영화배우의 인터뷰를 잡지에서 글로 읽는다? 그거 절대 쉽지 않다. 물론 여성잡지2를 폄하하는 의도가 아니라 사람에 따라 인지 체계의 한계가 있으니까 하는 말이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의견이 그렇다는 것이고, 듣는 예술도 무언극도 있지만 뭐랄까, 노래를 외워서 부르던 시절의 가사보다 한마디로 유치하다. 사람들 앞에서 내가 생음악으로 노래를 부르고, 사람들 앞에서 타인이 생음악으로 노래를 부르는 일. 그 노래가 진짜 유행가다. 시트콤 멤버 친구들끼리 어울리던 시절, 술 한잔 들어가니 그녀가 생음악으로 부른 노래. 그게 진짜 유행가다. 그게 아니면 시시하다. 그렇게 부를 수 있는 노래가 당신께서는 몇이나 되나? 그렇게 내가 생음악으로 남 앞에서 노래를 불렀던 기억은 얼마나 되나? 만나서 차 마시는 그저 그런 흔한 사랑만 묘사한 세태 풍자의 느낌도 없지 않고. 인생을 통틀어 단 몇 번의 사랑에 대해서 설명하는 사랑이 아니라 훨씬 넓은 범주의 사랑을 고도의 기교로 압축하고 다듬은 가사가 거의 전부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대부분 사랑을 말하는 게 아니라 썸을 노래하고 있다. 음률도 형식도 가사도 모두 사랑을 지향하지만 들리는 예술은 모두 지극히 식상하고 진부하며 천편일률적이다. 운수의 통계를 들으러 우리는 복돈을 들고서 점쟁이를 만나러 간다. 그처럼 들리면 듣고, 애써 찾아 듣고 즐기며, 특별히 좋아하는 사람끼리 얘기하고, 분위기와 기분과 놀이를 위해서 즐기는 것이지 지금 유행가 가사를 위대한 예술이라고 부르기에는 퍽 어색하다. 만약 그렇다면 점쟁이는 마술사, 펀드매니저는 숫자의 예술가, 많이들 책도 쓰고 광고도 찍고 다방면으로 활동하니 레오나르도 다빈치 아닌 사람이 없겠다. 최신 유행가, 듣기에는 달콤하다. 하지만 듣기에만 달콤하다. 당사자들이야 현재의 사랑이겠지만 아저씨들이 봤을 때는 풋풋한 호감 순수한 애정이고, 노름꾼들이 보자면 시시한 애모, 난봉꾼이 봤을 때는 유치한 애들 장난에 불과한 얘기다. 자기야 언제부터 나한테 뽀뽀하고 싶었어? (그녀가 원하는 답 모범적인 찬사는 따로 있을 테니 그건 각자 생각하고, 그외의 답변을 상상해 보자) 나 이제 너랑 뽀뽀하기 싫어! 오빠 나 왜 사랑해? (사랑한다는 사실을 전제로 묻는 질문에 상응하는 화답을 해야겠지만 어쩌면 솔직한 대답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으니, 예를 들면) 나 너 사랑 안 해! 전문가는 몰라도 일반인이 다시 학교로 돌아가서 기승전결과 환유법을 공부하고, 년도와 공식을 외우며, 도표에 대해서 다시 논하고 싶을까? 글쎄요! 전형적인 남녀의 만남에 대한 수다 또는 그냥 베스트셀러 느낌이다. 한마디로 순수 예술이 아니라 대중 예술이다. 그래서 정독은 어렵다 라는 뜻. 그걸 질투심이라고 부르겠다면 그래, 질투심이라 하자. 왜 안되겠나. 그 가사들이 문학적이었다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시간 할애해서 찾고 연구하고 음미하며 달려들어서 감상했겠지, 왜 안 그랬겠나! 셋째, 무엇보다 사랑은 유치하며 시시하다는 정체가 탄로날 것 같아서, 그래서 정독하기 싫었다. 내 가식적인 속마음을 다 들켜버린 것만 같아서. 다 엇비슷하고 똑같은 사람들 생각을 시시콜콜하게 정리하는 법은 알고 싶지 않다고나 할까. 뭐 유명인만 자존심 있나? 유명인만 위대한 예술가란 법 있냐고. 넷째, 상업적인 전문성에 대해서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은 읽어야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글쎄. 남자들의 말이 들리지 않나요? 내가 이걸 왜 읽어야 하는데! 동요와 동시와 동화를 적지 않게 건너 뛰는 시대에 유행가? 중2가 주로 듣지 않을까! 공부하느라 바뻐서 못 들을 수도 있겠군. 그래도 유행이 도는 순서는 변함 없다. 10대들이 듣고 질리면 잊은 다음, 20대와 30대에서 약간의 차이로 인기를 얻고, 다들 뉴페이스 얘기 하고 있는데 뒤늦게 40대에서 들썩들썩. 대중 예술에서 자본 빼면 뭐가 남을까? 아마도 대중 예술에서 자본 빼면 대중만 남는다. 예술이라는 분야 그 타이틀이 애매해지는 거다. 마술을 부리는 건 황금이다. 마술을 배우는 학교도, 요술사가 되려는 소망도 알고 보면 사랑의 다이아몬드를 살 수 있는 황금이 그 비밀이다. 가난하고 인정 받지도 못하는 순수 예술, 지금 세상 더 이상 고결하지도 않고 알아주지도 않는다. 대세는 옛날부터 대중 예술이었으니까. 황금으로 그 모든 명예와 인기와 환희가 가능하니까. 여보시오, 운 좋게 모든 것을 다 가졌으면서도 대중 예술가는 순수의 영역에 눈독들이는 건 아닌지 퍽 의아한 심정 금치 못하겠소. 라~고 까지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다섯째, 소비되는 매체 성격이야 물론 예술이지만 어디까지나 멀티태스킹을 위해서 탄생한 예술이기 때문에 그 부분만 또렷이 들여다 보기가 뭔가 어색하다. 듣고 잊어야 할 가사지 30년 40년 후에 회상할 가사가 전혀 아니다. 물론 현재의 애청자는 나중 그럴 수 있겠지만. 옛날 유행가와 단순 비교를 하자면 결과를 솔직히 말하기엔 너무 부담스럽다. 현재 베스트셀러에 오르내리는 소설을 왜 읽어야 하지? 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생각은 그거다. 그건 영화로 보면 되지 글로 읽을 필요가 전혀 없다 라는 것. 웬만한 수필에 나오는 내용은 전부 TV와 라디오와 인터넷에도 있는 내용이거든. 하나도 빠짐없이. 더군다나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 그러면 '누구 뭐를 들고 돌아오다'같은 립서비스 광고 일색의 책보다는 푸시킨과 보들레르와 첫 1~2페이만으로 내 마음을 쥐락펴락 사람을 들었다 놨다 했던 추리소설을 다시 읽는 편이 낫다. 개인적으로 그게 훨씬 멋지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는 점, 쉽게 간과할 수 없다. 지금 유행하는 3분의 마법 그 유행가는 듣고 감상하기에도 좋긴 하지만 그보다는 시각적으로 보아야 할, 내가 봤을 때 그건 눈으로 봐야 할 음악이다. 분명히 미래에 많이 나뉠 것이다. 나는 10대 중반까지 들은 노랫말은 뜻 깊게 회상하지만, 스무 살 이후로 들었던 건 그다지. 다 그렇다는 게 아니라 비율이. 예를 들어 그처럼. 한마디로 전혀 애절하지가 않은 가사를 어떻게 썼는가 그걸 굳이 세세히 알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가사는 시가 아니다. 그렇다고 가사가 시시콜콜한 수다도 아니다. 그래서 기억에 남는 가사는 시적인 가사, 멋진 명대사 같은 가사다. 그게 아니면 들리는 건 멜로디가 전부다. 가사는 그냥 조연인 거다. 그게 아니라면! 달면 뱉고 쓰면 삼키는 게 인간의 본성이거늘 최신 유행가 가사 그게 뭐냐, 라는 못마땅한 연설이 그분들 마음에 흠집을 남길 듯 하여 한마디 덧붙이는 게 좋겠다. 인기든 작품성이든 돈이든 조명과 유행과 거울까지 내가 다 독점하는데 그게 대체 뭔 말이냐는 불만, 옳고 마땅하며 정당하다. 따라서 그와 같은 불만이 가장 큰 사람이 누굴까를 헤아려 본다. 누굴까, 대관절 그분은 누구실까? 그분은 아마도 신세기로 넘어와서 또는 비교적 근래 들어서 손꼽히는 작사가일 것이다. 당연하지. 그럴 수 밖에. 그럼 그분들께서 아무 말 못하시도록 반박의 논지를 풀어보자. 아주 쉬운 설명 딱 하나면 립스틱은 바로 수트의 커프스단추요 운동복의 지퍼가 될 수 밖에 없을 테니까. 그 옛날 내 귀에 쏙쏙 들어왔던 유행가 가사들이 대체 왜 지금은 내 귀를 스스로 알아서 슝슝 피해가버리는지 가장 쉽게 이해하는 방법은 그거다. 당시와 지금 그 양대 산맥에서 최고든 최고가 아니든 그런대로 술렁술렁 은근슬쩍 명맥을 유지해 오신 분들의 유행가 가사, 바로 그걸 들어보면 된다. 자, 들어봤다고 가정하자. 그럽시다 까짓껏! 그게 무슨 흉이라고 아, 대수라고. 그랬더니 아 글쎄 결과는? 흐흠... 에잉~ 그럴 수 밖에 없었구먼. 옛날 유행가 가사는 8할이 내 귀에 쏙쏙 들어왔는데 지금은 2할이 다 뭐야 나 바뻐서, 아니 내가 부지런해도 소비하느라 바쁘니 아예 들리지 않고, 너무 많은 세상의 비밀을 알아버렸기 때문에 도통 음미되지 않으니 그게 대체 뭐냐고. 아니 그렇수? 모르는 게 약이요 알면 병일 수도 있는데, 그 반대도 있을 수 있다. 그처럼 피해 가야 좋을 게 있고, 찾아와야 좋을 게 있다. 가령 전자는 불운이고 후자는 행운이다. 이를 테면 전자가 유행가 가사이지 않았으면 하는 심정은 흔쾌히 합리적이고, 후자는 그렇지 (딱) 이제야 선생과 내가 궁짝이 딱딱 맞아들어가는구만. 그거라고. 아 그러라니까. 그거야! 그러니까 늬가 안되는 거야, 라~고 할려다가 이제 마침내 뭘 좀 아는 허당이 되셨구만. 축하드리오 허허허 짝짝짝! 제발로 찾아와야 좋은 게 뭐겠소, NC 신비에 가든 '여자 바텐더 없습니다. 남자 바텐더입니다' 라는 소개문을 자랑스럽게 척 하니 붙여놓은 낭만-바가 구비된 대형 호프집 더블린에 가면 알현할 수 있는 바로 그분 아니겠소? 우락부락 무섭게 생기고, 거포니 미치광이 무결점 스트라이커다 뭐다, 그 무슨 뭔 애들 장난이냔 말이오. 그러니까 그건 바로 남아들의 거친 마음을 덜덜 떨리도록 살살 녹여주며 꽃바람에 아가씨의 치마는 샤방샤방 늑대는 하트 뿅뿅 그래서 우리들의 엉덩이가 들썩들썩하도록 만드시는, (딱) 상남자들의 기대주 허당들의 호프 기적적인 초대형 뻔트, 거룩한 이름 하여, 호-박! 여섯째, 후자가 재밌을려면 날이면 날마다 대중 예술만 끼고 살아야 할 것 같아서. TV 드라마로 시작해서 클럽도 자주 가고 기타 등등. 그처럼 상업성에 적극적으로 호응하면 내가 할 일을 못하고, 나의 할 말은 타인을 닮아갈 것이며, 내가 쓰는 글은 그 고유한 빛을 잃을 것이다. 나는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남과 똑같이 생각하고 비슷하게 행동하며 살아갈 것이다. 나는, 절대로, 그러기, 싫다. 따라서 나는 후자를 꼼꼼하게 정독할 수 없었고, 솔직히 말하자면 대충 훓어보고 책 덮었다. 미안하오. 그게 최선이었단 말이오. 사랑 노래에서 말하는 사랑의 90퍼센트는 사랑이 아니다. 굳이 사랑의 정의를 글로 확정해야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쩌다 보니 그 일을 내가 하고 있다. 때문에 나는 사랑에 밀접히 관계 되는 일이라면 침묵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게다가 그 일을 즐기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러므로 나는 허당의 본질과 세상의 민낯과 사랑의 허영을 연구할 것이다. 그 모두가 최신 유행가를 듣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1800년대 아리아도 당시에는 유행가였겠지만, 지금 유행가는 들리니까 듣고 가사를 보고 부르며 즐기면서 지나가면 그만이다. 최신 유행가를 즐겨 듣는 사람들이 가사를 외워서 부를 수 있는 노래가 몇 곡이나 될까? 많지 않다. 왜냐하면 가사를 외워서 부를려고 하면 새로운 노래가 나와서 그 노래를 다 밀어내버리기 때문이다. 기억나고 외우며 낭송하고 내내 함께 하는 노래는 많지 않다. 게다가 쉬지 않고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새로운 노래는 나오고 또 나온다. 하도 사랑 사랑 하니까 사랑은 드문 게 아닌 것 같아서 영 기분이 그렇다. 왜 애절하지 않은 듯이 느껴질까, 왜 남의 다리 긁는 느낌이지, 뭔가 개운하지 않아 하는 수 없이 좀 더 헐뜯어야겠다. 이걸 질투라고 부른다면 질투 좀 해야겠다. 마음 먹고. 작심 하고! 참을 수 없는 일이니까. 핑계 같지만 요즘 노래는 세련되어 보여서 가사가 안들린다. 똑같이 순진하더라도 추억의 유행가 가사는 사랑하는 사람의 속마음이 훤히 보였다면 지금 유행가는 마음이 가사와 다른 기술들로 우아하게 포장되어 있다. 그렇다. 맑은 바닷물 청아한 빗물이냐 칵테일과 우유냐 라는 뜻을 과장한 표현이다. 맞다. 포장지 뜯으면 다만 실망하지 않기를 바랄 수 밖에 없는 연애를 요즘 사람들이 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겉은 에르메스인데 속마저 그런지 통 알 수가 없는 식이다. 순위라는 게 어차피 1퍼센트의 백조를 위한 순위가 아닌 법. 야생마 대 경주마! 사랑의 모범과 연애의 정석에 엄숙하게 얽매여 있는 천리마. 혹시 1번마와 2번마의 이름이... 마권업자 얘기로 넘어가지 말고. 옛날 가사대로라면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 사랑을 타진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지금은 연애 경험이 많든 적든, 남녀가 만나 우리는 연애 공식대로 차근차근 정해진 길에서 벗어나지 말자고 속삭이는 격이다. 사랑과 세상과 인생을 잘 아시는 중년배들이 볼 때는 최신 유행가 가사에 대해서 손발이 오그라들어 두 손 두 발 다 들 수 밖에 없다. 대체 왜 그러냐고 말이라도 꺼낼려면 들을 말을 예상하긴 어렵지 않기 때문에 뭐라 할 수도 없다. 그냥 그러려니! 물론 사랑의 슬픔과 잦은 변화와 세상의 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왜 그런 거 있지 않나. 바람둥이가 생애 한두 번 만날까 말까 하는 그런 사랑. 그런 드문 사랑. 그런 고귀한 사랑. 그런 운명적인 사랑. 고상하고 품위 따지며 기계적인 기교로 가사가 급히 나오는데 너무 많이 바래서는 안될 것 같은 느낌. 샤우트 창법이든 바이브레이션이든 노래 부르기조차 기계가 다 해준다. 아마 그 지점에서 불만족스럽지 않나 그런 기분이다. 그래서 순위에 보면 아주 참신한 가사들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베스트셀러가 모두 하위평준화는 아니듯이. 유행가 가사가 화장품과 운동화와 과자와 광고와 홈쇼핑등 각종 브랜드처럼 생산되는데 소비재와 예술을 구분하기에는, 그런 일을 굳이 나서서 할 필욘 없다. 하지만, 음 다른 때는 아니지만 지금은 그 꽉 막힌 사람의 역할을,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맡아야겠다. 대체 왜? 점술가가 말하는 평이한 통계치만 가사로 나오니까 아마 그래서 그렇지 않을까? 점술가가 좌불안석 깜짝 놀라서 식은 땀 쭉나는 걸로도 부족하고 오줌을 지리는, 곧 내게 주어진 진귀함과 희귀함을 가사로 다뤄야 하지 않냔 말이다. 다루지 않아도 된다. 다루지 않아도 됨. 이랬다 저랬다가 아니라 충분히 다루고 있는데, 아마 묻힐(발릴?) 거라는 예측은 꼭 확인하지 않아도 되니까. 그럼 왜 그렇게 바꼈을까? 어쩌다 그렇게 생태계가 변해버렸을까? 왜냐하면 야생마가 마음껏 뛰노는 초원에서 경주마가 질주하는 경마장으로 환경이 뒤바꼈기 때문이다. 그 사이에 혁명과 격변과 혁신등 많은 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차이가 작은 차이는 아니니까.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어버렸을 거라고 조심스럽게 예측합니다. 물론 장단점 있다. 초원의 야생마와 경마장의 경주마를 비교하는 일은 이처럼 아마추어에겐 기쁨이고, 전문가에겐 월권일 수도 있으며, 아마도 업계에는 행복이 되었으면. 쳇! 통도 크다. 방자한 희망이든 소첩의 청이든 애첩의 애원이든, 뭐 어쨌든 제발 원리를 바로 알자는 뜻임. 왜냐하면 절대로 경주마 혼자 제멋대로 뛰는 게 아니니까요. 그래서는 안되니까요. 서로 특색이 다르다는 거지. 그래서 아는 체가 아니라는 점, 꼭 인정 받고 싶다. 강한 부정을 강한 긍정으로 설핏 오해하면 야수의 욕구만 충족시키는 더러운 사랑, 맹수의 배만 실컷 부르게 만드는 죽느냐 사느냐 라는 생존의 갈림길이 된다. 그렇다면 다음에는 다시 복고풍이 유행할 것인가? 그럴 리는 없다. 패션계에서 복고풍은 참고만 하는 거지 다시 옛날로 돌아가는 게 아니다. 악마가 남들이 입었던 옷을, 어제 마졸들에게 선보였던 옷을 입을 리가 있나. 악마는 새로움이 아니면 쳐다보지도 않는다. 안 그러면 악마가 아니다. 그건 <내가 최고>라는 슬로건에 적극 동의하는 사람들이 모인 악마 가면극 잔치일 뿐이다. 우아한 3박자 음악이 흐르는 가면무도회가 바로 그런 거다. 내일의 유행가 가사는 자동차 디자인의 시대적 변화를 떠올리면 된다. 다시 말해 앤디 워홀의 미술 공장이 일반화되었다면 다시 그 이전으로 돌아갈 일은 없을 것이란 예상, 하나도 어렵지 않다. 굳이 논리적으로 추론할 필요도 없다. 그러니까 대체 이 다음은 어떤 유행가 가사가 주류를 이룰 것인가? 그 질문은 방향이 잘못됐다. 내놓으라 하는 당대 최고의 업계 전문가들께서 흐흠 흐흠, 헛기침하시면서 뭔가 탐탁지 않은 듯 하실 테니까 말이다. 그분들이라고 할 말이 왜 없겠나. 훈수인지 감수인지, 조언이자 충고일 수도, 심지어 덕담일 수도 있는 그 뭔가를 상상해 보자. 상상은 무료니까. 게다가 긴 말도 아닐 것이다. 듣지 않아도 알겠다. 그래도 조금은 궁금하니까 살짝 엿들어 보자면 그건 아마 이렇지 않을까? 「내가 보니 이 양반 연세 많이 자셨구만. 정말 오랫만에 동년배를 만나 반갑군 그래. 반올림 백 살! 뭐야, 나랑 친구잖아? 친구! 딱 보니 친구는 그거 좋아하구만. 애절한 서사, 절절한 사연, 유쾌한 줄거리, 신비한 간추림을. 고결함의 극치를 좋아하는 건 잘 알겠는데 요즘 친구들이 반기는 섬세함과 부드러움은 그런 게 아니야. 그런 게 아니라고. 그거 좋아하는 거 들키면 낙동강 오리알이 되는 수가 있어 이 양반아. 아 그래도 아직 일면식도 없는데 말이 좀 짧았구만. 미안허이. 다시 하오체로 돌아가면 되니까 늦은 때가 제일 빠른 거니까, 태도를 바꿔봄세 그려. 당신께서 좋아하는 것을 봐 봅시다. 어느 추리소설 1페이지 단 몇 줄에 눈이 꺼뻑 뒤집어졌다는 것이 뭐겠습니까? 바로, 극적인 서사와 율동감 넘치는 예고편과 노래하는 듯한 줄거리로 여심을 단박에 사로잡을 것인가, 말 것인가? 과연 그럴 수 있는가, 없는가? 내 감히 추측하건대 그거 아니겠어요? 사람을 흐흠... 보아 허니 여자를 별로 안 좋아하는구먼. 무슨 여자 보기를 돌맹이 보듯 해, 숙녀 보기를 닭이 소 보듯 한다고! 에이~ 그럼 못 써. 남자가 여자를 어? 소가 닭 보듯 하면 쓰나, 에이~ 이 사람아. 안돼 안돼! (소곤소곤 혼잣말...... 뭐야 이 인간. 젊음의 노트랄지 첫 번째 남자 두 번째 남자 세 번째 남자 네 번째 남자 결정적인 다섯 번째는, 뭐 그런 가사를 좋아할 텐데... 농구의 득점과 어시스트, 야구의 홈런과 도루 50 50, 배구 머머 아이스하키도 머 있을 테고. 하지만 아무리 봐도 그꽈는 아닌데. 얜 분명 뻔트의 신이란 말야. 얜 분명 인생이 뻔트야. 그런데 어떻게 뻔트로 그 모두가 가능했지? 완전 불가해한 일이구먼. 그럼 뭐야 이거, 센츄리 클럽도 아니고... 저런! 설마, 조제프 크리스티앙? 이런 젠장 순 난봉꾼이구만 그래!) 아무튼 당신 말처럼 지금은 바쁜 세상이죠 네 그럼요. 그러니까 다 알고 누구나 감동할 수 없는 예고편은 인기가 없어요. 때문에 잘 보이지가 않죠. 그리고 당신이 좋아하는 코메디 프로그램을 보는 이유는 단순히 재밌고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고급스런 농담을 애타게 찾고 기다리며 반기고 싶은 것 아니냐구요. 고품격이 아니란 사실이 여실히 증명되는 데서도 기쁨을 느끼지 않냐 이 말입니다. 요즘 친구들이 그걸 다 보고 있을 시간이 어딨습니까? 드물게 약속 없는 친구는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분들도 주로 바쁘답니다. 속속들이 들여다 보면 할 일 없고 뭘 해도 재미없긴 하겠지만, 알고 보면 나름대로 꽤 바뻐요. 바로 그래서 그분들은 짤을 봅니다. 네, 그거요. YouTUBE랄지 소셜 네트워크 말입니다. 라디오 다음에 TV 다음에 인터넷 세상 아닙니까. 내 손아귀 안에 핸드폰이 있고 인터넷이 있는데 이 세상을 다 가진 기분 아니겠어요? 아니겠죠 말이 그렇다는 겁니다. 아아~ 내가 요즘 세상에 태어났으면, 아니 저쪽에서만 태어났어도 이 세상 모든 여자들을 다 따... 아니 그러니까 내 말은 문명의 혜택 그 절실한 도움이 있었다면 난 분명 좀 더 자상하고 인자하며 숙녀에게 친절한 남자가 됐을 거라 그 말입니다. 어쨌든 더 이상 동화를 읽고 놀이터에서 놀며 장난감에서 졸업하지 못한 어린이랄지 청소년님께 명작을 한번 선물해 보세요. 선생 어릴 때처럼 몇몇은 분명 처음부터 읽지 않고 제일 뒤부터 읽는다니까요. 잘 아시지 않습니까? 당신이 영악하고 꼭 슬기롭지 않다 그 말이 아닙니다. 그처럼 당신께서 타고난 안목과 좋아하는 취향과 하고 싶고 즐기면서 살고 싶은 취미는 오만가지 감정을 공감하는 만인들과 교집합이야 있겠지만, 이 세상의 흐름과 당신의 기호, 성미, 구미는 그다지 일치하지 않는 것 같단 말이오. 안 그렇수? 결론은 꿩 대신 닭이라고 내가 쓴 책 '여심과 여복'을 사시구료. 아주 적극 권하는 바이오. 안 비싸. 싸요 싸. 완전 저렴해. 가격 대비 효과 만점. 얼마 되지도 안구만 기겁을 하고 있어. 이 양반 이거 이거, 아니 그게 아니라, 차라리 운수를 한번 보는 건 어떻소? 내가 또 사람의 운명은 기본이고 재물운과 연애운이 기가 막혀. 캬 말도 말어. 아 그게 내 전문 아니요. 아 말도 말어. 듣고 나면 기가 막히는 걸로는 모자라고 얼굴이 점점 귀가 차차 내쪽으로 다가온다니까. 이렇게 슬슬 차츰차츰. 그런데 남자면 곤란하고 여자면 아 됐고. 뭐야 못 믿는 거야? 진짜야 이 친구야. 내 운명론을 듣고 내가 봐 주는 운수를 듣고 감탄하지 않았던 사람은 지금까지 단 한 명도 없다면 거짓말이겠지. 그래도 솔직히 말하자면 딱 한 손으로 꼽을 정도요. 진짜! 참말이랑께 그러네. 아따 거 사람이 속고만 살았나? 형씨. 어쩔 거요? 볼라요 말라요?」
현대는 다중 업무의 시대이자 다재다능함이 선이고 부러움이며 인기를 뜻한다. 곧 유행가 시장은 가왕이 노래 부르던 아마데우스 시절이 아니라 복제되고, 소비되며, 들려지는 시장이다. <노래한다>에서 <들려진다>로 넘어가버린 것만 같다. 머머 같다가 아니라 완벽하게 넘어갔다. 어쩜 똑같은 예술인데 능동에서 피동으로 바꼈고, 1차 행위에서 다중 업무로 변한 것이다. 음악만 그런 게 아니다. 다른 예술도 형편은 비슷하다. 그림만 그려서, 글만 써서 먹고 살 수 있는 예술가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스포츠도 똑같다. 극소수의 극소수가 아니면 새롭게 제2의 인생을 살 수 밖에 없다. 모델을 구할 돈이 없어서 자화상만 그린다면 모를까, 이제는 자화상을 사진으로 찍고 게다가 그림도 기계가 대신 그려준다. 찰칵 하면 뚝딱! 장비발은 기본이고 전문가 10명 100명이 모여서 오손도손 협업하여 1개의 예술 작품을 만드는 식이다.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소비재와 태반의 예술이 닯지 않았다고 그 누가 자신있게 부인할 수 있으랴. 못한다. 심지어 그렇게 만든 작품의 수명은 평균으로 따져 탄생과 함께 소멸이다. 세태가 그렇다. 다른 건 다 몰라도 멀티-태스킹이 아니기를 간절히 바라는 게 뭔가, 바로 사랑이다. 그런데 유일한 사랑을 그리는데 멀티-태스킹을 전제로 작품이 만들어진다? 완벽한 운명이다. 예술과 상업의 양다리? 공생 관계! 유행가 역시 제1전성기는 지나가버렸을까? 오페라 같은 유행가가 있지 왜 없겠나. 허나 듣기가 어려운 건 록콘서트와 뮤지컬과 밀애 같은 유행가에 전부 묻혀버리기 때문이다. 편지를 보내고 그리워하며 기다리고 안부를 궁금해 하며 마음 조리는 사랑, 누가 지금 그렇게 사랑하나. 도망갈 것만 같아서든 어쩌든 핸드폰 없이 지금 시대에 사랑을 어떻게 하나. 지금은 사랑이 넘치는 세상이다. 일단 뻔트로 시작해서 사랑이 현재-진행형일지언정 대타 1군 2군 3부리그등 대기자 명단은 차고 넘치며 쉽고 흔하다. 데이트 어플리케이션과 나이트클럽과 유흥가 불빛들 하며 사랑은 낙원의 축복이기도 하지만, 동물의 세계에 나오는 먹고 먹히는, 속고 속이는 게임이 아닌가 의아해진다. 몇몇 허당들이 주장하기도 한다. 사랑은 게임 같은 거라고. 무엇보다 사랑의 종료 시점이 다를 수 밖에 없다는 점, 뒷모습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기 때문에 처음과 중간도 주고 받는 그 무언가 최소한 마음의 견줌을 생각하게만 된다. 사랑이라면서 헤어질 때 그동안 공들였던 뭔가와 선사한 선물들을 돌려 받고 싶지 않다, 지나쳤던 내 노력을 어떻게 달리 보상 받고 싶지 않다, 적어도 난 지금 헤어져서 아주 속 시원하다, 라면 거짓에 가까울 것이다. 즉 그에 알맞는 상황이었을 때 말이다. 상업적 성공을 위한 예술은 호사와 사치와 경제적 행복이 아니면 존속되기 힘든 사랑과 아마도 똑같다. 어쩌면 거의 비슷할 것이다. 직업, 능력, 외모, 형편과 조건을 따지지 않고 사람 하나만 사랑하기 때문에 그 사랑에 나는 내 인생을 건다, 그렇게 사는 사람이 그처럼 사랑하는 현대인이 과연 몇이나 될까? 사랑 받지 못해도 괜찮다 나는 사랑했으니 그걸로 나는 행복하도다? 아름다운 사랑이 다 뭔가, 더티 러브! 주변에서 볼 수 있을 정도로 드물지 않은 것처럼 사랑의 대상이 싫다 해도 넘어올 때까지 매달리고 내가 만족하면 그만인데. 여자도 똑같다. 나만 이쁘면 그만이니까. 대체 왜 잡은 물고기한테는 밥을 주지 않는 걸까, 혹시 그 이유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 있나요? 그 까닭을 잘 아시나요? 왜냐하면 서로 사랑하는 동등한 애인이 아니라 <나만 봐!>라는 조명을 사랑으로 착각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사랑? 자기애의 방식이 거울에서 조명으로 바뀐 거 말고 대체 뭐가 있나, 그게 다다! 물론 치우친 얘기이자 지나친 비약임에 합당한 논박도 투정은 물론 악담마저 감수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왜 그런가 라며 내뱉기 전부터 그 어떤 비난일지도 모를 그 모두를 미리 상정한 채 꺼낸 말이니 그게 무엇이 됐든 완연히 인정한다는 말이다. 그렇긴 하나, 나에 대한 그래프를 숙녀여! 그려 보고 싶지 않나요? X축 왼쪽 거울 오른쪽 조명, Y축 아래 허영심 0 위 허영심 100, Z축 기대했던 사랑의 만족도 그 예감 어린 동경심 대 냉혹한 현실! 나 꽃이야? 해변의 모래처럼 흔한 게 꽃이고 사랑이다. 그렇다면 귀한 꽃이 되고 드문 사랑 한번 해 봐야 하지 않을까? 사랑이라도 예술처럼 다 같은 사랑이 아니다. 최고의 인문학자라면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사랑을 노래하는 유행가 가사라면 모를까 그저 흔히 썸만 얘기하는 가사를 굳이 기억하며, 일부러 외우고, 의미를 찾을 필요가 있을까 라고. 그분들 하시는 말씀은 그거다. 상업성 포기하고 예술을 해라 내 그럼 인정해 줄께! 그렇다고 장난 같은 말에 우는 애 젖 주듯 귀 기울일 만큼 사람들은 한가하지도 않고 관심도 없다. 애초에 예술가가 아니라 연예인과 전문가를 지망했을 뿐 일방적으로 그분들만의 잘못도 아니다. 처음부터 상업성으로 최고가 되고자 하는데, 과거와 지금의 꿈이 그랬고 현재와 미래의 목적도 그러한데, 그런데 그 가운데 예술성이 고고한 사례가 과연 몇이나 될까. 너그롭게 속 보이느니 차라리 침묵하는 편이 낫겠다. 위 내용에서 개인적이고 못나고 편협한 느낌과 기분 외에 사실이 아니라거나 크게 반박 받아야 할 허접한 논조, 있다면 크게 반성함이 마땅하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썩 그런 것 같지는 않다. 건방진 태도로 보일까 봐서 칼럼으로 공개하지는 못하겠다. 그러니 머릿속이 복잡에서 일기에만 쓴다. 털어내지 않으면 꺼림직하니까. 전에는 몰랐다. 생각이 멈추지 않기 때문에 TV를 켜논 채 잠들지 않으면 도저히 밤에 잠을 잘 수 없다는 누군가의 얘기를. 예전엔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다 어떤 천재는 결혼해서 과제가 생긴 거지. 아내는 완벽한 암흑 속에서 꿈나라로 떠나니까 나랑 완전 반대네, 장난이 아닌 일이다. 괴로움의 연속에서 해답을 찾는다. 이어폰으로 헤비메탈이든 뭐든 들으면서 자자고! 그런데 이혼했다. 누구라고 밝힐 수는 없다. 그래도 사실은 사실이니까. 그처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을 털어내고 나니 뭔가 홀가분해서 기분이 살짝 좋은 듯 아닌 듯 하다. 아니면 거리에 나가 발가벗고 광인처럼 춤이라도 춰야 할까? 그것의 반응도 주인공이 남자냐 여자냐에 따라 명확히 갈린다. 말이 그렇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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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일기를 쓸까 하다가 일기를 잘 써도 못 써도 품위는 높아질지어정, 물론 낮아질 수도 있고, 품위 유지비는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미스테리아에 연애 칼럼을 기고했다. 판매 촉진을 위해서였을까? 환상문학에 지친 독자를 달래기 위해서였을까! 칼럼니스트의 딱한 사정을 감안해서 여성잡지1과 2에서 받아주지 않기 때문인지도. 전문을 옮기자면 이와 같음. 제목: 연애 궁합. 내용: 분석적인 사랑은 생각보다 쉬울 수 있다. 의외로 사랑의 결합도는 쉽게 예측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볼까? 남자 찐하다 싱겁다, 여자 화려하다 여성스럽다, 남녀 결합 4가지 구분. 사람이 직렬식인가 병렬식인가, 남녀 결합 4가지 구분. 일평생 꽃 들고 쫓아다니고 기다리는 부류인가 아닌가, 뒷모습이 의심스러운가 아닌가 개인 4구분. 그 사람을 알 수 있는 근거가 충분한가, 아닌가 개인 2구분. 구분은 계속 있다. 그녀는 일평생 꽃 들고 쫓아다니고 기다리기는 의전식 사랑을 선천적으로 애호하는 부류인가, 아닌가 개인 2구분. 남자는 꽃 들고 따라다니는 게 습관인가, 아닌가 개인 2구분. 꽃다발을 선물한다 그건 낭만이다. 그런데 낭만을 안 좋은 쪽으로 역이용하는 사례, 마음에 걸린다. 짚고 넘어가자. 기다리고 쫓아다니는 것이 스토킹 수준의 중증인가에 대한 판단은 연애 전에 선행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구애와 구걸이 다르듯이, 아름다운 사랑을 위한 구애와 사람이 아닌 물건과 돈 또는 타인에게 보여주는 허세와 꽃으로만 보이려는 허영심이 목적인 구애는 엄정히 구분되어야 마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진단이 과연 쉬울까? 어떤 바보가 제 무덤 파겠나. 만나기 전부터 잡은 물로기한테는 밥을 주지 않을 거라고 미리 선포할 리는 없다. 그럴 리는 만무하다. 날 좋아하도록 내게 넘어오도록 만들기도 전부터 내가 진짜 원하는 건 무엇이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 하인-조수-머슴-보디가드-낭군님등 꼬부랑 할아버지 아니 다음 세상에서까지 나보고 그대의 전속 1인 다역 노예가 되라고? 난 못해, 내게 넘어온 다음에 어떻게 되나 두고 보면 알 거야. 라~고 미리부터 말하는 바보는 없다. 이 세상에 그런 바보가 어디 있겠나! 꽃 들고 기다리며 쫓아다니는 단순 무식한 방법의 사랑인가, 그게 아니라 숙녀가 먼저 끌릴 수 밖에 없는 사랑인가. 남자쪽에서 무작정 쫓아다니고 따라다니며 매달리는 구애에 여자가 넘어갔을 때 경우의 수는 네 가지. (단, 선천적으로 꽃 들고 어디든 따라가고 기다리는 의전식 사랑만을 좋아하는 영심이의 사랑은 0.5. 별 볼 일 없는 0.5는 논외)
- 기대하던 사랑이 전혀 아니기 때문에 몸과 마음을 주지 않음. 곧 답보에 유예. 대체로 남자가 차임. 콧대 높은 첫사랑이 늦을 경우 처음인데 찐한 사랑을? 거의 힘듬. 또는 전혀 못함. 여자는 사귀더라도 남자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여간해서는 열정적으로 사랑할 수 없다. 왜냐하면 1인 다역에서 이제 겨우 임시로 보디가드 역할만 맡는 것이기 때문. 어떤 그래프가 그렇기 때문.
- 기대와 다른 사랑이지만 첫사랑이라서 또 오래 사겨버렸기 때문에 몸과 마음을 많이, 전부, 열렬히 다 준 경우. 그 후 이별한다면 모를까 아니라면 결혼 해서 애 낳고 잘 살아야 함. 즉 체념과 달관. (내 친구 부인. 우리들은 남녀 모두 함께 시트콤 멤버였음) 언제까지라도 행복하면 좋은데, 나중 만약 이혼하면 고달픔. 미혼녀도 기혼녀도 아닌 어느 날 덜컥 이혼녀? 저임금 아르바이트를 하던가 품위를 위해 품위를 버리는 단란한 고임금 조력자가 되던가. 다시 말해 0.5라는 의전식 사랑만 선천적으로 선호하는 여자라면 모를까 그게 아니라면 나중 장기적으로 봤을 때 희망적이기가 꽤 힘듬. 인생 꼬일 여지 충분. 물론 행복도 가능.
- 요게 가관임. 이게 괴상함. 1은 이렇다. 잡을 듯 잡을 듯 넘어올 듯 넘어올 듯, 엄연히 사귀고 있음에도 아슬아슬 조마조마 나풀나풀 잡히지 않는 나비 같은 사랑, 꺽이지 않는 철옹성 같은 꽃이자 따먹을 수 없는 탐스런 과일이 1이다. 어떻게 보자면 차라리 1이 나을 수도 있다. 새장 속의 새를 키워서 나중을 기약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3은 3달 내내 쫓아다녀서 사겼는데 소득이 없는 것도 아니고 있는 것도 아니다. 애매하다. 그래서 더 미칠 노릇. 왜냐하면 3의 여자는 지난 사랑을 잊지 못하기 때문. 그래서 완벽한 심신 분리가 발생함. 마음은 옛 남자, 몸은 현재의 야수에게! 으흐흐흐흐! 실수도 아님. 잠시도 아님. 멀티태스킹임. 한 번 두 번 세 번, 으흐흐흐흐! 야수는 단짝 친구를 데리고 옛 남자를 만나러 간다. 그렇게 만났다. 2 대 1로. 그런데 만나면 뭐 하나? 결정권자는 여자인데 남자끼리 뭐 다정하게 할 말이 있다고. 그냥 몇 마디 하다 끝남. 여자의 마음은 요지부동인데 뭘 어떻게 하겠나. 그 뒤로 끝은 흐지부지. 성과가 없는 것도 아니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런 결과 남남이 된다. 마음 고생 시간 낭비 기분 꽝. 나중 결국 천상의 배필은 촌년으로 귀결. 아 그거 진짜 허허, 나 원 참 증말 이거 원 세상에나!
- 열심히 만방으로 뛰었으나 무소득. 얼굴 팔리고 경찰서에 잡혀가며 소문 나고 평판 안좋아지고 나쁜 건 다 내 것인데, 그런데 무소득.
결과(전적, 성과, 장르, 사랑) - 무승부 ─ 하이틴 드라마 ─ 여성잡지1 ─ 짝사랑&풋사랑.
- 은퇴 ─ 가족 드라마 ─ 여성잡지2 ─ 의리.
- 석패 ─ 성인&멜로&에로 ─ 연애 칼럼 ─ 봄바람&불륜(!)
- 참패 ─ 없음 ─ 예선 탈락 ─ 짝사랑.
원래 꽃다발이라 하면 화사함과 기쁨과 즐거움, 축복과 행운과 애정등 긍정적인 의미가 대부분인데 꼭 어디서나 물을 흐리는 못된 올챙이가 문제다. 그래서 꽃다운 숙녀는 야수를 만나고 청초한 꽃은 영 거시기한 꽃병과 한 짝이 되는 일, 아예 없지는 않다. (단, 그 둘이 사랑이고 여자가 유혹했고 원했으며 나중 행복한 경우는 제외!) 그렇지만 시작이 비참할 만큼 불미스러웠을지언정 중간이 그런대로 무난했다면 그녀가 나중 만나게 될 진짜 사랑인 낭군님께 별다른 오점에 해당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밝고 깔끔하고 산뜻하게 이별하지 못하고, 뒷모습은 시작과 똑같이 또 쫓아다니고 또 기다리며 또 매달리는 롱테일도 있다. 시작뿐만 아니라 끝낼 때도 두고 두고 꽃만 애용하며 내내 꽃만, 조화롭지 못한 꽃과 꽃병의 주변인들을 끈질기도록 못살게 구는 사랑도 있을 수 있다. 아름다운 사랑이 있다면 더러운 사랑도 있는 법이니까. 인생이 진상이구만. 도대체 몇 사람 인생을 진흙탕 만드시는지. 주위에서 기대했던 아름다운 만남은 깨져버린 채 그 막장을 보고, 듣고, 알게 되는 사람은 또 어떻고! 오오 그건 진정한 더티 러브다. 아니 사랑이 아니라 집착에 범죄에 혐오다. 주변의 경악, 가까운 사람들의 대-실망, 좋아하는 친구들의 초특급 절망, 당사자의 쓰라림은 물론 조화롭지 못한 소란으로도 모자라 마지막까지 처절한 민폐라니. 하긴 남자가 죽었다 살아나도 이해할 수 없는 천동설이기에 그렇겠지만. 속고 속이는 사람 모두 수치심을 포기한다는 건 곧 인간 존엄성의 말소일 수도 있거늘. 사랑의 슬픔도 사랑의 기쁨도 잊지 않기. 무엇보다 처음이, 불륜도 처음만 어려울 뿐이란 사실을. 사랑의 시작은 천생연분이 아니라면 어쩜 별다른 스침 오다가다 만난 인연에 대한 기억이 전부일 수도 있다. 그래서 현재주의란 좀처럼 쉽지 않은 것. 어려워서 더 가치 있다는 점. 나의 현재는 미래의 누군가에게 웃음일 수도, 감동일 수도, 아픔일 수도 있다는 것. 우리는 사랑 앞에선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7살 꼬마일 뿐이다. 참새 짹짹 병아리 삐악삐악. 그래서 노년의 사랑이 더 애틋할 수도, 더 열정적일지도 모른다. 사랑은 사람을 성숙한 화신으로도 만들었다가 응애응애 스무 살 청춘으로 만들 수도 있으니 참으로 신기하기만 하다. 물론 그 사랑의 주인공이 나였을 때 말이다. 그래도 삼각형이 있으면 역삼각형도 있듯이 오히려 당신의 현재주의는 어떻게 보면 참 다행일 수도 있을 것이다. 생애 내내 극장과 백화점 구경이 전부였다니, 인생이 아카펠라 모범생이군. 어떻게 참았지? 수녀야 뭐야! 운명을 예감했던 성녀? 수녀 맞네! 뭐야 그럼 중증 짝사랑만 100번? 맙소사! 하긴 뭐 나도 지금껏 여자와 한번도 사겨보지 못했고, 거짓말도 한번 못해봤으며, 술은 뭐 마셔는 봤지만 취한 적이 한번도 없었으니까 다 이해함. 포근히 그 모두 최고의 사랑을 위한 인생이니까.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대체 어떻게 참았지? 설마......! 진짜 사랑 1번을 위해서 뭇남성들의 무수한 찝적과 껄덕과 애걸복걸에다 환장함은 물론이요 짝사랑 100번이 필요했던 걸까? 그러니까 대체 어떻게 참았냐고! 혹시...? 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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