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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신한 소재 어디 없나. 기발한 아이디어 그런 거. 뻔한 이야기는 흔하디 흔하니까 그거 하나 가져다가 베껴서 마지막만 틀까? 하긴 그래야 어떻게 해서 어쩔 것이다 라는 추측이 틀리게 되니까 막판 반전의 묘미가 갖추어진다. 실상 반전이란 게 다른 게 아니다. 관객은 보는 동안, 독자는 읽는 동안 추리할 수 없다. 절대 못한다. 한번에, 단박에 분석하는 천재는 그리 많지 않다. 전문가조차 수차례 보고 또 봐야 그나마 이름값 하는 평론을 쓸 수 있다. 창작자조차 분석하라고 만들지도 않았고. 적당히 관심만 끌고, 살짝 흥미만 돋구고, 궁금증과 호기심만 잠깐씩 간지럽히면서 추측과 유추와 뻔하디 뻔한 예상을 하게 만든 다음, 마지막에 딱 빈손을 내미는 거지. 돈 다 썼다고. 주머니 비었다고. 설레는 예감과 들뜬 기대, 설마 그런 환상적인 과정이 있을 줄은 저 역시 꿈에도 몰랐다는 듯이. 내가 제일 많이 알아 내가 최고야, 그런 컨셉은 흔하니까 달리 가야 한다. 난 그렇게 뻔뻔한 사람이 아니다, 내 허풍은 그저 최저점만 면하고 싶어, 그렇게. 착하고 순진하며 꿈 많은 청춘과 꿈이 없는 젊음과 사랑보다 황금이 어쩌면 더 낫지 않나 라는 의구심에 괴로워하는 중년과 노익장을 과시하시는 어르신까지 모두 밑밥에 걸려들게 만드는 방법은 바로 이거다. 글을 읽으면 작가가 되고 싶다, 노래를 들으면 나도 저처럼 노래를 잘 부르고 싶다, 춤을 보면 와 나도 저렇게 멋지게 춤을 출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영화를 보고 우와 나도 영화감독이 되야겠다, 다큐멘터리를 보고 요리사로 꿈을 바꾸고 제빵학원에 등록하고 내일 당장 가죽점퍼를 사게 만드는 기술. 그렇다. 맞다. 작풍에도 포지셔닝이란 게 있다면 그 비밀은 이와 같을 것이다. 뜨내기 손님이든 단골이든, 독자를 바보로 만들어서 애독자 엽서를 쓸 수 밖에 없도록 만드는 것. 사랑의 포로가 되기를 자청하여 애인이 되듯이. 흔한 말로 글이 음악처럼 느껴지게 만들고, 그림에 살아있는 생명력을 부여하는 것. 그런데 그게 말은 쉬운데 실천이 어렵다. 어쩌면 말도 어렵다. 아마도 글은 더 어려울 것이고. 안 그런가? 안 그렇다! 일단 가능하다는 전제를 깔고 시도해봐야 하니까.
내 인생은 명작이 아니기 때문에 영화로 치면 돈 주고 보기 아까운 작품이었다. 그러나 왜 명작이 될 수 없었나 장래 명작이 될 가망성은 있는가, 그것은 알아 볼 필요가 있다. 고로 일기를 쓰든 어쩌든 뭐든 해야 했다. 그런데 10년, 20년, 30년 내내 일기를 쓴 사람의 글을 읽어보거나 그분의 말씀을 들어보면 그 보물이야 응당 그분께는 유의미하고, 내게는 재미없기 쉽상이었다. 그러므로 나는 내가 산 인생과 내가 보고, 듣고, 읽은 전체 분량 가운데서 최고만을 엄선하여 거기에 살만 조금 붙여서 기록을 남기기로 했다. 왜냐하면 나는 천재처럼 꽤 창의적인 사람이 되기를 원하나, 그 욕망에 내가 적절히 부응하는가 그건 여실히 아닐 테지만 남들처럼 좋고, 우수하고, 예쁘고, 뛰어나고, 재밌는 걸 고르는 재주는 중간은 간다고 자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블로그를 시작한 이유였고, 다른 건 몰라도 그것 하나는 꾸준히 지속할려고 노력했으며, 따라서 블로그는 내 인생을 영원한 삼류로 만들었다. 쓰고 보니 아, 유치하다. 완전 시시해서 못 봐주겠다. 급히 포장한 느낌 때문에 뭔가 짠하고 찡하며 안타까운 기분마저 든다. 내 글은 역시나 B급이구나. 그러나 뭐 그거라도 하다 보면 A를 능가하는 B급 글쓰기가 되지 말란 법도 없다. 듣거나 읽기에 따라 좀 거북할 수도 있는 일반인들의 지나가는 표어도 어떤 땐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아님 말고 같은. 닥치고 공격 일명 닥공이 어느 축구 클럽의 표상인 것처럼. 그렇지만 그러다 빵집 점원께 핀잔을 듣게 되는 일도 생길 수 있다. (빵) 찔러 보면 안되요 라고. 그래도 어디까지나 내 인생 철학은 가만 있는 벌통을 건드리거나 일부러 다채로운 꽃밭과 향기로운 과수원을 찾아다니는 게 아니라, 홀딱 반할 만한 호박들을 스스로 구르게 만드는 신비로운 요술을 터득하는 것이다. 천운으로 마법사가 된 일도 잘 찾아보면 있겠지만 나는 어디까지나 지망생이다. 영원한 지망생. 나도 몰랐는데 알고 보니 그게 소원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아닐 수도 있다. 어쨌든 블로그를 계속 하기는 하는데 따지고 보면 저속한 유머, 심심한 팝콘 같은 인생, 예고편이 전부인 사랑 이야기 말고는 내 블로그에 올라오지 않는다. 저예산 영화 같은 인생이니까. 하지만 저예산 영화가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역시 고예산 영화로 옮겨질 소설을 쓰겠다고도 하지 않았다. 잔잔한 감동과 마법에 걸린 사랑,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즐거움? 동심과 흑심 그 중간을 모른다는 거, 그거 문제 심각하다. 그럼 나도 다변은 아니고 다정함을 베풀 상대도 없으니 이제 슬슬 다작으로 가는 건가? 글쎄다! 결론은 나왔다. B급에서 더 내려가지나 말자 라고.
애타게 기다려도 나타나지 않는 전개와 짠하고 등장하기를 바라지만 망설이며 나올 듯 말 듯 떠오르지 않는 절정과 실망스러운 결말까지. 차라리 괜찮은 발단 언제까지나 발단이 그나마 낫겠다. 나올 듯 말 듯, 나올 듯 말 듯? 그냥 속시원히 등장하시라! 간지럽히며 애태우지 말고. 아 이거 진짜 참 나, 사람 환장하겠네. 웃을까 말까 행복할까 말까, 뭐 그런 건가? 정말 웃기면 고민하지 않고 즉시 웃는다. 진짜 행복하다면 이러지 않는다. 난 행복해 라고 소셜 네트워크에 쓰고, 난 불행한 것인지 잘 모르겠어 라며 친구에게 말하고. 정말로 행복하면 행복의 삶을 사는 거다. 진짜로 사랑한다면 가슴이 찡하고 눈물이 핑도는 사랑을 하는 거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론. 실제부터는 개인적으로 사석에서 말할 것. 그러자. 그러는 게 좋겠다. 어쩜 무책임해 보여도 조금은 그래야 한다. 뭔가가 뜨거운 눈물을 흘릴 만큼 감동적이다? 그거 다 순 뻥이다. 거짓말 선수의 호평일 뿐이다. 뭐 소름이 돋는 공포 영화라고? 그거 지은 마케팅 담당자가 옆에 있으면 때리고 싶어질 거다. 말이 그렇다는 거다.
자, 내 꿈 이야기를 해볼까? 꿈에서 나는 학교에 갔다. 내가 학교에 가서 뭘 어떻게 했다, 가 내용이 아니라 학교까지 가는 이야기가 꿈의 전부였다. 나는 꿈에서 하의를 하나도 입지 않고 등교했다. 집에서는 피노키오였고, 밖에서는 일평생 거짓말을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지만 나름 목적과 명분은 있었다. 당시 꿈에서 나는 편견을 깨고 상식을 뒤집어서 교훈을 찾자 라는 의도 때문에 바지를 입지 않고, 팬티조차 안 입은 상태로 집을 나섰다. 물론 시내버스에서 사람들이 막 쳐다보는 데 엄청 창피했다. 그래도 꾹 참았다. 어금니 꽉 깨물었다. 좋은 일을 위해서-니까. 다행히 그 어 뭔가가 커지지는 않았다. 그래서 어떻게 됐냐고? 그게 끝이다. 개꿈이었으니까. 복권을 사기에도 돈 아까운 꿈이었다. 내용 형편없었다. 그외에 장조가 있다면 꿈은 단조도 있었다. 어떤 꿈에서 나는 물 위를 걸었다. 그 전날 검은 책을 잠깐 보다 말았기 때문에 그런 꿈을 꾸었는지 모르겠다. 꿈에서 나는 물 위를 걸었는데, 그런데 진짜 기적 때문에 물 위를 걸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물 표면 바로 아래에 돌이 있어서 그 위를 걷는 것처럼 물고기나 개나 막 그런 동물의 사체 위를 걸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역시 개꿈이었다. 아니 악몽이었다. 오오, 저런!
때로는 사람들이 전생과 후생은 생각하지 않는 듯이 사는 것 같은 일들이 간혹 세간에 알려진다. 인문학에서 말하는 '어차피 이렇게 된 거' 효과는 오뚜기 캐릭터와 척키 인형과 신나는 축제와 한잔 술에 날려버렸으면 좋겠다. 어제는 기쁨 오늘은 행복 내일은 사랑이라고 거짓으로 노래를 부르고 사랑을 고백해야 한다. 거짓으로라도. 차일 거 가정하고, 바람 맞을 것 각오하고.
내 블로그 유입 검색어 가운데 하나가 눈에 띈다. 그것은 '남친 싫증나게 하는 법'. 왜일까? 당사자는 왜 무엇을 알고 싶어서 그런 검색을 했고, 내 블로그는 호쾌한 해명도 하지 못할 꺼면서 그분을 낚았을까? 내 마음 편하자고 내가 찰 수는 없고, 그래서 내가 차이기 위한 뭐 잔머리 그런 건가? 혹시 정말로? 그럴지도! 다른 검색어도 있었다.
나이트클럽 다니는 남편.
마세라티 여자꼬시기.
텔레비전을 10년 끊어보니까.
새 짝짓기.
양 발정기.
조증 특효약.
호색한 관상.
남자 구워삶는 재주.
남자를 쥐락펴락하는 법.
그외 수다의 소재로 삼을 만한 게 꽤 있었다. 인기 TV 프로그램 홈페이지 게시판에 등장할 만한 얘기들 말이다.
발단에서 전개로 진행이 어려워서 소설을 쓸려다가 일기를 썼다. 즉 <소설을 쓰자>는 <일기를 썼다>로 바꼈다. 그래도 시작이 절반이라고 이야기는 시작됐다. 달콤한 연애소설이 될지 인기 없는 드라마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현재 시점의 내 삶은─소설을 읽고 계시는 그대의 삶은─갈 곳은 없어도 오라는 곳은 많다일까, 갈 곳은 많아도 오라는 곳은 없다일까? 아니면 둘 다일까, 둘 다 아닐까? 그 답이 뭔지는 불명확해도, 어떤 게 나을지는 몰라도 전자와 후자는 같지 않다는 건 분명하다. 그런데 보기는 왜 둘 뿐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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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나의 일상을 소개하자면 별거 없다. 우리 집 마당에 있는 수영장에서 일광욕하기, 친구 만나기, 책 읽기, 운동하기, 우유 마시기. 그리고 소셜 네트워크 계정을 없애지는 않았다. 도박으로 한밑천 탕진하지도 않았고, 자칭 해결사라며 동네에서 여기 기웃 저기 기웃하며 빈둥빈둥 놀러다니지도 않았다. 의외로 규칙적인 생활을 하면서 작품의 소재를 찾느라 논리적인 사고와 비논리적인 사랑을 골똘히 생각하곤 했다.
그리고 두 가지 새로운 일이 있었다. 아 세 가지다.
첫째, 새 컬러텔레비전과 새 노트북 구입. 노트북은 신제품을 샀다 치고, 소형 컬러텔레비전? 내 친구가 만일 내가 쓴 글을 읽었다면 신선한 내 행동 때문에 의아해 했을지도 모르겠다. 이 친구가 NC라 부르는 습관을 버렸나 하면서. 그리고 컬러텔레비전이라니, 그럼 전에는 흑백 TV를 본 건가 그러면서. 아무튼 그리고,
둘째. 나는 새 친구를 사겼다. 인터넷에서 어느 경영학자의 글을 읽고 따라한 건 아니다. 난 쭉 그렇게 살아왔으니까. 20년 전에도 그랬다. 친구들한테 연락처 엄청 받았고, 넌 알던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는 얘기도 들었다. 아, 인터넷에서 본 경영학적 충고는 이것이다. 만나던 사람만 만나다 보면 과거의 틀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새로운 관점을 원한다면 새로운 사람을 만나라는 것. 새로운 장소에 가보라, 일단 행동하라, 그런 얘기들과 같은 맥락의 글이었다. 아무튼 최근 자주 만나는 친구를 세어보니 모두 여섯 명이었다. 처음에 영화감독 파블로를 찻집에서 일하다 새롭게 알게 됐고, 다른 친구들은 모두 파도타기로 알게 됐다. 우리는 보면 바로 친구가 된다. 우리는 만나면 금새 친해진다. 우리는! 파블로가 맥을 소개시켜줬고, 맥은 콜린을, 콜린은 폭스를, 폭스는 수잔을, 수잔은 다시 딩맨을. 그런데 알고 보니 그들 6인의 친구들은 알고 지낸지 꽤 오래된 친구들이었고, 나만 후발 주자로 그들의 우정에 뛰어든 뭐랄까 난 그들에게 낯선 사교가나 외교관 타입의 새로운 친구였다. 친구들 얘기는 다시 하면 되고,
마지막 셋째. 최근의 새로운 일 세 번째는 신작 소설을 일기 형식으로 쓰기 시작했다는 거다. 왜냐하면 이번에는 1인칭 시점으로 글을 써야 하는 차례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특별한 우여곡절 없이 우연히 정한 일하기 규칙이었다. 양처럼 순하게 일만 하다가 언제 늑대처럼 분홍색 양에게 덤벼들지 모르지만 일단 관례를 바꾸기 전까지는 뚝심 있게 혼자 정한 일종의 목표 같은 거였다.
그럼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이 아닌 새로 사귄 친구에 대해서 묘사할 시간이 돌아왔다. 생계와 지루함, 따분함, 하기 싫다는 부정적 감성이 연상되기 쉬운 일과 공부였다면 나는 마이크로소프트 엑셀 파일이나 파워포인트로 문서를 작성하는 게 좋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근래 은연중 정한 좌우명은 <행복한 일하기>였고, 따라서 나는 <내 친구를 소개합니다>에 관한 최적의 매체로 소설을 택했다. 말로야 모차르트처럼 뚝딱 쓴 것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실제로는 메모를 모으고 자료 조사는 귀찮아서 하지 않고 엑셀 파일과 다양한 독서와 검색을 비롯해서 어렵게 어렵게 완성했을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결과물만 놓고 보자면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에 거의 쉬지 않고 완성한 듯 하다. 그래도 살짝 작업 과정을 엿보자면 질투와 경계, 오리무중, 티격태격, 앙숙과 애증, 사랑과 우정에 관한 인물 관계도 같은 건 없었다. 왜냐하면 이건 흥미로운 드라마가 아니라 그저 내 일상이고, 내 현재의 삶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냥 있는 그대로 부담없이 친구들에 대해서 간략히 설명하고자 한다. 나를 거쳐간 100명의 여인에 대해서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여자는 막 그러면서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꽤나 고민하게 만들며, 주마간산으로 신뢰하기 어려운 영웅담으로 유난떠는 것보단 그게 낫겠다.
친구들은 이렇다. 파블로─맥─콜린─폭스─수잔─딩맨까지 6명. 골상학 및 다수의 인상에 근거한 관상으로는 차례대로 이렇다. 말상─개상─척키상─고양이상─요정상─여우상. 말상이나 개상은 드물지 않으니까 넘어가고 척키상, 음 내 친구 척키가 생각났다. 그리고 요정상은 수잔의 귀가 커서 요정상이다. 긴 생머리인데 판타지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수잔은 정말 귀가 크고 뾰족했다. 물론 나는 인간상이다. 그리고 파블로와 맥과 콜린은 남자, 폭스와 수잔과 딩맨은 여자였다. 그 다음으로 직업. 파블로부터 딩맨까지 영화감독─프리랜서 프로그래머─개인 투자자─가수─연극배우─경영학자 및 컨설턴트. 물론 나는 소설가다.
그런데 이미 소설의 발단이 시작됐는데 왜 아직도 발단인가. 이러니 영화사에 판권이 팔릴 리가 있나. 일을 해도 해도 내가 가난할 수 밖에 없는 이유, 그런 건 비밀 축에도 못 든다. 내가 너무 과거에 허랑방탕하게 살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알고 보니 완전 질펀한 사연이 있었다더라 잘 살다가 타락했다더라, 그런 영문 때문에 전개는 아직도 감감무소식일까? 그래도 나중 완전 재미있을지, 심하게 재미없을지는 두고 봐야 한다. 왜냐하면 문학 역시 소녀의 꿈과 귀여운 상상력, 사랑에 빠진 순정남의 배짱과 일면 비슷한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행복하게 해줄께, 언제까지라도 너만을 사랑하겠다, 우리 같이 살자, 또는 말없이 그냥 꽃 한 송이를 그대에게, 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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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션의 종류는 다양하다. 스파이 스릴러, 현대극, 코메디, 고전, 문학적 허구, 역사소설, 마술적 사실주의, SF, 판타지, 스릴러, 기타 등등. 그것의 여러 분류 가운데 발견도 있다. 발견. 발견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 어쩌다 신세계를 발견. 둘째, 탐험과 탐색과 탐구에 매진하나 결과는 헛소동. 1번은 흥행이고 2번은 허당이다. 1번은 황금이고, 2번은 전망은 좋았는데 결과는 깡통이다. 떠들썩한 추측과 개봉 박두라며 선전은 요란하지만 결국 성과 없음으로 판명나는 거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옛말을 증명하는 일이겠지. 맞다. 신세계를 발견할 뻔 하다가 마는 건 한마디로 떨떠름한 느낌일 것이다.
그러면 이 얘기를 왜 꺼냈을까? 그러니까 어쩌다 신세계를 발견했냐고 못했냐고! 나는 의도치 않게 놀라운 신세계를 발견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발견하지 못했다 라고 단정짓기도 퍽이나 애매한 그런 뭔가 헛스윙 같은 일을 체험했다. 진짜로? 진짜로!
나는 처음에 믿지 않았다. 왜냐하면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두 분으로 똑똑히 보고 나서 믿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발단은 모두 파블로부터 딩맨까지 6인의 친구들이 나를 제7의 멤버로 합류하는데 만장일치로 동의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실은 우리끼리만 돌리 동물원에 놀러갈려다가 널 빼놓고 가기에는 미안하기도 하고, 또 신기한 발견을 하더라도 그 비밀을 발설하지 않을 듯 해서 너와 함께 이곳에 당도한 거야.
사람은 세 유형으로 나뉘지. 첫째, 사랑을 믿고 싶은 사람. 둘째, 사랑에 빠지는 사람. 셋재, 사랑은 없어 까지. 그런데 이 사랑에 관한 세 가지에서 사랑의 자리에 사랑 대신에 신비나 환상, 기적, 신기루를 넣어도 말이 된다는 점, 당연한 말이지만 알고 보면 꽤나 놀랍거든. 보통은 어린애가 어른으로 성장하면서 지식이 늘고, 사회성이 발달하며, 괜찮은 인생관이 확립되는 대신 상상력은 빈약해지지. 왜냐하면 동심은 반납해야 하니까. 하나를 얻고 하나를 잃는 거라고. 역시 사람은 어린애가 어른으로 크면서 겪는 큰 변화 가운데 중요한 하나는 아는 게 많아지고 경험도 늘어나기 때문에, 사랑을 믿는 쪽에서 사랑은 없어 쪽으로 옮겨간다는 점이야. 그놈이 그놈이더라, 그런 관용구 같은 거. 알라딘의 요술램프, 천일야화, 이솝우화, 백설공주, 신데렐라, 돼지 삼형제 같은 동화를 보고 읽다가 어른이 되면 그런 현실적이지 않은 일을 말로 바꾼다고. 응? 말로! 뭔가를 믿지 않거나 잘 믿거나, 웬만해선 속지 않거나 습관적으로 거짓말을 하거나, 굉장히 과묵하거나 허풍 대회 출전 자격을 어렵사리 따내거나. 그러나 소녀는 사랑을 믿겠지. 역시나 남자는 친구와 사랑을 얘기하지 않는다네. 그럴 수 없으니까. 아이는 신비를 믿고, 어른은 신비는 허구란 걸 아미 알아. 알아도 안다고 말하지 않을 뿐. 응, 하늘을 나는 산타클로즈와 루돌프 같은 거. 그래서 어른들은 사람이 아닌 숫자를 믿는다면서 혹시 당할 수도 있으니까 사기꾼을 경계하면서 살게 되지. 또 아이는 환생을 믿고, 어른은 환상을 만들고. 아이는 신기루를 꿈꾸고, 어른은 신기루 대신에 복권을 사고 말이야. 즉 그 중간은 사랑에 빠지듯 자네처럼 이렇게 환상의 세계를 목도하며 넋을 잃는 지경에 이르는 것일 테야.
자, 보라구!
이 푸른 잔디밭에서 뛰어노는 저 해맑은 동물들. 다 진짜야. 어 저기 있군. 양말. 양과 말을 교배한 동물이야. 하하하하하. 이제야 모습이 보이네. 봤지? 어! 소마. 소와 말이 하나야. 소의 머리에 말의 몸. 그 외에도 많아. 아, 조심해! (7인의 친구들은 깜짝 놀라며 피한다) 방금 우리의 개새님이 뭘 좀 누셨네 글쎄. 저기 하늘을 나는 이카루스군은 새의 몸에 개의 머리를 하고 있다네.
하하하하하. 아직 긴가민가하겠지. 밝고 어둡고 울렁이는 울트라마린빛 바다를 건너왔더니 에고머니나, 루사이트 그린색 초원 위에 웬 이상한 동물들이 놀고 있으니 말이야. 하지만 보고도 믿지 않을 수 없는데 어쩌겠나. 받아들여야지. 쥬라기 공원이라고 있었지 않나. 그거랑 비슷해. 다만 공룡 대신에 보시다시피 새로운 동물이 있다는 거. 차이는 그거 밖에 없어. 아! 그건 허구고 이건 현실이란 것도. 얼룩말인데 어머나 글쎄 머리는 기린이네? (딱) 저기 보이지? 그거야. 뭐야 캥거루인데 다시 보니 코알라 같네. 그 둘이 하나라고. 하지만 이건 신화적인 상상력을 바탕으로 구성된 가짜 이야기가 아니라네. 진짜라고. 현실! 이미 엣날부터 다 성공했고, 만방에 알려진 실제일 뿐이야. 그거, 그래, 라이거! 또 뭐가 있을까? 그래, 복제양 둘리! 또 뭐가 있을까? 유전자 조작 곡식! 사람도 인공수정을 하지 않나, 대리모. 윤리적인 문제나 그런 인습 때문에 아직은 구현 가능한 일을 봉인시킨 일이 꽤 된다고.
우리 삼촌이 여기 골프장을 중고로 사셨을 때 처음에는 그거 할려고 하셨대. 늑대와 양과 사람과 어? 막 배를 타고 안전하게 강을 건너는 방법. 그런 거 실제로 만들까 하시다가 중간에 계획이 변경된 거야. 보시는 바와 같이. (이때 파블로는 내게 망원경을 주면서 곰양과 당나귀하마를 구경하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그가 시키는 대로 우리의 새로운 동물들을 살펴보며 꿈에 부풀었다. 왜냐하면 돌아가서 친애하는 신사 숙녀 여러분, 하면서 멋진 판타지를 쓸 기대에 코끝이 시리며 가슴이 뭉클해졌기 때문이다)
어때, 우리 카페에서 꼬냑 한잔 하지 않겠나? 향기만 맡자고. 그게 원래 그런 용도를 위한 음료이기도 하고. (우리들은 무슨 거물이나 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실내로 이동했다) 1900년대 초반에 씌여진 어느 고전 문학에서는 그런 내용이 나오더군. 씌여진 이름을 지우거나 사선을 그으면 그 존재가 책에서만 없어지지 않는 일. 대하드라마를 보면 나오지 않나, 살생부라고. 그와 더불어 2000년 전후로 발간된 인문학에서는 적고 기록하고 쓰고 숙지하고 꿈꾸고 소원을 빌라고, 그러면 이루어진다고 이루어질지도 모른다고 말이야. 사소하든 창대하든, 물건이든 명성이든, 확실하게 콕 찝으라고 말이야. 두리뭉실하게 흐지부지 그냥 한번 해봤는데 뜻밖의 행운이 찾아올 수도 있지만 될 수 있으면 포크로, 빛나는 삼지창으로 꿈을 푹 찌르라고! 커졌다 작아졌다 커졌다 작아졌다, 응? 잘 알지 않나. 그런데 뭔 생각하시나? 어허! 설마 피노키오를 모르지는 않겠지? 이쪽을 보시게나. 내 코를 보라고. 이 모두를 증명하지 않는가, 이 코가. 게다가 눈으로 보고도 못 믿나? 저기서 뛰노는 동물 친구들을 보게나. 저게 어떻게 거짓말일 수 있겠나. 안 그런가? 안심하시게. 믿어도 된다네. 혹시 모르는 속임수, 그런 거 없어. 사랑은 없을지 모르지만 말이야.
사랑을 믿든 사랑에 빠지는 유형이든 사랑은 없다건, 사람들은 사랑을 하게 되면 명시적으로 얼굴에 딱 써지는 법이지. 난 사랑에 빠졌어요 라고. 그러다 봄-여름-가을-겨울이 한 바퀴 돌고 돌고 또 돌면 그 사랑은 애상으로, 미련으로, 시련과 우수와 애증으로, 보통은 권태로, 이상적으로는 금혼식, 때로는 이혼으로 피날레를 장식하기도 하겠지. 곧 만나서 드라이브를 하고, 차를 마시고, 쇼핑도 하고, 영화를 봤다가 꽃길을 걷다가 앞집 사는 여인에게 불륜 현장을 딱 들키는 불운일지 오히려 다행일지 모를 그런 비운의 요행. 응? 처음만 가장 크게 기분 더러운 호시절이 있을 수도 있는 게 어른의 인생이야. 그런데 자네는 뭔가 달라. 이를테면 머리가 빡빡 스타일이거나 키가 훤칠하거나 모르는 사람이 없는 유명인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건전하게 사는 사람도 있겠으나 뭔가 운명적으로 그렇게 사는 사람도 있는 법이거든. 수프만으로 배를 채운다거나 일주일 내내 스파게티만 먹거나 푸딩광인 사람이 있어. 뭐야, 푸딩이 그 푸딩이 아니라고? 아 됐고, 뭔지 잘 모르겠고, 롱테일 말고 평범함과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거 말이야. 집에서 녹차를 밖에서 콜라를, 아침에는 커피를 밤에는 주색으로 아 술로. 그처럼 하루는 이성으로 시작해서 감성으로 마무리되지 않나. 낮에는 회사에서 일하고 밤에는 집에서 드라마를 보고. 낮에는 학교에서 공부하고 밤에도 집에서 공부하고. 응? 아침에 눈을 뜨면 동심으로 시작해서 낮에는 남 주기 아까운 그녀를 떠올려봤다가, 본전 생각나게 하는 연애는 고의가 아니라 우연히 거리에서 눈에 띈 어떤 인상 때문에 회상한 다음에, 저녁은 낭만이나 오락과 유희로, 밤에는 아마도 흑심을 거쳐서 꿈나라로 떠날 테지. 뭐, 뭐라고? 아침에 의식이 깨자마자 흑심으로 시작한다고? 아 나 이런, 사는 게 뭔지!
좌우지간 자네한테 뭐라고 설명하기 곤란한 그런 거, 남들에게 없는 그런 분위기, 형언하기 어려운 인과론적 사색가이자 엉뚱한 상상으로 도가 튼 타고난 몽상가인 듯 보여서, 꿈과 모험으로 가득한 이곳 환상의 세계로 초대한 거라네. 아직 극비니까 혹시라도 실수로 어디에 발설하지 않도록 조심하고 말이야. 허허허. 허허허허허.」
내가 파블로를 만난 건 행운이었다. 이런 돌리 동물원이 실존할 것이라곤 전혀 예상치 못했으니까. 어떻게 상상이나 했겠나? 상상은, 할 수 있겠군. 호색증과 조증과 다몽증에서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 말이야, 뭐 하나가 아니라고? 왜 하나냐, 나는 셋 다 꿰차야만 한다? 상남자군. 괜히 옆길로 새지 말고 다시 정리하자면 그땐 운명적인 순간이었다. 황홀한 예감은 기대를 져버리지 않은 채 행복한 기분으로 변했다. 나는 더 이상 고독한 희망자나 외로운 여행가가 아니었다. 당시에는 내가 사람 보는 눈이 있다고, 나는 말귀도 알아듣고, 글귀도 제법 선별할 수 있는 자질이 출중하다고 혼자서 좋아했다. 이 사람은 파브르 곤충기 타입일까 조류 대백과 관련 학자 타입일까, 존경의 대상이 사람일까 인생 유형일까, 그것을 알아맞출 수 있는 혜안이 내게도 생겼다고 기뻐했으니까.
그러나 무성한 소문과 다양한 추측과 숱한 가설과 참을 수 없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남자, 파블로는 결국 은근 허당으로 밝혀졌다. 왜냐하면 개새, 마양, 치타곰이 사는 돌리 동물원은 끝내 사기꾼의 소행으로 탄로나고 말았기 때문이다. 개냥이, 개말, 개양을 대체 어떻게 만들었는지는 몰라도 결과가 그랬다. 그 이상한 동물들은 다 가짜였고, 그곳은 폐쇄된 골프장일 뿐이었다. 돈은 물론 파블로가 제일 많이 뜯겼다. 나도 액수는 자세히 밝히지 않겠지만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 것 치고는 작게 당했다. 불충분한 베팅이 복을 불러온 셈일까? 답하기엔 영 석연치 못한 질문이다. 이로써 <어쩌다 신세계를 발견>이라는 발견의 종류1에서 <어쩌다 신세계를 발견할 뻔 하다가 맘>이라는 종류2로 왁자지껄한 꿈결 같은 환상은 마무리되었다. 뭐 아침에는 흑심 밤에는 동심? 혹시 시대를 앞서가나 했드니 기쁨과 환희와 흥미진진의 진상은 역시나 불길함과 체념과 절망으로 드러난 꼴이었다.
벌 나비가 꽃 보고 날아드는 격이라는 둥, 희망과 꿈을 위하여 전진하라는 둥, 오늘의 운세는 순 엉터리다.
4
판타지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사실적인 판타지, 둘째 허구. 첫째 현실적이라는 것은 곧 환상의 깨짐을 뜻하기 때문에, 따라서 그것은 국어인 환상보다 외국어인 판타지나 영화와 문학에 주로 쓰이는 전문용어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 쉽게 말해 판타지는 꿈이고 불가능이며 초현실이다. 판타지와 SF의 차이는 과학적이냐 아니냐의 차이다. 심도 깊게 들어가면 더 긴 설명이 필요하지만 쉽게는 그렇다. 판타지는 후덕하다. 때문에 그것은 이상주의도 신비주의도, 아이스크림 같은 사랑도, 펌프질되는 끝없는 기쁨마저 포용하는 신화 같은 이야기다. 그러므로 그것은 꽁꽁 언 만인의 마음을 녹여주고, 따라서 인기가 좋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판타지는 어디까지나 일상, 생활, 공부, 일, 놀이, 인생과 양립할 수 없는 덕목이다. 이 역시 심도 깊게 들어가면 더 긴 설명이 필요하지만 쉽게는 그렇다. 그건 너도 알고 나도 아는 상식이다. 아, 통촉하여주시옵소서. 백조하자를 아시는 고고한 그대도 아시고, 미천한 소생도 아는 기정사실일 뿐입니다. 판타지는 말 그대로 공상─상상─몽환─망상이자 꿈이다. 즉 현실 부정이다. 인문학적 통찰에서는 잘 정의된 일은 동사와 명사 둘 다로 표현된다고 한다. 예를 들어 사랑과 사랑하다 처럼. 그러면 판타지는! 판타지-하다? 어딘지 모르게 백조-하자 처럼 들린다. 맞다. 저 둘째인 허구 판타지는 흔하디 흔하다. 그래서 첫째인 사실적인 판타지가 아마도 더 고급일 것 같다. 그렇다고 해리포터나 반지의 제왕 같은 작품이 저급이란 말이 아니다.
내게 있어 판타지는 '이런 기분 처음이야' 같은 느낌으로 다가왔다. 즉 나는 환상을 만났다. 그것은 환멸 다음에 오는 축복을 착각해서 느끼는 그런 환상이 아니었다. 정말로 그것은 내게 판타지였다. 어쩌면 사랑 같은 경험. 아마도 그 경험은 애인과 첫눈 그런 낱말들과 손에 땀나도록 경합을 벌여야 할 것만 같은 치명적인 매력을 지닌 뜻밖의 새로움이었다. 그러니까 그 판타지가 대체 뭐냐고! 그것은 내 친구 딩맨이 남자였다는 사실이다. 딩맨은 남자 이름 같지만 외모나 성향이나 기호, 하는 행동과 말과 반응등 뭘로 보나 여자다. 완벽한 여자. 그러나 그건 이제 과거형이 되었다. 나는 그 사실을 인적이 드문 해변가에서 알게 됐다. 머리 속이 복잡할 때 내가 혼자 즐겨찾는 나만의 비밀 장소가 있었는데, 난 그곳에서 몰래 나체 수영을 즐기곤 했었다. 인적이 전혀 없었으니까. 그런데 그곳에서 딩맨, 그것도 딩맨의 부풀지 않은 위와 튀어 나온 아래를 보고야 말았던 것이다. 유력한 심증도 필요 없고, 돌이킬 수 없는 확증이었다.
「오 딩맨, 뭐라고 말하지 않아도 괜찮아. 우리 가만히 파도를 바라보며 우유를 마시자꾸나. 아님 뭐 요구르트? 가서 사 올까?」
「아, 괜찮아. 난 아무렇지도 않아. 더 이상 숨기기도 싫었고, 그럴 수도 없었고, 참을 만큼 참았어. 견딜 만큼 견뎠으니까. 이젠 더 이상 버티기 힘들었나 봐. 하지만 아무렇지도 않아. 안 그래도 다른 친구들보다 너에게 먼저 말할까 말까 고민했어. 다른 친구들은 너무 오래 뭐랄까 속았다고 하면 이상한가, 그래서 친해진지 얼마 안됐으니까 너한테 먼저 비밀을 털어놓고 싶었어. 정말이야. 게다가 넌 나와 관심사가 많이 일치하더라고. 그래 맞아. 통하는 게 있었어. 나만 느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있잖아. 사람은 두 가지로 나뉘지 않을까? 첫째, 프란츠 카프카를 읽는 사람. 둘째, 눈 한 번 껌뻑하면 카프카니 소냐니 르 클레지오의 조서니 조지 오웰이니 정작 하고 싶은 말이 뭘까 헷갈리게 만드는 남자. 그 뿐만이 아니라 영화에서 누가 마셨던 어떤 와인, 중절모는 어떻게 벗고 어떤 날 필요하다, 내가 좋아하는 향수는 뭐다, 난 글 쓰는 남자와 패션업계에서 일하는 남자는 절대 사절이다 질색이니까, 나는 무엇을 하고 싶고 누구에게 끌리며, 요즘 누구 음악에 푹 빠졌고, 데미언 허스트는 식상하고 차라리 어설픈 추상파 화가들이 훨씬 낫더라는 둥 할 말이 많은 남자. 종이 한 장 차이로 한대 때리고 싶은 남자. 그러나 본인이 깨달아서 리듬만 좀 타면 얄미우면서 귀여운 남자. 넌 무엇보다 2번 할 말이 주체할 수 없도록 많은 남자가 아니라 클레이턴 크리스텐슨의 할 일 이론에 따라 색다른 소비재를 고용하고, 책을 들고 아무 페이지나 펼쳐도 모든 게 너무 시적이기 때문에 인생 내내 카프카를 즐겨읽는다는 내실이 탄탄한 한 시인의 권고를 믿고서 포기하다, 외면하다, 노력했다 포기하다, 다시 도전해서 뒤늦게 카프카 읽기라는 꽤 근사한 취미를 알게 된 남자, 마음에 드는 쾌적한 속옷 같은 남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가만히 지켜보니까 정말 그렇더라고. 그래서... 일부러 그렇게 촌스럽게 하고 다니니? 신경쓰지마 농담이니까. 설마 정말로, 그래? 장난인 거 알지? 하하하. 내 농이 좀 심했네 친구.」
「하긴 요즘 세상은 사람들이 타인의 삶에서는 자기가 배우거나, 따라하고, 힌트를 얻기에 유리한 부분만 재빨리 습득하는 추세가 없을 수가 없겠지. 바쁜 세상이니까 말이야. 인간은 누구나 이기적인 존재니까 당연한 거겠지. 정보가 방대하고 즐겨야 할 예술과 즐겁게 몰입해야 할 놀이와 만나야 할 새로움들은 정말 끝이 없어. 고전적인데 현대적이다, 현대적인데 고전이다 그런 묵직함과 건실한 중량감보다 수박 겉 핥기식 합리주의와 값싼 웃음을 유발하는 호사가, 적당한 시간 때우기로 좋은 저질도 아니고 고급도 아닌 어중간한 오락물들, 마치 거울을 보는 게 아닌가 환각에 빠지게 만드는 스탠드업 코메디의 제왕! 라~고 모두 다 똑같이 웅변하고 판에 박은 듯이 주장하지만, 제왕이 아니라 대부분 앵무새인 것만 같아. 그래야 더 잘 팔리는 세상이니까. 밀란 쿤데라도 이젠 더 이상 읽히지 않는다나 뭐라나, 그런 냉소 섞인 투정과 자조 섞인 미소도 한때 유행이었을 뿐이야. 차라리 그런 얘기들이 보이고 들리던 때가 더 낫더라는 기분도 들어.
아무튼 난 오늘 아무것도 못 봤어. 난 말이야, 사랑 받지 못하다 인기도 없고 친구도 없다, 그처럼 일기를 쓰고 싶어만 하고 정작 일기를 쓰지 않는 남자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아. 말로는 술 마시는 분위기를 좋아하네 어쩌네, 일기가 밀렸네 소설을 쓰자네 내가 오빠 이럴려고... 그거 다 허영이라고. 투정 같은 거. 뭐 어쨌든 그래도 기분은 이상하다야. 딩맨은 내게 살짝 끌리는 여자였는데. 아니 많이...였을까? 그럼 이제 맥과 콜린의 구애는 어떻게 되는 거지? 그건 뭐야, 브로맨스로 바껴야 하는 건가? 반대로 폭스랑 수잔은 딩맨을 두고서 연적이 되어야 하냐고. 잘하면 꽤 멋진 삼각관계 하나 나올 것도 같은데. 그러지 않을까?」
나는 딩맨의 비밀을 알게 됐다. 살짝 무안했고, 적당히 적나라했다. 그러나 선정적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감동적이었다면 모를까. 무엇보다, 나는 딩맨의 정체성을 발설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 다른 건 몰라도 이런 건 내가 심하게 야무니까. 판타지의 종류 2가지에서 딩맨은 어쩜 둘 다를 내게 안겨주었으니까.
멋진 남자와 아름다운 인생이 완벽하게 일치할 수는 없다. 해와 지구와 달, 해와 달과 지구, 지구와 해와 달이 일직선 상에 놓이는 장면을 현장에서 목격하더라도 알 수 있다. 멋진 남자와 아름다운 인생이 교차할 수는 있어도 완벽하게 딱 맞아덜어질 수는 없다는 것을. 여기서 멋진 남자는 새롭게 남자로 환생한 딩맨이고, 아름다운 인생은 우리의 우정이다. 더 쉽게 설명할려면 할 수는 있는데 뭔가 더 설명하기는 싫은 그런 게 있었다. 그런데 우리의 우정이 6명을 뜻하는지 나까지 7인일지, 아니면 앞으로 딩맨의 컴백 여하에 따라 새로운 이합집산이 발생할지 정밀한 예측을 하기엔 무척 역부족한 실정이다. 다만 문학적 발견이 나왔고 영화식 판타지가 나왔으니, 이제 분명 어디풍 그 다음이 있을 것이란 기대는 도저히 거부할 수 없게 됐다. 솔직히 그 모험에 참여하기를 거절하기 썩 어렵다는 난점은 쉽게 예상된다. 이때 필요한 건 귀납적 추론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쯤부터 뭔가 재미있는 일이 나타날 것만 같은 예감의 풍선과 두근두근 콩닥콩닥 썸타는 호기심이 추론도 잠재우고, 추리도 억누르며, 기쁘게도 추측을 무대로 내보냈기 때문이다. 첫키스, 첫경험, 첫사랑, 독무대, 시험대, 신고식 같은 거. 그렇다면 지금 절실한 건 무엇일까? 지금은 놀라운 느림의 미학을 알아야 한다. 운을 타고, 희망을 마시고, 여복을 꿈꾸며─뭐 숙녀가 꿈꾸는 남자복?─현재를 즐기면 그만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빗대어 설명하는 게 좋겠다. 게임으로. 지금은 블랙잭의 규칙을 몰라도 상관없다. 표정 관리 안 되면 어떤가. 지금 잃고 나중 대성하는 게 낫다. 그 반대라, 아 전망이 그리 밝지만은 않을 듯 하다. 포커페이스 역시 장단점이 있다는 걸 살다보면 알게 된다. 액면이 좋은들 어떻고 나쁜들 어쩌겠나. (다만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를 가난한 예술가나 더 가난한 냉철한 이성주의자에게 듣게 되는 상황은 썩 반갑지 않음) 우리는 지금 당장 승부사인 척 여유 부리며 연기하지 않아도 된다. 단지 이 하나만! 딱 그거만. 중간에 받는 한 장의 카드를 놀랍도록 느린 속도로, 긴장감을 최대한 살려서, 애타게 내 님을 떠올리듯이 그렇게 살며시~ 그 하나를 서서히, 서서히 확인할 것! 마네킹 옷을 벗기듯 바나나 껍질을 까는 듯이 덥썩 다음 타자를 확인할 게 아니라 향긋한 꽃이 피는 속력과 동기화를 이루듯이 그렇게.
나는 이제 어떤 신선한 역경이랄지 전혀 새로운 미스테리, 대결 구도든 수수께끼 해결이든, 우정이냐 사랑이냐 남남이냐를 결판내지 않을 수 없다는 운명의 서막이 열리는 걸 감지했다. 난 떨었다. 또 난 떨렸다. 이런 느낌 처음이었다. 뭐가 뭔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다짐했다. 어떻게? 이렇게! 최선을 다하지는 않겠다고. 앞서 나가지도 않겠다고. 허튼소리를 일삼지도 않을 것이라고. 부디, 나는 그냥 묵묵히 분위기를 따라갈 것이라고. 나는 내심 마음을 정한 것이다.
5
사실 딩맨은 뭇남성이라면 어쩔 수 없이 멈칫할 수 밖에 없는 그런 쭉쭉빵빵 아가씨였다. 그래서 나는 유능한 숙녀를 한 명 잃었고, 새로운 우정을 기구한 운명으로 받아들여야만 했다. 어려운 일은 아니다. 골백번도 더 할 수 있다. 오늘 같은 난처한 상황이 발생하기 전까지는.
오늘 나는 일이 있어서 번화가에 들렸다가 딩맨의 가족을 만났다. 그런데 아시다시피─아시다시피? 모를 수도 있음. 관심조차 없거나─딩맨은 여우상이다. 그래서 나는 여우 가족을 보는 듯한 꿈 같은 환영 때문에 잠시 아찔했다. 자칫 잘못했으면 다리에 힘이 풀려 제자리에 주저앉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 혼미함 때문에 하마터면 이성적 기분파 라는 내 지위를 잃어버릴 뻔 했다. 예술에 대해서라면 나는 언제가지라도 꿋꿋하게 주둥이를 쭉 내민 표정의 반항아라야 하고, 기쁜 삶에 있어서도 철들면 안된다 언제 철들래 라는 명제를 잊어서는 안되는 것인데, 그런데 나는 잠시 정신을 놓을 뻔 했다. 그 정도였다.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란 게 왜 그러냐면, 우리 생각을 한번 해봅시다. 만일 거리나 어디서 우연히 콜린 가족을 만난다? 콜린은 척키상인데 뭐 척키 패밀리? 지금 영화 찍나? 어? 그렇다. 나는 차라리 잘된 일이라고 안심했다. 그건 그렇고,
한편 오늘은 바로 발단만 있는 하루가 아니라 전개가 납시신 길일이었다. 왜냐하면 그 무슨 돌리 동물원 사기 사건 때문에 파블로가 책임을 통감하다 못해 이제 우리들을 볼 면목이 없다면서 잠적해버렸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혹시 모르니까 상서롭지 않은 일을 사전에 차단하고 걱정하는 의미에서 파블로를 찾아나서기로 한 것이다. 모두들 개인 사정과 일정을 취소하고 미루며 이 일에 전념하기로 했다.
나는 이쯤 되면 모험이나 구출이나 여행이 다음 순서일 꺼라고 나름 예견했다. 그러나 예견은 예견일뿐. 결국 떨구어진 지령은 바로 추적이었다. 뭐라고, 추적? 그게 정말 흔하디흔한 소재라서 쉽고 재밌을 것 같지만 또 실제는 다르다. 그래도 수업시간 제목이 그것이니 일단 추적에 대해 알아보자. 살짝만.
자, 추적은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 개연성 있음, 있을 법 하고 의미도 있음. 둘째 설득력 없음, 납득이 안됨. 1번은 추적하는 이유가 합리적인가 아닌가에 따라 요컨대 말이 된다. 반면 2번은 앞뒤 연결이 안되는데 억지로 연결한 설정이고, 밑도 끝도 없이 쫓고 쫓기는 거다. 답답한 노릇이지. 한마디로 무모함, 모험, 광기, 젊은 같은 거. 사랑도 그냥 사랑이 아니라 미친 사랑. 그런 거. 그러면 우리가 파블로를 찾는 것은 합리적인가 아닌가. 음, 그건 이렇게 하자. 1.5라고!
꿈에서 내가 아기 돼지+코끼리와 조우한 날, 우리들은 모였다.
「그런데 대체 어디 가서 파블로를 찾지?」
「파블로는 일기도 쓰지 않고, 블로그도 안 하고, 소셜 네트워크도 일절 하지 않아. 자기 생각과 정보는 극도로 제한적으로만 노출하고, 반대로 밖에서는 최대한 많은 정보를 수집할려고 하는 친구야. 그래서 그동안 우리들도 파블로와 친하게 지내긴 했는데, 이런 상황에서 할 말이 많지 않을 거란 사실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군 그래.」
「그렇지만 걱정할 건 없어. 왜냐하면 우리에겐 맥이 있기 때문이지. 맥은 우리 가운데 유일한 파블로 전문가거든. 안 그러니, 맥?」
「음... 부정하진 않겠어. 나도 먼저 나서서 말할까 하다가, 이처럼 순서를 기다리느라 많이 힘들었다는 거 알아주면 좋겠고 말이야. 실은 뭔가 망설여지는 느낌 때문에 개운치 않았거든. 왜 그런가 생각해봤어. 혹시 우리 중에 돌리 동물원을 억지로 좋아했던 사람, 있니? ...... ...... 없을 꺼야. 나는 아직도 믿고 싶어. 그 신기한 존재들을. 그리고 그 모두가 거짓이었다고 인정하기도 싫어. 지나고 보니까 그건 어쩌면 진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그렇지 않을까? ...... ...... 우선 파블로는 거의 광적으로 몰입할 정도로 기뻐했고, 난 극도로 흥분했으며, 콜린은 대하극에서 왕이 왕후가 아닌 여러 조연들을 두루두루 아끼다가 특정 조연에게 마음을 주듯이 돌리 동물원을 더없이 총애했고, 폭스는 맹목적인 애착을, 수잔은 너무나도 행복한 표정을 지었어. 게다가 딩맨은 판타지를 만났다는 듯이 들떠있었고, 얘는 승부사처럼 베팅할 준비를 했잖니? 다들 인정하지?
콜린의 말마따나 난 파블로를 잘 알아. 그가 사는 집, 친한 친구들, 녀석의 일중독과 취미, 생활상, 알려지기 싫어했던 악습, 만났던 여자와 지금 만나는 여자는 물론 파블로의 부모님과 형과 동생들도 모두 알지. 그런데 파블로가 개상이니까 음 정말 그렇더군. 아~ 말 말어. 파블로가 우리 중에서 유독 많은 돈을 투자한 것도 아마 그 때문인지도 모르겠어. 아마 그럴 꺼야. 녀석은 돌리 동물원에 존재하지 않았던 닭백조와 개말에 퍽 이해하기 힘든 집착을 보였기 때문인 것 같다고.
아마도 파블로는 실연당했을 때처럼 여행을 가지는 않았을 꺼야. 다음 작품에 전념하며 어디 숨어서 희곡을 쓰고 있지도 않을 테고. 낯선 여행지에 가서 거기 있는 거의 모든 여자를 꼬시는 기행은 그와 전혀 동떨어진 일일 꺼라고. 아무래도 느낌이 이상한 게 말이야, 파블로는 그곳으로 간 거 같아.」
「......」
「그곳은 설마... 돌리 동물원?」
「빙고!」 이건 거의 절묘한 화음의 합창이었다.
2편, 3편, 감독 특별판, 드라마 종결을 앞두고 억지로 추가 편성을 해서 분량을 늘리듯이 추적 과정을 늘리지 않고 결과만 밝히겠다. 개연성은 이미 포기했고, 성과가 있었냐 없었냐, 그것에만 집중해야 하는 시점이니까. 지금 이 상황에 파블로의 심복을 새롭게 등장시켜서 돌리 재단의 비밀이 드러나면 적지 않은 사람들이 실망할 것이다. 뻔한 수순이라면서 그럼 그렇지 라고 할 것이다. 파블로의 은신처는 어디이고, 은닉된 비밀은 무엇일까? 예고는 전개 없는 발단이다. 파블로가 기쁠 땐 상태가 어떻게 바뀌고, 슬플 땐 어디를 찾는가. 관객은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 구태의연하게 그 식상함을 고집하면 그분들로부터 좋은 소리는 듣기 글러먹은 거다. 파블로가 주로 만나는 사람은 누구인가? 관심 없다. 중요한 건 결론이니까.
결론은 얘네들이 우정 하나는 끝내준다는 거다. 그들은 돌리 동물원에 갔고, 염탐을 했고, 텐트 치고 거기 사는 파블로를 발견했으며, 그를 잘 설득해서 그의 오만관 편견과 아픔을 다독거려주어서, 그를 홈그라운드로 데려오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그것은 행복감의 전조일까, 불운의 징후일까?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됐냐고! 다음 편이 기대된다. 기대까지는 아니지만 작가 혼자 잘 노나, 애쓴다며 조롱할 준비나 해야겠다. 작가 역시 작가이자 독자라는 1인 2역이니까. 아무튼 추적은 결국 맥없이 끝나버렸다. 나이라는 숫자가 점차 늘어나는 것처럼 (자세히 밝힐 수는 없지만) 자꾸 머머증, 머머증도 늘어나는 것만 같아서 걱정인데 말이다. 행운은 모르겠고 사랑은 정체, 재산은 하락─곤두박질? 설마 늘어날 기미가 전혀 없는 건가?─하락도 모자라 내내 바닥인데 반해 머머증은 점점 늘어나는데, 그게 정말 좋은 건지 어떤 건지 알 수가 없구나.
6
친구들은 돌리 동물원에서 파블로를 데려왔기 때문에 한숨을 돌렸다. 다시 예전으로 돌아온 것이다. 함께 소풍도 가고, 따로 개인 일정을 소화하기도 하면서 돌리 동물원을 몰랐던 시절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들의 관계는 아무 문제 없는 듯 보였으나, 잔잔한 우정은 어딘가 미심쩍은 불안을 내포하고 있었다. 친교는 어색했고, 사교적 태도는 적잖이 가식적으로 변했다. 왜냐하면 딩맨이, 멀쩡한 여자였던 딩맨이 남자로 돌변했기 때문이다. 재밌든 재밌지 않든 이와 같은 환상의 심술 때문에 그들의 우정과 사랑 사이의 평평하고 팽팽한 균형이 무너진 듯 했다. 이건 뭐랄까 명작 오페라를 보다가 중간에 오페라 극장을 뛰쳐 나온 느낌? 그런데 오페라를 실제로 본 적이 한번도 없음. 곧 이런 기분 처음이야, 그러는 듯 가장하면서 꽤나 당황하고 있었다. 가슴 나오고 향수 뿌리며 치마를 입고서 교태를 함께 선보였던, 같은 여자였던 폭스는 어느 날 애들이 모인 자리에서 그랬다.
「난 사랑 안 해.」 폭스.
「뭐? 사랑 안 해? 뭘 사랑 안 해?」 콜린.
「뭐라고, 사랑 안 한다고? 이게... (웬 떡이냐 라고 하지는 않았다) 그럼 내가 좋아해도 될까? 딩맨을?」 수잔. 표정만 봐서는 겉으로 드러나는 말보다 그 행간에 더 중요한 의미가 담겨있는 듯 했다. 오, 땡큐! 오, 땡큐?
순간 나는 느낌이 왔다. 얘네들은 오래 만났기 때문에 의외로 무언가에 둔감할 수도 있다는 것을. 그 즉시 내게는 딩맨이 더 이상 딩맨으로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딩맨은 쌍둥이 오빠와 동생으로 나눠지는 것 같았다. 느낌이 왔다. 일란성 쌍둥이는 동일한 성별만 가능하다는 게 의학적 상식이다. 하지만 다운증후군인 사람이 있으면 얼굴만 다운증후군인 사람도 있기 때문에, 그 드문 이론적 가능성을 지금 내가 목격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 직감은 날 가만놔두질 않았다. 맞다. 추리와 직관과 동물적 본능은 나를 약간 붕 뜨게 만들었다. 짜잔, 공중부양! 물론 내 추측이 틀릴 수도 있다. 꿈도 야무지다 그랬는데 꿈 같은 상상이 현실이 될 수도 있고. 이미 딩맨이 남자라면서 더 이상 여자 화장실에 들르지 않고, 이제부터는 남자 화장실에 간다는 사실 자체가 판타지였다. 때문에 난 하나의 의혹을 좀 더 뚜렷한 가설로 발전시켰다.
그러면 딩맨은 왜 동생(또는 오빠) 아바타를 불렀을까? 그 답은 전지적 작가 시점에 적합한 설정이니까 잠시 해명은 유보하겠다.
나는 돌리와 딩맨 뒤에 숨겨진 서사의 전말이 궁금했다. 애초에 알고 싶었지만 더 알고 싶어졌다. 그래서 나는 딩맨의 사생활을 캐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인기가 많냐 적냐>와 <사생활이 건실한가 문란한가>가 관계가 있을까, 없을까? 있다! 그러나 전자와 후자는 콩 심은 데 콩나고 팥 심은 데 판 난다는 직접 대칭의 관계는 아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그에 대한 개인적 평가는 일기와 블로그와 소셜 네트워크에 등재된 내용이 허울뿐인가 아닌가를 말해준다. 나는 내가 평소에 관찰하고 겪어 봤던 딩맨의 언행과 습관과 옷차림과 성향과 감수성 같은 전반적인 딩맨 정보를 재점검했다. 차근차근 분석에 들어갔다. 그리고 딩맨의 블로그와 소셜 네트워크도 세세히 살펴봤다. 그 결과 딩맨이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 거라는 총명한 예지가 도출됐다. 딩맨은 지금 돌리 동물원에 있고, 우리와 함께 있으면서 딩맨을 연기하는 딩맨 아바타는 돌리 동물원을 고용한 게 분명했다. 즉 돌리 동물원의 새 주인이 딩맨 아바타다. 동생이든 오빠든 남자 딩맨은 사기꾼이 어항에서 사라졌으니까 돌리 동물원을 헐값에 인수했을 것이다. 딩맨은 거기서 놀고 있고, 딩맨 아바타는 여기서 가장 무도회를 즐기는 것 아니겠나, 그림이 딱 그려졌다.
아아, 때가 됐다. 다시 장고에 들어가야 할 때가.
7
우정은 둘로 나뉜다. 몰려다니냐, 단둘의 친교냐로. 사랑 역시 둘로 구분할 수 있다. 찐한 사랑이냐 풋사랑이냐로. 파블로, 맥, 콜린, 폭스, 수잔, 딩맨은 몰려다니는 우정이었고 그 중에서 사랑이 탄생하지 않은 관계였다. 아마도 사랑이 싹틀 뻔 하다가, 할 듯 말 듯 하다 멈추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딩맨은 파블로와 맥과 콜린을 놓고 미세한 감정의 줄다리기가 있었을 테고, 따라서 딩맨은 <가지 마오─떠나지 마─내 곁에만 있어줘요─내 사랑을 받아주오>라는 확실한 고백을 받지 못해서 토라졌을 가망성이 컸다. 그래서 당시 딩맨은 사랑의 조력자와 많은 얘기를 나눴을 것이다. 이때 조력자는 사랑의 큐피트 그 낭만적인 역할을 절대 마다하지 않느냐, 내 앞가림도 힘들다 '오 땡큐' 어디 없나 라면서 두리번두리번, 그 둘로 나뉠 것이다.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으나 어쩌면 딩맨은 변했을 것이다. 마음을 튼 거다. <나 꽃이야>에서 <넌 호박이야>로. 원래는 꿀벌도 베짱이도 개미도, 거북이와 토끼까지 구애하며 예찬해야 정상인데, 자칭 새라는 파리나 백조로 보여지고 싶은 촌닭만 꼬였기 때문에 살짝 기분 나빴을 것이다. 사람의 사랑만 그런 게 아니라 사람의 일도 똑같다. 가게에 파리만 날리는 거나 외로운 들장미나 비슷비슷하다. 그래서 딩맨은 많이 상심했을 수도 있다. 마음 확 상한 거지.
그 다음에 어떻게 됐을까? 아마 그랬을 것이다. 이래선 안 되겠다, 그래서 딩맨은 그 자리에 아바타를 앉히고 자기는 떠난 거다. 지적이든 다비드과든 뭘 좀 아는 남자건, 꿀벌이 화사한 꽃에 앉아 단물을 아아, 달콤한 아카시아 꿀을 쪽쪽 빨아먹다가 사랑의 본드 때문에 산만한 동물의 세계는 행복한 러브 스토리로 바껴야 했다. 원래는. 그러나 그건 헛된 기대, 짧았던 설레임, 미래를 위한 감미로운 회상에서 쓰디쓴 기억으로 강등, 꽃을 든 남자에 대한 평범한 추억에 지나지 않게 된 것이다. 남녀의 우정? 있을까요! 적어도 거의 없다 라는 노신사식 혜안보다, 가능하다고 존재한다고 믿고 싶다는 애기다. 속은 시커멓든 가식적이든 어쩌든 겉으로야 무례와 실례와 결례를 범할 수야 없지 않겠나. 안 그런가?
돈 없고 나이 들었고 눌변이래도 늙다리라 얕잡아 보여질지라도 분명 숨겨져 있을 노련미, 이분과 똑같이 연로하지만 돈 많고 정신 연령 젊고 뭐니 뭐니 해도 마음이 부자인 허풍 대회 입상자의 관록미, 역시 어느 노로한 범인의 노회한 성숙함, 그건 이미 어디 가서 무슨 성금 모금함에 들어가버렸다.
<사생활이 건실한가, 문란한가>는 몰라도 <인가가 많냐, 적냐>는 대체로 당신을 한두 번, 두세 번 사랑하도록 절대 가만 놔두질 않는다. 무던히도 귀찮게 한다. 뭐, 뭐라고? 자그만치...... 워─워─워! 그건 모두 사랑은 모름지기 유행가 가사 같은 인생과 한 짝이기 때문에 빚어지는, 드라마의 기획 의도 같은 교훈이다. 고로 답은 나왔다. 사랑이 인생의 전부인가 아닌가에 관한. 답은 허무하게도 이렇다. 그것은 심하게 유동적이라고. (그 어떤 몸짓 아아)!
8
나는 최근 함께 노는 친구들인 파블로부터 딩맨, 아니 딩맨 쌍둥이까지 녀석들이 좀 헤매고 있으니까 잠시 떨어져서 시간을 갖기로 했다. 왜냐하면 딩맨의 휴가가 막 상상되고, 딩맨 아바타의 어색한 연기가 너무 웃겼던 데다, 거기에 깜빡 속아넘어가는 다른 친구들을 보고 있자니 웃음을 참고만 있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딩맨이 나타나든가, 딩맨 아바타가 전말을 밝히든가, 또는 우정과 사랑의 관계도가 어느 정도 정리되든가, 그에 대한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서 그들과 잠깐 거리를 두기로 했다. TV로 스포츠 경기를 보는데 응원하는 팀이 내내 지고 있길래 TV를 껐다가 잠시 후 다시 틀었더니 아 글쎄 역전했다더라, 같은 무소식이 희소식이 되는 기대가 깔려있는 의도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우선 나는 집에 가서 몇일 쉬고 왔다. 본가 말이다. 엄마와 아빠와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왔다. 오랫만에 만났으니 가족애를 공고히 하고 어쩌고저쩌고 어쩌고저쩌고, 그런 설명은 진부하고 음 가만 있자, 나는 엄마와 아빠의 미소를 보고 싶었다. 웃는 모습. 웃을 때 드러나는 아빠의 앞니. 나이가 들어 발생하는 노화 현상 때문에 인공적인 앞니일 수도 있으니 유명인들을 TV로 보는 것처럼 멋지지는 않을 것이다. 이때 감정은 애처로움 반, 정다움 반이다. 그래도 봐야 했다. 엄마를 웃기는 방법은 다양하다. 그러나 아빠를 웃길 수 있는 방법은 훨씬 적다. 아빠가 환하게 웃을 때는 주로 세 가지로 나뉜다. 첫째, 외식할 때 무엇을 고를까 망설이다 맛난 음식을 고르는 순간. 둘째, 저 나무의 이름은 뭐다 이 별자리에 얽힌 전설은 어떻다 라는 틀린 정보를 내가 슥 흘리면 그걸 수정하시면서 가녀린 기쁨을 느끼실 때. 셋째, 명절이랄지 그런 날 집에 손님이 찾아왔고, 다과를 내놓고 나름 융숭히 대접해서 적당히 시간을 보낸 후 손님이 돌아가신 다음, 가난한 아빠는 어눌한 화법의 소유자이신 아빠는 한량 예술가와 성실한 농부 성향을 반반씩 닮으신 아빠는 그러신다. 저번에 선물로 들어왔던 딱 하나 밖에 없던 값비싼 독주는 아껴놨다고 하시며 살짝 식 웃으신다. 뭐 그렇게 도시에서 단란한 시간을 보낸 다음 나는 내 시골 작업실로 돌아왔다.
어쨌든 나는 집에서 잡다한 생각을 했다. 나는 평소에 할 말이 없다가 언제 말이 많아지는가. 일기, 소감문, 감상평, 소셜 네트워크 게시물, 블로그, 친구와의 대화등에서 나는 왜 어떤 분량에 대해서 유독 어려움을 느끼는가. 내가 그렇게 유별난 존재인가, 아니다 난 지극히 평범하고 난 정상이다. 나는 왜 마음에 드는 작품이 드물까. 그런 의문은 결국 흔한 인터넷 게시글을 보고 이론과 실제에 관한 문제로 관심이 집중됐다. 학교에서는 세상은 아름답다고 배웠는데, 왜 사회에 나오니 문학적 사랑보다 찐한 사랑과 풋사랑이 무엇보다 돈과 인기와 재미가 제일이더라 라는 문제. 학교 다닐 때는 싫지만 따라갔는데, 졸업하고 나선 내 세상이고 내 인생이니까 싫었던 공부 세계에서 발을 뺐으니까, 학업의 당사자인 학생이 아니라 일과 꿈이 모두 노는 것인 자유인이랄지 일이 본분이고 놀이가 여가인 학부모로써 숲과 나무를 보게 된다는 그런 얘기들. 구체적으로는 이렇다. 국어와 문학 수업이 우리 때는 이랬는데 저쪽에서는 왜 그럴까.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자,
국어와 문학, 예술 과목에 대한 교육 방식은 크게 나눠 두 가지가 있는데 그건 어떻게 다를까? 곧 국어-문학-예술 과목에 대한 교육 방식은 이상적인 방법도 있을 테고, 현실적인 방법도 있을 것이다. 흔한 말로 주입식 교육이라는 방식이 그 첫째고, 둘째는 개성을 다듬고 창의성을 키우며 삶의 의미를 찾는 방식이 그것이다. 1번은 들인 노력과 얻은 결과의 비율 곧 효율이 좋고, 방법에 따른 결과의 다양성이라는 측면 즉 효과 역시 이론적으로는 만점이다. 2번은 현실적인 방안인 1번 교육에 비해 훨씬 이상적인 방법으로서 그에 대한 환경과 토양이 완비된다면 미래인이 꿈꾸어 버릇하는 방법일 수도 있을 것이다. 돈보다 행복을 추구하고, 꿈과 사랑을 노래하며, 아름다운 세상을 위해 노력하고, 고품격의 교양과 언제 어디서든 빈축을 사지 않을 상식을 언제 어디서라도 구비하고자 한다는 것. 간단히 비교해 봐도 2번이 월등히 좋다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다. 그런데 나는 2번 교육을 받아보지 못했기 때문에 잘은 모르겠으나 한가지 궁금한 점이 있다. 2번 교육을 받고서 사회에 나오면 이상적인 2번 교육을 받은 사람들끼리 모여 사는 세상이기 때문에 규칙과 질서와 안락과 어떤 풍요로움에 대해서 누구나 만족할까 라는 것. 과연 정말 그럴까? 누구나 거의 모든 사람이 이상적인 2번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그 사회는 더없이 행복하고, 아름답고, 즐거울까 라는 것. 잘은 모르겠으나 꼭 그렇지는 않으리라는 점, 세상을 조금 살아보면 썩 그렇지 않으리라는 건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입장권이나 마표를 사듯 어른이 나이를 그냥 먹는 게 아니고, 머리 또한 개상과 말상을 구분하기 위한 장식물이 아니듯이. 2번 교육의 요지는 이렇다. 책을 한 권 읽고 나서 수필을 쓴다. 그것을 서로 말하고 듣고 토론하며 다음 책을 고른다. 다른 게 아니라 그게 국어와 문학 수업이다. 오, 좋지. 멋져. 훌륭해. 뭔가 있어 보인다. 인성은 물론 품위와 함께 인생을 대하는 낭만적 준비가 절로 갖추어질 것 같다. 그렇게만 십대를 보내고 나면 누구나 로맨티스트가 되는 거지. 어디 그뿐인가? 영화를 한 편 보고 나서 토의를 하고 논쟁을 한다. 다정하게 또 전문가처럼. 와아~ 영화평론가가 따로 없고, 한 사람은 언론인에 한 사람은 예술가요 선생님은 뒤집혀진 피라미드 때문일까, 막 우리의 쫄자이자 어리광부리는 조수로 보인다. 졸업만 하면 우린 그야말로 지상 천국의 시민인 거지. 멋진 인생아 신나는 모험과 최고의 사랑이여 딱 기다려주시라, 그거다. 그럼 정말 그처럼 2번 교육만 받으면 모든 게 다 해결될까? 그건, 아마도, 아닌 것 같다. 그것은 통찰과 사유와 철학 같은 개념이 아니라 세상을 적당히 살아본 어른이라는 통빡만 가지고도 얼마든지 유추할 수 있는 의견이다. 2번이 진짜 1번보다 월등하게 완벽하다면 우리가 영화에서 드물게 봤던 장면은 모두 현실이 되어야 한다. 마땅히 그래야 지당하다. 거 왜 그런 장면들 있지 않나. 논술형 시험 시간이 딱 닥쳤어, 내내 놀기만 하며 여자 꽁무니만 쫓아다니다 게임에 여행에 술집만 전전하다가 시험 당일이 됐으니 답답할 테지 오죽하겠나, 그러나 시험지를 딱 받자마자 에라 모르겠다 그러면서 쓱쓱 답을 쓰고서 제일 먼저 시험을 끝마치고 나가는 거다, 머머는 머다 때문에 뭐가 어때서 어떻고 고로 머머는 논할 가치가 없다, 결론은 교수가 100점 만점을 주는 거다. 더더군다나 영화에 나오는 천재 주인공처럼 어디 가든 복이 따르고 호박이 제발로 굴러오며, 죄를 짓고 자주 드나드는 법원에서 판사마저 말로써 들었다 놨다 쥐락펴락, 그래서 습관적으로 법망을 빠져나감. 2번이 1번보다 어떤 어중간한 뛰어남의 기준으로 월등하게 완벽하다면 이런 사람이 현실적으로 밥 먹듯이 많이 나와야 맞는 거다. 영화상에서만 그럴 게 아니라.
나는 (대개 딴짓만 하고 허튼 공상을 주로 했지만) 1번 교육을 받고서 어른이 됐고, 2번 교육에 대해 멋지게 바라보는 시선들을 정보 입력하듯이 저장해온 관찰자였다. 1번 방식의 단점을 비판하고 2번 방식의 장점을 동경한다, 그게 나쁘다는 게 아니라, 당연히 좋지 왜 나쁘겠나, <또 그 얘기>를 너무 많이 봤기 때문에 판에 박은 듯한 얘기를 반복적으로 본다는 데서 발생하는 피로감이 있다는 거다. 그렇다. 사는 동안 내내 1번이 2번을 동경하는 모습에 익숙했다. 그러나 오랜 시간 꿈 같은 세월 관찰한 만큼에 상응하여 내게 특별한 생각은 없었고, 있더라도 식상했을 것이다. 왜? 나는 할 말이 없었으니까. 지금도 없으니까. 마침내 나는 그렇게 어른이 됐다. 내가 얼마나 제대로 된 어른 역할을 하며 사는가 자신할 수는 없지만, 2번 교육의 장점이 많긴 하겠지만, 나는 2번 교육이 완벽한 정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내 과거를 생각해보면 즉 내가 2번 교육을 받았다고 가정한다면 난 지금보다 더 행복하고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을 것이라는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그랬다. 내가 쓰는 삼류 소설에 툭하면 스무 살은 애라고 했다. 응애응애 스무 살은 애라면서 애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나는 그랬다. 내가 썼던 산문에 수다와 말수와 글과 말에 대해서 틈만 나면 쓰고 또 쓰고 지겹게 썼다. 엄청 지겹도록. 아조(아주) 신물이 난다. 나는 그랬다. 내가 스무 살 때 난 정말 애였다고. 그때 나는 필경 책을 한 권 읽고 나서 멋진 산문을 쓸 수 없었다. 그때 나는 절대적으로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아마 2번 교육을 받았을지라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때 나는 영화 한 편을 보고 나서 할 얘기란 게 없었다. 당시 사촌형이 삼류 대학 1학년으로써 동아리에서 주워들은 얘기가 있어서, 배운 화술이 있어서 내게 말했다. 어떤 영화를, 어떤 주제를 놓고 대화를 하자고. 대화? 뭔 대화? 난 할 말이 없었다. 큰 관심도 없고 복습하기도 싫은데 얘기를 하기는 뭔 얘기를 해? 얘기 그런 거 하기 싫었다. 그랬다. 영화를 보고 나서 그 영화에 대해서 얘기를 하자고 했을 때 내가 2번 교육을 받았더라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때 만약 내가 여자를 사겼더라면 난 아마 금새 차였을 것이다. 여자를 만나고 싶으면 말하라는 친구도 있었고, 기회는 틈틈히 있었던 데다 지구 반대편과 남쪽에 사는 소녀와 펜팔도 했다. 실험실용 쥐 몇 마리로 옷을 만들어서 여자친구에게 선물했다는 기행은 내 간접 경험이지만 말이다. 그러나 어떻게든 연애를 시도하고 직접 만났다면 난 분명 차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난 여자 앞에서 뭔 말을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돈도 없었다. 항상 부족했다. 또 여드름도 났고, 인터넷에 보면 전쟁을 경험한 한 군인의 과거와 현재를 비교한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얼굴에 나 행복하지 않음이라고 써 있었다. 잘생겼냐 못생겼냐, 보다 여자들과 사람들에게 더 우선시되게 느껴지는 것 곧 인상이 좀 그랬다. 괴로운 젊음 그런 거. 남쪽에 사는 소녀는 내가 연락을 끊으면 안 되었고, 내 군대 친구를 편지로 소개시켜줘서도 안될 일이었고, 내가 만나러 갔어야 옳았다. 갈까 말까 망설였다. 고민도 했다. 그러나 나는 가난했고, 자신감이 부족했고, 그러다 연락이 끊겼다. 지구 반대편에 사는 소녀 역시 내 우중충한 사진을 보여준 게 화근이었다. 그건 괜찮다. 나 같아도 그랬을 것이다. 실제 나도 그렇게 살았다. 원래 사람 사는 일이 다 그렇다. 그리고 그땐 인터넷이 아예 없었으니까 그냥 재미로 해본 일이긴 하지만 말이다. 즉 당시 나는 원대한 포부는 물론 꿈도 없었고, 자주 바꼈고, 그냥 어른 흉내를 내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 후로도 어느 정도 응큼한 심미안을 갖추게 되기 전까지는 똑같았다. 그 때문에 어떤 기회를 많이, 허허허 아니 조금은 놓쳤을 것이다. 하하하 하나도 재미 없다. 웃기지도 않는다. 2번 교육을 시키고 받는다고 없는 특별함이 얼마나 커지고, 고유한 개성이 어느 만큼 뛰어나게 바뀌고, 있을까 말까 예측하기 어려운 창의성이 그 얼마나 드높아질까. 난 실상 그에 대한 의구심을 감추지 못하겠다. 그렇다고 언어학적으로 인문교양서에 적합한 언어를 사용하는 지역과 함축적인 운문보다 비교적 긴 산문과 유려한 문학에 어울리는 언어를 쓰는 지역, 둘 중에 어디가 몇 번 교육에 어울리는지 내가 거기까지 알만큼 역량도 안되고 주제도 안된다. 그러나 확실한 건 하나 있다. 그건 무엇이냐? 이거다. 나는 지금도 책을 한 권 읽고 나서 수필을 쓴다, 영화를 한 편 보고 나서 토론을 한다, 어느 전시회를 보고 나서 꽤 괜찮은 감상문도 아니고 간단한 방명록을 쓴다, 난 그런 거 못한다. 절대 못한다. 그림은 내 전공이 아니고, 낙서도 내 취미가 아니다. 노래도 분위기 때문이라면 모를까, 춤도 술 마시며 기분이 들떠서 저질 댄스를 흐느적거린다면 모를까, 별로 소질도 없고 즐기지도 않는다. 일단 거장한 글과 장황한 말은 자신 없고 하기도 싫다. 하물며 거창하지 않은 글과 뭔 말을 하는지도 종잡을 수 없는 역삼각형 글? 말 다 한 거나 마찬가지다. 그 뿐만이 아니라 무엇보다 나는 할 말이 많지 않다. 만약 그런 내가 불현듯 종알종알, 또박또박, 조곤조곤, 쑥덕쑥덕 말을 많이 한다면 그건 내가 말하는 게 아니다. 그분이 내 안으로 들어오신 것이던가, 아니면 내 안의 다른 내가 말하는 것일 테다. 그러면 나는 속절없이 SF 영화에나 나오는 숙주로써 날 온전히 내주는 것일 테고, 따라서 난 필경사가 되는 수 밖에 별다른 도리가 없을 것이다. 그런 내가 2번 교육을 받았더라면? 모르긴 해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 말은 곧 1번이냐 2번이냐의 차이보다 개인이 세상을 마주보며 인생을 대하는 자세와 실제 어떤 생각으로 살면서 차근차근 뚜벅뚜벅 삶에 임하는가, 그것이 더 중요한 기준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에 따라 내일은 별명왕에 생애 최고의 날 그 기록을 틈만 나면 갱신하는가가 좌지우지되는 것이지 단순히 1번 교육을 받았냐 2번 교육을 받았냐, 의 차이는 아닐 것이다. 물론 차이가 클 수도 있지만 그것은 주인공의 의지보다 적어도 부차적인 사안이다. 모든 일들을 어떻게든 냉소적으로만, 비판적으로만 볼려고 하면 인기는 멀어져간다. 그러나 어떻게든 방법을 찾고자 한다면 비록 행운의 구름을 탄다는 보장은 없을지라도 최소한 그 과정에 따른 의미는 찾는다. 그 차이다. 이론과 실제가 꼭 일치하지 않을 수 있듯이 학생 신분으로 배우고 전공한 학업과 업자 신분으로 활약하는 상업 역시 다를 수 밖에 없다. 자, 지금까지는 단순히 비교했으니까 이제는 약간 비약해볼까? 만약 허락하신다면. 오 땡큐! 성은이 만극하옵나이다. 과장해서 비유하자면 1번 교육은 차라리 상업에 가깝고, 2번 교육은 뭐랄까 살짝 동화적이다. 곧 2번이 고급스런 방법인 만큼 그 당초 목적을 달성하기가 더 어려울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런 생각이 모두 내 삐툴어진 인생 때문인가는 몰라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나중 그 생각이 변할지는 몰라도 지금 당장은 철회할 마음이 없고.
어차피 스무 살 때 결심한 꿈이 나중 얼마나 바뀌고 어떻게 변할지는 미리 알 수 없다. 스무 살은 사랑이 영원하다고 큰소리칠 수는 있지만, 당시의 사랑이 진짜 영원하게 되는 것에 대해서 우리의 유부남들은 하고 싶은 조언이 많을 것이다. 아아 절대 적지 않겠지, 오오 결코 적지 않아. 유부녀라고 침묵하고 싶을까? 흐흠. 하물며 스무살 이전의 교육 방식에 대해서 교육 방식이 잘못됐기 때문에 내 인생이 이렇게 됐다? 그걸 전적으로 교육 방식 탓으로 돌리기에 인생은 그리 길지도, 너그롭지도, 친절하지도 않을 것이다.
1번 교육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가장 쉬운 대응법은 1번 교육을 거부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공부를 안하면 할 일이 없으니까 책만 읽던가, 예체능에 심취하던가, 어른 흉내를 내면서 조숙해지던가 그런 방법이 있다. 1번 교육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공부 하기 싫으니까 딴일을 한다? 썩 세련된 반응은 아니지만 그런대로 생산적인 대응법이다. 그렇다고 과도하게 조숙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어차피 어른이 되면 반기거나 걱정하면서 또는 한눈팔면서 의무방어전을 치르면서 살게 되기 때문이다. 조숙해서 성공할 수도 있지만 섣부른 방황에 인생이 꼬이는 예도 있다. 근사한 개성과 고상한 창의성이 당장 발휘되기 어려울 것 같은 학생 뿐만 아니라 의외로 소수가 아닌 다수에게 어차피 1번이냐 2번이냐 그 차이는 정작 덜 중요하다. 공부를 못하는 것은 공부를 안하는 게 첫 번째 이유고, 일을 못하는 것의 주요 원인 역시 1번 교육의 장점이라는 효율과 효과에 반하는 일하기를 하기 때문이다. 곧 그건 결과적으로 일에 대해서 행복감과 성취감을 느끼지 못했다는 뜻이고, 왜 그런가 라는 원인을 따져봤을 때 동기 부여가 부족해서 열의가 부족했을 것이며, 뭐니 뭐니 해도 공부나 일은 놀이만큼 재미가 없기 때문에 뜨겁게 열정이 생기거나 시원하게 욕구가 샘솟기 어려운 것이다. 1번 교육은 지옥 2번 교육은 천국, 정말 그럴까? 요컨대 절대 그렇지 않다. 1-1 종교면 천국, 1-1 아니면 모두 줄을 잘못 서는 것이라고 하면 듣고 보기엔 썩 불편한 것처럼. 모든 과학적 잇점과 삶의 자유와 침해받기 싫은 사생활과 번역식 교리만 내게 유리한 쪽으로 취하고, 종교의 구시대적 과오와 세상의 불합리는 온통 외면한다? 채식주의도 그렇다. 소극적인 채식주의자냐, 채식주의자이면서 동시에 채식주의 예찬론자인가, 전자와 후자이면서 동시에 환경 운동과 뭐와 뭐를 다 해야 하니 자기 인생을 살기 힘든가, 그래도 그게 진짜 좋으면 그렇게 사는 게 정답임. 보너스도 있다. 밖에서는 채식주의 집에서는 육식주의. 선이란 게 그렇다.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인생도 똑같다. 괜히 2번이 좋아보이기 때문에 다양한 게 정상이에요 라고 하지만, 1번 교육의 목표는 다양한 게 비정상이라고 하지 않는다(않았다). 다양한 게 정상이에요? 이 양반이 지금... 농담이고, 다양한 게 정상이라는 것은 너도 알고 나도 알며 세상 사람이 다 아는 상식이다. 그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1번 교육 방식이 바라는 이상은 절대 그런 꽉 막힌 목표가 아니다. 이쯤 해서 사람의 얼굴로 비유해서 연역해보자. 그럼 이해가 더 재밌겠다. 1번 교육의 포지셔닝은 이거다. 사람의 얼굴은 사람마다 각자 다른 모습을 하고 있고, 눈은 2개가 맞지만, 눈이 이마 정중앙에 하나 더 달려서 눈의 개수가 총 3개인 것은 정상적이지 않다. 각종 분야와 학문과 인간사에서 가장 중요하고 제일 뛰어난 핵심을 간출여서 제시한다는 게 1번 교육 방식의 교육론이다. 이론적으로 꽤 괜찮다. 그러나 체계와 교육적 도움과 멋은 덜 괜찮을 수도 있음. 1번 교육에서 상위에 해당하는 사람과 2번 교육에서 상위에 해당되는 사람이 완벽하게 일치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정도가 일정 부분 비례하지 않을 것이라고 어느 누가 쉽게 장담하겠나. 동서고금 미적 기준은 달라도 미의 관점 그 근본을 이루는 시각과 피라미드의 모양은 그다지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1번이냐 2번이냐 그 차이보다 내 의지가, 코끼리 날개 때문에 휘둘리더라도 내 생각이, 화려한 마케팅 기법과 시대의 소음에 흔들리더라도 내 마음이 먼저다. 했던 말 또 하고 또 하는 것처럼 나는 썼던 글을 쓰고 또 썼다. 역시나 스무 살은 응애응애 애라고 했다. 어른들은 안다. 스무 살이 향기로운 아기 냄새가 나는 응애응애 똥싸배기라는 것을.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심정을. 쉽게 말해 사람은 10살까지는 놀고, 그 이후로 사람에 따라 평균 20살 초반까지 공부하고, 다시 반세기 동안 일한 다음, 인생의 후반기에는 다시 논다. 순환이 그렇다. 놀고, 공부하고, 일하고, 다시 논다는. 그 수식에 따르면 응애응애 스무 살 이전은 공부하는 시기다. 1번 교육 방식은 말 그대로 공부고, 2번 교육 방식은 표면적으로 봤을 때는 공부보다는 차라리 놀이에 가깝다. 그래서 2번이 멋져 보이기는 하지만 NDJM 10살까지 놀았는데, 참새 짹짹 오리 꽥꽥 20살까지 또 놀겠다고? 놀아도 된다. 놀자. 놀아보자. 놀자꾸나. 아무 걱정 없이 놀자. 안될 건 뭔가. 단, 집에 돈이 아주 많다면! 단, 다른 특출난 재능이 있거나 무엇를 하고 싶다는 확고한 욕구가 있다면! 그런데 자기가 뭘 하고 싶은지도 모르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역시 남의 일만 같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 데다 말수도 그만그만하며, 무엇보다 할 말도 별로 없는데, 그런데 응애응애 스무 살까지 내내 놀기만 하겠다고? 10살까지 놀았고, 20대 중반까지 공부했고, 그때부터 오래 일했던 어른이 하고 싶은 말 가운데 무작위로 딱 하나만 뽑아보자면 이와 같다. 자기가 노래 부르고, 춤을 추고, 이걸로 저걸로 세계 최고가 되고 싶다거나,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그저 평범하게 살고 싶은 특정한 목표가 없다면, 만약 그렇다면 말수가 어느 정도 되고 뭔가를 알고 말이 좀 통하고 인기가 많거나, 그러지 않는다면, 우선은, 우선은 젊음이라 칭하건 청춘이라 예찬하건 그 당시에는 입력이, 입력이 먼저라고! 수박 겉 핥기일지라도 그렇다고. 왜냐하면 그게 쌓이면 어쩌다 호박이 제발로 굴러올 것이고, 그러면 어쩔 수 없이 호박마차에 응~ 아니 타라는데 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며, 그처럼 살았던 삼류 인생은 희박한 확률로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자 그러면 1번은 이만 됐고, 2번 교육 방식의 단점은 무엇이 있을까를 알아보자. 당신이 만일 2번 교육 방식으로 교육 받고 공부하는 학생들을 평가한다고 가정해보자. 어머나 내가? 그래도 된다. 그렇게 됐다. 내게 만일 그와 같은 평가 권한이 있다면, 그렇다면 어떻게 할까? 1번 교육 대상에 대해 상위 부분이 정해지듯이 2번 교육의 수혜자 가운데 상위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이런 기준을 충족시키는 사람이 차지할 가능성이 크다. 바로 글발이 있고, 말발 좋고, 심지가 굳고, 표현에 음악성이 있고, 일단 뭔가 있어 보이고, 튀고 반짝이며, 포장을 잘하는 사람이. 진흙 속의 진주를 알아보기가 어디 쉽겠나! 꼬끼요 꼬꼬꼬꼬꼬, 백조 연기하시는 우리 영심이와 촌닭의 적극성을 높게 사지, 미운 오리 새끼의 희망 찬 미래를 알아보는 건 어쩌면 하늘의 별 따기와 같다. 무엇보다 이건 정말 2번 교육의 취약점이 아닐까 라는 대표적인 의문은 그것이다. 학생의 학업 능력을 2번 방식으로 평가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말수가 많은 친구에게 금상, (장)타율과 홈런과 선구안과 도루와 수비와는 별개로 적극적으로 타격에 많이 들어서는 친구는 은상, 말수가 없는 친구는 동상이나마 감지덕지가 아닌가, 그럼 정말 어떡하냐는 것이다. 골프를 보시라. 골프는 정신적인 스포츠라고 하지만 골프는 기본적으로 거리와의 싸움이다. 여러 조건이 대동소이하다면 장타자가 장땡일 수 밖에 없다. 여러 조건이 대동소이하지 않기 때문에 아마추어는 핸디캡 감안하고 친구끼리 내기를 하며, 여러 조건이 대동소이하기 때문에 프로의 세계는 냉정한 법이다. 레슬링처럼 체급이 없는 골프는 기본적으로 거리와의 싸움이다. 그러나 그건 스포츠고 이건 교육이다. 더군다나 그 꼬리표는 평생을 따라다니며 후세에까지 전해진다. 개인차가 클지라도 말발이나 말수는 대체로 천성과 나이와 비례한다. 그런데 인생의 전-전반기에 단순히 말수에 따라 나머지 기간이 상당히 좌지우지 된다면 허허허, 그것은 물론 지나친 비약이다. 허나 그런 우려는 오히려 값질 것이다. 뿐만 아니라 '토론합시다 감상평을 말해주세요 무엇을 논하라'의 대상이 모두 학생의 취향과 정반대에 위치하는 것으로만 선정된다는 점으로도 모자라 피교육자가 의욕이 낮고 말수까지 적다면? 그러면 참 뭐라 말하기 곤란하다. 절대 쉬운 문제가 아니다. 단순히 1번이냐 2번이냐 그게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탁월한 안목, 지적 감수성, 상상력-창의성-성장 가능성, 동조성과 소심한 성격과 진중한 말수, 고유성-특별함, 자존감 자존감, 일과 공부의 성취도와 '일과 공부를 즐길 수 있는가'의 상관관계가 큰가>와 <기교적인 글발 솔깃한 말발, 지식의 양, 뚜렷한 주관, 말수 또 말수, 구시대적 기준, 자존심 자존심, 일과 공부에 유능한 유형인가>. 2번 교육 방식이라고 해서 전자와 후자를 모두 챙겨서 평가할 수 있는가, 내가 만약 평가자라고 가정한다면 나는 솔직히 자신 없다. 왜냐하면 내가 만약 평가자라고 친다면 언제 전자를 낱낱이 다 따지고 있겠나, 한두 명도 아니고 후자 기준으로 평가하고 일을 마친 후 나도 쉬고 놀아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교육자는 노동자다. 성직자도 노동자다. 회사와 브랜드가 복지재단이 아니듯이. 교육자도 성직자도 돈에서 자유롭지 않다. 절대 그럴 수 없다.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고, 권리가 있으면 의무도 있다. 교육도 일이란 말이다. 교육은 신선놀음도 아니고 취미도 아니다. 사람도 선량하지만 동시에 고지식한 사람이 있듯이 분야 역시 고루한 분야가 있다. 교육 같은 경우는 대체로 덜 전위적이거나 덜 개방적인 분야다. 날 밝고 올라서라 나를 뛰어 넘으세요, 에 대한 통념조차 시대적으로 달랐다. 지구가 태양을 1년에 1번 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도 아주 먼 옛날이 아니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말라'라는 경구를 현대인은 더 이상 직역하지 않는다. 곧 밑에서 위로 뭔가 상납되는 관례는 권력 관계상 없을 수가 없다는 뒷북을 말하고자 하는 게 아니라, 그런 경향이 학과를 놓고 봤을 때 예술학과가 타-학과와 다른 그런 무언가가 있다는 얘기다. 왜냐하면 '스승과 제자'는 '학생과 선생'과 느낌이 약간 다르기 때문에. 그 말은 논점에서 약간 벗어난 얘기이긴 한데 1번 교육 방식과 2번 교육 방식의 발생 배경이 어떻게 다른가를 생각해보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입력이 먼저냐, 자기의 생각을 자유롭고 간명하게 말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게 먼저냐. 인문학적 교양에 대해서 전공자 중심의 전문 기술을 위주로 양성할 것인가, 기초 학습이자 개성의 표출 측면으로 볼 것이냐. 그 차이인 듯 하다. 그렇긴 하나 그대가 만약 평가자라고 하더라도 아마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일단 기교적인 글발이 돋보이고, 다양한 지식을 바탕으로 하여 서론-본론-결말이 확실하며, 예시를 들어서 주장을 뒷받침하고, 논리에 감성까지 챙긴 글에 더 높은 점수를 줄 것이란 점은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스승의 은혜 역시 찬양해야 마땅하나, 내 기억으로는 긍정적 측면의 선생님과 그냥 중간만 가는 선생님과 언짢은 기억보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 떠오르는 선생님이 있다. 그분의 사소한 말씀이 기억난다. 자기는 선생이라는 직업이 나와 맞지 않는다고. 왠지 모르게 지금 이 순간도 그 모습이 아주 생생하다. 눈에 선하다. 고1때 자퇴했던 우리 반 1번 친구에게 전화해서 안부를 물었고 고맙다 라고 들었고, 원해서 학교 밖으로 나왔는데 어떻더라 라는 얘기도 기억에 남는다. 하지만 당시 우리보다 2배 3배 4배 많은 삶을 살았던 선생의 인생, 선생님의 개인적 소견과 사적 의견이 뭔가 더 인상적이었다. 명대사는 찾기 힘들고, 꿈이 아마 변경되었을 평범한 봉급 생활자 도시인들이지만 말이다. 약간 짠한 분위기로 흐를 뻔 했지만 다시 분위기 띄우자.
게다가 살짝 과장하자면 말발은 흑심이고, 글발은 팝콘이다. 만선은 장비발이고, 여복은 천운이듯이. 기대를 져버리지 않고 빚어지는, 못 말리는 지식 자랑은 푼수의 재롱이자 허풍 대회 예선 탈락감이다. 어이쿠~ 땡! 어디 그것만? 니케는 상표고 아마존은 상업에다, 이 시대의 뮤즈니 뭐니 해도 대체로 새로움보다는 전형성에 다름 아니다. 심지어 2번 교육 방식도 온전히 모든 것을 2번 방식으로 가르치지도 않을 것이다. 분야도 다양하고, 시대별 유행도 다르고, 훌륭함의 기준 역시 변한다. 그와 더불어 1번 교육 체계에서도 이미 2번 방식에 대해서 전문적으로 가르친다. 책을 읽고 토론하고, 영화를 보고 논하며, 그림에 대해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는 궁극의 학습? 궁극은 무슨. 뭘 읽고 보고 감상하는 선을 넘어서서 이미 1번쪽에서도 작곡을 하고, 조각을 하며, 연극을 연출하고, 영화를 만드는 학업을 주로 하는 10대 친구들이 모여서 특별한 학교에 다닌다. 옛날부터. 교복을 벗으면 학문과 멀어지고, 지엄한 주례사와 함께 사랑을 맹세하나 그 사랑이 얼마나 지켜지는가. 히포크라테스 선서? 정작 병원을 움직이는 건 피터 드러커의 프로페셔날의 조건이랄지 크레스텐슨 박사의 파괴적 혁신 이론에 따른 경제 원리다. 아니 정말 궁금하지 않으신가? 2번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모여서 다 함께 만드는 아름다운 세상인데 왜 그런 세상은 천국이 아니란 말인가? 그렇다고 그처럼 꼭 거창한 궁금증을 떠올리지 않아도 된다. 가까이를 보면 되니까. 내 주변의 무엇을? 2번 교육을 받은 내 주변의 어른들이 얼마나 행복하게 사시는지를. 가까이에 없으면 TV와 인터넷을 보면 된다. 사랑과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거나, 가족 장르 영화나 애들이 열광하는 판타지 영화를 보면 왜 우리 아빠는 코를 드르렁드르렁 골면서 주무시는지를.
작가여, 당신 작품에서 이 부분이 너무 훌륭하기 때문에 전체를 인용할 수는 없지만, 요 부분만은 꼭 우리 다 함께 알았으면 싶다오. 그랬는데 작가왈, 난 싫소 저는 보물찾기는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라오? 하나의 보기가 주어졌을 때 대번에 핵심을 파악하고, 장단점은 물론 대충이나마 놀랍도록 이해가 쏙쏙 되고 흥미로운 한편의 논설에 대한 개요가 즉각 머리 속에 삐리리리, 삐리리리 그려진다면 그건 둘 중 하나다. 첫째, 영악한 악마적 재능. 둘째, 전문가의 요건. 예술품이 시작부터 끝까지 통채일 때 의미를 갖는다나 뭐라나, 그런 논리도 존중받아야 하고 의의가 있다. 그러나 처음부터 끝까지 어느 층위에 도달한 작품이 좀처럼 흔하냔 말이다. 그걸 알아보는 안목은 왜 높여주지 않는 거고. 무엇보다 사실을 사실이라고, 촌닭 보고 촌닭이라고, 촌년 보고 촌년이라고 하면 대체 왜 표정 관리가 안되는 건데!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한평생 광고하며 홍보하고 다닌다. 나 촌닭이라고. 그건 더 이상 부끄러운 일도 아니고 창피한 일 역시 아니다. 본능인데 뭐 어쩌라고, 그처럼 절규하는 듯 하니까.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고상한 가정 교육을 받고 자라, 사립 유치원과 명문 학교를 나왔는데, 왜 그렇게나 촌스럽냐고! 아주 그냥 꽉 막혔어! 멋진 백조 옷차림이길래 딱 뒤집어봤더니 어머나 글쎄 촌년왕이라니. 그런데 그분들이 귀는 막혔는데 비해 말은 또 좀 많나. 그래서 다수의 순진한 사람들은 그저 웃는다. 믿으니까, 속으니까, 그들 노는 게 귀여우니까, 웃기니까, 한편으로는 예뻐서 다른 한편으로는 학예회 같으니까. 귀에서 피가 나도록 말이 많은 세상이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어린 친구들이 보봐리 부인을 읽는 게 아니라 푹 빠져서 감상할 수 있는가, 그분들 중에 전쟁과 평화 1-2-3편까지 찬찬히 읽고 촘촘히 감흥한 친구들이 대체 몇 명이냐는 말이다. 그분들은 능히 그럴 수 있다? 글쎄요... 깔보는 게 아니라 둘 중 하나라는 말이다. 옷이 복고풍이거나 신발이 크거나. 어차피 적지 않은 사람들이 40살 50살 되어서 또는 학교만 졸업하면 만화책과도 담을 쌓고 살게 될 텐데 40살 50살 어른이 난 하루에 하나만, 1달에 1권, 1년 목표는 뭐라는 듯이 정하는 그런 대상에 걸맞는 작품의 감상문을 당장 서술하라? 그건 한마디로 모순이다. 딜레마를 안고서 그래도 현존하는 가장 최선의 방법이라는 말이지 그게 만고의 진리는 아니라는 뜻이다. 그렇게나 2번식으로 작품을 감상하고 내 감흥을 말하고 타인의 의견을 존중하는데, 그렇게 해서 나중에 롤리타 정도 작품을 쓰는 사람들은 왜 찾아보기 힘든데? 도대체 왜 지금 이 세상에는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가 나오지 않는 거냐고? 왜냐고요? 왜냐하면 나올 수 없으니까요! 뿐더러 푸르른 17세가 시간은 많냐, 아니다. 청초한 16세가 책만 읽고 영화만 보고 고리타분하게 옛날 그림이나 보면서 천편일률적으로 평가자 마음에 드는 주관식-논술식 답안을 제출하라구요? 그 친구들, 그분들 목에 턱 하고 걸린 말이 뭔지 대체 그것이 무엇인지 우리 어른들은 모두 잘 아시지 않는가! 그건 혹시, 지금 장난해? 난 그처럼 쉬쉬하는 비밀들일랑 알고 싶지 않다. 집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식 현시대의 드라마를 보고, 밖에 나와 친구와 지극히 사적인 얘기를 하거나 단짝과 놀러가는 게 아니라 독서감상회와 영화토론회에 들라는 말인가? 취미가 뭐냐며 가만 있는 사람 붙잡고 다짜고짜 물어볼 수도, 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걸 하고 싶다며 그림일기를 작성하지도 못하고, 이러쿵저러쿵 어찌어찌해서 어떻게 됐다면서 애청자 엽서를 쓸 수도 없는 일이다. 누구나 소셜 네트워크를 하지만 남 일에 큰 관심 없다. 언뜻 따라하는 것도 있을 테지만 타인의 삶은 대부분 내게는 '하거나 말거나'다. 학생이 교과목을 배우며 연예계에 대해 얘기할 때 어른들은 빈말과 거짓말과 허풍과 허영으로 삶의 권태와 타성과 끝없는 새로움에 대한 목마름을 달랜다. 다른 게 아니라 그게 바로 인생이다. 아빠, 판도라의 상자는 누가 처음으로 열었어요? 응 그건 엄마한테 여쭤보렴! 왜냐하면 엄마는 천재니까. 졸업했으면 낮에는 우유를 마시고 밤에는 당당히 칵테일을 마셔도 된다. 교복을 벗기 전에도 도서관의 먼지만 털 수도 없을 테고 말이다. 비트겐슈타인 경구 인용? 아아, 또 그 얘기! 되묻고 싶다. 그대는 또 읽고 싶나요 라고.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일 때 의미를 갖는다? 그럼 삼류라는 말이 왜 있겠나. 광대와 마법사와 아티스트, 그 모두가 하나의 범주란 말 아닌가. 에로 비디오도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온전히 극장에서 감상한 다음에 평가하지 않으면 안되는 거구나. 포르노까지! 게다가 각자 정의 내리는 장르도 다르고. 예술이라고 스티커만 붙이면 다 끝나는 문제다. 찍찍 겉에 매직펜으로 쓰기만 하면 만사형통. 예술이라는 옷만 입으면 무조건 시작부터 끝까지 봐야 하는 거네. 그럼 예술도 수학이자 사랑의 방정식이라고? 그건 아니다. 그건 아님. 왜냐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봐야 뭐라고 말할 수 있다>는 수식이나 과학 이론이 아니라 일종의 견해이기 때문이다. 바꾸어 말하면 예술은 다양성이란 뜻. 그런 개인적 의견이 구조화되어 표출된 일련의 과정을 모두 알 수는 없지만, 한마디로 예술은 예술일 뿐이다. 그러므로 너도 알고 나도 아는 것처럼 다양한 게 정상이듯이 나에게 예술은 타인에게 예술이지 않을 수도 있고, 그래서 하나의 예술이 예술이냐 아니냐 그것은 상투적이니 지금 논할 필요가 없고, 따라서 <어떤 작품에 대해 처음부터 끝까지 봐야 뭐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지 않아도 된다>의 답은 명쾌히 후자라는 것이다. 고로 그것은 A─B─C 세 가지 경우로 나뉜다. 먼저 A. A <처음부터 끝까지 봐야 뭐라고 말할 수 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 생각에 따라 하고 싶은 데로 하면 된다. 즉 처음부터 끝까지 보고─듣고─경험하고─확실히 아는 일이 아닌 것에 대해서는 통쾌하게 함구해야 한다. 가령 지금까지 10,000권을 읽었고 1000편을 봤다? 딱 그 1000편과 10,000권 작품에 대해서만 말해야 합당하다. 딱 거기까지만! 나머지를 말하는 것은 부당하다. 나머지를 말하는 것은 부정이고, 만약 나머지를 말하고 싶어진다면 앞서 주장이 틀렸음을 인정하는 것으로서 변덕과 변심과 변절에서 하나를 골라야 한다. A는 딱 거기까지니까. 실정법으로 치면 이를 불법이라하고, 불문법에서는 불명예라고 하며, 풍습에서는 닭 잡아먹고 오리발 내어 놓는다 라고 한다. 불륜 같은 거. 언제는 사랑을 속삭여놓고는 말이지. 또 다른 새로움을 탐하는 거다. 저 아름다운 꽃밭에서 이렇게 좋은날에... 그거라고. A가 시인을 격하게 거부하면 푼수고, 순순히 패전을 받아들여도 바보다. 웃는 건 불쾌하단 뜻이고, 찡그려도 짜증난다는 거다. 아무런 말없이 아무 표정이 없다는 건 불만족이자 그래도 내가 최고라는 거다. 그게 A다. A의 요지는 <처음부터 끝까지 봐야 뭐라고 말할 수 있다>다. 정말 그러라고? '처음부터 끝까지'일 때만 의미 있으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감상하지 않았으면 말하지 말라고? 잘 모르면 의사 표현을 일절 하지 말라는 거다. A는 제목도 말하지 말라는 거잖아? TV드라마, 코메딩 방송, 유행가, 연애도 최소 1년, 우정도 단짝만, 명문대를 졸업하지 않았으면 명문대를 아는 척 해서도 안되고, 어디서 20년 살고 온 사람은 조용하신데 3박 4일 갔다와서 친구에게 열변을 토하는 사람처럼 어설픈 직접 경험에 대해서도 조심해야 할 것이고, 페라리를 보기만 한 사람과 운전대만 잡아본 사람도 괜한 허세는 자제해야 한다. A는 뭐 거의 수도승으로 살란 말이군. 너무 심했나? 그러니까 왜 처음부터 끝가지 통째일 때 오직 그것만 의미가 있다고 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그리고 B. B는, <처음부터 끝까지 봐야 뭐라고 말할 수 있다>에 반대하는 사람. B는 문제의 이해와 측정과 가능성과 변수에 대한 시야를 좁히지 않았기 때문에 모르면 모른다고 말하는 사람에 해당한다. B는 아는 것은 안다고 말한다. B는 알고 싶은 것은 알고 싶다고 한다. B는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 라고 말하는 거다. B는 내가 틀렸으면 내가 틀렸고 당신이 맞다고 한다. 친구에게 명분이 있고 허세가 컸다면, B는 내 허영을 후퇴시켜서 실리를 챙길 수 있다. B는 숨기지 않고 말한다. 늬가 나보다 많이 안다고. 나보다 늬가 말발이 더 좋다고. 나는 빵 마리다, 머머계를 떠날란다고. 내가 촌닭할께 너 백조해라 라고. B는 감추지 않는다. 그게 B다. B는 자세히 알아보고 난 다음에 말하겠다는 거다. B는 다수의 관람객과 독자와 작가의 마음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감상하지 않았으면 일절 침묵하라구요? 난 그렇게 못하겠소, B의 요점은 그거다. 다음으로 C. C는 잘 모르겠다임. 여기까지. 이 A를 강조하신 분, 내기에 임해야 마땅하다. 비겁하게 복권 한장 값만 걸면 실망이고. 딱 걸렸어! 어쩌다가. A, B, C에서 베니스의 상인 등장 인물에 누가 누구에 적합할지 그건 각자 생각하는 걸로.
반세기를 살아보니까 적지 않은 대중예술은 매체를 영화나 드라마로 바꾸지 않으면 안 봐진다. 도저히 시간이 부족해서 못 보겠다. (달리 말하자면 안팔린다, 이젠 쿤데라도 잘 읽히지 않는다, 심하게는 고역, 사석에서 마초는...... 아아 그만 그만) 나 초딩4, 사촌형 초딩5, 누나 고3일때 누나가 그랬다. 헤밍웨이 문고판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으라고. 난 찌푸렸다. 뒤부터 보지 말라고? 나는 싫었다. 사촌형처럼 책을 읽으라고? 나는 싫었다. 그건 감상도 아니고 좋아서도 아니라, 그저 할 일 없어서 하는 일이니까. 내가 집안의 막내이자 귀염둥이인데 하루 아침에 난 미운 오리 새끼가 되어버렸으니까. 어려서 읽었던 동화의 교훈을 외면할 수도 없었다. 그 어린 나이에 설마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에 해당되는 급을 생각했을까? 퍽이나! 제발 참아주시라. 그러나 나는 줄거리 먼저 보고, 혹시 있다면 작가의 말을 알고 싶었다. 그것이 글쓴이의 겸손한 자랑이든 예상되는 비판에 대한 변─변명─변호론이든. 주로 어른들 말이 그러니까 누나도 따라했을 것이다. 줄거리 먼저 보다 <처음부터 끝까지>라고. 전형적인 어른들 말씀의 재생. 물론 그건 좋다. 입바른 이론. 교육이 타 분야보다 덜 급진적인 것은 반드시 그래야 한다는 확고하고 타당한 이유가 있기 때문인 것처럼. 그러나 장점이 하나 있으면 단점도 하나 있다. 일장일단. 습관이 먼저고 모범을 알고 교양을 쌓고 상식에 대한 균형 잡힌 주관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일정한 분량을 확보해야 한다는 의도, 옳소이다. 동의한다. 그러나 조용조용한 분위기에 익숙하고, 고상한 가정교육을 받고, 집에 고전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아빠는 조류 대백과를 쓰고, 엄마는 오 헨리를 읽으며, 거실에는 마티스가 걸려 있다면 모를까, 아동기부터 청춘까지는 학문의 설득보다 상업의 환각에 매혹당하기 쉽다. 곧 좋게 말했을 때 매료. 어린이님이 동요와 유행가 중에 무엇을 들을까? (딱)! 교과서야 어쩔 수 없이 때가 타는 거고, 인기는 연예인과 만화책이 증명한다. 힙합을 듣지 말라는 게 아니다. <처음부터 끝까지>의 단점은 없을 수 없다는 뜻이다. '독버섯처럼 겉은 화려한데 속은 쓰레기'를 현대에는 더 이상 예술이냐 아니냐 라고 하지 않는다. 예술이란 말은 참 애매하게 변해버렸으니까. 미래까지 예상하지는 말자. 과거에야 금서니 뭐니 라며 주홍글씨였다면 지금은 자율이다. 인공지능도 절반은 현실이요 절반은 (깐죽깐죽) 대기중이다. 이미 오래 전부터 작품은 모두 예술이다. 어쩜 부러우면 진다고 생각하니까 딴따라란 말이 생겼을 수도 있고, 사극에서나 광대였지 지금은 만인에게 추앙받고 자존심을 굽힐 수 없는 예술가다. 작품만 내면 누구나 예술가고, 일단 유명하면 싹 다 예술가다. 반칙왕, 험담가, 호사가, 돌아이, 푼수, 에로영화 감독, 모두 예술가다. 일명 아티스트! 그러나 유명인이 예술가로 수렴됐다고 끝이 아니다. 왜냐하면 아티스트는 그때부터 연예인으로써 살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지 않는 사람은 100만명 당 1명뿐이다. 한번 유명해지면 절대 무명으로 돌아갈 수 없고, 한번 인기를 알고 나면 제발로 내려오는 사람은 아마 한명도 없을 것이다. 낙타가 바늘 구멍을 어쩐다? 부자의 선행에 관한 권고라는 그 유명한 말의 직역은 바로 이에 해당하고, 의역은 아름다운 인생을 사시오다. 왜냐하면 제발로 내려오지 않아야 맞는 것이기 때문이고, 왜냐하면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방법이라며 가짜 코끼라를 넣거나 진짜 코끼리를 넣을 수 있는 모형 냉장고를 짓거나, 그건 넌센스다. 불가능이자 농담에 초현실이고 전설일 뿐이다. 춤추는 요술 구두를 신었는데 난 춤을 추지 않겠다? 한참 잘나가는데 돈 싫어 명예 싫고 인기도 싫어 존경도 싫어, 그냥 멀리서 조용히 혼자 좋아하겠다는데 타인의 그런 소소한 권리마저 싫다고? 글쎄요! 한마디로 그건 죽는 소리다. 투정과 응석은 꼬마들만 부리는 게 절대 아니다. 오히려 어른들이 더한다. 호들갑과 눈치로 치면 애들은 실은 어른의 상대가 될 수 없다. 어린 동심이 조롱과 흑심과 수법에 대해서 어떻게 어른의 농익은 숙련미를 능가할 수 있으리오. 새로운 꿈이 생겼거나 회의도 들고 편하게 살고 싶어졌거나 영감이 예전 같지 않거나, 그래 시대가 변했거나 그 때문에 내려올 수는 있어도 제발로 클라우드 나인에서 내려가고 싶다? 그건 평범한 회사원의 '나는 유명해지고 싶은 마음 없어' 라는 말과 똑같다. 역사책에 나오는 고대 그리스의 폭군과 시대상의 독재자와 부정적 의미의 독선적 성향 1인자, 제2의 인생을 살며 전혀 다른 삶을 산다거나 덤비는 상대 선수의 달려드는 모습에 괜히 귀찮아서 퍽을 그냥 줘버려 라는 생각이 언뜻 들기 시작하는 아이스하키 선수의 시점이 아니라면 영원한 현역으로서 최소 근성이랄지 뭔가 하나로는 팬에게 작은 인상이라도 선사할 것. 전자와 후자는 악명과 성실한 인생이라는 큰 차이가 있다. 하지만 1-2차 세계대전과 내전 즉 안이냐 밖이냐 라는 작은 비유의 고찰도 안겨준다. 최소한, 제발로 내려오지 않는다 제발로 내려가고 싶지 않기 때문에 그럴 수 없다는 점은 큰 차이가 없다. 드물게 뒷모습이 아름다운 유례가 남기도 하지만 앞모습이 영원하다고 꼭 불미스럽지는 않고, 무엇보다 내 길을 가는 것은 비정상이 아니다. 사랑을 예찬하고 행복을 동경하지만 인기와 돈과 호사와 풍요와 명성에 대한 예우는 사랑과 행복보다 적어도 천시받지는 않겠지만 살짝 뭔가를 장담하기에는 멈칫할 수 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차라리 사랑과 행복은 빛 좋은 개살구일 수도 있을 것이다. 딱 여기서부터는 글이 아니라 말로, 유명인은 연예계 일반인은 사교계 그런 열린 장소가 아니라 정말 친한 사람을 만나는 사석에서 논할 일. 우리 남자들은 바로 그래서 친구와 사랑을 얘기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모순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인생의 전반기에는 꿈이 없거나 꿈이 자꾸 변한고, 중반기에는 현실과 타협하며 복권 구입이 취미가 되고, 뒤늦게 후반기에 이상을 외치며 모험을 떠나는 돈키호테가 될 수 있는가, 그것이 인생이라면 그 어딘가에서 딜레마가 생긴다는 것이다. 인생 전반기에는 꿈이 없었고, 어른이 되서 꿈이 생겼는데 나는 나인데, 내 인생은 내 것인데, 나는 내가 아니니까 제약이 따른다는 거다. 책임이 생기고 어깨가 무거워진다는 점. 가정이 생기고 내 이름이라는 브랜드가 있는데 평탄한 삶을 새로운 꿈의 여정으로 물들게 하기는 쉽지 않다. 풍운아나 자유인이 아닌 이상 일정한 제약은 발생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행복한 비명을 지르며 돈과 인기가 골든 리트리버처럼 귀엽게 날 따르는데, 귀찮으니까 좀 따라오지 말라고 극구 사양하는데도 난 가만 있지만 지들이 따라오는데, 그래서 제발로 내려오고 싶다? 그건 말만 챔피언이다. 물 들어올 때 노를 젖지 않겠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 빈 수레가 요란한 법이니까 그건 모두 새빨간 거짓말이다. 허나 발생할지도 모르는 거짓말을 농담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진담으로 받아들일 것인가는 개인의 자유다. 구름 위를 걷는 듯한 유명세라는 환희,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절대로 모른다. 알 수가 없다. 친구의 허세만 간지럽혀도 그런다. 내 아내... 이쁘냐, 난 별론데 라고. 립 서비스인지 진담인지 구분 못한다. 당장 헷갈린다. 딸랑딸랑! 예술가는 연예인이 되고, 다시 그분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가 되는 것, 정해진 수순이다. 말을 듣고 글을 읽어보면 한명은 셰익스피어고 한명은 나보코프다. 브랜드 포지셔닝이 처음의 예술가가 견지한 초심이냐 연예인으로 변한 임금님이냐, 에 따라서 그 흔한 예술의 그래프는 45도일 것인가 삐툴빼툴일 것인가가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지금이야 편견이 어떻고 상식과 교양을 따지지만 주홍글씨, 당시에는 어쩌면 당연지사였을 것이다. 진보라는 게 그렇다. 그러나 진보가 있으면 퇴보도 있다. 문명의 혜택은 저질의 총량과 정확히 비례한다. 완벽하도록! 그런데 비평가와 출판업자가 사석에서 만나 토로한다. 처음에는 우려나 걱정 같다. 저속한 표현으로 개나 소나 D.H. 로렌스인 줄 안다며. 작가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코카인이니 맥심이니 뭐니 막 그러면서 어디 글을 말처럼 쓴다고. 그러나 초반에 올바른 기본을 살포시 깔아놨으니 레드카펫 위에 누군가 쓱 나타나야 한다. 옹호론이 슬며시 고개를 들 차례겠지. 쥐꼬리 만한 봉급 때문에 우리는 장단을 맞추는 것 뿐이라고. 누가 지들이 이뻐서 그러겠냐고. 그게 학예회인지 세계3대 영화제 시상식인지 통 분간이 안된다면서. 세계3대 후라이팬으로 콱 그냥, 그러면서 자기가 말하고 자기가 웃고 자기가 박수친다. 책임을 피해가고 면피를 넘어 경제 생태계에 대한 뒷맛을 남긴다. 열린 결말이나 다른 작품과 통하는 힌트를 결말에 남겨놓는 것과 똑같다. 실재 작품에서 그런 게 없었다고 할지라도 억지도 만들면 그만이다. 그건 일도 아니다. 딸랑딸랑 간질간질, 한쪽을 진공청소기로 한쪽은 커피포트로? 그건 일도 아니다. 꼴불견이네 가관이네? 돈만 벌고 인기만 챙기면 끝나는 거다. (말이 그렇다는 거지, 진짜 그렇다 그래라 라는 게 아님) 이 세상이 그렇다. 너 그럴려고 프로그래머 됐냐? 뭐 어쩌라고, 내가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너 설마 자랑할려고 소설을 쓰냐? 죄송합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네유, 차마 고개를 들지 못 허겄시유! 아기 돼지가 어찌 귀엽지 않으리. 우직한 소를 어디서는 신성시한다. 고양이나 강아지는 귀찮고 어떡하다 병아리 형제를 맡게 됐어, 어머나 글쎄 후라이드와 양념이라고 부르네? 작명가로써의 애들 소질을 꽤 어정쩡다고 야단쳐야 할까 칭찬해야 할까. 그 어떤 탐스러운 아가씨의 상냥한 여심도 남의 집 귀한 딸이자 장래의 그 찡한 단어 엄마다. 도도한 엄마도 있고, 응큼한 엄마는... 상상하지 말자. 합리성의 건너편에는 고결함이 있다. 고품격이 왜 싫겠나. 처음부터 숫자로 갔을 뿐. 길은 하나로 정해져 있으니까. 인생 직진인데 살면서 사랑에 대해 담소를 나눠본 적은 한번도 없는데 나보고 어떡하라고. 어딘가에서 내놓으라 하는 대표적 난봉꾼인 내 친구1도 결국 딸을 낳아 한 딸아이의 아빠가 됐다. 또 다른 친구2는 그런다. 내가 봤을 때 재수씨는 바보라고 바보 같다고. 그보다 앞선 나의 단짝은 하소연했다. 어떻게 한번 해볼려고 했는데 도저히 못하겠더라고. 엄마가 딸아이 손을 잡고 나왔으니까. 딸아이는 그 기억을 평생 간직한다. 나중 엄마처럼 살지 엄마랑 닮았다는 말을 싫어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천하의 익살꾼이신 친구1께서 모든 숙녀를 남의 집 귀한 따님으로 보실까? 제 버릇 개 줄까. 세 살 적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 여든이 뭐야, 손가락 까딱 숟가락 까딱 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철들면 안되는 것. (우리는) 부러우면 지는 것. 그럴 수 밖에 없는 것. 여기서는 사랑의 송가 저기서는 사랑은 없어. 그렇다고 그분께서 가만 있을 위인이 아니다. 뛰는 촌닭 위에는 나는 촌년이 있으니까. 드라마에서 마샤가 말한다. 뭐, 껄~떡? 너도 예술가 나도 예술가, 그 위에 연예인, 다시 개그맨은 자연스럽게 자칭 아티스트 즉 순수예술의 대가이자 마에스트로! 하하하하하 음하하하하 으하하하하하하! 그러나 단꿈은 결국 의무방어전으로 귀결된다. 밖에서는 으쌰으샤 안에서는 비실비실. 대개는 말만 챔피언이니까. 적재적소에 쓰일 때 최고의 효과를 발휘하는 허세와 허영과 허풍, 어른들에게는 일도 아니다. 그분들은 심지어 동화도 쓰고 동시도 짓고 동요도 작곡한다. 대체로 고전음악을 전공하고 대중음악으로 넘어오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젊었을 때 헤비메탈 그룹의 드러머가 훗날 신학대학생이 되는 사례도 있듯이, 정력적으로 활동하는 동화작가가 성인용 예술품을 내놓기도 한다. 온갖 전문가와 권위자와 선량한 업자와 상도덕의 틀을 바꾸는 신흥 세력과 침묵하는 원로들과 변덕이 심한 독자들이 득실거리는며, 변화가 심하고 복안과 비책이 난무하는 기성 베스트셀러업계에 겁없이 말이다. 스승의 은혜, 고고한 학문, 인간의 존엄성보다 심판이 손을 들어주는 쪽은 결국 경제 논리임을 잘 알기에. 심사위원도 관중도 협회도 동물농장도 모두 그 위에는 그분이 계시다는 상업성에 경종을 울리지는 못할지라도 너 나 없이 숟가락은 올라오고 또 올라온다. 잔치상은 이미 차려졌으니까 메달 색깔은 중요하지 않다는 거다. 그처럼 역시나 대중예술가가 뒤늦게 동화를 쓰고, 동시를 짓고, 인기와 돈과 여심을 공략하지 않은 채 동심을 되찾고 싶어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 역시 즐거움이고 기쁨이자 도전이니까. 바로 그게 인생이니까. 그 모두가 어른들께는 일도 아니다. 업계 생리와 업자의 형편에 관한 대화, 어른이니까 가능한 거다. 그렇다고 청소년은 불가능하다는 게 아니고. 원하는 곳은 어디든 갈 수 있고, 하고 싶은 일도 안되는 것 빼고는 다 할 수 있는 세상이다. 그렇게 따지자면 지금은 좋은 시대다. 예술의 지평은 우주 만큼 넓혀졌다. 그렇게 따지자면 지금은 달콤한 천국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뛰어나고 훌륭하지 않아도 돈과 인기만 챙기면 끝난다. 실제 그렇다. 바야흐로 지금만큼 인류에게 껍떼기가 중요했던 시절은 없었다. 그럴 것이다. 누구나 예술가이자 누구나 연예인이다. 그렇게 따지자면 지금은 좋은 시대다. 현대에 사는 평범한 일반인은 중세의 왕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월등한 풍요를 누린다. 옛날 분이 꿈에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그래서 지금은 좋은 세상이다. 그런데 과연 정말 그럴까? 답변은 각자 속으로만 하자. 그래도 그 흔한 예술가는 물론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은 아름답다고 하시니까, 그 모두를 살펴보니 지금은 좋은 시대가 맞는 것 같다. 아이쿠 예술가가 한 말씀 하신다. 그런데 대체 뭔 말씀을 하고자 하시는지 통 모르겠다. 가수는 원래 노래를 외워서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아니다. 그건 까마득한 옛날 얘기니까. 지금은 자막 보고 노래를 한다. 왜냐하면 누구나 예술가니까. 하나를 깊이 알고, 하나에 심취하며, 하나의 사랑에 깊이 빠지기 힘드니까. 그래도 지금은 좋은 세상이다. 반짝 신인으로 혜성처럼 스타가 되기만 한다면 더 이상 일반인이 아니니까. 사람의 마음을 꼬실 수만 있다면 희대의 사기꾼이든 만담가든 명상가든 선지자든 술꾼이든 아무런 상관 없다. 뜨기만 하면 그만이니까. 예술의 이상, 예술을 하는 목적, 예술을 즐기는 관점은 애완견께서조차 듣기 싫어하신다. 유명해지기만 하면 되는 거지 일견 시시하다는 평이 도대체 뭔 상관이란 말인가. 아 됐고, 뜨면 끝이다! 무명에서 유명인─예술가─연예인─다시 아티스트! 때문에 지금은 좋은 세상이다. 따라서 지금은 이미 천국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예술다운 예술이 아니어도 괜찮고, <처음부터 끝까지>에 얽매이지 않아도 괜찮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금은 좋은 세상이다. 그런데 그게 진짜 그러더냔 말이다. 신화에서는 세이렌의 음률을 듣지 않기 위해 솜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돌아보면 돌이 되니까. 그러나 현실은 오히려 그 반대다. 모두 핸드폰만 보고 있고, 오락산업과 상업의 합리주의가 이 세상을 좌지우지한다. 설교조의 작품이 나오면 뭐하나, 바로 묻힌다. 나온지도 모르고 관심도 없다. 판도라의 상자에서 우르르 탈출한 그것들을 단 하루라도 보지 않으면 이제 사람들은 참지 못한다. 못 봐서 견디기 힘들면 뚜껑이 열린다. 목말라 한다. 아무튼 지금은 좋은 세상이니 짜증나는 일이 있으면 숫자를 세자. 하나, 둘, 셋! 잠이 오지 않으면 양들을 상상하며 숫자를 세듯이. 하나, 둘, 셋! 지금은 좋은 세상이니까.
그런데 <처음부터 끝까지>의 단점이 나왔나, 안 나왔나? 단언컨대 <처음부터 끝까지>의 단점은 아동기부터 청춘까지는 전자로 시간을 때우기 쉽다는 것이다. 아! 전자는 겉만 에르메스이자 페라리, 후자는 진흙 속의 진주. 응애응애 참새 짹짹 오리 꽥꽥. 나 잘난 맛에 사는 인생, 동창회 증후군만 조심하면 된다. 늬 남편 뭐하니? 절교가 뭐 어려운 일이라고. 안 그런가? 고양이나 개나 양이나 나비나 다 자기는 백조라 하며, 백조-하자가 싸구려 농담이 되는 이승 아니던가. 옛날식으로 검열 같은 단어, 1이든 2든 과거든 미래든 방식만 다를 뿐이지 그런 성격의 행위는 없을 수가 없다. 스무 살 너머서부터는 그 모든 일은 온전히 자신이 100퍼센트 감당해야 한다. 어항 밖의 거친 세계를 겪어 보면 목장에서의 평화롭고 즐거웠던 시절이 생각날 것이다. 그 중간의 완충 지대가 없을 수도 혹독할 수도 있고, 셋 다 조증으로 허언증으로 일관할 수도 있는 그 미지의 삶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자유다. 책을 읽다 말고, 영화를 볼까 말까, 괜히 본 어떤 장면, 우연히 듣게 된 무슨 얘기. 그때부터 불행이 시작될지 이제부터 삶이 점점 더 재미있어질지, 그건 알 수 없다. 우연을 불운으로 때로는 성공으로 연결시키는 자질은 많은 부분 공통점이 있을 테지만 남자와 여자는 많이 다르다. 그 둘이 만난다. 처음에는 맞춰준다. 사려 깊게. 다정하게. 그리고 포근히. 단란한 가정에서 자라서 행복한 추억을 많이 간직한 그녀는 자상한 아빠 같은 남자와 나중 결혼할 꺼라고 그랬을 테니까. 엄마 아빠 싸우는 모습을 흔히 본 건 커피포트였고, 키우던 앵무새가 1인 2역으로 그 다툼을 따라했던 모습은 그나마 진공청소기였던 나와 다른 그녀일 테니까. 그런데 만나 보니 시간이 갈수록 부딛히고 다투기도 하지만, 다시 봐도 그녀는 항상 사랑스럽다. 왜냐하면 실제 그녀는 사랑스럽고 난 행운아여야 하니까. 그처럼 취향과 습관과 여러 성향은 애인끼리 서로 다른데 오직 <처음부터 끝까지>일 때만 의미가 있으니, 그녀라는 하나의 우주를 이해하고 알며 사랑하기 위해서 그녀에게 내내 모든 것을 다 맞춰주라고? 언제까지나? 바로 그러니까 잡은 물고기에게는 밥을 주지 않는다는 말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난 잡은 물고기에게 밥을 줄 꺼다. 그렇다고 여자가 잡은 물고기란 말도 아니고. 여자는 원래 그런 남자를 좋아함. 왜냐하면 그녀는 천동설이니까. 왜냐하면 여자는 숙녀니까. 왜냐하면 남자는 여자를 아껴야 하니까. 여자는 원래 그런 남자를 좋아함. 첫사랑인 여자와 첫사랑인 남자가 만난다면 몰라도 초보자 딱지만 뗐다 하면 여자는 차라리 좀 놀아본 남자를 선호한다. 그럴 수 밖에 없다. 처음과 좀 놀아본, 보기가 달랑 둘 뿐이라면 그녀는 후자를 훨씬 선호한다. 이게 딸랑딸랑인지 간질간질인지 구분이 잘 안되는 남자는 답답헌 일. 쿵-쿵-쿵-쿵 2박자 음악을 듣고, 가죽점퍼나 입어야지 뭐 어쩌겠나. 다시 사랑한다면? 여자를 모르는 남자에게─좋게 말하면 순정남, 다른 말로 쑥맥, 시작은 누구나 첫사랑─바람둥이는 그거 따져 본 다음에 연애를 시작하라고 권고할 것이다. 숙녀가 사랑을 하고자 하는가, 돌쇠를 원하는가를. 실행력이든 직관이든 포용력이든 감이 딸리는데 소 귀에 경 읽기일 수도 있지만. 그런데 그 사랑이 그 사랑? 오오, 저런! 모든 작품은 예술이다, 예술은 전체로써 가치가 있다, 고로 모든 작품은 오로지 <시작부터 끝까지>일 때만 의미를 갖는다? 허허허 글쎄요! 아직도 헷갈리니 다시 한번 검토해봅시다. 작품을 인생으로 치환해서요. 한 사람의 인생은 올라갔다가 내려갔다가, 기뻤다가 슬펐다가 롤러코스터를 탄다. 때로는 힘든 시절도 있을 테고, 사람에 따라 막 살기도 한다. 돌아온 탕자의 인생도 인생이니, 그의 인생은 아름다웠고 모든 작품 역시 처음부터 끝까지? 천 번 만 번 그거 다 사랑이라는 말이군. 당시에는 사랑, 30년 지나서 회상했을 때 아 그때 그 남자는 날 사랑하지 않았다며 한 여자는 슬퍼할지 모르지만. 연애하면서 막 그래 보시라. 미술관에서 작품 하나 하나 모두 세심히 관찰하며 심각하게 감상하고, 기획 의도 따진 후 드라마를 즐겨 보고, 작가가 무엇을 말하고 싶었나를 헤아려서 여자친구에게 가방 대신 꽃 대신 책을 선물해 보자. 아, 그녀는 얼마나 기뻐할까? 오, 그녀는 대체 얼마나 좋아할까. 아마도 세상 어디서도 그 짝을 찾기 힘들만큼 그처럼 반색할까? 혹시, 설마 그녀는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이 남자는 악역을 내게 양보한다는 거네, 난 마음이 약하니 늬가 날 차라는 말인가, 이거 이거 돌려서 훅 들어오는데, 그만 헤어지자는 말이군, 만나기 싫으면 만나기 싫다고 말을 해 이 삐─삐─ 라고. 나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다시 태어난다고 하더라도 일부분만 툭 떼서 안다는 것, 찬성한다. 왜냐하면 일부분만 툭 떼서 아는 것 역시 바로 지식이기 때문이다. 아는 게 힘이니까. 그런 반면 부작용도 있다. 앞뒤 맥락 없이 요기만 뚝 떼서... 음 잘 아시지 않는가. 허나 예술, 표현의 자유, 범죄, 인정과 놀이와 장난에 대한 정의는 절대 깔끔하지도 않고 결코 쉽지도 않다. 청자와 화자의 의사 소통이 매끄럽냐 아니냐, 뿐만 아니라 친구끼리 대화를 하는데 서로 딴 얘기를 하는 일도 흔하다. 덤 앤 더머! 서로 딴 얘기하는데 그런데 어떻게 또 궁짝은 맞고 우정은 파탄나지 않는다. 바빠서 못 만나거나 서서히 멀어지기도 하지만. 법적으로 자기의 삶은 자기가 책임을 지는 시기인 대충 십대 후반이나 스무 살쯤부터 나를 멋지게 가꾸든, 내 인생을 아름답게 꾸미든, 예쁘게 화장만 하든, 그도 아니면 그냥 막 살든, 모두 자기 자유지만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더니 글쎄 코카인, 음란물, 폭력, 진짜 합리주의, 그 합리주의, 사치, 쾌락, 퇴폐, 염세주의, 마성, 낭만, 콜라, 우유, 뭐, 뭐...! 첫 번째 남자는 자기가 최고라 하고, 두 번째 남자는 자칭 세이렌에, 세 번째 남자는 오리온, 그 다음부터 만났던 알았던 남자는 헤어스타일이 메두사에 옷은 에르메스-풍이요, 다음 다음 이기주의자 마마보이 개상 말상, 하도 많아서 생각도 나지 않을 꺼다. 그래, 말이나마.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흑심이 아니라 동심이니까. 마지막 남자는 그러겠지. 엄마, 엄마 난 그녀가 무서워요! 알면 알수록 미스테리니까요. 왜 그러냐면 원래 남자는 부풀리고 여자는 감추니까 그럴 것이다. 그럼 뭐야? 남녀 공히 평균 하면 100명이구만. 오 맙소사!
교육 방식에 관련되거나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 자존심을 굽히지 않는 분은 제 맡은 역할을 하고 자기 인생을 살며 인기를 구가하고 경제력을 획득하는 것일 뿐이니 청춘이시여, 그분들은 그대의 인생을 책임질 수도 없고 그분들께 합리주의에 대해서 책임지라고 요구해서도 안되는 것이겠지요.
1번 교육은 2번 교육에 비하면 독학에 가까운데 참고서도 많고, 선생님들이 도와주며, 당장은 몰라도 스무 살 너머서부터는 어디로 갈지 어떻게 살지 그 모두가 그대의 자유다? 지나쳤을지 모르지만 모르긴 몰라도 1번 교육도 어느 만큼 그런대로 역할은 하고 있는 것이다. 예술 작품을 교육적 의미 때문에 일부분만 뚝 떼서 영특하게─약삭빠르게? 간사하게? 계산적인?─학습의 소재로 삼는 데 대해서 이의를 재기하는 건 자유지만 그게 절대적으로 옳다면 소셜 네트워크에 올라오는 유명인의 명언, 소설 인용문, 드라마 명대사, 3초-30초-3분 편집 영상등은 모두 취소해야 마땅하다. 어른들이 뭐 바보도 아니고 그렇게나 지식에 민감할 이유가 어디 있겠나. 시간과 인류의 IQ는 일정 부분 비례하는데 검색하면 다 나오는데 그렇게나 지식에 민감할 이유가 어디 있겠나. 만난지 1년이 된 날 남자가 말한다. 「오늘은 우리가 처음 만난 날이자 아마데우스가 저 하늘나라로 떠나간 날이야!」 여행을 가서 딱히 심심해 하지는 않는데, 똘망똘망 뭔가를 추측하는 그녀를 보면서 남자는 말한다. 「세상은 최고와 최대와 최선의 가치를 값지다고 하지만 꼴지도 의미가 있어. 전직 축구 선수이자 소방대원이던 누군가는 어떤 사연을 겪은 다음, 무게가 59킬로그램이나 되는 심해 잠수복을 입고서 마라톤을 완주했어. 5일 8시간 29분 음 몇 초였더라... 아 46초. 잠수복 무게 때문에 400미터에 한 번씩 쉬면서 숨을 골라야 했으니까. 그걸 기념하는 축제도 있을 것 같아. 그런데 더 인상적인 건 그런 도전이 몇 번 더 이어졌다는 거야. 그 가운데 하나는 네스호 수중 마라톤을 완주했다는 거고. 네스호에는 아마도 괴물이 없나 봐. 몰랐으면 좋았을 텐데 이미 알게 됐으니 어쩔 수 없지 뭐. 알기 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으니까. 어릴 적 환상이 깨져버렸으니 난 슬퍼해야 맞는 거고. 그렇지만 그건 이론이고, 우리는 이 경이로운 한 순간을 기념하자고. (축배를 들고서) 만남과 운명과 사랑과 사소한 순간들도 모두 기적이자 행복이니까 말이야.」
겉으로는 지혜로워야 한다네 어떤 양서를 읽고, 무엇을 보고, 어디를 가 봐야 한다면서 말이다. 속없는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렇기는 하나 이거 정말 뜬구름 잡는 얘기를 너무 남발했더니 상당히 피곤하다. 몹시 피로함. 처음에는 교육적 의미를 담고자 했는데 말이다. 나중 따로 교육론이라고 수필집 하나 내면 된다. 그건 뭐 일도 아니니까. 그런데 설마 설마 했는데 아마도 나는 소셜 네트워크에서 어떤 게시물에 매료됐고, 어쩌면 그 매혹적인 떡밥에 낚인 것 같다. 아주 제대로! 맞네 맞어 딱 낚였어. 아 나 이거 정말 어허 아니 글쎄 나 원 참, 오 저런 맙소사!
결론은 이렇다. 10살까지 놀고, 20살쯤까지 공부하고, 다시 수십 년 일하고─이때 위로 올라가기 위해 남보다 더 노력하고 일과 함께 공부도 병행하며 사는 게 어른들 모습임─노을이 가까와지면서 다시 논다. 그리고 인생의 3분의 1은 잠이다. 잠잘 때 뭐하나? 꿈꾼다! 그럼 낮에는 뭘 할까? 놀고, 공부하고, 일하며, 다른 방식으로 꿈꾼다. 딴생각, 공상, 예감, 추측, 상상, 저녁 약속 준비와 주말의 할 일, 선물 고민 같은 거. 몸이 어른이 되고, 다시 마음까지 어른이 되어 청춘의 시를 쓰고 사랑의 설을 풀면서 얼마 만큼 자기 성에 차도록 노느냐, 그것이 아마도 멋진 인생의 관건인 듯 하다. 즉 살면서 가꾸는 인생과 자식 농사라는 농부의 마음과 사회적 소양을 갖춘 어른이라는 표면적 성과 외에 내적으로 내 마음에 쏘옥 들도록 얼마나 기쁘도록 놀고, 재밌게 즐기고, 행복하게 또 노느냐 그에 대한 만족감에 대해서 자기 합리화는 두 가지 구분이 있을 것이다. 첫째, 내 환경 탓에 난 불행했어 난 그리 썩 흡족하게 놀지 못했어, 목구멍에 턱 걸리는 그 어떤 말까지. 설마 그건 묘비명? 둘째, 난 놀 만큼 놀았고 노는 게 지겨워, 하지만 아직 그래도 노는 것 만큼 좋은 게 없어, 난 여전히 노는 이론을 좀 더 알고 싶어, 그래서 그 이론에 따라 행복론을 보완하며 사랑학을 더 꾸미겠어, 빈곤의 종말까지는 아직 모르겠고 말이야. 첫째는 1번 교육 방식의 장점을 취하지 못했고, 알록달록 아름다운 꽃밭을 우회했으며, 인터넷 유머를 조금은 싫어했을 것이고, 탐스러운 열매를 충분히 따먹지 못했던 데다 꿀벌로써 성실히 할 일을 하고 할 말을 했지만, 그러나 너무 일찍 정착했거나 어떤 타고난 조건이랄지 재능이 부족한 문제 때문에 꽃가루를 A에서 B로 옮기거나 몇몇 단물을 쪽쪽 빨아먹지 못했을 것이다. 아마도! 행운이 턱 없이 부족했던 거지. 그분이 촌닭이 아니라 촌년이면 아아, 설명 피곤하고 내용 뻔하다. 둘째 역시 1번 교육 방식에 익숙하고 2번의 장점을 동경하는 면모를 너무 많이 봐서 그건 너무 식상하기 때문에, 이제야 뒤늦게 신비의 기원을 궁금해하고, 깨알 같은 정성으로 블로그를 손이 아니라 발로 쓰며, 내일의 날씨는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이지만 오늘의 운세는 점쳐볼 것이다. 1이든 2든 인생이 불행했건 지옥이 재미있건 어차피 물 반 컵을 어떻게 보느냐, 그런 관점의 차이는 놀랍게도 자주 저평가된다. 그러나 왜 그런가는 묻지맙시다. 그냥 넘어가자구요.
9
나는 파블로부터 딩맨까지 요즘 어울려다니는 친구들과 거리 두기를 마치고 다시 우정에 합류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이름이 없었다. 영화, 신비, 나이트클럽 같은 평범하고 단순한 이름도 좋고 엄마한테 말하지 마, 혹성탈출, 내 인생 책임져 같은 촌스럽고 풋풋한 복숭아 같은 작명법도 나쁘지 않을 텐데 우리에게는 이름이 없었다. 나중 상황 봐서 내가 한번 건의해봐야겠다. 어렵게 건넨 제의가 너무도 쉽게 묵살될지도 모르지만.
그런데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내가 친구들과 다시 만났을 때 과연 내 예상이 들어맞았냐, 틀렸냐가 제일 중요한 일이다. 거의 그게 유일한 관심사다. 그래서 결과는? 결과는 뜸 들일 필요 없이 즉시 밝히자면 내 예측이 맞은 것도 아니고 틀린 것도 아니었다. 아니 맞으면 맞은 거고 틀리면 틀린 거지, 맞은 것도 아니고 틀린 것도 아니라고? 아 나 정말 미치고 환장하겠구만. 좀 더 품위 있는 수사법을 동원할려고 했다만 내가 봐도 살짝 힘 빠지는 대답이었기 때문에 그만 저급한 표현을 참지 못했다.
각설하고 육하원칙도 필요 없고, 어떻게 됐냐는 결과만 말하자면 이렇다. 원래의 딩맨이 나타났고, 내 예상대로 원래 우리의 친구였던 여자 딩맨과 나중 컴백한 남자 딩맨은 혼성 일란성 쌍둥이였다. 즉 딩맨 오빠가 다른 친구들에게 사실대로 고백했고, 애들도 흔쾌히 사실을 받아들였다. 남녀 일란성 쌍둥이는 무슨 증후군이나 간성이나 그런 염색체 이상으로 드물게 발생한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고 실제 현존하지만, 딩맨 오빠와 동생은 꼭 무슨 만화처럼 염색체 이상 없이 완전한 성별을 갖춘 극히 드문 경우라고 했다. 이론적으로만 가능하지만 거의 기적이라나 뭐라나. 아니 그런데, 예상이 적중했는데 대체 나는 왜 기뻐하지 않냐고!
「이제 그만 믿어라. 왜 너만 그렇게 의심하는데? 도대체 뭐가 의심스럽냐고. 딩맨맨이랑 우리들끼리 남자 목욕탕에 갔다 왔어. 게다가 폭스랑 수잔이랑 딩맨걸까지 셋이서 호텔 수영장에도 갔다 왔고. 그러면 된 거잖아. 안 그래? 너 혹시 돌리 동물원 투자금 회수건 때문에 아직 파블로한테 뭐 앙금이라도 남은 거냐? 아니지? 너 돈 많다며? 아닌가, 아 넌 그런 말 한 적 없지. 콜린이 손해금에 0이 하나 붙을 정보를 제공했다는데, 말하지 마. 말하지 말라고. 그리고, 우리 모두 돈 많은 친구들이잖아? 이 가운데 가난한 사람 한 명이라도 있니? 없잖아. 삶이 재미없고, 따분하고, 지루한 사람은... 있을 수 있어. 그러나 없어. 우리 중에는. 있니? 없잖아. 없어! 그래 없다고. 다 모두 사는 게 즐겁고, 재밌고, 기쁘며, 저 봐. 웃고 있잖아! 우린 행복해. 신나는 인생이라고. 어?」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라...... 아! (딱)! 딩맨맨이랑 딩맨걸이랑 너네와 같이 만난 적이 있냐가 궁금하다는 거야. 있니? 그 둘을 한 자리에서 봤냐고!」
「그건... 없었네. 그래서 뭐? 늬말은 혹시 1인 2역이냐고? 허허허. 그게 말이 되냐? 얘가 영화를 너무 많이 봤네, 너무 많이 봤어. 인문교양서를 읽고 뉴스를 보고 신문을 읽어야지, 그렇게 드라마를 기다리고 무슨 판타지에 인터넷 유머나 찾아헤매고, 누가 소설가 아니랄까 봐, 허허허! 직업병 뭐 그런 거니? 아니야. 아니라고. 늬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야. 응?」
「야. 야야. 야야야. 딩맨 온다. 쉬쉬. 그만. 그만.」
그때 딩맨, 아니 딩맨걸이 화장실에 가서 화장을 고쳤나 어쨌나 다시 우리에게 다가왔다.
나는 딩맨맨과 딩맨걸의 훈훈한 존재와 막중한 실재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애들 앞에서 그처럼 믿는 척 못 이긴 척 연기한 것 뿐이다. 나는 믿을 수 없었다. 내 예감이 들어맞은 게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왜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그랬다. 내 그 절묘한 추측은 저명한 미래학자나 미래전망가에 버금갈 정도로, 아니 노스트라다무스를 능가할 만한 예언가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눈부시게 예측이 적중했는데, 그런데 왜 기분이 나쁠까? 사랑학에서는 이를 변심이라고 한다. 냉혹한 시대였다면 변절의 상징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좀 더 정확한 진단은 아무래도 변덕일 것이다. 그렇다. 맞다. 그렇게 나는 딩맨이 댕맨맨과 딩맨걸로 나뉜다는 게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왜냐하면 딩맨은 우리 앞에 둘이서 한번도 같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봤을 때 딩맨은 우리를 가지고 놀고 있었다. 딩맨은 우리 위에서 놀았고, 우리는 딩맨 밑에서 웃었다 울었다 믿었다 불신했다, 막 그러고 있었다. 나는 응당 불신쪽이었다. 딩맨맨과 딩맨걸 그런 건 없다. 가짜다. 거짓말이다. 딩맨이 삶이 따분하고 지겨웠고 재미없기 때문에 벌인 연극일 것이다. 그럴 것이다. 아니 그럴 수 밖에 없다. 내 예리한 직감은 틀린 적이 단 한 번도... 있긴 하겠지만 이번에는 확실하다. 그러나 아직 증거는 없었다. 뭔가 확실한 물증은 발견하기 어려울지라도 내 이 게슴츠레 간질간질 뭔가 느껴지는 수전증 같은 직감과 추리력을 뒤받침할 작은 행동이나 어떤 판단 근거가 필요했다. 물론 그게 쉽게 드러날 리는 없다. 그러나 포기할 수 없었다. 딩맨맨과 딩맨걸의 허와 실을 밝혀내는 게 어느새 내 할 일로 정해진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은 아니지만 당시 나는 지금과 달리 경험이 먼저고 쓰는 게 나중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직접 경험하지 않아도 허구를 쓸 수 있지만 당시에는 직접 경험을 했거나, 그것이 판타지든 미스테리든 스릴러든 내가 직접 일을 만들어서 경험한 다음에 글을 썼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그러므로 나는 언제 드러날지 모르는 딩맨맨의 실수와 딩맨걸의 헛점을 파고들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 시작했다.
10
그때가 내 호시절일지 암울한 삼류 작가의 한때일지는 모르지만 시간을 압축해서 내 노력의 결실에 대한 성과를 즉시 밝히겠다. 뜸들이고 어쩌고 그럴 때가 아니다. 난 그때 딩맨의 숨겨진 비밀을 반드시 밝혀내고야 말겠다는 굳은 결심으로 달아오른 상태였으니까. 끝끝내 내가 밝혀낸 단 하나의 증거는 이랬다.
그것은, 그것은 딩맨걸이 어느 날 내게 메롱이라는 몸짓을 노출한 것이다. 그것은 고의였다. 날 놀리는 처사였다. 그럼 딩맨걸은 나를 왜 놀렸을까? 파블로, 맥, 콜린, 폭스, 수잔은 모두 딩맨맨과 딩맨걸의 존재를 믿는데 나만 의심을 거두지 않으니까 그래서 놀렸을까? 아닐 수도 있지만 아마 그럴 것이다. 왜냐하면 딩맨걸은 딩맨맨과 하나일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가운데 오직 나만 그 개탄할 만한 길몽을 꿰둘어봤기 때문이다. 선수는 선수를 알아보는 것일까? 재수 없다. 얄밉고 오그라들고, 안 그래도 멀어지는 진공청소기는 더 멀어진다. 따라서 자기의 본색을 아는 유일한 왕관 쓴 여우인 나를 경계한다는 바로 그런 하나의 확증에 해당되기 때문에 딩맨걸은 내게 메롱~ 그랬던 것이다. 이제 보니 딩맨걸 입장에서도 충분히 그럴 만 했겠다. 아무리 다시 생각해도 그 메롱은 모종의 하트 뿅뿅과 정반대의 의미를 갖는 것 같았다. 날 알고 싶죠? 날 안고 싶어요? 내 매력에 깜빡 넘어갔다면 날 유혹해주세요! 뭐 그런 의미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아마 그건 뭔가 숨기는 게 있다는 뜻이다. 분명 그랬다. 호기로운 청량감을 바탕으로 당당함에 올인할 수 없다면 일말의 반전이나 꿍꿍이나 뭔가가 있을 것이란 게 내 복안이었다. 나의 그 영험한 천리안과 입에서는 화염방사기가,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서 속닥거리는 사람들의 험담까지 들리는 이 놀라운 청취력이 그 모두를 증명한다. 비록 상상이긴 하지만 그 어떤 낌새와 미묘한 직감이 내게 베팅을 명령한 것이다. 그렇다면 난 그에 상응하는 행동을 취해야 한다. 예의상 그래 줘야 한다. 날 알고 싶죠? 알고 싶다. 알아낼 것이다. 알기 싫어도 알게 된다. 비밀은 없으니까. 날 안고 싶어요? 그건... 전후좌우 상황과 뭔가 살아온 행적과 인성과 별명등을 참고해서 결정할 것이다. 내 매력에 깜빡 넘어갔다면 날 유혹해주세요? 글쎄요 꺼뻑이라니... 어딜 넘봐랄지 살면서 드러내는 몇몇 공통적인 대사를 언급하는 유형인가 그와 전혀 다른 새로운 스타일인가를 참고한 다음에 결정할 것이다. 내가 한눈을 팔아도 들킨다는 보장이 있는가 없는가도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
자, 그래서 난 그 다음에 어떻게 했을까? OK! 나는 다시 그 친구들과 잠시 거리를 두고서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즉 제2의 가택 감금에 들어가기로 했다. 모르긴 해도 아마도 등장해야 할 대단한 성과는 그 기간과 비례하고, 뭔가를 끈질기게 파헤치는 내 노력과 밀접한 상관관계를 보일 것이란 예측은 꽤 괜찮은 승부욕을 불러왔다. 고로 나는 일종의 승부사로서 이 사건을 해결하고야 말겠다는 탐정역에 몰입할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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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메디는 두 가지가 있다. 고급과 저급. 딩맨은 내게 고급 코메디를 요구한 거나 다름없었다. 어쩔 수 없이 대결은 시작됐고, 경기 규칙은 바텐더 맘대로-일 것이다. 난 자신 있었다. 친구들 중에 내가 제일 가난하지만, 나는 동심을 반납하지 않았고 그로 발생한 연체료가 내 창작의 원천이기 때문에, 고로 딩맨은 날 속일 수 없고 막판에 내게 반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나중 헛소동으로 판명나거나 내 쓸데없는 호기심이 부른 흥행 실패작으로 결론날지도 모른다. 스탠드업 코메디라며 내가 작품을 발표했으나 독자는 그냥 스탠드업 까지만 받아들일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러쿵저러쿵 이러쿵저러쿵, 웃기지? 맞고 싶냐! 하지만 이미 나의 상당한 노력과 시간을 허비해야 한다는 최소의 희생은 불가피하게 되어버렸다. 물론 그 접고 꺾고 신나고 재밌는 추리극은 비극으로 변주될 수도 있다. 그러나 막판 반전으로 승부를 뒤집으면 그만이다. 왜냐하면 난 누가 뭐래도 승부사니까. 그러나 수수께끼를 끝내 밝혀내지 못하거나 게임에서 내가 진다면 나는 별명이 바뀌는 거다. 해결사에서 허당으로. '은근'이란 수식어조차 아깝겠지. 하지만 이미 학교 종은 울렸고, 사랑은 시작됐으며, 그건 더 이상 져도 되고 무를 수도 있는 연습 경기가 아니었다. 이래도 흥 저래도 흥, 그와 같은 (야한) 사랑놀음도 아니었다. 따라서 내 머리 속은 베고니아 핑크색 상상력으로 물들었고, 딩맨걸의 로코코 레드빛 립스틱보다 반짝이고 아름다운 사랑의 예언이 등장할 차례였다.
나는 금빛 받침대로 장식된 지구본을 어디서 공수해왔다. 그것을 사지는 않았고 문구점 사장 데이비드에게 빌려왔다. 나중 술 한잔 산다고 하면서. 마술계의 쟁쟁한 거물들을 뒤로 하고, 내가 선두에 나섰으므로 영화로운 낭만과 신기한 사랑의 단꿈과 놀라운 요술이 절실히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일시적인 충동이라기보다는 지속적인 욕구였다. 왜 그런가 곰곰히 생각해봤다. 아니라고 변명하고 싶었다. 왜냐하면 나는 너무 혼자만의 기쁜 탐구에 빠져버린 희대의 탐사를 벌이는 탐험가요, 행복한 탐정이자, 추리와 연구에 탐닉하는 열정의 예언가였기 때문이다. 헛소리 그만하고 다음을 얘기하겠다.
이 지구본을 미녀로 뿅 하면서 변신시킬까? 다음에! 저 푸르른 호수를 분홍색으로 변환시킬까? 이미 그런 호수가 실존한다. 인터넷에 잊혀질 만 하면 나오는 게 아니라 훨씬 자주 등장하는 진실일 뿐이다. 천재 탄생이나 궁극의 비책이니 그런 약장수의 요설로 뺀질뺀질, 일기와 블로그와 소설과 인생을 점철할 수는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 내게는 착실한 목표가 있고, 나는 명확한 할 일이 있으며, 무지개 너머에는 영광이 기다리고 있다. 스피노자니 베르디니 안델센은 그만 괴롭히고 딩맨의 비밀을 밝혀야 한다. 아~! 드디여 떠올랐다. 장고 끝에 깨달음을 얻었다. 이건 생각보다 훨씬 커다란 드라마가 될 수도 있을 듯 하다. 혹시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황홀함이 엄습하면 그땐 정말 어떡하지? 딩맨걸은, 아무리 생각해도 물건이었고 딩맨은 장난이 아니었다. 변신은 두 가지가 있다. 인간으로 변하는 것과 괴물로 정체가 밝혀지는 것. 전설의 사극은 전자고, 좀비 영화는 후자다. 지금은 딩맨이 쌍둥이로써 거의 드라큘라급 희소 확률로 각광 받고 있지만 곧 있으면 다음엔 뭐라 뭐라 하면서 꽁무니를 뺄 수 밖에 없다. 자세한 이유는 모르겠다. 그리고 SF도 두 가지로 나뉜다. 말이 되는 SF와 말이 안되는 SF로. 어쩌면 딩맨은 이런 구분을 모두 만족시키는 거물일지도 모른다. 이런 느낌 처음이야, 딱 그 기분이었다. 뭔가 놀랍고 신기한 체험이 이어질 것만 같은 모험심마저 느껴졌다.
나는 지구본을 놓고서 세 지점을 찍었다. 첫째 지중해, 둘째 하와이, 셋째 태즈매니아섬. 이 세 지점은 어떻게 선출됐을까? 그것은 바로 버뮤다 삼각지대를 지구본 상에 삼각형을 그리고, 다시 그 삼각형의 꼭지점이 선변의 중간이 되는 삼각형을 그리고, 그걸 반복하니 저곳이 나왔다. 처음에 좌표를 잘못 지정했거나 삼각형이 약간 모양이 이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대충 근사치에 해당하는 위치다. 그러면 왜 버뮤다 삼각지대일까? 그건 다 꾸며진 이야기이자 초딩들도 짜증내는 가짜 미스테리다. 그러나 뭔가 분위기는 있다. 뻔한 신비도 신비고, 식상한 낭만도 낭만이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소설을 읽어서 알게 된 조세 회피 지역으로 여행을 가거나, 드라마를 보다가 장래 희망이 바뀌며, 호의가 남발되다 마누라까지 바뀔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앞으로 꼭 버뮤다섬에 가볼 것이다, 자 손 한번 들어보세요! 한 명, 두 명, 세 명, 이런 젠장! 그 수를 도저히 셀 수가 없다. 차마 그 숫자를 어떻게 헤아릴 수가 없다고. 이거다. 이거라고. 그런데 왜 하필 갑자기 버뮤다인가? 빙고! 삼류 작가가 또 예술 한다고 창작의 소재를 찾아헤매는데 놓칠 리가 있겠나. 무엇을? 우리 동네에 그 정체가 불분명하고 기원이 암만 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 3가지가 있기 때문이다. 첫째, 뒷산에 있는 배. 둘째, 동네 입구에 있는 대형 테트라포트. 셋째, 초등학교와 우체국 중간에 있는 대형 (머머라 씌여진) 컨테이너. 누가 배를 나무 중간에 끼워놨는지는 몰라도 단순히 모양만 봐서는 꼭 물에 떠다니다가 딱 정박한 모습이다. 대형 테트라포트가 무슨 동네의 상징물도 아니고, 그 역시 자세한 내막을 아는 사람은 동네에 없었다. 그리고 작은 컨테이너면 몰라도 큰 컨테이너가 우리 동네에 웬 일로? 내 말이! 하지만 생업을 뿌리치고 그 일에 매달리지는 않더라도 그 세 지점을 연결해 볼 수는 있다. (딱) (쉭─쉭─쉭) 그건 정삼각형이었다. 바로 그래서 그것은 버뮤다로, 다시 그것은 지중해와 하와이와 태즈매니아로 이어진 것이다. 나는 '떠나자 지중해로' 라는 노래 가사를 떠올렸고, 지중해와 하와이와 태즈매니아로 진짜 떠났다. 그건 술값 내기에서 지고 다른 게임에서 이길려는 소심한 복수 같은 일이다. 그러나 일단 갔다 온다면 복권 당첨 같은 일생일대의 변화가 일어날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나는 고민없이 바로 떠나기로 했다.
12
나는 그 머나먼 세 지점에 갔다 왔다. 그러나 진짜로 갔다 오지는 않았다. 그걸로만 상영작 하나 나오겠네. 돈이 많이 들겠고. 그래서 나는 다큐멘터리를 보고서 아 그렇구나 하고 말았다. 싱겁게도 말이다. 나는 다시 들뜬 흥분 대신 마음의 평화를 되찾았다. 탐구욕과 모험심과 동경심을 만족시키는 대신에 평정심을 웃도는 심심함이 바로 내몫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정녕 돌리 동물원에 가서 꼭 직접 확인을 해야 한단 말인가 라고. 그곳에 도착해서 단안경으로 정탐하면 뭐 딩맨이 돌리 동물원을 재개장 준비하는 장면이라도 보게 될까? 또는 박물관 개장 준비를? 박물관 이름은 딩맨 신드롬 뭐 그런 거! 설마 그 일대를 다 딩맨이 산 건 아닐까? 상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어쩔 수 없이 나는 다시 친구들과 노는 일상에 접어들었다. 나의 2번째 칩거는 여지없이 실패로 판명났다. 그건 판정패도 아니고 KO패였고 흥행은 무슨, 다행히 알려지지 않았으니 욕을 얻어먹지 않았으면 된 거다. 그런데 못내 아쉬움을 달랠 길이 없었다. 나는 파블로가 진두 지휘하는 영화 촬영장에 놀러갔다. 재미없었다. 개상인 맥과 나이트클럽에도 다녀왔다. 맥의 친구들은 대체로 개상이 많았다. 여자들도 역시나. 그런데 미녀는 어디 갔는지 모두 선녀뿐이었다. 맥은 그런 놈이다. 나를 경계하는 것이겠지. 그래도 알고 보면 그는 호인이다. 어쨌든 맥과 같이 놀았는데 재미없었다는 거. 음. 그리고 콜린의 투자사무실에도 놀러갔다. 재미있었겠나. 게다가 콜린은 척키상이다. 내 인생을 통틀어서 내가 만난 척키상은 누구 누구였더라, 내 경험에 따르자면 원래 척키상은 웃겨야 정상이다. 여기 잠깐 저기 잠깐 방정맞고 자발없을지라도 가짜 웃음과 허허실실 말발은 되야 모름지기 정상적인 척키상이다. 그런데 콜린은 롱테일이었다. 곧 재미없는 척키상. 그 다음에 여자 친구들은 왠지 1 대 1로 만나기에는 어색했다. 만날 수는 있었다. 만나자고 연락도 틈틈히 온다. 아니 러브콜 쇄도했다. 다만 내가 거리를 두는 것일 뿐. 그래서 폭스와 수잔과 딩맨-걸을 모두 함께 만났다. 역시나 재미없었다. 그리고 딩맨이 언제부터 딩맨맨과 딩맨걸로 나뉘게 된 거지? 헷갈린다. 너무 산만하다. 이젠 왜 그렇게 됐는지 알고 싶지도 않다. 방심하던 틈을 타서 판타지는 도망갔고, 신비는 날 폭삭 낙담시켰으며, 딩맨스에게 모든 주도권은 넘어가버렸다. 내가 고수고 딩맨이 하수인 줄 알았는데 결국은 그 반대였다. 내 입지는 안 그래도 좁은데 더 좁아졌다. 저런! 그래서 나는 지난 일을 회상했다. 추억을 떠올렸다. 꿈을 꾸고 공상과 상상과 몽환 사이를 왔다 갔다 했다. 이리 갔다 저리 갔다, 난 동네를 떠돌아다니는 한 마리 개가 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다 결국 나는 요즘 함께 노는 친구들과 다시 세 번째 거리 두기에 들어갔다. 그러나 이번에는 가택 감금을 택하지 않았다. 앞 번과는 다르게 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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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끝끝내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그곳으로 떠난 것이다. 베낭에 야영 도구와 망원경과 노트북, 공책, 나침반등을 챙겼고 돌리 아일랜드까지는 하워드에게 데려다달라고 부탁했다. 하워드가 어디 내 부탁을 거절할 인물인가. 내 쓸데없는 고집은 다 사연이 있고, 내 사소한 몸짓과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다 의미있다고 암암리에 분석하는 친구가 바로 그 녀석이다. 참고로 하워드는 원숭이상이다.
그렇게 해서 나는 돌리 동물원에 도착했다. 그곳이 무슨 특수부대 훈련장이나 보이스카웃 캠핑장, 재개장한 골프장으로 바뀌지는 않았다. 그대로 폐쇄된 돌리 동물원 그대로였다. 적당한 위치에 자리를 잡고서 첫날은 독서, 산책, 낚시, 게임, 명상, 음악감상, 술 마시기, 별자리 관찰, 인터넷 서핑으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둘째날부터 본격적으로 돌리 동물원 본부를 정탐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둘째 날 내가 엎드려서 단안경으로 본부를 관찰하며 새로운 동물을 찾고 있을 때 뭔가 묵직한 게 내 엉덩이에 압력을 가하고 있었다. 그것은 사람의 발이었고, 그 발은 바로 딩맨의 발이었다. 딩맨도 하필 딩맨맨이 아니고 딩맨걸이었다. 딩맨걸의 뒤에는 아니나 다를까 파블로, 맥, 콜린, 폭스, 수잔, 딩맨맨이 있었다. 오 이럴 수가! 이런 개뿔! 나도 할말이 없었고 녀석들도 유독 지금은 말수가 없었다. 우리는 대화를 나눌 수 없었나 보다. 왜 그런지는 몰라도. 그러나 느낀 점은 많았을 것이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그랬다. 그 가운데 하나는 순수한 경외감이었을 테고.
나는 어린 시절의 어떤 향수를 떠올렸다. 만일 그걸 향수라고 부를 수 있다면. 그건 바로 우리 아빠가 꼬마인 나의 엉덩이를 발로 지긋이 누르셨던 기억이다. 무슨 운동? 비밀이다! 아니 그런데 왜 그때 그 시절 상황이 지금 되풀이되는데? 알 수 없었다. 딩맨 보고 따질 수도 없었다. 늬가 내 아빠라도 되냐고! 딩맨은 내 아빠가 아니었고, 나는 딩맨의 오빠였다. 지금은 친한 오빠지만 다른 데서는 그저 아는 오빠일지, 나중에는 그 인간 그 녀석 막 그러면서 안면만 있었다고 할지 그건 모를 일이다. 게다가 딩맨의 친오빠가 있는지 없는지도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 있다고는 하는데 내가 보기로는 혼자서 1인 2역에 열중하는 것으로 난 아직까지 찰떡같이 확신하고 있었다. 전에는 내 예상이 적중하니까 난 불안했었나 보다. 반전을 원한 거였다. 반전? 기쁜 반전 슬픈 반전? 아니나 다를까 반전은 바로 지금 목도하게 됐다. 드디여, 오오오 마침내 내 엉덩이를 밟은 인간은 딩맨걸이었고, 뒤에 서 있는 친구들 가상에 딩맨과 똑같이 생긴 남자 딩맨이 있었다. 오오 이럴 수가, 맙소사! 어이쿠, 심지어 딩맨의 성정체성이 어떻게 되는지 막 궁금해졌고, 난 정말 모르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나는 이게 아닌데, 그런 기분에 젖어들었다. 진짜 이건 아니었다. 그럼 뭐였냐? 나도 모르겠다. 뭐 어떻게 되긴 되겠지만 일단은 느낌이 세했다는 건 분명했다.
시간을 돌려서 줄거리를 읊자면 그 모두가 녀석들의 계략이었다. 계략은 곧 꾀나 모략을 뜻하는데 녀석들이 그런 일을 왜 꾸몄을까? 그 녀석들은 다 그럴만 해서 그랬다고 한다.
「그러면 딩맨이 오빠 딩맨과 동생 딩맨으로 나뉜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는 거니?」
「그렇지.」
「그러면 파블로가 사기꾼한테 거액을 뜯겼다는 것도 다 짜고 벌인 일이야?」
「그럼.」
「게다가 내가 일절 관심 없는 채권과 선물과 또 그 뭐야, 지수가 떨어지면 반대로 돈을 버는 그거, 전문용어가 생각나지 않는데 그걸로 내가 떼돈...까지는 아니고 적당한 목돈을 벌게 만든 것도 다 너네가 판을 짠 거야?」
「그건 좀 오해가 있어. 살짝 퉁쳐서 술값만 톡톡히 건져야 맞는 건데 그게 좀 이상하게 튀었어. 중고차 1대 값으로.」
「뭐라고라? 이 자식들이 이왕 선심 쓸 꺼면 새 차나 새 집, 건물값, 아니 아니 세상 사람들 다 아는 그림값으로 할 것이지. 이 친구들 이거 이거 수준하고는. 우리 우정이 겨우 그거 밖에 아니었냐, 어? 넌 딱 거기까지야. 아니다. 내가 딱 거기까지겠다. 허허, 허허허허허! 그리고 또 뭐야, 커밍아웃했던 딩맨의 연기를 보고서 수잔과 폭스가 신경전을 벌인 일들도 전부 가짜겠네? 모두 여우상인 딩맨 가족들은... 진짜일 테고. 파블로에 대해 아네 모르네, 찾자 말자 떠나자 그거 다 미리 계획된 일이었군 그래. 허허허. 허허허허허. 그럼 너네들 우정은 진짜고 나와의 우정은 가짜냐? 허허허. 허허허허허. 내가 오빠 딩맨과 동생 딩맨을 의심한 거 보고 꽤나 재밌었겠다? 허허허. 허허허허허. 그래도 지금 확실하게, 속시원히 확인은 했다. 딩맨이 1인 2역을 하지 않았다는 거. 그럼 개말, 개새, 양말, 소말, 말기린, 치타곰, 당나귀하마, 곰양. 그건 다 어떻게 만든 거지? 오, 궁금한데. 그거 아무리 생각해도, 아무리 봐도 그건 진짜였는데...!」
「아 그건 진짜도 있긴 한데 대부분 홀로그램과 그런 신기술을 이용한 것일 뿐이야. 하지만 이미 옛날 옛날에 라이거와 돌리양과 GMO식물이 일반화된 것처럼 그 가운데 몇몇은 진짜고. 그래서 실제 나중 돌리 동물원을 개장할까 역시 차차 검토해봐야겠지.」
요약하자면 이렇다. 어찌 됐든 얘네들은 처음에 내게 의도적으로 접근했다. 나를 그들의 우정에 합류시켰고, 여기까지 나 스스로 오게 만들었다. 처음부터 각본은 정해진 거였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유일한 공통점이 있었다. 파블로, 맥, 콜린, 폭스, 수잔, 딩맨걸과 딩맨맨까지. 그들은 내 삼류 소설의 애독자라는 것. 으잉, 내 삼류 소설의 애독자라고? 내 삼류 소설 애호가라면 다 해서 총 10명이나 될려나? 많아 봐야, 그래 대충 한 50명은... 무리고, 눈대중으로 셀 정도. 딱 거기까지. 그래, 내가 최고다. 됐나? 안 됐다. 그래, 내가 최저고 그대가 최고다. OK! 아무튼 그래서 그들은 소설 속의 주인공이 되고 싶었고, 따라서 일이 이렇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한 편의 소설을 완성할 때까지 이곳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뭐야 난 갇힌 거네! 완전 독 안에 든 생쥐구먼. 것도 비 맞은 생쥐꼴.
탈주에는 두 가지가 있다. 대탈주와 소탈주. 나는 탈주도 생각해봤다. 그러나 어중간한 중탈주는 왜 없냐는 그런 뚱딴지 같은 공상은 이미 내다 버린지 오래 됐다. 그래서 나는 차라리 그들의 의도대로 글을 쓰기로 했다. 어쩌면 잘된 일일지도 모르니까. 좀 황당할지라도 주제와 전체 이야기 구조는 그들이 이미 만들어놓은 당상이었다. 난 거기에 숟가락만 얹으면 그만이었다. 여기서부터 진짜 문체가 어떻고 글발이 어떠하며 신선함과 색다름은 거의 악마적이라는 그 간지러운 말도 안되는 수식어들을 얻느냐 마느냐, 바로 지금이 내 역량이 평가되는 판국이라고 할 수 있다. 난 어설프게 국면 전환할 필요가 없었고, 그냥 떠먹여주는 수프를 먹고, 뽀글뽀글 수프를 끓이는 가가멜을 관찰하기만 하면 된다. 그게 뭐가 어렵다고! 그래서 난 다시 기분이 좋아졌다. 떨렸고 떨린다. 또 확인하고 싶다. 폼을 잡고서 이렇게 묻는 거지. 나 떨었니? 라고. 난 들떴고 설렜고, 제2의 스티븐 킹이 되야겠다는 충동을 느꼈다. 고전 소설이야 옛날 사람들을 쳐주고, 순수 예술쪽에서야 작품성을 따지겠지만 영화화 즉 소설을 영화로 그렇게 매체를 바꾸어도 괜찮냐에 대해서는 대중 예술이 월등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따지자면 합리주의를 표방하는 유명 작가들은 모두 입 다물고 고개를 푹 숙여 반성해야 한다. 값싼 글발로 턱없이 많은 돈을 버니까. 오히려 드라마 작가 협회에 회비를 꼬박꼬박 성실히 납부하는 명성이 잔잔한 희곡 작가들이 진짜 저평가됐다고 할 수 있다.
그건 그렇고 지금부터가 진짜 드라마였다. 구출에도 두 가지가 있다. 전혀 새로운 미스테리와 전례가 있는 것. 지금 일은 그 둘에 해당되지 않았다. 지금 상황은 그거다. 물 밖에 나온 물고기. 곧 낯선 장소와 시간과 환경. 심지어 이미 이 친구들이 판은 다 짜놨다. 이건 완전 거저다. 여기서 내가 글을 못쓰면 난 진짜 바보임을 증명하는 거다. 그렇게만 되면 난 정말 밥통에 머저리에 꼴통에 쪼다라는 확실한 근거를 제공하는 거겠지. 그렇게만 되면 미련 곰탱이란 별명은 내가 독점하게 될 것이다. 험악한 애칭은 따논 당상이라구. 내놓으라 하는 장안의 걸출한 악동들의 놓칠 수 없는 표적이 될 테고, 그러다 어떤 물망에 오르게 되는 수순을 밟을 것이며, 그래서 쟁쟁한 해외파 험담가들에게까지 좋은 먹잇감으로 소문날 테고 말이야. 약하게는 넌 기본이 안돼 있어 늬가 그러니까 안되는 거야 밥을 떠먹여줘야 하냐 늬가 애냐 어, 강도를 높이면...... 오오, 커피포트의 수증기는 마침내 내 것이 되겠지. 아, 부담감 장난 아니었다. 난 원래 가짜 웃음에 일가견이 없는 사람인데, 가짜 웃음이 절로 나왔다. 난 실소와 썩은 미소의 권위자가 됐다. 일전에 찾을려다 못 찾은 무슨 스파르타식 창작 아카데미가 따로 없었다. 내가 원하는 건 원래 구태의연한 이야기였다. 이를 테면 역경이나 여행과 귀환 같은 거. 역경에도 세 가지가 있다. 첫째 가난뱅이에서 부자로, 둘째 삼류가 겪는 평범한 역경, 셋째 일류가 되기까지의 특별한 역경. 여행과 귀환 역시 세 가지로 나뉜다. 첫째 갔다 돌아옴, 둘째 계속 가기만 함, 셋째 새로운 정착 후 다음 이야기로. 그건 그렇고, 이제부터 어떻게 한담?
난 녀석들에게 작품 구상을 해야 한다면서 핑계를 댔다. 잘 놀아야 잘 일할 수 있다고. 그래서 우리는 같이 한동안 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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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해서 쓰게 된 작품이 바로 이 이야기다. 하긴 녀석들 아니면 내게 이런 작품의 작자라는 호칭은 걸맞지 않다. 어디 숟가락을 얹을 곳 없나 하면서 귀신 같이 그에 최적화된 남의 집 잔치만 잘 찾는 잔머리를 재주라 부르기는 퍽 곤혹스럽다. 하지만 숟가락을 얹어야 할 때는 얹고, 멍석이 깔아지면 춤을 추고 뛰어 놀고, 빼야 할 때와 나서야 할 때를 알며, 할 말을 해야 할 때 하는 것. 그것은 어른들의 본분일 수도 있다. 말랑말랑한 놀라운 학업 능력과 신기한 상상력과 유치한 장난끼를 애들이면 모두 가진 것 같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나 역시 어린이에서 어른이 되는 동안 상상력을 내주고 사회성을, 모든 것을 놀이로 바꾸는 소질이 공부와 일을 하기 싫어하는 수동성으로 바꼈는가, 하면 꼭 그렇지는 않다. 상상력 하니까 기억난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발명품을 하나 만들어오라는 방학 과제가 있었다. 그때 신발 한짝보다 살짝 큰 크기의 나무판자를 구해서 바둑판처럼 줄을 긋고, 바둑알 대신에 아빠한테 못을 박아달라고 했다. 방학이 끝난 후 그걸 들고 가서 숙제라고 제출했다. 용도는 신발 바닥 털이. 별로 중요한 게 아니라서 잊고 살았는데 이제 와서 보니 그때 왜 그런 아이디어를 떠올린지 알겠다. 아아! 바로 초등학교 1학년 때 같은 반 학우가 발바닥에 압정이 박혀서 엉엉-펑펑 울었던 장면을 초딩5는 과제로 응용한 것이다. 오오 저런! 중간에 나는 시골에서 도시로 이사갔으니까 초1과 초5 모두 같은 반이었던 친구는 한 명도 없다. 그래서 직접적으로는 이 일을 아무도 모르고, 난 차라리 무덤까지 이 일을 안고 가는 게 나았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편지는 많이 썼던 데 비해서 일기는 턱없이 부족했으니까 작은 슬픔쯤으로 기록하고 넘어간다. 작은 슬픔? 와, 상상력 대단하다. 아아, 바로 이런 사람이 부족한 자제력을 문학적 감수성으로 포장하는 사람이다. 오오 진짜 눈물겹다. 그건 정말 바늘로 찔르면 피가 나는 아프고 따가울 만큼의 정상적인 윤리적 소양도, 매몰찬 응용력도, 생활 아이디어도, 상상력도 뭣도 아니었다. 정말 난 꼴통에 머저리가 되기 싫어서, 정황상 그럴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요정에게 강압적으로 빼앗은 숟가락을 얹어서 과제를 끝마친 느낌이다. 그것도 겨우겨우.
그리고 그 친구들은 모두 도시로 떠났다. 하지만 우리는 인터넷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러면 향후 전망은? 녀석들이야 나름대로 소원을 풀었으니 이제 각자 사랑의 늑대로 살지 행복한 양과 사는 게 너무 즐거운 말이 되었을지 거기까지는 모르겠다. 다만 이와 같은 행위 예술을 재차 시도하지는 않을 것 같다. 왜냐하면 그 친구들은 막 2편, 3편 이어지는 데 딱히 취미가 없는 듯 하니까.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내쪽에서 2편, 3편을 기다리는 것. 하지만 아직은 열린 결말은 나타나지 않았다. 관객 입장에서는 허탈하게 웃으며 없는 감동을 탓하거나 그렇게 마음을 놓고 뒤돌아서야 하는데, 원래 그게 정상인데 왠지 영화를 본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안 본 것도 아닌 무척 떨떠름한 기분이 바로 이런 것이다. 뻔한 패턴이라도 마지막에 희뿌연 기대감이랄지 추정의 실마리나 내기 하기 딱 좋은 힌트는 제공하고 1편을 마쳐야 그게 모종의 예의다. 그래야 부족한 작품성이 조금이나마 벌충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실은 픽션과 다르다. 따라서 그 보너스 영상은 기다려도 기다려도 등장하지 않는다. 아무리 기다려도 등장하지 않는데, 그런데 이상하게 또 기다려진다. 무슨 이런 문제적 문제가 다 있단 말인가. 결점이 측정은 되는데 해결 방안은 떠오르지 않는다. 측정할 수 있으면 원래는 수행 가능해야 맞는데, 측정할 수 있는데 수행 불가능했다. 저런!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애가 타고, 입이 바짝바짝 타며, 케찹이 마를 일이다. 이제부터가 진짜 승부사라는 바로 도박사들의 본게임일까? 이 발끈함의 정체는 진공청소기인가 커피포트인가. 왜, 대체 왜 깔끔한 보너스가 나타나지 않는 거냐고. 뭐 아차상 그런 건가? 아 이런 나 원 참!
딩맨스 일당은 내게 추억을 안겨줬고 돌리 동물원은 짭짤한 기쁨을 선사했지만, 그 체험에 대한 행복감이 너무나도 컸기 때문인지 나는 그 다채로운 드라마에 대한 경쟁우위를 확보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런 잔꾀 같은 발견과 우정과 변신과 모험이 남긴 과제는 아직까지 기분이 그리 나쁘지도 성과가 알맹이 없는 선물 같지도 않았다. 그것 때문에 그림일기를 쓰는 어린이가 된 듯 했고, 블로그에 살아 숨 쉬는 글을 쓰며 틈틈히 그때를 회상하니까. 살아 숨 쉬는? 아 목표가 그렇다는 거다.
그래서 최근 나는 하나의 착상을 떠올렸다. 어느 날 인터넷을 떠돌다 어떤 독립 영화를 내려받았는데 그 영화 속 주인공의 활약은 내 행적이었고, 주인공의 방황은 내 과거였으며, 주인공의 사랑마저 나의 미완성 사랑이었다는 이야기를. 아, 하나 더 있다. 어느 날 나는 서핑을 구경하러 해변가로 간다. 그러나 서핑은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난 그것을 구경하는 것을 더 좋아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일광욕도 하고 미녀들에게도 공평하게 눈길을 나눠줘야 하며 나름 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다 나는 뭔가를 마시고 싶어진다 싶어진다. 앗 저기 보인다 보인다. 자판기가 보인다 보인다. 그곳으로 간다 간다. 자판기에서 적당한 음료를 뽑는다 뽑는다. 그런데 옆에 있는 다른 자판기에 눈이 간다 눈이 간다. 눈독 들인다 눈독 들인다. '가짜 일기와 진짜 블로그'라는 제목의 소설에 대한 느낌이 특이하길래 나는 자판기에서 그걸 뽑는다 뽑는다. 그리고 해변가에서 바로 읽지는 않고, 주변을 겉돈다 겉돈다. 산책하다 낚시하다 강아지를 따라가다 어느 낯선 숙녀에게 말을 걸었다가 여러 번 실패했다 실패했다. 그래서 일광욕을 하기엔 좀 싸늘한 날씨인데도 불구하고 구석자리에 팬티만 걸친 채 책을 펼친다 펼친다. 그것은, 그것은 나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야기였다. 작가는 파블로 파블로. 집으로 돌아와서 검색을 하다가 맥이 만든 영화를 알게 됐고, 콜린이 연출한 연극도 보러가기 위해 일정을 잡고, 폭스와 수잔과 딩맨이 보고 싶어졌다 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나는 전설적인 테너가 부르는 토셀리의 세레나데를 들었다 들었다.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어떻게 해서 파블로를 먼저 만났다 만났다. 그런데 그런데, 파블로는 그 파블로가 아니라 바로 내가 알던 파블로의 아들이었다 아들이었다. 이런, 젠장! 뭐시여, 그게 다야?
과연 이렇게 쓰면 재미있을까, 재미없을까? 개연성 빵점에 억지 설정의 미친 공상인가. 아름다움은 너무 멀리 있고, 사랑은 어렵기만 한가. 순수를 논하고 행복을 노래하자 라면서 우유와 카스테라빵보다 성적 판타지에 대한 헛된 몽상은 무슨. 몹쓸 상상은 그만두자. 그러니까 그렇게 쓰면 재미있을까, 재미없을까? 잘 모르겠다. 일단 모르니까 낙서나 끄적거려봐야겠다. 그러는 게 좋겠다. 그래야 한다. 미지의 세계가 혹시 내게 손짓할지 모르지 않는가. 누드 수영장은 천국이 아니고, 답답한 도시도 지옥이 아니다. 우리가 자주 들러야 할 곳은 NC와 술집이 다가 아니다. 괜한 시적 감흥 때문에 나는 가장 가까이 있는 신낭만주의를 외면했다. 우리 동네의 세 가지 명물말이다. 산 속의 나룻배, 동네 입구의 테트라포트, 들판의 대형 컨테이너. 떠나자 사랑하자 머머해라, 응석도 이젠 지겹다. 그러나 그 어떤 새로움은 항상 궁금하다. 어디로 갈까 무엇을 할까. 만날 사람은 없다. 점쟁이는 다 약장수로 보인다. 그나저나 하워드한테 둘 중 하나는 내놓으라고 따져야겠다. 요트를 헐값에 넘기든, 소설 J를 어떻게 썼냐고 혼자만 아는 창작 아카데미에 나도 제발 데려가 달라고. 이제 나도 꽃집이나 찻집을 운영해보거나 아니면 여행가가 되야 하는 걸까. 아직 조류 대백과 연구도 미진한데 그건 과욕이다. 나는 마침내 혼자 있을 때 다변이 됐고, 과찬을 꿈꾸게 됐다. 빈말도 덥썩 믿어버릴 테다. 언제 어떻게 얻어걸릴지 모르니 과작도 사양하지 않겠다. 환상감 과잉이다. 늦잠, 만취, 일중독 뭐 하나 중간이 없구나. 나는 대관절 언제나 열화와 같은 갈채와 환호와 응원에 손사래를 치며 부담스러운 칭찬이라며 겸양을 뽑낼 수 있을까. 이참에 아예 목표를 미녀에서 선녀로 바꿔 볼까. 아니다. 나는 무지개 너머에 뭐가 있는지 이미 다 알고, 저 하늘의 구름이 솜사탕이 아니란 것도 안다. 조증과 수다쟁이와 카리스마 넘치는 사나이를 만나면 그분의 용모를 감상하고 열정에 영향을 받고 기쁘고 좋긴 한데, 기나 빨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심지어 그분들은 일절 생각도 없는데 나 혼자 친해질까 말까 고민 먼저 하다니,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는 건 여전하네. 잘 하는 짓이다. 내 이럴 줄 알았다. 그러지 말고 이러는 게 낫겠다. 연필 한 자루와 고급 만년필과 새하얀 종이가 곱디고운 공책 두 권을 사는 게 좋겠다. 하나에는 연필로 사랑의 시를 쓰고, 다른 하나에는 만년필로 환상소설을 쓸 수 있도록. 그렇다고 꼭 그것이 천 번 만 번 고민하고 결심한 사안은 아니란 거. 뭘 해도 어차피 둘 중 하나인 것 같다. 개구멍 아니면 뻔트. 바이브레이션이냐 샤우트 창법이냐 처럼. 배부르게 욕을 좀 듣더라도 차라리 뻔한 열린 결말로 갈 걸, 하면서 나는 후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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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은 19살에 화실에 다녔고, 20대에 화성학을 독학했고, 지금은 소설을 쓴다. 그래서 그는 다재다능함의 부재를 확인했다. 잔재주가 꿈이 되거나 취미가 직업이 되면 때로는 가난과 싸우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병마와 다툴 일 없는 튼튼한 육신 하나로도 행복일 테지만, 그러면 삼류에서 위로 올라가기보다 아마도 호객꾼에게 넘어가서 비싼 술을 마시게 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그게 다 어렵게 열리는 지갑 때문이다. 잔재주는 있고 큰-재주는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중구난방식 글쓰기가 조금은 뭉크의 사춘기를 좋아하는 홍조 띈 소년의 낙서와 닮았기 때문이다. 홍조? 여드름이나 주근깨가 차라리 낫겠다. 소년보다 소녀가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이때 해결책은 세 가지다. 실은 한 열 가지쯤 되지만 왠지 세 가지라고 해야 멋지다. 그것은 살면서 습득한 진리였으니까. 그 세 가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 가명을 짓는다. 가명만 지으면 그 다음부터는 일이 알아서 술술 풀리고, 행운이 제발로 굴러올 것이다. 물론 원래 화사하다는 악의 꽃 같은 호박한테 잘못 걸려서 험악한 모험으로 막연한 낭만의 기대에 대한 몸값을 톡톡히 치러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작부터 겁 먹을 필요는 없다. 묘한 기시감일지, 뻔한 속임수일지, 무엇을 만나게 될런지는 몰라도 마주치는 현안들을 현명하게 차근차근 대처하면 그만이니까.
둘째. 저 일 한번 해 보면 어떨까 싶은 호기심에 이끌려 취직을 하고, 한 달만에 때려치는 것. 이건 모범적인 답안도 아니고, 묵묵히 제 맡은 일을 하시는 분들께 폐를 끼치는 일이다. 딱히 권장할 만하지 않다. 허구에 나오는 전형적인 영원한 청춘 그 주인공의 인생 경험에나 어울릴 듯 한 방안이다. 차라리 흡족한 기분이 드는 최저가를 면하는 속옷을 잘 골라 구입해서 입는 게 훨씬 나은 일이다. 그게 생산적인 일이고, 저건 심각한 부작용을 불러올 수 있는 방법이다. 똑같은 형식이 반복되는 것. 게다가 그것은 무능을 부르고, 무능은 지루함과 심심함을 동반하며, 계속해서 무기력과 권태가 차차 등장할지도 모르는 철없는 공상에 불과할 것이다. 이 둘째는.
셋째. 앞뒤 보지 말고, 들은 적도 본 적도 없는 이상적인 환상을 찾아 떠나는 방법이 있다. 이 셋째의 인기는 가장 항구적이고 어중간하긴 하나 호평을 부르는 안전한 방법이다. 그것은 부귀영화로도 복락으로도 변할 수 있고, 유복한 쾌락을 불러올 수도 있다. 그러나 많은 경우 여행의 즐거움은 역시 집이 좋구나 라는 빈축을 사기 쉽다. 그래서 이 셋째의 나중 발생할 혐의는 진부하기 때문에 여독은 감안해야 할 것이다.
단지 척의 일상은 그게 다였나? 다가 아니면! 그는 집에서 문장 구조와 접속사와 어떤 어휘가 사용되고 문체는 어떠한가를 파악하며 책을 읽었다. 그리고 지금은 초여름이니까 실내 수영장에는 가지 않았다. 거긴 한겨울에 가야 한다. 뜨거운 해변가는 노을이 번지는 저녁에 이상한 나라의 미남들이 나타난다는 현지인의 귀뜸이 유효하듯이. 그 외에 금요일은 고독했고, 토요일은 약속이 없었다. 일요일은 말할 것도 없었다. 다가오는 7월은 무계획이었고, 20대의 애틋한 사랑은 연애를 안 해 봐서 잘 모른다. 마술사의 모자 속에서 무엇이 나올지, 설마 마술사 자신이 제일 놀라게 될지 그 결과에 대한 기대와 궁금증은 이미 버린지 오래됐다. 따라서 그는 이제 그녀를 찾아서 떠나면 그만이었다. 확실한 즐거움과 미묘한 신비와 뜻밖의 기쁨과 악마적 새로움은 물론 천사의 아름다움까지 모두 내포하지 않았을까 궁금한 그녀를 만나기 위해서. 천당이 원하는 모습일 꺼라는 증거는 없는 것처럼 그녀가 허당임을 입증할 예감이 적중하는 것은 이제 시간 문제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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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척은 떠나지 않았다. 떠나면 돌아와야 하니까. 게다가 떠나야 하는 곡절이 영 신통치 않았고, 그 기분이 변하지 않는다는 확신도 턱없이 부족했다. 신낭만주의를 그리워할 수도 창시할 수도 없었고, 발칙한 에로 비디오를 보는 것도 이젠 지겨웠다. 안 본지 오래됐다. 앞으로도 보지 않을 것이다.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 그렇다고 삶에 대한 기성의 운율을 깨트릴 수는 없는 일이고, 미지의 꿈을 꾸거나 미완성 환상에 대한 글을 쓰고 싶다고 그게 마음대로 되는 일도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엑셀 파일을 하나 작성했다. 왜냐하면 그는 어떤 사랑이 언젠가 시작될 때 엑셀 파일을 하나 만들어서 기억을 기록했고, 증거를 수집했으며, 그것이 쌓이는 것을 보며 희열을 느꼈고 환희에 즐거워했으며,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추억 만들기와 가 봐야 할 장소를 세세히 입력하면서 사랑과 사무를 결합시켰던 그 짜릿한 경험이 꽤나 특별했기 때문이다. 또 하고 싶어졌다. 비록 내용은 다를지라도. 그는 어차피 젊은 날 카페에서 사과 마크 은색 노트북을 펼쳐놓고, 한 잔의 커피를 마시며 소설을 쓰다가, 창밖을 한번 보고 카페 안과 밖의 여자들을 물색하며 눈요기하는 것처럼 보일지는 몰라도 어디까지나 예술적 착상을 골똘히 호명하는 일은 못해봤다. 때문에 백조가 아닌 보라빛 소도 아닌 마이크로소프트 엑셀 파일이라는 평범함으로 독보적인 춘몽을 만드는 데서 유별난 애착과 각별한 기쁨을 느꼈고, 이미 그것을 예술로 연결시키고 싶어 했다. 실패해도 그만이었다. 부담은 없었다. 즉석 복권을 슥슥 긁어서 꽝-되는 기분쯤은 감수하기. 그건 오히려 원초적 본능과 탐미적 욕망에 가까울 것이다. 척이 엑셀 파일을 가지고 놀기 얼마 전에 특정 소셜 네트워크를 살펴보니 다른 사람들도 다 그랬다. 변론은 엄살 논거는 투정이고, 핑계는 일상에 공상은 취미였다. 맞다. 그것은 새로운 취미였다. 취미가 일이었고, 구미에 썩 어색하지 않았다. 그림의 떡을 동경하는 생기발랄하고 싶은 성미에도 군말없이 알맞는 경우에 해당하는 일이었다. 생기발랄하고 싶은? 척은 본인이 생기발랄하고 싶다기 보다는 생기발랄한 애인과 놀고 싶었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끝까지 생기발랄하면 곤란하다. 그 정도 조증은 무척이나 피곤하다. 생동감은 좋지만 기가 빨릴 수 있다는 것이다. 틀리는 풍문에 의하면, 으로 넘어가면 쓸데없는 얘기가 길어질 수 있으니 어쨌든 척이 엑셀 파일을 가지고 무엇을 했는가에만 집중하자.
그는 첫째 칸에는 각각 이름을 입력했다. 척, 햄릿, 밀러, 듀발, 마샤, 스펜서, 루시, 게스, 쾨헬 그렇게. 그리고 첫째 줄에는 그가 무엇을 좋아하는가, 잘 하는 건 무엇인가, 사람의 장르는 무엇이고-를 기록했다. 그래서 어떻게 됐을까? 나중 봐서 성과가 뚜렷하면 그건 베스트셀러일 테고, 좀 더 가면 반짝이는 와인빛 유명인 생활이며, 작심삼일이면 딱히 이의없는 삼류일 것이다. 그렇다. 척은 엑셀 파일을 완성하기는 커녕 인터넷 국어사전으로 허영과 허영심을 검색해봤다. 심지어 학교 다닐 때 미술시간에도 그려보지 않은 자화상을 난생 처음 그려보기까지 했다. 뿐만 아니라 비발디로 시작했던 아침은 썩은 미소와 한숨과 커피포트를 부르는 저녁으로 이어지기 일쑤였다. 왜 그랬는지는 설명하지 않겠다. 이제는 인생과 친해질 때도 됐는데 아직도 몇 년 뭐뭐 몇 년 뭐뭐 라는 일반인의 일대기와 불화를 일으켜 다투는 중인 것만 같았다. 그 불화가 바로 예술적 원동력이라는 고견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 멋진 사랑과 건전한 도파민에 인상적인 낭만적 생활의 연속이냐, 코카인과 주색과 쾌락의 낙원과 애첩의 배웅이냐. 그는 전자도 아니고 후자를 누릴 위인도 못됐다. 누가 후자를 거저준다고 해도 거절할 것이다. 정말로? 넘어가자.
따라서 그는 달콤한 행복은 멀리 있는 것만 같아서 새로운 개성을 알게 되고, 행운의 마차에 탑승하기를 발견하기를 원했다. 그래서 그는 미궁에 빠져버렸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책꼿이에 있는 책에서 힌트를 찾기로 했다. 척은 미래생활사전을 펼쳤다. 그런데, 어머나! 그는 뜻밖의 비상금을 발견했다. 웬 횡재란 말인가. 일명 짱돈. 뜬금없는 거금이 책 안에 끼워져 있던 것이다. (딱!) 그는 양쪽 검지로 하늘을 가르키며 홈런 세러모니를 흉내냈다. 척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촉촉한 피치 코랄색 립스틱을 바른 숙녀들에게 인기 있는, 에메랄드빛 바다가 보이는 해변으로 떠나기로 했다. 거기서 밝은 다홍빛 컨버터블을 타고서 신나는 음악을 들으면서 마른 장미색 수영복을 입은 미녀들을 유혹하다가 새똥을 맞는 한이 있더라도 그곳으로 갈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낙원과 요정들이 어서 오라며 그에게 손짓했기 때문이다. 들린다 들린다. 쳄발로와 하프와 그녀들의 웃음소리가. 보인다 보인다. 고추 달린 요정으로부터 큐피트 화살을 맞은 숙녀가 내게 첫눈에 반한 표정이. 오오 가까이 가까이. 아아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워─워─워. 회전목마의 환영이 자꾸 떠오른다면 그것은 둘 중 하나다. 미완성 교향곡을 들으면 꿈을 꾸게 되는 몽상가냐, 현실 도피를 꿈꾸는 고독한 도시 생활인이냐로. 가서 어설프게 아가씨를 꼬시다가 우락부락한 상남자에게 제지를 당하고, 스타일 구겨지고, 그래서 능글맞은 남자가 된 것 같은 기분에 시무룩해질지라도 척박한 도시 생활을 탈피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더 이상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어떤 사람? 늦잠 자고 조퇴하고, 일하러 가서 눈치 보며 놀고 놀러 가서 적극적으로 일하는 사람. 그는 자유를 누리고, 꿈을 찾고, 인생을 즐기며, 행복을 노래하고, 욕망의 과일을 따며 사랑의 씨앗을 뿌리고, 애정의 설을 풀며, 기쁜 로맨스에 관한 황홀한 독백으로 즐거워 하는 중 살짝 지겨워 하는 연인들의 심금을 울리고, 불행한 사랑 때문에 상심에 빠진 숙녀들의 마음을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이는 일만 남은 것이다. 그는 매정함과 비정함, 무정과 슬픔의 그림자에 짓눌려 기를 피지 못했던 다정을 찾아 곧바로 꿈의 파라다이스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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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은 도착했다. 그곳은 말 그대로 쾌적한 기후에 분위기 좋고, 상쾌한 풍경이 일품인 여행지였다. 그러나 뭔가 심심했다. 멜로 영화나 하이틴 드라마처럼 가슴 뭉클하고 설레며 짜릿한 어떤 사연이란 것이 부족했다. 아니 전무했다. 발단 ─ 전개 ─ 절정 ─ 결말 가운데서 오직 발단만 있는 인생이었다. 내내 발단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자나 깨나, 재미있거나 지루하거나, 앉으나 서나, 밤이나 낮이나 언제나 내내 발단이었다. 이런, 그만그만. 아아 발단, 오오 발단, 그놈의 발단! 아무리 기다려도 아무리 바라고 애원하고 기도하며 시를 써도 전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전개부터는 장편소설이고 척의 삶은 발단이 전부였다. 그것은 시간이 지나가버리면 아무도 기억 못하는 뮤직비디오였다. 이런 젠장! 드라마 그거 다 뻥이구먼.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어른들은 모두 거짓말쟁이니까. 아마 사실주의, 극사실주의란 게 이런 게 아닐런지. 하긴 지금 세상에 프란츠 카프카의 작품이 뭐가 중요한가. 오히려 카프카의 철학은 알고 싶어하지도 않고, 카프카라는 상표만 난무하는 세상이다. 문학과 상업에 한 발짝씩 걸치고 있는 일부(!) 어른들 뿐만 아니라 소셜 네트워크에 올라오는 포스트와 댓글에서도 이미 옛날부터 응당 미래까지도 카프카는 하나의 고유 브랜드다. 일부? 그 일부가 아닌 사람을 한번 만나고 싶다. 제발! 그럴 것이다. 카프카의 잠자와 성을 살짝만 바꿔서 글과 영화로 만들어서 내놓으면 그걸로 잘 하면 평생 놀고 먹어도 될 만큼의 많은 돈을 벌 수도 있다. 지금은 그런 세상이다. 말은 쉽다. 실천은 어렵다. 바로 그래서 무난한 화제와 평탄한 선곡이 존중 받는 자리에서 유독 튀는 스타일을 수줍게도 감추지 못하는 돌아이가 있는 것이다. 인기 작가? 시시하다! 영화계 흥행 1위? 그만그만한 영화 일색일 때 중간 정도 영화가 개봉하면 개봉하자마자 1위다. 중간 이상의 역작이 나오기 전까지 단독 1등은 철저히 보장된다. 더더군다나 그만그만한 영화 일색일 때, 라는 조건은 어느 분야든지 해당되는 흔한 풍조일 뿐이다. 진짜 그렇다. 현실이 그런데, 질투의 반틈은 존경일까?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명성의 절반은 팝콘이다. 정말이다. 그 맛없는 팝콘이 괜히 인기 있는 게 아니다. 다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것이다. 이름까지 팝콘, 있다! 남의 이름 찬미하느라 허송세월 보내지 말고 내 인생을 즐겨야 한다. 그러므로 나를 알고, 내 개성을 파악하며, 내 고유한 취향을 다듬는 게 중요하다. 그 때문에 무턱대고 유행을 따르지 않고 일부러 남과 반대로 가는 사람도 있다. 뭐야 원점이야? 이러니 내내 발단이지.
척은 생각했다. 자기가 그동안 너무 집착했다는 것을. 그는 등고선보다 해안선을 편애했던 것이다. 본인이 무슨 1700년 전후에 활약했던 작가도 아니고 항상 혼자 다니면서, 나는 왜 발단뿐인가 전개는 대체 어디 숨어있단 말인가, 라는 투정이 지나쳤던 것이다. 그건 모두 욕심이었다. 벌써 능청이었고, 엄살이 지나쳐서 밉상쪽으로 기울었는지 감도 잡지 못한 것이다. 더불어 넉살마저 늘어버렸다. 맷집 좋기로 둘째 가라면 서러워 할 벌써 그런 원로라도 됐단 말인가. 개~뿔! 그의 블로그는 이미 과작이었다. 숫기도 부족하면서 원맨쇼가 웬 말인가. 응석, 개구쟁이, 앙탈, 모험, 전율감, 신비, 판타지등 이런 소문만 무성하고 실체는 없는 개념들에서 진정 졸업할 수 없단 말인가? 졸업할 수 없다! 어차피 입학한 적도 없으니까. 그러므로 그에게 필요한 것은 <머머해라> 라는 인문학 어조가 아니다. <나도>라는 순진함, <머머를 좋아해>라는 착함과 <머머 하고 싶다>라는 사교의 근간을 이루는 몸짓도 아니었다. 뭐는 뭘까 라는 문학론도 아니고, 픽션에 목마른 로맨티스트도 아닌 그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머머 하자>라는 명랑한 자긍심이었다.
따라서 척은 회심의 1타를 치기로 했다. 미워도 다시 한번일 수도 있고, 발을 뺐는데 빼자마자 그 주식이 대박이 났다더라 라는 미래의 선망을 현재의 측은함으로 대체한 희구일 수도 있다. 그는 여행지에서 인적이 드문 공원만 갔다 와서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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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른 공원에 도착했다. 야자수도 보였고 일광욕하는 애처가와 하루 1번 큰 개를 산보시켜야 하는 공처가도 만날 수 있었다. 척은 볼보 웨건에서 아이스크림을 꺼냈다. 맥주는 이제 지겹다. 꼬냑은 정떨어졌다. 당분간은 말이다. 센티멘탈 칵테일을 놓고 무슨 발포성 와인이 다 뭐란 말인가. 그렇다. 그는 차에서 흐르는 미뉴에트의 소리를 키우고, 오늘은 토요일이라고 생각했다. 아니다. 허니문으로 하자. 아니 아니 그보다는 이왕이면 3번째 혼인의 3번째 결혼기념일이 좋겠다. 뭔가 운치가 드높아보이니까. 상상이야 자유니까. 그는 멋진 이국적 정취를 마지막으로 구경하고 돌아갈 생각을 하니 왠지 자기가 미래-지향적인 예언가가 된 듯한 기분이 느껴졌다. 거울아 거울아, 열려라 참깨 같은 주문은 필요치 않았다. 유려한 전망, 더 볼 거도 없었다. 이제는 돌아갈 시간이다. 돌아가서 억지로 힘으로 유리겔라처럼 숟가락을 구부리고, 랜디처럼 염력과 예지력과 심령술을 연마할 것이다. 이제 그럴 때도 됐다. 서당 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 그는 아직 생활 형편마저 변변치 못했으니 무엇보다 그는, 일을 해야 했던 것이다. 그는 바로 집으로 출발했다.
그런데 언덕을 넘어서는 순간 그는 길가에 멈추어 차에서 내렸다. 왜냐하면 그는 육지에서 꼬리 같은 좁은 지형을 거쳐서 상쾌한 해변가에 도착했는데, 그 돌아갈 길이 모두 바다로 바뀌어버렸기 때문이다. 장난이 아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혼자 오지 말 걸 그랬나? 아니면 오히려 잘 된 일일까? 그때 그의 옆으로 웬 당나귀 한 마리가 지나가고 있었다. 이 당나귀는 동화 속에 나오는 그 당나귀일까? 서커스단에서 탈출했든 동화책에서 뛰쳐나왔든 어딘지 그 당나귀가 신기해 보였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올챙이와 개구리의 습성, 병아리와 닭의 특징을 모두 간직한 듯한 영험한 존재. 당나귀. 놀랍고도 기이했다. 설마 이건 어떤 상징일까? 뭐 전개가 시작됐다는 신호탄 그런 거?
어쨌든 척은 마을로 돌아가서 동네 아저씨에게 돌아가는 길을 여쭤봤다.
「선생님. 육지로 돌아가는 길은 언제 드러나나요? 원래 밀물과 썰물에 의해 나타났다 사라지는 도로가 예전부터 있었던 건가요?」
「네? 무슨 말씀이신지... 저는 세계의 끝, 그 바깥으로 한 번도 나가보지 못해서 잘 모르겠는데요. 형씨 혹시 외계인이슈? 길이 어떻게 생겼다 없어졌다 그러나요? 길은 길이죠. 그렇죠. 길은 길일 뿐이죠. 안 그런가요? 원 별소리를 다 듣겠네.」
척은 환상 속의 그대를 만나지는 못했고, 주말의 약속과 미래의 즐거움은 불투명했으나 대충 예감하고 있었다. 드디여 전개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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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전개라고 하면 발단에 이어 절정으로 가기 위한 중요한 고비라고 할 수 있다.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호기심을 고조시키며, 그 다음을 보고 싶고 알고자 하게 만드는 욕구를 증가시키는 것. 그것의 중요한 길목이 어쩜 전개일 것이다. 단, 척이 돌아가고자 하는 최소한의 노력이 수반되었을 때 전개는 비로소 유의미할 것이다. 왠지 그럴 것 같았다. 그러나 척은 돌아가기 싫었다. 굳이 틀에 박힌 생활을 벗어나고파 떠나온 것인데 벌써 돌아가라고? 그는 차라리 잘 된 일이라고 생각했고, 따라서 마침내 뭔가 상황이 재미있게 돌아갈 것만 같았던 척의 이야기는 절정이 아닌 다시 발단으로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하지만 아주 원점으로 돌아간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는 그곳 휴양지로 낙향하여 자리를 잡은 어느 문학 잡지에 취직했기 때문이다. 그곳은 미스테리 장르 문학 잡지였고, 척은 호텔 바에서 혼자 술을 마시다가 거기서 잡지사 편집장을 사귀게 된 것이다. 편집장은 즉석 해서 척의 블로그를 보자마자 영입 제의를 했고, 척은 휴양지에서 용돈이나 벌고 놀다 일하다 또 놀아볼까 하는 마음에 흔쾌히 스카웃 제의를 수락한 것이다.
이쯤 되면 멋진 영화 같은 삶인가는 몰라도 삼류 소설의 소재에 관하여 썩 불이익일 것 같지도 않고, 지금부터 펼쳐질 새로운 인생의 기대가 그다지 불만족스럽지도 않았다. 응당 부도덕한 생활도 아니었고, 환상과 현실의 불균형을 해소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듯한 예감은 그를 살살 자극하고 있었다. 새롭게 펼쳐질 잡지사 직원의 인상에 대한 부담감도 적었다. 편집장은 매우 너그로운 인물로써 그가 척에게 원하는 것은 오직 성과 하나였기 때문이다. 성과-지상주의 뭐 그런 개념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래서 향후 척은 뚱딴지 같은 인터넷 삼류 기사와 탐정소설과 추리소설 서평들을 수집해 적당히 단편소설을 주기적으로 제공했고, 터무니없는 추측성 기사들을 기고했는데, 편집장은 한마디로 매우 흡족해 했다. 게다가 적지 않은 원고료에 회사 차 페라리를 아예 가져가서 타라는 특급 대우까지 받게 되었다. 성명이 페라리에 본명이 에르메스인데 딱히 형편상 이름만 그런 분께는 대단히 죄송하지만, 뭐랄까 페라리 타 보니까 별거 없었다. 페라리는 그냥 페라리였던 것이다. 아, 그가 블로그에 올리는 단편-중편 소설을 고정 연재하는 것 외에 간혹 짧은 기사를 기고했는데 그 단문은 보통 이런 제목을 달고서 잡지에 실렸다. 페루 나스카에서 발견된 외계인 미라... 진위 논란.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척의 인생 3막 4장에 해당하는 일시적일지도 모르는 행운의 일상이지만, 만약 이것이 그가 나중 쓰게 될 판타지 소설이라고 가정하더라도 뭐 하나 제대로 갖추어진 게 없는 낭패를 면할 수준은 되었다. 일단 궁핍한 가난을 모면할 주급과 페라리가 있었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위한 인물, 사건, 배경이 모두 갖추어졌기 때문이다.
첫째, 인물. 척 본인과 편집장에 회사에서 친한 형씨 1명에 현지인 둘, 거기다 곧 있으면 도시에서 척을 만나기 위해 급파될 척의 친구 햄릿도 아마 출현할 것이다. 더더군다나 여행을 온 걸출한 작곡가 마샤와 작사가 루시, 사진작가 게스, 호텔 사장 (남자 이름인데 여자인) 쾨헬까지. 그만 하면 괜찮았다. 실제 현업에 종사하고, 실존 인물이며, 타락했다거나 인격이 심하게 의심스럽다거나 그러지 않았고, 뭘로 봐도 뭐 하나 썩 빠지는 게 없으니까 그만하면 사정 나쁘지 않았다. 큰 흠은 없었던 것이다. 엄중한 현실이지만 허구라고 하더라도 작가의 심기를 건드릴 일은 전혀 없는 수준이었다. 독자의 반응은 모르겠고. 심지어 숙녀들은 5월의 신부가 따로 없었고, 남자들은 음성이 테너와 바리톤이고 쉽게 말해 여자들의 눈길을 끄는 인물들이었던 것이다. 오히려 번잡한 대화는 불필요할 것만 같았다. 아, 그리고
둘째, 배경. 언제 어디에서? 드라마를 보는 관객의 현시점인 지금, 소설을 읽는 독자가 사는 평화로운 시골 마을. 도시라도 상관없다. 다음으로
셋째, 사건. 어떤 신비한 소동이 발생하고 기발한 모험과 사랑과 우정과 불가사의한 갈등이 비밀을 풀어나가면서 흥미로울 것인가, 재미없을 것인가! 그것은 차차 팔짱을 끼고 순순히 웃을지, 선선히 말지를 결정해야 할 것이다. 부득이한 경우 도저히 작품 가치가 없다면 척은 잡지사를 그만 두고 돌아가면 그만이다. 용케 돌아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블로그라는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에 탄식하면 어쩌나 적어도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았던 것이다.
자, 독자가 재미있을지 작가 자신이 뒤통수가 가려울지 그 승부의 결과가 은근히 기대되지 않으신가? 그것은 지루한 유원지 생활일지 구경꾼으로써 흥미진진한 사건들을 어깨 너머로 훔쳐보기만 하다 말 것인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었다. 누군가 한쪽은 재미를 봐야 할 텐데, 가난한 애인에 싫증난 여자 같은 이야기가 펼쳐지지 않기만을 바라는 속삭임이 어디선가 들리는 것만 같구나. 어차피 예고편 같은 인생 사는 일이 심심한데 값싸고 서글서글한 촉망이라도 품어보시지 않으실런지. 왜냐하면 둘 중 하나의 가능성은 결코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초장에 잡아야 한다더라, 또는 점잔 빼다 좋은 기회를 놓쳤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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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적 글의 형태는 크게 4가지. 첫째, 짧으면 역피라미드형. 둘째, 기승전결의 최소 분량이 필요하면 피라미드형. 셋째, 길면 모래시계형. 넷째 사다리형. 그렇다면 글이 아닌 말은 보통 어디에 해당할까? 당연히 1번 역피라미드형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아는 게 많은 데 비해서 인내심은 약하기 때문이다. 뭔 말은 뭔가 있는듯이 커다랗게 부풀려서 시작하고, 본론은 훨씬 줄어든 다음, 결론은 요만~하게 끝난다. (사석이라면, 에게~ 응애~!) 헤드라인이 거의 전부다. 아 정말이지 그게 뭐냐고! 그러게 말이다. 바로 거기서 진공청소기냐 커피포트냐로 나뉘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허구는 어떠할까? 우선 허구가 무엇인가를 알아보자. 허구는, 요컨대 허구는 거짓말이다. 진짜 같은 거짓말, 진짜일 수도 있는 거짓말, 가공된 실재, 마술적 사실주의 또는 그 반대. 허구의 보너스로는 과장과 허풍이 있다. 때문에 사실적 글의 형태보다 거쳐야 할 단계와 형식이 더 많다. 물론 더 어렵다. 사실적 글이 남자라면 픽션은 여자에 해당된다. 이론은 그렇다. 남자는 비교적 여자보다 단순하다. 0이냐 1이냐 같은 컴퓨터 언어처럼. 비교적! 그러나 여자는 덜 단순하다. 픽션이 그렇다. 목표 ─ 현실 모순 ─ 결여 ─ 행동 ─ 결말. 즉 성공이냐 실패냐! 아아 거쳐야 할 단계가 많다. 왜 전문가들이 똘똘 뭉쳐서 작심하고 만든 작품들이 대체로 기대 이하일까? 왜냐하면 거쳐야 할 단계가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던가, 형식을 철저히 지켰더니 지루해서 그만 관객을 모두 꿈나라로 보내버린다거나, 10년에 1번 나올까 말까 한 작품을 만들려고 했으나 만 명당 딱 1명만 마음에 쏙 들 정도로 관중의 구미가 까다롭고 다채롭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재에 이르러서 작품의 총량도 어마어마하게 축척됐다. 대충 보면 다 안다. 예술가의 머리 꼭대기에서 관객이 그런신다. 어디 잘 노나 보자, 라고. 진짜 그런가는 모르겠고. 심지어 사랑이 인생의 전부라고 자신있게 말하기 난해한 것처럼 예술품은 내 생활의 품위를 높여주고, 기쁨을 안겨주며, 감동의 물결을 불러오지만, 그보다는 예술을 향유하는 대중의 입장에서는 예술 작품이 기실 피로를 풀어주는 오락물에 더 가깝다. 솔직히 그렇다. 상업은 일단 일이고 공부며 소비재다. 그것은 먹고 사는 생사의 문제다. 그것의 성공과 실패를 즐기는 것은 놀이고 경험이며 인생이다. 그 가운데 예술이 있다. 알고 보면 위치 애매하다. 창작자와 애호가, 업자와 소비자의 매개체로써의 예술은 그래서 대중 예술과 순수 예술로 나뉘기도 한다. 그런데, '너 일할래 놀래' 라고 물어보면 둘 중 하나만 답해야 하듯이 전위나 진보나 고난위도는 몰라도 <전형이냐 파격이냐>에서 하나는 골라야 한다. 어중간하면 인생 모호해진다. 만약 그에 대한 재주꾼이라면 그것은─전형적이냐 파격적이냐─선택의 문제이기 때문에 복선과 암시를 제시하여 목표부터 결말까지 그 중간을 데칼코마니처럼 딱 접어서 어떤 새로움을 만들 수도 있다. 가능하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시계 토끼를 만나야 하는 스타일도 있다. 여자가 다수인 자리에서 남자를 옹호하면 그런다. 남자 편드는 거 보라고. 작가의 문체가 A유형이냐 B유형이냐, 아니 무엇보다 작가편이냐 독자편이냐. 사람들은 인생관을 정하고 기도를 드리며 사랑을 열망하며 살기도 하지만, 하루종일 놀고 인생을 즐긴 다음 일기는 나중 한꺼번에 몰아서 쓰는 개구쟁이도 있을 것이다. 왜 없겠나. 은근함 대 확실함의 비율이 어느 쪽이 높냐에 따라 이성이 선두냐 감성이 이끄느냐, 의 관건이 될 수 있다. 문학 잡지 미스테리아의 편집장 밀러씨가 괜히 척에게 회사 차 페라리를 편히 이용하라고, 그 애마를 어여삐 애용하라고 한 게 아니다. 차를 좀 아는 사람들이 하는 말로 페라리는 감성이자 여자고, 포르쉐는 이성이며 남자라고 한다. 절반은 농담이고 말장난이겠지만, 절반은 일리 있는 얘기다. 밀러가 의도적으로 페라리를 제시했을지 순전히 우연일지는 불확실하다. 그러나 나중 그 불분명한 계기가 필연성과 개연성과 전개와 절정을 모두 불러올 수 있는지는 바나나 껍질을 까듯이, 패를 뒤집어 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야 헛된 꿈과 없는 복선과 엄한 상징에 대한 억측을 종식시키고, 겨우겨우 건질 반전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현실 모순이 무엇이고 결여와 행동은 어디 있는가는 제쳐 두고 오직 단 하나, 딱 하나만 하면 된다. 도대체 전개가 언제 태동할 것인가만.
7
어이쿠! 다시 숨어버렸던 전개가 나오셨다. 척의 친구 햄릿이 등장한 것이다. 햄릿은 척에게 돌아가자 했고, 척은 햄릿에게 난 여기가 좋아 라고 했다.
「그런데 햄릿. 너 여긴 어떻게 알고 왔니? 내가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알았어? 그리고 이곳으로 오는 길은 사라졌는데...?」
「하나씩 물어 봐 이 친구야. 첫 번째 질문이 뭐였지, 내가 여기 어떻게 왔는가? 하워드가 요트로 날 이곳으로 태워다 줬어. 여기에 가 보면 흥미로운 일이 있을 거라고 했는데, 난 지금 알게 됐지. 하워드한테 속았다는 것을. 그리고 척 네가 여기 있는 걸 어떻게 알았냐고? 몰랐어! 어떻게 알기는 뭘 어떻게 알아? 만날 거라곤 상상도 못하다가 널 만나니까 놀랐지. 그게 다야. 또 마지막 말이 뭐였드라... 이곳으로 오는 길이 사라졌다고? 그게 대체 뭔 얘기니? 응?」
「아, 아니야. 모르면 그냥 알려고 하지마. 너무 많이 알면, 안돼. 어차피 이곳에서 그걸 아는 사람은 나 밖에 없고, 그걸 입증할 근거도 없는 데다가 별로 중요한 일도 아니니까. 그럼. 그런데 어때? 여기 살아보니까 재미없지? 하지만 어떡하니, 난 재밌는데. 난 여기가 좋아졌거든!」
「왜? 초현실적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여자라도 만난 거니?」
「그러지 말고 너도 그 자크 넥타이는 풀어서 던져버리고, 사랑의 찬가를 부르며 근처 어딘가에 존재할지도 모르는 비밀의 숲을 찾아보렴. 아니면 우리 회사에 취직하던가.」
척과 햄릿은 말 그대로 평범한 휴양지에서 우연히 만났다. 그들은 친구였고, 그들은 서로를 100퍼센트 신뢰하지 않았다. 그냥 그랬다. 햄릿은 혼자서 놀기 위해 관광지를 둘러보러 떠났고, 척은 문학잡지사 미스테리아로 갔다.
그는 미스테리아 사무실에 도착했다. 직원들은 모두 단체로 소풍을 갔고, 그러므로 사무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척은 함께 가지 않았다. 사무실에서 척은 편집장의 방에 들어가서 푹신한 의자에 앉았다. 다리를 책상에 올리며 거만한 자세를 취했고, 그는 편집장 밀러를 흉내냈다. 대충 따라하니 시늉이 어설프지 않았다. 실재와 똑같지는 않았으나 따라한 사람은 꽤나 재미있어하는 듯 했다. 척은 밀러의 책상에 앉아 자신의 노트북을 켰다. 그리고 파일 미스테리아를 열었다. 미스테리아는 미스테리와 히스테리아를 결합한 용어였다. 그는 엑셀 파일에 기록했다. '미스테리아에서 첫 만남'이라는 A4와 '햄릿'이라는 C1이 만나는 지점인 C4 칸에 날짜를 입력했다. 그것이 필생의 염원을 이루어낼 기회의 전조일지 아니면 그냥 척의 최근 취미일지는 몰라도 자신의 주변 일을 모두 기록하니 뭐니 해서 작품의 제재를 구하는 것처럼 보였다. 엑셀 파일 미스테리아가 나중 진가를 발휘하면 좋은 거고, 그것이 제값을 해내지 못해서 고단한 노동에 지나지 않는다 할지라도 척은 싱글벙글 웃으며 무언가 희뿌연 꿍꿍이를 도모하는 것만 같았다. 그때 편집장실로 미스테리아에서 척과 친하게 지내는 직원인 듀발이 뛰어들어왔다. 척은 깜짝 놀라서 긴장했다.
「척. 여기서 뭐 해요? 우리 편집장 못 봤어? 아 글쎄 밀러 그 인간이 어디 갔지? 소풍 가서 감쪽같이 사라져버렸다니까. 꼬마도 아니고 본사에 일 안하고 맨날 놀러다닌다고 확 보고해버릴까?」
아마도 밀러가 또 지병이 도졌나 보다. 편집장 밀러는 간혹 정서가 메마른 것 같은 감성에 휘말리면 낯선 여인을 따라가는 습관을 버리지 못했던 것이다. 그 숙녀가 하녀일 수도 있고, 연극배우나 평범한 여행자일 수도 있을 것이다. 기상천외한 사건도 황홀한 모험도 없는 일상, 어쩌면 밀러는 직업 의식이 투철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척은 어쩐지 앞으로 자기가 편집장 밀러를 직접 찾아나서야 할지도 모른다는 어떤 상투적 운명이 느껴졌다. 아니 정말로 페라리까지 받았는데 사무실에서 높은 성과에 비해 제일 한가한 자신이 나서지 않는다면 그것은 정말로 도리가 아닌 듯 여겨졌다. 만일 그 곡진한 사연을 잘 캐내기만 한다면 이 미스테리아 같은 환상문학 잡지를 자신이 새로 창간하든가, 아니면 아예 거대 인터넷 기업처럼 이곳을 통채로 사버릴 만한 부와 명성을 안겨줄 장편소설의 주제를 직접 체험할 가능성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닐 것이다. 왠지 예감이 좋았고, 어딘지 모르게 참을 수 없는 기대가 느껴졌다. 그에게는 이제 밀러 찾기라는 새로운 목표가 생긴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척은 밀러가 어디 사는지도 몰랐다. 성급하게 친해지기는 했지만 아직 모르는 사정이 많았던 것이다.
그는 그날 숙소로 돌아가서 좋은 방법을 떠올리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 그러나 괜찮은 아이디어가 쉽게 떠오르겠나. 그래서 척은 단골 술집 모던 클래식으로 놀러가게 되었다.
8
그는 회사 동료 듀발과 마샤를 불러냈다. 바 모던 클래식으로. 그는 이미 눈치를 챘기 때문에 미스테리아 엑셀 파일에 기록해뒀다. A6에는 비밀, E1은 듀발 E6는 '마샤를 염탐중', F1은 마샤 F6은 '듀발을 향한 연정이 뜨거움'이라고. 척은 사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으나 작은 기대는 확실히 있었다. 듀발이나 마샤가 뭔가 솔깃한 정보를 내놓을 것이라고. 하지만 바에서 그들과 얘기하면서 산통은 깨져버렸다. 그것도 와장창! 왜냐하면 바텐더 스펜서도 이미 아는 일을 자기만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편집장 밀러가 최근 객지에서 굴러온 웬 햄릿이란 작자와 삽시간에 친해졌는데 그들이 무슨 요트를 타고 유람도 다니고, 골프도 치러 다니며, 한참 브로맨스의 열정을 과시하고 다닌다는 것이었다. 더구나 그건 꽤 믿을 만한 정보통으로부터 습득한 정보도 아니고 이 일대에 모르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고 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내일 밀러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출근할 것이라고 했다. 그것은 어떻게 보자면 상스러운 징조였다. 척의 심경은 더없이 착찹했다. 미스테리아 문학잡지 편집장이 미스테리에 대한 소명을 종식시키면 안되는 거였다. 그건 착란이자 절망이었다. 새로운 전개에 대한 신념은 차갑게 식어버렸다. 화색이 돌던 안색은 냉소를 불러왔다. 미스테리아 독자님들께 다 면목이 없었다.
순간 마샤가 척에게 야심찬 회유인지 은은한 빈말인지 구분이 퍽 까다로운 마음에도 없는 말을 던졌다.
「그러지 말고 이참에 척 오빠가 새로운 편집장이 되면 어떨까? 괜찮은 생각 아니니, 듀발? 밀러 그 인간 그 자리에 너무 오래 있었잖아!」
「그래도 밀러...가 최고지. 우리끼리 농담으로 뭐라 뭐라 해도 어디 밀러 만한 물건이 흔하니? 안 그래?」
척은 이별가라도 부르고 싶어졌다. 발단으로 시작해서 발단으로 끝나는 게 자신의 운명인 듯 느껴졌다. 피식-하며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건 명백한 비애였다. 전혀 마음이 없다 하더라도 최소한 멍석은 깔아줘야 예의 아닌가? 아닌가 보다. 허세와 허풍과 허당에 이어 허식과 허위까지 들고 일어선 상황인 듯 했다.
척은 그날 집에 가서 K.334번을 들으면서 엑셀 파일에 뭔가를 입력했다. A7에 친교라 썼다. D7에 역삼각형 표시. E7에 삼각형을 썼다가 지웠다. 왜냐하면 어차피 듀발과 마샤는 사랑의 드라마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바텐더 스펜서에게 들은 얘기가 생각나서 하워드에게 전화를 걸어봤다. 받지 않았다. 햄릿에게도 전화했다. 받았다. 그런데 햄릿은 몹시 퉁명스럽게 왜 전화했냐고 투덜거렸다. 그처럼 삐딱하게 나올 것까진 없는데, 척은 그게 아마도 새로운 우정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맞다. 그는 친구를 뺏긴 것이다. 우정의 순위가 바꼈다. 그는 찬밥 신세였다. 문학 잡지 편집장 밀러에게. 그것도 두 명씩이나. 그 인간이 괜히 인심 쓰는 척 하면서 누군가에게는 열렬한 신앙일 페라리를 건넨 게 아니었다. 다 계획된 수작인 듯 했다. 뭐 이성과 감성? 고전 문학 제목도 아니고 그는 결국 비애와 애수와 비창을 느끼고야 말았다.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었다. 사정이 딱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페라리를 타며 해안 도로를 질주하다 해변에서 일광욕을 그것도 차에서 하며 사람들의 부러운 눈빛을 모른 체 했는데... 희극은 악몽으로 급작스럽게 조바꿈을 한 것이다. 이게 말이나 된단 말인가? 된다! 우정은 가고 오는 것. 사랑은 이별로도 권태로도, 친구에게 빼앗길 수조차 있는 것. 그는 차분히 하이든의 C장조 미사를 들으면서 이 고등한 인연의 얽힘을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 그럴 수 밖에 없었으니까.
9
다음 날 척은 페라리를 타고 휴양지 일대를 샅샅이 뒤졌다. 처음에는 그냥 작품의 소재를 포착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작한 둘러보기였다. 그러나 우스꽝스럽게도 예술적 격정은 뭔가 신경 쓰이는 추측으로 바꼈고, 그것은 다시 사무치는 추론으로 변했다. 뭐랄까 그 염치없는 추론은 마침내 정탐으로 귀결되고야 말았다.
그는 발견했다. 푸르른 공원에서 소풍을 즐겁게 즐기고 있는 세 친구를. 그는 다가가지 않았다. 단지 쌍안경으로 먼발치서 밀러와 햄릿과 뭐야, 또 한 명은 누구지? 아! 초호화 요양원 원장인 쾨헬이었다. 그는 흔들린 우정을 예단하지 않았다. 달랑 한 장면을 가지고 우애를 속단할 만큼 그는 속 좁은 남자는 아니니까. 다만 이 예증을 잡지사 출판인 즉 대빵에게 투고할 생각을 굳힌 것이다. 나중에 어떤 결과가 펼쳐질지는 모르지만 그가 정말 간곡한 통사정을 어딘가에 했나 안했나는 아마 본인만 알고 있을 것이다.
아무튼 척은 사랑에 일가견이 있지는 않았지만, 우정을 한두 번 겪어본 것도 아니지만, 그 일은 그냥 대수롭지 않게 넘기기로 했다. 그만큼 척이 마음의 그릇이 크기 때문일까? 아니다! 그 영문은 따로 있었다. 그날 척이 휴양지를 돌고 또 돌며 뭔가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휴양지와 육지를 연결하는 다리였다. 새 연륙교. 그가 여기 당도할 때 왔던 경로와 얼추 비슷한 위치인 듯 했다. 고로 그는 자신이 전에 썼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뜻밖의 거금이 생겨서 먼 곳으로 떠났고, 안락한 호텔 생활을 이어가다가, 어느 숲 속을 거닐었는데 안개 낀 그 이상한 느낌의 길을 따라갔더니 자기가 살던 도시의 폐쇄된 놀이공원이 나왔다더라 라는 이야기. 그것은 단순한 습작이었는데 그것이 지금 역으로 재현되는 듯한 기분은 결코 묵인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그날 밤에 숙소에서 꿈을 꾸었고, 자다가 몽정을 했다. 꿈의 내용은 어렴풋했고 잘 기억나지 않았지만, 전혀 야하지 않았다. 오히려 순수했고 거의 동화나 다름없었다. 하긴 전에 비슷한 경험이 있었더랬다. 과거 어느 때던가 그는 타임 패러독스 ((2014)란 영화를 보았고, 그날도 그는 그날 밤 뒤척이며 선명하지도 또렷하지도 내용이 기억나지도 않는 꿈을 꾸었고, 신기하게도 몽정을 경험했다. 전혀 색정과 관계없고 호색과 무관한 꿈이었다. 꿈을 꾸긴 꾸었나 아리송한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는 그때 당시 아 정말 이럴 수도 있구나 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정말 신기한 경험이었다. 와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지? 옛날 인상적인 체험을 했는데 기억을 못할 리는 없고, 아마 척은 그것이 그때 난생 처음 겪은 일이었다. 당시 그는 생애 처음으로 그런 일을 겪었을 것이다. 그것은 누가 뭐래도 놀라움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그런 일을 겪는 기회는 결코 흔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 놀라운 일이 다시 일어났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다음 날 고민에 들어갔다. 미스테리아에 남을 것인가, 말 것인가를. 페라리를 계속 탈 것인가, 키를 반납할 것인가를!
10
하루는 이랬다. 척은 단골 술집 모던 클래식으로 갔다. 보기 드문 명-바텐더 스펜서와 독대하며 향후 자신의 거취에 대해 논하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모던 클래식에는 스펜서 홀로 어느 잡지를 읽고 있었다. 음악은 영화에 나올 법한 잔잔한 노래가 나오고 있었고, 묵음으로 다큐멘터리 동물의 세계에서는 치타와 하마와 돌고래와 딱따구리의 움직임이 보였다. 그는 남자니까 아마 여성잡지1이나 여성잡지2를 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면 스펜서는 남성잡지를 읽고 있을까? 설마 문학잡지 미스테리아를? 척은 그 궁금증을 다소곳이 아껴두기로 했다. 목마른 열정은 가슴 벅찬 감동을 불러오기도 하지만 적지 않은 경우 싫증이나 실망, 썩은 미소를 불러오기 때문에.
척은 스펜서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스펜서와 말이 좀 통한다는 것을 척은 느꼈던 것이다. 스펜서는 인생 경험도 풍부하고, 사람들과의 인연도 적당하고, 여자도 알고 게다가 채털리 부인의 사랑을 경험했으며, 허풍과 허식과 허세의 배경이 되어 박수치며 반짝반짝 호응하며 장단을 맞춰주는 기술은 물론 교양과 상식이 모두 어느 선에 도달한 인물이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자세한 대화 내용을 옮기지는 않겠다. 단지 스펜서의 고향 친구들 세 명이 바에 들어와서 스펜서가 어떻게 변했나에 집중해보자. 그럽시다. (박수 한번, 양 손바닥을 맞닫아 슥삭슥삭)
요점은 척과 바텐더 스펜서, 스펜서의 친구 1─2─3, 그들은 모두 무난하게 웃고 떠들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래서 척은 반 발 앞선다고 또 스펜서 띄워주기에 들어갔다. 살짝 진행됐다. 조금 몰입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스펜서의 표정이 뭔가 거북한 듯 보였다. 척은 눈치챘다. 스펜서가 수탉 무리에서 암캐와 관련된 앙앙대는 영웅담은 그다지 노출시키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석하자면 상황은 이랬다. 바텐더 스펜서는 놀러온 친구들 1─2─3 때문에 바텐더 역할을 척에게 넘겨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보통은 남자 세계에서 내가 나서지도 않았는데 타인이 날 띄워주면 웃어야 정상이다. 이때 비웃으면 비정상이다. 그때 하수는 좋아하고, 고수는 상대의 의중을 간파한다. 립서비스가 왜 싫겠냐마는 이미 분위기가 말랑말랑해졌는데 그것이 지나쳐도 모자라도 부자연스럽다는 것, 어린애들 사이에도 그 정도 사회적 식견은 아마 없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척은 정상, 스펜서와 그의 친구들은 비정상이란 말이 아니다. 그 역은 성립하냐 역시 증명할 필요없다. 왜냐하면 한쪽은 어린이 한쪽은 철없는 어른, 그렇게 나눌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사안에 대해서 혹자는 아시는 게 많기 때문에, 무엇보다 말이 많기 때문에 경솔한 판단을 내리실지도 모르겠다. 그분께서 촌닭이 아니시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경솔한 행동이지만 적어도 그분은 촌닭이라는 골-세러모니를 받지 않기만을 바람. 즉 옆사람 말을, 라디오 사연을 얼핏 듣고서 이를 권력 관계랄지 콤플렉스 때문에 빚어진 일이라고 인지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스펜서가 만약 바텐더가 아니었다면!> 라는 연설의 목소리가 커지는 일도 가능다는 것. 어설프거나 상황 뻔해 보여서 '뭔 말인 줄 알아' 그렇게 말하거나 유추하면서, <만약-그러면>이라는 조건문으로 이미 설명을 끝냈다가 뒤늦게 낭패를 본 사례, 아마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막판 반전은 바로 그 전형적일 수 밖에 없는 추리 같은 추측을 노린다. 베테랑 가수의 신곡을 듣고 베테랑 가수는 일부러 새로운 창법을 선보였는데 지나가는 말로 목소리가 갔네 전성기가 지났네 라고 하는 것처럼. 그러나 그런 사례도 있긴 하겠으나 이 경우에는 누가 갑이든 을이든, 누가 주인이고 손님인가가 문제가 아니다. 최소한 지금은 역할에 따라 오해가 발생할 수도 아닐 수도 있는 상관관계보다, A라는 원인 때문에 결과 B가 발생한다는 인과관계를 전제로 하는 말이 아니다. 왜 그러냐 하면 척은 똑같은 상황을 옛날에 친구 사이에서도 겪었기 때문이다. 척과 척의 단짝, 단짝의 시골친구 1─2─3. 그렇게 만났을 때도 척은 단짝의 친구들과 바로 남자 대 남자로써 말을 놓고 그렇게 수 차례 만났다. 그랬는데 똑같은 일이 발생하더란 말이다. 그래서 녀석 친구들 1─2─3이 없는 자리에서 둘은 속을 터놓고 얘기했다. 척의 단짝이 말을 꺼냈고, 척이 답했다.
「1─2─3이 있는 자리에서 그런 얘기를 하면 어떡하냐, 내 이미지는 뭐가 되냐! 애들이 날 뭐라 보겠니.」
「1─2─3이 무슨 여자냐? 걔들 남자잖아! 그 친구들은 고추가 달렸지 가슴이 나오지 않았다고. 우리 친구들 사이에서는 그게 곧 미덕이다. 그런데 왜... 그게... 하여간 미안하게 됐다. 내 잘못이다. 내가 주의하마.」
척의 친구들은 난봉꾼, 달변가, 모험가, 탕자, 영화배우감, 도박사, 개그맨, 마당발, 신비주의자, 술꾼, 게임광, 스프리트파이터, 재력가 지망생, 예술 애호가 가운데 최소 대여섯은 겸직한 상남자였기 때문이고─범생이는 어딨어?─그러므로 척 단짝의 친구는 몰라도 척의 친구는 좀 남라서 그건 간혹 현현되는 일인 듯 하다. 오해라는 게 보통 그렇다. 법률 용어인 유권해석, 입장 차이 형편 차이, 딜레마를 불러올 수 있는 상황, 허세와 허영의 주파수가 일치하는가 라는 불문율(왜냐하면 허세와 허영 지수가 양측이 대략 근소한 차이를 보일 것이다는 불문율을 전제로 의사 소통이 이루어지기 때문), 상대적인 문제보다 개인적 문제인가(내가 지금 행복하니까 미래지향적인가, 내가 지금 바닥이니까 어떠한가, 내 성공과 또는 타임머신과 밀접히 관련되니까 정치적으로 접근해야 하는가, 교양미를 앞세워 문화 차이를 인식하고 말을 줄이는 게 먼저인가)등. 이와 같은 객관적 지표 그것에 대한 이론과 실제는 누구나 알지만 이론대로 이성이 감성과 감정을 모두 제어할 수 있는가, 그건 누구나 그럴 것이라고 장담하기 어렵다. 고로 앞날은 모르고 장담하는 건 자유니까 장담해도 좋다만, 다만 판돈은 걸지 않는 게 현명하다. 바로 그래서 잘못된 건 잘못된 거다 라는 문제 제기 정도의 베팅이 올인 만큼의 시간을 잡아먹을 수 있는 모순은 드물게 현존하기 때문에, 가난의 문제 역시 곧 시간을 갉아먹고 어떤 기회가 줄어들 가능성이 발생할 소지가 있다 라는 부조리는 과거보다 미래가 적고, 따라서 그것을 역이용하는 일을 줄여가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리고 언제까지나 현재에 해당하는 일이다.
예를 들어 친한 친구 적게는 3명 덜 적게는 7명의 친구들이 술집에 들어간다. 일렬로 바에 앉는다. 비싼 술에 대해서 물어만 보다가 값싼 술을 시킨다. 변죽만 울리고 실속은 챙긴다. 살 듯 말 듯 간만 보다가 카페 피카소 사장으로부터 외상값 독촉 전화를 받는 것보단 그게 차라리 낫다. 그들은 적당한 목표가 없기 때문에 말수를 아낀다. 바보도 아니고 남자끼리 있는데 들뜨겠나 어쩌겠나. 꽃밭인 줄 알고 나이트클럽에 갔는데 순~ 촌닭과 촌년 뿐이더라, 1차 실패에 슬퍼하지 않고 2차 시도, 10시 방향 양 한 마리 2시 방향 고양이 한 마리 나타나면 둘 다 놓치지 않으려면 실력 발휘를 해야 할 텐데, 바로 그래서 힘을 아껴야 한다. 좀처럼 보기 드문 왕성한 정력의 소유자도 있긴 하지만. 어찌 됐든 그렇게 술잔을 들고서 깔짝깔짝 홀짝거리는데, 그런데 누가 먼저 나서서 묻는다. 이처럼 적막이 깨트려지는 순간 우리 남성들의 눈빛은 살아난다. 핑~! 질문의 요지는 이렇다. 우리 가운데 누가 제일 돈이 많아 보이냐고. 왜 하필 그걸 물어봤냐고요? 왜냐하면 다른 질문들도 많겠지만 핸디캡을 고려해서 그것이 그나마 제일 무난한 질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앞에 있는 언니는 참 속도 없다. 순전 허당 같다. 사정 참 딱하게 됐다. 그녀는 왕년에 좀 놀았을까? 놀았거나 말거나! 좌우지간 그 언니가 수트 입은 범생이 스타일을 점찍었기 때문에 딱 한 명 빼고는 모두 절망하고, 울분을 터뜨리며, 수증기의 열기가 분출된다. 오오 절규! 가련한 예술가이자 가난한 삼류 로맨티스트의 끝없는 추종자에 지나지 않는 게 뻔히 보이는 데도 불구하고! 그러면 어떻게 될까? 어떻게 되긴 뭘 어떻게 되나! 그럼 난리난다. 바로 그 순간 분란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와 별개로 뜻밖의 인기상을 거머쥔 지존은 이래야 한다. 원 별말씀을! 푸하하하하하하, 으하하하하하하, 음하하하하하하! 겉으로 말은 하지 않지만 이분은 숙녀의 눈썰미를 속으로 칭찬한다. 겉으로도 칭찬한다. 그러나 비싼 술을 시킬지는 두고 봐야 한다. 그녀는 안목 있는 여자인 것 같다. 아마도 글귀도 밝을 것이고, 교양미까지 겸비했기 때문에 어머 어머 그녀가 그녀가 예뻐보인다. 큰일이군. '계단을 올라갈 때는 남자 먼저, 계단을 내려올 때는 여자 먼저'가 예의지만 그 반대로 갔기 때문에 어떤 파릇한 기억이 있었던 것이다. 제발로 굴러오는 호박마차에 누가 타게 되는 것일까? 그분은 신데렐라다! 날 찍은 그녀가 뭘 좀 아는 거지. 킥킥킥 크크큭큭큭! 하지만 한 명의 진공청소기가 있으면 나머지 친구들은 커피포트다. <이것 봐요!>로 시작해서, 저 꽁생원이 뭘로 봐서 그러냐고, 난 살면서 단 한 번도 쟤한테 저 쫌팽이한테 뭘 얻어먹어본 적이 없다는 둥 뭐라는 둥. 즉 내가 나서서 <내가 최고다> 라고 하지 않은 상태에서 제3자에 의해 일시적인 공인으로 권위자에 등극되고, 표면적인 왕좌에 누군가 어쩔 수 없이 앉게 되면 보통은 으쌰으쌰 들고 일어나야 정상이다. 왜냐하면 상남자는 그래야 하니까. 왜냐하면 뭐니 뭐니 해도 친하니까. 그런데 스펜서의 반응으로 봤을 때 그 친구들은 스스로 나서지는 않았어도 어떻게든 돋보이고 반짝이면 그건 자기들 사이에서는 미덕의 반대 급부인 것 같았다. 그분들 1─2─3은 잘들 논다 그러면서 편안히 듣거나 아니면 나서거나 그러지 않고 뭔가, 뭔가 이상했다. 스펜서는 반대로 친구들에게 안 좋은 심상으로 찍힐까 봐 꽤 걱정하는 눈치였다. 그건 곧 부정적인 영향이 크다는 거였다. 그러므로 그것은 도시 대 시골의 특징이 다르듯 다만 접고 꺾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발생하는 사소한 딜레마에 봉착하는 것이자, 대상이 불분명한 텃새가 발생하는 현상인 듯 여겨졌다. 주로 구사하는 어휘가 표준어냐 사투리냐 외국어냐, 아니면 하이브리드냐. 여자냐 남자냐. 이성이냐 감성이냐. 막 대해도 편하고 친하고 재밌냐, 격식과 예절이 필요하냐 또는 배려하지 않는 게 최선의 배려가 되는가. 그 차이였다. 척은 스펜서의 친구 1─2─3을 아직 잘 모르니까 적응할려면 시간이 좀 필요했던 것이다. 스펜서는 누가 뭐래도 명백히 허세 지수 50인 호인이다. (허세 지수 95나 5도 괜찮음. 다른 부분에서 감점을 메꾸니까. 일장일단 있음) 생색을 너무 내도 불편하고 너무 안내도 영 재미없는데, 스펜서는 그것마저 50이었다. 그래서 그는 꺾고 접고 나섬과 물러섬과 기다림을 아는 남자다. 말로는 탕자도 됐다가 남을 영웅으로 치켜세우기도 하고, 으쌰으쌰로 분위기를 몰아가서 일부러 자신이 꼴찌가 되는 기술 역시 탄탄했다. 사랑에게는 믿음직스러웠고, 우정에게는 든든했다. 일면식 없는 남아들에게도 두둑한 지갑 만큼 덕망도 두터웠다면 말 다 한 거다. 그러나 문제는 스펜서의 친구 1─2─3이 있다는 것이었다. 스펜서는 정체성의 혼란을 느낀 것이다. 그가 명-바텐더인가 아닌가, 는 따질 시기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척은 곧바로 말수를 줄였다. 척의 그 환영 받지 못할 어설픈 쇼맨쉽은 누구 하나 옹호하지 않는 위임에서 가로소운 역위임으로 변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많이 시무룩하지는 않았으니 나름 선방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때부터 스펜서의 친구 1─2─3의 순박함이 돋보이기 시작했다. 이마에 홀로그램으로 글씨가 나타나는 게 보였다. 나순정이라고. 뒤통수에 666 바코드가 있는가는 확인해보지 않았음. 한 사람의 기호가 앵무새고, 선호하는 생활 방식은 부엉이일 수도 있다. 그가 오리건 까마귀건 그는 나중 성장 환경에 큰 영향을 받는다. 현대 사회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도시다. 쉽게 말해 도시 대 시골을 8 대 2라고 봤을 때, 인생의 전-전반기 곧 생애의 발단을 어디서 보냈냐에 대한 미세한 차이가 있다. 여자는, 숙녀는 그런 섬세함을 아는 남자를 좋아한다. 그것에 더해서 부드러움까지 알면 금상첨화고. 그러나 알기만 하는 건 좀 다르다.
결론은 스펜서의 친구 1─2─3이 밀고 댕기는 뽐내고 겸양을 부끄러워하고 먼저 예찬하는 흥정의 묘미에 약간의 불편함을 느낀다는 것이다. 허풍과 허세와 허영과 익살, 질투, 농담, 욕망, 소원, 찬사등을 왔다 갔다 하는 웃음의 복마전일 수도 있는. 그분들은 대화의 방식이 달랐다. 웃는 시점도 달랐다. 그분들은 착하고 선량한 사나이라서 변화구에 대처하는 자세가 뭔가 약간 부자연스러울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어른들은 세상을 아니까 대부분 이런 사례를 직접 겪었다. 최소한 알거나 보고 듣기라도 했다. 가령 (지역별 차이 감안하고) 결혼식을 앞두고서 피로연에 신랑될 남자가 친구들을 부른다. A부터 E까지. A는 사립 유치원 친구들, B는 시골 동창, C는 도시의 전-직장 동료 D는 뭐 E는 뭐등. 어른이니까 만나서 일부러 다투지는 않는다. 화목하게 웃으면서 시간을 보내고 싶어한다. 철없는 어디 악동이 아닌 이상은. 친해지기 전에는 서로 조심하고, 각자 교양과 예절을 지킨다. 친해지는 것도 단계가 있다. 처음 만나 호감을 느껴서 영원히 호형호제할 것처럼 전화번호를 교환하고, 소셜 네트워크 친구를 맺는다. 으쌰으쌰! 그런데 보통은 그 해맑게 웃는 약동감, 오래 못간다. 인정이 있는데 돌아서자마자 잊지는 않지만 사느라 바뻐서 보기 힘들다. 그럼 그런 인연이 한둘일까? 아니다. 계속 쌓이고 쌓인다. 기존의 최측근 친구도 개인 형편에 따라 만남의 횟수가 들쑥날쑥한다. 단짝마저 바뀐다. 다시 피로연으로. 그런데 분위기가 이성을 뒤흔든다. 으쌰으쌰! A와 E가 다툰다. 보통은 그러다 만다. A와 E는 화해했다. 그런데 B와 C는 쉽사리 그치지 않는다. 왜냐하면 분위기도 좋고 열도 좋으니까. 따지고 보면 잘못한 쪽은 없다. 그런데 오해는 이해가 아닌 논쟁을 넘어 소란으로 발전한다. 다 무리에서 통용되는 질서와 불문율이 약간씩 다르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다. 찻집에서 앉아 있는 남자와 서 있는 여자는 남남이다. 그날 처음 눈빛만 스친다. 그런데 눈빛 한 번에 말썽이 생긴다. 목소리가 커진다. 그래서 사전에 알아서 눈 깔고 굽히는 게 편하다. 차라리 그게 낫다. 그런데 아예 남남이 아니라 지인이나 친구 사이에 오해가 생긴다? 상대적으로 한쪽이 굽히는 게 보기 좋다. 최근 시련에 빠진 쪽 보다는 먹고 살 만한 친구가. 눈치가 둔한 사람보다는 빠른 사람이. 인기가 많거나 돈이 풍족한 쪽이. 꽃 들고 쫓아다니는 남자? 그보다는 고양이가 선호하고, 꽃과 양과 호박이 첫눈에 호감을 느끼는 쾌남아가. 속 좁은 남자 < 범인 < 대인배가. 무엇보다 이런 성격의 다툼에 대한 유경험자가. 그리고 여자보다는 남자가!
여기서 인문학적 소양을 짚고 넘어가자면 이렇다. '친구들을 만나면 주로 뭘 하고 놀았냐'에 따라 <단순히, 친했냐 한때 어울렸냐>로 나뉘지만, 스무 살 이전에 학교를 도시에서 다녔냐 시골에서 다녔는가 역시 한 사람을 아는 데 좋은 지표가 된다는 것. 스무 살 처녀가 촌년일지라도 성장 배경만 봐도 최소 다섯 가지로 나뉜다. 도시에서 태어나서 계속 도시에서 살았냐 또는 시골에서 살다가 도시로 올라와서 학창시절을 보냈냐 곧 도시로 수렴됐냐가 첫째. 둘째는 시골로 수렴됐냐. 셋째, 도시와 시골을 폭넓게 전전했는가. 넷째, 도시와 시골이 문제가 아니라 국가 단위로 옮겨 다니며 살았냐. 다섯째, 기타. 그 시기에는 모른다. 인생의 발단일 때는 마음 맞는 친구와 노는 게 먼저다. 알아도 쉽게 넘긴다. 이해하고 싶어도 상대가 이해해주기를 바라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럴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자기 나이의 두 배, 세 배, 네 배를 앞으로 살게 되더라도 사랑에 대해서 친구와 사적 대화를 단 한 번도 나눠보지 못하리라고는 그 시절에는 쉽사리 예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학교라는 이론에서 사회라는 실재로 나가야 그 입장 차이를 진정으로 알게 된다고 할 수 있다. 정말 많은 경우는 단지 입장 차이 때문에 웃다가, 울다가, 오해했다가, 말은 안해도 미안해지고, 역시 말은 안해도 그냥 이 불편함이 지나갔으면 좋겠고, 겸연쩍어하고, 다시 웃고 그럴 수 있다는 것이다. 학문에서 상업으로. 공부하고 돈을 쓰고 육체적 사랑에 대한 팔팔한 호기심이 가득한 청춘에서, 일하고 돈을 벌고 조류 대백과를 경험으로 체득하는 어른으로 가는 여정은 꽤나 재미있을 수도 험난할 수도 있다는 것. 굳이 추신을 덧붙이자면 그렇다는 말이다.
따라서 척은 그날도 숙소에 가서 엑셀 파일 미스테리아를 띄우고, 새로운 내용을 입력하면서 색다른 기쁨을 누렸다. 그가 즐겁게 입력한 내용은 이랬다. A열 8행부터 밑으로 쭉 써내려갔다. 내적 부러움, 부러움의 표현, 허세, 허영, 허풍, 지적 매력, 인생 장르, 아는 체 하는 정도, 교양의 실천, 좋아하는 유행가, 분위기 갖추어지면 남 앞에서 생음악으로 부를 수 있는 추억을 부르고 향수를 떠올리게 만드는 3분의 마법을 부를 수 있는가(2절 3절 필요 없고 1분 동안 노래할 수 있는 로망과 용기를 간직한 낭만파인가. 왜냐하면 이 어느 때 필요한 것은 가왕의 재능이 아닌 분위기를 띄우는 작은 성의니까. 하지만 간혹 1번째 권하고, 2번째 보채고, 3번째 간절히 부탁해도 거절할 극소수가 누구인가 그것은 예측이 틀릴 수도 있음. 웃으며 춤추자 마시자 함께 하자, 아니다 아니다 난 싫다 난 싫다, 포기해라 포기해라 그만해라 그만해라, 아니다 아니다 포기 못한다 포기 못한다, 반복 또 반복, 이상한 지점에서 대결 구도가 발생하여 그러다 분위기 썰렁해질 수도 있음. 놀자 사랑해 청혼, 거절하고 빼고 응낙을 망설임. 시기와 행동의 적정선은 고정적이지 않을 뿐더러, 러브콜이 꼭 1 대 1로 질서 있게 대응할지도 의문임), 선망은 소망인가 대망인가 야망인가, 촌스러움이 언제 어떻게 발화되는가, 평판, 장밋빛 원맨쇼에 대한 반응 패턴 등등. 물론 본색과 심상을 빼놓지도 않았다. 그러면 몹시 섭섭하니까. 그런데 장본인이 설정한 인생 포지셔닝, 타인에게 비춰진 첫인상, 장본인이 누구 하면 뭐라는 본인에 대한 스타일이 마음에 들지 않아 재설정한 포지셔닝등을 모두 거쳐서, 딱 확립된 개인적 특징에 대해서 대체 척은 뭐라고 짧게 논평했을까? 그는 정말로 거기에 뭐라고 적었을까? 알고 나면 가슴이 찡할런지 눈물이 핑돌런지는 몰라도 속시원히 알아나 보자. 좋소. 그럽시다. 그게 뭐 어렵다고. 음, 잘은 몰라도 아마 이렇게 입력했을 것이다. 개상, 말상, 쥐상, 고양이상, 호랑이상, 원숭이상, 오리상, 펠리컨상이라고. 그렇다고 척이 유독 말상과 개상에 눈독 들였다거나 뭐 그러지는 않았다. 그래서 거기 등장하는 인물 가운데 개상과 말상은 오직 여자뿐이다? 난 그런 말 못하겠다. 내 입으로 어찌 그런 통속적인 농담을! 내 어찌 그런 상스러울지도 모르는 만담을! 선생, 한번 생각해보소. 감히 소신이 어떻게 그런 천박한 표현을 입에 담겠소이까. 아니 그렇소? 어~라! 정녕 못 믿겠단 말이오? 이거 이거 이 양반이 사람을 뭘로 보고 말이야, 어? 살살 녹여주며 귀공자니 뭐니 슬슬 아부할 땐 언제고. 보아 하니 우리가 몸의 대화로... 허허허 승부사인 내가 참아야지, 참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나 원 참! 안돼 안돼 안돼.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소이다. 허접하고 비리비리허니, 이래 봬도 내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가 않아 이 양반아. 내 별명을 알고 나면 아마 깜작 놀랄 껄? 더구나 한두 개도 아니야. 그러나, 해명하지 마쇼 형씨. 가만 보니 이분이 참 행복한 사람이구만. 신간 편허니 참 좋겄소. 내 구구절절한 설명일랑 바라지 않소이다. 음 열 좋고, 그림 좋네, 배짱도 있고. 거...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슥 훑어보고) 뭐 엉성한 듯 하지만 사연도 있어. 오늘은 운수 좋은 날이고. 은근 순정남이군 그래. (딱) 여봐라, 게 아무도 없느냐. 심히 무엄하도다. 안되겠다. 당장 거짓말 탐지기를 대령하거라. 어서. (뭐야 아무도 없잖아! 무언극이었어 상상이었어? 피한 거야 도망간 거야?) 에이~! 소네트를 읊고, 연가를 부르며, 고혹적인 낭자께 속삭여야 할 사랑 고백을 대관절 인체의 어떤 부위로 하는가를 설마 모르시지는 않겠지요. (상상 맞네 상상 맞아. 독백인 듯 하니까. 그래도 유령은 줄행랑을 쳤으니, 냉혹히 따져서 내가 이겼음! 그것도 압승. 승부사인 거 증명됨) ......(휴)...... 일부러 의도하지는 않았으나 그는 공연히 물의를 일으킨 듯 해서 어떤 숙연함마저 느꼈다. 이쪽에서 미신이 저쪽에서는 천명이 되는 일, 사람 사는 세상에 그런 게 왜 없겠나! 그러나 꼭 무겁게 생각할 사안은 아니고 드문드문 생기는, 미숙함에서 성숙으로, 낯섬에서 친함으로 향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소한 오해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내일 과일나무 씨앗을 구입할 계획을 세웠고, 사랑을 기도하며, 막연한 청첩장을 기다리기로 다짐하며 꿈나라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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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은 바닷가에서 페라리에 앉아 노을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자신의 휴양지 생활은 그저 그런 재미없는 드라마라고. 그건 걸작이 아닌 졸작이었다. 페라리 빼면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원래 사람들 사는 게 그렇다. 그래서 그렇게 페라리 페라리 그러는 것일까? 아마도! 그는 자신이 어느 중편소설의 주인공이라고 봤을 때 별다른 활약상을 선보이지 못한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에 빠져들었다. 사건이라고 해 봐야 휴양지 생활, 엑셀 파일 미스테리아, 문학잡지 미스테리아 프리랜서, 무슨 의도인지 감을 잡을 수 없는 편집장의 선처 즉 페라리. 그게 다였다. 돌아보니 아무 것도 없었다. 추적도, 모험도, 사랑도, 신기한 사건도, 아름다운 사연도 모두 전무했다. 완전 허상이었네. 친구 햄릿을 만난 것은 시시콜콜한 일상이지 소설에 나올 법한 얘기가 아니었다. 아, 편집장 밀러에게 빼앗긴 우정도 있었다. 우연히 정탐했다가 밀러와 햄릿과 쾨헬의 브로맨스를 알게 된 건 치졸한 시기에 지나지 않은 일이었다. 아 또 있다. 몽정! 뭔 사춘기 12살에 몽정기 소년도 아니고 부끄럽게 그게 무슨 소설의 소재란 말인가. 나 원 참, 맙소사! 또 단골 술집 모던클래식에 몇 번 들린 거. 스펜서의 친구들을 알게 된 거. 진짜, 정말로 페라리 빼면 아무 것도 없었다. 오 이럴 수가, 세상에나! 영화로 만들면 뭔 소리를 듣게 될지 뻔했다. 아아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그분들이, 정말로 그분들이 또 악평에는 꽤나 도가 텄는데 말이다. 대적하기 퍽이나 버겨운 상대들이 한두 명이 아닐 텐데 말이다. 페라리! 척의 미스테리아 시절은 나중 그렇게 기억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페라리 하나 밖에 없었다고. 좀 더 살을 붙여보면 어느 원숭이가 있었는데 녀석에게 에르메스 옷에, 디올 벨트에, 폴 스미스 양말에다 정점으로 페라리를 선사해서 선보인 단편영화 같은 시절이라고. 한 편의 촌극에 지나지 않았다고. 그 시절은.
척은 조바심이 일었다. 완전 초조했다. 거창하게 개봉 박두 짜잔~ 하며 출발했는데 영화는 조기 폐막을 기다리는 것만 같았다. 수익분기점에 턱걸이는 커녕 빛만 왕창 떠안은 기분이었다. 그는 뭔가에 쫓기는 느낌이 들었다. 그가 무슨 스티븐 스필버그 영화의 주인공도 아닌데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감도 잡을 수 없었다. 따라서 그는 깡총깡총 토끼가 되어 느림보 거북이라도 찾아헤매고 싶어졌다. 중편소설은 이대로 끝나면 안되는 거였다. 그렇다고 자신이 발명가가 되어 인생 역전을 이룰 수도 없었다. 로또 복권? 꽝이라면 신물이 난다. 그러면 뭐 패션쇼에 가겠나 누가 받아준다고 망명 신청을 하겠나. 척은 두 눈 똑바로 뜨고 반드시, 꼭 전개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없다. 촌각을 다퉈야 한다. 남은 필름이 촉박하다. 여행 경비도 간당간당했다. 서포터즈 조마조마에서 활동하다 변심한지 얼마나 됐다고. 꼭 필요했다. 전개가 절실했다. 초라해도 괜찮은 전개가 애달프게 그리웠다. 그러나 그게 다짐한다고 쉽게 뚝딱 생기는 심심풀이 땅콩도 아니라는 게 문제였다. 어떡하지, 어떡한담?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이제 그는 상습범이었다. 환상을 논하고, 사랑을 노래하며, 술에 취해 본 적이 한번도 없다느니, 싸워서 져본 적도 없다네, 마음만 먹으면 어떤 여자라도 10분이 다 뭐야 라며 허풍 대회 출전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인생은 말이다. 별거 없었다. 그의 삶은 그야말로 껍데기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황량했다. 왠지 모래 먼지가 나부끼는 듯 했다.
그래서 그는 최후의 보루, 엑셀 파일 미스테리아를 펼쳤다. 믿을 건 그거 밖에 없었다. 현재 그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마음을 굳혔기 때문이다. 페라리를 반납하기로. 미스테리아를 때려...그만두기로. 현지에서 사귄 잊지 못할 우정들과 작별하기로. 그러나 혼자 떠날 수는 없었다. 호호호호호, 하하하하하. 그에게는, 운 좋게 시원한 바람이 부는 푸르른 해변에서 일광욕을 하면서 꼬신 루시와 게스가 있었다. 루시는 작사가고, 게스는 사진작가였다. 남자 1명에 여자 2명이라고 이상한 생각은 사양한다. 아니 그건 작품에 해당하고 이건 현실이었으니 그는 뭘 고르고자시고 그럴 처지가 아니었다. 핑핑 설렁설렁 놀면서 술 좀 작작 마시는 딴전 피울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그는 엑셀 파일 미스테리아의 A열 29행에 글씨를 썼다. 로드 무비라고! 당연히 H29와 I29에 애첩1, 애첩2라고 썼다가 지웠다. 좀 더 좋은 명칭이 생각날 때까지 임시방편으로 일단 조수1, 조수2라고 썼다. 그는 두 숙녀와 함께 여행을 떠나기로 결정했다. 도시 사람들은 휴양지로 오지만 자기는 이제 돌아가야 했으니까.
다급한 마음에 새로운 여자를 꼬드길려다가 그녀들에게 예술적 영감과 낭만적 착상과 인상적인 추억을 안겨주기 위해 그는 루시와 게스를 선택한 것이다. 물론 루시와 게스도 그처럼 척과 똑같이 생각할지는 미지수였다. 아무래도 좋았다. 그는 코너에 몰렸기 때문이다. 회한을 남겨서는 아니되었다. 내내 놀고 미루고 또 놀다가 어쩔 수 없이 전개를 억지로 만들어내는 삼류 소설가의 숙명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할 얘기가 바닥났다면서 블로그에 공지문을 내걸 수도 없었다. 몇 명 되지도 않을 텐데 누가 본다고.
그는 일단 짐을 챙겨서 차에 탔다. 편집장 밀러와 미스테리아 식구들에게는 미리 조용히 떠날지도 모른다는 암시를 반복해서 남겼기 때문에 특별히 작별을 고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대신 밀러의 책상에 페라리 열쇠를 놔뒀고, 직사각형 종이에 슥슥 대충 남긴 이별의 인사말을 써서 접고 접고 접어서 고히 놓아두었다. 아 짐은 카프카 전집 2 꿈 같은 삶의 기록, 알베르 카뮈 전집 5편과 접이식 카약과 수영복, 망원경, 그외 몇가지 생활 물품 밖에 없었다. 그는 문학잡지 미스테리아와 술집 모던클래식의 중간에 위치한 빵집 <별들에게 물어 봐>로 작사가 루시와 사진작가 게스를 불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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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알베르와 프란츠라는 상표가 나왔으니 잠시 책에 대해 몇 마디만. 인문서적에서는 이렇게 분석한다. 기버와 테이커를 구분하는 결정적 단서는 말에 나타난다고. 증권 분석가의 평가는 보고서에 실린 CEO의 사진 크기와 거의 완벽하게 상관관계가 있다고. 그러나 언제까지나 그 법칙이 통용될 수는 없다. 창과 방패도 변하니까. 지난 패션계를 기억해 보자. 왜 이 얘기가 나왔냐면 남자는 볼록 튀어나오고 여자는 움푹 들어갔기 때문에 어떻다 그걸 말하고자 하는게 아니라, 학문과 상업이 만나는 지점에서 나타나는 당연한 특징이 하나 떠올랐기 때문이다. 특별한 건 아니다. 경향에 따라 겸손이, 시류에 따라 빼지 않는 적절한 자랑에 대한 익살을 1번으로 쳐주듯 유행이란 바뀌지만, 유행과 관계없이 변하지 않는 법칙이 하나 있더란 말이다. 그것은 무엇이냐면 다음과 같은 하나의 공통점이다. 즉 책에 대한 개인적 취향을 최대한 배제하고, 다양한 책을 단지 구경만 하고, 특정 부류를 선호해서 읽고, 꼬박꼬박 정기적으로 서점을 오래 방문해 본 결과 다음과 같은 법칙이 도출됐다. 책 표지에 나타나는 저자 사진의 크기, 책 표지 두께, 책 디자인과 마케팅이 차분한가 요란한가, 그 역시 브랜드의 타겟 연령층&소비층과 거의 완벽하게 일치한다는 것. 브랜드 슬로건과 포지셔닝이 전부 맞지는 않지만 대체로 적중한다는 것. 뭘로도 최고점을 찍고 싶은 작가의 마음, 책을 많이 팔고 싶은 업자의 기술. 전자와 후자가 협심했는데 만약 운까지 좋다? 그건 흥행 1위가 된다. 연예계와 음악과 영화도 똑같다. 최고가 되고 싶다 꿈을 성취하고 싶은 일관된 길을 가며 내 일이 번창했으면 좋겠다, 부인할 수 없는 선이다. 1차적 선. 왜냐하면 화려해야 살아남고, 튀어야 돋보이며, 진취적 원동력의 첫째는 무엇보다 긍지와 자신감이자, 먹고 살려면 뽐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그 역시 상도덕일 수 있다. 그러나 일단 사람이 많이 찾는 빵집과 아이스크림 가게는 쉽게 말해 베스트셀러다. 딱 중간이란 말이다. 그런데 거기에 우리의 백조가 납시셨다 라고 가정해 보자. 그래? 오오 생상스의 백조가 들린다 들린다. 어머나 뭐야 여기는 동물농장이네? 그분은 발길을 돌릴 수 밖에 없다는 거다. 그런데 백조만? 그럴 리가 있나! 연예인병이 있으면 너만 병이냐 나도 있다 라며 예술가병, 직업병, 지병과 일반인 예찬론도 스윽 고개를 내밀게 되어 있다. 요즘 한참 괜찮다는 나이트클럽에 들려본 다음에 그런다. 아 나 이런 뭐 언제는 100퍼센트라더니 순전 촌년과 촌닭 일색이더군 흥! 그런데 정작 그처럼 말한 당사자는 다름 아닌 촌닭과 촌년임.
자, 누구나 아는 포장에 대한 서론이 나왔으니 본론으로 발전시켜보자. 상업은 둘로 나눠본다. <첫째 자동차>, <둘째 책(지성)>! 첫째인 차는 로망과 기상과 상징성의 표상이다. 나를 대변하는 캐릭터다. 아름다운 숙녀를 만나기 위한 필수품은 아니지만 멋진 인생에 대한 출발점이 앞선다는 잇점은 분명 있다. 이왕이면 비싸고 멋지면 좋다. 그리고 둘째, 책! 지성과 흥취와 품격 있는 생활을 반영하는 것으로 한 사람에 대한 환유법에 가까운 개념이다. 누구 하면 뭐, 남자 하면 허세 여자 하면 허영 그렇듯이. 말이 그렇다는 거다. 여기서 첫째와 둘째 곧 1번과 2번의 차이점을 아는 게 중요하다. 1번과 2번이 어떻게 다른가, 바로 그것을 알아야 고수이자 권위자고 챔피언이다. 1번은 흔한 말로 페라리다. 괜히 앞서 페라리가 많이 등장한 게 아니다. 이미 낚였다. 페라리라는 밑밥에! 자, 페라리를 상상하자. 페라리가 뭔가? 돈만 있으면 못사는 사람이 없는 소비재다. 즉 말이다. 입이 있으면 말을 못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어디 있는가. 동물농장의 그 누구라도 정당한 금액만 지불하면 페라리의 주인이 될 수 있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롤스로이스는 아무한테나 팔지 않는다더라, 그런 철부지 꼬마들 사이에서 통했던 낭설은 모두 옛날 얘기다. 롤스로이스? 돈만 내면 당장 살 수 있다. 아예 롤스로이스 관련 주식도 살 수 있다. 현시대에 드물게 왕족도 있고 표면적으로 신분제가 있는 곳도 있지만 현대의 신은 바로 돈이다. 돈으로 사랑을 산다 못산다, 그런 말이 아니라 말이 그렇다는 소리임. 그러니까 지금 당장 한장의 복권을 사고, 내일은 가죽 점퍼를 사며, 내일 모레...쯤에나 시를 쓰며 사랑을 노래하자. 그러나 2번은 1번과 다르다. 2번은 말이 아니라 글이니까. 2번은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신분이고, 따라서 사는 동안 변할 수 없는 개성이다. 나는 취향인데, 타인은 안목으로 본다. 2번은 돌아온 바람둥이이자 우리의 톰보이다. 그 어디에 가더라도 타인에게 멋져 보일려고 책 표지가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존 업다이크를 반드시 들고 다니는 말괄량이 숙녀. 아무리 그래도 톰보이는 절대 존 업다이크를 좋아할 수 없다. 죽었다 깨어나도! 왜냐하면 그렇게 타고났기 때문이다. 그걸 취향-구미-성미라 부르면 편하고, 안목이라 칭하면 한쪽은 불편해 할 수도 있다. 신사 숙녀 여러분, 우리 한번 생각해봅시다. 촌닭 보고 촌닭이라고 하면 좋아할까, 를. 그것은 같은 답인데 어감에 따라 둘로 나뉜다. 하나, 좋아하겠나! 하나, 퍽이나 좋아하겄다! 시험할 필요는 없겠지만 아마도 긍정하기는 힘들다. 어쩌면 말을 꺼낸 사람은 좋은 의도 즉 진공청소기였으나, 말을 듣는 사람은 커피포트일 테니까.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그 시험에 들기 싫다. 왜냐하면 나는 지금까지 싸워서 단 한 번도 져본 적이 없으니까, 무패 전적에 손상을 가할지도 모르는 주사위는 던지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아웃사이더나 트러블 메이커 그 길을 유유히 고집하는 거, 절대 쉽지 않다. 역시나 촌년은 스스로 자신을 낮추면서 나 같은 촌년이 뭘 알겠니, 라고 하면 몰라도 옆에서 그분께 촌년이라고 하면 그 역시 어떤 유쾌한 반응은 기대하기 힘들 것이다. 속으로는. 그렇다. 1번 페라리는 돈만 있으면 개나 소나 양이나 늑대 모두 아무나 살 수 있다. 그러나 2번은 그럴 수 없다. 멋진 BMW 컨버터블? 돈만 있으면 당장 산다. 고급 가죽 점퍼처럼. 하지만 BWV? 그건 타고 난다. 1번이라는 피라미드 최상단은 후천적으로 성취 가능한 목표다. 그런데 1번으로 백조가 될 수는 있는 건 알겠는데, 2번으로도 백조가 되고 싶다? 못된다. 불가능하다. 그건 검은 백조다. 후천적인 백조다. 신화에나 나오는 불새라면 모를까, 선천적인 백조 무리에서는 후천적인 백조를 겉으로는 몰라도 속으로는 썩 달가워 할 수 없다. 아니라면 그건 거짓말이다. 물론 후천적인 백조가 돈이 더 많기 때문에 뭔가 우위에 선 듯 보이고, 더 유명하고, 인기도 더 높다. 이름만 백조일 테니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렇다. 1번 편의적 소비재는 만인에게 평등하고, 2번 지적 소비재는 그 공평한 정도가 꽤 애매하다. 후천적인 1번 백조와 타고난 2번 백조는 모임에서나 어울리면 모를까 쉽게 친해지기도 어려울 뿐더러, 역으로 몇몇 차이는 감안하고 인간이니까 조류 종류와 시대와 지역을 골라서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얼마든지 친구가 될 수 있다. 한발 나아가서 진입 장벽을 낮추어 막 제발 와 주라, 꼭 와 달라 하며 딱 러브콜을 보내면 적당히 서로 빈말의 품위를 높이고, 긴장감을 얼마든지 코메디로 연결시킬 수 있다. 왜냐하면 백조든 뭐든 인간은 모두 유인원이니까. 어떤 감독이 영화도 찍고 자기 영화에 자기가 나와서 막 횡성수설하는 것, 다 이유가 있다. 비교적 소수인 선천적인 2번 백조가 아닌 이상, 사람은 2번 책을 살 수는 있으나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좋아하며 사랑하듯 그것에 빠지기는 어려운 법이다. 소비재라는 1번과 신분이랄까 성향이라는 2번, 그 차이는 알면 알수록 오묘하다. 그렇다고 쉽게 속단하고 선입견에 따라 행동하면 간혹 곤란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는 법. 왜냐하면 침팬지, 사슴 같은 동물과 달리 사람은 그런 유형이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개새, 말양, 곰기린, 그처럼.
끝으로 종이 한장 차이 이론은 여기에도 적용된다. 과소비, 불합리, 허영, 허세. 이런 심리와 행동이 적당하면 좋다. 적당하다면 매우 유익하지 왜 나쁘겠나. 그런데 지나치다, 그러면 그 다음은 아 말 말자. 소망과 대망도 그렇다.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소년이 야망을 품으면 좋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소년이 성장하면서 인성은 팽개치고 야망만 이룰려고 한다면 그건 아아 답답한 일이도다. 그렇다고 소망이 나쁘단 말이 아니다. 시야도 있고 체급도 있고 어항 크기도 있고 환경도 있다. 뭐이? 종이 한장 차이가 아니라고? 1번 편의적 소비재인 자동차와 2번 지적 소비재인 책을 견주어 설명하여 진부해도 뻔한 전략과 미래 전망을 도출해냈다. 무엇을 좋아하는가를 알고, 좋아하는 일을 하며, 갖고 싶은 물건을 갖고, 되고 싶은 사람이 되라는. 그런데 뭐가 종이 한장 차이가 아니냐고요! 행복한 일하기와 돈독 올랐다, 가 종이 한장 차이가 아니란 건 알겠는데 그런데, 그러니까 뭐가 대체 무엇이 종이 한장 차이가 아니란 겁니까? 아하 OK! 1번의 성공에 대해 누구는 99번의 실패, 누구는 999번의 실패, 누구는 소 뒷걸음질 치다 한번에 쥐도 잡고 황금알을 낳는 거위도 챙겼다더라? 쉽게 말해 신의 한 수 같은 말, 혁신에 대한 실상과 허상, 썰을 풀고 씨를 뿌려 어떻게 과일을 딴다는 연애학의 이론과 실재 그 뚜렷한 인과관계. 음... 방법이라 방법. 혁신가와 사상가들께 감히 명함을 내밀 수는 없고, 요점을 말하자면 그건 본인이 찾아야 함. 왜냐하면 내게 최적화된 방법과 내게 최적화된 꿈, 행복, 사랑은 일반적으로 사람들끼리 비슷함과 동시에 서로 다르기 때문. 입력, 시도, 노력, 반복등 행운을 바라기 이전에 필요한 요소를 모두 알고 행하지만 앞을 봐도 희망찬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구요? 빙고! 그게 정상이죠. 그게 아니면 횡재죠. 쉽게 얻은 복은 잘못하면 쉽게 달아난답니다. 돈과 직결되는 1번을 쫓는 행마는 경쟁이 너무 심하죠. 모르는 사람도 하지 않는 사람도 없으니까요. 그렇다고 2번을 파고들어 고유한 나만의 스타일을 만든다? 그 역시 말은 쉽고 실천은 어렵겠죠. 그럼요. 그러면 쭉 봐 왔듯이 어른들처럼 그저 행복을 위한 복권을 산다, 연애를 해 봤는데 사랑은 아니더라, 꿈은 없거나 있어도 황당하고 자주 변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뭘 해도 재미없고 답답허다구요? 괜찮아요 괜찮아요. 왜냐하면 앞으로도 최소 10명의 바람둥이를, 적어도 1000명의 촌년을 알게 되거나 어쩔 테니까요. 평균 100번의 사랑이 기다린다구요. 길게 봐야죠. 그런데 알지만 잘 알지만, 맨날 내 꺼만 탐하는 동생이 밉다? 난 왜 항상 형의 옷을 물려입고, 언제나 형의 장난감만 물려받고, 괜찮은 무언가가 있다 싶으면 다 형이 뺏어가고, 친구를 부러워하며, 타인의 연애사를 궁금해 할 수 밖에 없는 겁니까? 그게 다 1번 페라리에 대한 열망 때문일 테죠. 네. 그렇죠. 그래서 2번을 통해 자신을 알라고 그렇게들 어른들이 입 아프게 말씀들 하시는 것이구요. 따라서 직접 경험은 한계가 있으니 그와 더불어 해야 할 일은 몇 가지로 좁혀지겠죠? 우정과 함께 사랑에 대해서 논하기, 2번 또 2번 언제나 2번, 2번처럼 어떤 뭔가를 하나만 하나만 또 하나만, 읽고 보고 듣고, 찾고 하고 포기하고 다시 반복, 일기, 블로그, 꿈을 글로 기록하기 같은 일들로.
하나 더. 오해가 어떻게 발생하는가. 복습할 필요가 있다. 숙녀가 말한다. 어딜 넘봐? 이에 대한 경우의 수는 네 가지다. 첫째, 넘볼 만 하니까 넘본다. 둘째, 명백히 넘보지 않았다. 셋째, 넘봐달라는 소리다. 넷째, 그녀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휴......) 첫째는 먼저 유혹했고 아무나 매혹하고 다닌다는 점. 화장을 평소와 달리 꽤 정성스럽게 한 날은 집에 일찍 들어가기 싫은 법이다. 당연히 억울하지, 꽃단장 하고 풀-메이크업을 했는데. 말하자면 본심은 선별적으로 심사하거나, 주목받거나, 칭송 받고 싶다는 뜻이다. 드물게 음... 어... 쉿! 어느 촌년이 그러는 거지. 오늘 좀 놀겠다며 마음 먹고 작심한 다음 화장을 한 후 나이트클럽에 갔어, 그런데 순전히 촌닭들뿐이 없네 아 틀렸다 틀렸어, 이런 젠장! 둘째는 남의 다리 피나게 긁는 일이다. 셋째, 넘보지 않으면 그녀는 슬퍼한다. 많이 억울하겠지. 왜 나 같은 미모의 아가씨를 가만 놔두냐고. 왜 꽃 들고 나를 쫓아다니지 않냐고. 왜 꽃 들고 집 앞에서, 학교 앞에서, 회사 앞에서, 날 기다리지 않냐고. 그런데 아 글쎄 세월이 지난 후에 내가 그 인간한테 속아서 이러쿵저러쿵, 잡은 물고기에게는 밥을 주지 않는다며 따따부따, 딱 3시간 동안 친구와 대화를 나눈 후 헤어질 때 자세한 얘기는 다음에 다시 만나서 하자고 한다. 넷째는 청자와 화자 사이에 오해가 발생한 경우다. "아침에 면도를 하거나 립스틱을 바를 때, 나는 어떤 종류의 사람을 만나기 원하는가?" 라는 거울 테스트 때문에 발생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스펜서와 스펜서의 친구들과 척이 겪은 일처럼. 그리고 다섯째부터는 여기서 다룰 주제가 아니다. 그건 월권이니까. 간혹 하위문화의 값싼 유희나 호기심이나 허영심으로 시작해서, '내가 너 이럴려고 만나니?'를 거친 다음, 장기적인 관점까지 넘어가는 일도 있을 것이다. 1번의 상상층에게 아주 당연한 합리적인 소비가 1번의 중상층에서 중하층으로 내려간 사람에게는 일시적으로 안 좋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1번의 하층에서 중층으로 올라갈 꿈을 품은 이에게는 똑같은 그것이 목표가 되기도 한다. 동기 부여가 다 뭐란 말인가. 종이 한장 차이 때문에 동기 부여 업계는 영영 해가 지지 않는 것이다. 동기부여업은 오늘도 또 내일도 여자의 마음과 코끼리의 날개 때문에 부흥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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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고? 왜 우리 셋이 함께 떠나야 하냐고? 왜냐하면 우린 꽤 잘 어울리는 트리오거든. 루시와 게스는 어쩌면 그런 유형의 여자야. 내 꿈은 뭐였다 라고 똑부러지게 말할 수 있는 사람. 반면에 난 그렇게 선언하지 못하지. 왜냐하면 난 꿈이 많았고, 쉽게 변했고, 이룬 게 없었던 데다 실은 꿈이 뭐라고 발설하기엔 너무 보편적이기 때문이지.
루시와 게스. 너네들 엄청난 비밀 그런 거 있니? 없지! 없겠지. 없을 꺼야. 너희처럼 청초하고 순수하며 아름다운 숙녀가 그런 게 어딨겠니. 바로 그 때문에 우리는 도시로 떠나야 하는 거야. 사람의 눈동자를 보면 알 수 있다구. 수많은 사람을 만나보면 무슨 신통한 재주가 생기지는 않아. 하지만 바로 그런 뭔지 모를 앞날에 펼쳐질 일을 알고 싶은 꿈과 동경심과 선망, 그런 것에 대해 장조인가 단조인가 그 정도는 보인다구. 영화 예고편이나 게임 출시 소개 영상을 보면 정말로 꿈과 희망과 미지의 세계에 대한 부푼 기대와 동경심을 멋지게 표현한 듯 하지만 실상을 알게 되면 뭐니? 뭐야 이거였어 이게 다야, 그거 잖니. 별거 없어. (딱) 그래서, 바로 그래서 우리는 떠나야 하는 거야. 어디로? 도시로! 젊음은 한적한 시골에서 노후 생활을 즐기듯 보내서는 안되는 거라고. 물론 여기가 좋긴 좋지. 물, 바람, 공기, 햇빛, 낙원. 또 있군. 정지된 듯한 시간까지. 그러나 번민과 갈등이 있어야 발전이 있는 법. 이 오빠가 그 길로 안내해주겠다는 말씀이야. 그렇다고 뭘로 변신할 필요는 없어. 어때? 갈꺼야 말꺼야? 선택해! 결정하라고. 단, 한번 정하면 번복은 안돼. 그럼.
아무래도 이 친구들은 크면서 가출 같은 거, 그런 거 한번도 안해 봤을 거 같은데. 맞지? 딱 보면 안다니까. 저 언덕 너머에 나타날 무언가가 알고 싶지 않니? 그것이 풋풋함일지 감탄사를 내뿜게 만드는 황홀한 경험일지, 젊은 날 열망을 품고 달려가서 한번 직접 확인해 봐야 하지 않겠니? 루시! 너 지금 사랑하는 남자 있니 없니? 없지, 없겠지, 없을 꺼야. 그래 잘 알아. 괜찮아. 게스! 기막힌 세기의 걸작 사진을 찍고 싶지 않니? 어? 어때? 오빠에겐 계략 같은 거 그런 거 없어. 그러나 계획은 있어. 오빠와 함께 도시로 가자. 그러자. 무작정 계획도 없이 떠나자는 게 아니야. 오빠와 함께 도시까지 가는 동안 우리는 몇 군데 이정표에 들를 꺼야. 그것은 무엇이냐? (검지 쉭-쉭-쉭) 첫째, 카지노. 둘째, 영화 촬영장. 셋째, 대학교. 자, 오빠가 설명해줄께. 눈 똥그랗게 뜨고서 잘 들어보시게.
1번 카지노. 응? 카지노 하면 뭔지 모를 얽히고 섥킨 드라마 줄거리가 연상되지 않니? 내용은 딱히 떠오르는 건 없을지라도 말이야. 응? 안 그래? 거기서 루시와 게스가 가위바위보를 하는 거야. 이긴 사람에게 오빠가 최고로 멋진 남자를 소개시켜주지. 절대 실망하지 않을 꺼야. 그럴 리가 있나! 그럼, 흐흠. 오빠가 너네들 입술을 빼앗겠다는 게 아니야. 그런 거 아니란 거 너네들도 잘 알잖아? 어디 오빠가 뭇여성을 막 함부로 넘어트리고 뭐 응? 그럴 남자로 보이니? 어? 그리고 2번. 우리는 가는 길에 영화 촬영장에도 들를 꺼야. 그 장르는, 연기자는, 감독은, 제목은, 그건 비밀이야. 그때 가서 놀라지나 마셔. 알겠니? 허허허, 영화계에 또 오빠가 아는 사람이 많잖니? 응? 기대되지 않니? 뭔가 떠오르는 예감 그런 거. 그리고 편집장 밀러에게 다 얘기해놨어. 너네들과 협업한다는 거 이미 다 알고 있다구. 그래서 페라리 그거 너네 쓰라고 얘기해놨다고. (물론 그건 뻥이었다) 혹시 모르는데 말이야, 오빠가 게스와 루시에 대한 연정이 싹트더라도 오빠는 꾹 참을 꺼야. 알겠니? 오빠 믿지? 그럼. 믿어야지. 오빠가 괜히 너네들을 이곳으로 부른 게 아니야. 오빠가 묻지마 스타일은 아니잖아. 별들에게 물어 봐, 에 가깝다면 모를까. 지금 여긴 어디? 그래! 다 생각이 있어서 그런 거라고. 너네들 청춘의 욕망과 숙녀의 이상, 오빠가 다 만족시켜줄께. 자신 있어. 그럼. 그게 오빠 전공이거든. 감동할 준비나 하셔. 이미 호기심이 동했는데 오빠가 도시로 떠나자는 약속을 철회하면 너네들 아마 실망이 클 꺼 같은데? 새로운 체험이 무엇인지 그게 대체 뭔지 알아나 보고 나중 상심을 하더라도, 모르긴 몰라도 아마 체념하기까지 그 여정의 즐거움은 쉽사리 깎아내리기 힘들 껄? 허허허! 말은 안 해도 나중 틈틈히 회상하게 될 껄? 그런데, 그냥 가지 말까? 가지 말자면 가지 않을께. 오빠는 전적으로 너네들의 의견을 따르고 싶어. 왜냐하면 너네들의 의사를 존중하니까. 그러나, 청춘 영화는, 이미 시작된 거나 마찬가지라구. 아, 그리고 3번. 우리는 도시로 가는 중간에 대학교에 들릴 꺼야. 물론 샛길로 빠져서 유적지에 들른다거나 기차를 타고 어디 먼 곳으로 떠날 수도 있어. 모든 가능성은 열려 있으니까. 사랑, 그 상대가 우연히 나타나게 된다면 가슴이 두근거리며 설레는데 이성을 빼고 대타 투입해야 하지 않겠니? 바로 등번호는 감성! 어차피 사람은 말이야 예술과 동물, 모험과 낭만, 행복과 환상, 여행과 사랑 가운데서 둘 중 하나는 좋아하게 되어 있다구. 그러나 아마도 둘 다-겠지? 하나면 뭔가 아쉽고 섭섭하지 않겠니? 지금 말한 장소들은 단순한 탐방이나 구경, 오락 그런 의미로 받아들이면 안된다는 거, 알겠지? 주변만 빙글빙글 돌려면 아예 가지도 않는다구 오빠는. 응? 가서 보면 알 꺼야. 아하 우리 오빠가 이래서-였구나 라고.
아 그런데 오빠가 말이 너무 많았다야. 미안 미안. 말 많은 남자가 실속은 없다더라, 그런 속설은 잊어버리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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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은 루시&게스와 함께 떠나기 전날 꿈을 꾸었다.
꿈에서 그는 유원지에 갔다. 그런 곳에 보면 아마도 한때는 현역이었겠지만 모형인지 실물인지 꽤나 애매한 야외 전시물이 있다. 꼬마들이 좋아하는 탱크, 비행기, 배 막 그런 거. 척은 거기에 들어갔다. 그 긴 배는 상당히 컸다. 당당히 운항하다가 조기 퇴역한지 얼마 안 됐다고 하니까. 그처럼 척이 실내를 구경하고 있던 순간 느닷없이 어떤 비행접시가 출몰했다. 비행접시는 그 순항선에 비비탄을 쏘아대기 시작했다. 그런데 비비탄인데 막 콩 볶는 소리와 진짜 불꽃과 그런 건 모두 실제와 똑같았다. 척은 찰과상을 입었고, 발바닥이 따가왔으며, 그래서 갑판으로 재빨리 올라갔다. 이때 그곳의 높다란 감시 초소 같은 곳에서 레어저를 발사했다. 비행접시는 삐리리리 삐리리리 소리를 내며 그 레이저에 빨려들어갔다. 그러나 비상 사태는 이미 발생했기 때문에, 고로 순항선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나 보다. 순항선은 하늘로 날아올랐다. 심해를 누비는 잠수함처럼. 약간의 상처가 있었기 때문에 부분적으로 연기가 나기는 했다. 그렇게 어딘가로 떠났고, 순항선은 미래 세계에 도착했다. 순항선이 미래에 도착해서 척이 그 대형 안내글을 읽었는지는 가물가물했다. 미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라는.
척은 다음 날 루시와 게스를 만기기 직전 복권을 샀다. 한 장만. 결과는 미리 공개하자면 이렇다. 꽝은 면했다. 그런데 꽝만 겨우 면했다. 꼴찌에서 2번째였으니까. 꿈은 개꿈이 아니었으나 결과적으로 개꿈이나 다름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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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과 루시와 게스는 도시로 떠났다. 그러나 기쁜 미담은 좀처럼 발생하지 않았다. 척이 말했던 첫째─둘째─셋째도 허상에 불과했다. 예언은 거짓으로 판명났다. 지킬 수 있는 약속의 호언장담은 확증할 수 없는 미사여구로 밝혀졌다. 앞날이 맑지 않고 뿌옇게 수증기가 서려있는 듯 했다. 그래도 삼류 대학교 한 군데는 들렸다. 그러나 들르기만 했다. 그러면 뭐하러 들렸나 싶었다. 모처럼 햄릿에게 전화가 와서 잠시 하워드의 요트에서 쉬는 시간은 가졌다. 그 다음은 없었다. 그러니 전개가 있을 턱이 있나. 그러던 중 문학잡지 미스테리아 편집장 밀러에게 전화가 왔다. 처음에 척이 전화를 받지 않으니 루시에게 연락이 온 것이다. 어떻게 됐을까? 당연히 밀러는 페라리를 가져와라, 루시는 알았네요, 라고 일단락됐다. 루시는 척을 흠칫 노려봤다. 척은 게스쪽으로 슥 눈길을 돌렸다. 게스는 루시를 다독였다. 힘겹게 상황은 가라앉았으나 만에 하나 잘못됐으면 척은 루시와 게스에게 흠씬 얻어맞았을지도 몰랐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을까? 어떻게 되긴. 루시와 게스는 미스테리아 편집장 밀러에게 페라리를 반납하러 다시 그곳으로 돌아갔고, 척만 홀로 남게 되었다. 그곳이 어딘지도 잘 모르는데...! 그때 척은 듀발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오늘은 마샤의 생일이고 곧 생일잔치가 시작되는데 참석하지 않겠냐 라고 했다. 척은 고민했다. 갈까 말까, 가지 말까 갈까. 그는 빈말에 그만 속기로 했다. 이제 좀 그만 속자고 되뇌었다. 그럴 때도 됐다고. 그를 진짜로 만나기를 원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어쩜 당연하게도 또는 희귀하게도 전개는 끝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그분은 바쁘셨나 보다.
척은 루시와 게스를 돌려보낸 다음 애잔한 마음에 기분이 살짝 가라앉았다. 본인이 루시와 게스처럼 젊은 날이던 때 그는 궁금했다. 왜 어른들은 현실적인 안락을 중요시하고, 왜 그렇게 복권을 꼬박꼬박 사시는가가. 그러면서 어른들은 드라마처럼 멋진 조언을 해주시는 분이 거의 없었다. 있어도 길지 않았고 횡설수설이 거의 전부였다. 뭔 말은 엄청 많고 길고 진지한데, 나중 돌아서서 기억하면 썩 인상적인 명대사는 음 아마도 없었다. 내 머리가 나빠서, 형편없는 기억력 때문일 수도 있지만 전적으로 그의 잘못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영화와 드라마를 봤다. 거기서 주인공은 그런다. 젊은 날 무엇보다 꼭 해 봐야 할 것은, 그 가운데 딱 하나는 바로 사랑이라고. 그런데 왜 그래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때문에 그는 글을 읽었다. 닥치는 대로 읽었다. 그런데 미래가 있다는 책에서도 사랑과 꿈에 대한 가치는 높다랗게 측정하며 멋지게 꾸미지만, 정작 읽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지는 못했다. 따라서 척은 당시 노래를 즐겨들었다. 가리지 않고 들었다. 엄청 다양하게 들었다. 완전 열심히 들었다. 그러나 노래라고 별 수 있겠나. 하지만 노래에서 좋은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긴 하다. 맞다. 그것도 적잖이! 무엇보다 행복한 마음과 즐거운 인생, 기쁜 우리 젊은 날을 즐겨라 추억을 만들자, 아름답고 신비로운 우리들 청춘의 무지개를 만들고 젊음의 행진을 하자꾸나, 파도를 헤치며 희망의 내일로 나아가자 자 떠나자, 저 흰 구름은 설마 솜사탕이 아닐까 뛰어올라보자? 들을 때는 좋았다. 달콤했다. 감미로웠다. 그래서 자주 많이 들을려고 노력했고, 그 시도는 성공했다. 그게 뭐가 어렵다고. 그러나 그 다음은 없었다. 그것은 작은 자질을 원대한 재주로 바꾸어주지는 못했다. 돈을 벌게도, 꿈을 구체화시키지도, 나를 특별한 존재로도 변신시키지 못했다. 그래서 척은 루시와 게스에게 엄한 낭설의 헛바람만 불어넣은 것 같아서 적잖이 미안했다. 지금쯤 그녀들이 자기를 혹시라도 험하게 욕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마도 자신의 아첨이 부족했다며 작은 자책마저 느껴졌다. 있을 때 좀 더 잘 대해줄 껄, 그러면서. 그러나 그런 수많은 시간 낭비와 실패와 시행 착오와 무분별한 따라하기등이 아무 쓸모 없을 것 같았는데, 그래도 지금 보니 삼류 소설에 무언가 도움이 되기는 되는 것 같았다. 다만 새로운 발단과 뚜렷한 전개, 환상적인 목표, 신선한 현실 모순, 색다른 결여, 놀라운 행동, 신기한 성과, 감동적인 결말이 부족하다는 게 문제였다. 발단, 오직 발단만 있었다. 왜 일전에 친구들과 공동 블로그 작품 활동을 하면서 블로그 이름을 무명으로 했는가, 이것으로 증명된다. 아니 고딩 때 활동했던 농구단 이름으로 미래는 어느 정도 예견된 거다. 뭔가 재미있어질려다가 간질간질하다가 전개가 나올 듯 말 듯, 잘만 하면 딱 나올 듯 하다가 다시 쏙 들어가 버렸다. 그래서 막 머리 위로, 귀에서 코에서 수증기가 나왔다. 막 나왔다. 쉬지 않고 나왔다. 계속 나왔다. 게다가 눈에서는 레이저가 나갔다. 더군다나 입에서 화염방사기 같은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심지어 얼굴도 빨개졌다. 그 뿐이겠나. 그가 홍당무인 줄 알고 지나가던 당나귀가 흑심을 품는 듯 했다. 어딜 넘봐? 넘볼 만 했다! 환상은 대체 어디 가야 찾을 수 있단 말인가. 까악까악, 까마귀 소리는 더 이상 환청이 아니었다. 연옥에라도 뛰어들어서 미스테리를 구출해 오든가 해야지 이거 원, 답이 안 나왔다. 아 이래서 술집 이름은 행운이고, 상품 광고는 물건을 사면 광고 모델까지 주는 듯이 선전하며, 브랜드 슬로건과 온갖 광고 문구들은 그렇게들 소비자의 감수성을 자극하는 것일까? 모르겠다. 통 모르겠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것일까? 혹여 그다지 썩 잘못된 건 별로 없지 않을까?
그러다 그는 집에 돌아가서 차분히 기본부터 점검해 보기로 했다. 스포츠는 거의 자세가 전부고, 많은 경우 기본기가 중요하다. 삶의 자세와 인생을 대하는 태도 그런 것들. 어쩌면 그래야 미지의 신비가 지극히 현실적인 기쁨으로 변신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는 엑셀 파일 미스테리아의 이름을 블로그로 바꾸고, 정상적인 생활 리듬을 되찾기로 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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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크리스마스 이브를 좋아한다. 나는 아르고스가 아니고 천리안은 아니지만 식상한 험담가의 어떤 어조와 전형적인 몸짓이 그려진다. 언제는 어쩐다며 뭐라는 둥 그러더니 그게 무슨 소리인가 라고. 그러나 무슨 행사가 개인의 전유물인가. 내 마음을 남에게 허락 받아야 할까. 그건 굳이 물어볼 필요가 없는 질문이다. 여기서 잠깐,
이것을 무엇이라 하는가? 주관이라고 한다. 그것은 간혹 변덕으로 오해받을 수도 있는 인자한 마음의 포용력이다. 이랬다가 저랬다가, 어떤 글를 읽다 보니 그건 동의하고 무엇은 별로 반갑지 않다, 모두 개인 소관에 해당하는 마음이다. 타인의 마음이 아니라. 만약 그것을 알고자 한다? 주관식 문제다. 평이하게는 논설, 짧고 정교하면 논술, 길고 전문적이면 논문이다. 쉽지 않고 흥미는 떨어진다. 그래서 힌트와 암시가 있고 설득도 있다. 최면도 거기서 파생한 거다. 선처하는 쉬운 예에 따라 직업도 되고 소일도 된다. 주관의 선용은 인생과 함께 갈 정도로 배움이 절실할 수도 있다. 끌려가거나 따라하거나 답습하거나, 그 가운데 좋은 예는 예술의 모방이 있고 괜찮은 분위기에 슥 묻어가는 것이 있다. 따라하지 마, 도 있다. 반면 그것에 보기가 있으면 객관식 문제다. 주로 풀어야 하는 일은 주관이 성장하며 무르익는 와중에 해당하는 학생의 본분이고, 빼어난 주관의 학습에 대해서 별로 즐거워 하는 않는 듯한 학생에게 닦달하는(가르치는!) 역할은 세상사에 통달하여 주관이 덜 유연한 선생님이 맡는다. 그 둘 모두 놀이처럼 즐거울 리는 없다. 절대 그럴 리 만무하다 라고 어찌 내 입으로 말할 수야 있겠나. 원래 인심이란 게 그런 것 뿐이니 괜한 속담을 끌어들이지는 말자. 그처럼 양측은 대체로 재미없다고 하지 재미있다고 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한쪽은 공부, 한쪽은 일이니까. 그래서 선생님 가운데 대체로 인기가 많은 유형의 하나는 코메디언과, 나머지 하나는 잘 아시다시피. 아무튼 자기 마음은 자기가 주관하니까 타인이 주관하는 남의 마음이 궁금해지는 건 인간의 본능이다. 곧 그 주관이 궁금해서 누군가의 애정을 시험해본다, 떠본다? 그것은 타인의 본심을 알고자 하는 것이다. 물론 그 결과는 흑심으로 판명날 수도 있다. 또는 뭐랄까 어쩜 흠모가 아닐까 하는 연정에 가까울 수도 있다. 홀딱 반했으면 두말 할 나위 없을 테고. 그 애정이 만인에게 꽤 공평하면 난봉꾼이고, 쉽게 변하면 바람둥이요, 진득하게 오래가면 순애보다. 순정의 비율이 비교적 월등하겠지만 여자 역시 그 성격과 형식만 다를 뿐 원리는 남자와 똑같다. 왜냐하면 여자는 비교를 좋아하고 판단 근거를 선호하니까. 왜냐하면 보는 눈이 비슷하고 청력에 민감하니까. 왜냐하면 인정하기 싫을 수도 있으나 무조건 안목은 탁월하고 싶은 희망 사항은 여자의 본성이니까. 99퍼센트가 보수라는 정치 이념 뿐만 아니라 선악과 미추를 보는 생각은 누구나 비슷하듯이 기본은 어디까지나 촌년과 촌닭이다. 이 부분에서 여자를 모르는 남자는 꽤 헷갈림. 진의와 오리발의 구분을. 여자가 언제 오리이고 언제 백조인지를. 괜찮다 싶으면 일단 상대를 매료시키고 보는 것이 여자의 본능. 넘어오면 미덕과 악덕을 내 현재에 유리하고 내 미래에 달갑도록 판단하여 실행하며, 유혹에 성공하면 이때부터 마음은 붕 뜰 뿐. 아아 사랑의 선율이여. 앞으로 두 번 다시 안볼 사이일지라도 신호는 일단 보내고 본다. 그래야 여자다. 안 그러면 숙녀가 아니다. 몸으로든, 오빠 천사표 아니에요 같은 말이든, 그저 침묵으로든. 그런가, 안 그런가? 쉿! 사랑이 버스면 여자는 신호등이다! 좌우지간 만일 그 사랑이 이루어졌는데, 그런데 중간에 마음에 변했네? 그건 변심이다. 같은 변화인데 하나는 변덕 하나는 변심, 그 차이가 무엇인지는 불가사의. 찬 쪽은 이유가 많다. 싫증도 있고 권태도 있고 새로운 사랑도 있다. 차인 쪽은 간단하다. 그것은 상심. 다른 말로 애수 쉽게 표현하자면 슬픔. 그런데 드물게, 성격 차이라면서 서로 의논에 의해 좋게 좋게 결별했다고도 한다. 좋게 좋게? 글쎄요! 상처 받은 쪽에서는 그 사람이 불행해졌으면 좋겠다고 바랄 수도 있다. 사랑의 종료 시점이 다르니까. 말이야 쉽지만 극복해야 하고, 남의 불행보다 내 행복을 고민해야 하며, 내 인생을 살아야 한다. 그 후 나중 우리 오뚜기씨는 이별을 이겨내고 새로운 사랑을 만난다. 그러면 환생한 듯 기쁨에 못 견뎌 입이 근질근질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때 비로소 깨닫는다. 예전에는 내가 너무 어렸다고. 진정 난 몰랐었네, 사랑을. 그런데 굳건한 의중이 있으면 의뭉스러운 꿍꿍이셈도 있다. 내 마음과 남의 마음 그 차이에서 발생하는 무언가는 미움과 존중과 좋아함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사랑이라 부를 수도 있는 얄미운 나비다. 인간이니까 그럴 수 밖에 없다. 달리 말하자면 무관심과 심심함과 애호로 바꿔도 된다. 궁금함과 호기심과 무시와 질투와 부러움과 선망과 동경심도 어차피 그 안에 다 들어있다. 그러므로 허세와 허풍과 허영을 보며 주관이 그런다. 뭐라고? 놀고 있네, 라고! 왜냐하면 주관은 양쪽에 마음에 드는 두 여자가 아니라 이성과 감성을 모두 꿰차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내 주관은 구설수에 휘말리지 않아도 된다. 따라서 나는 남이 나를 어떻게 볼까 라고 걱정할 필요가 없다. 전혀! 고로 나는 다시 말해서,
나는 크리스마스 이브가 좋다. 그 들뜬 분위기를 실상 싫어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다음 날은 재미없다. 왜 하루 만에 진공청소기가 커피포트로 바뀌는지 조금은 신기하다. 하긴 사랑이 이별로 변하면 그것도 천국에서 지옥으로 바뀌는 모습이겠다. 호박마차를 기점으로 한쪽은 기쁜 분위기 한쪽은 침잠한 차분함이라니. 그러나 그 신비감은 능청이고 투정이자 익살이다. 왜냐하면 어른들은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이트클럽에 들어가기 전과 후의 차이를. 사랑은 행복이고 이별은 완벽히 불행이 아니란 것을. 기원전에 살았던 수많은 사람들이 다 어디로 가버렸는지는 모르겠지만 비밀은 여기에 있다. 천국으로 들어가서 '어, 이게 천국이었어?' 그러지 말고 천국으로 오르는 계단에서 대기하는 심정, 그 마음을 노래로 만들고 그에 대해 웃고 얘기하기. 오늘을 살아라 같은 말. 내일을 기대하며 예감하고 동경하는 것은 좋지만 그 모두는 오늘 있는 일이니까. 이거네. 현재주의. 나는 마치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것 마냥 가제트에게 전화했다. 가가멜에게도 연락했고, 마리오에게도 찾아가서 약속을 받아냈다. 마시고 춤추고 노래하기. 가제트와는 카페에서 만나기로, 가가멜과는 클럽에, 마리오와는 같이 캠핑을 다녀오기로 날짜를 잡았다. 합심해서 뭉치는 건 피곤하고.
약조한 그날이 되었다. 그러나 나는 약속을 깼다. 마리오는 그랬다. 소풍은 다음에 가도 된다면서 괜찮다고. 가가멜은 몹시 서운한 눈치였으며, 가제트는 나를 거의 때릴 뻔 하다 말았다. 내 기분은 뭐라 말하기 곤란했다. 하지만 나는 양치기 소년이 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속담을 하나 떠올렸다. 그물에 든 고기요 쏘아놓은 범이라는. 그렇게 나는 내가 파랑새라도 된다는 것처럼 파랑색 옷만 입었고 호피무늬와 가죽점퍼도 구해서 입었다. 그 성과는 '재미없음'이었다. 완전 재미없었다. 나는 즐거운 삶을 위한 새로운 방법을 강구하기 위해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게 되었다.
2
내게 마법의 빗자루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씻을 수 없는 악몽에 대해서 글을 쓸 수는 없었다. 순수라는 이름의 우유, 달걀 요리, 크레파스, 당첨되면 좋고 아니어도 공익 기금에 일조하는 복권과 내내 함께 하는 생활. 그것은 내게 무리였다. 집에서 혼자 아마데우스의 C단조 미사를 듣고, 백조의 호수를 보고, 돈키호테의 풍차에 대해 고민해봐도 답은 나오지 않고 글은 써지지 않았다. 이런 심정을 어느 친구에게든지 전화로 얘기한다면 내가 들을 말은 뻔했다.
「병원에 가 봐.」
그래도 나는 꾹 참고 TV도 켜고, 음악도 틀고, 인터넷 세상을 떠돌았다. 왜냐하면 나는 호모 픽투스(이야기하는 인간)과의 만남 그 은밀한 약속을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순진하다는 것은 어리석지도 나쁜 것도 아니니까. 그러나 동화의 세계는 소원했고, 따라서 흡혈귀의 백일몽에 대한 꿈도 포기하고 말았다. 하지만 나는 비탄에 잠기지 않았다. 왜냐하면 소셜 네트워크에서 재미있는 댓글을 두 개나 읽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렇다.
1.내 옛 애인은 책으로 출판까지 했음... 무서운년... 내 얘기는 딱 두 토막 나오고 이혼한 전남편 욕이 80%에 전부 이혼 합리화이고 미화임.
2.소세지 사 와. (......) 소세지 사 와.
나는 그 글을 읽고 나서 한참을 웃었다. 그러나 웃음이 멈추고 나자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 것일까 그런 한심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멀더의 카페에 가기로 했다. 동네에 친구는 많은데 녀석들이 잘나가서 그런지 모두 좀 친해져서 즐겁게 어울릴만 하면 다들 바빠졌다면서 도시로 떠나간다. 그래서 최근에는 글쟁이 가제트와 일러스트레이터 가가멜 그리고 투자법인 대표 마리오와 함께 놀고 있다. 동네가 손바닥만 해서 아주 흡족하게 마음에 들지 않아도 어쩔 수 없이 같이 놀 수 밖에 없다. 친구는 그게 나을 수도 있다. 아주 흡족하면 그건 사랑이니까. 언제 변할지도 모르고.
3
찻집에는 세 친구 모두 있었다. 우리는 간단히 인사를 나눴다. 실내에는 못 보던 액자가 걸려 있었다. 그것은 그림이 아니라 일종의 명언 같은 문장이었다. 달랑 문장만 씌여 있었다. 그것은 이랬다. 죽을 때까지 해피엔딩. 뭐 그냥 그랬다.
우리는 할 말이 없었다. 예전에 내 옆집에 살았던 앤젤과 척키2. 당시 우리 셋은 찻집에서 창밖을 향하여 일렬로 앉아서 일을 했다. 지금은 그때와 다르게 나, 가제트, 가가멜, 마리오 우리 넷은 4인석에 앉아서 각자 일한다. 그리고 모두 기분이 침울하기 때문인지 말이 없다. 그러나 원래 그처럼 말이 없는 건 아니다. 어쩌면 이 친구들은 맹수의 본능이 내제된 것인지도 모르니까. 왜냐하면 숙녀가 등장하면 그때부터 쾌활해지면서 말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눈빛 살아나는 거지. 하지만 지금은 꽃과 양과 고양이는 전혀 보이지 않았고, 개와 늑대와 벌만 있었다. 그리고 찻집 창문은 반투명했다. 내가 먼저 나서서 뭐 할까, 어디 갈까 그래도 녀석들의 태도는 미온적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도처에 심심함이 널려 있었다. 애들 이마에 써 있었다. 나 권태라고. 들리는 음악도 뭐랄까 중의적이고 재미없었다. 축축 쳐졌다. 커피 맛이 뭐 이래, 그랬다. 날씨도 비가 오는 것도 아니고 쾌청하지도 않은 채 흐리멍텅했다. 매사 그런 식이었다. 잊혀진 낭만을 회상할려고 했으나 잘 기억나지 않았다. 별다른 추억을 쌓지도 못했고 청춘을 열심히 살지도 않은 것만 같아서 괜히 싱숭생숭했다. 심지어 입고 있는 옷마저 꾸리꾸리했다. 그래서 한 편의 시를 써 봤다. 잘 씌여지지 않았지만. 그 글을 들고 가서 당신을 보며 지었어요 라고 말한다면 아마 저기 앉아있는 그녀는 내 뺨을 후려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위 아래를 훓어보면서 나름 견적을 낼 따름이겠지.
아, 그 낙서 같은 시는 이랬다. 굳이 칸을 띄울 필요도 없이 옮기자면 이렇다. 「여자는 신데렐라고 남자는 피노키오다. 남자는 남자고 여자는 여자다. 그 남자는 순정만화에서 튀어나온 듯 할까? 그녀의 허언증은 감미롭기 그지 없을까. 감미로운 사랑의 속삭임이 귓전을 울리는 잔소리로 바뀌면 어떡하나. 왜냐하면 그럴 수 밖에 없기 때문.」 그렇다. 너무 시시하다. 말도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나만 그런 게 아니다. 다른 사람들도 그런다. 어릴 때 읽은 백설공주 동화에서 자기는 악역을 좋아했다고 한다. 그러면 너도 그랬냐 나도 그랬다고 한다. 반지의 제왕은 내내 걸어만 다니는 따분한 영화라고 한다. 베스트셀러들은 드라마는 재밌는데 고상한 취향을 뽐내는 독자가 읽기엔 뭔가 어중간하다고 한다. 애들 취향의 판타지 영화, 보다 보다 세 번 잠들고 세 번 깬다. 실재 그렇다. 돈 아깝다. 원래 어른들이 이렇다. 왜냐하면 동심을 잃어버렸으니까.
그래서 나는 야누스 같은 늑대 세 마리와 함께 있느니, 차라리 고독할지라도 홀로 떠나기로 결정했다. 최소한의 노력 없이 열매만 딸 수는 없다. 그렇다면 어디로 떠날 것인가? 어디겠나. 꽃밭과 양떼 목장과 고양이 공원이겠지. 나는 노름꾼이 아니니까 도박장이 행선지가 될 수는 없다. 나는 인생의 방랑자니까 들장미는 만날 수 있다. 나는 지금까지 술 마시고 취해본 적이 한 번도 없지만 또 술은 좋아하지만 별 매력 없는 술집은 피해야 한다. 개와 늑대와 벌 천지일 테니까. 나는 몽상가이기 때문에 꿈을 찾고, 열망을 꿈꾸고, 사랑을 동경하며, 애정에 목마른 숙녀들이 많은 곳으로 떠나야 한다. 그곳은 어디일까? 거긴 환상과 마법의 세계? 어린애들에게도 동화책의 인기는 예전 같지 않다. 예전은 무슨, 시들해진지 오래 됐다. 그렇다고 볼썽사납게 여자대학교에 무턱대고 쳐들어갈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러면 남녀 성비가 균등한 NC에? 물 좋으면 금새 소문난다. 들어가면 분위기 끝내준다. 그러나 분위기만 끝내준다. 왜냐하면 나는 왜 안되냐 우리도 놀아보자 하면서 우르르, 우르르 촌년과 촌닭이 몰려들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디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른 것이다. 어디 보자, 인생의 자극제도 떨어졌고 마술적인 비물질화 같은 뻔한 속임수도 재미없다. 한편 내 핸드폰에는 돈만 많은 여자, 돈까지 많은 여자, 애교덩어리, 미녀, 선녀, 말괄량이, 예술하는 여자, 제복 입는 여자, 조신한 숙녀, 독서를 좋아하는 여자, 음악하는 여자, 웃기는 여자 등등 엄선된 여자 연락처만 최소 100개인데 아무 생각없이 그녀들을 콘래드 호텔 1층 커피숍으로 불러낼 수도 없었다. 믿는 오빠니까 절친한 교분이 긴장감을 형성하며 팽팽하게 유지되는 거지 내가 혹여 수작이라도 부린다면 소문 퍼지는 건 시간 문제일 것이다. 한때 친한 친구에게 미스터 마력이란 애칭으로 불렸으나 난 그냥 두뇌를 얻은 허수아비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괜스레 숙연해졌다. 현실을 자각했고, 이름을 나미래로 바꾸기로 했다. 어디로 갈 것인가, 집으로. 집에서 정신 바짝 차리고 미래학이나 공부하기로 했다. 난 쥐뿔도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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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집에 가기 전에 술집에 들렸다. 왜냐하면 동네 아저씨 인생 찻집 하나와 술집 한군데는 들려야 분이 풀리기 때문이다. 뭐 분? 뭔 분? 아 욕심에 차다, 가 맞겠다. 과욕일지는 모르지만 음욕이나 소망이 있으면 생활의 희구와 일상의 요구라는 게 있으니까. 찻집 하나에만 들린다? 섭섭하다. 그렇다고 술집 한군데만 방문한다? 뭔가 그날 하루가 아깝다. 바쁜 나날이 있으면 한가한 시절도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나는 찻집 하나 술집 한군데를 들린 것이다. 정답게. 그곳에서 특별한 일은 없었다. 손님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듣고 싶은 음악을 왕창 신청해서 들었고, 마시고 싶은 칵테일들을 까다롭게 주문해서 마셨다. 그러나 거기서 술값은 받지 않았다. 왜냐하면 거기 술집 사장이 내 친구인데, 또 숙녀인데, 그녀가 내 조언을 썩 마음에 들어했기 때문이었다. 난 딱히 말을 길게 할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뭐 어쩌다 말을 하다 보니 그냥 어물쩍 그렇게 되어버렸다. 처음에 술집 사장 미쉘의 분위기가 뭔가 석연치 않아서 몇 마디 그녀의 마음을 떠봤다. 그녀는 실연당한 듯 했다. 그래서 나는 이런 얘기를 해주게 된 것이다.
「뭐 사랑? 음 그런 거? 눈길이 간다 간다, 이목이 집중된다 집중된다, 끌린다 끌린다, 호기심이 발동한다 발동한다, 지적 관심이 고조된다 고조된다, 그것은 열심으로 열심으로, 정력으로 정력으로, 다시 열정으로 열정으로, 최선을 다해서 최선을 다해서, 사랑의 광기를 부른다 부른다, 그런데! (...삐...) 지겨워졌니? 싫증났네. 따분해졌니? 시들해졌구먼. 사랑이 식었니? 뻔해. 그게 사랑이 아니라 취미였으면 무슨계에 신성이 등장했다면서 호들갑 일색이다가 다시 슬그머니 삼류로 갔다가 언제 다시 재기에 성공하느냐, 라며 나중을 도모할 수도 있지만 그건 다름 아닌 사랑이니까 참 마음 아프네. 시작은 좋았는데 권태까지 도달하기에는 너무 벅찼나 봐. 이제 보니 중간의 열심은 애초에 흑심이었을지도 모르겠군. 그 다음에 나타난 열정 역시 사회의 평등함처럼 만인에게 부여하는 공평함이면 곤란한데. 왜냐면 끝이 예쁘지 않으니까. 아예 여러 영역이 불분명했을지도 모르고. 시작만 멋지기를 바래야 하는 건 아니거든, 사랑이라는 게 말이야. 입소문과 꼬리표는 꽤 끈질기다구. 원래 그런 귀찮은 경험에 의해서 또는 뜻밖의 가담에 의해 아픈 만큼 성숙해지기도 하고. 안 그래? 뭐 그럴 수 있어. 그게 나을 수도 있다고. 오히려 일찍 끝내야 한쪽이 체념까지 가기 전에 미리 단념하게 되니까. 둥지를 떠난 새냐, 배 들어오기를 기다리는 항구냐!
화장술 학습을 막 시작한 소녀를 한번 생각해 보자고. 빠져든다 빠져든다. 그녀는 착해. 빠져든다 빠져든다. 순진하지. 빠져든다 빠져든다. 순수라는 우유를 마시고 상큼한 광고에 나오는 소비재만 사용하거든. 빠져든다 빠져든다. 그래서 뭘 들어도 막 진짜인 줄 알고, 뭘 읽어도 그대로 딱 믿고, 뭘 봐도 감수성이 예민한 그녀는 그 무엇에 매료된다고. 쉽게. 빠져든다 빠져든다 빠져든다! (딱)! 이거야. (쉭쉭쉭) 이거라고. 소녀가 우연처럼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알게 됐네. 그러다 지나고 보니 공부도 소홀히 하고 그쪽으로 나가기도 뭐해 딱히 자질이 없다는 걸 스스로 잘 알거든, 그럴 수도 있다고. 소녀가 크면서 만나는 노래와 시와 꿈과 낭만과 그리고 알게 되는 남자가 바로 소녀 자신과 오래 가도 어울릴지, 물과 기름처럼 아무리 참고 기다리고 믿고 속아도 잘 섞이지 않을지는 조금은 과학적으로 판별이 가능해. 그런 과학을 잘 아는 사람이 누구냐, 어른이지. 다른 말로 전문가와 예술가와 권위자. 비전문가와 애호가는 전문성은 떨어지더라도 어른이니까 뭔가를 잘 안다고 할 수 있고. 또는 연애학이 만약 있다면 어디서 공인받을 수 있는 연애법과 연애업이 있다면 연애학자와 연애업자겠지. 쉽게 말해 멜로 영화를 선전하고 사랑 노래를 만드는 사람들. 음, 그렇겠지? 그런데 그 업계의 첫째 법칙이 뭔 줄 아니? 그건 바로, <내가 제일 많이 안다>야. 내가 최고다 그거라고. 왜냐하면 그런 자신감과 포부가 부풀지 않는 상태에서는 여린 마음으로 어딘가에서 버티기가 여간 쉽지 않거든. 프로페셔널의 세계란 게 무척이나 치열하니까 말이야. 그곳 역시 동물의 세계니까 뭐 어쩔 수 없겠지. 인기라는 재미를 한번 알고 나면 그 이전으로는 절대 돌아갈 수 없어. 다른 변화는 가능하더라도 말이야. 사람은 있잖아 초딩들만 그런 게 아냐. 아는 척 하네든지 골똘히 생각하는 거 말야. 가난해도 괜찮지만 왜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할까, 왠지 어른들은 그런 설명을 자신이 하는 것만은 애써 피하는 듯한 느낌, 그런 거 있거든. 애들한테는. 스무 살 친구말고 어린이 말야. 애들도 속이 다 있어. 그처럼 책 표지에 씌인 문장들을 모두 믿어 봐, 남의 말을 곧이곧대로 다 전부 다 믿어보라고. 우연이 그 감수성을 미지의 환상 공원으로 데려다 줄 수도 있지만, 혹여 처음에 이상한 파도를 타고 또 타서 무인도나 (고대)수도원이나 가택 감금에 데려다 줄 수도 있단 말이야. 내 의지가 별로 내 인생에 반영되지 못했을 경우, 그건 어떻게 보면 인생이 어디로 어떻게 흘러갈지 그건 정말 돌팔이 점쟁이한테 내 미래 운수를 받아서 그대로 믿고 따르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어. 사랑? 그래 사랑. 때로는 애석하지 사랑은. 사랑이니까. 사귀기 전에 실망하면 이별할 필요도 없을 테지만. 그러나 큰 실망이 아니면 기대가 남는다는 게 문제야. 연민, 기다림, 번민, 회한, 그리움, 사랑의 정의, 미련 그런 것들. 그런데 만약 상대가 돌아왔다고 해 보자고. 나중에라도 돌아왔다고 쳐. 그럼 반갑겠지 기뻐 좋다고.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으니까. 사랑이란 게 원래 사랑 하나만 있어도 된다, 그게 사랑인 것 같거든. 콧노래가 절로 나올 테지. 그러면 뭐 해. 어머나 이걸 어쩌니, 진공청소기는 끝내 커피포트로 바껴버렸지 뭐니? 설마 큐피트는 아니고 누가, 대체 누가 알라딘의 요술램프를 슥슥 문질렀을까? 가짜네~ 그 알라딘의 요술램프! 그처럼 갈 데까지 가다가 절망하는 걸 뭐라 하느냐, 환멸이라고 하지. 거기서 두갈래로 나뉘는 게 순서야. 변칙은 빼고 정규는 그래. 첫째 새로운 인생, 둘째 달관. 어때? 동의하니? 동의하지 않아도 좋아. 인생이란 원래 그런 법이거든. 이성이 한번 2군으로 밀려났다가 1군에 다시 올라올려면 시간 좀 걸려. 세상일이 어디 내 마음대로 되나. 너 그 슬픔이 유독 커보이는 게 대체 왜 그런 줄 아니? 사람들이 지난 일을 얘기할 때 보면 전재산을 잃은 걸로도 모자라 그만한 빚이 생겨버렸을 때 주위를 보니 아무도 없더라, 대체 왜 그러는지를. 왜긴 왜겠어. 이별은 뭐고 사랑은 어떻다 라는 말이 좋게 들리겠냐고, 상심하는 숙녀에게 말이야. 일류에서 이류를 안 거치고 삼류로 바로 주저앉았는데 말이야. 한 번에 일어설 수도 없고 풀릴 기미도 보이지 않아서 사는 게 영 시원찮은데, 단짝이 될려던 녀석은 멀어졌고 모임의 목돈은 내가 다 써버렸는데 말이야. 좋은 얘기를 해 줘도 그건 곧 오해할 수도 있기 때문이야. 간략하고 다정한 의견이 불난 집에 부채질로 바뀌는 착각은 바로 극명한 입장 차이에서 발생하기 쉬워. 그래서 권위는 위에서 낮춰야 하는 것이지 밑에서 낮춰라 라고 요구하는 게 아니야. 제의는... 할 수 있겠다. 점차냐 차근차근이냐, 그게 꽤 애매하니까. 더구나 어떤 권위는 때에 따라 낮추지 않을 때가 필요하기도 하고. 실제 옛날식으로 엎드려 절받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거든. 개성이나 특징을 제외한 인지상정은 누구에게나 비슷하기 마련이니까. 아, 그때 최선의 방법은 뭘까? 가만히 듣는 청자의 역할이겠지. 끄덕끄덕 또 끄덕끄덕. 고로 그때 사람과 상황에 따라서는 입이 근질근질하더라도 꾹 참아야겠지. 세상사를 두루 겪어 보면 강 건너 불구경이 어쩜 차선에 해당되는 일도 살면서 겪게 되지 않겠니? 마음 아프게도 세상은 때때로든 어떻게든 인간의 일에 무심할 수가 있거든. 말은 세상은 아름답고 사랑은 신비롭다고 하겠지만 말이야. 이 보 전진을 위한 일 보 후퇴라는 게 알고 보면 흔해. 그런 과정을 반복하며 성숙해지는 거지 뭐 어른되는 게 별거겠니.
하긴 어른이 되면 인생이 쉬워져야 하는데 그게 또 그렇지 않아. 어른들도 다 말을 안해서 그렇지 각자 고민도 있고 행복감도 달라. 뭘 놓고 생각해 볼 수 있을까? 음 그래 그 단어. 싸구려! 일단 싸구려란 말을 들으면 그땐 괜찮아. 왜냐하면 싸구려라는 단어의 어감은 좀 그래도 그건 곧 합리주의의 다른 말이라는 걸 아니까. 그런데 그 싸구려가 다름 아닌 나와 관계 되네? 그 어떤 거부나 거장이나 상류층일지라도 그 말을 읽고 듣게 되면 약간의 긴장감이 있으면 있지 무조건 좋을 리는 없다고. 왜냐하면 사람이니까. 그런데 그 위인도 그의 인생을 보면 하루 아침에 명성이나 부를 쌓은 게 아니야. 번뜩이는 천재성으로 시작해서 거장으로 성장했을 수도 있는데 대체로 보면 싸구려가 많은 부분 포함되어 있다고. 유명한 화가들 초기작에서 비싼 작품은 거의 없어. 거의? 기준선 높이면 전무해. 우리 아마데우스의 1번 교향곡, 역시 그렇거든.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야. 실패작을 얼마나 많이 양산하느냐에 따라 결과적으로 층위를 올릴 수 있는가가 결정되기도 한다고. 물론 해도 해도 안되더라 그런 경우도 많긴 하지만 말이야. TV와 인터넷에 보면 너무도 아름답고 멋지고 훌륭하고 뛰어난 것들이 많잖아? 그 말은 곧 쓰레기도 많다는 뜻이야. 누구나 달갑지 않지. 왜냐하면 멋지고 향기롭고 싶으니까. 왜냐하면 사람들은 즐거움과 기쁨을 좋아하고, 지성은 아름다움과 친하니까. 왜냐하면 나는(누구나)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니니까. 불경스럽다 불미스럽다 불가피하다, 불-자 붙은 개념들 말이야. 그러나 문명이란 게 그런 거거든. 규칙을 만들고 질서를 개선하는 것. 인류는 야만에서 문명으로 발전했으나, 야만은 성격을 달리 해서 교양과 상식의 빈구석을 파고들던가, 뭔가 어떤 불합리와 부조리와 모순이 줄어들지언정 미래 세계에도 그것은 경미하게-극미하게라도 존재할 꺼야. 종교는 몰라도 일단 사랑, 사랑조차 이렇게 한 어여쁜 여인을 마음 아프게 하는데? 안 그래? 최고와 최고 이하, 그 둘 중에 어떤 게 더 많을까? 당연히 후자겠지. 것도 월등하게. 쉽게 말해 예술만 봐도 역피라미드는 말이 안돼. 동물의 세계도 피라미드 모양의 생태계가 자연스럽지 그게 아니면 동물원이나 그런 거겠지. 어디 갔더니 멧돼지 천국이더라. 사슴의 섬도 있고, 원시인이 사는 지역도 있을 테고. 건축을 배울려면 어디에 가야 하고, 무용 하면 누구를 사사해야 하는가 그런 것도 있고. 그런데 사랑을 논하다가 멧돼지가 왜 튀어나왔지? 멧돼지가 대체 뭔 잘못을 했길래? 난들 아나! 멋진 광고에 나오는 표범이나 치타 그런 동물도 아니고 멧돼지가 뭐? 음. 한참 열변을 늘어놓았지만 또 한편 결론이 없네 그래. 아 슬퍼. 눈물은... 말랐어. 약해. 많이 약해. 멀었어. 아직 멀었어.
그래도 억지로 요점을 말하자면 이럴 꺼야. 한 여자의 일생을 떠올려보세. 작게는 평생 10명을 사랑한 여자도 있겠지. 특별하게는 일평생 1명만 사랑하고 나머지 9명의 아는 오빠를 알고 지냈던 여자도 있을 거라구. 그러나 한 여자의 일생 동안 그녀가 썸타고, 좋아하고, 유혹하고, 떠올리고, 그리워하고, 기뻐하고, 사랑한 남자는 과연 몇 명일까? 그녀의 뒷모습이 관능적이라고 그런 그녀에게 꼬리가 없을 것 같은가? 있다면 야옹이나 강아지처럼 달랑 1개?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소릴세. 그녀의 꼬리는 모르긴 해도 아마 아홉 개야 아홉 개. (딱) 구미호라고! (요만큼) 종이 두께 한 장 차이라는 게 아마 그런 설화에서 유래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네.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구미호가 인간의 간을 뭐 어떻게 응? 뭐 그렇게 해서 마지막 하나만 딱 어? 음 그러면 그 구미호는 인간으로 환생하는데 하필 그 마지막 1000번째 남자는 아니 어떻게 이럴 수가, 어머나 사랑이네? 그래서 999에서 1을 채우지 못해 구미호는 인간이 되지 못했다더라. 그런 설화 있지 않나. 맞는지는 모르겠어. 어쩜 틀릴지도 몰라. 지금 당장 설명에 유리하게 내가 그냥 대충 지어낸 것일 수도 있어. 아무튼 999는 뭐 우리 상남자들의 로망이고 아 농담이고, 한 여자의 일생 동안 그녀가 썸타고, 좋아하고, 유혹하고, 떠올리고, 그리워하고, 기뻐하고, 사랑한 남자는 과연 몇 명일까? 11명? 12명? 13명? 노노노노노노노! 요컨대 100명이라네. 남자만 부풀리고 허풍을 퍼트리며 가짜 웃음의 달인이 되는 게 아니야. 여자도 남자와 똑같이 과장하고 웃고 떠들며 허영심의 잠자는 코털을 쉬이 건드리지 않는 한편, 남자와 달리 감추고 은밀히 모른 척 하며 속으로 생각이 많은 결코 만만치 않은 세침떼기란 말일세. 남자가 넓은 우정과 짧은 사랑을, 여자는 깊은 우정과 오랜 사랑을 선호하는가? 사랑이 인생의 전부인가 아닌가? 그건 슬쩍 모른 체 넘어가세나 친구여. 그런데 말이야 세침떼기 여자들 가운데, 그 중에서 유달리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시는 분은 누구다? 제발로 굴러다니는 호박이시지. 나이트클럽 이름도 그래서 둘 중 하나야. 신비 아니면 호박. 그와 같은 호박이 모여서 호박 마차가 되고, 다시 그 호박 마차에 탄 숙녀는 신데렐라겠지. 그런데 그 신데렐라는 알고 보니 남자였다더라? 세상에 뭐래니! 허허허 이건 진짜 농담일세. 어쨌든 그녀의 일생 동안 그녀가 좋아한 남자를 엑셀 파일에 정리하자면 자그만치 100명이란 말이네. 그러면 그 100명에서 차 떼고 포 떼고 그녀가 딱 2, 3명만 사랑했을까? 정말 그랬을까? 그녀는 그렇게 주장하고 싶겠지. 왜냐하면 그래야 그 소수의 사랑이 애틋하고 아름다워지기 때문! 그러나 사랑은 수학이 아닌 법. 따라서 그녀가 사랑한 상대는 그 남자들은 적어도 그보단 많다고 할 수 있지. 최소한 논리적으로 그 이상 아니, 그 수치를 거뜬히 초과하겠지. 그렇지 않겠나? 과연 나는 5번의 호감을 표했고 50번의 사랑을 받았다, 라고 말할 수 있을까? 입증은 어려울지라도 2번은 오리발이었고 3번은 남의 다리를 긁었다, 라고 노래해도 괜찮을까? 삽 한 자루를 들고서 산을 옮기고, 바늘로 해변가 모래알을 모두 세야지만 사랑일까? 상대방의 사랑 했다 안했다 라는 회상을 바람을 타고 파도를 넘고 사람을 건너 건너서 내가 먼저 듣고, 아하 그 값에 따라서 오직 그 순서에 의해서만 정녕 나는 사랑을 말해도 되는 걸까? 하지만 그렇게든 그 반대든 관계 없든, 나 편한대로 나 좋을대로 말하고 노래하면 그뿐! 내가 이 세상에서 지금껏 듣고 보고 느낀 걸로 치자면 말은 정말 그 누구라도 사랑의 화신인 것만 같아. 사랑의 글을 읽고 사랑의 노래를 듣다 보면 사랑에 대해 나보다 더 많이 아는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정말 그렇게 외치는 것처럼 느껴진다니까. 누구나 뒤돌아 보면 어려울 때 그런 생각 아마 하지 않을까? 넌 뭐가 그렇게 잘났냐, 라는 생각. 한 사람의 인품이란 그 사람 인격의 태도와 싱그러운 생활 형편이 약간 비례하느냐 정비례하느냐, 그 차이일 수도 있다구. 그게 혹시 나만 그럴까 궁금해. 그게 혹시 지금만 그럴까 의아하다고. 이따금 남자들이 난 내내 성실히 일만 했고 한눈 팔지 않았는데 라고 말한 다음에 어떤 말은 목에서 턱 막히는 것처럼, 나도 똑같지만 나는 말해. 말할 수 있어. 어떻게? 이렇게! 왜 진짜 삼류들은 그렇게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호사와 풍요와 인기와 함께 내게 운수 좋은 일류는 부담스럽다며 손사래를 치며 겸손해 하는데, 난 왜 진짜 삼류로 살아야 하는지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나이트클럽이 왜 (물)관리에 신경쓰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어. 나도 구분한다니까. 압축할 수 있어. 어떤 분량이든 어떤 사람이든 딱 한 단어로 축약할 수 있는 재능이 자연스럽게 생기는 걸 어른이라고 하니까. 뭐 보고 어 투정, 저건 농담, 저건 연습, 음 질투, 치 자기 합리화네, 어 순수예술가, 신비네 환상이네, 아 대중극, 허허 드라마, 하하하 낄 데 안 낄 데 다 끼는 포지셔닝이군 나대는 스타일이야 아 달갑지 않아. 말이 그렇다는 거야, 말이! 금시계를 차고 떵떵거리며 살고 싶다는 뜻이 아냐. 자유롭고 먹고 살면 되는 거지, 뭘 더 바라겠나. 난 삼류가 좋아. 그럼. 백조? 재미없어! 그렇지만 내 사랑을 내가 꾸미고 내가 꿈꾸겠다고 내 사랑은 내 사랑이라고 왜 못하겠냐마는, 사랑의 사전적인 정의와 겪어서 아는 사랑은 적어도 같지만은 않은 것 같아. ...그럴 수 없다고!... 이론과 실재는 엄밀히 봤을 때 앞모습이 같으니까.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받는 그 내 사랑의 특별함과 시점이 은밀하고 찬란하며 (만인에게 인기 있는) 고상한 영화와 같기를! 누구나 그처럼 원하고 그런 사랑만을 낭만적으로 동경하며 톨스토이풍의 사랑을 바라지는 않겠지. 누가 얼마나 처음부터 끝가지 남에게 손가락질만 받고 싶겠나? 어깨 뽕 들어가는 옷도 한때 유행이었다고. 그거 복고풍. 그러나 의식적인 생각은 그렇지만 사는 내내 사랑에 대해서 단 한 번도 오고 가는 정다운 말로써 대화를 나눠 보지 못한(아니 한) 입장에서 본다면 나는 아마 겉과 속이 다른 것 같은데, 이걸 어쩌지?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을지도 모르는데, 이걸 정말 어떡하나! 지난 내 모습을 누가 보고 실망하면 어쩐다?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나를 창피해 하면 어떡하냐고. 세상 사람들은 사랑은 얄미운 나비인가봐 라고 노래하지만 현실에서의 사랑은 어쩜 정말 나방 같단 말일세. 친구한테 나방이라 하고, 그 다이아몬드와 초콜렛과 해변의 파라솔과 웃긴 광고 같은 사랑은 내가 독점하고, 무대에서 노래해야겠지. 사랑은 얄미운 나비인가봐 라고. 요즘 세상 좋은 게 뭔가? 누구나 가수 누구나 스타라는 점이지. 그런데 뭐 친구한테 그 남자 그 여자 만나지 말라네 나방이라네? 너 나 잘해 정신 차려 이 친구야, 라~고 듣게 될지도 모를 일이야. 인생의 충고와 사랑의 조언은 쉽지 않아. 절대 쉽지 않아. 중매는 잘 하면 술이 석 잔이고 못 하면 뺨이 석 대라 하지 않나. 나 원 참! 그런데 또 어떻게 된 일이 누구는 얼굴만 비춰도 좋다 하고 누구는 하는 행동이 다 예쁘대? 도대체 그게 뭐야 아 나 이런! 그래서 말인데 난 아마도 사랑의 정담을 나누기엔 빵점인 것만 같군 그래. 그러므로 나는 차라리 미술과 문학과 음악에서 알려주는 사랑을 더 신뢰한다네. 사랑을 글로 배웠냐고? 그럼 사랑을 글로 배우지 뭘로 배우겠나! 때문에 내가 아는 사랑보다 타인이 말하는 사랑이, 내가 하고 내가 받은 사랑보다 세상의 그 다채롭고 화사한 사랑들이 뭔가 더 멋져보이는 것만 같다니까. 그러나 조금은 서글픈 얘기지만 사랑은 돈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걸 어른이 되면 알게 되지만 온전히 사랑을 돈으로 살 수는 없듯이, 사랑은 수학이 아니라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네. 그건 절대 무를 수 없어. 어쩌면 초딩이 학교 안에서는 산수를 배우고 학교 밖에서는 산수는 집어던지고 즐겁게 뛰어 놀듯이 사랑은 그런 산수에 가깝지 않을까 그런 의문이 덜컥 드는군. 그렇긴 하지만 예술가들이 말하는 사랑은 대충 그 100에서 상위 두셋을 가리키는 것 같아. 논리적으로 두셋을 거뜬히 초과한다는 이론은 뭐 이렇게 뒷골목 술집에서나 논의되는 개똥철학일 테고. 그래도 그게 썩 일리가 있어 이 친구야. 어? 생각을 한번 해 보라고, 생각을! 여자의 일생 동안 딱 2, 3명 남자만 만나서 오직 2, 3번의 사랑만 하겠다고? 그건 한마디로 불가능한 일. 다른 게 아니라 그런 일을 초현실이라고 해. 뭐 천연기념물 그런 거. 바로 나머지가 있었으니까 그 2, 3의 가치가 드높아지는 것이야. 그러므로 남자들도 그녀를 아껴주고, 그녀의 현재에 집중해주고, 무엇보다 여자를 아낄 줄 알아야겠지. 물론 그게 생각처럼 쉽지는 않지만 말이야. 때문에 100분의 1이 이별이라고, 사랑이 아니라고, 사랑이 떠나갔다고, 100분의 1의 행복이 좌절했다고, 100분의 1에게 난 (충분히) 사랑받지 못했다고, 100분의 1이라는 내 작품이 성에 차지 않는다고, 100분의 1에 해당하는 사회 인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100분의 1의 꿈이 실패했다고 너무 슬퍼하지 말란 말이 아니야. 그런 말이 아니라고! 응? 손바닥 뒤집듯 얼씨구나 하면서 곧바로 딴 남자를 만나란 것도 아니고. 그게 아니라 떠난 사랑에 대한 애타는 아쉬움을 달래든 형식이든 회심이든 예절이든 지난 사랑은 지난 일로 받아들이고, 다시 새 기분으로 새로운 삶을 살란 말일세. 그럼. 흐흠. 그렇다고 100에서 후반부에 가까와졌을지언정 그다지 회한에 휩싸여서 인생을 비관되게 생각치는 않는다네. 노인은 세상을 오래 살았거든. 그분들은 사랑도 하셨고 인생을 아시니까 세상만사 느긋하시고 여유로우셔. 그래도 젊음을 찬양하고 청춘이 좋긴 좋지, 그럼. 왜 아니겠나! 그래도 간혹 헤비메탈을 그때까지 듣는 분도 엄연히 계시다네. 젊었을 때 헤비메탈이 직업이었던 중년이나 노인은 인생 후반부에 신학의 정규 과정을 공부하기도 한다네. 그게 인생이니까. 게다가 100분의 1에 대해서 젊은 친구에게 조언해주는 재미도 쏠쏠하고 말이야. 그리고 무엇보다, 나나 되니까 어? 다른 누구도 아닌 어? 나나 되니까 이렇게 그대의 가녀린 마음을 달래주지 어디 가서 당신 같이 아름다운 숙녀가 그 누구에게 이 슬픔을 위로 받는단 말인가? 아니 그런가? 자네네 아가씨네 미녀네 하면서 손금을 봐 준다면서 손이나 한번 잡아볼라고 혈안이 되지 않으면 다행이겄지. 안 그런가? (......) 뭐라고? 아니라고? 1을 더해야 한다고? 100이나 101이나 그게 그거지 뭐. 허허허허허. 뭐, 뭐시여? 어?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라 끝에 0이 하나 빠졌다고? 아 나 이런 맙소사!」
5
무엇을 할 것인가.
나는 바람아 불어다오 라고 노래 부를 수는 없었다. 역시 바람아 멈추어다오 라며 연애편지를 쓴다는 것도 말이 안되는 일이었다. 나는 미래에서 온 듯한 사랑의 주인공도 아니었고, 한 편의 연애 드라마를 찍을 수도 없었기 때문에 나는 바깥으로 나가기로 했다. 그렇다고 어느 기묘한 점집에 가서 점쟁이한테 밑도 끝도 없이 개를 조심하시오, 이런 이상한 사건을 점지하는 듯한 예언을 듣는 음험한 상황을 반길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몇 가지 짐을 챙겨서 며칠 바람을 쐬고 오기로 했다.
굳이 긴 설명 필요 없는 공원에 도착했다. 강변이고, 텐트도 보이고, 사람들 약간 붐지는 곳. 고기를 구워 먹고 책을 읽고 기타를 치며 공놀이를 하는 모습. 그런 장소였다. 거기서 나는 캔 맥주를 마시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의 장편소설, 모렐의 발명. 재미없었다. 읽다 말았다. 왜 읽다 말았을까? 왜냐하면 읽는 즐거움이 약했기 때문이다. 그럼 왜 독서의 기쁨에 빠지지 못했을까? 왜냐하면 환상, 실화, 공상 가운데 셋째였기 때문이다. 실망스런 저평가라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인 호평이다. 훓어보고 뒤적거렸으면서 뭔 놈의 호평이냐고? OK. 젊은 나이에 창작 가능한 첫 작품으로써 상당히 우수한 편에 속한다는 것이다. 곧 그것은 읽는 중 뭔가 판단이 잘 서지 않는 젊은이한테, 평생 이와 비슷한 작품을 좋아할 사람에게, 첫 작품이 이러면 그 이후 작품은 이를 뛰어넘기가 거의 어렵겠네 라고 예상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꽤 인정받을 수 있는 작품이라는 것이다. 밀란 쿤데라를 아직도 잘 모르겠다 라는 사람은 감상할 수 있다. 그러나 보들레르의 감성을 담아서 인문적 소양의 글이 아닌가 싶은 그런 말을 문단 띄어씌기가 언제 나오나 싶도록 장광설을 그 언제라도 구사할 수 있는 전문가는 이런 글 못 읽는다. 만약 그게 가능하다면 그건 꾹 참고, 커피포트 푸쉬쉬쉭, 어떤 여자를 꼬실려고 그러는 것이다. 백 퍼센트! 다정한 시어로는 사랑, 다감한 어떤 용어로는 작업. 그 둘이 같다고, 다르지 않다고 나는 그런 말 못하겠다. 왜냐하면 실재 같지 않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러나 장 폴 사르트르처럼 굳건한 심지의 글을 턱 턱 문단 띄어씌기가 왜 안 나오나 싶은 그런 글을 쓸 수 있는 학자는 이런 작품에 빠질 수 없다. 절대 그럴 수 없다. 하지만 유행에 퍽 민감하고, 연애담과 연애-학과 연애소설의 권위자이며, 다변 및 다작이라는 가뿐한 양에 비해 사뿐한 퀄러티로 보면 겹치는 내용이 적지 않으며, 다방면으로 아는 게 많다? 빙고! 꽤 아는 체 하셨으면 좋겠다. 윙윙윙윙 진공청소기. 그럴 수도 있다는 말이다. 정독 및 완독이 가능하다고. 충분히. 그럼 환상과 실화와 공상으로 구분되는 글의 기준은 무엇일까? 이 작품의 경우에는 논리적이지 않고 즉흥적이다. 이리 갔다 저리 갔다? 농담이고 희곡 형식이라면 훨씬 나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집에서 영화를 틀어놓고서 지인과 함께 포도주를 마시며 정담을 나눈다면 모를까, 그녀에게 잘 보일려고 선심 쓰듯 함께 보긴 하는데 그런 생각이 자꾸 드는 거지. 도대체 내가 왜 앨런씨의 저 꺼벙한 연기를 꼭 극장에서 봐야 하는 것이지, 라는 의구심에 살짝 불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소설이 인문교양서와 희곡의 중간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러나 드라마를 수십 년 봐 온 숙녀는 생소한 드라마를 얼핏 잠깐만 봐도 다음에 어떻게 될지를 속시원히 아는 것처럼 이 이야기의 흐름은 그래서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됐어, 그러다 그러다가 그냥 끝날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보르헤스풍으로 좀 더 밀도 있게, 누구식으로 묵직함을 안고 고전음악처럼 한 여자만를 바라보며 똑바로 나아갔더라면 그러면, 그래도 읽지 않았을 것이다. 단편이면 몰라도. 따라서 그래프가 그려졌다. X축의 좌측은 학구적 우측은 영화-게임-드라마처럼. Y축의 위는 말 아래는 글. 그래프를 잘못 설정한 것일 수는 있으나, 거기서 어중간한 위치일 듯 했다. 그러므로 컬럼니스트는 이번 여행갈 때 (꼭) 가지고 가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중견 작가는 아마 그러실 테지. 내가 어릴 때 즉 나는 언제 무엇을 좋아했고, 또래들의 어떤 모습이 멋져보였으며, 그래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읽었다고, 그러다 그런 나를 내 친구들은 의아해하기도 했고 무척 신기한 듯 눈여겨봤으며,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같이 웃고 같이 슬퍼하는 친구가 될 수 있었다고. 픽션을 좋아하고 무엇을 따라하고 어떤 측면은 본받고 싶은 가운데 예술의 모방을 지속한다, 그러다 점차 화풍이 정립된다, 그런데 그게 창의적이다 하면 가난해도 일류로 대성할 가능성이 다분한 것이다. 그러다 말 수도 있고, 대성했다 폭삭 주저앉는 일 드물게 있다. 기사회생, 별거 없다. 올라갔다 내려갔다 다시 올라가면 그게 기사회생이다. 내내 바닥이다가 한번에 올라가면 그건 인생 역전이다. 다큐멘터리에서도 그런다. 유기견한테 주사 놓던 일을 잊으려고 알콜중독자로 지내던 일을 고백하면서 펑펑 울거나, 큰 빚이 별안간 닥쳐와서 뭘 먹어도 체하니까 한달 내내 이온 음료만 먹었다거나. 큰 불행이나 불편이 없다면 그게 바로 행복이지 않을까, 어른들은 뭔 얘기인지 잘 아신다. 돌아와서, 내 스타일의 특징 그게 대략 훈수를 잘 두는 것 같다 싶으면 평론가나 큐레이터나 제작자를 업으로 삼아 소셜 네트워크에서 나름 인지도를 얻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도 저도 아니고 이처럼 살살 밑밭만 던지고 간질간질 입질만 기다린다 그러다 슥 들어올려 보니 뭐야 이거 에잇 꽝이네 미끼만 버렸어 이런 젠장 ─ 세월아 가거라 나는 논다 너만 노냐 나도 놀자 나도야 간다 젊은 나이를 눈물로야 보낼 수 있나 ─ 어디 나만 쏙 빼놓고 너희들끼리 잘 노나 보자 스파이 이미 보냈느니라 ─ 청초한 봄날을 이렇게 보낼쏘냐 싱그런 금요일인데 향긋한 꽃잎이 떨어지는구나 아아, 막 그러면서? 그건, 그건 삼류다! 그렇기는 한데 에르메스 뭐 뭐 브랜드 디자이너에게 물어보면 정확히 비유된 조언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라고 장담까지 일삼지는 못하겠다.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었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다시 생각해보니 어쩌면 '모렐의 발명'은 꽤 괜찮은 수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번쩍거리며 번개처럼 떠올랐다. 혹시 한마디로 걸작은 아닐까 그런 의문마저 들었다. 내 마음은 혼자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요술 구두를 누가 신겨 주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난, 난 불안해졌다. 심지어 그동안 지나쳤던 작품들, 다시 봐야 할 문학과 드라마는 대관절 얼마나 많단 말인가, 생각이 거기에 이르자 등에 식은땀이 쭈삣 나기 시작했다. 귀 근처에도 핑~! 한 방울 두 방울 식은땀 쭉 났다. 비 오듯이 계속 흘렀다. 익명으로, 고품격 소설 전성시대 라는 제목으로 싸구려 소설이라도 써야 하나 그런 헛된 의문마저 날 가만두지 않았다. 아무래도 좀 더 감상하고 차분히 분석해 보는 게 좋을 듯 했다. 모르긴 몰라도 환상과 공상, 실화와 허구, 일반과 변이, 헛된 기대와 눈부신 호사, 그건 모두 어쩌면 종이 한 장 두께 차이는 아닐까 그런 의문마저 쉽사리 거부할 수 없었던 것이다. 신물이 나도록 듣고 또 들었던 예감을 자극하던 말, 황홀감의 극치를 경험하며 환장한 듯 빛나는 여체를 상상하며 꿈꾸던 선망과 고결한 섬세함의 선물 보따리를 모두 놓칠 수 없었던 글, 전자와 후자 마저도. 동화책이나 보고 동요나 부르고 동시나 짓는 건 주로 해맑은 아동기에 대한 모범적인 권장안이니, 응애응애 난 차라리 날이면 날마다 뛰어놀고 먹고 마시고 꿈꾸고 또 다시 노는 게 차라리 나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내가 쉬는 시간에 써도 이것보다는 잘 쓰겄다 같은 그런 엄한 험담을 떠올리지는 않았다. 난 그런 사람 아니다. 난 그렇게 꽉 막힌 사람이 아니라고.
6
그래서 나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으로 취미를 바꿨다. 손톱만한 구슬을 가지고 땅에서 굴리며 노는 아이들이 보였다. 그걸 보니 나는 내 어릴 적 다툼이 생각났다. 10살 때던가 동네에서 구슬 놀이를 하다가 동네에 살던 한 학년 밑인 동생의 구슬을 내가 모두 따버린 일이 있었다. 노을마저 넘어갔는데 녀석은 억울했는지 딴 구슬을 돌려달라고 했다. 나는 안된다 걔는 주라, 그래서 나는 녀석을 가슴을 주먹으로 쳤다. 녀석은 맞고서 몇 발작 물러나더니 내 머리채를 잡고 흔들었다. 아마 걔는 집에 누나들이 많았나 보다. 아 많았다 진짜로 많았어. 난 태어나서 머리채를 처음 잡혀봤다. 내가 그때 문학적 표현이 가능했다면 메두사나 뭐 그런 신화 속 이야기를 빗대어 설명할 텐데, 그건 불가능했고 당시엔 정신이 없었다. 머리채 한번 잡혀보시라 정신이 있나 없나 아시게 될 테니. 녀석은 잠깐 그러더니 내 머리채를 놓고 집으로 뛰어서 도망가버렸다. 나만 구슬을 쥔채 그 자리에 남았다. 상대는 이미 가버렸는데 따라갈 수도 없고, 봉두난발 머리카락 말고는 특별한 피해 없이 온전히 구슬은 쥐고 있으니까 나는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이상하게 왜 막 서러웠던지, 엄마를 봐서 그랬을까? 엄마는 왜 그랬냐고 그래서 엄마랑 나랑 녀석 집에 같이 갔다. 거리는 100미터였다. 그냥 엄마끼리 몇 마디 하고 말았다. 그게 다였다. 싱겁게. 그때 우리 반 친구도 한 명 옆에 있었다. 나랑 같은 반 친구는 녀석 옆집에 살았다. 걔는 중간에 언제 간지도 모르게 갔다. 그래서 다음 날인가는 모르겠고 언제 학교에서 점심 시간에 친구들끼리 노는데, 같은 반 그 친구가 그랬다. 너 방금 전에 금 밟았다고. 그래서 나는 달려가서 걔 광대뼈를 퍽 때렸다. 애들이 말렸고, 나는 친한 친구들 사이에서 좀 그랬다. 아마 그때 심정이 그런 것 같다. 넌 친구니까 날 도와주던가 내 편을 들었어야 하는데, 옆집 사니까 그랬나 넌 대체 어딜 가버렸냐, 그래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그때 또 친한 친구랑 둘이 멱살을 잡던 일도 있었는데 그건 뭐 그 친구가 교통사고가 나서 반 친구들끼리 병문안을 가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당시 그런 일들이 좀 있었다. 그래프가 침체된 시기였다. 정식 놀이터에서 놀지도 않았고, 방과 후 학원에 다니지도 않았던 데다 괜찮은 취미도 없어서 땅바닥에서 놀다 보니 그런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초등학교 3학년 때도 5일장 시장에 사는 친구네 집에 놀러갔다가 그때 잘 놀다가 시장에서 싸웠나 교실에서 싸웠나 그랬다. 6살인가 그때는 옆집에 이사온 형과 썰매 타고 다투던 일도 떠올랐다. 싸울려고 했는데 난 상대가 안되었다. 그 형은 유난히 테니스 선수를 많이 알았다. 지금도 기억난다. 보리스 베커가 이러쿵저러쿵 매켄로가 어쩌고저쩌고. 그 형은 그 얘기를 왜 나한테 해준 건지 난 지금도 모르겠다. 그래서 테니스계의 현 지존이 누구인지는 몰라도 나는 어디서 테니스가 취미라는 사람을 만나면 쓱~ 물어본다. 혹시 보리스 베커를 아시냐고. 그때 그 옆집 형은 형네 아빠한테 벌받아서 겨울에 팬티만 입고 동네를 뛰어다녔다. 머머 안하겠습니다 머머 안하겠습니다, 막 그러면서. 허허허. 재미없다. 나는 시시콜콜한 옛날 생각은 접고 다시 사람들을 관찰했다.
저기 저 아저씨는 배불뚝이네. 그는 오늘 착한 일을 몇 개나 했을까. 그의 첫경험은 언제일까. 대충 보니 중년 같은데 초혼일까, 이혼남일까. 그의 마지막 통정은 언제일까. 왈츠는 출 줄 아실까. 나는 날아갈 듯한 기쁨과 정반대되는 상태를 자초하고 있었다. 늘상 이런 식이다. 가슴이 미어질 듯한 희열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공원에서 외롭게 혼자 노니까 내 모습이 왠지 처량하게 느껴졌다. 나는 홀짝이던 캔 맥주를 놔둔 채 화장실로 갔다.
그런데 화장실에서 일을 보는데 웬 꼬마 신사가 내 물건을 막 훔쳐보고 있었다. 민망했다. 얘는 뭐야, 악동인가? 지금 그건 풍류? 몰취미한 아빠로부터 아직 교양을 배우지 못한 것일까? 쉽게 수긍할 수 없는 일이었다. 대체 얘 뭐지? 난 몸을 틀고 눈치를 주는데 녀석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꼬마의 가정 교육을 염려하는 푸념으로 일이 커지지는 않았다. 그냥 그러다 말겠지 했는데 그 어린애는 한술 더 뜨기 시작했다.
「그게 뭐야? 아저씨, 그게 뭐야?」
그게 뭐야? 어린애도 어린애였는데 나도 나였다. 왜냐하면 나는 언제던가 그와 비슷한 말을 들은 기억이 문득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대사는 음 기억나지 않는다. 잊어먹었다. 새까맣게. 그런 건 잊는 게 정신 건강에 좋다. 잊기를 잘했다.
「너 지금 제 정신이니?」 라고 꼬마를 혼낼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지금 이런 일을 가지고 꼬맹이와 독대를 해야 한다니 라면서 실소가 나왔다. 제법 맹랑한 꼬마인지 아기 천사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우리는 어느새 어물쩍 헤어졌다.
아니다. 다시 생각해보니 그때 꼬마 입에서 명대사가 하나 나왔다. 난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는데 꼬마 신사는 내게 이런 말까지 했다.
「삼춘. 내가 우리 이모 소개시켜줄까? 우리 이모 이뻐!」
뭐라고? 듣자 듣자 하니까... 그래 소개시켜줘 어서, 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내가 왜 삼촌이니 어? 형이지' 라고 할 수도 없었다. 설마 꼬마가 스파이일 리는 없겠지만 나는 일상을 동화로 보는 그런 현실감각 심각하게 떨어지는 아저씨는 아니기 때문이다.
화장실에서 낯선 꼬마와 헤어진 후 근처에 작은 경마장이 있길래 나는 그곳을 구경했다. 내 앞에는 두 마리의 말이 있었다. 그 둘이 연인 사이인지 친구 관계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때 갑자기 웬 마주로 보이는 듯한 노인 한 분이 내게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선생. 한 번 타보지 않겠수? 내가 봤을 때 선생은 지금까지 한 번도 말을 타 보지 않은 것 같소. 내 눈은 속일 수 없다오. 귀신조차도 내가 가뿐히 제압할 수 있으니 말이오. 나는 딱 보면 안다오. 척 하면 척! 아저씨가 순진한가 순진하지 않은가, 숙녀가 조신한가 조신하지 않은가, 아가씨가 응큼한가 응큼하지 않은가, 한 소년의 꿈이 소원인가 백수인가 예술가인가 야욕인가, 대번에 알아맞힐 수 있단 말이오. 거 뭐 식은 죽 먹기지. 뼈대 있는 가문으로 인정 받는 어느 명견의 20대를 내가 모두 똑똑히 지켜봐 왔기 때문이라오. 스누피의 아빠 엄마는 물론이고, 스누피의 할아버지, 그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다시 그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그렇게 20대를 내 눈으로 오래, 어? 오래, 지켜봤다오. 그러니 좀비나 나나 거의 동급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단 말이오. 아니 그렇겠소? 아니 19대던가. 18...대? 17대는 확실해. 최소 그래. 그 녀석도 있었거든. 사춘기가 일찍 온 녀석, 몽정기 기록을 새운 녀석도 있었고. 대단했지 모두.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웠어 다들.
인간은 누구나 새장 속의 새 같은 운명이라오.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굳이 대망을 품지 않아도 된다오. 그러나 그 말은 곧 이왕이면 그 새장을 키운다거나 마음이라도 넓고 멀리 보라는 의식의 확장에 대한 덕담일 것이외다. 선생은 오늘 보니 어디 보자, 위 아래 모두 베이지색 옷을 입으셨구먼. 베이지색 새가 뭐가 있지? 누리끼리한 거. 뭐가 있드라? 퍼뜩 생각이 안나는데 음, 있긴 있을 테지 왜 없겠수. 어떻소? 한 번 저 푸른 들판에서 말을 타고서 달려보고 싶지 않소? 내가 방금 뭐라 그랬는가, 젊은이. 사람은 새다, 저 앞에는 말이 있다, 사람이 말을 탄다, (딱)! 그게 뭐겠소? 말 위에 사람, 말을 탄 새! 그것은 곧 켄타우루스 또는 페가수스 아니겠소! 허허허허허. 놀라진 마시오. 겨드랑이가 가렵다던지 등판이 간지럽다던지 느낌만 그런 것 뿐일 테니까요.
그런데 저기 보이는 푸른색 말은 이름이 좀 길어. 난 당신만을 영원히 사랑하겠소. 그것이라오. 왜냐하면 우리는 천리마랄지 사랑과 야망을 그대에게, 적토마, 아내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 그런 시시한 이름은 안 키우거든. 그리고 그 옆에 있는 약간 연한 노란빛을 띈 연분홍색 말은 또 이름이 걸작이라오. 열 여자 마다하는 남자는 없다더라, 그것이라오. 저 친구 언니가 미인계, 동생이 허영심, 아마 그러지는 않을 것이오. 뭐 그러든가 말든가. 남의 말이 내 말도 아니고. 자, 선택하시오. 1번이오 2번이오? 푸른색 연분홍색? 한 여자 아니면 만 명의 첩을 거느린 중세의 지존? 아담 아니면 조르주 심농? 선택하기 힘들어도 운명의 순간에는 하나만 골라야 한다오. 그게 인생이라오. 모두 다 갖고 싶다, 아니면 마음이 복잡하니까 모두 외면해버린다, 또는 이리 갔다 저리 갔다? 그러면 인생 피곤해지는 지름길이라오. 내가 살아 보니 그럽디다. 고르고 싶은 걸 고르고 나중 만족이 무심함으로 변하는 것이 어쩌면 더 낫더란 말이오. 무엇보다? 뭐긴 뭐겠소. 어중간하게 끌려갔다가 희망하는 이상형은 바람 따라 날아가버리고, 현실에 체념하고, 사랑에 속고, 속임수를 또 믿고 거짓말에 또 속고, 재미없는 가식에 낙담하고, 즐거운 허풍에 마냥 행복해 하는 딴 여자의 사랑을 한없이 부러워하고, 인생에 실망하느니 비록 절망적일지라도 험버트처럼 한길을 택해야 한단 말이오. 그게 낮다오. 그래야 남자라오. 풍운아가 뭐 별거요? 나비넥타이를 맨 나이트클럽 웨이터 이름이 풍운아지. 흐흠. 그래, 어떻소?
아하~! 말타기 보다는 운수를 알고 싶은 거요? 어제와 오늘과 내일. 전생과 후생과 현생의 비밀을 알고 싶소? 뭐 그것 역시 내 부전공이긴 하다오. 선생이 그런 날 만났으니 오늘이 바로 운수 좋은 날일 것이오. 젊은이는 딱 보니 포부는 과자 봉지만 하군 그래. 어떤 그리움을 기다리긴 하는데 노림수가 너무 의뭉스러워. 아 속 보여. 에이~. 유난스레 그분에게 의지하는 스타일이야. 그런 개구쟁이를 잘 족치면 그는 척척박사도 됐다가 급진적인 예술가도 됐다가 어쨌든 삼류는 면하는데, 그런데 그 감수성 그 잠재력을 끌어내기가 여간 힘들지가 않아. 아 너무 벅차. 완전 첩첩산중이야. 보여. 보인다구. 아둥바둥 살아 봐야 인생 한 번이라네. 그렇다고 인생을 절대 쉽게 보아서도 안돼. 그럼. 오오 그런 무표정. 좋아. 좋다고.
내가 지금 자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맞춰 볼까? 때맞추어 딱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구먼 그래. 이 양반이 처음에는 품위 있어 보이고 뭔가 분위기 괜찮았는데 이거 보니 노인네 순 약장수구만, 라고 하지 않았나? 어? 어째 웃음을 꾹 참고 있는 것을 보아하니 딱히 뭐라 논박할 가치조차 없다는 눈치구먼 그래. 요즘 사람들은 잘 몰라. 약장수가 애태우다 애태우다 끝끝내 보여주지 않는 보자기 속 괴물이 무엇인지를. 그래. 나 약장수네. 난 도사란 말일세. 저 말 두 마리는 저기 저 내 차, 청보라색 파나메라 트렁크에서 나왔네. 왜? 안 믿기나? 보고 놀라지나 말게. 언제 의심했냐는 듯이 날 시피보는 그 눈빛은 쏙 들어가버릴 테니까 말이야. 왜, 호기심이 동하나? 오호라, 말이 타고 싶은 게 아니라 파나메라를 타고 싶나 보군 그래. 안될 것 없지. (노신사는 차 키를 건넨다) 아차~! 조수석에 내 아리따운 내연녀가 타고 있다는 걸 깜박했군 그려. 미안허이. 괜히 좋다 말았군. 허허허. 그래도 아직 시승식 기회는 남아 있어 이 친구야. 한 번 타 봐. 일단 타 보라구. 먼저 타 보고 나서 설을 풀어보잔 말일세. 푸른색? 연분홍색? 타 보면 기가 막혀. 캬 끝내줘. 안 타 봤으면 말을 말아야지. 자유를 노래하고 싶나? 그렇다면 시승하시게. <난 당신만을 영원히 사랑하겠소>에. 뭐이? 노노노노노노노! 인생을 즐긴다 삶을 찬양한다 떠돌이 행성을 알고 싶다 내게도 포기할 수 없는 행복에 대한 꿈이 있었다, 그런 개미의 꿈은 거들떠보지도 않겠다? 난 멋쟁이 베짱이니까 활활 타오르는 욕망이 깨어나야 한다? (쿵) 그렇지! 자 올라타시게. <열 남자 마다하는 여자는 없다더라>를. 어이쿠~! 아 미안 미안 미안. 잠시 헷갈렸네. 말 이름이 너무 길어. 헷갈려 마주인 나도. 남자랑 여자랑 바꼈어. 그래. 그래도 젊은이가 꽤 비타협적이군. 고집 있어. 끈기도 있고 거동이 가볍지 않아. 보기 좋다구. 믿음직스러워서 괜찮군 그래. 선생은 역시 1번, 누가 뭐라 하더라도 1번 스타일이야. 저 봐 봐. 어허 저 보라니까. 녀석도 감응하는 걸 보시게. 펄쩍 뛰고 막 자기 얘기를 한다고 헤헤헤 방실방실 웃고 있지 않나. 좋아서 웃는지 어이 없어서 웃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고민할 필요 없이 나는 1번을 택했다. <난 당신만을 영원히 사랑하겠소>를.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하필 그의 조수가 와서 어르신께 속닥속닥, 숙덕숙덕 귓속말을 했다. 긴요하고 급한 일인 듯 했다. 그런 다음 조수는 1번마를 끌고 가버렸다. 뭐야? 아마도 VVIP가 왔나 보다. 그 인간이 대체 뭐하는 작자길래? 그래서 결국 나는 어쩔 수 없이 2번마를 시승하게 됐다. <열 여자 마다하는 사내는 없다더라>를. 이때 내 경이적인 표정은 가히 압권이었다. 그것은 폭소가 아닌 절박함이었고, 설탕이 아닌 작태였으며, 감동이 아닌 광기나 진배없었다. 한마디로 망한 거지! 왠지 난 속은 것 같은데, 그런데 또 썩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분명 누가 봐도 잘못 걸린 건데, 완전 제대로 말린 건데, 또 썩 그렇다고 하기도 꽤 애매했다. 재량껏 1번마를 탈려다가 피치 못할 사정으로 2번마를 탄 것이니 희롱 당한 건 아니었다. 그렇다고 대놓고 외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야호~ 신난다 라고. 완전 머쓱해졌다. 내가 졌다. 나는 진 거다. 무엇에 패배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 마음 속에 루저 마인드는 굳건했던 것이다. 나는 박제된 천재가 아니라 낙마한 삼류였던 것이다. 그러나 재밌기는 재밌었다. 하지만 덮어놓고 좋아할 수는 없었다. 그 점이 약간 아쉽다면 아쉬웠다. 대체 말의 이름을 왜 하필 그렇게 지어가지고 사람을 들었다 놨다, 쥐락펴락하는지. 누가 봐도 누가 보지 않아도 이건 미스테리다. 말의 의도일까 사람의 사심일까. 아름다운 인생을 위한 브랜드 포지셔닝일까, 모진 이 한 세상 웃어버리자 그러자꾸나 라는 단순한 농일까. 어떻게 세상에 이런 일이, 말의 이름이 뭐 열 뭐 난 뭐라고? 말도 안돼. 아 나 이런 정말 말문이 막혀버리는군. 사랑을 추접스럽다고 할 수도 없고 살다 보면 참 난감한 일이 있긴 있나 보다. 하긴 말과 대면한 순간 난 정신이 혼미할 정도로 넋이 나간 듯 했다. 정말 아차-했고 아찔-했다. 왜? 나도 모르겠다. 그냥 그랬다. 핑계일 수도 있으나 우린 어쩜 전생에 연인이 아니었을까 그런 상상마저 골똘히 떠올랐으나 난 그런 엄한 추측은 냉큼 뿌리쳐버렸다. 왜냐하면 나는 그런 허무맹랑한 공상에 빠져 살 만큼 한가한 초딩은 아니니까. 모르긴 몰라도, 내가 조금이나마 녀석들의 자태인지 이름인지에 혹여 매료되지 않았을까, 그런 의혹이 전혀 없었다면 그건 새빨간 거짓말일 것이다. 그래도 무턱대고 성낼 일은 아니었다. 나름 뭔가 서운하기는 했으나 살짝 웃기고 즐거웠으니까. 하여튼, 내 마음 속에 있는 그 무언가의 정체가 채울 수 없는 경외심인지 가상의 낭만인지는 몰라도 꿈과 모험과 신비와 환상, 이런 건 내게 가당치도 않았던 것이다.
7
다음 날이 됐다. 색다른 기분은 느껴지지 않았고 특별한 날도 아니었다. 약속도 없었고, 마음을 흔들 만한 새로운 관심사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평소대로 일과를 시작했다. 차를 마시고 하늘을 쳐다보고. 그렇게 그날 아침은 조증도 울증도 아닌 평범한 아침이었다. 허언증이 끼어들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아침부터 탐욕을 부리겠나 어쩌겠나. 그러던 중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아니 누구지? 올 사람이 없는데.
바깥에 나가보니 웬 판타지 영화에나 나올 법한 제복을 입은 여섯 친구들이 있었다. 그들은 어른들이 아니었다. 어린이에 가까웠다. 그렇지만 난쟁이도 아니고 뭔가 어중간했다. 그 친구들은 똑같은 제복을 입고 있었는데 모두 조수라고 해야 하나 분신이라고 해야 하나, 각자 한 마리씩 동물을 데리고 있었다. 목줄을 채워서 그 가죽줄을 단단히 붙잡고 있었던 것이다. 동물들은 이랬다. 양, 고양이, 개, 늑대 그리고 벌통과 엇그제 봤던 1번마. 벌통은 한 사람이 가방처럼 짊어지고 있었고, 다른 동물들은 고양이까지 모두 유순한 채 주인에게 순종하고 있었다. 얘네들 대체 뭐지? 느낌 이상했다.
그들은 자기들이 장미 기사단이라고 했다. 장미 기사단? 꼬마 기사단이 아닌가 해서 웃음이 튀어나올려고 했으나 겨우 참았다. 우리는 또 이런 난감한 상황에서 막 실없이 웃는 그런 남자는 지양한다. 맞춰줘야 할 것 아닌가. 초면에 결례를 범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그렇지, 아 나 이거 정말 사람들이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본단 말이야. 어디서 동화 속에 나오는 난장이 비슷한 사람들을 모아 놓고서 또 무슨 쇼를 하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그 자리에서 내가 화를 내겠나 어쩌겠나. 실례를 끼치기는 어렵지 않다. 그러나 그래서는 안된다. 무례함? 하면 잘할 수 있다. 그러나 불경스러움은 피해야 한다. 즐거움을 찾는 게 좋다. 참고 기다리고 견디면 기쁜 일은 찾아오게 마련이다. 고생 끝에 낙이 오는 것이다. 그렇다. 받아줘야지. 장난이든 놀이든 적빈한 만화영화 주인공 따라하기든. 그들이 말하는 골자는 이랬다. 내가 어제 놀이터에 나타났던 목마에 주문을 새겼기 때문에 자기들과 함께 어디를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어디를 간다고? 그런데 어디를? 내가 무슨 불감증도 아니고 이젠 더 이상 웃기지도 않았다. 나도 오기가 생겼다. 어쭈 이 친구들 봐라, 그런 뭐랄까 반갑고 신선한 기분이 되살아났다. 지켜보고 싶었다. 확인하고 싶었다. 거긴 대체 어디일까 막 궁금해졌다. 앞일이 알고 싶어졌다. 정말 어디까지 하나 보자 라고. 만일 어디를 간다고 하면 따라가고 싶었다. 만약 저쪽에서 갈려다가 마음이 확 바껴서 가지 않아도 괜찮겠다고 한다 할지라도, 나는 가자고 보챌지도 모를 것이다. 오히려 내가! 그러다 적당히 말도 놓고, 때 되면 드리블 시작해야 하니까. 또 무작정 막연하고 낯선 느낌이 다가 아니라 조금은 재밌었다. 그 배우 누구지? 맞다. 피터 딘클리지. 한두 명은 아마도 어린이인 것 같고, 두세 명은 젊은 소인인 듯 보였으며, 한둘은 어른 숙녀인데 완전 키 작은 유형인 것 같았다. 자, 그래서! 그래서? 그래서긴 뭐가 그래서야? 나는 겁도 없이 그들과 함께 길을 나섰다. 어쩌면 겁나게 재밌는 모험이 펼쳐질지도 모르지 않는가 말이다. 별 기대는 없었으나 어째 꽤 상큼한 전망이 느껴졌다.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란 예감, 날 자꾸 자극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친구들과의 짧은 대화는 간략했기 때문에 따로 옮기지는 않겠다.
우리는 출발했다. 그들은 각자 차를 하나씩 타고 왔다. 차는 이랬다. 평범한 RV, 컨버터블, 스마트 포투, 볼보 웨건, 애스턴마틴 한정판 최신형, 중가 브랜드 전기차. 동물들도 큰 앙탈 없이 차에 탔고 우리는 출발했다.
그렇게 두 시간 정도를 갔을 것이다. 나는 이 근처 어지간한 길은 모두 알고 있었지만 그들이 가는 길은 처음 가보는 길이었다. 그건 마치 위장 초소로 가려놨다가 그들이 가까이오니 감추어진 길이 딱 짜잔 하면서 나타났기 때문에 갈 수 있는 그런 길인듯 느껴졌다. 판에 박은 듯 손바닥 보듯 다 아는 마을에서 신기한 비밀 경로를 찾아낸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우리는 어느 마을에 도착했다.
촌스럽게 인사말이 커다랗게 보이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럴까. 왠지 서운했다. 미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라는 표어를 바라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그 친구들 말로는 이곳은 장미기사단 마을이라고 했다. 마침 그때 어제 내게 1번마 시승의 기회를 주신 어르신이 내 앞에 나타났다. 나는 반가운 한편 어째 느낌이 쎄했다. 이거 혹시 바깥으로 못나가는 것 아닌가 그런 불안감이 교묘히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난 무척 투미한 남자처럼 내가 혹시 누명을 쓰지는 않았을까 걱정이 되기까지 했다. 어제 아쉽게도 타보지 못한 2번마를 당신이 훔쳐가지는 않았냐고 만약 그렇게 따진다면 난 뭐라 해야 할까, 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오호호 잘 왔소 선생. 오시느라 고생이 많았겠구려. 우리들도 참으로 신기했다오.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최후의, 진정한, 단 하나의 비밀결사대인 우리가 그처럼 우연히 동류를 만날 것이라고는 미처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라오. 어제 놀이터에서 봤던 그 트로이 목마. 그게 원래 인간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건데 어떻게 자네는 거기다 낙서까지 하다니, 너무도 대견스러웠다오. 쟨 울었단 말이야. 너 그래 너 임마 푸하하하하. 앗 미안하오. 잠시 경박하게 보였다면 잊어주시길 바라겠소. 내가 원래 점잖은 장미기사단인데 간혹 그럴 때가 있다오. 이해하시구려 허허허허허. 어디까지 얘기했죠, 아 맞다. 우리가 선생을 알게 되어 좋았다, 어디 그게 다였겠소? 오랜 친구를 만난 것 마냥 반갑기 그지 없었단 말이오. 아무튼 말이오 저쪽 세상에서 그동안 고생이 많으셨소. 이번 단장님은 아직 공석이지만 전임 단장님께서 특별한 마법 능력을 부여해주실 것이오. 기대해도 좋소이다. 허허허허허. 허허허허허.」
얘네들 뭐야? 장난하나? 난 말이 나오지 않았다. 할 말을 잃어버린 것이다. 웃을 수도 없었고, 장미 뭐라고? 믿기지도 않았다. 그래도 대충 분위기를 보아하니 놀이공원에다 동물원과 공원에 유락 시설과 예술원과 환상관등 놀고 즐길 거리는 부족하지 않은 듯 하니 적당히 놀다 가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그건 명백한 오판이었다. 왜냐하면 난 이제 그곳에 갇혀버렸기 때문이다. 들어올 때는 내 발로 들어왔지만 나갈 때는 내 마음대로 나갈 수 있는 길이 없다고 했다. 아, 누가 그런 사실을 알려주지는 않았다. 모두 쉬쉬했다. 겨우겨우 물어 물어서 간신히 귀뜸으로 동냥한 사실을 겨우 하나 건졌다. 그래서 나는 하루 이틀 일단 구경하고 돌아가는 눈치를 살피기로 했다. 황망하게 조바심에 안절부절 떨어봐야 딱히 득될 건 전혀 없을 것 같았으니까.
8
일주일이 지났다. 장미기사단의 마을에서 난 이미 주민이었고, 단원이었으며, 뭔가 새로운 호칭을 기다리고 있었다. 설마 마법학교 그런 건 없겠지만 말이다.
다시 일주일 하고 하루가 지나서야 나는 알게 됐다. 그동안 수없이 보며 후회하고 투덜댔던 판타지 영화는 다 뻥이었다는 것을.
예컨대 이곳은 지상 천국이었고, 요컨대 난 영영 여기서 살아가야만 했다. 픽션에서는 그런다. 악령이 있고, 싸워야 할 악역들이 등장하며, 마법의 문 그 봉인이 열리며, 게임의 단계와 허구의 기승전결이 있다고. 그러나 그건 다 동화고 애들 장난 같은 이야기였다. 왜냐하면 그것을 만드는 사람과 보는 애호가들은 그런 곳을 실제로 한 번도 가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건 모두 상상의 산물에 지나지 않은 것이다. 그냥 뜬구름 잡는 공상이고, 애먼 몽상에 지나지 않은 것이다. 그건 허구고 여긴 현실이었다. 완벽한 지상 천국, 그러나 재미없는 천국. 없는 것 없이 다 있고, 걱정은 전혀 없는 그런 곳. 아 괴로움과 짜증과 슬픔이 있기는 있다. 예를 들면 불면증이나 따분한 축제와 심심함의 극치 같은 것. 하늘도 무심하시지 지상 천국에서 뭔 불만이 그렇게나 많냐고? 지상 천국이 이럴 줄 미리 알았다면 난 지상 천국에 따라오지 않았을 것이다. 완전, 완전 재미없다. 내내 지루하고, 종종 덜 심심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식상했다. 나긋나긋한 음성도 들리고, 꿈 많고 밝은 그녀는 물론 미녀와 선녀와 애교로 무장한 고운 숙녀들은 그야말로 넘쳐나기는 넘쳐났다. 하지만, 그런데 모두 소인이었다. 작은 대상은 귀엽다. 강아지도 그렇고 사람도. 그러나 왠지 여기 지상 천국이라는 장미기사단 마을에서는 그분들과 나는 뭔지 모를 거리감이 느껴졌다. 여긴 딱 B급 영화 감성이 풍만했다. 이곳이 무슨 영화 세트장도 아니고 날이면 날마다 이렇게 무료하게 보내야 하다니,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엉덩이가 근질근질했다. 도시에서 살아본 사람이 시골에서 한동안 살아보면 안다. 왜 사람들이 도시에 사는지를. 도시에 살면서 떠나자─떠났으면 야 바다다─따분해지면 다시 도시로─그게 좋지 내내 한적한 시골에 살라고 하면 막 귀에서 코에서 수증기가 나올 것이다. 안 봐도 뻔하다. 원래 그렇다. 그렇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뭔가. 처음에는 장난 같길래 그냥 따라왔는데 이건, 장난이, 아니었다. 드라마도 아니었고, 픽션도 아니었다. 믿기지 않는데 사람들한테 물어보면 다들 말을 돌리거나 말귀를 못 알아먹었다. 반전은 기대할 수 없었다. 부족한 건 전혀없고, 딱 1주일 쉬었다 가라고 하면 더없이 근사할 정도인데 살라고 하면, 살아야 한다? 이게 다 꿈이었으면! 이건 컴퓨터 그래픽이 아니었다. 이런 일이 있을 줄 알았다면 내 진작 장미십자회와 프리메이슨과 막 그런 지식들을 왕성하게 수집하고 공부하고 그랬을 텐데.
아, 여기서도 저쪽을 볼 수 있다. TV로. 인터넷도 된다. 그러나 되면 뭐하나. 돌아갈 수가 없는데. 사람 환장하겠구먼 그럴 수 밖에. 판타지 영화야 작전이 있고, 드래곤이 오랜 잠에서 깨어나면 난리가 난다. 그러나 여기서는 험난한 여정 그런 거 없다. 탄탄한 시나리오 그거 다 거짓말이다. 판타지 장르는 순 엉터리였고, 작품들 태반은 다 오락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저쪽 세상에 대한 소문이라도 무성하면 좋을 텐데 다들 바깥으로 나가본 적이 없기 때문인지 원래 그런지 통 대화의 즐거움을 모르는 사람들처럼 느껴졌다. 극적으로 쪼커를 뽑을 기회마저 전무했다.
나는 가가멜에게 전화를 했다. 내 전화를 위치 추적해서 날 좀 데리러 와 달라고 부탁하기 위해서. 가가멜은 착한 친구다. 날 데리러 올 것이다. 게다가 가가멜은 내 전화번호 연락처를 숭상하는 친구다.
「여보세요.」
「네. 무슨 일이시죠?」
「무슨 일은 뭐가 무슨 일이야? 야 가가멜. 나야 나. 날 좀 데리러 와줘야겠어.」
「네? 누구요? 내가 당신을 왜 데리러 가야하는데요? (옆에 있는 누군가가, 누구야?) (옆에서 그 말을 한 친구에게) 모르겠어. 웬 미친놈이 자기를 데리러 오라 하는데.」
「가가멜. 나라니까. 아 진짜 이거 왜 이래? 나 제임스야, 어? 지금 상황이 좀 그래. 길게 설명할 수는 없어. 일단 내 핸드폰 위치 추적하고. 이쪽으로 와 주라. 응?」
「누구? (옆에 있는 장본인에게) 웬 미친놈이 지가 제임스래? 멀쩡히 함께 놀고 있는 친구가 옆에 있는데 그게 뭔 말이야 대체? 얘 뭐하는 놈이지? 돈 뜯어내는 사기꾼일까?」
결국 가가멜과의 통화는 실패로 돌아갔다. 속상했다. 가가멜 옆에 이미 내가 있는 것 같았다. 누가 나를 사칭하는 게 분명했다. 나는 내 번호로 전화를 걸어봤다. 정상적이라면 없는 전화번호라거나 통화음이 들리거나 그래야 하는데, 그냥 굉장히 듣기 거북한 삐─ 음이 들리는 것이었다. 마블 코믹스 만화를 방불케하는 주파수 대역의 소리였다. 순간 뭔가 잘못됐다는 직감이 들었다. 그러나 실은 나도 솔직히 말하자면 이곳의 생활이 썩 싫은 건 아니었다. 저쪽에서 자유롭고 풍족했고 불만이었던 일들이 모두 여기서도 똑같이 그러지는 않았다. 거기서 부정적인 일들은 모두 해소됐다. 일단 여기는 모든 재화 가치가 무료였다. 돈이 필요없었다. 경제 원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야말로 천국이었다. 처음에 그 노인네가 괜히 지상 천국이라고 하지 않았다는 것이 증명됐다. 여기서 삼류 요리사가 저쪽에 간다면 완전 그는 인기 끝짱일 것 같았다. 나머지도 다 그랬다. 여기서 유행하는 음악에 빠져 살다가 내가 옛날에 살았던 곳의 음악을 듣게 되면 아마 인상 험악해질 듯 했다. 이쪽에서 만나는 사람들도 모두 재밌었고, 딱히 지루한 일이라곤 전혀 없었다. 뭐가 없다고 하면 구해줬다. 뭐든지. 그래도 뭔지는 모르겠으나 뭔가 궁금하고 어떤 채워지지 않는 희미한 그리움이랄까 그런 무언가가 있었다. 나도 그게 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나는 슬슬 저쪽 세계를 잊게 되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었다.
장미기사단 내부에는 없는 게 없었다. 보통의 도시와 똑같았다. 그리고 지역 행사가 하나 특별한 게 있었다. 이름은 패자부활전. 명예가 걸렸는지 인기가 걸렸는지 그건 알 수 없었다. 여기 사람들은 돈은 필요가 없으니 저쪽의 상금에 해당하는 품목이 무엇인지를 내가 알려면 아마 어느 정도 장미기사단 애송이 티를 벗어야 가능할 것으로 짐작했다. 패자부활전이라는 경기는 쉽게 말해 스포츠였다. 축구, 농구, 야구, 럭비, 테니스, 골프와 비슷한. 그런데 선수들이 사용하는 도구는 고급 골프채가 아니라 솜방망이였다. 솜방망이? 매스컴에 잊을만 하면 오르락내리락 하는 바로 그 솜방망이? 와! 그게 실제 존재하는 장비인 줄은 꿈에도 몰랐다. 여긴 황금이 많냐 적냐, 그건 의미가 없기 때문에 설마 장미기사단 친구들이 장비병에 걸렸을 거라곤 추정할 수 없었다. 있다 보니 점점 신기한 게 많아졌다. 또 왕왕 설명하기 곤란한 쾌락도 꽤 적지 않은 듯 했다. 세세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소소한 즐거움이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여기서는 사랑의 묘약은 물론이요 젊음의 특효 처방 역시 손쉽게 구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런 말이 있지 않나. 천기누설! 내 입으로 모두 하나하나 요목조목 설명할 수는 없는 일이다. 내가 입만 뻥~끗 하면, 안된다 안된다. 참아야 한다. 꾹 참아야 한다. 왜냐하면 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돌아가서 블로그도 쓰고 놀러도 다니며 할일이 있고, 멋지게 살아야 하는 인생도 있으며, 최고로 만들어서 더 아껴야 할 사랑이 있다. 발설해도 괜찮을 일이 있나 없나, 파악하면서 차츰 이곳을 더 알아가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나는 지도도 그리고, 엑셀 파일로 표도 작성하고 그러면서 나는 이곳의 전문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오랫만에 저쪽 세계 생각이 났다. 귀찮았다. 그래도 10분 정도 저쪽 세상 소식을 알아보기로 했다. 인터넷에 들어갔다. 특별한 일은 없었다. 내 블로그에도 들어갔다. 로그인이 안됐다. 그런데 최신 글은 업데이트되고 있었다. 그 인간이 날 가장해서 잘 활동하고 있는 듯 했다. 나는 처음에 시무룩하게 독설을 퍼부으면서 내 블로그의 글을 읽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 상황이 억울하고 화도 났고 가엾기도 했으나 그 처음의 안절부절 허허로웠던 기운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다. 왜냐하면 그 이야기가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수준도 뭐 그런대로 봐줄 만 했다. 내가 다시 포스트모던 소설을 읽던 고딩 때로 돌아갔던가, 아니면 내 분신이 예전 나보다 한층 격상한 글을 만들어내는 것만 같았다. 나는 그가 가상했다.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는 곧잘 잘 해내고 있었다. 어쩜 기특했다. 난 애청자가 되었다. 나는 여기서 저 세상의 애독자가 되었던 것이다. 이미 나는 장미십자단의 공고하며 신실한 주민이 되어있었지만 그건 취미이자 작은 관심이었다. 그건 자유였다. 저번에 전화로 들은 체 만 체했던 가가멜에게 뜻모를 고마움이 느껴졌다. 손만 뻗으면 최고로 멋진 옷을 입고, 최상의 예술만 상대하고, 어떻게 이런 황홀한 맛이 나는 진귀한 음식이 있었지 하는 그런 음식만을 날이면 날마다 먹어댔다. 그래도 살은 전혀 찌찌 않았다. 사랑의 솜사탕을 먹으면 또 몸집이 두배로 커졌다. 다시 사랑노래를 부르면 정상으로 돌아왔다. 이제 나는 이곳 여자들이 없으면 살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녀들은 나를 위해 비치발리볼도 보여주고, 날 위해 이름까지 바꾸기도 했다. 애첩이라고. 어디 그게 문제겠나... 아, 쉿! 참아야 한다. 참아야 하느니라. 아닌 게 아니라 여긴 정말 지상 천국이었던 것이다. 그러다 간혹 저쪽에 대한 회상에 잠기면 나는 내 블로그에 들어가 새롭게 올라온 글을 읽어보곤 했다. 그 최신 글은 이랬다.
9
나는 어느 날 꿈을 꾸었다. 꿈을 백 번 꾸면 99번은 개꿈이다. 그러나 어제 꿈은 그 1번에 해당했다. 땅을 파 봐라 돈이 나오나? 나온다. 희박한 확률이란 게 있다. 나왔어, 나왔는데 그 돈은 검은 돈일 수도 있다.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되냐? 된다. 희소한 증후군이란 것도 있다. 된다 수박이 되긴 하는데, 그런데 호박 시절 버릇 못 버리고 바쁘게 야밤에 돌아다닐 수도 있다. 보통 위엄은 챙기고 실리는 잃지 않기 위한 행동을 허세라고 하는데, 허세의 대표적 예시는 그거다. 내가 못할 줄 아냐? 그런데 그것을 허세가 아니라 실행을 위한 선포로 말하는 사람, 있다. 좌우지간 상태야 어떻든 일단 돼지꿈에 당첨됐다. 좋았다. 놀라웠다. 너무나 생생했다. 그러나 야한 꿈은 아니었다. 나는 꿈에서 내 볼을 꼬집어보기도 했고, 그 어딘가로 가면서 추억의 유행가를 잔뜩 들었던 걸 확연히 기억한다. 무슨 놀이공원에 도착했는데 그곳은 천국이었다. 어디선가 아마데우스의 오페라 서곡들과 C장조 미사가 울려퍼지고 있었다. 아 맞다. 나는 그곳까지 여섯 난쟁이와 여섯 동물들과 함께 갔다. 혹시 그게 꿈이 아니라 몽유병 때문에 실재 겪은 일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래서 어떻게 됐드라? 그래서? 그 다음은 기억나지 않는다. 맞네, 개꿈! 이런 젠장.
좀 더 꿈이 드라마틱했다면 희곡으로 써서 영화로 만들어볼까 그런 생각도 있었지만 대꾸할 가치조차 없는 공상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최근에 자주 가는 공원에 가기로 했다. 나는 그곳에서 한 꼬마를 알게 됐다. 그런데 우리가 친구가 되기도 전에 녀석은 내게 자기 이모를 소개시켜주었다. 만나 보니 그 이모는 좀 맹했다. 그 뭐랄까 백치미란 게 있었다. 물론 내가 그 아가씨를 어떻게 한번 해 보겠다는 그런 이상한 마음을 품은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처음부터 그녀는 완전 적극적이었다. 정도껏 적당히 호감의 신호를 보내는 그런 층위를 뛰어넘는 일이었다. 내가 시를 읽는다고 하니까 나 보고 악성이냐면서 어쩜 그렇게 예술에 조예가 깊냐고 했다. 아는 척을 하기도 민망했고, 기분이 완전 이상했다. 내가 손만 까딱해도 얘는 분명 뭐라 그럴 것 같았다. 혹시 오빠는 헌팅턴 무도병을 이겨내시지 않았냐면서 거의 나를 정신 박약으로 몰고 가며 나를 무슨 돌팔이 도사로 취급하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분명한 건 그녀는 순수했고, 그녀는 젊었고, 그녀의 미소는 아름다웠고, 그녀는 사랑을 애원하고 있었다. 나는 그 지고의 연정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기억했다. 내 사랑이 뭐 어째서 삼 세 번만 딴 남자를 만나보겠다는 어떤 일을. 나도 공원에서 알게 된 꼬마의 이모, 그녀를 딱 세 번만 만나보기로 했다. 실은 난 별로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꼬마 친구의 부탁이고, 숙녀의 애청을 모른 체 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나는 낭만을 애용하고, 허풍을 속삭여주고, 그녀의 지성과 미모와 탁월한 안목과 고운 마음을 찬미해 주기로 했다. 로맨스가 왕림하고 큐피트의 간청을 이상적인 사랑으로 실현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딱 세 번은 만나기로 꼬마 신사와 약속했기 때문이었다. 나도 싫었다. 적잖이 꺼림칙했다. 그러나 사람이 자기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살 수는 없는 법이다.
오늘은 그녀와 두 번째 데이트를 하는 날이다. 그녀의 이름은 지지고, 꼬마의 이름은 클리브다. 꼬마는 이모를 소개시켜주었으니 이제 뛰어 놀러 꿈동산으로 떠났을 것이다. 설마 이모 옆에 착 달라붙어 눈치없이 솜사탕을 사달라거나 목마를 태워달라 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리 어리더라도 우리 꼬맹이가 그 정도로 꽉 막힌 친구는 아닐 테니까. 내가 사람을 좀 볼 줄 안다. 취향과 습관과 성격만 보이는 게 아니라 미래는 보일 때도 있고 안 보일 때도 있지만, 나머지는 마법의 수정 구슬을 보는 것처럼 다 보인다. 간혹 헛다리를 짚기도 하지만 말이다.
나는 오늘 약속 장소에 오기 전에 미용실에 다녀왔다. 새로운 신발도 사서 신었다. 신경 많이 썼다. 향수도 뿌리고 거리의 새들과 희망의 합창을 불렀다. 잊혀졌던 사랑노래도 불렀고, 멋진 시상도 떠올렸으며, 달님에게 안부를 전했다. 당연히 구름은 솜사탕이었고, 바람은 남국풍의 정취를 풍기고 있었다. 어차피 그녀를 만나서 나는 사랑을 가르쳐줄 것이다. 그러나 이별하는 방법은 알려주지 않겠다. 참고할 만한 블로그도 알려줄 것이다. 내가 손가락 (딱) 하면 그녀는 최면에 걸릴 것이다. 그 이름은 블로그 신드롬! 뭐 원한다면 사진이라도 같이 찍을 수는 있다. 그렇게 썩 나쁘지 않은 마음으로 들뜬 기분을 진정시킨 채 붕붕 떠다니다가 나는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그런데,
어머나 글쎄! 오 이런 개뿔! 지지와 클리브는 같이 나왔다. 이모가 조카를 데려왔는지, 조카가 자기도 따라가겠다고 졸랐는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기분이 죽 쑤어 개 주는 것만 같았다. 아무리 어린애라고 떼쓸 게 따로 있지... 쯧쯧쯧! 나는 생각했다. 설마 얘와 쟤가 이모 조카 사이가 아니라 혹시 모자 관계가 아닐까 라고. 그런데 어쩌면 설마는 역시나로 결론날 것 같은 불길한 예감마저 날 도저히 놔주질 않았다. 내 동심을 일깨우고 살짝 기분 전환을 느껴보기는 커녕, 혹시 어쩌다 나중 피앙세가 알게 되면 약점 제대로 잡힐 일이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었다. 난 거리낄 게 전혀 없었다. 꼬마와 놀아주고, 그 명목상 이모에게는 연애소설과 사랑시에 대해 가르쳐준다는 건전한 명분이 떡하니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먹고 놀고 돌아다니고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상황은 거기서 더 악화되고 말았다. 왜냐하면 저쪽에서 그 마주 어르신께서 2번마를 끌고 오시는 게 보였기 때문이다. 혹시? 이만 말을 줄이겠다. 암만 해도 그때 그 심정이 너무나도 새록새록 떠올라서 지금 이 기분으로는 절대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조 울컥했고, 지금도 울컥한다. 이만 말을 줄이겠다. 맞다. 말을 잘 줄였다. 나는 그날 그냥 썩은 미소와 가짜 웃음만 왔다 갔다 했던 기억 밖에는 남은 게 없었다. 아 뒷목!
10
나는 꼬마 클리브, 이모 지지, 노인장 티토와 친구로 지내기로 했다. 것도 그냥 친구가 아니라 인생 친구로. 말을 나눠보고 내면을 파악해보니 모두 좋은 사람들이었다. 다만 그들이 모두 일가족이란 것뿐. 그래도 우리의 친교가 문제될 건 전혀 없었다.
그런데 다음 날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사건이 발생하고야 말았다. 난 당신만을 영원히 사랑하겠소 라는 1번마가 바로 나를 찾아온 것이다. 그것도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것도 아니고 어떻게 우리 집까지 찾아왔다는 말이다. 1번마 혼자서. 녀석은 말이고 나는 사람이다. 그런데 1번마가 인간의 말을 했다. 지가 사람인 줄 아는 것일까? 아니면 내가 말인 줄 아는 걸까? 나는 처음에 내가 돌았나 그랬다. 그건 환청이 아니라 진짜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1번마의 안장이나 목줄이나 어딘가에 소형 스피커가 장착되어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누굴 속일려고... 그러면서. 그러나 찾을 수 없었다. 설마 말의 성대 근처에 녹음 재생기를 붙여 놓았을까 추측하며 그쪽도 잘 살펴보았다. 없었다. 아무런 꼬투리도 없었다. 전혀 없었다. 허허허허허. 허탈한 웃음이 나왔으나 난 기절하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미 긴장했고, 가녀린 눈꺼풀 떨림이 시작됐다. 식은땀 물론 났다. 살면서 이런 일이 언젠가는 반드시 한 번쯤 찾아올 것이라고 각오하고 있었던 것이다. 정말 그러지는 않았지만 막상 닥치니까 무대에 올라가니까 즉흥 연기가 저절로 된다고나 할까, 어깨에 뽕이 들어가지는 않고 그냥 떠오른 아무 말이나 막말도 좋으니 아무 말이나 하고 어서 내려가자는 그런 심경이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자니 말이다. 멍석 깔아주면 하냐 못하냐 라는 소질이나 끼의 문제가 아니라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꼭두각시의 숙명도 있긴 하나. 말은 그래도 실은 난 당시 그냥 얼어버렸다. 그런데 그런 내가 재밌게 보였는지 1번마가 내게 물었다.
「넌 이름이 뭐니?」
그 말을 듣고 난 즉시 대답하지 못했다. 말의 얼굴과 머리에 사람의 몸이라면 친구와 장난친다는 상상을 하거나 TV로 인터넷으로 본 일이라서 웃으며 대꾸하겠지만, 이건 뭐 거의 꿈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도 아니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말인데 말의 입에서 사람 말이 나오네? 아 이런 참 나 이거 정말, 내가 말을 때릴 수도 없고 상대는 해야겠고 미치겠네 미치겠어. 그러면서 나는 더듬더듬 대답했다.
「남자는 나이가 들면 힘이 꼭 밑에서 위로 올라오지는 않아. 힘은 외부에서도 전달받을 수도 있거든. 방법은 많아. 그렇다고 꼭 내 꿈이 평생 놀고 먹겠다는 그런 이상한 심보로 포장되어 있다는 황당한 사실을 어떻게 내 입으로 말하겠니? 안 그러니? 응, 넌 어떻게 생각하니? 아 그런데 뭐라고 물어봤지? 아 이름이 뭐냐고 물었는데 난 '꿈이 뭐냐'로 들었네. 저런! 안녕. 반가워. '나는 당신만을 영원히 사랑하겠소'야! 내 이름은 의무-방어전이야. 아니 아니 잠깐만 있어 봐. 어. 그래. 내 이름은 다시 말할께. 내 이름은 지명-방어전이야. 아니 해설자가 나을까? 가는 여자... 그나저나 넌 2번마는 어디다 떼어 놓고 혼자 여기까지 왔니? 그리고 넌 말인데 분명 말인데 어떻게 사람 말을 할 수 있어? 그게 진짜 말이 된다고 생각하니? 어? 아 나 정말 어이가 없네. 답답허다 참말로.」
그러나 그건 실재 상황이 아니라 내가 떠올린 공상이었다. 난 허언증이 도진 것이다. 맙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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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나는 도시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나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무인 카페를 발견했고, 저번에 친구와 함께 바닷가에 놀러갔다가 누드 수영으로 시작되었던 객지 생활 때문에 발견한 폐쇄된 투우장인가 경마장인가도 발견했다. 나는 그곳으로 갔다. 친구는 부르지 않았다. 새롭게 발견한 아지트를 알게 되자마자 가르쳐줄 수는 없었다. 최신 유행가를 젊은이가 지겨워 한 다음 우리 아저씨들이 뒤늦게 으쌰으쌰 좋다고 신나게 듣는 것처럼 나는 그곳에서 홀가분함을 만끽해야 했다. 혼자서 멋도 찾고, 영감도 기다리고, 풍류도 즐긴 다음 그 후에 단물이 빠지면 남성 잡지에 단문이라도 기고할 생각이었다. 그렇다고 그곳이 뭐 풍선껌이란 말은 아니다. 정말 그만큼 특별한 기분이 느껴졌다는 것일 뿐이다. 닭을 경마장에, 것도 좋은 시절 다 가버린 그곳으로 불러 봐야 그 꼴 밖에 더 되겠나, 그럴지도 모르니까 하는 말이다. 닭 쫒던 개 경마장의 하늘을 쳐다본다는. 내가 최고인데 나를 왜 하필 이런 누추한 곳으로 불러냈냐 갈 데가 여기 밖에 없더냐, 불호령이 떨어질 게 뻔하니까 말이다.
그곳에서 나는 부족한 대로 음악도 듣고, 저번에 못 읽은 책도 마저 분석에 들어갔다. 글을 생활의 의미나 재미로 읽는 게 아니라 뭐 분석? 그게 취미란 말인가 일이란 뜻인가. 아무튼 자문자답은 흥미 없고, 엉성한 대로 나는 멋진 자태를 잡아보고 싶어졌다. 우연히 행운이 따라주었을 뿐이다 이게 다 여러분 덕분이라는 맵시 같은 것. 간신히 겨우겨우 얻어걸려서 어쩌다 운 좋게 행운의 바람을 타서 공이 담장 너머로 어떡하니, 넘어갔네? 어머 장외홈런! 환호성 후후 짝짝짝. 그런데 뭐야 이런, 파울 홈런이라니. 난 혼자서 인사치레로 경마장을 한바퀴 돌았다. 내가 말은 아니지만 골 세러모니를 하고 싶었으니까.
그 순간 내 볼을 꼬집어야 할 일이 발생했다. 내가 딱 한바퀴를 돌고 나자마자 경마장으로 1번마, 난 당신만을 영원히 사랑하겠소 께서 입장하신 것이다. 빰빠라밤 빰빠밤 빰빠밤~! 이때는, 바로 이때는 사랑의 팡파르였다. 저분이 어떻게 여기까지 행차하셨지? 쥐도 새도 모르게 어떻게 여기까지 오셨냔 말이야. 나는 이렇게 혼잣말을 읊조렸다.
「이게 웬 어복이고 무슨 풍년이란 말인가.」
풍악은 필요치 않았다. 나는 마음의 문을 열었다. 나는 기분이 좋아졌다. 내가 혹시 1번마 위에 올라타면 그랑프리는 내 껀가? 설마 난 애마부인은 아니겠지. 설령 1번마께서 잡힐 듯 잡힐 듯 잡히지 않더라도 그녀는 나비고, 나는 마음 단단히 먹고 쫓아가면 그만이다. 사랑이 뭐 별건가. 문제될 건 아무것도 없었다. 보고만 있지 말고, 혜성처럼 나타난 1번마에게 나도 뭔가 화답을 해야 했다. 왜냐하면 나는 포기를 모르는, 물러설 줄 모르는, 말은 그래도 허영심마저 능히 포옹할 수 있는 사랑의 화신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 만큼은. 게다가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거리낄 게 전혀 없었다. 창피할 일도 없고, 손해볼 건덕지도 없었다. 나는 이제 어쩔 수 없이 못 이긴 척 시상대 위에 올라가야만 했다. 다 차려진 밥상에 황금 숟가락을 올릴 차례였다. 그런데,
그런데 어떻게 이런 일이! 불청객이 나타난 것이다.
내가 1번마의 꽁무늬를 따라서 경기장을 한바퀴 돈 다음 두 번째 바퀴를 돌려고 하던 바로 그때, 1번마를 잡으려는 꼬마 신사의 이모 지지가 나타났던 것이다. 난 당신만을 영원히 사랑하겠소? 언 발에 오줌 누기야 뭐야! 1번마는 당장 이름을 바꿔라 바꿔라. 그래야 한다 그래야 한다. 뭘로? 쇼 한다? 놀고 있네? 아니 아니. 나 잡아봐라로! 나는 민첩한 반사 신경으로 신속하게 경기장 바깥으로 빠져나갔다. 그런데 가만히 지켜보니 그 이모를 쫓는 누군가가 또 있었다. 그분은 바로 2번마였다. 2번마 뭐드라 아 열 여자 마다하는 사내는 없다더라. 아 나 이런 이거 진짜 뭐 하는 거야.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그런데 일이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럴 리가 있나. 2번마의 깜짝 등장에 뒤이어 곧바로 우리의 마주 어르신이신 노인장 티토께서 납신 것이다. 노익장을 여기저기서 과시하시는군 대단하셔 아 멋져 정말 멋져. 그럼 그게 끝이냐? 그럴 리 있겠나. 연이어서 저번에 화장실에서 내 쪽을 힐끔힐끔 기웃거리셨던 꼬마 신사 클리브군께서 나타나셨다. 나만 빠질 수 있냐 그런 거지. 마치 나만 빼놓고 늬들끼리만 놀러 갔냐는 듯한 성난 몸짓으로 말이다. 이건 뭐 거의 서커스 수준이었다. 말이 나오지 않았다. 어안이 벙벙했다. 썩은 미소조차 아까웠던 것이다.
정리하자면 선두는 1번마 난 당신만을 영원.... 에잇 나 잡아봐라, 둘째는 이모, 셋째는 2번마 열 여자 마다하는 사내는 없다더라, 넷째는 마주 어르신, 다섯째는 꼬마 신사. 아아 이게 다 뭐란 말인가. 오오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난제였다 그것은. 절묘한 비책이든 뭐든 그 무엇도 허락하지 않는다는 그런 신비한 난제. 언제 이후로 푼 사람이 일절 없다는 바로 그런 난해한 수학 문제. 아 수증기 푸쉭 푸쉭! 혼자 만의 아지트 그런 건 철지난 시트콤에나 나오는 것인가 보다 라고 생각하며 나는 현장을 떠났다. 뭐라 논평할 가치도 없는 하루였다 그날은. 다름 아니라 인생은 개꿈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누가 그런 조언이라도 건넨다면 그날은 볼장다본 거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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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집에서 최근 있었던 몇몇 일들을 떠올려봤다.
나는 근래 주관에 대해 생각했다. 그것이 무엇이고, 어떤 과정을 거쳐서 형성되어 개인의 고유한 성정이 외적 성격으로 일관되게 때로는 다층적으로 표출되며, 어디서 영향을 받고 어떻게 변하는가를. 그리고 양치기 소년도 되었다가 매사 따분해 하는 동네 아저씨 역할도 마다하지 않았다. 소셜 네트워크를 매일 봤고, 인터넷과 TV는 내 일상이었다. 평소에 만나던 세 친구를 만났는데 재미가 없길래 새로운 세 친구를 사겼다. 교제한 기간에 비해 친분은 금방 두터워졌다. 또 공원에 갔고 동물들을 만났다. 개꿈을 꿨고 데이트 기분을 느껴볼려다가 실패했다. 거짓말을 했고 나만의 아지트를 발견했다. 그리고 어느 장편소설을 하나 분석했다. 아 맞다. 1번마와 2번마와 함께 추억도 만들었다. 별다른 사건은 없었지만 나중 틈틈히 생각날 것이다.
기억이 왜곡될 수 있듯이 추억도 과장될 수 있다. 지나고 보면 회상은 달콤하기도 하고 힘든 일은 시간이 해결해 주기도 한다. 이런 인지 체계에 대해서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책은 인문 서적이다. 나는 괜찮은 인문교양서를 대략 30세가 넘어서 알게 됐다. 그 전에는 반쪽 짜리 글만 알았던 것이다. 과장하자면 그건 신세계였다. 감상적으로 말하자면 그동안 내가 알던 세상은 반틈짜리였던 것이다. 그리고 최근에는 시도 읽을려고 나름 자세를 가다듬고 있다. 1번마, 2번마도 그래서 위에서 소재로 다루어진 것이다. 일명 밑밥. 그렇다. 바로 이런 때 써먹을려고 낚시도 실전 먼저 시작해서 놀면서 독학했다. 독자께서 물고기는 아니지만 말이다. 나는 고딩때 책을 많이 읽었다. 왜냐하면 공부를 하기 싫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였나는 생략하고. 당시 나는 외국 문학을 전공하여 알랭 로브그리예에 관하여 외국 언어로 논문을 써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은 내국인의 소설을 주로 읽었다. 그렇다. 그는 작가 이전에 학자다. 학문을 먼저 배웠고, 학문도 절반은 실전이겠지만 정식 등단은 학업을 마친 후에 해당하는 경우다. 학자풍이라고 하기는 좀 뭐하지만 같은 소설가와 시인이라도 학자이자 교육자를 겸하는 작가와 전업 작가는 약간의 차이점이 있긴 있다. 뭔 차이냐, 는 모르겠다. 최소한 같지는 않다. 뿐만 아니라 하필 그 1번의 처녀작은 제목마저 '경마장 가는 길'이었다. 당시 연기파 명배우와 명감독에 의해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그외에도 고딩때 책을 많이 읽었는데 그게 왜 특별했냐 하면 나중 인생도 그처럼 처음 만난 대상의 이니셜과 두 번째의 이니셜이 거짓말처럼 일치했기 때문이다. 그건 인문서적에서 통계를 내서 증명한 내용이다. 많은 사람들의 공통점이라고. 무의식 때문일 수도 있다. 나도 평범한 사람인지라 그 전철을 밟은 것이다. 그래서 그 후 삼류 대학에 들어가서 또 공부를 하기 싫으니까 강의 시간에 소설을 읽었다. 그런데 이때 또 첫 번째의 이니셜과 비슷한 두 번째를 고른 것이다. 문제는 첫 번째와 두 번째가 이니셜만 비슷했다는 것이다. 1번은 내가 생각했을 때 문학에 유리한 언어로 문학을 전공하여 학구적인 훈련을 탄탄히 거친 포스트모던 스타일의 글이고, 2번은 내가 봤을 때 명백히 인문-교양에 최적화된 언어의 방식으로 사고하는 학업 없이 타업계에서 소설업계로 이직한 경우에 해당되는 글이었다. 굳이 표현하자면 1번은 학계이고 2번은 업계, 1번은 전형적인 학파 2번은 오락 성격이 강한 상업성에 가깝다. 인기라는 것은 학문보다는 비교적 상업에 가깝고 유리하고 유익하다. 각자 장단점은 있지만 전자가 월등히 숫자가 적고 창작자의 생활 및 작품이 재미있기가 더 어렵고 힘들다.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어느 분야든 완전 독학 천재는 드물고, 유독 높은 정규 교육 수준을 요구하는 분야도 각각 다르다. 허름한 술집에 들러 바에 앉았고, 바텐더 아가씨가 어디-문학을 전공한다길래 제임스 조이스를 읽어봤냐고 물으니, 그녀가 하는 말은 달그락달그락 웬 빈 깡통 소리만─부전공은 모르겠고 전공이 피아노라는 숙녀를 채팅방에서 만났는데, 몇 마디 나눠보니 이거 원 삐삐 빽빽 기적소리만 울려 대고. (무슨-주의 그런 거 아님) 그런 평범함이 아닌 저이는 왜 저렇게 인생을 재미없게 사나, 왜 그렇게 어려운 길을 가나 싶은 정도의 학습을 완수한 경우. 쉽게 말해 이런 눈에 띄는 분포 말이다. 어디-어디 계열 경영자, 그해 고등학교를 졸업한 프로 신인왕, 영화감독인데 배우 출신이냐 어디 영화학과 출신이냐, 정신과 의사 출신 관현악단 지휘자. 바로 그런 이치 때문에 백조의 고고함과 앵무새의 달변과 뒤통수를 벅벅 긁게 만드는 까마귀 울음 소리를 부르는 딱따구리의 효력은 물론이요 타-조류도 한몫하는 것이다. 차별화의 잇점 분명 있다. 촌닭과 촌년의 분포가 넓으니까 어 음 나 같은 촌닭왕도 허풍 대회 출전을 고대할 수 있는 것이다. 안 그런가? 그런가 안 그런가? 꼭 뭐가 켕겨서 그런 건 아니다. 하나를 얼마나 깊이 아느냐, 전공이 여자냐 허세냐 아님 뭐냐, 어떻게 살았냐, 딱 보면 알 수 있다. 음 추리소설가네, 그런데 언어학을 전공했네, 다음 작품이 기대되는데, 그거다. 아무튼 그래서 나는 1번은 다 읽었고, 2번은 다 읽은 게 하나도 없었다. 태생은 덜 중요하고 후천적으로 동쪽이냐 서쪽이냐 그런 작풍은 더 중요하다. 그러나 정답이 하나는 아니다. 위로 갔다가 아래로 가도 되고, 남서로 갈려다가 듣고 보니 맞는 거 같아서 북동쪽으로 갈 수 있다. 상관없다. 하지만 일단 갔으면 딱 한 바퀴는 돌아봐야 함. 수박 겉 핥기 99번 다음에 내 인생 최고의 연인을 만날 수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 사람 사는 데는 어디를 가나, 누구를 보더라도 이와 비슷한 예를 찾는 건 어렵지 않다. 옛날에도 그랬지만 지금 나는 3번 이상만 읽으니까 그런 현상은 더 짙어졌다. 다만 폴 오스터 같은 작가처럼 장편에 치중하는 일관성을 매우 높게 산다. 지금이야 뭐라 뭐라 하지만 전에는 나도 애였다. 몸만 어른이었다. 세상을 몰랐고 인생도 몰랐다. 먼저 스스로를 몰랐다. 지금이라고 안다고 보기는 뭐하지만. 어쨌든지 시류에 편승하고 유행에 따르며 남과 비슷해지고 싶은 마음은 내게도 있다─있었다. 없는 게 아니다. 누구나 그런다. 이 얘기는 개인적 경험임과 동시에 사람에 관한 일반론이다. 뭐랄까 두 가지 생각이 기름과 물처럼 잘 섞이지 않는다─않았다. A: 남과 비슷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불안감. B: 남과 다르고 싶고 나만의 개성을 찾고 싶은 마음. 산수로 간편하게 구분할 수는 없지만 조금은 나이에 따른 차이가 있음. 그게 뭐냐면 아마 이게 아닐런지. 젊어서는 A와 B 모두 중요한데 B가 불투명하니까 그것이 무엇인지 확신이 서지 않기 때문에 A를 좀 더 따라갔고, 덜 젊어서는 B를 조금 알게 됐다고 하면 이해가 쉬울런지! 인생에 관한 어떤 분량이 확보되니까 뭔가 보이는 것 같다. X축 시간, Y축 나를 얼마만큼 아느냐, Z축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정도. 그게 모두, 시간에 따른 실행과 성과의 결과치가 어느 만큼 쌓여야 주관이 좀 더 선명해지기 때문 아닐까? 덜 젊어지면 그래 늙으면, 경륜이 쌓이기 시작하면 최소한 그런 현상이 줄어들면 줄어들지 늘어나지는 않는다. 어떻게든 이해할려고 하고, 어떻게든 믿어볼려고 하는 마음 같은 것. 강한 어조에 다 아는 것처럼 하도 우기길래 듣고, 읽고, 보고, 만나고, 보고, 참고 또 참고, 기다리고, 접고, 꺾고, 다~시 듣고 읽고 보고, 결국은 에이 재미없네. 순진함과 소심함과 수동적인 태도 같은 거. 콜라보다는 우유, 독주보다는 칵테일, 커피보다 쥬스 같은 거. 초등학교 수업이 기억난다. 저는 뭐는 무엇 때문에 어떻다고 생각합니다─동의합니다─제청합니다─반대합니다. 그때 이후로 내가 경험한 세상의 글과 말은 대부분 <뭐라고 생각한다 무엇이지 않을까>라는 백조의 고고함이 아니라, <아니 뭐는 뭐야, 아니다 관심없어, 아니야 뭐라고? 아니지. 뭐가 어쩌고 어째? 아니라니까>라는 촌닭의 주장이었다. 백화점보다 시장이었다. 학계보다 업계였다. 경기장보다는 도박장이었다. 작품보다는 게임이었다. 그 흥겹고 소란스럽고 조야한 분위기가 무작정 나쁘다는 뜻이 아니다. 인간의 삶을 반영한 드라마를 통해서 본인도 많이 배우고, 많이 웃고, 때로는 빠졌고, 어쩌다 울었으며, 아마도 좋아했다. 촌닭의 특징을 딱 하나만 손꼽아 보자. 이심전심! 사람은 원래 촌닭이다. 인간은 촌스러움이라는 특성을 가지고 태어난다. 촌스러움은 보고 듣고 먹고 자고 사랑하는 본능과 같다. 따라서 남자는 촌닭이고 여자는 촌년이다. 태어날 때 이미 그렇게 태어난다. 그런데 딱 태어나는 순간 문구점이나 오락실에 있는 뽑기 기계처럼 점차 우주처럼 넓어지며 특정한 파형을 따라가게 된다. <나는 무엇을 좋아한다>라는 취향, 외부 반응에 따라 <나는 무엇을 하고 싶다>라는 욕구가 변화하는 감수성, <A와 B는 물론 욕망과 꿈을 객관적으로 냉철하게 구분하고 설명할 수 있는가>라는 안목까지. 인간은 기본적으로 촌닭과 촌년이지만 내면의 몇몇 항목은 엄밀히 각자 다르게 타고난다. 태어날 때는 촌닭이고 촌년이다. 하지만 인간에 의한 질서와 규칙을 관장하는 현대판 신이라는 돈의 기준에 따라, 그것에 조금은 영향을 받아 오리로도 조류학자로도 펭귄으로도 바뀐다. 변한다. 그러나 신분이나 인생은 그렇더라도 타고난 천성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변할 수 없다. 예를 들면 이렇게. 취향은 맹금류, 감수성은 관조류, 안목은 촉새. 문명의 발전에 따라 인류의 인구는 늘었으나 다산의 일정 영역은 개인의 즐거운 인생으로 바꼈다. 사석은 몰라도 유명인으로써 목소리가 크고 말이 많으면 아무래도 고급에서 멀어질 가망성이 그 반대보다 더 크다. 인기의 분파가 인지도와 선호도이듯이 돈이라는 토끼는 잡고 격조라는 환상에서는 멀어지기도 한다. 외모는 같은 영장류이지만 내면은 동물농장의 그분들 만큼이나 사람은 각자 다름을 알아가는 것, 그것을 주름살이라고 한다. 물론 주름살이 느는 만큼 인품이 고상해질 수도 있으나 얼굴이 두꺼워지기도 한다. 먹고 살려면 그럴 수 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나이듬에 따라 나와 세상과 인생을 아는 것. 그 기간이 짧으면 이른 승진이고, 행운을 타면 출세다. 계급장의 더딘 오름이나 환경이 마음에 들지 않아 옷을 벗은 다음 앞날을 도모하는 것을 뭐라 하냐, 새로운 인생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제는 전보다 더 내게 알맞는, 내가 좋아할 정보를 선별하는 능력이 전보다 늘었으니까 누가 뭐라고 말하든, 누가 뭐라고 한마디 글을 남겼던 그것을 모두 바꿀 수 있게 되었다. 뭐는 뭐다 누구는 어떻다 무엇 때문에 황홀하다 엄청난 몰입 어떤 이야기, 그런 얘기를 다 바꿀 수 있게 되었다. 어떻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로! 주관은 비교적 전보다 자리를 잡았고, 심지는 가지를 많이 뻗었다고나 할까. 어쨌든 주관이 말랑말랑하지 않다 보니 이제는 뭔가 보인다. 웃긴 말로는 도사, 어떻게 보면 피곤한 스타일, 은어로는 꼰대. 왜냐하면 뭔가가 보이니까 그럴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어떤 언어는 짧아야 유리하기 때문에 말과 논리에 관하여 유독 합리적이고, 어떤 언어는 산문에 무척 적합한 것 같구나 일반인의 기고문만 해도 멋져 보이니 말이다, 어느 분야는 형식미를 최고로 치니 정말 미련하리만치 격식을 따지는구나, 어디는 미술이 어디는 고전음악이 어땠네 라고.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누구나 아는 상식이고 고전을 읽어 봐도 나온다. 로마제국의 전성기가 어땠고, 고대 아테네가 어쨌다고. 비잔틴 문명은 어떻더라 그런 교양들 말이다. 그걸 모르는 어른? 없다. 지혜라고 하기에는 뭐랄까 오글거리긴 하지만 돌이켜보니 누가 이런 걸 가르쳐주질 않았다. 비슷한 얘기도 있었을 테고, 들었을 텐데 내가 엄한 딴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전체적인 지식을 상당히 인상적으로 축약해서 차분히 누가 내게 말했고, 내가 그것을 들었던 기억은 글쎄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없는 것 같다. 없으면 어떤가. 어느 정도는 경험으로 부딪혀서 알고 깨달아야 할 부분들이 많은데 말이다.
반복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물론 이 주제 얘기도 하고 또 하고, 참 많이도 반복한다. 명백한 사실, 도리는 죄송, 구실은 (더 반복될까 봐) 걱정. 반복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소설에 관한 이니셜 반복이 있었다면 기기에 대한 이니셜 반복도 있었다. 음악도 남들 듣는 만큼은 들었는데 대학교1년 때는 CD플레이어를 들고 다니면서 들었다. 걸으면서는 아니고 도서관과 버스에서 그리고 주로 고전음악을. 그때 산 브랜드가 P로 시작하는 브랜드였다. 제품을 살 때 선택의 폭이 협소했음. 가진 돈 얼마에 파는 기기 몇에. 거의 우연이었는데 나중 반복될지는 몰랐음. 그로부터 십 년 남짓 지나 디지털 카메라를 처음 샀는데 또 우연처럼 어쩌다 똑같은 브랜드를 구입. 첫 디지털 카메라니까 당연히 입문용 및 보급용을 고르고, 역시 가진 돈 얼마에 선택폭은 덜 좁았지만 비슷한 모양의 고급 제품을 살 수는 없고 어쩌다 그렇게 됐음. 아마 누구나 거의 비슷한 경험들 많을 것이다. 이제 그때부터 대충 10년 지났으니 이제는 자동차를 음 어디 보자 P로 시작하는 브랜드를 하나 사볼까? 것도 뚜껑 열었다 닫았다 하는 걸로? 열은 좋은데 비해 통장 잔고가 없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는 생각보다 크다. 살다 보면 멀리도 봐야 하고 챙겨야 할 것도 많다. 그 대신 블로그를 차라리 판도라의 상자로 키워보는 게 좋겠다. 같은 이니셜 P니까. 그럼 기기까지만 그랬을까, 과연? 그럴 리가 있나. 사랑도 그처럼 이니셜이 반복되더라. 사랑마저도 첫 번째의 이니셜을 따라갔다. 중간에 사랑까지는 아니지만 그냥 만난 사이가 있었는데 그 친구는 당시 커피포트를 떠올렸을 것이다. 어떤 과거 얘기도 하면서 이젠 결혼을 하고 싶다고 고백하며 진공청소기를 연상시킬려다 다른 실토까지 해버렸는데, 그녀는 뭐 이런 남자가 다 있나 아마 그랬을 것이다. 이니셜 때문에 그랬다. 남자가 정상이라면 도저히 그러면 안되는 거였는데 나는 당시 진화까지는 아니더라도 손도 안잡았으니까. 제발로 굴러서 호박이 혼자 막 움직이고 또 움직이고 방법도 (허허허) 참 특별했는데도 말이다. 이니셜 반복 아마도 무의식이 작용했나 보다. 그 후로 언제던가 이런 글을 읽었다.
1.포지셔닝/잭 트라우트&앨 리스 「결혼이란 가장 좋은 사람과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상대적으로 좋은 맨 처음의 사람과 하는 것이라고 봐야 옳다」
2.나를 디자인하라/카림 라시드 「기다리고, 절약하여, 최고의 제품을 사라.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물건을 살 때까지 버티라」
1번은 포지셔닝을 정하거나, 경영학 및 컨설팅의 관점이며, 상품을 파는 쪽의 입장이다. 그리고 2번은 온전한 소비자의 관점이다. 1번은 맨 처음의 사람이 상대적으로 좋은지 어쩐지 비교할 대상이 없다는 게 문제다. 아빠 사랑해, 는 건너뛰자. 그래서 어른들이 스무살 보고 뭐라 하느냐, 애라 한다. 애기라고. 2번은 문제가 뭐냐? 누가 그게 싫으냔 말이다, 그러고 싶은데 그게 어디 생각대로 되냔 말이지. 자존심이 밥을 먹여주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1번을 더 짧게 요약하면 이렇다. 상품 가치가 높을 때 승부를 걸라, 농부의 마음이다. 내 안목이 나아졌을 때 사랑하는 게 유리하나 사랑은 사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운명론자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는다고 사랑도 많이 해 봐야 잘할 수 있지 않을까, 즉 경험론이다. A 기준선 이상의 사람과 연애하고 B 기준선 이상의 사람과 결혼하라 또 애인의 기준선이 C 이하라면 그때가 언제라도 물러야 옳다, 즉 조언은 잘 참고하되 자기 인생 자기가 책임지라는 책임주의다. 그 외에도 많다. 실리 추구형도 있고, 꽃을 든 남자도, 나 꽃이야 유형의 여자도 (숨겨둔) 애인 있어요 부류의 사랑도 있다. 그런데 1번을 짧게 요약한다면서 자꾸 더 생각만 복잡하게 많들어버린 듯 해서 무척 송구스럽다.
그러면 2번을 압축하면 무엇일까? 합리주의다! 그 단점은 기다리다 기회를 놓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말은 쉽다. 그게 뭐가 어렵겠나. 오죽하면 부러우면 지는 거다란 말이 있겠나. 심지어 지름신 같은 신조어도 있고, 고로 그분이 오시면 이성은 벤치로 밀려나실 수 밖에 없다. 2군으로 내려가지 않으면 다행이고.
삶의 소소한 일들을 결정하는 행동 양식, 매사 선택하는 데 미세하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특별한 원인, 그나마 행운이 찾아와서 1번과 2번이 합치될 수도 있긴 하나 어디 그런 행운을 만나기가 쉽겠나. 게다가 관록미와 젊음은 양립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 남부러울 것 없는 집안에서 자란 숙녀일지라도 고아한 취향과 타고난 안목을 따져보면 완벽한 촌년인 경우가 드물지 않다. 댓가 없는 복은 대체로 없다. 쉽게 굴러온 호박은 간혹 불량품도 있다. 공짜를 잘못 먹으면 탈난다. 기억나는 나이트클럽 이름 가운데 하나는 신비다. 신비에서 만난 인연조차 도시와 시골은 뭔가 다르다. 목적은 엇비슷한데 사귐의 성격은 딴판이다. 모험없이 박진감을 바랄 수는 없다. 타인의 1인칭 시점 게임도 아니고 내 인생인데 달랑 장르 1개로 만족하라고? 만족한다. 왜냐하면 술집 이름이 환상관이고, 인터넷에 사진 좀 올리면 사진가고, 블로그를 하면 작가니까. 뭐가 어렵겠나. 학교와 사회의 차이점이 그거다. 중간은 대학교고. (주입식) 학습과 많은 과목과 (밤이나 낮이나,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교육과 탄탄한 체계. 반면 사회에 나가면 바로 실전이고 부족한 부분은 자율적으로 독학을 해야 한다. 어차피 그쪽으로 먹고 살 것도 아니고 재미로 하는 거니까 사람들이 독학을 많이 하긴 하지만, 독학은 비효율의 대명사다. 천재가 독학을 하면 못해도 절반은 간다. 심지어 천재 중의 천재가 독학을 하면 어쩌다 세계 최고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건 거의 없다. 아예 없다고 보는 게 더 낫다. 그런데 천재가 아니라 음... 그렇다면? 그래도 장점은 있다. 시간 낭비는 최소한으로 줄여서 이 분야 접고, 새롭게 다른 분야로 관심을 옮길 수도 있다. 바로 그 <찾고 하고 포기하고>를 얼마나 많이 하느냐도 약간은 행복의 척도에 해당한다. <찾고 하고 포기하고, 다시 반복>이 약간은 행복과 상관관계가 있다. 그리고 선생을 누굴 만나느냐에 따라 10년 20년이 뚝딱 좌우될 수도 있다. 노력 여하에 따라 노력한 수재가 노력하지 않은 천재보다 낫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그렇지만 천재도 노력해야 살아남지 안그러면 다 밀려난다. 메트로놈도 중요하다. 최저의 느림을 강조하는 피아노 학원 선생도 찾기 어렵다. 그러면서 어른들은 자기 통장 잔고도 없으면서 왜 빈수레가 요란한가. 우리도 안다. 삶은 얼마만큼 팍팍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자기가 최고긴 뭐가 최고인가? 우리 청춘들은 그래도 온라인 게임을 할 때 무조건, 무조건 최고만 택한다. 개인기, 주력, 팀워크, 작전 소화도, 위치 선정, 장비발등 현실에서는 몰라도 최소한 게임에서는 최고가 되고 싶으니까. 기본적인 말수는 최저에 그나마 하는 말의 특징은 모두, 이건 뭐지, 전부 다 최하? 오, 저런! 립서비스와 허세와 허풍과 농담의 적절한 비율은 어김없이 예상을 깨버리고 허세와 허풍만 남는 그런 식의 내가 최고? 오 노노 이런, 진공청소기는 대체 어디 가서 찾고 우리는 누구를 보고 배우란 말인가요! 아니 정말 생각할수록... 그게 뭐가 종이 한 장 차이라는 겁니까, 네? 워─워─워! 우리도 안다. 현실이 그리 녹녹치 않다는 것을. 그래도 기운 난다. 어른들께서, 우리도 그랬어 자네들만 할 때는 음 그럼 그렇지 젊은이들만 방황한 거 아니야, 그런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윽박지르는 것보다 다독여주는 게 낫고, 순서라는 게 있어야 하고, 매사 짜증 내고 안 좋게만 볼려고 하는 것보다 웃는 얼굴을 보고 싶어 한다. 누구나가 그렇다. 말은 그런데 현실도 그랬으면 좋겠다.
결론은 간단하다. 또 허탈하다. 그게 뭐가 결론이야? 그러게 말이다! 결론은 행복과 사랑과 성공을 위한 처음의 의도, 자질, 학습, 교육, 꾸준한 끈기등 이런 덕목에 행운과 우연과 운명도 들어간다는 것이다. 어쩌면 적지 않게.
꿈보다 해몽이라고 언제 해질녁에 해변가에 누워서 비발디를 들으며 스피노자를 읽던가 해야겠다. 바람의 방향은 상관 없고. 일단 계획만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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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동네를 산책할 때 1번마와 2번마가 사는 공원 반대편을 주로 거닐었다. 그렇다고 새로 사귄 친구인 어린이와 이모와 노신사를 외면하지는 않았다. 우리는 친구였으니까. 매일 보는 똑같은 풍경과 다를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딱 하나 새로운 점이 있었다. 조금 먼 곳까지 산책하다 알게 됐는데 소형 동물원이 생긴 것이다. 그곳에 있는 동물은 딱 6종류가 전부였다. 그것은 바로 양, 고양이, 개, 늑대 그리고 벌통과 이제는 친숙한 1번마와 2번마였다. 반가웠다. 나는 이곳이 좋아졌다. 자주 찾기로 했다. 기꺼이 그럴 것이다.
일상적인 삶이 환상적인 인생으로 단번에 승천하는 건 택도 없는 일이다. 절묘한 행운과 기막힌 우연이 도와주었을지언정 잘 보면 할 수 있는 자기 몫은 다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티토와 지지와 클리브와의 만남은 너무 특이해서 그냥 불문에 붙이기로 했다. 종종 만남을 가지면서 관찰을 지속할 것이다. 그런 경험들을 모아서 책을 쓰고 삼류로 밥벌이가 어려우면 그때 정말 거짓말처럼 정보기관, 하다 못해 탐정 사무소로부터 구애를 받을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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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가 내가 장미기사단 마을에 살면서 읽은 내 블로그에 올라온 새로운 글이었다. 내가 없는 동안 내 분신이 썩 흡족한 수준은 아니지만 그런대로 제몫은 해준 듯 해서 고마운 마음이 일었다. 옆에 있으면 탁탁 등을 토닥거리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리기라도 할 텐데 그는 내 옆에 없었다. 잠깐, 내 옆에 있으면? 그러면 안되는 거잖아? 아마 그럴 수 없을 것이다. 그건 불가능하다고 읽었고 들었다.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내가 알고 있는 과학적 상식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드라마와 영화에 나오는 내용은 다 뻥이다. 그건 그냥 재미로 보라고 그렇게 만든 것일 뿐이다. 그나저나 난 이제 어떡하지? 나는 어쨌든 돌아가야 했다. 지금 여기서 사는 인생은 더없이 행복하지만 나는 돌아가서 할일이 있고, 사랑도 완성해야 하며, 또 블로그도 계속 써야 했다. 못해 본 일도 많았다. 그런데 어떻게 돌아가야 할지 그 방법을 몰랐던 것이다. 극적으로 양이나 늑대가 내게 다가와서 인간의 말을 하며 돌아갈 수 있는 경로를 알려주면 좋으련만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바랄 수도 없는 일이다. 물론 미스테리 소설에서나 볼 수 있는 지도 비슷한 쪽지도 발견하지 못했다. 내가 살면서 봤던 수많은 픽션은 다 가짜였던 것이다. 순 엉터리였네. 내 이럴 줄 알았다면 오지에서 살아남는 법, 그런 기술이라도 충분히 습득해놓는 건데. 하긴 그래 봐야 별 도움은 못됐겠다. 바로 그렇게 낙심하던 찰나,
장미십자단 마을은 유유히 소형 동물원으로 변했다. 그래서 나는 마치 이 모든 일을 예견하고 있었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집으로 돌아갔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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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는 어느 날 이름을 바꾸기로 했다. 처음에 그에 대한 정확한 욕구는 없었다. 뭔가 색다른 기분이 절실했을 뿐. TV를 바꾸기도 그렇고, 빅3법칙 같은 인문교양서를 쓸 수도 없으니까. 그렇다고 애첩을 늘리겠나 클럽에 출근하겠나. 그럴 일은 만무하다. 이름을 바꿔서 운명이 바꼈다더라 팔자를 고쳤다더라, 그런 어설픈 효력은 관심조차 없었다. 농담이나 운수 보기는 좋아했을지언정. 다만 그는 찬바람에 대한 연민과 봄날에 크리스마스 이브를 걱정하는 듯한 동정심 때문에 문득 별 이유없이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이다.
그가 바꾼 이름은 준이었다. 6월과 7월과 주노, 제우스, 야누스등 후보군에서 그냥 부르기 편하게 준으로 정했다.
그는 이름을 바꾸고 나니 새로운 사람으로 환생한 듯한 기분이 느껴졌다. 물론 거짓말이다. 그러나 그는 준이라는 이름으로 블로그를 하나 만들었다. 어떤 새로운 정체성의 가상 인물을 만들어서 원래의 자신이 그를 막 휘어잡고, 좌지우지하고, 조종하는 놀이를 시도할 생각이었다. 달리 보면 인형놀이. 재미있을 것 같았다. 하긴 그는 일 때문에 예전에 채팅 사이트에 여자 계정을 만들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 와~ 그때도 정말 신선한 경험을 했었다. 딱 여자 계정으로 들어가서 어떻게 하니까 막 남자들이 와우! 그건 정말 양 1마리에게 100마리의 늑대가 달려드는 모습과 똑같았다. 100마리가 뭐야 숫자는 의미 없었다. 아마도 꽃을 제일 많이 들고 있겠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왜냐하면 현실과 이상, 실재와 이론은 괴리와 모순이 끼어들 틈이 없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를 보면 실상은 수백 마리의 양떼에게 소수의 늑대가 접근했던 것 같긴 하다만.
어쨌든 준은 이름을 바꿨고, 그 이름의 블로그를 만들었으며, 앞으로 새로운 친구를 사귄다면 그는 친구에게 준으로 불리기를 원했다. 그렇다고 막 가짜 증명서를 만들고 정말로 진짜 이름을 숨기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는 일종의 실험을 해 보고 싶었던 것이다. 별 기대는 없었다. 추론에 따른 예상 결과도 없었고, 목표도 방법도 없었다. 그냥 즉흥적인 일이었을 뿐이다. 너무 무모했다. 그러나 이미 저질렀다. 가짜 이름 하나 만드는 게 무슨 큰일이겠냐마는.
그리고 그는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특정 사이트로 만들어진 블로그에서 괜찮은 블로그들을 찾고 구경하기. 한동안 잊고 살았는데 우연히 구경하다가 그는 여러가지 미묘한 감정을 느꼈다. 재밌다. 새롭다. 낯설다. 흥미로운 블로그를 물색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처음에는 허밍이 절로 나왔다. 뛰어난 블로그들이 즐비했다. 마침내 준은 미지의 낭만에 허덕이고 있었다. 기지의 신선함은 이미 사로잡은 듯 했다. 마치 그는 바람난 고양이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일단 초반에는 눈이 똥그래졌다. 이건 흡사 나를 보는 것 같았다 라고 그는 생각했다. 친한 친구와 대화하는 듯 했다. 다른 조류가 아닌 드디여 펠리컨과 갈매기들을 보는 것만 같았다. 구경만 해도 좋았다. 바라는 건 그게 다였다. 게다가 그는 자기가 소설가라고 당당히 어딘가에 자신의 업을 공개한다는 데 무척 신중해야 한다고 직감했다. 지금부터는. 전에도 그러기는 했지만 괜찮은 블로그들을 보니까 왜 자신이 삼류 소설가인지 알 것 같았다. 보석상자 같은 매우 개인적인 블로그는 웬만한 소설 저리 가라-였다. 완전 재밌었다. 사적인 글이란 게 그렇다. 친해지지 않으면 들을 수 없는 다정한 고백과 내밀한 독백 같다고나 할까. 실은 별거 아니지만 수필 같은 출판물이나 칼럼에서 느껴지는 나는 일이다─이 글은 일이다─전 일이에요 라는 느낌이 전혀 없었다. 무엇보다 그게 좋았다. 꼭 비유가 적절하지는 않겠지만 굳이 갖다 붙이자면 채식 10년 하다가 다시 육식으로 방금 돌아와서 막 어? 막 어? 약간 그런 기분도 느껴졌다. 직접 겪어봤거나 경험담을 들어보셨으면 잘 아실 것이다. 그러나 채식주의는 존중받아야 하고, 존경해야 한다. 그럽시다. 어쩜 준이 외로웠기 때문에 그렇게 받아들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고독과 목마른 사랑에 대한 애상, 특히 틀에 박힌 사고 틀에 박힌 생활에 대한 염증, 사는 낙이 변변치 못한 권태 때문만은 아니었다. 뭔가 있었다. 그 뭔가가. 그래서 그는 이름을 바꾸고, 또 새롭게 블로그 세계를 떠돌다 보니 거짓말 조금 보태면 환상을 닮은 무언가가 그를 기다리며 한 명은 짝사랑에 한 명은 상사병에 괴로워하는 것만 같았다. 그 향기로운 분위기, 그 입소문을 저절로 부르는 순애보가 언제까지 갈런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기쁨도 찾고, 꿈과 동경심도 만났으며, 내일 소풍 가는 어린이처럼 준은 즐거워했다. 뭐 그 정도까지는 어쩌면 아닐 수도 있겠지만 그는 적어도 사는 게 재미없다고 막 짜증을 내지는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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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블로그를 보는 것은 흡사 TV를 보는 기분이다. 그렇지만 약간 다르다. 타인의 블로그를 보는 것은 잡지를 읽는 것과도 비슷한데 것도 약간 다르다. 준은 카페에서 글을 쓰는 대신 남이 쓴 글을 주로 읽었다. 여행을 가지 않아도 여행 다녀온 기록을 잘 간추려서 읽으면 그만이었다. 그분들과 친해지고 밖에서 만난다면 실망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제 만날 일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고로, 그러니 그냥 재밌게 타인의 블로그를 구경하면 된다.
그런데 문제는 이 일 역시 금새 재미없어졌다는 것이다. 무슨 싫증이 그리도 빨리 찾아오나. 마음이 꼭 손바닥 뒤집는 듯 했다. 왜냐하면 처음에는 진솔한 내면이 보이고 그럭저럭 신선했는데 점차 시간이 지나니까 그 글들을 쓴 사람의 나이와 성별과 직업과 기호와 그를 둘러싼 환경과 선호하는 구미 같은 그런 선입견들이 나중 선연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형식은 글이지만 대체로 그건 거의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건 대부분 사연이나 사건보다는 상황이나 사진과 일상적인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뭘 하고 싶다, 무엇을 좋아한다, 머머했다, 뭐는 좋고 뭐는 싫다, 머머하면 좋겠다, 기분이 어쩐다, 뭐라고 생각한다, 뭐는 사랑스럽다, 왜 나는 뭐뭐할까 등등. 정작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하나도 모르겠다고 준은 생각했다. 빙글빙글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 그는. 준은 왜 사람들이 서점에서 읽을 만한 책을 면밀히 고르는지 (다시)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많이 또 자주 읽는다면... 그만 그만. 그중에는 정말 하고 싶은 말이 무궁무진한 유형도 꽤 될 듯해 보였다. 그 글과 말을 다 수용해야 한다면, 만일 그게 사랑이라면!
준은 그래서 소셜 네트워크에서 <낮에는 조마조마 밤에는 불안불안>이라는 소개 글을 보고 힌트를 얻어 축구 경기를 보러 갔다. 아, 조마조마와 불안불안 자리에는 실재 스포츠팀을 넣으면 된다. 준은 그곳으로 갔다. 축구장.
준은 축구장에 도착했다. 그는 축구장에서 한적한 자리에 앉았다. 조용히 있고 싶었으니까. 인적 없는 외진 곳에서. 그렇게 그는 가장 한적한 경기장 구석에서 가장 소란한 서포터즈의 응원을 볼 계획이었다. 사실 준은 축구 경기가 아닌 서포터즈의 응원을 보러 그곳에 갔을 것이다. 그는 서포터즈를 보고 있으면 왠지 기분이 좋아졌다. 막 젊어지는 것 같고, 설렘은 기본이고, 축구 경기 다음에 뭔가 본격적인 모험의 서막이 열릴 것만 같은 흥분감에 도취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노트북도 가져갔고, 공책과 볼펜도 준비해뒀다. 글이 써질런지 불확실하긴 했지만 말이다.
경기는 시작했고 준은 우유를 마시기 시작했다. 아직 경기 초반이라 응원은 조금 심심했다. 그는 자기도 저 서포터즈에 가입해서 활동하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하지만 행동에 옮기지는 않았다. 모임에 들고, 인사하고, 적당히 웃고 떠들고 대화하고, 그 모든 과정이 견딜 수 없도록 식상해서 막 괜히 난데없이 양철북에 나오는 난쟁이 꼬마 소년 마냥 소리를 지를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멀리서 거리를 두고 구경하는 게 좋았다. 언제 어울리고 어떻게 쫓아다니고 생각만 해도 복잡했다. 게다가 준이 가담함으로써 서포터즈의 평균 연령이 부쩍 높아지면, 훌쩍 급상승하게 되면 그 침울한 기세는 어떻게 회복해야 한단 말인가. 그는 그냥 이렇게 고독감을 즐기기로 했다. 그런데 그때 준의 쓸쓸함을 방해하고 그의 예술적 착상에 훼방을 놓는 존재가 등장하고야 마는데...!
3
준의 옆에 새롭게 나타난 인물은 다름 아닌 장미와 별이었다. 준과 장미의 눈빛이 마주친 그 순간 마치 시간이 정지된 듯 하다거나 아찔하며 쓰러질 듯 휘청하거나 누구 하나 그러지는 않았다. 그런 건 주부들도 즐겨 보지 않는 일일 드라마고 이건 현실이니까. 대신 '아 누구였드라'에서 '오오 누구구나'로 슬며시 넘어가는 분위기가 무척이나 절묘했다. 물론 겉으로 드러난 것은 보일 듯 말 듯 옅디옅은 미소뿐이 없었다. 그러나 준과 로즈의 속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의 채워질 수 없는 선망은 소망과 대망 사이 어디 쯤에 숨어있는 것일까? 뭐와 뭐 사이? 그런 꿈 같은 시상을 떠올릴 리는 없고, 그들이 느낀 감정은 단지 호기심과 호감과 약간의 반가움, 뜻밖의 기대와 이채로운 관심이 아마 전부였을 것이다.
「오빠. 왜 연락 안 했어요? 기다렸는데!」
「아. 미안. 연락...하고 싶었어. 연락...할려고 했는데, 그때 마침 일이 생긴 거야. 잡지사에 사랑에 관한 단상, 그 주제로 보내야 할 글이 있었거든. 그건 사실인데 음, 오빠 전공은 실은 변명이야. 오빠는 바람둥이가 아니니까.」 핑계를 대는 데 익숙하면 바람둥이가 아니라는 말처럼 들린다.
「오빠! 숙녀를 기다리게 하면 되요 안되요? 네?」
그들의 만남은 역시나 나이트클럽이었다. 일전에 준은 어디까지나 기분 전환 삼아 멀더와 함께 NC 사장 고든을 만나러 그곳에 갔었다. 그런데 손님이 없어서 잠시 앉아 있다 사장실로 간다는 게 그만 새로운 만남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 자리에서 로즈는 준에게, 별은 멀더에게 전화번호를 알려줬다. 그래서 나중에 멀더는 별에게 연락했고, 준은 로즈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준이 별을 마음에 들어했다거나 로즈가 뭘로 보나 뭐 하나 빠져서가 아니었다. 그는 로즈를 의심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혹시 피앙세가 보낸 스파이가 아닐까 라고. 잔뜩 신경을 곤두세우고 경계했던 것이다. 그게 뭔 심보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것은 최소한 사랑과 관계된 트로이 목마라는 예측을 무시할 수는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준이 멀더의 여자친구에게 지금 멀더가 딴 여자를 만난다고 밀고하지는 않았다. 그는 입이 무거운 남자니까. 어찌됐든 멀더의 최근 고민은 무슨 재미로 사나-였고, 준의 최근 표어는 이랬다. 사랑에게 순정을 바치다!
아마도 멀더는 본처에게 끌려갔을 것이다. 어쩜 혼쭐이 났겠지. 그러나 멀더를 제외한 한 남자와 두 여자의 관계가 그렇게 발전할 가능성은 희박했다. 장래의 그 어떤 관계는, 풀벌레 소리를 제외한 고요함과 모래사장의 파도소리가 만드는 적막감에 함께 빠져드는 관계.
「선생. 사랑을 아시오?」
「선생? 오빠 보고 웬 선생? 너 무슨 드라마 찍니?」
「사랑? 그게 뭔데. 그게 뭐냐구요! 오빠! 사랑이 음악처럼 들리나요, 오빠 사랑이 구름처럼 눈에 보이나요 아니면 오빠, 사랑이 푸아그라보다 맛있어요? 것도 아니면 그게 뭐 예측 불가능한 고급스런 농담인가요? 사랑은 적어도 잠자는 동기에 생동감을 부여해 주는 것과 같은 동기 부여, 그런 건 아니지 않나요? 네, 오빠. 아니지요 아니지요. 차라리 그게 나을 수도 있어요. 오빠. 그것은 어쩌면 생동감과 활기와 파릇파릇함과 순수한 열망 같은 감정일 테니까요. 사랑은 언제라도 그대 곁에 머물러주는 것이다, 사랑은 내게 남은 모든 사랑을 다 드리는 것이다, 라고 어떻게... 어떻게 드라마도 아니고 실생활에서 그런 말을 할 수 있겠어요. 뭐 눈 딱 감고 하면 하겠지만, 입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지만 사랑은 어떻게 보면 그런 것 같아요. 앞서 나왔듯이 의미 부여하고 명분을 살리며 주문을 외워서 시키는 대로 하게 만들기? 그럴지도. 오빠. 살면서 괜히 잠시 생겼다가 막상 해 보니 포기하게 되는 그런 것들. 꿈틀대는 꿈으로 시작해서 그 꿈은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서 방황하다가 어느새 세월이 흘러 어린이가 어른으로, 동심이 꿈으로, 다시 꿈은 사랑으로, 사랑은 재차 헛된 꿈으로 바뀌는 것 아닐까요? 오빠. 그렇다고 사랑을 너무 거룩하다거나 장엄함과 거창함 같은 느낌으로 대하지는 마세요. 왜냐하면 그건 그냥 친구 같은 개념이거든요. 오빠 어때요, 뭔 얘기인 줄 잘 모르겠죠? 그러나 그것도 다 필요한 때가 있어요. 꼭 그게 언제라곤 말하지 않겠어요. 사랑도 일이다, 사랑은 돈이다, 사랑은 뭐다, 사랑은 있다 없다 라는 말을 들으면 뭐랄까 얼핏 아주 미세하게 눈빛이 핑~ 하며 살짝 흔들리는 분들이 있긴 있으니까요, 오빠.」
「얘가 처음 볼 땐 괜찮았는데, 이제 보니 상태가... 영 의심스러운데. 허영심과 변덕이야 적당하다면 숙녀의 자질일 테지만 의뭉스러움은 아아 그건 정말 곤란한데. 왜일까? 조명 때문인가?」
「바람이 불고 노을이 진다. 손을 잡았으면 연애를 해야 한다. 면사포를 벗겨 본 사람 가운데 일부는 또 다시 면사포를 벗긴다. 고기도 먹어 본 놈이 잘 먹는다고. 오빠 그게 뭔 줄 아세요?」
「오, 점점. 뭔데? 일단 들어나 보자.」 준은 예가 혹시 실연당했나 라고 생각했다. 아주 살짝 얘가 혹시 자기를 좋아하는 건가 라는 의혹도 있긴 있었다.
「그건요 순차성이에요. 오빠, 순차성이라고!」
「뭐? 뭔차성?」
「응. 순차성. 오빠.」
「그게 뭐야?」
「뭐긴 뭐야 인공지능이지 오빠. 또는 친화력이라고나 할까? 응 오빠.」
「사랑의 서약 결혼의 맹세 그런 얘기할려는 거니? 아무래도 너네들이 멀더한테 뭔가 감쪽같은 최면 학습에 관한 맹훈련을 받은 것 같은데, 그거 다 허세야 허세. 멀더, 욕심내지 마세요. 여자친구 있으니까요.」
그들은 들뜬 분위기에서 찬연한 조명 아래 만난 첫 만남만 그럴 듯 했다. 그러나 우연히 마주친 두 번째 만남으로 즉시 어색해진 관계로 굳어진 것이다. 잘 보이고 싶어서 그런 건진 몰라도. 여자들은 어쩌다 자신의 지성을 남자에게 피력하고 싶은 순간이 있는 법이다. 정확히 언제 그런가는 넘어가고. 그들은 얼렁뚱땅 인사 없이 축구장에서 헤어졌다. 잘 가라는 인사말도 없이. 어두컴컴한 공간에서 쉬쉬하며 알게 된 사이였으니 첫 만남이 산뜻했던 사람들처럼 지내지는 말자 같은 모종의 공모였을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이왕이면 밝은 곳에서 처음 만났다면 어땠을지 조금 궁금해지는 건 사실이다. 어쨌든 그들은 그날 아무 일 없이 헤어졌다. 더구나 작별 인사도 없이. 마치 한때 친했던 친구를 거리에서 우연히 10년만에 만났는데 스치듯 마주치자마자 웃으며 아는 체만 하고 헤어진 일과도 비슷했다.
4
준은 별다른 약속이 없었다. 그는 다시 축구장을 찾았다. 하긴 그가 질투심에 사로잡힐 리도 없고, 정복의 대상을 새롭게 발견했을 리도 없다. 준은 다시 축구 구단 서포터즈의 응원을 구경하기 위해 그곳에 갔던 것이다.
그는 축구장에 도착했다. 이번에는 멀찍이 떨어져서 보지 않고, 근처 약 30미터쯤에 자리를 잡았다. 경기가 시작됐다. 그날도 그는 우유를 사 갔다. 새하얀 우유를. 경기가 시작됐다. 응원도 시작됐다. 그러나 그는 이상하게 경기도 응원에도 집중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로즈와 별이 자꾸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들이 옆에서 나눴던 대화도 떠올랐다. 둘 중 하나의 말버릇은 이랬다. 머머하네, 머머하는구나, 머머하더라, 머머는 왜 그럴까, 머머해야지, 머머할까 우리. 또 둘 중 하나는 이런 얘기를 했다. 자기가 아는 친구가 하나 있는데 그 친구는 이름이 '기쁜'이란다. 환희나 희사나 복희 같은 명사형이 아니라 형용사라고? 이름이? 당시 들었던 그런 얘기들이 나중 언젠가 다시 기억날 것이라고 준은 생각했다. 그런데 그녀들은 아직도 관형사와 부사, 불규칙 형용사와 관사를 (아주 약간) 알맞게 사용하지 못하는 데 비해 말수는 터무니없이 많았다. 야외라서 유독 기분이 좋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준은 그녀들이 필시 학교 다닐 때 공부를 못했을 듯 하다고 추정했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다. 혼자 웃고 싶어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저기서 그분들이 나타났다.
「어, 오빠. 또 뵙네요? 어떻게 이런 일이!」
「어? 언니들 여기 웬일이니?」
「웬일은요? 축구장에 축구 보러 왔지 설마 오빠를 만나기 위해 왔겠어요? 우리가 딱히 뭐 애태우는 사이도 아니고, 오다가다 스치듯 알게 된 그냥 아는 사이라고 규정지으면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드는 그런 거리가 있긴 하지만, 뭐 그런 해묵은 얘기는 하지 말죠. 그럽시다. 축구나 보자구요.」
「그게 뭔 얘기지? 아~ 너네들은 그렇다는 것이로구나. 외롭다고. 남자친구가 없다고. 장미랑 별! 너네들 친구 없지? 그치?」
「네? 우리가 얼마나 인기가 많은데요. 정말 막 피해다녀요. 네? 남자들이 집 앞에, 학교 앞에, 아르바이트 하는 가게에 막 시도 때도 없이 따라다니니까요. 그러는 오빠는요? 오빠야말로 진짜 친구 없네. 오 진짜네 진짜. 이거 완전 동네 아저씨구먼~! 어허, 이거 뭐, 손에 술병만 들면 딱인데! 아 그려진다 모습이.」
「뭐? 뭐라고? 뭐가 어쩌고 어째? 얘들이 이거 이거... 참한 처녀가 뭔 말발이 그렇게 좋아? 나 원 참!」
「아이참. 그러지 말자구요. 사랑할 시간도 부족한데 다 부질없는 짓이라구요. 그만들 합시다. 그렇다고 오빠가 웃으며 태어났다는 예언가 짜라투스트라도 아니잖아요? 네?」
「누구? 그런데 지금 얘기하던 중 짜라투스트라가 왜 나오는 거지? 그게 뭔 상관이 있는지 잘 모르겠는데. 아, 그런데. 짜라투스트라가 내 애제자였다는 걸 넌 어떻게 알았느냐? 대답하거라. 아이 증말 재미 하나도 없네. 그만 하자.」
「그 말은 우리가 할 말이네요.」
「내 그 말 할 줄 알았다. 그런데 멀더는 뭐한데니?」
「멀더 아저씨요? 전화하니까 여자가 받던데요. 그래서 바로 끊었죠. 한번씩 이상한 여자들이 있거든요. 어쩌다 잘못 걸리면 그냥, 아휴 탄식만이 남을 뿐이죠 오빠. 아 오빠! 그런데 왜 오빠는 축구장에 와서 축구는 안 보고 왜 서포터즈만 보고 있어요? 저기 누구 마음에 드는 여자 있어요? 가만 보니...... 없는데. 다 별론데. 나 보다 더 예쁜 애는 하나도 안 보이는 것 같은데. 왜 그런 거에요 오빠?」
「아, 그건, 그건 말이야. 나는 쟤네들을 보러 여기에 왔으니까. 축구는 집에서 TV로 보는 게 편하고 그게 더 좋아. 나는 저 젊음과 열기와 전율감, 간 떨리게 만드는 힘과 열정, 그 몰입감을 옆에서 보고만 있어도 좋거든.」
「오, 그래요? 오빠 그런 거 좋아하는구나. 그럼 내가 저기 서포터즈 주장도 알고 단장도 알고 감독까지 모두 아니까 지금 즉시 소개시켜줄께요. 이왕 구경할 꺼면 멀리서 짝사랑하는 소녀 마냥 훔쳐볼 게 아니라 아예 한복판에서 응원을 즐기는 게 낫지 않겠어요?」
준은 한치의 빈틈도 없이 걸려들고 말았다. 혹시 장미와 별양은 이런 식으로 축구 구단 서포터즈의 회원 수를 늘려온 것은 아닐까? 아마 아니겠지만 한두 번 해 본 솜씨라고 보기에는 너무 자연스러웠다. 그건 꼭 정해진 각본대로 진행되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장미와 별이 저 친구들과 상당히 친한 사이였기 때문에 그랬을 수도 있다 라고 준은 생각했다.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어중간했으나 지금은 그래도 전자에 가까웠고 잠시 후에는 완벽하게 후자로 기울고 말았다. 왜냐하면 이쪽 서포터즈와 저쪽 서포터즈 간 응원전이 몸싸움으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말로만 그랬다.
「야 와 봐.」
「왜 우리가 가냐. 늬네가 와라.」
「뭐? 말 다 했냐?」
「아니 아직 남았다. 앗. 그런데 잊어먹었다.」
「오라면 우리가 못갈 줄 아냐?」
「꼭 뭘 하지도 못할 꺼면서 입만 살아서 큰소리치는 녀석들이 있다. 그게 너네야. 알겠냐? 어?」
「늬들이라고 뭐 다르냐? 어? 잔말 말고, 너네가 와라. 우리가 줄 것이 있다. 이러다 정 들겠다.」
「우리도 솔직히 가고 싶다. 그러나 가고 싶지만 너네들 바지에 오줌 쌀까 봐 못가겄다. 알았냐? 뭐야 벌써 지렸냐? 저런 저런. 야 야 우리집 강아지도 오줌은 잘 가린다. 알았냐?」
「뭐라고? 기저귀는 늬들이 차고 있으면서 뭔 헛소리를 그렇게 하고 있냐? 그러니까 늬들이 공부를 못하는 거야? 어? 알어? 늬네가 축구를 아냐고.」
그처럼 목소리 제일 큰 에이스끼리 티격태격하다가 진짜로 상대팀 서포터즈가 이쪽으로 몰려왔기 때문이다. 준은 잘못 걸린 것이다. 완전 잘못 걸렸다. 응원의 정열은 커녕 그는 도망갈 수도, 그렇다고 전면에 나설 수도 없었다. 인생은 원래 뜻대로 되지 않는 드라마일까? 결과를 간출이자면 그는 상대팀 서포터즈의 선봉에게 시원스레 한 방 얻어맞았고, 사태는 스스로 또 쉽게 진정되었으며, 그 장면은 여지없이 신문기자들에게 포착되었다. 아무려면 어떠냐! 재산의 축척과 탕진을 반복하며 피곤하게 그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느니 이렇게 무대에서 삶의 치열함을 맛보며 꿋꿋하게 버티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 행복한 미래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희망을 잃지만 않는다면! 다만 얻어맞은 그의 모습이 사진기에 찍히긴 찍혔는데 그건 지역 신문에만 나왔다. 조그만하게. 대문짝만한 명사진이 인터넷과 TV와 신문등 각종 대중 매체를 도배할 뻔 했는데 손톱 만한 뭔가가 부족했던 것이다. 정말 단번에 인기를 한번 실감할 뻔 했는데 정말 그럴 뻔만 하다 말았다. 못내 아쉬웠다. 그렇지만 좀 더 솔직한 그의 속마음은 이랬다. 그는 시원스레 얻어맞았음에도 불구하고 실은 기분이 좋았다. 그는 자신이 혹 변태가 아닌가 그런 의구심에 살짝 괴로워하기도 했고, 때문에 그는 예전 어느 권투선수의 말이 기억났다. 세계 챔피언은 아니고 지역 챔피언의. 지금은 인기가 좀 식었지만 전성기 때 권투의 인기는 괜찮았다. WBA, WBC, IBF등. 그분이 그랬다. 다른 데는 맞으면 아프다고. 내색은 하지 않지만 다른 데는 맞으면 고통스럽다고. 그러나 광대뼈를 맞으면 시원하다고. 기분 좋다고. 상쾌하다고. 그도 그랬다. 준이 비록 광대는 아니겠지만. 그가 챔피언은 아니지만 말이다. 실제 준의 기분이 그랬기도 하지만 어쩌면 그는 의무방어전에 대한 어떤 절실한 애절함이 가득했다고 볼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는 인생의 도전자임에 불구하고 세상사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멀리 원정 경기를 가서 어설프게 마이크 타이슨 흉내나 내는 돈키호테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돈키호테가 다 뭔가, 그의 당나귀 로시난테라면 그나마 감지덕지일 테지. 즉 열만 좋은 거다. 전설적인 록 그룹 퀸은 노래했다. 우리는 모두 챔피언이라고. 그런데 정말로 우리는 모두 챔피언일까? 과연 그럴까? 아니다. 아닌 것 같다. 틈만 나면 깐족깐족 쓱 고개를 드밀려는 권태를 걱정하는 대략 중년이 챔피언이지 누구나랄지, 멋모르는 젊음이랄지, 전진하고 행진하고 한껏 부추겼다 지만 쏙 빠지는 낙천주의는 실은 챔피언이 아니라 도전자는 커녕 순위권에도 들기 어려운 것 같다. 하기는 울화통이 터진다 그건 아니다 안되겠네 외칩시다 따지자 가자 엎자, 라고 했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안면 바꾸고 더 열심히 일하는 평범한 사람들은 정상이다. 그처럼 일상에 복귀하지 않고 바보처럼 나서는, 어쩌다 나서는지도 모르게 얼렁뚱땅 나서게 된 준 같은 인간이 문제아일지도 모른다. 따라서 그는 아마도 가까운 장래에 약간의 아쉬움이 그지없이 그리워질 것이다.
5
미술관 핑크. 관람객은 전무했고, 평범한 미술관이었다. 이따금 제품 문의 전화나 전시 일정을 묻는 전화가 걸려왔다. 그러나 관장실은 매우 조용했다. 한 남자와 두 여자는 그곳에 있었다. 바로 로즈가 그곳의 관장이었다.
「뭐 할 말 없니?」
「어디 봐 봐요. 와, 괜찮은데요. 멀쩡해요. 그 정도야 뭐, 애들 장난이죠. 오빠, 이게 듣고 싶은 말 맞죠? 응, 오빠.」
「말 말자. 휴~. 너네들을 어떤 상남자가 데려갈런지는 몰라도 아 답답허다.」
그때 그 일로 그들은 친구가 됐다. 울고불고 유난 떨 일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메이저쪽에 실리지 않아서 조금 섭섭하긴 섭섭했다. 그러나 그 작은 간극은 서포터즈 내부의 인기로 매꾸어졌다. 클럽 서포터즈에서 준의 입지는 가입하자마자 급상승했던 것이다. 스스로 가입 의사를 소상히 밝히지는 않았으나 그는 이미 서포터즈 내에서 어느새 중추적인 역할을 맡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차기 회장 물망에 오르네 마네 말들이 많았다.
「어떻게 우리가 멋진 여자친구라도 소개시켜 드릴까요? 네, 아저씨?」
「뭐시여? 아저씨? 하나만 하지 않으렴? 오빠든 아저씨든. 헷갈리잖아. 아, 여자친구? 나 실은 동성애자야.」
「와, 정말이에요? 우리 둘이 내기했는데. 하하하. 내가 이겼다. 아이 좋아라. 와 정말 기분 좋은데. 신나고 기쁘고 즐겁고 어쩜 막 떨리는 것 같단 말이야. 얘 보이니? 내 뽀얀 볼의 홍조 말이야.」
「홍조? 글쎄 얼굴이 너무 하얀 게 너 혹시 어디 아픈 거 아닐까? 이건 뭔가...」
「홍조는 모르겠고, 아 오빠가 별이 말을 가로채서 미안한데 어쩔 수 없어서 말이야. 그거 있잖아. 오빠가 동성애자라는 말. 그거 뻥이야. 푸하하하하. 푸하하하하하하. 오빠는 말이야, 여자를 좋아한단다. 크크큭. 아직 오빠가 너네들이 추구하는 성향과 반듯한 기호, 다채로운 욕망과 숨겨둔 취향에다 선호하는 스타일을 아직 미처 파악하지 못했네. 차차 나아지겠지. 아 있잖아. 오빠 여자친구 있어. 우린 약혼했어.」
「오, 정말이에요? 와, 멋지다.」
「멋지다고? 약혼한 게 멋진 건가 아니면 나 같은 동네 아저씨가 약혼했다고 하니 뭔가 행복의 가능성과 낭만적인 허영심 같은 게 엿보여서 멋지다고 생각하는 거니? 왜, 나는 약혼 같은 거 하면 안되니?」
「아 오빠 왜 그래? 상대팀 서포터즈 단장한테 쥐어박힌 게 아직도 억울한 거야? 그런 거야 오빠?」
「아니, 그게 아니라. 오빠가 딱 맞는 장면이 절묘하게 카메라에 잡히긴 했는데 요즘 정국도 시끄럽고 일들이 많잖냐. 그래서 뭐 잘됐다, 그거지. 그게 다야. 정말이야.」
「그런데 그 숙녀분은 뭐하시는 분이세요?」
「내 피앙세? 어 음... 소설가야. 유명하지는 않지만 중편 소설 몇 편 발표했고, 음반도 하나 냈어. 인기는 요원하지만. 인기는 무슨 돈만 잘 벌면 된 거지. 아 농담이야. 혹시나 진담으로 듣지 말라구. 간혹 보면 내 고급스런 농담을 잘 못알아먹는 친구들이 있어서 말야. 원래 그건 한 박자나 일주일 후에 터지는 거거든. 아, 피앙세는 게다가 엑스트라로써 영화와 뮤직비디오에도 간혹 나와. 다소곳이 신부수업 받으며 정숙하게 지내라고 해도 우리 애기가 말을 안듣네 그래. 그래서 단편 영화제에도 꼬박꼬박 출품하고 그런다니까.」
「와! 멋지다. 언니 한번 불러봐요. 아, 우리가 언니일까? 뭐 어쨌든. 오빠 약혼녀 보고 싶다.」
준은 거짓말 할 생각이 원래 없었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 어쩌다가 꼭 진짜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거짓말을 하고 말았다.
「그러지 말고 우리 별이네 농장에나 가 보자구나. 오빠 여자친구 바뻐. 또 멀리 살아. 실은 당분간 떨어져 있기로 했어. 왜냐면 우린 너무 사랑하니까.」
그들은 장미 소유의 핑크 미술관에서 나와 도시 근교에 위치한 별의 농장으로 향했다. 그리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아 그곳에 도착했다.
「뭐야? 여긴 대 저택이잖아? 농장이라며?」
「별이네 별채 옆에 농장 하나 있어 오빠. 아, 여기 안에 동물원도 있는데 지금 보러 갈까? 별아 지금 동물 친구들 누구누구 있니? 응?」
「음 지금... 코뿔소랑 얼룩말이랑 앵무새랑 기린이랑 사슴, 양, 수많은 조류, 퓨마. 아 개는 종류가 엄청 많아. 얼마 안 돼.」
잠시 후 준은 입이 떡 벌어졌다. 그건 얼마 안되는 게 아니었다. 그는 옛날에 농담으로 대문에서 현관까지 얼마가 걸리네 어저네 하며 값싼 농담을 즐기곤 했지만 이런 데를 진짜 와 보기는 생애 처음이었다. 준은 목으로 침을 꼴깍 삼켰다. 습관은 아니지만 어떡하다 그는 최근 침을 꼴깍 삼키는 일이 꽤 잦았다. 그런데 그는 뭔가 느낌이 세했다. 혹시 자기를 때렸던 상대팀 서포터즈의 그 친구가 별이나 장미의 친오빠일까? 아니면 전-남자친구? 얘네들이 대체 뭐가 아쉽다고 자기 같은 가난뱅이 예술가를 만나는지 그게 정말 궁금했다. 심지어 싸구려 나이트클럽에는 뭔 일로? 이건 뭐 완전 미스테리가 계속 이어졌다.
놀라움은 멈추지 않았다. 접견실에서 차를 마신 후 아이스크림을 먹는 아이스크림 찻집이 따로 있었다. 그곳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TV를 봤다. 그런데 나오는 프로그램은 별양의 일상을 안내하는 다큐멘터리였다. 뭐야, 방송국도 있다는 말이야? 아마도 외주 제작이겠지만 이건 규모가 예상을 뛰어넘었다. 심지어 신기함은 준을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별양의 큰 언니와 큰 오빠쯤 되는 사람에게 준을 소개하면서 별은 그랬다.
「이쪽은 내 남자친구, 이쪽은 우리 엄마 아빠!」
뭐라고? 준은 어떻게 가까스로 별의 부모님과 대화의 시간을 간신히 버텼다. 그리고 별의 방으로 돌아왔을 때 아무 말 없이 도망쳤다.
이때부터 추격전은 시작됐다. 준의 볼보 웨건을 뒤쫓는 별의 페라리와 장미의 포르쉐. 준은 왠지 모르겠으나 울상이었고, 별과 장미는 마치 사랑의 작전을 흥미진진하게 펼치는 듯 했다. 준은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던데, 설마 별양이 자기를 점찍은 걸까? 남자친구로? 준은 전례 없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한시 바삐 오해를 풀고 각자 입장 정리를 해야 했으나, 별과 장미의 신비한 아름다움과 지고의 지성 그리고 그녀들의 심미안과 우아미는 물론 꿈에 그리던 신비주의와 나무랄 데 없는 환상의 현현이 호사가 아닌 청렴함에 가까운 그 어떤 차이를 생각하면 그는 당분간 걔네들과 만나면 안될 것만 같았다. 일신상 그게 좋을 듯 했다. 뚝심은 소심함으로, 패기는 패배주의로, 정다운 친교는 가택감금으로 바뀌고야 말았다. 그럴 것이다. 마침 뒤따라오던 천마 페가수스도 더 이상 보이지 않았고, 그는 맘 편히 자신의 심심한 창작 생활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렇게 약 2주일이 흘렀다.
6
준은 다시 축구장을 찾았다. 역시나 서포터즈를 보러. 갈 곳이라고는 거기 밖에 없나? 꼭 그건 아닌데 소설로 옮겨지는 실화에서 그는 실재 실시간으로 그랬다. 아마도 거기 밖에 갈 덴 없었나 보다. 그러나 이제는 서포터즈의 재롱을 즐겁게 관람하는 구경꾼이 아닌 당당한 서포터즈의 일원이었다. 역할은 비상 대기. 아마도 특수한 상황에 대비해서 내내 쉬고 있어야 하는 막중한 임무로 보였다. 고기도 먹어 본 놈이 잘 먹는다고 맞는 거도 맞아 본 놈이 뭐 어쩐다더라, 그런 논리일까? 논리는 무슨! 그건 공갈도 허풍도 뭣도 아니다. 그러나 아예 아니라고 할 수도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일찌감치 조마조마 서포터스의 든든한 보디가드로 자리잡은 듯 했으니까. 그에 대한 대우가 괜찮은 것도 같고 아니 분명 예사롭지 않은 것은 확실했다. 그건 뭔가 기묘하기도 하고, 느낌이 몹시 이상했다.
「형. 누구 기다리는 사람 있어요?」
「아니. 기다리긴 누굴 기다리니.」
그러면서 준은 자꾸 여기저기 쳐다보면서 장미와 별을 닮은 사람이라도 있는지 알아보는 듯 했다. 그런데 그는 그날 따라 왠지 기분이 이상해서 한쪽으로 보는 망원경, 즉 단안경을 그곳에 가지고 가고 싶어졌다. 그래서 챙겨왔다. 그는 그걸 꺼냈다. 그리고 곧바로 경기장 귀빈석을 둘러봤다. 망원경으로.
아니나 다를까!
아무래도 고위 관계자로 보이는 듯한 사람들 옆에 장미와 별이 다소곳이 앉아있었다. 뭐야 저거? 쟤네들 혹시 구단 관계자? 아니면 구단주? 이런 젠장!
그는 엄한 추론은 치워버리고 경기에 집중할려고 했다. 그러나 어쩐지 뭐랄까 속 보이는 몽상에 빠졌다고나 할까, 머지 않아 멋진 컨버터블을 장미와 함께 타고 하루는 해변 드라이브를, 하루는 별과 같이 동물원에 갈까 미술관에서 쉴까를 고민하는 상상의 나래를 그려봤다. 준의 사랑론이 다 무색하게도 말이다. 그러나 그런 엉뚱한 공상은 자기 탓이 아니었다. 아무래도 낌새가 이상했다. 이건 누가 봐도 비상식적인 일이었다. 쟤네들이 뭐가 아쉬워서? 그는 갈피를 못잡고 하던 공상을 계속했다. 그러다 염증을 느꼈고, 다시 뜬구름 잡는 공상에 사로잡혔다가 그런 자신이 얄미워서 환멸을 느꼈다. 왕년의 잘나가던 준이 아니니까 어쩜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왕년의? 생각도 얽히고 자꾸 어딘가에서 피앙세가 자기를 막 훔쳐보는 것만 같아서 무척 찜찜했다.
「형. 그런데 있잖아요. 형이 별 누나 남자친구에요?」
「뭐, 뭐라고? 누가 그래? 얘 또 어디서 이, 이상한 얘기 들었네. 아니야. 아니라고. 내, 내가 왜 걔 남자친구여야 하는데? 그, 그냥 별이 귀엽고 착하니까 어? 어, 내가 잘 대해주는 것 뿐이야. 그, 그게 다야. 정말이야!」
「아니면 아니라고 하면 되지 형은 왜 그렇게 말을 길게 하고 막 말을 더듬어? 형 이상하네. 진짜 이상하네. 형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형이 봐도 그렇지?」
「그렇긴 뭐가 그래? 아니. 그건 그렇긴 한데, 아무튼 아니야. 다 아니야. 뭘 의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다 아니야. 가만 있어 봐. 넌 그런데 왜 그렇게 자꾸 아까부터 별 얘기만 하는 거니? 너 별이 좋아하니? 아~ 그렇구나!」
준은 조마조마 서포터즈에서 입지가 애매해졌다. 그래서 경기가 끝난 후 뒷풀이에도 참석하지 않은 채 곧장 집으로 돌아왔다. 그에게 청춘의 열병이 시작된 것일까? 그건 두고 보면 알 것이고, 그는 우선 모든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숨기는 뭣도 없었다. 의젓했다. 그러나 비밀이 없으니 왠지 지갑이 텅 빈 느낌이 들었다. 왜 그러는지 통 영문을 알 수 없었다. 그가 기다리는 예술적 착상을 덥썩 데려다주시는 그분이나 자기나 피차 쉬는 게 좋을 듯 했다. 그래서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나 아무리 뒤척여도 잠이 오지 않았다. 그러다 그는 결심했다. 바람을 쐬고 오기로. 그렇게 그는 별양의 집까지 드라이브만 하고 오기로 정하고 집을 나섰다. 그 야심한 밤에 말이다.
7
준은 별의 집 앞에 도착했다. 그런데 그녀의 집 앞에는 아 글쎄 월트가 꽃을 들고서 아마도 별을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는 생각했다. 서포터즈에서 말이 통하고 친하게 지내는 월트가 자기를 연적으로 보고 있구나 라고. 뭐만 했다 하면 그 옆에는 항상 그분이 있었다. 바로, 사랑! 못말리는 인생사다. 준은 잠자는 불독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발끝으로 걷듯이 뭐랄까 그 떫은 현장을 빠져나갈려고 했다. 그러나 너무 인적이 없기 때문인지 녀석의 직감 때문인지 그는 월트의 레이더에 딱 걸려들고 말았다. 뒷덜미를 척 잡히며 '너 잘 걸렸다 이런 쥐삐── 같은 놈 같으니라고' 라는 장면이 자동적으로 떠오르게끔.
「어, 형. 여기 웬일이에요?」
「그러는 넌 여기 웬일이니?」
「아 저는 별 누나에게 뭐 좀 전해 줄 게 있어서요. 조마조마 서포터즈 후반기 일정표와 소풍 계획안을 전해드릴려구요.」
「그걸 왜 늬가 전해줘? 이리 줘. 내가 전해 줄께!」 라고 말하고 싶은 충동이 아주 잠깐 준을 흔들어놓았다. 하지만 준은 유보적인 태도를 취했다. 그러다 월트가 준에게 제의를 했다. 여기서 별을 기다릴 게 아니라 우리 시내에 가서 아니, 서포터즈 사무실에 가서 술이나 한잔 하자고 해서 그들은 그 자리를 떴다.
도착한 곳에는 월트의 친구 앨이 기다리고 있었다. 앨은 서포터즈 조마조마의 새로운 귀염둥이였다.
「형. 짧게 요점만 말할께요. 별, 포기하세요.」
「별을 포기하라고? 별이 무슨 휴양지의 별장이니? 별이 혹시 놀이공원 오즈의 마법사 후계자라도 되나? 아니면 별이 어쩌면 바스키아의 검은 피카소처럼 상품 가치가 높은 미의 여신이니? 너 못 봤지? 난 봤어. 별이 방에 걸려있는 드 쿠닝 그림. 그거 진짜더라. 걔네 부모님과도 인사 나눴다. 그분들은 날 마치 별의 친오빠처럼 대하시던데. 왜 그런지는 모르겠어. 난 있잖아, 형은 다른 사람의 사랑 이야기에 끼고 싶지 않은 사람이야. 설사 내가 당사자일지라도 사랑은 개인의 문제라고 생각한다네 친구. 어떤 노력과 진심과 시간으로서 하늘이 허락해주시는 사랑이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네. 사람의 일이 사람의 일이긴 하지만 남자의 인생에서 사랑은 전부가 아닐 텐데 사랑에 너무 빠져든 게 아닌가, 스스로 자기 자신과 대화를 나눠볼 필요가 있어. 월트! 월트 이 친구야. 월트 늬가 왜 나 보고 별을 포기하라고 하는데? 월트가 뭐 제우스니? 그럼 뭐 에르메스야? 잠깐만 에르메스가 남자던가 여자던가 아무튼, 내가 딱 가면 벗고 난 나이키다 그러면 어떡할 테냐고. 늬가 뭐 아마존 사장이라도 되냐? 어? 왜, 대체 늬가 무슨 권리로 나보고 별을 포기하라 마라 명령하는데? 그거 명령이야 부탁이야 설득이야, 그걸 먼저 정하고 날 만났어야지 이 친구야. 아 나 이거 이거 얘네들 드라마를 봐도 어설픈 거 봤네. 뭐 봤니? 어? 뭐 봤어? 뭐 삼류 영화 봤구만. 아 나 웃겨서 증말! 내가 뭐 별의 인생을 쥐고 있기라도 한단 말이냐? 내가 어디 그런 악덕 뭘로 보여? 괜히 단어 사용에 신중해지는구먼 그래. 그리고 너도 너야. 그런 엄포를 할 꺼면 좀 떡대 좋거나 아니면 분위기가 있거나 뭐드라 그래 카리스마! 뭔가 하나 있어야지 아무 것도 없이 패기만 가지고서 이게 도대체 뭐니? 그리고 봐 봐. 앨 이 친구는 너무 사람이 착해 보여. 아마도 앨 자네는 앞으로 대성할 것이네. 제2의 짜라투스트라가 혹시 나타난다면 그가 내 애제자였다고 고백할 테니 내 말을 믿게나. 꼭! 명심하게. 자네는 대성할 것이라는 나의 예언을, 부디!
사랑의 열정? 연정의 배짱? 멈출 수 없는 사랑? 정확히 뭐라고 생각하니, 너의 마음 속에 들어있는 그 의혹의 정체는? 무엇보다 월트는 사랑이 뭐라고 생각하니? 어? 지금처럼 형, 누구 포기하세요 라고 모기 목소리로 말하는 게 사랑이니? 과연 그럴까? UFC 헤비급 챔피언 같은 형의 친구도 나와 내 피앙세의 애정이 커가는지 미처 모를 때부터 마음을 키우면서 나중 그러더라. 그 이상은 없더라고. 자기 회사에 남직원이 하나 있는데, 여자가 자기를 좋아하는 줄 아니까 그녀의 마음을 뭐라더라, 아무튼 녀석의 말은 딱 그 정도였어. 차라리 한 여자를 놓고 친구끼리 한때 연적이 되는 게 낫지, 이렇게 멋모르는 타인을 만나서, 아 우리가 조마조마에서 돈독한 사이이긴 하지만 말이네, 어떻게 응? 어떻게 하면 될 것 같다? 그건, 그건 하이틴 드라마야. 꽃 들고 쫓아다니는 사랑과 한 짝이라고. 형 친구는 흔한 경우처럼 등치만 그랬던 게 아니라 녀석은 진짜 인생이 그랬거든. 약력, 경험, 소속, 능력 모두. 약간 부족한 건 딱 하나 얼굴이었고. 뒤늦게 아무추어 2부 대회 무제한급에서 가볍게 우승하긴 했는데 1부는 출전 자격이 안됐다더군. 얘만 그런 게 아니야. 아는 동생 가운데 카레이서도 있었는데 완벽한 WRC급 되는데, 어떤 일화를 간직한 걔도 학력 미달로 그쪽으로는 못나갔어. 형 친구 중에 느와르 영화랑 맞닫는 사람 많았다. 걔네들 얘기하자면 혐오도 있고 사이코패스, 마이크 타이슨, 브로맨스, 사기꾼, 전직 뭐등 아 많아. 힘들어 상대할려면. 아 말 말어. 거친 남자들의 세계도 나름 매력이 있긴 한데 그게 또 장점이 하나 있으면 단점도 하나 있더군. 세상사가 원래 그렇지 않나. 새 친구와 친하게 어울리다 보면 친구의 친구의 친구로 파도를 타게 돼 있어. 여자보다 남자는 친교가 넓고 길고 다양하니까. 내 입으로 나 인기 있었다, 라고 내가 스스로 내 자랑하는 것 같아서 퍽 부끄럽고 죄송스럽네만 말이야. 아무튼 그래서 학창 시절 바라보던 멋진 사람들과 꿈꾸던 이상이랄지 계층까지는 아니지만 거 왜 그런 거 있지 않나. 친구 중에 예술가도 있고, 은행장도 있고, 수완 좋은 오락산업 대표와 지명도 적당한 운동선수, 고위 관료, 외교관, 의사, 환경운동가, 스포츠기자, 학자, 그~래 재력가! 자기가 자기 입으로 난 재력가라고 하는 사람은 몇몇 만나봤지만 말이야. 원래 촌닭은 코메디언이거든. (쉭쉭) (눈썹 까딱) 그런데 어느 날 보니 난 딱히 뭘 바라지는 않았지만 내 친구들을 스윽 봤더니 글쎄, 파도타기를 하다가 장르가 너무 그쪽으로 기우는 건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들었다네. 그래도 반전이 있었지. 애틋한 해피엔딩을 절로 연상시키는 내 인생의 유일한 사랑을 만났으니까. 하지만 내가 만일 어떤 작품의 주인공이라면 난 그 전말을 꼭꼭 숨길 꺼야. 설령 내가 작품의 주인공이 아닐지라도 은밀히 감출 테야. 왜냐하면 여자는 원래 그런 걸 좋아하는 법이거든. 아닌 척 모른 척 없는 척 하다가 기대가 곤히 잠드는 틈을 타서 막판에 뜻밖의~ (딱)! (검지)! 내 인생은 예술에 담아내고, 내 과거는 그녀에겐 비밀로 해야지. 그 궁금증과 신비스러움을 오래 지속시켜야 하니까. 뭐 들통날 때 들통나더라도 말이야. 그래도 주기적으로 세뇌시키면 그녀는 최면에 걸릴 수 밖에 없어. 넘어올 수 밖에 없다고 여자의 마음은. 있잖아! 어느 작품의 주인공이 나이기는 어렵지만 말이야 그래 희박하지만,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내 사랑의 왕자님은 바로 나라는 점. 낯간지럽고 오글거리긴 하네만 결코 쉽게 간과해서는 안된다네. 왜냐하면 그것은 만인에게 해당되는 만고의 진리니까. 어쨌든 한 여자를 놓고 드라마처럼 두 남자가 대립되는 일이 있긴 하더라고. 그래도 그 친군 자세한 얘기 없이 웃더라. 눈빛 왔다 갔다 서로 알지. 체급이 그러한데 우리가 뜨겠니 어쩌겠니. 한쪽은 사나이의 상심 한쪽은 사랑. 그러나 녀석은 나와의 다툼이 아니라 웃음을 택했지. 사랑을 잃고 우정을 택했다더라일까, 아무튼. 왜? 우리는 친구니까. 노래에서 말하는 흔들린 우정, 그건 보통 여자쪽에서 갈팡질팡하거나 뭔가가 있는 경우가 많아. 그게 노래는 멋져 보여도 실제는 아니고. 그런 일을 허구에서는 야만적으로 그리기도 해. 그러나 실화에서는 진짜 느와르 장르 인생의 친구는 단지 미소였다고. 그게 다였어. 끝. 그런데 말이야, 아 맞다 맞어. 그 남자 중의 남자인 형 친구. 그 친구랑 또 다른 친구들이랑 형까지 네 명이서 우리끼리 지하 세계 도박계를 접수할려고 집을 얻어서 합숙하며 일했던 때가 생각나구만. 타짜는 실전에서 판을 설계해서 시작하며 내가 원하는 패를, 그러나 만질 수 있고 고체로 존재하는 진짜 패를 나눠 주지. 우리는 인터넷 카드 게임에서 그런 타짜 같은 일을 아주 잠깐 시도하다가 만 적이 있어. 그 얘기를 왜 하냐면 말이야, 그 UFC 헤비급 챔피언 같은 친구가 외출했다 집에 딱 들어왔을 때, 그때 형이 뭔가를 하다가 들켰거든. 완전 딱 들킨 건 아닌데 우리 남자분들 잘 아시는, 우리 청소년들 익히 아시는 그런 일 말이야. 아 나 이거 원 참 쑥스러워서 고개를 못들겠구먼 그래. 5살인가 6살 때 우리 아빠는 바닥에 엎드린 내 엉덩이를 지긋이 밟으셨고, 난 그때 삐─ 운동이라고 해서 동네 아줌마들을 모두 거뜬히 웃겨버렸으며, 그 뒤로 나중 엄마한테 뭐 들키기도 했겠지. 아 증말 인생 슬프구먼 그래. 아아 너무 짠해 내 인생. 그나저나 그게 말이야, 아마 그때쯤일 꺼야. 내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까서 자기 여자친구에게 보여주면서 자 봤지, 그 일. 나는 저 덩치 큰 친구와도 친했고, 얘랑도 친했어. 침체된 시기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상중하에서 내 인기와 교우 관계는 그래도 상이었다고. 그런데 그 층위가 상은 상인데 좀 이상했던 거지. 왜냐하면 나는 불난의 축이었으니까. 어쩌면 정말 그랬나 봐.
그런데, 월트는 대체 왜 별에게 매료되었을까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나서 그 순정을 입증할 수 있는 뭔가는 있는 거니? 형 말은 천문학적 배팅을 하라는 게 아니야. 형이 무슨 걸출한 도박사도 아니고 말이야. 자, 우리 한번 생각해보자. 지금 당장 월트가 별을 좋아한다, 그건 좋아. 좋지, 아름다우니까. 사람 마음을 어떻게 사고 팔겠니 어쩌겠니. 그런데 너 언제까지 별을 따라다닐 꺼니? 얼마나 그 끈기를 유지할 수 있는데? 그리고 그 마음을 온전히 별 하나에게만 딱 언제까지 집중할 수 있냐고. 너 별이 어떤 애인 줄 아니? 애절하긴 하다만 별이 그 사랑을 받아줄 것 같니?
그와 함께 별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는 모두 파악했니? 별의 허영심과 변덕과 질투와 꿈과 욕망과 고결한 마음과 자잘한 습관과 그녀의 사랑관을 분석했냐고. 여자에게 그런 덕목들이 있듯이 남자에게도 그에 상응하는 뭔가가 있어. 우리 월트는 허세 지수, 상중하에서 하. 허풍은... 가만 있자 것도 하. 허당끼는 상. 딴 건 낮고 허당 지수만 왜 높냐고? 허당 지수 높은 게 나쁜 게 아니야 이 친구야. 이거 이거 진짜 순 허당이구만. 누가 은근 허당 아니라고 할까 봐. 자네, 남자들이 왜 거짓말을 많이 하는 줄 아는가? 왜 그런가를 알려면 사랑을 알아야 한다네. 사랑! 여자는 모르겠지만 남자의 인생에서 순도 높은 다이아몬드처럼 눈부시고, 찬란하고, 아름답고, 밝고, 내 마음에 드는 흡족한 연정의 상대는 남자에 따라 많기도 하고 적기도 하겠지. 그러나 사랑학에서 봤을 때는 말이야 그 사랑하는 여자의 마음은 적어도 하나면 된다네. 그건 최소 하나면 족해. 바꾸어 말하자면 남자의 인생에서 진실한 사랑은 최소 1개, 나머지는 그게 2개든 2000개든 의미 없어. 즉 1개만 퀄러티고, 나머지는 양이란 말씀이지. 그러니까 남자들이 뻥이 센 거야. 그런데 허세도 별로고, 허풍도 싫고, 여자 경험 역시 변변치 않아. 그건 뭔 줄 아나? 그건 노-재미야. 심심한 남자라고. 싱거운 데다 썩은 미소와 냉소도 함께 하는. 그분과 함께 대화의 즐거움을 찾으려면 힘들어 많이 힘들어. 대체로 뭐든지 중간이 좋아. 그래서 내가 봤을 때 월트는 별에게 몇몇 항목만 놓고 보자면 예측 사랑 지수가 썩 높게 나오지는 않아. 그걸 모르고 덤비면 돈 낭비 시간 낭비, 한 시절 방황 좀 해야 한다네.
꽃 들고 쫓아다니는 사랑에는 네 가지가 있어. 그녀만을 바라보는 애타는 마음을 숨기고 사랑하기 때문에 떠난다, 기다린다, 지켜본다, 그녀의 행복을 하란다, 그녀의 꿈을 응원한다, 그녀가 바라는 환상과 그녀가 동경하는 로맨스에 조용히 환호한다, 그러다 만나거나 헤어지고 영원한 남남이 될 뻔 하다가 다시 사랑의 불씨를 살리다가 그녀를 내 우정에게 빼앗긴다, 그리고 나는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본다, 배 들어올 때 배 들어오지 않을 때 내내 노만 져었는데 완전 죽 쑤어 개 줬다 등등 많은 게 있어. 그러나 그 끝은 네 가지야. 즉 결론은 성과란 말이야. 사랑의 끝은 네 가지가 있다고. 첫째 그녀의 마음만 얻거나, 둘째 그녀의 몸만 얻거나, 셋째 그녀의 몸과 마음을 지켜주며 떠나보내거나, 넷째 모두 얻고 사랑의 주인공이 되거나.
갈피를 못잡더래도 다시 한번 잘 생각해 보렴. 남자가 100번, 1000번 애원해서 이루어진 사랑은 그건 뭐라 말하기가 곤란하다네. 여자쪽에서 문제를 찾을 수도 있고. 해피 엔딩 물론 가능해. 문제를 여자쪽에서? 그렇지. 빌미는 찾아보면 있어. 꼬리가 길면 잡힌다고. 사연이란 것도 있고. 막장 드라마가 있으면 사랑의 센티멘털 장르, 왜 없겠나. 아 막장? 막장도 라틴쪽 드라마는 급이 달라 급이. 음... 찬미가 충분했든 어쩌든 여자가 꽃인 건 맞아. 그렇지만 특별한 사랑을 원한다면 여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꽃이면 안되는 거라네. 바로 거기서 고수와 하수가 갈리는 거야. 종이 한 장 두께 차이는 이때 드러난단 말이세. 999번 나 꽃이야? 좋아! 완전 좋아. 왜 나쁘겠나. 하지만 나머지 1번은 한 여자가 간직했던 그 진심이나 무언가를 먼저 제시해야 한다네. 흔들었던 꼬리를 단정히 내려야 한다고. 작전 들어가야 한다고. 그것은 남자가 아닌 여자의 숙명적인 베팅이야. 당연히 그런 기회는 쉽게 오지 않겠지. 더불어 나중 그녀는 후회하기도 하겠지. 그때 내가 왜 이 인간을 유혹했지? 이 인간이 하도 꽃 들고 쫓아다니고 집 앞에서 기다리고 쫄랑쫄랑 내 꽁무니만 쫓아다니며 나만 바라보길래 나는 그게 사랑인 줄 알았는데, 어디 가서 내 남자친구라고 하지 마, 그러면서. 아닐 수도 있고. 상대를 바꿀 수만 있다면 바꾸고 싶은 게 당연해. 아니라면 거짓말이지. 나도 그런 기억이 많다네. 나와 척키와 척키 여자친구와 그녀의 어머님과 함께 만났는데 어머님이 호호호 뭐라 그러시네. 나이트클럽에서 어떻게 친구랑 사냥에 성공해서 밖으로 2 대 2로 나왔는데 아 글쎄 친구쪽 여자가 막 뭐라 그러네. 쓸데없는 일과 부질없는 기억들 다 잊었어. 잊어야 하니까. 그렇지만 나이트클럽에서 만난 인연도 아니고, 함께 한 시간에 익숙해지고 추억이 쌓이고 사랑에 길들여지고 나면 낭만이든 뭐든 포기해야지 별수 있나. 여자도 여자를 알아야 한다네. 주관과 심지와 줏대와 판단력과 의지와 권위에 대한 투시력과 말수의 타율-장타율을 간파하는 현명함, 촌년의 바꿀 수 없는 천부적인 안목, 내 연애 소질로 도달할 수 있는 사랑, 고삐 풀릴지도 모르는 기준선, 나와 남을 보는 동등한 잣대, 여자는 아마도 이런 덕목들과 평생 씨름해야 할 걸세. 사는 내내. 그래. 정말 그래. 옛날에는 그랬지. 어느 왕이 1000명의 시녀를 거느렸다더라, 누구는 첩이 만 명이나 됐다더라 라고. 귀족과 관련된 속담이나 뒷말도 있을 테고. 허나 그건 옛날 이야기야. 지금은 어떠할까? 지금은? 이렇게 바뀌지 않았나. 집을 10채 갖거나, 차를 100대 소유하고, 1위 곡만 1000개라는 히트곡 제조기가 되거나, 명화 만 점을 보유한 거물이 된단 말일세. 그 가운데 제일은 대략 집 1채에서 살며 서로 죽고 못 사는 소박한 사랑이 최고일 테지만 일단은 말이야. 그 반면 여자는 어떤 줄 아나? 천년의 사랑을 하는 여자일지라도 여자는 자기를 좋아하고, 사랑하고, 꿈에도 그리워하는, 자신만을 흠모하는 남자가 1000명이 되더라도 절대 마다하지 않는다네. 그게 여자야. 왜? 왜냐하면 여자는 누가 뭐래도 꽃이니까! 먼발치서 바라만 보겠다는 데 그게 뭐 어째서, 남의 일 아니냐 그거지. 실재 타인의 인생이고. 그건 맞아. 그러면 남자는? 꽃씨를 뿌리고 사랑을 노래해야지 별수 있나. 사랑의 완성은 다시 사랑의 시작이야. 사랑도 나뉜다고. 동등한 사랑이냐 아니냐, 아름다운 사랑이냐 아니냐, 처음은 어땠고 나중은 어떠한가로. 그걸 꼭 시간이 지나서야 알게 될까? 그럴 것 같은가? 그렇기도 하지만 보통은 처음에 이미 정해져 있고, 처음에 다 훤하게 보일 수도 있어. 하지만 그건 사랑을, 사랑에 대해서 뭔가를 알아야 하니까 쉽지 않을 수도 있어. 가령 월트에게는 그럴 수도 있다고. 가볍고 넓고 많고 일방적인 사랑에 익숙했던 사람이 나중 사랑을 받는 것과 사랑을 하는 일을 새롭게 깨우치게 되면 이 세상이 달라보이듯이, 사랑을 받는 데 익숙했던 사람이 마침내 사랑을 하고, 사랑을 주고, 사랑 받는 것에 앞서 내가 누굴 사랑한다는 사랑의 본질을 알게 된다면 그때 그 사람은 단호해지는 법이지. 그분이 만약 여자라면 그녀는 마침내 사랑과 인생을 동일시하게 될 꺼야. 그건 거의 3부 리그에서 2부 리그를 거치지 않고 바로 1부 리그에 오르자마자 우승하는 것과도 같아.
자네는 그 모두를 다 면밀히 검토해 본 다음에 나보고 별양을 포기하라고 하는 건가? 그렇다네. 난 어딘가에 숨겨 놓은 여자친구가 있을 수도 있어. 그러나 내가 별양을 좋아할 것인가는 엄밀히 봤을 때 다른 문제야. 왜냐하면 그건 다른 사랑이니까. 또 내 문제야. 별의 소망일 수도 있고. 다름 아닌 그게 바로 사랑이라고. 사랑이 그렇다네. 방향이 막 서로 달라. 어떻게 보면 그건 완전 동물의 세계를 보는 것과도 같지. 왜냐하면 사랑의 시작과 끝은 물론 그 태동과 소멸과 다중적 의미란 게 원래 불명확하기 때문이야. 어느 날 별이 자네한테 그러면 어떡할 텐가? 월트, 준을 괴롭히지 마세요 그리고 저에 대한 사랑을 그만 멈추세요, 라고 한다면! 내가 자네의 고백을 듣고 사랑에 대한 장광설을 늘어놓듯이, 그녀의 부탁을 듣고 자네가 자신의 순애보를 청산할 것인가는 자네의 자유야. 그러나 그 자유가 너무 일방적이라면 이게 정말 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가를 다시 생각해 보는 게 좋겠지. 안 그런가? 월트가 내게 별을 포기하라고 했어. 그럼 나는 네 알겠습니다 라고 할까? 그런 카드 게임이 세상에 어딨나? 받고 한 장 더, 가 나오는 게 순서지. 안 그래? 난 포기 못해, 늬가 포기 해. 자, 그 다음엔? 뭐 걸 거 없어? 것 봐 액면도 별론데 너무 무리한 거라고. 월트는 지금 얼마나 자신의 사랑을 확신하는가? 그 사랑이 변치 않을 자신이 있는가? 설령 있더라도 그건 현재고, 미래는 다른 얘기지. 나중 그 사랑이 변한다면 그땐 어떻게 책임질 텐가? 내게 별을 포기하라고 제의한다는 것은 월트의 별에 대한 사랑이 영원하고 유일무이해야 함을 전제로 한다는 것이라는 점 잊지 말게. 혹시라도 말일세, 나중 별에 대한 월트의 사랑이 변한다면 그땐 어떻게 책임질 텐가? 응? ...... 왜 내가 책임져야 하냐고? 그러면 결론 났네 결론 났어. 사랑의 맹세와 결혼 서약은 물 건너간 걸로. 정작 그 모든 사랑의 열망에 관한 당사자인 별이는 아무것도 모를 테지만 말이야.
자, 이제 다시 한번 처음의 질문을 떠올려 보세. 사랑을 포기하냐 아니냐, 는 별개로 하고 별이를 포기하라고 왜 제3자가 선언해야 하는지를. 전에 뮤지컬이나 오페라 본 적 있는가? 그렇다네. 그렇지. 그 애달픈 마음은 사랑의 큐피트 그 수혜자를 향한 말이 아니라, 책이나 노래나 꿈을 향한 정진이든 그 뭔가로 표현해야 하지 않을까? 내가 미처 논리정연함은 챙기지 못했네만 이만하면 첫 질문에 대한 답변은 대신한 듯 하네. 이처럼 괴상하게 답변을 일축해도 괜찮을런지 모르겠지만 말이야. 결론은 이래. 번거롭겠지만 처음부터 사랑의 관계도와 사랑의 방정식을 다시 검토해 보지 않겠나?」
고요함.
약간의 거룩함.
말은 없어도 들린다. 체크. 패스. 체크. 고.
「형. 그런데 있잖아유. 이런 말씀 드리긴 무척이나 유감스럽지만 지가 송구스러움을 무릅쓰고서라도 알려드리는 게 좋을 것 같네유. 아까 지가 한 말 있잖아유. 별 포기하라는 말. 그거... 실은 그냥 해 본 말이에유. 제 감정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걸랑요. 곧 지 말은 농담이었시유. 형이 뭔가 판단 착오를 일으킨 것 같구먼유. 너무 쉬운 액면이라서 크게 오산하신 거구먼유. 그분이 오셨는지 성이 꼭 석고상처럼 보이기도 하고 또 웅변가로 보이기도 했걸랑요. 그란디 어뜨케 중간에 말을 끊을 수도 없구...! 네. 지는 참 곤혹스러웠구먼유. 앨은 또 무슨 죄겠시유 괜히 지 만난다구 놀루와서... 일은 그렇게 된 거네유. 성님! 전 정말 성 입에서 막 화염방사기의 화염이 쏟아져나오는 환영을 본 것만 같구먼유. 지는 그거면 됐시유. 재밌었응께. 야 앨. 너두 그렇게 느꼈지? 와~ 완전 끝장! (엄지 엄지 쉭쉭) 삐─ 멋져! 뭐 그럼 됐쥬. 네. 그럼유. 성님 그거 아요? 아따 그래도 형이나 된께 이라고 유익한 얘기를 해주제 누가 우리헌티 그라고 좋은 말을 해준다요. 안 그라요? 아야 앨! 아따 거시기, 그러냐 안 그러냐?」
「아 그라제~. 두말허믄 잔소리제. 아따 나는 아까 막 레이저 맞어브렀당께 참말로. 진짜 막 우리 성님이 화염방사기 뿜어븐디 와 건 마 뭐 거의 완전 멋져븠어. 환장해브렀당께. 성님, 그거 아요? 우리가 성님 좋아한단 거 말이오. 이러니 이러니 우리가 성님을 조마조마에서 에이스로 모시지 않을 수가 없어브러. 아 미쳐븐당께 증말.」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까마귀 한 마리로는 모자랐다. 간에 기별도 안 간다. 준은 정말 어디 쥐구멍이라도 있다면 정말 막 머리를 쳐박고 싶었다. 닭처럼. 아아 그건 정말, 오오 안돼 안돼. 말 말자!
8
요컨대 월트는 당분간 마음이 정리될 때까지만 짝사랑을 지속하기로 했다. 그리고 월트의 친구 앨은 서포터즈 조마조마의 새로운 에이스가 됐다. 서포터즈의 에이스는 딱 하나만 잘하면 된다. 큰 목소리! 이쪽 골대 뒤에서 저쪽 골대 뒤에 있는 상대편 서포터즈에게 외칠 수 있어야 한다. 목소리만으로!
「야 이리 와 봐. 자신 있으면 와 보라고. 한판 뜨자!」
「떠? 뜨긴 뭘 떠!」
「가시내처럼 그게 뭐냐. 인사나 하자.」
「오라면 못갈 줄 아나. 하지만 귀찮다. 늬네가 와라. 왜 우리 보고 오라 하냐.」
「야 잔 말 말고 굽혀라. 오라면 올 것이지 뭔 말이 그렇게 많냐. 어?」
「너 방금 뭐라 했냐? 뭐가 어쩌고 어째? 너네들 말 다 했냐.」
「말 다 했으면? 왜, 오게? 어차피 안올 거잖아. 아무리 약 올려도 안올 거 다 안다.」
「너네 못본 사이에 많이 똑똑해졌구나. 어떻게 알았냐? 너네들은 공부 못했으니까... 천재라도 영입했냐?」
「누굴 영입해? 내가 천재다. 우린 천재 아니면 상대를 안한다. 우리 조마조마는 최소 수재, 보통은 천재다. 알았냐?」
「몰랐다. 너네는 어떻게 농담이 그렇게 유치하냐. 익살엔 통 소질이 없는가 보구나. 포기했다. 기대도 안한다.」
「늬들이라고 뭐 얼마나 다르냐. 그러는 너넨 못본 사이에 많이 뻔뻔해졌구나. 하나도 안 웃긴다.」
「안웃기면 웃지마라. 웃어달라고 부탁한 적 없다. 그렇지만 이러면 싸우다 정드는 거 아닐까?」
「뭐라카노? 우리는 애증 같은 거 안키운다. 우리는 젊다. 고로 우리는 사랑하냐 사랑하지 않느냐, 둘 중 하나다.」
「그럼 우리는 늙었단 소리냐? 내기 할래?」
「우리는 애들이랑 내기 안한다.」
등등
그리고 서포터즈에 새로운 회원이 등장했다. 사라와 이브! 그녀들은 아마 준의 졸작 블로그를 읽고, 준이 삼류 소설가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준이 말끔한 양복을 입고 축구 경기를 보러 오기 때문에 일찌감치 준의 팬클럽이 되기로 마음 먹은 듯 했다. 즉 서포터즈 조마조마에서 사랑의 관계도는 어느 정도 정해졌다. 피라미드 제일 위에는 준, 준을 장미와 별이, 별에게는 아직 월트가, 다시 새로운 사라와 이브는 준을 보며 오빠, 오빠, 오빠. 막 그러고 있었다. 친구랑 같이 오지 않고 혼자 활동하는 앨리스도 후보군에 대기 중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또 다시 서포터즈 조마조마에 두 숙녀가 새롭게 출현했는데 별다른 멋진 남성들이 눈에 띄지 않았기 때문인지 그녀들도 준에게 구애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준이 호명을 해서도 아니었고, 누가 시킨 일도 아니었다. 어쩌면 그건 영락없는 사랑이었다. 준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 그때부터 그는 차차 축구장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고, 언제부턴가 아예 종적을 감춰버렸다. 그래서 서포터즈 내부에서 뭔 얘기가 있었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으나, 어떻게 어떻게 해서 준이 근처 연고팀 지역에서 유랑 생활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모두 알게 됐다. 준의 입장에서는 아마 글을 쓰기 위해서 잠시 주거지를 떠난 것 정도였을 것이다. 준은 팀내 내분이나 자기한테 쏟아지는 흠모와 남아들에게 받는 눈총, 스스로 생각해도 왠지 이건 지나친 인기의 독식이 아닐까 라는 반성에 가까운 성찰을 하게 됐고, 때문에 그는 저번에 경기장에서 맡붙은 상대팀 연고지 지역에서 생활하며 이런 시를 짓게 되었다. 그는 그 글을 블로그에 올렸다.
모든 애정의 화살표가 내게로 향하던
피라미드는 역피라미드가 되었다.
단정한 삼각형은 뒤집어졌다.
추상적 심상의 다이아몬드 모형으로
그것은 드디여 꽃으로 변했다. 그리고
멋진 형상의 분수가 되었다. 이제
분수대 밑에 특별한 소원이 담긴 동전만 쌓이면 된다
먼 미래에는 동전없는 세상이 올지도 모른다는데
아니 가까운 미래던가? 이미 그렇게 사는 데도 있다던데
그러면 천사의 고추에서 내뿜는 물줄기에서는 우유가 나올까?
그래도 될까? 생각이 이처럼 튀면 콜라 캔을 따는 것과 같다
그 소리는 마담 클링!
왜 하필 그 소리가 들렸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처음에 쓸 때는 뭔지 모를 아찔함과 멋스런 흥취랄지 빼어난 감각미가 돋보였다. 그런데 다시 읽어보니 그건 그냥 일기였다. 인터넷에서 적당한 블로그 찾아보면 쉽게 찾을 수 있는 그런 글. 한마디로 투정. 물론 말이 그렇단 소리다.
그나저나 조마조마 서포터즈는 한번 경기장에서 뜨겁게 맞붙은 인연도 있고 해서 준이 머무르고 있는 고장으로 원정 응원을 갔다. 월트는 물론 장미와 별도 오랫 만에 만났고, 정 붙이자마자 정을 떼버린 사라와 이브, 게다가 이젠 이름도 얼굴도 신호도 무시할 수 밖에 없는 다른 친구들도 반갑게 만나게 됐다.
「형. 그만 돌아오세요.」
「네 오빠. 그만 돌아와. 돌아와 줘 제발. 여기서 혼자 응원하시기엔 아무래도 무리..아니겠어요?」
「네 오빠. 글이야 아무데서나 쓰면 그만이죠. 뭐 바래는 거 있어 오빠? 내 친구 소개시켜줄까? 응, 오빠!」
준은 설명할 길 없는 바램이 수그러드는 것만 같았다. 또한 서포터즈에 대한 이루 말할 수 없는 애착심이 다시 한번 뜨겁게 타올랐다. 그는 친구들의 열화와 같은 요구에 이지적으로 아니라고 응대해야 했으나, 별 생각없이 무심코 그러겠다고 해버렸다. 아무래도 자기가 돌아가서 사랑의 관계도를 정리해야만 한다는 책임감이 느껴졌던 것이다. 우정과 사랑과 연정을 모른 채 하며 서포터즈에 대한 열정까지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는 건, 그건 정말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9
홈구장으로 돌아와서 준은 무엇을 보았을까. 그는 깨달았다. 아 내 판단이 너무 성급했다고. 얍, 같은 기합도 필요없었다. 무엇도 통하지 않았다. 흐름은 바뀔 수 없었다. 대세는 기울었다. 가급적 모른 체 할려고 해도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안간힘을 썼으나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그의 바램대로 됐다. 준이 입바른 소리로 툭툭 던졌던 대로 자기를 향하던 인기와 관심과 호의와 애정과 친교는 모두 정반대의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피라미드는 역피라미드로 바뀐 것이다. 상황은 역전됐다. 재역전은 가망 없었다. 암담했다. 그놈의 서포터즈에는 왜 들어갔길래. 어디다 하소연할 수도 없고 망신살만 톡톡히 샀다. 그는 완전 찬밥이었다 조마조마에서. 이제 준은 서포터즈에 나가도 지나가는 개도 쳐다보지 않는 존재가 되었다. 대체 뭔 일이 있었길래,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았다. 그가 지은 시 그대로 예언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는 다른 할일을 찾아야 했다. 간신히 붙은 정 이제는 떼야 하는 실정에 이르고 말았다. 아니다. 과정 없이 결론만 남았다. 이름을 바꾸고 조마조마 서포터즈에 몸담기까지는 좋았다. 상대팀 서포터즈와의 몸싸움에서 뜻하지 않게 선봉에 서게 된 일까지도. 왜냐하면 그나마 지역신문에 작게나마 대서특필되었으니까. 유명세란 게 그런 거다. 한번 그 짜릿함을 알게 되면, 아아아! 건성일지는 몰라도 조마조마에서 준은 전에 호응이 괜찮았고, 인기는 파죽지세였으며, 차기 회장감으로 운운하는 소문도 듣기 싫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거스를 수 없는 큐피트의 화살이 너무 한꺼번에 집중되다 보니까 어떻게 조마조마의 사랑을 받고 그 기대에 착하고 예쁘게 호응하지 못했던 거다. 부담스러웠고, 질투심과 시기는 물론 팀내 의기의 균열과 인기의 불균형이 심했으니까. 그래서 그는 어렴풋하게 드러나는 삐걱거림에 아랑곳하지 않을 수 없었다. 따라서 그는 떠났고, 정체기를 보낸 후 돌아왔을 땐 조마조마는 예전의 그 조마조마가 아니었던 것이다. 누구를 탓하랴! 그렇다고 딱히 잃은 것도 없었다. 그런데 왜? 다만 어딘가 모르게 살살 말리고, 착착 엮여서 덤으로 패자가 된 듯한 떨떠름한 기분을 떨쳐버릴 수 없다는 것뿐. 아마도 떫은 기분은 이를 뜻하리라. 감당하기에 과히 쉽지 않은 분위기였다. 그래서 준은 집에서 심기일전에 들어갔다. 가택 감금으로 비책을 모색해 볼 생각이었다.
10
준은 묘안을 하나 생각해냈다. 이름을 바꾸기로. 뿐만 아니라 서포터즈도 바꾸기로. 그 당시 맞붙은 그 우락부락한 친구들쪽에서 먼저 영입 제안이 오지 않았으나 지금은 누가 뭐래도 변화의 바람이 필요한 시기였다. 그쪽 서포터즈의 이름도 마음에 들었다. <간당간당!> 여자친구를 바꾸는 건 뭐라 말하기 곤란하다.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는 건 길조인 경우가 많다. 학교를 졸업하면 회사에 들어가고, 최고 인기 드라마를 위시한 광고는 단가가 비싸다. 남의 다리를 피나게 긁는 일이 있으면 우연히 찾아오는 깜짝 행운도 있는 법이다. 그렇다고 이사 갈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 단어가 생각났으니까. 특파원!
서포터즈는 간당간당. 새 이름은 로버트. 직업은 그대로 삼류 소설가. 취미는 TV 보기? 첩은 없음. 준은 아니, 로버트는 기쁜 예감 때문에 기분이 좋아졌다. 다시 즐거워졌다. 마음을 바꿨을 뿐인데 칙칙하던 전망이 갑자기 아름다운 풍경으로 변한 것만 같았다. 그러나 큰 기대는 없었다. 가는 여자 붙잡지 않고 오는 여자 마다하지 않는다. 앗, 그건 아니다. 로버트에게 여자는 오직 1명이다. 사랑도 하나다. 진짜다. 아무튼 그는 돌아오는 축구 경기가 기다려졌다. 설레며 기다리는 즐거움이 있다는 것은 행복이다. 유부남들에게 물어보면 안다. 막 가슴 졸이며 애타게 기다려지는 무언가가 있냐고, 뭐 먹고 싶은 거 있냐고! 후자는 값싸고 객적은 농담이고, 전자의 답은 뻔하지는 않지만 생략하는 게 좋겠다. 그런데 진짜로 당신은 막 궁금하고 마구 날짜를 세며 기다려지는 무언가가 정말 없는가? 아마도 동네 아저씨라면 그럴 것이다. 딱 부러지게 없다 라고. 듣는 즉시. 인생이 아름답냐고 물어봐도 단칼에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세상은 아름답고 사랑은 해야 한다고 노래할 줄은 아신다. 하지만 뭔가 꺾고 어떻게 접어야 할 분위기다, 그러면 다시 제2의 발언을 내놓으실 것이다. 그러나 라고. 실제 그분들 말씀이 맞긴 맞다.
정리하자면 준은 로버트가 됐다. 소속은 조마조마에서 간당간당으로 바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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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움!
새로움이 그렇다. 새로움은 대천사이자 동시에 악마 중의 악마다. 걸작은 새로움으로 시작해서 새로움으로 끝난다. 따분하고 지루하고 지겹고, 연애마저 일이고 사랑도 싫증일까? 그 앞에, 모든 무엇 앞에 '새'와 '신'을 붙여 보시라. 새 옷, 새 차, 새 가방. 새로운 인생, 새로운 직업, 새로운 권태 그리고 신소설조차. 새로운 아이스크림 먹기에 도전하고, 새로운 산책로를 발견하고, 새로운 음악을 듣고, 새로운 소식을 접하고, 새로운 드라마를 보고, 새로운 신발을 구입한다. 오! 듣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사랑? 비록 나중은 몰라도 처음은 완벽한 새로움이다. 그 다음은 각자 사랑을 연구하고 사랑을 학습하며 사랑을 연기해야 한다. 여행? 물론 새로움이다. 그것이 직업일지언정 새로움이다. 젊음? 완벽한 새로움이다. 자, 이제는 그 새로움을 겹쳐 보자. 여행지에서 사랑을 만난다. 지금은 애 낳고 잘 살지만 표정만 봐도 안다. 어떻게 모를 수 있으리오. 새로운 학년에 올라가서 새로운 단짝을 만나 우정을 키웠는데 알고 보니 나도 몰랐는데 난 동성애자였드라? 새로움이 세 번 연속된 거다. TV 연속극을 보고 주인공이 멋져 보여서 난 커서 뭐가 될래, 라고 해서 나중 제빵 학원에 다녔는데 딱 한 달 다니고 때려치고, 꿈은 포기하고, 낯선 길티 플레져를 알게 됐다? 긴 설명 필요 없는 새로움이다. 스무살 청춘이 집에서 떠나 멀리 있는 삼류 대학교 앞에 살면서, 낮에는 삼류 대학교 학생 오후엔 학원생, 인근에 새로 조성된 신도심으로 뭔가 새로운 예기를 배우러 다닌다? 게다가 선생님이 참하거나 예쁘네? 새로움이다. 새로운 집에 사는 것 뿐만 아니라 새로운 도시나 새로운 신세계나 새로 만들어진 도심지에 갔는데 하필 바닷가다, 애들이 많고 그 환경이 어떠하다? 기분 이상해지는 거다. 새로움을 파는 곳 가운데 하나는 백화점이다. 대체로 여자들은 (고품격) 백화점을 좋아한다. 여건이 변변치 않더라도. 중년이 청춘으로 돌아가기 위해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영혼을 팔 수는 없다. 악마도 입장이란 게 있다. 또 아무 영혼이나 사지도 않는다. 게다가 그건 허구다. 그래서 중년은 사랑의 묘약을 산다. 보통은 말장난이고, 어쩌다 소 뒷걸음질 치다 쥐 잡는 식으로 고급스러운 농담이 (얻어)걸리거나, 작게는 공상, 쉽게는 단골 술집, 모험으로 일이 커진다면 불륜? 그렇다. 다 새로움이 시킨 일이다. 주렁주렁 열린 새로움은 보통은 농부요 특별하게는 과일 애호가에게 따이고, 호박처럼 스스로 떨어져서 희박하게는 학자에게 법칙에 대한 영감을 선물한다. 그게 다 새로움이다. 뭐시라고? 아니다, 난 아니다. 나는 현재의 행복을 지키고 싶다? 바로 그래서 차고, 던지고, 치고, 게임광이지만 마누라가 바쁜 틈만 타서 게임을 하며, 잡고, 넣고, 떠나고, 빠지고, 걸고, 오르며, 달리는 것이다. 모두 새로움 때문이다. 대천사의 이름도 새로움이고, 루시퍼의 이름도 새로움이다. 우리 고양이가 요즘 들어 짜증을 내고, 우리 강아지는 내내 시무룩한 채 기력이 쇠진하다? 사람도 간식이 없고, 기쁨이 부족하고, 일만 하거나, 또는 아예 일을 못하거나, 사는 낙이 없으면 똑같이 된다. 개나 고양이만 그런 게 아니라. OK! 모두 새로움이다. 다 새로움과 관련이 있다.
준은 아니 롭은 그래서 이름을 바꿨고, 영화배우로 변신할 수는 없으니까 헤어스타일을 바꿨다. 요리 학원에 수강 등록은 하지 않았지만 서포터즈를 바꿨다. 정치 노선을 바꾼다? 신중할 필요가 있다. 연애 철학을 변경한다? 그건 바꿔도 행동은 그대로인 경우가 태반이다. 남자친구를 바꾸고 싶은데 미안하고 내가 나쁜년 같고, 그래도 바꿀 테지만 답은 이미 정해져 있는데도 불구하고 유난 떨며 막 상담하고 점 보러 다닌다? 유난 떨며? 말이 그렇단 소리다. 그러나 서포터즈 정도는 그래, 1단계다. 뭐 서포터즈 정도? 워─워─워! 말이 그렇단 소리다. 와 여기 너무 좋다 다음에 또 올래, 이거 완전 물건인데 다음에 또 사야지, 우리 우정은 영원할 꺼야, 하늘이 맺어주신 이 사랑 언제까지라도 변치 말자 이건 끝없는 사랑이니까? 그건 그거다. 빈말에 이제 제발 그만 속자. 그 놈의 립서비스! 하지만 제2의 자아는 더 속고 싶어하는 게 문제이긴 하지만. 당신은 엇그제 친구의 두 번째 결혼식에 다녀왔고, 유명인들은 매스컴에서 자랑삼아 이혼 경험으로 웃음을 뻥뻥 터트리고 다닌다. 장미 대학교에서 언어학과를 전공한 다음 다시 별 대학교에 입학해서 조류학을 배웠다, 그런데 장미 대학과 별 대학은 최소한 스포츠로서 숙명의 라이벌이다. 그러면 오늘은 장미를 내일은 별을, 기분이 좀 뭐할 때는 아무나 이겨라 또는 라이벌전 하던가 말던가, 그럴 수도 있다. 사람 사는 세상사가 그렇다. 살면서 신앙을 바구거나 국적이 바뀌기도 한다. 남편이나 아내가 바뀌는 경우, 흉도 아니고 쉬쉬할 일도 아니다. 인생은 길다. 직업을 바꿔서 행복해진다면 삼류가 무슨 대수랴. 뭘 망설이겠나. 드물게 태생의 비밀이 밝혀지거나 늦바람이 불어서 뒤늦게 예술한다고 어느 만화가의 문하생으로 들어가지 말란 법도 없다. 실재 풍요로운 부를 포기하고 자아 성취를 이루는 사람들이 있다. 예전에는 A팀을 응원했다가 지금은 B팀이 좋아지는 일, 드물지 않다. 이왕이면 너무 변덕스럽거나 너무 의뭉스럽거나 아 그 사람~ (종이 한 장 차이로) 자발없어, 라는 소리는 듣지 않는 게 좋겠으나 서포터즈! 옮길 수 있다. 이왕이면 누가 봐도 꽉 막힌 분인데 내가 내 입으로 '저 그렇게 (꽉) 막힌 사람 아니에요' 라는 썰렁한 농담을 가끔은 괜찮은데 그게 아니라 습관처럼 남발하거나, 그분은... (종이 두 장 차이로) 좀 나대, 누구? (종이 세 장 차이로) 밉상이야, 라는 평판이 굳어지지 않는 게 좋겠으나 서포터즈! 옮기게 되는 일도 어쩌면 생긴다. 그건 자유다. 살다 보면 알게 된다. 그래도 된다. 누가 물어보면 스카웃됐다고 거짓말하기엔 좀 뭐하지만 말이다.
물론 새로움은 반갑기도 하지만 언제나 달갑지는 않다. 좋아하는 남자가 뭘 좋아하네, 피곤해도 귀찮아도 새로운 화장술을 익히고, 그 좋아하는 NC에도 발길을 끊어야 한다. 그러다 아직 안정권에 들어오지 않은 그 남자에게 새로운 애인이 생겨버렸네 어쩜 좋아, 그럴 수도 있다. 필자의 책임은 아니다. 즐겨찾는 매장의 구조가 바꼈네, 어머 처음에는 낯설고 헷갈린다. 소셜 네트워크가 새롭게 개편하면 숙달하는 데 약간은 참을성을 발휘해야 한다. 유행이 자주랄지 멋지게 바뀌면 소비자야 좋지만 업계 당사자들 몇몇은 괴로울 것이다. 새로운과 익숙함은 사람이면 누구나 평생 감수해야 할 숙명이다. 그리고,
여심!
여심. 롭이 새로움 때문에 서포터즈를 조마조마에서 간당간당으로 옮겼다면 이제 인기의 관건은 여심이었다. 왜냐하면 서포터즈 간당간당의 물이 좋았기 때문이다. 마치 이 좋은 서포터즈를 내가 왜 그동안 모르고 있었지 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롭이 간당간당의 여심을 사로잡느냐 마느냐에 따라 그의 서포터즈 활동은 환희로도 좌절로도 운명지어질 것이란 사실은 거의 뻔한 일이었다. 여심을 공략하려면 여자를 알아야 한다. 자, 여자에 대해 알아볼 시간이 돌아왔다. 빠밤~! 여자의 마음과 영혼과 육체를 알아야 한다. 뭐가 신비하고 뭐가 경탄할 만 하고, 여자는 무엇에 약한지를. 그리고 왜 여자의 마음이 갈대와 같다고 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러나 어떤 때는 여자의 마음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영원히. 또 다른 때는 몸과 마음이 분리되는 유체이탈 현상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런데 여자만 그러는가? 아니다. 남자도 그런다. 다만 그 방법과 원리와 형식이 다를 뿐이다. 그렇지만 남자는 비교적 더 단순하다. 예측 가능하다. 그래서 남자에게 영원한 미스테리라는 여자의 마음에 대해서 좀 더 심층적으로 알아 보자. 왜냐하면 로버트가 어떻게 해서 서포터즈 간당간당의 입지적 인물이 될 것인지, 어떻게 해서 단기간에 서포터즈 간당간당의 여심을 쥐락펴락할 수 있었는지 그것이 궁금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는 서포터즈 간당간당에 들어간지 얼마 되지도 않아 인기를 한몸에 독차지하고 결국 대변인 자리에 오르게 됐는지, 그 진상을 밝혀내야 한다. 아, 서포터즈의 대변인은 다른 게 아니라 이거다. 그분들쪽에서는 그 자리를 에이스로 쳐준다. 그건 바로 응원하는 일 가운데 딱 하나만 잘 하면 된다. 바로 고함지르기를! 야 이리 와 봐, 거기 찌그러져 있지 말고 건너와라, 왜 겁나냐, 늬네 바보냐 어, 가서 엄마 젓이나 더 먹고 와라, 왜 너네는 우유랑 요구르트랑 과자를 먹냐, 그게 바로 너네들이 꼬마라는 증거다, 알았냐, 바로 그런 일! 자칫 서포터즈 에이스의 할일로 이야기가 흐를 뻔 했는데 다시 돌아오면 된다. 여심으로.
여심은 무엇일까? 여심을 생각해 본다. 여자의 마음을 그려 본다. 여자의 마음을 알려면 여자가 되어야 한다. 망상으로써 빙의됐다. OK, 알았다. 여자의 마음을 알았다. 여자의 마음은 한마디로 꿈이다. 꿈! 꿈이 무엇인가. 꿈은 뭉개구름처럼 마음이 일렁이고, 뻥 뚤린 해안선을 바라보며 하는 말이다. 야 바다다! (으잉! 와 오빠다?) 꿈은 언덕 위의 푸른 집이다. 꿈은 개꿈도 있고 대망도 있다. 야망이나 야심은 남자의 애첩이니 여자의 마음을 얘기할 때는 그보다 소망과 욕망을 떠올려야 한다. 꿈은, 욕망은, 여자의 마음은 왜 몸보다 앞서가거나 늦춰지거나 못 이긴 척 따라가거나 여자의 한 시절 인생을 이끌기도 하는지, 그것을 알고자 하는 것은 어쩌면 판도라의 상자를 열겠다는 것과 같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한번 알아 보자. 그런 다음 나중 보석 상자의 뚜껑을 덮으면 되니까. 여자의 마음은 꿈이다. 꿈 하면 선망이다. 선망 하면 동경심이다. 무엇을 동경한다, 그것은 부러움이다. 그런데 부러움이 어느 날 값비싼 소비재를 알게 됐네. 일부러 찾지는 않았으나 우연히 알게 된 거다. 부러움은 상점에 들어간다. 그곳은 완전 딴세상이다. 천상의 선율이 흐른다. 부러움은 그것을 듣는다. 부러움은 떨린다. 부러움은 여자지만 분수대에서 노는 아기 천사의 고추가 어쩌면 자기 꺼가 아니었을까 그런 의구심에 휩싸인다. 그래서 부러움은 허영심으로 바뀐다. 허영심의 친구는 누구일까? 누구겠나, 변덕이지. 변덕이 감독으로써 바늘 방석에 앉아 있는 팀은 이렇다. 1번 호기심, 2번 애정운, 3번 짝사랑, 4번 상사병. 물론 숨겨둔 구원 투수도 있다. (조용조용히) 그것은 남자복! 그럼 이게 끝이냐? 그럴 리가 있나! 그렇다. 질투심! 질투심은 상시 비상 대기다. 그것은 이성과 감성을 모두 언제라도 꿰차고 있다. 질투심은 여차 하면 먼저 감수성을 보내서 상황을 살펴본다. 그럼 이걸로 얘기는 다 된 건가? 그럴 턱이 있나! 여자의 마음은, 그녀는 탐구심이 왕성하다. 왜? 여자이니까! 때문에 그녀는, 적어도 그녀의 마음은 추측하는 걸 좋아한다. 그녀는 걸핏하면 상상하고, 아침에는 공상, 낮에는 몽상, 저녁에는 드라마나 소설 대신에 만화책을 보거나 잡지를 뒤적이며 밤에는 잠꼬대를 한다. 그녀의 꿈나라에서 펼쳐지는 꿈 그것의 장르는 SF 아니면 판타지다. 장난 아니다. 그리고 그녀가 읽는 추리소설은 추측 소설이다. 추리와 추측은 다르다. 그녀는 왜 추측을 좋아할까? 왜냐하면 추측은 상상의 자유도가 광범위하고 즐겁고 기쁘기 때문이다. 그것은 제한적이지 않다. 조금은 초현실적이다. 여자의 마음이 추론을 좋아할까? 아니다! 그다지 편애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녀는 추론에서 논리를 뺀 나머지, 곧 추측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추론은 일이고, 추측은 놀이다. 추론은 현실이고, 추측은 꿈이다. 추론은 어렵고 추측은 즐겁다. 드물게 공부나 일이 재미있을 수는 있어도 그건 대체로 재미없다. 그래서 여자가 때로는 억측까지 도달하는 것이다. 하지만 기본은 어디까지나 추측이고, 예민한 예측과 날카로운 짐작과 섬세한 직관력은 유혹 만큼이나 반사적인 본능이다. 맞다. 정말 그렇다. 그녀라고 억지를 아무 때나 내 편으로 만들지는 않는다. 나중 뭘 좀 알기 전까지는. 여자는 둘 중 하나다. 판타지를 좋아하거나 있을 법한 매우 사실적인 미스테리를 좋아하거나. 그러나 그것은 이론일 뿐. 너무 많이 알면 재미 없다. 더구나 여자의 마음은 변화무쌍하고, 신비로우며, 여차하면 변덕이 납신다. 무척 예민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것에 대해서 심도 깊게 알고자 한다면 차차 알아가야 재밌다. 드라마가 다 그렇다. 앞서 처음에 여자의 마음은 꿈이라고 했다. 꿈. 꿈 하면 또 인접한 분야가 있다. 많다. 무엇일까? 살짝만 거론하자면 이렇다. 독심술, 최면, 진공청소기, 마법사, 신비주의자, 인상주의, 비교주의, 점성술, 용한 점집, 목요일이었던 남자, 어느 첩보 소설 1~2페이지, E.M. 포스터의 소설, 오르간과 쳄발로 소리... 그거다. 여자들이 좋아하는 것은. 여자의 마음은 기대와 예감과 반전을 싫어할 래야 싫어할 수가 없다. 따라서 여자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기분과 분위기다. 그 남자의 말에 넘어가든 그 남자의 꽃 들고 쫓아다니는 노력에 넘어가든 실망할 때 실망하더라도 여자는 꽃인 것이다. 여자가 육체적으로 흥분할 때는 어느 때일까? 그것은 내가 여자가 아니기 때문에 잘 모르겠지만 그 후보군 가운데 이런 것도 아마 있을 것이다. 서서히 균등하게 점진적으로 점차 분위기가 고조되면서 그 신비한 선율이 마지막에 딱 기대에 정확히 부응했을 때! 그때는 빠밤~ 하면서 저 45도 각도에서 그분이 오신다. 바로 그때 그녀는 흥분하는 것이다. 아흐흐! 여자는 원래 마음이 먼저 움직이는 법이다. 여자의 마음은 재빠르게 앞서 가기도 하고 못 이긴 척 의전을 받는 것처럼 뒤따라 오기도 한다. 때로는 남자를 뒤에 거느리며 앞서 걷기도 하고, 때로는 돌쇠를 앞에 보내어 사전 정보를 입수하게 만들기도 한다. 악녀 얘기는 생략하겠다. 여자는 시시각각 다르다. 그녀에게 있어서 지동설은 말이 안된다. 천동설이 옳다. 때문에 그녀들은 전망을 따진다. 말은 안해도 미래를 내다본다. 어쩌면 예측한다. 아마도 예언하다. 차라리 타인의 조언을 신뢰한다. 고생은 남이 하고 효과적인 결실은 내가 챙긴다. 그러나 정보통을 까다롭게 가리긴 한다. 그래도 코끼리의 귀는 펄럭펄럭~ 날개가 될 수도 있다. 그것이다. 여자의 마음은. 여심! 여심은 신비하다. 여심은 알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듯 하지만 알고 나서도 환상적이다. 그녀를 앞에 두고 사실을 말할 수는 없다. 남자는 그걸 알아야 한다. 그건 강력하게 머머 해야 한다, 그것이다. 여자의 마음은 사랑받음을 동경하고, 여자의 마음은 사랑함을 고대하며, 여자의 마음은 사랑을 어딘가에 애원한다. 그 사랑이 참을 수 없는 사랑이라면 아마도 그녀는 기도한다. 어쩌면 그녀는 그 사랑을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물론 간절히 그러고 싶지만 정숙한 그녀는 속마음을 숨겨야 한다. 도도한 목선을 유지해야 하니까. 그러므로 남자는 <나 꽃이야>와 거리가 먼 부류의 숙녀에게도 <그대는 꽃보다 아름다워요>라고 해야 한다? 난 절대 그런 말 할 수 없다. 그런 간지럽고 낯뜨거운 말을 어찌 소신이, 상남자가 해야 한단 말이더냐. 아니 될 소리. 여자가 절대로 상대를 배려해서는 안될 단 하나의 행동이 무엇인가, 내 입으론 절대 말할 수 없다. 무슨 일이 있어도 안된다. 못한다. 말할 수 없다. 그래서는 안된다. 어찌 그런... (눈을 지긋이 감고서 고개를 설레설레)! 참아야 한다. 입이 근질거리든 어쩌든 보고, 듣고, 깨달았던 그 무엇들. 모든 것을 꾹 참아야 한다. 내가 입만 뻥~끗 하면... 아아 안돼 안돼. 내가 입만 뻥~끗 하면 그땐, 오오 쉿!
......(휴~)......
아무튼 너무 멀리 갔다만 여자의 마음은 이렇고, 로버트는 서포터즈 간당간당의 여심을 공략하는 데 성공했다. 뭐 그럴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나중을 위해서 억지로 턱을 쭉 내밀 수도 있고, 지금 아니면 언제 대체 어디서 자랑하겠나 그럴 수도 있다. 시시콜콜한 과정은 생략하고 결론만 말하자면 롭은 서포터즈 간당간당에서 (파견된) 에이스로 자리잡는데 최단 기간 기록을 세운 것이다. 그래도 뭔가 서운하니 몇 가지 친해진 계기를 마련했던 말에 대해서 공개하자면 이와 같다. 특별히 엄청난 선물 공세를 퍼부었다더라 그런 일은 없었다. 단지 사소한 말 몇 마디가 전부였다. 와 누구 오늘 치마 예쁘다, 오오 스타킹 워워 멋져(그러면 그녀가 뭐라 하겠나. 호감이 전혀 없다면 몰라도 그게 아니라면 그녀는 옆에 있는 여자 친구에게 그런다. 야 오늘 성공했다), 이야 누구 머릿결 끝내준다 내가 여자친구 없었다면 당장 들이대는 건데 아 세월이 야속하구나, 가만 보니 누구는 참 표정이 많구나 어 정말 그런 것 같아, (말없이) 윙크만 살짝. 그리고 서포터즈 간당간당의 어떤 남아들도 시도하지 않았던 행동 하나. 축구장에서 딱 숙녀가 자리에 착석할려고 할 때 잠깐 이라 하고서 손수건으로 자리의 먼지를 터는 척만 해 주기. 그녀가 있는 반대쪽을 보면서 말하기, 그렇게 슥 흘리기. 누구랑 누구 있으니까 그거네, 완전 미녀와 야수. 언니들 와줘서 고맙다야 아차 했으면 연예계로 진출했을 텐데 말이야 우리 언니들이 있어서 서포터즈 간당간당이 빛이 나네 반짝반짝 아이 즐거워라 등등. 아, 또 있다. 서포터즈 간당간당에서 애교와 귀여움을 담당하는 그녀와 선녀에게 살며시 흘린다. 경기 끝나고 오빠가 근사한 (어디) 식당 예약해놨어! 어머 진짜요? 아니, 뻥이야! 그래 놓은 다음에 딱 경기가 끝난 후 상남자들이 썰물처럼 빠졌을 때 딱 두 명만 불러서 식사하고 나면 소문이 퍼지는 건 시간 문제다. 그게 끝이 아니다. 전반전과 후반전 사이 쉬는 시간, 녀석들이 응원하느라 소리 지르느라 애써서 힘들기 때문에 쉬고 있을 때 딱 그는 시늉이라도 선보인다. 흉내라도 낸다. 못 불러도 전혀 상관 없다. 바로 명테너의 유명한 아리아를 한소절 읊는 것이다. 음치면 어떠랴!
라 돈나 모빌레 꽐 피움 마 벤또
무타 다 센토 에 디 피엔세로
셈프레 아밀레 레지아르도 비소
일 피안토 오리오소...
또는
리비아 리비아모 넬리에티 칼리치
켈라 벨레짜 인피오라
엘 라 푸제볼 푸제폴 오라
시네브리 아 볼루타
리비암 네 돌치 프레미티
케 수시타 라 모레
포이케 켈로키오 알 코레 옴니포텐테 바...
만약 외국어일지라도 정확히 외울 필요 없다. 절대 없다. 대강 흉내만 내면 그만이다. 음치라도 상관 없다. 반주가 다 뭔 말인가. 꼭 고전 아리아가 아니어도 된다. 요즘 한창 주가가 높은 외국 유행가도 괜찮다. 길게 할 필요도 없다. 채 10초, 20초를 넘지 않아도 효과 만점이다. 진짜다. 아니라면 그분은 남자다. 여자는, 그녀가 숙녀라면 그녀는 말은 하지 않아도 쓰러진다. 꺼~뻑 넘어간다. 거짓말 조금 보태면 그녀는 황홀함에 몸서리치게 된다. 약간만 과장하자면 그녀는 마침내 사랑에 빠지게 된다. 여자의 마음은 사랑에 홀리게 된다. 왜냐하면 바로 그분이 오셨으니까. 큐피트의 화살도 필요없고 당장 큐피트가 나타났으니까. 노래를 못불러도 그 정도 흉내만 내면 끝난다. 그렇게만 되면 저 하늘의 구름은 솜사탕이 되고, 당신은 비로소 연애소설과 낭만적인 영화 속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외국어를 공부할 필요도 없다. 우리말로 쓱쓱 그냥 소리나는대로 들리는 대로 써서 그 종이를 찍 찢어서 가지고 다니면서 외우면 그만이다. 여자의 마음을 얻는데는 뭐니 뭐니 해도 그게 명약이다. 핵심은 엉터리 외국어로 노래를 부른다는 점이다. 엉터리 외국어. 소리 들리는 그대로 앞부분만 대충 적어서, 10초 20초만 외워 부르면 된다. 간단하다. 복잡할 것 하나 없다. 물론 기뻐하는 그녀들이 있을 테니... 음... 그렇다. 아하 그런데 뭐라고라, 다른 건 몰라도 외우는 거 하나만은 정말 자신이 없다고라? 주입식 가사가 도저히 숙지가 안되든 가사를 잊어먹든 설령 그럴지라도 다 방법이 있다. 바로 여자친구의 이름 오직 그것만 반복해서 노래를 부르면 되니까! 이마저도 어려울 리는 없겠지만 노래하는 사람, 듣는 사람 모두 무색하게도 다른 낭자의 이름을? 설마 그런 암담한 실수만은 피하시길!
그러므로 로버트는 서포터즈 간당간당에서 행복한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더군다나 서포터즈 간당간당은 로버트의 인근 지역으로 원정을 오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은 약간 여행 떠나는 기분으로 들뜨게 된다. 그녀들의 마음을 둥실둥실 띄워주기만 하면 된다.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만 얹으면 되는 것이다. 세이렌의 오묘하고 요상한 음률을 그녀들의 귀에 호호 불어주기만 하면 된다. 그래서 로버트의 인기는 그야말로 순조롭게 높아졌다. 그랬다. 언제 값이 폭락할지 몰라 조마조마했던 서포터즈 조마조마에서의 준과는 다른 차원의 기쁨이었다. 앞서가 하이틴 드라마였다면 지금은 멜로나 어쩜 곧 있을 에로를 걱정해야 할 정도였다. 그는 여자를 알았으니까. 여자들이 언제 황홀해 하는지. 여자들이 어떤 말을 들으면 좋아하는지. 여자들이 질문 받는 걸 좋아한다니까 막 무턱대고 아무거나 아무 때나 막 물어보는 식이 아니라 스치듯 살며시 그녀들의 심경을 읽을 줄 알았으니까. 그래서 어쩌다 막 거짓으로 물어봤다. 첫눈에 반한 사랑에 빠져본 적 있냐면서. 아무리 해도 사랑은 사랑은 도무지 모르겠다면서, 막 그러면서 모른 척 연애 상담을 부탁하면 그녀들은 기뻐하니까. 내 친구 중 한 녀석이 최근 사랑에 빠졌는데 아 글쎄 얘가 정신을 못차리네 홀딱 반한 여자가 있는데 하면서 막 날 귀찮게 하는데 딱 그러면서. 그러다 보니 로버트 오빠는 천재같아요 라는 말도 들었기 때문에 그는 무척 흐뭇해했다. 그러나 쉽사리 자만에 빠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는 그처럼 진의가 의심스러운 얄팍한 조언만 구하지는 않았다. 준은 아니, 로버트는 자기가 생각하는 사랑은 이렇다 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라고 물어보기도 했다. 롭은 서포터즈 간당간당의 지성 담당에게 또 사랑 담당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뭐가 사랑이고 뭐가 그냥 연애 감정인가, 그것은 사랑이 무엇인가만 알면 된다 둘 다 알 필요 없다, 왜냐하면 하나만 알면 나머지 하나는 자연스럽게 알게 되기 때문이다, 사랑은 음 사랑은 그게 사랑이다, 사랑은 심하게 아파했거나 심하게 괴로워했거나 그러다 몸과 마음이 분리될 위기를 잘 이겨내겠지만 또 심하...지는 않더라도 그 때문에 울어봤거나, 그게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친구들 생각은 어떠신가 라고 물어보기도 했던 것이다. 그 말을 들은 소녀들이 어땠겠나, 말 다 한 거지. 여자들은 말한다. 그녀들은 다 그런다. 우리 여자들이 먼저 어떤 남자를 좋아한다는 신호를 보내지 말자고. 그래서는 안된다고. 그 남자를 좋아한다는 마음을 들키지 말자고. 제발 그러지 맙시다 라고. 당신이 정말 좋아요 라는 느낌을 폴폴 풍기지 좀 말자고. 아하, 그렇단 말이지... 음음! 이해한다. 이해된다. 수긍한다. 공감하고 충분히 일리 있는 뭐랄까, 그거다. 내숭! 내숭은 썩 나쁜 게 아니다. 오히려 엉큼함과는 꽤나 동떨어진 상태나 어쩌면 예절을 뜻한다. 그것은 여성스러운 꽃향기에 가깝다. 그러나 마음이 그렇고, 행동이 어떠해야 한다 할지라도 지나고 보면 앙탈과 사랑은 다르다. 참 다르다. 매료되게 만드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누군가는 그런다. 반세기를 살아 보니 이제 조금은 알겠다고. 여자가 먼저 끈질긴 애정의 신호를 보냈던 사랑이 더 좋았다고. 당신은 내 마음 속에 꼭꼭 숨겨둔 내 애인이에요 라고 말하는 듯 했던! 그런 사랑이 더 어땠다고. 더 순수했다고. 훨씬 애틋했다고! 돌아보니 그렇더라고. 진짜로 그랬다고. 고혹적으로 남자의 구애를 유도하는 여자, 부지기수였으나 지나고 보니 그렇더라고. 사랑은, 감춰 봐야 모르고 싶어도 모를 수가 없다. 사랑을 어떻게 숨기나! 안 그런가? 여자의 마음은, 여심은, 숙녀는 웃으면 끝이다. 여자는 웃으면 끝난 거다. 이미 사랑이 시작된 거다. 마음을 떠보고자시고 어쩔 필요도 없다. 눈빛 하나 말 한마디, 그리고 웃음 한번이면 진단은 끝난다. 그런데 만약 여자A에게 지속적으로 구애하는 남자A가 있고, 여자A는 남자B를 좋아하고, 그 어정쩡한 관계가 짧든 길든 (남자A가 있을 때 즉 셋이 함께 있을 때) 여자A가 남자B의 팔짱을 꽉 끼지는 못하더라도 살며시 남자의 팔꿈치에 손을 스치듯 근처에 가져가거나 옆에 다소곳하게 짧은 찰나 머무르는 형세가 한번 쯤 취해진다면? 그것도 게임 끝난 거다. 그 감정이 짧을 수도 있고, 길 수도 있지만. 따라서 그는 자기도 모르게 저절로 무언가를 바라기 시작했다. 아 이 인기와 환상과 즐거움이 언제까지라도 딱 지금과 같았으면 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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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어떻게 됐을까?
그러나 공신력은 따지지 말자. 어쨌든 그 아찔함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 그래서, 라는 조급함은 숨기자는 말이다.
일단 목이 셀 때까지는 좋았다. 성급한 인기 때문에 서포터즈 에이스 자리를 꿰찼기 때문에 할일은 해야 했다. 바로 소리 지르기. 목청껏.
「야 응원이 그게 뭐냐 뭐 소꿉장난 하냐? 그게 뭐냐 너네 초딩이냐? 어? 아조 우낀다 우껴. 우껴서 말도 안나온다. 푸하하하하, 너네들 그럴려면 차라리 옷이라도 벗어라. 뭐 하나 볼 게 없지 않느냐. 진짜 못봐주겠다 아휴 저런 저런. 이런 바보들 같으니라고. 같은 일 하는 입장으로써 참으로 수치스럽다. 듣고 있냐? 어? 뭐라고? 건너와라. 와. 오라고. 와 보라고. 어? 왜 못 오냐? 겁 나냐? 그러나 그런다고 진짜 오면 안된다. 절대 안된다. 저번처럼 불문율은 어기지 말자. 그건 누가 뭐래도 영원한 철칙이다. 아무리 뚜껑이 열리고 커피포트가 끓어도 묵계는 철저히 지키자. 묵계는 묵계니까. 물론 그땐 우리가 잘못했다마는! 그땐 정말 미안했다. 나도 맞아봐서 안다. 그러니까 난 그러지 않을 꺼다. 알았냐? 알았으면 대답을 해라. 모기 목소리 같이 그게 뭐냐? 어? 너네들 장난하냐? 어? 장난하냐고! 등치만 컸지 완전 허당이구만 그래. 그러니까 늬들이 여자들한테 인기가 없는 거야. 어? 알았냐? 어? 알았냐고! 어디 그 뿐이냐. 여자친구는 커녕 친구도 없어 늬네들은. 어, 알어?」
준 아니 롭은, 그는 그날 목이 쉬었다. 완전 갔다. 그나마 거기까진 좋았다. 딱 좋았다. 그런데 그 다음에 어떻게 됐을까? 어떻게 되긴 뭘 어떻게 되겠는가. 롭이 딱 어깨에 뽕이 나올락말락 하던 바로 그 찰나 더 강력한 상대가 등장하고 다시 등장했고, 막 계속 새로운 훈남과 나직한 음성을 간직한 녀석들이 나타났다. 그래서 그의 인기는 인정사정없이 곤두박칠치게 되었다. 어쩐지 일이 잘 풀린다 그랬다. 심상치 않은 녀석들이 나타나고서 부터 그는 간당간당이 이쪽으로 원정을 왔을 때만 녀석들과 합류했는데, 사정이 사정이니 만큼 이제는 로버트도 원정을 떠나야 했다. 그는 축구 경기가 있을 때마다 서포터즈 간당간당의 지역 연고지까지 꼬박꼬박 갔다. 그 멀리까지. 왜냐하면 그만한 보람이 있었으니까. 그 노고보다 그로 얻는 즐거움이 월등했으니까. 좋았으니까. 재밌고 기뻤고 흥겨웠으니까. 정말 흥미로웠거든. 그들과 함께 응원을 하면 그건 마치 신명나는 글을 쓰는 기분과도 흡사했으니까. 그러나 이제는 가도 찬밥이고 돌아올 때 그 기분은, 아아! 그건 NC에서 쓸쓸히 홀로 나올 때의 분위기보더 더 험악했다. 삶은 허무했다. 인생은 우울했고. 사는 게 재미없었다. 뭘 해도 재미없었다. 다시 심심해졌다. 그럼 그렇지! 에잇 좋다 말았네. 이런,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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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는 어쩔 수 없이 헤비메탈을 찾아들었다. 롭 누구던가 그 목소리가 떠올랐다. 브레킹 더 로 브레킹 더 로, 디스 이즈 뭐더라 아무튼. 더불어 그는 다시 돌아갈 것인가를 고민했다. 단번에 되돌릴까 아니면 중간을 거칠까. 그래 봐야 아무 의미 없고, 아무도 관심 없을 테지만 말이다. 그 다음에 그의 행보는 어떠했을까? 어떤 파격적인 움직임이 있었을까? 흡사 수준이 다른 어디 2부 리그 팀에 입단했을까? 그 팀의 이름은 비리비리? 그런 일은 없었다. 로버트는 살면서 몇몇 큰 목표는 이뤘다. 곧 처음의 의도를 높고 분명하고 절실히 정한 것들. 이를테면 척키 인형에 대한 글을 쓸 것이다, 썼다. 앞으로 일기처럼 블로그를 꾸준히 쓸 것이다, 지키며 살고 있다. 또는 세계 동화 전집 1부터 100권까지를 독파하겠다 같은. 그러나 그런 일은 매우 드물었고, 로버트는 보통 시련을 미련으로 연결시켰지 제2의 꿈의 도약 같은 거창한 긍지와 생기 넘치는 면모로 연결시킬 정도의 행동력은 구비하지 못한 인간이었다. 때문에 그는 이제 그만 간당간당에서 조마조마로, 로버트에서 준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래서 그는 당시 친했던 장미와 별과 사라와 이브와 월트와 앨에게 연락해 봤다.
「어 오빠. 무슨 일이야? 어디 입단 테스트하러 떠났나 했네. 약혼녀 언니는 잘 있고?」
「누구? 넌 오빠한테 물어볼 게 그것 밖에 없니? 너 오빠 소식 들었어 못 들었어? 오빠가 말이야, 저쪽 팀 서포터즈 간당간당에 잠입 취재를 갔다 왔잖아. 아 정말 애네들 정보가 늦네 늦어.」
「어디? 간당간당? 조마조마도 분위기 완전 꺾였는데. 요즘 누가 그렇게 무식하게 응원해? (뭐라고, 무식하게?) 간당간당이 뭐 어쨌다고? 관심 없어!」
그들의 대화는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할 말 없으면 끊으라는데 눈치없이 로버트가 계속 주저리주저리 떠들 수도 없는 일이었다.
로버트는 뭔지 모를 애석함을 느꼈다. 그리고 또 다시 이름을 바꾸어야 할 듯한 어떤 보이지 않는 거대한 기운에 쫓기는 감정을 느꼈다. 그래서 그는 다시 로버트를 준으로 바꾸기는 그렇고 해서, 아무 생각없이 새로운 이름을 결정했다. 그것은 바로, 아마데우스! 그렇다고 그가 두근두근 같은 이름의 싱거운 친목 모임에 합류를 시도하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대신 심심했으니까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야, 뭐하냐?」
「오, 아마데우스! 오랫만인데. 뭐 하고 살았냐?」
「뭐? 아마데우스? 너 어떻게 알았어? 내가 이름 바꾼 거?」
「뭐라고? 늬가 이름을 바꿨다고? 이름을 왜 바꿔? 아, 내가 무슨 예지력이나 주문을 외운 건 아니고 그냥 잘못 말했을 뿐이야. 왜 그런 거 있잖냐. 중요한 순간에 새로운 여자에게 전-여자친구의 이름으로 부른다거나, 속으로 왠지 나폴리에 한번 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가 옆에서 마누라가 내가 좋아 저 여배우가 좋아, 라고 물어봤을 때 나폴리라고 답하는 그런 일 말야. 그런데 너 지금 무슨 생각하니? 혹시 그거 음식이니 아니니? 바로 그거야. 아, 그게 왜 그랬냐면 아직 난 가게에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하필 출근하는 바텐더를 지금 만난 거 있지? 그 친구 이름이 아마데우스거든. 그렇게 된 거야. 그게 다라고. 」
「이 녀석이 못본 사이에 입담이 많이 늘었는데. 어조도 밝은 거 보니 무슨 좋은 일이 있나 본데?」
「좋은 일? 딱히 그런 건 아닌데, 지금 여기 갈까 저기 갈까 고민 중이야.」
「거기가 어딘데?」
「여기? 술집의 거리. 저기 보이는 가게는 극장식 카바레, 이쪽은 룸살롱. 있잖아... (조용조용히) 여기 끝내준데! 왜? 너도 오게? 오고 싶어? 안돼. 넌 집에서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나 들어라. 이 형님이 다 둘러 보고 나중 얘기해 줄께.」
「뭐라고? 나도 어떻게... 내가 지금 그쪽으로 갈까? 응?」
「뭐? 진짜 오겠다고? 왜, 밤의 황제가 되고 싶어서? 원하는 게 그거야? 안돼. 넌 글이나 써. 밤의 세계는 내가 접수할 테니까!」
「뭐가 어쩌고 어째? 그냥 해본 말이야 이 멍충아. 이런 바보 같은 놈. 끊어!」
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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롭은, 아니다. 아마데우스는 상심했다. 그는 체념했고, 무언가 어떤 새로움을 열망했다. 그러나 자신도 그게 대체 무엇인지를 몰랐다. 아마데우스가 원하는 것은 뭐랄까 천동설식 1인칭 주인공 시점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지동설식 1인칭 시점도 아니었다. 그가 바라는 것은 전지적 작가 시점이었다. 그는 생각했다. 내가 새로움을 사고, 새로움을 찾고, 새로움을 만들고, 힘겹게 여심을 공략하고, 보람차게 여심을 획득하는, 그 모두를 내가 직접 해야 하는 행동 방식이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일까? 정녕 그렇단 말인가? 그건 아니다. 그건 아니다. 아마데우스는 자기 방식은 그게 아니란 걸 직감했다. 그의 개성은 아마도 이런 걸 뜻한다. 자기는 가만 있어도 알아서 새로움이 찾아오고, 저절로 새로움이 떠오르고, 어쩌다 새로움이 대기하고, 온갖 여심의 호박 넝쿨이 제 발로 자기 앞으로 굴러오는 것. 그러나 우연도 한두 번이고 듣기 좋은 말도 역시 한두 번이다. 아마데우스가 마음 먹기로는 그랬다. 내가 만약 소설가라면 세상 모든 것이, 모든 호사와 쾌락과 새로움과 참으로 다양한 즐거움과 천사 같은 여자의 마음이 모두 내게 스스로 찾아오는 그런 주인공을 내세워서 글을 쓰면 어떨까 라고. 하지만 그는 곧바로 혼잣말을 내뱉었다. 아 맞다. 나 소설가지, 그것도 삼류! 그래서 그는 생각했다. 주제 사라마구의 어느 소설에 나오는 것처럼 막 사실적으로 반도가 대륙에서 뚝 떼져서 열도가 되고 그 열도는 마치 하나의 나룻배처럼 유유히 어딘가로 이동한다는 그런 있을 수 없는 일은 없다고. 그건 불가능하다고. SF식으로는 자기가 글을 쓸 수도 없고, SF나 판타지를 읽을 수도 없으며(읽는 즐거움이 가능한 SF는 드무니까), 그렇다고 정작 스스로 새로움을 찾아서 떠나기는 귀찮다고. 그는 만사가 귀찮고 싫은 권태의 늪과 심심함의 그물에 걸려버린 로빈슨 크루소가 되었다. 그러나 극복해야 한다. 그럴 수 있다. 하면 된다. 그러고 싶었다. 롭 노노노. 아마데우스는 로빈슨 크루소에서 걸리버로 변신하고 싶었다. 집에서 TV를 틀고 인터넷에 보면 나오는 정말 몇 개 중 하나에 해당하는 트루먼 쇼 스타일의 방송을 볼 게 아니라. 그는 간절히 원했다. 그러나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인가. 사랑의 씨를 뿌리고 사랑의 시를 쓰고 사랑을 노래하며 사랑에 대하여 설교를 하는 건 가능해도, 제 버릇 개 줄까 마는, 강남콩을 마당에 뿌린다고 구름 위 세상까지 자라는 나무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그런 탄소 기반의 물체는 없다. 그러나 천국에 당도하는 과정은 있다. 만일 그 과정이 아름답다면, 작은 가치가 있고 영롱한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인생이다. 물론 잡초도 인생이고 요정 역시 인생이다. 그러나 훌륭한 인생, 그것 역시 어디 쉽나. 안 그런가? 근대소설의 시초라는 걸리버 여행기를 그 정본을 1번 완독한 사람도 아마 1000명에 1명도 안될 것이다. 10000명에 1명은? 그건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자칭 소설가라는 작자인 아마데우스조차 아직이다. 그렇다 현실이. 거짓일 가능성이 높을지언정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발견한 신대륙에서 현재의 고품격 인문교양서 글에 비해 저 과거 유명 소설의 문체는 뭐라 말하기 곤란할 수도 있다. 그만큼 세상이 바꼈는데도 걸리버 여행기를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나와 보시라, 라고 한다면 당당히 나오실 분은 한분도 없다. 다 안다. 누구나. 그러나 (스위프트씨가 쓴) 걸리버 여행기를 읽은 사람을 만나기는 어쩜 하늘의 별 따기와 비슷할 것이다. 다 유아용 편집판을 읽었거나 만화영화만 봤을 것이다. 하늘을 나는 섬 라퓨타와 야후도 거기에 나오지만 현대인은 먹고 사느라 놀 궁리를 하느라 바쁘니까 그런 세세한 지식은 관심 없다. 도움이 안된다. 교양이란 게 사실 별로 실용적이지 않다. 최신 유행이 대체로 상식이지 오래된 지식은 상식에서 약간은 천대받는다. 모비 딕에 등장하는 스타벅이 그 스타벅스인가, 식인종이 들고 다닌 인형을 가르켰나를 아는 사람도 썩 많지는 않다. 앗, 맞나? 넘어가자. 하물며 아마데우스의 꿈? 모르긴 몰라도 그는 아마 단짝에게만 쉬쉬하며 귀뜸할 것이다. 아 이론은 그렇다는 말이다. 실재로는 사랑에 대해서 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언급할 일은 없을 테니까 그처럼 애제자가 쫓아다니면서 조르고 또 조른다면 그럴 것이라는 말이다. 자기의 꿈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자기의 꿈은, 솔직히 자기 꿈은 이류 작가가 아니다고. 아마데우스의 꿈은 그것이 아니라 평생 놀고 먹는 것이라고. 그마저도, 그마저도(?), 이 모양인데 새로움이, 진짜 새로움이 쉬울 리가 없다. 그게 정말 말처럼 쉽다면 개나 소나 다 천재 하고, 다 백조 되겠다. 안 그렇소? 옳소? 아니지요 아니지요. 틀렸소! 일단 목표는 크게 잡읍시다 그려. 천재, 왜 못된단 말이오. 백조? 벼락부자는 당장 힘들 수 있지만 백조처럼 살면 백조가 된단 말이오. 촌닭이 더 재미있기는 하지만 말이오. 설명이 상당히 꼬이긴 했다만, 그러므로 새로움은 쉬운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바로 준은, 아니 로버트는, 아니 아마데우스는 좀 더 전위적인 새로움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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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데우스가 새로움에 대해 먼저 시도한 일은 시내에 있는 음악당에 등록한 것이다. 플룻 아카데미. 아무 이유 없이 자기가 플룻을 배운다면 어딘가 모르게 그는 파랑새로도, 비둘기로도, 팔색조로도, 앵무새나 부엉이로도 자유자재로 변신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막상 교습소에 다니기 시작하니 좋았다. 고상한 예술적인 분위기도 좋았고, 한가한 상류층과 심심한 귀부인은 물론 지성인이 되기를 열망하는 숙녀와 함께 어린이와 학생들이 많아서 좋았다. 뿐만 아니라 풀룻 선생님이 너무 호의적이었다. 막 피아노도 가르쳐 주었다. 그런데 선생님이 아마데우스가 앉아 있던 피아노 의자에 바짝 붙어 앉았기 때문에 그는 막 헤롱헤롱 정신이 나가버렸다. 여자의 마음을 만나기 위해서. 하지만 플룻은 어려웠다. 게다가 그의 인내심도 그만그만했다. 그가 플룻을 배우고 싶어하는 갈망은 가짜였는지도 몰랐으니까. 그래서 그는 직장에 사표를 제출하는 것처럼 홀가분하게 플룻 학습을 포기했다. 바로 그때 그는 당혹스러운 낭패감이나 괴로운 좌절감이 아닌 번득이는 쾌감을 경험했다. 아차-했다! 이 선경과도 같은 몽유의 기쁨과 유망의 희열, 그건 솔직히 너무 은밀한 이상스런 취향의 즐거움이었다. 따라서 그는 속으로 재밌고 웃기고 좋았지만 모른 체 하기로 했다. 어디에도 말하지 않기로 했다. 왜냐하면 그는 누가 뭐래도 아마데우스니까!
그렇다고 그가 섣불리 종목을 바꿔서 야구를 애호하게 되어 서포터즈 비실비실에 가입하지는 않았다. 막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듯 서포터즈 호락호락과 서포터즈 아슬아슬에 입단하지도 않았다. 차라리 그는 다방에서 조용히 글을 썼고, 서점에서 여자를 꼬셨고, 지나가는 괜한 숙녀를 탐했으며, 혼자 놀았다. 낮술과 밤바다, 낮잠과 밤안개를 즐기며 하이드의 요구를 무시했고, 스스로 묵살했던 자신의 욕망은 무엇이 있었나를 생각해 봤다. 그러면서 아마데우스는 응큼한 욕구를 무작정 달랠 뿐이었다. 바로, 혼자서.
그래서 번민은 즉시 찾아왔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대체 언제까지 꽃병과 구두에 대한 작품 구상에만 전념할 꺼냐, 이 세상이 두 쪽 나더라도 남자로 태어났으면 한 번쯤 웃음 기계나 사랑 머신이 되어 봐야 하지 않겠냐는 호기가 슬그머니 고개를 내밀며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래서 어떻게 했을까? 아마데우스는 사랑의 인사라는 문화의 거리가 아닌 네온 사인이 반짝이며 급작스런 애인이 그를 반기는 나이트클럽 해피투게더에 가게 되었다. 아마데우스는 아마데우스였다. 글이 안 써지면 독주를 마시고, 우정이 뭔지 모르겠다면 TV를 틀었고, 왼쪽에 여성미 오른쪽에 여성적 본능을 꿰차고 싶은 욕망은 추호도 없었기 때문에 인터넷 세계를 떠돌았다. 원래 사람 사는 게 그렇다. 아무리 뛰고 나는 풍운아일지라도 그 내면을 들여다 보면 이렇다. 자기 삶의 가장 큰 즐거움은 인터넷에서 최저가 물품을 구경하고 쇼핑하기. 애들과 놀아주고 부인과 극장에 가고 동물원에 갈까 미술관에 갈까를 고민하지만 그분의 가장 큰 즐거움은 뭐니 뭐니 해도 골방에 틀어박혀 콜라와 피자와 함께 게임하는 것. 하루에 마시는 맥주 한 잔과 산책 한 번. 쉽게 인정하기 어려울 수도 있으나 각가지 기쁨과 행복의 수치를 비교해 보면 그런 소소한 여유가 단연 1등인 경우가 많다. 사교에서 만족감을 얻고, 새로운 연애를 탐내며, 동화 같은 인생을 꿈꾸는 장본인일지라도 삶의 위락은 다 그런 식이다. 호시탐탐 기회만 노릴 게 아니라 이참에 그냥 확 대놓고? OK! 솔직히 마누라가 힘든 집안일과 육아는 전부 다 하고(뭐, 샤타맨?), 나는 선물과 현금과 드문 관능과 먼발치의 희망과 딸랑딸랑 찬미와 적당한 유희와 다정한 친절을 베푼 후, 우리는 가슴 졸이는 꿈과 낭만의 모험을 떠난다? 마시고 잡고 치고 때리고 넣고 까고 걸고 뭉치고 달리고 굴리고, 으쌰으쌰? 아니다. 그러면 안된다. 그냥 웃자고 한 얘기다. 참고 참았던 세상 모든 아줌마들이여 안 그렇소? 자, 우리 모두 들고 일어섭시다? 워─워─워! 말이 그렇단 소리다. 말이.
그러나 애통하게도 나이트클럽 해피투게더 역시 별로였다. 영 뭔가 거시기 했다. 술값도 많이 나왔다. 눈탱이 맞았다.
그는 그 후에 요트를 탔다. 무덤덤했다. 등산도 했다. 재미없었다. 연극을 봤다. 괜히 봤다. 다큐멘터리 동물의 세계를 봤다. 새롭지 않았다. 에로 비디오를 봤다. 따분했다. 사람들이 이런 걸 왜 보고 왜 만드는지 통 알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인터넷에서 소셜 네트워크로 스탠드업 코메디 영상을 봤다. 그건, 조금, 괜찮았다. 그렇다고 배꼽이 빠지지는 않았다. 또 1박 2일 야영을 하고 왔다. 물고기는 한 마리도 못잡았고 고생만 원 없이 하다 왔다. 텔레비전에 축구 경기가 나오길래 봤드니 서포터즈 조마조마도 나왔고 간당간당도 나왔다. 재미없었다. 잠이 왔다. 잤다. 푹 잤다. 숙면을 취했다. 꿈도 꿨다. 개꿈으로. 기억은 나지 않았다. 나중 복권은 사지 않았다. 다음 대책은 전무했다. 그래서 아마데우스는 공연을 보러갔다. 바로 스탠드업 코메디의 명소라는 곳으로. 잘 찾아보니 있었다. 소문난 스탠드업 코메디의 뭐라더라, 아카데미? 응 아카데미! 가서 봤다. 한마디로 더럽게 재미없었다. 인터넷에 나온 거 그거 다 뻥이었다. 그건 전설이고 이건 현실이었다. 타율이 정말 못봐 줄 정도였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재밌는 척 박장대소를 터트리며 연기했다. 힘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 무심코 한마디 했다. 장난해, 어? 지금 장난하냐고! 말이 그렇단 거다. 뭐 적당히 재밌었다. 그러면 된 거다. 딴에는 심심한 생활의 변화를 모색한다는 취지였으나 괜한 스트레스만 더 쌓이고 말았다. 그래서 아마데우스는 아마데우스를 들으면서 차분히 그 다음을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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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은 이름을 바꿨다. 로버트로. 로버트는 소속 서포터즈를 바꿨다. 조마조마에서 간당간당으로. 로버트는 다시 이름을 바꿨다. 아마데우스로. 아마데우스는 마침내 무소속이 되었다. 무소속? 그래 무소속! 고로 새로운 인생이 시작됐더라? 아직은 뭐라 말하기 곤란했다. 그는 젊음을 증명했다. 아니다. 못했다. 그는 늙음을 인정했다. 아니다. 그것도 못했다. 아침에, 이른 아침에 의식이 깨어도 눈을 억지로 꽉 감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마치 환청이 들리는 듯 하니까. 난 아직 늙지 않았어!
그럼 도대체 한 게 뭔가? 그렇다. 시도도 없었고 그러니 결과도 없었다. 그러나 기본기는 건재했다. 즉, 그다지 어디서 공인 받지 못했고 누구도 고개를 끄덕끄덕하진 않았으나 아마데우스는 여심은 마스터했다. 이미 예전에. 하지만 새로움은 쉽사리 정복되지 않는 난공불락의 유령과도 같은 추상적 개념이었다. 흡사 남자에게 여자가 영원한 미스테리이니 것처럼. 새로움이 대체 뭐길래! 문란한 사생활? 그는 그런 데 관심 없다. 주색은 그에게 무의미한 딴 나라 이야기였다. 그에게 사랑은 오직 하나였다. 그것만이 유일한 사랑이었고, 나머지는 다 말 그대로 나머지일 뿐이었다. 아마데우스는 싫증난 여자에게 다정한 남자가 아니다. 아마데우스는 그런 그녀에게 한없이 친절한 남자가 아니다. 아마데우스는 하지만 누구에게나 더없이 자상한 남자다. 그래서 그는 피앙세한테 호되게 질책을 받아야 마땅하다. 고기를 먹고 싶다? 먹으면 된다. 친구가 그를 조르고 또 조른다.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 주라고. 소개시켜 주면 된다. 간혹 골탕 먹어야 할 사람은 다름 아닌 친구다. 친구가 아니면 누구한테 자랑을 하고 누구에게 골탕을 먹이랴. 아마데우스는 알고 있다. 여자들이 이런 말을 좋아한다는 것을. 그대의 이름은 신비! 그러나 꼭 그렇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녀가 뭔가를 더 기대하고, 어떤 미지의 가능성을 기다리며, 애달파 한다는 것까지 다 파악하는 아마데우스다. 그러나 문제될 건 없다. 전혀 없다. 제2, 제3의 후보는 상시 대기중이니까. 동화적 상상력? 궁하면 떠오를 수 밖에 없다. 환상적인 연애? 요조숙녀는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사랑 노래를 부르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자동으로 넘어온다. 어쩔 수 없이 넘어온다. 누구든지 어떤 도도한 숙녀라도 다 꼬실 수 있는 아마데우스였다. 최면이라도 걸고 예언이라도 남발할 준비는 되어 있었다. 언제라도. 그런데 사랑을 느꼈고 했고 그래서 꿈의 대화는 지겨워지지 않냐고? 사랑이 오래 되면 심심함에 무뎌지고, 익숙함을 지탱했다가 권태와 결탁하면 그땐 정말로 어떡할 거냐고? 빙-고! 뜻밖의 선물과 뜻밖의 약속과 뜻밖의 애잔함이 다가 아니다. 그 답변은 이미 선약됐다. 아마데우스가 장래 발표할 인문교양서에게!
영화에서는 다음 행동이 어느 정도 가시권에 들어온다. 드라마는 다음 회가 기다려지고 어느 만큼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새로움은? 아마데우스에서 이름을 또 바꿔야 하나, 라고 그는 생각했다. 아무도 관심 없고, 아무도 알고 싶어하지 않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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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데우스는 집에서 생각했다. 머리를 길러볼까? 대학교 1학년 그때처럼? 그러면 정말 당시 그랬던 것처럼 본관 앞 내르막 길에서 그녀들, 다섯 명이었나, 그녀들이 막 한창 인기 있던 드라마 주제가를 불러줬는데, 지금 그 시절이 다시 재현될까? 과연 머리카락을 기르면 그렇게 될까? 그때 그 노래 왜 불렀냐고 따질 껄 그랬나? 아니다 아니다. 그건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다. 당시야 촉망받는 젊음이었고, 뭐 지금도 청춘이긴 하지만 옛날처럼 소형 CD 플레이어를 가지고 다니면서 박하우스가 연주하던 베토벤의 소나타를 듣지도 않는다 지금은. 그래서 아마데우스는 동네 아저씨처럼 휘파람을 불면서 축구장으로 갔다. 결국 그곳이었다.
그는 남자였다. 한번에 하나만 했다. 말 많은 친구에게 오랫만에 전화가 걸려오면 반갑게 안부를 묻고 답하고 그건 좋다. 그러나 그 통화가 1시간, 2시간 길어지면 다른 일은 하나도 못한다. 전화 통화 하나만 해야 하니까. 한참 일하던 중 녀석에게 전화가 걸려오면 덜컥 겁부터 난다. 말이 그렇단 소리다. 그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정답게 2시간 통화를 한다. 그리고 그는 그날 밤에 2시간 야근을 했다. 1시간 반쯤 일했는데 2시간 일했다고 뻥-쳤다. 다중 작업은 피곤한 일이고, 비효율적이다. 한 번에 한 가지만 하기. 그게 좋은 줄 누가 모르나. 온전히 대화 하나에만 집중하는 통화를 못해서 안 하나. 아마데우스는 전화 받으면서 다른 일을 못하기 때문에 전화에만 집중하는 거다. 할일도 많고 고를 일도 많은 세상이다. 하나만 하기 힘들게 되어 있는 구조다. 그런 뻔한 상술은 내게 통하지 않는다? 잘 통한다. 완전! 세상사가 그렇다. 하나만 해서는 반짝이며 빛나기 어렵다. 어떤 권위자는 그런다. 지금은 전문가의 세계라고.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면 그런 식상한 말은 틀린 말 같다. 좀 어설프다. 왜냐하면 지금 세상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처럼 만사에 능해야 성공하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헷갈린다. 거꾸로 뒤집어서 다시, 하나만 잘하는 게 맞는 것 같으니까. 예술가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처럼 몇 가지를 특출나게 잘한다, 그러면 뭐가 문제겠나. 하나만 잘하기도 힘든 상황에 말이다. 좋은 선생님처럼 가슴 안에 잠자고 있는 나도 모르는 내 꿈을 깨어나게 하거나, 뛰어난 상사처럼 부하의 잠재된 가능성을 모두 성과로 연결시키게 만들어서 그의 능력을 배가시키거나, 계속 변신하고 끊임없이 새로움을 추구하는 전문가의 길은 어렵고 조금 벅차다. 그래서 인문교양서에서는 말한다. 한번에 한 가지를 잘하라고. 하루에 할 일은 한두 가지를 될 수 있으면 넘기지 말라고. 집중력이 높은 시간에 중요한 일을 처리하라고. 성공한 사람들의 통계가 그렇다. 처음에 내가 좋아하고 내가 잘하는 뭔가를 잘 고르고, 그것 하나만 하기. 전자에서 후자까지를 반복하면 뭐라도 되긴 된다 라고. 물론 방법은 많다. 그러나 기본은 집중이다. 삶도 그렇다. 좋은 아빠에 좋은 친구에 좋은 회사원에 좋은 시민에 좋은 동호인에 막 다 잘하기는 어렵다. 제약이 얼마나 많단 말인가. 그렇지 않은가. 법을 지켜야 한다(그런데 옆 동네만 가도 합법은 불법이 되고, 그 반대도 된다), 규율을 따라라, 카르텔을 잊지 말라, 법도는 어떻고, 예법도 빠질 수야 있나, 상식과 교양은, 나는 왜 빼나 라고 교리가 그런다. 교리가 한두 개인가 신이 한두 명인가. 왕을 섬겨야 한다. 아니다 교왕이 낫지 않겠나. 무슨 소리냐 지금이 중세더냐 국왕보다 통치권자가 현대에는 진짜 왕이다. 그래 봐야 언론인들이나 따라다니지 우리는 그런 거 관심 없다. 언제부터 언제까지 그냥 직함일 뿐이다. 어차피 같은 인간이다. 차라리 신을 믿어라. 아니다 교리는 어겨도 아무 문제 없다 그러나 법을 지키지 않으면 잡혀간다. 뭘 지키라고, 너 먼저 모범을 보여라 문법이나 틀리지 말고. 뭐야 다시 처음으로 돌아갔자나, 저런! 게다가 우리 동네는 왕 그런 거 없다. 모른다. 다 좋고 다 좋다, 허나 천륜을 소홀히 여기지 마라 무엇보다 정작 지켜야 할 것은 관습이니라. 도돌이표 때문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갔으니까, 법은 지키면 되고 종교에 대해서 좀 더 생각해 보자. 종교. 내가 생각하는 종교는 선이다. 나는 선을 위해 종교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도서관에 있는 분량 만큼의 설전이 불가피하겠으나, 보편적이고 타당한 종교의 목적을 하나만 꼽자면 그것은 선이다. 착함! 나는 선을 위해 신앙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착함! 그러나 선이라는 관념은 절대적이지 않다. 쉽지도 않다. 문제는 거기서 시작된다. 이미 처음부터 불합리를 가지고 출발하는 것이다. 우리가 아는 선은 불완전하고, 상대적이며, 인간-중심적이다. 어떤 선은 과거에는 악이기도 했다. 어떤 선은 미래에는 죄일 수도 있다. A에서 선이 B에서는 벌일 것이다. 인간에게 해당하는 선이 우리 돼지군에게는 절대적인 악일 것이다. 양이라고 불만이 왜 없겠나. 그렇게 털을 깎고 또 깎아대는대. 채식이라고 왕도일 리는 없다. 식물도 의식이 있으니까. 게다가 종교가 좀 많나. 몰몬교도 있고, 유대교도 있다. 맞다. 사이언톨로지교도 있다. 분파도 많다. 기독교와 천주교, 얘기하자면 피곤하다. 그렇다고 무소속이 뭐 어때서! 서로 데려갈려고 한다는 점이야 십분 이해한다. 옛날에 프리드리히 니체가 그랬다. 신은 죽었다고. 그러나 그건 까마득한 옛날 이야기다. 괴팍한 몽상가 뿐만 아니라 솔직히 얘기하고 보면 많은 공감을 얻을 것이다. 신은 부활했다는 것을. 그분의 이름은 돈이라는 것을. 돈! 돈 빼고 종교가 돌아갈 수 있을까?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소리다. 종교계가 시들해지면 날씨를 걱정하는 정도일 수 있다. 그러나 경제가 삐걱거린다? 난리 난다. 목사 연봉? 거대 기업의 회장 연봉과 똑같다. 그렇다고 신도들이 교리를 얼마나 지키는가? 완전 이중 인격이 따로 없다. 말과 행동이 다르다. 어제와 오늘도 다르다. 내일도 장담할 수 없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는 뭐 어쩐다더라, 그 말은 그냥 말이 그렇다는 뜻이다. 피자 배달원의 경험만 놓고 봐도 부자들 평판 괜찮다. 부자가 재산을 탕진하면 그 시점이 한숨 나오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도 마음의 여유가 있고 인정도 많다. 하지만 어디서든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 없는 사람을 만나기는 하늘의 별 따기와 같다. 그렇다면 왜 종교의 법전에서는 기준선을 그렇게 높게 잡았을까 라는 의문이 생긴다. 왜 그랬을까? 왜냐하면... 음 혹시 이 때문은 아닐런지! 앞서 말한 종교의 목적인 선의 실현을 위해서는 강해야 하니까, 인류의 선을 구현하기 위해서, 인간이 선함을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해, 선함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선함이 위선으로 돌변하지 아니 하게, 그리고 다양한 선함이 충돌되어 발생하는 모순을 최소화시키기 위해서, 바로 그래서 종교의 법전 그 기준선은 드높은 게 아닐까? 그래서 구태의연하다랄지 다소 무리한 내용도 포함되었다거나 현대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 적어도 그것은 미래적일 수 없었다. 당시 무엇은 당시의 기준을 근거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 때문에 많은 부분 절대 유익했지만─유익하지만─동시에 많은 부분 절대 미래적일 수 없었다. 일부분 현대적이지 않고, 그 이상 미래적이지 않다. 최소한 그것은 반박할 수 없는 지당한 견해다. 달리 보자면 예상보다 인류 문명이 장족의 발전을 거듭한 것일 수도 있다. 먼 미래에서 지금을 본다면 아마도 말문이 막힐 것이다. 그것은 미래에서 오신 미래인이나 외계에서 오신 외계인의 고견을 굳이 구하지 않아도 된다. 그럴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현대인이 먼 과거를 보는 시각과 그것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곧 한마디로 그래서 재미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지킬까 말까, 일 수도 있으니까. 실제 결과가 그렇지 않나. 보시는 바와 같이. 따라서 종교가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경직되고 재미없고 따분한 것이다. (엄지와 검지 요만큼) 아닐 수도 있다. 종교 역시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은 아마도 힘겨웠을 것이라고 예측한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종교의 교리는, 교리와 비슷한 낱말은 번역이라고. 교리를 직역하면 한껏 과장했을 때 그건 커피포트고, 종교의 교리를 의역하면 이 역시 부풀리자면 진공청소기다. 교리의 직역은 외딴 수도원에서 수도승으로 살라는 말이고, 교리의 의역은 <착하게 살자>다. 그 중간은 가택감금? 그만 그만. 착함! 중세에는 종교가 세월과 대륙을 좌지우지 했다. 그 결과 피바람이 불었고, 그 피비린내는 그칠 새 없었다. 사람 너무 빡빡하고 고리타분하게 교리에 너무 얽매이지 말자고? 그런 사람이 먼저 나서서 타인에게 교리도 안지키고 그게 뭐냐고 따지실지도 모르겠다. 지구가 타임머신이고 인간이 타임머신인데 종교에 관한 순기능만 있을 리는 없다. 절대 없다. 종교가 순기능을 달성했다면 만일 그랬다면 왜 지금 세상이 이 모양 이 꼴일까? 그것의 성과, 약했다. 역으로 봤을 때 그래서 그나마 지금 이 만큼일지도 모른다. 착함! 내가 생각하는 선은 도덕과 윤리와 정의와 평판, 행복, 인성, 관습, 예의, 사랑, 멋진 인생 이런 것이다. (눈썹을 올리는 무언의 몸짓) 저요? 무소속이다. 어쩌실 텐가. 지나가는 여자를 훔쳐보며 이상한 상상을 하지는 않겠지만, 철없는 허접 찌질 오줌싸개 꼬마가 뭘 알겠소. (너 어디 소속이여? 나 무소속이다. 퍽~!) 자, 나는 그렇다. 그러나 마이크를 넘가지는 않겠다. 아직 할 말이 남았으니까. 가사도 잊어먹지 않았다. 인간의 삶이 실전이자 무대인 이상 뭔가는 해야 한다. 하다 하다 안되면 엉덩이라도 까야 한다. 그 대신에 할 말을 하겠다. 자, 뭐였드라 아하 맞다. 내가 만일 신이라면 나를 믿어라, 믿으면 천국 믿지 않으면 지옥 666 바코드, 그러고 싶지는 않다. 왜냐하면 지금까지는 사람 위에 신이라는 인식이 우세했지만 나는 그 피라미드를 거꾸로 뒤집고 싶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옛날 옛적 교주는 고생했고, 교왕은 권세가 존엄했으며, 교파의 세력은 다툼이 많았다. 인간의 역사는 승자의 역사다. 편집과 미화, 없었다면 그건 이 세상은 이미 현존하는 천국이라는 것이다. 사람 위에 신? 좋다. 괜찮다. 그러긴 하나, 신 위에 사람이 있는 게 더 낫다랄지 뭐랄까, 최소한 그게 더 즐겁지 않을까? 그런 상상도 가능하지 않을까? 왜 신만 찬양해야 할까? 이미 많이 했다. 지금도 앞으로도 할 것이다. 그러니까 세상을 보는 시선으로 나를 봐야 한다. 내가 나를! 겉으로만, 자기 아쉬울 때만, 모든 것을 자기에게 유리하도록 커졌다 작아졌다, 그러지 말고. 그 말은 곧 선을 전제로 자기 인생을 살자는 것이다. 시대와 지역을 골라서 태어나지는 못했으나 어쨌든 지구에서 사람으로 태어났다. 태어난다. 태어날 것이다. 그리고 사람은 천년만년 살 수 없다. 고로 사람의 육신은 언젠가 흙으로 돌아간다. 그것은 나무를 키우며 공기로 물로 옮겨간다. 다시 그것은 사람과 만난다. 한 번 사는 인생, 내 인생을 살면 된다. 이기주의자이되 선함을 전제로 할 것. 이기주의자이되 작은 이타주의는 실천할 것. 예를 들면 사랑 같은 것. 요람에서 무덤까지 나의 현재에 최선을 다하는 삶. 아니다, 나는 나를 위한 삶보다 종교적인 길을 걷겠다? OK! 선을 전제로 내 인생을 사는 게 너무 힘들다 그래서 나는 신앙이든 무엇이든 뭔가 하나 필요하다? OK! 아니다 나는 한번에 하나만 하겠다, 그 하나가 예전에는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일이었고 내일은 뭘로 변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커피나무와 녹차를 키우며 산다? 좋다! 훌륭하다. 다만 선을 위한 목적이 월등한 만큼 종교는 좋다. 과학이 옳고, 종교는 틀리지 않았다. 그리스-로마 신화는 기원전 언제 적의 실화를 다루고 있다. 명백한 실화였다. 그것을 무엇이라고 하나. 전설이라고 한다. 이솝 우화 같은 것. 미래 언젠가 나는 외계에서 왔다 하면서 누군가 나서서 자기가 신이라고 한다면 그는 얼간이처럼 이런 헛소리를 할런지도 모르겠다. <나는 신이요. 나를 믿든 말든 그건 그대들의 자유요. 강요하지는 않겠소. 구속하지도 않겠소. 다만 착하게 사시요. 인간의 일은 인간의 일이라오. 인간의 세상에서 명을 달리하신 분들 999명은 나중 모두 천국에 입주하게 될 것이오. 왜냐하면 999명은 흥망성쇠와 권성징악의 기준이 조금은 불명확한, 선의 통념과 실천이 불완전하고 상대적이며 인간-중심적인 지구에서 그다지 큰 문제될 것 없이 잘 살기 때문이라오. 그러면 나머지 1명은 지옥이냐, 아니지요. 프로메테우스나 시지프스처럼 혹독하게 벌을 주지는 않겠소. 단, 주당 25시간 정도 그렇게만 천국의 허드렛일을 시킬 계획이라오. 그 비율이랄지 패자부활전의 도입은 차차 검토하겠소이다. 요컨대 핵심은 선이란 말이오> 이렇게 말이다. 버트란트 러셀의 글도 맞고, 예술로 예찬된 그분에 관한 걸작 역시 타당하다. 성그럽고 아름답다. 그런데 사람들이 거북스러운 신경질을 내거나 짜증을 풀 때, 왜 하필 그 신성한 이름은 욕이 될까? 하필이면 왜! 뭐하러 가만 있는 강아지나 고양이를 걸고 넘어지는가. 이건 뭔가 이상하다. 그건 아마 성인이 실존할 당시는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 바로 그때부터 지금까지 엄청난, 어마어마한 인간의 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옳냐 늬가 옳냐. 늬가 잘났네 내가 잘났네. 이를 테면 역사 같은 단어. 많은 낱말 앞에 정치를 붙일 수 있듯이, 똑같이 '역사'도 그럴 수 있다. 가령 <종교의 역사> 같은. 그 많은 굴곡과 모순, 이론과 실재의 괴리등 그게 어쩌면 혹시 피라미드의 경직된 구조 때문 아닐까? 미래의 신은 아마도 그와 대칭된 모양을 보여줄 수도 있을 것이다. 기대된다. 모르긴 몰라도 미래생활사전에 나오는 내용 가운데 얼마 만큼이 상규가 될런지. 그 생각만 하면 오오 막 잠이 다 달아난다. 아아 아득하다. 미래는 대관절 어떤 세상일지 열락의 호기심까지는 아니지만 가히 궁금하도다. 착함! 상식적으로 봤을 때 다음 세 분 가운데 누가 가장 종교의 목적과 신앙의 역할을 실천한 삶을 산다고 할 수 있을까? 첫째 부패한 종교인, 둘째 악랄한 신자, 셋째 신앙 그런 거 모르고 법이 없어도 살 것 같은 너무도 선량하고 무식한 시골 농부. 논리적으로 보자면 이건 어떤가? 첫째, 99년을 천하의 악당으로 살다가 작고 10분 전에 종교에 귀의했으니까 천당행 땅─땅─땅! 둘째, 세간의 소식에 어두운 채 사는 존경받는 환경 운동가나 성소수자 권리 운동가랄지, 사익을 추구하는 데 게으른 동물 단체나 시민 연합 회원이 촌각을 다퉈가며 평생을 그것 하나 밖에 모르고 산 인생. 왼손이 한 일을 오른손이 어쩐다는 다수의 착한 선행을 존경하고, 커피 칸타타나 헨델의 음악을 좋아하지만 말하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설마 이 의도를 곡해하시지는 않으시겠지만 말이다. 하데스의 궁전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비통의 강, 시름의 강, 불의 강, 망각의 강, 증오의 강을 건너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신화다. 신화와 종교는 다르다. 종교와 현실도 같지 않다. 그래서 극적으로, 좀 더 현실적으로 그런 사연을 압축하자면 이성주의자들은 다음의 논거를 첫손 꼽을 것이다. 그의 인생이 착했냐 아니냐! 그의 인생이 행복했든 불행했든 어쩌든. 얼마만큼 신실했는가, 어디에 적을 두었는가, 최후에 귀의했는가 보다는. 일관적으로 비열하게 살았다, 포악한 군주로서 악명 높았다, 뭘로 보나 악인이고 누가 봐도 무법자다, 이야 와 이거 완전 막살았네, 그런데 종교가 있다 있었다 적은 올려 뒀다, 그래서 그는 지옥행을 면하고 천당행 땅─땅─땅? 이게 뭐냐. 대체 이게 뭐냔 말이다. 저승의 신 플루토는 백분율과 대차대조표로 믿음과 교파와 그런 세부 사항을 따져야 할까? 정말 그래야 할까? 아니다. 그건 절대 아니다. 플루토는 아마도 단 하나의 명제만 고집할 듯 하다. 그분의 인생이 착했냐 아니냐, 그것으로! 신이 무슨 자기 연민에 괴로워하는 사춘기도 아니고, 신체 변화에 의아해 하는 몽정기도 아닌, 쾌할하고 때로는 심심해 하며 때로는 뭐 뽐낼 것 없나 주변을 둘러보다 아는 체 한다며 친구 녀석을 흠칫 경계하는 바로 그런 존재가 신이란 말인가? 어? 대체 누가 신을 그렇게 유아기적 아동으로 만들었나? 누구신가? 네? 누구시냐구요! 아하~! 인간이구나 인간. 사람들이 자기 입맛에 맞게 자기들 권세와 이상형에 맞게 신을 제단한 것 아닌가. 마녀 사냥과 십자군 전쟁을 비롯한 무수한 혼란은 바로 이 때문이었군. 신은 이래야 한다 라는 점. 이건 무엇일까? 그것은 한마디로 과거다. 미래에는 좀 덜하겠지만. 그러면 그나마 현대에 생각하는 신은 무엇일까? 첫째 돈, 둘째 신은 죽었다, 셋째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자, 따라서 그 다음이 있어야 한다. 언제까지 나는 천국 우리만 천국이라는 틀에 갖혀 살아야 한단 말인가. 참으로 갑갑하다. 저게 바로 찬란한 태양이다 하면서 불빛이 비추어진 거울을 신성시하고, 달님은 어디 있어요 하면서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쳐다보고 있구나. <종교가 있냐 없냐>는 명백하게 <착하게 사는가 아닌가>를 위한 것이다. 착하게 사는 게 때로는 힘들고 다양한 선이 서로 상충하기 때문에 후자가 아닌 전자를 지향하는 것 아닐까? 난 방금 들었다. 무엇을 들으셨나요? 바로 신이 이렇게 말씀하셨소. 전자를 위해 후자를 경시하는 일, 적어도 그런 꽉 막힌 사람은 되지 맙시다 라구요! 뭐이, 오호 형씨도 들으셨군요 축하하겠소. 신은 방금 말씀하셨다. 바로 이렇게. 「종교계여 말로만 따따부따 제발 그러시지 마세요. 행동은 어디로 가고 말만 남았나요. 내가 위에서 보니 딱 이렇다오. 인간계가 아름답기는 한데 그런데 동시에 세상은 요지경이 아닌가. 교리를 직역해서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그것을 실천하는 그~런 소크라테스는 내 눈 씻고 찾아봐도 없소. 단 한 명도! 흐흠 말이 그렇단 거요. 그런데 시대가 바뀌고 또 바뀌는데 아직까지 그처럼 구식으로 설강하신단 말이오? 그에 반해 연봉은 또 왜 그렇게 신식으로 받으시오? 신이고 자시고 넌 상관하지 말라, 그 말이오? 바로 내가 신이다, 그 말씀이군요. 내 잘 알겠소. 어이쿠 이거 몰라봐서 죄송합니다 지존이시여! 그게 뭐요. 말로만 자기 성찰이 중요하다고 하시지 마시고 프로크루스테스처럼 길 막고 돈이나 받지 마세요. 제발! 그게 무슨 종교입니까, 네? 사람이 이 세상에서 즐겁고, 행복하고, 인생과 사랑을 알아가며, 사람들끼리 어울려서 잘 살도록 돕기 위해 존재하는 것, 바로 그게 종교 아닌가요? 무슨 종교가 인간 위에 신, 인간 위에 종교 종교 위에 돈, 인간 위에 프로크루스테스입니까? 지나가는 행인을 붙잡아 자신의 침대에 누이고는, 행인의 키가 침대보다 크면 그만큼 잘라내고, 행인의 키가 침대보다 작으면 억지로 침대 길이에 맞추어 늘여서 죽였다는, 무슨 종교가 그런 프로크루스테스입니까? 네? 언제 어디서든 세상사라는 게 그렇지 않소이까. 다 자기가 위라 그러오. 사람 위에 사람, 숲도 있고 나무도 있고,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아니다 무엇보다 휴머니즘이지 그러나 그 사람 위에... 여기서부터는 서열이 어떻다고 말하기가 참으로 낯 뜨겁소. 중세에는 아니지만, 아 몇몇은 그때로 돌아가면 한마디로 천국이 따로 없다오. 거 뭐... (흐흠) 중세에는 아니지만 지금이야 법, (있으면) 국왕, (있으면) 교왕, 통치권자, 종교, 신분, 다 떠나서 돈 아니냔 말이오. 아 인기도 있군요. 바로 그래서 남자의 우정 가운데 절반쯤은 친하지 않는 이상 절대로 내가 최고다 라고 하지 않는다오. 보시오. 전부 다 자기가 위라는 외침이 정녕 들리지 않는단 말이오? 서로 다 자기가 위래! 누가 그분들을 향해서 엄지를 아래로 내리기라도 한단 말인가, 이 말이오. 이런 말 하는 난 신인데 대체 왜 내 귀가 간지러워야 하냔 말이외다. 스스로는 아니겠지만 인간에 의해 예찬된 그 신이 만약 귄위적이라면 지구본은 다시 거꾸로 돌아갈 수 밖에 없는 법. 종교가 세계를 지배해야지요. 그럼요. 아아 그때 그 시절 참, 앗 그만 그만. 1000년을 살아본 사람이 없다는 걸 내 깜빡했소이다. 그것을 교양으로 아는 것에 어떻게 비할 수 있으리오. 당장 100년 아니 10년만 시간을 돌려보시오. 그때가 좋았다가 있으면 당시는 지옥이었다가 우세할지도 모르겠소. 실제 그렇지 않소? 아 나 이거 참 증말! 그렇다고 종교나 권위가 나쁘단 말이 아니라오. 그것이 잘 쓰이고 적당하다면 너무나 좋고 아름답다오. 그 때문에 지구상에서 가장 덜 권위적인 곳을 많이들 인용하긴 하는데, 그게 또 면밀히 들여다보면 막상 또 그게 일장일단이 있다오. SF 영화가 아니라 왜 지구가 타임머신인지, 어허 그렇지요. 하늘나라에서 보면 지구는 참으로 아름답다오. 세상은 신비로워서 너무나도 신기하다오. 그러면 그게 다냐, 그건 아니지요. 농담조로 추접스럽다고도 하고 불미스러운 일도 심심치 않게 발생하긴 하더란 말입디다. 그렇다고 지구인이 이승을 떠나면 그 친구 누구요, 아 하데스 그 양반이 수학적으로 판결을 해야 하겠소? 자기가 무슨 검사 변호사도 아니고 영화처럼 예 아니오로만 답변하라는 듯이? 어찌 됐든 그건 나중 일인 법. 우선은 지구에서 인간으로 태어났으니 현세를 아름답게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고, 선을 실천하면서 자기를 위한 삶을 살아야 한다오. 더디긴 해도 차츰 세상사는 좋아지는 듯 하오. 아마도 실존하는 지상 천국의 제일 쉬운 예는 그것이지 않겠소? 차를 마시며 나누는 대화의 즐거움을 아는 것! 바쁘다면 차는 나중에 마셔도 괜찮겠죠. 나라고 왜 마다하겠소. 신은 하나라면서도 그리스-로마 신화로 기적을 살았던 수많은 신들을 굳이 찬미하겠다는 데 그분들이라고 썩 꺼려하지는 않을 듯하오. 처지가 그럴 수 밖에 없겠구먼 그래. 선을 위해 날 찬양하겠다는 데 그게 대체 왜 나쁘겠소이까? 허나 예식에 따른 옷을 입는 사람일지라도 일과 외에는 취미로 헤비메탈에 심취해도 괜찮소. 그래도 된다오. 그 말이 뭐냐? 날 위해 살지 말고, 자기를 위해 살라는 말이라오. 기도할 때는 날 인용하고, 감탄사로 내 이름을 남발하고, 자기에게 유리하다면 날 핑계 삼아 감탄사를 남용할지라도 자기 인생은, 자기 인생은 신이 아닌 자기를 위해 살아야 한다, 그것이오. 그것을 무엇이라 하냐면 이기주의라고 부릅디다, 이기주의! 그게 그런데 본 뜻은 좋아, 좋은데 어째 어감에 꼭 숨겨진 뭔가 있는 듯 하긴 하단 말일세. 왜, 왜 그럴까요? 왜냐하면 나를 위한 인생 즉 이기주의는 좋지만 그것에만 집중하면 선을 소홀히 할 수 있기 때문이라오. 그렇다고 이타주의자가 되란 말입니까 뭡니까? (워-워-워) 올커니! 듣기로는 그런 용어도 있다고 합디다. (조용조용히 귓속말로) 호-구. 허허허허허! 맞나요? 따라서 그 절충안이 필요하겠죠. 그럼 그건 무엇이겠소? 그렇죠 (딱) 사랑! 자기를 위해 살되 선을 실천하는 사랑을 노래하거나 선을 위한 신앙을 갖거나 그것은 모두 개인의 자유란 말이외다. 자기를 위해 살아야 하고, 선을 행하는 방법이 적어도 하나는 있어야 한다. 후자를 위해 전자를 어디에 전임하는 일, 그것은 절대 쉽지 않다오. 그것은 일반적이지 않고, 그 마음이 변하기도 쉽다오. 그러므로 최선의 삶은 적당히 착하게 자기를 위해서 사는 것이란 말이오. 네. 인간이시여, 부디! 음... 여보시오. 지금까지는 그대들이 신을 받들었다면, 이제는 새로운 신이 인간을 받들 것이오! 그러고 싶다오. 아니 아니 안되겠소. 사람 당신들이 내 위로 올라가든가, 내가 그대들의 밑으로 내려가는 게 낫겠단 말이오.」 ...... 오 신이시여! 누구... 아 네. 프로크루스테스! 우리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를 기억해야 한다. 바로 이 프로크루스테스의 이야기. 자기 생각에 맞추어 남의 생각을 뜯어 고치려는 행위, 남에게 해를 끼치면서까지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 횡포. 종교가, 그처럼, 변해서는 안된다. 절대 안된다. 프로크루스테스의 악행은 아테니의 영웅 테세우스에 의해 끝이 난다는 걸 잊지 말자. 저마다 다 자기 말이 맞다며 내가 진짜 라면서 장님 코끼리 뒷다리 만지기 식으로 그것을 신의 궁전 그 기둥이라며 인생을 허비한다면, 그렇다면 신은 하늘나라에서 퍽이나 좋아하시겠다. 만일 조물주가 있다면 그분은 하늘나라에서 그러실 수도 있다. 인간이여 그대들은 바른 삶을 살고, 인간의 삶을 즐겨야 하고, 인생의 의미를 찾아야 하며, 혹시 신앙이 있다면 글을 의역해서 착한 말과 행동을 하며 살아가기를! 그분은 단지 그렇게 바라실 것이다. 중차대한 과오를 범하지 않는 선에서 적당히 윤리적으로 살기를 바랄 것이다. 앞뒤 떼고 기도를 얼마나 많이 드렸냐 절대적으로 1의 1을 골랐냐, 가 아니라. 논리적으로 그 반대라면 1의 1이 아닌 나머지는 다 망한 거다. 완전 줄 잘못 선 거다. 게다가 그게 1의 1이라는 보장도 없다. 2의 1일 수도 있다. 심지어 그분 자리가 공석일 수도 있다. 그건, 그건 말이 안된다. 조물주가 무슨 초딩도 아니고 말이다. 신은 경배에 목마른 존재가 아니라 인간들이 자기들끼리 잘 살아가게 하기 위해 고민하는 존재에 가까와야 옳다. 그게 맞다. 격식과 신성함과 절대적 선을 위해 경배나 의식이 까다로워졌을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인간이 인간들끼리 잘 살라 적당히 착하게 살라는 것이지, 그 목적이 경배 자체에 있다면 그건 조물주가 초딩이라는 말 밖에 안된다. 겉과 속이 뒤바뀐 거다. 그것은 주객이 바뀐 것이다. 신은 주사위 게임을 하지 않는다. 주사위 게임은 인간이 한다. 그래도 뭔가 허전하니 첨언하자면 주사위 판을 누가 처음에 짰을 수는 있다. 옛말에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다. 과거 기준으로 만들어진 덕목과 부족했던 인간 존중 그런 것들, 현대에 완벽하게 다듬을 수는 없다. 차차 차근차근 다듬어가면 된다. 그러든 어쩌든 지금 이 세상에서 모순되는 여러 덕목과 다양한 종교와 무교의 권리를 모두 통틀어서 가장 어떤 기준에 가까운 제일 광범위한 개념을 신이라고 했을 때, 그 신은, 그분은 바로 돈이다. 돈! 그렇다고 돈을 위해 애초의 목적을 잊고 수단이 목적이 되어버리면 인간이 인간을 위해 만든 최소한의 규칙인 헌법에 위배된다. 삐요삐요, 수갑을 차게 되는 것이다. 종교에 따르지 않아도 사는 데는 지장이 없다. 그래서 법이 있고, 법원에 가면 법의 신 흉상이 있다. 법의 빈틈을 메꿀 수 있는 것도 적지 않다. 관습도 있고 평판도 있고 자성도 있다. 많다. 그러나 초심이 잘못됐을 때 많은 경우 돈-욕심이 화를 불러오는 일이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정치는 종교를 무시할 수 없다. 그처럼 종교도 선이라는 일반적인 의의를 모른 체 하면 안된다. 설명이 설교로 바꼈다. 종교 때문에 얘기가 길어졌기 때문에. 어렵고 헷갈리는 글보다 쉬운 말처럼 요약하면 훨씬 간편할 듯 하다. 종교. 학생들은 무엇을 배우는가, 를 떠올리면 된다. 국교와 국왕이 부분적으로 존재하는 곳도 있지만 그건 명목상 의미가 크다. 엄밀히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 무엇이 가장 세계적인가를 생각하면 된다. 원치 않았을지라도 누가 제일 유명한가는 개개인의 삶과 인생의 행보에 좋은 판단 근거를 제공한다. 쉬운 예로 교황이 있고, 아마데우스가 있다. 그러나 종교는 선택이다. 그것은 인간이 살아가면서 부분적으로 함께 하는 덕목일 뿐이다. 그래서 종류도 많고 분파도 많다. 지역별로 문화적 차이도 있다. 사람들도 각양각색이다. 뉴스의 노른자는 정치, 경제, 사회다. 종교는 종교다, 보다는 종교는 예술과 문화와 교양과 떼어서는 절대 말할 수 없는 분야라는 것이다. 인류 문명에서 종교가 체계화되기 이전에 이미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가 있었다. 훨씬 전에. 신화가 있으면 민담도 있다. 점성술이 있는 한편 토속 신앙마저 전통은 유구하다. 폴란드의 천문학자 코페르니쿠스가 제창한 이후로 지구 내부에 무엇이 있는지 우주의 기원과 미래는 어떠할지도 알게 됐다. 반면 지동설이라는 남자의 심리와 달리 여자의 심리는 천동설처럼 보이기도 한다. 해를 기반으로 하는 양력이 표준이고, 그 외에 달을 기준으로 삼아 달이 지구를 한 바퀴 도는 시간을 기준으로 만든 역법도 있다. 무교도 있고, 일 때문에 교당에 나가는 사람도 제법 많다. 종교적 의미보다 생활의 의미 때문에, 삶의 자세와 인생을 대하는 태도로서 종교와 함께 하는 사람도 적지는 않을 것이다. 구교네 신교네 깊이 들어가면 머리 아프지만 성모 마리아는 이미 과학으로 현실이 되었다. 그러나 (다양한) 종교는 신성하니 (다양한) 종교는 종교의 역할을 하면 된다. 종교는 선택할 수 있고 다양하지만, 그 목적은 크게 다르지 않다. 거의 공통적이다. 단일한 덕목을 하나만 들자면 그것은 바로 선이다. 그 선을 실현하기 위하여 그동안 일들도 많았고 얘기도 많았다. 참 많았다. 성선설이 맞든 성악설이 맞든 종교가 의도하는 기간은 '인간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라는 이승을 지향하고 있다. 종교가 바라는 목적이자 소원은 선이다. 종교가 그 뜻을 함께 하고자 하는 대상은 왕도 아니고 특정 신분도 아닌 보통 사람이다. 옛날에는 종교와 왕권이 겹치고 종교가 다르면 막 시끄러웠다. 때문에 옛날에는 최소한 피라미드의 위는 종교적이어야 했다. 그때에도 황금은 중요했으나 신분이 높으면 높을수록 종교적이어야 했다. 마치 어떤 지역에서는 옛날에 국어에 관하여 말은 있으나 글은 없었기 때문에 외국어를 알아야 지배적인 신분에 걸맞는 체면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처럼. 그처럼 옛날에는 특정 분야가 학문, 업종, 직업, 생활등 사회 전반적인 흐름을 이끌었다. 그러나 세상이 바꼈다. 피라미드가 뒤집히지는 않았으나 새로운 강자가 속속들이 세상을 장악한 것이다. 새로운 질서와 새로운 규칙에 대해서 제일 공통적이며 절대적인 가치 단 하나는 바로 돈이다. 그처럼 지금은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신이 아닌 돈이 떡하니 버티고 있다. 말이 그렇단 소리다. 그러나 엄한 낭설도 아니다. 부정할 수 없는 진리다. 종교도 신도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현대의 질서이자 규칙인 돈이 왕좌에 앉아 있다. 황금을 빼면 종교는 절대 잘 돌아갈 수 없다. 그리고 지구는 다시 평평해졌다. 그래서 가장 공통적인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한다. 종교? 아니다. 종교는 다양성이고, 가장 공통적인 것은 이렇다. 첫째 돈, 둘째 학생들은 무엇을 배우는가. 유감스럽지만 종교는 그 순위에 오르지 못했다. 왜냐하면 종교는 다양성인 성격의 개념이기 때문이다. 아니다, 순위에 넣어야 한다? 무엇을, 1의 1을? 그것은 시계를 중세로 되돌리는 발상이다. 인류의 발전과 수많은 기준을 제공했지만 현재는 내일로 가야 한다. 어제는 기억해야 하는 것이지 돌아갈 목표가 되서는 안된다. 종교를 배우는 곳도 있다. 하지만 그건 대체로 선택에 해당하고, 현재보다는 과거에 그런 경향이 컸다. 사람을 위해 종교가 있는 것이지, 종교를 위해 사람이 있는 것은 아니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클 수는 없다. 과거에서 현재까지 종교에서 과학으로 어떤 비중이 바꼈다. 과거의 종교 곧 신에 해당하던 비중을 하나를 꼽자면 현재에는 돈이다. 그렇다고 돈이 신의 후계자는 아니다. 그러나 세상 돌아가는 원리를 보면 이미 반박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현실이 그렇다. 불미스럽게 느껴질 수 있지만 사실이 그렇다. 그러나 그건 슬픈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다가올 더 나은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세계 어디서나 학생들이 배우는 것은 똑같다. 언어, 산수, 과학, 사회, 도덕, 예술! 고로, 무엇이 표준이고 무엇이 선택인가를 알면 사는데 도움이 된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왜 사람 위에 각종 개념들이 그렇게 많은 것인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초등학생이 배우는 과목을 누가 정했나? 법이 정했다. 법! 법은 누가 정했나, 인간이 만들었다. 법의 신은 누구인가 까지는 가지 말자. 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갔다. 사람들은 각양각색인데, 현재의 선은 미래에 어떻게 바뀔지도 모르는데, 인간은 당장 내일 일도 모르는데, 너무 빡빡하게 굴었다. 석고대죄드릴 수 밖에 없다. 싹싹 빌고 잔소리를 경청해주신 데 대해서 고마워할 수 밖에 없다. 성은이 만극하옵니다. 바람 피우고 한눈 팔고 그런 건 아니지만 두말없이 굽히겠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사랑은 다이아몬드이기 때문이다. ...... 라~고 생각해봤는데 아마데우스는 아무한테나 이런 생각을 밝힐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예전에 동자승의 민들민들한 머리를 만져봤기 때문이다. 그때 한 소리 들었다. 그러면 안된다고. 그러는 거 아니라고. 자기가 만진 게 아니라 손이 끌려가서 자석처럼 붙어버렸는데 말이다. 아마데우스는 누구를 만나던 과학자나 무소속 일반인을 만나던 전부 맞춤식으로 그는 딱 한마디만 할 것이다. YES라고! 그걸로 부족하면 한마디 더. 그렇소 당신 말이 맞소이다 라고. 그처럼 의견도 많고 지켜야 할 관습도 많다. 사회 규범도 있고 시장 규칙도 있다. 만나는 사람의 배경과 문화와 취향은 물론 교양도 파악해서 상대해야 한다. 문화도 다르고 유행도 바뀐다. 우정은 물론 사랑과 사람도 변한다. 눈치도 봐야 하고 분위기도 살펴야 한다. 그게 다냐, 다가 아니다. 그럴 리가 있나. 유니폼을 입었으면 유니폼 값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 본능은 대체 뭔 죄란 말이더냐 먹고 마시고 입고 자고 보고 듣고 놀고 그게 왜 죄란 말인가. 진보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런데 퇴보가 웬 말이냐. 언제는 당신만을 끝없이 사랑한다네 어쩐다네 하더니 이제 와서 뭐? 말은 안 그래도 완전 이거지 않냐, 잡은 물고기에게는 먹이를 주지 않는다. 어디 그 뿐인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날은 벌써 임박했다, 의무-방어전! 학교를 졸업한다고 영원히 공부와 작별하는 것도 아니다. 이론과 실재도 다르고 뭘 또 지키면 또 지킨다고 뭐라 한다. 안 지키면 안 지킨다고 뭐라 한다. 빡빡하게 그게 뭐냐고. 전부 다 자기들 기준이다. 다 자기가 지존이고, 다 자기가 백조고, 다 자기가 왕이고, 다 자기가 최고다. 어디서나 자기 합리화는 빠질 수 없고, 언제나 동기 부여는 빼놓을 수 없다. 푸쉭푸쉭, 살살살 딸랑딸랑, 달콤한 언사와 교묘한 화법과 마음을 녹이는 언변, 어디가든지 피할래야 피할 수 없다. 이러니까 간혹 보면 사람들은 그런 글씨가 씌여있는 티셔츠를 입고 다닌다. 바로, 이기주의자! 맡은 역할도 많고, 의무와 권리는 약간 다르고, 할일은 많고 돈도 벌어야 하는데, 그러나 재미가 없네 재미가 없어. 그래서 그런다. 아아, 나는 귀를 막겠다. 나는 정했다. 누가 뭐래도 한번에 한 가지만 하겠다고. 원래 남자는 전화 통화하면서 막 다른 일 이것저것 잘 못한다. 용건만 말하고 요점을 정해서 목적을 이루기, 가 아니라 불분명하게 서열 없는 관계를 돈독히 하고 친분을 형성한다? 차보다는 술을 부르게 된다. 진공청소기는 커피포트로 바뀐다. 알라딘의 마술램프를 문지르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회사에서는 앉으나 서나 성과─어제보다 나은 목표─오늘도 성과─내일도 성과, 집에 오면 친절과 자상함과 다정함을 비롯해서 슈퍼맨 아빠로. 아 피곤하다 피곤해. <한번에 한 가지만 하기>. 업적이 뛰어난 명성도 명성이지만 훌륭한 군인 하면 동네 아저씨 같은 군인이 쉽게 떠오를 것이다. 하루에 한 가지만 시키기. 그런데 그 한 가지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날 완수할 것. 그처럼 사람의 생활은 모두 잘할 것을 종용하는 듯 하지만 실제로는 처음의 꿈이 어쩔 수 없이 변경되거나 어떤 깨달음으로 인해 그것은 조정되기도 있다. 한번에 한 가지만 하기. 나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고 미래의 이상을 현재로 가져오거나 신비로운 꿈을 실현하는 건 모르겠고 누가 뭐래도 원만한 가정을 가꾸겠다, 나는 딱 하나만 즉 일로써 성공하겠다, 나는 뭘 해도 중간만 가겠다, 나는 가족과 건강을 최우선 순위에 올리겠다, 나는 팔방미인 관심 없고 누가 나중 회상했을 때 아 그 사람 참 괜찮았어 라며 큰 오점이 없는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이 되겠다 등등. 나는 존경을 받고 영웅이 되고 인기로든 황금으로든 기쁨으로든 뭐든지 1인자가 되겠다고? 그런 사람은 많지 않다. 친한 친구끼리라면 몰라도. 어중간하게 호감 있는 세 여자를 거느리느니 한 여자와 찐하게 연애를 하는 게 낫다. 그래야 나중 상실감이든 체념이든 회상이든 추억이든 뺨 맞고 이별하든 뭐라도 남는다. 시간이 지나서 그건 사랑이었을까 라고 당시의 사랑을 지금 판결하게 된다면, 그럴 일은 없겠지만 애들 장난이나 어른이 했던 사랑의 불장난으로 간주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랑이란? 여자들의 사랑학과 그녀들의 사랑법과 숙녀의 재잘거림과 다중 작업은 답이 없다. 최소한 마초에게는. 원래 수다라는 게 그런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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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아마데우스는 축구장에 도착했다. 힘겹게 왔다. 어이쿠~! 거기서부터 그는 도시의 고독한 사냥꾼으로 돌변했다. 어디 혼자 온 슬픈 사연을 간직한 듯한 그런 아가씨 없나 라면서. 그런데 진짜 있었다. 그녀는 낯선 여인이 아니라 다름 아닌 이브였다. 서포터즈 조마조마에서 아마데우스를 추종한 여인들 가운데서 이런 말 하면 조금 미안하긴 하지만 굳이 밝히자면 그녀는 네 번째였다. 뭘로? 모르겠다.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제 와서 보니 왜 그녀의 순위를 그렇게 저평가했었나 몹시 의아한 느낌에 그는 기분이 들썩이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아마데우스는 내색하지 않았다. 그는 고수이고 싶었던 것이다. 누가 하수라고 할까 봐 지레 가슴 졸였나 보다. 게다가 피앙세 생각은 감쪽같이 사라져버렸다. 미처 그럴 겨를이 없었다. 하나의 의도에 집중하니까 딴 생각은 물러가버렸다. 손을 반듯이 펴서 눈썹이 붙여본다. 안 보인다. 멀리 갔나 보다. 그건 꿈에도 생각할 수 없었다. 심지어 그는 좀 튀어보이기 위해서 이어폰을 끼고서 막 글을 쓰는 척 했다. 혹시 그녀가 자기를 발견할 찰나 그 잠시를 위해서. 사가지고 갔던 햄버거와 우유를 먹고 싶었지만 참았다. 원래 햄버거에는 콜라지만 그는 왠지 햄버거와 우유를 같이 먹고 싶어졌다. 그러나 그건 살짝 미뤄둘 수 밖에 없었다. 아마데우스가 뭐 수줍어하는 가시내도 아닌데 그처럼 어리석게도 숙녀를 유혹하는 이상한 수법을 진짜 구사했냐고? 물론! 그랬다. 진짜다. 허튼 수작일 수도 있지만 자연스럽게 고전적인 방법이 저절로 나온 것이다. 왜냐하면 괜히 아마데우스가 먼저 이브에게 반가운 척 인사하고 그녀의 옆자리에 딱 앉았다가는 바로 그때 화장실에 갔던 그녀의 남자친구, 그것도 우락부락하며 완전 무섭게 생긴 남자친구가 짠~하고 나타난다면 것도 퍽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애초에 아마데우스는 여자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녀가 스스로 아마데우스의 옆자리로 올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그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이다. 자기만의 고유한 특유의 카우보이 몸짓으로 줄을 돌리고 던져서 끌어당기는 그런 웃긴 짤막한 무언극을 펼칠 필요도 없었다.
공부를 잘하는 비법은 딴 거 없다. 공부를 하는 것이다. 공부를 못하는 친구들은 공부를 안하는 게 전부다. 방법에 따른 결과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우선은 공부를 실제 하는 행위의 실천이 거의 다다. 공부 못하는 친구는 공부를 잘할 줄 몰라서, 잘하기 싫어서 공부를 못하는 게 아니다. 그 학생은 첫째로 공부를 안하는 것이다. 공부를 하다가 거울을 보고, 거울을 보다가 화장을 고치고, 화장을 고쳤으니 다시 공부를 할까 하다가 이걸 어쩌지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 그걸 듣고 생각한다, 공부 시간은 잠시 쉬는 시간으로 바뀌고, 그러다 남자 이야기로 빠지는 것이다. 그게 다다. 일도 그렇다. 경영학의 대가가 그랬다. 일하는 시간을 적어보라고.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 말고. 성과가 나오지 않는 것은 생각이 딴 데 가 있는 경우가 태반이다. 바로 그것을 뭐라 하느냐, 측정이라고 한다. 일도 공부도 하는 것이 기본이다. 성공은 대체로 실패의 횟수와 비례한다. 큰 성공? 큰 실패와 종이 한 장 차이다. 많이 걸어야 크게 성공하는 일이 많다. 일이 뭐 카드 게임은 아니지만 말이다. 해도 해도 안되더라, 분야나 방법을 바꾸면 대성할 것이다. 해도 해도 사랑의 아픔은 쓰디 쓰다? 큰 실패와 큰 과오와 막무가내식 꽃 들고 쫓아다니는 사랑만 거듭했으니 이제는, 곧 있으면 드디여 진짜 사랑을 만날 것이다. 타당한 진리의 시작은 가설이고, 위대한 명작의 첫걸음은 심심함이며, 멋진 인생의 비밀은 바로 새로움과 여심에 대한 궁금증에서 출발한다. 공부는 하는 것이고, 돈과 호박은 제 발로 굴러들어오는 것이며, 일은 측정이라고? 그러면 사랑은 무엇이에요, 오빠! 오빠? 어 오빠! OK! 괜히 공부를 잘하는 비법과 일은 측정이라는 말을 꺼낸 게 아니다. 다 사랑을 위해서 밑밥을 깔아놓은 것이다. 걸려들었다. 앗 월척이다. 농담이다. 그랬으면 좋겠다. 수확의 시간이다. 사랑을 위한. 자, 다시 그 시간이 돌아왔다. 사랑이란!
사랑은 오빠다. 농담조로 써봤다. 누군가 오빠라는 말을 듣지 못하시는 분이 계실 테니 오빠라는 글을 읽어서 그 기분을 대신하라는 뜻에서 오빠라고 독백을 해봤는데 아아 재미없다. 그런데 오빠라는 말만 들어도, 오빠라는 글씨만 읽어도, 오빠라는 뜻을 생각만 해도 기쁜 사람이 여럿 된다는 게 정말일까? 그렇다. 꽤 된다. 아, 사랑 사랑. 언제 어디서든 사랑이 문제구먼. 나 원 참, 그 쉬운 걸 가지고 말이야. 다른 사랑론은 이미 여러 번 반복해서 강론되었으니 여기서는 간략히 하나만 밝힌다. 아마데우스는 사랑을, 연애를, 끌림과 떨림과 설레는 두근거림과 홀딱 반해서 황홀감에 흠뻑 젖게 되는 그 신비로운 감정의 모든 발단을 딱 한 단어로 집약하고자 한다. 딱 한 단어로. 그것은 바로 관찰! 낙원에 가면 놀아야 하고, 흔들의자에 앉으면 의자를 흔들고, 향기롭고 싱그럽고 한껏 물이 오른 성숙한 사과 열매를 보면 따고 싶어지며, 고운 꽃을 보면 탐난다. 안 그러면 문제 심각한 거다. 비정상이란 말이다. 재밌는 이야기라고 하면 듣고 싶어진다. 할 말이 있다고 하면 할 말이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누가 날 사랑하면 그 사랑을 받을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내가 누군가를 좋아하면 그 사람을 어떻게 사랑의 포로로 만들 것인지 작전을 짜야 한다. 그건 모두 순서에 따르는 것이다. 형식대로 적용하는 것이고, 누구나 본받는 규율이다. 하나의 전형과 모범으로 알려져서 만인이 사용하는 방법이다. 때문에 그건 새롭지 않다. 달리 말하자면 그건 낡은 방법이다. 따라서 기인이 볼 때 그것은 재미없다. 어린이는 세상 모든 일이 즐거울까? 동화나 교양 프로그램에서는 그런다고 한다. 상식적으로 그렇게 인식할 수도 있다. 아름다운 척 재미있는 척, 그것이 연상되니까. 그러나 아니다. 어린이도 이미 다 안다. 이 세상은 제약이 많다는 것을. 뭘 해도 심심하다는 것을. 스무살 애기? 스무살 젊은이도 안다. 세상, 사랑, 일, 대망, 소망, 애교, 배짱, 행복과 불행, 섬세함과 대충대충, 쾌적함과 불쾌감까지. 그러나 스무살도 여심을 잘 아는 젊은이가 있고, 해도 해도 여자의 마음은 통 모르겠다는 친구도 있다. 그러나 천재가 되면, 마침내 도사가 되면 다 보인다. 모든 것을 알게 된다. 말 몇 마디 나눠 보고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책? 선거 출구 조사처럼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몇 문장, 어휘, 목차, 그래프, 표지 디자인만 봐도 대번에 답 나온다. 그걸 뭐라 하느냐? 편견이라고 한다. 그러나 편견은 상황이 좋아졌을 때 당시의 교양을 지금 편견이라고 하는 것이지 처음부터 편견은 아니다. 선입견은 십중팔구 맞다. 선입견은 대부분 중요하다. 아주 엄중하다. 도움이 많이 된다는 뜻이다. 롱테일은 드물거나 변화가 심하고 어려울 수 있다. 그러므로 바람둥이는 타고난 재간을 바탕으로 왕성한 관찰력을 기반으로 하여 놀라운 통계, 유의미한 선입견을 만들어낸다. 그걸 강습료 내고 배우는 일도 허다허다. 일도 똑같다. 그걸 드라마로 만들면 인기와 돈은 따르지 않을 수가 없고. 자, 다시 요점으로 돌아와서. 사랑은, 사랑은 <관찰>이다. 세심한 표정 하나만 봐도 그대가 날 사랑할지 사랑하지 않을지 알 수 있다. 작은 행동 하나만 봐도 푼수 같은 그녀가 원하는 사랑이 무엇인지 대번에 알 수 있다. 여자는 둘로 나뉜다. 여자는 완벽하게 둘로 나뉜다. 여자가 남자를 유혹할 때 정확히 둘로 나뉜다. 그 자잘한 행동 가운데서 딱 하나만! 여자가 쪼그려 앉거나 상체를 숙였을 때 상의와 하의의 틈이 환해진다. 여자가 자기 뒤에 있는 남자를 발견한다. 그 여자와 그 남자는 아는 사이다. 이때 여자의 행동은 정확히 둘로 나뉜다. 놀랍게도 그 통계 역시 어중간함 없이 군더더기 없이 딱부러지게 둘로 나뉜다. 두 말하면 잔소리다. 그 어떤 돌쇠라도 얘는 꽃 들고 쫓아다니고 기다리고 따라다니면 넘어오겠다, 넘어가겠다, 아마도 보인다. 주변의 일꾼들과 난봉꾼에게 비법을 전수받더라도 썩 다른 사랑론을 털어놓으시지는 않을 것이다. 얘기가 길어졌다만 아무튼 지금 당장 아마데우스와 이브는 저만치 떨어져 있다만 잠시 후가 기대됐다.
19
와! 어쩜 정말 거짓말처럼 이브는 아마데우스 곁으로 다가와서 은은한 색상의 원피스 엉덩이 부분을 의자에 가까이 하며 앉으려고 했다.
「아, 잠시만!」
아마데우스는 손수건으로 의자를 닦아주었다. 그런 후 이브는 의자에 앉았다.
「오빠 웬일이야? 오빠가 이제 조마조마에 나오지 않길래 우리끼리 얘기가 많았어. 오빠가 수도원에 들어갔다더라, 아니다 실연당한 후로 어떻게 되어 버려서 머리 빡빡 깎고 어려운 시험 공부에 매달린다더라, 아니다 나이트클럽에 취직했네 시인이 됐다네, 누구는 어느 도박판에서 오빠를 봤다는 둥 말들이 많았어. 또 뛰어 봐야 벼룩이고 뛰어 봤자 부처님 손바닥이지, 요즘에는 아이스크림 가게나 술집이나 가리지 않고 푸딩을 들고 다니면서 막 마술 보여준다는 식으로 여자를 꼬시는 걸 똑똑히 봤다는 둥. 말들이 많았다니까 오빠. 오빠, 정말 그랬어? 오빠 원래 그런 오빠 아니잖아? 아, 오빠는 날이면 날마다 여자 꽁무늬만 쫓아다니는구나~!」
「얘가 얘가 어디서 그런 뚱단지 같은 헛소문을 듣고서... 설마 진짜 믿는 거 아니지? 오빠는 이브 믿는다. 그럼.」
「그럼. 농담이지. 오빠가 어디 그냥 오빠인가. 지금이니까 뿔뿔히 흩어져서 그렇지 그땐 조마조마 즐거웠잖아. 우리들이 오빠 좋아했고. 오빠는 우리를 아꼈고 챙겼고. 한참 멋진 남자가 나타날 꺼라네 어쩐다네 하다가 맨날 쫀쫀한 남자애들만 가뭄에 콩 나듯 나타나고 그러긴 했지만 말이야. 아 오빠! 그때 누구한테 들었드라... 아 맞다. 앨리스가 그랬어. 오빠 서포터즈 간당간당에 막 게스트로 참석하고 그랬다며? 지금은 바람이 잦아들었지만 한참 응원 재밌게 할 때는 서포터즈에 뭔 바람이 불었는지 다들 두더쥐를 하나씩 둬서 막 경기 중에 실시간으로 상대편 보면서 응원했다니까. 요즘 장비 흔하잖아 오빠. 그래도 그때가 좋았어. 재미있었으니까. 제일 많이 나오는 얘기가 뭐였드라. 야 늬들 자신 있으면 와라, 이리 와라, 야 야 와 봐, 왜 못 오냐, 겁나냐, 그런 말들. 지금 이렇게 가만 앉아서 조용히 경기를 볼려니까 좀 심심해. 차라리 그때가 재밌었어. 물론 오페라도 좋긴 한데 그래도 들썩들썩 노래 부르고 춤도 추고 그러는 게 신나잖아. 그렇지만 다들 바쁜지 이제 조마조마 애들 잘 안 모여. 그래서 심심해.」
「뭐? 심심해? 오빠가 재미나게 해 줄까? 우리 이브가 뭘 좋아했드라, 가만 있자. 오빠가 멋진 남자 한 명을 알고 있는데 지금 바로 불러낼까? 어때? 싫다고? 알았어. 진짜? 괜히 한번 튕겼다가 막 집에 가서 내내 후회하며 그 앵두 같은 고운 입술이 이만큼 튀어나오는 거 아니겠지? 다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보고 언제든지 말만 해. 일단 말은 해. 오빠가 들어줘야지 별수 있나. 오빠가 아는 멋진 남자도 만년 백수가 아닌 이상 바쁠 테니까. 녀석이 진짜 멋지면 바뻐야 정상 아니겠니. 집에서 강아지 팔자 마냥 백판 자빠져 노는 남자라면 우리 이브가 좋아할 만한 스타일은 아닐 꺼야. 아마도.」
「그런데 오빠. 있잖아, 남자들은 어떤 여자 좋아해?」
「남자? 남자들의 세계를 알고 싶니? 거 알아 봐야 재미없는데. 알고 나면 괜히 알았다는 심정을 느낄 수도 있어. 그럼.」
「그래도 무언가 좀 색다른 얘기 좀 해주라 오빠야. 흔히들 여자가 듣고 싶어하는 그런 거 말고 말이야. 응, 오빠.」
「아 그래? 그럴...까? 우리가 또 여자에 약하잖아. 이브가 부탁하는데 오빠가 또 모른 체할 수 있나. 냉큼 뭔가를 또 지어내야지. 음, 무슨 얘기를 해줄까. 남자? 그건 좀 식상하고. 사랑? 것도 조금 평범해. 그러면 여자? 그래 여자! 오오, 그게 먼저지. 나를 잘 알아야 이 세상에서 사는 게 즐거워지는 법이거든. 음 그렇다면 먼저 이브의 주변 인물들을 봐 볼까? 저번에 애들이랑 친하게 지낼 때 있잖아 이브야. 이브는 누구랑 제일 친했니? 말은 누가 제일 많이 하고? 리더는 누구였고!」
「아 장미랑 별이랑 사라랑 앨리스? 그야 뭐 난 원래 사라랑 단짝이니까 둘이 제일 가깝긴 했는데, 그런데 사라가 남자친구 생긴 후부터는 좀 멀어졌어. 처음에는 장미랑 별이랑 또 하나의 콤비였는데 둘이 싸웠는지 아니면 한 남자를 놓고 다퉜는지 어째 좀 언제부턴가 서로 말을 안하더라구. 그런 적이 있었어. 그래서 별과 내가 한동안 붙어다녔고, 장미는 앨리스랑 급하게 친해졌어. 그리고 같이 모여서 놀 때는 음 누가 막 나서서 말을 많이 하고 그러지는 않았고. 우리가 너무 순진한 건가? 하긴 우린 내숭도 별로고, 공주과도 아니지. 완전 털털해. 그런데 왜 멋진 남자들이 우리한테 막 구애를 하지 않는지 슬플 뿐이지. 그렇다고 진짜로 분한 건 아니라네 오빠야. 그게 다야 오빠.」
「아 그랬구나. 대충 견적만 뽑아 봐도 정상이네. 나 보통, 이라고 딱 이마에 씌여 있군. 정확히 스무살 처녀의 평균이긴 한데 물론 꽃다운 나이에 뽀얀 살결과 샴푸 선전 저리 가라 할 정도의 머릿결과 고결한 청순미를 자랑하지만, 아직은 누가 뭐래도 여성잡지1이야. 여성잡지2를 읽고 쓰고 취재하며 그것을 만드는 전문가들이 볼 때는 완전 애란 말이지. 그래서 숙녀는 자기를 잘 몰라. 아직 그럴 수 밖에 없어. 왜? 아직은 꿈과 희망과 미지의 미래에 대한 낭만적인 환상이 자기를 조금은 이끌고 있거든. 그래서 거기에 끌려가다가 마음은 멜로로 몸은 아동극으로, 낮에는 청춘 드라마로 활약하고 밤에는 추리소설에 빠질 수도 있어. 그렇지만 걱정하지는 마. 다 그러니까. 그게 정상이야.
흔히들 여자 하면 수다쟁이라는 상징성이 세간에 퍼져 있지. 하지만 그건 실은 사실과 조금 달라. 했던 말 또 하고 또 하고 계속 반복하는 수다쟁이도 있긴 하지만 수다쟁이도 분과가 나뉘어. 조용조용 가만 있다가 한번에 터지는 수다쟁이도 있고, 썼던 글 계속 변형해서 또 쓰는 수다쟁이도 있고, 오직 남자와 사랑과 연애에만 불을 밝히는 수다쟁이도 있지만 그쪽보다는 더 넓게 여자의 특성에 대해 간략히 알아보는 게 좋을 것 같아. 응 이브, 오빠 얘기를 잘 들어보렴. 오빠 말이 맞나 안 맞나, 잘 판단도 해 보고 말이야. 여자가 잘하고 좋아하고 즐겨찾는 부분 말고, 여자가 약한 게 뭔가를 알아보면 어떨까? 왜냐하면 남자도 그렇지만 여자도 그걸 알아야 뭘 하더라도 제대로 할 테니까 말이야. 여자는 무엇에 약하다, 여기서 무엇의 범주에는 어떤 것을 넣어야 할까? 일단 떠오르는 건 권위. 아 주관과 권위는 거의 뭐 쌍벽이겠네. 아닌가, 아니네. 그렇지? 답은 숙제고, 그리고 꼭 약하다 라고 하기는 뭐해도 굳이 살짝 한쪽을 걸쳐놓자면 뭐가 있을까? 동조성, 단짝 의존도, 까다로운 친분, 교분의 시작, 격식, 카리스마도 서로 자기를 언급해 달라고 보채긴 하지만 이번에는 하나만 얘기하자구. 하나만. 막 이것 저것 많이 얘기하면 들을 때는, 읽을 때는 뭔가 있는 듯 하지만 나중 돌아서면 아무 것도 없어. 다 까먹는다고. 땀 뻘뻘 흘렸는데 남는 게 아무것도 없어. 허무하게 말이야.
그러니까 이번에는 <말수>에 대해서만. 말수! 보통 시인으로 문학계에 등단하면 중견 시인이 처녀작으로 막 등단한 시인한테 그런 얘기를 해준다더군. 처음 작품이나 또는 2번째, 3번째 책까지 쓴 작품을 나중 내내 반복할 꺼라고. 음반도 그래. 아마데우스의 교향곡처럼 1번에서 41번까지 거의 반듯한 상승세를 그리는 음악가들은 드물어. 증권업에서도 그런 주식은 찾기 힘들고 말이야. 그건 어느 업계든 비슷해. 했던 애기 하고 또 하고 계속 반복하는 수다쟁이 말고, 이브랄지 장미와 별과 사라와 앨리스를 봐 보자구. 그녀들은 흔히 여자 하면 수다, 여자 하면 횡설수설, 그런 보편적이고 전형적인 부류에 속하지 않아. 지켜보니 그렇더라고. 여성잡지1에서 말수가 그만그만하다가 여성잡지2로 변하면서 말이 많아지는 유형도 있는데, 지금은 여성잡지1에서 말수가 많지 않은 숙녀에 대해서만 생각해 보자. 말수가 없는 여자는 하나의 커다란 장점을 잠재우고 산다고 할 수도 있어. 이브도 아다시피 남자는 원래 그녀의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발음되는 <오빠>라는 낱말을 사랑하거든. 그게 남자니까. 우리는 원래 그렇게 만들어졌어. 변할 수 없는 이치야. 변하면 섭하지. 너무 섭섭해. 우리는 원래 오빠라는 말만 들으면 미쳐버리거든. 푸하하하하하하, 진짜인가 가짜인가 그것은 개인적으로 차차 알아가기로 하고. 그렇다면 1막을 접고 2막을 살펴보자구. 이쁜 그녀가, 꽃다운 숙녀가, 바로 천사 같은 이브가 말이 없다. 음... 그녀가 말이 없네 말이 없어. 왜 말이 없지? 왜일까? 왜 그런 것이지? ...(침묵)... 할말이 별로 없으니까 그렇지. 재미없으니까. 매사 시시하니까. 항상 심심하니까. 뭘 해도 재미없으니까. 남자만 그런 게 아니야. 여자도 사람이잖아. 그런 거라고. 그런데 그 따분하고 재미없는 집안 일을 여자한테 전임하고 우리는 룰루랄라 떠나서 신나게 논다? 옛날에는 그랬지. 옛날에는. 말수가 없는 건 할말이 많지 않으니까 그렇기도 하지만 말수가 없는 건 속에 담겨진 광대한 자료를 말로 어떻게 표출할지를 모른다는 것과도 같아. 조금은 그래. 알긴 아는데 딱 구체화되기가 힘들어서. 왜냐하면 내 안에 담겨진 웅대한 자료를 놀랍도록 압축해서, 때로는 웃기게 때로는 신선하게 때로는 과장해서 때로는 일부러 서투르게, 바로 그처럼 표현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거든. 압축의 대명사인 헤드라인을 수십 년 읽고 스포츠 해설자의 말과 깐족거리는 고품격 코메디언 겸 예술가의 화법을 오래 들어서 체득해야만 뭐가 고급스러운 농담이고, 뭐가 수준 높은 작품이며, 무엇이 탁월한 안목을 필요로 하는 명작인지 알게 돼. 여성잡지2 편집장에게 시켜 봐. 그냥 그분이 내가 하라는 대로 하는 상상을 해보자구. 야 편집장, 닥치고, 딱 닥치고, 10대와 20대들이 열광하는 TV프로그램을 보고 그들처럼 살고 그들처럼 놀아봐, 라고. 그 편집장은 어떻게 될까? 드라마처럼 빙의될 몸뚱이 딱 만들어주고 그렇게 상황이 됐다고 가정한다면. 그 편집장은 몇몇 좋은 경험도 하겠지만 침흘리며 환장할 뭔가가 있을 수도 있긴 하지만, 그분은 대체로 막 따분하고 시시하고 왜 이렇게 인생을 허비하고 시간 낭비를 해야 할까, 저 재미없는 코메디 방송이 뭐가 재밌다고 그렇게나 극성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을 꺼야. 어떤 오락 프로그램? 오그라드는 완벽한 유치함! 웃음의 방식이 완전히 몸개그와 말장난 뿐이야. 권성징악은 몰라도 고급 유머는 찾기 힘들고 그야말로 정확하고 완벽한 약육강식이네. (말이 그렇단 소리다) 그러나 조증 걸린 친구가 있으면 단정한 친구도 있는 법. 그런데 영화 장르가 뭐 가~족? 허걱! 드물게 마라톤 스포츠 중계나 퀴즈쇼를 흥미진진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것도 매주 봐야 한다고? 어떻게 그걸 진득하게... 신기하네! 이런 뭐야 쟤는 완전 흥미 위주의 수필만 오직 가벼운 연애 교본만 읽는다고? 아니 어떻게 그런 일이! (말이 그렇단 소리다, 는 이제 그만) 음악은 최신 유행가만 그것도 몇 번 들으면 질리니까 최신만 상대하고, 녀석들이 감상한 후에 한참 후순위로 그 열광을 우리들이? 「뒷북도 그런 뒷북이 없네. 잠깐만. 뭐야 우리가 떨거지야 뭐야? 사람을 뭘로 보고! 이거 왜 이래, 어? 내가 뭘로 봐서 촌년이야? 어? 나 백조야 백조? 어? 알어? 이 인간이 보자 보자 하니까 누굴 보자기로 아나! 이래 봬도 나 편집장이야 어? 편집장이라고!」 ...... 알긴 알았는데 거 왜 좀 그렇구만. 어머 어머 이번에는 따라할 상대를 잘못 골랐네? 얘가 진짜 여자 뒤꽁무니만 쫓아다니는 인간이잖아! 이 친구는 또 뭐야 오직 관음증만 상대한다고? 얘는 아 뭐라 말이 안나오는군. 그래도 뭘 좀 아는 친구도 있겠지 아~ 찾았다 그래 있다니까 문화와 예술 취향이군 하하하하하. 뭐시여! 그렇긴 한데 이 친구의 지식과 교양과 상식과 안목과 수준이... 응애응애~ 애기구먼! 할 일이라곤 화장법과 연예계 지식과 먹고 마시고 노는 것 밖에 없어? 진짜 그게 다야? 그게 죄는 아닌데 죄는 아니야. (말이 그렇단 소... 아니지. 맞자나? 젊음의 허무와 방황과 번민. 불투명한 미래와 그려지지 않는 꿈. 없는 돈. 빈약한 재능. 젊음은 아름답고 신비롭다는데, 젊었을 때 꼭 해 봐야 할 단 하나는 바로 사랑이라는데, 그렇지만 조언이 다 어설퍼. 설명이 있어도 납득이 안돼. 마음에 와 닫지 않는다고. 사는 동안 심심하다 재미없다 그 말 몇 번 했고, 그 감정 몇 번 느꼈는데! 안 그렀소? 젊은이들! 아휴 그냥 이참에...... 워─워─워) 아는데 이미 다 아는 건데, 무엇보다 내가 옛날에 그렇게 살았단 말 아니야? 오오 맙소사 세상에나! 그래도 좋게 생각하자면 나는 여성잡지1의 독자에서 여성잡지2의 편집장으로 성장한 모양새니 그래도 성공한 거네? 뭐 그걸로라도 위안을 삼아야지 어쩌겠어. 같은 예로, 흥미 위주의 선정적 매체와 자극적인 영상과 가벼운 글을 주로 선호다가 나중 권위적인 남성잡지의 편집장이된 꼴(?)은? 그거나 그거나! (놀 거 다 놀고 편집장 됐단 말은 한마디로 천재라는 거다. 범생이 세계에서 독보적인 인물은 아마도 타고난 천재 베짱이과다. 놀 거 다 놀더라도 꾸준히 노력했겠지만. 잊혀진 정치인과 날 업그레이드시켰던 전-회사 사장과 뭐 그런대로 괜찮았던 전-애인의 좋은 추억과 장점보다 유독 오점이 커 보이듯 기억되듯이. 그런데 일류 편집장은 절대 뽐내지 않는다. 꽁트의 여건이 갖춰지지 않는다면 좀처럼 으스대지 않는다. 왕년에 좀 놀아봤다고. 오히려 숨긴다. 차라리 반긴다. 타인의 허세를. 뭐든지 일로 연결시킬려고. 왜냐하면 프로니까. 나 봐라 나, 뼈 속까지 소설가이지 않나. 웩! 뭐 그럼 우린 뼈 바깥까지만 문필가인가? 워─워─워! 그러나 삼류는 혹시 그거 뻐기는 게 아닐까란 반 박자 늦은 의문이 들 정도로 가장하며 묻는다. 놀 거 다 놀고 벼락치기 공부 하지도 않고 그냥 자세만 까딱 잡아 보고 어디 들어갔다고, 뭐 됐다고, 뭐 타 봤냐고, 이 세상이 너무 불공평한 건 아닐까 라고. 일류가 부리는 허세는 통상적으로 도저히 미워할 수 없는 농담이나 은근한 허당과 고급스러운 허풍에 가깝다. 재밌다. 신기하다. 진공청소기다. 그러나 삼류가 일류와 똑같은 허세를 부리면, 그건 자기만 봐야 할 패를 남에게 친구에게 거저 보여주는 거다. 액면으로 충분한데도. 아 얘는 왜 이렇구나 라고. 하지 마 그거 하지 마 멈춰 제발 멈추라고 엉덩이 까지 말라고, 이 나 이런 이거 정말! 그건, 재미없다. 씁쓸하다. 커피포트다. 그렇지만 학교 다닐 때는 괜찮다. NDJM을 필두로 순진한 척 왕/자뻑왕/침묵왕/쪼잔왕/리액션왕/연체왕/이중인격왕/침튀기기왕/별명왕/식탐왕/야동왕/굴욕왕/비명왕/염장왕/째려보기왕/초딩왕/귀찮게하기왕 등등 다 괜찮다. 왜냐하면 권장하고 용서되고 세상을 알아가며 어른으로 커가는 과정이니까. 친한 사이래도 절반 쯤 괜찮다. 두툼한 지갑이랄지 그 무엇, 그 다음과 푼수끼가 상응하면 노-재미는 차치하게 된다. 왜냐하면 친하니까. 삼류가 일류인 척, 웃어준다. 하지만 삼류가 간혹 특정한 무언가는 삼류라는 포지셔닝에 타협하지 않고 일류를 고집하는 건 존중하는 게 낫다. 누구나 그런 거 하나씩은 있으니까. 원래 삼류가 일류가 되는 경과는 그런 세세한 부분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평범한 삼류와 특이한 삼류의 적지 않은 차이다. 이류가 좋은 게 그거다. 반짝하며 일류도 됐다가 언제 보면 또 일류가 부러워하는 홀가분한 삼류 일반인이고, 완전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정체가 의심스러운, 겉으로는 삼류 속으로는 이류. 오, 그 기묘한 신비감이란! 종이 한 장 차이라는 게 이렇다. 꼬마 숙녀 SS의 엉덩이가 타의에 의해 드러나거나, 내 엉덩이를 내가 까거나. 벼 이삭은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거나, 빈 수레가 요란하거나) 남성잡지는 세분화된 양식 말고는 1이나 2 그런 구분이 없어서 그나마, 그나마~ 내가 이상한 길로 빠지지 않은 것일 수도 있어. 그래. 아마도, 내가, 꼰대인가 봐! 차라리 그 결론이 좋겠네. 하긴 부모가 최고 학벌에 괜찮은 직업이라면 그것을 (강아지)똥 밟았다고 사석에서 친구와 말하며 웃고 떠드는 반항심도 있는 반면, 다른 친구의 선망은 괜찮은 집안 배경을 그 무엇보다 동경하는 경우도 있으니까, 이해는 되네. 이해는, 되! 왜냐하면 고전음악회 방송을 보면 관현악단이 아니라 객석을 비추는 화면을 딱 보고 있자면, 오 저런 거 어째 사람들 표정이 허허허허허 그러니까. 이해는 되. 그렇더라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아 내가 못살아 정말 미치겠구먼. 진짜로 그 친구들이 그렇게 산단 말이야? 어? 그러면 난 진짜 꼰대야? 어? 이런 삐─ 삐─! 막 그러면서 진공청소기의 반대 현상이 일어날지도 몰라. 몇몇은 재밌고 몇몇은 재미없어서 신물이 날 정도일 꺼야. 아마도 후자가 많겠지. 영화와는 반대로 월등히. 쉽게 말해서 그는 그들의 2배를 살았으니까. 자기도 똑같거나 비슷한 시절을 겪긴 했겠지만 말이야. 나이든다는 게 그런 거거든. 종목별로 차이는 있지만 스포츠에 대한 사람의 전성기는 대체로 젊을 때고, 예술가가 발표한 작품의 최고는 중년 즈음에 많이 분포하고, 작가 뿐만 아니라 사람은 만년에 이르러가면서 사용하는 어휘의 양도 농담의 급도 사는 방법과 세상에 대한 식견도 원만히 올라가는 것처럼, 여성잡지1의 주-독자층이라면 아직은 세상을 잘 모를 수가 있다는 말이야. 물론 그의 재능과 능력이 아니라 그가 무엇을 좋아하는가로써 사람과 사람이 교제를 하던 일로만 얽히든 사랑으로 승화하든 할 테지만 우선은 내면의 엄청난 메타데이터를 어느 정도 장르와 어떤 색깔과 무슨 형식으로 겉으로 드러내는가, 그것을 관건으로 사람은 친해지기도 하고 멀어지기도 한단다 이브야. 뭐 그게 놀랍도록 새로운 이론은 아니지만 그걸 청각으로 듣거나 글을 읽거나 해서 아 그렇구나, 하면서 한번 쯤 알 필요는 있어. 왜 스무살 때 나는 말이 없었나, 왜 우리들은 남자친구가 없을까, 나의 유혹술이 대체 뭐가 부족하고 내 화장술은 대관절 뭐가 문제란 말인가, 그 역시 중요하긴 하지만 말이야. 똑같이 말수가 없더라도 여자에 비해서 남자는 주관이 비교적 더 뚜렸해. 그래서 비교적 심지가 굳고 의견이 강하지. 달리 표현하면 여자쪽이 더 포용력이 풍부하고 장점 본뜨기의 관점에서 보자면 유리할 수도 있어. 남자가 '나는 나는' 할때 여자는 '나도 나도' 하다 보면 여자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서 사교력은 차츰 눈부시게 발전할 수도 있다는 뜻이지. 그런데 말수가 없으면, 즉 내 안에 엄청나게 쌓인 데이터를 극도로 축약해서 귀스타브 플로베르가 말했던 하나의 정황이나 기분이나 뜻함에 대치하는 최적의, 최고의 글은 하나 라는 것처럼 단출하게 표현하는 재주가 아직 미숙하다면 살면서 굉장한 시행 착오를 겪을 수도 있다는 말이야. 안 그래도 여자는 남자에 비해서 비교적 주관이 덜 확고한데 앞서서 말한 여자의 약한 점을 내세워서 그녀에게 액면만 가지고 들이밀고 압력을 가한다고 가정해 보자구. 단추 많은 수트, 단정한 말투, 도톰하며 흡사 명대사가 아닐까 착각하게 만드는 어조, 그런데 어머나 그이가 어디산 다비드네? 완전 웃음 기계네? 그러면 게임 시작도 전에 게임 끝난 거지. 그런데 그건 이상이니까 현실을 보자구. 곧 말수와 노력만. 다시 반복해서 말하자면 <말수>와 <노력>. 한 남자가 한 여자에게 말수와 노력을 바친다? 한 여자는 한 남자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아도, 시간이 조금 지나면 그녀는 꽃 들고 기다리며 쫓아다니는 그분에게 넘어가게 돼 있어. 그럴 수 밖에 없어. 물론 아닐 수도 있고. 그런데 재미없는 말수와 노력에 따라서 사랑만 좌지우지될까? 아니지. 그럴 리가 있나. 글도 있고 음악도 있고 직업도 있고, 뭐 계속 나오겠지. 말만 해! 그렇게 된다고.
자, 다시 한번 차분히 검토해 볼까요? 왜 우리 어여쁜 이브가 말수가 없는지를. 그건 아마도 이브에게 재미난 일이 없어서 아닐까? 맞아. 올커니. 그렇지. 기쁘고 즐겁고 신나는 일이 있으면 이브가 말이 많아지지 왜 말이 없겠니, 안 그러니? 당연하지! 그럼 왜 재미난 일이 없을까? 기분이 별로니까 그렇지. 그럼 왜 기분이 별로일까? 내가 뭘 좋아하는지 헷갈리니까 그렇지. 왜 나는 이것도 좋았다가 저것도 좋았다가 막 그럴까? 현혹하는 것들 천지라서 그렇지. 현혹하는 것들이 다 무엇일까? 좋고, 아름답고, 재밌고, 비싸고, 드물고, 사랑스럽고 그런 것들. 그 가운데 최고는 뭐다? 그래, 새로움! 내가 무엇을 하고 싶고 어떤 걸 좋아하는지 생각해 보고 내린 결론이 뭐다, 그래서 그것을 바라고 원하고 기도했어. 그런데 그건 너무 멀리 있네? 내가 어떻게 동화 속 주인공으로 탈바꿈할 수도 없고, 요정으로 변신할 수도, 이름을 천사로 바꾸기도 뭣 하고, 에고머니나 쉽지가 않네 쉽지가 않아. 그러나 바라보면 갖고 싶어지니까 바라보지 않을려고 하는데 그게 또 바라보지 않을 수가 없네 그래. 깜찍한 이브여! 그런데 오빠가 뭔 얘기를 했지? 아 너무 주저리주저리 떠들었더니 내가 다 정신이 없군 그래.
떠든 말이 많아서 귀가 아프겠지만 용한 점쟁이를 만났다고 생각하면 어떻겠니? 말이 길어진 게 다 말수가 많냐 적냐에 관한 얘기인데 너무 겉도는 느낌이 남는군. 아쉬워. 그냥 마무리하기엔 아무래도 섭섭하군 그래. 오빠 말은 그러니까 말을 무조건 많이 하는 게 좋다, 그게 아니야. <어떤 최저점을 넘어서는 정도의 말은 할 줄 알아야 한다> 그거지. 그게 오빠의 긴 말에 대한 핵심이야. 지극히 상식적인 유대감을 형성하고 사교의 범위를 넓혀서 굉장히 흥미로울 것 같은 새로운 사람을 사귈려면, 가까와지고 싶은 누군가와 친해지려면 일단 나를 표현해야 하고, 그것에 관한 제일 보편적인 방법이 바로 말이라네. 그러기 위해서는 말수가 어느 만큼은 있어야 한다고.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가, 텔레파시로 말없이 타인이 나를 파악할 수는 없어. 내가 노래를 좀 하는데 친해지고 싶은 친구 앞에 가서 무턱대고 노래를 부르면 그와 나의 친밀감은 바로 특별해질까? 아니겠지. 내가 어디 소속이다, 내 블로그가 알려졌다, 내가 축구를 좀 한다는 소문이 자자하다, 그러면 어떤 친교의 시작은 훨씬 수월할 수도 있어. 가능성은 높아. 그러나 말수가 가뿐하지는 않더라도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적으면 다른 무엇보다 대화의 즐거움을 놓친다는 점을 잊으면 안돼. 대화의 즐거움, 살아 보면 더더욱 알게 될 꺼야. 사랑도 대화의 즐거움으로 더 애틋해지고, 권태도 대화의 즐거움이 식어서 발생할 수 있어. 말수라는 게 그렇다네. 말을 하지 않는 것과 말을 못하는 것은 다른 문제거든. 그것은 말을 잘 듣는 재주와 말을 잘 하는 재주 만큼이나 차이가 크다네. 어떤 때 보면 그런 사람들이 있어. 말은 청산유수로 정말 잘하는데, 그러나 명망도 높고 인기도 많고 돈까지 엄청 버는데 비해서 그다지~ 호감형은 아닌 경우, 있다고. 혼자 푼수처럼 잘난 체만 하고, 남은 무조건 깎아내리는 방식의 농담이 특기인 유형이지. 딴 건 없어 그거 밖에. 제껴 보면 사람 다 비슷하고 그런 분도 따듯한 심성의 소유자이긴 하지만 말이야. 그런 반면 말도 그렇고, 보기에도 비리비리하고, 뭘로 봐도 애매한데 유난히 호감 가는 인물도 있다네. 유별나게 우정도 사랑도 모두 그를 향한다네. 왜 그런 줄 아시겠나? 왜 그럴까? 도대체 왜? 왜냐하면 그는 잘 듣는다네. 타인의 말을 잘 듣거든 그는. 듣는 걸 잘해. 듣는 것을! 사람들은 끼리끼리 만나고 어울리지만 누가 누구에게 호감을 느낄 때, 왜 그런가는 의외로 간단해. 나머지는 다 아는 얘기고, 물론 이것 역시 그렇지만 반복하자면 그것은 바로 이거야.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것! 그게 말처럼 그렇게 쉬운 게 아니야. 계속 듣고만 있으면 그것 만큼 피곤한 게 없거든.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더욱 어려워져. 그래서 사람들은 어른이 되면 누가 자기 말을 잘 들어준다? 그러면 그 사람이 좋아진다네. 관심을 가져주고, 친근감을 표명하고, 그의 장점을 추켜세워 주고, 깜찍한 애칭을 지어주고, 주색을 동원하고 노는 비용을 많이 부담하며, 그의 이름을 정답게 불러주어서 그의 이름을 새롭게 명명하는 것도 좋은데, 그보다 제일 쉽고 동시에 제일 어려운 게 바로 잘 듣는 거야. 그래서 누가 자기 얘기를 잘 들어주자나? 그러면 그 사람이 왠지 모르게 좋아져. 잘 듣는 신중함, 차분함, 표면적일지라도 겸손함을 필요로 하는 <잘 듣기>도 또한 최소한의 말수를 표출할 줄 알았을 때 비로소 가능한 솜씨라는 점, 참 중요해. 정말 내성적이고 조용한 사람도 있고, 의식적으로 일부러 말이 없는 사람도 있긴 해. 하지만 말수는 어느 정도 타고나는 것이기 때문에 상당히 후천적인 노력이 필요한 기교일 꺼야. 그 역시 분명 수완이고 요령이야. 이왕이면 그걸 일찍 알게 되면 더 좋고 말이야. 남자...들 사이에서는 어른이 되면서 알게 되지. 최소한의 말수가 없으면 긴장감이 형성된다는 점을. 말수만 그런 게 아닐 테지. 만남의 횟수도 그래. 어른들은 불규칙적인 만남 때문에 친목이란 명목으로 규칙적인 모임을 결성하기도 한다네. 좋은 사례도 많지만 웃긴 대화라는 게 그렇지 않나. 처음의 기세는 어디 가고 중간에 넘어지는 여정이 왜 그런가, 것만 짧게 봐 보자구. 그걸 보고 있으면 꽤 재밌단 말일세. 그래, 그렇게 모임을 만들어. 으쌰으쌰 하면서. 그러면 당연히 관례와 예의를 조례로 명문화하지 않을 수 없지. 그래, 법! 어디서 보고 들은 건 많거든. 이때부터 친구끼리 또 티격태격 다툰다고. 왜 1차냐 2차까지 뭐라며 어쩌고저쩌고 이러쿵저러쿵. 계 모임 회칙을 개량하고 우정에 따른 균형 잡힌 의무도 쇄신하자고 말이 많아진다고. 그러면 또 회칙을 바꿔야겠지. 보다보면 배보다 배꼽이 막 더 커지는 것 아닌가 참 우려스럽다네. 왜? 의욕이 있으니까. 초반이니까 열이 좋거든~! 그런데 무엇보다 귀찮고 불편한 건 돈 문제. 직위는 서로 꺼려 해. 입법부와 행정부와 사법부, 독립기관은 그 반대겠지만. 중진 국회의원의 의식이 후진이냐 선진이냐 뿐만 아니라 그분을 뽑은 시민 의식 역시 문제되는 건 이 지점에서 발생해. 의무는 낮게 권리는 많게, 바로 거기서. 복지는 낮게 세금도 낮게 또는 복지도 많이 세금도 많이, 그것과는 또 다르지. 어쨌든 어깨가 무겁지 않으니까 서로 꺼려 자리 맡는 걸. 어깨? 날 보시게 나를. 보이나? 어? 잘 봐 봐. 인사 나누고. 어? 내 어깨 위에 바로 이분 말이야. 내 어깨를 밝고 서 있는 이분이 정녕 보이지 않는단 말인가? 잘 봐 봐 찬찬히. 내가 보기엔... 오! 꽤 닮았는데 둘이. 오오. 왜 남자가 아니라서? 얘 남자...성별은 잘 모르겠어. 그치만 얘 성격 좋아. 사람 좋다고. 뭘 좀 알어. 아 맞다. 쟤 귀신이구나. 그래도 이 세상에 태어나서 사람으로 일평생을 살면서 단 한 번이라도 귀신과 교감을 나눌 수 있다면 것도 썩 나쁜 일은 아닐 꺼야. 일단 인사나 나누시게. 왜 아직 좀 뻘쭘하다고? 차차 나아지겠지 뭐. 허나 묵비권을 행사하는 건 젊은이 자유라네. 물론 행운을 놓치는 것 역시. 왜, 망설여지는가? 어떤가. 이참에 모험 한 번 해보지 않겠나? 그러지 말고 그냥 인사만 나눠 둬. 그건 괜찮지 않나. 또 몰라, 저 친구가 빅 브라더인지. 녀석이 마법사일지 지니일지 누가 알겠나. 사람 일은 모르는 법이거든. 그럼. 하기사 나도 친하긴 친한데 쟤를 잘 몰라. 아직까지도. 정말로 난 아직도 쟤가 유령인지 귀신인지 새인지 지킬인지 통 모르겠어. 아조 어깨가 아퍼서 미칠 것 같아. 어깨가 뽕 튀어나올려고 하면 저분이 또 밟아 내 어깨를. 아 나 증말 이거 원! 나도 좀 유유자적 핑핑 놀면서 살고 싶은데 어떻게 그럴 수가 없다고. 구두가 안 벗어지니까. 하여간,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될까? 그러다, 그러다 퍼져. 스포츠 선수들 후반에 퍼지듯이. 해설자의 말과 똑같아. 힘 빠졌어 힘 빠졌어. 그게 끝이냐, 아니지. 그러다 한 명이 목돈을 갖고 튀는 일, 살면서 1번쯤 겪고 여러 번 들어. 그러다 뭐한 놈이 뭐한다고 삿대질하며 가만 있는 괜한 사람한테 너 빠져라, 그런다니까. 영화 보면 많이 나오지 않나, 상황 안 좋아지거나 수 틀리면 먼저 선수치는 거. 친구와의 우정은 만남의 횟수와 조금은 비례하지. 단짝은 어쩜 정비례할 테고. 그러나 그 우정이 만남의 횟수와 반비례하게 되면 그 관계는 약간은 소원함으로 변하게 될 꺼야. 응, 약간은. 이 세상에 노력 없는 사랑이 어딨겠나. 아, 짝사랑은 봐 주자고. 남녀의 정분 뿐만 아니라 지인과의 친교, 나라 간의 외교 역시 그래. 원리는 똑같아. 주요한 근거는 전혀 다를 게 없다고.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 네안 거 뭐 거시기 있잖아. 원시시대부터 현대의 문명까지 까무러치는 발전에도 불구하고 그 핵심적인 원리는 비슷하다니까. 곧 있으면 인간이 우주 여행도 할 텐데 말이야. 그때와 지금, 육체적 사랑에 관한 테크닉 또한 바뀐 게 거의 없어. (딱) 그것이라네. 말수, 만남의 횟수, 소통의 깊이, 관계의 정의 그리고 다시 말수. 뭐시다냐, 아는 오빠 생각하고 있구만. 저런! 그나저나 빌더버그 모임에 꼭 나오라 그랬는데 아 진짜 가기 귀찮아 죽겠어. 옛날에도 무슨 힘 있는 극비 모임이다 뭐다 해서 가만 있는 날 자꾸 프리메이슨에 불러냈는데, 피해다니느라 정말 힘들었다네. 일루미나티는 또 지들이 원조라고 하고. 그래도 가만 보면 녀석들 귀엽다니까. 비밀 결사네 비밀 사교네 뭐네 아 귀찮아 귀찮아. 조용히 살고 싶어 난. 좋은 건수는 쉬쉬하며 우연히 찾아오면 엄선하긴 해야겠지만 말이야. 아 뭔 얘기하던 중이었지? 맞다. 말수. 다시 말수! 주변에 보면 유독 말수가 없는데 호감가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말수가 없으면 카리스마 쩌는 사람도 있어. 학교 다닐 때 보면 반에서 누가 누가 인기가 있었니? 말수는 그만그만해도 웃긴 애! 말수도 많고 완전 웃긴 애! 말수는 없는데 다른 재주가 뛰어난 애! 용모가 좋거나 목소리가 그렇거나 배경이 남다르거나 뭔가 하나는 있어야 인기가 있겠지. 그런데 뭣 하나 없는데 그냥 그만그만 존재감은 있다, 그런 친구는 어느 만큼 말수가 보장되는 친구인 경우야. 이도 저도 아니고 말수도 없고 무척 내성적인 친구? 단짝이랑 주로 놀아야 해. 그런데 단짝이 없다? 그러면 좋아하는 뭔가가 있어야 겠지. 그림이나 열렬히 좋아하는 연예인이 있다거나 그런 거. 하지만 아무것도 없고 말수도 적고 공부까지 취미 없고, 어쩌면 좋니 가난이 죄는 아닌데 집안 형편이 그다지 넉넉치 않네. 그러면 꽃다운 사춘기 학창 시절을 재미없게 보내야지 뭐 별수 있나. 운동선수로 비유하자면 A팀에서 만년 벤치만 지키는 것보다 B팀에서 주전으로 왕성한 활약상을 선보이는 게 훨씬 나아. 그리고 말수가 내내 없다가 어느 날 갑자기 웅변가가 되었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어. 어른이 된다는 것은 바꾸어 말하자면 대화의 즐거움을 아는 것이야. 대화의 즐거움을 알려면 기본적인 말수는 필요할 테지. 기본적인 말수가 충족되어서 말을 하거나 말을 참거나를 자유자재로 하게 될려면 그렇게 되기까지 방법은 하나야. 딱 하나. 바로 타석에 많이 들어서는 것! 타율은, 답답하든 형편없든 아무래도 괜찮아. 말수만 그런 게 아니라 꿈도 똑같아. 원리는 같다고. 적극적이어야 하는 이유도 그렇고. 그동안 사겼던 친구들을 떠올려 보면 한결 좋겠다. A를 만나면 녀석이 80퍼센트를 말해. 그래도 좋고 재밌으면 친교는 지속되는 것이고, 그게 아니면 커피포트는 아닐지라도 서로 갈길 가는 거지. 그런데 B를 만나면 녀석과 나는 50 대 50이야 말수가. 서로 잘 맞아 잘 통하고. 가장 이상적인 경우지. 그런데 흔치 않은 사례로 C를 만나면 내가 90을 말해야 하네. 그건 괜찮아. 왜? 왜냐하면 친구니까. 그런데 녀석이 좀 드문 사이코패스 스타일이야. 사람 좋은 사이코패스도 있고, 성격 쾌활한 사이코패스도 있고, 의롭고 불의를 못참는 사이코패스도 있을 꺼야. 단지 굉장히 어둡거나 비관적이고 막 그런 기운 같은 게 느껴지는 건 꽤나 떨떠름하지. 그런 C가 있다고 가정하면 친하긴 하지만 말이 잘 안 섞이는 데도 불구하고 내가 90을 말하고, 녀석은 나머지 10을 그것도 단지 다 기분 나쁜 댓글처럼 말하네? 아 그러면 정말 답답하지. 많이 답답해. 그래도 친해지고 접어주고 꺾고, 으쌰으쌰 어울리면 괜찮긴 괜찮아. 성격이란 게 그래. 팀원들끼리 팀장 도착하기 전에 쉬쉬 하면서 정보 공유하는 거. 그 인간 오늘 기분 어떠냐고. 타고난 천성을 어떻게 바꾸겠나. 까칠한 연예인 선배 누가 떴다, 그러면 막 그러겠지. 야 야 모른 체해 떴어 떴어 피해 피해, 그렇게. 성정과 더불어 말수가 그래. 남을 웃기고 싶은 능력을 많이 시도하고 연습해야지만 어느 층위에 오른다는 것과도 비슷해. 생각해 봐. 얼굴이 다비드네? 말 없어도 괜찮아. 목소리가 끝내줘? 말수가 없어도 막 기다려지고 기대돼. 고대한다고 그의 말을. 아니면 돈이 많거나, 아는 여자가 많거나, 뭔가가 있어. 그러면 말수가 없어도 돼. 그게 아니라 그냥 그만그만 하다, 그러면 기본적인 말수는 필요한 법이야. 다비드고 나발이고 사람은 마음이 중요하지 그게 뭔 소리냐, 난 아니다? 나는 절대 아니다? 나는 냉철한 이성으로 그 어떤 유혹에도 꿈쩍하지 않는다? 글쎄요! 평생 싸워서 한번도 져보지 않았다야 뭐야, 나는 그 어떤 절세 미녀라도 단 10분이도 모두 꼬실 수 있다야 뭐야. 자신감, 중요해. 열? 필요하지. 그런데 그런 건 영 아닌 것 같네. 그러면 그건 너무 뻔한 거짓말이라서 일부러 그럴 리는 없을 텐데, 하면서 뭘 노리는 의중인지 그 속셈이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을 꺼야. 제일 간편하게 '관심 없어' 라고 할 수도 없을 테니. 한번 평생 듣는다고 가정해 보세. 사는 동안 평생 내내 들어야 한다 라고. 누가? 내가! 무엇을? 바로 눌변을. 즉 잔소리를. 말의 매체인 목소리, 말의 내용인 그이의 관심사, 말이 듣기 좋은가 라는 말솜씨, 모두 최상이면 좋겠지만 그게 어디 말처럼 쉽겠나. 그분을 어디서 찾고 어떻게 만난대니? 있으면 친구가 소개시켜 주겠니, 지가 만나지. 안 그래? 나 같아도 그러겄다. 당연하지! 고칠 수 없는 그이의 습관을 평생 함께 해야 한다? 말이 많기로는 그 어디 가나 둘째 가라면 서러울 지경인데 타율은 바닥인 양반과 음 뭐 함께 할 수 있어. 가능해. 돈을 번다는 것이 결코 쉬운 게 아니거든~! 그래도 할 수 있어. 얼마든지. 그런데 그 양반이 상전이 아니고 마누라네? 어쩜 좋니 아 글쎄 남편이네? 50점을 이상으로 봤을 때 허영 지수 0이랄지 허세 지수 100이신 인재와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낸다? 그땐 애니메이션 주인공이 되는 거지. 별수 있나. 상상해 봐 봐. 수증기가 나온다 나온다. 귀에서 코에서 귀에서 코에서. 기적 소리가 울린다 울린다. 희미하게도 아니고, 삑─삑─! 한 번 더, 삑─삑─! 기적 소리는 멈추지 않는다 않는다. 간다 간다. 부글부글 부글부글. 때로는 눈에서 레이저가 나갈 수도 있다 있다. 부글부글 부글부글. 커피포트가 끓는다 끓는다. 눈을 지그시 감고 고개를 젖힌다 젖힌다. 하늘이 빙빙 돈다 돈다. 오오, 얼굴이 빨개진다 빨개진다. 뚜껑이 열리는구나 열리는구나. 아아 그분이 오셨네 오셨어. 이런, 젠장! (딱) (휴) 바로 그거라고! 난 말수 없는 사람이 좋아, 그래서 우정은 사랑으로 바꼈어. 처음에는 좋아. 중간도 좋아. 계속 좋았으면 좋겠어. 그런데 언제까지? 그러므로, 혹시 나중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왜 나는 그때 그렇게 느꼈을까 내가 바보처럼 대체 그때 뭔 생각을 한 거지, 라고. 어떤 상황에 무엇을 말하고 어느 만큼은 빈말도 하고 떠볼 줄도 알고 때로는 말을 돌리고 가로채기도 하고, 그걸 알아야 그게 가능해야 말을 참을 수도 있고 진정한 대화의 즐거움을 알게 되는 것일 테야. 가령 말이야, 거의 대답만 했을 뿐인데 남자가 여자가 막 나 좋다고 환장하는 일, 불가능하지는 않아. 그건 가능하다고. 그거야. 그거라고. 어른이 되면 무엇보다 대화의 즐거움이 삶에서 차지하는 영역이 얼마 만큼인지를 알게 되거든. 대화의 즐거움, 그것의 첫 번째는 일단 최소한의 말수고.
실전으로 말수가 늘기도 하지만 때로는 어떤 계기로도 말수가 최저점을 넘어서기도 하지. 예를 들면 어떤 회사에서 장기 프로젝트를 끝내면서 뭔가를 깨달았다거나, 외국으로 유학 가서 공부를 했다거나, 20대에 군생활을 했다거나 그런 일들. 그처럼 실전과 계기가 아니라 좀 더 이론적으로 접근하고 싶다? 가능하지. 방법이 있어. 그것은 최저점의 말수에 도달하기 위해서 최소한의 간결한 글과 말을 규칙적으로 습득하는 것이지. 예를 들면 뉴스, 기사, 고전문학, 인문교양서. 흥미 위주의 인터넷 기사나 텔레비전 인기 프로그램과 재밌는 소설도 좋지만 말수라는 관점에서만 보자면 그보다는 가장 체계적인 글과 말만 엄선하는 게 좋겠지. 뉴스가 그래. 뉴스는 하나의 사안이나 사건과 상황에 대해서 최소한으로 설명하거든. 더 이상 압축할 수 없을 때까지 압축해서 나온 결과물이 그것이야. 바로 그 점이 중요하지. 신문기사 역시 그렇고. 그렇지만 그 가운데서 잘 골라서 받아들여야 할 테고. 그래. 어쩌면 최고 단 하나만 골라야 해. 시간이 펑펑 남아돌지 않는다면 말이야.
그렇지만 이브는 누가 봐도 세련된 교양미를 간직하고, 빼어난 지성이 돋보이고 미모도 무난하니 괜찮기 때문에 다른 방법을 모색해 볼 수도 있어. 그건 바로 내가 보유한 메타데이터의 양을 늘리는 방법이야. 아직 내 안에 입력된 정보의 총량이 살짝이랄지 턱없이-랄지 부족하기 때문에 타고난 수다꾼이 아니라면 말수가 부족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치라고. 그러니 방법은 뭐겠어? 꼭 동기 부여 강연회에 가지 않아도, 인터넷으로 스탠드업 코메디를 찾아보지 않아도, 말수가 없다는 고민을 어딘가 인터넷 공간에 적거나 혼자서 심심하니까 '길고양이 찾아오게 하는 법' 같은 검색을 하는 것도 좋긴 하지만, 만약 새로운 방법을 택하겠다면 시간을 벌어야지. 지금 한창 젊을 때 메타데이터의 총량을 늘리고, 양질의 정보를 받아들이고, 좋은 그림을 보고 아름다운 음악을 듣고, 내가 가진 재능이 어디까지고, 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나중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 내 음험한 재간은 어떻게 숨겨져 있을까를 고민해 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란 것이지. 적당한 말수가 가능하지만 조용조용히 말을 하고 말을 주로 듣거나 말을 참는다는 것은 발언권이 왔을 때, 내 기예가 시험대에 올랐을 때, 내가 정말 이 분야로 계속 나아갈 것인가 그것에 자신감을 갖고서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예스라고 할 수 있을 때, 적당한 말수가 가능하지만 그것을 요령껏 조절한다는 것은 인생의 풍미를 더하는 데 도움이 되면 도움이 됐지 결코 손해볼 일은 아니라네. 3부 리그에서는 일단 말수가 많고 많이 뛰면 주전도 되고, 작게나마 인기도 얻어. 학교 다닐 때 보면 그렇잖아. 그때 반짝하던 친구들이 1부 리그에서도 반짝하더라, 그건 다른 얘기고.
큰언니가 혹시 그런 얘기하지 않던? 큰언니가 막내 남동생한테 너는 요가든 테니스든 육상이든 뭔가는 꼭, 반드시 하나 해야 된다, 그래야 나중 좋다고. 그런데 둘째가 큰언니한테 물어봐, 왜 그래야 하냐고. 그러면 큰언니는 말문이 막혀. 이유 없다고 하지. 화를 내거나 화제를 바꾼다고. 알긴 아는데 잘 모르니까 그래. 기본적인 말수는 있는데 엄청 많은데, 요점에 관한 말수는 없어서 그래. (몸짓 똑-똑-똑!) 큰언니한테 혹시 이래서 그래야 하지 않을까 라고 넌지시 물어보면 큰언니는 완전 좋아하겠지. 내 말이 그거라고, 바로 그거라고 (손가락 딱) (쉭쉭쉭) 하면서! 큰언니는 어디서 그 얘기를 듣긴 들었고, 자리를 옮겨서 동생에게 그 얘기를 해줄려는데 잘 생각이 안나는 거야. 큰언니...는 모르겠고, 젊은이가 원숙한 어른이 되면 상당한 정보가 쌓이니까 알게 될 꺼야. 와~ 반세기 동안 시간 낭비 엄청나게 했다고. 시행 착오 엄청나게 겪었다고. 실패와 이별은 왕왕 있었던 게 아니라 항상 함께 했다고. 사람은 로봇이 아니지만 몇 가지는 반드시 로보트처럼 해야만 나중 인생에 도움되는 게 몇 가지가 있어. 바로 그게 큰언니가 하고 싶었던 말일 꺼야. 예를 들어보자구. 체스나 바둑의 신동은 아니었지만 그것을 좋아하고 중간 정도 재능은 있어. 그럼 하루에 한 판, 일 년에 몇 시간, 나중 언제가 되면? 그거야. 바로 그 꾸준함. 무엇이든 불공평함은 존재하기 때문에 그 간극을 노력이나 말수나 실패의 양과 꾸준함과 사랑의 고결한 퀄러티로 메꾸는 거야. 지금 당장은 주위에 멋진 남자도 있고 꿀벌도 윙윙 거리고 파리도 꼬이는 그녀가 멋져보이지만, 나중 되면 차라리 그때 그래서 더 나았네 그럴 수도 있어. 당시 외톨이가 오뚜기를 거쳐서 지금 행복이든 인기든 환희든 삼류로 만족이든 고르기만 하면 되거든. 당연히 나도 그랬고 말이야.
지금 말수가 적다, 꿈이 없다, 소원도 없고 무언가를 기원하지도 않고 재주는 허접하고, 나는 실눈 뜨며 친한 재간둥이 친구를 부러워만 한다? 지금 그렇다고? 괜찮아. 괜찮다네 이브양. 그 대신 먼 곳을 지망하면 돼. 안정된 행복과 유망한 희망을 상상할 줄 알면 된다고. 변변치 않을지언정 나를 알아가면 된다고. 내 안에 천사도, 괴물도, 마법사도, 좀비도, 악마조차도 다 들어있는 법이니까.」
아마데우스는 처음에 이처럼 길게 말할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말을 하다 보니 꼭 누군가 자기를 조종하는 것처럼 그렇게 말이 술술 나오게 되었다. 그걸 글로 썼다면 공책을 빼곡히 채웠을 텐데. 아마데우스는 객관적으로 따져볼려고 생각했을 때 자기가 봐도 그래도 좋은 내용을 담은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깜찍한 이브의 표정은 꼭 그렇지는 않았다. 물론 처음에는 좋았다. 그러나 말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점차 그 표정은 아아! 오오, 저런! 용케도 이브가 착해서 그렇지 막 짜증을 내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그 뿐이겠나. 마침 이브에게 전화가 왔고, 이브는 3 대 3 소개팅을 하러 간다고 했다.
「오, 그래? 모처럼 신나는 일인데. 축하할 일이야. 어떻게 나도... 나도...」
「네? 오빠가 뭘?」
「아니 그게 아니라 혹시 착오가 생기거나 그러면 안된다는 말이지.」
「오빠 그럼 나 먼저 갈께. 지금 바로 오라는데. 나중에 봐. 오늘 재밌었어. 좋은 얘기 고마워. 그럼.」
청컨대 이브의 앞자리에 앉아야 할 남자분의 대타로 아마데우스가 등장하길. 그러나 그런 어이없는 상상은 실현될 수 없다. 불가능한 일이다. 그건 꿈이고 현실은 이랬다. 아마데우스는 이브 때문에 먹지 못하고 숨겨뒀던 햄버거를 꺼냈다. 그는 경기가 끝난 축구장에서 쓸쓸히 혼자서 햄버거를 먹었다. 우걱우걱! 그것도 콜라가 아닌 우유와 함께. 뭐 먹을 만했다. 그러나 끝까지 먹지는 못했다. 그는 꾸역꾸역 참고 참고 먹다 먹다, 채 반틈을 먹지 못하고서 햄버거를 쓰레기통에 쳐밖아 넣었다. 그래 가라 가 다 가라, 막 그러면서. 이런 젠장, 그러면서!
20
아마데우스는 어느 날 오전에 인터넷에서 여러 동물들을 검색해봤다. 동물원까지 직접 가기는 귀찮고, 집에서 빈둥빈둥 인터넷을 통해 구경하는 것으로 동물을 관찰하고 싶은 욕구를 해소했다.
그런 후 그는 찻집 스타벅에 갔다. 카페라테 한 잔을 시켰다. 주문할 때 이름은 아마데우스라고 했다. 커피가 나왔다. 아마데우스님! 카페라테 나왔어요. 아마데우스는 자기를 부르는 점원의 노래하는 듯한 밝은 목소리를 들으니 한결 기분이 좋아졌다. 이제 새로운 소설을 위한 글만 잘 써진다면 분위기 끝내줄 것 같았다. 그렇지만 역시나 아직 몸이 풀리지 않았기 때문인지 쉽게 발동이 걸리지 않았다. 그는 집으로 돌아왔다.
아마데우스는 집에 도착했다. 집으로 오면서 사온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그는 TV를 봤다. <나 혼자 산다>라는 제목의 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혼자 사는 유명인들의 일상을 예능과 다큐멘터리 방식으로 인문주의와 코메디를 결합해서 시청자들의 동질감을 이끌어낸다는 목적으로 보였다. 괜찮은 프로그램이긴 한데 그는 예전에 그걸 봤을 때 그리 오래 가지 못할 거라고 예견했다. 그러나 그의 예측은 여지없이 빗나갔다. 그의 추측은 제대로 틀린 것으로 증명됐다. 인기가 꽤 오래 지속되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그는 충분히 좋은 정도의 훔쳐보기 성격의 대상으로 똑같은 사람이 아닌 동물이 보고 싶었다. 그래서 채널을 돌렸다. 동물의 세계로. 나왔다. 침팬지, 고릴라, 여우, 곰, 양, 늑대, 하마, 다람쥐, 당나귀. 아마데우스는 다시 기분이 좋아졌다. 그러나 그래 봐야 10분 20분이었다. 금새 지겨워졌다.
그는 낮이 되어 또 정해진 시간표나 있는 것처럼 다시 찻집으로 갔다. 이번에는 바나나-망고를 선택했다. 이름은, 이름은 우디라고 했다.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오전에 아마데우스님 이라고 호명했던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만일 그녀가 있었다면 그녀는 뭐야 저 인간 아깐 아마데우스였는데 지금은 우디라고? 뭐하는 놈팽이길래... 혹시라도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더불어 어쩌다 눈빛이 마주치고 찌르르 전율이 일어서 그녀가 아마데우스 아니 우디에게 반해버리기라도 한다면?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녀의 눈동자가 약간 흔들린다면 엑셀 파일 하나 만들어서 스포츠 복권처럼 막 그러면서 인연이 사랑으로 발전할 수도 있을 텐데. 그림 그려서 보여주는 것도 고전이긴 하지만 그는 그림은 못그리니까. 아무튼 오전 그녀는 없었다. 그래서 아마데우스는 주문했다. 나 우디요 라고. 왜냐하면 그는 언젠가 우디 앨런의 친구가 방송에서 우디를 놀리면서 그는 허당이라고, 그는 요즘 부쩍 허풍이 심해졌다고, 그가 계속 이렇게 무리한 가짜 웃음을 강요하는 행동 방식을 지속한다면 나중 그의 묘비명에는 이렇게 씌여질 것이라고 놀렸던 장면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의 인생은 불행했다나 뭐라나.
차가 나왔다. 우디님~ 네! 그는 살짝 기분이 고조되었다. 사는 게 그렇다. 아마데우스도 아니 우디도 꼬마 때부터 엄청 심심해했다. 이미 어린이일 때도 심심해, 재미없어, 라는 말을 정말 심심치 않게 하고 살았다. 다른 애들보다야 비교적 말로 하는 표현은 훨씬 덜 했을 수도 있지만 말이다. 아마 그러지 않은 사람보다 그랬던 사람이 우세할 것이다. 언제나 어디서나 곧 누구나. 베팅은 자신 있다. 당신도 기억나지 않소? 언제, 어디서, 누구와 무엇을 얘기하다가 그대의 존함이 <기쁜>이라면 기쁜이 말한다. 항상 심심해요, 언제나 지루해요, 뭘 해도 재미없어요 라고 하면 상대방의 반응이 어땠나? 당연하다. 웃는다. 웃는 게 정상이다. 가짜 웃음이 아니라 진짜로 웃는다. 활짝! 빵~끗하며. 그런데, 만약 웃지 않고 오히려 반대로 역정 비슷한 걸 내는 그분이 당신의 친구라면 녀석은 푼수다. 녀석은 촌닭이다. 나이는, 머리카락은 송송 빠져가는데 정신연령은 여전히 골목대장이다. 아니다. 만년 골목대장 지망생이다. 언제까지라도. 원래는 말이다 웃어야 정상인데, 그냥 썩은 미소라도 살짝 비추는 게 정상이거든? 그런데 반응이 이상해. 이상하다고. 그건 완벽한 마초인데 허세, 고지식함, 자존심, 꽉 막힌 성격, 허풍, 연애 경험, 견제랄지 심한 질투등 어떤 지수가 비정상적으로 높거나 낮은 거다. 그걸 뭐라 하느냐, 모르겠다. 완고함? 개성? 약점? 아마도 속 좁은 마초의 특징에서 그 유형 같다. 묻지마! 삐리리리 삐리리리 성장 환경이 예상되는 듯 하니 그만 넘어가자. 정신분석 학계에서는 그게 불문율이라고 하니까. 사람이야 호인이고 인성 좋고 성실하며 친한 친구일지라도 말이다. 소개시켜줄 친-여동생은 없지만 말이다. 이건 더 확실하다. 더블 베팅! 같은 이치로 아는 오빠 있으면 물어보자. 오빠는 왜 연애 안해 왜 결혼 안해 라고. 그러면 그 오빠는 그런다. 아직은 뭐 지금은 그렇고 나중 좋은 차 타고 놀러다니면서 조금 즐기다 나중 때 되면 할려고, 라고. 이때 역시 보통 여자라면 해맑게 웃어야 정상이다. 그렇지만 뭘 좀 모르거나 허영심 지수가 극도로 높다랄지, 어느 사심이나 트라우마나 혹여 환멸이든 무엇 때문에 간혹 웃지 않는 숙녀도 있을 것이다. 드물게. 각자 개성은 다르니까. 즐거움의 진폭이 잔잔하면 누구는 그런다. 카페에서 일행과 차 한 잔 마신 걸 가지고 신나게 놀았다고 한다. 그렇다. 아마도 여자다. 어쩌면 아줌마다. 생활이 단조롭고 재밌는 일이 별로 거의 없는 듯 하다. 그러나 우리는 차만 마셔서는 만족할 수 없다. 폭삭 망하더라도 흥미로운 기대와 놀라운 예감을 품고 클럽에 가야 한다. 클럽 대신 딴 걸 할 수도 있다. 각자 적어도 뭔가 하나씩은 있다. 진득하니 1순위가 지속될 수도, 자주 바뀔 수도 있다. 취미만 그런 게 아니다. 새로움이 바닥나면 장비를 교체할 수도 있다. 교우 관계가 일관된 경우도 있고, 그것을 새로 개편하는 게 좋을 때도 있다. 그러지 않고서 새로운 인생을 바란다는 건 실례니까. 뭘 걸어야지 또는 하나는 잡고 있어야지 나중 뭔가 남아도 남는다. 살다 보면 부부가 남남이 되기도 하는데 단짝이 문제겠나. 그게 인생이다. 바뀔 때 바뀌더라도 미래는 몰라도 현재에 최선을 다하는 것! 그냥 조금 그런 시늉이라도 내는 것! 그것이 즐거운 인생을 위한 자세고, 행복한 마음에 이르는 태도다. 주어진 카드 패를 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다. 그것이 준인지 로버트인지 아마데우스인지 우디인지, 아니면 조마조마인지를.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고 있다. 달님은 벌써 나타나셨다. 별님도 대기중이다. 젊음의 무지개는 투명 무지개다. 하다 하다 삼류 소설 안 팔리면 동화라도 써야 할 판국이다. 재미없으면 어떤가. 일이든 놀이든. 손해볼 꺼 없다. 일기장 제목을 천국으로 바꿔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 천사님 커피 나왔어요? 왜 안되겠나. 그런데 천사 하면 어쩔 수 없이 그 무언가가 연상되는 건 혹시 나만 그런가?
그건 그렇고 우디는 저녁이 되자 마침내 목적지를 정했다. 바로 신통하다고 소문난 작명소를 알아낸 것이다. 적당한 곳을 물색했고, 그는 그곳으로 찾아갔다. 과연 그곳이 용한지, 그 도사가 어떤 새로움을 안겨줄지, 아니면 그분이 돌팔이일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1
나는 심심함에 직면했고, 왕성한 지적 욕망이 시들해졌다. 권태의 노예가 되기 전에 명시적인 행동을 취해야 했다. 나는 특별한 야심은 없었으나 어느 돈키호테식 모험가와 신선한 우정의 상아탑을 쌓게 되는 숙명을 피하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세상 사람들은 청춘의 시기를 너무 사전적으로만 인식하는 모범생을 닮은 습성이 없지 않아 있는 듯 하다고. 그 어떤 고충과 불행과 불미스러움과 비바람을 겪더라도 사는 동안은 청춘이다. 복권에 당첨되고 사랑을 하며 어른으로서의 자세를 잃지 않다가 인생의 황혼에 가까와 지더라도, 그래도 사는 동안은 청춘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왜, 그렇게 생각하면 바보라고 손가락질이라도 받는단 말인가. 세상살이가 어렵다고 사람들이 그 정도로 모질거나 꽉 막힌 건 아니다. 대체로 사람들은 어질다. 재밌다. 순수하다. 착하다. 그래서 나는 단어의 뜻을 사전적으로만 인식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젊은 날의 진정한 매력은 떠나는 것이다. 행동하는 것이다. 쾌락의 탐구도 지성의 추구도 좋다만 인생은 한 번이다. 일생은 오직 한 번 밖에 없다.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진리다. 따라서 나는 뭔가 행동을 취해야 한다. 그러는 게 맞는데, 그런데 나는 내 대신 인생을 즐기는 도전가들의 활약상을 인터넷으로 TV로 책으로 구경하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었다.
나는 이렇게 앞뒤가 안 맞는 공상을 하고 있었다. 그 순간 전화가 걸려왔다. 에단에게서. 에단은 도시인이다. 에단은 파란색을 좋아한다. 에단은 촌스러운 영화를 좋아한다. 그리고 그는 간혹 이런 말을 한다. 인생은 스크루볼 코미디일까 라고. 그러나 그 다음이 없다. 딱 거기까지다. 뭔가 솔깃한 다음이 있을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다가 딱 멈춘다. 그래서 녀석이 지금껏 수많은 사랑에 실패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도 에단은 옷을 잘 입는다. 그래서일까? 녀석에게 멋있다 라고 하면 그는 겉으로 싫어한다. 지겹다 그거지. 그래도 항상 그 말을 듣고 싶어하는 듯 하다. 게다가 에단은 말도 잘한다. 어디 그 뿐이겠나. 그는 예술적 취향도 더없이 근사하다. 햐여튼 안목 하고는, 그런 말 그런 생각과 정반대되는 지점 어딘가에 두둥실 떠있는 남자다. 그런데 에단은 기분의 편차가 크다. 들쑥날쑥하다. 겸손하고 따뜻하다가도 뭣 때문인지 웬 뚱딴지 같이 자기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면서 휙 집에 가버린다. 그래도 다 어렸을 때 얘기다. 이제는 수많은 여심을 자극하고 또 자극하는 세련된 남자로 성장했다. 귀여운 자수가 있는 티셔스를 즐겨입다가 하루는 말끔한 수트를 빼입고 나타나서 사람들을 놀래켜주는 재주는 여전하다. 그런 에단이 나를 찾아왔다. 왜 왔을까, 왜 하필 나를 찾아왔을까? 그건 차차 들어보면 알게 될테지만 어쩐 일인지 얘와 딱 통화를 하고 보니 이미 저 100미터 전방에서 이쪽을 보면서 전화로 얘기하고 있었다. 얘 뭐야, 이건 뭔 긴장감이고. 혹시 이건 유행인가, 나만 몰랐나? 어쨌든 나는 에단을 데리고 근처 한적한 공원이나 조용한 카페에서 차분히 얘기할까 했는데 녀석은 싫단다. 우리 집에 들어오겠단다. 꼭 그래야 한단다. 지가 뭐 내 여자친구도 아니고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안돼 라고 딱 거절할 수도 없고.
「스무살 초반 이전에는 인문-교양서나 소설 같은 온전히 일관된 논지로 완성된 글과 미술과 고전 음악에 대한 주입식 지식만 습득했고, 스무살 초반 이후에는 그것과 담을 쌓은 채로 살며 인터넷의 짧은 기사와 TV와 어떻게 하면 비관되게 냉소적으로만 만사를 볼 것인가 라는 원리로 사고 체계가 돌아가는 사람과 대화를 한다라... 그 대화는 기쁘고 즐겁고 재미있을 리가 없을 꺼야. 사람들 사는 방식이 절반은 그와 같아. 사는 방식은 대게 똑같지. 일하고, 퇴근하고, 놀고, 쉬고, 나는 왜 하위문화로 만족해야 하는가 라는 생각을 저분은 한 번쯤 해 본 사람일까 추측할 수도 있고. 이심전심은 나쁜 게 아니니까. 그건 좋아. 거기까지는 예쁘고 평화로워. 아름답고. 그런데 사람들 사는 방식은 유별난 거 빼고는 거의 비슷하지만, 사는 방식이 아니라 사고 방식은 천차만별이야. 눈에 보이지 않는, 어쩜 오래 만나고 사겨 봐야지만 알 수 있는 사고 방식! 말과 생각이 정확히 악성 댓글과 똑같이 일치하는 사람, 있다구. 이런 유형의 인물과 대화를 하면 툭툭 끊기고, 중간 중간 맥락 없는 뭔지 잘 이해할 수 없는 논외의 후렴구가 붙는 것 같아. 너의 논리와 나의 의사가 큰 불협 화음은 일으키지 않도록 대화를 이어가는 것이 조금은 고통스럽다고나 할까. 힘들고. 거북하고. 그냥 참고 견디는 거야. 버틸 수 밖에. 같이 보내는 시간을 대충 때운다는 느낌으로. 원래 일상의 시간이란 실제로는 하찮은 시간 보내기가 태반이야. 글로 쓰고 읽히는 것처럼 내 시간과 너의 시간과 우리의 시간이 그 하나 하나가 모두 고귀하고 소중하다, 그런 말은 꼭 거짓말처럼 보일 만큼. 인생의 커다란 범위는 시간 낭비라고. 어릴 땐 사람들은 왜 그렇게 시간 낭비를 일삼을까 라는 생각을 많이 했을 테지만 나는 앞으로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시간낭비를 해야 할까, 까지는 내다보기 어려워. 얘기가 조금 지엽적으로 흘렀는데 돌아와서, 직감이 나서지 않아도 되고 직관도 늦어도 괜찮은 것의 순위를 검토해 볼 필요가 있어. 첫째 생활 수준, 둘째 사는 방식, 셋째 사고 체계. 바꾸어 말하자면 얼마나 넉넉히 사느냐, 어떻게 지성을 추구하고 무엇을 하며 사느냐, 어떤 생각을 하고 구사하는 어휘의 총량과 층위가 어떠하며 기본적인 도덕 관념은 어떤가. 이 가운데 제일 중요한 게 사고 체계 즉 인성이란 걸 부인하는 사람은 없을 꺼야. 사적 담론이 아닌 이상은. 그런데 살면 살수록 나이가 들수록 그 셋 가운데 제일 중요한 게 첫째 곧 생활 수준이란 걸 알게 되지. 왜 그래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그러다 사람을 만날 만큼 만나고, TV를 볼 만큼 보고, 세상을 알 만큼 알고 나면 그때는 제일 중요한 것이 다시 저 셋 가운데 셋째인 사고 체계라는 걸 알게 되지. 딱 태어날 때 결정되어 평생 바뀔 수 없는 그것. 봐 봐, 예를 들어보자고. 졸부에 사이코패스, 허당은 아니지만 사고 체계는 바꿀 수 없다는 점. 가난뱅이일 때나 거부일 때나 사고 체계의 큰 변화는 없어. 내가 봤을 때는 소시오패스는 10명 가운데 적어도 1명은 되는 것 같아. 학계에서는 1인가 5퍼센트라고 하지만 새로운 용어가 필요하든 어쩌든 사이코패스는 그렇게 썩 드물지는 않아. 그래서 일반적인 사이코패스는 급이 다른 사이코패스에게 명함을 못내미는 게 맞지. 하지만 어디 그럴까, 고개 숙인 사람이 하나 있으면 어깨에 뽕 들어간 사람도 하나 있는 법. 그러나 그렇게만 본다면 것도 너무 한쪽으로만 기울어. 술꾼과 정신병자는 놔둔다 치고 10명 가운데 1명일 수도 1퍼센트가 되기도 하고 그 어떻게도 되는 나머지 개념이 어디 좀 많나? 테이커, 극단적인 이기주의자, 보수의 보수의 보수, 희대의 사기꾼, 범죄자, 황금만능주의자, 패배주의, 납득이 어려운 정치 성향의 소유자(왜냐고 묻지 말자), 방관자, 변절자, 두더쥐, 위선자, 계속 읊다가는 그러다가는 아마도 결국 악마만 남겠군 그래. 얘기가 그렇지. 그렇게 된다고. 그 다음은 혹시 이와 같지는 않을런지 궁금하군. 그처럼 당도한 곳이 어쩔 수 없이 지옥이라면 그 지옥이 재미있기를 누군가는 바라지 않을까, 정말 그런 개인적 추론의 끝을 그처럼 요점을 간추리고 싶지 않을까 라는 것. 뭐라고? 그만 하라고? 안 그래도 나도 그럴려고 했다네.
있잖아. 그런데 말이야 세월이 지나서 한 여자가 여성잡지1에서 여성잡지2로 완전히 넘어가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는 일이 있지. 아닐 꺼야 그럴 꺼야 좋았던 시절을 떠올리고, 추억을 회상하며 신뢰를 잃지 않고, 말은 하지 않지만 그이를 사랑한다, 하지만 갑자기는 아니지만 여성잡지2의 잠재적 독자층이 되니까 알게 돼. 마침내. 내 사랑이 바로 내가 여성잡지1을 정기 구독하고 있을 때 제일 기피하던 남자였다는 끔찍하고 발설하기 두려운 사실을. 후루룩 쩝쩝, 싸이코패스, 수준은 아아, 능력은 그만그만, 치마만 둘렀다 하면 응응응. 처음부터 백마 탄 왕자님을 바라지는 않았을 테야. 그녀는 착하니까. 일관된 애정이면 그런대로 만족했다고. 그런데 아니겠지 아니겠지 했는데 딱 지금에 와서 보니 정확히 그 스타일이라니, 맙소사! 가장 전형적인 그 유형이라니, 세상에 이 일을 어쩌면 좋니! 그런데 그 사랑의 시작도 딱 두 가지로 나뉘어. 첫째, 여자가 먼저 꼬리치며 유혹한다는 점. 둘째, 남자가 날이면 날마다 쫓아다니며 구애하고 귀찮게 하며 착각하게 만들고 최면을 걸다 급기야 세뇌시키다 결혼에 골인. 첫번째는 흔한 특징이니까 넘어가고 문제는 둘째야. 그녀가 바라고 원한 것은 어떤 이상적인 남자가 아니라 끈질긴 연모, 형식적일지라도 난 혹시 전생에 공주가 아니었을까 라는 몽환적 공상에 빠지게 만드는 의전, 사랑의 드라마틱함과 영화로운 연애 감정보다 공식적으로 존중받는 느낌이 전부였으니까. 하루에 몇 번 전화하고, 날마다 집 앞에서 기다리고, 퇴근하면 난 귀찮고 싫은데 저만치 저 남자가 보이면 옆에서는 수근거리는 동료들의 성화가, 그녀는 그냥 꽃 들고 쫓아다니는 남자라면 당시 멋졌던 그이나 지금 못말리는 이 인간이 꼭 아니었을지라도 그녀는 그 누군가에게라도 넘어갔을 꺼야. 꺼뻑~ 잠시 조금은 황홀하게. 아, 내가 말이 길었지? 원래 다른 사람을 만나서 이런 저런 얘기를 늘어놓을려고 했는데 다 바쁘대. 전화를 안 받거나. 그래서 뭐 어쩌겠니. 털어는 놔야겠고. 이렇게 된 거야.」
「우리 에단이 말을 참 많이 하고 싶었던 것이로구나. 아 이거 봐 이거 봐, 귀에서 피가 날...려다가 그냥 간지러운 거였네. 음. 일부러 코피를 낼 수도 없고, 아 것 참 난감하구만 그래. 잡은 물고기에게 먹이는 주지 않는다는 논고, 들어도 들어도 뭐 새롭네. 그래. 그런데. 너! 차였니? 어? 또? 아 이 친구 이거 이거 정말 못말리겠구먼. 너 일부러 그렇게 콧대 높은 여자만 쫓아다니고, 막 함부로 대하고 차이고, 설마 그거 즐기는 거 아니냐? 정말 그런 것 같은데. 아 증말 여기 또 있었구먼. 이건 루저 마인드가 아니라 뭐지? 유명한 연애술사를 찾아가서 상담할 것이지 왜 날 찾아와서, 아 진짜 답답허다. 사랑이 뭐라고!」
에단은 역시 변함없이 못 말리는 친구였다.
나는 에단에게 선물을 안겨주면서 우리 집에서 내쫓았다. 실은 잘 구슬려서 그녀가 누구인지는 몰라도 다시 찾아가보라고 참 어렵게 다독인 다음 돌려보낸 것이다. 선물도 많이 줬다. 부드러운 송아지 가죽으로 만든 지갑, 휴양지의 모든 향을 품은 향수, 코뿔소 그림이 그려진 파란색 야구 모자, <엄마는 어쩌면 그렇게>라는 제목의 책 한권, 나는 에단이 모두 거절할 줄 알았다. 그런데 딱 그 반대였다. 아마 녀석이 하도 비련을 많이 겪어서 이상해진 것일까? 내가 다 무안했다. 그러나 준 걸 다시 뺐을 수는 없었다. 내가 다시는 너한테 뭐 주나 봐라 하면서 나는 녀석의 등을 떠밀어 도시로 보내버렸다.
하루가 참 힘들게 시작되었다. 난 왠지 놀림감이 된 듯한 기분 때문에 적잖이 꿀꿀해졌다. 직사광선에 잘 말린 새하얀 셔츠가 아닌 그늘에 대충 말린 속옷의 눅눅한 향취가 나를 꼭꼭 결박해버린 것만 같았다. 콕콕 숨겨져 있던 보석 같은 내 꿈과 희망을 에단이 모두 가져가버린 듯 했다. 저 파란 나라로. 그래서 내 꼼꼼함과 깐깐함과 탐미적인 신념과 신비로운 세상에 대한 동경심은 흔적없이 사라져버렸다. 현실은 내게 염치없었고, 나는 일상에게 야속함을 느꼈다.
2
하루가 시작됐다. 오늘은 오늘의 태양이 떠올랐다. 어느 날 갑자기 해가 사라졌다? 그런 일은 없다. 또 나는 초딩이 아니다. 게다가 내가 미래의 환상가가 아니란 것도 지당한 사실이다. 나는 집에서 모차르트의 실내악을 들으며 찰스 디킨스의 에드윈 드루드의 미스테리를 읽고 있었다. 조금 그랬다. 그래, 솔직히 말해서 재미없었다. 다른 차원의 격식은 느껴졌지만 좀 그랬단 말이다. 추리 작가 협회가 뽑은 뭐라고 하는 예찬의 소개 글은 심하게 과장법이 적용된 듯 했다. 나는 집에서 혼자 노는지 일하는지 잘 분간이 되지 않는 생활에 염증이 느껴졌다. 내 삶이 어딘가 궁색해 보였다. 때문에 나는 친구네 사무실에 놀러가기로 했다. 마침 내 노트북에는 윌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드라마도 준비되어 있었고, 최근 급속도로 친해진 친구의 이름도 윌이었다. 그게 끝이겠나, 나는 식품점에서 윌이라는 이름의 요구르트도 사 먹었다. 예언 분야를 떠난지 오래되었지만 여차하면 다시 예언을 남발할 준비는 항상 갖춰져 있었다.
나는 윌의 사무실에 도착했다. 나는 윌의 사무실이 예술가의 아늑한 공간일 거라고 예상했다. 그래서 말이 통하는 비비안과 내게 너무나도 호의적인 카르멘을 그날 새로 사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어리석은 환상을 조금은 품고 있었다는 것을 지금 고백한다. 그러나 그 장밋빛 기대는 여지없이 깨졌다. 윌의 사무실은 사람들이 많았고, 다들 고된 업무에 시달리느라 안색이 장난 아니었다. 두 명 중 한 명은 다크서클 아니면 꾸질꾸질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윌의 사무실에서는 잡담도 삼가는 분위기였다. 하긴 그분들은 일할 때 일하고 놀 땐 노는 분들이고, 나는 일할 때도 놀고 놀 때도 노는 놈이니까 당연한 거다. 그래서 나는 혼자 적당히 놀다가 나갈 생각이었다. 그렇게 혼자 노트북을 켜서 인터넷으로 책을 구경하다가 괜찮을 책을 하나 발견했다. 딱 그것만 주문하고 집으로 돌아갈려고 했다. 그러다 바로 그 순간 윌이 내 어깨를 짚으면서 마치 거짓말처럼 내가 주문할려고 했던 책을 내게 건네는 것이었다.
「자, 한번 읽어봐 친구. 그 대신 읽고 다음에 줄께, 라는 말은 하지 말아줘. 그건 너무 슬퍼. 긴 말 하지 않아도 알겠지?」
차가운 녀석. 하지만 눈치 빠르고 정이 많은 놈. 그 책의 제목은 '몇 년 20대 트렌드 리포트'였다. 내가 어떻게 느꼈을까? 그렇다! 기쁘고 희망찬 내일과 신비한 예감으로도 모자라서 유쾌한 사랑과 로맨틱한 떨림까지 감지했다. 더불어 어떤 막연한 성적 긴장감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지적 쾌감까지 날 마구 흥분시켰다. 그걸로 그치지 않았다. 그럴 리가 있나. 이 가슴 뭉클한 경탄 때문에 나는 젊어지는 묘약을 손에 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나는 선물 받은 책을 들고서 종종거리며 집에 돌아왔다. 손을 씻고, 차분하게 숨을 가다듬고 마음을 가라앉힌 후 책을 펼쳤다. 그러나 별 내용은 없었다. 20대의 가슴 뛰는 정열과 사랑을 총망라한 교양 서적인 줄 알았는데 그건 그냥 20가지 쇼핑 리스트에 지나지 않는 듯 했다. 20대의 긍정적인 에너지와 20대의 건강한 꿈을 알게 되면 당신도 지금 당장 이상의 날개를 펼칠 수 있을 것이다? 결과는 천만에요-였다. 이런, 젠장! 좋다 말았다. 그럼 그렇지. 괜한 기대였다. 헛된 몽상이었다. 몹쓸 바램이었고, 실망스러운 낙담이었다. 이건 마치 내가 설마 이런 뻔하디뻔한 성과를 절실히 원하기라도 했다는 듯이 어이없는 실소를 불러왔다. 역시 여론의 등쌀은 나와 먼 나라 얘기였고,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는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얘기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이 못마땅한 분위기를 뒤바꾸고 싶었는데 딱히 별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뾰족한 방법을 찾지 못한 채로 그날 하루를 뒤로 하고 꿈나라로 떠났다.
3
다음 날이 되었다. 내가 전날 무슨 꿈을 꾸었고, 아침에 어떻게 움직이고 무엇을 먹고 어디를 갔는지를 모두 밝힐 수는 없다. 그건 소설이 아니다. 블로그 포스트도 소셜 네트워크도 아니다. 아, 그건 소셜 네트워크와 가장 잘 어울릴 수도 있지만 다시 생각하면 꼭 그렇지는 않다. 왜냐하면 소셜 네트워크에는 멋지고 기쁘고 색다른 것 반틈에 다른 사람들이 올린 내용에 대한 내 의견이 반틈일 것이기 때문이다. 일상은 주로 이런 걸 일상이라고 한다. 쇠수세미, 박스테이프, 티 있는 선그라스, 식료품이 담긴 비닐봉지나 종이봉투, 미용, 빨래, 통장 잔고, 교육비, 카드값, 잔소리, 육아, 세탁, 청소와 세차와 쇼핑과 집안 사정, 일주일에 몇 번 운동하고 하루에 손거울을 몇 번 보고 면도는 하는지 안 하는지 그런 게 일상이다. 일상은 청소처럼 해야 할 일이 주를 이룬다. 재미없다. 지루하고 따분하다. 그러나 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게 일상이다. 그래서 일부 어른들은 한사코 철들기를 거부하신다. 그래서 극사실주의는 그냥 애들 시간표와 그것의 실천과 실패 같은 것일 수도 있다. 현대인의 일상은 아마도 다큐멘터리와 닮은 TV 예능 프로그램과 가장 흡사할 것이다. 때문에 나는 내 사생활을 구구절절 세세히 밝히지 않고 제일 중요한 사항만 추려서 알리고자 한다.
나는 내 피앙세와 연락이 되지 않았다. 죽 연락이 되다가 오늘만 연락이 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아울러 그녀를 피앙세라 불러도 괜찮은지 언제부터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는지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기구한 운명 만큼이나 그 사랑은 황금빛이요 세상은 화사한 분홍빛이라고 믿었다. 나는 피앙세와 많은 대화를 나눠 보지는 못했다. 그러나 나는 그녀를 속속들이 알고 있다. 왜냐하면 그녀는 내 손바닥 안에 있으니까. 그리고 그런 원리로 모든 여자들의 마음 또한 나는 정밀히 꿰차고 있다. 흥행 참패한 영화감독이나 삼류 희곡 작가는 모르긴 몰라도 날 만나면 그분의 인생은 나를 만나기 전과 만난 다음으로 나뉠 것이다. 예언이다. 아니다. 예언은 아니다. 추측이다. 다만 그분들이 진짜 만나자고 찾아온다면 그건 그때 가서 두고 볼 일이다.
여기까지는 기분 전환이고, 촌극이자 달콤한 분위기를 달구기 위한 잔꾀였다. 이제부터는 생각이 아닌 행동이고, 느낌이 아닌 성과, 허구가 아닌 실화가 펼쳐질 것이다. 그래야 한다. 그럴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아침부터 나는 낸시의 전화를 피하다가 피하다가 끝내 못 참고, 어쩔 수 없이 그녀와 다정한 통화를 나누었기 때문이다. 낸시는 수다쟁이니까. 그녀는 말이 많다.
낸시는 윌의 여자친구다. 그런데 윌은 그녀를 여자친구로 알고 있는데, 낸시는 그럴 의사가 전혀 없다는 게 문제였다. 그리고 낸시는 여배우 지망생이었다. 윌은 나에게 그녀의 헛바람을 빼주고, 자기를 과대 포장해서 그녀를 잘 설득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순진하게 윌의 애절한 요청에 나는 순순히 화답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낸시에게 지금 연예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PD를 소개시켜 줄 수도 있다고 큰소리를 뻥뻥 쳐 놨기 때문이다. 하긴 낸시도 애가 너무 착했다. 뻔한 거짓말도 그냥 곧이곧대로 다 믿어버렸다. 곧 그 뭔가는 내 잘못이라고만 할 수 없었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지금 이 마당에 내가 낸시에게 이렇게 얘기해 줄 수는 없었다. 윌은 누가 뭐래도 최고의 남자다, 두통-치통-생리통-복통은 물론 숙취마저 비켜간 신체 건강한 남성이다, 무엇보다 그는 지적 호기심이 특출나다, 그리고 그는 너를 그 누구보다 사랑한다 라고.
그래서 나는 낸시가 잃어버린 강아지를 시골 외곽에서 겨우겨우 찾아주었고, 사리에 맞지도 않게 멋진 영화배우를 한명 소개시켜준다고 했다. 내게 이상한 습관이 생긴 듯 했다. 그러나 그녀가 재촉하면 차일피일 미루기만 할 생각은 없었다. 나도 아는 삼류 배우가 있었던 것이다. 나는 뭐니 뭐니 해도 그들이 꿈꾸는 미완의 사랑, 그 애정의 줄다리기에서 빠지고 싶었다. 가뜩이나 재미난 일도 없고 심심한데, 더군다나 똑똑한 체 했는데 진짜 똑똑해졌다는 그런 황당한 일은 꿈도 꿀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홍당무도 꿈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윌을 위해서, 어디까지나 윌을 위해서 낸시의 마음을 돌리고야 말겠다는 생각을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남의 일에 정도가 지나치게 나선다는 뜻의 단어가 착~하고 떠오르지 않는다만, 나는 이미 이 일에 맹목적인 사명감을 덧씌우고 있었다. 벌써 그것은 내가 꼭 성사시켜야만 하는 존엄한 목표가 되었고, 때문에 나는 그녀 낸시를 쫓아다녀야만 했다. 사랑의 장르가 딱히 뭐라고 내 입으로 말하기 곤란한 바로 쫄랑쫄랑 쫓아다니는 사랑, 그녀의 시야에서 멀어지지 않는 사랑, 그녀가 고개를 돌리면 언제나 그이가 날 지켜보는 사랑을 누구도 아닌 바로 내가 대신 해야 하는 운명에 처하고 말았다. 따라서 나는 이제 큐피트의 화살을 몰래 어떻게 한다는 근사한 명화 속 행태가 아닌 직접 인간의 사랑에 개입하고, 도와주고, 조언하는 그런 이상한 마성을 간직한 사랑의 마법사가 되어야만 하는 처지에 직면하고 말았다.
4
내가 파악한 낸시는 평범한 여자였다. 낸시 뿐만이 아니라 원래 여자는 평범하다. 척 보면 안다. 열 여자 마다하는 남자는 없다? 쫓아다니는 남자 싫어하는 여자도 없다. 있을 수가 없다. 그러나 과연 여자가 열 남자를 마다할 텐가, 나는 그 답변은 슬며시 외면하고 싶다. 왜냐하면 나는 여자 보기를 돌맹이 쳐다보듯 하는 남자이기 때문이다. 곧 그것은 그분들 문제이지 내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때로는 무신경과 미뤄 놓기와 침묵과 딴청으로 점수를 따기도 하는 게 어른들의 세상이니까. 천국으로 오르는 계단을 그리는 데서, 가난한 사랑보다 호사로운 연정에서, 또는 그 반대로, 과분한 인기가 아닌 삼류 예술가의 직분에 만족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남자든 여자든 인기라는 것은, 인기 그것과 애착과 애호와 마술적인 힘을 견주어 가늠해 볼 수 있는 것은, 그 개념을 하나만 들라 한다면 나는 단연 돈을 꼽고 싶다. 꼭, 내가 봤을 때 돈 쓰는 즐거움보다 재미난 일은 없더라 라는 일반인의 견해는 못 들은 척 하더라도, 로맨스가 아늑하고 사랑이 멋지고 낭만이 거의 예술에 가까울려면 아무래도 돈이 든다. 필요하다. 어쩜 절실하다. 그냥 돈 하면 체신머리 없어보일지도 모르니까 다른 말로 경제력, 피해갈래야 피해갈 수 없는 요소다. 그리스-로마 신화 시대 이후로 돈, 즉 경제력은 그 누가 뭐라 하더라도 아마 거의 신적인 경지에 오른 어떤 확고부동한 개념이다. 인간에게 그리고 지구에게 공통된. 옛날 드라마식 표현으로 사랑과 야망, 촌스럽게 바꾸자면 사랑과 돈, 신식으로 말하자면 사랑과 인생. 사랑으로 경제력을 갖추기는 그건 조금 힘들다. 사랑 이야기를 음악을 비롯한 예술로 만들더라도 그 시장도 결코 녹녹치 않다. 반대로 돈으로 사랑을? 음, 아니라고 거짓말을 해버리자. 아니면 무시하든가. 그래도 된다. 그러고 싶다. 인생은 어차피 참말 반 거짓말 반이니까. 거짓말 같은 참말이나 그 반대는 떠올리지 않아도 된다. 머리 아프니까. 그러므로 이 말은 곧 사랑과 돈 역시 어느 만큼 떼려야 뗄 수 없는 애증의 관계라는 이치. 사랑은 얘기하고 경제 관념은 생략한다? 바로 그 때문에 남자들은 사랑에 관한 대화를 나누지 않는 것이다. 그 때문에. 사랑이 있는 곳에는 황금이 빠질 수 없다. 지금 세상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고 전화가 안되는 곳은 찾기 힘든 것처럼. 적어도 그것의 많고 적음 정도는 설명이 필요한 것이다. 풍요로운 호사와 멋진 사랑과 낭만적인 로맨스가 언뜻 떠올라서 황금이 튀어나왔으나 다시 화제를 돌릴 차례다. 무엇으로? 여자와 사랑과 그리고 여자는 대관절 무엇을 좋아하는가로! 어느 전문가가 나는 이 세상에서 지금 내가 하는 사랑이 가장 소중하다, 어느 비전문가가 나는 몰래한 사랑이, 어느 미소년은 나는 유치한 사랑이 제일 사랑스럽다고도 할 것이다. 하지만 남자가 무엇을 좋아하는가 남자가 사랑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가 아니라 여자의 관점을 주시하자. 뭐니 뭐니 해도 여자에게 있어서 사랑은 그녀를 여신으로써 받들고 존중해 주는 것이다. 그것이 인기고, 그것이 명성이고, 그것이 사랑이다. 기가 막힐 정도의 환희를 안겨 주는 사랑, 그것을 살짝만 바꾸면 글로 옮기기에는 좀 멋쩍지만 그래도 살며시 언급하고 넘어가자면 바로 여자를 다루는 기술이 된다. 쉿! 그러나 남용하지는 말자. 쉽게 농으로 아무 데나 발설하지도 말고.
낸시에 대한 모든 분석은 끝났다. 시작과 동시에 끝났다. 척 하면 척이니까. 게임은 거의 끝난 거나 진배없다. 득의만면한 웃음이 대두되었다. 너털웃음과 가짜웃음이 번갈아 다가올 사랑의 축배를 성원하고 있었다. 으하하하하하하. 으하하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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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나는 낸시를 쫓아다니기로 했다. 여자들이 최고로 첫날밤을 보내고 싶은 장소가 어디다더라 라는 카더라-식 말장난에 익숙한 아저씨들의 눈높이에 맞추자면, 사랑 가운데 최고의 사랑은 뭐니 뭐니 해도 쫓아다니는 사랑이다. 그것을 조금 고급스럽게 바꾼다면 인생을 거는 사랑쯤 되겠다. 그런데 잠깐, 그런 사랑 해 봤냐고? 누구, 저요? 아니 아니 아니, 아직이다. 난 하필 그 방식의 사랑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다. 사랑을 하는, 애원하고 쫓아다니고 연락하고 귀찮게 하는, 내가 먼저 다가가는 사랑의 주체가 아닌 어디까지나 사랑을 받는 객체가 내 전공이었다. 그 수많은 얘기를 다 할 수는 없고 내 경험에만 비추어 봐도 여자는 자기를 쫓아다니며 구애하는, 바로 그녀의 인기를 드높이고 그녀를 찬란한 공주님으로 떠받드는 사랑을 여자는 절대 마다하지 않는다. 웬간해서는! 그렇다고 앞뒤 안가리고, 맥락없이, 아무나, '웬간해서는'이 뭔 의미를 내포하는지를 모른 채 그냥 직진만 했다가는 쇠고랑을 찰 수도 있을 것이다. 차라리 뺨 한 대 맞는 게 나을 만한 봉변을 당하지 말란 법도 없다. 철썩 그리고 쌍코피 팍. 현실은 드라마와 다를 수 있지만. 쫓아다니는 사랑과 범죄에 해당되는 정도의 스토킹 또한 어쩌면 종이 한장 차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사랑을 시도해 보지 않고도 어떻게 그렇게 잘 아냐고? 세상을 알 만큼 알게 되면 다 알아지는 법이다. 내가 만일 여자라면, 라는 상상을 해 보면 이해가 쉽다. 내게 먼저 말을 걸어 주고, 연락해서 일 못하게 귀찮게 하고, 내 주변에 막 소문내고, 그들에게 호의를 베풀고, 학교에서 회사에서 집 앞에서 날이면 날마다 기다리며 그대를 향한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는 듯한, 그렇게 꽃을 들고 쫓아다니는 (미친) 남자가 있다면 그건 무조건 둘 중 하나일 것이다. 간단하다. 긴말 필요없다. 딱 선 하나만 그으면 된다. 눈이 높다 해도 눈썹 아래라는 지난 사랑에 대한 예의를 깡그리 무시해버리는 말은 찻집에서만. 타인의 사랑을 보듯 내 사랑을 객관적으로 대면할 용기나 의사가 있든 어쩌든 남의 말은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려버리고, 반듯한 요술 선을 하나만 그으면 된다. 그것을 인문학적 용어로 바꾸어 표현하면 기준선쯤 되겠다. 그 기준선의 아래일지라도 에 음 어 가만 있자. 그래도, 여자는, 마다하지, 않는다! 아래? 호호호! 여자는 결코 싫어할 수 없다. 싫어한다? 그건 남자다. 그래도 정도껏 적절한 예법이 있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어머나 세상에나! 기준선보다 위네? 완전 훌쩍 위네? 이건 그냥 미치는 거다. 환장하는 거다. 홀딱 반하는 거다. 꺼~뻑 쓰러지는 거다. 이게 바로 첫눈에 반하는 사랑이다. 그렇다. 외로운 꽃은 비로소 꽃다운 꽃이 되는 것이다. 정도를 낮추어 그 가장 쉽고 간단한 예는 단지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고. 아는 사이는 그렇고 모르는 사이였다면? 이름이 뭐에요! 전화번호 뭐에요! 어디 살아요! 오오, 알고 보니 별거 없다? 그래 별거 없다. 사랑이 원래 그렇다. 시시하다. 그러나 별거 없는 게 아니다. 관중과 선수, 관객과 연극 배우는 하늘과 땅 차이니까. 그러나 응원에 호응하고, 기대에 부응하며, 예감에 춤을 추고, 예측이 적중해서 우리 팀이 1등을 하고, 닥치고 공격 일명 닥공이라는 슬로건은 영원하며, 그 남자와 그 여자의 사랑이 흥미진진함을 넘어서서 완전 실생활로 보고 듣고 감동하며 웃고 슬프다가 또 다시 웃게 되는 드라마 같은 실화라면 그땐 시청자와 애독자도 그냥 돌아버리는 것이다. 완전 끝짱이다. 남자는 모른다. 여자들이 타인의 사랑 이야기에도 얼마나 열광하는지를! 여자는 모른다. 내 기준선이 그렇게나 멋졌는지를! 사랑은 없다 라는 간지러운 농을 자연스럽게 구사할 풍미나 넉넉한 풍채에 가끔은 격식 있는 단추 많이 달린 그런 옷을 입고서 사태의 어떤 동정을 살피고, 타인의 마음을 떠보고, 도전할지 관망할지 간접 경험으로 어느 아쉬움을 달래야 할지 그 이상한 망설임을 드디여 여유있게 즐길 수 있는 때가 되면 안다. 그때가 되면 비로소 알게 된다. 그 시절이 되면 안다. 무엇을? 바로 여자는 꽃 들고 쫓아다니는 사랑을 싫다고는 하지만 꼭 싫어하는 눈치는 절대 아니란 것을! 내가 오빠 이럴려고 만나? 뭐지! 단, 그러다 일찍 발목 잡히면 그 언제까지라도 꼭 사춘기 소녀처럼 요즘 누구, 와~, 누구? 와! 그래야 할 수도 있다. 거짓말 빼고, 간명하게 솔직히 말해서 절반의 귀부인들이 딱 그 계보에 속한다. 그러나 그대는 아니라고 인정하겠다. 주위를 둘러보시라. 주변에서 정말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어쩌면 흔하다. 쫓아다니는 누구에게 넘어갔던 목마를 사랑하는 숙녀는. 내 주변에도... 큭큭큭 킥킥킥! 그런데 쫓아다녀도 잘 쫓아다녀야 한다. 집요함과 끈질김의 차이를 알아야 한다. 나설 때와 물러설 때도 알아야 한다. 무엇보다 완전히 넘어왔다는 안정권에 들기 전에 수트 입은 도톰한 목소리의 기생오라비처럼 생긴 내 친구를 절대 중간에 그녀에게 선보이면 안된다는 점. 그건 여자도 마찬가지다. 그건 거의 죽 쑤어 개 주는 꼴이, 앗 정정하자면 그런 비극이 발생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사랑은 원래 쉬운 게 아니다. 사랑의 '사'자만 들어도 휘청할 정도는 되야 이제 겨우 사랑을 논할 자세가 갖추어진 것이라고 봐도 된다. 무엇보다 육체적 사랑은 인류의 섭리이자 만물의 이치다. 그러나 그 사랑을 지금 논할 계제는 아니다. 어 그런데, 내 피앙세는? 그건 뭐 그래도 천연기념물이니까 사랑이 뭔지 궁금했다고 친다. 짝사랑이 아예.. 전부였고. 안 봐도 안다. 훤하다. 앞으로 내가 사랑을 가르쳐줘야 한다. 그 반대가 될지도 모르지만.
아, 잠깐! 그런데 피앙세가 이 일을 알면 어떡하지? 내가 어디까지나 좋은 뜻으로 총대 메고 걸어다니는 큐피트로 행동해야만 하는 숙명을 받아들이고, 낸시를 쫓아다닌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땐 어떡하지? 어떡하긴! 우리의 사랑은 변치 않는다. 그 사랑이 흔들린다? 당치도 않다. 그것은 천년의 사랑이고 끝없는 사랑이다. 타인의 사랑도 그렇고 원래 사랑이란 게 그렇다. 핑계 없는 무덤 없고, 변명 없는 호기심도, '설마'에 실망하고 좌절하는 삼각관계도 있다. 우정과 사랑을 양쪽에 꿰찰 수도, 예쁘고 착한 숙녀와 귀엽고 지적인 아가씨를 양 어깨로 한아름에 포근히 보듬는 일도 아예 없지는 않다. 장난일지라도. 사람 사는 세상에서는. 즉 나는 피앙세한테, 만화 영화처럼 한 손을 들고 손바닥을 하늘로 향해 그 위에 피앙세를 세워서 두둥실 어디라도 데려다 주고 저 하늘의 별이라도 따다 드리겠소 하며 연못으로 뛰어드는 시늉이라도 마다하지 않을 그녀에게 다 여유롭게 답변할 궁리는 세워놨다는 말이다. 바로 이렇게.
첫째, 나는 큐피트로 환생했기 때문에 낸시와 윌을 짝지어 주는 것은 그 무엇보다 다급한 내 사명이다. 둘째, 이건 어디까지나 예술을 위해서 삼류 소설 때문에 하는 일이니까 살짝 초반 긴장감만 슬쩍 엿보고 나서, 호기심이란 풍선과 비밀이라는 솜사탕은 나오지 못하도록 판도라의 상자를 꽉꽉 잠궈놓겠다, 라고 호언장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다른 건 다 해 봤는데 이상하게 어쩌다 그건 못해 봤다는 그런 어설픈 항변이야 제쳐두고, 나도 모르게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왜 그러는지 나도 모르게 빠져들고 말았다는 뻔한 대사는 일일 드라마에 양보하고, 나는 예술 딱 그 하나만 내세우면 최소한 내 면은 세울 수 있을 것이다. 그래야 한다. 그러고 싶다. 어허, 벌써 의기소침해지다니, 저런! 아, 셋째. 이건 뭘로 봐도 허구다 메타픽션이고 포스트모던형 누보로망식 실험이자 비현실적인 초현실이니까 걱정할 꺼 하나 없다, 라고 그녀를 안심시키면 그만이다. 그리고 넷째, 휴~ 아마도 피앙세는 이 일을 모를 것이다. 그래야 한다. 그랬으면 좋겠다. 그러기를 바란다. 간구하고 기도 드린다. 그 갈망은 꼭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분명 그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확실하다. 그런데 만약 피앙세가 알게 된다, 그러면 그땐 어쩔 수 없이 최후의 수단을, 비장의 카드를 꺼내야 할 것이다. 그건 바로 쓰던 공책을 쫙 찢어서 마구 구기고, 뭉개고, 짖이기고, 뭉쳐서 물어뜯고, 침 묻혀서 방구석에 집어던지기.
어쨌든 서두가 길었다. 어차피 낸시는 내게 넘어올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내가 그녀를 꼬셔야만 하는 절명과 이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자 하는 예우는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살짝만 언급하고 넘어가는 바이다. 뭐야? 한 악절의 마무리는 약간 조셉 콘래드 느낌이 나는데? 나만 그런가? 아무래도 헛다리 짚은 듯 하다. 에잇, 망했다!
6
일단 결과부터 말하자면 그녀는 넘어왔다. 딱 넘어왔다. 낸시도 어쩔 수 없는 여자였다. 그녀는 숙녀였고, 나는 오빠였다. 낸시는 날 실망시키지 않았다. 그녀는 1분에 딱 몇 번 오빠라고 했다. 나라고 그 사랑의 새소리를 저울질하겠나 어쩌겠나. 나도 똑같이 '오빠는' 화법을 구사했다. 왜냐하면 아직은 '우리는' 화술이 전면에 나설 시기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공들여서, 돈 쓰고 시간 쓰고 날이면 날마다 쫓아다녀서 어렵게 시작된 사랑이 초반에 비틀거리게 만들 수는 없는 일이다. 간혹 우리 상남자들이 착각하는 게 뭐냐면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1라운드에 들어가기도 전에 게임 시작도 전에 선언을 하는 경우가 있다. 자기는 자신 있다 어쩐다 그래서 진득하니 쫓아다니는 방법 대신에 직설적인 확실한 말로써 초반에 내 사랑을 고백하겠다는 분이 있는데 그건 둘 중 하나다. <사랑을 쑥스러워 하는 마초의 탈을 쓴 소년>이거나 <전형적인 바람둥이>. 전자는 은근함은 간지럽고, 분위기를 따지고 낭만을 추구하는 로맨티스트가 아니기 때문에 그렇다 치고, 그럼 후자는 뭐냐? 그게 간혹 궁금하신 숙녀분도 있을 것이다. 순서대로라면 정석대로라면 그 남자에게 딱 연락이 와야 하는데 전화번호 지우고, 온라인 관계를 끊고, 영원한 남남으로 등을 돌린다? 아니 왜? 나 정도 되는 여자가 어디 흔하다고? 그런 숙녀분은 쫓아다니는 전자를 만나서 '너는 절대 후자가 되어서는 아니되느니라' 라며 사랑학에 대해서 가르쳐주고, 작별은 상상도 못하다가 이별하는 방법에 대한 일언반구도 없이 전자에서 후자로 발전한 남자에게 뒤통수를 맞는 사례 실제 있다. 그런 숙녀분은 소신 있으니까 다시 전자를 만난다. 아무리 그분이 돌쇠일지라도 인생 직진이시다. 그것이다. 그런 성미를 타고난 여자는 어떻게든 기준선을 바닥까지 빡빡 내려서라도 기필코, 반드시 나를 꽃으로 떠받드는 쫓아다니는 따라다니는 벌스듯 기다리는 마당쇠를 만나야 직성이 풀린다. 그 빈도가 과연 드문가 그것에 대해서는 침묵하겠다. 어른이라면 대부분 사랑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아시니까. 그러나 엄마한테 물어보면 이런 대답도 없진 않을 것이다. 꼭 그런 성미는 타고나야 하는 게 아니라고. 곧 여자라면, 남자만 아니라면 누구에게나 잠재되어 있거나, 한 시절의 나를 이끌기도 하는 여자라면 누구에게나 공통된 여성성일 뿐이라고. 그리고 간혹 열외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여자는 쫓아다니는 거 좋아한다고 했드니 아예 그녀의 앞집으로 이사하고, 회사도 그녀가 다니는 회사에 입사하고, 같은 취미를 배우고 벌써 부케부터 준비하는 부류도 미미하게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건 드물다. 그보다는 멜로드라마 주인공이 아닌 평범한 남자를 떠올려보자. 그래, 전자를! 전자는 한마디로 말해 순정남이이고, 단골 술집에서 부르기로는 3병맨이다. 그는 아직 사랑을 모른다. 아마 내내 모를 것이다. 그것을 사랑 이야기로 볼 수 있다면, 그러니까 그는 섣부른 고백에 따른 쓰디쓴 거절을 사랑 이야기의 끝으로 보는 것이다. 바로 이때 일반인은 반반, 사랑의 귄위자는 명도박사처럼 딱 명쾌히 사랑의 시작으로 볼텐데 말이다. 나 너 좋다 어쩐다 사랑한다, 그러니 내일 답을 달라 일주일 기다리겠다? 뭐 어쩐다고? 아, 들린다. 크라이슬러와 라흐마니노프가 협였했던, 협연했나, 사랑의 슬픔이. 어지간히 반반한 미모의 여인이 해적이나 산적이나 험상궂은 상남자나 딱히 답변을 회피하고 싶은 서방님과 전설적인 사랑을 했고, 그녀는 나중 체념하고 달관의 경지에 올라 여성잡지2를 열렬히 구독하시는 귀부인의 대열에 우뚝 섰다더라, 라는 풍문은 심심치 않게 들린다. 아니 흔치 않은 게 아니라 어떻게 보자면 그게 대세다. 사랑은 미안해 하지 않는 거라네, 사랑하는 사람과는 결혼하는 게 아니라네, 사랑하기 때문에 떠나는 거라네, 그런 말들이 있으니까 이해는 된다. 즉 여자는 거의 정확히 두 부류로 나뉜다는 것이다. 기준선과 사랑과 객관성이 망부석인 분과 아닌 분으로! 하나 더. 여자는 장기전을 좋아한다는 점. 뭐도 뭐도 그리고 사랑도.
그런데 낸시는 적당히 따라다니는 사랑에 샤르륵 넘어갈 여자는 절대 아닌 듯 했다. 게다가 D.H. 로렌스의 채털리 부인의 연인에 나오는 그 무엇을 조용조용하게 아는 남자에게도 쉽사리 마음을 주고, 못이긴 척 손을 잡히고, 잔잔하게 빈틈을 보일 것 같은 여인도 아니었다. 그녀는 뭔가 달랐다. 낸시는 화장술을 막 배워서 한창 외모에 관심이 많은 막 심심하면 손거울을 쳐다보는 상큼한 소녀이자 동시에 청순한 여대생이자, 어쩜 요염한 요부일지도 모르고, 그녀는 혹시 마귀 할멈이 아닐까 하는 궁금증도 자아내게 했다. 그러나 나는 그녀에 대해서 추측하고, 예상하며, 전망할 필요는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그녀를 아니까. 그녀는 이미 내 손바닥 안에 있으니까. 낸시의 취향을 맞추고, 그녀의 안목을 칭찬하며, 때로는 누군가에 대해서 같이 흉을 보다가 우리는 타인을 험담하는 그런 일일랑은 하지 말자며 화제를 돌릴 것-까지도 없이, 나는 그녀를 앞서 나갔다. 나는 그녀보다 적어도 반발자국 먼저 움직였다. 나는 그녀의 타임머신, 걸어다니는 타임머신으로써 1분 후의, 하루 다음의, 일주일과 일 년 후의 그녀를 모두 내다보는 예언가이자 신비주의자가 되었다. 왜냐고? 나는 그녀이기 때문에! 나는 낸시에게 노스트라다무스도 다 내가 가르쳤다고, 녀석이 동네 꼬마일 때 코흘리개였고 보기 흉했는데 아 글쎄 하나를 가르쳐주면 열을 알았다고, 막 그러면서 그런 말도 안되는 허풍을 남발했다. 그녀는 나를 귀여워했다. 그녀는 나를 좋아했다. 그녀는 나를 싫어할래야 싫어할 수가 없었다. 나는 하다하다 그녀의 뒷모습까지 칭찬했다. 나는 급기야 그녀의 즉흥적인 작은 오점까지도 편들어주었다. 그러나 나는 한순간도 잊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그녀의 마음을 윌에게로 돌리게 할 것인가를. 나는 낸시에게 의자와 승용차에 다소곳이 앉는 방법을 다시 가르쳐 줬고, 그녀는 내게 자기 친구들의 사랑 이야기를 들려줬다. 나는 그녀에게 애칭도 지어줬다. 마샤라고! 그러나 왜 마샤라고 지어줬는지는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건 알려줘서는 안될 비밀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비밀도 만들어준 것이다. 와우! 우리는 마침내 흉금을 털어놓는 사이가 되었다. 하지만 선을 넘지는 않았다. 나는 플라토닉 러브를 예찬했고, 그녀에게 아리스토텔레스가 무엇을 썼는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카리타스가 어떤 모습인지 아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그러자 그녀는 처음에 막 생각하는 척 하다가 약간 안색이 변하기 시작했다. 울긋불긋! 그러자 나는 그때를 놓치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고정하세요 부인. 그런 게 뭐 중요합니까? 아니 그렇소? 나방은 정열의 불꽃을 향해, 팔랑팔랑 랄라랄라, 나비는 화사한 꽃을 찾아 떠나면 그만이지요! 그럼요.」
그런 말을 듣고서 웃는 그녀의 표정은, 귀여웠다. 꺄르륵! 나는 누군가를 떠올렸다. 나는 심신이 분리되는 것만 같았다. 이것이 바로 그 유체이탈일까? 그럴지도.
앗, 깜빡했다. 결론이 너무 길었다. 아마도 적지 않은 삼류 소설 애호가들은 사랑의 도입부를 간절히 듣고 싶어 하실 텐데. 나도 모르게 그만 종작없이 수다를 늘어놓고 말았다. 이 몹쓸 욕망과 호기심과 청력까지는 아니지만. 난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닌데 어쩌고저쩌고, 그 어떤 즐거움에 내가 잠깐 홀린 듯 했다. 그분이 오셨나? 아니 왔으면 왔다고 기척이라도 할 것이지. 참으로 종잡을 수 없는 그분이군. 지금은 딴전부리고 어디로 떠나셨는지 어머머 그 존재감 퍽이나 묘연하다. 음 아무튼 사랑의 시작이라고 하면 안될 것 같고, 어떤 고즈넉하고 목가적이며 쾌청하다가 별안간 바람 불고 먹구름이 몰려오지만 비는 내리지 않았던, 그 궁금한 본격적인 첫 만남에 대해서 이제 그만 공개하는 게 도리일 것 같다.
7
나와 낸시는 지인 관계였다. 처음에 동네에서 오다가다 만나지는 않았지만 아마 윌 때문에 나는 낸시의 시선을 조금은 피한 듯 하다. 우리는 사랑하면 안 된다, 사랑에 빠지지 말자, 사랑은 단념해야 한다 같은 은밀한 텔레파시를 주고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잠깐, 혹시 이거 삼각 관계 뭐 그런 건가? 아니다! 결단코. 나는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 언젠가는 윌을 낸시와 맺어주어야 한다는 것을. 나는 얼리어답터가 되면 안 되고, 최초나 초대나 그런 기념비적인 역할은 도외시해야만 했다. 그래서 시작이 힘들었다. 그런데 윌은 내게 그녀의 마음을 돌려달라고 부탁만 한 후에 요즘 너무 바쁘다고 아예 만나주지도 않았다. 뭐 어쩔 수 없었다. 내가 윌이 되는 수 밖에.
나는 여자가 따라다니는 남자를 절대 마다하지 않는다는 속설을, 꽃을 들고 쫓아다니는 남자를 결코 외면할 수 없다는 나약함을, 남자가 여자를 단 하루도 빼지 않고 집 앞에서 학교 앞에서 직장 앞에서 기다리며 공을 들이면 언젠가는 넘어오게 된다는 낭설을 모르지는 않았다. 여자란 원래 뭇남성이 자기를 따라다니기를 바랬다가, 못이긴 척 넘어가고, 마음을 흔들어 놓는 그이가 좋아져서 막 어쩔 줄 몰라하다가, 결국 나중에는 먼 훗날 '그때 그 남자는 날 사랑하지 않았다'라고 한다. 그건 공식이다. 그건 진리다. 뻔한 수순이고 정규 과정이다. 남자는 나이가 들면 힘이 밑에서 위로 올라오듯이. 잡은 물고기에게는 먹이를 주지 않듯이. 가족? 아아~!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음 남자로 치면 몽정기 같은 의미인 듯 하다. 그건 정말 공식이고, 과정인 것 같다. 여자가 뭘 모를 때는, 사랑을 알기 전에는, 특히 어릴 때는, 외로움에 사무칠 때는 여자는 웬만하면 정말 웬만하면 다 넘어간다. 웬만하면 다 넘어온다. 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 푸하하하하하! 막 뭔 말이든 뭔 글이든 쉽게 믿어버리듯이. <먼저 꼬리를 흔드느냐>, <딱 10(100)일간 쫓아다녔드니 글쎄 어떻게 됐다더라>라는 전자와 후자의 차이는 어떻게 보면 실소를 부르고, 폭소도 대동하며, 그 극명한 어떤 간극 때문에 그 어떤 신기함에 반신반의하게 된다. 웬만하면? 흐흠, 웬만하면! 정말 그런가는 두말하면 잔소리고, 후자를 좀 더 검토하자면 이렇다. 3주(3달)을 쫓아다녀서 3년 사랑하고, 세 자녀를 낳아 키우며 살다가, 먼 훗날 금혼식을 올린다? 아님 이혼한다? 사랑은 정말 착찹하기도 하고, 때로는 함구해야 하거나, 기쁜 소식이 와전될 여지도 다분하다. 큐피트란 존재는 원래 공사가 다망한가 보다. 어쩔 수 없이. 그러나 이 모두가 내 본심은 아니다. 오락일 수도 있다. 나도 최후의 보루라는 개구멍이나 쥐구멍에도 볕 들 날 있다는 희망의 과실은 꿈꾸고 살아야 하지 않겠나.
하긴 그녀의 선망은 무엇일까 라며 궁금해 하는 호기심을 처음부터 안고 시작하는 게 어쩌면 더 즐거울 수도 있다. 도저히 예상할 수 없는 여자의 마음이 무척 기이할 수도 있을 테니까. 남자에게는. 남자에게 여자는 영원한 미스테리일 테니까. 뭐시여, 나도 남자인데!
어쨌든 나는 낸시를 쫓아다녔다. 그런데 문제는 그녀가 내게 적지 않은 호감을 품고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우연도 한두 번이지. 그러나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나는 큐피트니까. 내가 그녀에게 구사했던 전술은 이랬다. 나는 대놓고 그녀의 집 앞에서 꽃다발을 들고 서있지 않았다. 그건 구식이다. 고리타분하다. 나는 그런 각 잡힌 상남자의 박력까지는 못 가졌다. 나는 아직 배짱의 '배'자를 겨우 뗄랑말랑 했으니까. 다시, 나는 대놓고 그녀의 집 앞에서 꽃다발을 들고 서있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녀의 구미는 시시하지 않으니까. 나는 그 무언가에 걸맞는 급 있는 사랑의 기술 정도, 그런 의전에 걸맞는 요술봉은 휘둘러야 마땅했다. 그녀는, 낸시는 그저 흔한 촌년이 아니었다. 말이 좀 그렇다만 절대 촌년을 무시하는 그런 뜻이 아니다. 그래서 내게는 고도의 전략이 필요했다. 그러므로 나는 그녀에게 이런 방법을 선보였다. 100미터 전방에서 그녀의 눈에 띄이기(너무 먼가 내가 눈대중으로 측정을 잘못한 것인지도). 골목길 모퉁이 그 직각 지점에서 딱 깜짝 마주치며 놀라기. 찻집에서 혼자 책을 읽는 그녀에게 근사한 웨이터가 실례한다면서 조심스레 접근하여 저기 저 신사분께서 전해달라고 하십니다 라며 3번 직각으로 접힌 쪽지를 전해주기. 이때 남자는 그녀와 눈이 마주쳐야 할까, 마주치지 않는 게 좋을까. 물론 그 나비 넥타이 웨이터는 내가 심혈을 기울여 고르고 또 골라서 어렵싸리 초빙한 30년 경력의 바텐더였다. 무선 조종 RC카로 시도할려다가 색다른 방법을 선택함. 그리고, 커피 주문을 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는 그녀의 바로 뒤에 섰다가 놀래켜주기. 가끔 같이 차 한잔 마시게 된다면 직설적으로 한 번쯤 물어 보기. 백허그 받아본 적 있냐고. 소셜 네트워크로 그녀 글의 조회수나 하트 뿅뿅을 늘려주기. 지나가다 눈인사할 때 팅~ 윙크 하기. 단정한 봉투에 담아서 오페라나 극장과 스포츠 경기 초대권 2매를 선물하기. 난 어쩐다 어떡하지 하면서. 그녀는 거의 100퍼센트 단짝 친구와 보러 갈 것이라고 안심하고서. 그녀의 집을 찾아가서 노크한 후 그녀가 나오면 무언의 꽃다발을 발견하게 만들고, 난 멀리서 미소 짓는 그 순간을 사진이나 영상으로 몰래 남기기. 이건 일찍 보내 주면 그녀가 조금은 무서워할지도 모르니 나중을 위해 남겨둬야겠군 그래.
그리고 나는 천편일률적으로 그녀를 따라다니지 않았으니까 선물도 그녀에게 뭔가 좀 모자란 듯이 건네주었다. 품목은 이랬다. '버클리풍 사랑 노래' 라는 시집 하나. 소설은 존 업다이크의 달려라 토끼. 작은 색연필 세트. 꽃무늬가 살짝만 화려한 스카프. 그녀가 좋아할 만한 고전음악 CD. 라울 뒤피 명화가 그려진 그림 엽서. 타로 카드. 잘 포장한 아이스크림. 참치 통조림 등이 있었다. 돈 많이 들었다. 살다 살다 돈을 이렇게 많이 쓰고, 이처럼 공을 들여서 여자를 꼬셔 보기는 내 생애 처음 있는 일이었다. 지금까지 그럴 필요가 하나도 없었다. 아 또 어깨에 뽕이 들어갈려고 한다. 저런! 혹 내게도 허세끼가? 오, 저런! 너무 없어도 재미 없으니까 그거면 됐다. 나는 왜 남자들이 시간 쓰고 돈 쓰면서 그렇게 따라다니고 쫓아다니며 여자를 귀찮게 하는지 모르겠다. 알지만 일단은. 어쨌든 한동안 생활비 긴축 운용에 들어가야 했다. 아무래도 괜히 윌의 부탁을 들어준 거 같다. 내가 무슨 흑기사도 아니고 백기사도 아니고 말이다. 그러나 멈출 수는 없었다. 이미 어느 만큼 진행했던 노력이 아까웠다. 그래서 나는 계속 공세를 이어갔다. 그녀의 주위에서 얼쩡거리고, 친절을 베풀고, 다정함을 전했으며, 하트 뿅뿅을 눈짓으로 목선의 각도 변화로 알렸다. 충분히. 그녀가 곰이 아닌 이상 그녀의 기분은... 거의 알만 했다. 혹시 이 남자가 날 좋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닐 거야, 아닌데 아무래도 심상치 않은데 라는 짐작을 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꼼짝 못하고 넘어올 수 밖에 없었다. 낸시는 마침내 사랑의 포로가 되었다.
드디여 낸시는 내게 넘어왔다. 그녀는 사랑에 빠졌다. 그녀 입장에서도 정말 그럴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녀로부터 사랑...을 연상시킨다거나 눈이 번쩍 뜨일 만큼 직접적인 언사를 듣는 건 원치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그녀를 윌과 맺어주어야 한다는 신념을 단 한순간도 잊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쩐지 이상하게 그녀가 내게 너무 푹 빠져버린 듯 하여 약간 걱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여자의 연기에 속으면 곤란하다. 그녀들은 연기력을 천부적으로 타고났으니까.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한다. 따라서 나는 좀 더 찬찬히 경과를 지켜보기로 했다.
8
오늘은 낸시와 단둘이 데이트를 하는 날이다. 나는 귀찮아서 나가기 싫었지만 그래도 나가서 그녀를 즐겁게 웃겨주기로 했다. 날씨는 어두침침했으나 선선했고 미풍은 선선했다. 우리는 에일리언이 나오는 SF영화를 볼려다가 로맨스물을 봤고, 해변가를 드라이브했으며, 괜찮은 찻집에서 차를 마셨다.
「오빠. 남자들은 뭘 좋아해? 응, 오빠!」
「어... 오빠가 어떻게 알려 줄까, 남자에 대해서. 어디서부터 알려 줘야 하지? 남자를, 알고 싶니? 그런 거니 낸시?」
「응. 알려줘 오빠! 남자는 막 액션 영화나 격투기 채널이나 공 가지고 놀고 몰려다니고 막 그런 게 다야, 오빠? 진짜 그게 다야, 오빠? 어, 정말로 오빠?」
「꼭 그런 건 아닌데, 대체로 그래. 예를 들면 액션 영화에서 별로 흥미를 찾지 못하는 남자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구. 그 남자가 멜로를 좋아할까? 어떻게 생각하니 낸시야? 그 남자가 로맨스를... 그건 아니지. 당연하지. 대신에 그 남자는 게임 같은 드라마는 좋아하겠지. 낸시야 있잖아, 한 여자와 오래 만나고 오래 사랑하고, 여건이 그만그만하면 실정에 맞게 살아갈 테지만 그런 남자는 촌구석에서 조용히 살기 싫어할 수도 있어. 도시에서 네온싸인과 음악과 춤과 기쁨과 환락에 흠뻑 젖어 인생을 즐기고 싶어한다구, 낸시. 남자는 천생 남자거든. 또 남자는 애야.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회사와 집만 왔다 갔다 하는 건 평화롭고 안온하며 아름다워 보이지만 그건 게임이 아니야. 남자는 딱 둘 중 하나야. 실재 게임하는 걸 좋아하거나, 아니면 그건 아니지만 게임과 비슷한 놀이를 좋아하거나. 낸시 자, 봐 봐! 실제로 게임을 좋아하지 않는 남자일지라도 남자는 원래 게임 같은 삶을 좋아해. 그런 법이야. 오빠가 설명해 줄께 낸시. 남자는 스포츠에 열광하고, 떠나고 먹고 마시고, 잡고 걸고 차고 뛰고, 하나만 하기 바로 그거야. 게임에서는 단계 1부터 100까지, 대마왕과 승부하는 장소까지 행진하는 동안 무수히 죽고 죽이고 싸우고 모험하고 방황하며 뭘 해도 괜찮아. 게임이니까. 무조건 부활하니까. 오늘만 날이 아니라고. 귀 기울여 봐 낸시! 어? 낸시! 보라고. 중요한 대목이야 낸시! 오빠가 차근차근 알려 줄께. 한 남자와 오래 만나는 걸 선호하는 여자에 비해 남자는 게임처럼 짧게 많은 여자를 만나기를 원하지. 다시 태어난다고 하면, 다시 이 여자와 사랑을 하고 어쩌겠는가, 대답할 땐 거짓말 탐지기가 필요할 꺼야. 실재 게임을 좋아하지 않는 남자일지라도 남자는 게임 같은 영화를 좋아해. 모험을 찾아 자꾸 떠나고, 계속 누군가와 싸우고 대결하고, 독보적으로 1인자의 자리에 오르는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을 하고, 그러나 그렇다고 작품이 완결되면 곤란하겠지. 왜냐하면 2편, 3편 계속 이어져야 하니까. 알겠지 낸시양? 반전은 1번 주요 인물은 3명 많아야 한 자리, 줄거리는 간단하게, 그러나 몰입되고 재미있고 신비롭게! 어떤 남자는 그런 영화 별로라고 생각해. 낸시는 그런 영화 싫지 않지? 음 말하지 않아도 오빠가 알아 잘 안다구. 남자는 말이야 액션 영화가 아니어도 막 얽히고 설키고, 배신하고 배반당하고, 속고 속이고, 꼬고 꼬이고,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며 지속하는 게임 같은 영화에 마음이 가게 마련이야. 남자는 난장판이 아닌가 너무 산만한 영화에 관심이 기울게 돼 있어. 일부의 남자는 그런 영화를 좋아한다네, 낸시야!
게임이 나쁘다는 얘기가 아니야 낸시. 주제의 흐름을 놓치지 말고 하나 하나 뭐가 설명이고, 뭐가 핵심 단어고, 뭐가 그 이유인지 잘 들어보렴. 당장은 약간 헷갈릴 수 있지만 넌 누구보다 영리해. 똑똑하다구. 모두 기억해 모두. 집에 가서 살짝 흐릿한 부분만 곰곰히 떠올려 보면 아마 정리될 꺼야. 낸시. 게임을 하면 신비도 마법도 환상도 사랑마저 모두 가져다 주는데 그게 왜 나쁘겠니. 낸시. 오빠가 언제 정치가 나쁘다 어쩐다 뭐하다 라고 말하는 것 봤니? 아니잖아. 게임도 그래. 오빠도 한때 게임광이었다, 응? 낸시. 오빠가 좀 전에 말했지? 게임을 하면 어떻다 라고 말하지 않았다는 것, 알겠니? 어? 응, 낸시. 그거였잖니. 게임을 하는 남자가 아니라 첫째, 게임을 제외한 나머지가 게임과 어떻게 비슷하냐. 둘째, 게임을 좋아하지 않는 남자가 왜 게임과 매우 흡사한 작품을 좋아하는가. 그것이라고! (딱) 그거야, 낸시. 그거라고. 응? 자, 봐 봐. 낸시 봐 봐. (쉭-쉭-쉭!) 수십 년 세상을 살았는데 말은 그런다 쳐도 글에서 주격조사와 목적격조사, 보격조사 같은 기본적인 문법을 꽤 자주 혼동해서 잘못 사용한다면 살짝 이해가 더딜 수도 있어. 그렇지만 그렇더라도 한발 늦는다 뿐이지 장황설의 저의나 글의 의도는 다 가슴으로 다가올 꺼야. 오히려 말귀가 어두우면 웃음을 불러올 테고. 또 말은 안해도 뭐가 뭔지 다 안다고. 응? 이심전심! 사람이니까, 응? 낸시. 자, 이렇게 생각해 보자. 네 앞에 벽돌이 하나 있다고 말야. 일단 딱 상상해 봐. 순간적으로 뭐가 파닥 연상되거나 생각나니? 그렇지. 벽돌은 쌓아야지. 잠자는 숲 속의 미녀가 언제까지 숲 속에서 잠만 쿨쿨 자야하겠니. 그러면 그게 촌년이지 어디 공주겠니. 성을 만들려면 벽돌을 쌓아야 한다고. 하지만 그건 순진한 발상, 동화 같은 공상이지. 그럼 게임으로 봤을 때는 어떠할까? 막 8비트, 16비트 인터넷 이전 TV 시절의 컴퓨터 게임에서는 벽돌을 깼지. 공으로 벽돌을 파괴했어. 벽돌을 부셨다고 낸시. 오빠가 게임만 가지고 어떻다 라는 게 아니라, 현대화에 따라 여러 개념들의 열량과 더불어 과거에 비해 광폭적인 변화가 생기기 때문이야. 처음에 왜 벽돌이 탄생했는데? 건축을 위해서 만들었지. 그런데 벽돌을 보거나 상상하면 즉각적으로 몇몇 떠오른 기호 가운데 하필이면 파괴도 있네! 벽돌만 그런 게 아니야. 야구방망이, 야구하라고 만든 거잖니. 그외에 아무 거나 낱말만 갖다 대면 순기능 외에 역기능도 나와. 정말로 미래의 게임에서는 기상천외한 모험과 벅찬 감격, 자칫 실제 경험은 물론이요 불가능한 것 빼고는 모든 것이 가능할 수도 있을 꺼야. 그래도 일단은 쳐부수고, 물리치고, 악당을 제압해서 마을에 평화의 비둘기가 돌아오게 만들려면 얼마간 우광쾅쾅 서사가 필요한 거야. 낸시, 그거야 낸시! 그런데 낸시, 게임만 그런 게 아니야. 오빠가 설명해 줄께. 오빠, 믿지? 오빠 알지? 오빠, 오빠가 또 이런 걸 잘 알잖니? 응, 낸시! 이렇게 불규칙적인 패턴이나 자명한 원리와 감추어진 일반적인 규칙을 쉽게, 아주 쉽게 우리 낸시에게 가르쳐 줄 수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대체 몇 명이나 있을까? 아니면 없을까? 없어! 없다고. 한 명도! 오빠 빼고는 한 명도 없어.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봐! 내가 눈물 흘리고, 무릎을 꿇고, 절을 하고, 껴안고, 원하는 소원은 모조리 다 들어줄 테니까. 진짜! 정말로! 맹세할 수 있어. 오빠, 알지? 그래. 들어 보렴. 상대하고 처단하고 무찔러야 할 악당이 없는 게임, 모든 즐거움은 게임 같은 영화에서나 찾고 기쁨은 예술에서 환희는 사랑에서 수다는 뉴스에서만 찾아야 하는 천국 같은 세상이 딱 도래했네? 만약 그랬다고 상상해 봐. 그건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말자, 라~고 나는 그렇게 말할 수는 없지. 다만 그 다음 연설은 학자와 교수님 몫이겠지. 스포츠 해설자나 현직 논평가나 연예인보다는. 만화가...는 괜찮겠네. ...(휴)... 라~고 말하는 건 비전문가에서 전문가가 된지 얼마 안된 전문가의 견해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삼류 소설가니까, 따라서 음.. 나도 거기에 해당한다. 고로 나는 그만 멈춰야 한다. 하지만, 그런데 또 그게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그건 너무 액션 영화와 막 요란한 게임과 뭐한 사랑과 무책임한 방임에 가까운 행동만 선호하는 철없는 철부지로 비춰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드라마를 보면 악당이 모두 사라지면 엄한 데다 힘을 쓰거나, 그렇게 재미 없고 지루하며 따분하게 시간을 보내서 뭐하냐 어쩌냐 하면서 완전 이례적인 그동안 전혀 유례가 없었던 신선한 악당이 출현할 수도 있다. 작품에서야 당연한 이치다. 그러나 그건 또 다 반대 세력이 생기게 마련이다. 여흥, 오락 산업, 지하 경제, 흥취, 유희, 언론사와 신문과 방송 매체들의 1차 메뉴들, 예술, 사랑, 취미, 스포츠 등등 인간의 어둡거나 뭐 어떻게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있는 성향을 매끄럽게 풀 수 있는 분야들이 그 얼마나 많단 말인가. 남자들은 안다. 엄마들도 안다. 사춘기와 스무살 청춘들의 무엇을. 그 그래프의 정점은 괴물이다. 여자들이 웃기는 웃지만 그녀들은 그 그래프의 정점이 뒤늦게 온다. 그때가 되면 안다. 여자는 모른다. 여성잡지1과 여성잡지2의 차이가 얼마나 놀라운지를. ......(침묵)...... 아 잠깐. 내가 글을 쓰는 게 아니라 말을 하고 있는데 왜 이러지? 미안. 내가 요즘 좀 이래. 말을 하다가도 나도 모르게 막 글을 쓰는 것처럼 말을 하는 때가 간혹 있어. 아주 드물게. 보통 사람들은 그런 경험을 잘 모르는데 아주 드물게 개인이 아니라 타인이 그걸 발견하고 깨달을 때가 있어. 말로 먹고 사는 사람, 예를 들어 배우나 아나운서나 스포츠 해설자가 글로 먹고 사는 사람을 만나면 그 극명한 차이를 기이하게 보게 돼. 그러나 작가라 할지라도 말을 잘하는 사람들이 좀 많니? 게다가 그분들이 사적으로 평소에 말이 없을까? 말이 없다는 건 친하지 않다는 얘기와 같아. 정말 말 없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친해졌을 때 마음을 열고 친해야 진면목을 드러내지만, 오랜 관찰과 축척된 자료와 함께 하나하나의 말에 비추어진 타고난 성정과 변할 수 없는 내면세계를 알게 되면 오오 그건 그만! 작품성과 인기와 사조 같은 개념은 논외로 치고, 작가들 가운데 아주 드물게 두뇌에서 말의 영역이 글의 체계에 잠식되어 원활히 작동하는 사람도 있다는 얘기야. 말조차, 생각조차! 글처럼 말하고, 글처럼 생각하는 사람. 곧 그 극단적인 유형을 만나게 되면 그 생경한 차이에 잠깐 아찔해 한다 그거지. 나는 글처럼 생각하고 글처럼 말하는 사람의 글은 읽어. 아무리 좀 뭐하더라도. 읽을 수 있어. 또 읽고 싶어. 힘들 수도 있지만. 최소한 읽을려고 노력해. 지금 어렵다면 나중에 읽어야 한다고 다짐하지. 어렸을 때는 이런 확신이 덜 했을 테고. 그러나 그 반대, 즉 말처럼 생각하고 말처럼 말하고 말처럼 글을 쓰는 사람의 글은 안 읽어. 그러기엔 시간은 너무 소중하거든. 냉정할 땐 냉정해야 하는 게 인생이야. 글의 스타일로 들어가면 얘기가 길어져. 말만 해도 그렇잖니? TV를 봐봐, 학자와 기자의 화술이 얼마나 다르니? 그거라고! 내용은 대동소이한테 인지체계가 활성화되는 그 작동 원리가 좀 달라. 내가 월등하고 그런 글의 수준이 낮다? 그런 얘기가 아니라 뭔가 내 안에 그런 뭔가 딱히 설명하기 곤란한 그 무엇이 있나 봐. 나 같은 삼류 소설가가 뭘 알겠니? 아 뭔 얘기 하던 중이었지? 남자? 게임? 음, 남자!
남자는 듣는 타입일 수도 읽는 타입일 수도 있어. 청자일 수도 또는 주로 화자를 선호할 수도 있고. 낸시! 이게 요점이야. 핵심이라고. 기억하렴. 그러나 남자는, 남자는 일단 한 여자를 오래 사랑하는 것보다는 최대한 많은 여자를, 최단 기간 최소의 시간 동안, 최고의 성과를 올려서, 부와 사랑과 꿈과 행복을 성취해서 인생을 즐기고 싶어해. 낸시 그게 남자야, 어? 낸시! 응? 우리 오빠는 아니다? 그건 현실이지. 꿈과 이상이 아니고. 남자의 포지셔닝을 살펴 보면 일단 이래, 못 먹어도 고! 다 가지던가 무운이던가. 낸시, 그와 비슷한 게 뭔지 아니? 뭘까? 뭐겠어, 카드 게임 같은 거. 그래 도박이지. 큰 경기들 앞두고 스포츠 뉴스에 나오잖아. 도박사들이 몇 대 몇으로 예측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수컷으로써의 태도고, 남자로 딱 변신하면 바람직한 남성으로 돌변하는 거지. 언제나 어디서나 수컷으로 살 수는 없으니까. 낸시가 공감하긴 좀 어려울 꺼야. 하지만 낸시가 여성잡지 2를 볼 때 쯤에는 아마도 지금과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 껄? 외관이 세월의 영향을 좀 받는 거 말고 별로 변한 건 없지 안겠냐고? 아니지 아니지. 낸시가 너무 순수해서 그러는데 그게 아니야. 생각이 많이, 정말 많이, 바뀌지. 어떻게 변할까, 궁금하니? 멀리서 찾을 거 뭐 있어? 엄마 있잖아! 그래, 엄마!」
나는 일부러 내게서 정을 좀 떼라는 의미로 어쩌면 조금은 매정하게 얘기했는데 그건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왔다. 나는 더더욱 난처해졌다. 왜냐하면 낸시는 슬슬 본색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그녀는 엄청 적극적인 여자였던 것이다. 장래 누가 그녀의 왕자님이 될는지는 모르겠지만 웃음부터 나왔다. 나는 아주 진땀을 흘리고 또 흘렸다. 차라리 식은땀이 어 그래 이렇게 부럽기는 처음이었다. 아닌가? 아무튼. 대마왕한테 호되게 당하는 게임 주인공을 방불케 했다. 처음에는 그녀의 마음에 요만큼만~ 내 생각과 관여된 공간을 만들려고 했다. 그러고 싶었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고 많이 걱정하기까지 했다. 내가 원숭이라는 게 아니라 나는 어디까지나 윌을 위해서 내 한 시절을 바친다는 생각이었다. 그건 각오였다. 내 예술과도 관련된 문제였으니까. 그런데 그만 그녀는 내게 빠져버리고 말았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이 일을 어쩌면 좋단 말인가! 내게 정말 허술한 듯 보이지만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라도 있단 말인가. 나는 느닷없이 양어깨에서 악마의 뿔이 솟아나는 듯 뽕이 뽈록 튀어나온 듯 더더욱 불안해졌다. 이 일을 어떡하지... 정말 어떡하지... 어쩌면 좋을까!
나는 지금 우정과 사랑을 동시에 경험하고 있었다. 한 명은 짜임새 있는 단촐한 규모의 고품격의, 단정하고, 때로는 파격적인, 때로는 전위적인, 보통은 평이한, 뜻밖의 반전도 좋아한다. 한 명은 게임은 못하지만 게임 같은 드라마틱한 삶을 선호하며 치열하게 사는 사람이다. 나는 그녀와 헤어진 후 집에 왔다. 그냥 집에서 잠이나 자기로 했다. 답답했던 것이다. 일이 너무 커져버렸으니까. 일단 장고에 들어가기로 했다.
9
나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이렇게 생각했다. 나는 윌을 만나야 한다고. 여기서 멈추지 않으면 안된다고. 그래서 나는 간단한 오전 업무를 마치고 나서 11시쯤 윌의 사무실로 갔다. 전해야 할 소식이 기쁨과는 조금 동떨어졌기 때문에 빈손으로 갈 수는 없었다. 때문에 나는 요즘 인기 있다는 추리소설을 한 권 샀다. 윌은 사무실에 있었다.
나는 윌을 그 앞 조그만 찻집으로 불러냈다. 그리고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일이 뜻대로 되지 않더라, 사람 마음 참 심하게 흔들어 놓는 것 가운데 하나가 연애의 시작과 끝이 불분명하고 애매하며 어중간한 건데 넌 참 고생이 많다, 사람이 좋다 어쩐다 까지 말한 다음! 딱 나는 낸시가 날 조금 마음에 들어할려고 하는 것 같아, 라는 말이 막 목구멍까지 올라왔을 때였다.
「아, 그거~? 뻥이야! 낸시랑 나는 요만할 때부터 지금까지 친구야. 어릴 때 볼 거 안볼 거 다 봤고, 단 한 번도 이성으로써 감정을 느껴 본 일이 없고. 집안끼리 친하고. 낸시의 친구가 내 친구고, 또 낸시도 내 친구들을 다 알고 모두와 친하고. 연애 전문 수필가들이 예민하게 다루기도 하고, 사람 일은 원래 모르는 법이지만 나와 낸시는 한마디로 그 희박한 사례야. 사랑은 모르겠고, 성욕이 발생할 소지는 차단된 거라고나 할까? 아마 그 정도 확률이지 않나 싶어.
설마 낸시랑 만나서 어떻게 진지하게 물어보거나 그러지는 않았지? 가벼운 농담인데 진담인 줄 알고 남녀 사이에 처음 연애 감정이 싹트기 시작할 때 느끼는 그런 기분 느껴본 건 아니겠지? 그럼 됐어. 아, 맞다. 그거 알아? 낸시는 말이야 비밀이 많은 여자인 거!」
나는 이때부터 생각이 많아졌다. 내가 만일 유부남이다, 모든 생활이 원활하고 행복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누가 날 좋아하네? 많이 좋아하네? 따라다니네? 심하게 따라다니네? 또는 반대로 처음에는 그저 내가 호의를 반복적으로, 습관적으로 베풀었는데 역할이 바껴서 이젠 그쪽에서 쫓아다니고, 그 뭐야 그래 막 매달리네? 애원 그런 거? 가만 있자 그러면, 유부남들은 살면서... 유부녀들도? 말을 안해서 그렇지 어른의 삶은 참 피곤한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물론 지금 현재 나는 유부남이 아니다. 그러나 내 모든 생각과 인생의 반틈은 그 절반이 피앙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그냥 지금 예술을 위한 도피 생활을 하는 듯 했고, 정해진 길을 벗어나지 않았다. 환상의 요람을 걷어차지도 않았고, 최고의 사랑을 배신하지도 않았으며, 지옥의 묵시록으로 장르를 바꾼 것도 아니다. 그런데 내가 왜 뒤가 켕겨야 하지? 응?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다고! 나는 거리낄 게 하나 없으니 가슴을 펴고, 고개를 들고, 희망의 나라에 대한 글을 써야 한다. 그게 맞다. 그런데 왠지 저기 저 어느 푸르른 숲 속 어딘가에서 막 궁금한, 또 사무치고 그립고 솔깃한 그런 이상한 소리가 들리네. 어떻게 가서 사이렌과 그냥 악수만 나누고 간단히 인사만 나누고 올까? 그럴까? 일단 현재 나에게는, 내가 꿇리고 굽히고 책망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아직은? 물론 처음에는 어디까지나 선의에서 출발했다. 초반에는 플로네이즈나 마주르카였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장소가 바뀌어버렸다. 클럽으로. 뭐 어쩐다는 그 과장된 광고 문구가 1년에 딱 1번 이루어진다는 그곳의 그날로. 게다가 난 조연에서 주연으로 격상되었다. 적어도 그 때문에라도 살짝 우쭐하고 흥겹고 신나야지 그래야 정상이다. 그러므로 나도 약간 즐거운 듯 하니 난 정상이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과연 이처럼 한숨이 큰 의미를 지닌 적이 많았던가, 그런 의문이 나를 흔들고 있었다.
10
오늘 윌을 만나기 전에 한가지 변화가 있었다. 바로 낸시가 날 쫓아다닌다는 것. 그건 뭐 거의 스토커급이었다. 여자가 한 번 빠지면 정신 못차리네 어쩌네 무섭네 물불 안가리네, 그런 풍문인지 낭설인지 진리인지를 살면서 틈틈히 듣긴 들었는데 나는 막 겁이 나기 시작했다. 쫓아다니고 따라다니고 전력을 다해서 최선을 다해서 한 사람에게 집중하는 사랑의 방식을 싫어하는, 마다하는, 거절하는, 반감을 가지는, 사양하는 여자는 없더라! 그것은 어느 아저씨랄까 어떤 가난한 예술가의 지론이다. 그 말은 곧 뒤집으면 여자도, 여자는, 당신도 충분히 그 주체가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나는 뭔가가 느껴졌다. 머릿속으로 막 그림이 그려지고, 몇몇 이혼남들이 떠오르고, 끔찍한 법석과 치정에 따른 야단과 탐욕스런 운명의 흠결과 여러 경우의 수가 떠올랐다. 궁극의 예술적 영감이 샘솟듯 막, 그렇게 막! 기분이 이상했다. 죄책감마저 느껴졌다. 것도 많이. 나는 애처롭고 외로운 숙명의 기로에 세워지고 만 것이다. 그렇게 됐다. 에고머니나! 인생이라고는 복권과 NC 밖에 없는 난봉꾼이냐, 아니면 영원한 사랑의 화신이냐! 어떻게 딱 빼어난 기치가 떠오르지도 않았고, 나는 과장증과 허언증과 강박증과 조증과 카사노바 증후군은 물론 온갖 헛생각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역시나 쫓아다니고, 따라다니며, 꽃다발을 들고 벌스듯 기다리고, 어쩌면 사랑의 갈망이 아니라 애정을 구걸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한, 그런 자존심이고 나발이고 뭐고 다 내던진 맹목적인 사랑은 뜻을 이루면 그 사랑을 시도하는 편에게는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 반대라면... 아아아, 생각만 해도! 그건 가슴 벅찬 감격과 정반대일 것이다. 상상하기에도 참담하다. 나는 여자들이 모르는 세상을 아니까.
그러나, 진짜, 그럴까? 정말로? 노노노노노-노노노노노-노노? 정답이야 어떻든 그런 사랑 또한 절대 쉬운 사랑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지금, 바로 지금 낸시가 그러고 있었다. 나는 무서웠다. 겁이 났다. 피해야 할까? 어디로! 퇴짜를 놓을까? 뭐라고! 진짜로 멋진 선자리를 주선해 줄까? 이제 와서 그게 다 뭔 소용이냐고 하면 나는 할말이 없다! 어떻게 보면 사랑은 다름 아니라 하늘의 별따기와 같다. 이미 움직였고, 벌써 변했거나, 기대에 못 미친다거나 모진 풍파를 겪거나, 사랑은 그대의 기대감을 그윽히 고조시키며 결국에는 그대를 사랑의 주인공으로 만들어서 그 불가능할 것만 같던 사랑이 미완성에서 완성으로 변모하는 바로 그 과정 모두가 사랑이다. 그렇다면 이미 나와 낸시도 그 속성 통달 과정에 이미 돌입한 건가? 때문에 시작이 어중간했을지라도 그녀를 실망시키지 않는 반전의 깜짝쇼라도 연출해야 하나? 아아 머리 아프다! 왜 대체로 남자들은 살면서 친구와 단 한 번도 사랑에 대해 말하지 않는지, 사랑과 행복과 낭만과 신비와 동경심 같은 인생의 풍미를 더 멋지게 만들어줄 그런 낱말들이 대체 왜 모두 그분들 세상에선 금기어인지 알 듯 모를 듯 다시 알 듯 했다. 왜 사랑에 흠뻑 빠진 행복한 여자들이 자기 남편한테 꼬리치는 년들은 그냥 확...... 그러는지 알쏭달쏭 이해가 되기도 하는 듯 했다. 누가 남자는 단순하다고 하는가? 대관절 누가! 내가 지금 얼마나 머리 속이 복잡한데, 단순하긴 뭐가 단순해! 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짜증을 단 한 번도 내보지 않았고, 태어나서 지금까지 사랑 때문에 괴로워 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혹시 이건 고양이의 예민한 신경질이 아닐까, 그런 의심스러운 무언가 그런 느낌마저 감돌았다. 이 일을 대체 어쩌면 좋단 말인가! 답이 없었다. 그렇다고 어디서 상담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사랑의 시? 이미 떼긴 뗐는데 복습은 영 댕기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일단 낸시는 물론 세인들의 눈길을 피해 은거에 들어갔다. 그래. 내가 원한 것은 바로 이것, 칩거 및 은둔이다! 어쩌면 이게 내가 찾던 행복이란 파랑새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초반에는, 숨어서 조용히 살기 시작했던 초반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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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집 바깥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다. 밖에는 어김없이 낸시가 날 철통 감시하고 있었다. 나는 슬슬 답답함을 느꼈다. 엉덩이가 근질근질했다. 나는 귀공자가 아니지만 죄수도 아니다. 역사적으로 빠삐용도 탈출에 성공하여 결국 인생을 멋지게 만들었다. 내가 왜 집에 갇혀 살아야 하는데? 그래야 한다. 긴말 필요없이. 가택 감금, 막상 해 보면 할 만하다. 그런데 시간이 점점 지날수록 이 일이 그다지 만만한 일이 아니란 걸 알게 됐다. 첫날에는 바깥을 딱 10번 내다봤다. 동정을 살피느라. 아예 눈길도 주지 않으려고 했는데 원거리와 녹색 풍광과 하늘색도 마음에 담아야 하니까 그래서 본 거다. 그리고 둘째 날은 20번, 셋째 날은 30번 내다봤다. 낸시는 정말 대단한 인내력의 소유자였다. 거의 잠복 근무도 완벽히 수행했다. 조수까지 벌써 구한 듯 했다. 그녀는 진짜 전문가처럼 보였다. 그걸 다 어디서 배운 거지? 그걸 꼭 어디서 배울 필요는 없을 테지만 노력이 가상했다. 대단한 그녀, 짝짝짝!
그러나 나는 왠지 좀 기분이 이상해졌다. 내가 왜 피해야 하는데? 내가 뭐 낸시한테 몹쓸 짓을 한 것도 아니잖아. 한번 피하면 계속 피해야 하는데 인생 내내 이런 자세로 일관해서 살아가야 한다? 오오! 그건 아닌 것 같았다. 나는 참다 참다 딱 1주일이 되던 날 도저히 못 참고 밖으로 나갔다. 그 기분은 정말 내가 SF 영화의 주인공처럼 제2의 지구에 탁 첫 발을 내디딘 듯한 기분이었다. 날아갈 듯한 느낌이었다. 아 이래서 사람들이, 앗 사람들이 그런 게 아니라 내가 입버릇처럼 장난 말로 가택 감금 가택 감금 그랬구나 했다. 나는 나가자마자 당당한 걸음으로 저 앞에 보이는 신형 선홍색인가 자주색인가 그 웨건으로 다가갔다. 가까이 가서 차에 타서 1주일 내내 날 기다렸던 낸시에게 단호히 말할 생각이었다. 다짜고짜! 나 좋아하지 말라고! 나 임자 있다고. 딱 도착했다. 그런데,
오, 세상에나! 차에 앉아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니라, 아니 어떻게 이럴 수 있지? 나는 이것도 모르고, 아니 모를 리가 없잖아. 내가 환영을 본 건가? 아닌데 진짜 낸시였는데...! 차에 타 있는 사람은 바로 사람 크기의 인형이었다. 나는 정말 보는 사람도 없고 해서 오랫만에 식~ 썩은 미소를 짓고 말았다. 저런! 그리고 이렇게 내뱉었다.
「어쭈~! 이것 봐라!」
일단 간결하게 어떻게 해서 어떻게 됐다, 라는 전체 정황을 파악해 보면 이건 잘된 일이었다. 기뻐해야 하고, 나는 이 해방감을 축하하는 게 정상적인 반응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불만족할 하등의 이유도 없고, 내가 시무룩해야 할 아무런 명분도 없었다. 절망은 비운의 주인공들이 이겨내고 극복해야 할 과업이지 적어도 내 일은 아니었다. 최소한 지금은. 그런데 내가 무슨 체념씩이나? 대체 왜? 막 도처에 우울과 괴로움과 좌절과 실패와 상념이 날 막 빤히 쳐다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친해지고 싶다는 듯이, 사랑 받고 싶다는 것처럼 애절하게! 설마 이게 다 낸시 때문인가? 낸시도 낸시다. 그래도 그렇지 최소 1주일은, 길면 100일은 쫓아다녀 주었어야 옳았는데 그 각본이 정상적이었는데 그녀가 너무 빨리 포기해서 내가 지금? 그녀의 끈기가 뭔 상관이고, 그녀의 인내력과 내 행복이 왜 비례해야 한단 말인가? 이건 도저히 이해할래야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 납득할 수 없는 비이성적인 감정은 이별한 연인들에게 알맞는 기분이지 이론적으로 봐도 그렇고 뭘로 봐도 허전해 하지 않아야 할 내가 떠안을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러나 어이없게도 나는 보기에 딱하게도 못내 아쉬워하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벌써 포기해? 응? 사랑이 무슨 장난인가? 어? 지금 장난 하냐고, 사랑이 아니라! 첫 끗발이 개-끗발이다, 뭐 그거야? 어? 오라~ 이래서 여자들이? 아아, 오 저런 맙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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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자가 인생을 돌아보면서 내가 사랑한 사람은 누구 응응 누구, 내가 좋아한 사람은 꽤죄죄한 중고책 서점이 보유한 고적한 장서 숫자 만큼이었고, 그런데... 그런데 나를 줄기차게 끈질기게 최선의 노력을 다해서 몸과 마음을 다 바쳐 나를 쫓아다녔고, 기다렸고, 언제나 집 앞에서 학교 앞에서 회사 앞에서 자존심 다 버리고 참 오래도,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꼬박꼬박 꽃다발 들고 그림자처럼 날 귀찮게 했던 남자는? 차근차근 회상해 보니까 오~ 몇 명? OK, (딱)! 이거다. 이거야 이거. 이거라고. 이래서 여자들이 그 어떤 콧대 높고 도도하며 쌀쌀맞기로 소문난 절세의 미녀일지라도 그 소도둑놈에게, 산적에게, 해적에게 사뿐히 넘어가는 것이로구나 라고 나는 깨달았다.
그런데 그건 그렇다 치고. 그러면 손만 까딱해도 꺄르륵 난리 나고, 기다리며 좋아하는 뭇여성들이 동네의 여기서부터 다음 동네의 저 끝까지 줄을 서서 기다리는 상남자계의 큐피트 황태자는 대체 뭐란 말인가? 누군 뭐 삼류 소설가로 살고 싶어서 사나? 누군 뭐 유명해지고 싶지 않아서 진짜로 난 유명해지고 싶은 마음 없어 라고 말하나? 누군 뭐 TV에 나오기 싫은가? NC에 들어갈 때와 나올 때 그 변화의 진폭이 크고 싶어할까, 누구나? 이건 너무 불공평하다. 그러나 듣는 사람이 있어야 화자의 발언이 의미가 있는 법. 애호가가 없는데 예술가가 고고히 선경에 머문다? 있긴 있지만 그건 너무 드물다. 나 꽃이야, 어제도 나 꽃이고 오늘도 나 꽃이지만 그 꽃이 꽃다운 꽃이 되려면 내일은 그 꽃의 이름을 불러 주고, 그 꽃이 관심을 받고, 그 꽃을 보러 벌꿀과 나비와 사람들이 몰려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 누구는 이 꽃 저 꽃 열심히 돌아다녀봐도 꽃에 벌꿀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는데, 이미 누가 선점했으니까 먼저 다녀갔으니까, 그런데 누구는 꽃과 만나는 족족 달콤한 우유와 감미로운 꿀과 사랑과 행복과 기쁨과 그 모두를 정말 식은 죽 먹기처럼 그냥 아조 블랙홀처럼 빨아들일 수도 있는 것이다. 누구는 툭 뱉으면 명언, 딴 생각하다가 실수로 뭔가 잘못 어물쩍거렸는데 행위 예술, 아침에 쓱쓱 끄적거려서 집 바깥으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은 채 인터넷 업로드했는데 낮에는 음악 차트 1위, 저녁에는 모든 연예 뉴스를 독식, 다음 날 일간지를 도배? 누구는 아침에 딱 눈을 뜨자마자 새소리가 그녀를 반기고 고양이는 집사요 강아지는 매니저로써 서로 대화를 나누고, 웃음 꽃이 핀 햇님은 그녀의 미모에 찬탄하고, 오늘은 어떤 즐거운 일과 무슨 정다운 환영이 날 기다리고 있을까 막 그러면서 오늘도 조증 내일도 조증? 이런, 젠장! 사랑에 정말 진공청소기 같은 흡성 마법이란 게 있긴 있나 보다.
그러나 그게 바로 세상이다. 투정도 한두 번이고, 사랑은 드문 것이며, 우리는 오빠라는 말만 들으믄 미쳐버리는 영문 때문에 이름을 아예 오빠라고 짓는 상상, 그 모두가 다 인생인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여자는 여자들은 그냥 생각없이 아무나 쫓아다니면 그냥 좋다고... 그게 뭐야? 뭔 기준선이 고무줄이야? 그건 완전 따라다녀 주기만 하면 그냥 바닥까지라도 기꺼이 내려갈 수 있는 요술 주문이라도 된단 말인가? 그러고서 자기는 몸짓은 누구 매너는 누구 유머는 누구, 누구처럼 잘생기고 누구처럼 말 잘하고 누구처럼 포근한 남자를 바란다고? 그런 남자가 이상형이고 자기는 누가 뭐래도 그런 남자를 만나고야 말겠다고? 그러고서 꽃 들고 집 앞에서 날마다 기다린 어느 남자와 오래 만나고 결혼해서 지금은 애가 몇 명인데, TV를 보다 내 남자를 보면? 오, 그건, 절대, 안돼! 절대로! 그러나 그건 남자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그리고 그 남자는 실재 내 친구다. 어디 나만 그러겠나. 살면서 그런 일 많이 봤다. 그대도? (하이파이브)! 한 번 더! 적지 않게 들었고, 읽는 건... 그건 아니다. 나는 할리퀸 로맨스나 통속 소설, 우리 누나가 20대에 읽었던 책과 보통 여자들이 애호하는 글은 나와는 맞지 않다.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지면 몰라도. 그런데 뭔 얘기하다 여기까지 왔지? 여긴 어디지? 하여간 여자들이란! 그렇다고 무슨 주의 그런 전문 용어 그런 건 아니다. 나는 어디까지나 여자 보기를 돌 보듯 하는 남자니까.
아무튼 나는 결심했다. 어차피 서로 마주칠 일도 없겠지만 낸시를 만나게 된다면 나는 모른 체 하겠지만, 그녀가 정 나를 귀찮게 한다면 난 낸시한테 애칭을 선사해 줄 것이다. 영심아 라고 불러 드릴 것이다. 허영심양 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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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종의 웃음거리에 지나지 않는 단편영화 같은 우발적인 일은 잊어버리고 나는 내 삶을 살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분을 바꿔야 한다. 기분을 바꾸기 위해서는 기분 전환에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야 한다. 기분 전환에 효율적인 방법을 찾기 위해서는 분위기 변화가 필요하다. 분위기의 변화가 필요하기 위해서는 기분을 바꿔야 한다. 뭐야 원점이잖아? 농담이고, 기분을 바꾸기 위해서 나는 하나를 선택했다. 최단 기간에 최대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건 뭐니 뭐니 해도 음악이다. 나는 바비 맥퍼린이나 최신 팝송과 추억의 히트송을 들었다. 그리고 그냥 멍하니 음악을 듣기만 하지는 않고, 나는 그 음악을 흥얼거리면서 허영 대학교로 떠났다. 왜냐하면 나는 허영 대학교에서 최근 강단에 초대 손님으로 출연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삼류 대학교 문학 교수와 언제부터 친구 먹기로 했다. 친구 먹기? 친구 하기. 내가 아무리 삼류지만 그래도 엄연히 현업 소설가니까 자기 수업에 잠깐 나와 주라고 초빙한 것이다. 그렇게 한두 번 나가다 나는 어느새 젊은 문학도들이 듣고 싶은, 보고 싶은, 기다려지는, 만나고 싶은,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그런 친구 같은 전문가, 까지는 어림없었다. 그래도 녀석들에게 꽤 참신하게 보였나 보다. 내가 그리 썩 밉지는 않았던 거지. 그래서 나는 현대 문학 강의에 정기적으로 초대 손님 자격으로 출강하게 되었다. 과목 제목은 정확히 모른다. 그걸 알고 나면 내 고유의 정체성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에 알려 주지 말라고 했다.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게 내 방식이니까. 나는 강의를 하면서 막 이랬다.
자네는 연극영화학과에 가지 거기 뭐하러 앉아 있냐고, 이 양반이 이거 이거 어른을 놀리는 거도 아니고 말야. 친구는 딱 봐도 미래가 보이는 구먼, 학생은─길게 갈 것도 없이─딱 3년 안에─유명 작가로─데뷔할 것이다─왜냐고, 어떻게 아시냐고 묻지 마시라─예언이니까─두고 보면 안다. 여러분 대학 생활 시시하죠 재미없죠, 사람들은 스무살이 막 아무 이유없이 좋다고 하지만 청춘 그거 꼭 그렇지는 않죠? 돈도 없고, 여자 친구도 남자 친구도 없고, 재미도 없고, 이건 뭐야 저건 뭐야 에이 증말 이런 젠장? 다 알아요 다 안다구요, 저도 그랬으니까요.
그냥 이런 얘기 좀 해줬드니 막 난리가 났다. 뻥뻥 터졌다. 뻥뻥? 정말 그랬나 그 정도인가는 확신할 수 없지만 그래도 애들 표정이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그러다 중간 중간 살짝 소설은 말이죠 이런 거예요, 혹시 그 영화 기억하세요?, 제가 다시 옛날로 돌아갈 수 있다면 저는..., 사람들은 말하죠, 사랑은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여러분 이런 말 들어보셨죠 아니면 읽었을까요 그 말은 맞을까요 틀릴까요, 아리스토텔레스는 당시 이렇게 말했어요, 플라톤이 누구인 줄 아세요? 피자 배달원도 플라톤이고 동물원에서 커다란 동물 얼굴 뒤집어쓰고 아르바이트를.. 어 저기 저 친구 지금 동물원에서 진짜로 그런 일 하고 있을 것 같군요 저 친구 같은 사람의 진짜 이름이 그 친구의 부모님께서 지어주신 이름이거나 또는 계승된 성의 명칭이 바로 플라톤이에요, 바텐더나 콘서트장에서 티켓 파는 사람과 의류 판매원 다 모두 다 진짜 이름이 플라톤이라구요. 하다 하다 애완견 이름도 플라톤이라니까요? 뭘 원하세요? 노래를 잘 부르고 싶다? 게임만 해서 먹고 살 만큼 돈을 벌고 싶다? 연기도 하고 책도 내고 여행가로도 이름을 알리고 싶다? 하세요! 하면 되죠. 왜 못해요? 못할 게 뭐에요? 하지만 그건 말이죠, 말이죠. 말! ...... 해도 해도 안되더라, 아 증말 이런 아휴 이거 정말 못해먹겠구만, 그건 글이구요. 글! ......(침묵)...... 이거에요, (딱)!... 그 말부터 글까지를 압축하고, 변형하고, 생각하고, 편집하고, 연구하고, 체험하고... 그러다 발명을 하고 뭐가 탄생되고 어쩌다 하루 아침에 유명해지는 거죠. 명성을 얻는 건 하루 아침이지만 그 행운과 우연을 위해서 참 많은 일들이 있었겠죠? 그럼요. 실패할 수도 있어요. 그러나 겁먹지는 말아요. 해 봤더니 실패했다, 그래야 다른 걸 해 볼 수 있잖아요. 연애도 똑같아요. 분야를 바꾸지 않는다면, 사랑이 변하지 않는다면 방법을 바꾸는 것이겠죠. 그러다 적당히 꿈을 수정하고 삶을 살면서 생각이 바뀌겠죠. 그러다 결국 나중 어떻게 돼요, 어떻게 된다구요. 그런 답니다. 인생이 그래요. 그런데 어떻게 될까요? 과연 얼마나 아름답게 인생이 흘러갈까요? 네? 궁금하지 않으세요? 꿈은 또 인생은? 그건 이렇죠. 이렇게 바뀌죠! (나는 딱 그들의 전임 교수이자 내 친구를 가리켰다. 삿대질...은 아니고 품위 있게 딱 그렇게. 하지만 꼭 삿대질이 아니라고 단정지을 수도 없었다. 이렇게, 음(?), 살며시, 어, 그렇게 어중간하게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묘한 손짓을 선보였으니까. 나와 교수는 그래도 되는, 어쩜 그래야 하는 사이였던 것이다. 젊은 친구들은 웃으면 웃었지 절대 비난하거나 따지지는 않았다. 늬가 그러고도 강사냐 어 뭐가 어쩌고 어째, 라고 하지는 않았다. 그렇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말하자면 완전 뒤집어지고 난리 났다. 여세를 몰아서 나는 이 만큼의 후의와 초롱초롱한 그분들의 몰입감에 불만족스럽다는 듯이 바로 이렇게, 최후의 궁금증 그 완벽한 기대감을 고조시키는 확실한 도장을 찍고야 만다. 쿠쿵~! 짜잔~! 두둥~!
여러분, 피리 부는 사나이가 왜 피리를 부는지 아세요(?), 라고! 나는 도피에 용이한 개구멍은 미리 애초에 마련해둔 것이다. 그 유력한 교훈과 행운을 가져다 주는 포지셔닝과 비밀스런 슬로건 그런 건 내 알 바 아니다. 내가 인문-교양서를 읽는 때와 읽어야 할 특정 대상은 따로 있다. 내 비법은 그것이다. 나머지는 다 버리고 오직 내 마음에 쏘~옥 드는 딱 드는 흡족한 최고의, 단 하나의, 세상에서 오로지 하나 뿐이 없는 바로 그 빨려들 수 밖에 없는 빛깔의 꽃에만 사뿐히 앉기. 그런데 말은 그래도 상점에 가면 꼭 그런다. 이렇게. 그 제품은 초장에 다 팔렸습니다 죄송합니다 손님, 이라고. 이런, 젠장! 그건 그렇고, 내 강의의 매력은 그랬다. 분위기를 압도한 다음에 딱 질문으로 강의를 마치기. 시작은 웃음으로, 중간1은 마침표로, 중간2는 느낌표, 끝은 물음표로! 그러나 그 질문의 답은 나도 모른다. 일일 드라마처럼 다음 차례 강의할 때 뭐 적당히 슥~ 넘어가면 그만이지 뭘 그런 걸 가지고 고민할 필요가 있나, 장사 하루 이틀 하는 것도 아니고. 안 그런가? 쉿! 어디까지나 이건 전문가들 그것도 아주 친한 전문가들끼리 사석에서 하는 얘기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럼. 그래야 한다. 그게 맞다. 그렇지 않다면 그건 삼류다! 아, 나 삼류였지? 역시 삼류가 좋기는 좋다. 잇점이 확실히 있긴 있다. 옷으로 비유해 봐도 어디 파티복만 옷인가? 어디 일상복과 유니폼만 의복이겠나. 아동복과 웨딩드레스가 옷이지 책인가? 성복과 수의는 또 뭐고. 삼류는 삼류지만, 누가 뭐래도 엄연한 소설가고 엄정히 따져도 예술가다. 그건 옳다. 언제든지. 어디서나. 누구에게나...는 음 그만 하자. 아무튼 학생들의 그 꿈꾸는 듯한 표정, 뭔가 추측하는 눈빛, 잠자고 있는 열정이 깨어날려고 하는 것 같은 응분의 몸짓, 강의에 몰입한 최고조의 분위기, 그러다 잠시 가녀린 탄식이랄지 재미없다 심심하다 같은 혼잣말의 특이한 어조, 그 때문에 나는 허영 대학교에 출강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학교의 본명은 일부러 감췄어요. 이건 어디까지나 실화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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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지간 그 때문에 나는 낸시한테도 차였고, 사랑의 꿈도 잃었고 움츠러들어 의기소침해졌으며, 쪼그라든 상심을 가득 안고서 지성의 전당으로 갔다. 학교에 도착했다. 강의 시간까지 여유가 있어서 나는 나무 그늘을 걷고, 의자에 앉아 잔디밭에서 노는 친구들을 구경하고, 그리고 낸시를 생각했다. 바로 이런 생각을. 왜 낸시는 나를 좋아했을까, 왜 그녀는 날 쫓아다니다 지쳤을까, 내 피앙세가 설마 천리안도 아니고 이 일을 알고 있는 건 아니겠지 아마 모르겠지 절대 모르겠지, 크크큭큭 킥킥킥킥킥 히히히히 그런 공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었다. 내 머리 위에서 짹짹거리며 하늘색 새 두 마리가 원을 그리며 돌지는 않았다. 그 대신에 말 두 마리가 띠기딕 띠기딕 딕딕 하면서 새처럼 돌고 있었다. 한 마리는 '아내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였고, 다른 한 마리는 '아내는 아무것도 모른다'였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나는 대학생들이 모두 늑대와 양으로 보이는 것만 같았다. 이건 뭐야 신기한 환영인가 아니면 기막힌 행운인가? 기막힌 행운은 무슨!
그런데 이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막 교정을 거니는 여대생들이 모두 낸시처럼 보이는 것이었다. 눈을 찌푸리고 비빈 후 다시 보면 그녀는 그녀들은 낸시가 아니었다. 오뉴월 닭이 오죽하면 지붕에 올라갈까,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 그 비유는 적절치 않다. 심하게 안 어울린다. 나는 낸시에게 낚인 것이다. 나는 최면에 빠졌다. 완전히 말려버렸다. 제대로 걸려든 것이다. 설마 내가 사랑에 빠져버린 것일까? 아니다! 그래서는 안된다. 저 세상의 끝까지 도달해서 벽을 찢으면, 그 벽은 원고지니까, 황홀한 신세계가 펼쳐질 것이다. 그건 모두 쓸데없는 몽상이고, 찬찬히 사람들을 다시 보니 모두 그냥 하나 하나의 사람들이었다. 늑대도 아니고 양도 아니고 닭도, 오리도, 백조도, 타조도, 뻐꾸기도, 앵무새도, 제비도 아니었다. 그러나 내 인지 체계는 정상으로 돌아왔지만 내 청각은 더 민감해졌다. 따라서 문제가 발생했다. 무슨 문제인가? 그것은 이 근처에서 들리는 여성의 목소리를 취합하니 약간 낸시의 비음과 비슷하거나 웃음소리가 똑같다거나 그녀가 자주 쓰는 말투와 똑같은 얘기가 막 내 귀에 들리고 있었다. 속속들이 착착, 쩍쩍! 가령 그것은 예를 들면 이렇다. 아 있잖아! 아 있잖아? 있기는 뭐가 있어. 음 뭐랄까! 음 뭐랄까? 뭐가 뭐랄까야 뭐는 뭐다 라고 말하면 그만이지. 말끝마다 오빠 말끝마다 오빠는 어떻게 생각해 그리고 딱 대답할려고 하면 지가 말해! 뭐야 그게? 저런 아휴 진짜! 뭐 오빠는 어떻게 생각해? 어떻게 생각하긴 뭘 어떻게 생각해. 지가 물어보고 왜 자기가 대답하는데? 관심없어. 관심없다고! 오빠 사랑이란 말이야. 오빠 사랑이란 말이야? 그 놈의 말이야 말이야, 그냥 요점만 말하라고 요점만~ 아휴 (부글부글) 아아, 증말 이걸 어째!
한편 심리 묘사와 의식의 흐름은 그랬고, 행동과 결과와 실적은 별거 없었다. 나는 강의할 때 저 학생들 가운데 혹시 낸시가 있는 건 아닐까 하며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그러나 평소보다 수준은 살짝 낮고 기대에 대한 부응은 많이 쳐진 채로 강의는 그런대로 마쳤다. 그리고 그 삼류 대학교 문학과 교수인 내 친구 엘론과 만난 김에 한 2박 3일 마음껏 회포를 풀고 즐겁게 놀았다. 우여곡절은 있었다. 엘론한테 휴가 내면 되지 않냐고 하니까 바람 피기 때문인지 뭔지 휴가를 다 썼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생각했다. 그리고 멀쩡히 정정하신? 이미 옛날에 명을 달리 하신 어떤 분께 죄송하지만 딱히 가까운 건 아닌데 먼 건 아닌, 약간 멀지만 또 그렇게 먼 사이는 아닌 누군가 뭐 어떤 일에 대해서 적당히 핑계를 댔다. 왜냐하면 사람들 가운데 꼭 그런 부류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 남자친구는 날마다 죽어요. 그는 야구선수거든요. 거울을 보며 얼굴이 갔네. 게임 캐릭터가 하직하셨네 등등.
그렇게 나는 브랜드 낸시를 그만 깔끔하게 잊어버렸다. 어차피 우연히 마주치더라도 먼저 아는 채 하지 않으면 그만이고, 굳이 살갑게 굴면 영심아 영심아 이 허영심아 하면서 패기만만한 깐족으로 상대하면 그만이다. 영심이는 바로래요~ 영심이는 머머했대요~ 그러면서. 사랑을 받아줄 수는 없으니 못이긴 척 우정을 회복하면 그만이다. 영심양이 어디서 너 그 녀석한테 책 잡힌 거 있니 라는 그런 말을 듣게 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그래도 집에 돌아오면서 기분이 많이 회복되기는 했으나 조금 잔잔한 애심이랄가 애련 같은 게 느껴졌다. 행복의 반의어는 불행이구나,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는 법, 기쁨은 심심함과 상존하며, 허영심의 제일 친한 친구는 허세가 아니라 권태일 수도 있겠구나, 그러면서 나는 사랑을 불신했다. 그러나 나는 쾌락을 믿었고, 퇴폐주의와는 작별했다. 사랑하고 싶어, 사랑할 꺼야, '사랑 받고 싶어'가 아니라 진짜로 정말 괜찮은 남자가 날 쫓아다니고 따라다니고 꽃 들고 무턱대고 기다려 주었으면 좋겠어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 같은 사춘기 문학 소녀의 상념을 내가 빼앗아서 하게 되었다. 사랑 받지 못함은 다정하지 못한 일이로구나, 친애할 만한 처지는 아니겠구나, 그것은 가난과 단짝이구나 슬픔이자 비애로구나, 하면서 가히 유치해서 못 봐줄 생각만 골라서 했다.
그래도 어쨌든 집까지 잘 와서 나는 꿈나라로 떠났다.
15
학교에서 공부하고 수다를 나누고 일상을 보낸 후 집에 돌아왔을 때, 편의점이나 빵집이나 아이스크림 가게나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할 때 같이 일했던 우정으로 사귄 멋진 오빠 때문에 알게 된 그 멋진 오빠의 생소한 멋~진(?) 친구가 집 앞에서 꽃다발을 들고 날 기다리네? 혹시 사랑 때문에? 바라는 게 뭐야, 그 끝은 팡파르일까 결혼행진곡일까? 예술대학교에서 성악을 전공한 후 교습소에서 애들을 가르치며 어쩌다 바지에 오줌 싼 거나 치우고 있기도 한심하고 재미도 없고, 그래서 영양사 공부를 하여 영양사 자격증을 따서 다시 그 예술대학교에 식품영양사로 취업을 하고, 그 대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학생이 자기를 퇴근할 때마다 따라다니고 그렇게 딱 100일 동안 공을 들이니 그 다음에 어떻게 됐다더라? 그 어려운 공부 시켜서 키워놨드니 글쎄 마음은 큐피트와 네메시스에게 주고 몸은 큐피트의 화살을 맞은 나르키소스에게 줬다드라? 한 번도 아니고? 이 모두를, 우리 주변에서 그야말로 흔하디흔한 그 모든 일들을 하나같이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그래도 된다면, 그러고 싶다면 이건 아마도 영화 제목과 비슷할 것 같다. 바로 이렇게. 미녀와 야수!
도시에 살면서 거리에서 순록을 만나기는 쉽게 말해서 하늘의 별따기다. 시골에 살아도 환경이 되는 곳이나 그렇지 그게 아니면 생-곰, 야생-곰, 떡대 좋은 이따만한 그런 곰을 만나기 역시 악마가 천국에 셋방을 마련해서 사는 것에 비견되는 일이다. 그만큼 드물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옥 세계의 강을 건네주는 사공 캐론이 천국에 몰래 잠입했다가 이승으로 소풍 갔다가 그 보다도, 그 어떤 여자라도 그 어떤 남자가 쫓아다니기만 하면 그만큼 공을 들이고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니! 이건 정말 그런 결론 밖에 나오지 않는다. 사랑은, 믿을 만한 게, 절대, 못된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유익하다. 아니면 이와 같은 수순을 밟으신 분들께도 미안한 일이고. 그렇게 사랑을 쟁취했다가 잡은 물고기에게는 먹이를 주지 않는 분들에게는 일단 겉으로는 더 미안한 일이니까. (이따 조용히 우리끼리 만나서는 속닥속닥, 우리끼리 조용히 어쩌고저쩌고, 키득키득 큭큭큭!) 그래서 지금의 사랑이 장래에는 '그 남자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로 변하는 것일까? 그럴 수도 있다. 아닐 수도 있고. 그러나 전자일 가능성이 조금은 농후하다. 그러나 숙녀 가운데서도 딱히 선수라고 지칭하기는 뭐해도 이 세상을 알 만큼 알고, 이 세상을 살아 볼 만큼 살아 보신 분들은 이렇게 말씀하실 것이다. 요즘 남자들은 이렇다고. 그것은,
첫째, 요즘 남자들은 한 나무를 열 번 찍지 않는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는 없다', 그건 다 옛날 말이다. 무엇보다 나를 정말 공주님처럼 쫓아다니는 남자들이 넘쳐나서 나도 정말 유명해졌으면 좋겠다. 이미 조금 유명하다면 더 유명해졌으면 좋겠다. 허영심은, 우리 영심이는 내친김에 존경까지 받고 싶다. 그게 나쁘다는 말이 아니라! 그대여, 돈을 싫어하는 사람을 만나보셨나요? 또는 돈을 쓰는 즐거움보다 더 재밌는 게 어디 많던가? 다른 무엇도 아닌 바로 돈이 4각, 8각 링에 딱 올라왔으면 흰 수건을 던질까 말까? 어째야 하나? 흰수건? 그건 아니다. 그건 아니지. 우리도 올려 보내야 할 것 아닌가? 그런데 누구를? 벤치에 찌그러진 빈곤을? 무슨, 그분이 있지 않나. 바로 <인기>! '돈'이라는 팀에 자존감과 자존심과 자신감과 자만심이 있다면 허세와 허영과 허풍과 변덕을 거느린 구단은 바로 '인기'다. 물론 이합집산은 수시로 이루어질 것이다. 그건 그렇고 그러나, 그러나 막상 구애하고 따라다니면 <어딜 넘봐!> 막 그러면서 스토커로 찍히거나 완전 짜증낸다 여자들은. 처음에는. 무엇보다 열 번 찍는다는 것은 무식한 짓이고, 자존심 내팽개친 일이며, 도무지 예법을 모르는 돌리고 돌려서 말하자면 전~혀 귀족스럽지 못한 일이다. (딱)! 범죄와 예절도 간극이 매우 좁을 수도 있다는 말씀. 남자만 <내가 최고> 주의일까? 천만의 말씀! (딱!) 보너스. 남자와 여자 가운데 누가 먼저 신호를 보내느냐, 에서 여자가 먼저 신호를 보낸다는 확률을 일설에서는 95퍼센트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논설을 발표하는 전문가는 크게 봐서 2부류로 나뉜다. 하나는 산출하는 글의 양으로서 일가를 이루는 수필가나 시사 평론가요, 하나는 남녀의 연애에 대해서 학문으로써 접근하는 인문학자랄지 교양가. 후자는 과학과 실험과 머머론 같은 개론과 연관된 설명에 무게가 실리지만 전자는 비교적 학문보다는 상업에, 토론보다 수다에, 고전보다 최신작과 인기와 유명함 즉 최대한 많은 사람이 아는 개념과 사람들의 경험담으로써 먼저 다가가는 순서에 중점을 둔다. 그래서 좋아하고 호감가는 남자에게 남자보다 여자가 먼저 꼬리를 흔드는 비율이 95퍼센트라는 명제는 그분들로부터 자연스럽게 도출된다. 여자들의 중론이 그렇다, 라고. 하지만 그것은 쉽게 말해서 후자의 방법론을 빠트린 거다. 일반적으로 여자가 신호를 보내는 것은 맞다. 그건 맞다. 하지만 그 행위에 대한 범위는 대개 빠트린다. 즉 가벼운 담론에서는 같은 편이라는 울타리 안에서는 그 대상에 대해서 슥 흐린다. 바꾸어 말하자면 95퍼센트의 신호는 대체로 개인적으로 한 남자에게 집중되지만 역시나 대체로 모든 남자에게 고루 나눠드린다는 것이다. 평등하게! 꽃 사세요 꽃 사세요 꽃을 사세요 꽃을 사 사랑 사랑 사랑 사랑 사랑의 꽃을 사세요 라는 구호처럼. 나를(나만) 추종하는, 나를(나만) 편애하는, 나를(나만) 애호하는, 나를(나만) 좋아하는, 나를(나만) 사랑하는 어떤 남자가 나를(나만) 따라다니고, 나를(나만) 쫓아다니고, 내 집 앞에서 나를(나만) 기다리고, 내 하교 시간에 내게(나에게만) 눈도장을 찍고, 내 회사 출구에서 꽃다발을 들고 나를(나만) 기다리는 그 모든 일방적인 구애를 여자는 절대, 절대 마다하지도 싫어하지도 거절하지도 않으니까 그건 공평하긴 흠... 공평한 거다. (그런데 그 어떤 남자가 대체 누구지? 어디 한 번... 살짝만요 그래 조금만 조금만 으으...... 아, 저런 저런!) 그럴 수 밖에. 생물학이라는 학문이 뒤로 밀리고, 전제에 대한 기본적인 가설이 빠졌으니까 당연한 논리다. 그렇지만 그건 나쁜 게 아니다. 또 그 만큼 여자는 보호받아야 한다는 반증이다. 여자는 그동안 덜 존중받은 게 아닐까 라는 하나의 실증이다. 심지어 그것은 인지 체계가 지동설보다 천동설에 가깝다는 추론에 힘을 실어주기까지 한다. 그 말은 곧, 그러므로 남자는 여자를 아끼고, 보호하며, 사랑해야 한다 그 말이다! 여자는 천생 여자니까. 그리고,
둘째! 요즘 남자들은 이상한 동영상에 심취하기 때문에, 또 TV와 인터넷은 물론 거리에 아마도 (싸구려?) NC에 너무 어쩐 여자들이 많고 그분들과 교분을 맺는게 손쉽고, 언제 어디에나 이 세상에는 간편한 사랑이 넘쳐나기 때문에 여자를 존중하고, 칭송하고, 찬미하며, 따라다니고, 귀찮게 하다가 기다리고, 쫓아다니지 않는 것이다 라고. 그렇다. 좋다. 맞다. 웃자. 허허허허허, 허허허허허허허.
자, 그래서 이제는 정말 사랑의 기준이 무엇인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인 듯 느껴진다. 그러므로 결론은 어쩌면 이렇지 않을까 라는 생각마저 든다. <사랑은 없다> 라고! 그런데 정말로 사랑이 있을까, 아니면 없을까? 있다가 사라질까, 연기처럼 사라졌다 짠 하고 나타날까? 사랑은 물안개일까 해바라기일까? 그대는 그 여자를 그 남자를, 사랑했는가 사랑하지 않았는가? 그 사랑은 내가 아는 사랑일까, 아닐까? 사랑은 과연 진공청소기일까 커피포트일까? 사랑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사랑했다면 당신의 행동은 절대 그래서는 안되는 것이었는데 이제 와서...! 당신의 사랑은 절대적이지 않고 조건부인가? 내 사랑에 대해서 나는 과연 얼마나 떳떳하고 최선이었다고 자부할 수 있을까? 사랑이면 다 같은 사랑일까? 그리고 저 위부터 저 밑까지 사랑이란 낱말은 몇 번이나 나오나 어디 한번 세어 볼까? ......(침묵)...... 이제 슬슬 최면에 걸린 것일까, 아니면 환상에 빠진 것일까? 아이스크림을 주셨으면 커피는? 그냥 아포카토로 줄 것이지 내가 뭔 밀가루 반죽인가요? 쥐락펴락하게? 알아서 환상이 깨지거나 마법이 풀리거나 최면마저 풀릴 테니 일단 기다려 봅시다요! 그런데 과연 이런 논법에 동의하시는가? 어디서 그런 말 같지도 않은 궤변을 늘어놓냐고? 인정하시기 싫으신가 보다. 또는 이쪽에서 큰 실수했거나. 그렇다고 증거를 내밀 수도 없고, 그냥 수영할 때 쓰는 오리발이나 내밀까? 사람이? 그렇게 한다면 오히려 반감을 덜 사고, 거부감도 덜 하며, 차라리 그러면 웃기기라도 할 것이다.
하지만 이걸로는 아직 뭔가 부족하다. 그러면 섭하다. 몹시 섭섭하다. 그분을 주목하자. 우리는 한번 더 스포트라이트를 비추자. 그래야 한다. 쫓아다니는 사랑, 따라다니는 사랑, 집 앞에서 기다리는 사랑을. 그 사랑을 해 본 사람이든, 해 보지 않은 사람이든 그것도 둘로 나뉜다. 자존심을 거느냐 아니냐로! 남자에게 있어서 자존심은 그냥 휴지 조각 하나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자존심 센 사람은 아아 옆에 지나가기만 해도 효과음이 들린다. 그날 하루는 악몽을 꿀 수도 있다. 그를 알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10년이나 반세기가 지나서도 언뜻 생각나면 뒷목을 잡는다. 그 정도다. 그런데 남자가 자존심을 버린다라... 그것은 여자가 뭐 어쩌는 것과 어쩌면 비슷한 일이다. 그렇게 자존심을 걸고서 쫓아다니느냐 따라다니느냐 집 앞에서 기다리느냐, 그 극단은 뭐라고 그 끝은 뭐라더라 블로그던가 뭐던가 그 어떤 제목의 소설 초반부에 나와 있다. 잘 모르겠다면 또 잘 아는 사람이 있으니까 물어보면 된다. 어쨌든 쫓아다니는 사랑이 그렇게나 흔한데 그것의 장르가 그냥 멜로드라마인 건 뭐 괜찮다. 좋다. 그래. 그런데 그것의 장르가... 독자님의 친구들만 봐도, 듣는 풍설로만 봐도 그것은 글로 다루는 건 정말 사양하고 싶다. 적극적으로! 발언권을 넘기고만 싶다. 그러므로 그건 어딘가로 대충 넘겼다 칩시다. 그런데 이 따라다니는 쫓아다니는 기다리는 사랑이 자기는 목숨을 거는 사랑이라고 극구 항변하는데 정말 그럴까, 그것에 관한 일화는 한 사람 건너서 아는 얘기들이 있다. 많다. 관련된 웃긴 얘기는 부지기수다. 남자 연예인 D가 여자 연예인 S를 당시 시도 때도 없이 쫓아다녔다더라, 말 그대로 어디에 언제 S가 출몰한다는 데는 전부 다 쫓아다녔다드라, 그래서 결국 어느 날 S가 타 있던 차를 가로막으며 D는 도로에 누웠다고 한다, 왜? 목숨 건 사랑이니까! 그런데 눕긴 누웠는데 D가 눕던 방향이 차선과 십자가 아니라 일자였다더라, 그러나 지금은 각자 따로 잘 살고 다른 길을 가며 다른 사랑을 한다더라, 그런 얘기도 있다. 그러나 그런 방식의 사랑도 좋게 보자면 분명 예쁘고, 순수하고, 아름답다. 다만 학구적으로 보자면 그런 사랑은 블랙잭이나 포커 같은 카드 게임을 예로 들자면 내 액면이 그만그만한데, 또 상대의 액면도 애매한데 상대는 진정 포커페이스고, 나는 앞뒤 안 보고 내 모든 판돈을 거는 것과 비슷하다. 잘되면 모두 얻고, 못되면 모두 잃는. 하지만 말로 하니까 쉬워 보이는 거지 한번 얼굴 팔리고 챙피를 당해 보면 그 마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청춘에게는 패기는 있고 돈은 없다. 노신사는 돈은 풍족하지만 젊음과 거리가 있다. 마음은 청춘이지만. 쫓아다니고 따라다니고 무작정 꽃 들고 기다리는 사랑, 나이 들면 하고 싶어도 창피해서 속된 말로 쪽팔려서 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것 역시 그래프에서 긍정과 부정을 말하는 비율이 인생 중간까지는 비슷하다가 중년을 기점으로 긍정의 비율은 점차 늘어가고 부정의 비율은 점점 줄어드는 것처럼 때가 있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아마 적지 않은 남자는 미처 몰랐을 것이다. 와~! 아니, 여자가 그 정도로 자기가 꽃으로써 꽃다운 꽃의 소임을 꽃처럼 다하고 싶어 하는지를. 와우! 아마 솔직히 많은 남자는 놀랄 것이다. 이미 알지만 그래도 여자는 남자의 영원한 미스테리니까. 남자는 여성잡지1과 여성잡지2 그런(그딴?) 구분 없지 않나. 머리 감고 대충 털고, 스킨과 로션 발라도 그만 안 발라도 그만, 그냥 대충 거울 보고 끝! 그런데 여자는? 여자는 대체 하루에 화장과 청결과 여자다움에 시간을 얼마나 쓰는 것일까? 남자는 그 정성, 헤아릴래야 헤아릴 수가 없다. 쫓아다니고 따라다니며 꽃 들고 기다리는 사랑. 그건 어쩜 맨발의 청춘일 때나 가능한 얘기다. 무모한 사랑과 순진한 사랑도 젊을 때 얘기지 스무살이 꼬마로 보이는 인생의 성숙함을 향해서 가면 갈수록 사랑마저 쉬운 게 아니란 걸 알게 된다. 몰래한 사랑도 애절한 사랑이 있는 반면에 어쩔 수 없이 어느 때가 되면 사랑은, 반드시 또는 어쩌면 몰래 할 수 밖에 없다는 것까지. 내 차가 생기고, 집도 생기고, 가정까지 생기고, 인기를 얻고, 외적 인격도 만들어지는데 그때 가서 누굴 쫓아다닌다? 그러면 당장 옆에서 그런다. 너 미쳤냐고! 연극 대사로 다듬자면 이쯤 되겠다. 천사 같은 친구는, 정신 차려 이 친구야! 상상 속의 악마 같은 친구는, 늬가 비로소 뭘 좀 알았구나 늬가 이제야 내 친구로 느껴지는구나! 라고. 그런 사랑은 대체로 돈 없을 때 하는 거다. 그러나 돈과 나이 지표가 조금 찬 남자와 돈과 나이 지표가 낮은 여자랄지 그런 경우의 수도 몇몇 있다. 왜냐하면 여자는 꽃이지만 남자는 양치기견도 늑대도 애도 어른도 손가락 까딱할 힘만 있어도 꽃을 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지 않는 것은 남아의 본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건 좋다. 남자의 일관된 의무는. 그런데 사랑의 프리마돈나로써 여주인공 최적의 시기는 일관되지 않다. 그건 남자와 달리 수평선이 아니다. 불이익과 불행과 파행과 고난과 역경의 범주에 심심함이 들어가면, 심심함은 그 가운데서 고결한 여복의 한결같은 위상이 초대에 응답하기 전까지는 단연 최고로 아름다운 메조소프라노가 된다. 그것이다. 남자의 사랑과 여자의 사랑이 다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남자가 여자에게 그 이름을 묻는다. 남자는 여자의 이름을 부른다. 남자는 사랑을 노래한다. 그녀는 꽃이 된다. 꽃은 생화다. 생화의 계절은 꽃 피는 봄날이다. 봄날이 지나면? 나뭇잎이 무성한 여름이 찾아온다. 그리고 탐스러운 열매가 맺는다. 바나나와 망고와 사과는 물론 사랑도 과실이다. 이제 태양의 열기가 주춤하고 바람이 선선해진다. 가을에는 소풍을 간다. 겨울에는 사랑의 편지를 쓰자. 차츰 봄이 저만치 오고 있다. 그렇다. 다시 남자는 사랑의 씨앗을 뿌리고, 사랑의 설을 푼다. 꽃피는 봄이 되었다. 나비가 춤을 추고 꿀벌이 바빠진다. 그러나 꽃이 만개하면 다시 꽃은 시들지 않을 수 없는 법. 그게 꽃의 숙명이다. 내 사랑을 회상하고, 더 멋진 사랑을 동경하며, 그리고 시적으로 꽃의 운명을 추억한다. 활짝 핀 꽃은 언젠가 시들 것이다. 그 꽃의 아름다움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꽃의 낭만을 잊지 않는다. 그런데 꽃잎이 시든다? 뭐 꽃이? 아아 그건 너무 문학적이다. 슬퍼! 많이 슬프다. 맞다. 그렇다. 오늘 누군가는 저녁 노을을 바라보며 아마도 울 것이다. 것도 펑펑! 분명히 그럴것이다. 예언이다. 꿀벌도 나비도 배짱이도 그분들이 철없거나 원숙해질지라도 꽃밭은, 그분들의 영원한 무대인 것이다. 네, 주무대! 바로 그래서 남자는 여자를 아끼고, 존중하고, 예우하며, 사랑해야 하는 것이다. 그 자상함과 친절함과 목소리와 눈빛에 과연 한 여자만 기뻐할 것인가 라는 모순이 남겠지만 말이다. 젊음은 돈이 없고, 노년의 예술가는 돈만 많다. 그러면 또 누군가는 늬가 가난한 노년의 비애를 아냐고 뭐라고 하시겠지만 일단은. 쫓아다니고 꽃 들고 기다리는 사랑? 얼굴 팔리고, 창피하고, 생각만 해도 그 수모 아아아, 그게 대체 뭔 망신인가! 얼굴 팔리면 이름도 팔린다. 그 소문 널리 퍼지고, 오래 기억된다. 어쩌면 나의 커피포트는 타인에게 진공청소기가 된다. 그 언제까지라도. 남자들이 한때 정신이 어떻게 되서 멋모르고 쫓아다니는 사랑을 하고, 여자는 그 사랑에 혼미하며 넋이 나간 채로 떨리게 된다. 결과는 잘 아시는 대로. 그러나, 그러나 여자들이 진짜 좋아하는 사랑의 장기전은 그처럼 쫓아다니는 사랑이 아닐 수도 있다. 어리니까, 외로우니까, 향기롭고 아름다고 예쁜 꽃을 아무도 탐하지 않았으니까, 무엇보다 어쩔 수 없는 여자니까 얼핏 못 이긴 척 꽃 들고 기다리는 사랑에 꺼뻑(?) 넘어가는 것이지. 그렇게 쫓아다니는 사랑은 거의 정확히 이렇게 변한다. 그렇게 수렴될 수 밖에 없다. <사랑은~ 없어!>로. 그 언젠가 황홀했던 사랑이 말이다. 그렇다면 여자들이 정말로 좋아하는 장기전, 진정 그런 사랑은 대체 뭘까? 일반적으로 그것은 여자가 한 남자를 너무 좋아해서, 여자쪽에서 너무 일찍 짝사랑을 시작해서, 그 남자가 미처 알기도 전에 그를 내 애인으로 만드는 그런 사랑, 그러나 뭔가 잘 하면 어떻게 잘 하면 그 사랑이 이루어질 것도 같은 그런 사랑을 말한다. 하지만 그렇게 일반적인 거 말고 또 뭐가 있을까? 그것은 바로 허먼 멜빌의 백경을 읽어 봐야 알게 되지 않을까요? 아니지요 아니지요. 괜히 어른이랍씨고 그처럼 어설프게 권고한다면 필경 좋은 소리 듣기는 글렀다. 애초에 글렀다. 그런데도 항상 그런 실수를 반복하시는 분도 드물게 있다. 이젠 그러지 않으면 못견디겠으니까. 습관도 중독도 아니다. 그냥 천성이다. 말이 그렇다. 말은 이렇다. 말로 노년이 중년에게, 말로 다시 중년은 청춘에게 딱 상황을 보고 눈치껏 충고한다. 그런데 잠깐, 위 아래! 지식과 학벌과 재력과 인생 경험과 형형한 눈빛과 특수한 후광을 파악한 다음~에 덕담을 건네도 건네야 한다. 밑도 끝도 없이 다짜고짜 설을 푸는 푼수는 만나기 힘들다. 눈썰미가 떨어질 수도 있으니 그래서 일단 먼저 떠볼 것이다. 딱 보니 뭔가 애매하니까. 자네 학교는 어디 나왔나, 무슨 일을 하는고, 젊은이 어디에서 오셨나, (옛날식으로) 부모님은 뭐 하시는가, 얘는 여기에 뭘 타고 왔지 하면서 슥~ 훓어본 다음에 흐흠 에헴 헛기침하면서 침묵할 수도 있다. 상상해 보시라, 달변가가 언제 정확히 침묵하는지 그 정황을! 그게 뭐냐, 그건 말이다. 말! 그러나 글은 다르다. 따라서 그 사람이 읽는 글을 보면, 그 사람이 평소에 읽는 책을 보면, 그 사람이 소셜 네트워크에 올리는 내용과 타인의 소셜 네트워크에 쓰는 댓글을 읽어 보면, 그 사람이 썼던 글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그이가 평소에 어떤 책을 읽던가? 가뭄에 콩 나듯이 인문-교양서. 그이가 평소에 어떤 작품을 보는가? 오직 게임 같은 작품만. 그 사람이 무엇을 읽고,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주로 하는지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그 다음은 말만 섞어 봐도, 말만 들어 봐도, 조금만 사겨 봐도 아는 경지다. 뭔가 오르락내리락하긴 하는 것 같지만. 그리고 거기서 더 나가면 도사가 된다. 글과 말도 과장하자면 하늘과 땅 차이다. 촌닭과 촌년도 마찬가지고. 아, 그분이 넌지시 뭐라고 하셨지? 맞다. 그분께서 건넨 권유 때문에 읽어 본 백경, 음... 읽고 나서 험한 소리나 얻어듣지 않으면 다행이다. 사랑은 이렇다. 사랑이 이렇다. 대체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하는가? 어? 대체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했는가?
고로 몇몇 경우의 수만 더 집고 넘어가자. 경우에 따라, 어지간한 프리젠테이션보다 엑셀 파일로, 그림 한장으로 설명하는 게 훨씬 좋다. 자, 보자구요. 그냥 대충 객관적으로 봤을 때,
1.미녀와 미남.
2.미녀와 야수.
3.선녀와 야수.
1은 수필가와 수다꾼과 달변가들의 즐거움이다. 그것은 침범해서는 안될 성역이요 월권이다. 상도덕에도 어긋나는 일이고. 그리고,
2는 논의됐다. 그래도 어.. 음... 더 할까요? 오오, 그만 그만! 아아, 뒷목이 당긴다. 커피포트의 물이 끓는다. 마시자 한 잔의 차를. 그래서 남은 건,
3번! 요건 좀 설명이 필요하다. 굳이 성별을 따져서 말할 필요까진 없다. 시작만 일단 그렇게. 또 이건 많은 층위의 차이가 없다면 문제될 건 없다. 그러나 이 셋째는 많은 층위의 차이를 가리킨다. 야수가 미녀를 만난다, 갑부가 숙녀와 사귄다, 노예술가와 스무살 처녀의 사랑이 뜨겁다더라? 됐고 또 됐다. 그만. 모두 그만. 문제는 그게 아니다. 문제는 선녀와 야수다. 그러나 이 또한 여자들의 전공이요 그녀들의 특기다. 긴 얘기는 예절에 어긋나는 일이다. 다만, 다만 주제 넘게 간략히 간추리고 가자면 이렇다. 하나 쯤, 둘 쯤, 셋 쯤 층위는 그렇다 치고, 3번은 어디까지나 현격한 차이를 뜻하는 것이다. 옛날식 드라마 제목으로 사랑과 야망, 뭐 그런 거! 찰스 디킨스의 작은 도릿에 나오는 대사, 뭐 그런 거! 월등한 차이는 그건 딱히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렵다. 힘들다. 양다리를 걸치고 싶다. 미녀가 아닌 선녀가 정말 거의 모든 여자들이 탐내는 미남과 결혼을 했다고 가정해 보자. 일단 거기까지는 좋은데 진짜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그 다음부터 본격적인 문제가 발생한다. 아무리 사랑이 좋다지만, 아무리 사랑이 아름답다지만, 제아무리 사랑이 고귀하다지만 밖에서 만날 때나 일할 때나 어떻게 잠깐 잠깐은 불편함을 감수할 수 있는 게 인간사요 세상사다. 그런데 일평생... 마샤 응? 무수한 마샤 같은 여자들을 걱정하며 살아야 한다? 일평생... 편하지 않게 내 목선을 고고하게 유지하고, 힘들게 반듯한 눈빛을 유지하며, 피곤하게 새-모이 만큼만 음식을 먹고, 정말 그렇게 도를 닦듯이 막 그렇게만 살아야 한다? 일평생? 체한다 그러면! 하루에 체하면 소화제를 먹으면 된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일평생을? 아아, 그건 오오! 내가 그런 억겁의 불편함을 겪어보지 못해서 직접 경험이 아니라서 뭐라 더 말은 못하겠지만 그 역시 사랑일 테지만, 그 주인공은 설혹 이렇지 않을까? 아마도 겉으로는 사랑받는 행복한 여인일 테지만 속으로는 시지프스나 프로메테우스일 수도 있지 않나 라는 것. 물론 그런 일이 어디 흔하겠나. 아마도 내 주위가 아닌 드라마에서 찾는 게 나을 테지. 그렇지만 이건 드물긴 하지만 실화다. 그럴 것이다. 여기서 여자와 남자가 갈린다. 사랑 이야기에 있어서 남자는 아마추어고 여자는 프로다. 왜? 남자끼리, 남자 세상에서, 남자 대 남자의 대화에서는 사랑을 얘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얘기해서는 안되니까. 얘기할 수는 없으니까. 그러나 여자는 다르지 않은가. 저 사례가 누구라는 사연을 전하고, 알리고, 기억하고, 논의하며 그녀들은 그런다.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다시 만나서 하자고. 그러니까 여자는 부풀리고 반복하는 것을 잘한다. 남자가 요약하는 능력이 뛰어난 데 비해서. 더불어 여자들은 특히 사랑에 대해서 뭔 할말이 해도 해도 끝이 없다. 사랑 이야기라면 여자는 절대 마다하지 않는다. 그래서 남자가 드라마를 통해서 아하~, 무릎을 탁 치면서 모처럼 새로 알게 된 일이 여자들에게는 전혀 새롭지 않은 것이다. 어디 사는 어떤 남자가 가슴 찡한 사랑을 했는데, 그는 사랑에 실패한 후, 그저 적당한 상대를 만나 남의 일처럼 결혼을 해버렸다더라, 그래도 잘 산다더라 어쩐다더라, 바로 그런 당사자를 직접 알거나 한 다리 건너서 아는 일. 그게 여자들은 가능하고, 남자는 간혹 그에 대한 입장 표명을 이렇게 한다. 마치 유능한 직장 상사처럼. 내가 그런 시시콜콜한 일들을 왜 알아야 하는데! 누가 알아 달라고 했나? 말귀 참 어둡긴, 카페 피카소에 외상값이나 값을 것이지. 나 하나 때문에 도시 교통이 마비되어도 나와 도시 교통은 상관 관계가 없다는 입장을 물리지 않는다. 내게 큰 불이익이 닥치지 않는 이상 미안해 하지 않는다. 설령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영화 대사처럼 '혹시 기분 나빴소? 그렇다면 내 사과하리다' 라고 해야 한다, 그래도 어떻게 어물쩍 슥 넘어간다. 왜냐하면 나 하나 때문에 도시 교통이 마비되어도 나는 나고, 도시 교통은 도시 교통이라고 생각하는 자기만의 고유한 인지 체계 때문이다. 지금은 멈춰선 안되요 후퇴할 수도 없구요 누군 뭐 몰라서 인습을 따르는 건가요, 다 필요없어 왜냐면 난 지금 바그너를 들어야 하거든 내가 지도를 읽는 동안은 무조건 멈추시오, 그래서 공동체와 타임머쉰과 시간은 멈추게 됨. 죄는 내가 짓고 벌은 남이 받고, 그래서 뭐 어쩔 건데 뭐 어쩌라고, 그 논리다. 유능한 비즈니스맨이 일은 잘하는데 일만 잘한다. 이분도 프로메테우스나 시지프스 분과다. 영리하지만 무식하고 고지식하고 소신 있다, 알고 보니 그분도 그 흔한 소시오패스였다더라. 사이코패스와 정치는 어... 넘어가자. 귀족들이 고풍스런 마차를 타던 그 옛날 신분이 미천한지 청렴하기 때문인지 말은 그런다, 미래에는 승용차들이 도시를 누빌 테니 마차 따윈 탈 필요 없다고. 다시 세상이 바뀌어 자동차가 대세인 지금 운전도 못하고 운전수가 모는 리무진을 운용할 형편도 못되고 근근히 살지만 말은 그런다, 미래에는 무인차가 대세이자 SF영화는 현실이 된다 라고. 그건 그렇고, 그렇다고 여자가 사랑을 일처럼 하는가, 그건 아니다. 차라리 남자는 혼자 연습장에 끄적거린다. 카피라이터가 꿈이 아닌 평생 놀고 먹는 게 꿈이었던 어떤 샐러리맨은. 사랑도 일이다 라고. 남자는 사랑을 일처럼 여길 수 있지만 여자는 아니다. 왜냐하면 남자에게는 사랑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한 남자가 한 여자를 사랑하는 것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절대 아니다. 남자처럼 여자도 흔들린다. 사랑도 변하기 쉽다. 여자는 그런다. 남자의 눈길이 자유로운 것처럼 여자는, 여자는 원래 진정한 사랑을 하고 있어도 충분히 사랑 받고 있어도 내 님과 같이 있어도 훈남이 딱 등장했다, 미남이 등장했다, 성우가 납시셨다 하면 어떤 때의 남자처럼 감성이 흔들리고 살짝 아니 아니 많~이 아찔해 하신다. 잔잔한 물밑에서 많이 긴장한다. 땀까지 난다. 정신 못 차린다. 그게 여자다! 살면서 누구나 들어 봤을 그 말, 잘 생긴 사람은 얼굴-값 한다더라? 그 말도 막대 그래프를 떠올리면 된다. 여자들이 스스로 알아서 줄을 서서 유혹하고 어딜 가나 항상 고혹적인 내 모습을 보일려고 안달난 남자가 있으면 누구는 그런 남자도 있다. 자기는 그 그래프 영역을 발로 뛰고, 땀을 흘리고, 시간을 투자하고, 지갑을 열고, 전략을 세우고, 선물 공세를 하며 열성을 다해서 공을 들이며 그렇게 다가가는 남자. 저 유명한 문구가 내게 유리하게 적용된 것은 사랑의 슬픔일까? 아마도 상심? 체념이랄지 회상? 아, 흥미진진한 수다! 맞다. 올커니! 그러면 저 유명한 문구가 내게 불리하게 사용되는 것은, 즉 그런 농담을 자주 들을지도 모른다는 것은 사랑의 기쁨? 불안불안, 조마조마, 그 사랑을 지키기 위한 처절한 노력? 행복이라고 씌여진 선물 상자와 사랑의 상징인 하트 뿅뿅 풍선이 보인다. 저 앞에. 자 쫓아간다. 막 쫓아간다. 바쁘다. 쉴 수 없다. 다른 경쟁자들이 움직이니까. 누군가에게 빼앗길지도 모르니까. 저만치 앞에 있기는 한데 그런데 그걸 어떻게 탁 잡을 수도 없고, 잡을려고 하면 잡을 듯 잡을 듯, 잡힐 듯 잡힐 듯 하다 다시 도망가고, 그러다 어떻게 딱 잡았다. 잡혔든지. 어쨌든. 그런데 아 글쎄 그 행복인가 사랑인가를 딱 잡고 보니 그건 뭐시여, 껍데기였드라? 또는 포장지나 속 빈 강정? 아흐흐 송구스럽다. 농이 지나쳤음. 그리고,
하나 더! 앞서 세 가지 보기가 객관성이었다면 이번에는 주관성이다. 연인의 마음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대충 보인다고 가정하고 간단히 세 가지로 구분해 본다.
1.남자와 여자가 그 둘이 안닥복달 똑같이 서로를 너무 사랑한다. 곧, 남자의 사랑 = 여자의 사랑.
2.내가 더 좋아하는, 내가 더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야 한다. 그래야 행복하다더라. 곧, 나의 사랑 > 내가 받는 사랑.
3.나를 더 좋아해주는, 나를 더 사랑해주는 사람과 연애해야 한다. 그래야만 길이길이 잘 산다더라. 곧, 나의 사랑 < 내가 받는 사랑.
사랑? 쉽지 않다. 절대 쉽지 않다. 쫓아다니고, 따라다니고, 응원해 주고, 기다려 주고, 정중함과 자상함과 다정함으로 일관하며, 때로는 웃긴 남자로 때로는 멋진 남자로 그 모든 노력을 다 한다 해도 사랑은 결코 쉽지 않다.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다. 그냥 딱 얼굴 보고 사랑, 우리 사랑 할까? 하자! 그게, 다가, 아니다. 그것을 아는 가장 쉬운 구분법은 숙녀인 딸과 귀부인인 엄마의 차이다. 여성잡지1과 여성잡지2의 판이한 차이다. 그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와 비슷하다. 나는 마침내 그이 때문에 꽃이 되었고 뿌듯하고 설레며 가슴이 두근거리는 공주님이 되었네? 나중 두고 보면 다시 볼 꺼 많다. 엄청나게 많다. 일단 식습관으로 시작해서, 잠깐 뭐시라고? 어허허, 처음에 또 중반까지 연기하면 모른다. 절대 모른다. 더군다나 타고난 성미는 바꿀 수 없다. 왜냐하면 잉태될 때 이미, 응애응애 하기 전, 이 세상에 태어남 보다 앞서서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식사 예절, 잠버릇, 성적 구미, 예술적인 기호? 예술 자체를 싫어하는데 무슨 뭔 기호? 그냥 선호하는 영화 장르로 대체, 취미, 집안, 배경, 성장 환경, 지식의 양, 인성과 가치관, 선호하는 디자인, 겉으로 드러나는 제반 사항과 조건이 아닌 세월을 겪어봐야 알 수 있는 두뇌 구조와 인지 체계─뭘로 보나 가장 최고로 일반적인 정상인이 한 번 맘 먹고 휙~ 홱~ 확~ 돌면, 그건 항간에 알려진 정도의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의 할아버지까지 모두를 천사로 숭상하고 환호를 보내야 할지도 모른다, 역으로 어지간한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는 행동 양식이 조금 다를 뿐이지 대중 매체로 알려진 것처럼 그런 캐릭터는 별로 없다 10명이나 100명 가운데 1명이면 흔한 거다 누구나 그런 개념 찾아보면 많이 걸린다, 100만 당 1명 꼴이면 몰라도, 그 말은 곧 누구나 천재가 될 수 있다는 말로도 들리네─등등 사랑은 쉽게 말하기 까다로운 통념이라서, 바로 그래서 어른들이 그처럼 이상한 말씀들을 하시는 거다. 남자는 나이가 들면 힘이 위로 올라온다네, 사랑은 없다네,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는 둥 아니라며 늦게 배운 도둑질이 무서운 법이라는 둥, 가는 여자 붙잡지 않고 오는 여자 마다하지 않는다는 둥, 의무방어전이 어쩐다는 둥, (각자 속으로 생각하고 서로 어딘가에서 코칭을 받는다) 초장에 잡아야 한다네 어쩌네 라고, 남자는 문지방 넘을 힘만 있어도 숟가락 들 힘만 있어도 아니 손가락 까딱 할 수만 있어도 어쩐다더라, 우리는 오빠라는 말만 들으믄 미쳐븐께 같은!
하나 더! 사랑은 몸이 먼저일까 마음이 먼저일까? 플라토닉 그리고 육체적 사랑. 이건 뜸들이지 말고 간명히 요약하자. 안 그랬다가는...! 사랑은 그 둘 다다. 세상사를 어느 정도 알게 되거나 일찍 어른들의 세상을 알고자 했던 말괄량이는 이 주제 하나 가지고도 책을 7권 쓸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온라인 데이트 서비스와 NC는 문을 닫아야 한다. 결론은 이렇다. 그 둘을 포괄한 사랑이 이상적일 것이고, 나머지는 청춘들이 차차 알아가야 할 제2, 제3, 제4의 사랑일 것이다. 요점이 너무 시시했다. 배보다 더 큰 배꼽이 등장해야 할 때다. 일명 별책부록. 이왕 사랑을 논했으니 그것도 몸과 마음이 나왔으니 하나 이상한 점을 꺼내자면 이렇다. 사랑은 마음이 시키네 뭐라 뭐라 한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글과 여자들끼리의 말이고, 적어도 남자에게 있어서 사랑은 몸이다. 그건 불문율이니까 질문은 받지 않겠다. 살면서 수많은 은어와 비속어를 얼마 만큼 알게 되는가, 그 양과 나이도 약간은 비례한다. 꼭 몰라야 절대선에 해당하는 일은 아니다. 그게 필요한 때도 있고, 그걸 알아야 바른 말 고운 말을 쓰자 라고 할 수도 있고, 나는 몰랐는데 내가 주로 사용하는 어휘와 내 목소리를 음성 파일로 들어보니 와~ 어떻드라, 그걸 알게 된다. 몇몇 비속어만 떠올려 봐도 유독 몸에 대한 비속어가 많다. 굴린다, 놀린다, 쓴다, 돌린다, 어쩐다 등등. 굴린다? 그 동사는 공과 한짝이다. 놀린다? 유쾌함과 기쁨을 연상시키는 동사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정말 어쩌다 어울리지 않는 명사와 동사가 만나게 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서 하나 궁금한 게 생긴다. 왜 몸에 관련된 비속어는 딱 떠오르는데 마음에 관한 비속어는 당장 떠오르지 않는지가. 찾아보면 많을 테지만 마음에 관련된 표현은 훨씬 몸에 비해 고급이고 고품격이다. 그럴 것이다. 그건 곧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은 높게 사고, 눈에 보이는 확실한 물체인 몸은 값싸게 여긴다는 뜻 아닌가? 어쩌면 그 반대가 맞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 하지 않을 수 없다. 사적으로 사랑 하면 남자는 몸을 중요시하고 친구들끼리는 마음에 대한 사랑과 사랑에 대한 갈망 같은 건 숨긴다. 남자 대 남자라는 남자의 세상에서는. 말해서는 안되니까. 반대로 여자는 마음의 중요성을 예술처럼 강조하지만 이상하게 그녀들은 몸과 마음이 따로 놀기도 한다. 한 남자와 오래 사랑을 하고 오래 살면서 마음은, 마음은 어쩐지 모르겠다. 드물게 그런 사례가 있다. 남자는 대체로 몸과 마음이 같이 가는데, 왜 여자는 간혹 몸과 마음이 따로 분리되는지 아시나요? 왜냐하면 그냥 그렇게 태어났기 때문이다. 남자와 여자는 다른 것이다. 그래서 사랑이 어렵고, 어려우니까 사랑을 귀찮게 하고, 사랑 사랑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그렇지만 여기서 웃음을 챙겼으면 탄복할 만한 감동도 찾아보자. 많이도 말고 하나만 알아보자. 소설 속 인물들이 타인의 마음을 떠봤으면 독자는 결론이나 교훈을 염탐해 봐야 하지 않겠나. 스무살 친구는 웃고 떠들고 놀라면서 신나게 읽은 다음에 딱 여기서 이런다, 거 소설 한번 더럽게 재미없구먼 이라고. 시간 낭비였다고. 그것은 이렇다. 누구나 아는, 어른은 물론 사춘기만 되도 알아가는 그런 개념 말고 진짜 희귀함 그 고결한 가치, 생각해 볼 만한 의의를 지닌 일이 무엇인가를 놓칠 수는 없다. 그것은 이렇다. 그럴 것이다. 남자가 여자를, 따라다니고 귀찮게 하고 기다리고 쫓아다니는 사랑은 익숙하다. 그걸 거꾸로 뒤집자! 이번에는. 여기서는. 그래야 한다. 그래도 된다. 그럴 수도 있다. 가능하다. 하면 된다. 주변을 보자. 내 주변을. 내 인생을. 타인의 삶을. 그리고 예술까지. 그 흔한 미녀와 야수가 아니라 그 반대로 미녀가 먼저 야수를, '오오 나는 이 남자와 후회없는 사랑을, 최고의 사랑을, 미친 사랑을, 천년이 가도 잊혀지지 않을 사랑을, 전설적인 사랑을 할 꺼야' 라고 처음에 다짐을 하고 다가가고, 따라다니고, 귀찮게 하고, 기다리고, 쫓아다니며, 그러다 숨어서 그를 보호하고 그의 근처로 접근하는 모든 여자들을 차단하며 그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며, 온 동네에 온 세상에 알리며 그것을 마침내 불후의 사랑으로 만드는 바로 그런 사랑, 여자가 남자를, 미녀가 야수를 내 것으로 만드는 사랑 말이다. 하지만 그건 아무래도 여자 입장에서 말해야 옳다. 그래야 멋진 것 같다. 그러니 그것 역시 넘어가는 게 좋겠다. 단, 얼마나 나와 비슷한 성향의 소유자를 만나야 하느냐 그것은 좀 더 심도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 그건 너무 벅차다. 연애를 시작한지 얼마 안 된 연인과 오래 산 부부의 가장 큰 차이점 가운데 하나는 동조성일 테지만, 일단 레즈비언의 연애를 비롯해서 권위적인 저서 최소 몇 권은 꿰고 시작해야 하니까.
16
나는 다시 평소의 나로 돌아왔다. 모든 것은 평범했고, 나는 일을 하기 위해 멀더의 카페로 갔다. 커피를 주문했다. 커피가 나왔다. 멀더는 오늘도 늦잠을 자는 듯 했다. 어제 또 얼마나...... 그건 뭐 멀더 인생이니까 관여치 않는다. 그러고서 딱 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점원은 최근 내 기호가 바뀐 걸 재빨리 눈치 채고서 딱 마시기 좋은 온도로 세상에서 제일 맛난 커피를 뽑아주었다. 저 세심한 배려와 약삭 빠른 눈치, 전자와 후자 역시 종이 한 장 차이다. 나는 향기로운 커피 첫 모금을 마신 후 삼키기 직전에 찻집 분위기를 한번 슥 둘러보았다. 그렇게 카페 돌아가는 정황을 대번에 살핀 후 내 지정석으로 갈려고 했다. 그런데!
윌과 낸시가 저기서 애정 행각을 하나도 부끄러워하지 않은 채 과시하고 있었다. 이 사랑을 보라는 듯이 세상에 뽐내고 있었다. 나는 눈에서는 물론이요, 귓구멍과 다른 여러 곳에서 만화영화 주인공처럼 수증기를 부쉬쉭 내뿜었다. 더군다나 커피 첫 모금을 삼키지 않았기 때문에 그건 입가로 또 입술로 모두 쏟고 흘리고 말았다. 아뿔사! 이런 개뿔! 맙소사! 설마 에단이 주례를 보는 것은 아니겠지?
이런, 아휴, 증말, 이걸 어떻게 하지, 어? 그런데 내가 왜, 대체 왜 내 기분이 이래야 하는데? 남의 일이잖아, 타인의 사랑이라고. 사랑은, 사랑은 축복하고 예찬하고 아름답다고 해야 한다. 추접스럽다고 하는 게 아니라. 그러나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나는 어느새 사랑을 꼭 그처럼 고상한 아름다움으로만 칭송해야 하는가, 반드시 사랑은 반짝임으로 포장해야 하는 걸까, 과연 꼭 그래야 하는가, 막 그런 의구심이 나를 닦달하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나는 사랑 밖에 모르는 바보가 아니라 사랑에 대해서는 아는 게 하나도 없는, 사랑이란 말만 들으면 얼굴이 빨개지는 바보가 되었다.
17
일주일이 지났다. 지금 나는 행사장에 가는 길이다. 오늘은 윌과 낸시의 약혼식이 있는 날이니까. 아, 여기까지 오는 동안 나는 길에서 에단을 닮은 여자를 만났다. 여자가 에단을 닮아? 허허허, 에단의 여동생이면 몰라도 그게 아니면... 왜 하필... 심성이 고울 것 같은 아가씨였다. 그런데 그녀가 길을 물어봤다. 바로 그녀도 윌과 낸시의 약혼식이 치러지는 행사장으로 가는 길인 듯 했다. 나는 상냥하게 가는 길을 가르쳐줬다. 그러자 그녀가 고맙다고 막 그랬다. 그래서 나는 아무 대답을 하지 않고서 가만히 손을 슥 내밀었다. 손바닥을 하늘로 향해서. 마치 세상에 공짜가 어딨냐 제값을 치러야 할 거 아니냐는 듯이. 그녀는 멈칫 뭘 주라는 것일까 생각하는 듯 했고, 잠시 후 혹시 전화번호는 아닐까 그런 고민을 하는 듯 했으며, 뭔가를 물어볼 것처럼 할려다가 참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하늘로 향했던 손바닥의 각도를 재빨리 90도 틀었다. 악수만 하고 헤어지자는데 뭔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십니까 라고 말할려다가 참았다. 우리는 악수를 나눴고, 우리는 헤어졌다. 이건 뭐 심술도 아니고 꽁트도 아니고 재미 하나도 없었다.
나는 약혼식장에 도착했다. 가만 있어 봐. 그런데 무슨 약혼식? 지들이 무슨 상류층도 아니고 옛날 사람들 흉내내는 건가? 하긴 나는 사는 동안 내가 본 백과 사전은 오직 조류 백과 사전 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래도 덕분에 약혼식에 처음 참석하게 되었다. 드라마로만 그것도 옛날에 봤던 약혼식을 말이다. 그런데 그 행사는 평범함에서 약간 벗어난 듯 했다. 게다가 주례는 에단이었다. 나는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윌은 스타워즈광인데 에단한테 부탁했나 보다. 다스바이더 얼굴 모형을 쓰고서 사회를 맡아달라고. 주례? 사회? 그러든가 말든가. 그런데 윌은 언제부터 내 친구 에단과 알고 지냈지? 이제 난 녀석들의 단짝에서 밀려났고 우정도 뺐긴 건가? 관심 없다. 그리고 나도 그렇다. 내 피앙세가 알면 안되네 큰일이네 뭐라네 하더니만, 그렇게 쫓아다니고 피해다니고 난리를 펴더니만, 그러다가 딱 윌의 피앙세가 된 낸시를 축하하기 위한 파티에 하객으로 참석한 것이다. 샴페인인지 와인인지 그냥 막 마셔버릴까? 안된다. 끝까지 품위를 잃으면 안된다. 흐트러지더라도 혼자 있을 때 흐트러지고, 망가지더라도 안보이는 데서 망가져야 한다. 혼자 있을 때 울고 짜고 혼자서 갖은 험담을 아주 살짝만 할 뻔 하다 멈춰야 한다. 참아야만 한다. 나는 어른이니까.
그런데 파티장은 전혀 시골 같지 않았다. 저런 샹들리에가 어떻게 이곳에...! 게다가 오디오를 틀어 놓은 것도 아니고 현악 4중주단이 모차르트를? 모차르트를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모차르트로 시작해서 모차르트로 끝난다는데 바로 그 모차르트를? 수소문해서 어떻게든 싸구려 식당에서 서빙하는 모차르트를 찾아내서 페이스북 친구라도 맺든가 해야지, 것 참 나 어이쿠 이거 원 아흐흑! 심지어 남자들은 모두 제비복에 여자들은 눈부신 드레스를? 난 이렇게나 꾀죄죄한데? ... 아, 망했다. 이런 젠장! 그래도 너무 혼자 꿍해 있으면 영 보기 싫을 테니까 대인배 같은 모습을 보여야 한다. 흐트러지면 안된다. 그래도 온김에 어떻게 낸시한테... 숙녀분들... 아니다. 참자. 참아야 한다.
그렇게 둘러보고 구경하고 혼자 몽상과 공상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는 동안 파티는 중반을 넘어서서 절정으로 치다르고 있었다. 그리고 에단이 저 앞에서 다스바이더 헬맷을 벗었다. 그런데 글쎄~!
다스바이더 헬맷을 벗은 에단은 에단이 아니었다. 녀석은 윌이었다. 그러면 이쪽 윌은? 마침 그 처음의 윌도 초정밀 가면을 벗었다. 녀석은 에단이었다. 그런 다음 낸시는? 설마 낸시는 남자? 뭐시여, 이건! 얘네들 이상한 애들이네~ 못쓰겠구만! 난 아무래도 녀석들과 친하게 지내면 안될 것만 같은 기분에 빠져들었다. 이런 분위기에 발목 잡히면 아마도 인생 내내 조연으로 살게 될 수도 있다는 그런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조용히 약혼식장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이제 나는 누구를 쫓아다니고, 따라다니고, 꽃다발을 들고 기다려야 하나, 그런 궁리를 하느라 초조해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정말 이상하게도 그런 생각을 하기 시작하니까 괜히 막 기뻤고, 들떴고, 흥분됐고, 기분이 다시 좋아졌다. 이건 뭐 완전 자타-공인 바보였다. 사랑에 대해서는 무지한 바보. 나는 집으로 돌아갔다.
18
나는 집에 도착했다. 도착하여 손만 씻고 즉시 해야 할 일을 서둘러 실행했다. 그것은 이랬다. 엑셀 파일을 하나 새로 만들어서 숙녀 쫓아다니기? 아가씨 추종하기 라는 서류를 작성했다. 가설과 실험 주제와 방법까지 완벽하게 정해졌기 때문에 이제 결과만 나오면 그것을 글로 옮기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면 나는 삼류에서 이류로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발판은 마련됐다. 약간만 유명해지거나 삶이 조금만 여유로워지고 넉넉해지는 건 시간 문제였다. 아마도 그건 식은 죽 먹기일 듯 했다. 나는 이제 썩은 미소와 결별했다. 나는 이제 아침에 일어날 때 하늘이 날 반기고, 세상은 아름답고, 오늘 하루는 또 어떤 신나는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어떤 미녀가 나를 시도 때도 없이 따라다닐까 라는 걱정을 하며 살게 되었다.
물론 거짓말이다. 나는 다시 허언증이 도진 것이다.
19
일 년이 지났다. 벌써 일 년!
그 어떤 제목의 엑셀 파일이 완성됐다. 이제 소설을 쓰기만 하면 그건 뭐 거의 초-히트작을 따논 당상이었다.
그런데 나는 집에서 혼자 술을 마신 후 필름이 끊겼고, 몽유병이 오랫만에 날 찾아와서 다음 날 그 뒤처리를 하느라 골머리를 앓았다. 역시나 그 엑셀 파일이 담긴 USB도 잃어버렸다. 보안을 위해 웹에도 올려놓지 않았고 흔적도 남겨 놓지 않은 것이다. 뿐만 아니라 어느 날 서점에 가서 보니 그 따라다니고, 추종하고, 꽃다발 들고 집 앞에서 기다리는 방식의 사랑에 관한 수필과 소설과 인문교양서는 하도 많이 다루어져서 이제는 유행의 끝물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제서야.
아흐흐! 나는 뭘 해도 안된다. 뭘 해도 재미없다. 뭘 해도 종착역은 꽝이고, 뭘 해도 잘 될 듯 잘 될 듯, 환상을 잡을 뻔 거의 잡힐 뻔 하다가 딱 잡고 보면 그건 허상이었고, 내 말과 글은 모두 허풍이었다. 나는 은근함을 상당히 넘어서는 허당이었던 것이다. 나는 다시 심심해졌다. 기쁜 일이 생겨도 불안했다. 행복한 시기가 이어져도 조마조마했다. 조마조마! 아마추어 야구팀 '조마조마'나 아마추어 축구팀 '두근두근'이라는 이름의 팀에 가입해야 되나 그런 생각도 들었다. 실제 그런 팀이 있었다. 반전이 나를 너무 좋아했기 때문이다. 하긴 나도 반전이 싫지는 않았다. 그러나 쥐구멍에도 볕 들 날이 있다는데 대체 그날이 언제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따라서 이쯤 되고 보니 나도 그만 반전이 많이 좋아져버렸다. 나는 피앙세 몰래 반전과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내 피앙세가 모르는 비밀이 생긴 것이다. 그래서 나는 드디여 반전이라는 첩을 숨겨 두게 되었다. 사이보그, 로보트, 에이리언, 인조인간, 투명인간, 프랑켄슈타인, 좀비, 뱀파이어, 인간과 똑같은 이종의 신인류 막 그들처럼 말이다.
1
A는 갑자기 홍학이 보고 싶어졌다. 익숙하지 않은 그 동물에 문득 관심이 생긴 것은 그가 몇 페이지 보다 만 소설 책의 제목에 그 단어가 들어있기 때문이었다. 허영심이 무척 그립다고 해야 할까 절실하다 해야 할까, 바로 그런 어떤 날 그는 펠리컨과 앵무새는 언제, 어디서, 어느 만큼 구경했지만 홍학은, 홍학을 보게 되는 특별한 순간이 자기 인생에는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설령 어떤 지적 매력이 넘치는 논리주의자가 그에게 홍학과 허영심이 대체 무슨 관계가 있냐고 물어볼지라도 그는 그 지당한 지적에 반박하지도, 그분과 실랑이를 벌이지도, 놀림감이 된 듯한 기분에 슬퍼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다만 그는 하이든이 왜 옛날에 태어났고 자신이 언제 어떻게 하위문화를 애호하게 되는지를 차라리 궁금해 할 것이다. 그만큼 그는 단지 홍학이 궁금했고, 홍학에 끌렸으며, 별안간 홍학이 좋아졌다. 아마도 그는 최근 유난히 친해진 새로운 친구가 있었다면 그는 그 친구에게 자기를 홍학이라는 애칭으로 불러주기를 부탁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흔히들 거창함보다는 우연성에 의해 꿈이 바뀌고, 멀리 있을 동화의 나라 속 공주님보다 주변에서 해바라기처럼 사랑의 장기전에 돌입한 주근깨투성이 못난이와 사랑에 빠질 가능성이 큰 법이다. 그처럼 A는 왜 갑자기 자기가 홍학이 보고 싶어졌는지 그 이유를 측량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그와 같은 호기심에 대해서 누군가를 충분히 설득시키지 않아도 괜찮았고, 그 생각의 타당한 근거를 일기나 편지 같은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일 중독에 따른 마감일 스트레스도 없었다. 그는 그냥 무슨 영문인지 홍학을, 직접, 코앞에서 보고 싶어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처럼 홍학을 보고 싶다는 욕구가 구체화되기까지 사뭇 그 묘한 기분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잘 몰라서 전전긍긍하며 끈질기게 그 새로운 마음의 동기에 대해서 추적했고, 그 결과, 마침내 그는 참 어렵게도 결론을 내렸다. 아, 나는 홍학을 보고 싶어하는구나 라고.
이런 머저리 같은 놈, 같은 영화 속 대사를 떠오르게 하는 엉뚱하고 입이 무거운 사람은 의외로 흔하다. 마치 귀에 피가 나도록 수다를 퍼트리기를 좋아하고, 흡사 귀에 피가 나도록 끊임없이 글을 곡을 그림을 그리고, 마치 세인들의 관심과 호감의 물망에서 밀려나고 잊혀지기를 냉엄하도록 금기시하고 거부하는 브랜드처럼, 그냥 쉽게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스타일의 사람처럼 흔하다. 그것은 쇼핑하다가 길을 걷다가 선술집에서 보고 들을 수 있는 일반인들의 특징일 뿐이다.
그래서 A는 적이 안심했다. 꼭 하루 아침에 어떤 전문가의 평탄한 삶을 때려치우고 전혀 다른 새로운 인생을 사는 그런 TV 인생극장 같은 일도 아니니까, 그는 그게 나쁜 일이 아니라며 약간의 기특한 기분마저 느껴졌다. 때문에 그는 그 특별한 결심에 대해서 누군가에게 알리고 싶은 사색가랄까, 입소문 마케팅의 귀재 특유의 욕구 그것의 발로를 모른 체 할 수 없었다. 따라서 그는 친구에게 만나자고 연락했다. 그러나 그는 1차 범주에 드는 가까운 친구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그러면 누구에게 뜬금없이 우리 지금 만나자고 엄포를 놓았느냐, 바로 옛날의 단짝 B가 소셜 네트워크에 바뀐 소개 글을 올려놓은 걸 보고서 녀석에게 연락한 것이다. 그 친구의 소개 글은 이랬다.
<직장 그만둠. 당분간 쉬겠음. 연락하지 말 것> A는 자기를 추스려서 다독여주고 놀아주라는 뜻으로 그 소개 글을 해석했다. 잘못된 이해일지는 모르지만 그들은 최소한 한때 꽤 오래 단짝이었기 때문에 A의 오판이 크게 부적절하다고 할지라도 A가 연락한 친구 B는 어쩔 수 없이 수용해야 하고, 하는 수 없이 A의 호들갑을 눈감아 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A는 친구B를 필사의 노력 없이 찻집으로 불러냈고, 자신의 다정한 낭보를 전하는데 성공했다.
2
「뭐야? 겨우 그 얘기 할려고 날 불러낸 거야? 그딴 홍학 때문에? 얼척없어. 야! 나 직장 때려쳤다고. 이 친구가 이거 이거 뭘 잘못 먹었나? 실의에 빠진 친구를 위로해 주지는 못할 망정 홍학이, 어쩐다고? 이 친구야. 어떻게 살았냐고 돈은 많이 벌었냐고, 번듯한 직장에서 스카웃 제의는 들어오냐고 인생은 네게 친절하냐고, 아니면 여자 소개시켜줄까 라고 그래야 하는 거 아니냐? 이거 무슨 이달의 운세도 아니고. 뭐, 홍학? 홍학이 뭔데? 왜 갑자기 홍학이 보고 싶은 건데?」
「왜? 이유 없어. 어차피 지금 살아가는 나를 보면 노래를 한 곡 외우지도, 커피도 술도 못 끊어. 즐기면 그만이지만. 어디 가고 싶은 데도 없어. 꿈? 무슨 꿈? 개꿈? 갖고 싶은 거, 있으면 좋겠다. 옷도 대충 입고 향수도 안 뿌려. 나는 커서 뭐가 되겠다, 어떻게 살고 싶다, 누군가를 사랑하겠다, 사람과 인생과 세상에 대한 큰 기대도 없어. 혼자 있고 싶은 기분? 지긋지긋해. 하지만 사람들과 어울리면 또 다시 혼자 있고 싶어져. 해변가 조용한 카페에서 글이나 쓰고 싶다고. 거리에 아름다운 아가씨가 지나간다, 나랑 무관한 일이지. 왜냐하면 난 여자 보기를 돌 보기 같이 하니까. 좋아. 좋다고. 괜찮아. 상관없어. 원래 그랬으니까. 자, 자! 이런 내게 드디여 뭔가 하나 날 흥분되게 만드는 그분이 나타난 거야. 짜잔~ 기분이 고조되지 않냐? 막 금방 재미있어질 거 같지 않냐고. 그런데 그게 여자가 아니라 새라는 게 문제야. 난데없이 나타난 애증...까지는 아직-이고 애정의 대상이 아 글쎄 새라니, 나도 참 이거 원! 진짜로 사람이 아니라 그게 새라서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일이지. 그러나, 이해할 필요 없어. 나는 홍학한테 매료되었고, 홍학도 그걸 알 꺼야. 그럼. 그러면 된 거지. 그런데 말이야, 너 혹시 홍학이 어디 사는지 아니? 어디 가야 홍학을 만날 수 있지?」
「드디여 늬가 돌았구나. 축하한다. 축하해. 짝─짝─짝! 누가 돌아이 아니라고 할까 봐! 아아! 별볼 일 없는 따분한 일상에 파문을 일으키며 그분이 납시셨는데 축배를 들고 노래를 부르며 어떻게, 옷이라도 벗을까? 넌 어찌 그리 하나도 안 변했냐? 그래. 인생은 홍학이다. 됐냐? 그러지 말고 우리 써핑이나 하러 가자. 어때?」
「뭔-핑? 말했잖아. 나 홍학 보고 싶다고. 홍학!」
「너 자꾸 아까부터 홍학 타령인데 홍학이 무슨 외계인이라도 되냐? 차라리 연애를 하던가? 이제 그만 화려하지 않은 현실로 좀 돌아와. 어? 게다가 지금 입장이 바꼈잖아. 우리 옛날에 학교 다닐 때, 늬가 내 새끼손가락 부러트려서 나 입원시키고, 병문안 와서 나 나오라 하고 늬가 침대에 드러눕다가 간호사가 딱 들어오더니 씩 웃었는데 지금도...... 아 잠깐, 혹시 그때...? 아니야 아니야. 그런 건 인생의 즐거움도, 행복한 기회도 잃어버린 행운도 아니야. ...(침묵)... 하긴 내가 남자니까 다행이지 내가 만약 여자였다면 너랑 같이 홍학을 찾으러 떠났을지도 모르겠다. 그게 뭐라고. 허영심도 허영심이지만 곱게 잠자고 있는 그 고운 허영심을 이끌어내는 너의 그 천부적인 재주도 알아줘야 한다니까. 그러고 보면 남자란 남자는 모두 꼭 늑대란 법은 없나 봐. 엥? 아닌데. 말이 꼬였다. 에잇 몰라! 아 그러지 말고 나한테도 한 수 가르쳐주라. 너의 그 비책 말야. 여자들의 허영심이 막 눈에 보이고 그러냐, 응? 그러면 속옷 색깔도 보이고 그러는 거 아니냐? 겉만 번지르르한데... 그런 놈들이 알고 보면 속도 번지르르한 건가? 어느 저명한 정치학자가 널 본다면 정치색은 한 번도 진보를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사랑 관념에 대해서는 매우 진보적인 남자로 봤을 꺼야. 아니? 바꼈나? 또 꼬였네. 에잇 몰라! 아무튼 넌 쾌락만을 쫓는 남자야. 천하의 플레이보이라고.」
「얘가 얘가 큰일 날 소리 하네. 늬 별명을 왜 나한테 떠넘기고 그러냐? 그리고, 허영심이 아니라 낭만파와 인상주의, 시적 로맨스 같은 거야 그것은. 늬가 궁금해 하는 뭔가 애틋한 사랑에 대한 여자들의 동경심과 천국에 대한 소녀의 몽상은 말이야. 넌, 사랑을, 몰라! 심심한 인생을 보상할 만한, 살며시 배상할 만한 일은 뭐니 뭐니 해도 역시 심심한 사랑이지. 요 앞에 화단에 보니까 웬 등치 좋은 꿀벌 한 마리가 이 꽃 저 꽃 막 돌아다니면서 그 달콤한 꿀을 모조리 다 따먹고 다니더라. 그냥 그렇다고. 진짜야. 가서 한 번 봐봐.
그런데 우리가 어쩌다 사랑이란 단어를 입에 담고 말았지? 이러면 안되는 건데. 방심한다 싶으면 어느 틈엔가 앙큼하게 상석을 남몰래 차지한다니까. 사랑마저도. 요염한 고양이도 아니고 말야. 사랑은 여자들한테 맡기고 남자들은 바쁘게 치고, 때리고, 넣고, 잡고, 까고, 걸고, 마시고, 그러면서 직분에 충실해야지. 여자의 사랑과 남자의 우정만 나오면 머리 아퍼져. 차라리 알고 나면 정나미가 떨어질 비밀 같은 일이라도 캐내고 연구해야 하나 막 의아해진다니까. 설마 나만 그런 건 아니지?」
헬로윈 데이가 아닌 날 참으로 얼마 만의 해후였던가. 그래도 기쁘기는 했으나 그들은 할말이 오죽이나 많지는 않았다. 또 한 명은 써핑에, 한 명은 홍학에 마치 딴살림을 차린 듯 정신이 쏠려 있었다.
그때 A에게 전화가 왔다. 바로 역시 단짝 C로부터. A와 C도 역시 어느 시절 단짝이었다. 톰과 제리, 저리 가라-였다. 그런데 C는 A가 어디 있는지 위치 추적을 해서 벌써 A와 B가 있는 찻집에서 100m 거리에 있었다. 결국 C가 도착했다. 그런데 B와 C는 서로 알기는 아는데 안 친했다. 그렇다고 A가 억지로 B와 C를 친하게 지내라고 종용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B는 C가 도착하기 직전에 A에게 그랬다. C랑 놀아주라고. 그렇게 해서 B는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A는 C와 오랜 재회에 대해서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기뻐하고 반겨하며, 똘똘한 연애사와 영원한 욕망에 대해서 못다 한 얘기를 나누며 시간 가는 줄 몰라 하며 다시 차를 마시지는 않았다. 즉, 그 길로 바로 그들은 멀리 놀러가자고 당장 어딘가로 떠나기로 했다. 만나자마자 바로. 목적지는 방향 정도만 정하고. A와 C는 곧바로 출발했다.
3
A와 C는 랄라랄라 하면서 운전해서 어딘가로 떠나고 있었다. 가장 적합한 단어로는 여행, 다른 모종의 표현으로는 탐사를 떠난 것이다. 그런데 계획에 없던 낯선 여행 때문인지 A의 홍학 얘기는 쏙 들어가버렸다. 그래서 C는 홍학에 대한 담론이 있었는지조차 몰랐다. 짐작도 못했다. 아예 상상할 수도 없는 영역의 주제였다 그것은.
아무튼 그들은 다시 스무살, 꿈 없는 스무살로 돌아갔다.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서 A는 C에게 바보 같은 녀석이라 했고, C는 A에게 인생이 뭔지도 모르는 놈이라고 했다. 더불어 다시 C는 A에게 행복해지고 싶냐고 물었고, A는 C에게 우리 그런 얘기는 하지 말자고 했다. 게다가 그들은 넌 옛날에 왜 가발을 썼냐, 너의 그 가난처럼 초라한 이별에 대해서 얘기해 보렴 같은 속마음을 토로하는 건 생략했다.
그들은 약 2시간 거리에 있는 어느 한적한 휴양지를 목적지로 정한 채 길을 가던 중 어느 나체 해수욕장 인근을 지나게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굳이 그곳까지 꼭 갈 필요가 있을까 하면서 그냥 여기서 물장구나 치면서 일광욕 좀 하고 돌아가자고 의견을 모았다.
그들은 옷을 모두 훌훌 벗어버린 후 바닷물을 향해 뛰어갔다. 야~호! 정말로 날아갈 듯이 유쾌하지는 않았으나 거짓으로 기쁨의 환호성도 질러봤다. 그리고 그들은 각자 놀게 되었다. 핸드폰으로 각자 소셜 네트워크를 보고, 걷고, 마시고, 읽고, 그러면서 일상으로부터 벗어났으니까 서로 귀찮게 하지 말자고 약속이나 한 듯이 여유롭게 따로 놀고 있었다. 들들 볶는 마누라의 잔소리도 앵앵거리는 직장 상사의 야단도 없었고, 모든 게 좋았다. 왜 진작 이렇게 놀러올 생각을 못했을까 그런 의문도 잠시 들다 말았다. 그런데 이때,
인적이 전혀 없던 그곳에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A는 내심 흥분됐다. 왜냐하면 그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나체 해수욕장에서 수영을 하게 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보이는 사람들은 모두 옷을 입고 있었다. 수영복을 입은 사람도 거의 없고, 모두 평상복 차림으로 바지 밑단만 무릎까지 걷어올린 모습이었다. A는 신속히 물 속으로 들어가서 머리통만 내민 채 정황을 살피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깨달았다. 아, 속았구나 라고! 그곳은 나체 해수욕장이 아니었던 것이다. C가 원래 천하의 달변가로써 입만 열면 거짓말이란 사실을 뒤늦게 떠올린 것이다. 그는 얼굴은 빨개지고 가슴은 두근거렸다. 그는 감탄사를 연신 내뱉었다. 그러다 깜빡 깜빡 분위기를 살피던 중 인파가 물러가자마자 그는 옷을 벗어둔 컨버터블로 뛰어갔다. 물론 나체인 상태로. 그런데 그는 친구 C가 보이지 않길래 뭔가 느낌이 이상하다고 직감했다. 게다가 그의 옷은 없고 C의 옷만 차에 있었다. 일단 A는 C의 옷을 입었다. C는 어딘가로 사라졌고, 전화를 받지 않았다. A는 C가 이제 자유인이 되고 싶나 보다 라고 생각했다.
갑자기 그는 기분이 이상해졌다. 자신이 태몽을 꾸고 싶은 남자가 된 듯 했다. 어쩌다가 자기가 로빈슨 크루소가 된 것만 같아서 그 어떤 홀가분함 때문에 영혼의 쾌락이 느껴졌다. 딱 뚜렷하게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그는 갑자기 모든 게 달라져 보였다. 매일 마주치는 똑같은 사물과 풍경, 상식, 교양과 편견과 기존의 인식이 모두 새로워 보이는 경험을 하고 있었다.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었다. 그는 뭐랄까 낯선 곳에서 타인의 옷을 입게 되니 그 언제라도 체감할 수 없는 환상의 최고봉을 실감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A는 C의 맹목적인 사라짐이 조금 마음에 걸렸다. 드라마에 나오는 실종 뭐 그런 일은 아니겠지만 C의 빈자리가 허전하다고 생각했다. 원래 C는 무인도에 데려가고 싶은 1인도 미모의 아가씨도 아니지만 같이 있으면 전혀 심심하지 않은 친구였으니까. 그래도 그 언짢음은 내내 그를 불편하게 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평소와는 전혀 다른 장소에서 타인의 옷을 입게 되어 새로운 사람으로 환생한 듯한 묘한 흥분감과 쾌적한 도취감을 만끽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원래 이건 곤경에 처했다가 일행과 헤어진 난처한 기분이 들어야 맞는 건데, 전혀 반대의 감정이 그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이 쉬운 색다른 즐거움을 왜 그전에는 생각해 보지 못했을까 라는 약간 의아한 분위기에 젖어들었다. 이 신선하고 이다지도 새로운, 콜라처럼 짜릿하고 우유처럼 담백하며, 고도의 쾌락처럼 미칠 듯이 좋은 감정에 비견할 수 있는 것은 아마도 웜홀 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건 뭐랄까 미풍, 광채, 기쁨, 유희, 황홀함, 놀라움, 신기함, 초현실 그리고 사랑, 그와는 다른 정말 뭐라고 형용할 수 없는 새콤달콤한 기분인 듯 느껴졌다. 따라서 그는 집에 가기 싫어졌다. 그래서 그는 여행가에서 현지인으로 신분을 바꾸기로 결심했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지금 덜 재미있게 사느냐, 당장 더 재미있게 즐기고 미래엔 또 다른 미래가 있을 것이라고 여기며 근심과 걱정은 모두 잊어버리느냐. 전자여야 한다는 중압감에서 후자도 괜찮다는 낙천주의로 변하는 걸 세상에서는 쉽게 말해서 어른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는 그 둘의 장점만 취해서 지금 놀고 내일은 생각하지 않는 것이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행복의 비밀이라는 진리를 터득해낸 듯한 과업을 이룩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그는 꼬치꼬치 캐묻고 따지고 점검할 필요 없이 근처에 허름한 별장에 짐을 풀고 한적하게 휴양 생활을 즐기기로 작정했다. 꼭 그것이 최후의 비장한 결심은 아니지만 기다리고 기다리던 최고의 사랑을 만난 듯한 감동이 물밀듯 밀려왔다.
컨버터블은 구닥다리지만 제몫을 했고, 준비물도 이런 때를 위해 미리 대충 상비해뒀기 때문에 아무런 걱정이 없었다. 괜히 여기 올 때 친구 C의 최신식 초호화 슈퍼카 조수석에 타고 오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그리고 여행 가방에 옷 몇 벌과 노트북, 책은 이탈로 칼비노의 우주만화, 감상할 영화도 3개나 미리 준비해뒀다. 럼 다이어리 (2011), Super 8 (2011), 백 투 더 비기닝 (2015) 그렇게. 그는 나체 수영을 하다가 혹시 잘못되었다면 경범죄로 처벌 받을 뻔한 상황으로 치달아 일이 잘못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고생한 보람이 있다고 생각했다. 구멍난 양말? 인터넷으로 필요한 물품은 그때그때 주문하기로 했다. 따지고 보면 아무 일도 아닌데 놀라움의 연속이었고, 현재는 동화 같은 세상이었다.
그래서 그는 까다롭지 않게 마련한 별장에서 별이 빛나는 밤에 이처럼 글을 쓰기 시작했다.
사랑이 온다. 새가 날았다. 개가 짖었다. 고양이를 만났다. 시간이 멈추었다. 새로운 인생이 시작됐다.
4
A는 장미빛 환상에 목마른 문학 소녀도 꿈을 먹고 사는 당나귀도 아니었다. 그는 새로운 이웃이었을 뿐이다. 새롭게 출몰한 이방이이었다. 그는 신밧드도 아니고 로맨티스트일 리도 없고, 어느 숨어 사는 마법사의 술수에 걸려들어 개구리나 생쥐로 변한 왕자님도 아니었다. 차라리 한량에 가까웠을 것이다. 그러나 호화로운 성을 살 만한 돈은 없었다. 하지만 노숙자도 아니었다. 그는 노인도 아니고 유치원생도 아니었다. 키에르케고르와 스피노자의 양서를 원어로 읽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교황청의 지하실이나 라스베거스를 원활히 순환시킨다는 숨은 원리가 궁금하지도 않았다. 그러므로 그는 심심했다. 새로운 낯선 행선지에 정착한지 얼마나 됐다고.
그래서 그는 단골 술집을 찾아 헤맸다. 그리고 동네를 이 잡듯이 샅샅이 파헤치지 않고서 단골 술집을 하나 찾았다. 또 친구를 사겼다. 나아가 취직을 했다. 번듯한 직장은 아니고 어느 인기 없는 월간지에 연재 소설을 기재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유명해질 수 없었다. 명성을 얻더라도 부담스럽고 피곤했을 것이다. 잘된 일이다. 따라서 그는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즉 여자를 사귄 것이다. 그런데 여자를 만나기는 만났는데 그는 그 여자와 사랑이 아닌 우애를 고양시켰다. 그럴 수 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나 보다. 딱 한 번이라도 여자들이 줄줄 따라 봤으면 소원이 없겠다 라고 속으로 생각했을지는 모르지만. 그런데 그녀가 업어달라는 부탁도 했다. 업어줬다. 아주 잠깐만. 이로써 그는 아주 길게도, 아주 짧게도 여자를 업어본 남자가 됐다. 업혀본 것도 물론. 이미 옛날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애절한 사랑 이야기는 쏙 빠진 채 그는 동네에서 친교 생활을 지속했다. 또 어떤 친구에게 마술을 배웠다. 그러나 불을 뿜는 불쇼를 학습하다가 마술을 포기했다. 어려웠다. 그러다 파티에 초대를 받았다. 그런데 거기 가서 보니 순전히 촌닭과 촌년들 뿐이었다. 게다가 거울을 보니 자기는 그 가운데서 거의 왕이었다. 오, 저런! 그러나 인기는 없었다. 아, 이런! 그래도 그런 체념이랄까 변심이랄까, 그렇게 내려놓은 마음 때문에 유행가도 몇 곡 외워서 부를 수 있게 됐다. 왜 사람들이 기분이 좋거나 사랑에 빠지면 막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는지를 다시 알게 됐다. 도시 생활에 지쳤던 그에게 지금 이곳은 정말 무지개가 살고 있는 미지의 세계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왠지 모르게 허전한 공허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사교의 범위를 넓혔다. 면사무소 소장, 치안소장, 의원 원장, 카바레 사장, 정신병원장으로. 그러다 하나 깨달았다. 친교의 대상을 너무 높게 설정했다는 것을. 그래서 그는 그 타켓층을 조금 낮추었다. 농부와 어부와 광부 출신 선생과 진공청소기 공장 근로자와 대학생과 백수와 평범한 회사원으로. 그는 눈높이가 다시 낮아졌다. 더군다나 다시 추억의 헤비메탈도 즐겨듣게 되었다. 그리고 천사가 잃어버린 낙원에 대한 궁금증은 사라져버렸다. 동네에서 술꿀들에게 인기 있는 술집 이름도 천국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거기에 가면 더럽게 재미가 없다는 점이었다. 왜냐하면, 왜냐하면, 왜일까? 모르겠다. 알 수 없다. 불가사의다. 뭔가 비밀이 있을 것이다.
그 때문일까? 그는 해질녁이랄지 지난 날을 회상하며 멍해 있는 순간이랄지 너무나 달콤한 유행가를 듣다가 간혹 헛것을 보곤 했다. 미혹되지 않을 수 없는 가슴 뭉클한 환영, 그것은 바로 홍학이었다. 신비, 낭만, 모험, 환상, 사랑, 풍요, 심금을 울리는 픽션이 아닌 홍학이라니... 그러나 크게 걱정할 정도로 그것이 자주 또 강렬하게 나타나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는 좀 더 사태를 지켜보기로 했다. 일명 관망!
5
본론부터 말하자면 A가 어느 날 갑자기 홍학으로 변신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더불어 A를 제외한 모든 동네 사람들이 홍학으로 바뀌는 일 역시 발생하지 않았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 놀랄 비현실도 안심할 무엇도 아니다. 곧 그는 자신의 그 홍학에 대한 몽상의 강도가 점점 심해져 가고 있는 것을 알게 됐다. 왕왕 잠잠해지기도 했지만 증세는 멈추지 않았다. 상태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트레이드오프 같은 인문학 용어를 떠올려봤다. 홍학에 대한 집착을 멈추게 되는 날 자신의 숨겨진 천재성이 별안간 빛을 발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고안해내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틀림없이 엉뚱한 생각이었고, 게다가 홍학에 대한 어떤 상사병 같은 관심 또한 도저히 끊을래야 끊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모르는 척 미친 듯이 홍학에 대한 글을 쓴다거나, 홍학에 통채로 인생을 건 듯한 그쪽 학계의 원로를 찾아가서 묘안을 구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때문에 그는 탁월한 유혹과 황홀한 쾌락의 손짓과 빠져들 수 밖에 없는 호기심의 마법을 뿌리칠 수 있었던 냉엄한 이성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는 자제력이 바닥났고, 궁극의 통찰력을 잃고 말았다. 따라서 그는 혼자 속으로 끙끙 앓을 게 아니라 누군가에게 속시원~하게 고민을 털어놓으면 그 이상한 문제가 해결될지도 모른다는 데 생각이 도달했다. 그래서 그는 듣고 있던 드뷧시의 음악을 끄고, 다큐멘터리 동물의 세계도 끄고, 최근 친하게 지내는 바텐더 에릭을 만나러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A는 단골 술집 1급 비밀에 도착했다. 술집 이름이 촌스럽게 그게 뭔가. 하여간 이름 하고는. 바텐더 에릭은 오늘도 말끔한 차림새로 정돈된 카페에서 일상에 지치고 권태와 싸우거나 사랑에 실패한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A는 가자마자, 인사가 끝나자마자 자신이 홍학에 어떻게 빠져들게 됐고, 오멘 시리지를 모조리 다시 감상하고 어쩌고 발광을 해도 그 중독을 도저히 끊을 수 없었으며, 그것이 왜 좋은지 문제는 무엇인지를 딱 말할려던 바로 그 순간, 에릭이 선수를 쳤다.
「A. 새로운 친구를 소개할께. 이름은 홍학이라고 해. 타고난 재능 때문에 바쁜 친구인데 이곳에서 몇 달 혹은 몇 년 쉬고 싶은가 봐. 지쳤던 거지. 인사해.」
「안녕하세요, A씨.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앞으로 자주 보게 될 텐데 하다못해 미녀라도 한 분 소개시켜주지는 못하고 제가 그냥 술 한잔 사겠습니다. 저는 음 홍학이라 불리구요, 반인반마입니다. 푸하하하하하하. 농담입니다. 표정이 너무 진지하셔서 함부로 농담을 꺼내기가 몹시 송구스럽습니다 그려. 혹시 소리 소문도 없이 만천하에 알려지면 곤란한 비밀이 탄로날 위기에 처하시기라도 하셨나요? 그럴 리는 없겠죠. 외람된 말씀일지 모르겠지만 음, 저와 같은 업계에 종사하신다고 들었습니다. 굳이 어떤 책을 쓰셨는지는 묻지 않을 께요. 차차 알아가자구요. 저는 이런 저런 사업을 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출판계에 조금 지분을 가지고 있죠. 곧 있으면 제 친구 녀석 하나도 이곳으로 이사올 텐데, 그 친구는 중견 소설가고 저는 뭐 책장사를 하죠. 하하, 제 처녀작은 비밀리에 준비중이랍니다. 또 그 녀석이 최근 발표한 책은 '홍학이 된 사나이'라는 이야기죠. 그리고 저는 조~ 앞에 홍학이라는 무인 카페를 하나 열 생각입니다. 허허허.」
뭐시라고? 자기는 홍학이고, 친구는 뭐를 썼고, 무인 카페의 이름이 뭐가 어쩌고 어째? 맙소사! 어머 어머 세상에나! 진짜로 어떻게 이런 우연의 일치가 다 있나, 세상에나! 그런데 딱 지금 음악이 바꼈다. 바로 엔야의 어느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그는 문득 이 친구들의 얼굴이 혹시 마스크는 아닐까, 그런 의문에 휩싸이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몸 둘 바를 몰라 하면서 넋이 나간 광인처럼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다. 뭔가 돌아가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뭔가 불길했다. 게다가 자기도 비겁했다고 생각했다. 왜 도망친 걸까? 뭘 잘못했다고! 당신이 홍학이면 나는 하마다! 그렇게 호통치며 꾸짖기라도 했어야 했는데... 지금 돌아가는 추세가 심각하다고 생각했다. 원래는 홍학을 찾아 떠날까 하다가 친구 C와 놀러온 이곳에 정착하고 C는 떠나갔는데, 웬 멀쩡한 불청객이 자기가 홍학이라고 짠 하고 나타나다니 이걸 어쩌면 좋은가. 이 일을 어째야 한단 말인가. 이걸 어째 이걸 어떡하냐고. A가 홍학과 싸우기라도 해야 한단 말인가? 아니면 당신이 진짜 홍학이냐고 슬며시 여쭤보면서 이보시오 알몸을 보여주시오 라고 따질 시늉 직전까지는 가봤어야 했던 것일까? 그 정도로 주관이 명약관화했다면 그는 지금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겠지.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이런 낙담할 일이 다 있다니... 그는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서 아루뚜르 그뤼미오가 연주한 바이올린 앵콜 앨범을 들었다. 물론 쉽게 그 흥분은 가시지 않았다. 그는 생각했다. 차라리 자기가 먼저 무인 카페를 먼저 열어버릴까? 그는 급기야 그런 억지에서 그럴싸한 신빙성과 타당성을 찾기까지 하고 있었다. 어디서 굴러온지도 모르는 요상한 쥐방울 같은 녀석 때문에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일단 홍학의 사진을 하나 구해서 별장의 거실 벽에 붙였고, 노트북과 핸드폰의 바탕 화면을 모두 홍학 사진으로 도배했다. 왠지 그러지 않으면 그는 홍학에 관한 예술적 영감을 타인에게 선점당할 것만 같은 긴박한 위기감에 그러지 않고서는 배길 수 없었기 때문이다.
6
A는 홍학이란 양반의 친구가 쓴 책을 구해서 읽어봤다. 대체 무엇 때문에 우연이 층층이 쌓이게 되었는지 혹시 그 책 안에 해답이 있을지 모른다고 추측했다. 그래서 그 '홍학이 된 사나이'란 책을 결국 손에 쥐게 됐다. 그리고 읽었다. 그런 다음, 읽다 그만둔 다음 그는 그 책을 화분 받침대로 쓸까 말까 하다가 왠지 작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그 일은 보류했다. 거기에 쓰인 내용은 순전히 가공된 이야기로써 스무살 젊은이가 TV를 볼 것인가 책을 읽을 것인가, 가운데 선택할 만한 그런 정도의 가짜 환상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줄거리는, 어느 남자가 돈 주앙식 삶을 살아가다가 지고지순한 사랑을 하게 되고, 그것은 해피엔딩에 이르지 못하고, 그는 혹시 공룡알이 아닌가 의심스러운 어느 커다란 모형 새 알을 주거지로 삼아 살다가 약 이십 년에 걸쳐서 마침내 새로 환생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런 뭐야 이거, 에잇! 홍학은 인간이 아니고, 인간은 홍학이 된다는 말이자나, 하면서 차라리 A 자신이 '청춘이란' 제목으로 인문-교양서를 쓰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달리 말하자면, A가 늙은 것일 수도 있다. 환상에 쉽게 빠져들지 못했으니까. 그는 자신이 생리대 광고처럼 순수하지 못하고, 샴프 광고처럼 상쾌하지 못하다는 반증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곧 그렇게 작가야 속여줘서 고맙다 라고 혼잣말 할 수 없을 만큼 쑹악하고 영악해진 것인지도 모르지 않을런지. 왜냐하면 그는 N보다 C가 앞섰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그는 N과 C를 넉넉히 품어 안아서 NC에 자주 가는 젊은이가 아니라 어디 괜찮은 카바레 없나 기웃거리는 동네 아저씨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나이트클럽에 가도 재미없거나 어쩐다는 걸 잘 아니까. 아, N은 이거다. <왜 나는 뭔 킹이나 뭔 포터를 읽을 수 없는 걸까, 왜 나는 그건 도무지 흥미를 못 느끼는지 통 알 수가 없네, 아아 나도 그 열광의 범주에 들고 싶어라, 그건 너무 멋져 훌륭해 최고야!>. 그리고 C는 이거다. <반지의 제왕 패스, 순진무구한 영혼들이 읽는 반지의 제왕을 성인 남자가 극장에서 본다면 졸고 졸다 급기야 잤다 푹~ 라고 해야 정상이라고 생각해>. 결론은 우유의 담백함 다음에 콜라의 짜릿함과 술맛의 환상성을 알아버렸다는 건가? 곧 '홍학이 된 사나이' 어떠냐고 누가 물으면 그는 속으로는 C, 대외적으로는 N이라고 답할 것 같았다.
그는 갑갑한 마음 때문에 다시 바텐더 에릭을 만나러 갔다. 도착했다. 그런데 에릭은 없고 웬 이상하게 생긴 새가 한 마리 서성이고 있었다. 저건 뭐지? 백조는 아니고 닭도 아니고, 오리일 리도 없고. 그런데 에릭은 어디 갔지? 또 저 분홍빛과 선홍색이 뒤섞인 새는 거기에 왜 있는 거고. 설마 에릭이 마법에 걸려서 저 묘한 분위기의 새로 변한 것은 아닐까? 무슨 그런 말도 안되는 억측을. 작품은 상상을 초월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어디까지나 꿈과 공상과 환희와는 물과 기름처럼 잘 섞이지 않는 법이다. 그런데 이질적인 그 두 가지를 절묘하게 결합시키는 방법이 있다. 있을 것이다. 그것을 아마 촉매라고 부르나? 틀렸을지도 모르지만 지칭어만 다를 뿐 원리와 현상은 맞는 얘기다. 그래서 뭔가 음산한 기분 때문에 A는 동네에 사는 퇴마사 밴 박사를 찾아갔다. 아마도 아니겠지만 확답을 꼭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는 밴 박사의 사무실에 도착했다. 다행히 그는 자신의 황당한 추정을 밴에게 간결히 설명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왜냐하면 바텐더 에릭과 마법사 밴이 다정하게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기 때문이다. 약간은 심하게 다정스럽게 말이다. 그럼 그렇지! 괜한 걱정이었고, 꺼벙한 공상이었다.
그 후 그런 비슷한 일이 몇 번 더 있었다. 음악 감상실에 갔더니 파블로는 없고 웬 강아지 한 마리가 멀뚱히 그를 쳐다봤고, 서점에 갔더니 마틴은 안 보이고 고양이 두 마리가 그곳을 지키고 있던 일이 있었다. 그래서 A는 무언가 은근하고 은밀한 그 꺼림직한 기분을 해소하고 싶어졌다. 그는 그와 같이 다짐한 어떤 날, 바로 바텐더 에릭을 찾아갔다. 그는 한 명만 물고 늘어지는 집을 지키는 충직한 개를 연상시키는 그런 이상한 재주가 있는 것 같다.
7
「에릭. 평소처럼. 원 에스프레소 그리고 원 위스키 스트레이트.」
「친구. 오늘은 어쩐지 몹시 얼굴이 의뭉스러운 느낌인데.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 내게 뭔가 따지고 싶은 건가? 좋지. 털어나 봐. 난 들을 준비가 돼 있다고. 듣고 싶단 말이야. 자, 어서. 말해. 말하라고. 뭘 망설이나? 어?」
「그래도... 괜찮겠나?」
「오! 좋아 좋아. 분위기 좋아. 뭔가 있어. 오오 뭔가 있는 모양인데. 호기심이 확 타오르는데. 자, 말해 보시게. 뭐가, 대체 뭐가 궁금한 거야? 하고 싶은 말이 뭐냐고.」
「그 있잖아. 저번에 자네를 만나러 여기에 왔었는데 자네는 없고 이상하게 생긴 새가 한 마리 있더군. 그거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을 좀 해주겠나?」
「새? 무슨 새? 난 모르겠는데!」
에릭은 딱 잡아뗐다. 그 새의 정체를 물어봤는데 에릭은 자기는 새와 바람피지 않았다고 막 거칠게 항변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또는 정말 모르는 일인지 누가 알겠나. 아마도 에릭은 A의 어설픈 심문에 넘어갈 만한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니기 때문에 대화가 이렇게 매끄럽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에릭이 이렇게 속마음을 닫아버리니 A로써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밤이나 낮이나 뻔질나게 에릭이 뭐하고 있나 하며 줄곧 감시하고 관찰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는 사람을 탐문하는 것보다 장소에서 이상한 흔적을 찾는 게 어쩌면 더 현명하고 합리적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곧바로 아무 일도 아니라고 하면서 상냥하게 인사를 남기고 그곳을 나왔다. 그리고 곧장 무인 카페 홍학으로 갔다.
A는 홍학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홍학은 없었다. 사람도 없었다. 무인 카페니까 당연한 이치다. 그는 왠지 모르게 탐정이 된 듯한 기분 때문에 무척 우쭐해졌고, 이 무인 카페가 어쩐지 마음에 들었다. 여기 좋네 여기 좋아, 하면서 앞으로 여기 와서 일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그는 꼼꼼히 가게를 살펴봤다. 별반 이상한 점은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다. 참을성을 갖고 끈질기게 뭔가를 찾고 또 찾았다. 마침 그때 카페에는 J. J. Cale의 어느 분위기 있는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카페의 실내 디자인으로 봐서는 바로크 고전음악이나 프랭크 시나트라의 마이 웨이가 더 적당할 듯 한데 어딘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는 지금까지 모은 단서들을 최선을 다해서 검토해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집으로 갔고, 차분히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런데 단서라니 무슨 단서?
8
A는 손가락 딱 하면서 이거야 이거 라고 생각했다. 오늘도 역시 그는 바텐더 에릭을 만나러 갔다. 사건을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카페에 도착했고, 에릭은 다른 일로 바빠서 미처 그에게 신경 쓰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A는 이 절호의 기회를 놓쳐서는 안된다고 판단했다. 저기 저 앞에 진열된 술병들 옆에 책이 한 권 보였다. 그 책은,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였다. 율리시스? OK! 더블 제이! 그는 혹시 저 안에 뭔가 들어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성적인 논리가 배제된 전혀 황당한 추리력에 고무됨을 느꼈다. 혹시 알아? 그 뭐야, 머리가 셋 달린 지옥을 지키는 개, 아 맞다! 케르베로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저승문을 지키는 머리 셋 달린 사나운 개의 모형이 들어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라는 의심이 강렬하게 그를 뒤흔들었다. 설마 확인하고 나니 봄과 꽃의 여신을 상징하는 작은 향수병이? 그럴지라도 그는 반드시 확인해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에릭이 바쁜 틈을 타서 감쪽같이 그 책을 펼쳐봤다. 그것은 슬로우 모션도 아니었고, 아무런 효과음도 들리지 않았다.
율리시스를 펼친 결과 그 안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그 어느 사랑의 묘약도 홍학 인형도 발견할 수 없었다. 만약 뭔가가 나온다면, 이를테면 뭔카인? 어떤 식물의 추출물을 어떻게 한 그런 뭔가가 나온다면 그는 에릭을 심하게 추궁할 속셈이었다. 계획은 그랬다. 그러나 결과는 달랐다. 만약 그랬다면, 계획에 상응하는 결과가 나왔다면 정말로 그랬다면 그는 진짜 험하게 에릭을 꾸짖을 생각이었다. 늬가 지금 정신이 있냐 없냐, 제임스 조이스 학회 회원이 여기 방문했다가 딱 이 책을 펼쳐봤더니 글쎄 어머나, 그러면 어떻게 할려고 했냐, 그러면 에릭은 늬가 내 애인이라도 되냐는 둥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는 둥 뭐라 뭐라 했을 텐데, 다행스러운 일일까? 율리시스 안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그게 율리시스가 재미는 어찌나 없는데 반해 그 명성이 정말 대단해놔서 그래서 A가 그런 말도 안되는 추론을 떠올려봤던 것일 수도 있다. 아무튼 모두 정상이었으니 그는 까불 수도 없었고, 환상을 떠받들 수도 신비에 눈독들일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봐도 뭔가 억울했다. 그 안에 수상한 무언가가 들어 있어야 옳았다. 그게 맞다. 그게 정상적인 추론이자 예상 가능한 성과다. 그런데 없었다. 아무 것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무혐의! 그때 A와 에릭의 눈빛이 핑~하며 마주쳤다. 팅~! 아닌가, 퐁~! 어쨌든 A는 에릭의 얼굴이 어쩐지 뭐랄까 음 에릭의 본명이 옛날에 오사마가 아니었을까 그런 의문이 슬며시(살며시) 고개를 수줍게 드는 것만 같았다. 그는 이렇게 혼자서 끙끙 앓을 게 아니라 에릭에게 완곡 화법이 아닌 직접 화법으로 당당히 물어보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A는 바텐더 에릭에게 물어봤다. 어떻게 알았냐고. 자기가 최근 홍학 때문에 잠 못 이루며 홍학을 떠올리는 데 모든 진력을 다 하느라 다른 일은 하나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를 물어봤다. A는 솔직히 그 불가해한 미혹을 뿌리칠 수도 거부할 수도 없다는 것을 고백했다. 물론 진심은 아니었다. 그러나 뭔가 미심쩍었다. 대체 녀석이 그 일을 어떻게 알아내서 선수를 쳤는지가 궁금해서 미칠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는 그냥 한번 에릭의 마음을 떠봐도 나쁠 건 없다고 생각했다. 에릭이 인정하면 좋은 거고, 아니면 다른 데서 원인을 찾으면 그만이었다. 개인적인 문제니까 그냥 한번 찔러보는 데서 공분을 사게 되는 그런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예 손해볼 일은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그건. 왜냐하면 에릭이 A의 마음을 꼬신다는, 그의 마음을 절묘하게 빼앗는다는, 그에게 신기함과 놀라움과 기쁨과 해학과 쾌락이 분수를 뿜도록 최면을 건다는 제3의 가능성은 미미하지만 그래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마도, 모르긴 몰라도 에릭은, 에릭도 이처럼 A의 마음을 떠보게 되는 수순에 이르게 될 수도 있다. 장난에는 장난으로 대처하고, 개는 개를 물지 않는다는 일반론으로 말이다.
「눈치... 챘어? 쉽지 않았을 텐데. 딱히 악취미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니야. 그렇지만 보이는 걸 어떡하니. 자기를 좋아하는 줄 빤히 알면서도 상대방의 마음을 가지고 놀 수는 없는 일이잖아. 하지만 은근하게 너가 알아채도록 신호를 보낸 거지.」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나의 마음을 알았는데? 너에게는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신기한 능력이라도 있는 거니? 그거 어디서 배운 건데? 독학한 거니? 아니면 누군가로부터 사사받았어? 뭐라고 말 좀 해 봐.」
「나도 아무나 보면 그 사람의 속마음이 막 훤히 보이거나 그러지는 않아. 그 사람의 눈을 보면 그의 생각을 읽고 다음 행동을 예측할 수 있다? 그건 그냥 드라마 대사 같은 말이야. 허구에서는 멋진 말이 필요하니까. 때로는 현실에서도. 정말 당신의 무언가를 안다면 꼭 눈동자를 연인처럼 바라봐야만 알겠니? 보지 않아도 아는 거지. 그래도 한번 슬쩍 눈빛을 주는 게 멋지겠지? 그럼! 나도 아직은 누구는 알겠고 누구는 모르겠고 그 일정한 규칙을 알아내지는 못했어. 아무리 사람을 만나고 심령학을 공부하며 직관을 발달시켜도 반복되는 쉬운 모양의 단일한 특징들을 거의 알 듯 말 듯 다시 알 듯 하다가 손에 잡히지 않는 거 있지? 그래도 너와 나는 이렇게 영혼의 주파수가 맞나 봐. 자, 봐. 안 보여? 보이지 않니? 우리끼리 연결된 이 선 말야. 음 그게 아직이라면 네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보면 되겠네. 자, 한번 시작해 볼까? 출발~!
너 여자 좋아하지? 그것도 많이. 오오, 그런데 넌 여자 보기를 돌 보기처럼 하는 능력자인데. 오, 놀라워, 대단해! 인정해 줘야 해. 짝-짝-짝! 그런데 A는 우리 마을에 왜 왔을까? 대체 무슨 목적으로? 대관절 뭘 알아내려고? 그런 거 없지? 그렇지?」
「응. 그래. 없어.」
「너 소풍 가고 싶지? 경치 좋은 해변에서 일광욕 하다가 나 잡아봐라 놀이를 하는 연인들을 구경해. 그런데 그녀의 위인가 아래인가 수영복 끝이 그만 풀어지고 마네. 딱 그 찬란한 장면을 막 보고 싶지?」
「어... 조금은?」
「캔-맥주 마시면서 한가하게 낚시나 하고 싶지?」
「응. 그렇지.」
「햄버거, 피자, 스파게티는 물론이고 막 최고급 요리가 땡기지? 사랑의 편지를 쓰고, 애인에게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1번 2악장 같은 말들을 속삭여주고, 감미로운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무지크 같은 귓속말을 듣고, 신비스럽고 놀라우며 기발한 모험에도 빠지고 싶지?」
「당연하지!」
「막 사람들에게 청춘이란, 인생이란, 사랑이란, 행복이란, 낭만이란, 그러면서 그들의 마음을 쥐락펴락하고 싶지?」
「물론이야!」
「너의 추종자들을 웃겼다가 울렸다가 짜릿하게도 만들고, 차분히 정숙한 요조 숙녀로 둔갑시켜서 그녀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다가 느닷없이 리모콘 딱 눌러서 막 흥분시키기도, 열광시키게도 하고 싶고, 완전 끝내주도록 기쁘게도 만들고 싶지?」
「어떻게 알았어?」
「경이롭고 장엄하며 신기한 초현실적 작품이라는 광고에 홀딱 넘어가서 방금 그 작품을 딱 봤는데, 그게 영 아니었을 때, 막 이상하게 뚜껑이 열리면서도 어쩐지 조금은 기분이 좋지 않니?」
「어. 정말 그래.」
「행운이 따라준다면 장래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 같은 한 번쯤 떠올릴 수 있는 예감을 그 어디에도 발설해본 적 없지?」
「응.」
「옛날에 야망 없었지?」
「응.」
「지금도 크게 다르지는 않지?」
「응. 아마도?」
「그런데 삶이란 다름 아닌 이와 같은 꺼림직한 부분까지 안고 가야 하는 것인 줄 뭐 알기는 알았겠지만 그래도 예전엔 미처 몰랐지? 내가 얼마나 부러움과 부끄러움으로 가득찬 존재인지. 한편, 순수한 부러움을 죄와 벌과 어찌 보면 순전히 악으로 인식하는 사람과 도무지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마저 이 세상에 그렇게, 정말 그렇게나 많은 줄은 좀 살아 봐야 안다는 것. 무엇보다 그게 바로 나일 수도 있다는 것. 또 타락한 천사라는 논리가 합당하다면 승천하고 개과천선한 악마의 존재도 인정해야 하는 것, 그런 건 듣기도 읽기도 생각하기도 버겁겠지, 게다가 내가 얼마나 부조리한 인간이냐, 언더독 기질과 남 잘되는 꼴은 못본다랄지 그 어느 음성적인 감정이 내게도, 인간에게 원래 다분하다는 걸 얼마 만큼 받아들이느냐 인정하느냐 아느냐, 그게 바로 어른의 삶이고 인생이란 걸 어린 친구들은 차라리 아직 몰랐으면 좋겠지?」
「응. 그렇지.」
「사람이라도 다 같은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지? 인간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누구는 닭, 누구는 너구리, 누구는 메두사, 누구는 철면피, 누구는 철가면, 누구는 악령, 그 옛날 왜 그렇게나 반인반마에 대한 신화와 조각과 예술이 많았는지 이제라고나 할까, 조금은 알겠지?」
「응.」
「정치! ······ 싫지?」
「어... 음... 그래. 인정!」
「정치. 짜증나지?」
「음... 아니라고 하면 거짓말일가?」
「그래도 좋아하고 싶지?」
「그럼.」
「작사가, 수채화가, 상인, 법조가, 행정관료, 사업가, 학자, 교육자, 방송인, 유명인이든 누구 할 거 없이 이상하게 그 분야로 막 죄다 수렴되는 거 같지? 하지만 그걸 꼭 갸우뚱하게만 볼 일은 아니야. 왜냐하면 정계로 우수한 인재가 모이지 않으면 그런 말들을 하니까. 인물이 없다네 동물농장 대표감이 없다네 어쩐다네 라고. 비슷한? 뭔지는 몰라도 엉겹결에 떠오르는 원리로 여자들은 왜 자기도 소설을 쓰고 싶어하고, 남자들은 하나 같이 인문-교양서처럼 유창하게 말하고 싶어하는지 막 궁금하지?」
「음, 그렇지.」
「절반의 정치는 시장판 말싸움 같지? 상업에서야 품질이 좋고 값도 싸면 두 마리 토끼를 잡기 때문에 그 제품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 그게 바로 고품격이지. 값이 싸도 그건 싸구려가 아니라고. 하지만, 반면 정치에서는 인성과 품격은 <묻지마>인데 가치도 <묻지마>인 유형이 왜 일정 분량 그 지분이 확보될 수 밖에 없는지 궁금하지? 어느 정치학자가 그러더군. 내 한 표 행사는 성스러운 시민의 의무! 반드시 수행해야 하는 신성한 의무! 그러므로 보수는 내 1표를 행사 한다, 하지만 진보는 고개를 돌리고 기권을 한다고. (똑-똑-똑) 생각이 그렇대. 보수-표는 선거권의 행사를 신성하게 여긴다, 때문에 투표는 최소한의 의무다, 따라서 실제 투표를 한다, 그러나 일부 진보 성향 유권자랄지 이래도 흥 저래도 흥 하시는 분들은 선거권의 행사를 중요하게 보지 않는대. <신성함>과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의 차이인가 봐. TV와 스포츠야 <봐도 그만 안 봐도 그만>이야. 그걸 뭐라 할 수는 없어. 당연하지. 또 대표자가 노동자들이 귀찮게(?) 하니까 회사의 체계를 개선할려는 노력이 부족한 채로 회사를 폐업하고 별도의 법인을 새로 만들면 그만이라고 하고서 실재 그렇게 하면, 그것은 얼굴 찡그려지는 불미스러운 일일 테지만 그건 그래도 테두리 안에 있는 논리야. 그런데 그게 회사가 아니라 나라라도 그럴까? 회사가 아니라 국가라도? 또는 지구라도? 누구라도, 누구나 아니라고 하겠지, 절대 그래서는 안된다고! 그러나, 그러나 여기서도, 여기서도 갈린다고! 여기서도 갈려! 어떤 지역에서는 보수가 항상 그랬어. 지금도 그래. 앞으로도 그럴지 모르겠어. 그 어떤 지역에서는 그들이, 보수가 나라 팔아먹고, 나치당으로 활동하며 자국민들을 핍박하고, 총과 칼을 들고서 펜을 때려잡고, 영구집권해서 바벨탑을 세우려 하고, 불미스럽고 참혹한 일들이 만연했던 왜곡된 시대상의 대표적인 잊고 싶은 인물에 대한 동상과 기념관을 어느 구시대적인 정치인은 그것을 더 키우고 더 늘리고 싶어하며(아아 오오 위나 아래나), 관 주도의 교과서로 새파란 학생들을 세뇌시키고, 언론과 방송을 장악하며, 계속 겁을 주고 잡아들이는 언더독 방식으로만 정치를 하며 나쁜 건 전부 다 좌파 몫으로 돌리고, 노동자는 그야말로 개나 소와 돼지로 알고...... 그 살벌한 시절이 참으로 오래 지속되었는데, 어마어마한 억겁에 이르는 군중의 피를 쥐어 짜서 그래프 선분이 이동되었는데, 나는 대를 위한 소로 희생되지 않았고 살아남게 되었으니까 표현의 자유는 침해당해서는 안되니까 나는 아무 말이나 막 해도 된다(?), <하늘에서 비가 내리면 선열들을 비롯한 무수한 사람들의 눈물이구나>가 아니라 나는 피도 눈물도 없는 흡혈귀다(?) 고로 내가 최고다(?), 웃기고 말도 안 나올 일이야. 꼭 그 정도까지는 아닐 수 있는데, 세상에 그 정도로 나쁜 사람은 실은 그리 많지 않겠지만, 어느 위치에서 그 위치에 걸맞지 않게 행동하는 어른들이 많다는 얘기야. 원래 인간이 그런 존재라고. 지구가 망해도 나는 우주선 타고 제2의 지구에 갈 수 있으니까,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된다는 바로 그 논리지. 하고많은 작품에서 끝없이 반복되는 주제가 뭐야, 불가피하지만 여건이 되니까 비교적 빈자보다 부자가 뭐 어쩐다 라는 거잖아. 실상이 그래. 어쩔 수 없지만 누구나 그러하지만 또 퍽 측은하다는 거야. 심지어 어디에서는 영화처럼 지구에 사는 외계인의 지구-비상탈출권을 지구인이 외계인측에 속닥속닥해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서 그걸 확보해 둔다니까. 인간 세상의 실정이 그런 걸 어떡해. 테니스 공이 왔다 갔다 하면 됐지 굳이 일희일비할 필요 있냐 면서 바로 기권이 내 권리고 기권도 최소한의 의무로 여기기 때문에 뒷골목의 표현을 잠시 빌리자면 세상이 이 모양 이 꼴이다 라는 생각으로 사는 걸까? 그래도 미래인이 본다면 우둔할지언정 풀꽃 반지 같은 1표일지라도 투표를 하는 우직한 보수주의자가 차라리 소크라테스고, 기권을 권리로 보는 진보주의자는 그건 그냥 패배자이자 비겁한 위선자일 수도 있어. 주홍글씨와 함께 살면서 어느 만큼 얼마에 걸쳐서 어떤 대가를 치러서 개선된 인간의 문화와 인류의 문명과 여러 인습과 까다로운 통념들과 안락한 풍요, 그것의 시계를 자꾸 과거로 뒤로 되돌리는 건 표면적으로 봤을 때는 완고한 보수 성향 때문일 것 같지만, 어떻게 보면 한쪽은 역할을 한 거고 한쪽은 좌시하고 방관하고 손 놓고 투정하는 것 밖에 안 되는 것 같아. 그건 갈릴레오 갈릴레이도 천동설도 지동설도 뭣도 아니야. 그냥 수수방관일 뿐이야. 논리적으로만 봐도 그래. 뽑았자나, 뽑아놓고 뭐라 그런긴 뭘 뭐라 그러냐, 이미 지난 일이다 그거야. 그러면 이혼할 꺼야? 그거라고. 시행착오를 거쳐서 지금의 모습을 갖춘 내 인생에서 방황과 아픔과 고뇌를 빼놓거나 빠트리거나 잊으면 안 돼. 지금 당장 로또 복권 당첨 안된다고 이 꿈 저 꿈 이 사랑 저 사랑 시도도 안 해보고 내 인생은 왜 이 모양 이 꼴이냐고 투정만 부리는 친구, 과거의 내 방황과 아픔과 고뇌를 다 남과 환경 탓으로 일관하고 치적도 우리 당 공로도 우리 당 안 좋은 건 못한 건 전부 다 좌파 라고 하는 정치꾼, 매사 세상만사 짜증만 내는 남자 또 무분별하게 신경질적인 여자, 사람들을 웃기지도 숙녀에게 친절하지도 동물을 존중하지도 않을 꺼면서 노래를 부르고 그림을 그리고 책을 쓰거나 내 의견이나 참신한 대안을 발표하지도 못할 꺼면서 오직 악성 댓글만을 툭툭 방관적으로 말하는 남자, 세상사 인생사 모든 일을 내 기분대로 여과없이 막 뱉는 남자, 그게 어디 아름답겠니? 정치도 그래. 모든 게 정상적이고 상식이 당연하고 누구나 교양과 예법을 싫어하지 않는다면 정치 그래프는 레몬 모양이어야 한다고. 중도와 적당한 보수와 온건한 진보, 그리고 음 그렇게. 그런데 왜 티격태격 늬가 잘났네 내가 잘났네 그러는지 몰라. 그런데, 말은 이래도 나 같은 사람도 그 세계에 딱~ 뛰어들면 어쩔 수 없이 똑같이 이러쿵저러쿵, 아예 더 할 수도 있어. 뭐, 멱살? 워- 워- 워-! 나도 살다 보니 얼굴이 두꺼워지고 주름살이 자리를 잡고 흰머리가 보이고 말도 이처럼 길게 하거나 글을 꼬고 또 꼬아서 쓰게 되는 걸 뭐 어떡하겠니.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말을 안 해서 그렇지 나와 다른 타인의 속마음을 알게 되면 무척 놀랄 수도 있어. 그래서 사람들은 어른이 되면 꼬마들처럼 나 너 좋아랄지 어떻다랄지 막 있는 그대로 자기 마음을 다 말하지 않아. 왜? 왜냐하면 나와는 다른 타인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은 말처럼 그리 쉽지 않기 때문이지. 왜냐하면 내가 하는 자랑과 어차피 완전 똑같은 자랑인데 왜 그 인간이 하는 자랑은 뻥뻥 터질 수 있는지, 대체 겸손과 자랑이 뭔 상관관계가 있는지를 이해하고 깨우치는 건 예상 외로 힘들고 너무 어렵기 때문이야. 어른들은 그래. 도박사처럼 때와 장소와 사람을 봐 가면서 마음을 열어야 한다고.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사소한 오해도 생길 수도 있고, 모두 정말 먼지 티끌 만한 것 하나까지 전부 안다고 생각했는데 미처 몰랐던 그 사람의 새로운 면모를 세월이 지나서야 알게 될 수도 있다고. 세상 돌아가는 걸 보면서 또 살면서 어른들은 짐작하지. 그만큼 사람들은 생각이 많이 비슷하면서도 또 많이 다르다는 것을. 정치! 그건 정말 스포츠도 아니고 학문도 상업도 아니고, 그렇긴 한데 그래도 정치와 제일 비슷한 건 어쩌면, 연예계야. 그 어느 분야의 누구라도 스포트라이트를 비춰봐, 날마다! 쉬지 않고! 끊임없이! 신문도 1면, 뉴스도 특급, 인기도 (비꼬는지는 모르겠지만) 최고, 소셜 네트워크? 언제나 유행을 선도하는 만인의 연인 같은 장본인이지. 그건 누가 봐도 어깨에 뽕이 들어가지 않으면 비정상이라고. 오오! 상상만 해도 아, 아찔하다야. F 학점만 면하기를 바라는 게 어쩌면 그것이 진짜 현명한 처사인지도 모르겠어. 살면서 사적으로 그런 질문 한 번쯤 들어본 적이 있을런지 궁금하군 그래. 자네는 어떡할 텐가, 누가 자네한테 연예계 갈래 정치계 갈래 라고 묻는다면 어디를 택하고 싶냐는 그런 얘기 말이야. 경험의 유무를 떠나서 혹시 이걸 엄마가 좋니 아빠가 좋니, 와 비교한다면 어떻게 될까? 보통은 괜찮겠지만 깜빡 상대를 착각하게 되면, 지금 이 양반이 어디서...? 때로는 두말할 필요 없는 경거망동일 수도 있어. 생각만 해도, 오오! 대략 사람들이 선호하는 태도는 이런 것 같아. 우선은 나와 견해가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 사람을 만나기를 선호할 테고, 주관이 너무 완고하거나 그것을 다듬고 발전시킬 생각이 전혀 없는 상대를 만나면 아주 불편해 한다는 점. 그분을 또 만나야 한다니... 아아! 내 수준과 안목이 고고하지 않다는 건 인정하기 싫을 수도 있지만 말하지 않아도 그건 누구나 알고 또 인정해. 그러나 수십 년 동안 관성과 은밀한 개입의 여지가 발생할 수도 있는 세뇌랄지 평생 놓칠 수 없는 야망 그런 개념 때문에 어른은, 어린이가 아닌 어른은 내 취향과 지성과 인격이나 어느 넉넉함에 대해서는 겉으로 밝히지는 않아도 잘 알아. 내 천성과 한계와 동조성의 여지를 비롯해서 말이야. 그러나 정치관은 달라. 그건 한 어른으로써 양보나 관용이나 학습이나 개선이나 그런 게 잘 안되나 봐. 한마디로 어렵다, 그런 것 같아. 아주 더뎌, 서서히 변하거나 변치 않는다고. 왜 그런가를 알기 위해서는 분야가 아닌 그것을 행하는 사람을 알아볼 필요가 있어. 좀 전에 나왔 듯이 연예계를 보자고. 연예인은 예능을 행하지. 그분들은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재능을 동네에 나아가 옆 동네에 알리고, 퍼트리고, 발휘하는 일을 해. 그런 반면 정치인이 행하는 것은 무엇인가? 무엇이겠나, 정치? 맞지! 그렇지. 그런데 정치가 도대체 무엇일까? 이에 대해서 배우고 싶은, 어쩜 비밀리에 훔치고 싶은, 암암리에 닮고 싶은 혜안을 간명하게 말할 수 있는 어른은 대관절 얼마나 될까? 정치는 책임지는 것이다! 언제 책임을 떠넘겼나? 만약 책임지겠다고 하면 또 그래. 그걸 왜 당신이 책임지냐, 다 좋은데 왜 하필 뒷북이냐고 아마 그럴 껄? 이러이러해서 이러이러한데 어떻게, 대체 어떻게 책임질 꺼에요, 동물농장 사업부 부장 자리 내놓으실 수 있어요? 네, 그만두겠습니다. ....(윙-윙-윙)! 정치는 비로소 떠나는 뒷모습을 봐야지만 알게 되는 그런 수수께끼라도 된단 말인가? 나는 지금껏 반세기.. 일 세기.. 동안 그런 어른을 한 번도 만나 보지도 못했고, 그런 심오한 질문마저 그동안 한 번도 해 보지 못했으며, 내가 불만족스러울지라도 타인에게 그쯤 근사치의 견해를 꺼낼 수 있는 깜냥의 인생을 살지도 못했다네. 그렇지만 어떤 하나의 가설에 대해서 그 누가 자유로울 수 있을까, 라는 비장의 카드는 하나 쥐고 있지. 딱 하나! 허허허, 조커는 남겨둬야 하지 않겠나. 무릇 승부사는 그래야 한다네. 인생이 도박은 아니지만 말이야. 그건 무엇일까? 딱 부러지게 그건 이거다 라고 밝힐 수 있는 권한이 이 미천한 육신에게는 불허되었을지언정, 내게 떨구어지는 이득이 없을지라도 혹시 이건 아닐까 라는 추측은 밝혀도 괜찮을 꺼야. <왜?>라는 히포크라테스와 <어떻게?>라는 방법에 대한 미네르바를 세상의 모든 어른들은 알고, 행하고, 경시하거나, 이용하거나, 논하는데, 대체 어째서 도대체 왜 <무엇으로!>라는 호모 파베르 그 제일 중요한 어린이의 논리는 무시되는 것일까 라는 의문. 어째서 그런가는 넘어가자구 친구. 그건 어느 업자에게는 밥줄일 수도 있을 꺼야. 앗 방금 내뱉은 내 말이 조금은 경박했네. 인정하네. 기분 나쁘다면 용서를 구하겠네. 미안허네 그려. 말을 바꾸면 그건 존엄한 상도일 꺼야. 요컨대 왜 하는지는 몰라도 정치라는 일을 하는 당사자인 정치인은 물론이요 정치인을 제외한 거의 모든 어른은 알아야 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네. 왜냐하면 그러지 않는다면 인간의 미래는 점점 암울해질 테니까. 그 암울함의 사실적인 상세함이나 범죄자의 시각에서 견지하는 비약과 그 어떤 예술적 상상은 생략하자고. 내 생각이 꿈에 가깝다거나 오만해 보인다거나 틀렸다거나 그럴 수도 있어. 그러나 일단 지금 생각은 그와 같다네. 그러면 사람들이 대체 무엇을 알아야 하냐고? 그래 뭘 알아야 하느냐, 그건 이거야. 정치인은 무엇으로, 무엇으로써 정치를 하느냐! 바로 그것. 모르긴 몰라도 아마 대학교 정치학과에서 이런 얘기는 무수히 다루어질 테야. 설혹 그렇다 할지라도, 그래도 훨씬 수없이 반복된다 해도 전혀 과하지 않지. 그러니까, 단언컨대 정치인은 무엇으로 정치를 하는가? 정치인은, 정치가는 정치를 말로써 한다네. 말, 글이 아닌 말! 글조차 말과 구분이 불분명한 듣도 보도 못한 화술이 있거나 조금 애매한 구어체가 있거늘 그런 글도 아니고 아예 말로, 말로만 정치를 한다네 정치인은. 그게 대체 뭔 소리냐고! 나도 그게 무척 썩 꺼림직하네만 가만 보니 진짜 그렇더라고. 정치인은 정치를 3분의 마법으로 하지도 않고, 정치인은 정치를 세기의 명화로써 웅변하지도 않는다네. 그분들은 오직, 오직 말로써 정치를 하고, 말로써 행동하고, 말로써 이룩하고, 말로써 통치할 뿐이야. 자, 이 허접한 사견에 반론을 제기하시고 싶으신 분, 많으시겠지만 설혹 그분이 있다면 난 두 귀를 막겠네. 난 비겁하니까 말이야. 난 돌이 되기 싫다고. 역사적 사실을 아니까 타인의 피에 대해서는 이러쿵저러쿵하지만 나는 그 어떤 분에게 말로도, 글로도, 돈으로도, 힘으로도, 그 뭘로도 상대가 안된단 말일세. 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내 미천한 경험을 반색하며 돌아보게 되구먼. 순서가 그러니까 말이야. 자성이라고 하진 말아 줘. 쑥스럽구만. 나이 먹고 뭔 주책이야? 아무튼 아아, 정말 그래! 나는 인류를 위해서 이바지한 정치인의 작품을 읽어 본 역사가 없다네. 그 그림을 감상하고 그 음악에 혼미해 본 기억이 최소한 내게는 단 한 번도 없다니, 오오! 내가 무식한 건가? 무식한 거지. 내가 너무 게으른 삶을 살았던 것일까? 두말하면 잔소리겠지. 허나 핑계 하나 대자면 그만큼 내가 고를 수 있는, 눈에 뜨이는, 정평이 자자한 그런 정치인의 서적이 많이 없었어. 고대-그리스와 로마의 뭐 있지 않나, 그건 넘어가자고. VH? 뭐 밴 헬런? 유 리얼리 갓 미 유 리얼리 갓 미! 아 록스타 말고 빅토르 위고? 그분처럼 예술가가 잠시 정치를 했던 예는 왕왕 있지만 그와 달리 일평생 정치 인생만 걸었던 정치가들이 새파란 청춘들에게 무엇을 남겼나? 없어. 없다고. 물량은 있지만 말이야. 어록? 회고록? 수상록? 자서전? 조금 어중간하구만 그래. 이거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세계 제2차대전에 대한 어느 정치가의 기록물은 물론이고 정치인에 의해서 알려진 기록물들은 그 가치에 비해 인기는 답이 없다네. 고전 가운데서 가만 있자, 잘 생각이 안나. 내가 까마귀 고기를 먹었나, 아닌데. 현재 또 앞으로 그분들의 저작은 감히 현세에 판단하기 까다로울 정도로 박물관적이라거나 뭐라 말하기 곤란하구먼 그래. 그게 대체 왜 그럴까? 나는 그 이유가 정치인은 정치를 말로만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네. 말이 뭔가, 입이 달렸으면 못하는 사람이 없는 게 바로 말일세. 생각을 글로, 사유를 그림으로, 느낌과 영감과 사상을 음악으로 승화시키는 건 대체로 비교적 말보다는 완성도가 높아. 훨씬 높아. 당연한 일이겠지. 그런데 말로만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개념처럼 보이는 정치를 오로지 말로만 한다고? 이 세상이 어쩌다 그렇게 된 것인지는 모르겠네만 혹 나만 이걸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진짜? 정녕 그게 사실인가? 고개의 각도가 왔다 갔다 하는구먼 그래. 아무리 달리 신통한 반론을 재기한다 해도 그건 배보다 클 수 없는 배꼽인지도 모르겠어. 이 모든 추론이 아예 의미가 없을 수도 있고 말이야. 일과 행정과 사업과 인기는 서류, 의사 결정, 성과, 이윤과 환호가 전부일 수도 있어. 승부사? 실적! 예술가는 작품이고 연애는 사랑이겠지. 부와 풍요가 인격화된 신 플루토스는 지상에서 얼마나 부의 공평한 분배에 대한 소관에 충실했느냐, 저승의 지배자 하데스는 지하의 보물을 얼마나 잘 관장했느냐, 그것이고. 사람의 말이 대체 뭐라고 오직 말로만 그 사람을, 그 사람의 정치적 과업을 평가하고 그 말대로 공동체의 운명이 이리 갔다 저리 갔다 어째야 하느냐고. 이건 적어도 하나의 미스테리로 보는 게 옳다는 생각이 드네.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든 성공하기 위해서든 어딘가에 일을 잘하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면 피터 드러커의 글대로 일하면 돼. 그러나 그대로 하기 어려운 게 일이지. 다른 경영학의 거성들도 몇몇 떠오르며, 그건 장점을 본뜰 대상이 많이 협소하지 않다고. 그런데 약관의 정치학과 신입생이 십년 단위로 인생 계획을 다 세웠어. 또는 뒤늦게 지금이라도 계획을 수립할려고 해. 나는 정치를 잘하고 싶다고. 나는 존경 받는 정치인이 되고 싶다고. 그런데 이건 음... 정치학 개론대로만 행동할 수도, 정치학 개론대로만 말할 수도, 정치학 개론대로만 살 수도 없고 상당히 까다로운 문제가 아닐 수 없어. 정치학의 교본이라 파브르 곤충기? 그건 정치학이 아니군. 아이작 뉴턴? 번지수가 틀려도 한참 틀렸어. 그러니 지구가 타임머신이 아니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어른이 대체 얼마나 되겠나. 말로써 단지 말로써 지구본을 거꾸로 돌리고 싶어하시는 분들이 종종 나타나신다면 게다가 인기도 약간이나마 한몸에 받는다면, 저와 같은 질문가, 오직 질문만 막 던지는 (직업적인) 질문가는 대체 어디서 그 이해를 구걸하고 유대를 요구하며 부족한 동질감의 가뭄에 대해 근심해야 한단 말입니까? 안 그렇소? 자, 이 뜻에 동의하신다면 우리 모두...... 워~ 워~ 워~! 정치가 무슨 초장에 휘어 잡아야 한다는 사랑의 일반론도 아니고, 밖에서는 가정의 권세가인 척 안에서는 자상한 공처가로써 사는 시시할 수도 있는 삶이 정치도 아니고 말이야. 아 공손한 정치여! 이건 정말 까마득하고 아득하구만 그래. 그렇다니까 정치가. 어떻게 생각하니 정치를? 이런 생각 한번 해보지 않았니? 정치 그래프 모양이 왜 그러는지 뭐 엎어치나 매치나-일까 라고. 왜 그럴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지?」
「그렇지. 어. 정말 그래. 어떻게 알았어? 난 정말 왜 그런지 모르겠어.」
「좌파? 좌파가 공산주의자인가? 좌파가 악마야? 그러면 왼손잡이도 모두 악마겠네? 좌파가 집권하면 지구가 망하나? 어? 아직도 그 진부한 방식으로 정치를 하는 사람들의 포지셔닝은 그거 밖에 없어. 좌파는 악마다, 좌파가 집권하면 망한다, 고로 천사인 나와 우리를 뽑아라 라고. 하지만 그 말을 1번 들으면 고개를 돌리고, 10번 들으면 귀를 막고, 100번 들으면 혹시 그럴까 의아해 하고, 그 이상 듣게 되면 개중에는 더러 진짜 그게 맞는 줄 아는 사람들도 나오게 될 꺼야, 그게 모이면 좌파는 악마가 되는 거지. 반면에 나의 유명도와 명망과 위대함은 만천하에 퍼트려지면서 떵떵거리는 것일 테고. 국제적인 몇몇 사교 클럽들이랄지 유명한 모임들 있잖아? 그 회원은 보통 두 가지로 나뉘어. 회원으로 만족하는 부류와 수장이 아니면 불만족하는 부류로. 거기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어떤 친구가 전에 그러더라고. 의전을 받는 의장이 되지 못한다면 이 일은 의미가 없는 일이라고. 많이 봤던 대하드라마를 떠올려 보시게. 나 같으면 말이야, 보통 전자로 만족할 것이라면 처음부터 일부러 그 어느 명부에 이름을 올리고 싶어하지 않을 것 같아. 타인도 꼭 그렇다는 뜻은 아니야. 그렇지만 가능하다면 신랑이나 신부로써 결혼행진곡이 울려퍼질 때 멋진 의복을 갖추고서 행진하거나, 승산이 있다면 주연을 맡아 그 영화 하면 누구가 떠오르도록 한번 그래 봐야 하는 것 아닐까? 언제까지 신부 들러리와 조연만 할 테냐고! 인생도 그렇다니까. 정치도 그래. '사교 클럽에서 의전을 받는 의장이 되지 못한다면 이 일은 의미 없는 일이다' 그걸 깨닫는 순간 그만 두느냐, 계속 가느냐? 그 중에서 일반적으로 후자겠지. 왜냐고? 왜냐하면 처음 시작할 때 의도는 표범 클럽의 의장이 아니었기 때문이지. 왜냐하면 처음에는 국제적인 또는 지역적 사교 클럽 일원이 되어 활동해 보고 싶은 욕구가 단일한 목적이었으니까. 한편, 사교 클럽이 아닌 정치를 보자고. 평생 흠 잡을 데 없이 탄탄하게 한길만 걸었던 존경 받는 일류대학교 총장이 어느 날 정계 입문, 두둥~! 공표하시겠지. 해야 하니까. 안 할 수 없어. 어떻게? 전반적인 정치 수준을 높여 보고 싶다고. 바꿔 보고 싶다고. 변화의 상징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계기가 되고 싶다고. 내가 초석이 되겠다 날 밟고 올라서라 어? 짜잔~! 오오, 맞는 말이자나 뜻이 가상하다고. 좋아 다 좋고 훌륭해. 그런데 (필름 간추리기) 겪어 보니 어떻드라, 누구나 익히 아시는 결과가 발생할 꺼야. 자, 중요한 건 바로 이 지점부터야. 바꾸고 싶다 그 어려운 길을 가겠다 갔어, 그랬으면 동물농장 대표가 못되더라도 계속 그 일을 해야 맞지. 그게 옳아. 아니면 처음부터 가정법이란 거잖아? 나는 정치계를 바꾸고 싶다 라고 선언했지만 그건 말을 바꾸자면, 내가 의장이 되면 정치를 계속 하고 의장이 못 되면 (때려치겠다?) 그만두겠다 라는 의도. 따라서 우승 하든 못 하든 계속 이 일을 해야 한다가 논리적으로는 정당해. 이론은 그래. 그러나 실재로는 (절반은) 돌아가. 어디로? 연구소로, 학계로, 재계로, 어딘가로 낙향한다고. 돌아갔더니 글쎄 어떻다드라, 는 생략하자고. 그렇게 표범은 코끼리가 되어서 원위치. 왜냐하면 처음에 시작할 때 온전한 내 의도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 바깥의 구애가 절반이었으니까. 그러나 곧은 이론대로 남는다고 가정해 보자구. 워워워, 그 험난한 고생길 눈에 훤하겠지. 나가라, 와라, 가라, 가란다고 진짜 가냐, 가만 있어라, 왜 가만 있냐, 물러나라, 어째라 등등등. 잠잠해지기 전까지는 아아 까마득하지, 허허허. 레이디가 이해하기 퍽 곤란한 점 가운데 하나, 그 소란스러움을 혹시 즐기는 것 아니냐는 수컷의 특징이 어떻게 저렇게 펼쳐지나 그런 부분이 있는지도 모르겠어. 진흙탕이네 뭐네 그런 얘기는 하지 말자고. 너와 나 단둘이서 하는 얘기니까 괜찮지만 그래도 조심, 안전, 주의, 무덤까지 이 비밀을 함께 가지고 가자고. 그렇더라도, 그래도 의전을 경건하게 받아야 할 의장이 못 되었으면 차라리 쓴소리를 감내하고 돌아가는 게 좋아 보여. 원론상 일관성을 견지해야 한다는 이론과는 달리 일견으로는 차라리 그 뒷모습이 깔끔해 보여. 그런데 이것 마저 비판의 대상이지. 왜 사람이 처음과 끝이 다르냐, 바로 나처럼, 이론 따로 실재 따로냐, 말이 많다고. 진공청소기로 시작해서 커피포트로 끝난다고. 애초에 단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출발했어. 왜 나는 이 일을 하는가, 왜 나는 정치를 하는가! 그런데 해 보니 어땠어. 그래서 남은 건 둘 중 하나야. 첫째, <왜 하는가>에서 <어떻게 하냐>로 치우치던가. 아니면 둘째, 아니다 나는 그 어떤 비난을 받더라도 뭐 어떻드라도 절대 수단과 목표를 바꾸는 일 만큼은 못하겠다 그러니 나는 깨끗이 업계를 떠나겠다(그 바닥에서 발을 빼겠다). 그렇게. 자, 그럼 한번 대조해 보자. 따질 건 따지자구. 사교 클럽과 정계 입문과 꿈의 실현에 대해서. 사교 클럽은 들어가기 전과 후가 어떻드라, 간결해. 정갈해. 그 다음 정계? 가만히 명상합시다! 그리고 요거 요거 꿈. 나는 커서 기자가, 가수가, 목수가, 요리사가, 공무원이, 제빵사가, 카페 사장이 되고 싶다. 됐어. 그런데 어머나 막상 해 보니 어떻네? 윙윙윙윙윙! 꿈도 정치랑 뭐 별반 다를 꺼 없구먼. 똑같잖아. 그러므로 요점은 이거야. 그 가운데 사교 클럽이 제일 간편하고(트집이 아니라), 꿈은 제일 개인적이고, 정치가 제일 어렵다! 그게 제일 힘들다고. 그렇지만 인생이 어디 이처럼 쉽니, 그렇게 호락호락하고 간소하니? 그럴 리 없지. 그럼. 안 보여, 안 들리냐고. 저 찬란한 외침과 맹목적인 열정과 민첩한 질투 그 얌전한 고뇌와 잔잔한 웅성거림이, 진짜 그 거룩함이 안 보이고 안 들리냔 말이야. 어? 아~하? 그래~ 그거! 이분께서 이제야 좀 말이 통하시네... 사-랑! ... 그분이 어디 낄 자리 안 낄 자리 빠지는 거 봤니? 그러니까 진공청소기와 커피포트는 물론이요 환상머신이 필요한 거겠지. 안델센을 알고, 베르디를 알고, 볼보를 안다고 다-가 아니란 말씀. 그런데 어쩌다 정치 얘기가 사랑으로 돌변했지? 무슨 사교 클럽을 말하고 있었잖아. 하여간 변덕하고는. 어쨌거나 사교 클럽도 인생도 정치도 그렇다고. 그런데 왜 자꾸 귀가 간지럽지? 스슥스슥... 뭐... 많이 컸다? 환청인가. 아니네. 기억이네. 잘못들었군. 다시. 한번 '만일 나라면' 이라고 생각을 해보시게. 학계, 재계, 법조계, 행정 분야, 또 다른 유명계에서 수십 년 잘 활약하시다가 어느 날 정치를 하고 싶네? 어머나 어쩜 좋니! 다시 생각해 봐도 그러네? 그 일을 한번 해 봐도 그리 썩 나쁠 것 같지는 않네? 좋아. 그래. 좋다고. 그러면 어디 정당에 가입해야 하겠지. 그래야 하니까. 그러면 저 두 가지를 생각해보자고. 과연 회원으로써 만족할 것이냐 아니면, 수장에 오르기가 여간 어렵지 않겠다면서 불만족을 감출 텐가로. 보통 그 정도로 세상을 알고 나면 전자로는 성이 안 차는 게 인간의 본성이야. 그러면 후자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당연히 신성한 행동주의를 실천하는 확고부동한 이미지의 정당에 합류하게 된다고. OK~! 이거야! (검지 휙~휙~휙 또는 쉭~쉭~쉭!) 딱 이 지점이 <어떻게>가 <왜>를 왕좌에서 끌어내리고 자기가 바로 1등이 되는 바로 그 찰나야. 같이 어울리고, 같이 행동하고, 같은 옷을 입게 되면 정치 철학이고 뭐고는 잠시 뒤로 밀리다가 어느새 나중에는 까맣게 잊혀지고 만다고. 게다가 정치인 개인과 정당의 이념, 그것이... 그게 어디 천생연분 연인처럼 하늘이 맺어주지 않았을까 의심스러울 정도로 궁합이 잘 맞을까? 진짜로? 그건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소리겠지. 더군다나 정당은 물론 정치인 역시 일관성을 유지하기도 힘들어. 게다가 정당에서는 큰 선거가 다가오면 당원 다수의 마음에 안 들어도 인기 순위 1번을 추대할 수 밖에 없어. 어쩔 수 없다고. 모순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고. 일반인들에게 물어봐 봐. 당신께서 정치를 하신다면 어떻게 하고 싶냐고. 바둑-체스의 훈수두는 사람을 선수로, 선수를 훈수자로 입장을 바꾸는 가정을 생각하면 이해하는데 도움될 듯 하다네. 그러나 그건 이론이지 실재가 아닐 꺼야. 이론과 실재, 교집합을 제외한 나머지는 다르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지 않나. 보통 일반인은 유명해지고 싶어하지 않아. 역으로 유명인이 일반인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면 그건 절반은 하소연이고, 절반은 내 시시콜콜한 사생활이 뭐라고 왜 정치-경제-사회 문제만큼 구설수에 오를까 라는 걱정이겠지. 그래서 휴식과 휴일과 휴가라는 게 있을 테고. 잘 쉬고 잘 놀아야 일도 잘 한다, 라는 논리는 아마도 틀린 논리는 아닌 것 같구먼. 그런데 훈수자를 선수로 선수를 훈수자로 손바닥 뒤집 듯 바꾸는 일이 흔한가? 흔하지 않아. 흔하지 않아요. 일반적으로 유명해고 싶지 않다는 일반인을 유명인으로, 잘나가는 유명인을 잊혀진 무명으로, 그렇게 단번에 바뀌는 예는 희박함을 넘어서서 거의 없다네. 어떻게 라는 과정과 약간의 기승전결이랄지 기막힌 우연을 동반한 어떤 숙명성이 전제된다면 몰라도. 어쩌다 1등과 계속 1등도 엄밀히 차원이 다른 것처럼. 만약 행운이 어떻게 내게 뚝 떨어졌다면 확률과 문학적 운명론이 선행되면 좋을 것이고, 노력과 감사와 행운이 인생의 보너스지 그 반대는 아니라는 점은 주지해야 할 꺼야. 그처럼 대박은 날씨처럼 이랬다 저랬다 쉽게 바뀌지도 않고, 쉽게 탄생하지도 않아. 단, 꽝은 예외고. 그래서 꽝이 더 재밌기라도 해야지. 뚝딱 상상처럼, 작품처럼, 입장 전환이 쉽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 <있을 수 있는 일>로 변화되는 것도 쉽다는 말이야. 실제 현실에서는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 발생하고 부조리와 모순이 존재하긴 하지만 말이에요. 그렇지만 뚝딱 휙 쉭쉭, 그건 거의 없어요. 불가능이 가능함으로, 초현실이 현실로, 기적이란 단어가 기적의 현존으로, 비현실적 꿈이 꿈의 실현으로 이루어지기가 어디 쉽던가? 그것은 전설, 만화 영화, 동화와도 같이 현실에서는 참으로 드물어. 운 좋게 승승장구했다가 무척이나 원성을 많이 샀던 어느 기분파 회장님이 그랬다더라 라는 덕담이 있긴 있었다고 하더군 그래. 열린 공간에서 과장과 사원을 앞에 두고 너 사원-해 그리고 늬가 과장-해, 내일까지 기다릴 것도 없이 당장, 그랬다던가? 친구끼리 으쌰으쌰. 친구가 친구에게 그래. 야 이 바보 멍충아 밥통 얼간이 삐─삐─ 같은 놈아, 넌 그것도 못하냐, 아휴 진짜 그 얼빵함 대체 어디다 쓰냐 어, 나와 나와 비켜 비키라고.. (잠시 후)...... (효과음)! 그러나 배구공이 넘어갔으면 다시 넘어오는 법. 승부는 매치포인트가, 연애는 밀고 당겨야, 꿈은 야할수록 묘미가 있고, 전문가는 비전문가를 들었다 놨다 쥐었다 폈다 해야 재미가 있고 의미도 있고 체면도 바로 서는 법이지. 정치를 하는 사람을 두둔했으면 다시 정치를 응원하고, 희망하고, 심판하고, 관망하고, 고심하는 사람을 옹호할 차례. 스포츠를 보면 알지 않나. 축구에는 스트라이커가 있고, 야구에는 4번 타자요 뭐, 해결사? 그러니까 어디서? 주색에서 무슨 도박에서? 뭔 사랑의 화신도 행복의 마법사도 아니고, 아이고 거 참 나 정말 어지간히 하신다! 좌우지간 무릇 인간의 언어에는 염원이란 게 있고 기대도 있으며, 사람들이 A 가수를 좋아하고 B 코메디언을 싫어할 자유는 하늘이 주셨다네. 헌법도 시지프스의 신화도 믿음도 우주도 예술도 좋지만 인간의 일은 인간의 일이라고. 그래서 소셜 네트워크와 비주류 소식통들이 먹고 사는 것일 테고. 따라서 이 말 저 말 고르고 골라서 선별하면 어느 새침한 남자와 도도한 여자는 딱 이 정도 언급 외에는 침묵할 것이네. 아마도 분명히 그럴 꺼야. 왜냐하면 새침하고 도도하니까. 내가 그분들을 잘 알아. 예언이야. 적중은 보나마나야. 걸어도 돼. 자신 있어. 그러나 의심은 사절하겠네. 뭐, 예언가냐고? 과찬이십니다. 그니까 그 남자와 그 여자가 하고 싶은 한마디는 대체 뭐냐고, 어서 말하라고, 뜸 좀 그만 들이고, 바람일랑 작작 좀 잡고, 좋은 말로 할 때 말하라는 협박을 뭐 예언가냐고? 사석이라면 지금 맥이는 거냐고 되묻고 싶지만 지는요 그런 저급한 말을 입에 담을 순 없답니다. 안되죠. 안된다구요. 그럼요. 아 상황이 그렇지 않소, 정치를 논하는 자리인데. 아무튼 그분들의 의중을 타진해 본다면 음... 타인의 의사는 다를지 몰라도 자기는 누가 뭐래도 백조-과라 그건가? 나 같은 촌닭이 뭘 알겠시유, 그걸 발설하면 난 대체 뭐 먹고 살란 말이요? 어? 안 그렇수? 그러니까 뭐야 그 닭, 오리, 홍학, 백조, 앵무새... 거 마 뭐 무신 조류 대백과 그런 거야? 그 책 주인은 거시기 혹시 촌년? 워~ 워~ 워! 즉 적어도 내가 좋아하지 않는 정치인에게, 고상한 그분들이, 존귀한 그대께서, 단 하나 부탁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 말이 아닐까요? 제발, 악수만, 두지, 말아 주세요! 그렇...지만 누구나 정석대로 평탄하게 두시는 것 같긴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지요. 그 배경과 일과표와 남몰래 하는 선행이 아니라 겉으로 드러날 수 밖에 없는, 꼭 나쁜 건 아니지만 그럴 수 밖에 없는 순서도를 보지 않을 수 없소. 보장된 인기와 웬만한 어? 어지간한 연예계 스타 전부 다 저리 가라─저속한 표현으로는, 부디 모두 찌그러져주세요 제발!─할 정도의 인기와 대우와 혜택은 그 누가 뭐라 해도 모든 덕목 가운데서 언제나 월등하게 단독 1등을 달리지. 그렇자나? 안 그래? 그렇다고! 만약 그 혜택 다 내려나 봐. 모두 내려놔 보자고. 그러면, 그러면 대체 누가 정치를 할까? 누가 정치를 하겠냐고! 만약 그러면 너 같으면 정치를 하고 싶겠니? 얼핏 봐서는 도의적인 답을 내놓을 수도 있어. 그러나 사석에서 하는 말로 그건 생고생일 꺼야. 진짜 좋아하는, 어쩌는, 민심을 반영하고 대변하며 그래도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 고민하기를 정말 원하는 사람만이 나 정치를 하고 싶어 라고 할 수도 있어. 물론 또 그렇게 되면 뭔가 착오와 모순도 생기겠지만 일단은 그렇다고. 그렇게 다 내려놓게 되면 대체 누가 정치를 하겠냐고 이 말이야. 나라도 안 하겄다! 어떤 미친놈이 자전거 타고 출퇴근하겠어 국회로? 하지만 어딘가 있긴 있다고 하더군! 소비와 풍요와 행복과 내 인생의 예찬에 대해서는 둘째 가라면 서러워 할 정도로 진보적인 사람일수록 그러는 것 같아. 좌파니 매파니 라고. 물론 내가 정치를 잘 모르기 때문에 그냥 왕창 물음표만 쑤두룩하게 꺼내놓는 것일 수도 있어. 아마도 그런 것 같아. 그래도 말이야, 어디서 그 짝을 찾을 수 없을 만큼 영특하게, 내게 진보적인 특징으로써 매우 유리한 무언가는 반드시 최고로 진보적인 걸 채택하시는 분일수록 뭔가 앞뒤가 안 맞아. 그렇지만, 그래도 너 어디 가서 내가 이런 얘기 했다고 하지 마라. 절대 하지마.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 법이거든. 순진하게 내 모든 것을 타인에게 다 보여주면 안 된다고, 어른은. 어른은 어린이가 아니야. 어른들은 원래 밥 먹듯이 거짓말을 하는 존재니까. 정치 때문에 말이 길어졌는데 정치라 정치, 말은 뭐라 뭐라 어쩌고저쩌고 해도 내가 봤을 때 최소 80퍼센트는 다 보수야. 선거권자든 피선거권자든 정당이든 모두. 그러니까 위대한 정치가들이 자주 쓰는 전문용어, 특히 좌파니 뭐니 그런 이상한 뉘앙스의 언제 적 고귀한 단어에 현혹될 필요 없다고 봐. 어리숙하게 언제까지나 휘둘려서는 안된다고. 두 번 다시는. 그리고 자기가 보수라고 밥 먹듯이 우기는 사람일수록 의심해 봐야 해. 왜 우겨, 자기가 뭐 코메디언이야? 개그맨 시험 봤다 떨어졌어? 사람들 표정이 안 좋아? 하나 같이 마음에 안 들어? 지금의 스포트라이트로 만족 못해? 뭐하러 반복하는데? 이권이 있으니까 그런 거 아니야, 진짜 격조 높은 보수라면 그럴 필요가 없을 테고. 정치, 아아! 정치는 정녕 허풍 대회란 말인가, 정말로 그건 뻔뻔함의 우열을 가리기 위한 시장일까? 그렇다고 하기에 녀석은 너무 힘이 세군 그래. 어쩔 수 없이 희대의 폭군 네로 황제에 대한 철지난 꽁트가 생각난다구. 그렇다네 정치가. 그러나 다 제쳐두고, 저급한 어휘와 고상하지 못한 태도와 전문가 세상에서 활약하다 보니 수단이 목적으로 뒤바뀌고 경도되어버려서 그렇지, 대체로 태반의 정치인들이 열심히 일하고 노력한다는 건 절대, 결코 부정할 수 없어. 의욕이 지나치고 품위를 때때로 잃어서 그렇지 노력 대비 결과가 가치 폄하되기 쉽고 멀리까지 예측하기도 다수를 만족시키기도 정말 어려운 분야, 그게 바로 정치야. 다른 곳에서는 이미 옛날에 체계가 잡히고 시행착오를 거쳐서 앞선 문제를 고민하는데, 그런 안착이 미진한 제도에 대해서 성숙하지 못하기 때문인지 무엇 때문인지, 정말 많은 분들이 클라우드 나인에 입성한 다음에는 꼭 이상하게 약속이나 한 듯이 검찰로 향하는 수순을 보여서 문제이긴 하지만 말이야. 언제부터 검찰과 경찰을 그렇게 사랑했다고 말이야? 어? 그래도 의욕은 넘치고 행동도 광범위하고 연구도 쉬지 않고 하는 듯 하긴 해. 다만 직장인들이 흔히 아는 것처럼 상사의 일반적인 4가지 유형에서 제일 피하고 싶은 유형이 어떤 성격이라는 것처럼, 현대 정치가 부딪힐 수 밖에 없는 문제가 분명해지는 건 오히려 그것 역시 개선될 수 있다는 희망의 서광은 보이는 점이니까 반겨야 하겠지. 가령 너무 많은 것을 하려고 한다거나, 가령 너무 잘 할려고 한다거나, 가령 너무 오래 할려고 한다거나, 가령 정치 분위기 자체가 옆에서 짖고 떠드는 일색이니까 자기 포지셔닝이 흔들리고 장기적 관점에 대한 존경심은 항상 뒷전으로 밀리는 것일 수도 있어. 계속 바껴 계속 바뀐다고, 잘 바꾼 것도 잘못 바꾼 것도 또 바꿔. 그렇지만 말이야, 눈썹 좀 타고 귀에서 커피포트의 수증기가 나오고 눈에서 레이저가 나가면서 그렇게, 바로 그렇게 이 세상에서는 번갯불에 콩을 구워먹듯이 기존의 뭔가를 학습하고 적용하고 개량하는 것이 가능하기도 하지. 희박하게 그런 일들이 있긴 있다고. 소란스럽긴 하겠지만 말이야. 그게 다 누구 때문이야? 선구자 덕분이잖아! 근대화가 늦은 지역에서 민주주의를 위해 노력한 수많은 희생과 시간들 덕분이잖아. 왜 그 공덕을 언론의 자유와 그 어떤 긍정적인 의식의 도입을 외친 장구한 세월의 물결을 핍박한 독선가가 독식해야 하는 건데? 그건, 정말, 아니지. 물론 그 시간 동안 발전되고 현상 유지되었던 것은 그건 다행스러운 일일 꺼야. 그래, 그건 누가 뭐래도 공로야. 인정한다고. 누구나 무엇이나 일장일단이란 게 있으니까. 비교와 객관화와 통계를 내면 다 나온다고. 인고를 무릅쓰고 투쟁한 주장과 태동한 궁금증이 인습이 되기까지, 그 인습이 다시 책으로 들어가기까지, 마음에 들든 아니든 현재의 풍습과 함께 살아온 대부분의 사람들이 속한 사회가 만들어낸, 선지자. 당장은 그 사회 전체에서 반감이 크겠지만 진공청소기도 커피포트도 환상머신도 다 선구자가 만들었어. 그러나 확실한 창시나 증명이 아닌, 동물농장을 개선하자 라고 주장한 이름없는 개미떼의 공로는 정작 그 개선을 묵살하고 억압한 소수에 돌아가는 경우가 드물지 않아. 언제나 그리고 어디서나. 개미떼는? 역사속으로! 알려진 몇몇 사례만 남고서. 비유가 좀 그렇지만 희대의 피라미드 사기 사건의 악당은 후대까지 또는 만파에 그 1인의 오명이 전해지지만 나머지 의로운 형사와 피해자와 그분들은? 그냥 묻히는 거야. 소수의 업적과 모두 함께 이룬 과업의 그늘만 강조하자는게 아니야. 에디슨? 알지. 테슬라? 특히 난 인상 깊어. 뉴튼이나 라이트 형제나 막 많잖아. 그런데 맥스웰 방정식을 아느냐고 물어 봐도 아는 사람을 만나기가 힘드네? 아 정말 그래. 99퍼센트의 보수가 아닌 1퍼센트의 진보란 게 그렇지. 글쎄... 아직은... 갸우뚱하게 돼. 미래생활사전이 미래 얘기지 그게 어디 지금 얘기인가? 하지만 미래 기준으로 보면 미래가 옳고, 과거는 당시에 옳았지. 멀리서 보면 <옳다> 라는 것은 과거형이라고. 그처럼 더 나은 미래로 가는 길은 그만큼 더디고 힘들어. 개선과 개혁과 진보, 그 가운데서 가능한 것은 대체로 개선이 전부야. 개혁과 진보는 거의 없어. 개개인의 의식이 따라주지 않는 이상은. 당장 목표랄지 임금 기준 같은 숫자만 쭉쭉 올리면 세상에 빈곤이 존재할 턱이 있나. 현실적인 의식은 따라가지 못하는데 법을 지키는 소크라테스를 대체 어디서 찾고 라틴어를 조금이라도 아는 어른을 어디서 만나겠니. 난 몰라도 넌 알아야 한다 라고 자식 교육에 힘을 쏟는다면 모를까. 바꾸어 말하면 개선이 되거나 지구본이 거꾸로 돌거나 그 사이 어딘가에 괴짜들이 있다고. 지금은 (비록) 괴짜 나중엔 선구자. 어? 그렇잖아. 지금이니까 인권이 있고 지금이니까 노예 제도를 돈의 논리가 대신했지 않았냐는 사적 의견이 가능하지, 그 당시에 그건 불가능이고 초현실이자 그런 사견을 발설하는 자체가 괴로운 인생이 되는 지름길이었겠지. 당장 기억만 돌이켜 봐도 많이들 그럴 꺼야. 대체 왜 나는 그렇게 많이 (얻어)맞고 커야 했지 라고. 그렇다고. 당장 초등학교 5학년 때 랄라랄라 룰루랄라 하교 길에 봤던 교문 밖 벽면에 붙여진 대자보! 와, 그, 오오, 그, 말이 안나오지. 그런 일이 한둘이 아니고 반세기였다고 반세기. 그렇다고. 당장 한 어른의 과거와 현재만 비교해 봐도 그래. 그 차이가 크면 그때 청춘은 말도 안되는 세상이었지. 장점과 좋은 잇점도 많았을 테지만 말이야. 보이저 2호, 아폴로 11호, 신대륙 발견, 원소기호와 원주율 그런 게 다 뭐니? 발명, 발견, 개발, 법칙, 창의력, 창조성, 아디이어, 무슨 주의, 무슨 학파, 머머 증후군, 각종 이름 그런 거. 그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건 두 가지야. 1.<무엇을? 새로움을!> 2.<방향은? 밖으로!> 그거야. 이거라고. 명성이란 게 그래. 첫째, 후대로 전해지는가. 둘째, 국제적인가. 셋째, 만장일치로 긍정적인가 아니면 뭐 그런가. 다시 말해서 99퍼센트의 보수는 선구자가 아니야. 최소한 1퍼센트의 진보와 괴짜와 돌아이와 선구자와 사이코-뭐나 신인류의 천재성이 발휘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주거나, 소수의 아픔을 알고 기억하고, 멀리 보면서 차근차근 개선시키려면 과연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를 고민해야 한다고. 단편적으로 인생을 살고, 단편적으로 세상을 보며, 단편적으로 정치를 알고 말하고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그것은 피선거권자보다는 오히려 선거권자의 중차대한 책무야. 왜냐하면 천사가 있으면 악마가, 지겹고 재미없는 천국의 반대는 즐겁고 재밌는 지옥이, 영화에서 보여지는 미래에 악당이 사라지면 그 악당을 대체하는 최소한 권태라도 탄생하는 게 이 세상의 이치이기 때문이야.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 같은 작품들에도 나오잖아. 세뇌되는지도 모르는 개와 소와 닭은 일반적으로 2가지 밖에 몰라. 신성한 1표의 행사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 지식과 지성을 습득할 수 있는 매체에 한계가 있으니까. 대체로 그래. 그러나 그건 보통 라디오, TV의 최전성기 적 얘기였지. 지금은 인터넷도 있고 이제는 지구촌이니까 사정이 다르지. 단위가 달라졌다고. 세상이 변했어. 그것도 많이. 앞으로는 더더욱. 때문에 이제는 개와 소와 닭도 게임의 룰을 만들고, 판을 흔들고, 짜고, 기준을 정하고, 시장이 어떻게 변화하고, 그런 흐름에 찬찬히 관여할 수 있게 됐어. 그걸 모두 포기하겠다면 다시 흑백사진과 흑백 TV 시절로 돌아가는 거고. 그러고서 말은 막 이러쿵저러쿵. 왜 그래프란 단어가 중요한데? 단일 수치의 시간은 모두에게, 어디나 공통되지만 하나의 지구에서 수많은 시간대를 지금, 현재 따로 살고 있기 때문이지. 타임머신은 바로 지구야. 지구가 타임머신이라고. 이게 많은 부분 발명가와 선험자와 먼저 시험해 본 표준들 또 실패와 계기 그 때문 아니겠어? 그것의 그늘과 향후 전망을 비롯한 얘기는 교수님께 양보하자구.
뭐? 뭐라고? ...... 아 증말...... 어떡하니, 교수님 아직 오시지 않았대. 내려 놓은 마이크 다시 잡아야겠군. 뭐 끝이야 있겠지. 아니면 내가 그냥 교수 할께. 왜? 내가 교수 못할 꺼 같아? 해, 한다고. 할 수는 있는데, 그런데 나한테 좀 안 맞을 수 있어. 내가 그래서 교수가 안 됐고, 그래서 교수직을 마다했고, 그래서 교수를 하지 않는 거야. 그거야. 그거라고. 내가 정말 마음만 먹었으면 웬만한 바람둥이는 다 저리 가라 였을 꺼야. 내가 정말 돈 욕심이 있었다면 지금 아마 포춘지든 어디든 세계 거부 순위에 이름을 사뿐히 올렸을 텐데. 그래도 뭐 아쉽지는 않아. 그때 나처럼 파란만장하게 놀아본 사람은 아마 없었을 테니까. 그럼. 두말하면 잔소리지. 아 뭔 얘기 하던 중이었지? 아, 보수 그래 보수. 보수는 있잖아. 그 보수만 보수가 아니야. 보통 우리들 현재 사는 일상이 보수고, 그것의 도구도 보수고, 환경도 보수고, 그 모두를 아우르는 생각과 사고와 사유와 사상도 다 보수야. 옛날 당연하게 여겼던 개념 있잖아. 여자. 노예. 동성애. 피어. 신분. 왕권. 식민지 적 미국. 그때와 지금은 거의 하늘과 땅 차이잖아? 그 변화가 어떻게 가능했는가, 그것은 진보 때문이야. 전적으로 그렇다는 말이 아니고 중차대한 기여를 했다고. 1퍼센트의 진보. 1퍼센트의 1퍼센트에 의해서 지금 우리가 여자, 동성애, 인권, 평등, 자유 그런 개념들을 지금처럼 인식하게 된 거지. 나머지 99퍼센트는 다 보수야. 좌파? 거의 없다고 보면 돼. 너는 좌파 내가 진정한 보수? 아아 커피포트여! 옛날 당연하게 여겼던 개념에 대해서 그 당시 작게 이의를 제기하거나 크게 반대했거나 그게 진보야. 선거 때만 되면 굽실굽실, 선거 끝나면 으쌰으쌰. 인간의 정치가 원래 그래. 선거철이라서 보수네 진보네 같은 민감하고 자극적이고 저렴하지 않기를 바라는 언성 때문에 시끄러워서 고생이 많지? 알아. 안다구. 내가 진짜 보수다? 99퍼센트의 보수에게 그게 대체 뭔 소린지...! 진보? 진보는 말이야 그냥 말로만 진보 진보, 그게 진보가 아니야. 잘 알지도 못하면서 어쩌고저쩌고. 옛날 노예제도에 대해서 몰매 맞을 게 뻔한데 목숨이 위태로울 게 뻔한데 그런데도 나서서 반대했던 사람이 진보야. 옛날에 '여자가 어디서'에 항거했던 사람이 진보야. 그 옛날 철창에 갖히고 추방당했던 오스카 와일드를 비롯해서 뒤에 숨지 않고 앞에 나섰던 동성애자가 진보야. 목숨 걸고 독립운동하는 동족을 압제했고 시대가 바껴 민주화 운동을 무참히 탄압하고 영구히 권좌에 남으려 했던 비운의 역사적 인물이 아니라. 진보는 옛날에 지구는 둥글다 라고 했다가 당시 권한이 막대하던 교황청에 의해 끝끝내 가택 감금 당했던 어느 과학자가 진보야. 그는 독실한 신자였으니 개인적으로 진보는 아닐 수도 있겠지만. 진보는, 옛날 옛날 피라미드의 최상층으로부터 모진 탄압을 받다가 참다 참다 못 참고 피라미드를 역피라미드로 뒤집는 것이 진보야. 진보는 혁신적인 제품보다는 몇 차 산업혁명 그런 게 진보야. 화형대와 단두대가 그 뜻대로 쓰이다가 멋 훗날 베를리오즈의 환상 교향곡 제4악장 단두대로의 행진을 듣는 것은 좀 다른 얘기고. 그렇다고 보수가 나쁘다는 뜻은 아니지. 오히려 선의에 가깝겠지. 그런데 왜 나는, 너는, 우리는 보수라는 단어에 얼핏 신경이 살짝 곤두서는 것일까? 나는 아니다? 네, 그분은 제외. 왜 그런가를 모르겠다면 동네에 돌아다니는 똥개처럼 한 구멍만 파면 돼. 막 파. 계속 파. 계속. 오른발 왼발 오른발 왼발, 왼손 오른손 왼손 오른손, 영차 영차 계속 파다 보면 두더쥐를 만나게 돼 있어. 왜 그런가를 모르겠다면 보수, 보수, 정치, 정치 노래를 불러봐. 그러면 알게 된다고. 다시 가자고. 거의 다 왔어. 아아, 보인다. 학점 후하게 줄 테니 진득하게 참으시게들. 보수. 보수도 역시나 사랑처럼 종류가 많다고. 뭐라 언급하기가 까다롭지만 굳이 말하자면 정치권 용어로 범보수 연합이니 보수 결집이니 샤이 보수니 그런 용어들 말이야. 그 자체로는 나쁘지도 파렴치하지도 않아. 그래야 한다고. 그건 권리고 자유야. 그런데, 그런데 도대체 왜 까다롭고 거북하고 꺼림직할까? 왜냐하면 보수의 보수의 보수가 있기 때문이야. 촌닭에서도 촌닭왕이 있고, 남자도 남자 중의 남자가 있듯이. 앞서 말한 학생에게 무엇을 세뇌시키고, 라는 건 정말 그렇다는 게 아니라 객관성이 약해진다는 뜻이야. 젊음이여 이상의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가 보자, 그처럼 학생들이 무엇을 배우게 할 것인가. 그것의 대상은 광고를 제재하고 규율을 다듬고 표준을 설정하는 문제와는 달라. 수학과도 다르지. 쉬운 예로 역사 같은 경우 꽃다운 학생들에게 안쪽의 역사에 대해서 무엇을 많이 가르쳐야 할까? 꽃다운 것과 불미스러운 것 가운데 무엇을? 아마도 균등히 건조하게 나무와 숲을 고루 보도록 균형잡힌 가치관과 세계관 그것을 가르쳐야 한다가 정답일 테지. 그러나 그게 어디 말처럼 쉽나? 왜 정치가 이처럼 귀에 피가 나도록 논의되냐면 그 뭔가는 자꾸 내게 유리한 쪽으로 편집되기 때문이야. 꽃다운 청소년 새파란 학생들에게 안쪽의 역사에 대해서 시간이 흐를수록 커피포트보다 진공청소기를 커다랗게 부풀려서 가르치고 싶은 게 인간의 본성이야. 물론 그 반대 역시 그렇겠지. 꽃다운 것과 불미스러운 것 가운데 어떻게 전자만 역사일까? 역사를 그대의 인생이라고 생각해 보자구. 혼자 조용히 살 때는 꽃다운 것이 주를 이룰 꺼야. 기쁘고, 즐겁고, 흥미롭고, 행복하고, 사랑스럽고, 재밌고, 어? 그렇다고! 그런데 이 세상을 알게 되고, 사랑을 알고, 인생을 알고, 나를 알고, 당신을 만나서 연애를 하고 청혼을 해서 축가를 부르고 첫날밤을 보낸 후 그대와 나를 닮은 아이를 낳아 키우며, 나를 나에 대해서 인간에 대해서 인류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본다면, 그러면 내가 살아온 나의 인생에 대하여 꽃다운 것과 불미스러운 것, 심심함이라는 중도가 훨씬 우세하지만, 그 가운데 전자보다 후자에 훨씬 많은 뭐랄까, 당신이 만일 예술가라면 후자에 그야말로 예술로 승화될 온갖 진귀한 보물들이 다 들어있다구. 이상하게도. 완전 그렇다는 말은 아닌데 그걸로서 예술의 깊이와 향기가 갈리게 된다고나 할까, 아무튼 그래. 살짝 옆길로 빠질 뻔 했는데 돌아와서, 자, 내 인생이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보니 어머나 글쎄 그랬어. 다시 인생을 역사로 바꾸자고. 역사를 열었어. 역사를 알았어. 그랬더니 글쎄... 오! 오오! 입이 다물어지지를 않네 글쎄! 그런데 대하드라마는 재밌어지네 그려. 알면 알수록 흥미진진하구먼 그래. 정말 많이 알고 나니 오히려 역사가 좋아지네. 어때, 전공을 바꿔? 그렇게 될 꺼야. 그러면, 그러면 그 다음은 뭘까? 뭐긴 뭐겠니 인간의 선함과 영특함과 이타적인 심성을 권자에서 끌어내리고 인간의 본성이 슬그머니 스~윽 개입하고 대두된다고. 그거야, (딱)! (검지 쉭-쉭-쉭)! ...(침묵)... 보수. 보수는 나쁘지 않아. 보수는 괜찮아. 보수는 좋아. 보수는 사랑스러워. 보수는 아름다워. 그리고 ...(침묵)... 보수는 절대 다수야, 절대 다수라고. 그런데 그 보수에서도 보수의 보수의 보수가 있다는 걸 알아야 해. 광고 같은 경우는 규제를 한다고. 전문용어 뭐 있는데 브랜드와 소비 욕구가 잔상에 남도록 막 최면을 거는 진짜 마술 같은 그런 게 다 가능하니까 실정법으로 기준을 제시하고, 사회 규범으로 선도하고, 불문률로써 좋아지도록 유도하지. 광고를 만드는 사람과 보는 사람과 관심 없는 사람 모두 유익하도록. 그런데 역사에 '보수의 보수의 보수'를 더하면 뭐다? 꽃다운 것과 불미스러운 것 가운데 전자는 부풀리고 후자는 스르륵 눈독듯이 없어지지는 않겠지만 아무래도 작아진다고. 사랑법에 통달한 호색꾼이 숙녀의 마음을 녹이는 거야 뭐 당사자들 알아서 할 일이야. 하지만 꽃다운 학생, 새파란 청소년, 꿈을 먹고 자라는 젊음에게 공부하라고 독려하고 강요하고 권유하는 그 뭔가 애매함은 실질적으로 감리가 꽤 어렵다는 말씀이야. 세상이 얼마나 바쁘게 돌아가는지, 세상이 얼마나 촘촘하게 얽혀있는지, 세상이 이 얼마나 훌륭하게 발전하였는지, 하지만 인간의 본성은 타임머신이라네. 타임머신은 바로 인간의 본성이라네. 내 안에 잠재되어 있는 어두운 본능과 일평생 싸워야 한다는 것, 그것 역시 인생이라고. 보수! OK! 내가 진짜 보수야, 이제 그만 믿어줘. 내가 진짜 보수니까. 보수! 일반적인 의미의 보수 즉 북극곰을 살립시다, 캥거루에게 먹이를 주지 마세요, 관광객을 너무 빤히 쳐다보지 맙시다, 타인의 의견을 존중합시다, 사회적 약자를 차별하지 말아야 한다, 다양성을 존중합시다, 질서를 지킵시다 등등, 미래의 기준으로 본다면 이건 보수겠지만 우리가 아는 보수는 어쩌면 보수가 아닐지도 몰라. 그러면 이제 나와야 할 질문은 단 하나만 남겠지. 딱 하나가. 그것은 무엇이냐, 바로 이거야. 그런데... 음... 교수님의 의견은 잘 알겠다 그래 당신 똑똑하다 글은 몰라도 말은 잘한다 하지만, 하지만 옛날이야 현재와 쉽게 비교되기 때문에 옛날의 진보는 그랬다 치고, 그런 말은 나라도 하겠다? 저는 그런 위인 아니랍니다. 자 그렇다면 지금의 진보는 대체 뭐냐? 앗 죄송해요. 말이 짧았네요. 궁금하다 보니 살짝 흥분했어요. 정말 알고 싶어서 그런 것이니 이해해 주세요. 대부분 가쉽들도 그렇죠. 큰 방향과 원대한 뜻은 같지만 방법이랄지 성향이나 뭔가가 차이가 나니까 그저 지나가다 몇 마디 했는데, 그런데 그것은 말실수이자 말꼬리 잡고 늘어지기죠. 아무리 인간이 지성의 신이 되고 어쩌고 하더라도 타인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 표현의 자유는 침해받아서는 안된다, 그런 말들은 너무 어려운 것 같아요. 완전 고무줄 같아요.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모르겠어요. 그게 다 교수님 때문이에요. 교수님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싶어도 교수님은, 교수님은 너무 지성적인 친구들만 편애하시는 것 같아서 무척 서운하답니다. 혹시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친구를? 어찌되었든요. 그럼요. 그건 그렇고, 저는 정말 궁금해서 여쭤보는 거라구요. 제 마음, 아시죠? 허허허, 알겠네. 잘 알겠네. 아주 잘 알겠네. 자네 이름이 무엇인가 내 이미 알고 있네만 한번 더 이렇게 여기 기록하고 싶다네. 아, 누구였구나. 쓱쓱쓱. (못말리는 스잔나. 요주의 인물?) 그래. 곧 있으면 수업 종료를 알리는 선율이 진짜, 이번에는 진짜 들릴 테니 조금만 참으시게. 마지막 하나의 질문은 이거였지. 지금 세상에서 정의하는 진보는 대체 뭐냐? 음... 뭘까? 나도 궁금하다야. A 너는 아니, 지금의 진보를? 내 친구 미래에게 물어볼까? 그런데 미래는 사랑의 도피 행각을 떠났는데. 더 나은 미래와. 오오, 저 안색 좀 봐. 좀 웃어 주고 그래라 응? 넌 애가 어떻게 된 게 그렇게 꽉 막혀가지고 빡빡하게 구니, 어? 이제 그만 뜸 들이고 정답을 공개하자구. 그것은, 그것은 음... 그것은 말이야 그것은 아마 미래생활사전 (페이스 팝콘, 애덤 한프트)에 나오는 내용들 바로 그것이 진보일 꺼야. 그럴 수도 있어. 정말로 그럴지도 모른다니까. 왜? 안 믿겨? 설득력이 부족해? 얘가 얘가, 하긴 현실성이란 게 있으니까. 그럼 정말 그 옛날 사람들은 얼마나 어렵게들 산 거야? 아아, 도저히 상상이 안된다. 아, 맞다! 아까 타임머신 나왔어. 어떻게... 대체 왜 정치 얘기를 하다가 주제가 타임머신으로 바꼈지? 지구는 정말 타임머신일까? 타임머신은 지구냐고. 그럴지도. 사람이 타임머신이고, 타임머신은 사람인가 봐. 어디? 몇 년! 누구? (의식은) 몇 년식! 누구와 어울리면 어떻게, 사교 모임에 가면 또 몇 년 방식으로. 사람이야 착하고 괜찮지만 말이야. 드라마에 나오는 배역의 악행처럼 정말 그렇게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니, 다 과장이지. 또는 술수거나. 어쩌면 연기고. 영화에서 토하는 장면만 봐도 그래, 떠오르지? 약을 했을 때 상대방 얼굴이... 알겠지? 뻥이라고. 과장은 그냥 기본 같은 거라고. 그래요. 바로, 제가, 악역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몇 년식 옷을 입고 있기 때문이랍니다. 다큐멘터리만 봐도 나오잖니. 믿기지 않을 정도로 원시적으로 사는 종족, 좀 더 존중하는 표현을 써야 하는데 어쨌든. 그거 찍은 제작팀이 대체 그걸 어떻게 찍었겠니? 타임머신을 타고 가서 찍은 거겠지. 장비? 아마존에서 사자나!
그런데 말이야. 그러나, 그렇기는 해도, 아무리 생각해도 대체 왜 그럴 수 밖에 없는지, 왜 꼭 그래야만 하는지 모르겠지? 왜 그렇게나 인간은 정말 이상하고 또 다채로운지 정말 모르겠지?」
「응! 오오, 진짜 그래.」
「그 뿐만이 아니라 아름다운 동경심과 정신이 혼미할 정도의 선망과 가슴이 부풀어오르는 대망, 달콤한 로맨스와 고급스러운 농담, 막연한 열정, 1퍼센트의 퇴폐적 심상, 거리에서 우연히 반가운 누군가를 만나고, 너의 인생은 이상주의에 가까워지고, 이 세상은 아름답고 탐스러운 열매는 너무나도 많고, 예쁜 꽃은 봐도 봐도 끝이 없는 것 같지? 이런 성격의 말을 듣거나 글을 읽으면 기분이 나쁘거나 썩 언짢지는 않지?」
「어. 정말로 그렇지. 그런데 그런 거 다 어떻게 알았어?」
「어떻게 알았냐고? 어떻게 알기는! 너 뿐만이 아니라 웬만한 사람들 다 그래. 어지간한 사람들 다 그런다고. 아마도 거의 다 그럴 걸! 독심술? 그런 거 없어. 하지만 사랑은, 있어. 그래서 사랑을 하는 부류와 받는 부류는 조금 나뉘지. 사랑이라... 사랑 이야기 좀 더 해 볼까요? 네, 선생님? OK! 뭐 오늘이 첫 수업도 첫날밤도 아니고, 사랑 이야기 한두 번 하는 것도 아니니까 말이야. 자, 한번 가보자고. 그럽시다. 사랑은, 사랑스러워 탐스럽다 아찔하네 라며 칭송하는 사람과 그런 축복의 기원과 경쾌한 찬양을 받는 사람으로 나뉜다네. 동등하게 서로 사랑한다는 것과는 다른 얘기지. 바늘과 실은 한짝이고, 사랑의 기쁨은 사랑의 슬픔 다음에 올 수도 있어요. '내가 줄 수 있는 건 오직 사랑뿐'이 있다면 '내가 받고 싶은 건 아마도 풍요로운 낭만'이 어찌 없을 수 있겠나. 시간이 멈춘 듯한 착각을 불러다 주는 사랑. 혹여 꿈이 아닌가 기지의 현실을 미지의 환상으로 오독하게 만드시는 사랑. 설레게도 가슴이 뭉클하게도 코 끝이 찡하게도 만드는, 줬다 뺐고 왔다가 사라지는, 멀어져 가다 다시 다정하게 되돌아오는 사랑. 기대에서 걸어오고, 예감이 손짓하며, 무언의 그리움이 동경하는 사랑. 그때는 왜 몰랐을까? 사랑이 뭐길래! 착한 사랑과 풋사랑, 끝없는 사랑과 몰래한 사랑. 갈팡질팡 할까 말까 고민하는 사랑 그분 옆에는 사랑함과 사랑하기에 떠남이 있다네. 열애도 사랑이고 짝사랑도 사랑이라는 점, 때문에 사랑의 인기는 도무지 식을 줄을 모른다네. 모체는 같고 종류는 다르지만 모두 사랑이라 불러야겠지. 사랑은 원래 그런 것이니까. 나는 그대를 사랑하고 그대는 나를 좋아하고, 그 균등함을 쉽게 규정할 수도 그래서도 안되는 사랑. 말은 글은 노래는 이 세상을 다 줘도 바꿀 수 없는 것이 있다면 그건 어쩌면 사랑이 아닐까 라고 한다네. 하고 싶은 말 그러나 하기 힘든 말, 그것은 사랑. 무엇보다 사랑은 신비일 꺼야. 뭐라고, 아니다! 난 큐피트의 화살을 뽐내는 뚜쟁이...라도 되고 싶다? 왜 안되겠나. 그분의 인생인데. 여심을 공략하는 도시의 고독한 사냥꾼도 은퇴란 걸 하고 여행도 가야하니까. 사람도 지구도 타임머신인데 거기다 사랑까지? 아아 뒷목이 당기는구나. 여러분! 사랑이 아름답던 꿈이 인생이건 우주의 시간은 간다구요. 통장 잔고가 없어도 은행의 시계는 돈답니다. 내 사랑은 어디 있고, 행복은 대관절 언제쯤에나 정복되며, 희망은 과연 무엇일까? 예쁜 사랑 부디 아름다운 사랑하세요, 그런데 어떻게? 정녕 그걸 알고 싶은데, 그런데 (딱!) 그건 추가 비용이 발생하죠, 상위 과정에 등록해야 한다구요. 친구여 지금 힘드시나요? 언젠가 해 뜰 날이 올 것이에요. 아가씨여 오늘 기쁜가요? 내일은, 더~ 즐거울, 것이다. 그러므로... 뭔지 몰라도 어떤 발동이 슬슬 걸릴라고 하네만 둘 중 한 분의 표정이 영 뭐한 듯 하니 여기까지만 합시다. 또 몰라 모른다구. 누가 우리의 담소를 엿들을지 말이야. 사람일은 모르는 법이니까. 음... 일단은 여기까지만 하자고. 오늘 하루에 너무 많이 진도를 빼면 안되니까. 손잡고 키스하고 밤 하늘의 별을 함께 보다가 화면에서 밤 하늘만 남긴 채 연인은 쏙 빠질 수는 있지만, 이혼하고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카사노바가 어느 날 성직자의 길로 들어서거나 막 그러지는 않아. 다 순서가 있고 절차와 격식이란 게 있는 법이지. 아 이거 이거 아무래도 내가 오늘 말을 너무 많이 했는데. 어디 봐봐. 돌려봐. 보자구. 네 귀에서 피가 나오지 않나 보게. 안 나오네. 다행이다. 행운이지. 영광...까지는 아니고. 아 피곤해. 정말 피곤한데. 영 피곤해. 기운을 너무 많이 뺐나 봐.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구.」
A는 바텐더 에릭의 현란한 화술 때문에 정신이 몽롱해져서 그가 왜 여기에 왔는지, 자기는 왜 홍학에 대한 환영을 보았는지, 왜 이 낯선 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었는지를 모두 잊고야 말았다. 그는 말렸고, 감겼고, 귀는 곧 날개가 되어 미지의 4차원 세계로 날아가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그날 멍한 채 별장으로 돌아와서 씻고 어쩌고 TV를 보다가 살며시 꿈나라로 떠나게 되었다.
9
A는 다음 날 무인 카페로 출근했다. 그런데 갑자기 친구 D에게 연락이 왔다. A가 사는 새로운 동네에 놀러오겠다는 것이다. A는 반겨했고, D는 그곳으로 출발했다.
D는 새 차를 뽑았다. 메르세데즈 AMG GT R. 빛깔이 오! 아마 한 달 아니면 두 달, 최소 세 달 안에 싫증낼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애마와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었다. 무엇보다 멀찍이 떨어져서 차의 방향을 휙휙 돌리는 재미가 특별한 듯 했다.
D가 도착했다. 그들은 드라이브를 떠났다. 가까운 동물원으로. 동물원에서 그들은 맹수를 봤고, 얼룩말을 봤으며, 홍학도 봤다. 기분 전환이 되었다. 홍학, 별 거 없었다. A는 이제 다시는 홍학이 어쩌네 저쩌네 칭얼대지 않을 것이다. 홍학 얘기는 쏙 들어가버렸다. 홍학은 개와 양과 늑대 같은 개념일 뿐이다. 홍학은 그가 상상했던 보라빛 소나 검은 백조나 불사조가 아니었던 것이다. D는 A에게 신나는 연애 경험에 대해 말해주었고, A는 새로운 시골 생활의 신선함에 대해 얘기해주었다. D의 돈 주앙식 쇼핑과 사랑과 일상의 몽환적인 드라마는 전혀 새로울 게 없었다. 그리고 A의 얘기를 간출이자면 이랬다. 그는 홍학에 대한 탐욕을 당분간 줄였다. 오늘 그 끝을 보긴 했지만. 그 내리막길 대신 그는 앵무새를 하루 10분씩 알아가기로 했다. 그리고 그는 노리개젖꼬지를 구입했고, 그것을 일종의 그분으로 모셨다. 어쩌다 물어봤고 신기한 듯 쳐다봤으며, 골 세러모니를 연습하기도 했다. 또 직접 가서 볼 만한 음악 축제 하나를 정해서 가서 볼 계획을 세웠다. 계획만. 더불어 A는 D에게 바텐더 겸 독심술사 에릭에 대해서, 무인 카페 사장 겸 최면술사 홍학씨와 선술집 주인 겸 마술사 테디에 대해 얘기해 주었다. 그것도 침을 튀기며 그들의 신통방통함과 경탄할 만한 재주와 기꺼이 부러워할 수 밖에 없는 탁월한 신기에 매료되었다는 듯이.
「오? 그래? 나 그 친구 아는데. 사실 있잖아, 에릭은 사립 초등학교 동창이었어. 그땐 정말 코 흘리고, 여기 저기 막 따라다니고, 아휴 정말 보기 흉했는데. 결국 시골에서 순진한 아저씨들한테 무용담을 퍼트리는 낙을 일삼고 있네. 어떻게 그런 일이 다 있지. 그렇게 낙향해서 전설적인 인생을 사시겠다? 어머나! 정말? 참 생뚱맞네. 어떻게 걔의 소식을 너한테 다 듣게 되지? 와, 놀랍다. 놀라워. 그리고 누구 테디? 그 친구의 남다른 자질이 대단한가 본데 아마 도시에서 둘도 없는 사기꾼으로 이름 좀 날렸을 껄? 하도 악명으로 맹위를 떨치니 얼굴 팔렸을 테고, 얼굴이 팔렸으면 터전을 옮기지 않으면 안되고, 그래서 이곳에 정착한 것일 수도 있어. 어쩔 수 없이. 에 또 그리고, 무인 카페 사장은 잘 모르겠고... 음... 내가 직접 만나서 자웅을 겨뤄 볼까? 누가 이기나 보게. 과연 누구의 최면술이 더 뛰어나고, 누구의 독심술이 훨씬 대단한지, 또 누가 진짜 요술을 부릴 수 있는지 궁금하지 않니? 늬가 봐도 내 요술 실력이 더 출중할 것 같지 않냐? 어때, 한번 견주어보는 건? 난 그러고 싶은데! 나 D야. D라구!」
「오... 오오... 정말? 그거... 정말이야?」
「정말이냐고? 정말이겠냐? 뻥이야! 그냥 한번 해본 얘긴데, 심각하긴. 웃기지? 웃기지 않냐? 그래 재미없다. 별로네. 시골은 정말 고적하고 심심하구나.」
......
「심심해? 심심하다, 심심해. 우리, 투우장에나 갈까? 어때?」
「뭐? 투우장? 여기에 그런 데도 있어?」
A와 D는 투우장으로 갔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폐쇄된 경마장이었다. 과거 한때 경기가 좋았을 때 반짝했던 곳으로 그때만 해도 준-낙원쯤 됐을 법한 곳으로 보였다. 실재 그 정도는 아니었을 테지만 시간이 지나면 본질은 과장되고, 꿈은 잊혀지거나 밀려나며, 회상이 과잉되면 추억은 아름다워지는 법이다. 이 문닫은 경마장 역시 멋진 시절, 적어도 마권과 관중과 미친 듯이 질주하는 무슨-마 무슨-마들이 있었을 것이다. 당시 그들은 라이벌로써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을 테고. '아내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와 '아내는 아무것도 모른다'라는 화려한 시절의 잘나갔던 경주마처럼.
그들은 개구멍으로 들어가서 관중석에 앉았다.
「A. E에게 들었어. 홍학에 빠졌다며? 그런데 왜 하필 홍학이니?」
「이젠 다시 시큰둥해졌어. 아, 왜냐고? 글쎄... 내가 왜 그랬지? 그건 아마도 다른 조류는 글로 쓰고, 직접 보고, TV로도 만났는데 홍학은 이상하게 낯설어서 그랬던 거 같아. 내가 만일 촌닭이라면 다른 사람들은 모두 홍학이 아닐까 그런 환각에 잠시 시달렸다고 하면 믿겠니? 믿지 않아도 괜찮아. 상관없어. 나도 있잖아, 차라리 그게 거짓말이면 좋겠다.
세상에는 말이야 청자가 있으면 화자가 있고, 관찰자가 있으면 행동가가, 사색가가 있으면 모험가, 그리고 사업가 옆에는 예술가 친구가 있기 마련이지. 네 사업은 잘 되고 있지? 비서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봐. 나 같은 사람이 바로 타고난 비서일 수도 있으니까. 있잖아, 나 같은 삼류 글쟁이들은 말이야, 거기서 또 세 가지로 나뉘지. 첫째 귀를 막거나, 둘째 귀에서 피가 나거나, 셋째 (딱) 귀로 상상의 나라와 동화의 하늘을 나는 친구로. 음 이렇게 말이야. 펄럭펄럭, 태양을 바라보며. 이때 선그라스는 작품에서는 벗고 사석에서는 끼는 게 좋겠지? 나는 가끔 여기 들리곤 해. 혼자서. 나름 운치 있어. 멋져. 괜찮아. 정말 괜찮은 곳이야. 아무도 찾지 않는 문 닫은 경마장에 들러서 혼자 노래도 부르고,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좀 걷다가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해. 그러다가 하나 생각한 게 있어. 이제 그만 사이렌이 되어야겠다고 말이야. 사이렌! 바다의 요정. 여자의 얼굴과 새 모양을 한 괴물. 귀를 막지 않으면 어쩔 수 없이 돌아보게 된다는. 그 다음은 쉿! 왜, 이 경마장의 이름이 혹시, 그 생각하니? 걱정마. 난 에이리언은 아니니까. 어쨌든 입이 쩍 벌어질 만한 재미난 일이 없어서 미안하네. 유감스러워. 유감스럽다는 중의적인 표현은 말끝마다 우리는 우리는, 어? 어? 어? 하는 그 친구들이 쓰기에도, 그 어디에서 사용하기에도 무척 뭔가 어중간하고 곤혹스런 표현인데 어딘가 모르게 지금 그게 딱 생각나는 건 왜일까? 드라마 대사에서조차 옛날에 유행을 탔던 거 같아. 아무튼 난 몰라. 난 모르는 게 너무 많아. 아 이거 옛 친구 옆에 앉혀 놓고 송구스럽다면서 벌세우는 거 같구먼 그래. 좀 시간이 넉넉하면 어떻게 기발한 방법을 만들어보겠지만 내가 급하게 술수를 부릴 수 있는 주술사도 아니고 난감하군 그래. 그래도 속속들이 알고 나면 여기도 꽤 살만해. 매력있다고. 또 적당한 시간이 되면 나도 다시 도시로 올라갈 수도 있고 말야.」
「흐흠. 진짜 궁금해서 물어본 건 아닌데, 넌 그걸 그렇게 길게 응답하면 어떡하니? 얘가 시골 내려가더니 이상해졌는데. 아님 원래 눈치가 없었던 거니? 그리고. 뭐 우리는? '우리는' 화법 그거 늬 꺼잖아? 가만 있어 봐. 그럼... 너도 오빠란 말만 들으믄 미쳐버리냐? 혹시 이 장면을 엿보는, 읽는 그대도 그러요? 진짜 그렇소? 대답 좀 해 보란 말이오!」 D는 A에게 이처럼 추궁할 뻔 거의 그럴 뻔 하다가 말았다.
A와 D는 짧은 나들이를 마쳤고, 에릭이 일하는 카페에서 차 한 잔 마신 후 헤어지기로 했다. 그런데 마침 D에게 연락이 왔다. D의 절친 E가 근처까지 그를 만나러 왔다는 것이다. 물론 A는 E와 그다지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A는 D와 E의 은하수를 찾아 떠날 여행이 촉망됨을 예감했다. 뭐랄까 그 다음이 매우 가식적으로 기대되었다. 그의 시샘은 빗나가지 않았다.
결국 A는 어중이떠중이가 됐고, D와 E는 단둘이서 우정 여행을 떠나갔다. A는 외톨이가 되었고, 오늘 처음 만난 모자를 쓴 어느 숙녀로부터 어떤 신선한 고백을 듣고 싶어졌다. 왠지 그는 D는 데우칼리온, E는 피르하, 자신은 혹시 프로메테우스가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해봤다. 그들이 떠난 방향을 힐끗 바라보며 그는 뜻모를 아쉬움을 달랬다.
10
A는 어느 날 무인 카페에 갔다. 카페 이름이 바꼈다. 무제로. 그리고 다른 손님은 아무도 없었고, 그곳에는 파가니니의 기타 소나타가 흐르고 있었다. 그날따라 그가 하고 싶은 일이 행진이라거나, 문 닫은 경마장으로부터 막 이상한 텔레파시가 자기를 오라는 듯한 신호를 보낸다거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현실은 드라마가 아니었다. 그의 지금 심경은 축복과 안도감과 설렘보다는 권태를 통감하며 그것으로부터 예술적 착상을 도출해보려는 발버둥에 가까웠을 것이다. 그의 작품 지론에 따르면 그 방법이 때로는 제법 효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그는 참다 못해 절망에 유념하며 예술은 앵간히 하고 좀 쉬고 마음껏 놀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햇살이 너무 따스했고, 사근사근한 바람이 그를 부르며 우리 같이 놀자고 그에게 마치 눈웃음치며 애원하는 듯 느껴졌기 때문이다. 흡사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애인의 보채고 칭얼거리는 애교처럼.
그는 무인 카페 바깥으로 일단 나갔다. 떡 하니 5월의 햇살이 그를 반기고 있었다. 그는, 산다는 것은 다름 아니라 노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독자적으로 남몰래 혼자 놀 수만은 없었다. 그가 손가락 딱 하면 친구 F로부터 전화가 걸려와야 멋진 건데 그는 멜로드라마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F에게 전화를 걸기로 했다. 따르릉~ 따르릉~.
「여보세요!」
1
나는 어느 날 가방을 하나 샀다. 토성과 UFO 자수가 멋진 가방을. 나는 그 가방이 딱히 필요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왜 그 가방을 사게 됐는지 모르겠다. 버리기 좋아하고 어딘가에 얽매이지 않는 뭔가 돌아온 탕자 같은 기질을 숨기고 살아야 하니까 그런가는 몰라도 막상 가끔 무언가를 버리고 싶은데 주위를 둘러봐도 버릴만한 적당한 무엇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그래서 아무 이유없이 눈에 띈 가방을 산 것인지도 모르겠다. 또는 왠지 옛날 기분을 느껴보고 싶어서? 조금은! 잡지 한 장을 쭉 찢고 접어서 주머니에 넣고, 매장에 가서 이거 있어요? 라고 물어본 후, 어머 손님 죄송해요 그 제품은 워낙 인기가 좋아서 불티나게 팔려버렸기 때문에 재고가 하나도 남지 않았답니다 라는 말을 듣고 싶어서? 그럴 수도 있는데 재고가 그것도 많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아마도 그래서 그 가방을 사게 된 듯 하다.
그 외에 내 머리부터 발끝까지 변한 건 하나 없었다. 상상력은 빈약했고, 뭔가 막연하면서도 거창한 변화의 바람을 기대하는 건 여전했다. 오전에는 녹차를, 낮에는 커피를, 밤에는 독주를 마시는 생활에 대해 잡담을 나눌 만남도 없었다. 그리고 나는 눈빛이 약간 내 약혼녀를 연상시키는 듯한 어느 여배우가 출연하는 에로 비디오를 봤다. 별로 재미는 없었다. 보고 싶어서 본 건 아니었다. 그리고 이제 두 번 다시는 보지 않을 것이다. 장담...은 하지 않겠다. 다시 그리고, 나는 앤디 워홀이 쓴 일기를 읽었다. 존 파울즈의 일기를 본 이후로 오랜만에 편히 읽을 수 있는 일기라고 생각했다. 온갖 투정과 불만과 짜증으로 일관된 일반인의 일기라면 더할 나위 없이 황홀하도록 재밌을 테지만 그런 까다로운 작품은 만나기 힘들다. 그래서 아무래도 차선책을 택한 것 같다. 중요한 기록은 많지 않고 시시콜콜한 내용이 많았지만 간혹 나오는 인상적인 구절, 예를 들면 여자들이 그린 그림은 알아보기 쉽다 단순하기 때문이다, 자기 작품은 얼마에 불과한데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은 얼마에 팔린다, 같은 부분이 나오면 상당히 흥미로웠다.
그러다 나는 평소에 잘 듣지 않는 추억의 히트곡을 하나 찾아들었다. 노래는, 다이아몬드는 여자들의 제일 친한 친구. 그 즉시 나는 그 아름다운 선율에 매혹되고 말았다. 그래서 나는 그 노래 가사를 일기장에 옮겨적었다. 나는 오늘부터 일기를 써보기로 했던 것이다. 작심삼일에 그칠지라도. 재미있을 것 같았다. 왼손으로 소설을 필사하기를 다시 시도할 수는 없으니까 오른손으로 꽤 인상적인 그 노래 가사를 옮겨 적어 보았다. 가사는 이렇다.
프랑스인들은 사랑을 위해 목숨도 마다하지 않지
사랑을 위해 싸우며 결투를 벌이는 것도
하지만 난 값비싼 보석들로 살아가고 그걸 주는 남자를 선호한다네
손등에 받는 키스가 꽤 근사할지 모르지만
다이아몬드가 여자의 제일 좋은 친구라네
키스가 좋다한들 초라한 거처에 집세를 내주거나
가엾은 고양이 먹이값도 대주지 못해
여자가 젊음을 잃을수록 남자는 차가워지고
우린 언젠가 매력을 전부 잃게 되지만
네모낳든 물방울 모양이든
보석들은 변하지 않아
다이아몬드는 여자의 제일 좋은 친구!
티파니, 까르띠에, 블랙스타, 프로스트, 고햄
말해요, 해리 윈스턴, 전부 다 말해봐요!
어쩌면 나중에 변호사가 필요할 때가 있을지도 몰라
하지만 다이아몬드가 여자의 제일 좋은 친구지
언젠가는 무미건조한 보스도 네가
엄청 멋지다는 걸 알게 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침착하세요 아니면 어림도 없어요
주가가 높을 땐 당신의 남자이겠지만
떨어지기 시작한다면 조심하세요
그때가 바로 남자들이 아내에게 돌아가는 때에요
다이아몬드가 여자의 제일 좋은 친구라네
어디까지나 플라토닉한 관계라 해도
다이아몬드가 여자의 제일 좋은 친구라네
당신이 비밀스러운 관계라 하면
더 낫지 더 큰 걸 물어올 수 있으니까 말야
시간이 흘러가고 젊음은 가버리겠지
당신의 허리는 굽어지겠지
하지만 허리를 펴고 무릎을 세워
당신이 티파니 앞에 섰을 땐
다아이몬드 다이아몬드
가짜 다이아몬드는 의미없어
다이아몬드가, 여자에겐 최고의 친구라네
나는 집에서 심심했던 것이다. 때문에 꼭 성의없는 선물의 대표격인 향수처럼 인용문과 브랜드와 타인의 이야기를 잔뜩 가져다가 소설 하나 뚝딱 완성해서 베스트셀러 목록에 손쉽게 이름을 올리는 통속 소설가가 된 듯한 기분이 느껴졌다.
2
무료한 날이 이어지고 있었다. 계이름이 색깔로 보이고, 공감각과 환각이 교차하는 광인이나 백치의 경험은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많이 써먹은 익숙한 방법에 의존했다. 글이 안 써질 때 내게는 동사가 있었다. 젠체하다, 를 바꿔봤다. 젠체했다로. 민망하다? 민망했다. 그러나 소용없는 일이었다. 차라리 인터넷에서 진짜로 오지 오스본이 박쥐 머리를 뜯어먹은 적이 있는지를 검색해 보는 게 더 유익한 일일 것 같았다. 그렇지만 나는 꼭 한숨만 쉬면서 따분한 삶에 관하여 괴로워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TV로 촌스러운 코메디 영화를 보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저기 나오는 저 친구들은 배우 생활이 즐거울까 곤혹스러울까 하면서 그분들의 삶을 궁금해 하기도 했다. 저 친구들은 유명인을 꿈꾸었고 나는 특별하고 구체적인 염원의 대상이 없었다는 점이 차이점으로 보였다. 그렇지만 이미 각자 자기의 삶을 열심히 살고 있는데 괜히 어려운 영역에 새롭게 도전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니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내 인생을 가만히 진단해 봤을 때 영화사에서 별안간 연락을 해올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니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새 출발은 선택의 기로에서 고민하는 명왕성을 파는 사나이에게 맡기고, 나는 젊은이들의 이상에 근접하여 글로써 새로운 인생을 친애하면 그만이다. 일단 공상의 결론은 <문제 없음>이라고 밝혀졌지만 뭔가 마음 한구석이 훵한 기분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음악가든 화가든 문필가든 세상에 예술가는 차고 넘치는데 나는 아직 내 확고한 예술 세계를 구축하지 못한 듯한 느낌에 갑자기 내가 현재 잘 살고 있는 것일까 하는 걱정에 분위기가 돌연 침울해지기 직전이었다. 그러므로 왠지 내 삶이 상한 우유와 바나나 껍질과 빵 부스러기 같은 인생은 아닐까 하면서 그냥 삼류 소설이라도 틈틈히 왕왕, 운 좋으면 자주 출간해내야 하는 건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설사 그렇게 명석한 추리력이 없는 채로 추리소설가가 된다고 할지라도 그다지 비난 받을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만일 그렇다면 상상력의 발현에 따른 쾌락과 은밀한 환상이 늘면 늘었지 느닷없이 실패와 불행과 비운에 휩싸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가정했다.
이처럼 나는 기상천외한 아이디어의 부재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 찰나 우리 집 초인종이 울렸다. 밖에 나가보니 빈센트가 놀러온 것이다. 빈센트는 최근 사귄지 얼마 되지 않은 친구다. 착한 녀석이다. 빈센트는 비록 지금은 라이브 음악 카페 사장이지만 그의 경력은 화려했다. 과거 이브 클랭의 파트너였고, 더스틴 호프만의 매니져였으며, 격투기 기획사 프로모터에 모터사이클 선수와 광고 회사 중역으로도 활동했었다. 근래 속옷 사업이 내리막을 걷길래 낙향해서 지금은 조용히 살고 있는 친구다. 그 친구의 말인 즉 피에르의 집에 불이 났다고 했다. 말이 필요없고 우리는 얼른 그곳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피에르의 집까지 뛰어갔다. 그런데 도착해서 보니 피에르는 자기 집 정원에서 혼자 바베큐 요리를 하고 있었다. 빈센트가 말한 화마는 바베큐 요리였던 것이다. 나는 피에르와 인사를 나눴고, 바베큐 요리를 시식했다.
「제임스.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는 파티가 있는데 같이 가는 게 어때? 막 미스테리한 느낌이 물씬 풍기는 음산한 저택에서 비밀스럽고 으스스하며 설레는 분위기로 가득찬 신나는 파티라구. 시골에서 그런 축제는 거의 있을 수 없는 거나 마찬가지지. 화려한 도박장에 수영장에서 펼쳐지는 광란의 도가니, 놀라운 예감으로 가득한 이야기와 늘씬한 미녀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구. 이 고장의 신비주의자 바로 시드니가 주최한 파티야. 가면 아마 실망하지는 않을 걸!」
피에르의 감언이설에 이어 빈센트도 살살 나를 꼬시기 시작했다. 중요한 약속이나 꼭 봐야 할 TV 프로그램이라도 있냐면서 마치 나를 뿅가게 해줘요 라고 애원하는 듯한 숙녀들의 환대를 받고 싶지 않냐면서 같이 가자고 마구 조르길래 썩 믿음직스럽지는 않았지만 나는 결코 거부할 수 없는 그 달콤한 꾀임에 그만 홀딱 넘어가버렸다. 우리는 곧바로 시드니의 저택으로 출발했다. 우리의 행복해지고 싶은 열망은 호쾌히 부풀었고, 우리의 때묻지 않은 기쁨은 이때까지는 그나마 촉망받는 낭만주의의 포근한 보호를 받고 있었다. 우리는 시드니의 집에 도착했다.
3
나는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실망했다. 불꽃놀이는 없었다. 잔치도 없었다. 설레는 분위기는 웬걸! 미녀들 대신에 (뻣뻣한) 동네 청년 몇 명과 함께 거나하게 취한 시드니가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혹시 몰라서 토성과 UFO 자수가 멋진 가방을 들고 갈까 하다가 갖고 가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러나 그런 내 심정을 눈치챘는지 빈센트가 그랬다. 오늘은 전야제라고. 내일이 진짜 파티의 날이고, 내일은 저 가난한 시드니가 아니라 대부호인 시드니의 형 집에서 축제가 열린다고 했다. 나는 아 속았다 하면서 딱 체념할려고 했는데 그 말을 듣고 웃음을 터트렸다. 느껴질까 말까 한 미묘한 심리가 있었으나 나는 빈센트를 믿어도 될 것 같았다. 왜냐하면 왠지 행복한 반전이 기대된 것 때문이다. 그런데 어째 기분은 이상했다. 내가 꼭 시드니의 수하에 들어간 늙은 개가 된 듯한 기분이 느껴졌다. 그러나 나는 내 기분을 말로서 꺼내지도 않았고, 일기에도 쓰지 않기로 작정했다. 속에 있는 모든 의식을 표출하며 살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 그렇게 나는 침묵을 지키며 고분고분하게 하루를 기다렸다.
그렇게 다음 날 저녁 6시에 나와 빈센트와 피에르와 시드니 이렇게 우리 넷이 만났다. 우리는 시드니의 형네 집으로 출발했다. 이때까지는 모든 것이 순조로워 보였다. 마침 준비해 간 토성과 UFO 자수가 멋진 가방이 어딘가 더 아름답고 멋져 보여셔 뿌듯했다.
우리는 시드니 형네 집에 도착했다. 여기서부터는 완전 다른 국면이었다. 이건 진짜 영화에서나 봤던 그런 광란의 파티였다. 술, 여자, 음악, 호사, 사치등 모든 게 최고였다. 쿵쾅쿵쾅, 분위기 들썩들썩했다. 일생일대의 기회인 듯한 기분이 들었고, 거기에 있으니 흡사 내가 이미 슈퍼스타가 된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만일 여자였다면 나는 아마 내가 본드걸이라고 자만하며 춤 추고 노래하고 놀고 뛰고 난리 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본드걸이 아니었다. 하지만 싫어할 이유는 없었다. 즐기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왠지 마음이 편치 않았다. 웃는다고 웃었는데 우린 모두 죽상이었다. 나는 뭔가 잘못됐다는 걸 감지했다. 우린 거기에 안 어울렸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삼류 소설가였고, 빈센트는 농부요 피에르는 시골 술집 사장이었다. 아! 바꼈다. 빈센트가 술집 사장이고 피에르는 농부였다. 우리는 겨우 시드니의 형만 살짝 알은체했고, 의기소침해 있었다. 왠지 선남선녀들은 우리에게 쌀쌀맞은 듯 했고, 졸지에 우리는 남의 집 잔치에 놀러온 불청객이 되고 말았다. 시름은 깊어졌고, 탄식은 늘어만 갔다. 우리는 비상구를 찾게 되었다. 그러나 딱히 방법은 없었다. 우리가 있을 자리가 아니라면 돌아가면 그만이었다. 우리도 그 정도 눈치는 있다. 우리는 그 요란한 파티장에서 나와서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뒷풀이없이 모두 헤어졌다.
나는 집에서 잘려고 침대에 누웠다. 마치 한 편의 아름다운 사랑에 대한 꿈이라도 꾼 듯한 기분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들은 이런 얘기들을 하면서 놀고 있었다. 여자들이 줄줄 따라다니게 할 것인가, 아니면 늬가 여자들을 졸졸 따라다니며 살 것인가, 그것은 늬가 지금 무엇을 하느냐에 달려있다구, 라면서. 그러나 그건 모두 들뜬 흥취였고, 헛된 기대였다. 어리광도 안-통했고, 일반인과 유명인의 차이를 실감했을 뿐이었다. 그래서 아직도 한숨이 나왔다.
물과 기름이 섞이기 힘들 듯 서로 꼭 수준이라고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뭔가 어울리지 않았던 어쩌던 파티를 즐기지 못하고 돌아오기는 했다. 그러나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뭔가가 있긴 있었다. 그건 무엇이냐면 그곳 이름에 얽힌 어떤 상징이랄지, 어쩌면 일부러 우리들에게만 암시하는 듯한 난제 같은 게 숨겨진 것은 아닐까 라는 호기심에서 발전한 미스테리가 있었던 것이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하나 이상한 점은 이랬다. 시드니의 형네 집은 우리 동네와 가깝긴 했으나 지역 이름이 바뀌는 장소였다. 딱 거기서부터는 환청리였던 것이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동네는 환각리, 시드니의 형네 집부터는 환청리. 뭐라고, 환청리? 우리 동네 지명은 환각리인데? 그럼 앞 글자 '환'이 똑같고, 뒷 글자를 붙이면 청각? 음 청각이라 청각... 청각하니 생각난다. 내가 태어난 곳의 지명이 지금은 환상리로 바꼈지만 당시에는 환영리였다는 것이. 워워 생각이 많아진다. 이건 뭔가 짜맞춘 듯 하지만 결코 일부러 꾸밀 수 없는 일인 듯한 기이한 운명의 힘이 느껴졌다. 그건 마치 어떤 숙녀에게 첫 번째 남자친구의 이름은 허영, 두 번째 남자친구는 허당, 세 번째 사랑은 허풍으로서 남자친구의 본명 이니셜이 모두 묘하게 일치되는 어떤 이상한 숙명과도 같은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허나, 웃지마시라. 그런 사람 진짜 있으니까.
그런데 아차! 이제야 생각난다. 시드니의 형네 집에서 봤던 그 가방들. 모두 다 거기에 토성과 UFO 자수가 세겨져 있었다. 설마...? 그럴 리 없다. 뭔가 미심쩍긴 했으나 나는 그냥 꿈나라로 떠났다.
4
다음 날이 되었다. 그날도 전날과 마찬가지로 평범한 하루가 시작됐다. 지구에 토성처럼 띠가 생겼다는 뉴스가 나오지도 않았고, 네스호의 괴물이 승천했다는 소식도 전해지지 않았다. 우리는, 그런 엇비슷한 뉴스가 엿보이기라도 하면 호들갑을 떨면서 떠들썩한 소란이라도 벌일려는 형색의 초딩이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서 제일 먼저 가방을 확인했다. 혹시 그 가방이 흔한 코메디 영화에 나오는 사건처럼 남의 가방과 바꼈으면 어떡하나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불안 심리의 저쪽 구석에는 어느 신비스러운 여인의 가방과 바뀌어서 막 내용물을 근거로 그녀를 추적하고 어쩌고 하는 엉뚱한 상상이 미동과 요동 사이를 바쁘게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그건 그렇고 가방은 바뀌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다행이고 한편으로는 조금 섭섭했을까? 아니다. 쓸데없는 소란에 휘말리면 나만 피곤해지고 나만 귀찮아진다. 그래서 나는 일과를 시작했고, 오늘은 어디에 가서 일할까를 생각했다. 우선 커피를 한잔 탔다. 그걸 마시면서 나는 어떤 글을 쓸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깊어져 갔다. 이를 테면 이런 4차원 분류를 골똘히 분석했다. 작품의 종류는 네 가지가 있다. 전체적으로 생각이 많고, 행동도 많은 이야기가 첫째. 둘째는 전자가 많고 후자가 적고. 셋째는 전자가 적고 후자가 많고, 대표적으로 스티븐 킹의 원작들. 마지막 넷째는 다 적은 것, 가령 알랭 로브그리예의 작품처럼. 이 가운데서 나는 1번 방식을 일단 선호해야겠다 라고 생각한 순간, 바로 이때 딱 초인종이 울렸다. 누구지? 우리 집에 올 사람이 없는데?
밖에 나가보니 웬 단정히 차려입은 아가씨가 혹시 자기 가방이 여기 있지 않냐고 묻길래 없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는 실례했다면서 돌아갔다. 아무 일도 아니잖아 하면서 나는 나갈 채비를 하는데 다시 초인종이 울렸다. 또 누구지 하면서 밖에 나가보니 아까 봤던 아가씨와는 전혀 다른 발랄한 스타일의 숙녀가 혹시 제 가방을 못 보셨냐고 물었다. 그걸 왜 제게 묻냐고 답할려다가 나는 정중하게 저는 모르는 일이라고 했고, 그녀는 떠나갔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딱 그와 같은 간격으로 7명의 아가씨가 찾아와서 자기 가방을 아느냐, 혹시 가방이 바뀌지 않았느냐, 내 가방을 혹시 보시게 되면 꼭 연락해주시라면서 애달픈 부탁을 하고 떠나갔다. 이게 다 무슨 일이지 하면서 나는 무시했고 사소하게 보아 넘겼다. 그리고 나는 내 가방 안에 준비물을 챙겨서 빈센트의 카페로 갔다.
빈센트의 카페 이름은 특이하다. 양자 터널링! 나는 그곳에 도착했다.
「빈센트. 혹시 웬 아가씨들이 차례로 찾아오지 않았니? 하나같이 자기 가방을 아느냐고 물어보면서 말이야. 우리가 놀러갔던 저 도시 사람들 잔치에서 만난 그 아가씨들인 것 같은데.」
「왔지. 그런데 모두 자네한테 보냈어. 우린 그날 가방을 가져가지 않았으니까 말이야. 안 그런가, 시드니?」
「어, 맞어. 우린들 뭐 그냥 보내기가 좋았겠나? 그런데 말이야. 그 아가씨들 아홉 명인가 됐지 아마? 내가 보기에는 그랬어. 그 뭐랄까, 한 명씩 올 때마다 점점 이 위와 아래 그리고 표정과 헤어스타일이 차츰 커졌다고 해야 할까, 뭔가 농염해지는 그런 분위기가 느껴졌다니까. 안 그런가?」
「뭐시여? 진화론이란 말인가? 아닌데. 내가 봤을 땐 궁녀 1부터 10까지, 거기서 1을 뺀 느낌에 가깝지 않았을까? 아무튼 잔소리 같지만 어제 너네들 기분 별로였지? 괜히 잔뜩 기대했다가 신부 들러리도 서보지 못하고 쫓겨난 기분, 왜 억울하지 않겠냐? 우린 이대로 낡은 다트판처럼 주저앉아야만 하는 걸까? 뭐라고 말 좀 해 보지 않겠니? 이건 정말 아니잖아. 나도 우리가 왜 그렇게 주변만 맴돌다 큰 경기에서 대패한 듯이 고개를 푹 수그리고서 도망치듯 빠져나왔는지 지금도 모르겠다. 난,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구. 너네는 안 그래? 나만 그런 거냐? 왜 우리가 순순히 물러나야 했는데? 우리가 무슨 큰 죄라도 지었냐? 아니잖아! 그런데 왜, 어째서? 그렇다고 우리가 안티히어로도 아니고 말이야. 이건 그냥 팽당한 것도 아니잖아. 좋았던 시절 하나 없이 그냥 시작하자마자 낙오한 거나 마찬가지잖아. 차일때 차이더라도 사랑 고백은 한번 해보는 게 낫지 않을까? 이건 정말 아니지 않냐? 어? 어떻게 생각해, 너네들?」
「그래. 우리가 뭘 잘못했는데? 우리는 중요한 손님이었고, 주최측의 긴요한 관계자였다고. 우리가 쫄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고. 무슨 영문인지 몰라도 제대로 놀아보지도 못했다구. 설령 꽝이 되더라도 열려라 참깨 라고 적어도 그렇게 외쳐보기라도 해야 하지 않았을까? 원래 우린 모 아니면 도잖아? 더군다나 시드니의 형은 아닐지라도 누군가 기죽은 우리들 모습을 보고서 막 한껏 과장해서 막 우리 얘기를 온 동네방네 떠벌리고 다니면 그땐 진짜 어떡하냐? 인터넷은 네티즌이라고 또 가만히 있겠냐? 그래도 우리의 의기랑 무관한 일일까? 한때는 너네도 잘나갔잖냐? 빈센트도 도시에서는 클럽에서 서로 모실려고 안달난 VIP 중의 VIP였다구. 안 그래?」
「야! 전화해 봐. 다시 날을 잡자.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어. 안 그래?」
우리는 의견을 모았고, 시드니의 형에게 전화를 했고, 통화한 후 참 난감한 얘기를 듣고서 그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시드니 왈,
「형이 그러는데, 그런 파티를 연 일이 없다는데?」
뭐야 이거? 우리의 경험은 진짜였고, 시드니의 형도 살면서 단 한 번도 거짓말을 해 본 적이 없는 남자였다. 심지어 동정마저 간직한 순정파 마초일지도 모를 일이다. 분명 둘 중 하나는 틀렸는데, 거짓인데, 빼도 박도 못하는 뻥이라는 얘긴데 이걸 어떻게 확인한단 말인가? 이건 정말 그런 일임에 틀림없었다. 야, 이 미친년아!
우리는 흥분을 가라앉힌 후 이성을 되찾고 번득이는 예지를 바탕으로 판단력을 가다듬었다. 우리는 당장 핸드폰 위치 기록을 살펴봤다. 우리의 기억대로 이동 궤적이 지도에 나타났다. 또 우리는 뭐 어쨌든 어떻게 어떻게 해서 관할 CCTV를 확인해봤다. 확인 결과 착오는 없었다. 시간과 이동 거리와 화면에 나오는 모습등 모두 우리가 분명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시드니의 형과 통화를 했고, 그분으로부터 재차 특별한 잔치는 없었다는 확답을 들었다. 시드니의 형이 가짜인가, 그럴 리는 없는데. 오늘은 시드니의 형이 도시에 일이 있어서 출타를 나가야 하니 우리는 내일 시드니의 형을 만나 자초지종을 들어보고 더 자세한 사태 파악에 들어가기로 했다.
5
다시 하루가 지났다. 나는 오늘 빈센트의 카페에 가서 빈센트와 피에르와 시드니를 만날 것이다. 그래야 한다. 회의를 하고 우리들은 시드니의 형을 만나러 가면 된다. 그래서 담판을 지으면 어디서 오해가 발생했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오늘 하루가 어쩐지 바쁘게 지나갈 듯 하면서 어딘가 모르게 묘한 놀라움, 기발한 반전, 기막힌 신기함은 없을지라도 최소한 궁금증은 후련하게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도 된다는 예상을 하게 됐다. 그런데 왠지 이상하게 일이 꼭 그처럼 수월하게 풀려나갈 것 같지는 않을 것만 같았다. 왜 그런지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간밤에 꾼 기억나지 않는 꿈 때문인가? 아닐 것이다. 일단 나는 빈센트의 카페, 양자 터널링으로 출발했다.
잠시 후 나는 그곳에 도착했다. 그러나 내가 너무 일찍 방문했는지 카페에는 상큼한 아르바이트생뿐이 없었다.
「낭자, 좋은 아침입니다. 사장님은 아직 나오지 않았소?」
「네? 제가 여기 사장인데요. 무슨 일이시죠?」
「허허허, 귀여운 숙녀가 농담을 꽤 진지하게 구사하는 재주가 무척 탁월하구먼 그래. 웃겼소 낭자. 자, 한번 웃었으니 이젠 오늘의 바쁜 용무를 위해 빈센트 사장의 출근에 대해 답을 꼭 들었으면 하오. 빈센트의 행처에 대해 살짝 알려주시면 고맙겠소이다.」
「네? 어르신, 무슨 말씀이신지... 제가 여기 양자 터널링 카페의 사장이라니깐요.」
어르신? 나를 신사로 봐주는 건가? 거기 신경 쓸 게 아니라, 저 친구가 왜 이처럼 완강하게 장난을 이어가는 것인지 통 영문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차차 대화를 나눠본 후 나는 빈센트라는 사람이 이곳의 주인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됐다.
그러면 빈센트는 누구지? 이때부터 내 행적은 매우 바빠졌다. 피에르를 만나러 갈려다가 시드니의 집이 가까우니까 그곳으로 먼저 갔다. 그러나 제 위치에 있어야 할 시드니의 집은 없었다. 나는 다시 피에르의 목장으로 갔다. 아니나 다를까 목장의 주인도 피에르가 아니었다. 방금 전 양자 터널링처럼. 진짜 목장 주인은 그런 분은 전혀 모르겠다는 눈치였다. 그렇다면 얘네들 셋이서 정말로 양자 터널링의 원리로 공간 이동이라도 했단 말인가? 4차원으로? 그렇게 실소를 금치 못하면서 혼자 어떻게 된 일인지 원인 파악에 골몰하던 중 목장 사장이 아까 내가 보여준 사진을 보더니 피에르가 자기의 할아버지를 완전 쏙 빼닮았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아무런 해결도 이해도 만족할만한 해명도, 납득할 수 있는 추정도 할 수 없었다. 지금 현재 뭐 하나 단서도 없으니 추측도 불가능했고, 그동안 간혹 읽었던 추리소설도 일단은 모두 시간 낭비였다는 원망의 심정마저 느껴졌다. 저 푸른 목장을 보니 양과 소와 양치기견이 보였다. 혹시 피에르가 소로 변했을까? 무슨 그런 유치한 공상을! 설마 빈센트가 양으로 환생한 건가? 무슨 그런 말 같지도 않은 상상을, 망측하기도 하여라. 나는 원래 양치기견이었고 시드니는 목동이었는데 하루 사이에 시드니는 개가 되고 나는 사람으로 변신한 건가? 그건 일고의 가치도 없는 말도 안되는 망상이다. 우린 분명 셋이서 함께 환상적인 파티에 갔고, 거기서 따돌림을 당했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그 정도의 어설픈 모험은 이루어냈다. 그런데 이게 다 뭔 말인가? 나는 친분이 있는 정신과 의사도 없었고, 내 몇 일간의 행적을 결코 거짓이라고 인정할 수도 없었다. 난 정말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진짜 양자 터널링 현상이 현재 다른 어디도 아닌 지금 여기서 발생했단 뜻일까?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고. 어떻게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동네 터줏대감인 멀더는 물론이고 그 누구와 상담하더라도 난 분명 미친놈 취급을 받을 게 뻔했다. 그런 뻔하디뻔한 일은 한마디로 피곤하다. 내 꾀죄죄한 행색 만큼이나 기승전결이 없었고, 물증과 근거도 전무했다. 그래서 나는 드라마에 나오는 전형적인 어느 대사를 떠올리게 됐다. 그것은, 차마 이런 말까지는 안할라 했는데, 바로 그것이었다. 곧 나는 정말 이 방법까지는 동원하지 않을려고 했는데 라는 술책을 어쩔 수 없이 사용할 수 밖에 없었다. 즉 나는 우리 동네 정육점 사장의 채무 관계를 알아보았고, 극장식 카바레의 지번에 대한 세밀한 조사에 들어갔다. 그리고 꽃집 사업자의 명의 변경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동네 음악당 사장의 지난 사랑을 모두 분석해봤다. 그러나 모두 쓸데없는 짓이었다. 아무런 연관성을 찾을 수 없었다. 따라서 나는 방법은 딱 하나 밖에 없다고 결론 내렸다.
그러므로 나는 양자 역학을 독학할 수 밖에 없었다. 늦었을 때가 제일 빠르다는 건 내가 인생을 통해 배운 값진 교훈이었다. 일단 어떤 속임수와 뜻밖의 반전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를 일이기 때문에 때를 기다리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라고 생각했다. 비록 언제 싫증나서 현대 물리학의 거대 지류인 양자 역학에 대한 독학을 때려치울지 쉽게 속단할 수는 없었으나, 따라서 나는 더욱 양자 터널링 연구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삼류 소설도 제대로 못쓰고 있는데 양자 역학이 웬말인가, 나는 공부는 늘 딴전이었다. 놀러가고 해변으로 일광욕을 하러 가고, 여기 기웃 저기 기웃 어딘가에 숨어있을 기쁨과 환희와 흥미로움을 찾아서 바깥으로 나돌기 일쑤였다. 그래서 나는 어쩔 수 없이 불쑥 찾아왔던 그 믿을 수 없는 환상을 잠시 잊기로 했다. 이건 기만도 아니고 꿈의 포기도 루저 마인드도 결코 아니었다. 그냥 알려지면 살짝 곤란한 정도의 동네에서만 화자되고 동네에서만 술렁일 헛소동이나 추문에 지나지 않는 일이다. 오히려 그게 나을 것 같았다. 뜬금없이 정말로 밑도 끝도 없이 아무데서나 막 염문을 뿌리고 다닐 수는 없는 일이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곧바로 근신에 들어갔고, 오래간만에 가택감금하며 자숙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6
나는 집에서 청춘의 고뇌와 더불어 사랑의 기쁨 그것의 순수한 본질과 찬란한 의미에 대해서 명상을 하던 가운데 겨우겨우 양자 역학에 대한 기초 지식을 습득해 가고 있었다. 그러던 가운데 집에서만 머무르는 생활에 답답함을 느껴서 바깥 날씨를 잠시 살펴보기 위해 정원에 있는 수영장으로 나갈려고 했다. 이때 실내로 들어올 수 있는 대문 밑으로 살며시 하얀 종이 봉투가 쓰윽 들어오는 것을 보게 됐다. 나는 즉시 직감적으로 문 너머의 생명체가 누구인가 그것을 어서 확인해야 한다는 소명을 즉시 실행에 옮겨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즉시 뛰어나가서 주변을 살펴보니 웬 온 몸에 검정색 옷과 검정색 두건을 쓴 누군가가 서둘러 검정색 컨버터블에 승차해서 떠나가는 장면을 목격했다. 나와 전혀 관계없는 일일 수도 있고, 우연일 수도 있다. 그러나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느껴졌다. 어쩐지 얼마 후에 순조롭지 않은 사건에 휘말리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기분과 함께 왠지 불길한 신비감이 쉽게 가시질 않고 있었다. 그래서 당연하게도 난 쫓아가는 역할을 직접 선보일 수는 없었다.
나는 다시 집으로 들어와서 그 하얀 봉투를 열어봤다. 그것은 요즘 우리 동네에서 최고로 잘나가는 빌리의 생일 잔치 초대장이었다. 빌리는 전화를 하던가 동네에서 얼굴 보고 알려주면 될 일 가지고 왜 이렇게 유난스레 격식을 차리는 걸까, 그런 의문이 잠시 스쳐지나갔다. 그러나 결국 수상함은 기특함으로 마무리됐다. 나는 물리학 공부가 하루하루 지쳐가던 순간 좋은 건수가 생긴 듯 해서 딱히 장담할 수는 없지만 금새 기분이 좋아졌다. 거기 가서 빈센트와 피에르와 시드니를 만나게 된다면 그것만으로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것일 테고, 우리 집을 방문했던 아홉 명의 여인들에 관한 궁금증까지 해소할 수 있다면 최고의 성과를 거둘 것이라는 데 불합리한 추리력이 모아지니 그 예감만으로도 나는 이미 로맨스에 빠져든 것만 같았다. 그걸로도 모자라 인기 없는 삼류 작가에서 풋내기 작가 지망생으로 후퇴하여 다시 새 출발을 감행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마저 막 날개를 펼치려는 듯 했다. 빌리의 생일 축하를 위한 젊음의 축제는 길게 기다릴 것도 없이 바로 오늘 저녁이었다. 어느새 지루할 틈도 없이 하루가 훌쩍 지나더니만 저녁이 가까와지고 있었다.
빌리의 생일 잔치에 참석하기 위해 나는 집을 나섰다. 거리도 가까웠다. 발리는 시드니의 형처럼 성대한 행사를 하는 게 아니라 동네에서 조촐하게 먹고, 마시고, 떠들고, 노래 부르고, 가능하면 춤까지 추고, 그런 평범한 놀이를 위한 시간을 보낼 계획인 듯 했다. 카페 이름은 블레이드 러너 2049였다. 언제 이런 술집이 여기에 생겼지? 이 손바닥만한 동네가 어쩌면 내가 모르는 어느 이상한 불확정성의 원리에 의해 돌아가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불가사의한 기분이 느껴졌다. 뭐 그건 그렇고 나는 카페로 들어갔다.
이미 잔치는 무르익어 있었다. 뭐야 나만 시간을 잘못 알았던 거야 아니면 일부러 내게는 넌 좀 늦게 와도 돼 라는 뜻으로 일부러 늦은 시간을 알려준 거야? 그러나, 아직 드러난 어떤 사실도 없으니 괜한 오해는 금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게 뭐냐면 거기 있는 친구들이 모두 익숙한 얼굴이고 다 친한 친구들인데 어째 그 이름과 무슨 일을 하는지와 그들과 관련된 정보들이 잘 생각나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름이 떠오르지 않으니 먼저 알은체를 할 수도 없었고, 인사도 소극적으로 했고, 뒤늦게 합류하자마자 즐겁게 놀 수도 없었다. 여긴 정말 손바닥만한 시골이라서 초등학교와 중학교와 고등학교의 이름이 모두 똑같은 동네였다. 만일 그 이름이 허영이라면 세 학교 모두 허영의 이름을 쓰고 허영심이 가득한 학생들을 바르고 건강하게 교육시키는 고장이었다. 그래서 다 그 얼굴이 그 얼굴처럼 보였을까? 모르겠다. 아무튼 녀석들은 시골에 무슨 특별한 일이 있을 것이고, 언제 어디서 이같은 즐거운 유희를 만나겠냐는 것처럼 갖은 재주를 선보이며 장기자랑을 하면서 즐겁게 놀고 있었다.
쟤는 카바레 사장 로만이던가? 아닌가? 아무튼 녀석은 언제 배웠는지 모르지만 혼자서 마술쇼를 선보이고 있었다. 입에서 막 진짜 비둘기가 나오고, 눈에서도 진짜 초록색 레이저가 발사됐다. 손바닥에서도 무슨 초음파 같은 걸 내보내서 막 누군가의 옷을 벗기고 있었다. 사전에 미리 둘이 짰고 그래서 벗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옷을 막 훌러덩훌러덩 막 계속 벗기는 벗고 있었다. 게다가 그 주인공이 남자가 아니란 점도 썩 안심되는 점 가운데 하나였다. 다만 옷을 벗어도 벗어도 계속 벗을 옷이 남아있다는 게 문제였다. 그렇게 잔치가 무르익어가던 중 어떤 어가씨가 내게 접근해왔다. 나는 새로운 친구를 사귀지도, TV는 바보 상자라며 좌중을 휘어잡는 말솜씨를 발휘하지도, 가식적으로 가장하는 게 아니라 진짜 함께 어울려서 모임을 즐기고 있지도 못했다. 때문에 나는 그 낯선 상대가 조금은 반가웠고 부쩍 호기심이 발동했다.
「우리 서로 구면이지? 저번에 무례하게 우리 집에 찾아온 것 비밀로 해줄께. 단, 다시 조용한 시간에 너 혼자 방문하지 않으면 온 동네에 소문낼 꺼니까 그것만 알고 있어. 알았지? 기다릴께! 그리고, 기대할께, (하트뿅뿅) (손을 펴서 입술에 쪼옥 해서 후~)」 뭐야 이건?
뭐지? 쟤 누구지? 지 할말만 딱 하고 찬바람 싱 일으키며 가버리네. 뭐야! 사람 잘못 본 거 아닌가? 빌리한테 물어볼까? 무슨 루시퍼가 그린 그림이 그려진 페이지만 뜯겨 없어진 채 남겨진 비서의 정체를 안다는 거야 뭐야? 나는 그녀의 이름이 엠마누엘인 것도 같고 아니 것도 같은 묘한 착각에 이어 약간의 현기증을 느꼈다. 그래서 나는 녀석들과 조금 떨어진 바에 가서 혼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웨이터에게 마티니를 한 잔 부탁했다. 그런데 혼자만의 여유를 즐길 틈도 없이 다시 얼굴은 익숙한데 이름은 딱 떠오르지 않는 어떤 숙녀가 내게 다가오더니 내 바로 옆에 자연스럽게 앉았다. 미처 놀랄 틈도 없었다. 나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의문의 축복이라고 생각했다.
「멋진 웨이터 오빠! 저도 이분과 같은 걸로 한 잔 주세요. 좀 진하게요, 알겠죠? (뭘 알아?) (얘는 분명 몽환적인 분위기와 백치미로도 모자라 어떤 불가사의함으로 포장된 지적 매력이 물씬 풍기는 그런 여자였다) 너 미쳤니? (뭘 미쳐? 내가 왜 미쳐?) 너 내 남자친구 게리 그 녀석이 얼마나 질투심이 많은지 아니 모르니? 그렇게 다짜고짜 내 차에 덥썩 타서 깜짝 놀라게 날 포옹하면 내 입장은 뭐가 되니? 어? 그래 안 그래? 너... 설마 우리 사이가 예전부터 심상치 않았다는 걸 눈치채고 있었던 거니? 하긴 나도 오래 간다고 생각했어. 나가떨어졌어도 이미 나가떨어졌어야 했는데 뭐 억지로 여기까지 온 거지. 어때? 너 나 좋아하니? 이참에 깔끔하게 정리하자구. 어? 난... 뭐야 늬가 먼저 고백해야 할 거 아니야? 숙녀한테 이거 무슨 짓이야, 어? 어때, 나 괜찮겠어? 나 감당할 수 있겠냐구, 외롭게 하지 않을 자신 있냐고. 우리, 비밀로 만날까 아니면 이번에 확 그냥 결혼해버릴까? 어머 얘 표정 좀 봐. 농담이야 농담. 쫄기는! 어쨌든 다음에 조용할 때 다시 내 애마에 조심스럽게 승차하라구. 알겠니? 우리의 미래를 한번 타진해 보고 같이 운세 보러 한번 가야겠다. 알겠어? 딱 기다리고 있으라구.」 딱 기다리기는 뭘 딱 기다려?
그녀 역시 자기 할말만 마치고 곧바로 멀어져갔다. 얘는 또 뭐지? 나는 저 뒷모습은 기억나는 것도 같고 잘 모르는 듯 낯설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의 이름이 베아트리체인지 롤리타인지 아니면 샬롯인지는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다. 이게 다 어떻게 된 일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일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나는 끝까지 그 적응되지 않는 생일 잔치에 계속 남아있을 수는 없었기 때문에 그 이름이 이상한 카페를 조용히 나왔다. 옛날 같으면 나 간다고 작별 인사를 반드시 할 것이고 그러면 못 가게 말리고 어쩌고 그러다 으쌰으쌰 하다가 만취해서 끝까지 갈 텐데, 지금은 장면 전환에 꼭 예고가 필요한 것은 아니란 것을 알게 된 동네 아저씨였다. 그래서 나는 카페를 나와서 잠시 멈추어서서 어디로 갈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왜냐하면 내 바로 옆에 어느 아리따운 여인이 다소곳이 서서 날 묘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얜 또 뭐지?
「오빠. 저 기억 안 나요? 오빠가 내 가방 안으로 불쑥 들어왔잖아요. (가방? 무슨 가방? 가방에 내가 왜 들어가?) 설마 벌써 잊은 건 아니죠? 제가 운영하는 첼로 교습소 이름이 가방이란 걸 설마 모르시는 건 아니죠? 그런데 그때 왜 그랬어요? (내가 뭘? 뭘 어쨌다고?) 아니, 진짜 그럴만 하잖아요. 우린 안면만 겨우 익혔던 사이였고, 통성명도 정식으로 나누지 않았는데, 어떻게 오빠는 갑자기 제 음악실에 뛰어들어와서 무슨 누구를 아느냐구요? 베아트리체던가? 베아트리체가 누구에요? 아, 그녀가 누군진 몰라도 참 좋겠다. 정말 많이 부럽네. (뭐야! 나는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데. 내가 얘의 음악실에 왜 뛰어들어갔지? 거짓말 아니야? 베아트리체는 또 누구야? 베아트리체는 단테 알리기에리의 새로운 인생에 나오는 주인공 이름인데... 뭐지? 어떻게 된 일이지?) 그런데 오빠 지금도 오페라 서곡과 간주곡과 아리아만 추려서 들으시나요? 왜 전곡 감상은 하시질 않는 거죠? 곧 있으면 우리들 기념 무도회 있는 거 아시죠? 이번에는 특별히 가면무도회니까 오빠도 꼭 참석하셔야 해요. 오시면 아마 깜짝 놀라실 꺼에요. 아, 맞다! 이 얘기 저만 들어서 알고 있어요. 오빠가 저의 작업실에만 폴짝 뛰어들어오신 게 아니라는 사실을요. 오빠 아무래도 바람둥이 같아요. 다 들었다구요. 오빠, 엠마누엘의 집에도 갑자기 쳐들어가셨다면서요? 거기서 뭘 하실려고 그렇게 어느 숙녀의 집에 느닷없이 방문하셨던 거예요? 오빠 국가대표 상비군이에요? (뭔 국대 상비군?) 아니면 외판원? 오빠는 뭐지, 아마도 가난한 예술가? 아! 또 있다. 소피의 차에도 갑자기 뛰어들어서 조수석에 딱 타더니 그녀를 깜짝 포옹하셨다면서요? 뭐야? 완전 선수네~! 오빠 아무래도 짐승 같아요, 치!
(뭐야? 얘네들이 가방 때문에 자기들이 차례로 우리 집을 방문한 게 아니라 내가 누구의 집에 찾아갔고, 누구의 차에 타서 기습 포옹을 하고, 혹시 뽀뽀도 했을까? 난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데? 또 지금 내게 말하고 있는 얘의 첼로 교습소에 찾아갔다고? 이게 다 대체 뭔 일이냐고! 지들이 다 날 찾아와놓고서 나보고 왜 이젠 저를 사랑하지 않느냐는 거야 뭐야? 참내!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가 있어야지! 그리고 얘는 정체가 뭐야?)
하긴 우리가 처음 만나던 날, 그건 한편의 드라마였죠. 오빠, 기억나요? 그때 유행하던 그 음악 참 감미로웠는데, 제목이 뭐였드라? 난 이런 게 잘 떠오르지 않아요. 왜 있잖아요, 빵집 목마에 흐르던 그 음악! (당시에는 그냥 듣기만 했지만 나중 두고두고 생각났다. 아 글쎄 빵집 이름이 목마라니! 촌스럽게 말이야) 그때 여자는 엠마누엘과 소피와 저, 남자는 빈센트와 피에르와 시드니. 그때 딱 사랑의 짝대기를 결정지으려던 바로 그 순간 오빠가 짠 하면서 나타나셨잖아요. 빰빠라밤~ 진짜 팡파르가 들리는 듯 했다니깐요. 아마 그러셨죠? 이 소개팅 무효라고! 그래도 소개팅이었으니 다행이죠. 다른 행사 같았으면... 아휴 아찔하죠 그냥! 오빠가 그때부터 그랬다는 건 분명 누구 하나를 마음에 두고 있었단 말인데...... 지금까지 오빠가 보여준 행동은 그게 아니잖아요? 뭐 셋을 모두 다 품고 말겠다 이거에요 뭐에요? 당시 그때가 아마 중1 때였죠? 와, 기억난다. 새록새록 산뜻하고 막 설레던 기분. 딱 꽃 피던 계절의 여왕 5월 쯤이었을 거에요, 그쵸? 어떻게 잊어요, 그 첫 만남을. 오빠 그런데 그 토성과 UFO 자수가 그려진 가방은 우리 셋 가운데 누굴 줄려고 가져왔던 거예요? 설마... 전가요? 어머나! 어쩜 이럴 수가. 저도 눈치채고 있었답니다. 호호호. 그런데 왜 그냥 다시 가지고 가버리셨어요? 통 속마음을 알 수가 없는 오빠야. 음흉해가지고 말야. 그런데 오빠는 왜 도시로 가시질 않고 여기 남으신 거에요? 혹시 무명 작가라서? 푸하하하하하. 미안해요. 놀리는 거도 비웃는 것도 아니랍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아름답게 성장한 우리가 처녀인가는 몰라도 우리도 하나 고백할 게 있어요. 우리 셋이서 각자 빌리 오빠랑 사귄 건 아닌데 서로 각자 그 오빠를 몰래 짝사랑했다는 걸요. 우린 뭘 해도 같이 했나 봐요. 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아 있잖아요, 저 이번에 음반내요. 제가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몇 개 썼거든요. 작곡가가 직접 초연으로 선보이는 음반이죠. 걱정마세요. 잘 되면 제가 오빠 먹여 살릴 테니까요. 오빠도 형편 어렵다고 괜히 에로 비디오 각본 쓰고 막 그런 일 하지 마세요. 그리고 사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우리 셋이서 오빠도 좋아했다는 사실 그거 알아요? 하긴 오빠는 분위기를 모르는 것도 아니고 눈치가 없는 것도 아닌데... 아무튼 이상했어요. 혹시 그걸 응큼하다고 해야 하는 건가요? 어쨌거나 우리의 변치 않는 우정 때문에 오늘 이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거 아니겠어요. 그런데 오빠는 왜 제게 오늘 아무 말씀이 없으신 거죠? (늬가 계속 말하고 또 말하는데 내가 어떻게 말을 하니? 어? 안 그래? 그러고 보니 얘도 좀 상태가 안 좋은 것 같다) 옛날 같으면 언제나 젊고 아름답네 눈부시네 활짝 핀 꽃이 다 무색하겠네 그런 간지러운 말들 일색일 텐데... 오빠, 오늘, 뭔가 느낌이 이상해요.
아, 이제 알겠다. 빈센트와 피에르와 시드니 오빠가 왜 안 보이나 그게 궁금했던 모양이군요. 걱정마세요. 그분들은 열심히 가면무도회를 준비중이니까요. 오빠! 제 작업실에 가셔서 졸업 앨범 보실래요? 색다른 기분을 경험하실 수 있을 꺼에요. 우리 가서 칵테일 한잔 해요. 딱 한 잔씩만요. 잘 보이면 또 모르구요. 가서 오빠 작품 얘기 들려주세요. 그리고 오빠의 사랑 이야기도 살짝 귀뜸해주셔도 괜찮구요. 혹시 모를 사랑의 복병은 없으니까 안심하세요. 소피는 엠마누엘을 좋아하고, 엠마누엘은 시드니를, 시드니는 피에르를, 피에르는 빈센트를 사모한다는 헛소문은 잊어버리죠. 괜한 풍문에 마음 쓰실 꺼 없어요. 제가 오빠를 더없이 흠모한다는 사실만 변치 않으면 되니깐요. 호호호. 오빠의 그 애절한 눈빛은 여전하군요. 욕심쟁이!
(그런데 얘는 뭔 말이 이렇게나 많지? 바로 이런 애들이 말하기 위해 인생을 사는 그런 애들이라니까. 전화기를 잡고 살고, 누굴 만나도 말하고 듣는 척 하다가 다시 말하고. 한 얘기 또 하고 또 하고. 아마 미래의 남편은 귀에서 피가 나올지도 모를 일이야. 그런데 최근의 미스테리가 이제야 뭔가 앞뒤가 맞아가는 듯 한데? 다가올 무도회에 가서 녀석들에게 물어보면 모두 속시원히 알 수 있겠군. 휴~! 그나저나 내가 무슨 중1때 3 대 3 미팅 자리에 껴들어 깽판을 부렸다고? 난 그런 기억이 전혀 없는데... 진짜일까? 아닐까? 거짓 같은 진실일까? 이거 정말 다시 얘기해주라고 물어볼 수도 없고 미치겠구만!)」
어느새 우리는 그녀의 첼로 연습소에 도착했다. 그런데 그곳의 이름은 '가방'이 아니라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였다. 아, 또 속았다! 나는 그 음악실 안에 붙여진 무슨 증명서 같은 걸 본 후 그녀의 이름을 알게 됐다. 그녀의 이름은 미란다였다. 생전 처음 만나본 미란다였다. 그러나 확신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녀는 아까 말했듯이 진짜 칵테일 한 잔만 대접했고, 여기서 내가 그녀를 어떻게 한번 해 본다거나 그럴 분위기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마치 벌서듯이 칵테일을 마시면서 들었던 음악, 바로 그녀가 작곡했다는 첼로 음악은 아무리 들어도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이었다. 그런데 그걸 자기가 썼다고? 이런, 거짓말쟁이 같으니라고! 그렇게 나는 가면무도회에서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그녀와 헤어졌다. 소셜 네트워크에서 볼 수 있는 짤막한 GIF 파일이 무척 공감되는 순간이었다. 클럽에 들어갈 때는 세상은 아름다워 야 신난다 야호 앗싸, 클럽에서 나올 때는 이런 젠장~! 그러나 나는 혼자서 다시 뒷골목 술집을 전전할 수는 없었다. 뭔가 꺼림직하지만 언제, 어디서, 드레스 코드는 뭐다 라는 가면무도회에 초대된 것으로 만족하고 집에 가서 잠을 잤다. 감수성은 억제됐고, 기분은 꽝이었으며, 사랑의 정령과 램프의 요정은 내게 한없이 비정했다. 나는 내일 희망의 과일 나무를 심고, 내일 행복한 미래를 꿈꾸며, 내일 은밀한 욕망 그것의 실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보리라 다짐한 후 단잠에 빠져들었다. 따라서 오늘의 쾌락주의는 꿈나라에서나 기대해 볼 수 밖에!
7
시간이 다 됐다. 알람이 울렸다. 옛날에 내 핸드폰 알람은 개 짓는 소리였다. 지금은 그냥 삐삐삐삐다. 그러나 오늘은 특별한 날이다. 그래서 나는 마술 피리에 나오는 밤의 여왕의 아리아를 알람으로 울리게 설정해 놓았고, 지옥같은 내 마음에서 끓어오른다...라는 소프라노의 음성을 들으면서 침대에서 일어났고,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하는 듯한 표정으로 외출 준비를 서둘렀다. 일부러 심각했다기 보다는 나도 모르게 웃음기가 싹 가셨다고나 해야 할까, 누군가 리모콘으로 날 조종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런 쓸데없는 공상에 시간을 빼앗길 수는 없었다. 나는 목적지로 출발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가면무도회가 열리는 어느 대저택에 도착했다.
나는 아마 소규모 실내 체육관이나 세기의 권투 대결이 열렸던 MGM 특설링 같은 데서 가면무도회가 열릴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그곳은 의외의 장소였다. 왜냐하면 시드니의 형네 집과 거의 흡사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런 행사에 거의, 아니 한번도 참석해 본 적이 없어놔서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할지 살피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가는 질서랄지 어떤 일정한 규칙을 금새 파악해냈다. 여기는 3박자 음악이 생음악으로 흐른다. 도나우강─다뉴브─봄의 소리 왈츠 같은 그런 음악 말이다. 그런데 음악이 멈추지 않는다. 멈추긴 멈추는데 멈춘 후 채 0.5초를 넘기지 않고 바로 다음 음악이 연주되었다. 뭐야 여기가 클럽이야? 아닌데! 정통 고전 음악 일색이었지만 틈틈히 경음악도 나왔다. 나는 아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부쩍 외로움을 탔다. 고독했다. 점점 쓸쓸해져만 갔다. 그래서 구석지 한쪽에 앉아서 입구에서 받아 계속 쓰고 있던 가면도 벗어버리고 연거푸 샴페인과 포도주를 마셔댔다. 혀가 살짝 꼬이는 듯 했다. 기분이 알딸딸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즐거워 보였고 모두 춤 추고 노느라 정신이 없는 듯 했다. 의상도 모두 화려했고 최고급 재질로 만들어진 유명 디자이너의 제품인 것 같았다. 그리고 다들 그 꺼벙한지 고색창연한지 분간하기 어려운 가면을 쓰고 있으니 누가 친구고 누가 초면인지 하나도 알 수 없었다. 빈센트도 보이지 않았고, 피에르의 형상처럼 보이는 인간은 도저히 분간할 수 없었다. 아무나 붙잡고 가면을 벗기면 시드니는 아닐까 그런 억측마저 잠시 나를 설레게 했다. 아주 잠시, 진짜 그래볼까─내가 못할 줄 알어?─자 난장판을 벌여보자─강아지야 짓지만 말고 말 좀 해 봐라─닭이여 요정처럼 날아올라라 오로라가 살고 있는 저기 저 창공으로─오 사랑의 여신이 속삭이는 주문이 들리지 않는가 가면을 벗기라는, 가면 안에 다른 가면이 있을지 모르겠지만─산들바람아 그녀의 치마폭을 들어올려주지 않겠니 라는 치기가 발동할려다 말았다. 그리고 엠마누엘과 소피와 미란다가 혹시 저기 저 건물의 실내 그것도 제일 높은 위치에서 나를 망원경으로 주시하며 자기들끼리 히히덕거리며 즐거워할지 누가 알겠나. 언제 이런 고품격 파티에 와봤어야지 적응을 하던가 말던가 하지, 맙소사 내가 진짜 촌닭 중의 촌닭이었네! 이건 뭐 거의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재능 있는 리플리씨 따라하기였다. 그러면 누가 알랭 드롱이고 누가 애인 마르주인가? 뭐야, 그럼 난 허언증 환자? 이런, 젠장! 차라리 영화 OST를 신청하는 게 낫겄다.
지금 노을이 져 있는 나른한 파티의 현장이지만 난 왠지 지중해의 눈부신 햇살을 내리쐬며 놀라서 뒤돌아봐야만 할 것 같았다. 할일도 없고 파티에 와서 심심하다 못해 우울하고 막 눈물이 곧 쏟아질 것만 같았다. 아무래도 내가 눈치 없이 남의 집 잔치에 괜히 온듯 한 후회의 감정이 급박히 밀려왔다. 아마도 난 지금 행복과 점점 멀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이제 그만 3박자 왈츠는 때려치우고 야한 옷차림으로 신나게 춤을 추는 여성 5인조의 천사 같은 연예인이라도 등장하면 좋으련만...... 주인공은 마지막에 등장한다는데 어쩌면 파티가 다 끝나갈 무렵 딱 남자 셋 여자 셋 그 친구들이 절묘하게 느릿느릿 등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마도 그럴 가능성은 희박해 보였다. 지금 당장 여기서 새로운 친구를 사귈 수도 없고, 3박자 춤도 출 줄 모르고, 더군다나 여긴 바도 바텐더도 없다. 여기가 싸구려 술집 같았으면 아담한 홀에 있는 탁자 3개와 별도로 바가 있을 것이고, 화장실은 바와 벽이 닫을락 말락한 딱 사람 한 명 지나갈 만한 협소한 공간을 지나서 뒷편으로 가야할 것이며, 바로 이때 나른한 몸가짐을 보여주는 몽환적인 눈빛의 술집 여자는 나름대로 냉철한 이성주의자일 것 같은 어느 마음에 드는 손님이 지나가는 바로 그 순간, 그 좁은 틈에 비스듬히 고혹적으로 서서, 어디 한번 지나가보시지 날 건드리지 않고 지나가나 보자는 식으로 그 남자를 유혹할 수도 있는데.. 그럴 텐데... 그런 어설픈 기대도 불가능한 풍성하고 야심차며 그야말로 호화로운 가면무도회였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힘없이 시선은 떨구어졌다. 내 자의식은 윤색되었다. 괜히 왔다. 속았다. 꽝이다. 망했다. 슬펐다. 난 불행했다. 하나도 재밌지 않았다. 최소한 지금은. 난 빈말도 구분하지 못했고 말귀도 못알아먹었다. 난 바보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집에서 TV나 볼 껄. 새로운 단골 술집을 찾아 헤매던가 할 걸 괜히 왔어 괜히. 지금 이 기분은 망연자실함이다. 저 앞에서 기뻐하며 춤을 추고 또 추는 저 친구들은 모두 부자들일까? 아니면 예술가? 또는 변태? 애인은 있을까 없을까? 그걸 내가 왜 궁금해 하는데? 그냥 가서 확 모두 가면을 벗겨버릴까? 이제 살짝 취기도 기분 좋게 올랐는데 확 그냥 어떻게 해버릴까? 미친 척? 일명 진상, JS? 만일 그렇게 되면 난 주목받지도 못하고 살벌한 보디가드에게 실려나가면서 제대로 망신당할 것이다. 그건 안된다. 차라리 샴페인이나 더 마시자. 체념을 마시고 추억을 마시고 천재적인 영감까지 마셔버리자. 한잔 또 한잔 아예 병채로 가져다 달라고 해야겠다. 아! 외롭다. 고독하다. 내가 대체 여기에 왜 온 것일까? 이런 바보같으니라고. 그렇다고 당장 나가기도 뭐 하고, 또 마냥 친구들이나 그 불분명한 뭔가를 기다리기도 퍽 어줍잖았다. 완전 뻘쭘했다.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드라마에서는 이런 때 딱 안주머니에서 수첩과 만년필을 꺼내서 미친 듯이 막 번쩍이는 착상을 이야기로 써내려가던데, 그건 영화고 이건 현실이다. 그럼 그렇지! 내가 하는 일이 다 이런 식이다. 늘 그랬다. 항상 그랬고 언제나 그랬다. 이제야 안심이 된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안주머니를 확인해 보니 안주머니엔 특수 초합금 티타늄 소재로 된 소형 그런 위스키도 없었다. 핸드폰 전화번호부를 뒤적거려봐도 연락할 만한 친구는 없었다. 나는 외톨이였고, 나도 몰랐는데 그러고 보니 나는 최근에 단짝이 없었다. 아예 혼자 예술한다고 은거중인 거나 마찬가지였다. 이미 오래된 일이고 새삼스럽지도 않다. 그렇다고 여기서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랴 뉴스를 보랴! 아, 맞다! 나는 혹시 모르니, 나중 이걸 보면서 새로운 발상 비슷한 것이 떠오를지도 모를 일이니 이 환희의 무도회 그 찬란한 분위기를 기록으로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직 그 정도는 할 수 있다. 완전 맛이 가지는 않았다. 보통은 냉정하게 사진 딱 한 장, 인심 쓰면 두 장 정도 찍고 말 텐데 이상하게 난 지금 동영상으로 이 신비스럽고 우아하며 더없이 근사하고 무한정 세련된 이 환상적인 축제의 현장을 담고 싶어졌다. 한껏 고상하게 생생한 동영상으로 이 현장을 담고 싶었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바로 카메라를 켰다.
그런데, 어머나, 이게, 웬일이니......!
어떻게 이런 일이, 맙 - 소 - 사!
말도 안돼, 세상에나...!
동영상 속의 사람들은... 이걸 정말 믿어야 하나... 모두 투명인간이었다. 그러나 형체는 있고 또 옷을 입고 가면을 쓰고 가발을 쓰고 장갑도 꼈으니, 그 나머지 틈새로 보이는 공간만 투명이었다. 원래 그건 반투명도 아니고 불투명해서 살색이어야 하고 맨살이어야 맞는 건데, 그 건너편이 그대로 다 보였다. 그러나 다시 동영상에서 시선을 떼어 육안으로 직접 보면 모두 정상이었다. 이게 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이란 말인가! 오, 이럴 수가, 세상에나!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지는 않았지만 조금 슬퍼졌다. 약간 음울했고 혹시 나도 투명인간인 건 아닌지 살짝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요컨대 단 하나의 극명한 감정은 역시, 공포였다. 순수한 공포심!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다른 대안은 없었다. 나는 좀비로 변하기는 싫었던 것이다. 나는 그 즉시 뛰쳐나갔고 우리 집까지 도망갔다. 그리고 집에서 곧바로 이불을 뒤집어쓰고 내리 이틀을 잤다. 무슨 꿈을 꾸긴 꿨는데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악몽이었을 것이다. 그 후 나는 그렇게 얼이 반쯤 빠진 채 당분간 지내게 되었다. 마치 나사가 몇 개 빠진 듯이 나는 진짜 바보가 된 것이다. 나는 머리에 꽃을 꼿았다. 하루는 새빨간 장미를 하루는 노란 프리지아를, 바람 부는 날엔 선홍색 카네이션을 자못 정서적이고 지나치게 감성적일 때는 연분홍 라넌큘러스를.
룰루랄라랄라라~ 룰루랄라랄라라~ 룰루랄라랄라라~
8
어느 날 아침 눈을 떴을 때 나는 혼자라는 사실을 실감했다. 더불어 난 바보라는 진단 역시 절감했다. 흔히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이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고양이가 자기 가슴 위에 앉아서 주인님을 빤히, 뾰루뚱하게 쳐다보는 그 즐거움에 녀석과 함께 산다고도 하는데 나도 한번 그 기분을 느껴 보고 싶었다. 그런데 그러면 고양이 사료도 사야 하고, 집안 청소를 1번 할 걸 2번 3번 해야 한다. 고양이 오줌 냄새도 날 테고 아무래도 그건 힘들 것 같다. 그냥 인터넷 동영상으로 살짝 구경하고 말아야겠다. 그러나 아침에 딱 눈을 떴을 때 고양이가 주인님을 애타게 기다리다가 시선을 맞추는 그 기분이 도대체 어느 만큼 아늑할지는 무척이나 궁금하고 또 한번 겪어보고 싶기는 하다. 이건 뭘까? 뭐긴 뭔가, 그녀를 어떻게 한번 해 봐서 내 욕심만 채우고 책임은 지지 않겠다는 어떤 바람둥이의 철학과도 닮은 무언가 그런 의식인 듯 하다. 그러고 보면 여자들도 그 수를 다 읽고서 어쩐다니 참 대단하다. 훌륭합니다. 최고라구요!
자,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돌아왔어요, 사랑이란 무엇이다 시간이. 사랑은 무엇일까요? 잠시 사랑에 대해서 살짝만 고심해 보고 넘어가는 게 좋겠다. 조수인지 상전인지 썩 불명확한 고양이님의 새침한 눈빛과 도도한 태도의 기다림이 나왔으니 말이다. 사랑. 사랑이란? 사랑은 무엇일까? 설령 사랑이 무엇인지 모를지라도 우정이면 몰라도 일단 사랑의 가능성이 싹트는 자리라면 우선 사랑은 무엇이다, 사랑은 무엇일까, 사랑이란 그러면서 인상적인 표정과 추측하는 눈빛과 뭔가 있는 듯한 몸짓을 곁들여서 막 그러면서 그 말꼬리를 사랑에 대한 몽상에게 넘겨버려도 괜찮다. 일단 거기까지만 해도 절반은 성공한거나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로맨스라면 언제나 마다하지 않는 그녀들에게 내가 아는 사랑에 대해 들려주는 것은 때로는 남정네의 의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꼭 그렇지는 않겠지만 사랑 얘기를 좋아하는 아낙네들에게는 그렇다고 살짝 거짓말을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거기서 만족해서는 곤란한 법, 그러니 명쾌한 성과를 획득하기 위해서 사랑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알아보자. 사랑은 알면 알수록 어려워지는 것만 같다. 순수한 사랑이 평범한 그것으로 변하기는 쉽다. 반면 불순한 사랑이 귀한 그것으로 바뀌기는 무척이나 어렵다. 그러나 사랑 이야기는 오히려 처음의 의도가 방탕함에 가까웠던 후자가 드라마에 더 어울린다. 하지만 이건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되는 일이다. 사랑을 하자 사랑을 학습하고 사랑을 응원하며 사랑을 찾고 사랑에 관심을 표명하며 그것을 열띤 흥분으로 지켜보는 데서 보다, '사랑은 없다' 에서 오히려 사랑 드라마의 그 애절한 꽃이 핀다니 그게 어디 말이나 되는 소린가? 그러나 실상 알고 보면 내 사랑과 타인의 사랑도 어쩌면 사랑은 교양과 편견과 지식에 속하기를 결연히 거부하는 청개구리인 듯 하다. 그래서 사랑을 아끼고 키우고 선별하고 기다리고 궁금해 하며 자주 담론하는 쪽보다 오히려, 그냥 생각없이 어떤 종류의 사랑을 퍼트리는 어떻게 보면 사랑에 무관심하지만 권위자라도 된다는 듯 설을 풀고 씨를 뿌리는 농부와 꿀벌과 나비의 사랑이 차라리 더 쉽다. 그 무언가 훨씬 간편하며 어쩜 혼자 속편한 그런 이치 때문에 세상에서 말하는 사랑은 진공청소기와 커피포트를 구분하는 데 퍽 혼선을 일으키게 만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따라서 어른들은 모두 거짓말쟁이로 보이고, 흔히 말하는 사랑은 무엇이다─사랑은 어떻다─사랑은 아릅답다는 둥 어쩐다는 둥 그거 다 거짓말 같다. 진짜 그렇다. 그래서 누가 그 거짓말을 멋지게 하느냐가 중요하고, 어떻게 사랑을 능청스럽게 감동적으로 노래할 수 있느냐에 그것의 크기와 인기와 가치와 의미가 어느 만큼 걸려있지 않을까? 걸려있지 않다. 걸려있지 않다고. 사랑이 무슨 옷걸이도 아니고. 다시 말하자면 그건 그때그때 다르다. 사랑을 한 번도 말하지 않는 남자와 사랑을 시도 때도 없이 말하는 여자가 만나서 그리는 사랑은 일반적인 사랑이다. 그리고 사랑을 입에 달고 사는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만드는 그런 사랑은 어떻게 생각하면 머리 아프다. 누구 나오는 영화가 퍼뜩 떠오르면 오~ 아니면 아아~! 또 사랑을 입에 달고 사는 남자와 사랑은 없다 라는 여자가 함께 하는 사랑은 한숨이 나올 수도 있다. 자, 그러면 남은 건 뭔가? 뭐긴 뭔가, 사랑에 대하여 별 생각이 없는 건지 많은 건지 그 속을 도무지 알 수 없는 사랑만 남는다. 즉 두 당사자가 모두 사랑합시다 라는 목적으로 만나서 아무도 사랑이 어떻고 사랑이 어쩐다고 절대 말하지 않는 것. 뭐 눈빛만으로 모든 것을 말한다고? 그럴 수도! 그러나 그것도 둘 중 하나다. 몰래한 사랑과 풋사랑으로. 허구와 노래에서 영원히 반복적으로 다루어 모두를 귀찮게 하는 바로 그것. 그것은 그 어느 예술에서도 통용되고 일일 연속극에서도 일상에서도 우리네 삶과 시시때때로 함께 하는 것이다. 이게 다 사랑의 모호함 때문에 발생하는 일인 듯 하다. 사랑한다 라는 말처럼 애매한 건 실상 그리 많지 않다는 걸 살다 보면 알게 된다. 그런데 거기에 얹어서 사랑의 표현이랄까 그 기표 역시 그만큼이나 드넓다. 진짜 0부터 가짜 100단까지. 그러므로 골치 아픈 세상 사랑을 잘 모르겠다면 '사랑한다' 이 말은 '좋아한다'로 치환하자. 그렇게 바꿔서 이해하자. 다만 그래도 뭐랄까 은연중(?) 착찹한 문제는 남는다는 점이 마음에 걸린다. 꽃다발도 좋아하고, 들장미도 좋아하고, 컨버터블도 좋아하고, 영화배우들은 모두 멋져보이고 도톰한 목소리를 타고난 그 남자의 나직한 속삭임은 뭇여성들을 설레고도 떨리게 만들며, 뭐야 글도 있고 음악도 있고 팔방미인도 흔하네? 이런, 젠장!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구만. 우선 나부터도 내가 나를 못 믿겠으니까. 그러고서 무슨 그 어느 말에는 뭐 그렇게나 하나 같이 꺼뻑~? 오, 저런! 아 나 이거 참나 진짜 세상사 복잡하구먼 그래. 이처럼 사랑 하나만 갖고도 수싸움 치밀한데 누가 그러시네. 사랑 받고 사회 더. 질 수야 없지, 사랑 받고 사회 받고 돈까지! 뭐야 경제도 아니고 돈? 오 세상에나, 저런 쯧쯧쯧! 정말 저이는 뭘 들고 있길래... 저 인간 대체 뭔 (삐)배짱이야 허영심이야 허풍이야? 이 놈의 세상은 도대체 왜 내 패를 깔 수도 게임에서 빠지지도 못하게 하는지 통 그 속셈을 모르겠구먼. 에라 나는야 마권업자도 싫고 게임의 법칙을 새로 쓰던가 해야 겠네. 그래서 탄생한 게 바로 새로운 인생, 신상품, 신작, 뉴 페이스란 거! 그렇지만 끊임없는 새로움을 반기다가 피곤하면 쉬고, 놀땐 놀고 일할 때도 놀고 인생을 즐기면 그뿐! 그러니 사랑 사랑 얼씨구나 사랑아 내 사랑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나 역시도 그처럼 말할 수 없다면 그러지 않아도 된다. 꽃과 새에게 다정하게 손짓을 하고 나무에게 상냥히 말을 걸겠다, 나는 그냥 귀에서 피가 날 테다? OK! 왜 안되겠나. 멀어져간 어떤 희생과 이상스런 모순과 부조리와 옛사랑을 기억하고 청춘을 회상하며, 지금의 사랑과 다가올 그분을 기다리면 된다. 그대 역시 주변을 보거나 뒤를 돌아보더라도 분명 어둡고 괴롭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인간의 심리 기제 그 특성상 유독 아픈 기억이 선명해서 그렇지>, 즐거운 우정과 아름다운 사랑과 행복한 시간도 많았을 것이고, 누구에게나 우정과 사랑은 기쁜 시간이 훨씬 많다 그런데 난 왜 그렇게나...... 낯 뜨겁고 닭살 돋아서 또는 잘 떠오르지 않아서 말을 줄이지만 나만 해도 미안하다는 말을 하거나 듣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잘 행하지도 않았고 그게 편했다, 길을 걷다 개미를 밟지 않기 위해 발을 헛디든 일도 있을 것이고, 친구의 단절된 연애에 대해서 좋았던 시절을 떠올려보라며 다독여주고 괴로울 때 지난 추억이 위로가 되며, 두고두고 종종 옛날 어느 못된 녀석을 떠올리며 저주를 퍼붓는 비합리적 행동을 쉽지는 않겠지만 이성적으로 제어하기를 원할 것이고, 크게는 지구와의 유대가 튼튼했을 것이며, 어디서 어떻게든 돈독한 역사가 유구했을 것이고, 그것을 탄탄한 기반으로 하여 다음 인생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SF 장르가 있다는 것은 초현실주의도 있고 환상 머신도 있다는 말도 된다. 당신의 선망이 가까우면 소풍이고 드물면 잔치며, 보고 듣고 뭔가를 즐기는 작은 기쁨은 우리네 삶과 항상 함께 한다. 언제나 살면서 멀리 있을지 지금 함께 할지 모르는 푸르른 희망을 부르고 사랑을 꿈꾸자? 라~고 말하는 게 사랑 사랑 사랑은 말이야 라고 열변조로 수다를 나누고 사랑을 노래하고 다시 사랑에 대해서 말하는 것보다 어쩌면 더 쉬울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온갖 가설과 추정과 경험에 비추어 예측과 조심스런 예단까지 해봤지만 사랑이란... 음 한마디로 어려운 문제다. 아무리 봐도 난 사랑을 잘 모르는 것 같다. 그러니 화제만 꺼내고 귀에서 피를 흘리든가 딴청을 피우며 게임의 낙원으로든 골프장으로든 어디든 미지의 세계로 떠날 궁리를 하는 게 아마도 그나마 현명한 행동이 아닌가 라는 결론이 나온다. 물에 빠지면 입이 둥둥 뜨거나 추문을 퍼트리고 온갖 소문의 진상으로써 뭐든지 떠벌리고 다니지 않는 이상은 차라리 거대한 수다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게 어떠할런지요. 때로는 몇몇 사랑까지도 말예요.
아무래도 내가 최근에 유령을 봤고, 또 환각인지 환영인지 그런 비정상적인 일을 체험했기 때문에 내 감성이 좀 말랑말랑해진 듯 하다. 때문에 나는 행복을 예찬하고 행운을 만나기 위해 뭔가 약동하는 활기, 은밀한 사랑에 대한 막연한 기대로 부푼 야성녀의 들뜬 생기 바로 그런 생동감을 되찾아야만 할 필요가 있었다. 따라서 동네에 혹시 만연할지도 모르는 내연의 관계도를 조사하거나 나 자신이 직접 어느 갑부 이혼녀에게 두터운 신임이라도 얻든가 해야 할 텐데 내 몸은 내 의지를 거역하고 있었다. 참으로 모처럼 느껴보는 분위기다. 꽁해 있는 듯한 자세 말이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근간의 그 귀신에 홀린 듯한 경험이 영 석연치 않다. 그러나 이 일은 꿈도 아니고, 누군가 만든 작품도 아니며, TV에 나오는 연속극도 아니다. 있었던 일을 외면할 수는 있지만 없었던 일로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것은 모두 거짓이고 허구였다며 나를 다독이고 모두 허영심에서 발로된 뻥이였다면서 진실을 은폐하고 환상감을 무마할 수도 없었다. 무슨 못 믿을 꽁트 같은 허무맹랑한 코메디 단막극쯤으로 치부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설마 내가 진짜 3 대 3 미팅 자리에 불쑥 뛰어들어가서 이 미팅 무효라고 외쳤을까? 에이, 그럴 리가! 그때 그녀가 손에 쥔 그것은... 설마... 몇몇 기억이 떠오른다. 아무리 그래도 중학교 1학년생이 무슨, 대딩 1이면 또 몰라도. 뭐 삼류 대학교 1학년일 때? 이거 이거 주부들이 즐겨 시청하시는 아침 드라마라도 봐야 하는 건가, 정말 최근의 이상한 경험이 나를 못살게 굴고 있다.
그러나 나는 진짜로 아침에 방송하는 일일 드라마를 보지는 않았다. 13일의 금요일 같은 추억의 옛날 영화를 볼까 아니면 다른 할일을 찾아볼까 고민하던 찰나 나는 도시로 바람 쐬러 갔다 오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별다른 준비물은 필요치 않았다. 나는 내 애마에 올라탔고 바로 출발했다.
그런데 이곳 시골을 거의 벗어날 무렵 최근 파티에 참석했던 시드니의 형네 집과 매우 비슷하게 생긴 집을 발견했다. 그렇다고 남의 집 초인종을 무작정 눌러서 여기가 혹시 시드니의 형네 집입니까 라고 물어볼 수는 없었기 때문에 그 옆에 있는 찻집에서 바나나-망고 쥬스를 한잔 마시기 위해 그곳으로 들어갔다.
나는 찻집으로 들어갔어야 했다. 그러나 나는 찻집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왜냐하면 찻집의 창가 탁자에 앉아있는 세 남자 세 여자를 보았기 때문이다. 특히 그 중에 엠마누엘과 눈이 마주쳐버렸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나는 반가웠고, 그런 내 마음을 알리고 싶었으며, 눈빛을 교차하고 안부를 묻고 최근의 일상과 관심사와 과거의 사연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고 싶었다. 그런데 엠마누엘은 날 알아보지 못한 듯 했다. 뭐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뭐랄까 오늘 따라 유독 엠마누엘과 소피와 미란다 가운데 엠마누엘의 꽃다운 얼굴이 예뻐보였다. 그리고 그들은 아마도 꼭 3 대 3 미팅을 시작한 듯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나는 생각이 많아졌다. 가서 따끔하게 한마디 할까? 이 미팅 무효라고? 아니면 나도 이 자리에 껴주라고? 아마도 후자가 낫겠지? 아닌가? 어찌되었든 우선 인사는 나눠야 하니까 나는 카페로 들어가서 그들 곁으로 갔다. 막상 녀석들 앞에 서니 나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그래도 할말을 해야 했고, 그래서 처음 떠올렸던 대사를 내뱉었다.
「이 미팅......」
「무슨 일이시죠?」
「누구시지, 너 아는 사람이야? 카페 사장님 바꼈나? 점원...이라고 보기엔 어... 조금 음 그런데?」
나는 내 할말을 마치지 못했고, 이 친구들은 내가 아는 세 남자 세 여자가 맞는 것 같은데, 정말 그런 것 같은데 훨씬 앳되 보였다. 갓 스무살이 되었을까 아마도 그런 듯 했다. 복장도 보아 하니... 뭐야 그럼 내가 아는 그들이 아니란 말인가? 그 친구들의 젊은 시절 모습일까? 하긴 녀석들이 타임머신을 타고 왔을 리도 없고 아니겠지. 아닐 꺼야. 나는 미안하다고 하면서 그들과 헤어졌다.
그리고 바나나-망고 쥬스를 사들고 찻집을 나왔다. 그곳에서 나오자마자 나는 다시 돌아가서 내가 엠마누엘이라고 지각한 그녀에게 이와 같은 예언을 선언해주고 싶은 미미한 충동이 내게 잠시 호가하는 것을 느꼈다. 그 예언이라는 것은 이것이다. 너는 앞으로 어떤 남자에게 또 그 다음 사람에게 즉 장래 만나는 남자로부터 각각 최소 두 번 이상 이 말을 듣게 될 것이다, 넌 너 밖에 몰라! 그렇지만 나는 그녀에게 늬가 뭔데 그런 말도 안되는 예언을 하냐면서 면박을 당하거나 빈센트와 피에르와 시드니로 알고 있던 청년들에게 험한 꼴 당할 게 두려워 차마 실제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했다. 나는 이런 못쓸 못된 헛생각은 대수롭지 않게 지워버리고 다시 도시로 갈까 정처없이 여행을 갈까 라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저분들과 나는 남남인 것 같았다. 웃긴다! 아니, 웃기지도 않다.
나는 그냥 가까운 해변가로 목적지를 변경했다. 맨발로 모래사장을 걷거나 일광욕을 하던가 한가한 낚시꾼을 구경하다가 집으로 돌아가 작품 구상에 매달릴 생각이었다.
나는 푸른 해변에 도착했고, 우선 한 잔의 커피를 마시기 위해 작은 찻집에 들어갔다. 나는 창가에 앉아 카페라떼를 마시며 그동안 대체 내게 무슨 일이 발생했나를 곰곰히 돌이켜 회상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내가 기다리고 고대하고 궁금해 하던 세 남자 세 여자가 찻집으로 들어오는 것이었다. 나는 처음에 잘못 본 줄 알았다. 그러나 그들이 맞았다. 두 번째 봐도 맞았고, 세 번째 봐도 그들이 틀림없었다. 이건 망설이고 자시고 기다릴 수 없는 일이었다. 언제까지나 고분고분하며 조용조용하게 넌지시 상대의 의중을 살피며 슬쩍 마음을 떠볼 수만은 없는 일이다. 나는 무슨 차를 마실까 메뉴를 고르는 그 친구들에게 다가갔다. 그러나 나는 첫 마디도 꺼낼 수 없었다. 왜냐하면 얘네들도 세 남자 세 여자와 거의 흡사하긴 한데 훨씬 원숙해 보였기 때문이다. 뭐야 이거, 얘네들은 미래에서 온 건가? 지금 장난해? 이런, 젠장! 그럼 이건 미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라고 하면 안되겠군. 그럼 뭐라고 해야 하지? 미래에서 뭐 하러... 에잇 인사말도 헷갈렸다. 게다가 실제 그렇게 물어볼 수도 없는 일이었다. 진짜 미친놈 소리를 들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나는 내 눈썰미가 변변치 못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면 내 인지 체계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얘기였다. 그러나 나는 정상이었다. 모든 게 문제 없었다. 그런데 왜... 이게 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다. 내가 점점 헛것을 보는 낌새가 짙어져만 가는데 이거 정말 정신병원에 가봐야 한단 말인가. 정말 답답한 일이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의 경험은 누가 뭐라고 해도 진짜였다. 엄정한 실화였단 말이다. 절대 환시 현상도 아니었고, 우리 동네 이름처럼 환각도 시드니의 형이 사는 동네 이름처럼 환청도 내 고향의 이름처럼 환영도 환상도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환상적인 체험의 말미에는 이렇게 열띤 환각만 일시적으로 또 반복해서 나타나고 있었다. 하긴 그 때문에 감회가 새롭긴 했다. 그러나 나는 점점 내가 갔던 파티가 진짜였는지, 내가 만난 친구들, 빈센트와 피에르와 시드니와 또 엠마누엘과 소피와 미란다가 실재 존재했었던가를 확신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야 말았다. 혹시 이건 사실이 허구로 변질되는 지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는 마치 호언장담하고 승률 100퍼센트를 점치던 내기에서 통쾌하게 져버린 기분이 들었다. 나는 현실을 기피하고 싶어졌다. 모두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건 모두 실화였다. 이게 다 어떻게 된 일이란 말인가? 답도 없었고, 특단의 대책도 세울 수 없었다. 그 어떤 조치도 무효했고, 아무런 방법이 없었다. 혹시 내가 현실 감각을 너무 방임했던 것일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말하면 쓰러질 껄요, 같은 그런 믿을 수 없는 기적 같은 일이 내게 일어났을까. 이 때문에 나는 누군가의 비위, 비위를 맞추고 싶은 이상한 욕구가 발생하는 것을 감지하게 됐다. 그렇다. 나는 발동이 걸렸다. 딱 걸렸다. OK! 아마 누군가는 독자일 것이다. 그래야만 한다. 그래도 된다. 그럴 수 있다. 하면 된다. 그러고 싶어졌다. 이 무구하고도 심오한 환상적 경험을 꼭 글로 써야겠다고 결심했고, 그래야만 한다고 다짐했다. 그것이 불후의 신비적 환상 문학상으로 탄생하기는 힘들지라도 어렵게 완성한 삼류 소설이 자애롭게 생활비라도 벌어들이기를 바랬다. 최근 경험은 실화였고, 때문에 소설은 실재인지 허구인지 분간하기 어렵게만 만들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마지막에는 TV에 투명 피부가 개발됐다는 소식을 넣으면 될 듯 했다. 이제야 뭔가 답답하던 마음이 조금은 후련해진 듯 했다. 곧장 나는 집으로 가서 미친듯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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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느 날 가방을 하나 샀다. 토성과 UFO 자수가 멋진 가방을. 나는 그 가방이 딱히 필요하지는 않았다. 그런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