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건 좀 아닌 것 같다!」
누군가 내게 말을 거는 듯 하다. 그러나 그것은 타인의 말이 아니라 나 혼자 떠올린 생각이었다. 집과 학교만 오고 가는 학생이나 집과 회사 밖에 갈 곳이 없는 일 중독에 빠져 사는 지식노동자처럼 나도 집과 찻집만 매일 왔다 갔다 하는 것은 아닐까, 그런 의문이 아마도 발전한 듯 했다. 왜 그래야 할까? 딱히 타당한 답을 떠올리기가 어렵지만 그 때문에 질문에 곧이곧대로 답하며 읽고 보고 듣는 세상사를, 수동적으로 믿고 받아들이는 내 지난 행동 양식을 거꾸로 뒤집기로 했다.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나는 집에서 음악을 들었다. 페루치오 부조니가 작곡한 바이올린 소나타. 또 나는 집에서 책을 읽다가 오랫만에 밑줄을 그었다.
"질투라는 자연적 열정과, 정탐질이라는 사회적 기능 사이에는, 매우 깊은 유사성이 있다. 정탐꾼은 개처럼 다른 이를 위해 사냥을 하고, 질투꾼은 고양이처럼 자기를 위해 사냥을 한다." 웃는 남자, 빅토르 위고.
또한 나는 집에서 잡지를 보면서 사고 싶은 물품을 기록했다. 나는 오페라 공연을 예약하고, 남의 블로그를 구경하고, 인터넷을 통해 예쁜 무늬의 손수건을 주문했다. 손수건은 정말 유용하게 써먹을 일은 거의 없지만 어쩌다 아주 좋은 사용처가 발생할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하기 때문에 그 멜로드라마적 사랑과 섬세한 증오의 반대말, 불투명한 행복과 스쳐지나갈 불행에 대한 기대와 예감을 내 곁에 두기 위해 나는 손수건을 구입했다. 소녀의 환상, 별거 없다. 그리고 나는 대충 한 50년 전에 세상을 놀라게 했던 그림을 내 집에 들여놨다. 원본은 비싸니까 일회용 카메라로 원본을 찍은 사진을 구해서 책상 옆에 붙여놨다. 그외에 나는 말을 나눌 상대가 없고, 뭔가 말하고 싶은 대상과 내면의 울림이 없었다. 그래서 듣기만 했다. TV로 인터넷으로 사람들의 말과 음악을 들었다. 어떻게 작품 구상을 잘 해서 그것을 글로 옮기면 환상이 마치 손에 쥘 수 있는 과일이나 되는 것처럼 그 난해한 요술의 불가사의를 수중에 넣을 수도 있을 것만 같았는데 따지고 보면 삶의 신비는 바닥난 듯 했다. 벌써 또는 이미.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바로 이것이었다.
「좋은 생각이 났어!」
그러나 나는 그 말을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첫째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고, 둘째 나는 거짓을 말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천재적인 영감은 꿈적도 하지 않았다. 언제 예고도 없이 찾아올지도 모르지만 일단은 기별이 없었다. 전혀. 나는 멍청이가 된 듯 무지했고, 번쩍이는 소재를 떠올릴 수 있는 재주는 결핍됐으며, 그럭저럭 시간만 보내고 있었다. 만족이 아닌 불만족이고, 자만이 아닌 권태였다. 창작욕에 목마르다고 확언할 수도 없었다. 모든 게 막연했다. 그러나 딴청을 피우면서 NC와 새로 뜨는 클럽을 전전하는 일은 멀리했고, 주색은 사양했다. 이 정체된 전형을 깨트릴 새로움은 나를 반겨주지 않았다. 일하는 날과 노는 날의 구분도 불분명했다. 뭐를 배우고 싶다는 그런 생각이 문득 떠오르지도 않았다. 그게 퍼뜩 깜짝 놀란 것처럼 착 사람을 휘감아야 삶이 즐거운 법인데 말이다. 나는 깨달았다. 이렇게.
「나, 늙는건가?」
「이런 젠장,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어!」
그렇게 나는 생각했다. 고로 집에만 주로 머무르는 나쁜 습관, 뭐랄까 끝없는 사랑이 아닌 통속적인 사랑으로 인해서 결국 사랑에 지치고 말게 될 뭔가 모험가가 딱 질색할 만한 악습을 탈피하라는 제2의 자아 그분의 명령을 감지했다. 녀석은 내게 막 이렇게 헛소리를 지껄이고 있었다.
개처럼 벌어서 토끼처럼 쓰라, 몰라? 살면서 그런 말도 안 들어봤냐? 남자는, 어, 남자는 자고로 아침에 눈을 뜨면 집 밖으로 나가야 하는 거야. 그런 거라고. 어? 너가 뭐 계집애냐? 여자는 소극적이다, 여자는 집안일을 한다 같은 뭐 그런 식상한 정체성 얘기를 하는 게 아니라구. 그냥 이런 순간에는 확 그냥 억지로 구실을 만들어야 하는 거라구. 쉴 만큼 쉬었잖니? 설마 집에서 혼자 고추나 만지작거리면서 띵까띵까 백판 자빠져 놀겠다는 심보, 그건 아니지? 너! 그래, 너! 어딜 두리번 거려, 여기 너랑 나 밖에 누가 더 있어? 너 혹시, 축하해 라는 말 들어본 적 있어 없어? 어, 그런 말 들어본 적 있냐고 없냐고. 있긴 있겠지만 딱 떠오르는 기억 없지? OK! 그럼 나가! 알았어? 당장 나가! 어서 나가라고. 넌 겁장이가 아니란 말이야! 격투기 용어 가운데 더티 복싱이란 말이 있지. 사랑도 말이야 어떤 사랑은 그런 사랑이 있다고들 하더라고. 그처럼 인생의 어느 순간에는 밖에서 원대하게 활동해야 할 순간이 있어. 지금이 그 시점이라구. 하지만 아직 정해지지는 않았어. 뭐가? 네가 겪게 될 체험이 사행성일지 모험 장르일지 아니면 흥분되는 무용담일지 말이야. 그러나 밖으로 나가야 죽이 될지 밥이 될지 결판이 나겠지? 게임의 다음 단계로 올라서야만 다음 장르를 기대하는 법, 장르가 바뀌면 그 때는 문을 닫고 새로운 문을 열게 되는 거야. 그러려면 집 밖으로 나가야 하는 것이고. 그럼.
바로 이렇게 누군가 나를 세뇌시키며 잔뜩 혼을 내고 있었다. 나는 내게 바람을 불어넣고 내 심통을 가라앉히며, 정체된 비사교적 분위기와 축축 처지는 왠지 우울한 기분을 신나고 즐겁고 놀라운 경험으로 만들어줄 거라고 확신했다. 그렇게 예견했다. 책임까지질 것 같은 몽상가에게 내 삶의 재량권 일부를 통채로 맡겨보기로 했다. 약 올리냐? 그런 말은 쏙 들어가버렸다. 어, 음 착종? 왜냐하면 지금 상황이 딱 그런 낱말과 그 뜻이, 그 지복이, 그 활기가, 그 의지가 정확히 일치했기 때문이다. 정말 천년만년 집에만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짐을 많이 쌀 필요는 없고, 간단한 필기구와 책 한두 권을 챙겨서 길을 나섰다.
2
나는 집을 나선 후 앞집 마당에 있는 나무에서 망고가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나는 그것을 보고 내 재능이 땅 바닥으로 떨어지는 건가, 역설적으로 위대한 법칙과도 같은 환상적이고도 섬뜩한 그런 미친 이야기를 쓰게 될 것이라는 전조는 아닐까, 그런 날뛰는 날것 같은 그와 같이 파닥거리는 공상을 잘 진정시켰다. 다만 그곳에 언제부터 망고 나무가 심어져 있었지, 망고는 더운 지방에서 자라는 열매 아닌가, 저 열매가 진짜 망고 맞나 안 맞나, 그런 의심은 그냥 귀여워해주기로 했다.
그러다 나는 어딘가에 도착했다. 그곳은 결국 <어디에 같군요> 같은 타인의 사생활에 대한 부러움과 자기도 언제 데려가달라는 성화를 받을 만한 장소는 아니었다. 어딘가 좀 황량했다. 많이 우중충했다. 표정이 일그러졌다. 기껏 떠나온 데가, 찾던 무슨 대대적인 착상의 낙원이 여기가 맞더란 말이냐, 그와 같은 푸념을 절로 부르는 경치를 갖추고 있는 그곳은 그냥 황무지였다. 뭔 엘리어트 그런 말도 아까웠다. 감흥이 특별하지 않았는데 하도 많이 주워 읽어서...! 이상한 사람들 참 많다. 남이 하니까 그냥 무의식적으로 따라하는 인간들로 꽉 찼다, 이 세상은. 대기도 꾸물꾸물했다. 캠핑카도 달고 오지 않았다. 가까운 해변으로 가서 일광욕을 할 수도 없었다. 이상은 멀리 어딘가에 있을 것이고, 부들부들 떨리며 왠지 감기 기운이 느껴지는 듯 했다. 그래서 나는 한적한 곳 보다는 사람이 모여있는 장소를 찾게 되었다.
그리 멀지 않은 어느 시내에 도착했고, 나는 그곳에 들어갔다. 찾집 이름은 쥐구멍이었고, 그곳의 느낌은 썩 예술적이지는 않았다. 쥐구멍? 쥐구멍에도 볕 들 날이 있다, 라는 긍정적인 속담을 떠올리게 만들려는 의도로 작명을 했을까? 관심없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미 간판은 걸려있다. 개구멍이라는 가게를 찾을 때까지 한 달이건 두 달이건 막 아무데나 싸돌아다닐 껄 그랬나, 잠깐 헷갈렸지만 일단 그곳에서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를 구상하며 숨을 고르고 쉬었다 가기로 했다.
나는 그곳에서 홍차를 한 잔 마시면서 왠지 처량한 기분에 휩싸이게 되었다. 내가 여기 왜 온 거지, 그런 의문에 올바르거나 합당하거나 아니면 제멋데로 떠오르는 아무런 답변도 할 수 없었다. 나는 기분을 전환할까 해서 자화상 사진을 찍어서 내 소셜 네트워크에 올렸다. 하도 사람들이 그 일을 많이 하니까 그건 다 뭔가 이유가 있으리라는 예측 때문이었다. 합성 기능은 참을려다가 못 참았다. 머리에 뿔을 하나 달고, 어깨에 뽕도 넣고, 발바닥에서 화염이 뿜어져나오게 만들었다. 그러다 발바닥 화염은 뺐다. 커페에 있던 한 친구가 사진에 찍혔는데 나는 그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이라고 적었다. 그가 양성애자였나 어쨌나는 모르겠고, 난 그저 저번에 빌려준 급전을 받고자 녀석을 묵사발로 만들든 그냥 곱게 조용히 말로 옷을 모두 벗겨버리든 어쩌든 결판을 짓기 위해 여기에 찾아왔다는 부연 설명을 했다. 댓글은 기대하지 않았다. 꿋꿋이 우리는 친한 친구 사이라고 적어놨다.
그곳에 있는 몇몇 숙녀들은 얌전한 척 하는 게 아니라 진짜로 얌전했다. 거기 있는 아가씨들은 언뜻 봐서 조신한 게 아니라 격조 높은 신부 수업을 사전에 받은 것만 같았다. 아니, 그게 아니라 가정교육일까? 어쨌든! 말하는 모습도 무척 조심스러웠다. 어미를 길게 끌거나, 질문이 나오면 그걸 듣자 마자 즉답성을 놓치면 행복도 쾌락마저 놓친다는 것처럼 촐싹맞게 바로바로 대답하는 것이 아니라 약간 박자를 타고 운율을 실어서 살짝 여운이 가셔지면 딱 그때 대답을 하곤 했다. 눈꺼풀마저 뭐 그렇게 무거운지 들어올리고 내리는데 시간이 한참 걸렸다. 기다리다 날 샐 것 같았다.
누가 말을 했다. 비가 오려나봐요! 비가 오면 오는 거고 안 오면 안 오는 거지, 뭐 오려나봐요? 혹시 내숭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면 어떤가, 남의 일일 뿐인데. 아무튼 그녀들은 어쩌다 어른이 될 듯 말 듯 다시 될 뻔 하다가 그 문턱까지 다다른 것 같았다. 내가 꼭 그녀들 얘기를 엿들은 것 같다마는 나는 전혀 그럴 의도가 없었다. 그러나 잠시 심심하기도 하니 우연히 들린 몇마디를 옮겨보자면 이랬다.
나는 오늘부터 예뻐질꺼야. 마음 먹으면 난 이뻐질 수 있어. 가능해. 못할 거도 없지 뭐. 과자와 청량음료를 끊겠어. 너 오늘 살짝 고상해보이는데, 어쩜 옷도 근사해, 와 어디 그뿐이야 그 우아한 머리핀은 대체 어디서 구한거니, 너의 고고한 취향과 네 세련된 안목을 내게도 좀 전수해주지 않을래? 야, 어디 다시 가고 싶지 않니, 난 엉덩이가 막 근질근질해. 너 옛날에 카리스마 있는 남자 만나고 싶다고 했잖아, 만나보니 어때? (알면서 일부러?)
그러다 끝내 그녀들은 바깥으로 와르륵 몰려나갔다. 낮술을 마시러! 나는, 저도 같이 가면 안 될까요? 라는 말이 목젓까지 올라와서 탁 육성으로 나올 뻔한 사태를 무척 어렵게 진정시켰다. 잘 참았다. 엄한 말이 순간 튀어나올 뻔 했는데.
그리고 나는 눈길을 돌려 벽에 붙여진 어느 광고를 읽었다. 공책에 성의없이 만년필로 대충 끄적거린 다음 쫘악 찢어서 붙여놓은 듯 했다.
월 얼마. 모든 시설 완비. 집 주인 까탈스럽지 않음. 게다가 미모와 지성을 겸비했음. 심지어 자타공인. 더군다나 젊음. 믿어도 됨. 꽃무늬 원피스를 즐겨입음. 예술가 특히 작가나 학자나 언론인이 잠시 머무르다 갔으면 좋겠음. 잡아먹지 않겠음. 귀찮게 하지도 않음. 나 돈 많음. 냉장고에 술도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음. 최고급품으로만. 잘 보이면 내 친구를 소개시켜줄 의향도 있음. 그러나 어디까지나 임대인과 임차인의 품위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 함. 정들면 곤란함. 하얀 침대는 어제 들여놨음. 다른 의도는 없음. 인생에 변화가 필요한 사색가에게 최적의 공간이 될 것이라고 사료됨. 맹세도 가능함. 자부할 수 있음. 기타 등등.
이와 같은 내용의 글이었다. 물론 몇몇 아주 약간은 내 희망사항 때문에 내가 헛것을 읽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은 희박했다.
나는 그 글을 읽고 나서 딱 하고, 골 세러모니를 선보였다. 뭔가 느낌이 왔다. 슬프지 않았다. 기다렸던 건수였다. 마치 나를 위해 준비된 이색적인 만남이자 왠지 운명적인 추억은 물론 최적화된 숙명일 것으로 예상되며 덤으로 현생의 인간에게, 전생의 개에게, 내세의 누군가에게 금지됐을지도 모르는 그런 어떤 기발한 작품을 거기서 쓰게될지도 모른다는 엉거주춤, 몽실몽실 피어오르는 기쁜 예감이 부풀어오르는 걸 차마 감출 수는 없었다. 사무실 주인은 약간 무성의하지만 부족하지 않게 사랑스러울 것으로 짐작되었다. 나는 처음에 고분고분하게 시작해서 속속들이 레이디의 속마음을 간파하고, 쉬지 않고 그녀를 극찬해서 임대인을 길들이다가, 적당히 친숙해진 다음 마음을 놓지 않고 고삐를 바짝 당겨서 더더욱 친밀해진 다음에, 완벽한 최면을 걸어서 손가락 딱만 하면 언제든지 내 말대로 따르는 그런 어떤 인생의 열렬한 친구랄까, 나는 건방진 남자를 알아보는 안목을 키워주는 형으로써의 내 역할을, 그녀는 내가 한 말이라면 뭐든지 정말 뭐든지 하늘이 노랗다고 하면 하늘은 노란 거고─책은 양식이고 신비는 일상이며 환상은 모두 친구라는 것으로도 모자라─아무 남자에게나 마음을 주지 마라 하면 정말 그렇게 눈길조차 주는데 인색한 아리따운 여인이 되며─빗물은 천사의 눈물이라고 하면 내가 그렇게 말하면 그런 것이고 즉 내가 하는 말이면 그건 뭐든지 다 믿고 다 감명을 받고 다 따르고 다 좋아하며 애정을 품는 것으로도 모자라 적절히 자동 모드를 작동시킬 수도 있을 정도의 나만 아는 나만 바라보는 나만 좋아하는 나를 흠모하는 한 숙녀이자 한 고귀한 아가씨로써의 임무를 완수하게 만들 수 있을 듯한 그런 어느 뜻모를 밑도 끝도 없는 자신감이 부쩍 솟구쳐오르는 걸 느꼈다.
3
이곳은 사무실이다. 임대료도 싸다. 완전 거저다. 새로운 영감이 막 새록새록 떠오르지는 않지만 조금만 기다리면 금새 날 찾아올 것만 같다. 소파부터 흔들의자와 세세한 문고리까지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다. 마당에는 강아지, 벽면 1에는 세계 문학 전집이, 벽면 2에는 출판사별 시집 세트가, 벽면 3에는 진품인 듯한 액자가, 전망도 좋고 동네 분위기까지 좋았다. 인테리어, 기가 막혔다. 감성은 자극되고, 추억은 회상되며, 조명도 끝내줬다. 건물은 2층이었다. 1층은 내가 쓰고 2층은 집주인이 그리고 옥상에는 천사가? 사무실 창가로 각종 새들이 알아서 찾아와 잠시 놀고 간다. 갈매기 조나단, 까마귀, 딱따구리, 파랑새와 백문조, 호금조, 카나리아, 골든체리앵무새, 잉꼬까지. 집에서 이곳으로 출근하면 기분 좋은 아침이고, 오후에 퇴근 시간은 자유다.
심심하면 길고양이가 놀아준다. 모든 일이 뜻대로 알아서 스스로 잘 돌아가는 것만 같다. 현실은 꿈이다. 햇살은 부드럽다. 남부러울 것 없는 일상이다. 불면증은 떠나갔고, 허언증은 치료됐다. 집 근처나 사무실 주위에 떠돌이 개가 가끔 돌아다니지만 오히려 반가울 뿐이다. 거짓말을 구사한지는 오래되었다. 뻥은 어떻게 퍼트리는지 잊어먹었다. 분별력이 생겼고, 변별력을 갖췄다. 다 출퇴근할 사무실이 생겼기 때문이다. 남은 일은 내 작품으로 우리가 사는 세상은 낭만적 사회고, 인간의 생활은 언제나 풍요롭고, 사는 건 다른 게 아니라 꿈이 정말 실현되고 간혹 구토도 하는 것이란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뭐, 하면 된다. 걱정할 거 없다. 사무실 문을 열어놨드니 구름이 들어왔다. 다음 손님은 별님이다. 조만간 곡을 하나 써서 유행가 순위 상위권에 올릴 수 있을 듯 하다. 음악, 별거 없다. 내 인생의 어두웠던 과거는 까마득하다. 내가 그래프의 어느 선상에 위치해 있는가 자꾸 헷갈리지만 방향은 알고 있다. 지난 일 때문이다. 그것은 배움이었다. 현재의 진보가 옛날에는 역적이었듯이. 노예제도, 사람 사는 곳에서는 거의 있었다. 그냥 있는 것도 아니고 그것을 비롯한 많은 어떤 일들이 거의 모두 정당하고, 옭고, 바르고, 당연한 미풍양속이며 질서였다. 그 옛날은 극소수 최상위층을 위한 세상이었으니까. 그러면 미래에는 지금의 보수에 대해서 <이론적으로> 불미스러운 관점에서 봐야 한다. 수학적으로 그게 맞다. 논리적으로 그게 옳은 얘기다. 그러나 그래프의 기울기가 어떻고 우리가 어디쯤 위치하는가 그 기준과 변화와 얼마만큼 발전할 것인가에 대한 뚜렷한 측정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어떻게 돌아가는가에 대해서 앞으로 어느 정도 나아질 것이다 라는 예상은 어느 정도 가능하다. 확연하고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따라서 미래는 낙관할 수 있고, 그러므로 노력해야 한다. 다만 개인의 인생처럼 인류의 연대기가 어느 쪽으로 선회할지 그건 미지수다. 그렇다고 뜬구름 잡는 예언으로 치우치지는 말고 어디까지나 학문과 정치와 예술과 문화와 어디 놀러가고 어쩌고 그와 같은 실정을 기반으로 교양미를 쌓는다면 꼭 글을 잘 쓰거나 말을 잘 하지 못해도, 그렇더라도 인생이 보이고 포지셔닝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어라~ 어쭈! 어디서 또 아는 체하기는. 이 양반이 또 어디 한대 쥐어터지고 싶어서 근질근질하시나? 농담이고, 예민한 단어 또 등장하셨다. 상감마마 납시오! 그쪽에 대해서 워낙 말이 많고 항상 불협화음이 생기며 언제든 첨예한 대립이 생길 수 밖에 없는 이유, 있을 것이다.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내 귀를 코끼리 귀라고 상상해봅시다. 펄럭펄럭! 꺼이꺼이! 동물원에 가서 보면 모두 각자 따로 생활하지 않느냐? 곰이 사람 흉내를 내며 걷는 모습을 보면 왜 웃게 되는가? 실제 우습고 재밌지 않나! 닭을 위한 세상을 만들자고? 꼬끼요~꼬꼬댁? 날개 달리면 뭐 다 새일까? 난 묵비권을 행사하겠지만 대신에 펠리컨이나 신천옹이나 독수리에게 여쭤보시라. 닭을 과연 새로써 인정할 것인가, 그렇게 봐도 괜찮은가를. 참새가 사용하는 언어를 타조가 알아듣는가를. 거위가 쓰는 어휘를 표준어로 인정하고, 닭이 푸는 설을 방언으로 봐도 되는가를. 로미오와 줄리엣이 이종의 결합인가─행복의 정복인가─애정의 실패인가─사랑의 완성인가─미완의 과제인가를. 정말 소설은 농담이고 시는 거짓말인가를. 어르신이 과-점퍼를 입는 것이 이상한가, 초딩이 크레파스와 동요와 어린이 드라마와 어린이 신문을 시시하다며 다 유치원생들 소꿉놀이 장난 같다고 유치하다며 쳐다보지도 않는 것이 과연 어색한가를. 하지만 그 논리라면 닭이 오리를 낳거나 그 반대일 수도 있다. 아마도 드물겠으나 어쩌면 빈번할지도. 늑대로 컸는데 커서 보니 여우요 B형으로 알고 살았는데 나중 세월이 흘러 어쩌다 혈액검사를 하게 됐어 그런데 결과는 어머나 글쎄 A형이래, 어쩜 이런 일이! 심심치 않게 발생하는 일이다. 출생의 비밀도, 천사의 승천도, 괴물의 현존도 모두 가능한 곳이 바로 이 세상이다. 매우 드물지만 기적이란 단어가 있으면 그것은 실재 존재한다. 바로 이승에서. 단어가 이미 있기 때문에 (희박한 확률로) 사실도 있다. 현상이 먼저고 단어는 나중 만들어졌을지도 모른다. 전설! 현세에 존재하는 일을, 허구에 등장하는 사건을 미래에는 그것을 전설로써 인식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단, 저세상은 점쟁이에게. 그리스-로마 신화? 실화였다. 사실담. 아니라면 내 손에 장을 지지겠다. 나는 태어나서 (약) 반 세기가 지난 이날 이때까지 단 한 번도 거짓말을 한 적이 없기 때문에 안심하고 믿으셔도 된다. 아! 까딱 잘못했으면 오직 진실만을 추구하며 살아왔던 거짓 없는 인생에 지울 수 없는 오점을 남길 뻔한 적도 있긴 있었다. 하지만 용케 고비를 슬기롭게 넘겼다. 세속적 인간사에 관한 뻥이라는 단어의 존재조차 모른 채로 살아왔다. 사교는 순진했고, 친교는 순수했으며, 매사 순결만을 간직하고자 나름 애써왔다. 용썼다. 괜한 걸 지킬려고 발버둥쳤다. 지금 돌이켜보면 것 참 뭐랄까, 그래 맹추였다. 맹추! 멍청이! 얼간이! 적당히 거짓으로 행동하고 에둘러 말하고 뻥으로 남을 띄워주면서 살면 그만인데, 이 바보! 그러면 사랑은 외교적으로? 공식적인 연애는 못해봤다. 그것 역시 단 한 번도. 거짓말을 못하니까 눈부신 찬미와 감미로운 아첨의 언사는 끼어들 틈이 없었고, 당연히 숙녀들은 싫어했다. 동화에 나오던가, 잠자코 가만 있는 호박마차는 끌어들이지 말자. 그 결과 나는 한 번도 거짓말을 하지 않고서 사는 게 가능했다. 오로지 참말만을 고집해왔기에 그것의 무결함은 어긋나지 않았다. 무수한 유혹을 뿌리쳤다. 주색도 싫다 부귀영화도 싫다, 진의만을 좋아했다. 진실이 아니면 고개를 돌렸다. 흥! 그런 헛소리에 누가 넘어갈 줄 알아, 그러면서. 고생 좀 했고 우여곡절 많았다. 당연히 여자 보기를 돌맹이 보듯 했다. 물론 진심이다. 게다가 그것은 엄중히 현재진행형. 그 답보 상태는 언젠가 변할 테지만, 우선은. 사람들은 왜 서로를 속이고 어째서 속으며 그것은 끊임없이 반복되는지 그 의구심은 암만해도 잠재울 수 없었다. 대체 왜 사람들은 구라를 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게 뭐 재밌다고! 나는 위선이란 말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3일 밤을 샜다. 오오!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뜬눈으로 삼일을 꼬박 보냈다. 병원에도 갔다 왔다. 이런 부류는 대략 둘 중 하나다. 살면서 단 한 번도 거짓말을 안 했거나, 입만 열면 뻥이거나! 나는 전자다. 기필코! 맹세도 했고, 공인도 받았다. 현장검증, 마다할 이유 없다. 도둑이 제 발 저릴 일은 애초에 만들지도 않았다. 용기도 없고 담도 작아서 그런 일을 벌리지도 못함. 일명 새가슴.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는다고 거짓말을 아예 못해봤는데 한 번도 한 적이 없는데, 그런데 어떻게? 그럼, 그렇지! 앞뒤가 맞는 말이다. 이제야 속시원히 모두 진짜고, 모두 참말이며, 모두 사실이라는 것이 증명됐다. 와, 기쁘다. 노래를 부르고 싶어진다. 춤도 출까, 막춤? 확실한 게 좋다. 애매한 건 개운하지 않다. 때와 여건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우선은 그렇다. 여하튼 믿음직스러운 정보통이기 때문에 앞서 꺼낸 비밀, 즉 어느 신화가 모두 실제 있었던 일이라는 것은 의심할 수도 그렇다고 그 명예가 실추될 수도 없는 실화임이 결단코 확실하다. 추호도 틀림이 없는 일이다. 걱정도 팔자다. 뭘 꾸미고 가공하고 만들고 속이고, 다 귀찮은 일이다. 두근두근 조마조마, 기질상 그런 일을 감당하기 꺼려하시는 분을 무대에 올려놓으면 다음은 예측하기 힘들게 된다. 지금 이 시점에 신망을 잃으면 다 잃는 것이다. 일단 믿자. 나도 남의 말 엄청 믿었다. 이상한 데 따라가기도 했고, 이용당한 기억 음 말 마시라. 숱하고 끝도 없다. 그랬는데 이제 와서 뒤늦게 허풍의 허자도 모르면서 어느 안전이라고 구라를? 당치 않다. 지나가던 개가 웃는다. 감히 대하드라마 어설프게 흉내낼려다 큰코다친다. 그 무엇은 실화였고, 그대의 신뢰는 든든하며, 융통성도 엄살도 과장마저 모르는 바보는 섣불리 어느 업계 무슨 판에 끼기조차 힘든 세상이다. 속임수, 안 통한다. 지금은 정면돌파다. 그대는 아는 게 많다. 모르시는 일이 없다. 만물박사다. 나도 슥 기어올라서 슬쩍 묻어갈려했는데, 솔직히 고백할 수 밖에 없다.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아이고, 형님! 나는 거기 비하면 새 발의 피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는 말은 맞다. 정녕 옳다. 어른 흉내낸다며 괜히 폼만 잡고 인문-교양서적은 다 뗀 것처럼 행세했는데, 나는 가서 엄마 젖이나 더 먹고 와야 한다. 나는 우물 안 개구리였다. 독학도 하다 말았다. 선수들의 세계는 기본적으로 고수의 세계다. 어른들은 그래서 우유 대신에 술을 마시나 보다. 한 사람 건너서 천재다. 아찔한 지성과 교양학의 거성도 못 알아보고, 한두 명도 아니고... 이런 쯧쯧쯧! 그러하나, 그렇기는 하지만 지식의 양은 보잘 것 없지만 어떤 무엇에 대한 의향은 그대와 내가 비슷하다. 당신도 나랑 똑같다. 당신처럼 나도, 종교1의 1에 올인하기에는 난 너무 뭐랄까 위험 회피에 대해, 증권업에 관한 해박한(?) 지식을 습득한 게 너무 많다. 그게 정말 아까울 뿐이다. 과거 한때 전설적인 도박 인생은 또 어떻고. 그래! 현재 나는 예스맨이고, 지금은 동물농장 관찰자다. 누가 뭐라 해도. 뭐 그건 그렇고 퍽 재수없는 나, 득세할려는 나, 거짓말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는 나는 뒤로 빼고 하던 토의 계속하자. 정치, 수학적인 분야가 아니다. 물론 과학도 아니다. 문학과도 다르다. 그러나 비밀은 없다. 있다면 이거다. 정치관에 관한 바로 저와 같은 솔직한 의혹과 모순. 정말 왜 그런 것인가, 의아할 수 밖에 없는. 거기서 어휘를 몇몇 바꾸면 세계관이고 번지수만 교체하면 인생관이란 뻔한 말은 하지 말기로 합시다. 논점을 잃으면 안 되니까. 정치! 그리고 민주주의! 닭을 과연 새로 인정할 것인가, 에 대하여 논하던 중 화제가 딴길로 샜다. 많이. 왜냐하면 흥분했기 때문이다. 흥분 안 하게 생겼나, 라는 말은 하지 않겠다.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 닭은 새냐 아니냐? 딱 간결히 화합하고 화해시키기가 쉬운 문제는 결코 아니다. 콩 심은데 콩나고 팥 심은데 팥 나지만 그게 다가 아니란 말이다. 정치 뿐만이 아니라 세상사가 원래 그렇다. 마치 인생이 제멋데로인 것처럼. 심지어 독자는 두 마리 토끼를, 신비주의자는 이상향을, 자본주의는 만인의 행복과 만물의 번영을, 이기주의자는 양보를, 환상가는 오직 쾌락만을 그리고 정세는 바깥을 바라보기도 한다. 즉 얘기가 복잡해진다. 그러나 사람들의 의견은 조금씩 다르다. 곧, 한쪽에서는 이로써 진보와 보수를 구분하기도 한다. 차라리 그렇게 간단했으면 좋겠다! 부익부 빈익빈? 불우한 이웃을 도웁시다 북극곰을 살립시다, 당연히 좋지 왜 나쁘겠나! 좀 더 극명한 사례인 거리의 거렁뱅이에게 그 불편한 풍경에 과연 잠깐의 마음을 신경을 푼돈을 적선할 것인가 말것인가! 적극적으로 나서느냐, 언짢으니까 거리를 두느냐! 모른 사람은 없다. 작은 성의라도 표하는 게 내 마음의 안정 때문인지 진정 그분 인생의 재기를 바래서인지. 유식과 무식의 차이는 없다. 전혀. 전자냐 후자냐, 가 아니라 거의 만장일치라는 것. '점진적으로 차근차근 개선해야 한다'를 옹호하며 합심해야 한다는 것을. 도구를 알면 곤란하고 문맹은 당연한 것이니 미천한 하층민이 문자를 깨우치면 곤란하다─말과 글이 만나서는 안 된다 그것이 교배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상위 평준화? 저런! 악의 무리는 척결해야만 한다─범필하기 짝이 없는 일이로다─예스런 시대에는 앞서 걷는 것이 피어에 대한 존경의 의미였으나 그것이 지금과 같은 난세에는 이렇게 바뀌었다, 자발없는 남자들이 혼자 제멋데로 앞장서며 너네들은 잔말 말고 뒤따라오기나 하라는 우스꽝스런 모습으로─그리핀 켄타우루스 피닉스 뭐 이런 거 골치아픈 일이다 라는 것은 TV 드라마에 나오는 구시대의 일이며, 현재의 표준과 질서는 (더 나은) 미래 시점의 기준으로 봤을 때 절대 완벽할 수 없다는 것, 어느 지역에서는 한때 중하류 30에 귀족이 자그만치 70퍼센트에 이르렀다는 것까지, 모르는 사람 그분은 대체 누구인가! 알 수 없다. 왜냐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째깍째깍 시침을 되돌려서 교복 입던 시절을 떠올려보고 싶다. 나도 모르게 뜬금없이 그러기를 원한다. 누군가 버튼을 눌렀나 보다. 지금처럼 양말을 짝짝으로 신지 않던 그때는 뭔가 제도가 싫었다. 왜 이래야 하는가 대체 왜 이 모양인가, 라고. 그러나 교복을 벗고 나서, '교복을 벗고 처음으로 만났던 너...' 같은 달콤한 유행가를 듣고 나서부터는 그분들의 불만은 자연스럽게 경외시한 채 나는 행복의 파랑새만을 낭만의 모험만을 오직 인생의 영화와 환상의 신비만을 탐색하고 틈틈히 쾌락만을 탐닉하며 살게 되던란 말이다. 그게 뭐 잘못된 것이겠냐마는, 마치 내가 언제 교복을 입던 시절이 있긴 있었냐는 듯이. 이건 뭔가 아니다. <이건 좀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삶은 계속된다. 생활은 변하지 않는다. 안 그런가? 실정이 그렇다. 세상도 그렇다. 뭐가 정상이고 뭐가 비정상인지 도무지 모르겠단 말이다. 교복을 벗는 시점부터 지금까지 내 삶을 돌아보자면 난 그 제도가 오히려 너무 자주 바뀌는 것을 보면서 살아왔다. 교육은 백년지계라며, 아이고 아이고! 꼭 초딩 생일이랑 비슷함, 귀엽고 착하고 예쁘고 잘해주고 싶어서 생일을 기념하고 싶은데 초딩은 아니라고 함, 왜 내 생일인데 날 가만놔두지 않느냐고 날 좀 내버려두라고. 바꾸고 또 바뀌고 계속 바뀌고. 어디 그 친구들만 뒷목잡겠나? 어? 그것도 개개인의 행복과 미래와 용돈과 식구 병원비와 데이트 비용과 생계가 걸린 엄정한 거대 산업인데! 뭐 그렇다. 나는 신발공장에서 일하며 기후를 연구하거나 식물학을 공부하고 더 나아가 예술을 하니까 이런 제재를 다루지 않아도 된다? 그대들도 똑같다. 백조 자격, 없다. 뭘로든 인정, 못한다. 목에 기부스하지 않아도 된다. 가만 있으면 중간은 간다. 극좌 신문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많이 아프다. 고지식하게 자기 잇속 챙기지도 않고 선행만 베풀며 자기는 그게 좋다는데 일은 그렇다 쳐도 노는 시간도 그것에 예속되는 것, 답답한 일이다. 왜 만물의 영장이 이룩한 환경이 그것을 포용하지 못하는지. 극우정당의 당비를 단골로 체납하거나 현시대의 찰스 2세와 제임스 2세든 그냥 그딴 소음 모르겠다며 산속에서 외딴 섬에서 산다고 하여 나쁜 사람이란 말이 아니다. 사람은 대개 비슷하다. 그걸로 보자면 당신도 유죄 나도 유죄다. 법복을 입든 교리를 따르든 꽃을 팔든 블로그를 쓰든 무능하건 무심하건 끔찍히 사랑을 실행하며 살건 어쩌든. 적당히 백조-하자, 라고 풍자하면 끝이 아니다. 모른다고 다가 아니다. 그렇다. 정말, 동물농장론으로써 딱 그것만으로써 진보와 보수가 1+1=2라는 산수처럼 깔끔하게 구분되었으면, 진짜 차라리 그렇게 간단했으면 좋겠다! ......(엄숙한 침묵)...... 그런데 잠깐. 이걸로만 본다면 난 약간 보수적이라는 말이잖아! 뭐시여? 뭐냐고! 뭐이? 그럼 내가 늙었다고? 이런, 젠~장! 내가 이제는 앞으로 오기로라도 늦잠을 자야겠다. 원래 그랬긴 하지만. 다시 돌아와서, 현시대에는 왕이 현존할 경우 입법부에 관여하지 않지 않소, 그런가 안 그런가? 선거권으로 평등을 실현하고 있지 않은가? 그 1표와 길바닥 노숙자의 1표와 정말 뭐가 다르더란 말이요? 안 그렇소? 다르긴 다르죠. (어느 쪽에 표를 많이는 안 주니까.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니까) 현대적 신분의 척도는 누가 뭐라 해도 돈이 아니면 대체 뭐란 말이요? 아요, 모르요? 나도 그걸 애타게 알소 싶소이다. 날아다니는 포유류인 박쥐나 누군가 그 배 속에 들어갔다 나왔다는 바다에 사는 포유류인 고래는 어떤가 몰라도 인간이라는 자칭 고등동물이라는 포유류는 내가 가난함에 정박해 있든 운이 좋아 때돈을 벌든 어쩌든 어떻게든, 어떻게든 세금을 적게 내려 하고 내 행복을 극대화시키려고 노력하지 않나요? 그런데 기업은 뭔 죄인가? 왜 개인은 하고 싶은 일을 다 하면서, 알게 모르게 자잘할지언정 쉬쉬하는 일마저 마다하지 않으면서 심지어 때에 따라 또 사람에 따라 막살기까지 하면서 왜 회사는─왜 국가는─왜 세계는─왜 내 사랑은─왜 내 인생은 알아서 자동적으로 사회복지 단체처럼 행동하고 그저 아름답기만을 바라는 것이요? 개별적으로 응원하는 정치가나 경제연구소장이 있을 것 아니오, 같은 값으로 묶어서 말하기에는 너무 아깝고 억울한, 그렇게 열심히 그리고 조용히 사시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이건 너무 자기중심적인 모순된 생각이 아니냔 말이오. 음, 그렇다! 설령 속고 속이고 초심은 잊혀지고 변화의 바람에 휘말려서만 살았던 내 인생이라 할지라도 현역은 만회할 기회란 게 있음. 사는 법은 어느 만큼 희끗희끗 살고 나서 깨닫기도 하지만. 참회. 기도. 뭐, 은퇴번복? 거기까지만. 뭐라 뭐라 말은 많고 의견은 다채로워 보이지만 결국 순서도는 대략 하나다. 대중이라는 다수를 설득하는 선전을 내세우고, 만인의 이익을 대변하여 예쁘게 포장하며, 나중에 이미 잡은 물고기에게는 밥을 주지 않는 것. 시간이 부족하다고, 선택은 불가피하다고, 이번에는 여기까지만이라고 그렇듯이. 그래도 대차대조표는 남는 것. 비록 삼류일지라도 예술가는 작품 번호가 남는다. 그런데 되려 그것이 더 가치있게 존중받아야 할 분야는 자칫 뭔가가 소홀할 수 있다는 것. 목표와 동기와 의욕과 다수의 기대는 상층에, 결과와 방법과 타협의 문제는 중간에, 그리고 간혹 커피포트라는 선례도 남기는 일. 후발주자는 예상도가 아닌 엄중한 실사례인 커피포트랄지 될 것처럼 보이지만 이론적으로만 가능하다고 결론나서 포기하고 패기했던 (광대한) 타지의 과제를 참고하거나 우회하지 않고 굳이 정면돌파하고자 하는, 똑같이 답습하게 되는 실행의 오류를 피하기 어려운 것... 음... 눈을 지긋이 감고 고개를 둔각으로... 왜 그럴까? 어째서, 대체 왜? 너무 많은 걸 바래서? 정치는 정치학이라는 학문이 엄연히 존재하지만 실정은 거기서 한발을 뺀 모습이고, 정치인은 싫든 좋든 작가나 학자보다 오락산업에 오히려 한층 더 가깝도록 그 성격이 규정된 시장, 오직 그것만이 대체로 그분들이 운신 가능한 폭이다. 혼자 올바르고, 혼자 똑똑하고, 혼자 부지런하며 성실하고, 혼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며 나의 말과 글과 행동이 뛰어나다면 그것은 예술에서는 성공한다. 예술에서는. (저속한...까지는 아니지만 흔한 말로 먹힌다고 하죠. 머머하면 예술에서는 먹힌다고. 운이라는 분은 잠시만 벤치로 내려보내자) 또 대성할 것이다. 기술자로서, 관료로서, 보험왕으로서. 곧 그 말은 어느 분야에서든 승승장구할 가망성이 크다는 뜻이 된다. 그러나 정치에서는 아니다. 그 때문이다. 뭔가 더디게 나아가거나 어떤 불합리한 공회전이 일어나는 것은. 다른 게 아니라 그게 정치다. 정치는 혼자 하는 게 아니다. 혼자 해도 된다면 저명한 정치학과 교수님을 수장으로 모시면 그만이지 뭔 말이 더 필요하겠나. 그러나 정치란 어렵지만은 않다. 일단은 정치 앞에 다른 단어를 붙이면 된다. 떨지 말고 흥분하지도 말고, 무엇을 그것과 다정하게 짝지어줄까? 사내 - 정치? 오케스트라 단원 - 정치, 노동자 - 정치, 교육자 - 정치, 공무원 - 정치, 그렇게. 시작은 쉬웠는데, 그러나 슬슬 머리가 아파온다. 물고기가 먹이와 조우하기 위해 그 운명적인 만남을 위하여 어딘가로 이동하는 것이지 버뮤다를 향하여, 모비딕을 찾아서, 가난한 낚시꾼으로부터 부름을 받고 가는 것이란 말이오? 아니요 아니요 아니란 말이오. 식물을 키우고 곤충을 연구해도 사랑도 하고 밥은 먹고 살아야 하는 법. 세력의 문제도 있는 것. 늦어도 둔중해도 일상생활에서도 정치는 항상 존재하는 것. 그게 바로 언제 어디서나 반복되고 인간과 함께 했던─하는─할 정치의 묘미다. 그렇다. 틀이 문제다. 체계를 보완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판도가 다듬어져야 개선되는 것이지 사람을 보고 이러쿵저러쿵, 한계가 있다. 괜히 뚜껑만 열릴 수도 있다. 길게 보기 힘들어진다. 즐기기 어려워진다. 그렇더라도 성이 어쩌고 기본권이 어떠하며, 단 몇마디로 시간을 과거로 그것도 많이 과거로 되돌리기는 어렵지 않다. 손쉬운 일이다. 의식의 발전은 더딘 반면에. 사람을 관찰하며 내 나름대로 평가하는 시선과 함께 저분이 타인에게 어떻게 보일려고 하시는구나 그 속마음을 절묘히 간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작 체계라는 거시적인 관점의 값어치도 절대 무시할 수 없다. 사람 하나 잘나서 회사를 어렵게 일으켜세울 수도 있지만 일단 공룡은 체급이 있다. 그렇소이다. 사람은 원래 이기적이다. 그게 정상적인 인간이다. 아니라면 비정상이다. 그건 돌아이다. 너 하나 나 하나, 나 이익 너 이익, 이번엔 너 다음엔 나, 그게 맞으니까 둘이 친구가 되어 우정인지 연적인지 모를 행복한 시절을 보내는 것이다. 사람은 태생적으로 모든 일을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한다. 그렇게 행동한다. 공감하는 능력이 있고, 이타적이기도 하지만, 그건 둘째다. 후천적으로 머리가 커져서 모든 일을 (내게 최적화되도록) 합리화한다. 그것의 기준은 뭐냐? 진짜 뭘까? 나다! 그건 나다. 내가 기준이다. 당신 인생의 기준은 당신이고, 책임도 그대 몫이다. 모든 절대 좌표 0은 나다. 바로 나! 내게 유리하냐 불리하냐, 내 아이에게 이익이 되냐 불이익이 되냐, 난 뭘 얻게 되는가, 내 시간은 침해받지 않을까 야근할까, 나아가 내 후세는 어떠할까 같은. 본성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내가 최고야> 그것이다. 본능은 의지와 다를 수 있다. 유명인과 일반인이 쓴 자서전의 차이점은 명백히 존재한다. 뭔지는 몰라도 놀랍도록 공통적인 뭔가가 있긴 있다고 한다. 일반인의 자서전에 대해 부적정인 의미 전달이 된 듯 해서 썩 거북하지만 그건 아니고. 아무튼 그게 인간이다. 그게 바로 사람의 본모습이다. 그런데, 그런데 정치라는 개념을 믿음과 결부한다? 투명한 삶의 기록과 그 여정의 굴곡과 방향이 아닌 환한 선전과 반짝이는 단기간의 평판과 말에 기반한 의도로만 판단하고 맡긴다? 무엇을? 아이쿠, 저런! ......음...... 대충 마무리 짓자면 네? 그렇지! 그것이지요. 정말 뭔가 억울하다면 아침에 늦잠을 잡시다! 과-점퍼 입는 게 뭔 죄라도 된단 말이요? 언론사 정치부 기자는 뭐 골목길에 숨어서 술 한잔도 마시지 말란 말이냔 말이오? 그런 말이 아니지 않소! 아, 그만하자. 애썼다. 목마르다. 배도 고프다. 이게 다, 이게 다 출퇴근할 사무실이 생겼기 때문이다.
얘기가 곁으로 샜지만 어쨌든 삶이 이렇듯 잘 풀리는 시기가 있었나 싶다. 때늦은 전성기를 맞은 듯 하다. 연락 없던 지인으로부터 안부의 궁금함이 아닌 혼처의 안내를 받은 것만 같다. 지금은 겨울날, 그러나 왠지 꼭 지금이 꽃 피는 봄날 같다. 다 출퇴근할 사무실이 생겼기 때문이다.
1주일짜리 좌우명도 새로 만들었다. 그건 이랬다. 사람들에게 선물꾸러미를 안겨 주자! 별로 멋진 말이 아니라면 바꾸면 그만이다. 하루종일 먹고 놀고 자고, 만사태평이다. 천우신조로 막판이 되어 코너에 몰렸을 때 대작 하나 나올 것이다. 가난해도 괜찮다. 빈번하게 실패하면 뭐 어떤가. 서글프지 않다. 출판사에서 내 습작을 소설로 인정해주지 않으면 사비로 그걸 장시라고 주장하여 살짝 바꿔서 어딘가에 출품하면 된다. 타인의 기준에 종속될 필요없다. 인생은 독창적이고 삶은 낙천적이다. 다 사무실이 생겼기 때문이다.
살 찌고 싶으면 살이 찌고, 살 빼고 싶으면 살이 빠진다. 적당히 사는 게 재수없어졌다. 먹고 싶은 음식이 많다. 먹으면 된다. 하고 싶은 일도 많다. 하면 된다. 뭐가 문제란 말인가. 가보고 싶은 미지의 세계는 미래다. 기쁘거나 슬프거나 시간은 간다. 나도 모르게 어른이 되어버렸다.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방법은 있다. 인정하지 말 것! 비가 와도 좋고, 아무나 칭찬하고, 누구에게나 고마워하고 싶다. 다 출퇴근할 사무실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다. 하나 있는 단점은 백치미라지만 슬슬 생활의 목적이 변질되는 것만 같다. 거부할 수는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정이 들어버렸으니까. 피상적이지만 나는 이미 누군가에게 형으로 불렸다. 썩 부적절하다고 트집 잡기도 애매하지만 그냥 무심코 진정할 일인가는 조금 의문이다. 왜냐하면 어지간한 스포츠 선수는 모두 나보다 어리기 때문이다. 뭐 나이 많은 게 자랑이다, 그런 말이 아니다. 옛날에는 그분들이 다 내 삼촌이요, 아저씨요, 어른으로 보였는데! 이제는 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서글프지도 않다. 완벽한 조건의 사무실 임대료는 거의 헐값이라서 투정은 곧 사치다. 변명은 곧바로 면목없는 참회로 돌아온다.
아! 문제란 뭐냐 하면 2층에 사는 집주인과 틈만 나면 놀아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마법의 거울이고, 나는 탈진했다. 이것이 다 출퇴근할 사무실이 생겼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녀의 취미는 참 고상하다. 그건 다른 게 아니라 바로 내 바지끄댕이 붙잡기였다. 뿌리칠 수 없는 치명적인 애교였다. 빠져나올 수 없는 앙탈이었다. 나는 어느새 그녀의 인기에 편승했다. 무임승차인가 까지는 생각하고 따질 겨를이 없었다. 그녀의 친구들은 곧 내 친구들이 되었다. 내가 꼭 그걸 원한 건 아니었으나 어쩌다가 그렇게 됐다. 나는 하루는 오빠, 저녁에는 실장님, 어떤 때는 아빠, 또 누구에게는 스승님이었다. 선배라는 애칭도 빠질 수 없었다. 녀석들과 단체로 와인잔을 들고 드라마도 봐야 한다. 소설 쓸 시간이 부족하다. 좋긴 좋은데 어쩐지 그 기쁨이 오래가지 않을 지도 모른다는 불편한 감정도 없지 않다. 어째 쫌 불안불안하다.
나는 어느새 그녀들에게 우리가 됐다. 우리는 항상 즐거웠고, 우리는 언제나 재밌었고, 우리는 어디서라도 노래 부르고, 춤추고, 시를 낭송할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나는 그녀들에게 받아쓰기도 시킨다. 다음 주에는 모자를 자주 쓰는 속눈썹이 특히 이쁜 등번호 3번 그녀의 생일 잔치가 기다리고 있다. 큰일이다. 또한 나는 날은 점점 추워지는데 캠핑 장비를 하나씩 사모으고 있다. 큰일이다. 걱정이다. 그녀들이 모두 시집을 가야 급하게 결성된 우리 놀자족이 해체될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면 이 끈끈한 우애를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같이 함께 해서 즐거운데 더없이 행복한데 자꾸만 내 상상력이 바닥나는 것 같다. 안 그래도 창의력이 뒤쳐졌는데 눈꼽만큼 있던 것마저 고갈되었고, 끝내 노란 불이 들어왔다. 왜 그런지 모르겠다. 나는 만족스러워 하면 작품이 잘 안 써지는 부류인가? 모르겠다. 이게 다 그것 때문인가? 그분은 뭐 하시고? 나는 소설을 써야 하는데 왜 일기를 쓰고 있지? 아마도 그게 다 출퇴근할 사무실이 생겼기 때문일 것이다.
4
그 친구들과 언젠가 헤어지게 될 것이라는 것을 내가 모르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어쩐지 나는 이 순간이 언제까지라도 쭉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엉뚱한 이단아 같은 몽상을 하고 있었다. 이것 역시 출퇴근할 사무실이 생겼기 때문일까? 그것과 저것이 굳이 인과관계가 있다고 가정하면 아니라고 똑똑히 답할 수는 없겠지만 그 둘을 억지로 연결시킬 필요까지는 없을 듯 하다.
나는 어딘가 모르게 너무 급하게 새로운 분위기에 휩쓸리는 것만 같아서 일부러 하루를 건너 뛰고 출퇴근하거나 출근했다가 한두 시간 정도만 머무른 후 바로 퇴근을 감행하기도 했다. 그러다 딱 3일간 사무실에 나가지 않았다. 그러자 나는 집주인의 안부가 궁금하거나 새로운 사무실 생활이 그립다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그러나 나는 그녀의 말투를 듣지 못한다는 것에 가녀린 떨림이 동반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녀가 했던 말. 이를 테면 구태여, 다음에 문장이 끝나기 전에 이상한 화제로 돌린다거나, 부정사와 어울리는 부사를 잘못 배치하여 밝은 평서문에 쓰거나, 타인보다 유달리 부쩍 빈도가 높은 조사의 과감한 사용, '왜냐하면'으로 시작한 말이 '머머 때문이다'로 끝나지 않고 그 까닭과 관계 없는 의문문으로 종결짓는 화법. 그리고 '그런데'의 남발과 '그러니까'의 남용. 대화 도중 자꾸자꾸 주제를 변경하여 우리가 무엇을 얘기하는지 일부러 종잡을 수 없게 만드는 교묘한 말하기의 주도권 쟁취하기. 미처 상대에게 대답할 틈을 주지 않고 자기는 최근에 무엇에 홀딱 빠져있으며, 어느 환상적인 경험을 했다는데 나중 듣고 나면 썩 새롭거나 놀랍고 신기한 일은 하나도 없다는 거. 바로 그런 어투와 몸짓, 눈짓, 손짓과 음성들 때문이었다. 물론 나는 내 마음이 어딘가에 사로잡혔다는 것을 인정할 수는 없었다. 너무 익살맞고 싱거운 일시적인 증상인 듯 하여 나는 그냥 피식 웃고 말았다.
그러던 어느 날 출근하면서 운전 중 라디오를 듣는데 신나는 음악이 나왔다. 룰루랄라 룰루랄라, 콧노래로 따라부르는데 차의 조수석 공중에 나뭇잎이 하나 떠있는 걸 보았다. 마침 신호대기중이었고 거리에는 인적이 하나도 없었다. 갑자기 음악이 카세트테이프 늘어지는 소리처럼 들렸다. 시간이 정지되는 중일까? 아니었다. 나뭇잎이 허공에 떠있다는 것은 차 안에 거미가 산다는 뜻이었다. 무단침입이다.
그런데 그날 나는 출근해서 사무실에 도착한 후 일하면서 새로운 사실을 하나 알게 됐다. 그 건물에 지하실이 있다는 것. 임대인은 왜 그걸 내게 알려주지 않았을까? 내가 물어보지 않았으니까. 마침 지하실로 내려갈 수 있는 문은 잠겨져 있지 않았다. 나는 그 문을 열고 내려갔다. 아무 생각이 없었다. 또한 지하실도 잡다한 물건들이 있긴 했지만 별로 특별한 뭔가는 발견할 수 없었다. 나는 괜히 내려갔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실망하고 나서 나는 사무실에서 좀 멋진 글을 쓸려고 했는데 정작 절실히 하고 싶은 응어리라고나 할까, 꼭 해야 할 말, 애써 참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그런 중요한 내용은 없었기 때문에 글을 쓸려다 말았다. 그래서 나는 2층으로 올라가서 집주인이 잘 있나, 최근 만난지 오래됐으니 눈인사는 필요하지 않은가, 그리하여 노크를 했다. 반응은 없었다. 다시 문을 두드렸다. 역시 조용했다.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 문을 열어보았다. 그 문은 잠겨있지 않았다. 나는 잠깐 망설였다. 들어가도 될까? 들어가지 말까? 혹시 인기척이 있나 잠시 기다릴까? 혹시 집주인이 나를 보고 싶어하다가 술병이 나서 쓰러져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드는 걸 깨달았다.
여사장은 일전에 내게 말했다. 자기는 고독하다. 자기는 쓸쓸하다. 자기는 외롭다. 반면에 나는 그 양반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행복하다. 나는 항상 기쁘다. 나는 매사 즐겁고 모든 것에 흥미진진함을 느낀다. 거리에서 들꽃만 봐도 설렌다. 금토 드라마가 기대된다. 미소가 멈추지 않는다. 약속이 너무 많다. 다음 달에 요가원, 내년에는 수채화를 배우러 미술학원에 등록할 것이다. 나는 청소만 해도 잔잔한 보람을 얻는다. 나도 참 눈치 없었다. 완전 없다. 지금 생각해보니 왕-재수였다. 한참 우매했었다. 그래서 우리의 심각한 감정적 불균형 때문에 뭔가 어색한 분위기로 인해 나는 그 부자연스러움을 자연스럽게 사라지도록 만들고 싶었으며, 그러므로 나는 그녀에게 약속을 하나 하고 말았다. 내가 동생에게, 너에게, 집주인에게, 사장에게, 임대인에게 눈부신 남자친구를 소개시켜주겠다고. 이 임차인이. 만약 내 친구나 지인들이 그녀 마음에 들지 않거나 피치 못하게 만남이 성사되지 않을 경우 시내에 가서 괜찮은, 꽤 괜찮은 남자에게 그녀가 찍은 아무 남자에게나 말을 걸고 꼬셔서 둘의 만남을 주선시켜주겠다고 큰소리 뻥뻥치게 되었다. 너무 떵떵거려서 그 뒤로 난 잠시 그 일을 잊고 말았다. 까마득히.
그런데 그때 마침 집주인이 거짓말처럼 내 앞에 나타났다. 그날은 뭐랄까 가는 날이 장날이었다. 집주인은 간단한 인사도 생략한 채 어떤 발단이나 일말의 뜸들임도 없이 다짜고짜 남자친구를 소개시켜주라고 내게 당당히 요구했다. 하긴 그럴 만도 했다. 시도 때도 없이 그녀가 나를 들들 볶은 적도 없고, 단 한 번도 말하지 않다가 불시에 자신의 못마땅한 심정, 그 애처로운 약속을 지키지 않는 남자에 대한 미움과 못미더움과 서운함을 한꺼번에 즉각 몽땅 털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쩔쩔맸고, 그건 하등 틀린 말이 아니었다. 나는 도저히 그녀의 들뜨고 신경질적인 설렘의 상태이자 무척 불안정한 그녀의 심기를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임차인, 너무 교만한 거 아니에요? 뭘 망설이세요? 남자가 자신의 말에 책임을 져야할 거 아녜요? 그렇게 머뭇거리지 말고, 그렇게 뒷머리만 긁적긁적 벅벅 긁지만 말고, 지금 당장 소개받읍시다. 쇠뿔도 단김에 빼래잖아요. 뭐 문제될 꺼 있나요? 세상이 아름답다면서요. 뭘 해도 재미있다고 분명 저에게 그랬어요, 안 그랬어요? 네? 아니면 실망의 언사를 미리 하나 깔고 갈까요? 극적인 전개, 뭐 그런 거 좋아해요? 얼레리꼴레리, 얼레리꼴레리! 자, 됐죠? 아, 재미있다 재미있어. 기분이 날아갈 듯 하네, 정말. 그렇게 낙오자를 자청하지 마시고 자, 우리 한번 제 미래의 남자친구를 하나하나 따박따박 검토해봅시다. 날씨도 좋은데 뭐가 걱정입니까? 즐거운 인생 신나는 청춘이잖아요? 저만 청춘인가, 뭐 아무튼! 그러게 평소에 잘 하셨어야죠, 그럼 돌아가는 거 봐서 형도 청춘에 살며시 끼워줄 테니 걱정하지 마시구요. 누가 뭐라 하겠어요, 네? 결론은 나왔으니 음, 불만없죠? 사무실 비용, 거의 공짜잖아요? 제가 아저씨한테 무슨 불가능한 요구를 하는 게 아니라구요. 처음부터 끝까지 오빠가 뻥뻥 큰소리친 거지. 그 말은 제 가슴에 빵빵 심금을 울렸다구요. 알아요? 네? 제가 어떤 남자 좋아하는지 아시죠? 뭐 드라마 같은 그런 만남을 기대하지는 않아요. 특별히 소원도 없어요. 꼭 저보다 한 뼘 정도 키가 컸으면, 그런 시시한 바램은 없다구요. 시시한? 나중에 다시 한번 생각해보죠 뭐. 제가 너무 급하게 재촉하는 건 아니겠죠? 아저씨! 어머 호칭이 격하됐군요. 허나 슬퍼할 일은 아니에요. 올라갈 일만 남았으니까요. 아저씨, 절 희롱하시지는 않으실 꺼죠? 전 아저씨 믿어요! 그럼요. 이 천상의 약속이 어디서 어떻게 비롯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러나, 우리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는 맙시다. 우리네 인간 인생, 거 너무 찡그리고 살지 맙시다. 알겠소? 이건 인정에 호소하는 불법적인 요구도 아니고, 사랑법에 기반한 합법적인 신뢰라구요. 후일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으나 우리, 지금만 생각하기로 해요. 임차인, 어이 아저씨! 설마 반대하시는 거 아니죠? 아니라구요? 내 그럴 줄 알았어요! 내가 사람 보는 눈은 좀 있어요. 처음부터 이 양반 괜찮겠다고 딱 찍었다니까요. 아주 제대로 찍었어. 어때요? 남자 대 여자로써 천하의 거짓말을 하는 수모를 허락하시지는 않겠죠? 왠지 애초에 느낌이 좋았어요. 헤헤헤. 그럼요. 어쩐지 눈물 콧물 쏙 빼놓는 사랑이 찾아올 것만 같은 예감, 느껴져요! 난 알 것 같아요. 그래요. 뭔가 느낌이 와요. 있잖아요? 아저씨 어머 실례. 오빠! 오빠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그게 제 솔직한 마음이라구요.」
5
우리는 먼저 내 사무실로 자리를 옮겼다. 거기서 집주인은 내 노트북을 켜게 하더니 나의 소셜 네트워크를 모두 확인했다. 동작 정확했고, 확인은 빨랐다. 모두 영양가 없다고 결론이 났다. 꼭 뭔가 나는 내가 인생을 정말 헛산 거 아닌가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우리는 거리로 나가게 됐다. 보통은 말만 들어도 좋다, 고맙다, 빈말인 거 다 안다, 그냥 인사말 정도로 여긴다, 의례 그렇게 여기는 게 일반적인데 이 아가씨는 내가 했던 말을 다 그대로 믿었고, 정말 오늘이냐 내일이냐 하루하루 그날만을, 오직 그 결전의 날만을, 유일한 운명의 순간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때문에 참다참다 내게 화를 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어떤 분야의 권위자 같았다. 그러나 나는 그 분야가 대체 뭔 분야인지 통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정말 어느 새로운 신성의 전문가 같았다. 그런데 도대체 뭐에 대한 전문가인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초보도 아마추어도 아니고 업종도 불분명하기만 했다. 어디서 굴러온 돌인지 도통 파악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또 썩 밉지는 않았다. 한번 갈 때까지 가봐야 하는 것만 같다는 그런 의도를 나도 모르게 품게 만드는 신통한 재주가 있는 것 같았다. 그녀에게는. 사노라면 꼬이고 치이는 날도 있다지만 나는 살다 살다 그녀 같은 웬 희한한 말괄량이는 난생 처음이었고, 또 그녀도 어떻게 보면 그녀쪽에서도 일이 이렇게 흘러갈지는 미처 몰랐다거나, 혹시 모른다 이러다 정말 횡재할지도 모르고, 연애하고 사랑하고 약혼녀가 되어 날아갈 듯 하다가 정말 결혼하게 될지 그건 아무도 모르는 일이라는 듯 표정이 싱글벙글, 덩실덩실 기분이 차원을 달리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녀는 고수였다. 왜냐하면 그녀는 속마음을 절대 비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기도 하다 하다 이런 식의 뚱딴지 같은 부탁과 억지와 생떼는 처음 시도한다는 의미의 그것을.
그러다 사무실에서 나온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그녀는 한 남자를 찍었다. 나는 일단 웃었다. 드디여 올 것이 왔다. 도망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멀뚱히 서있을 수도 없었다. 내 머리 속이 하얘지는 듯 했다. 지금 와서 못하겠다고 무를 수도 도망칠 수도 또 그렇다고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데 무작정 안절부절 망설일 수도 없었다. 마침내 나는 어떤 유체이탈의 경지에 이르른 게 아니라 진짜 영혼이 육신과 분리되어 넋을 잃은 채 그 남자에게 다가갔고 말을 걸었다. 물론 난 그럴 의도가 없었다. 하지만 내 몸은 조종되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어떤 남자에게 다가갔다. 차마 낯뜨거운 용건을 꺼내느니 시간이나 물어볼려고 했다. 그러나 내 몸을 작동시키는 리모컨은 그녀가 쥐고 있었다.
「저기, 아저씨!」
「네? 저요?」
「네. 혹시 향수 좋아하시나요?」
「향수요? 무슨... 그건 왜 물으시죠?」
「아, 저기 보이는 저 아가씨가 전설적인 조향사였는데 너무 일에 몰두하다가 그만 정신이 어떻게 됐어요. 거 참 안 된 일이지요. 꽃다운 나이에 공주처럼 생겨가지고 뭐 하나 남부러울 것 없이 살면서 말이에요. 조금 상태가 안 좋아. 거 웨 있잖아요, 그런 좀 그런 사람들. 알잖아요? 네! 그래요. 딱하게 됐어요... 그녀가 아저씨에게서 천상의 향기가 난다나 뭐라나, 잠시 이렇게 붙잡고 있다가 놓아주라는데 음. 갑작스럽겠지만 거 이해하슈. 알고 보면 사정이 딱해. 한 일분만 있다가 나랑 진지한 대화를 나누는 척 하시다가 가시면 돼죠, 뭐! 착한 일 하신다 셈치고 이렇게 딱 1분만 아니 좀 더 써도 괜찮구요, 관상을 보아하니 어이쿠! 이 양반 인생이 참 훌륭으시네. 사람 참 괜찮아. 아주 훌륭해, 멋져. 앞으로도 뭔가가... 있어. 네 그럼요. 그렇게 하는 걸로 합시다. 하하하하. 하하하하하. 껄껄껄껄껄.」
그분은 살짝 미소를 띄울까 말까 고민하는 표정을 짓더니 잠시 후 떠나갔고,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 이렇게 말했다.
「어떡하나? 집에 애기 보러 가야 한다는데. 그럼 진작 초반에 그렇게 말할 것이지. 처음에는 총각인 척 하드니만. 뭔 자세는 또 그렇게나 잡는지, 완전 허세 장난 아니더구만. 아가씨께서 남자를 섣불리 너무 급하게 찍은 감이 없잖아 있구만 그래. 아, 맞다. 영화 대사랑 외국어 좀 섞어서 말하면 누가 못 알아먹을까봐, 거 아무래도 몹시 객쩍은 젊은이임에 틀림없어. 요즘엔 개나 소나 다 자기가 연예인인 줄 알아. 자기에게는 너무 아닌 남자지. 딱 그 전형이야. 너무 벅찬 나쁜 남자라니까. 자기는 나쁜 남자랑 어린 남자를 막 좋아하는 그런 시기는 지났잖아? 누가 뭐라 해도 딱 그럴 것처럼 어려보이지만 말이야. 완전 상스러운 녀석이었어. 괜찮아. 처음에는 다 그래. 그럴 수 있어. 살다가 거 뭐 새똥도 맞고 개똥도 한번 밟고 그러는 거지. 호사다마, 뭐 그런 말도 있잖아, 어?」
그녀는 나를 보는 고개의 각도를 살짝 틀었다. 그리고 이렇게 물었다.
「오빠, 브루스 가니에르 알아요?」
「어? 뭔 가니에르? 어디 가냐고? 내가 가긴 어디가?」
「아이참, 오빠! 사무실에 걸린 그림 있잖아요. 저 남자 딱 그 그림이 떠오르게 하는 느낌이 있었는데. 아쉽다!」
「오늘은 이상하게 적포도주와 코코아가 섞인 음료를 마시고 싶은 날이군. 왠지 모르게 흡혈귀가 나타날 것만 같아. 바람의 방향이 바뀐 거 느껴져?」
난 마음에 내키지는 않았으나 뭔가 있어 보이는 말을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슥, 재빨리 던지는 걸 잊지 않았다. 그녀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이 다 알겠다는 것처럼. 그냥 쉽게 넌 젊어, 넌 귀여워, 넌 예뻐, 넌 눈부시게 아름답구나 라고 말할 수는 없었으니까. 적어도 그녀는 실리콘 소재의 수술용 1회용 장갑을 낀 채 담배를 피는 여자는 아닌 듯 했다. 끽연, 기호일 뿐이지만 반찬통에 사과 조각과 함께 신경 써야 할 일이 음, 아아, 오오오! 그런 과정을 감내할 듯한 그녀는 아니었다. 최소한 오늘은 일찍 잠들기 싫어하시는 건 분명했다.
그녀는 그런다. 틈만 나면, 어쩌면 뭐라뭐라 하고, 시도 때도 없이 아마 나는 쑥덕쑥덕, 우린 아직 뭐한다 어쩐다, 착각했네 아 어떨까 같은 말과 생각과 간혹 글까지 그것 모두에 먼저 반발짝만, 딱 반발짝만 앞서 걷는다면, 오! 말이 필요 없겠으나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였다. 피곤한 상황 난감한 처지. 아찔한 현기증. 괜히 어떤 멋진 남자에게 말을 거는 척 시비를 걸어볼까? 한물간 설정이다. 지금 무슨-주의가 분위기를 잠식했는지 어쩐지 정신줄을 놓으면 안 된다. 그리고 우리는 다정하다. 나는 끄떡없다. 지금 이 순간, 즐겁다. 솔직히 말하자면 항상 바래왔던 그런 낭만적 풍경이었다. 꿈에서도 딱 애원해왔던 전망이었다. 그래. 어쩜 동경했을 것이다. 왜 아니란 말인가!
문득 나는 그녀가 쓴 글을 읽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그녀의 음성을 듣는 것과는 다른. 지극히 섬세하면서 동시에 극도로 압축하는 간결미가 엿보인다면! 쓸 만만 쓴다면!
그 후 몇 분에게 나는 더 실례를 범했다. 무례로 넘어가기 전에 어설픈 말걸기는 중단됐다. 패션쪽 일을 하시는 분,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대체로 동감하지만 내가 그녀의 전담 관리자였다면 그녀 마음에 쏙 드는 패션업계 종사자를 찾을 자신이 있었다. 당연히 그가 그녀를 마음에 들어할 것인가가 문제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쉽게 말해 그녀는 업계 상위 1퍼센트를 선호하는 듯 했다. 그렇게 실패를 거듭하다가 어떤 한 남자를 아예 내가 그녀 앞으로 데려왔다. 삼자대면이 필요할 것 같아서. 그러나 걔는 차라리 나랑 더 잘 맞을 것 같았다. 술 한 잔 걸치면 금새 빨가벗고 사우나에라도 같이 갈 자신이 있었다. 남자 대 남자로. 브로맨스로써. 그러나 가까이서 보니 그는 좀 아니었나 보다. 그리고 유명 요리사, 까탈스럽다고 한다. 모델, 남자가 화장하는 건 마음에 들지 않는단다. 그외 직종을 대면 싫어하는 척 하다가 슬슬 화를 내는 듯 했다.
「그런데 있잖아. 왜 갑자기 친구들은 오지 않는 거야? ...(침묵)... 왜지? 왜일까?」
「왜, 겠어요?」 라고 그녀는 말했다. 잠시 멈칫 하더니 뭔가 한마디를 더 했다 그녀는. 곧 나는 인간의 청각으로 들을 수 있는 주파수가 아닌 음성을 지금 이 순간 듣는 것만 같았다. 그 말은 이랬다.
<그걸 몰라서 물어요?>
「어? 내가 먼저 물어봤잖아. 음. 그렇긴 한데... 뭐 다들 바쁘겠지... 바쁠 꺼야... 음, 그렇겠지. 연말이잖아?」
그날 우리는 어느 찻집에서 연거푸 커피를 세 잔씩 마셨다. 카페라떼, 에스프레소, 카푸치노 그렇게. 샷도 추가해서. 멋져보이는 일인가? 어쩜 그럴지도. 술에 취해 비틀거리지 않았으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꼭 그렇지는 않다. 커피 마시면 화장실에 가고, 그러면 목 마르고, 또 커피 마시면 화장실 가고, 그러면 다시 목 마르고, 말하지 않고 창 밖만 바보처럼 실연당한 여인처럼 처연히 바라볼 수는 없는 일이다. 말을 해야지 말을. 그러면 그 말을 모두 내가 할까? 내가 뭐 유명 MC라도 되나? 아니면 연설자? 진행자? 아니지 아니야. 모두 아니라구. 난 꼼짝 말고 멈춰라 얼음땡이 됐다. 그렇다. 할 수 있는 것은 청자, 친절한 시청자이자 간절한 애청자 그 하나 밖에 없었다. 솔직히 그건 곤욕스러웠다. 그러나 싫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렇게 그녀의 기분이 풀릴 수 있다면 다행일 것이고, 그래서 조금 안심이 됐다. 음 그렇지만 나는 다시 한번 이 말을 속으로 하고야 말았다. 「이건 좀 아닌 것 같다!」 속으로만. 표정에 드러나지 않게. 아 나 이거 정말 것 참 아핫 진짜 어떻게 표현해서도 안 되고 내색할 수도 없고, 이거 정말 난감하네... 입을 딱 꼬맬 수도 없고 말야, 그런 생각이 손톱 만큼은 있었다. 그런 솔직한 심정이 없다면 그건 겉은 사람처럼 보이지만 그건 사람이 아니다. 로보트다. 귀에 이어폰을 끼워도 딴청을 피워서도 안 되고. 예의에 어긋나게 시큰둥 듣는 척 마는 척, 주의깊게 듣는 둥 마는 둥, 그럴 수는 없으니 다크서클로 시작해서 안면 근육 경련에 이어 코피가 나기 일보 직전이었던 것이다. 정말이지 그녀는, 그녀는 말이 너무 많았다. 아, 뒷목! 그러나 나는 굳이 대사를 낭독하지는 않았다. 잘 참았다. <아, 말 참 많네!> 라는 말을! 그녀가 글을 쓴다면 혹시 누군가가 남자친구라면 장래 구박 받을 일은 없을지 몰라도 그녀는 못내 서운한 마음을 감추지 않을 것이다. 그럴 수는 없을 테니까. 절대로. 최소한, 남편이 읽지 않는 활자의 세계에서는. 그 모든 것을 뒤로 하고 우리가 처한 현실은 대체로 두 가지로 나뉜다. 말 참 많네 아니면, 진짜 과묵하네로. 중립, 중도, 만족, 쾌적, 최적화, 이상은 물론 사랑이나 우정마저... 중간은 정말 힘들고, 어렵고, 귀하고, 드물고, 한눈 팔면 금새 사라져버리는 파란 나비가 날아다니고 투명인간도 있고 시간이 멈추기도 하는 그런 꿈 같은 환영이자 고귀하고, 소중하며, 어쩜 반항기의 숙녀가 꿈꾸는 연보라빛 소망이나 동심의 세계에서 안온히 변주되는 샤또 와인빛 희망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자기 자신에게만 솔직해보자. 이성에 대한 이상형 뿐만 아니라 나에게 딱 맞는 친구조차 이 세상에 있긴 있나! 아니면 자주 바꿔? 오, 그건 좀...! 역할을 바꿔서, 나는 타인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주는가? 최근 단짝에게? 한 친구에게 나는 그의 멘토라고 자부하는데 설마 그 녀석은 나를 투정만 부리는 뭐 전화번호에 기록된 이름이 귀찮음? 하찮음? 놀아줘야함? 가만 있자... 것 참 말 많네? 어째 내가 다 찔리는데......! 상대방 딱 한 명 또는 다수의 마음에 쏘옥 드는 과연 그런 나일까? 학교에서, 가정에서, 회사에서? 자신있다, 에서 시간에 비례하여 점차 그 확실성이 떨어졌으면 떨어졌지 아마 올라가기는 힘들지 않을런지. 여자분들은 잘 아시지 않는가, 내가 립스틱을 왜 바르는지 남자들은 흔히 착각한다는 것. 심지어 화장발이라는 무척 엄한 말까지 나돈다는 것.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은 살다보면 정말 많고도 많다는 것까지. 말이 너무 많든 말이 너무 없든, 매사 뭔가를 대충 받아들이든가 적은 발언권에 적당히 만족하며 밝고 건강한 자신감이나 영혼의 아름다움쪽으로 그 섬세한 감각미의 극치를 바라보게 만드는 것이 오히려 더 나은 일인 것 같다. 어쩌면!
그리고 그날 새벽이 되어 그녀는 2층으로 올라갔고, 나는 1층 사무실에서 혼자 TV를 보며 칵테일을 간단히 만들어서 마시다가 골아떨어졌다.
긴 하루였다.
6
우리 집주인. 그녀에게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일까? 나처럼 어중간한 남자에게는 차마 알려줄 수 없는 어떤 기막힌 비밀, 천년의 사랑, 이루어질 수 없는 비련의 운명 뭐 그런 거라도 있나? 아니면 없나? 난 필경 그걸 알고 싶지는 않았다. 모든 걸 캐묻고 따지고 벗기고 나는 그 부류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일단은. 그러나 그녀 앞에서는 뭔가 궁금한 듯한 내면 연기를 언제라도 선보일 수는 있다.
내가 그녀를 모를까? 아니다. 나는 그녀를 안다. 그녀는 어느 정도 양면성을 지니지만 그녀는 좀 더 적극적으로 에필로그를 좋아한다. 그래 그거, 에필로그! 시시콜콜? 노노! 마침표 사이의 거리를 줄인다고 다 강건체가 아니라고 그녀는 말한다. 그녀는 좀 극단적이다. 여자치고는 굉장히 남성적이다. 그런 측면으로 보자면 남자들은 기획자 스타일의 여자를 좋아하는 게 합리적일 것 같지만 그건 일이고 사랑은 일 바깥의 영역에서 부딛혀야 하는 좀 더 열정적인 불가사의의 결정체다. 따라서 방금 전 신기한 발견 같은 예측은 어김없이 틀려먹었다. 그리고 그녀는 뭔가 통합적이다. 그녀는 상징적이고 압축적이며 시적이다. 그녀는 전에 페라리 FF를 탔었다. 그러다 어딜 가나 그 후광이 자기 이름 브랜드보다 더 압도적이고, 어디서나 주목받고, 언제라도 눈총과 부러움과 관심을 받았기 때문에 차고에 쳐박아뒀다고 했다. 끼리끼리 어울리면 그만이지만 그녀는 어째 좀 그런 굴레를 잘 참고 견디지 못하는 직성을 숨기지 못했다. 그렇다고 그녀는 내가 타는 적당한 볼보 웨건을 싫어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좋아했다. 그것도 많이. 그녀는 심성이 모나지 않고 인성도 꼴찌는 면한다. 많이. 오리와 닭이 과연 잘 어울리는 한쌍이냐, 에 대해서는 쉽게 말할 수 없다는 것도 잘 아는 그녀다. 그녀에게 차는 거의 양분된 세계였다. 나머지 어중간한 차는 다 기계였다. 진공청소기와 환상머쉰보다 하등 나을 것이 없는. 그녀는 일단 겉옷으로 치자면 깃이 있는 옷을 선호한다. 절대적으로. 무조건. 항상 접힌 옷깃을. 재질은 오직 모직. 합리적이고 편하기만한 점퍼라면 깔끔한 블루종이나 가죽 점퍼라면 몰라도 그게 아니라면 같이 걷게 되면 다른 사람이 일행처럼 보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깃이, 고전적인 옷깃이 있어야 하는 그녀였다. 언제나. 청개구리로 변한 왕자를 알아 볼 수 있는가, 그건 내 알 바 아니다. 내 인생도 벅차다. 그녀 인생에 어떤 조그만 보탬이 되는 멘토의 모습을 잠시라도 선보일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일단은 삶의 영역과 성장 환경과 어항 자체가 다른 세계였다. 그리고 그녀는 감식안이 뛰어나나 그걸 쉽게 겉으로 비치지 않는 남자를 남달리 살펴보고 마음에 둘 것이며, 분위기를 읽고 기분을 맞춰주는 방법을 외면하는 것에 대해 조금은 질색해한다. 물론 그녀는 목소리가 착 가라앉고 아늑하면 일단 속으로 휘청할 것이다. 이건 예상이다. 그러나 빗나가는 추측은 아닐 것이다. 절대로! 장담할 수 있다. 그러나 확인하지는 말자. 잡아떼는 모습이나 그녀와 뭔가 어울리지 않는 궁색한 모습, 보고 싶지 않다. 요컨대 그녀는 천생 여자였다. 절대 롱테일은 아니었다. 일정 수준의 낭만을 거쳤다면 그녀는 한 남자에게 종속되는 인생을 살 수 있는 여자였다. 그걸 바랬다. 그걸 원한다. 원래 여자는 그런다. 여자는 일단 착하다. 기본적으로 심성이 곱다. 보통은 그게 정답이다. 자기가 좋아하고, 절차를 거치고, 남자가 중간만 간다면 여자는 절대 바람을 피지 않는다. 그게 여자다. 사랑이 영원하기를 바란다. 공식은 그렇다. 다이아몬드 반지가 중간에 큐빅으로 바뀌는 기적이 생각보다 자주 일어나는 것인가, 난 그런 거 모르겠다. 그런데 왜 그렇게 이혼을 많이 하냐고? 묻지 마시라. 그걸 왜 내게 묻는가! 1번, 2번, 3번등 몇 가지 따질 수는 있지만 자기는 결혼 안 하겠다 결혼하기 싫다 남자는 뭐다 어쩐다에 대해서 자신있게 발언하실 수 있는 분들을 위하여 긴말 하지 말자. 그 외에 또 많지만 수다는 활자로 그만 옮기는 게 좋겠다.
아무튼 나는 다음 날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집으로 돌아왔다. 아무래도 당분간 사무실에 가면 그녀에게 시달릴 것 같지만 그렇다고 또 마냥 피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녀가 일광욕을 하자며 추운 날 해변으로 같이 가서 다짜고짜 등에, 곱디 고운 등판에 오일을 발라달라 그러면 어떡하지? 어떡하긴 뭘 어떡해! 그건 그때 가서 보는 거지. 이게 과연 호박인가 미끼인가, 판가름하는 것은 당사자의 몫이고. 본인이라면 음, 응답 거절. 하여간 내 심정은 뭐랄까, 내가 쓴 댓글은 답글이 달리지 않고 내가 가는 곳은 갑자기 인적이 뚝 끊기고 물과 기름이 섞이지 않는 듯 뭔가 정상적인 창작 생활에서 크게 엇나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시간이 되자 나는 출근했다.
오늘도 어김없이 집주인은 사무실에 놀러왔다. 이 호사스런 사무실, 괜히 거의 공짜였을 리가 없다. 설마 오늘도 우리는 길거리 캐스팅을 하러 가야 할까? 계약서에 뭔 특별 조항이 있나 다시 봐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러나 미리 겁 먹을 건 없다. 가자고 하면 내가 못 갈 줄 알고? 한 번 떠보기는 할 꺼다. 무릎 꿇고 빌기에는 좀 각이 나오지 않고 너무 초라해지니까 그건 건너 뛰자. 차라리 남자 중의 남자나 아예 돈이 많든가, 완전 잘 놀든가, 완전 어쩐다든가, 그래서 그녀를 데리고 둘이 무지개 너머로 떠나든가, 잘 생기든 어쩌든 그녀가 뿅갈 남자가 나타나면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그러다 내가 홀딱 넘어가면 어쩌지? 아니다. 나는 여자를 좋아한다. 그 뿐만이 아니라 나는 환상가다. 여자는 사랑이고, 우정은 남자다. 후자에 전자도 넣을까? 너무 일찍 인생을 알아버리면 곤란하듯이 이 또한 쉽게 제한하지는 말기로 하자. 지금 했던 말을 미래에 지킬 자신이 있든 없든, 지켜지는 것은 다른 문제고 생각이 바뀌는 것은 무척 길더래도 시간 문제일 수 있으며, 사실 사랑도 어떻게 보면 오락가락하는 측면이 없지 않으니까 말이다. 불쑥 튀어나온 진의가 아니라 그게 원래 그렇다. 찾아보면 주위에 럭비공은 널렸다. 뭘 지지하든 개인의 자유겠으나 간편한 애정이 만연한 세상인 건 분명하다. 인간의 감정도 어느 정도 즉흥적이고 변하기 쉽다. 삶에도 요령은 필요하다. 그런 세상에서 당신의 무궁무진한 활약을 기원한다.
내가 사무실 임대인의 대변인은 아니지만 어쩐 일인지 그녀가 내게 이런 의견을 어딘가에 주술하라고 시킨 것만 같다. 이상한 여자.
어쨌든 사무실로 출근하는 기분이 천근만근이다. 이것도 모두 출퇴근할 사무실이 생겼기 때문일까? 그러거나 말거나!
사무실에 도착하기 직전에 나는 마음을 모두 정리했다. 낯선 남자들에게 몇 번 치근덕거리기도 하고, 뭔가 중요한 얘기를 꺼낼 것처럼 하다가 그녀의 인상착의를 알려주며 그런 여자 어디서 보지 못했냐고 묻기도 하며, 나는 그동안 얼굴이 많이 두꺼워졌다. 비교적 예전보다는. 앞서 언급한 내용 외에도 몇몇 사건들이 있었다. 모두 밝힐 수는 없었다. 그래서 오늘부터는 그냥 같이 범위를 넓혀서 이 근처에서만 이럴 게 아니라 아예 도시에 갔다 오자고 그녀를 설득할 것이다. 밀리면 안 된다. 먼저 뭐랄까, 어떤 생경한 단어, 선동? 너무 멀리갔고 아무튼 어느 정도 나도 성의를 보여야 할 것 같다. 거 왜 사무실 임대료를 몸으로 때우는 느낌이 없잖아 있지만 말이다.
그렇게 나는 오늘부터 그녀가 콕 찝는 남자에게 모두 말을 걸어봐야겠다고 다짐했다. 어차피 지금까지는 연습 게임이었다. 모두. 준비 운동에 불과했다. 피식! 몸풀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진짜 드라마를 찍을지도 모른다. 새로운 취미고, 낯선 생활이며, 신선한 경험에다 색다른 인생의 화사한 국면이다. 봉을 잡지 말란 법도 없다. A부터 Z까지 골고루 소개시켜 줘야겠다. 그녀에게. 내가. 앞으로 사랑의 '사'자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키도록 사랑의 전사로 만들어줄 테다. 그녀를 조련시키겠다. 내가. 사랑이 무엇인지 가르쳐줄 것이다. 그녀는 덤으로 이별에 대해서도 알게 될 것이다. 그녀는 스승 잘 만난 것이다. 운 좋은 거지. 만약 결과가 좋다면, 성과가 일찍 발생한다면 다음에 대한 기대를 부풀리고, 예상되는 꿈의 그림을 채색해서 한 가지 놀이를 하자고 청할 것이다. 내가 그녀에게. 임차인이 임대인에게. 그 어느 장난을 같이 하자고. 그건 뭔 게임이냐고? 알려줄까, 말까? 그래야 하나 말아야 하나? 에잇, 까짓껏 말하자. 인심 쓰자. 것도 후하게. 그것은 집주인 보고 1층 사무실에서 일하라 하고, 나는 2층으로 올라가서 집을, 방을, 침실을 구경하기. 이참에 하트 뿅뿅에 대해서도 가르쳐줄까? 그런데 혹시 그녀가 나보다 더 고수면 어떡하지? 어떡하긴 뭘 어떡해! 설마 그럴 리야 없겠지만 내가 그녀에게 무언가를 배워야 한다면 이렇게 한마디만 슥 흘리면 그만이지.
이런~ 젠장!
그래, 안 그래? 아, 혼잣말이다. 자기 최면. 신경 쇠약. 헛소리. 허언증-후유증.
아, 생각난다. 오오! 저번에 사무실에 놀러와서 그녀가 소파에 앉아 통화를 했던 적이 있는데 그때 어떤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던 것 같다. 뭐 뭐라드라, 말라 비틀어진 피망 껍떼기 같은 녀석? 그게 나인가? 아니겠지만 아니기를 바라지만 꼭 그럴지도 모른다는 강한 의심이 든다. 믿기 싫지만 이상하게 믿는다는 동사가 퍼뜩 날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그런데 그녀는, 그녀는 날 가지고 놀았나? 설마! 꼭 그렇게 곡해해서 까칠하게 논측할 필요가 있나. 하지만 뭔가 께름직한 뒷만이 그런 쓸데없는 걱정을 허용하고 있지 않나? 낙관적인 누명이 저절로 벗겨져버린 이 마당에 말이다. 하긴 그녀, 집주인과 집주인의 친구들과 즐거운 시절을 보내긴 했다. 짧았지만. 그러나 그건 다 모래성 같고 들러리 같은 어떤 통렬한 뭔가 짭잘한 그런 개운하지 않은 뒷맛이 느껴지는 전-여자친구의 결혼식 같은 의미로 내게 새롭게 느껴졌다. 나만 혼자 좋다고 기뻐하고 즐거워한 것 같은 바보의 재롱이 이제야 느껴진다. 난 그때 한 마리 개였다. 멍멍, 멍멍멍. 아니면 고양이? 어쩜 그럴지도! 나는 사무실에 있는 스노우볼이나 소파 바닥과 책상 밑면등 뭔가 그녀가 내게 남긴 흔적, 심정이 담긴 편지가 어딘가에 남겨져 있지 않을까 하면서 사무실을 마구 뒤지며 난장판을 만들었다. 다 불필요한 짓이다. 그녀는 이미 남자친구가 있었다. 한 명도 아니었을 것이다. 남자 다루는 솜씨가 보통이 아닌 그녀였다. 한때 종횡무진 어떤 활약을 펼쳤으리라고 짐작된다. 그녀의 광대 목록에서 난 뛰어논 것이고, 그녀의 손바닥 위에서 쇼 한 것이며, 그녀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은 까부는 남자 명단에 그것도 최하단에 슬쩍 이름만 남겨논 것이 아닌가 그런 웬 측은한 생각을 지워버릴 수가 없다. 도저히! 하긴 그녀가 그렇게 훌륭한 사무 시설을 무료에 가까운 금액에 빌려준 것도 그렇고 날 웃겨주고 내게 추억, 추억 같은 소리나 하고 있네, 내게 무언가 잊혀지지 않는 무대의 기억을 남겨준 것을 보니 뭔가 이상하지 않을 수 없다. 그건 억지였다. 그건 연기였다. 그녀는 배우였고, 나는 관객이었다. 연기 수업을 위한. 바꼈나? 어렵다. 그런데 난 왜 아무런 낌새도 눈치채지 못했단 말인가? 이상하지 않은가? 왜 한번도 그런 의혹을 떠올리지 못했는가? 왜기는, 난 바보였지. 그거면 이유는 충분하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나. 다 집어치워! 잠깐 즐거웠고 한때 재미있었으면 된 거다. 코끼리 뒷다리를 만지면서 어느 고대 신전의 기둥이라고 짐작하는 것처럼 인생을 얼마 만큼 알게 된 이 시점에 뭐 그런 실망도 절망도 체념도 아닌 투정에 가까운 방정에게 나는 제대로 한 대 얻어맞다니, 것 참 신기하고 허탈한 일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출퇴근할 사무실이 생겨서 얼마나 기뻐했는가, 그것만 봐도 썩 괜찮은 시기였다. 사람이 일을 해야 하는 이유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때문에 나는 간접적으로 대충 그 까닭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 어떤 뭔가 발설해서는 절대 안 되는 꿈은 변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니까.
그러나 뭔가 개운하지가 않다. 그녀는, 그녀는 진짜 아니겠지만 혹시 푼수였나? 아니기를 바라지만 그럴 리는 없겠지만 정말 푼수 아닌가? 어, 맞아. 그래. 없잖아 그런 것도 같다. 그러나 나는 한 처녀의 앞길을 막고 싶지는 않다. 나는 정숙한 어느 숙녀의 미래에 암담한 먹구름을 드리우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음을 밝히는 바이다. 어디 그런 망측한 생각을, 떽! 그런데 뭐 어쩜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은 든다. 푼수라고. 푼수니까 뭔 사무실, 것도 초호화 사무실을 거의 공짜로 빌려주고 또 거 뭐야? 뭔 남자를 꼬셔주라고? 뭔 그게 말이야 빵이야? 혹시 남자를 빵으로 보는 건가? 푼수 맞네 푼수 맞어! 푼수니까 그런 발상이 가능하지 푼수가 아니면 어디 그런 험악한 상상을 실행에 옮길 수 있어, 어? 푼수 가운데서도 지체 높은 위엄하신 푼수니까 다 그게 가능했던 게 아니냐고! 결론 났다. 그녀는 푼수라고. 그러나 나는 그녀가 푼수라고 인정하고 싶지는 않다. 왜냐하면 그녀가 푼수라고 알려지면 그녀에게는 약간의 흠을 안겨주는 꼬리표가 따라다닐 테니까. 그녀 입장에서야 썩 반가울 리도 없고, 또 푼수를 푼수라고 하지 그럼 뭐라고 하냐고 누군가는 말하겠지만 어딘가 모르게 내가 그녀에게 주홍글씨 그 길고도 무거운 짐을 안겨주고 꽤 심심한 낙인을 찍어주는 것 같아 나도 영 개운하지가 않다. 그녀는 푼수가 아니다. 마치 내가 가축장에서 돼지에게 A, B, C표를 찍어주는 관계자가 아니듯이. 또 그녀가 푼수면 뭐 어떤가? 푼수가 뭐 죄인인가? 푼수는 뭐 애교도 부리지 말고 화장도 하지 말라는 법이라도 있나? 원래 그렇게 타고 났는데 바꿀 수 없는데 뭐 어쩌란 말인가? 푼수가 오리신들이 사는 궁전에라도 들어가 살라는 법은 없다. 그 반대도 성립할 수 없다. 어차피 푼수니까 푼수짓을 하던 착한 일만 골라하던 그것은 푼수의 자유다. 그리고 그녀는 푼수가 아니다. 괜히 푼수 어쩌고 저쩌고 논쟁도 아닌 잡담을 늘리는 것은 그녀가 푼수일지도 모른다는 방자한 노이즈 마케팅일 뿐이다. 맞다. 못 먹는 감 찔러나 본다고, 호들갑스럽고 경망스러운 그냥 짐작하는 일. <아니면 말고>식 행동. 그녀는 푼수가 아니다. 그녀를 괴롭혀서는 안 된다. 괜히 다른 진짜 푼수가 뜨끔할 일이다. 만약 내가 푼수라고 가정하더래도 내 지위를 그녀에게 물려주는 것도 아니고 썩 반갑지 않은 논란의 여지가 다분한 소란임에 틀림없는 짓이다. 그녀가 푼수라는 아니, 그녀는 푼수일지도 모른다 그녀는 혹시 푼수가 아닐까 라는 추측은 말이다. 푼수? 살면서 별 이상한 일도 다 있다. 딱히 그런 어휘를 구사할 기회마저 거의 없어야 정상인데 이렇게 막 편히 말하고 쉽게 다뤘으며 조심스럽게 언급한 단어를 하고 또 하고, 쓰고 또 쓰고, 궁금해하고 또 의심하는 그런 행동을 하게 될 줄이야! 혹시 내가 푼수인가? 그래 그게 좋겠다. 그녀는 푼수가 아니고, 내가 푼수다. 그만 종결지어야 한다. 그녀가 푼수인가 아닌가, 에 대한 토론은. 이걸로 그녀가 푼수일까 아닐까에 대한 의혹은 더 이상 부풀려지면 안 된다. 딱 매듭짓고 그녀를 놓아주자. 그녀에게 자유를 선물하자. 그녀에게 진짜 푼수는 누구라고 귀뜸해주기라도 해야 한다. 여기서 그만 푼수 논쟁은 마치는 게 좋겠다. 당분간 푼수의 푼자만 들어도 놀라겠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것만 같다. 꿈에라도 나올까 두렵다. 푼수! 노래 가사에 유행처럼 앞으로 자꾸 등장할지도 모르겠으나 이제, 푼수 놀이는, 그만하자! 끝!
푼수? 푼수!
꼭 완전한 말인 것 같다. 완전함은 또 있다.
인생, 감수성, 햄버거, 천재, 꿈, 예술, 초능력, 초현실, 블로그, 코메디, 고전주의, 예언, 고품격, 진공청소기, TV, NC, 소셜 네트워크, 1인칭, 요술과 마법, 사랑과 우정, 애인과 친구, 이성과 감성, 카사노바, 황홀감, 첫눈에 반하다, 영화, 초딩, 낭만, 동경, 모험, 환상머쉰, 청춘, 운세, 새로움, 부러움, 선망, 권태, 허풍, 허당, 우연, 거짓말, 명대사, 행복...... 이런 젠장, 더럽게 기네!
그리고 아, 오빠! (손가락 딱─하이파이브 딱) 오오 동화까지.
또 뭐가 있지? 빠트린 뭔가도 있을 것이다. 많을 것이다. 조사하기도 귀찮다.
뭐 척키? 허걱, 으흐흑!
어쨌든 다 같은 말이다. 다 한 통속이란 말이다. 다 필요없다.
잡아떼는 게 아니다. 절규다. 한 편의 시다. 뭔 말인지는 말하는 당사자도 잘 모르겠지만.
7
나는 사무실에 도착했다.
사무실에서 대충 일과를 시작했고, 두 번째 커피를 타서 나는 2층에 올라갔다. 그런데 2층 문고리 옆에는 포스트잇이 붙여져 있었다. 거기 이렇게 씌여 있었다.
「남자친구 생겨서 놀러감. 당분간 날 찾지 말기 바람. 멀리 떠남. 어쩌면 신혼여행이 될 수도 있음.」
나 원 참! 기가 막혀서! 결국 이거였어? 각오를 새롭게 다졌는데 와, 힘빠진다. 어이가 없다. 소름이 돋는다. 인생이란 마치 이런 것이군. 예상 전혀 못하고 있을 때 뒤통수 완전 정확히 맞기. 빡! 나는 사무실로 돌아가서 냉장고를 열고 캔맥주를 꺼내 뚜껑을 땄다. 그런데 이상하게 내 머리의 뚜껑도 같이 열린 듯 했으며, 캔맥주가 개봉될 당시 웬 뜬금없는 퐁~ 소리를 들었던 것만 같다. 깡통을 따면 발생하는 정상적인 소리 대신에.
다시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그건 진짜 같았다.
오, 이럴 수가!
집주인은 내게 마법을 걸고 떠난 거구나!
나는 마법에 걸린 것이로구나!
그녀는 요정이구나!
이건, 진짜구나!
아아, 에고머니나!
나는 어쩌면 좋은가. 다시 못들을 줄로만 알았던 퐁~ 소리를 다시 듣다니!
아마도 이것 역시 출퇴근할 사무실이 생겼기 때문인 것만 같았다.
그래서 생각한 것은, 당분간 좀 놀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은 첫눈이 내렸다. 창밖을 바라보니 사람보다 강아지가 더 좋아하는 것 같다. 낭만 고양이도 함께.
나는 어쩐지 기분이 이상했다. 뭐 언제는 이상하지 않은 적이 있었겠냐마는.
'소설'에 해당되는 글 198건
1
이곳은 오락실. 닉과 하워드는 치고 박고 싸우는 게임을 같이 하고 있다. 둘이서 같은 편이 되어 악당을 쓰러트리는 게임이 아니라 서로 상대를 때리든 꼬집든 어떻게든 쓰러트려야 끝나는 승부 게임이다. 그런데 이 친구들은 승부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듯 하다. 단 둘이서 어른 남자 둘이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사랑 노래든 재즈든 발라드든 오붓하게 대화를 하면 닭살이 돋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시집 언제가?」
「뭐여? 설마 나 보고 부장님 개그를 하라고? 싫어. 끝까지 안 할꺼야. 내가 답하기를 바라는 건 아니지? 세상 사람들이 다 그 방식의 익살을 구사한다고 해도 나는 언제까지나 고급스러운 농담을 추구할 꺼라구.」
「하긴 꼭 재미나고 흥미진진한 드라마만 나오란 법 있냐! 아 근데 다른 기술 좀 써라. 계속 쨉으로만 날 때리냐? 어? 지겹지도 않냐? 넌 그럴 때 보면 꼭 편집증적 성향이 다분해 보여. 옛날에 학교 다닐 때도...... 아, 우리가 학교를 같이 다니지는 않았구나. 한 방 먹일 수 있었는데, 약점을 놓쳤다. 대신 내 로우킥이나 실컷 맞아라. 팍! 팍! 퍽퍽퍽! 어때? 시원하냐? 그건 그렇고, 너 요즘 글 쓰고 있기는 하냐? 이젠 좀 영화사랑 판권 계약할 만한 거 쓰는 게 어떠냐? 조니 봐봐. 제임스는 엿 먹었고, 너는 뒤통수 맞았잖아. 제대로. 꼭 우리 보란 듯이 어쩜 그리 성대하게 출판회를 여는지! 촌스럽게 말이야. 그거 보면 완전 애야 애. 우리는 토끼고 자기는 뭐 거북이라도 된단 말이야? 나 원 참, 얼척없어서!」
「기분 풀어. 조니도 겉으로만 그러지 속 얘기 들어보면 말이 아니라구. 최근 거 뭐야, 어느 웹서비스 투자했다가 석 장 날렸고, 괜히 맥주 가게 열어서 감당 안 되지, 또 뭔 바람이 불어서 어디 대학 들어갈려고 공부한다더라. 식물학과? 조류학과? 모르겠어 어딘지. 걔랑 술 마시면 항상 하는 말은 그거야. 안 변해. 맨날 똑같아. 뭘 해도 재미가 없대. 언제나 심심하다고. 사는 낙이 없다며 징징거린다니까. 그래도 녀석이야 꿈을 이뤘으니 그걸로 된 거지. 야심이란 말로 대신할 걸 그랬나...(침묵)... 아, 나 뭐 쓰고 있냐고 물어봤지? 어, 내가 뭘 쓰고 있지? 아, 그거. 평생 놀고 먹는 소원에 대한 이야기. 늬 말처럼 생각만 해도 기쁘고, 읽으면 완전 재밌고, 상상하면 코끝이 찡하고, 주위에 수소문하고 막 알려주며 얘기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하고, 누군가에게 선물해주면 뿌듯해서 가슴 설레며 눈물이 핑도는 그런 감동적인 이야기만 꼭 써야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 게다가 신기하고 놀랄만한 이상한 착상은 잘 안 떠올라. 훈훈한 가족애에 대해서도 아직 안 써봤어. 그건 잘 못하겠어. 아내의 성화? 한 번쯤 겪고 넘어가야지. 하긴 은연중에 부모의 승락과 아름다운 로맨스에 관한 할리퀸 문고도 막 쓰고 싶을 때가 있어. 내 삶이 뭐 촉망 받는 작가 인생도 아니고, 밖에 나가도 아무도 날 알아보지 못하는데 잘 된 거지, 뭐. 글로야 애절한 기도를 올리고, 은밀한 사랑을 노래하며, 남부러울 것 없는 열정을 묘사한 후 슥 인생 대역전으로 해피엔딩의 마침표를 찍으면 통장에 알아서 막대한? 조촐한 인세는 들어오고, 나는 따로 현실로 돌아와서 나무랄 데 없는 자유인으로 사는 거, 얼마나 좋아. 누구에게는 실망스러운 현실일 수도 있지만 낙천적인 성격이라면 고개를 예각으로 숙이며 땅을 보고 걷지 않아도 되고, 둔각으로 수증기를 발산하며 한숨 짓고 눈을 지긋이 감지 않아도 된다네. 누가 나를 별 볼 일 없는 남자로 보든 어쩌든, 평론가에게 나는 그냥 먹다 버린 팝콘 같은 존재라며 비난받든 어쩌든, 나는 마음껏 자유롭게 콧대 높은 여자에게 시선을 떨구어도 허황된 얘기로 순진한 여심을 마구 흔들어도 내가 유흥가를 탐문하든 문화유적을 답사하든 난 하나도 거리낄 게 없지 않나? 그저 태평세월이지. 하지만 뭘 해도 재미없는 병! 그게 조니로부터 옮은 거 같아. 아 나 미치겠네 미치겠어...... 그러는 넌 어떻게 살고 있는데?」
「나? 이렇게 오락하고 있잖아, 승부사 기질 돋보이잖아? 왜? 재밌는 여자 이야기라도 해줄까? 난 있잖아, 요즘 동네 독서 모임에 나가. 최근 단골 찻집이 생겼는데, 거기서 동네 아저씨들끼리 모여서 책을 읽어. 말은 한마디도 안 해. 그게 다야. 그래봬도 어디 마야 유적지라도 둘러보고 와야 하나 같은 고민은 모두 말끔히 사라져버린다구. 효과 만점. 그래도 내 삶이 너무 정적인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은 남지. 이제 오락도 할 만큼 했으니 우리 자리 좀 옮기는 게 어떠니? 요 앞에 새로 생긴 맥주집이 있는데, 어때?」
「거기, 사장은 조니는 아니겠지?」
장소를 옮겨 새로운 분위기에서 닉과 하워드는 무엇에 대하여 수다를 나눴을까? 친구끼리 서로 사기 충전시켜주기? 어쩔 수 없이 지켜야 하는 약속의 무지몽매함에 대한 토로? 권태를 훈계하는 것? 모두 아니다. 전부 아니다. 다시 그들은 말이 없어졌다. 우정을 업신여겨서가 아니라 그냥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다. 그래서 그들은 말없이 근엄한 표정으로 연거푸 맥주만 마셔댔고, 그러므로 그분이 오게 됐다. 그리고 그날 아무 일도 없었다. 곱게 헤어졌다. 다음 날 닉은 어제에 대해서 일기를 썼고, 하워드는 일기를 쓰지 않았다. 어른이 일기를 쓰는 것이 뭔가 어색하긴 하지만 그들은, 아 닉은 삶에 작은 변화를 주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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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마크는 핸드폰으로 조니의 소셜 네트워크를 훔쳐봤다. 조니가 어느 멋진 사진과 함께 자기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 어디서나 금방 행복해질 수 있는 사람이라고 글을 올렸다. 마크는 그 포스트에 댓글을 달았다. 어디냐? 조니는 넌 어딘데, 라고 답했다. 댓글로써. 다시 마크가 뭐하냐, 라고 물었다. 그래서 조니는 넌 뭐하냐, 라고 되물었다. 그러길래 마크는 꾹 참고 누구랑 있냐고 글을 달았다. 조니가 뭐라고 했을까? 그거 알아서 뭐 할래? 아니다. 넌 누구랑 있냐, 라고 물었다. 그 다음의 댓글 이어 달기는 대충 흐름이 예상된다. 보고 싶은 사람 없냐, 때리고 싶은 사람 있냐, 뭐 먹고 싶은 거 있냐, 그걸 왜 나한테 물어보냐, 자꾸 따라할래, 내가 언제? 차라리 말을 말자,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그 재킷 어디서 샀냐 에르메스? 뭔 메스?
행복에 겨워 입이 귀에 걸리고, 사랑의 콧노래를 부르며 새와 별과 대화하는 삶은 많은 청춘들이 바라는 몽환 같은 삶이고 노래 가사 같은 인생일지는 몰라도 적어도 그것에 익숙해지면 호사는 평범해진다. 그것이 반복되면 지루하고 심심하다. 사는 게 그것이 전부라면 사람은 새로움을 찾게 되는 법이다. 노력하지 않으면 사랑은 변한다. 감미로운 인생이 어디가 어때서? 달콤함에만 길들여지면 삶은 무미건조해지기 마련이다. 스잔나라는 이름을 가진 동화 속에만 나오는 새를 만나기 위해 연극을 보러 소극장을 찾게 된다. 정상은 근엄하고 재미없다. 일반적인 것은 놀랍지 않다. 평범한 것은 신기할 만한 면모가 없다. 매일 보는 거리의 풍경과 등하교길 마주치는 도시의 사람들, 그 건조한 기억과 소탈한 모습에 대한 생각의 차원을 달리하면 모든 것에서 하나하나 신선한 성미를 발견하며 신기한 의미를 찾아낼 수도 있고 모든 것이 새롭게 보일 것이다? 뻥이다! 가능하기는 하지만 대체로 어려운 일이다.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면 좋겠으나 보통은 비상식적인 계산이고, 몰상식한 낯설게 하기 기법에 불과하다. 백년해로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교훈적이지만 누군가를 훈시할 적에 적절하지 잘 읽힐 이야기를 쓰고자 할 때, 부적절한 주제다. 듣기에도 썩 거북한 주제다. 그렇다. 예상은 빗나간다. 기대는 무너진다. 꿈은 깨진다. 키는 자라다 만다. 위가 아니라 옆으로 커진다. 거울을 보면 한숨이 나온다. 옷장을 열어봐도 입을 만한 옷은 별로 없다. 소설은 안 써진다. 친구는 없다. 사랑은 어렵다. 나는 뭐다식 드라마, 뻔하다. 시험에 떨어진다. 그는 불행했다. 양말은 구멍 났다. 동네에서 돌아다니는 개에게 물렸다. 개에게 물리면 아프다. 마음이 훨씬 아프다. 통장 잔고 바닥났다. 뭘 해도 안 된다. 꼭 이런 거 보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어디서 읽었다. 또 항상 심심하다. 언제나 따분하다. 뭐 재미난 일 없을까, 없다. 뭘 해도 재미없다. 이젠 기대도 안 한다. 이런 글만 찾아 읽는 사람이 있다. 아마 그럴 것이다. 자, 몇 시 방향에 미남이 있다가 아니라 뭔가 서늘하고 자애로운 책 잡힐 만한 트집거리를 포착해보자. 마치 애청자 엽서 같은 사연 말이다. 단, 두둔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거. 특히 아둔한 거. 가까스로 최소한의 연기력은 갖춘 거. 이거 봐 남자 편들고 있어, 그런 거 말고. 여기 있다. 우주에서 지구로 파견됐나 땅에서 솟았나 모르겠지만. <내 지난 인연에 대해서 모두 좋았고, 늘 그리움만 남았다고? 그래서 어쩐다고?> 새빨간 거짓말이다. 파운데이션이 바닥났다. 미친 거다. 미쳐도 단단히 미쳤다. 비정상이다. 완전 비정상이다. 말만 많은 거다. 동네 반상회나 여고 반창회에 나가서 물어보는 게 낫다. 늬 남편 뭐하냐고. 언제라도 손쉽게 손바닥 뒤집힐 수 있는 정치적 성격의 발언이다. 어디서 배웠어 아니면 원래 그런 건가, 나 원 참! 상태, 심각하다. 완전. 심성, 따질 필요도 없다. 적어도 지금은. 그리고 그분이 여자라면 그건 신이다. 여신! 하지만 여신은 여신인데 못생겼다. 백퍼센트. 엄청 재수없다. 그런데 신도 아니고 사람 여자다? 촌년이다. 남자다? 촌닭이다. 그건 가식도 예의도 뭣도 아니다. 완전 짜증난다. 아니, 그건 가식의 끝이다. 사유가 아닌 수다다. (깊이 생각하고 쓰는) 글이 아니라 (쉽게 스스럼없이 표출하는) 말이다. 내일까지 기다릴 것도 없다. 당장 오후에 생각 바뀐다. 추궁받아도 빠져나가는 건 일도 아니다. 누워서 떡 먹기보다 쉽다. 그때 나는 뭐를 좋아했고, 나는 어떤 생각을 했으며, 뭐는 그랬다 라고 하면 땡이다. 딩~동! 왜냐하면 지금의 나와 어제의 나가 어떻게 다르냐고 우기는 것은 철없는 사랑을 하는 것보다 백 번 못하니까. 사랑도 변하고 선망은 동기고 감수성도 팔며 욕망은 자유롭고 행복도 사는 세상인데 대문 밖에 내놓는 안 쓰는 재활용품, 싫증난 타자기, 퇴역하는 생활용품, 그걸 모두 알아서 가져가주고 치워주고 소비까지 하는데 그게 뭐가 문제냐, 자본은 월간지고 명망은 배보다 배꼽이 더 큰 보너스지 않냐, 그게 규칙이고 질서지 않냐 또 그 룰을 내가 만들었냐, 그럼 그걸 내놓거나 버리거나 광고하며 공짜로 퍼트리거나 중고로 적당히 헐값에 팔지 어떡하냐고 매일 품에 안고 잠이라도 자란 말이냐, 나는 그게 이상하다는 사람은 도대체 이해를 못하겠다? 틀린 논리는 아니다. 백수식 푸념보다 무능력한 우유부단함보다 어쩌면 더 나을 수도 있다. 성깔없이 착하기만 하면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기 쉬운 세상이다. 빗대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성애의 묘사 그 전문가는 뭐니 뭐니 해도 에로 장르 영화감독이다. 간단히 비유했을 때 로렌스의 사랑에 빠진 여인들이 만약─멜로지만 편의상─에로라면 과하고 심하고 불필요한 외설은 정통이랄까 본격이랄까 어떤 전위적이든 전형적이든 또는 모범적이든 그건 에로가 아니다. 그럼 뭐냐? 그냥 남자의 방식이다. 살면서 단 한 번도 친구와 사랑에 대하여 대화를 나눠본 적 없는. 있다고 해도 그래 봐야 시시한 수준. 그 어느 중요한 순간에 나 사랑해 라는 물음을 듣고 멈칫 하며 거짓말해야 하나 말하야 하나 선뜻 지혜롭게 잘 넘어가지 못하는. 부러 철들지 않는 어떤 권위자가 봤을 때 그건 철없는 청년의 솔직한 행동이다. 남자 대 남자까지 그래야만 하는가는 잘 모르겠으나. 겉은 어른이지만 그건 애송이다. 이해력 참 넓은. 그처럼 간편하고 쉽고 잘 변할 것 같은 글의 옷을 입은 말은 소비되기에 적합하다. 잘 읽힌다. 인생을 논하는 이해력이 역시 좀처럼 부족한 어느 꺾인 풍운아가 봤을 땐 뭔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지만. 왜냐하면 외우고 싶은 밑줄과 기억하고 싶은 명대사와는 달리 자신의 삶은 바쁘고, 인생은 삐걱거리고, 나는 잘 살고 있나 의심스러울만큼 생활도 세상도 복잡하고 혼란스러우며 일상이 한없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지루하게. 재미없게. 생각 자체라는 것, 왜 그런가라는 이유를 젊어서는 잘 모른다. 헷갈린다. 그런 환경에 둘러쌓인 채 어른이 되면 콜라와 클럽만 찾고 유행만 쫓으며 고전은 멀리하는 삶을 살게 된다. 어쩌다 동물농장에 관한 해박한 지식을 터득하고, 운 좋게 거물이 되어 놀라운 철학과 천문학적인 돈 몇 푼을 떡 주무르듯 하더라도, 제아무리 그 구조를 통달하더라도 신통한 변신술은 절대 익힐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수영은 잘 할 수 있다. 둥둥, 배영만. 그 다재다능함 때문에 약을 팔아도 될 텐데 그 흔한 예술을 고집하는 경우도 있다. 폼 나니까. 그래서 잘 팔리는 상업은 분위기를 읽고 시류를 예견하며 풍조를 이끌지언정 학문을 내포하기보다는 겉면에 내세우는 것을 선호하는 법이다. 알거나 모르거나, 속이거나 속거나, 보여주거나 보거나, 사랑하거나 사랑받거나, 능동사거나 피동사거나, 누가 뭐래도 첫째는 이거다. 일단 상대의 마음을 꼬시고 시선을 홀리고 청각을 설득하고 보기 좋은 광고 문구를 감미로운 목소리로 제시하여 당신의 느낌을 내쪽으로 끌어다놓는, 바로 그것이 첫째다. 이 세상에 마음처럼 간사한 건 없으니까. 일단 상품을 팔고 이름을 알리는 게 첫째다. 생태계는 원래 치열한 법이다. 사랑? 잘 아시지 않는가. 유감스러워도 어쩔 수 없다. 인간사가 원래 그렇다. 그런 다음 제2단계에 돌입하던가 건너뛰고 본게임을 시작하던가 하는 것이지 거기서 실패하면 죽도 밥도 안 된다. 그러나 그건 절대로 고수의 방법이 아니다. 따라서 쉽게 변할 것 같은 큰소리 떵~떵거리는 듯한 말이나 글은 꿈을 파는 게 아니라 장난 같은 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대중적인 브랜드 가치 때문에 상대적으로 고급스러운 당신의 취향은 한껏 존중받고, 그러므로 당신의 격조 높은 안목 그 고귀한 철옹성은 안정적으로 한층 더 공고해지며, 더불어 그 떨리는 희소성을 언제까지라도 유지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틀을 바꿔서, 그 유동층의 표가 쉽게 얻어진다는 것은 전체적인 평균의 의미로 봤을 때에는 손해라는 답이 나오는 게 문제다. 따르릉 따르릉 팔랑팔랑~! 윙크? 퍽, 퍽퍽!
놀기의 명수는 어린이다. 부동의 1등이다. 어른은 2인자다. 항상. 다른 말로는 뭐랄까 발군의 노력으로 사랑받는 더도 덜도 말고 중간보스? 그리고 어른의 강적은 권태다. 두 번째는 타성이다. 세 번째가 의타심 아니 이타적 성향이라고 미리 예측하지는 말자. 따라서 정리하자면 놀면 금새 싫증난다? 놀아도 놀아도 계속 놀고 싶다? 그렇다. 어떤 사람은 겸손이 힘들다하고, 누군가는 자기를 쫓아다니는 남자의 구애만을 선천적으로 선호하며 적극 절실하고 마냥 좋아서 여자는 공주이기를 바랬으나 나중 남자가 돌쇠로 판명났다는 둥 어쩐다는 둥 하지만 당신은 만족이 힘들다. 왜, 불만족이 친구 이름이라도 되나? 일일 드라마 제목이 뭐, 사랑은 고객만족센터? 이쯤 하면 예술도 꼭 장난 같다. 예술도 뻔트다. 왜 아니란 말인가! 그렇다.
그렇다. 당신은 백조해라. 그러나 나는 어젯밤에 악몽을 꿨다. 사람들은 솔직하지 않다. 어른들은 거짓말쟁이다. 툭하면 거짓말이고, 경각심을 풀면 또 구라고, 설마하면 뻥이다. 허구라면 흥미로울 것이고, 싸구려 호텔 바에서 술 마시고 노닥거리면서 거짓을 말하는 거야 그렇다쳐도 진중한 화술 그 신비로운 언변의 소유자의 참말, 답답하고 답답하고 답답한 일이다. 그걸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조차 서글픈 일이라고 아마 몇 천 년 전에 많이들 예견하고 예언했으며 적중했다. 지금 시점 이후로도 똑같다. 참과 거짓, 잘 분간도 안 된다. 하물며 민초의 삶 그 세부적인 여흥으로 들어가자면 뻥을 빼면 퍽이나 심심하고, 과장미를 제외하면 통 재미가 없다. 뭔가 인간의 삶은 무척 혼돈스러운 듯 하다. 절대 뒤돌아보지 말라네 어쩌라네 그런 명대사가 그냥 유명해진 게 아니다. 그런데 아직도 연필은 어린이가 쓰고, 어른은 볼펜을 사용한다. 그건 왜 바뀌었을까? 원래 그랬을까? 모르겠다. 소설쓰기 첫 페이지나 사랑의 계약서를 그냥 확 찢어버리기 위해서? 쫙~쫙? 뭐야 그게! 어른의 선생님은 어린이라면서 어른들은 오늘도 시시각각 바쁘다. 열심히 거짓말을 해야 하니까. 아무튼 어른들은 바보다. 어린이는 천재다. 그 중간은 청소년일까, 것도 역시 모르겠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얘기다. 그리고 그분의 종적은 묘연하다. 단서도 없다. 진공청소기는 고장났다. 인형뽑기 기계는 늘 실패감만 안겨준다. 돈 먹는 기계다. 간혹 정말 드물게 웃음을 안겨주긴 하지만. 괜히 수 초 동안 사람을 들었다 놨다, 쥐락펴락한다. 대관람차를 같이 탈 사람이 없다. 영화는 혼자 본지 오래 됐다. 엇그제 산 것 같은데 책상 위에 모셔진 1년치 달력 12장이 어느새 다 넘어가고 이젠 딱 1장 남았다. 감수성은 바닥났다. 감성도 메말랐다. 가슴이 벅차오르는 기분이 무엇인지 이미 잊어버린지 꽤 됐다. 어떤 예감을 기다린다. 뭔가 애달픈 감정을. 그건 아마 핸드폰 액정이 깨져서 수리비가 많이 나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런 시시콜콜한 의식의 흐름 그 실속없는 기록은 모두 그 때문이다. 소설이 해킹당했기 때문이다. 어느 해커 집단에 의해 거리의 현금인출기에서 마구 돈이 쏟아져나온 사례가 있다는데 그걸 직접 봤다면 가사는 몰라도 어떤 노래를 흥얼거려야 했을 것이다. 또 차의 뚜껑을 열고 질주하면서 신나는 음악을 틀고 정처없이 어딘가로 떠나면서 돈을 하늘에 뿌릴 계획을 세웠던 사람은 기계가 대신 그 일을 해줬기 때문에 조금은 김샜을 것이다. 구식 장난꾸러기로 묻힌 거다. 일도 벌여보지 못하고. 어쨌든 마크의 일상도, 조니의 소셜 네트워크도 재미없다.
3
어제 제임스는 알렉스가 감독을 맡았던 영화 시사회에 다녀왔다. 케빈이 음악과 마케팅을 담당했고, 나머지 기획과 각본과 연출등 어지간한 작업은 모두 알렉스가 혼자 맡았는데 문제는 그 영화가 제임스의 마음에 쏙, 아주 쏘~옥 들었다는 것이다. 최근 조니에 이어서 친구 가운데 진정한 예술가가 또 한 명 탄생하신 것이다. 그처럼 물밑에서만 활동하며 작품성을 따지고 나름 까다롭게 만 명 가운데 한 명에 해당하는 천재를 우연히 만나는 것처럼 그렇게 드문드문 어렵게 작품을 출시하는 당사자는 낙향하여 한적하게 살아가고, 친구들은 도시에서 어엿한 유명인이자 만능 연예인으로 잘 나가고 있었다. 그 시사회에 다른 친구들은 모두 각자 일정과 행사가 있어서 참석하지 못했다. 그래서 제임스는 자기도 이런 근사한 잔치를 열어야 하나, 그러려면 괜찮은 장편을 써야 하나, 그래야지 주변에 사람이 모이고 돈도 모이고 인기도 덩달아 들썩거릴까 같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건 그거였고, 그는 자기 생활에 전념하면 그만이었다. 따라서 그는 오늘부터 무슨 창작 아카데미 그런 교습소를 찾아내서 그곳에 나가보기로 했다.
그런데 그곳은 시골에 위치한 대학교에서 주최한 방학 계절 학기와 비슷한 강습이었다. 그리고 그곳에 등장한 강사는 삼류작가였고, 수강생은 제임스를 제외한 전원이 문예창작, 조각, 작곡, 무용, 평론, 서양화등을 전공으로 하는 예술대 학부생들이었다. 또 그들은 모두 친구들이었다. 우리 우정 영원히, 같은 장난스런 말을 스스럼없이 주고 받는. 처음에는 그 친구들과 제임스가 바로 아무런 개연성 없이 꼭 사이코드라마처럼 그냥 친해진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또 한쪽의 일방적인 끈질긴 구애 같은 우정의 요청과도 비슷한 답례를 바라지 않는 지속적인 호의가 나중의 친교를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도 아니었다. 뭐 초반에는 자연스럽게 눈치만 보다가 들릴 듯 말 듯 상대방 얘기를 하는 것도 같은 분위기로 시작하여 이제는 더 보고만 있을 수 없겠다는 답답함 때문인지 제임스가 먼저 그녀들에게 물어보았다.
「왜... 내가 뭐 잘못한 거 있니으이...있어요? 왜... 자꾸 날 쳐다보는지... 그 이유를 아무리 생각해도 난 잘 모르겠어요. 혹시 그걸 내가 알아도 괜찮다면 가르쳐주지 않을래...요?」
「아저씨 여기 어떻게 들어왔어요?」
「아저씨? 아저씨는, 아저씨가 여기 어떻게 들어오긴 뭘 어떻게 들어와? 글쓰기, 작법, 창작론 그런 거 가르쳐준다길래 찾아왔는데. 왜 뭐가 잘못됐니? 그게 아니면 뭐, 나 문 열고 들어왔습니다가 정답인가?」
「아니 뭐, 꼭 그럴 거 까진 없는데... 아저씨도 아시다시피, 혹시 모르실 수도 있지만 여긴 여자대학교거든요. 그래서 우리들에겐 뭔가 남자가 낯설어서 설마 잘못 찾아오신 것은 아닐까 궁금해서, 그래서 여쭤본 거에요.」
「아, 그래? 어, 음 난 처음 알았는데. 여자대학교? 여자대학교라... 오, 그랬구나! 아하! 그랬어 그랬어. 아아! 뭔가 느낌이 뭔가 느낌이, 올려다가 말았다. (그는 이제 글을 읽는 듯한 교수님 화법을 대놓고 구사하기 시작한다) 그럼 어떡하지? 내가 계속 강의를 듣는데 무엇이, 뭔가가 크게 문제가 될까? 아니면 아저씨가 마술이라도 부려서 하늘에서 남자들이 내려오게 만들어줄까?」
그 말을 들었던 그녀들은 다 함께 꺄르륵 꺄르륵 한꺼번에 웃었다. 그렇게 그들은 서로 알게 되었고, 강의가 끝난 후 같이 공부를 핑계로 그윽한 커피향을 맡으러 또 고뇌하며 술잔을 기울이기 위하여 여러 곳을 전전했고, 금방 친해졌다. 나중 제임스는 그녀들을 이끌고 도시까지 걷기 여행을 떠날까, 저번 하숙집에서 시도했던 그걸 제안해볼까 하다가 그냥 괜한 망신을 사서 당하기 전에 잘 참았다.
그녀들은 주로 대도시에 집이 있고, 대개 부자집 딸이었고, 공부는 그만그만했으니까 바로 여기 공기 좋고 경치 좋은 곳으로 떠나온 것이다. 그리고 특이한 점은 그녀들은 모두 이름이, 본명이 꼭 로맨스 소설에 나오는 명사 같았다. 숙녀들의 대화에 단골 손님으로 나오는 좀처럼 애매한 그런 단어가 이름이라는 것이 특이점이라면 특이점이었다. 즉 낭만, 신비, 요정, 장미, 환상, 미래, 키스... 막 이런 말이 그녀들의 이름이었다. 그래서 그는 최대한 그녀들에게 이름을 부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게다가 자기는 아무리 생각해도 정말 웃긴 일인데 그녀들은 하나도 우습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참 이상한 일도 다 있다고 그냥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면서 한 번 두 번 웃음을 참으니까 또 그것에 적응이 되었다.
그로부터 우리는(그들은)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맨날 같이 놀 궁리만 하면서 실재 같이 어울려 놀러다녔다. 또 그는 이미 과-점퍼를 하나 얻어서 매일 입고 다녔다.
4
어느 날 그녀들 가운데 누군가가 고양이를 강의실에 데려왔다. 그러면서 오늘은 요정이 도시에 일이 있어서 강의에 출석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는 꼭 왠지 그 고양이가 혹시 요정이 아닐까 그런 엉뚱한 공상을 해봤다. 그날 강의 주제는 시점이었다. 1인칭이 어쩌고 3인칭이 어떻다고 교수님이 땀을 뻘뻘 흘리시며 열강을 하시는데 학생들은 모두 각자 할일이, 매우 중요한 다른 과업이 있는 듯 했다. 유일한 청일점 제임스는 공책에 뭔가를 쓰고 있었다. 탐스럽다 탐스럽다, 간직하다 간직하다, 수줍어하다 수줍어하다, 아름답다 아름답다, 시집가다 시집가다, 음... 그리고 심심하다 심심하다. 여학생 사랑은 뒤에서 막 도시락을 먹고, 여학생 느낌은 하늘을 나는 집을 소재로 하는 그림을 그리고, 여학생 엘레강스는 강의실 제일 뒷자리에서 머리카락을 쥐어 뜯으면서 베토벤처럼 오선지에 미친듯이 악흥의 순간을 옮기는 정도까지는 이르지 않았지만 악상을 악보에 옮기고 있었다. 다행히 교수님 뚜껑이 열리지 않도록 만들만큼 녀석들 인성이 삐툴어지지는 않았다는 얘기였다. 녀석들이 뭔 뇌물을 줬는지 어떻게 구워삶았는지 뭔가 방법을 쓴 거 같았다.
지루한 강의가 끝났다. 여대생 행복이 캔 커피를 교수님께 선사했다. 교수님은 의례적으로 고맙다고 했고, 그는 바쁜 일정 때문에 급히 떠났다. 어쩔 수 없이 제임스는 다시 청일점이 되었다. 그가 의도한 일은 아니었으나 사실이 그랬다. 그는 이런 생각을 한다. 나는 그냥 어떡하다 이런 꽃밭에서 단 한 마리 꿀벌로서 작품 구상을 하고 있지만 이보다 더 뭐한 인간들은 꼭 있다고. 뭐가 꼭 있다는 말일까? 그것은 곧 처음부터 그럴 의도를 품고, 꿈을 키우고, 열심히 노력해서 나중 어른이 되어 그런 환경에 둘러싸인 분들을 뜻할 것이다. 별 어설픈 밑도 끝도 없는 상상은 그만 생략하고, 서사의 진행에 대하여 더욱 심도 깊게 관찰해보기로 한다.
그들 일행은 여대생 천사의 작업실로 이동했다. 천사는 유화를 전공한다. 그녀의 부모는 포춘지 선정 몇 대 부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그녀는 일부러 그와 같은 풍족함에서 멀리 도망치고 싶어서인지 아니면 유독 자매들 가운데 미운 오리 새끼라서 학업에 대한 재능만 약간 가녀렸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여기까지 애써 행차하여 그림 공부에 매진하고 있었다. 소설 창작 수업은 취미였다. 그녀의 작업실은 웬만한 미술관 뺨칠 정도로 매우 세련된 디자인을 바탕으로 무척 섬세한 건축술로 만들어진 듯 했다. 그들이 거기까지 어떻게 이동했을까? 컬러 TV가 막 부흥하던 당시에 유행했던 영화처럼 랄라랄라 랄라랄라 하면서 오늘은 뭐할까 막 그러면서 그들은 그곳으로 놀러간 것이다. 여대생 연애가 묻는다.
「아저씨는 꿈이 뭐였어요? 설마 무명시인? 막 무명 블로그 같은 거 운영하고 집에서 혼자 있으면서 하녀 복장 입어보고 이상한 거 보시는 거 아니에요? 어머, 진짜 그러면 어떡하지?」
아저씨만 쓴 웃음을 지었고 다른 친구들은 모두 함박웃음으로 약속이나 한듯이 함께 즐거워했다. 가짜 웃음이 절실히 필요한 순간이었다.
「아저씨, 아니 오빠! 우리한테 최고로 멋진 남자친구를 각자 소개시켜주실 수 있어요, 없어요? 내가 봤을 때 어쩜 잘 하면 가능할 것도 같은데... 어떻게 절실함을 끌어올리지? 만약 그게 가능하다면 우리는 뭘 해드려야 할까? 꼭 그렇게 하나 주고 하나 받아야 하나? 너무 삭막한 거 같지 않니? 아, 생각났다. 아저씨 꿈에 그거도 들어 있었죠? 닭다리 파는 거! 닭다리가 아니면 빵을 만든다거나 곡을 쓴다거나 그런 거. 어지간한 상업과 예술, 어른들의 소망으로 하나씩은 자리잡고 있을 테니까 말이야. 그건 그렇고 어떻게 남편 노릇은 잘 하세요? 어머나! 혹시 노-총-각? 푸하하하하하하 푸하하하하하하. 아, 그게 나쁘다거나 우습다는 게 아니구요. 그냥 그렇다구요. 왜요? 우리가 막 술집 여자처럼 보인다거나 그런 건 아니죠? 유흥업과 관련된다, 가 좀 꺼림직하다는 빌미를 제공하는 말인가요? 그래도 솔직히 말하자면 남자들의 환상은 물질주의를 넘어서는 거 아닌가요? 아, 맞다. 제가 뭔 말 하는지 잘 못 알아들으시죠? 딱 정신 없죠? 한낱 아줌마들 수다 같죠? 막 피곤하시죠? 그렇죠? 거리낌없이 말해보세요. 졸지에 한 대 맞을지도 모른다구요. 왜요? 무모한 장난 같아요? 그래요. 맞아요. 장난. 낙엽 같은 거. 흔한 고백이나 가벼운 농담이랑 똑같죠. 뭐가 다르겠어요? 네, 그럼요.」
「오빠, 혹시 여기서 키스하고 싶은 숙녀 있어요?」 얘가 정말 못하는 말이 없네...!
그러나 그가 학교에 오가면서 기쁘고 들뜬 기분만 연속된 것은 아니었다. 그가 집에서 학교까지 갈려면 거쳐 가야 할 길은 딱 하나였다. 그게 아니라면 볼보 웨건이 하늘을 날아가든가 또는 금수강산 구경을 다 하면서 엄청 멀리 돌아가야만 했다. 즉 집과 학교의 중간에 도로에서 뭔 액션-스릴러 영화에 나오는 검문소도 아니고 뭔 돈을 내란 것이었다. 도로를 그분들이 만들지는 않았으나 알고 보니 그 땅은 자기들 종교 단체의 땅이란 것이다. 행정부도 이미 고개를 돌렸고, 사법부도 옛날에 손 놨다. 시민의 힘으로 부당하다는 판결을 살짝 얻어냈으나 보란 듯이 나는 놈 위엔 하는 놈 있다고 버티니, 상황은 두 손 두 발 들고 다툼과 짜증은 끓이지 않는다고 한다. 근처 멀리 지나가도 오명이 전해진다나 뭐라나. 그것은 명목은 문화재 관람료인데 말만 그랬지 실은 통행료였다. 워렌 버핏이 말한 바로 그 최고의 주식에 해당하는 사업, 옛날 말로 산이면 산적 바다면 해적! 올바른 견해와 올바른 행실을 전하는 곳. 건강은 최상의 이익, 만족은 최상의 재산, 신뢰는 최상의 인연이다 그러나 마음의 평안보다 더 행복한 것은 없다라나? 좋다. 다 훌륭하고 아주 숭고하다. 그런데 표면적으로야 그렇게 좋고 옳은 진리를 설파하지만 숲 속에 들어가보면 딴청을 피우며 그분들은 다르게 사는 게 아닌가 의문이 든다. 그건 분명 역할이 유익하다는 종교라는 상표의 교리와 정반대되는 행태다. 그것이 뭐 항간의 통속적인 속담이라도 된단 말인가, 마을에 누군가가 새로 오면 동네 사람들 사랑니가 남아나지 않는다는. 그 바닥이라고 높은 자리든 뭐든 정치성이 없을 리야 있나, 타 분야와 이해 관계나 뭔가 애매함이 없을 리가 없다. 그러나 속세와 꼭 이렇게 얽혀야 하나, 기분이 결코 좋을 리가 없다. 이처럼 잠깐 지나가는 사람들, 근처에 사는 사람들, 세상에 전해지는 이야기등 얼굴을 찌풀릴만한 일이 인간계에는 비일비재하다. 참 아름다운 세상이다. 하지만 나중 세대가 지금보다 투정의 격이 높고, 더 낫고, 더 바른 무언가를 지향하기를 바란다면 이런 그늘 때문에 지금 불편을 겪는 게 낫다. 적절한 균형과 장기적 관점을 고려해서. 그 측면을 자꾸 연기하고, 그 소란스러움을 잠재우고 적당히 넘어갈려고만 하는 것을 (그것의 참된 진면목을 영위하지 못하는 썩 납득이 어려운 미온적인 뜻의) 보수라는 달갑지 않은 단어로 불러야만 한다면 그건 뭔가 크게 잘못된 거다. 선험자 집단이 몇 천년의 기초로 몇 백년 걸려 적지 않은 대가를 치러서 안정화시킨 체계를 그 몇 백년에서 0을 하나 떼고 바닥부터 시작하여 모방한다면 나중 크고 작은 뒤탈이 없을 수 없다. 그건 필수다. 선구자들이 뭔 바보-천치-둔재라서 은행에서 계좌 하나 만드는 데 일주일씩 걸리고 어쩌고 다 괜히 그러는 게 아니다. 토끼와 거북이 우화가 괜히 나왔겠나. 과거 세대야 좋든 싫든 격동을 겪어서 많은 변화를 체감했을 테지만 현재 세대는 지금 태어나고, 지금 시작해서, 지금 많은 것을 개선해나가며 다시 새로운 시작을 할 수 밖에 없다. 어떤 어떤 분야는 현업이지만 나중을 보고 일해야 한다는 명백한 이유다. 어쩌다 의욕이 지나처서 매번 바꾼 거 또 바꾸고 항상 그 바꿈만 되풀이하는 부작용도 있지만 말이다. 이미 출발부터 어느 뒷탈과 이상한 관례와 불미스러운 개별적 불만족과 어쩌면 선뜻 좋아하기에는 상당히 까다로운 기질과 직면하여 평생을 살아가야 한다는 운명을 떠안고 시작하게 된다. 여긴 정말 왜 이러는 것일까 지역과 부모는 골라서 태어날 수 없긴 하지만 말이야, 하면서. 그러나 사람 사는 데는 어디든 천국은 없다. 어디를 가나 차이는 있어도 문제는 다 있다. 어떤 곳은 모두 좋을 것 같지만 또 거긴 거기대로 일단 단어의 총량이 적고, 약간 단조롭거나 자칫 심심할 수도 있으며, 그런 뭔가가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 그래야 맞다. 그래야 옳다. 몰아주는 게 자연스럽고, 크게 생각하는 게 일반적이며, 대망이 노력과 절반의 운에 따라 이루어지는 곳이라면 대체로 불균형이 큰 만큼 그에 따른 드라마틱함이랄까 로또 1등을 위한 나머지 흔한 꽝은 있기 마련이다. 대체 왜 그 무언가는 그토록 더디게 변화하는지! 허나 괜찮다, 괜찮아. 왜곡된 시대상이야 일장일단이 있고, 그 어디든지 그런 불합리한 시기는 반드시 있었다. 그러나 애매함은 물론 애석함과 더불어 불편하지 않기를 바라는 어떤 업적과 함께 무수한 피와 슬픔과 설움과 장대같은 세월의 빗물로 이루어진 불분명한 뭔가가 남지만 그것에 대한 기준조차 조금씩 다르다. 안쪽의 옛 시각과 현재의 관점과 그리고 후세의 평까지 갈 필요도 없는 바깥의 학문적 접근에 근거를 둔 객관적인 사실성과 직관적인 눈길로. 선크림으로 자외선이나 막지 양심을 포장하겠나 더 뭘 어쩌겠나! 남자친구나 남편은 슈퍼맨일까? 아니다. 그러면 동물농장의 대표는 신일까? 아니기를! 뭐 전대표? 오, 세상에나! 사실과 지식과 구단이 성장하는 과정으로서의 대하드라마로 그냥 받아들이면 된다. 침묵할까, 아니다. 그냥 묵념하자. 사람이 누구를 좋아하는데는 이유가 있겠으나 유행은 사춘기의 열병 같은 것. 지금과 너무 다른 세상의 시대적 소명은 상사병과 정반대의 것. 돈의 자본의 호통이 들리지 않냐고, <내가 최고야> 라고? 묻지맙시다! 때때로 들리면 흘립시다! 환경이든 표준이든 영 아니더라도 절대 포기하지는 말자. 더군다나 민중은 개나 소나 돼지가 아니었으면! 때로는 시적으로 이곳에 소풍왔다고 한 번쯤 생각해보기를! 대신 될 수 있으면 연봉은 많이, 행복은 높았으면 좋겠다. 지금 적게 받고 나중 크게 될 수 있다면 그걸 감안해야 할 테고. 보통 사람들이 바라는 것은 쉽게 말해 이런 게 아닐까? 보수나 정치, 진보, 독단적, 가난, 빈곤, 그래 (반어적으로 쓰이는) 행복이라는 단어를 듣고 읽어도 썩 언찮치 않은 그런 세상에서 사는 것! 통계와 그래프와 객관성과 비교, (은유?) 비유로 따지면 긴 말 필요없지만 말이다. 그러나 머머 아닐까, 에 대한 합리적인 해답은 일단 아니오다. 우선 최소 1표는 확보됐다. 왜냐하면 적절한 비관성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하니까. 적당한 부정적 감정은 과거를 되짚어보고, 현재를 점검하며, 향후 개선의 실마리를 제공한다고 인문-교양서에서는 말한다. 찡그려진다고 무조건 피하지 말고, 모르겠다고 정말 중요한 걸 장난으로 대체하지 말 것이며, 오뚜기처럼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자.
어쨌거나 저쨌거나 꼬박 꼬박 왠지 모르게 그 때문에 기분이 울적해서 그는 과-점퍼를 입고 콧노래를 부르다가 꼭 학교에 가는 동안 한 번, 또 집으로 오는 동안 한 번 그리고 날마다, 근사한 가곡은 꼭 어김없이 단조로 바꼈다.
5
어느 날 문득 그들은 수업이 끝나고 추운 날씨인데도 불구하고 교정 잔디밭에 앉아 뭔가 정취가 느껴지는 듯 한 장면을 연출할려다가 너무 바람이 차가워서 그랬는지 음대생 미모의 작업실로 이동하여 함께 차를 마시기로 했다. 곧 딱 도착했다. 간판은 없었다. 대신 떡하니 찢겨진 공책 한 장이 문 옆에 붙여져 있었다. 거기에는 이렇게 씌여 있었다. 미모의 첼로 연습실.
「오빠 이거 좀 읽어보실래요? 제가 쓴 소설 습작 초고에요. 어떤가요?」
여대생 사라방드가 건넨 공책에는 이런 글이 씌여 있었다. 행복으로 가고자 하는 어떤 표상이다. 음, 어디로 가고자 한다고?
「이거 니체가 쓴 거 아니니?」
「오, 어떻게 아셨어요?」 웬만한 어른이라면, 소싯적 책 좀 읽었거나 소양의 근처에 잠시 머물렀으면 말재간만으로 가능한 짐작이다. 책 제목만 두루두루 아는 것만 가지고도 어느 정도 지성의 양이랄까 뭔가가 예측 가능한 것이다.
곧이어 지그는 자기 글도 읽어보라면서 두툼한 다이어리를 건넨다.
「이거 네가 쓴 거 맞니? 이건, 음, 아무리 봐도 여자가 쓴 게 아닌데. 혹시 남자친구가 쓴 거 아니냐? 그렇지?」
「오! 대박! 와!」
곧바로 친구들 가운데 어느 누군가가 제임스에게 어디 사냐고 물어봤다. 그래서 그는 V지구에 산다고 답했다.
「와, 나도 그 근처 사는데!」
그렇게 말했던 친구는 딱 그 정도 얼떨결의 다가섬을 선호하는 듯 했다. 한 숙녀가 그런 말을 쉽게 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단, 습관적으로 아무 말이나 누구에게나 막 베푸는 다소곳함으로 유명하지 않다면. 그게 뭘 뜻하는지, 낯설거나 애써 모른 채 하기도 하지만. 그리고 잠시 후 다른 친구가 자기 글은 어떠냐고 단편 초안이라면서 공책 한 권을 그에게 건넨다. 그는 그 글을 잠시 읽어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와, 얘 자긍심 대단한데. 완전 인생을 만끽하며 사는데. 얘는 자기 생각이 왕이고 임금이야. 거의 신격이라구. 이거 남자친구랑 같이 쓴 거지? 그 친구 피곤한 스타일인데. 엄청. 이미 다음 행보의 기별이 있어서 확인할려고 했던 거면 깜짝 놀래켜줄 참고할 만한 귀뜸은 자제하고 싶네. 아저씨는 얼음 같은 냉정함이 부족하니까 말이야.」
미술학도인 영화는 자기가 그렸다면서 그림 하나를 보여줬다. 그림의 바탕화면은 인문서적의 한 페이지였고, 그 위에 꽤 괜찮은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그런데 왠지 그것도 1900년 이전의 누구 더하기 1900년 이후의 누구와 누구를 합해서 그려놓은 듯 했다. 그래서 그냥 그는 훌륭하다는 몸짓으로 답을 대신했다. 그러다 여대생 파랑새는 자기 관상을 봐달라고 했다.
「음 그게 내 전공은 아니지만 뭐 숙녀에게서 묘한 아름다움이 느껴지니까 지금은 무언가 피치 못할 사정이란 게 있는 듯 하니까 미인의 걱정을 일소시키고, 활기찬 미래를 맞이하기 위한, 아...... 미래 얘 말고 말이야. 아무튼 대충만 봐도 너 그 생각 해보지 않았니? 입술선이 좀 더 확실했으면 좋겠다거나 음 가슴이 더 커지려면 어떡해야 하는가 같은 생각. 농담이고, 일전에 애절한 사랑에 한번 아파하긴 했는데 음, 잘 이겨냈어. 훌륭해. 립스틱은 그거 안 어울려. 바꿔. 당장. 그리고 여행 좋아하지? 가보고 싶은데 많지? 하고 싶은 것도? 미래가 보이는데. 열망이 언젠가 실현될 거 같아. 얘, 넌 관상 볼 필요도 없겠다. 이미 소망이 나랑 딱 똑같네. 아무 걱정 하지도마. 알았어?」
얼마지나지 않아 숙녀 회전목마양께서 좀 더 직접적으로 핸드폰으로 자신의 소셜 네트워크를 보여주면서 뭐가 문제인지 진단해달라고 한다.
「이거 이거 이거, 이런 거 빼야지. 저는 촌년입니다 라고 광고하는 거야. 또 이거 뭐야 이거. 우리 회전목마 아가씨가 도스도예프스키니? 막 길다란 글, 필요할 때가 있긴 한데 적절하더라도 그게 말이 아니고 글이면 뒷목을 잡거나 수증기를 부른단 말이야. 말이라도 정신이 혼미해질테고. 뭐 어쨌든 둘 중 하나네. 아무튼 그러다가 사리가 생길 수도 있다고. 아, 사진 더럽게 못 찍네. 본판은 정말 젊고 아름다운데 사진을 못찍어. 정면 사진, 똑같은 자화상, 관광객 사진 그런 건 혼자만 봐. 아니면 적게 올려. 타인 보라고 올려놓지 말란 말이야. 훈훈한 남자가 괴로워하기에 딱 좋은 사진이니까. 그리고 책이나 특정 글이나 그런 거 찍은 사진도 올려야지. 왜? 넌 지성인이니까! 한마디로 균형. 뭐뭐 하고 싶다, 뭘 좋아한다, 전에 어땠다 같은 초딩식 표현은 줄이고......」
어찌되었든 쓰잘 데 없는 수다를 나눴지만 그녀들이 그를 부를 때 발성과 함께 공기의 진동, 분위기의 고조, 떨리는 기분은 약간 변화를 띄게 되었다. 새로운 호칭과 함께. 곧 아저씨에서 오빠로. 다시 오빠에서 형으로!
6
너무 급한 교분이었을까 야속한 인연이었을까, 아니면 가을 감기처럼 어울리지 않게 잠시 아저씨 혼자 친하다고 그렇게 됐다고 좋아했던 것일까? 마침내 그리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아 그 애매한 관계는 급작스럽게 종식되고 말았다. 그동안 따듯했다. 멋졌다. 좋았다. 즐거웠다. 세월은 가도 강산은 변하지 않는 줄만 알았다. 미련이란 말은 노래에만 등장하는 한물간 낱말인 걸로 착각했던 것이다. 행복했어, 랄 것도 없지만 그리움이 쌓였나 궁금해지기도 전에 처량한 상황을 맞이하게 됐다. 뜻하지 않게. 유력한 용의자 제임스 아저씨는. 지가 무슨 문예창작과에 갓 입학한 스무살 청춘이나 되는 줄 알더니만 보기 좋게 더 나은, 더 멋진, 더 눈부신 남자를 찾아 떠난 어느 여인에게 버림받은 몽매한 그런 툭하며 차일 길바닥의 깡통이 되고 말았다.
사연은 이랬다. 소설 창작론인가 뭔가를 가르치던 강사인 삼류작가 R이 썼던 책이 대박난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그 즉시 유명세를 탔고, 일류작가로 수직상승했다. 그가 깡촌에 규칙적으로 내려와서 노는지 공부하는지 불분명한 친구들을 가르치고 뭔가 동기부여를 해야 할 까닭은 증발했고, 끝까지 맡은 임무를 완수해야 할 책임감도 무시되었다. 그는 도시로 떠났고, 그 자리는 웬 신수 훤한 이류작가로 대체되었다. 이 놈이다. 얘랑 정분이 나도 엄청나게 난 것이다. 그래서 제임스는 팽당한 것이다. 그는 예지력이 부족했고, 만약의 사태에 대한 마음의 준비도 잊고 있었다. 이별은 갑자기 찾아오고, 행복하다는 것은 1등의 마음과도 비슷한 것이다. 여대생 초절기교가 그의 등을 토닥거리고, 여대생 사색가가 그의 언 마음에 에어콘 바람을 틀어대는 듯 했다. 그러면 그렇지!
그에게는 딱한 사정일지 모르지만 객관적으로 봤을 때 이제야 구색이 맞는 그림이 그려졌다고도 볼 수 있다. 강의실에 갔다가 집에 돌아가는 길에 이 추운 날 멋진 연보라색 컨버터블 뚜껑을 열고서 그 새로운 강사 녀석과 하루는 여대생 탐욕이, 또 하루는 여대생 청순이, 다른 어떤 날은 모두 함께 어디 좋은 곳으로 소풍가는 모습이 엿보였다. 잠깐 총애를 독차지하나 싶었는데 그냥 임시 대역에 불과했던 것이다. 꽤 괜찮았던 시절이었지만 과-점퍼를 입어봤던 걸로 만족해야 한다. 그는 다시 외톨이가 되었다. 레몬빛 아성은 신기루였고, 오색찬란한 모래성은 무너졌다. 그는 그녀들을 위해 준비했던 선물을 어떻게 처리해야만 했다. 뭔가 잘 풀리나 싶었는데 불길한 효과음은 그를 실망시키는 법이 없었다. 마음의 상처, 이젠 아무렇지도 않다. 익숙했다. 마치 그런 말처럼. 나 또 차였어!
그는 상황이 대충 간략히 말하자면 절교 바로 그것이었기 때문에 어차피 마주치면 어색하고 아마 그쪽에서 자기를 슬슬 피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므로 그는 그 문예 강좌에 발길을 끊었다. 자기는 눈에서 레이저가 나가지 않지만 진짜 눈에서 레이저가 나가는 인간을 알고 있다느니, 결국 만화영화에 나오는 깃털 몽땅 뽑힌 오리가 됐다. 자기는 화염방사기가 아니지만 입에서 화염방사기의 화염이 뿜어져나오는 사람을 알고있다더니 체면도 품위도 떠들썩한 축제 분위기도 모두 날아가버렸다.
그러나 그가 단번에 수강생이랄까 대학생이라고나 할까, 출퇴근이 아닌 등하교의 생활을 바로 단념한 것은 아니었다. 딱히 억울할 것까진 없겠지만 잘못한 것도 없고, 낯뜨거워질 사연으로 얽힌 사이도 아니었으며,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녀들 가운데 피노키오라는 의아한 이름을 가진 여대생의 가방이 그의 차 뒷좌석에 있어서 그는 그걸 돌려줘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가 그 친구들을 쉽게 만날 수는 없었다. 해후라는 먼지 쌓인 듯한 단어를 알고 있기 때문에 푸른빛의 느낌이 희끄무레한 재회가 허락되지 않았는지 잘 모르겠으나 다시 찾은 강의실에는 그 어울려서 자기들끼리 몰려다니는 그녀들의 행방이 불투명했다. 미대생의 작업실도 음대생의 카페도, 무용하는 친구의 대저택을 기웃거려봐도 모두 문이 굳게 닫혀 있었고 개미 새끼 한 마리 얼씬거리지도 않았다. 그 가운데 그나마 가장 친하고 가장 무난하고 가장 편했던 리더를 딱 지목해서 전화 통화에 성공하여 <너, 당장 나와!>라고 어설프게 연기할 수도 없었다. 전화번호는 커녕 그녀들 이름조차 그게 진짜였나, 이제는 그 기억이 진짜인가 조작된 환영은 아니었나 실로 의심스러웠기 때문이다. 달콤한 한 때가 길어지지 않고, 그도 일찌감치 어중간한 형의 역할을 단념할 수 있어서 잘된 일이기는 하지만 그도 제아무리 성인이라지만 목이 케케한 게 다시 변성기가 오는 듯 하고 여태까지 진공청소기 어쩌고저쩌고, 환상머쉰 이러쿵저러쿵, 허풍머쉰 미주알고주알 큰소리 뻥뻥치드니 지독한 독감에 걸릴 것만 같은 불안감에 휩싸이게 되었다. 그걸로도 모자라 실연당한 상실감 때문에 울증이 다시 그의 전면에 나서려는 조짐까지 보였다.
그는 결심했다. 안 되겠다. 돌려주려고 노력은 했으나 모두 허사다. 자기가 사심을 품은 것도 아니고, 그네들 비밀스런 모임에 껴달라고 안달하지도 않았으며, 시녀로서의 우정을 은밀히 지속시켜달라고 간청하지도 않았다. 어떻게 방법이 없다. 따라서 최후의 노력은 그 쓸모있는 딱 하나의 방법은 가방을 열어보는 것이라는 건강한 남아로써의 호기심과 가방을 되돌려주고자 하는 착한 어른이 되고자 하는 욕망이 대두되는 충동을 잠재울 수는 없다고 그래서는 절대 안 된다고 판단했다. 그는 바로 양심에 털나다 같은 읽기도 쓰기에도 차마 입에 담기조차 민망한 세속적인 드라마에 대한 애착과는 멀찍이 거리를 두고 싶었던 것이다. 가방을 여는 것 말고는 속수무책이었던 것이다. 한 숙녀의 내면을 빤히 들여다보게 되면 어쩌나, 이러다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은 아닐까, 나는 친히 천사의 대역으로써 주소나 인적 사항 같은 연락 가능한 흔적만 찾는다는 다짐을 수반하여 그는 마침내 걱정 끝에 극비리에 그 가방을 열기로 했다.
그런데 그 가방의 품질과 취향은 향락의 최고봉이었다. 가방은 사치품이었다. 사치? 애매한 단어다. 이상한 말이다. 호사가 누군가의 애원이라면? 평생 놀고 먹는 것이 많은 청소년들의 정말 진솔한 속마음이라면? 그대들 소원은 모두 이루어지고 거의 절반의 소비재는 모두 무료가 되며 세상 사람 모두 행복해지기를 바라지만 단 하나 난 딱 하나의 비싼 가방을 갖고 싶다면? 그렇다면 나쁘다고 할 수도 자동차에 빗대어 힐난할 수도, 고스란히 과소비를 조장한다고 손가락받을 일도 아닐 따름이다. 그건 그냥 그녀의 즉 가방 주인의 권익이었고, 선물받은 물건일 수도 있으며, 혼탁한 허영심이든 진공청소기에 필적하는 사랑의 마술일 수도 있는 것이다. 왜 안 되겠는가! 뭐가 문제라고. 어쨌든 그 물건은 실수투성이 아저씨의 삶에 찾아온 하나의 환희였다. 진짜 기쁨은 확인의 찰나보다 그 전 단계에 있는 것이다. 요 녀석 어떻게 요리하지 하는 바로 그 마음. 마치 첫날밤에 대한 공상과도 같은. 그의 글은 항상 흥행에 참패했고, 일단 글이 잘 안 써졌지만,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그나마 하워드가 언급한 무슨 은밀한 창작 아카데미에 그런대로 흡사한 어느 강좌를 듣게 됐드니 이와 같은 기다림의 미학과 쉬쉬할만한 어떤 상징적인 호쾌함의 환상과도 같은 복받치는 가슴 찡한 순간이 발버둥치며 날 꺼내달라고 간청하며 애걸복걸 두 손을 싹싹빌며 환희의 순간을 통사정하게 된 것이다. 정말 눈 앞에 쌍수를 들며 그를 환영하는 천사의 모습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 이 가방이 말을 할까? 아니면 살아서 움직일까? 혹시 둘 다? 설마 가방을 열면 일단 스케이트보드가 제발로 걸어나오고, 마술사의 입에서 나오는 병아리와 반짝반짝 빛나는 무지개빛 줄처럼 다이아몬드든 황금이든 뭐든지 완벽한 이상형의 사이보그 아가씨까지 그야말로 그 뭐든지 계속 끊임없이 나오는 것은 아닐까? 오, 오오, 오오오! 생각만 해도 짜릿하고 상상하면 상상할수록 가슴이 뛰었다.
7
그녀의 가방에 들어있는 물품은 별다른 건 없었다. 휴대전화에 엄지 손톱만한 뭔 부착물 두 개. 하나는 결제와 관련된 걸로 추정할 수 있고, 하나는 소형 현미경이 내포되어 있고 거기에 침을 바르면 배란일을 알려주는 기능을 제공하는 거 같았다. 그리고 시집 1권. 작은 즉석사진기 하나. 엽서도 하나. 손거울 하나. 립스틱. 골프공 1개. 테니스공 1개(개를 키우나?). 콘서트 초대권 2매. 나비넥타이(선물일까? 설마 남자는 아니겠지, 그러나 혹시 웨이터? NC?). 향수. 꽃씨 1포(농업용품점에서 구입했을까?). 녹차 티백 1포. 권총 1정(혹시 BB탄? 아니면 그녀가 담배를 피울까? 그녀는 골초? 아마도 물풍선이 발사되는 듯함). 선그래스. 구강청정제. 공책. 필기구(연필, 왜?). 빗. 그런데... 립스틱 빼고는 화장품은 없구나 라면서 그는 얘가 자기가 아는 애가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화장품이 전혀 필요없을 만큼 미인이란 말인가? 설마 그 반대는 아니겠지! 그리고, 돈? 없다. 신분증? 역시. 그는 가방이 좀 크다고 생각했다. 아줌마인가? 여자들이 나이와 비례하여 가방과 몸무게가 늘어나는데...... 왠지 불길했다. 에잇, 성과도 없다면서 그는 탐정놀이는 그만하기로 하고, 미술관인지 음악실인지 문닫힌 누군가의 예술가 작업실에 그 가방을 놓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는 뭔가 큰 과오를 저지른 것 같아서 그만한 죄책감에 상응하는, 아니 그 보다 훨씬 어 어떠한 정도로 선행을 베풀면서 살기로 결심한다.
8
그는 집에서 몽상을 한다. 지금 이 세상은 미지의 세계가 아니다. 그러나 장래 이곳은 동화의 나라가 될 수도 있다.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 이 동네에는 앵꼬와 앵무새와 파랑새가 살지 않기 때문에 그런 공상을 해도 된다. 상상은 자유다. 그러다 그는 TV보기와 인터넷을 동시에 하며 요란한 음악도 틀어놓고 에너지 음료를 마시며 일전에 사놓았던 외계인 가면을 썼다. 바로 그때 아마도 환청일 수도 있는 초인종 소리가 들린다. 그냥 느낌일 수도 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헛수고할 셈치고 바깥에 나가본다. 바깥에는 지금인지 또는 언제 도착했는지 알 수 없는 웬 엽서가 한 장 놓여있다. 그 엽서의 내용은 이랬다.
앞면은 그가 전에 누군가의 가방을 열어봤던 당시 그 내용물이 고스란히 찍힌 사진이다. 흡사 잡지에서 1번부터 10번이나 20번까지 제품명과 설명과 가격이 친절하게 씌여진 그런 안내글과 거의 똑같았다. 어쩜 우연일 수도 있다.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과 이것은 너무 유사하다. 꼭 거짓말처럼. 그리고 뒷면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있다. 깨알 같은 손글씨로. 엽서 가득 빼곡히. 정성스럽게. 마치 말인 듯한 글처럼.
「다른 것은 몰라도 삶의 활력을 찾아드립니다. 사랑도 이루어드립니다. 원하는 건 모두 가질 수 있습니다 있습니다. 바라는 소원이 있나요? 네, 천천히 생각하셔도 됩니다. 제촉하진 않겠습니다. 당신의 상상은 현실이 됩니다. 꿈은 곧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대의 덧없는 인생에 새로운 기대가 있나요, 남았나요? 없어도 문제될 건 전혀 없답니다 없답니다. 저희가 보장해드립니다. 책임질 수도 있다고 확신합니다. 안심하셔도 됩니다. 천하에 둘도 없는 절호의 찬스입니다. 서광이 밝아오고 있습니다. 더 이상 괴로움은 없을 것입니다. 기쁨만이 당신과 함께할 것입니다. 그 다음엔 쾌락과 희열, 행복, 경탄, 환락등 그 뭐든지 말만 하십시요. 그동안 많이 외로우셨다는 거 잘 압니다. 잘 안다구요. 바람이 당신의 안부를 실어다주었답니다. 자, 이제 당신의 인생이 춤추고 노래하며 날아오를 차례가 되었습니다 되었습니다. 부디 찬란한 환희의 순간을 마다하지 마시기를! 아직 기회는 남았다구요. 이게 뭘까요? 천국으로 가는 티켓일까요? 네, 맞습니다. 당신은 천재이군요. 인생 역전, 가능합니다. 당신은 설렙니다 설렙니다. 당신은 왠지 좋은 예감 때문에 기분이 좋아집니다 좋아집니다. 밝은 미래의 전망은 늘 당신과 함께 할 것입니다. 준비됐나요? 한번 나오시겠습니까? 삶이 즐겁지 않습니까? 터무니없이 웃겨드립니다. 사는 게 그저 그런가요? 인생을 낭비하진 마세요. 뭘 해도 재미없다고 더 이상 슬퍼하지도 마세요. 드디여 그분이 행차하셔도 당신과 함께 환상의 짝 그 전설적인 황홀한 궁합을 완성할 단계에 직면했습니다. 남은 건 당신과의 직접 대면뿐이 없습니다. 비로소 때가 되었습니다. 오래 기다리셨다구요. 자, 언제 어디서 무엇을 위하여 부흥회가 열립니다. 기다리겠습니다. 부디 함께 하시기를! (한 칸 띄고) 우리는 당신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아주 잘 알고 있답니다. 우리는 당신의 앞날이 눈부시길 기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와 함께라면 이미 당신의 미래는 반짝반짝 빛나고 아름답고 더없이 흥미로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코 바꿀 수 없는 절대 변하지 않는 이상주의는 당신과 영원히 함께 할 것입니다. 그야말로 당신이 기필코 돈방석에 앉도록 만들겠습니다. 이것은 운명입니다. 숙명적? 아닙니다. 벌써 숙명이자 천운입니다. (한 칸 띄고) 사랑은 있어요. 지금 마음의 결정을 내리세요. 기회를 놓치면 큰일납니다 큰일납니다. 따로 요원을 보내겠습니다. 저기요. 이 나직한 외침 그 고요한 행운의 신호를 무시하지는 마세요 마세요. 저희와 함께합시다 함께합시다. 당신은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승천할 것입니다. 작별의 키스와 함께! (한 칸 띄고) 미래 연구소장 누구 그리고 서명. (괄호 열고) 미래정신병원 계열사.」
그 후 그가 정해진 시간에 그곳으로 갔는지는 알 수 없지만, 또 그가 <오오, 느낌 와 느낌 와!> 막 그러면서 쾌재를 불렀을지는 모르나 하나는 분명하다. 그는 화장지각에서 나오는 화장지를 모조리 돈으로 보았고, 새소리는 모두 효과음이었으며, 자기가 어떤 마술적인 최면에 걸린 줄도 모르고 있었다. 삐리리리 삐리리리, 아아! 그는 마침내 로보트가 되었다. 그는 희망을 보았고, 그는 드디여 새가 되었다. 이름은 모른다. 그냥 새! 오오, 새!
아아! 그는 마침내 새가 된 것이다.
1
나는 어제 어느 성대한 파티에 갔다 왔다. 그건 어제의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꼭 어제의 일이라고 단정지어 가볍게 여길 수는 없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지금 이 순간도 그 축제의 열기와 광란의 즐거움에 도취된 흥분감이 쉽게 가시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 생각해보니 그건 어제의 일이 아니고 1주일 전의 일이었다. 그만큼 그 행사는 내게 이상한 의미와 희안한 기분을 안겨줬으며, 그 정도로 내가 사랑의 포로나 되는 듯이 나를 들었다 놨다─밀었다 당겼다─쥐었다 폈다 하며 버튼을 눌러 나를 덤블링 시켰다가 서커스장의 공으로 만들었다가 청혼을 뿌리치고 도망가는 여인 때문에 아~나 너나 가져라 하면서 아무 여자에게나 팽개쳐버린 꽃다발이 되었다. 나는.
다시 말하자면 1주일 전에 파티가 있었다. 그 파티는 격조가 있었다. 음악도 2박자는 물론 3박자까지 제공했고, 나 같은 일반인을 오히려 보기 힘들만큼 유명인 일색이었으며, 거기 참석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즐겁고 행복한 듯이 보였다. 그 어느 인상적인 행사의 이름은 조니의 중편소설 출판식이었다. 그래서 나는 기뻤다. 사실 부러웠다. 또 책에 나와 있듯이 조니를 뺀 나머지 무명 블로그의 일원들이 그를 속이고 장난이 심한 듯 해서 내심 미안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뭔가 어떤 인정할 수 없는 뜻밖의 결과를 맞이한 것만 같은 억울함도 없지 않았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나는 나에게 부끄러웠다.
왜냐하면 그래도 명색이 내가 전업 작가인데 나는 말로만 인터넷 발간이네 어쩌네 하면서 폼만 잡았지 녀석처럼 종이로 정식 출판은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 조니는 프로듀서에 단편 영화제 감독에 프로덕션 사장에 그 직함만 말하자고 해도 연거푸 말하고 나서도 계속 생각날 만큼 그의 인생은 화려했고, 성공했고, 파란만장했는데 그런데 이번 일로 말미암아 우리는 그를 작가 조니라고 불러줘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다 핑계다. 내가 왜 챙피했냐 하면 솔직히 그가 쓴 책이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왜 이런 소설을 못 쓸까, 나는 왜 이런 구상을 떠올리지 못했을까, 한번쯤 생각해보기는 했는데 대체 왜 실행에 옮겨서 성과를 얻지 못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 녀석이 지어낸 이야기일까, 어디서 베낀 건 아닐까, 정말 어디서 영감을 얻고 무엇 때문에 다이아몬드 같은 착상이 떠오른 것일까? 알고 싶었다. 그러나 물어볼 수는 없었다. 그리고 진짜로 오오 집에서 샤워를 마치고 향수를 뿌린 후 적당한 고전음악을 틀고, 워워 맑은 와인잔에 고급 발포성 와인을 따른 다음 푹신한 소파에 앉아서 아아, 한 손으로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한 손으로 책을 들고 딱 그렇게 읽을 걸 그랬네, 라며 너무 성급하게 완독해버린 자신을 자책할 만큼 조니의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재미있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품위가 있었다. 읽는 동안 진짜 손에 땀이 났고, 그것은 이미 고전이었으며, 그 독서의 경험은 행운이자 위대한 행위였다. 믿기지가 않았다. 완전 신기했다. 너무 놀라웠다. 그 소설에는 모든 게 들어있었다. 시적 긴장감도, 낭만적 연애 감정도, 신비와 모험과 동화적 감성은 물론 걸핏하면 고급스러운 농담에 기가 막힌 환상에서 더 나아가 초현실적 사실성까지 완비되어 있었다. 그건 꼭 악마가 쓴 소설 같았다. 그러면 조니는 악마인가? 그럴 리가. 하긴 그는 천사도 아니고 그냥 평범한 인간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천국도 지옥도 아니거나 생각하기 나름인 것처럼. 조니가 쓴 소설은 어른이 읽어도 어린이가 읽어도, 노동자도 지성인도, 여자도 남자도, 실연당한 술꾼도 사랑의 시를 작곡하는 청소년도 모두 넉넉히 만족시킬 수 있는 진짜 대단한 작품이었다. 완전 최고였다. 그건 미친 소설이었다. 그렇다. 그건 예술이었다. 그러므로 내 기분은 꽝이었고, 따라서 나는 울고 싶었다. 물론 속으로만.
너무 칭찬 일색이라서 약간 그것의 흠을 잡고 싶다. 왜냐하면 저 하늘의 천사도 사소한 잘못과 우연한 하자와 어쩌면 사랑스러운 옥의 티는 아마도 없을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조니의 소설에 나오는 바그너의 어느 서곡, 조니는 내가 잘 아는데 그는 바그너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 그냥 뭔가 있어 보일려고 그런 브랜드를 막 집어 넣은 것이다. 또 어느 구절에서 뭐 그녀의 마음을 얻고 싶은 오기가 발동했다고? 그 인간이 처음부터 딴 생각을 품었지 어디 어떻게 마음이 선회하고 멋을 추구하고 낭만을 동경하며 추억을 만들겠다고, 다 뻥이다. 모두 위선이고 가식이다. 식상하고 상투적인 얘기다. 그래도 너무 진부하다. 고리타분해서 눅눅한 냄새가 났다. 그러나 녀석이 쓴 소설은 인기는 물론 당당히 청소년 권장 소설 목록과 지성인의 서재 그 두 곳에 모두 거뜬히 등재되는 축복을 누릴 것이 거의 확실해보였다.
그처럼 녀석은 내 동경심을 자극했다. 내게도 대망이란 야생마가 있다는 것을 알게 만들었고, 동심에 기반한 선망 역시 나와 언제나 함께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자극해주었다. 고맙게도. 조롱하는 게 아니라 진짜 감사하게 생각한다. 비꼬는 화법, 통 늘지 않는다. 나는. 여간해서는. 타고난 성정과 관계된 것인가는 몰라도 필요한 때가 있긴 있으니 조금은 것도 연마할 필요가 있다. 녀석은 내 케케묵은 이상주의를 다시 살아나게 만들었다. 그것은 비로소 부활했다. 나도 말로는 녀석을 질투하네 어쩌네 하지만 우린 친하다. 우린 친구다. 다른 수식어는 필요없다. 그 말 하나면 충분하다. 그래서 난 늬가 뭔 재주로 이런 역작을 만들어냈냐고─늬가 뭔 능력으로 그런 멋진 차를 샀냐고─늬가 어떻게 그런 못생긴 여자를 꼬실 수 있었냐고, 도통 못 믿겠다고─늬 자질에 그게 어울린다고 생각하냐 하면서 조니의 멱살을 잡든지 남들에게 비방을 하든지 어떻게든 괜한 장난, 괜한 다툼, 괜한 트집을 양산하고 싶었다. 억지가 아니라. 왜? 친하니까! 그러나 잊으면 안 된다. 이번에는 책이다. 책 출판 기념회다. 첨언하자면 공개적으로 자신의 과오를 자기가 자기 입으로 말하는 것은 코메디다. 작은 그릇은 아니다. 그런데 으쌰으쌰하는 자리에서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우연히 어떡하다 나온다면 모를까, 그쪽으로 대화의 진행을 일부러 흥을 돋고 심도가 깊어진다면 즉 내 허물을 바깥에서 공개하면 그게 언론이 아니라 친구라도 남자들은 싫어한다. 친구들을 깎아내려서 내가 돋보이느냐, 친구들은 가만 놔둔 채 날 자랑해서 내가 튀어보이느냐에 대하여 남녀간에 차이가 있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나는 일전에 다른 친구의 음반 출시 기념회에서 한번 깽판을 부린 일이 있다. 잠깐, 뭔판? 바른 말 고운 말을 쓸려다가 뭔가 핑 돌아서 실수했다. 그때 나는 난동을 부렸다. 술 취해서 막 소란 피우고 막 소리 지른 적이 있다. 내가 최고야~ 내가 최고야~ 그러면서. 그래서 이번에 난 자중했다. 한번 무언가를 풀고 싶었는데 그냥 내면 연기로 대체한 것이다. 그때 일이 있고 난 다음 날 나는 많은 분들께 고개를 숙여야 했고, 그 충격으로 금주선언을 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건 번복됐다.
괜히 그 내용을 떠올려봐야 내 창작 생활에 도움도 되지 않고, 사람만 쪼잔해지고, 한없이 쩨쩨해지다 드디어 수줍은 줄도 모르고 간교해질 것만 같으니까 그에 대한 사연은 이만 줄이는 게 좋겠다. 그러나 조니가 책을 내다니 아아, 슬픔이 쉽게 가시질 않고 질투가 콕콕 가슴을 찌르고, 동화에 나오는 대표적인 악역들과의 친밀감이 부쩍 급상승한 듯 하여 내 기분을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떠나기로 결심했다. 당분간 바람 쐬고 분위기를 바꿀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한편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를 쓰기 위해 여행을 떠났다. 가슴이 찡한 막 두근거리고 설레는 그런 연애 소설을 쓰기 위하여.
2
나는 볼보 웨건에 캠핑카를 결착하여 길을 떠나서 어느 조용한 시골에 당도했다. 그곳이 어디인지도 모른다. 그냥 정처없이 도시를 떠나왔다. 아, 도시가 아니라 주거지를 떠나온 것이다. 한눈에 둘러봐도 내가 거처하기로 결정한 건물은 이상했다. 해변에 듬성듬성 위치한 펜션들과 휴양소들은 모두 건축미가 대단했다. 망부석 같은 조각상도 있고 조경도 꽤 잘해 놓았다. 그러나 나는 왠지 그런 평범한 펜션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완전 직사각형 같은 정사각형에 단순한 웬 건조한 건물에서 당분간 지내기로 했다.
아, 다시 생각난다. 조니의 소설. 제목이 뭐였드라? 그게 제목인가? '나는'과 '나도' 사이? 그게 뭐야! 블로그 증후군?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하고 싶지 않다. 그것이 사랑의 맹세 같은 예사롭지 않은 사건도 아닌데 왜 날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것일까? 왜냐하면 그것은 따라하기, 때문이다. 조니의 소설을 읽고 1주일 동안 나도 소설 주인공처럼 통조림과 각화장지를 엄청 사모았다. 하도 많이 사서 어디 쟁여둘 데가 없었다. 캠핑카는 짐짝이 된지 오래다. 그렇지만 혹시 어떻게 객지에서 무료로 드립니다 같은 행사를 하면 글이 잘 써질지도 모르기 때문에 캠핑카를 끌고 왔다. 어쨌든 그건 헛짓거리로 판명났다. 그리고 무작정 소설 속 주인공 흉내를 낸 것도 아니었다. 이미 조니의 소설을 읽기 전에 일종의 징크스처럼 나는 비누를 사모았기 때문이다. 한 2~3개월 동안 나는 비누를 엄청 사모았다. 나 때문에 비누 회사는 좋았겠지만 나는 그 때문에 그다지 별다른 2차 소득은 없었기 때문에 난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그래서 혹시나 해서 따라한 것이었다. 뭐 그래서 역시나-였다.
나는 그곳의 지명조차 딱히 관심 갖지 않고 매일 백판 자빠져 노는 일상에 빠져들었다. 책을 조금 읽다가 맥주를 마시고, 맥주를 마시다가 해변에 나가 낚시를 하고, 낚시를 하다 근처 식당으로 밥을 먹으러 갔다. 그렇게 특별하지 않은 무료한 생활을 하다가 나는 어떤 평행선과도 같은 두 가지 일하기라는 어느 막연한 임무를 떠올렸다. 한 번에 한 가지만 하기는 평생 해왔다. 조니처럼 다채로운 직업 갖기는 희망이자 이상이었다. 그래서 남은 것은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기였다. 그것의 과제는 이랬다. 첫째, 아서 밀러의 어느 세일즈맨의 죽음 읽기. 둘째, 여행지에서 이방인으로 살면서 자동차 세일즈맨으로 살아보기. 나는 그러한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고 나니 조니의 출판 기념회에서 느꼈던 뒤틀린 미성숙한 자존감 그것의 고배를 좀 더 밝고 건강하며 아름답게 개선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작렬하는 생동감을 느꼈다. 그러나 그 뿌듯함은 길게 가지 못했다. 작심삼일도 못됐다. 오히려 훨씬 우울해졌다. 근시안적 권태에 대한 미흡한 수심만 간직하게 되었다. 만복을 바란 것도 아닌데 소풍의 기쁨은 커녕 창작의 절벽과 마주하고, 나른하며, 심심하고, 따분하다는 그 유명한 곤경에 처하고 말았다. 나는. 하여튼 세상에 태어난지 몇 년째 삶, 참 잘도 돌아간다. 그래 놓고 하는 말이, 인생은? 지금 생각 같아서는 정말이지 뻔트라도 대고 싶다. 뻔트를 댔는데 그 공이 떼굴떼굴 굴러가지 않고 장외홈런이 되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리 영예로운 잔치가 아니다. 반짝이지도 않고, 출세도 못했고, 내 마음대로 무엇을 좋아하며 어떤 일을 하고 싶은 욕구를 느끼는 것조차 어딘가에 양해를 구해야만 할 것 같았다. 나는 음험한 작전을 책동하는 게 아니다. 조니처럼 출판기념회를 화사하게 치르는 것, 바라지도 않는다. 핸드폰 바꾸기를 원하지도 않고, 차의 뚜껑을 없애고 싶지도 않다. 그러나 인생이 날 푸대접하고 있는 것만 같다. 여담이지만 내가 날마다 놀고 일하고 자고 먹고 하는 바로 이곳은 그냥, 천재들의 나라라고 부르기로 하자. 그리고 나는 여기 당도해서 생활한지 1주일이 되었다. 내가 그 7일 동안 도대체 뭘 했나, 대체 어떤 위대한 성과를 얻었는가? 아찔한 지성으로 똘똘 뭉친 고객을 창출할 수 있는 소설을 썼는가, 못 썼는가?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떠올리기도 싫다. 일단 더 놀아봐야 할까? 뭔가 더 숙고하고 자중해야 하는가? 뭘 자숙해? 왜? 어느 높은 자리에서 내가 실각했나? 아니다. 잃을 게 없으니 오히려 용기가 충만해야 한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어쨌든 당분간 동서남북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녀도 보고, 낯선 사람과 밑도 끝도 없는 대화도 시도해보며, 소설 구상과 문학적인 착상을 얻기 위해 힘쓸 테지만 분명한 건, 내가 이곳 천재들의 나라에 7일간 머물러서 글이 써지지 않았으니 이 숫자에 0이 한 개 붙든 두 개 붙든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보기로 했다. 세 개? 거 너무한 거 아닌가? 보자 보자 하니까 이거......! 왜 그런 엉뚱한, 꼭 볼이 새빨간 십대 소년 같은 다짐이 발생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뭔가 꼭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가당키나 한 일이 아닐 수도 있지만 적당히 떼쓰다 또 나중 마음을 바꿀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삶이 뭐 배꼽 잡고 웃을 일도 아니고 인생이 심심하면 다냐, 그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우린 그냥 새장 속의 새다. 남편은 생쥐고 마누라는 암고양이다. 누구는 상민 누구는 상놈일 수도 있다. 위신이랄지 체면 때문에 무언가를 포기해서는 결코 안 되는 처지는 아니지만 일이 이상하게 되어버렸다. 나도 왜 그런지 모르겠다. 어쩔 도리가 없다. 하루는 TV만, 하루는 독서만, 하루는 관광만 그렇게 버틸 수도 있다. 그러나 어쨌든 더 지켜보기로 했다. 어딘가에서 맴돌던 그분이 오시기를 기대하면서.
3
문제는 8일째 되는 날에 발생했다. 내가 천재들의 나라에 도착하여 생활한지 일주일 하고 하루가 지난 날. 왜 그랬을까? 설마 처음에 무턱대고 날 천재라고 간주했다가 알고 보니 나는 천재가 아닌 사실이 발각된 날이 바로 오늘일까? 아닐 것이다. 부디 나도 천재이기를? 그런 재수없는 소리는 생략하는 게 옳다. 타성에 젖은 인기에 길들여지지 않았다면. 요즘 세상은 그 누가 뭐라 해도 두 가지로 나뉜다. 유명인이냐 아니냐로. 이 말이 왜 나왔을까? 왜냐하면 그런 의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잠정적으로 지정했던 천재들의 나라는 곧 유명인의 나라가 아닐까라는 생각. 여기 사는 사람들은 거의 모든 사람이 연예인이다. 거의 모든 사람이 전문가다. 인문과 교양과 상인과 만화작가와 동네 아줌마와 술집의 아저씨든 누구든 거의 모든 사람이 유명인이고, 인기라는 차를 마시고, 명성이라는 공동체로 연관되며, 자존감은 극도로 높고, 세상에서 내가 최고고, 미치고 발광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 되는 곳, 그로써 생기가 돌고 돈도 돌고 인기마저 도는 곳. 따라서 웃음꽃은 끊이질 않고, 조의는 일상적인 농담으로 변모되고, 상복까지 예술이며, 만가는 천상의 빛나는 음률이자 또 다른 생명력을 태동시키는 어쩌면 사사로운 생활이 되는 곳. 그런데 그게 뭐지, 그게 대체 어떤 곳이지? 나도 잘 모르겠다.
어쨌든 처음에는 장난인 줄 알았다. 만우절이나 문화 행사 또는 어떤 유행 같은 것에 불과할 것이라고 짐작했다. 내가 뭐 바보도 아니고 SF소설광도 아니며, 사회성이 크게 떨어지는 것도 아닌데 그걸 아는데 왜, 대체 왜 8일씩이나 필요했는지 정말 의문이다. 그러고 보니 나는 여기 글을 쓰러 왔기 때문에 잠재의식은 구상에 골몰해 있고, 직관은 장르와 색다른 발상을 떠올리는데 분주하며, 다른 어떤 지각마저도 항상 그 생각에 빠져있었으니 아마 그래서 몰랐을 수도 있겠구나, 그렇게 이해는 된다. 그 무엇을 보든지 <나는-나는>을 대입하고 붙여보고, 저걸 써보면 어떨까 이건 재미있을까 그건 뭐랄까 너무 평범하지 않을까, 바로 그런 생각들.
빙빙 돌려서 설명하지 말고 딱 부러지게 뭔가 문제고 어떻게 그동안 몰랐나를 말하자면 이렇다. 아, 8일이 지나서야 사태를 깨닫는 건 나왔으니 무엇 때문에 그 믿을 수 없는 질서랄까 어떤 당연한 진리를 신뢰하게 되었나를 말해야겠다.
자, 그러면 대체 이상한 일은 뭔가? 신기한 발견이란 게 있긴 있나? 놀라운 무언가가 다 알고 나서도 나중에도 놀라웁다고? 그 노래 가사와 같은 일은 바로 이것이다. 여기 사는 사람들은 모두 머리 밑은 사람이지만 머리는 모두 다 다르다. 마치 지문이나 성문처럼 다 다르다. 그럼 어떻게 다르냐? 누구는 말, 누구는 개, 누구는 사자, 바로 그렇게! 그러나 이곳을 알기 전의 세상은 그렇지 않았다. 내가 기존에 살았던 곳에서는 그랬다. 저분은 말상, 저분은 개상, 저분은 고양이상. 그런데 여긴 진짜 얼굴이 말이고 개고 사자였다. 당연히 그래서 나는 처음에 장난일 줄 알았다. 그리고 그 장난이 조금 길게 가나보다 했다. 더 나아가 나는 속으로 짜증이 났다. 약간 신경질이 났다. 뭘 저렇게 머리에다 쓰고 다니는지 사람 머리가 토마토고, 케익 상자며, 호박이었다. 나는 처음에 그랬다. 정말 어지간히 한다, 애쓴다 라고. 그냥 축제가 길다라고 하자, 이제 그만 제정신으로 돌아가자, 그 얼빵한 가면 작작 좀 써라 라고!
그리고 그것을 알게 된 계기는 내가 묶고 있는 펜션의 식당에 걸린 사진 액자를 보고 문득 팍 깨우침이 왔던 것이다. 느닷없이 딱! 그것은 평범한 단체 사진이었다. 네 명이서 화면 분할에 신경 쓴 듯 찍은 전혀 이상할 것 없는 사진. 나는 일주일 전부터 그걸 봐왔는데 왜 몰랐지? 사진에 있는 사람들은 사람이지만 사람이 아니었다. 밑은 사람인데 위는 사람이 아니었다. 바로 그때부터 나는 주변의 사람들을 좀 더 주의깊게 관찰하기 시작했다. 면밀히 살펴보고 다녔다. 그곳도 한적한 시골이라서 인적이 드물지만 인간이 보이면 안 보는 척 자세히 훓어봤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러나 주로 얼굴을. 그 특이한 면상, 뭔가 말을 걸면서 용건이 있는 듯한 못짓을 취할 것 같은 생김새를. 물론 간혹 인간의 얼굴을 한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모두 인형극에 나오는 커다란 얼굴 같은 그런 모양이었다.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커피를 마시고 빵을 먹을 때, 사랑을 하고 키스를 할 때, 그 미세한 표정 변화와 어조와 아련한 눈빛들 바로 그것들이 나보고 이제는 믿겠냐고 묻고 있었다. 나는 그래서 시장과 병원과 동물병원과 약국과 빵집과 목욕탕과 야한 비디오와 실시간 방송등 온갖 증명 가능한 뭔가 믿기지 않는 일에 믿음이 가도록 도움을 주는 일은 다 해봤고, 어디든 다 가봤고, 뭐든 다 시도해봤다. 그래서 결론을 내렸다. 여기서는 저게 바로 정상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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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여기 사는 사람들에 대해서 말하고 싶다. 남이 없는 자리에서 그를 깎아내리고 단점을 꼬집는 행위를 꼭 나쁘게만 볼 것은 아니다. 앞에서 못하면 뒤에서 하지 어디서 하겠나. 앞에서 해도 어차피 무시할 사람인데. 세상의 말로야 물지 못할 거면 짓지도 이빨을 보이지도 불편한 기색을 보이지도 말라고 하지만 그건 다 인생교본의 선봉에 해당하는 말이다. 알파벳 같은 기초일 뿐이다. 간혹 철자야 틀릴 수 있다. 나는 험담의 즐거움이 얼마만큼인지는 잘 모르지만 인문학적으로 기호학에 근거하여 타인들의 인상을 호평한다면 썩 손가락질 받을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여기에 도착해서 그런 감정을 느꼈다. 신선함이라고 할까, 여기에서만 전해지는 매력이라고나 할까, 어떤 새로움과 찬란한 그 어느 고고함의 태도와 나는 보다 다른 신천옹으로 태어난 존재다 라는 듯한 뭔지 모를 경이감을 삶의 기본 관념으로 삼고 있는 것만 같았다. 왜냐하면 여기 사람들은 정치와 경제와 사회 또 타 지역 소식과 유행과 비인기 문화는 물론이요 산업이나 연예계 소식등에는 일절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직접 확인은 못했으나 그런 모습이 충분히 상상되었다. 선거권도 당연히 만약 내게 이득이 된다면, 주로 내게 이득이 된다면 철저히 보수당만 찍을 것 같다. 그게 뭐가 나쁘겠냐마는. 보수당이라는 마음이 편치 않은 그 단어에 응분하는 값을 하느냐, 그건 썩 의심스럽지만 그건 시대상 변질되어 편의상 부르는 명칭일 뿐이지만. 어차피 1위냐 2위냐 그 차이 밖에 없지만, 당신도 그 어디에 산다면 (초반에는) 오히려 그쪽으로 마음이 기울 수도 있지만. 그러나, 그러나 그분들은 그것도 관심없다. 귀찮다. 예측 가능하고, 흔하고, 재미없고, 통속적인 것에 시간을 할애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품격 있고, 대체 불가능하며, 지고의 가치가 존재하고, 남과 차별화되며, 개성이 돋보일 수 있게 남이 아는 브랜드 즉 예를 들면 상업 상표 외에도 셰익스피어와 아인슈타인과 피카소와 모차르트는 자주 들먹이지 않는다. 걸신 들린듯이 남이 많이 아는 유명인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한마디로 천한 짓이다. 찰스 디킨스와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 그 둘만 놓고 봤을 때 누가 귀족에 대해 비교적 가깝게 묘사했을까, 는 잘 설명할 수 없더라도 타인에게 보이는 내 인상은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다. 개성은 목숨과도 같은 것이다. 고전적인 명예? 그건 약간 소홀한 것 같다. 그보다 자유로운 인생이 더 값어치 있는 듯 하다. 그분들은 처음 보는 사람을 만나면 보자마자 즉 채 5초나 퍽 늦어도 10초를 넘기지 않아서 직관적으로 그 즉시 그 사람이 백조인지 촌닭인지, 재규어인지 톰인지, 개상인지 말상인지를 바로 진단내릴 수 있다. 가끔 틀리기도 하겠지만 어지간해서는 틀리기도 어렵다. 오차가 있더라도 더 재껴보면 다 들통나고. 정말 신기한 재주다. 자기가 싫어도 갖고 태어난 선천적인 능력이다. 어쩔 수 없다. 위 아래 훓어보지 않아도 견적이 내려지는데 그게 어디 내 잘못이란 말인가. 그분들은 바로 옆에 유명인이 앉아서 한 잔의 차를 마시고 있다고 하더라고 신경이나 쓸까, 눈길 한 번 주는데 어쩜 그리 인색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괜한 들뜸은 마치 거리를 둬야 하는 뭐 그런 세속적 마찰과 오해나 하찮음과 진중한 고뇌를 거치지 않은 값싼 인심 정도로 여기는 듯한 기색이 느껴졌다. 그런 무언가 그럴 수 밖에 없는 까닭이 있겠으나 우선 꼭 마치 여기 사람들은 지구 바깥에서 이주해온 것이 아닐까 그런 엉뚱한 추측을 하게 되었다. 뭐랄까, 정말 그 어느 말도 안 되는 경험을 진짜 해본 것 같다고나 할까? 어떤 정도의 말도 안 되는 경험이냐? 그것은 멀쩡한 일반인을 아침과 점심과 저녁과 또 그 중간, 중간 쉬지 않고 틈틈히 언제 어디서나 그 어느 그 어떤 매스미디어로도 생산되고 반복되며 파생되어 계속 뭔가가 재생산되는 뉴스의 그 당사자로 만들어서 생활해보기, 를 말한다. 일반인이 하루 아침에 그런 유명인의 생활을 겪고 나면 세계를 그 전의 시각으로 볼 수는 없는 법이다. 인생이 달리 보일 것이다. 앞으로 전혀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도 있다.
자, 한번 생각을 해봅시다. 흔히 사적으로 하는 말인 중2병이랄지 친교라는 관계성이 성립할 때 지나가는 말로 잠깐 나오는 단어 연예인병. 꼭 오만하고 방자하고 그냥 통과의례적인 범상한 의미의 그런 1차적 뜻은 차치하고, 남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타인에게 어떤 이미지를 심어주느냐 바깥으로 드러나는 정보는 무엇인가를 그것의 본질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보통 사람들도 남들이 내 뒷모습을 어떻게 생각할까 라고 언뜻 떠올리는 것처럼. 하루도 빼지 않고 날이면 날마다 당신을 사진 찍고, 당신에 관한 뉴스를 만들어서 배포하고, 당신에 관한 댓글은 규칙적으로 슈퍼스타에게 꿇리지 않을 정도로 생산되고, 당신에 관한 책도 틈틈히 나오고, 당신에 관한 말을 세상에서 많이 하고, 바로 그게 유행을 타지 않고 언제나 어디서나 그런다면, 그런다면 당신은 어떻겠는가? 정말 그런다면 당신은 어떻게 될까? 정말 그렇게 된다면 어떨까? 흔히 우리가 아는 연예인은 진짜 연예인이 아니다. 노래 잘 부르는 가수? 상위 몇 퍼센트를 빼면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지 상상이 되는가? 멋진 영화배우? 글쎄다. 그리고 나 지성이라고 이마에 씌여있는 작가, 세속에 관한 건 작품에 절대 담지 않는 미술가, 그래 스포츠 스타, 또 소셜 네트워크의 유명인, TV에서 많이 나오는 사람들, 영화감독이나 사진작가등 우리는 그분들이 연예인이라고 알고 있고 그렇게 말하지만 그분들은, 그분들은 연예인이 아니다. 그분들은 바지다. 병풍이다. 신부 들러리다. 어쩌다 간혹 드물게 신에게 바치는 염소가 되기도 한다. 그러면 진짜 연예인은 누구일까? 진짜라는 관형사, 맞나 그 수식어가 그 의젓한 격조가 자연스럽게 어울릴만한 대상은 진짜 누구냐 대체 누구냐, 과연 정말 누구일까? 누구겠나, 그냥 유명인이 아니지. 그럴 테지. 그분이 진정한 진짜 슈퍼스타다. 그러니까 누구냐고! 그분들은, 그분들은 바로─음─바로 정치인들이다. 또 사회계와 경제계와 매스컴에서 많이 다루는 여러 분야에서 명망 높으신 분들이다. 그분들이 진짜 연예인이다. 나머지 명함만 연예인은 다 허울뿐인 허수아비다. 잠시 소비되는 스카프 같은 거다. 이 글을 정말 맞을 각오로 쓰느냐고? 그게 대체 뭔 말인가, 모르는 사람 하나 없는 얘기를 뭐 미쳤다고 각오까지나 필요한가? 거창하지도 않은 수사법이다. 카메라 플래쉬를 받는 양, 전체 뉴스 기사의 양과 그것이 퍼지는 속도와 범위와 파급 효과, 오오! 파파라치? 매일 뉴스에서 나오지 않나. 신문기자와 사진기자와 언론사 관계자와 기타 등등 쫄망쫄망 바쁘게 따라다니시지 않나. 고생하시는 그분들을 깎아내리려는 뜻은 없으나 일순 오해는 있을 수 있겠으나, 그건 수다에게 양보하자. 정치인도 똑같은 사람인데 무턱대고 폄하하자는 의도, 없다. 그쪽 업계에서도 구르는 돌 있고, 박힌 돌 있다. 철새도 있고 텃새도 있다. 대세도 흐름도 유행도 있다. 상업 시장과 똑같다. 완전. 그렇다. 진짜 연예인은 그분들이다. 진짜 슈퍼스타는 그분들이다. 진짜 최고의 유명인은 바로 그분들이란 말이다. 와, 진짜 다른 연예인은 다 완전 장비다. 물컵이고, 화분이며, 의자다. 과자고 빵이며 피자다. 드레스고 껌이고 쟁반이다. 광대가 맞는 말이고 애석하지만 소비품이다. 알맹이 없는 버리기 아까운 포장지 같은 거다. 반지와 목걸이가 들어있지 않은 처음부터 도둑맞았다고 할까 그런 상자다. 화장지곽이데 안에 화장지는 없다. 돈도 없다. 참치 통조림인데 안에 참치가 없다. 자기가 유명한줄 알고 있거나 거리에서 얼굴을 알아보거나 나름 팬들을 끌고 다니시는 분들께는 대단히 미안한 말씀이지만 말이야 바른 말이지. 그럼. 이런 겸연적은 말을 하는 나만 죄송한 게 아니라 그분들도 뒷머리 벅벅 긁을 수 밖에 없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왜 내 얘기를, 하면서. 그런데, 여기 이곳 천재들의 나라 사람들이 바로 어딘가 모르게 그분들의 성향과 무척 비슷한 듯 하다. 더 자세한 얘기를 이어가는 것은 깜냥도 안 되고 인문-교양학적으로 접근해야 하기 때문에 이것 하나만 간단히 언급하고 넘어가는 게 좋겠다.
그러면, 그러면 왜 하필 그 분야냐? 그건 그 모두의 구심점에 그 분야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렇게 사진을 어마어마하게 많이 찍어주는 것이다. 뭐 신문기자와 사진기자와 방송사에서 그분들 예쁘다고 좋아한다고 착하다고 그러겠나? 어?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소리다. 그 다음으로 허울뿐인 연예인을 하면 되지 그럼 왜 사석에서 욕을 얻어먹으면서까지 진짜 연예인을 하느냐, 그건 내가 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 그러나 일반인의 삶에 뭐 하나 도움이 안 된다고 고개를 돌리며 설레설레 외면하기만 하는 분들을 위해 간략히 왜 그런가를 정리해보고자 한다. 틀릴 수도 있다. 말도 안될 가망성, 크다. 그러나 시도해볼 가치는 있다. 자~ 여러분 정치, 어렵죠? 그렇다면 A와 B 그리고 A=B를 생각하면 된다. A에 정치를 B에 인권단체를 넣으면 뭘까, 표는 환불되고 신간 소설, 망한다. 폭삭! 그러면 A가 정치라면 B에는 과연 뭘 넣어야 할까? 뭐긴 뭔가 딱 하나만 남지 않을까? 그래 그렇지, 바로 경제다. 돈이다. 단, 왜곡된 시대상이 아닌 상태에 기초하여 상식이 통하고, 기본이 지켜지며, 무법적인 무언가가 쉽게 통용될 수 없는 사회라는 가정 하에서. 딱 하나만 더. 시간이 얼마나 흐르든 영화에나 나오는 더 나은 미래 사회가 되든 어쩌든 B를 오락화라고 보는 생각, 있다. 좀 더 그랬으면 싶은 사람, 있다. 언제 어디서나 존재한다. 그에 대한 개개인의 판단과 사적 의견은 지나치자.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 나오는 무엇을 얘기하기에 앞서 그 두꺼운 책을 읽으신 분들은 턱없이 부족하다. 벌어먹고 살기에도 바쁜 세상이다. 기버와 테이커를 구분하는 결정적 단서조차 정작 중요한 시점에는 잘 떠오르질 않는다. 인간의 광범위한 성향이 원래 그렇다는 걸 알고 인생이라는 도박판에 끼는 게 분명 더 낫다. 어쩌면 학습이 아닌 경험으로 배우게 될 공산이 크고, 아마도 뉴스보다는 그외 다른 매체에 의하여 깨우치거나 세월이 가르쳐주기 일쑤고, 그러므로 학교와 사회는 판이 원론적으로 다를 수 밖에 없다. 어느 정도 유감스러운 세상이며, 세상사에 대해서는 말이 많다. 그런데 왜 제일 덩치가 큰 당부터 작은 당까지, 체급에 비례해서 뭔 말을 많이 들을까? 왜긴 왜겠나, 규모가 크면 챙길 게 많고, 다수를 만족시킬려면 소수의 표정은 찡그려지기 때문이다(그럼 소수를 위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야 하느냐, 것도 좀 그렇다). 기업도 공룡이 되면 요리조리 폴짝폴짝 쉽고 재빨리 움직이기가 힘들다. 그래서 가만 보면 이론적으로 10퍼센트 내외의 작은 정당이 옳은 소리를 외친다. 그러나 힘은 없다. 만약 힘을 얻더래도 추진력과 실행력은 한계에 부딛힐 공산이 크고. 또 정당이 구호단체가 아니듯이 회사는 공익단체가 아니다. 적당히 놀면서 우애를 다질려고 일하는 게 아니다. 기업의 목적은 이윤 창출이 아니라 고객 창출이라지만 어차피 이윤 창출 못하면 뭐가 아무리 어쩌고저쩌고 해도 외면받을 수 밖에 없다. 투자금 회수되고, 인력 빠져나가고, 샀던 주식 팔 수 밖에 없다. 그거, 빛 좋은 개살구! 면하면 드라마요, 역전에 실패하면 누굴 탓하리오. 핵심, 제일 중요한 하나의 단어는 이권이다. 키가 전봇대처럼 큰 어른과 어린이처럼 작은 어른이 같이 길을 걷다가 바닥에 떨어진 동전을 봤을 때 누가 빨리 주을까? 산술적으로 당연히 키 작은 사람이다. 그러나 그것과 저것은 판이 다르다. 쉽게 말해서 덩치가 크면 옳기 어렵다, 가 맞다. 이 말이 얼마 만큼 옳은가에 대해서는 썩 자신이 없다. 그러나 하나만 묻자. 덩치가 큰 어른이 옳은가 아니면 작은 꼬마가 옳은가? 말을 바꾸면 과연 철든 사람은 어른일까, 애일까? 아니면 도대체 철들라는 말인가 철들지 말라는 말인가, 왜 이랬다 저랬다야, 대관절 왜 속시원히 그 뭔가를 딱부러지게 꼬집어서 명쾌히 알려주지 않는 거야? 타당한 궁금증이다. 합리적인 호기심이다. 그러나 되묻는 질문이니 만큼 살짝 미련은 남겨 놓자. 따라서 그렇게 이미 애초에 힘든 분야이며 모순으로 가득하기 때문에 그래서 바로 사진과 말과 글과 뉴스에서 그렇게 대접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성대하게! 나는 이곳 천재들의 나라에 와서 바로 그걸 느꼈다. 하도 천재들이 많으니까 여기도 천재 저기도 천재, 커피도 천재 핸드폰도 천재, 행복도 천재 동기부여도 천재. 발에 채에는 게 천재고, 손만 까딱해도 천재다. 뻑~하면, 눈 한 번 껌뻑하면 천재다. 그러니 고상하게 개인적으로 쿨할 수 밖에 없다. 학교에서 배웠듯이 질서를 지키고 타인을 배려하고 어쩌고저쩌고, 좋다 좋아. 다 아름다운 교훈이며 가르침이고 도덕이다, 왜 나쁘겠나. 그러나 비유가 좀 부적절할지도 모르지만 뭐랄까, 성소수자나 장애인에 대한 처우나 뭐가 옳은지를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고 동의하고 누구나 어느 정도 실천하며 살고 있다. 하지만 그런데 누군가가 옆에 있다 어떻게 내 삶과 관계 된다, 일단 긴장할 수 밖에 없다. 내가 어떻게 뭘 해줄 수 있는 게 없으니까. 괜히 미안하니까. 또 뭔가 말이나 글로써 잘 설명할 수 없는 뭔가가 있으니까. 이미 그런 의중에 익숙한 상대편도 마찬가지고. 나중 결혼해서 불편한 아이가 태어났다 또는 결혼생활이 평탄하지만은 않다, 그게 인생이고 세상사다. 외국인끼리 만났는데 말이 안 통해, 간단한 제3의 언어와 바디랭귀지로 웃고 서로의 공통된 취미에 관한 전문용어로 어느 정도 대화가 된다. 금방 교감한다. 그러나 조금 있으면 서먹해진다. 할말이 바닥난다. 뭘 합하기도 어렵고 나누기도 어려운데 어디서는 못합쳐서 난리고 어디서는 못나눠서 난리다. 법원에 가면 그렇고, 결혼식장에 가면 또 그런다. 그걸 원칙적으로 모두 만족시켜야 하는 분야가 뭐다? 그래 그거다. 골때리는 분야!
끝으로 위에서 다룬 논점과 내용이 맞다면 왜 맞는 것이고, 틀리다면 대체 뭐가 틀린 것일까? 참고로, 나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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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천재들의 나라에서 하루하루 시간이 가면서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나머지는 내가 기존에 살았던 세상과 다 똑같은데 얼굴만 다르다고. 생각하는 방식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몇몇 습성과 이색적인 차이는 문화적인 이유 때문이지 근본적으로 다른 차원의 사람들은 아니란 것을 알게 됐다.
나는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니다. 나는 지금 소설을 쓰고 있는 것도 아니다. 허언증 역시 아니다. 뻥일리가 있나. 진짜다. 사실이다. 허구, 아니다. 내 말이 거짓이면 이미 외계인은 51구역에서 살고 있고, 지구의 내부에 초문명인이자 거인들이 거주하고 있으며, 남반구는 해가 서쪽에서 뜨며, 코메디언의 피는 분홍색이고 귀족의 피는 초록색이다. 뻥이라고, 천부당만부당한 소리다. 내가 거짓말을 할 까닭? 있을 리가 없다. 난 누굴 속이면 엉덩이에 뿔이 난다. 진짜 그래서 성장기에 고생 좀 했다. 나는 가짜로 얻을 게 하나도 없다. 무명이 명성으로? 이미 포기한지 오래 됐다. 모두 내려놨다. 마음을 비웠다. 옷도 누가 보든 말든 그냥 막 입는다. 만사가 귀찮다. 양말, 짝을 맞추지 않고 막 신는다. 이제는 신발도 마찬가지다. 누가 뭐라 하든 어떻게 보든, 남에게 권할 마음은 없지만 솔직히 그렇게 한번 살아보고 싶었다. 내가 막 살아야지 타인을 헐뜻지 않을 것만 같은 왠지 그게 공평한 거 아닌가 그런 바보 같은 공상을 했다는 사실, 숨기고 싶지 않다. 난 아니지만 혹시 내가 과거에 남에게 거짓말쟁이로 비춰졌을지 모르나 모든 오해를 바로잡을 수는 없으나 앞으로는 부쩍 조심해야 할 것 같다. 왜냐하면 나는 살면서 단 한 번도 거짓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말만 제우스다. 말로만! 그러나 나는 진실만을 말하며 살아왔다고 맹세할 수 있다. 내 인생은 거짓없이 오직 진실과 함께 했다고 자부할 수 있다. 내 이름마저 정직으로 바꿀 뻔했는데 마침 당시 바쁜 일이 있어서 실패하기도 했다. 나는 작품도 허구보다 실화를 좋아한다. 드라마도 잘 보지 않는다. 어쩌다 영화만 가끔 본다. 그외 뉴스나 다큐멘터리만 본다. 그리고 나는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싸워서 져본 적이 없다. 물론 나는 살면서 단 한 번도 술 마시고 취해본 적이 없다. 오죽하면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술 마시고 딱 한 번이라도 취하는 게, 제발 취해보는 게 소원이었다. 왜 그렇게 사람들이 그 쓴 술을 마시는지, 왜 그처럼 맨정신으로 살기가 어려운지 알고 싶었으니까. 정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는데 어쩌란 말인가? 일행에게 미안하니까 연기한 적은 있어도 그것도 이젠 지겹다. 혀가 꼬부라지고 취중진담을 하고, 다음 날 숙취 때문에 참으로 괴로워하거나 그 때문에 모험을 하는 것? 난 그게 뭔 소린 줄 도저히 하나도 모르겠다. 도통 왜 그러는지 알 수가 없다. 나에게는 그 모두가 하나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일 뿐이다. 또 나는 그렇게 허풍에 능한 사람이 아니다. 남을 속이고 내 마음이 편할 리가 없다. 낯선 여인에게 말을 거는 것도 서투르다. 마음만 먹으면 10분이 뭐야 눈빛이나 말 한마디로 금새 누구든지 꼬실 수 있지만 이제 별로 그러고 싶지 않다. 나는 이제 바르게 살고 싶다. 그렇다고 지금까지 퇴폐적으로 살았다는 말은 아니고, 또 무조건 입바른 소리만 하고 살겠다는 뜻도 아니다. 지금 소설이 극사실주의라는 걸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내 장기는 남을 믿는 것이고, 지금껏 수없이 거짓말에 속았으며, 나는 구라라면 치를 떠는 사람이다. 그런데 내가 지금 어느 안전이라고 함부로 이 못난 입으로 가짜 진실을 토로한다? 어불성설이다. 말도 안 된다. 판돈, 걸어도 된다. 보장한다. 책임도 질 수 있다. 담판, 붙을 수 있다. 각계각층의 온갖 논객과 허풍쟁이와 사기꾼과 숨은 전문가와 숨을 수 없는 권위자, 내가 다 이길 수 있다. 콱 그냥...! 이 게임에서 그 누구든 이번 건으로 내게는 상대도 안 된다. 그분들은 나한테 게임도 안 된다. 절대로! 난 진실의 열쇠를 쥐고 있으니까. 나는 이 건으로 그분들을 아주(아조) 오줌 싸게 만들 수 있다. 왜냐하면 내가 겪은 일은 모두 사실이고, 나는 아직 그곳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첫째, 거짓말쟁이로 들통나기 싫다. 그리고 둘째, 어떤 애처롭고 끝장나게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작품을 바로 여기서 써야 하기 때문에 나는 당분간 이곳을 떠날 수 없다. 그렇다고 꼭 나 같은 순진하고 꺼벙한 사람이 적당히 물 흐리기 작전을 써서 <나도 천재>라는 대열에 끼겠다는 의도는 추호도 없다는 것을 밝힌다. 양치기 소년으로 들통나고 소설을 완성하거나, 나머지 3가지 이상의 경우의 수가 발생하건 어쩌건 나중 때가 되면 조금 단조로워지면 돌아갈 수도 있다. 허나 지금은 아니다. 지금 돌아가는 것은 장난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장난을 좋아한다. 노는 걸 좋아한다는 말이다. 애들처럼.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내 인생은 장난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하늘에 맹세코, 모두 사실이다. 이건 장난이 아니다. 바람 피다 걸리면 어디 하늘만 거나? 그건 그렇지만 난 거뜬히 무엇이든 걸 수 있고, 떳떳하게 패를 깔 수도 당당히 판돈을 올리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얼마든지. 물론 관객이 일절 없는 굴욕을 당할 수도 있고, 이제 진짜 재미있어질려고 하는데 게임 제대로 즐겨보기도 전에 주최측으로부터 엉덩이를 걷어차여 카지노 바깥 거리로 내동댕이 쳐질 수도 있다. 그러나 당할 때 당하더라도 미리 겁먹거나 시커먼 변고는 상상하지 말자. 이런 꿈 같은 현실 세계이자 초현실적인 일상생활은 내게 정말 너무나도 과분하기 때문이다. 당신은 날 믿어도 된다. 그대는 손해볼 것 하나 없다. 너는 이미 오락실에서 동전 넣고 게임기의 스틱이나 운전대를 잡은 거나 마찬가지니까. 원, 별말씀을? 누가 할 소리를! 엘론 머스크가 왜 우리 함께 화성에 가고자 하는지를 알겠다고? 화성에 가봐야 별 거 없다. 지구의 사막 한가운데서 사는 거 보다 백번 못하다. 그러나 의의는 있다. 어려서부터 익히 듣고 배우고 읽어왔던 윤리와 지혜와 사랑 같은 단어들, 그게 과연 옳은가 정답인가 의심하고 회의하는 일은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세계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여기 천재들의 나라에서의 삶, 당신은 이미 4차원에 당도했고(숫자는 알아서 바꿔도 된다), 이미 타임머신에 탑승 완료했다. 노는 일만 남았다. 즐기면 그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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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들의 나라에서 내가 봤을 때 가장 웃겼던 현상이라고나 할까, 그 어느 대담하면서도 진지하고 몹시 자연스러운 일 가운데 그 짝을 찾을 수 <있을> 만큼 순수한 웃음이 튀어나왔던 일은 그것이었다.
공원에서 곱슬머리 강아지와 산책하는 사람은 개상이 아니라 얼굴이 개였다. 오래 같이 함께 하면 서로 닮는다는 그 말이 맞나 틀리나, 뭔가 이면에 숨겨진 진의가 있나, 원래 처음부터 만나기 전부터 단짝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게 아닐까, 그건 모르겠다. 그러나 강아지는 코커 스파니엘 개 주인도 얼굴만 코커 스파니엘, 이건 뭔가 딱히 정의내릴 수 없는 총체적 난해함이다. 혹시 주인과 하인의 역할 바꾸기 놀이인가? 그건 아니다. 그럼 뭔가? 모르겠다. 도저히 모르겠다. 모르는 건 모르는 거다. 코커 스파니엘이 뭐 헤비메탈 기타리스트도 아니고 말이다. 물론 개 주인과 개의 종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는 그럭저럭 보였지만 아직까지는 너무 뭔가 과도한 사례는 아직 만나지 못했다. 그리고 놀이터 의자에 앉아서 고양이를 안고 있는 어느 근사한 원피스를 입은 여자도 사람이 고양이과가 아니라 그 성격이 고양이스러운 게 아니라 면상이 고양이였다. 고양이 종류는 개보다 어렵다. 이건 그냥 넘어가자. 이 일은 핸드폰 어플리케이션으로 손가락 까딱하면 마술이 일어나는 그런 효과가 아니라 진짜였다. 재밌긴 재밌는데, 즐겁긴 즐거운데, 그들과 내가 평범한 대화와 정상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하지만 대놓고 웃을 수도 없었다. 그분들은 반대로 나를 이상하게 볼 것이고, 나는 통속적으로 예절 바르고, 위선적으로 구태의연했으며, 가식적으로 남의 마음보다 내 기분이 찡그려지는 데 아마 더 민감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말을 막 하고, 거침없이 솔직하고, 자기 주장이 강하려면 자존감이 두텁거나 독해야 한다. 시대에 따라 또 유행따라 인기 있는 인물 유형은 다르다. 대체로 독학은 한계가 있고, 남을 분석하는 것도 좋긴 하나 나를 아는 게 먼저다. 하지만 나는 물러터졌다. 귀도 얇다. 엄청 얇다. 거의 날개다. 불새지 불새. 인생, 알만하다. 누가 악역 배역 자리를 알아봐주지도 않는다. 이런 삐─── 학교에서 배운 것과 정반대로 살아야 하다니, 아예 처음부터 강하게 키우던가. 차리리 그렇게 알려주든가. 장차 알게 되겠지만 많이 방황할 테지만 이 세상은 어느 정도 독학으로써 그 의미를 음미하게 된다고. 어른들 말 믿을 게 못 된다. 부모 말 믿지 마라. 믿을 놈 하나 없다. 정말 다른 게 아니라 뭔가에 속았다는 게 걸린다. 그렇다고 무조건 불신하란 말은 아니다. 애들 생각처럼 성인들 열변처럼 세상이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다. 절대 아니다. 기억해둬야 할 것. 첫째, 나는 언제라도 틀릴 수 있다. 나 뿐만 아니라 또 모든 시간에 다 맞고 1세기나 더 장구한 세월에 딱 한 번 시간의 문이 열릴 수도 있다. 둘째, 타인의 의사와 세상사와 오락 산업을 입체적으로, 입체적으로 인식할 것. 또 그럼 그런다고 뭐라 하겠지만 어쨌든 내가 지금 휴양 생활을 하는 이곳은 참 이상한 곳임에 틀림없다.
7
신선한 충격은 꽤 오래 갔다. 그러나 그것도 끝이 없는 건 아니었다. 이제는 커피포트나 밥통 또는 웃긴 모습의 인형 안면을 사람의 어깨 위에서 사람 얼굴 대신 보더라도 나름 웃음을 잘 참을 수 있게 됐다. 게다가 드물게 꽃다발을 만나게 되면 어찌나 이상한 분위기는 나를 꿈의 동산으로 데려가 버리는지 황홀할 지경이었다. 아직 나는 천재들의 나라 그 미지의 세계에 대한 비밀을 별로 알아내지도 못했는데 이미 너무 많은 걸 알아버린 것 같은 걱정마저 날 귀찮게 하는 듯 했다. 친구도 생겼고, 사진도 같이 찍었고, 전화번호도 교환했다. 물론 그 후 연락 두절 됐다. 토끼 얼굴을 했던 친구였는데 눈이 충혈되어 있고 안면의 솜털이 너무너무 고왔는데 그런데, 내가 먼저 연락하면 안될 것 같았다. 내 고향 시골은 여전한가 안부는 많이 궁금하진 않았으나 그 향수가 아예 흐릿한 건 아니었다. 그리고 사전씨, 얼굴이 백과사전으로 생긴 양반에게서 에너지 음료 선물도 받았다. 기분이 좋았다. 짱 좋았다. 달나라까지 날아오를 것만 같았다. 또 글이 잘 써지지 않아도 괜찮았다. 난 다시 초등학생이 된 듯한 환상에 흠뻑 적셔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 정신을 시시콜콜한 수다와 공상이 마음 편히 접수하고 득세하게 놔둬도 괜찮을까 라는 시덥잖은 걱정이 들자마자 나는 이곳, 천재들의 나라에서 나와 똑같은 인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나는 염치 불구하고 그를 알고 싶어졌다. 그와 친해지고 싶었다. 필요하다면 약소하지만 사례금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잃어버린 가방을 되찾는 것도 아닌데 사례금을 왜 줘? 말이 그렇단 소리다. 그런데 그는 그녀다. 여자다. 시작은 언제나 여자일까, 모두 여자 때문일까? 모르겠다. 그럴 수도 있다. 그녀는 새침하다. 또 도도하다. 아울러 신선하다. 새롭다. 뭔가 숨겨져 있을 것만 같다. 사연, 알고 싶게 만들었다. 어디 그게 다겠나, 그녀는 예뻤다. 더군다나 착했다. 와, 비율 봐라! 지금 당장은 내가 멋진 남자를 소개시켜 줄 수 없지만 왠지 나는 그런 의무감이 생겼다. 그녀는 내 친동생이 아닐까 하는. 설마 그녀가 투정부리고 날 차버린다고 해도 나는 마냥 좋다고 코를 흘릴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그녀와 우리 관계를 좀 더 공고히 고착화시켜서 스스럼없이 친숙해져야 한다고 나에게 주문을 걸었다. 그러자마자 아니, 이미 그 전에 최면이 걸려버렸다.
그렇다고 우리의 만남이 설마 낭만적이었을 거라고 예상하지는 마시라. 오히려 정반대였으니까. 싱그러운 프리지아 향기, 안개꽃 한 다발, 선물용 부케, 광시곡 C단조, 거장 현대 미술가의 화보집, 음악회 초대권, 립스틱 모델 번호 뭐뭐뭐, 표지가 예쁜 공책과 색연필 세트, 두툼한 표지가 닳아진 19세기의 어느 시집 한 권. 이런 것과 우리의 첫 만남은 완전 거리가 멀었다. 멀어도 한참 멀었다.
내가 여기서 살게 된지 10일째였나 12일째였나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머물고 있는 펜션 3층으로 올라가는 중이었다. 2층을 거의 다 올라갔다. 갑자기 2층 어느 문이 열리며 속옷만 입은 어느 아리따운 아가씨가 제임즈라고 부르는 것 같은 음성과 함께 활짝 문을 열었고, 그때 우리는 눈을 마주치게 되었다. 위-아래가 일치하였느냐, 는 아마도 언급을 피하는 게 좋을 듯싶다. 왜냐하면 지금 시점에 그건 그 짝을 찾을 수 없을 만큼 무례한 언동임이 거의 확실하기 때문이다. 뭐 딱히 이상한 그런 상상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나는 그녀가 이곳에서 사는 유일한 동향인이라는 것을 직감했고, 깜짝 놀랐다. 그냥 멀쩡한 사람을 본 게 다인데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그러나 우리의 만남은 그게 마지막이었다. 또 알현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곧 문을 열고 눈이 마주친 후 어머나 하면서 허겁지겁 문은 다시 닫혔다. 혹시 나중 딱 한 번 더 만날지도 모른다는 미세한 예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누군가 나를 감시하는 것만 같았다. 내게 닥친 삐딱한 설정처럼 느껴졌지만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나는 뾰로통해진 채 천사들이 사는 나라? 아니 천재들의 나라에서 비로소 한 달을 맞이했고, 나는 집에서 혼자 쓸쓸하게 자축 잔치를 열었다. 왜냐하면 이곳은 내가 살아온 인생과 견주어 봤을 때 극도로 개인주의가 팽배해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나한테 있었겠지만. 내가 고른 술은 어느 과실주였다. 조니워커 블루를 마실려고 했는데 그건 품절됐다고 한다. 안주는, 안주는 음 최고급 참치 통조림을 선택할려다가 혹시 몰라서 피자로 바꿨다. 그리고 나는 집에서 TV를 보며 인터넷으로 블로그를 떠돌며 놀다 마시다 먹다, 그러다가 잠이 들었다. 자면서 꿈을 꾸긴 했는데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8
나는 단잠을 자고 있었다. 아주 달콤한 꿈을 꾸고 있었다. 꿈에서 온갖 맛있는 음식을 어마어마하게 먹어치웠다. 그리고 다 소화했다. 또 나는 어느 야외 공연장에서, 해변에서, 산책로에서, 서점에서, 거리에서, 극장에서, 내가 가는 곳 어디든 오빠 부대의 열화와 같은 호응에 시달렸다. 오빠 부대? 제일 예쁘고, 젊고, 착하고, 몸매가 아름다운 여인들로 선정된 걸로도 모자라 그녀들은 모두, 모두 나체였다. 오오, 눈부셨다. 입이 째졌다. 그래서 그녀들 인파 위로 뒤로 눞기를 시도했을 때 아마 나는 천상의 요정이 부린 마법에 걸렸던 것 같다. 그런데 그녀들은 실수하지 않았고, 날 뒤집지도 않았으며, 헹가래로 마무리 짓지도 않고 날 다시 무대로 올려보냈다. 좋긴 좋았는데 뭔가 얄미웠다. 즐겁긴 즐거웠는데 어떤 뭐랄까, 날 바보로 여기는 것 같았다. 기쁘긴 기뻤는데 정말 이래도 되나 싶었다. 그러던 중 나는 어느 날 한 편의 장편소설을 완성했다. 우연히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그분이 오셔서 미친 듯이 하루 종일 글을 썼는데, 그래서 책을 발간했는데, 어머나! 글쎄, 초-대박 난리가 났다. 그러다 나는 결국 그분이 됐다. 나 자체가 그분이 된 것이다. 어쩌다가 나는 천재들의 나라에서 왕이 되었다. 허수아비도 아니었고, 병풍도, 뭣도 아니었다. 게다가 막중한 책임과 사명감, 필요없었다. 우리는 같이 놀면 그만이었다. 날마다 휴가고, 어디서든 잔치고, 언제나 소풍이었다. 그러다가 오빠 부대에서 내게 최고로 적합한 배필을 마련해준다는 소문자 떠돌더니 어느새 나는 신혼 첫날밤을 맞이하게 됐다. 나는 그분이 내 님일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방문을 확 열고 나타난 그녀는 에고머니나, 어쩌면 좋은가 그건 바로 좀비 인간이었다. 이런, 이럴 수가! 저이에게 물리면 나도 이제 얼굴은 뭔가로 바껴서 저들처럼 살게 되는 건가, 그런 생각이 들었고 동시에 이왕 얼굴이 변한다면 뭐가 좋을까를 걱정했으며, 그래도 물릴 때 물리더라도 어떤 신성하고 경이로우며 장엄한 그런 뭔가 정신없이 신나는 꼭 해야만 하는 일을 마저 치르고 난 다음에 물려야 하지 않을까 라는 몽상을 언뜻 하게 됐다. 그런데 그 순간 갑자기 천둥이 쳤다. 막 쳤다. 계속 쳤다. 소리도 딱 진짜 천둥이었다. 나도 모르게 번개를 기다리게 됐다. 환상적으로. 그래서 첫날 밤의 판과 흥은 다 깨졌다. 와장창 깨져버렸다. 거의, 거의 다다랐는데. 완전, 완전 좋았는데. 왜냐하면 그 천둥소리는 내가 살고 있는 펜션 3층 문을 두드리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나는 그 소음 때문에 달콤한 꿈에서 깨버렸다. 좋다 말았다. 좀비에게 물리지 않았으니까 다행인 건가? 어쨌든 정신을 차리는데 한참 걸렸다. 그런데 문을 두드리는 낯선 손님도 참 소신 있어서 그렇게 내 정신이 돌아올 때까지 친절하게도 계속 문을 두드려주셨다. 뭔 배구선수도 아니고 손바닥 아프게 말이다.
밖에 나가보니 날 찾아온 사람은 일종의 세일즈맨처럼 보였다. 생김새는 그랬지만 목소리는 성우였고, 말발은 마술사였으며, 얼굴은 만화영화 등장인물이었다. 자기는 정보 기관에서 나왔다고 했다. 또 자기는 특급 요원이라고 했다. 나 때문에 천재들의 나라가 이만저만 시끄러운 게 아니라고, 어디서는 토론이 열리고 누군가는 나를 명왕성에 팔아버리자고 했으며, 나를 조용히 어느 외딴 섬에 가두자는 흉흉한 소문도 돈다고 했다. 그러다 마침내 의견을 모으고 조정해서 나를 치료하기로 합의를 봤다고 한다. 누구 맘대로? 그런데 내가 어디가 어때서 치료를 해? 내가 자기들과 틀리게 생겨서 아니 다르겐가? 아무튼 그래서 사람들의 사상에 대혼선이 생긴다는 것이었다. 이 양반이 내게 무슨 수작을 부릴려고 이러나 싶었고 일단 지켜봤다. 그러나 나는 그의 어떤 교묘한 술법에 차츰 넘어가고 있다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
물론 우리가 대면하자마자 그런 진지한 얘기가 오고 간 것은 아니었다. 아침이라서 나는 예술적인 꿈을 꾸다가 동물적인 감각으로 깨어나서 과학적으로 만들어진 문을 열었고, 그와 내가 마주치고 잠깐 지나서 나는 나의 생물학적 현상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때 나는 펜티만 입고 있었다. 그제는 완전 나체로 잠을 잤는데 어제는 팬티만 입고 잠을 잤다. 나는 부끄러웠고 그는 민망해 했다. 서로 어디다 눈길을 둬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선생님, 우리가 그대에게 떠나달라고 애원하지는 않겠습니다. 선생님, 우리가 당신을 어떻게 변화시키겠다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그저 서로 어느 정도 교양도 비슷하고, 웃음의 방식도 일치하며, 각자 아는 상식이 어느 만큼은 공통적이기를 바랄 뿐입니다. 물론 선생님께서는 어디든 가실 수 있고, 뭘 하든 자유입니다. 누군가의 명예가 심각하게 잘못 꾸며졌을 때 그것을 영화로 만드셔도 됩니다. 앞집 아저씨와 테니스장에 같이 가셔도 되고, 옆집 부인과 교제를 하셔도 저와는 무관한 일이며, 잊혀진 지난 두 번째 사랑을 찾아본다고 하더라도 아무도 신경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 좋아하는 우유의 이름이 순결이든 방탕이든, 남의 집 강아지를 보고 개인적으로 사춘기라고 촌스러운 작명을 하시든, 파랑새를 찾아 떠나시든, 화단에 연분홍색과 다홍색과 선홍색 카네이션을 키우시든 뭐든지 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선생님의 예술 생활을 존중합니다. 우리는 선생님의 낭만적인 연예계 개그맨 데뷔를 침해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습니다. 그러나 잘 아시다시피 아주 작은, 아주 사소한, 아주 자연스러운 그 선생님의 일시적인 음흉한 눈빛, 그 어느 위험한 도발 감각이 발현되어 실제 행동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우려, 불안, 초조, 혹시 내면의 욕망이 잘못 구현되어 도색 소설을 쓰실지도 모른다는 멜로드라마적 걱정, 다만 그런 부분이 걱정스럽고 근심스러울 뿐입니다. 그저 우리는 선생님께서 이 약을 일주일 동안 하루 3번, 식후 30분에 꼭 복용해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아침에 나를 찾아온 웬 정체불명의 이방인은 약 2시간 동안 명쾌한 연설을 하고 떠나갔다. 다시 생각해보니 나는 그게 대체 뭔 얘기인지 하나도 알 수 없었다. 약? 뭔 약? 내가 미쳤다고? 뭐 정신 개조? 뭐야, 꼭 피임약처럼 생겼자나! 혹시 약 팔러 왔나? 아닐 꺼야. 그런데 내가 소설을 쓴다는 사실은 어떻게 알았지? 점쟁이인가? 그러든가 말든가! 나는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도통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아까 다녀간 그분은 뭔가를 눈치채고 있는 것 같았다. 공원의 푸른 잔디밭에서 뛰어노는 강아지와 공놀이를 하는 연인들 옆에서 누워 책을 읽고 있는 어느 아저씨를 보았을 때, 그분의 얼굴이 축구공이라면 내가 축구선수처럼 바나나킥을 차고 싶은 욕구를 가라앉힐지 말지 잠깐 망설인다는 사실을. 그리고 실내에서든 어디서든 다스베이더 얼굴 유형의 사람들을 보면 쫀다는 사실을. 또 탁상시계 얼굴을 보면 매우 혼란스러워한다는 사실까지 말이다. 어디 그뿐이겠나! 아이스크림은? 식빵이면 물어뜯고, 음료수와 호텔이나 영화에서 볼 수 있는 바퀴 달린 거 머시기 미는 거기 위에 있는 동그란 뚜껑의 요리가 담긴 그거, 그리고 뭔가 신비한 기운을 내뿜는 보석 상자라면 그 뚜껑을 열어보고 싶어하지 않겠나. 어머! 뒤통수에 눈이 달렸네, 백허그 해도 하나도 설레지 않을 꺼 아냐, 에이 그게 뭐야! 어라~ 운이 좋은 친구군, 온라인 게임 캐릭터인데? 솜사탕이면 맛보고 싶다, 족제비털이면 만져보고 싶다, 환상머쉰이라면 어디 한번 작동시켜볼까? 귀면 말하고 싶고, 잭팟머쉰이면 딱 기대감을 품은 채 당겨보고 싶고, 비밀이면 알고 싶고,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다? 막 그러면서 두근거리는 익살맞은 심정을 이미 저쪽에서 훤히 꿰뚫어보고 있지는 않을까, 무릇 심히 걱정되었다. 그러나 나는 그냥 신경쓰지 말기로 했다. 그래 봐야 바뀌는 건 없고, 작업에 방해만 될 뿐이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그 약은 먹지 않기로 했다. 왜냐하면 그걸 먹으면 나도 저들처럼 머리가, 얼굴이 뭔가로 바뀔 것 같다는 미약한 심려 때문이었다.
아침부터 이상한 잡상인에게 휘둘린 나는 근처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해결한 후 가까운 놀이터가 있는 동네를 산책했다. 오늘 보게 될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마음이 풍선처럼 부풀지는 않았으나 또 그 어느 가능성을 무시할 수도 없었고, 내심 기대도 됐다. 그렇다. 여기 와서 살고 보니 내 전업이 어떻게 되는가는 몰라도 호기심 하나 만큼은 완전 왕성해졌다. 왕성?
동네를 돌아다니다가 나는 왠지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은 예감이 심기를 곤혹스럽게 만드는 어느 찻집에 들어갔다. 여기서 내가 무엇을 마시고, 누구를 만나고, 카페의 이름은 무엇이며, 어떤 명상을 했는가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이 없을 것이다. 그건 그냥 잡답이고 스킵 버튼일 뿐이다. 그러면 남은 건 뭘까? 그건 바로 어떤 얼굴을 봤냐, 바로 그것이다. 여기서 내가 본 것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다. 처음엔 신기했는데 계속 신기했다. 기존에 내가 살던 세계에서는 거북이의 짝은 토끼였다. 그런데 이 찻집에서는 토끼는 럭비공과 친해보였다. 그리고 도널드 덕 옆에는 데이지 덕이 아니라 웬 험상궂은 가죽재킷을 입은 콤팩트 디스크가 있었다. 자식, 연예인병 제대로 걸린 듯 고개의 각도에 신경 쓰며 눈빛과 말과 몸짓을 매우 천천히 움직였다.
오늘 하루, 그 외에 달리 글로 남길 만한 일은 더 이상 없었다. 오늘 하루? 그날 하루! 나는 하루를 마감하기 전에 어느 헌책방을 방문했다. 그리고 존 르 카레의 죽은 자로부터 걸려온 전화, 그 소설의 첫 페이지를 사진 찍어서 내 소셜 네트워크 계정에 올렸다. 왜 그랬는가, 명백한 이유는 없었으나 그냥 그러고 싶었다는 게 당시 내 느낌이었다. 물론 헌책방에서 사진만 찍고 책은 사지도 않고 문을 닫고 나와버렸다. 나는 왠지 나 화났어, 잠시 그러고 싶었던 듯 했다.
9
다음 날 아침에 나는 눈을 떴다. 나는 이제 이곳 천재들의 나라에서 머무른지 몇 일째인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고, 별로 알고 싶지도 않았다. 단지 오늘 하루는 또 뭐하고 보낼지, 어떤 음식을 먹고 무엇을 구경하며 어떻게 놀까, 바로 그것만 궁금했고 중요했다. 혹시 오늘 보게 될 사람은 얼굴이 자동차일까 윈드서핑일까, 동화의 주인공일까 현존하는 동물일까, 그는 그동안 살면서 책은 얼마나 읽었고, 키스는 몇번 했으며, 음악회에서 낯선 이성을 꼬신 적은 있을까 같은 쓸데없고 허튼 공상만 나를 졸졸 따라다녔다.
그러다 나는 오늘 오전에 비치발리볼을 한다는 경기 안내를 기억해냈다. 아하! 그게 있었구나 라면서 나는 작은 환호성을 외쳤고, 대충 씻고, 선크림을 바르고 향수를 뿌린 후 집을 나섰다.
나는 준비를 마치고 집에서 밝게 나아갔다. 막 계단을 내려가고 있는데 그런데, 2층을 지나던 찰나 나는 시간의 미로일까 이상주의의 신비한 공간일까, 아니면 환상의 신화 세계일까, 나는 어떤 거부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이끌림에 의해서 굽어진 시간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들고 말았다. 하지만 그건 나의 상상의 산물이었다. 초현실은 그저 헛된 기대였고, 실제 벌어진 일은 이랬다. 저번에 잠시 마주친 게 전부였던 2층에 사는 이름 모르는 어딘가 부쩍 외로움을 타는 듯한 아가씨가 때를 맞춰 재빨리 나를 자기 집으로 확 잡아당겨서 문이 나를 잡아먹은 형태이자 만화영화같은 동작이 발생한 것이다.
「아니... 여긴 왜...」 나는 차마 말을 끝맺지 못했다. 놀랐고, 흥분 됐고, 막연한 장면이 연상되었다. 자동적으로. 어쩔 수 없이. 저절로. 어떤 장르의 기대감, 없었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이번에는 옷을 입고 있었다. 그것도 공주풍으로. 꼭 트루먼 커포티 원작 영화에 나오는 자태를 바탕으로 뭔가 진지하고 심각한 표정을 취하고 있었기 때문에 저번에는 왜 속옷만 입고 있었느냐, 그때 원래 친구가 나타났어야 했느냐, 아니면 혹시 날 꼬시려는 의도를 품었느냐, 정말 그때 제임즈라고 부르지 않았느냐 설마 친구 이름도 그러냐, 끝에 S가 하나 더 붙은 게 아니냐, 라고 물어볼 수는 없었다. 내가 잠깐 이상한 추측과 논리적인 예측, 기하학적인 공상에 빠져들려는 순간 그녀는 말을 엄청 빨리 하면서 내게 조심하라고 긴히 속삭이기 시작했다.
「아저씨, 어제 누군가 다녀갔죠? 보물섬에 관해 이야기 하던가요, 아니면 뭐 존중하네 어쩌네 하면서 무슨 약을 먹으라고 하던가요? 그 약은 파란색인가요 아니면 보라색인가요? 알약인가요, 물약인가요? 둘 다 였을 수도 있지만 중요한 건 아저씨는 외계인의 교화 명단에 이름이 올라갔다는 사실이고, 아저씨는 절대 그들의 책략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며, 아저씨는 이미 약을 받았고 곧 먹을까 말까 고민해봤다는 사실이에요. 맞죠? 아니라고 하진 마세요. 이미 알고 있으니까요. 저는 아저씨가 밤에 어떤 자세로 잠을 자는지도 모두 알고 있어요. 어떤 꿈을 꾸는지 언제 마법에 걸리는지, 또 낮에 상냥한 숙녀를 보면서 어떤 상상을 하는지까지도요. 그러나, 그건 괜찮아요. 저의 투시력과 조종술 그리고 간파력을 얘기하려는 게 아니라 저들은 저보다 훨씬 많은 걸 알고 있다는 바로 그 엄청난 사정 때문이에요. 그래요. 이건 비상 상황이에요. 그러나 저들의 행동은 지극히 정상적이죠. 모든 건 시간 문제구요. 아저씨 제게 조용히 말해주세요. 대체 어떤 약을 받으셨어요? 푸르스름한 색의 약이죠? 맞죠? 아니라면 제 뺨을 때리세요. 어서요. 네? 맞다면 나중 봐서 제가 뽀뽀해드릴 수도 있구요. 뭐 포옹이 대수겠어요? 그 시절이 온다면 문제될 건 없겠죠. 안 그래요? 나중 우리가 천재들의 나라에서 다행스럽게 탈출하게 된다면요. (그러면서 그녀는 다짜고짜 노트북으로 백여개의 그래프와 나에 관한 정신분석 도표와 DNA 염기서열 분석 리포트까지 보여주면서 나는 철저히 감시당하고 있는 중이라고 알려준다) 아저씨의 일거수일투족은 모두 확인되고, 기록되며, 읽히고 있어요. 절대 빠져나갈 수 없을 정도로. 한번에 모든 것을 여기서 설명해드릴 수는 없지만 아저씨의 인생뿐만이 아니라 전 인류의 번영과 종의 번식과 지구의 미래가 걸린 문제라는 것만 알아두세요. 지금까지 여기서 아저씨가 보신 이상한 인간 군상들은 모두 피라미드의 최하위 계층이에요. 모두 외계인인 개와 곰과 늑대와 양과 다스베이더와 온갖 사물과 생물들은 모두 원래 여기 살던 인간의 몸 속으로 들어가서 그 인간의 정신을 지배하여 얼굴만 그들 모습으로 바뀐 것이라구요. 이제야 아시겠어요? 아직도 감이 오지 않나요? 원래 그렇게 한 박자 반 정도, 늦나요? 아니면 아직 인정하기 싫은신 건가요? 지금 사태는, 장난이 아니에요. 실전이라구요. 위기라구요. 절체절명의 순간, 바로 그것이에요. 아저씨는 지금까지 별 한 개만 보셨어요. 네, 그래요. 그것도 아직은 차마 믿기지 않는다는 것, 다 알아요. 말하지 않아도. 그러나 별 한 개가 끝이 아니라는 게 더 절망적이죠. 바로 위 계급인 별 두 개는 지상과 우주비행선 본부를 왔다 갔다하는 친구들인데 그들은 겉모습이 반대로 머리는 사람인데 몸은 사람이 아니에요. 그리고 별 세 개는 우주비행선이나 외계 행성에 사는 온전한 인간의 능력은 물론 초능력을 지닌 개와 곰과 늑대와 양과 다스베이더와 헐크와 온갖 사물과 생물들이에요. 온전히 자기 모습을 하고 있죠. 그리고 별 네 개는 머리카락 하나 하나는 용이고, 얼굴은 사람 얼굴인데 이마 정중앙에 눈이 하나 더 달려있다고 해요. 저도 아직은 거기까지 밖에 몰라요. 그 너머에 그들을 조종하는 백안의 신이 있을 수도 있다는 일설도 있는데 아직 밝혀진 것은 없고 모두 불가사의로 남아있어요. 또 저는 별 두 개까지만 실제로 만나봤구요. 아무튼 아저씨는 절대 약을 먹으면 안 된다는 것만 알고 계세요. 나머지 일들은 차차 알려드릴께요.」
나는 아무리 어안이 벙벙하더라도 딱 하나 궁금한 점은 꼭 묻고 싶었다. 그래서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묻지 않고 나중 우리가 재회할 수 없다면 나중 후회할 것 같아서.
「아니 그런데, 아가씨는 고양이요 여우요? 꼬리는 몇 개 달렸소?」
그녀는 차마 내 질문에 답할 가치나 어떤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척 하다가 애써 못이긴 척 이렇게 답했다.
「내가 압니까?」
나는 우리가 언제 다시 접선하는지도 모른 채 그녀와 헤어졌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하게 비치발리볼을 구경하러갔다.
뒤숭숭한 감정의 동요는 시작되었을까? 나는 그녀의 말을 찰떡같이 믿었을까? 아니다. 절대 아니다. 나는 그녀가 말할 때 속으로 그랬다. 혹시 얘, 미친년 아니야? 그리고 그녀와 헤어져서 혼자 걷는 중 이렇게 혼잣말을 했다.
「쟤 완전 똘아이네! 아침부터 뭔 생돌아이한테 세뇌당한 것도 아니고, 아 나 이거 기분 완전 꽝이구만! 이런,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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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때부터인가 2층에 사는 아가씨가 보이지 않았다. 하긴 전에도 거의 못봤다. 아니 처음과 마지막 그 이상한 두 번의 만남이 전부였다. 그러나 왠지 기분은 개운하지 않았고 어딘가 미심쩍은 느낌이 등 한복판에 착 달라붙어서 날 조종하는 듯 하여 나는 여행지에서 내가 뭘 하고 있는지 모르는 매우 난처한 입장에 처하게 되었다. 게다가 첫째 내가 여기 와서 봐온 얼굴들, 둘째 2층 여인에게 들었던 웬 뜬금없는 공상과학 이야기, 그 두 가지 때문에 나는 점점 매사 어떤 숨겨진 비밀은 없을까, 혹시 낭만은 설움으로 변하는 것은 아닐까 같은 남의 다리 긁는 헛된 생각이 자꾸자꾸 불쑥불쑥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아침에 거장 연주자의 앙콜 연주곡 소품집을 들으며 커피 한 잔을 마실 때에도 그날 따라 왜 그렇게 커피향에 민감한지, 내가 혹시 후각이 극도로 발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만약 내가 얼굴이 개로 바뀐다면 종은 무엇일까 같은 개 풀 뜯어먹는 억측이나 해대는 지경에 힘겹게 이르렀다. 그리고 좀비 영화의 각종 공식과 비공식 법칙, 좀비 유행과 사회적 역학 관계, 좀비와 사람들 취향의 연관 관계, 좀비와 직업과 나이의 상관 관계를 조사해봤다. 결과? 괜한 짓 했다, 가 결과였다. 그러나 나는 쉬지 않고 지금 내게 주어진 현재의 상황에 걸맞는 해결책을 찾기 위해 인터넷 세계를 누볐고, 규칙적으로 동네를 순찰했으며, 수상한 인물이 없나 구석구석 헤매고 다녔다. 펜션에서도 물컵 바닥과 화장실 천장, 해변의 수로 주변과 근처 공원의 잔디밭등을 샅샅이 뒤지고 또 뒤졌다.
그렇게 지내다보니 나는 다크서클이 점점 짙어져갔다. 그 약은 먹지 않았으나 정상적인 몸 상태에서 상당히 뭔가 균형이 어긋난 것 같았다. 눈이 퀭해졌고 식욕도 없었고, 하루는 불면증에 걸렸다가 하루는 조증에 걸렸다. 다음날에는 걸신들린 듯 식탐이 늘어서 정말 좀비처럼 맛난 음식점들을 돌아다니면서 엄청 먹어댔다. 설마 이대로 자연 변화로 인해 나도 저들처럼 얼굴이 뭔가로 바뀐다면 어쩌지 라는 기우는 커져만 갔고, 난 정말 미칠 것만 같았다. 혹시 내 얼굴이 약통으로 바뀔까? 아니면 후라이팬? 그보다는 참치 통조림? 설마 뚜껑? 아마도 척키? 워, 그러면 큰일인데 진짜 큰일인데, 어떡하지? 어떻게 미리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펠리컨이나 고릴라로 바뀌면 어떡하냐고! 그러다 나는 환시를 경험하게 되었다. TV 채널을 돌리다가 홈쇼핑에서 브레지어 판매 방송이 나오는데 나는 그것을 고등어로 착각했고, 보험 상품 판매는 얼굴 변환 설정 계약에 대해서 방송하는 것만 같은 환각을 경험하게 되었다. 도저히 이대로 기다리다가는 사람이 미쳐버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다 나는 약이 놓여있는 것을 봤다. 혹시 저 약은 치료제나 예방약은 아닐까? 내 얼굴이 방독면으로 바뀌면 큰일이니 그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는 약은 아닐까? 맞어, 평생 방독면으로 살아야 한다면 그것도 정말 고역일 것이다. 또는 얼굴이 스핑크스로 변한 뒤에는 되돌릴 수 없을 꺼 아니야? 나는 정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정말 시간을 되돌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무척 절박했다. 무작정 도망가는 방법도 염두에 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금방 잡힐 듯 했다. 죄만 더 늘어날지도 모를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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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내 눈이 거의 팬더곰이 되던 순간 나는 한줄기 빛을 보게 되었다. 그분의 구혼과도 같은 다정하고 친근한 하트 뿅뿅과 천사들이 부는 뿔나팔 소리가 정말 들리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눈부신 광채는 없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오늘은 무슨 특별한 날도 개인적인 축일도 아니었다. 아무려면 어떤가. 새로운 발견에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하늘이 무너져도 정신만 차리면 뭐 어쩐다드니 드디어 나는 천재들의 나라에서 탈출할 수 있게 됐다. 그동안 딱히 곡절이 많은 것도 아니었고, 소설도 못 썼지만 왠지 다양한 얼굴맨들 눈길도 심상치 않고 뭔가 때가 된 듯한 기운이 느껴졌던 시기였다.
그때 당시 내가 묵던 3층의 거실과 부억과 방에는 각종 명화들이 걸려있었다. 누구, 누구, 누구. 진품인지 모조품인지는 모르겠으나 그것을 보고 내가 어쨌겠나, 당연히 나는 액자 뒤를 확인해봤다. 그러나 아무 것도 없었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내가 굳은 심지로 떠올려야 할 동물은 딱 두 가지였다. 첫째 거북이, 둘째 코끼리. 나는 두드리고, 비비고, 파고, 문지르고, 째려보고, 냄새를 맡고, 입김을 불다가 마침내 비밀 통로를 발견해내고야 말았다. 그것은 바로 거실 카페트 밑에 설치된 뚜껑 문이었다. 어디 살며시 만져볼 아기천사 조각상의 물건은 보이지 않으니까 갖은 시도를 이어가다가 끝내 결실을 맺게 된 것이다. 나는 뚜껑 문을 열었다. 그런데, 와! 그것은 원형 계단으로 내려가다가 진짜 만화영화에 나오는 그런 모험의 세계에서나 볼 수 있는 신기한 장식으로 둘러싸여 쭉 이어진 천국으로 가는 길인 듯 보였다. 지금 생각 같아서는 그때 어떻게 그 밑이 2층인데 그런 통로가 있을 수 있나 의심하고, 좀 더 찬찬히 살피고, 침대 속과 밑도 뒤져봤어야 하지 않았나, 그런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워낙 겁을 먹었고, 희망이 부족했으며, 환희가 불투명하더라도 어딘가 미지의 공간으로 떠나고 싶었다. 게다가 교묘한 압박이 가해질 테고, 나는 어떤 의미로든 그 정체불명의 응 어쩐지 궁금하고 묘한 파벌에 투항을 고민할 수도 있다는 것을 절감할 것이고, 무엇보다 나는 쫓기기 시작할 것이라고 직감했다. 때문에 나는 앞뒤 여건을 따지고자실 여유가 없었다. 나는 쫓기고 있었고, 시간과 싸우고 있었다. 동물의 세계에 등용되기 직전이었으며, 잘 하면 인형이지만 그게 아니라면 억장이 무너지는 장래가 현실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어쨌든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나는 그 비밀 통로를 따라서 걸었던가, 뛰었던가, 붕 떠서 날았든가, 아니면 수영을 했나 뭐 어떻게 해서 기존에 내가 살던 우리 동네 시골 인근의 폐업으로 정지된 미니 놀이공원에 도착했다. 어떻게 천재들의 나라에 있던 펜션 3층이 놀이공원 타임머쉰과 연결이 될 수 있는지는 지금도 의문이고, 나는 끝끝내 그 수수께끼를 풀지 못했다. 아직까지는. 그러나 앞으로도 그 비밀을 풀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우리 동네에 당도한지 얼마되지 않아 나는 제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많이 휘청거렸다. 그런데 때마침 소나기가 내렸다. 이때부터는 진짜 허겁지겁 뛰어서 우리집까지 갔다. 그리고 나는 집에 도착했다. 수영장도 잔디밭도 모두 그대로였다. 나는 갑자기 엄청난 피로감이 몰려드는 걸 느꼈고, 그 쏟아지는 졸음을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냥 깊은 잠에 빠지고 말았다. 그런 후 나는 다음 날 깨어났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내 볼보 웨건과 캠핑카는 집 앞에 있었고, 시간도 아마 다시 과거로 되돌려져 있었던 것 같다. 일이 정확히 어떻게 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최면도 몽유병도 환각도 아니고 진짜 체험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거꾸로 흐른 것이다. 거짓말이 아니다. 진짜다. 사실이다. 내가 그곳에서 사진을 찍어 소셜 네트워크 인스타그램에 올렸던 사진도 그대로 있다. 그 무슨 이상한 약은 아, 놓고 왔다. 설마 그건 기억을 되살리는 약이었을까? 구충제일 리는 없지 않은가! 정말 이건 어디서부터 어떻게 된 일인지 도대체 영문을 모르겠다. 정말 너무도 생생히 기억난다. 너무 또렷한 영상들은 아마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펜션 2층에 살던 아가씨를 처음 봤던 일과 두 번째 만난 일 모두 너무나도 생생한 경험이었다. 그 수상한 사람들의 얼굴들은 다 뭐란 말인가. 그 위치를 아니까 친구들을 데리고 한번 찾아갈까? 애들이 내 말을 믿어줄까? 그곳은 변하지 않았을까? 아, 맞다! 그러고 보니 8일째 되는 날 발견했던 고급 액자에 끼워져 걸려있던 사진! 단체 사진에서 몸은 사람이고 얼굴은 각자 알아서 개성있게 생긴 무슨 무슨 맨이었는데 그런데, 어머나! 글쎄, 어떻게 그런 일이! 세상에나, 믿을 수 없어, 말도 안 돼! 마지막 날 뚜껑 문으로 내가 탈출한 날에 그 사진은 명화로 바뀌어 있었던 것이다. 와우! 소름 돋는다. 그리고... 그리고...... 거기서 책 한 쪽을 사진 찍어서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 그것은 올린 날짜가 미래 시각에 올린 것으로 되어 있었다. 장소는 내륙 어느 공간과 해변 어디 그리고 바다 한가운데의 어느 지역에서 올린 것으로 나와 있다. 나는 그 좌표를 지도에서 찾아봤다. 어떻게 이런 일이, 저런! 그 세 지점의 중심은 거의 우리집과 근처 폐쇄된 놀이공원의 귀신의 집과 가까웠다. 이럴 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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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그렇다 치고 오오! 그 선녀들의 나라에서 나는 왕이 되었고, 난 너무나 행복했는데, 그 꿈마저 거짓일까? 믿을 수 없는 일이다. 도저히 납득이 안 된다. 뿐만 아니라 이마 정중앙에 눈이 하나 더 있는 별 네 개 이러쿵저러쿵, 궁시렁궁시렁, 거시기 이게 뭐가 뭔지 도무지 하나도 모르겠다. 나중 나도 모르게 향수병에 걸려 그곳으로 가고 싶어하면 그땐 정말 어떡하나, 걱정이 태산이다. 그나저나 그 어쩌면 요술에 걸렸을지도 모르는 어느 거짓말 같은 진짜 사실은 모두 다 어찌된 영문일까? 왜 나는 하필 그곳에 방문했고, 어느 이상한 아가씨를 만났을까? 13일의 금요일? 나는 늬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 그것은 기쁜 꿈일까, 슬픈 꿈일까? 기쁜 꿈이라면 끝장나게 달콤하고 미칠 듯이 황홀하지만 나 혼자 겪어서 아깝고, 타인에게 증명할 수 없어서 속이 타들어가고, 언제 다시 그 아득한 희망의 나라에 다시 방문할 수 있을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너무나 허전하고 처절하여서 그 기쁜 꿈은 아마도 참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슬픈 꿈이라고 해도 그 슬픔은 어쩌면 사랑 같은 것이었고, 두 번이든 세 번이든 얼마든지 다시 맞이하고 싶기 때문에 그것이 슬픈 꿈이란 얘기도 말짱 거짓일 뿐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건 진짜 있었던 일이다. 재차 당부하지만 그 일은 내 인생의 중차대한 오로라빛 모험이었고, 에메랄드빛 환상이었으며, 사파이어색으로 가득했던 초현실적 체험이었다. 단언컨대 그건 추호의 거짓이 섞이지 않았던 실재 있었던 일, 순수한 진실이었단 말이다.
그딴 말 같지도 않은 말장난 말고 확실한 물증을 제시하라고? 이 양반이 이거 이거 속고만 살았나, 내가 아무 근거도 없이 호언장담을 할 사람으로 보이나? 어? 내 코를 봐라! 명쾌하게 증명되지 않나. 나는 르네상스적 인간은 아니지만 전형적인 피노키오형 인간이라고 자부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겉으로 다 드러나니까 절대 거짓말을 할 수가 없다. 보통 사람들도 둘 중 한 사람은 그렇다. 표정으로 다 드러난다. 외면에 뭔가 헛점을 노출한다. 포커페이스, 그거 결코 쉬운 게 아니다. 아무나 못한다. 가짜 웃음처럼. 겉이 까칠할수록 속은 자상하고 더없이 따스하다. 아니면 이마에 다 써진다. 나 거짓말하고 있소 라고. 고수들은 벌써 텔레파시를 읽는다. 당신에게 있어서 천재들의 나라란? 이분은 스스로 묻고 답하기를 하고 있구나 라고 엉뚱한 상상을 하기도 한다. 어찌되었든 퇴보한 기능이기는 하지만 나에게는 꼬리뼈처럼 피노키오의 코가 밑에서도 작동한다. 위에서는 진실만을 얘기하기 때문에 코가 그대로 있고, 밑에서는 어... 음... 뭐 그런 시답잖은 농담일랑 그만두자. 지금 천재들의 나라에서 있었던 신기한 일을 논하는 판국에 무슨 그런 입에 담기는 커녕 떠올리기도 불경스러운 추측을. 쉬쉬 하자. 품위를 잃지 말잔 말이다. 누가 듣겠다. 허위여, 무엄하도다. 거짓이여, 썩 물럿거랏. 허상은 다음 이 시간에. 허풍? 생판 처음 듣는 단어다. 허당, 까지는 겸허히 받아들이겠다. 그래, 인정한다. 그러나, 거짓말! 아니 아니 아니 아니 아니 아니 아니, 아니올씨다. 뻥은 용납치 않겠다. 절대로. 모두 진짜였으니까!
요약컨대 이미 자타공인된 일이다. 무를 수 없다. 동네 체스도 아니고. 아마추어처럼 굴지 맙시다. 누가 봐도 명백한 사실이다. 신빙성, 신뢰감, 증거, 증인, 논거, 타당한 합리적 근거등 갖출 건 다 갖췄다. 단, 떨리는 불가사의에 대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요 남겨진 숙원이라고 보는 관점이 우세하다. 따라서 모든 의심은 말끔히 해소되었고, 그러므로 불미스러운 오점도 의뭉스러운 부당함도 고약한 허구까지 하나도 남지 않고 모두 해결되었다. 비둘기가 돌아왔다. 제비꽃도 피었다. 달님은 웃고 바람은 노래한다. 해님은 벤치에서 대기 중이다. 누구나 시상을 떠올린다. 부흥이란 단어를 끌어들일 필요도 없다. 극사실주의는 건재하다. 극적인 모험을 생각하면 지금도 모골이 송연하지만 친구여, 축배를 들자꾸나. 그냥 막연하게라도 뭔가 불분명한 대상에 감사하자. 우리는 행복하고, 그리고 사랑은 영원하다. 또 이 세상은 아름답다. 날 부르는 카멜레온풍 꿈을 찾는 기대에 대한 열정은 부풀어올랐다. 피노키오의 코처럼!
난 있잖아요, 거짓말을 할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저는 태어나서 지금껏 단 한 번도 거짓으로 남을 설득해 본 일이 없습니다. 거짓말을 할려고도 해봤지만 전부 실패했다. 일기도 가짜로 써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뻥, 저는 그런 단어 싫어합니다. 구라, 상대할 가치도 없습니다. 더군다나 저는 허풍이란 단어를 알게 된지도 불과 얼마 되지 않았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제 말을 믿어주지 않을 것 같아 혹시 해서 이렇게 소설로 남기는 것입니다. 하물며 이것이 거짓일지라도 저에게 실이 되면 실이 됐지 득될 건 하나 없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음, 앞으로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는 없지만 운이 따라준다면 나중 후세에 그렇게 전해지지 말란 법은 없겠지요. 어쩜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구요. 살면서 단 한 번의 거짓말도 하지 않고 살았던 사나이라고. 우웩! 마치 퍼펙트 게임 같은 어느 스포츠 규칙처럼. 켁! 농담이 너무 지나친 듯 하여 살짝 재수없어지네요. 살짝? 저런!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다. 나는 알에서 태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알에서 태어난 사람을 알고 있다. 나는 외계인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지구에서 살고 있는 그 어느 외계인을 알고 있다. 나는 미학적 안목이 형편없고, 내가 무엇을 좋아하며, 내가 장래 어떻게 살고 싶은지 어떤 꿈은 있는지 있었는지도 잘 모른다. 가진 것도 이룬 것도 모두 변변치 않다. 내가 거의 이룰 뻔한 꿈이 하나 있긴 한데 그렇기는 하나 그건 발설해선 안 되는 비밀이다. 절대! 무엇보다 천기누설에 해당되는 일이라서, 때문에 나는 그것을 무덤까지 떠안고 가야만 한다. 왠지 꿈을 먹고 사는 젊은이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나는 무엇이 이상적 삶이고, 대체 어떤 인생이 아름답고 대체 어떤 인생이 막가는 것이며(결과적으로?), 행복한 가정은 또 무엇인지 간단히 설명할 재주도 없다. 정말 쉬운 게 별로 없고 모두 어렵기만 하다. 그래 철도 안 들었고, 그래 뻑~하면 백판 자빠져 놀기만 한다. 그것만 봐선 완전 개다 개. 똥개. 그러나, 그러나 나는 단지 좋아함으로써 지구를 또 이 우주를 가진 사람을 알고 있다. 그 어느 신세계는? 좌우간 뭔들 못 가졌을까, 앞으로 어떠할까. 다─전부─다 가진 사람이 나는 아니다. 그러나 나는 그 사람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사실은 변치 않으리라. 또 나는 뭔가를 하고 싶은 욕구가 발생하면 그게 이루어지는 것은 곧 시간 문제일 뿐 더 이상 문제되는 건 아무것도 없는 사람을 알고 있다. 아주 잘 알고 있다. 장래 대성할 사람, 척 보면 안다. 보기만 해도. 가까운 미래 어떤 일이 일어날지, 나는 도박사를 신뢰하는 편이고 점쟁이를 신봉할 뿐이다. 요술 수정구의 기원과 현재 잔여량은 물론 미래의 주인, 나는 예선 탈락했지만 그게 누구인지 알고 있다. 예언, 나도 한때 몸담았던 분야지만 엄한 추측만 남발해서 그쪽으로는 기력이 바닥난지 오래다. 요약하면 재능은 처음부터 없었거나 있어도 미미하며, 잔꾀는 벌써 들통났다. 하지만 갖고 있는 정보는 탁월하다. 놀라울 정도로. 더 나아가 이미 익히 알려진 일루미나티와 세계 몇 대 불가사의등 내가 입만 뻥긋하면, 내가 입만 뻥~끗하면 일반상식이 한바탕 뒤집히고, 그야말로 적지 않은 것에 관하여 일대 소란이 일어날 수도 있다. 그럴 가망성은 매우 짙다. 따라서 잔머리 회전이 빠르신 분이라면 아마도 지금쯤 눈치채셨을 것이다. 내가 왜 이 뚱딴지 같은 일을 글로 남겼는지를. 그 어떤 현대 기술로는 여기 포함된 미래 기술의 결정체로 뭉쳐진 암호를 절대 알아내지 못한다는 것을. 그 누군가에게 본 소설은 단 둘만 알 수 있는 뭔가 중요한 어떤 정보와 사연이 담긴 내용을 전달하고 있다는 것을.
하나의 사실이 어쩌다가 신비스런 기억으로 남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까지 거짓말을 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는 것, 최소한!
한 번 또 한 번, 두 번 그리고 세 번. 진짜라고 정말이라고 타인을 납득시키고 싶지 않다. 단 한 명만 믿어주면 된다.
끝으로, 이것은 실화다. 동시에 전설이다. 적어도 내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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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조니는 이상한 경험을 하게 됐다. 드물지만 흔치 않은 희안한 일 그 생소한 느낌이 처음에는 무척 생경했다. 그러나 그것은 곧 얼마 지나지 않아 꽤 익숙한 습관처럼 아무렇지 않은 감정으로 변했다. 왜냐하면 조니가 겪은 그 이상한 경험은 간헐적으로 반복됐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반응이라면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지, 그럴 것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일반적인 생각은 많지도 않은 단 몇 차례만 반복되어도 다음과 같은 사유로 바뀔 수 있다. 썩 어렵지 않게. 즉 어쩜 그런 일이 있을 수도 있어 그럴 수 있다구, 라고.
처음에 그가 맞닥드린 비정상적인 일은 이랬다. 그는 집에서 혼자 TV를 보면서 포도주를 마시기 위해 장을 보러갔다. 그리고 딱 필요한 물품과 식료품을 산 후 집에 왔다. 그 가운데 참치 통조림도 하나 있었다. 조니는 그날 밤 집에서 TV 채널을 돌리며 혼자 말하랴 거실에서 왔다 갔다 서성이랴 괜히 발냄새를 맡기도 하고 뭔가 허기진 듯 식욕을 느꼈다. 때문에 TV 앞에 탁자 위에 포도주를 올려놓았다. 그런 다음 술만 마시기가 뭐하니까 간단히 요기를 때울려고 참치 통조림을 가져와서 땄다. 그런데 사건은 이때 발생했다. 뻥~하고 정전기와 연기와 필라멘트가 터지는 듯한 상황이 일어나고 꼭 작은 거인이 나타나는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작은 거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뻥 소리가 나면서 필라멘트가 터지는 것처럼 뭔가 번쩍 했다. 연기도 났다. 통조림 뚜껑을 열고 나니 그 안에는 그가 어렸을 때 만화영화에서 봤던 주인공이 초정밀 실사 형태로 자리잡고 있었다. 마치 당장 주인님 세 가지 소원을 말씀해보세요, 라며 말을 할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녀석은 말을 할 줄 몰랐다. 움직일 수도 없었다. 그냥 인형일 뿐이었다. 그의 이성은 조금 감성에 잠식당했고, 그 일은 마법이 아니었으며, 따라서 그는 그저 조금 웃다 말았다. 참치 통조림 거 별로 비씨지도 않으니까 하면서. 자기가 잠이 들면 녀석이 활동을 시작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단 꿈에서 둘이 만나건 어쩌건 그는 녀석을 덥썩 들어서 TV 옆에 놔두었다.
새벽에 조니는 약간 색정적인 꿈을 꾸며 잠꼬대를 하다 침대에서 떨어졌다. 그러나 그 상태로 깨지 않고 계속 잤다. 뭐 그러다 알아서 다시 침대 위로 기어올라갔을 것이다. 그리고 참치 통조림에서 태어난 인형은 역시나 신비한 요정이 아니었고, 그 둘은 꿈에서 조우하지 못했다. 아침에 조니는 마법에 걸렸고, 인형은 TV 앞의 침대 위의 조니에게 일어난 마법을 지켜보게 되었다. 설마 인형의 눈을 통해 보이는 전망이 모두 인터넷으로 생중계될 리는 없겠지만 왠지 하루 아침의 시작이 썩 성스럽지 않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렇게 조니는 일상을 이어갔고 그 외에 다른 특이 사항은 없었다.
그 후 일주일이 지났다. 그는 코를 풀기 위해서 화장지각에서 화장지를 하나 뽑아 코를 풀었다. 그리고 그걸 쓰레기통에 슛 던져서 골인시켰다. 그런데 지나칠려다 화장지각을 보니 거기에 지폐가 꼿혀 있었다. TV 옆에 있는 인형이 벌인 일은 아닐 테고, 휴지 99퍼센트 외에 바닥에 어떤 사연 때문인지는 몰라도 휴지 대신 지폐가 들어갔을 것이라고 그는 그렇게 추정했다. 공장에서 뭔가 착오가 있었고, 누군가 힘없는 노동자가 벌인 퍼포먼스일 가능성도 무시할 수는 없었다. 큰 횡재는 아니지만 딱히 불운이라 여길 일도 아니었다. 그래서 조니는 그 돈을 들고 나가서 복권을 샀다. 이번에는 즉석이 아닌 정식 복권을 샀다. 그리고 그는 그 일을 일기장에 기록했다. 아, 그는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건 말만 일기장이지 그날 뭐했고 다음날 뭐했고 기분이 어땠고 누구는 뭘 뽐냈고 난 뭐가 부러웠다, 그와 같은 낙서장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게 별일 아닌 일은 그에게 큰 인상을 남기지 못하고 잊혀졌다. 왜냐하면 그 복권이 꽝으로 판명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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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니는 어느 날 집을 청소할려다가 진공청소기가 고장났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그는 동네에 있는 중고 가전제품을 파는 가게에 찾아갔다. 왜 그런지는 몰라도 그는 이번에는 꼭 중고품을 사보고 싶어졌다. 뭐랄까 전주인의 은밀한 비밀을 모두 깨우치게 될 것 같은 말도 안 되는 예감 때문이었다. 물론 그 느낌은 믿음직스럽지도 않고 합리적이지도 않았으나 단순히 먼지가 아닌 사람의 마음을 빨아들이는 그런 마술같은 진공청소기를 혹시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근거없는 허영심이 일단 사태를 주도했다. 그래서 조니는 로보트처럼 그 상점에서 진공청소기를 사들고 집에 왔다. 아무 이유없이 뿌듯했다. 얘 때문에 특급 소설을 쓸 것만 같은 기대감은 부풀었고, 그의 작품은 환상으로 SF로 어떻게든 얼마든지 변화하고 거듭 진보를 이어갈 듯한 느낌에 자못 흐뭇했다.
그런 공상에 빠져 행복해 했고, 한참 동안 헛된 몽상이 그를 놓아주지 않던 찰나 그때 초인종이 울렸다. 바깥에는 웬 절세 미녀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용건은 이랬다. 자기는 진공청소기의 사은품이라는 거였다. 때문에 그는 그녀를 책임져야 하고, 오늘부터 데리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처음에 그는 웃었고, 조금 지나서 예의상 억지로 꽁트의 작품성에 찬사를 보냈고, 나중에는 어쩔 수 없이 결국 버럭하며 화를 냈다. 지금 장난하냐고! 뭘 원하냐고! 나한테 왜 이러냐고! 왜 하필 나냐고! 그 다음이 도대체 뭐냐고! 그러나 상대가 여자였기 때문에 조금 약하게 역정을 부렸다.
그는 더 이상 속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세게 나갈 수는 없었다. 그의 앞에 나타난 미녀는 상냥했고, 공손했으며, 너무 귀여웠다. 목소리도 어떻게 그리도 꾀꼬리 같은지 마음이 사르르 사르르 녹는 것만 같았다. 이거 이쯤 되면 정말 데리고 살아도 되나 내가 그녀를 거두지 않으면 누가 그녀를 돕는단 말인가, 그런 생각마저 슬슬 기지개를 켜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뜬금없는 불청객이 아껴주고 찬양해도 모자를 만큼 그녀는 착했으나 그는 겁이 났다. 뭔가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어떻게 신기한 일 다음에 놀라운 일이 또 다시 염원이 이루어지다니, 이제 다음 차례는 뒤통수 맞을 일만 남은 듯한 불안감에 그는 쫓기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는 이 꿈이냐 생시냐 같은 황당한 일을 기뻐하면서도 어떻게 한번 그녀에게 멋진 남자를 소개시켜주고 싶은 욕망을 품은 다음에 곧바로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즉 이 순간을 유예하는 것. 그는 다시 한 번 지금 장난하냐며 그녀의 마음을 떠본 후 반응을 확인하며 오케이~했다. 곧 그는 자기 소속사 매니저 폴의 연락처와 주소를 알려주며 거기에 가 있으라고 했다. 일단 신부수업을 받는 게 좋은 듯 하다는 조언을 건네는 것도 잊지 않았다. 잔머리는 녹슬지 않았다. 최근 겪은 행운이라 믿고 싶은 이상한 일들의 전모를 더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에 섣불리 밀착 마크를 당할 수 있는 전담 요원에게 감시당하기는 싫었던 것이다.
그렇게 조니는 그녀를 보내고 슬슬 실체가 드러나는 요행을 좀 더 적극적으로 찾아나서기로 작정했다. 그래서 그는 서점에 가서 책을 한 권 샀다. 그 어떤 여자라도 단 10분이면 모두 꼬실 수 있다는 텐미닛이라는 제목의 비서를 입수했다. 그리고 집에서 그 책을 읽고 거리에 나가 책에 씌여진 대로 똑같이 시도했다. 그러나 그건 먹혀들지 않았다. 축복이 발휘되지 않은 것이다. 시험은 계속 됐다. 하지만 거창함은 애초에 없었고, 실망만 반복됐다. 기대감은 무슨 기대감, 체념은 굳어졌다. 그래서 그는 가슴을 뻥 뚫어주는 듯한 뿅가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는 어느 광고를 보고 새로 나온 음료수를 사서 마셨다. 몬스터라는 에너지 음료를 마셨는데 괴물이 되기는 커녕 배탈이 났다. 약을 구해서 먹었는데 그 약은 복통을 다시리는 약도, 그렇다고 생리통을 완화시키는 약도 아니었다. 그 약은 바로 지사제였다. 그는 변비에 걸렸다. 그는 며칠 고생했다. 그런 다음 몸이 회복되자 그는 기운을 차렸다. 그리하여 행운은, 이상한 놀라움은 정확히 어떤 패턴으로 등장하고 그 불규칙성과 정형화에 얽힌 비밀은 무엇인가에 관한 그것을 알아내고자 하는 도전은 멈추지 않고 계속 됐다.
3
어느 날 조니는 그들이 운영하는 잠정적으로 중단된 무명 블로그를 찾았다. 한동안 활동이 없는 공동 집필 소설이 그리웠고, 오늘 따라 그것은 어쩐지 어떤 서품이 필요할 것만 같았다. 모처럼 스무살 청춘으로 돌아간 듯 해서 즐거웠는데 어딘가 모르게 문학이 신의를 져버린 것만 같은 뜻 모를 연민이 빠끔히 고개를 내밀고 자기를 째려보는 듯한 착각에 붙잡혔다. 혹시 지금 권태기인가, 아마도 갱년기? 그럴 리는 없다. 그는 뭘 해도 기뻤고 항상 재미있었고 언제나 즐거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알 수 없는 허전함은 뭐란 말인가. 도통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가 지금 들어야 할 노래는, 젊은 날의 아픔인가? 그렇다면 그걸 고른 라디오 편집 책임자는 감봉당할 수도 있다. 한 3개월 정도. 징계는 면제. 아니 유예? 응, 유예. 지금 당장 그가 읽어야 할 시는 혹시 이렇지는 않나, 고뇌하는 청춘이여! 선남선녀인 척 친구들과 단체 소개팅이라도 하는 게 차라리 낫겠다. 으잉? 진짜 그럴까? 해볼까? 그는 일단 핸드폰에 그걸 기록해놨다. 단체 소개팅이라고. 사랑의 짝대기, 생각만 해도 우습고 무언가 흥미롭고 이상야릇한 기분이 느껴졌다. 화살표를 독식하면 어떡하지, 동료들에게 미안한데...! 그건 그렇고 원래 지금 분위기는 침울했으니 설마 지금 당장 그가 설득당하며 감명받아야 할 낭독은 아마도, 사랑스런 신부여? 사랑스런 신부 같은 소리는 이제 그만.
그러나 사실 조니는 세침떼기였다. 즉 그는 눈치 백단이었다. 아무리 그의 감성이 퇴보하고 애정의 감각이 힘 빠졌다고 할지라도 그는 다재다능한 여우였고, 게다가 용맹한 늑대였다. 뭐 그가 미친놈도 아니고 어쩌다 우연 다음에 아쉬우니 한번 더 우연, 미우나 고우나 우연이 계속 이어지기를 바라는 운명론자에 몽상가이자 고상함과 근사함을 목말라하는 낭만주의자는 아니었다. 적당히 현실적이고 때에 따라 속물이었고, 대체로 지혜로우며, 종종 이성의 나약한 측면을 순순히 인정할 줄도 알았다. 왕왕 남몰래 선행도 베풀었고, 몰래 품는 호의도 있었다. 곧 그 말은 그는 척하면 척 뭔가 이상한 기운을 감지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는 바보가 아니니까. 그의 기량이 아무리 저속할지라도 준치는 썩어도 준치다. 그는 드디여 눈치를 챘다. 언제까지 가슴이 벅차오르는 기분을 고대하고, 로맨스를 믿고, 애들처럼 불가사의를 궁금해하며 4차원 세계를 마냥 동경할 수는 없었다. 음악당에서 모차르트의 론도 CD를 샀는데 그걸 집이나 차에서 틀었드니 자기 조수나 업무 관계자나 누군가 자기를 스토킹하는 연정을 간직하고 그를 몹시 흠모하는 어느 여인의 육성 고백이 잔잔한 음악을 배경으로 전해진다? 바랄 껄 바래야지. 약국에서 무슨 오매가 뭐 비타민 영양제를 사서 먹었는데 그게 슈퍼맨이 되는 약이라고, 무슨 소설 쓰나? 쇼핑몰에서 옷을 한벌 샀는데 글쎄 옷 주머니에 웬 USB? 영화 찍나 영화 찍어? 그렇다고 아무 까닥없이 개연성 필요없고 작위적으로 또 즉흥적으로 후라이팬과 케익과 안마의자를 충동구매하라고? 그건 합리적 소비도 아니고 당연히 소녀의 감성도 아저씨의 잊혀진 꿈도 아니다. 차라리 하루는 개 팔자를 부러워하고 하루는 고양이 팔자를 흠 잡는 게 낫겄다. (물론 그는 알려지지 않은 애묘가다)
그는 다시 냉철한 이성을 되찾은 것이다. 그들의 무명 블로그가 더 이상 업데이트되지 않았기 때문에 뭔가 낌새가 느껴졌고 어떤 신묘한 반전이 숨겨져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왜 그만 몰랐을까? 이제라도 알아챘으면 다행이다. 뭐 자기가 참치 통조림을 땄는데 뻥 소리가 나고 연기가 올라오고 그 안에 캐릭터 장난감이 들어있었다고? 녀석이 귀엽길래 데리고 다녔는데 자기의 모든 활동을 온전히 인터넷 세상으로 퍼날랐다고? 실시간으로? 화장지 통에서 나온 마지막 화장지가 지폐라고? 고액권? 진공청소기를 샀더니 광고 사진에 나온 미모의 아가씨까지 덤으로 준다고? 어? 이 사람이 지금 장난하나! 어? 장난해? 거리에서 뭐 음료수 깡통을 발로 뻥 찼는데 그걸 웬 숙녀가 얻어맞고, 서둘러 다친 데 없나 챙겨주고, 황망한 이 사태를 그렇게 소홀히 넘길 수는 없다며 절대 그래서는 안 된다며 인사를 트고, 연락처를 받든지 그냥 바로 같이 멋진 연노란색 컨버터블을 타고 드넓은 어항이 있는 색달리 멋진 카페에 갔다가 어떻게, 어떻게 일사천리로 그렇게?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그건 허풍이고 꿈이고 이야기보따리다. 공상이며 요원히 먼 희망사항이며, 가상한 측은지심을 유발하는 맥락없는 멜로 연기일 뿐이다.
그래서 그는 생각했다. 무엇 때문에? 무명 블로그의 저조한 활동 때문에. 무엇을? 그러면 그와 같은 이상한 일이 왜 자기에게 계속되었는가를. 흡사 그는 낙오자가 된 것만 같았다. 친구들이 뭔가 작전을 건 듯 했다. 무언가 수상했다. 자기만 늦은 듯한 조마조마하고 뒤숭숭한 느낌과 함께 전문가들 세계에서 말하는 감, 떨어지면 밀려난다는 감, 잡고 싶은데 잘 잡히지 않는다는 바로 그 감이 떨어진 듯한 세한 분위기를 감지했다. 친구들과 함께 했던 공동 작업의, 덩실덩실 행운의 구름을 타는 흥겨운 기세의 꺾임을 그만 몰랐다. 이제 알았다. 뭔가 속은 듯 한 게 아니라 속았다. 딱, 속았다. 제대로 걸려들었다.
한편 친구들이 공동 집필을 하기 전부터 각자 개인 블로그를 서로 구경하지 않는 것은 일종의 불문율이었고 모종의 철칙이었다. 예술하는 사람들끼리 흔히 농담으로 하는 말인 철들면 안 된다, 의 철과 다른 의미의 철은 어른으로 살면서 기본으로 구비하지 않으면 안 되는 효용성이고 인사성이자 격식이고 사회성에 예법이다. 그건 결코 천운도 아니고 둔갑술도 번뜩이는 천재성도 아니다. 꼭 골똘히 고민하고 영감을 소생시키며 막후의 결단을 내려야 하는 일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는 그 종류의 철이 일시적으로 들지 않았고, 잠시 한눈을 팔았으며, 감이 떨어진 줄도 모르고 있었다. 감이 뭐 바지 지퍼도 아니고 말이다. 완전, 속은 것이다. 감쪽같이. 꼼짝 못하고. 환상적으로.
4
조니는 케빈의 블로그를 보고 약 3초 동안 기겁했다. 그리고 약 2초는 어리둥절했다. 그 후 약 1초는 망설였고 급기야 그 다음에 폭소가 터졌다. (숫자에 0을 하나 붙이거나 초를 분으로 바꾸는 게 더 사실에 가깝겠다) 환희는 멈추지 않았다. 참으로 일찌감치 알았다며 침통해했지만 또 썩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작은 비밀을 목도한 것이다. 케빈의 블로그에는 이런 포스트가 올라와 있었다.
「어느 날 조니는 이상한 경험을 하게 됐다... 처음에 그가 맞닥드린 비정상적인 일은 이랬다... 간단히 요기를 때울려고 참치 통조림을 땄다...」
자기가 겪은 행운의 연속이랄까 무언가 조잡한 축복이라고 하면 너무 좀스럽고 미심적이지만 응당 놀라운 일이며 이상한 경험의 실체가 드디여 드러난 것이다. 모든 일은 기획됐다. 퍽 치밀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꽤 신선했다. 조니는 자신이 연재중인 소설의 주인공이니까 자기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드라마를 보는 듯한 까무러칠 만한 환영에 젖어들었다. 최근 새삼 깨달은 것이지만 블로그는 지나깨나 환상이었다. 어쩜 이렇게 사람이 아닌 존재와 사랑에 빠져들게 된 것 때문에 인생이 축복 받은 것만 같았다. 가슴은 설렘으로 요동쳤고, 마음은 떨림으로 사무쳤으며, 기분은 그야말로 초롱초롱했다. 황량한 내 삶이 꽃을 피우고 건조한 인생에 무지개가 떠오른 듯 했다. 불시에 흥분한 것이다. 녀석들을 한심한 놈이라며 나무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조니는 가만히 몸을 떤다. 왜냐하면 어떤 미세한 이별의 조짐이, 작별과 긴밀한 내연의 관계에 있는 듯한 혼자 일하기의 서막이 밝아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알렉스의 블로그를 확인해보니 그들의 공동 블로그는 제 역할을 다했다고 나와 있었다. 즉 여름이면 돌아오는 공포영화처럼 개인적으로 순수예술을 하다가 오랫만에 대중예술을 위해 협업하는 개념으로 모두들 알고 있었다. 자기만 몰랐다. 그 혼자만 공동 블로그에 너무 심취해 있었던 것이다. 대략 무명 블로그의 해체라고 봐도 그다지 틀린 얘기는 아닌 듯 했다. 그걸 가지고 자기만 소외됐다네 덜컥 슬퍼지네 징징거릴 일은 아닌 것이다. 하지만 그의 안면은 창백했다. 더없이. 그리고 말없이 자신의 예감이 적중한 것을 깨달았다. 이미 마크의 블로그는 그것에 이름을 붙였다고 나와 있다. 미래파라고! 그는 젬병 나만 몰랐네, 그랬다. 그러나 그는 친구들 블로그를 또 녀석들이 운영하는 소셜 네트워크를 보는 즐거움에 시간이 가는지도 몰랐다. 각자 자기 계정의 소개 글에 짧은 이상에 대한 문구를 남겨놓았다. 순진한 문학 소녀처럼. 연애편지를 쓰는 순수한 무엇보다 어서 어른이 되고 싶은 소년과 비슷하게. 외람된 말씀이지만 그분들은 천천히 늙고 싶으시지만 그와는 전혀 다른 마음을 간직한 어린이도 아니면서. (외람된 줄 알면 아예 말을 꺼내지 말든가?) 또 집에서 프린트한 종이를 벽에 바로 또는 액자에 끼워 걸어놓거나 수험생처럼 머리띠를 맨 모습을 담은 사진을 올려놓은 것도 보였다. 거기 씌여진 글은 이랬다.
닥치고 쓰기.
아찔한 지성. 신나는 모험.
오늘도 고전(苦戰). 고전(클래식)과 함께. 어쩌다 사랑.
아마도 거짓. 의심은 기본. 내일은 낭만. 그녀는 신비.
나는 귀공자. 블로그야 놀자. 토끼의 칭얼거림. 개와 남자. 서정시를 쓰자.
거간꾼의 인생(거간꾼은 간이 크다, 부었다, 특이하다는 뜻)
(그리고) 슬슬 환상곡을 만들 때가 됐다.
또 더 긴 문장들도 있었다. 그 글만 잘 이어도 즉흥시나 단편소설 하나 정도는 나올 것 같았다.
「단추를 잠그고 리본을 풀다. 아니, 단추를 풀고 리본을 잠그다.」
「어? 합성이... 아닌데!」
「왜? 나쁜 건 다 누구한테 배운 것 같냐? 그건 아니지? 그렇지? 그럼. 그럴 리가 없지. 그건 말이 안 돼.」
「내가 가진 패는 풀 하우스도 아니고, 무심코 내게 날아올 운명의 상대는 조커나 퀸일리는 없고, 액면도 그저 그렇고. 에휴~ 이게 다 뭐래니!」
물론 훨씬 긴 소설에 쓰일 법한 대화 같은 글도 있었다.
「거 웨 뭔가 가르쳐줄려 하거나 아는 체 하는 모습. 젊었을 땐 모두 애송이지 다 거기서 거기니까. 그런데 꼭 그런 말 하는 친구들이 있어. '너 여자가 어떤 남자를 좋아하는 줄 알아? 여자는 말이야, 상의는 몸과 밀착되고 하의는 그보다 덜 밀착된 옷을 입은 남자야.' 그리고 그런 어중간한 말을 상황 봐가며 상대 봐가며 그대로 또는 반대로 밖에 응용하지 못하는 녀석들, 꼭 있단 말야. 어려서 폼 잡고 싶고 뭔가 있어 보이는 어느 카리스마와 위압감이 느껴지는 옷에 끌리고 그렇기는 해. 어리석은 젊음 그것도 젊음의 본연의 특성이고 그 때문에 신나는 모험도 가능하니까. 하지만 그건 꼭 청춘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야. 뭔가 있는 거 같은데 듣고 보면 아무 것도 없는 말, 뭔가 있는 듯 한데 알고 보면 아무 것도 없는 허위 같은 거. 잘 이해해야 한다는 의도를 가지고 친절하게 알아 듣고 싶다는 의무를 바탕으로 주의 깊게 귀를 기울여보자는 태도를 기본으로 혹시 흥미로울지도 본받고 따라할 점이 있을지도 모른다면서 읽고 또 읽는데 듣고 또 듣는데 한참을 들여다봐도 뭔 말인지 아무리 귀 기울여도 잘 모르겠어, 바로 그런 말. 인물로는 허당, 동화로 치면 변신, 속세에서는 사이비, 습관으로 치면 거짓말. 걔네들만이 아니라 어른들이 원래 구사하는 말과 행동이 모두 그래. 치고 빠지기. 오른쪽으로 가는 척 하다가 왼쪽도 아닌 듯 해서 가운데 서 있기. 속마음을 짐작하고 판세를 읽고 미끼를 던지기. 기교도 있고 제법 철학적이며 없는 것 없이 거의 다 있고 때로는 단순하게 때로는 복잡하게 무언가 훨씬 중요한 게 나올 것 같지만 어떤 알맹이와 놓치면 안될 요점을 꺼내놓을 듯 하지만 기다리려 기다려도 아무리 기다려도 그건 대개는 결코 나타나지 않지. 처음에는 일단 꼬셔, 진짜 재미난 일이 있다고 너에게만 가르쳐주겠다고. 처음에는 분위기를 잡고 설득해. 지금은 이렇지만 나중에는 어떻게 될 것이라고 마치 예언처럼, 흡사 도사처럼. 그러나 그 말의 처음과 끝은 달라. 글도 비슷해. 글도 똑같아. 그런 경험을 수십 년 하고 나면 비로소 보이지. 그래도 가끔 지금도 간혹 귀가 씰룩거리기는 하지만. 미래의 내가 되어서 뭔가를 읽어보면 도저히 뭔 말인지 모르겠어, 지금 그러는 거 같아. 그 미래가 어느새 지금이 되어버렸어. 슬프기도 하고 웃기면서 기쁘기도 하지, 이상하게도. 현재의 나는 예전의 내게 이렇게 충고해주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어. 아름다운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만 돌아갈 수 없으니까. 시간을 돌이킬 수 없다면 지금부터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나로 돌아오고 싶어하지 않게 살면 되겠지만, 음 쉽진 않겠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야. 아, 충고 같은 말 그건 이거야. 뭔지 잘 모르겠다 헷갈린다 이해가 잘 안 된다 나는 달리 생각하는데 납득이 안 되는데 너무 강하다 너무 우긴다 너무 세다, 그렇다? 그러면 듣지마. 읽지마. 만나지마. 쳐다보지마. 거기에 시간을 쓰지마. 그게 결론이지. 무시해도 돼. 외면해도 된다구. 헤어져도 삶은 계속 돼. 정해진 운명은 없어. 사람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고. 일단은 지구에서지만 말이야. 그건 꼭 나이 들어 깨닫는 교훈 같은 건 아니야. 원하는 풍경을 보고 바라는 이상을 갈망하고 연모의 감정을 한껏 사모하란 말이지. 그런데, 난 말을 하고 있는데 왜 자꾸 글을 쓰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거지? 네가 듣기에도 그러니? 그냥 횡설수설인 것만 같아? 그럴 지도 모르지. 하지만 내가 봤을 땐 약간 그런 것 같아. 그러나 혼자서 짐작하고 혼자서 느낀 것 만으로는 뭔가 부족하잖아? 믿음과 확인은 별개의 문제이듯. 거의 모든 글이나 말도 전부 다 자기 말 자기 글 자기 행동과 자신의 생각과 자신의 신념이 맞고 옳다고 그래. 자기 주장과 의견 제시, 그것도 상업과 똑같아. 시장경제에서야 어느 애매한 선을 넘으면 과장 광고라며 제재가 가해지지만 기실 더 엄밀히 따져봐야 하지 않나 라고 누구나 어쩌다 한번 쯤 의문을 떠올려보는 몇몇 분야에서는 오히려 그게 최선이며 원래 그런 것일 뿐이라는 자연 법칙 때문에 더 옹호하고 더 장려되는 것만 같아. 책을 봐봐. 거기에 둘러진 띠에 씌인 글을. 예술 작품을 소개하는 포스터를 봐보라구. 우리 마음을 유혹하고 내면에 속삭이는 화사한 얘기들. 어디 그 뿐이겠어? 보사노바와 고전음악이 만나면 뭐야, 크로스오버라고 하지. 주황색 브랜드와 포도빛 예술작품이 만나면 또 뭐라 그래. 새로움이든 뭔가 알찬 역동성이 느껴진다면서. 그런데 정치에 다른 단어 있잖아 종교나 경제를 더하면, 그건... 왠지 얼굴이 밝게 펴지기 보다는 작게나마 찡그려지는 감, 거북스러운 느낌이 없잖아 있지. 그만큼 힘들고 어렵고 중요하기 때문에 그러겠지만 말이야. 그게 꼭 나쁘거나 어색하지 않기를 바라는 게 이상이고. 내가 아는 그대 A와 사랑 B는 변하지 않기를 바라며, C라는 가게는 꿈결 같은 분위기를 바탕으로 사랑의 비너스를 변함없이 알리고, D에 가면 황금빛 후광을 볼 수 있는 동시에 천상의 행복을 느낄 수 있고, E 블로그를 구독하면 사랑으로 가장한 청초한 정념과 사랑의 불길과 사랑의 왕국은 물론 사랑에 관한 온갖 신비로움을 알려주고, F 강연회에 가면 연사가 이상적 아름다움에 대한 철없는 동경과 함께 그녀를 내 여자로 만드는 방법 그 특효약을 가르쳐주고 알려줘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야 하지 않니? 그게 맞잖아? 어? 어느 드라마를 보고 소설을 읽으면 나는 그녀를 이렇게 꼬셨다라고 나오지만 나 뭐했다 그런 거 말고 어떻게 해야 한다는 그런 인문-교양적 소양에 대한 안내 또한 충실해야 하는 것 아니냔 말이야. 어때, 그렇잖아? 그런데 세상은 그렇지 않아. 그렇지 않잖아? 응? 그래서 어느 강연회에서는 자존감이 덜 성숙됐다고 할까 무언가 마음이 여린 청중들을 모아놓고 막 그렇게 동기부여를 하지. 나 빼고는 전부 다 삐── 라고! 틀린 말은 아니야. 그런 과감함과 패기가 필요한 거친 세상이니까. 과감함? 묻지 말고 키스 하기? 그런데 지금 시점에 그 얘기가 왜 나왔지? 응? 왜 지금이야? 어? 혹시 안다면 알려주지 않을래?」
「거 왜 그래, 니콜라스? 너 기분 좋을 때를 생각해보라고. 로맨스 코메디의 전설이라는 영화를 새로 시작된 연애 상대와 기분 좋게 보고 나왔어. 데이트 일정은 남아 있고 기대감은 부풀고 예감도 좋아. 그러면 그 로맨스 코메디에 악평을 쏟아붇고 싶겠니? 완전히 새롭다는 오페라를 봤는데 어머나 그건 광고 내용처럼 정말 상상은 현실이 되고 압도적인 스케일에 거부할 수 없는 치명적 매력에 가려진 뭔가를 즉 반전에 홀딱 넘어간다면 그것도 모두 가짜고 거짓이고 과장이며 엄살에 능청이야? 뭐든지 제일 중요한 건 네 상태야, 지금 네 여건이라고. 이미 알만한 넌데 왜 그런 생각이 드는 걸까? 너도 잘 알잖아, 세상은 그렇게 썩 정의롭지 않다는 것. 화창한 날씨에는 청량감이 느껴지면 그림자도 짙다는 것. 그건 어쩔 수 없다는 것 말이야. 어떤 유명함에 상응하는 행보에 대한 언행이 일치하지 않았을 때 어떻게 특출나게 주어진 유명함과 무관하며 평등한(?) 내국인의 의무를 외국인에게 짐을 지우며 어디서는 입국을 거부하지만 어디서는 주권의 혜택만 제한해. 그 차이 밖에 없어. 적은 차이는 아니지만. 언제부터 도리가 그렇게 완강한 헌법이었나, 그게 뭐 엿장수 마음인가? 남녀노소 막론하고 여론에 덜덜덜덜 달달달달 낡은 선풍기처럼 약풍만 트는 오락 산업의 유행따라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는 뭐 남국으로부터 불어오는 사랑의 향기 같은 거냐고. 대체 그런 이별주가 어딨어? 정치와 경제와 사회계 뉴스에 대한 제일 흔한 말 가운데 하나인 일관성. 일관성, 그건 뭐 자유자재로 변신하는 만화영화 주인공인가? 적은 차이는 아니지만 그래, 적은 차이는 아니야. 하지만 대체로 어디에서나 조직이 거대하면 크고 작은 문제는 있는 법. 정부 시책에 반하는 개인적 의사가 확고하거나 더구나 영향력도 있다면 바깥에서 안으로 들어올려면 기준선은 까다로워질 수 밖에 없겠지. 나중에 봤을 때 또 나무를 보면 갸우뚱할 수도 있지만 그건 나중이고 또 나무를 봤을 때의 얘기. 지난 일에 대해서 거대한 행정력의 과오는 유달리 커 보여서 그러는지는 잘 모르겠어. 그런 건 쉬운 말로 잘한 점, 무거운 단어로 업적도 있을 테지만 기억나고 화자되는 건 하필 음 조금 그래. 누구나 그럴꺼야. 행복하고 기쁘고 즐거웠던 추억을 회상하고 미소를 지으며 새로운 봄바람을 기다리거나 다가오는 첫눈을 기대해. 그러나 그와 반대로 씁쓸하고 아픈 기억은 잊혀지지 않고 드물게 또는 틈만 나면 대체로 간혹 당신을 괴롭히지. 차이는 있겠지만 어디나, 누구나 다 그래. 하긴 동물농장의 고위급들이 헤어진 남자친구나 사별한 부인도 아니니까. 또 왕조시대이고 왕권이 꽤 보장된다면 평등이나 박애 같은 개념을 이루는 게 비교적 더 쉬울 거야. 이론적으로 그리고 그럴 의도가 있다면. 그러나 지금 세상은 기본적으로 선거에 승리하는 게 먼저니 나중 평등 뭐 박애? 도의적으로나 넓은 개념으로는 아니겠으나 나중 와~ 방대한 인사권을 고르게 행사한다면 그건 논리적으로 따지자면 나 혼자 힘으로 동물농장의 수장이 됐다는 거잖아. 크게 또 작게 돕고 응원한 사람들은 다 뭐야? 들러리야? 어? 액자고 병풍이냐고. 감독, 코치, 동료, 관중과 그래 장비와 후원자와 애호가 다 필요없고, 나 혼자 잘나서 환상 이론을 창시하고 우승하고 메달 딴 것과 같은 이치라고. 팬들이 바라는 모습으로 남지 않겠다는 거니까. 조금 삐딱한 시선이 담긴 독백을 연극풍으로 부풀려보자고. 너네들 항상 하는 말 뭐냐 그거 아니냐고 하겠지. 그 개념은 사는 데 뭐 하나 도움이 안 된다, 뭐 방법이 없다, 처음과 처음의 다음부터 다르지 않냐, 어떻게 할 수가 없다고, 뭐 한두 번 속냐고, 간혹 곧이곧대로 말한 거 다 지켤려고 하면 역으로 그게 더 감당하기 힘들수도 있다고, 그러니 도저히 못 믿겠다고. 그런데 일반인만 뭐 전문가를 못 믿나, 전문가는 일반일을 믿고 인정할까? 전문가도 기본적으로 장미꽃을 팔고 사과나무를 키우는 사람과 똑같다고. 웃음 한번이 프리지아고 바나나고 환경 운동이며 표야. 학자? 인기 없어. 책이 안 팔려. 심지어 가난해. 더군다나 세상은 아울러 누구도 날 인정해주지 않아. 일단 지난 사랑에 실패했으니까 미래의 당신을 기다리는 수 밖에. 시대를 앞서간 거지. 학교 선생님, 역시 인기 없어. 애들 표정 보면 다 알아. 그러나 교육자래. 밖에서 우리 선생님이 어느 술집 문을 여는 것, 제자는 딱 한 번 보고 그걸 일평생 기억한다고. 그 일이 어디 쉽겠어? 처음부터 끝까지 기분 좋겠냐고. 일단 거기서부터 모순이야. 어떻게 하겠다는 선언에 따른 시작 전부터 이미 그 모순을 안고 가는 것으로(가야 하는 것으로?) 상정된 정말 이상한 게임이잖아. 나서서 비호하기도 남이 뭐라 하건 찬양하기도 그렇다고 오락 산업과 덩달아 으쌰으쌰만 할 수도 없는 일 아니니? 올커니~ 뒷짐만 지고 딴청을 피우면 되겠네 그러면 또 그런다고 뭐라 그래, 바로 이와 같은 글이나 최소한의 의무만 행사하자 라는 캠페인에서 말이야. 있는 사람들이 지갑을 여는 행위가 경제 관념에 위배되지 않으며 정당한 권리이자 시장 경제에 나쁘지 않다는 건 맞는 말. 그리고 자기 돈 가지고 자기 마음대로 쓰는 것은 어느 선을 넘으면 불미스러울까, 는 수학처럼 정확하지는 않음. 그러나 내 선거권을 내 마음대로 쓰는 걸 왜 뭐라 하냐, 도 같은 문제로 볼 것인가는 다른 문제야. 앞서 문장은 맞냐 틀리냐, 그 다음은 애매하다, 그리고 그 다음은 내 이권과 자유에 따라 어디까지 어떻게 행동해도 되느냐 그것은 전자와 전전자와 달리 그 짝을 찾기 어려울 만큼 쉬운 문제가 아닌가봐. 즉 일상적으로 최소의 의무는 마다하고, 건강한 비판과는 거리를 둔 채로 나중 무분별한 험담이라면 그 어디에서도 둘째 가라면 서러워하는 사람만 되지 말자, 어쩌면 그 정도가 정답일지도 모르는 일일세. 인류 역사상 인간 사회에 대한 가장 훌륭하고 가장 우수한 체계라는 데 공교롭게도 그 한계는 간명하게 훤히 보이잖아? 어느 일반인 왈, 그럼 나보고 뭐 어쩌라고! 그분을 건드려 뭐하겠니? 세상을 바꿀려고? 그런다고 바뀔 세상이니? 누군가는 동물농장의 사장을 할 수 밖에 없어. 공석은 안 되니까. 세상이 복잡한데 어떤 관계든 거미줄처럼 얽힐 수 밖에 없다구. 멀리 보면 아마 다 차츰 점차 비슷해질 꺼야. 나아가는 방향은 같으니까. 어디에서는 묵묵히 그 길만 걸으며 낚시를 했던 사람만 낚시꾼이 되는 반면, 어디에서는 유독 제복을 입었거나 그와 관계된 사람이 그 분야 전문가가 되기도 해. 그건 우연이나 운명 같은 애매한 말 보다는 달리 부르는 게 더 기품이 느껴지겠지. 고기가 안 잡히면 오히려 장비 탓을 하는 게 더 즐거운 법. 어쩌면 그게 맞지 않을까? 그래야 더 즐겁지 않냐는 말이야. 비겁하다와 현명하다, 그거 때로는 같은 말 아니냐? 맞잖아? 그렇지 않다면 마녀사냥 시대처럼 주홍글자를 불태우겠니 어쩌겠니? 장비 딸리면 누군가 총대는 매게 되어 있어. 염소를 놓고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것처럼. 그 염소가 대체, 도대체 뭔 죄냔 말이야. 그런데 그게 염소가 아니라 사람이라면, 인간이 지구에서 저지른 일들이 워낙 많으니까 또 그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기도 했고 풍요로움과 온갖 호사로움을 포함한 문명을 이뤘으니까 그쪽에 치우치지는 말자고. 하지만 법에서 말하는 질서도 말도 안 되는 판결이라도 불미스러운 판례라도 모두 나중 어떻게든 도움이 되는 거지. 배부른 소크라테스와 배고픈 돼지만 바늘 방석에 앉을 수 밖에. 대중은 개나 소나 돼지가 아니야. 그러나 대중은 개나 소나 돼지가 될 수도 있다는 점, 그걸 잊으면 안 되지. 왜냐하면 그 길은 원천적으로 차단된 게 아니기 때문. 인간의 선한 본성이 어두운 면을 잠식하며 전면에 나서는 것이지 어두운 측면이 아예 없다는 건 말이 안 돼. 낚시 대회에서 경력도 장비도 운도 참가 의지까지 없었던 초짜가 대어를 낚으면 뭐야? 대가든 권위자든 선수든 모두 찌그러지잖아, 그게 이치니까. 그게 원리니까. 그게 약속이니까. 옆에서 앞에서 뒤에서 멀리서 찍~소리 못하고 짐싸서 집에 가는 거야. 다! 환호성과 탄복은 관중에게 양보하고. 그런데 그게 아니라, 그런데 꾼이 잡았다? 말 다 한 거지. 말을 바꿔서 동사를 피동사로 대입해 보면, 잡은 게 아니라 잡혔다? 말 다 한 거지. 오늘날에는 돈이 최고라는 어떤 암시에 동의하며 최면에 걸린 채로 성장한 돈만 많은 사람이 잡았다, 힘 있는 사람이 잡았다, 본성은 선하지만 지금껏 그걸 인정하기 싫어서 너무 거칠게 살아온 사람이 잡았다, 세상에서 내가 제일이다 내가 최고다 내가 진짜다 라며 사는 사람이 잡았다, 모두 어쩔 수 없는 거야. 왜냐하면 여기는 천국이 아니니까. 우린 모두 인간이니까. <시간아 멈춰라>는 노래 제목이나 어떤 시상일 뿐이니까. 아무리 좋다 해도 아무리 싫다 해도 그건 그냥 대회니까. 마치 허풍 대회처럼. 흡사 환상 머쉰처럼. 지금 세상은 오락 산업의 영향력이 굉장히 대두됐어. 물밑에서 장악하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전면에 나서게 됐어. 또 세상은 상업 논리에 따라 굴러간다고. 바야흐로 과학이 발전한 만큼 사람들의 다재다능함도 숨길 수 없기 때문에 이제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흔해 빠졌어. 보기 힘들지도 않고 귀하지도 않아. 저분은 작가라고 하지만 그게 어디 작가야? 어? 지가 무슨 작가야 코메디언이지. 실상 코메디는 또 누가 하냐고? 저분은 사진작가라... 음... 수상해. 저분이 교수라, 의뭉스러워. 저분은 의사, 뭔 의사가 그렇게 말발이 좋아? 왜? 의사도 화술이 딸리면 쉽게 가난해지거든. 어쩔 수 없어. 누군 쪽박 찼다네, 그런 험구는 쉬쉬하자고. 사람을 위해 의술을 배웠는데 잠 안 자고 그 고생을 해서 히포크라테스가 되고 디케가 됐어. 그런데 거기서부터 또 딴 세상이네 글쎄. 누군 뭐 처음부터 닳아졌겠냐고 타성에 젖고 싶어서 관례에 따르겠냔 말이야. 초등학교 선생님에 대한 세평을 들어보면 그렇다고들 해. 격식을 생략하자면 쪼잔하다, 품위를 갖추자면 애들처럼 금방 삐지고 언제 그랬냐는 듯 쾌활하기도 하다가 가끔 편애도 하며 은근 인기에 신경 쓰고 뭔 걱정이 없는 것 같다고. 그러나 그 일을 해보면 알게 되겠지. 추측하다가 이해하다가 아 그렇구나 실감할꺼야. 그리고 어머나, 저분은 신문기자? 아무리 봐도 영화배우 같은데! 어떻게 불려지기 싫다고 해도 일단 유명하면 그건 아무리 거부한다고 해도 아무리 자기는 아니라고 해도 그건 이미 연예인이야. 말이야 바른 말이지. 그래서 고급 유머를 구사했던 진짜 연예인은 이민도 생각하며 삶을 고민하게 돼. 진짜 연예인 옛날 말로 광대, 그분들이 우리를 웃기고 울고 슬프고 감동하게 만들어야 하는데 꼭 그렇지는 않잖아. 공교롭게도 엄한 데서 폭소가 터지면 가수 한명과 연기자 한명은 속옷 사업으로 뮤지컬로 옮겨간다고. 처음부터 그쪽 길만 걸었던 사람들은 또 굴러온 돌이 당도했다고 긴장하게 되겠지. 결국 그렇게 되는 거야. 지금 세상은. 그래, 오락 산업! 바로 그거야. 그 산업은 뭐 패션업계나 초정밀공학이나 조류학처럼 명확한 테두리가 없어. 있긴 있지만 음 그래 있긴 있는데 그게 다가 아니야. 꼭, 물 위에 떠있는 빙하 같은 거야. 사람들이 살면서 간혹 아주 드물게 그런 경험을 할꺼야. 와~ 저분에게 어떻게 저런 표정이! 그러면서 정말 탄성을 내지르지는 않지만 속으로 그렇게 느꼈던 적, 있을 꺼야. 최근에 여러 대중 매체를 통해 참으로 놀라운 그런 표정을 보고 감탄스러울 정도로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거나 속으로 웃으신 분, 아마 없지 않을 꺼야. 뭐 좋아하건 관심없건 차마 말이 나오지 않던 간에. 특히 남자. 왜냐하면 여자가 남자보다 비교적 표정을 읽는 걸 좋아해. 여자가 남자보다 사람 얼굴에 시선이 오래 머물고 더 면밀히 관찰하며 기억한다는 건 과학으로 증명됐지. TV, 인터넷, 신문에서 생각도 못했던 상상도 못했던 저분의 표정을 보고 썩은 미소든 뭐든 웃은 사람, 특히 남자. 그 남자는 어쩌면 이랬을 꺼야. 혹시 내가 여자 아닐까? 그렇게 말야. 문화, 국제, 경제, 정치, 사회, 언론, 예술, 스포츠, 뭐뭐 거기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어. 떼돈 벌면 숨는 수 밖에. 교과 과목은 대학교로 넘어가면 학문이며 지성으로 보이지만 곧 있으면 그것도 그게 다가 아니란 걸 알게 돼. 남에게 어떻게 보일 것인가, 매우 중요한 문제지. 같은 논조라도 어떻게 말할 것인가, 불러올 반응은 간단하지 않아. 그러나 평판은 알려지고 이권도 공유하고 인터넷은 활발한데 비밀이란 게 어디 있겠어, 요즘 세상에. 세상 돌아가는 논리, TV나 세상사가 아닌 경험에 의해 그걸 제일 먼저 체감하는 때가 언제냐? 언제일까? 음, 이를 테면 음, 예를 하나 들면 그거지. 초등학생이 거리에서 그걸 봤어. 어 저기 어 뭐야 어 우리 선생님이 저기 술집 문을 열고 들어가시네, 그런데 그 술집 이름은 묻지마야, 묻지마? 뭘 묻지마? 지금은 묻지마? 왜 거기 들어가셨냐고 다음 날 묻지마? 그게 뭐야? 왜 교육자가 술집에 들리는가를 묻지마라냐 학자가 브랜드와 얽히느냐를 묻지마라냐 관료나 장사꾼은 뭐 술도 마시지 말아야 한다를 묻지마라냐 아니면, 저 사람은 만나서 말을 하면 그 말을 온 동네방네 할 말 못할 말 다 떠들고 다니고 또 저 사람은 나와 관계된 것 사소한 것 하나하나도 모두 블로그에 올리며 또 저 사람은 그걸 책으로 영화로 노래로 만드느냐 날 주인공으로, 바로 그걸 묻지마라냐 인가는 정확하지 않지. 중학생이 되어서 불륜이라는 사전적인 단어를 처음 간접적으로 알게 되고, 고등학생이 되니 어머나 글쎄 덩치 큰 녀석들이 동급은 건드리지 않고 비겁하게 나 같은 범생이한테 자꾸 뭐라하네, 더 크면 운동장에는 못나가고 게임기 스틱을 잡아. 그런 거야, 세상은. 한번 생각해보자구. 비열함이 대체 비열함이 언제부터 어느 수단으로 자리잡았을까? 또 비열함의 기준은 뭐고 그 기준은 바뀌거나 변하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그건 그냥 대하 드라마에서만 볼 수 있는 어떤 관록미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또는 영상물을 비롯한 예술적 유흥? 특정 언어가 언제 어떻게 태동되었는가가 불확실한 것처럼 그 또한 명확한 답변으로 짧게 정의내릴 수 없어. 안 그래? 그렇잖아. 인간사는 원래 말이 많은 법. 아울러 옛날에 한 번 웃으면 한 번 젊어지고 한 번 화내면 한 번 늙는다고도 하는데, 소문 또 촌평과 험담의 재료와 수다에 대한 영역이란 결코 작지 않아. 그것도 학문이고 산업이며 타인과 예술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 밖에 없어. 사람이라면 남을 웃기고 싶은 욕심은 조금 지나쳐도 미덕이거늘 어느 분야에서든 오락적 흥취는 가라앉지 않아. 때에 따라 꼼꼼하고 심각해야 할 중요한 방면에서도 말이야. 그게 문제지. 피해는 고스란히 대중이 감당하는데 말이야. 한번씩 사태가 터져도 그때 뿐이야. 금융위기나 뭐나 뭐 같은 거. 하지만 학문으로 접근하는 귄위자와 평생을 연구하는 전문가들의 고견도 분분해. 처방도 정답이 없고 무한정 투명할 수도 없어. 너무 깨끗한 물에는 고기가 살지 않는다는 말도 있고, 재미있는 지옥 재미없는 천국이란 말도 있잖아. 어이 없는 큰 일이 반복되지 않게 차츰 다듬어가는 수 밖에. 사는 데 도움이 안 된다고 그분들이 옌예인처럼 어느 분야에서 활동한다고 일반인도 덩달아 오락하듯이 막 자기 권리이자 의무를 게을리하는 건 너무 어리석은 일이야. 애석해. 어디 사랑의 슬픔만 애틋한가, 그보다 이게 더 애틋하다고. 결국 인간을 위한 다양한 오락 산업과 매스컴의 영향, 그래프에 따라 깊고 넓어지는 건 피할 수 없는 일인가봐. 스포츠, 스포츠를 봐보라구. 경기장에 가서 구경하는 사람, 스포츠 복권을 사는 사람, 친구와 내기를 하는 사람, 다 귀찮고 집에서 리모콘으로 TV를 틀고 구경하면서 수다를 나누는 시청자, 그분들은 모두 제3자야. 지든 이기든 웃고 떠들면 그뿐, 즐겼으면 돌아서서 자기 삶으로 돌아간다고. 그 입장에서는 그래 아주 간단하지. 그분들 입장에서야 그래. 호탕함, 왜 싫겠어? 화끈함, 없으면 심심하잖아. 흥미진진함, 빠지면 서운하지 좋다고 하겠냐? 그러나 제3자가 아닌 당사자는 그걸 지켜보는 사람과는 처지가 달라. 달라도 너무 다르지. 완전 딴판이야. 왜냐하면 인생이 걸려있으니까. 옛날 로마 시대에 목숨이 걸려있었던 것처럼. 진짜 해도 해도 완전 더럽게 정말 더럽게 너무나도 더럽게 재미없게 한다고 해도 그거 아니면 도저히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없을 정도로 상대가 강적이야, 그렇다면 수비 축구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어. 아무리 언론에서 뭐라고 하고 어쩌고 해도 방법이 없다고. 그 만큼 강팀과 싸우고 치열한 승부 세계이니까. 누군 뭐 치기 싫어서 헛스윙 한번 못해보고 바보에 삐─처럼 가만히 서서 지켜만 보다 타석에서 물러나겠냔 말이야. 야구선수 맞냐고 의심스럽게. 혹시 생각하는 사람 뭐 그런 조각상 모델이 아닐까? 멀뚱멀뚱 싱겁게 서있다 들어가는 거 그거 대체 뭐냐고. 직장인이 열심히 일하고 퇴근하고 집에 와서 소파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텔레비젼 채널을 돌려. 돌리다 보니 격투기도 하네. 그걸 보며 격무에 따른 피로와 스트레스를 날려버릴려고 하는데 뭐야? 선수가 수면제 파이터잖아! 피로가 만성피로로 바뀔지도 몰라. 만약 채널을 고정한다면. 구경꾼과 달리 당사자는 그렇다니까, 너무 치열하고 너무나도 모두들 강하고 아차 하면 밀려나기 쉽상이고. 보는 사람은 장난인데 하는 사람은 장난 아니지. 꼼꼼함부터 무관심까지, 심하게 장난스런 선수와 무척 심각한 팬이 있듯이 롱테일은 형형색색이지만 일단 큰 구분은 딱 두 가지만. 그래서 간혹 스포츠 업계에서 약팀이 지옥 훈련이든 그냥 운이든 화합을 이뤄서 어떻게 광풍을 일으켰다, 다들 응원하고 좋아하잖아. 스포츠 기자, 오랫만에 기쁨을 느껴. 업계에 뛰어든 보람을 느낀다고. 하지만 원래 강팀인데 부드러운 플레이가 아니라 포지셔닝이 확실하다, 바로 <닥치고 공격>이라고 일명 닥공! 그런데 어머나, 성적까지 최고네. 팬들 그야말로 열광하잖아. 그냥 뒤집어지는 거야. 완전 미치는 거지. 하지만 그건 드문 사례고 대체로 이길려면 나중 보면 이겨놓고도 그게 과연 이긴 게 맞냐 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각계 각층의 여러가지 아니 아니 거의 모든 분야가 과열되고 엔터테인먼트 산업화되었다는 것, 누가 부인하겠어? 그렇지 않다는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 나오라고. 조용히 단둘이서 오손도손 사랑의 밀담을 속삭여도 좋으니 제발 나와보라고. 정말 이런 건 한판 떠야 하는 거 아니냐? 안 그래? 내가 뭐 엄한 걸 트집잡은 거야? 괜한 말 했어? 묵계를 끄집어 냈어 아니면 밀림의 진짜 강자인 하이에나의 약점을 물고 늘어졌어? 어? 음...... 자네의 생각이 복잡하다, 음... 차라리 마음을 바꾸고 생각을 전환하는 게 빠르겠어. 그게 모여서 서서히 나아지는 거지 지금이 무슨 옛날 옛날도 아니고, 왜? 전기 기타로 쇼팽의 연습곡 몇 번이야 혁명, 그거 연주해줘? 어? 너 왜 갑자기 생각이 구식이 된 거야? 어린 시절로 되돌아 가고 싶니? 그런 거야? 너 지금 배고프니? 뭐가 불만이야? 일단 먹는 즐거움이 흠뻑 충족되면 거의 어지간한 투정은 거의 잠들기 마련이야. 첫째가 그거야. 제일 첫째가 그것이라구. 보고 듣고 자고 먹고 놀고 말하고 입고 그 모두를 놓고 드물게 자기는 후순위로 몇 번과 몇 번의 순서로 행복이 좌지우지된다고 말하지만 그건 거의 희박해. 있어도 절반은 거짓말이야. 쇼야. 연기라고. 그 희소한 숫자를 빼면 나머지는 다 비슷해. 완전 똑같아. 놀랍게도 거의 일치한다고, 사람들의 생각이 사람들의 느낌이 나중 행동이. 그 다음에 계속 이어지기는 하지만 일단은 기본적으로 잠을 곤히 자고 일어나서 기분 좋게 식사를 하고 오늘 하루는 어떻게 놀까, 애들처럼 그래야 하는데 어른의 삶이란 게 또 꼭 그렇지는 않지만 말이야. 그래도, 꽃집도 먹고 살아야 하잖아. 장미꽃 한 송이를 숙녀에게 선물할려면 먼저 꽃을 사야 돼. 돈을 주고. 화사한 꽃에 상응하는 화폐 가치를 내놓아야 한다고. 꽃은 안 사고 꽃에 대한 시만 끄적거려서 그녀에게 암송해주는 건 몇 번은 먹혀. 감동하지. 얼마나 좋아. 그렇게 낭만적인 남자가 어디 흔하나? 하지만 몇 번은 괜찮지만 그것이 계속 되면 차이는 수가 있다고. 꽃이 가득한 농장은 또 어떻고. 과일이 자연의 오묘함을 가득 안고 한껏 영글은 상태에서 따질까? 아니야. 절대 아니야. 화폐 가치가 최고조에 이를 때 따는 것, 바로 그거야. 우리가 동물과 식물을 언제부터 그렇게 얼마나 고귀하게 챙겼는데? 나랑 같이 행복하자 곰돌아? 맞기는 해, 그러나 사회는 여러 이해관계가 상충되고 다채로워서 어린 애들 생각처럼 그렇게 쉽지가 않아. 왜 뭐뭐를 하는가, 에 따른 철학 때문에 온전히 그 일을 한다고? 우끼고 자빠졌네! 겉으로는 그러지. 하지만 대개는 포장을 벗기면 차마 우스워서 부끄러워서 불미스러우니까 더 말 못 한다구. 인기 때문에, 돈 때문에, 인생 때문에, 그냥 일이니까, 명성 때문에, 관계 때문에, 타성 때문에 하는 경우가 더 많거든. 사랑이라고 뭐 다르겠냐. 사랑도 두 가지가 있어. 그게 뭔가는 각자 추측하면 되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거야. 사랑 1번은 사랑한다고 말하고 표현하고 아껴주는 것. 그리고 사랑 2번은 사람 무안하게 그런 얘길 왜 하냐 어떻게 하냐 그런 말 못하는 것, 하면 안 되는 것, 하나의 불문율이라는 것, 내 일이라면 말 못하지만 남 일이라면 어쩌면 말할 수도 있는 그런 사랑이 2번이지. 분야가 서로 겹치고 각 부문의 본원의 뜻조차 위배되는 듯 오락적 성격이 왜 점점 짙어지느냐 그걸 얘기할려다가 그런데, 사랑이 왜 나왔지? 어제 마신 술이 아직 안 깼나? 그건 아닌데. 아무튼 정치와 사회와 경제든 뭐든 일단 누구나 똑같은 생활을 하지만 모두 특정 원리에 의해서 움직일 수 밖에 없어. 움직일 수 있는 면적은 제한적이고, 예측할 수 있는 범위는 반대로 투명해. 부러움도 하나의 수단이야. 그것도 팔 수 있다고. 살 수도 있고.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조차 있어. 그걸 다른 말로 수확, 먹고 살기라고 하지. 푸르른 리본을 풀면 연분홍색 상자가 나와. 그걸 열면 뭐가 있을까? 그게 무언인가는 시시각각 다르지만 그걸 부르는 이름은 하나야, 질-투! 아니면 허영? 또는 미적 가치? 보다 층위를 높이면 어떤 경험? 다른 말로 멋? 품격? 물론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 또 그게 썩 괴롭다거나 퍽 나쁜 것도 아니야. 허나 그렇다고 해서 이게 꼭 무책임한 이론이나 허황된 농담은 아니라네. 뭐 꼭 겉과 속이 같아야 한다는 말은 설마 아니겠지? 그럼 더 못 견뎌. 영화로운 허례과 의식과 예의 또 품격, 모두 적당히 있는 게 자연스러운 거야. 가식? 얼마 정도는 예절이야. 투명성, 적절하면 좋은 점이 얼마나 많다고. 우리끼리니까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이지만, 뻥, 이거 아니면 사는 게 뭔 재미야? 아니면 지금 뭐 사랑이라도 하는 거니? 사랑은 끝났다야 아니면 그것이 시작됐다야? 한창 이런 말 듣고 하는 거 아닌가 몰라. 날 사랑해줘요 포근히 안아줘요 뜨겁게 키스해줘요.」
여기가지가 그가 구경한 친구들의 글이었다. 그는 내심 짱구를 굴렸다. 잔머리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판단했다. 뭔가 역동적이고 어떤 기발한 발상, 그것이 필요했다. 어덯게 하면 애들이 나중 내가 그 모든 것을 알면서 즐기고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유추할 수 있을까? 일단 그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기로 했다. 역으로 살을 날리기로! 살? 블랙홀이 아닌 화이트홀의 개념으로. 해킹의 좋은 의미처럼. 좋든 싫든 속편 먼저 나오게 생겼다. 세상에 이런 일이, 하지만 주인공은 자신이었다.
5
조니는 다음 날 아침 TV 뉴스를 봤다. 뜻밖의 뉴스는 바로 통조림 리콜 사태였다. 참치 통조림에 참치가 아니라 장난감이 들어가게 되어 리콜을 실시하고 사건 조사에 착수했다는 소식이었다.
그리고 그는 낮에 인터넷으로 지역 소식을 알게 됐다. 그것은 화장지각에 어떻게 지폐가 들어갔는가에 대한 특종이었다. 공권력이 투입되는 게 옳냐 우린 너무 각박하게 사는 거 아니냐, 한마디로 말이 많았다.
설상가상으로 저녁에는 상품 더하기 모델 시판이라는 신종 판매 기법이 어느 곳에서 유행이라는 해외토픽을 접하게 되었다.
조니는 괜히 친구들을 의심했던 것이다. 자기만을 위해 이벤트가 이어진 것도 아니었고, 특화된 타켓이 자기 혼자인 일도 아니었다. 친구 누구 블로그에서 봤드니 그건 이미 발빠르게 최신 화제를 알아내서 연습 작품을 남긴 것에 지나지 않은 약소한 개인적 연구나 숙제에 불과했던 것이다. 괜히 조니 혼자서 뭐 새로운 모험이 자기도 모르게 시작됐다고 들뜨고 가슴 조렸던 것이다. 어느 과장 광고를 보고 나서 충동 구매를 한 후 뭔가 하루가 꽝된 느낌에 기분도 허전하고, 인생도 허무하고, 의욕적인 창작 욕구 분위기도 엉망이 되어버린 것만 같았다. 꼭 선물을 받았다가 막 다시 빼앗긴 듯 허탈했다. 가능성이 짙어서 고백했는데 어이없이 차인 것 같았고, 속마음을 온통 꿰둟어보이며 혼자만의 비밀을 들킨 것만 같았다. 딱히 잘못한 건 없지만 말이다.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되었을까? 조니 혼자 미친 것으로 그렇게 간단히 정리해도 그다지 위험부담이 높은 오판은 아닌 것일까? 그는 누구도 무엇도 어떤 감정도 믿지 못하게 변했을까? 아니면 제4차를 건너뛰고 바로 제5차도 건너뛰고 제6차 산업혁명의 서광이 밝았을까? 어떤 음울한 날 평범한 닭이 낳은 달걀에서 거위가 태어났을까? 포유류의 한 종인 고래가 하마를 낳았을까? 우리 개 유치원 가요인가. 그러나 그런 일은 없었다. 조니는 사설 탐정을 고용해서 친구들을 감시하지도 않았고, 길 가는 행인을 붙잡고 어느 억울한 이야기를 토로하지도 않았다. 괜히 누군가에게 훈계하고 싶은 마음을 소설로 쓰지도 못했다. 당대 최고의 마법사가 되기 위해 고서점을 순례하면서 그런 제목의 책을 찾아다니지도 않았다. 마법사가 되는 법. 해외토픽만 전문적으로 파고들지도 않았으며 깜짝 이벤트, 그 분야를 섭렵하지도 않았다. 괜히 멀쩡한 현재의 삶에서 도주할 이유도 없었고, 과소비병이 도진 것도 아니었다. 그럼, 그럼 뭔가 윙윙대면서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떠돌이 같은 기분은 대체 뭐란 말인가? 사랑하지만 사랑할 수 없다, 그건가? 과자 회사에 취직했다가 딱 한 달 열심히 일하고 때려쳐야 하나 아니면, 광고 회사의 주식 그것도 가치가 떨어지면 이득이 되는 공매도나 뭐 그런 역으로 살을 날리는 쇼라도 해야 하나. 다 부질없는 일처럼 느껴졌다.
아, 중간에 쇼핑은 잠깐 이뤄졌다. 나중 필요할 것 같아서 입는 침낭을 하나 샀다. 필과 다리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입는 침낭. 언제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을 듯한 예감이 번쩍 들었다. 당연히 레고 인형을 사고 나서 다시 판매점에 찾아가서 왜 광고처럼 레이저가 발사되지 않느냐고 따지지는 않았다. 물론 여자 속옷 가게 점원에게 무척 사려깊은 태도와 고고한 시선과 함께 매우 진지한 어조로 어떤 용건을 물어도 되나 안 되나 몹시 망설이는 듯한 몸짓과 함께 표정을 아주 약간 찡그리면서, 혹시 저거 사면 사진 모델도 딸려오나요 라고 묻지도 않았다. 그건 허황된 이치였으니까. 겉은 멀쩡해가지고 어쩌다 사람이 이 지경까지 되어버렸을까 라는 불쌍한 인물 유형으로 취급 받기는 싫었던 것이다. 또 무작정 아무 귀부인이나 쫓아다니며 스토킹하지도 않았다. 그럼 뭘 했나? 꼭 뭘 해야 하나? 따라서 별다른 변화없이 일상은 이어졌고, 그러다 딱 1주일이 지났다.
6
이제 조니의 사생활에 어떤 미풍이 불었을까? 한 분은 관심 없고, 한 분은 잘 모르겠다고 하신다. 그리고 한 분은 안 봐도 뻔한 거 아니냐고 되묻는 듯한 모습이 눈에 선하다. 당연한 수순 아니냐고, 예측 불가능한 일이 뭐가 있냐고 하시는 것 같다. 잘못 들었을 수도 있다. 착각일지도 모른다. 헛된 공상에 슬데없는 상상이다. 하지만 어쩌면 이야기의 나아갈 방향은 이미 정해진 것 같다. 왜냐하면 그 고착된 가정은 어느 미래에 실재 있었고, 과거 어디선가 벌써 벌어진 일이기 때문이다. 실증적 사례는 생략하겠다. 패러디도 사양한다. 감탄이 녹아들지 못한 외길인데 어서 서둘러 그러나 침착하게 그것을 밝히는 게 급선무다.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됐어?
물론 왜 하필 유독 조니만 이상한 사람 만드냐, 왜 항상 이상한 일에 대해서만 말하고 모호한 전개와 놀라운 심리묘사만 중요시 되느냐, 충분히 타당한 궁금증이다. 의아할 만한 의문임에 틀림없다. 허언도 실언도 아니다. 정당한 호기심이다. 그러나 그건 중요한 소설의 특징이 아니고, 문학이 꼭 답해야 하는 의무도 아니며, 독자의 바람직한 읽기 방법도 아니다. 따라서 흡사 사랑처럼 그냥 빠져서 앞뒤 쟤지 말고 그냥 일단 달려보자. 그래야 한다. 적어도 지금은. 최소한 그건 틀린 일은 아니다. 그러므로 조니는 당신이고, 또 그 어느 누구도 될 수 있다. 그래서 당신은, 그래서 조니는 이렇게 행동했다. (자, 지금부터 서술 형식은 2인칭으로 바뀐다)
잠깐! <조니=당신>이라는 등식이 성립해도 되는가? 안 될 게 뭔가! 단, 둘 중 하나가 색정광만 아니라면. 적당한 호색 성향은 정상의 지표이자 건강함의 표상이며 누군가에겐 귀여움일 테니. 그 다음은 그러면, <당신=조니>라는 공식이 과연 성립되는가, 그럴 수 있는가? 그건 일단 지켜보자. 미루자. 버티자. 다시 말해서 흠뻑 빠지지 않아도 좋으나 이왕 절정의 고개를 넘어 골인 지점으로 치닫는 거 순진한 목동을 믿어보자. 골 세러모니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아아 보인다 보여, 저기 저 환호성의 인파가. 그런데 설마 반전이? 기대와 실망이 비례할까봐 조금 겁나지만 또 모르는 일이다. 범작 수준이라는 심심한 서평 이후 한 달 또는 몇 년 후에 빵 터질지도. 마치 고급스러운 농담처럼. 그걸 바랄 바에야 차라리 복권을 사라고? 사겠수다. 반드시 사겠수다. 그러나 언제나 소심했는데 지금도 미리 고개를 숙여야 하다니, 저런! 과감할 때 과감하고 달려야 할 때 달리는 건 나쁘지도 우매하지도 못된 일도 아니라네. 연관성과 영향과 판세를 따져야할 아무런 부담은 없는 상황이니까. 위엄 어린 지성인의 독서는 생활이고, 우리는 뭐 시간 때우긴가? 아니다. 언제까지나 조연만 하라고? 그럴 수는 없다. 참을 만큼 참았다. 파닥파닥 날갯짓을 시작해보자. 훨훨, 훨훨 꿈껼의 창공으로 날아오를 수 있도록. 우리도 고상하다. 우리도 근사하다. 우리도 우아함을 안다. 우리도 숙녀의 세련됨을 찬미할 줄 안단 말이다. 거짓말 계속하다 탈랄라? 그럴지도. 그러나, 진짜라고 자기 암시를 걸어봐야 할 때가 왔다. 그분, 문밖에서 그분이 오시는 낌새가 느껴지지 않는가? 안 그렇소? 오, 들리는가? 정말 오오 정말 어디선가 멀발치서 축제의 노래가, 곧이어 여자의 마음이 그 온 몸과 마음이 전율하는 아리아가 정말 들리지 않는가 말이다. 그 말은 대관절 무얼 뜻하는 것일까? 그건 바로 어려운 상징이 아니라 그분의 행차가 임박하셨다는 의미. 우리는 그분을 알현할 수 밖에 없는 운명. 여자친구에게도 가르쳐줘야지, <우리는> 화법을. 그런데 아직 여자친구가 없다? 음, 원래 인생이 그런 것임. 하지만 내일 뜻하지 않게 반가운 이상형을 만나고, 내일 모레 또 의외의 행운을 맞이할 것이라고 완벽한 운세에 나와 있음. 아, 그분! 그분이 오시기 직전인데 그러한데 우리도 품위 그런 거 흉내라도 내보자구요. 아, 쫌! 혹시 등장할지도 모르는 잔잔한 흥미와 절묘한 환희와 미래지향적 희망은 알고 싶지 않은 척 하기. 흥 까짓것 오거나 말거나, 하면서. 그래, 바로 그거. 고고하게 목선을 유지하기. 무엇보다 참을 웃음이 남아있을지 모르겠지만, 절대 화내지 않기. 신사 숙녀 여러분, 미운 놈 떡 하나 더준다는 바다와 같이 넓고 하늘과 같이 드높은 그런 사려깊은 마음으로 속는 셈 치고 한번 속아봅시다. 왜냐하면 그래도 그다지 손해볼 건 없을 테니까요.
너는 하루가 멀다 하고 쇼핑을 했다. 하나, 둘, 셋 그 가운데 두 가지만. 즉 너는 참치 통조림과 각화장지만 자꾸 자꾸 사고 또 샀다. 사도 사도 부족했다. 너는 그것만 필요했고, 너는 그 행위에 중독됐으며, 그 다음에 어떻게 될지는 몰랐다. 내면에서 어느 무의식이 시키는 것만 같았다. 멈출 수도 없었다. 집의 문을 열면 왼쪽엔 참치 통조림 오른쪽엔 화장지각. 차를 보면 뒷자리엔 참치 통조림 트렁크에는 화장지각. 오전에는 각화장지를 사고 오후에는 참치 통조림을 샀다. 사도 사도 질리지 않았다. 사도 사도 부족했다. 많이 가졌지만 역부족이었다. 사고 싶은 마음은 쉬지 않고 들끓었다. 너의 삶에 선풍적인 대변혁이 닥친 것이다. 음료수 캔을 따면 들리는 그 경쾌한 소리, 맥주캔을 마시면 그 상쾌한 청량감, 모두 참치 통조림의 반의 반도 따라오지 못했다. 각화장지의 하얀 화장지는 눈이었고, 천사였으며, 이카루스였다. 동시에 꿈이었고, 본질적으로 탄성 어린 환희였다. 너는 그것을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너는 그것에 관한 노래 가사도 썼고, 참치 통조림을 그리고 각화장지를 사진 찍었다. 전시회도 못할 건 없다고 생각했다. 통조림은 본처였고 화장지는 애첩이었다. 양쪽에 그 둘을 끼고 살았다. 비록 통조림 깡통과 생활용품인 화장지지만 잠깐 음 그랬다. 쉿! 참치 통조림은 여자친구의 육체였고, 각화장지는 영혼이자 마음이었다. 언제까지 이래야 하나, 알 수 없었다. 또 얼마만큼 사야 하는가? 알고 싶었다. 너는, 다시 그 어느 경험이 반복되기를 바랐다. 그 뭔가 새로우면서 새롭지 않은 환상을 다시 만나고 싶었다. 사람이 좀 이상해졌다. 많이 이상해졌다. 신비감이 난무했다. 너는 아마 극미한 영양 실조에 걸렸을 것이다. 왜냐하면 참치 통조림만 먹고 또 먹고 오직 그것만 섭취했기 때문이다. 사람이 너무 급진적으로 변했다. 밝은 변화라면 몰라도 그건 너무 생각도 못할 사건이었고 말도 안 되는 행동 양식이었다. 새삼 어떻게든 그 끝을 억지로 만들어야 할 것만 같았다. 안 그러면 끝나지 않을 듯 했다. 그러나 방법은 알 수 없었다. 마치 사랑에는 빠질 수 있었으나 이별하는 방법은 알 수 없듯이. 겪어도 겪어도 매번 아픈 것처럼. 너의 생활은 요지부동이었다. 얼굴도 핼쑥해졌다. 너는 살도 빠졌다. 다시 건강해지는 일만 남았다. 평범하고 정상적이며 심심한 삶이 더없이 풍요롭고 탄복할만한 행복이란 걸 새삼 깨닫게 되는 주지의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내면 어딘가에서는 계속하라는 성원이 간간이 들리는 듯 했다. 약하게. 간헐적으로. 조금 달콤하게. 느릿느릿 감미롭게. 밉지 않은 투정처럼. (너의 이름)의 삶은 무모할 정도로 허구에 가까웠다. 변화가 믿기지 않았으나 현실이었다. 이것이 무슨 그런 건가? 난 네가 기뻐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맹목적인 연정인가? 아니다. 난 네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지독한 애모인가? 아닐 것이다. 그러면 나는 너와 너 곧 참치 통조림과 각화장지가 아니면 절대 안 된다는 그런 어느 미친 사랑인가? 아니기를 바란다. 꼭 그러하기를. 그런데 그런데 어쩌다 이렇게 일이 이상하게 되버린 것일까? 도대체 왜? 무엇 때문에? 어째서? 그냥 삶이 권태로워서? 사는 낙이 없어서? 별로 재미난 일도 없고 심심하기만 해서? 너는 뭐가 뭔지 하나도 알 수 없었다.
너는 어느 날 어느 때인가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집에도 사무실에도 차에도 마당에도 게다가 전화번호부도 또 앞으로 여행갈 목적지도 만날 사람도 모두 그것과 관련된 것들 뿐이었다. 그런데, 이럴 수가! 드디어, 마침내 희미하게 뭔가 이제 그만 해야겠다는 그런 어떤 자아 성찰의 시기가 찾아왔다. 기다리고 기다렸던 순간이었다. 자기도 모르게 때는 찾아왔다. 어쩌면 그건 그냥 꿈 같은 일이었을 거라고 단정지을 수 밖에 없었다. 그냥 그렇게 됐다. 그런데 정말 네가 제정신을 차렸을까? 그럴 수 있을까? 정말로? 그렇다. 진짜로! 그러나 가랑비에 옷이 젖듯이 그냥 우연히 어쩌다가 은근슬쩍 부정확하게 어느 때가 되어 막 영화의 장면이 바뀌듯이 화면에서 버튼을 터치한 것처럼 어떤 확실한 마음의 결정과 뭔가 정신의 깨우침 때문에 비로소 이성을 되찾았을까? 그럴까? 정말로? 아니다. 그럴 리 없다. 그건 말이 안 된다. 절대로!
그러면 뭐냐? 어떻게 딱 단번에 본래의 너로 되돌아오게 되었을까? 그것은 바로 품절 때문이었다. 외부 요인 때문이었다. 더 이상 참치 통조림과 각화장지를 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어디에서도. 상점에서도 시장에서도. 대형마트는 물론 인터넷과 공장과 모두 다 모든 곳에서 그것은 바닥났다. 없어서 못 판다고 인기 끝장이라고 난리일 때가 좋았던 거다. 아예 어떡하다 날개돋힌듯 팔렸다가 전부 재고까지 모두 다 팔려버렸기 때문이다. 품절! 딱, 품절! 와우~!
7
무슨 요정의 마술봉이라도 구해와서 이방인이 지팡이를 휘둘렀나? 얍, 하면서! 완전 품절, 진짜 모조리 팔려버렸다. 전부 다. 깨끗하게 진열대가 비워졌다. 말끔히. 거짓말처럼. 그 다음에, 그 다음에 어떻게 됐을까? 당신은 친구들과 오해를 풀었다. 만나서 안부를 묻고 다정한 것처럼 보이지만 딱딱한 대화를 나누며 같이 놀다 보니 그들은 모든 것을 알게 됐다. 특히 이번 일을 녀석들이 꾸미지 않았다는 것을. 당신은 감옥의 죄수도, 동물원의 원숭이도, 벌거벗은 임금님도 아니었다는 것을. 당신처럼 착각했던 사람들이 한두 명이 아니란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럼 오오 아 그럼 그건 대관절 몇 명이란 말인가, 에 대해서는 깊게 들어가지 않았다. 그래서 그래서, 그 다음에 그 다음에, 어떻게 됐어 어떻게 됐어?
그들은 하나하나 차분히 차근차근 맥락을 따져봤다. 당신이 통조림을 샀어. 참치 통조림을 땄어. 꽝, 이 아니라 뻥 하고 이상한 일이 생겨서 쿵쾅쿵쾅 엔돌필 분출하고 하트 뿅뿅 했어. 그리고 당신은 각화장지를 샀고 지폐를 봤고 진공 청소기를 샀어. 그런데 광고 모델이 내가 왔다 주인님, 날 귀여워해주세요 날 가져요? 아무튼 그랬어. 여기까지 1단계. 2단계는 참치 통조림 리콜 사태와 각화장지에 지폐가 들어간 사건을 조사 착수, 신종 판매 기법의 대-유행까지. 그리고 뽀너스로 그 사태는 흐지부지 결과는 누구도 몰라로 끝나, 2단계 끝. 3단계는 당신이 참치 통조림과 각화장지 사재기에 빠진 것. 4단계는 품절. 슈퍼마켓에서도 다른 도시에서도, 인터넷도 시장도 공장이든 어디든 품절. 이상한 점 하나는 4단계 때문에 당신의 중독이 끝났지만 별다른 금단 증세는 발생하지 않았다는 거.
친구들은 할말을 잃었고 끝내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그것은, 음, 미스테리라면 미스테리였다. 이런 가정 저런 추론을 모두 시도해봤다. 당신과 같은 사람이 많을 것이다. 정말 많다. 진짜 많다. 엄청 많다. 그래서 그 두 가지 물품이 동났다. 이미 만들어진 상품과 재고와 새 제품도 만들자마자 모두 팔려버렸다. 아예 원재료를 구하기 힘든 것 같았다. 그런데 문제는 남았다. 확인은 해보지 않았으나. 당신이 정신을 차렸지만 다른 사람들도 이성을 되찾았을 거란 보장은 없다. 그러면 이건 뭐지? 오케이, (손가락 딱)!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좀비 효과! 좀비 이론! 좀비 머쉰! 그러나 당장 좀비 바이러스의 정체나 비밀을 알아낼 수는 없었다. 겉으로 드러난 해악이 증명된 것도 아니었다. 이제 그들은 적어도 당신은 자동적으로 정말 특정 상품의 브랜드 전도사가 되었을까? 왜? 어떡하다 상품과 사랑을 하게 된 것일까? 알 수 없었다. 그 누가 가르쳐주지 않는 일이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봤을 때 시장은 정상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쉽게 예상할 수 있었고, 특별히 제2의 무언가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추측은 교양 외에 과도한 지성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따라서 그들은 일단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며 관망하기로 했다. 얘네들이 꺼낼 수 있는 카드로는 그게 유일한 결론이었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판이 커졌고, 어항은 태평양으로 바꼈으며, 수요에 공급을 맞추냐 아니면 어찌할 것인가, 의 국면에 접어든 것이다. 이대로 계속 갈까? 그 끝은 어디일까? 끝은, 있을까? 어떤 변화가 찾아올까? 누가 나타날까? 궁금증은 끝없이 부풀었고 호기심은 이미 하늘로 올라가버렸다. 그러므로 얘네들은 타임 머쉰을 필요로 했다. 어떻게 될지 정말 알고 싶어서, 무슨일인지 속시원히 원리를 이해하고 싶어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러나 최종 결론은 역시나 전망을 경치 좋은 지점에서 바라만 보자 였지, 천국의 문을 노크하는 것으로 모자라 거기 뛰어들고 판도라의 상자를 막 흔들고 소리치고 파티를 시작하자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그들은 일단 흩어졌고, 돌아가는 정세를 지켜보기로 했다.
8
품절된 상품은 새롭게 시장에 공급됐다. 어느 때인가 슬며시. 과도한 열기는 가라앉았고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반문하는 듯 너무 고요했고, 너무 차분했고, 또 너무 정상이었다. 모든 일들이. 특히나 참치 통조림과 각화장지의 시장 여건은. 어떻게 된 일이냐고 따질 것도 없고 억울해할 일도 아니다. 상황은 변심한 애인 같았고, 기분은 헤어지기 직전이었으며, 분위기는 싫증난 여자 딱 그것이었다. 숙녀의 변덕이 어쩌면 부러웠고, 그들도 어떻게든 변절하고 싶었다. 뭔가 행동을 취해야 했으나 때를 놓쳤다. 다시 어항으로 되돌아왔다. 힘겹게 큰물로 진출되었으나 쉽게 떠밀려왔다. 저런. 하지만 시간을 되돌려도 특출난 수와 기발한 복안은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딨냐고? 여기 있다. 지금 보시는 바와 같이. 혹시 이건 요술일까? 그 보다는 아마 비판적 리얼리즘인 것만 같다. 시대는 바뀌지 않았고, 환경도 그대로였으며, 계절만 바꼈다. 마음만 변했다. 싱숭생숭. 여자의 마음처럼. 갈대처럼. 청춘의 꿈처럼. 찬란했던 기대감과 어떤 푸르른 희망이 그 어느 애수와 무언가 심난한 상심으로, 전환되었다. 세상은 돌고 도는 것 같았다. 그게 인생인 듯 여겨졌다. 어떻게든 울적한 마음을 달래주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당신은 지금까지의 일을 그대로 공책에 마치 남의 일을 회상하는 듯한 논조로 글을 썼다.
「어느 날 나는 이상한 경험을 하게 됐다. (너는 '당신은'을 '나는'으로 바꿨다) 드물지만 흔치 않은...... 나는 집에서 혼자 TV를 보면서 포도주를 마시기 위해 장을 보러갔다... 나는 참치 통조림을 땄다...」
이렇게 당신은 그동안 있었던 일을 그대로 공책에 육필로 기록했다. 거의 막히는 구간 없이 그윽한 커피향을 맡으며 매우 분위기 있는 음악을 들으며 꼬박 하루종일 글을 썼다. 작품의 완성도를 위해서 문체를 다듬느라 하루로는 부족했다. 몇일 걸렸다. 정확히 몇일인지는 모른다. 그런데 그 흐름이 품절 사건이 등장한 이후에 끊겨버렸다. 품절, 까지는 미친 듯이 썼는데 딱 거기서 멈춰버렸다. 거기까지는 직접 겪은 일이니까 자연스럽게 허구적인 요소를 가미하고,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신비감을 첨가하여 수월하게 글이 써졌다. 삼류작가에서 이류작가가 된 듯한 내 삶이 점점 발전하며 즐겁고 고상해지는 것만 같은 도취감과 성취감과 보람도 맛보았다. 최근 이만큼 기쁘고 재미난 일이 과연 있었나 싶었다. 그러나 그 흥미로움과 순수한 창작열은 거기까지였다. 딱 그 지점까지. 그 다음부터 글이 안 써졌다. 어떻게 뭘 더 꾸미고 뻥이라도 좋으니 거짓말이라도 상관없으니 여세를 좀 더 몰아가고 싶었다. 그러나 머리 속이 캄캄했다. 향긋한 비누 냄새를 맡으면 왠지 영감이 떠오를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다. 비누 냄새를 맡고 왔다. 예술적 악상은 무슨~ 야한 생각만 떠올랐다. 에~이! 이런, 젠장! 족제비털 붓펜과 고급 만년필을 사서 일단 손에 쥐어봤다. 그러나 역시나 변화는 없었다. 허세였고, 돈 낭비였다. 당신은 원래 정직한 사람이었고, 남을 속이는 것을 싫어했으며, 이야기를 지어내기 보다는 타인의 허구를 연기하는 데 훨씬 익숙했고 그것에만 재능을 발휘하는 삶을 살았던 것이다. 감동을 받고 감동을 준다, 그런데 줄 수 있는 선물은 무감각해졌고 감동시킬 만큼 감동시켰는데 웬 무형의 허구를 요구하다니... 마치 그런 사랑의 대상에 대해 오해했다는 감상과 사랑의 위기를 만난 것만 같았다. 당신은 가짜 웃음에 능숙하고 허풍의 도사였으며 타인의 거짓을 귀신같이 알아내는 재주를 타고났지만 자기 자신과 같은 인물 유형을 글로 만들어내는 데는 거의 초보자나 다름없다고 느꼈다. 하지만 이제라도 하면 되는데 거짓으로 거짓으로 상황을 몰고 남의 귀에 마법의 말을 불어넣듯이 하면 되는데, 그건 예측이고 이건 실전이었다. 예전엔 말이었고 지금은 글이었다. 말로써 남의 귀를 진짜 실룩실룩 진짜 움직이게 만드는 데는 탁월한 귀재였지만 미스테리와 스릴러와 판타지 장르는 뭔가 새로운 걸 창조한다고 봤을 때 아무리 봐도 낯설었다. 너무 막연해서 고개가 젖혀젔다. 아~ 하면서.
쥐었다 펴기 보다 쥐어졌다 펴졌다가 더 편했다. 들었다 놨다 하는 것보다 마음이 풍선처럼 부풀었다가 가슴이 조마조마 하며 발바닥에 땀이 나는 그 상태를 즐겼고 추앙했다. 밀었다 당겼다? 이 세상에서 단 한 사람이 물어본다면 모를까 그게 아니라면 그 어느 말은 금기되는 말이었다. 무슨 말일까,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난다면 다시 이 사람과 사랑하겠냐는 말. 이젠 살아보니 딱 10분이면 정말 못 꼬실 여자가 없을 것 같지만 그래프 꺾이면 만나게 될 과정을 상상하는 것도 귀찮았다. 그냥 세파에 치이고 직접 상어가 되어 파도타기를 즐기는 걸 더 선호하게 되었다. 살다보니 그렇게 변했다. 그러므로 당신은 웃길려고 또 어떤 목적으로 남을 속이며 하얀 거짓말을 할 수는 있지만 이제는 유혹 당하고 매혹 되고 고혹적으로 밀렸다 당겨졌다 하는 청순한 로맨스와 순수한 어린이 만화를 동경하게 되었다. 고매한 당신은. 피터 드러커의 명언을 새삼 떠올리고 포지셔닝을 점검하며 톰 피터스 서적을 간간히 들춰보며 돈에 대한 숫자 놀음보다 바로 청춘 사업을 하고 싶었다. 기존의 상대와 제2의 사랑이라 명명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살면서 언제 이렇게 사랑에 대해 진지한 성찰을 시도했던 적이 있었나 싶도록. 당신은 글로 만들어내는 세상에서 조심조심 사랑하며 불가사의를 만들어내기 보다는 그 사랑을 고백받고 그 상상의 세계로 뛰어들어가 놀면서 그 가상의 공간에서 속세로 빠져나오기 싫었던 것이다. 아마 그래서 그 다음이 써지지 않았을까 그런 추측이 뭐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어쨌든 그건 공상이고, 이건 닥쳤고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어떻게 할 것인가, 에 대한.
공장에 처들어가는 설정으로 이어갈까? 너무 자의적이고 등장 인물도 대화도 흥미도 없었다. 그냥 이대로 소설을 끝내? 뭔가 아쉬웠다. 화장지 회사에 취직하는 것까지 일단락 짓고 속편을 기대하게 만들까? 별로 자신 없었다. 어느 날 진공청소기를 대체하는 새로운 가전 제품을 팔길래 그걸 샀는데 그건 알고보니 타임 머쉰? 완전 억지다. 초보 티 팍팍 난다. 너무 작위적이다. 누가 봐도 거짓이다. 아무도 안 속는다. 책이 아니라 후라이팬과 냄비만 잘 팔릴 것이다. 전혀 실감날 수 없을 것이다. 개연성, 상실했다. 팬에 대한 처우, 무시하는 거나 다름없다. 그럼 어떻게,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가? 그럼 어쩌란 말인가, 나보고 어쩌라고! 결국 어쩔 수 없이 당신도 그분을 기다리는 운명에 처하게 됐다. 오, 이럴 수가! 이런 일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이제 현실이 되었으니 꿈에 나오면 되겠네. 하하하 하하하하하. 하나도 안 웃긴다. 전혀 흥미진진하지 않도다.
당신은 이런 독백을 외치면서 그만둘까도 생각해봤다. 「에이~ 어렵구만. 관 둬 관 둬!」 그러나 그건 아니었다. 무언가 알 수 없는 경직된 관성 때문에 당신은 도저히 멈출 수도 포기할 수도 없었다. 간혹 손에 땀을 쥐는 듯이 짜릿한 것 같았는데 손바닥을 만져보면 건조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고, 본인의 열정도 아니며, 팬들의 염원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목표를 향해 뛰지 않으면 안 된다는, 본능을 앞서고 이성도 압도하며, 감수성과 향수와 낭만적인 선망과 신선한 동심까지 그 모두와 긴밀히 교감하는 삶의 기본적인 습성이 되어버린 것만 같았다. 이 소설을 완성해야 한다는 욕구, 그것은 이와 동급이었다. 살며, 사랑하고, 꿈꾼다. 어쩜 이렇게 믿을 수 없는 기적적인 소설 창작의 노예가 되어버렸을까? 예술? 문학? 어쩌다 이 분야에 뛰어들게 되었나, 도저히 믿을 수 없는데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뭐 그런 거창한 의문을 다 떠올리다니, 어머나! 그럴 시간 있으면 글이나 쓰라고 누군가 어디선가 다그치고 닦달하는 듯한 망상마저 떠오를려다 말았다.
당신은 그런 생각도 해봤다. 화장지각에서 돈이 나오는 소재을 놓고 누군가는 뭐야 내가 쓴 글을 베낀거 아니야, 그런 경우 분명 있을 것이라고. 당신은 살면서 정상급 수다의 분위기에 근접하지 못한 삶을 살았기 때문에 그 흔한 화재를 단 한 번도 말로써 농담으로 말하고 듣기를 못해봤다. 즉 그 누구나 흔히 쉽게 말하고 듣는 그 소재를 당신은 당신의 힘으로 고안해냈다. 그러나 내가 이미 썼네 어쨌네, 그건 법률 용어를 빌리지 않아도 글이 아니라 말로 그쳐야 한다고 얼마든지 무수한 예시를 들어서 증명할 수 있다. 어찌나 말을 잘하는지, 로 그치기를. 제~발! 그러나 가만히 재차 생각해보면, 뭐 그러거나 말거나! 또 당신은 내용은 안 써졌지만 제목은 한두 번 생각해봤다. 환상 소설은 어떨까? 아니면, 그분의 애인? 고장난 타임머쉰? 통조림의 저주? 화장지각의 비밀? 돌림노래? 혹시 베스트셀러가 되면 귀찮고, 감탄은 금새 시들해질 것이고, 시샘과 비판과 비난에 짜증도 날 테니까 가명을 내세울까? 미래파라고. 헛된 상상으로 머리를 식힌다고 안 써지는 글이 갑자기 써지는 것은 아니었다. 글이 막혔는데 벌써 감사의 말? 통조림과 각화장지 사재기에 죄목을 붙일 수도 없고, 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따라서 그는 지금은 일에서 잠시 손을 떼야 한다는 냉혹한 판단을 내렸다. 지금 상황이 이런데 억지로 거짓 줄거리를 꾸며낸다, 그 이야기는 아마도 개 풀 뜯어먹는 일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미 그런 글은 수없이 보고 또 봤다. 지금은 직관에게 애정의 주도권을 넘기고 그 전권을 맡겨야 할 시기라는 감이 왔다. 오오, 느낌 와 느낌 와! 그래서 그는 당분간 달콤한 휴가를 얻게 됐다.
9
그대는 <나는 뭐뭐 했다>라는 나는-식 글을 쓰느라 지쳤기 때문에 다시 그분과 영접할 시기를 기다리는 동안 마음껏 기분 전환을 시도했다. 거리에서 프리 허그라는 팻말을 들고서 유행이 한참 지난 복고풍 행사를 하길래 뭔가 하고 유심히 쳐다봤다. 아아! 그것은 그냥 애들 장난이 아니었다. 육체파에 미모에 꽃다운 젊음에 지성까지 겸비한 숙녀가 그 주인공이었다. 그런데 참여자가 많지는 않았다. 어떻게 기력이 빨려들어가는 뭐 그런 이상한 염력 때문에 그런가 라며 궁금해졌다. 그러나 그건 드라마에나 나올 만한 일이고 이건 고민하고 자시고 망설일 일이 아니었다. 그대는 딱 이거라는 느낌에 강렬하게 압도되어서 쏜살같이 그녀 앞으로 갔다. 그런데 딱 그 순간 행사가 끝나버렸다. 나는 나는, 이 잘 안 되어서 밖으로 나왔는데 <나도>까지 안 되다니...! 이럴 수가! 세상에나! 뭐 그럴 수 있다고 여겼다. 지나치면 그만이었다.
그런 후 그대는 쇼핑을 했다. 등산도 했다. 영화도 보고 여행도 갔다 왔다. 축구 경기도 현장에서 그것도 서포터즈인척 녀석들 옆에서 보고 왔다. 클럽, 물론 다녀왔다. 불면증, 조증, 울증, 식곤증, 수면욕 과도증, 스탕달 신드롬, 앨리스 증후군, 현기증, (특히) 허언증, 사재기 금단 후휴증등 머머증은 모두 거쳐갔다. 책, 안 읽었을 리 없다. 청소도 했다. 그것도 대청소. 집과 차와 창고와 사무실에 전시하고 진열하고 감추어놓은 두 가지 물건도 모두 정리했다. 모두 눈에 보이지 않도록 깨끗이 처분했다. 친구를 만나고 산책을 하고 차를 마셨고, 차가운 도시의 남자가 되었다가 고독한 도시의 남자로 또 가을 남자도 다 해 봤다. 제임스가 알려준 용한 점집도 벌써 갔다 왔다. 다 소용없었다. 새로운 착상은 떠오르지 않았다. 세상은 그대로였다. 이 세상이 험난하다고 울부짓을 수도 아름답다고 노래할 수도 없었다. 이쯤 바람 쐬고 기분 풀고 방황 했으면 슬슬 그분이 와야 하는데 그분은 영영 소식이 없었다. 깜깜 무소식. 한숨이 나왔다. 막 나왔다. 계속 나왔다. 인생이 처량했다. 그러다 장소에 변화를 주기로 했다. 처음에는 집에 있는 창고에서 칩거를 시도했는데 그건 아닌 것 같아서 차를 타고 사무실로 갔다.
그대는 불꺼진 사무실에서 입는 침낭을 입고 소파에 누워 잠을 청했다. 잠을 자면 딱 꿈에서 어떤 우연 때문에 행인3이 그분과 만나는 자리를 알선하고, 그분에게서 기를 받고, 내일 아침에 일어나서 미친 듯이 글을 쓴다, 가 계획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잠을 자려고 해도 잠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그대는 사무실의 TV를 켰다. 그리고 와인 쿨러에서 와인을 한 병 가져왔다. 사무실 냉장고를 열어보니 먹을 건 참치 통조림 밖에 없었다. 자, 이제 딱 자세를 잡고 소파에 앉아서 그대는 빈 잔에 술을 따르고 TV 채널을 돌리며 가짜 웃음을 연습했다. 대사도 따라했다. 어떤 이야기가 연상되는 소재가 있나 지켜봤다. 채널을 돌려도 재밌는 건 안 하는 거 같았다. 막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홀짝 홀짝 마셔야 하는데 와인잔에 담긴 술을 단번에 마셔버렸다. 그리고 포도주를 다시 한 잔 따르고 나서 그대는 드디여, 마침내 참치 통조림을 땄다. 그때까지 그대는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소설 구상 때문에 참치 통조림에 관한 사연은 아예 잊고 있었던 것이다. 자기가 주인공이었는 데도 불구하고.
그대는 참치 통조림을 땄다. 시간이 굽어졌다. 시간이 거의 정지한 것처럼 천천히 흘렀다. 아마 그랬을 것이다. 아무튼 그대는 손맛을 봤다. 제7의 감각이 깨어났다. 참치 통조림을 땄다. 그런데 통조림 깡통이 따이는 소리가 들리지는 않고, 그 대신 그건 거의 마담 클링과 흡사한 효과음이 들렸다. 퐁~ 그 화사한 소리가.
그 다음에 어떻게 됐을까, 는 그대도 모른다. 나도 모른다. 조니도 모른다. 그 누구도 모를 것이다. 그러나 알고 싶다. 왜 마담 클링이 하필 이때 핑하며 울렸는지를!
끝.
1
어느 날 나는 오늘의 운세가 궁금해졌다. 왜냐하면 꿈에서 월척을 낚았기 때문이다. 돼지꿈을 꾼다거나 운수대통을 의미하는 어떤 상징물이 꿈에 나오거나 여러가지 길몽의 종류가 있겠으나 현실과 초현실의 경계, 가능함과 꿈의 중간 그 어설픈 줄타기의 교묘한 뭔지 모르는 설득이 되고 납득이 되는 사실 같으면서 꿈 같은 그런 꿈 때문에 그건 내게 상당히 운세가 궁금해질만한 타당성을 지닌 꿈이었다. 물론 나는 꼭 오늘에 관한 운세만 궁금한 것이 아니라 내일도 모레도, 꿈 해몽도 수정구 점도 동물점도 포함하여 전반적인 그 업계의 재담을 듣고 싶다는 한가지 미약한 욕구를 느낀 것 같다.
사실 꿈에서 봤던 물고기는 거의 고래만 했는데 고래는 아니었고, 꿈의 내용도 거의 드라마 48부작 수준이라서 기억이 엉켜버렸지만 그 내용 가운데 온갖 길흉화복과 흥망성쇄를 빼고 딱 하나의 무언가 의미를 찾는다면 그건 결코 흔치 않은 대망을 낚는 경험이었다. 살면서 누구나 흔치는 않아도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어떤 꿈을 꾸면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즉시 밖으로 나가서 복권을 사라 라는 격언. 꿈에서 깨자마자 나가야 하는데 화장실에 들렸다 나갔기 때문에 자기는 제일 꼴찌에서 두세 번째에 당첨된 적이 있다는 둥 그런 기억은 드물지 않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그 흔한 꿈을 꾼 후 1등 당첨을 위한 시도와 실패, 나도 겪었다. 당신도 그럴 것이다. 내 장담한다. 아직...이라면 앞으로 다가올 일이다. 전에 한두 번쯤 그랬고, 그 드문 일이 딱 오늘 일어났다. 그러나 나는 내 운을 행운의 번호에 걸고 싶지 않았다. 옛날의 나는 지금의 나로 변모했다. 그래, 세월에 시달렸다거나 늙었다거나 엇비슷하게 에둘러서 표현해도 괜찮다. 빙빙 목표 주변만 맴돌고, 방법을 몰라 빙글빙글 도는 인생이었으니까. 예전엔 꿈을 종이와 맞바꿨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전과 똑같은 길을 갈 수는 없었다. 아침에 깨서 화장실에 들리냐 안 들리냐, 눈꼽을 떼냐 안 떼냐로 1등 당첨이 갈리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으니까. 왠지 나중 후회할지 몰라도 아침에 의식이 드는 순간 그런 억만금은 내게 별 의미가 없다는 예감이 들었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없겠지만 이미 당첨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가공의 사상과 온 몸의 털이 바짝 서는 고양이나 만화영화에 나오는 개 한마리가 된 듯한 환상성의 총애에 내 복과 길을 모두 걸어보고 싶었다. 일종의 승부처랄까, 암암리에 그런 세한 느낌에 휩싸였다. 그러나 그런 기분이 내게 찾아오는 시기는 뜬금없었고, 장소는 맹랑했으며, 그 맥락 역시 썩 낭만적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나는 뭔가 그날 하루를 다르게 시작해보고 싶어졌다. 이거다. 당첨 대신 얻은 깨달음은. 또 다른 이유를 찾아보자면 동네에서 최근 나는 은근히 혼자 놀고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 두꺼운 책도 찬찬히 읽었고, 잔디도 깎고 수영장도 청소하고 딱히 할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주위에 색다른 일이나 동정을 살필만한 사건과 날 필요로 하는 막연한 숙녀의 손길이 좀처럼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분이 횡포를 부리는지 어쩌는지 글도 잘 안 써졌고, 삶의 비밀 그 전모는 딱히 궁금하지 않았지만 그 신비감을 벗을 뻔 하다가 다시 나를 밀고 들어올리고 나의 격정과 열정과 동심의 천진난만한 기운을 조여왔기 때문이다. 난 뭔지 모르는 허상에 쫓기는 허당이었다. 은근함도 떠나갔다. 안녕이라는 말없이. 그 대신 기대도 남지 않았다. 딱 노래 가사처럼. 내가 찾아야 했다. 스스로 마법의 성을 쌓아야 했다. 순서가 바꼈다. 어쩌다가. 얼렁뚱땅. 적응할 수 밖에 없었다. 바싹 그리고 불손하게 운명과도 같은 그 원리는 날 찾아왔다. 그리고 그 일리는 나를 굴복시켰다. 나도 싫지는 않았다. 당연히 좋은 줄도 잘 몰랐다. 토끼는 챗바퀴를 돌리는 거 말고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 따라서 나는 오늘의 운세에 판돈을 걸고 나서 그 불확실한 감이 좋으면 판을 키우고, 아니라고 해도 패를 즉시 까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오늘의 운세! 무슨 별자리. 무엇을 조심하라. 어느 때 태어난 사람은 뭐가 좋다. 두 가지 일을 동시에 추진하지 마라. 방심하면 곤란하다. 고전한다고 낙심하지 마라. 최상의 조건이니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라. 지나간 일에 연연하지 마라. 해가 뜨면 누구를 만날 것이고 서풍이 불면 무슨 일에 엮일 것이다. 오늘 역마수가 끼었으니 자만하지 마라. 운세를 가상으로 받고 읽고 듣고 토론을 모두 거쳐서 딱 결론 나왔는데 오 이런 개똥 같은 일이라니! 사주 정보를 잘못 입력했군, 저런!
2
나는 딱히 중요한 일이나 아무런 약속이 없었기 때문에 은밀히 혼자 알고만 있었던 어느 점쟁이를 찾아갔다. 미리 점찍어 둔 것은 아니지만 한번 가봐도 썩 나쁘지 않을 듯한 곳을 한군데 봐놓기는 했다. 그리고 그를 만났다. 약 1~2쪽에 걸치는 상황과 묘사와 서려있는 음기랄지 이 양반이 혹시 돌팔이는 아닐까 라는 의심에 관한 설명은 모두 생략한다.
「결혼은 했어?」 용한 도사 왈,
「아니 그걸 물어보시면 어떡하나요? 대번에 뭐 때문에 왔구먼, 길게 시간 끌꺼 없고 판돈을 올리면 핵심만 추려서 귓속말로 알려주겠다고, 그렇게 하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네? 거 왜, 드라마 보면 그렇잖아요?」
「젊은이가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봤구만. 그거 다 뻥이야. 지들이 뭔 수로 미래를 알어? 걔네들 대충 넘겨 짚어서 일단 혹하는 말을 던지는 거야. 틀려도 책임 안 져! 맞으면 좋은 거고. 제일 들어맞을 가능성 높은 걸로 딱 3가지를 알려주면 대충 그 가운데 2개는 맞아, 그러면 괜히 그 말을 들었고 기억하고 기대했거나 설마 맞겠어 하며 웃었던 사람들은 나중 그분이 달리 보이겠지. 그럴 수 밖에 없어. 이 바닥이 원래 그래. 답변의 가능성 그리고 혹하는 말! 먼저 떡밥을 던지는 게 순서지. 그것은 두 가지로 나뉘고. 평서문과 질문으로. 여기서 마침표는 문장이 계속 이어져야만 하지. 말을 많이 하면 힘 빠져. 체력이 금새 바닥나게 돼. 이 일도 체력이라고. 장기전인데 기분 좋다고 막 달리면 얼마 못가서 거품 물게 되어 있어. 그래서 짧은 평서문은 자주, 긴 명대사는 아주 가끔 딱 느낌이 올 때만 하는 거야. 곧 그것은 자주 질문을 던지라는 말이지. 거기서 또 두 가지로 나뉘어. 대답이 '예'냐 '아니오'냐로. 애매하면 판돈 올라가고 잡아먹히는 거고. '예'라면 계속 분위기 조장하면서 기분을 끌어올리는 거고, '아니오'라면 딱 잡아떼면 돼. 이때 세게 나가는 건 기본이지. 약하게 나가더라도 더 조용히 말하거나 그런 방법이 다 있고. 목소리를 아주 낮춰서 고개를 슬며시 들이밈과 동시에 눈을 가늘게 뜨는 거지. 그러면 안 된다면서. 점 보는 거, 그거 별 거 없어. 나한테 딱 2시간만 배우면 끝나. 그리고 어디가서 세계에서 세 손가락에 꼽히는 예언가에게 20년 배웠다고 광고 하고 가게를 차리면 되지. 그럼. 찾아오는 사람들 다 뭘 바래서 오는 거 아니야. 자기 말 들어주라고 오는 거지. 연애상담도 똑같아. 누가 몰라서 물어보나? 또 누군 조언을 해주면 자기가 도사인줄 알겠어? 다 그저 서로 연기하는 거지. 절반쯤은 위선이 차선이라고, 그게 바로 살면서 악인이 되지 않는 길이야.」
「선생님, 시작부터 어째 좀 불편하게 풀리는군요. 전 여기 점을 보러왔지 선생님 제자가 되겠다고 온 게 아니라구요. 네?」
「어, 알아. 안다구. 일단 부드럽게 주변을 맴돌면서 긴장감을 푸는 거야. 나는 나비고 자네는 꽃이야.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겠다는 게 아니야. 내가 뭔 운동선순가? 여기가 노름판이야? 아니야~. 상대방의 긴장감을 푸는 게 먼저거든. 그러나 자네도 너무 늘어지면 안돼. 나한테 단물 쪽쪽, 설탕물 쪽쪽 빨리면 어떻게 될지 몰라. 지갑을 열고 분수대 옆에서 삼지창을 들고 논다면 괜찮지만 아예 한 재산 맡길려는 작정을 하는 수도 있으니까 조심하라구. 그런 거 노리는 작자들 어딘가에는 있어. 속고 속이는 게 이 세상의 이치라는 거, 잊지말라고. 그걸 꼭 경험으로 학년 올라가듯이 아는 친구들도 있으니까 말이야.
내가 아까 물어봤지? 결혼했냐고. 자네는 결혼 안 했네. 딱 보니 안 했어. 음, 그리고, 어제 TV 봤지? 혹시 코메디 프로그램? 거기 나오는 스무살 처녀가 예뻐보이던가? 때가 됐구만. 하지만 웬만한 아저씨들 다 그럴 걸~! 얼만큼을 웬만하다고 할 수 있냐, 그건 따지지 마세 그려. 게다가 그 아가씨만 그렇게 통통 튀고 신선하고 새록새록 산뜻한 줄 알어? 과연 그럴까? 어? 또 웬만한 그 또래애들 역시 다 그래~! 또한 얼만큼이 웬만하냐, 를 재차 짚고 넘어가지는 마세나 그려. 그럼. 솔직할 땐 솔직해야지. 응큼할 땐 응큼하듯이. 부끄러워하지 마. 그게 정상이니까. 그때 예의가 지금은 냉정함이고, 지금의 애교가 내일에는 지고지순함이 될지 지금 어디서는 현실일지 누가 알겠나. 걔들도 꺾이면 다 부러워하게 돼, 젊음을. 추억을 회상하며 아련히 곡조를 뽑거나 복고풍 의상에 빠지겠지. 뻔해. 그걸 알아야 한다고, 남아는 말이야. 들었다 놨다, 들어봤지? 밀었다 당겼다, 하고 있나? 쥐었다 폈다, 지금 여기서 우리 둘 중 하나는 바로 그래. 사람 일이란 게 그런 거거든. 당신의 마음은 내 손 안에 있소이다, 사랑과 열정을 그대에게? 오늘의 운세를 젊은이에게! 그녀들도 모두 걱정해. 자기 남자가 자기 어릴 때 자신이 습관적으로 아무한테나 선보였던 꼬리침을 예절로 보고 또 그건 기본이 될 테니까! 당해보면 알 꺼야. 완전 나 꽃이야, 그건 그나마 괜찮아 헌데 문제는 그 꽃이 무제한 복제되는 거. 사르르 사르르 전율이 돋는 내 남자의 달콤하며 도톰하고 감미로운 음성은 나만 듣는 게 아니고, 교태 넘치는 그녀의 눈웃음은 낭군에게만 보내기로 약조하지만 그게 어디 자기 마음대로 되나, 제 버릇 개 줄까, 그 앞에서 뿐이지, 잘 알지 않나. 예전의 연애 감정으로 현재 널리 통용되는 행태를 본다면 어떻게 봤을 때 그건 명백히 반칙이라거나 썩 문란해 보일 수도 있어. 마음이 헤퍼보일 수도 있다구. 허나 그건 옛날 이야기지. 이런 말도 세월이 흐르면 완전 촌스러워지겠지. 고리타분해질 꺼라구. 미래생활사전을 봐 보라구. 많이 변할 테야. 그러나 정말 소중하고 가치있는 것과 내 님을 위한 일편단심과 꽤 많은 것들은 변하지 않아. 절대 변치 않는다구. 마치 연인들의 사랑이 영원하기를 기원하고 축복하는 것처럼 말이야, 끝날 때 끝나더라도 일단은. 다이아몬드를 심혈을 기울여 들여다본 적이 있나? 정말 정성스럽게 들여다보면 어떤 생각이 떠오르는 줄 알어? 사랑이 영원할 거라는 착각을 하게 된단 말이야. 마치 어느 카피라이트를 떠올리면서. 하하하하하 내가 그런 카피라이트를 만들었다는 말이 아니야, 결코 아니라고, 내가 젊었을 때 광고회사에서 앗 삼천포로 빠지지마세 그려. 현재주의, 뭐 그런 말은 모르겠어. 약간 끌리고 예뻐보이고 동경심이 감도는 그런 감정이 TV와 인터넷과 핸드폰과 거리에서 누구를 봤을 때 살짝 피어오른다고 창피해 하지마. 안 그러는 게 비정상이니까! 당사자야 그럴지도 몰라. 내 친절과 내 애교와 내 호의와 내 상냥함과 내 꽃내음을 내 주관에 따라 모든 곳에 퍼트리고, 면사포와 팔꿈치 직전까지 도달하는 하얀 면장갑을─그것의 이름이 뭘까─낀 채 다소곳이 마지 못해 못 미더운 척 춤을 신청하는 그이에게만이 아니라 춤을 신청하는 누구에게나 손을 건네듯이 마치 그러하듯이, 만인에게 똑같이 어디에나 똑같이 수평적으로 똑같이 대하는 게 그게 뭐 잘못이냐고, 라고 할지도 모를 일이야. 하지만 그런 일을 객관화한다면 어디 그게 좋아보이겠나? 착해보이겠나? 아름다워보이겠나? 그렇다고 새싹들의 선망을 사고 널리 권장할만 하다겠나. 젊은이 입장에서 보면 당사자야 불미스러운 일은 아닐지도 모르겠으나 또래 애들과 같은 계층과 친한 친구와만 어울리다보면 약간은 사회성이 그 주위에 기준하여 형성되고 시야가 좁아지고 아무래도 덜 이타적일 수 밖에 없게 되지. 한 남자가 착각을 했어, 두 번째 남자도 착각을 했어, 세 번째 남자도 인정했어, 누가 봐도 오해를 살 만해, 첫 번째와 두 번째는 개나 소가 되고 그들은 시시각각 항상 복제되는 꽃에 관한 사진이고 그림이며 일상적으로 재생산되는 수프에 지나지 않아. 그럼 뭔가 오해의 소지로 시작해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라고 생각해 볼만한 문제라고 봐도 큰 오산은 아닐 꺼야. 보통 연애를 하는 단 한 사람에게만 응대해야 할 태도, 그처럼 오직 단 하나 정녕 나의 그대이기를 바라는 무엇을 누군가는 한순간에 와장창 와해시켜버릴 수도 있어. 그게 생활이자 인생일 수도 있다고, 그걸 인생...이라고 하기엔 좀 뭐하시만 말이야. 그게 뭐 잘못이냐고, 뭐가 문제냐고, 웃지 못할 일이 뭐냐고 반문하며 실소를 부를 수도 있어. 그건 의외로 흔한 일일테야. 이런 걸 공감 못하고 이런 데서 연민과 나아가서 동질감과 유대감으로 모자라 어떤 불편한 동정심을 느끼지 못한다면 사람들이 오락 영화가 아닌 다른 건 왜 만들고 시를 왜 쓰며 다큐멘터리는 뭐 하러 만들겠나? 뭐 할일 없다고 뭐 미쳤다고 그런 헛일을 하겠냐고, 뭐 하러 시간낭비를 하겠어? 바로 그와 같은 몸짓과 어조와 목소리의 떨림과 표정과 말투를 비롯한 신경 써주고 나아가 챙겨주며 아껴주고 보기 힘든 다정함까지, 그 모두를 만인에게 똑같이 인자하게 대한다? 그건 뭔가? 혹시 그게 평등이라는 것인가? 평~등? 그럼 자유와 박애는 뭐란 말인가? 옛날에 몽테스키외 남작이 글로 썼나 아니면 칼 마르크스가 말했나? 그것이 그것이라고. 발음은 같은데, 어... 발음만 같네. 그거 이상하다고 생각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걸 꼭 깨달아야 하냐고! 그 둘의 의미까지 똑같은 것처럼 행동하는 것, 아무리 생각해도 금시초문 같네 그려. 옛날에도 발 없는 말은 천리를 갔는데, 지금이라고 거짓 평판이 얼마나 통하겠나. 뭇남성들의 상심, 그 서글퍼지는 비애, 보답받지 못하고 토라져버린 애련을 복돋워주자고, 잠시만 말이야. 유행가가 다 뭐야, 90퍼센트는 이거야. 사람은 누구나 질투심에 불타오르는 시절이 있기 마련, 교분은 언제 어떤 연결로 일어나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지 몰라. 친교에서 한걸음 떼면 추문이고 그 옆에는 치정이라고. 사랑이 뭐 별건가? 상처받은 체념을 치유하는데는 부적 3번이 괜찮다네, 슬쩍 눈여겨보라고. 정말 심혈을 기울여 한 세월이 걸린 작품이야. 불상사는 미연에 방지해야 하지 않겠나. 쓰라리지만 어쩌겠나, 사람이니까 사랑 앞에서 마음이 괴로울 수 밖에. 그러면서 크는 거라구. 제2의 자아는 그렇게 탄생하는 법. 입장을 바꿔서 말이야, 여자들 입장에서도 무언가 들인 노력에 비해서 돌아오는 찬미가 부족하니까 이해는 된단 말이야. 그분은 소식이 없고 엄한 파리만 날리니까 그럴 만도 하지. 그럼. 산들산들 덥지도 춥지도 않고 꽃은 피었는데 내 님은 오시지도 않고 나비도 벌도 봄마저 오지 않느다면 슬프겠지. 아예 기약도 없어, 완전 서글퍼지는 거지. 그보다 더 슬픈 일이 어디 흔하겠어? 요즘 어떻다고, 남자들이 어쩐다고. 그런 말이 나올만도 하지. 그냥 흔한 수다는 아니야. 결론은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란 거야.
난 말이네, 내 말이 크게 틀렸다면 말도 안 된다면 그러기를 바래. 어설픈 이론도 아니지만 헛점을 파고들고 논리를 깨트리면 내 깨끗이 인정하리다 승복하겠단 말이오, 그거야. 그래 내가 틀렸고 당신이 옳소이다, 난 그런 거 꺼려하지 않는다네. 좋아해. 그게 바로 내 분야라오. 점쟁이는 끝까지 우겨야 하지만 어느 층위에 오르면 안 그래......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걸려, 걸린다구. 내가 괜한 걸 트집잡는 건 절대 아니라고 봐. 흥정의 묘미를 살리지 못하고 다 귀찮으니까 억만금을 내고 내 당장 사겠소 하면 어이쿠 고맙습니다, 라고 하는 건 신분을 뛰어 넘는 사랑인가? 그게 뭐야, 그게 대체 뭔 소리냐고. 나도 뭐가 뭔 소리인지 하나도 모르겠군 그려. 어쨌거나 그건 오직 하나, 의 가치가 없지. 즐거움만 남고. 내 곁에만 있어줘요 떠나가지 말아요, 라는 애절함을 그 어디서 찾겠나? 어떻게? 그게 어디 사랑이야? 그 흔한 사랑이 진정한 사랑이라면 사랑 때문에 왜 그럴게 법석을 떨고 난린데? 유행도 아니고 인간사 절반이 사랑이라고. 뭐, 여자라면 무죄야? 사랑이면 다냐고? 아니야. 그건 아니라구. 그건 절대 아니야! 인생이야 너그럽게 그걸 안아줄 수야 있지, 인생이야 모두 받아주고 친절을 베풀어야 하는 법이니까. 그분들 역할은 그래도 내가 그분들 변호하는 게 아니야. 인생이 꺾여야만 아는 그런 것들이 있다는 얘기야 내 말은. 하지만 녀석은 진득히 어느 품에 있지 못하고 나비처럼 날아가버리는 거라구, 훨훨. 꺼이꺼이! 그런 여자가 남자로 태어났다면 희대의 난봉꾼이 됐을까? 희대는 무슨 희대, 찰스 부코스키 정도 됐으면 성공한 거겠지. 가능성은 거의 없어, 제로야. 정말 많은 청춘 남녀들이, 아니 모든 아가씨들이 그렇다면 정말 그렇다면 그건 반칙왕이지. 아, 그렇지 않나? 날 따라서 해봐, 난-봉-꾼! 아니 아니 아니, 반-칙-왕! 숙녀 먼저, 와는 다른 얘기야 분명. 엄연히 다르지. 따라하라 했다고 진짜 따라하지는 말고. 그렇게 말이야, 결혼 전에 두 다리 세 다리 그 이상 얼마든지 걸치고 얼마든지 마음대로 살아도 돼, 그 누구도 뭐라 못하겠네. 저마다 삶의 기준은 다르니까. 남의 인생에 배 나와라 감 나와라 내가 무슨 권리로 훈수를 두고 침해하겠나. 이 꽃에서 저 꽃으로 살랑살랑 봄바람이 불어서 날아다녀도 그게 어디 자연의 섭리지 뭔 죄란 말인가? 그러나 그렇게 모두 다 그렇게 된다면 사람을 남자를 여자를 친구를 연정을 흠모한다는 무언의 고백을 통 믿을 수가 없어. 믿어주는 척 연기하는 것도 지겹지만 말이야. 동기부여해서 부풀어오르고 미리미리 사기 당하기 전에 그것, 바로 학습을 하라는 것이라면 할 말이 없지만 말이야. 아무튼 그래야 그 둘을 같은 잣대로 쟤는 게 되지. 샤르르륵 샤르르륵 눈꺼풀을 우아하게 천천히 아주아주 천천히 움직이며 말도 조용조용 아주 근사한 속도로 대화할줄 알지만 그걸 실행하면 웃음이 나와서 차마 그건 보너스로 보여드리지 못하겠다는 숙녀의 변명이라고나 할까, 할 말은 있을 꺼야. 천성이 그러한데 어쩔 수 없다라고. 그게 뭐 그렇게 잘못된 거냐고. 남들도 다 그런다고. 그런데 정말 다 그럴까? 잘잘못은 아니지 음 그럴 수도 있어 그럼. 청춘이니까. 요조숙녀니까. 새침하니까. 무엇보다 재능이니까. 탁월한 능력이니까. 하지만 뛰는 놈 위엔 나는 놈이 있는 법, 또 다른 명언까지도. 죄는 내가 지고 벌은 다른 누군가가 받는 일, 드문 일이 아닐 꺼야. 피는 못 속이는 것일까? 웬걸, 그 여건까지 따지지는 마세. 아름다운 인생을 살아가는데 사랑의 여신은 등을 돌리고 이타적인 삶을 실천하는 현인에게 행운의 여복은 너무 늦게 찾아올 수도 있는 법이야. 사람 사는 세상이 원래 그래. 그렇지만 거기까지 촉수를 디디면 그럼 머리 아퍼. 너도 나도 자유롭기 힘들단 말야. 난 재물운이나 관상과 태몽, 궁합이나 애정운이 전문이야. 놀라운 적중? 솔직히 자신없다네. 그럼, 그렇지! 그러나...... 자네는 나를 만난 걸 행운으로 알아야 해. (이때 이 분은 나를 똑바로 노려봤다. 나는 깜짝 놀랐다) 나중 깨닫게 되는 시기가 있을 꺼야.
그러니까 저 친구는 바로 이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겠지, 라고 공상의 나래를 펼친다고 해서 수줍어하지도 슬퍼하지도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이라고 언짢아하지도 마. 자기만 그러는 건 아닐까, 비관하지마. 보아하니 아직도 그런다면 그건 순수한 거야. 그러나 그렇게 순진하게 살기에 이 세상은 어느 만큼 팍팍하다고. 굉장히 넓고 신비로워. 그렇지만 우선은 순수하다는 것으로 논증되었으면 사춘기가 다시 온 거라구, 반겨야 하지 않겠나? 그게 내게 온다면 다른 말로 불러야겠지, 회춘이라고! 젊어서 좋은 게 뭔가? 사랑! 많이 해 많이 하란 말이야. 늙어서도 못할 건 없어. 이승에서나 마음껏 하지, 레테의 강을 건너서 많이 하겠다고? 아니야~!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크게 사회규범에 저촉되지 않는다면 마음대로, 맛난 음식 먹고 싶은 것도 마음껏 실컷, 어디를 가고 싶건 누굴 보고 싶건 얼마든지, 알겠나?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고, 거 왜 불공평하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말일세. 그렇치 않나 길지도 않은 한평생, 사람이 살면 얼마를 산다고 길어야 백년이야. 그것도 거의 반올림이지. 우리가 인간이 말일세 한 오백 년을 사나 10세기를 사나? 아니지 않나. 끽 하다 운 때문에 이 모진 세상 그것도 지구에서 태어났는데, 차일 때 차이더라도 고백이나 하고 차이면 속이나 시원하겠지. 현재의 감정에 충실한다고 해서 그게 꼭 거북이와의 경주에서 나무 그늘 밑에서 낮잠 자는 토끼가 되는 건 아니란 말일세. 내가 괜한 얘기를 했네 그려. 난 원래 그렇지 않은데, 잠시 전에 이 동네 영감탱이들이 다녀갔드니 그 짧은 찰나에 나도 금새 물들어버렸어. 그게 나쁜 건 아니지만 말이야. 어찌되었든 추측이 몽상을 부르고 상상의 축제에서 별 희한한 생각들이 단꿈을 펼친다고 해서 괴로워하지마시게, 그건 청춘의 자유야. 뭐 젊은이가 수도승인가? 인생을 통채로 어디 헌납했냐고? 아니야, 자신의 인생은 자신이 주인공이야. 그러니 나비는 꽃을 탐해도 된다네. 그대의 특권이란 말이세. 아름다운 꽃을 꺾는 주인공이 나오는 드라마를 보며 희망의 사과를 따먹고, 꽃은 그분을 기다리다가 꿀벌을 만날 수도 있고 말이야. 아니면 엄한 설과 이상한 이론에 헷갈려하며 한 시절 도취될 수도 있고 말이야. 모두가 웃고 행복해하는 즐거운 파티의 대미는 뭔가? 만약 그것이 불꽃놀이라면 명대사의 꽃은 바로 긴 명대사라네. 모르긴 몰라도 어설픈 오늘의 운세보다는 아마 이게 더 낫지 않나, 난 그렇게 내다 본다네. 거리를 보면 빨간 스포츠카가 뚜껑이 없어, 원피스의 옷감은 하늘하늘하고 무늬는 어여뻐, 모두들 행복해보인단 말일세. 그들이 부럽지 않나, 선망을 꼭 감춰야 할까, 자네도 그렇게 하고 되고 즐기고 싶지 않은가, 꿈을 꾼다고 그것이 죄로 이어질까? 그녀를 품고 싶어? 그녀를 만나면 가장 하고 싶은 일 딱 하나 제일 하고 싶은 단 하나의 소원은 많은 사람들이 보는 데서 정답게 손잡고 걸어가고 싶은가? 바래도 돼, 원해도 된다고. 정말 그렇지 않다면 그건 이성을 보기를 돌맹이 보듯 하고 바로 나무를 사랑하는 거지 뭐. 그렇다고 너무 걱정할 일은 아니라네. 상인이라고 아무나 잡고 흥정하지는 않아. 뭐 자기 기분 나쁘면 상인이 아니라 장사치야? 딸랑딸랑 하면 비즈니스맨이냐고. 제품을 제한없이 최대한 많이 팔면 많이 팔수록 좋아하는 주식회사가 있다면 슬로건을 엄격히 지키고 타켓층이 비좁고 일정량 이상은 절대 팔리게 하지 않게 교묘히 제한하는 브랜드도 있지. 사랑? 사랑도 똑같아. 사람도 브랜드니까. 쟤가 나한테만 그러나? 나는 개나 소일까, 아닐까? 그런 생각, 할 수 있어. 조용조용한 분위기의 고상함을 원했다가 신선한 생기와 산뜻한 발랄함에 넘어갔는데 얘가 앞으로도 언제까지나 어디에서나 누구에게나 이러면 어쩌지, 그럴 수도 있어. 그런데 그때만 그럴 꺼야, 그때만. 남이야 그러거나 말거나, 변하거나 말거나, 오리발이 생활이든 말든, 때 되면 지조와 절도를 알 테지. 아니라면 말고. 누구처럼 그 언제까지라도 환상가로 남든가. 지 인생 지가 살지 내가 사나? 뭐 여자라고 다를 꺼 같아? 아니야~ 똑같아. 완전 똑같다고. 여자도 남자와 똑같다고! 오히려 더하면 더할 테지. 어? 더 자세히 관찰하고, 더 오래 지켜보고, 더 많이 알게 되면 바뀔지 모르지만 말이야. 남자만큼 여자가, 여자만큼 남자가 비슷할까 라는 것이 아니라 처음의 호감 그 마음이 말이야. 처음에야 언뜻 보면 상큼하고 상콤하며 달콤하겠지만 대개는 잠깐이야. 계속 놀아주다보면 피곤해져. 아장아장 걷는 아이도 귀엽지만, 그게 딱 5분이래잖아? 키우는 게 정말 힘들다는 뜻이지만 말이야. 결혼해도 별거 없다고 하잖아? 생활비 계산하고, 설겆이 하고, 식료품 사고, 청소하고 쓰레기 버리랴, 사회에 적당히 관심도 갖고 여기저기 행사에도 얼굴 비추고, 생활에 충실하랴 적당히 한눈 팔랴, 권태란 놈도 곁에 오지 못하게 슬쩍 거리를 둬야 하랴 삶이 다 그래, 사랑이 다 그런 거라고. 잘 알지 않나. 안 그런가?」
이런 순간 찾아오는 적막한 적요함. 과히 사람 기분을 정말 이상하게 만드는 뭔가가 있다. 자주 경험하기도 힘들고. 그게 뭔지도 모르고 사는 경우가 허다하고.
「아 나 이거 영감님 영감님, 이거 이거 순 돌팔이시네. 전 여기 오늘의 운세를 보러왔다구요. 네~!」 내 농담을 칭찬으로 여기시지 않을려나? 나 감동먹었어요, 를 이렇게 표시하는 사람 많지 않나?
「급하기는~ 누가 청춘 아니랄까봐. 쓰잘 데 없는 수다, 불필요한 꾸밈어와 속임수 같은 아리송한 말들, 입에 발린 칭찬 그 가운데 간간이 꼭 기억해야 할 농염하고 찬란한 모종의 주문과도 같은 도움 되는 말이 있을 테니 잘 찾아보게. 하나부터 열까지 밥 먹여주듯 다 알켜주면 재미 없지 않겠나. 물고기 잡는 방법을 알려줘야지 예금하고 적금을 붓듣이 도와주면 그건 옛날 식이야. 자네는 말하는 걸 보아하니 말로 돈을 벌진 않아. 그러나 몸짓으로 봐서 딱히 드러나는 습관은 없고, 눈빛은 보통이지만 몽롱하니 뭔가를 꿈꾸는 듯 해. 혹시 좋은 꿈을 꾼 후에 날 찾아온 것은 아닌가? 왜 찔리는 구석이 있어? 꼭 그렇다는 게 아니라 혹시라도 그랬다면 뭐 나야 좋은 일이고 반가운 손님이지만. 내가 봤을 때 당신은 무척 자유로운 일을 하는 것 같아. 어떤 형식에도 얽매이지 않아. 그러나 뭔가 부담감은 꽤 큰 거 같은데. 주색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거 같아. 허나 싫어할 리가 있나. 적당하면 그뿐. 그리고 음악 쪽은 아니야. 여러가지를 겪어봐도 정말 그만한 게 없다는데 드물다는데 빠지면 너무 많은 걸 걸어야 해 그 분야는. 성실해 보이지만 뭔가 굴곡이 있어. 했더래도 중간에 그만두었을 꺼야. 그림도 아니야. 시야가 불투명해. 집중이 안 되고 무엇보다 재능이 없어. 어때? 내 밑으로 들어오는 건? 쫄기는, 농담이라구. 왜? 진담인줄 알았나? 내가 봤을 때 자넨 일기는 쓰지 않는 거 같은데, 맞지? 아직 감동하기엔 일러. 아무 어른이나 붙잡고 물어봐. 거리에서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일기 쓴다는 사람은 만나기 힘들테니까. 대신 그 단어를 좋아하느냐 아니냐, 그 말을 읽거나 들으면 뭔가 핑 도는 기색이 있냐 없냐, 그게 중요한 법이지. 아저씨는 말이야 고급스러운 농담과 위엄 있고 품위를 갖춘 3인칭을 좋아하는 것 같은데, 그러나 즐거움과 기쁨은 1인칭에서 찾아. 물론 바뀌기도 해. 그 둘을 이제...보니 지금은 합칠려고 하는 것도 같아. 누가 봐도 분간하기 어렵게 말야. 내 말 맞지? 틀렸나? 아닌데, 거의 그게 맞는...데!
어떤가? 이런 자유로운 형식으로 점보는 거, 싫은가? 싫기는. 이 바닥도 어느 정도 겪고 겪으면 손님도 독자도 관객도 절반은 도사가 되는 법이라네. 어느 분야나 다 그래. 점을 수없이 보고 또 본 광적인 애호가에게 물어보게. 끝없이 신비로운 이야기를 들려주고 한없이 달콤한 말을 속삭여주며 듣고 또 들어도 도무지 질리지 않는 그 신령스러운 정기가 충만한 강의를 이렇게 길게 한번에 쉴새없이 이어서 친절하게 코앞에서 설명해주는 도사가 과연 몇 명이나 있는지 말이야, 그러면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말이야. 거기 한번 빠지면, 절대 헤어나오지 못한다고 한두 명은 말할 꺼라고 내 장담하네. 그럼. 당연하지. 대충 시간 떼우고, 묻고 답하고, 책 보고, 도구를 이용하고, 눈치 보고 낌새를 살피고 반응을 엿보고, 부적을 써주고, 복채를 올리고, 시간 낭비하지 않고 할 말만 하고, 믿거나 말거나 요점에서 빗나가는 얘기는 반가워하지 않고, 그런 거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이렇게 말로써 가만히 있는 사람을 나체로 만드는 듯한 그 황홀감에 탄복하는 부류도 있게 마련이지. 글도 마찬가지야. 어떤가, 자넨 후자 같은데! 아니라곤 하지만. 그쪽이 월등히 많은 법이니까. 이런 건 눈 감고 소액을 걸어도 된단 말이네. 자넨 이런 순간에 변화구 던지는 타입은 아닌 듯 보이니까, 굳이 연기할 필요 없어...(침묵)...
자네 혹시 일이 잘 안 풀려서 날 찾아왔나? 글이 잘 안 써져서? 난 학자도 아니고 교수도 아닌데? 난 생기 넘치는 동기를 부여줄 수 없어. 그렇다면 왜? 무언가 사는 낙이 없어서? 뭘 해도 재미없고 그냥 심심하기만 해서? 언제나 따분하니까? 그렇다면 연애를 하고 미술관과 동물원에 가면 되지 않나. 놀이공원도 있을 테고. 나라고 뭐 뾰족한 수가 있겠나? 앙? 저 하늘을 바라보게.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네. 바람이라고 그가 시인이라도 된단 말인가? 거칠게 불어서 자연 재해나 일으키지 않으면 다행이지. 지가 가수야 뭐야? 그런데 왜 지금 내가 꼭 머리에 꽃이라도 꼿은 듯한 기분이 드는 거지? 잘 모르겠는데 누가 날 조종하나? 혹시 옆집 영감탱이가 주술을 잘못 걸어서 살이 내게로 뻗힌 거 아니야? 내 이 놈의 영감탱이를 그냥 확 그냥 마...... 어쨌든 혹시 글을 쓸 생각이라면, 쓰다가 막혔거든 머리 속에 떠오른 바보 같은 짓을 그냥 백지에 옮겨보시게. 시점을 먼저 정하고 동사에 얽매였다면 이젠 목적어를 따져야 돼. 목적격과 보어, 부호 그리고 언제 감탄사가 필요한가 그걸 따라잡아야지. 왜 그 일을 하는가, 그걸 생각하라고!...(침묵! 그는, 얘가 뭔가를 더 바라나? 그러나? 하면서 아 나도 지치는데... 마치 그런 무언의 표정을 짓는다)...
젊은 친구 보기에는 어떤가? 꽤 궁금하구먼. 대충 대화를 나눠봤으면 뭐가 보이지 않나? 그래 어떤 거 같아? 나는, 난 그 경지를 이미 옛날에 넘어선 거 같지 않나? 어떤 경지냐고? 그거 말이야 그거! <내가 맞히지 못하면 다른 사람도 맞히지 못한다> 경지. 하하하, 익살맞게 또 이걸 고도의 기법이라고 둘러댈 깜냥은 못되니 거 너무 걱정마시게. 아, 그 다음은 어떤 단계였드라, 하도 오래되서 잘 생각나진 않지만 다시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서 음, 아하! 그 다음에 아마 그걸 꺼야. 무슨 경지? <들어맞거나 말거나>. 하하하, 뭐 그거야 초보자들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 거지. 그걸 뛰어넘어야 비로소 <떡~하고 들어맞을지도 모른다>의 찬사와 입소문에 둘러쌓이게 돼. 그리고 그 다음은, 그 다음은 <어쩜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니 조심하라> 이와 같은 논리를 구사하는 단계에 들어선단 말이야. 그럼 거기서 끝이냐? 아니지. 그 다음은 또 있어. 그게 무엇이냐 하면, <내 진단이 들어맞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것이야. 이건 제법 고급 수법이라고. 물론 각각 순서는 바뀔 수도 있고 어려운 걸 먼저 배우고 쉬운 걸 나중 깨우치기도 해. 그러다 모든 기술을 습득한 후에 비로소 신선계라는 입신의 경지에 오르는 것이지. 그것은 바로 <머머일 것이다>라고 예언하는, 말이 필요없는, 차원이 다른 예언가가 되는 거야. 즉 점쟁이에서 예언가로 직함이 변화되는 것이야. 이걸 알아볼 수 있는 사람도 드물어~ 그럼......(그는 일순간 잠시 추억에 젖는다. 회상이 그를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아주 잠깐만)...... 그 할망구가 내 은인에다가 스승이기는 한데, 한때 난 무척 그녀를 원망했어 그땐 나도 젊었으니까 너무 어렸으니까 뭘 몰랐지 그럼...... 나그네, 혹시 내가 너무 처량해보이나? 허허허, 괜찮아 난 괜찮다고. 정원에서 보면 다채로운 관상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듯 그렇게 나는 자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주 또렷하게 모두 읽고 있는데 음, 생각이 참 많구만. 싹수가 푸르러. 그런데 어째 벌써 그렇게 막 새치가 나고 그러네 고민이 많나 아니면 이미 노화가 시작됐나 우리 이제 같이 늙어가는 건가 왜 말을 그냥 팍 놓고 싶어? 허허허, 농담인데 별로 농담같지 않구먼 그래. 아, 한가지 더! 나는 항상 일부러 상대방의 생각을 읽지 않을려고 노력하고 또 노력하지만 지금 언뜻 스쳐지나가는 뭐랄까 간과할 수 없는 젊은이의 몽환적인 생각을 하나 읽을 수 있군 그래. 재미있다고 너무너무 재미있다고 허허허 (그는 한 2~3초 정도 나를 예리하게 똑바로 쳐다보면서 말했다) 아직 그 생각을 하고 있구먼. 이 양반이 아까부터 점을 보는 둥 마는 둥 하고 있는데, 뭐 지가 지 입으로 지는 예언가라고? 이미 내가 맞추지 못하면 그 누구도 못 맞힌다고? 뭐야, 애들 장난이야? 이거 너무 유치한 거 아니야? 뭐 맞을 수도 있고 맞지 않을 수도 있다고? 식상하시기는~ 내가 이런 돌팔이 달변가 구식 약장수의 농간에 놀아나다니 나도 참 많이 내려갔구나...... 괜찮아 괜찮아, 웃자고 한 얘기라네. 설마 정말 그랬을라고? 또 속으로 잠깐 그러면 또 어때? 허허허허허, 허허허허허 (이건 가짜 웃음이 아니라 울음 대신 짓는 미소가 아닐까 그런 생각이 얼핏 들었다. 그리고 당장 이 영감님이 꽤 귀엽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어린이가 된듯 했다. 그런데 정말로 진짜 놀라운 점은 이분의 목소리까지 어린이의 음성으로 들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상하게 정확한 시각에 변한게 아니라 그건 아 음 오오 어떻게 된 것인지 모르겠다) 아 이거 속세에 사는 친구에게 너무 많은 걸 가르쳐주는 거 같은데, 그냥 재미로 듣고 잊어버리시게. 그게 좋을 꺼야.」
잠시 대화가 잠잠해진 사이 바람의 언어와 상대방의 마음을 간파하고자 하는 동물의 감각적인 뇌파가 그 자리를 대신 하는 듯 조용한 시간이 짧은 순간이지만 영글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그것은 오늘의 운세 그 영험한 후광을 배가시키는 효과를 차일피일 미룰 수는 없었다. 그 에메랄드빛 유종의 미를 만끽해야 하는 작별의 시간을 불러오게 됐다. 헤어질 시간이 임박한 것이다.
「영감님은 왜 이 일을 하시나요?」
「어라~! 제법 빠른데! 보통 내기가 아닌데? 허허허허허. 허허허허허.」
(동시에) 하하하, 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 물론 그것은 가짜 웃음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상상이었다. '영감님은 왜 이 일을 하시나요?'부터 '물론 그것은 가짜 웃음이었다'까지. 그리고 실제 내가 물었던 말은 이랬다.
「선생님, 그런데 제가 어제 집에서 TV를 봤단 사실을 어떻게 아셨나요? 그것도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희곡을 본 것은요?」
3
하루가 지났다. 나는 그 이상한 점쟁이 노인을 잊기 위해 오늘 하루를 또 어떻게 보내야 할까 라는 고민이랄까, 자기 자신을 다독이는 응석과도 비슷한 어떤 방심에 빠져버렸다. 뭔가 일이 잘 풀리지 않는 듯한 비탄이라고나 할까, 싫증난 사랑이 된 것만 같은 이상한 낙담 때문에 이 위기를 모면할 방책을 찾게 되었다. 이모저모 따졌을 때 지금 최선의 대책은 최근 발견한 미술 마을에 놀러가는 것 뿐 다른 다복한 해결책은 전혀 없는 듯 했다.
나는 일상이 다시 권태에 잠식당하기 전에 서둘러 그곳으로 떠났다.
아, 그날 나는 이상한 꿈을 꾸었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사실적인 꿈이었다. 나머지 내용은 개꿈이니까 복기해볼 필요가 없는데 단 하나 정말 의아한 일이 하나 있었다. 꿈에서 벌 한 마리가 날 따라다니다가 어떡하다 내 왼편 팔꿈치와 팔꿈치 안쪽, 그것 둘의 바깥쪽, 어떻게 더 쉽게 설명하기가 어렵지만 어쨌든 그 부근에 벌집이 생겼다. 그것도 바깥쪽이 아니라 안쪽으로. 아니다. 바깥 쪽이다. 팔을 굽히고 다른 손으로 거길 살짝 짚으면 엉덩이 모양이 보이는 바로 그곳. 그것도 살 안에 말이다. 당연히 나는 꿈에서 이런 뭐야 이거, 하면서 막 그걸 만져봤고 어떻게 해야 하나 라면서 잔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잠에서 깼다. 잠에서 깰 때 나는 오른손으로 왼쪽 팔꿈치 근처를 만지고 있었다. 한참을 만졌다. 애무하는 것도 아니면서 말이다. 진짜 살 안에 벌집이 있는 것처럼. 뭐 아무 일도 아니고만, 하면서 나는 화장실에 갔다 왔다. 다시 방에 와서 잠을 잤다. 그땐 꼭두새벽이었으니까 다시 꿈 2탄을 기대해야 했다. 그리고 그렇게 두 번째 잠을 자다가 잠에서 두 번째 꿈을 또 꿨다. 그리고 역시나 새벽에 잠깐 깼다. 요즘 정신이 산만하기 때문인지 꼭 새벽에 한두 번 잠에서 깬다. 이번에는 오른쪽 발바닥 안에 개미가 집을 지어 살았다. 완전 생생한 꿈이었다. 당연히 난 또 꿈에서 깰 때 오른쪽 발바닥을 벅벅 엄청 긁어대면서 잠에서 깨어났다. 난 꿈풀이고 뭐고 어딘가로 떠나야겠다는 생각 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날 나는 미술 마을에 도착했다.
아, 깜빡했다. 나는 내가 벽에 시를 썼던 미술의 마을에 당도하기 전에 한적한 어느 예술 극장에 들렸다. 문득 영화 한 편이 보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극장 안에 관객은 별로 없었다. 선전은 요란했고 이상한 복장을 입은 아가씨가 막 사진도 같이 찍어주고 그런 행사 분위기였는데 이 영화를 위한 것은 아닌 듯 했다. 뭔지는 모르겠고 남의 일이었다.
나는 영화를 보고 나왔다. 영화는 재미있었다. 물론 대부분의 영화가 그렇듯이 처음에는 '뭐지? 뭐지?' 라고 하다가, 중간에는 이렇게 될까 저렇게 될까, 끝에는 그럼 그렇지 그렇지만 어쩔 수 없이 현실로 돌아가는 수 밖에. 끝나고 나서야 왠지 서운하고 아쉬움이 남으면서 뭔가 허전하고 여운이 가득한 가운데 어떤 유치한 사랑 놀음에 빠진 친구를 본 것만 같은 시시함을 동반하여 약간 찡한 감동이 없잖아 있는 듯한 분위기와 더불어 무언가 뭉클함? 짠함? 어딘가 코 끝이 아니면 발가락이? 뭐 그 정도면 괜찮다는 뜻이다. 속아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긴 장마가 끝나고 날씨가 갤까 말까 하지만 더 이상 비는 오지 않겠구나 그러나 환한 햇빛도 비추지는 않을 것 같은 그런 날씨에 컨버터블을 타고 놀러갈까 말까, 하는 그런 감정과도 비슷한 심리가 느껴졌다. 그럼 괜찮은 거다.
영화의 내용은 이랬다. 어느 마을에서 일어난 의문의 실종 사건 후 단 며칠 만에 어른이 되어 나타난 주인공1과 유일하게 그를 믿어준 단 한 소녀 주인공2, 세상은 몰랐던 그 둘만의 특별한 이야기였다. 그것은 어떤 마술사가 주인공1에게 요술을 부려서 일시적으로 몸의 시간을 파파팍 당겼다가 나중 그 속도가 늦춰지는가, 마음과 육체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가, 에 관한 하나의 실험인 듯한 뉘앙스를 풍기는 눈속임처럼 보였다가 막판에 주인공1의 특이한 조로증 증세에 관한 자료를 살짝 엿보여주면서 영화는 끝났다. 결국 열린 결말이었다. 책임을 우리에게 전가시켰다. 무책임한 감독이었을까? 모르겠다. 그 인간의 사생활도 그렇게 무책임할까? 그것 역시 모르겠다. 그러나 영화는 대충 괜찮았고 재미있었다.
그렇게 나는 그 미술의 마을에 도착했다. 동네는 특별할 것 같았지만 썩 신기한 비밀이 숨겨져 있다거나 뭔가 탐색하고 싶고 은닉된 사연이 있는 어떤 증후를 별안간 찾고 싶게 만드는 그런 신비한 기운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게 초딩 같은 동심과 무작정 모험에 빠져들고 싶어하는 중딩의 호기심은 충족되지 못한 채 난 집에 돌아갈려고 했다. 그러나 그건 안이한 판단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새로운 점집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왠지 모르게 나는 미술에 끌리지 않았다. 왠지 나는 앞으로 한동안 그것에 끌릴 것을 예감했다. 미술이 아니라 사주에. 어쩐지 난 거기 꼿힌 것 같았다. 부정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건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듯 했다. 어쩌다가 나도 모르게 그것에 중독되어 버린 것 같았다. 운세, 바로 그것에! 내내 허탕만 치고 돌팔이 점집만 전전하더라도 나중 꼭 한 번 진짜 소름이 돋는 기절초풍할 만한 주술사를 만나고야 말겠다는 이상한 오기랄까, 푼수 같은 바보 같은 사랑에 빠져 앞뒤 분간 못하는, 하나에 빠지면 그것만 파고 또 파는 말괄량이가 된 듯한 착각에 빠지고야 말았다. 그건 거의 환각이었다. 점잔뺄 일도 아니고, 마음을 제어할 수도 없었으며, 심미안을 만나고 싶은 욕망은 걷잡을 수 없이 부풀어올라 도저히 말릴래야 말릴 수가 없었다. 나는 어쩐지 손님이 별로 없을 듯 하지만 희박한 확률로 코끼리 뒷걸음질 치다 쥐를 잡을 것만 같은 그 점집에 들어갔다. 그곳의 이름은 밝힐 수 없다. 왠지 양치기 소년의 억울함을 공감한다고나 할까, 그런 측은하지만 딱히 밝힐 수 없는 부득이한 나의 방침 때문이다. 물론 그런 규칙은 즉흥적으로 발생한 것이다. 그러니까 그냥 점집2라고 하면 될 것 같다. 그분과 나눈 대화가 길어질 것 같으니까 우선 단락을 띄어야겠다. 다음 이 시간에.
4
자, 그분과 나눈 대화를 공개할 시간이 돌아왔다. 속고 속이고, 팔고 사고, 쓰고 읽고, 연기하며 구경하는 세상이지만 그걸 모두 혼자서 하는 것 그것은 바로 소설로도 이루어질 수 있다. 근사한 식당에 예약하고 어떻게 진행될지 상상하고, 둘인 척 혼자 대결을 하고, 혼자 말하고 혼자 듣는 것처럼.
「자네는 여기 무슨 일로 왔나?」
그분의 생김새와 그곳의 정취에 대한 묘사는 과감히 생략한다. 절대 그걸 잘 못해서, 어려워서 건너뛰는 건 아니라는 것을 밝히는 바이다.
「점집에 점 보러 오지 뭐하러 왔겠습니까?」
나는 처음부터 좀 세게 나가기로 했다. 초반에 전문가 흉내를 낸 꼴이 됐다. 점집1에서 어째 좀 휘둘린 느낌에 아직도 조금 아찔했기 때문이다. 그게 싫다는 게 아니라. 그분이 하도 말씀을 길게 하시는 바람에 까딱 잘못했으면 앉아서 코 골고 잘 뻔 했다. 잘 참은 거지. 그러나 그게 절대 싫다는 게 아니다.
「자네 혹시 최근 거짓 술수에 엮여들지 않았나? 내가 보기에는 그런 화법은 젊은이에게 어울리지 않아. 꼭 일부러 가장하는 거 다 티난단 말이야. 왜, 무슨 일이 잘 안 풀리나? 여자친구가 바람 났나? 아니면 자네가 불륜이라도 저지르고 싶은가, 참고 싶은가? 확 그냥 제2의 인생을 살고 싶어? 아니면 뭐 매사 나른하고 심심하고 따분하고 지루하고 뭘 해도 재미가 없어? 정말 그래? 설마 안 그럴 리가? 그렇다면 뭐뭐 하는 법, 그런 책을 사러 서점에 가고 동기부여 강연회에도 가 보고, 새로운 낭만을 찾아 꿈을 찾아 희망의 열매를 따먹으러 놀이공원으로 강변으로 공원으로 찾아갈 것이지 여기는 뭣하러 왔어? 혹시 이미 그런 고민과 시도는 다 거쳤는데 그래도 효과가 없다? 그렇다? 뭐 그렇다면 그거야 자네가 재미없지 내가 재미없는 건 아니니까 딱히 중요한 일은 아니라고 할 수 있지. 그게 어디 자네 팔짜지 내 팔짜인가? 젊은이 인생 그리고 내 인생, 서로 가는 길이 달라. 달라도 너무 달라. 추구하는 장르도 다르고 선호하는 이성의 취향도 다르겠지. 간혹 겹치기는 할 테지만. 간혹? 글쎄!
어쨌든 다 불필요한 요설이고 사람 일은 본론이 중요해. 시작만 요란하고 과장이 심하고 엄살도 심하고 허풍까지 심한 사람, 그런 사람을 조심해야 하는 법이야. 아, 난 아니야. 난 아니라고. 절대! 결코!」
잠시 고요한 휴지기에 접어든다. 어제도 그랬지만 오늘따라 내가 만난 도사는 만담에 매우 능숙한 분으로써 남의 운세를 봐줄 것이 아니라 극장식 카바레에서 스탠드업 코메디나 하면서 타인에게 기쁨과 즐거움과 쾌락과 1%의 퇴폐미까지 안겨주는 직업에 종사하는 로맨티스트가 더 어울려 보였다. 어차피 남의 사상을 자신의 이론인양 포장하여 설파한다는 점은 똑같지만 말이다.
「이 친구야, 뭘 그렇게 생각해?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봐. 뭘 망설여? 운세 처음 봐? 어? 왜, 이렇게 추궁받는 거 좋아하는가? 혹시 자네도...... 아니야 아니야.」
「저는 저의 가려운 곳을 남이 알아서 긁어주기를 바라는 그런 깍쟁이 같은 친구는 아닙니다. 자기 가려운 곳을 남이 긁어주는 사례를 하나 들자면 뭘까요? 뭐긴 뭔가요, 주인과 개 아닙니까? 주인이 막 긁어주면 좋아라 하면서 가만히 있고, 그러다 긁어주기를 멈추면 다시 하던 거 계속하라고 낑낑거리는 결코 밉지 않은 모습, 상상이 되시죠? 저는 그렇지 않다는 말입니다. 그렇지만 잠깐 저도 생각을 해봤습니다. 무엇을 생각해 봤냐, 바로 이것을요. 그렇게 도발하는 관능미, 탁월한 안목, 고결한 태도, 풍부한 감성, 우아한 위엄, 고상한 지성, 숙명 같은 순간의 연속, 때마침 찾아오는 행운, 잔잔하지만 셈이 빠르고 조용한 독심술, 손님의 신비감, 선망을 불러일으키는 손짓과 용건을 끌어당기는 몸짓, 악상의 연속, 회상을 불러일으키는 음조의 떨림,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뛰는 자기도 모르게 시작된 그런 몰래한 사랑, 마술적인 대화, 너무 완벽하여 어쩜 해로울 수 있는 감식안, 그 어떤 유혹에도 꿈쩍도 않는 확고한 심지, 영매의 내공을 염탐하는 기벽, 사람의 마음을 끄는 환상의 술법, 그런 건 모두 정확히 저의 반대편에 부여해야 할 수식어들이죠. 제가 어떻게 어설프게, 네, 버릇없이 궁금한 걸 궁금하다고 섣불리 발설할 수 있겠습니까? 네? 그게 뭐 비밀이라도 된다고 말입니다. 네? 아니 그렇습니까?」
주술사는 뜨끔했을 것이다. 오늘 손님을 잘못 받았는데? 대체 이게 뭔 일이다냐? 얘 뭐야? 얘 뭐냐고. 뭐 하는 사람이야? 놈팽이야? 시방 나랑 자리를 바꾸자는 말이여? 바로 그와 같이 생각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일단 설마, 하며 경계심이 발동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자네 혹시 귀에 뭐 꼽고 있나? 뭐, 연극배우야? 지금 긴 대사 연습하는 거야? 앙? 아님, 뭐 랩이야? 지금 나 가르쳐? 어? 뭐, 계몽 그런 거? 여기는 학교 교실이고 난 학생? 왜 겁을 주고 그래? 왜, 내가 마음에 안 들어? 이미 간파...했나? 내 내공을?」
「간파하긴 뭘 간파해요? 선생님이 양파에요? 별로 깔 거도 없구만. 속이 다 보여요. 속살은 아직 뽀야시네요. 제 소견으로 보자면 그 분야에서 아직 쟁쟁한 현역이시구만요. 너무 잘나가셔서 한때 그분들의 앙숙이셨던 거 같은데요. 어지간한 여자들이 선생님 만나면 그냥 가슴이 요동치고 어쩔 줄 몰라 했을 것 같아요. 번번이 여자들 가슴에 불을 지르고 다니셨구만요. 너무 과도하게 싱그러운 꽃들 사이를 날아다니시다가 조금 지력을 일찍 소모하신 듯 하군요. 그 분야든 이 분야든 넉넉히 세 손가락에 꼽히실 위인을 제가 뭐라고 놀리겠어요? 어디 감히 저 같은 천한 것이......! 오해하셨구만유~ 그럼유~ 그럴 리가 있겠시유~ 선생님, 너무 겸손하시다. 소문난 무당이시라던데, 실존 인물로 진짜 세 손가락에 꼽히신다고 해서 찾아왔구먼유~. 어떻게 제가 감히... 에이~ 아니에유. 에이~ 어떻게? 에이~ 잘못 보셔도 한참 잘못 보셨시유~!」
「젊은이, 응석이 지나치구만! 본의 아니게 그분이 왔다가 가버리는 수가 있어! 경거망동하면 안 돼! 그럼!」
다시 침묵의 시간이 돌아왔다. 마치 광고가 나가는 시간처럼.
쓰잘데기 없는 대화 내용을 모두 옮길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 시간 가운데 주목할 만한 부분만 간추리고 넘어가자면 이렇다. 아! 당시 나는 그런 의심을 품었다. 그 양반이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생활 습관과 소비 유형은 물론 어디서 살았고, 어디 출신인지를 하나하나 맞추어갔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노인 혼자 점집을 운영하는 게 아니라 얘네들 일당이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심각한 추론을 하기에 이르렀다. 몇몇 논거에 근거하여 최소 3명에서 4명은 되는 듯 했다. 최소로 따졌을 때 말이다. 바람잡이, 천재 해커, 행동요원 그리고 특파원까지. 그 양반이 아마도 찔리니까 내게 역으로 먼저 선수쳤을 거라고 내다봤다. 나에 대해 조사하는 천재 해커의 음성을 몰래 이어폰으로 듣고 있었을 것이다. 아닐 수도 있다. 그래도 설명으로 그 느낌을 전달하는 것은 뭔가 부족하니까 대화를 살짝만 음미하고 가겠다.
「젊은이, 집에 수영장 있지?」
「네. 어떻게 아셨어요?」
「어떻게 알긴 뭘 어떻게 알아? 우리의 영특한...... 아니 그분이 알려주셨지. 그럼.」
「......」
「집 마당에 잔디가 자라고 있지 않나?」
「네네. 오오! 와~ 이번에도 그분인가요?」
「허허허. 뭐 별 거 아니야. 그 정도야 뭐. 그까짓 것 아무 것도 아니지.」
「혹시 우리집에 잔디가 깔려있지 않았다면 그럴려고 하셨죠? 오오, 이런! 큰일이야, 보통 일이 아니라구. 자넨 잔디와 운이 맞아. 딱 들어맞아. 그러니까 잔디를 꼭 심어야 한다고!」
「뭔 소리야? 아직 신뢰감이 충분히 쌓이지 않았나? 무언가 더 기대하는 게 있어? 내 그럴 줄 알았어...(침묵)... 자네 혼자 뭐 하는 거 좋아하지 않나? 아니야 아니야. 약해. 뭐가 있지? 내가 봤을 때 젊은이는 아무리 봐도 작가 같은데, 아닌가? 아닐 리가 없는데. 딱 답이 나오는데. 왜? 요즘 대화가 잘 안 써지다가 딱 대화만 잘 써지나? 안경은, 고급품이고. 가방도... 어, 특별판? 한정품일 꺼야. 옷감도...... 젊은이 먹고 살만 하구먼. 여보게, 혹시 여자 좋아하는가? 좋아하는 거 같은데?」
「그럼 영감님은 싫어하세요?」
「아 이거 왜 이래? 이 일도 다 쇼맨쉽이 필요한 거라고. 아무래도 은근한 분위기를 보아하니 누구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 게 틀림없구만? 그렇지? 아닌가? 그럴 리가 없어. 나는 못 속여. 다른 사람은 다 속여도 나는 못 속인다구. 어림없지. 다 넘어가도 나한테는 절대 안 통해. 그런데 그분은 가만있자, 종류가 다른데 오, 헷갈려. 2명 같은데. 오, 신기한데? 아아, 어떻게 이런 일이... 나와 비슷한 별자리는 나도 생전 처음인데, 오오 이... 이... 이럴 수가!」
대화의 방식은 이와 같았다. 그리고 기억할 만한 특이사항은 하나가 더 있었다. 그분은 내게 예언을 하셨다. 얼핏 들으면 조언처럼 들리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예언임이 분명했다. 그는 먼저 내게 일주일 후 다시 오라고 했다. 그러다 일주일이 아니라 내일 다시 오라고 말을 바꿨다. 뭔가 좋은 일을 알려주겠다는 것이었다. 무슨 좋은 일일까? 나 보고 자기 이름이 걸린 점집의 지사를 내라고? 그것을 브랜드로 키울 테니 마케팅을 담당하라고? 얼굴 마담? 그건 여자 몫인데? 그러나 그는 전문가였다. 내일 오면 그 비밀을 공개하겠다고 했으니, 그래서 나는 내일을 고대하게 됐다. 그리고 하루가 지났다.
5
나는 다시 점집2에 찾아갔다. 당연히 그곳에 가기 전에 이런 헛생각을 안 해 본 것은 아니다. 무슨 생각일까? 답 나오지 않나. 하루는 점집1에 갔고, 다음날 점집2에 갔고, 세 번째 날 다시 점집2에 갈려고 하니 그 뭐지 수학 용어, 수열? 등차던가 피보나치던가... 미적분 배울 때부터 수학 시간에 뒤에서 고전을 읽었더니 이 모양일세, 꼴 좋다! 아무튼 나는 점집2에 갔고, 그곳은 하루 동안에 없어지지도 변하지도 않았고, 주인 양반이 자리를 비우고 웬 젊은 아가씨가 그 자리를 대신 지키고 있지도 않았다. 하긴 그는 내게 거리두기, 밀기, 모른 채 하기 등의 전략을 구사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우리는 연애하는 사이가 아니었으니까. 우리는 다시 근엄한 표정으로 엄숙한 분위기에서 좌담을 나누기 위해 마주보고 앉았다. 아, 그는 나로부터 어제 복채를 받지 않았다. 왜 그런지, 에 대해 뭐라 뭐라 설명했는데 그건 잘 생각나지 않는다. 중요한 내용은 아닌 듯 해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어르신, 오늘 날씨가 심상치 않습니다. 때 아닌 북동풍이 불고, 하늘의 구름도 이상하고, 오늘 같은 날은 기분이 무언가 세한 게 왠지 모르게 꼭 오늘의 운세를 점치면 안될 것 같은 일년에 딱 하루 정도 된다는 바로 그날 같습니다. 아니 그렇습니까?」
「뭔 풍이 불어? 젊은이, 지금 날 떠보나? 나를 공부시키지도 않고 바로 시험장에 집어 넣은 겐가? 왜 내가 그리 신통치 않아보이는가? 내 이래 봬도 못 맞추는 게 없는 도사라고. 그냥 자칭 그렇게 이름을 내 마음대로 갖다붙인 게 아니라 다 어디서 사사 받고 오랜 수련을 거친 결과라니까. 이 바닥에선 그래도 꽤 유명해. 내가 자부한다면 그건 다 이유가 있어서 하는 말이라고. 내 입으로 꼭 내가 직접 말해야 한다는 게 썩 꺼림직하네만, 지금 이 상황이 그럴 수 밖에 없지 않은가? 그런데 말이야, 자네가 어제 뭘 먹었는지, 잠버릇은 어떤지, 어디 갔는지, 어떤 음흉한 생각을 했는지 나는 다 알고 있단 말이야. 난 다 알고 있다고. 모두 다! 푸하하하하하, 푸하하하하하!...(침묵)... 이거 이거 순 색마구만! (그는 몹시 험상궂은 표정으로 돌변했다. 그러나 안면을 싹 바꾸어 활짝 웃기 시작한다. 그에게 숨겨진 딸이 있을까? 모를 일이다) 농담이야, 농담이라구. 왜? 나는 농담도 못하나?」
「그건 아닌데... 별로 재미가 없어서요.」 난 과도하게 너무 솔직한 성정을 탓해도 탓해도 모자랐다.
나는 내가 먼저 물어보기 싫었다. 그가 알려주겠다는 어떤 좋은 일은 대체 무엇인지를. 그러나 슬슬 그가 그런 말을 했었나 기억이나 제대로 하고 있을지 사뭇 걱정이 되고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건 그냥 묻지 말고 기다리지도 말고 설레지도 말며 잊기로 했다.
그 후 그와 나 사이에 오간 대화를 검토해봤을 때 특별히 상기할 만한 중요한 대목은 없었다. 전혀. 지극히 일상적인 안부를 물었고 지극히 의례적인 범위 내에서 지극히 예상할 수 있는 질문과 답을 했다. 그러므로 나는 그때 그와 내가 혹시 한 명은 수감된 자고, 나머지 한 명은 그를 면회하러 온 사람이 아닐까, 라는 공상에 빠져들었다. 일은 잘 되나, 사는 건 어떠나, 꿈은 많이 꾸는가, 만나는 사람은 있는가, 어디에서 살았는가 등등. 그래서 나는 첫째, 이 양반이 어제 내게 했던 그 의미심장한 말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라고 예측했고, 둘째 내가 여기 괜히 다시 찾아왔다고 생각했다. 나도 참 싱겁네 할일 더럽게 없네, 그러면서 나는 점집에서 나올려고 했다. 인사를 마치고 나는 뒤돌아섰다. 설혹 대하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돌아서면 안 되고 굽히고 뒷걸음질로 나와야 했을까? 웬걸! 그리고 그때 내가 한두 걸음 뗐을래나, 그러나 그는 내 뒤통수에 대고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인사 대신에.
「젊은이, 내가 어제 좋은 일이 생길 거라면서 오늘 다시 오라고 했지? 차분히 기다렸드니 끝내 먼저 물어보지 않는군 그래. 내 예언은 어쩜 일기예보랑 비슷해. 그러나 우산은 챙기는 게 좋겠지? 날이 궂으면 미리 허리가 쑤신다거나 손가락이 결릴 수도 있어. 내가 봤을 때 자넨 아마 척키 닮은 사람을 한 명 알고 있을 것 같은데. 자넨 가진 거도 많고 이 복 저 복 많아. 많이 풍족하진 않아도 행운아야. 그런데 자넨 왜 그를 부러워하나? 어? 이해가 안 돼. 혹시 그는 자네의 친구였고, 설마 미대 조각과를 같이 다니지 않았나? 그리고 학과 여학생 절반이 그의 마수에 넘어간 거 같은데, 어, 여기 그렇게 나오는데. 진짜 딱 절반인데, 얘는 그게 전문이라고. (난 그때 하마터면 뒤를 돌아볼 뻔 했다. 그리고 그걸 어떻게 알았냐고 따질 뻔 했다) 그 척킨지 뭔지 그 녀석은 뭔 어설픈 작업을 많이 했네 그려. 산을 오르다 말고, 별을 쳐다보다 그 별을 어떤 남자가 따다가 남의 여자친구에게 주고, 얘도 한때 채팅을 많이 했는데, 그렇지만 얘 전공은 딱 무책임하게 인맥을 파고들어서 이성친구에게 접근하는 것이구만. 하지만 상대 친구들도 마다하지는 않았구만. 선수야 선수. 누구, 누구, 누구, 누구 다 그에게 넘어갔어. 어설프게! 순 저질이구만. 얘는 진짜 마수를 쓰는 친군데! 에잇! 괜히 쓸데없는 거만 보여. 점집 문을 한동안 닫아야 하나?...(그는 한동안 침묵한다. 점집 문을 닫을 게 아니라 내가 떠나면 될 것 같았지만 도대체 그가 알려준다는 좋은 일이 뭔가 그게 너무 궁금했기 때문에 나는 얼음땡이 되어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게다가 그는 뭔가 수정구 같은 걸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일부러 내가 뒤돌아서서 나갈려고 할때 내 마음을 붙잡아두고 놓아주지 않는 듯 했다)... 내 말했지? 좋은 일을 말해준다고. 오늘 있잖아, 서쪽에서 누구를 만날 꺼야. 귀─인! 시내로 가라고. 시내로. 내 말을 기억해. 누군가 접선을 시도할 꺼야. 은밀하게! 새로운 사람. 오늘은 길일이야. 그럼 예술 잘 하고, 잘 가시게. 그런데... 그런데... 꼭 오늘이 아니어도 괜찮다고 나오는데, 어쨌든 기억하라고. 반드시 서로 만나게 되어 있으니 말이야. 언제 인연이 되면 또 만나게 되겠지. 나중 다시 만나면 반가운 척 궁금한 척 안부라도 물어줘. 거 왜 있지 않나, 인생이 그대에게 친절을 베풀었기를, 부디! 뭐 그런 말 말이야.」
그는 내 뒤통수에 대고 금방 끝날 것처럼 말하다가 한참을 끌었고, 대미는 예언으로 마무리했다. 난 돌아설까 말까 망설였고, 끝내 적절한 시기를 놓쳤으며, 무언가 매정한 끝맛을 남긴 것 같아서 조금은 씁쓸했다. 즉 나는 끝까지 뒤돌아보지 않은 것이다. 뭔가 멋있어 보일려면 고개만 살짝, 많이도 말고 살짝만 각도만 슬쩍 틀어줘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직감했다. 뭔가 있을 것 같은데 라고. 슬슬 기대감이 고조되었다. 뭔지도 모르는 예언의 실현을 동경했다. 그리고 마지막은 절묘했다. 그러나 헛소리가 많아서 그분은 썩 믿음직스럽지 않았고, 그건 예언보다는 소망에 가까웠고, 내게는 거의 소원으로 들렸다. 그러나 난 뭔가 그가 그냥 허당은 아니라는, 어쩌면 그의 말대로 이루어질지도 모른다는 기이한 보라빛 예감과도 같은 일말의 어떤 기다리는 즐거움이 솟구치는 걸 감지했다. 그러나 기본 맥락은 이랬다. 예언은 무슨, 영감탱이도 소싯적에 척키과였던 것 같은데! 난 이렇게 혼잣말을 하고 말았다. 어디 그의 지령이 들어맞나 들어맞지 않나 두고 보자, 하면서. 하지만 괜한 궁금함은 날 따라다녔다. 그분은 도대체 왜 그런 이상한 발언을 해서 날 귀찮게 하지, 그와 같은 의문이 또 다시 내 곁에서 머물렀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났고, 나는 시내로 갔다. 그분의 예언대로!
6
오늘은 토요일이다. 여기는 시내다. 나는 혼자다. 날씨는 그럭저럭 괜찮다. 물도 음 좋다. 지금은 가을인데 꼭 어딘가 모르게 봄바람이 부는 듯 하다. 다들 집에서 무척 신경 쓰고 나온 걸로도 모자라 수시로 손거울을 보고 또 보는 것 같았다. 혹시 영화 찍나? 아닐 것이다. 그냥 사시사철 춘풍은 부는 것이고 사시사철 마음은 동하는 것일 뿐이다. 그리고 아까부터 웬 꼬마가 날 따라온다. 난 오늘 할일이 있다. 특별한 일은 아니지만 서점에도 가고 문구점과 극장과 미술관도 들려야 한다. 나는 오늘 바쁠 것이다. 물론 일정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계획의 빈틈을 확인하고 점검하자면 음, 햄버거도 먹어야 한다. 난 바쁜 현대인이다. 그런데 어느새 그녀와 나는 친해졌다. 그녀는 선수 같다. 그녀는 누구일까? 누구긴 누군가 방금 말하지 않았나, 누군가 날 따라다녔다고. 처음에 꼬마인줄 알아서 신경쓰지 않은 점, 그게 화근이라면 화근이었다. 어느새 곁을 내주게 된 것이다. 그러면 절반은 넘어간 것이다. 주객이 바뀐 것 같다만 그쪽 이론대로라면 그것이 맞다. 얘는 방법을 알았다. 그것도 아주 잘 알았다. 그녀는 일단 내 시야에 안면 노출을 굉장히 많이 시도했다. 그리고 한참을 따라다녔다. 그보다 약간 덜한 정도로 눈빛으로 무언가 찡한 신호를 보냈으며, 따라서 그녀는 사람을 아니 남자의 마음을 궁금하고 기대하고 추측하고 비로소 설레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 성공에 '대'자를 붙여도 썩 엇나간 평가는 아닌 듯 했다.
그녀를 편의상 X라고 부르겠다. X? W는 위, Y는 예스? 뻔한 딕 앤 제인이 뭔 내용이었드라? 대체 이게 뭔 소리야? 다 X 때문이다. 시작은 언제 어떻게 시작됐는지도 모르게 부드러웠고, 과정은 그야말로 은근했고 접근은 동물적이었으며, 그녀가 건넨 첫마디는 놀랍게도 제법 촌스러웠다. 오빠 시간 있어요, 라고. 그래도 다행이다. 저기요 오빠, 커피 있으면 시간 한잔 하자고 하지 않아서. 윽, 꺄악! 난 처음 그녀가 시간을 물어보는 줄 알았다. 초면인데 불쑥 오빠라고 해서 내가 진짜 그녀의 오빠가 된걸까 착각했다. 그러다 계속 같은 말을 반복하며 날 몹시 추궁하길래 난 나도 모르게 깜빡 잘못 했으면 동문서답을 할 뻔 했다. 원하는 게 뭐야, 라고. 누가 보냈어, 라고. 왜 따라다녀, 라고. 그리고 그녀는 가죽점퍼를 입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나를 오빠라고 불렀다. 목에는 불독 목걸이를 찼다. 그러나 그녀는 나를 오빠라고 불렀다. 눈화장을 정성스럽게 했고, 새빨간 립스틱을 발랐다. 눈탱이를 어디서 한대 얻어맞은 줄 알았다. 뭘 생으로 잡아먹은 줄 알았다. 그러나 처음엔 무엇보다도 초딩인줄 알았다. 다시 한번 쳐다보니 중딩인줄 알았다. 그러나 몇 번 더 바라보니 그녀는 숙녀였고, 그녀는 예뻤다. 그렇다. 그녀는 여자였다. 성숙했다. 그러나 터프했다. 근사하게 차려입고 고고한 목선을 유지하며 고상한 말투와 세련된 화제와 우아한 몸동작에 까다로운 예법을 잘 연기한다면 잠시나마 남자친구의 착각을 불러일으킬 수는 있을 것 같다. (잠시, 가 뭔가?) 길지 않아서 이런 말을 내뱉겠지만. 특기는 다 다르니까, 기질상 아양은 도저히 해도 해도 안 맞는 부류도 있기 법.
「에잇, 못해먹겠네! 아 뭐야 이거, 뭔 면사포에 장갑에 아 거슬려 거슬려.」
딱 하나 신기한 재주가 그녀에게는 있었다. 그것은 무엇일까? 바로 나와 관련된 것이다. 겨우 겨우 간절히, 겨우 겨우 가까스로, 겨우 겨우 어렵게 도달 했어. 뭐에? 나는 뭐뭐했다 나는 뭐뭐했다, 로. 그런데 얘 때문에 얘가 나타나서 얘 위주로 그것이 바꼈다. 직간접적으로 다. 그건 뭔가, 뭐로 바꼈다는 말인가? 뭐로? 그녀는 뭐뭐했다 그녀는 뭐뭐했다, 로. 별거 아닌 거 같지만 별거 아닌 게 아니다. 엄청난 거다. 그녀는 1인칭 주인공 시점을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바꾸는 놀라운 재능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그 능력이 과연 온전히 그녀에게 예속되는가, 라는 의문은 남지만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녀에게 오빠-였다.
그런데 그녀는 어쩌다 그와 같은 시적인 말을 일상적으로 하게 됐을까? 어쩜 그럴 수 있을까? 시적인? 정정하면 재치 넘치는.
「오빠, 전 미래에서 왔어요. 저를 알고 싶지 않으세요? 처음에는 별로였다가 슬슬 볼수록 괜찮아지죠? 그게 제 매력이에요, 오빠. 도대체 난 누굴 닮아 이렇게 예쁠까? 왜요? 제가 말하는 게 너무 고혹적이에요? ...(잠시 멈칫 한다)... 오빠, 제 첫인상은 어땠어요? 얘는 뭐하는 애일까 라는 추측의 시위를 끌어당겼나요? 아니면 얜 어떤 삶을 살아왔고, 키스는 지금까지 몇 번 했고, 마지막 포옹은 언제였고, 나한테 대체 왜 이러는 것일까, 그게 궁금했나요? 말 못할 이유 없죠. 지금은 아니고. 나중 오빠 하는 거 봐서. 오빠, 예측 불허 같은 낌새를 눈치 챘어요? 아니면 오빠의 여자친구가 고용한 첩보원은 아닐까, 지금 날 유혹해서 넘어가나 안 넘어가나 지켜보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한쪽은 가슴조리고 한쪽은 좋다고 헤헤거리고 그런 수순을 밟을 지도 모를 일이지 라고 그렇게 의심했어요? 오빠도 참... 뭐, 상상이야 자유죠. 오빠, 단지 전 미래에서 왔다는 거, 그것만 기억해두세요.」
그러다 나는 무시하기 작전을 썼다. 질투심 유발하기를 쓸 여건도 처지도 아님. 아니면, 달리 어떻게! 그럼 그렇지 하면서 뭔가 내가 권력 관계에서 우위를 점하고 까닭없이 버튼을 누르면 기쁨조로, 다시 버튼을 눌르면 요조 숙녀에서 비련의 여주인공으로 또 후배로 또 유치원 동창으로 마음대로 조정하며 쥐락펴락할 수 있을 것만 같았는데 그랬는데, 정말 거의 고지를 점령하고 깃발을 꼽기 직전이었는데 난 그녀 X에게 말려들고 말았다. 결론적으로 나는 그녀를 초장에 확 휘어잡는 데 보기 좋게 실패했다. 어차피 예정된 일이었을 것이다. 핏!
「오빠, 우리 집에 갈래요?」
「내가 너네 집에 왜 가? 얘 이상한 애네. 뭔 큰일날 소릴 하고 있어?」
「농담이에요 농담. 앗, 그럴 게 아니라 우리 지금 오빠집에 갈까요? 와 재밌겠다. 왜요? 집에 뭐 꼬실꼬실 진공청소기가 고장났거나 꼬실꼬실 강아지가 말썽을 부려놨을까 봐요? 괜찮아요. 그래도 뭔가 걸린다면 다음에 가기로 해요. 그러면 되죠. 오빠, 그런데 너무 과장해서 부정하는 거 같은데...... 강한 부정 아닌가요? ... 오빠 방금 쫄았죠? 헤헤헤, 아 웃겨!」
만일 이것이 TV에 나오는 드라마였다면 난 처음에 주인공이었다가 어영부영 슥 주인공의 조명은 그녀를 비추는 형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난 어떤 위기감과 말리고 있다는 흐름상의 기세를 역전시키고 싶은 도전 욕구 같은 걸 느꼈다.
「오빠 그냥 내가 남자 하고 오빠가 여자 할래요? 네? 어때요? 그럼 재미있을 거 같지 않아요? 난 재미있을 거 같은데 오빠는 어때요? 뭐라고 말 좀 해봐요 오빠~ 네?」
「그게 대체 뭔 소리야? 넌 이미 지금도 충분히 숙녀야. 네 짝은 오빠가 찾아줄께. 딱 기다리고 있어!」
그러다 그녀는 자기가 쓴 시라면서 핸드폰으로 소셜 네트워크에 적혀있는 시 한편을 보여주었다. 어머나! 글쎄! 에고머니나! 그것은 내가 쓴 시였다. 지금은 비록 작자미상이 되었지만 엄밀히 말해서 원작자는 나였다. 토시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았다. 난 열 받기 시작했다. 뚜껑이 열리기 시작했다. 부글부글 커피포트가 달아오르고 머리 위로 수증기가 끓어올랐다. 그러나 그녀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실은 그 시를 자기가 쓰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건 실은 얼마 전 인터넷에 떠돌고 있던 작자미상의 시라고 했다. 제목도 없다고 했다. 그리고 이처럼 감상의 변을 토로했다.
「어떤 미친놈이 그런 정신나간 시를 썼는지 참 한심하죠, 오빠? 어지간히 할일이 없었나봐요. 멍청한 놈 같으니라고. 지가 시인이야? 시가 장난이야? 아 참 나 얼척없어. 뭔 요즘은 개나 소나 다 자기가 작가고 예술가고 시인이고 지성인이래. 잘났어 정말. 어디서 다 갖다 베끼고 모으로 짜집기 해서 뚝딱 그림일기 쓰듯 만들어가지고 말이야. 그게 뭐냐고! 어? 찌질한 놈 같으니라고. 아예 소설을 써라 소설을 써. 오빠도 뭐라고 좀 해 봐요. 이런 교양 없는 애들은 좀 얻어들어야 정신을 차려요. 대관절 뭣 때문에 이렇게 상태가 안 좋은 사람들이 최근 자주 보이는지 모르겠어요. 어때요? 오빠 클 때도 그랬어요? 오빠는 언제 컸어요? 어떻게 컸어요? 오빠의 제1차 성징기는 언제였고 제2차 성징기를 제대로 거치기는 거쳤어요? 어때요? 오빠! 저는, 섹시한가요? 성적 매력이 별로에요? 뭐라고 말 좀 해봐요, 네? 아무튼 이런 애들 때문에 제가 남자친구가 없었나 봐요. 오빠, 제가 정말 그렇게 별로에요? 오빠, 제가 너무 도도해서 아무도 접근하지 않는 걸까요? 많이들 제가 남자 엄청 많이 사겨본 것처럼 보고 주위에도 남자 엄청 많을 거 같다고 예상하지만 실은 저 남자 한번도 사겨보지 못했어요. 그건 바로 이런 애들 때문이에요. 이해가 안된다구요. 정신나간 얼간이 같으니라고. 이런 머저리 같은 놈. 영구. 땡칠이. 바보. 밥통!」
우린 그렇게 친해졌다. 그리고 나는 오빠 라는 말에 세뇌당했다. 완전 거칠게. 오빠? 응, 오빠! 말의 시작도 오빠 끝도 오빠. 틈만 나면 오빠, 자나 깨나 오빠! 밤이나 낮이나, 앉으나 서나! 숙녀여 장래 그대가 만나게 될 조랑말을 타실 듯한 왕자님, 지금 당신을 사랑하시는 눈부신 그분은 어쩌면 남자로 잘못 태어났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바로 이런 친구들이 남자로 태어난다면 오빠는, 오빠는, 오빠는 말이야 라는 '오빠는' 화법의 달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이 참으로 신기한 게 뭐냐면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듯이 그림자 없는 햇빛은 있을 수 없는 법. 거기에 한번 걸려들면 영원한 행복일 수도 있고, 그 장단에 어쩌다 잘못 놀아난다면 이런 묘비명을 감수해야 할 운명에 휩쓸릴지도 모른다. 그것은, 그의 인생은 불행했다. 대체 이건 세상사의 오묘함일까 아니면 지엄한 이치라고 해야 할까? 그러니까 그 둘이 만나는 걸 세상에서는 천생연분이라고 하고, 간혹 악연이 될 가능성 또한 전무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물론 의심은 갔다. 누가 받았을지 모르지만. 나도 이젠 가뭄에 콩나게 부장님 개그를 하기로 했다. X는 점집2와 뭔가 관련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증거는 없다. 심증을 발전시켜봐야겠다.
당연한 수순에 따라 나는 거리를 걸을 때 일정하게 일행이 아닌 것처럼 그녀와 거리를 뒀고, 찻집에 들어가서 커피를 마실 때도 그녀는 나와 겸상한 것이 아니라 바로 옆 탁자에 앉았다. 물론 계산은 내가 모두 치렀다. 남자에게 그 정도 사려는 기본이다. 어떡하다 영화에 나오는 어른 주인공1과 소녀 주인공2로, 이질적인 조합으로 앨범을 발표하고 책을 같이 쓰고 연구를 같이 하는 동료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고 진짜 그랬다. 어쨌든 그렇게 잘 가라는 인사도 없이, 연락처도 가르쳐주지 않고 나는 X와 헤어졌다. 교분이 갑자기 뚝 끊겨버렸다. 뭔가 너무 우연을 믿은 것이다. 걸핏하면 운명을 탓한 것이다.
그렇게 나는 집으로 돌아왔고, 1주일이 지났다.
7
내 삶에 누군가 들어왔다. 어느 날 그랬다 라고 나중에 회상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지금은 그렇다. 내 삶에 누군가 들어왔다. 결혼식장에서 두터운 저음으로 선언하는 사회자의 '신랑 입장' 같은 말은 아닐 것이다. 경기장에서 말을 빠르게도 느리게도, 운동 이야기도 다른 이야기도 자유자재로 술술 청산유수로 말하는 스포츠 진행자의 '선수 입장' 같은 말도 아니리라. 물론 어중이떠중이가 나의 신성한 삶의 영역을 침범한 것도 아닐 것이다. 곧 그것은 정해진 게 없다는 뜻이다. 아직 모른다는 말이다. 그래서 더욱 좀 더 심층적인 토론이 필요하다. 그만하면 이유는 충분하다. 잠시 그녀 얘기를 더 해야겠다. 그러고 싶다. 잠깐, 은 좀 더 길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것 같다. 안심해도 될 만큼. 그러니 잠시 회상이 필요하고 그것은 언어로, 언어 가운데서도 글로 옮길 필요가 있을 것이다.
전형적인 마초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오빠라는 말만 들으믄 미쳐븐께!> 일단 '우리는'식 화법을 구사한다면 그것은 대표적인 상남자라는 뜻이다. 그리고 이 말은 최소 절반은 맞다. 아니라면 그건 거짓말이다. 그런데 어떻게 오빠라는 말만 들으면 정신이 이상해지지? 그건 아마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여자들이 자신의 동성 친구와 있을 때는 막 비비 꼬고 꼬리 치고 목소리를 사근사근 화제도 매우 신중하게─더없이 조심스럽게─사적으로 엄선하게 고르고 막 가려서 하고, 절대 그러지 않지. 결코, 절대로. 못 미더운 친구와 함께 하지 않는 이상 그냥 막 하지 막, 막 안 가리고 막, 사석이니까. 어느 만큼? 막! 알면 알면, 그만 하자. 하지만 남자가 있으면 얘기가 달라. 남자만 나타나면! 남성이 등장했다 그러하면 골키퍼가 있든 없든 그 골키퍼가 친구든 누구든, 낭군님이 내 곁에 있든 멀리 있든, 남자만 보이면 정신 못차리는 것과 어쩌면 비슷하지 않을까? 기분 좋은 날 타자가 투수의 공이 수박만하게 슬로우비디오로 보이듯 그 미묘한 섬세함은 유독 꾼에게만 들키는 것일까? 그럴 리가! 이 자발없는 설명을 단 한 단어로 압축하면? 본성! 머리카락 찰랑찰랑, 눈빛과 태도가 바뀌고, 꼬리 살랑살랑, 아첨 딸랑딸랑 그러나 요염한 고양이 목에 '애교' 방울을 달면 좋을텐데 대체 누가 달지? 그것이 문제로군. 허나, 그렇지~ 정답은 그거야 그거라고. <묻지마세요!> 참고로 이 단원의 이 문장 앞에서 오빠라는 단어는 몇 번 나왔고, 이 단원의 이 문장 다음에는 몇 번 나온다. 틀릴 수도 있다. 바뀔 수도 있다. 55? 66? 워, 77? 헉 88? 아담한 44? 나는 어느 마초협회에서 정식으로 공인받지는 못했지만 무언가 이상한 신호랄까 어떤 애정에 대한 무언의 외침같은 극심한 요구를 느꼈다. 바보가 아닌 이상 그 정도를 눈치채지 못하는 남자가 어디 흔하겠냐마는. 그녀는 그렇게 쉬지 않고 보이지 않는 하트 뿅뿅을 내게 보냈고, 쉽게 드러나는 윙크도 가끔 보냈다. 가끔? 조금 더. 하트 뿅뿅, 정말 그것이 막 보이는 듯 했다. 나는 그걸 진짜 막 맞기도 했고, 날 피해가기도 했으며, 그건 마치 장난감 물총을 쏘면 연속으로 나가는 물풍선인 것만 같았다. 정말 그랬다. 나는 처음에 얘가 눈에 먼지나 뭐가 들어간줄 알았다. 정말로 어디서 눈탱이를 한대 맞아 눈화장은 물론 무리한 윙크까지 남발하는 걸까 그렇게 생각했다. 처음에는. 물론 나는 대놓고 차갑게 묻지는 않았다. 다른데 가서도 아무 남자한테나 그렇게 막 눈웃음 짓냐고. 그녀에게 무수한 아양과 쉴새없는 교태는 기본이었다. 식은 죽 먹기, 가 아니라 습관이었다. 즉 그녀는 재능을 타고났지만 사는 동안 내내 학습하고 연마해서 그 경지에 올라선 듯 보였다. 당연하게도 그녀가 동성 친구와 있다면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행동할지 눈에 선했다. 상상이 되었다. 넉넉히. 그 극심한 차이는 우스운 혼잣말을 떠오르게 만든다. 그래서 오빠라는 단어의 끊이지 않는 반복과 아주 미세한 비음과 향수는 향수까지만 으응?, 그리고 사랑에 빠진 여자가 보이는 일반적인 태도를 바탕으로 잠시 그렇게 생각했다. 얘가... 설마... 날 좋아하나? 그녀가 나를 좋아하는 것은 그녀의 자유다. 그러나 어깨에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잉크로 새겨진 사랑의 큐피트 표시가 있는 진정한 로맨티스트는 눈빛의 흔들림과 동공의 떨림과 나를 향해 노력하는 언어 외적인 바디랭귀지를 근거로 단번에 파악할 수 있다. 대번에! 오래 걸리지도 않는다. 따라서 나는 감성이 아닌 이성에 호소하여 일단 더 지켜보기로 했다. 왜냐하면 이와 같은 인물 유형은 마지막 화룡점정을 절대 찍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른 건 다 해도 그것 하나만은 자기가 스스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는 안되니까. 왜 그런지는 몰라도. 그녀는 최후의 고백 즉 직접 화법, 그것은 구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방법은 절대 선택할 수 없다. 그녀로써는. 그것은 일종의 불문율이다. 그 묵계는 지구의 역사와 함께 했다. 거기까지만 알아두자. 오히려 장기전에 돌입했으면 했지! 그 때문에 사랑도 변한다. 애증으로 또 무엇으로. 그러므로 장래 나의 일관된 행동 강령이랄까 그것은 무엇이겠나? 그냥 지금 이대로 지금처럼 지금과 같이 죽 가는 것, 바로 그것일 것이다. 즐겁게 어쩜 슬프게. 사랑을 받아주지 못해서 나는 너무나도 미안하고 나도 정말 답답하다는 듯이. 그러나 어떻게 보면 객관적인 시각으로 관전평을 내린다면 이것 역시 너무 비겁하고 너무 가혹하지 않냐 라는 비난으로부터 자유롭기는 힘들다. 그러나 상대가 상대인지라 선택할 수 있는 방법, 내밀 수 있는 카드는 단 하나일 것이다. 그것은 무엇일까? 무엇일까? 그게 뭐 그렇게 대단히 중요한 요점이라고 밑도 끝도 없이 빙빙돌려서 반문하냐고? 질질 끌지 말라고? 어디서 적반하장이냐고? 오케이, 인정! (손가락 딱, 의표를 찌르는 듯한 삿대질) 상대방의 감정이 특별하지 않다면 그 연정이 유일한 게 아니라면 그 사랑의 혜택을 오직 나만 받는 것이 아니라면 똑같이 오리발로 응수할 것,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많은 뭇남성들, 즉 뭐가 이렇게 복잡해~ 아 정신없어~ 뭐야 이거 재미 하나도 없어~ 관심 없어~ '내가 쉬워 보이나 봐'가 아니라 쟤는 단계가 보이는데 어렵지 않겠는데~, 하시는 분들 바로 그분들은 그렇게나 전장을 전전하며 공부하고 경험하며 언제나 멜로드라마와 같은 삶과 함께 하지만 여전히, 여전히 사랑의 약자로 남기를 자처한다. 아주 꿋꿋히. 그러나 인생의 어느 시점에 그분들은 꿈이 바뀌고 연애에도 실패해봤으며 우정을 불신하고 운명을 탓하다가 자기도 모르게 사랑의 밧줄에 꽁꽁 묶이게 된다. 밧줄로 꽁꽁 밧줄로 꽁꽁 단단히 묶어라 내 사랑이 도망가지 못하게, 유행가 가사처럼. 그래서 당분간은 도망가지 못하게 된다. 그것은 숙명이다. 왜? 왜 그렇게 되는 것일까? 그것은 숙제로 남겨놓겠다. 쉽게 가면 재미없고 그걸 풀어서 설명하면 그게 어디 연애지침서지 소설인가?
그런데 그분들은 어떤 분일까? 그녀가 환상곡이나 하프시코드 소리나 흔한 유행가 즉 사랑 노래를 듣고 싶어하는데 이런 노래를 트시는 분들이라면 그나마 낫다. Judas Priest의 Dreamer Deceiver, AC/DC의 Whole Lotta Rosie, Iron Maiden의 Hallowed Be Thy Name, R.E.M.의 Losing My Religion, Lynard Skynyrd, Yngwie Malmsteen 등등. 음악 이야기는 전문가에게 맡기고 그나마 낫지 않은 걸 또 따질 수는 없으니 이건 여기서 줄인다. 다시 돌아가서 어, 주제가 뭐였드라... 나는 숙녀를 아꼈을 뿐이고, 나는 숙녀에게 자상했을 뿐이고, 나는 숙녀에게 사랑을 가르쳤을 뿐이고? 그건 아닌 것 같다. 그러면 뭐지, 뭐드라, 뭘까... 혹시 내 생애 단 한 번만이라도 사랑, 아니었나? 아니라고? 맞다고? 모른다고? 오오 그래 학문이었다. 상업이 아니라 학문!
사회심리학? 학문이다. 정신분석학? 학문이다. 그러면 사랑은? 사랑학, 이라고 그런 게 있나? 당연히 없지, 있을 리가 있나. 그러나 표면적으로는 그렇지만 인생이라는 여행길에서 인간에게 어느 정도 선험적이어야 하는 인문적 관점에서 보자면 그것은 학문이 틀림없다. 사랑학, 있다고 봐도 손해볼 건 없다. 마치 사랑법처럼. 사람들은 알고 있다. 사랑은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라는 것을. 그러나 사랑 노래는 전한다. 가슴 아프게. 사랑이 인생의 전부라고. 뭐가 맞고 뭐가 틀릴까? 뭐가 맞고 뭐가 틀리냐, 의 문제가 아니란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래서 도저히 감을 못 잡는 어떤 남성들은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세월이 가도 모른다. 여자 앞에서 사랑이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거짓이 아니라 진짜 그렇게 연기하고 착각하고 빙의해야 한다는 것을. 그녀 앞에서가 아니라면 당연히 머리 아픈 주제로 선두까지는 아니지만 상위권을 다툴 것이다. 그러나 어쩌겠나, 사랑에 관하여 이미 말을 꺼내버렸는데! 사랑 뿐인 마치 그것이 전부인 듯한 세상에 이미 태어나버렸는데! 사랑이 전부라는 그녀와 이미 사랑에 빠져버렸는데! 비록 혹시나, 가상일지라도! 아마도 몰래한 사랑일지라도!
인생은 콜라처럼 짜릿하기도 하지만 우유처럼 담백하기도 하다. 사람은 살면서 누구를 만날지 모른다. 백마 탄 멋진 왕자님을 만날 수도 있고 못 만날 수도 있다. 하지만 옷깃을 스친 누군가를 알게 된 것은 어쩌면 그건 행운일 것이다. 요만~한 쪼그만한 것이 아니라 어쩌면 이따~만한 행운일 것이다. 지금 아마도 점집 몇이지? 아, 점집 2의 도사님이 점지해주신 귀인이 얘일 것이라고 얘가 맞을 거라고 나는 확신했다. 아니라고 해도 상관없다. 왜냐하면 그 예언에 많은 걸 걸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인생? 그녀 때문일까 판돈 때문일까 어머나 인생이라는 고귀한 말이 나와버렸네! 인생은 뭐다, 라는 시간이 돌아온 것인가? 그런가? 와우, 해야 하나? 갑시다. 자, 빠져봅시다. 인생은 무엇일까? 정말 시시각각 변하는 우리네 인생에서 인생은 과연 얼마나 예측 가능하고 어느 만큼 세상사에 관여할까? 그것이 이렇게도 저렇게도 우리 삶을 뒤흔들고 휘두를 수 있는 뭐 그런 어떤 거대한 존재인가 위대한 이상인가 지대한 철학인가? 무대가 이처럼 강연장의 분위기를 띄면 어려우니까 극장식 카바레 공연장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그나마 낫다. 그러면 인생은 뭐다 라고 말할 수 있다. 음... 어... 아... 지른 게 있어서 피할 수는 없고... 사석이라면 우리는 원래 냉엄하게 끊으면 그만인데 화내면 되는데 것도 안 되고... 꼬랑지 내리기도 모양 빠지고... 인생은 오빠다, 이런 값싼 농담으로 퉁칠 수는 없는데 어쩌지... 정말 어떡한담... 진퇴양난이다. 그러나, 뭔가 막 생각날 듯 생각날 듯 하다가 딱 생각났다. 오케이! 사랑은 없고, 인생은 거짓말이다. 어, 그렇다. 진짜다. 정말 그런 것이다. 그렇다고. 인생은 그렇다.
인생은, 바로 그런 것이다. 오! 아아! 어머나 어머나! 인생이 어떻다, 가 나왔는데 과연 여기서 끝내도 되나? 뭔가 싱거운데? 거짓으러라도 앵콜을... 요청이 없어도 끌어내지만 않는다면 무대에 남아야 하나? 이번에는 이것만으로는 뭔가 아쉽다. 그러면 추첨머쉰은 돌리지 말고, 환상머쉰도 가동하지 말 것이며, 하트 뿅뿅 나왔으니 이왕지사 '여자'가 나왔으니 반복컨대 <여자는 뭐다> 그것을 거론하는 것은 어떨까? 새로운 시도! 본론은 그저 그래도 상투적이어도 시도는 새롭게. 잠시 내 말 좀 들어봐 다음에 인생이, 오늘의 운세 다음에 예언이 나왔으니 늦어서 미안하다고 해야 하지 않겠나! 누구에게? 여자에게! 무엇이냐면, 여자에 대해서. 어떻게, 여자는 뭐다에 대한 변주를. 자, 시작해보자. 그분 자주 오시는 거 아니니까. 여자라... 여자는 어떤 존재일까? 남자가 오빠면 여자는 오빠라고 부르는 역할로 그것에 대한 임무를 완수하고 그녀에 대한 설명은 끝나는 것일까? 끝은 무슨 시작도 안 했는데! 남자에게 여자는 영원한 미스테리일 텐데 틈틈히 중요한 주제로 다뤄야 마땅하다. 지당한 말씀. 오케이! 정리됐다. 여자란 무엇이다, 가 완성됐다. 여자는 그런다. 남자가 있으면 여자는 긴장된다. 여자는 평소보다 우아해져야 한다. 반드시 고상함은 나아져야 한다. 목선을 꼭 고고히 보여야만 한다. 무엇보다 나를 근사하게 선보여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순간 여자는 일상적인 나보다 좀 더 세련된 내가 된다. 저절로. 자동적으로. 자기도 모르게. 언제? 남자가 나타나면! 품위, 그녀에게도 원래 있었던 것이다. 다만 잊고 살았을 뿐. 그때 여자는 지성마저 아찔해진 듯 착각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지 않으면 여자가 아니다. 남자다. 여자는 남자가 나타나면 긴장한다. 그로부터 뭔가 싫지 않은 어떤 분위기가 느껴지면 여자는 모든 것이, 거의 모든 것이 바뀐다. 바로 옆에 내 님이 있어도? 물론이다. 설마 팔짱을 끼고 있어도? 두말하면 잔소리다. 이미 순위권 밖으로 밀려나버린다. 그 순간, 아주 잠깐 만큼은 차였다고 봐도 된다. 차인 게 뭔가? 행인1과 같고 정물화 속의 과일이며 빗이고 화분일 뿐이다. 아니라고? 모르겠다고? 그럴 거라고? 아니기는! 기억하자. 여자는 연기의 재능을 타고났다는 것을. 그것은 남자가 절대 따라갈 수 없는 영역이란 것을. 남자는 토끼고 여자는 거북이다. 다시 여자 이야기로. 여자는 어느 범주에 드는 남자가 얼마의 범의 안에 들어오면 여자는 그런다. 여자는 말도 조심히, 눈빛도 그윽히, 커피잔에 입술이 닫는 딱 그 순간에도 눈빛은 저멀리! 여자는 천상 숙녀다. 우리는 그러지 않지만 여자는 그런다. 새롭게 등장한 남자, 그가 미남이면 여자는 더 긴장한다. 그의 목소리가 낮으면 더더욱 떨린다. 아흐흑! 그때 여자는 설렌다. 어쩜 다리가 풀린다. 진짜 주저앉기도 한다. 어쩜 흥분할 수도 있다. 여자의 기분은 이미 고조됐다. 많이 아주 많이. 어머나! 그런데 그이가 말을 잘하네, 홀딱 넘어간다. 부정해도 좋다. 그러나 여자는 홀딱 빠진다. 정말로? 그래 거짓말이고, 그래 농담이다. 또 여자는 웃긴 남자를 좋아한다. 많이 좋아한다. 웃기면 일단 용서된다. 여자는 그런 남자 옆에 있으면 자의적으로 표는 내지 않지만 또 겉으로 티는 나지 않아도 드물게 좋아서 어쩔 줄 모르거나, 드물게 들뜨거나, 드물게 기분이 살짝만 좋아지기도 한다. 하지만 보통은 그 세 가지가 친하게 함께 한다. 딱 동시에. 어느 여자에게 자기는 지적인 남자가 이상형이다, 그건 바뀔 수도 있고 변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외 누구는 착함을 누구는 배려를 누구는 성실함을 동경한다. 노래와 춤과 그림과 글까지 기대하는 면모는 많고도 많다. 만약 그 모두를 다 갖췄다? 말 다 한 거다. 나도 여자구나 라며 새삼 깨닫는다. 매번. 항상. 자주. 그런데, 첫눈에 반했다? 게임 시작도 전에 끝난 거다. 그녀는 황홀한 사랑의 여주인공이 된다. 여자는 프리마돈나가 되고 발레리나가 된다. 내숭은 여자의 특권이고, 애교는 권리며, 아양은 기본이다. 왜 그런 것인가는 묻지도 따지지도 궁금해하지도 말자. 그것이 여자의 의무인가 과연 예절에 속해도 되는가 까지. 그것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여자의 전유물이다. 여자는 여자이니까. 나이를 먹고 세월이 가도 변할 수 없는 것이 여자다. 어쩔 수 없다. 흡사 남자들이 인생을 배우며 알고 또 가르치게 되더라도 결코 철들지 않는 것처럼. 그런데, 좀 전에... 여자에게 애교는 뭐, 권리? 여자의 성정만 알고 넘어갈 수는 없다. 그러면 남자는 어느 정도 유혹 당하고 찬미해야 하는가, 그건 각자 알아서 판단할 일. 단, 이런 기교는 권장할 만한 게 못된다. 잘 미루거나 애써 외면하거나 좋으면서 싫은 척 투정 부리기. 멋진 남아는 그녀를 모르지도 놀리지도 않고, 그녀를 심심하거나 싫증나게 만들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그분들은 또 우리는그녀를 예찬하며 웃겨주기도 바쁘니까. 어쩜 그리 여자의 마음을 포근히도 헤아리는지 어쩜 그리도 그녀의 의중을 너무도 쉽게 간파하는지. 우리는? 우리는! (아마도 귀찮아서 기술을 구사하지 않는 것에 불과하겠지만) 여자를 대하는 데 미숙한 아저씨의 관점에서 보자면 정말 신기할 따름이고, 성숙한 숙녀와 풋풋한 소녀에게는 모두 그저 놀라울 뿐! 그런 남자는 진기하다고 생경하다고 어쩐다고 해도 그러나, 지금은 여자에 대해서만. 여자는 대체로 언제까지나, 대체로 어디에서나, 대체로 누구에게나 여자다. 이게 여자다. 이게 여자라고! 물~론 여기서 또 둘로 나뉘다. 반칙왕과 당신의 사랑으로! 그러나 모체 즉 앞서 나온 특징은 철저히 공유한다. 직관적으로 또 경험으로든 인생이 알려주었든 읽는 사람이 모르는 새로운 내용은 거의 없다. 아마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뭐랄까 이미 아는 사실이고 식상한 진실이지만 어째 꼭 다시 알아야만 하는 그런 제2의 속내 같은 기분이 들 수도 있다. 뻔하지만 무언가 뻔하지 않는 그런 느낌. 남자에 대한 지식을 여자들이 매번 듣고 읽고 대화하며 공감할 때 어떤 미소가 동반되는 것처럼. 그 미소는 혹시 젊은 미소? 아무튼, 그러나 챙피한 일은 아니다. 비난할 것도 없다. 사람이란 원래 그런 것일 뿐. 오히려 더 알면 알수록 재미있을 수도 있다. 그럴 것이다. 그런 오묘함도 없으면 인간사 너무 덧없고 허전하다. 재미없단 말이다.
(한숨, 쉬어가자!)
누가 그랬나,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로다 라고. 말 한 번 잘했다. 아니, 글인가?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다. 그게 끝일 리가 있나. 그 뿐만이 아니란 말이다. 마음은 갔다 오기도 하고, 마음은 몸을 떠나기도 한다. 심지어 나눠주기도 한다. 광고지 전단처럼, 신제품 샘플처럼. 어떻게? 평등하게! 남자, 단순하다. 여자, 복잡하다. 여자는 남자와는 다르다. 뭐에 관한 기준이냐, 따지지 말자. 슥 넘어가자. 여자가 이러한데 사랑이, 사랑이 쉽겠나? 다이아몬드는 사랑이 영원하다고 하지만 사랑은 변하기 쉬운 것이다. 가짜 다이아몬드 같은 요설과 여자는 뭐다, 가 나왔으니 이제 사랑으로 넘어가 볼까? 그럴까? 그래도 될까요? 그럽시다. 까짓것 뭐 못할 건 뭡니까! 사랑. 사랑이 영원할까? 어려운 문제다. 남자와 여자 사이에 끝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이 끝과 저 끝이 혼재할 수도 있다. 사랑, 그것이 신비로운가는 잘 모르겠지만 이만저만 까다로운 게 아닐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리고 남자들은 절대로 친구와 사랑에 대해서 논의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런 말 할 수 없다. 우리는 그런 말 해서도 안 된다. 우리는 눈빛만 봐도 안다. 말도 꺼내지 않는다. 그건 불문율이다. 그 말을 꺼내느니 차라리 맞겠다. 진짜 때리지는 말자. 하지만 실은 여자들도 어느 만큼 성숙하면 그것은 어쩔 수 없이 낯뜨거운 주제가 되어버린다. 살면서 어쩌다 뜨거운 감자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것은. 여자에게도. 삶이 그렇게 만들고, 인생이 그것을 강요한다. 결코 거부할 수 없도록. TV도 인터넷도 예술도 대중가요도 모두 사랑 사랑, 사랑 타령인데 남자들까지? 어떤 모습이 상상된다. 실제 행동으로 이어진다. 골프장으로 게임의 가상 세계로 물고기를 잡으로 가고, 동그란 공을 자꾸 어디에 어떡하든 반드시 집어넣기 위해서 떠나고, 탈 것에 오디오에 사진에 수집에 심취하기도 한다. 주색도 빠질 수 없다. 아이쿠, 도박 빼면 서운하지. 보이시지 않나, 잘 아시지 않나. 대기 명단 까마득 하다. 허나 그건 나쁜 게 아니다. 적당하면 된다. 건전하면 그뿐. 퇴폐미? 1%만. 그런데, 그런데 다시 태어난다면......? 남자에게만 자상함을 강요하지 말고 여자도 친절을 베풀자. 특히 지금은. 열린 뚜껑을 닫아주자는 말이다. 커피포트도 좀 쉬게 해주자. 새벽에도 런닝머쉰 돌려야 하나? 각종 머쉰들은 뭐 쉴 수도 없나? 잠깐만! 그렇다면 방금 열거된 여러 조건이 넉넉히 충족되지 못한다면 소심하거나 울적해야 하나? 그건 아니다. 여자를 알면 된다. 여자를 다루는─떠받드는─대우하는─이윽고 존중하는 방법을 알면 더 좋고. 그녀에게 인생은 어떤 것이라고 말해주면 된다. 어떻게냐 하면, 다정하게. 차 문을 열어주고, 사소한 걸 기억해주고, 자잘한 걸 챙겨주고, 믿음을 주면 된다. 그녀의 의견을 알고 동조자가 되면 된다. 사랑은 몰래, 연모는 은밀히, 애정은 은근히 라고. 바로 그런 게 여자에게 잘 안 먹힌다면 목소리나 다른 무엇들이 그만그만한 남자들은 어디 서러워서 살겠나? 어? 어디 서러워서 살겠냐고! 그래도 다 방법이 있다. 의기소침할 필요 없다. 여자를 모르겠다고? 그런가? 어? 어려울 거 없다. 여자는, 여자는 웃으면 끝난다. 웃으면 끝난다고. 그녀를 웃게 만들면 절반은 넘어온 거다. 그녀가 웃는다, 말이 필요 없다. 게임 끝났다. 방법도 필요 없다. 뭐, 좀 더 구체적인 힌트를 주라고? (손가락 딱!) 그녀에게 물어보시라. 방금 방금 속으로 속으로 내 험담했냐고 내 험담했냐고. 정확히 뭐라 뭐라 그렇게 그렇게 험담했냐고, 속으로. 몇몇은 창밖을 본다. 몇몇은 대답이 없다. 또 몇몇은 말을 돌린다. 그러나 대개는 식 웃는다. 하지만 고수는 그렇지~, 웃음을 참는다. 힘껏! 그러면 이미 넘어온 거다. 당신에게. 여기서부터 어떤 상남자께서는 꼭 일부러 어려운 길을 고집하시기도 한다. 고집 엄청 세다. 뭔 고집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워서 그럴까? 그때는 배가 산으로 간다. 그 다음부터 말이 끊기고 매번 실수를 연발하면 다 잡은 고기를 놓치는 거다. 넘어오면 뭐하나!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없는데 고기 잡도 못했는데 그런데, 잡은 고기에게는 밥을 주지 않는다? 그게 뭐야! 그런데 간혹 고개를 푹 숙인 다음에 오빠는 여자 마음을 그렇게 모르겠냐고 되묻는 경우가 드물게 있긴 있다. 그땐 책임 못진다. 뭔가 실수한 거다. 연기 지도는 제대로 됐는데 연기를 못한 거다. 오 이런! 이거 이거 너무 멀리 왔다. 괜히 이러다 그 남자가 거짓말이 훨씬 능숙해지고 허풍만 왕창 늘고, 무엇보다도 특히 다른 여성들에게 인기를 끌면 어떡하지? 그러면 어쩌지? 그 일을 대체 어쩌면 좋은가? 그래서 남녀 문제에는 일단 끼지 않는 게 상책이다. 그건 다 아는 얘기고, 각자 알아서 할 일이다. 이만하면 사전 지식이 늘었으니 이를 편집해서 그녀에게 긴 명대사로 사실적으로 낭독한다면 만족스럽지는 않아도 그런대로 그녀의 생각을 헷갈리게 만드는 데 성공할 것이다. 그럼 됐다. 어쨌든 인생과 여자와 남자 이야기는 이만 줄인다. 여기까지. 여기까지? 아 아직 안 끝났다.
끝난 듯 했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끝나도 끝난 게 아니다. 그럼 뭐가 더 남았느냐, 뭔가 면책성 발언이 필요한 것 같다. 귀가 간지러우니까 딱 하나만 털고 가자. 미련을 남기지 말자. 아쉬움도 풀고 가자. 도저히 궁금하시다고 정말 왜 그런지 모르겠다고 대체 왜, 도대체 왜 그렇게 그처럼 했던 말을 또 하고 또 하고 또 하는가, 바로 그것을 알고 싶으실 것이다. 누군가는. 왜 그럴까? 정말 왜 그런 것일까? 별로 궁금하지 않았던 사람들까지 이제는 다 궁금하게 생겼다. 일났다. 삼척동자(남자)가 곤히 낮잠을 주무시는데 괜히 어딜 건드려서 마술에 걸리는 것처럼 엄한 물음표를 건드렸다. (삼척동자가 뭐 잠자는 사자인가?) 못들은 채 넘어갈 껄 그랬나? 하지만 꿈처럼 진짜 지구 반대편에서 소곤소곤 수근거리는 소리가 들리는데 어떡하랴. 정말로 무슨 재간으로 어떤 재롱으로 타당하고 설득력있는 답변을 내어놓을지 의아해 하시는 몇몇 <우리는> 화법의 대가들이, 그것도 미래 언제에 계시는 그분들이 보이는데 난들 어쩌란 말인가.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고, 어차피 앞으로 또 얼마나 반복되고 또 얼마나 더 반복될지 모를 일이니 털 건 털고 가자. 그게 좋겠다. 그렇다면 왜, 정말 왜 그렇게 그 어떤 주제들은 지겹도록 반복되는가? 질리지도 않냐고? 질린다. 지겹다. 힘들다. 짜증난다. 나도 그렇다고. 나라고 어디 좋겠나? 어? 어디 좋겠냐고? 정말 신물이 난다. 토할 꺼 같다. 내가 뭐 그 주제에 환장한 것도 아니고, 꼭 억지 부탁을 들어주는 것처럼 어쩔 수 없이 반복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나도 정말 지겹고 신물이 난다. 그렇다. 겨울에 바깥에서 따뜻한 음료를 마실려고 하면 모락모락 연기가 난다. 내 머리에서도 그렇게 수증기가 피어오른다. 푸식푸식 지글지글 보글보글! 사람 미쳐버릴 꺼 같다. 푸식푸식 지글지글 보글보글! 그러나, 나 싫다고 그분의 간청을 거절하면 곤란하다. 나 불편하다고 팬들의 성화를 무시할 수는 없다. 딱히 확인한 건 아니지만. 아침에 늦잠 자도 학교, 가야한다. 말은 때려치네 어쩌네 해도 일하는 즐거움, 포기할 수 없다. 어느 직장에 들어오고 싶은 사람, 줄 섰다. 까마득하다, 줄이 어디까지 섰나 보이지도 않는다. 아, 금방 나올 듯 나올 듯 하드니 아직도 안 나오다니 이게 대체 뭐 하자는 행세인지 나 원 참! 그러나 성대한 시상식이나 세기의 대결이나 소문난 잔치나 모두 대상은 핵심은 용건은 제일 나중에 등장한다. 자, 긴장하자. 알고 보면 별거 아니지만 제일 정말 제일 중요하고 또 중요한 문제가 나올 차례다. 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 실망할 수도 있습니다. 김샐 수도 있습니다. 속았다는 기분에 버럭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 것도 아니지만 왜 그래야만 했는가 라는 정말 중차대한 해명은 바로 이렇게 밖에 이런 식으로 뿐이 등장할 수 없는 것입니다. 네, 그렇습니다. 저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저도 여기까지 오는 동안 고민 많이 했습니다. 잔머리 많이 굴렸습니다. 모든 경우의 수 다 따졌습니다. 과연 이걸 공표해도 되나, 이래도 되나, 옳은 일인가, 공정한가, 왜 지금인가, 꼭 내가 해야 하는가 라고 말이죠. 그러나 어쩔 수 없었습니다. 정말 가슴이 먹먹했으나 새 삶을 살아야만 했던 것이죠. 답은 하나였으니까 말이죠. 네, 그렇죠 그런 거죠. 속으로 아니야 아니야, 괜찮아 괜찮아, 미워도 다시 한번 좋아도 다시 한번, 정말 심사숙고하고 이제야 결정했습니다. 이건, 꼭, 알려야겠다고. 알면 제법 많이 실망하실 수도 있지만. 그래도 알려야겠다고 말이죠. 네, 그럼요......
(실례할께요 물 한 모금만 마시구요)......
자, 이제는 진짜 거두절미하고 정말 딱 끊어서 답을 하겠습니다. 곧바로 발표하겠습니다. 정말 그러겠습니다. 그것은 그 답은 바로 이와 같습니다. 왜 대체 왜 그 어떤 주제는 그렇게 반복되느냐? 그것은 이 때문이다. 왜냐하면 여자들이 원래 그렇기 때문이다. 그것에 대하여 몇몇 뭔가에 대하여 몇몇 어떤 주제에 대해서는 절대 절대 절대 그분들이 바로 여자들이 지겨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난 또 뭐라고?) 언제까지라도, 끝없이, 영원히 반복해도 지겨워하지 않는다. (이런, 젠장?) 그것을 알아야 한다. 그것을 알아야 한다, 남자들은. 물론 아직 설마... 하시는 분들을 위한 말이다. 이미 문제없이 그녀 몰래 무형의 리모콘 버튼을 슬쩍 눌러서 이렇게도 저렇게도 그녀의 마음을 자유자재로 요리하시는 최면술사께서는 이미 다 알고 계시는 얘기다. 이제야 답답하고도 답답하게 끙끙 앓으면서 지겹고 지겨우면서 어쩔 수 없이 반복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털어놓고 나니 속이 다 시원하다. 날아갈 것만 같다.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아 이제야 살 것 같다. 미치지 일보 직전이었다. 지금 당장은 소원이 없다. 오해를 풀고 염원도 풀고 게다가 악역까지 넘겼다. 심지어 그래, 웃겼다. 작게나마 웃겼다. 그럼 됐지 뭘 더 바래겠나. 그러나 우리, 쉬이 감동하지 말기로 합시다. 아직 갈 길이 멀다. 알고 싶은 신비로운 주제들이 쑤두룩하게 대기하고 있다. 긴장을 풀면 안 된다. 그녀가 바싹, 바짝 긴장하셨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좀 더 노력하자. 영차영차 열심히. 그러나 놀 땐 놀고, 일 할 때도 놀자.
어쨌거나 저쨌거나 무언가는 하트 뿅뿅으로 시작됐다. 그리고 사랑의 언어가 나왔다. 사랑의 본질, 역시 나왔다. 인생은 어떻다도 나왔다. 여자는 뭐다도 빠트리지 않았다. 게다가 참다운 사랑에 대해서도 잠시 언급했다. 뿐만 아니라 그녀를 웃기는 방법까지 나왔다. 더군다나 심지어 왜 그 무엇이 그렇게나 반복되는가 까지 나와버렸다. 이제는 할 얘기가 바닥났다. 점집 1인가 2인가 도사님 충고처럼 뭔가 긴 설명이 이어졌드니 체력도 바닥났다. 시간이 지나고 나니 거 그 점쟁이 꽤 용하구만! 그러나 마무리는 지어야 한다. 여자와 인생과 사랑과 어떤 동기까지 그 모두는 다 그녀로 귀결된다. 이 표어도 그녀 때문에 만들었다. 그녀 때문에. 끝끝내 남자 때문에? 아니 여자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다시 음미해본다. <사랑은 없고, 인생은 거짓말이다.>
그러나 정녕 사랑은 없을까 정말 인생은 거짓일까, 그것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만드는 상대를 만났다. 비로소 나는 그런 인생의 의미를 그 가치를 생각해보게 만드는 상대를 만난 것이다. 나는 풍각쟁이 그녀는 허풍쟁이? 바꼈나? 어쨌든 나는 물건을 만난 게 틀림없다. 물건을 다른 어떤 기분 나쁜 말로 바꾸지는 말자. 우리는 인생의 한복판에 있으니까. 어떤 단어인가 퍼뜩 떠오르기는 하지만. 거 너무한 거 아니냐고? 그게 더 나쁘다고? 아무래도 그 충언이랄까 스스로 느낀 충고를 참고 삼아 침묵하는 게 좋겠다. 썩 상스럽거나 화들짝 놀랄만한 말은 아니지만. 곧 그것이 뭐라고 절대 말하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절대로 말할 수 없다. 발설하면 안 된다. 그럼 된 거다. 어른들도 참 애들만큼이나 능청스럽구나. 난 아니야?
8
1주일 동안 나는 집에서 은닉했다. 꼭 유명한 스타는 아니지만 웬일인지 막 자숙하고 싶어졌다. 기분이 뭔가 평소와 다른 것 같았다. X에게 내가 너무 냉정했나, 괜찮은 남자를 소개시켜줄껄 그랬나 라는 후회도 했다. 조금? 아니 많이. 그리고 나는 집에서 바흐의 오르간 독주곡과 모차르트의 플룻 실내악과 협주곡, 칼 마리아 폰 베버의 몇몇 음악을 들었다. 그리고 조용히 잠시 외출해서 어떤 물건을 구해왔다. 생필품이랄지 <잠이 오지 않는 밤에>라는 제목의 책을 구해왔다. 그런데 그 책을 읽었지만 별 감흥이 없었다. 잠은 더 오지 않았다. 우울할 때 듣는 음악과 무슨 뇌파가 나온다는 음악도 들어봤는데 다 소용없었다. 싸고 푹신푹신한 소파를 인터넷 주문하고 배달받아서 앉아봤는데 영 느낌이 개운하지 않았다. 괜히 짜증이 나는 것 같았다. TV를 봐도 따분하기만 했다. 왜 그런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다 식탐에 빠졌고 술도 마셔봤다. 그것도 하루 지나니 재미없어졌다. 장엄한 풍경 사진이나 동물의 세계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봐도 그저 그랬다. 잠이 늘었다. 일상이 무기력했다.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놀러가자고. 거절했다. 귀찮았다. 키우던 화분 미니사과는 당분간 잘 키우기 어려울 것 같아서 동네에 사는 단편영화 감독 V양에게 맡겼다. 친하니까 막 시키고 부탁해도 괜찮은 사이였다. V양은 자신의 전-남자친구가 찍은 <프랑스 중위의 여자>라는 작품을 보고 영화감독이 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그러나 아직 첫 작품은 탄생하지 못했다. 남자친구와도 헤어졌다. 그러나 새로운 삶의 생기는 되찾았다. 전남친이 만든 그 영화는 이런 영화였다. <프랑스 중위의 여자>를 쓴 영국 작가 존 파울스의 사망 소식이 들려오던 날, 백혈병으로 죽어가던 어머니는 자신을 돌보던 아들에게 자신이 바로 책 속의 프랑스 중위의 여자라는 사실을 고백한다는 내용이다. 그건 그렇고 나는 이탈로 칼비노의 우주만화를 오른손으로,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재능을 왼손으로 필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시작하자마자 때려치웠다. 그럴 꺼면 뭐하러 시작했는지 모르겠다. 또 매일 철봉을 하고 있는데 추가로 팔굽혀펴기도 해야 할 것 같아서 시작했는데 이것 역시 얼마되지 않아 그만뒀다. 잘 때려치웠다. 괜히 시작했다. 어디 가기도 싫고, 멋진 옷을 사기도 싫고, 새로운 풍경을 보고 싶은 마음도 없고, 왕성한 지식욕도 아찔한 지성도 색정적인...이라기 보다는 종족 보존 본능에 기인한 욕구도 모두 귀찮기만 했다. 왜 그런줄 통 알 수 없었다. 그날은 아니었다. 나는 남자 중의 남자였다. 마법이야 날마다 걸렸다. 오늘의 운수를 다시 봐야 하나 라며 심각하게 고민도 해봤다. 그래봐야 소용없을 듯 했으나 꼭 그렇지는 않다고 내다봤다. 아무래도 그래야 할 꺼 같다는 결론이 도출됐다. 다른 방법은 없었다.
누구는 강 위에 있는 다리 그 위를 달리는 시내버스 거기서 제일 뒷자리에 앉아 물 위를 건너는 것을 좋아한다는데 나는 내가 뭘 좋아하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 바로 그것을 잘 몰랐던 것이다. 쉽지 않은 일이다. 지금은 21세기다. 어쩐지 지금 22세기인 듯한 환각 때문에 간혹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때가 있다. 페이스 팝콘의 책을 괜히 내다팔았다. 소장가치가 있었는데. 높은 곳에 올라가 사람들에게 돈을 뿌려볼까, 도 생각했다. 안 해 본 건 아니다. 그러나 난 그 정도로 돈이 많지도 않고 그것도 썩 기쁜 일은 아닌 것 같았다. 더군다나 지폐가 아니라 동전이라면 그건 중범죄다. 잡혀간다. 욕을 얻어먹는 정도로 안 끝난다. 그러다 나는 버스 동호회에 가입했다. 일반인은 생각치도 못하는 전문가들의 세계였다. 하지만 얼마지나지 않아 탈퇴했다. 나는 초현실을 바란 것도 아니고, 주위에 낭만이 부족하고 인생에 품격이 모자라고 매사 세상만사가 웃음이 부족하다고 불평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 세상은 우리 인생은 뭔가 부족하고 모자란 것만 같았다. 판타지도 지겨웠다. 진공청소기도 진작 중고로 갖다 팔았다. 즉석 복권과 정식 복권에도 당연히 손을 내밀었다. 괜한 짓이었다. 생활에 불만은 없다. 그러나 말만 그렇고, 뭔가 불만이 있는데 그게 무엇인지를 모르겠다. 딱히 새로운 경험을 원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그런데 대체 왜 갑자기 권태 가운데 전설적인 4번 타자가 하필 지금 이곳으로 날 찾아왔냐 라는 궁금증은 날 붙잡고 늘어졌다. 질긴 놈이다. 독종이다. 맹렬히 끈질기게 바지가랑이 붙잡고 늘어졌다. 실연당했나? 웬걸! 내가 허언증에 걸렸나? 아니다. 내가 너무 심한 허풍을 남발했나? 아니...ㄹ 것이다. 세상사에 너무 무심하고 사람들에게 더없이 무례하며,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과도한 쾌락에만 빠져 살았나? 내가? 아니다. 아니란 말이다. 모범은 아니지만 중간은 갔다. 그래도 살면서 그런 시절이 있긴 있었다. 그러나 잘 이겨냈다. 넘어져도 꿋꿋이 일어섰다. 그런데 왜? 왜냐고! 나는 오뚜기였고 생쥐였고 토끼였고 개였고 망아지였고 고양이였고 다람쥐였다. 심지어 나는 곰과 여우와 늑대와 너구리에도 비견됐다. 그리고 코뿔소이기를 바랬고 하마이기를 원했다. 먹을 걱정과 천적의 공격으로부터 비교적 안전한 그런 생활을 기반으로 하는 부리와 날개와 다리와 목과 깃털이 모두 긴 그런 새의 세계를 동경했다. 그러나 나는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살면서 약간의 의아함과 불만은 없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건 불가피한 일이다. 그러나 인생에 관하여 노련함을 깨우치는 청춘과 중년 사이 어느 즈음이 되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월요일은 골프치고 쇼핑하고 TV보고, 화요일은 여행가고 블로그에 글 올리고 영화 보고, 수요일은 집에서 책도 읽고 정원을 가꾼 후 시내에서 온종일 놀고 또 놀고, 목요일은 그녀와 단둘이서 멜로로 갈지 에로로 갈지 줄다리기를 하고, 금요일은 날 추종하는 후배와 로맨스 코메디를 연출하고, 토요일은 낮에 잠깐 야구동호회에 가서 축구를 했다가 저녁에 친구들을 만나서 클럽 가서 달리고 일요일 오전에는 프라모델 조립 동호회에 가고 오후에는 소개팅에 대타로 나가고 정말 이 정도 스케쥴은 기본으로 일년 내내 산다면 약간은 싫증을 느낀다는 것을. 그것이 꿈인 사람도 그 꿈을 이루고 나면 뭔가 허전함이 있다는 것을. 그래서 사람은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일을 하게 된다는 것을. 노는 게 일이라는 측면에서는 어른은 절대 어린이를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을. 허영심으로 똘똘 뭉친 눈총받는 줄도 모르는 푼수 중의 푼수로 살지라도 믿는 구석 하나 정도의 일거리는 마음을 쏟을 뭔가 적어도 하나는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일과 놀이 그 어느 중간이 대체 어디쯤인가를 고민한다는 것을. 행복은 과연 내게 어떤 존재인가를 진지하게 떠올려본다는 것을. 백 판 자빠져 노는 동네의 저 귀여운 강아지는 대관절 뭔 생각을 하면서 인생을 사는지 까지도. 그러나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난 지금 권태의 늪에 빠진 것이다. 딱히 정신병원 의사가 병명을 가르쳐주지는 않아서 임시로 권태라고 이름 붙인 것일 뿐, 원인도 모를 타개책이 불분명한 완벽한 슬럼프였다. 그러나 침체기가 길어도 너무 길고, 심해도 너무 심하고, 느닷없어도 너무 느닷없었다. 이유도 몰랐다. 밑도 끝도 없었다. 대체, 도대체 이 무심함의 정체는 뭘까? 그걸 모르겠단 말이다. 도저히 모르겠다. 못찾겠다 그 이유를. 결국, 에라 모르겠다 잠이나 자야겠다 라며 나는 꿈나라로 떠났다. 그리고 다음 날이 되었다.
9
나는 집에 머무르면서 조그만 소리가 나면 창밖을 내다봤다. 햇빛의 밝기와 각도가 바뀐 듯 하면 혹시 누가 대문 앞에 편지랄지 선물이나 어떤 정표를 가만히 놓고 가진 않았을까 하는 의혹감 때문에 문을 슬며시 열고 안 본 척 슥 확인하기도 했다. 내가 꼭 무엇을 바라는 건 아니었다. 기다리고 있는 어떤 소식도 없었다. 그리고 내 사랑을 잊은 것도 아니었다. 그건 그대로 온전했고, 그리고 영원할 것이다. 그것과는 별개의 문제다. 당신은 다시 태어나면 어쩌고저쩌고, 그것과도 연결시키지 말아주시라. 마초에게 좋은 약은 잘한다 잘한다 잘한~다, 다. 원래대로라면 드라마에서는 이쯤 해서 누군가 나타나서 나를 깜짝 놀래켜주어야 하는데 그건 희극이고 이건 현실이었다. 그래서 무덤덤한 게 정상이었다.
그러다 이상하게 누군가 날 부르는 무언가 암호화된 신종 외계의 언어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어디로 오라 같은데 정확한 해석은 어려웠다. 잘못 들었나보다. 환청일 수도 있다. 또 다시 누군가 날 부르는 손짓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일반적인 가시거리 밖의 아주 먼 곳에서 날 부르는 고요한 외침 같았다. 그러나 그것의 대상이 나인가, 정말 와주라는 요청인가, 반갑고 다정하게 날 부르는 그분은 가상의 존재가 아닌가, 그건 모두 하나도 확신할 수 없는 공상인 것만 같았다. 그러나 망상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마당을 거닐다가, 잔디를 고르면서, 수영장에서 고무보트를 타다가 진짜 누군가가 우리집 근처를 배회하고 사슴과 너구리가 알짱알짱거리며 뭔가 감시의 눈길이 따라붙은 듯한 불안감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괜한 걱정일지 모르지만 평소와 다른 뭔가 이상한 분위기와 직감을 근거로 하는 몇몇 징후가 포착되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어찌 하는 것이 좋을까, 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답은 없었다. 보기도 없었다. 참고할 만한 영감이 연상되는 감나무에서 감이 떨어지는 현상도 없었다. 누가 귀뜸해주지도 않았다. 그러나 나는 마지막 카드를 공표할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또 그것이 점집 탐방이라는 것을 인정하기도 싫었다. 누군가가 그냥 기분 전환 삼아 어쩌다 한번 들리는 게 뭐 그리 잘못된 것이냐고 한다면 썩 흔쾌히...는 아니나 마지못해 수긍하고 동행을 수락할 수는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시간은 쉬지 않고 규칙적으로 앞으로 진행됐고, 장소는 바뀌었고, 나도 이동했다. 나는 딱 그곳에 도착해서 어리둥절했다. 내가 여기 왜 왔지? 왜 출발했고 오는 중간 동안의 기억이 왜 희미하지? 그러나 내가 점집 3에 도착했다는 사실이 중요했고, 내 앞에 앉아있는 도사는 그녀, 즉 X라는 진실은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그곳은 우리 집을 기준으로 그 미술 마을과 반대편에 위치해 있었다.
10
「어? 여기 무슨 일이세요?」 X가 말했다.
「어? 너...... 점성술사였니?」 나는 그녀를 우연히 만나게 됐기 때문에 문득 공부를 무척 많이 한 무척 지성적인 노교수 같은 말투를 구사하게 되었다. 재회의 기쁨을 타인에게 들키기 싫었을까? 모르겠다. 그러면 좋았을까? 뭐가? 남에게 그 숨길 수 없는 미소를 왜 웃게 되었는지를 들키고 싶었냐고. 그건 모르겠다. 그걸 모르면 누가 알어? 아무도 몰라도 된다. 다 알 필요는 없다. 그게 정답이다. 내가 구사한 화법은 이랬다. 뇌리에 씌여지는 글을 그대로 읽듯이 발성하는 듯한 어법. 그것은 한동안 사용될 것이라고 쉽사리 예견되었다.
「실은, 배운지 얼마 되지 않았어요. (귓속말하듯이 한 손을 펴서 입가에 붙이고 조용조용한 어조로) 어디서 소문내시면 안되요! 아셨죠? 그런데 여긴 뭐 하러 오셨어요?」
「점 보러 왔지 뭐 하러 왔겠니? 안 그러냐? 다른 이유가 뭐가 있어? 안 그러냐?」
「이 양반이 운세가 궁금하기도 하지만... 대략 헤아려봤을 때 사랑 받고 싶어서 왔네. 얼굴에 딱 씌여있어요. 왜요? 제가 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만날 길이 없어서 서운했어요? 그랬죠? 맞죠? 푸하하하하, 농담이에요. 제 농담은 알아채지 못하게 눈치 채는 순간 이미 숙 들어와 있답니다. 마음에 말이죠. 그래도 적응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어요. 오히려 늦게 배우고 싶은 마음이 들 껄요. 아무 이유없이. 누군가의 마음에 노크하고 싶어질 테니까요. 그런데 있잖아요. 오빠, 어제 밥 혼자 먹었죠? 오늘도 혼자 먹었죠? 매일 혼자 드시죠? 그렇죠? 오빠는 취미도 혼자 하는 걸로 바꿨죠? 오빠 인생은 직진인가요? 어때요? 나 쪽집게 같죠? 푸하하하하. 마음이 썩 허전한 거 같으신데 어째, 몸은 혹시 부실하지 않나요? 아, 건강하시다? 제가 괜한 걸 여쭤본 걸까요? 허나 속으로 무슨 생각 하시는지 다 아니까 귀찮으시면 굳이 대답하지 않으셔도 된답니다. 지금 대충 진단을 하고 보니 오빠는 점을 볼 게 아니라 좀 놀아야 할 꺼 같아요. 오빠는 내내 실내에 있었는데 지금 이렇게 또 실내에 주저앉아 있을려구요? 그러면 곤란해요. 삶의 균형이 흔들린다니까요. 그대는 일도 열심히 하고, 생활 주기도 문제 없어요. 여행은 지금 떠나기엔 약간 힘들거나 사정이 여의치 않은 것 같아요. 클럽은...... 너무 소란스러울려나? 우리 이제 문제가 뭐라는 걸 알았으니 그만 일어서기로 해요. 어디 가고 싶으세요? 알프스? 나일강? 남극 탐험? 그런 거 말구요. 억지로 뭔가 거대하고 크고 멋져보이는 걸 답할려고 하지 말고 내면의 소리에 귀기울여봐요. 음 어리둥절하시니까 질문을 바꿔봅시다. 오빠는, 뭘 하고 싶으세요? 나는 무엇을 하고 싶다, 그게 뭐냐구요? 예? 사랑? 뭐 갖고 싶은 거라도 있어요? 오빠가 갖고 싶은 것은... 네? 저요? 네? 뭐라구요? 말이 잘못 나왔다구요? 아, 그럴 수 있어요. 뭐 먹고 싶은 건 없어요? 네? 잘 생각해봐요. 오빠가 먹고 싶은 것은...... 네? 제가 잘못 들었죠? 그렇죠? 뭐가 먹고 싶어요? 네? 놀랍도록 부드러운 아이스크림이 아니라 딱 알맞게 상큼하고 달짝지근한 사탕이 아니라 먹음직스런 케익이 아니라 향긋하고 정말 맛있는 뭔가 그런 음식이 아니라 그게 아니라...... 오 마이 갓! 어떨 때 보면 남자는 짐승 같아요. 하지만 오빠는 아니에요. 걱정마세요. 그냥 그렇다는 말이요, 오빠. 넘어가죠. 저는 도사고 오빠는 환자 아니 손님이니까요. 꼭 정탐하러 오신 건 아니지만 어쩌다 속마음을 들켜버린 겁쟁이인 거 같아요. 그렇죠? 뭐 알고 있으면 됐어요. 그럼 어디 가고 싶냐는 질문에 답하지 못한 건...... 이게 아닌데, 뭐 다 괜찮아요 일시적으로 그럴 수 있어요 오빠. 그게 건강한 거지 어디 불경스러운 건가요? 그렇죠, 오빠? ......(순간 그녀는 잠시 탁자 위에 놓인 슬픈 목소리는 커녕 아무 말도 없는 조화를 보고 또 인형을 보고 이렇게 말한다) 왜 얘가 이렇게 뒤집어졌지? 뭐야 이건 아예 발랑 까졌잖아? (인형을 가르키며) 넌 그것도 모르고 얘한테 홀딱 반했니? 정신차려 이년아~ 딱 보니 미래 어느 때가 되면 넌 그런 말 하겠구만 내 남편한테 껄덕대지마라래 어쩌라래 그러면서...(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갔다)... 자, 다시! 자, 평소에 안 해 봤던 거, 색다른 거, 다채로운 향락? 너무 음란한 건 안 되구요. 그것도 사랑에 필요하긴 하지만요. 아! 보기를 댈께요. 첫째 식물원, 2번 동물원, 3번 백화점, 4번 환상관, 5번 쇼핑센터 6번 마술극장. 오빠 그냥 제가 정할께요. 보기가 많으면 혼란스러울 수 있으니까요. 그래도 되죠? 좋다구요? 알고 있었어요. 1번 식물원으로 하죠. 그게 좋겠어요. 자, 뭐하세요? 지금 바로 같이 가셔야죠. 지금, 당장!」
「가게는... 어떻게 하고? 그런데 넌 혼자 말하고 혼자 답하는 것이 어쩜 네 취향과 일치하는가 보구나. 그 재주는 아주 탁월한데. 칭찬해줄만 해. 썩 훌륭하다구. 제법 괜찮아.」 물론 방금 말한 문장에서 나는 제일 앞에 <가게는... 어떻게 하고?>까지만 말했다. 나머지는, 나머지는 희망사항이었다. 그런 것이다. 얘는 어쩌다가 이렇게 말발이 센지 뭔 고생을 그리도 많이 했나 하면서 나는 그녀의 어떤 파란만장한 일생을 추측해봤고, 뭔가 그녀를 보살펴주고 싶은 마음이 울컥 솓구쳐오르는 걸 참지 못했다.
「귀한 손님은 왔다 가셨고, 오늘 매상은 이미 분기점을 넘었어요. 오빠 저도 좀 쉬어야죠. 더군다나 저 돈 많아요. 그리고 돈 욕심, 많아요, 하지만 오늘은 없어요. 저는 오늘 한 사람의 변심한 마음을 되돌렸고, 한 사람의 삶의 긍지를 북돋워줬으며, 한 사람의 향수를 자극하고 꿈에 대한 동경심 그것에 쌓인 뽀얀 안개를 흩트려 새로운 악상을 떠올릴 수 있는 힘을 굳건히 다지게 만들었어요. 저는 오늘 할일은 다 마친 거 같아요. 그러니 더더욱 놀 이유가 충분하죠. 때마침 반가운 손님이 오셨는데 그것도 오빠인데 그 이상의 명분이 뭐가 더 필요하겠어요? 지금까지 평범했으면 이제는 지극히 평범한 사실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할 이유가 뭐냐구요? 이제는 구태의연한 족쇄를 풀고 못 다 이룬 신비주의와 꿈을 찾아 모험을 떠나야죠. 무엇을 바라고 꿈꾸고 동경하고 원했다가 그것이 만족되는 경이로움의 그늘에 있는 뜻모를 상실감과 권태와 사전에 미리 포기해버린 행운을 이제 만회해야 하지 않겠어요? 네? 오빠 뭘 망설이세요? 어서 일어서세요. 촉망받는 동화의 세계가 우릴 기다리자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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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나는 X와 피치못하게 식물원으로 떠나게 되었다. 기분이 좋긴 좋았으나 의도는 합당했고, 썩 나쁜 일도 아니었으며, 그녀의 신선한 첫인상은 오늘 다시 만남으로 인하여 제법 건전하고 밝은 심상으로 이어졌지만 왠지 모르게 뭔가가 걸렸다. 아무 이유없이 뭔가 불륜을 조장하는 돌아온 싱글이 된 것만 같은 감정을 벗어날 수 없었고, 무엇보다 X는 여자였고, 숙녀였고, 예뻤고, 착할 듯 하고 돈도 많을 것 같았다. 내게 너무 잘 대해주었다. 요술도 마음만 먹으면 부릴 수 있을 듯 했다. 무엇보다 그녀는 전체 인원이 단 1명인 내 팬클럽 그 가운데 단 한명뿐인 열혈 회원을 자처했다. 그녀는 팬에게 향하는 내 사랑을 독차지하고 싶어했다. 물론 혼자만의 착각인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우리는 바로 목적지에 도착하지 않고 일부러 돌아가려는 것처럼 시내를 구경했고 몇몇 상점에 들렀으며 그러다가 어느 괜찮은 찻집에 들려 쉬었다 가기로 했다.
「제가 오빠 여자친구 있는 곳까지 안내할께요. 그곳으로 데려다 드린다구요.」
「너는 나의 여자친구를 아느냐?」
「아니요. 몰라요. 당연히 모르죠. 제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
「그런데 어떻게 날 희망의 나라로 데려간다는 거지?」
「그냥 해본 말이죠, 오빠도 참. 아, 농담을 진담으로 들으시면 어떡하나요? 이 양반 큰일낼 양반이네. 아니, 그게 농담으로 안 들려요? 네? 귀에 뭐 (귀를 보더니) 머리에 꽃을 꼿은 것도 아닌데 아니 그런데 오빠 왜 그래요? 완전 옛날 사람 같잖아요. 아 옛날 사람도 지식과 실정법과 누리는 혜택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의사소통에서 오는 차이는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고 그러던데요. 오빤 어쩜 어떻게 보면 꽉 막힌 사람 같아요. 속으로, 대체 속으로 뭔 생각을 그렇게 하나요? 응큼해요! 의뭉스럽다구요! 여자에게 믿음을 줘야죠. 안 그래요 오빠? 아 농담을 진담으로 들으시면 오해가 생기잖아요. 그리고 우리가 편한 오빠와 동생으로써, 친한 선배와 후배로써 좀 더 스스럼 없고 다정해질 수 있는 교제의 분위기를 방해하게 되잖아요, 네? 그렇잖아요. 이왕 이렇게 된 거 초현실주의에 매진하자구요. 동시에 현실에 집중하세요. 되든 안 되든 한꺼번에 해치우는 거에요. 꿈을 쫓는 건 그거고 이건 이거에요. 자꾸 오빠 때문에 저도 제가 뭔 얘기를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단 말이에요. 말이 꼬이고 계속 꼬여서 정신이 하나도 없네. 아 내가 못살아!」
「뭔 말을 하는지 나도 하나도 못 알아듣겠는데...(침묵)... 어김없이 넌 날 헷갈리게 하고 있어. 안 그러니?」
「와, 그러고 보니 오빠는 장난꾸러기구나. 그리고 오빠는 말투가 그게 뭐에요? 머머 하냐? 생뚱맞게 뭐뭐 하더냐? 글 읽는 것처럼 그게 뭐에요? 뭔가 지금 노는 게 약하다? 그래요? 오빠께서는 좀 더 즐겁게 놀고 싶다? 별로 재미없다? 오케이, (딱)! 제가 폭탄 선언 하나 할께요. 왜, 제가 탁자 건너로 가서 오빠 옆에 앉을까요? 그걸 바라세요? 편하게 말씀하세요, 어르신! 네? 오빠!」
「...... ......」 나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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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탄 선언? 얘가 뭘 말할려고 하는 거지, 라고 나는 생각했다.
「오빠! 그런데 있잖아요. 저, 남자에요! 됐죠?」
「뭐? 그게 정말이냐?」
「몰라요. 아무튼 걱정마세요... 저, 여자 좋아해요!」
「그럼 뭐, 내가 널 어떻게 해볼려고 마음이라도 먹었다는 얘기냐? 얘가 자꾸 사람 이상하게 만드네. 느닷없이 생사람 잡고 있어. 아주 엄한 쪽으로 재주가 있어. 어?」
「그런데 오빠, 친구 없죠? 네?」
「내가 친구가 없긴 왜 없어? 뭐, 친구 없죠? 지금도 만날 애들 얼마나 많은데. 주말만 돌아오면 아주 내가 골머리를 앓아요. 약속으로 그냥 꽉꽉 차! 평일이라고 다르지 않아. 선배, 후배, 동료, 친구, 지인, 모임, 기타 등등. 그리고 너 왜 말 돌려? 얘가 아주 영악한 애네. 어?」
「오빠. 지금 불행해요? 행복한 사람은 이런 때 발끈하지 않는데... 멋진 남자는 이 상황에 보통 이런 말을 하는 법이죠. 너는 오늘 술 한잔이 땡긴다! 오빠가 낭만이 부족하시네. 거 웨, 제가 옷이라도 한벌 사드려유? 네? 아 참, 오빠 차 뭐에요? 페라리? 포르쉐 구형? 설마 볼보 웨건 구닥다리? 서글서글한 거? 오빠, 여자친구 없죠? 내 그럴줄 알았어. 완전 허당이네 허당. 앗, 미안해요. 빈말이랑 농담을 간혹 잘 분간하지 못하시는데 제가 괜한 말을 했네요. 참말 한마디만 할께요. 오빠는 제 이상형이에요. 꺄악~!」
이때 이후로 X가 무슨 얘기를 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애석하게도 나는 그 순간 지금 겪는 이 일에 대해 어떻게 추리와 연애감정과 마술적 사실주의로 풀어서 글로 쓸 것인지 그에 관한 구상에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시 나는 꼭 진짜인 듯한 최면에 빠진 것 같다. 정말 내가 생각한대로 가까운 미래가 내 예상대로 척척 진행될 것 같은 예감을 느낀 다음 내 영혼과 육신이 일시적으로 분리된 것만 같은 착각 속에서 하나의 소재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은 이런 상상이었다.
나는 X의 손목시계를 들여다본다. 그녀의 손목시계는 고급스럽다. 그런데 그 멋진 초침이 째깍째깍 움직이다가 갑자기 정지한다. 그리고 초침만 정지한 것이 아니라 시간까지 멈춘다. 주변을 둘러보니 SF 영화에서 본 것처럼 모든 움직임이 정지됐다. 모든 생명체의 움직임이. 그러나 나는 움직일 수 있다. 나는 멈춰있는 그녀를 관찰하다가 그녀의 그림자가 없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오, 이럴 수가! 그때 그녀의 모습이 차츰 희미해진다. 불투명했는데 반투명했지고 점차 투명해진다. 서서히 몸체가 증발한다. 거의 기화됐다. 마지막엔 아무 것도 남지 않았다. 그리고 곧바로 나는 숫자 셋을 세는 음성과 손가락 딱 소리에 깨어난다. 그곳은 점집 2다. 그리고 나는 운세를 보고 어쩌고 일을 다 본 후 점집 2를 나온다. 그러다가 X를 만나게 된다. 나는 그녀와 초면이지만 우린 초면이 아닌 것이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살았던 그대로 산다. 그러다 나는 X의 손목시계를 들여다본다. 그녀의 손목시계는 고급스럽다. 그런데 그 멋진 초침이 째깍째깍 움직이다가...... 그 순환에서 탈출할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 문제를 푸는 이야기를 쓰면 어떨까 라고 생각했다. 내가 떠올려본 공상은 이러했다.
그렇지만 별로 재미없을 듯 하여 나는 그것을 잊어버렸다. 핸드폰에 음성으로 수첩에 글로 남길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았다.
그러다 그녀가 어딘가로 가자고 해서 난 그녀를 따라 찻집에서 나왔고, 우리는 식물원 대신 클럽에 가게 되었다. 클럽에 들어갔다. 클럽의 이름은 모르겠다. 클럽에서는 그녀의 친구가 생일 파티를 하고 있었다. 모두들 앳된 청춘들이었다. 파릇파릇했다. 생기가 넘쳤다. 모두 잘나가는 친구들 같았다. 하나같이 춤도 잘 췄다. 각자 또 같이 웃고 떠들고 얘기하고 모두 즐거워보였다. 한없이 기뻐하는 듯 했다. 행복해보였다. 나는 그곳에서 이방인이 된 것만 같았다. 그녀는 처음에 날 챙겨주는 듯 했지만 친구들에게 붙들려 이리저리 옮겨다니며 노느라 더이상 날 챙겨주지 못했다. 역부족인 듯 보였다. 아무도 나와 놀 생각이 없는 것 같고 또 너무 시끄러워서 난 위스키병을 한병 들고 그곳을 나와버렸다. 내가 보고 구경한 건 모두 허상인 것 같았다. 나와서 보니 병은 최고급 위스키였는데 새것이 아니었고, 안에는 그냥 설탕물 같은 음료수가 들어있었다. 저런! 그렇게 거리를 정처없이 걸어다니다가 나는 저 앞에 보이는 점집 4에 들어가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나는 그곳의 대문을 열었다.
13
점집 4에 들른 후 특별한 물품이나 다른 이상한 점은 발견하지 못했다. 실내에는 집중력을 높여주는 백색 소음 같은 음향이 흐르고 있었다. 도사는 특별히 고전음악을 좋아하는지 CD가 한쪽에 단정히 정렬되어 있었다. 그 옆에는 로맨스 소설도 보이고 또 마림바와 노트북과 증강현실 게임용 헤드기어 같은 물건도 보였다. 앞에 계신 도사는 백발이 성성한데 이해가 안 되는 게 수염은 검정 수염이 많이 섞여서 전체적으로 쥐색을 띄었다. 온통 백발이면 수염도 눈썹도 대충 구색이 맞아야 하는데 그게 약간 뭔가 어울리지 않아보였다. 그리고 우리는 보통 점집에서 가장 많이 오고 가는 의례적인 대화의 흐름을 이어갔다. 그래서 나는 어쩐지 그 진지함과 심오함을 깨트리고 싶어졌다. 그래도 이곳은 어떤 영적인 장소이기 때문에 참아야 한다. 그러나 그걸 깨달았을 때는 이미 내가 실언을 하고 난 후였다.
「영감님, 그 수염 가짜죠?」
도사는 내 말을 먹었다. 한참을 기다려도 답변은 없었다. 엄한 말을 내뱉은 나만 어색해졌다. 그는 두꺼운 책을 매우 면밀히 살피고 있었다. 꼭 그림책을 보면서 숨은그림을 찾는 것처럼. 아마 저 책은 운세에 관한 교본일 것이다. 정통적인 개론서 같은 거. 나도 그 책만 달달 공부하면 1주일이면 웬만한 점쟁이처럼 점을 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한가하게 점이나 보면서 희희낙락, 때로는 불평과 불만에 가득 차서 따분하게 시간을 보낸다며 뚱한 표정을 지으며 쉽게 쉽게 노는 분위기는 바로 거기까지였다. 그때 이후로 나는 바짝 긴장하고 초조해 했으며 식은땀을 쉴새없이 흐르는 것을 알면서도 어찌 할 수 없었다. 완전 공포의 험악한 기분으로 일관되어 운세보기를 즐길 수도 그렇다고 그곳에서 도망쳐나올 수도 없었다. 왜냐하면 도사의 머리 윗편을 살짝 봤는데 그쪽 벽면에 액자 세 개가 걸려있었기 때문이다. 액자 밑에는 1대 누구 언제부터 언제까지, 2대 누구 언제부터 언제까지, 3대 누구 언제부터 언제까지 라고 씌여 있었다. 이 도인이 속한 어느 문파의 역대 수장들이 나열되어 있겠거니 예측했고, 3대는 이 양반의 스승이나 직계 선배 또는 혈족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내다본 후 나는 그냥 고개를 돌릴려고 했다. 그러나 오 어쩐다냐, 이게 웬일이야! 맙소사!
1대 누구 괄호 열고 몇 년 물결 표시 몇 년, 그리고 2대와 3대도 똑같이! 바로 그것은 내가 최근 들렸던 점집 1, 점집 2, 점집 3의 점쟁이들이었다. 처음엔 닮은 사람일 꺼라고 짐작했다. 또 괄호 열고 몇 년 다음에 물결 표시 다시 다음에는 연도가 씌여 있지 않겠거니 했다. 그런데 정확히 언제라고 명시되어 있었다. 1대와 2대는 사진도 흑백이었다. 다시 봐도 또 다시 봐도 아무리 봐도 분명 내가 점을 봤던 그 양반들이 틀림없었다. 그분들이 내 운세를 봐주고 즉시 액자 속으로 들어간 것도 아닐 것이다.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것도 아니다. 점집 2에서 증강현실과 최면에 걸려서 환상을 체험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런 미친......! 뭐야 이거? 정말 나는 미칠 것만 같았다. 그리고 내 앞의 영감님은 책을 보시다가 졸고 계셨다. 아예 곤히 주무시기 시작했다. 꼬부랑 할아버지는. 그럼 잠깐만, 이분이 4대라면 5대는 누구일까? 나? 뭐시여, 그건 아니야 아니라고. 뭔 그런 몹쓸 상상을! 나는 살며시 일어나 액자 곁으로 다가갔다. 그것을 만져봤다. 대충 만든 게 아니었다. 가짜인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슬슬 겁이 나기 시작했다. 먼저 이 점집에서 나갈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리고 여러 가상의 예상되는 이야기가 살짝 떠올랐다가 막 서로 엉키기 시작했다. 대책이 떠오르지 않았다. 순간 오디오에서 백색 소음 다음으로 실제 우주 음향, 각종 유인 무인 우주선이 녹음한 우주의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완전 쫄았다. 바지에 약간 오줌을 지렸다. 나는 개였다. 개보다 더 했다. 그러나 잘 참았다. 이제 게임이 시작된 듯 했다. 본격적인 막이 오른 듯 했다. 하지만 상대가 누구인지, 게임의 규칙은 무엇이고,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무 것도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더 까마득하고 정신이 텅 비어버린 것만 같았다. 그러므로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은 뭐였겠나, 아무 것도 없었다. 곧 나는 마음을 자의적이 아니 어쩔 수 없는 처지 때문에 비우게 되어 무념무상의 경지에 이르렀고, 따라서 나는 막 지어낸 듯한 썩 세련되지 못한 어느 지침을 따라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바로, (잘 이해가 되지 않으면) 무시하라(!), 그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곳을 몰래 빠져나왔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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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집에서 평소와 다름없는 무료한 생활을 이어갔다. 아마 한동안 운세를 보러갈 의향은 날 찾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사는 고을에서는 1년에 한 번 정기적으로 열리는 지역 축제가 열리기로 되어 있었다. 곳곳에 광고와 안내의 글과 말이 어딜 가나 가득했다. 작년 축제 때 즐겁게 구경하고 어울려 놀기는 했으나 나는 이번에는 조용히 혼자 집에서 지낼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동네를 산책하다가 어느 벽보를 발견했다. 몇 회 역술인의 밤을 축제 기간에 어디서 연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그것을 발견하자마자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서둘러 고개를 돌리고 제 갈 길을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잊었다. 떠올리기 싫었다. 기억을 거부했다. 그러나 이미 읽었고, 기억됐고, 게다가 또렷히 저장됐다. 그것은 깊이 각인되어버렸다.
그날부터 나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시골 천변에 나갔다. 가서 무작정 노을을 구경하고 달을 주시했다. 그건 마치 완전 헤어진 것은 아니지만 각자의 사정 때문에 자연히 멀어진 남녀가 연인을 잊지 못하고 매일 술을 마시는 일과도 흡사했다. 그리고 나는 구스타프 말러의 1번 교향곡과 더불어 많은 음악가들의 1번 작품만 들었고, 도시에 갈 때는 1호 버스만 이용했고, 하루에 녹차는 딱 1잔, 모자를 쓸 때는 꼭 챙을 1시 방향으로 틀었으며, 옛날 자기는 밤 1시에 잠든다는 그녀의 말이 떠올라서 나도 새벽 1시에 잠들었다. 낮 1시에는 항상 단골 빵집에 들러서 카페라떼와 조각 케익을 먹었다. 외출할 때도 최대한 1가지 색상 계열로만 옷을 입었고, 하루에 완수할 과제는 1가지를 넘기지 않았고, 하루에 약속도 1개 책도 1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기 전에는 다른 책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별 쓸데없는 징크스가 생긴 것이다. 그것과 저것이 관계는 없지만 왠지 나는 우연히 생긴 법칙을 한동안 준수하면 그 역술인의 밤에 참석하고 싶은 욕망을 수월히 잠재울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러나 예상은 어김없이 빗나갔고, 의지도 부족했다. 뿐만 아니라 D-데이 말미에는 잘 지키던 규칙을 조금도 아니고 아예 무분별하게 어기기 시작했다. 어쩌면 그것은 운명이었을 것이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어쩐 일인지 그걸 피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사는 동안 내내 패배주의에 젖어서 소심한 인생을 살게 될 것만 같았다. D-데이 3일째부터는 나도 모르게 가슴이 먹먹했다. 그러던 중 차차 결전의 날이 임박하여 슬슬 초조해지기 시작하다가 마침내 2일 전에는 이렇게 생각을 바꿨다. 만약 X가 날 찾아온다면 찾아와서 같이 그곳에 가자고 한다면 꼭 거절할 필요가 있을까 라고. 그리고 결국 하루 전에는 또 이렇게 변심했다. 만일 X가 오지 않는다면 그건 뭔가 앞뒤가 맞지 않고 나는 초대도 받지 못했으므로 아무래도 쳐들어가서 대체 왜 날 부르지 않았냐고 따지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 설마 뭔 일이야 있겠어? 내가 뭐 죄졌어? 그렇게 혼자 생각했던 것이다.
15
그날이 됐다. 행사는 평범했다. 모임은 소란스럽지 않았다. 나는 절대 그런 모임에 참석하지 않을 꺼야 관심 없어, 라는 첫 다짐은 쥐도 새도 모르게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나는 행사 당일 행사 장소에 있었다. 마치 행사 관계자인 것처럼. 그곳에는 내가 아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공짜 음료수와 공짜 샴페인이 제공되길래 처음에는 격식을 갖추고 홀짝홀짝했다. 말을 나눌 사람도 없고, 중간 중간 펼쳐지는 마술쇼와 연기와 공연은 하나도 재미있지 않았다. 그러다 살짝 취기가 올라왔다. 나는 기분이 다시 좋아졌다.
당시 나는 뭐랄까 잊고 있던 막연한 애원 하나를 떠올렸다.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만 당시엔 뭔가 원하는 구석이 있었나 보다. 그렇게 밖에 추리할 수 없는 일이다. 그 애원은 이랬다. 부디 그분들을 만났으면, 하는 바램이 있었던 것이다. 제발 내가 점집 4에서 헛것을 봤기를. 나는 그렇게 기원했다. 간절히 빌고 무작정 재회를 바랬다. 오랜 기간 못 만난 인연은 아니지만 만약 그분들과 해후할 수 있다면 내 삶이 앞으로 더 재미없어져도 괜찮을 것만 같았다. 어차피 항상 심심한 인생, 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큰 변화는 없을 거라고 예상했다. 더 이상 무덤덤해질 고비도 없었고, 왕성한 유흥 욕구와 쾌락만을 탐닉하는 본성보다 나는 언제나 고전적인 학문을 탐구했으며 명상을 하고 지성과 예술을 가까이했다. 극장에는 갔으나 삼류 비디오는 멀리했다. 그리고 어디 믿는 구석도 없으면서 그분들을 꼭 다시 만날 것으로 내다봤다. 감격적인 만남, 극적인 포옹 그리고 어디식 인사까지? 마지막 껀 한분과만?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같은 말이 생각난다. 그런 노래 제목과 술집 이름, 흔하다. 그러다 다시 술이 깰려고 했다. 나른한 조증에서 엷은 울증으로 느닷없이 전환할려는 국면이 얼마 남지 않은 듯 했다. 그래서 나는 쟁반 위에 공짜 발포성 와인 잔을 들고 다니시는 나비 넥타이를 맨 아저씨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 나는 내가 점집 1에서 만난 주술사를 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긴가민가했다. 그분이기를 바랬고 그 소원은 이루어졌다. 마치 거짓말처럼. 오, 이럴 수가! 드디여! 일반인의 윤택한 삶을 위하여 쟁쟁히 현역으로 활동하시는 도사 1님의 정정하고 밝은 모습을 포착한 순간 나는 거짓말 조금 보태면 날아갈 듯 했다. 반가움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분 옆에는 점집 2에서 봤던 만담에 능숙하신 신사에 가까웠던 도사님이 계셨다. 1과 2가 각별한 사이처럼 보였다. 적어도 서로 상도덕으로 얽힌 사이는 아닌 듯 했다. 나는 지면에서 떠오를 것만 같아서 뭔가 주변에 잡을 것을 찾기 시작했다. 까딱 잘못해서 엄한 걸 잡으면 안되니까 잠시 의자에 앉기로 했다. 점집 4 사장님도 참 짓궃기도 하지. 개구쟁이 어르신. 아니면 정말 내가 잘못 봤든가. 보기는 제대로 봤는데 나의 가짜 경험일 수도 있다. 또는 거짓 사진이거나. 그러나 대충 돌아가는 형국을 보니 뭐 어떻드라도 괜찮을 것 같았다. 저분들은 정말 사자였고, 이곳은 그림자 없는 사람들의 가장무도회였으며, 이분들은 모두 모임이 끝나면 각자 액자로 앨범으로 책 속으로 동상으로 TV 화면 속으로 들어가야 할 숙명이라면 그건 다름 아닌 허구일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이 세상은 허상이다. 인간의 삶은 너무 허무하다. 그리고 나는 허당이다. 또 문학은 허풍이다. 사랑은 허식이고, 어떤 약조는 허위다. 예의는 허례고 소비는 허영이다. 이처럼 목적지 없이 부풀어오르는 상상의 영화로움과 서사의 호사로움은 무대에 올라 마이 웨이를 열창하시는 실사장인지 대타인지 불분명한 점집 4의 도사님을 보는 순간 최고조에 이르렀다. 그때의 찬탄은 비로소 환희와 열락에 이르렀다. 아조 정점을 찍었다. 12시에 나는 호박마차를 타야 하고 이분들은 모두 생쥐로 바뀔 것이라는 장애물 같은 속임수와 헛된 공상은 여지없이 거짓이라고 밝혀졌다. 억측은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막다른 골목에서 환상을 만났고 대천사의 호의 때문에 시간은 마치 거꾸로 흘러가는 것만 같았다. 유유히 그리고 아름답게 하지만 더더욱 즐겁게 말이다. 나는 여기까지만 게임을 즐기고 이제 돌아갈 시간이 됐다고 판단했다. 늦으면 취하고 추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그분들을 뒤로 하고 바깥으로 나가기 위해 문을 열었다. 그런데, 어머나!
문 앞에서 숙녀 X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극단적이게 이성적으로 생각해보자면 그녀가 과연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가 그것은 확신할 수 없었지만 또 그렇지 않다 라는 것도 말이 되지 않았다. 또 그녀도 날 피할 이유가 없었던 것 같다. 그녀는 꼭 내가 지금 이때 나올 것이라는 것을 알고나 있었다는 것처럼 나를 기다렸던 것이다. 그러나 기쁨은 잠시! 아, 다시 우울감이 부쩍 상승했다. 즐거움이 너무 커서 환상통이 유예되었다가 한꺼번에 찾아왔으며, 허언증의 부작용이 도졌나? 뭔지는 모르겠으나 왠지 속는 건 아닐까 라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슬퍼할 아무런 까닭이 없었는데 나는 도둑이 제 발 저린 듯 자수하여 광명을 찾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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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X를 보고 반갑게 인사를 할 수 없었다. 말문이 막혀버렸다. 그녀는 가슴에 3번이라는 명찰을 달고 있었다. 설마 그녀는 유령? 아닐 것이다. 여기 이렇게 실체가 분명하게 있는데 그럴 리는 없다. 그건 말도 안 된다. 그렇지만 날 뒤에서 잡아끄는 세한 느낌 그건 뭘까? 그녀는 괴물?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 옛날 세상도 아니고 첨단 문명과 그것은 절대 공존할 수 없는 법이다. 그러나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불안감 때문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인사도 할 수 없었다. 그녀를 다시 볼 수 있어서 너무나도 흐뭇하고 좋고 기뻤으나 나는 인사조차 할 수 없었다.
그녀는 눈탱이를 한대 맞은 것처럼 눈화장을 하고 있었다. 아마도 다크 써클까지 심하게 앓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재빨리 기억의 필름을 되감았다.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그때를 떠올렸다. 그녀는 내게 어떻게 대했드라, 나는 또 뭐라고 했드라... 아무래도 역할에 어울리지 않게 나의 앙탈이 좀 심했던 것 같아서 후회가 된다. 진심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미 지난 일이다. 그러나 그때와 지금을 비교해야 한다. 포기할 수는 없다. 다시 관계를 따스하게 되살려야 한다. 온기는 시간이 지나면 살아날 것이다. 기억해내야 한다. 할 수 있다, 나는 할 수 있다. 그동안 동기부여 강연회와 홈쇼핑 판매용 비디오에 가져다 바친 돈이 얼만데! 나름 독학으로 갈고 닦은 술법은 뭐고 익숙하게 체득한 처세술은 다 어디 갔냐고! 내가 그동안 얼마나 많이 속고 얼마나 많이 방황했는데! 모진 풍파와 숱한 고초를 겪었으면 이제는 우연한 마주침이든 잘못된 만남이든 자연스럽고 지혜롭게 대처할 때도 됐다. 언제까지 내 인생의 조연만 맡고 기쁜 인생의 변두리만 떠돌 수는 없는 일이다. 눈치는 물론 연기력도 늘었다. 말발, 늘었지 안 늘었겠나. 그러나 어째 이상하게 그녀의 진기한 위세 앞에 나는 한없이 쪼그러들었고 이건 마치 바람 앞의 등불과도 같았다. 하지만 나는 기억을 되살려내는데 성공했다. 얍─얍─얍! 앗싸! 야호!
「안녕, X! (앗 아니다. 이건 예전 처음 만났을 때 그녀가 건넨 말이 아닌데... 다시 시작하자. 그러면 된다)... 오, 엑스마키나! 예뻐졌네, 농담이야! 푸하하하하하 푸하하하하하... (오, 이런! 망했다. 왜 이런 말이 튀어나왔지? 게다가 얘는 엑스마키나가 아니라 엑스인데... 이젠 심지어 그녀 이름이 X가 맞는지 그것도 확신할 수 없게 됐어. 점점 상황이 악화되고 있단 말이야)... 있잖아, 난 말이야. 네 남자친구가 어디 있는지 알아냈어. (그래, 이거다. 이거라고. 그냥 막 던지는 거. 그게 내 전공이니까) 아가씨, 전 미래에서 왔어요. 나를 알고 있지? 우리 친했잖아? 처음에는 많이 다퉜지만 금새 원앙새처럼 가까와졌던 거 기억하니? 도대체 넌 누굴 닮아 그렇게 똑똑하니? 할아버지? 할머니? 안 웃기지? 나도 알아. 아마 감격스러워서 재회가 너무 반가워서 내가 조금 이상해졌나 봐. 이렇게 다시 만나니 기분이 어때? 설마 다시 못 볼 꺼라고 생각했던 건 아니지? 그동안 어떻게 살았어? 많이 보고 싶지는 않았어? 내가 아니라 네 남자친구 말이야. 외로웠니? 여자는 질문 받는 걸 좋아한다는데 음, 지금은 썩 그렇지 않은 거 같은데. 우리, 포옹할까? 아님, 키스? 아니면 뭐, 뭐? 도대체 뭘 바래? 어? 뭘 바라냐고! 말을 하란 말이야 말을, 어? 아, 화내는 거 아니야. 기분 풀어. (내가 너무 세게 나갔나? 알 게 뭐야!) 너 지금까지 남자 몇 명 만나봤어? 거짓말 할 생각일랑 접는 게 좋을 꺼야. 척하면 척, 다 안다구. 1명? 에게~ 정말? 10명이구만. 더 돼? 다들 뭐하는 놈들이야? 뭐하는 녀석들이었냐고. 나에게는 너를 너의 남자친구에게 데려다줄 책무가 있지만 난 널 쉽게 보내주진 않을 꺼야. 왜냐하면 넌 내 이상형이니까. 그리고 내가 과거에서, 아니 미래에서 왔다는 거 그것만 기억해두렴!」
나는 말하고 나서 그나마 완전 꽝은 아니라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얘는 아까부터 말이 없었다. 너무 조용했다. 왜 말이 없을까?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 왜 말이 없냐고!
이때 이후로 나는 할말이 떨어졌다. 이상하게 즉흥적으로 여자 꼬실 때 하는 말들조차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고 예의상 숙녀에게 물어보는 그런 말들 역시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다. 상황으로 봤을 때 지금 이 친구는 모성애를 자극하는 건가? 남자에게 모성애... 부성애? 측은지심? 모르겠다. 내가 봤을 때 아무래도 얘는 사랑에 실패한 거 같았다. 그럴 가능성이 농후했다. 난 그냥 옆에 있어주면 될 꺼 같았다. 그게 최선인 듯 보였다. 말없이. 조용히. 그렇게. 그리고 우리는 그곳에서 나왔고 같이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지금 멀리 어딘가에서 우연히 들리는 노래가 있다면 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 그런 제목의 사랑 노래? 그건 아닌 듯 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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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나는 X와 나란히 걸었다. 그러다 우리가 일상적인 대화를 나눌 시기는 아니기 때문에 나는 혼자 생각했다. 얘는 지금 어떤 알 수 없는 슬픔 때문이 아니라 원래 이렇게 발걸음이 느린 것은 아닐까 라고. 그러다 우리는 어느 조용한 공원 옆을 지나고 있었다. 이때쯤부터였을 것이다. 나는 그녀보다 반 보쯤 뒤쳐져서 걸었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그러다 나는 한눈을 팔았다. 그때 내 전화가 울렸다. 무슨 전화지, 하면서 나는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수화기 너머로 아무런 말이 없었다. 이때 난 옆을 쳐다봤다. 그녀도 전화기를 들고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얘가 나한테 전화를 걸었나 라고. 그러나 그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어떤 남자와 통화하는 듯 했고, 내게 걸려온 전화는 잘못 걸려온 전화였다. 나는 그녀의 대화 내용을 엿듣는다는 오해를 사기 싫어서 우리의 보폭은 한 걸음으로, 그것은 다시 한 걸음 반으로, 그녀가 전화 통화를 마칠 때에는 두 걸음으로 멀어져 있었다. 그러나 더 이상 멀어지지는 않았다. 우리, 라고 지칭하지만 그건 어쩌면 X와 나의 마음의 거리일 것이다. 나는 뭔가 움츠러드는 자신을 느꼈고, 그녀의 이름은 아마도 X가 아닐 것이라는 의문을 잡고 늘어졌으며, 마침내 나는 그녀의 이름이, 그것이 잘 생각나지 않았다. 혹시 그래서 내가 그녀를 그냥 X라고 알고 있었던 듯 하다.
갑자기 그녀는 심경의 변화를 일으켰는지 거리에 보이는 옷가게로 걸어갔고 그곳에 들어갔다. 나는 잠시 멈칫했지만 곧바로 따라 들어갔다. 그녀는 줄곧 쇼핑만 하다가 어느 원피스가 마음에 들었는지 그 옷 앞에서 어쩜 만족스러운 듯 의뭉스러운 듯,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인지 흡족하다는 것인지 잘 모를 듯한 상당히 난해한 표정을 짓다가 그 옷을 들고 옷을 사기 전에 입어보는 쇼룸에 들어갔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그녀가 기분이 풀리고 다시 웃는 모습으로 돌아오고 청아한 목소리로 노래하는 듯한 청량감을 동반한 다변을 되찾는 것은 비로소 시간 문제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나는 내가 너무 쉽게 마음을 놓는 것은 아닐까 라는 예측하기 어려운 어떤 돌발성의 가망에 대한 판단에 대해서 잠시 가만히 전후좌우 따져보기 시작했다. 딱히 별일은 없을 것 같아서 다시 기분이 좋아질려고 했다.
바로 그때, 분위기가 좋아질려다 말았다. 왜냐하면 그녀는 피팅룸에 들어갈 때 가방을 놓고 갔기 때문이다. 옷을 구경하다가 거울 앞에 있는 의자에 가방을 놓고 갔다. 가방의 재질은 가죽이었다. 겉에 적힌 글씨는 나는 '판타지'라고 읽고 싶은데, 어쩜 이럴 수가! 정말 그것은 판타지였다. 나는 그녀의 가방을 들춰보고 싶어졌다. 그렇지만 그건 실례다. 그건 아니다. 딱 내가 잠깐만 알맞는 핑계를 미리 떠올려놓고 가방을 뒤지다가 그녀가 딱 나와, 오 이 인간이 내 가방에서 뭘 훔칠려고 그래 날 뭘로 보고 말이야 이런 소도둑놈 같으니라고, 철~썩! 아무래도 이건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그녀를 기다리면서 혼자 몽롱한 공상을 했다.
공원에서 우리는 나란히 걸어가다 그녀가 내게 슥 팔짱을 낀다. 나는 깜짝 놀라며 팔을 뺀다. 그러다 우리는 공원 벤치에 앉는다. 그녀는 저쪽을 쳐다보는 척 하면서 엉덩이를 살짝 들어 내게로 한뼘 다가온다. 앉은 채로. 나는 이쪽을 쳐다보는 척 하다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고민한다. 다시 그녀는 이번에는 저쪽을 쳐다본다. 그리고 나는 이번에는 반대편을 쳐다볼려다가 얼굴을 살며시 돌려서 남녀 간의 그런 분위기를 잡을려고 하는데, 그런데, 어머나! 내가 정말 어렵게, 진짜 어쩔 수 없이, 너무도 불가피하게 꾹 참고 어느 정도까지만 선행을 베푼다는 의미를 바탕으로 청소년 드라마를 찍는다는 생각으로 농밀한 그런 거 말고 적당한 뭔가 풋풋한 그와 같은 가르침을 전해야겠다, 바로 그런 심정으로 나는 그녀에게 딱 고개를 돌렸는데, 오 이럴 수가, 말도 안 돼! 믿을 수 없어! 이런, 개뿔! 그녀는 사라졌다. 감쪽같이. 분명 인기척도, 곁눈질로 확인한 환영도, 달콤한 분위기도, 가공할 만한 효과음이 들리는 환청도, 짠한 느낌도, 찡한 애정도, 키스를 부르는 립글로즈의 눈부신 반짝임도, 가슴 뭉클함과 부푼 기대감도 다, 모두 다 진짜였는데! 그런데, 그녀가, 사라졌다. 완벽하게! 완전히! 그리고 저 앞 나무 옆에 웬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앉아있다. 야~옹 야~옹 하면서. 그녀는 마녀일까 장난꾸러기일까? 그녀의 이름은 네로? 메롱? 혹시라도 저 고양이는 남자일까? 저 고양이는 그녀가 아닐까? 나는 귀신에 홀린 것인가? 그녀는 정말 미래에서 왔을까? 그녀는 나에게 뭘 가르쳐주고 싶어서 여기에 왔을까? 그리고 결과적으로 나에게 가르쳐준 것은 무엇일까? 이별하는 법? 작별 의식? 사랑? 아니면 허풍? 혹시 난 미친 것은 아닐까? 아니다. 물론 아니다. 왜냐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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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이것은 피팅룸에 들어간 그녀를 기다리며 나 혼자 몰래한 사랑이 아니라 몰래한 상상이었기 때문이다. 이때까지는 좋았다. 조금 즐거웠다. 엷디엷은 기분 좋은 흥분은 남아있었다. 그러나 그 기쁨의 흐름이 끊기면 무척 슬플 것 같았다. 그러므로 나는 아무래도 그녀를 지켜주기 위하여 어디까지나 그녀의 안위를 걱정하는 의미에서 그녀의 가방을 조사해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녀의 가방에 혹시 불법 파일이 담긴 USB가 있으면 어떡하나, 007 가방처럼 그녀의 가방이 바꿔치기 당했으면 어떡하나! 나는 천재적인 추리력의 소유자였고, 위대한 이타적 낭만주의자였다. 최소한 지금은, 적어도 여기서는. 그냥 가만히 샌님처럼 묻는 말에 답만 하고, 언제 손을 잡을지 어떻게 집에 바래다줘야 할지 하나도 모르고 좌충우돌하는 쑥맥이나 거꾸로맨은 내가 지향하는 우상이랄지 도달해야 할 목표가 아니었다. 그건 바보고, 난 그녀의 이상향이고 그녀의 천사요 왕자님이었다. 따라서 나는 그녀를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었고, 때문에 나는 그녀의 가방을 조사해봐도 괜찮은 것이다. 그럴 것이다.
판타지라고 써있는 그녀의 가방 안에 혹시 블로그라는 제목의 공책이 나오면 어떡하지? 어떡하긴 뭘 어떡해! 지금 읽던가 아니면 내 속옷 안에 넣어놨다가 나중 읽어봐야지. 아니야. 아니라고. 괜히 흥분하지 말기. 거기까지만 알고 다시 넣어놔야지. 곱게. 고이. 그렇지.
그러다가 나는 별의별 생각을 다 하고, 이것저것 다 따져보고 나서 그녀의 가방을 열어봤다. 와우! 이런, 거북이가 잠꼬대하고 당나귀가 구토하고 토끼가 런닝머쉰을 뛰는 일이라니! 어떻게... 이런 일이...! 다른 게 아니라 그녀의 가방은 텅 비어있었다. 그것도 그냥 텅빈 것이 아니라 그 빈 공간은 무척 깊은 것 같았다. 무언가 우주의 기운과 4차원의 신비가 느껴지는 그런 허공이었다. 정말 고요한 침묵의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게다가 막 빨려들어갈 것만 같았다. 진짜 머리카락은 그쪽으로 쏠렸다. 볼살도 온전히 중력의 영향만 받은 건 아니었다. 어쩜 이런 일이, 내 얼굴이 가방 속을 보다가 점점 그쪽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내 의지와 반대되는 일이었다. 나는 목에 힘을 빡 줬다. 다행히 내 얼굴은 가방 안으로 빨려들어가지는 않았다. 이게 대체 뭔 일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가방 속의 암흑은 그냥 검정색이 아니었다. 모든 빛과 혼과 영과 에너지를 빨아들이는 신비스러운 검정색이었다. 비싼 옷을 사본 사람은 안다. 몹시 세련된 검정색이란 어떤 느낌인지를. 지금 이 시간마저 그녀의 가방, 판타지 안으로 빨려들어갈 것만 같았다. 나는 슬슬 말려들기 시작한다. 나는 뭐가 뭔지도 모르고 세뇌를 당하고 있었다. 나는 착착 빠져들고 있었다. 내 정신은 온통 그곳에 쩍쩍 들러붙어버렸다. 나는 가방 안에 마음이 빠져버렸다. 그녀의 가방에게 내 마음을 빼앗겨버렸다.
그러나! 그러나, 나는 불굴의 정신력으로 처절한 의지와 투철한 이성의 힘으로 감성과 마력과 환각과 유혹과 유희와 탐미와 허영과 꿈과 신비주의와 모호한 동경과 달콤한 기대감을 이겨내고야 말았다. 나라고 언제까지나 헛된 몽상으로 일관하고, 가짜 사랑에 헤매고, 이상한 취미에 빠지고, 장비 탐닉만 하고, 으쌰으쌰 싸돌아다니고, 날이면 날마다 백~판 자빠져 놀고 또 자빠져 팔짜 타령만 하며 비관적으로 또또 자빠져 있어야 하겠나. 긍지를 갖고 밝은 세상을 꿈꾸고, 환한 미래를 향해서 희망의 찬가를 부르고, 환희의 허구를 지어내고 타인에게 열락의 간접 경험을 제공하기 위하여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뭔가 시도는 한번 해봐야 하지 않겠나. 그래야 하지 않겠나, 아니 그렇소? 야구방망이 부러질 때 부러지더라도 뻔트는 대봐야 하지 않겠나? 인생은 뻔트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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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그녀를 기다렸다. 가방은 반듯하게 한쪽에 놔두고 나는 그녀를 기다렸다. 그러나 그녀는 아무리 기다려도 나오지 않았다. 이건 뭔가 문제가 있다고 진단을 내렸다. 보통 일이 아닌 듯 했다. 난관에 봉착했다. 그래서 나는 그녀가 들어갔던 피팅룸에 바로 들어갈 수는 없으니까 거기를 잘 살폈다. 마침 그녀가 들어갔던 피팅룸에서 웬 아리따운 아가씨가 나오는 것을 봤다. 썩 아리땁다고 속단하기는 어려웠으나 일단 그랬다. 그곳은 대단위 쇼핑몰이고 피팅룸은 찾아보면 매우 많을 테지만 그녀가 들어간 피팅룸은 그 피팅룸이 확실했다. 내 두눈으로 똑똑히 지켜봤다. 그 후에 공상을 하든 추측을 하든 억지를 악상으로 연결시키든 나는 그분과의 대화를 시도했던 것이다. 그녀가 바로 그 피팅룸에 들어간 것을 지켜본 후에 말이다. 뭔 다른 사람이 그 피팅룸에서 나왔기 때문에 나는 당장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라고 추론의 문을 열었다. 논리적으로 따져봤을 때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이건 분명 뭔가 잘못된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점원에게, 점원 가운데 중역에게, 끝내 이분 저분에게 여쭙고 사정하고 간곡히 아뢰어서 대형 쇼핑몰의 사장이 아니라 그 층을 관리하는 보안 담당자를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분과 같이 보안실로 향하게 되었다.
보안실에 도착했다. 우리는 같이 CCTV 영상을 확인해봤다. 아, 그 전에 내가 점원에서 보안 담당자를 만나게 되기 중간 단계에서 나는 그녀가 들어갔던 피팅룸에 내가 직접 들어가봤다. 왜냐하면 그곳에 비밀 통로가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나는 딱 피팅룸에 들어갔다. 별다른 이상한 점을 찾을 수는 없었다. 당장 그 비밀의 문을 찾을 수는 없었다. 그러면 그녀는 어디로 갔을까? 초소형 로봇으로 변신했을까 아니면 순간이동이라도 했단 말인가?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뭔 이건 답이 나오지 않는 일이었다. 급기야 나는 피팅룸 안을 막 때리고 치고 차고 난리를 피우기 시작했다. 그러다 제지를 당했다, 손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됩니다 라고. 뭔가 사정이 그리고 사연이 있다는 것은 알겠지만 여기서 이러시면 안된다고 그랬고 나도 곧 이성을 되찾았다. 그러나 그녀가 없어졌다고 믿기도 싫어고 믿을 수도 없었고 그건 그래서는 안될 일이었다. 심지어 그녀의 본명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 때문에 나는 그녀에게 더 미안해졌다. 뭔가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매우, 매우 심각했다. 그러다 결국 나는 제복을 입은 건장한 양반과 함께 보안실로 함께 가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같이 녹화된 영상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런데 이게 말이 안 되는데 아 이런 오오 이럴 수가! 아, 어찌 이런 까마득한 일이 다 있나!
녹화된 CCTV 영상을 재생시켜보니 나는 옷가게에 혼자 들어왔던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피팅룸에 들어가기 전에 의자에 놔둔 가방도 재생되는 영상에서는 아무 것도 없는 것으로 나왔다. 나 혼자 연기하는 것처럼, 조현증 환자가 환영을 보고 허상에게 묻고 답하고 같이 놀고 어디를 가고 뭔가를 하는 것처럼 마치 그런 것처럼 나도 그와 똑같이 혼자서 막 놀고 있었다. 말도 안 나왔다. 그건 아니었다. 그건 가짜였다. 난 진짜 경험을 했었다. 진짜 판타지라고 씌여진 가방을 만졌고, 이 두손으로 똑똑히 촉감을 느꼈고 글자를 봤고 내내 고민하다가 정말 어렵게 가방 안을 들여다봤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가방이란 것은 없었던 것이다. 물론 그녀도 없었고. 그녀가 옷을 구경하다가 원피스를 들고 피팅룸에 들어갔다? 난 나를 제외하고 다른 사람이 봤을 때 완전 미친 놈이었다. 진짜 그랬다. 이건, 이건, 뭐야 내가 미친 건가? 난 멀쩡한데 그러나 멀쩡한데 미칠 수도 있는 것인가? 알 수 없었다. 나도 할말을 잃었고, 보안 담당자도 내가 불쌍해보였는지 눈을 지긋이 감았다가 날 토닥였다가 그럴 수 있다는 충분히 이해한다는 그런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건 말이 안 되는 일이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건 가짜다. 그러나 난 허풍쟁이가 아니다. 난 양치기 소년이라는 동화책은 읽어서 알지만 난 거짓말쟁이가 아니었다. 난 도덕이니 영화니 최면이니 그런 거 모르겠고, 적어도 나는 혼자 볼까 말까 망설이다가 그녀의 가방을 봤고, 그녀를 옆에서 지켜줬을 뿐 난 아무 것도 잘못한 게 없었다. 그런데 이게 뭐야? 이게 대체 뭔 일이냐고! 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어떻게 이런 일이......!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나는 어떤 무아지경에 이를 수 있는 포근하며 감미로운 세속적인 성가곡을 듣는 것만 같았다. 그것의 관현악은 그야말로 일품이었다. 그것으로 인해 나는 마치 탐나는 보물을 발견한 듯한 착각을 일으켰고, 누가 봐도 욕심날만한 직접 체험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듯 했다. 물론 아주 잠시만, 아주 잠깐은 그랬다. 그와 같은 음악이 들린지 대략 채 1분이 되지 않아 웅성웅성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걸 감지했다. 그 가운데는 내가 가까운 미래에 읽게 될 글도 포함된 듯 했다. 숨소리조차 내기 힘들었네요 재미있었어요~, 재밌어요! 와 진짜 무서워요, 놀람 또 놀람, 끝이 없는 느낌?, 끝날 때까지 끝난게 아니다 착하게 살자, 내용이 별로에요, 혼이 나갔다, 조금 찝찝해요, 진짜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다, 와 지루함 장난 아니네요, 촌스러워요, 시시해요, 억지스러워요, 유치해요, 장난해요?, 기발함? 뭐가 기발해요 기발하다뇨 먹이는 거에요?, 한마디로 그저 그래요, 허무 증후군이군요, 반전은 무슨 무반전이 반전이네요, 이야기가 산으로 가요, 보다가 잤어요, 읽다가 욱 했어요, 지루한 듯 뻔한 듯 그러나 하지만 끝내 지루하고 뻔했어요, 아 속았다 속았어...... 그러나 환청을 듣는 이상 증상은 이걸로 끝난 게 아니었다. 영화에서 본 것처럼 막 고기능성 무슨 증후군 주인공처럼 나는 막 갑자기 흥분하더니 책을 한 권, 한 주제에 관하여 아는 지식을 총망라 하는 듯 숫자와 글자에 대하여 암기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할 것처럼 딱 무언가 지식에 관한 일정 분량을 처음부터 끝까지 막 급하게 낭독할려는 자세를 취했다. 그러나 처음에는 그랬는데 정작 길게 외울 수 있는 어떤 내용이 없었고, 나는 미친 게 아니었으며, 선천적인 무슨 기능도 타고나지 않은 것이다. 단지 나는 도저히 내가 나 혼자서 없는 가방을 볼까 말까 초조해하며 고민하고 또 고민하다 정말 기쁜 듯이 설렌다는 듯이 가방 속을 엿보고 그녀를 기다리고 막 그랬다는 게 정말 너무나도 믿기지 않아서 답답했던 것이다. 미친놈도 그런 미친놈이 어딨냐고. 이건 아니었다. 정말 아니었다. 완전 어이없었던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던 것이다. 나는 정신병자도 서번트 천재 뭐시기도, 돌아이도 아니었다. 그냥 단순히 본 것을 보고 내 시간을 체험했을 뿐이다. 침울한 그녀를 상냥한 그녀로 되돌리고 싶었을 뿐이다. 그런데 그녀는, 그녀는 대체 어디 갔냐고! 이건, 꼭, 기적인 것만 같았다. 진짜 그랬다. 그게 아니라면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일이었다.
뭐 색다른 거 이상한 무언가 오묘한 어떤 미지의 세계에 대한 막연한 동심을 평범한 양심으로 모두 바꾸지는 않았기 때문에, 또 희망의 사과나무에서 열리는 열매를 따먹어도 되느냐 제발로 굴러온 호박을 과연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어른의 합리적인 사회성으로 물물교환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지금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고 생각했다. 낮에는 개처럼 뭔가를 탐닉하고, 밤에는 꿈나라에서 코끼리가 되어 팔랑팔랑 귀를 날개 삼아 동화의 나라를 날아다니고, 때로는 혼자서 시인이 되어 시상에 젖어야 하거늘 혼자 영화나 보면서 술에 젖어서 이제 그만 작작 마셔야지 라며 자책하고, 때로는 블로그에 글을 쓴다고 그래서 많은 경험이 필요하다고 원래 어른은 많이 알아야 한다며 시시각각 카멜레온처럼 참 많은 대상과 허상을 쫓고 흉내내고 따라했다. 사는 동안 내내. 마침내 이렇게 됐다. 내 이럴 줄 알았다. 미처 예상하지는 못했다마는 결국에는 이런 망측한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나중에 회상하자면 지금과는 달리 오히려 지금 당장 형용하기 곤란할만큼 그럴 정도로 당시 체험을 높게 샀을 지도 모른다. 이제는 동사 반복이 아니라 과거형 동사를 발생하지 않은 미래 시점에 부여하고 있구나, 과연 이 일을 어쩌면 아아 어쩌면 좋단 말인가! 오오, 손이 다 부들부들 떨린다. 갑자기 몹시 추워지는 것 같다. 몸이, 떨린다. 식은땀을 흘리는가 보다. 어쨌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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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에 홀린 듯 너무 좋아서 황홀감에 미쳐버린듯 이상한 신비스러움에 도취되어 나는 제정신이 아닌 채로 집으로 갔고, 집에 도착해서 청순가련형 심상을 간직한 종이팩에 담긴 우유를 마셨는데 마시면서 막 입가에 우유를 철철 흘리면서 마셨다. 실지 마신 양은 얼마 되지도 않고 거의 흘린 것이다. 난 넋이 나간 바보처럼 멍한 채로 뭘 해야 할지 모르고 있었다. 그런 후 나는 잠이 들었다. 그렇게 내리 20시간 이상을 잤던 거 같다. 대략 거의 하루를 한 번도 깨지 않고 잠을 잤다. 무슨 꿈을 꾸긴 꿨는데 내용은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다. 왜 그렇게 잠을 오래잤나 그 원인은 모르겠으나 어떤 자기 의식을 보호하는 정신적 프로그램이 작동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럴 꺼라고 예상했다. 뭐 예지, 투시, 환몽, 특히 판타지, 허영? 아무튼 뭔가 그런 평소에 매우 가깝게 대하고 느꼈던 의제들에 대하여 나는 왠지 모르게 일시적으로 멀리하고 싶은 가녀린 욕구가 느껴졌다. 그래서? 따라서? 그 다음에 나의 행보는 어떠했을까? 블로그에 새로운 글을 올렸을까? 도박에 빠졌을까 게임에 빠졌을까? 쇼핑? 등산? 요리? 아니면 다른 환락의 취미나 가상현실로 대리경험하는 퇴폐미를 추구했을까? 이제 나는 몰락하는 일만 남았나? 언제 고지는 점령했었나? 나는 그 어느 것 하나에도 몰두하지 않았다. 적당히는 즐겼다. 그러나 그것만 생각하며 그것만 상대하는 그런 몰입의 대상이 꼭 그것들은 아니었다. 뭔가 새로운 알듯 말듯 가물가물하며 간질간질한 어쩜 향수병과 닮은 듯한 그것의 실체를 알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러면 대체 그것은 뭘까? 그것은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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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린 후 점집 5를 찾아 떠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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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니는 아침에 눈을 뜰 때부터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 익히 떠올릴 수 있는 고양이의 뚱한 표정, 그것과 정확히 흡사했다.
타인과 아침에 반가워요 하면서 즐거운 하루에 대해 기쁨의 주문을 걸자는 듯한 인사를 나누지만 그건 다 허례허식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퇴근하며 다리 위를 컨버터블 뚜껑을 열고 가면서도 노을이 멋있다거나 구름이 솜사탕 같네, 사람들이 날 쳐다본다는 둥, 저 커다란 광고 영상에 나오는 여배우의 몸매가 예술이구나, 그런 감상적 여유는 언제부터 온데간데없이 종적을 감춰버렸다. 남은 건 자꾸자꾸 졸리고, 바나나 껍질을 밟고 넘어질까봐 매사 두렵고, 누군가 뭔가에 관심가지도 않고, 차 바꾼지 얼마되지도 않았는데 다시 새로운 차로 바꾸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는 스트라이다 동호회도 탈퇴했다. 게임 장비는 모두 내다 팔았다. 스포츠 도구도 필요한 친구들에게 다 나눠줬다. 발을 잘못 디뎠는지 그가 빠진 건 환상이라는 요술이 아니라 전혀 화청하지 않은 애상이라는 늪에 안겼고, 개똥을 밟은 듯 했다. 어떤 날은 진짜 밟았다. 친구 누구는 진짜 머리에 새똥을 맞았다고 한다. 아니, 읽었던가 드라마였나? 그는 잘 기억하지 못한다. 혹시 그는 최근 클럽에 가지 않아서 기분이 울적한가 하면서 자신의 꿀꿀한 마음을 점검해봤다. 아니라는 결론이 나왔다. 계산 원리는 비공개다. 범인은 따로 있다고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정답은 하나 밖에 없었다.
바로 제임스가 의뢰한 이상한 2층 계단 버스 때문이었다. 2층 버스와 계단이 달린 버스를 결합하고 개조해서 꿈의 문과 후광과 신비로운 구름으로 치장한 웬 엉뚱한 개조 차량 의뢰 때문이었다. 괜히 설계도를 받고서 너 아니면 안된다네 어쩌네 하면서 달콤한 아첨을 필두로 하여 온갖 칭찬은 기본이요 갖은 혜택과 꽤 괜찮은 명언까지 들먹이며 들들 볶고 지지고, 또 들들 볶고 지지고 지치지도 않고서 설득을 해대는데 그는 끝내는, 끝끝내는 두 손 두 발 다 들어버렸다. 얘가 원래 이렇게 말이 많지도, 듣는 사람의 이성과 감성을 모두 자극하지도 않았는데 왜 그러지 하면서 어디서 따끔하게 교육을 받았나 어쩌나 꽤 수상쩍어 하다가 어느새 나중에 보니 계약서에 서명하는 것처럼 슥 그의 말에 속아넘어가버린 것이다. 나쁜 일은 아니니까 속았다 까지는 아니지만 왠지 기분은 그랬다. 완성되면 비엔날레 출춤하고, 나중 비싼 값에 은둔형 거부에게 팔 수도 있다고 해서 그는 혹하여 딱 넘어가버린 것이다. 그 모형은 예측했을 때는 만들기 쉬워보였다. 뚝닥 금방 출시할 수 있을 듯 했다. 그러나 막상 제작에 돌입하니 이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녀석이 부탁한 예술품은 이런 것이다. 가까이서 버스를 보는 사람이 시선을 살짝 올리면 나타나는 저 얼마쯤 높은 상공에서 눈이 부시다가 문이 생기고, 그 문이 열리고, 주변에는 안개가, 뒤에는 천상의 빛이, 그 문과 나와의 사이엔 계단이 나타나고, 음악이 들리기 시작한다. 들린다 들린다, 들린다 들린다, 그분이 내게로 그분이 내게로, 온다 온다, 거의 왔다 왔다, 시선을 마주 보고 손을 잡을 것이다 잡을 것이다, 뭐 부터 시작할까 시작할까, 무엇을 먼저 무엇을 먼저, 어디까지 갈까 어디까지 갈까, 그건 어떻게 할까 어떻게 할까, 평소와는 다르게? 아니면 평소와 비슷하게?, 무엇은 어느 동안...... 바로 그것이었다.
즉 공항에서 볼 수 있는 승객 하차용 계단 버스를 구해다가 적당히 뚝딱 고치면 그만이었다. 그걸 직접 보고, 시연을 하고, 감동을 느껴보아야만 명작을 쓸 수 있을 것 같다고 하길래 그는 흔쾌히 수락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그건 보통 일이 아닌 거 같아서 자기는 못하겠다고 연락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쩔 수 없었다. 그건 자기 일이 아니었고, 예술이 밥 먹여주는 것도 아니었다.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였다. 그렇지만 이미 수락한 일을 되돌리기도 어색하고, 그렇다고 자기가 일을 추진할 수도 없고, 그렇게 난감하던 가운데 조니는 그 짐을 케빈에게 떠넘기기로 마음먹었다. 뭐 별일이야 있겠어, 하면서.
2
조니로부터 덥썩 과분한 프로젝트를 위임받았을 때 케빈은 딱 잘라서 거절할려고 했다. 그러나 이상하게 다른 일은 모두 맺고 끊고 그것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지만 그 일 하나만은 무슨 이유 때문인지 거절을 못하고 자기도 모르게 승락을 하고야 말았다. 아무래도 그건 썩은 사과 때문이었을 것이다. 당시 제임스가 조니에게 부탁하면서 뇌물을 하나 건넸다. 자기가 키우는 화분에서 자란 미니 사과를 준 것이다. 하지만 그건 보통 사과가 아니었다. 어떤 거부할 수 없는 기운이 넘쳤고, 심령을 조종하는 듯한 신기가 느껴졌다. 그러나 그것은 황금 사과는 아니었고 그에 대한 소유욕은 발생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어떤 불길한 누군가 저주를 거는 듯한 묘한 느낌이 서려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것은 배구에서 스파이크를 위해 토스하듯 다시 조니에게서 케빈에게로 전해졌다. 그러나 그건 실은 벌레 먹은 사과였다. 진짜 그것만 찾아다니는 낙으로 사는 사람들이 있다. 누구라고 말하지는 않겠다. 그거 빼면 시체다. 누구 하면 그거고, 그거 하면 누구다. 가리지도, 고르지도, 신중하지도 그렇다고 절대 마다하지도 않는다. 허나 그에 대한 지구력은 좋다. 부끄러움, 절대 없다. 말발, 좋다. 모든 것은 그것에 최적화되어 있다. 이것 역시 불가사의가 아닐 수 없다. 누구라고 말하지는 않겠다. 제임스의 친구는 아니다. 절대 아니다. 그 재미 없으면 세상 사는 낙이 없는 사람들이 있다. 살면서 많이 봤다. 그러나 그건 층위의 문제다. 100부터 계속 내려가는 그래프와 똑같다. 어쨌든 만약 그 즐거움을 누군가로부터 빼앗아버린다면 그건 뭘까? 뭐긴 뭔가, 인생 꽝이라고 하면 된다. 말짱 도루묵!
엉성하긴 하지만 갖출 건 모두 갖춘 몽유비원도, 그와 같은 환상 도시에서 다닐 것 같고 환상 머쉰을 싣고 증강현실은 기본이고 가짜든 진짜든 정말로 환상을 선물해줄 것 같은 일명 환상 버스! 설계도도 있긴 있지만 쉽게 말해 그건 엉터리였다. 어떻게 해서 어떻게 하고 어떻게 하면 딱 구현된다는 그런 초안이자 스케치 수준이었다. 즉 그 자리에서는 이거 어 이거 음 이거, 되겠는데? 그럴 거 같았는데, 가능성 있어, 잘 하면 물건 나오겠어, 어쩜 대박날 수도 있어, 안 되더라도 적어도 이건 안타는 때리겠네, 무조건 무조건 최소한 뻔트다, 딱 그랬다. 소 뒷걸음질 치다가 쥐 잡기. 그러나 미팅 장소를 떠나 집에서 혼자 가만히 살펴보니 이건 어떻게 보면 애들 장난이었고, 그냥 아이디어 제안서였다. 승산이 없을 듯 했다. 만들어도 별 볼 일 없을 것 같았다. 따라서 그는 다음에 어떻게 했을까? 어떻게 했겠나? 그는 그 일을 알렉스에게 떠넘겼다.
똑같은 절차에 똑같은 방식으로 똑같은 화법과 그 차례에 따라 알렉스도 딱 걸려들었다. 케빈도 조니의 술수를 단번에 익혀버렸다. 막 의도한 것은 아니었으나 하다 보니 술술 막힘없이 자기도 모르게 저절로, 자동적으로 거짓말이 되풀이되고 있었다. 오히려 더 풍성하고 더 화려하고 훨씬 더 고급스럽게 허황된 얘기를 거의 실현 가능한 일처럼 꾸며서 얘기하고 있었다. 나중 당시를 떠올려보면 정말 깜짝 놀랄 정도로.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알렉스는 다시 마크에게, 마크는 하워드에게, 하워드는 닉에게 일을 떠넘겼다. 그 일이 무슨 가방도 아니고 여자도 아니고(뭐? 뭐시여?) 어쩌다가 그건 뜨거운 감자가 되어버렸다. 남은 과정은 닉이 제임스에게 솔직히 고백하여 비밀 업무의 순환을 끊느냐 마느냐, 였는데 그게 그렇게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 왜 그런지 차차 알아갈 것 까지는 없고, 여기서는 간결한 이야기의 진행만 서술된다. 개인의 사유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지는 않겠다. 시점이 3인칭이니까. 즉 그건 아니었다. 닉은 다시 조니에게 찾아갈 공산이 충분했기 때문에 닉이 제임스에게 채신머리없이 찾아가서 서툰 고백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왔다 갔다 왔다 갔다, 일단 정확히 그 연결고리가 끊겼는지 아닌지는 나중 다시 알아보기로 하자. 어찌되었든 가장 합리적인 해결책으로는 다른 길이 없어보였다.
3
한편, 제임스는 최근 시에 심취해서 집에서 혼자 시 쓰기에 빠져 살았다. 딱히 새로운 취미도 없고 산문도 잘 써지지 않던 찰나 어딘가 모르게 착상이 떠올랐다. 그래서 그는 순식간에 다음과 같은 시를 창작해냈다. 그것이 정말 시인가, 에 대한 논란의 여지는 충분했으나 그것이 뭔 문예창작과 졸업 작품도 아니고 그나마 제일 가까운 형식은 그래도 시가 아닐까, 그런 결론이 나왔다. 작품은 길지 않으니까 옮겨보면 이와 같다.
첫눈을 기다린다.
일기는 쓰지 않는다.
소설은 잘 써지지 않는다.
여름의 나라에 가볼까?
안 가봐도 된다. 다큐멘터리를 볼 수 있으니까.
그런 소재를 생각한다.
세헤라자데를 천 일이라고 알았던 남자와 천 일에 하루 더, 라고 베팅하듯 기억하는 여자 그 둘이 연인이 된다면.
별로 궁금한 연애는 아닐 듯 하다.
뭘 해도 재미없다. 그러나 항상 그런 건 아니다.
시를 써볼까? 지금 쓰고 있잖아.
내가 생각해도 대체 뭔 얘기를 하는지 모르는 듯한 내용으로.
행과 행을 이어야 한다. 문단과 문단을 이어야 한다. 연결이 되도록.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누가 시키지는 않았다. 약속한 일도 아니다. 하지 않아도 벌칙은 없을 것이다.
무릇 인생도 그러하다. 세상에 태어나 살아간다는 것. 지구인으로써.
아무래도 그런 말을 여태 한 번도 해보지 않아서 뭘 할지 잘 몰라 망설이는 것 같다. 어떤 말?
(물론 앞으로도 할일은, 할일이 있을까?) 도대체 어떤 말?
사귀자, 사귑시다, 사귈까?
동시를 짓고 동요를 부르고 동화를 읽기엔 너무 커버렸다.
그래서 나는 친구에게 하나의 퍼포먼스를 부탁했다.
그것을 여기서 밝힐 수는 없다.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다.
곧 있으면 찬바람이 불것이다. 그러면 머리카락이 빠지겠지, 아마도 낙엽처럼. 송송, 송송송.
남의 집 개한테 이름을 붙여줄 것이다. 내 맘대로. 주인이 알면 썩 흡족하진 않겠지만.
좀 이상한 주인장이라면 어쩌면 좋아할 수도 있겠다.
그리고 그를 만나면 호명해야지. 개 주인이 아니라 개에게.
너도 내가 우습냐? 그건 아니다. 불러줄 이름이라는 건. 괜찮은 이름이 있었는데, 그런데 까먹었다.
잘한다 잘해, 아주 잘 하고 있어.
잘하긴 뭘 잘하고 있어?
그래도 꼭 한 번 이런 식으로 글을 써보고 싶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나 누구들처럼. 그분들처럼.
소원을 이룬 건가? 아니다.
왜냐하면 보통 소원이라고 하면 하나가 아니라 숫자 3이 떠오르니까. 하찮은 건 소원 축에 끼면 안되는 거다.
잘 아시지 않는가, 굳이 설명이 필요없다는 것.
뭐 재미난 일 없을까? 없다.
때가 됐다. 그런 것이다. 한눈을 파는 걸 보면 안다.
음, 어제 꿈이 생각난다.
아마추어 농구대회에 나갈 준비를 했다. 예선 탈락이 하고 싶었나보다.
쓸데없는 것만 생각난다.
그러나 주변에 사과나무가 없다. 그게 있어야 그 밑에 누울 수 있을 텐데. 그래야 그 다음이 있고.
아무리 둘러봐도 병아리가 보이지 않는다. 먹음직스런 닭 요리와 꼬끼요 꼬꼬댁 소리들. 그리고 그 어떤 경구만 존재한다.
하나의 존엄한 문장. 닥치고 뭐뭐 해라. 꼭 얼핏 들으면 인문-교양서의 전형적인 문장 형식과도 닮았다.
그러나 스포츠 구단에서는 그래 봬도 현재진행형 표어다.
그렇다. 의뭉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어쩌면 멋져, 그렇단 말이야.
핀란드식 사우나에나 들려볼까? 됐다 됐어.
세상일은 어렵다. 쉬운 일은 없다. 그래도 다음 타자가 기대된다. 시작은 뻔트, 목표도 뻔트! 그래서, 인생도 뻔트!
실망할지라도 괜찮다 괜찮아. 그렇다고 할지라도 남은 걱정 그 예를 들어보자면 이와 같을까?
걱정이 아니라 투정쯤 되겄다.
달걀을 보면 품에 안아 부화시켜야 할지 먹어야 할지
어제의 나와 내일의 나는 어디 가야 만날 수 있는지
왜 인형을 만들 때 곰인지 개인지 명확히 정의하지 않아 매번 사람을 헷갈리게 만드는지
잘 보면 자주 보면 알겠지만 언뜻 보면 개와 양과 소와 영장류는 모두 비슷해만 보인다. 자세히 봐야 제각기 특징이 보인다. 인생도 그랬으면 좋겠다.
어쨌든, 좌우지간 그것이 궁금하다.
천일야화가 어떻게 끝났는지, 바로 그 결말.
물론 그것을 알고 싶기는 하지만 또 그렇다고 지금 당장 알아내야겠다, 그 정도는 아니다.
그보다 시급한 과제가 생각났다. 그것은 무엇일까?
밤에 잠이 오지 않을 때 찾게 되는 우주의 비밀? 그런 영상에서 특집으로 퍼트리는 지구의 역사?
아니다. 그럴 시기는 지났다. 이미 뗐다.
날 좀 봐주라고, 나 여기 있다고, 나 시인이라고 명함을 내밀고 싶은 시절.
그것은, 시급한 과제라는 그것은
눈물을 펑펑 쏟게 만드는 사랑 고백도 아니고, 그것은 바로 지금 씌여지는 이것의 이름이었다.
작명에 관하여 일가견이 있는 것처럼 어떤 매체에 글을 한동안 꽤 진지하게 실었다면 그 정도 고민쯤은 필요한 법이다.
당연하지.
이 시의 이름을 뭘로 할까, 정말 그것에 대해 골똘히 심사숙고하게 된다. 한다.
어, 당신인가? 그분...이세요? 맞죠?
아니라고 하신다.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나 뭐라나.
그런데 왜 갑자기 그분? 내 마음을 조정하는가 싶어서. 제목을 생각해내라고.
과연 이 시의 제목을 무엇이라고 할까?
뭐라고 불러야 할까?
꿈? 청춘? 바다? 숙녀? 아니면 꿈과 청춘? 바다와 숙녀?
꿈에서 회춘했고, 어디에 갔는데 그곳은 바다였고, 숙녀를 만났다? 뭐야 이게?
이걸 애써 시라고 할 수 있나? 그래도 되나?
하지말란 법도 없지만 못할 건 뭔가, 라고 우기긴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뭐랄까 반짝 바람을 타는 그런 잘 읽히는 시, 잘 팔리는 시, 그것과 이것이 비슷하나?
에이 시시하다.
하지만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무제?
그게 뭐야, 재미없다. 더 심심해졌다. 오히려 상황이 악화되버렸다.
그냥 미완성으로 남겨놓자. 그러는 게 좋겠다.
그렇게 권태롭던 나날이 계속되던 중 썩 관심가는 웹페이지를 발견했다.
감탄사는 어~라! 처음엔 그랬다.
오, 이거 뭐지? 뭐지? 대체 뭘까? 슥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데! 뭔가 있어 뭔가 있어.
처음에는 그랬다. 나중에도 그랬다. 시간이 지난다고 달라지지는 않았다. 그게 문제라면 문제지만.
그것은 바로 허풍 대회!
말만 들어도 뭔가 솔깃하지 않은가? 안 그런가?
허-풍-대-회! 허풍 대회! 한 번 더, 허풍 대회.
몇 월 며칠 몇 시에 시작한다 시상은 어떻고 어디서 열리며 기념품은 뭐다
축하공연에는 누가 온다더라 라는 안내가 눈에 띄었다.
난 곧바로 즐겨찾기에 추가했고,
그 후 그러나 다시 그 사이트를 방문하지는 않았고,
혼자서 고민하는 시간이 늘어만 갔다. 왜?
출전할 것인가 말 것인가, 를 고민해야 했기 때문이다.
나름 심각했다. 그러나 그에 앞서
웹사이트를 다시 구경할 것인가, 말 것인가?
그래도 되는가, 안 되는가?
그러다 나는 결심했다.
일단 다시 한번 찬찬히 그 내역을 살펴보자고.
돌아가는 분위기를 관찰하자고.
대관절 누가 기획했는지 어떻게 시작됐는지
그들의 목적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떤 새로운 무엇이 탄생할지
그런 다음 나중엔 뭐가 어떻게 될지
또 흔들릴 사람은 누구인지
그분들이 어떻게 게임을 진행할지
쥐었다 폈다? 밀었다 당겼다? 들었다 놨다?
관객의 마음을 운동선수처럼 드리블했다가
참가자의 동심을 특급 쉐프처럼 반죽했다가
다시 시녀처럼 시중을 들고 비서와 같이 최적의 응대를 하며
나중에는 동기부여 강연회에 정기적으로 참석시킬지 어떤 신흥 교도로 만들어버릴지
그게 바로 궁금했고 알고 싶게 되어버렸다. 어쩌다가. 저절로. 교묘히도 아니고 얼렁뚱땅, 제발로 호박 곁으로 다가간 거지.
정말 신뢰할 수 있는가 속임수는 없는가 수차례 숙고하는 듯 뜸만 들인 후
덥썩 마음을 굳혔다. 내게 득이 되는 달콤한 아이스크림은 무엇인가를 알아보자고.
오래 생각한 후 마음을 정한 후 다시 그 웹페이지에 방문했다.
어떻게 됐을까?
정말 어떻게 됐을까?
오케이! (손가락 딱) (한 번 더 딱, 딱) (골 세러모니)
바로 그거야 바로 그거야, 바~로 그거라고!
손발이 딱딱 맞는군. 척하면 척. 완전 최고의 코믹쇼 단짝이군. 더없는 듀오야.
누가 글쓴이고 누가 즐기는 그분인지 구분이 따로 없어. 아조 끝내주는군.
돈 주고 시켰다고 해도 믿겠어. 구술자와 타이피니스트라고.
어떻게 됐을까, 어떻게 됐겠어?
그렇지! 정확히 어떻게 됐다 라고 말하지는 않겠어.
그러나 객관식까지 마다할 수는 없는 법. 그래서는 안 되지, 그럼.
첫째, 머머머 에러 해당 페이지가 없다거나 해당 문서가 없다랍니다.
둘째, 기타 엇비슷하지만 명쾌한 차이가 있는 이유로 그 때문에 페이지가 뜨지 않습니다 머머머.
그럼 그렇지. 괜한 헛소동이었다.
헛된 망상이었어. 아직도 어리석은 공상이라니, 저런!
그러나 자꾸만 생각난다. 자꾸자꾸 떠오른다.
앉으나 서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낮이나 밤이나
빨주노초파남보 월화수목금토일 도레미파쏠라시도
이것은 미련인가? 상사병일까?
혹시 희소식의 전조일까? 미소를 지을 일인가?
아니면 애절한 집착 같은 거?
왜 그랬을까?
서버가 폭주했을까? 인기 폭발? 대성공? 정말로?
에이 그럴 리가? 아니면 참가자 미달?
지원자가 완전 저조해서 그걸 만든 주최자가 뭔가 창피해서 덥썩 사이트를 그냥 내려버렸나?
내가 잘못 본 것은 아닐까? 아니다.
꿈이었나? 개꿈? 아니다. 꿈, 아니다.
그냥 마음만 부풀었다가 부풀지 아니한 것만 못하게 된 거다.
한마디로 기분 잡쳤스(잡쳤어).
뭔가 재미난 일이 생기는 건가 기대했는데 역시나, 결국 허사로 끝났어.
또 허탕이라니. 인물 유형 일관됐군. 허당으로. 내내.
이번엔 예선 탈락마저 허락되지 않는거야.
참가에 의의를 둔다 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어. 그럼.
어쩌면 깜짝 공로상이 얻어걸릴지도 몰랐는데 그랬는데 말이야.
잊어야지. 잊어야 한다. 하지만,
한번 생각을 해봐 생각을 해보라고.
만일 개최됐다면 곧 실력 발휘? 실력 발휘는 뭔 놈의 실력 발휘?
쪼그라들고 찌그러들었겠지. 거짓말이나 안하면 다행이고.
쟁쟁한 허풍쟁이들 사이에서 말이나 제대로 했겠어?
웬~걸 오줌이나 안 싸면 다행이겠네.
허풍 대회는 추녀 대회가 아닌데, 그런데 어떡하라고! 어?
그분들 모셔놓고 뭐라고, 깜짝 공로상? 깜찍쇼가 낫겠네. 아마,
병풍들 세워놓고 철학자와 몽상가와 놈팽이와 험담가들 잔치만 벌였을 꺼야.
언제까지 남 좋은 일만 하고 살라고, 뭘 해도 안 되는군, 하면서.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누가 받는다, 도 못돼. 어림도 없지. 하지만,
오히려 잘된 거야.
진짜로 그런 것 같다.
충분히 그럴 공산이 컸다. 그분들이 어디 보통 인간들인가 허풍으로 어디 따라갈래야 따라갈 수가 있나.
그 위인들을 무슨 수로 이겨, 뭔 신통한 수법으로 해보겠냐고.
일생을 허풍으로 헌신하고 평생 허풍을 갈고 닦았으며 인생은 곧 허풍일 텐데,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일정대로 대회가 열렸어도 문제가 많았을 것이다. 그럴 것이다.
듣다 듣다, 보다 보다 못해서 내가 아니라면 누군가 나서서 확 엎어버렸을지도 모를 일이었어.
속어로 일명 깽판!
그런데, 허풍주의? 허풍주의자? 허풍의 달인? 개뿔! 환장가가 낫겄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암.
괜히 고전주의에서 엄한 걸로 갈아탈 뻔 했군. 휴~ 또 한번 고비를 넘는구나.
언제 어디서 돌팔이가 튀어나올지 모르니 정말 인생은 모르는 거야. 그럼!
난 더 이상 허풍 신봉자도 아니고 봉도 아니고 호구도 아니다.
구태여 씁쓸한 별명이 추가될 필요는 없으나 굳이 하나 선택하라면 앞서 말한 그것은 곤란하고
음 돌아이? 그건 너무 평범해.
그러면 또 뭐가 있지? 은근 허당? 그런 거 말고.
허풍 대회 예선 탈락? 예선 탈락 같은 소리나 하고 자빠졌스 삐──!
에이~ 재미없다, 정말로 허무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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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제임스는 TV에서 뭘 또 봤다. 거리의 예술, 그래피티와 벽화 그림 같은 생활 미술에 대해. 그래서 그는 또 그것이 멋져보였기 때문에 자기도 한번 해보고 싶어졌다. 혹시 모를 재능이 표출될지도 모르고, 한동안 그 마법에 매혹당하여 또 장비 챙기랴 독학하랴 유난 법썩을 떨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중 접게 되더라도 그와 별개로 그 과정도 분명히 기쁨의 종류고 환락의 분파다. 그러므로 그는 우선 자기가 쓴 시를 먼저 블로그나 책으로 옮길 것이 아니라 벽에 옮겨볼까 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대충 끄적거린 시라서 작품성도 없고, 청소년의 낙서 같았으며, 어디에 공표할 수는 없고 또 그렇다고 버리기는 조금 아까웠기 때문이다. 내 작품을 버려달라는 둥 불태워달라는 둥 어떻게 보아달라는 둥 어째달라는 둥 지금이나 옛날 옛적 살았던 예술가들이 얼마나 많은 거짓말을 했던가, 또 하고 있는가? 그 흔한 엄살, 그 보기 싫지도 또 썩 보고 싶지도 않은 넉살 그리고 따지고 보면 이면에 숨겨진 죽는 소리와 친근함이 느껴지는 자랑과 성찰과 농담과 인간미 넘치는 딱히 중요하지 않은 여담들, 주제와 깊은 관련이 있는 독자에게 에둘러 묻는 용건, 너스레들, 그건 모두 적당히 강한 부정으로 포장되어 있을 뿐이다. 애들이나 어른이나 그런 거 보면 똑같다. 이거 내가 썼다, 나 여기 있다, 글이 잘 써지지 않는다, 나 위용을 뽐내도 된다, 팬들의 사랑 때문에 살맛 난다, 지금은 그 탄성이 식었지만 그 기억 때문에 산다, 곡이 안 써지면 미치겠다 미칠 것만 같다 돌아버리겠다, 왜 가왕이 그때 그 시절 대마초를 피웠는지 뭔 약을 했는지 알겠다는 둥 이해가 간다는 둥 어쩐다는 둥, 난 뭐 할 때 어디를 간다 무엇을 한다 어떻게 한다 등 그런 얘기들. 그처럼 녀석도 무작정 종이를 찢고, 구기고, 물어뜯고, 뭉치고 찌그러트려서 작품을 없애버리기는 싫었던 것이다. 망가진 조각품을 수리하고 정든 타자기에 기름칠을 하면서 홧김에 내다버린 영험하고 신비한 창작 공책을 쓰레기통에서 수거하는 바로 그 과정에서 느끼는 정신적 쾌락이라고나 할까, 열락? 그런 즐거움, 사람이면 누구나 그렇게 우선은 혼자서 다음에는 선택적으로 그걸 공개하는 기쁨을 즐기는 측면이 없을 수 없다. 강한 부정, 믿을 수 없다. 하지만 매번 불신해서는 안된다. 여자의 마음이든 징크스든 속는 셈 치고 믿어보는 경우가 좋을 때도 있다. 변화는 예측하기 어렵고 변덕은 심하니 각자 알아서 하자. 그러나 강한 부정은 왠지 켕기는 게 있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신뢰도가 낮다는 것. 뭔지 모르는 뱅뱅도는 글, 문자가 아닌 소리로 변형된다. 꼬끼요~ 꼬꼬꼬꼬꼬, 알맞는 장소에서 또 제 시각에 울리지도 않는다. 비슷한 말은 나 술 안 취했어? 그래 좋다, 우리 모두 백조-하자!
그 때문에 그는 적당한 장소를 물색하다가 괜찮은 영지를 발견했다. 인적이 드물지만 고풍스런 분위기에 꼼꼼한 건축 기법에 의해 만들어진 수려한 집. 그런 저택이 한 집 건너서 한 집이 아니라 그런 집 투성이인 동네. 그러나 사람은 살지 않고, 하지만 깨끗하고 뭔가 부족한 뭔가 마무리 치장을 해야만 할 것 같은 뭔가 숟가락을 얹어야만 할 듯한 정취가 느껴지는 그런 자신의 시를 적기에 딱 알맞는 어느 고저택의 벽면을 발견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화구점에 들려 몇몇 도구를 사고, 시를 그곳에 옮겨적었다. 그리고 기록한 연습장을 버렸다. 파일은 삭제했다. 후련했다. 자기를 떠나보낸 것이다. 뿌듯했다. 정말 정말 맛있다는 케익을 사서 먹지 않아도 그 원재료인 우유와 밀가루와 버터와 설탕 등을 한꺼번에 입에 몽땅 털어 넣고, 구강청정제를 머금고 고개를 젖혀 음미하듯 눈을 감은 채 뽀글뽀글 보글보글, 그 기묘한 음색을 듣는 것처럼 똑같이 따라한 후, 꼴딱 삼켜도, 그 값비싼 고급 케익과 어쩜 이리도 맛이 똑같을 수 있는지 그렇게 놀라는 것만 같은 그런 여유로움! 탄복스러움! 개운함! 신기함! 그는 그런 불가사의한 만족감을 기초로 하는 행복한 기분에 젖어들었다. 정말 시원섭섭했다. 학교를 졸업한 것 같았다. 어딘가에 합격한 듯 했다. 그와 동시에 정든 직장을 때려치운 것 같았다.
그러나 그 즐거움은 오래가지 않았다. 기쁨 두 배 반가움 세 배가 아니라 예선 탈락이고 꽝이었다. 오히려 천국에서 끌려나와 지옥행 열차를 탄 것도 아니고 그냥 즉시 순간이동해버린 일이 발생했다. 깨소금이 쏟아지고 꿀맛 같은 솜사탕 같은 포근한 사랑의 완성이랄까 시작이랄까, 하늘에서 남자들이? 여자들이? 돈이 눈처럼 내리는 어떤 신기하고 신비로운 이상향과 정-반-대되는 일이 터지고야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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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네는 원래 전체적으로 아까울만큼, 부러울만큼, 놀라울만큼 동화책에 나오는 멋진 마을까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나름 수준 있고, 교양 있는 사람들만 살 것 같고, 그곳과 관계된 모든 무형의 정보는 오직 격조 높은 걸로도 모자라 일부 저택 이름까지 격조라고 씌여있는 바로 그런 동네였다. 부디 고이 간직되길 명맥이 이어지길 바래야 할 것 같은. 다만 흠이라면 흠일까, 거의 모두 빈집이었다.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었다. 사람 대신 곰과 개와 고양이나 너구나, 사슴과 양 같은 동물들이, 그 뿐만이 아니라 꾀꼬리 같은 새소리를 내는 진짜 꾀꼬리들이 살고 있었다. 즉 그것은 흉도 아니고 단점도 아니고 그냥 그곳의 특색이었다. 더 나아가 누가 말리지도 등떠밀지도 않겠다 보는 사람도 없었다. 그러나 화룡점정은 필요했다. 딱 하나 필요한 것 같았다. 그래서 바로 작자 미상이라는 어느 걸출한 시까지 덤으로 그 동네의 말끔한 벽면에 기록된 것이다. 이 친구에 의해서.
그런데 제임스가 거기 시를 쓴 후 한 달이 지나 그는 그곳에 다시 방문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곳에 도착했다. 그런데 오, 이럴 수가! 왜 그 시를 이상한데 공개해버렸을까? 안 팔려도 출판할 걸 그랬나? 수준 떨어져도 블로그에 올릴 걸 그랬나? 아니면 어떻게 연애 편지 대필용으로라도? 나 시 썼어, 나 시인이야, 나도 시 쓸 수 있어, 나 시도 쓸 수 있어, 그건 일도 아니야, 속으로만 그렇게 생각하며 겸양을 떨고 아양은 감추어 겉으로는 자기는 어디 명함도 내밀지 못하는 블로그 작가라고 조용히, 조용조용 활동하는 것이 어쩌면 더 나았을 것이다.
대체 그곳에 뭔 일이 있었을까? 이야기는 다음 편으로 넘어간다. 자, 광고...... 광고 협찬은 들어오지 않았다. 그냥 휴식 시간이라고 치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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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그곳에는 뭔 일이 생긴걸까? 별일은 아니었다. 그가 벽에 남긴 시는 하나의 작품이 됐고, 동네는 반틈은 미술관이 됐고, 반의 반틈은 원래 주인이 들어와 살았고, 반의 반틈은 찻집이나 식당으로 바꼈다. 사는 사람들이 원래 주인인지 또는 전에 살던 원주민인지 새로운 방랑자인지 몰라도 빈집에 모두 사람들이 들어와 살았고, 동네가 제법 정말 고급으로 구색을 갖추게 된 것이다. 그야 물론 좋은 일이지만 저기 보이는 저 시가 내가 지은 시라고, 작가는 자신이라고 그 어디에도 당당히 밝힐 수가 없었다. 그러니 그는 애끓는 마음 때문에 또 역시나 동화 속 주인공이 되어버렸다. 진짜 어디다 공공연히 밝힐 수도 없고 그는 끙끙 앓는 강아지가 되어버렸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얘와 얘를 맺어주면 정말 잘 어울리는 짝이 될 것 같아서 소개시켜주고 진짜 그렇게 됐어, 그런데 그때부터 이미 그 전부터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시작돼버린 사랑, 그걸 짝사랑이라고 부르나, 아닌가? 그는 그 엇비슷한 감정,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가 된 듯한 기분 때문에 아찔했다. 어리둥절한 것이다. 때문에 그는 이명이랄까 어떤 환청인지 회상인지 착각인지 불분명한 헛소리를 듣는 듯한 일시적이지만 반복되는 최면에 빠져버렸다. 그건 어떤 말? <내가 오빠 이럴려고 만나?>
그 후, 그 작자 미상의 시는 대박은 아니더라도 적당한 유명세를 탔고, 그 추세는 한동안 이어져서 꽤 화자되고 인기를 끌었다. 사람이 아니라 시가 복을 누린 것이었다. 대학가에서, 서점에서, 인터넷에서 곧 있으면 인기가 식을지라도 제법 그 고명함을 유지할 듯한 정도로 제법 다수의 환성을 사고 있었다. 길게 탄성이 이어지고 있었다. 억제할 수 없는 대중의 사랑이었다. 그러나 그 사랑은 그를 향하고 있지 않았다. 귓전을 맴도는 속삭임 같은 꿈결처럼 손에 도저히 잡히지 않는 어쩜 마음에 쏙 드는 애호가들의 애정을 시샘할래야 시샘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아야 한다고 이성적으로 판단했으나 그러지 않을 수도 없었다. 어쩔 줄 몰라서 눈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일이었으나 이상하게 울컥하며 슬픔이랄지 노여움과도 같은 감정은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단지 하늘에서 부슬비만 내렸을 뿐.
그래서 그에게는 다짜고짜 어떤 꿈꾸는 듯한 눈매를 찾아 여기저기 떠돌아 다니는 방황의 시기가 시작됐다. 소소한 일상의 잔잔한 사건은 그걸로 끝난 게 아니었다. 따라서 빙글빙글 맴도는 춤추는 장난감은 각각의 인물 유형으로, 비극에 등장하는 비련의 주인공은 전설적인 희극에 나와도 모자랄 그 짝을 찾기가 더없이 힘든 1년에 딱 한 번 겨우 태어날까 말까 하는 웃긴 일반인으로, 설레는 목마의 애수는 상남자들의 애마 그분들의 브랜드와 마크로, 얼핏 꿈꾸고 살짝 회상했던 쓸쓸했던 지난 이야기는 모두 타인의 경험이 아닌 소설의 체험자요 찻집 손님이자 소셜 네트워크 사용자로 탈바꿈하게 되어버리는 환상이 현실로 이루어져버렸다. 진짜로!
난 또 뭐라고? 그러게 말이다!
그런데, 아뿔사!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바로 뽀너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7
꿈은 이루어진다? 이루어졌다. 실현됐다. 가졌고, 느꼈고, 뭐가 되었다. 그러나 내가 최초로 생각했고, 실재 시도했고, 조금은 시장에서 반짝 했으며 약간 유명해질 뻔 하다 말았지만 결국 타인이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감격의 드라마를 연출한 3등도 아니고 인성이 글러먹은 저 녀석에게 우승을 빼앗길 바에야 2등은 의미없다면서 결승점 바로 앞에서 급정지했던 걸출한 운동선수도 아니다. 명성과 부와 존경과 고품격은 모조리 말로만 이루어냈다. 아깝게 뺏긴 것도 아니다. 집에 금 송아지 있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아, 글쎄 뽀너스가 대체 뭐냐고? 뭐였드라, 사뭇 궁금해진다. 배 보다 배꼽이 더 큰 뭐 그런 건가? 배가 산으로 간다? 기쁨 다음에 행복 다음에 쾌락? 그림 안에 있던 사람이 튀어나오고 애완견이 사람 말을 해? 아니고 아니고,
그건 이것이었다. 처음에 제임스가 조니에게 부탁한 일이자 의뢰한 예술품. 그 청탁이 한 바퀴 돌아 다시 조니에게 갔을 것 같고, 조니는 괜히 시간만 끌었지만 이제라도 안 되겠다고 솔직히 말하자, 그런 의도를 품고 그 둘이 만나기로 한 날이었다. 기간은 한 달, 됐을까? 장소는 찻집, 스타벅스. 알려지지 않고 소문나지 않았으나 탄성이 절로 나오는 카페를 못 찾아서 그곳에서 만나기로 한 것이다. 그런 멋진 곳은 정말 그 동안 카페에서 쓴 돈을 모았으면 카페 두 번 차리고도 남았겠다 썼다 벗었다 하겠다, 바로 그런 분들이 잘 아실테니까.
「시간을 허비할 필요없이 처음에 못하겠다고 말할 걸 그랬어. 어떡하지? 어떻게 좀 해볼려고 했고, 잘 하면 될 것 같았어. 그런데, 그런데 있잖아. 난 역부족이었어. 내가 하면 하지 왜 못할까 했는데 해도 안 되드라. 미안.」
「아니야. 내가 미안해. 나도 괜한 부탁 해놓고 나서 꽤 속앓이를 했다는 사실, 고백할께. 뭐 대단한 토로는 아니지만. 그런 게 있으면 어떨까 정말 그냥 공상이었어. 쓸데없는 몽상. 난 항상 대책없이 생각만 하고 논리적인 흐름의 맥이 끊겨. 가끔 잇기는 하지만. 그래도 늬 말처럼 정말 될 듯한 뭔가 호감을 끄는 그런 컨셉인 건 분명해.」
원래 이 친구들은 TV를 즐겨보지 않는데, 그때 TV에서 최신 유행에 대해 설명한다. 요즘 유명인들이 타는 차, 바로 그것에 대하여. 그것은 불과 한 달 전에 제임스가 조니에서 부탁했던 내용을 그대로 빼다박었다. 완전 똑같았다. 정말 곧이곧대로 똑떨어졌다. 차가 멈추고, 풍선에 바람이 차고, 어딘가에서 음악이 들리고, 연기 부시식 깔고, 후광이 비추어지고, 실내에서 앉아서 코골며 낮잠자던 유명인이 깜짝 놀라 깨어나서 번쩍 정신이 들고 계단을 서둘러 올라간 후 딱 문을 열고 등장한다. 기다리는 사람, 기대했던 연인, 꿈꾸어왔던 사색가는 제때 딱 등장한 그분을 보고 막 정신을 잃을락 말락 하고, 어쩌고저쩌고. 바로 그것이 그대로 구현된 2층 버스였다. 상황에 따라 써먹을만 하고 작품에 따라 썩 어울릴 듯 하지만 널리 인기를 끌만하지는 않았다. 그럴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 그랬는데 하나둘, 하나둘 너도 나도 타다 보니 어쩌다 그것이 유행이 되어버렸다고 한다.
이때 이것을 지켜보던 이 친구들이 보일 행동은 크게 3가지. 첫째, TV 속으로 들어간다 또는 들어가는 데 실패하고 들어갈려다가 이마를 퍽 찧는다. 둘째, 마시던 맹물이 마시던 맥주가 다시 그대로 입에서 나와서 컵으로 들어간다. 셋째, 화들짝 까지는 아니지만 살짝 놀래서 뭔가 억울해서 몸은 그대로 멈춰 있고 고개만 뒤쪽으로 슥 디민다. 이 가운데 그들은 3번을 선보였다. 에이, 누가 이미 그 아이디어를 가지고 히트쳐버렸구나, 성공해버렸네. 꿈만 꾸다가, 헛다리짚고 차일피일 미루다가, 진행은 했는데 시도는 했는데 거의 다다를 뻔 했는데 어쩌다 구름 위에 올라서지 못하고 잠재적 소비자가 되었구나 라며 노래 가사같은 후렴을 읊게 되었다.
「이럴 수가! 아니 이렇게 심한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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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제임스는 자의든 타의든, 우연이든 필연이든, 운명이든 숙명이든 본인의 창작물과 구체화된 성과물의 이전 단계인 사업 구상이자 예술이며 창작의 원천인 아이디어를 빼앗겼다. 동사를 정정하자면 강탈된 모습은 아니었으니까 어디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우물 안 개구리였다, 땅꼬마였다, 한 발 혹은 여러 발 늦었다, 그냥 아쉽게 되어버렸다, 가 적당할 것이다. 환하든 썩었든 미소는 지었다. 최후에.
제3의 사나이가 모든 조감도를 지켜봤다면 아마 그랬을 것이다. <내 이럴 줄 알았다!> 그러나 그도 할말은 있다. 본능적으로 모방하고 본질적으로 따라하는 게 내 일이었고, 배움의 목적으로 흉내내는 것이 내 역할이었으며, 이미 선천적으로 사는 동안 내내 타자의 장점을 본뜨며 베끼는 행위를 지속하는 삶을 살았다고. 보편적으로 뭔가를 시작했으나 특별함에는 곧잘 도달하지 못했다고. 그는 원래 업체에 맡길려고 했다. 또는 펀딩 플랫폼을 이용하거나. 그러나 그 정도 열의는 없었다. 그의 그릇은 이런 말이 딱 적격이다.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면 된다. 동물로는 (최상급의 예우로 치면) 하이에나? 인문학 용어로는 발 빠른 2인자? 모두 틀린 말은 아니지만 복잡한 부연 설명을 생략하자면 이처럼 하나의 의문이 고개를 드는 것을 알 수 있다. 속으로 되뇌었던 말,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나는 감히 그녀를 사랑해도 될까? 그는 퍼뜩 또 예전부터 무척 의아해했다. 내가 한 말이 드물겠지만 때로는 품위가 있고, 내가 쓴 글이 간혹 값어치가 있을 수 있을까 라고. 그는 자신의 성과물에 대해 왜 아무도 반박하는 이가 없나 라는 보통의 지극히 현실적인 의혹에 대해 이렇게 생각했다. 어쩌면 얼떨결에 무심코 떠오른 생각일 수도 있지만 그가 가장 가치를 두는 두 가지, 가장 공통적이거나 오직 유일무이한 것, 그 기준에 근거하여 추측했을 때 이와 같은 잘못된 예견에 다다랐던 것 같다. 자기가 놀고, 갖고, 즐기고, 살아야 할 어항을 미리 요모조모 사전에 제한적으로 정해버리는 것. 책에서 목표를 처음에 분명하게 정하라고 했지 어디 적당히 숨어서 작은 걸로 만족하고 평범하고 조용히 살아라, 그건 아니었다. 그가 감명을 받았던 책은 확실하게 후자보다 전자였다. 그리하여 그는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그러므로 그는 삐리리리 삐리리리 오늘의 운세랄까, 동전을 넣고 손잡이를 돌리면 나오는 말려있는 조그만 쪽지 그것을 펼쳤을 때 씌여있는 하나의 문장에 대하여 생각했다. 삐삐 삐리리리 삐삐, 삐삐 삐리리리 삐삐! 음악이 짧다, 평범한 효과음도 한물갔다. 무작위로 추출된 오늘의 한마디는 그것이었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말라> 그림자? 그는 남이 시키는 일을 잘했다. 적당히 이타적이고 적당히 도덕적인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절대 창의적인 사람은 아니다. 대표자, 이끄는 사람에는 안 어울린다. 누가 시켜주지도 않는다. 선구자도 될 수 없다. 그냥 범인이고 속인이다. 눈에 잘 띄지 않는 보통 사람과 똑같다. 아이디어를 결과물로 연결시키는 추진력은 나약했고, 수사법에는 한없이 둔감했고, 꿈을 실현하느냐 마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일단 꿈 자체가 자주 변하고, 없어졌다가 많아졌다가 다시 없어졌다가 정작 그게 무엇인지 그 꿈이 내 꿈인지 남의 꿈인지 그것조차 꽤 아리송하다는 그런 부류였다. 그래서 그는 자신에게 떠오른 단상을 블로그에 올리고, 시를 벽에다 썼고, 밤에 잠이 들면 허무맹랑하고 오색찬란한 진짜 꿈을 꿨다. 뭐가 꿈이고 뭐가 꿈이 아닌지 잘 모르는 단계, 그게 현실이었다. 때문에 그는 자기에 의한 상상의 산물을, 그것도 일종의 그림자라고 생각했다. 그건 짜집기였고 베끼기에 지나지 않았으나, 혹시 몰라 아직 몰라 였다. 또 언제나 따라하고 어디서나 흉내내지만, 정작 남이 자기를 따라하면 또 썩 기분이 상쾌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따라서 그는 허접한 자아에 대해서는 깨끗하게 승복했으니까 그러니 그가 살아온 배경과 환경에서 뭔가 마음에 걸리는 결점을 하나만 꼽아보고 싶었다.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아니다. 이젠 동심처럼 말랑말랑하지 않은 경직된 관성 때문에 예선 탈락이 아니면 실망하고, 꽝이 아니면 뚜껑이 열리며, 뻥이나 가짜 웃음이 아니라면 더 이상 즐겁지가 않았다. 그러나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식 정물화도 액자구조로 받아들였다. 안고 갔다. 그래서 하고 많은 만물의 이치 가운데 딱 한 문장만 갖고 약간은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그것에 대해 얼마든지 독서감상문의 토대가 되는 화사한 해석과 적용되는 좋은 사례를 모두 마다하고서.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말라? 고서와 고전주의라면 그렇다 쳐도 요즘 세상은 그걸 이렇게 바꿔야 한다는 건 이미 상식이었다. <날 밟고 올라서라> 이것이 영화라면? 오, 아하! 그것은 조금은 우스운 장면을 연출한다. 정식 도복을 입고, 결연한 자세로, 조용한 경기장에서 단 둘이 마주선 채, 세파에 찌들대로 찌들고 옆길과 뒷문을 좋아하는 넉살 좋은 선임자가 패기로 똘똘뭉친 사회정의를 구현하고자 하는 새파란 신참 후임자에게 하는 말, "늬가 정녕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러움이 없다면, 그러면 날 쳐라!" (그래서?) 단숨에, 퍽! 그리고 꽈~당! 매체를 바꾸면 이와 같을 것이다. 뭘 밟지 마라든 밟고 올라서라든 그 말은 곧 배운 걸 모두 잊어라, 새로운 욕조로 옮겨가라, 새 술은 새 부대에, 판을 바꿔라, 틀을 새로 짜라, 환경에 적응하라 개선하라 머머해라, 생태계를 살펴라 질서를 읽어라, 와 같다. 모두 같은 논조의 말이다. 새로운 사조가 대두되면 한 시대를 풍미했던 낡은 사조는 물러간다. 최신 유행이 대세라면 지난 유행은 복고풍으로 재조명의 날을 기다리게 된다. 그런데, 그런데 그는 또 평소에도 그렇듯이 그 말을 곧이곧대로 직역했던 것이다. 곧이곧대로, 아무 때나 정직하게. 외국어만 의역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빈말과 참말을 구분하는 것이 다가 아니다. 절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호인이냐 아니냐 성격 좋네라는 말을 들어봤냐 아니냐, 가 능사가 아니다. 괴짜는 솔직담백할 수 있으나 가식과 예절은 상당 부분 겹치는 영역이 많다. 정직의 끝, 그것은 이간질이 아닐까? 단, 바보는 용서하자. 정말로. 밉지 않은 허영심도. 그는 그러니까 평생 그 모양 그 꼴이다. 타인의 구라를 그대로 믿고, 글로 우기면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그때그때 일관성 없는 말도 다 좋게 해석하고, 가짜를 진짜라고 좋아하며, 글씨가 보이면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다 읽었으며, 남이 하자는 대로 다 했다. 줏대도 없이. 비교적 예전에는. 지금도 무슨 창작 아카데미, 몰래 혼자 알아보고 여기저기 찾아다니고 있을지도 모른다. 누가 알겠나? 진지하게 거길 다녔을 때 또 다니지 않았을 때, 에 관한 예상값의 오차를 속으로 혼자서 조용히 계산했을지.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마라에서 스승은 제2의 자아였고, 그림자는 미래의 내가 내려보낸 영감이라거나 희대의 허풍쟁이가 슥 내밀었던 오리발이나 썩은 동아줄이라고 여겼다. 그렇게 판단했기 때문에 그가 쓴 시는 짹짹 짹짹 그냥 재잘거림이었고, 아이디어는 시장을 교란하는 헛생각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었다. 막상 주위를 둘러보면 그는 그 문장을 직역할 수 밖에 없었다. 은유법에 약하고 상징과 고급스런 조롱은 꿈도 꿀 수 없었다. 1차적으로 그릇이 안 되니까 타인의 말을 존중하고 남의 글을 잘 믿으니까 그렇겠지만 그러나 충분히 그럴 만 했다. 왜냐하면 그 말대로, 그 말마따나 어느 풍토에서는 진짜로 스승의 그림자를 밟지 못하도록 학교, 어디, 어디에서는 따로 식사를 했고 교차되는 활발한 의견 교류가 일어나지 않고 따로 생활하고 있었던 것이다. 목적보다 방법이 앞섰다. 그곳은 '왜'보다 '어떻게'가 중요했다. 과정보다 결과가 먼저 상상된다. 마치 그런 말처럼. 그래서 어떻게 됐어, 그래서 결론이 뭐야? 그러니까 비책을 알려주겠다는 거야 말겠다는 거야? 꼭 그것이 잘못됐다는 게 아니라 추세가 그렇다. 원래는 그 반대여야 정상이라고 하는데 말이다. 지금도. 여전히. 그게 당연했다. 조금 변화는 있었다. 결정을 합리적으로 때에 따라 위임하고, 용단을 내리고, 책임을 져야할 관리자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정작 익히 알려진 대로 하급 구성원들이 대신 서있거나 조화가 필요할 땐 또 물과 기름처럼 따로 놀아 구조적으로 잘 어울릴려야 어울릴 수가 없었다. 그게 현실이었다. 그러니 매뉴얼은 잘 지켜지지 않고, 현장에서는 우왕좌왕하고, 결정은 늦고, 책임은 전가되고, 재빨리 엄한 방향으로 갔다가 공든 탑이 무너지고, 나무 그늘에서 야한 단꿈을 꾸며 낮잠 자다가 우승 메달은 거북이에게 빼앗기는 동화는 현실이 된다. 그건 절대 개인의 잘못도 아니고, 한 개인이 뚝딱 어떻게 절대 그렇게도 안 되며, 개인주의를 문제 삼아야 하는 일도 아니다. 한 단위의 제도와 규율을 포함한 더 광범위한 관례에 이르기까지 그러한 포괄적인 제반 여건은 어떻게 보면 꽤 만족스러운 듯 승승장구까지는 못되도 뚜벅뚜벅 나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살짝만 틀어보면 또 더없이 더디게 진척되는 것처럼 보인다. 보내기 뻔트와 희생 뻔트가 무색하리만치. 뉘늦게 잔치에 합류하면 분위기를 읽어야 한다. 어떤 천재가 독학 먼저 하고 불세출의 스승을 나중에 만났으면 기본부터 다시 배워야 한다. 그게 더 빠르다. 순서가 그렇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라는 성찰없이 어떡하다가 연구 과정은 생략된 채로 동물농장이 지어졌다면 감내해야 할 일은 없을 수 없다. 그런데 대략 셈해 봐도 큰 걸 바꾸려면 무척 혼란스러워 그러니까 제도와 관습은 바꾸지 않고 그냥 갈 수 밖에 없다. 즉 그건 후순위로 밀린다. 풍요로운 현대인의 문화 생활, 여러 신화와 전설과 예술 뿐만이 아니라 기득권의 공로까지도 그것의 그림자는 뻔트다 뻔트! 뻔트라고!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게 사람이 사람을 낳는 일처럼 그게 어디 보통 일이더냐? 문화유산만 감탄하고 여행 마쳐야 할까? 박수를 받고 일관된 갈채에 존경도 덤으로 얻는 대표자의 유형도 때때로 바뀐다. 하물며 꿈, 자주 바뀐다고 없다고 조그맣다고 절대 수그러들 필요 없다. 권위자든 철학자든 고승이든 그 누가 어쩌고 뭐라고 해도 그건 그분의 생각일 뿐이다. 앞에서 새겨듣고 나중 판단은 꼭 본인이 할 것. 왜냐하면 자기 인생이고 책임도 당사자 소관이니까. 지금 이 순간 옆에서 누군가 잔소리를 하신다? 다 잘되라고 하시는 말씀이지만 자주 마주치는 사람이 아닌 돌연 어떤 양반을 삼천포에서 대면했다, 그런데 그분이 위에서 아래로 뭔가 멋지고 도움되는 말을 하고자 하신다면 그분은 왜 그런 웅변을 하고 싶은가, 그 취지의 헛점을 하나 확인하고 가자. 뭔가 멋진 말, 에헴 하며 뒷짐이든 고개의 각도든 눈빛이든 뭔가 태도가 바뀌면 그건 거의 백퍼센트다. 그러나 그것은 계획대로 일이 잘 풀리지 않을 수도 있다. 학습에 썩 호의적이지 않은 청자와 뻔한 전형적인 교훈조의 말씀만 하시려는 농담 없이 무미건조한 말씀만 하시려는 아저씨가 만났을 때 그건 순서가 이렇게 흐를 수 있다. 처음 계획은 1인 연설이었고, 그것은 뭔가 있어보이는 논쟁을 불렀으며, 상황은 다시 어떤 상호 가치관이 충돌하는 말다툼의 성격을 띄었다가 마무리되어야 하는데 마침내 꼬마들 싸움과 똑같은 양상을 띄는 일. 그런 일은 실은 드물지 않다. 왜 꿈이 없냐, 젊은 놈이 그게 뭐냐, 누구를 봐라, 무엇을 읽어라, 뭐뭐 해라, 어떻게 하라, 등등. 그분이 누가 되시건 그는 절대로 책임질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책임질 수 있냐고 물었을 때 책임질 수 없다 라고 하는 건 어째 왠지 지는 것 같다. 때문에 그 시점에는 책임질 수 있다고 말하는 게 옳다. 괜히 시작했다. 이미 구긴 스타일, 더 이상 망가지면 망측하다. 꽁무늬 내릴 수는 없다. 이미 늦었다. 굽히기엔 나중 떠안을 마음의 상처가 두렵다. 초장에 틀린 일이다. 너무 멀리 와버렸다. 못 먹어도 고다. 내가 틀렸다, 나는 부럽다, 나는 촌닭이다 라고 인정하는 걸 결코 좋아하고 반가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상남자라면. 그러므로 그런 경우를 유심히 관찰하고 사례를 수집해 보면 첫째, 강변의 기세로 판단하자면 충분할 것처럼 보인다. 책임질 수 있는 것처럼. 둘째, 적지 않은 경우 실지로 말한다. 내가(또는 오빠가?) 책임진다고, 보장한다고, 믿어도 된다고. 그러나 그분은 절대 책임 못진다. 짊어질 수 없는 남의 일이고, 타인의 운명이다. 장래의 일이고, 남의 인생사며, 여력도 방법도 진의도 다 없기만 할 뿐이다. 그러나 말은 다르다. 하늘을 걸고 맹세라도 할 듯한 몸짓은 취한다. 내가 너에게, 앞으로 두 번 다시 그런 얘기 해주지 않는다고 할 것이다. 자꾸 그렇게 말이 겹친다면, 신경이 거슬리게 한다면. 그러나, 가 수차례 나와도 부족한 일이다. 냉정히 재차 반복해서 책임질 수 있냐고 묻는다면 끝내는 화낸다. 초반부터 완강하냐 아니면 나중 버럭 하냐, 그 차이다. 연애를 시작할 때, 결혼생활 초장에 주도권을 빼앗기면 버릇을 잘못 들이면 꽤 곤란해진다는 워낙 구식이라서 아예 그 축에도 끼기 어려운 엄한 낭설 때문일까? 그럴까? 아니다. 천만의 말씀. 그럴 리가 있나. 원래 분위기 잡는 걸 좋아하는 거다. 다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 끄덕끄덕 공감이 된다. 무릇 숙녀는 부정할 테지만 눈꼽 만큼은 오빠로부터 신적인 면모 적어도 팔방미인의 풍모를 잠시나마 기대한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이해할 수 있다. 멋져보이고 싶은 것이다. 삶의 주인공이자 하는 거다. 일반인이 걸린 연예인병이지. 말 한마디에 남을 즐겁게 만들고, 말 한마디에 웃음보만 건드리는 게 아니라 울렸다 웃겼다 쥐락펴락 하고 싶고, 말 한마디에 빵~빵 뻥~뻥 터지게 웃기는 것도 1등을 하고 싶다는 것, 그분들의 아름다운 그 선의의 본분, 말하지 않아도 다 알아요. 그분은 전성기가 지났어도 천성이 애다. 지혜롭게 행운의 여신이 친절을 배풀어서 인생에 관하여 노련한 철학을 터득한다 하더라도 그분은 겉은 늙어도 마음은 젊다. 멍멍, 멍멍멍, 멍멍멍멍멍멍멍. 개 더하기 닭이 맞나? 모르겠다. 잠깐만, 닭개? 개닭? 아니 개새? 그래서 신화나 석상들을 보면 그렇게 뭐의 상체에 뭐의 하체가 많았나? 이미 옛날부터 합성이 기본이었구만. 일반적으로 정의의 사도가 활약하는 만화영화를 보다가 불의를 잘 참는 어른으로 성장하지만 기본 철칙은 철들면 지는 거고, 안되는 거고, 늙는 것인가 보다. 결국 그 단계에 접어들면 이때부터는 논리 필요 없고, 예법도 관계도 사이까지 애매해진다. 딱 바뀐다. 어떻게? <책임질 수 있다>에서 <내가 그걸 왜 책임 지냐?>로. 세상을 먼저 경험한 인생 선배로서 어디까지나 좋은 의미를 담으려 했다, 포장은 서툴렀으나 하지만 의도는 확고했다? 그러면 임무 완수하고 다음은 감동의 물결? 물론 그것은 우리가 간절히 바라는 바 선험자의 책임은 다한 듯 보인다. 그 책임이 다른 책임으로 연결되느냐, 그럴 수 있느냐, 그건 퍽 불확실하지만. 여러분, 실생활에서 (긴) 명대사 따라하기가 결코 쉽게 되는 게 아닙니다. 지가 무슨 페리클레스야 데모스테네스야? 정해진 글을 말로 변환하는 것도 아니고 온전히 즉흥 연설인데 그게 어디 쉽겠습니까? 괜히 인상만 찌푸리며 적어도 1명 이상의 기분만 울적해버리는 거지. 적어도? 한 명은 폼잡고 좋아하고 한 명은 기분 완전 망가질 겁니다, 모르긴 몰라도. 딱 그래. 괜히 뭔가 있어보일려고 멋져보일려고 하다가 결국 꽝이야. 제 코가 석 자인데 남의 부뚜막 걱정은 무슨! 그게 쉬우면 누구나 동물농장 사장하겠네. 아니 그렇습니까? 개나 소나? 쉿! 자, 따라서 타인의 조언은 참고만 하면 된다. 기분 언짢은 도움의 말이 있으면 '입에 쓴 약이 병에는 좋다'도 있다. 네 인생은 너의 것, 책임도 너의 것. 텐미닛도 주당도 허당도 모든 타이틀은 너의 것. 그걸 남에게 할 수 있냐 없냐, 라는 가능과 불가능의 문제로 묻는 건 경우에 어긋난다. 꿈이 없다, 에서 중간 생략하고 단박에 허풍 대회 출전으로 건너뛰어도 괜찮다. 뭘 해도 재미없어, 보다는 뭐라도 하는 게 건전해보인다. 꿈이 너무 크면 안될 것 같나? 야망이 왜 나쁜가, 사람과 사랑이 거기다 세상마저 변하는 게 문제지. 진짜 뭘 해도 재미없다, 는 아저씨들 문제니까 살며시 넘어가자. 애교로 지나치자. 소설이 아니라 그분들을. 응애 응애, 어른 남자도 애니까. 기억합시다. 무섭게 생긴 사람이 잠깐 잘해주면 효과가 탁월한 것 아닐까 라는 공상을. 그처럼 난 애다 누구는 개다 너는 대인배다 라는 전제를 사전에 미리 먼저 깔고 출발하면 술값은 상대가 내게 되어 있고, 여인의 환상을 만족시켜 주었다가 조금 풀어줬다가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것이 기본이 되는 타인의 마음을 조정하는 기술을 터득하게 된다는 것을. 자, 아주 잠깐 웃었으면 다시 하던 얘기 마저 해야 한다. 혁명과 혁신이 아닌 제도 정비에 과연 장구한 세월이 필요할까 라는 시민권, 정말 어느 만큼 시간이 지나야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 보장될지 바로 그런 잠시 배웠다가 쉬이 잊혀지는 학술용어, 그것은 이상주의이자 미지수가 아닐까 라는 궁금증은 언제나 많은 사람의 공감을 사게 된다. 이 세상을 알면 알수록. 불가피하게 샛길이 통용되던 시절이 있었다면 나중에는 뚜벅뚜벅 먼 길을 차근차근, 아장아장 가야할 수 밖에 없는 때가 온다. 모래알을 하나하나 새듯이, 바늘 하나로 흙을 파서 산을 옮기듯이. 그 이전에 대한 향수까지 소급 적용하고 감안하는 동안 또 거북이는 저 멀리 떠나가신다. 방법은 달라도 사람 사는 데라면 어디서나 겪는 모종의 과정일 수도 있다. 어디 사람만? 왜냐하면 한마디로 혼란스럽기 때문이다. 계단식으로든 어쩌든 새로운 뭔가는 끊임없이 어떤 주기로 새롭게 나타난다. 어떻게 보면 최고의 가치는, 그 중의 하나는 단연코 새로움이다. 그러나 이방인은 낯설다. 장난감도 일단은 갖고 놀던 걸 찾게 된다. 술과 친구는 오래될수록 좋다라네 구관이 명관이라네, 게다가 기존 질서만 있냐? 아니다. 롤링스톤즈는 항상 대기중이다. 언제 어디서나. 그래서 알맞은 때 물러서는 뒷모습이 아름다운 경우가 있다. 반면에 무대에 끝까지 남아있어야 하기도 한다. 쓰러질 때 쓰러지더라도, 무대에서. 그러나 완주를 위한, 참여를 위한, 행사를 즐기는 관중의 즐거운 놀이를 위한 경기장의 문턱은 낮다. 진입 장벽에 관한 규정도 불분명하다. 심지어 자주 바뀐다. 마찰이 없을 수가 없다. 타성은 잘 바뀌지 않고 익숙한 습관이 편하다. 너무 앞서가면 앨범이 안 팔린다. 책이 안 팔리면 작가는 가던 술집에 또 간다. 큰맘 먹고 심혈을 기울인 것으로도 모자라 큰돈 쏟아부은 영화를 한번 말아먹고 나면 비관 때문에 무분별한 욕, 구석에서 무진장 할 수도 있다. 한때나마. 이용자는 드라마의 기획 의도와 웹서비스의 사명이나 목적을 먼저 보고 컨텐츠를 이용하지 않는다. 절대 알고 싶지도 않다. 대부분 관심조차 없다. 다만 만드는 사람은 그런 철학이 없다면 운발로 잠깐은 정상에 오르나 길게 가기는 힘들다. 내가 말할 때는 개도 짓게 하지 말라, 까지는 아니지만 난 정말 어떤 그림자도 밟지 않고 어느 주위에는 얼씬도 않고 탐욕을 겉으로 드러내지도 않았어, 그래서 마침내 목표는 이루지 못할지언정 중간 수정하여 적당히 어느 자리에 올랐는데, 그런데 어머나! 내 방식이 고지식한 옛것이 되었네? 세상이 바꼈어, 세상이! 게다가 계속 바뀌어. 쉬지 않아. 유행마저 자주 바뀐다. 신상품은 끊이지 않고 출시된다. 그래프 유형이 꿈틀대고 기준이 변할줄이야, 세상에나! 어쩌면 좋아, 때를 잘못 만났네 줄을 잘못 섰어, 어떻게 해야 하냐고! 시나브로 바꼈는지 급하게 바꼈는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언제 어디서나 속도의 문제였고, 방향과 방법은 기본이었고, 자연스럽게 등장하는 순서에 지나지 않는다. 옛것은 다른 말로 고전인데 꼭 그 둘이 동일한 의미는 아니라는 게 문제다. 남들은 자꾸만 앞서가고 발전하는 것 같은데 토끼의 가속도 때문에 거북이가 더 느려보인다. 하지만 토끼는 제정신 못차린다. 청춘도 보통 그와 같다. 일반적으로 그게 정상이다. 또한 남의 떡이 커보인다. 그것도 훨씬. 게다가 실재 그렇다. 실정이 그렇다. 괜찮아 괜찮아, 로 풀고 설명하기엔 벅차거나 까다로운 일이 세상에는 존재한다. 오류도 많고 시행착오는 물론 모순도 꽉 찼다. 그게 세상이다. 그림자, 그림자! 어떻게 보면 그건 평생 모은 반재산을 유려한 언변의 고급 사기꾼에게 속아서 탕진한 것과도 같은 일일 것이다. 난 그림자를 밟지 않았는데 그런데 첫째 이상은 날 밟고 올라서라 였고, 둘째 현실은 그림자가 없거나 당찮은 말 즉 허튼소리고, 셋째 아무래도 그림자 밟네 어쩌네 그런 거 난 모르겠고 그림자 밟기 놀이나 하면서 유유자적하며 때로는 개미처럼 때로는 띵까띵까 베짱이처럼 살고 싶은 것, 바로 그것이 그럴싸한 타협점일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남이 하면 호의호식이요 내가 하면 웰빙, 그게 아니니까. 원래 세상은 조금은 야속하고, 적당히 유감스럽고, 윤리란 어디까지나 인간중심적이며, 인생이란 게 쉽고 평탄하기만 하다면야 그래가지고서야 어디 뭔 재미가 있을 텐가, 인기상 근처에는 범접하지도 못할 일 아니겠나. 그건 보람도 없고 의미도 없다. 심심함과 무료함만 남을 것이다. 낭만? 환상? 신비? 짜릿함? 그런 게 다 웬 말이더냐, 만일 어쩐다면!
막상 일이 이렇게 진행되고 보니 그는 아마 곧 있으면 머지않아 허풍 대회에 출전할 것으로 예상된다. 어차피 없는 고고함 훌훌 벗어버리고, 무아지경에 빠져서 그 환성이 나를 향한 환성은 아닐지라도 입가에 맴도는 그 말, 하지 않는 것은 시도하지 않음보다 못한 듯 하니까. 때에 따라서. 우선은 또 이상하게 흐름이 튀었다. 엄한 곳으로. 허풍 대회 참가가 임박한 것으로 가닥이 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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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그가 허풍 대회에 참가했을까? 그럴까? 진짜로? 희곡의 상업적 전개 방식에 따르자면 그는 지금쯤 대회 출전보다는 스승을 찾아 구도의 길에 오를 가망성이 크다. 그러나 그가 처한 상황이자 스스로 떠올렸던 공상은 모두 지극히 현실적인 범주에 지나지 않았다. 억울할 일은 아니지만 왠지 모르게 재미있는 영화를 본 후 극장 밖으로 나와 땡볕을 쬔 후 머리가 띵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누가 도왔을까, 그는 정말 허풍 스승을 찾기 위해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글도 잘 안 써지랴, 시간도 있겠다 여유 자금 남았겠다, 삶의 장르 변화는 필요했고, 그것은 무엇보다 소설 구상과 문학 화풍에 썩 도움되는 일이 될 것이라고 여겨졌다. 최소한 그가 몇 가지 생각해놓았던 기발한 소재들이 모두 헛것으로 와해되어버릴 일은 없을 테니 한번 우연히 떠오른 그 생소한 일에 운을 걸어도 나쁘지는 않겠다고 생각했다. 소기의 성과만 얻는다면 흔하디 흔한 작품들과 거리를 두는 변별력도 갖추고, 어쩌다 대천사를 만나거나 호색적인 모험에 빠지지 말란 법도 없으니까 이건 그야말로 임도 보고 뽕도 따고, 두 마리 토끼는 물론 호박이 제 발로 넝쿨채 굴러들어오는 격이었다. 갑자기 어깨 뽕이 들어간 옷을 입은 것처럼 그는 가슴이 부풀어올랐다. 숱한 인생 경험도 했겠다─숱한? 어릴 적 무슨 운동? 플랫 깎기? 예선 탈락? 짝사랑? 살집 물어뜯기?─거짓말과 깐죽과 뻠프질에 일가견 있겠다─자타공인? 도대체 어디서, 어디 가면 인정해줘?─유유히 대장정에 나서기만 하면 될 듯해 보였다. 앗싸!
그러나 그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코. 일상은 영화가 아니었다. 그러나 평범함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왠지 싫었다. 어딘가 모르게 고난과 역경을 거쳐서 구색을 맞춰야 할 것 같았다. 일사천리로 스승 1을 찾고 다 배운 후, 스승 2를 만나 그분의 딸에게 사랑도 가르쳐주고 스승의 복수와 추격과 약간의 초현실주의는 물론 거기다 낭만까지 추가되어 이야기가 척척 진행되는 건 한마디로 허구다. 가짜다. (개)뻥이다. 비현실적이다. 돌아서면 잊혀진다. 반짝은 하지만 그 빛은 소멸한다.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다. 지겹게 보고 또 봤다. 앞으로도 얼마나 더 봐야 할지 아주 까마득하다. 조바꿈을 하고 변주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래서 손쉽게 할 수 있는 일이 뭐냐? TV는 방송되는 것을 보기만 하지만 인터넷에선 능동적으로 정보를 찾을 수 있다. 내가 방송을 내보낼 수도 있다. 그리고 실시간이다. 광대한 정보의 바다다. 그는 허풍 관련하여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별 소득은 없었다. 사기꾼을 만나고 돌팔이에게 배울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러면 그렇지! 젠장, 괜히 글썽글썽 가슴 뭉클할려다가 말아버렸다. 그냥 말로만 어디 갈까, 여기 어때 저기 어때, 뭐 먹을까, 이건 어때 저걸로 할까, 우리도 뭐 하나 살까, 누구 만나기로 한 날이 아직...인가, 하면서 한껏 말로만 변죽을 울리고 준비만 하고 마음 들뜨게 한 후 딱 잔치 분위기만 잠깐 떠오르게 만들다가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고, 재무 상태 확인한 후 더 우울해지고, 휴일도 지나고, 사랑 마저 노을져버리는 일처럼 되어버렸다. 뭔가 있어 뭔가 있어, 조차 등장하지 못하고 영영 벤치 신세를 면치 못한 거다.
J는 할일없이 싸돌아다녔다. 정처없이. 옷깃을 스쳐 지나가는 사람마다 '저 남자는 여자복이 있는 사람일까, 아닐까? 저 아가씨는 뭐가 불만일까?' 같은 괴팍한 추측이나 하면서. 그리고 작자 미상의 시, 깜짝 인기는 끝났다. 그것은 냉정하게 막을 내렸다. 또한 2층에서 그분이 내려오신다는 이상한 캠핑카 역시 흥행이 주춤하다가 상품마저 흐지부지 잘 팔리지도 않았고, 거기서 더 나아가 마침내 차는 단종되고 여지없이 시장에서 퇴출됐다. 뻔히 예상된 결론이었다. 정해진 각본이었다. 다만 일부 유명인의 경우 1인 기획사나 1인이나 2~3인 사무실을 운영하는 예술가들의 경우에 아직 근근히 이용한다는 풍문은 전해졌다. 인파가 보이면 그곳에 차를 세우고, 풍선 바람 넣기와 안개와 음악을 트는 기능을 작동시키고, 운전기사없이 본인이 운전했으니까 본인이 운전석에서 다급히 2층으로 올라가서 문을 짠 하고 여는 재미 때문에! 그 외엔 뭐가 없었다. 에~이 난 또 누구라고, 그런 애교 섞인 야유만 남았을뿐. 그래서 그쪽 조명은 여기서 줄일까 한다.
그리하여 시선을 어딘가로 돌려야 하는데 그래야 하는데, 막상 안테나에 걸리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일화는 전해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딱, 뭔가 신호가 왔다. 천리안은 거리와 공간에만 한정되지 않고 시간까지 관여했고 초현실까지 관장했지만 꼭 초능력이 필요하지 않아도 그 친구가 지금 뭐 하고 있겠구나, 그런 느낌은 간혹 반갑게도 천리안 기능이 필요없이 우리에게 스스로 찾아와서 어떡하다가 홀딱 들어맞게 된다. 그 우연 때문에 지금 어느 음침한 장소에서 알렉스와 케빈이 편안하게 대담을 나누고 있다. 내용은 무엇일까? 속닥속닥 별 내용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멀리갈 것도 없고, 어렵게 생각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아마 둘 중에 하나다. 아니면 둘 다든가. 그러나 구체적으로 그건 뭐다, 그들은 그리 쉽게 직접 화법을 구사하지 않는다. 곧 친구들 사이에서 한 바퀴 돌았던 2층 버스 얘기가 잠깐 나왔다 사라졌다. 소문이 퍼졌던 것이다. 헛소동이 아니었으면 정말 일낼 뻔 했을 수도 있다고. 그래서 뭐랄까 아쉬움을 달랜다고나 할까 지금 여기, 어느 비밀스런 공간에서 그들은 단둘이 꼭 브로맨스를 정밀하게 시연하는 것처럼 칵테일을 마시면서 탐정 놀이를 하는 중이다. 어느새 세월도 초연해버렸다. 그러나 실은 이 친구들도 사건의 진상을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완전 헛다리 짚은 건 아닌가 몰라. 요컨대 착각이라기보다는 뭐가 뭔지 잘 모르는 엉뚱한 예측을 하고서 이미 '남의 다리 긁기'식 결론도 내렸다. 일이 어떻게 됐다는 타당한 논거는 측량할 수 없지만 그들의 마음은 충분히 측정 가능하다. 어조는 들떴고, 표정은 눈가에 살짝 집힌 옅은 주름살로 이미 가늠됐고, 그걸로도 모자라 다음과 같은 초단편 연기까지 펼쳤기 때문이다. 백태를 슥 슥 건드리는 듯한 몸짓을 곁들여 사태를 진단하는 듯한 화술과 함께. 꼭 추리소설을 읽으며 추론을 하는 듯이. 그러나 그들의 대화는 뭔가 폼난다. 이처럼. 그들은 특정 장르를 너무 탐했으니까.
「배역을 잊어도 품위를 잃지 말라, 자넨 그 말을 지켰다고 생각하나?」
「과연 언제 그런 격언을 숙지했었나조차 의심스럽군.」
「하긴 매번 대비책을 꼭 그대로 지켜야 하나 라는 의문에서 도망치긴 쉬운 일이 아니었지. 그땐 모두 역위임에 익숙하지 않은 시절이었지 않나.」
「왜? 밀정이라도 숨겨진 듯 하나? 자유가 그립나? (침묵) 그런데 말이야, 처음부터 끝까지 몰랐다가 막판에 자기 자신이 두더쥐였다는 걸 아는 건 어떤 기분일까?」
「글쎄, 별로 퍽 유쾌하지 않을 거라는 건 확실하겠지. 어쩔 수 없이 다음 패를 기다려야할 테고. 판에서 빠질 수도 없을 테고. 드러나진 않아도 진땀을 흘릴 테고. 발을 들여놓게 되면 그럴 수 있어. 어쩔 수 없는 경력이지 않은가. (침묵) 음 뭐랄까, 만장일치는 어째 어딘가 불안해. 보통은 플랜 B가 잘먹히지 않나. 그럼. 무턱대고 귀가 가렵길래 살짝 긁었을 뿐이고 숙녀를 배려했을 뿐인데 알고 보니 전자의 부위가... 잘못되고, 그녀는 완고하게 제 역할을 완수할지도 모르는 일이지. 아마도 미인계는 사라지지 않을 꺼야. 그건 어쨌거나 꽤 쓸만한 병법이지.」
「왜? 내가 사랑에라도 빠졌을까 봐? 지금 이 순간 제2의 누구라고 불려도 나쁠 것 같지 않네 그려. 어떤가?」
「뭐랄까, 나도 내 기분을 잘 모르겠어. 미리 예상할 수 있는 농담이니 과히 흡족한지 아니면 뜻밖이라며 놀라는 연기라도 해야 할지 말이야. 음, 가만 있자. 그동안 내가 너무 태평했던 걸까, 순진했던 걸까? 또는 지금도 변함없이 둘 다를 지켰다고 그래서 너무 태연하다고 너무 뻔번하다고 너무 인간미가 없다고 마치 로보트 같다고 핀잔이라도 들어야 하는 걸까? 당시 우리가 알던 미덕은 이젠 더 이상 그렇지 않게 됐어. 아마도? 완전히! 이젠 나도 은퇴할 때가 됐나 봐. 그 말이 자꾸 떠오르는 거 보면. 안녕히! 이거 이거 너무 분위기 타는 거 아닌가 몰라. 또 막 헷갈려. 저 익숙하지만 지겹지 않은 달콤한 노래를 듣다 보니 나도 모르게 그 의미를 또 직역하고 있어. 날 달에 보내줘 라고. 데려다줘, 일까? 같이 갈까, 는 아닐까? 참 나 이건 꼭 홍콩 보내다 같은 지나도 한참 지난 관용어랄까 퇴역하신 선배들에게 익숙했던 유행어 같아. 하지만 나도 얻은 건 있어. 세월만 가버린 건 아니란 말일세. 즉 내가 투자했던 역발상 주식은 둘 중 하나야. 반토막났거나 재미가 꽤 솔쏠하거나. 어떤 거 같은가? 우리도 다음 시기를 준비해야하지 않겠나, 미리미리. 나...의 포커페이스가 많이 늘었다고 나름 서둘러 진단했는데, 그 정도는 아닌가? 겸양이야 자부야, 아직 기울지 않았나?」
「뭔 페이스? 하하하, 자네 술이라도 한잔 사야 하는 거 아니야? 것도 거하게.」
「하하하, 순서가 그렇게 되나?」
「(동시에) 하하하? 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
이 친구들 상황극 한번 빠지면 통 헤어나오들 못한다. 정말 못-말-려! 중견 배우 제대로 뺨 치는군. 어디다 명함 내밀어도 썩 모자라진 않아 보인다.
그런데 이렇게 놀려면, 정말 이렇게 놀려면 추리소설을 대체 몇 권이나 읽어야 할까? 전문가가 옆에서 의도치 않게 혹시 그들의 대화를 엿들었다면 뭔가가 적잖이 궁색하지 않았을까, 그런 의문이 더 이상 숨지 못하고 고개를 슥 내밀고 싶었을 것이다. 나 항복이요, 하면서. 도무지 그 질문에 대답하기 어려웠을 테니까. 그러니까, 용건만 말하자면 대체 몇 권이냐고, 몇 권? 다른 말로 어떻게! 쉽게 말해서, 순도 높은 열의 때문에? 그건 합리적인 예상이 아니라 성의 없는 지레짐작이다. 와전되면 무례고 곧이어 어떤 질타를 감수해야 할 수도 있다. 어떤 분은 이제야 아셨을 테다. 구태의연함도 부러움을 받을 수 있음, 그것을. 지나가는 의미로다 참고로 한마디 하자면 구단 운영비가 최고가 아니어도 상위권 정도 되면 우승에 제일 가깝다는 통계가 있고, 다른 예술은 모르겠는데 부분적으로 어떤 학문의 경우는 학벌이 너무 좋다거나 너무 똑똑하면 작품이 (우선 독자의 문제고 청자가 이해를 잘 못하는 것이겠지만 아무튼) 간혹 좀 헤매는 것처럼 보인다. 개인적으로 정말 궁금한 의문점 가운데 하나다. 중간 정도 재능 더하기 진주 같은 땀방울, 이 중요하다고 하니까 아름다운 인생이라는 장기 레이스를 조급하게 다루지 말라고들 하니까 참고하도록. 이 양반이 지금 어디서......? 어줍짢은 변명이지만 굳이 첨언하자면 이와 같다. 곧 그분께서 전하라고 하시니까. 그분? 눈 한 번 껌뻑하면 그분이군, 수시로 그분이야, 누군지 몰라도 그분은 정말 정말 좋겠다. 하지만, 그래도 그 자리를 뻔트란 녀석까지 넘보는 건 너무했다. 뭔 대타도 아니고. 햄버거는 어디 갔어! 번트? 살짝 과했단 말이다.
그러고 보면 참 이상하지 않은가? 한 200년 전에 누군가가 자고 일어났더니 유명해졌다고 했고, 다시 대충 1.5세기 정도 지나서 미래에는 모두가 15분 동안 유명해질 것이다 라고 했다. 그리고 지금은 정말 그렇게 됐다. 유명함에 대한 매력은 간단히 정의내리기가 쉽지 않지만 누구나 그것 자체만을 갈구하고, 처음부터 최고와 변심을 동시에 염두해두고서 출발하지는 않는다. 세상은 놀랍도록 촘촘하고 그래서 일반적으로 딱히 유명해지는 것보다는 적당히 유복하게 인생을 즐기는 것을 더 귀한 덕목으로 삼는다. 인생을 알아갈수록 차츰 더. 어쩔 수 없이 그것이 주어졌다면 또 그에 따라 궤도를 수정하면 된다. 사람들은(그분들은) 많이 유명한 것은 물론이고 즉답성만 과도해도 피곤하다는 걸 잘 안다. 그래서 그들은 조금은 삶에 지치고 어쩌면 그저 조금 심심했기 때문에, 종이책과 유명함의 전 단계 즉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정말 좋겠네'같은 동요는 이젠 더 이상 어린이도 부르지 않는다는 데서 뭔가 찡한 감정의 동요를 느꼈기 때문에 아마도 그들은 상황극에 대한 재주가 늘었던 게 아닌가, 그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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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좋고 기분도 좋고 예감까지 좋은 어떤 날, 다른 곳에서는 어떤 즐거운 일상을 지내고 있는지 알아보자.
조니는 나비 넥타이를 매고 제비복을 입고 음악회에 갔다.
마크는 집에서 책을 읽으면서 지내고 있었다. 오노레 드 발자크의 잃어버린 환상.
하워드는 NC에 갔다 왔다. 꿈에서 어떤 지령을 받아서 그 확인차 겸사겸사 갔는데 허탕만 쳤다. 예지몽이 아니라 개꿈이었다.
제임스는 뭔 짓거리를 하는지 레이더에 잡히지 않지만 예상하자면 혹시 어디 이상한데 가서 블랙잭을? 그리고 닉은 지금 달랑 한 문장으로 설명하고 넘어갈 계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지금 시점은 닉이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닉, 그는 사실 전문가였다. 조용한 고수. 가짜 다큐멘터리 제작자. 그가 만든 작품은 조금 빈약한 듯 하지만 적어도 가짜라고 의심할 수 없는, 절대 그럴 리 없다는 신뢰감을 부여해주어 아예 의심조차 해볼 수 없는 수준의 영상을 만들어내는 어엿한 예술품이었다. 그가 만든 작품을 보고 나면 꼭 고급스러운 농담이 이따금 살면서 간혹 떠오르는 것처럼 눈을 감아도 아른거리는 그 모습이 딱 1년 간다고 한다. 그래서 항간에서는 그의 별명은 벌써 1년, 이었다. 얼굴은 면사포? 장막에 감추어져서 그 궁금증만 증폭시켰다. 업계의 이단아란 것이지. 믿을 만한 정보원으로부터 얻은 정보다. 사건의 전말을 요약하면 이렇다. 일단 제임스의 아이디어가 조니에게 넘어간 후 그건 한 바퀴 돌고 나서 닉이 바톤을 넘기지 않은 것이다. 닉은 그 바톤을 제임스에게도 조니에게도 넘겨서는 아니될 것 같았고, 또 실제 넘기지 않았지만 일은 이상하게 가는 말은 있었는데 오는 말은 없는 것으로 모두 그렇게 알고 있었다. 즉 닉은 시간을 끌 대로 끌었다. 꼭 일상적으로 지켜지지 않을 약속을 하는 것처럼. 언제 식사 한번 같이 하자, (빌려가면서) 언제 줄께 뭐할께 쓰고 줄께 읽고 줄께, 나중 내가 다시 전화할 께, 그처럼. 그냥 그려려니 하고서 모두 잊었다. 그 일을. 뭔 일이 있었는지도 잊었다. 따라서 단락은 닉만 심사숙고하며 대책을 강구하는 단계로 접어들었다. 한밑천 잡은 것도 아니고, 길흉화복을 결정할 수 있는 전권을 장악한 것은 아니지만 어떻게 하든 살짝이나마 애들이 놀랄 차례는 자신을 정할 수 있었다. 어떤 방법으로든.
닉은 처음엔 장난이었는데 어느 시기를 지나다 보니 그건 더 이상 장난일 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는 거짓으로나마 타인을 감동시켜보고 싶었다. 솔직히 그 매력에 빠져버렸고 중간에 멈출 수 없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것, 그건 진짜 요술이었다. 환상이었다. 신비주의는 바로 그것이었다. 기적이 먼 데 있지 않았다. 자신이 하는 일은 교묘한 가짜였지만 결과는 원대한 진짜일 것이라고 믿었다. 자기도 놀랐다. 재미삼아 몇 번 해봤는데, 좀 더 쓰면 몇 년? 착실히 연습했는데 그랬는데 재능을, 그보다는 그 순간에 대한 즐거움과 몰입에 따른 순수한 기쁨과 뭔가를 만들고 싶은 욕구 그 참을 수 없는 환희를 어쩌다 발견한 것이다. 당분간은 절대 변치 않을 열정. 옛날에 못다 이룬 꿈이 변신해서 되돌아온 것이다. 놀랍게도! 어떻게 이럴 수가, 그런 것이다.
「아직 모르고 있겠지? 말해주지 말까? 그럴까? 그러면... 안 될 꺼 같은데. 아니야. 못할 거 없지. 왜 안 돼? 물론, 처음에는 무척 실망할 수도 있어.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슥 웃다가 팍 터지는 거야. 완전 빡! 빡! 정말 뻥~뻥~ 터지지는 않겠지만 시간이 지났으니까 그 미소는 적어도 썩은 미소는 아닐 거라구. 어쩌면 약간, 아주 약간 불쾌할 테고 아마 처음에는 당혹스러웠다가 금새 기분이 풀린 다음 다시 분위기 좋아지겠지. 그래도 쉬운 길을 가는 게 단순하고 나을 것 같긴 한데, 또 너무 쉬우면 재미없잖아?」
닉이 생각한 처음의 기획 의도는 이와 같았다. 그랬다. 자신감 불어넣기. 격려하기. 응원하기. 기쁘게 해주기. 그리고 웃기? 놀기? 깜작 놀라기, 놀래켜주기. 마지막 잎새, 따라하기? 그러나 해피엔딩 추종하기. 꼭 그처럼 활기를 얻고 기운이 충전되고 새 희망을 읽지는 못했을지라도 몇몇 친구들은 이미 이와 같은 생각을 품게 된 것을 보면 어쩜 절반은 성공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런데, 닉이 꾸민 일은 대체 무엇일까? 대관절 그게 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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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뭘 감추고 있는지 몰라도 꼬인 관계를 풀자면 우선 틀린 맥락, 엉터리 구성, 억지 기법 가운데 딱 하나를 선정하는 게 중요하고 그것의 적시는 바로 지금일 것이다. 현재는 그것이 급선무다. 처음에 관건이 되었던 하나의 부탁은 한 바퀴를 돌았다고 했는데, 어떻게 그것이 한 바퀴를 순탄하게 순환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다시 몇 가지 의문점을 불러올 수 밖에 없다. 하나를 꼽았는데 다시 몇 가지로 의문은 파생되었다. 요컨대 그건 바로 이것이다.
첫째, 한 바퀴 돌았다는 사실 여부는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다. 깔끔한 선서, 없었다. 간접적인 의미 전달도 부족했다. 막판에 닉이 조니에게? 어떻게? 왜? 그것은 없었다.
둘째, 그런데 어찌하여 중간에 조니가 제임스에게 <그분 2층 버스> 제작은 역부족이라는 의사를 전달하게 되었을까? 미스테리다.
셋째, 중간에 조니와 제임스가 만나서 TV로 봤던 <그분 2층 버스> 유행이 진짜였을까? 그랬을까?
넷째, 넷째? 말 재롱은 그만 멈추고 간략히 정리해보자. N이 가짜 다큐멘터리를 완성한 후 조니에게 알리고, 조니와 제임스가 만나자마자 그들은 닉이 버튼을 눌러서 재생시켰던 방송을 봤다는 것으로. 간단하군!
그러나저러나 거 참 말 많네!
난 또 뭐라고! 별 거 없네, 에이~ 그게 뭐야? 참 나, 정말 뭔가 있는 줄 알았자나. 이런 삐─삐─! 순도 높은 뻥에 수준 낮은 구라구만, 그런 거짓 이야기 누가 못해? 공짜라면 몰라도 아니라면야, 흥! 차라리 예고편에 속는 게 나아. 아니야. 이젠 더 이상 광고에도 속지 않을 꺼야. 시간 가는 줄 몰라? 시간이 아까워, 엄청. 속으면 안돼. 절대로. 설마 이미 허풍 대회 나갔다 온 거 아니야? 그럴 리는 없겠지만 끝까지 긴장을 풀면 안된다구. 언제 어떻게 돌변할지 몰라. 제대로 돌팔이야 제대로 돌팔이. 그런데 아직 뭔가 남은 거 같은데? 닉이 꾸민 일은 밝혀졌고, 마지막으로 뭐가 남았을까, 아, 그것이 대체 왜 절반의 성공이란 것이지, 라는 의문이 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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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바로 그들의 최근 관심사와 주의 깊은 취미, 감성적인 호사와 멈출래야 멈출 수 없는 할일이 바로 그 답변을 대신할 것이다.
그것은 블로그라고. 그것은 그들이 새로 올리고 싶은 컨텐츠를 발굴한 것이라고. 실제 발생한 일, 일상에서 얻은 착안, 매일 겪는 일상, 이걸 잘 다듬어서, 부풀려서, 과장해서, 거짓으로 진짜인 듯 사실인 것처럼 가짜 환상을 만들어볼까?
바로 그것. 마치 실제인 것 같이 글로 써서 블로그에 올릴까? 한번 해 봐? 어쩌면 재미있을 거 같은데! 실패해도 괜찮고, 썰렁해도 상관없으니까.
그런데 그런데, 에고머니나! 아, 꼭 대회든 행사든 잔치 다 끝나고 나서,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뭐합니다 라고 인사 엽서를 준비하는 그 찰나에 꼭 느즈막히 자기가 주인공인줄 알고 등장하는 인물이 있지. 누가? 바로 그분이! 2층 버스는 타고 오지 않으셨군. 내려주고 가신걸까? 몰라. 관심없어. 그러든가 말든가. 그래도 뜸은 들이지 않으시는군. 곧바로 그분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는군요. 깃을 세운 외투, 모자, 얼굴을 가린 걸로 모자라 안면에 뭘 칠했나? 아무튼 대체 뭔 할말이 남았는지 그분께 한번 들어나 봅시다.
「내가 너무 경솔했어. 뭔가 천재성이 새록새록 살짝이나마 엿보이기는 했는데 그를 미리 거두지 않았으니. 내 불찰이로다. 그때 진작 N을 수제자로 거뒀어야 했는데, 엄한 사람의 감언이설과 교태 더 나아가 아양과 거짓 웃음에 속아 넘어가가지고 기회를 놓쳤단 말이야. 그럼 왜 하필 그들은 내 귀에 마법의 속삭임을 불어넣어단 말인가? 시작은 그것이 분명해. 마침내 이성과 냉철한 논리력에 뭐가 씌여버렸지만. 눈에 콩깍지가 씌인다는 말이 바로 이런 걸 보고 하는 말이로군. 음, 어쨌든 대회는 열리지도 않았고 그 무엇의 시작도 끝도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여보게 형씨, 그럼 질문 하나만 합시다. 아, 아니오 아니오. 딱 두 가지만 물어봅시다. 거의 마무리되는 마당에 답은 나왔지만 도저히 확답을 구하지 않으면 참지 못하겠다는 그 애타는 심정, 그 처량한 측은함 때문이라오. 첫째, 허풍 세계의 숨겨진 진정한 실력자는 그럼 N이란 말이오? 그러요? ...(침묵)... 답변하기 곤란하면 두 번재 물음에 먼저 답해도 괜찮소. 다만 째깍째깍 시간은 쉬지 않고 속절없이 흘러간다는 걸 기억하길 바라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꼭, 그 말을 듣고 싶소. 변함없이. 왜요? 처지가 바뀐 것 같소? 주객전도라도 일어났을 까봐? 거야 두고 보면 알테고, 하던 얘기나 마저 합시다. 음, 불현듯 떠오른 생각이지만 속을 터놓고 말하자면 둘째가 더 중요한 논제인 듯 하오. 그것은 이렇소. 둘째는 이러하오. 혹시 혼란을 일으킨 장본인인 누군가가 N에게 최면을 미리 걸어놨고, 때문에 그는 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하고 조니에게 거짓 고백을 했고, 따라서 N은 결론적으로 J의 허풍 머쉰이 아니었나, 그것이 못내 궁금해서 잠을 이룰 수가 없단 말이오. 제발, 부디 아는 만큼 가르쳐주었으면 하오. 내 그대의 관상은 물론이요 타인에 대한 중간 난위도의 조종술도 가르쳐줄 용의가 있단 말이오. 내 추정이 맞다면 닉이 걸렸던 일시적인 최면, 그건 결코 초보적인 기법은 아니지만 썩 어려운 기술도 아니라오. 진짜 그 분야 딱 한 명의 최고 권위자는 바로 내 스승이었다오. 제자는 단 두 명이었고. 그 가운데 한 명이 바로 나란 말이오. 알겠소? 어떻소? 타인의 마음을 조종한다, 구미가 당기지 않냔 말이오? 허풍 머쉰인가 뭔가에게 한번 밀리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런다오. 난 몹시 초조하단 말이오. 매우 심각하단 말이오. 그것이 내 솔직한 심정이라오. 물론 덤으로 닉이 걸렸던 최면술의 고급 단계까지 내가 아는 모든 걸, 아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일단 자리를 옮겨서 차분하게 심도있는 담화를 나누는 게 어떻겠소? 일단 맛배기로 핸드폰처럼 생긴 이 기기를 보여드리겠소이다. 어느 정도는 의지를 조정할 수 있단 말이오. 알고 나면 꽤나 신기할 거요. 상대방의 마음을 상하로 들었다 놨다, 앞으로 뒤로 밀었다 당겼다, 내 품에 쏙 안기도록 쥐었다 폈다, 그게 다 가능하단 말이오. 어떤가요? 알고 싶지 않소? 여기 이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된단 말이오. 시간 설정도 당연히 되구요. 이게 보기엔 이래봬도 보통 녀석이 아니란 말이오. 뇌파을 진단하는 기능으로 시작해서 알파파, 세타파 그리고 그, 음, 어 그, 그 은밀한 기능까지 모두 가능하다오. 모두 다 말이오. 당연히 세간에 알려지면 곤란한 기능이지요. 네, 그럼요.」
뭐야? 저런! 궁금하긴 뭐가 궁금해? 안 나와도 될 뻔 했구먼. 뭔가 멋진 명대사를 그것도 길게 낭독해주실줄 알았드니 결국 하시는 말씀은 자기도 그게 궁금하다? 믿을 놈 하나 없는 세상이로구만, 얻을 게 하나 없는 강연회야. 소개와 안내와 세상의 말과 글은 통 믿을 게 못돼, 다 뻥이야 뻥! 그분은 끝내 오시지 않고, 왔다는 사람은 가짜였고, 축제의 마지막은 결국 맥빠지게 허당이 장식하고 마는군. 은근한 예법도 모르고 아주 광고를 해라 광고를 해. 아, 하늘이여! (눈을 지긋이 감고, 고개를 젓히고......)
정말 여기가 끝인가? 그럴까? 그렇다. 밑도 끝도 없이 내내 뭔가 나오는 듯 나오는 듯 하다가 종내는 뭔 머쉰? 뭔~ 머쉰~? 허풍 머쉰? 참 나 뭔 글 같지도 않은 걸 가지고, 기가 막혀서 말이 다 안 나온다. 그런 게 진짜 있어? 많이 봐줘서 최면이야 걸린다고 가정해도, 그 다음에 아 나 이런 이거 이거 순 픽션이구만, 마술적 사실주의도 사실적 마술주의도 사실-사실, 마술-마술도 아닌 뭐 아무 것도 아니네. 대회 나갈 필요도 없겠어.
그러나, 에이 속았네, 라고 하긴 아직 이르다. 못다한, 할 수 없는, 늦어버린 사랑고백 같은 이 한마디 때문에.
이만하면 추리가 아니라 추측소설이라 불러도 괜찮을지 아닌지, 통 감이 오지 않는다는 말씀.
송구스럽다. 고개 숙여 사죄드리는 수 밖에. 다음을 기약하며 이만 줄인다.
끝으로, 엄밀히 말해서 이 이야기는 실화를 기반으로 한 소설이다. 일부 내용이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극히 일부 내용만. 이름이나 몇몇 명칭 같은 것만. 어디까지나 실제 있었던 일이다. 분명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이야기다. 누가 뭐래도 등장 인물들의 생각은 거의 모두 사실이며 진실이다. 추호도 의심할 수 없는 닉이 만든 다큐멘터리, 그것까지도 진위 여부를 판별할 수 있는 근거 자료는 숨길 수도 감출 수도 없을 것이다. 태양을 손바닥으로 가릴 수 있을지 몰라도 그들의 경험은 도저히 부정할 수 없는 일이다. 벌써 2차적으로 겪은 독자의 간접 체험, 그것만 가지고도 명백히 빼도 박도 못하는 근거가 된다. 결정적 단서 1호, 증인 2호, 증거 3호등 기막힌 장기 최면술과 쉬쉬 하며 비밀리에 쓰인다는 인적-물적 허풍 머쉰까지 근거는 수두룩하다. 그것은 어딘가에 실존할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라 이 친구들이 그간 작성했던 또 앞으로 발표할 소설들, 과연 거기에 거짓이 있을지 꽤나 의심스러운 일임에 틀림없다.
①
여름에서 가을로. 여름도 아니고 가을도 아니고. 여름이면서 가을인 시기. 그냥 콧물이 비교적 유난히 자주 나오는 환절기라 부르면 되는 때 나는 집에 콕 박혀 있었다. 너무 재미있고 엄청 즐거운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할일이 있었는데 그게 뭔가는 딱히 기억나지 않았으나 뭔가를 완수했다는 해방감 같은 건 희미하게 남아있었다. 그리고 집에서 백조의 호수 고화질 영상을 보면서 졸다 깼다 졸다 깼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아침에. 그것도 정장을 입고서. 청보라색. 은은한 우윳빛 나비넥타이를 하고서. 게다가 머리카락은 올백으로 넘기고. 혼자서. 즉 뭐가 꿈이고 뭐가 현실인지 잘 분간할 수 없는 괜한 짓을 벌였다. 흥미진진한 사실주의와 환상적인 상상력의 절묘한 조합 바로 그것은 내 삶, 이라고 한다면 그건 어디에 명함을 내밀지도 못하는 공상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어디 허풍 대회 같은 행사장 같은 곳에나 기웃거려 볼 걸 그랬다 라고 생각했다. 따분했으니까. 심심했으니까. 기대할 일이 없었다. 무기력했다. 코 끝이 찡할 일, 당연히 없었다. 가슴이 설레고 마음이 사무치지도 않았으니 정상이었다. 그런데 왜? 뭐가 왜? 뭐랄까 너무 정상이니까 어떤 비정상적인 상태랄지 우중충한 일상을 탈출하고자 하는 동경심을 키우고, 과감하고 때론 경솔하게 책상 밑 버튼 같은 것을 찾게 되는 것일까? 다른 각도? 색다른 만족감? 동심의 세계로? 앨리스가 많이 늙었어요? 허풍 대회?
나는 쓸데없는 망상과 헛생각을 모두 물리치고 집에서 오전에 캔 맥주를 딱 하나만 마신 후 일상적으로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인터넷 세계를 떠돌고, 작품 구상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혼자서 놀이동산에 가도 흥겹지 않을 테고, 여행을 가도 얼마 되지 않아서 아 집이 좋구나 라고 한탄만 하며, 실망할 일과 미숙한 소설과 지루한 영화만 애써 찾는 듯 하여 뭐 새로운 거 없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 하루가 가고 저녁이 됐다. 개연성 없고 엄청 작위적인 작품 소재만 찾다가 가식적으로 고전음악을 듣고, 탄탄한 구성력 하나 없이 하루가 훌쩍 지나가버렸다. 워 이런 뭐 한 것도 없이 벌써 일요일 오후 3시야? 주말이 화살처럼 날아가버렸다는 그런 기분. 그러나 그 하루가 딱 끝나지는 않았다. 드라마는 2부가 있고 쇼는 본 편이 있으며, 사랑은 다음 상대가 훨씬 의미심장할 수 있는 법이다. 포기하기엔 이르다. 광고와 제품이 동일할지는 사용해봐야 아는 것이고, 식을 치른 후에 본 경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야행성 동물이 어두워지기 시작하면 기지개를 켜며 몸을 푸는 것처럼.
그러나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복권을 사는 거 아니겠나. 신나는 모험을 하게 될 것이라는 소망이 이루어질 가망은 거의 없다. 타인도 없고 나도 없었다. 불확실하다. 그래서 카드 게임을 하지 않는가? 예측할 수 있으나 그 예측이 들어맞을지 어디 한번 보자는 심정으로 지루한 낮을 도려내서 저편에 놔두고 허망할지언정 사랑의 묘약을 찾아 고혹적인 탐색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막판 반전을 고대하느라 카메라와 녹음기를 챙기지는 않았다.
나는 드디여 황혼 무렵 외출하는 데 성공했다. 성공? 그렇다고 정염에 불타올랐다거나 이상한 제목의 영상물을 은유적으로 빗대어 뭘 시도해보는 것보다는 더 나은 표현 같다. 그만하자. A에서 B로 나갔으면 그만이다. 일단락, 됐다.
②
그러나, 유난히 노을이 아름다운 저녁 즈음 내가 바깥에서 했던 일은 다름 아니라 쇼핑이었다. 뭐 대단한 탐험을 나선 것도 아니고, 남남서쪽에서 오신 귀한 호인과 귀중한 만남을 성사시키지도 않았고, 새로운 취미에 병적일 정도로 집착하지도 않았으며, 그저 과히 나쁘지 않은 시간 보내기란 것은 결국 물건 사기였다.
풍선 바람 빠지는 소리가 꼭 들리는 것도 같고 아닌 듯 하면서 재차 여운을 남기고 실체를 알 수 없는 잔상이 자꾸 날 현혹시키는 듯 뻔질나게 자아를 괴롭혔지만 난 돈의 힘 때문인지 적당한 소비 생활 때문인지 기분이 좋아지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었다. 절대로.
내가 그날 산 물건들은 이랬다. 은색 물뿌리개, 레몬 모양 동전 지갑, 작은 삽, 낙타털과 울과 캐시미어로 만든 스웨터, 멋진 베레모, 하이브리드 운동화 어쩌고저쩌고, 핑크색 쌍안경 울트라버드 8X20 빨강 스티커, 투도르 일회용 카메라, 조 말론 양초, 바레이도 향수, 은색 가스버너, 양털 슬리퍼, 그리고 깃털처럼 가벼운 접이식 의자를 샀다. 난 미쳤기 때문에 아무거나 막 산거 같다. 정작 필요하지도 않으면서. 실지 원하는 건 묘한 감동이었고, 듣고 싶은 말은 <아, 쫌!>이었으며, 하고 싶은 일은 다른 게 아니라 바로 그거-였다. 으쌰으쌰! 으쌰으쌰가 뭔지 모르시지는 않을 테고, 음. 뭐랄까 다시 생각해보니 내가 근래 갖고 싶은 건 하나의 경험이었다. 일시적 견지에 따른 지속적인 경험제는 충분하니까 장기적 관점에 근거를 둔 일시적인 경험제를 원했다. 신선한 추문과 결렬된 꿈과 불쑥 찾아오는 불운은 없었다. 지금 내게 없는 건 뭐고 없는 것 가운데 원하는 것은 이것과 저것이구나, 그 가운데는 도저히 헤어나올 수 없을지도 모르나 그렇다고 살짝이라도 충족되지도 않고 한없이 불만족 상태를 유지하는 애욕도 잠시 포함되었다가 그 목록에서 얼마 머물지 못하고 바로 떠나갔다. 그리고 암울한 권태에 둘러싸여 있다는 둥 뭘 해도 재미없다는 둥 퉁명스럽게 투정만 오직 투정으로만 필사적으로 일관할지라도 딱 하나, 오직 하나, 그분은 한 분, 진정 한 가지 원했던 분위기와 빠져들고 싶었던 기분과 눈꺼풀 뒤집어지는 느낌은 아마도 그것이 아니었을까 추측해보곤 한다. 꼭 뭔 30년 전의 못 다 잡은 대망이나 못 다 이룬 사랑과 야망을 부풀려 설명하는 듯 하지만 기껏해야 지금 나열한 품사들이 가리키는 시간은 불과 하루 안짝의 일이다. 그렇다. 그게 뭔 놈의 어리광이요 공갈 협박이란 말인가. 우울감이 지나치게 강조됐다. 내가 이렇게 과장하고 연기하며 감탄사를 남발하고, 형용사와 관형사를 남용하고, 특히 동사를 두 번 반복하는 인간이었나? 그러거나 말거나! 아무도 관심없는 일이다. 동네 아저씨요 행인이자 구경꾼일 뿐이다. 한심한 족속. 그래도 얼르고 달래서 듣고나 볼까? 숨겨진 사연은 뭔가, 사뭇 궁금해진다. 곧 어쩌면 실은 내가 갖고 싶은 것은 그분이 아니었을까?
이 때 여기서 그분이란 유리병 안에 액체와 반짝이는 알록달록한 작은 무엇들과 성이나 배나 놀이기구가 들어있는 수정구? 그것일까? 아니다. 아닐 것이다. 나는 실제 바이킹 놀이기구를 원했다. 그러나 그건 살 수 없었다. 사면 사지 왜 못 사겠냐마는, 10년이나 그 이상 일해서 반재산을 몽땅 걸어버리면 뭐 그게 대수겠냐마는 그러고 나면, 사고 나면 에이~ 갖고 나니 별거 없네 에이~ 그럴 꺼 같아서 그건 소유하면 안될 것 같았다. 내 인생은 완벽해~ 그러다 퍽, 할 꺼 같아서. 숙취는 당해도 당해도 무서운 상대다. 그래서 나는 좋게 그날 범퍼카 미니 장난감마저 사버렸다. 그날 꿈에서 그걸 타고 동화의 나라로 떠나고 삼천 궁녀가 애타게 기다리는 어느 궁전에 도착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건 허황되지만 그러나, 아직 다가오지 않은 앞날이고 미래이자 꿈이었다. 분명 단꿈의 실현을 목도하기 전이었고, 내 님을 재회하지 않은 시련의 시기였으며, 직접 뛰고 보고 생각하고 매달리며 취하고 읽고 도취하며 열심히 뭔가를 해야만 하는 시절이었다. 불과 하루를 지나지 않아서 되돌아봤을 때, 여기서 저기까지 몇 발짝 얼마되지 않은 거리를 놓고 회상해봤을 때, 그 무렵 그렇게 매일 같이 별다른 일 없이 월화수목금토일 월화수목금토일 딱 이주일이 지났다.
그러나 나는 우리의 무명 블로그가 유명으로 가기 전 단계인 저명에 살짝 접근했을까 말까 하는 바로 그 지점에 근접했을 때 나는 그런 흔한 인물 유형 하나도 글로 만들어내지 못했다. 여자친구가 지겨워져서 바람 피다가 끝내 일하는 직장으로 여자친구가 찾아와서 회사 정문에서 만나고 뺨 맞고 또 맞고 한 대 더 맞고 코피 팍, 바닥에 떨구어진 안경을 하이힐로 지근지근 바삭바삭 우지직 살며시 밟아버리는 일을 당하는 남자 주인공, 난 창조해내지 못했다. 나는 그 흔한 멜로드라마 하나 못쓰고 있었다.
그러다 나는 클래식 기타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뭔가 새로운 취미를 가져야 삶이 즐거운 법이니까. 자신의 신선한 경험을 널리 주변에 알리고 새로운 일에 몰두하며 매사 진중하고 자상하며 말도 잘하고 고급스런 농담이 곧 인생인 그런 남자에게 여자들은 빠지게 되어 있다. 그것도 홀딱! 거기다 기타까지 잘치면 금상첨화, 말 다 했다. 그러나 정신 차리면 이미 늦은 거지. 어쨌든 나는 클래식 기타 강습소에 등록했으나 딱 3일 나가고 말았다. 그곳이 스파르타식 학원은 아니었지만 거기 분위기가 어째 좀 안 좋았다. 이름만 뭐뭐 아카데미였다. 자세한 얘기는 하고 싶지 않다. 지난 일을 반복하는 실수를 재현하고, 그 실수는 지난 일이 되고, 다시 지난 일은 뭐가 잘못됐나 헤아리고, 그렇지만 다시 그 일은 되풀이되며, 그러면 머리 아프다. 저 하늘에 두둥실 떠있는 별의 숫자를 세는 게 더 나은 일 같다. 저 별은 너의 별, 저 별은 나의 별. 하늘과 바람과 별과 너와 나와 문학과 영화 그리고 추억, 그런 거 이미 누가 다 해먹었을 것이다. 수차례 흔히 써먹는 수법이다. 남녀가 연애할 때. 어차피 실력도 늘지 않고 호시탐탐 배꼽보다 더 크고 탐나고 매력적인 부록에만 관심이 있었으니 잘 때려친 것이다. 그렇게 2주일 하고 3일이 더 흘러갔다. 그리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고 불가해하며 어디서 그 짝을 찾을 수 없을만큼 신기한 일을 맞닥드린 그날이 오고야 말았다. 그분을 고이 맞이하게 된 것이다. 와우!
③
어른 동화, 뭐 그런 건가? 역시 미스테리 역시 판타지 하필이면 내가 주인공? 그래도 알고 보니 역시나 보나마나 이건 허구, 난 허당, 환상은 개뿔! 아마도 이렇게 예상했다. 처음에는. 즉 믿을 수 없는 일이라서 난 처음에 철저히 불신했다. 과연 이젠 헛것이 보이는구나, 그랬다.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바로 이것이었다. <대체 뭔 일이지?> 그러나 실제 꺼낸 혼잣말은 그렇지 않았다. 난 이렇게 말했다. <어쭈 이것 봐라~!> 그리고 잠재적으로 하고 싶었던 말은 이렇지 않았을까 라고 가만히 점지해보는 것을 뛰어넘어 거의 확실했다. 그래~ 그렇다니까 이런 진짜 환각의 경험이 없을 리가 없어 난 평생 기다려온거야 이제야 드디여 이제야 마침내 만나게 된거네! 바로 이와 같은 여유있는 허세로 찬연히 빛나는 발언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못할 건 뭔가, 하면서. 그러나 지금이니까 그렇지 그땐 재량껏 하고 싶었던 바램이자 받고 싶었던 부러움 같은 것이랄까, 어쩌면 희망 사항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무엇보다 멋쩍은 표정, 당황한 어조, 오매불망 주사야몽 언제라도 도망갈 궁리를 모색했던 것 같다. 아니면 상황에 걸맞지 않게 실은 이런 말을 내뱉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기억이 흐려졌다. 가물가물하다. 아무튼 많이 듣고 많이 읽었던 적당한 대사를 읊었던 듯 하다. 왜냐하면 비용편익을 따져볼 계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따지고 보면 누구나 일평생 단 한 번의 기적을 경험한다고 가정했을 때, 비로소 처음으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와 같은 기이한 일을 겪게 되는구나 라면서 마지 못해 눈앞에 벌어진 환영을 신임했던 것 같다. 아이쿠~ 잘 찾아왔군 오는 동안 고생이 많았지? 그래 좋아 그런 거지, 음 이젠 내게도 신비한 일 나타날 때도 됐다 라면서 일찌감치 나는 그 명언을 전광석화처럼 기억해냈다. 절대 뒤돌아보지마!
아, 깜박했다. 내가 맞닥드린 기발한 사건, 깜짝 놀랄만한 입을 떡 벌리고 침을 한가득 흘리며 눈을 똥그랗게 뜨면서 선그라스를 벗자마자 레이저가 발사되고 입에서 화염방사기의 불꽃이 나가고 두 손바닥을 비볐다가 딱 펴서 손가락 딱 하면 진공청소기의 흡입력 그 오공본드 같은 대하드라마에 나오는 의형제의 결탁과도 흡사한 감성적 결합은 바로 이것이었다.
얼토당토 않은 행성 A에서 B로 이동하는 일은 바랄 수 없으니까 그날 나는 혼자 멀리가기도 싫고 여러 사람들과 번잡하게 떠들석한 분위기에 휩쓸리기도 싫었기 대문에 옆동네에 아는 형씨가 스크린 골프장을 개업했다길래 그곳에 놀러갔다. 그리고 나는 한 연습실에서 혼자 골프를 즐겼다. 여기까지는 정상이었다. 그때는 어디까지나 사실주의였고 난 행인 1이자 어엿한 흥행작 하나 없는 삼류작가이자 블로그를 운영하는 시골 중년이고 장년이었다. 그때까지는. 나는 혼자 연습실에서 골프를 치다가 스크린이 반듯하지 않고 구겨져 있길래 그걸 펼칠려고 앞으로 갔다. 대충 쳐도 됐지만 왠지 편편하지 않은 그림이 거슬렸다. 평평하게 푸르른 초원이 보여야하는데 자꾸만 완성도가 떨어지는 화면 때문에 가상에 빠지는 만족감과 집중력이 떨어지는 것만 같아서 그냥 참고 넘어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쪽으로 다가갔고, 구부러진 스크린 첫의 오른쪽 하단을 잡아서 펼칠려다가 나는 그만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왜냐하면 스크린 천을 잡아서 살짝 폈을 때 그 안쪽에서 바람이 불어왔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람의 혼을 빨아들이는 듯한 기운을 지닌 듯한 바람이었다. 보통 바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스크린 천을 조금 더 열어보았다. 그랬더니 환한 빛이 비치고 연습실 스크린에 보였던 실제 골프장이 저 앞에 펼쳐져 있었다. 나는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곳으로 걸어들어갔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기억이 흐릿하다. 하지만 완전 필름이 끊긴 것은 아니었다. 약간 그래프 선이 내려가다가 다시 올라갔다. 그렇게 나는 잔디를 손으로 만졌고, 풀내음을 맡았으며, 풀밭에 누웠고, 또 다람쥐 한마리와 토끼도 봤으며, 한동안 그곳을 걸었고 구경했다. 그건 진짜 경험이었다. 진짜 경험.
그런데 이상한 것은 첫째, 연습실 쪽은 해질녘인데 그 푸르른 초원인지 꿈의 동산인 진짜 골프장은 대낮이었다. 둘째, 어떤 속임수와 가상의 장치와 정교한 연출이 있든 없든 그 공간은 내가 아는 한 그만한 장소가 절대 들어설 수 없는 공간이었다. 즉 골프연습장 뒷편은 공터, 옆은 놀이터, 입구 쪽은 도로요 건너편이라고 해도 산이 있고 주택가와 조그만 시가지가 전부였다. 그러나 진짜 풀밭이었고 진짜 바람이 불었으며 그건 꿈도 아니고 소설도 아니고 블로그도 아니었다. 그리고 셋째, 그 실재 대낮 골프장에서 어떻게 다시 저녁 골프연습장으로 넘어왔는지 기억이 불분명했다. 어쨌든 나는 신기한 일을 체험한 후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나는 연구하고 조사를 시작했다. 그 가게 주인 형씨의 뒤를 캐고 그 땅의 지적도와 주인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동네의 변천사와 내가 만약 환각에 빠졌다면 왜 그렇게 되었는지 모든 경로와 빈틈과 온갖 헛점을 살펴봤다. 그러나 난 잘못한 게 없었다. 난 제정신이었다. 난 미치지 않았다. 바보도 아니었다. 그건 100퍼센트 실화였다. 믿을 수 없었지만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으나 말문이 막힐 노릇이었다. 그러므로 나는 실의에 빠졌고 괴로운 생활을 반복하게 되었다.
④
나는 다시 심기일전하고 용기를 충전해서 그 골프연습장에 가봤다. 그런데 그 가게가 없어졌다. 깔끔하게. 깨끗이. 말끔하도록. 아 나 이거 도무지 무슨 일인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이래도 흥 저래도 흥, 도 아니고 난 마치 귀신에 홀린 것만 같았다. 그러나 사람이 이상해지지는 않았다. 아니다. 약간은 이상해졌다. 사람의 삶이 만화영화도 아니고 그 어떤 단서도 잡히지 않았다. 일순간 모든 게 부질없는 듯 여겨졌으며 난 정말로 꼭 뭐에 홀린 것처럼 시험에 낙방하고 사랑에 실패하며 인생에 실망하여 비현실적인 동화를 꿈꾸는 듯한 허무맹랑한 승부사가 된 듯한 최면감 때문에 몹쓸 방황에 빠져버렸다. 매사 갈팡질팡했고, 쓸데없이 돌아다녔고, 불필요한 빈 깡통을 모으기 시작했다. 폐지도 모으러 다녔다. 길을 걸을 땐 고개를 숙이고 걸었다. 누가 잃어버린 돈을 줍는 건 싫고 고대의 금화가 땅에 파묻혀있다가 빗물에 드러날지도 모르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주 떠돌아다녔다. 난 방랑자가 되었다. 낙오자로 모자라 몽상가라는 직함까지 추가하게 되었다. 평범한 삶과 묵묵한 일상을 아주 쩔쩔매며 어려워하곤 했다. 누굴 추궁할 수도 없었고, 방법도 없었다. 한 번 비현실을 보고, 한 번 신비를 만나고, 한 번 환상과 키스했기 때문에 내 삶은 한없이 뒤숭숭했다. 딱 1번에 중독된 것이다. 괜히 나는 정절이란 단어도 떠올려봤다. 다시 그분을 만나고 다시 그분의 교재를 읽고 다시 그분의 그늘에 들려면 어찌해야 하는가 그것만 생각했다. 내가 호박이 될 수도 없는 일이었다. 호박마차는 더더군다나 뗀지 오래됐으니 뭔가 궁리를 짜내고 묘안을 떠올려야 했다. 철저히 현실을 기만하고, 사실성과의 우정을 시치미뗐으며, 유심히 시간의 굴곡과 공간의 빈틈을 찾아헤맸다. 조금은 두려웠다. 그러나 기분은 좋았다. 희한하게 마음은 편안했다. 가끔 화도 났다. 기분이 오르락내리락했다. 지금 그리고 이곳이 더없이 너무나도 각별하다고 느꼈다. 애절하고 또 절박했다. 정말 그랬다.
물론 부작용이 뒤따랐다. 그건 불찰이 아니라 한계 너머의 일이었다. 신비주의가 부각되었으니 다음 카드는 초현실주의였고, 마지막 패가 무엇일까 같은 생각은 할 겨를도 없고 할 필요도 없었다. 귀가 따갑도록, 아니 정정하면 몇 번 읽고 몇 번 들었던 몰입, 바로 그 미치도록 행복한 시절이었다. 그 행복이 그 행복인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부작용은 바로 이런 것이었다. 정확히 언제, 어떻게, 왜 그런 증상이 발생했는지 도저히 파악해낼 수 없었으나, 그러나 이상하게 멈출 수 없었고 그와 같은 현상을 벌이는 도중 묘한 쾌락이라고나 할까, 굉장히 작은 기쁨 같은 것을 느끼면서 뇌리에서 그런 음악이 들리는 것만 같았다. 발다사레 갈루피가 일생 동안 남긴 100여 곡에 이르는 오페라 가운데 제일 오묘한 정취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어느 서곡. 난 서곡으로 알고 들었지만 실재 그건 간주곡일 수도 있겠으나.
깜박했군! 부작용은 이런 것이었다. 물론 반작용이라거나 자연스러운 전조쯤으로 여겨도 크게 어색하지는 않을 것이다. 의외로 그것이 더 옳은 해석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는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고 나서 관중이 모두 나가기를 기다린 다음 나 혼자 남으면 극장 스크린을 살피다가 극장 직원이나 청소하시는 분에게 핀잔을 들었다. 지금 뭐하시냐는 둥 여기서 이러시면 안된다는 둥 정말 그러면 곤란하다는 둥 대체 무슨 일을 벌이시려는 행동이냐는 둥 그런 말들. 스크린 뒤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또 집에서는 가만히 TV를 보다가 어쩌다 나도 모르게 점점 화면으로 다가갔고 그렇게 가까와지더니 그 안으로 들어갈려다가 브라운관에 쿵~하고 이마를 찧기도 했다. 이마가 이따만하게 부어올랐다. 한 번이 아니고 여러 번 찍었다. 쿵, 쿵쿵. 컴퓨터로 명작 영화를 보다가도 그랬다. 거북목 증후군을 유발하는 (본격) 에로, (정통) 멜로 장르 영화는 화면에 근접하다 멈췄다. 그리고 핸드폰은 물론이요, 길거리에서 시각적인 광고판에 다가가 부딪히기도 했다. 쿵-쿵-쿵! 그 뿐만이 아니었다. 나는 어느 공원에 들려 소형 회전목마를 탔다. 1번 타고 음악과 기기가 멈추면 내려서 그만 나와야 하는데 나는 계속 타 있겠다고 떼를 썼다. 마침내 나는 보안요원에게 끌려 내려졌고, 유치장에 잡혀갈 뻔 하다가 말았다. 나는 그 일을 불행 중 다행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건 다행 중 불행이었다. 왜냐하면 조금만 더 버텼다면 목마는 진짜 당나귀로 변하고, 난 그걸 타고 미지의 세계로 떠날 수 있을 것이라고 절실히 믿었고, 소망했고, 꿈꾸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연극이 절찬리에 방영중인 어느 소극장에서는 극중 중간에 무대로 뛰어들어가 문을 열고 배우들 옷 갈아입는 소품실에 쳐들어간 적도 있었다. 속옷 입은 여배우는 보지 못했다. 그날 나는 관중들에게 욕 바가지로 얻어먹었다. 또 이런 일들을 친구에게 말하고 상담을 했드니 이런 말을 듣게 됐다.
「넌 그걸 말이라고 하냐 농담이라고 하냐? 어? 어? 그걸 나보고 믿으라고? 어?」
최근의 삶에 대해 나는 그렇게 느꼈다. 재밌지만 재미없네. 멀더에게 조언을 구한다고 했을 때 예상되는 성의와 시건방 떠는 태도와 더불어 전개될 대화는 대충 눈짐작과 눈대중으로 눈치껏 가늠할 수 있었다. 그래서 딱히 그에게 조언과 충고를 권고받고 싶지는 않았다.
「뭔가 감동이 있었어.」
「없었어, 라고 할려고 했던 건 아니지?」
「그런가?」 그와 대화를 하기만 하면 난 말려들게 된다. 난 두루마리 화장지가 된다.
「개가 놀아주라는데 놀아주지 않으면 큰코다친다, 그런 말 못들어봤냐?」
「그럼. 못들어봤지.」
「그래? 그럼 이번에 처음 듣게 된 걸로 하자고.」 도대체 쟤는 어떤 화법의 소유자고, 쟤 머리 속에는 뭐가 들어있으며, 쟨 뭔 생각을 하며 살까? 여자 생각? 온 종일? 걸핏하면? 알 게 뭐야!
⑤
그래서 결국 나는 다시, 그 장소에 가보기로 마음을 굳혔다.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곳에 도착했다.
그런데, 아뿔사!
어머나!
말도 안돼!
어떻게 이럴 수가!
세상에나 이런 일이, 오오!
꼭 마치 시간을 되돌린 것처럼 그 자리에 스크린 골프장이 그전 그대로 멀쩡히 존재하고 있었다. 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그때 내가 길을 잘못 들었나? 아닌데, 아닌데, 아닌 것 같은데, 아마 아닐 텐데, 아닌가... 그럴지도 모르겠어, 음... 어쩌면 말이야. 그러나 맞게 찾아갔을 꺼야. 그래. 그러니까 이건 환상이야!
나는 그 순간 수많은 번민에 급속히 빠져들었다. 내가 만일 C나 O, H 등 유명 대학 이름과 로고가 씌여진 티셔츠를 입으면 어떻게 되는 거지? 행정기관에 이름 변경 신청서를 접수할까, 몽이나 둥, 딱, 막, 얍 같은 이름도 한번 고려해봐야겠는데, 또는 레오나르도라는 새 이름으로 그냥 접수해버려? 꿀꺽꿀꺽 시원한 수제 생맥주를 마시기 위해 옆옆 동네에 있는 레스토랑 함부르크에 순시차 방문할까? 뭔 일이 생길지 누가 알어? 밤에 잘 때 양말을 한 백 켤레 걸어놓고 잘까?
나는 쓸데없는 생각을 몽땅 물리치고 어서 연습장에 들어가서 뭔가를 확인하고 신비로운 통로로 들어가고 싶어졌다. 혹시 그곳에는 또 다른 내가 있는 것을 아닐까? 벌써부터 기대됐다.
진짜 있었다, 내가! 조금 떨어져서 보니 그는 나인데, 그는 정말 비리비리했다. 행동이 뭐든 어설펐고, 촌스러웠다. 아무튼 거기 딱 도착했을 때 그는 막 스크린 천을 걷어올리고 불가사의한 미지의 공간으로 슥 들어갈려던 찰나였다. 꼭 내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난 그때 꼭 순간이 영원처럼 느껴졌다. 난 나를, 난 그를 따라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동안 수없이 봤던 작품들에서는 어떻게 된다고 했드라? 끝이 좋지 않던가? 공간과 시간을 바꿀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되었던가? 결말은 열렸나 닫혔나? 낯설게 하기가 많았나 낯익게 하기가 새로 떠오르는 추세였나? 신생 작품들은 거의 못봤는데 어떡하지?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하나도. 이건 꿈도 아니었고 소설도 영화도 아니었다. 따라가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였다. 평생 남 따라하기만 하더니만 마침내 따라가느냐 마느냐 라는 험난한 4차원의 대문에 떨구어졌다. 아무리 골몰해도 소용없었다. 시간도 없었다. 어중간한 망설임이 아니라 확고한 결단과 행동이 필요했다. 번듯한 조력자도 없었다. 모든 것은 혼자서 해결해야 했고, 직관을 따라야 했으며, 직감을 믿어야 했다. 혹시 첩자가 있나 뒤를 돌아볼 수도 없었다. 정말 어찌 해야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이번에는 진짜 에라 모르겠다, 도 통하지 않았다. 그러다 다리에 쥐가 났다. 그러나 잠깐 저리다 말았다. 도망갈 수도 없고 어떻게 발버둥칠 수도 없는 일이었다. 현실은 영화가 아니니까 상황은 슬로우모션으로 흘러가지 않았다.
진정 사람이 신비를 맞딱드리면 어떻게 되는줄 아시는가? 평생에 한번, 아니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인생을 통틀어 발생할 확률이 아주 희박한 일을 마주하고 하필이면 자신이 거기서 주인공일 때. 난 모른다. 남의 일을 내가 어떻게 알겠는가. 여러가지 각각의 반응을 내가 무슨 수로 알겠는가. 드라마와 영화로 본 게 전부일 뿐.
그건 그렇고 나는 그 무렵 이 일을 글로 써야하나 말아야 하나를 고민했다. 이 불가사의한 사건을 말로 누군가에게 전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를 아주 심각하게 따져보았다. 그 짧은 시간에. 이 설명할 수 없는 전대미문의 모험에 관한 교향시를 작곡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건 명백히 할 수 없는 일이니까 나 대신 그 일을 할 사람을 찾을 것인가 말 것인가를 진지하게 검토했다. 바로 눈 깜짝할 사이에 말이다. 어쩌면 그땐 시간이 느리게 갔는지도 모르겠다. 산술적으로 슬로우모션이라야 가능한 일이었으니까.
다시 이야기로 돌아와서 시간의 흐름을 멈춤에서 슬로우모션으로, 다시 멈춤으로, 또 다시 슬로우모션으로, 그러다 이제는 드디여 재생으로 되돌려보자. 리모컨, 충분히 갖고 놀았다. 자, 우리의 꺼벙한 주인공이 어떤 철학적인 행동과 무슨 숙고할 만한 사고를 할지 하고 있을지 그리고 했을지가 궁금해지고, 알고 싶고, 무럭무럭 호기심이 자라고, 동심이 뭉개구름처럼 피어오르는 순간이다. 우리의? 우리의...? 넘어가자!
⑥
나는 골프연습장에서 천으로 만들어진 스크린 모서리를 들어올리는 그 친구를 유심히 관찰하는 찰나 문에 달린 조그만 종을 건드리고 말았다. 그것은 오르골 소리를 내는 이상한 종이었다. 문이 꼭 고양이인 듯 여겨졌고 나는 그 문에게 방울을 단 생쥐가 된 것만 같았다. 그건 그렇고 그 때문에 나는 들키면 안된다는 어떤 무작정 떠오른 엄숙한 묵계 때문에 발가락이 떨리고, 등에 식은땀을 흘리며, 가슴이 떨리고, 코끝이 찡하고, 어쩜 눈물이 핑 도는 것을 느꼈다. 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내가 뭘 잘못했는가? 내가 뭐 도둑놈이라도 된단 말인가? 도둑이 제발 저려 아니면 닭 잡아먹고 오리발을 내밀어? 내가 왜? 그러나 나는 분명코 쫄았으니까 덜컥 겁이 나서 움찔했다. 설마 저 친구가 날 쳐다본다면 난 어떻게 해야 하나, 에 대한 답은 정해놓지 않았다. 그런데 저런~! 바로 그때, 그는 고개를 부드럽게 돌려서 날 쳐다봤다. 그리고 나는 무심코 나도 모르게 저절로, 반사적으로 고개는 물론 몸까지 슬그머니, 뭔가 어줍짢은 반응을 선보였다. 어딘가 모르게 이미 잠재의식에 그런 이론이 내재되어 있어나 보다. 즉 그는 어제의 나고 나는 오늘의 나니까 그와 나는 동기화되어야 한다, 따라서 그가 고개를 돌리면 나도 똑같이 돌려야 한다 그래야 한다, 그것이 맞다. 그러므로 난 바로 그것을 따랐고 실천한 것이다. 왜 그런 일 있지 않은가? 어지간하면 참을려고 했는데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서 한 소리든 한바탕이든 뭔가 할려고 차 문을 확 열고 차에서 내렸는데 어머나! 저기서 내린 상대가 도의적으로 95퍼센트 책임이 있고 정말 운전 뭣 같이 했어도 그는 완벽한 액션 영화의 주인공이었고, 완전 우람하고, 엄청 험상궂게 생긴 것으로도 모자라 가죽점퍼까지 입은 모습을 봤을 때 바로 그때 그 순간 슥 꽁무늬를 빼고 다시 차에 타시는 소심하지만 선량하고 매사 모범적인 시민이 된 듯한 일. 그런 것처럼 마치 정말 그런 것처럼 나는 온 몸을 돌리고 말았다. (진짜 그런 일은 드물게 발생한다. 저건 실화였고, 먼저 운전 뭣 같이 했던 무서운 역할은 내 친구였고, 걘 그때 가죽점퍼가 아니라 말끔한 수트를 입고 있었다. 뒷자석에 사람이 탔다면 그는 오락실에 앉아 조이스틱을 쥔 기분이었을 것이고. 그 친구도 다 인성이 있고 나쁜 사람도 아닌데 잘못을 시인할려고 내렸지 뭘 딱 할려고 내린 것은 아니었다. 일단 뒤따라서 내렸고 미안하오, 라는 한마디 말을 건네려고 내렸는데 먼저 내렸던 아저씨는 완전 스타일 구긴 결과가 됐지 뭐. 그럴꺼면 차에서 왜 내리셨지? 왜? 그럴만 했으니 그랬을 수도 있고, 쉽게 흥분했을 수도 있다. 항간의 속설이든 현명한 조언이든 이런 일은 남성 잡지에서 다루기 딱 좋은 소재다. 대체로 그땐 무조건 내리지 말라고들 한다, 그러면 큰일난다고. 그런 말 파다하다. 그러나 내렸다면 진짜 그땐 웃겨야 진정한 남자로 공인된다. 시간 뺐기고 기분 나쁘고냐 아니면 그 이상이냐, 그 차이 뿐이다. 그 시점 이후로 정상적인 생활을 하느냐 하루가 꼬이고 그 이상이냐, 그 차이 뿐이다. 이땐 염주 돌리기가 최고다. 천동설이 아닌 지동설을 따라야 하는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살짝 엇비슷하거나 앞부분까지만 비슷했던 경험, 저마다 많이들 떠오를 것이다. 굳이 내님도 아닌데 문을 열고 나가서 만나야 하느냐, 될 수 있으면 아니 가능하면 반드시 형식과 절차가 생략되는 게 좋은 극명한 하나의 예다. 어떡하다 보니 딱 내렸어, 그런데 다시 타자니 것도 뭐하고 안 타자니 그건 더 뭐하고. 칼을 뺐으면 무라도 썰어야 하느냐 마느냐에 관한 미담을 하나만 뽑자면 이와 같은 오 미안하게 됐소이다, 일 것이다. 그 말을 하거나 듣거나, 어느 쪽이든 피하고 싶은 역할인 건 분명하다)
⑦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지금도 뭔가 억울하고 무척이나 아쉽다. 혹시라도 그가 철가면을 쓰고 있었는지 누가 알겠나? 주사위는 던져졌다. 이미 한 공간에 같이 있는데 거울을 보듯 그 친구의 얼굴을 본다고, 용왕님의 용안을 대놓고 쳐다본다고, 나와 그 인간이 서로 대면한다고 설마 뭔 일이야 있겠냐마는, 내가 거기서 그 친구의 눈빛을 직시할 정도로 난 그렇게 얼굴이 두껍지 않았나 보다. 아마 나는 그 친구와 인사를 나눌 용기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그의 얼굴을 보면 꼭 뭔가 심란한 모험으로 모자란 무언가 크게 뒤틀린 착오가 발생할 것만 같은 싸늘한 직감 때문에 그와 내가 마치 연인처럼 시선을 교차한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궁금해도 어쩌겠나. 진짜 어떻게 생겼는지 낯짝이나 한번 봐야겠다는 욕구는 시간이 한참 지났을 때나 화사하게 피어오르는 깐족거림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당시 나의 욕망은 모호했고, 선홍색이나 적자색도 아니었으며 떳떳한 호감이나 반감조차 구별하기 힘들었던 듯 하다. 그렇다. 결국 난 그 친구의, 살면서 어쩌다 한번은 험한 말이 참다 참다 자동적으로 나올 시기가 있다면, 적어도 딱 한번 있다면, 진짜 그래도 된다면, 그건 지금이 아닐런지, 그렇지 않을까요? 결과적으로 난 그 친구의 쌍판을 확인하지 못하고 말았다. 아, 분하다! 아, 피가 끓어오른다. 분노랄까 자책감이랄까 어떤 회한과 비애같은 감정이 확 솓구쳐오른다. 팍! 파파팍! 그냥 쑥! 확! 아우~! 이건 뭐랄까 그런 어떤 반응을 이끌어내는 의사 표명과도 비슷한 일이다. 누군가 무슨 그랑프리를 놓쳤다며 분하다는 둥 더 유명해져야겠다는 둥 다음엔 기필코 1등을 하고야 말겠다는 둥 그런 약간 정제되지 않은 조금은 야성적인 심사를 글이나 말로 하면 그것이 뭐 그리 수심이 가득할 일이겠냐마는, 또 다른 누군가는 그런다. 아무래도 불편하고 거 좀 그렇다거나 목소리가 이상하다거나 하면서 딴지를 걸고 뭔가 떼를 쓰며 시비를 걸고 싶은 수군거림. 그거 숫제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럴 텐데 그러나, 원래 그건 사람에게 내재된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감정이고 보편적인 심리다. 그래서 격이 떨어지고 품위가 손상되며 수준이 낮은 반응을 이끌어내는 일이랄지 삶의 모순들은 어쩌면 인간의 생애에서 불가피한 일일 것이다. A 다음에 B가 있고, A가 B에게 그러나 B는 또 C에게, 그처럼 층위가 다르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사람이 인간계에서 사는 이상 집에서는 육식 밖에서는 채식, 나가서는 하이에나 들어와서도 늑대, 낮에는 개 밤에도 개, 고양이였다가 여우였다가, 모순과 부조리는 어딘가에 존재하고 물고 물리는 일의 연속이다. 여러 다양성과 그늘도 챙기는 선량한 사람들이 군집한 사회라하지만 막상 어떤 일이 내 일이 된다면 썩 편할 수는 없는 법이다. 절대로.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왜 그렇게나 그랬을까 싶은 일, 허다하다. 어쨌든 나는 그 친구의 얼굴을 확인하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 건재해서 기록을 남기는 것일 수도 있고, 때로는 후회도 하고 때로는 그걸 무용담으로 각색하여 언제 괜찮은 자리에서 잘 써먹을 생각도 하고 있다. 즉,
내가 나의 얼굴을 피했다, 그래서 분하다, 이게 뭐 잘못된 일인가? 이걸로 난 지탄받고 등판에 주홍글자라도 새겨야 하나? 그때 난 비겁했다. 그건 지울 수 없는 진실이고, 어쩌다 윤색될지도 모르는 사실이다. 당시의 나는 대범한 사나이가 아니었다. 마법의 열쇠를 손에 쥐고 있었지만, 꼭 움켜쥐고 있었지만 난 차마 보석상자를 열 수 없었다. 어떤 여자와 하룻밤을 보내며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차라리 손이라도 꼭 잡고 잘껄 그랬나? 하여간 그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 것 같다. 어떤 기회? 스크린 천을 잡고 그걸 들쳐보다가...... 지금 시점에 설명은 생략하는 게 좋겠다. 그러고 싶다. 내 쪽에서 꺼낼 카드로 평범한 건 바닥났다는 공산이 우세했다. 남은 건 조커 밖에 없었다. 오, 조커! 내가 창안한 속담에 힘입어 낭패를 면하고, 어쩌다 이 풍선과 저 사탕을 다 놓치고 이제는 내 앞에 남은 건 다 녹아버린, 다 녹아서 흘러내려 식감을 떨어트리는 아이스크림 뿐이 날 반기는 게 없다고 하더라도 그건 어차피 최후의 만찬에 놓여졌다. 그렇게 됐다. 그럼 이젠 요술이 등장할 차례인가? 묵비권을 행사하겠다.
오오! 흥청망청 잊어먹고 지나갈 뻔 했다마는 그때 뭐랄까 어제의 나, 골프연습장 스크린 커튼을 들어올리다가 무슨 소리가 나서 날 쳐다봤던 내가 있었고, 그의 시선을 피해서 고개는 물론이요 몸까지 돌려버린 오늘의 내가 있었던 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내 앞에는 내일의 나가 있었다. 어찌 보면 그 인간이 그냥 골프연습장 직원이든가 나와 친분이 있는 그 가게 주인 형씨라거나 또는 그의 친구의 친구의 친구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는 아마 나-였을 것이다. 내가 그의 어깨를 탁 짚어서 확 댕기고 그의 마스크를 확인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다지 분통터지는 일은 아닐 것이다. 달리 생각하면 그럴 혐의는 다분하지만 나는 다른 방식으로 다급했고, 독창적인 청춘의 방황을 선택했다고 보는 게 어쩜 더 저변에 깔린 저의를 포함한 심리 파악에 대한 줄거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그래, 난 등신이었다. 나는 의리도 없고 타락한 존재였다. 불의를 회피했다. 틈나면 고개를 돌렸다. 그게 습관이 되서 그때도 고개를 돌린 것 같다. 나는 나를 믿지 못했고 인생도 몰랐다. 그러면 안되는데 중요한 순간에 나는 어제의 나를 모른 체했고, 내일의 나도 못본 척 했으니까. 하지만 그 때문에 오히려 비장의 카드는 환기되었고, 동심처럼 떠올랐으며, 그것이 구체화되었고, 악마의? 헛소문의? 666 바코드가 아닌 777 잭팟을 터트릴 찬란한 환희의 절정 그 꿈 같은 미지의 세계에 사뿐히 안착할 수 있는 가능성이 좀 더 부풀어올랐다. 대단한 신세계를 발견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러나 나는 비로소 희망을 보았다. 사과나무도 보았다. 이상하게 가슴이 커졌다. 풍만한 쾌락주의도 잠깐 생각했다. 보일락 말락 엷디엷은 잔잔한 미소도 머금었다. 때문에! 따라서 이제는 어떤 행보를 내보일지 대충 예상이 가야만 적극적인 책읽기를 실천하는 것이 된다. 당신께서는 이미 아시겠지만 내가 그대의 손바닥 위에서 피규어가 되어 재롱부린 것 밖에 더 되겠는가? 아니 그런가?
그러므로 그 후 나는 결국 어느 골프장을 알아냈고, 그곳에 드디여 취직했다.
⑧
그래서 어떻게 되었을까? 그러다 참다 참다 나는 비밀의 통로는 커녕 반반한 개구멍도 알아내지 못하고 골프장을 한 달 만에 때려치웠다? 그랬다? 그랬나? 아닌가? 긴가민가? 이 골프장이 아니었나? 남의 다리 피나게 긁었나? 내 다리가 아니었나? 미안한데? 뭐야, 남의 집 잔치였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기껏 해봐야 물음표로 남에게 묵직한 짐을 전가시키고, 타인에게 난해한 문제를 떠넘기기만 했다. 딱 떨어지는 단정한 마침표와 애절한 감동은 물론이요 유쾌하고 상쾌하며 통쾌한 느낌표는 대체 언제쯤에나 원숭이 재주부리듯 시의적절히 구사할 수 있단 말인가? 모르겠다. 통 모르겠다. 더듬더듬 감도 못잡겄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삼천포로 빠지지 말고 긴 말 필요없이 골프장을 때려치웠나 안 때려치웠나? 어허~ 벌써 어법이 둔탁하고 화술은 녹슬어서 나그네의 마음은 커녕 아낙네의 옷고름을 제 손으로 풀게 하는 마법은 정녕 우러러 볼 수 밖에 없는 신기한 재주꾼의 묘수에 지나지 않는구나. 이미 만 뽄새, 본새부터 틀렸다. 사직서를 제출하다, 이직했다, 그게 아니더라도 일을 그만뒀다로 정갈하게 매듭지을 수 있는 문제를 가지고 이 사단을 벌였으니 어느 세월에 여인의 마음을 녹이고, 어디 가서 여심을 진공청소기처럼 모조리 흡수한단 말인가? 품질 좋은 스펀지 마냥 남의 재능을 단박에 복사하고 더 훌륭하게 개량하기는 고사하고, 이미 있던 능력치도 바닥나고 이끼가 낄 판이로구먼! 아~ 뒷짐지고 눈을 지긋이 감고 45도 몸을 틀고 30도 쯤 고개를 들고 머리 위로 수증기 부글부글 푸쉬식 스스슥 지지직!
빠져든다 빠져든다, 빠져든다 빠져든다!
빠져들긴 뭘 빠져들어?
나는 아직 골프장 일을 때려치지 않았다. 난 그곳에 있으면서 성실히 일했다. 지금이 승부수를 띄워야 하는 시기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나는 출퇴근을 마다하고 이젠 골프장에서 살기로 했다. 어쩔 수 없이 물이 들어오지 않았는데 노를 먼저 젓게 됐다. 우수 사원 표창은 못받았다. 역부족이었다. 성실했는데 성실하기만 했다. 그리고 일하면서 몇몇 부서를 옮겨다녔다. 때때로 일을 너무 잘해서, 때때로 일을 너무 못하거나 무기력해서 또는 회사 사정상. 그러다 어떤 날은 캐디 일도 했다. 전문성은 부족했으나 어떡하다 결원이 발생하고 임시로 직책을 떠맡게 됐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일란성 쌍둥이가 골프를 치러왔고 나는 그들을 전담 마크하는 캐디가 됐다. 어땠겠는가? 당연히 처음 그들을 만났을 때 나는 오금이 저렸고, 이상한 새소리와 더불어 어느 효과음을 듣는 것만 같았다. 왜 그랬을까? 왜 그랬냐면... 음 잘 모르겠다. 모른 척 하자. 알 듯 말 듯 확답을 피하겠다. 기대감을 충족시키지 말고 일단 애태우며 허술하긴 해도 인생의 황금기를 뒤로, 약간 뒤로 미루겠다. 그러다 묘안이 떠오를지도 모를 일이다. 왜 놀랬는가 속시원히 그 원인을 대관절 어째서 밝히지 않는가? 그것은 왜냐하면 A에서 B에 이르는 불가능한 경로, 비현실적인 평행선을 난 아직 찾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알아내야 할지도 막막했다. 전망은 어두었다. 질질 끈다고 뾰족한 수가 나오겠냐마는 아직은 방법이 없었다. 너무 막연했다. 그래서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그분을! 때문에 나는 일란성 쌍둥이 골퍼를 만났을 때 일시적으로나마 휘청~한 거다. 잠시나마 띵 했다. 그러다 정신을 차렸다. 그들은 연로함의 차이가 없었다. 세월이 그들을 비켜갔을 거라는 행운을 감안해도 그건 말도 안 되는 핸디캡이었다. 무시해도 될 수준이었다. 괜히 찔끔 덜컥 떨다 만 거다.
골프장에서 일하는 것은 어렵지도 않고 오히려 재미있었다. 시간가는 줄 몰랐다. 뻥이다. 조금 지루했다. 그러나 따분하기도 했으나 중간중간 놀 수 있는, 즐길 수 있는 신기한 유희가 곳곳에 숨겨져 있거나 보란듯이 공개되어 있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이랬다. 심심풀이 퀴즈를 실제 구현해서 호수에서 오리배 타는 것처럼 퀴즈를 직접 체험할 수 있었다. TV나 인터넷에 보면 체스나 바둑의 돌 하나가 사람이고 기사는 진짜 전기수리공, 비숍은 헤어드레서, 퀸은 드라마퀸 중의 드라마퀸 그것도 주부 10단이 역할을 맡는 것처럼.
구현된 게임은 이것이었다. 농부와 늑대와 양과 양배추를 데리고 강 건너기. 어느 농부가 늑대, 양, 양배추를 이끌고 강을 하나 건너야 한다. 나룻배가 하나 있고, 농부포함 둘이만 탈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골프장에서 반칙이 적당히 통용되듯 다양한 직종의 사람이 참여했고 게임의 규칙은 썩 의미가 없었다. 실지 늑대를 보고 만져보고 나룻배를 탄다는 데 의의가 있었다) 농부가 없으면 늑대는 양을, 양은 양배추를 먹어버린다나? 한 번에 한 가지만 이동시킬 수 있다나? 산채로 모두 강을 건너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라는 것이 현실로 이루어졌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여기 골프장에는 다른 게임도 모두 현실로 만들어놓았다. 마찬가지로 선교사와 식인종 강건너기 게임과 통나무 다리 건너기 게임을 연습장에 낙서하면서 연인끼리 친구끼리 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경기를 할 수 있었다. 논외로, 단언컨대 이 게임을 풀 생각을 하지 못하고 왠일인지 괜히 골치아퍼라 하면 그건 늙은 것일까, 그냥 다른 방식으로 놀고 싶은 것일까? 일단 이런 질문을 받는 것은 썩 반가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여자들이 질문받는 것을 좋아한다고 어디서 듣고 또는 읽고 나서, 눈치도 없이 여자친구 표정도 살피지 않고 막 물어보고 말할 틈을 주지 않는다면 그때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두가지다. 첫째, 나도 말 좀 하자 라고 한다거나 둘째, 철~썩! 셋째는 생각하지 맙시다.
그런데 골프장 이름이 페르마의 밀실이라도 될까? 이름은 비공개로 남겨놓기로 한다. 너무 이상한 이름이 많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수상한 이름을 너무 과용했다. 식자의 독서력을 너무 과신했고, 말도 안되는 궤변을 남발하며, 뻔질나게 이상한 흐름을 작위적으로 구체화시켰기 때문이다. 이미 옐로카드 많이 받았다. 더 받을 일도 없겠다. 카드 마술도 너무 남용됐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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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나는 진짜 바지에 오줌을 쌀 뻔한 일을 겪게 됐다. 자매 3명이 골프를 치러왔다. 큰 언니, 작은 언니, 막내 말괄량이. 음 이건 일단은 내 상상의 산물, 그 무뚝뚝한 범주에 포함시키고 우선은 요주의가 필요한 듯 했다.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적당히 대충 많이 닮았다. 게다가 일관되게 순차적이다. 거의 정확하게 1차와 2차 성징을 거쳐서 완숙한 처녀의 경지에 이른 것으로 보였다. 따라서 그분들이 상큼한 요정 1인에 대한 시간 상의 분신일지 아닐지, 찬찬히 살펴볼 요량과 정밀한 측정과 심도 있는 연구가 절실히 필요했다. 그러나 뭐 길게 지켜볼 것도 없이 옆에서 얘기 하는 거 듣고 노는 거 보아하니 얘네들은 아닌 것 같았다. 이제나저제나 정체를 드러내나 기대했는데 역시나 실망만 했다. 주책이군. 맞아. 그게 맞다.
여기서 중간 점검. 나는 낭만주의자일까, 아니면 환장가일까? 앗! 아, 오타다. 환장가가 아니라 환상가, 가 맞는 말이다. 의도하지 않은 실수다. 번역하고 통역하면 대체로 날라가버리는 농담이니까 신경쓸 거 없다. 음, 다행이군! 아무튼 오늘은 사색가란 호칭이 약간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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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한 일상은 변함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일지에 글을 쓰면서 몇 월 며칠 그렇게 시작하고 싶어진다. 실제 그렇게 꼼꼼히 기록을 남겼기 때문에 그것은 소설로 부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장소와 시간등 몇 가지 민감한 사항은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왜냐하면 나중 다시 찾으러 나설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골프장에서 살면서 일하면서 시간은 흘러갔다. 그러나 내가 4차원의 신비한 통로를 역탐색하는 일을 포기한 건 아니었다. 언젠가 발굴할 것이라고, 어떻게든 꼭 내가 찾아낼 것이라고 굳게 믿고 항상 자기최면을 걸었다. 나의 본업이었던 글쓰기도 잠정 중단된 상태가 된 듯한 어떤 해방감도 맛보았다. 하지만 비밀 경로만 발견된다면 그걸 그대로 소설로 옮기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초조해하지 않고 차분히 때를 기다리기로 했다. 지금은 노력의 관여랄지 탐구 강도를 높이기보다는 갈피를 잡을 수 없는 행운에 살짝 기대면서 꿈의 그림자를 더듬어가기로 했다.
그러나 서슴치 않고 할 수 있는 시험과 온갖 장비를 통한 관찰과 정교한 실험 역시 계속 진행했었다. 적외선 카메라, 열 측정 카메라, 초음파 탐지기, 방사능 감지 장치는 기본이고, 주술계에서 쓴다는 삼각으로 뻗은 나뭇가지와 무슨 보도 듣도 못한, 듣도 보도 못한, 밑도 끝도 없는, 끝도 밑도 없는 이상한 장치들에까지 손을 뻗어 도움을 구하는 지경까지 이르게 됐다. 그러나 성과는 없었다. 난 약간의 불면증이 생겼고 의지는 변치 않았지만 자꾸만 의문이 고개를 드는 걸 애써 부정할 수만은 없었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뭐가 뭐를 마다한다는 둥 뭐가 뭐를 끊겠냐는 둥 그런 민간에서 널리 쓰이는 사회심리 이론에 근거를 두고 나는 어떤 철학적 통찰을 바탕으로 새로운 관용적 발견을 해내고야 말았다.
그것은 길게 전주곡을 울리기에는 과히 창피한 일임에 틀림없었다. 필경, 응당 전업 탐험가라면 부끄러워하는 게 당연할 것이다. 좌우지간 나는 새로운 공식을 찾아냈다. 그건 무엇이냐면 내가 일하는 골프장에 신입 사원이 들어온 것이다. 그것이 뭔 놈의 새로운 관측이냐고? 새로운 관용적 발견? 그게 말인가 농담인가, 이게 글이냐 장난이냐, 하시겠지만 그것은 분명 당시만 해도 특수 상대성 이론에 버금가는, 적어도 A에서 B를 잇는 뭔가를 찾는 내게 커다란 깨달음을 안겨주는 일대 혁신이고 까무러칠만한 일대 혼란이었다.
즉, 나는 새로운 신입사원을 나처럼 거꾸로 신비를 탐닉하고, 거꾸로 환상을 찾아내고자 하는 일종의 아웃사이더이자 내 동류이며 업계 동료로 보게 되었다. 어쩌면 경쟁자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혹시 저 인간도......? 설마...... 그래도 몰라...... 아닐지도 몰라...... 그러나 늦게 배운 도둑질이 무섭다고, 약간 어울리지 않는 말이긴 하지만 나 혼자 유일하게 파랑새를 찾아 헤매며 그것의 불가사의에 거의 근접한 단 하나의 늑대개였는데, 어디서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뺀다고 어설픈 실력에다 장비도 변변치 않은 삥발이에게 죽 쑤어 개 주는 공치사를 할 일 있나? 나는 자선 사업가도 아니고 그냥 사업가도 아니며 어엿한 특수 환상가였고 점성술에 빠삭한 주술사겸 탐험가였다. 정말 그렇게 되면 어쩌지? 어떡하지? 진짜로, 닭 쫓던 개 지붕(먼산) 쳐다보듯 그렇게 되어버리면? 그럼 어떡하지? 그땐 그야말로 베르디의 레퀴엠 가운데 진노의 날이 울려퍼니는 거지, 별 수 있나. 낙향해야지, 이미 낙향했으면 또 다른 삶의 낙을 찾아야 할 테고. 그땐 정말 뚜껑이 문제가 아닐 텐데 말이야...! 다른 일이야 충분히 타자적이고, 얼마든지 공리주의적 태도를 취하며 자상함과 양보와 친절과 고품격을 인생의 제1철칙으로 삼는다지만 단 하나 예외가 있다면 바로 내가 지금 목빠지게 찾고 있는 그 신비로운 특수 통로였다. 어쩌다 삼류 작가에서 골프장 직원으로 둔갑하여 일시적인 위장 취업 생활을 하고 있지만 천고의 목표를 정했으면 무라도 썰어야 했다. 그런데 뜬금없이 롤링스톤즈? 십년공부 도로 아미타불이라고 한순간에 반재산을 탕진하는 일처럼 날벼락 맞을지도 모를 일이니 운세를 보고 대비를 해야 할 일임이 분명했다. 번쩍이는 갑옷을 입고 조랑말에 올라타 전설적인 기사의 창을 어디서 용케 구해서 들었을지라도 그 창이 짜리몽땅하다면 곤란하다. 장비도 중요하고 경쟁 확률도 중요하고 형세를 한눈에 파악하는 수읽기도 중요하지만, 과일을 따고 꽃 위에 사뿐히 앉아 아카시아 꿀을 선점하려면 무엇보다 선수는 분위기를 읽어야 한다. 얼마든지 풍차를 괴물로 만들 수야 있지만 그동안의 온갖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고, 나는 봉이 될 것이며, 어깨 뽕 황금 왕좌에는 바로 신입사원이 앉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그럴 공산이 제법 크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신입사원이 1명이 아니다. 많다. 또 계속 들어온다. 그들이 여기만 있는 것도 아니다. 저기 북북동쪽에 닭 농장, 바다 건너편 돼지 농장, 남반구의 어느 지역에는 아예 창업 머시기 어쩌고저쩌고 단지가 조성되고 있는 실정이다. 돌아가는 게 장난이 아니다.
이런, 젠장!
위기로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진짜 문제는 이게 다가 아니란 거다. 근처에 있는 양 목장, 소 목장, 개 목장 그리고 거기 있는 그 수많은...... 수많은... 동물들, 다 그 놈이 그 놈 같다. 전부 비슷하게 생겼다. 완전 똑같이 생겼다. 누가 누군지 통 모를 정도다.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다 그 놈이 그 놈 같다. 완전 수프 깡통이다. 혹시 저 안에 진짜 카사노바가......? 다 비슷비슷하자나? 왜 비슷비슷하겠어? 모두 분신일 리는 없고. 어제와 오늘과 내일의 분신들이 모두 모였을 리는 더더욱 없어. 그건 희박해. 그러나 완전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이고. 어떡한담? 어떡하지? 아, 정말 어떡하지? 어? 그분이 벌을 받아서 동물로 환생했을까? 그럴까? 아닐까? 아무래도 원점에서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만 할 것 같다. 실정을 외면하고 무작정 앞만 보고 달려온 듯 했다. 방향이 잘못 되었을 수도 있고, 도착 지점을 지나쳤을 수도 있다. 아직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듯 얼마만큼 진전된 것인지도 모르고 문제점을 파악할 수도 없다. 때가 된 듯 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하산할 시점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나는 정중히 골프장 사장에게 말했다. 내가 이러 이러 해서 신비의 통로를 찾는다고 아뢰옵고 여기서의 경험이 너무 소중하고 감회가 깊어 떠나기 아쉬웁지만, 더없이 황송하고 송구하오나 이러쿵저러쿵 해서 나는 길지 않은 골프 업계에서 몸을 뺐다. 그렇게 골프장에서 퇴직하고 나니 전업 작가로 되돌아오게 됐다. 그리하여 나는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⑪
곧 있으면 나는 집에서 가만히 공상을 하는 생활로 되돌아 간다.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고, 발표하는 매체는 블로그요 그것의 이름은 무명. 무명? 고등학생 때 무명으로 농구대회를 나가기 전에 난 교내 전통적인 농구클럽 유니콘 소속이었다. 그러다 1학년때 친구들과 유니콘에서 탈퇴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그때 탈퇴한 친구들과 새로운 클럽을 만들어 대회에 나갔나 나가지 않았나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다 나는 우리 학교에 한 명 있었던 무명 친구와 다른 학교에 다니는 무명 친구들과 합심하여 대회를 나갔다. 무명이라는 이름으로. 그러나 강력한 우승후보였는데 예선 탈락했다. 어떤 친구는 그날 울었고, 정말 서럽게 흑흑 그렇게 울었고, 어떤 친구는 괜히 버스정류장에서 가만 있는 어느 학생에게 시비를 걸고 싸울려고 했다. 뭘 쳐다보냐며 큰 싸움 일어날 뻔 했다. 난 말리는 역할에서 적극적인 쪽이 아닌 소극적인 쪽에 속했었다. 그리고 중학교 때도 나는 교내 농구 클럽인 사이클원 몇 기였는데 그때도 애들끼리 거기서 탈퇴하고 나이키 대리점에 가서 단체로 똑같은 티셔츠를 샀다. 그리고 신생 서클 이름을 지었다. 엠파이어라고. 그때 인접 중학교에서 잘나가는 친구들이 (오리저널) 무명이었다. 그때 같이 연습경기를 하면서 그 인연이 지금의 블로그 이름으로 이어지게 됐다. 트레이드 마크, 포기해도 된다. 이젠 이름에 크게 연연치 않게 됐다. (뭐가 어쩌고 어째?) 아, 물론 엠파이어로도 농구 대회에 나갔다. 우승? 웬걸, 예선 탈락했다. 내 인생은 예선 탈락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내 인생은 오직 삼류로만 점철되고 그것에만 둘러싸여 있다. 옛날에 공군 군악대에 들어가볼까 하다가 시험장에서 손이 다쳤다고 거짓말을 한 적도 있다. 시험 탈락. 그런데 최근 어느 날 극장에서 고전영화 현기증을 봤는데 거기에 나오는 호텔 이름이 엠파이어였다. 엠파이어? 예선 탈락? 혹시 누군가 축구나 야구 클럽에 들어갈 것이라면 이왕이면 저명이나 유명이라는 이름의 클럽에 들어갈 것을 권유하고 싶다. 뭔 있지도 않은 4차원 통로를 찾는다고 그것도 역으로 어떻게 해서 거꾸로 찾아낸다고 생쇼만 하다 사람이 이상해진 것 같다. 안 그래도 상태가 신통치 않은데 진짜 돌아이가 됐다.
뭔가 아쉽다. 말 나온 김에 예선 탈락에 대해 좀 더 똑똑히 짚고 넘어가야 속이 편할 것 같다. 그땐 뭔가 신선한 경험이 필요했고, 뭘 원하는지 잘 몰랐으며, 실은 동경하는 게 너무 많았다. 그렇다. 우린 나름대로 공포의 외인 구단이었다. 그러나 공포의 외인 구단은 좋게 말해 모험이고, 좋게 말하자면 스타의 그때 그 시절이다. 곧 그것은 결과가 좋았을 때 얘기다. 그렇지 않다, 라면 그건 처음은 농담이고 두 번은 자발없음 그리고 세 번째는 장기적인 술버릇이 된다. 그것도 말을 잘하는 경우에만 해당된다. 그렇지 못하면 보통 술주정이나 수다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도 저도 아니다? 그러면 블로그가 된다. 또는 소설이 된다. 그것도 삼류로. 삼류가 뭐 어때서? 말하자면 그렇다는 거다. 따라서 헛된 경험도 어엿하게 인생의 한 쪽을 장식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예선 탈락에 대한 나름의 소신 있는 결론은 이와 같다. 스타가 풍운아라면 일반인은 행복한 사람! 반대로 유명세는 환상이고, 인기없는 블로그는 부담없는 즐거움이고 삶의 기쁨이며 내 인생의 환희다. 동전의 앞면은 비화고, 뒷면은 회상이다. 캬~ 멋진 말 같지만 별로 멋진 말은 아니다. 말은 그럴싸 하네. 말만. 신비의 통로는 감쪽같이 쥐구멍으로 숨어버렸고, 예선 탈락이 결국 환희라는 말이군. 순전 지 자랑 같다. 액면만 겸손한 자랑. 액면만. 이게 다 그 정신 나간 신비의 통로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신비의 뭔가는 말을 못하는구나. 잘 됐네. 정말로 지금도 의심스럽다. 그러나 그 전율의 순간, 지금도 생생하다. 멜로드라마와 사랑과 마술적 사실주의에 관한 3요소를 모두 갖추어서 사람을 그 설렘만으로 옴짝달짝할 수 없게 만들어버렸다. 언제까지라도. 무슨 3요소? 그건 뭘까? 음, 우선 우연이 포함될 것이고 환상이 그 다음 그리고 반전? 그러면 해피엔딩은? 당장 떠오르지 않는 뭔가는? 저요 저요, 는? 또 쾌락은? 무슨 3요소니 세계 3대 후라이팬이니 그런 거 다 듣기 좋은 말이요 보기 좋은 떡일 뿐이다. 허울 좋은 과부, 의례적인 빈말, 지키지 않을 약속, 다 그 부류다. 적당히 구색을 갖추고 작전 잘 짜서 연기 제대로 하고 작정하여 덤벼들면 그녀는 내게, 즉 그분은 그대에게 빠져들 게 되어 있다. 당신이 마음에 두고 있는 그분은 당신께 홀딱 반할 것이다. 그럴 수 밖에 없다. 절대 빠져나갈 수 없음. 그녀가 한때의 추억에 여생을 조금은 의지하며 살듯이 뭔 스크린 천 조각 그 개구멍에 내 인생이 완전, 뒤틀려버렸다. 그것도 완전 완전. 아조 한 시기를 거기 건 듯 하다. 정말로, 한순간의 환상적인 떨림 그 황홀감을 절대 잊을 수 없게 됐다. 또 믿지 않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풍운아와 행복한 사람의 중간, 난 비로소 탕자가 된 것만 같다. 오, 탕자라니! 노래 가사풍으로 말한다면 바─보? 정말이다. 내가 생각해도 내가 이상해진 듯 하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그때 멤버는 쟁쟁하다, 까지는 아니었으나 면면히 봤을 때 꽤 괜찮았다. 어느 아마추어 클럽에 내놓더라도 전혀 손색이 없는 구성원들로 모였다. 프로, 못할 것 없었다. 마음은 없었지만. 그런데 주전 멤버 전원이 그렇지는 못했다. 주전도 겨우 채웠다. 우린 실은 3 대 3 길거리 농구대회에 나가는 게 옳았다. 그러고 보니 대학교 1학년 때 으쌰으쌰 해서 아무렇게나 세 명 채워서 길거리 농구대회에 나갔다가 그때도 당연히 예선 탈락했다. 어쨌든 당시 무명의 멤버는 좋았다. 쓸 만했다. 괜찮았다. 나쁘지 않았다. 나도 양손 다 썼고, 모든 포지션이 가능했고, 다방면으로 기교도 뛰어났다. 뭐가 출중해? 뻥은 좀 섞인 듯 하다만 증인, 수소문하면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아니면 적당한 우호세력이나 팬클럽을 만들던가. 그런데 어느 세월에? 잘하면 믿거나 말거나고, 못하면 재수없어니까 허풍은 여기서 멈추는 게 좋겠다. 우린 그때 주옥같은 땀방울 대신 노는 데 집중했고, 자체 발행하는 주간지 같은 데 신경 쓰고, 연습도 포지션도 작전도 모두 부족했다. 다시 생각하니까 예선 탈락 할만 했구만. 그래도 괜찮아 괜찮아. 블로그로 무명은 재탄생했고, (지금이니까) 화사한 추억으로 남았으며, 현대적인 신화든 연예계 뒷이야기든 실패담은 꼭 필요한 법이니까.
⑫
원래 지금 쯤이면 나는 집에서 복고주의자가 되어 할일을 해야 했다. 음악을 듣고 명상을 하며 작품 구상하기. 잔디를 깎고 수영장을 수중 알콜 농도 0.05퍼센트로 맞추고 보트를 띄우고, 거기 누워서 선그래스를 끼고 수영 팬츠를 입은 상태로 삼지창을 들고서 해 저문 노을을 바라보거나 책을 읽고 있어야 했다. 그게 정상이었다. 시도 읽고 여행 계획도 세우며 인터넷의 세계에서 관심사를 검색하며 칵테일 한잔을 마시고 있어야 했다. 원래대로라면.
집에 도착했을 때 처음에는 이곳이 우리 집이 아닌가, 그랬다. 뭔가 착오가 있는 줄 알았다. 어떤 낯선 사람이 내 집에서 살고 있었다. 저 인간이 지금 내 집에서 뭐하는 짓이지? 설마 내 집을 자기 집인줄 알고서? 집이 뭐 007 가방인가? 정말 드물게 그런 일도 있긴 있겠지만 그건 거의 전형적인 픽션이고, 이건 현실이다. 그건 대체로 사기고, 이건 대략 미스테리다. 저분이 저기서 너무 자연스럽게 내 할일을 하고 있기 대문에 나는 실소를 머금게 됐다. 기가 찼다. 뭐라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어라~ 자세히 보니 그는 나와 조금 닮았다. 비상 상황에 닥쳐보고 나니 이 인간이 보자 보자 하니까, 난 그렇게 막 나갈 수 없었다. 신사적으로 점잖게 그 집은 내 집인 듯 하고 형씨는 내 대역인 것 같다고, 바로 그렇게 넌지시 내 의중을 비출 수도 없었다. 심지어 그는 날 닮았다. 보면 볼수록 놀랄 정도다. 이거 뭔가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듯한 쎄한 기분에 휩싸였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내가 골프장에서 일을 괜히 했을까? 설마 저 인간이 나의 과거형인가? 나는 SF 장르 연기자? 작가는 난데? 저 집은 내 집이고. 그런데 왜 저 집이 내 집이라고 말을 못하고 있지? 대체 왜? 너는 나라고 왜 말을 못하냐고! 아 미치겠다 미치겠어.
이건 꿈이 아니었다. 영화도 아니고 TV 속에 내가 들어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혹시 저 인간이 원래의 나일까? 그럼 난 뭐야? 좀비? 에~이 말도 안돼. 그런데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참 나 이거 진퇴양난이군.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나는 내 웨건 차에서 자고 먹고 놀고, 를 시작했다. 관찰은 계속했다. 옷 세탁과 샤워와 휴식은 통합 사우나 휴식 센터에 가끔 들러 해결했다. 그리고 그곳의 이름은 이랬다.
「너 남편 뭐 하니?」 (또 시작이네?)
물론 나는 정면돌파도 생각해봤다. 간결하게 용건을 묻고 주먹을 쓰지는 않고 경찰에 신고하거나 대사관에 연락하는 것. 잘못 없는 대사관은 왜? 그냥! 적당한 대사도 몇 가지 떠올랐다. 당신 누구냐, 여기 뭐 하러 왔냐, 당신이 제임스냐?
그러다 그가 나를 하대하면 어떡하지? 만약 그가 거칠게 나온다면? 나는 꼭 내가 훔쳐보는 것을 즐기고, 이상한 데 취미를 가진 은근 호색적인 중년이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그러나 그건 착각이 아닐 수도 있다. 난 실재 중년이었고, 살짝 엿보는 욕구는 정상적인 인간의 심리 기제이기 때문이다. 다만 선을 넘어서면 제재가 가해지는 것일 뿐. 그 경계를 노래하는 것은 예술이 할일. 그러면 난 지금 예술을 하고 있나? 예술을 해? 하긴 뭘 해? 콱 그냥 쳐들어가서 당장 내 집에서 나오라고 멱살을 휘어잡을 수도 없는 일이고, 딱히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저 자식 저거 저거 뺀질뺀질 생겨가지고 유들유들하고 맨날 백판 자빠져 놀고나 있고, 한심한 녀석 같으니라고!
나는 점점 지쳐갔고 점점 더 지쳐갔다. 그러나 포기할 수는 없었다. 적어도 내 의지에 의해서 포기란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뭘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인가? 도대체 뭘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냐고. 나는 내가 지금 이곳에서 뭘 하고 있는 것이지, 라면서 깃발을 꼿아야 하는 목표점이 점차 내게서 멀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의문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감시의 끈을 느슨하게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결정적 증거를 찾고야 말겠다는 이상한 결기라고나 할까 그런 무의식적으로 발생한 환상적인 영감과 지극히 이성적인 현실감이 교묘히 일치된 듯한 드라마틱한 전율감, 바로 그것의 포로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 마법은 어떤 주술로도 풀 수 없는 것처럼 여겨졌다. 때문에 나는 그 전의 내 일과와 생활과 과업과 삶의 터전을 모두, 모두 열외로 뺐다. 어제의 나를 철저히 관측하기, 그것만 했고 그에 대한 일지를 작성했다. 나중 그와 접촉하게 됐을 때의 가상 시나리오를 작성해나가기 시작했다. 힘이 들어도 묵묵히 차근차근 진행해나갈 수 밖에 없었다. 다른 길은 없었다. 퇴로는 차단됐다. 나는 마치 달콤하고 아련하며 향수를 자극하면서도 그지없이 기쁘고 더할 수 없이 기분이 좋아지는 음악, 즉 세이렌의 나팔소리에 고개를 돌리고 말았는데 내가 돌로 변하지 않는 듯한 환상에 빠져든 것이다.
그때 차마 믿을 수 없는 도저히 상상할 엄두가 나지 않는 어떻게 그럴 수가, 라는 예측할 수 없는 일을 맞닥드린 것만 같은 당혹감을 잠깐 느꼈던 것도 같다. 그건 발단이든 뭐든, 언제 등장할지 모르는 반전이든 관전평에나 어울리는 역반전이든, 그것을 모두 통으로 연관지을 수 있는 사후에 경험하는 감정이 아니라 사전에 미리 혹시 그럴면 어떡하지 라는 의혹이 아니었을까 라는 어떤 비정한 몽매와도 같은 심정과 비슷했을 것이다. 그건 무엇이냐면 일전에 친구들과 썼던 공동 소설에 나왔던 한 장면, 쌍안경 또는 단안경으로 세 지점에서 평범한 가정집 생활을 하는 일인을 지켜보다가 그곳으로 관찰당하는 자의 친구들이 소형차를 타고 모여드는 것을 지켜봤고 그들이 떠나간 후 즉시 관찰자들은 그곳으로 비상소집하고 쑥덕쑥덕! 설마하니 그럴 리야 있겠냐마는 사람일이라는 게 중간에 뭐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환상머쉰이고 무슨 숫자가 나올지 모르는 주사위요 럭비공이며 즉석복권이라서 그쪽으로든 어디로 튈지 뭘로 변신할지 모르는 사태를 미연에 방비할 응분의 비책 역시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라는 너무 엇나가는 억측 때문에 나는 어제의 나를 감시하는 동안 가끔씩 긴긴 밤을 꼬박 새우곤 하였다. 다크 써클, 작열했다.
그러나 결국 그 뭐랄까 행복했던? 아마도 우매했던 시기는 어쩌면 어처구니없는 중첩된 우연에 의해 일순간에 파국을 맞이하고야 말았다. 그 끝은 딱히 비극은 아니었으나, 뭔가 이상했다.
⑬
내가 관찰한 어제의 나는 매번 깜짝 깜짝 나를 놀래켜주었다. 어떻게 꼭 내가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처럼 그는 어떤 예술혼의 고삐를 잠시도 놓는 법이 없었다. 뭔 얼어 죽을 예술혼? 아, 그건 뜻하지 않게 찾아온 내 탐정 생활이 지칠 것 같으면 그는 어김없이 내 분홍색 망원경 그 동그라미 안에서 내 습관, 내 표정, 내 잠꼬대, 내 몽환적인 눈빛, 내 곁눈질, 내 공상가적 기질을 어김없이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하나는 그 새 인형과 티셔츠를 손으로 꼬맨 이상한 옷도 있었다.
그러던 중 그는 아는지 모르는지 내게 자유를 선사해주었다. 아아, 자유란 말인가? 정녕, 자유? 어쩌면 그는 사람을 어떻게 감동시키고 뭘로 마음의 온기를 뒤흔들고 냉기를 녹여주어 슬며시 홀딱 반하며, 마음을 빼앗겨 인생의 한 시절 혹은 반생을 통채로 걸도록 만드는 뭔가 그런 방법을 아는 남자가 아닐런지 그렇게 느껴졌다. 왜냐하면 나는 어떤 브로맨스와 같은 감정을 느꼈기 때문이다. 오묘한 쾌감이 있었다. 그와 내가 연결된 듯한. 또한 나는 그의 진면목을 알게 됐다. 계속 보고 싶어졌다. 그러나 어려움은 여전했다. 생전 처음 형사처럼 대인 마크를 체험해보니 그건 완전 밥맛이었다. 완전 힘들었다. 직업인이야 소명이 있고 처자식을 먹여살려야 하며 극중 장면이야 웃기고 즐겁지만 그거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엄청 힘들었다. 그는 적어도 그때 내게 은인이었다.
어느 날 마당에 나와 있던 어제의 나는 수영장 옆 소파에 있던 가죽점퍼를 입었다. 그리고 휘파람을 불었다. 휘파람? 입술로만 부는 평이한 난이도가 아니라 한 손을 이용하는 한때 놀아본 사람들만 익혔을 법한 재주였다. 어? 저건 난 못하는데? 쟤는 어제의 나인데? 어제의 나가 어떻게 저런 기술을 구사할 수 있지? 옛날에 내가 뭐 문란한 삶을 살았다는 거야? 휘파람을 불줄 알면 정결한 인생이 아니란 말인가? 그게 뭐야? 그러나, 그러나! 이건 분명 공식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그가 어떤 최면에 걸려서 일시적으로 그럴 수 있다고 그렇게 추측하고 처음에는 그냥 넘어갔다. 그러나 잠시 후 그건 오판이자 해방감이며 드디여 자유로 판명되는 일로 밝혀졌다. 즉 저 인간이 휘파람을 삑~ 부니까 어디서 독수리가 나타나서 가죽점퍼를 입은 그의 왼팔에 딱 내려앉는 것이었다. 우째... 이런 일이... 어떻게 이럴 수가! 지금 감탄사가 필요한 시점인데 어떤 어조를 바탕으로 그동안의 평정심을 무너뜨려야할지 짐작도 결정도 못했고 그래서 실행조차 할 수 없었다. 이건 확실하게 우유부단과는 무관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자유, 자유를 얻었으니까!
⑭
여기서 잠깐! 에고머니나, 벌써 마음을 돌리고 발걸음마저 서두르면 안된다. 저렇게 해서 진짜 그와 내가 결별을 하면 그건 같은 글이라도 지면이 다른 애독자 엽서쯤으로 가닥날 것이다. (꼭 어감이 애독자 엽서? 흥! 이런 감이 있지만 절대 그런 거 아님) 전문용어의 세분화와 미세한 간극에 따라 학문적으로 줄거리는 이야기, 플롯, 내러티브등으로 나뉜다. 구분을 정정하기에 앞서 뭐가 뭐로 나뉜다는 기준부터 틀린 듯 하지만 전문가야 그게 중요하지만 어디 한번 웃겨봐 하면서 세상에서 제일 편안한 자세로 푹신한 의자에 몸을 맡기는, 정당한 금액을 지불하고 예술을 사랑하는 블로그 애호자라면 그런 구분 반가워하지 않는다. 연애할 때 그런 걸 끈질기게 파고드는 상대는 피곤한 스타일이고, 상황 봐가지 못하고 눈치 없이 분위기를 읽지 못한다면 이 사람을 앞으로 사귈 것인가 말것인가, 내가 만약 이 사람과 앞으로 살게 되는 가정을 해봤을 때 아침에 의식이 깨고 눈을 떴을 때 아~ 어? 내 옆에 그이가 있네 그런데 그이가 그 그이가 아니네? 그런 엄지를 올리면 반할 요소요 내리면 결격 사유가 되는 수없이 많은 흔한 일 가운데 둘 중 하나가 된다. 그렇다고 학문은 뒷전이고 상업에만 치우친다면 그건 명백히 메뚜기도 한철이고, 간혹 예외가 있어도 그건 누가 들으면, 듣지 않아도 보지 않아도 또는 들리면 듣고 보이면 본다면 꼬끼오~ 소리로 들릴 수도 있는 것이다. 걸리기만 해봐, 같은 이론이지만 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으니까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면 휘파람으로 독수리를 부른 것으로 단역 1과 단역 2의 인연이 단절되고 누군가는 큰 값을 치르고 자유를 얻으며, 드라마 시즌 2를 준비하기엔 시기상조라는 말이다. 즉, A 단락에서 B 단락으로 넘어가고 1 단계에서 2 단계로 넘어가려면 진도에 따라 시간 지나고 경험치가 쌓이면 진급할 수도 있지만 적어도 드라마라면 기막힌 전환이 이루어지려면 결국 사랑의 완성에 대해서라면 그 어떤 방식은 두 가지로 구분될 것이다. 첫째, 우연 다음에 우연. 그리고 둘째, 우연과 우연과 우연이 서로 정답게 삼자대면을 하는 것. 저 1번도 기본이고 중요하지만 책 소개의 글을 작가 자신도 더 이상 믿지 않는다는 현대의 통상적인 조류와 일반적인 유행에 반해서 진짜 왕 곧 독자와 시청자, 관람자를 위한 진정한 환상이자 가짜 환상이며 비굴하지만 현실과 꿈의 중간이라 할 수 있는 그 요술의 지대는 둘째가 정말 중요한 것이다. X축에 따라 우연 다음에 우연, 이 아닌 Y축에 기준한 우연 위에 우연 위에 우연 그것이 동시에 중첩되는 것. 어떻게 만났냐, 처음에 누가 먼저 사귀자고 했냐, 언제 처음 손을 잡았고 어떻게 관계가 무르익고 어디서 결정적인 사랑의 포로가 되어버렸나, 바로 그것에 관하여 사람들에게 질문을 해보라. 난 어땠어, 라고만 하지 말고! 그렇게 물어보면 일부....는 썩 달가워하지 않을 수도 있겠으나 대체로 대부분은 한마디로 좋아한다. 웃는다. 환하게 웃는다. 저무는 사랑이라면 모르겠으나 또 자주 물어서 짜증난다면 말 다한 것이지만 소설이나 음악 같은 시간 예술에서 극사실주의의 한계를 슬쩍 넘어가고자 했을 때 그건 마침표 중의 마침표가 된다. 캐릭터가 살아있다고 실시간 실화라고 가정하고 그가 진짜 그 정도로 만족할까, 했을 때 아 그건 아니야 그건 약해 그래서 바로 우연 다음에 우연이 필요한 게 아니라 우연 위에 우연이 필요했다는 결론이 나온다. 계기 1, 계기 2, 계기 3이 이어지는 게 아니라 한번에 또 동시에 형성되는 일. 좀 느슨한 예라면 하루 동안 처음 만나고 뭐하고 뭐하고 평생을 약속한다거나, 난생 처음 낚시대를 들어올리며 첫 손맛을 느끼는 찰나 내가 좋아하는 남자가 뒤에서 날 포근히 동시에 화급하게(안정적으로 물고기를 들어올리는 걸 도와주기 위해서) 껴안을 때 그런데 그 남자는 친구의 남자(작품에서 평범한 삼각관계로도 다르게도 다루어진다), 난생 처음 내 차를 몰고 꽃단장하고서 소풍을 가는 날 이상형을 만나 드라이브, 백허그 플러스 생애 첫 무엇, 베팅머쉰이나 골프연습장에서 도와준다면 뒤에서 백허그 그러나 그는 이상형과 정반대, 산책하다 우리 개가 누굴 물었는데 우리 개가 누구 신발에 실례를 했는데 어머나 그는 내 이상형, 자전거를 타고가다 걷던 여대생과 부딧혔는데 그 다음 어떻게 어떻게. 통상 전문용어도 두 가지로 나뉜다. 어려운 단어와 쉬운 단어. 박수 소리는 대체로 전자가 크고 명성도 그렇지만 감격이랄지 착상과 탄복은 대체로 후자에게 따른다. 다른 말로 전문가에 저명한 전문가. 그것의 예를 들면 <클로징> 같은 보험업계 전문용어, <연결> 같은 연기업계 전문용어가 있다. 짧은 글을 쓰기가 더 어렵다거나 시적이라거나 냉철한 논리 때문에 정말 너무너무 읽기 쉽고 편하고 부드럽고 좋다 라는 실례도 있을 것이다. 2번을 잘 활용하면 먼저 하느냐 나중에 하느냐, 에 따르는 무슨 편향에 발목잡히지 않을 만큼 근소한 차이가 아니라 월등한 마술로 독자를 뿅-가게 할 수 있다. 그래서 2번도 최근, 이 아니라 옛날부터 이미 남발되는 실정이다. 1과 2번의 중간이든 어쩌든 그런 얘기는 아마추어 같이 붙잡고 있지 말고, 이 사람이 지금 누구 보고 아마추어라고 하는 거야, 어느새 이~따만 하게 쏙닥쏙닥 장황설을 쏟아놓고 아마추어? 아마추어 좋아하시네 늬가 아마추어 정신을 알어 그걸 알기는 아냐고, 어쨌든 대체 여기서 뭐가 2번이냐 2번에서 등장하지 않은 은밀한 숨겨놓은 궁금증을 유발하는 다음 타자는 도대체 누구냐? 더 이상 숨기기도 싫고, 감추기도 싫다. 그것은, 그것은 바로 내가 어제의 나를 관찰하고 있던 임시 항구였던 동네 공터에 또 다른 배가 출연했기 때문이다.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이 배가 늬 배냐 저 배가 늬 배냐, 순풍에 돛을 달다, 모두 놔두고 딱 정점을 찍고 마음을 돌려세워 마침내 자유를 얻게 만든 조커를 공개하자. 딱, 한번에 확 패를 까... 보여주자.
그것은 그랬다. 뭐가 그래? 내가 머물렀던 동네 공터에서 내 차 바로 옆은 아니고 애매하게 저 멀리도 아니고 어중간하게 저만치 딱 그 자리에 내 차와 딱 동일한 모델은 아닌데 거의 근접한 모델, 거의 흡사한 색깔, 거의 비슷한 상태의 차가 거기 딱 도착했고 그리고 거기서 막 누군가 내렸던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됐겠나? 거기서부터 정신이 몽롱해지고 기억이 흐릿해졌다고? 응, 그렇다. 그러나 대충 거의 기억난다. 진짜 어제의 나는 아니었다. 그러나 비교를 해보게 됐다. 내 원래의 관찰 대상과 새로운 등장 인물을. 그 수많은 차 가운데 음, 그럴 수 있어. 그런데 왜 하필 여기야? 또 어떻게 꼭 짠 것처럼 딱 지금? 이게 다 뭐지? 뭐가 꿈이고 뭐가 현실이야, 까지는 아니다. 꿈과 현실을 구분할 정도는 된다. 약간 이상해지면 볼을 꼬집어보고 해 볼 만한 시험해 볼 만한 단순한 행위는 많다. 남처럼 하면 성공을 못하네 미쳐야 하네 뭐라 하지만 그건 전부, 다, 모두 성공했으니까 그 방법이 통했으니까 해당되는 말이고 그와 똑같이 했지만 아니 그보다 훨씬 노력하고 훨씬 땀 흘렸고 모든 걸 걸었지만 실패한 사람이 백배, 천배, 만배 많다. 누구나 다 아는 얘기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또 분할해서 A안, B안, C안을 갖고 꾸준히 하라고 하고, 남 놀 때 놀고 남 일할 때 일해라 뭐든지 때가 있는 법이다 라고도 한다. 정답은 없다. 왕도도 없다. 그러나 뚜껑 열릴 일은 많다. 마음은 다스리기 어렵다. 겸손도 실은 어렵다. 하물며 지금 돌아가는 사태가 이 지경이 됐는데, 그 목장의 수많은 소와 양과 개와 또 뭐야 우우 워워 막 이거 흥분하게 되는 건 왜 그럴까, 무슨 화학물질이 분출되고 있는지는 몰라도 어떻게 해야 할지 우선 순위도 정하지 못하겠고, 차분하게 하나씩 하나씩 진짜와 가짜를 가릴 수도 없게 되어버렸다. 당신이 어제의 나야? 퍽! 혹시 아씨, 그대가 어제의 나인가요 그런가요? 이런~ 철썩! 그때부터 난 뭐가 뭔지 모르는 톡쏘는 블랙홀, 날으는 돈까스, 공포의 삼겹살, 추리소설가 싸움 순위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 후 나는 관할 지역을 촘촘하고 면밀히 조사했으며 행정 구역과 여러 증거를 취합해서 그 집은 내 집이 아니고 그는 (어제의) 내가 아니라고 결론 내렸다. 그러면서 일부 지번의 오류를 정정하게 됐고, 동네 환경 개선과 동네 행정에도 일부 협조하는 성과를 가져왔다.
그래서 나는 내 동네로 돌아갔고, 내 집에 도착했고, 내 생활로 되돌아갔다. 휴~ 한숨이 나왔다. 먼 길 돌아서왔다. 괜히 뭔가 큰 규모의 사건에 휘말렸는데 어쩌다 얼렁뚱땅 빠져나온 것 같았다.
지금 와서 뭔가 신비로운 일을 경험했고 그걸 글로 옮긴 것 같은데 그에 따른 부담감과 순수한 기쁨 대신에 그런 생각이 든다. 대체 내가 이 일을 왜 했지? 어? 왜? 뭣 때문에? 괜히 했나...? 누가 제발 해달라고 등 떠밀고 시켰나? 부탁했나? 댓가 없이? 그래서 나는 정말 확신을 못하는 것이다. 단 한 번 환상을 봤는데 미스테리에 빠졌는데 그게 사랑이고 신세계였다고 단언할 수 없었다. 그 어디에도! 결과적으로 사람만 이상해졌다. 스타일, 구겼다. 엄청. 가끔 생각난다. 실정은 자주 떠올랐지만 이제 겨우 어두컴컴한 잠재의식으로 그것을 옮겨놓은 것 같았다.
그러나 언제 다시 내일의 나가 내게 찾아올지, 나처럼 뭔가를 기다리며 혹시 모를 뜬구름 잡는 식의 꿈을 찾는다는 둥 사과나무를 심는다는 둥, 뭐뭐 둥 뭐뭐 둥 그런 스타일의 말을 누군가 내게 걸어오지 않을까 촉각을 곤두세우며 기다리는 삶을 살고 있다. 나는, 그 미지의 신비에 대한 희망을 읽지 않았다. 그리고 마당에 사과나무를 한그루 심고 싶어졌다. 그런데 마당이 비좁았다. 그래서 잔디를 일부 포기할까 어쩔까 하다가 미니사과나무 종자를 구해서 화분에 심고 그것을 애지중지 키우게 되었다. 일단은 개를 키울만한 정성은 자신없었고, 고양이를 내 울타리 안에서 키울만한 관심은 약간 부족했으며, 별다른 애정은 너무 막연했다. 그리고 새로운 그분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창밖의 노을을 바라보며 오늘도 그분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