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조니는 아침에 눈을 뜰 때부터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 익히 떠올릴 수 있는 고양이의 뚱한 표정, 그것과 정확히 흡사했다.
타인과 아침에 반가워요 하면서 즐거운 하루에 대해 기쁨의 주문을 걸자는 듯한 인사를 나누지만 그건 다 허례허식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퇴근하며 다리 위를 컨버터블 뚜껑을 열고 가면서도 노을이 멋있다거나 구름이 솜사탕 같네, 사람들이 날 쳐다본다는 둥, 저 커다란 광고 영상에 나오는 여배우의 몸매가 예술이구나, 그런 감상적 여유는 언제부터 온데간데없이 종적을 감춰버렸다. 남은 건 자꾸자꾸 졸리고, 바나나 껍질을 밟고 넘어질까봐 매사 두렵고, 누군가 뭔가에 관심가지도 않고, 차 바꾼지 얼마되지도 않았는데 다시 새로운 차로 바꾸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는 스트라이다 동호회도 탈퇴했다. 게임 장비는 모두 내다 팔았다. 스포츠 도구도 필요한 친구들에게 다 나눠줬다. 발을 잘못 디뎠는지 그가 빠진 건 환상이라는 요술이 아니라 전혀 화청하지 않은 애상이라는 늪에 안겼고, 개똥을 밟은 듯 했다. 어떤 날은 진짜 밟았다. 친구 누구는 진짜 머리에 새똥을 맞았다고 한다. 아니, 읽었던가 드라마였나? 그는 잘 기억하지 못한다. 혹시 그는 최근 클럽에 가지 않아서 기분이 울적한가 하면서 자신의 꿀꿀한 마음을 점검해봤다. 아니라는 결론이 나왔다. 계산 원리는 비공개다. 범인은 따로 있다고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정답은 하나 밖에 없었다.
바로 제임스가 의뢰한 이상한 2층 계단 버스 때문이었다. 2층 버스와 계단이 달린 버스를 결합하고 개조해서 꿈의 문과 후광과 신비로운 구름으로 치장한 웬 엉뚱한 개조 차량 의뢰 때문이었다. 괜히 설계도를 받고서 너 아니면 안된다네 어쩌네 하면서 달콤한 아첨을 필두로 하여 온갖 칭찬은 기본이요 갖은 혜택과 꽤 괜찮은 명언까지 들먹이며 들들 볶고 지지고, 또 들들 볶고 지지고 지치지도 않고서 설득을 해대는데 그는 끝내는, 끝끝내는 두 손 두 발 다 들어버렸다. 얘가 원래 이렇게 말이 많지도, 듣는 사람의 이성과 감성을 모두 자극하지도 않았는데 왜 그러지 하면서 어디서 따끔하게 교육을 받았나 어쩌나 꽤 수상쩍어 하다가 어느새 나중에 보니 계약서에 서명하는 것처럼 슥 그의 말에 속아넘어가버린 것이다. 나쁜 일은 아니니까 속았다 까지는 아니지만 왠지 기분은 그랬다. 완성되면 비엔날레 출춤하고, 나중 비싼 값에 은둔형 거부에게 팔 수도 있다고 해서 그는 혹하여 딱 넘어가버린 것이다. 그 모형은 예측했을 때는 만들기 쉬워보였다. 뚝닥 금방 출시할 수 있을 듯 했다. 그러나 막상 제작에 돌입하니 이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녀석이 부탁한 예술품은 이런 것이다. 가까이서 버스를 보는 사람이 시선을 살짝 올리면 나타나는 저 얼마쯤 높은 상공에서 눈이 부시다가 문이 생기고, 그 문이 열리고, 주변에는 안개가, 뒤에는 천상의 빛이, 그 문과 나와의 사이엔 계단이 나타나고, 음악이 들리기 시작한다. 들린다 들린다, 들린다 들린다, 그분이 내게로 그분이 내게로, 온다 온다, 거의 왔다 왔다, 시선을 마주 보고 손을 잡을 것이다 잡을 것이다, 뭐 부터 시작할까 시작할까, 무엇을 먼저 무엇을 먼저, 어디까지 갈까 어디까지 갈까, 그건 어떻게 할까 어떻게 할까, 평소와는 다르게? 아니면 평소와 비슷하게?, 무엇은 어느 동안...... 바로 그것이었다.
즉 공항에서 볼 수 있는 승객 하차용 계단 버스를 구해다가 적당히 뚝딱 고치면 그만이었다. 그걸 직접 보고, 시연을 하고, 감동을 느껴보아야만 명작을 쓸 수 있을 것 같다고 하길래 그는 흔쾌히 수락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그건 보통 일이 아닌 거 같아서 자기는 못하겠다고 연락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쩔 수 없었다. 그건 자기 일이 아니었고, 예술이 밥 먹여주는 것도 아니었다.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였다. 그렇지만 이미 수락한 일을 되돌리기도 어색하고, 그렇다고 자기가 일을 추진할 수도 없고, 그렇게 난감하던 가운데 조니는 그 짐을 케빈에게 떠넘기기로 마음먹었다. 뭐 별일이야 있겠어, 하면서.
2
조니로부터 덥썩 과분한 프로젝트를 위임받았을 때 케빈은 딱 잘라서 거절할려고 했다. 그러나 이상하게 다른 일은 모두 맺고 끊고 그것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지만 그 일 하나만은 무슨 이유 때문인지 거절을 못하고 자기도 모르게 승락을 하고야 말았다. 아무래도 그건 썩은 사과 때문이었을 것이다. 당시 제임스가 조니에게 부탁하면서 뇌물을 하나 건넸다. 자기가 키우는 화분에서 자란 미니 사과를 준 것이다. 하지만 그건 보통 사과가 아니었다. 어떤 거부할 수 없는 기운이 넘쳤고, 심령을 조종하는 듯한 신기가 느껴졌다. 그러나 그것은 황금 사과는 아니었고 그에 대한 소유욕은 발생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어떤 불길한 누군가 저주를 거는 듯한 묘한 느낌이 서려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것은 배구에서 스파이크를 위해 토스하듯 다시 조니에게서 케빈에게로 전해졌다. 그러나 그건 실은 벌레 먹은 사과였다. 진짜 그것만 찾아다니는 낙으로 사는 사람들이 있다. 누구라고 말하지는 않겠다. 그거 빼면 시체다. 누구 하면 그거고, 그거 하면 누구다. 가리지도, 고르지도, 신중하지도 그렇다고 절대 마다하지도 않는다. 허나 그에 대한 지구력은 좋다. 부끄러움, 절대 없다. 말발, 좋다. 모든 것은 그것에 최적화되어 있다. 이것 역시 불가사의가 아닐 수 없다. 누구라고 말하지는 않겠다. 제임스의 친구는 아니다. 절대 아니다. 그 재미 없으면 세상 사는 낙이 없는 사람들이 있다. 살면서 많이 봤다. 그러나 그건 층위의 문제다. 100부터 계속 내려가는 그래프와 똑같다. 어쨌든 만약 그 즐거움을 누군가로부터 빼앗아버린다면 그건 뭘까? 뭐긴 뭔가, 인생 꽝이라고 하면 된다. 말짱 도루묵!
엉성하긴 하지만 갖출 건 모두 갖춘 몽유비원도, 그와 같은 환상 도시에서 다닐 것 같고 환상 머쉰을 싣고 증강현실은 기본이고 가짜든 진짜든 정말로 환상을 선물해줄 것 같은 일명 환상 버스! 설계도도 있긴 있지만 쉽게 말해 그건 엉터리였다. 어떻게 해서 어떻게 하고 어떻게 하면 딱 구현된다는 그런 초안이자 스케치 수준이었다. 즉 그 자리에서는 이거 어 이거 음 이거, 되겠는데? 그럴 거 같았는데, 가능성 있어, 잘 하면 물건 나오겠어, 어쩜 대박날 수도 있어, 안 되더라도 적어도 이건 안타는 때리겠네, 무조건 무조건 최소한 뻔트다, 딱 그랬다. 소 뒷걸음질 치다가 쥐 잡기. 그러나 미팅 장소를 떠나 집에서 혼자 가만히 살펴보니 이건 어떻게 보면 애들 장난이었고, 그냥 아이디어 제안서였다. 승산이 없을 듯 했다. 만들어도 별 볼 일 없을 것 같았다. 따라서 그는 다음에 어떻게 했을까? 어떻게 했겠나? 그는 그 일을 알렉스에게 떠넘겼다.
똑같은 절차에 똑같은 방식으로 똑같은 화법과 그 차례에 따라 알렉스도 딱 걸려들었다. 케빈도 조니의 술수를 단번에 익혀버렸다. 막 의도한 것은 아니었으나 하다 보니 술술 막힘없이 자기도 모르게 저절로, 자동적으로 거짓말이 되풀이되고 있었다. 오히려 더 풍성하고 더 화려하고 훨씬 더 고급스럽게 허황된 얘기를 거의 실현 가능한 일처럼 꾸며서 얘기하고 있었다. 나중 당시를 떠올려보면 정말 깜짝 놀랄 정도로.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알렉스는 다시 마크에게, 마크는 하워드에게, 하워드는 닉에게 일을 떠넘겼다. 그 일이 무슨 가방도 아니고 여자도 아니고(뭐? 뭐시여?) 어쩌다가 그건 뜨거운 감자가 되어버렸다. 남은 과정은 닉이 제임스에게 솔직히 고백하여 비밀 업무의 순환을 끊느냐 마느냐, 였는데 그게 그렇게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 왜 그런지 차차 알아갈 것 까지는 없고, 여기서는 간결한 이야기의 진행만 서술된다. 개인의 사유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지는 않겠다. 시점이 3인칭이니까. 즉 그건 아니었다. 닉은 다시 조니에게 찾아갈 공산이 충분했기 때문에 닉이 제임스에게 채신머리없이 찾아가서 서툰 고백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왔다 갔다 왔다 갔다, 일단 정확히 그 연결고리가 끊겼는지 아닌지는 나중 다시 알아보기로 하자. 어찌되었든 가장 합리적인 해결책으로는 다른 길이 없어보였다.
3
한편, 제임스는 최근 시에 심취해서 집에서 혼자 시 쓰기에 빠져 살았다. 딱히 새로운 취미도 없고 산문도 잘 써지지 않던 찰나 어딘가 모르게 착상이 떠올랐다. 그래서 그는 순식간에 다음과 같은 시를 창작해냈다. 그것이 정말 시인가, 에 대한 논란의 여지는 충분했으나 그것이 뭔 문예창작과 졸업 작품도 아니고 그나마 제일 가까운 형식은 그래도 시가 아닐까, 그런 결론이 나왔다. 작품은 길지 않으니까 옮겨보면 이와 같다.
첫눈을 기다린다.
일기는 쓰지 않는다.
소설은 잘 써지지 않는다.
여름의 나라에 가볼까?
안 가봐도 된다. 다큐멘터리를 볼 수 있으니까.
그런 소재를 생각한다.
세헤라자데를 천 일이라고 알았던 남자와 천 일에 하루 더, 라고 베팅하듯 기억하는 여자 그 둘이 연인이 된다면.
별로 궁금한 연애는 아닐 듯 하다.
뭘 해도 재미없다. 그러나 항상 그런 건 아니다.
시를 써볼까? 지금 쓰고 있잖아.
내가 생각해도 대체 뭔 얘기를 하는지 모르는 듯한 내용으로.
행과 행을 이어야 한다. 문단과 문단을 이어야 한다. 연결이 되도록.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누가 시키지는 않았다. 약속한 일도 아니다. 하지 않아도 벌칙은 없을 것이다.
무릇 인생도 그러하다. 세상에 태어나 살아간다는 것. 지구인으로써.
아무래도 그런 말을 여태 한 번도 해보지 않아서 뭘 할지 잘 몰라 망설이는 것 같다. 어떤 말?
(물론 앞으로도 할일은, 할일이 있을까?) 도대체 어떤 말?
사귀자, 사귑시다, 사귈까?
동시를 짓고 동요를 부르고 동화를 읽기엔 너무 커버렸다.
그래서 나는 친구에게 하나의 퍼포먼스를 부탁했다.
그것을 여기서 밝힐 수는 없다.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다.
곧 있으면 찬바람이 불것이다. 그러면 머리카락이 빠지겠지, 아마도 낙엽처럼. 송송, 송송송.
남의 집 개한테 이름을 붙여줄 것이다. 내 맘대로. 주인이 알면 썩 흡족하진 않겠지만.
좀 이상한 주인장이라면 어쩌면 좋아할 수도 있겠다.
그리고 그를 만나면 호명해야지. 개 주인이 아니라 개에게.
너도 내가 우습냐? 그건 아니다. 불러줄 이름이라는 건. 괜찮은 이름이 있었는데, 그런데 까먹었다.
잘한다 잘해, 아주 잘 하고 있어.
잘하긴 뭘 잘하고 있어?
그래도 꼭 한 번 이런 식으로 글을 써보고 싶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나 누구들처럼. 그분들처럼.
소원을 이룬 건가? 아니다.
왜냐하면 보통 소원이라고 하면 하나가 아니라 숫자 3이 떠오르니까. 하찮은 건 소원 축에 끼면 안되는 거다.
잘 아시지 않는가, 굳이 설명이 필요없다는 것.
뭐 재미난 일 없을까? 없다.
때가 됐다. 그런 것이다. 한눈을 파는 걸 보면 안다.
음, 어제 꿈이 생각난다.
아마추어 농구대회에 나갈 준비를 했다. 예선 탈락이 하고 싶었나보다.
쓸데없는 것만 생각난다.
그러나 주변에 사과나무가 없다. 그게 있어야 그 밑에 누울 수 있을 텐데. 그래야 그 다음이 있고.
아무리 둘러봐도 병아리가 보이지 않는다. 먹음직스런 닭 요리와 꼬끼요 꼬꼬댁 소리들. 그리고 그 어떤 경구만 존재한다.
하나의 존엄한 문장. 닥치고 뭐뭐 해라. 꼭 얼핏 들으면 인문-교양서의 전형적인 문장 형식과도 닮았다.
그러나 스포츠 구단에서는 그래 봬도 현재진행형 표어다.
그렇다. 의뭉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어쩌면 멋져, 그렇단 말이야.
핀란드식 사우나에나 들려볼까? 됐다 됐어.
세상일은 어렵다. 쉬운 일은 없다. 그래도 다음 타자가 기대된다. 시작은 뻔트, 목표도 뻔트! 그래서, 인생도 뻔트!
실망할지라도 괜찮다 괜찮아. 그렇다고 할지라도 남은 걱정 그 예를 들어보자면 이와 같을까?
걱정이 아니라 투정쯤 되겄다.
달걀을 보면 품에 안아 부화시켜야 할지 먹어야 할지
어제의 나와 내일의 나는 어디 가야 만날 수 있는지
왜 인형을 만들 때 곰인지 개인지 명확히 정의하지 않아 매번 사람을 헷갈리게 만드는지
잘 보면 자주 보면 알겠지만 언뜻 보면 개와 양과 소와 영장류는 모두 비슷해만 보인다. 자세히 봐야 제각기 특징이 보인다. 인생도 그랬으면 좋겠다.
어쨌든, 좌우지간 그것이 궁금하다.
천일야화가 어떻게 끝났는지, 바로 그 결말.
물론 그것을 알고 싶기는 하지만 또 그렇다고 지금 당장 알아내야겠다, 그 정도는 아니다.
그보다 시급한 과제가 생각났다. 그것은 무엇일까?
밤에 잠이 오지 않을 때 찾게 되는 우주의 비밀? 그런 영상에서 특집으로 퍼트리는 지구의 역사?
아니다. 그럴 시기는 지났다. 이미 뗐다.
날 좀 봐주라고, 나 여기 있다고, 나 시인이라고 명함을 내밀고 싶은 시절.
그것은, 시급한 과제라는 그것은
눈물을 펑펑 쏟게 만드는 사랑 고백도 아니고, 그것은 바로 지금 씌여지는 이것의 이름이었다.
작명에 관하여 일가견이 있는 것처럼 어떤 매체에 글을 한동안 꽤 진지하게 실었다면 그 정도 고민쯤은 필요한 법이다.
당연하지.
이 시의 이름을 뭘로 할까, 정말 그것에 대해 골똘히 심사숙고하게 된다. 한다.
어, 당신인가? 그분...이세요? 맞죠?
아니라고 하신다.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나 뭐라나.
그런데 왜 갑자기 그분? 내 마음을 조정하는가 싶어서. 제목을 생각해내라고.
과연 이 시의 제목을 무엇이라고 할까?
뭐라고 불러야 할까?
꿈? 청춘? 바다? 숙녀? 아니면 꿈과 청춘? 바다와 숙녀?
꿈에서 회춘했고, 어디에 갔는데 그곳은 바다였고, 숙녀를 만났다? 뭐야 이게?
이걸 애써 시라고 할 수 있나? 그래도 되나?
하지말란 법도 없지만 못할 건 뭔가, 라고 우기긴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뭐랄까 반짝 바람을 타는 그런 잘 읽히는 시, 잘 팔리는 시, 그것과 이것이 비슷하나?
에이 시시하다.
하지만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무제?
그게 뭐야, 재미없다. 더 심심해졌다. 오히려 상황이 악화되버렸다.
그냥 미완성으로 남겨놓자. 그러는 게 좋겠다.
그렇게 권태롭던 나날이 계속되던 중 썩 관심가는 웹페이지를 발견했다.
감탄사는 어~라! 처음엔 그랬다.
오, 이거 뭐지? 뭐지? 대체 뭘까? 슥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데! 뭔가 있어 뭔가 있어.
처음에는 그랬다. 나중에도 그랬다. 시간이 지난다고 달라지지는 않았다. 그게 문제라면 문제지만.
그것은 바로 허풍 대회!
말만 들어도 뭔가 솔깃하지 않은가? 안 그런가?
허-풍-대-회! 허풍 대회! 한 번 더, 허풍 대회.
몇 월 며칠 몇 시에 시작한다 시상은 어떻고 어디서 열리며 기념품은 뭐다
축하공연에는 누가 온다더라 라는 안내가 눈에 띄었다.
난 곧바로 즐겨찾기에 추가했고,
그 후 그러나 다시 그 사이트를 방문하지는 않았고,
혼자서 고민하는 시간이 늘어만 갔다. 왜?
출전할 것인가 말 것인가, 를 고민해야 했기 때문이다.
나름 심각했다. 그러나 그에 앞서
웹사이트를 다시 구경할 것인가, 말 것인가?
그래도 되는가, 안 되는가?
그러다 나는 결심했다.
일단 다시 한번 찬찬히 그 내역을 살펴보자고.
돌아가는 분위기를 관찰하자고.
대관절 누가 기획했는지 어떻게 시작됐는지
그들의 목적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떤 새로운 무엇이 탄생할지
그런 다음 나중엔 뭐가 어떻게 될지
또 흔들릴 사람은 누구인지
그분들이 어떻게 게임을 진행할지
쥐었다 폈다? 밀었다 당겼다? 들었다 놨다?
관객의 마음을 운동선수처럼 드리블했다가
참가자의 동심을 특급 쉐프처럼 반죽했다가
다시 시녀처럼 시중을 들고 비서와 같이 최적의 응대를 하며
나중에는 동기부여 강연회에 정기적으로 참석시킬지 어떤 신흥 교도로 만들어버릴지
그게 바로 궁금했고 알고 싶게 되어버렸다. 어쩌다가. 저절로. 교묘히도 아니고 얼렁뚱땅, 제발로 호박 곁으로 다가간 거지.
정말 신뢰할 수 있는가 속임수는 없는가 수차례 숙고하는 듯 뜸만 들인 후
덥썩 마음을 굳혔다. 내게 득이 되는 달콤한 아이스크림은 무엇인가를 알아보자고.
오래 생각한 후 마음을 정한 후 다시 그 웹페이지에 방문했다.
어떻게 됐을까?
정말 어떻게 됐을까?
오케이! (손가락 딱) (한 번 더 딱, 딱) (골 세러모니)
바로 그거야 바로 그거야, 바~로 그거라고!
손발이 딱딱 맞는군. 척하면 척. 완전 최고의 코믹쇼 단짝이군. 더없는 듀오야.
누가 글쓴이고 누가 즐기는 그분인지 구분이 따로 없어. 아조 끝내주는군.
돈 주고 시켰다고 해도 믿겠어. 구술자와 타이피니스트라고.
어떻게 됐을까, 어떻게 됐겠어?
그렇지! 정확히 어떻게 됐다 라고 말하지는 않겠어.
그러나 객관식까지 마다할 수는 없는 법. 그래서는 안 되지, 그럼.
첫째, 머머머 에러 해당 페이지가 없다거나 해당 문서가 없다랍니다.
둘째, 기타 엇비슷하지만 명쾌한 차이가 있는 이유로 그 때문에 페이지가 뜨지 않습니다 머머머.
그럼 그렇지. 괜한 헛소동이었다.
헛된 망상이었어. 아직도 어리석은 공상이라니, 저런!
그러나 자꾸만 생각난다. 자꾸자꾸 떠오른다.
앉으나 서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낮이나 밤이나
빨주노초파남보 월화수목금토일 도레미파쏠라시도
이것은 미련인가? 상사병일까?
혹시 희소식의 전조일까? 미소를 지을 일인가?
아니면 애절한 집착 같은 거?
왜 그랬을까?
서버가 폭주했을까? 인기 폭발? 대성공? 정말로?
에이 그럴 리가? 아니면 참가자 미달?
지원자가 완전 저조해서 그걸 만든 주최자가 뭔가 창피해서 덥썩 사이트를 그냥 내려버렸나?
내가 잘못 본 것은 아닐까? 아니다.
꿈이었나? 개꿈? 아니다. 꿈, 아니다.
그냥 마음만 부풀었다가 부풀지 아니한 것만 못하게 된 거다.
한마디로 기분 잡쳤스(잡쳤어).
뭔가 재미난 일이 생기는 건가 기대했는데 역시나, 결국 허사로 끝났어.
또 허탕이라니. 인물 유형 일관됐군. 허당으로. 내내.
이번엔 예선 탈락마저 허락되지 않는거야.
참가에 의의를 둔다 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어. 그럼.
어쩌면 깜짝 공로상이 얻어걸릴지도 몰랐는데 그랬는데 말이야.
잊어야지. 잊어야 한다. 하지만,
한번 생각을 해봐 생각을 해보라고.
만일 개최됐다면 곧 실력 발휘? 실력 발휘는 뭔 놈의 실력 발휘?
쪼그라들고 찌그러들었겠지. 거짓말이나 안하면 다행이고.
쟁쟁한 허풍쟁이들 사이에서 말이나 제대로 했겠어?
웬~걸 오줌이나 안 싸면 다행이겠네.
허풍 대회는 추녀 대회가 아닌데, 그런데 어떡하라고! 어?
그분들 모셔놓고 뭐라고, 깜짝 공로상? 깜찍쇼가 낫겠네. 아마,
병풍들 세워놓고 철학자와 몽상가와 놈팽이와 험담가들 잔치만 벌였을 꺼야.
언제까지 남 좋은 일만 하고 살라고, 뭘 해도 안 되는군, 하면서.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누가 받는다, 도 못돼. 어림도 없지. 하지만,
오히려 잘된 거야.
진짜로 그런 것 같다.
충분히 그럴 공산이 컸다. 그분들이 어디 보통 인간들인가 허풍으로 어디 따라갈래야 따라갈 수가 있나.
그 위인들을 무슨 수로 이겨, 뭔 신통한 수법으로 해보겠냐고.
일생을 허풍으로 헌신하고 평생 허풍을 갈고 닦았으며 인생은 곧 허풍일 텐데,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일정대로 대회가 열렸어도 문제가 많았을 것이다. 그럴 것이다.
듣다 듣다, 보다 보다 못해서 내가 아니라면 누군가 나서서 확 엎어버렸을지도 모를 일이었어.
속어로 일명 깽판!
그런데, 허풍주의? 허풍주의자? 허풍의 달인? 개뿔! 환장가가 낫겄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암.
괜히 고전주의에서 엄한 걸로 갈아탈 뻔 했군. 휴~ 또 한번 고비를 넘는구나.
언제 어디서 돌팔이가 튀어나올지 모르니 정말 인생은 모르는 거야. 그럼!
난 더 이상 허풍 신봉자도 아니고 봉도 아니고 호구도 아니다.
구태여 씁쓸한 별명이 추가될 필요는 없으나 굳이 하나 선택하라면 앞서 말한 그것은 곤란하고
음 돌아이? 그건 너무 평범해.
그러면 또 뭐가 있지? 은근 허당? 그런 거 말고.
허풍 대회 예선 탈락? 예선 탈락 같은 소리나 하고 자빠졌스 삐──!
에이~ 재미없다, 정말로 허무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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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제임스는 TV에서 뭘 또 봤다. 거리의 예술, 그래피티와 벽화 그림 같은 생활 미술에 대해. 그래서 그는 또 그것이 멋져보였기 때문에 자기도 한번 해보고 싶어졌다. 혹시 모를 재능이 표출될지도 모르고, 한동안 그 마법에 매혹당하여 또 장비 챙기랴 독학하랴 유난 법썩을 떨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중 접게 되더라도 그와 별개로 그 과정도 분명히 기쁨의 종류고 환락의 분파다. 그러므로 그는 우선 자기가 쓴 시를 먼저 블로그나 책으로 옮길 것이 아니라 벽에 옮겨볼까 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대충 끄적거린 시라서 작품성도 없고, 청소년의 낙서 같았으며, 어디에 공표할 수는 없고 또 그렇다고 버리기는 조금 아까웠기 때문이다. 내 작품을 버려달라는 둥 불태워달라는 둥 어떻게 보아달라는 둥 어째달라는 둥 지금이나 옛날 옛적 살았던 예술가들이 얼마나 많은 거짓말을 했던가, 또 하고 있는가? 그 흔한 엄살, 그 보기 싫지도 또 썩 보고 싶지도 않은 넉살 그리고 따지고 보면 이면에 숨겨진 죽는 소리와 친근함이 느껴지는 자랑과 성찰과 농담과 인간미 넘치는 딱히 중요하지 않은 여담들, 주제와 깊은 관련이 있는 독자에게 에둘러 묻는 용건, 너스레들, 그건 모두 적당히 강한 부정으로 포장되어 있을 뿐이다. 애들이나 어른이나 그런 거 보면 똑같다. 이거 내가 썼다, 나 여기 있다, 글이 잘 써지지 않는다, 나 위용을 뽐내도 된다, 팬들의 사랑 때문에 살맛 난다, 지금은 그 탄성이 식었지만 그 기억 때문에 산다, 곡이 안 써지면 미치겠다 미칠 것만 같다 돌아버리겠다, 왜 가왕이 그때 그 시절 대마초를 피웠는지 뭔 약을 했는지 알겠다는 둥 이해가 간다는 둥 어쩐다는 둥, 난 뭐 할 때 어디를 간다 무엇을 한다 어떻게 한다 등 그런 얘기들. 그처럼 녀석도 무작정 종이를 찢고, 구기고, 물어뜯고, 뭉치고 찌그러트려서 작품을 없애버리기는 싫었던 것이다. 망가진 조각품을 수리하고 정든 타자기에 기름칠을 하면서 홧김에 내다버린 영험하고 신비한 창작 공책을 쓰레기통에서 수거하는 바로 그 과정에서 느끼는 정신적 쾌락이라고나 할까, 열락? 그런 즐거움, 사람이면 누구나 그렇게 우선은 혼자서 다음에는 선택적으로 그걸 공개하는 기쁨을 즐기는 측면이 없을 수 없다. 강한 부정, 믿을 수 없다. 하지만 매번 불신해서는 안된다. 여자의 마음이든 징크스든 속는 셈 치고 믿어보는 경우가 좋을 때도 있다. 변화는 예측하기 어렵고 변덕은 심하니 각자 알아서 하자. 그러나 강한 부정은 왠지 켕기는 게 있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신뢰도가 낮다는 것. 뭔지 모르는 뱅뱅도는 글, 문자가 아닌 소리로 변형된다. 꼬끼요~ 꼬꼬꼬꼬꼬, 알맞는 장소에서 또 제 시각에 울리지도 않는다. 비슷한 말은 나 술 안 취했어? 그래 좋다, 우리 모두 백조-하자!
그 때문에 그는 적당한 장소를 물색하다가 괜찮은 영지를 발견했다. 인적이 드물지만 고풍스런 분위기에 꼼꼼한 건축 기법에 의해 만들어진 수려한 집. 그런 저택이 한 집 건너서 한 집이 아니라 그런 집 투성이인 동네. 그러나 사람은 살지 않고, 하지만 깨끗하고 뭔가 부족한 뭔가 마무리 치장을 해야만 할 것 같은 뭔가 숟가락을 얹어야만 할 듯한 정취가 느껴지는 그런 자신의 시를 적기에 딱 알맞는 어느 고저택의 벽면을 발견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화구점에 들려 몇몇 도구를 사고, 시를 그곳에 옮겨적었다. 그리고 기록한 연습장을 버렸다. 파일은 삭제했다. 후련했다. 자기를 떠나보낸 것이다. 뿌듯했다. 정말 정말 맛있다는 케익을 사서 먹지 않아도 그 원재료인 우유와 밀가루와 버터와 설탕 등을 한꺼번에 입에 몽땅 털어 넣고, 구강청정제를 머금고 고개를 젖혀 음미하듯 눈을 감은 채 뽀글뽀글 보글보글, 그 기묘한 음색을 듣는 것처럼 똑같이 따라한 후, 꼴딱 삼켜도, 그 값비싼 고급 케익과 어쩜 이리도 맛이 똑같을 수 있는지 그렇게 놀라는 것만 같은 그런 여유로움! 탄복스러움! 개운함! 신기함! 그는 그런 불가사의한 만족감을 기초로 하는 행복한 기분에 젖어들었다. 정말 시원섭섭했다. 학교를 졸업한 것 같았다. 어딘가에 합격한 듯 했다. 그와 동시에 정든 직장을 때려치운 것 같았다.
그러나 그 즐거움은 오래가지 않았다. 기쁨 두 배 반가움 세 배가 아니라 예선 탈락이고 꽝이었다. 오히려 천국에서 끌려나와 지옥행 열차를 탄 것도 아니고 그냥 즉시 순간이동해버린 일이 발생했다. 깨소금이 쏟아지고 꿀맛 같은 솜사탕 같은 포근한 사랑의 완성이랄까 시작이랄까, 하늘에서 남자들이? 여자들이? 돈이 눈처럼 내리는 어떤 신기하고 신비로운 이상향과 정-반-대되는 일이 터지고야 만 것이다.
5
그 동네는 원래 전체적으로 아까울만큼, 부러울만큼, 놀라울만큼 동화책에 나오는 멋진 마을까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나름 수준 있고, 교양 있는 사람들만 살 것 같고, 그곳과 관계된 모든 무형의 정보는 오직 격조 높은 걸로도 모자라 일부 저택 이름까지 격조라고 씌여있는 바로 그런 동네였다. 부디 고이 간직되길 명맥이 이어지길 바래야 할 것 같은. 다만 흠이라면 흠일까, 거의 모두 빈집이었다.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었다. 사람 대신 곰과 개와 고양이나 너구나, 사슴과 양 같은 동물들이, 그 뿐만이 아니라 꾀꼬리 같은 새소리를 내는 진짜 꾀꼬리들이 살고 있었다. 즉 그것은 흉도 아니고 단점도 아니고 그냥 그곳의 특색이었다. 더 나아가 누가 말리지도 등떠밀지도 않겠다 보는 사람도 없었다. 그러나 화룡점정은 필요했다. 딱 하나 필요한 것 같았다. 그래서 바로 작자 미상이라는 어느 걸출한 시까지 덤으로 그 동네의 말끔한 벽면에 기록된 것이다. 이 친구에 의해서.
그런데 제임스가 거기 시를 쓴 후 한 달이 지나 그는 그곳에 다시 방문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곳에 도착했다. 그런데 오, 이럴 수가! 왜 그 시를 이상한데 공개해버렸을까? 안 팔려도 출판할 걸 그랬나? 수준 떨어져도 블로그에 올릴 걸 그랬나? 아니면 어떻게 연애 편지 대필용으로라도? 나 시 썼어, 나 시인이야, 나도 시 쓸 수 있어, 나 시도 쓸 수 있어, 그건 일도 아니야, 속으로만 그렇게 생각하며 겸양을 떨고 아양은 감추어 겉으로는 자기는 어디 명함도 내밀지 못하는 블로그 작가라고 조용히, 조용조용 활동하는 것이 어쩌면 더 나았을 것이다.
대체 그곳에 뭔 일이 있었을까? 이야기는 다음 편으로 넘어간다. 자, 광고...... 광고 협찬은 들어오지 않았다. 그냥 휴식 시간이라고 치부하자.
6
정말 그곳에는 뭔 일이 생긴걸까? 별일은 아니었다. 그가 벽에 남긴 시는 하나의 작품이 됐고, 동네는 반틈은 미술관이 됐고, 반의 반틈은 원래 주인이 들어와 살았고, 반의 반틈은 찻집이나 식당으로 바꼈다. 사는 사람들이 원래 주인인지 또는 전에 살던 원주민인지 새로운 방랑자인지 몰라도 빈집에 모두 사람들이 들어와 살았고, 동네가 제법 정말 고급으로 구색을 갖추게 된 것이다. 그야 물론 좋은 일이지만 저기 보이는 저 시가 내가 지은 시라고, 작가는 자신이라고 그 어디에도 당당히 밝힐 수가 없었다. 그러니 그는 애끓는 마음 때문에 또 역시나 동화 속 주인공이 되어버렸다. 진짜 어디다 공공연히 밝힐 수도 없고 그는 끙끙 앓는 강아지가 되어버렸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얘와 얘를 맺어주면 정말 잘 어울리는 짝이 될 것 같아서 소개시켜주고 진짜 그렇게 됐어, 그런데 그때부터 이미 그 전부터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시작돼버린 사랑, 그걸 짝사랑이라고 부르나, 아닌가? 그는 그 엇비슷한 감정,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가 된 듯한 기분 때문에 아찔했다. 어리둥절한 것이다. 때문에 그는 이명이랄까 어떤 환청인지 회상인지 착각인지 불분명한 헛소리를 듣는 듯한 일시적이지만 반복되는 최면에 빠져버렸다. 그건 어떤 말? <내가 오빠 이럴려고 만나?>
그 후, 그 작자 미상의 시는 대박은 아니더라도 적당한 유명세를 탔고, 그 추세는 한동안 이어져서 꽤 화자되고 인기를 끌었다. 사람이 아니라 시가 복을 누린 것이었다. 대학가에서, 서점에서, 인터넷에서 곧 있으면 인기가 식을지라도 제법 그 고명함을 유지할 듯한 정도로 제법 다수의 환성을 사고 있었다. 길게 탄성이 이어지고 있었다. 억제할 수 없는 대중의 사랑이었다. 그러나 그 사랑은 그를 향하고 있지 않았다. 귓전을 맴도는 속삭임 같은 꿈결처럼 손에 도저히 잡히지 않는 어쩜 마음에 쏙 드는 애호가들의 애정을 시샘할래야 시샘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아야 한다고 이성적으로 판단했으나 그러지 않을 수도 없었다. 어쩔 줄 몰라서 눈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일이었으나 이상하게 울컥하며 슬픔이랄지 노여움과도 같은 감정은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단지 하늘에서 부슬비만 내렸을 뿐.
그래서 그에게는 다짜고짜 어떤 꿈꾸는 듯한 눈매를 찾아 여기저기 떠돌아 다니는 방황의 시기가 시작됐다. 소소한 일상의 잔잔한 사건은 그걸로 끝난 게 아니었다. 따라서 빙글빙글 맴도는 춤추는 장난감은 각각의 인물 유형으로, 비극에 등장하는 비련의 주인공은 전설적인 희극에 나와도 모자랄 그 짝을 찾기가 더없이 힘든 1년에 딱 한 번 겨우 태어날까 말까 하는 웃긴 일반인으로, 설레는 목마의 애수는 상남자들의 애마 그분들의 브랜드와 마크로, 얼핏 꿈꾸고 살짝 회상했던 쓸쓸했던 지난 이야기는 모두 타인의 경험이 아닌 소설의 체험자요 찻집 손님이자 소셜 네트워크 사용자로 탈바꿈하게 되어버리는 환상이 현실로 이루어져버렸다. 진짜로!
난 또 뭐라고? 그러게 말이다!
그런데, 아뿔사!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바로 뽀너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7
꿈은 이루어진다? 이루어졌다. 실현됐다. 가졌고, 느꼈고, 뭐가 되었다. 그러나 내가 최초로 생각했고, 실재 시도했고, 조금은 시장에서 반짝 했으며 약간 유명해질 뻔 하다 말았지만 결국 타인이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감격의 드라마를 연출한 3등도 아니고 인성이 글러먹은 저 녀석에게 우승을 빼앗길 바에야 2등은 의미없다면서 결승점 바로 앞에서 급정지했던 걸출한 운동선수도 아니다. 명성과 부와 존경과 고품격은 모조리 말로만 이루어냈다. 아깝게 뺏긴 것도 아니다. 집에 금 송아지 있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아, 글쎄 뽀너스가 대체 뭐냐고? 뭐였드라, 사뭇 궁금해진다. 배 보다 배꼽이 더 큰 뭐 그런 건가? 배가 산으로 간다? 기쁨 다음에 행복 다음에 쾌락? 그림 안에 있던 사람이 튀어나오고 애완견이 사람 말을 해? 아니고 아니고,
그건 이것이었다. 처음에 제임스가 조니에게 부탁한 일이자 의뢰한 예술품. 그 청탁이 한 바퀴 돌아 다시 조니에게 갔을 것 같고, 조니는 괜히 시간만 끌었지만 이제라도 안 되겠다고 솔직히 말하자, 그런 의도를 품고 그 둘이 만나기로 한 날이었다. 기간은 한 달, 됐을까? 장소는 찻집, 스타벅스. 알려지지 않고 소문나지 않았으나 탄성이 절로 나오는 카페를 못 찾아서 그곳에서 만나기로 한 것이다. 그런 멋진 곳은 정말 그 동안 카페에서 쓴 돈을 모았으면 카페 두 번 차리고도 남았겠다 썼다 벗었다 하겠다, 바로 그런 분들이 잘 아실테니까.
「시간을 허비할 필요없이 처음에 못하겠다고 말할 걸 그랬어. 어떡하지? 어떻게 좀 해볼려고 했고, 잘 하면 될 것 같았어. 그런데, 그런데 있잖아. 난 역부족이었어. 내가 하면 하지 왜 못할까 했는데 해도 안 되드라. 미안.」
「아니야. 내가 미안해. 나도 괜한 부탁 해놓고 나서 꽤 속앓이를 했다는 사실, 고백할께. 뭐 대단한 토로는 아니지만. 그런 게 있으면 어떨까 정말 그냥 공상이었어. 쓸데없는 몽상. 난 항상 대책없이 생각만 하고 논리적인 흐름의 맥이 끊겨. 가끔 잇기는 하지만. 그래도 늬 말처럼 정말 될 듯한 뭔가 호감을 끄는 그런 컨셉인 건 분명해.」
원래 이 친구들은 TV를 즐겨보지 않는데, 그때 TV에서 최신 유행에 대해 설명한다. 요즘 유명인들이 타는 차, 바로 그것에 대하여. 그것은 불과 한 달 전에 제임스가 조니에서 부탁했던 내용을 그대로 빼다박었다. 완전 똑같았다. 정말 곧이곧대로 똑떨어졌다. 차가 멈추고, 풍선에 바람이 차고, 어딘가에서 음악이 들리고, 연기 부시식 깔고, 후광이 비추어지고, 실내에서 앉아서 코골며 낮잠자던 유명인이 깜짝 놀라 깨어나서 번쩍 정신이 들고 계단을 서둘러 올라간 후 딱 문을 열고 등장한다. 기다리는 사람, 기대했던 연인, 꿈꾸어왔던 사색가는 제때 딱 등장한 그분을 보고 막 정신을 잃을락 말락 하고, 어쩌고저쩌고. 바로 그것이 그대로 구현된 2층 버스였다. 상황에 따라 써먹을만 하고 작품에 따라 썩 어울릴 듯 하지만 널리 인기를 끌만하지는 않았다. 그럴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 그랬는데 하나둘, 하나둘 너도 나도 타다 보니 어쩌다 그것이 유행이 되어버렸다고 한다.
이때 이것을 지켜보던 이 친구들이 보일 행동은 크게 3가지. 첫째, TV 속으로 들어간다 또는 들어가는 데 실패하고 들어갈려다가 이마를 퍽 찧는다. 둘째, 마시던 맹물이 마시던 맥주가 다시 그대로 입에서 나와서 컵으로 들어간다. 셋째, 화들짝 까지는 아니지만 살짝 놀래서 뭔가 억울해서 몸은 그대로 멈춰 있고 고개만 뒤쪽으로 슥 디민다. 이 가운데 그들은 3번을 선보였다. 에이, 누가 이미 그 아이디어를 가지고 히트쳐버렸구나, 성공해버렸네. 꿈만 꾸다가, 헛다리짚고 차일피일 미루다가, 진행은 했는데 시도는 했는데 거의 다다를 뻔 했는데 어쩌다 구름 위에 올라서지 못하고 잠재적 소비자가 되었구나 라며 노래 가사같은 후렴을 읊게 되었다.
「이럴 수가! 아니 이렇게 심한 일이...!」
8
어쨌든 제임스는 자의든 타의든, 우연이든 필연이든, 운명이든 숙명이든 본인의 창작물과 구체화된 성과물의 이전 단계인 사업 구상이자 예술이며 창작의 원천인 아이디어를 빼앗겼다. 동사를 정정하자면 강탈된 모습은 아니었으니까 어디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우물 안 개구리였다, 땅꼬마였다, 한 발 혹은 여러 발 늦었다, 그냥 아쉽게 되어버렸다, 가 적당할 것이다. 환하든 썩었든 미소는 지었다. 최후에.
제3의 사나이가 모든 조감도를 지켜봤다면 아마 그랬을 것이다. <내 이럴 줄 알았다!> 그러나 그도 할말은 있다. 본능적으로 모방하고 본질적으로 따라하는 게 내 일이었고, 배움의 목적으로 흉내내는 것이 내 역할이었으며, 이미 선천적으로 사는 동안 내내 타자의 장점을 본뜨며 베끼는 행위를 지속하는 삶을 살았다고. 보편적으로 뭔가를 시작했으나 특별함에는 곧잘 도달하지 못했다고. 그는 원래 업체에 맡길려고 했다. 또는 펀딩 플랫폼을 이용하거나. 그러나 그 정도 열의는 없었다. 그의 그릇은 이런 말이 딱 적격이다.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면 된다. 동물로는 (최상급의 예우로 치면) 하이에나? 인문학 용어로는 발 빠른 2인자? 모두 틀린 말은 아니지만 복잡한 부연 설명을 생략하자면 이처럼 하나의 의문이 고개를 드는 것을 알 수 있다. 속으로 되뇌었던 말,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나는 감히 그녀를 사랑해도 될까? 그는 퍼뜩 또 예전부터 무척 의아해했다. 내가 한 말이 드물겠지만 때로는 품위가 있고, 내가 쓴 글이 간혹 값어치가 있을 수 있을까 라고. 그는 자신의 성과물에 대해 왜 아무도 반박하는 이가 없나 라는 보통의 지극히 현실적인 의혹에 대해 이렇게 생각했다. 어쩌면 얼떨결에 무심코 떠오른 생각일 수도 있지만 그가 가장 가치를 두는 두 가지, 가장 공통적이거나 오직 유일무이한 것, 그 기준에 근거하여 추측했을 때 이와 같은 잘못된 예견에 다다랐던 것 같다. 자기가 놀고, 갖고, 즐기고, 살아야 할 어항을 미리 요모조모 사전에 제한적으로 정해버리는 것. 책에서 목표를 처음에 분명하게 정하라고 했지 어디 적당히 숨어서 작은 걸로 만족하고 평범하고 조용히 살아라, 그건 아니었다. 그가 감명을 받았던 책은 확실하게 후자보다 전자였다. 그리하여 그는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그러므로 그는 삐리리리 삐리리리 오늘의 운세랄까, 동전을 넣고 손잡이를 돌리면 나오는 말려있는 조그만 쪽지 그것을 펼쳤을 때 씌여있는 하나의 문장에 대하여 생각했다. 삐삐 삐리리리 삐삐, 삐삐 삐리리리 삐삐! 음악이 짧다, 평범한 효과음도 한물갔다. 무작위로 추출된 오늘의 한마디는 그것이었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말라> 그림자? 그는 남이 시키는 일을 잘했다. 적당히 이타적이고 적당히 도덕적인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절대 창의적인 사람은 아니다. 대표자, 이끄는 사람에는 안 어울린다. 누가 시켜주지도 않는다. 선구자도 될 수 없다. 그냥 범인이고 속인이다. 눈에 잘 띄지 않는 보통 사람과 똑같다. 아이디어를 결과물로 연결시키는 추진력은 나약했고, 수사법에는 한없이 둔감했고, 꿈을 실현하느냐 마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일단 꿈 자체가 자주 변하고, 없어졌다가 많아졌다가 다시 없어졌다가 정작 그게 무엇인지 그 꿈이 내 꿈인지 남의 꿈인지 그것조차 꽤 아리송하다는 그런 부류였다. 그래서 그는 자신에게 떠오른 단상을 블로그에 올리고, 시를 벽에다 썼고, 밤에 잠이 들면 허무맹랑하고 오색찬란한 진짜 꿈을 꿨다. 뭐가 꿈이고 뭐가 꿈이 아닌지 잘 모르는 단계, 그게 현실이었다. 때문에 그는 자기에 의한 상상의 산물을, 그것도 일종의 그림자라고 생각했다. 그건 짜집기였고 베끼기에 지나지 않았으나, 혹시 몰라 아직 몰라 였다. 또 언제나 따라하고 어디서나 흉내내지만, 정작 남이 자기를 따라하면 또 썩 기분이 상쾌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따라서 그는 허접한 자아에 대해서는 깨끗하게 승복했으니까 그러니 그가 살아온 배경과 환경에서 뭔가 마음에 걸리는 결점을 하나만 꼽아보고 싶었다.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아니다. 이젠 동심처럼 말랑말랑하지 않은 경직된 관성 때문에 예선 탈락이 아니면 실망하고, 꽝이 아니면 뚜껑이 열리며, 뻥이나 가짜 웃음이 아니라면 더 이상 즐겁지가 않았다. 그러나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식 정물화도 액자구조로 받아들였다. 안고 갔다. 그래서 하고 많은 만물의 이치 가운데 딱 한 문장만 갖고 약간은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그것에 대해 얼마든지 독서감상문의 토대가 되는 화사한 해석과 적용되는 좋은 사례를 모두 마다하고서.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말라? 고서와 고전주의라면 그렇다 쳐도 요즘 세상은 그걸 이렇게 바꿔야 한다는 건 이미 상식이었다. <날 밟고 올라서라> 이것이 영화라면? 오, 아하! 그것은 조금은 우스운 장면을 연출한다. 정식 도복을 입고, 결연한 자세로, 조용한 경기장에서 단 둘이 마주선 채, 세파에 찌들대로 찌들고 옆길과 뒷문을 좋아하는 넉살 좋은 선임자가 패기로 똘똘뭉친 사회정의를 구현하고자 하는 새파란 신참 후임자에게 하는 말, "늬가 정녕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러움이 없다면, 그러면 날 쳐라!" (그래서?) 단숨에, 퍽! 그리고 꽈~당! 매체를 바꾸면 이와 같을 것이다. 뭘 밟지 마라든 밟고 올라서라든 그 말은 곧 배운 걸 모두 잊어라, 새로운 욕조로 옮겨가라, 새 술은 새 부대에, 판을 바꿔라, 틀을 새로 짜라, 환경에 적응하라 개선하라 머머해라, 생태계를 살펴라 질서를 읽어라, 와 같다. 모두 같은 논조의 말이다. 새로운 사조가 대두되면 한 시대를 풍미했던 낡은 사조는 물러간다. 최신 유행이 대세라면 지난 유행은 복고풍으로 재조명의 날을 기다리게 된다. 그런데, 그런데 그는 또 평소에도 그렇듯이 그 말을 곧이곧대로 직역했던 것이다. 곧이곧대로, 아무 때나 정직하게. 외국어만 의역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빈말과 참말을 구분하는 것이 다가 아니다. 절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호인이냐 아니냐 성격 좋네라는 말을 들어봤냐 아니냐, 가 능사가 아니다. 괴짜는 솔직담백할 수 있으나 가식과 예절은 상당 부분 겹치는 영역이 많다. 정직의 끝, 그것은 이간질이 아닐까? 단, 바보는 용서하자. 정말로. 밉지 않은 허영심도. 그는 그러니까 평생 그 모양 그 꼴이다. 타인의 구라를 그대로 믿고, 글로 우기면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그때그때 일관성 없는 말도 다 좋게 해석하고, 가짜를 진짜라고 좋아하며, 글씨가 보이면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다 읽었으며, 남이 하자는 대로 다 했다. 줏대도 없이. 비교적 예전에는. 지금도 무슨 창작 아카데미, 몰래 혼자 알아보고 여기저기 찾아다니고 있을지도 모른다. 누가 알겠나? 진지하게 거길 다녔을 때 또 다니지 않았을 때, 에 관한 예상값의 오차를 속으로 혼자서 조용히 계산했을지.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마라에서 스승은 제2의 자아였고, 그림자는 미래의 내가 내려보낸 영감이라거나 희대의 허풍쟁이가 슥 내밀었던 오리발이나 썩은 동아줄이라고 여겼다. 그렇게 판단했기 때문에 그가 쓴 시는 짹짹 짹짹 그냥 재잘거림이었고, 아이디어는 시장을 교란하는 헛생각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었다. 막상 주위를 둘러보면 그는 그 문장을 직역할 수 밖에 없었다. 은유법에 약하고 상징과 고급스런 조롱은 꿈도 꿀 수 없었다. 1차적으로 그릇이 안 되니까 타인의 말을 존중하고 남의 글을 잘 믿으니까 그렇겠지만 그러나 충분히 그럴 만 했다. 왜냐하면 그 말대로, 그 말마따나 어느 풍토에서는 진짜로 스승의 그림자를 밟지 못하도록 학교, 어디, 어디에서는 따로 식사를 했고 교차되는 활발한 의견 교류가 일어나지 않고 따로 생활하고 있었던 것이다. 목적보다 방법이 앞섰다. 그곳은 '왜'보다 '어떻게'가 중요했다. 과정보다 결과가 먼저 상상된다. 마치 그런 말처럼. 그래서 어떻게 됐어, 그래서 결론이 뭐야? 그러니까 비책을 알려주겠다는 거야 말겠다는 거야? 꼭 그것이 잘못됐다는 게 아니라 추세가 그렇다. 원래는 그 반대여야 정상이라고 하는데 말이다. 지금도. 여전히. 그게 당연했다. 조금 변화는 있었다. 결정을 합리적으로 때에 따라 위임하고, 용단을 내리고, 책임을 져야할 관리자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정작 익히 알려진 대로 하급 구성원들이 대신 서있거나 조화가 필요할 땐 또 물과 기름처럼 따로 놀아 구조적으로 잘 어울릴려야 어울릴 수가 없었다. 그게 현실이었다. 그러니 매뉴얼은 잘 지켜지지 않고, 현장에서는 우왕좌왕하고, 결정은 늦고, 책임은 전가되고, 재빨리 엄한 방향으로 갔다가 공든 탑이 무너지고, 나무 그늘에서 야한 단꿈을 꾸며 낮잠 자다가 우승 메달은 거북이에게 빼앗기는 동화는 현실이 된다. 그건 절대 개인의 잘못도 아니고, 한 개인이 뚝딱 어떻게 절대 그렇게도 안 되며, 개인주의를 문제 삼아야 하는 일도 아니다. 한 단위의 제도와 규율을 포함한 더 광범위한 관례에 이르기까지 그러한 포괄적인 제반 여건은 어떻게 보면 꽤 만족스러운 듯 승승장구까지는 못되도 뚜벅뚜벅 나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살짝만 틀어보면 또 더없이 더디게 진척되는 것처럼 보인다. 보내기 뻔트와 희생 뻔트가 무색하리만치. 뉘늦게 잔치에 합류하면 분위기를 읽어야 한다. 어떤 천재가 독학 먼저 하고 불세출의 스승을 나중에 만났으면 기본부터 다시 배워야 한다. 그게 더 빠르다. 순서가 그렇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라는 성찰없이 어떡하다가 연구 과정은 생략된 채로 동물농장이 지어졌다면 감내해야 할 일은 없을 수 없다. 그런데 대략 셈해 봐도 큰 걸 바꾸려면 무척 혼란스러워 그러니까 제도와 관습은 바꾸지 않고 그냥 갈 수 밖에 없다. 즉 그건 후순위로 밀린다. 풍요로운 현대인의 문화 생활, 여러 신화와 전설과 예술 뿐만이 아니라 기득권의 공로까지도 그것의 그림자는 뻔트다 뻔트! 뻔트라고!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게 사람이 사람을 낳는 일처럼 그게 어디 보통 일이더냐? 문화유산만 감탄하고 여행 마쳐야 할까? 박수를 받고 일관된 갈채에 존경도 덤으로 얻는 대표자의 유형도 때때로 바뀐다. 하물며 꿈, 자주 바뀐다고 없다고 조그맣다고 절대 수그러들 필요 없다. 권위자든 철학자든 고승이든 그 누가 어쩌고 뭐라고 해도 그건 그분의 생각일 뿐이다. 앞에서 새겨듣고 나중 판단은 꼭 본인이 할 것. 왜냐하면 자기 인생이고 책임도 당사자 소관이니까. 지금 이 순간 옆에서 누군가 잔소리를 하신다? 다 잘되라고 하시는 말씀이지만 자주 마주치는 사람이 아닌 돌연 어떤 양반을 삼천포에서 대면했다, 그런데 그분이 위에서 아래로 뭔가 멋지고 도움되는 말을 하고자 하신다면 그분은 왜 그런 웅변을 하고 싶은가, 그 취지의 헛점을 하나 확인하고 가자. 뭔가 멋진 말, 에헴 하며 뒷짐이든 고개의 각도든 눈빛이든 뭔가 태도가 바뀌면 그건 거의 백퍼센트다. 그러나 그것은 계획대로 일이 잘 풀리지 않을 수도 있다. 학습에 썩 호의적이지 않은 청자와 뻔한 전형적인 교훈조의 말씀만 하시려는 농담 없이 무미건조한 말씀만 하시려는 아저씨가 만났을 때 그건 순서가 이렇게 흐를 수 있다. 처음 계획은 1인 연설이었고, 그것은 뭔가 있어보이는 논쟁을 불렀으며, 상황은 다시 어떤 상호 가치관이 충돌하는 말다툼의 성격을 띄었다가 마무리되어야 하는데 마침내 꼬마들 싸움과 똑같은 양상을 띄는 일. 그런 일은 실은 드물지 않다. 왜 꿈이 없냐, 젊은 놈이 그게 뭐냐, 누구를 봐라, 무엇을 읽어라, 뭐뭐 해라, 어떻게 하라, 등등. 그분이 누가 되시건 그는 절대로 책임질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책임질 수 있냐고 물었을 때 책임질 수 없다 라고 하는 건 어째 왠지 지는 것 같다. 때문에 그 시점에는 책임질 수 있다고 말하는 게 옳다. 괜히 시작했다. 이미 구긴 스타일, 더 이상 망가지면 망측하다. 꽁무늬 내릴 수는 없다. 이미 늦었다. 굽히기엔 나중 떠안을 마음의 상처가 두렵다. 초장에 틀린 일이다. 너무 멀리 와버렸다. 못 먹어도 고다. 내가 틀렸다, 나는 부럽다, 나는 촌닭이다 라고 인정하는 걸 결코 좋아하고 반가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상남자라면. 그러므로 그런 경우를 유심히 관찰하고 사례를 수집해 보면 첫째, 강변의 기세로 판단하자면 충분할 것처럼 보인다. 책임질 수 있는 것처럼. 둘째, 적지 않은 경우 실지로 말한다. 내가(또는 오빠가?) 책임진다고, 보장한다고, 믿어도 된다고. 그러나 그분은 절대 책임 못진다. 짊어질 수 없는 남의 일이고, 타인의 운명이다. 장래의 일이고, 남의 인생사며, 여력도 방법도 진의도 다 없기만 할 뿐이다. 그러나 말은 다르다. 하늘을 걸고 맹세라도 할 듯한 몸짓은 취한다. 내가 너에게, 앞으로 두 번 다시 그런 얘기 해주지 않는다고 할 것이다. 자꾸 그렇게 말이 겹친다면, 신경이 거슬리게 한다면. 그러나, 가 수차례 나와도 부족한 일이다. 냉정히 재차 반복해서 책임질 수 있냐고 묻는다면 끝내는 화낸다. 초반부터 완강하냐 아니면 나중 버럭 하냐, 그 차이다. 연애를 시작할 때, 결혼생활 초장에 주도권을 빼앗기면 버릇을 잘못 들이면 꽤 곤란해진다는 워낙 구식이라서 아예 그 축에도 끼기 어려운 엄한 낭설 때문일까? 그럴까? 아니다. 천만의 말씀. 그럴 리가 있나. 원래 분위기 잡는 걸 좋아하는 거다. 다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 끄덕끄덕 공감이 된다. 무릇 숙녀는 부정할 테지만 눈꼽 만큼은 오빠로부터 신적인 면모 적어도 팔방미인의 풍모를 잠시나마 기대한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이해할 수 있다. 멋져보이고 싶은 것이다. 삶의 주인공이자 하는 거다. 일반인이 걸린 연예인병이지. 말 한마디에 남을 즐겁게 만들고, 말 한마디에 웃음보만 건드리는 게 아니라 울렸다 웃겼다 쥐락펴락 하고 싶고, 말 한마디에 빵~빵 뻥~뻥 터지게 웃기는 것도 1등을 하고 싶다는 것, 그분들의 아름다운 그 선의의 본분, 말하지 않아도 다 알아요. 그분은 전성기가 지났어도 천성이 애다. 지혜롭게 행운의 여신이 친절을 배풀어서 인생에 관하여 노련한 철학을 터득한다 하더라도 그분은 겉은 늙어도 마음은 젊다. 멍멍, 멍멍멍, 멍멍멍멍멍멍멍. 개 더하기 닭이 맞나? 모르겠다. 잠깐만, 닭개? 개닭? 아니 개새? 그래서 신화나 석상들을 보면 그렇게 뭐의 상체에 뭐의 하체가 많았나? 이미 옛날부터 합성이 기본이었구만. 일반적으로 정의의 사도가 활약하는 만화영화를 보다가 불의를 잘 참는 어른으로 성장하지만 기본 철칙은 철들면 지는 거고, 안되는 거고, 늙는 것인가 보다. 결국 그 단계에 접어들면 이때부터는 논리 필요 없고, 예법도 관계도 사이까지 애매해진다. 딱 바뀐다. 어떻게? <책임질 수 있다>에서 <내가 그걸 왜 책임 지냐?>로. 세상을 먼저 경험한 인생 선배로서 어디까지나 좋은 의미를 담으려 했다, 포장은 서툴렀으나 하지만 의도는 확고했다? 그러면 임무 완수하고 다음은 감동의 물결? 물론 그것은 우리가 간절히 바라는 바 선험자의 책임은 다한 듯 보인다. 그 책임이 다른 책임으로 연결되느냐, 그럴 수 있느냐, 그건 퍽 불확실하지만. 여러분, 실생활에서 (긴) 명대사 따라하기가 결코 쉽게 되는 게 아닙니다. 지가 무슨 페리클레스야 데모스테네스야? 정해진 글을 말로 변환하는 것도 아니고 온전히 즉흥 연설인데 그게 어디 쉽겠습니까? 괜히 인상만 찌푸리며 적어도 1명 이상의 기분만 울적해버리는 거지. 적어도? 한 명은 폼잡고 좋아하고 한 명은 기분 완전 망가질 겁니다, 모르긴 몰라도. 딱 그래. 괜히 뭔가 있어보일려고 멋져보일려고 하다가 결국 꽝이야. 제 코가 석 자인데 남의 부뚜막 걱정은 무슨! 그게 쉬우면 누구나 동물농장 사장하겠네. 아니 그렇습니까? 개나 소나? 쉿! 자, 따라서 타인의 조언은 참고만 하면 된다. 기분 언짢은 도움의 말이 있으면 '입에 쓴 약이 병에는 좋다'도 있다. 네 인생은 너의 것, 책임도 너의 것. 텐미닛도 주당도 허당도 모든 타이틀은 너의 것. 그걸 남에게 할 수 있냐 없냐, 라는 가능과 불가능의 문제로 묻는 건 경우에 어긋난다. 꿈이 없다, 에서 중간 생략하고 단박에 허풍 대회 출전으로 건너뛰어도 괜찮다. 뭘 해도 재미없어, 보다는 뭐라도 하는 게 건전해보인다. 꿈이 너무 크면 안될 것 같나? 야망이 왜 나쁜가, 사람과 사랑이 거기다 세상마저 변하는 게 문제지. 진짜 뭘 해도 재미없다, 는 아저씨들 문제니까 살며시 넘어가자. 애교로 지나치자. 소설이 아니라 그분들을. 응애 응애, 어른 남자도 애니까. 기억합시다. 무섭게 생긴 사람이 잠깐 잘해주면 효과가 탁월한 것 아닐까 라는 공상을. 그처럼 난 애다 누구는 개다 너는 대인배다 라는 전제를 사전에 미리 먼저 깔고 출발하면 술값은 상대가 내게 되어 있고, 여인의 환상을 만족시켜 주었다가 조금 풀어줬다가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것이 기본이 되는 타인의 마음을 조정하는 기술을 터득하게 된다는 것을. 자, 아주 잠깐 웃었으면 다시 하던 얘기 마저 해야 한다. 혁명과 혁신이 아닌 제도 정비에 과연 장구한 세월이 필요할까 라는 시민권, 정말 어느 만큼 시간이 지나야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 보장될지 바로 그런 잠시 배웠다가 쉬이 잊혀지는 학술용어, 그것은 이상주의이자 미지수가 아닐까 라는 궁금증은 언제나 많은 사람의 공감을 사게 된다. 이 세상을 알면 알수록. 불가피하게 샛길이 통용되던 시절이 있었다면 나중에는 뚜벅뚜벅 먼 길을 차근차근, 아장아장 가야할 수 밖에 없는 때가 온다. 모래알을 하나하나 새듯이, 바늘 하나로 흙을 파서 산을 옮기듯이. 그 이전에 대한 향수까지 소급 적용하고 감안하는 동안 또 거북이는 저 멀리 떠나가신다. 방법은 달라도 사람 사는 데라면 어디서나 겪는 모종의 과정일 수도 있다. 어디 사람만? 왜냐하면 한마디로 혼란스럽기 때문이다. 계단식으로든 어쩌든 새로운 뭔가는 끊임없이 어떤 주기로 새롭게 나타난다. 어떻게 보면 최고의 가치는, 그 중의 하나는 단연코 새로움이다. 그러나 이방인은 낯설다. 장난감도 일단은 갖고 놀던 걸 찾게 된다. 술과 친구는 오래될수록 좋다라네 구관이 명관이라네, 게다가 기존 질서만 있냐? 아니다. 롤링스톤즈는 항상 대기중이다. 언제 어디서나. 그래서 알맞은 때 물러서는 뒷모습이 아름다운 경우가 있다. 반면에 무대에 끝까지 남아있어야 하기도 한다. 쓰러질 때 쓰러지더라도, 무대에서. 그러나 완주를 위한, 참여를 위한, 행사를 즐기는 관중의 즐거운 놀이를 위한 경기장의 문턱은 낮다. 진입 장벽에 관한 규정도 불분명하다. 심지어 자주 바뀐다. 마찰이 없을 수가 없다. 타성은 잘 바뀌지 않고 익숙한 습관이 편하다. 너무 앞서가면 앨범이 안 팔린다. 책이 안 팔리면 작가는 가던 술집에 또 간다. 큰맘 먹고 심혈을 기울인 것으로도 모자라 큰돈 쏟아부은 영화를 한번 말아먹고 나면 비관 때문에 무분별한 욕, 구석에서 무진장 할 수도 있다. 한때나마. 이용자는 드라마의 기획 의도와 웹서비스의 사명이나 목적을 먼저 보고 컨텐츠를 이용하지 않는다. 절대 알고 싶지도 않다. 대부분 관심조차 없다. 다만 만드는 사람은 그런 철학이 없다면 운발로 잠깐은 정상에 오르나 길게 가기는 힘들다. 내가 말할 때는 개도 짓게 하지 말라, 까지는 아니지만 난 정말 어떤 그림자도 밟지 않고 어느 주위에는 얼씬도 않고 탐욕을 겉으로 드러내지도 않았어, 그래서 마침내 목표는 이루지 못할지언정 중간 수정하여 적당히 어느 자리에 올랐는데, 그런데 어머나! 내 방식이 고지식한 옛것이 되었네? 세상이 바꼈어, 세상이! 게다가 계속 바뀌어. 쉬지 않아. 유행마저 자주 바뀐다. 신상품은 끊이지 않고 출시된다. 그래프 유형이 꿈틀대고 기준이 변할줄이야, 세상에나! 어쩌면 좋아, 때를 잘못 만났네 줄을 잘못 섰어, 어떻게 해야 하냐고! 시나브로 바꼈는지 급하게 바꼈는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언제 어디서나 속도의 문제였고, 방향과 방법은 기본이었고, 자연스럽게 등장하는 순서에 지나지 않는다. 옛것은 다른 말로 고전인데 꼭 그 둘이 동일한 의미는 아니라는 게 문제다. 남들은 자꾸만 앞서가고 발전하는 것 같은데 토끼의 가속도 때문에 거북이가 더 느려보인다. 하지만 토끼는 제정신 못차린다. 청춘도 보통 그와 같다. 일반적으로 그게 정상이다. 또한 남의 떡이 커보인다. 그것도 훨씬. 게다가 실재 그렇다. 실정이 그렇다. 괜찮아 괜찮아, 로 풀고 설명하기엔 벅차거나 까다로운 일이 세상에는 존재한다. 오류도 많고 시행착오는 물론 모순도 꽉 찼다. 그게 세상이다. 그림자, 그림자! 어떻게 보면 그건 평생 모은 반재산을 유려한 언변의 고급 사기꾼에게 속아서 탕진한 것과도 같은 일일 것이다. 난 그림자를 밟지 않았는데 그런데 첫째 이상은 날 밟고 올라서라 였고, 둘째 현실은 그림자가 없거나 당찮은 말 즉 허튼소리고, 셋째 아무래도 그림자 밟네 어쩌네 그런 거 난 모르겠고 그림자 밟기 놀이나 하면서 유유자적하며 때로는 개미처럼 때로는 띵까띵까 베짱이처럼 살고 싶은 것, 바로 그것이 그럴싸한 타협점일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남이 하면 호의호식이요 내가 하면 웰빙, 그게 아니니까. 원래 세상은 조금은 야속하고, 적당히 유감스럽고, 윤리란 어디까지나 인간중심적이며, 인생이란 게 쉽고 평탄하기만 하다면야 그래가지고서야 어디 뭔 재미가 있을 텐가, 인기상 근처에는 범접하지도 못할 일 아니겠나. 그건 보람도 없고 의미도 없다. 심심함과 무료함만 남을 것이다. 낭만? 환상? 신비? 짜릿함? 그런 게 다 웬 말이더냐, 만일 어쩐다면!
막상 일이 이렇게 진행되고 보니 그는 아마 곧 있으면 머지않아 허풍 대회에 출전할 것으로 예상된다. 어차피 없는 고고함 훌훌 벗어버리고, 무아지경에 빠져서 그 환성이 나를 향한 환성은 아닐지라도 입가에 맴도는 그 말, 하지 않는 것은 시도하지 않음보다 못한 듯 하니까. 때에 따라서. 우선은 또 이상하게 흐름이 튀었다. 엄한 곳으로. 허풍 대회 참가가 임박한 것으로 가닥이 난 것이다.
9
정말 그가 허풍 대회에 참가했을까? 그럴까? 진짜로? 희곡의 상업적 전개 방식에 따르자면 그는 지금쯤 대회 출전보다는 스승을 찾아 구도의 길에 오를 가망성이 크다. 그러나 그가 처한 상황이자 스스로 떠올렸던 공상은 모두 지극히 현실적인 범주에 지나지 않았다. 억울할 일은 아니지만 왠지 모르게 재미있는 영화를 본 후 극장 밖으로 나와 땡볕을 쬔 후 머리가 띵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누가 도왔을까, 그는 정말 허풍 스승을 찾기 위해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글도 잘 안 써지랴, 시간도 있겠다 여유 자금 남았겠다, 삶의 장르 변화는 필요했고, 그것은 무엇보다 소설 구상과 문학 화풍에 썩 도움되는 일이 될 것이라고 여겨졌다. 최소한 그가 몇 가지 생각해놓았던 기발한 소재들이 모두 헛것으로 와해되어버릴 일은 없을 테니 한번 우연히 떠오른 그 생소한 일에 운을 걸어도 나쁘지는 않겠다고 생각했다. 소기의 성과만 얻는다면 흔하디 흔한 작품들과 거리를 두는 변별력도 갖추고, 어쩌다 대천사를 만나거나 호색적인 모험에 빠지지 말란 법도 없으니까 이건 그야말로 임도 보고 뽕도 따고, 두 마리 토끼는 물론 호박이 제 발로 넝쿨채 굴러들어오는 격이었다. 갑자기 어깨 뽕이 들어간 옷을 입은 것처럼 그는 가슴이 부풀어올랐다. 숱한 인생 경험도 했겠다─숱한? 어릴 적 무슨 운동? 플랫 깎기? 예선 탈락? 짝사랑? 살집 물어뜯기?─거짓말과 깐죽과 뻠프질에 일가견 있겠다─자타공인? 도대체 어디서, 어디 가면 인정해줘?─유유히 대장정에 나서기만 하면 될 듯해 보였다. 앗싸!
그러나 그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코. 일상은 영화가 아니었다. 그러나 평범함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왠지 싫었다. 어딘가 모르게 고난과 역경을 거쳐서 구색을 맞춰야 할 것 같았다. 일사천리로 스승 1을 찾고 다 배운 후, 스승 2를 만나 그분의 딸에게 사랑도 가르쳐주고 스승의 복수와 추격과 약간의 초현실주의는 물론 거기다 낭만까지 추가되어 이야기가 척척 진행되는 건 한마디로 허구다. 가짜다. (개)뻥이다. 비현실적이다. 돌아서면 잊혀진다. 반짝은 하지만 그 빛은 소멸한다.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다. 지겹게 보고 또 봤다. 앞으로도 얼마나 더 봐야 할지 아주 까마득하다. 조바꿈을 하고 변주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래서 손쉽게 할 수 있는 일이 뭐냐? TV는 방송되는 것을 보기만 하지만 인터넷에선 능동적으로 정보를 찾을 수 있다. 내가 방송을 내보낼 수도 있다. 그리고 실시간이다. 광대한 정보의 바다다. 그는 허풍 관련하여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별 소득은 없었다. 사기꾼을 만나고 돌팔이에게 배울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러면 그렇지! 젠장, 괜히 글썽글썽 가슴 뭉클할려다가 말아버렸다. 그냥 말로만 어디 갈까, 여기 어때 저기 어때, 뭐 먹을까, 이건 어때 저걸로 할까, 우리도 뭐 하나 살까, 누구 만나기로 한 날이 아직...인가, 하면서 한껏 말로만 변죽을 울리고 준비만 하고 마음 들뜨게 한 후 딱 잔치 분위기만 잠깐 떠오르게 만들다가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고, 재무 상태 확인한 후 더 우울해지고, 휴일도 지나고, 사랑 마저 노을져버리는 일처럼 되어버렸다. 뭔가 있어 뭔가 있어, 조차 등장하지 못하고 영영 벤치 신세를 면치 못한 거다.
J는 할일없이 싸돌아다녔다. 정처없이. 옷깃을 스쳐 지나가는 사람마다 '저 남자는 여자복이 있는 사람일까, 아닐까? 저 아가씨는 뭐가 불만일까?' 같은 괴팍한 추측이나 하면서. 그리고 작자 미상의 시, 깜짝 인기는 끝났다. 그것은 냉정하게 막을 내렸다. 또한 2층에서 그분이 내려오신다는 이상한 캠핑카 역시 흥행이 주춤하다가 상품마저 흐지부지 잘 팔리지도 않았고, 거기서 더 나아가 마침내 차는 단종되고 여지없이 시장에서 퇴출됐다. 뻔히 예상된 결론이었다. 정해진 각본이었다. 다만 일부 유명인의 경우 1인 기획사나 1인이나 2~3인 사무실을 운영하는 예술가들의 경우에 아직 근근히 이용한다는 풍문은 전해졌다. 인파가 보이면 그곳에 차를 세우고, 풍선 바람 넣기와 안개와 음악을 트는 기능을 작동시키고, 운전기사없이 본인이 운전했으니까 본인이 운전석에서 다급히 2층으로 올라가서 문을 짠 하고 여는 재미 때문에! 그 외엔 뭐가 없었다. 에~이 난 또 누구라고, 그런 애교 섞인 야유만 남았을뿐. 그래서 그쪽 조명은 여기서 줄일까 한다.
그리하여 시선을 어딘가로 돌려야 하는데 그래야 하는데, 막상 안테나에 걸리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일화는 전해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딱, 뭔가 신호가 왔다. 천리안은 거리와 공간에만 한정되지 않고 시간까지 관여했고 초현실까지 관장했지만 꼭 초능력이 필요하지 않아도 그 친구가 지금 뭐 하고 있겠구나, 그런 느낌은 간혹 반갑게도 천리안 기능이 필요없이 우리에게 스스로 찾아와서 어떡하다가 홀딱 들어맞게 된다. 그 우연 때문에 지금 어느 음침한 장소에서 알렉스와 케빈이 편안하게 대담을 나누고 있다. 내용은 무엇일까? 속닥속닥 별 내용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멀리갈 것도 없고, 어렵게 생각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아마 둘 중에 하나다. 아니면 둘 다든가. 그러나 구체적으로 그건 뭐다, 그들은 그리 쉽게 직접 화법을 구사하지 않는다. 곧 친구들 사이에서 한 바퀴 돌았던 2층 버스 얘기가 잠깐 나왔다 사라졌다. 소문이 퍼졌던 것이다. 헛소동이 아니었으면 정말 일낼 뻔 했을 수도 있다고. 그래서 뭐랄까 아쉬움을 달랜다고나 할까 지금 여기, 어느 비밀스런 공간에서 그들은 단둘이 꼭 브로맨스를 정밀하게 시연하는 것처럼 칵테일을 마시면서 탐정 놀이를 하는 중이다. 어느새 세월도 초연해버렸다. 그러나 실은 이 친구들도 사건의 진상을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완전 헛다리 짚은 건 아닌가 몰라. 요컨대 착각이라기보다는 뭐가 뭔지 잘 모르는 엉뚱한 예측을 하고서 이미 '남의 다리 긁기'식 결론도 내렸다. 일이 어떻게 됐다는 타당한 논거는 측량할 수 없지만 그들의 마음은 충분히 측정 가능하다. 어조는 들떴고, 표정은 눈가에 살짝 집힌 옅은 주름살로 이미 가늠됐고, 그걸로도 모자라 다음과 같은 초단편 연기까지 펼쳤기 때문이다. 백태를 슥 슥 건드리는 듯한 몸짓을 곁들여 사태를 진단하는 듯한 화술과 함께. 꼭 추리소설을 읽으며 추론을 하는 듯이. 그러나 그들의 대화는 뭔가 폼난다. 이처럼. 그들은 특정 장르를 너무 탐했으니까.
「배역을 잊어도 품위를 잃지 말라, 자넨 그 말을 지켰다고 생각하나?」
「과연 언제 그런 격언을 숙지했었나조차 의심스럽군.」
「하긴 매번 대비책을 꼭 그대로 지켜야 하나 라는 의문에서 도망치긴 쉬운 일이 아니었지. 그땐 모두 역위임에 익숙하지 않은 시절이었지 않나.」
「왜? 밀정이라도 숨겨진 듯 하나? 자유가 그립나? (침묵) 그런데 말이야, 처음부터 끝까지 몰랐다가 막판에 자기 자신이 두더쥐였다는 걸 아는 건 어떤 기분일까?」
「글쎄, 별로 퍽 유쾌하지 않을 거라는 건 확실하겠지. 어쩔 수 없이 다음 패를 기다려야할 테고. 판에서 빠질 수도 없을 테고. 드러나진 않아도 진땀을 흘릴 테고. 발을 들여놓게 되면 그럴 수 있어. 어쩔 수 없는 경력이지 않은가. (침묵) 음 뭐랄까, 만장일치는 어째 어딘가 불안해. 보통은 플랜 B가 잘먹히지 않나. 그럼. 무턱대고 귀가 가렵길래 살짝 긁었을 뿐이고 숙녀를 배려했을 뿐인데 알고 보니 전자의 부위가... 잘못되고, 그녀는 완고하게 제 역할을 완수할지도 모르는 일이지. 아마도 미인계는 사라지지 않을 꺼야. 그건 어쨌거나 꽤 쓸만한 병법이지.」
「왜? 내가 사랑에라도 빠졌을까 봐? 지금 이 순간 제2의 누구라고 불려도 나쁠 것 같지 않네 그려. 어떤가?」
「뭐랄까, 나도 내 기분을 잘 모르겠어. 미리 예상할 수 있는 농담이니 과히 흡족한지 아니면 뜻밖이라며 놀라는 연기라도 해야 할지 말이야. 음, 가만 있자. 그동안 내가 너무 태평했던 걸까, 순진했던 걸까? 또는 지금도 변함없이 둘 다를 지켰다고 그래서 너무 태연하다고 너무 뻔번하다고 너무 인간미가 없다고 마치 로보트 같다고 핀잔이라도 들어야 하는 걸까? 당시 우리가 알던 미덕은 이젠 더 이상 그렇지 않게 됐어. 아마도? 완전히! 이젠 나도 은퇴할 때가 됐나 봐. 그 말이 자꾸 떠오르는 거 보면. 안녕히! 이거 이거 너무 분위기 타는 거 아닌가 몰라. 또 막 헷갈려. 저 익숙하지만 지겹지 않은 달콤한 노래를 듣다 보니 나도 모르게 그 의미를 또 직역하고 있어. 날 달에 보내줘 라고. 데려다줘, 일까? 같이 갈까, 는 아닐까? 참 나 이건 꼭 홍콩 보내다 같은 지나도 한참 지난 관용어랄까 퇴역하신 선배들에게 익숙했던 유행어 같아. 하지만 나도 얻은 건 있어. 세월만 가버린 건 아니란 말일세. 즉 내가 투자했던 역발상 주식은 둘 중 하나야. 반토막났거나 재미가 꽤 솔쏠하거나. 어떤 거 같은가? 우리도 다음 시기를 준비해야하지 않겠나, 미리미리. 나...의 포커페이스가 많이 늘었다고 나름 서둘러 진단했는데, 그 정도는 아닌가? 겸양이야 자부야, 아직 기울지 않았나?」
「뭔 페이스? 하하하, 자네 술이라도 한잔 사야 하는 거 아니야? 것도 거하게.」
「하하하, 순서가 그렇게 되나?」
「(동시에) 하하하? 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
이 친구들 상황극 한번 빠지면 통 헤어나오들 못한다. 정말 못-말-려! 중견 배우 제대로 뺨 치는군. 어디다 명함 내밀어도 썩 모자라진 않아 보인다.
그런데 이렇게 놀려면, 정말 이렇게 놀려면 추리소설을 대체 몇 권이나 읽어야 할까? 전문가가 옆에서 의도치 않게 혹시 그들의 대화를 엿들었다면 뭔가가 적잖이 궁색하지 않았을까, 그런 의문이 더 이상 숨지 못하고 고개를 슥 내밀고 싶었을 것이다. 나 항복이요, 하면서. 도무지 그 질문에 대답하기 어려웠을 테니까. 그러니까, 용건만 말하자면 대체 몇 권이냐고, 몇 권? 다른 말로 어떻게! 쉽게 말해서, 순도 높은 열의 때문에? 그건 합리적인 예상이 아니라 성의 없는 지레짐작이다. 와전되면 무례고 곧이어 어떤 질타를 감수해야 할 수도 있다. 어떤 분은 이제야 아셨을 테다. 구태의연함도 부러움을 받을 수 있음, 그것을. 지나가는 의미로다 참고로 한마디 하자면 구단 운영비가 최고가 아니어도 상위권 정도 되면 우승에 제일 가깝다는 통계가 있고, 다른 예술은 모르겠는데 부분적으로 어떤 학문의 경우는 학벌이 너무 좋다거나 너무 똑똑하면 작품이 (우선 독자의 문제고 청자가 이해를 잘 못하는 것이겠지만 아무튼) 간혹 좀 헤매는 것처럼 보인다. 개인적으로 정말 궁금한 의문점 가운데 하나다. 중간 정도 재능 더하기 진주 같은 땀방울, 이 중요하다고 하니까 아름다운 인생이라는 장기 레이스를 조급하게 다루지 말라고들 하니까 참고하도록. 이 양반이 지금 어디서......? 어줍짢은 변명이지만 굳이 첨언하자면 이와 같다. 곧 그분께서 전하라고 하시니까. 그분? 눈 한 번 껌뻑하면 그분이군, 수시로 그분이야, 누군지 몰라도 그분은 정말 정말 좋겠다. 하지만, 그래도 그 자리를 뻔트란 녀석까지 넘보는 건 너무했다. 뭔 대타도 아니고. 햄버거는 어디 갔어! 번트? 살짝 과했단 말이다.
그러고 보면 참 이상하지 않은가? 한 200년 전에 누군가가 자고 일어났더니 유명해졌다고 했고, 다시 대충 1.5세기 정도 지나서 미래에는 모두가 15분 동안 유명해질 것이다 라고 했다. 그리고 지금은 정말 그렇게 됐다. 유명함에 대한 매력은 간단히 정의내리기가 쉽지 않지만 누구나 그것 자체만을 갈구하고, 처음부터 최고와 변심을 동시에 염두해두고서 출발하지는 않는다. 세상은 놀랍도록 촘촘하고 그래서 일반적으로 딱히 유명해지는 것보다는 적당히 유복하게 인생을 즐기는 것을 더 귀한 덕목으로 삼는다. 인생을 알아갈수록 차츰 더. 어쩔 수 없이 그것이 주어졌다면 또 그에 따라 궤도를 수정하면 된다. 사람들은(그분들은) 많이 유명한 것은 물론이고 즉답성만 과도해도 피곤하다는 걸 잘 안다. 그래서 그들은 조금은 삶에 지치고 어쩌면 그저 조금 심심했기 때문에, 종이책과 유명함의 전 단계 즉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정말 좋겠네'같은 동요는 이젠 더 이상 어린이도 부르지 않는다는 데서 뭔가 찡한 감정의 동요를 느꼈기 때문에 아마도 그들은 상황극에 대한 재주가 늘었던 게 아닌가, 그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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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좋고 기분도 좋고 예감까지 좋은 어떤 날, 다른 곳에서는 어떤 즐거운 일상을 지내고 있는지 알아보자.
조니는 나비 넥타이를 매고 제비복을 입고 음악회에 갔다.
마크는 집에서 책을 읽으면서 지내고 있었다. 오노레 드 발자크의 잃어버린 환상.
하워드는 NC에 갔다 왔다. 꿈에서 어떤 지령을 받아서 그 확인차 겸사겸사 갔는데 허탕만 쳤다. 예지몽이 아니라 개꿈이었다.
제임스는 뭔 짓거리를 하는지 레이더에 잡히지 않지만 예상하자면 혹시 어디 이상한데 가서 블랙잭을? 그리고 닉은 지금 달랑 한 문장으로 설명하고 넘어갈 계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지금 시점은 닉이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닉, 그는 사실 전문가였다. 조용한 고수. 가짜 다큐멘터리 제작자. 그가 만든 작품은 조금 빈약한 듯 하지만 적어도 가짜라고 의심할 수 없는, 절대 그럴 리 없다는 신뢰감을 부여해주어 아예 의심조차 해볼 수 없는 수준의 영상을 만들어내는 어엿한 예술품이었다. 그가 만든 작품을 보고 나면 꼭 고급스러운 농담이 이따금 살면서 간혹 떠오르는 것처럼 눈을 감아도 아른거리는 그 모습이 딱 1년 간다고 한다. 그래서 항간에서는 그의 별명은 벌써 1년, 이었다. 얼굴은 면사포? 장막에 감추어져서 그 궁금증만 증폭시켰다. 업계의 이단아란 것이지. 믿을 만한 정보원으로부터 얻은 정보다. 사건의 전말을 요약하면 이렇다. 일단 제임스의 아이디어가 조니에게 넘어간 후 그건 한 바퀴 돌고 나서 닉이 바톤을 넘기지 않은 것이다. 닉은 그 바톤을 제임스에게도 조니에게도 넘겨서는 아니될 것 같았고, 또 실제 넘기지 않았지만 일은 이상하게 가는 말은 있었는데 오는 말은 없는 것으로 모두 그렇게 알고 있었다. 즉 닉은 시간을 끌 대로 끌었다. 꼭 일상적으로 지켜지지 않을 약속을 하는 것처럼. 언제 식사 한번 같이 하자, (빌려가면서) 언제 줄께 뭐할께 쓰고 줄께 읽고 줄께, 나중 내가 다시 전화할 께, 그처럼. 그냥 그려려니 하고서 모두 잊었다. 그 일을. 뭔 일이 있었는지도 잊었다. 따라서 단락은 닉만 심사숙고하며 대책을 강구하는 단계로 접어들었다. 한밑천 잡은 것도 아니고, 길흉화복을 결정할 수 있는 전권을 장악한 것은 아니지만 어떻게 하든 살짝이나마 애들이 놀랄 차례는 자신을 정할 수 있었다. 어떤 방법으로든.
닉은 처음엔 장난이었는데 어느 시기를 지나다 보니 그건 더 이상 장난일 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는 거짓으로나마 타인을 감동시켜보고 싶었다. 솔직히 그 매력에 빠져버렸고 중간에 멈출 수 없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것, 그건 진짜 요술이었다. 환상이었다. 신비주의는 바로 그것이었다. 기적이 먼 데 있지 않았다. 자신이 하는 일은 교묘한 가짜였지만 결과는 원대한 진짜일 것이라고 믿었다. 자기도 놀랐다. 재미삼아 몇 번 해봤는데, 좀 더 쓰면 몇 년? 착실히 연습했는데 그랬는데 재능을, 그보다는 그 순간에 대한 즐거움과 몰입에 따른 순수한 기쁨과 뭔가를 만들고 싶은 욕구 그 참을 수 없는 환희를 어쩌다 발견한 것이다. 당분간은 절대 변치 않을 열정. 옛날에 못다 이룬 꿈이 변신해서 되돌아온 것이다. 놀랍게도! 어떻게 이럴 수가, 그런 것이다.
「아직 모르고 있겠지? 말해주지 말까? 그럴까? 그러면... 안 될 꺼 같은데. 아니야. 못할 거 없지. 왜 안 돼? 물론, 처음에는 무척 실망할 수도 있어.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슥 웃다가 팍 터지는 거야. 완전 빡! 빡! 정말 뻥~뻥~ 터지지는 않겠지만 시간이 지났으니까 그 미소는 적어도 썩은 미소는 아닐 거라구. 어쩌면 약간, 아주 약간 불쾌할 테고 아마 처음에는 당혹스러웠다가 금새 기분이 풀린 다음 다시 분위기 좋아지겠지. 그래도 쉬운 길을 가는 게 단순하고 나을 것 같긴 한데, 또 너무 쉬우면 재미없잖아?」
닉이 생각한 처음의 기획 의도는 이와 같았다. 그랬다. 자신감 불어넣기. 격려하기. 응원하기. 기쁘게 해주기. 그리고 웃기? 놀기? 깜작 놀라기, 놀래켜주기. 마지막 잎새, 따라하기? 그러나 해피엔딩 추종하기. 꼭 그처럼 활기를 얻고 기운이 충전되고 새 희망을 읽지는 못했을지라도 몇몇 친구들은 이미 이와 같은 생각을 품게 된 것을 보면 어쩜 절반은 성공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런데, 닉이 꾸민 일은 대체 무엇일까? 대관절 그게 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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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뭘 감추고 있는지 몰라도 꼬인 관계를 풀자면 우선 틀린 맥락, 엉터리 구성, 억지 기법 가운데 딱 하나를 선정하는 게 중요하고 그것의 적시는 바로 지금일 것이다. 현재는 그것이 급선무다. 처음에 관건이 되었던 하나의 부탁은 한 바퀴를 돌았다고 했는데, 어떻게 그것이 한 바퀴를 순탄하게 순환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다시 몇 가지 의문점을 불러올 수 밖에 없다. 하나를 꼽았는데 다시 몇 가지로 의문은 파생되었다. 요컨대 그건 바로 이것이다.
첫째, 한 바퀴 돌았다는 사실 여부는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다. 깔끔한 선서, 없었다. 간접적인 의미 전달도 부족했다. 막판에 닉이 조니에게? 어떻게? 왜? 그것은 없었다.
둘째, 그런데 어찌하여 중간에 조니가 제임스에게 <그분 2층 버스> 제작은 역부족이라는 의사를 전달하게 되었을까? 미스테리다.
셋째, 중간에 조니와 제임스가 만나서 TV로 봤던 <그분 2층 버스> 유행이 진짜였을까? 그랬을까?
넷째, 넷째? 말 재롱은 그만 멈추고 간략히 정리해보자. N이 가짜 다큐멘터리를 완성한 후 조니에게 알리고, 조니와 제임스가 만나자마자 그들은 닉이 버튼을 눌러서 재생시켰던 방송을 봤다는 것으로. 간단하군!
그러나저러나 거 참 말 많네!
난 또 뭐라고! 별 거 없네, 에이~ 그게 뭐야? 참 나, 정말 뭔가 있는 줄 알았자나. 이런 삐─삐─! 순도 높은 뻥에 수준 낮은 구라구만, 그런 거짓 이야기 누가 못해? 공짜라면 몰라도 아니라면야, 흥! 차라리 예고편에 속는 게 나아. 아니야. 이젠 더 이상 광고에도 속지 않을 꺼야. 시간 가는 줄 몰라? 시간이 아까워, 엄청. 속으면 안돼. 절대로. 설마 이미 허풍 대회 나갔다 온 거 아니야? 그럴 리는 없겠지만 끝까지 긴장을 풀면 안된다구. 언제 어떻게 돌변할지 몰라. 제대로 돌팔이야 제대로 돌팔이. 그런데 아직 뭔가 남은 거 같은데? 닉이 꾸민 일은 밝혀졌고, 마지막으로 뭐가 남았을까, 아, 그것이 대체 왜 절반의 성공이란 것이지, 라는 의문이 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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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바로 그들의 최근 관심사와 주의 깊은 취미, 감성적인 호사와 멈출래야 멈출 수 없는 할일이 바로 그 답변을 대신할 것이다.
그것은 블로그라고. 그것은 그들이 새로 올리고 싶은 컨텐츠를 발굴한 것이라고. 실제 발생한 일, 일상에서 얻은 착안, 매일 겪는 일상, 이걸 잘 다듬어서, 부풀려서, 과장해서, 거짓으로 진짜인 듯 사실인 것처럼 가짜 환상을 만들어볼까?
바로 그것. 마치 실제인 것 같이 글로 써서 블로그에 올릴까? 한번 해 봐? 어쩌면 재미있을 거 같은데! 실패해도 괜찮고, 썰렁해도 상관없으니까.
그런데 그런데, 에고머니나! 아, 꼭 대회든 행사든 잔치 다 끝나고 나서,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뭐합니다 라고 인사 엽서를 준비하는 그 찰나에 꼭 느즈막히 자기가 주인공인줄 알고 등장하는 인물이 있지. 누가? 바로 그분이! 2층 버스는 타고 오지 않으셨군. 내려주고 가신걸까? 몰라. 관심없어. 그러든가 말든가. 그래도 뜸은 들이지 않으시는군. 곧바로 그분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는군요. 깃을 세운 외투, 모자, 얼굴을 가린 걸로 모자라 안면에 뭘 칠했나? 아무튼 대체 뭔 할말이 남았는지 그분께 한번 들어나 봅시다.
「내가 너무 경솔했어. 뭔가 천재성이 새록새록 살짝이나마 엿보이기는 했는데 그를 미리 거두지 않았으니. 내 불찰이로다. 그때 진작 N을 수제자로 거뒀어야 했는데, 엄한 사람의 감언이설과 교태 더 나아가 아양과 거짓 웃음에 속아 넘어가가지고 기회를 놓쳤단 말이야. 그럼 왜 하필 그들은 내 귀에 마법의 속삭임을 불어넣어단 말인가? 시작은 그것이 분명해. 마침내 이성과 냉철한 논리력에 뭐가 씌여버렸지만. 눈에 콩깍지가 씌인다는 말이 바로 이런 걸 보고 하는 말이로군. 음, 어쨌든 대회는 열리지도 않았고 그 무엇의 시작도 끝도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여보게 형씨, 그럼 질문 하나만 합시다. 아, 아니오 아니오. 딱 두 가지만 물어봅시다. 거의 마무리되는 마당에 답은 나왔지만 도저히 확답을 구하지 않으면 참지 못하겠다는 그 애타는 심정, 그 처량한 측은함 때문이라오. 첫째, 허풍 세계의 숨겨진 진정한 실력자는 그럼 N이란 말이오? 그러요? ...(침묵)... 답변하기 곤란하면 두 번재 물음에 먼저 답해도 괜찮소. 다만 째깍째깍 시간은 쉬지 않고 속절없이 흘러간다는 걸 기억하길 바라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꼭, 그 말을 듣고 싶소. 변함없이. 왜요? 처지가 바뀐 것 같소? 주객전도라도 일어났을 까봐? 거야 두고 보면 알테고, 하던 얘기나 마저 합시다. 음, 불현듯 떠오른 생각이지만 속을 터놓고 말하자면 둘째가 더 중요한 논제인 듯 하오. 그것은 이렇소. 둘째는 이러하오. 혹시 혼란을 일으킨 장본인인 누군가가 N에게 최면을 미리 걸어놨고, 때문에 그는 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하고 조니에게 거짓 고백을 했고, 따라서 N은 결론적으로 J의 허풍 머쉰이 아니었나, 그것이 못내 궁금해서 잠을 이룰 수가 없단 말이오. 제발, 부디 아는 만큼 가르쳐주었으면 하오. 내 그대의 관상은 물론이요 타인에 대한 중간 난위도의 조종술도 가르쳐줄 용의가 있단 말이오. 내 추정이 맞다면 닉이 걸렸던 일시적인 최면, 그건 결코 초보적인 기법은 아니지만 썩 어려운 기술도 아니라오. 진짜 그 분야 딱 한 명의 최고 권위자는 바로 내 스승이었다오. 제자는 단 두 명이었고. 그 가운데 한 명이 바로 나란 말이오. 알겠소? 어떻소? 타인의 마음을 조종한다, 구미가 당기지 않냔 말이오? 허풍 머쉰인가 뭔가에게 한번 밀리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런다오. 난 몹시 초조하단 말이오. 매우 심각하단 말이오. 그것이 내 솔직한 심정이라오. 물론 덤으로 닉이 걸렸던 최면술의 고급 단계까지 내가 아는 모든 걸, 아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일단 자리를 옮겨서 차분하게 심도있는 담화를 나누는 게 어떻겠소? 일단 맛배기로 핸드폰처럼 생긴 이 기기를 보여드리겠소이다. 어느 정도는 의지를 조정할 수 있단 말이오. 알고 나면 꽤나 신기할 거요. 상대방의 마음을 상하로 들었다 놨다, 앞으로 뒤로 밀었다 당겼다, 내 품에 쏙 안기도록 쥐었다 폈다, 그게 다 가능하단 말이오. 어떤가요? 알고 싶지 않소? 여기 이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된단 말이오. 시간 설정도 당연히 되구요. 이게 보기엔 이래봬도 보통 녀석이 아니란 말이오. 뇌파을 진단하는 기능으로 시작해서 알파파, 세타파 그리고 그, 음, 어 그, 그 은밀한 기능까지 모두 가능하다오. 모두 다 말이오. 당연히 세간에 알려지면 곤란한 기능이지요. 네, 그럼요.」
뭐야? 저런! 궁금하긴 뭐가 궁금해? 안 나와도 될 뻔 했구먼. 뭔가 멋진 명대사를 그것도 길게 낭독해주실줄 알았드니 결국 하시는 말씀은 자기도 그게 궁금하다? 믿을 놈 하나 없는 세상이로구만, 얻을 게 하나 없는 강연회야. 소개와 안내와 세상의 말과 글은 통 믿을 게 못돼, 다 뻥이야 뻥! 그분은 끝내 오시지 않고, 왔다는 사람은 가짜였고, 축제의 마지막은 결국 맥빠지게 허당이 장식하고 마는군. 은근한 예법도 모르고 아주 광고를 해라 광고를 해. 아, 하늘이여! (눈을 지긋이 감고, 고개를 젓히고......)
정말 여기가 끝인가? 그럴까? 그렇다. 밑도 끝도 없이 내내 뭔가 나오는 듯 나오는 듯 하다가 종내는 뭔 머쉰? 뭔~ 머쉰~? 허풍 머쉰? 참 나 뭔 글 같지도 않은 걸 가지고, 기가 막혀서 말이 다 안 나온다. 그런 게 진짜 있어? 많이 봐줘서 최면이야 걸린다고 가정해도, 그 다음에 아 나 이런 이거 이거 순 픽션이구만, 마술적 사실주의도 사실적 마술주의도 사실-사실, 마술-마술도 아닌 뭐 아무 것도 아니네. 대회 나갈 필요도 없겠어.
그러나, 에이 속았네, 라고 하긴 아직 이르다. 못다한, 할 수 없는, 늦어버린 사랑고백 같은 이 한마디 때문에.
이만하면 추리가 아니라 추측소설이라 불러도 괜찮을지 아닌지, 통 감이 오지 않는다는 말씀.
송구스럽다. 고개 숙여 사죄드리는 수 밖에. 다음을 기약하며 이만 줄인다.
끝으로, 엄밀히 말해서 이 이야기는 실화를 기반으로 한 소설이다. 일부 내용이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극히 일부 내용만. 이름이나 몇몇 명칭 같은 것만. 어디까지나 실제 있었던 일이다. 분명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이야기다. 누가 뭐래도 등장 인물들의 생각은 거의 모두 사실이며 진실이다. 추호도 의심할 수 없는 닉이 만든 다큐멘터리, 그것까지도 진위 여부를 판별할 수 있는 근거 자료는 숨길 수도 감출 수도 없을 것이다. 태양을 손바닥으로 가릴 수 있을지 몰라도 그들의 경험은 도저히 부정할 수 없는 일이다. 벌써 2차적으로 겪은 독자의 간접 체험, 그것만 가지고도 명백히 빼도 박도 못하는 근거가 된다. 결정적 단서 1호, 증인 2호, 증거 3호등 기막힌 장기 최면술과 쉬쉬 하며 비밀리에 쓰인다는 인적-물적 허풍 머쉰까지 근거는 수두룩하다. 그것은 어딘가에 실존할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라 이 친구들이 그간 작성했던 또 앞으로 발표할 소설들, 과연 거기에 거짓이 있을지 꽤나 의심스러운 일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