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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소설 2018. 2. 28. 14:58

   1

   어느 시골에 조각가, 목재소, 고대 악기 제조라는 일에 대해서 모두 통달한 저명한 목수가 있었다. 목수는 어느 날 불현듯 시골 생활에 염증을 느낌과 동시에 얼핏 동종 업계라고 할 수 있는 종이 만드는 일을 하고 싶은 욕구가 발생함을 느꼈다. 왜냐하면 그 일은 종이와 돈과 포스터를 만드는 매우 보람찬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게 아니라 실은 TV로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혹해서 떠올린 생각이었다. 그는 그걸 일종의 외도가 아니라 꿈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그는 지금이라는 이 기회를 놓치면 살면서 나중 내내 후회할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는 먹고 자고 생활하는 작업실을 모두 정리했다. 도시로 떠나기 위해서. 그러나 실수로 큰 통나무 6개를 어쩌다 불도저로 황무지에 밀어버린 다음 나중 처리할려다가 그 일은 새까맣게 잊어버렸다. 그렇게 목수는 도시로 떠났다.
   여기서 목수는 주인공이 아니고 이를 테면 지나가는 행인에 해당한다. 목수가 떠나고 그가 살던 작업실은 팔려서 논으로 바꼈다. 그리고 목수가 버렸던 6개의 통나무는 희안하게 황무지에서 화살표 모양으로 정렬된 채 남겨졌다.
   그렇게 얼마나 장구한 시간이 흘렀을까. 나중 그 화살표가 가리키는 곳에는 최첨단 공법보다 100년은 앞서가는 건축 디자인으로 설계된 멋진 집이 지어졌다. 그리고 두어 번 집주인이 바뀌더니 어느 때부턴가 그 집은 빈집이 되었다. 더 이상 매매가 되지 않는 주인 읽은 집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 후 그 마을에 내려오는 불문율이 2가지가 생겼다. 첫째, 그 통나무 화살표가 가리키는 멋진 별장은 액운이 좋지 않다, 그래서 집값이 터무니없이 싸고, 몇몇 호기심 많은 부자가 이사왔다가 쓴맛을 보고 떠났다. 둘째, 일이 그렇게 된 발단 즉 통나무 화살표는 절대 건드려서는 안된다는 미신의 탄생.
   옆 동네에 사는 감수성 높은 글쟁이가 그 일을 알고 가만 있을 양반이 아니었다. 그는 올커니 하면서 다큐멘터리 동영상을 만들었다. 일명 인터넷 펀딩. 내용은 어느 귀신 나오는 집에 입주 계획. 펀딩액을 극대화시키기 위해서 Jxxxs는 인터넷에 떠도는 괴담을 가져다 무단 인용하고, 어느 잡지에 새로운 7대 장소로 선정됐다느니 가지 말라는 곳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느니 하면서 펀딩 페이지를 한껏 부풀렸다. 나아가 그는 갖은 의혹을 증폭시키는 소문과 공포의 분위기를 가득 집어넣었다. 그래서 나중 입주하면 다큐멘터리와 영화를 찍겠다는 둥 뭐라는 둥 그러면서 있는 뻥 없는 뻥을 다 집어넣었다. 그래서 어떻게 됐을까? 인터넷 펀딩은 대실패.
   그래서 JS는 본인이 직접 칼럼 일로 번 돈을 다 써서, 아니 자기 재산 절반을 투자해서 일을 꾸미기로 했다. 일단 그 집을 헐값에 구입했다. 다음으로 동물원을 운영하는 친구와 동물 보호 단체에서 일하는 친구를 꼬셨다. 작전의 날이 되자 그는 친구들을 데리고 하루 그곳으로 소풍을 갔다. 그런데 친구들은 차에서 내리지 않고 차 뒤에 타고 있는 동물들만 그곳에 내렸다. 곧 엘크와 무스는 바람잡이, 본격적인 기술자는 그리즐리 불곰! 그는 바로 마을에 미신으로 내려오는 화살표를 헝크려트리기 위해서 동물의 힘을 빌리기로 한 것이다. 일단 그는 사전에 미리 그 화살표 통나무에 곰이 좋아하는 호르몬과 벌꿀과 특수한 액체를 잔뜩 발라놓았다. 그래서 그 다음에 어떻게 됐을까? 결과는 대성공!
   때문에 다음 날 마을의 미신을 건드렸다면서 동네는 발칵 뒤집어졌다. 그러나 사람의 횡포가 아닌 동물의 놀이라서 모두 강 건너 불구경하는 결과만 남았다.
   결론은 작전 대성공. 그는 대저택에 입주했다.



   2

   「아, 속았다!」
   JS는 깨달았다. 이곳에 무슨 특별한 사연은 없다는 것을. 그것도, 전혀! 그러니 당연히 유령이 있을 리가 있나. 비밀도 없었고 신비한 예감은 차가운 상심으로 결론 났다. 그는 생각했다. 이게 다 멀더의 헛소리를 순진하게 믿은 자기 책임이라고. 어떻게 이런 웃기지도 않는 행복이! 요즘 세상에 귀신이 어딨다고. 그는 다시 혼자가 됐다.
   그러다 JS는 동네에서 생활 용품을 사고 파는 거리의 일일장에서 동네의 어느 처녀를 알게 됐다. 그는 텐트를 사러 갔다가 캠핑 테이블을 하나 샀다. 그때 자연스럽게 그녀와 대화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새로 이사 오신 박사님이신가요?」
   「아 네. 그런데 박사는 아니구요.」
   「박사나 선생이나 다 거기서 거기죠. 안 그래요?」
   그는 안 그렇다고 했다가는 본전도 찾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초조감, 불안감, 조바심 때문에 맞장구를 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자 그녀는 마치 그를 탐문하기라도 기다렸다는 듯이 뭔가 중요한 정보라도 있는 것처럼 소곤거리며 물어봤다.
   「이 동네엔 뭐하러 왔는가? 당신도 유령의 집이 궁금했소? (팔랑팔랑!) 거기 귀신 없어. 차라리 놀이공원에 가는 게 나을 텐데? 처음에는 헐값에 환상 체험의 주인공이 될지도 모른다며 좋아하지 않았수? 잠깐 행복했겠구만. 안 봐도 뻔해. 그렇다고 댁이 처음인 거 같나? 놀라진 마쇼! 선생도 거 모방심이 어지간하신가 보구먼 그래. 유달리 신비라면 쩔쩔매는 다 큰 어른들이 꼭 감쪽같이 걸려든다니까. 그러니까, 댁은 성공한 사람이유? 아, 돈 많냐고. 내가 미리 알았으면 심하게 만류했을 텐데. 설마 진짜로 나와 상담할 기회가 있었다면 또 몰라. 내가 막 부랴부랴 막차를 타라고 살살 부추겼을지도.
   (악수를 건네며) 나는 줄리엣이요!」
   그들은 악수를 나눴다.
   「저는 제...(그는 본명을 숨겨야 할 것만 같은 느낌에 거짓말을 하기로 했다) 존티입니다. 아 그런데 초면에 실례인지 모르겠지만 얼굴은 대학생인데 말은 완전 할머니, 아니 춘부장인뎁쇼!」
   「뭐요? 실례인지 모릅니다 라면서 결례를 범해? 이거 이거 상습범이구만. 이 양반 이거 안되겠구만. 지금 내 피어오르는 미모를 칭찬해줘도 모자를 판에, 뭐라고? 날 지금 촌년이라고 깔보는 거요, 뭐요?」
   「앗, 솔직히 고백하자면 처음 보자마자 경탄을 금치 못했어요. 네. 그럼요. 딱 제 이상형이었거든요. 그렇죠. 저는 첫눈에 반해버린 거죠. 네.」
   「이 사람이 입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을 하네. 지금 사람 놀리는 거요? 아 됐고! 술 한잔 사쇼.」
   「네?」
   「뭘 그렇게 놀래, 이 사람아?」
   그들은 가까운 카페로 들어가서 자리를 잡았다.
   「유령의 집에 입주해서 이상적인 전개와 찬란한 결말 사이의 경이로운 절정을 기대했다면, 젊은이. 꿈 깨쇼! 그런 거 없다고 이 사람아.」
   「정말...입니까? 새로운 미스테리의 떠오르는 중심지라고 알고 왔는데요?」
   「무슨 끝물도 아니고 누가 그런 말도 안되는 풍설을 알려줍디까? 애들도 안 속아 이 양반아. 아니라니까 그러네 아 참 나. 여긴 그냥 평범한 시골이고 댁이 입주한 거긴 그냥 평범한 시골 별장이야. 왜 아니겠어. 만약 그랬으면 벌써 전문가들이 선수쳤겠지. 댁한테 순번이 넘어갈 리가 있겠냐 이 말이야. 안 그렇수?」
   「하긴 동네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모습을 보고 저도 대충 눈치챘죠. 그럼요. 저는 바보가 아니거든요.」
   「바보가 아니면? 다 속고 나서 바보가 아니다! 자화자찬이야 뭐야?」
   「그게 아니라 사람 일은 모른다 뭐 그 말이죠. 네.」
   「그럼 뭘 해? 세상 물정 모르는 바보는 이미 눈부신 사교계에 진출했구만. 하지만 젊은 날 시도할 수 밖에 없는 욕망은 도전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 아 젊을 때 도전하지 언제 그러겠소. 안 그러요? 속고 나서는 다른 얘기지만 그 전이라면 합리적인 이유, 타당한 근거, 새로운 방탕에 대한 정열은 물론 미래의 운명을 바꿔놓을 신성한 예언까지 있다면, 응? 이 내 두 손에 환락의 꿈이 정말 잡힐 것만 같다면 한번 모험해 볼만 하지 않겠냐, 이 말이네. 응? 그것이 비겁한 쾌락이든 단조로운 흥미든, 희박한 가능성일망정 만약 달성되기만 한다면 까무러칠 만한 놀라움이 기다리고 있다면 말이야. 실제 성공하면 아 글쎄 그럴 거 아니냐고! 그래~ 이거야~ 이거라고~ 이거라니까~ 푸하하하하하하! 그처럼 말이네. 허허허. 허허허허허. 이거 이거 귀 팔랑거리는 거 좀 봐. 아주 불사조의 날개가 따로 없구만 그래. (설레설레)」  동물로 치자면 그는 임팔라였고 비글이자 코끼리였다.
   JS는 이만저만 낙담한 게 아니었다. 말이 났으니 말이지만 어쩐지 처음부터 느낌이 이상했다. 악마의 섬뜩한 호기심 같은 게 느껴졌다고나 할까. 추상적인 선망은 무의미한 허세로 결판났다고나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실망이 전부는 아니었다. 아직 절망의 문 앞에서 초인종을 누르지 않았으니까. 왜냐하면 막연한 목표는 구체적인 목적 B를 불러왔으니까. 곧 그의 앞에 있는 줄리엣이 어떤 장밋빛 희망에 대한 그리움을 자극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아직 미신에 대한 진실한 애정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나아가 필생의 과업이 사랑이냐 행복이냐에 대한 확신도 없었다. 그야 어쨌든 저 무지개 너머에서 그를 기다리는 동심은 적어도 흔하고 단순한 쾌락은 아닐 것이라는 추산만이 그를 격려했을 뿐.



   3

   JS는 통장 인증서를 교체하다가 정체 불명의 뭉칫돈이 입금된 사실을 알게 됐다. 알고 보니 옛날에 일했던 인터넷 광고업 커미션 금액이었다. 자기가 그런 일도 했었나를 까마득히 잊고 있었는데 지난 기억과 짭잘한 보너스까지? 처음엔 좋았다. 이게 웬 떡이야 하면서. 그런데 생각하면 할수록 그는 인생의 뻔트와 경력상의 그 뭐랄까 굵직굵직한 영웅담이 아니라 자잘한 잔뻔치가 너무 많았다는 걸 새삼 느꼈다. 가랑비에 옷 젓는다고 그래서 그는 대성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게다가, 바로 그 때문에 뭐 하면 뭐 라는 명쾌함이 자기에게 턱없이 부족하지 않나 라고 생각했다. 첫 직업은 뭐, 지금까지 사귄 사람은 몇 명, 첫 차는 무엇, 직업, IQ, 키, 몸무게, 출신, 뭐 뭐 등등. 하나의 질문에 오직 한 개의 고유한 즉답이라는 똑부러지는 시원함은 남의 얘기인 것만 같았다. 그처럼 무엇에 대해서든 꼭 부언 설명이 필요하다는 점은 몹시 어정쩡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평생을 산다면 그 또한 쉽지 않은 인생일 것이다. 그는 그게 모두 자기 삶에 대해서 서류상 기록과 구두 진술의 불일치 때문은 아닐까 라고 생각했다. 정말 그랬다. 나는 인생에 대한 말과 글이 상당 부분 다르다! 때문에 나에 대해서 명징하게 설명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그러므로 나는 어떻다, 무엇이 좋고 어떤 건 싫다, 뭐가 하고 싶다 라며 표현을 잘 하지 못한다! 그래서 매번 말할 때마다 말꼬리가 흐릿하다? 다소곳한 여자도 아니고 무슨 그런 어불성설을...! 그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러면서 무슨 또 이 세상은 말과 글의 애매함 때문에 뭐가 어쩐다는 둥 이 핑계 저 핑계! 그래서 그는 생각했다. 그게 모두 불필요한 행동과 무분별한 단점일 리는 없다고. 따라서 그 어리버리함을 장점으로 바꾸면 그만이었다. 그러니까 어떻게? 그건 바로 뻔트냐 강공이냐 라는 작전을 확실하게 결정할 것. 지킬이든 하이드든 대기중인 누가 됐든 준비된 선수가 나설 것. 그것만 지켜지면 때와 상황에 따라 허언증이냐 우유부단증이냐, 뜬구름잡는 허풍이냐 달콤한 사랑 고백이냐, 만사가 분명해질 것만 같았다. 만약 그 기준만 분명하다면 어중간한 일은 더 이상 없을 듯 했다. 그러니 결국 관건은 정체성이었다. 가령 정체성이 겹치는 흔한 예가 무엇이냐? 그거다. 친구와 동업한다, 우정과 같이 산다, 처제가 사장이다 등등등. 설령 그럴지라도 공사를 구분하고 줏대를 지키면 된다. 대책없이 무턱대고 배짱을 부리느냐, 징징대고 투정 부리며 뜻밖의 간접적인 애원에 이끌려 가느냐! 결정도 쉽고 결과도 복잡할 일 하나 없을 것만 같았다. 사랑에 대해서 구애냐 유혹이냐? 행동마저 세상 편해질 수 있을 듯 했다. 그건 마치 뒤늦게 어른이 되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삶의 비밀을 알아버린 느낌과도 같은 일이었다. 결론은 그래서 기분 좋은 정체성의 원리도 알고 횡재에 가까운 보너스도 챙겼다? 완전 꿩 먹고 알 먹기였다. 최소한 아직까지는.
   그는 최근 집이 2채가 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자기의 작업실이 집인 듯 느껴졌다. 작업실에서 일하다가 하루는 이쪽 집에 하루는 저쪽 집에. 기분이 이상했다. 그럼 그는 이제 부자가 된건가? 부자라는 낱말이 왠지 어색하긴 하지만 썩 만족스럽지 않은 몸짓과 뚱한 표정만 봐서는 아마도 아닌 듯 했다. 고로 그는 하나 중요한 점을 깨달았다. 2집 살림은 역시 힘들구나 라는 점을 말이다. 숫자에 강한 사람은 이때 당연히 세금을 생각할 테지만 그는 아무래도 그쪽과는 거리가 멀었다. 때문일 그의 공상은 역시나 2집 살림으로 이어졌다. 허허허. 그래서 그는 부의 축척이라는 주제를 떠올리고서 칼럼을 하나 작성했다. 결과는 별로였다. 아무래도 새로운 유령 별장에서의 앞날이 순탄치 않을 것만 같은 예감, 딱 그런 심정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할 것만 같은 기분만 부채질하고야 마는 일이었다. 내용은 이렇다. 쓰고 나서 읽어 보니 상업적 가치가 별반 뚜렷하지 않았다. 때문에 그는 이번에는 어딘가에 기고하지 않고 작문 노트에만 기록해 놓았다.



   4

   제목: 피라미드론
   내용: 피라미드의 원리가 왜 중요하냐! 왜냐하면 그것은 만류인력의 법칙을 정확히 준수하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그것은 원시인이 현 인류에 이르렀던 제1의 준칙과 질서였다. 그리고 중력은 지구 어디나 평등하다. 그러나 인위적인 힘이 작용하는 게 인간의 일. 때문에 피라미드 최고점이 고정적이면, 예컨대 우정에 대해서 수평은 없고 수직만 있다면 사과나무 밑에서 입 벌리고서 사랑을 기다려 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 과수원의 설계도에 이의를 제기해도 옹호 받기 어렵다. 오히려 때가 이르고 판단이 서투르면 1군에서 밀려나다 유니폼을 벗는 걸로도 모자라 그 인생은 행복의 반대편으로 갈지도 모른다. 그래서 얘기하는 게 큰 그림이랄지 생태계 같은 개념이다. 뜻을 넓혀보면 개념의 분량은 늘어난다. 산업에서 드물게 혁신이고 역사적으로 알려지는 혁명, 흔한 말로 발전과 진보와 보수, 그 다음으로 악행에 준할지도 모르는 관행과 퇴보에 가까울 수도 있는 준법(불법) 이행이 있을 것이다. 그러든 어쩌든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말처럼 숲이든 나무든 방향은 전진이고, 관건은 차근차근이다.
   그렇다고 <차근차근>의 관점이 누구에게나 또 어디에서나 같을까? 그럴 리가 있나. <차근차근>을 생각하는 개인차와 기준과 보폭도 다르다. 심지어 타임머신의 개념 역시 상존한다. 그러므로 정답은 그것이다. 말과 글의 분리! 즉 서류의 우위. 글과 서류의 쉬운 예를 들자면 많다. 공부하고 일할 때 작성하는 문서 외에도 표준, 이름, 브랜드, 평판, 문화, 의식과 마음의 글일 수도 있는 양심등이 있다. 삶의 고단함 때문이든 형편이랄지 타성 또는 불문율 때문이든 으쌰으쌰의 총대를 메는 첫 번째 주자도 나고, 그 마지막 사람도 나다. 즉 처음과 끝은 모두 당신이다. 그 '내'가 모여 전체가 된다. 그런데 그 원리와 적용이 제멋대로라면 지킬 건 지켜야 한다, 자유, 방종, 무질서의 구분은 희미해져버린다. 그리고 그 일은 모두 법적으로 성년, 통상적으로 어른들이 한다. 어른이 되면 사람들은 사랑 우정 친교에 대해서 10명 100명 1000명, 그저 스쳐지나가는 10,000명보다 훨씬 많은 타인들을 만나면서 나와 남을 알게 된다. 허세와 허영심은 칸타빌레 정도면 된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자의식이 너무 세고 자존심이 아주 드높거나, 덤비는 경쟁 의식이 지나치고 열등감이 지나친 사람은 누구나 불편해 한다. 어른이 된다는 건 내 단점도 알게 되고 사교성도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되는 것이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곧 말과 글!
   말은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실력이 는다. 언어구사력은 더딜지언정 듣고 보며 알게 되는 연륜이 쌓일 수 밖에 없다. 원치 않을지라도 그렇게 된다. 그러나 글은 절대 그렇지 않다. 그리고 현대는 말의 세상이다. 말은 듣기를 제외한 잔지식과 화술이 전부라고 착각할 수도 있다. 따라서 교양미로만 봤을 때 현대인은 인류 역사상 제일 똑똑할지라도 모범적이었던 옛 사람보다 그 방면으로 앞선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그 대신 눈치, 잔지식, 학문, 상업, 기교를 챙겼다. 그처럼 영리한 현대인들은 왜 언제나 <차근차근>의 구체성에 대해서 왈가왈부하는 것일까? 왜냐하면 개인에게 뿐만 아니라 세상만사 말과 글의 분리는 그 의식적인 구분이 적잖이 모호하기 때문이다. 마치 이론과 실제가 다른 것처럼. 글은 뒷전이고 말만 남은 게 아닌가, 이 세상은, 듣기는 딴전이고 말하기만 중요시 되는 듯한 면이 없잖아 있는 것이다. 심지어 글만 놓고 봐도 글 안에 말이 들어가고, 글의 성격이 모호한 경우가 적지 않다. 이를 테면 어록 같은 글도 있을 텐데 그런 글은 말을 주로 실어야 하는데 읽어 보면 정작 선구자의 말은 많지 않다. 작자 미상, 장르 불문 그런게 나쁘다는 게 아니다. 그래서 역피라미드처럼 기원전의 여러 신화와 세상 사람들의 모든 말이 전부 스며들었고, 먼 후대에 공저자가 불분명한 채 완성됐듯이 피라미드처럼 분파와 의견과 산업등이 방대해져버렸다. 게다가 좋은 일만 그걸 인용하냐 하면 꼭 그렇지는 않다. 그래서 배보다 배꼽이 더 커져버렸다. 때문에 괜히 생각 하나를 잘못 말했다가는 욱하는 반응도 발생할 수 있다. 사이코패스 성향의 예술가야 당대에 친절한 이웃사람으로는 불합격일지 모르지만 후대에 작품으로 보답한다. 하지만 역사상 성인들은 당대에 모범이었던 반면 후대에 남는 건 그거 밖에 없지 않나 라는 반성의 느낌이 든다. 정작 달은 놔두고 달을 가르키는 손가락, 태양은 도외시한 채 태양에 대해서 서로 다른 말과 글과 분석과 의견과 형식만 넘쳐나는 현실. 그래서 종교나 산업과 관계없이 달의 마음과 태양의 말은 호감이지만, 그 의도가 왜 나쁘겠나, 그건 정작 온데간데 없이 찾아볼 수가 없다. 모르긴 몰라도 당대에 당사자는 수평을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후대에 남는 건 그보다는 수직이다. 그래서 인상 쓰는 애호가는 주장이 너무 강하고 비호감이기 때문에 피할 수 밖에 없다. 실제로도 법이 위고 교리는 밑이다. 그게 엄정한 세상의 이치다. 교리도 한두 개가 아니다. 이 세상에서 착한 사람을 말할 때 일컫는 단 한 가지 관용구가 있다. 그건 무엇이냐, 무엇일까? 그거다. 법 없이도 살 사람! 설령 그런 칭찬을 듣는데 부족함이 없을지라도 정말 그런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교리 없이도 살 사람? 나는 살면서 그런 말은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왜냐하면 법이 1번이고 그 밑은 수평의 개념이니까 그렇지 않을까 라고 유추할 뿐. 신화가 먼저고 종교는 다음이듯이. 이를 테면 이기적으로 살되 이타적인 삶을 실천합시다, 그것이 세상과 세월의 풍파를 타면 (설레설레)! 그래서 현명한 종교가는 자기 인생을 살라고 설교할 것이다. 그래야 하니까. 인생은 1번이니까. 피라미드가 있으면 역피라미드도 있을 테니까 말이다. 문법으로 따져서 반대말이 있듯이 뭐든지 반대 개념이 있고 균형의 측면도 있다. 육체적 사랑에는 플라토닉이, 중력에는 무중력이, 그처럼. 이 세상은 인정이 다가 아니다. 그 최소는 헌법이다. 더군다나 모순이 모순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하긴 그렇기 때문에 장미의 이름도, 다빈치코드 같은 작품도 즐길 수 있으니까 나름 장점도 있다. 현재는 의무방어전 내세는 낙원 혹시라도 패자부활전, 같은 농담도 가능하니까 웃음도 하나 챙기는 거다. 아무튼 그 모든 이유가 뭐냐, 말과 글의 구분이 흐릿하다는 점이다. 거기서 또 들어가면 나뉜다. 말은 화법이 구분되고 속내와 상징과 은유는 물론 귀 막기까지 있다. 글조차 의역과 직역과 더불어 말까지 포용한다. 그래서 말과 글은 물과 기름처럼 애증의 관계일지도 모를 일이다.
   글과 말, 공과 사, 정확함과 대충대충, 질서와 자유, 형식과 파격, 기본과 전위성, 현실과 이론, 은근함과 확실함 그리고 남과 여. 구분에 대한 악용이 아니라 <차근차근>에 대한 최적의 실현은 그 차이를 먼저 아는 것 바로 그게 최선 아닐까, 라고 생각한다. 단, 그에 대한 헛점 즉 반발에 따른 문제점을 먼저 철두철미하게 대비하고 가야 한다는 점이 있다. 물론 그게 이미 현실인 분야가 있고 적용이 까다로운 분야도 있다. 대표적으로 전자는 돈-권력-이권이 큰 분야 곧 경제 정치 사회 군사 그리고 산업, 후자는 일례로 사랑! 그 중간의 절묘한 파도타기, 그건 아마 오락산업이 아닐런지.



   5

   어떤 날에는 마라와 마라의 남자친구, JS 아니 존티와 줄리엣 그렇게 넷이서 데이트를 했다.
   참으로 묘한 조합임에 틀림없었다. 그들은 만났고, 식사를 함께 했으며, 찻집에서 차를 마신 후 헤어졌다. 그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그들은 정말 놀랍도록 말이 없었다.
   모두 헤어진 다음 JS는 밤 늦게 미스테리아 사무실에 찾아갔다.
   「뭐하는 놈이야?」
   「뭐하는 놈이냐니? 백마 탄 왕자님이지 누구겠어? 그러는 넌?」
   「뭐? 동네 친구야. 난 다 생각이 있어서 소개시켜주는 거라고. 내가 아무런 계획 없이 일을 꾸미는 거 봤어? 그러는 넌! 처음 선보이는 남자가 글쎄... 아 저런, 나 원 참. 말 말자. 응? 넌 어떻게 눈이 뒤통수에 달렸니? 얘가 가만 보면 은근 허당이라니까. 응? 멋진 남자 다 놔두고 고른 게 하필, 바보? 뭐 그런 말이라도 하고 싶은 거니? 외모는 속임수다! 아니면 남자 A의 심사가 뒤틀려서 약속을 어깃장 놓았기 때문에 대타로 나온 B였니, 그 남자는? 아아, 매력 치명적이야. 응? 마라가 다시 보이는 거 있지?」
   「뭐가 어쩌고 어째? 별꼴이야! 나야 후보 넘버 7은 친구일 뿐이야! 알아? 어? 그러는 넌. 또 뭔 꿍꿍이로 어떤 허접한 수작을 부릴려는지 궁금한데!」
   「나중 아마 나한테 고마워하게 될 걸. 두고 보면 놀랄 일이 벌어질 테니까 그렇게 알아.」
   「그런데 있잖아. 예쁘장하니 조용한 그녀. 응? 다소곳하며 정숙해 보이는데, 그거 다 내숭이야. 알어?」
   「왜 몰라? 다 알고 있어.」
   「뭐라고?」
   「너도 만만치 않던데?」
   「나 웨딩드레스 입은 모습 본 다음에 후회해도 소용 없어. 너는 약혼녀가 어디 4차원에라도 사는 거니? 그 촌년은 또 어디서 초빙해 온 거야? 만약 내가 남자였고 늬가 내 단짝에다 그녀를 내게 소개시켜준다고 했다면 난 군말없이 사양했을 거야. (어깨 으쓱) 응? 사사롭게 뭐 햄릿 따라하기? 난 아니야. 그건 안 돼. 공과 사는 구분하자고 이 친구야. 알겠니?」
   「마라! 거짓말하는 거 다 보인다. 응? 더 이상 인생에 기대할 게 없다는 생각을 바꿔. 바로 지금이야. 도대체 뭘 기다리는 거야!」
   「언제는 실망이라더니 이젠 또 걱정하는 거니? 사람 헷갈리게 왜 이래? 하나만 해, 하나만! 나를 바보로 아는 거야 뭐야!」
   「마라! 응? 제발 부탁인데, 렘브란트의 그림을 끌어들이지는 말자 좀. 응? 내 말 듣고 있니, 마라? 그 녀석 일기 읽어봤니? 남자는 남자가 보면 알아. 걔 완전 늑대야. 그것도 그냥 늑대가 아니라 굶주릴대로 굶주린 늑대! 응? 내가 뭐랬어. 달콤한 사랑이 시작됐다고 그냥 막 정신 못 차리지 말고, 시험을 해 보랬자나. 응? 짜증 테스트! 스트레스를 유발하고, 미끼로 유인하며 마음을 떠보고, 속셈을 추측하며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서 응? 쥐락펴락 들었다 놓기! 왜? 지금 그 사람을 놓치면 더 멋진 남자를 못 만날 것 같니? 사람은 비교의 동물이야. 아무리 풍요와 호사와 사랑과 행복의 왕국에 환상적으로 입주했다고 하더라도 지난 날을 회상하며 뭐 어쩌는 게 사람이라구. 그럴꺼면 나한테 오지 말이야 어쩌고저쩌고! 행복한 가정은 행복한 가정이고, 사랑의 전적은 또 다른 얘기란 말일세. 응? 지난 사랑은 다 쓸데없는 해프닝에 불과했고, 나는 당신을 만나기 위해 그 모든 사사로운 감정들이 필요했네? 앞에서는 그러지. 응? 앞에서는. 내가 괜히 환상문학 잡지 미스테리아에 연애 칼럼을 기고하겠나? 다 이유가 있어서 그러는 것 아니야! 알면서 왜 그래.
   지나가버린 사랑의 미련, 현재의 아름다운 사랑, 내일 해야 할 숭고한 사랑과 감동적인 환상. 그 셋 사이의 등호가 각기 제각각일 텐데 만약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난다면 이 사랑을 더 멋지게 완성하겠다? 누가 됐든 그분께서 어쩌면 미완의 사랑을 바랄지도 모른다는 것. 그게 바로 사랑이야. 학창 시절 부푼 가슴으로 장밋빛 미래를 상상하며 꿈꾸는 미지의 사랑은 쇼팽의 야상곡 같은 거다 너~! 어른에게 그건 현실과 이상의 괴리일지도 모를 테니까. 응? 그래서 사랑은 무엇이다 라는 그 무엇에는 아마도 주인이 없는 것 아닐까요? 사랑은 본능이다. 사랑은 경이로움이다. 아니다 사랑은 새로움이다. 사랑은 모르는 거다. 나는 사랑을 아직 몰라. 사랑은 드라마다. 사랑은 오늘이다. 사랑은 돈이 아니다. 사랑은 식욕도 아니다. 사랑은 장난도 아니다. 사랑은 노력이다. 사랑은 참는 것이다. 사랑은 거짓말이다. 사랑은 낭만이다. 사랑은 유행가다? 해도 해도 끝이 없어. 응? 해도 해도 끝이 없다구. 한마디로 사랑은 둘 중 하나야. 사랑은 없거나, 사랑은 답이 없거나! 다만, 그대에게 사랑은 정녕 후자이기를! (윙크. 후~) 그러니까, 사랑해요? 바람둥이의 말버릇일지도 모를 일. 당신께, 사랑해 라는 고백이 부디 거짓말이 아니기를 바랄 뿐. 사랑해 라는 말과 사랑한다 라는 글이 생략된 사랑, 손 잡기를 건너뛴 사랑, 얼렁뚱땅 연애하다 정든 사랑이 알고 보면 태반이야. 주위 사람들 아는 지인에게 다 물어 봐. 얼렁뚱땅 사랑한 경우가 대부분일 테니까. 여자끼리는 만나서 그 남자 어때 라고 물어볼 테지만, 남자는 친구끼리 그 얘기 밖에 안 해. 몇 시 방향! 응? (눈썹 쓰윽) 게다가 남자는 원래 남부끄러워서 그런 말 하기 싫어한다구. 잘 못해, 응? 그럼. 사랑해? 에이, 그런 말을 어떻게 해. 만약 한다면 그거 다 뻥이야. 아니면 선수. 그것도 아니면 진실한 사랑. 그런 어른에게 사랑? 가장 난처한 단어임에 틀림없지. 아빠 사랑이 뭐에요 라는 아이의 물음? 뭐긴 뭐겠나 '엄마한테 물어 봐'겠지. 그렇다고 아이가 나중 커서 어쩌면 동화 작가가 될지도 모르지만 대체로 그럴 일은 없어. 왜냐하면 동요는 제끼고 유행가 먼저 부를 테니까. 따라서 아빠의 '곤혹스런 질문 피해가기'는 딸의 대사로 발전할 것이야. 아 그러니까 대체 무엇으로? 엄마한테 말하지 마로!
   어쨌든 이번에 내 기획 중인 부록이 있으니까 나중 놀라지나 마셔. 응? 이제 옛 애인 좀 그만 잊고. 응? 날 좀 그만 좋아하라고 이 친구야!」
   「하여간 말은 말은. 에라 인간아!」
   소개팅 다음에 마라와의 회동을 마치고 그는 집으로 돌아왔다. 바로 그 유령의 집으로. 밤에 자면서 물론 귀신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 대신 현찰이라는 행운이 찾아왔다. 원래는 유령이 출현하면 다행이라고 점쳤는데 작전이 바뀐 것이다.
   곧 JS는 다음 다음 날 인터넷으로 소셜 네트워크도 둘러보고, 출판사 페이지에도 로그인해 봤고, 통장 잔고도 확인해 봤다. 그런데 정체 불명의 금액이 또 입금된 것을 발견했다. 이번이 2번재였다. 낯선 공짜 수입이 2주째 입금. 그는 부지중에 살짝 들떴다. 그러나 아직 감탄하기엔 일렀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다.
   그런데 또 통장에 유행가의 흥행 수당처럼 일정 금액이 입금된 것이다. 그는 생각했다. 이건 뭐지? 수상쩍은 금액이 내게? 그의 주위에는 사랑했다 라는 솜사탕이 떠다녔다. 게다가 희망한다는 말풍선도, 애정이라는 천상의 멜로디도 들렸다. 심지어 행복을 지망하고 낭만을 부러워하는 단정한 소원은 마침내 실현됐다며 팅커벨 요정이 속삭여주는 것만 같았다. 오, 3주 연속 정기적인 입금. 수입이 내내 들쑥날쑥했던 그저 그런 칼럼니스트가 아니라 이제야 비로소 고품격 작가가 된 듯해서 기분이 이만저만 좋은 게 아니었다. 그럼 그렇지. 조금 늦었지만 혹독한 지옥 훈련을 거친 다음, 기묘한 상상력 기상천외한 발상이 이제야 빛을 보는구나 라고 생각했다. 거짓말이 아니라 정말로 레드카펫을 밟으면서 우레 같은 환호성이 실제로 들렸다. 그런데 그건 환호성이 아니라 전화벨 소리였다.
   「저쪽 출판사에서 연락 받지 못했니? 기대하지는 않았겠지만 운 좋게 말이야 근근히 책이 팔린다는데!」
그건 마라의 전화였다. 그랬다. 그건 인세였다.
   그는 냉큼 서점으로 달려갔다.
   그는 서점에 도착했다.
   그런데 그의 책은 진열대에서 사라졌다.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쏟아지는 오락산업의 무수한 반짝임 때문에 이미 묻혀버린 것이다 아예 종적을 감춰버렸겠지.
   그렇게 또 일주일이 지났다.
   그런데 어머머! 제4주차 금액이 입금됐다. 누군가 장난치는 건가? 간혹 잊혀질 만 하면 보게 되는 뭐 사재기 그런 건가? 그럴 리도 없는데. 꽤 애매한 금액에다 대량 구매도 아니고. 대체 뭐지? 누구야! 그는 어딘가에 숨어서 이 모든 사건을 진두지휘하는 마에스트로를 만나서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이봐요. 숨길 필요 없어요.」
   그러면 상대는 그러겠지.
   「저런! 다 아시면서 뭘 그래요.」
   이건 둘이서 잘들 논다, 가 아니라 혼자서 쇼-한다쯤에 해당하는 공상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도 이게 어디야! 기쁜 삶을 살며 행복해지고 싶은 욕구는 실현을 앞두고 있는 것만 같았으니까. 그러니까 이제 곧 가능한 한 신비로운 전개? 그 다음에 곧바로 새로운 꿈 새로운 행복 새로운 환희! 푸하하하하. 푸하하하하하하. 음하하하하하하! 일말의 뭔가 세한 느낌이 아예 없진 않았지만 그는 지금 이런 스무 살의 환상과 부푼 꿈에게 막 다급히 쫓기는 기분을 깨트리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그는 특별히 고대할 것 없는 일상에서 2주 3주 4주차 정기급여가 입금되고 있었고, 때문에 어느새 5주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6

   그리하여 JS에게 5주차 수입이 입금됐을까? 아니다. 이번엔 평범하게 가지 않았다. 행운의 여신이 내린 지엄하신 명령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번에는 달랐다. 그가 문학 수첩에 글씨를 크게 쓰기 시작한 것이 최근의 새로운 변화인 것처럼 그의 앞에 당도한 소식은 반복된 입금이 아니라 새로운 택배였다. 곧 5주차에는 처음 받는 커다랗고 무거운 소포가 먼저였고, 5주차 입금이 둘째였다. 그렇게 둘 다 그에게 닥친 전개였다. 그래서 이번에 선택은 본인 몫이었다. 절정으로 확 달아오르느냐, 아니면 발단으로 도망치느냐. 전자는 바보의 용기 때문에 가능한 모험이고, 후자는 풍운아의 꾸밈없는 성격 곧 소심함이었다. 아무튼 그는 언제까지라도 비상한 통찰력 순진한 연정 때문에 재미없는 지루함에 내내 머무를 수는 없었다. 따라서 이번에는 누가 뭐래도 바보퉁이의 어리석은 광기를 택했다.
   그런데 소포에 무엇이 들어있나를 밝히지 않았구나. 배달된 소포 안에는 바로 자기가 쓴 장편소설이 뭉치로 들어 있었다. 저런! 그는 먼저 소포를 받았을 때는 이제 뭔가 정말로 흥미진진한 일들이 계속 발생할 것만 같아서 엉덩이가 들썩들썩했다. 그래서 해외 배송 업체 차량이 떠나가는 모습을 아련히 쳐다보기까지 했다. 상자를 열기 직전까지도 신비감은 극대화되었다. 이건 혹시... 이래서 이 유령 주택이 팔리지 않았던 것일까? 라면서! 하지만 소포의 내용물을 확인한 다음 오락가락하는 의심과 꾸물거리는 추리력은 끝끝내 미궁으로 빠지고야 말았다. 그러니까, 왜?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누가 보냈는지, 왜, 의도는, 속편은...! 도무지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 것이었다.
   그후 그는 별장을 구입하기 전에 동물들의 힘을 빌려 작업했던 미신의 상징물은 별다른 변화가 없는지 살펴보러 갔다.
   그런데 어머나! 화살표 통나무가 모두 사라졌다. 아주 홀연히 없어져버렸다. 더군다나 마을 사람들은 슬슬 그를 피했다. 당연히 친하지 않으니까 그랬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동네의 유일한 친구인 줄리엣도 바쁜 척 했다. 물론 알고 보면 진짜 바쁜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 외에 그는 팬클럽에서 알게 된 여동생들의 졸업식에 다녀왔다.
   「오빠가 뭔가 얼빠진 사람 같은데. 뭔가 바쁜 일 있나?」
   「아니야. 원래 이랬어.」
   웃음소리.
   그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7주차 되는 날이었다. 이번에도 입금은 변함없었고, 정확하게 소포가 배송됐다. 그러나 이번에는 해외 배송 전문 업체 차량이 떠나가는 것을 멀거니 바라보지 않았다. 바로 쫓아갔다. 추격은 두 가지가 있다. 대추격과 소추격. 당연히 지금은 소-추격! 물론 추격은 실패. 성공할 리가 있겠나. 그건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집에 돌아와서 JS는 소포를 확인한 순간 깜짝 놀랐다. 왜냐하면 보낸 사람의 주소지가 그에게 뭔가를 암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야 나타나셨군, 그분께서. 그 이름도 거룩한, 전조! 즉 내용물은 변함없었고, 보낸 사람의 주소는 버뮤다의 삼각지대였다. 이건 누가 봐도 정식 초대장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고민했다.
   「가, 말어?」
   어떡해야 할지 종잡을 수 없었다. 그러나 직감으로 깨달았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또 멀기도 멀었고 귀찮기도 했다. 경비도 간당간당했고. 그래서 일단 좀 더 관망하기로 했다. 일명 눈치 작전. 지금은 뭔가 유별난 흥정에 대한 판단 근거가 분명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7

   사소한 일일수록 이기적이고 세상 모든 일에서 패배를 몰라야 하는가? 아니다. 우정에서는 매번 밑이고 단짝과 사랑은 뺐겨도 괜찮은 것일까? 꼭 그런 건 아니다. 어차피 살면서 패자가 되는 일은 부지기수일 테니까. 그때 그때 대처하면 그만일 뿐.
   그건 그렇고 입금은 계속 됐고 책도 계속 배달됐다. 다만 다른 점은 매번 보낸 사람의 주소가 다르다는 것. JS는 참다 참다 12주던가 13주던가 소포를 받은 다음 그곳으로 찾아가기로 했다. 이번에도 역시 해외였는데 그나마 현재 자신의 거주지와 매우 가까운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굳이 이유 같지 않은 이유를 하나 덧붙이자면 이랬다. 그는 자기 아버지 형제가 몇 명인지를 정확히 알게 됐기 때문이다. 전에는 그냥 많다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왠지 모르게 그 정확한 숫자를 알고 싶어졌다. 마을의 화살표 통나무가 사라졌기 때문에 또 다른 미신이 필요했던 것일까? 슬럼프는 일단 탈출하고 보자는 심리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는 고향집에 3박 4일 일정으로 다녀왔고, 아빠한테 물어봐서 답을 알아냈다. 간 김에 엄마와는 거친 입담으로 격하게 정담을 나눴고. 본론으로 들어가서 막내인 JS의 아빠는 장남이다. 그런 아빠의 형제는 모두 12명. 곧 할아버지는 1분, 할머니는 본 마누라─어렵고 격의 있는 표현을 생략한 채 사실만 간출이자면─로부터 7명의 아들딸, 그 후에 기간이 겹치는 건 잘 모르겠고 총 3명의 후처가 있었음. (뭐?) 그래서 모두 합쳐 할아버지의 자녀는 총 12명. 그런데 후처의 딸을 이쪽 호적에 올린 것까지 합하면 도합 13명. 시시콜콜한 얘기지만 그는 궁금했다. 자기가 피앙세와 처음 만났던 날은 이상하게 왜 12.5 금요일이었는지를.
   지나가는 얘기긴 하지만, 허구처럼 말해도 되고 남 얘기 하듯 읊어서 객관성을 확보해도 좋다. 왜냐하면 지나가는 얘기니까. 왜냐하면 베니씽현상은 거의 다 뻥이지만, 왕왕 전설이 사실일 수도 있을 테니까. 곧 3인칭 시점으로 보자면 가령 이런 식이지. 양력 12살이자 음력 13살인 중1때, 1학년 2반 34번인 학생. 그 소년은 나중 천 단위가 바뀌는 해에 육각형 부대 마크가 달린 군복을 벗고, 32살에 영원한 사랑을 만나게 되는데. 그런데 뭐가 꼬이고 또 꼬이고, 그렇게 어쩌다 34살에 동화에 나오는 벌거벗은 임금님이 될 수도 있다니. 설마 고추...까지? 저런! 듣기로니 3형제에서 막내인데 그 전에 유산된 1번이 있엇다나, 그럼 별자리는 또 어떻게 되는 거야. 에잇, 재미없다. 넘어가고.
   그야 뭐 우연의 일치일 테고, 어쨌든 그는 소포를 보낸 주소지로 찾아갔다.



   8

   지나친 허세의 유혹에 굴복하면 엄살은 질투를 부르고, 과도한 허영심의 희망에 솔직하면 선망은 투정이 된다. 그게 버릇이 되면 응석쟁이 어른으로 자리매김하는 거다. 그래서 그는 이번에 대책없는 말썽쟁이를 거부했고, 고삐 풀린 흑심을 에너지로 응용하는 탐험가로 거듭나기로 했던 것이다. 그처럼 소포를 보낸 주소지로 찾아가는 길은 기분 좋은 나날이었다.
   그는 그곳에 도착했다. 그곳은 자신이 입주했던 유령 주택과 거의 흡사하게 생긴 집이 자리하고 있었다. 또 바깥에는 임대 안내문이 붙여 있었다.
   뭐야 이거!
   직관은 그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소포를 보낸 다른 곳을 찾아가 봐도 모두 이와 똑같은 일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그래서 그는 목적을 변경했다. 몇 일 쉬면서 휴가나 즐기고 돌아가자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며 놀고 쉬는 동안 특별한 일은 없었다. 다만 동네 어르신과의 대화가 약간 특이했을 뿐.
   그분을 만나서 그는 뭔가를 물어볼려다가 언어가 다를 테니까 통역 앱을 작동시킬려고 했다. 그러니까 그분께서 말씀하셨다.
    「아, 뭐해 젊은이! 보면 몰라? 나는 딱 보니 알겠는데. 더구나 젊은이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우리가 뭐 몇 개국어 할 만큼 영리한 거 같지도 않고. 안 그래? 그래, 여긴 무슨 일로 왔나?」
   그는 희안하게 같은 언어로 말하고 있었다. 그래서 JS는 그곳에 찾아온 목적을 착실히 설명했다.
   「아 그래서 여기까지 왔다고? 또 한 명 걸려들었구나.」
   「네?」
   「아니야. 혼잣말이야. 자네가 왜 왔는지 안 봐도 알겠네. 저 유령 나오는 집! 그걸 알고 싶은 것이로구만. 저기 귀신 없어. 요즘 세상에 귀신이 어딨나. 응? 그런데 참 이상한 게 말이야. 자네처럼 낯선 탐방객이 다녀간 다음에는 꼭 우리 동네에 복권 당첨이랄지 집 나간 아이가 돌아왔다거나, 누군가 큰 시험에 합격하거나 이곳 출신 유명인이 출세하거나 그런 행운이 발생한다니까. 그럼 자네도 길조야! 그럼. 그렇고말고. 그건 어떻게 설명하겠냐 하면 내가 그걸 왜 설명해야 하는데? 난 못해. 안 해. 몰라. 모른다구. 차라리 내게 젊음을 되돌려주시게. 응? 동화 속 요정의 마술이라도 부려보란 말이야. 보아 하니 여기 도착하기 직전까지는 그랬을 꺼야. 사춘기로 되돌아 간 듯한 기분, 이제 막 운명적인 사랑에 빠져든 것만 같은 심정. 안 그래? 저번 사람도 그랬어. 무슨 일인지는 자세히 모르겠네만 어떻게 나도 살짝 끼워주면 안 되나? 하긴 그거야 엿장수 맘이겠지. 자네도 객인데 어찌 알겠나 이 말이야.」
   그는 주목 받는 듯한 느낌이 온몸을 엄습했다. 그러나 운명적으로 새로운 사랑이 성사될 것만 같은 기분은 여지없이 허무감으로 뒤바껴버렸다. 그럼 이제 어떡한담? 그는 집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새로운 작전 수립을 꾀할 수 밖에.



   9

   JS는 키다리 아저씨 만화영화를 보는 소녀처럼 점점 참을 수 없는 공상에 빠져버렸다. 꼬박꼬박 스포츠 선수처럼 주급이 입금되고 소포가 배달되니 그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과연 어떤 극적인 사연이 기다리고 있을까, 기대와 예감은 격정적인 갈채와 앞날에 대한 우려를 동시에 불러왔다.
   정작 본인은 어른이 됐기 때문에 그는 실은 판타지와 이미 작별을 고했다. 미스테리에게 꿈에서 안녕이라 말했고 본인 삶에 더 이상 가면무도회는 없다는 점을 절감했다. 줄리엣의 일과를 궁금해 하지 않았으며 로맨스를 꿈꾸거나 장래 희망을 변덕스럽게 자주 바꾸지도 않았다. 아침에 꽃을 사고 낮에 사무실에서 일했으며 밤에는 집에서 TV를 봤다. 색다른 관심거리는 없었지만 봄이 다가오고 있었고, 언제까지 이 우스꽝스런 해프닝이 이어질지 대관절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이상한 청춘이란 제목의 희곡을 쓰기 시작했다.
   그는 달콤한 오페라 아리아를 들으면서 자기를 기다리는 새로운 열매란 과연 무엇일까에 대해서 상상해봤다. 그는 우선 예전에는 미처 꿈에도 몰랐던 작가의 길을 걷게 됐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건 마치 거짓말처럼 우발적인 호기심 때문에 시작된 일이었다. 자기는 옛날에 평범한 직장인이었고, 잠시 회사를 그만둔 후 휴지기를 갖게 되었다. 그러다 신문에서 52주 소설가란 책 광고를 보게 됐다. 그걸 보는 즉시 그는 눈이 똥그래졌고 무턱대고 그 책을 구입했다. 그러나 결과는 역시나! 하지만 그 일을 계기로 그는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다. 시작이 반이었으니까. 천리길도 한걸음부터! 운명이란 그처럼 화가는 관심도 없었던 소년의 낙서 같은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원래 사람들이 그런다. 사랑하면 너와 나는 운명, 이별할 때는 아름다운 뒷모습이면 좋은데 그게 아니면 악연이네 어쩌네 하며 치를 떠는 모습, 전혀 신기한 딴나라 얘기가 아닌 것이다. 대망이 행운의 순풍을 타면 그것 역시 운명이고, 태몽도 운명, 소소한 행복 역시 운명이다. 시작은 운명적인 만남, 타오르는 욕망을 절제하는 삶에 상심, 그리고 새로운 절망! 심지어 일하면서도 운명이란 제목의 관현악을 듣는다. 그러고서 밤에는 숙명이란 제목의 드라마를? 웬걸! 삶이란 원래 그런 것이다. 곧 점쟁이 맘대로!
   그건 그렇고 지금 JS의 전주곡은 밑도 끝도 없는 몽상이 주도했다. 다시 말해 그 일을 꾸민 일당이 아마도 악당은 아닐 거라는 점. 어쩌면 52주 소설가란 책을 읽은 다음 나중 작가가 된 사람들의 모임이 만든 재단에서 벌인 사건일 것이라는 게 가장 유력한 추리였다. 그러니까 나중 그곳에서 주최하는 파티에 초대 받고, 나비넥타이를 매고서 어여쁜 숙녀와 3박자 춤을? 하오나 그는 재수 없게도 반전 역시 예상했다. 혹시 모르니까. 새로운 젊음이 이끄는 사랑의 끝은 웃음보가 터지는 낭만이 아니라 무슨 비밀 단체에서 꾸민 뭐 그런 일들 아닐까 라면서. 그런 뜬소문 같은 이야기야 이미 어렸을 때 떼도 진작 떼버렸지만 또 모른다 라는 의구심은 그를 자꾸자꾸 괴롭혔다. 그는 어떤 은폐된 계획을 캐내려 했지만 도저히 숨겨진 꼬리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우연히 자기 필명 동호회를 오랫만에 찾아갔다. 물론 인터넷으로.
   그런데,
   어머머 글쎄!
   오, 저런... 맙소사!
   이 일이 다 얘네들이 꾸민 일이란 걸 알게 됐다. 괴씸한 녀석들! 아니지 아니지. 그래도 잠시 그는 행복했다. 지상의 낙원은 없다는 걸 알게 됐지만 사랑의 은하수 근처까지는 갔다 왔다. 갔다 온 게 어디야! 최소한의 이득은 그를 만족으로 이끌었다. 역시나 대-만족은 뻔트의 차지였다. 홈런이란 건 한마디로 숙명에 해당하는 거고, 인생이란 다름 아니라 그런 이름들일 것이다. 개구멍, 음악이 중간에 간혹 바뀌는 호박 나이트클럽, 음악이 절대 끊기지 않는 신비 클럽, 샤우트 창법. 다시 말해 뻔트 더하기 말은 일명 뻔트마! 그리고 보너스로 사랑 또는 우정까지. 어차피 영웅적인 행동의 추구는 그의 스타일이 아니었으니까.
   신세를 망칠 뻔 하지 않았으면 된 거였고, 어리둥절하면 그만이었다. 그는 흥분을 억누르지 못하고 어쩐 게 아니라 흥분을 가라앉혔다. 얌전한 체 행운을 부르는 주문에 대해서도 떠올려 봤다. 자기가 저번에 팬클럽 모임에서 으쌰으쌰 때문에 망신을 당한 일과 이번 해프닝으로 퉁치면 될 일이었다. 그들은 이미 친밀한 관계였다. 그는 벌써 얄궂은 고민은 사라져버렸고, 새로운 이야깃거리까지 얻은 결과를 맞이했다. 고명한 허당의 외부로부터 주어진 이성적 취미라고나 할까? 그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면서 다음에 대해서 생각했다. 대-실망은 대-실망이지만 좋은 느낌과 붕 뜬 기분과 한껏 신난 분위기까지 모두 부인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는 결심했다. 볼살이 경련을 일으키는 이 사연을 다음 타자에게 넘겨야겠다고.
   유령 주택의 비밀을 알게 되고, 보물 지도를 발견한 다음, 그곳에 갔더니 인공 지능 슈퍼컴퓨터가 가동되고 있더라는 둥 이러쿵저러쿵 상상의 나래를 펼쳤는데, 이런 젠장! 그 경험을 다른 누구도 아닌 멀더에게, 아니지 자기가 멀더한테 당했으니 마라에게 넘겨야겠다고 다짐했다. 따라서 그는 별장을 팔기 위해서 부동산 마케팅 독학에 들어갔다. 그러나 독학이 웬 말인가. 마라의 팔랑귀가 있지 않은가. 그는 벌써 부푼 꿈과 부드러운 감상에 젖어들었다. 행복한 기억은 물론 최소 2배 시세 차익까지? 우스운 환상 순수한 기쁨은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10

   JS는 마라한테 별장을 판매했다. 그는 홀가분함과 동시에 시원섭섭했다. 쾌활한 기대가 날개를 펼치고 예감이 발랄하게 춤을 추는 듯한 행복감은 대충 막이 내리기는 했는데, 이대로 떠나가자니 뭔가 느낌이 세했던 것이다.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그는 원인을 찾아냈다. 그건 바로 동네 친구 줄리엣 때문이었던 것이다. 상큼한 그녀를 놔두고 그냥 우린 이대로 생이별을 하라고? 아니 될 소리였다.
   줄리엣! 그녀의 성정은 그랬다. 다감한 청춘과 다정한 성정, 꼼꼼한 정서 털털한 성격. 정다운 심정에 약한 마음까지 그러나 센 척 야무진 콧대까지. 그리고 또 하나, 까다로운 취향. 그 뿐만이 아니라 바라는 건 사랑의 활기를 만끽하고 싶다? 한마디로 그녀는 천상 여자였다. 자기가 그녀를 어떻게 한번 해 보겠다는 뜻이 아니었다. 그의 마음은 어디까지나 로맨티스트의 순수함이었다. 사랑의 기쁨은 애정이란 감정에 대하여 그 어떤 뭔가를 부끄러워하고 싶다는 것. 누군가에게 그것은 지고의 희망일 것이다. 지금 그가 그랬다. 전에도 그랬다. 앞으로는 모르겠지만 그는 최소한 줄리엣에게 가르쳐주고 싶었다. 설혹 줄리엣이 그 책을 읽었을지라도 말이다. 남자들은 자꾸 여자들을 가르칠려고 한다나 뭐라나! 그러니까 그가 알려주고 싶은 인생의 비밀은 그런 것이었다. 유쾌한 생활의 연속인 세속적 행복. 진일보를 이루는 사랑에 빠지는 방법. 줄리엣 넌 혹시 그런 감정이 생활을 지배하지 않았냐면서 그녀를 설득하고 싶었다.
   나에게 새로운 환경은 현재의 쾌락을 광고하고, 정당한 행복을 권유하며, 미래의 만족을 예고한다. 하지만 세상이 우리 손에 쥐어주는 건 결국 심심함! 그런데 난 이제 정말 운명적인 상대를 만고야 말았다. 그건, 바로, 너! 라~고 말할까 말까 고심하게 되었던 것이다.
   「줄리엣. 남자친구 왜 안 사귀니? 어느 날 갑자기 깜짝 발표할려고?」
   「차차 생기겠지. 왜? 꼭 있어야 하는 건 아니잖아. 오빠가 나 책임질 거도 아니고. 안 그래?」
   「(멈칫) 줄리엣은 재밌는 남자가 좋아, 아니면 자상한 남자가 좋니?」
   「재밌고 자상한 남자. 그건 왜? 소개시켜 줄려고? 소개시켜 주지도 않을 꺼면서 그건 왜 묻는데?」
   「왜긴. 그냥 한번 물어봤어.」
   「오빠는 싱거운 남자구나. 그런데 그거... 취조야 심문이야? 아니면, 알고 싶어요! 그러니까 나를, 그거야? 선물도 그렇고 이거 뭔가 수상한데? 말해. 어서. 왜 말 못해? 오빠 혹시... 떠나?」
   「와! 어떻게, 알았니?」
   「내 그럴 줄 알았어. 이 오빠도 1년도 못되서 떠나는 구나.」
   「완전히 가는 건 아니야.」
   「차라리 자주 연락하자고 말해. 응?」
   「우리 앞으로 좀 더 친하게 지내자. 거리도 가까워.」
   「금새 따라하기는. 왜 오빠는 바다가 지겨워졌을까?」
   「실은 그게 아니라 유령이 나타나지 않아서지.」
   「시세 차익. 그런 거 노렸구나. 오빠도 똑같아.」
   「아니야. 난 달라.」
   「다르긴 뭐가 달라. 완전 똑같구만.」
   「기쁜 삶을 위해서라면 굳이 장소가 문제될 건 없어.」
   「오빠 꼰대 같아. 왜 그래 실없이. 난 그래도 이제 조금 마음을 열려고 했는데. 오빠가 사진 찍기 같은 새로운 취미랄지 아니면 그림을 그리겠다거나 그랬다면 내가 흔쾌히 모델로 나설 수도 있었을 텐데. 아쉽다.」
   뭐? 어떻게 떠남을 조금 연기할까? 라고 그는 생각했다.
   「줄리엣. 셋 중에 하나 골라. 리우, 베네치아, 니스!」
   「그건 왜?」
   「오빠랑 놀러가게.」
   「다큐멘터리 틀면 다 나오는데, 뭐 세계 3대 축제? 꼭 직접 가 봐야만 하는 건 아니지 않나. 안 그래? 오빠도 혹시 모든 여자를 직접 사겨보고 만나봐야 한다 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그럼. 난 아니야. 난 절대 아니라구.」
   「오빠. 내 친구 소개시켜 줄까?」
   「뭐?」
   「새로운 친구 사귀기. 그 말 한 거야. 뭔 생각해, 오빠?」
   「난 여전히 낯선 사람 만나는데 서툴러서 말이야.」
   「오빠는 은퇴한 건가? 아직 상비군 뭐 그런 거 아니고?」
   「얘가 이상한 감수성이 있는데! 몰랐던 매력이군. 멋져.」
   「하여간 선물 고마워. 사람이 너무 갑자기 변한 거 같아 왠지 떨리는데. 오빤 나한테 너무 깍듯해. 오빠는 그렇게 생각 안해?」
   「난 단지 너가 친애하는 행복감을 기꺼이 맞이하길 바랄 뿐이지. 그럼. (윙크)! 아시잖아요.」
   「오! 기대하지 못했던 배려. 기분 이상해.」
   「뭐?」
   「이 오빠는 무슨 말만 했다 하면 생각이 많은 거 같아. 뭔 속셈이 그렇게나 많아? 응? 그거 혹시 흑심이야? 설마 설마 사자의 군침...!」
   「음... 그건 오빠는 말이 많은 남자는 아니니까. 이제는 말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나 할까.」
   「아하. 오빠는 전에 행동이 빠른 남자였구나. 그러니까 포옹도 건너뛰었다? 난 그래도 오빠가 이 시대의 마지막 낭만주의자인 줄 알았는데 풍기 문란에 흉내꾼에다 추근대는 행동주의자였구나.」
   「무슨 소리야? 너가 아직 오빠의 진면목을 몰라서 하는 소리야. 난 너의 엄격히 절제된 질투심을 거울 들여다 보듯이 다 엿보고 있다구. 알겠니?」
   결국 얼마 되지 않는 여흥을 뒤로 한 채 JS는 홈그라운드로 돌아갔다. 줄리엣과 이별했고, 나중 만나자며 꽤 미묘한 여운을 남겼으며, 유령의 집도 냉큼 팔아버렸다. 그러니까 그 집을 누구에게 팔았냐 하면 바로 환상 문학 잡지 미스테리아 편집장 마라에게 판 것이다. 그것도 2배를 훌쩍 뛰어넘는 시세 차익을 남겨서. 거기까지는 좋았다. 딱 거기까지는.
   다시 시간이 반 년이 지나서 그는 알게 됐다. 그곳이 미스테리아 회원을 위한 별장으로 이용된다는 사실을. 더군다나 그곳에는 숨겨진 특실, 보물 지도, 얽힌 전설, 비밀 기능이 숨겨져 있었다는 것까지. 그 모두를 미스테리아에서 특집으로 다루었기 때문에 알게 됐다. 나아가 마라는 여성잡지2를 새로 창간하여 이제는 편집장에서 어엿한 창업자 및 발행인이 되었다. 그걸로도 모자라 멀더는 차를 바꿨다. 바로 애스턴마틴 DB11 볼란테로. 결국 JS만 제자리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기 때문에, 특별히 하고 싶은 말과 상대할 적수가 없었기 때문에, 괴로운 속사정을 토로할 우정과 사랑 사이에서 방황하는 누군가가 없었기 때문에 용돈을 벌기 위해 마라가 창간한 잡지에 칼럼을 기고했다.



   11

   제목: 그녀에게 남자친구가 없는 이유
   내용: 그녀에게 남자친구가 없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남자의 자존심에서 그 까닭을 찾아야 한다. 왜냐하면 드라마는 현실이 아니고 프리마돈나는 1명 잘해야 2명이기 때문이다.
   남자의 자존심은 마치 상품의 구분처럼 상중하로 나뉜다. 상급 자존심은 무조건 좋은 게 아니다. 또 자존심이 너무 낮아도 재미없다. 마치 허세 지수 50 허영심 50처럼 자존심도 중간층이 이상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문제는 상급 자존심! 허나 자존심 빼고 나머지 여러 객관성이 상급 자존심에 걸맞게 고품격일 것인가? 그럴 리는 없다. 만약 그렇다면 화장품 브랜드는 자존심을 건드리지 자존감을 공략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상급 자존심은 둘로 나뉜다. 그것이 허세형인가 불만형인가. 우월감인가 열등감인가. 촌닭인가 뱁새인가. 자기 합리화인가 세상사 불만족인가. 빈수레 떽떽거림인가 잔지식파 빈정인가. 띄워주면 연예인병 깎아내리면 울보인가. 다만 만약 뭘 좀 아는 남자가 아니라면. 단 뭘 좀 알더라도 호박이든 꽃이든 그 무언가가 다정스럽고, 친절하며, 여성스럽게 애교라는 수완을 적극 발휘하여 기꺼이 제발로 다가갈 만하지 않다면! 남자에게 상급 자존심은 어차피 둘 중 하나다. 자존심만 남았냐, 아니면 타고난 성품은 어쩔 수 없다고 할지라도 그에 상응하여 교양과 예절과 인격등 월등한 자존심에 대응해서 여러 기교와 장점을 잘 살리는 삶을 사는가로. 아름다운 인생은 다른 색다른 뭔가가 아니란 말씀. 나아가 마초 유형에게 관망이란 어디까지나 의도적 저자세다. 때문에 그녀께서 만약 할 수 없이 자존심 센 남자를 만나야 한다면, 어쩔 수 없이 그래야 한다면 저 후자를 만나시기를. 현대 사회의 특징상 경쟁은 피할 수 없기 때문에 특히 경계해야 할 건 그거다. 상급 자존심과 가난, 낙담, 절망, 불우, 좌절, 고난, 불행, 채워질 수 없는 야망 같은 개념들. 나는 자존심이 세지 않다, 남들도 다 그런다는 변명. 자기 자신을 모르는 무지. 무능력이란 단어를 싫어하는 심정. 그리고 전자와 후자를 혼동하거나 후자 때문에 전자가 부각됐다는 글인지 말인지 불분명한 변호들.
   하긴 어른이라고 투정과 응석을 양족에 꿰차지 말란 법은 없다. 마초의 불문율은 그거다. 그분들께 옆은 없다. 위나 아래만 있을 뿐. 뭐 0과 1만 있다고?
   「그래 너는 허당처럼 0과 1로만 행동하고 살아라~」  뭐?
   「너나 허수아비처럼 0과 1로만 행동하고 살아라! 나는 그녀에겐 0.5 바깥에선 1.5인자를 도맡을 테니까!」
   그런데 여자의 우정은 남자와 완전 다를 것 같은데 겉모습만 그럴 뿐 전혀 딴판의 신세계는 아니다. 즉 심리학적으로만 봐도 절반은 동일하다. (절반이 어디야!) 재미있든 심심하든 수직이냐 수평이냐, 우정도 사랑처럼 시소 게임이니까. 그러나 남녀는 많이 다르다. 여자는 우월감은 듣고 싶어하고, 열등감은 말하고 싶어한다. 정말 그런다. 여자는 내 열등감을 내가 말하고, 내 우월감은 친구로부터 듣는다. 그러기를 바란다. 최소한 그랬으면 좋겠다-다. 반면 남자는 (내) 우월감만 말하고 싶어한다. 단지 그것만! 끝. 딱 끝. 그래서 간혹 드물게 친구들끼리 각자 마이크 쥐고서 각자 막 다 딴 얘기를 한다. 곧 라디오 주파수 혼선. 그런데 내가 아니라 친구가, 지인이, 옆에서 내 우월감에 대해서 말한다? 오, 땡큐! 겸손은 미덕이지만 그렇다고 부러 뜯어말릴 것까진 없는 일이다. 다만 포커페이스가 안되면 왜 날 칭송하는지 뭣 때문에 아부하는지 그 의중을 살필 필요는 있다. 뿐만 아니라 남자 곧 마초는 청자 입장으로써 내 우월감만 듣기를 원하지 나의 열등감은 말하기도 듣기도 싫어한다. 비교 역시 이기는 비교 밖에 원치 않는다. 마초가 왜 비교를 싫어하냐 하면 마초에게 지는 비교가 이기는 비교보다 (훨씬?) 많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초는 비교를 싫어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지는 비교를. 그처럼 겉으로 보면 남자의 우정은 다툼이고 여자의 우정은 친목이다. 때문에 다투지 않으면 남자는 재미없어 하고, 친함을 확인하지 않으면 여자 세계에서는 친교의 결례가 된다. 다시 말해 남자는 소란스러움을 즐기면서 목적을 향해 뛰고, 그녀들은 그런 남자들이 어? 그 작자들이? 그 인간들이! 그분들께서 대체 왜 그럴까에 대해서 토론하며 추측하고 얘기꽃을 피운다. 때문에 남자는 맥주 3명 여자는 수다 3시간. 다 그런 건 아닌데 대체로 그렇다. 따라서 남자의 말은 세고 여자의 말은 길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곧 남자는 허풍 여자는 수다! 여자 얘기 다 듣다가는 날 샌다. 글도 마찬가지고! 역시 곧이곧대로, 남자의 할 말을 믿고 할 일을 이해하다가는 내 말을 못하고 속기 쉽상이다. 무엇보다도 뻔트조차 대만족인데 서로 허당하겠다고 난리인데, 상황 판단을 거꾸로? 으쌰으샤해서 나갔길래 아무도 없고, 이번엔 다르겠지 하며 방관했더니 의리 없다고 소문난다. 훗날 풍문에 따르자면 비겁한 친구로 낙인 찍힌 걸로도 모자라 벌금 물기가 습관인 인성이라길래 그녀도 날 떠났다라 뭐라나. 까딱 잘못했다가는 병풍 서기 일쑤고 청춘 훅-가버리는 건 시간 문제다. 난 준비도 안됐는데 덜컥 어른. 아직 사랑다운 사랑도 못해봤는데 여성잡지 2! 친구 연애 상담만 하다가 추억의 유행가를 부르는 게 일상. 달팽이 요리도 못 먹어봤는데 어느새 은발의 신사가 될 수도 있다는 것. 그게 바로 인생이다. 그것은 곧 남자의 허풍과 여자의 수다! 그러므로 부럽지 않다 라는 남자의 허세 딱 하나에 대해서 숙녀에게는 판도라의 상자에 담긴 감정들이 수없이 많은 것이다. 선망, 허영심, 질투심, 감수성, 호기심, 상심, 체념 뭐 뭐 들어도 들어도 끝이 없는 그녀들만의 대담은 말이다.
   그래서 남자가 봤을 때 괜찮은 여자는 첫째 신부 들러리라는 역할에 적극적인 여자, 둘째 착하고 예쁜 여자다. 그건 남자끼리 합심하여 아마도 반론의 여지가 별로 없다. 어쩌면 거의? 그러나 여자는 의견이 분분하다. 괜찮은 남자가 누구인가에 대해서. 곧 여자에게 괜찮은 남자라는 기준 자체가 애매한 것이다. 날 꽃으로 찬미하며 거울이 되어주고 조명을 비춰주며 선물 공세마저 마다하지 않는 남자가 최고일 테니까. 어머머 그런데 성실한 벌꿀도, 춤추며 노래하는 베짱이도, 재밌고 즐거우며 멋진 나비님들은 다 어디로 가셨는지 어설픈 파리마저 꼬이지 않는다? 조류 대백과는 다 엉터리인 것이다. 우리는 여자의 마음을 이해해야 한다 이해해야 한다. 그러니까, 괜찮은 남자는 누구일까? 그래서 그녀들끼리 함께라면 결론은 도출된다. 뭘 좀 아는 남자는, 바로, (내) 열등감을 말하는 남자 아닐까 라고! 그녀들끼리는 다정한 수다가 자연스럽게 그 어디서나 성토된다. 뭐 괜찮은 남자가 그렇다고? 과연 그럴까! 아니다.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리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는 맞는 말인데, 속속들이 빈틈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이렇다. 속셈이 시킨 말하기 곧 교묘한 화술도 있을 테고, 밑밥을 던지거나 에르메스 같은 화려한 공작새의 깃털을 내세우기 위한 사전 포석일 수도 있다. 또 있다. 바람잡이라는 조수 하나 달랑 놔두고 마술사는 객석에 숨는 것처럼 우월감을 위한 멍석을 까는 일일 수도 있으며, 것도 아니면 피곤한 스타일에 여간해서 통 잘 듣지를 않는 수다쟁이일지도 모를 일. 예시는 해도 해도 끝이 없다. 그 뿐만이 아니라 남자는 배짱 여자는 애교라는 (전래) 인습처럼 여자는 유혹하고 남자는 구애하는 전형마저 세월에 따라 조금은 약해진다. 모든 건 변한다. 때로는 사랑마저 식는다. 더구나 남녀의 우정과 사랑은 쉽게 말해 8 대 2의 법칙이 통용된다는 걸 누구나 크면서 알게 된다. 심지어 발레리나가 거울을 보면서 해야 하는 혼잣말, 넌 백조다! 이어서 그 비싼 입장권을 구입한 특A 좌석에 앉으신 그녀가 꿈속에서 했던 말, 어딜 넘봐? 그마저 영 딴 데서 애용될 가망성도 다분하다. 푸르른 청춘 하고 싶은 일들은 다망했는데, '망'자로 끝나는 불길한 낱말들은 인간사에서 불가피한 일이다. 그러니까 어느덧 세상의 원리를 모두 알아버렸네? 그러면서 부끄러운 척 무서운 척 공포영화를 보면서 그이의 팔짱을 꼬옥~! 고로 그녀들은 얘기한다. 아, 바로 그래서 우리들에게 멋진 남자친구가 없는 것이로구나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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