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 83

from 소설 2016. 10. 31. 19:07

   1

   어느 날 조니는 이상한 경험을 하게 됐다. 드물지만 흔치 않은 희안한 일 그 생소한 느낌이 처음에는 무척 생경했다. 그러나 그것은 곧 얼마 지나지 않아 꽤 익숙한 습관처럼 아무렇지 않은 감정으로 변했다. 왜냐하면 조니가 겪은 그 이상한 경험은 간헐적으로 반복됐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반응이라면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지, 그럴 것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일반적인 생각은 많지도 않은 단 몇 차례만 반복되어도 다음과 같은 사유로 바뀔 수 있다. 썩 어렵지 않게. 즉 어쩜 그런 일이 있을 수도 있어 그럴 수 있다구, 라고.
   처음에 그가 맞닥드린 비정상적인 일은 이랬다. 그는 집에서 혼자 TV를 보면서 포도주를 마시기 위해 장을 보러갔다. 그리고 딱 필요한 물품과 식료품을 산 후 집에 왔다. 그 가운데 참치 통조림도 하나 있었다. 조니는 그날 밤 집에서 TV 채널을 돌리며 혼자 말하랴 거실에서 왔다 갔다 서성이랴 괜히 발냄새를 맡기도 하고 뭔가 허기진 듯 식욕을 느꼈다. 때문에 TV 앞에 탁자 위에 포도주를 올려놓았다. 그런 다음 술만 마시기가 뭐하니까 간단히 요기를 때울려고 참치 통조림을 가져와서 땄다. 그런데 사건은 이때 발생했다. 뻥~하고 정전기와 연기와 필라멘트가 터지는 듯한 상황이 일어나고 꼭 작은 거인이 나타나는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작은 거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뻥 소리가 나면서 필라멘트가 터지는 것처럼 뭔가 번쩍 했다. 연기도 났다. 통조림 뚜껑을 열고 나니 그 안에는 그가 어렸을 때 만화영화에서 봤던 주인공이 초정밀 실사 형태로 자리잡고 있었다. 마치 당장 주인님 세 가지 소원을 말씀해보세요, 라며 말을 할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녀석은 말을 할 줄 몰랐다. 움직일 수도 없었다. 그냥 인형일 뿐이었다. 그의 이성은 조금 감성에 잠식당했고, 그 일은 마법이 아니었으며, 따라서 그는 그저 조금 웃다 말았다. 참치 통조림 거 별로 비씨지도 않으니까 하면서. 자기가 잠이 들면 녀석이 활동을 시작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단 꿈에서 둘이 만나건 어쩌건 그는 녀석을 덥썩 들어서 TV 옆에 놔두었다.
   새벽에 조니는 약간 색정적인 꿈을 꾸며 잠꼬대를 하다 침대에서 떨어졌다. 그러나 그 상태로 깨지 않고 계속 잤다. 뭐 그러다 알아서 다시 침대 위로 기어올라갔을 것이다. 그리고 참치 통조림에서 태어난 인형은 역시나 신비한 요정이 아니었고, 그 둘은 꿈에서 조우하지 못했다. 아침에 조니는 마법에 걸렸고, 인형은 TV 앞의 침대 위의 조니에게 일어난 마법을 지켜보게 되었다. 설마 인형의 눈을 통해 보이는 전망이 모두 인터넷으로 생중계될 리는 없겠지만 왠지 하루 아침의 시작이 썩 성스럽지 않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렇게 조니는 일상을 이어갔고 그 외에 다른 특이 사항은 없었다.
   그 후 일주일이 지났다. 그는 코를 풀기 위해서 화장지각에서 화장지를 하나 뽑아 코를 풀었다. 그리고 그걸 쓰레기통에 슛 던져서 골인시켰다. 그런데 지나칠려다 화장지각을 보니 거기에 지폐가 꼿혀 있었다. TV 옆에 있는 인형이 벌인 일은 아닐 테고, 휴지 99퍼센트 외에 바닥에 어떤 사연 때문인지는 몰라도 휴지 대신 지폐가 들어갔을 것이라고 그는 그렇게 추정했다. 공장에서 뭔가 착오가 있었고, 누군가 힘없는 노동자가 벌인 퍼포먼스일 가능성도 무시할 수는 없었다. 큰 횡재는 아니지만 딱히 불운이라 여길 일도 아니었다. 그래서 조니는 그 돈을 들고 나가서 복권을 샀다. 이번에는 즉석이 아닌 정식 복권을 샀다. 그리고 그는 그 일을 일기장에 기록했다. 아, 그는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건 말만 일기장이지 그날 뭐했고 다음날 뭐했고 기분이 어땠고 누구는 뭘 뽐냈고 난 뭐가 부러웠다, 그와 같은 낙서장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게 별일 아닌 일은 그에게 큰 인상을 남기지 못하고 잊혀졌다. 왜냐하면 그 복권이 꽝으로 판명났기 때문이다.


   2

   조니는 어느 날 집을 청소할려다가 진공청소기가 고장났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그는 동네에 있는 중고 가전제품을 파는 가게에 찾아갔다. 왜 그런지는 몰라도 그는 이번에는 꼭 중고품을 사보고 싶어졌다. 뭐랄까 전주인의 은밀한 비밀을 모두 깨우치게 될 것 같은 말도 안 되는 예감 때문이었다. 물론 그 느낌은 믿음직스럽지도 않고 합리적이지도 않았으나 단순히 먼지가 아닌 사람의 마음을 빨아들이는 그런 마술같은 진공청소기를 혹시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근거없는 허영심이 일단 사태를 주도했다. 그래서 조니는 로보트처럼 그 상점에서 진공청소기를 사들고 집에 왔다. 아무 이유없이 뿌듯했다. 얘 때문에 특급 소설을 쓸 것만 같은 기대감은 부풀었고, 그의 작품은 환상으로 SF로 어떻게든 얼마든지 변화하고 거듭 진보를 이어갈 듯한 느낌에 자못 흐뭇했다.
   그런 공상에 빠져 행복해 했고, 한참 동안 헛된 몽상이 그를 놓아주지 않던 찰나 그때 초인종이 울렸다. 바깥에는 웬 절세 미녀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용건은 이랬다. 자기는 진공청소기의 사은품이라는 거였다. 때문에 그는 그녀를 책임져야 하고, 오늘부터 데리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처음에 그는 웃었고, 조금 지나서 예의상 억지로 꽁트의 작품성에 찬사를 보냈고, 나중에는 어쩔 수 없이 결국 버럭하며 화를 냈다. 지금 장난하냐고! 뭘 원하냐고! 나한테 왜 이러냐고! 왜 하필 나냐고! 그 다음이 도대체 뭐냐고! 그러나 상대가 여자였기 때문에 조금 약하게 역정을 부렸다.
   그는 더 이상 속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세게 나갈 수는 없었다. 그의 앞에 나타난 미녀는 상냥했고, 공손했으며, 너무 귀여웠다. 목소리도 어떻게 그리도 꾀꼬리 같은지 마음이 사르르 사르르 녹는 것만 같았다. 이거 이쯤 되면 정말 데리고 살아도 되나 내가 그녀를 거두지 않으면 누가 그녀를 돕는단 말인가, 그런 생각마저 슬슬 기지개를 켜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뜬금없는 불청객이 아껴주고 찬양해도 모자를 만큼 그녀는 착했으나 그는 겁이 났다. 뭔가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어떻게 신기한 일 다음에 놀라운 일이 또 다시 염원이 이루어지다니, 이제 다음 차례는 뒤통수 맞을 일만 남은 듯한 불안감에 그는 쫓기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는 이 꿈이냐 생시냐 같은 황당한 일을 기뻐하면서도 어떻게 한번 그녀에게 멋진 남자를 소개시켜주고 싶은 욕망을 품은 다음에 곧바로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즉 이 순간을 유예하는 것. 그는 다시 한 번 지금 장난하냐며 그녀의 마음을 떠본 후 반응을 확인하며 오케이~했다. 곧 그는 자기 소속사 매니저 폴의 연락처와 주소를 알려주며 거기에 가 있으라고 했다. 일단 신부수업을 받는 게 좋은 듯 하다는 조언을 건네는 것도 잊지 않았다. 잔머리는 녹슬지 않았다. 최근 겪은 행운이라 믿고 싶은 이상한 일들의 전모를 더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에 섣불리 밀착 마크를 당할 수 있는 전담 요원에게 감시당하기는 싫었던 것이다.
   그렇게 조니는 그녀를 보내고 슬슬 실체가 드러나는 요행을 좀 더 적극적으로 찾아나서기로 작정했다. 그래서 그는 서점에 가서 책을 한 권 샀다. 그 어떤 여자라도 단 10분이면 모두 꼬실 수 있다는 텐미닛이라는 제목의 비서를 입수했다. 그리고 집에서 그 책을 읽고 거리에 나가 책에 씌여진 대로 똑같이 시도했다. 그러나 그건 먹혀들지 않았다. 축복이 발휘되지 않은 것이다. 시험은 계속 됐다. 하지만 거창함은 애초에 없었고, 실망만 반복됐다. 기대감은 무슨 기대감, 체념은 굳어졌다. 그래서 그는 가슴을 뻥 뚫어주는 듯한 뿅가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는 어느 광고를 보고 새로 나온 음료수를 사서 마셨다. 몬스터라는 에너지 음료를 마셨는데 괴물이 되기는 커녕 배탈이 났다. 약을 구해서 먹었는데 그 약은 복통을 다시리는 약도, 그렇다고 생리통을 완화시키는 약도 아니었다. 그 약은 바로 지사제였다. 그는 변비에 걸렸다. 그는 며칠 고생했다. 그런 다음 몸이 회복되자 그는 기운을 차렸다. 그리하여 행운은, 이상한 놀라움은 정확히 어떤 패턴으로 등장하고 그 불규칙성과 정형화에 얽힌 비밀은 무엇인가에 관한 그것을 알아내고자 하는 도전은 멈추지 않고 계속 됐다.


   3

   어느 날 조니는 그들이 운영하는 잠정적으로 중단된 무명 블로그를 찾았다. 한동안 활동이 없는 공동 집필 소설이 그리웠고, 오늘 따라 그것은 어쩐지 어떤 서품이 필요할 것만 같았다. 모처럼 스무살 청춘으로 돌아간 듯 해서 즐거웠는데 어딘가 모르게 문학이 신의를 져버린 것만 같은 뜻 모를 연민이 빠끔히 고개를 내밀고 자기를 째려보는 듯한 착각에 붙잡혔다. 혹시 지금 권태기인가, 아마도 갱년기? 그럴 리는 없다. 그는 뭘 해도 기뻤고 항상 재미있었고 언제나 즐거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알 수 없는 허전함은 뭐란 말인가. 도통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가 지금 들어야 할 노래는, 젊은 날의 아픔인가? 그렇다면 그걸 고른 라디오 편집 책임자는 감봉당할 수도 있다. 한 3개월 정도. 징계는 면제. 아니 유예? 응, 유예. 지금 당장 그가 읽어야 할 시는 혹시 이렇지는 않나, 고뇌하는 청춘이여! 선남선녀인 척 친구들과 단체 소개팅이라도 하는 게 차라리 낫겠다. 으잉? 진짜 그럴까? 해볼까? 그는 일단 핸드폰에 그걸 기록해놨다. 단체 소개팅이라고. 사랑의 짝대기, 생각만 해도 우습고 무언가 흥미롭고 이상야릇한 기분이 느껴졌다. 화살표를 독식하면 어떡하지, 동료들에게 미안한데...! 그건 그렇고 원래 지금 분위기는 침울했으니 설마 지금 당장 그가 설득당하며 감명받아야 할 낭독은 아마도, 사랑스런 신부여? 사랑스런 신부 같은 소리는 이제 그만.
   그러나 사실 조니는 세침떼기였다. 즉 그는 눈치 백단이었다. 아무리 그의 감성이 퇴보하고 애정의 감각이 힘 빠졌다고 할지라도 그는 다재다능한 여우였고, 게다가 용맹한 늑대였다. 뭐 그가 미친놈도 아니고 어쩌다 우연 다음에 아쉬우니 한번 더 우연, 미우나 고우나 우연이 계속 이어지기를 바라는 운명론자에 몽상가이자 고상함과 근사함을 목말라하는 낭만주의자는 아니었다. 적당히 현실적이고 때에 따라 속물이었고, 대체로 지혜로우며, 종종 이성의 나약한 측면을 순순히 인정할 줄도 알았다. 왕왕 남몰래 선행도 베풀었고, 몰래 품는 호의도 있었다. 곧 그 말은 그는 척하면 척 뭔가 이상한 기운을 감지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는 바보가 아니니까. 그의 기량이 아무리 저속할지라도 준치는 썩어도 준치다. 그는 드디여 눈치를 챘다. 언제까지 가슴이 벅차오르는 기분을 고대하고, 로맨스를 믿고, 애들처럼 불가사의를 궁금해하며 4차원 세계를 마냥 동경할 수는 없었다. 음악당에서 모차르트의 론도 CD를 샀는데 그걸 집이나 차에서 틀었드니 자기 조수나 업무 관계자나 누군가 자기를 스토킹하는 연정을 간직하고 그를 몹시 흠모하는 어느 여인의 육성 고백이 잔잔한 음악을 배경으로 전해진다? 바랄 껄 바래야지. 약국에서 무슨 오매가 뭐 비타민 영양제를 사서 먹었는데 그게 슈퍼맨이 되는 약이라고, 무슨 소설 쓰나? 쇼핑몰에서 옷을 한벌 샀는데 글쎄 옷 주머니에 웬 USB? 영화 찍나 영화 찍어? 그렇다고 아무 까닥없이 개연성 필요없고 작위적으로 또 즉흥적으로 후라이팬과 케익과 안마의자를 충동구매하라고? 그건 합리적 소비도 아니고 당연히 소녀의 감성도 아저씨의 잊혀진 꿈도 아니다. 차라리 하루는 개 팔자를 부러워하고 하루는 고양이 팔자를 흠 잡는 게 낫겄다. (물론 그는 알려지지 않은 애묘가다)
   그는 다시 냉철한 이성을 되찾은 것이다. 그들의 무명 블로그가 더 이상 업데이트되지 않았기 때문에 뭔가 낌새가 느껴졌고 어떤 신묘한 반전이 숨겨져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왜 그만 몰랐을까? 이제라도 알아챘으면 다행이다. 뭐 자기가 참치 통조림을 땄는데 뻥 소리가 나고 연기가 올라오고 그 안에 캐릭터 장난감이 들어있었다고? 녀석이 귀엽길래 데리고 다녔는데 자기의 모든 활동을 온전히 인터넷 세상으로 퍼날랐다고? 실시간으로? 화장지 통에서 나온 마지막 화장지가 지폐라고? 고액권? 진공청소기를 샀더니 광고 사진에 나온 미모의 아가씨까지 덤으로 준다고? 어? 이 사람이 지금 장난하나! 어? 장난해? 거리에서 뭐 음료수 깡통을 발로 뻥 찼는데 그걸 웬 숙녀가 얻어맞고, 서둘러 다친 데 없나 챙겨주고, 황망한 이 사태를 그렇게 소홀히 넘길 수는 없다며 절대 그래서는 안 된다며 인사를 트고, 연락처를 받든지 그냥 바로 같이 멋진 연노란색 컨버터블을 타고 드넓은 어항이 있는 색달리 멋진 카페에 갔다가 어떻게, 어떻게 일사천리로 그렇게?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그건 허풍이고 꿈이고 이야기보따리다. 공상이며 요원히 먼 희망사항이며, 가상한 측은지심을 유발하는 맥락없는 멜로 연기일 뿐이다.
   그래서 그는 생각했다. 무엇 때문에? 무명 블로그의 저조한 활동 때문에. 무엇을? 그러면 그와 같은 이상한 일이 왜 자기에게 계속되었는가를. 흡사 그는 낙오자가 된 것만 같았다. 친구들이 뭔가 작전을 건 듯 했다. 무언가 수상했다. 자기만 늦은 듯한 조마조마하고 뒤숭숭한 느낌과 함께 전문가들 세계에서 말하는 감, 떨어지면 밀려난다는 감, 잡고 싶은데 잘 잡히지 않는다는 바로 그 감이 떨어진 듯한 세한 분위기를 감지했다. 친구들과 함께 했던 공동 작업의, 덩실덩실 행운의 구름을 타는 흥겨운 기세의 꺾임을 그만 몰랐다. 이제 알았다. 뭔가 속은 듯 한 게 아니라 속았다. 딱, 속았다. 제대로 걸려들었다.
   한편 친구들이 공동 집필을 하기 전부터 각자 개인 블로그를 서로 구경하지 않는 것은 일종의 불문율이었고 모종의 철칙이었다. 예술하는 사람들끼리 흔히 농담으로 하는 말인 철들면 안 된다, 의 철과 다른 의미의 철은 어른으로 살면서 기본으로 구비하지 않으면 안 되는 효용성이고 인사성이자 격식이고 사회성에 예법이다. 그건 결코 천운도 아니고 둔갑술도 번뜩이는 천재성도 아니다. 꼭 골똘히 고민하고 영감을 소생시키며 막후의 결단을 내려야 하는 일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는 그 종류의 철이 일시적으로 들지 않았고, 잠시 한눈을 팔았으며, 감이 떨어진 줄도 모르고 있었다. 감이 뭐 바지 지퍼도 아니고 말이다. 완전, 속은 것이다. 감쪽같이. 꼼짝 못하고. 환상적으로.


   4

   조니는 케빈의 블로그를 보고 약 3초 동안 기겁했다. 그리고 약 2초는 어리둥절했다. 그 후 약 1초는 망설였고 급기야 그 다음에 폭소가 터졌다. (숫자에 0을 하나 붙이거나 초를 분으로 바꾸는 게 더 사실에 가깝겠다) 환희는 멈추지 않았다. 참으로 일찌감치 알았다며 침통해했지만 또 썩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작은 비밀을 목도한 것이다. 케빈의 블로그에는 이런 포스트가 올라와 있었다.
   「어느 날 조니는 이상한 경험을 하게 됐다... 처음에 그가 맞닥드린 비정상적인 일은 이랬다... 간단히 요기를 때울려고 참치 통조림을 땄다...」 
   자기가 겪은 행운의 연속이랄까 무언가 조잡한 축복이라고 하면 너무 좀스럽고 미심적이지만 응당 놀라운 일이며 이상한 경험의 실체가 드디여 드러난 것이다. 모든 일은 기획됐다. 퍽 치밀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꽤 신선했다. 조니는 자신이 연재중인 소설의 주인공이니까 자기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드라마를 보는 듯한 까무러칠 만한 환영에 젖어들었다. 최근 새삼 깨달은 것이지만 블로그는 지나깨나 환상이었다. 어쩜 이렇게 사람이 아닌 존재와 사랑에 빠져들게 된 것 때문에 인생이 축복 받은 것만 같았다. 가슴은 설렘으로 요동쳤고, 마음은 떨림으로 사무쳤으며, 기분은 그야말로 초롱초롱했다. 황량한 내 삶이 꽃을 피우고 건조한 인생에 무지개가 떠오른 듯 했다. 불시에 흥분한 것이다. 녀석들을 한심한 놈이라며 나무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조니는 가만히 몸을 떤다. 왜냐하면 어떤 미세한 이별의 조짐이, 작별과 긴밀한 내연의 관계에 있는 듯한 혼자 일하기의 서막이 밝아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알렉스의 블로그를 확인해보니 그들의 공동 블로그는 제 역할을 다했다고 나와 있었다. 즉 여름이면 돌아오는 공포영화처럼 개인적으로 순수예술을 하다가 오랫만에 대중예술을 위해 협업하는 개념으로 모두들 알고 있었다. 자기만 몰랐다. 그 혼자만 공동 블로그에 너무 심취해 있었던 것이다. 대략 무명 블로그의 해체라고 봐도 그다지 틀린 얘기는 아닌 듯 했다. 그걸 가지고 자기만 소외됐다네 덜컥 슬퍼지네 징징거릴 일은 아닌 것이다. 하지만 그의 안면은 창백했다. 더없이. 그리고 말없이 자신의 예감이 적중한 것을 깨달았다. 이미 마크의 블로그는 그것에 이름을 붙였다고 나와 있다. 미래파라고! 그는 젬병 나만 몰랐네, 그랬다. 그러나 그는 친구들 블로그를 또 녀석들이 운영하는 소셜 네트워크를 보는 즐거움에 시간이 가는지도 몰랐다. 각자 자기 계정의 소개 글에 짧은 이상에 대한 문구를 남겨놓았다. 순진한 문학 소녀처럼. 연애편지를 쓰는 순수한 무엇보다 어서 어른이 되고 싶은 소년과 비슷하게. 외람된 말씀이지만 그분들은 천천히 늙고 싶으시지만 그와는 전혀 다른 마음을 간직한 어린이도 아니면서. (외람된 줄 알면 아예 말을 꺼내지 말든가?) 또 집에서 프린트한 종이를 벽에 바로 또는 액자에 끼워 걸어놓거나 수험생처럼 머리띠를 맨 모습을 담은 사진을 올려놓은 것도 보였다. 거기 씌여진 글은 이랬다.
   닥치고 쓰기.
   아찔한 지성. 신나는 모험.
   오늘도 고전(苦戰). 고전(클래식)과 함께. 어쩌다 사랑.
   아마도 거짓. 의심은 기본. 내일은 낭만. 그녀는 신비.
   나는 귀공자. 블로그야 놀자. 토끼의 칭얼거림. 개와 남자. 서정시를 쓰자.
   거간꾼의 인생(거간꾼은 간이 크다, 부었다, 특이하다는 뜻)
   (그리고) 슬슬 환상곡을 만들 때가 됐다.
   또 더 긴 문장들도 있었다. 그 글만 잘 이어도 즉흥시나 단편소설 하나 정도는 나올 것 같았다.
   「단추를 잠그고 리본을 풀다. 아니, 단추를 풀고 리본을 잠그다.」  
   「어? 합성이... 아닌데!」  
   「왜? 나쁜 건 다 누구한테 배운 것 같냐? 그건 아니지? 그렇지? 그럼. 그럴 리가 없지. 그건 말이 안 돼.」 
   「내가 가진 패는 풀 하우스도 아니고, 무심코 내게 날아올 운명의 상대는 조커나 퀸일리는 없고, 액면도 그저 그렇고. 에휴~ 이게 다 뭐래니!」  
   물론 훨씬 긴 소설에 쓰일 법한 대화 같은 글도 있었다.
   「거 웨 뭔가 가르쳐줄려 하거나 아는 체 하는 모습. 젊었을 땐 모두 애송이지 다 거기서 거기니까. 그런데 꼭 그런 말 하는 친구들이 있어. '너 여자가 어떤 남자를 좋아하는 줄 알아? 여자는 말이야, 상의는 몸과 밀착되고 하의는 그보다 덜 밀착된 옷을 입은 남자야.' 그리고 그런 어중간한 말을 상황 봐가며 상대 봐가며 그대로 또는 반대로 밖에 응용하지 못하는 녀석들, 꼭 있단 말야. 어려서 폼 잡고 싶고 뭔가 있어 보이는 어느 카리스마와 위압감이 느껴지는 옷에 끌리고 그렇기는 해. 어리석은 젊음 그것도 젊음의 본연의 특성이고 그 때문에 신나는 모험도 가능하니까. 하지만 그건 꼭 청춘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야. 뭔가 있는 거 같은데 듣고 보면 아무 것도 없는 말, 뭔가 있는 듯 한데 알고 보면 아무 것도 없는 허위 같은 거. 잘 이해해야 한다는 의도를 가지고 친절하게 알아 듣고 싶다는 의무를 바탕으로 주의 깊게 귀를 기울여보자는 태도를 기본으로 혹시 흥미로울지도 본받고 따라할 점이 있을지도 모른다면서 읽고 또 읽는데 듣고 또 듣는데 한참을 들여다봐도 뭔 말인지 아무리 귀 기울여도 잘 모르겠어, 바로 그런 말. 인물로는 허당, 동화로 치면 변신, 속세에서는 사이비, 습관으로 치면 거짓말. 걔네들만이 아니라 어른들이 원래 구사하는 말과 행동이 모두 그래. 치고 빠지기. 오른쪽으로 가는 척 하다가 왼쪽도 아닌 듯 해서 가운데 서 있기. 속마음을 짐작하고 판세를 읽고 미끼를 던지기. 기교도 있고 제법 철학적이며 없는 것 없이 거의 다 있고 때로는 단순하게 때로는 복잡하게 무언가 훨씬 중요한 게 나올 것 같지만 어떤 알맹이와 놓치면 안될 요점을 꺼내놓을 듯 하지만 기다리려 기다려도 아무리 기다려도 그건 대개는 결코 나타나지 않지. 처음에는 일단 꼬셔, 진짜 재미난 일이 있다고 너에게만 가르쳐주겠다고. 처음에는 분위기를 잡고 설득해. 지금은 이렇지만 나중에는 어떻게 될 것이라고 마치 예언처럼, 흡사 도사처럼. 그러나 그 말의 처음과 끝은 달라. 글도 비슷해. 글도 똑같아. 그런 경험을 수십 년 하고 나면 비로소 보이지. 그래도 가끔 지금도 간혹 귀가 씰룩거리기는 하지만. 미래의 내가 되어서 뭔가를 읽어보면 도저히 뭔 말인지 모르겠어, 지금 그러는 거 같아. 그 미래가 어느새 지금이 되어버렸어. 슬프기도 하고 웃기면서 기쁘기도 하지, 이상하게도. 현재의 나는 예전의 내게 이렇게 충고해주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어. 아름다운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만 돌아갈 수 없으니까. 시간을 돌이킬 수 없다면 지금부터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나로 돌아오고 싶어하지 않게 살면 되겠지만, 음 쉽진 않겠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야. 아, 충고 같은 말 그건 이거야. 뭔지 잘 모르겠다 헷갈린다 이해가 잘 안 된다 나는 달리 생각하는데 납득이 안 되는데 너무 강하다 너무 우긴다 너무 세다, 그렇다? 그러면 듣지마. 읽지마. 만나지마. 쳐다보지마. 거기에 시간을 쓰지마. 그게 결론이지. 무시해도 돼. 외면해도 된다구. 헤어져도 삶은 계속 돼. 정해진 운명은 없어. 사람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고. 일단은 지구에서지만 말이야. 그건 꼭 나이 들어 깨닫는 교훈 같은 건 아니야. 원하는 풍경을 보고 바라는 이상을 갈망하고 연모의 감정을 한껏 사모하란 말이지. 그런데, 난 말을 하고 있는데 왜 자꾸 글을 쓰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거지? 네가 듣기에도 그러니? 그냥 횡설수설인 것만 같아? 그럴 지도 모르지. 하지만 내가 봤을 땐 약간 그런 것 같아. 그러나 혼자서 짐작하고 혼자서 느낀 것 만으로는 뭔가 부족하잖아? 믿음과 확인은 별개의 문제이듯. 거의 모든 글이나 말도 전부 다 자기 말 자기 글 자기 행동과 자신의 생각과 자신의 신념이 맞고 옳다고 그래. 자기 주장과 의견 제시, 그것도 상업과 똑같아. 시장경제에서야 어느 애매한 선을 넘으면 과장 광고라며 제재가 가해지지만 기실 더 엄밀히 따져봐야 하지 않나 라고 누구나 어쩌다 한번 쯤 의문을 떠올려보는 몇몇 분야에서는 오히려 그게 최선이며 원래 그런 것일 뿐이라는 자연 법칙 때문에 더 옹호하고 더 장려되는 것만 같아. 책을 봐봐. 거기에 둘러진 띠에 씌인 글을. 예술 작품을 소개하는 포스터를 봐보라구. 우리 마음을 유혹하고 내면에 속삭이는 화사한 얘기들. 어디 그 뿐이겠어? 보사노바와 고전음악이 만나면 뭐야, 크로스오버라고 하지. 주황색 브랜드와 포도빛 예술작품이 만나면 또 뭐라 그래. 새로움이든 뭔가 알찬 역동성이 느껴진다면서. 그런데 정치에 다른 단어 있잖아 종교나 경제를 더하면, 그건... 왠지 얼굴이 밝게 펴지기 보다는 작게나마 찡그려지는 감, 거북스러운 느낌이 없잖아 있지. 그만큼 힘들고 어렵고 중요하기 때문에 그러겠지만 말이야. 그게 꼭 나쁘거나 어색하지 않기를 바라는 게 이상이고. 내가 아는 그대 A와 사랑 B는 변하지 않기를 바라며, C라는 가게는 꿈결 같은 분위기를 바탕으로 사랑의 비너스를 변함없이 알리고, D에 가면 황금빛 후광을 볼 수 있는 동시에 천상의 행복을 느낄 수 있고, E 블로그를 구독하면 사랑으로 가장한 청초한 정념과 사랑의 불길과 사랑의 왕국은 물론 사랑에 관한 온갖 신비로움을 알려주고, F 강연회에 가면 연사가 이상적 아름다움에 대한 철없는 동경과 함께 그녀를 내 여자로 만드는 방법 그 특효약을 가르쳐주고 알려줘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야 하지 않니? 그게 맞잖아? 어? 어느 드라마를 보고 소설을 읽으면 나는 그녀를 이렇게 꼬셨다라고 나오지만 나 뭐했다 그런 거 말고 어떻게 해야 한다는 그런 인문-교양적 소양에 대한 안내 또한 충실해야 하는 것 아니냔 말이야. 어때, 그렇잖아? 그런데 세상은 그렇지 않아. 그렇지 않잖아? 응? 그래서 어느 강연회에서는 자존감이 덜 성숙됐다고 할까 무언가 마음이 여린 청중들을 모아놓고 막 그렇게 동기부여를 하지. 나 빼고는 전부 다 삐── 라고! 틀린 말은 아니야. 그런 과감함과 패기가 필요한 거친 세상이니까. 과감함? 묻지 말고 키스 하기? 그런데 지금 시점에 그 얘기가 왜 나왔지? 응? 왜 지금이야? 어? 혹시 안다면 알려주지 않을래?」
   「거 왜 그래, 니콜라스? 너 기분 좋을 때를 생각해보라고. 로맨스 코메디의 전설이라는 영화를 새로 시작된 연애 상대와 기분 좋게 보고 나왔어. 데이트 일정은 남아 있고 기대감은 부풀고 예감도 좋아. 그러면 그 로맨스 코메디에 악평을 쏟아붇고 싶겠니? 완전히 새롭다는 오페라를 봤는데 어머나 그건 광고 내용처럼 정말 상상은 현실이 되고 압도적인 스케일에 거부할 수 없는 치명적 매력에 가려진 뭔가를 즉 반전에 홀딱 넘어간다면 그것도 모두 가짜고 거짓이고 과장이며 엄살에 능청이야? 뭐든지 제일 중요한 건 네 상태야, 지금 네 여건이라고. 이미 알만한 넌데 왜 그런 생각이 드는 걸까? 너도 잘 알잖아, 세상은 그렇게 썩 정의롭지 않다는 것. 화창한 날씨에는 청량감이 느껴지면 그림자도 짙다는 것. 그건 어쩔 수 없다는 것 말이야. 어떤 유명함에 상응하는 행보에 대한 언행이 일치하지 않았을 때 어떻게 특출나게 주어진 유명함과 무관하며 평등한(?) 내국인의 의무를 외국인에게 짐을 지우며 어디서는 입국을 거부하지만 어디서는 주권의 혜택만 제한해. 그 차이 밖에 없어. 적은 차이는 아니지만. 언제부터 도리가 그렇게 완강한 헌법이었나, 그게 뭐 엿장수 마음인가? 남녀노소 막론하고 여론에 덜덜덜덜 달달달달 낡은 선풍기처럼 약풍만 트는 오락 산업의 유행따라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는 뭐 남국으로부터 불어오는 사랑의 향기 같은 거냐고. 대체 그런 이별주가 어딨어? 정치와 경제와 사회계 뉴스에 대한 제일 흔한 말 가운데 하나인 일관성. 일관성, 그건 뭐 자유자재로 변신하는 만화영화 주인공인가? 적은 차이는 아니지만 그래, 적은 차이는 아니야. 하지만 대체로 어디에서나 조직이 거대하면 크고 작은 문제는 있는 법. 정부 시책에 반하는 개인적 의사가 확고하거나 더구나 영향력도 있다면 바깥에서 안으로 들어올려면 기준선은 까다로워질 수 밖에 없겠지. 나중에 봤을 때 또 나무를 보면 갸우뚱할 수도 있지만 그건 나중이고 또 나무를 봤을 때의 얘기. 지난 일에 대해서 거대한 행정력의 과오는 유달리 커 보여서 그러는지는 잘 모르겠어. 그런 건 쉬운 말로 잘한 점, 무거운 단어로 업적도 있을 테지만 기억나고 화자되는 건 하필 음 조금 그래. 누구나 그럴꺼야. 행복하고 기쁘고 즐거웠던 추억을 회상하고 미소를 지으며 새로운 봄바람을 기다리거나 다가오는 첫눈을 기대해. 그러나 그와 반대로 씁쓸하고 아픈 기억은 잊혀지지 않고 드물게 또는 틈만 나면 대체로 간혹 당신을 괴롭히지. 차이는 있겠지만 어디나, 누구나 다 그래. 하긴 동물농장의 고위급들이 헤어진 남자친구나 사별한 부인도 아니니까. 또 왕조시대이고 왕권이 꽤 보장된다면 평등이나 박애 같은 개념을 이루는 게 비교적 더 쉬울 거야. 이론적으로 그리고 그럴 의도가 있다면. 그러나 지금 세상은 기본적으로 선거에 승리하는 게 먼저니 나중 평등 뭐 박애? 도의적으로나 넓은 개념으로는 아니겠으나 나중 와~ 방대한 인사권을 고르게 행사한다면 그건 논리적으로 따지자면 나 혼자 힘으로 동물농장의 수장이 됐다는 거잖아. 크게 또 작게 돕고 응원한 사람들은 다 뭐야? 들러리야? 어? 액자고 병풍이냐고. 감독, 코치, 동료, 관중과 그래 장비와 후원자와 애호가 다 필요없고, 나 혼자 잘나서 환상 이론을 창시하고 우승하고 메달 딴 것과 같은 이치라고. 팬들이 바라는 모습으로 남지 않겠다는 거니까. 조금 삐딱한 시선이 담긴 독백을 연극풍으로 부풀려보자고. 너네들 항상 하는 말 뭐냐 그거 아니냐고 하겠지. 그 개념은 사는 데 뭐 하나 도움이 안 된다, 뭐 방법이 없다, 처음과 처음의 다음부터 다르지 않냐, 어떻게 할 수가 없다고, 뭐 한두 번 속냐고, 간혹 곧이곧대로 말한 거 다 지켤려고 하면 역으로 그게 더 감당하기 힘들수도 있다고, 그러니 도저히 못 믿겠다고. 그런데 일반인만 뭐 전문가를 못 믿나, 전문가는 일반일을 믿고 인정할까? 전문가도 기본적으로 장미꽃을 팔고 사과나무를 키우는 사람과 똑같다고. 웃음 한번이 프리지아고 바나나고 환경 운동이며 표야. 학자? 인기 없어. 책이 안 팔려. 심지어 가난해. 더군다나 세상은 아울러 누구도 날 인정해주지 않아. 일단 지난 사랑에 실패했으니까 미래의 당신을 기다리는 수 밖에. 시대를 앞서간 거지. 학교 선생님, 역시 인기 없어. 애들 표정 보면 다 알아. 그러나 교육자래. 밖에서 우리 선생님이 어느 술집 문을 여는 것, 제자는 딱 한 번 보고 그걸 일평생 기억한다고. 그 일이 어디 쉽겠어? 처음부터 끝까지 기분 좋겠냐고. 일단 거기서부터 모순이야. 어떻게 하겠다는 선언에 따른 시작 전부터 이미 그 모순을 안고 가는 것으로(가야 하는 것으로?) 상정된 정말 이상한 게임이잖아. 나서서 비호하기도 남이 뭐라 하건 찬양하기도 그렇다고 오락 산업과 덩달아 으쌰으쌰만 할 수도 없는 일 아니니? 올커니~ 뒷짐만 지고 딴청을 피우면 되겠네 그러면 또 그런다고 뭐라 그래, 바로 이와 같은 글이나 최소한의 의무만 행사하자 라는 캠페인에서 말이야. 있는 사람들이 지갑을 여는 행위가 경제 관념에 위배되지 않으며 정당한 권리이자 시장 경제에 나쁘지 않다는 건 맞는 말. 그리고 자기 돈 가지고 자기 마음대로 쓰는 것은 어느 선을 넘으면 불미스러울까, 는 수학처럼 정확하지는 않음. 그러나 내 선거권을 내 마음대로 쓰는 걸 왜 뭐라 하냐, 도 같은 문제로 볼 것인가는 다른 문제야. 앞서 문장은 맞냐 틀리냐, 그 다음은 애매하다, 그리고 그 다음은 내 이권과 자유에 따라 어디까지 어떻게 행동해도 되느냐 그것은 전자와 전전자와 달리 그 짝을 찾기 어려울 만큼 쉬운 문제가 아닌가봐. 즉 일상적으로 최소의 의무는 마다하고, 건강한 비판과는 거리를 둔 채로 나중 무분별한 험담이라면 그 어디에서도 둘째 가라면 서러워하는 사람만 되지 말자, 어쩌면 그 정도가 정답일지도 모르는 일일세. 인류 역사상 인간 사회에 대한 가장 훌륭하고 가장 우수한 체계라는 데 공교롭게도 그 한계는 간명하게 훤히 보이잖아? 어느 일반인 왈, 그럼 나보고 뭐 어쩌라고! 그분을 건드려 뭐하겠니? 세상을 바꿀려고? 그런다고 바뀔 세상이니? 누군가는 동물농장의 사장을 할 수 밖에 없어. 공석은 안 되니까. 세상이 복잡한데 어떤 관계든 거미줄처럼 얽힐 수 밖에 없다구. 멀리 보면 아마 다 차츰 점차 비슷해질 꺼야. 나아가는 방향은 같으니까. 어디에서는 묵묵히 그 길만 걸으며 낚시를 했던 사람만 낚시꾼이 되는 반면, 어디에서는 유독 제복을 입었거나 그와 관계된 사람이 그 분야 전문가가 되기도 해. 그건 우연이나 운명 같은 애매한 말 보다는 달리 부르는 게 더 기품이 느껴지겠지. 고기가 안 잡히면 오히려 장비 탓을 하는 게 더 즐거운 법. 어쩌면 그게 맞지 않을까? 그래야 더 즐겁지 않냐는 말이야. 비겁하다와 현명하다, 그거 때로는 같은 말 아니냐? 맞잖아? 그렇지 않다면 마녀사냥 시대처럼 주홍글자를 불태우겠니 어쩌겠니? 장비 딸리면 누군가 총대는 매게 되어 있어. 염소를 놓고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것처럼. 그 염소가 대체, 도대체 뭔 죄냔 말이야. 그런데 그게 염소가 아니라 사람이라면, 인간이 지구에서 저지른 일들이 워낙 많으니까 또 그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기도 했고 풍요로움과 온갖 호사로움을 포함한 문명을 이뤘으니까 그쪽에 치우치지는 말자고. 하지만 법에서 말하는 질서도 말도 안 되는 판결이라도 불미스러운 판례라도 모두 나중 어떻게든 도움이 되는 거지. 배부른 소크라테스와 배고픈 돼지만 바늘 방석에 앉을 수 밖에. 대중은 개나 소나 돼지가 아니야. 그러나 대중은 개나 소나 돼지가 될 수도 있다는 점, 그걸 잊으면 안 되지. 왜냐하면 그 길은 원천적으로 차단된 게 아니기 때문. 인간의 선한 본성이 어두운 면을 잠식하며 전면에 나서는 것이지 어두운 측면이 아예 없다는 건 말이 안 돼. 낚시 대회에서 경력도 장비도 운도 참가 의지까지 없었던 초짜가 대어를 낚으면 뭐야? 대가든 권위자든 선수든 모두 찌그러지잖아, 그게 이치니까. 그게 원리니까. 그게 약속이니까. 옆에서 앞에서 뒤에서 멀리서 찍~소리 못하고 짐싸서 집에 가는 거야. 다! 환호성과 탄복은 관중에게 양보하고. 그런데 그게 아니라, 그런데 꾼이 잡았다? 말 다 한 거지. 말을 바꿔서 동사를 피동사로 대입해 보면, 잡은 게 아니라 잡혔다? 말 다 한 거지. 오늘날에는 돈이 최고라는 어떤 암시에 동의하며 최면에 걸린 채로 성장한 돈만 많은 사람이 잡았다, 힘 있는 사람이 잡았다, 본성은 선하지만 지금껏 그걸 인정하기 싫어서 너무 거칠게 살아온 사람이 잡았다, 세상에서 내가 제일이다 내가 최고다 내가 진짜다 라며 사는 사람이 잡았다, 모두 어쩔 수 없는 거야. 왜냐하면 여기는 천국이 아니니까. 우린 모두 인간이니까. <시간아 멈춰라>는 노래 제목이나 어떤 시상일 뿐이니까. 아무리 좋다 해도 아무리 싫다 해도 그건 그냥 대회니까. 마치 허풍 대회처럼. 흡사 환상 머쉰처럼. 지금 세상은 오락 산업의 영향력이 굉장히 대두됐어. 물밑에서 장악하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전면에 나서게 됐어. 또 세상은 상업 논리에 따라 굴러간다고. 바야흐로 과학이 발전한 만큼 사람들의 다재다능함도 숨길 수 없기 때문에 이제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흔해 빠졌어. 보기 힘들지도 않고 귀하지도 않아. 저분은 작가라고 하지만 그게 어디 작가야? 어? 지가 무슨 작가야 코메디언이지. 실상 코메디는 또 누가 하냐고? 저분은 사진작가라... 음... 수상해. 저분이 교수라, 의뭉스러워. 저분은 의사, 뭔 의사가 그렇게 말발이 좋아? 왜? 의사도 화술이 딸리면 쉽게 가난해지거든. 어쩔 수 없어. 누군 쪽박 찼다네, 그런 험구는 쉬쉬하자고. 사람을 위해 의술을 배웠는데 잠 안 자고 그 고생을 해서 히포크라테스가 되고 디케가 됐어. 그런데 거기서부터 또 딴 세상이네 글쎄. 누군 뭐 처음부터 닳아졌겠냐고 타성에 젖고 싶어서 관례에 따르겠냔 말이야. 초등학교 선생님에 대한 세평을 들어보면 그렇다고들 해. 격식을 생략하자면 쪼잔하다, 품위를 갖추자면 애들처럼 금방 삐지고 언제 그랬냐는 듯 쾌활하기도 하다가 가끔 편애도 하며 은근 인기에 신경 쓰고 뭔 걱정이 없는 것 같다고. 그러나 그 일을 해보면 알게 되겠지. 추측하다가 이해하다가 아 그렇구나 실감할꺼야. 그리고 어머나, 저분은 신문기자? 아무리 봐도 영화배우 같은데! 어떻게 불려지기 싫다고 해도 일단 유명하면 그건 아무리 거부한다고 해도 아무리 자기는 아니라고 해도 그건 이미 연예인이야. 말이야 바른 말이지. 그래서 고급 유머를 구사했던 진짜 연예인은 이민도 생각하며 삶을 고민하게 돼. 진짜 연예인 옛날 말로 광대, 그분들이 우리를 웃기고 울고 슬프고 감동하게 만들어야 하는데 꼭 그렇지는 않잖아. 공교롭게도 엄한 데서 폭소가 터지면 가수 한명과 연기자 한명은 속옷 사업으로 뮤지컬로 옮겨간다고. 처음부터 그쪽 길만 걸었던 사람들은 또 굴러온 돌이 당도했다고 긴장하게 되겠지. 결국 그렇게 되는 거야. 지금 세상은. 그래, 오락 산업! 바로 그거야. 그 산업은 뭐 패션업계나 초정밀공학이나 조류학처럼 명확한 테두리가 없어. 있긴 있지만 음 그래 있긴 있는데 그게 다가 아니야. 꼭, 물 위에 떠있는 빙하 같은 거야. 사람들이 살면서 간혹 아주 드물게 그런 경험을 할꺼야. 와~ 저분에게 어떻게 저런 표정이! 그러면서 정말 탄성을 내지르지는 않지만 속으로 그렇게 느꼈던 적, 있을 꺼야. 최근에 여러 대중 매체를 통해 참으로 놀라운 그런 표정을 보고 감탄스러울 정도로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거나 속으로 웃으신 분, 아마 없지 않을 꺼야. 뭐 좋아하건 관심없건 차마 말이 나오지 않던 간에. 특히 남자. 왜냐하면 여자가 남자보다 비교적 표정을 읽는 걸 좋아해. 여자가 남자보다 사람 얼굴에 시선이 오래 머물고 더 면밀히 관찰하며 기억한다는 건 과학으로 증명됐지. TV, 인터넷, 신문에서 생각도 못했던 상상도 못했던 저분의 표정을 보고 썩은 미소든 뭐든 웃은 사람, 특히 남자. 그 남자는 어쩌면 이랬을 꺼야. 혹시 내가 여자 아닐까? 그렇게 말야. 문화, 국제, 경제, 정치, 사회, 언론, 예술, 스포츠, 뭐뭐 거기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어. 떼돈 벌면 숨는 수 밖에. 교과 과목은 대학교로 넘어가면 학문이며 지성으로 보이지만 곧 있으면 그것도 그게 다가 아니란 걸 알게 돼. 남에게 어떻게 보일 것인가, 매우 중요한 문제지. 같은 논조라도 어떻게 말할 것인가, 불러올 반응은 간단하지 않아. 그러나 평판은 알려지고 이권도 공유하고 인터넷은 활발한데 비밀이란 게 어디 있겠어, 요즘 세상에. 세상 돌아가는 논리, TV나 세상사가 아닌 경험에 의해 그걸 제일 먼저 체감하는 때가 언제냐? 언제일까? 음, 이를 테면 음, 예를 하나 들면 그거지. 초등학생이 거리에서 그걸 봤어. 어 저기 어 뭐야 어 우리 선생님이 저기 술집 문을 열고 들어가시네, 그런데 그 술집 이름은 묻지마야, 묻지마? 뭘 묻지마? 지금은 묻지마? 왜 거기 들어가셨냐고 다음 날 묻지마? 그게 뭐야? 왜 교육자가 술집에 들리는가를 묻지마라냐 학자가 브랜드와 얽히느냐를 묻지마라냐 관료나 장사꾼은 뭐 술도 마시지 말아야 한다를 묻지마라냐 아니면, 저 사람은 만나서 말을 하면 그 말을 온 동네방네 할 말 못할 말 다 떠들고 다니고 또 저 사람은 나와 관계된 것 사소한 것 하나하나도 모두 블로그에 올리며 또 저 사람은 그걸 책으로 영화로 노래로 만드느냐 날 주인공으로, 바로 그걸 묻지마라냐 인가는 정확하지 않지. 중학생이 되어서 불륜이라는 사전적인 단어를 처음 간접적으로 알게 되고, 고등학생이 되니 어머나 글쎄 덩치 큰 녀석들이 동급은 건드리지 않고 비겁하게 나 같은 범생이한테 자꾸 뭐라하네, 더 크면 운동장에는 못나가고 게임기 스틱을 잡아. 그런 거야, 세상은. 한번 생각해보자구. 비열함이 대체 비열함이 언제부터 어느 수단으로 자리잡았을까? 또 비열함의 기준은 뭐고 그 기준은 바뀌거나 변하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그건 그냥 대하 드라마에서만 볼 수 있는 어떤 관록미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또는 영상물을 비롯한 예술적 유흥? 특정 언어가 언제 어떻게 태동되었는가가 불확실한 것처럼 그 또한 명확한 답변으로 짧게 정의내릴 수 없어. 안 그래? 그렇잖아. 인간사는 원래 말이 많은 법. 아울러 옛날에 한 번 웃으면 한 번 젊어지고 한 번 화내면 한 번 늙는다고도 하는데, 소문 또 촌평과 험담의 재료와 수다에 대한 영역이란 결코 작지 않아. 그것도 학문이고 산업이며 타인과 예술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 밖에 없어. 사람이라면 남을 웃기고 싶은 욕심은 조금 지나쳐도 미덕이거늘 어느 분야에서든 오락적 흥취는 가라앉지 않아. 때에 따라 꼼꼼하고 심각해야 할 중요한 방면에서도 말이야. 그게 문제지. 피해는 고스란히 대중이 감당하는데 말이야. 한번씩 사태가 터져도 그때 뿐이야. 금융위기나 뭐나 뭐 같은 거. 하지만 학문으로 접근하는 귄위자와 평생을 연구하는 전문가들의 고견도 분분해. 처방도 정답이 없고 무한정 투명할 수도 없어. 너무 깨끗한 물에는 고기가 살지 않는다는 말도 있고, 재미있는 지옥 재미없는 천국이란 말도 있잖아. 어이 없는 큰 일이 반복되지 않게 차츰 다듬어가는 수 밖에. 사는 데 도움이 안 된다고 그분들이 옌예인처럼 어느 분야에서 활동한다고 일반인도 덩달아 오락하듯이 막 자기 권리이자 의무를 게을리하는 건 너무 어리석은 일이야. 애석해. 어디 사랑의 슬픔만 애틋한가, 그보다 이게 더 애틋하다고. 결국 인간을 위한 다양한 오락 산업과 매스컴의 영향, 그래프에 따라 깊고 넓어지는 건 피할 수 없는 일인가봐. 스포츠, 스포츠를 봐보라구. 경기장에 가서 구경하는 사람, 스포츠 복권을 사는 사람, 친구와 내기를 하는 사람, 다 귀찮고 집에서 리모콘으로 TV를 틀고 구경하면서 수다를 나누는 시청자, 그분들은 모두 제3자야. 지든 이기든 웃고 떠들면 그뿐, 즐겼으면 돌아서서 자기 삶으로 돌아간다고. 그 입장에서는 그래 아주 간단하지. 그분들 입장에서야 그래. 호탕함, 왜 싫겠어? 화끈함, 없으면 심심하잖아. 흥미진진함, 빠지면 서운하지 좋다고 하겠냐? 그러나 제3자가 아닌 당사자는 그걸 지켜보는 사람과는 처지가 달라. 달라도 너무 다르지. 완전 딴판이야. 왜냐하면 인생이 걸려있으니까. 옛날 로마 시대에 목숨이 걸려있었던 것처럼. 진짜 해도 해도 완전 더럽게 정말 더럽게 너무나도 더럽게 재미없게 한다고 해도 그거 아니면 도저히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없을 정도로 상대가 강적이야, 그렇다면 수비 축구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어. 아무리 언론에서 뭐라고 하고 어쩌고 해도 방법이 없다고. 그 만큼 강팀과 싸우고 치열한 승부 세계이니까. 누군 뭐 치기 싫어서 헛스윙 한번 못해보고 바보에 삐─처럼 가만히 서서 지켜만 보다 타석에서 물러나겠냔 말이야. 야구선수 맞냐고 의심스럽게. 혹시 생각하는 사람 뭐 그런 조각상 모델이 아닐까? 멀뚱멀뚱 싱겁게 서있다 들어가는 거 그거 대체 뭐냐고. 직장인이 열심히 일하고 퇴근하고 집에 와서 소파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텔레비젼 채널을 돌려. 돌리다 보니 격투기도 하네. 그걸 보며 격무에 따른 피로와 스트레스를 날려버릴려고 하는데 뭐야? 선수가 수면제 파이터잖아! 피로가 만성피로로 바뀔지도 몰라. 만약 채널을 고정한다면. 구경꾼과 달리 당사자는 그렇다니까, 너무 치열하고 너무나도 모두들 강하고 아차 하면 밀려나기 쉽상이고. 보는 사람은 장난인데 하는 사람은 장난 아니지. 꼼꼼함부터 무관심까지, 심하게 장난스런 선수와 무척 심각한 팬이 있듯이 롱테일은 형형색색이지만 일단 큰 구분은 딱 두 가지만. 그래서 간혹 스포츠 업계에서 약팀이 지옥 훈련이든 그냥 운이든 화합을 이뤄서 어떻게 광풍을 일으켰다, 다들 응원하고 좋아하잖아. 스포츠 기자, 오랫만에 기쁨을 느껴. 업계에 뛰어든 보람을 느낀다고. 하지만 원래 강팀인데 부드러운 플레이가 아니라 포지셔닝이 확실하다, 바로 <닥치고 공격>이라고 일명 닥공! 그런데 어머나, 성적까지 최고네. 팬들 그야말로 열광하잖아. 그냥 뒤집어지는 거야. 완전 미치는 거지. 하지만 그건 드문 사례고 대체로 이길려면 나중 보면 이겨놓고도 그게 과연 이긴 게 맞냐 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각계 각층의 여러가지 아니 아니 거의 모든 분야가 과열되고 엔터테인먼트 산업화되었다는 것, 누가 부인하겠어? 그렇지 않다는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 나오라고. 조용히 단둘이서 오손도손 사랑의 밀담을 속삭여도 좋으니 제발 나와보라고. 정말 이런 건 한판 떠야 하는 거 아니냐? 안 그래? 내가 뭐 엄한 걸 트집잡은 거야? 괜한 말 했어? 묵계를 끄집어 냈어 아니면 밀림의 진짜 강자인 하이에나의 약점을 물고 늘어졌어? 어? 음...... 자네의 생각이 복잡하다, 음... 차라리 마음을 바꾸고 생각을 전환하는 게 빠르겠어. 그게 모여서 서서히 나아지는 거지 지금이 무슨 옛날 옛날도 아니고, 왜? 전기 기타로 쇼팽의 연습곡 몇 번이야 혁명, 그거 연주해줘? 어? 너 왜 갑자기 생각이 구식이 된 거야? 어린 시절로 되돌아 가고 싶니? 그런 거야? 너 지금 배고프니? 뭐가 불만이야? 일단 먹는 즐거움이 흠뻑 충족되면 거의 어지간한 투정은 거의 잠들기 마련이야. 첫째가 그거야. 제일 첫째가 그것이라구. 보고 듣고 자고 먹고 놀고 말하고 입고 그 모두를 놓고 드물게 자기는 후순위로 몇 번과 몇 번의 순서로 행복이 좌지우지된다고 말하지만 그건 거의 희박해. 있어도 절반은 거짓말이야. 쇼야. 연기라고. 그 희소한 숫자를 빼면 나머지는 다 비슷해. 완전 똑같아. 놀랍게도 거의 일치한다고, 사람들의 생각이 사람들의 느낌이 나중 행동이. 그 다음에 계속 이어지기는 하지만 일단은 기본적으로 잠을 곤히 자고 일어나서 기분 좋게 식사를 하고 오늘 하루는 어떻게 놀까, 애들처럼 그래야 하는데 어른의 삶이란 게 또 꼭 그렇지는 않지만 말이야. 그래도, 꽃집도 먹고 살아야 하잖아. 장미꽃 한 송이를 숙녀에게 선물할려면 먼저 꽃을 사야 돼. 돈을 주고. 화사한 꽃에 상응하는 화폐 가치를 내놓아야 한다고. 꽃은 안 사고 꽃에 대한 시만 끄적거려서 그녀에게 암송해주는 건 몇 번은 먹혀. 감동하지. 얼마나 좋아. 그렇게 낭만적인 남자가 어디 흔하나? 하지만 몇 번은 괜찮지만 그것이 계속 되면 차이는 수가 있다고. 꽃이 가득한 농장은 또 어떻고. 과일이 자연의 오묘함을 가득 안고 한껏 영글은 상태에서 따질까? 아니야. 절대 아니야. 화폐 가치가 최고조에 이를 때 따는 것, 바로 그거야. 우리가 동물과 식물을 언제부터 그렇게 얼마나 고귀하게 챙겼는데? 나랑 같이 행복하자 곰돌아? 맞기는 해, 그러나 사회는 여러 이해관계가 상충되고 다채로워서 어린 애들 생각처럼 그렇게 쉽지가 않아. 왜 뭐뭐를 하는가, 에 따른 철학 때문에 온전히 그 일을 한다고? 우끼고 자빠졌네! 겉으로는 그러지. 하지만 대개는 포장을 벗기면 차마 우스워서 부끄러워서 불미스러우니까 더 말 못 한다구. 인기 때문에, 돈 때문에, 인생 때문에, 그냥 일이니까, 명성 때문에, 관계 때문에, 타성 때문에 하는 경우가 더 많거든. 사랑이라고 뭐 다르겠냐. 사랑도 두 가지가 있어. 그게 뭔가는 각자 추측하면 되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거야. 사랑 1번은 사랑한다고 말하고 표현하고 아껴주는 것. 그리고 사랑 2번은 사람 무안하게 그런 얘길 왜 하냐 어떻게 하냐 그런 말 못하는 것, 하면 안 되는 것, 하나의 불문율이라는 것, 내 일이라면 말 못하지만 남 일이라면 어쩌면 말할 수도 있는 그런 사랑이 2번이지. 분야가 서로 겹치고 각 부문의 본원의 뜻조차 위배되는 듯 오락적 성격이 왜 점점 짙어지느냐 그걸 얘기할려다가 그런데, 사랑이 왜 나왔지? 어제 마신 술이 아직 안 깼나? 그건 아닌데. 아무튼 정치와 사회와 경제든 뭐든 일단 누구나 똑같은 생활을 하지만 모두 특정 원리에 의해서 움직일 수 밖에 없어. 움직일 수 있는 면적은 제한적이고, 예측할 수 있는 범위는 반대로 투명해. 부러움도 하나의 수단이야. 그것도 팔 수 있다고. 살 수도 있고.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조차 있어. 그걸 다른 말로 수확, 먹고 살기라고 하지. 푸르른 리본을 풀면 연분홍색 상자가 나와. 그걸 열면 뭐가 있을까? 그게 무언인가는 시시각각 다르지만 그걸 부르는 이름은 하나야, 질-투! 아니면 허영? 또는 미적 가치? 보다 층위를 높이면 어떤 경험? 다른 말로 멋? 품격? 물론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 또 그게 썩 괴롭다거나 퍽 나쁜 것도 아니야. 허나 그렇다고 해서 이게 꼭 무책임한 이론이나 허황된 농담은 아니라네. 뭐 꼭 겉과 속이 같아야 한다는 말은 설마 아니겠지? 그럼 더 못 견뎌. 영화로운 허례과 의식과 예의 또 품격, 모두 적당히 있는 게 자연스러운 거야. 가식? 얼마 정도는 예절이야. 투명성, 적절하면 좋은 점이 얼마나 많다고. 우리끼리니까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이지만, 뻥, 이거 아니면 사는 게 뭔 재미야? 아니면 지금 뭐 사랑이라도 하는 거니? 사랑은 끝났다야 아니면 그것이 시작됐다야? 한창 이런 말 듣고 하는 거 아닌가 몰라. 날 사랑해줘요 포근히 안아줘요 뜨겁게 키스해줘요.」
   여기가지가 그가 구경한 친구들의 글이었다. 그는 내심 짱구를 굴렸다. 잔머리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판단했다. 뭔가 역동적이고 어떤 기발한 발상, 그것이 필요했다. 어덯게 하면 애들이 나중 내가 그 모든 것을 알면서 즐기고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유추할 수 있을까? 일단 그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기로 했다. 역으로 살을 날리기로! 살? 블랙홀이 아닌 화이트홀의 개념으로. 해킹의 좋은 의미처럼. 좋든 싫든 속편 먼저 나오게 생겼다. 세상에 이런 일이, 하지만 주인공은 자신이었다.


   5

   조니는 다음 날 아침 TV 뉴스를 봤다. 뜻밖의 뉴스는 바로 통조림 리콜 사태였다. 참치 통조림에 참치가 아니라 장난감이 들어가게 되어 리콜을 실시하고 사건 조사에 착수했다는 소식이었다.
   그리고 그는 낮에 인터넷으로 지역 소식을 알게 됐다. 그것은 화장지각에 어떻게 지폐가 들어갔는가에 대한 특종이었다. 공권력이 투입되는 게 옳냐 우린 너무 각박하게 사는 거 아니냐, 한마디로 말이 많았다.
   설상가상으로 저녁에는 상품 더하기 모델 시판이라는 신종 판매 기법이 어느 곳에서 유행이라는 해외토픽을 접하게 되었다.
   조니는 괜히 친구들을 의심했던 것이다. 자기만을 위해 이벤트가 이어진 것도 아니었고, 특화된 타켓이 자기 혼자인 일도 아니었다. 친구 누구 블로그에서 봤드니 그건 이미 발빠르게 최신 화제를 알아내서 연습 작품을 남긴 것에 지나지 않은 약소한 개인적 연구나 숙제에 불과했던 것이다. 괜히 조니 혼자서 뭐 새로운 모험이 자기도 모르게 시작됐다고 들뜨고 가슴 조렸던 것이다. 어느 과장 광고를 보고 나서 충동 구매를 한 후 뭔가 하루가 꽝된 느낌에 기분도 허전하고, 인생도 허무하고, 의욕적인 창작 욕구 분위기도 엉망이 되어버린 것만 같았다. 꼭 선물을 받았다가 막 다시 빼앗긴 듯 허탈했다. 가능성이 짙어서 고백했는데 어이없이 차인 것 같았고, 속마음을 온통 꿰둟어보이며 혼자만의 비밀을 들킨 것만 같았다. 딱히 잘못한 건 없지만 말이다.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되었을까? 조니 혼자 미친 것으로 그렇게 간단히 정리해도 그다지 위험부담이 높은 오판은 아닌 것일까? 그는 누구도 무엇도 어떤 감정도 믿지 못하게 변했을까? 아니면 제4차를 건너뛰고 바로 제5차도 건너뛰고 제6차 산업혁명의 서광이 밝았을까? 어떤 음울한 날 평범한 닭이 낳은 달걀에서 거위가 태어났을까? 포유류의 한 종인 고래가 하마를 낳았을까? 우리 개 유치원 가요인가. 그러나 그런 일은 없었다. 조니는 사설 탐정을 고용해서 친구들을 감시하지도 않았고, 길 가는 행인을 붙잡고 어느 억울한 이야기를 토로하지도 않았다. 괜히 누군가에게 훈계하고 싶은 마음을 소설로 쓰지도 못했다. 당대 최고의 마법사가 되기 위해 고서점을 순례하면서 그런 제목의 책을 찾아다니지도 않았다. 마법사가 되는 법. 해외토픽만 전문적으로 파고들지도 않았으며 깜짝 이벤트, 그 분야를 섭렵하지도 않았다. 괜히 멀쩡한 현재의 삶에서 도주할 이유도 없었고, 과소비병이 도진 것도 아니었다. 그럼, 그럼 뭔가 윙윙대면서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떠돌이 같은 기분은 대체 뭐란 말인가? 사랑하지만 사랑할 수 없다, 그건가? 과자 회사에 취직했다가 딱 한 달 열심히 일하고 때려쳐야 하나 아니면, 광고 회사의 주식 그것도 가치가 떨어지면 이득이 되는 공매도나 뭐 그런 역으로 살을 날리는 쇼라도 해야 하나. 다 부질없는 일처럼 느껴졌다.
   아, 중간에 쇼핑은 잠깐 이뤄졌다. 나중 필요할 것 같아서 입는 침낭을 하나 샀다. 필과 다리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입는 침낭. 언제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을 듯한 예감이 번쩍 들었다. 당연히 레고 인형을 사고 나서 다시 판매점에 찾아가서 왜 광고처럼 레이저가 발사되지 않느냐고 따지지는 않았다. 물론 여자 속옷 가게 점원에게 무척 사려깊은 태도와 고고한 시선과 함께 매우 진지한 어조로 어떤 용건을 물어도 되나 안 되나 몹시 망설이는 듯한 몸짓과 함께 표정을 아주 약간 찡그리면서, 혹시 저거 사면 사진 모델도 딸려오나요 라고 묻지도 않았다. 그건 허황된 이치였으니까. 겉은 멀쩡해가지고 어쩌다 사람이 이 지경까지 되어버렸을까 라는 불쌍한 인물 유형으로 취급 받기는 싫었던 것이다. 또 무작정 아무 귀부인이나 쫓아다니며 스토킹하지도 않았다. 그럼 뭘 했나? 꼭 뭘 해야 하나? 따라서 별다른 변화없이 일상은 이어졌고, 그러다 딱 1주일이 지났다.


   6

   이제 조니의 사생활에 어떤 미풍이 불었을까? 한 분은 관심 없고, 한 분은 잘 모르겠다고 하신다. 그리고 한 분은 안 봐도 뻔한 거 아니냐고 되묻는 듯한 모습이 눈에 선하다. 당연한 수순 아니냐고, 예측 불가능한 일이 뭐가 있냐고 하시는 것 같다. 잘못 들었을 수도 있다. 착각일지도 모른다. 헛된 공상에 슬데없는 상상이다. 하지만 어쩌면 이야기의 나아갈 방향은 이미 정해진 것 같다. 왜냐하면 그 고착된 가정은 어느 미래에 실재 있었고, 과거 어디선가 벌써 벌어진 일이기 때문이다. 실증적 사례는 생략하겠다. 패러디도 사양한다. 감탄이 녹아들지 못한 외길인데 어서 서둘러 그러나 침착하게 그것을 밝히는 게 급선무다.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됐어?
   물론 왜 하필 유독 조니만 이상한 사람 만드냐, 왜 항상 이상한 일에 대해서만 말하고 모호한 전개와 놀라운 심리묘사만 중요시 되느냐, 충분히 타당한 궁금증이다. 의아할 만한 의문임에 틀림없다. 허언도 실언도 아니다. 정당한 호기심이다. 그러나 그건 중요한 소설의 특징이 아니고, 문학이 꼭 답해야 하는 의무도 아니며, 독자의 바람직한 읽기 방법도 아니다. 따라서 흡사 사랑처럼 그냥 빠져서 앞뒤 쟤지 말고 그냥 일단 달려보자. 그래야 한다. 적어도 지금은. 최소한 그건 틀린 일은 아니다. 그러므로 조니는 당신이고, 또 그 어느 누구도 될 수 있다. 그래서 당신은, 그래서 조니는 이렇게 행동했다. (자, 지금부터 서술 형식은 2인칭으로 바뀐다)
   잠깐! <조니=당신>이라는 등식이 성립해도 되는가? 안 될 게 뭔가! 단, 둘 중 하나가 색정광만 아니라면. 적당한 호색 성향은 정상의 지표이자 건강함의 표상이며 누군가에겐 귀여움일 테니. 그 다음은 그러면, <당신=조니>라는 공식이 과연 성립되는가, 그럴 수 있는가? 그건 일단 지켜보자. 미루자. 버티자. 다시 말해서 흠뻑 빠지지 않아도 좋으나 이왕 절정의 고개를 넘어 골인 지점으로 치닫는 거 순진한 목동을 믿어보자. 골 세러모니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아아 보인다 보여, 저기 저 환호성의 인파가. 그런데 설마 반전이? 기대와 실망이 비례할까봐 조금 겁나지만 또 모르는 일이다. 범작 수준이라는 심심한 서평 이후 한 달 또는 몇 년 후에 빵 터질지도. 마치 고급스러운 농담처럼. 그걸 바랄 바에야 차라리 복권을 사라고? 사겠수다. 반드시 사겠수다. 그러나 언제나 소심했는데 지금도 미리 고개를 숙여야 하다니, 저런! 과감할 때 과감하고 달려야 할 때 달리는 건 나쁘지도 우매하지도 못된 일도 아니라네. 연관성과 영향과 판세를 따져야할 아무런 부담은 없는 상황이니까. 위엄 어린 지성인의 독서는 생활이고, 우리는 뭐 시간 때우긴가? 아니다. 언제까지나 조연만 하라고? 그럴 수는 없다. 참을 만큼 참았다. 파닥파닥 날갯짓을 시작해보자. 훨훨, 훨훨 꿈껼의 창공으로 날아오를 수 있도록. 우리도 고상하다. 우리도 근사하다. 우리도 우아함을 안다. 우리도 숙녀의 세련됨을 찬미할 줄 안단 말이다. 거짓말 계속하다 탈랄라? 그럴지도. 그러나, 진짜라고 자기 암시를 걸어봐야 할 때가 왔다. 그분, 문밖에서 그분이 오시는 낌새가 느껴지지 않는가? 안 그렇소? 오, 들리는가? 정말 오오 정말 어디선가 멀발치서 축제의 노래가, 곧이어 여자의 마음이 그 온 몸과 마음이 전율하는 아리아가 정말 들리지 않는가 말이다. 그 말은 대관절 무얼 뜻하는 것일까? 그건 바로 어려운 상징이 아니라 그분의 행차가 임박하셨다는 의미. 우리는 그분을 알현할 수 밖에 없는 운명. 여자친구에게도 가르쳐줘야지, <우리는> 화법을. 그런데 아직 여자친구가 없다? 음, 원래 인생이 그런 것임. 하지만 내일 뜻하지 않게 반가운 이상형을 만나고, 내일 모레 또 의외의 행운을 맞이할 것이라고 완벽한 운세에 나와 있음. 아, 그분! 그분이 오시기 직전인데 그러한데 우리도 품위 그런 거 흉내라도 내보자구요. 아, 쫌! 혹시 등장할지도 모르는 잔잔한 흥미와 절묘한 환희와 미래지향적 희망은 알고 싶지 않은 척 하기. 흥 까짓것 오거나 말거나, 하면서. 그래, 바로 그거. 고고하게 목선을 유지하기. 무엇보다 참을 웃음이 남아있을지 모르겠지만, 절대 화내지 않기. 신사 숙녀 여러분, 미운 놈 떡 하나 더준다는 바다와 같이 넓고 하늘과 같이 드높은 그런 사려깊은 마음으로 속는 셈 치고 한번 속아봅시다. 왜냐하면 그래도 그다지 손해볼 건 없을 테니까요. 
   너는 하루가 멀다 하고 쇼핑을 했다. 하나, 둘, 셋 그 가운데 두 가지만. 즉 너는 참치 통조림과 각화장지만 자꾸 자꾸 사고 또 샀다. 사도 사도 부족했다. 너는 그것만 필요했고, 너는 그 행위에 중독됐으며, 그 다음에 어떻게 될지는 몰랐다. 내면에서 어느 무의식이 시키는 것만 같았다. 멈출 수도 없었다. 집의 문을 열면 왼쪽엔 참치 통조림 오른쪽엔 화장지각. 차를 보면 뒷자리엔 참치 통조림 트렁크에는 화장지각. 오전에는 각화장지를 사고 오후에는 참치 통조림을 샀다. 사도 사도 질리지 않았다. 사도 사도 부족했다. 많이 가졌지만 역부족이었다. 사고 싶은 마음은 쉬지 않고 들끓었다. 너의 삶에 선풍적인 대변혁이 닥친 것이다. 음료수 캔을 따면 들리는 그 경쾌한 소리, 맥주캔을 마시면 그 상쾌한 청량감, 모두 참치 통조림의 반의 반도 따라오지 못했다. 각화장지의 하얀 화장지는 눈이었고, 천사였으며, 이카루스였다. 동시에 꿈이었고, 본질적으로 탄성 어린 환희였다. 너는 그것을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너는 그것에 관한 노래 가사도 썼고, 참치 통조림을 그리고 각화장지를 사진 찍었다. 전시회도 못할 건 없다고 생각했다. 통조림은 본처였고 화장지는 애첩이었다. 양쪽에 그 둘을 끼고 살았다. 비록 통조림 깡통과 생활용품인 화장지지만 잠깐 음 그랬다. 쉿! 참치 통조림은 여자친구의 육체였고, 각화장지는 영혼이자 마음이었다. 언제까지 이래야 하나, 알 수 없었다. 또 얼마만큼 사야 하는가? 알고 싶었다. 너는, 다시 그 어느 경험이 반복되기를 바랐다. 그 뭔가 새로우면서 새롭지 않은 환상을 다시 만나고 싶었다. 사람이 좀 이상해졌다. 많이 이상해졌다. 신비감이 난무했다. 너는 아마 극미한 영양 실조에 걸렸을 것이다. 왜냐하면 참치 통조림만 먹고 또 먹고 오직 그것만 섭취했기 때문이다. 사람이 너무 급진적으로 변했다. 밝은 변화라면 몰라도 그건 너무 생각도 못할 사건이었고 말도 안 되는 행동 양식이었다. 새삼 어떻게든 그 끝을 억지로 만들어야 할 것만 같았다. 안 그러면 끝나지 않을 듯 했다. 그러나 방법은 알 수 없었다. 마치 사랑에는 빠질 수 있었으나 이별하는 방법은 알 수 없듯이. 겪어도 겪어도 매번 아픈 것처럼. 너의 생활은 요지부동이었다. 얼굴도 핼쑥해졌다. 너는 살도 빠졌다. 다시 건강해지는 일만 남았다. 평범하고 정상적이며 심심한 삶이 더없이 풍요롭고 탄복할만한 행복이란 걸 새삼 깨닫게 되는 주지의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내면 어딘가에서는 계속하라는 성원이 간간이 들리는 듯 했다. 약하게. 간헐적으로. 조금 달콤하게. 느릿느릿 감미롭게. 밉지 않은 투정처럼. (너의 이름)의 삶은 무모할 정도로 허구에 가까웠다. 변화가 믿기지 않았으나 현실이었다. 이것이 무슨 그런 건가? 난 네가 기뻐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맹목적인 연정인가? 아니다. 난 네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지독한 애모인가? 아닐 것이다. 그러면 나는 너와 너 곧 참치 통조림과 각화장지가 아니면 절대 안 된다는 그런 어느 미친 사랑인가? 아니기를 바란다. 꼭 그러하기를. 그런데 그런데 어쩌다 이렇게 일이 이상하게 되버린 것일까? 도대체 왜? 무엇 때문에? 어째서? 그냥 삶이 권태로워서? 사는 낙이 없어서? 별로 재미난 일도 없고 심심하기만 해서? 너는 뭐가 뭔지 하나도 알 수 없었다.
   너는 어느 날 어느 때인가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집에도 사무실에도 차에도 마당에도 게다가 전화번호부도 또 앞으로 여행갈 목적지도 만날 사람도 모두 그것과 관련된 것들 뿐이었다. 그런데, 이럴 수가! 드디어, 마침내 희미하게 뭔가 이제 그만 해야겠다는 그런 어떤 자아 성찰의 시기가 찾아왔다. 기다리고 기다렸던 순간이었다. 자기도 모르게 때는 찾아왔다. 어쩌면 그건 그냥 꿈 같은 일이었을 거라고 단정지을 수 밖에 없었다. 그냥 그렇게 됐다. 그런데 정말 네가 제정신을 차렸을까? 그럴 수 있을까? 정말로? 그렇다. 진짜로! 그러나 가랑비에 옷이 젖듯이 그냥 우연히 어쩌다가 은근슬쩍 부정확하게 어느 때가 되어 막 영화의 장면이 바뀌듯이 화면에서 버튼을 터치한 것처럼 어떤 확실한 마음의 결정과 뭔가 정신의 깨우침 때문에 비로소 이성을 되찾았을까? 그럴까? 정말로? 아니다. 그럴 리 없다. 그건 말이 안 된다. 절대로!
   그러면 뭐냐? 어떻게 딱 단번에 본래의 너로 되돌아오게 되었을까? 그것은 바로 품절 때문이었다. 외부 요인 때문이었다. 더 이상 참치 통조림과 각화장지를 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어디에서도. 상점에서도 시장에서도. 대형마트는 물론 인터넷과 공장과 모두 다 모든 곳에서 그것은 바닥났다. 없어서 못 판다고 인기 끝장이라고 난리일 때가 좋았던 거다. 아예 어떡하다 날개돋힌듯 팔렸다가 전부 재고까지 모두 다 팔려버렸기 때문이다. 품절! 딱, 품절! 와우~!


   7

   무슨 요정의 마술봉이라도 구해와서 이방인이 지팡이를 휘둘렀나? 얍, 하면서! 완전 품절, 진짜 모조리 팔려버렸다. 전부 다. 깨끗하게 진열대가 비워졌다. 말끔히. 거짓말처럼. 그 다음에, 그 다음에 어떻게 됐을까? 당신은 친구들과 오해를 풀었다. 만나서 안부를 묻고 다정한 것처럼 보이지만 딱딱한 대화를 나누며 같이 놀다 보니 그들은 모든 것을 알게 됐다. 특히 이번 일을 녀석들이 꾸미지 않았다는 것을. 당신은 감옥의 죄수도, 동물원의 원숭이도, 벌거벗은 임금님도 아니었다는 것을. 당신처럼 착각했던 사람들이 한두 명이 아니란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럼 오오 아 그럼 그건 대관절 몇 명이란 말인가, 에 대해서는 깊게 들어가지 않았다. 그래서 그래서, 그 다음에 그 다음에, 어떻게 됐어 어떻게 됐어?
   그들은 하나하나 차분히 차근차근 맥락을 따져봤다. 당신이 통조림을 샀어. 참치 통조림을 땄어. 꽝, 이 아니라 뻥 하고 이상한 일이 생겨서 쿵쾅쿵쾅 엔돌필 분출하고 하트 뿅뿅 했어. 그리고 당신은 각화장지를 샀고 지폐를 봤고 진공 청소기를 샀어. 그런데 광고 모델이 내가 왔다 주인님, 날 귀여워해주세요 날 가져요? 아무튼 그랬어. 여기까지 1단계. 2단계는 참치 통조림 리콜 사태와 각화장지에 지폐가 들어간 사건을 조사 착수, 신종 판매 기법의 대-유행까지. 그리고 뽀너스로 그 사태는 흐지부지 결과는 누구도 몰라로 끝나, 2단계 끝. 3단계는 당신이 참치 통조림과 각화장지 사재기에 빠진 것. 4단계는 품절. 슈퍼마켓에서도 다른 도시에서도, 인터넷도 시장도 공장이든 어디든 품절. 이상한 점 하나는 4단계 때문에 당신의 중독이 끝났지만 별다른 금단 증세는 발생하지 않았다는 거.
   친구들은 할말을 잃었고 끝내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그것은, 음, 미스테리라면 미스테리였다. 이런 가정 저런 추론을 모두 시도해봤다. 당신과 같은 사람이 많을 것이다. 정말 많다. 진짜 많다. 엄청 많다. 그래서 그 두 가지 물품이 동났다. 이미 만들어진 상품과 재고와 새 제품도 만들자마자 모두 팔려버렸다. 아예 원재료를 구하기 힘든 것 같았다. 그런데 문제는 남았다. 확인은 해보지 않았으나. 당신이 정신을 차렸지만 다른 사람들도 이성을 되찾았을 거란 보장은 없다. 그러면 이건 뭐지? 오케이, (손가락 딱)!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좀비 효과! 좀비 이론! 좀비 머쉰! 그러나 당장 좀비 바이러스의 정체나 비밀을 알아낼 수는 없었다. 겉으로 드러난 해악이 증명된 것도 아니었다. 이제 그들은 적어도 당신은 자동적으로 정말 특정 상품의 브랜드 전도사가 되었을까? 왜? 어떡하다 상품과 사랑을 하게 된 것일까? 알 수 없었다. 그 누가 가르쳐주지 않는 일이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봤을 때 시장은 정상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쉽게 예상할 수 있었고, 특별히 제2의 무언가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추측은 교양 외에 과도한 지성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따라서 그들은 일단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며 관망하기로 했다. 얘네들이 꺼낼 수 있는 카드로는 그게 유일한 결론이었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판이 커졌고, 어항은 태평양으로 바꼈으며, 수요에 공급을 맞추냐 아니면 어찌할 것인가, 의 국면에 접어든 것이다. 이대로 계속 갈까? 그 끝은 어디일까? 끝은, 있을까? 어떤 변화가 찾아올까? 누가 나타날까? 궁금증은 끝없이 부풀었고 호기심은 이미 하늘로 올라가버렸다. 그러므로 얘네들은 타임 머쉰을 필요로 했다. 어떻게 될지 정말 알고 싶어서, 무슨일인지 속시원히 원리를 이해하고 싶어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러나 최종 결론은 역시나 전망을 경치 좋은 지점에서 바라만 보자 였지, 천국의 문을 노크하는 것으로 모자라 거기 뛰어들고 판도라의 상자를 막 흔들고 소리치고 파티를 시작하자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그들은 일단 흩어졌고, 돌아가는 정세를 지켜보기로 했다.


   8

   품절된 상품은 새롭게 시장에 공급됐다. 어느 때인가 슬며시. 과도한 열기는 가라앉았고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반문하는 듯 너무 고요했고, 너무 차분했고, 또 너무 정상이었다. 모든 일들이. 특히나 참치 통조림과 각화장지의 시장 여건은. 어떻게 된 일이냐고 따질 것도 없고 억울해할 일도 아니다. 상황은 변심한 애인 같았고, 기분은 헤어지기 직전이었으며, 분위기는 싫증난 여자 딱 그것이었다. 숙녀의 변덕이 어쩌면 부러웠고, 그들도 어떻게든 변절하고 싶었다. 뭔가 행동을 취해야 했으나 때를 놓쳤다. 다시 어항으로 되돌아왔다. 힘겹게 큰물로 진출되었으나 쉽게 떠밀려왔다. 저런. 하지만 시간을 되돌려도 특출난 수와 기발한 복안은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딨냐고? 여기 있다. 지금 보시는 바와 같이. 혹시 이건 요술일까? 그 보다는 아마 비판적 리얼리즘인 것만 같다. 시대는 바뀌지 않았고, 환경도 그대로였으며, 계절만 바꼈다. 마음만 변했다. 싱숭생숭. 여자의 마음처럼. 갈대처럼. 청춘의 꿈처럼. 찬란했던 기대감과 어떤 푸르른 희망이 그 어느 애수와 무언가 심난한 상심으로, 전환되었다. 세상은 돌고 도는 것 같았다. 그게 인생인 듯 여겨졌다. 어떻게든 울적한 마음을 달래주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당신은 지금까지의 일을 그대로 공책에 마치 남의 일을 회상하는 듯한 논조로 글을 썼다.
   「어느 날 나는 이상한 경험을 하게 됐다. (너는 '당신은'을 '나는'으로 바꿨다) 드물지만 흔치 않은...... 나는 집에서 혼자 TV를 보면서 포도주를 마시기 위해 장을 보러갔다... 나는 참치 통조림을 땄다...」
   이렇게 당신은 그동안 있었던 일을 그대로 공책에 육필로 기록했다. 거의 막히는 구간 없이 그윽한 커피향을 맡으며 매우 분위기 있는 음악을 들으며 꼬박 하루종일 글을 썼다. 작품의 완성도를 위해서 문체를 다듬느라 하루로는 부족했다. 몇일 걸렸다. 정확히 몇일인지는 모른다. 그런데 그 흐름이 품절 사건이 등장한 이후에 끊겨버렸다. 품절, 까지는 미친 듯이 썼는데 딱 거기서 멈춰버렸다. 거기까지는 직접 겪은 일이니까 자연스럽게 허구적인 요소를 가미하고,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신비감을 첨가하여 수월하게 글이 써졌다. 삼류작가에서 이류작가가 된 듯한 내 삶이 점점 발전하며 즐겁고 고상해지는 것만 같은 도취감과 성취감과 보람도 맛보았다. 최근 이만큼 기쁘고 재미난 일이 과연 있었나 싶었다. 그러나 그 흥미로움과 순수한 창작열은 거기까지였다. 딱 그 지점까지. 그 다음부터 글이 안 써졌다. 어떻게 뭘 더 꾸미고 뻥이라도 좋으니 거짓말이라도 상관없으니 여세를 좀 더 몰아가고 싶었다. 그러나 머리 속이 캄캄했다. 향긋한 비누 냄새를 맡으면 왠지 영감이 떠오를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다. 비누 냄새를 맡고 왔다. 예술적 악상은 무슨~ 야한 생각만 떠올랐다. 에~이! 이런, 젠장! 족제비털 붓펜과 고급 만년필을 사서 일단 손에 쥐어봤다. 그러나 역시나 변화는 없었다. 허세였고, 돈 낭비였다. 당신은 원래 정직한 사람이었고, 남을 속이는 것을 싫어했으며, 이야기를 지어내기 보다는 타인의 허구를 연기하는 데 훨씬 익숙했고 그것에만 재능을 발휘하는 삶을 살았던 것이다. 감동을 받고 감동을 준다, 그런데 줄 수 있는 선물은 무감각해졌고 감동시킬 만큼 감동시켰는데 웬 무형의 허구를 요구하다니... 마치 그런 사랑의 대상에 대해 오해했다는 감상과 사랑의 위기를 만난 것만 같았다. 당신은 가짜 웃음에 능숙하고 허풍의 도사였으며 타인의 거짓을 귀신같이 알아내는 재주를 타고났지만 자기 자신과 같은 인물 유형을 글로 만들어내는 데는 거의 초보자나 다름없다고 느꼈다. 하지만 이제라도 하면 되는데 거짓으로 거짓으로 상황을 몰고 남의 귀에 마법의 말을 불어넣듯이 하면 되는데, 그건 예측이고 이건 실전이었다. 예전엔 말이었고 지금은 글이었다. 말로써 남의 귀를 진짜 실룩실룩 진짜 움직이게 만드는 데는 탁월한 귀재였지만 미스테리와 스릴러와 판타지 장르는 뭔가 새로운 걸 창조한다고 봤을 때 아무리 봐도 낯설었다. 너무 막연해서 고개가 젖혀젔다. 아~ 하면서.
   쥐었다 펴기 보다 쥐어졌다 펴졌다가 더 편했다. 들었다 놨다 하는 것보다 마음이 풍선처럼 부풀었다가 가슴이 조마조마 하며 발바닥에 땀이 나는 그 상태를 즐겼고 추앙했다. 밀었다 당겼다? 이 세상에서 단 한 사람이 물어본다면 모를까 그게 아니라면 그 어느 말은 금기되는 말이었다. 무슨 말일까,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난다면 다시 이 사람과 사랑하겠냐는 말. 이젠 살아보니 딱 10분이면 정말 못 꼬실 여자가 없을 것 같지만 그래프 꺾이면 만나게 될 과정을 상상하는 것도 귀찮았다. 그냥 세파에 치이고 직접 상어가 되어 파도타기를 즐기는 걸 더 선호하게 되었다. 살다보니 그렇게 변했다. 그러므로 당신은 웃길려고 또 어떤 목적으로 남을 속이며 하얀 거짓말을 할 수는 있지만 이제는 유혹 당하고 매혹 되고 고혹적으로 밀렸다 당겨졌다 하는 청순한 로맨스와 순수한 어린이 만화를 동경하게 되었다. 고매한 당신은. 피터 드러커의 명언을 새삼 떠올리고 포지셔닝을 점검하며 톰 피터스 서적을 간간히 들춰보며 돈에 대한 숫자 놀음보다 바로 청춘 사업을 하고 싶었다. 기존의 상대와 제2의 사랑이라 명명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살면서 언제 이렇게 사랑에 대해 진지한 성찰을 시도했던 적이 있었나 싶도록. 당신은 글로 만들어내는 세상에서 조심조심 사랑하며 불가사의를 만들어내기 보다는 그 사랑을 고백받고 그 상상의 세계로 뛰어들어가 놀면서 그 가상의 공간에서 속세로 빠져나오기 싫었던 것이다. 아마 그래서 그 다음이 써지지 않았을까 그런 추측이 뭐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어쨌든 그건 공상이고, 이건 닥쳤고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어떻게 할 것인가, 에 대한.
   공장에 처들어가는 설정으로 이어갈까? 너무 자의적이고 등장 인물도 대화도 흥미도 없었다. 그냥 이대로 소설을 끝내? 뭔가 아쉬웠다. 화장지 회사에 취직하는 것까지 일단락 짓고 속편을 기대하게 만들까? 별로 자신 없었다. 어느 날 진공청소기를 대체하는 새로운 가전 제품을 팔길래 그걸 샀는데 그건 알고보니 타임 머쉰? 완전 억지다. 초보 티 팍팍 난다. 너무 작위적이다. 누가 봐도 거짓이다. 아무도 안 속는다. 책이 아니라 후라이팬과 냄비만 잘 팔릴 것이다. 전혀 실감날 수 없을 것이다. 개연성, 상실했다. 팬에 대한 처우, 무시하는 거나 다름없다. 그럼 어떻게,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가? 그럼 어쩌란 말인가, 나보고 어쩌라고! 결국 어쩔 수 없이 당신도 그분을 기다리는 운명에 처하게 됐다. 오, 이럴 수가! 이런 일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이제 현실이 되었으니 꿈에 나오면 되겠네. 하하하 하하하하하. 하나도 안 웃긴다. 전혀 흥미진진하지 않도다.
   당신은 이런 독백을 외치면서 그만둘까도 생각해봤다. 「에이~ 어렵구만. 관 둬 관 둬!」 그러나 그건 아니었다. 무언가 알 수 없는 경직된 관성 때문에 당신은 도저히 멈출 수도 포기할 수도 없었다. 간혹 손에 땀을 쥐는 듯이 짜릿한 것 같았는데 손바닥을 만져보면 건조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고, 본인의 열정도 아니며, 팬들의 염원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목표를 향해 뛰지 않으면 안 된다는, 본능을 앞서고 이성도 압도하며, 감수성과 향수와 낭만적인 선망과 신선한 동심까지 그 모두와 긴밀히 교감하는 삶의 기본적인 습성이 되어버린 것만 같았다. 이 소설을 완성해야 한다는 욕구, 그것은 이와 동급이었다. 살며, 사랑하고, 꿈꾼다. 어쩜 이렇게 믿을 수 없는 기적적인 소설 창작의 노예가 되어버렸을까? 예술? 문학? 어쩌다 이 분야에 뛰어들게 되었나, 도저히 믿을 수 없는데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뭐 그런 거창한 의문을 다 떠올리다니, 어머나! 그럴 시간 있으면 글이나 쓰라고 누군가 어디선가 다그치고 닦달하는 듯한 망상마저 떠오를려다 말았다.
   당신은 그런 생각도 해봤다. 화장지각에서 돈이 나오는 소재을 놓고 누군가는 뭐야 내가 쓴 글을 베낀거 아니야, 그런 경우 분명 있을 것이라고. 당신은 살면서 정상급 수다의 분위기에 근접하지 못한 삶을 살았기 때문에 그 흔한 화재를 단 한 번도 말로써 농담으로 말하고 듣기를 못해봤다. 즉 그 누구나 흔히 쉽게 말하고 듣는 그 소재를 당신은 당신의 힘으로 고안해냈다. 그러나 내가 이미 썼네 어쨌네, 그건 법률 용어를 빌리지 않아도 글이 아니라 말로 그쳐야 한다고 얼마든지 무수한 예시를 들어서 증명할 수 있다. 어찌나 말을 잘하는지, 로 그치기를. 제~발! 그러나 가만히 재차 생각해보면, 뭐 그러거나 말거나! 또 당신은 내용은 안 써졌지만 제목은 한두 번 생각해봤다. 환상 소설은 어떨까? 아니면, 그분의 애인? 고장난 타임머쉰? 통조림의 저주? 화장지각의 비밀? 돌림노래? 혹시 베스트셀러가 되면 귀찮고, 감탄은 금새 시들해질 것이고, 시샘과 비판과 비난에 짜증도 날 테니까 가명을 내세울까? 미래파라고. 헛된 상상으로 머리를 식힌다고 안 써지는 글이 갑자기 써지는 것은 아니었다. 글이 막혔는데 벌써 감사의 말? 통조림과 각화장지 사재기에 죄목을 붙일 수도 없고, 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따라서 그는 지금은 일에서 잠시 손을 떼야 한다는 냉혹한 판단을 내렸다. 지금 상황이 이런데 억지로 거짓 줄거리를 꾸며낸다, 그 이야기는 아마도 개 풀 뜯어먹는 일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미 그런 글은 수없이 보고 또 봤다. 지금은 직관에게 애정의 주도권을 넘기고 그 전권을 맡겨야 할 시기라는 감이 왔다. 오오, 느낌 와 느낌 와! 그래서 그는 당분간 달콤한 휴가를 얻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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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대는 <나는 뭐뭐 했다>라는 나는-식 글을 쓰느라 지쳤기 때문에 다시 그분과 영접할 시기를 기다리는 동안 마음껏 기분 전환을 시도했다. 거리에서 프리 허그라는 팻말을 들고서 유행이 한참 지난 복고풍 행사를 하길래 뭔가 하고 유심히 쳐다봤다. 아아! 그것은 그냥 애들 장난이 아니었다. 육체파에 미모에 꽃다운 젊음에 지성까지 겸비한 숙녀가 그 주인공이었다. 그런데 참여자가 많지는 않았다. 어떻게 기력이 빨려들어가는 뭐 그런 이상한 염력 때문에 그런가 라며 궁금해졌다. 그러나 그건 드라마에나 나올 만한 일이고 이건 고민하고 자시고 망설일 일이 아니었다. 그대는 딱 이거라는 느낌에 강렬하게 압도되어서 쏜살같이 그녀 앞으로 갔다. 그런데 딱 그 순간 행사가 끝나버렸다. 나는 나는, 이 잘 안 되어서 밖으로 나왔는데 <나도>까지 안 되다니...! 이럴 수가! 세상에나! 뭐 그럴 수 있다고 여겼다. 지나치면 그만이었다.
   그런 후 그대는 쇼핑을 했다. 등산도 했다. 영화도 보고 여행도 갔다 왔다. 축구 경기도 현장에서 그것도 서포터즈인척 녀석들 옆에서 보고 왔다. 클럽, 물론 다녀왔다. 불면증, 조증, 울증, 식곤증, 수면욕 과도증, 스탕달 신드롬, 앨리스 증후군, 현기증, (특히) 허언증, 사재기 금단 후휴증등 머머증은 모두 거쳐갔다. 책, 안 읽었을 리 없다. 청소도 했다. 그것도 대청소. 집과 차와 창고와 사무실에 전시하고 진열하고 감추어놓은 두 가지 물건도 모두 정리했다. 모두 눈에 보이지 않도록 깨끗이 처분했다. 친구를 만나고 산책을 하고 차를 마셨고, 차가운 도시의 남자가 되었다가 고독한 도시의 남자로 또 가을 남자도 다 해 봤다. 제임스가 알려준 용한 점집도 벌써 갔다 왔다. 다 소용없었다. 새로운 착상은 떠오르지 않았다. 세상은 그대로였다. 이 세상이 험난하다고 울부짓을 수도 아름답다고 노래할 수도 없었다. 이쯤 바람 쐬고 기분 풀고 방황 했으면 슬슬 그분이 와야 하는데 그분은 영영 소식이 없었다. 깜깜 무소식. 한숨이 나왔다. 막 나왔다. 계속 나왔다. 인생이 처량했다. 그러다 장소에 변화를 주기로 했다. 처음에는 집에 있는 창고에서 칩거를 시도했는데 그건 아닌 것 같아서 차를 타고 사무실로 갔다. 
   그대는 불꺼진 사무실에서 입는 침낭을 입고 소파에 누워 잠을 청했다. 잠을 자면 딱 꿈에서 어떤 우연 때문에 행인3이 그분과 만나는 자리를 알선하고, 그분에게서 기를 받고, 내일 아침에 일어나서 미친 듯이 글을 쓴다, 가 계획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잠을 자려고 해도 잠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그대는 사무실의 TV를 켰다. 그리고 와인 쿨러에서 와인을 한 병 가져왔다. 사무실 냉장고를 열어보니 먹을 건 참치 통조림 밖에 없었다. 자, 이제 딱 자세를 잡고 소파에 앉아서 그대는 빈 잔에 술을 따르고 TV 채널을 돌리며 가짜 웃음을 연습했다. 대사도 따라했다. 어떤 이야기가 연상되는 소재가 있나 지켜봤다. 채널을 돌려도 재밌는 건 안 하는 거 같았다. 막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홀짝 홀짝 마셔야 하는데 와인잔에 담긴 술을 단번에 마셔버렸다. 그리고 포도주를 다시 한 잔 따르고 나서 그대는 드디여, 마침내 참치 통조림을 땄다. 그때까지 그대는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소설 구상 때문에 참치 통조림에 관한 사연은 아예 잊고 있었던 것이다. 자기가 주인공이었는 데도 불구하고.
   그대는 참치 통조림을 땄다. 시간이 굽어졌다. 시간이 거의 정지한 것처럼 천천히 흘렀다. 아마 그랬을 것이다. 아무튼 그대는 손맛을 봤다. 제7의 감각이 깨어났다. 참치 통조림을 땄다. 그런데 통조림 깡통이 따이는 소리가 들리지는 않고, 그 대신 그건 거의 마담 클링과 흡사한 효과음이 들렸다. 퐁~ 그 화사한 소리가.
   그 다음에 어떻게 됐을까, 는 그대도 모른다. 나도 모른다. 조니도 모른다. 그 누구도 모를 것이다. 그러나 알고 싶다. 왜 마담 클링이 하필 이때 핑하며 울렸는지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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