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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소설 2018. 1. 20.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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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기 1월 19일.
   안나 카레니나를 다시 읽을 것인가, 작사가 1위가 쓴 작사법 수필을 읽을 것인가. 한 개인의 답은 이렇다. 내 일을 위해서는 전자, 내 직업을 위해서도 후자. 다시 말하자면 전자는 나중 다시 정독하겠다는 뜻이고, 후자는 정독이 아니라 가볍게 읽겠다는 뜻이다. 사람들 의견은 각자 다 다르겠으나, 내 경우에는 직업이 설령 다를지라도 답변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안나 카레니나는 예술이고 작사법 수필은 뭐 합리주의라도 된단 말인가? 후자도 응당 위대한 예술가의 작품이니까 꼼꼼히 읽어 봐야 할 것 아닌가? 맞는 말이다. 그렇다. 맞다. 그런데 맞는 말임에도 불구하고 그럴 수가 없다 라는 점. 왜 그런가를 생각해 봤다. 어렴풋이 그런 느낌이다 그냥 기분이 그렇다, 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 봤다.
   첫째, 순위에 오르내리는 유행가의 노랫말들이 지극히 현대적이다. 다시 말해 문학적이지 않고 일상적이다. 인터넷 메신저 친구, 동호회 만남, 2년째 사귀는 사랑도 있고, 우정도 분류별로 다양하며, 약속도 많고 파티도 모임도 바쁘고, 천상 인기 많은 사람 입장에서,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공통된 경험, 지극히 통계에 준하는 평상시 생활을 간추려 가사로 옮겨 썼다, 요점은 그거다. 곧 음악화 된다면 모를까 활자화 된다면 읽어야 할 가치는 뚝 떨어진다. 그 예술성이 저급하다 라는 말이 아니라 현대적인 대중 예술의 특징은 최소한 옛날 작품보다는 휘발성이 강하다고 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지금은 가사를 음미하고 외워서 부르는 시대가 아니라 듣는 동시에 다른 일을 하며, 그처럼 들어야 할 노래는 차고 넘치며, 듣고 외우는 게 아니라 듣고 잊어야 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그 무수한 노래를 모두 듣고 기억해야 한다면, 아 그건 그래서는 안된다. 끔찍해지니까.
   둘째, 글이 아니라 말에 가깝다. 말은 들어야 하는 것이지 읽어야 하는 매체가 아니다. 좋아하는 배우의 인터뷰를 제일 보고 듣기 좋은 방법은 TV 연예 프로그램을 통해서 보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영화배우의 인터뷰를 잡지에서 글로 읽는다? 그거 절대 쉽지 않다. 물론 여성잡지2를 폄하하는 의도가 아니라 사람에 따라 인지 체계의 한계가 있으니까 하는 말이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의견이 그렇다는 것이고, 듣는 예술도 무언극도 있지만 뭐랄까, 노래를 외워서 부르던 시절의 가사보다 한마디로 유치하다. 사람들 앞에서 내가 생음악으로 노래를 부르고, 사람들 앞에서 타인이 생음악으로 노래를 부르는 일. 그 노래가 진짜 유행가다. 시트콤 멤버 친구들끼리 어울리던 시절, 술 한잔 들어가니 그녀가 생음악으로 부른 노래. 그게 진짜 유행가다. 그게 아니면 시시하다. 그렇게 부를 수 있는 노래가 당신께서는 몇이나 되나? 그렇게 내가 생음악으로 남 앞에서 노래를 불렀던 기억은 얼마나 되나? 만나서 차 마시는 그저 그런 흔한 사랑만 묘사한 세태 풍자의 느낌도 없지 않고. 인생을 통틀어 단 몇 번의 사랑에 대해서 설명하는 사랑이 아니라 훨씬 넓은 범주의 사랑을 고도의 기교로 압축하고 다듬은 가사가 거의 전부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대부분 사랑을 말하는 게 아니라 썸을 노래하고 있다. 음률도 형식도 가사도 모두 사랑을 지향하지만 들리는 예술은 모두 지극히 식상하고 진부하며 천편일률적이다. 운수의 통계를 들으러 우리는 복돈을 들고서 점쟁이를 만나러 간다. 그처럼 들리면 듣고, 애써 찾아 듣고 즐기며, 특별히 좋아하는 사람끼리 얘기하고, 분위기와 기분과 놀이를 위해서 즐기는 것이지 지금 유행가 가사를 위대한 예술이라고 부르기에는 퍽 어색하다. 만약 그렇다면 점쟁이는 마술사, 펀드매니저는 숫자의 예술가, 많이들 책도 쓰고 광고도 찍고 다방면으로 활동하니 레오나르도 다빈치 아닌 사람이 없겠다. 최신 유행가, 듣기에는 달콤하다. 하지만 듣기에만 달콤하다. 당사자들이야 현재의 사랑이겠지만 아저씨들이 봤을 때는 풋풋한 호감 순수한 애정이고, 노름꾼들이 보자면 시시한 애모, 난봉꾼이 봤을 때는 유치한 애들 장난에 불과한 얘기다. 자기야 언제부터 나한테 뽀뽀하고 싶었어? (그녀가 원하는 답 모범적인 찬사는 따로 있을 테니 그건 각자 생각하고, 그외의 답변을 상상해 보자) 나 이제 너랑 뽀뽀하기 싫어! 오빠 나 왜 사랑해? (사랑한다는 사실을 전제로 묻는 질문에 상응하는 화답을 해야겠지만 어쩌면 솔직한 대답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으니, 예를 들면) 나 너 사랑 안 해! 전문가는 몰라도 일반인이 다시 학교로 돌아가서 기승전결과 환유법을 공부하고, 년도와 공식을 외우며, 도표에 대해서 다시 논하고 싶을까? 글쎄요! 전형적인 남녀의 만남에 대한 수다 또는 그냥 베스트셀러 느낌이다. 한마디로 순수 예술이 아니라 대중 예술이다. 그래서 정독은 어렵다 라는 뜻. 그걸 질투심이라고 부르겠다면 그래, 질투심이라 하자. 왜 안되겠나. 그 가사들이 문학적이었다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시간 할애해서 찾고 연구하고 음미하며 달려들어서 감상했겠지, 왜 안 그랬겠나!
   셋째, 무엇보다 사랑은 유치하며 시시하다는 정체가 탄로날 것 같아서, 그래서 정독하기 싫었다. 내 가식적인 속마음을 다 들켜버린 것만 같아서. 다 엇비슷하고 똑같은 사람들 생각을 시시콜콜하게 정리하는 법은 알고 싶지 않다고나 할까. 뭐 유명인만 자존심 있나? 유명인만 위대한 예술가란 법 있냐고.
   넷째, 상업적인 전문성에 대해서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은 읽어야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글쎄. 남자들의 말이 들리지 않나요? 내가 이걸 왜 읽어야 하는데! 동요와 동시와 동화를 적지 않게 건너 뛰는 시대에 유행가? 중2가 주로 듣지 않을까! 공부하느라 바뻐서 못 들을 수도 있겠군. 그래도 유행이 도는 순서는 변함 없다. 10대들이 듣고 질리면 잊은 다음, 20대와 30대에서 약간의 차이로 인기를 얻고, 다들 뉴페이스 얘기 하고 있는데 뒤늦게 40대에서 들썩들썩. 대중 예술에서 자본 빼면 뭐가 남을까? 아마도 대중 예술에서 자본 빼면 대중만 남는다. 예술이라는 분야 그 타이틀이 애매해지는 거다. 마술을 부리는 건 황금이다. 마술을 배우는 학교도, 요술사가 되려는 소망도 알고 보면 사랑의 다이아몬드를 살 수 있는 황금이 그 비밀이다. 가난하고 인정 받지도 못하는 순수 예술, 지금 세상 더 이상 고결하지도 않고 알아주지도 않는다. 대세는 옛날부터 대중 예술이었으니까. 황금으로 그 모든 명예와 인기와 환희가 가능하니까. 여보시오, 운 좋게 모든 것을 다 가졌으면서도 대중 예술가는 순수의 영역에 눈독들이는 건 아닌지 퍽 의아한 심정 금치 못하겠소. 라~고 까지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다섯째, 소비되는 매체 성격이야 물론 예술이지만 어디까지나 멀티태스킹을 위해서 탄생한 예술이기 때문에 그 부분만 또렷이 들여다 보기가 뭔가 어색하다. 듣고 잊어야 할 가사지 30년 40년 후에 회상할 가사가 전혀 아니다. 물론 현재의 애청자는 나중 그럴 수 있겠지만. 옛날 유행가와 단순 비교를 하자면 결과를 솔직히 말하기엔 너무 부담스럽다. 현재 베스트셀러에 오르내리는 소설을 왜 읽어야 하지? 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생각은 그거다. 그건 영화로 보면 되지 글로 읽을 필요가 전혀 없다 라는 것. 웬만한 수필에 나오는 내용은 전부 TV와 라디오와 인터넷에도 있는 내용이거든. 하나도 빠짐없이. 더군다나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 그러면 '누구 뭐를 들고 돌아오다'같은 립서비스 광고 일색의 책보다는 푸시킨과 보들레르와 첫 1~2페이만으로 내 마음을 쥐락펴락 사람을 들었다 놨다 했던 추리소설을 다시 읽는 편이 낫다. 개인적으로 그게 훨씬 멋지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는 점, 쉽게 간과할 수 없다. 지금 유행하는 3분의 마법 그 유행가는 듣고 감상하기에도 좋긴 하지만 그보다는 시각적으로 보아야 할, 내가 봤을 때 그건 눈으로 봐야 할 음악이다. 분명히 미래에 많이 나뉠 것이다. 나는 10대 중반까지 들은 노랫말은 뜻 깊게 회상하지만, 스무 살 이후로 들었던 건 그다지. 다 그렇다는 게 아니라 비율이. 예를 들어 그처럼. 한마디로 전혀 애절하지가 않은 가사를 어떻게 썼는가 그걸 굳이 세세히 알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가사는 시가 아니다. 그렇다고 가사가 시시콜콜한 수다도 아니다. 그래서 기억에 남는 가사는 시적인 가사, 멋진 명대사 같은 가사다. 그게 아니면 들리는 건 멜로디가 전부다. 가사는 그냥 조연인 거다. 그게 아니라면! 달면 뱉고 쓰면 삼키는 게 인간의 본성이거늘 최신 유행가 가사 그게 뭐냐, 라는 못마땅한 연설이 그분들 마음에 흠집을 남길 듯 하여 한마디 덧붙이는 게 좋겠다. 인기든 작품성이든 돈이든 조명과 유행과 거울까지 내가 다 독점하는데 그게 대체 뭔 말이냐는 불만, 옳고 마땅하며 정당하다. 따라서 그와 같은 불만이 가장 큰 사람이 누굴까를 헤아려 본다. 누굴까, 대관절 그분은 누구실까? 그분은 아마도 신세기로 넘어와서 또는 비교적 근래 들어서 손꼽히는 작사가일 것이다. 당연하지. 그럴 수 밖에. 그럼 그분들께서 아무 말 못하시도록 반박의 논지를 풀어보자. 아주 쉬운 설명 딱 하나면 립스틱은 바로 수트의 커프스단추요 운동복의 지퍼가 될 수 밖에 없을 테니까. 그 옛날 내 귀에 쏙쏙 들어왔던 유행가 가사들이 대체 왜 지금은 내 귀를 스스로 알아서 슝슝 피해가버리는지 가장 쉽게 이해하는 방법은 그거다. 당시와 지금 그 양대 산맥에서 최고든 최고가 아니든 그런대로 술렁술렁 은근슬쩍 명맥을 유지해 오신 분들의 유행가 가사, 바로 그걸 들어보면 된다. 자, 들어봤다고 가정하자. 그럽시다 까짓껏! 그게 무슨 흉이라고 아, 대수라고. 그랬더니 아 글쎄 결과는? 흐흠... 에잉~ 그럴 수 밖에 없었구먼. 옛날 유행가 가사는 8할이 내 귀에 쏙쏙 들어왔는데 지금은 2할이 다 뭐야 나 바뻐서, 아니 내가 부지런해도 소비하느라 바쁘니 아예 들리지 않고, 너무 많은 세상의 비밀을 알아버렸기 때문에 도통 음미되지 않으니 그게 대체 뭐냐고. 아니 그렇수? 모르는 게 약이요 알면 병일 수도 있는데, 그 반대도 있을 수 있다. 그처럼 피해 가야 좋을 게 있고, 찾아와야 좋을 게 있다. 가령 전자는 불운이고 후자는 행운이다. 이를 테면 전자가 유행가 가사이지 않았으면 하는 심정은 흔쾌히 합리적이고, 후자는 그렇지 (딱) 이제야 선생과 내가 궁짝이 딱딱 맞아들어가는구만. 그거라고. 아 그러라니까. 그거야! 그러니까 늬가 안되는 거야, 라~고 할려다가 이제 마침내 뭘 좀 아는 허당이 되셨구만. 축하드리오 허허허 짝짝짝! 제발로 찾아와야 좋은 게 뭐겠소, NC 신비에 가든 '여자 바텐더 없습니다. 남자 바텐더입니다' 라는 소개문을 자랑스럽게 척 하니 붙여놓은 낭만-바가 구비된 대형 호프집 더블린에 가면 알현할 수 있는 바로 그분 아니겠소? 우락부락 무섭게 생기고, 거포니 미치광이 무결점 스트라이커다 뭐다, 그 무슨 뭔 애들 장난이냔 말이오. 그러니까 그건 바로 남아들의 거친 마음을 덜덜 떨리도록 살살 녹여주며 꽃바람에 아가씨의 치마는 샤방샤방 늑대는 하트 뿅뿅 그래서 우리들의 엉덩이가 들썩들썩하도록 만드시는, (딱) 상남자들의 기대주 허당들의 호프 기적적인 초대형 뻔트, 거룩한 이름 하여, 호-박!
   여섯째, 후자가 재밌을려면 날이면 날마다 대중 예술만 끼고 살아야 할 것 같아서. TV 드라마로 시작해서 클럽도 자주 가고 기타 등등. 그처럼 상업성에 적극적으로 호응하면 내가 할 일을 못하고, 나의 할 말은 타인을 닮아갈 것이며, 내가 쓰는 글은 그 고유한 빛을 잃을 것이다. 나는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남과 똑같이 생각하고 비슷하게 행동하며 살아갈 것이다. 나는, 절대로, 그러기, 싫다. 따라서 나는 후자를 꼼꼼하게 정독할 수 없었고, 솔직히 말하자면 대충 훓어보고 책 덮었다. 미안하오. 그게 최선이었단 말이오.
   사랑 노래에서 말하는 사랑의 90퍼센트는 사랑이 아니다. 굳이 사랑의 정의를 글로 확정해야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쩌다 보니 그 일을 내가 하고 있다. 때문에 나는 사랑에 밀접히 관계 되는 일이라면 침묵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게다가 그 일을 즐기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러므로 나는 허당의 본질과 세상의 민낯과 사랑의 허영을 연구할 것이다. 그 모두가 최신 유행가를 듣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1800년대 아리아도 당시에는 유행가였겠지만, 지금 유행가는 들리니까 듣고 가사를 보고 부르며 즐기면서 지나가면 그만이다. 최신 유행가를 즐겨 듣는 사람들이 가사를 외워서 부를 수 있는 노래가 몇 곡이나 될까? 많지 않다. 왜냐하면 가사를 외워서 부를려고 하면 새로운 노래가 나와서 그 노래를 다 밀어내버리기 때문이다. 기억나고 외우며 낭송하고 내내 함께 하는 노래는 많지 않다. 게다가 쉬지 않고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새로운 노래는 나오고 또 나온다. 하도 사랑 사랑 하니까 사랑은 드문 게 아닌 것 같아서 영 기분이 그렇다.
   왜 애절하지 않은 듯이 느껴질까, 왜 남의 다리 긁는 느낌이지, 뭔가 개운하지 않아 하는 수 없이 좀 더 헐뜯어야겠다. 이걸 질투라고 부른다면 질투 좀 해야겠다. 마음 먹고. 작심 하고! 참을 수 없는 일이니까. 핑계 같지만 요즘 노래는 세련되어 보여서 가사가 안들린다. 똑같이 순진하더라도 추억의 유행가 가사는 사랑하는 사람의 속마음이 훤히 보였다면 지금 유행가는 마음이 가사와 다른 기술들로 우아하게 포장되어 있다. 그렇다. 맑은 바닷물 청아한 빗물이냐 칵테일과 우유냐 라는 뜻을 과장한 표현이다. 맞다. 포장지 뜯으면 다만 실망하지 않기를 바랄 수 밖에 없는 연애를 요즘 사람들이 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겉은 에르메스인데 속마저 그런지 통 알 수가 없는 식이다. 순위라는 게 어차피 1퍼센트의 백조를 위한 순위가 아닌 법. 야생마 대 경주마! 사랑의 모범과 연애의 정석에 엄숙하게 얽매여 있는 천리마. 혹시 1번마와 2번마의 이름이... 마권업자 얘기로 넘어가지 말고. 옛날 가사대로라면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 사랑을 타진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지금은 연애 경험이 많든 적든, 남녀가 만나 우리는 연애 공식대로 차근차근 정해진 길에서 벗어나지 말자고 속삭이는 격이다. 사랑과 세상과 인생을 잘 아시는 중년배들이 볼 때는 최신 유행가 가사에 대해서 손발이 오그라들어 두 손 두 발 다 들 수 밖에 없다. 대체 왜 그러냐고 말이라도 꺼낼려면 들을 말을 예상하긴 어렵지 않기 때문에 뭐라 할 수도 없다. 그냥 그러려니! 물론 사랑의 슬픔과 잦은 변화와 세상의 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왜 그런 거 있지 않나. 바람둥이가 생애 한두 번 만날까 말까 하는 그런 사랑. 그런 드문 사랑. 그런 고귀한 사랑. 그런 운명적인 사랑. 고상하고 품위 따지며 기계적인 기교로 가사가 급히 나오는데 너무 많이 바래서는 안될 것 같은 느낌. 샤우트 창법이든 바이브레이션이든 노래 부르기조차 기계가 다 해준다. 아마 그 지점에서 불만족스럽지 않나 그런 기분이다. 그래서 순위에 보면 아주 참신한 가사들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베스트셀러가 모두 하위평준화는 아니듯이. 유행가 가사가 화장품과 운동화와 과자와 광고와 홈쇼핑등 각종 브랜드처럼 생산되는데 소비재와 예술을 구분하기에는, 그런 일을 굳이 나서서 할 필욘 없다. 하지만, 음 다른 때는 아니지만 지금은 그 꽉 막힌 사람의 역할을,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맡아야겠다. 대체 왜? 점술가가 말하는 평이한 통계치만 가사로 나오니까 아마 그래서 그렇지 않을까? 점술가가 좌불안석 깜짝 놀라서 식은 땀 쭉나는 걸로도 부족하고 오줌을 지리는, 곧 내게 주어진 진귀함과 희귀함을 가사로 다뤄야 하지 않냔 말이다. 다루지 않아도 된다. 다루지 않아도 됨. 이랬다 저랬다가 아니라 충분히 다루고 있는데, 아마 묻힐(발릴?) 거라는 예측은 꼭 확인하지 않아도 되니까. 그럼 왜 그렇게 바꼈을까? 어쩌다 그렇게 생태계가 변해버렸을까? 왜냐하면 야생마가 마음껏 뛰노는 초원에서 경주마가 질주하는 경마장으로 환경이 뒤바꼈기 때문이다. 그 사이에 혁명과 격변과 혁신등 많은 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차이가 작은 차이는 아니니까.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어버렸을 거라고 조심스럽게 예측합니다. 물론 장단점 있다. 초원의 야생마와 경마장의 경주마를 비교하는 일은 이처럼 아마추어에겐 기쁨이고, 전문가에겐 월권일 수도 있으며, 아마도 업계에는 행복이 되었으면. 쳇! 통도 크다. 방자한 희망이든 소첩의 청이든 애첩의 애원이든, 뭐 어쨌든 제발 원리를 바로 알자는 뜻임. 왜냐하면 절대로 경주마 혼자 제멋대로 뛰는 게 아니니까요. 그래서는 안되니까요. 서로 특색이 다르다는 거지. 그래서 아는 체가 아니라는 점, 꼭 인정 받고 싶다. 강한 부정을 강한 긍정으로 설핏 오해하면 야수의 욕구만 충족시키는 더러운 사랑, 맹수의 배만 실컷 부르게 만드는 죽느냐 사느냐 라는 생존의 갈림길이 된다. 그렇다면 다음에는 다시 복고풍이 유행할 것인가? 그럴 리는 없다. 패션계에서 복고풍은 참고만 하는 거지 다시 옛날로 돌아가는 게 아니다. 악마가 남들이 입었던 옷을, 어제 마졸들에게 선보였던 옷을 입을 리가 있나. 악마는 새로움이 아니면 쳐다보지도 않는다. 안 그러면 악마가 아니다. 그건 <내가 최고>라는 슬로건에 적극 동의하는 사람들이 모인 악마 가면극 잔치일 뿐이다. 우아한 3박자 음악이 흐르는 가면무도회가 바로 그런 거다. 내일의 유행가 가사는 자동차 디자인의 시대적 변화를 떠올리면 된다. 다시 말해 앤디 워홀의 미술 공장이 일반화되었다면 다시 그 이전으로 돌아갈 일은 없을 것이란 예상, 하나도 어렵지 않다. 굳이 논리적으로 추론할 필요도 없다. 그러니까 대체 이 다음은 어떤 유행가 가사가 주류를 이룰 것인가? 그 질문은 방향이 잘못됐다. 내놓으라 하는 당대 최고의 업계 전문가들께서 흐흠 흐흠, 헛기침하시면서 뭔가 탐탁지 않은 듯 하실 테니까 말이다. 그분들이라고 할 말이 왜 없겠나. 훈수인지 감수인지, 조언이자 충고일 수도, 심지어 덕담일 수도 있는 그 뭔가를 상상해 보자. 상상은 무료니까. 게다가 긴 말도 아닐 것이다. 듣지 않아도 알겠다. 그래도 조금은 궁금하니까 살짝 엿들어 보자면 그건 아마 이렇지 않을까?
   「내가 보니 이 양반 연세 많이 자셨구만. 정말 오랫만에 동년배를 만나 반갑군 그래. 반올림 백 살! 뭐야, 나랑 친구잖아? 친구! 딱 보니 친구는 그거 좋아하구만. 애절한 서사, 절절한 사연, 유쾌한 줄거리, 신비한 간추림을. 고결함의 극치를 좋아하는 건 잘 알겠는데 요즘 친구들이 반기는 섬세함과 부드러움은 그런 게 아니야. 그런 게 아니라고. 그거 좋아하는 거 들키면 낙동강 오리알이 되는 수가 있어 이 양반아. 아 그래도 아직 일면식도 없는데 말이 좀 짧았구만. 미안허이. 다시 하오체로 돌아가면 되니까 늦은 때가 제일 빠른 거니까, 태도를 바꿔봄세 그려.
   당신께서 좋아하는 것을 봐 봅시다. 어느 추리소설 1페이지 단 몇 줄에 눈이 꺼뻑 뒤집어졌다는 것이 뭐겠습니까? 바로, 극적인 서사와 율동감 넘치는 예고편과 노래하는 듯한 줄거리로 여심을 단박에 사로잡을 것인가, 말 것인가? 과연 그럴 수 있는가, 없는가? 내 감히 추측하건대 그거 아니겠어요? 사람을 흐흠... 보아 허니 여자를 별로 안 좋아하는구먼. 무슨 여자 보기를 돌맹이 보듯 해, 숙녀 보기를 닭이 소 보듯 한다고! 에이~ 그럼 못 써. 남자가 여자를 어? 소가 닭 보듯 하면 쓰나, 에이~ 이 사람아. 안돼 안돼! (소곤소곤 혼잣말...... 뭐야 이 인간. 젊음의 노트랄지 첫 번째 남자 두 번째 남자 세 번째 남자 네 번째 남자 결정적인 다섯 번째는, 뭐 그런 가사를 좋아할 텐데... 농구의 득점과 어시스트, 야구의 홈런과 도루 50 50, 배구 머머 아이스하키도 머 있을 테고. 하지만 아무리 봐도 그꽈는 아닌데. 얜 분명 뻔트의 신이란 말야. 얜 분명 인생이 뻔트야. 그런데 어떻게 뻔트로 그 모두가 가능했지? 완전 불가해한 일이구먼. 그럼 뭐야 이거, 센츄리 클럽도 아니고... 저런! 설마, 조제프 크리스티앙? 이런 젠장 순 난봉꾼이구만 그래!) 아무튼 당신 말처럼 지금은 바쁜 세상이죠 네 그럼요. 그러니까 다 알고 누구나 감동할 수 없는 예고편은 인기가 없어요. 때문에 잘 보이지가 않죠. 그리고 당신이 좋아하는 코메디 프로그램을 보는 이유는 단순히 재밌고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고급스런 농담을 애타게 찾고 기다리며 반기고 싶은 것 아니냐구요. 고품격이 아니란 사실이 여실히 증명되는 데서도 기쁨을 느끼지 않냐 이 말입니다. 요즘 친구들이 그걸 다 보고 있을 시간이 어딨습니까? 드물게 약속 없는 친구는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분들도 주로 바쁘답니다. 속속들이 들여다 보면 할 일 없고 뭘 해도 재미없긴 하겠지만, 알고 보면 나름대로 꽤 바뻐요. 바로 그래서 그분들은 짤을 봅니다. 네, 그거요. YouTUBE랄지 소셜 네트워크 말입니다. 라디오 다음에 TV 다음에 인터넷 세상 아닙니까. 내 손아귀 안에 핸드폰이 있고 인터넷이 있는데 이 세상을 다 가진 기분 아니겠어요? 아니겠죠 말이 그렇다는 겁니다. 아아~ 내가 요즘 세상에 태어났으면, 아니 저쪽에서만 태어났어도 이 세상 모든 여자들을 다 따... 아니 그러니까 내 말은 문명의 혜택 그 절실한 도움이 있었다면 난 분명 좀 더 자상하고 인자하며 숙녀에게 친절한 남자가 됐을 거라 그 말입니다. 어쨌든 더 이상 동화를 읽고 놀이터에서 놀며 장난감에서 졸업하지 못한 어린이랄지 청소년님께 명작을 한번 선물해 보세요. 선생 어릴 때처럼 몇몇은 분명 처음부터 읽지 않고 제일 뒤부터 읽는다니까요. 잘 아시지 않습니까? 당신이 영악하고 꼭 슬기롭지 않다 그 말이 아닙니다. 그처럼 당신께서 타고난 안목과 좋아하는 취향과 하고 싶고 즐기면서 살고 싶은 취미는 오만가지 감정을 공감하는 만인들과 교집합이야 있겠지만, 이 세상의 흐름과 당신의 기호, 성미, 구미는 그다지 일치하지 않는 것 같단 말이오. 안 그렇수? 결론은 꿩 대신 닭이라고 내가 쓴 책 '여심과 여복'을 사시구료. 아주 적극 권하는 바이오. 안 비싸. 싸요 싸. 완전 저렴해. 가격 대비 효과 만점. 얼마 되지도 안구만 기겁을 하고 있어. 이 양반 이거 이거, 아니 그게 아니라, 차라리 운수를 한번 보는 건 어떻소? 내가 또 사람의 운명은 기본이고 재물운과 연애운이 기가 막혀. 캬 말도 말어. 아 그게 내 전문 아니요. 아 말도 말어. 듣고 나면 기가 막히는 걸로는 모자라고 얼굴이 점점 귀가 차차 내쪽으로 다가온다니까. 이렇게 슬슬 차츰차츰. 그런데 남자면 곤란하고 여자면 아 됐고. 뭐야 못 믿는 거야? 진짜야 이 친구야. 내 운명론을 듣고 내가 봐 주는 운수를 듣고 감탄하지 않았던 사람은 지금까지 단 한 명도 없다면 거짓말이겠지. 그래도 솔직히 말하자면 딱 한 손으로 꼽을 정도요. 진짜! 참말이랑께 그러네. 아따 거 사람이 속고만 살았나? 형씨. 어쩔 거요? 볼라요 말라요?」
   현대는 다중 업무의 시대이자 다재다능함이 선이고 부러움이며 인기를 뜻한다. 곧 유행가 시장은 가왕이 노래 부르던 아마데우스 시절이 아니라 복제되고, 소비되며, 들려지는 시장이다. <노래한다>에서 <들려진다>로 넘어가버린 것만 같다. 머머 같다가 아니라 완벽하게 넘어갔다. 어쩜 똑같은 예술인데 능동에서 피동으로 바꼈고, 1차 행위에서 다중 업무로 변한 것이다. 음악만 그런 게 아니다. 다른 예술도 형편은 비슷하다. 그림만 그려서, 글만 써서 먹고 살 수 있는 예술가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스포츠도 똑같다. 극소수의 극소수가 아니면 새롭게 제2의 인생을 살 수 밖에 없다. 모델을 구할 돈이 없어서 자화상만 그린다면 모를까, 이제는 자화상을 사진으로 찍고 게다가 그림도 기계가 대신 그려준다. 찰칵 하면 뚝딱! 장비발은 기본이고 전문가 10명 100명이 모여서 오손도손 협업하여 1개의 예술 작품을 만드는 식이다.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소비재와 태반의 예술이 닯지 않았다고 그 누가 자신있게 부인할 수 있으랴. 못한다. 심지어 그렇게 만든 작품의 수명은 평균으로 따져 탄생과 함께 소멸이다. 세태가 그렇다. 다른 건 다 몰라도 멀티-태스킹이 아니기를 간절히 바라는 게 뭔가, 바로 사랑이다. 그런데 유일한 사랑을 그리는데 멀티-태스킹을 전제로 작품이 만들어진다? 완벽한 운명이다. 예술과 상업의 양다리? 공생 관계! 유행가 역시 제1전성기는 지나가버렸을까? 오페라 같은 유행가가 있지 왜 없겠나. 허나 듣기가 어려운 건 록콘서트와 뮤지컬과 밀애 같은 유행가에 전부 묻혀버리기 때문이다. 편지를 보내고 그리워하며 기다리고 안부를 궁금해 하며 마음 조리는 사랑, 누가 지금 그렇게 사랑하나. 도망갈 것만 같아서든 어쩌든 핸드폰 없이 지금 시대에 사랑을 어떻게 하나. 지금은 사랑이 넘치는 세상이다. 일단 뻔트로 시작해서 사랑이 현재-진행형일지언정 대타 1군 2군 3부리그등 대기자 명단은 차고 넘치며 쉽고 흔하다. 데이트 어플리케이션과 나이트클럽과 유흥가 불빛들 하며 사랑은 낙원의 축복이기도 하지만, 동물의 세계에 나오는 먹고 먹히는, 속고 속이는 게임이 아닌가 의아해진다. 몇몇 허당들이 주장하기도 한다. 사랑은 게임 같은 거라고. 무엇보다 사랑의 종료 시점이 다를 수 밖에 없다는 점, 뒷모습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기 때문에 처음과 중간도 주고 받는 그 무언가 최소한 마음의 견줌을 생각하게만 된다. 사랑이라면서 헤어질 때 그동안 공들였던 뭔가와 선사한 선물들을 돌려 받고 싶지 않다, 지나쳤던 내 노력을 어떻게 달리 보상 받고 싶지 않다, 적어도 난 지금 헤어져서 아주 속 시원하다, 라면 거짓에 가까울 것이다. 즉 그에 알맞는 상황이었을 때 말이다. 상업적 성공을 위한 예술은 호사와 사치와 경제적 행복이 아니면 존속되기 힘든 사랑과 아마도 똑같다. 어쩌면 거의 비슷할 것이다. 직업, 능력, 외모, 형편과 조건을 따지지 않고 사람 하나만 사랑하기 때문에 그 사랑에 나는 내 인생을 건다, 그렇게 사는 사람이 그처럼 사랑하는 현대인이 과연 몇이나 될까? 사랑 받지 못해도 괜찮다 나는 사랑했으니 그걸로 나는 행복하도다? 아름다운 사랑이 다 뭔가, 더티 러브! 주변에서 볼 수 있을 정도로 드물지 않은 것처럼 사랑의 대상이 싫다 해도 넘어올 때까지 매달리고 내가 만족하면 그만인데. 여자도 똑같다. 나만 이쁘면 그만이니까. 대체 왜 잡은 물고기한테는 밥을 주지 않는 걸까, 혹시 그 이유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 있나요? 그 까닭을 잘 아시나요? 왜냐하면 서로 사랑하는 동등한 애인이 아니라 <나만 봐!>라는 조명을 사랑으로 착각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사랑? 자기애의 방식이 거울에서 조명으로 바뀐 거 말고 대체 뭐가 있나, 그게 다다! 물론 치우친 얘기이자 지나친 비약임에 합당한 논박도 투정은 물론 악담마저 감수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왜 그런가 라며 내뱉기 전부터 그 어떤 비난일지도 모를 그 모두를 미리 상정한 채 꺼낸 말이니 그게 무엇이 됐든 완연히 인정한다는 말이다. 그렇긴 하나, 나에 대한 그래프를 숙녀여! 그려 보고 싶지 않나요? X축 왼쪽 거울 오른쪽 조명, Y축 아래 허영심 0 위 허영심 100, Z축 기대했던 사랑의 만족도 그 예감 어린 동경심 대 냉혹한 현실! 나 꽃이야? 해변의 모래처럼 흔한 게 꽃이고 사랑이다. 그렇다면 귀한 꽃이 되고 드문 사랑 한번 해 봐야 하지 않을까? 사랑이라도 예술처럼 다 같은 사랑이 아니다. 최고의 인문학자라면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사랑을 노래하는 유행가 가사라면 모를까 그저 흔히 썸만 얘기하는 가사를 굳이 기억하며, 일부러 외우고, 의미를 찾을 필요가 있을까 라고. 그분들 하시는 말씀은 그거다. 상업성 포기하고 예술을 해라 내 그럼 인정해 줄께! 그렇다고 장난 같은 말에 우는 애 젖 주듯 귀 기울일 만큼 사람들은 한가하지도 않고 관심도 없다. 애초에 예술가가 아니라 연예인과 전문가를 지망했을 뿐 일방적으로 그분들만의 잘못도 아니다. 처음부터 상업성으로 최고가 되고자 하는데, 과거와 지금의 꿈이 그랬고 현재와 미래의 목적도 그러한데, 그런데 그 가운데 예술성이 고고한 사례가 과연 몇이나 될까. 너그롭게 속 보이느니 차라리 침묵하는 편이 낫겠다.
   위 내용에서 개인적이고 못나고 편협한 느낌과 기분 외에 사실이 아니라거나 크게 반박 받아야 할 허접한 논조, 있다면 크게 반성함이 마땅하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썩 그런 것 같지는 않다. 건방진 태도로 보일까 봐서 칼럼으로 공개하지는 못하겠다. 그러니 머릿속이 복잡에서 일기에만 쓴다. 털어내지 않으면 꺼림직하니까. 전에는 몰랐다. 생각이 멈추지 않기 때문에 TV를 켜논 채 잠들지 않으면 도저히 밤에 잠을 잘 수 없다는 누군가의 얘기를. 예전엔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다 어떤 천재는 결혼해서 과제가 생긴 거지. 아내는 완벽한 암흑 속에서 꿈나라로 떠나니까 나랑 완전 반대네, 장난이 아닌 일이다. 괴로움의 연속에서 해답을 찾는다. 이어폰으로 헤비메탈이든 뭐든 들으면서 자자고! 그런데 이혼했다. 누구라고 밝힐 수는 없다. 그래도 사실은 사실이니까. 그처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을 털어내고 나니 뭔가 홀가분해서 기분이 살짝 좋은 듯 아닌 듯 하다. 아니면 거리에 나가 발가벗고 광인처럼 춤이라도 춰야 할까? 그것의 반응도 주인공이 남자냐 여자냐에 따라 명확히 갈린다. 말이 그렇다는 거다.


   2

   그는 일기를 쓸까 하다가 일기를 잘 써도 못 써도 품위는 높아질지어정, 물론 낮아질 수도 있고, 품위 유지비는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미스테리아에 연애 칼럼을 기고했다. 판매 촉진을 위해서였을까? 환상문학에 지친 독자를 달래기 위해서였을까! 칼럼니스트의 딱한 사정을 감안해서 여성잡지1과 2에서 받아주지 않기 때문인지도. 전문을 옮기자면 이와 같음.
   제목: 연애 궁합.
   내용: 분석적인 사랑은 생각보다 쉬울 수 있다. 의외로 사랑의 결합도는 쉽게 예측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볼까? 남자 찐하다 싱겁다, 여자 화려하다 여성스럽다, 남녀 결합 4가지 구분. 사람이 직렬식인가 병렬식인가, 남녀 결합 4가지 구분. 일평생 꽃 들고 쫓아다니고 기다리는 부류인가 아닌가, 뒷모습이 의심스러운가 아닌가 개인 4구분. 그 사람을 알 수 있는 근거가 충분한가, 아닌가 개인 2구분. 구분은 계속 있다. 그녀는 일평생 꽃 들고 쫓아다니고 기다리기는 의전식 사랑을 선천적으로 애호하는 부류인가, 아닌가 개인 2구분. 남자는 꽃 들고 따라다니는 게 습관인가, 아닌가 개인 2구분.
   꽃다발을 선물한다 그건 낭만이다. 그런데 낭만을 안 좋은 쪽으로 역이용하는 사례, 마음에 걸린다. 짚고 넘어가자. 기다리고 쫓아다니는 것이 스토킹 수준의 중증인가에 대한 판단은 연애 전에 선행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구애와 구걸이 다르듯이, 아름다운 사랑을 위한 구애와 사람이 아닌 물건과 돈 또는 타인에게 보여주는 허세와 꽃으로만 보이려는 허영심이 목적인 구애는 엄정히 구분되어야 마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진단이 과연 쉬울까? 어떤 바보가 제 무덤 파겠나. 만나기 전부터 잡은 물로기한테는 밥을 주지 않을 거라고 미리 선포할 리는 없다. 그럴 리는 만무하다. 날 좋아하도록 내게 넘어오도록 만들기도 전부터 내가 진짜 원하는 건 무엇이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 하인-조수-머슴-보디가드-낭군님등 꼬부랑 할아버지 아니 다음 세상에서까지 나보고 그대의 전속 1인 다역 노예가 되라고? 난 못해, 내게 넘어온 다음에 어떻게 되나 두고 보면 알 거야. 라~고 미리부터 말하는 바보는 없다. 이 세상에 그런 바보가 어디 있겠나!
   꽃 들고 기다리며 쫓아다니는 단순 무식한 방법의 사랑인가, 그게 아니라 숙녀가 먼저 끌릴 수 밖에 없는 사랑인가. 남자쪽에서 무작정 쫓아다니고 따라다니며 매달리는 구애에 여자가 넘어갔을 때 경우의 수는 네 가지. (단, 선천적으로 꽃 들고 어디든 따라가고 기다리는 의전식 사랑만을 좋아하는 영심이의 사랑은 0.5. 별 볼 일 없는 0.5는 논외)

  1. 기대하던 사랑이 전혀 아니기 때문에 몸과 마음을 주지 않음. 곧 답보에 유예. 대체로 남자가 차임. 콧대 높은 첫사랑이 늦을 경우 처음인데 찐한 사랑을? 거의 힘듬. 또는 전혀 못함. 여자는 사귀더라도 남자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여간해서는 열정적으로 사랑할 수 없다. 왜냐하면 1인 다역에서 이제 겨우 임시로 보디가드 역할만 맡는 것이기 때문. 어떤 그래프가 그렇기 때문.
  2. 기대와 다른 사랑이지만 첫사랑이라서 또 오래 사겨버렸기 때문에 몸과 마음을 많이, 전부, 열렬히 다 준 경우. 그 후 이별한다면 모를까 아니라면 결혼 해서 애 낳고 잘 살아야 함. 즉 체념과 달관. (내 친구 부인. 우리들은 남녀 모두 함께 시트콤 멤버였음) 언제까지라도 행복하면 좋은데, 나중 만약 이혼하면 고달픔. 미혼녀도 기혼녀도 아닌 어느 날 덜컥 이혼녀? 저임금 아르바이트를 하던가 품위를 위해 품위를 버리는 단란한 고임금 조력자가 되던가. 다시 말해 0.5라는 의전식 사랑만 선천적으로 선호하는 여자라면 모를까 그게 아니라면 나중 장기적으로 봤을 때 희망적이기가 꽤 힘듬. 인생 꼬일 여지 충분. 물론 행복도 가능.
  3. 요게 가관임. 이게 괴상함. 1은 이렇다. 잡을 듯 잡을 듯 넘어올 듯 넘어올 듯, 엄연히 사귀고 있음에도 아슬아슬 조마조마 나풀나풀 잡히지 않는 나비 같은 사랑, 꺽이지 않는 철옹성 같은 꽃이자 따먹을 수 없는 탐스런 과일이 1이다. 어떻게 보자면 차라리 1이 나을 수도 있다. 새장 속의 새를 키워서 나중을 기약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3은 3달 내내 쫓아다녀서 사겼는데 소득이 없는 것도 아니고 있는 것도 아니다. 애매하다. 그래서 더 미칠 노릇. 왜냐하면 3의 여자는 지난 사랑을 잊지 못하기 때문. 그래서 완벽한 심신 분리가 발생함. 마음은 옛 남자, 몸은 현재의 야수에게! 으흐흐흐흐! 실수도 아님. 잠시도 아님. 멀티태스킹임. 한 번 두 번 세 번, 으흐흐흐흐! 야수는 단짝 친구를 데리고 옛 남자를 만나러 간다. 그렇게 만났다. 2 대 1로. 그런데 만나면 뭐 하나? 결정권자는 여자인데 남자끼리 뭐 다정하게 할 말이 있다고. 그냥 몇 마디 하다 끝남. 여자의 마음은 요지부동인데 뭘 어떻게 하겠나. 그 뒤로 끝은 흐지부지. 성과가 없는 것도 아니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런 결과 남남이 된다. 마음 고생 시간 낭비 기분 꽝. 나중 결국 천상의 배필은 촌년으로 귀결. 아 그거 진짜 허허, 나 원 참 증말 이거 원 세상에나!
  4. 열심히 만방으로 뛰었으나 무소득. 얼굴 팔리고 경찰서에 잡혀가며 소문 나고 평판 안좋아지고 나쁜 건 다 내 것인데, 그런데 무소득.

결과(전적, 성과, 장르, 사랑)

  1. 무승부 ─ 하이틴 드라마   ─ 여성잡지1 ─ 짝사랑&풋사랑.
  2. 은퇴   ─ 가족 드라마       ─ 여성잡지2 ─ 의리.
  3. 석패   ─ 성인&멜로&에로 ─ 연애 칼럼 ─ 봄바람&불륜(!)
  4. 참패   ─ 없음                 ─ 예선 탈락 ─ 짝사랑.

   원래 꽃다발이라 하면 화사함과 기쁨과 즐거움, 축복과 행운과 애정등 긍정적인 의미가 대부분인데 꼭 어디서나 물을 흐리는 못된 올챙이가 문제다. 그래서 꽃다운 숙녀는 야수를 만나고 청초한 꽃은 영 거시기한 꽃병과 한 짝이 되는 일, 아예 없지는 않다. (단, 그 둘이 사랑이고 여자가 유혹했고 원했으며 나중 행복한 경우는 제외!) 그렇지만 시작이 비참할 만큼 불미스러웠을지언정 중간이 그런대로 무난했다면 그녀가 나중 만나게 될 진짜 사랑인 낭군님께 별다른 오점에 해당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밝고 깔끔하고 산뜻하게 이별하지 못하고, 뒷모습은 시작과 똑같이 또 쫓아다니고 또 기다리며 또 매달리는 롱테일도 있다. 시작뿐만 아니라 끝낼 때도 두고 두고 꽃만 애용하며 내내 꽃만, 조화롭지 못한 꽃과 꽃병의 주변인들을 끈질기도록 못살게 구는 사랑도 있을 수 있다. 아름다운 사랑이 있다면 더러운 사랑도 있는 법이니까. 인생이 진상이구만. 도대체 몇 사람 인생을 진흙탕 만드시는지. 주위에서 기대했던 아름다운 만남은 깨져버린 채 그 막장을 보고, 듣고, 알게 되는 사람은 또 어떻고! 오오 그건 진정한 더티 러브다. 아니 사랑이 아니라 집착에 범죄에 혐오다. 주변의 경악, 가까운 사람들의 대-실망, 좋아하는 친구들의 초특급 절망, 당사자의 쓰라림은 물론 조화롭지 못한 소란으로도 모자라 마지막까지 처절한 민폐라니. 하긴 남자가 죽었다 살아나도 이해할 수 없는 천동설이기에 그렇겠지만. 속고 속이는 사람 모두 수치심을 포기한다는 건 곧 인간 존엄성의 말소일 수도 있거늘. 사랑의 슬픔도 사랑의 기쁨도 잊지 않기. 무엇보다 처음이, 불륜도 처음만 어려울 뿐이란 사실을. 사랑의 시작은 천생연분이 아니라면 어쩜 별다른 스침 오다가다 만난 인연에 대한 기억이 전부일 수도 있다. 그래서 현재주의란 좀처럼 쉽지 않은 것. 어려워서 더 가치 있다는 점. 나의 현재는 미래의 누군가에게 웃음일 수도, 감동일 수도, 아픔일 수도 있다는 것. 우리는 사랑 앞에선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7살 꼬마일 뿐이다. 참새 짹짹 병아리 삐악삐악. 그래서 노년의 사랑이 더 애틋할 수도, 더 열정적일지도 모른다. 사랑은 사람을 성숙한 화신으로도 만들었다가 응애응애 스무 살 청춘으로 만들 수도 있으니 참으로 신기하기만 하다. 물론 그 사랑의 주인공이 나였을 때 말이다. 그래도 삼각형이 있으면 역삼각형도 있듯이 오히려 당신의 현재주의는 어떻게 보면 참 다행일 수도 있을 것이다. 생애 내내 극장과 백화점 구경이 전부였다니, 인생이 아카펠라 모범생이군. 어떻게 참았지? 수녀야 뭐야! 운명을 예감했던 성녀? 수녀 맞네! 뭐야 그럼 중증 짝사랑만 100번? 맙소사! 하긴 뭐 나도 지금껏 여자와 한번도 사겨보지 못했고, 거짓말도 한번 못해봤으며, 술은 뭐 마셔는 봤지만 취한 적이 한번도 없었으니까 다 이해함. 포근히 그 모두 최고의 사랑을 위한 인생이니까.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대체 어떻게 참았지? 설마......! 진짜 사랑 1번을 위해서 뭇남성들의 무수한 찝적과 껄덕과 애걸복걸에다 환장함은 물론이요 짝사랑 100번이 필요했던 걸까? 그러니까 대체 어떻게 참았냐고! 혹시...? 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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