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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소설 2018. 2. 15. 17:18

   1

   나는 내가 요즘 왜 매사 재미없어 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내가 왜 허언증에서 무기력증으로 갑자기 옷을 갈아입었는가, 왜냐하면 나는 지킬 앤 하이드처럼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질투심으로부터 맹추격을 받든가, 새로운 관심사의 맹추궁에 시달리던가, 어쩌다 그 둘이 모두 갖추어져야만 뭔가 흥미로운 일을 벌일 만한 의욕이 발동하는 개구쟁이로 변해버린 것이다.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고, 도도하던가 꿍꿍이가 있거나 감수성을 자극하는 부뚜막이 보이던가 나타나던가, 그래야 하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지붕 위에서 일장 연설을 할려면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본다고 개라는 부동의 조연이 필수적인데 흥미를 유발하는 호기심도, 도발하는 여심에 자극 받는 동심도, 별다른 약속도, 변변찮은 친구도 없었다. 때문에 나는 극심한 권태에 시달리며 지루한 일상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녀들을 만나러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녀들? 그녀들은 저번에 팬미팅에서 알게 된 친구들을 말한다. 나는 그녀들의 해맑은 미소와 밝은 눈빛, 들뜬 분위기, 뭐든 재미난 일은 우리네 삶에서 끊이지 않는다는 듯한 웃음소리를 기억했다. 아이스크림 사주라는 둥 아빠라는 둥, 잡덕 별로라는 둥.
   물론 나는 나름대로 혼자서 노력했다. 탐욕을 잠재우기 위해서. 우유부단증을 치료하려고. 영감을 애걸하고 심심함을 벌충하려고 말이다. 식상한 일상에 질질 끌려다니기는 싫었으니까. 하여 나는 블로그에 몰두했고 환상론을 탐독했다. 더 나아가 라디오 연속극을 애청했으며 TV로 스포츠 경기를 관람하며 나 혼자 편파 방송도 했다. 그러나 사랑은 실전이 아니라 모두 가상 체험이었다. 그걸로도 모자라 나는 세상에 둘도 없는 재주의 부재를 절감했고, 통장 잔고에 절망했다. 곧 항상 그래 왔듯이 또 심심해서 뭘 찾고 두리번거리며 어떤 냄새를 맡을려고 기민한 육감과 별의별 상상은 바빠진 것이다. 그러나 내내 놀기만 하지는 않았다. 약혼식이란 제목의 사랑론을 책으로 발간하기로 결심했다. 그렇지만 매번 그렇듯이 발단 다음에 또 발단이었다. 즉 진행이 영 신통치 않았다. 남다른 취미는 상상이요, 고전음악을 애청하고, 환상문학을 탐독하며, 다큐멘터리 동물의 세계를 정기 시청하는 가운데 언제나 새로움을 열망이라고 우겨 봐야 재미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나는 어쩔 수 없이 그녀들을 만나야만 했던 것이다. 명분은 마련됐다. 실행만 남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연락을 마쳤고 어디서 만나자는 약속을 잡은 다음 도시로 출발했다.



   2

   「너네들 어디 가고 싶니?」
   「오빠 무슨 인사말이 그래요?」
   「그러게. 꼭 집에서 재미없는 영화 볼 때 구간 당기기 그런 느낌 들지 않니? 멀리서 걸어오면서 어떤 인사를 나눌까 미리 상상하다가 정작 만나서는 몇 페이지 건너 뛰어. 너네들 어디 가고 싶니?」
   그녀들은 모두 함께 웃었다.
   「오빠는 우릴 남자로 알고 있어.」
   「그러니까.」
   「가긴 어딜 가?」
   「보자마자 너네들 어디 가고 싶니?」
   「아저씨 무안하시게 너무 그러지 말자.」
   「아저씨? 그게 더 심한 거 아니니? 오빠! 우리가 오빠라 부르는 게 좋아요, 아저씨라 부르는 게 좋아요?」
   나는 내가 왜 얘네들을 만나러 왔을까 라는 당혹감에 순간 아찔함을 느꼈다.
   「오빠의 질문에 질문으로 대응하지 말고 우리가 답을 정하자. 클럽 어때 클럽!」
   「클럽?」
   「오, 클럽!」
   「나 엄마 심부름 가야 하는데.」
   「지금?」
   「응. 지금.」
   「그럼 얘 빼놓고 가면 되겠네.」
   「아차. 나 있잖아. 우리 오빠랑 약속한 거 깜빡했다.」
   「에이. 이 오빠 보고 실망했구나. 왜 너네 오빠랑 비교되니? 그럼 가지 말자.」
   「가지 말긴 뭘 가지 마? 이 오빠 얼굴 봐 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우릴 만나 커피 몇 잔으로 때울려는 대망이 성공했다는 저 늠름한 표정, 보이지 않니? 너네들 왜 그래? 약해지면 안 돼! 응?」
   「가자. 가야겠다. 갈 사람은 가고 나중 합류하고 싶으면 합류하고.」
   나는 드디여 내가 말을 해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너네들 클럽... 가도 되니?」
   「왜 못 가요, 오빠? 설마 돈 부족해서 그런 건 아니죠? 쟤 삼촌이 클럽 사장이에요. 우린 특별히 2배로 받을 걸요.」
   일단 나는 찻집에서 혼자 나와 마라에게 전화를 했다. 왜냐하면 나는 요즘 칼럼이 잘 써지지 않아 여유 자금이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너 돈 떨어졌니?」
   「돈이 왜 떨어져? 나 돈 많아.」
   「돈 떨어졌네.」
   「아니라니까. 늬가 내 마누라냐? 나 좋아하는 사람 있어.」
   「누가 뭐래? 아무튼 칼럼 굳이 억지로 쓸려고 하지 마. 그리고 있잖아. 요즘 애들 뭐 좋아하는지 색다른 유행이랄지 뭐 그런 거 있음 알아 오고. 응? 그리고 있잖아. 내가 언제 한꺼번에 내 호의에 대한 화답을 요구할 꺼야. 알았니? 긴장해!」
   「긴장하긴 뭘 긴장해? 무섭게 왜 그...러니. 너 자꾸 그럴래? 자꾸 그러면, 혼난다.」
   「응. 혼날께. 나 혼 좀 내주라. 응? 넣었어.」
   「응? 뭘 넣어? 넣다? 그러니까 뭘?」
   「현금 보냈다고. 이번에는 제발 발단을 탈출하기 바란다.」
   「아 참 나, 넌 왜 꼭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하고 그래? 그래도 일단 보낸 성의가 있으니까 최신 유행과 최고로 신난 기승전결을 안고서 돌아갈께. 딱 기다려. 응?」
   「아 됐고. 그만 끊자. 우린 통화 너무 길게 하면 안 어울리니까. 안녕!」
   뚝.
   「얜 여자 애가 왜 이렇게 퉁명스러워? 딱 지 말만 하고 끊는 거 좀 봐. 앞으로 누가 데려갈지는 몰라도 고생 꽤나 하게 생겼네.」
   그녀들과 나는 클럽에 갔다. 클럽은 재미있지 않았다. 그런데 술값은 많이 나왔다. 그러나 술은 많이 마시지 않았다. 그건 다 값비싼 특실 때문이었다. 나는 그날 원래대로라면 입장 금지를 당했어야 했다. 그게 정상일 것이다. 하지만 그녀들 말마따나 클럽 사장이 진짜로 누구의 삼촌인 듯 했다. 그래서 미리 얘길 해 놓은 것 같았다. 그리고 내가 알기로는 클럽에서는 춤을 심하게 추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어제 보니 꼭 그렇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그녀들은 춤을 매우 과격하게 추었기 때문이다. 그야 개인의 취향이니까 달리 문제될 건 없지만 특별한 점은 그거였다. 한 명은 스피커를, 한 명은 DJ 무대로, 한 명은 무도회장의 춤 추는 곳 정중앙을 독차지했다. 그래서 내가 물어봤다. 그처럼 기분 내는 것 보니 꼭 너네들 뭔가를 기념하는 것 같다면서 혹시 성년식이냐고.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녀들이 그랬다. 와, 어떻게 알았어요! 어떻게 알긴 뭘 어떻게 알아, 그냥 찍었구먼. 그외에 달리 재미난 일은 없었다. 아, 약속 하나만 빼면 말이다.
   그 약속은 내일 떠나자는 다짐이었다. 어디냐고? 어디긴 어디겠나 바다지. 특별한 목적지가 아니라 페이스북 프로필에 좋아하는 대상으로 도시, 꽃, 소풍, 음악, 영화관이라면서 넓고 모호한 대상을 적는 것처럼. 당시 분위기는 좋았다. 야 바다 어때? 바다! 오, 바다? 와! 떠날까? 갈까? 가자! 와 재밌겠다! 즉 전형적인 으쌰으쌰였다. 곧 그건 술 마시고 한 약속이었다. 나는 꼭 술이 아니더라도 살면서 으쌰으쌰에 당할 만큼 당했기 때문에 당연히 지나가는 말로 알아들었다. 그 외에도 이유는 많았다. 우리는 미래를 약속한 사이가 아니었고, 나는 보디가드 역할을 성실히 수행했다. 즉 할 일은 마쳤다. 게다가 비공식 대리인으로써 밤의 세계에서 펼쳐지는 제2의 환희, 제3의 계산서까지 책임졌다. 더구나 우리는 1 대 1이 아니었다. 나는 눈치없이 계속 덩달아서 들썩거릴 게 아니라 이쯤에서 빠져야 할 적기라고 생각했다. 나는 시시콜콜 묻고 답해야 할 것과 이심전심을 적절히 구분할 줄 아는 남자여야 했으니까. 이심전심? 백조도 그런다. 자기 유리할 때는 묻고 답하기, 언어와 서류로 구체화되지 않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처럼,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통례 역시 묻고 답하기. 즉 말이 먼저고 말이 끝. 하지만 백조라고 이심전심이 없을 수야 있나. 이를 테면 숙녀여 손 잡아도 될까요? 아가씨 키스 해도 되겠습니까? 이건 코메디 소재로도 적합하지 않는 일이다. 그처럼 꽁트에서도 인기 없고 드라마에서도 잘 나오지 않길래 올커니 하면서 딱 어떻게 한번? 그러다 뺨 맞는다. 한 사람 인생에 평생 잊지 못할 추접한 기억과 끈질긴 저주를 남길 뿐. 그래서 눈치 없으면 고생 길이 훤할 것이다. 어딜 넘봐, 한 발 다가와 주세요! 그 둘의 분간이 그분들께는 애매할 테니 말이다. 아무튼, 때문에 나는 장래 어떤 일이 있을 줄도 모르고서 그녀들과의 약속을 깨버렸고, 인연을 외면했으며, 넝쿨째 굴러온 호박을 이건 또 뭐야 라면서 과감히 무시해버렸다. 하지만 난 나름대로 어른스럽게 행동했다면서 어줍짢은 득의를 성취한 듯 떨떠름한 미소를 짓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혼자 적당한 호텔에 입실했고, 다음 날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그날은 그렇게 잤다. 다음 날 일어나서 특별한 일 없이 하루를 보내고 나서 나는 빌리가 꼭 한번 놀러오라는 어느 해변에 위치한 호텔로 놀러가기로 했다. 바로 출발했다. 물론 놀러오라는 빈말에 덥썩 진짜로 놀러가면 적지 않은 실례일 테니까 나는 빌리의 인사말이 수차례 반복되기를 오랫동안 기다렸고, 그 간곡함을 심려 깊게 검토한 다음 내린 결정이었다. 아, 그런데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곳은 내가 첫 단편소설을 썼던 바로 그 호텔이었다. 빌리가 그곳 사장이라길래 처음에 난 선뜻 믿지 않았고, 가 본 적 있다고 말하지도 않았으며, 나는 빌리의 호의를 끝까지 불신했다. 그렇게 나는 행복한 일하기를 위해서 한적한 바닷가로 떠나게 되었다.



   3

   「오빠. 왜 안 나왔어요?」
   나는 그 멋진 휴양지에서 그녀들과 만나게 됐다. 그럴 줄은 꿈에도 몰랐다. 마치 약속이나 했다는 듯이 만나게 될 줄이야 상상이나 했겠나. 무심한 사랑 무정한 우정만은 피하고자 하는 미래에 대한 우리의 전망이 일치했기 때문일까? 일치는 무슨!
   「뭔가 오해가 있나본데, 오빠가 쓴 일기를 읽어보면 알게 될 꺼야. 나는 무엇보다 이건 우리의 숙명이고, 이 우연을 아름답게 발전시켜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해.」
   「오빠 일기를 우리가 왜 읽어요? 아니지. 보면 재밌겠는데!」
   「어. 정말 그럴 것 같아.」
   「아무튼 변명하지 마세요. 오빠.」
   「얘들아. 이쯤 되면 반전은 필연 아닐까?」  뭐 아닐까?
   「그래도 다행이지 않니? 우리도 신세지고는 못 사는 숙녀들인데 말이야. 구호라도 읊어주자구. 오빠가 돌아왔다! 왜 아무도 안 따라해? 에잇 재미없네.」
   「오빠가 우릴 놀라게 해 주었으니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게 있어야 하지 않겠니? 해변이 우릴 부르는 구나. 오빠. 우리 사진 찍어줘요. 응?」
   「오빠. 쟤 잘 부탁해요. 딱히 이상한 애는 아니니까 걱정 마세요. 안 그러니?」
   「이 오빠 벌써 상상하는 거 아니니?」
   「어떤 거? 욕심?」
   「그러니까 동심이냐 흑심이냐. 여심일 리는 없고.」
   「오빠 그만 놀리자. 혹시 모르잖아. 약혼녀랑 같이 왔을지 모르니까 말이야.」
   「오빠 혼자 왔어요? 대답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아니 그럼 묻지를 말던가!
   우리는 바닷가를 잠시 거닐다 들어왔다. 눈치없이 막 우겨서 해변의 낭만이라면서 맨발로 여기서부터 저 끝까지 갔다 오자, 그래야 한다? 나는 그런 인기 없는 허당이 될 수는 없었다. 더군다나 우리는 우리는 하면서 나는 글을 써야 하는데 진짜로 '우리는'이 생겨버렸다. 따라서 나는 이 전개를 필시 규명해야만 했다. 그녀들이 감격의 절정으로 날 초대할지 나의 끈질긴 발단에 대한 애착이 승리를 거둘지 지켜보아야 하니까. 그렇게 우리는 조찬 비즈니스 모임이 끝난 후 담소를 나누듯이 한 잔의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게 됐다.
   「오빠. 왜 혼자 왔어? 낯선 만남 막 이런 거 바래서?」
   「이 오빠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봤네.」
   「아 오빠 작가지. 오빠는 아마 2시간 전에 이런 글을 썼을 것 같아. 새로운 취미에 도전하여 악기 연주에 실패했고 외국어 공부에 연패했다.」
   「와, 어떻게 알았니?」
   웃음소리.
   「얘들아. 그래도 우리 오빠 글 쓰는 남자야. 나중 모른다니까. 오빠 유명해지면 그때 가서 친한 척 하지 말고 지금 실컷 놀려먹자!」
   「그래도 가련한 예술가이신 우리 오빠 딱 봐도 가난해 보이지 않니? 오빠. 우리가 이제부터 적극 환대할께. 걱정하지 마. 솔직히 우리도 클럽에서 그렇게 비싸게 나올지 몰랐어.」
   「진짜야 오빠.」  그러면서 그녀는 옆에 있는 친구의 옷을 뒤집어서 브랜드를 확인시켜준다. 소리내어 읽기도 한다. 머머. 메이드 인 머머.
   그러고 보니 나는 그때부터 왠지 얘들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처음부터 심상치 않은 분위기는 감지했다. 그렇지만 뭔가 긴가민가 했고, 그래서 몸은 성년이지만 소녀 감성에 그냥 그만그만한 청춘으로 여겼는데 보아하니, 오! 나는 바보였던 것이다. 그렇다고 나는 유달리 마음의 갈등 심리적 압박에 시달리지는 않았다.
   「오빠. 우리 어때? 남자친구 있을 것 같아, 없을 것 같아? 그러니까 말이 통하는 남자를 기달려도 괜찮은지 어쩐지 감정을 부탁하오. 장난스럽게 예언하지 말고 잘 봐 봐! 우윳빛 순결한 우리의 눈부신 애교를. 찬 밥 더운 밥 가려도 될 처지인지를 말이야.」
   「사랑은 시시할 뿐이고 꽃다발도 하찮고 남자는 관심 없다고 박박 우겨대던 숙녀는... 아닌 듯 하오. 그러던 숙녀가 지금은? 남자 보기를 돌맹이 보 듯 한다? 아마도 그 반대 아닐까!」
   「오빠의 허영심에 대한 취향 참 특이하시다. 오빠는 어쩌면 허세 머신 보다는 허영심 머신에 가깝겠구만!」
   「나 이 오빠 업어보고 싶어!」
   「업지 마.」
   「알았어.」
   「와! 세일러의 스타킹. 와!」
   「야. 애들아. 나 오늘 한껀 했다.」
   웃음 소리.
   「그런데 있잖아. 앨리스는 어딨니? 너네 우정은 4명인데. 앨리스는 어디 갔지?」
   「봐 봐! 항상 이렇다니까.」
   「매번 이런 식이지.」
   「남자들은 다 그래.」
   「남자는 다 똑같아.」
   앨리스가 뭐 어때서? 난 그냥 빈 자리가 궁금했을 뿐이다. 옛말에,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표가 난다고 했다. 그런데 어딘가 모르게 어째 거 왜 썩 어울리는 속담은 아닌 듯.
   「와, 이거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악인데!」
   「왠지 모르게 라벨 취향인 듯 해서 오빠가 신청했어. 기억해 줘, 린!」
   「오빠가 무슨 노스트라다무스야 뭐야?」
   곧이어 G.B. 페르골레지의 G장조 플룻 협주곡이 흘러나왔다.
   「와, 이거 아는 사람 많지 않은데. 설마 이거도...? 오빠 우리 뒷조사했어?」
   「어쩐지 너네들 행진의 흥미, 스무 살의 기쁨과 오빠의 행복한 무명 시절이 만나 구체적 신비감을 연출하지 않을까 해서, 그래서...」
   「뻥이야! 아까 한 말 다 뻥인데. 미안 오빠!」
   웃음소리.
   그녀들은 아직은 낯선 남자에 대한 호기심이 자극 받아 장난기가 발동했다.
   「오빠. 남자는 여자를 어떻게 꼬셔? 요정들의 축복을 받으며 천사와 행복한 미래를 약속한다, 뭐 이런 거 말고!」
   「아까 말했지? 남자는 다 똑같다고. 할머니가 그러시잖아. 남자를 믿느니 옆집 똥개를 믿겠다고. 물론 그 놈이 그 놈이다, 꼭 그렇지는 않을 수도 있어. 그런데 남자는 비교적 여자보다 취향이 단순해. 위냐 아래냐, 곧 마음이냐 몸이냐거든. 간혹 드물게 말이야 이 오빠처럼 나이가 들어도 힘이 밑에서 위로 올라가지 않는 남자도 있긴 하지만 말이야. 물론 오빠 같은 남자의 소원은 그거야. 쾌남아, 몽상가, 사색가, 낭만주의자, 개그맨, 재력가, 시인, 테너, 화가, 기타리스트, 익살꾼에 그녀만을 위한 이중인격자까지 도맡아야 할 1인 다역은 해도 해도 끝이 없길 바라지. 진짜로! 하오나 그런 팔방미인이 어디 흔한가. 그래서 착하고 이쁜 여자를 좋아하는 남자의 단순한 안목과 달리 여자의 취향은 분산되기 마련이지. 벌써 봐 봐. 오빠 말에 빠져들고 있잖니. 응? 굳이 주문을 외우지 않더라도 말이야. 빠져든다 빠져든다 빠져든다, 얍! 빠져든다 빠져든다 빠져든다, 얍! OK, 빠져들었다~! (딱) 빠져들긴 뭘 빠져들어! 허허허. 자, 들어 봐 봐. 게다가 여자들이 좀 까다롭니! 여자의 아니오는 종류 10가지 방법 10가지야. 고로 여자의 아니오는 10 X 10 = 100이라고. 이게 좋을 때는 괜찮은데 문제는 안 좋을 때. 예시는 생략하는 걸로.
   그럼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남자가 여자를 꼬실려면 여자를 알아야 하지. 그것도 대충이 아니라 아주 잘! 숙녀가 무엇을 좋아할까? 그래, 한정판! 만인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 특별한 것. 얼마나 좋아. 딸랑딸랑 천상의 쳄발로 음률. 반짝반짝 사랑의 다이아몬드. 빰빠라밤~ 즐거움과 풍요와 기쁨과 호사. 짜잔~하며 미스테리 느낌에 두둥~하며 풍선처럼 내 마음이 두둥실 떠다닌다면 왜 싫겠니! 그러나 거기까지는 좋아, 딱 거기까지는. 이때 모순은 스르륵 고개를 들고 부조리는 슬며시 끼여들겠지. 악녀와 심각한 영심이도 물론 있겠지만 여자는 원래 착해. 때문에 들리면 외우고 보면 좋아하며 자주 보면 정들어. 여자는 천상 여자거든. 여자는 순진하니까. 따라서 숙녀는 남자의 말에 속을 수 밖에 없는 숙명과 내내 불화를 겪어야 할지도 모른다네. 그래서 그녀들은 싸구려 큐빅을 진짜라고 믿고 진흙 속의 진주를 알아보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야. 사랑이 원래 그런 거야. 실체가 없거든. 고품격도 그렇거든. 대게는 거품이고 한정판은 상술에다 멍청하다고 하면 싫어하거든. 격조가 어중간하면 오히려 안 팔려. 그 모두가 본시 합리주의의 허상이라고. 응? 간명하게 말하자면 이렇게 따져보세나. 애인에게 동시를 헌정할 것인가, 에르메스를 선물할 것인가. 그녀가 만약 난 전자로 충분하다고 했을 때 사람 너무 정직하게 그녀 말을 딱 곧이 믿으면 돼, 안 돼? 만약 그녀 말을 철썩같이 믿었다가는 어떻게 될지 아아, 암담하네. 아 말도 말어. 그치만 허당들이 알고 보면 꽤 똑똑해. 그 친구들이 절대 허접한 게 아니야. 그 친구들은 그래. 한때 좌우명이 그랬을 꺼야. 남자는 폼이다. 남자는 살면서 한번쯤 남자의 로망 제1번을 성취해야 한다. 날뛰는 허세를 달래고 도망치는 숙녀의 마음을 붙잡기 위해 나는 돈을 벌고, 사랑론을 쓰고, 환상극을 찍고, 신비관을 개관하며, 허세를 위해 돈을 써야만 한다 라고. 여기서 두 갈래로 나뉘지. 허세는 찬란한 야망으로 도약할 것인가, 유감스런 염증에 내내 머무를 것인가로. 그러니까, 어쩌면 교양미는 타고나는 것 아닐까? 허풍이 진짜냐고 왈가왈부할 필요 없듯이 허영심의 꼬리는 일단 붙잡고 봐야 한다네. 솔직히 따져 보잔 말일세. 어? 허심탄회하게! 응? 가슴에 손을 얹고! 가... 음 그래. 나를 위해 자기 만족 때문에 매일 화장을 하지만 여자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왜 꼬리를 흔드나 흔들지 않나를! 내가 하면 애교에 여성스러움과 품위 유쾌함 발랄함 천진난만함이고, 내가 하지 않으면 어디서나 교태 부리고 아무한테나 천박하고 요염하며 누구에게나 꼬리치는 게 되는 건가?
   그거거든. 남자는 그 모순을 파고든다네. 그 빈틈은 결코 보호색이 아니거든. 그건 한마디로 광고요 아름다움이며 사랑이거든. 뭘 좀 아는 남자는 그 부분을 무심코 애정할 수 밖에 없어. 왜? 사랑스러우니까! 그럼. 남자가 여자를 어떻게 꼬시냐고 물어보셨겠다... 농심은 여심에게 이렇게 접근한다네. 어복이 언제나 풍년이면 무슨 걱정이겠나. 항상 여복이 흉년이지 않더래도 남자는 여자를 좋아할 수 밖에 없어. 본능에 학습에 인생이 더해지는데 사냥법에 인색하다? 그럴 순 없어. 만약 그렇다면 그건 바보야. 그러하니, 이번에 내 바보들을 위해서 총대를 매겠네. 실연의 고통과 불행한 사랑이 있으면 노력하는 새로움도 있을 테니까 말이야. 자, 한번 시작해 볼까?
   그녀의 인생을 통틀어서 여자에게 가장 친숙한 행위와 물건이 무엇인 줄 아나? 엄마 아빠, 아니지! 내 이름? 내 이름 만큼 특별한 건 없는데 그건 그 다음 얘기. 곧 그건 바로 거울 보며 화장하는 일과 거울 그 자체라네. 한마디로 여성잡지1! 여자의 반평생은 여성잡지1이야. 말로야 여자에게는 사랑이 전부라고 하지만 절대, 절대로 그렇지 않아. 남자에게 허세와 허풍이 있듯이 여자에게는 일평생 신부 들러리와 거울이 있다네. 응? 일평생! 여자의 인생은 사랑이 전부가 아니야. 절대 아니야. 난 물론 그 정도로 회의적이지는 않지만 조금 심하게 비약하자면 여자에게 사랑은 재산 목록 1호 2호 같은 것일 뿐. 그 이상이 되기는 힘들 수도 있다네. 그래서 뭘 좀 아는 남자는 여자를 볼 때 제일 먼저 여성잡지1을 생각해. 그 하위 분류야 드라마, 허영심, 교양, 푼수끼등 나눠지는 거고 일단은 여성잡지1이 전부야. 그걸 알면 그 다음은 행복과 기쁨과 과일과 꽃은 저절로 따라오게 되어 있어. 응? 자연스럽게 말이야.
   그러면 그 다음은 무엇일까? 무엇이긴 내가 요술 거울이 되고, 마법의 수정구가 되며, 조명으로 카메라로 열연하는 것만 남겠지. 낮에는 오빠 밤에는 돌쇠, 오늘은 눈 앞에 아른거리는 얼굴 내일은 혀끝에 맴도는 이름. 좀 더 나아가자면, 바라건대, 바이런이 살아있다면 필경 구사했을 그런 열망 어린 어조까지.
   그렇다면 그 예는 무엇이 있을까? 그녀의 인물화를 그려주는 일. 누드화 말고! 그녀를 사진 찍어서 인화하고 액자에 담아 선물하지 말고, 그 액자를 바라보는 내 일상이 어찌어찌해서 착오인 듯 고스란히 그녀에게 전해지기! 그녀는 가만 있어도 연예인이 되는 거야! 그게 바로 유체이탈이란 거지. 그녀를 주인공으로 책을 쓰고 영화를 만들며 기념하기. 이건 까딱 잘못하다간 한발 늦을지도 모르겠군.
   그리고 어떻게 그 다음으로 허세와 허영심 대회에 대해서 말할까, 말하지 말까? 하지 말자구. 난 벌써 인기 없는 그냥 허당으로 찍힌 듯 하니까 말이야.」
   내 장황설을 들은 그녀들의 반응은 묘하게 둘로 나뉘었다. 첫째, 이를 어쩌면 좋아? 둘째, 이 바보야!
   나는 어쨌든 그녀들과의 기묘한 우연 이상한 인연 때문에 우리는 마침내 친구가 되었다. 진정한 친구. 우정이 언제 파탄날지 가늠할 수 없는 찐한 우정. 그런데 전체 인원이 다수다 보니 나는 '우리는' 화법을 자신있게 구사할 수는 없었던 점이 단지 아쉬울 뿐이었다.



   4

   나는 호텔 사장 빌리와 함께 무슨 연주회 기념 만찬회에 참석했다. 그곳에서의 기승전결을 요약하자면 딱 하나 밖에 없었다. 다른 건 다 그냥 그랬으니까. 그것은 어느 중년 여인과의 대화였다. 내가 먼저 그 부인께 말을 걸지는 않았다. 그녀가 먼저 내게 이렇게 말했을 뿐.
   「청년. 빌리 친구되나?」
   「아 네 그럼요.」
   「내가 우리 딸 소개시켜줄까? 우리 딸 예뻐!」
   「아 네 그게...」
   「전화번호!」
   「......」
   「뭐해? 어서 불러!」
   그녀의 말을 분석하자면 이랬다. 첫째, 내가 예쁘다는 말이 아니다 내가 꽃이라는 뜻이 아니었다. 둘째, 외양이 수려했다. 꼭 뭐 어떻다 라는 의미가 아니라 그녀는 천상 여자였다. 자기를 꾸미고 가꾸는 데 유독 열심이라는 뜻이다. 사랑이 오래 되면 다른 거 없다. 남자에게 숙녀는 여자인가, 여자에게 남자는 남자인가, 단지 그뿐! 뭘 좀 아는 여자는 사랑이 오래 되어 편안함이 찾아오더라도 그 어떤 긴장감을 절대 내려놓지 않는다. 그게 바로 여자다. 그리고 셋째, 목적이 분명했다. 눈치가 느린 남자는 한 박자 늦게 의도를 깨닫고 눈치가 없는 남자는 뜬금없이 딴 여자를 꼬시다가 몇 년 뒤에 느닷없이 몇 년 전의 눈치를 간파할 수도 있다. 때문에 남자는 눈치가 빠르든 늦든 이상하든 모른 척 하든 확실함 대 은근함의 비율이 여자와 반대되는 수컷인 것이다. 아 그런데 둘째 이유에서 천상 여자? 사랑이 오래 지속될 수 있는 비밀에 대해서 그녀들에게 알려줄 걸 그랬나 라고 생각했다. 어디서든 짝을 보면 남자에게 여자가 천상 여자인가, 그게 매우 중요한 관건에 해당하는데 말이다. 그건 그렇고 나는 그 여인에게 하는 수 없이 전화번호를 빼았기고 말았다.
   그리고 다음 다음 날 나는 연주회 기념 만찬회에서 만난 부인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호텔 커피숍으로 나오라는 전화였다. 나는 차나 한잔 마시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부인이 전화를 했다. 자기 대신 자기 딸이 나간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나는 호텔 커피숍에서 앨리스를 만났다. 앨리스는 물론 팬들과의 만남에서 알게 된 친구들 4인방 가운데 한 명이었다. 나머지 친구들이 그렇다고 그처럼 의리 없는 친구는 아니었다. 곧바로 옆 자리에 대기중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저렇게 사정을 알게 된 다음 우리는 그냥 웃을 수 밖에 없었다. 핑곗거리가 필요했을까. 부드러운 사랑에 대해 곰곰히 생각할 수도 없었고 우린 왠지 모르게 낯을 가리는 이상한 분위기에 휩싸이고 말았다. 그래서 나는 낌새를 눈치챘다. 아마도 그녀들끼리 좋은 데 가기로 했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다음과 같은 아리송한 말을 남긴 채 자리를 떴다.
   「사랑은 온실 속의 장미에게 물어보고, 인생은 들판의 잡초에게 물어보게들.」
   그 후 나는 도시로 돌아가서 작품 구상에 매달렸다. 최근 느낀 일이지만 나는 글을 쓰기 위해 도시에 들리는 것만 같았다. 물론 성과는 있었다. 나는 미스테리아 전속 연재 작가로 초빙된 것이다. 그러나 초빙 되자마자 해임됐다. 사례금 얼마는 뚝딱 내 통장으로 입금됐다. 그렇다고 괜히 자존심 세운다며 황금을 마다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위약금이라 치고 생활비를 아껴 쓰기로 했다. 그러면서 나는 휴양지에서 너무 일찍 돌아온 건 아닐까 라고 생각했다. 바닷가에 머물며 빈둥빈둥 놀다가 착상이 찾아오기를 기다려야 했었나? 라면서. 영감이 무슨 발 달린 호박은 아닐 테지만 말이다. 그처럼 다시 내 일상은 잔잔한 심심함으로 돌아왔다.



   5

   가난한 부자는 없지만 마음의 부자는 있다. 그처럼 무관의 제왕은 무관만 있고 제왕은 없는 거다. 전문가에게 그것은 심심함과 비운이다. 심심함은 가능성이고 비운은 불행이다. 가능성은 희망이고 불행은 가난이다. 그러니까, 가난한 희망? 그건 비전문가인데! 고로 전문가가 그렇다면 그건 둘 중 하나다. 내가 시대를 초월했던가, 유행과 오락산업과 시대가 퇴보했던가. 그런데 전자도 타임머신이고 후자도 타임머신이네? 그럼 마침내 난 양쪽에 타임머신을 꿰찬 건가? 이런, 젠장!
   아저씨들이 재미없는 이유가 있다. 나는 아저씨다. 따라서 나도 재미없어야 하나? 그건 아니다. 그렇다면 아저씨가 재미있으면 될 것 아닌가? 아니다. 어차피 기쁨은 가라앉게 되어 있다. 마치 뜨거웠던 사랑이 언젠가는 식는 것처럼. 그렇다면 내가 주목하고 착안할 지점은 바로 그것이다. 이제야말로 뭔가 정말 슬슬 재미있어질 것만 같은 기분! 바로 그 순간의 비밀. 그런데 그게 나 혼자서는 여간해서는 잘 풀리지 않을 듯한 수수께끼 같은 것이다. 결국 난 재미없는 아저씨네. 그러니까 무엇이 재미없냐! 목적어는 필요 없다. 그냥 재미없다고 가정하고, 그분들 인생을 분석하자면 철없던 시절에는 그랬다. 사교 > 우정 > 사랑. 그런데 동네 아저씨가 되고 나면 그 등호가 반대로 바껴야 한다. 고로 그분들은 재미가 없는 게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안 그래도 풍요 속 불만족은 운명이었는데 지는 비교까지? 망신이고 꽝이자 연패다. 깐 바나나 또 까는 식이니까. 에잇 재미없다. 보아하니 난 아마도 그녀들과 즐거운 시절을 보내고 싶은 게로군.
   말하자면 우리는 함께 해야 한다 그거네. 그런데 어떻게 만나지? 그녀들에게 연락을 할까 말까. 연락을 해서 친하게 지내는 건 식은 죽 먹기다. 다만 내가 삼류란 진실이 들통나는 건 시간 문제일 뿐. 그렇다고 연락을 하지 않자니 저번에 으쌰으쌰를 주동한 다음 결과적으로 선동자만 쏙 빠진 셈이 되어 그 일도 적잖이 미안했다. 때문에 내가 먼저 연락을 하는 게 옳은 일이다. 하지만 우린 왠지 잘 어울리지 않아야 정상인 듯한 기분, 나도 그걸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럼 이제 어쩌지? 그렇다. 선동이 특기인 나는 언제나 뭔가 애매하다 싶으면 무조건 관망을 택했다. 뭘 하든 전망을 살피고 견적을 뽑듯이 0과 1이 아니다 싶으면, 때가 이르든 늦든 매수 시점이 절호의 기회란 확신이 들지 않을 때 나는 언제나 기다렸다. 최적화를 애원해야 하니까 말이다. 곧 내게 있어 인생은 기다림이었던 것이다. 삶은 선택, 사랑은 모르는 것, 인생은 기다림? 어설픈 좌우명도 섣부른 광고 문구로도 못 쓸 말이로군.
   그렇다고 무작정 기다릴 수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도시의 숙소 곧 기거하고 있는 호텔에서 TV를 틀었다. 채널을 돌리다 보면 간혹 재밌는 부분이 나온다. 그러나 딱 그 분량이 지나가고 나면 재미가 없다. 그러니까 다시 채널을 돌리는 일만 하고. 이처럼 TV 리모콘을 누르고만 있을 게 아니라 흥미진진한 전개라는 황홀한 사랑 고백과도 같은 전환이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인터넷을 했다. 인터넷을 하다? 명사와 동사가 그다지 잘 어울리는 것 같지는 않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나는 인터넷에서 출판사에 들어가 내 책이 얼마나 팔렸나를 확인했다. 사정은 썩 신통치 않았다. 그 변변치 못한 가난과 이겨내야 할 불우, 비리비리한 실망을 타개해야만 했다.
   그래서 나는 문학 동호회와 각종 사이트 문화가 페이지를 넘나들며 열심히 글을 썼다. 가령 자유게시판에 내 책에 대한 소개글과 링크를 내가 쓰지 않은 척 하면서 글을 남겼다. 특히나 어떤 영화를 봤는데 기대가 컸던 만큼 절망에 이르렀다는 댓글에도 답글을 달았다. 어떤 책을 읽으면 그 식상함과 그 속은 기분, 돈 아깝다 잠잤다 잘 잤다 푹 잤다, 개연성은 어디 갔니 라는 글쎄요는 몽땅 날려버릴 수 있다면서 과장 광고를 했다. 그렇게 나는 딱 1일 동안 그 일을 하다가 포기했다.
   그러다 다음 날 나는 인터넷 검색을 하던 중 어쩌다 내 팬클럽 페이지가 개설됐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별로 알려지지 않았는데 어떻게? 그러니까! 유명세는 전무한데 어떻게? 내 말이! 원래 인터넷이라는 게 그런 식이다. 게다가 난 그 바닥에서 잔뼈가 굵었다. 왕년의 흑역사가 있었고 관록미는 건재했다. 자세한 건 말할 수 없고. 원래 세상사라는 게 그런 식이다. 더더군다나 나는 어른이지만 내 상태는 몰라도 마음은 허접하고 찌질하기를 원치 않았다. 나는 어른일지언정 여자의 마음을 존중하고 스무 살이 부럽다는 감정에 대해서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어른이 되고 나면 10대의 기분을 모른다. 본인이 다 겪은 일일지라도 너무나 많이 이 세상에 대해서 알아버렸기 때문에 내 지난 시절, 그분들의 현재가 새롭지 않은 것이다. 회상은 삐악삐악, 추억은 응애응애, 기뻤던 일은 방황이었고 재밌었던 기억도 거의 쾌락이었다. 그러나 사는 동안 끝끝내 새로움을 포기하지 않고 마음이 청춘이라면 젊음의 분위기, 들뜬 느낌, 사랑에 빠진 듯한 기분과 조금은 동화될 수 있다. 곧 주인공이냐 주도적이냐, 이끌고 부추기냐 아님 따라가고 묻어가냐, 그 역시 중요하지만 염탐과 추측과 관망도 다 효과가 있다는 말이다. 그처럼 나는 내 필명에 대한 동호회의 활동을 지켜봤다.
   1일, 2일, 3일...! 나는 딱 5일간 지켜봤다. 그래서 알게 됐다. 회원 수가 무려 백 단위를 넘었는데 딱 그 지점이 최고점이라는 걸 직감했다. 행복한 낙관주의자는 신기하고 놀라웠지만 향후 다가올 패배감, 낭패감, 체념, 커피포트를 굳이 확인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나는 지금 재미없는 비관주의자가 아니라 적당한 기회주의자, 유쾌한 이기주의자로 행동할 때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나는 현재 대기 중인 회원 목록을 보여주는 채팅 창에 애호가인 척 하면서 모임을 제안하는 글을 남겼다. 처음엔 장난이었다. 그런데 의외로 반응이 괜찮았다. 사람들의 의견은 이어졌다. 계속 이어졌다. 어느 팬 미팅은 재미있는데 어쩌면 재미없다 등등. 곧 그분들은 나와 달리 그런 경험에 꽤나 익숙하신 분들인 것 같았다. 그러다 누가 말했다.
   「첫 창단 모임인데 덧치 페이 어때요? 어차피 작가님은 모르실 테고, 이건 앙꼬 없는 찜빵 아닙니까! 어설픈 첫날 밤 예행 연습 아니냐 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내 말은 덧치 페이로, 편한 마음으로 만나서 얘기하고 놀다가 헤어지자는 말이죠.」
   와우! 난 좋았다. 10명 아니 5명도 좋았다. 나는 작가가 아닌 척 팬들의 심중도 읽고, 그분들의 솔직한 마음을 떠보며, 뭔가 멋진 전개를 바라는 어떤 아늑한 의향을 점쳐볼 수도 있을 테니까. 난 손해볼 일 하나 없다. 우리는 그렇게 약속을 했다. 비공식 누구 팬클럽 모임 1회를 언제, 어디서! 짜잔~!! 나는 기분이 좋았다. 길게 기다릴 것도 없이 모임일은 다음 날이었다. 이럴 수가!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오는구나 라고 생각했다. 허세 잔치 허영심 축제 허풍 대회 다 필요 없었다. 내게는 팬클럽이 전부였으니까.
   그렇게 첫날 밤 아니 팬클럽 첫 모임일이 됐고 나는 그곳으로 나갔다.



   6
 
   약속 장소는 어느 카페였다. 동호회 채팅 창에서 누군가 강력하게 주장한 결과 그 카페를 통채로 빌리게 됐다. 분위기는 새로운 웹 서비스 발표회랄지 신제품 홍보회를 열어도 전혀 손색이 없을 듯 했다. 나는 그렇게 설레는 마음으로 동호인들을 기다렸다. 이름 하여 누구 팬클럼 모임. 조촐히 부제는 비공식. 게다가 1회. 음하하하하! 종잡을 수 없는 예감에 따르자면 힘 닿는 데까지 나는 처음의 기분을 믿어야 했다.
   그러나 30분, 1시간, 2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내 마음은 울상으로 변해갔다. 결국 3시간을 꼬박 채운 다음에 나는 카페 대여료만 왕창 물고서 가게를 나왔다. 나는 살다 살다 이렇게 황당한 으쌰으쌰는 처음 본다면서 하는 수 없이 바로 그 몸짓과 기분과 표정을 짓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었다. 얼굴을 살짝 틀고, 눈을 지긋이 감고, 고개의 각도를 예각? 둔각으로 조금 변화를 준 채 행복해지고 싶은 열망에 대해서 생각하기. 지금 이때 내 머리 위에 단정한 자세로 자리할 그분은 누구실까? 첫째 참새 짹짹 참새 짹째, 둘째 천사의 머리 위에 그 뭐지 뭐더라 그런 동그란 거, 셋째 그렇지 (딱) 주전자!
   나는 순진해도 너무 순진했다는 걸 깨달았다. 아 이럴 수가! 맙소사! 이런 젠장!
   나는 그날로 짐을 싸서 하향했다.
   나는 그렇게 집에 도착했다. 집에서도 왠지 기분이 꿀꿀해서 나는 내 사무실로 갔다.
   나는 내 집무실에서 으쌰으쌰의 구분에 대해서 정리해 봤다.
   으쌰으쌰의 보기 (내용 / 출연)

  1. 으쌰으쌰 1차에서 2차 기약. 으쌰으쌰 2차 실행 / 전원.
  2. 으쌰으쌰 1차에서 2차 기약. 으쌰으쌰 2차 실행 / 전원 빼기 1명. 즉 은근 허당만 선동 후 관망.
  3. 으쌰으쌰 1차에서 2차 기약. 으쌰으쌰 2차 무산 / 1명. 분위기에 휘둘려 그냥 허당 1명만 휑뎅그렁.
  4. 으쌰으쌰 1차에서 2차 기약. 으쌰으쌰 2차 무산 / 0명.

   (필명) 누구 팬클럽 창단 기념회인가 뭔가는 누가 뭐래도 3번이었다. 2번으로 갈 수도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완전한 3번이었다. 그리고 최근 팬들과의 모임에서 사겼던 숙녀들과 클럽에 갔다가 여행 가자 라고 했다가 나만 쏙 빠진 일은 딱 2번이었다. 따라서 나는 헛똑똑이처럼 선동 후 관망이 은근히 재미있었길래 어설프게 첫날 밤 아니 팬클럽 1회 모임에서 1번을 바랬다가 여지없이 3번에 낙찰되고 말았던 것이다. 일명 꽝! 저런. 결국 허언증으로 물의를 일으키고 지나친 오지랖으로 문란을 초래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할 수 없는 일이다. 자업자득이지 뭐 누굴 탓하겠나. 농담 반 진담 반도 아니고 그냥 헛소리, 뻥, 거짓말을 나 혼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해석한 결과였다. 그러든 어쩌든 주인공은 나, 별 바보 같은 짓의 주연은 나였다. 맙소사 이런 개뿔! 우스꽝스러운 홀림 유쾌한 반함은 초인적인 애인의 출연을 예고하지는 못할망정 나의 무모한 좌우명은 새롭게 탄생한 것이다. 일명, 대망은 하늘에서 별 따기!
   아마도 이 낙담에 대한 여파는 쉬이 가시지 않을 듯 했다. 동기 부여계의 제왕을 초빙하여 개인 교습을 받더라도 아무 효과 없을 것만 같았다. 이건 어쩌면 가까운 장래 에로비디오에 대한 패배를 암시하는 일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유익한 소명은, 만약 실현된다면 전혀 유해하지 않은 보람 찬 꿈꾸기였을 텐데 결과는, 결과는! 그럼 그렇지.
   나는 다시 심심한 일상에 안착하고야 말았다. 서커스도 열리지 않았고, 기념일은 없었으며, 나는 고개를 잔뜩 숙이지 않을 수 없었다.



   7

   나는 집과 개인 집무실을 오가면서 다음과 같은 칼럼을 미스테리아에 기고했다. 이제 나는 삼류 작가, 글 쓰는 기계, 뜬구름 잡는 사색가이자 운명을 점치는 몽상가로 전락한 기분에 더없이 착찹했다.
   제목: 재미있게 사는 방법.
   내용: 빼빼 마른 뚱보! 뭐라고? 말이 안된다. 그처럼 작가가 그림을 그리고, 화가가 노래를 부르며, 가수가 글을 쓴다? 어울리지 않고, 멋지지도 않으며, 나댄다는 비난조차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그러지 않으면 새로움은 제한된다. 그래서 공상가의 할 일은 언제나 엉뚱한 상상이다. 그러나 허풍꾼은 허풍에서 영심이는 단꿈과 허언증에서 탈출하기가 쉽지 않다. 더구나 말로 먹고 사는 사람은 일하는 시간이 아닌데도 내 귀는 막고 타인의 청각은 피곤하게 만드는 직업병에 걸리기 일쑤다. 심지어 이 시대의 여러 사장님들은 직장에서 벗어나도 아내에게 지시, 자녀에게 성과를 종용하고, 친구와는 이해득실을 따진다. 그런데 그러지 않으면 행복과 인기, 기쁨, 풍요, 품위 유지는 멀어져 간다. 곧 현대인은 세련되고 고상하며 우아하기를 강요 받는 것이다.
   광고에서는 너 때문이야 너 때문이야! 차분한 친구는 난 이렇게 생각해 이렇게 생각해. 기분파 친구는 모이자 달리자 놀자. 인문서적에서는 자꾸 머머해라 머머해라, 밑도 끝도 없이 머머하지 마라. 예능에서는 그러니까 늬가 안되는 거야 그러니까 늬가 안되는 거라고. 드라마에서는 나 사랑해 사랑 안 해? 피곤하다. 복잡하다. 헷갈린다. 어렵다. 그러니까 떠나자? 여행업자다. 우정은 경륜장에 가자고 꼬시며 바텐더는 스포츠 복권을 적극 추천한다. 모르겠다 다 모르겠다? 디오니소스의 유혹이다. 축제는 끝났고 취미는 재미없으며 색다른 관심사도 없다. 사랑엔 둔감하고 의욕은 바닥이다. 제일 쉬운 해결책은 식욕과 쾌락이다. 그러나 깜짝 놀랄 듯한 좀 더 재밌고, 좀 더 신기하며, 좀 더 끝장나는 환상을 찾아야 한다. 젊음의 행진과 열광의 퍼레이드는 계속 되어야 한다. 다만 그 청춘이 맨발이 아니기를! 그럼 뭐 유리구두? 그러니까 호박마차! 하지만 나이트클럽도 재미없다. 순 허당들 천지에 뭐뭐 100퍼센트? 다 뻥이다! 어른들은 모두 거짓말쟁이다. 그러면 가만 있을 그분이 아니다. 듣고만 있을 위인이 아니지. 팔짱을 끼든, 뭐가 어째요 라며 한판 붙자는 뜻인지 단지 시늉뿐인지 팔을 걷어붙이기까지는 서슴치 않고, 한 손으로 턱을 괴며 연인과 눈싸움을 하듯이 그대를 바라볼 것이다. 그러니까 누가? 다름 아닌 직업이! 그러니까 응석은 어른이 부리고, 어린이는 항상 심심하다. 전자는 일할 때 일하고 놀 때 놀아야 한다. 후자는 노는 게 일이다. 고로 언제나 즐겁고 항상 재밌있기는 아마도 어려운 듯 하다. 하지만 어느 불세출의 안다 박사님께서 그 신기한 법칙을 마침내 창안해내셨다. 10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하다는, 그 어려운 대업을 말이다.
   그 책의 제목은, 평생 놀고 먹는 법! 게다가 책값도 싸다. 심지어 밑도 끝도 없는 이론도 아니다. 굳이 동기 부여와 낭만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뮤지컬을 보러 출두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책, 환상머신! 부제 평생 놀고 먹는 법은 절찬리 판매중. 2탄 신비론 역시 개봉 박두. 



   8
 
   앨리스와 친구들은 내 사무실의 앞, 옆, 위 사무실로 이사왔다. 뭐야 이건!
   「오빠가 오라고 했잖아!」
   「오란다고 진짜 오냐?」
   「저번에 여행 가자고 한 사람이 누군데!」
   「그건, 그건 내가 잘못했지.」
   「우리는 간다면 가고 온다면 와!」
   「그런데 난 오라고 말한 기억이... 없는데. 이상하네.」
   「또 모른 체 하기야? 이 오빠 안되겠네. 어떡하지? 기억나게 해 줘?」
   「우리 오빠를 손 좀 봐야겠는데. 애들아 어떻게 생각하니?」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라. 그러니까, 왜 그러니 응? 우리 사이가 그 정도로 매마르진 않았지 않니?」
   그렇게 우리는 일단 1층 찻집에서 차를 마시며 이 이상한 드라마를 어떻게 재밌는 시트콤으로 발전시킬지를 논하기로 했다.
   「오빠 말해.」
   「뭘 말해?」
   「오빠 말하라구.」
   「밑도 끝도 없이 뭘 말하라는 거야?」
   「여자가 조심해야 할 남자.」
   「여자가 조심해야 할 남자?」
   「응. 여자가 조심해야 할 남자에 대해서 말해!」
   「말해달라고 하면 말 못할 줄 아니! 말해줄께. 숙녀는 그런 남자를 조심해야 해.」
   「어떤 남자?」
   「무엇을 주저하시오?」
   「이 오빠 또 시작했네. 생각을 정리하지 말고 말하면서 정리하세요 오빠야. 응?」
   「OK! 여러 숙녀들의 경험과 이 세상의 모든 사랑론과 여성잡지1과 2를 통틀어서 이런 얘기들이 글로 화자됐나는 모르겠는데, 글과 말의 한계가 아마 그 지점이 아닐까?」
   「그러니까 어떤 남자? 아 뜸 좀 그만 들이고! 아 쫌!」
   「얘들 봐. 너무 보채는 거 아니니? 품위 없어 보여, 그러면. 안 그래도 간명히 가르쳐줄려고 했습니다요. 응? 이거 왜 이래!」
   「아 그러니까 대체 어떤 남자를 우리가 조심해야 하냐고! 아 정말!」
   「말할께. 말한다고. 숙녀는 있잖아. 숙녀는 손 잡기를 건너뛰는 남자를 조심해야 해.」
   「뭐, 뭐라고?」
   「와 이 오빠 전문가네.」
   「이 오빠 안되겠네.」
   「오빠는 무슨! 이 인간 무명으로 남아 있으면 큰일나겠구만.」
   「누가 아니래! 이런 작자들이 빨간 사과 노란 자몽 향긋한 포도를 다 따먹고 다닌다니까. 가만 두면 안돼. 절대 안돼. 그럼. 이거 이거 순 난봉꾼이구먼.」
   「이제 보니 그러니까 책이 안 팔리는구만.」
   「그럴 줄 알았어. 왠지 느낌이 이상하더라고.」
   「왜 그래? 그르쳐주라고 하길래 가르쳐줬구만.」
   「어디 이유나 들어봅시다. 그러니까 왜? 왜 손 잡기를 건너뛰는 남자를 조심해야 하나요?」 
   「그건, 그건 책 사서 봐. 거기 나와 있어. 정말로 슬기로운 원리가 놀랍도록 지혜롭게 그리고 간결하게 설명되어 있어. 거기 모든 남녀의 비밀과 사랑의 심오함이 다. 응? 전부 담겨 있다구.」
   「오빠. 그러니까 요즘 애들 인터넷 앱으로 막 낯선 만남 그런 거 하잖아. 응? 그런 식으로 만나면 월화수목금토일처럼 딱 월요병만 괜찮고 나머지는 다 꽝이야. 그러니까 그 유형에는 전형적인 늑대, 사냥에 굶주린 하이에나, 배고픈 사자가 득실거린다고 할 수 있지. 그 가운데는 말이야 만나자마자 슥 깍지 끼는 남자까지 있거든. 응? 언제 봤다고! 그런데 그때 여자도 둘로 나뉘어. 대체로 약간 어색하게 멈칫 하다가 차갑게 손을 빼는 숙녀가 대부분이지만 드물게 짧은 만남에 동의하는 여자, 아마도 없진 않겠지? 그래서 타석지상주의자는 아무 여자한테나 다 찝쩍거리고 누구한테나 꽃 들고 따라다니며, 바로 그래서 드라마에서조차 숙녀가 친구에게 그렇게 일침을 놓는 걸까? 내 남자친구한테 껄떡대지 마 이년아, 라고. 사석에서도 그러잖아. 아무때나 뭐 어떻게 벌렁벌렁한다는 둥 어쩐다는 둥. 응? 아무튼 그런 남자는 연애를 격식 있게 한다고 볼 수는 없지만 그래도 최소한 손 잡기는 실천한 것 아닐까? 아니겠지. 당연히 아니지. 그러면 그런 인간은 하수인가?」
   「그러니까 늬가 안되는 거야. 응? 그니까 너가 안되는 거라고. 순진하시기는. 사랑은 있잖아, 멋진 사랑 고백이 아니야. 아는 사이든 어쩌든 정식으로 사랑 고백을 하는 남자가 실상 그리 많지는 않다고. 말로야 여자들이 손꼽는 최악의 고백 방법이 뭐라고들 하지만 그런 미숙한 사랑 고백이라도 받아 본 여자가 많을까, 아니면 적을까? 정답은 말하지 맙시다! 살면서 말이 통하는 남자를 만나는 게 어디 쉽겠니? 찬 밥 더운 밥 가릴 분은 나이트클럽도 가려서 간다구. 적어도 거기에 출근하지 않아. 그런데 꼭 뜬금없는 숙녀분께서 필요 이상으로 도도한 경우, 아마 남자보다 여자들이 더 잘 알지 않니? 그게 다 <어딜 넘봐?>에 대한 남녀의 기준이 같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 그래서 오빠가 아까 뭐랬니? 손 잡기를 건너뛰는 남자를 조심하라고 했잖아! 응?」
   「이 오빠 안되겠네.」
   「와 이 오빠 전문가네.」
   「오빠 있잖아. 여자가 싫어하는 거 하나만 말해 봐.」
   「여자가 싫어하는 거?」
   「응. 여자가 싫어하는 거.」
   「여자...는 그걸 싫어하지. 후회하네 어쩌네 그거 다 기분 탓에 하는 말이고, 그 위에 있는 게 진짜지. 즉 행동! 여자가 진정 싫어하는 건 그거지. 자기를 챙피해 하는 거. 남자들은 바에서 그래. 술값 내는 친구를 험담하면서 바텐더의 인기를 독차지하는 친구가 뭐라고 해도 남자들은 그게 다 으샤으쌰야. 왜 내가 챙피하냐 라고 소리치든 어쩌든. 그런데 여자는 자기 남자가 자길 부끄러워한다? 내가 바랬던 건 몰래한 사랑이라는 기쁨의 열애이자 찬란한 인생의 깜짝 발표였는데, 그게 아니라 꼭꼭 숨어서 만나야 하는 밀애라니! 하면서 그녀는 탄식할 수 밖에.」
   「안되겠다. 하나 더 가자. 오빠. 여자가 싫어하는 거 하나 더!」
   「뭐야 위스키 온더락스 한 잔 더도 아니고. 뭐지? 음. 여자는 거꾸로맨을 싫어하지. 참고 참고 참는 게 사랑일 수도 있지만 하다 하다 안되면 포기할 수도 있는 거꾸로맨의 거꾸로 행동. 그건 무엇이 있을까? 맞다 그거. 남자가 보디가드로써 날 호위하지 않고 나 보고 무거운 거 들게 만들 때. 그러면서 지는 몇 시 방향 몇 시 방향 눈이 돌아간다? 부글부글 삑삑삐! 앞서서 수색하고 탐방하며 때로는 시행 착오도 겪어야 할 개구쟁이 탐험가의 역할을 자기한테 떠안길 때? 부글부글 삑삑삐! 그런 다음 다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을 올려야 한다, 커팅식 행사에 명사로 나선다, 스포트라이트를 단독으로 받고 달콤한 케익 앞에서 꼬리 흔드는 강아지와 기쁨을 나누는 몫은 남자가 갖고 여자는 하찮은 상품으로 때우거나 뭐 가져오라고 시킬 때? 부글부글 삑삑삐! 요컨대 의전과 잔말 말고 따라와를 반대로 할 때. 뭐니 뭐니 해도 난 아직 사랑하는데 난 이제야 사랑을 시작할려는데, 그런데 난 꺾인 꽃이자 모래시계 모양으로 먹다 남은 과일이 되었을 때이지 않을까?」
   「이 오빠 안되겠네, 가 아니라 되겠네.」
   「이 오빠 은근 괜찮다. 그치?」
   「여기서 멈출 순 없어.」
   「그럼 있잖아. 여자가 좋아하는 남자에게 호감을 표시하는 방법 가운데 제일 무난한 건 뭐야? 숙녀는 사랑의 신호를 어떻게 보내는 게 더없이 여성스러울까? 어떤 호감의 표시가 가장 귀여울까?」
   「팔짱 껴!」
   「팔짱?」
   「응. 팔짱! 단, 남자 입장에서 봤을 때는, 여자 입장에서 봐도 못 봐주기는 똑같겠고 아니 훨씬 뭐하겠고, 어쨌든 아무 남자한테나 팔짱을 끼는 여자가 아니라면! 아무한테나 꼬리 치는 숙녀가 아니라면 호감은 정확히 둘로 나뉘어.」
   「이성을 좋아하는 호감이 둘로 나뉜다고?」
   「그럼. 한번 생각을 해 보렴. 사모와 탐애가 같니? 사랑과 욕정은 달라! 플라토닉과 육체적 사랑이 어떻게 똑같니? 좋아한다와 사랑한다 역시 같지는 않잖아. 연애 상대의 1범주와 2범주가 다른 것처럼 말이야. 연정의 1범주 미만이 날 좋아하는 일이 결코 그리 자주 발생하지는 않아. 무난함과 이상형이 어떻게 같을 수 있냐고. 응?」
   「그러니까 살랑살랑 봄바람이 불듯이 여심이 흔들리며 그 남자한테 끌린다 했을 때 내 마음을 표현하는 게 어떻게 둘로 나뉘냐고. 도대체가! 응?」
   「첫째 마음 먼저, 둘째 몸으로 유혹하는 거! 그렇게. 첫째는 그래. 일단은 길게 가고 싶다는 말이겠지. 3달 만나고 차일지 3년 만나고 먼저 찰지도 모르겠지만 우선은 마음이 먼저야. 그 반면 둘째는 첫째 방법을 쓰기가 애매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좀 더 극적인 방법 다시 말하자면 그동안 자신의 경험 상 수확이 괜찮았던 타율에 근거한 방법이겠지. 여기서 첫째는 잘 아시다시피 교태, 애교, 여성스러움, 건강함, 밝음, 오빠, 콧소리, 미소가 있겠지. 괜히 막 남자 팔을 때리는 그녀의 행동, 귓가로 머리카락을 넘기는 행동, 어떤 몸짓, 오빠 라는 단어를 남발하기 등등. 그와 달리 둘째는 한마디로 여자의 상의와 하의의 엉덩이 부분을 남자에게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방법이고.
   아직 여린 여심이라면 하이힐과 매끈한 살결과 굴곡진 머릿결과 화장술 및 요조숙녀의 특권등 그런 섹시함이 뭐가 나쁘냐, 젊음의 향기를 뽐낸다 거리를 아름답게 물들인다, 그게 뭐가 나쁘냐 라는 의문은 지극히 타당하지.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1.5! 응? 그건 딱 1.5야! 앞서 말한 둘째는 그게 아니라 말했듯이 노골적으로 그 방법을 구사한다는 것. 둘째 방법을 적극적으로 구사하는 여자들은 남자를 만나도 너무 많이 만났어. 비율이 9 대 1이랄지 8 대 2랄지 뭐 그럴 수도 있는데 대체로 그래. 그녀의 과거를 알고 나면 아아~! 말 말자. 응? 과일 망신 모과가 시킨다고, 그런 여자? (설레설레)! 말 말어! 물론 그런 여자가 트라우마 때문에 일시적으로 그런 시절에 처했을 수도 있고, 헤픈 여자도 이제는 엄마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하면 과거를 청산할 수도 있는데, 태생적으로 그런 여자도 있어. 그러면 남자들 사이에 소문 나지. 만인에게 사랑 받아 인기를 얻어서 유명해지는 게 아니라, 남자들한테 쉬운 여자로 찍혀서 유명해진다고. 그때 남자도 둘로 나뉘고. 생각해 봐. 그 옛날, 우리 주위, 누구 누구 누구! 남자가 조심해야 할 여자는 아마도 그분일 텐데 창이 있으면 방패가 있는 법. 또 하나의 이름이 생겨나겠지? 일명, 트라우마 치료사! 이와 같은 원리를 이미 알만한 사람은 알지 않을까? 그리고 1.5와 2의 차이는 퍽 정확하지 않을 수 있는데 적어도 당사자라면 결코 모를 수 없는 일이니까 굳이 부언 설명은 필요치 않고. 여자는 살며시 팔짱 끼고 싶다는 듯이 처음 만났을지라도 팔짱 끼는 시늉을 하거나 아는 사이였을 때 조심스럽게 팔짱을 끼면 그건 100퍼센트야. 웃으면 끝난다랄지 몇몇 징후로도 판단할 수 있고. 그런데 그게 아니라 둘째 방법이라... 요컨대 첫째는 결혼하고 싶다, 둘째는 단지 연애하고 싶다! 바꾸어 말하자면 첫째는 우리 연애하지 않을래요, 그대와 사귀고 싶어요, 저는 당신을 좋아해요, 단둘이 만나고 싶어요. 둘째는, 당신과 찐한 사랑을 하고 싶다 아닐까? 하나는 애정─순정─애원, 다른 하나는 유혹─색정─본능. 물론 사랑의 종류를 막론한 채 둘째가 무조건 나쁘다는 말이 아니야. 자존심의 효용처럼 둘째 방법을 먼저 구사해야 할 필요가 있을 수도 있으며, 나이트클럽의 분위기와 웨이터와의 친교가 뭐 나쁘겠나! 웨이트리스와의 다정한 눈인사, 멋진 바텐더를 사모하는 감정을 피해서 우리 모두가 어디 깊은 산속에라도 들어가 살아야 하는 건 아니니까 말이야. 나 그렇게 쉬운 여자 아니에요 라고 말하고 싶어하든 어쩌든, 도도하든 맹하든, 제 코가 석 자든 어쩌든 둘째를 유달리 좋아하는 여자, 천성은 타고나는 것인데 그런 여자가 왜 없겠나. 유행가에서야 사랑은 얄미운 나비인가 봐 라며 노래하지만 뒷골목까지 갈 것도 없이 그런 노래를 들으면서 사람들이 대체 뭐라고들 하나? 사랑은 나방이라느니 사랑은 없다느니 하지 않냔 말일세. 뿐만 아니라 또 숙녀가 아직 어리면 무턱대고 둘째 방법을 선호할 수도 있고. 아무래도 그녀는 이 세상도 남자도 내가 아는 것 이상은 알지 못하니까. 응? 그렇더라도 친구들과 많은 얘기를 나누면서 성숙한 아가씨로 성장하여 스무 살을 (훌쩍) 넘고, 남자와 세상과 인생을 알게 된 숙녀가 한 남자에게 관심이 있다? 호감이 간다? 어머나 난 어쩜 저 남자에게 끌린다! 어쩜 좋니 내 마음을 송두리째 빼았겨버렸네! 만약 그랬을 때 그녀가 다짜고짜 둘째 방법으로 그이를 현혹한다? 내 견지에서는 봤을 때는 말일세 그런 일은 거의 없다고 보네! 일찍 차이던가 짧은 행복으로 만족하고 싶다면 또 모르겠지만. 암. 그렇고말고. 만약 사랑을 측량할 수 있다고 한다면 당연히 둘째보다 첫째가 앞서겠지. 그건 두말하면 잔소리. 생각하고자시고 할 것도 없이 말이야. 이 세상에서 사람으로 살다 보면 유혹의 의미를 모를 수는 없는 법. 어른으로써 경제를 알고 사회에서 살아가다 보면 상업과 산업은 물론 이성적인 유혹은 그냥 일상적인 일이지 않나. 그 유혹과 저 유혹이 설령 같지는 않다고 할지라도 첫째와 둘째의 그리움을 마음의 크기로 따졌을 때 둘째는 당연히 반쪽짜리 하트겠지? 만약 첫째가 온전한 하트 뿅뿅이라면 말이야. 그처럼 둘째는 첫째한테 그걸로 따지면 상대가 안돼. 첫째가 A 포카라고 하면 둘째는 하트 에이스 원페어거든. 응? 물론 맹탕이라면 판돈도 넉넉하겠다 첫째에 대해 능동도 피동도 주거니받거니? 그때가 좋을 때지. 도박꾼은 둘째 가지고도 월척을 낚을 때 허당은 첫째 더하기 거물일지라도 포커페이스가 안되면 다 꽝이야. 말짱 도루묵이라고. 얼굴에 다 써지니까 말이야. A 포카? 그분께서는 손이 덜덜 떨리지 않더라도 동공이 확장되며 얼굴에 표가 다 나. 마치 거리에서 깜짝 놀랄만한 어떤 차림새의 아가씨를 본 듯이 말일세. 아무튼 농담이고, 우리는 뭐든 보면 금새 알지만 우리는 누구든 만나면 금방 친해지지만, 남자가 뭘 모르면 그 둘을 분간하기가 썩 어려울 수도 있어. 저 첫째와 둘째에 대한 구분은 살면서 간접적으로 깨닫거나 경험으로 체득하는 거야 가능할 테니 지금은 더 난위도를 올려보자고. 응? 우리가 무슨 사춘기 청소년도 아니고, 유행하는 외국어 노래를 듣고서 내국어로 채록하여 그걸 보며 또박또박 신나게 노래 부르거나, 연애시를 필사하며 사랑을 배울 수야 없지 않나. 여기서 말하는 2절은 바로 여성의 타고난 자질에 따른 자연스런 내숭과 저 둘째가 첫재처럼 가장하는 내숭, 그렇게 둘로 나뉘지. 그 둘을 분간하는 남자가 물론 뭘 좀 아는 남자일 수도, 또는 피곤한 스타일의 남자일 수도 있는데, 될 수 있으면 그대들께서는 전자를 만나기를 기원하겠네. 허허허. 그래도 사람 일은 모르는 거야. (눈썹 위로) 허허허허허. 그 다음은, 어떻게 괜찮겠어? 이때 인문학 도형처럼 4구분, 할 수 있겠어 못 하겠어? 첫째에서 내숭과 애교가 중간은 가능하다 가능하지 않다, 둘째에서 첫째로 연기가 가능하다 아니다 그건 정말 아니다 인생 직진이다, 그처럼 4구분 말이야. 이때 뭐가 그렇게 복잡해 하면서 뚱한 반응을 보이는 남자 투덜이 스머프, 첫째처럼 내숭과 연기로 어떤 남자가 도저히 안 넘어오길래 기어를 2단으로 올린 다음 저 둘째로 후련하게 그 남자를 어떻게 한번 해 볼려다가 그마저도 내내 거절하는 그 어디서 보도 듣도 못한 웬 이상한 남자 때문에 두껑 열렸던 그녀. 그분들께서 뭐 어쩔 수 있나. 추억을 회상하며 커피든 맥주 한 잔이든 원샷하는 수 밖에. 그렇더라도 정말 해도 해도 여자를 모르겠다는 남자보다는 여자를 아는 남자가 낫긴 낫지. 여자 입장에서는. 그분께서 바람둥이만 아니라면 말이야. 여자도 비록 패전일지언정 사랑의 전적이 있었던 게... 그건 남자 입장도 있으니 넘어가자구. 음. 바람잡이는 뭘 너무 많이 알거나 과도하게 행동하면 안되니까. 괜히 초장에 잘 잡았는데 누군가 주도권 뺐길지도 모르니까 말이야. 다른 게 아니라 그런 기억들이 모여 인생이 되는 거라고. 응? 잔-뻔치로 아무리 두들겨도 안넘어오는 사랑의 바보, 직접 만나보면 그 느낌을 알게 되는 법이지. 자, 예를 하나 들어보자구. 제1범주에 해당하는 남자와 연애 중인 여자가 그런 시기에 접어들어다고 가정해 봄세. 그 만남이 조금은 싫증나고 결혼까지 생각해야 하며 그런대로 정숙한 처녀일지라도 그녀는 괜찮은 남자가 나타났을 때 곧 제1범주 미만인 남자가 나타나면 둘째 방법을 자기도 모르게 이미 사용한 뒤야. 살짝 과장하자면 아마도 둘 중 한 명은 그럴 걸? 불현듯 나도 모르게 그러고 난 다음이니까. 원래, 여자의 세심한 손길을 타고 여자가 선호하는 구미에 들어맞도록 길들여지며 여성스런 성향에 적합하게 꾸며지는 경주마, 즉 총각 같은 야생마와는 달라도 뭔가 다른 유부남의 어떤 면모를 그녀들이 평가절하하기는 결코 쉽지 않거든. 응? 그렇다고. 그런데 유부남도 아닌데 한번 갔다 오지도 않았는데, 어머머 아 글쎄 그런 남자가 나타났다? 그건, 딱이거든! 정말로 (딱)! 그래서 둘째 방법을 자기도 모르게 이미 사용한 다음이게 돼. 순서가 그래. 왜냐하면 무엇보다 그녀는 여자니까. 안 그러면 첫째를 완벽하게 선호하는 숙녀거나 그게 아니면 그녀는 여자가 아니라 남자야. 당연하지. 물론 이 의견에 선뜻 동의하지 않는 남자는 여자를 잘 아는 남자일까, 잘 모르는 남자일까? 부디 그분께서 뭘 좀 아는 은근 허당이시기를! 남자도 그런 남녀의 통정을 알고 연애를 시작해야지 무턱대고 나중 나 뚜껑 열린다? 어차피 사랑은 하늘의 별을 세는 사랑에서 허영심을 선물하는 사랑으로 발전하기 마련이라네. 왜냐하면 사랑은 환상 같지만 결국 알고 보면 엄정한 현실이니까. 그건 어쩔 수 없는 거라고. 그 흔한 사랑들은 모두 알고 보면 단순한 애정, 가벼운 연애 감정, 그 시절의 호의, 사랑과 우정 사이일 수도 있어. 단순히 육체적, 감정적 호감일지도 모르고. 알겠니? 그럼.
   오빠가 아까 뭐라고 했지? 그럼. 이 시대의 풍운아, 숙녀가 바라는 다정한 로맨티스트, 남아들이 추앙해 마지않는 희대의 바람둥이가 정말로 사랑이란 걸 하게 된다면 그는 그동안 손 잡기는 건너뛰었을지라도 이번에는 사람들 앞에서 그녀와 정답게 손 잡고 걷기를 바랄 꺼야. 그러든 어쩌든 그분도 남자야. 실제로는 백허그를 먼저 했을 수도 있고, 꿈속에서는 손 잡기를 건너뛸 수도 있다고. 응? 손 잡기고 나발이고, 아니 내 말은 품위도 품위지만 어떡하다 마음이 앞서면 그럴 수도 있다 그 말이라구. 알겠니?」
   「알다마다요!」
   「알다뿐이겠습니까?」
   「실제로 주위에 물어 봐. 손 잡기를 건너뛴 엄마 아빠가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줄 아니? 그건 나도 직접 캐묻지는 않아서 잘 모르겠다만 결코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네. 손 잡기를 생략했던 남자가 사랑을 예감하게 되면 결혼하게 될 것 같다는 미래가 보여. 그러면 그는 그녀의 손을 잡고 싶어 할 수 밖에 없어. 그 반대로 매번 손 잡고 뭐 하고 분위기 찾고 어쩌고 곧이곧대로 순서를 따랐던 남자는 얼렁뚱땅 어느 날 보니 그럴 수도 있지. 아빠 뭐해? 사랑이란 게 바로 그런 거거든.」 
   「농담이죠?」
   「왜 그래?」
   「다른 게 아니라, 뭐랄까, 지금까지 거의 다 알고는 있는 얘기인데, 새로울 건 하나 없는데, 그런데 새롭다? 안 그러니?」
   「어. 새로워!」
   「너도?」
   「나도!」
   「나도!」



   9

   나는 이제야 깨달았다. 일하러 가는 길이 이렇게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을. 지금 내 모습은 사람들이 월요일 아침 출근 길에 짓는 표정과 정반대였다. 그러니까 이건 뭐지? 새로 태어난 느낌이랄까? 외계인으로 환생한 기분이라고나 할까! 뭐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나는 막 이런 저런 계획이 소생하는 느낌 때문에 입이 귀에 걸리고야 말았다. 아마도 이런 내 바보 같은 인상을 누군가 본다면 꼭 그럴 것이다.
   「무슨 좋은 일 있수?」 
   그럼 난 이렇게 대답하겠지.
   「있고말고요!」
   어떻게 저번의 으쌰으쌰에 대한 실망과 기억하지 못하는 약속을 만회하기 위해서 그녀들에게 개인적으로 선물을 줄까? 아니. 그건 그 친구들을 좀 더 알고 난 다음에. 그러면 이번에 신나는 여행을 떠나자고 제의할까? 그것도 일단 돌아가는 상황을 본 다음에. 아, 그게 좋겠다! 손 잡기를 건너뛰는 남자를 조심하라고 했으니까 그래야겠구나. 첫째, 손 잡기를 건너뛴다는 것은 곧 마음이 진심인가, 사랑인가, 어울리는 짝인가, 장기전인가 라는 걸 심도 깊게 진단하라는 뜻이었다를 말해주기. 둘째, 그야 어쨌든 오빠는 손 잡기를 건너뛰는 남자가 아니다, 게다가 나는 너네들의 운명과 재물운, 연애운에 대해서 말하고 싶은 심정을 도저히 참기 힘들다, 따라서 한사람씩 손금을 보자! 물론 둘째는 농담이고 첫째는 진담이다. 그래도 혹시 모른다. 분위기에 휘둘리면 으쌰으쌰에 엮이고 나면 첫째가 빈말이고 둘째가 참말로 돌변할지를 말이다. 아무튼 고백 게임은 차차 진행하는 걸로 하고 나는 내 사무실로 갔다. 물론 빈손은 아니었다. 화사한 꽃다발과 달콤한 케익을 두 손에. 그리고 마음에는 다정함과 순수함, 상냥함, 자상함, 황홀감, 동경심, 선망, 재미있는 이야기 보따리를 안고서.
   그런데 사무실에 도착한 다음 나는 사태가 기쁨으로 진전하지 않고 왠지 난해함으로 이어질 듯한 육감을 느꼈다. 그녀들은 앞, 옆, 윗 사무실에 출근하지 않은 것이다. 음침한 발단이 물망에 오르다가 불쾌한 전개가 깜짝 발탁된 다음 곧바로 곤혹스런 절정이 간택될 것만 같은 느낌이 가득했다. 때문에 내 기분은 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뭐야, 떠날 때는 말없이야? 조증은 날 마다하고 허언증은 치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 일병마저 치료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허풍은 내내 저급한 바로 이 순간, 그녀들은 날 떠나간 건가? 그녀들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소셜 네트워크도 모두 묵묵부답이었다. 난 역시나 패자였다. 패자가 분명했다. 나는 건성건성 결과를 받아들였다. 언제는 뭐 안 그랬나, 막 그러면서.
   그래서 나는 내 아지트로 갔다. 환상문학 잡지 미스테리아 지점으로. 마라한테 신입 여직원을 뽑으라며 닦달할 생각이었다. 면접관은 당연히 나고, 면접 기준 역시 내가 정하자 라면서 그녀를 설득할 생각이었다. 그런 꿍꿍이를 논리적으로 정리하다가 나는 미스테리아 사무실에 도착했다.
   「어! 못 보던 반지네. 혹시, 다이아몬드?」
   「넌 어떻게 바뀌고 변화된 걸 귀신같이 알아채니?」
   「왜냐하면 모른 체 하면 서운해 할지도 모르니까.」
   「그건 그렇고 칼럼은 썼어?」
   「독촉이니? 그런데 어떡하니! 이제는 날 칼럼계에서 보기 힘들 꺼야. 장편만 쓰기로 했거든.」
   「늬가 무슨 영화배우니? 생활 쪼들리면 다시 드라마로 돌아올 수 밖에 없을 걸, 이 친구야. 시네마 좋아하시네!」
   「마라. 너 남자친구 생겼니? 나 몰래 어디 조용한 성당에서 혼인식이라도 올린 거니? 그러니까 지금 신혼?」
   「내가 결혼을 하던 참치 캔 뚜껑을 따던 늬가 뭔 상관이야?」
   「마라. 왜 그러니? 응? 나라구 나. 응? 쾌락과 의리의 결탁. 허세와 허풍의 대결. 자존심에 대한 강박감. 우월감에 집착하는 마초. 특히 이거. 응? 특히 이거. 영심이 길들이기! 허세왕 포기하기. 응? 칼럼 뚝딱 쓰는 건 얘 일도 아니야. 응? 조금만 기다려줘. 우리 사이에 정말 이러기야?」
   「아무튼 넌 그게 문제야. 응? 꼬리가 길면 밟혀. 무대를 너무 넓히지 마시게나 이 칼럼니스트 양반아. 특히나! 너는 왜 글로 쓸 얘기를 말로 하고 그러니?」
   「뭔 말이야? 너 나한테 정보원 붙였니? 아니면 뭐 꿩 대신 닭? 혹시 미스테리아 개편 그런 거라도? 우리는 의리로 똘똘 뭉친 사이라는 거 잊지 마! 더구나 사랑은 미지수 X라는 점 또한! 응? 하트 뿅뿅 윙크 반짝반짝 속삭임 새콤달콤. 응? 다음은, 다음은 연애소설이야. 멜로, 캬, 격정적 멜로! 기억하라구.」
   「그러니까 늬가 안되는 거야. 응? 그래서 늬가 안되는 거라고.」
   「안되긴 뭐가 안돼!」
   얘가 왜 갑자기 신경질이지? 마라와의 만담도 더이상 재미없었다. 농담을 하자며 흥겹게 시작하지만 매번 개운하지 않은 듯한 진담으로 끝나는 느낌이랄까, 기분이 이상했다.
   나는 앨리스가 보고 싶었다. 쇼핑이나 할까? 그녀들의 소식이 궁금했다. 일기를 쓸까? 그녀들의 안부가 걱정됐다. 동물원에 갈까 미술관에 들릴까? 먼 데까지 갈 필요 있나, 옆집 강아지랑 고양이나 보러 가야겠다. 나는 마치 펭귄이나 된 것처럼 뒤뚱거리며 미스테리아 사무실을 나왔다.



   10

   다음 날 앨리스의 엄마로부터 전화가 왔다. 친구들에게 전화해봐도 모두 모른다고 한단다.
   「혹시 앨리스 어딨는 줄 알아요?」
   난 모른다고 했다. 그녀는 내 딸이 아니다. 나아가 우리는 연인도 아니다. 친구는 몰라도 우리는 아직 교분이 완전 두텁지는 않았다. 그런데 앨리스는 어디 갔지? 앨리스와 친구들은 대체 어딜 갔냐고. 나는 직감으로 느꼈다. 지금 그녀들은 도망자, 나는 추격자, 우리는 꼬마들처럼 나 잡아 봐라 놀이를 해야 한다는 것을. 왜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냥 기분이 그랬다. 할 말은 없고 할 일만 남은 것이다. 그게 내 현재의 목표이자 꿈이고 희망일 것이다. 그냥 그러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대책 없이 친구 찾기를 위해서 도시로 떠났다.
   도시에 도착해서 내가 한 일은 일단 전망을 살피는 일이었다. 우리 사이에서 누가 누가 돈을 많이 썼나를 계산했다. 우리의 우정을 측정했고 사랑의 가능성도 점쳐봤다. 유심히 들여다 볼 만한 패턴도 뽑아봤다. 우리의 짧았던 추억을 회상했고, 다가올 미래를 예견했다. 또 그녀들을 관찰했던 기억을 검토했다. 그녀들이 갈 만한 곳을 추리했고, 모든 결과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탐구했다.
   결과가 나왔다. 나는 평범한 미행은 거부했다. 긴긴 탐방과 정밀한 조사는 불필요했다. 따라서 나는 우리들의 행복감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시간과 장소를 떠올려봤다. 막 많지도 않았다. 딱 4곳이었다.

  • 팬들과의 만남
  • 클럽
  • 휴양지 호텔
  • 내 사무실

   나는 대형 종이 지도를 샀고, 그 네 지점을 표시했다. 그건 정사각형이었다. 자로 잰 듯이, 가 아니라 정말로 자로 쟀더니 완벽한 정사각형. 나는 서슴없이 그 정중앙으로 출발했다. 그렇게 하여 나는 그곳에 도착했다.
   그곳은 인적이 드문 주택가이자 약한 상업지대였다. 그리고 나의 목적지에서 웬 회원제 카페가 운영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나는 다시 그녀들에게 전화했다. 모두 받지 않았다. 출입구에는 건장한 사내가 두 명 버티고 있었다. 어떻게 1 대 2로? 겸손하게 말하자면 승산이 많지는 않았다. 사실적으로 따지자면 이기는 건 어렵지 않았다. 어쨌든 내가 이길 테지만 녀석들과 소란을 벌이느라 힘을 빼면 다음 판에서 퍼질 게 분명했다. 그럴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당당히 마치 회원인 것처럼 들어갈려고 했다.
   「회원증을 보여주시죠!」
   「신입 회원이 계신다고는 미리 전해 듣지 못했는데요.」
   나는 지갑을 펴서 미처 읽지 못할 만큼 휘익, 자세히 살피지 못할 정도로 그분들 코끝을 스쳐가듯이 쓰윽 그것을 보여줬다. 마치 나 이런 사람이야 라는 듯이. 그런 다음 나는 자연스럽게 슬그머니 입장할려고 했다. 역시나 서툰 방법은 통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일단 작전 상 후퇴하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11

   나는 다음 날 차근차근 작전을 짜기 위해서 사무실로 출근했다. 왠지 그녀들을 찾는 모험은 길어질 것 같다는 예감과 함께. 그런데 나는 사무실에 도착한 다음 깜짝 놀라고 말았다. 왜냐하면 그녀들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정상 출근해서 태연히 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너네들 어떻게 된 거니?」
   「어떻게 되긴 뭘 어떻게 되요?」
   「어디 갔었어? 찾았자나! 얼마나 걱정했는데.」
   「어머, 그랬어요? 어쨌든 이렇게 만났네!」
   「오빠. 우리 사진 찍어줘.」
   「그런데 있잖아. 오빠의 만족을 모르는 열망, 평생 동안 바라던 호사의 이면에는 혹시...?」
   「오빠. 쟤 가슴 커졌어!」
   「뭐래니. 가슴 크기와 지성은 반비례한다, 너 그 말할려고 했지? 그래. 나 멍청한 촌년이야. 됐니? 그래도 가슴은 커!」
   웃음소리.
   나는 이게 다 어떻게 된 일인지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다. 피노키오는 왜 탐스런 사과를 따먹었을까? 그러든가 말든가. 천하장사 헤라클레스는 어쩌다 먹음직스런 오렌지를 꿀꺽했을까! 최고의 허풍은 믿을 게 못되고, 최신의 권태는 바닥을 쳤다는 뜻일까? 곧 그건 이제 슬슬 슬럼프를 벗어날 신호로 해석할 수 있으니, 따라서 알록달록 물고기 4인방을 일망타진하여 사랑의 포로로 생포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 4인방은 이름하여 최대의 행복감, 전혀 다른 세상, 보이지 않던 열락, 상상 속의 환상!
   모든 것은 정상으로 돌아왔다. 나는 다시 동네를 산책했고, TV로 다큐멘터리를 시청했으며, 인터넷으로 회전목마를 검색했다. 남성잡지를 관심 없는 척 애독했고, 요리학원에 다닐까를 고민했다. 물론 요리는 만들기보다 먹기 곧 염불에는 관심 없고 잿밥에만 맘이 있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그러다 나는 번화가에서 쇼핑하다가 괜찮은 보드 게임을 하나 샀다. 그녀들과 즐겁게 놀기 위해서!



   12

   다음 날이 됐다. 나는 아이스크림과 초콜릿과 꽃다발을 들고서 사무실로 출근했다. 이번에는 달랐다. 소식 두절로 그치지 않은 것이다. 바로 그녀들 사무실에 임대 안내문이 붙여진 것이다. 우리의 인연은 여기까지일까? 아니면 내가 한 발짝 다가가야 하는 것일까! 아니다. 다 아니다. 이건 도발이고 영화였으며 은근한 지령이었다. 고독이냐 낭만이냐, 난 당연히 후자를 쫓아야 했던 것이다. 애마 집착증에 빠질래야 형편도 궁색했고, 나는 천상 동화풍 모험가가 될 팔자였던 것이다.
    처음에는 그랬다. 웬 떡이야! 우연히 들린 팬들과의 만남에서 그녀들을 알게 되다니 나는 환생한 것만 같았다. 그리고 우리는 아슬아슬하게 남남이 될 뻔 했다가 다시 만났다. 그래서 클럽에 갔고, 나는 으쌰으쌰 분위기를 띄워놓고 나만 쏙 빠졌다. 그러다 낯선 여행지에서 우연치고 믿을 수 없는 숙명처럼 우리는 만나버렸다. 그러다 나는 취중진담인지 뭔지 어떤 약속에 대한 기억은 새까맣게 잊어버렸다. 그러다 어쩌다 그녀들이 갑자기 날 떠났다? 이래서는 안될 일이다. 지금까지 행운아의 사랑은 도저히 잡히지 않는 무지개였고, 이 미스테리 월드에서 튀어나온 듯한 환상 머신 제작소를 탐험해 보자는 시상은 다 뻥이었다고 할지라도 이제는 내가 직접 나서야 할 시기였다. 그래서 나는 이제야 본 게임이 시작되었구나 라면서 도시로 떠났다. 그 네 곳 지점의 정중앙으로 출발한 것이다. 아마도 뜻밖의 신기함이 기다릴지도 모르는 그곳으로. 어쩌면 여왕벌이 살고 있을 것만 같은 그 중심점으로 나는 떠났다. 좌우명은 뭘로 할까! 사라진 호기심을 찾아라? 못 말리는 요술쟁이랄지 다른 별에서 온 탐험가에게 유식한 채 하는 목표는 하나도 필요하지 않았다. 꿈꾸는 거짓말쟁이의 남다른 상상력? 식상한 허풍 뻔한 잔소리! 지금은 오직 행동하는 것 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왜냐하면 사랑꾼에게는 사랑과 우정은 곧 할 일이자 인생이고 모험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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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사각형의 중심점에 도착했다. 일단은 동네를 탐방하고 카페를 염탐했다. 그러다 분위기를 읽었고 낌새를 눈치챘다. 저번에 회원제 카페로 추정했던 나의 예상은 완전히 헛다리 짚기였다는 걸 알게 됐다. 보아하니 그곳은 어떤 지주회사나 거대 브랜드가 근처 구역 전체를 산 것 같았다. 인구가 점점 줄어가는 주택가 일대를 조금씩 매입하다가 전체를 산 다음 그 동네 그 상태로 이용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탐색을 마친 다음 저번처럼 좌표의 입구를 관찰했다. 그쪽으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들어가길래 나는 재빨리 후미에 붙어서 그들을 따라서 들어갔다. 고양이처럼 지켜만 보다가는 소득이 없을 듯 해서 나는 나도 모르게 따라서 들어간 것이다.
   내부는 평범한 가정집이었다. 그런데 사무실로 개조해서 이용하는 듯 했다. 현재 회사로 쓰고 있고 오늘은 휴일인 듯 했다. 그렇게 첫 번째 집을 구경한 다음 출구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그런데 출구는 옆집으로 통하는 문 밖에 없었다. 입구와 출구 그렇게 둘. 그래서 나는 2번째 집으로 건너갔다. 그곳도 구조는 거의 비슷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3번째 집에 도착했다. 그러고 보니 그렇게 구역 전체가 연결된 것 같았다. 사무실 분위기를 살펴 보니 평범한 사무실이었다. 컴퓨터가 있고 개인 공간이 있고. 벽면에는 일종의 동기 부여용 좌우명이 걸려있었다. 
   아르키메데스는 말했다, 유레카! 전화기의 발명 1876년, 영화의 탄생 1895년, 텔레비전 1926년, 인터넷 1991년! 그러나 3분의 마법인 유행가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 사랑은 기적. 세계7대 불가사의에 보너스를 추가하자. 그것은 바로 환상 게임 미스테리아! 미스테리아는 소원을 들어주는 인생의 마법 등등등.
   이대로 가다가는 끝이 없을 것 같아서 나는 겁이 덜컥 났다. 그래서 나는 그대로 왔던 길을 따라서 탈출했다. 그렇게 별 소득없이 나는 집으로 돌아갔다.



   14

   나는 집에 도착했고 괜히 갔다 왔다고 생각했다. 쓸데없이 시간 낭비만 하고 기분도 별로였다면서 투덜거렸다. 아무런 성과도 없었다. 기억나는 건 책상 위에 있던 목걸이 식별 카드. 거기에 뭐라고 씌여있더라? 임무 끝내기 개발 7팀, 미스테리아...!
   그러다 저녁에 나는 미스테리아 사무실에 놀러갔다. 마라는 게임에 몰입하고 있었다.
   「마라. 그거 무슨 게임이니?」
   「어. 이거? 미스테리아란 게임이야. 우연히 알게 되서 한번 해 봤는데 한 1주일 하고 나면 질릴 것 같은데. 잘하면 2주 갈 수도 있고. 그런데 이상한 건 우리 잡지랑 이름이 같다는 거. 단지 그거 하나. 끝. 재미없다.」
   「넌 어디 갔다 왔는데?」
   「어디 갔다오긴 내가 어딜 갔다와?」
   마라가 어떻게 알았지? 나 혼자 여기저기 쑤시고 다녔다는 걸? 괜히 혼자 헛소동만 벌이다 낙담한 채 돌아온 사실을 말이다.
   그녀들은 모두 결국 날 떠나가버린 것 같았다. 그러니까 결론은 이렇다. 심심함은 강자, 쾌락은 승자, 허무는 내 운명이었다. 얇다 못해 듣는 즉시 모든 것을 기억해버리는 내 청력은 세이렌의 유혹을 이겨낼 수도, 따라할 수도 없었던 것이다. 나무랄 데 없는 행복감은 도저히 잡히지 않는 파랑새에 불과했다. 그래서 내가 하는 일은 항상 이런 식이다.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쾌락에 굴복하는 걸로도 모자라 핑계를 싸고도는 일! 미처 공상하지 못했던 마법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고, 사랑의 찬가 애처로운 연가도 이젠 다 귀찮아져버렸다. 나는 까칠한 당나귀였고, 동시에 소심한 고양이였으며, 또한 횡설수설 앵무새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꿈틀꿈틀 여심을 자극하라? 어디서 속지나 않으면 다행이고 혼자서 착각에나 빠지지나 않기를.
    나는 집으로 돌아와서 다음과 같은 칼럼을 쓰다 포기했다. 사랑의 공작새란 제목의 미완성 칼럼. 그냥 버리기는 뭐해서 일기장에 쓰기로 했다.
   누구는 내내 사랑을 동경하고 탐구하며 추측만 하고, 누구는 가만 있어도 사랑만 받고! 전자는 제 발로 굴러다니는 호박을 바라만 봐야 하고, 후자는 다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을 올릴 것인지 말 것인지만 고민하고. 후자에게 사랑은 꽃을 좋아하는 일이고, 전자에게 사랑은 무슨 과일에 걸신들린 건가? 마음에 안든다, 까지는 아니지만 부익부 빈익빈이다. 최소한 전자에게는 말이다. (그게, 늬가 더 미워?) 그래서 전자는 다짐한다. 야 안되겠다 안되겠다 이래서는 안되겠다 라면서. 전자는 서둘러 방법을 모색한다.
   첫째, 꽃 들고 과일 기다리기.
   둘째, 공작새의 깃털로 승부하기. 곧 여자들의 속눈썹과 화장술 및 1번 타자 애교 2번 앙탈 3번 요염 4번 자기애는 물론 숨겨둔 대타 비장의 카드 백넘버 7번 허영심처럼, 전자는 공작새의 가짜 깃털을 위해 번 돈을 다 쓴다. 아니 절반만 쓴다. 다 쓰면 거지 되니까. 그러나 드물게 올인도 있다. 예를 들면 에르메스와 페라리. 그리고
   셋째. 셋째는 타석 지상주의. 곧 운명론. 나랑 말이 통하는 남자를 기다리기. 왜 나와 말이 통하는 남자가 없는 거지? 라면서! 스타 지망생의 애환은 미남을 좋아하며 소원을 유망하는 소녀의 마음과 같다. 단지 긍정과 밝음, 희망, 웃음과 다정한 태도와 반가운 자세도 좋지만 떨리는 영심이의 측은한 숙명은 그것일 수 밖에! 찬 밥 더운 밥 가릴 처지인가, 아닌가! 가희(歌姬) 토스카와 화가 카바라도시의 사랑을 그린 문학과 푸치니를 좋아하고 베르디를 편애하는 것으로 대신할 수 없는 사랑이기에.
   듣고 보니 꼭 무슨 진공청소기도 커피포트도 아닌 어떤 이상한 생활용품 광고인 듯 하다. 맞다. 즉 상업 광고. 이젠 북 치고 장구 치고 원맨쇼가 유행인 세상이니까 어쩔 수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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