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 80

from 소설 2016. 9. 15. 19:01

   ①
   여름에서 가을로. 여름도 아니고 가을도 아니고. 여름이면서 가을인 시기. 그냥 콧물이 비교적 유난히 자주 나오는 환절기라 부르면 되는 때 나는 집에 콕 박혀 있었다. 너무 재미있고 엄청 즐거운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할일이 있었는데 그게 뭔가는 딱히 기억나지 않았으나 뭔가를 완수했다는 해방감 같은 건 희미하게 남아있었다. 그리고 집에서 백조의 호수 고화질 영상을 보면서 졸다 깼다 졸다 깼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아침에. 그것도 정장을 입고서. 청보라색. 은은한 우윳빛 나비넥타이를 하고서. 게다가 머리카락은 올백으로 넘기고. 혼자서. 즉 뭐가 꿈이고 뭐가 현실인지 잘 분간할 수 없는 괜한 짓을 벌였다. 흥미진진한 사실주의와 환상적인 상상력의 절묘한 조합 바로 그것은 내 삶, 이라고 한다면 그건 어디에 명함을 내밀지도 못하는 공상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어디 허풍 대회 같은 행사장 같은 곳에나 기웃거려 볼 걸 그랬다 라고 생각했다. 따분했으니까. 심심했으니까. 기대할 일이 없었다. 무기력했다. 코 끝이 찡할 일, 당연히 없었다. 가슴이 설레고 마음이 사무치지도 않았으니 정상이었다. 그런데 왜? 뭐가 왜? 뭐랄까 너무 정상이니까 어떤 비정상적인 상태랄지 우중충한 일상을 탈출하고자 하는 동경심을 키우고, 과감하고 때론 경솔하게 책상 밑 버튼 같은 것을 찾게 되는 것일까? 다른 각도? 색다른 만족감? 동심의 세계로? 앨리스가 많이 늙었어요? 허풍 대회?
   나는 쓸데없는 망상과 헛생각을 모두 물리치고 집에서 오전에 캔 맥주를 딱 하나만 마신 후 일상적으로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인터넷 세계를 떠돌고, 작품 구상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혼자서 놀이동산에 가도 흥겹지 않을 테고, 여행을 가도 얼마 되지 않아서 아 집이 좋구나 라고 한탄만 하며, 실망할 일과 미숙한 소설과 지루한 영화만 애써 찾는 듯 하여 뭐 새로운 거 없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 하루가 가고 저녁이 됐다. 개연성 없고 엄청 작위적인 작품 소재만 찾다가 가식적으로 고전음악을 듣고, 탄탄한 구성력 하나 없이 하루가 훌쩍 지나가버렸다. 워 이런 뭐 한 것도 없이 벌써 일요일 오후 3시야? 주말이 화살처럼 날아가버렸다는 그런 기분. 그러나 그 하루가 딱 끝나지는 않았다. 드라마는 2부가 있고 쇼는 본 편이 있으며, 사랑은 다음 상대가 훨씬 의미심장할 수 있는 법이다. 포기하기엔 이르다. 광고와 제품이 동일할지는 사용해봐야 아는 것이고, 식을 치른 후에 본 경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야행성 동물이 어두워지기 시작하면 기지개를 켜며 몸을 푸는 것처럼.
   그러나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복권을 사는 거 아니겠나. 신나는 모험을 하게 될 것이라는 소망이 이루어질 가망은 거의 없다. 타인도 없고 나도 없었다. 불확실하다. 그래서 카드 게임을 하지 않는가? 예측할 수 있으나 그 예측이 들어맞을지 어디 한번 보자는 심정으로 지루한 낮을 도려내서 저편에 놔두고 허망할지언정 사랑의 묘약을 찾아 고혹적인 탐색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막판 반전을 고대하느라 카메라와 녹음기를 챙기지는 않았다.
   나는 드디여 황혼 무렵 외출하는 데 성공했다. 성공? 그렇다고 정염에 불타올랐다거나 이상한 제목의 영상물을 은유적으로 빗대어 뭘 시도해보는 것보다는 더 나은 표현 같다. 그만하자. A에서 B로 나갔으면 그만이다. 일단락, 됐다.

   ②
   그러나, 유난히 노을이 아름다운 저녁 즈음 내가 바깥에서 했던 일은 다름 아니라 쇼핑이었다. 뭐 대단한 탐험을 나선 것도 아니고, 남남서쪽에서 오신 귀한 호인과 귀중한 만남을 성사시키지도 않았고, 새로운 취미에 병적일 정도로 집착하지도 않았으며, 그저 과히 나쁘지 않은 시간 보내기란 것은 결국 물건 사기였다.
   풍선 바람 빠지는 소리가 꼭 들리는 것도 같고 아닌 듯 하면서 재차 여운을 남기고 실체를 알 수 없는 잔상이 자꾸 날 현혹시키는 듯 뻔질나게 자아를 괴롭혔지만 난 돈의 힘 때문인지 적당한 소비 생활 때문인지 기분이 좋아지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었다. 절대로.
   내가 그날 산 물건들은 이랬다. 은색 물뿌리개, 레몬 모양 동전 지갑, 작은 삽, 낙타털과 울과 캐시미어로 만든 스웨터, 멋진 베레모, 하이브리드 운동화 어쩌고저쩌고, 핑크색 쌍안경 울트라버드 8X20 빨강 스티커, 투도르 일회용 카메라, 조 말론 양초, 바레이도 향수, 은색 가스버너, 양털 슬리퍼, 그리고 깃털처럼 가벼운 접이식 의자를 샀다. 난 미쳤기 때문에 아무거나 막 산거 같다. 정작 필요하지도 않으면서. 실지 원하는 건 묘한 감동이었고, 듣고 싶은 말은 <아, 쫌!>이었으며, 하고 싶은 일은 다른 게 아니라 바로 그거-였다. 으쌰으쌰! 으쌰으쌰가 뭔지 모르시지는 않을 테고, 음. 뭐랄까 다시 생각해보니 내가 근래 갖고 싶은 건 하나의 경험이었다. 일시적 견지에 따른 지속적인 경험제는 충분하니까 장기적 관점에 근거를 둔 일시적인 경험제를 원했다. 신선한 추문과 결렬된 꿈과 불쑥 찾아오는 불운은 없었다. 지금 내게 없는 건 뭐고 없는 것 가운데 원하는 것은 이것과 저것이구나, 그 가운데는 도저히 헤어나올 수 없을지도 모르나 그렇다고 살짝이라도 충족되지도 않고 한없이 불만족 상태를 유지하는 애욕도 잠시 포함되었다가 그 목록에서 얼마 머물지 못하고 바로 떠나갔다. 그리고 암울한 권태에 둘러싸여 있다는 둥 뭘 해도 재미없다는 둥 퉁명스럽게 투정만 오직 투정으로만 필사적으로 일관할지라도 딱 하나, 오직 하나, 그분은 한 분, 진정 한 가지 원했던 분위기와 빠져들고 싶었던 기분과 눈꺼풀 뒤집어지는 느낌은 아마도 그것이 아니었을까 추측해보곤 한다. 꼭 뭔 30년 전의 못 다 잡은 대망이나 못 다 이룬 사랑과 야망을 부풀려 설명하는 듯 하지만 기껏해야 지금 나열한 품사들이 가리키는 시간은 불과 하루 안짝의 일이다. 그렇다. 그게 뭔 놈의 어리광이요 공갈 협박이란 말인가. 우울감이 지나치게 강조됐다. 내가 이렇게 과장하고 연기하며 감탄사를 남발하고, 형용사와 관형사를 남용하고, 특히 동사를 두 번 반복하는 인간이었나? 그러거나 말거나! 아무도 관심없는 일이다. 동네 아저씨요 행인이자 구경꾼일 뿐이다. 한심한 족속. 그래도 얼르고 달래서 듣고나 볼까? 숨겨진 사연은 뭔가, 사뭇 궁금해진다. 곧 어쩌면 실은 내가 갖고 싶은 것은 그분이 아니었을까?
   이 때 여기서 그분이란 유리병 안에 액체와 반짝이는 알록달록한 작은 무엇들과 성이나 배나 놀이기구가 들어있는 수정구? 그것일까? 아니다. 아닐 것이다. 나는 실제 바이킹 놀이기구를 원했다. 그러나 그건 살 수 없었다. 사면 사지 왜 못 사겠냐마는, 10년이나 그 이상 일해서 반재산을 몽땅 걸어버리면 뭐 그게 대수겠냐마는 그러고 나면, 사고 나면 에이~ 갖고 나니 별거 없네 에이~ 그럴 꺼 같아서 그건 소유하면 안될 것 같았다. 내 인생은 완벽해~ 그러다 퍽, 할 꺼 같아서. 숙취는 당해도 당해도 무서운 상대다. 그래서 나는 좋게 그날 범퍼카 미니 장난감마저 사버렸다. 그날 꿈에서 그걸 타고 동화의 나라로 떠나고 삼천 궁녀가 애타게 기다리는 어느 궁전에 도착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건 허황되지만 그러나, 아직 다가오지 않은 앞날이고 미래이자 꿈이었다. 분명 단꿈의 실현을 목도하기 전이었고, 내 님을 재회하지 않은 시련의 시기였으며, 직접 뛰고 보고 생각하고 매달리며 취하고 읽고 도취하며 열심히 뭔가를 해야만 하는 시절이었다. 불과 하루를 지나지 않아서 되돌아봤을 때, 여기서 저기까지 몇 발짝 얼마되지 않은 거리를 놓고 회상해봤을 때, 그 무렵 그렇게 매일 같이 별다른 일 없이 월화수목금토일 월화수목금토일 딱 이주일이 지났다.
   그러나 나는 우리의 무명 블로그가 유명으로 가기 전 단계인 저명에 살짝 접근했을까 말까 하는 바로 그 지점에 근접했을 때 나는 그런 흔한 인물 유형 하나도 글로 만들어내지 못했다. 여자친구가 지겨워져서 바람 피다가 끝내 일하는 직장으로 여자친구가 찾아와서 회사 정문에서 만나고 뺨 맞고 또 맞고 한 대 더 맞고 코피 팍, 바닥에 떨구어진 안경을 하이힐로 지근지근 바삭바삭 우지직 살며시 밟아버리는 일을 당하는 남자 주인공, 난 창조해내지 못했다. 나는 그 흔한 멜로드라마 하나 못쓰고 있었다.
   그러다 나는 클래식 기타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뭔가 새로운 취미를 가져야 삶이 즐거운 법이니까. 자신의 신선한 경험을 널리 주변에 알리고 새로운 일에 몰두하며 매사 진중하고 자상하며 말도 잘하고 고급스런 농담이 곧 인생인 그런 남자에게 여자들은 빠지게 되어 있다. 그것도 홀딱! 거기다 기타까지 잘치면 금상첨화, 말 다 했다. 그러나 정신 차리면 이미 늦은 거지. 어쨌든 나는 클래식 기타 강습소에 등록했으나 딱 3일 나가고 말았다. 그곳이 스파르타식 학원은 아니었지만 거기 분위기가 어째 좀 안 좋았다. 이름만 뭐뭐 아카데미였다. 자세한 얘기는 하고 싶지 않다. 지난 일을 반복하는 실수를 재현하고, 그 실수는 지난 일이 되고, 다시 지난 일은 뭐가 잘못됐나 헤아리고, 그렇지만 다시 그 일은 되풀이되며, 그러면 머리 아프다. 저 하늘에 두둥실 떠있는 별의 숫자를 세는 게 더 나은 일 같다. 저 별은 너의 별, 저 별은 나의 별. 하늘과 바람과 별과 너와 나와 문학과 영화 그리고 추억, 그런 거 이미 누가 다 해먹었을 것이다. 수차례 흔히 써먹는 수법이다. 남녀가 연애할 때. 어차피 실력도 늘지 않고 호시탐탐 배꼽보다 더 크고 탐나고 매력적인 부록에만 관심이 있었으니 잘 때려친 것이다. 그렇게 2주일 하고 3일이 더 흘러갔다. 그리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고 불가해하며 어디서 그 짝을 찾을 수 없을만큼 신기한 일을 맞닥드린 그날이 오고야 말았다. 그분을 고이 맞이하게 된 것이다. 와우!

   ③
   어른 동화, 뭐 그런 건가? 역시 미스테리 역시 판타지 하필이면 내가 주인공? 그래도 알고 보니 역시나 보나마나 이건 허구, 난 허당, 환상은 개뿔! 아마도 이렇게 예상했다. 처음에는. 즉 믿을 수 없는 일이라서 난 처음에 철저히 불신했다. 과연 이젠 헛것이 보이는구나, 그랬다.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바로 이것이었다. <대체 뭔 일이지?> 그러나 실제 꺼낸 혼잣말은 그렇지 않았다. 난 이렇게 말했다. <어쭈 이것 봐라~!> 그리고 잠재적으로 하고 싶었던 말은 이렇지 않았을까 라고 가만히 점지해보는 것을 뛰어넘어 거의 확실했다. 그래~ 그렇다니까 이런 진짜 환각의 경험이 없을 리가 없어 난 평생 기다려온거야 이제야 드디여 이제야 마침내 만나게 된거네! 바로 이와 같은 여유있는 허세로 찬연히 빛나는 발언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못할 건 뭔가, 하면서. 그러나 지금이니까 그렇지 그땐 재량껏 하고 싶었던 바램이자 받고 싶었던 부러움 같은 것이랄까, 어쩌면 희망 사항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무엇보다 멋쩍은 표정, 당황한 어조, 오매불망 주사야몽 언제라도 도망갈 궁리를 모색했던 것 같다. 아니면 상황에 걸맞지 않게 실은 이런 말을 내뱉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기억이 흐려졌다. 가물가물하다. 아무튼 많이 듣고 많이 읽었던 적당한 대사를 읊었던 듯 하다. 왜냐하면 비용편익을 따져볼 계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따지고 보면 누구나 일평생 단 한 번의 기적을 경험한다고 가정했을 때, 비로소 처음으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와 같은 기이한 일을 겪게 되는구나 라면서 마지 못해 눈앞에 벌어진 환영을 신임했던 것 같다. 아이쿠~ 잘 찾아왔군 오는 동안 고생이 많았지? 그래 좋아 그런 거지, 음 이젠 내게도 신비한 일 나타날 때도 됐다 라면서 일찌감치 나는 그 명언을 전광석화처럼 기억해냈다. 절대 뒤돌아보지마!
   아, 깜박했다. 내가 맞닥드린 기발한 사건, 깜짝 놀랄만한 입을 떡 벌리고 침을 한가득 흘리며 눈을 똥그랗게 뜨면서 선그라스를 벗자마자 레이저가 발사되고 입에서 화염방사기의 불꽃이 나가고 두 손바닥을 비볐다가 딱 펴서 손가락 딱 하면 진공청소기의 흡입력 그 오공본드 같은 대하드라마에 나오는 의형제의 결탁과도 흡사한 감성적 결합은 바로 이것이었다.
   얼토당토 않은 행성 A에서 B로 이동하는 일은 바랄 수 없으니까 그날 나는 혼자 멀리가기도 싫고 여러 사람들과 번잡하게 떠들석한 분위기에 휩쓸리기도 싫었기 대문에 옆동네에 아는 형씨가 스크린 골프장을 개업했다길래 그곳에 놀러갔다. 그리고 나는 한 연습실에서 혼자 골프를 즐겼다. 여기까지는 정상이었다. 그때는 어디까지나 사실주의였고 난 행인 1이자 어엿한 흥행작 하나 없는 삼류작가이자 블로그를 운영하는 시골 중년이고 장년이었다. 그때까지는. 나는 혼자 연습실에서 골프를 치다가 스크린이 반듯하지 않고 구겨져 있길래 그걸 펼칠려고 앞으로 갔다. 대충 쳐도 됐지만 왠지 편편하지 않은 그림이 거슬렸다. 평평하게 푸르른 초원이 보여야하는데 자꾸만 완성도가 떨어지는 화면 때문에 가상에 빠지는 만족감과 집중력이 떨어지는 것만 같아서 그냥 참고 넘어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쪽으로 다가갔고, 구부러진 스크린 첫의 오른쪽 하단을 잡아서 펼칠려다가 나는 그만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왜냐하면 스크린 천을 잡아서 살짝 폈을 때 그 안쪽에서 바람이 불어왔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람의 혼을 빨아들이는 듯한 기운을 지닌 듯한 바람이었다. 보통 바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스크린 천을 조금 더 열어보았다. 그랬더니 환한 빛이 비치고 연습실 스크린에 보였던 실제 골프장이 저 앞에 펼쳐져 있었다. 나는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곳으로 걸어들어갔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기억이 흐릿하다. 하지만 완전 필름이 끊긴 것은 아니었다. 약간 그래프 선이 내려가다가 다시 올라갔다. 그렇게 나는 잔디를 손으로 만졌고, 풀내음을 맡았으며, 풀밭에 누웠고, 또 다람쥐 한마리와 토끼도 봤으며, 한동안 그곳을 걸었고 구경했다. 그건 진짜 경험이었다. 진짜 경험.
   그런데 이상한 것은 첫째, 연습실 쪽은 해질녘인데 그 푸르른 초원인지 꿈의 동산인 진짜 골프장은 대낮이었다. 둘째, 어떤 속임수와 가상의 장치와 정교한 연출이 있든 없든 그 공간은 내가 아는 한 그만한 장소가 절대 들어설 수 없는 공간이었다. 즉 골프연습장 뒷편은 공터, 옆은 놀이터, 입구 쪽은 도로요 건너편이라고 해도 산이 있고 주택가와 조그만 시가지가 전부였다. 그러나 진짜 풀밭이었고 진짜 바람이 불었으며 그건 꿈도 아니고 소설도 아니고 블로그도 아니었다. 그리고 셋째, 그 실재 대낮 골프장에서 어떻게 다시 저녁 골프연습장으로 넘어왔는지 기억이 불분명했다. 어쨌든 나는 신기한 일을 체험한 후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나는 연구하고 조사를 시작했다. 그 가게 주인 형씨의 뒤를 캐고 그 땅의 지적도와 주인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동네의 변천사와 내가 만약 환각에 빠졌다면 왜 그렇게 되었는지 모든 경로와 빈틈과 온갖 헛점을 살펴봤다. 그러나 난 잘못한 게 없었다. 난 제정신이었다. 난 미치지 않았다. 바보도 아니었다. 그건 100퍼센트 실화였다. 믿을 수 없었지만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으나 말문이 막힐 노릇이었다. 그러므로 나는 실의에 빠졌고 괴로운 생활을 반복하게 되었다.

   ④
   나는 다시 심기일전하고 용기를 충전해서 그 골프연습장에 가봤다. 그런데 그 가게가 없어졌다. 깔끔하게. 깨끗이. 말끔하도록. 아 나 이거 도무지 무슨 일인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이래도 흥 저래도 흥, 도 아니고 난 마치 귀신에 홀린 것만 같았다. 그러나 사람이 이상해지지는 않았다. 아니다. 약간은 이상해졌다. 사람의 삶이 만화영화도 아니고 그 어떤 단서도 잡히지 않았다. 일순간 모든 게 부질없는 듯 여겨졌으며 난 정말로 꼭 뭐에 홀린 것처럼 시험에 낙방하고 사랑에 실패하며 인생에 실망하여 비현실적인 동화를 꿈꾸는 듯한 허무맹랑한 승부사가 된 듯한 최면감 때문에 몹쓸 방황에 빠져버렸다. 매사 갈팡질팡했고, 쓸데없이 돌아다녔고, 불필요한 빈 깡통을 모으기 시작했다. 폐지도 모으러 다녔다. 길을 걸을 땐 고개를 숙이고 걸었다. 누가 잃어버린 돈을 줍는 건 싫고 고대의 금화가 땅에 파묻혀있다가 빗물에 드러날지도 모르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주 떠돌아다녔다. 난 방랑자가 되었다. 낙오자로 모자라 몽상가라는 직함까지 추가하게 되었다. 평범한 삶과 묵묵한 일상을 아주 쩔쩔매며 어려워하곤 했다. 누굴 추궁할 수도 없었고, 방법도 없었다. 한 번 비현실을 보고, 한 번 신비를 만나고, 한 번 환상과 키스했기 때문에 내 삶은 한없이 뒤숭숭했다. 딱 1번에 중독된 것이다. 괜히 나는 정절이란 단어도 떠올려봤다. 다시 그분을 만나고 다시 그분의 교재를 읽고 다시 그분의 그늘에 들려면 어찌해야 하는가 그것만 생각했다. 내가 호박이 될 수도 없는 일이었다. 호박마차는 더더군다나 뗀지 오래됐으니 뭔가 궁리를 짜내고 묘안을 떠올려야 했다. 철저히 현실을 기만하고, 사실성과의 우정을 시치미뗐으며, 유심히 시간의 굴곡과 공간의 빈틈을 찾아헤맸다. 조금은 두려웠다. 그러나 기분은 좋았다. 희한하게 마음은 편안했다. 가끔 화도 났다. 기분이 오르락내리락했다. 지금 그리고 이곳이 더없이 너무나도 각별하다고 느꼈다. 애절하고 또 절박했다. 정말 그랬다.
   물론 부작용이 뒤따랐다. 그건 불찰이 아니라 한계 너머의 일이었다. 신비주의가 부각되었으니 다음 카드는 초현실주의였고, 마지막 패가 무엇일까 같은 생각은 할 겨를도 없고 할 필요도 없었다. 귀가 따갑도록, 아니 정정하면 몇 번 읽고 몇 번 들었던 몰입, 바로 그 미치도록 행복한 시절이었다. 그 행복이 그 행복인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부작용은 바로 이런 것이었다. 정확히 언제, 어떻게, 왜 그런 증상이 발생했는지 도저히 파악해낼 수 없었으나, 그러나 이상하게 멈출 수 없었고 그와 같은 현상을 벌이는 도중 묘한 쾌락이라고나 할까, 굉장히 작은 기쁨 같은 것을 느끼면서 뇌리에서 그런 음악이 들리는 것만 같았다. 발다사레 갈루피가 일생 동안 남긴 100여 곡에 이르는 오페라 가운데 제일 오묘한 정취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어느 서곡. 난 서곡으로 알고 들었지만 실재 그건 간주곡일 수도 있겠으나.
   깜박했군! 부작용은 이런 것이었다. 물론 반작용이라거나 자연스러운 전조쯤으로 여겨도 크게 어색하지는 않을 것이다. 의외로 그것이 더 옳은 해석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는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고 나서 관중이 모두 나가기를 기다린 다음 나 혼자 남으면 극장 스크린을 살피다가 극장 직원이나 청소하시는 분에게 핀잔을 들었다. 지금 뭐하시냐는 둥 여기서 이러시면 안된다는 둥 정말 그러면 곤란하다는 둥 대체 무슨 일을 벌이시려는 행동이냐는 둥 그런 말들. 스크린 뒤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또 집에서는 가만히 TV를 보다가 어쩌다 나도 모르게 점점 화면으로 다가갔고 그렇게 가까와지더니 그 안으로 들어갈려다가 브라운관에 쿵~하고 이마를 찧기도 했다. 이마가 이따만하게 부어올랐다. 한 번이 아니고 여러 번 찍었다. 쿵, 쿵쿵. 컴퓨터로 명작 영화를 보다가도 그랬다. 거북목 증후군을 유발하는 (본격) 에로, (정통) 멜로 장르 영화는 화면에 근접하다 멈췄다. 그리고 핸드폰은 물론이요, 길거리에서 시각적인 광고판에 다가가 부딪히기도 했다. 쿵-쿵-쿵! 그 뿐만이 아니었다. 나는 어느 공원에 들려 소형 회전목마를 탔다. 1번 타고 음악과 기기가 멈추면 내려서 그만 나와야 하는데 나는 계속 타 있겠다고 떼를 썼다. 마침내 나는 보안요원에게 끌려 내려졌고, 유치장에 잡혀갈 뻔 하다가 말았다. 나는 그 일을 불행 중 다행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건 다행 중 불행이었다. 왜냐하면 조금만 더 버텼다면 목마는 진짜 당나귀로 변하고, 난 그걸 타고 미지의 세계로 떠날 수 있을 것이라고 절실히 믿었고, 소망했고, 꿈꾸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연극이 절찬리에 방영중인 어느 소극장에서는 극중 중간에 무대로 뛰어들어가 문을 열고 배우들 옷 갈아입는 소품실에 쳐들어간 적도 있었다. 속옷 입은 여배우는 보지 못했다. 그날 나는 관중들에게 욕 바가지로 얻어먹었다. 또 이런 일들을 친구에게 말하고 상담을 했드니 이런 말을 듣게 됐다. 
   「넌 그걸 말이라고 하냐 농담이라고 하냐? 어? 어? 그걸 나보고 믿으라고? 어?」
   최근의 삶에 대해 나는 그렇게 느꼈다. 재밌지만 재미없네. 멀더에게 조언을 구한다고 했을 때 예상되는 성의와 시건방 떠는 태도와 더불어 전개될 대화는 대충 눈짐작과 눈대중으로 눈치껏 가늠할 수 있었다. 그래서 딱히 그에게 조언과 충고를 권고받고 싶지는 않았다.
   「뭔가 감동이 있었어.」
   「없었어, 라고 할려고 했던 건 아니지?」
   「그런가?」 그와 대화를 하기만 하면 난 말려들게 된다. 난 두루마리 화장지가 된다.
   「개가 놀아주라는데 놀아주지 않으면 큰코다친다, 그런 말 못들어봤냐?」
   「그럼. 못들어봤지.」
   「그래? 그럼 이번에 처음 듣게 된 걸로 하자고.」 도대체 쟤는 어떤 화법의 소유자고, 쟤 머리 속에는 뭐가 들어있으며, 쟨 뭔 생각을 하며 살까? 여자 생각? 온 종일? 걸핏하면? 알 게 뭐야!

   ⑤
   그래서 결국 나는 다시, 그 장소에 가보기로 마음을 굳혔다.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곳에 도착했다.
   그런데, 아뿔사!
   어머나!
   말도 안돼!
   어떻게 이럴 수가!
   세상에나 이런 일이, 오오!
   꼭 마치 시간을 되돌린 것처럼 그 자리에 스크린 골프장이 그전 그대로 멀쩡히 존재하고 있었다. 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그때 내가 길을 잘못 들었나? 아닌데, 아닌데, 아닌 것 같은데, 아마 아닐 텐데, 아닌가... 그럴지도 모르겠어, 음... 어쩌면 말이야. 그러나 맞게 찾아갔을 꺼야. 그래. 그러니까 이건 환상이야!
   나는 그 순간 수많은 번민에 급속히 빠져들었다. 내가 만일 C나 O, H 등 유명 대학 이름과 로고가 씌여진 티셔츠를 입으면 어떻게 되는 거지? 행정기관에 이름 변경 신청서를 접수할까, 몽이나 둥, 딱, 막, 얍 같은 이름도 한번 고려해봐야겠는데, 또는 레오나르도라는 새 이름으로 그냥 접수해버려? 꿀꺽꿀꺽 시원한 수제 생맥주를 마시기 위해 옆옆 동네에 있는 레스토랑 함부르크에 순시차 방문할까? 뭔 일이 생길지 누가 알어? 밤에 잘 때 양말을 한 백 켤레 걸어놓고 잘까?
   나는 쓸데없는 생각을 몽땅 물리치고 어서 연습장에 들어가서 뭔가를 확인하고 신비로운 통로로 들어가고 싶어졌다. 혹시 그곳에는 또 다른 내가 있는 것을 아닐까? 벌써부터 기대됐다.
   진짜 있었다, 내가! 조금 떨어져서 보니 그는 나인데, 그는 정말 비리비리했다. 행동이 뭐든 어설펐고, 촌스러웠다. 아무튼 거기 딱 도착했을 때 그는 막 스크린 천을 걷어올리고 불가사의한 미지의 공간으로 슥 들어갈려던 찰나였다. 꼭 내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난 그때 꼭 순간이 영원처럼 느껴졌다. 난 나를, 난 그를 따라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동안 수없이 봤던 작품들에서는 어떻게 된다고 했드라? 끝이 좋지 않던가? 공간과 시간을 바꿀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되었던가? 결말은 열렸나 닫혔나? 낯설게 하기가 많았나 낯익게 하기가 새로 떠오르는 추세였나? 신생 작품들은 거의 못봤는데 어떡하지?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하나도. 이건 꿈도 아니었고 소설도 영화도 아니었다. 따라가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였다. 평생 남 따라하기만 하더니만 마침내 따라가느냐 마느냐 라는 험난한 4차원의 대문에 떨구어졌다. 아무리 골몰해도 소용없었다. 시간도 없었다. 어중간한 망설임이 아니라 확고한 결단과 행동이 필요했다. 번듯한 조력자도 없었다. 모든 것은 혼자서 해결해야 했고, 직관을 따라야 했으며, 직감을 믿어야 했다. 혹시 첩자가 있나 뒤를 돌아볼 수도 없었다. 정말 어찌 해야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이번에는 진짜 에라 모르겠다, 도 통하지 않았다. 그러다 다리에 쥐가 났다. 그러나 잠깐 저리다 말았다. 도망갈 수도 없고 어떻게 발버둥칠 수도 없는 일이었다. 현실은 영화가 아니니까 상황은 슬로우모션으로 흘러가지 않았다.
   진정 사람이 신비를 맞딱드리면 어떻게 되는줄 아시는가? 평생에 한번, 아니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인생을 통틀어 발생할 확률이 아주 희박한 일을 마주하고 하필이면 자신이 거기서 주인공일 때. 난 모른다. 남의 일을 내가 어떻게 알겠는가. 여러가지 각각의 반응을 내가 무슨 수로 알겠는가. 드라마와 영화로 본 게 전부일 뿐.
   그건 그렇고 나는 그 무렵 이 일을 글로 써야하나 말아야 하나를 고민했다. 이 불가사의한 사건을 말로 누군가에게 전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를 아주 심각하게 따져보았다. 그 짧은 시간에. 이 설명할 수 없는 전대미문의 모험에 관한 교향시를 작곡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건 명백히 할 수 없는 일이니까 나 대신 그 일을 할 사람을 찾을 것인가 말 것인가를 진지하게 검토했다. 바로 눈 깜짝할 사이에 말이다. 어쩌면 그땐 시간이 느리게 갔는지도 모르겠다. 산술적으로 슬로우모션이라야 가능한 일이었으니까.
   다시 이야기로 돌아와서 시간의 흐름을 멈춤에서 슬로우모션으로, 다시 멈춤으로, 또 다시 슬로우모션으로, 그러다 이제는 드디여 재생으로 되돌려보자. 리모컨, 충분히 갖고 놀았다. 자, 우리의 꺼벙한 주인공이 어떤 철학적인 행동과 무슨 숙고할 만한 사고를 할지 하고 있을지 그리고 했을지가 궁금해지고, 알고 싶고, 무럭무럭 호기심이 자라고, 동심이 뭉개구름처럼 피어오르는 순간이다. 우리의? 우리의...? 넘어가자!

   ⑥
   나는 골프연습장에서 천으로 만들어진 스크린 모서리를 들어올리는 그 친구를 유심히 관찰하는 찰나 문에 달린 조그만 종을 건드리고 말았다. 그것은 오르골 소리를 내는 이상한 종이었다. 문이 꼭 고양이인 듯 여겨졌고 나는 그 문에게 방울을 단 생쥐가 된 것만 같았다. 그건 그렇고 그 때문에 나는 들키면 안된다는 어떤 무작정 떠오른 엄숙한 묵계 때문에 발가락이 떨리고, 등에 식은땀을 흘리며, 가슴이 떨리고, 코끝이 찡하고, 어쩜 눈물이 핑 도는 것을 느꼈다. 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내가 뭘 잘못했는가? 내가 뭐 도둑놈이라도 된단 말인가? 도둑이 제발 저려 아니면 닭 잡아먹고 오리발을 내밀어? 내가 왜? 그러나 나는 분명코 쫄았으니까 덜컥 겁이 나서 움찔했다. 설마 저 친구가 날 쳐다본다면 난 어떻게 해야 하나, 에 대한 답은 정해놓지 않았다. 그런데 저런~! 바로 그때, 그는 고개를 부드럽게 돌려서 날 쳐다봤다. 그리고 나는 무심코 나도 모르게 저절로, 반사적으로 고개는 물론 몸까지 슬그머니, 뭔가 어줍짢은 반응을 선보였다. 어딘가 모르게 이미 잠재의식에 그런 이론이 내재되어 있어나 보다. 즉 그는 어제의 나고 나는 오늘의 나니까 그와 나는 동기화되어야 한다, 따라서 그가 고개를 돌리면 나도 똑같이 돌려야 한다 그래야 한다, 그것이 맞다. 그러므로 난 바로 그것을 따랐고 실천한 것이다. 왜 그런 일 있지 않은가? 어지간하면 참을려고 했는데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서 한 소리든 한바탕이든 뭔가 할려고 차 문을 확 열고 차에서 내렸는데 어머나! 저기서 내린 상대가 도의적으로 95퍼센트 책임이 있고 정말 운전 뭣 같이 했어도 그는 완벽한 액션 영화의 주인공이었고, 완전 우람하고, 엄청 험상궂게 생긴 것으로도 모자라 가죽점퍼까지 입은 모습을 봤을 때 바로 그때 그 순간 슥 꽁무늬를 빼고 다시 차에 타시는 소심하지만 선량하고 매사 모범적인 시민이 된 듯한 일. 그런 것처럼 마치 정말 그런 것처럼 나는 온 몸을 돌리고 말았다. (진짜 그런 일은 드물게 발생한다. 저건 실화였고, 먼저 운전 뭣 같이 했던 무서운 역할은 내 친구였고, 걘 그때 가죽점퍼가 아니라 말끔한 수트를 입고 있었다. 뒷자석에 사람이 탔다면 그는 오락실에 앉아 조이스틱을 쥔 기분이었을 것이고. 그 친구도 다 인성이 있고 나쁜 사람도 아닌데 잘못을 시인할려고 내렸지 뭘 딱 할려고 내린 것은 아니었다. 일단 뒤따라서 내렸고 미안하오, 라는 한마디 말을 건네려고 내렸는데 먼저 내렸던 아저씨는 완전 스타일 구긴 결과가 됐지 뭐. 그럴꺼면 차에서 왜 내리셨지? 왜? 그럴만 했으니 그랬을 수도 있고, 쉽게 흥분했을 수도 있다. 항간의 속설이든 현명한 조언이든 이런 일은 남성 잡지에서 다루기 딱 좋은 소재다. 대체로 그땐 무조건 내리지 말라고들 한다, 그러면 큰일난다고. 그런 말 파다하다. 그러나 내렸다면 진짜 그땐 웃겨야 진정한 남자로 공인된다. 시간 뺐기고 기분 나쁘고냐 아니면 그 이상이냐, 그 차이 뿐이다. 그 시점 이후로 정상적인 생활을 하느냐 하루가 꼬이고 그 이상이냐, 그 차이 뿐이다. 이땐 염주 돌리기가 최고다. 천동설이 아닌 지동설을 따라야 하는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살짝 엇비슷하거나 앞부분까지만 비슷했던 경험, 저마다 많이들 떠오를 것이다. 굳이 내님도 아닌데 문을 열고 나가서 만나야 하느냐, 될 수 있으면 아니 가능하면 반드시 형식과 절차가 생략되는 게 좋은 극명한 하나의 예다. 어떡하다 보니 딱 내렸어, 그런데 다시 타자니 것도 뭐하고 안 타자니 그건 더 뭐하고. 칼을 뺐으면 무라도 썰어야 하느냐 마느냐에 관한 미담을 하나만 뽑자면 이와 같은 오 미안하게 됐소이다, 일 것이다. 그 말을 하거나 듣거나, 어느 쪽이든 피하고 싶은 역할인 건 분명하다)

   ⑦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지금도 뭔가 억울하고 무척이나 아쉽다. 혹시라도 그가 철가면을 쓰고 있었는지 누가 알겠나? 주사위는 던져졌다. 이미 한 공간에 같이 있는데 거울을 보듯 그 친구의 얼굴을 본다고, 용왕님의 용안을 대놓고 쳐다본다고, 나와 그 인간이 서로 대면한다고 설마 뭔 일이야 있겠냐마는, 내가 거기서 그 친구의 눈빛을 직시할 정도로 난 그렇게 얼굴이 두껍지 않았나 보다. 아마 나는 그 친구와 인사를 나눌 용기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그의 얼굴을 보면 꼭 뭔가 심란한 모험으로 모자란 무언가 크게 뒤틀린 착오가 발생할 것만 같은 싸늘한 직감 때문에 그와 내가 마치 연인처럼 시선을 교차한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궁금해도 어쩌겠나. 진짜 어떻게 생겼는지 낯짝이나 한번 봐야겠다는 욕구는 시간이 한참 지났을 때나 화사하게 피어오르는 깐족거림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당시 나의 욕망은 모호했고, 선홍색이나 적자색도 아니었으며 떳떳한 호감이나 반감조차 구별하기 힘들었던 듯 하다. 그렇다. 결국 난 그 친구의, 살면서 어쩌다 한번은 험한 말이 참다 참다 자동적으로 나올 시기가 있다면, 적어도 딱 한번 있다면, 진짜 그래도 된다면, 그건 지금이 아닐런지, 그렇지 않을까요? 결과적으로 난 그 친구의 쌍판을 확인하지 못하고 말았다. 아, 분하다! 아, 피가 끓어오른다. 분노랄까 자책감이랄까 어떤 회한과 비애같은 감정이 확 솓구쳐오른다. 팍! 파파팍! 그냥 쑥! 확! 아우~! 이건 뭐랄까 그런 어떤 반응을 이끌어내는 의사 표명과도 비슷한 일이다. 누군가 무슨 그랑프리를 놓쳤다며 분하다는 둥 더 유명해져야겠다는 둥 다음엔 기필코 1등을 하고야 말겠다는 둥 그런 약간 정제되지 않은 조금은 야성적인 심사를 글이나 말로 하면 그것이 뭐 그리 수심이 가득할 일이겠냐마는, 또 다른 누군가는 그런다. 아무래도 불편하고 거 좀 그렇다거나 목소리가 이상하다거나 하면서 딴지를 걸고 뭔가 떼를 쓰며 시비를 걸고 싶은 수군거림. 그거 숫제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럴 텐데 그러나, 원래 그건 사람에게 내재된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감정이고 보편적인 심리다. 그래서 격이 떨어지고 품위가 손상되며 수준이 낮은 반응을 이끌어내는 일이랄지 삶의 모순들은 어쩌면 인간의 생애에서 불가피한 일일 것이다. A 다음에 B가 있고, A가 B에게 그러나 B는 또 C에게, 그처럼 층위가 다르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사람이 인간계에서 사는 이상 집에서는 육식 밖에서는 채식, 나가서는 하이에나 들어와서도 늑대, 낮에는 개 밤에도 개, 고양이였다가 여우였다가, 모순과 부조리는 어딘가에 존재하고 물고 물리는 일의 연속이다. 여러 다양성과 그늘도 챙기는 선량한 사람들이 군집한 사회라하지만 막상 어떤 일이 내 일이 된다면 썩 편할 수는 없는 법이다. 절대로.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왜 그렇게나 그랬을까 싶은 일, 허다하다. 어쨌든 나는 그 친구의 얼굴을 확인하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 건재해서 기록을 남기는 것일 수도 있고, 때로는 후회도 하고 때로는 그걸 무용담으로 각색하여 언제 괜찮은 자리에서 잘 써먹을 생각도 하고 있다. 즉,
   내가 나의 얼굴을 피했다, 그래서 분하다, 이게 뭐 잘못된 일인가? 이걸로 난 지탄받고 등판에 주홍글자라도 새겨야 하나? 그때 난 비겁했다. 그건 지울 수 없는 진실이고, 어쩌다 윤색될지도 모르는 사실이다. 당시의 나는 대범한 사나이가 아니었다. 마법의 열쇠를 손에 쥐고 있었지만, 꼭 움켜쥐고 있었지만 난 차마 보석상자를 열 수 없었다. 어떤 여자와 하룻밤을 보내며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차라리 손이라도 꼭 잡고 잘껄 그랬나? 하여간 그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 것 같다. 어떤 기회? 스크린 천을 잡고 그걸 들쳐보다가...... 지금 시점에 설명은 생략하는 게 좋겠다. 그러고 싶다. 내 쪽에서 꺼낼 카드로 평범한 건 바닥났다는 공산이 우세했다. 남은 건 조커 밖에 없었다. 오, 조커! 내가 창안한 속담에 힘입어 낭패를 면하고, 어쩌다 이 풍선과 저 사탕을 다 놓치고 이제는 내 앞에 남은 건 다 녹아버린, 다 녹아서 흘러내려 식감을 떨어트리는 아이스크림 뿐이 날 반기는 게 없다고 하더라도 그건 어차피 최후의 만찬에 놓여졌다. 그렇게 됐다. 그럼 이젠 요술이 등장할 차례인가? 묵비권을 행사하겠다.
   오오! 흥청망청 잊어먹고 지나갈 뻔 했다마는 그때 뭐랄까 어제의 나, 골프연습장 스크린 커튼을 들어올리다가 무슨 소리가 나서 날 쳐다봤던 내가 있었고, 그의 시선을 피해서 고개는 물론이요 몸까지 돌려버린 오늘의 내가 있었던 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내 앞에는 내일의 나가 있었다. 어찌 보면 그 인간이 그냥 골프연습장 직원이든가 나와 친분이 있는 그 가게 주인 형씨라거나 또는 그의 친구의 친구의 친구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는 아마 나-였을 것이다. 내가 그의 어깨를 탁 짚어서 확 댕기고 그의 마스크를 확인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다지 분통터지는 일은 아닐 것이다. 달리 생각하면 그럴 혐의는 다분하지만 나는 다른 방식으로 다급했고, 독창적인 청춘의 방황을 선택했다고 보는 게 어쩜 더 저변에 깔린 저의를 포함한 심리 파악에 대한 줄거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그래, 난 등신이었다. 나는 의리도 없고 타락한 존재였다. 불의를 회피했다. 틈나면 고개를 돌렸다. 그게 습관이 되서 그때도 고개를 돌린 것 같다. 나는 나를 믿지 못했고 인생도 몰랐다. 그러면 안되는데 중요한 순간에 나는 어제의 나를 모른 체했고, 내일의 나도 못본 척 했으니까. 하지만 그 때문에 오히려 비장의 카드는 환기되었고, 동심처럼 떠올랐으며, 그것이 구체화되었고, 악마의? 헛소문의? 666 바코드가 아닌 777 잭팟을 터트릴 찬란한 환희의 절정 그 꿈 같은 미지의 세계에 사뿐히 안착할 수 있는 가능성이 좀 더 부풀어올랐다. 대단한 신세계를 발견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러나 나는 비로소 희망을 보았다. 사과나무도 보았다. 이상하게 가슴이 커졌다. 풍만한 쾌락주의도 잠깐 생각했다. 보일락 말락 엷디엷은 잔잔한 미소도 머금었다. 때문에! 따라서 이제는 어떤 행보를 내보일지 대충 예상이 가야만 적극적인 책읽기를 실천하는 것이 된다. 당신께서는 이미 아시겠지만 내가 그대의 손바닥 위에서 피규어가 되어 재롱부린 것 밖에 더 되겠는가? 아니 그런가?
   그러므로 그 후 나는 결국 어느 골프장을 알아냈고, 그곳에 드디여 취직했다.

   ⑧
   그래서 어떻게 되었을까? 그러다 참다 참다 나는 비밀의 통로는 커녕 반반한 개구멍도 알아내지 못하고 골프장을 한 달 만에 때려치웠다? 그랬다? 그랬나? 아닌가? 긴가민가? 이 골프장이 아니었나? 남의 다리 피나게 긁었나? 내 다리가 아니었나? 미안한데? 뭐야, 남의 집 잔치였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기껏 해봐야 물음표로 남에게 묵직한 짐을 전가시키고, 타인에게 난해한 문제를 떠넘기기만 했다. 딱 떨어지는 단정한 마침표와 애절한 감동은 물론이요 유쾌하고 상쾌하며 통쾌한 느낌표는 대체 언제쯤에나 원숭이 재주부리듯 시의적절히 구사할 수 있단 말인가? 모르겠다. 통 모르겠다. 더듬더듬 감도 못잡겄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삼천포로 빠지지 말고 긴 말 필요없이 골프장을 때려치웠나 안 때려치웠나? 어허~ 벌써 어법이 둔탁하고 화술은 녹슬어서 나그네의 마음은 커녕 아낙네의 옷고름을 제 손으로 풀게 하는 마법은 정녕 우러러 볼 수 밖에 없는 신기한 재주꾼의 묘수에 지나지 않는구나. 이미 만 뽄새, 본새부터 틀렸다. 사직서를 제출하다, 이직했다, 그게 아니더라도 일을 그만뒀다로 정갈하게 매듭지을 수 있는 문제를 가지고 이 사단을 벌였으니 어느 세월에 여인의 마음을 녹이고, 어디 가서 여심을 진공청소기처럼 모조리 흡수한단 말인가? 품질 좋은 스펀지 마냥 남의 재능을 단박에 복사하고 더 훌륭하게 개량하기는 고사하고, 이미 있던 능력치도 바닥나고 이끼가 낄 판이로구먼! 아~ 뒷짐지고 눈을 지긋이 감고 45도 몸을 틀고 30도 쯤 고개를 들고 머리 위로 수증기 부글부글 푸쉬식 스스슥 지지직!
   빠져든다 빠져든다, 빠져든다 빠져든다!
   빠져들긴 뭘 빠져들어?
   나는 아직 골프장 일을 때려치지 않았다. 난 그곳에 있으면서 성실히 일했다. 지금이 승부수를 띄워야 하는 시기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나는 출퇴근을 마다하고 이젠 골프장에서 살기로 했다. 어쩔 수 없이 물이 들어오지 않았는데 노를 먼저 젓게 됐다. 우수 사원 표창은 못받았다. 역부족이었다. 성실했는데 성실하기만 했다. 그리고 일하면서 몇몇 부서를 옮겨다녔다. 때때로 일을 너무 잘해서, 때때로 일을 너무 못하거나 무기력해서 또는 회사 사정상. 그러다 어떤 날은 캐디 일도 했다. 전문성은 부족했으나 어떡하다 결원이 발생하고 임시로 직책을 떠맡게 됐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일란성 쌍둥이가 골프를 치러왔고 나는 그들을 전담 마크하는 캐디가 됐다. 어땠겠는가? 당연히 처음 그들을 만났을 때 나는 오금이 저렸고, 이상한 새소리와 더불어 어느 효과음을 듣는 것만 같았다. 왜 그랬을까? 왜 그랬냐면... 음 잘 모르겠다. 모른 척 하자. 알 듯 말 듯 확답을 피하겠다. 기대감을 충족시키지 말고 일단 애태우며 허술하긴 해도 인생의 황금기를 뒤로, 약간 뒤로 미루겠다. 그러다 묘안이 떠오를지도 모를 일이다. 왜 놀랬는가 속시원히 그 원인을 대관절 어째서 밝히지 않는가? 그것은 왜냐하면 A에서 B에 이르는 불가능한 경로, 비현실적인 평행선을 난 아직 찾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알아내야 할지도 막막했다. 전망은 어두었다. 질질 끈다고 뾰족한 수가 나오겠냐마는 아직은 방법이 없었다. 너무 막연했다. 그래서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그분을! 때문에 나는 일란성 쌍둥이 골퍼를 만났을 때 일시적으로나마 휘청~한 거다. 잠시나마 띵 했다. 그러다 정신을 차렸다. 그들은 연로함의 차이가 없었다. 세월이 그들을 비켜갔을 거라는 행운을 감안해도 그건 말도 안 되는 핸디캡이었다. 무시해도 될 수준이었다. 괜히 찔끔 덜컥 떨다 만 거다.
   골프장에서 일하는 것은 어렵지도 않고 오히려 재미있었다. 시간가는 줄 몰랐다. 뻥이다. 조금 지루했다. 그러나 따분하기도 했으나 중간중간 놀 수 있는, 즐길 수 있는 신기한 유희가 곳곳에 숨겨져 있거나 보란듯이 공개되어 있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이랬다. 심심풀이 퀴즈를 실제 구현해서 호수에서 오리배 타는 것처럼 퀴즈를 직접 체험할 수 있었다. TV나 인터넷에 보면 체스나 바둑의 돌 하나가 사람이고 기사는 진짜 전기수리공, 비숍은 헤어드레서, 퀸은 드라마퀸 중의 드라마퀸 그것도 주부 10단이 역할을 맡는 것처럼.
   구현된 게임은 이것이었다. 농부와 늑대와 양과 양배추를 데리고 강 건너기. 어느 농부가 늑대, 양, 양배추를 이끌고 강을 하나 건너야 한다. 나룻배가 하나 있고, 농부포함 둘이만 탈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골프장에서 반칙이 적당히 통용되듯 다양한 직종의 사람이 참여했고 게임의 규칙은 썩 의미가 없었다. 실지 늑대를 보고 만져보고 나룻배를 탄다는 데 의의가 있었다) 농부가 없으면 늑대는 양을, 양은 양배추를 먹어버린다나? 한 번에 한 가지만 이동시킬 수 있다나? 산채로 모두 강을 건너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라는 것이 현실로 이루어졌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여기 골프장에는 다른 게임도 모두 현실로 만들어놓았다. 마찬가지로 선교사와 식인종 강건너기 게임과 통나무 다리 건너기 게임을 연습장에 낙서하면서 연인끼리 친구끼리 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경기를 할 수 있었다. 논외로, 단언컨대 이 게임을 풀 생각을 하지 못하고 왠일인지 괜히 골치아퍼라 하면 그건 늙은 것일까, 그냥 다른 방식으로 놀고 싶은 것일까? 일단 이런 질문을 받는 것은 썩 반가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여자들이 질문받는 것을 좋아한다고 어디서 듣고 또는 읽고 나서, 눈치도 없이 여자친구 표정도 살피지 않고 막 물어보고 말할 틈을 주지 않는다면 그때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두가지다. 첫째, 나도 말 좀 하자 라고 한다거나 둘째, 철~썩! 셋째는 생각하지 맙시다.
   그런데 골프장 이름이 페르마의 밀실이라도 될까? 이름은 비공개로 남겨놓기로 한다. 너무 이상한 이름이 많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수상한 이름을 너무 과용했다. 식자의 독서력을 너무 과신했고, 말도 안되는 궤변을 남발하며, 뻔질나게 이상한 흐름을 작위적으로 구체화시켰기 때문이다. 이미 옐로카드 많이 받았다. 더 받을 일도 없겠다. 카드 마술도 너무 남용됐군.

   ⑨
   그러다 나는 진짜 바지에 오줌을 쌀 뻔한 일을 겪게 됐다. 자매 3명이 골프를 치러왔다. 큰 언니, 작은 언니, 막내 말괄량이. 음 이건 일단은 내 상상의 산물, 그 무뚝뚝한 범주에 포함시키고 우선은 요주의가 필요한 듯 했다.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적당히 대충 많이 닮았다. 게다가 일관되게 순차적이다. 거의 정확하게 1차와 2차 성징을 거쳐서 완숙한 처녀의 경지에 이른 것으로 보였다. 따라서 그분들이 상큼한 요정 1인에 대한 시간 상의 분신일지 아닐지, 찬찬히 살펴볼 요량과 정밀한 측정과 심도 있는 연구가 절실히 필요했다. 그러나 뭐 길게 지켜볼 것도 없이 옆에서 얘기 하는 거 듣고 노는 거 보아하니 얘네들은 아닌 것 같았다. 이제나저제나 정체를 드러내나 기대했는데 역시나 실망만 했다. 주책이군. 맞아. 그게 맞다.
   여기서 중간 점검. 나는 낭만주의자일까, 아니면 환장가일까? 앗! 아, 오타다. 환장가가 아니라 환상가, 가 맞는 말이다. 의도하지 않은 실수다. 번역하고 통역하면 대체로 날라가버리는 농담이니까 신경쓸 거 없다. 음, 다행이군! 아무튼 오늘은 사색가란 호칭이 약간 마음에 든다.

   ⑩
   잔잔한 일상은 변함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일지에 글을 쓰면서 몇 월 며칠 그렇게 시작하고 싶어진다. 실제 그렇게 꼼꼼히 기록을 남겼기 때문에 그것은 소설로 부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장소와 시간등 몇 가지 민감한 사항은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왜냐하면 나중 다시 찾으러 나설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골프장에서 살면서 일하면서 시간은 흘러갔다. 그러나 내가 4차원의 신비한 통로를 역탐색하는 일을 포기한 건 아니었다. 언젠가 발굴할 것이라고, 어떻게든 꼭 내가 찾아낼 것이라고 굳게 믿고 항상 자기최면을 걸었다. 나의 본업이었던 글쓰기도 잠정 중단된 상태가 된 듯한 어떤 해방감도 맛보았다. 하지만 비밀 경로만 발견된다면 그걸 그대로 소설로 옮기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초조해하지 않고 차분히 때를 기다리기로 했다. 지금은 노력의 관여랄지 탐구 강도를 높이기보다는 갈피를 잡을 수 없는 행운에 살짝 기대면서 꿈의 그림자를 더듬어가기로 했다.
   그러나 서슴치 않고 할 수 있는 시험과 온갖 장비를 통한 관찰과 정교한 실험 역시 계속 진행했었다. 적외선 카메라, 열 측정 카메라, 초음파 탐지기, 방사능 감지 장치는 기본이고, 주술계에서 쓴다는 삼각으로 뻗은 나뭇가지와 무슨 보도 듣도 못한, 듣도 보도 못한, 밑도 끝도 없는, 끝도 밑도 없는 이상한 장치들에까지 손을 뻗어 도움을 구하는 지경까지 이르게 됐다. 그러나 성과는 없었다. 난 약간의 불면증이 생겼고 의지는 변치 않았지만 자꾸만 의문이 고개를 드는 걸 애써 부정할 수만은 없었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뭐가 뭐를 마다한다는 둥 뭐가 뭐를 끊겠냐는 둥 그런 민간에서 널리 쓰이는 사회심리 이론에 근거를 두고 나는 어떤 철학적 통찰을 바탕으로 새로운 관용적 발견을 해내고야 말았다.
   그것은 길게 전주곡을 울리기에는 과히 창피한 일임에 틀림없었다. 필경, 응당 전업 탐험가라면 부끄러워하는 게 당연할 것이다. 좌우지간 나는 새로운 공식을 찾아냈다. 그건 무엇이냐면 내가 일하는 골프장에 신입 사원이 들어온 것이다. 그것이 뭔 놈의 새로운 관측이냐고? 새로운 관용적 발견? 그게 말인가 농담인가, 이게 글이냐 장난이냐, 하시겠지만 그것은 분명 당시만 해도 특수 상대성 이론에 버금가는, 적어도 A에서 B를 잇는 뭔가를 찾는 내게 커다란 깨달음을 안겨주는 일대 혁신이고 까무러칠만한 일대 혼란이었다.
   즉, 나는 새로운 신입사원을 나처럼 거꾸로 신비를 탐닉하고, 거꾸로 환상을 찾아내고자 하는 일종의 아웃사이더이자 내 동류이며 업계 동료로 보게 되었다. 어쩌면 경쟁자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혹시 저 인간도......? 설마...... 그래도 몰라...... 아닐지도 몰라...... 그러나 늦게 배운 도둑질이 무섭다고, 약간 어울리지 않는 말이긴 하지만 나 혼자 유일하게 파랑새를 찾아 헤매며 그것의 불가사의에 거의 근접한 단 하나의 늑대개였는데, 어디서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뺀다고 어설픈 실력에다 장비도 변변치 않은 삥발이에게 죽 쑤어 개 주는 공치사를 할 일 있나? 나는 자선 사업가도 아니고 그냥 사업가도 아니며 어엿한 특수 환상가였고 점성술에 빠삭한 주술사겸 탐험가였다. 정말 그렇게 되면 어쩌지? 어떡하지? 진짜로, 닭 쫓던 개 지붕(먼산) 쳐다보듯 그렇게 되어버리면? 그럼 어떡하지? 그땐 그야말로 베르디의 레퀴엠 가운데 진노의 날이 울려퍼니는 거지, 별 수 있나. 낙향해야지, 이미 낙향했으면 또 다른 삶의 낙을 찾아야 할 테고. 그땐 정말 뚜껑이 문제가 아닐 텐데 말이야...! 다른 일이야 충분히 타자적이고, 얼마든지 공리주의적 태도를 취하며 자상함과 양보와 친절과 고품격을 인생의 제1철칙으로 삼는다지만 단 하나 예외가 있다면 바로 내가 지금 목빠지게 찾고 있는 그 신비로운 특수 통로였다. 어쩌다 삼류 작가에서 골프장 직원으로 둔갑하여 일시적인 위장 취업 생활을 하고 있지만 천고의 목표를 정했으면 무라도 썰어야 했다. 그런데 뜬금없이 롤링스톤즈? 십년공부 도로 아미타불이라고 한순간에 반재산을 탕진하는 일처럼 날벼락 맞을지도 모를 일이니 운세를 보고 대비를 해야 할 일임이 분명했다. 번쩍이는 갑옷을 입고 조랑말에 올라타 전설적인 기사의 창을 어디서 용케 구해서 들었을지라도 그 창이 짜리몽땅하다면 곤란하다. 장비도 중요하고 경쟁 확률도 중요하고 형세를 한눈에 파악하는 수읽기도 중요하지만, 과일을 따고 꽃 위에 사뿐히 앉아 아카시아 꿀을 선점하려면 무엇보다 선수는 분위기를 읽어야 한다. 얼마든지 풍차를 괴물로 만들 수야 있지만 그동안의 온갖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고, 나는 봉이 될 것이며, 어깨 뽕 황금 왕좌에는 바로 신입사원이 앉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그럴 공산이 제법 크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신입사원이 1명이 아니다. 많다. 또 계속 들어온다. 그들이 여기만 있는 것도 아니다. 저기 북북동쪽에 닭 농장, 바다 건너편 돼지 농장, 남반구의 어느 지역에는 아예 창업 머시기 어쩌고저쩌고 단지가 조성되고 있는 실정이다. 돌아가는 게 장난이 아니다.
   이런, 젠장!
   위기로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진짜 문제는 이게 다가 아니란 거다. 근처에 있는 양 목장, 소 목장, 개 목장 그리고 거기 있는 그 수많은...... 수많은... 동물들, 다 그 놈이 그 놈 같다. 전부 비슷하게 생겼다. 완전 똑같이 생겼다. 누가 누군지 통 모를 정도다.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다 그 놈이 그 놈 같다. 완전 수프 깡통이다. 혹시 저 안에 진짜 카사노바가......? 다 비슷비슷하자나? 왜 비슷비슷하겠어? 모두 분신일 리는 없고. 어제와 오늘과 내일의 분신들이 모두 모였을 리는 더더욱 없어. 그건 희박해. 그러나 완전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이고. 어떡한담? 어떡하지? 아, 정말 어떡하지? 어? 그분이 벌을 받아서 동물로 환생했을까? 그럴까? 아닐까? 아무래도 원점에서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만 할 것 같다. 실정을 외면하고 무작정 앞만 보고 달려온 듯 했다. 방향이 잘못 되었을 수도 있고, 도착 지점을 지나쳤을 수도 있다. 아직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듯 얼마만큼 진전된 것인지도 모르고 문제점을 파악할 수도 없다. 때가 된 듯 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하산할 시점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나는 정중히 골프장 사장에게 말했다. 내가 이러 이러 해서 신비의 통로를 찾는다고 아뢰옵고 여기서의 경험이 너무 소중하고 감회가 깊어 떠나기 아쉬웁지만, 더없이 황송하고 송구하오나 이러쿵저러쿵 해서 나는 길지 않은 골프 업계에서 몸을 뺐다. 그렇게 골프장에서 퇴직하고 나니 전업 작가로 되돌아오게 됐다. 그리하여 나는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⑪
   곧 있으면 나는 집에서 가만히 공상을 하는 생활로 되돌아 간다.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고, 발표하는 매체는 블로그요 그것의 이름은 무명. 무명? 고등학생 때 무명으로 농구대회를 나가기 전에 난 교내 전통적인 농구클럽 유니콘 소속이었다. 그러다 1학년때 친구들과 유니콘에서 탈퇴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그때 탈퇴한 친구들과 새로운 클럽을 만들어 대회에 나갔나 나가지 않았나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다 나는 우리 학교에 한 명 있었던 무명 친구와 다른 학교에 다니는 무명 친구들과 합심하여 대회를 나갔다. 무명이라는 이름으로. 그러나 강력한 우승후보였는데 예선 탈락했다. 어떤 친구는 그날 울었고, 정말 서럽게 흑흑 그렇게 울었고, 어떤 친구는 괜히 버스정류장에서 가만 있는 어느 학생에게 시비를 걸고 싸울려고 했다. 뭘 쳐다보냐며 큰 싸움 일어날 뻔 했다. 난 말리는 역할에서 적극적인 쪽이 아닌 소극적인 쪽에 속했었다. 그리고 중학교 때도 나는 교내 농구 클럽인 사이클원 몇 기였는데 그때도 애들끼리 거기서 탈퇴하고 나이키 대리점에 가서 단체로 똑같은 티셔츠를 샀다. 그리고 신생 서클 이름을 지었다. 엠파이어라고. 그때 인접 중학교에서 잘나가는 친구들이 (오리저널) 무명이었다. 그때 같이 연습경기를 하면서 그 인연이 지금의 블로그 이름으로 이어지게 됐다. 트레이드 마크, 포기해도 된다. 이젠 이름에 크게 연연치 않게 됐다. (뭐가 어쩌고 어째?) 아, 물론 엠파이어로도 농구 대회에 나갔다. 우승? 웬걸, 예선 탈락했다. 내 인생은 예선 탈락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내 인생은 오직 삼류로만 점철되고 그것에만 둘러싸여 있다. 옛날에 공군 군악대에 들어가볼까 하다가 시험장에서 손이 다쳤다고 거짓말을 한 적도 있다. 시험 탈락. 그런데 최근 어느 날 극장에서 고전영화 현기증을 봤는데 거기에 나오는 호텔 이름이 엠파이어였다. 엠파이어? 예선 탈락? 혹시 누군가 축구나 야구 클럽에 들어갈 것이라면 이왕이면 저명이나 유명이라는 이름의 클럽에 들어갈 것을 권유하고 싶다. 뭔 있지도 않은 4차원 통로를 찾는다고 그것도 역으로 어떻게 해서 거꾸로 찾아낸다고 생쇼만 하다 사람이 이상해진 것 같다. 안 그래도 상태가 신통치 않은데 진짜 돌아이가 됐다.
   뭔가 아쉽다. 말 나온 김에 예선 탈락에 대해 좀 더 똑똑히 짚고 넘어가야 속이 편할 것 같다. 그땐 뭔가 신선한 경험이 필요했고, 뭘 원하는지 잘 몰랐으며, 실은 동경하는 게 너무 많았다. 그렇다. 우린 나름대로 공포의 외인 구단이었다. 그러나 공포의 외인 구단은 좋게 말해 모험이고, 좋게 말하자면 스타의 그때 그 시절이다. 곧 그것은 결과가 좋았을 때 얘기다. 그렇지 않다, 라면 그건 처음은 농담이고 두 번은 자발없음 그리고 세 번째는 장기적인 술버릇이 된다. 그것도 말을 잘하는 경우에만 해당된다. 그렇지 못하면 보통 술주정이나 수다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도 저도 아니다? 그러면 블로그가 된다. 또는 소설이 된다. 그것도 삼류로. 삼류가 뭐 어때서? 말하자면 그렇다는 거다. 따라서 헛된 경험도 어엿하게 인생의 한 쪽을 장식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예선 탈락에 대한 나름의 소신 있는 결론은 이와 같다. 스타가 풍운아라면 일반인은 행복한 사람! 반대로 유명세는 환상이고, 인기없는 블로그는 부담없는 즐거움이고 삶의 기쁨이며 내 인생의 환희다. 동전의 앞면은 비화고, 뒷면은 회상이다. 캬~ 멋진 말 같지만 별로 멋진 말은 아니다. 말은 그럴싸 하네. 말만. 신비의 통로는 감쪽같이 쥐구멍으로 숨어버렸고, 예선 탈락이 결국 환희라는 말이군. 순전 지 자랑 같다. 액면만 겸손한 자랑. 액면만. 이게 다 그 정신 나간 신비의 통로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신비의 뭔가는 말을 못하는구나. 잘 됐네. 정말로 지금도 의심스럽다. 그러나 그 전율의 순간, 지금도 생생하다. 멜로드라마와 사랑과 마술적 사실주의에 관한 3요소를 모두 갖추어서 사람을 그 설렘만으로 옴짝달짝할 수 없게 만들어버렸다. 언제까지라도. 무슨 3요소? 그건 뭘까? 음, 우선 우연이 포함될 것이고 환상이 그 다음 그리고 반전? 그러면 해피엔딩은? 당장 떠오르지 않는 뭔가는? 저요 저요, 는? 또 쾌락은? 무슨 3요소니 세계 3대 후라이팬이니 그런 거 다 듣기 좋은 말이요 보기 좋은 떡일 뿐이다. 허울 좋은 과부, 의례적인 빈말, 지키지 않을 약속, 다 그 부류다. 적당히 구색을 갖추고 작전 잘 짜서 연기 제대로 하고 작정하여 덤벼들면 그녀는 내게, 즉 그분은 그대에게 빠져들 게 되어 있다. 당신이 마음에 두고 있는 그분은 당신께 홀딱 반할 것이다. 그럴 수 밖에 없다. 절대 빠져나갈 수 없음. 그녀가 한때의 추억에 여생을 조금은 의지하며 살듯이 뭔 스크린 천 조각 그 개구멍에 내 인생이 완전, 뒤틀려버렸다. 그것도 완전 완전. 아조 한 시기를 거기 건 듯 하다. 정말로, 한순간의 환상적인 떨림 그 황홀감을 절대 잊을 수 없게 됐다. 또 믿지 않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풍운아와 행복한 사람의 중간, 난 비로소 탕자가 된 것만 같다. 오, 탕자라니! 노래 가사풍으로 말한다면 바─보? 정말이다. 내가 생각해도 내가 이상해진 듯 하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그때 멤버는 쟁쟁하다, 까지는 아니었으나 면면히 봤을 때 꽤 괜찮았다. 어느 아마추어 클럽에 내놓더라도 전혀 손색이 없는 구성원들로 모였다. 프로, 못할 것 없었다. 마음은 없었지만. 그런데 주전 멤버 전원이 그렇지는 못했다. 주전도 겨우 채웠다. 우린 실은 3 대 3 길거리 농구대회에 나가는 게 옳았다. 그러고 보니 대학교 1학년 때 으쌰으쌰 해서 아무렇게나 세 명 채워서 길거리 농구대회에 나갔다가 그때도 당연히 예선 탈락했다. 어쨌든 당시 무명의 멤버는 좋았다. 쓸 만했다. 괜찮았다. 나쁘지 않았다. 나도 양손 다 썼고, 모든 포지션이 가능했고, 다방면으로 기교도 뛰어났다. 뭐가 출중해? 뻥은 좀 섞인 듯 하다만 증인, 수소문하면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아니면 적당한 우호세력이나 팬클럽을 만들던가. 그런데 어느 세월에? 잘하면 믿거나 말거나고, 못하면 재수없어니까 허풍은 여기서 멈추는 게 좋겠다. 우린 그때 주옥같은 땀방울 대신 노는 데 집중했고, 자체 발행하는 주간지 같은 데 신경 쓰고, 연습도 포지션도 작전도 모두 부족했다. 다시 생각하니까 예선 탈락 할만 했구만. 그래도 괜찮아 괜찮아. 블로그로 무명은 재탄생했고, (지금이니까) 화사한 추억으로 남았으며, 현대적인 신화든 연예계 뒷이야기든 실패담은 꼭 필요한 법이니까.

   ⑫
   원래 지금 쯤이면 나는 집에서 복고주의자가 되어 할일을 해야 했다. 음악을 듣고 명상을 하며 작품 구상하기. 잔디를 깎고 수영장을 수중 알콜 농도 0.05퍼센트로 맞추고 보트를 띄우고, 거기 누워서 선그래스를 끼고 수영 팬츠를 입은 상태로 삼지창을 들고서 해 저문 노을을 바라보거나 책을 읽고 있어야 했다. 그게 정상이었다. 시도 읽고 여행 계획도 세우며 인터넷의 세계에서 관심사를 검색하며 칵테일 한잔을 마시고 있어야 했다. 원래대로라면.
   집에 도착했을 때 처음에는 이곳이 우리 집이 아닌가, 그랬다. 뭔가 착오가 있는 줄 알았다. 어떤 낯선 사람이 내 집에서 살고 있었다. 저 인간이 지금 내 집에서 뭐하는 짓이지? 설마 내 집을 자기 집인줄 알고서? 집이 뭐 007 가방인가? 정말 드물게 그런 일도 있긴 있겠지만 그건 거의 전형적인 픽션이고, 이건 현실이다. 그건 대체로 사기고, 이건 대략 미스테리다. 저분이 저기서 너무 자연스럽게 내 할일을 하고 있기 대문에 나는 실소를 머금게 됐다. 기가 찼다. 뭐라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어라~ 자세히 보니 그는 나와 조금 닮았다. 비상 상황에 닥쳐보고 나니 이 인간이 보자 보자 하니까, 난 그렇게 막 나갈 수 없었다. 신사적으로 점잖게 그 집은 내 집인 듯 하고 형씨는 내 대역인 것 같다고, 바로 그렇게 넌지시 내 의중을 비출 수도 없었다. 심지어 그는 날 닮았다. 보면 볼수록 놀랄 정도다. 이거 뭔가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듯한 쎄한 기분에 휩싸였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내가 골프장에서 일을 괜히 했을까? 설마 저 인간이 나의 과거형인가? 나는 SF 장르 연기자? 작가는 난데? 저 집은 내 집이고. 그런데 왜 저 집이 내 집이라고 말을 못하고 있지? 대체 왜? 너는 나라고 왜 말을 못하냐고! 아 미치겠다 미치겠어.
   이건 꿈이 아니었다. 영화도 아니고 TV 속에 내가 들어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혹시 저 인간이 원래의 나일까? 그럼 난 뭐야? 좀비? 에~이 말도 안돼. 그런데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참 나 이거 진퇴양난이군.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나는 내 웨건 차에서 자고 먹고 놀고, 를 시작했다. 관찰은 계속했다. 옷 세탁과 샤워와 휴식은 통합 사우나 휴식 센터에 가끔 들러 해결했다. 그리고 그곳의 이름은 이랬다.
   「너 남편 뭐 하니?」 (또 시작이네?)
   물론 나는 정면돌파도 생각해봤다. 간결하게 용건을 묻고 주먹을 쓰지는 않고 경찰에 신고하거나 대사관에 연락하는 것. 잘못 없는 대사관은 왜? 그냥! 적당한 대사도 몇 가지 떠올랐다. 당신 누구냐, 여기 뭐 하러 왔냐, 당신이 제임스냐?
   그러다 그가 나를 하대하면 어떡하지? 만약 그가 거칠게 나온다면? 나는 꼭 내가 훔쳐보는 것을 즐기고, 이상한 데 취미를 가진 은근 호색적인 중년이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그러나 그건 착각이 아닐 수도 있다. 난 실재 중년이었고, 살짝 엿보는 욕구는 정상적인 인간의 심리 기제이기 때문이다. 다만 선을 넘어서면 제재가 가해지는 것일 뿐. 그 경계를 노래하는 것은 예술이 할일. 그러면 난 지금 예술을 하고 있나? 예술을 해? 하긴 뭘 해? 콱 그냥 쳐들어가서 당장 내 집에서 나오라고 멱살을 휘어잡을 수도 없는 일이고, 딱히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저 자식 저거 저거 뺀질뺀질 생겨가지고 유들유들하고 맨날 백판 자빠져 놀고나 있고, 한심한 녀석 같으니라고!
   나는 점점 지쳐갔고 점점 더 지쳐갔다. 그러나 포기할 수는 없었다. 적어도 내 의지에 의해서 포기란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뭘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인가? 도대체 뭘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냐고. 나는 내가 지금 이곳에서 뭘 하고 있는 것이지, 라면서 깃발을 꼿아야 하는 목표점이 점차 내게서 멀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의문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감시의 끈을 느슨하게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결정적 증거를 찾고야 말겠다는 이상한 결기라고나 할까 그런 무의식적으로 발생한 환상적인 영감과 지극히 이성적인 현실감이 교묘히 일치된 듯한 드라마틱한 전율감, 바로 그것의 포로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 마법은 어떤 주술로도 풀 수 없는 것처럼 여겨졌다. 때문에 나는 그 전의 내 일과와 생활과 과업과 삶의 터전을 모두, 모두 열외로 뺐다. 어제의 나를 철저히 관측하기, 그것만 했고 그에 대한 일지를 작성했다. 나중 그와 접촉하게 됐을 때의 가상 시나리오를 작성해나가기 시작했다. 힘이 들어도 묵묵히 차근차근 진행해나갈 수 밖에 없었다. 다른 길은 없었다. 퇴로는 차단됐다. 나는 마치 달콤하고 아련하며 향수를 자극하면서도 그지없이 기쁘고 더할 수 없이 기분이 좋아지는 음악, 즉 세이렌의 나팔소리에 고개를 돌리고 말았는데 내가 돌로 변하지 않는 듯한 환상에 빠져든 것이다.
   그때 차마 믿을 수 없는 도저히 상상할 엄두가 나지 않는 어떻게 그럴 수가, 라는 예측할 수 없는 일을 맞닥드린 것만 같은 당혹감을 잠깐 느꼈던 것도 같다. 그건 발단이든 뭐든, 언제 등장할지 모르는 반전이든 관전평에나 어울리는 역반전이든, 그것을 모두 통으로 연관지을 수 있는 사후에 경험하는 감정이 아니라 사전에 미리 혹시 그럴면 어떡하지 라는 의혹이 아니었을까 라는 어떤 비정한 몽매와도 같은 심정과 비슷했을 것이다. 그건 무엇이냐면 일전에 친구들과 썼던 공동 소설에 나왔던 한 장면, 쌍안경 또는 단안경으로 세 지점에서 평범한 가정집 생활을 하는 일인을 지켜보다가 그곳으로 관찰당하는 자의 친구들이 소형차를 타고 모여드는 것을 지켜봤고 그들이 떠나간 후 즉시 관찰자들은 그곳으로 비상소집하고 쑥덕쑥덕! 설마하니 그럴 리야 있겠냐마는 사람일이라는 게 중간에 뭐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환상머쉰이고 무슨 숫자가 나올지 모르는 주사위요 럭비공이며 즉석복권이라서 그쪽으로든 어디로 튈지 뭘로 변신할지 모르는 사태를 미연에 방비할 응분의 비책 역시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라는 너무 엇나가는 억측 때문에 나는 어제의 나를 감시하는 동안 가끔씩 긴긴 밤을 꼬박 새우곤 하였다. 다크 써클, 작열했다.
   그러나 결국 그 뭐랄까 행복했던? 아마도 우매했던 시기는 어쩌면 어처구니없는 중첩된 우연에 의해 일순간에 파국을 맞이하고야 말았다. 그 끝은 딱히 비극은 아니었으나, 뭔가 이상했다.

   ⑬
   내가 관찰한 어제의 나는 매번 깜짝 깜짝 나를 놀래켜주었다. 어떻게 꼭 내가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처럼 그는 어떤 예술혼의 고삐를 잠시도 놓는 법이 없었다. 뭔 얼어 죽을 예술혼? 아, 그건 뜻하지 않게 찾아온 내 탐정 생활이 지칠 것 같으면 그는 어김없이 내 분홍색 망원경 그 동그라미 안에서 내 습관, 내 표정, 내 잠꼬대, 내 몽환적인 눈빛, 내 곁눈질, 내 공상가적 기질을 어김없이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하나는 그 새 인형과 티셔츠를 손으로 꼬맨 이상한 옷도 있었다.
   그러던 중 그는 아는지 모르는지 내게 자유를 선사해주었다. 아아, 자유란 말인가? 정녕, 자유? 어쩌면 그는 사람을 어떻게 감동시키고 뭘로 마음의 온기를 뒤흔들고 냉기를 녹여주어 슬며시 홀딱 반하며, 마음을 빼앗겨 인생의 한 시절 혹은 반생을 통채로 걸도록 만드는 뭔가 그런 방법을 아는 남자가 아닐런지 그렇게 느껴졌다. 왜냐하면 나는 어떤 브로맨스와 같은 감정을 느꼈기 때문이다. 오묘한 쾌감이 있었다. 그와 내가 연결된 듯한. 또한 나는 그의 진면목을 알게 됐다. 계속 보고 싶어졌다. 그러나 어려움은 여전했다. 생전 처음 형사처럼 대인 마크를 체험해보니 그건 완전 밥맛이었다. 완전 힘들었다. 직업인이야 소명이 있고 처자식을 먹여살려야 하며 극중 장면이야 웃기고 즐겁지만 그거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엄청 힘들었다. 그는 적어도 그때 내게 은인이었다.
   어느 날 마당에 나와 있던 어제의 나는 수영장 옆 소파에 있던 가죽점퍼를 입었다. 그리고 휘파람을 불었다. 휘파람? 입술로만 부는 평이한 난이도가 아니라 한 손을 이용하는 한때 놀아본 사람들만 익혔을 법한 재주였다. 어? 저건 난 못하는데? 쟤는 어제의 나인데? 어제의 나가 어떻게 저런 기술을 구사할 수 있지? 옛날에 내가 뭐 문란한 삶을 살았다는 거야? 휘파람을 불줄 알면 정결한 인생이 아니란 말인가? 그게 뭐야? 그러나, 그러나! 이건 분명 공식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그가 어떤 최면에 걸려서 일시적으로 그럴 수 있다고 그렇게 추측하고 처음에는 그냥 넘어갔다. 그러나 잠시 후 그건 오판이자 해방감이며 드디여 자유로 판명되는 일로 밝혀졌다. 즉 저 인간이 휘파람을 삑~ 부니까 어디서 독수리가 나타나서 가죽점퍼를 입은 그의 왼팔에 딱 내려앉는 것이었다. 우째... 이런 일이... 어떻게 이럴 수가! 지금 감탄사가 필요한 시점인데 어떤 어조를 바탕으로 그동안의 평정심을 무너뜨려야할지 짐작도 결정도 못했고 그래서 실행조차 할 수 없었다. 이건 확실하게 우유부단과는 무관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자유, 자유를 얻었으니까!

   ⑭
   여기서 잠깐! 에고머니나, 벌써 마음을 돌리고 발걸음마저 서두르면 안된다. 저렇게 해서 진짜 그와 내가 결별을 하면 그건 같은 글이라도 지면이 다른 애독자 엽서쯤으로 가닥날 것이다. (꼭 어감이 애독자 엽서? 흥! 이런 감이 있지만 절대 그런 거 아님) 전문용어의 세분화와 미세한 간극에 따라 학문적으로 줄거리는 이야기, 플롯, 내러티브등으로 나뉜다. 구분을 정정하기에 앞서 뭐가 뭐로 나뉜다는 기준부터 틀린 듯 하지만 전문가야 그게 중요하지만 어디 한번 웃겨봐 하면서 세상에서 제일 편안한 자세로 푹신한 의자에 몸을 맡기는, 정당한 금액을 지불하고 예술을 사랑하는 블로그 애호자라면 그런 구분 반가워하지 않는다. 연애할 때 그런 걸 끈질기게 파고드는 상대는 피곤한 스타일이고, 상황 봐가지 못하고 눈치 없이 분위기를 읽지 못한다면 이 사람을 앞으로 사귈 것인가 말것인가, 내가 만약 이 사람과 앞으로 살게 되는 가정을 해봤을 때 아침에 의식이 깨고 눈을 떴을 때 아~ 어? 내 옆에 그이가 있네 그런데 그이가 그 그이가 아니네? 그런 엄지를 올리면 반할 요소요 내리면 결격 사유가 되는 수없이 많은 흔한 일 가운데 둘 중 하나가 된다. 그렇다고 학문은 뒷전이고 상업에만 치우친다면 그건 명백히 메뚜기도 한철이고, 간혹 예외가 있어도 그건 누가 들으면, 듣지 않아도 보지 않아도 또는 들리면 듣고 보이면 본다면 꼬끼오~ 소리로 들릴 수도 있는 것이다. 걸리기만 해봐, 같은 이론이지만 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으니까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면 휘파람으로 독수리를 부른 것으로 단역 1과 단역 2의 인연이 단절되고 누군가는 큰 값을 치르고 자유를 얻으며, 드라마 시즌 2를 준비하기엔 시기상조라는 말이다. 즉, A 단락에서 B 단락으로 넘어가고 1 단계에서 2 단계로 넘어가려면 진도에 따라 시간 지나고 경험치가 쌓이면 진급할 수도 있지만 적어도 드라마라면 기막힌 전환이 이루어지려면 결국 사랑의 완성에 대해서라면 그 어떤 방식은 두 가지로 구분될 것이다. 첫째, 우연 다음에 우연. 그리고 둘째, 우연과 우연과 우연이 서로 정답게 삼자대면을 하는 것. 저 1번도 기본이고 중요하지만 책 소개의 글을 작가 자신도 더 이상 믿지 않는다는 현대의 통상적인 조류와 일반적인 유행에 반해서 진짜 왕 곧 독자와 시청자, 관람자를 위한 진정한 환상이자 가짜 환상이며 비굴하지만 현실과 꿈의 중간이라 할 수 있는 그 요술의 지대는 둘째가 정말 중요한 것이다. X축에 따라 우연 다음에 우연, 이 아닌 Y축에 기준한 우연 위에 우연 위에 우연 그것이 동시에 중첩되는 것. 어떻게 만났냐, 처음에 누가 먼저 사귀자고 했냐, 언제 처음 손을 잡았고 어떻게 관계가 무르익고 어디서 결정적인 사랑의 포로가 되어버렸나, 바로 그것에 관하여 사람들에게 질문을 해보라. 난 어땠어, 라고만 하지 말고! 그렇게 물어보면 일부....는 썩 달가워하지 않을 수도 있겠으나 대체로 대부분은 한마디로 좋아한다. 웃는다. 환하게 웃는다. 저무는 사랑이라면 모르겠으나 또 자주 물어서 짜증난다면 말 다한 것이지만 소설이나 음악 같은 시간 예술에서 극사실주의의 한계를 슬쩍 넘어가고자 했을 때 그건 마침표 중의 마침표가 된다. 캐릭터가 살아있다고 실시간 실화라고 가정하고 그가 진짜 그 정도로 만족할까, 했을 때 아 그건 아니야 그건 약해 그래서 바로 우연 다음에 우연이 필요한 게 아니라 우연 위에 우연이 필요했다는 결론이 나온다. 계기 1, 계기 2, 계기 3이 이어지는 게 아니라 한번에 또 동시에 형성되는 일. 좀 느슨한 예라면 하루 동안 처음 만나고 뭐하고 뭐하고 평생을 약속한다거나, 난생 처음 낚시대를 들어올리며 첫 손맛을 느끼는 찰나 내가 좋아하는 남자가 뒤에서 날 포근히 동시에 화급하게(안정적으로 물고기를 들어올리는 걸 도와주기 위해서) 껴안을 때 그런데 그 남자는 친구의 남자(작품에서 평범한 삼각관계로도 다르게도 다루어진다), 난생 처음 내 차를 몰고 꽃단장하고서 소풍을 가는 날 이상형을 만나 드라이브, 백허그 플러스 생애 첫 무엇, 베팅머쉰이나 골프연습장에서 도와준다면 뒤에서 백허그 그러나 그는 이상형과 정반대, 산책하다 우리 개가 누굴 물었는데 우리 개가 누구 신발에 실례를 했는데 어머나 그는 내 이상형, 자전거를 타고가다 걷던 여대생과 부딧혔는데 그 다음 어떻게 어떻게. 통상 전문용어도 두 가지로 나뉜다. 어려운 단어와 쉬운 단어. 박수 소리는 대체로 전자가 크고 명성도 그렇지만 감격이랄지 착상과 탄복은 대체로 후자에게 따른다. 다른 말로 전문가에 저명한 전문가. 그것의 예를 들면 <클로징> 같은 보험업계 전문용어, <연결> 같은 연기업계 전문용어가 있다. 짧은 글을 쓰기가 더 어렵다거나 시적이라거나 냉철한 논리 때문에 정말 너무너무 읽기 쉽고 편하고 부드럽고 좋다 라는 실례도 있을 것이다. 2번을 잘 활용하면 먼저 하느냐 나중에 하느냐, 에 따르는 무슨 편향에 발목잡히지 않을 만큼 근소한 차이가 아니라 월등한 마술로 독자를 뿅-가게 할 수 있다. 그래서 2번도 최근, 이 아니라 옛날부터 이미 남발되는 실정이다. 1과 2번의 중간이든 어쩌든 그런 얘기는 아마추어 같이 붙잡고 있지 말고, 이 사람이 지금 누구 보고 아마추어라고 하는 거야, 어느새 이~따만 하게 쏙닥쏙닥 장황설을 쏟아놓고 아마추어? 아마추어 좋아하시네 늬가 아마추어 정신을 알어 그걸 알기는 아냐고, 어쨌든 대체 여기서 뭐가 2번이냐 2번에서 등장하지 않은 은밀한 숨겨놓은 궁금증을 유발하는 다음 타자는 도대체 누구냐? 더 이상 숨기기도 싫고, 감추기도 싫다. 그것은, 그것은 바로 내가 어제의 나를 관찰하고 있던 임시 항구였던 동네 공터에 또 다른 배가 출연했기 때문이다.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이 배가 늬 배냐 저 배가 늬 배냐, 순풍에 돛을 달다, 모두 놔두고 딱 정점을 찍고 마음을 돌려세워 마침내 자유를 얻게 만든 조커를 공개하자. 딱, 한번에 확 패를 까... 보여주자.
   그것은 그랬다. 뭐가 그래? 내가 머물렀던 동네 공터에서 내 차 바로 옆은 아니고 애매하게 저 멀리도 아니고 어중간하게 저만치 딱 그 자리에 내 차와 딱 동일한 모델은 아닌데 거의 근접한 모델, 거의 흡사한 색깔, 거의 비슷한 상태의 차가 거기 딱 도착했고 그리고 거기서 막 누군가 내렸던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됐겠나? 거기서부터 정신이 몽롱해지고 기억이 흐릿해졌다고? 응, 그렇다. 그러나 대충 거의 기억난다. 진짜 어제의 나는 아니었다. 그러나 비교를 해보게 됐다. 내 원래의 관찰 대상과 새로운 등장 인물을. 그 수많은 차 가운데 음, 그럴 수 있어. 그런데 왜 하필 여기야? 또 어떻게 꼭 짠 것처럼 딱 지금? 이게 다 뭐지? 뭐가 꿈이고 뭐가 현실이야, 까지는 아니다. 꿈과 현실을 구분할 정도는 된다. 약간 이상해지면 볼을 꼬집어보고 해 볼 만한 시험해 볼 만한 단순한 행위는 많다. 남처럼 하면 성공을 못하네 미쳐야 하네 뭐라 하지만 그건 전부, 다, 모두 성공했으니까 그 방법이 통했으니까 해당되는 말이고 그와 똑같이 했지만 아니 그보다 훨씬 노력하고 훨씬 땀 흘렸고 모든 걸 걸었지만 실패한 사람이 백배, 천배, 만배 많다. 누구나 다 아는 얘기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또 분할해서 A안, B안, C안을 갖고 꾸준히 하라고 하고, 남 놀 때 놀고 남 일할 때 일해라 뭐든지 때가 있는 법이다 라고도 한다. 정답은 없다. 왕도도 없다. 그러나 뚜껑 열릴 일은 많다. 마음은 다스리기 어렵다. 겸손도 실은 어렵다. 하물며 지금 돌아가는 사태가 이 지경이 됐는데, 그 목장의 수많은 소와 양과 개와 또 뭐야 우우 워워 막 이거 흥분하게 되는 건 왜 그럴까, 무슨 화학물질이 분출되고 있는지는 몰라도 어떻게 해야 할지 우선 순위도 정하지 못하겠고, 차분하게 하나씩 하나씩 진짜와 가짜를 가릴 수도 없게 되어버렸다. 당신이 어제의 나야? 퍽! 혹시 아씨, 그대가 어제의 나인가요 그런가요? 이런~ 철썩! 그때부터 난 뭐가 뭔지 모르는 톡쏘는 블랙홀, 날으는 돈까스, 공포의 삼겹살, 추리소설가 싸움 순위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 후 나는 관할 지역을 촘촘하고 면밀히 조사했으며 행정 구역과 여러 증거를 취합해서 그 집은 내 집이 아니고 그는 (어제의) 내가 아니라고 결론 내렸다. 그러면서 일부 지번의 오류를 정정하게 됐고, 동네 환경 개선과 동네 행정에도 일부 협조하는 성과를 가져왔다.
   그래서 나는 내 동네로 돌아갔고, 내 집에 도착했고, 내 생활로 되돌아갔다. 휴~ 한숨이 나왔다. 먼 길 돌아서왔다. 괜히 뭔가 큰 규모의 사건에 휘말렸는데 어쩌다 얼렁뚱땅 빠져나온 것 같았다.
   지금 와서 뭔가 신비로운 일을 경험했고 그걸 글로 옮긴 것 같은데 그에 따른 부담감과 순수한 기쁨 대신에 그런 생각이 든다. 대체 내가 이 일을 왜 했지? 어? 왜? 뭣 때문에? 괜히 했나...? 누가 제발 해달라고 등 떠밀고 시켰나? 부탁했나? 댓가 없이? 그래서 나는 정말 확신을 못하는 것이다. 단 한 번 환상을 봤는데 미스테리에 빠졌는데 그게 사랑이고 신세계였다고 단언할 수 없었다. 그 어디에도! 결과적으로 사람만 이상해졌다. 스타일, 구겼다. 엄청. 가끔 생각난다. 실정은 자주 떠올랐지만 이제 겨우 어두컴컴한 잠재의식으로 그것을 옮겨놓은 것 같았다.
   그러나 언제 다시 내일의 나가 내게 찾아올지, 나처럼 뭔가를 기다리며 혹시 모를 뜬구름 잡는 식의 꿈을 찾는다는 둥 사과나무를 심는다는 둥, 뭐뭐 둥 뭐뭐 둥 그런 스타일의 말을 누군가 내게 걸어오지 않을까 촉각을 곤두세우며 기다리는 삶을 살고 있다. 나는, 그 미지의 신비에 대한 희망을 읽지 않았다. 그리고 마당에 사과나무를 한그루 심고 싶어졌다. 그런데 마당이 비좁았다. 그래서 잔디를 일부 포기할까 어쩔까 하다가 미니사과나무 종자를 구해서 화분에 심고 그것을 애지중지 키우게 되었다. 일단은 개를 키울만한 정성은 자신없었고, 고양이를 내 울타리 안에서 키울만한 관심은 약간 부족했으며, 별다른 애정은 너무 막연했다. 그리고 새로운 그분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창밖의 노을을 바라보며 오늘도 그분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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