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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는 갑자기 홍학이 보고 싶어졌다. 익숙하지 않은 그 동물에 문득 관심이 생긴 것은 그가 몇 페이지 보다 만 소설 책의 제목에 그 단어가 들어있기 때문이었다. 허영심이 무척 그립다고 해야 할까 절실하다 해야 할까, 바로 그런 어떤 날 그는 펠리컨과 앵무새는 언제, 어디서, 어느 만큼 구경했지만 홍학은, 홍학을 보게 되는 특별한 순간이 자기 인생에는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설령 어떤 지적 매력이 넘치는 논리주의자가 그에게 홍학과 허영심이 대체 무슨 관계가 있냐고 물어볼지라도 그는 그 지당한 지적에 반박하지도, 그분과 실랑이를 벌이지도, 놀림감이 된 듯한 기분에 슬퍼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다만 그는 하이든이 왜 옛날에 태어났고 자신이 언제 어떻게 하위문화를 애호하게 되는지를 차라리 궁금해 할 것이다. 그만큼 그는 단지 홍학이 궁금했고, 홍학에 끌렸으며, 별안간 홍학이 좋아졌다. 아마도 그는 최근 유난히 친해진 새로운 친구가 있었다면 그는 그 친구에게 자기를 홍학이라는 애칭으로 불러주기를 부탁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흔히들 거창함보다는 우연성에 의해 꿈이 바뀌고, 멀리 있을 동화의 나라 속 공주님보다 주변에서 해바라기처럼 사랑의 장기전에 돌입한 주근깨투성이 못난이와 사랑에 빠질 가능성이 큰 법이다. 그처럼 A는 왜 갑자기 자기가 홍학이 보고 싶어졌는지 그 이유를 측량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그와 같은 호기심에 대해서 누군가를 충분히 설득시키지 않아도 괜찮았고, 그 생각의 타당한 근거를 일기나 편지 같은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일 중독에 따른 마감일 스트레스도 없었다. 그는 그냥 무슨 영문인지 홍학을, 직접, 코앞에서 보고 싶어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처럼 홍학을 보고 싶다는 욕구가 구체화되기까지 사뭇 그 묘한 기분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잘 몰라서 전전긍긍하며 끈질기게 그 새로운 마음의 동기에 대해서 추적했고, 그 결과, 마침내 그는 참 어렵게도 결론을 내렸다. 아, 나는 홍학을 보고 싶어하는구나 라고.
이런 머저리 같은 놈, 같은 영화 속 대사를 떠오르게 하는 엉뚱하고 입이 무거운 사람은 의외로 흔하다. 마치 귀에 피가 나도록 수다를 퍼트리기를 좋아하고, 흡사 귀에 피가 나도록 끊임없이 글을 곡을 그림을 그리고, 마치 세인들의 관심과 호감의 물망에서 밀려나고 잊혀지기를 냉엄하도록 금기시하고 거부하는 브랜드처럼, 그냥 쉽게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스타일의 사람처럼 흔하다. 그것은 쇼핑하다가 길을 걷다가 선술집에서 보고 들을 수 있는 일반인들의 특징일 뿐이다.
그래서 A는 적이 안심했다. 꼭 하루 아침에 어떤 전문가의 평탄한 삶을 때려치우고 전혀 다른 새로운 인생을 사는 그런 TV 인생극장 같은 일도 아니니까, 그는 그게 나쁜 일이 아니라며 약간의 기특한 기분마저 느껴졌다. 때문에 그는 그 특별한 결심에 대해서 누군가에게 알리고 싶은 사색가랄까, 입소문 마케팅의 귀재 특유의 욕구 그것의 발로를 모른 체 할 수 없었다. 따라서 그는 친구에게 만나자고 연락했다. 그러나 그는 1차 범주에 드는 가까운 친구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그러면 누구에게 뜬금없이 우리 지금 만나자고 엄포를 놓았느냐, 바로 옛날의 단짝 B가 소셜 네트워크에 바뀐 소개 글을 올려놓은 걸 보고서 녀석에게 연락한 것이다. 그 친구의 소개 글은 이랬다.
<직장 그만둠. 당분간 쉬겠음. 연락하지 말 것> A는 자기를 추스려서 다독여주고 놀아주라는 뜻으로 그 소개 글을 해석했다. 잘못된 이해일지는 모르지만 그들은 최소한 한때 꽤 오래 단짝이었기 때문에 A의 오판이 크게 부적절하다고 할지라도 A가 연락한 친구 B는 어쩔 수 없이 수용해야 하고, 하는 수 없이 A의 호들갑을 눈감아 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A는 친구B를 필사의 노력 없이 찻집으로 불러냈고, 자신의 다정한 낭보를 전하는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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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겨우 그 얘기 할려고 날 불러낸 거야? 그딴 홍학 때문에? 얼척없어. 야! 나 직장 때려쳤다고. 이 친구가 이거 이거 뭘 잘못 먹었나? 실의에 빠진 친구를 위로해 주지는 못할 망정 홍학이, 어쩐다고? 이 친구야. 어떻게 살았냐고 돈은 많이 벌었냐고, 번듯한 직장에서 스카웃 제의는 들어오냐고 인생은 네게 친절하냐고, 아니면 여자 소개시켜줄까 라고 그래야 하는 거 아니냐? 이거 무슨 이달의 운세도 아니고. 뭐, 홍학? 홍학이 뭔데? 왜 갑자기 홍학이 보고 싶은 건데?」
「왜? 이유 없어. 어차피 지금 살아가는 나를 보면 노래를 한 곡 외우지도, 커피도 술도 못 끊어. 즐기면 그만이지만. 어디 가고 싶은 데도 없어. 꿈? 무슨 꿈? 개꿈? 갖고 싶은 거, 있으면 좋겠다. 옷도 대충 입고 향수도 안 뿌려. 나는 커서 뭐가 되겠다, 어떻게 살고 싶다, 누군가를 사랑하겠다, 사람과 인생과 세상에 대한 큰 기대도 없어. 혼자 있고 싶은 기분? 지긋지긋해. 하지만 사람들과 어울리면 또 다시 혼자 있고 싶어져. 해변가 조용한 카페에서 글이나 쓰고 싶다고. 거리에 아름다운 아가씨가 지나간다, 나랑 무관한 일이지. 왜냐하면 난 여자 보기를 돌 보기 같이 하니까. 좋아. 좋다고. 괜찮아. 상관없어. 원래 그랬으니까. 자, 자! 이런 내게 드디여 뭔가 하나 날 흥분되게 만드는 그분이 나타난 거야. 짜잔~ 기분이 고조되지 않냐? 막 금방 재미있어질 거 같지 않냐고. 그런데 그게 여자가 아니라 새라는 게 문제야. 난데없이 나타난 애증...까지는 아직-이고 애정의 대상이 아 글쎄 새라니, 나도 참 이거 원! 진짜로 사람이 아니라 그게 새라서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일이지. 그러나, 이해할 필요 없어. 나는 홍학한테 매료되었고, 홍학도 그걸 알 꺼야. 그럼. 그러면 된 거지. 그런데 말이야, 너 혹시 홍학이 어디 사는지 아니? 어디 가야 홍학을 만날 수 있지?」
「드디여 늬가 돌았구나. 축하한다. 축하해. 짝─짝─짝! 누가 돌아이 아니라고 할까 봐! 아아! 별볼 일 없는 따분한 일상에 파문을 일으키며 그분이 납시셨는데 축배를 들고 노래를 부르며 어떻게, 옷이라도 벗을까? 넌 어찌 그리 하나도 안 변했냐? 그래. 인생은 홍학이다. 됐냐? 그러지 말고 우리 써핑이나 하러 가자. 어때?」
「뭔-핑? 말했잖아. 나 홍학 보고 싶다고. 홍학!」
「너 자꾸 아까부터 홍학 타령인데 홍학이 무슨 외계인이라도 되냐? 차라리 연애를 하던가? 이제 그만 화려하지 않은 현실로 좀 돌아와. 어? 게다가 지금 입장이 바꼈잖아. 우리 옛날에 학교 다닐 때, 늬가 내 새끼손가락 부러트려서 나 입원시키고, 병문안 와서 나 나오라 하고 늬가 침대에 드러눕다가 간호사가 딱 들어오더니 씩 웃었는데 지금도...... 아 잠깐, 혹시 그때...? 아니야 아니야. 그런 건 인생의 즐거움도, 행복한 기회도 잃어버린 행운도 아니야. ...(침묵)... 하긴 내가 남자니까 다행이지 내가 만약 여자였다면 너랑 같이 홍학을 찾으러 떠났을지도 모르겠다. 그게 뭐라고. 허영심도 허영심이지만 곱게 잠자고 있는 그 고운 허영심을 이끌어내는 너의 그 천부적인 재주도 알아줘야 한다니까. 그러고 보면 남자란 남자는 모두 꼭 늑대란 법은 없나 봐. 엥? 아닌데. 말이 꼬였다. 에잇 몰라! 아 그러지 말고 나한테도 한 수 가르쳐주라. 너의 그 비책 말야. 여자들의 허영심이 막 눈에 보이고 그러냐, 응? 그러면 속옷 색깔도 보이고 그러는 거 아니냐? 겉만 번지르르한데... 그런 놈들이 알고 보면 속도 번지르르한 건가? 어느 저명한 정치학자가 널 본다면 정치색은 한 번도 진보를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사랑 관념에 대해서는 매우 진보적인 남자로 봤을 꺼야. 아니? 바꼈나? 또 꼬였네. 에잇 몰라! 아무튼 넌 쾌락만을 쫓는 남자야. 천하의 플레이보이라고.」
「얘가 얘가 큰일 날 소리 하네. 늬 별명을 왜 나한테 떠넘기고 그러냐? 그리고, 허영심이 아니라 낭만파와 인상주의, 시적 로맨스 같은 거야 그것은. 늬가 궁금해 하는 뭔가 애틋한 사랑에 대한 여자들의 동경심과 천국에 대한 소녀의 몽상은 말이야. 넌, 사랑을, 몰라! 심심한 인생을 보상할 만한, 살며시 배상할 만한 일은 뭐니 뭐니 해도 역시 심심한 사랑이지. 요 앞에 화단에 보니까 웬 등치 좋은 꿀벌 한 마리가 이 꽃 저 꽃 막 돌아다니면서 그 달콤한 꿀을 모조리 다 따먹고 다니더라. 그냥 그렇다고. 진짜야. 가서 한 번 봐봐.
그런데 우리가 어쩌다 사랑이란 단어를 입에 담고 말았지? 이러면 안되는 건데. 방심한다 싶으면 어느 틈엔가 앙큼하게 상석을 남몰래 차지한다니까. 사랑마저도. 요염한 고양이도 아니고 말야. 사랑은 여자들한테 맡기고 남자들은 바쁘게 치고, 때리고, 넣고, 잡고, 까고, 걸고, 마시고, 그러면서 직분에 충실해야지. 여자의 사랑과 남자의 우정만 나오면 머리 아퍼져. 차라리 알고 나면 정나미가 떨어질 비밀 같은 일이라도 캐내고 연구해야 하나 막 의아해진다니까. 설마 나만 그런 건 아니지?」
헬로윈 데이가 아닌 날 참으로 얼마 만의 해후였던가. 그래도 기쁘기는 했으나 그들은 할말이 오죽이나 많지는 않았다. 또 한 명은 써핑에, 한 명은 홍학에 마치 딴살림을 차린 듯 정신이 쏠려 있었다.
그때 A에게 전화가 왔다. 바로 역시 단짝 C로부터. A와 C도 역시 어느 시절 단짝이었다. 톰과 제리, 저리 가라-였다. 그런데 C는 A가 어디 있는지 위치 추적을 해서 벌써 A와 B가 있는 찻집에서 100m 거리에 있었다. 결국 C가 도착했다. 그런데 B와 C는 서로 알기는 아는데 안 친했다. 그렇다고 A가 억지로 B와 C를 친하게 지내라고 종용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B는 C가 도착하기 직전에 A에게 그랬다. C랑 놀아주라고. 그렇게 해서 B는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A는 C와 오랜 재회에 대해서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기뻐하고 반겨하며, 똘똘한 연애사와 영원한 욕망에 대해서 못다 한 얘기를 나누며 시간 가는 줄 몰라 하며 다시 차를 마시지는 않았다. 즉, 그 길로 바로 그들은 멀리 놀러가자고 당장 어딘가로 떠나기로 했다. 만나자마자 바로. 목적지는 방향 정도만 정하고. A와 C는 곧바로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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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와 C는 랄라랄라 하면서 운전해서 어딘가로 떠나고 있었다. 가장 적합한 단어로는 여행, 다른 모종의 표현으로는 탐사를 떠난 것이다. 그런데 계획에 없던 낯선 여행 때문인지 A의 홍학 얘기는 쏙 들어가버렸다. 그래서 C는 홍학에 대한 담론이 있었는지조차 몰랐다. 짐작도 못했다. 아예 상상할 수도 없는 영역의 주제였다 그것은.
아무튼 그들은 다시 스무살, 꿈 없는 스무살로 돌아갔다.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서 A는 C에게 바보 같은 녀석이라 했고, C는 A에게 인생이 뭔지도 모르는 놈이라고 했다. 더불어 다시 C는 A에게 행복해지고 싶냐고 물었고, A는 C에게 우리 그런 얘기는 하지 말자고 했다. 게다가 그들은 넌 옛날에 왜 가발을 썼냐, 너의 그 가난처럼 초라한 이별에 대해서 얘기해 보렴 같은 속마음을 토로하는 건 생략했다.
그들은 약 2시간 거리에 있는 어느 한적한 휴양지를 목적지로 정한 채 길을 가던 중 어느 나체 해수욕장 인근을 지나게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굳이 그곳까지 꼭 갈 필요가 있을까 하면서 그냥 여기서 물장구나 치면서 일광욕 좀 하고 돌아가자고 의견을 모았다.
그들은 옷을 모두 훌훌 벗어버린 후 바닷물을 향해 뛰어갔다. 야~호! 정말로 날아갈 듯이 유쾌하지는 않았으나 거짓으로 기쁨의 환호성도 질러봤다. 그리고 그들은 각자 놀게 되었다. 핸드폰으로 각자 소셜 네트워크를 보고, 걷고, 마시고, 읽고, 그러면서 일상으로부터 벗어났으니까 서로 귀찮게 하지 말자고 약속이나 한 듯이 여유롭게 따로 놀고 있었다. 들들 볶는 마누라의 잔소리도 앵앵거리는 직장 상사의 야단도 없었고, 모든 게 좋았다. 왜 진작 이렇게 놀러올 생각을 못했을까 그런 의문도 잠시 들다 말았다. 그런데 이때,
인적이 전혀 없던 그곳에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A는 내심 흥분됐다. 왜냐하면 그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나체 해수욕장에서 수영을 하게 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보이는 사람들은 모두 옷을 입고 있었다. 수영복을 입은 사람도 거의 없고, 모두 평상복 차림으로 바지 밑단만 무릎까지 걷어올린 모습이었다. A는 신속히 물 속으로 들어가서 머리통만 내민 채 정황을 살피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깨달았다. 아, 속았구나 라고! 그곳은 나체 해수욕장이 아니었던 것이다. C가 원래 천하의 달변가로써 입만 열면 거짓말이란 사실을 뒤늦게 떠올린 것이다. 그는 얼굴은 빨개지고 가슴은 두근거렸다. 그는 감탄사를 연신 내뱉었다. 그러다 깜빡 깜빡 분위기를 살피던 중 인파가 물러가자마자 그는 옷을 벗어둔 컨버터블로 뛰어갔다. 물론 나체인 상태로. 그런데 그는 친구 C가 보이지 않길래 뭔가 느낌이 이상하다고 직감했다. 게다가 그의 옷은 없고 C의 옷만 차에 있었다. 일단 A는 C의 옷을 입었다. C는 어딘가로 사라졌고, 전화를 받지 않았다. A는 C가 이제 자유인이 되고 싶나 보다 라고 생각했다.
갑자기 그는 기분이 이상해졌다. 자신이 태몽을 꾸고 싶은 남자가 된 듯 했다. 어쩌다가 자기가 로빈슨 크루소가 된 것만 같아서 그 어떤 홀가분함 때문에 영혼의 쾌락이 느껴졌다. 딱 뚜렷하게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그는 갑자기 모든 게 달라져 보였다. 매일 마주치는 똑같은 사물과 풍경, 상식, 교양과 편견과 기존의 인식이 모두 새로워 보이는 경험을 하고 있었다.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었다. 그는 뭐랄까 낯선 곳에서 타인의 옷을 입게 되니 그 언제라도 체감할 수 없는 환상의 최고봉을 실감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A는 C의 맹목적인 사라짐이 조금 마음에 걸렸다. 드라마에 나오는 실종 뭐 그런 일은 아니겠지만 C의 빈자리가 허전하다고 생각했다. 원래 C는 무인도에 데려가고 싶은 1인도 미모의 아가씨도 아니지만 같이 있으면 전혀 심심하지 않은 친구였으니까. 그래도 그 언짢음은 내내 그를 불편하게 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평소와는 전혀 다른 장소에서 타인의 옷을 입게 되어 새로운 사람으로 환생한 듯한 묘한 흥분감과 쾌적한 도취감을 만끽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원래 이건 곤경에 처했다가 일행과 헤어진 난처한 기분이 들어야 맞는 건데, 전혀 반대의 감정이 그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이 쉬운 색다른 즐거움을 왜 그전에는 생각해 보지 못했을까 라는 약간 의아한 분위기에 젖어들었다. 이 신선하고 이다지도 새로운, 콜라처럼 짜릿하고 우유처럼 담백하며, 고도의 쾌락처럼 미칠 듯이 좋은 감정에 비견할 수 있는 것은 아마도 웜홀 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건 뭐랄까 미풍, 광채, 기쁨, 유희, 황홀함, 놀라움, 신기함, 초현실 그리고 사랑, 그와는 다른 정말 뭐라고 형용할 수 없는 새콤달콤한 기분인 듯 느껴졌다. 따라서 그는 집에 가기 싫어졌다. 그래서 그는 여행가에서 현지인으로 신분을 바꾸기로 결심했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지금 덜 재미있게 사느냐, 당장 더 재미있게 즐기고 미래엔 또 다른 미래가 있을 것이라고 여기며 근심과 걱정은 모두 잊어버리느냐. 전자여야 한다는 중압감에서 후자도 괜찮다는 낙천주의로 변하는 걸 세상에서는 쉽게 말해서 어른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는 그 둘의 장점만 취해서 지금 놀고 내일은 생각하지 않는 것이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행복의 비밀이라는 진리를 터득해낸 듯한 과업을 이룩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그는 꼬치꼬치 캐묻고 따지고 점검할 필요 없이 근처에 허름한 별장에 짐을 풀고 한적하게 휴양 생활을 즐기기로 작정했다. 꼭 그것이 최후의 비장한 결심은 아니지만 기다리고 기다리던 최고의 사랑을 만난 듯한 감동이 물밀듯 밀려왔다.
컨버터블은 구닥다리지만 제몫을 했고, 준비물도 이런 때를 위해 미리 대충 상비해뒀기 때문에 아무런 걱정이 없었다. 괜히 여기 올 때 친구 C의 최신식 초호화 슈퍼카 조수석에 타고 오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그리고 여행 가방에 옷 몇 벌과 노트북, 책은 이탈로 칼비노의 우주만화, 감상할 영화도 3개나 미리 준비해뒀다. 럼 다이어리 (2011), Super 8 (2011), 백 투 더 비기닝 (2015) 그렇게. 그는 나체 수영을 하다가 혹시 잘못되었다면 경범죄로 처벌 받을 뻔한 상황으로 치달아 일이 잘못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고생한 보람이 있다고 생각했다. 구멍난 양말? 인터넷으로 필요한 물품은 그때그때 주문하기로 했다. 따지고 보면 아무 일도 아닌데 놀라움의 연속이었고, 현재는 동화 같은 세상이었다.
그래서 그는 까다롭지 않게 마련한 별장에서 별이 빛나는 밤에 이처럼 글을 쓰기 시작했다.
사랑이 온다. 새가 날았다. 개가 짖었다. 고양이를 만났다. 시간이 멈추었다. 새로운 인생이 시작됐다.
4
A는 장미빛 환상에 목마른 문학 소녀도 꿈을 먹고 사는 당나귀도 아니었다. 그는 새로운 이웃이었을 뿐이다. 새롭게 출몰한 이방이이었다. 그는 신밧드도 아니고 로맨티스트일 리도 없고, 어느 숨어 사는 마법사의 술수에 걸려들어 개구리나 생쥐로 변한 왕자님도 아니었다. 차라리 한량에 가까웠을 것이다. 그러나 호화로운 성을 살 만한 돈은 없었다. 하지만 노숙자도 아니었다. 그는 노인도 아니고 유치원생도 아니었다. 키에르케고르와 스피노자의 양서를 원어로 읽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교황청의 지하실이나 라스베거스를 원활히 순환시킨다는 숨은 원리가 궁금하지도 않았다. 그러므로 그는 심심했다. 새로운 낯선 행선지에 정착한지 얼마나 됐다고.
그래서 그는 단골 술집을 찾아 헤맸다. 그리고 동네를 이 잡듯이 샅샅이 파헤치지 않고서 단골 술집을 하나 찾았다. 또 친구를 사겼다. 나아가 취직을 했다. 번듯한 직장은 아니고 어느 인기 없는 월간지에 연재 소설을 기재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유명해질 수 없었다. 명성을 얻더라도 부담스럽고 피곤했을 것이다. 잘된 일이다. 따라서 그는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즉 여자를 사귄 것이다. 그런데 여자를 만나기는 만났는데 그는 그 여자와 사랑이 아닌 우애를 고양시켰다. 그럴 수 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나 보다. 딱 한 번이라도 여자들이 줄줄 따라 봤으면 소원이 없겠다 라고 속으로 생각했을지는 모르지만. 그런데 그녀가 업어달라는 부탁도 했다. 업어줬다. 아주 잠깐만. 이로써 그는 아주 길게도, 아주 짧게도 여자를 업어본 남자가 됐다. 업혀본 것도 물론. 이미 옛날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애절한 사랑 이야기는 쏙 빠진 채 그는 동네에서 친교 생활을 지속했다. 또 어떤 친구에게 마술을 배웠다. 그러나 불을 뿜는 불쇼를 학습하다가 마술을 포기했다. 어려웠다. 그러다 파티에 초대를 받았다. 그런데 거기 가서 보니 순전히 촌닭과 촌년들 뿐이었다. 게다가 거울을 보니 자기는 그 가운데서 거의 왕이었다. 오, 저런! 그러나 인기는 없었다. 아, 이런! 그래도 그런 체념이랄까 변심이랄까, 그렇게 내려놓은 마음 때문에 유행가도 몇 곡 외워서 부를 수 있게 됐다. 왜 사람들이 기분이 좋거나 사랑에 빠지면 막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는지를 다시 알게 됐다. 도시 생활에 지쳤던 그에게 지금 이곳은 정말 무지개가 살고 있는 미지의 세계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왠지 모르게 허전한 공허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사교의 범위를 넓혔다. 면사무소 소장, 치안소장, 의원 원장, 카바레 사장, 정신병원장으로. 그러다 하나 깨달았다. 친교의 대상을 너무 높게 설정했다는 것을. 그래서 그는 그 타켓층을 조금 낮추었다. 농부와 어부와 광부 출신 선생과 진공청소기 공장 근로자와 대학생과 백수와 평범한 회사원으로. 그는 눈높이가 다시 낮아졌다. 더군다나 다시 추억의 헤비메탈도 즐겨듣게 되었다. 그리고 천사가 잃어버린 낙원에 대한 궁금증은 사라져버렸다. 동네에서 술꿀들에게 인기 있는 술집 이름도 천국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거기에 가면 더럽게 재미가 없다는 점이었다. 왜냐하면, 왜냐하면, 왜일까? 모르겠다. 알 수 없다. 불가사의다. 뭔가 비밀이 있을 것이다.
그 때문일까? 그는 해질녁이랄지 지난 날을 회상하며 멍해 있는 순간이랄지 너무나 달콤한 유행가를 듣다가 간혹 헛것을 보곤 했다. 미혹되지 않을 수 없는 가슴 뭉클한 환영, 그것은 바로 홍학이었다. 신비, 낭만, 모험, 환상, 사랑, 풍요, 심금을 울리는 픽션이 아닌 홍학이라니... 그러나 크게 걱정할 정도로 그것이 자주 또 강렬하게 나타나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는 좀 더 사태를 지켜보기로 했다. 일명 관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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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론부터 말하자면 A가 어느 날 갑자기 홍학으로 변신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더불어 A를 제외한 모든 동네 사람들이 홍학으로 바뀌는 일 역시 발생하지 않았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 놀랄 비현실도 안심할 무엇도 아니다. 곧 그는 자신의 그 홍학에 대한 몽상의 강도가 점점 심해져 가고 있는 것을 알게 됐다. 왕왕 잠잠해지기도 했지만 증세는 멈추지 않았다. 상태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트레이드오프 같은 인문학 용어를 떠올려봤다. 홍학에 대한 집착을 멈추게 되는 날 자신의 숨겨진 천재성이 별안간 빛을 발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고안해내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틀림없이 엉뚱한 생각이었고, 게다가 홍학에 대한 어떤 상사병 같은 관심 또한 도저히 끊을래야 끊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모르는 척 미친 듯이 홍학에 대한 글을 쓴다거나, 홍학에 통채로 인생을 건 듯한 그쪽 학계의 원로를 찾아가서 묘안을 구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때문에 그는 탁월한 유혹과 황홀한 쾌락의 손짓과 빠져들 수 밖에 없는 호기심의 마법을 뿌리칠 수 있었던 냉엄한 이성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는 자제력이 바닥났고, 궁극의 통찰력을 잃고 말았다. 따라서 그는 혼자 속으로 끙끙 앓을 게 아니라 누군가에게 속시원~하게 고민을 털어놓으면 그 이상한 문제가 해결될지도 모른다는 데 생각이 도달했다. 그래서 그는 듣고 있던 드뷧시의 음악을 끄고, 다큐멘터리 동물의 세계도 끄고, 최근 친하게 지내는 바텐더 에릭을 만나러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A는 단골 술집 1급 비밀에 도착했다. 술집 이름이 촌스럽게 그게 뭔가. 하여간 이름 하고는. 바텐더 에릭은 오늘도 말끔한 차림새로 정돈된 카페에서 일상에 지치고 권태와 싸우거나 사랑에 실패한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A는 가자마자, 인사가 끝나자마자 자신이 홍학에 어떻게 빠져들게 됐고, 오멘 시리지를 모조리 다시 감상하고 어쩌고 발광을 해도 그 중독을 도저히 끊을 수 없었으며, 그것이 왜 좋은지 문제는 무엇인지를 딱 말할려던 바로 그 순간, 에릭이 선수를 쳤다.
「A. 새로운 친구를 소개할께. 이름은 홍학이라고 해. 타고난 재능 때문에 바쁜 친구인데 이곳에서 몇 달 혹은 몇 년 쉬고 싶은가 봐. 지쳤던 거지. 인사해.」
「안녕하세요, A씨.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앞으로 자주 보게 될 텐데 하다못해 미녀라도 한 분 소개시켜주지는 못하고 제가 그냥 술 한잔 사겠습니다. 저는 음 홍학이라 불리구요, 반인반마입니다. 푸하하하하하하. 농담입니다. 표정이 너무 진지하셔서 함부로 농담을 꺼내기가 몹시 송구스럽습니다 그려. 혹시 소리 소문도 없이 만천하에 알려지면 곤란한 비밀이 탄로날 위기에 처하시기라도 하셨나요? 그럴 리는 없겠죠. 외람된 말씀일지 모르겠지만 음, 저와 같은 업계에 종사하신다고 들었습니다. 굳이 어떤 책을 쓰셨는지는 묻지 않을 께요. 차차 알아가자구요. 저는 이런 저런 사업을 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출판계에 조금 지분을 가지고 있죠. 곧 있으면 제 친구 녀석 하나도 이곳으로 이사올 텐데, 그 친구는 중견 소설가고 저는 뭐 책장사를 하죠. 하하, 제 처녀작은 비밀리에 준비중이랍니다. 또 그 녀석이 최근 발표한 책은 '홍학이 된 사나이'라는 이야기죠. 그리고 저는 조~ 앞에 홍학이라는 무인 카페를 하나 열 생각입니다. 허허허.」
뭐시라고? 자기는 홍학이고, 친구는 뭐를 썼고, 무인 카페의 이름이 뭐가 어쩌고 어째? 맙소사! 어머 어머 세상에나! 진짜로 어떻게 이런 우연의 일치가 다 있나, 세상에나! 그런데 딱 지금 음악이 바꼈다. 바로 엔야의 어느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그는 문득 이 친구들의 얼굴이 혹시 마스크는 아닐까, 그런 의문에 휩싸이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몸 둘 바를 몰라 하면서 넋이 나간 광인처럼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다. 뭔가 돌아가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뭔가 불길했다. 게다가 자기도 비겁했다고 생각했다. 왜 도망친 걸까? 뭘 잘못했다고! 당신이 홍학이면 나는 하마다! 그렇게 호통치며 꾸짖기라도 했어야 했는데... 지금 돌아가는 추세가 심각하다고 생각했다. 원래는 홍학을 찾아 떠날까 하다가 친구 C와 놀러온 이곳에 정착하고 C는 떠나갔는데, 웬 멀쩡한 불청객이 자기가 홍학이라고 짠 하고 나타나다니 이걸 어쩌면 좋은가. 이 일을 어째야 한단 말인가. 이걸 어째 이걸 어떡하냐고. A가 홍학과 싸우기라도 해야 한단 말인가? 아니면 당신이 진짜 홍학이냐고 슬며시 여쭤보면서 이보시오 알몸을 보여주시오 라고 따질 시늉 직전까지는 가봤어야 했던 것일까? 그 정도로 주관이 명약관화했다면 그는 지금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겠지.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이런 낙담할 일이 다 있다니... 그는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서 아루뚜르 그뤼미오가 연주한 바이올린 앵콜 앨범을 들었다. 물론 쉽게 그 흥분은 가시지 않았다. 그는 생각했다. 차라리 자기가 먼저 무인 카페를 먼저 열어버릴까? 그는 급기야 그런 억지에서 그럴싸한 신빙성과 타당성을 찾기까지 하고 있었다. 어디서 굴러온지도 모르는 요상한 쥐방울 같은 녀석 때문에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일단 홍학의 사진을 하나 구해서 별장의 거실 벽에 붙였고, 노트북과 핸드폰의 바탕 화면을 모두 홍학 사진으로 도배했다. 왠지 그러지 않으면 그는 홍학에 관한 예술적 영감을 타인에게 선점당할 것만 같은 긴박한 위기감에 그러지 않고서는 배길 수 없었기 때문이다.
6
A는 홍학이란 양반의 친구가 쓴 책을 구해서 읽어봤다. 대체 무엇 때문에 우연이 층층이 쌓이게 되었는지 혹시 그 책 안에 해답이 있을지 모른다고 추측했다. 그래서 그 '홍학이 된 사나이'란 책을 결국 손에 쥐게 됐다. 그리고 읽었다. 그런 다음, 읽다 그만둔 다음 그는 그 책을 화분 받침대로 쓸까 말까 하다가 왠지 작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그 일은 보류했다. 거기에 쓰인 내용은 순전히 가공된 이야기로써 스무살 젊은이가 TV를 볼 것인가 책을 읽을 것인가, 가운데 선택할 만한 그런 정도의 가짜 환상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줄거리는, 어느 남자가 돈 주앙식 삶을 살아가다가 지고지순한 사랑을 하게 되고, 그것은 해피엔딩에 이르지 못하고, 그는 혹시 공룡알이 아닌가 의심스러운 어느 커다란 모형 새 알을 주거지로 삼아 살다가 약 이십 년에 걸쳐서 마침내 새로 환생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런 뭐야 이거, 에잇! 홍학은 인간이 아니고, 인간은 홍학이 된다는 말이자나, 하면서 차라리 A 자신이 '청춘이란' 제목으로 인문-교양서를 쓰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달리 말하자면, A가 늙은 것일 수도 있다. 환상에 쉽게 빠져들지 못했으니까. 그는 자신이 생리대 광고처럼 순수하지 못하고, 샴프 광고처럼 상쾌하지 못하다는 반증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곧 그렇게 작가야 속여줘서 고맙다 라고 혼잣말 할 수 없을 만큼 쑹악하고 영악해진 것인지도 모르지 않을런지. 왜냐하면 그는 N보다 C가 앞섰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그는 N과 C를 넉넉히 품어 안아서 NC에 자주 가는 젊은이가 아니라 어디 괜찮은 카바레 없나 기웃거리는 동네 아저씨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나이트클럽에 가도 재미없거나 어쩐다는 걸 잘 아니까. 아, N은 이거다. <왜 나는 뭔 킹이나 뭔 포터를 읽을 수 없는 걸까, 왜 나는 그건 도무지 흥미를 못 느끼는지 통 알 수가 없네, 아아 나도 그 열광의 범주에 들고 싶어라, 그건 너무 멋져 훌륭해 최고야!>. 그리고 C는 이거다. <반지의 제왕 패스, 순진무구한 영혼들이 읽는 반지의 제왕을 성인 남자가 극장에서 본다면 졸고 졸다 급기야 잤다 푹~ 라고 해야 정상이라고 생각해>. 결론은 우유의 담백함 다음에 콜라의 짜릿함과 술맛의 환상성을 알아버렸다는 건가? 곧 '홍학이 된 사나이' 어떠냐고 누가 물으면 그는 속으로는 C, 대외적으로는 N이라고 답할 것 같았다.
그는 갑갑한 마음 때문에 다시 바텐더 에릭을 만나러 갔다. 도착했다. 그런데 에릭은 없고 웬 이상하게 생긴 새가 한 마리 서성이고 있었다. 저건 뭐지? 백조는 아니고 닭도 아니고, 오리일 리도 없고. 그런데 에릭은 어디 갔지? 또 저 분홍빛과 선홍색이 뒤섞인 새는 거기에 왜 있는 거고. 설마 에릭이 마법에 걸려서 저 묘한 분위기의 새로 변한 것은 아닐까? 무슨 그런 말도 안되는 억측을. 작품은 상상을 초월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어디까지나 꿈과 공상과 환희와는 물과 기름처럼 잘 섞이지 않는 법이다. 그런데 이질적인 그 두 가지를 절묘하게 결합시키는 방법이 있다. 있을 것이다. 그것을 아마 촉매라고 부르나? 틀렸을지도 모르지만 지칭어만 다를 뿐 원리와 현상은 맞는 얘기다. 그래서 뭔가 음산한 기분 때문에 A는 동네에 사는 퇴마사 밴 박사를 찾아갔다. 아마도 아니겠지만 확답을 꼭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는 밴 박사의 사무실에 도착했다. 다행히 그는 자신의 황당한 추정을 밴에게 간결히 설명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왜냐하면 바텐더 에릭과 마법사 밴이 다정하게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기 때문이다. 약간은 심하게 다정스럽게 말이다. 그럼 그렇지! 괜한 걱정이었고, 꺼벙한 공상이었다.
그 후 그런 비슷한 일이 몇 번 더 있었다. 음악 감상실에 갔더니 파블로는 없고 웬 강아지 한 마리가 멀뚱히 그를 쳐다봤고, 서점에 갔더니 마틴은 안 보이고 고양이 두 마리가 그곳을 지키고 있던 일이 있었다. 그래서 A는 무언가 은근하고 은밀한 그 꺼림직한 기분을 해소하고 싶어졌다. 그는 그와 같이 다짐한 어떤 날, 바로 바텐더 에릭을 찾아갔다. 그는 한 명만 물고 늘어지는 집을 지키는 충직한 개를 연상시키는 그런 이상한 재주가 있는 것 같다.
7
「에릭. 평소처럼. 원 에스프레소 그리고 원 위스키 스트레이트.」
「친구. 오늘은 어쩐지 몹시 얼굴이 의뭉스러운 느낌인데.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 내게 뭔가 따지고 싶은 건가? 좋지. 털어나 봐. 난 들을 준비가 돼 있다고. 듣고 싶단 말이야. 자, 어서. 말해. 말하라고. 뭘 망설이나? 어?」
「그래도... 괜찮겠나?」
「오! 좋아 좋아. 분위기 좋아. 뭔가 있어. 오오 뭔가 있는 모양인데. 호기심이 확 타오르는데. 자, 말해 보시게. 뭐가, 대체 뭐가 궁금한 거야? 하고 싶은 말이 뭐냐고.」
「그 있잖아. 저번에 자네를 만나러 여기에 왔었는데 자네는 없고 이상하게 생긴 새가 한 마리 있더군. 그거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을 좀 해주겠나?」
「새? 무슨 새? 난 모르겠는데!」
에릭은 딱 잡아뗐다. 그 새의 정체를 물어봤는데 에릭은 자기는 새와 바람피지 않았다고 막 거칠게 항변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또는 정말 모르는 일인지 누가 알겠나. 아마도 에릭은 A의 어설픈 심문에 넘어갈 만한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니기 때문에 대화가 이렇게 매끄럽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에릭이 이렇게 속마음을 닫아버리니 A로써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밤이나 낮이나 뻔질나게 에릭이 뭐하고 있나 하며 줄곧 감시하고 관찰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는 사람을 탐문하는 것보다 장소에서 이상한 흔적을 찾는 게 어쩌면 더 현명하고 합리적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곧바로 아무 일도 아니라고 하면서 상냥하게 인사를 남기고 그곳을 나왔다. 그리고 곧장 무인 카페 홍학으로 갔다.
A는 홍학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홍학은 없었다. 사람도 없었다. 무인 카페니까 당연한 이치다. 그는 왠지 모르게 탐정이 된 듯한 기분 때문에 무척 우쭐해졌고, 이 무인 카페가 어쩐지 마음에 들었다. 여기 좋네 여기 좋아, 하면서 앞으로 여기 와서 일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그는 꼼꼼히 가게를 살펴봤다. 별반 이상한 점은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다. 참을성을 갖고 끈질기게 뭔가를 찾고 또 찾았다. 마침 그때 카페에는 J. J. Cale의 어느 분위기 있는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카페의 실내 디자인으로 봐서는 바로크 고전음악이나 프랭크 시나트라의 마이 웨이가 더 적당할 듯 한데 어딘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는 지금까지 모은 단서들을 최선을 다해서 검토해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집으로 갔고, 차분히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런데 단서라니 무슨 단서?
8
A는 손가락 딱 하면서 이거야 이거 라고 생각했다. 오늘도 역시 그는 바텐더 에릭을 만나러 갔다. 사건을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카페에 도착했고, 에릭은 다른 일로 바빠서 미처 그에게 신경 쓰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A는 이 절호의 기회를 놓쳐서는 안된다고 판단했다. 저기 저 앞에 진열된 술병들 옆에 책이 한 권 보였다. 그 책은,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였다. 율리시스? OK! 더블 제이! 그는 혹시 저 안에 뭔가 들어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성적인 논리가 배제된 전혀 황당한 추리력에 고무됨을 느꼈다. 혹시 알아? 그 뭐야, 머리가 셋 달린 지옥을 지키는 개, 아 맞다! 케르베로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저승문을 지키는 머리 셋 달린 사나운 개의 모형이 들어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라는 의심이 강렬하게 그를 뒤흔들었다. 설마 확인하고 나니 봄과 꽃의 여신을 상징하는 작은 향수병이? 그럴지라도 그는 반드시 확인해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에릭이 바쁜 틈을 타서 감쪽같이 그 책을 펼쳐봤다. 그것은 슬로우 모션도 아니었고, 아무런 효과음도 들리지 않았다.
율리시스를 펼친 결과 그 안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그 어느 사랑의 묘약도 홍학 인형도 발견할 수 없었다. 만약 뭔가가 나온다면, 이를테면 뭔카인? 어떤 식물의 추출물을 어떻게 한 그런 뭔가가 나온다면 그는 에릭을 심하게 추궁할 속셈이었다. 계획은 그랬다. 그러나 결과는 달랐다. 만약 그랬다면, 계획에 상응하는 결과가 나왔다면 정말로 그랬다면 그는 진짜 험하게 에릭을 꾸짖을 생각이었다. 늬가 지금 정신이 있냐 없냐, 제임스 조이스 학회 회원이 여기 방문했다가 딱 이 책을 펼쳐봤더니 글쎄 어머나, 그러면 어떻게 할려고 했냐, 그러면 에릭은 늬가 내 애인이라도 되냐는 둥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는 둥 뭐라 뭐라 했을 텐데, 다행스러운 일일까? 율리시스 안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그게 율리시스가 재미는 어찌나 없는데 반해 그 명성이 정말 대단해놔서 그래서 A가 그런 말도 안되는 추론을 떠올려봤던 것일 수도 있다. 아무튼 모두 정상이었으니 그는 까불 수도 없었고, 환상을 떠받들 수도 신비에 눈독들일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봐도 뭔가 억울했다. 그 안에 수상한 무언가가 들어 있어야 옳았다. 그게 맞다. 그게 정상적인 추론이자 예상 가능한 성과다. 그런데 없었다. 아무 것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무혐의! 그때 A와 에릭의 눈빛이 핑~하며 마주쳤다. 팅~! 아닌가, 퐁~! 어쨌든 A는 에릭의 얼굴이 어쩐지 뭐랄까 음 에릭의 본명이 옛날에 오사마가 아니었을까 그런 의문이 슬며시(살며시) 고개를 수줍게 드는 것만 같았다. 그는 이렇게 혼자서 끙끙 앓을 게 아니라 에릭에게 완곡 화법이 아닌 직접 화법으로 당당히 물어보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A는 바텐더 에릭에게 물어봤다. 어떻게 알았냐고. 자기가 최근 홍학 때문에 잠 못 이루며 홍학을 떠올리는 데 모든 진력을 다 하느라 다른 일은 하나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를 물어봤다. A는 솔직히 그 불가해한 미혹을 뿌리칠 수도 거부할 수도 없다는 것을 고백했다. 물론 진심은 아니었다. 그러나 뭔가 미심쩍었다. 대체 녀석이 그 일을 어떻게 알아내서 선수를 쳤는지가 궁금해서 미칠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는 그냥 한번 에릭의 마음을 떠봐도 나쁠 건 없다고 생각했다. 에릭이 인정하면 좋은 거고, 아니면 다른 데서 원인을 찾으면 그만이었다. 개인적인 문제니까 그냥 한번 찔러보는 데서 공분을 사게 되는 그런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예 손해볼 일은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그건. 왜냐하면 에릭이 A의 마음을 꼬신다는, 그의 마음을 절묘하게 빼앗는다는, 그에게 신기함과 놀라움과 기쁨과 해학과 쾌락이 분수를 뿜도록 최면을 건다는 제3의 가능성은 미미하지만 그래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마도, 모르긴 몰라도 에릭은, 에릭도 이처럼 A의 마음을 떠보게 되는 수순에 이르게 될 수도 있다. 장난에는 장난으로 대처하고, 개는 개를 물지 않는다는 일반론으로 말이다.
「눈치... 챘어? 쉽지 않았을 텐데. 딱히 악취미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니야. 그렇지만 보이는 걸 어떡하니. 자기를 좋아하는 줄 빤히 알면서도 상대방의 마음을 가지고 놀 수는 없는 일이잖아. 하지만 은근하게 너가 알아채도록 신호를 보낸 거지.」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나의 마음을 알았는데? 너에게는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신기한 능력이라도 있는 거니? 그거 어디서 배운 건데? 독학한 거니? 아니면 누군가로부터 사사받았어? 뭐라고 말 좀 해 봐.」
「나도 아무나 보면 그 사람의 속마음이 막 훤히 보이거나 그러지는 않아. 그 사람의 눈을 보면 그의 생각을 읽고 다음 행동을 예측할 수 있다? 그건 그냥 드라마 대사 같은 말이야. 허구에서는 멋진 말이 필요하니까. 때로는 현실에서도. 정말 당신의 무언가를 안다면 꼭 눈동자를 연인처럼 바라봐야만 알겠니? 보지 않아도 아는 거지. 그래도 한번 슬쩍 눈빛을 주는 게 멋지겠지? 그럼! 나도 아직은 누구는 알겠고 누구는 모르겠고 그 일정한 규칙을 알아내지는 못했어. 아무리 사람을 만나고 심령학을 공부하며 직관을 발달시켜도 반복되는 쉬운 모양의 단일한 특징들을 거의 알 듯 말 듯 다시 알 듯 하다가 손에 잡히지 않는 거 있지? 그래도 너와 나는 이렇게 영혼의 주파수가 맞나 봐. 자, 봐. 안 보여? 보이지 않니? 우리끼리 연결된 이 선 말야. 음 그게 아직이라면 네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보면 되겠네. 자, 한번 시작해 볼까? 출발~!
너 여자 좋아하지? 그것도 많이. 오오, 그런데 넌 여자 보기를 돌 보기처럼 하는 능력자인데. 오, 놀라워, 대단해! 인정해 줘야 해. 짝-짝-짝! 그런데 A는 우리 마을에 왜 왔을까? 대체 무슨 목적으로? 대관절 뭘 알아내려고? 그런 거 없지? 그렇지?」
「응. 그래. 없어.」
「너 소풍 가고 싶지? 경치 좋은 해변에서 일광욕 하다가 나 잡아봐라 놀이를 하는 연인들을 구경해. 그런데 그녀의 위인가 아래인가 수영복 끝이 그만 풀어지고 마네. 딱 그 찬란한 장면을 막 보고 싶지?」
「어... 조금은?」
「캔-맥주 마시면서 한가하게 낚시나 하고 싶지?」
「응. 그렇지.」
「햄버거, 피자, 스파게티는 물론이고 막 최고급 요리가 땡기지? 사랑의 편지를 쓰고, 애인에게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1번 2악장 같은 말들을 속삭여주고, 감미로운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무지크 같은 귓속말을 듣고, 신비스럽고 놀라우며 기발한 모험에도 빠지고 싶지?」
「당연하지!」
「막 사람들에게 청춘이란, 인생이란, 사랑이란, 행복이란, 낭만이란, 그러면서 그들의 마음을 쥐락펴락하고 싶지?」
「물론이야!」
「너의 추종자들을 웃겼다가 울렸다가 짜릿하게도 만들고, 차분히 정숙한 요조 숙녀로 둔갑시켜서 그녀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다가 느닷없이 리모콘 딱 눌러서 막 흥분시키기도, 열광시키게도 하고 싶고, 완전 끝내주도록 기쁘게도 만들고 싶지?」
「어떻게 알았어?」
「경이롭고 장엄하며 신기한 초현실적 작품이라는 광고에 홀딱 넘어가서 방금 그 작품을 딱 봤는데, 그게 영 아니었을 때, 막 이상하게 뚜껑이 열리면서도 어쩐지 조금은 기분이 좋지 않니?」
「어. 정말 그래.」
「행운이 따라준다면 장래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 같은 한 번쯤 떠올릴 수 있는 예감을 그 어디에도 발설해본 적 없지?」
「응.」
「옛날에 야망 없었지?」
「응.」
「지금도 크게 다르지는 않지?」
「응. 아마도?」
「그런데 삶이란 다름 아닌 이와 같은 꺼림직한 부분까지 안고 가야 하는 것인 줄 뭐 알기는 알았겠지만 그래도 예전엔 미처 몰랐지? 내가 얼마나 부러움과 부끄러움으로 가득찬 존재인지. 한편, 순수한 부러움을 죄와 벌과 어찌 보면 순전히 악으로 인식하는 사람과 도무지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마저 이 세상에 그렇게, 정말 그렇게나 많은 줄은 좀 살아 봐야 안다는 것. 무엇보다 그게 바로 나일 수도 있다는 것. 또 타락한 천사라는 논리가 합당하다면 승천하고 개과천선한 악마의 존재도 인정해야 하는 것, 그런 건 듣기도 읽기도 생각하기도 버겁겠지, 게다가 내가 얼마나 부조리한 인간이냐, 언더독 기질과 남 잘되는 꼴은 못본다랄지 그 어느 음성적인 감정이 내게도, 인간에게 원래 다분하다는 걸 얼마 만큼 받아들이느냐 인정하느냐 아느냐, 그게 바로 어른의 삶이고 인생이란 걸 어린 친구들은 차라리 아직 몰랐으면 좋겠지?」
「응. 그렇지.」
「사람이라도 다 같은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지? 인간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누구는 닭, 누구는 너구리, 누구는 메두사, 누구는 철면피, 누구는 철가면, 누구는 악령, 그 옛날 왜 그렇게나 반인반마에 대한 신화와 조각과 예술이 많았는지 이제라고나 할까, 조금은 알겠지?」
「응.」
「정치! ······ 싫지?」
「어... 음... 그래. 인정!」
「정치. 짜증나지?」
「음... 아니라고 하면 거짓말일가?」
「그래도 좋아하고 싶지?」
「그럼.」
「작사가, 수채화가, 상인, 법조가, 행정관료, 사업가, 학자, 교육자, 방송인, 유명인이든 누구 할 거 없이 이상하게 그 분야로 막 죄다 수렴되는 거 같지? 하지만 그걸 꼭 갸우뚱하게만 볼 일은 아니야. 왜냐하면 정계로 우수한 인재가 모이지 않으면 그런 말들을 하니까. 인물이 없다네 동물농장 대표감이 없다네 어쩐다네 라고. 비슷한? 뭔지는 몰라도 엉겹결에 떠오르는 원리로 여자들은 왜 자기도 소설을 쓰고 싶어하고, 남자들은 하나 같이 인문-교양서처럼 유창하게 말하고 싶어하는지 막 궁금하지?」
「음, 그렇지.」
「절반의 정치는 시장판 말싸움 같지? 상업에서야 품질이 좋고 값도 싸면 두 마리 토끼를 잡기 때문에 그 제품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 그게 바로 고품격이지. 값이 싸도 그건 싸구려가 아니라고. 하지만, 반면 정치에서는 인성과 품격은 <묻지마>인데 가치도 <묻지마>인 유형이 왜 일정 분량 그 지분이 확보될 수 밖에 없는지 궁금하지? 어느 정치학자가 그러더군. 내 한 표 행사는 성스러운 시민의 의무! 반드시 수행해야 하는 신성한 의무! 그러므로 보수는 내 1표를 행사 한다, 하지만 진보는 고개를 돌리고 기권을 한다고. (똑-똑-똑) 생각이 그렇대. 보수-표는 선거권의 행사를 신성하게 여긴다, 때문에 투표는 최소한의 의무다, 따라서 실제 투표를 한다, 그러나 일부 진보 성향 유권자랄지 이래도 흥 저래도 흥 하시는 분들은 선거권의 행사를 중요하게 보지 않는대. <신성함>과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의 차이인가 봐. TV와 스포츠야 <봐도 그만 안 봐도 그만>이야. 그걸 뭐라 할 수는 없어. 당연하지. 또 대표자가 노동자들이 귀찮게(?) 하니까 회사의 체계를 개선할려는 노력이 부족한 채로 회사를 폐업하고 별도의 법인을 새로 만들면 그만이라고 하고서 실재 그렇게 하면, 그것은 얼굴 찡그려지는 불미스러운 일일 테지만 그건 그래도 테두리 안에 있는 논리야. 그런데 그게 회사가 아니라 나라라도 그럴까? 회사가 아니라 국가라도? 또는 지구라도? 누구라도, 누구나 아니라고 하겠지, 절대 그래서는 안된다고! 그러나, 그러나 여기서도, 여기서도 갈린다고! 여기서도 갈려! 어떤 지역에서는 보수가 항상 그랬어. 지금도 그래. 앞으로도 그럴지 모르겠어. 그 어떤 지역에서는 그들이, 보수가 나라 팔아먹고, 나치당으로 활동하며 자국민들을 핍박하고, 총과 칼을 들고서 펜을 때려잡고, 영구집권해서 바벨탑을 세우려 하고, 불미스럽고 참혹한 일들이 만연했던 왜곡된 시대상의 대표적인 잊고 싶은 인물에 대한 동상과 기념관을 어느 구시대적인 정치인은 그것을 더 키우고 더 늘리고 싶어하며(아아 오오 위나 아래나), 관 주도의 교과서로 새파란 학생들을 세뇌시키고, 언론과 방송을 장악하며, 계속 겁을 주고 잡아들이는 언더독 방식으로만 정치를 하며 나쁜 건 전부 다 좌파 몫으로 돌리고, 노동자는 그야말로 개나 소와 돼지로 알고...... 그 살벌한 시절이 참으로 오래 지속되었는데, 어마어마한 억겁에 이르는 군중의 피를 쥐어 짜서 그래프 선분이 이동되었는데, 나는 대를 위한 소로 희생되지 않았고 살아남게 되었으니까 표현의 자유는 침해당해서는 안되니까 나는 아무 말이나 막 해도 된다(?), <하늘에서 비가 내리면 선열들을 비롯한 무수한 사람들의 눈물이구나>가 아니라 나는 피도 눈물도 없는 흡혈귀다(?) 고로 내가 최고다(?), 웃기고 말도 안 나올 일이야. 꼭 그 정도까지는 아닐 수 있는데, 세상에 그 정도로 나쁜 사람은 실은 그리 많지 않겠지만, 어느 위치에서 그 위치에 걸맞지 않게 행동하는 어른들이 많다는 얘기야. 원래 인간이 그런 존재라고. 지구가 망해도 나는 우주선 타고 제2의 지구에 갈 수 있으니까,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된다는 바로 그 논리지. 하고많은 작품에서 끝없이 반복되는 주제가 뭐야, 불가피하지만 여건이 되니까 비교적 빈자보다 부자가 뭐 어쩐다 라는 거잖아. 실상이 그래. 어쩔 수 없지만 누구나 그러하지만 또 퍽 측은하다는 거야. 심지어 어디에서는 영화처럼 지구에 사는 외계인의 지구-비상탈출권을 지구인이 외계인측에 속닥속닥해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서 그걸 확보해 둔다니까. 인간 세상의 실정이 그런 걸 어떡해. 테니스 공이 왔다 갔다 하면 됐지 굳이 일희일비할 필요 있냐 면서 바로 기권이 내 권리고 기권도 최소한의 의무로 여기기 때문에 뒷골목의 표현을 잠시 빌리자면 세상이 이 모양 이 꼴이다 라는 생각으로 사는 걸까? 그래도 미래인이 본다면 우둔할지언정 풀꽃 반지 같은 1표일지라도 투표를 하는 우직한 보수주의자가 차라리 소크라테스고, 기권을 권리로 보는 진보주의자는 그건 그냥 패배자이자 비겁한 위선자일 수도 있어. 주홍글씨와 함께 살면서 어느 만큼 얼마에 걸쳐서 어떤 대가를 치러서 개선된 인간의 문화와 인류의 문명과 여러 인습과 까다로운 통념들과 안락한 풍요, 그것의 시계를 자꾸 과거로 뒤로 되돌리는 건 표면적으로 봤을 때는 완고한 보수 성향 때문일 것 같지만, 어떻게 보면 한쪽은 역할을 한 거고 한쪽은 좌시하고 방관하고 손 놓고 투정하는 것 밖에 안 되는 것 같아. 그건 갈릴레오 갈릴레이도 천동설도 지동설도 뭣도 아니야. 그냥 수수방관일 뿐이야. 논리적으로만 봐도 그래. 뽑았자나, 뽑아놓고 뭐라 그런긴 뭘 뭐라 그러냐, 이미 지난 일이다 그거야. 그러면 이혼할 꺼야? 그거라고. 시행착오를 거쳐서 지금의 모습을 갖춘 내 인생에서 방황과 아픔과 고뇌를 빼놓거나 빠트리거나 잊으면 안 돼. 지금 당장 로또 복권 당첨 안된다고 이 꿈 저 꿈 이 사랑 저 사랑 시도도 안 해보고 내 인생은 왜 이 모양 이 꼴이냐고 투정만 부리는 친구, 과거의 내 방황과 아픔과 고뇌를 다 남과 환경 탓으로 일관하고 치적도 우리 당 공로도 우리 당 안 좋은 건 못한 건 전부 다 좌파 라고 하는 정치꾼, 매사 세상만사 짜증만 내는 남자 또 무분별하게 신경질적인 여자, 사람들을 웃기지도 숙녀에게 친절하지도 동물을 존중하지도 않을 꺼면서 노래를 부르고 그림을 그리고 책을 쓰거나 내 의견이나 참신한 대안을 발표하지도 못할 꺼면서 오직 악성 댓글만을 툭툭 방관적으로 말하는 남자, 세상사 인생사 모든 일을 내 기분대로 여과없이 막 뱉는 남자, 그게 어디 아름답겠니? 정치도 그래. 모든 게 정상적이고 상식이 당연하고 누구나 교양과 예법을 싫어하지 않는다면 정치 그래프는 레몬 모양이어야 한다고. 중도와 적당한 보수와 온건한 진보, 그리고 음 그렇게. 그런데 왜 티격태격 늬가 잘났네 내가 잘났네 그러는지 몰라. 그런데, 말은 이래도 나 같은 사람도 그 세계에 딱~ 뛰어들면 어쩔 수 없이 똑같이 이러쿵저러쿵, 아예 더 할 수도 있어. 뭐, 멱살? 워- 워- 워-! 나도 살다 보니 얼굴이 두꺼워지고 주름살이 자리를 잡고 흰머리가 보이고 말도 이처럼 길게 하거나 글을 꼬고 또 꼬아서 쓰게 되는 걸 뭐 어떡하겠니.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말을 안 해서 그렇지 나와 다른 타인의 속마음을 알게 되면 무척 놀랄 수도 있어. 그래서 사람들은 어른이 되면 꼬마들처럼 나 너 좋아랄지 어떻다랄지 막 있는 그대로 자기 마음을 다 말하지 않아. 왜? 왜냐하면 나와는 다른 타인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은 말처럼 그리 쉽지 않기 때문이지. 왜냐하면 내가 하는 자랑과 어차피 완전 똑같은 자랑인데 왜 그 인간이 하는 자랑은 뻥뻥 터질 수 있는지, 대체 겸손과 자랑이 뭔 상관관계가 있는지를 이해하고 깨우치는 건 예상 외로 힘들고 너무 어렵기 때문이야. 어른들은 그래. 도박사처럼 때와 장소와 사람을 봐 가면서 마음을 열어야 한다고.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사소한 오해도 생길 수도 있고, 모두 정말 먼지 티끌 만한 것 하나까지 전부 안다고 생각했는데 미처 몰랐던 그 사람의 새로운 면모를 세월이 지나서야 알게 될 수도 있다고. 세상 돌아가는 걸 보면서 또 살면서 어른들은 짐작하지. 그만큼 사람들은 생각이 많이 비슷하면서도 또 많이 다르다는 것을. 정치! 그건 정말 스포츠도 아니고 학문도 상업도 아니고, 그렇긴 한데 그래도 정치와 제일 비슷한 건 어쩌면, 연예계야. 그 어느 분야의 누구라도 스포트라이트를 비춰봐, 날마다! 쉬지 않고! 끊임없이! 신문도 1면, 뉴스도 특급, 인기도 (비꼬는지는 모르겠지만) 최고, 소셜 네트워크? 언제나 유행을 선도하는 만인의 연인 같은 장본인이지. 그건 누가 봐도 어깨에 뽕이 들어가지 않으면 비정상이라고. 오오! 상상만 해도 아, 아찔하다야. F 학점만 면하기를 바라는 게 어쩌면 그것이 진짜 현명한 처사인지도 모르겠어. 살면서 사적으로 그런 질문 한 번쯤 들어본 적이 있을런지 궁금하군 그래. 자네는 어떡할 텐가, 누가 자네한테 연예계 갈래 정치계 갈래 라고 묻는다면 어디를 택하고 싶냐는 그런 얘기 말이야. 경험의 유무를 떠나서 혹시 이걸 엄마가 좋니 아빠가 좋니, 와 비교한다면 어떻게 될까? 보통은 괜찮겠지만 깜빡 상대를 착각하게 되면, 지금 이 양반이 어디서...? 때로는 두말할 필요 없는 경거망동일 수도 있어. 생각만 해도, 오오! 대략 사람들이 선호하는 태도는 이런 것 같아. 우선은 나와 견해가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 사람을 만나기를 선호할 테고, 주관이 너무 완고하거나 그것을 다듬고 발전시킬 생각이 전혀 없는 상대를 만나면 아주 불편해 한다는 점. 그분을 또 만나야 한다니... 아아! 내 수준과 안목이 고고하지 않다는 건 인정하기 싫을 수도 있지만 말하지 않아도 그건 누구나 알고 또 인정해. 그러나 수십 년 동안 관성과 은밀한 개입의 여지가 발생할 수도 있는 세뇌랄지 평생 놓칠 수 없는 야망 그런 개념 때문에 어른은, 어린이가 아닌 어른은 내 취향과 지성과 인격이나 어느 넉넉함에 대해서는 겉으로 밝히지는 않아도 잘 알아. 내 천성과 한계와 동조성의 여지를 비롯해서 말이야. 그러나 정치관은 달라. 그건 한 어른으로써 양보나 관용이나 학습이나 개선이나 그런 게 잘 안되나 봐. 한마디로 어렵다, 그런 것 같아. 아주 더뎌, 서서히 변하거나 변치 않는다고. 왜 그런가를 알기 위해서는 분야가 아닌 그것을 행하는 사람을 알아볼 필요가 있어. 좀 전에 나왔 듯이 연예계를 보자고. 연예인은 예능을 행하지. 그분들은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재능을 동네에 나아가 옆 동네에 알리고, 퍼트리고, 발휘하는 일을 해. 그런 반면 정치인이 행하는 것은 무엇인가? 무엇이겠나, 정치? 맞지! 그렇지. 그런데 정치가 도대체 무엇일까? 이에 대해서 배우고 싶은, 어쩜 비밀리에 훔치고 싶은, 암암리에 닮고 싶은 혜안을 간명하게 말할 수 있는 어른은 대관절 얼마나 될까? 정치는 책임지는 것이다! 언제 책임을 떠넘겼나? 만약 책임지겠다고 하면 또 그래. 그걸 왜 당신이 책임지냐, 다 좋은데 왜 하필 뒷북이냐고 아마 그럴 껄? 이러이러해서 이러이러한데 어떻게, 대체 어떻게 책임질 꺼에요, 동물농장 사업부 부장 자리 내놓으실 수 있어요? 네, 그만두겠습니다. ....(윙-윙-윙)! 정치는 비로소 떠나는 뒷모습을 봐야지만 알게 되는 그런 수수께끼라도 된단 말인가? 나는 지금껏 반세기.. 일 세기.. 동안 그런 어른을 한 번도 만나 보지도 못했고, 그런 심오한 질문마저 그동안 한 번도 해 보지 못했으며, 내가 불만족스러울지라도 타인에게 그쯤 근사치의 견해를 꺼낼 수 있는 깜냥의 인생을 살지도 못했다네. 그렇지만 어떤 하나의 가설에 대해서 그 누가 자유로울 수 있을까, 라는 비장의 카드는 하나 쥐고 있지. 딱 하나! 허허허, 조커는 남겨둬야 하지 않겠나. 무릇 승부사는 그래야 한다네. 인생이 도박은 아니지만 말이야. 그건 무엇일까? 딱 부러지게 그건 이거다 라고 밝힐 수 있는 권한이 이 미천한 육신에게는 불허되었을지언정, 내게 떨구어지는 이득이 없을지라도 혹시 이건 아닐까 라는 추측은 밝혀도 괜찮을 꺼야. <왜?>라는 히포크라테스와 <어떻게?>라는 방법에 대한 미네르바를 세상의 모든 어른들은 알고, 행하고, 경시하거나, 이용하거나, 논하는데, 대체 어째서 도대체 왜 <무엇으로!>라는 호모 파베르 그 제일 중요한 어린이의 논리는 무시되는 것일까 라는 의문. 어째서 그런가는 넘어가자구 친구. 그건 어느 업자에게는 밥줄일 수도 있을 꺼야. 앗 방금 내뱉은 내 말이 조금은 경박했네. 인정하네. 기분 나쁘다면 용서를 구하겠네. 미안허네 그려. 말을 바꾸면 그건 존엄한 상도일 꺼야. 요컨대 왜 하는지는 몰라도 정치라는 일을 하는 당사자인 정치인은 물론이요 정치인을 제외한 거의 모든 어른은 알아야 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네. 왜냐하면 그러지 않는다면 인간의 미래는 점점 암울해질 테니까. 그 암울함의 사실적인 상세함이나 범죄자의 시각에서 견지하는 비약과 그 어떤 예술적 상상은 생략하자고. 내 생각이 꿈에 가깝다거나 오만해 보인다거나 틀렸다거나 그럴 수도 있어. 그러나 일단 지금 생각은 그와 같다네. 그러면 사람들이 대체 무엇을 알아야 하냐고? 그래 뭘 알아야 하느냐, 그건 이거야. 정치인은 무엇으로, 무엇으로써 정치를 하느냐! 바로 그것. 모르긴 몰라도 아마 대학교 정치학과에서 이런 얘기는 무수히 다루어질 테야. 설혹 그렇다 할지라도, 그래도 훨씬 수없이 반복된다 해도 전혀 과하지 않지. 그러니까, 단언컨대 정치인은 무엇으로 정치를 하는가? 정치인은, 정치가는 정치를 말로써 한다네. 말, 글이 아닌 말! 글조차 말과 구분이 불분명한 듣도 보도 못한 화술이 있거나 조금 애매한 구어체가 있거늘 그런 글도 아니고 아예 말로, 말로만 정치를 한다네 정치인은. 그게 대체 뭔 소리냐고! 나도 그게 무척 썩 꺼림직하네만 가만 보니 진짜 그렇더라고. 정치인은 정치를 3분의 마법으로 하지도 않고, 정치인은 정치를 세기의 명화로써 웅변하지도 않는다네. 그분들은 오직, 오직 말로써 정치를 하고, 말로써 행동하고, 말로써 이룩하고, 말로써 통치할 뿐이야. 자, 이 허접한 사견에 반론을 제기하시고 싶으신 분, 많으시겠지만 설혹 그분이 있다면 난 두 귀를 막겠네. 난 비겁하니까 말이야. 난 돌이 되기 싫다고. 역사적 사실을 아니까 타인의 피에 대해서는 이러쿵저러쿵하지만 나는 그 어떤 분에게 말로도, 글로도, 돈으로도, 힘으로도, 그 뭘로도 상대가 안된단 말일세. 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내 미천한 경험을 반색하며 돌아보게 되구먼. 순서가 그러니까 말이야. 자성이라고 하진 말아 줘. 쑥스럽구만. 나이 먹고 뭔 주책이야? 아무튼 아아, 정말 그래! 나는 인류를 위해서 이바지한 정치인의 작품을 읽어 본 역사가 없다네. 그 그림을 감상하고 그 음악에 혼미해 본 기억이 최소한 내게는 단 한 번도 없다니, 오오! 내가 무식한 건가? 무식한 거지. 내가 너무 게으른 삶을 살았던 것일까? 두말하면 잔소리겠지. 허나 핑계 하나 대자면 그만큼 내가 고를 수 있는, 눈에 뜨이는, 정평이 자자한 그런 정치인의 서적이 많이 없었어. 고대-그리스와 로마의 뭐 있지 않나, 그건 넘어가자고. VH? 뭐 밴 헬런? 유 리얼리 갓 미 유 리얼리 갓 미! 아 록스타 말고 빅토르 위고? 그분처럼 예술가가 잠시 정치를 했던 예는 왕왕 있지만 그와 달리 일평생 정치 인생만 걸었던 정치가들이 새파란 청춘들에게 무엇을 남겼나? 없어. 없다고. 물량은 있지만 말이야. 어록? 회고록? 수상록? 자서전? 조금 어중간하구만 그래. 이거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세계 제2차대전에 대한 어느 정치가의 기록물은 물론이고 정치인에 의해서 알려진 기록물들은 그 가치에 비해 인기는 답이 없다네. 고전 가운데서 가만 있자, 잘 생각이 안나. 내가 까마귀 고기를 먹었나, 아닌데. 현재 또 앞으로 그분들의 저작은 감히 현세에 판단하기 까다로울 정도로 박물관적이라거나 뭐라 말하기 곤란하구먼 그래. 그게 대체 왜 그럴까? 나는 그 이유가 정치인은 정치를 말로만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네. 말이 뭔가, 입이 달렸으면 못하는 사람이 없는 게 바로 말일세. 생각을 글로, 사유를 그림으로, 느낌과 영감과 사상을 음악으로 승화시키는 건 대체로 비교적 말보다는 완성도가 높아. 훨씬 높아. 당연한 일이겠지. 그런데 말로만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개념처럼 보이는 정치를 오로지 말로만 한다고? 이 세상이 어쩌다 그렇게 된 것인지는 모르겠네만 혹 나만 이걸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진짜? 정녕 그게 사실인가? 고개의 각도가 왔다 갔다 하는구먼 그래. 아무리 달리 신통한 반론을 재기한다 해도 그건 배보다 클 수 없는 배꼽인지도 모르겠어. 이 모든 추론이 아예 의미가 없을 수도 있고 말이야. 일과 행정과 사업과 인기는 서류, 의사 결정, 성과, 이윤과 환호가 전부일 수도 있어. 승부사? 실적! 예술가는 작품이고 연애는 사랑이겠지. 부와 풍요가 인격화된 신 플루토스는 지상에서 얼마나 부의 공평한 분배에 대한 소관에 충실했느냐, 저승의 지배자 하데스는 지하의 보물을 얼마나 잘 관장했느냐, 그것이고. 사람의 말이 대체 뭐라고 오직 말로만 그 사람을, 그 사람의 정치적 과업을 평가하고 그 말대로 공동체의 운명이 이리 갔다 저리 갔다 어째야 하느냐고. 이건 적어도 하나의 미스테리로 보는 게 옳다는 생각이 드네.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든 성공하기 위해서든 어딘가에 일을 잘하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면 피터 드러커의 글대로 일하면 돼. 그러나 그대로 하기 어려운 게 일이지. 다른 경영학의 거성들도 몇몇 떠오르며, 그건 장점을 본뜰 대상이 많이 협소하지 않다고. 그런데 약관의 정치학과 신입생이 십년 단위로 인생 계획을 다 세웠어. 또는 뒤늦게 지금이라도 계획을 수립할려고 해. 나는 정치를 잘하고 싶다고. 나는 존경 받는 정치인이 되고 싶다고. 그런데 이건 음... 정치학 개론대로만 행동할 수도, 정치학 개론대로만 말할 수도, 정치학 개론대로만 살 수도 없고 상당히 까다로운 문제가 아닐 수 없어. 정치학의 교본이라 파브르 곤충기? 그건 정치학이 아니군. 아이작 뉴턴? 번지수가 틀려도 한참 틀렸어. 그러니 지구가 타임머신이 아니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어른이 대체 얼마나 되겠나. 말로써 단지 말로써 지구본을 거꾸로 돌리고 싶어하시는 분들이 종종 나타나신다면 게다가 인기도 약간이나마 한몸에 받는다면, 저와 같은 질문가, 오직 질문만 막 던지는 (직업적인) 질문가는 대체 어디서 그 이해를 구걸하고 유대를 요구하며 부족한 동질감의 가뭄에 대해 근심해야 한단 말입니까? 안 그렇소? 자, 이 뜻에 동의하신다면 우리 모두...... 워~ 워~ 워~! 정치가 무슨 초장에 휘어 잡아야 한다는 사랑의 일반론도 아니고, 밖에서는 가정의 권세가인 척 안에서는 자상한 공처가로써 사는 시시할 수도 있는 삶이 정치도 아니고 말이야. 아 공손한 정치여! 이건 정말 까마득하고 아득하구만 그래. 그렇다니까 정치가. 어떻게 생각하니 정치를? 이런 생각 한번 해보지 않았니? 정치 그래프 모양이 왜 그러는지 뭐 엎어치나 매치나-일까 라고. 왜 그럴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지?」
「그렇지. 어. 정말 그래. 어떻게 알았어? 난 정말 왜 그런지 모르겠어.」
「좌파? 좌파가 공산주의자인가? 좌파가 악마야? 그러면 왼손잡이도 모두 악마겠네? 좌파가 집권하면 지구가 망하나? 어? 아직도 그 진부한 방식으로 정치를 하는 사람들의 포지셔닝은 그거 밖에 없어. 좌파는 악마다, 좌파가 집권하면 망한다, 고로 천사인 나와 우리를 뽑아라 라고. 하지만 그 말을 1번 들으면 고개를 돌리고, 10번 들으면 귀를 막고, 100번 들으면 혹시 그럴까 의아해 하고, 그 이상 듣게 되면 개중에는 더러 진짜 그게 맞는 줄 아는 사람들도 나오게 될 꺼야, 그게 모이면 좌파는 악마가 되는 거지. 반면에 나의 유명도와 명망과 위대함은 만천하에 퍼트려지면서 떵떵거리는 것일 테고. 국제적인 몇몇 사교 클럽들이랄지 유명한 모임들 있잖아? 그 회원은 보통 두 가지로 나뉘어. 회원으로 만족하는 부류와 수장이 아니면 불만족하는 부류로. 거기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어떤 친구가 전에 그러더라고. 의전을 받는 의장이 되지 못한다면 이 일은 의미가 없는 일이라고. 많이 봤던 대하드라마를 떠올려 보시게. 나 같으면 말이야, 보통 전자로 만족할 것이라면 처음부터 일부러 그 어느 명부에 이름을 올리고 싶어하지 않을 것 같아. 타인도 꼭 그렇다는 뜻은 아니야. 그렇지만 가능하다면 신랑이나 신부로써 결혼행진곡이 울려퍼질 때 멋진 의복을 갖추고서 행진하거나, 승산이 있다면 주연을 맡아 그 영화 하면 누구가 떠오르도록 한번 그래 봐야 하는 것 아닐까? 언제까지 신부 들러리와 조연만 할 테냐고! 인생도 그렇다니까. 정치도 그래. '사교 클럽에서 의전을 받는 의장이 되지 못한다면 이 일은 의미 없는 일이다' 그걸 깨닫는 순간 그만 두느냐, 계속 가느냐? 그 중에서 일반적으로 후자겠지. 왜냐고? 왜냐하면 처음 시작할 때 의도는 표범 클럽의 의장이 아니었기 때문이지. 왜냐하면 처음에는 국제적인 또는 지역적 사교 클럽 일원이 되어 활동해 보고 싶은 욕구가 단일한 목적이었으니까. 한편, 사교 클럽이 아닌 정치를 보자고. 평생 흠 잡을 데 없이 탄탄하게 한길만 걸었던 존경 받는 일류대학교 총장이 어느 날 정계 입문, 두둥~! 공표하시겠지. 해야 하니까. 안 할 수 없어. 어떻게? 전반적인 정치 수준을 높여 보고 싶다고. 바꿔 보고 싶다고. 변화의 상징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계기가 되고 싶다고. 내가 초석이 되겠다 날 밟고 올라서라 어? 짜잔~! 오오, 맞는 말이자나 뜻이 가상하다고. 좋아 다 좋고 훌륭해. 그런데 (필름 간추리기) 겪어 보니 어떻드라, 누구나 익히 아시는 결과가 발생할 꺼야. 자, 중요한 건 바로 이 지점부터야. 바꾸고 싶다 그 어려운 길을 가겠다 갔어, 그랬으면 동물농장 대표가 못되더라도 계속 그 일을 해야 맞지. 그게 옳아. 아니면 처음부터 가정법이란 거잖아? 나는 정치계를 바꾸고 싶다 라고 선언했지만 그건 말을 바꾸자면, 내가 의장이 되면 정치를 계속 하고 의장이 못 되면 (때려치겠다?) 그만두겠다 라는 의도. 따라서 우승 하든 못 하든 계속 이 일을 해야 한다가 논리적으로는 정당해. 이론은 그래. 그러나 실재로는 (절반은) 돌아가. 어디로? 연구소로, 학계로, 재계로, 어딘가로 낙향한다고. 돌아갔더니 글쎄 어떻다드라, 는 생략하자고. 그렇게 표범은 코끼리가 되어서 원위치. 왜냐하면 처음에 시작할 때 온전한 내 의도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 바깥의 구애가 절반이었으니까. 그러나 곧은 이론대로 남는다고 가정해 보자구. 워워워, 그 험난한 고생길 눈에 훤하겠지. 나가라, 와라, 가라, 가란다고 진짜 가냐, 가만 있어라, 왜 가만 있냐, 물러나라, 어째라 등등등. 잠잠해지기 전까지는 아아 까마득하지, 허허허. 레이디가 이해하기 퍽 곤란한 점 가운데 하나, 그 소란스러움을 혹시 즐기는 것 아니냐는 수컷의 특징이 어떻게 저렇게 펼쳐지나 그런 부분이 있는지도 모르겠어. 진흙탕이네 뭐네 그런 얘기는 하지 말자고. 너와 나 단둘이서 하는 얘기니까 괜찮지만 그래도 조심, 안전, 주의, 무덤까지 이 비밀을 함께 가지고 가자고. 그렇더라도, 그래도 의전을 경건하게 받아야 할 의장이 못 되었으면 차라리 쓴소리를 감내하고 돌아가는 게 좋아 보여. 원론상 일관성을 견지해야 한다는 이론과는 달리 일견으로는 차라리 그 뒷모습이 깔끔해 보여. 그런데 이것 마저 비판의 대상이지. 왜 사람이 처음과 끝이 다르냐, 바로 나처럼, 이론 따로 실재 따로냐, 말이 많다고. 진공청소기로 시작해서 커피포트로 끝난다고. 애초에 단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출발했어. 왜 나는 이 일을 하는가, 왜 나는 정치를 하는가! 그런데 해 보니 어땠어. 그래서 남은 건 둘 중 하나야. 첫째, <왜 하는가>에서 <어떻게 하냐>로 치우치던가. 아니면 둘째, 아니다 나는 그 어떤 비난을 받더라도 뭐 어떻드라도 절대 수단과 목표를 바꾸는 일 만큼은 못하겠다 그러니 나는 깨끗이 업계를 떠나겠다(그 바닥에서 발을 빼겠다). 그렇게. 자, 그럼 한번 대조해 보자. 따질 건 따지자구. 사교 클럽과 정계 입문과 꿈의 실현에 대해서. 사교 클럽은 들어가기 전과 후가 어떻드라, 간결해. 정갈해. 그 다음 정계? 가만히 명상합시다! 그리고 요거 요거 꿈. 나는 커서 기자가, 가수가, 목수가, 요리사가, 공무원이, 제빵사가, 카페 사장이 되고 싶다. 됐어. 그런데 어머나 막상 해 보니 어떻네? 윙윙윙윙윙! 꿈도 정치랑 뭐 별반 다를 꺼 없구먼. 똑같잖아. 그러므로 요점은 이거야. 그 가운데 사교 클럽이 제일 간편하고(트집이 아니라), 꿈은 제일 개인적이고, 정치가 제일 어렵다! 그게 제일 힘들다고. 그렇지만 인생이 어디 이처럼 쉽니, 그렇게 호락호락하고 간소하니? 그럴 리 없지. 그럼. 안 보여, 안 들리냐고. 저 찬란한 외침과 맹목적인 열정과 민첩한 질투 그 얌전한 고뇌와 잔잔한 웅성거림이, 진짜 그 거룩함이 안 보이고 안 들리냔 말이야. 어? 아~하? 그래~ 그거! 이분께서 이제야 좀 말이 통하시네... 사-랑! ... 그분이 어디 낄 자리 안 낄 자리 빠지는 거 봤니? 그러니까 진공청소기와 커피포트는 물론이요 환상머신이 필요한 거겠지. 안델센을 알고, 베르디를 알고, 볼보를 안다고 다-가 아니란 말씀. 그런데 어쩌다 정치 얘기가 사랑으로 돌변했지? 무슨 사교 클럽을 말하고 있었잖아. 하여간 변덕하고는. 어쨌거나 사교 클럽도 인생도 정치도 그렇다고. 그런데 왜 자꾸 귀가 간지럽지? 스슥스슥... 뭐... 많이 컸다? 환청인가. 아니네. 기억이네. 잘못들었군. 다시. 한번 '만일 나라면' 이라고 생각을 해보시게. 학계, 재계, 법조계, 행정 분야, 또 다른 유명계에서 수십 년 잘 활약하시다가 어느 날 정치를 하고 싶네? 어머나 어쩜 좋니! 다시 생각해 봐도 그러네? 그 일을 한번 해 봐도 그리 썩 나쁠 것 같지는 않네? 좋아. 그래. 좋다고. 그러면 어디 정당에 가입해야 하겠지. 그래야 하니까. 그러면 저 두 가지를 생각해보자고. 과연 회원으로써 만족할 것이냐 아니면, 수장에 오르기가 여간 어렵지 않겠다면서 불만족을 감출 텐가로. 보통 그 정도로 세상을 알고 나면 전자로는 성이 안 차는 게 인간의 본성이야. 그러면 후자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당연히 신성한 행동주의를 실천하는 확고부동한 이미지의 정당에 합류하게 된다고. OK~! 이거야! (검지 휙~휙~휙 또는 쉭~쉭~쉭!) 딱 이 지점이 <어떻게>가 <왜>를 왕좌에서 끌어내리고 자기가 바로 1등이 되는 바로 그 찰나야. 같이 어울리고, 같이 행동하고, 같은 옷을 입게 되면 정치 철학이고 뭐고는 잠시 뒤로 밀리다가 어느새 나중에는 까맣게 잊혀지고 만다고. 게다가 정치인 개인과 정당의 이념, 그것이... 그게 어디 천생연분 연인처럼 하늘이 맺어주지 않았을까 의심스러울 정도로 궁합이 잘 맞을까? 진짜로? 그건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소리겠지. 더군다나 정당은 물론 정치인 역시 일관성을 유지하기도 힘들어. 게다가 정당에서는 큰 선거가 다가오면 당원 다수의 마음에 안 들어도 인기 순위 1번을 추대할 수 밖에 없어. 어쩔 수 없다고. 모순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고. 일반인들에게 물어봐 봐. 당신께서 정치를 하신다면 어떻게 하고 싶냐고. 바둑-체스의 훈수두는 사람을 선수로, 선수를 훈수자로 입장을 바꾸는 가정을 생각하면 이해하는데 도움될 듯 하다네. 그러나 그건 이론이지 실재가 아닐 꺼야. 이론과 실재, 교집합을 제외한 나머지는 다르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지 않나. 보통 일반인은 유명해지고 싶어하지 않아. 역으로 유명인이 일반인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면 그건 절반은 하소연이고, 절반은 내 시시콜콜한 사생활이 뭐라고 왜 정치-경제-사회 문제만큼 구설수에 오를까 라는 걱정이겠지. 그래서 휴식과 휴일과 휴가라는 게 있을 테고. 잘 쉬고 잘 놀아야 일도 잘 한다, 라는 논리는 아마도 틀린 논리는 아닌 것 같구먼. 그런데 훈수자를 선수로 선수를 훈수자로 손바닥 뒤집 듯 바꾸는 일이 흔한가? 흔하지 않아. 흔하지 않아요. 일반적으로 유명해고 싶지 않다는 일반인을 유명인으로, 잘나가는 유명인을 잊혀진 무명으로, 그렇게 단번에 바뀌는 예는 희박함을 넘어서서 거의 없다네. 어떻게 라는 과정과 약간의 기승전결이랄지 기막힌 우연을 동반한 어떤 숙명성이 전제된다면 몰라도. 어쩌다 1등과 계속 1등도 엄밀히 차원이 다른 것처럼. 만약 행운이 어떻게 내게 뚝 떨어졌다면 확률과 문학적 운명론이 선행되면 좋을 것이고, 노력과 감사와 행운이 인생의 보너스지 그 반대는 아니라는 점은 주지해야 할 꺼야. 그처럼 대박은 날씨처럼 이랬다 저랬다 쉽게 바뀌지도 않고, 쉽게 탄생하지도 않아. 단, 꽝은 예외고. 그래서 꽝이 더 재밌기라도 해야지. 뚝딱 상상처럼, 작품처럼, 입장 전환이 쉽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 <있을 수 있는 일>로 변화되는 것도 쉽다는 말이야. 실제 현실에서는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 발생하고 부조리와 모순이 존재하긴 하지만 말이에요. 그렇지만 뚝딱 휙 쉭쉭, 그건 거의 없어요. 불가능이 가능함으로, 초현실이 현실로, 기적이란 단어가 기적의 현존으로, 비현실적 꿈이 꿈의 실현으로 이루어지기가 어디 쉽던가? 그것은 전설, 만화 영화, 동화와도 같이 현실에서는 참으로 드물어. 운 좋게 승승장구했다가 무척이나 원성을 많이 샀던 어느 기분파 회장님이 그랬다더라 라는 덕담이 있긴 있었다고 하더군 그래. 열린 공간에서 과장과 사원을 앞에 두고 너 사원-해 그리고 늬가 과장-해, 내일까지 기다릴 것도 없이 당장, 그랬다던가? 친구끼리 으쌰으쌰. 친구가 친구에게 그래. 야 이 바보 멍충아 밥통 얼간이 삐─삐─ 같은 놈아, 넌 그것도 못하냐, 아휴 진짜 그 얼빵함 대체 어디다 쓰냐 어, 나와 나와 비켜 비키라고.. (잠시 후)...... (효과음)! 그러나 배구공이 넘어갔으면 다시 넘어오는 법. 승부는 매치포인트가, 연애는 밀고 당겨야, 꿈은 야할수록 묘미가 있고, 전문가는 비전문가를 들었다 놨다 쥐었다 폈다 해야 재미가 있고 의미도 있고 체면도 바로 서는 법이지. 정치를 하는 사람을 두둔했으면 다시 정치를 응원하고, 희망하고, 심판하고, 관망하고, 고심하는 사람을 옹호할 차례. 스포츠를 보면 알지 않나. 축구에는 스트라이커가 있고, 야구에는 4번 타자요 뭐, 해결사? 그러니까 어디서? 주색에서 무슨 도박에서? 뭔 사랑의 화신도 행복의 마법사도 아니고, 아이고 거 참 나 정말 어지간히 하신다! 좌우지간 무릇 인간의 언어에는 염원이란 게 있고 기대도 있으며, 사람들이 A 가수를 좋아하고 B 코메디언을 싫어할 자유는 하늘이 주셨다네. 헌법도 시지프스의 신화도 믿음도 우주도 예술도 좋지만 인간의 일은 인간의 일이라고. 그래서 소셜 네트워크와 비주류 소식통들이 먹고 사는 것일 테고. 따라서 이 말 저 말 고르고 골라서 선별하면 어느 새침한 남자와 도도한 여자는 딱 이 정도 언급 외에는 침묵할 것이네. 아마도 분명히 그럴 꺼야. 왜냐하면 새침하고 도도하니까. 내가 그분들을 잘 알아. 예언이야. 적중은 보나마나야. 걸어도 돼. 자신 있어. 그러나 의심은 사절하겠네. 뭐, 예언가냐고? 과찬이십니다. 그니까 그 남자와 그 여자가 하고 싶은 한마디는 대체 뭐냐고, 어서 말하라고, 뜸 좀 그만 들이고, 바람일랑 작작 좀 잡고, 좋은 말로 할 때 말하라는 협박을 뭐 예언가냐고? 사석이라면 지금 맥이는 거냐고 되묻고 싶지만 지는요 그런 저급한 말을 입에 담을 순 없답니다. 안되죠. 안된다구요. 그럼요. 아 상황이 그렇지 않소, 정치를 논하는 자리인데. 아무튼 그분들의 의중을 타진해 본다면 음... 타인의 의사는 다를지 몰라도 자기는 누가 뭐래도 백조-과라 그건가? 나 같은 촌닭이 뭘 알겠시유, 그걸 발설하면 난 대체 뭐 먹고 살란 말이요? 어? 안 그렇수? 그러니까 뭐야 그 닭, 오리, 홍학, 백조, 앵무새... 거 마 뭐 무신 조류 대백과 그런 거야? 그 책 주인은 거시기 혹시 촌년? 워~ 워~ 워! 즉 적어도 내가 좋아하지 않는 정치인에게, 고상한 그분들이, 존귀한 그대께서, 단 하나 부탁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 말이 아닐까요? 제발, 악수만, 두지, 말아 주세요! 그렇...지만 누구나 정석대로 평탄하게 두시는 것 같긴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지요. 그 배경과 일과표와 남몰래 하는 선행이 아니라 겉으로 드러날 수 밖에 없는, 꼭 나쁜 건 아니지만 그럴 수 밖에 없는 순서도를 보지 않을 수 없소. 보장된 인기와 웬만한 어? 어지간한 연예계 스타 전부 다 저리 가라─저속한 표현으로는, 부디 모두 찌그러져주세요 제발!─할 정도의 인기와 대우와 혜택은 그 누가 뭐라 해도 모든 덕목 가운데서 언제나 월등하게 단독 1등을 달리지. 그렇자나? 안 그래? 그렇다고! 만약 그 혜택 다 내려나 봐. 모두 내려놔 보자고. 그러면, 그러면 대체 누가 정치를 할까? 누가 정치를 하겠냐고! 만약 그러면 너 같으면 정치를 하고 싶겠니? 얼핏 봐서는 도의적인 답을 내놓을 수도 있어. 그러나 사석에서 하는 말로 그건 생고생일 꺼야. 진짜 좋아하는, 어쩌는, 민심을 반영하고 대변하며 그래도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 고민하기를 정말 원하는 사람만이 나 정치를 하고 싶어 라고 할 수도 있어. 물론 또 그렇게 되면 뭔가 착오와 모순도 생기겠지만 일단은 그렇다고. 그렇게 다 내려놓게 되면 대체 누가 정치를 하겠냐고 이 말이야. 나라도 안 하겄다! 어떤 미친놈이 자전거 타고 출퇴근하겠어 국회로? 하지만 어딘가 있긴 있다고 하더군! 소비와 풍요와 행복과 내 인생의 예찬에 대해서는 둘째 가라면 서러워 할 정도로 진보적인 사람일수록 그러는 것 같아. 좌파니 매파니 라고. 물론 내가 정치를 잘 모르기 때문에 그냥 왕창 물음표만 쑤두룩하게 꺼내놓는 것일 수도 있어. 아마도 그런 것 같아. 그래도 말이야, 어디서 그 짝을 찾을 수 없을 만큼 영특하게, 내게 진보적인 특징으로써 매우 유리한 무언가는 반드시 최고로 진보적인 걸 채택하시는 분일수록 뭔가 앞뒤가 안 맞아. 그렇지만, 그래도 너 어디 가서 내가 이런 얘기 했다고 하지 마라. 절대 하지마.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 법이거든. 순진하게 내 모든 것을 타인에게 다 보여주면 안 된다고, 어른은. 어른은 어린이가 아니야. 어른들은 원래 밥 먹듯이 거짓말을 하는 존재니까. 정치 때문에 말이 길어졌는데 정치라 정치, 말은 뭐라 뭐라 어쩌고저쩌고 해도 내가 봤을 때 최소 80퍼센트는 다 보수야. 선거권자든 피선거권자든 정당이든 모두. 그러니까 위대한 정치가들이 자주 쓰는 전문용어, 특히 좌파니 뭐니 그런 이상한 뉘앙스의 언제 적 고귀한 단어에 현혹될 필요 없다고 봐. 어리숙하게 언제까지나 휘둘려서는 안된다고. 두 번 다시는. 그리고 자기가 보수라고 밥 먹듯이 우기는 사람일수록 의심해 봐야 해. 왜 우겨, 자기가 뭐 코메디언이야? 개그맨 시험 봤다 떨어졌어? 사람들 표정이 안 좋아? 하나 같이 마음에 안 들어? 지금의 스포트라이트로 만족 못해? 뭐하러 반복하는데? 이권이 있으니까 그런 거 아니야, 진짜 격조 높은 보수라면 그럴 필요가 없을 테고. 정치, 아아! 정치는 정녕 허풍 대회란 말인가, 정말로 그건 뻔뻔함의 우열을 가리기 위한 시장일까? 그렇다고 하기에 녀석은 너무 힘이 세군 그래. 어쩔 수 없이 희대의 폭군 네로 황제에 대한 철지난 꽁트가 생각난다구. 그렇다네 정치가. 그러나 다 제쳐두고, 저급한 어휘와 고상하지 못한 태도와 전문가 세상에서 활약하다 보니 수단이 목적으로 뒤바뀌고 경도되어버려서 그렇지, 대체로 태반의 정치인들이 열심히 일하고 노력한다는 건 절대, 결코 부정할 수 없어. 의욕이 지나치고 품위를 때때로 잃어서 그렇지 노력 대비 결과가 가치 폄하되기 쉽고 멀리까지 예측하기도 다수를 만족시키기도 정말 어려운 분야, 그게 바로 정치야. 다른 곳에서는 이미 옛날에 체계가 잡히고 시행착오를 거쳐서 앞선 문제를 고민하는데, 그런 안착이 미진한 제도에 대해서 성숙하지 못하기 때문인지 무엇 때문인지, 정말 많은 분들이 클라우드 나인에 입성한 다음에는 꼭 이상하게 약속이나 한 듯이 검찰로 향하는 수순을 보여서 문제이긴 하지만 말이야. 언제부터 검찰과 경찰을 그렇게 사랑했다고 말이야? 어? 그래도 의욕은 넘치고 행동도 광범위하고 연구도 쉬지 않고 하는 듯 하긴 해. 다만 직장인들이 흔히 아는 것처럼 상사의 일반적인 4가지 유형에서 제일 피하고 싶은 유형이 어떤 성격이라는 것처럼, 현대 정치가 부딪힐 수 밖에 없는 문제가 분명해지는 건 오히려 그것 역시 개선될 수 있다는 희망의 서광은 보이는 점이니까 반겨야 하겠지. 가령 너무 많은 것을 하려고 한다거나, 가령 너무 잘 할려고 한다거나, 가령 너무 오래 할려고 한다거나, 가령 정치 분위기 자체가 옆에서 짖고 떠드는 일색이니까 자기 포지셔닝이 흔들리고 장기적 관점에 대한 존경심은 항상 뒷전으로 밀리는 것일 수도 있어. 계속 바껴 계속 바뀐다고, 잘 바꾼 것도 잘못 바꾼 것도 또 바꿔. 그렇지만 말이야, 눈썹 좀 타고 귀에서 커피포트의 수증기가 나오고 눈에서 레이저가 나가면서 그렇게, 바로 그렇게 이 세상에서는 번갯불에 콩을 구워먹듯이 기존의 뭔가를 학습하고 적용하고 개량하는 것이 가능하기도 하지. 희박하게 그런 일들이 있긴 있다고. 소란스럽긴 하겠지만 말이야. 그게 다 누구 때문이야? 선구자 덕분이잖아! 근대화가 늦은 지역에서 민주주의를 위해 노력한 수많은 희생과 시간들 덕분이잖아. 왜 그 공덕을 언론의 자유와 그 어떤 긍정적인 의식의 도입을 외친 장구한 세월의 물결을 핍박한 독선가가 독식해야 하는 건데? 그건, 정말, 아니지. 물론 그 시간 동안 발전되고 현상 유지되었던 것은 그건 다행스러운 일일 꺼야. 그래, 그건 누가 뭐래도 공로야. 인정한다고. 누구나 무엇이나 일장일단이란 게 있으니까. 비교와 객관화와 통계를 내면 다 나온다고. 인고를 무릅쓰고 투쟁한 주장과 태동한 궁금증이 인습이 되기까지, 그 인습이 다시 책으로 들어가기까지, 마음에 들든 아니든 현재의 풍습과 함께 살아온 대부분의 사람들이 속한 사회가 만들어낸, 선지자. 당장은 그 사회 전체에서 반감이 크겠지만 진공청소기도 커피포트도 환상머신도 다 선구자가 만들었어. 그러나 확실한 창시나 증명이 아닌, 동물농장을 개선하자 라고 주장한 이름없는 개미떼의 공로는 정작 그 개선을 묵살하고 억압한 소수에 돌아가는 경우가 드물지 않아. 언제나 그리고 어디서나. 개미떼는? 역사속으로! 알려진 몇몇 사례만 남고서. 비유가 좀 그렇지만 희대의 피라미드 사기 사건의 악당은 후대까지 또는 만파에 그 1인의 오명이 전해지지만 나머지 의로운 형사와 피해자와 그분들은? 그냥 묻히는 거야. 소수의 업적과 모두 함께 이룬 과업의 그늘만 강조하자는게 아니야. 에디슨? 알지. 테슬라? 특히 난 인상 깊어. 뉴튼이나 라이트 형제나 막 많잖아. 그런데 맥스웰 방정식을 아느냐고 물어 봐도 아는 사람을 만나기가 힘드네? 아 정말 그래. 99퍼센트의 보수가 아닌 1퍼센트의 진보란 게 그렇지. 글쎄... 아직은... 갸우뚱하게 돼. 미래생활사전이 미래 얘기지 그게 어디 지금 얘기인가? 하지만 미래 기준으로 보면 미래가 옳고, 과거는 당시에 옳았지. 멀리서 보면 <옳다> 라는 것은 과거형이라고. 그처럼 더 나은 미래로 가는 길은 그만큼 더디고 힘들어. 개선과 개혁과 진보, 그 가운데서 가능한 것은 대체로 개선이 전부야. 개혁과 진보는 거의 없어. 개개인의 의식이 따라주지 않는 이상은. 당장 목표랄지 임금 기준 같은 숫자만 쭉쭉 올리면 세상에 빈곤이 존재할 턱이 있나. 현실적인 의식은 따라가지 못하는데 법을 지키는 소크라테스를 대체 어디서 찾고 라틴어를 조금이라도 아는 어른을 어디서 만나겠니. 난 몰라도 넌 알아야 한다 라고 자식 교육에 힘을 쏟는다면 모를까. 바꾸어 말하면 개선이 되거나 지구본이 거꾸로 돌거나 그 사이 어딘가에 괴짜들이 있다고. 지금은 (비록) 괴짜 나중엔 선구자. 어? 그렇잖아. 지금이니까 인권이 있고 지금이니까 노예 제도를 돈의 논리가 대신했지 않았냐는 사적 의견이 가능하지, 그 당시에 그건 불가능이고 초현실이자 그런 사견을 발설하는 자체가 괴로운 인생이 되는 지름길이었겠지. 당장 기억만 돌이켜 봐도 많이들 그럴 꺼야. 대체 왜 나는 그렇게 많이 (얻어)맞고 커야 했지 라고. 그렇다고. 당장 초등학교 5학년 때 랄라랄라 룰루랄라 하교 길에 봤던 교문 밖 벽면에 붙여진 대자보! 와, 그, 오오, 그, 말이 안나오지. 그런 일이 한둘이 아니고 반세기였다고 반세기. 그렇다고. 당장 한 어른의 과거와 현재만 비교해 봐도 그래. 그 차이가 크면 그때 청춘은 말도 안되는 세상이었지. 장점과 좋은 잇점도 많았을 테지만 말이야. 보이저 2호, 아폴로 11호, 신대륙 발견, 원소기호와 원주율 그런 게 다 뭐니? 발명, 발견, 개발, 법칙, 창의력, 창조성, 아디이어, 무슨 주의, 무슨 학파, 머머 증후군, 각종 이름 그런 거. 그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건 두 가지야. 1.<무엇을? 새로움을!> 2.<방향은? 밖으로!> 그거야. 이거라고. 명성이란 게 그래. 첫째, 후대로 전해지는가. 둘째, 국제적인가. 셋째, 만장일치로 긍정적인가 아니면 뭐 그런가. 다시 말해서 99퍼센트의 보수는 선구자가 아니야. 최소한 1퍼센트의 진보와 괴짜와 돌아이와 선구자와 사이코-뭐나 신인류의 천재성이 발휘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주거나, 소수의 아픔을 알고 기억하고, 멀리 보면서 차근차근 개선시키려면 과연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를 고민해야 한다고. 단편적으로 인생을 살고, 단편적으로 세상을 보며, 단편적으로 정치를 알고 말하고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그것은 피선거권자보다는 오히려 선거권자의 중차대한 책무야. 왜냐하면 천사가 있으면 악마가, 지겹고 재미없는 천국의 반대는 즐겁고 재밌는 지옥이, 영화에서 보여지는 미래에 악당이 사라지면 그 악당을 대체하는 최소한 권태라도 탄생하는 게 이 세상의 이치이기 때문이야.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 같은 작품들에도 나오잖아. 세뇌되는지도 모르는 개와 소와 닭은 일반적으로 2가지 밖에 몰라. 신성한 1표의 행사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 지식과 지성을 습득할 수 있는 매체에 한계가 있으니까. 대체로 그래. 그러나 그건 보통 라디오, TV의 최전성기 적 얘기였지. 지금은 인터넷도 있고 이제는 지구촌이니까 사정이 다르지. 단위가 달라졌다고. 세상이 변했어. 그것도 많이. 앞으로는 더더욱. 때문에 이제는 개와 소와 닭도 게임의 룰을 만들고, 판을 흔들고, 짜고, 기준을 정하고, 시장이 어떻게 변화하고, 그런 흐름에 찬찬히 관여할 수 있게 됐어. 그걸 모두 포기하겠다면 다시 흑백사진과 흑백 TV 시절로 돌아가는 거고. 그러고서 말은 막 이러쿵저러쿵. 왜 그래프란 단어가 중요한데? 단일 수치의 시간은 모두에게, 어디나 공통되지만 하나의 지구에서 수많은 시간대를 지금, 현재 따로 살고 있기 때문이지. 타임머신은 바로 지구야. 지구가 타임머신이라고. 이게 많은 부분 발명가와 선험자와 먼저 시험해 본 표준들 또 실패와 계기 그 때문 아니겠어? 그것의 그늘과 향후 전망을 비롯한 얘기는 교수님께 양보하자구.
뭐? 뭐라고? ...... 아 증말...... 어떡하니, 교수님 아직 오시지 않았대. 내려 놓은 마이크 다시 잡아야겠군. 뭐 끝이야 있겠지. 아니면 내가 그냥 교수 할께. 왜? 내가 교수 못할 꺼 같아? 해, 한다고. 할 수는 있는데, 그런데 나한테 좀 안 맞을 수 있어. 내가 그래서 교수가 안 됐고, 그래서 교수직을 마다했고, 그래서 교수를 하지 않는 거야. 그거야. 그거라고. 내가 정말 마음만 먹었으면 웬만한 바람둥이는 다 저리 가라 였을 꺼야. 내가 정말 돈 욕심이 있었다면 지금 아마 포춘지든 어디든 세계 거부 순위에 이름을 사뿐히 올렸을 텐데. 그래도 뭐 아쉽지는 않아. 그때 나처럼 파란만장하게 놀아본 사람은 아마 없었을 테니까. 그럼. 두말하면 잔소리지. 아 뭔 얘기 하던 중이었지? 아, 보수 그래 보수. 보수는 있잖아. 그 보수만 보수가 아니야. 보통 우리들 현재 사는 일상이 보수고, 그것의 도구도 보수고, 환경도 보수고, 그 모두를 아우르는 생각과 사고와 사유와 사상도 다 보수야. 옛날 당연하게 여겼던 개념 있잖아. 여자. 노예. 동성애. 피어. 신분. 왕권. 식민지 적 미국. 그때와 지금은 거의 하늘과 땅 차이잖아? 그 변화가 어떻게 가능했는가, 그것은 진보 때문이야. 전적으로 그렇다는 말이 아니고 중차대한 기여를 했다고. 1퍼센트의 진보. 1퍼센트의 1퍼센트에 의해서 지금 우리가 여자, 동성애, 인권, 평등, 자유 그런 개념들을 지금처럼 인식하게 된 거지. 나머지 99퍼센트는 다 보수야. 좌파? 거의 없다고 보면 돼. 너는 좌파 내가 진정한 보수? 아아 커피포트여! 옛날 당연하게 여겼던 개념에 대해서 그 당시 작게 이의를 제기하거나 크게 반대했거나 그게 진보야. 선거 때만 되면 굽실굽실, 선거 끝나면 으쌰으쌰. 인간의 정치가 원래 그래. 선거철이라서 보수네 진보네 같은 민감하고 자극적이고 저렴하지 않기를 바라는 언성 때문에 시끄러워서 고생이 많지? 알아. 안다구. 내가 진짜 보수다? 99퍼센트의 보수에게 그게 대체 뭔 소린지...! 진보? 진보는 말이야 그냥 말로만 진보 진보, 그게 진보가 아니야. 잘 알지도 못하면서 어쩌고저쩌고. 옛날 노예제도에 대해서 몰매 맞을 게 뻔한데 목숨이 위태로울 게 뻔한데 그런데도 나서서 반대했던 사람이 진보야. 옛날에 '여자가 어디서'에 항거했던 사람이 진보야. 그 옛날 철창에 갖히고 추방당했던 오스카 와일드를 비롯해서 뒤에 숨지 않고 앞에 나섰던 동성애자가 진보야. 목숨 걸고 독립운동하는 동족을 압제했고 시대가 바껴 민주화 운동을 무참히 탄압하고 영구히 권좌에 남으려 했던 비운의 역사적 인물이 아니라. 진보는 옛날에 지구는 둥글다 라고 했다가 당시 권한이 막대하던 교황청에 의해 끝끝내 가택 감금 당했던 어느 과학자가 진보야. 그는 독실한 신자였으니 개인적으로 진보는 아닐 수도 있겠지만. 진보는, 옛날 옛날 피라미드의 최상층으로부터 모진 탄압을 받다가 참다 참다 못 참고 피라미드를 역피라미드로 뒤집는 것이 진보야. 진보는 혁신적인 제품보다는 몇 차 산업혁명 그런 게 진보야. 화형대와 단두대가 그 뜻대로 쓰이다가 멋 훗날 베를리오즈의 환상 교향곡 제4악장 단두대로의 행진을 듣는 것은 좀 다른 얘기고. 그렇다고 보수가 나쁘다는 뜻은 아니지. 오히려 선의에 가깝겠지. 그런데 왜 나는, 너는, 우리는 보수라는 단어에 얼핏 신경이 살짝 곤두서는 것일까? 나는 아니다? 네, 그분은 제외. 왜 그런가를 모르겠다면 동네에 돌아다니는 똥개처럼 한 구멍만 파면 돼. 막 파. 계속 파. 계속. 오른발 왼발 오른발 왼발, 왼손 오른손 왼손 오른손, 영차 영차 계속 파다 보면 두더쥐를 만나게 돼 있어. 왜 그런가를 모르겠다면 보수, 보수, 정치, 정치 노래를 불러봐. 그러면 알게 된다고. 다시 가자고. 거의 다 왔어. 아아, 보인다. 학점 후하게 줄 테니 진득하게 참으시게들. 보수. 보수도 역시나 사랑처럼 종류가 많다고. 뭐라 언급하기가 까다롭지만 굳이 말하자면 정치권 용어로 범보수 연합이니 보수 결집이니 샤이 보수니 그런 용어들 말이야. 그 자체로는 나쁘지도 파렴치하지도 않아. 그래야 한다고. 그건 권리고 자유야. 그런데, 그런데 도대체 왜 까다롭고 거북하고 꺼림직할까? 왜냐하면 보수의 보수의 보수가 있기 때문이야. 촌닭에서도 촌닭왕이 있고, 남자도 남자 중의 남자가 있듯이. 앞서 말한 학생에게 무엇을 세뇌시키고, 라는 건 정말 그렇다는 게 아니라 객관성이 약해진다는 뜻이야. 젊음이여 이상의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가 보자, 그처럼 학생들이 무엇을 배우게 할 것인가. 그것의 대상은 광고를 제재하고 규율을 다듬고 표준을 설정하는 문제와는 달라. 수학과도 다르지. 쉬운 예로 역사 같은 경우 꽃다운 학생들에게 안쪽의 역사에 대해서 무엇을 많이 가르쳐야 할까? 꽃다운 것과 불미스러운 것 가운데 무엇을? 아마도 균등히 건조하게 나무와 숲을 고루 보도록 균형잡힌 가치관과 세계관 그것을 가르쳐야 한다가 정답일 테지. 그러나 그게 어디 말처럼 쉽나? 왜 정치가 이처럼 귀에 피가 나도록 논의되냐면 그 뭔가는 자꾸 내게 유리한 쪽으로 편집되기 때문이야. 꽃다운 청소년 새파란 학생들에게 안쪽의 역사에 대해서 시간이 흐를수록 커피포트보다 진공청소기를 커다랗게 부풀려서 가르치고 싶은 게 인간의 본성이야. 물론 그 반대 역시 그렇겠지. 꽃다운 것과 불미스러운 것 가운데 어떻게 전자만 역사일까? 역사를 그대의 인생이라고 생각해 보자구. 혼자 조용히 살 때는 꽃다운 것이 주를 이룰 꺼야. 기쁘고, 즐겁고, 흥미롭고, 행복하고, 사랑스럽고, 재밌고, 어? 그렇다고! 그런데 이 세상을 알게 되고, 사랑을 알고, 인생을 알고, 나를 알고, 당신을 만나서 연애를 하고 청혼을 해서 축가를 부르고 첫날밤을 보낸 후 그대와 나를 닮은 아이를 낳아 키우며, 나를 나에 대해서 인간에 대해서 인류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본다면, 그러면 내가 살아온 나의 인생에 대하여 꽃다운 것과 불미스러운 것, 심심함이라는 중도가 훨씬 우세하지만, 그 가운데 전자보다 후자에 훨씬 많은 뭐랄까, 당신이 만일 예술가라면 후자에 그야말로 예술로 승화될 온갖 진귀한 보물들이 다 들어있다구. 이상하게도. 완전 그렇다는 말은 아닌데 그걸로서 예술의 깊이와 향기가 갈리게 된다고나 할까, 아무튼 그래. 살짝 옆길로 빠질 뻔 했는데 돌아와서, 자, 내 인생이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보니 어머나 글쎄 그랬어. 다시 인생을 역사로 바꾸자고. 역사를 열었어. 역사를 알았어. 그랬더니 글쎄... 오! 오오! 입이 다물어지지를 않네 글쎄! 그런데 대하드라마는 재밌어지네 그려. 알면 알수록 흥미진진하구먼 그래. 정말 많이 알고 나니 오히려 역사가 좋아지네. 어때, 전공을 바꿔? 그렇게 될 꺼야. 그러면, 그러면 그 다음은 뭘까? 뭐긴 뭐겠니 인간의 선함과 영특함과 이타적인 심성을 권자에서 끌어내리고 인간의 본성이 슬그머니 스~윽 개입하고 대두된다고. 그거야, (딱)! (검지 쉭-쉭-쉭)! ...(침묵)... 보수. 보수는 나쁘지 않아. 보수는 괜찮아. 보수는 좋아. 보수는 사랑스러워. 보수는 아름다워. 그리고 ...(침묵)... 보수는 절대 다수야, 절대 다수라고. 그런데 그 보수에서도 보수의 보수의 보수가 있다는 걸 알아야 해. 광고 같은 경우는 규제를 한다고. 전문용어 뭐 있는데 브랜드와 소비 욕구가 잔상에 남도록 막 최면을 거는 진짜 마술 같은 그런 게 다 가능하니까 실정법으로 기준을 제시하고, 사회 규범으로 선도하고, 불문률로써 좋아지도록 유도하지. 광고를 만드는 사람과 보는 사람과 관심 없는 사람 모두 유익하도록. 그런데 역사에 '보수의 보수의 보수'를 더하면 뭐다? 꽃다운 것과 불미스러운 것 가운데 전자는 부풀리고 후자는 스르륵 눈독듯이 없어지지는 않겠지만 아무래도 작아진다고. 사랑법에 통달한 호색꾼이 숙녀의 마음을 녹이는 거야 뭐 당사자들 알아서 할 일이야. 하지만 꽃다운 학생, 새파란 청소년, 꿈을 먹고 자라는 젊음에게 공부하라고 독려하고 강요하고 권유하는 그 뭔가 애매함은 실질적으로 감리가 꽤 어렵다는 말씀이야. 세상이 얼마나 바쁘게 돌아가는지, 세상이 얼마나 촘촘하게 얽혀있는지, 세상이 이 얼마나 훌륭하게 발전하였는지, 하지만 인간의 본성은 타임머신이라네. 타임머신은 바로 인간의 본성이라네. 내 안에 잠재되어 있는 어두운 본능과 일평생 싸워야 한다는 것, 그것 역시 인생이라고. 보수! OK! 내가 진짜 보수야, 이제 그만 믿어줘. 내가 진짜 보수니까. 보수! 일반적인 의미의 보수 즉 북극곰을 살립시다, 캥거루에게 먹이를 주지 마세요, 관광객을 너무 빤히 쳐다보지 맙시다, 타인의 의견을 존중합시다, 사회적 약자를 차별하지 말아야 한다, 다양성을 존중합시다, 질서를 지킵시다 등등, 미래의 기준으로 본다면 이건 보수겠지만 우리가 아는 보수는 어쩌면 보수가 아닐지도 몰라. 그러면 이제 나와야 할 질문은 단 하나만 남겠지. 딱 하나가. 그것은 무엇이냐, 바로 이거야. 그런데... 음... 교수님의 의견은 잘 알겠다 그래 당신 똑똑하다 글은 몰라도 말은 잘한다 하지만, 하지만 옛날이야 현재와 쉽게 비교되기 때문에 옛날의 진보는 그랬다 치고, 그런 말은 나라도 하겠다? 저는 그런 위인 아니랍니다. 자 그렇다면 지금의 진보는 대체 뭐냐? 앗 죄송해요. 말이 짧았네요. 궁금하다 보니 살짝 흥분했어요. 정말 알고 싶어서 그런 것이니 이해해 주세요. 대부분 가쉽들도 그렇죠. 큰 방향과 원대한 뜻은 같지만 방법이랄지 성향이나 뭔가가 차이가 나니까 그저 지나가다 몇 마디 했는데, 그런데 그것은 말실수이자 말꼬리 잡고 늘어지기죠. 아무리 인간이 지성의 신이 되고 어쩌고 하더라도 타인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 표현의 자유는 침해받아서는 안된다, 그런 말들은 너무 어려운 것 같아요. 완전 고무줄 같아요.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모르겠어요. 그게 다 교수님 때문이에요. 교수님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싶어도 교수님은, 교수님은 너무 지성적인 친구들만 편애하시는 것 같아서 무척 서운하답니다. 혹시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친구를? 어찌되었든요. 그럼요. 그건 그렇고, 저는 정말 궁금해서 여쭤보는 거라구요. 제 마음, 아시죠? 허허허, 알겠네. 잘 알겠네. 아주 잘 알겠네. 자네 이름이 무엇인가 내 이미 알고 있네만 한번 더 이렇게 여기 기록하고 싶다네. 아, 누구였구나. 쓱쓱쓱. (못말리는 스잔나. 요주의 인물?) 그래. 곧 있으면 수업 종료를 알리는 선율이 진짜, 이번에는 진짜 들릴 테니 조금만 참으시게. 마지막 하나의 질문은 이거였지. 지금 세상에서 정의하는 진보는 대체 뭐냐? 음... 뭘까? 나도 궁금하다야. A 너는 아니, 지금의 진보를? 내 친구 미래에게 물어볼까? 그런데 미래는 사랑의 도피 행각을 떠났는데. 더 나은 미래와. 오오, 저 안색 좀 봐. 좀 웃어 주고 그래라 응? 넌 애가 어떻게 된 게 그렇게 꽉 막혀가지고 빡빡하게 구니, 어? 이제 그만 뜸 들이고 정답을 공개하자구. 그것은, 그것은 음... 그것은 말이야 그것은 아마 미래생활사전 (페이스 팝콘, 애덤 한프트)에 나오는 내용들 바로 그것이 진보일 꺼야. 그럴 수도 있어. 정말로 그럴지도 모른다니까. 왜? 안 믿겨? 설득력이 부족해? 얘가 얘가, 하긴 현실성이란 게 있으니까. 그럼 정말 그 옛날 사람들은 얼마나 어렵게들 산 거야? 아아, 도저히 상상이 안된다. 아, 맞다! 아까 타임머신 나왔어. 어떻게... 대체 왜 정치 얘기를 하다가 주제가 타임머신으로 바꼈지? 지구는 정말 타임머신일까? 타임머신은 지구냐고. 그럴지도. 사람이 타임머신이고, 타임머신은 사람인가 봐. 어디? 몇 년! 누구? (의식은) 몇 년식! 누구와 어울리면 어떻게, 사교 모임에 가면 또 몇 년 방식으로. 사람이야 착하고 괜찮지만 말이야. 드라마에 나오는 배역의 악행처럼 정말 그렇게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니, 다 과장이지. 또는 술수거나. 어쩌면 연기고. 영화에서 토하는 장면만 봐도 그래, 떠오르지? 약을 했을 때 상대방 얼굴이... 알겠지? 뻥이라고. 과장은 그냥 기본 같은 거라고. 그래요. 바로, 제가, 악역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몇 년식 옷을 입고 있기 때문이랍니다. 다큐멘터리만 봐도 나오잖니. 믿기지 않을 정도로 원시적으로 사는 종족, 좀 더 존중하는 표현을 써야 하는데 어쨌든. 그거 찍은 제작팀이 대체 그걸 어떻게 찍었겠니? 타임머신을 타고 가서 찍은 거겠지. 장비? 아마존에서 사자나!
그런데 말이야. 그러나, 그렇기는 해도, 아무리 생각해도 대체 왜 그럴 수 밖에 없는지, 왜 꼭 그래야만 하는지 모르겠지? 왜 그렇게나 인간은 정말 이상하고 또 다채로운지 정말 모르겠지?」
「응! 오오, 진짜 그래.」
「그 뿐만이 아니라 아름다운 동경심과 정신이 혼미할 정도의 선망과 가슴이 부풀어오르는 대망, 달콤한 로맨스와 고급스러운 농담, 막연한 열정, 1퍼센트의 퇴폐적 심상, 거리에서 우연히 반가운 누군가를 만나고, 너의 인생은 이상주의에 가까워지고, 이 세상은 아름답고 탐스러운 열매는 너무나도 많고, 예쁜 꽃은 봐도 봐도 끝이 없는 것 같지? 이런 성격의 말을 듣거나 글을 읽으면 기분이 나쁘거나 썩 언짢지는 않지?」
「어. 정말로 그렇지. 그런데 그런 거 다 어떻게 알았어?」
「어떻게 알았냐고? 어떻게 알기는! 너 뿐만이 아니라 웬만한 사람들 다 그래. 어지간한 사람들 다 그런다고. 아마도 거의 다 그럴 걸! 독심술? 그런 거 없어. 하지만 사랑은, 있어. 그래서 사랑을 하는 부류와 받는 부류는 조금 나뉘지. 사랑이라... 사랑 이야기 좀 더 해 볼까요? 네, 선생님? OK! 뭐 오늘이 첫 수업도 첫날밤도 아니고, 사랑 이야기 한두 번 하는 것도 아니니까 말이야. 자, 한번 가보자고. 그럽시다. 사랑은, 사랑스러워 탐스럽다 아찔하네 라며 칭송하는 사람과 그런 축복의 기원과 경쾌한 찬양을 받는 사람으로 나뉜다네. 동등하게 서로 사랑한다는 것과는 다른 얘기지. 바늘과 실은 한짝이고, 사랑의 기쁨은 사랑의 슬픔 다음에 올 수도 있어요. '내가 줄 수 있는 건 오직 사랑뿐'이 있다면 '내가 받고 싶은 건 아마도 풍요로운 낭만'이 어찌 없을 수 있겠나. 시간이 멈춘 듯한 착각을 불러다 주는 사랑. 혹여 꿈이 아닌가 기지의 현실을 미지의 환상으로 오독하게 만드시는 사랑. 설레게도 가슴이 뭉클하게도 코 끝이 찡하게도 만드는, 줬다 뺐고 왔다가 사라지는, 멀어져 가다 다시 다정하게 되돌아오는 사랑. 기대에서 걸어오고, 예감이 손짓하며, 무언의 그리움이 동경하는 사랑. 그때는 왜 몰랐을까? 사랑이 뭐길래! 착한 사랑과 풋사랑, 끝없는 사랑과 몰래한 사랑. 갈팡질팡 할까 말까 고민하는 사랑 그분 옆에는 사랑함과 사랑하기에 떠남이 있다네. 열애도 사랑이고 짝사랑도 사랑이라는 점, 때문에 사랑의 인기는 도무지 식을 줄을 모른다네. 모체는 같고 종류는 다르지만 모두 사랑이라 불러야겠지. 사랑은 원래 그런 것이니까. 나는 그대를 사랑하고 그대는 나를 좋아하고, 그 균등함을 쉽게 규정할 수도 그래서도 안되는 사랑. 말은 글은 노래는 이 세상을 다 줘도 바꿀 수 없는 것이 있다면 그건 어쩌면 사랑이 아닐까 라고 한다네. 하고 싶은 말 그러나 하기 힘든 말, 그것은 사랑. 무엇보다 사랑은 신비일 꺼야. 뭐라고, 아니다! 난 큐피트의 화살을 뽐내는 뚜쟁이...라도 되고 싶다? 왜 안되겠나. 그분의 인생인데. 여심을 공략하는 도시의 고독한 사냥꾼도 은퇴란 걸 하고 여행도 가야하니까. 사람도 지구도 타임머신인데 거기다 사랑까지? 아아 뒷목이 당기는구나. 여러분! 사랑이 아름답던 꿈이 인생이건 우주의 시간은 간다구요. 통장 잔고가 없어도 은행의 시계는 돈답니다. 내 사랑은 어디 있고, 행복은 대관절 언제쯤에나 정복되며, 희망은 과연 무엇일까? 예쁜 사랑 부디 아름다운 사랑하세요, 그런데 어떻게? 정녕 그걸 알고 싶은데, 그런데 (딱!) 그건 추가 비용이 발생하죠, 상위 과정에 등록해야 한다구요. 친구여 지금 힘드시나요? 언젠가 해 뜰 날이 올 것이에요. 아가씨여 오늘 기쁜가요? 내일은, 더~ 즐거울, 것이다. 그러므로... 뭔지 몰라도 어떤 발동이 슬슬 걸릴라고 하네만 둘 중 한 분의 표정이 영 뭐한 듯 하니 여기까지만 합시다. 또 몰라 모른다구. 누가 우리의 담소를 엿들을지 말이야. 사람일은 모르는 법이니까. 음... 일단은 여기까지만 하자고. 오늘 하루에 너무 많이 진도를 빼면 안되니까. 손잡고 키스하고 밤 하늘의 별을 함께 보다가 화면에서 밤 하늘만 남긴 채 연인은 쏙 빠질 수는 있지만, 이혼하고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카사노바가 어느 날 성직자의 길로 들어서거나 막 그러지는 않아. 다 순서가 있고 절차와 격식이란 게 있는 법이지. 아 이거 이거 아무래도 내가 오늘 말을 너무 많이 했는데. 어디 봐봐. 돌려봐. 보자구. 네 귀에서 피가 나오지 않나 보게. 안 나오네. 다행이다. 행운이지. 영광...까지는 아니고. 아 피곤해. 정말 피곤한데. 영 피곤해. 기운을 너무 많이 뺐나 봐.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구.」
A는 바텐더 에릭의 현란한 화술 때문에 정신이 몽롱해져서 그가 왜 여기에 왔는지, 자기는 왜 홍학에 대한 환영을 보았는지, 왜 이 낯선 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었는지를 모두 잊고야 말았다. 그는 말렸고, 감겼고, 귀는 곧 날개가 되어 미지의 4차원 세계로 날아가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그날 멍한 채 별장으로 돌아와서 씻고 어쩌고 TV를 보다가 살며시 꿈나라로 떠나게 되었다.
9
A는 다음 날 무인 카페로 출근했다. 그런데 갑자기 친구 D에게 연락이 왔다. A가 사는 새로운 동네에 놀러오겠다는 것이다. A는 반겨했고, D는 그곳으로 출발했다.
D는 새 차를 뽑았다. 메르세데즈 AMG GT R. 빛깔이 오! 아마 한 달 아니면 두 달, 최소 세 달 안에 싫증낼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애마와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었다. 무엇보다 멀찍이 떨어져서 차의 방향을 휙휙 돌리는 재미가 특별한 듯 했다.
D가 도착했다. 그들은 드라이브를 떠났다. 가까운 동물원으로. 동물원에서 그들은 맹수를 봤고, 얼룩말을 봤으며, 홍학도 봤다. 기분 전환이 되었다. 홍학, 별 거 없었다. A는 이제 다시는 홍학이 어쩌네 저쩌네 칭얼대지 않을 것이다. 홍학 얘기는 쏙 들어가버렸다. 홍학은 개와 양과 늑대 같은 개념일 뿐이다. 홍학은 그가 상상했던 보라빛 소나 검은 백조나 불사조가 아니었던 것이다. D는 A에게 신나는 연애 경험에 대해 말해주었고, A는 새로운 시골 생활의 신선함에 대해 얘기해주었다. D의 돈 주앙식 쇼핑과 사랑과 일상의 몽환적인 드라마는 전혀 새로울 게 없었다. 그리고 A의 얘기를 간출이자면 이랬다. 그는 홍학에 대한 탐욕을 당분간 줄였다. 오늘 그 끝을 보긴 했지만. 그 내리막길 대신 그는 앵무새를 하루 10분씩 알아가기로 했다. 그리고 그는 노리개젖꼬지를 구입했고, 그것을 일종의 그분으로 모셨다. 어쩌다 물어봤고 신기한 듯 쳐다봤으며, 골 세러모니를 연습하기도 했다. 또 직접 가서 볼 만한 음악 축제 하나를 정해서 가서 볼 계획을 세웠다. 계획만. 더불어 A는 D에게 바텐더 겸 독심술사 에릭에 대해서, 무인 카페 사장 겸 최면술사 홍학씨와 선술집 주인 겸 마술사 테디에 대해 얘기해 주었다. 그것도 침을 튀기며 그들의 신통방통함과 경탄할 만한 재주와 기꺼이 부러워할 수 밖에 없는 탁월한 신기에 매료되었다는 듯이.
「오? 그래? 나 그 친구 아는데. 사실 있잖아, 에릭은 사립 초등학교 동창이었어. 그땐 정말 코 흘리고, 여기 저기 막 따라다니고, 아휴 정말 보기 흉했는데. 결국 시골에서 순진한 아저씨들한테 무용담을 퍼트리는 낙을 일삼고 있네. 어떻게 그런 일이 다 있지. 그렇게 낙향해서 전설적인 인생을 사시겠다? 어머나! 정말? 참 생뚱맞네. 어떻게 걔의 소식을 너한테 다 듣게 되지? 와, 놀랍다. 놀라워. 그리고 누구 테디? 그 친구의 남다른 자질이 대단한가 본데 아마 도시에서 둘도 없는 사기꾼으로 이름 좀 날렸을 껄? 하도 악명으로 맹위를 떨치니 얼굴 팔렸을 테고, 얼굴이 팔렸으면 터전을 옮기지 않으면 안되고, 그래서 이곳에 정착한 것일 수도 있어. 어쩔 수 없이. 에 또 그리고, 무인 카페 사장은 잘 모르겠고... 음... 내가 직접 만나서 자웅을 겨뤄 볼까? 누가 이기나 보게. 과연 누구의 최면술이 더 뛰어나고, 누구의 독심술이 훨씬 대단한지, 또 누가 진짜 요술을 부릴 수 있는지 궁금하지 않니? 늬가 봐도 내 요술 실력이 더 출중할 것 같지 않냐? 어때, 한번 견주어보는 건? 난 그러고 싶은데! 나 D야. D라구!」
「오... 오오... 정말? 그거... 정말이야?」
「정말이냐고? 정말이겠냐? 뻥이야! 그냥 한번 해본 얘긴데, 심각하긴. 웃기지? 웃기지 않냐? 그래 재미없다. 별로네. 시골은 정말 고적하고 심심하구나.」
......
「심심해? 심심하다, 심심해. 우리, 투우장에나 갈까? 어때?」
「뭐? 투우장? 여기에 그런 데도 있어?」
A와 D는 투우장으로 갔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폐쇄된 경마장이었다. 과거 한때 경기가 좋았을 때 반짝했던 곳으로 그때만 해도 준-낙원쯤 됐을 법한 곳으로 보였다. 실재 그 정도는 아니었을 테지만 시간이 지나면 본질은 과장되고, 꿈은 잊혀지거나 밀려나며, 회상이 과잉되면 추억은 아름다워지는 법이다. 이 문닫은 경마장 역시 멋진 시절, 적어도 마권과 관중과 미친 듯이 질주하는 무슨-마 무슨-마들이 있었을 것이다. 당시 그들은 라이벌로써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을 테고. '아내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와 '아내는 아무것도 모른다'라는 화려한 시절의 잘나갔던 경주마처럼.
그들은 개구멍으로 들어가서 관중석에 앉았다.
「A. E에게 들었어. 홍학에 빠졌다며? 그런데 왜 하필 홍학이니?」
「이젠 다시 시큰둥해졌어. 아, 왜냐고? 글쎄... 내가 왜 그랬지? 그건 아마도 다른 조류는 글로 쓰고, 직접 보고, TV로도 만났는데 홍학은 이상하게 낯설어서 그랬던 거 같아. 내가 만일 촌닭이라면 다른 사람들은 모두 홍학이 아닐까 그런 환각에 잠시 시달렸다고 하면 믿겠니? 믿지 않아도 괜찮아. 상관없어. 나도 있잖아, 차라리 그게 거짓말이면 좋겠다.
세상에는 말이야 청자가 있으면 화자가 있고, 관찰자가 있으면 행동가가, 사색가가 있으면 모험가, 그리고 사업가 옆에는 예술가 친구가 있기 마련이지. 네 사업은 잘 되고 있지? 비서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봐. 나 같은 사람이 바로 타고난 비서일 수도 있으니까. 있잖아, 나 같은 삼류 글쟁이들은 말이야, 거기서 또 세 가지로 나뉘지. 첫째 귀를 막거나, 둘째 귀에서 피가 나거나, 셋째 (딱) 귀로 상상의 나라와 동화의 하늘을 나는 친구로. 음 이렇게 말이야. 펄럭펄럭, 태양을 바라보며. 이때 선그라스는 작품에서는 벗고 사석에서는 끼는 게 좋겠지? 나는 가끔 여기 들리곤 해. 혼자서. 나름 운치 있어. 멋져. 괜찮아. 정말 괜찮은 곳이야. 아무도 찾지 않는 문 닫은 경마장에 들러서 혼자 노래도 부르고,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좀 걷다가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해. 그러다가 하나 생각한 게 있어. 이제 그만 사이렌이 되어야겠다고 말이야. 사이렌! 바다의 요정. 여자의 얼굴과 새 모양을 한 괴물. 귀를 막지 않으면 어쩔 수 없이 돌아보게 된다는. 그 다음은 쉿! 왜, 이 경마장의 이름이 혹시, 그 생각하니? 걱정마. 난 에이리언은 아니니까. 어쨌든 입이 쩍 벌어질 만한 재미난 일이 없어서 미안하네. 유감스러워. 유감스럽다는 중의적인 표현은 말끝마다 우리는 우리는, 어? 어? 어? 하는 그 친구들이 쓰기에도, 그 어디에서 사용하기에도 무척 뭔가 어중간하고 곤혹스런 표현인데 어딘가 모르게 지금 그게 딱 생각나는 건 왜일까? 드라마 대사에서조차 옛날에 유행을 탔던 거 같아. 아무튼 난 몰라. 난 모르는 게 너무 많아. 아 이거 옛 친구 옆에 앉혀 놓고 송구스럽다면서 벌세우는 거 같구먼 그래. 좀 시간이 넉넉하면 어떻게 기발한 방법을 만들어보겠지만 내가 급하게 술수를 부릴 수 있는 주술사도 아니고 난감하군 그래. 그래도 속속들이 알고 나면 여기도 꽤 살만해. 매력있다고. 또 적당한 시간이 되면 나도 다시 도시로 올라갈 수도 있고 말야.」
「흐흠. 진짜 궁금해서 물어본 건 아닌데, 넌 그걸 그렇게 길게 응답하면 어떡하니? 얘가 시골 내려가더니 이상해졌는데. 아님 원래 눈치가 없었던 거니? 그리고. 뭐 우리는? '우리는' 화법 그거 늬 꺼잖아? 가만 있어 봐. 그럼... 너도 오빠란 말만 들으믄 미쳐버리냐? 혹시 이 장면을 엿보는, 읽는 그대도 그러요? 진짜 그렇소? 대답 좀 해 보란 말이오!」 D는 A에게 이처럼 추궁할 뻔 거의 그럴 뻔 하다가 말았다.
A와 D는 짧은 나들이를 마쳤고, 에릭이 일하는 카페에서 차 한 잔 마신 후 헤어지기로 했다. 그런데 마침 D에게 연락이 왔다. D의 절친 E가 근처까지 그를 만나러 왔다는 것이다. 물론 A는 E와 그다지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A는 D와 E의 은하수를 찾아 떠날 여행이 촉망됨을 예감했다. 뭐랄까 그 다음이 매우 가식적으로 기대되었다. 그의 시샘은 빗나가지 않았다.
결국 A는 어중이떠중이가 됐고, D와 E는 단둘이서 우정 여행을 떠나갔다. A는 외톨이가 되었고, 오늘 처음 만난 모자를 쓴 어느 숙녀로부터 어떤 신선한 고백을 듣고 싶어졌다. 왠지 그는 D는 데우칼리온, E는 피르하, 자신은 혹시 프로메테우스가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해봤다. 그들이 떠난 방향을 힐끗 바라보며 그는 뜻모를 아쉬움을 달랬다.
10
A는 어느 날 무인 카페에 갔다. 카페 이름이 바꼈다. 무제로. 그리고 다른 손님은 아무도 없었고, 그곳에는 파가니니의 기타 소나타가 흐르고 있었다. 그날따라 그가 하고 싶은 일이 행진이라거나, 문 닫은 경마장으로부터 막 이상한 텔레파시가 자기를 오라는 듯한 신호를 보낸다거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현실은 드라마가 아니었다. 그의 지금 심경은 축복과 안도감과 설렘보다는 권태를 통감하며 그것으로부터 예술적 착상을 도출해보려는 발버둥에 가까웠을 것이다. 그의 작품 지론에 따르면 그 방법이 때로는 제법 효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그는 참다 못해 절망에 유념하며 예술은 앵간히 하고 좀 쉬고 마음껏 놀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햇살이 너무 따스했고, 사근사근한 바람이 그를 부르며 우리 같이 놀자고 그에게 마치 눈웃음치며 애원하는 듯 느껴졌기 때문이다. 흡사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애인의 보채고 칭얼거리는 애교처럼.
그는 무인 카페 바깥으로 일단 나갔다. 떡 하니 5월의 햇살이 그를 반기고 있었다. 그는, 산다는 것은 다름 아니라 노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독자적으로 남몰래 혼자 놀 수만은 없었다. 그가 손가락 딱 하면 친구 F로부터 전화가 걸려와야 멋진 건데 그는 멜로드라마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F에게 전화를 걸기로 했다. 따르릉~ 따르릉~.
「여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