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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소설 2017. 5. 15. 23:55

   1

    나는 심심함에 직면했고, 왕성한 지적 욕망이 시들해졌다. 권태의 노예가 되기 전에 명시적인 행동을 취해야 했다. 나는 특별한 야심은 없었으나 어느 돈키호테식 모험가와 신선한 우정의 상아탑을 쌓게 되는 숙명을 피하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세상 사람들은 청춘의 시기를 너무 사전적으로만 인식하는 모범생을 닮은 습성이 없지 않아 있는 듯 하다고. 그 어떤 고충과 불행과 불미스러움과 비바람을 겪더라도 사는 동안은 청춘이다. 복권에 당첨되고 사랑을 하며 어른으로서의 자세를 잃지 않다가 인생의 황혼에 가까와 지더라도, 그래도 사는 동안은 청춘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왜, 그렇게 생각하면 바보라고 손가락질이라도 받는단 말인가. 세상살이가 어렵다고 사람들이 그 정도로 모질거나 꽉 막힌 건 아니다. 대체로 사람들은 어질다. 재밌다. 순수하다. 착하다. 그래서 나는 단어의 뜻을 사전적으로만 인식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젊은 날의 진정한 매력은 떠나는 것이다. 행동하는 것이다. 쾌락의 탐구도 지성의 추구도 좋다만 인생은 한 번이다. 일생은 오직 한 번 밖에 없다.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진리다. 따라서 나는 뭔가 행동을 취해야 한다. 그러는 게 맞는데, 그런데 나는 내 대신 인생을 즐기는 도전가들의 활약상을 인터넷으로 TV로 책으로 구경하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었다.
   나는 이렇게 앞뒤가 안 맞는 공상을 하고 있었다. 그 순간 전화가 걸려왔다. 에단에게서. 에단은 도시인이다. 에단은 파란색을 좋아한다. 에단은 촌스러운 영화를 좋아한다. 그리고 그는 간혹 이런 말을 한다. 인생은 스크루볼 코미디일까 라고. 그러나 그 다음이 없다. 딱 거기까지다. 뭔가 솔깃한 다음이 있을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다가 딱 멈춘다. 그래서 녀석이 지금껏 수많은 사랑에 실패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도 에단은 옷을 잘 입는다. 그래서일까? 녀석에게 멋있다 라고 하면 그는 겉으로 싫어한다. 지겹다 그거지. 그래도 항상 그 말을 듣고 싶어하는 듯 하다. 게다가 에단은 말도 잘한다. 어디 그 뿐이겠나. 그는 예술적 취향도 더없이 근사하다. 햐여튼 안목 하고는, 그런 말 그런 생각과 정반대되는 지점 어딘가에 두둥실 떠있는 남자다. 그런데 에단은 기분의 편차가 크다. 들쑥날쑥하다. 겸손하고 따뜻하다가도 뭣 때문인지 웬 뚱딴지 같이 자기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면서 휙 집에 가버린다. 그래도 다 어렸을 때 얘기다. 이제는 수많은 여심을 자극하고 또 자극하는 세련된 남자로 성장했다. 귀여운 자수가 있는 티셔스를 즐겨입다가 하루는 말끔한 수트를 빼입고 나타나서 사람들을 놀래켜주는 재주는 여전하다. 그런 에단이 나를 찾아왔다. 왜 왔을까, 왜 하필 나를 찾아왔을까? 그건 차차 들어보면 알게 될테지만 어쩐 일인지 얘와 딱 통화를 하고 보니 이미 저 100미터 전방에서 이쪽을 보면서 전화로 얘기하고 있었다. 얘 뭐야, 이건 뭔 긴장감이고. 혹시 이건 유행인가, 나만 몰랐나? 어쨌든 나는 에단을 데리고 근처 한적한 공원이나 조용한 카페에서 차분히 얘기할까 했는데 녀석은 싫단다. 우리 집에 들어오겠단다. 꼭 그래야 한단다. 지가 뭐 내 여자친구도 아니고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안돼 라고 딱 거절할 수도 없고.
   「스무살 초반 이전에는 인문-교양서나 소설 같은 온전히 일관된 논지로 완성된 글과 미술과 고전 음악에 대한 주입식 지식만 습득했고, 스무살 초반 이후에는 그것과 담을 쌓은 채로 살며 인터넷의 짧은 기사와 TV와 어떻게 하면 비관되게 냉소적으로만 만사를 볼 것인가 라는 원리로 사고 체계가 돌아가는 사람과 대화를 한다라... 그 대화는 기쁘고 즐겁고 재미있을 리가 없을 꺼야. 사람들 사는 방식이 절반은 그와 같아. 사는 방식은 대게 똑같지. 일하고, 퇴근하고, 놀고, 쉬고, 나는 왜 하위문화로 만족해야 하는가 라는 생각을 저분은 한 번쯤 해 본 사람일까 추측할 수도 있고. 이심전심은 나쁜 게 아니니까. 그건 좋아. 거기까지는 예쁘고 평화로워. 아름답고. 그런데 사람들 사는 방식은 유별난 거 빼고는 거의 비슷하지만, 사는 방식이 아니라 사고 방식은 천차만별이야. 눈에 보이지 않는, 어쩜 오래 만나고 사겨 봐야지만 알 수 있는 사고 방식! 말과 생각이 정확히 악성 댓글과 똑같이 일치하는 사람, 있다구. 이런 유형의 인물과 대화를 하면 툭툭 끊기고, 중간 중간 맥락 없는 뭔지 잘 이해할 수 없는 논외의 후렴구가 붙는 것 같아. 너의 논리와 나의 의사가 큰 불협 화음은 일으키지 않도록 대화를 이어가는 것이 조금은 고통스럽다고나 할까. 힘들고. 거북하고. 그냥 참고 견디는 거야. 버틸 수 밖에. 같이 보내는 시간을 대충 때운다는 느낌으로. 원래 일상의 시간이란 실제로는 하찮은 시간 보내기가 태반이야. 글로 쓰고 읽히는 것처럼 내 시간과 너의 시간과 우리의 시간이 그 하나 하나가 모두 고귀하고 소중하다, 그런 말은 꼭 거짓말처럼 보일 만큼. 인생의 커다란 범위는 시간 낭비라고. 어릴 땐 사람들은 왜 그렇게 시간 낭비를 일삼을까 라는 생각을 많이 했을 테지만 나는 앞으로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시간낭비를 해야 할까, 까지는 내다보기 어려워. 얘기가 조금 지엽적으로 흘렀는데 돌아와서, 직감이 나서지 않아도 되고 직관도 늦어도 괜찮은 것의 순위를 검토해 볼 필요가 있어. 첫째 생활 수준, 둘째 사는 방식, 셋째 사고 체계. 바꾸어 말하자면 얼마나 넉넉히 사느냐, 어떻게 지성을 추구하고 무엇을 하며 사느냐, 어떤 생각을 하고 구사하는 어휘의 총량과 층위가 어떠하며 기본적인 도덕 관념은 어떤가. 이 가운데 제일 중요한 게 사고 체계 즉 인성이란 걸 부인하는 사람은 없을 꺼야. 사적 담론이 아닌 이상은. 그런데 살면 살수록 나이가 들수록 그 셋 가운데 제일 중요한 게 첫째 곧 생활 수준이란 걸 알게 되지. 왜 그래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그러다 사람을 만날 만큼 만나고, TV를 볼 만큼 보고, 세상을 알 만큼 알고 나면 그때는 제일 중요한 것이 다시 저 셋 가운데 셋째인 사고 체계라는 걸 알게 되지. 딱 태어날 때 결정되어 평생 바뀔 수 없는 그것. 봐 봐, 예를 들어보자고. 졸부에 사이코패스, 허당은 아니지만 사고 체계는 바꿀 수 없다는 점. 가난뱅이일 때나 거부일 때나 사고 체계의 큰 변화는 없어. 내가 봤을 때는 소시오패스는 10명 가운데 적어도 1명은 되는 것 같아. 학계에서는 1인가 5퍼센트라고 하지만 새로운 용어가 필요하든 어쩌든 사이코패스는 그렇게 썩 드물지는 않아. 그래서 일반적인 사이코패스는 급이 다른 사이코패스에게 명함을 못내미는 게 맞지. 하지만 어디 그럴까, 고개 숙인 사람이 하나 있으면 어깨에 뽕 들어간 사람도 하나 있는 법. 그러나 그렇게만 본다면 것도 너무 한쪽으로만 기울어. 술꾼과 정신병자는 놔둔다 치고 10명 가운데 1명일 수도 1퍼센트가 되기도 하고 그 어떻게도 되는 나머지 개념이 어디 좀 많나? 테이커, 극단적인 이기주의자, 보수의 보수의 보수, 희대의 사기꾼, 범죄자, 황금만능주의자, 패배주의, 납득이 어려운 정치 성향의 소유자(왜냐고 묻지 말자), 방관자, 변절자, 두더쥐, 위선자, 계속 읊다가는 그러다가는 아마도 결국 악마만 남겠군 그래. 얘기가 그렇지. 그렇게 된다고. 그 다음은 혹시 이와 같지는 않을런지 궁금하군. 그처럼 당도한 곳이 어쩔 수 없이 지옥이라면 그 지옥이 재미있기를 누군가는 바라지 않을까, 정말 그런 개인적 추론의 끝을 그처럼 요점을 간추리고 싶지 않을까 라는 것. 뭐라고? 그만 하라고? 안 그래도 나도 그럴려고 했다네.
   있잖아. 그런데 말이야 세월이 지나서 한 여자가 여성잡지1에서 여성잡지2로 완전히 넘어가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는 일이 있지. 아닐 꺼야 그럴 꺼야 좋았던 시절을 떠올리고, 추억을 회상하며 신뢰를 잃지 않고, 말은 하지 않지만 그이를 사랑한다, 하지만 갑자기는 아니지만 여성잡지2의 잠재적 독자층이 되니까 알게 돼. 마침내. 내 사랑이 바로 내가 여성잡지1을 정기 구독하고 있을 때 제일 기피하던 남자였다는 끔찍하고 발설하기 두려운 사실을. 후루룩 쩝쩝, 싸이코패스, 수준은 아아, 능력은 그만그만, 치마만 둘렀다 하면 응응응. 처음부터 백마 탄 왕자님을 바라지는 않았을 테야. 그녀는 착하니까. 일관된 애정이면 그런대로 만족했다고. 그런데 아니겠지 아니겠지 했는데 딱 지금에 와서 보니 정확히 그 스타일이라니, 맙소사! 가장 전형적인 그 유형이라니, 세상에 이 일을 어쩌면 좋니! 그런데 그 사랑의 시작도 딱 두 가지로 나뉘어. 첫째, 여자가 먼저 꼬리치며 유혹한다는 점. 둘째, 남자가 날이면 날마다 쫓아다니며 구애하고 귀찮게 하며 착각하게 만들고 최면을 걸다 급기야 세뇌시키다 결혼에 골인. 첫번째는 흔한 특징이니까 넘어가고 문제는 둘째야. 그녀가 바라고 원한 것은 어떤 이상적인 남자가 아니라 끈질긴 연모, 형식적일지라도 난 혹시 전생에 공주가 아니었을까 라는 몽환적 공상에 빠지게 만드는 의전, 사랑의 드라마틱함과 영화로운 연애 감정보다 공식적으로 존중받는 느낌이 전부였으니까. 하루에 몇 번 전화하고, 날마다 집 앞에서 기다리고, 퇴근하면 난 귀찮고 싫은데 저만치 저 남자가 보이면 옆에서는 수근거리는 동료들의 성화가, 그녀는 그냥 꽃 들고 쫓아다니는 남자라면 당시 멋졌던 그이나 지금 못말리는 이 인간이 꼭 아니었을지라도 그녀는 그 누군가에게라도 넘어갔을 꺼야. 꺼뻑~ 잠시 조금은 황홀하게. 아, 내가 말이 길었지? 원래 다른 사람을 만나서 이런 저런 얘기를 늘어놓을려고 했는데 다 바쁘대. 전화를 안 받거나. 그래서 뭐 어쩌겠니. 털어는 놔야겠고. 이렇게 된 거야.」
   「우리 에단이 말을 참 많이 하고 싶었던 것이로구나. 아 이거 봐 이거 봐, 귀에서 피가 날...려다가 그냥 간지러운 거였네. 음. 일부러 코피를 낼 수도 없고, 아 것 참 난감하구만 그래. 잡은 물고기에게 먹이는 주지 않는다는 논고, 들어도 들어도 뭐 새롭네. 그래. 그런데. 너! 차였니? 어? 또? 아 이 친구 이거 이거 정말 못말리겠구먼. 너 일부러 그렇게 콧대 높은 여자만 쫓아다니고, 막 함부로 대하고 차이고, 설마 그거 즐기는 거 아니냐? 정말 그런 것 같은데. 아 증말 여기 또 있었구먼. 이건 루저 마인드가 아니라 뭐지? 유명한 연애술사를 찾아가서 상담할 것이지 왜 날 찾아와서, 아 진짜 답답허다. 사랑이 뭐라고!」
   에단은 역시 변함없이 못 말리는 친구였다.
   나는 에단에게 선물을 안겨주면서 우리 집에서 내쫓았다. 실은 잘 구슬려서 그녀가 누구인지는 몰라도 다시 찾아가보라고 참 어렵게 다독인 다음 돌려보낸 것이다. 선물도 많이 줬다. 부드러운 송아지 가죽으로 만든 지갑, 휴양지의 모든 향을 품은 향수, 코뿔소 그림이 그려진 파란색 야구 모자, <엄마는 어쩌면 그렇게>라는 제목의 책 한권, 나는 에단이 모두 거절할 줄 알았다. 그런데 딱 그 반대였다. 아마 녀석이 하도 비련을 많이 겪어서 이상해진 것일까? 내가 다 무안했다. 그러나 준 걸 다시 뺐을 수는 없었다. 내가 다시는 너한테 뭐 주나 봐라 하면서 나는 녀석의 등을 떠밀어 도시로 보내버렸다.
   하루가 참 힘들게 시작되었다. 난 왠지 놀림감이 된 듯한 기분 때문에 적잖이 꿀꿀해졌다. 직사광선에 잘 말린 새하얀 셔츠가 아닌 그늘에 대충 말린 속옷의 눅눅한 향취가 나를 꼭꼭 결박해버린 것만 같았다. 콕콕 숨겨져 있던 보석 같은 내 꿈과 희망을 에단이 모두 가져가버린 듯 했다. 저 파란 나라로. 그래서 내 꼼꼼함과 깐깐함과 탐미적인 신념과 신비로운 세상에 대한 동경심은 흔적없이 사라져버렸다. 현실은 내게 염치없었고, 나는 일상에게 야속함을 느꼈다.


   2

   하루가 시작됐다. 오늘은 오늘의 태양이 떠올랐다. 어느 날 갑자기 해가 사라졌다? 그런 일은 없다. 또 나는 초딩이 아니다. 게다가 내가 미래의 환상가가 아니란 것도 지당한 사실이다. 나는 집에서 모차르트의 실내악을 들으며 찰스 디킨스의 에드윈 드루드의 미스테리를 읽고 있었다. 조금 그랬다. 그래, 솔직히 말해서 재미없었다. 다른 차원의 격식은 느껴졌지만 좀 그랬단 말이다. 추리 작가 협회가 뽑은 뭐라고 하는 예찬의 소개 글은 심하게 과장법이 적용된 듯 했다. 나는 집에서 혼자 노는지 일하는지 잘 분간이 되지 않는 생활에 염증이 느껴졌다. 내 삶이 어딘가 궁색해 보였다. 때문에 나는 친구네 사무실에 놀러가기로 했다. 마침 내 노트북에는 윌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드라마도 준비되어 있었고, 최근 급속도로 친해진 친구의 이름도 윌이었다. 그게 끝이겠나, 나는 식품점에서 윌이라는 이름의 요구르트도 사 먹었다. 예언 분야를 떠난지 오래되었지만 여차하면 다시 예언을 남발할 준비는 항상 갖춰져 있었다.
   나는 윌의 사무실에 도착했다. 나는 윌의 사무실이 예술가의 아늑한 공간일 거라고 예상했다. 그래서 말이 통하는 비비안과 내게 너무나도 호의적인 카르멘을 그날 새로 사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어리석은 환상을 조금은 품고 있었다는 것을 지금 고백한다. 그러나 그 장밋빛 기대는 여지없이 깨졌다. 윌의 사무실은 사람들이 많았고, 다들 고된 업무에 시달리느라 안색이 장난 아니었다. 두 명 중 한 명은 다크서클 아니면 꾸질꾸질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윌의 사무실에서는 잡담도 삼가는 분위기였다. 하긴 그분들은 일할 때 일하고 놀 땐 노는 분들이고, 나는 일할 때도 놀고 놀 때도 노는 놈이니까 당연한 거다. 그래서 나는 혼자 적당히 놀다가 나갈 생각이었다. 그렇게 혼자 노트북을 켜서 인터넷으로 책을 구경하다가 괜찮을 책을 하나 발견했다. 딱 그것만 주문하고 집으로 돌아갈려고 했다. 그러다 바로 그 순간 윌이 내 어깨를 짚으면서 마치 거짓말처럼 내가 주문할려고 했던 책을 내게 건네는 것이었다.
   「자, 한번 읽어봐 친구. 그 대신 읽고 다음에 줄께, 라는 말은 하지 말아줘. 그건 너무 슬퍼. 긴 말 하지 않아도 알겠지?」
   차가운 녀석. 하지만 눈치 빠르고 정이 많은 놈. 그 책의 제목은 '몇 년 20대 트렌드 리포트'였다. 내가 어떻게 느꼈을까? 그렇다! 기쁘고 희망찬 내일과 신비한 예감으로도 모자라서 유쾌한 사랑과 로맨틱한 떨림까지 감지했다. 더불어 어떤 막연한 성적 긴장감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지적 쾌감까지 날 마구 흥분시켰다. 그걸로 그치지 않았다. 그럴 리가 있나. 이 가슴 뭉클한 경탄 때문에 나는 젊어지는 묘약을 손에 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나는 선물 받은 책을 들고서 종종거리며 집에 돌아왔다. 손을 씻고, 차분하게 숨을 가다듬고 마음을 가라앉힌 후 책을 펼쳤다. 그러나 별 내용은 없었다. 20대의 가슴 뛰는 정열과 사랑을 총망라한 교양 서적인 줄 알았는데 그건 그냥 20가지 쇼핑 리스트에 지나지 않는 듯 했다. 20대의 긍정적인 에너지와 20대의 건강한 꿈을 알게 되면 당신도 지금 당장 이상의 날개를 펼칠 수 있을 것이다? 결과는 천만에요-였다. 이런, 젠장! 좋다 말았다. 그럼 그렇지. 괜한 기대였다. 헛된 몽상이었다. 몹쓸 바램이었고, 실망스러운 낙담이었다. 이건 마치 내가 설마 이런 뻔하디뻔한 성과를 절실히 원하기라도 했다는 듯이 어이없는 실소를 불러왔다. 역시 여론의 등쌀은 나와 먼 나라 얘기였고,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는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얘기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이 못마땅한 분위기를 뒤바꾸고 싶었는데 딱히 별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뾰족한 방법을 찾지 못한 채로 그날 하루를 뒤로 하고 꿈나라로 떠났다.


   3

   다음 날이 되었다. 내가 전날 무슨 꿈을 꾸었고, 아침에 어떻게 움직이고 무엇을 먹고 어디를 갔는지를 모두 밝힐 수는 없다. 그건 소설이 아니다. 블로그 포스트도 소셜 네트워크도 아니다. 아, 그건 소셜 네트워크와 가장 잘 어울릴 수도 있지만 다시 생각하면 꼭 그렇지는 않다. 왜냐하면 소셜 네트워크에는 멋지고 기쁘고 색다른 것 반틈에 다른 사람들이 올린 내용에 대한 내 의견이 반틈일 것이기 때문이다. 일상은 주로 이런 걸 일상이라고 한다. 쇠수세미, 박스테이프, 티 있는 선그라스, 식료품이 담긴 비닐봉지나 종이봉투, 미용, 빨래, 통장 잔고, 교육비, 카드값, 잔소리, 육아, 세탁, 청소와 세차와 쇼핑과 집안 사정, 일주일에 몇 번 운동하고 하루에 손거울을 몇 번 보고 면도는 하는지 안 하는지 그런 게 일상이다. 일상은 청소처럼 해야 할 일이 주를 이룬다. 재미없다. 지루하고 따분하다. 그러나 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게 일상이다. 그래서 일부 어른들은 한사코 철들기를 거부하신다. 그래서 극사실주의는 그냥 애들 시간표와 그것의 실천과 실패 같은 것일 수도 있다. 현대인의 일상은 아마도 다큐멘터리와 닮은 TV 예능 프로그램과 가장 흡사할 것이다. 때문에 나는 내 사생활을 구구절절 세세히 밝히지 않고 제일 중요한 사항만 추려서 알리고자 한다.
   나는 내 피앙세와 연락이 되지 않았다. 죽 연락이 되다가 오늘만 연락이 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아울러 그녀를 피앙세라 불러도 괜찮은지 언제부터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는지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기구한 운명 만큼이나 그 사랑은 황금빛이요 세상은 화사한 분홍빛이라고 믿었다. 나는 피앙세와 많은 대화를 나눠 보지는 못했다. 그러나 나는 그녀를 속속들이 알고 있다. 왜냐하면 그녀는 내 손바닥 안에 있으니까. 그리고 그런 원리로 모든 여자들의 마음 또한 나는 정밀히 꿰차고 있다. 흥행 참패한 영화감독이나 삼류 희곡 작가는 모르긴 몰라도 날 만나면 그분의 인생은 나를 만나기 전과 만난 다음으로 나뉠 것이다. 예언이다. 아니다. 예언은 아니다. 추측이다. 다만 그분들이 진짜 만나자고 찾아온다면 그건 그때 가서 두고 볼 일이다.
   여기까지는 기분 전환이고, 촌극이자 달콤한 분위기를 달구기 위한 잔꾀였다. 이제부터는 생각이 아닌 행동이고, 느낌이 아닌 성과, 허구가 아닌 실화가 펼쳐질 것이다. 그래야 한다. 그럴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아침부터 나는 낸시의 전화를 피하다가 피하다가 끝내 못 참고, 어쩔 수 없이 그녀와 다정한 통화를 나누었기 때문이다. 낸시는 수다쟁이니까. 그녀는 말이 많다.
   낸시는 윌의 여자친구다. 그런데 윌은 그녀를 여자친구로 알고 있는데, 낸시는 그럴 의사가 전혀 없다는 게 문제였다. 그리고 낸시는 여배우 지망생이었다. 윌은 나에게 그녀의 헛바람을 빼주고, 자기를 과대 포장해서 그녀를 잘 설득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순진하게 윌의 애절한 요청에 나는 순순히 화답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낸시에게 지금 연예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PD를 소개시켜 줄 수도 있다고 큰소리를 뻥뻥 쳐 놨기 때문이다. 하긴 낸시도 애가 너무 착했다. 뻔한 거짓말도 그냥 곧이곧대로 다 믿어버렸다. 곧 그 뭔가는 내 잘못이라고만 할 수 없었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지금 이 마당에 내가 낸시에게 이렇게 얘기해 줄 수는 없었다. 윌은 누가 뭐래도 최고의 남자다, 두통-치통-생리통-복통은 물론 숙취마저 비켜간 신체 건강한 남성이다, 무엇보다 그는 지적 호기심이 특출나다, 그리고 그는 너를 그 누구보다 사랑한다 라고.
   그래서 나는 낸시가 잃어버린 강아지를 시골 외곽에서 겨우겨우 찾아주었고, 사리에 맞지도 않게 멋진 영화배우를 한명 소개시켜준다고 했다. 내게 이상한 습관이 생긴 듯 했다. 그러나 그녀가 재촉하면 차일피일 미루기만 할 생각은 없었다. 나도 아는 삼류 배우가 있었던 것이다. 나는 뭐니 뭐니 해도 그들이 꿈꾸는 미완의 사랑, 그 애정의 줄다리기에서 빠지고 싶었다. 가뜩이나 재미난 일도 없고 심심한데, 더군다나 똑똑한 체 했는데 진짜 똑똑해졌다는 그런 황당한 일은 꿈도 꿀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홍당무도 꿈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윌을 위해서, 어디까지나 윌을 위해서 낸시의 마음을 돌리고야 말겠다는 생각을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남의 일에 정도가 지나치게 나선다는 뜻의 단어가 착~하고 떠오르지 않는다만, 나는 이미 이 일에 맹목적인 사명감을 덧씌우고 있었다. 벌써 그것은 내가 꼭 성사시켜야만 하는 존엄한 목표가 되었고, 때문에 나는 그녀 낸시를 쫓아다녀야만 했다. 사랑의 장르가 딱히 뭐라고 내 입으로 말하기 곤란한 바로 쫄랑쫄랑 쫓아다니는 사랑, 그녀의 시야에서 멀어지지 않는 사랑, 그녀가 고개를 돌리면 언제나 그이가 날 지켜보는 사랑을 누구도 아닌 바로 내가 대신 해야 하는 운명에 처하고 말았다. 따라서 나는 이제 큐피트의 화살을 몰래 어떻게 한다는 근사한 명화 속 행태가 아닌 직접 인간의 사랑에 개입하고, 도와주고, 조언하는 그런 이상한 마성을 간직한 사랑의 마법사가 되어야만 하는 처지에 직면하고 말았다.


   4

   내가 파악한 낸시는 평범한 여자였다. 낸시 뿐만이 아니라 원래 여자는 평범하다. 척 보면 안다. 열 여자 마다하는 남자는 없다? 쫓아다니는 남자 싫어하는 여자도 없다. 있을 수가 없다. 그러나 과연 여자가 열 남자를 마다할 텐가, 나는 그 답변은 슬며시 외면하고 싶다. 왜냐하면 나는 여자 보기를 돌맹이 쳐다보듯 하는 남자이기 때문이다. 곧 그것은 그분들 문제이지 내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때로는 무신경과 미뤄 놓기와 침묵과 딴청으로 점수를 따기도 하는 게 어른들의 세상이니까. 천국으로 오르는 계단을 그리는 데서, 가난한 사랑보다 호사로운 연정에서, 또는 그 반대로, 과분한 인기가 아닌 삼류 예술가의 직분에 만족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남자든 여자든 인기라는 것은, 인기 그것과 애착과 애호와 마술적인 힘을 견주어 가늠해 볼 수 있는 것은, 그 개념을 하나만 들라 한다면 나는 단연 돈을 꼽고 싶다. 꼭, 내가 봤을 때 돈 쓰는 즐거움보다 재미난 일은 없더라 라는 일반인의 견해는 못 들은 척 하더라도, 로맨스가 아늑하고 사랑이 멋지고 낭만이 거의 예술에 가까울려면 아무래도 돈이 든다. 필요하다. 어쩜 절실하다. 그냥 돈 하면 체신머리 없어보일지도 모르니까 다른 말로 경제력, 피해갈래야 피해갈 수 없는 요소다. 그리스-로마 신화 시대 이후로 돈, 즉 경제력은 그 누가 뭐라 하더라도 아마 거의 신적인 경지에 오른 어떤 확고부동한 개념이다. 인간에게 그리고 지구에게 공통된. 옛날 드라마식 표현으로 사랑과 야망, 촌스럽게 바꾸자면 사랑과 돈, 신식으로 말하자면 사랑과 인생. 사랑으로 경제력을 갖추기는 그건 조금 힘들다. 사랑 이야기를 음악을 비롯한 예술로 만들더라도 그 시장도 결코 녹녹치 않다. 반대로 돈으로 사랑을? 음, 아니라고 거짓말을 해버리자. 아니면 무시하든가. 그래도 된다. 그러고 싶다. 인생은 어차피 참말 반 거짓말 반이니까. 거짓말 같은 참말이나 그 반대는 떠올리지 않아도 된다. 머리 아프니까. 그러므로 이 말은 곧 사랑과 돈 역시 어느 만큼 떼려야 뗄 수 없는 애증의 관계라는 이치. 사랑은 얘기하고 경제 관념은 생략한다? 바로 그 때문에 남자들은 사랑에 관한 대화를 나누지 않는 것이다. 그 때문에. 사랑이 있는 곳에는 황금이 빠질 수 없다. 지금 세상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고 전화가 안되는 곳은 찾기 힘든 것처럼. 적어도 그것의 많고 적음 정도는 설명이 필요한 것이다. 풍요로운 호사와 멋진 사랑과 낭만적인 로맨스가 언뜻 떠올라서 황금이 튀어나왔으나 다시 화제를 돌릴 차례다. 무엇으로? 여자와 사랑과 그리고 여자는 대관절 무엇을 좋아하는가로! 어느 전문가가 나는 이 세상에서 지금 내가 하는 사랑이 가장 소중하다, 어느 비전문가가 나는 몰래한 사랑이, 어느 미소년은 나는 유치한 사랑이 제일 사랑스럽다고도 할 것이다. 하지만 남자가 무엇을 좋아하는가 남자가 사랑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가 아니라 여자의 관점을 주시하자. 뭐니 뭐니 해도 여자에게 있어서 사랑은 그녀를 여신으로써 받들고 존중해 주는 것이다. 그것이 인기고, 그것이 명성이고, 그것이 사랑이다. 기가 막힐 정도의 환희를 안겨 주는 사랑, 그것을 살짝만 바꾸면 글로 옮기기에는 좀 멋쩍지만 그래도 살며시 언급하고 넘어가자면 바로 여자를 다루는 기술이 된다. 쉿! 그러나 남용하지는 말자. 쉽게 농으로 아무 데나 발설하지도 말고.
   낸시에 대한 모든 분석은 끝났다. 시작과 동시에 끝났다. 척 하면 척이니까. 게임은 거의 끝난 거나 진배없다. 득의만면한 웃음이 대두되었다. 너털웃음과 가짜웃음이 번갈아 다가올 사랑의 축배를 성원하고 있었다. 으하하하하하하. 으하하하하하하!


   5

   어쨌든 나는 낸시를 쫓아다니기로 했다. 여자들이 최고로 첫날밤을 보내고 싶은 장소가 어디다더라 라는 카더라-식 말장난에 익숙한 아저씨들의 눈높이에 맞추자면, 사랑 가운데 최고의 사랑은 뭐니 뭐니 해도 쫓아다니는 사랑이다. 그것을 조금 고급스럽게 바꾼다면 인생을 거는 사랑쯤 되겠다. 그런데 잠깐, 그런 사랑 해 봤냐고? 누구, 저요? 아니 아니 아니, 아직이다. 난 하필 그 방식의 사랑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다. 사랑을 하는, 애원하고 쫓아다니고 연락하고 귀찮게 하는, 내가 먼저 다가가는 사랑의 주체가 아닌 어디까지나 사랑을 받는 객체가 내 전공이었다. 그 수많은 얘기를 다 할 수는 없고 내 경험에만 비추어 봐도 여자는 자기를 쫓아다니며 구애하는, 바로 그녀의 인기를 드높이고 그녀를 찬란한 공주님으로 떠받드는 사랑을 여자는 절대 마다하지 않는다. 웬간해서는! 그렇다고 앞뒤 안가리고, 맥락없이, 아무나, '웬간해서는'이 뭔 의미를 내포하는지를 모른 채 그냥 직진만 했다가는 쇠고랑을 찰 수도 있을 것이다. 차라리 뺨 한 대 맞는 게 나을 만한 봉변을 당하지 말란 법도 없다. 철썩 그리고 쌍코피 팍. 현실은 드라마와 다를 수 있지만. 쫓아다니는 사랑과 범죄에 해당되는 정도의 스토킹 또한 어쩌면 종이 한장 차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사랑을 시도해 보지 않고도 어떻게 그렇게 잘 아냐고? 세상을 알 만큼 알게 되면 다 알아지는 법이다. 내가 만일 여자라면, 라는 상상을 해 보면 이해가 쉽다. 내게 먼저 말을 걸어 주고, 연락해서 일 못하게 귀찮게 하고, 내 주변에 막 소문내고, 그들에게 호의를 베풀고, 학교에서 회사에서 집 앞에서 날이면 날마다 기다리며 그대를 향한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는 듯한, 그렇게 꽃을 들고 쫓아다니는 (미친) 남자가 있다면 그건 무조건 둘 중 하나일 것이다. 간단하다. 긴말 필요없다. 딱 선 하나만 그으면 된다. 눈이 높다 해도 눈썹 아래라는 지난 사랑에 대한 예의를 깡그리 무시해버리는 말은 찻집에서만. 타인의 사랑을 보듯 내 사랑을 객관적으로 대면할 용기나 의사가 있든 어쩌든 남의 말은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려버리고, 반듯한 요술 선을 하나만 그으면 된다. 그것을 인문학적 용어로 바꾸어 표현하면 기준선쯤 되겠다. 그 기준선의 아래일지라도 에 음 어 가만 있자. 그래도, 여자는, 마다하지, 않는다! 아래? 호호호! 여자는 결코 싫어할 수 없다. 싫어한다? 그건 남자다. 그래도 정도껏 적절한 예법이 있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어머나 세상에나! 기준선보다 위네? 완전 훌쩍 위네? 이건 그냥 미치는 거다. 환장하는 거다. 홀딱 반하는 거다. 꺼~뻑 쓰러지는 거다. 이게 바로 첫눈에 반하는 사랑이다. 그렇다. 외로운 꽃은 비로소 꽃다운 꽃이 되는 것이다. 정도를 낮추어 그 가장 쉽고 간단한 예는 단지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고. 아는 사이는 그렇고 모르는 사이였다면? 이름이 뭐에요! 전화번호 뭐에요! 어디 살아요! 오오, 알고 보니 별거 없다? 그래 별거 없다. 사랑이 원래 그렇다. 시시하다. 그러나 별거 없는 게 아니다. 관중과 선수, 관객과 연극 배우는 하늘과 땅 차이니까. 그러나 응원에 호응하고, 기대에 부응하며, 예감에 춤을 추고, 예측이 적중해서 우리 팀이 1등을 하고, 닥치고 공격 일명 닥공이라는 슬로건은 영원하며, 그 남자와 그 여자의 사랑이 흥미진진함을 넘어서서 완전 실생활로 보고 듣고 감동하며 웃고 슬프다가 또 다시 웃게 되는 드라마 같은 실화라면 그땐 시청자와 애독자도 그냥 돌아버리는 것이다. 완전 끝짱이다. 남자는 모른다. 여자들이 타인의 사랑 이야기에도 얼마나 열광하는지를! 여자는 모른다. 내 기준선이 그렇게나 멋졌는지를! 사랑은 없다 라는 간지러운 농을 자연스럽게 구사할 풍미나 넉넉한 풍채에 가끔은 격식 있는 단추 많이 달린 그런 옷을 입고서 사태의 어떤 동정을 살피고, 타인의 마음을 떠보고, 도전할지 관망할지 간접 경험으로 어느 아쉬움을 달래야 할지 그 이상한 망설임을 드디여 여유있게 즐길 수 있는 때가 되면 안다. 그때가 되면 비로소 알게 된다. 그 시절이 되면 안다. 무엇을? 바로 여자는 꽃 들고 쫓아다니는 사랑을 싫다고는 하지만 꼭 싫어하는 눈치는 절대 아니란 것을! 내가 오빠 이럴려고 만나? 뭐지! 단, 그러다 일찍 발목 잡히면 그 언제까지라도 꼭 사춘기 소녀처럼 요즘 누구, 와~, 누구? 와! 그래야 할 수도 있다. 거짓말 빼고, 간명하게 솔직히 말해서 절반의 귀부인들이 딱 그 계보에 속한다. 그러나 그대는 아니라고 인정하겠다. 주위를 둘러보시라. 주변에서 정말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어쩌면 흔하다. 쫓아다니는 누구에게 넘어갔던 목마를 사랑하는 숙녀는. 내 주변에도... 큭큭큭 킥킥킥! 그런데 쫓아다녀도 잘 쫓아다녀야 한다. 집요함과 끈질김의 차이를 알아야 한다. 나설 때와 물러설 때도 알아야 한다. 무엇보다 완전히 넘어왔다는 안정권에 들기 전에 수트 입은 도톰한 목소리의 기생오라비처럼 생긴 내 친구를 절대 중간에 그녀에게 선보이면 안된다는 점. 그건 여자도 마찬가지다. 그건 거의 죽 쑤어 개 주는 꼴이, 앗 정정하자면 그런 비극이 발생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사랑은 원래 쉬운 게 아니다. 사랑의 '사'자만 들어도 휘청할 정도는 되야 이제 겨우 사랑을 논할 자세가 갖추어진 것이라고 봐도 된다. 무엇보다 육체적 사랑은 인류의 섭리이자 만물의 이치다. 그러나 그 사랑을 지금 논할 계제는 아니다. 어 그런데, 내 피앙세는? 그건 뭐 그래도 천연기념물이니까 사랑이 뭔지 궁금했다고 친다. 짝사랑이 아예.. 전부였고. 안 봐도 안다. 훤하다. 앞으로 내가 사랑을 가르쳐줘야 한다. 그 반대가 될지도 모르지만.
   아, 잠깐! 그런데 피앙세가 이 일을 알면 어떡하지? 내가 어디까지나 좋은 뜻으로 총대 메고 걸어다니는 큐피트로 행동해야만 하는 숙명을 받아들이고, 낸시를 쫓아다닌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땐 어떡하지? 어떡하긴! 우리의 사랑은 변치 않는다. 그 사랑이 흔들린다? 당치도 않다. 그것은 천년의 사랑이고 끝없는 사랑이다. 타인의 사랑도 그렇고 원래 사랑이란 게 그렇다. 핑계 없는 무덤 없고, 변명 없는 호기심도, '설마'에 실망하고 좌절하는 삼각관계도 있다. 우정과 사랑을 양쪽에 꿰찰 수도, 예쁘고 착한 숙녀와 귀엽고 지적인 아가씨를 양 어깨로 한아름에 포근히 보듬는 일도 아예 없지는 않다. 장난일지라도. 사람 사는 세상에서는. 즉 나는 피앙세한테, 만화 영화처럼 한 손을 들고 손바닥을 하늘로 향해 그 위에 피앙세를 세워서 두둥실 어디라도 데려다 주고 저 하늘의 별이라도 따다 드리겠소 하며 연못으로 뛰어드는 시늉이라도 마다하지 않을 그녀에게 다 여유롭게 답변할 궁리는 세워놨다는 말이다. 바로 이렇게.
   첫째, 나는 큐피트로 환생했기 때문에 낸시와 윌을 짝지어 주는 것은 그 무엇보다 다급한 내 사명이다. 둘째, 이건 어디까지나 예술을 위해서 삼류 소설 때문에 하는 일이니까 살짝 초반 긴장감만 슬쩍 엿보고 나서, 호기심이란 풍선과 비밀이라는 솜사탕은 나오지 못하도록 판도라의 상자를 꽉꽉 잠궈놓겠다, 라고 호언장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다른 건 다 해 봤는데 이상하게 어쩌다 그건 못해 봤다는 그런 어설픈 항변이야 제쳐두고, 나도 모르게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왜 그러는지 나도 모르게 빠져들고 말았다는 뻔한 대사는 일일 드라마에 양보하고, 나는 예술 딱 그 하나만 내세우면 최소한 내 면은 세울 수 있을 것이다. 그래야 한다. 그러고 싶다. 어허, 벌써 의기소침해지다니, 저런! 아, 셋째. 이건 뭘로 봐도 허구다 메타픽션이고 포스트모던형 누보로망식 실험이자 비현실적인 초현실이니까 걱정할 꺼 하나 없다, 라고 그녀를 안심시키면 그만이다. 그리고 넷째, 휴~ 아마도 피앙세는 이 일을 모를 것이다. 그래야 한다. 그랬으면 좋겠다. 그러기를 바란다. 간구하고 기도 드린다. 그 갈망은 꼭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분명 그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확실하다. 그런데 만약 피앙세가 알게 된다, 그러면 그땐 어쩔 수 없이 최후의 수단을, 비장의 카드를 꺼내야 할 것이다. 그건 바로 쓰던 공책을 쫙 찢어서 마구 구기고, 뭉개고, 짖이기고, 뭉쳐서 물어뜯고, 침 묻혀서 방구석에 집어던지기.
   어쨌든 서두가 길었다. 어차피 낸시는 내게 넘어올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내가 그녀를 꼬셔야만 하는 절명과 이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자 하는 예우는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살짝만 언급하고 넘어가는 바이다. 뭐야? 한 악절의 마무리는 약간 조셉 콘래드 느낌이 나는데? 나만 그런가? 아무래도 헛다리 짚은 듯 하다. 에잇, 망했다!


   6

   일단 결과부터 말하자면 그녀는 넘어왔다. 딱 넘어왔다. 낸시도 어쩔 수 없는 여자였다. 그녀는 숙녀였고, 나는 오빠였다. 낸시는 날 실망시키지 않았다. 그녀는 1분에 딱 몇 번 오빠라고 했다. 나라고 그 사랑의 새소리를 저울질하겠나 어쩌겠나. 나도 똑같이 '오빠는' 화법을 구사했다. 왜냐하면 아직은 '우리는' 화술이 전면에 나설 시기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공들여서, 돈 쓰고 시간 쓰고 날이면 날마다 쫓아다녀서 어렵게 시작된 사랑이 초반에 비틀거리게 만들 수는 없는 일이다. 간혹 우리 상남자들이 착각하는 게 뭐냐면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1라운드에 들어가기도 전에 게임 시작도 전에 선언을 하는 경우가 있다. 자기는 자신 있다 어쩐다 그래서 진득하니 쫓아다니는 방법 대신에 직설적인 확실한 말로써 초반에 내 사랑을 고백하겠다는 분이 있는데 그건 둘 중 하나다. <사랑을 쑥스러워 하는 마초의 탈을 쓴 소년>이거나 <전형적인 바람둥이>. 전자는 은근함은 간지럽고, 분위기를 따지고 낭만을 추구하는 로맨티스트가 아니기 때문에 그렇다 치고, 그럼 후자는 뭐냐? 그게 간혹 궁금하신 숙녀분도 있을 것이다. 순서대로라면 정석대로라면 그 남자에게 딱 연락이 와야 하는데 전화번호 지우고, 온라인 관계를 끊고, 영원한 남남으로 등을 돌린다? 아니 왜? 나 정도 되는 여자가 어디 흔하다고? 그런 숙녀분은 쫓아다니는 전자를 만나서 '너는 절대 후자가 되어서는 아니되느니라' 라며 사랑학에 대해서 가르쳐주고, 작별은 상상도 못하다가 이별하는 방법에 대한 일언반구도 없이 전자에서 후자로 발전한 남자에게 뒤통수를 맞는 사례 실제 있다. 그런 숙녀분은 소신 있으니까 다시 전자를 만난다. 아무리 그분이 돌쇠일지라도 인생 직진이시다. 그것이다. 그런 성미를 타고난 여자는 어떻게든 기준선을 바닥까지 빡빡 내려서라도 기필코, 반드시 나를 꽃으로 떠받드는 쫓아다니는 따라다니는 벌스듯 기다리는 마당쇠를 만나야 직성이 풀린다. 그 빈도가 과연 드문가 그것에 대해서는 침묵하겠다. 어른이라면 대부분 사랑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아시니까. 그러나 엄마한테 물어보면 이런 대답도 없진 않을 것이다. 꼭 그런 성미는 타고나야 하는 게 아니라고. 곧 여자라면, 남자만 아니라면 누구에게나 잠재되어 있거나, 한 시절의 나를 이끌기도 하는 여자라면 누구에게나 공통된 여성성일 뿐이라고. 그리고 간혹 열외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여자는 쫓아다니는 거 좋아한다고 했드니 아예 그녀의 앞집으로 이사하고, 회사도 그녀가 다니는 회사에 입사하고, 같은 취미를 배우고 벌써 부케부터 준비하는 부류도 미미하게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건 드물다. 그보다는 멜로드라마 주인공이 아닌 평범한 남자를 떠올려보자. 그래, 전자를! 전자는 한마디로 말해 순정남이이고, 단골 술집에서 부르기로는 3병맨이다. 그는 아직 사랑을 모른다. 아마 내내 모를 것이다. 그것을 사랑 이야기로 볼 수 있다면, 그러니까 그는 섣부른 고백에 따른 쓰디쓴 거절을 사랑 이야기의 끝으로 보는 것이다. 바로 이때 일반인은 반반, 사랑의 귄위자는 명도박사처럼 딱 명쾌히 사랑의 시작으로 볼텐데 말이다. 나 너 좋다 어쩐다 사랑한다, 그러니 내일 답을 달라 일주일 기다리겠다? 뭐 어쩐다고? 아, 들린다. 크라이슬러와 라흐마니노프가 협였했던, 협연했나, 사랑의 슬픔이. 어지간히 반반한 미모의 여인이 해적이나 산적이나 험상궂은 상남자나 딱히 답변을 회피하고 싶은 서방님과 전설적인 사랑을 했고, 그녀는 나중 체념하고 달관의 경지에 올라 여성잡지2를 열렬히 구독하시는 귀부인의 대열에 우뚝 섰다더라, 라는 풍문은 심심치 않게 들린다. 아니 흔치 않은 게 아니라 어떻게 보자면 그게 대세다. 사랑은 미안해 하지 않는 거라네, 사랑하는 사람과는 결혼하는 게 아니라네, 사랑하기 때문에 떠나는 거라네, 그런 말들이 있으니까 이해는 된다. 즉 여자는 거의 정확히 두 부류로 나뉜다는 것이다. 기준선과 사랑과 객관성이 망부석인 분과 아닌 분으로! 하나 더. 여자는 장기전을 좋아한다는 점. 뭐도 뭐도 그리고 사랑도.
   그런데 낸시는 적당히 따라다니는 사랑에 샤르륵 넘어갈 여자는 절대 아닌 듯 했다. 게다가 D.H. 로렌스의 채털리 부인의 연인에 나오는 그 무엇을 조용조용하게 아는 남자에게도 쉽사리 마음을 주고, 못이긴 척 손을 잡히고, 잔잔하게 빈틈을 보일 것 같은 여인도 아니었다. 그녀는 뭔가 달랐다. 낸시는 화장술을 막 배워서 한창 외모에 관심이 많은 막 심심하면 손거울을 쳐다보는 상큼한 소녀이자 동시에 청순한 여대생이자, 어쩜 요염한 요부일지도 모르고, 그녀는 혹시 마귀 할멈이 아닐까 하는 궁금증도 자아내게 했다. 그러나 나는 그녀에 대해서 추측하고, 예상하며, 전망할 필요는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그녀를 아니까. 그녀는 이미 내 손바닥 안에 있으니까. 낸시의 취향을 맞추고, 그녀의 안목을 칭찬하며, 때로는 누군가에 대해서 같이 흉을 보다가 우리는 타인을 험담하는 그런 일일랑은 하지 말자며 화제를 돌릴 것-까지도 없이, 나는 그녀를 앞서 나갔다. 나는 그녀보다 적어도 반발자국 먼저 움직였다. 나는 그녀의 타임머신, 걸어다니는 타임머신으로써 1분 후의, 하루 다음의, 일주일과 일 년 후의 그녀를 모두 내다보는 예언가이자 신비주의자가 되었다. 왜냐고? 나는 그녀이기 때문에! 나는 낸시에게 노스트라다무스도 다 내가 가르쳤다고, 녀석이 동네 꼬마일 때 코흘리개였고 보기 흉했는데 아 글쎄 하나를 가르쳐주면 열을 알았다고, 막 그러면서 그런 말도 안되는 허풍을 남발했다. 그녀는 나를 귀여워했다. 그녀는 나를 좋아했다. 그녀는 나를 싫어할래야 싫어할 수가 없었다. 나는 하다하다 그녀의 뒷모습까지 칭찬했다. 나는 급기야 그녀의 즉흥적인 작은 오점까지도 편들어주었다. 그러나 나는 한순간도 잊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그녀의 마음을 윌에게로 돌리게 할 것인가를. 나는 낸시에게 의자와 승용차에 다소곳이 앉는 방법을 다시 가르쳐 줬고, 그녀는 내게 자기 친구들의 사랑 이야기를 들려줬다. 나는 그녀에게 애칭도 지어줬다. 마샤라고! 그러나 왜 마샤라고 지어줬는지는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건 알려줘서는 안될 비밀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비밀도 만들어준 것이다. 와우! 우리는 마침내 흉금을 털어놓는 사이가 되었다. 하지만 선을 넘지는 않았다. 나는 플라토닉 러브를 예찬했고, 그녀에게 아리스토텔레스가 무엇을 썼는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카리타스가 어떤 모습인지 아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그러자 그녀는 처음에 막 생각하는 척 하다가 약간 안색이 변하기 시작했다. 울긋불긋! 그러자 나는 그때를 놓치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고정하세요 부인. 그런 게 뭐 중요합니까? 아니 그렇소? 나방은 정열의 불꽃을 향해, 팔랑팔랑 랄라랄라, 나비는 화사한 꽃을 찾아 떠나면 그만이지요! 그럼요.」
   그런 말을 듣고서 웃는 그녀의 표정은, 귀여웠다. 꺄르륵! 나는 누군가를 떠올렸다. 나는 심신이 분리되는 것만 같았다. 이것이 바로 그 유체이탈일까? 그럴지도.
   앗, 깜빡했다. 결론이 너무 길었다. 아마도 적지 않은 삼류 소설 애호가들은 사랑의 도입부를 간절히 듣고 싶어 하실 텐데. 나도 모르게 그만 종작없이 수다를 늘어놓고 말았다. 이 몹쓸 욕망과 호기심과 청력까지는 아니지만. 난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닌데 어쩌고저쩌고, 그 어떤 즐거움에 내가 잠깐 홀린 듯 했다. 그분이 오셨나? 아니 왔으면 왔다고 기척이라도 할 것이지. 참으로 종잡을 수 없는 그분이군. 지금은 딴전부리고 어디로 떠나셨는지 어머머 그 존재감 퍽이나 묘연하다. 음 아무튼 사랑의 시작이라고 하면 안될 것 같고, 어떤 고즈넉하고 목가적이며 쾌청하다가 별안간 바람 불고 먹구름이 몰려오지만 비는 내리지 않았던, 그 궁금한 본격적인 첫 만남에 대해서 이제 그만 공개하는 게 도리일 것 같다.


   7

   나와 낸시는 지인 관계였다. 처음에 동네에서 오다가다 만나지는 않았지만 아마 윌 때문에 나는 낸시의 시선을 조금은 피한 듯 하다. 우리는 사랑하면 안 된다, 사랑에 빠지지 말자, 사랑은 단념해야 한다 같은 은밀한 텔레파시를 주고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잠깐, 혹시 이거 삼각 관계 뭐 그런 건가? 아니다! 결단코. 나는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 언젠가는 윌을 낸시와 맺어주어야 한다는 것을. 나는 얼리어답터가 되면 안 되고, 최초나 초대나 그런 기념비적인 역할은 도외시해야만 했다. 그래서 시작이 힘들었다. 그런데 윌은 내게 그녀의 마음을 돌려달라고 부탁만 한 후에 요즘 너무 바쁘다고 아예 만나주지도 않았다. 뭐 어쩔 수 없었다. 내가 윌이 되는 수 밖에.
   나는 여자가 따라다니는 남자를 절대 마다하지 않는다는 속설을, 꽃을 들고 쫓아다니는 남자를 결코 외면할 수 없다는 나약함을, 남자가 여자를 단 하루도 빼지 않고 집 앞에서 학교 앞에서 직장 앞에서 기다리며 공을 들이면 언젠가는 넘어오게 된다는 낭설을 모르지는 않았다. 여자란 원래 뭇남성이 자기를 따라다니기를 바랬다가, 못이긴 척 넘어가고, 마음을 흔들어 놓는 그이가 좋아져서 막 어쩔 줄 몰라하다가, 결국 나중에는 먼 훗날 '그때 그 남자는 날 사랑하지 않았다'라고 한다. 그건 공식이다. 그건 진리다. 뻔한 수순이고 정규 과정이다. 남자는 나이가 들면 힘이 밑에서 위로 올라오듯이. 잡은 물고기에게는 먹이를 주지 않듯이. 가족? 아아~!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음 남자로 치면 몽정기 같은 의미인 듯 하다. 그건 정말 공식이고, 과정인 것 같다. 여자가 뭘 모를 때는, 사랑을 알기 전에는, 특히 어릴 때는, 외로움에 사무칠 때는 여자는 웬만하면 정말 웬만하면 다 넘어간다. 웬만하면 다 넘어온다. 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 푸하하하하하! 막 뭔 말이든 뭔 글이든 쉽게 믿어버리듯이. <먼저 꼬리를 흔드느냐>, <딱 10(100)일간 쫓아다녔드니 글쎄 어떻게 됐다더라>라는 전자와 후자의 차이는 어떻게 보면 실소를 부르고, 폭소도 대동하며, 그 극명한 어떤 간극 때문에 그 어떤 신기함에 반신반의하게 된다. 웬만하면? 흐흠, 웬만하면! 정말 그런가는 두말하면 잔소리고, 후자를 좀 더 검토하자면 이렇다. 3주(3달)을 쫓아다녀서 3년 사랑하고, 세 자녀를 낳아 키우며 살다가, 먼 훗날 금혼식을 올린다? 아님 이혼한다? 사랑은 정말 착찹하기도 하고, 때로는 함구해야 하거나, 기쁜 소식이 와전될 여지도 다분하다. 큐피트란 존재는 원래 공사가 다망한가 보다. 어쩔 수 없이. 그러나 이 모두가 내 본심은 아니다. 오락일 수도 있다. 나도 최후의 보루라는 개구멍이나 쥐구멍에도 볕 들 날 있다는 희망의 과실은 꿈꾸고 살아야 하지 않겠나.
   하긴 그녀의 선망은 무엇일까 라며 궁금해 하는 호기심을 처음부터 안고 시작하는 게 어쩌면 더 즐거울 수도 있다. 도저히 예상할 수 없는 여자의 마음이 무척 기이할 수도 있을 테니까. 남자에게는. 남자에게 여자는 영원한 미스테리일 테니까. 뭐시여, 나도 남자인데!
   어쨌든 나는 낸시를 쫓아다녔다. 그런데 문제는 그녀가 내게 적지 않은 호감을 품고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우연도 한두 번이지. 그러나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나는 큐피트니까. 내가 그녀에게 구사했던 전술은 이랬다. 나는 대놓고 그녀의 집 앞에서 꽃다발을 들고 서있지 않았다. 그건 구식이다. 고리타분하다. 나는 그런 각 잡힌 상남자의 박력까지는 못 가졌다. 나는 아직 배짱의 '배'자를 겨우 뗄랑말랑 했으니까. 다시, 나는 대놓고 그녀의 집 앞에서 꽃다발을 들고 서있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녀의 구미는 시시하지 않으니까. 나는 그 무언가에 걸맞는 급 있는 사랑의 기술 정도, 그런 의전에 걸맞는 요술봉은 휘둘러야 마땅했다. 그녀는, 낸시는 그저 흔한 촌년이 아니었다. 말이 좀 그렇다만 절대 촌년을 무시하는 그런 뜻이 아니다. 그래서 내게는 고도의 전략이 필요했다. 그러므로 나는 그녀에게 이런 방법을 선보였다. 100미터 전방에서 그녀의 눈에 띄이기(너무 먼가 내가 눈대중으로 측정을 잘못한 것인지도). 골목길 모퉁이 그 직각 지점에서 딱 깜짝 마주치며 놀라기. 찻집에서 혼자 책을 읽는 그녀에게 근사한 웨이터가 실례한다면서 조심스레 접근하여 저기 저 신사분께서 전해달라고 하십니다 라며 3번 직각으로 접힌 쪽지를 전해주기. 이때 남자는 그녀와 눈이 마주쳐야 할까, 마주치지 않는 게 좋을까. 물론 그 나비 넥타이 웨이터는 내가 심혈을 기울여 고르고 또 골라서 어렵싸리 초빙한 30년 경력의 바텐더였다. 무선 조종 RC카로 시도할려다가 색다른 방법을 선택함. 그리고, 커피 주문을 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는 그녀의 바로 뒤에 섰다가 놀래켜주기. 가끔 같이 차 한잔 마시게 된다면 직설적으로 한 번쯤 물어 보기. 백허그 받아본 적 있냐고. 소셜 네트워크로 그녀 글의 조회수나 하트 뿅뿅을 늘려주기. 지나가다 눈인사할 때 팅~ 윙크 하기. 단정한 봉투에 담아서 오페라나 극장과 스포츠 경기 초대권 2매를 선물하기. 난 어쩐다 어떡하지 하면서. 그녀는 거의 100퍼센트 단짝 친구와 보러 갈 것이라고 안심하고서. 그녀의 집을 찾아가서 노크한 후 그녀가 나오면 무언의 꽃다발을 발견하게 만들고, 난 멀리서 미소 짓는 그 순간을 사진이나 영상으로 몰래 남기기. 이건 일찍 보내 주면 그녀가 조금은 무서워할지도 모르니 나중을 위해 남겨둬야겠군 그래.
   그리고 나는 천편일률적으로 그녀를 따라다니지 않았으니까 선물도 그녀에게 뭔가 좀 모자란 듯이 건네주었다. 품목은 이랬다. '버클리풍 사랑 노래' 라는 시집 하나. 소설은 존 업다이크의 달려라 토끼. 작은 색연필 세트. 꽃무늬가 살짝만 화려한 스카프. 그녀가 좋아할 만한 고전음악 CD. 라울 뒤피 명화가 그려진 그림 엽서. 타로 카드. 잘 포장한 아이스크림. 참치 통조림 등이 있었다. 돈 많이 들었다. 살다 살다 돈을 이렇게 많이 쓰고, 이처럼 공을 들여서 여자를 꼬셔 보기는 내 생애 처음 있는 일이었다. 지금까지 그럴 필요가 하나도 없었다. 아 또 어깨에 뽕이 들어갈려고 한다. 저런! 혹 내게도 허세끼가? 오, 저런! 너무 없어도 재미 없으니까 그거면 됐다. 나는 왜 남자들이 시간 쓰고 돈 쓰면서 그렇게 따라다니고 쫓아다니며 여자를 귀찮게 하는지 모르겠다. 알지만 일단은. 어쨌든 한동안 생활비 긴축 운용에 들어가야 했다. 아무래도 괜히 윌의 부탁을 들어준 거 같다. 내가 무슨 흑기사도 아니고 백기사도 아니고 말이다. 그러나 멈출 수는 없었다. 이미 어느 만큼 진행했던 노력이 아까웠다. 그래서 나는 계속 공세를 이어갔다. 그녀의 주위에서 얼쩡거리고, 친절을 베풀고, 다정함을 전했으며, 하트 뿅뿅을 눈짓으로 목선의 각도 변화로 알렸다. 충분히. 그녀가 곰이 아닌 이상 그녀의 기분은... 거의 알만 했다. 혹시 이 남자가 날 좋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닐 거야, 아닌데 아무래도 심상치 않은데 라는 짐작을 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꼼짝 못하고 넘어올 수 밖에 없었다. 낸시는 마침내 사랑의 포로가 되었다.
   드디여 낸시는 내게 넘어왔다. 그녀는 사랑에 빠졌다. 그녀 입장에서도 정말 그럴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녀로부터 사랑...을 연상시킨다거나 눈이 번쩍 뜨일 만큼 직접적인 언사를 듣는 건 원치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그녀를 윌과 맺어주어야 한다는 신념을 단 한순간도 잊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쩐지 이상하게 그녀가 내게 너무 푹 빠져버린 듯 하여 약간 걱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여자의 연기에 속으면 곤란하다. 그녀들은 연기력을 천부적으로 타고났으니까.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한다. 따라서 나는 좀 더 찬찬히 경과를 지켜보기로 했다.


   8

   오늘은 낸시와 단둘이 데이트를 하는 날이다. 나는 귀찮아서 나가기 싫었지만 그래도 나가서 그녀를 즐겁게 웃겨주기로 했다. 날씨는 어두침침했으나 선선했고 미풍은 선선했다. 우리는 에일리언이 나오는 SF영화를 볼려다가 로맨스물을 봤고, 해변가를 드라이브했으며, 괜찮은 찻집에서 차를 마셨다.
   「오빠. 남자들은 뭘 좋아해? 응, 오빠!」
   「어... 오빠가 어떻게 알려 줄까, 남자에 대해서. 어디서부터 알려 줘야 하지? 남자를, 알고 싶니? 그런 거니 낸시?」
   「응. 알려줘 오빠! 남자는 막 액션 영화나 격투기 채널이나 공 가지고 놀고 몰려다니고 막 그런 게 다야, 오빠? 진짜 그게 다야, 오빠? 어, 정말로 오빠?」
   「꼭 그런 건 아닌데, 대체로 그래. 예를 들면 액션 영화에서 별로 흥미를 찾지 못하는 남자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구. 그 남자가 멜로를 좋아할까? 어떻게 생각하니 낸시야? 그 남자가 로맨스를... 그건 아니지. 당연하지. 대신에 그 남자는 게임 같은 드라마는 좋아하겠지. 낸시야 있잖아, 한 여자와 오래 만나고 오래 사랑하고, 여건이 그만그만하면 실정에 맞게 살아갈 테지만 그런 남자는 촌구석에서 조용히 살기 싫어할 수도 있어. 도시에서 네온싸인과 음악과 춤과 기쁨과 환락에 흠뻑 젖어 인생을 즐기고 싶어한다구, 낸시. 남자는 천생 남자거든. 또 남자는 애야.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회사와 집만 왔다 갔다 하는 건 평화롭고 안온하며 아름다워 보이지만 그건 게임이 아니야. 남자는 딱 둘 중 하나야. 실재 게임하는 걸 좋아하거나, 아니면 그건 아니지만 게임과 비슷한 놀이를 좋아하거나. 낸시 자, 봐 봐! 실제로 게임을 좋아하지 않는 남자일지라도 남자는 원래 게임 같은 삶을 좋아해. 그런 법이야. 오빠가 설명해 줄께 낸시. 남자는 스포츠에 열광하고, 떠나고 먹고 마시고, 잡고 걸고 차고 뛰고, 하나만 하기 바로 그거야. 게임에서는 단계 1부터 100까지, 대마왕과 승부하는 장소까지 행진하는 동안 무수히 죽고 죽이고 싸우고 모험하고 방황하며 뭘 해도 괜찮아. 게임이니까. 무조건 부활하니까. 오늘만 날이 아니라고. 귀 기울여 봐 낸시! 어? 낸시! 보라고. 중요한 대목이야 낸시! 오빠가 차근차근 알려 줄께. 한 남자와 오래 만나는 걸 선호하는 여자에 비해 남자는 게임처럼 짧게 많은 여자를 만나기를 원하지. 다시 태어난다고 하면, 다시 이 여자와 사랑을 하고 어쩌겠는가, 대답할 땐 거짓말 탐지기가 필요할 꺼야. 실재 게임을 좋아하지 않는 남자일지라도 남자는 게임 같은 영화를 좋아해. 모험을 찾아 자꾸 떠나고, 계속 누군가와 싸우고 대결하고, 독보적으로 1인자의 자리에 오르는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을 하고, 그러나 그렇다고 작품이 완결되면 곤란하겠지. 왜냐하면 2편, 3편 계속 이어져야 하니까. 알겠지 낸시양? 반전은 1번 주요 인물은 3명 많아야 한 자리, 줄거리는 간단하게, 그러나 몰입되고 재미있고 신비롭게! 어떤 남자는 그런 영화 별로라고 생각해. 낸시는 그런 영화 싫지 않지? 음 말하지 않아도 오빠가 알아 잘 안다구. 남자는 말이야 액션 영화가 아니어도 막 얽히고 설키고, 배신하고 배반당하고, 속고 속이고, 꼬고 꼬이고,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며 지속하는 게임 같은 영화에 마음이 가게 마련이야. 남자는 난장판이 아닌가 너무 산만한 영화에 관심이 기울게 돼 있어. 일부의 남자는 그런 영화를 좋아한다네, 낸시야!
   게임이 나쁘다는 얘기가 아니야 낸시. 주제의 흐름을 놓치지 말고 하나 하나 뭐가 설명이고, 뭐가 핵심 단어고, 뭐가 그 이유인지 잘 들어보렴. 당장은 약간 헷갈릴 수 있지만 넌 누구보다 영리해. 똑똑하다구. 모두 기억해 모두. 집에 가서 살짝 흐릿한 부분만 곰곰히 떠올려 보면 아마 정리될 꺼야. 낸시. 게임을 하면 신비도 마법도 환상도 사랑마저 모두 가져다 주는데 그게 왜 나쁘겠니. 낸시. 오빠가 언제 정치가 나쁘다 어쩐다 뭐하다 라고 말하는 것 봤니? 아니잖아. 게임도 그래. 오빠도 한때 게임광이었다, 응? 낸시. 오빠가 좀 전에 말했지? 게임을 하면 어떻다 라고 말하지 않았다는 것, 알겠니? 어? 응, 낸시. 그거였잖니. 게임을 하는 남자가 아니라 첫째, 게임을 제외한 나머지가 게임과 어떻게 비슷하냐. 둘째, 게임을 좋아하지 않는 남자가 왜 게임과 매우 흡사한 작품을 좋아하는가. 그것이라고! (딱) 그거야, 낸시. 그거라고. 응? 자, 봐 봐. 낸시 봐 봐. (쉭-쉭-쉭!) 수십 년 세상을 살았는데 말은 그런다 쳐도 글에서 주격조사와 목적격조사, 보격조사 같은 기본적인 문법을 꽤 자주 혼동해서 잘못 사용한다면 살짝 이해가 더딜 수도 있어. 그렇지만 그렇더라도 한발 늦는다 뿐이지 장황설의 저의나 글의 의도는 다 가슴으로 다가올 꺼야. 오히려 말귀가 어두우면 웃음을 불러올 테고. 또 말은 안해도 뭐가 뭔지 다 안다고. 응? 이심전심! 사람이니까, 응? 낸시. 자, 이렇게 생각해 보자. 네 앞에 벽돌이 하나 있다고 말야. 일단 딱 상상해 봐. 순간적으로 뭐가 파닥 연상되거나 생각나니? 그렇지. 벽돌은 쌓아야지. 잠자는 숲 속의 미녀가 언제까지 숲 속에서 잠만 쿨쿨 자야하겠니. 그러면 그게 촌년이지 어디 공주겠니. 성을 만들려면 벽돌을 쌓아야 한다고. 하지만 그건 순진한 발상, 동화 같은 공상이지. 그럼 게임으로 봤을 때는 어떠할까? 막 8비트, 16비트 인터넷 이전 TV 시절의 컴퓨터 게임에서는 벽돌을 깼지. 공으로 벽돌을 파괴했어. 벽돌을 부셨다고 낸시. 오빠가 게임만 가지고 어떻다 라는 게 아니라, 현대화에 따라 여러 개념들의 열량과 더불어 과거에 비해 광폭적인 변화가 생기기 때문이야. 처음에 왜 벽돌이 탄생했는데? 건축을 위해서 만들었지. 그런데 벽돌을 보거나 상상하면 즉각적으로 몇몇 떠오른 기호 가운데 하필이면 파괴도 있네! 벽돌만 그런 게 아니야. 야구방망이, 야구하라고 만든 거잖니. 그외에 아무 거나 낱말만 갖다 대면 순기능 외에 역기능도 나와. 정말로 미래의 게임에서는 기상천외한 모험과 벅찬 감격, 자칫 실제 경험은 물론이요 불가능한 것 빼고는 모든 것이 가능할 수도 있을 꺼야. 그래도 일단은 쳐부수고, 물리치고, 악당을 제압해서 마을에 평화의 비둘기가 돌아오게 만들려면 얼마간 우광쾅쾅 서사가 필요한 거야. 낸시, 그거야 낸시! 그런데 낸시, 게임만 그런 게 아니야. 오빠가 설명해 줄께. 오빠, 믿지? 오빠 알지? 오빠, 오빠가 또 이런 걸 잘 알잖니? 응, 낸시! 이렇게 불규칙적인 패턴이나 자명한 원리와 감추어진 일반적인 규칙을 쉽게, 아주 쉽게 우리 낸시에게 가르쳐 줄 수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대체 몇 명이나 있을까? 아니면 없을까? 없어! 없다고. 한 명도! 오빠 빼고는 한 명도 없어.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봐! 내가 눈물 흘리고, 무릎을 꿇고, 절을 하고, 껴안고, 원하는 소원은 모조리 다 들어줄 테니까. 진짜! 정말로! 맹세할 수 있어. 오빠, 알지? 그래. 들어 보렴. 상대하고 처단하고 무찔러야 할 악당이 없는 게임, 모든 즐거움은 게임 같은 영화에서나 찾고 기쁨은 예술에서 환희는 사랑에서 수다는 뉴스에서만 찾아야 하는 천국 같은 세상이 딱 도래했네? 만약 그랬다고 상상해 봐. 그건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말자, 라~고 나는 그렇게 말할 수는 없지. 다만 그 다음 연설은 학자와 교수님 몫이겠지. 스포츠 해설자나 현직 논평가나 연예인보다는. 만화가...는 괜찮겠네. ...(휴)... 라~고 말하는 건 비전문가에서 전문가가 된지 얼마 안된 전문가의 견해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삼류 소설가니까, 따라서 음.. 나도 거기에 해당한다. 고로 나는 그만 멈춰야 한다. 하지만, 그런데 또 그게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그건 너무 액션 영화와 막 요란한 게임과 뭐한 사랑과 무책임한 방임에 가까운 행동만 선호하는 철없는 철부지로 비춰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드라마를 보면 악당이 모두 사라지면 엄한 데다 힘을 쓰거나, 그렇게 재미 없고 지루하며 따분하게 시간을 보내서 뭐하냐 어쩌냐 하면서 완전 이례적인 그동안 전혀 유례가 없었던 신선한 악당이 출현할 수도 있다. 작품에서야 당연한 이치다. 그러나 그건 또 다 반대 세력이 생기게 마련이다. 여흥, 오락 산업, 지하 경제, 흥취, 유희, 언론사와 신문과 방송 매체들의 1차 메뉴들, 예술, 사랑, 취미, 스포츠 등등 인간의 어둡거나 뭐 어떻게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있는 성향을 매끄럽게 풀 수 있는 분야들이 그 얼마나 많단 말인가. 남자들은 안다. 엄마들도 안다. 사춘기와 스무살 청춘들의 무엇을. 그 그래프의 정점은 괴물이다. 여자들이 웃기는 웃지만 그녀들은 그 그래프의 정점이 뒤늦게 온다. 그때가 되면 안다. 여자는 모른다. 여성잡지1과 여성잡지2의 차이가 얼마나 놀라운지를. ......(침묵)...... 아 잠깐. 내가 글을 쓰는 게 아니라 말을 하고 있는데 왜 이러지? 미안. 내가 요즘 좀 이래. 말을 하다가도 나도 모르게 막 글을 쓰는 것처럼 말을 하는 때가 간혹 있어. 아주 드물게. 보통 사람들은 그런 경험을 잘 모르는데 아주 드물게 개인이 아니라 타인이 그걸 발견하고 깨달을 때가 있어. 말로 먹고 사는 사람, 예를 들어 배우나 아나운서나 스포츠 해설자가 글로 먹고 사는 사람을 만나면 그 극명한 차이를 기이하게 보게 돼. 그러나 작가라 할지라도 말을 잘하는 사람들이 좀 많니? 게다가 그분들이 사적으로 평소에 말이 없을까? 말이 없다는 건 친하지 않다는 얘기와 같아. 정말 말 없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친해졌을 때 마음을 열고 친해야 진면목을 드러내지만, 오랜 관찰과 축척된 자료와 함께 하나하나의 말에 비추어진 타고난 성정과 변할 수 없는 내면세계를 알게 되면 오오 그건 그만! 작품성과 인기와 사조 같은 개념은 논외로 치고, 작가들 가운데 아주 드물게 두뇌에서 말의 영역이 글의 체계에 잠식되어 원활히 작동하는 사람도 있다는 얘기야. 말조차, 생각조차! 글처럼 말하고, 글처럼 생각하는 사람. 곧 그 극단적인 유형을 만나게 되면 그 생경한 차이에 잠깐 아찔해 한다 그거지. 나는 글처럼 생각하고 글처럼 말하는 사람의 글은 읽어. 아무리 좀 뭐하더라도. 읽을 수 있어. 또 읽고 싶어. 힘들 수도 있지만. 최소한 읽을려고 노력해. 지금 어렵다면 나중에 읽어야 한다고 다짐하지. 어렸을 때는 이런 확신이 덜 했을 테고. 그러나 그 반대, 즉 말처럼 생각하고 말처럼 말하고 말처럼 글을 쓰는 사람의 글은 안 읽어. 그러기엔 시간은 너무 소중하거든. 냉정할 땐 냉정해야 하는 게 인생이야. 글의 스타일로 들어가면 얘기가 길어져. 말만 해도 그렇잖니? TV를 봐봐, 학자와 기자의 화술이 얼마나 다르니? 그거라고! 내용은 대동소이한테 인지체계가 활성화되는 그 작동 원리가 좀 달라. 내가 월등하고 그런 글의 수준이 낮다? 그런 얘기가 아니라 뭔가 내 안에 그런 뭔가 딱히 설명하기 곤란한 그 무엇이 있나 봐. 나 같은 삼류 소설가가 뭘 알겠니? 아 뭔 얘기 하던 중이었지? 남자? 게임? 음, 남자!
   남자는 듣는 타입일 수도 읽는 타입일 수도 있어. 청자일 수도 또는 주로 화자를 선호할 수도 있고. 낸시! 이게 요점이야. 핵심이라고. 기억하렴. 그러나 남자는, 남자는 일단 한 여자를 오래 사랑하는 것보다는 최대한 많은 여자를, 최단 기간 최소의 시간 동안, 최고의 성과를 올려서, 부와 사랑과 꿈과 행복을 성취해서 인생을 즐기고 싶어해. 낸시 그게 남자야, 어? 낸시! 응? 우리 오빠는 아니다? 그건 현실이지. 꿈과 이상이 아니고. 남자의 포지셔닝을 살펴 보면 일단 이래, 못 먹어도 고! 다 가지던가 무운이던가. 낸시, 그와 비슷한 게 뭔지 아니? 뭘까? 뭐겠어, 카드 게임 같은 거. 그래 도박이지. 큰 경기들 앞두고 스포츠 뉴스에 나오잖아. 도박사들이 몇 대 몇으로 예측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수컷으로써의 태도고, 남자로 딱 변신하면 바람직한 남성으로 돌변하는 거지. 언제나 어디서나 수컷으로 살 수는 없으니까. 낸시가 공감하긴 좀 어려울 꺼야. 하지만 낸시가 여성잡지 2를 볼 때 쯤에는 아마도 지금과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 껄? 외관이 세월의 영향을 좀 받는 거 말고 별로 변한 건 없지 안겠냐고? 아니지 아니지. 낸시가 너무 순수해서 그러는데 그게 아니야. 생각이 많이, 정말 많이, 바뀌지. 어떻게 변할까, 궁금하니? 멀리서 찾을 거 뭐 있어? 엄마 있잖아! 그래, 엄마!」
   나는 일부러 내게서 정을 좀 떼라는 의미로 어쩌면 조금은 매정하게 얘기했는데 그건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왔다. 나는 더더욱 난처해졌다. 왜냐하면 낸시는 슬슬 본색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그녀는 엄청 적극적인 여자였던 것이다. 장래 누가 그녀의 왕자님이 될는지는 모르겠지만 웃음부터 나왔다. 나는 아주 진땀을 흘리고 또 흘렸다. 차라리 식은땀이 어 그래 이렇게 부럽기는 처음이었다. 아닌가? 아무튼. 대마왕한테 호되게 당하는 게임 주인공을 방불케 했다. 처음에는 그녀의 마음에 요만큼만~ 내 생각과 관여된 공간을 만들려고 했다. 그러고 싶었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고 많이 걱정하기까지 했다. 내가 원숭이라는 게 아니라 나는 어디까지나 윌을 위해서 내 한 시절을 바친다는 생각이었다. 그건 각오였다. 내 예술과도 관련된 문제였으니까. 그런데 그만 그녀는 내게 빠져버리고 말았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이 일을 어쩌면 좋단 말인가! 내게 정말 허술한 듯 보이지만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라도 있단 말인가. 나는 느닷없이 양어깨에서 악마의 뿔이 솟아나는 듯 뽕이 뽈록 튀어나온 듯 더더욱 불안해졌다. 이 일을 어떡하지... 정말 어떡하지... 어쩌면 좋을까!
   나는 지금 우정과 사랑을 동시에 경험하고 있었다. 한 명은 짜임새 있는 단촐한 규모의 고품격의, 단정하고, 때로는 파격적인, 때로는 전위적인, 보통은 평이한, 뜻밖의 반전도 좋아한다. 한 명은 게임은 못하지만 게임 같은 드라마틱한 삶을 선호하며 치열하게 사는 사람이다. 나는 그녀와 헤어진 후 집에 왔다. 그냥 집에서 잠이나 자기로 했다. 답답했던 것이다. 일이 너무 커져버렸으니까. 일단 장고에 들어가기로 했다.


   9

   나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이렇게 생각했다. 나는 윌을 만나야 한다고. 여기서 멈추지 않으면 안된다고. 그래서 나는 간단한 오전 업무를 마치고 나서 11시쯤 윌의 사무실로 갔다. 전해야 할 소식이 기쁨과는 조금 동떨어졌기 때문에 빈손으로 갈 수는 없었다. 때문에 나는 요즘 인기 있다는 추리소설을 한 권 샀다. 윌은 사무실에 있었다.
   나는 윌을 그 앞 조그만 찻집으로 불러냈다. 그리고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일이 뜻대로 되지 않더라, 사람 마음 참 심하게 흔들어 놓는 것 가운데 하나가 연애의 시작과 끝이 불분명하고 애매하며 어중간한 건데 넌 참 고생이 많다, 사람이 좋다 어쩐다 까지 말한 다음! 딱 나는 낸시가 날 조금 마음에 들어할려고 하는 것 같아, 라는 말이 막 목구멍까지 올라왔을 때였다.
   「아, 그거~? 뻥이야! 낸시랑 나는 요만할 때부터 지금까지 친구야. 어릴 때 볼 거 안볼 거 다 봤고, 단 한 번도 이성으로써 감정을 느껴 본 일이 없고. 집안끼리 친하고. 낸시의 친구가 내 친구고, 또 낸시도 내 친구들을 다 알고 모두와 친하고. 연애 전문 수필가들이 예민하게 다루기도 하고, 사람 일은 원래 모르는 법이지만 나와 낸시는 한마디로 그 희박한 사례야. 사랑은 모르겠고, 성욕이 발생할 소지는 차단된 거라고나 할까? 아마 그 정도 확률이지 않나 싶어.
   설마 낸시랑 만나서 어떻게 진지하게 물어보거나 그러지는 않았지? 가벼운 농담인데 진담인 줄 알고 남녀 사이에 처음 연애 감정이 싹트기 시작할 때 느끼는 그런 기분 느껴본 건 아니겠지? 그럼 됐어. 아, 맞다. 그거 알아? 낸시는 말이야 비밀이 많은 여자인 거!」
   나는 이때부터 생각이 많아졌다. 내가 만일 유부남이다, 모든 생활이 원활하고 행복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누가 날 좋아하네? 많이 좋아하네? 따라다니네? 심하게 따라다니네? 또는 반대로 처음에는 그저 내가 호의를 반복적으로, 습관적으로 베풀었는데 역할이 바껴서 이젠 그쪽에서 쫓아다니고, 그 뭐야 그래 막 매달리네? 애원 그런 거? 가만 있자 그러면, 유부남들은 살면서... 유부녀들도? 말을 안해서 그렇지 어른의 삶은 참 피곤한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물론 지금 현재 나는 유부남이 아니다. 그러나 내 모든 생각과 인생의 반틈은 그 절반이 피앙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그냥 지금 예술을 위한 도피 생활을 하는 듯 했고, 정해진 길을 벗어나지 않았다. 환상의 요람을 걷어차지도 않았고, 최고의 사랑을 배신하지도 않았으며, 지옥의 묵시록으로 장르를 바꾼 것도 아니다. 그런데 내가 왜 뒤가 켕겨야 하지? 응?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다고! 나는 거리낄 게 하나 없으니 가슴을 펴고, 고개를 들고, 희망의 나라에 대한 글을 써야 한다. 그게 맞다. 그런데 왠지 저기 저 어느 푸르른 숲 속 어딘가에서 막 궁금한, 또 사무치고 그립고 솔깃한 그런 이상한 소리가 들리네. 어떻게 가서 사이렌과 그냥 악수만 나누고 간단히 인사만 나누고 올까? 그럴까? 일단 현재 나에게는, 내가 꿇리고 굽히고 책망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아직은? 물론 처음에는 어디까지나 선의에서 출발했다. 초반에는 플로네이즈나 마주르카였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장소가 바뀌어버렸다. 클럽으로. 뭐 어쩐다는 그 과장된 광고 문구가 1년에 딱 1번 이루어진다는 그곳의 그날로. 게다가 난 조연에서 주연으로 격상되었다. 적어도 그 때문에라도 살짝 우쭐하고 흥겹고 신나야지 그래야 정상이다. 그러므로 나도 약간 즐거운 듯 하니 난 정상이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과연 이처럼 한숨이 큰 의미를 지닌 적이 많았던가, 그런 의문이 나를 흔들고 있었다.


   10

   오늘 윌을 만나기 전에 한가지 변화가 있었다. 바로 낸시가 날 쫓아다닌다는 것. 그건 뭐 거의 스토커급이었다. 여자가 한 번 빠지면 정신 못차리네 어쩌네 무섭네 물불 안가리네, 그런 풍문인지 낭설인지 진리인지를 살면서 틈틈히 듣긴 들었는데 나는 막 겁이 나기 시작했다. 쫓아다니고 따라다니고 전력을 다해서 최선을 다해서 한 사람에게 집중하는 사랑의 방식을 싫어하는, 마다하는, 거절하는, 반감을 가지는, 사양하는 여자는 없더라! 그것은 어느 아저씨랄까 어떤 가난한 예술가의 지론이다. 그 말은 곧 뒤집으면 여자도, 여자는, 당신도 충분히 그 주체가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나는 뭔가가 느껴졌다. 머릿속으로 막 그림이 그려지고, 몇몇 이혼남들이 떠오르고, 끔찍한 법석과 치정에 따른 야단과 탐욕스런 운명의 흠결과 여러 경우의 수가 떠올랐다. 궁극의 예술적 영감이 샘솟듯 막, 그렇게 막! 기분이 이상했다. 죄책감마저 느껴졌다. 것도 많이. 나는 애처롭고 외로운 숙명의 기로에 세워지고 만 것이다. 그렇게 됐다. 에고머니나! 인생이라고는 복권과 NC 밖에 없는 난봉꾼이냐, 아니면 영원한 사랑의 화신이냐! 어떻게 딱 빼어난 기치가 떠오르지도 않았고, 나는 과장증과 허언증과 강박증과 조증과 카사노바 증후군은 물론 온갖 헛생각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역시나 쫓아다니고, 따라다니며, 꽃다발을 들고 벌스듯 기다리고, 어쩌면 사랑의 갈망이 아니라 애정을 구걸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한, 그런 자존심이고 나발이고 뭐고 다 내던진 맹목적인 사랑은 뜻을 이루면 그 사랑을 시도하는 편에게는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 반대라면... 아아아, 생각만 해도! 그건 가슴 벅찬 감격과 정반대일 것이다. 상상하기에도 참담하다. 나는 여자들이 모르는 세상을 아니까.
   그러나, 진짜, 그럴까? 정말로? 노노노노노-노노노노노-노노? 정답이야 어떻든 그런 사랑 또한 절대 쉬운 사랑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지금, 바로 지금 낸시가 그러고 있었다. 나는 무서웠다. 겁이 났다. 피해야 할까? 어디로! 퇴짜를 놓을까? 뭐라고! 진짜로 멋진 선자리를 주선해 줄까? 이제 와서 그게 다 뭔 소용이냐고 하면 나는 할말이 없다! 어떻게 보면 사랑은 다름 아니라 하늘의 별따기와 같다. 이미 움직였고, 벌써 변했거나, 기대에 못 미친다거나 모진 풍파를 겪거나, 사랑은 그대의 기대감을 그윽히 고조시키며 결국에는 그대를 사랑의 주인공으로 만들어서 그 불가능할 것만 같던 사랑이 미완성에서 완성으로 변모하는 바로 그 과정 모두가 사랑이다. 그렇다면 이미 나와 낸시도 그 속성 통달 과정에 이미 돌입한 건가? 때문에 시작이 어중간했을지라도 그녀를 실망시키지 않는 반전의 깜짝쇼라도 연출해야 하나? 아아 머리 아프다! 왜 대체로 남자들은 살면서 친구와 단 한 번도 사랑에 대해 말하지 않는지, 사랑과 행복과 낭만과 신비와 동경심 같은 인생의 풍미를 더 멋지게 만들어줄 그런 낱말들이 대체 왜 모두 그분들 세상에선 금기어인지 알 듯 모를 듯 다시 알 듯 했다. 왜 사랑에 흠뻑 빠진 행복한 여자들이 자기 남편한테 꼬리치는 년들은 그냥 확...... 그러는지 알쏭달쏭 이해가 되기도 하는 듯 했다. 누가 남자는 단순하다고 하는가? 대관절 누가! 내가 지금 얼마나 머리 속이 복잡한데, 단순하긴 뭐가 단순해! 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짜증을 단 한 번도 내보지 않았고, 태어나서 지금까지 사랑 때문에 괴로워 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혹시 이건 고양이의 예민한 신경질이 아닐까, 그런 의심스러운 무언가 그런 느낌마저 감돌았다. 이 일을 대체 어쩌면 좋단 말인가! 답이 없었다. 그렇다고 어디서 상담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사랑의 시? 이미 떼긴 뗐는데 복습은 영 댕기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일단 낸시는 물론 세인들의 눈길을 피해 은거에 들어갔다. 그래. 내가 원한 것은 바로 이것, 칩거 및 은둔이다! 어쩌면 이게 내가 찾던 행복이란 파랑새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초반에는, 숨어서 조용히 살기 시작했던 초반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11

   나는 집 바깥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다. 밖에는 어김없이 낸시가 날 철통 감시하고 있었다. 나는 슬슬 답답함을 느꼈다. 엉덩이가 근질근질했다. 나는 귀공자가 아니지만 죄수도 아니다. 역사적으로 빠삐용도 탈출에 성공하여 결국 인생을 멋지게 만들었다. 내가 왜 집에 갇혀 살아야 하는데? 그래야 한다. 긴말 필요없이. 가택 감금, 막상 해 보면 할 만하다. 그런데 시간이 점점 지날수록 이 일이 그다지 만만한 일이 아니란 걸 알게 됐다. 첫날에는 바깥을 딱 10번 내다봤다. 동정을 살피느라. 아예 눈길도 주지 않으려고 했는데 원거리와 녹색 풍광과 하늘색도 마음에 담아야 하니까 그래서 본 거다. 그리고 둘째 날은 20번, 셋째 날은 30번 내다봤다. 낸시는 정말 대단한 인내력의 소유자였다. 거의 잠복 근무도 완벽히 수행했다. 조수까지 벌써 구한 듯 했다. 그녀는 진짜 전문가처럼 보였다. 그걸 다 어디서 배운 거지? 그걸 꼭 어디서 배울 필요는 없을 테지만 노력이 가상했다. 대단한 그녀, 짝짝짝!
   그러나 나는 왠지 좀 기분이 이상해졌다. 내가 왜 피해야 하는데? 내가 뭐 낸시한테 몹쓸 짓을 한 것도 아니잖아. 한번 피하면 계속 피해야 하는데 인생 내내 이런 자세로 일관해서 살아가야 한다? 오오! 그건 아닌 것 같았다. 나는 참다 참다 딱 1주일이 되던 날 도저히 못 참고 밖으로 나갔다. 그 기분은 정말 내가 SF 영화의 주인공처럼 제2의 지구에 탁 첫 발을 내디딘 듯한 기분이었다. 날아갈 듯한 느낌이었다. 아 이래서 사람들이, 앗 사람들이 그런 게 아니라 내가 입버릇처럼 장난 말로 가택 감금 가택 감금 그랬구나 했다. 나는 나가자마자 당당한 걸음으로 저 앞에 보이는 신형 선홍색인가 자주색인가 그 웨건으로 다가갔다. 가까이 가서 차에 타서 1주일 내내 날 기다렸던 낸시에게 단호히 말할 생각이었다. 다짜고짜! 나 좋아하지 말라고! 나 임자 있다고. 딱 도착했다. 그런데,
   오, 세상에나! 차에 앉아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니라, 아니 어떻게 이럴 수 있지? 나는 이것도 모르고, 아니 모를 리가 없잖아. 내가 환영을 본 건가? 아닌데 진짜 낸시였는데...! 차에 타 있는 사람은 바로 사람 크기의 인형이었다. 나는 정말 보는 사람도 없고 해서 오랫만에 식~ 썩은 미소를 짓고 말았다. 저런! 그리고 이렇게 내뱉었다.
   「어쭈~! 이것 봐라!」
   일단 간결하게 어떻게 해서 어떻게 됐다, 라는 전체 정황을 파악해 보면 이건 잘된 일이었다. 기뻐해야 하고, 나는 이 해방감을 축하하는 게 정상적인 반응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불만족할 하등의 이유도 없고, 내가 시무룩해야 할 아무런 명분도 없었다. 절망은 비운의 주인공들이 이겨내고 극복해야 할 과업이지 적어도 내 일은 아니었다. 최소한 지금은. 그런데 내가 무슨 체념씩이나? 대체 왜? 막 도처에 우울과 괴로움과 좌절과 실패와 상념이 날 막 빤히 쳐다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친해지고 싶다는 듯이, 사랑 받고 싶다는 것처럼 애절하게! 설마 이게 다 낸시 때문인가? 낸시도 낸시다. 그래도 그렇지 최소 1주일은, 길면 100일은 쫓아다녀 주었어야 옳았는데 그 각본이 정상적이었는데 그녀가 너무 빨리 포기해서 내가 지금? 그녀의 끈기가 뭔 상관이고, 그녀의 인내력과 내 행복이 왜 비례해야 한단 말인가? 이건 도저히 이해할래야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 납득할 수 없는 비이성적인 감정은 이별한 연인들에게 알맞는 기분이지 이론적으로 봐도 그렇고 뭘로 봐도 허전해 하지 않아야 할 내가 떠안을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러나 어이없게도 나는 보기에 딱하게도 못내 아쉬워하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벌써 포기해? 응? 사랑이 무슨 장난인가? 어? 지금 장난 하냐고, 사랑이 아니라! 첫 끗발이 개-끗발이다, 뭐 그거야? 어? 오라~ 이래서 여자들이? 아아, 오 저런 맙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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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여자가 인생을 돌아보면서 내가 사랑한 사람은 누구 응응 누구, 내가 좋아한 사람은 꽤죄죄한 중고책 서점이 보유한 고적한 장서 숫자 만큼이었고, 그런데... 그런데 나를 줄기차게 끈질기게 최선의 노력을 다해서 몸과 마음을 다 바쳐 나를 쫓아다녔고, 기다렸고, 언제나 집 앞에서 학교 앞에서 회사 앞에서 자존심 다 버리고 참 오래도,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꼬박꼬박 꽃다발 들고 그림자처럼 날 귀찮게 했던 남자는? 차근차근 회상해 보니까 오~ 몇 명? OK, (딱)! 이거다. 이거야 이거. 이거라고. 이래서 여자들이 그 어떤 콧대 높고 도도하며 쌀쌀맞기로 소문난 절세의 미녀일지라도 그 소도둑놈에게, 산적에게, 해적에게 사뿐히 넘어가는 것이로구나 라고 나는 깨달았다.
   그런데 그건 그렇다 치고. 그러면 손만 까딱해도 꺄르륵 난리 나고, 기다리며 좋아하는 뭇여성들이 동네의 여기서부터 다음 동네의 저 끝까지 줄을 서서 기다리는 상남자계의 큐피트 황태자는 대체 뭐란 말인가? 누군 뭐 삼류 소설가로 살고 싶어서 사나? 누군 뭐 유명해지고 싶지 않아서 진짜로 난 유명해지고 싶은 마음 없어 라고 말하나? 누군 뭐 TV에 나오기 싫은가? NC에 들어갈 때와 나올 때 그 변화의 진폭이 크고 싶어할까, 누구나? 이건 너무 불공평하다. 그러나 듣는 사람이 있어야 화자의 발언이 의미가 있는 법. 애호가가 없는데 예술가가 고고히 선경에 머문다? 있긴 있지만 그건 너무 드물다. 나 꽃이야, 어제도 나 꽃이고 오늘도 나 꽃이지만 그 꽃이 꽃다운 꽃이 되려면 내일은 그 꽃의 이름을 불러 주고, 그 꽃이 관심을 받고, 그 꽃을 보러 벌꿀과 나비와 사람들이 몰려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 누구는 이 꽃 저 꽃 열심히 돌아다녀봐도 꽃에 벌꿀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는데, 이미 누가 선점했으니까 먼저 다녀갔으니까, 그런데 누구는 꽃과 만나는 족족 달콤한 우유와 감미로운 꿀과 사랑과 행복과 기쁨과 그 모두를 정말 식은 죽 먹기처럼 그냥 아조 블랙홀처럼 빨아들일 수도 있는 것이다. 누구는 툭 뱉으면 명언, 딴 생각하다가 실수로 뭔가 잘못 어물쩍거렸는데 행위 예술, 아침에 쓱쓱 끄적거려서 집 바깥으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은 채 인터넷 업로드했는데 낮에는 음악 차트 1위, 저녁에는 모든 연예 뉴스를 독식, 다음 날 일간지를 도배? 누구는 아침에 딱 눈을 뜨자마자 새소리가 그녀를 반기고 고양이는 집사요 강아지는 매니저로써 서로 대화를 나누고, 웃음 꽃이 핀 햇님은 그녀의 미모에 찬탄하고, 오늘은 어떤 즐거운 일과 무슨 정다운 환영이 날 기다리고 있을까 막 그러면서 오늘도 조증 내일도 조증? 이런, 젠장! 사랑에 정말 진공청소기 같은 흡성 마법이란 게 있긴 있나 보다.
   그러나 그게 바로 세상이다. 투정도 한두 번이고, 사랑은 드문 것이며, 우리는 오빠라는 말만 들으믄 미쳐버리는 영문 때문에 이름을 아예 오빠라고 짓는 상상, 그 모두가 다 인생인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여자는 여자들은 그냥 생각없이 아무나 쫓아다니면 그냥 좋다고... 그게 뭐야? 뭔 기준선이 고무줄이야? 그건 완전 따라다녀 주기만 하면 그냥 바닥까지라도 기꺼이 내려갈 수 있는 요술 주문이라도 된단 말인가? 그러고서 자기는 몸짓은 누구 매너는 누구 유머는 누구, 누구처럼 잘생기고 누구처럼 말 잘하고 누구처럼 포근한 남자를 바란다고? 그런 남자가 이상형이고 자기는 누가 뭐래도 그런 남자를 만나고야 말겠다고? 그러고서 꽃 들고 집 앞에서 날마다 기다린 어느 남자와 오래 만나고 결혼해서 지금은 애가 몇 명인데, TV를 보다 내 남자를 보면? 오, 그건, 절대, 안돼! 절대로! 그러나 그건 남자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그리고 그 남자는 실재 내 친구다. 어디 나만 그러겠나. 살면서 그런 일 많이 봤다. 그대도? (하이파이브)! 한 번 더! 적지 않게 들었고, 읽는 건... 그건 아니다. 나는 할리퀸 로맨스나 통속 소설, 우리 누나가 20대에 읽었던 책과 보통 여자들이 애호하는 글은 나와는 맞지 않다.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지면 몰라도. 그런데 뭔 얘기하다 여기까지 왔지? 여긴 어디지? 하여간 여자들이란! 그렇다고 무슨 주의 그런 전문 용어 그런 건 아니다. 나는 어디까지나 여자 보기를 돌 보듯 하는 남자니까.
   아무튼 나는 결심했다. 어차피 서로 마주칠 일도 없겠지만 낸시를 만나게 된다면 나는 모른 체 하겠지만, 그녀가 정 나를 귀찮게 한다면 난 낸시한테 애칭을 선사해 줄 것이다. 영심아 라고 불러 드릴 것이다. 허영심양 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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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종의 웃음거리에 지나지 않는 단편영화 같은 우발적인 일은 잊어버리고 나는 내 삶을 살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분을 바꿔야 한다. 기분을 바꾸기 위해서는 기분 전환에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야 한다. 기분 전환에 효율적인 방법을 찾기 위해서는 분위기 변화가 필요하다. 분위기의 변화가 필요하기 위해서는 기분을 바꿔야 한다. 뭐야 원점이잖아? 농담이고, 기분을 바꾸기 위해서 나는 하나를 선택했다. 최단 기간에 최대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건 뭐니 뭐니 해도 음악이다. 나는 바비 맥퍼린이나 최신 팝송과 추억의 히트송을 들었다. 그리고 그냥 멍하니 음악을 듣기만 하지는 않고, 나는 그 음악을 흥얼거리면서 허영 대학교로 떠났다. 왜냐하면 나는 허영 대학교에서 최근 강단에 초대 손님으로 출연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삼류 대학교 문학 교수와 언제부터 친구 먹기로 했다. 친구 먹기? 친구 하기. 내가 아무리 삼류지만 그래도 엄연히 현업 소설가니까 자기 수업에 잠깐 나와 주라고 초빙한 것이다. 그렇게 한두 번 나가다 나는 어느새 젊은 문학도들이 듣고 싶은, 보고 싶은, 기다려지는, 만나고 싶은,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그런 친구 같은 전문가, 까지는 어림없었다. 그래도 녀석들에게 꽤 참신하게 보였나 보다. 내가 그리 썩 밉지는 않았던 거지. 그래서 나는 현대 문학 강의에 정기적으로 초대 손님 자격으로 출강하게 되었다. 과목 제목은 정확히 모른다. 그걸 알고 나면 내 고유의 정체성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에 알려 주지 말라고 했다.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게 내 방식이니까. 나는 강의를 하면서 막 이랬다.
   자네는 연극영화학과에 가지 거기 뭐하러 앉아 있냐고, 이 양반이 이거 이거 어른을 놀리는 거도 아니고 말야. 친구는 딱 봐도 미래가 보이는 구먼, 학생은─길게 갈 것도 없이─딱 3년 안에─유명 작가로─데뷔할 것이다─왜냐고, 어떻게 아시냐고 묻지 마시라─예언이니까─두고 보면 안다. 여러분 대학 생활 시시하죠 재미없죠, 사람들은 스무살이 막 아무 이유없이 좋다고 하지만 청춘 그거 꼭 그렇지는 않죠? 돈도 없고, 여자 친구도 남자 친구도 없고, 재미도 없고, 이건 뭐야 저건 뭐야 에이 증말 이런 젠장? 다 알아요 다 안다구요, 저도 그랬으니까요.
   그냥 이런 얘기 좀 해줬드니 막 난리가 났다. 뻥뻥 터졌다. 뻥뻥? 정말 그랬나 그 정도인가는 확신할 수 없지만 그래도 애들 표정이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그러다 중간 중간 살짝 소설은 말이죠 이런 거예요, 혹시 그 영화 기억하세요?, 제가 다시 옛날로 돌아갈 수 있다면 저는..., 사람들은 말하죠, 사랑은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여러분 이런 말 들어보셨죠 아니면 읽었을까요 그 말은 맞을까요 틀릴까요, 아리스토텔레스는 당시 이렇게 말했어요, 플라톤이 누구인 줄 아세요? 피자 배달원도 플라톤이고 동물원에서 커다란 동물 얼굴 뒤집어쓰고 아르바이트를.. 어 저기 저 친구 지금 동물원에서 진짜로 그런 일 하고 있을 것 같군요 저 친구 같은 사람의 진짜 이름이 그 친구의 부모님께서 지어주신 이름이거나 또는 계승된 성의 명칭이 바로 플라톤이에요, 바텐더나 콘서트장에서 티켓 파는 사람과 의류 판매원 다 모두 다 진짜 이름이 플라톤이라구요. 하다 하다 애완견 이름도 플라톤이라니까요? 뭘 원하세요? 노래를 잘 부르고 싶다? 게임만 해서 먹고 살 만큼 돈을 벌고 싶다? 연기도 하고 책도 내고 여행가로도 이름을 알리고 싶다? 하세요! 하면 되죠. 왜 못해요? 못할 게 뭐에요? 하지만 그건 말이죠, 말이죠. 말! ...... 해도 해도 안되더라, 아 증말 이런 아휴 이거 정말 못해먹겠구만, 그건 글이구요. 글! ......(침묵)...... 이거에요, (딱)!... 그 말부터 글까지를 압축하고, 변형하고, 생각하고, 편집하고, 연구하고, 체험하고... 그러다 발명을 하고 뭐가 탄생되고 어쩌다 하루 아침에 유명해지는 거죠. 명성을 얻는 건 하루 아침이지만 그 행운과 우연을 위해서 참 많은 일들이 있었겠죠? 그럼요. 실패할 수도 있어요. 그러나 겁먹지는 말아요. 해 봤더니 실패했다, 그래야 다른 걸 해 볼 수 있잖아요. 연애도 똑같아요. 분야를 바꾸지 않는다면, 사랑이 변하지 않는다면 방법을 바꾸는 것이겠죠. 그러다 적당히 꿈을 수정하고 삶을 살면서 생각이 바뀌겠죠. 그러다 결국 나중 어떻게 돼요, 어떻게 된다구요. 그런 답니다. 인생이 그래요. 그런데 어떻게 될까요? 과연 얼마나 아름답게 인생이 흘러갈까요? 네? 궁금하지 않으세요? 꿈은 또 인생은? 그건 이렇죠. 이렇게 바뀌죠! (나는 딱 그들의 전임 교수이자 내 친구를 가리켰다. 삿대질...은 아니고 품위 있게 딱 그렇게. 하지만 꼭 삿대질이 아니라고 단정지을 수도 없었다. 이렇게, 음(?), 살며시, 어, 그렇게 어중간하게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묘한 손짓을 선보였으니까. 나와 교수는 그래도 되는, 어쩜 그래야 하는 사이였던 것이다. 젊은 친구들은 웃으면 웃었지 절대 비난하거나 따지지는 않았다. 늬가 그러고도 강사냐 어 뭐가 어쩌고 어째, 라고 하지는 않았다. 그렇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말하자면 완전 뒤집어지고 난리 났다. 여세를 몰아서 나는 이 만큼의 후의와 초롱초롱한 그분들의 몰입감에 불만족스럽다는 듯이 바로 이렇게, 최후의 궁금증 그 완벽한 기대감을 고조시키는 확실한 도장을 찍고야 만다. 쿠쿵~! 짜잔~! 두둥~! 
   여러분, 피리 부는 사나이가 왜 피리를 부는지 아세요(?), 라고! 나는 도피에 용이한 개구멍은 미리 애초에 마련해둔 것이다. 그 유력한 교훈과 행운을 가져다 주는 포지셔닝과 비밀스런 슬로건 그런 건 내 알 바 아니다. 내가 인문-교양서를 읽는 때와 읽어야 할 특정 대상은 따로 있다. 내 비법은 그것이다. 나머지는 다 버리고 오직 내 마음에 쏘~옥 드는 딱 드는 흡족한 최고의, 단 하나의, 세상에서 오로지 하나 뿐이 없는 바로 그 빨려들 수 밖에 없는 빛깔의 꽃에만 사뿐히 앉기. 그런데 말은 그래도 상점에 가면 꼭 그런다. 이렇게. 그 제품은 초장에 다 팔렸습니다 죄송합니다 손님, 이라고. 이런, 젠장! 그건 그렇고, 내 강의의 매력은 그랬다. 분위기를 압도한 다음에 딱 질문으로 강의를 마치기. 시작은 웃음으로, 중간1은 마침표로, 중간2는 느낌표, 끝은 물음표로! 그러나 그 질문의 답은 나도 모른다. 일일 드라마처럼 다음 차례 강의할 때 뭐 적당히 슥~ 넘어가면 그만이지 뭘 그런 걸 가지고 고민할 필요가 있나, 장사 하루 이틀 하는 것도 아니고. 안 그런가? 쉿! 어디까지나 이건 전문가들 그것도 아주 친한 전문가들끼리 사석에서 하는 얘기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럼. 그래야 한다. 그게 맞다. 그렇지 않다면 그건 삼류다! 아, 나 삼류였지? 역시 삼류가 좋기는 좋다. 잇점이 확실히 있긴 있다. 옷으로 비유해 봐도 어디 파티복만 옷인가? 어디 일상복과 유니폼만 의복이겠나. 아동복과 웨딩드레스가 옷이지 책인가? 성복과 수의는 또 뭐고. 삼류는 삼류지만, 누가 뭐래도 엄연한 소설가고 엄정히 따져도 예술가다. 그건 옳다. 언제든지. 어디서나. 누구에게나...는 음 그만 하자. 아무튼 학생들의 그 꿈꾸는 듯한 표정, 뭔가 추측하는 눈빛, 잠자고 있는 열정이 깨어날려고 하는 것 같은 응분의 몸짓, 강의에 몰입한 최고조의 분위기, 그러다 잠시 가녀린 탄식이랄지 재미없다 심심하다 같은 혼잣말의 특이한 어조, 그 때문에 나는 허영 대학교에 출강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학교의 본명은 일부러 감췄어요. 이건 어디까지나 실화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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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우지간 그 때문에 나는 낸시한테도 차였고, 사랑의 꿈도 잃었고 움츠러들어 의기소침해졌으며, 쪼그라든 상심을 가득 안고서 지성의 전당으로 갔다. 학교에 도착했다. 강의 시간까지 여유가 있어서 나는 나무 그늘을 걷고, 의자에 앉아 잔디밭에서 노는 친구들을 구경하고, 그리고 낸시를 생각했다. 바로 이런 생각을. 왜 낸시는 나를 좋아했을까, 왜 그녀는 날 쫓아다니다 지쳤을까, 내 피앙세가 설마 천리안도 아니고 이 일을 알고 있는 건 아니겠지 아마 모르겠지 절대 모르겠지, 크크큭큭 킥킥킥킥킥 히히히히 그런 공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었다. 내 머리 위에서 짹짹거리며 하늘색 새 두 마리가 원을 그리며 돌지는 않았다. 그 대신에 말 두 마리가 띠기딕 띠기딕 딕딕 하면서 새처럼 돌고 있었다. 한 마리는 '아내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였고, 다른 한 마리는 '아내는 아무것도 모른다'였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나는 대학생들이 모두 늑대와 양으로 보이는 것만 같았다. 이건 뭐야 신기한 환영인가 아니면 기막힌 행운인가? 기막힌 행운은 무슨!
   그런데 이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막 교정을 거니는 여대생들이 모두 낸시처럼 보이는 것이었다. 눈을 찌푸리고 비빈 후 다시 보면 그녀는 그녀들은 낸시가 아니었다. 오뉴월 닭이 오죽하면 지붕에 올라갈까,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 그 비유는 적절치 않다. 심하게 안 어울린다. 나는 낸시에게 낚인 것이다. 나는 최면에 빠졌다. 완전히 말려버렸다. 제대로 걸려든 것이다. 설마 내가 사랑에 빠져버린 것일까? 아니다! 그래서는 안된다. 저 세상의 끝까지 도달해서 벽을 찢으면, 그 벽은 원고지니까, 황홀한 신세계가 펼쳐질 것이다. 그건 모두 쓸데없는 몽상이고, 찬찬히 사람들을 다시 보니 모두 그냥 하나 하나의 사람들이었다. 늑대도 아니고 양도 아니고 닭도, 오리도, 백조도, 타조도, 뻐꾸기도, 앵무새도, 제비도 아니었다. 그러나 내 인지 체계는 정상으로 돌아왔지만 내 청각은 더 민감해졌다. 따라서 문제가 발생했다. 무슨 문제인가? 그것은 이 근처에서 들리는 여성의 목소리를 취합하니 약간 낸시의 비음과 비슷하거나 웃음소리가 똑같다거나 그녀가 자주 쓰는 말투와 똑같은 얘기가 막 내 귀에 들리고 있었다. 속속들이 착착, 쩍쩍! 가령 그것은 예를 들면 이렇다. 아 있잖아! 아 있잖아? 있기는 뭐가 있어. 음 뭐랄까! 음 뭐랄까? 뭐가 뭐랄까야 뭐는 뭐다 라고 말하면 그만이지. 말끝마다 오빠 말끝마다 오빠는 어떻게 생각해 그리고 딱 대답할려고 하면 지가 말해! 뭐야 그게? 저런 아휴 진짜! 뭐 오빠는 어떻게 생각해? 어떻게 생각하긴 뭘 어떻게 생각해. 지가 물어보고 왜 자기가 대답하는데? 관심없어. 관심없다고! 오빠 사랑이란 말이야. 오빠 사랑이란 말이야? 그 놈의 말이야 말이야, 그냥 요점만 말하라고 요점만~ 아휴 (부글부글) 아아, 증말 이걸 어째!
   한편 심리 묘사와 의식의 흐름은 그랬고, 행동과 결과와 실적은 별거 없었다. 나는 강의할 때 저 학생들 가운데 혹시 낸시가 있는 건 아닐까 하며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그러나 평소보다 수준은 살짝 낮고 기대에 대한 부응은 많이 쳐진 채로 강의는 그런대로 마쳤다. 그리고 그 삼류 대학교 문학과 교수인 내 친구 엘론과 만난 김에 한 2박 3일 마음껏 회포를 풀고 즐겁게 놀았다. 우여곡절은 있었다. 엘론한테 휴가 내면 되지 않냐고 하니까 바람 피기 때문인지 뭔지 휴가를 다 썼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생각했다. 그리고 멀쩡히 정정하신? 이미 옛날에 명을 달리 하신 어떤 분께 죄송하지만 딱히 가까운 건 아닌데 먼 건 아닌, 약간 멀지만 또 그렇게 먼 사이는 아닌 누군가 뭐 어떤 일에 대해서 적당히 핑계를 댔다. 왜냐하면 사람들 가운데 꼭 그런 부류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 남자친구는 날마다 죽어요. 그는 야구선수거든요. 거울을 보며 얼굴이 갔네. 게임 캐릭터가 하직하셨네 등등.
   그렇게 나는 브랜드 낸시를 그만 깔끔하게 잊어버렸다. 어차피 우연히 마주치더라도 먼저 아는 채 하지 않으면 그만이고, 굳이 살갑게 굴면 영심아 영심아 이 허영심아 하면서 패기만만한 깐족으로 상대하면 그만이다. 영심이는 바로래요~ 영심이는 머머했대요~ 그러면서. 사랑을 받아줄 수는 없으니 못이긴 척 우정을 회복하면 그만이다. 영심양이 어디서 너 그 녀석한테 책 잡힌 거 있니 라는 그런 말을 듣게 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그래도 집에 돌아오면서 기분이 많이 회복되기는 했으나 조금 잔잔한 애심이랄가 애련 같은 게 느껴졌다. 행복의 반의어는 불행이구나,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는 법, 기쁨은 심심함과 상존하며, 허영심의 제일 친한 친구는 허세가 아니라 권태일 수도 있겠구나, 그러면서 나는 사랑을 불신했다. 그러나 나는 쾌락을 믿었고, 퇴폐주의와는 작별했다. 사랑하고 싶어, 사랑할 꺼야, '사랑 받고 싶어'가 아니라 진짜로 정말 괜찮은 남자가 날 쫓아다니고 따라다니고 꽃 들고 무턱대고 기다려 주었으면 좋겠어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 같은 사춘기 문학 소녀의 상념을 내가 빼앗아서 하게 되었다. 사랑 받지 못함은 다정하지 못한 일이로구나, 친애할 만한 처지는 아니겠구나, 그것은 가난과 단짝이구나 슬픔이자 비애로구나, 하면서 가히 유치해서 못 봐줄 생각만 골라서 했다. 
   그래도 어쨌든 집까지 잘 와서 나는 꿈나라로 떠났다.


   15

   학교에서 공부하고 수다를 나누고 일상을 보낸 후 집에 돌아왔을 때, 편의점이나 빵집이나 아이스크림 가게나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할 때 같이 일했던 우정으로 사귄 멋진 오빠 때문에 알게 된 그 멋진 오빠의 생소한 멋~진(?) 친구가 집 앞에서 꽃다발을 들고 날 기다리네? 혹시 사랑 때문에? 바라는 게 뭐야, 그 끝은 팡파르일까 결혼행진곡일까? 예술대학교에서 성악을 전공한 후 교습소에서 애들을 가르치며 어쩌다 바지에 오줌 싼 거나 치우고 있기도 한심하고 재미도 없고, 그래서 영양사 공부를 하여 영양사 자격증을 따서 다시 그 예술대학교에 식품영양사로 취업을 하고, 그 대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학생이 자기를 퇴근할 때마다 따라다니고 그렇게 딱 100일 동안 공을 들이니 그 다음에 어떻게 됐다더라? 그 어려운 공부 시켜서 키워놨드니 글쎄 마음은 큐피트와 네메시스에게 주고 몸은 큐피트의 화살을 맞은 나르키소스에게 줬다드라? 한 번도 아니고? 이 모두를, 우리 주변에서 그야말로 흔하디흔한 그 모든 일들을 하나같이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그래도 된다면, 그러고 싶다면 이건 아마도 영화 제목과 비슷할 것 같다. 바로 이렇게. 미녀와 야수!
   도시에 살면서 거리에서 순록을 만나기는 쉽게 말해서 하늘의 별따기다. 시골에 살아도 환경이 되는 곳이나 그렇지 그게 아니면 생-곰, 야생-곰, 떡대 좋은 이따만한 그런 곰을 만나기 역시 악마가 천국에 셋방을 마련해서 사는 것에 비견되는 일이다. 그만큼 드물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옥 세계의 강을 건네주는 사공 캐론이 천국에 몰래 잠입했다가 이승으로 소풍 갔다가 그 보다도, 그 어떤 여자라도 그 어떤 남자가 쫓아다니기만 하면 그만큼 공을 들이고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니! 이건 정말 그런 결론 밖에 나오지 않는다. 사랑은, 믿을 만한 게, 절대, 못된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유익하다. 아니면 이와 같은 수순을 밟으신 분들께도 미안한 일이고. 그렇게 사랑을 쟁취했다가 잡은 물고기에게는 먹이를 주지 않는 분들에게는 일단 겉으로는 더 미안한 일이니까. (이따 조용히 우리끼리 만나서는 속닥속닥, 우리끼리 조용히 어쩌고저쩌고, 키득키득 큭큭큭!) 그래서 지금의 사랑이 장래에는 '그 남자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로 변하는 것일까? 그럴 수도 있다. 아닐 수도 있고. 그러나 전자일 가능성이 조금은 농후하다. 그러나 숙녀 가운데서도 딱히 선수라고 지칭하기는 뭐해도 이 세상을 알 만큼 알고, 이 세상을 살아 볼 만큼 살아 보신 분들은 이렇게 말씀하실 것이다. 요즘 남자들은 이렇다고. 그것은,
   첫째, 요즘 남자들은 한 나무를 열 번 찍지 않는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는 없다', 그건 다 옛날 말이다. 무엇보다 나를 정말 공주님처럼 쫓아다니는 남자들이 넘쳐나서 나도 정말 유명해졌으면 좋겠다. 이미 조금 유명하다면 더 유명해졌으면 좋겠다. 허영심은, 우리 영심이는 내친김에 존경까지 받고 싶다. 그게 나쁘다는 말이 아니라! 그대여, 돈을 싫어하는 사람을 만나보셨나요? 또는 돈을 쓰는 즐거움보다 더 재밌는 게 어디 많던가? 다른 무엇도 아닌 바로 돈이 4각, 8각 링에 딱 올라왔으면 흰 수건을 던질까 말까? 어째야 하나? 흰수건? 그건 아니다. 그건 아니지. 우리도 올려 보내야 할 것 아닌가? 그런데 누구를? 벤치에 찌그러진 빈곤을? 무슨, 그분이 있지 않나. 바로 <인기>! '돈'이라는 팀에 자존감과 자존심과 자신감과 자만심이 있다면 허세와 허영과 허풍과 변덕을 거느린 구단은 바로 '인기'다. 물론 이합집산은 수시로 이루어질 것이다. 그건 그렇고 그러나, 그러나 막상 구애하고 따라다니면 <어딜 넘봐!> 막 그러면서 스토커로 찍히거나 완전 짜증낸다 여자들은. 처음에는. 무엇보다 열 번 찍는다는 것은 무식한 짓이고, 자존심 내팽개친 일이며, 도무지 예법을 모르는 돌리고 돌려서 말하자면 전~혀 귀족스럽지 못한 일이다. (딱)! 범죄와 예절도 간극이 매우 좁을 수도 있다는 말씀. 남자만 <내가 최고> 주의일까? 천만의 말씀! (딱!) 보너스. 남자와 여자 가운데 누가 먼저 신호를 보내느냐, 에서 여자가 먼저 신호를 보낸다는 확률을 일설에서는 95퍼센트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논설을 발표하는 전문가는 크게 봐서 2부류로 나뉜다. 하나는 산출하는 글의 양으로서 일가를 이루는 수필가나 시사 평론가요, 하나는 남녀의 연애에 대해서 학문으로써 접근하는 인문학자랄지 교양가. 후자는 과학과 실험과 머머론 같은 개론과 연관된 설명에 무게가 실리지만 전자는 비교적 학문보다는 상업에, 토론보다 수다에, 고전보다 최신작과 인기와 유명함 즉 최대한 많은 사람이 아는 개념과 사람들의 경험담으로써 먼저 다가가는 순서에 중점을 둔다. 그래서 좋아하고 호감가는 남자에게 남자보다 여자가 먼저 꼬리를 흔드는 비율이 95퍼센트라는 명제는 그분들로부터 자연스럽게 도출된다. 여자들의 중론이 그렇다, 라고. 하지만 그것은 쉽게 말해서 후자의 방법론을 빠트린 거다. 일반적으로 여자가 신호를 보내는 것은 맞다. 그건 맞다. 하지만 그 행위에 대한 범위는 대개 빠트린다. 즉 가벼운 담론에서는 같은 편이라는 울타리 안에서는 그 대상에 대해서 슥 흐린다. 바꾸어 말하자면 95퍼센트의 신호는 대체로 개인적으로 한 남자에게 집중되지만 역시나 대체로 모든 남자에게 고루 나눠드린다는 것이다. 평등하게! 꽃 사세요 꽃 사세요 꽃을 사세요 꽃을 사 사랑 사랑 사랑 사랑 사랑의 꽃을 사세요 라는 구호처럼. 나를(나만) 추종하는, 나를(나만) 편애하는, 나를(나만) 애호하는, 나를(나만) 좋아하는, 나를(나만) 사랑하는 어떤 남자가 나를(나만) 따라다니고, 나를(나만) 쫓아다니고, 내 집 앞에서 나를(나만) 기다리고, 내 하교 시간에 내게(나에게만) 눈도장을 찍고, 내 회사 출구에서 꽃다발을 들고 나를(나만) 기다리는 그 모든 일방적인 구애를 여자는 절대, 절대 마다하지도 싫어하지도 거절하지도 않으니까 그건 공평하긴 흠... 공평한 거다. (그런데 그 어떤 남자가 대체 누구지? 어디 한 번... 살짝만요 그래 조금만 조금만 으으...... 아, 저런 저런!) 그럴 수 밖에. 생물학이라는 학문이 뒤로 밀리고, 전제에 대한 기본적인 가설이 빠졌으니까 당연한 논리다. 그렇지만 그건 나쁜 게 아니다. 또 그 만큼 여자는 보호받아야 한다는 반증이다. 여자는 그동안 덜 존중받은 게 아닐까 라는 하나의 실증이다. 심지어 그것은 인지 체계가 지동설보다 천동설에 가깝다는 추론에 힘을 실어주기까지 한다. 그 말은 곧, 그러므로 남자는 여자를 아끼고, 보호하며, 사랑해야 한다 그 말이다! 여자는 천생 여자니까. 그리고,
   둘째! 요즘 남자들은 이상한 동영상에 심취하기 때문에, 또 TV와 인터넷은 물론 거리에 아마도 (싸구려?) NC에 너무 어쩐 여자들이 많고 그분들과 교분을 맺는게 손쉽고, 언제 어디에나 이 세상에는 간편한 사랑이 넘쳐나기 때문에 여자를 존중하고, 칭송하고, 찬미하며, 따라다니고, 귀찮게 하다가 기다리고, 쫓아다니지 않는 것이다 라고. 그렇다. 좋다. 맞다. 웃자. 허허허허허, 허허허허허허허.
   자, 그래서 이제는 정말 사랑의 기준이 무엇인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인 듯 느껴진다. 그러므로 결론은 어쩌면 이렇지 않을까 라는 생각마저 든다. <사랑은 없다> 라고! 그런데 정말로 사랑이 있을까, 아니면 없을까? 있다가 사라질까, 연기처럼 사라졌다 짠 하고 나타날까? 사랑은 물안개일까 해바라기일까? 그대는 그 여자를 그 남자를, 사랑했는가 사랑하지 않았는가? 그 사랑은 내가 아는 사랑일까, 아닐까? 사랑은 과연 진공청소기일까 커피포트일까? 사랑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사랑했다면 당신의 행동은 절대 그래서는 안되는 것이었는데 이제 와서...! 당신의 사랑은 절대적이지 않고 조건부인가? 내 사랑에 대해서 나는 과연 얼마나 떳떳하고 최선이었다고 자부할 수 있을까? 사랑이면 다 같은 사랑일까? 그리고 저 위부터 저 밑까지 사랑이란 낱말은 몇 번이나 나오나 어디 한번 세어 볼까? ......(침묵)...... 이제 슬슬 최면에 걸린 것일까, 아니면 환상에 빠진 것일까? 아이스크림을 주셨으면 커피는? 그냥 아포카토로 줄 것이지 내가 뭔 밀가루 반죽인가요? 쥐락펴락하게? 알아서 환상이 깨지거나 마법이 풀리거나 최면마저 풀릴 테니 일단 기다려 봅시다요! 그런데 과연 이런 논법에 동의하시는가? 어디서 그런 말 같지도 않은 궤변을 늘어놓냐고? 인정하시기 싫으신가 보다. 또는 이쪽에서 큰 실수했거나. 그렇다고 증거를 내밀 수도 없고, 그냥 수영할 때 쓰는 오리발이나 내밀까? 사람이? 그렇게 한다면 오히려 반감을 덜 사고, 거부감도 덜 하며, 차라리 그러면 웃기기라도 할 것이다.
   하지만 이걸로는 아직 뭔가 부족하다. 그러면 섭하다. 몹시 섭섭하다. 그분을 주목하자. 우리는 한번 더 스포트라이트를 비추자. 그래야 한다. 쫓아다니는 사랑, 따라다니는 사랑, 집 앞에서 기다리는 사랑을. 그 사랑을 해 본 사람이든, 해 보지 않은 사람이든 그것도 둘로 나뉜다. 자존심을 거느냐 아니냐로! 남자에게 있어서 자존심은 그냥 휴지 조각 하나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자존심 센 사람은 아아 옆에 지나가기만 해도 효과음이 들린다. 그날 하루는 악몽을 꿀 수도 있다. 그를 알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10년이나 반세기가 지나서도 언뜻 생각나면 뒷목을 잡는다. 그 정도다. 그런데 남자가 자존심을 버린다라... 그것은 여자가 뭐 어쩌는 것과 어쩌면 비슷한 일이다. 그렇게 자존심을 걸고서 쫓아다니느냐 따라다니느냐 집 앞에서 기다리느냐, 그 극단은 뭐라고 그 끝은 뭐라더라 블로그던가 뭐던가 그 어떤 제목의 소설 초반부에 나와 있다. 잘 모르겠다면 또 잘 아는 사람이 있으니까 물어보면 된다. 어쨌든 쫓아다니는 사랑이 그렇게나 흔한데 그것의 장르가 그냥 멜로드라마인 건 뭐 괜찮다. 좋다. 그래. 그런데 그것의 장르가... 독자님의 친구들만 봐도, 듣는 풍설로만 봐도 그것은 글로 다루는 건 정말 사양하고 싶다. 적극적으로! 발언권을 넘기고만 싶다. 그러므로 그건 어딘가로 대충 넘겼다 칩시다. 그런데 이 따라다니는 쫓아다니는 기다리는 사랑이 자기는 목숨을 거는 사랑이라고 극구 항변하는데 정말 그럴까, 그것에 관한 일화는 한 사람 건너서 아는 얘기들이 있다. 많다. 관련된 웃긴 얘기는 부지기수다. 남자 연예인 D가 여자 연예인 S를 당시 시도 때도 없이 쫓아다녔다더라, 말 그대로 어디에 언제 S가 출몰한다는 데는 전부 다 쫓아다녔다드라, 그래서 결국 어느 날 S가 타 있던 차를 가로막으며 D는 도로에 누웠다고 한다, 왜? 목숨 건 사랑이니까! 그런데 눕긴 누웠는데 D가 눕던 방향이 차선과 십자가 아니라 일자였다더라, 그러나 지금은 각자 따로 잘 살고 다른 길을 가며 다른 사랑을 한다더라, 그런 얘기도 있다. 그러나 그런 방식의 사랑도 좋게 보자면 분명 예쁘고, 순수하고, 아름답다. 다만 학구적으로 보자면 그런 사랑은 블랙잭이나 포커 같은 카드 게임을 예로 들자면 내 액면이 그만그만한데, 또 상대의 액면도 애매한데 상대는 진정 포커페이스고, 나는 앞뒤 안 보고 내 모든 판돈을 거는 것과 비슷하다. 잘되면 모두 얻고, 못되면 모두 잃는. 하지만 말로 하니까 쉬워 보이는 거지 한번 얼굴 팔리고 챙피를 당해 보면 그 마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청춘에게는 패기는 있고 돈은 없다. 노신사는 돈은 풍족하지만 젊음과 거리가 있다. 마음은 청춘이지만. 쫓아다니고 따라다니고 무작정 꽃 들고 기다리는 사랑, 나이 들면 하고 싶어도 창피해서 속된 말로 쪽팔려서 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것 역시 그래프에서 긍정과 부정을 말하는 비율이 인생 중간까지는 비슷하다가 중년을 기점으로 긍정의 비율은 점차 늘어가고 부정의 비율은 점점 줄어드는 것처럼 때가 있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아마 적지 않은 남자는 미처 몰랐을 것이다. 와~! 아니, 여자가 그 정도로 자기가 꽃으로써 꽃다운 꽃의 소임을 꽃처럼 다하고 싶어 하는지를. 와우! 아마 솔직히 많은 남자는 놀랄 것이다. 이미 알지만 그래도 여자는 남자의 영원한 미스테리니까. 남자는 여성잡지1과 여성잡지2 그런(그딴?) 구분 없지 않나. 머리 감고 대충 털고, 스킨과 로션 발라도 그만 안 발라도 그만, 그냥 대충 거울 보고 끝! 그런데 여자는? 여자는 대체 하루에 화장과 청결과 여자다움에 시간을 얼마나 쓰는 것일까? 남자는 그 정성, 헤아릴래야 헤아릴 수가 없다. 쫓아다니고 따라다니며 꽃 들고 기다리는 사랑. 그건 어쩜 맨발의 청춘일 때나 가능한 얘기다. 무모한 사랑과 순진한 사랑도 젊을 때 얘기지 스무살이 꼬마로 보이는 인생의 성숙함을 향해서 가면 갈수록 사랑마저 쉬운 게 아니란 걸 알게 된다. 몰래한 사랑도 애절한 사랑이 있는 반면에 어쩔 수 없이 어느 때가 되면 사랑은, 반드시 또는 어쩌면 몰래 할 수 밖에 없다는 것까지. 내 차가 생기고, 집도 생기고, 가정까지 생기고, 인기를 얻고, 외적 인격도 만들어지는데 그때 가서 누굴 쫓아다닌다? 그러면 당장 옆에서 그런다. 너 미쳤냐고! 연극 대사로 다듬자면 이쯤 되겠다. 천사 같은 친구는, 정신 차려 이 친구야! 상상 속의 악마 같은 친구는, 늬가 비로소 뭘 좀 알았구나 늬가 이제야 내 친구로 느껴지는구나! 라고. 그런 사랑은 대체로 돈 없을 때 하는 거다. 그러나 돈과 나이 지표가 조금 찬 남자와 돈과 나이 지표가 낮은 여자랄지 그런 경우의 수도 몇몇 있다. 왜냐하면 여자는 꽃이지만 남자는 양치기견도 늑대도 애도 어른도 손가락 까딱할 힘만 있어도 꽃을 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지 않는 것은 남아의 본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건 좋다. 남자의 일관된 의무는. 그런데 사랑의 프리마돈나로써 여주인공 최적의 시기는 일관되지 않다. 그건 남자와 달리 수평선이 아니다. 불이익과 불행과 파행과 고난과 역경의 범주에 심심함이 들어가면, 심심함은 그 가운데서 고결한 여복의 한결같은 위상이 초대에 응답하기 전까지는 단연 최고로 아름다운 메조소프라노가 된다. 그것이다. 남자의 사랑과 여자의 사랑이 다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남자가 여자에게 그 이름을 묻는다. 남자는 여자의 이름을 부른다. 남자는 사랑을 노래한다. 그녀는 꽃이 된다. 꽃은 생화다. 생화의 계절은 꽃 피는 봄날이다. 봄날이 지나면? 나뭇잎이 무성한 여름이 찾아온다. 그리고 탐스러운 열매가 맺는다. 바나나와 망고와 사과는 물론 사랑도 과실이다. 이제 태양의 열기가 주춤하고 바람이 선선해진다. 가을에는 소풍을 간다. 겨울에는 사랑의 편지를 쓰자. 차츰 봄이 저만치 오고 있다. 그렇다. 다시 남자는 사랑의 씨앗을 뿌리고, 사랑의 설을 푼다. 꽃피는 봄이 되었다. 나비가 춤을 추고 꿀벌이 바빠진다. 그러나 꽃이 만개하면 다시 꽃은 시들지 않을 수 없는 법. 그게 꽃의 숙명이다. 내 사랑을 회상하고, 더 멋진 사랑을 동경하며, 그리고 시적으로 꽃의 운명을 추억한다. 활짝 핀 꽃은 언젠가 시들 것이다. 그 꽃의 아름다움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꽃의 낭만을 잊지 않는다. 그런데 꽃잎이 시든다? 뭐 꽃이? 아아 그건 너무 문학적이다. 슬퍼! 많이 슬프다. 맞다. 그렇다. 오늘 누군가는 저녁 노을을 바라보며 아마도 울 것이다. 것도 펑펑! 분명히 그럴것이다. 예언이다. 꿀벌도 나비도 배짱이도 그분들이 철없거나 원숙해질지라도 꽃밭은, 그분들의 영원한 무대인 것이다. 네, 주무대! 바로 그래서 남자는 여자를 아끼고, 존중하고, 예우하며, 사랑해야 하는 것이다. 그 자상함과 친절함과 목소리와 눈빛에 과연 한 여자만 기뻐할 것인가 라는 모순이 남겠지만 말이다. 젊음은 돈이 없고, 노년의 예술가는 돈만 많다. 그러면 또 누군가는 늬가 가난한 노년의 비애를 아냐고 뭐라고 하시겠지만 일단은. 쫓아다니고 꽃 들고 기다리는 사랑? 얼굴 팔리고, 창피하고, 생각만 해도 그 수모 아아아, 그게 대체 뭔 망신인가! 얼굴 팔리면 이름도 팔린다. 그 소문 널리 퍼지고, 오래 기억된다. 어쩌면 나의 커피포트는 타인에게 진공청소기가 된다. 그 언제까지라도. 남자들이 한때 정신이 어떻게 되서 멋모르고 쫓아다니는 사랑을 하고, 여자는 그 사랑에 혼미하며 넋이 나간 채로 떨리게 된다. 결과는 잘 아시는 대로. 그러나, 그러나 여자들이 진짜 좋아하는 사랑의 장기전은 그처럼 쫓아다니는 사랑이 아닐 수도 있다. 어리니까, 외로우니까, 향기롭고 아름다고 예쁜 꽃을 아무도 탐하지 않았으니까, 무엇보다 어쩔 수 없는 여자니까 얼핏 못 이긴 척 꽃 들고 기다리는 사랑에 꺼뻑(?) 넘어가는 것이지. 그렇게 쫓아다니는 사랑은 거의 정확히 이렇게 변한다. 그렇게 수렴될 수 밖에 없다. <사랑은~ 없어!>로. 그 언젠가 황홀했던 사랑이 말이다. 그렇다면 여자들이 정말로 좋아하는 장기전, 진정 그런 사랑은 대체 뭘까? 일반적으로 그것은 여자가 한 남자를 너무 좋아해서, 여자쪽에서 너무 일찍 짝사랑을 시작해서, 그 남자가 미처 알기도 전에 그를 내 애인으로 만드는 그런 사랑, 그러나 뭔가 잘 하면 어떻게 잘 하면 그 사랑이 이루어질 것도 같은 그런 사랑을 말한다. 하지만 그렇게 일반적인 거 말고 또 뭐가 있을까? 그것은 바로 허먼 멜빌의 백경을 읽어 봐야 알게 되지 않을까요? 아니지요 아니지요. 괜히 어른이랍씨고 그처럼 어설프게 권고한다면 필경 좋은 소리 듣기는 글렀다. 애초에 글렀다. 그런데도 항상 그런 실수를 반복하시는 분도 드물게 있다. 이젠 그러지 않으면 못견디겠으니까. 습관도 중독도 아니다. 그냥 천성이다. 말이 그렇다. 말은 이렇다. 말로 노년이 중년에게, 말로 다시 중년은 청춘에게 딱 상황을 보고 눈치껏 충고한다. 그런데 잠깐, 위 아래! 지식과 학벌과 재력과 인생 경험과 형형한 눈빛과 특수한 후광을 파악한 다음~에 덕담을 건네도 건네야 한다. 밑도 끝도 없이 다짜고짜 설을 푸는 푼수는 만나기 힘들다. 눈썰미가 떨어질 수도 있으니 그래서 일단 먼저 떠볼 것이다. 딱 보니 뭔가 애매하니까. 자네 학교는 어디 나왔나, 무슨 일을 하는고, 젊은이 어디에서 오셨나, (옛날식으로) 부모님은 뭐 하시는가, 얘는 여기에 뭘 타고 왔지 하면서 슥~ 훓어본 다음에 흐흠 에헴 헛기침하면서 침묵할 수도 있다. 상상해 보시라, 달변가가 언제 정확히 침묵하는지 그 정황을! 그게 뭐냐, 그건 말이다. 말! 그러나 글은 다르다. 따라서 그 사람이 읽는 글을 보면, 그 사람이 평소에 읽는 책을 보면, 그 사람이 소셜 네트워크에 올리는 내용과 타인의 소셜 네트워크에 쓰는 댓글을 읽어 보면, 그 사람이 썼던 글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그이가 평소에 어떤 책을 읽던가? 가뭄에 콩 나듯이 인문-교양서. 그이가 평소에 어떤 작품을 보는가? 오직 게임 같은 작품만. 그 사람이 무엇을 읽고,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주로 하는지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그 다음은 말만 섞어 봐도, 말만 들어 봐도, 조금만 사겨 봐도 아는 경지다. 뭔가 오르락내리락하긴 하는 것 같지만. 그리고 거기서 더 나가면 도사가 된다. 글과 말도 과장하자면 하늘과 땅 차이다. 촌닭과 촌년도 마찬가지고. 아, 그분이 넌지시 뭐라고 하셨지? 맞다. 그분께서 건넨 권유 때문에 읽어 본 백경, 음... 읽고 나서 험한 소리나 얻어듣지 않으면 다행이다. 사랑은 이렇다. 사랑이 이렇다. 대체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하는가? 어? 대체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했는가?
   고로 몇몇 경우의 수만 더 집고 넘어가자. 경우에 따라, 어지간한 프리젠테이션보다 엑셀 파일로, 그림 한장으로 설명하는 게 훨씬 좋다. 자, 보자구요. 그냥 대충 객관적으로 봤을 때,
   1.미녀와 미남.
   2.미녀와 야수.
   3.선녀와 야수. 
   1은 수필가와 수다꾼과 달변가들의 즐거움이다. 그것은 침범해서는 안될 성역이요 월권이다. 상도덕에도 어긋나는 일이고. 그리고,
   2는 논의됐다. 그래도 어.. 음... 더 할까요? 오오, 그만 그만! 아아, 뒷목이 당긴다. 커피포트의 물이 끓는다. 마시자 한 잔의 차를. 그래서 남은 건,
   3번! 요건 좀 설명이 필요하다. 굳이 성별을 따져서 말할 필요까진 없다. 시작만 일단 그렇게. 또 이건 많은 층위의 차이가 없다면 문제될 건 없다. 그러나 이 셋째는 많은 층위의 차이를 가리킨다. 야수가 미녀를 만난다, 갑부가 숙녀와 사귄다, 노예술가와 스무살 처녀의 사랑이 뜨겁다더라? 됐고 또 됐다. 그만. 모두 그만. 문제는 그게 아니다. 문제는 선녀와 야수다. 그러나 이 또한 여자들의 전공이요 그녀들의 특기다. 긴 얘기는 예절에 어긋나는 일이다. 다만, 다만 주제 넘게 간략히 간추리고 가자면 이렇다. 하나 쯤, 둘 쯤, 셋 쯤 층위는 그렇다 치고, 3번은 어디까지나 현격한 차이를 뜻하는 것이다. 옛날식 드라마 제목으로 사랑과 야망, 뭐 그런 거! 찰스 디킨스의 작은 도릿에 나오는 대사, 뭐 그런 거! 월등한 차이는 그건 딱히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렵다. 힘들다. 양다리를 걸치고 싶다. 미녀가 아닌 선녀가 정말 거의 모든 여자들이 탐내는 미남과 결혼을 했다고 가정해 보자. 일단 거기까지는 좋은데 진짜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그 다음부터 본격적인 문제가 발생한다. 아무리 사랑이 좋다지만, 아무리 사랑이 아름답다지만, 제아무리 사랑이 고귀하다지만 밖에서 만날 때나 일할 때나 어떻게 잠깐 잠깐은 불편함을 감수할 수 있는 게 인간사요 세상사다. 그런데 일평생... 마샤 응? 무수한 마샤 같은 여자들을 걱정하며 살아야 한다? 일평생... 편하지 않게 내 목선을 고고하게 유지하고, 힘들게 반듯한 눈빛을 유지하며, 피곤하게 새-모이 만큼만 음식을 먹고, 정말 그렇게 도를 닦듯이 막 그렇게만 살아야 한다? 일평생? 체한다 그러면! 하루에 체하면 소화제를 먹으면 된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일평생을? 아아, 그건 오오! 내가 그런 억겁의 불편함을 겪어보지 못해서 직접 경험이 아니라서 뭐라 더 말은 못하겠지만 그 역시 사랑일 테지만, 그 주인공은 설혹 이렇지 않을까? 아마도 겉으로는 사랑받는 행복한 여인일 테지만 속으로는 시지프스나 프로메테우스일 수도 있지 않나 라는 것. 물론 그런 일이 어디 흔하겠나. 아마도 내 주위가 아닌 드라마에서 찾는 게 나을 테지. 그렇지만 이건 드물긴 하지만 실화다. 그럴 것이다. 여기서 여자와 남자가 갈린다. 사랑 이야기에 있어서 남자는 아마추어고 여자는 프로다. 왜? 남자끼리, 남자 세상에서, 남자 대 남자의 대화에서는 사랑을 얘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얘기해서는 안되니까. 얘기할 수는 없으니까. 그러나 여자는 다르지 않은가. 저 사례가 누구라는 사연을 전하고, 알리고, 기억하고, 논의하며 그녀들은 그런다.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다시 만나서 하자고. 그러니까 여자는 부풀리고 반복하는 것을 잘한다. 남자가 요약하는 능력이 뛰어난 데 비해서. 더불어 여자들은 특히 사랑에 대해서 뭔 할말이 해도 해도 끝이 없다. 사랑 이야기라면 여자는 절대 마다하지 않는다. 그래서 남자가 드라마를 통해서 아하~, 무릎을 탁 치면서 모처럼 새로 알게 된 일이 여자들에게는 전혀 새롭지 않은 것이다. 어디 사는 어떤 남자가 가슴 찡한 사랑을 했는데, 그는 사랑에 실패한 후, 그저 적당한 상대를 만나 남의 일처럼 결혼을 해버렸다더라, 그래도 잘 산다더라 어쩐다더라, 바로 그런 당사자를 직접 알거나 한 다리 건너서 아는 일. 그게 여자들은 가능하고, 남자는 간혹 그에 대한 입장 표명을 이렇게 한다. 마치 유능한 직장 상사처럼. 내가 그런 시시콜콜한 일들을 왜 알아야 하는데! 누가 알아 달라고 했나? 말귀 참 어둡긴, 카페 피카소에 외상값이나 값을 것이지. 나 하나 때문에 도시 교통이 마비되어도 나와 도시 교통은 상관 관계가 없다는 입장을 물리지 않는다. 내게 큰 불이익이 닥치지 않는 이상 미안해 하지 않는다. 설령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영화 대사처럼 '혹시 기분 나빴소? 그렇다면 내 사과하리다' 라고 해야 한다, 그래도 어떻게 어물쩍 슥 넘어간다. 왜냐하면 나 하나 때문에 도시 교통이 마비되어도 나는 나고, 도시 교통은 도시 교통이라고 생각하는 자기만의 고유한 인지 체계 때문이다. 지금은 멈춰선 안되요 후퇴할 수도 없구요 누군 뭐 몰라서 인습을 따르는 건가요, 다 필요없어 왜냐면 난 지금 바그너를 들어야 하거든 내가 지도를 읽는 동안은 무조건 멈추시오, 그래서 공동체와 타임머쉰과 시간은 멈추게 됨. 죄는 내가 짓고 벌은 남이 받고, 그래서 뭐 어쩔 건데 뭐 어쩌라고, 그 논리다. 유능한 비즈니스맨이 일은 잘하는데 일만 잘한다. 이분도 프로메테우스나 시지프스 분과다. 영리하지만 무식하고 고지식하고 소신 있다, 알고 보니 그분도 그 흔한 소시오패스였다더라. 사이코패스와 정치는 어... 넘어가자. 귀족들이 고풍스런 마차를 타던 그 옛날 신분이 미천한지 청렴하기 때문인지 말은 그런다, 미래에는 승용차들이 도시를 누빌 테니 마차 따윈 탈 필요 없다고. 다시 세상이 바뀌어 자동차가 대세인 지금 운전도 못하고 운전수가 모는 리무진을 운용할 형편도 못되고 근근히 살지만 말은 그런다, 미래에는 무인차가 대세이자 SF영화는 현실이 된다 라고. 그건 그렇고, 그렇다고 여자가 사랑을 일처럼 하는가, 그건 아니다. 차라리 남자는 혼자 연습장에 끄적거린다. 카피라이터가 꿈이 아닌 평생 놀고 먹는 게 꿈이었던 어떤 샐러리맨은. 사랑도 일이다 라고. 남자는 사랑을 일처럼 여길 수 있지만 여자는 아니다. 왜냐하면 남자에게는 사랑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한 남자가 한 여자를 사랑하는 것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절대 아니다. 남자처럼 여자도 흔들린다. 사랑도 변하기 쉽다. 여자는 그런다.  남자의 눈길이 자유로운 것처럼 여자는, 여자는 원래 진정한 사랑을 하고 있어도 충분히 사랑 받고 있어도 내 님과 같이 있어도 훈남이 딱 등장했다, 미남이 등장했다, 성우가 납시셨다 하면 어떤 때의 남자처럼 감성이 흔들리고 살짝 아니 아니 많~이 아찔해 하신다. 잔잔한 물밑에서 많이 긴장한다. 땀까지 난다. 정신 못 차린다. 그게 여자다! 살면서 누구나 들어 봤을 그 말, 잘 생긴 사람은 얼굴-값 한다더라? 그 말도 막대 그래프를 떠올리면 된다. 여자들이 스스로 알아서 줄을 서서 유혹하고 어딜 가나 항상 고혹적인 내 모습을 보일려고 안달난 남자가 있으면 누구는 그런 남자도 있다. 자기는 그 그래프 영역을 발로 뛰고, 땀을 흘리고, 시간을 투자하고, 지갑을 열고, 전략을 세우고, 선물 공세를 하며 열성을 다해서 공을 들이며 그렇게 다가가는 남자. 저 유명한 문구가 내게 유리하게 적용된 것은 사랑의 슬픔일까? 아마도 상심? 체념이랄지 회상? 아, 흥미진진한 수다! 맞다. 올커니! 그러면 저 유명한 문구가 내게 불리하게 사용되는 것은, 즉 그런 농담을 자주 들을지도 모른다는 것은 사랑의 기쁨? 불안불안, 조마조마, 그 사랑을 지키기 위한 처절한 노력? 행복이라고 씌여진 선물 상자와 사랑의 상징인 하트 뿅뿅 풍선이 보인다. 저 앞에. 자 쫓아간다. 막 쫓아간다. 바쁘다. 쉴 수 없다. 다른 경쟁자들이 움직이니까. 누군가에게 빼앗길지도 모르니까. 저만치 앞에 있기는 한데 그런데 그걸 어떻게 탁 잡을 수도 없고, 잡을려고 하면 잡을 듯 잡을 듯, 잡힐 듯 잡힐 듯 하다 다시 도망가고, 그러다 어떻게 딱 잡았다. 잡혔든지. 어쨌든. 그런데 아 글쎄 그 행복인가 사랑인가를 딱 잡고 보니 그건 뭐시여, 껍데기였드라? 또는 포장지나 속 빈 강정? 아흐흐 송구스럽다. 농이 지나쳤음. 그리고, 
   하나 더! 앞서 세 가지 보기가 객관성이었다면 이번에는 주관성이다. 연인의 마음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대충 보인다고 가정하고 간단히 세 가지로 구분해 본다.
   1.남자와 여자가 그 둘이 안닥복달 똑같이 서로를 너무 사랑한다. 곧, 남자의 사랑 = 여자의 사랑.
   2.내가 더 좋아하는, 내가 더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야 한다. 그래야 행복하다더라. 곧, 나의 사랑 > 내가 받는 사랑.
   3.나를 더 좋아해주는, 나를 더 사랑해주는 사람과 연애해야 한다. 그래야만 길이길이 잘 산다더라. 곧, 나의 사랑 < 내가 받는 사랑.
   사랑? 쉽지 않다. 절대 쉽지 않다. 쫓아다니고, 따라다니고, 응원해 주고, 기다려 주고, 정중함과 자상함과 다정함으로 일관하며, 때로는 웃긴 남자로 때로는 멋진 남자로 그 모든 노력을 다 한다 해도 사랑은 결코 쉽지 않다.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다. 그냥 딱 얼굴 보고 사랑, 우리 사랑 할까? 하자! 그게, 다가, 아니다. 그것을 아는 가장 쉬운 구분법은 숙녀인 딸과 귀부인인 엄마의 차이다. 여성잡지1과 여성잡지2의 판이한 차이다. 그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와 비슷하다. 나는 마침내 그이 때문에 꽃이 되었고 뿌듯하고 설레며 가슴이 두근거리는 공주님이 되었네? 나중 두고 보면 다시 볼 꺼 많다. 엄청나게 많다. 일단 식습관으로 시작해서, 잠깐 뭐시라고? 어허허, 처음에 또 중반까지 연기하면 모른다. 절대 모른다. 더군다나 타고난 성미는 바꿀 수 없다. 왜냐하면 잉태될 때 이미, 응애응애 하기 전, 이 세상에 태어남 보다 앞서서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식사 예절, 잠버릇, 성적 구미, 예술적인 기호? 예술 자체를 싫어하는데 무슨 뭔 기호? 그냥 선호하는 영화 장르로 대체, 취미, 집안, 배경, 성장 환경, 지식의 양, 인성과 가치관, 선호하는 디자인, 겉으로 드러나는 제반 사항과 조건이 아닌 세월을 겪어봐야 알 수 있는 두뇌 구조와 인지 체계─뭘로 보나 가장 최고로 일반적인 정상인이 한 번 맘 먹고 휙~ 홱~ 확~ 돌면, 그건 항간에 알려진 정도의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의 할아버지까지 모두를 천사로 숭상하고 환호를 보내야 할지도 모른다, 역으로 어지간한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는 행동 양식이 조금 다를 뿐이지 대중 매체로 알려진 것처럼 그런 캐릭터는 별로 없다 10명이나 100명 가운데 1명이면 흔한 거다 누구나 그런 개념 찾아보면 많이 걸린다, 100만 당 1명 꼴이면 몰라도, 그 말은 곧 누구나 천재가 될 수 있다는 말로도 들리네─등등 사랑은 쉽게 말하기 까다로운 통념이라서, 바로 그래서 어른들이 그처럼 이상한 말씀들을 하시는 거다. 남자는 나이가 들면 힘이 위로 올라온다네, 사랑은 없다네,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는 둥 아니라며 늦게 배운 도둑질이 무서운 법이라는 둥, 가는 여자 붙잡지 않고 오는 여자 마다하지 않는다는 둥, 의무방어전이 어쩐다는 둥, (각자 속으로 생각하고 서로 어딘가에서 코칭을 받는다) 초장에 잡아야 한다네 어쩌네 라고, 남자는 문지방 넘을 힘만 있어도 숟가락 들 힘만 있어도 아니 손가락 까딱 할 수만 있어도 어쩐다더라, 우리는 오빠라는 말만 들으믄 미쳐븐께 같은!
   하나 더! 사랑은 몸이 먼저일까 마음이 먼저일까? 플라토닉 그리고 육체적 사랑. 이건 뜸들이지 말고 간명히 요약하자. 안 그랬다가는...! 사랑은 그 둘 다다. 세상사를 어느 정도 알게 되거나 일찍 어른들의 세상을 알고자 했던 말괄량이는 이 주제 하나 가지고도 책을 7권 쓸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온라인 데이트 서비스와 NC는 문을 닫아야 한다. 결론은 이렇다. 그 둘을 포괄한 사랑이 이상적일 것이고, 나머지는 청춘들이 차차 알아가야 할 제2, 제3, 제4의 사랑일 것이다. 요점이 너무 시시했다. 배보다 더 큰 배꼽이 등장해야 할 때다. 일명 별책부록. 이왕 사랑을 논했으니 그것도 몸과 마음이 나왔으니 하나 이상한 점을 꺼내자면 이렇다. 사랑은 마음이 시키네 뭐라 뭐라 한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글과 여자들끼리의 말이고, 적어도 남자에게 있어서 사랑은 몸이다. 그건 불문율이니까 질문은 받지 않겠다. 살면서 수많은 은어와 비속어를 얼마 만큼 알게 되는가, 그 양과 나이도 약간은 비례한다. 꼭 몰라야 절대선에 해당하는 일은 아니다. 그게 필요한 때도 있고, 그걸 알아야 바른 말 고운 말을 쓰자 라고 할 수도 있고, 나는 몰랐는데 내가 주로 사용하는 어휘와 내 목소리를 음성 파일로 들어보니 와~ 어떻드라, 그걸 알게 된다. 몇몇 비속어만 떠올려 봐도 유독 몸에 대한 비속어가 많다. 굴린다, 놀린다, 쓴다, 돌린다, 어쩐다 등등. 굴린다? 그 동사는 공과 한짝이다. 놀린다? 유쾌함과 기쁨을 연상시키는 동사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정말 어쩌다 어울리지 않는 명사와 동사가 만나게 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서 하나 궁금한 게 생긴다. 왜 몸에 관련된 비속어는 딱 떠오르는데 마음에 관한 비속어는 당장 떠오르지 않는지가. 찾아보면 많을 테지만 마음에 관련된 표현은 훨씬 몸에 비해 고급이고 고품격이다. 그럴 것이다. 그건 곧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은 높게 사고, 눈에 보이는 확실한 물체인 몸은 값싸게 여긴다는 뜻 아닌가? 어쩌면 그 반대가 맞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 하지 않을 수 없다. 사적으로 사랑 하면 남자는 몸을 중요시하고 친구들끼리는 마음에 대한 사랑과 사랑에 대한 갈망 같은 건 숨긴다. 남자 대 남자라는 남자의 세상에서는. 말해서는 안되니까. 반대로 여자는 마음의 중요성을 예술처럼 강조하지만 이상하게 그녀들은 몸과 마음이 따로 놀기도 한다. 한 남자와 오래 사랑을 하고 오래 살면서 마음은, 마음은 어쩐지 모르겠다. 드물게 그런 사례가 있다. 남자는 대체로 몸과 마음이 같이 가는데, 왜 여자는 간혹 몸과 마음이 따로 분리되는지 아시나요? 왜냐하면 그냥 그렇게 태어났기 때문이다. 남자와 여자는 다른 것이다. 그래서 사랑이 어렵고, 어려우니까 사랑을 귀찮게 하고, 사랑 사랑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그렇지만 여기서 웃음을 챙겼으면 탄복할 만한 감동도 찾아보자. 많이도 말고 하나만 알아보자. 소설 속 인물들이 타인의 마음을 떠봤으면 독자는 결론이나 교훈을 염탐해 봐야 하지 않겠나. 스무살 친구는 웃고 떠들고 놀라면서 신나게 읽은 다음에 딱 여기서 이런다, 거 소설 한번 더럽게 재미없구먼 이라고. 시간 낭비였다고. 그것은 이렇다. 누구나 아는, 어른은 물론 사춘기만 되도 알아가는 그런 개념 말고 진짜 희귀함 그 고결한 가치, 생각해 볼 만한 의의를 지닌 일이 무엇인가를 놓칠 수는 없다. 그것은 이렇다. 그럴 것이다. 남자가 여자를, 따라다니고 귀찮게 하고 기다리고 쫓아다니는 사랑은 익숙하다. 그걸 거꾸로 뒤집자! 이번에는. 여기서는. 그래야 한다. 그래도 된다. 그럴 수도 있다. 가능하다. 하면 된다. 주변을 보자. 내 주변을. 내 인생을. 타인의 삶을. 그리고 예술까지. 그 흔한 미녀와 야수가 아니라 그 반대로 미녀가 먼저 야수를, '오오 나는 이 남자와 후회없는 사랑을, 최고의 사랑을, 미친 사랑을, 천년이 가도 잊혀지지 않을 사랑을, 전설적인 사랑을 할 꺼야' 라고 처음에 다짐을 하고 다가가고, 따라다니고, 귀찮게 하고, 기다리고, 쫓아다니며, 그러다 숨어서 그를 보호하고 그의 근처로 접근하는 모든 여자들을 차단하며 그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며, 온 동네에 온 세상에 알리며 그것을 마침내 불후의 사랑으로 만드는 바로 그런 사랑, 여자가 남자를, 미녀가 야수를 내 것으로 만드는 사랑 말이다. 하지만 그건 아무래도 여자 입장에서 말해야 옳다. 그래야 멋진 것 같다. 그러니 그것 역시 넘어가는 게 좋겠다. 단, 얼마나 나와 비슷한 성향의 소유자를 만나야 하느냐 그것은 좀 더 심도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 그건 너무 벅차다. 연애를 시작한지 얼마 안 된 연인과 오래 산 부부의 가장 큰 차이점 가운데 하나는 동조성일 테지만, 일단 레즈비언의 연애를 비롯해서 권위적인 저서 최소 몇 권은 꿰고 시작해야 하니까.


   16

   나는 다시 평소의 나로 돌아왔다. 모든 것은 평범했고, 나는 일을 하기 위해 멀더의 카페로 갔다. 커피를 주문했다. 커피가 나왔다. 멀더는 오늘도 늦잠을 자는 듯 했다. 어제 또 얼마나...... 그건 뭐 멀더 인생이니까 관여치 않는다. 그러고서 딱 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점원은 최근 내 기호가 바뀐 걸 재빨리 눈치 채고서 딱 마시기 좋은 온도로 세상에서 제일 맛난 커피를 뽑아주었다. 저 세심한 배려와 약삭 빠른 눈치, 전자와 후자 역시 종이 한 장 차이다. 나는 향기로운 커피 첫 모금을 마신 후 삼키기 직전에 찻집 분위기를 한번 슥 둘러보았다. 그렇게 카페 돌아가는 정황을 대번에 살핀 후 내 지정석으로 갈려고 했다. 그런데!
   윌과 낸시가 저기서 애정 행각을 하나도 부끄러워하지 않은 채 과시하고 있었다. 이 사랑을 보라는 듯이 세상에 뽐내고 있었다. 나는 눈에서는 물론이요, 귓구멍과 다른 여러 곳에서 만화영화 주인공처럼 수증기를 부쉬쉭 내뿜었다. 더군다나 커피 첫 모금을 삼키지 않았기 때문에 그건 입가로 또 입술로 모두 쏟고 흘리고 말았다. 아뿔사! 이런 개뿔! 맙소사! 설마 에단이 주례를 보는 것은 아니겠지?
   이런, 아휴, 증말, 이걸 어떻게 하지, 어? 그런데 내가 왜, 대체 왜 내 기분이 이래야 하는데? 남의 일이잖아, 타인의 사랑이라고. 사랑은, 사랑은 축복하고 예찬하고 아름답다고 해야 한다. 추접스럽다고 하는 게 아니라. 그러나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나는 어느새 사랑을 꼭 그처럼 고상한 아름다움으로만 칭송해야 하는가, 반드시 사랑은 반짝임으로 포장해야 하는 걸까, 과연 꼭 그래야 하는가, 막 그런 의구심이 나를 닦달하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나는 사랑 밖에 모르는 바보가 아니라 사랑에 대해서는 아는 게 하나도 없는, 사랑이란 말만 들으면 얼굴이 빨개지는 바보가 되었다.


   17

   일주일이 지났다. 지금 나는 행사장에 가는 길이다. 오늘은 윌과 낸시의 약혼식이 있는 날이니까. 아, 여기까지 오는 동안 나는 길에서 에단을 닮은 여자를 만났다. 여자가 에단을 닮아? 허허허, 에단의 여동생이면 몰라도 그게 아니면... 왜 하필... 심성이 고울 것 같은 아가씨였다. 그런데 그녀가 길을 물어봤다. 바로 그녀도 윌과 낸시의 약혼식이 치러지는 행사장으로 가는 길인 듯 했다. 나는 상냥하게 가는 길을 가르쳐줬다. 그러자 그녀가 고맙다고 막 그랬다. 그래서 나는 아무 대답을 하지 않고서 가만히 손을 슥 내밀었다. 손바닥을 하늘로 향해서. 마치 세상에 공짜가 어딨냐 제값을 치러야 할 거 아니냐는 듯이. 그녀는 멈칫 뭘 주라는 것일까 생각하는 듯 했고, 잠시 후 혹시 전화번호는 아닐까 그런 고민을 하는 듯 했으며, 뭔가를 물어볼 것처럼 할려다가 참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하늘로 향했던 손바닥의 각도를 재빨리 90도 틀었다. 악수만 하고 헤어지자는데 뭔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십니까 라고 말할려다가 참았다. 우리는 악수를 나눴고, 우리는 헤어졌다. 이건 뭐 심술도 아니고 꽁트도 아니고 재미 하나도 없었다.
   나는 약혼식장에 도착했다. 가만 있어 봐. 그런데 무슨 약혼식? 지들이 무슨 상류층도 아니고 옛날 사람들 흉내내는 건가? 하긴 나는 사는 동안 내가 본 백과 사전은 오직 조류 백과 사전 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래도 덕분에 약혼식에 처음 참석하게 되었다. 드라마로만 그것도 옛날에 봤던 약혼식을 말이다. 그런데 그 행사는 평범함에서 약간 벗어난 듯 했다. 게다가 주례는 에단이었다. 나는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윌은 스타워즈광인데 에단한테 부탁했나 보다. 다스바이더 얼굴 모형을 쓰고서 사회를 맡아달라고. 주례? 사회? 그러든가 말든가. 그런데 윌은 언제부터 내 친구 에단과 알고 지냈지? 이제 난 녀석들의 단짝에서 밀려났고 우정도 뺐긴 건가? 관심 없다. 그리고 나도 그렇다. 내 피앙세가 알면 안되네 큰일이네 뭐라네 하더니만, 그렇게 쫓아다니고 피해다니고 난리를 펴더니만, 그러다가 딱 윌의 피앙세가 된 낸시를 축하하기 위한 파티에 하객으로 참석한 것이다. 샴페인인지 와인인지 그냥 막 마셔버릴까? 안된다. 끝까지 품위를 잃으면 안된다. 흐트러지더라도 혼자 있을 때 흐트러지고, 망가지더라도 안보이는 데서 망가져야 한다. 혼자 있을 때 울고 짜고 혼자서 갖은 험담을 아주 살짝만 할 뻔 하다 멈춰야 한다. 참아야만 한다. 나는 어른이니까.
   그런데 파티장은 전혀 시골 같지 않았다. 저런 샹들리에가 어떻게 이곳에...! 게다가 오디오를 틀어 놓은 것도 아니고 현악 4중주단이 모차르트를? 모차르트를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모차르트로 시작해서 모차르트로 끝난다는데 바로 그 모차르트를? 수소문해서 어떻게든 싸구려 식당에서 서빙하는 모차르트를 찾아내서 페이스북 친구라도 맺든가 해야지, 것 참 나 어이쿠 이거 원 아흐흑! 심지어 남자들은 모두 제비복에 여자들은 눈부신 드레스를? 난 이렇게나 꾀죄죄한데? ... 아, 망했다. 이런 젠장! 그래도 너무 혼자 꿍해 있으면 영 보기 싫을 테니까 대인배 같은 모습을 보여야 한다. 흐트러지면 안된다. 그래도 온김에 어떻게 낸시한테... 숙녀분들... 아니다. 참자. 참아야 한다.
   그렇게 둘러보고 구경하고 혼자 몽상과 공상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는 동안 파티는 중반을 넘어서서 절정으로 치다르고 있었다. 그리고 에단이 저 앞에서 다스바이더 헬맷을 벗었다. 그런데 글쎄~!
   다스바이더 헬맷을 벗은 에단은 에단이 아니었다. 녀석은 윌이었다. 그러면 이쪽 윌은? 마침 그 처음의 윌도 초정밀 가면을 벗었다. 녀석은 에단이었다. 그런 다음 낸시는? 설마 낸시는 남자? 뭐시여, 이건! 얘네들 이상한 애들이네~ 못쓰겠구만! 난 아무래도 녀석들과 친하게 지내면 안될 것만 같은 기분에 빠져들었다. 이런 분위기에 발목 잡히면 아마도 인생 내내 조연으로 살게 될 수도 있다는 그런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조용히 약혼식장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이제 나는 누구를 쫓아다니고, 따라다니고, 꽃다발을 들고 기다려야 하나, 그런 궁리를 하느라 초조해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정말 이상하게도 그런 생각을 하기 시작하니까 괜히 막 기뻤고, 들떴고, 흥분됐고, 기분이 다시 좋아졌다. 이건 뭐 완전 자타-공인 바보였다. 사랑에 대해서는 무지한 바보. 나는 집으로 돌아갔다.


   18

   나는 집에 도착했다. 도착하여 손만 씻고 즉시 해야 할 일을 서둘러 실행했다. 그것은 이랬다. 엑셀 파일을 하나 새로 만들어서 숙녀 쫓아다니기? 아가씨 추종하기 라는 서류를 작성했다. 가설과 실험 주제와 방법까지 완벽하게 정해졌기 때문에 이제 결과만 나오면 그것을 글로 옮기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면 나는 삼류에서 이류로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발판은 마련됐다. 약간만 유명해지거나 삶이 조금만 여유로워지고 넉넉해지는 건 시간 문제였다. 아마도 그건 식은 죽 먹기일 듯 했다. 나는 이제 썩은 미소와 결별했다. 나는 이제 아침에 일어날 때 하늘이 날 반기고, 세상은 아름답고, 오늘 하루는 또 어떤 신나는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어떤 미녀가 나를 시도 때도 없이 따라다닐까 라는 걱정을 하며 살게 되었다.
   물론 거짓말이다. 나는 다시 허언증이 도진 것이다.


   19

   일 년이 지났다. 벌써 일 년!
   그 어떤 제목의 엑셀 파일이 완성됐다. 이제 소설을 쓰기만 하면 그건 뭐 거의 초-히트작을 따논 당상이었다.
   그런데 나는 집에서 혼자 술을 마신 후 필름이 끊겼고, 몽유병이 오랫만에 날 찾아와서 다음 날 그 뒤처리를 하느라 골머리를 앓았다. 역시나 그 엑셀 파일이 담긴 USB도 잃어버렸다. 보안을 위해 웹에도 올려놓지 않았고 흔적도 남겨 놓지 않은 것이다. 뿐만 아니라 어느 날 서점에 가서 보니 그 따라다니고, 추종하고, 꽃다발 들고 집 앞에서 기다리는 방식의 사랑에 관한 수필과 소설과 인문교양서는 하도 많이 다루어져서 이제는 유행의 끝물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제서야.
   아흐흐! 나는 뭘 해도 안된다. 뭘 해도 재미없다. 뭘 해도 종착역은 꽝이고, 뭘 해도 잘 될 듯 잘 될 듯, 환상을 잡을 뻔 거의 잡힐 뻔 하다가 딱 잡고 보면 그건 허상이었고, 내 말과 글은 모두 허풍이었다. 나는 은근함을 상당히 넘어서는 허당이었던 것이다. 나는 다시 심심해졌다. 기쁜 일이 생겨도 불안했다. 행복한 시기가 이어져도 조마조마했다. 조마조마! 아마추어 야구팀 '조마조마'나 아마추어 축구팀 '두근두근'이라는 이름의 팀에 가입해야 되나 그런 생각도 들었다. 실제 그런 팀이 있었다. 반전이 나를 너무 좋아했기 때문이다. 하긴 나도 반전이 싫지는 않았다. 그러나 쥐구멍에도 볕 들 날이 있다는데 대체 그날이 언제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따라서 이쯤 되고 보니 나도 그만 반전이 많이 좋아져버렸다. 나는 피앙세 몰래 반전과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내 피앙세가 모르는 비밀이 생긴 것이다. 그래서 나는 드디여 반전이라는 첩을 숨겨 두게 되었다. 사이보그, 로보트, 에이리언, 인조인간, 투명인간, 프랑켄슈타인, 좀비, 뱀파이어, 인간과 똑같은 이종의 신인류 막 그들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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