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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소설
2018. 1. 15. 17:41
1 허세를 다듬고 허당기를 감추며 허영심이 합세하여, 부푼 빵처럼 깐족이 탄생하면 무엇이 될까? 그건, 산문시! 왜냐하면 일기는 고개 숙이고, 사설은 고개를 돌리며, 품격은 아예 고개를 틀고 들고 눈을 지긋이 감을 것이며, 칼럼은 한숨을 절로 쉴 테니까. 그런데 낙서마저 날 거절하면 내 오묘한 심정 얠 대체 어디로 보내지? 이러다 영영 새로움이 합류하지 못한다면! 나는 바짝 긴장했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시간은 날 기다려 주지 않고, 대형 신인들은 쉬지 않고 속속 등장하는데, 주위에선 미안해서 그런지 어쩐지 하는 일은 잘 되냐며 안부마저 묻질 않으니까. 위대한 일류 작가임을 상정하고 의무적으로, 또 규칙적으로 글을 써야 한다. 하지만 서둘러서는 안될 것이다. 그러면 일을 그르치기 쉽상이다. 이럴수록 침착해야 한다. 경륜장에도 가고, TV도 보고, 술도 마셔야 한다. 나는 남자니까. 그래도 된다. 여자는 그러면 안된다는 말이 아니다. 그런데 나 없이 사교계는 잘 돌아갈까? 단골 카바레의 수습직 웨이터인 에르메스씨는 쫓겨나지 않았을까? 바텐더 양반도 날 기다리고 있을 텐데. 별 게 다 걱정이네. 별다른 예감도 없고 특별한 약속도, 조촐한 여행 계획도 없으니 나는 화려한 꽃다발 아니 값싼 프리지아 몇 송이를 들고서 환상문학 잡지 미스테리아 사무실로 갔다. 벌써 도착했다. 그런데 불이 꺼져 있네. 저런! 뭐야 이거. 허나, 문은 열려 있었다. 잠겨 있지 않은 것이었다. 나는 하마터면 속을 뻔 했다. 나와 미스테리아는 냉장고 권리를 방조하는 사이였다. 때문에 나는 들어갔다. 사무실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무작정 기다릴 수도 없어서 나는 프리지아를 대충 컵에 물 받아서 꼿아두고 사무실을 나왔다. 왠지 모르게 그런 기분이 들었다. 은퇴한 일러스트레이터, 취미 때문에 반-재산 날린 동화작가와 부동산 사장님, 정육점 주인등이 모여서 노는 어느 한가한 펀드매니저의 개인 사무실에서 퇴근하는 기분이 이렇지 않을까, 라고 추측했다. 한때 잘나갔던 펀드매니저는 어떡하다 팽당하여 주류에서 밀려났고, 하는 일은 심심한 비서 또는 수다스러운 경리나 다를 바 없음. 그래서 나는 도시로 떠났다.
2 나는 도시에 도착하여 숙소를 정했다. 모텔 이름은 고흐와 먼로. 전세계에 체인이 즐비한 촌스러운 호텔은 왠지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 그렇다고 좀처럼 유명하지 않은 최고급 호텔은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적당히 외지고 깔끔하며 너무 으슥한 느낌이 들지 않음과 동시에 가격이 착한, 정말 어렵게 고른 숙소였다. 거긴 거의 상업적 이익을 포기한 숙박업소가 아닌가 의아했지만 지금 남 걱정할 때가 아니었으니까 나는 그곳에 짐을 풀었다. 예전 같으면 도시에 사는 친구가 놀러오라며 꼭 방문하면 들르라고 일주일 놀다 가는 건 아무것도 아니라며 날 초대하면, 나도 너무 좋아서 덩실덩실 춤을 추며 덥썩 응했을 텐데. 빈말을 참말로 오해하던 호시절은 지난 것이다. 어느새 뭐랄까 누추한 뒷골목도 상큼한 첫사랑과 고상한 연애와 조용조용한 대화를 모두 아는 숙녀가 하기엔 썩 부적합한 발언처럼, 난 어쩜 세상의 풍파에 닳아진 것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건 그렇고 나는 도시를 구경했다. 특별한 설명은 필요치 않았다. 우선 어쩐지 내게는 새로운 노트북이 필요할 것 같아서 나는 새로운 노트북을 사기 위해 전문 매장에 찾아갔다. 그런데 그날따라 새로운 노트북을 사기 위해 줄이 엄청 길게 늘어서서 대기중이었다. 나도 하는 수 없이 제일 뒤에 줄을 섰다. 그러다 나는 하도 줄이 줄어들지 않길래 왜 줄이 줄어들지 않나 해서 옆사람에게 물어봤다. 그랬더니 글쎄 그 줄은 컴퓨터 매장 줄이 아니라 나이트클럽 입장 대기 줄이란다. 뭐야? 뭐냐고! 아니 도대체 뭐하는 NC이길래 그렇게나 인기가 많지? 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계획을 수정했다. 노트북은 내일 사도 되고 언제라도 살 수 있다. 하지만 이건 뭔가 특별한 기회라고 느꼈고, 다이아몬드 호박마차에 탑승할 시간은 촉박하며, 황금 마네킹 상점과 연줄이 닫을려면 이 방법 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므로 나는 나도 다 안다는 듯이, 확인차 물어봤다는 듯이, 그분께 감사함을 표시했다. 그렇게 줄을 서서 기다린 끝에 나는 얼떨결에 클럽에 입장하게 됐다. 다행스럽게 출입을 제지 받지는 않았다. 그런데 클럽은 재미없었다. 왠지 속은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안에서 옛 친구를 만났다. 만나서 반갑긴 했는데 문제는 녀석이 여자 둘을 내게 맡기고 가 버린 것이었다. 신용카드가 정지됐기 때문인 듯 했다. 급한 용무는 무슨, 마누라한테 전화온 것 같지도 않았다. 옛 친구가 떠나가서 눈부심 때문에 피곤했던 내 체력이 되살아났다. 왕성하게! 녀석은 오랫만에 봤는데 글쎄 반-대머리가 되어 있었으니까. 하도 눈부셔서 차마 물어볼 수도 없었다. 그분들 기분 나쁘고 어쩌고 너무 지나치게 배려할 필요없다. 왜냐하면 결국 그 얘기 하지 말라고 하면서 자기가 스스로 또 수시로 그 얘기를 꺼내니까 말이다. 단지 내가 하면 농담, 남이 하면 결례일 수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친하면 괜찮음. 오랜 친구를 스치듯 만났는데 그 친구 얘기를 잠깐만 하자면 이렇다. 그 친구는 생각해 보니 이런 친구였다. 바로 이렇게 생각하는 친구였다. 잔기술, 잔머리, 잔지식, 잔꾀, 잔뻔치, 맛보기, 엿보기, 물색, 뻔트...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그건 마초의 운명이다. 고급이 웬말인가. 못 오를 나무는 쳐다보지 말아야 한다. 사랑과 야망, 드라마 제목일 뿐이다. 이제 남은 건 로또 밖에 없다. 백조는 고개를 돌리고, 요염한 고양이는 사랑을 받아주지 아니 구애조차 못해 봤고, 어딜 넘봐 라는 듯한 오해만은 피해야 하니까, 피닉스로 변신은 불가능하며, 반겨주지 않는 고상한 사교계? 나도 싫다. 타석지상주의는 어쩜 우리의 사명 아닐까? 아니다. 이젠 것도 귀찮으니까. 하지만 가끔 열정이 선두로 치고 올라올 때가 있다. 바로 그래서 바에서 반응이 안 좋은 건가? 그럴지도 모른다. 차라리 내가 바텐더를 해 보는 건 어떨까. 입장 바꿔 놓고 생각해 봐도 참 답답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차마 답이 안 나올 테니까 말이다. 바텐더 그거 아무나 하는 거 아니다. 나도 안다. 우리 중에 누가 돈이 제일 많아 보여요? 아아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러다 소망이 오랜 잠에서 깨어났다. 꿈은 모르겠고 풋사랑이나 잡자 라면서 어린시절 놓쳤던 알록달록한 풍선과 동요 대신에 다 커서 미러볼을 쫒아간다. 지상의 삶이란 게 별거 있나 하면서. 혹성 탈출. 혹성은 일상이고 미지의 낙원은 나이트클럽이다. 젊음은 나이가 아니라 장소였던 것이다. 연애편지에 억지로 썼던 말들. 청춘, 별이여 사랑이여, 달님 해님, 애정이니 꿈이니 뭐니, 공주님 순수라는 반지를 받아주오 내 그대에게 행복의 왕관을 씌여주겠소, 낭자 저 무지개 너머 희망의 나라로 함께 떠나지 않겠소? 그거 다 순 거짓말이었듯이 말이다. 물고기를 잡기 전에 뭔 말인들 못하랴. 라~고 생각하는 친구였다. 옛날에 잠깐 친할 뻔 하기는 했다. 아마 당시 그래서 헤어진 것 같다. 그게 뭐냐면 <선생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됩니다>와 <선생님 사랑해요>에 대한 생각과 애원과 이상에 대한 구미와 취향이 서로 정반대였다는 점. 정반대끼리는 통한다느니 뭐니, 그런 말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 그만이다. 그건 그렇고, 클럽에서 만난 두 여인과 나는 헤어졌다. 나는 여자에 관심이 없었고, 그녀들에게도 나는 자기들이 바라던 이상적 신사가 아닌 듯 했으니까. 우린 인연이 아니었던 것이다. 무도회의 인연은 무도회의 인연으로, 라는 눈빛을 뒤로한 채 우리는 헤어졌다. 음악소리가 시끄러워서 별다른 얘기도 나눌 수 없었다. 드라마에 나오듯이 나이트클럽에서 막 순조롭게 대화하는 거 다 거짓말이다. 비싼 술 시켜서 룸에서 밀담을 나눈다면 모를까. 나이트클럽이란 게 그렇다. 도시의 낮은 분주하다가 밤이 되면 도시의 야경은 멋지게 바뀐다. 그리고 사람들은 낮에 이성적이었다가 밤이 되면 감성이 뭉클해진다. 그래서 카바레든 나이트클럽이든 흥겨운 파티든 들뜬 장소에서 새로운 만남은 우리를 기쁘게 해주는 것이다. 물론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당연히 타석과 타율에 민감해질 수 밖에 없는 이유다. 그래서 선수는 한정된 분들께만 문이 열린다는 고급 사교계에 대한 정보를 습득하고 그곳에 가서 뻔트를 댄다. 어쩌면 다른 게 아니라 판타지와 예술과 궁금한 인생에 대해 알고 싶은 게 많았던 소년 소녀가 몽상하는 어른들의 세계는 그것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어쨌든 나는 이름을 듣고도 잊어버린 그녀들과 헤어졌다. 그녀들은 2인조였다. 속으로 뭔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날 내가 그녀들에게 느낀 점은 밝은 낮에 만나서 대화를 한 번 더 나누고 싶다는 정도. 그리고 그녀들의 이름은 기억났다. 마리와 영. 헤어지면서 물론 내 뒤통수가 적잖이 따가웠다거나 내가 그녀들을 떠나가면서도 엉거주춤, 안절부절, 미적지근 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거짓말에 가까울 공산도 조금은 있을 것이다. 일단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기 때문에 그날 하루는 몸만 풀었다고 여기며 나는 숙소로 돌아가서 하루를 마감했다.
3 나는 다음 날 서점에 갔다. 내가 서점에 들린 목적은 분명했다. 서점에 출간된 내 소설의 반응을 살피기 위해서였다. 내 책은 중편소설로 출간됐고, 필명을 사용했으며, 작가 소개는 단 두 줄 정도가 다였다. 사진? 게재되지 않았다. 때문에 내가 원하는 최적의 조건으로 출판사와 계약한 상태였다. 물론 내가 쓴 소설은 굉장히 특이한 형태였다. 장편도 되고, 각 편별로 단편과 중편도 되는 이상한 소설이었다. 처음에 내가 먼저 연락했나 아니면 출판사에서 내게 접근했나, 잘 기억나지 않는다. 혹시 환상문학 잡지 미스테리아 편집장 마라의 소개로 연락이 됐던가? 희한하게 그 사연이 통 기억나지 않는다. 어쨌든 그렇게 만나게 됐고, 그쪽에서 전혀 엉뚱한 계약 조건을 제시해 왔다. 나도 똑같이 맞대응을 했다. 등단 경험이 전무하고 흥행에 관한 예측도 어려운 신인에게 꾀나 파격적인 대우임에는 틀림없을지라도, 내가 소유한 최소한의 객관적 자료는 분명하기 때문에 나의 협상 카드는 '하나 주고 하나 받자'였다. 어쩜 너무 무식하고 아마 너무 멍청한 접근이었을 수도 있다. 그래도 나는 바라는 게 많지 않았기 때문에 나름 꽤 만족해 했다. 내가 제시한 조건은 이랬다. 작가 소개 최소화, 사진 비공개, 필명 보장, 그외 불필요한 만남이니 모임이니 일절 없음. 거의 모든 비즈니스는 온라인으로 처리할 것 등등. 나는 연예인도 유명인도 예술가도 아니다. 일단 내 생각은 그랬다. 최소한 내가 추구하는 작품을 위한 전제는 그래야만 했다. 게다가 나는 계약서를 받아 본 순간 뜨끔했다. 왜 그랬을까? 어딘가 모르게 유명해진다고 느꼈기 때문일까, 아니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다고 깨달았기 때문일까. 거의 예상되는 지점은 삼류일 테고, 미래에 잘 해야 들을 말은 그럴 테니까. 누구도 늙었어! 나는 그처럼 어깨 뽕이 튀어나오기 싫었던 것이다. 말발 끝내주는 내 친구들, 성우에 영화배우에 마피아에 각 분야 각 장르에서 맹활약을 펼치는 친구들의 말마따나 내가 고른 책이 아니면 나머지는 보나마나, 봐도 그만 안 봐도 그만, 읽으나마나, 눈길과 시간과 마음과 애정을 기울일 필요가 없는 시간 낭비일 수도 있을 테니까. 적지 않은 친구들의 삶과 인생이 그랬다. 책은 읽을 필요가 없다고! 내 생각과 녀석들 생각의 교집합은 아예 없지는 않았기 때문에 나는 그처럼 내가 바라는, 내가 양보할 수 없는 항목에 대해 고집한 결과 내 요구를 승인 받게 되었다. 챙피하기도 싫었고, 겸손한 척 조명 받고 싶지 않았으니까 누군가에게 토하는 척 거부감을 불러일으키고 싶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꼭 그게 나쁘다는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바램이 그랬던 것이다. 일단 시장 경제에 얽히고 나면 순수는 멀어지기 마련이니까. 그렇게 되면 격조는 여간해서는 집힐 듯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여심일 테니까 말이다. 내가 제안 받은 조건은 그랬다. 편당 얼마, 일 년에 몇 편, 고로 연봉 얼마! 그게 기본이고 훨씬 많이 팔리면 적당한 보너스, 아예 안팔려도 불이익은 없고, 대신에 노동량이 부족했을 때는 그에 맞게 연봉 삭감이 들어간다고 했다. 곧 선수들처럼 다음 해 연봉이 줄어드는 게 아니라 냉정하게 현재의 실적에 따라 연봉은 유지 및 삭감되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마다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혹시 나중 실망하고 체념하면 어쩌지?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랴, 이혼이 두려워서 사랑도 결혼마저 못하랴. 여자들이 옷과 가방을 잘 알듯이 남자들은 차를 잘 안다. 자동차는 두 가지로 나뉜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가격제와 아닌 걸로. 옵션이 마술을 부리는 계약서? 내가 왜 싫겠나! 나는 마다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물론 내가 바라던 로망은 그게 아니었다. 훨씬 큰 물에서 널리 인정 받는 세계적인 출판사, 순수와 대중계를 쥐락펴락하는 그곳에서 어느 구석 어딘지도 모르는 시골에 사는 은둔형 작가에게 먼저 역으로 제안을 하는 일. 아직 등단도 안했고, 비전문가에 지나지 않은 데다 흥행의 보장도 없거니와 영 이상한 이야기들일 뿐이지만, 그분들은 옥석을 가릴 줄 알거든. 진흙 속의 진주를 대번에 알아 볼 수 밖에 없으니까. 그래서 그쪽에서 먼저 손수 기라성 같은 통역자는 물론 당대 최고의 변역가까지 대동하여 직접 만남의 자리를 주선함. 그렇게 해서 역으로 먼저 해외에서 출판된 다음에 이쪽에서! 당연히, 나는 걸출한 위인들처럼 A언어든 B언어든 가리지 안고 자유자재로 글을 쓸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그처럼 소문만 무성하고 철저히 어두운 장막에 가려진 필명 누구. 그건 이상도 아니고 몽상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야 뭐 타인에 대신 그런 역할을 맡는 일도 가능할 테니까 그런 바램은 접은지 오래였다. 어쨌든, OK! 나는 계약서에 즉시 서명했다. 내가 읽을 수 없는 크기의 글씨로 날 옭아매는 메피스토펠레스 조항이 있나는 모르겠지만 일단 비고정급 박봉에 시달리는 미스테리아 칼럼니스트는 일정 수입이 보장되는 어엿한 작가로 변신하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신분 상승일 수도 있고, 이제야말로 혹독한 전문가의 세계에 입성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또 나는 혹시 비정상적으로 작품이 팔리거나 영화로 만들어질지라도 난 과도한 인기나 황금을 바라지는 않았다. 그야 그때 가서 섭섭하고 아쉬울지는 몰라도 행복을 위한 최저 수준의 품위 유지비면 내게는 충분했던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해졌다. 열심히 글을 쓰는 것도 쓰는 것이지만 무엇보다 나는 뭔가 믿는 구석이 있었던 것이다. 그건 무엇이냐면 남자는 나이가 들면 힘이 밑에서 위로 올라온다는 정설이었다. 그렇다고 밑에 있던 힘이 위로 다 올라가버리면 또 것도 좀 아니 많이 곤란할 것이다. 때문에 부족한 에너지를 외부에서 충당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내내 그래왔듯이 고전주의자로 살면서 환상머신을 꿈꾸고 무지개 너머 사랑의 나라, 희망의 세계, 신비한 판도라의 상자에 대한 선망을 무럭무럭 키우며 광기 어린 사이렌이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되어야만 했다.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할 수 있다고 동기 부여를 하고 또 했다. 자발적으로 정신병원에 들어갈 수는 없었으니까 말이다. 일부러 마감일과 같은 궁지의 여건에 몰아붙여서 내 안에 계시는 그분 투명인간을 자꾸 귀찮게 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된 것이다. 그러든 어쩌든 좋은 주제가 나왔는데 간략히 지나치면 서운하니까 조금만 추가 설명을 하자면 이와 같다. 나는 왜 필명을 고집했나? 첫째 시간, 둘째 새로움, 셋째 (혹시 모를) 슬럼프, 넷째 초심. 무엇보다 귀찮기도 하고, 미리 김치국부터 마신다고 끌려다닐 필요도 없고, 할 말 원없이 할 수 있으니까. 나도 반짝반짝 딸랑딸랑 참새 짹짹 병아리 삐악삐악 어른닭 꼬꼬댁꼬꼬꼭 알록달록 조명 비추고, 이름 알리고, 얼굴 알아보고 유명해지며 인기를 구가한다면 웃지 왜 안 웃겠나. 당연히 좋지 왜 안 좋겠나. 그게 나쁘다는 게 아니다. 단순히 그러고 싶어서 유명해지고 싶다고 할지라도 원하는 모델이 있고, 바라보는 이상향이 존재하고, 가고 싶은 지점이 분명하며, 하고 싶은 일이 구체적이란 건 분명 긍정적인 의미를 뜻한다. 나도 역시 그러면 좋고 그러고 싶은 마음 있다. 그러나 그러는 순간, 아니 이미 그러기 전부터 이상한 예술가였고, 장래 더 이상한 전문가가 될 테며, 벌써 유명인이 된 순간부터 연예인일 테니까. 바로 그래서 나는 필명을 고집했다. 어른들의 세계는 어른들이 주인공인데, 어른들도 때때로 깜짝깜짝 놀라는 게 바로 어른들의 세계다. 환상이니 신비니 문학이라는 둥 예술이라는 둥 그래 봐야 관건은 돈이고, 원리는 오락산업. 비교는 기본이고 경쟁이 심화될 수 밖에 없는 노릇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자 꼭 대중의 잘잘못으로 치부할 수만도 없다는 것이다. 또 소비와 경쟁이 아니면 그래프 선은 내려갈 수 밖에 없다. 문화와 교양과 예술이란 마차도 결국은 자본이 굴리니까 경쟁은 현대인에게 피할 수 없는 불가피한 숙명. 하오나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하며 법복을 입고 정의 사회를 구현한다며 경례를 하더라도 '솔직하게'라는 꾸밈어조차 필요없이 1번은 돈이다. 에이 잘 아시면서! 작가든 칼럼니스트든 대부분은 단지 연예인 지망생일뿐! 어른들의 무책임한...이라기 보다는 어쩔 수 없는 자본 논리 때문에 아마추어는 동심 때부터 이미 시작 단계부터 삼류로 길러질 수 밖에 없는 운명이다. 시대가 그렇다. 감히 전문가라는 양반이 이름을 걸고 약을 팔어? 라는 사례, 지나고 보면 스스로 깨닫거나 스스로 무시하게 된다. 풍요로움과 호사와 자유와 행복은 절대 공짜가 아닌 것이다. 화가를 예로 들어보자. 화가를 꿈꾸는 꿈나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언젠가 화가로 멋진 인생 변신을 준비하는 친구, 현재 유명하고 잘나가는 화가! 그분들이 자신이 태어났던 20세기 중-후반 그 이전에 대해서는 잘 알지도 못하고, 아는 건 많아도 남의 다리나 긁을 줄 밖에 모르며, 얼굴은 두껍고, 관심도 없고, 좋아하지도 않고, 흉내낼 생각일랑 일절 없으며, 단언컨대 심지어 닯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그게 화간가, 네? 그게 화가냐구요! 그건 화가가 아니라 연예인이자 광대다. 응애응애~ 에게에게~ 미술은 그냥 직업이자 취미일 뿐이다. 그건 예술가가 아니라 상인이다. 피카소는 카페 이름, 에르메스는 받고 싶은 선물, 아마데우스는 CM송, 톨스토이는 단지 웨이터의 명찰인 것이다. 왜냐하면 분야에 따라 삼류가 일류인 세상이기 때문이고, 따라서 그게 모두 자연스럽게 가능한 것일 따름이다. 어머나 그런데, 그런 화가가 어느 잘나가는 브랜드의 광고 모델이다? 세상에나, 지나가는 개가 웃겠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처음부터 업계에서 삼류만 키운다니! 그게 대체 뭐지? 그 어떤 미술계에는 절대로 희망찬 미래는 없다. 두고 보시라! 무슨 거창한 시상식의 시기가 다가오면 또 언론에서 수다 떨고 오락산업이 들썩들썩한다고 진짜 그런 줄 아시나. 지난 날을 돌아 봐도 어디에서, 음악이 좋긴 좋다만 하늘까지 갔다 되돌아 오고... 라는 시상 말고는 거의가 아니라 아예 그 뭔가가 전무했다. 우물 안 개구리는 보이는 게 우물 밖에 없다. 뭔 동네 강아지처럼 멍멍멍-멍멍멍-멍멍멍멍멍멍멍 짓기는 엄청 짓고, 빈수레는 요란하며 쉬지도 않는다. 여실히 물 건너온 꿀벌이 하나를 봐도 똑부러지게 본다. 대번에 안다. 즉각 느낀다. 누군가가 괜히 합리주의 합리주의 그러는 게 아니다. 그 옛날 장 폴 사르트르의 어떤 말은 취지는 좋았지만 내가 봤을 때 그 말은 틀렸다. 다른 게 아니라 확실히 틀렸다. 그렇다고 정신 차리면 손바닥 뒤집듯이 업계 전체가 뚝딱 슬럼프를 탈출할까? 그게 말처럼 쉽겠나. 우리도 제빵사 모자를 써 보자, 그래 봐야 그 모자는 모자가 아니라 내 두 어깨를 밟고 서 계신 어느 여인일 뿐이다. 보이나요? 그녀의 음조는 어떤가요? 분위기는 어떤가? 아 정말 사람 답답하게 그러지 마시고 말 좀 해보시란 말이요! 그 모자와 리본과 넥타이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진 게 아니니까. 그 현재를 위해서 천 년 이 천 년의 시간이 필요했다는 것은 백번, 천번, 만번 지당한 말씀이니까. 규모가 앞서고 타석주의를 선도하며 인프라스트럭처가 엇비슷하고 화장법이 뛰어나고 조명발에 환호성이 끊이질 않을지라도, 다른 건 다 따라하고 더 훌륭하고 어쩌고, 제아무리 로맨스와 판타지가 유행할지언정 정신은, 정신은 어림없다. 그 현격한 차이가 보이지 않는다면 짝짝짝 짝짝짝 짝짝짝짝짝짝짝 반짝반짝 딸랑딸랑 그 말 밖에는! 화자는 나는 바보입니다, 청자는 지는유 뭘 모르는 촌년이에유, 예술가는 뭘로 보나 내가 최고입니다, 인기 있는 분들도 저는 (은근) 허당이랍니다 라는 광고와 도대체 뭐가 다를까. 대부분 귀감에 꿈의 실현은 권리이자 야유회도 학예회도 모두 재밌고 아름답지만 그 뭔가 그 뭔가는 좀 그래서 하는 말. 꾀꼬리 같은 소리, 황홀한 사랑 고백, 소프라노가 부른다 밤의 여왕 아리아를 아이쿠 부르자마자 우리의 심금을 울리네, 그외 수많은 초절 기교와 신기한 특징과 놀라운 장기는 많고도 많지만 오롯한 정신은 하루 아침에 따라할 수 없다. 정신이 가장 잘 드러나는, 확연히 두드러지는 분야가 뭐냐, 글이다. 그래서 말하는 변호사와 말하지 않는 변호사가 나뉘기도 하고 분야에 따라 대변인이 있는 것이다. 자존심인지 뚝심인지 아니면 열정인지 그 뭔가가 너무 강한 분들 그분들 글을 가만히 읽어 보면 이상...하다. 뭔 말인지를 하나도 모르겠네 모르겠어. 한두 명도 아니고 대체로 그분들이 대세고 스타고 인기다. 타고난 유전자가 백조 대 촌닭 대충 2 대 8일지라도 늑대개처럼 일평생 동물농장에서만 산다면 아프리카 그 광활함 그 가슴이 일렁이며 마음이 뭉클하고 코 끝이 찡함으로도 모자라 눈물이 핑 돌며 지각마저 아찔한 그 대자연의 봄여름가을겨울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모른다! 절대 모른다. 나는 뭐가 좋다, 에 대해서 태생적으로 뭔가가 다르다면 죽어도 모를 수 밖에 없다. 그냥 모르다 가는 것일 뿐. 모르긴 몰라도 먼 미래에는 그 모두까지 아마 숫자로써 미리 알고 만나고 부딪히고 생활하며 사랑까지 해야 할지도. 다른 데는 몰라도 어디를 보면 능력 출중하고, 감성 뛰어나며, 기술까지 고상할지언정 딱 보면 꼬끼요 꼬꼬꼬꼬 뭐라뭐라 떽떽거리는 느낌, 묵묵히 외면하기엔 내 참을성이 부족함을 반성해야 한다. 어쩌다 듣게 되는 헤드라인처럼 뭐 어쩌고 좌시하지 않겠다 그게 아니라 솔직한 심정이 그러하다는 뜻. 몸에 좋은 약은 입에 쓰다. 그러나 지는 건 지는 거다. 인간의 본성은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 라는 속담과 정확히 딱 들어맞는다. 그분들 기분이 좋을 리가 있겠냐는 거다. 울그락불그락 커피포트 부글부글! 그래서 또 바빠진다. 레이저와 화염방사기는 항상 대기중이다. 업계는 반기고 품위 유지비는 돌고 돈다. 하지만, 그 모두가 자유와 행복과 번영과 호사와 기쁨이 보장될 수 있다는 반증이란 사실을 잊지 말자. 그러니까 결국 타임머신 얘기네. 기왕지사 타임머신으로 주제가 넘어온 거 분야를 틀자. 대중의 수준은 차치하고 정치계만 뭐라 할 수도 없는 일이라는 둥 어쩐다는 둥, 정치 얘기를 하면 듣게 될 말, 다 안다. 뻔하다. 우려먹다 어쩐다. 그러니까 딴 거. 종교, 가자. 허나, 짧게. 매우 짧게. 종교도 똑같다. 무슨파니 무슨파니 뭐니 뭐니 갸우뚱 간혹 설핏 인상이 찌푸려지는 소식? 종교1도 다 거쳤던 일일 뿐이다. 구교니 신교니 십자군 전쟁이니 뭐니, 르몽드 세계사를 읽어보지 않아도, 대충이라도 알고 나면 큰 그림이 보이면 일단 끄덕끄덕 하게 된다. 그건 그렇더라도, 아니 대체 어른들은 왜 그럴까? 무슨 말은 말은 제우스에 신동에 큐피트고 예언가가 따로 없다. 당장 오빠 그리고 아빠만 봐도 사랑은 얄비운 나비인가 봐 그러면서 잡은 물고기한테는 밥을 주지 않는다. 그러면 그녀와 엄마는? 보아 하니 많은 부분 발명가, 선지자, 창시자의 원류를 찾아서 휴양지에 가는 식이다. 남의 다리를 피나게 긁으면서 아 이제야 좀 시원하다? 그분은 시원하시겠네 삼류들이야 좋지 왜 안 좋겠나, 유명하고 돈 벌고 반짝반짝 딸랑딸랑 굽실굽실 벌거벗지도 않고서 임금님인데 말이다. 이제 곧 인공지능이 전면에 나서게 되어 있다. 그쪽도 스타가 있을 것이다. 손 안 대고 코를 푸는 스타가! 그처럼 오도된 상업이 지배한 학계는 먹구름만 잔뜩 낀 걸로도 모자라 촉각도, 미각도, 지각마저 점점 퇴보하여 난쟁이의 나라가 되버릴 것이다. 내 장담한다! 그건 어쩜 처음부터 정해진 숙명인지도 모르겠지만. 어차피 이렇게 된 거 패션을 배우기 위해서 수도원으로 가자.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낭만주의를 배우기 위하여 카바레를 찾고,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인상주의를 전공할려면 동기 부여 강연회를 여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신 거장들의 꽁무니나 쫓아다니자. 왜 안 되겠나. 안될 건 뭔가. 어머 어머 우리 똘똘한 개구쟁이들이 커서 과학자가 되고 싶다고? 가설과 실험과 증명이 웬말인가, 레인메이커가 있는데! 시골 사는 도박꾼들, 왜냐면 대우부터 다르니까요, 어디로 이사 가서 팔짜 한번 고쳐 보지 않겠수? 헤드라인에 나오는 도박사는 승부사고, 외딴 동네에 사는 도박꾼은 뭐 사과나무나 심어라? 아 됐고, 우리 행운아들은 묻지마 베팅이나 합시다 그려. 흥! 연예인은 연예인병에 잠깐 설혹 걸릴 수도 있다지만 몽땅 탈출한다. 다 과정일 뿐이다. 옛날에나 통과 의례였지 촌스럽게 누가 지금 그러나. 예전부터 다 건너뛴다. 그 시장은 하향 평준화가 아니란 말씀. 그렇지만 업계에 따라 연예인이 아닌 유명인은 조금 다를 수 있다. 그러니까, 그 미세하고 신경 쓰이는 우쭐함이 작품에 영향을 끼칠까, 끼치지 못할까? 스포츠 선수는 성적으로 화답하고 영화감독은 작품으로 말해야 한다. 그러니까, 그 미세하고 신경 쓰이는 우쭐함이 작품에 영향을 끼칠까, 끼치지 못할까? 답은 어렵지 않다. 설령 그럴지라도, 난 지금 그분들의 황금을 부르는 수완이 탐나서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으니, 나도 나다. 이건 잘하는 일일까 못난 짓일까. 바로크 음악가들처럼 후원하는 귀족, 대귀족이 없으니 뭐 칼럼이나 꾸준히 또 열심히 쓰는 수 밖에! 생각해 보니 별수 없었다. 자신감 있게 당당히 세상에 나서면 되지, 그게 뭐 어렵다고, 이 세상 누구나 자기 잘난 맛에 사는 거지 뭐 그렇게까지 유난 떨 필요 있나? 라는 반론도 있을 수도 있다. 그 말도 맞는 말이다. 누가 보면 머머증에 걸린 환자 아닌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테니가. 인정한다. 겸허할 필요도 없고 툭 터놓고 말하자면 그렇다. 좋다. 그 의견에도 적극 동의한다. 하지만 나는 아직 왠지 모르게 사랑 노래를 즐겨 듣기 좋아하는 그런 수줍은 소녀이고 싶었다. 그러니까 뭐랄까 아직 동화를 떼지 못한 12살, 나도 어른들 세상이 뭔지를 이미 다 알고 있어 라며 뚱한 표정을 짓는 소년이자, 꿈 많은 아동이고 싶었던 것이다. 어쩌면 차라리 허풍 대회를 주최도, 주관도, 후원은 물론 진행에 시상에 당선도 모두 혼자 독차지하며 원맨쇼를 펼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처럼 서점에서 내 책에 누가 손을 내미는가 내밀지 않는가, 언뜻 눈길 주는데 인색한가 인색하지 않은가, 몰래 엿보다가 나는 한때 꽤 친했던 형씨를 만났다. 그분을 처음 만난 곳은 다름 아니라 어느 후미진 카바레였다. 당시 나는 그 웨이터의 명찰에 뭐라고 씌여있는지 알고 나서 난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건 바로, 미스터 보봐리! 뭐? 난 당장 그분이 범상치 않은 분이란 걸 깨달았다. 그치만 남자 대 남자인데, 손님 대 웨이터인데 인연이 곧바로 이어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직감했다. 그래서 첫 만남은 그렇게 끝났다. 하지만 인연은 끈질겼다. 한 일 년쯤 후에 도시에서 CD와 예술 서적을 고르기 위해 방문했던 어느 한적한 초소형 가게에서 그분을 다시 뵙게 된 것이다. 우리는 이건 보통 인연이 아니라고 느꼈다. 그렇게 연을 맺게 되어 친구가 된 우리는, 서점에서 우연히 만났고, 자리를 옮겨 찻집으로 갔다. 못 다 나눈 얘기가 꼭 많지는 않았으나 솔직히 말해서 많이 반가웠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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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계속 찍으세요?」 「처음에는 열정이 있었는데 뭐랄까요 사랑처럼 마음이 바뀌더군요. 스콧은 춤 계속 추세요?」 「그만뒀죠. 뭘 진득하니 오래 할 팔자는 아닌가 봐요.」 「그런데 참 오랫만에 뵙는데 여전히 멋지시군요. 아직도 여자들이 줄줄 다르겠어요. 번호표 발부 기계 사셔야 하는 것 아니에요? 형씨처럼 숙녀한테 인기 많은 남자 때문에 저희 같은 까마귀들은 매번 발빠르게 뛰는 수 밖에 없는 겁니다. 날아 봐야 지붕 위라니까요. 그럼요. 오늘 입으신 의상도 거의 뭐 오피스 룩의 정석이군요. 수트는 꼬르넬리아니. 양말은 폴 스미스. 아닌가? 그리고 다른 건 음... 모르겠어요. 꼭 알아야 하는 건 아니죠. 뭐 옷이 문젭니까? 패션의 완성은 얼굴인데 말이죠. 그건 그렇고, 그동안 어떻게 사셨소? 왜 내게 한번도 연락하지 않았소? 이것 봐. 내 정신 좀 봐. 모르긴 몰라도 아마 형씨가 세 번 연락하면 난 겨우 한 번이나 연락했는지 모르겠소. 지난 날이 떠올라서 쑥스럽구만 허허! 고전적인 자주색 수트와 기대와 설렘이 뒤섞인 분홍색 셔츠는 여전하시구료. 선생을 보고 있으면 꼭 괴물과 조커가 떠오른다오. 그런데 누가 조커지? 아, 맞다. 그녀는 계속 만나오? 추리소설 문학잡지 편집장 말이오.」 「헤어졌소. 그녀는 직장도 옮겼다오. 심지어 자주 옮긴다오. 여성잡지1. 여성잡지2. 게다가 남성잡지까지 말이오. 나아가 나와 헤어지고 남자친구도 바로 생기더라, 그 말씀. 그래서 난 좀 놀랐다오. 그래도 우리가 사랑을 하긴 한 건가? 그런 의문이 살짝 들길래 말이오.」 나는 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해 재빠르게 말을 돌려야 한다고 판단했다. 「가끔 소셜 네트워크로 사는 소식을 접하면서 연락 한번 할까 말까 고민했소. 선생이 최근 바꾼 차가 너무 멋져 보였걸랑요. 무슨 루소? 노란 애마 마크가 유난히 선명해서 선생을 좀 괴롭히고 싶었단 말이오.」 「봤소? 난 그냥 멋진 차 타며 유랑 생활도 했다가 직업도 많은 분야에 도전하고, 내내 좋은 술집이나 전전하다가 늙어야 할 팔자는 아닌가, 가끔 그런 걱정이 든다오. 형씨는 안 그렇수?」 「난 솔직히 그러고 싶지 않소. 하지만 내 친구 중에 하나 철 없는 녀석이 있거든요. 만나면 만날 때마다 고급 술집에 데려다 달라느니 어쩌니, 아주 난리도 아니랍니다. 내가 그래서 나중 녀석한테 어디 자유이용권을 발급해 줄 생각이라오. 요염하고 음습한 분위기에다 아주 도도하고 예쁜 마담을 걔 사무실로 보내서 식은땀 쭉 나도록 괴롭힐 생각이란 말이오. 당연히 내가 보냈다고 하면 안되겠지요. 아, 그래서 말인데 이 몸도 어쩔 수 없이 햇빛이 따스한 양지로 나올 수 밖에 없었소. 뻔하지 않은 청보라색 연한 줄무늬 수트도 사고, 담백한 노란색이든 고마운 느낌의 하늘색이든 중고로 어떻게 뚜껑 없는 차도 타 봐야 하니까, 부족한 품위 유지비에 대한 내면의 절규를 언제까지 모른 체 회피할 수만은 없었기 때문이라오. 그래서 난 그냥 출판사와 계약해버렸소. 물론 필명에 얼굴 없는 작가로 말이오. 안 그랬다간 슬럼프로 꽤나 고생할 듯 해서 덜컥 겁이 났으니까 말이오.」 「아, 그러하오? 듣던 중 매우 반가운 소식이오. 축하하오. 그런데 그 일은 어렵지 않았소?」 「전혀요. 매우 간단하던 걸요. 먼저 미스테리아 편집장으로부터 소개 받은 분께 메일을 보냈소. 고전적인 손편지가 아니라 이메일 말이오. 무슨 에디션 만년필도 잃어버렸고, 요즘 수전증 때문에 원고는 몰라도 편지는 좀 힘들어서 그랬소. 이메일도 별 내용 없었소. 메일 제목, 장르, 특징, 블로그 주소, 분량과 요구 조건등만 간략히 써서 보냈소. 그래서 연락이 왔고, 만났고, 계약을 했소. 그게 다요. 허허허허허.」 「경하드리오. 아 이거 미처 선물을 준비하지 못했네 그려. 어떡하면 좋지? 어떻게 음 뭐가 있을까? 아, 최근 친한 내 친구가 특급 호텔 사장이오. 형씨 숙소나 옮깁시다. 그렇다고 내가 꽃다발을 안겨주겠소 옷을 선물하겠소? 친한 친구 몇 명에 등번호에 허영심을 어떻게 반기는지, 어떤 여자를 좋아하는지 우리끼리 모르는 건 하나도 없는데 그거라도 내 마음대로 합시다 그려.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루쏘 타며 바람도 쐬고 이참에 숙소도 냉큼 옮깁시다 친구. 허허허허허. 아, 맞다. 내 하나 묻겠소. 갑자기 궁금해졌소. 당숙께서 쓰시는 다음 작품 제목 말이외다. 전부터 부쩍 궁금했다오. 살짝 과장하자면, 난 정말 궁금해서 미칠 것 같다오.」 나의 대답은 이랬다. 허당론! 그렇게 우리는 드라이브를 즐겼고, 나는 숙소를 최고급 호텔로 옮기게 됐다. 앞으로 어떤 질투를 받게 될 줄도 모르고서 말이다. 나야 마다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친한 척이 아니라 친했고, 있는 척 하지 않아도 되는 사이였으며, 강한 척 센 척 잘난 척 애쓰지 않아도 되는 우정이었기 때문이다.
5
나는 스콧이 마련해 준 최고급 호텔 피노키오에서 낮에는 글을 쓰고 밤에는 도시를 방황했다. 거기서 일단 편집장 마라의 청탁을, 나 필명으로 인기 좀 얻고 형편이 풀렸을지라도 매정한 남자로 돌변할 리는 없으니까, 마라의 애청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 마음이 약하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나도 칼럼니스트라는 일을 즐겼으니까. 좋았으니까. 동화작가로 시인으로 연애-수필가로, 인문학자로 매번 변신하며 실험하고 연습할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다음은 내가 고품격 호텔 피노키오에서 작성한 시다. 이번 장르는 대중적인 시였던 것이다. 그리고 당분간 미발표 작품으로 남겨놓을 생각이다. 철마는 달린다. 목마는 춤춘다. 양떼견은 바쁘다. 말상인 숙녀는 할 일이 없다. 그래서 최고의 갈채는 개상인 여자와 고양이상인 숙녀가 만나 이루는 절묘한 수다임. 그래서? 뭐가 그래서야? 그냥 그럴 수도 있다는 뜻임. 허나, 참견하기 좋아하는 구경꾼 때문에 시상이 끊길 리는 없다. 상상은 자유니까. 공상은 장기니까. 여자는 내 전공이니까. 그리고 마술사는 종적을 감췄다. 신비극은 명맥이 끊겼다. 술집은 텅 비고 사내는 외롭다. 주사위는 던져지기를 기다린다. 방랑자는 다음 모험을 물색한다. 미러볼은 빙글빙글 돌아가고, 밤무대에서는 한껏 원숙한 원로 여가수의 눈빛보다 입이 떡 벌어지는 의상이 훨씬 반짝인다. 꿈의 회피 기술도 다 안다. 살면서 핑계는 늘 수 밖에 없으니까. 문학 소년은 페이스메이커를 꿈꾸고, 발레리나는 한정판 하이힐을 떠올린다. 어쩐지 음산한 추리소설, 왠지 신나는 액션 코믹 영화. 어딘가 모르게 따라가기 버겨운 으쌰으쌰 분위기. 따라서 그대의 주말은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첫째 찬란한 행진, 둘째 무정한 상심. 첫째는 우리들의 희망이고 둘째는 재미없는 얘기이자 싫증난 연애다. 그러나 새로움과 즐거움과 황홀함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혹시 모를 절망을 각오해야 한다. 값진 보람, 지고의 성과, 다정한 기쁨은 다 대가가 따르기 마련. 논박할 수 없는 진리다. 어제까지는 그랬다. 날마다 심심하기 바빴으나 언제라도 그 어떤 새로움을 맞이하기 위해 만전을 기했다. 고로 나는 오늘도 꿈꾼다. 무엇을? 순진한 환상─무구한 신비─눈부신 사랑─천진한 행복─정다운 우정─우연찮은 행운─아찔한 지성─천사 같은 당신─끊임없는 영감─발동 걸린 인기─마침내 자유─재미있는 하루─이상적인 내일─과장된 추억─고귀한 기쁨─비밀스런 활기─아름다운 애정 그리고 심심한 우연을!
6 우정을 과소평가하고 사랑을 과대평가했다. 친구는 기쁨을 속삭였고 애인은, 애인은, 나는 아직 애인과 데이트를 한번도 못해봤다. 그러면 당신은 어떻게 여자에 대해서 그리도 잘 아냐고? 왜냐하면 여자 앞에서 나는 절대로 거짓말을 하지 않거나, 하얀 거짓말만 하기 때문이다. 물론 농담이다. 난 여자 모른다. 내가 어떻게 여자의 마음을 알겠나? 누가 여자의 마음에 대해서 잘 아시는 분 계시면 내게 그 영험한 비법을 전수해 주시지 않겠소? 나는 배우고 싶다. 난 모른다. 내가 어떻게! 그러니 어쨌든 나는 당연히도 포근한 포옹과 달콤한 키스는 상상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권태라고? 낭만주의도 거치지 못했는데 권태는 무슨! 현실을 보아 하니 칼럼니스트로의 전향은 실패한 변심이었다. 아직 승부를 얘기하기엔 오판일 여지가 많지만, 허언증에서 블로그 신드롬으로의 변신도 실망스러운 변덕일 수도 있고. 그래서 나는 다시 미래주의자로 복귀하여 새로운 환상극을 써야만 한다. 재미있을 뻔 하다가 허무하게 끝나버리는 작품이라도 괜찮다. 지금 어쩌면 식은 밥 찬 밥 가릴 처지가 아닐지도 모르니까.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자. 혼잣말은 술친구와 하고 일하는 사람은 성과를, 도전자는 실패를 감수하고, 작가는 글을 써야 하니까. 지금 나는 도시에서 또 고급 호텔에서 휴양 생활을 즐기고 있기 때문에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다. 그리핀, 특급 호텔 사장 그리핀 그 친구가 심술이 장난 아니다. 왜 그런 줄 모르겠다. 그리핀은 스콧과 오랜 친구 사이라고 했다. 나는 스콧과 업계 동료이자 다양한 취미를 함께 즐길 수 있는 친구였고, 따지고 보면 선후배 사이이기도 했다. 소셜 네트워크 친구에다 관계되는 의미가 많은 끈끈한 사이였다. 다만 한동안 떨어져 살다가 오랫만에 반갑게 재회한 후 지난 우정이 다시 뜨거워졌다는 것 뿐. 이상할 건 하나도 없었다. 게다가 스콧이 그리핀을 소개시켜줬고, 나는 그리핀과도 친구가 됐다. 때문에 우리는 적어도 당분간은 친하게 지내야 했다. 나도 그러고 싶었다. 그러기를 원했다. 어쩌면 간절하게. 그런데 그리핀은 변덕이 심했고 기분이 들쑥날쑥했다. 설핏 다혈질은 아닌가 하는 의문은 날 살짝 떨게 만들었다. 하루는 호텔 바에서 그리핀과 나, 단둘이 술을 마셨다. 그리핀이 바텐더를 모두 반대편으로 보내버렸다. 저런! 그리고 그리핀은 다짜고짜 탁자에 자신의 차 열쇠를 턱 하니 올려놨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도시에 머무는 동안 나 보고 타라고 했다. 나는 아직 그리핀을 충분히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내가 타라면 못 탈 줄 아냐! 「언제까지 머물 생각이니?」 우리는 이미 반말하는 사이가 됐다. 「아직 딱히 정해진 건 없어. 하는 일의 결과에 따라 약간 달라질 것 같은데! 그건 왜... 혹시 뜻밖의 청첩장 그런 거 줄려는 건, 아니지?」 「어떻게 알았어?」 「어... 하하하하하.」 준다는 말이야, 안 준다는 말이야? 얘가 은근 맹하네, 라고 나는 생각했다. 아니면 딴 속셈이 있나? 「누구와 누구를 결혼시키지? 약혼식도 아니고 다른 행사도 아니고 결혼식을 주문하네. 왜, 내가 멋진 파티에 초대 받은 경험이 전무할 꺼 같애?」 「응? 뭐라고?」 「아니. 혼잣말이었어. 신경 쓰지 마.」 난 느꼈다. 그리핀의 기분이 좋지 않다는 걸. 심기가 썩 불편하시다는 걸. 얘 혹시 질투하나? 자기들 우정에 내가 끼여들었다고? 불청객한테 단짝을 빼았길 것 같은 불안감. 뭐 그런 건가? 아마도 그런 듯 했다. 얘한테 분명 트라우마가 있을 것만 같은 분위기였으니까. 이런 때 어떡해야 하지? 여자들은 몰라도 난 이런 일에 대해서 누구보다 경험이 많다고 자부할...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런 일을 겪어본 걸로는 상중하에서 상이었다. 때문에 대비책이 있어야 정상이었다. 그러나 내 생각은 오직 작품을 위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떠날 수도, 떠나지 않을 수도 없었다. 나는 우정의 위기와 동심의 위협을 동시에 느꼈던 것이다. 곧 단짝 삼각관계에 대해서 불감증은 아니었음. 하지만 마치 사랑처럼 나는 매번 초보자일 수 밖에 없었다. 영원한 아마추어. 일과 놀이가 완벽하게 일치하지 않는다면 아마추어가 좋긴 좋은데, 또 설명하기 까다롭게 어떤 미묘한 차이 같은 것도 있었다.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감수해야만 하는 하수의 사랑과 고수의 연애법 같은. 따라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수동적으로, 차세대 환상곡이라는 문학 2륜 마차가 아닌, 단짝 삼각관계라는 4륜 쌍두마차에 업혀갈 따름, 다른 건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게 기분이 묘한 게 나중에는, 곧 시간이 오래 지나서는 질투를 하는 쾌감도 부러움을 받는 기쁨에 대해서도 온전히 분석적인 글쓰기가 가능하겠지만, 그게 아니라 주연이 되어 현실에서 연기를 하게 되면 메소드 연기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는 점. 퍽 난감했다. 그러다 그리핀은 내가 호텔에서 글을 쓸 때, 스콧과 내가 극장에 갔을 때, 그리고 음악회까지 매번 현장에 나타났다. 한 번은 우연, 한 번은 문화생활, 한 번은 일시적인 동참. 스콧의 전화도 내 전화도 불이 났고, 녀석도 나도 매번 당황했다. 한마디로 예측 불허였다. 어머 별꼴이야 정말! 라는 말을 들어도 부족했다. 거의 상상 초월에 준하는 사태였다. 또 나는 스콧에게 책 프로스페르 메리메의 카르멘을 선물했다. 스콧이 다음 날 말했다. 그리핀이 웬 CD를 선물했다고. 안 봐도 뻔하다. 비제지 뭐겠나. 걔가 그런 애가 아닌데 질투하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며 스콧과 나는 허탈하게 활짝 웃지 않을 수 없었다.
7
아침에 나는 호텔 내 미술관에 갔다. 자체 소장품을 전시중이었다. 미술관 뿐만 아니라 호텔 내에 진열된 작품은 대충만 봐도 이랬다. 에른스트 루트비히 키르히너의 어느 초상화. 니콜 아이젠만의 남자 예술가. 카스텐 횔러의 거울 회전목마. 엘리자베스 페이튼의 독서. 탈 R의 바이올린을 켜는 남자. 90퍼센트는 그리핀이 직접 골라서 비서한테 사라고 시킨 것 같았다. 재수없는 놈! 얘 현대미술 좋아하나? 그거랑 나랑 뭔 상관이야. 아마도 우린 아무리 잘 쳐줘야 애증 이상의 관계는 불가능한 듯 하니까. 그것도 너무 갔네 너무 갔어. 한편, 어느 날 우리는 함께 카페에서 만났다. 나, 스콧, 그리핀 그렇게 셋이서. 차라리 나를 빼고 그 둘이 만나면 좋을 텐데 내가 뻔히 도시에 있다는 걸 아는데 절대 그럴 수는 없다는 심정인 듯 했다. 우리는 남자 대 남자의 우정이지만, 이때 한 명이 일정상 바빠서 함께 할 수 없다면 어김없이 넘버 쓰리로 밀릴지도 모른다는 성실한 불안감, 없었다고 부인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1번은 몰라도 행여 등번호 3번만은 피하자 그런 의도는 굳이 과학적 근거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예전에 한 여자와 짧게 사귄 일이 있었는데, 난 그녀를 만날 때 이렇게 생각했어. 내가 그녀라고 가정한다면 아마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까 해서. 아빠는 시인 오빠는 바텐더 나는 아마 투자자? 어쩌면 도박꾼! 그러다 갑자기 사랑해요 사랑해요, 반짝반짝 좋아해요, 종알종알 즐거워요. 그러면 정신이 번쩍 들었지. 그런 만남이 잦았기 때문일까? 난 결국 그렇게 변해간 듯 해. 상심에 빠진 마법사, 쾌락에 젖은 예언가, 사랑을 모르는 책략가로.」 내 말에 녀석들의 반응은 썩 신통치 않았다. 오직 표정 연기로 너의 마음을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동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카페에는 뭐랄까 JB 특집일까? J&B 위스키라도 마셔야 하나? J.B. 브와모르티에의 트럼펫&오르간 소나타, 플룻&하프시코드 소나타가 연달아 연주되고 있었다. 도대체 왜, 왜, 왜! 그야 점원 마음이던가 카페 방침이겠지. 나는 좋았다. 나는 마음에 들었다. 다만 스콧이, 그보다는 그리핀이 살짝 걱정됐을 뿐. 왜냐하면 사람들 저마다 각자 싫어하는 주파수 음역대가 있을 텐데 그리핀은 어딘가 모르게 관현악 음률이 너무 두루뭉실하다고, 너무 불협화음이 많이 섞였다고, 너무 음의 진동이 이상하다고, 너무 묻어가는 느낌 때문에 지나친 거부감을 표할지도 모른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얘네들이 너무 조용한 것 같아서 계속 내가 마이크를 들고 방송할 수 밖에 없었다. 「얘들아 어제 있잖아. 얘들아? 형씨들 어제 있잖소. 어제 내가 영화를 한 편 봤다오. 생일 파티에 부른 업체의 행사가 취소되자 아빠가 광대옷을 입고 대신 광대 역할극을 했고, 그 광대옷은 끝내 벗겨지지 않기 때문에 아빠의 운명이 어떻게 바뀐다는 내용이었소. 영화를 중간까지인가 보다가 잠들었고. 그런데 그걸 보다 보니 특이한 점을 느꼈소. 카피라이트처럼 느낀 점을 축약하자면 이렇다오. 캐나다 영화는 글렌 굴드다! 꼭 그렇지는 않겠지만 정말 놀랍도록 닮은 것 같단 말이오. 군더더기가 아예 없어. 영상은 스타카토고, 기획 의도는 긴장감이며, 영화의 진행은 거의 무슨 인문교양서의 골격과도 비슷하더라는 감탄 말이오. 의문─억측─예상─실험─새로운 가설의 논리적 증명─정석으로 영화는 구체화 되고, 이론으로 발전시키고, 학설로 다듬어서 법칙을 만들기. 나만 알고 싶은 그이의 습관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마치 마술사의 주술에 걸린 것 마냥 그게 그냥 자연스럽게 보이더라 그 말씀이외다. 어느 청년의 삼국 생활기가, 아 그래서 그런 거였구나, 라고 아차 하면서 크게 이해되더란 말이오. 이거 이거 퀘벡으로 여행 가서 한동안 은거 생활하며 추리소설이라도 써야 할지...! 와, 그래서 어느 재미없는 운동선수는 그럴 수 밖에 없었구나, 내 그걸 느꼈소. 느긋함, 심심함, 여유, 고지식함, 답답함, 밋밋함, 차분함과 모범이 느껴지는 클라우디오 아라우처럼 말이오. 아, 비슷한 일은 그러고 보니 또 있었네. 예전에 뭐 새로운 취미 없을까 하면서 알아보다가, 암벽등반을 해볼까 하며 궁금함에 동호회 웹페이지를 한참 구경할 때도 그랬어. 그곳에 공개된 기념사진들을 보니 완전 신기하더구만.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는데 난 정말 그렇게 느꼈어. 사람들 얼굴이 뭐랄까 바위를 닮은 인상이라고나 할까? 어떻게 멋지게 딱 설명하지는 못하겠는데 처음에 보자마자 내가 한 일은 놀라운 감탄사였다고. 할 말을 잃어버렸으니까. 어떻게 그럴 수 있지 그러면서 무언가 경이로움을 느껴버렸으니까. 결국 그 후 나는 실내-실외 암장을 알아보다가 무서워서 구경만 하다 말았는데, 한마디로 어떤 첫인상...쯤 되겠네. 음 그말이 알맞겠네. 혹시 보는 사람이 문제인가? 살면서 으쌰으쌰만 하느라 대화 같은 대화를 통 못해봤으니 알 수가 있나. 설령 그렇다 해도 분명 뭔가 있긴 있는 것 같아. 자기가 좋아하는 무언가로 사람은 원래 닮고 비슷해지는 건가 봐. 그럼 지금 내가 좋아하는 건... 많지. 많아. 많은데, 그런데, 허걱! 뭐시여? 흐흠... 뭐 그건 그렇고 별건 아닌데, 형씨들 다 아시는 얘기일 텐데, 난 새삼 느꼈소. 이런 수없이 다양한 특징들을 반복해서 간접적으로 깨달을려면 대충 최소 스무 살, 경험으로 체득한다고 보면 적어도 30살? 그게 아니라 단순히 화이트 소음을 비롯한 분위기로 집에서만 단 10살에 깨우치는 게 뭐냐, 아마도 가정교육이겠지요. 허나, 놀라운 기록 단축에 따른 단점이라고 왜 없겠소? 다만 숙녀가 반기는 풍성한 꽃다발의 화사함과 아저씨한테 익숙한 유흥가나 홍등가 불빛의 다채로운 느낌은 같을 수가 없다는 점은 있겠지만 말이오.」 「지가 무슨 영화평론가야? 자기가 무슨 스타니슬랍스키야 뭐야? 가당치도 않소! 하여간 누가 허당 아니랄까 봐 애쓴다 애써! 쥐뿔도 모르는 주제에 어디 영화가 누구라고? 웃기시네! 캐나다 영화 몇 편이나 봤다고 아는 체야? 도대체가 마음에 안 들어. 또 뭐라더라? 무슨, 뭐... 동경 어린 여심과 지겨운 일하기, 싫증난 사랑? 그냥 한마디로 권태기에 진입한 연애라고 하면 되지, 그게 뭐야? 순 돌팔이 작가 주제에 잘난 척 따박따박 잔소리 하기가 취미야 뭐야? 떽떽거리는 게 무슨 뽐내야 할 재능이라도 되나? 아 증말 꼴보기 싫어. 완전 재수없어. 지 유난 떠는 응석을 남들 보고 봐 주라는 거야 뭐야? 별꼴이야 정말! 도저히 못 봐주겠다니까.」 그리핀이 잠시 탁자를 벗어나 바에 가서 느닷없이 칵테일을 주문한 채, 밑도 끝도 없이 음악을 헤비메탈로 바꿔줄 수 없냐며 담당자와 실랑이를 벌이던 중 내뱉은 말이었다. 그러면 그 혼잣말을 듣지 못할 만큼 내 청력이 약했냐? 그건 아니었다. 그리핀은 일부러 음량을 줄이지 않았고, 얘길 들으니 어느새 내 칼럼도 몇 편 찾아서 읽은 듯한 눈치였다. 그의 압박은 쉬는 시간이 없었고, 트집 잡기는 점점 노골적으로 진행되어가고 있었다. 수완도 차차 발전해 간 점, 두말하면 잔소리였다.
8
여기서 잠깐! 우리 중에 최고의 왕가슴, 역대급으로 가슴 큰 여자는 누구일까? 나? 스콧? 아니 이건 우정의 경쟁심이 아니라 단짝 삼각관계지! 뭔가 재미난 일이 연이어 발생할 것만 같은 간질간질한 느낌이 쾌감에 이어 행복감으로 도약하느냐, 중간 과정 생략하고 곧바로 절망감을 선사하느냐. 아니기를 간원해도 하사 받은 진실은 어쩔 수 없이 후자임이 분명했다. 아뿔사! 단짝 사이에 내가 끼여들어 질투심을 유발한 경험 외에 그럼 그처럼 나와 내 단짝의 우정에 내 옛 친구가 끼어든 적은 없느냐 라는 궁금증, 충분히 있을 수 있다. 그러니 이쯤 해서 우정의 삼각관계에 대해서 직접 경험을 조금만 정리하고 가자. 남자1, 남자2, 남자3에서 그 셋이 모두 되어 봐야 하니까. 그러므로 보기는 세 가지. A. 단짝 사이인 남자1과 남자2의 우정에 내가 남자3으로써 끼여들었을 때 실제 있었던 반응의 구분은 이랬다. 나는 네 가지 모두 두루두루 겪었다. 첫째, 남자2의 입장에서 봤을 때 내가 자기의 단짝인 남자1을 뺐는다, 고로 남자2는 광분하고 질투심에 부글부글 끓는다. 둘째, 남자1과 남자2 그 둘이 다투면서 멀어진다, 고로 나에게는 남자1과 남자2라는 2개의 단짝 우정이 생긴다. (1과 2의 우정은 끝내 완전 복구 불가) 셋째, 그만그만하게 어정쩡한 삼각관계의 우정으로 지낸다. (혹시 이게 제일 어렵고 이상적일지도) 넷째, 남자1과 남자2의 단짝 우정은 흔들림 없이 굳건하다. 즉 1과 2 사이는 여전하고 다 같이 친하게 지냄. B. 그러면 나만 이방인이자 불청객으로써 남의 우정에 끼어든 게 다냐? 아니다! 나와 내 친구가 단짝일 때 나의 옛 친구가 그 사이에 끼어든 적도 있다. 곧 남자1은 현재 내 단짝, 남자2는 나, 남자3은 내 과거 단짝. 그런데 이 경우에는 내 과거의 단짝인 남자3이 이방인이자 불청객일 텐데, 남자1이나 남자2의 질투심 지수가 상승하지 않았다. 학교를 같이 다니는 남자1호 2호는 호프집에서, 가출한 남자3호는 찻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당시 우리 셋이 한 집에 함께 살면서 시트콤을 찍었다. 함께 할 때는 뭐 그런대로 괜찮았다. 나중 생각하니 나는 괜찮았는데 나의 옛 단짝이 나의 현재 단짝과 잘 어울리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표면적으로는 괜찮게 보였을지도 몰라. 게다가 어떻게 인연이 얽혔는지 여자 한 명을 놓고서 그 둘이 나중 연적이 되었다. 그런 일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남자1과 남자2의 우정에 내가 속했을 때 남자3이 나타나면 나를 뺀 그 둘은 친해질 수가 없었다. 남자3이 나의 우정이자 나의 옛 단짝이었기 때문에? 아마도 그런 것 같다. 아하 그렇구나. 그럴 수 밖에 없었구나. 이제 알겠네. C. 여기서 마지막 세 번째 경우의 수 발생. 남자1과 남자2의 우정에 내가 속했을 때, 내게 생소한 남자3이 그 사이에 끼어든 적이 있는가? 곧 남자1은 현재 내 단짝, 남자2는 나, 남자3은 남자1의 옛 단짝. 그런 일이 있었나? 그건... 아 없었구나! 왜 그렇지? 모르겠다! 하오나 모르긴 몰라도 내게 현재 단짝이 있었을 때 나는 녀석에게 생애의 우정 1번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구관이 나타나도 별 힘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 통신사에 온전히 기록이 남아 있고 사람들의 증언과 기록은 찾으면 다 나온다. 내가 1번 전화하면 나는 10번 전화를 받았으니까. 또 그만큼 각별했고 친했으니까. 1호와 2호의 단짝 관계에 뜬금없이 3호가 나타나서 그 우정을 이간질할 수 있다는 걸 과연 단짝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내 경우에는 없었다. 나는 그런 적 없었다. 이때 우정을 사랑으로 바꿔도 말은 된다. 따라서 우정이든 사랑이든 사람에 따라 일부일처제로 똑부러지게 만인에게 증명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우정이든 사랑이든 일부일처제로 똑부러지게 만인에게 증명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우정이든 사랑이든 사람에 따라 다른 것일뿐. 요컨대 남자1과 남자2의 단짝 사이에서 내가 남자2였을 때 남자3의 출연은 항상 나랑 친한 우정이었다, 고로 나는 양쪽을 꿰찬 듯 했지만 남자1과 남자3은 그다지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거! 따라서 결국 내가 화근인 일이 많았었다는 거 밖에는 달리 경험론을 이론으로 구체화시키지는 못한 걸로. 아니 잠깐! 뭐야 그럼 난 우정에서 일부다처제였다는 말인데? 우정에서 나는 일부다처제 내 단짝들은... 쉿! 여기서 멈춥시다. 오 제발!
9 두 여인. 우정. 마리와 영. 그녀들은 단짝 사이. 사랑은 비밀. 「마음에 드니?」 뭐가? 「대답이 필요할까?」 그러니까 뭐가? 「응원한단 말은 하지 않을께.」 잘들 논다! 「어떻게 알았니. 기대하지 않았다는 걸. 사랑을 꿈꾸느니 회전목마나 타러 가자. 그냥 다음에 갈까? 하긴 움직이기 귀찮네.」 「왜, 그분과의 유쾌한 호시절을 회고하시게?」 「이땐 회고가 아니라 회상이라고 하는 거야. 그러고 보면 너도 은근 허당이야? 어쩜 막 즐기는 것도 같고. 분명 알면서 모르는 척은 아닌데 말야.」 「알아. 알고 있었다고. 누가 모를 줄 알아? 그건 그렇고, 누가 뭐래도 넌 내 친구야. 하나 더. 난 네 비밀을 알고 있어. 적지 않게. 또 하나 더. 너도 그런 거 다 알아. 허영심은 늬가 나보다 한 수 위라는 걸. 너도 동의하지? 뭐 에르메스의 미래가 궁금하며 페라리의 내일을 알고 싶다고? 아 유치해!」 「읽었니? 어쩐지 최근 조용하다 했다. 어쭈? (...소곤소곤 속닥속닥...) 새롭게 최면술을 배워야 할까, 좀 더 예뻐져야 할까?」 「지금도 충분히. 이참에 책을 읽어 보는 건 어떠니?」 「우리에게 독서의 계절이 따로 있니?」 「얘. 2시 방향.」 「몇 시 방향?」 「갔어.」 「누가?」 「누구긴 누구야? 미남이지!」 「아 나 정말 얘 안되겠네.」 「안돼? 뭐가 안돼? 우리가 너무 가벼운 얘기만 하니까 얘가 자꾸 어려지네. 정신 차려 얘. 너 자꾸 순진해지고 있단 말야. 응? 안되겠다. 생각을 자꾸 수동적으로 하게 되니까. 언니가 어려운 얘기 하나 해 줄께. 자, 들어봐. 귀납적 추리는 말이야 현상을 일반화하고, 연역적 추론은 새로운 판단을 유도해. 보통 말이야 사람들 말은 전자를 아니까 후자에 대해서 얘기를 하거든. 서로 알고 있는 전제가 비슷하니까. 그런데 넌 말이야 거꾸로, 후자를 먼저 정해놓고 전자를 만들어. 속된 말로는 때려맞춘다고 하지. 쉽게 말해 대화에서 지식의 양을 견준 다음 새로움을 찾는 게 일반적인데, 네 수다의 정형은 먼저 결론 내고 억지로 갖다 맞춘다고나 할까? 왜, 잘 모르겠어? 아직 뭐가 안 와? 느낌 없어? 오다 갔어? 응? 표정이 어째 영 거시기-하네.」 「왜 그런 줄 아니? 아는 게 많으니까, 새로움은 드무니까, 미남이 안보이니까 그래. 늬가 남자들이랑 얘기를 많이 하다 보니까 사람이 좀 이상해진 거 같은데, 교육은 늬가 받아야겠군. 가재는 게 편이요 초록은 한빛이라고, 너도 전에는 딱 그랬어.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고 얘가 아주 헛바람 들었네 그래. 것도 잔뜩! 네 가슴을 몽땅 채운 허영심 그 헛바람 좀 빼야겠다. 안 되겠어. 너 쇼핑 좀 해야겠다. 쇼핑이 뭐니? 늬 말마따나 정확히 후자를 먼저 정하는 거야. 후자가 뭐야? 갖고 싶다 잖니? 이미 마음은 가 있다고. 마음이 먼저 몸은 다음. 신상품이 딱 나와. 뭐, 귀납 어쩌고 연역이 뭐라고? 그래서 따질 거 따진 다음에 사랑을 하겠다고? 지금 그 말이니?」 「너 있잖니, 지금 흥분했어. 아무 데서나 흥분하지 마, 얘. 응? 넌 지금 전제와 결론을 착각하고 있어. 내가 아니라 늬가 남자들이랑 얘기를 많이 하다 보니까 이상해졌어. 것도 많이. 많이 이상해졌다고. 응? 저기 봐 봐. 10시 방향. 저 남자 뒷모습만 보이다가 (딱) 앞모습을 확인한다고 가정해 보자고. 그랬을 때 마음에 들면 호감, 그렇지 않으면 외면. 논리적 귀결이 그렇거든. 알면 전제 모르면 다음, 곧 뭔가가 익숙하면 다시 선택 새로우면 결론. 그런데 늬 말은 뭐야? 마음 먼저 몸 다음이란 말 아니냐고. 왜, 내 말이 틀려? 아님 네 의견이랑 달라? 아마도 다르겠지! 어쩌면 틀릴 수도 있고. 하지만 품위란 게 뭐니, 몸과 마음이 될 수 있으면 같이 사이좋게 가는 것 아니겠니? 달리 말하자면 이심전심은 포기해야 한단 말일 수도 있지만, 넘어가고. 내가 봤을 때는 말이야, 내가 아니라, 늬가 남자들이랑 많은 대화를 나누다 보니 사람이 이상해졌어. 바로 늬가! 남자들 봐 봐. 남자들이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니? 응? 그거야, 그거라고! 남자는 늑대 여자는 과일, 그거라니까.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남자 눈에는 여자만 보이는 법이지. 뭐 낭만주의? 그건 미술관에 있고 책 속에나 있는 거야. 세상 이치가 그래. 카피라이터 눈에는 모든 것이 광고 문구야. 유행가 작곡가? 세상 모든 것을 음악 만드는 것 위주로 생각해. 사업가는 사업만 생각하고, 유명 요리사라고 뭐 다를 거 같니? 요리사는 요리만 하니까 일부 요리사는 누가 자기 일하는 공간에 찾아오면 그래. 전화해서 배달음식 시킨다고. 그거 드시라고. 내 요리는 구경할 생각도 말고. 또 게임 좋아하는 사람은 뭐든 게임 이론으로, 생각이 많은 주부는 딴생각하다 생선을 핸드백에 집어넣어. 바쁘다가 한숨 돌리려고 핸드백에서 핸드폰이나 지갑을 꺼낼려는데 웬 고등어 한마리가 들어있네? 고등어가 뭐 호박이야? 지가 제발로 걸어서 핸드백에 들어갔냐고! 어쨌든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그처럼 마음은 아예 전제로 고정되고 나중 견적을 뽑는 것 아니겠니? 그래서 내가 예전부터 자꾸 너한테 촌년 촌년 그랬고, 넌 자꾸 촌년 촌년이라는 얘길 들었던 거라고. 알겠니? 이 ㅊㅗ.... 미안! 정말 미안! 미안 미안 미안! 내가 맛난 거 살께. 뭐든지 말만 해. 단지 말만!」 단지, 말만? 그러니까 그게... 얘 맞어야겠네! 「얘가 도대체 어떻게 배웠지? 늬 말발이 이렇게 좋지 않았거든. 어디서 새로운 촌닭이라도 만난 거니? 그런 거야? 응? 말 해. 숨기지 말고. 응? 거기 어디니? 나도 하나 건지자. 지금 품위 따지게 생겼니? 그리고 말이야. 뭐 촌년? 자꾸 촌년 촌년 할래? 누가 누구 보고 촌년이래? 이거 왜 이래? 얘 안되겠네. 혼 좀 나고 싶니? 얘가 은근 사람 기분 나쁘게 하는 재주가, 보아 하니 아주 탁월해. 응? 그치만 마음 놓친 마. 사랑이 변심하는 것처럼 우정도 변덕이 특기니까. 조심하라구. 너가 언제 나한테서 넘버2로 밀려날지 모르니까. 알겠니?」 「뭐 넘버2? 그럼 지금 난 늬 친구 중에 넘버1이란 말이네? 등번호 2번은 누군데? 됐어. 아 됐고, 듣고 싶지 않아. 아니. 이미 알고 있어. (딱) 그러니까 늬가 안되는 거야. 응? 알겠니. 바로 그래서 늬가 안되는 거라고. 넌 여자가 말이야, 너무 순진해서 탈이야. 응? 나한테 너는 벌써 옛날부터 오르락내리락했단 말이야. 알긴 아니? 얘가 완전 허당 중의 상허당이구만 그래. 아 나 정말 얘 걱정되네. 오늘은 다시 널 넘버1으로 올려주긴 하는데, 그러긴 하겠지만 긴장 풀지 말어. 딱 긴장해. 응? 언제 밀려날지 모르니까 말이야. 응?」 「뭐, 뭐? 뭐가 어쩌고 어째?」 그녀들은 잠시 휴지기를 가졌다. 그럴 수 밖에 없었으니까. 「얘. 나 어제 어떤 꿈 꾸었는지 아니? 역시나 학교 다니는 꿈이었어. 난 대체 꿈에서 언제나 학교를 졸업할 수 있을까? 넌 학교 다니는 꿈 안 꾸니?」 「왜 아니겠니. 나도 어제 꿈을 꿨고, 역시나 학교에 갔네 글쎄.」 「어머 그래? 무슨 꿈인데? 응? 말해 봐. 어서. 말해 줘.」 「너 먼저.」 「꿈은 두 가지가 있어. 기억나는 꿈과 기억나지 않는 꿈. 기억났으면 내가 먼저 말하지 않았을까? 새삼스럽게 왜 그러니. 우린 내외할 사이도 안 그런 척 내숭 떨 관계도 아니잖니? 응? 안 그래?」 「그래 얘기해 줄께. 그런데 거 어째 추궁 받는 게 기분이 좀 이상하다? 늬가 꼭 수사관... 막 심문관처럼 보이는 거 있지. 얘가 참 이상한 화법을 배운 것 같단 말이야.」 「그러지 말고 어서 말해 봐. 얘가 말할 거면서 자꾸 뜸을 들여. 가만 보면 은근 밀당이 생활화되어 있어. 대체 너 꼬리가 몇 개니? 어?」 「어딜 만져? 아 됐고, 나도 실은 자세히 기억나지 않아. 내용은 이래. 수업 시간이야. 무슨 과목인지는 모르겠어. 책이 없어서 책을 짝궁이랑 같이 보고 있었는데, 차례가 점점 다가와. 서서 읽기만 하면 돼. 전혀 어렵지 않아. 단지 아나운서처럼 또박또박 읽어야 할 뿐. 물론 난 딴일을 하고 있겠지. 264페이지던가 274페이지던가 대충 알았는데, 딱 내 순서가 닥치니 어디를 읽어야 하는지 잊어먹어. 그러다 막 친구한테 물어보고. 그러던 중 선생님이 그러시지. 읽기는 그만 하자고. 그러면서 폼 잡고 명대사를 읊으시네. 자세한 대사는 잊어먹었으니까 대충 만들어서 말하자면 이래. 아 그런데 꿈속에서 들은 그 말이 완전 명대사였는데. 아 어떡해, 기억나지 않아. 정말 멋졌는데 말이야.」 「너 또 말할 듯 말할 듯 말하지 않으면 혼낸다. 어? 이번엔 진짜 때린다고! 한번 맞아 볼래?」 「말할께 말할께.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어. 물론 진짜 꿈속에서 들은 명대사와 비교는 안되지만 그냥 대충 지어내자면 이런 거였어. 꿈속에서 들은 그 말이 완전 멋졌는데... 아 선생님은 이랬지. 1.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학생은 '내가 진짜로 원하는 건 무엇인가?'를 읽어보세요. 아니다, 난 그림자처럼 조용히 배우는 게 더 익숙하고 편하다 라는 학생은 '왜 적극적이어야 하는가?'를 읽어보시구요. 2.고전과 촌스러움의 차이에 대해서 논하시오. 3.여러분. 내가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일에 대해서 글과 말로 동시에 표현해 보았어요? 나는 내가 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 '나는 그건 할 수 없다'라고 말할 수 있나요? 그게 뭐 어렵겠어요? 그러나 막상 난처한 상황이란 게 있지 왜 없겠습니까. 그럴 수 없거나 그러기 힘든 상황은 무엇이 있을까, 에 대해서 토의해 보는 건 어떨까요? 그러자 한 학생이 말하지. 선생님 그거 한꺼번에 다 하자구요? 그러다 종이 울려. 야 신난다! 또 그러다 쉬는 시간에 복도에 나가니 같은 반 친구가 창문 밖으로 뛰네. 뭐야 해서 얼른 창밖을 쳐다보니 유유히, 부드럽게, 사뿐히 착지해서 또 걸어가. 딱 위에서 밑으로 내려올 때만 슬로우모션이었어. 막 그런 꿈이었어. 무슨 꿈이지? 복권 살까? 어떤 의미를 부여해야 하냐고.」 「사지 마. 개꿈이야. 난 또 뭐라고!」 마리와 영은 아직도 다정한 우정을 키워나가는 소녀와도 같았다. 아, 근래 얼마 전에 그들은 함께 나이트클럽에 갔다 온 적이 있다.
10 나는 여성잡지1에 연애론을 기고했다. 전문은 다음과 같다. 여자는 그 어떤 뭔가를 직감과 직관으로 대번에 눈치챌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만일 사전에 오판을 줄이고 싶다면, 친해지고 사랑하기 전에 미리 알고 싶다면, 만약 내가 여자라면 지성, 환경, 인생, 취향, 습관, 매력, 풍모, 재능, 인성, 형편, 신분, 말수, 평판, 조류 구분, 동물 유형 외에 판단 근거─객관적 단서─미묘한 자료─유용한 정보는 명백하게 있는 것이 없는 것보다 유리할 것이다 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그건 두말하면 잔소리다. 언니는 논리와 이유와 권위와 광고와 잔소리와 해박한 지식과 현란한 언변에 약하다. 언니는 그래도 알기는 아는데, 잘 알지를 못한다. 언니는 깊이 들어가면 곤혹스러워 한다. 짜증낸다. 어차피 언니도 잔지식파다. 그래서 언니는 동생에게 이렇게 말한다. 운동이든 건전한 취미든 뭐 하나는 꼭 하는 남자를 만나라고. 언니! 언니! 언니! 왜! 왜! 왜! 라고 졸졸 따라다니면서 끈질기게 물어보면 그럼 언니는 뭐라 할까? 일단 도망간다. 대체로 말을 돌린다. 내내 대답을 못한다. 얼굴색이 노랗게 파랗게 빨갛게 변한다. 괜히 빌려준 뭐 내놓으라고 윽박지른다. 정답만 빼고 아무말이나 다 얘기한다. 정신 사납다. 언니 말을 새겨듣다간, 이러다가 멍청해지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정말 그건 시간 문제에 지나지 않을 테니까. 소녀는 뭔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고 느낀다. 맞다. 동생은 언니를 포기한 것이다. 그럴 수 밖에 없다. 그게 한계니까. 강아지가 다정하면 단순히 간식을 원하기 때문에 꼬리를 흔드는지 아닌지 잘 모른다. 언니가 무슨 동물학 박사도 아니고 그걸 대체 어떻게 알겠나. 막내만 그런 게 아니라 언니도 말하면 다 믿는다. 읽어도 다 읽고 후회한다. 매번 속는다. 후회는 끝이 없다. 투정은 생활일 뿐이다. 심지어 먹음직스런 케익을 자기가 먹고 자기가 화낸다. 다이어트 중인데 왜 말리지 않았냐고. 싼 게 비지떡이다. 먹으면 탈난다. 합리주의란 그런 거다. 으하하하하 음하하하하 푸하하하하하하! 그렇지만 행복이 뭐 별건가. 흥행작이나 보고, 베스트셀러나 읽고, 끼리끼리 만나서 놀고 마시고 먹고 떠들고 노래 부르며 춤 추고 인생을 즐기는 것이지. 그러니까 마음대로, 얼마든지, 뭐? 누구라고? 야 떴어 떴어 피해 피해 딴 데 봐 딴 데 봐! 일반적으로 노래를 잘 부르는 것은 못 부르는 것보다는 유리하다. 여자를 꼬시는 데 있어서는. 그런데 그건 시작의 관점에 한해서만 그런다. 엄밀히 비공개 연애에 국한되는 특징이다. 일단은! 단순히 노래만 잘 부르면 끝이냐, 그건 아니거든. 그러면 얼굴 없는 가수가 최고게? 그럴 리는 없다. 나머지가 그럭저럭 마음에 들기 때문에 노래를 잘 부르는 그분의 재주가 너무 멋져 보였네 뭐라 하는 거지, 나머지가 그럭저럭 축에도 못든다? 호호호 호호호호호! 첫인상은 첫인상이고 본론부터는 고급이다. 고급은 내면을 알고 무의식을 읽어야 하니까 어렵다. 따라서 그 사람이 어떤 인생을 살고 싶어하고, 어떤 새로움을 좋아하며, 무슨 익숙함을 애정하는가를 알아야 한다. 그건 쉽게 드러나기는 하지만 속단하기는 꽤 까다롭다. 일찍 예측하기도 어렵다. 때문에 그건 판단 근거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가능하다면 친구의 여동생이랄지, 될 수 있으면 직장보다는 학교를 같이 다니는 게 좋다. 허나 장점이 하나 있으면 단점도 하나 따라가니까 그건 각자 생각하고. 그러므로 몇몇 목록에서 최소 몇은 있어야 첫인상과 선입견은 증명된다고 할 수 있다. 단순히 꾹꾹 참다가 드물게 표독스런 대꾸만 하던가 목구멍에 턱 하며 걸리는 말 한마디, 상황 몰아가고 기분이 몰리며 분위기 조성하면 본심은 드러날 수 밖에 없음, 난 여태 어떻게 살았는데 도대체 왜 나는 지금 이 모양 이 꼴로 살아야 하냐, 그게 우리 탓은 아닌데 뭐라 할말을 잃어버리는 반응만은 피해야 하니까, 그 말만은 꾹 참는 그런 품위 넘치는 사람인가 아닌가, 판단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고 쉬울 수도 있다. 인터넷 기록, 소셜 네트워크 활동, 굴곡진 인생의 사연에 대한 어쩔 수 없는 변명을 책이든 뭐든 그 뭔가로 입증하기, 블로그, 일기, 내면이 외적 대상으로 투영되는 그 무언가! 강박 관념, 열등감, 억압, 질투, 허세, 굴욕, 울분, 체념, 회피등 음성적인 감정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아는 게 좋다. 어쩜 거룩할지도 모를 땀방울로 일군 기록, 내 모든 것을 쏟아부은 예술, 내 인생이 오롯이 담긴 일기장, 살면서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그 무엇,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가 어떻게 살고 싶은가, 하다 못해 재산 목록 1호 2호 3호 등등. 만약 그게 없다면 첫째, 그 사람을 무턱대고 순진하게 믿기는 힘들다. 둘째, 본인한테 그게 없어야 유리하다. 하기도 싫다. 어차피 괜찮은 호박이 내게 굴러올 리는 없거든. 여자는 보면 알거든. 여자는 웃으면 끝이거든. 여자는 대답만 잘하고 맞장구치며 얘기를 잘 들어주며 자상하고, 섬세하며, 다정하면 거의 다 좋아하거든. 무엇보다 그런 거 다 관심 없고, 남자는 중간만 가면 된다, 중간이라도 가는 남자에게 꽃 받고 싶다, 라는 여자들도 적지 않거든. 보면 대번에 알거든. 여자를 다루는 기술, 이란 제목의 책은 없을랑가 모르겄다. 우선 괜찮은 대상을 물색하고, 다음으로 카우보이처럼 끈을 묶는 시늉을 해서 줄을 돌리고 돌려서 던져, 던진 다음 낚였다 치고 슥슥 끌어당겨, 마지막으로 줄 달린 치즈를 제시하면서 살살 끌어당기면서 내일로 내 마음으로 슬슬 유인하기. 우리는 그거 일도 아니다. 땅 짚고 헤엄치기다. 물론 농담이다. 아니 아예 농담은 아니다. 자, 여기서 다시 여자의 마음을 예시로 들어보자. 아무리 뭘 좀 모르는 남자들이 적지 않다지만 그분들도 다 내공이 있을 텐데 대관절 왜 사랑이 이루어지기 힘든지, 그 끙끙대는 추론을 거뜬히 정리해 보자. 아무리 어려워 보이는 사안도 어쩌다 너무 쉽게 풀리는 경우가 있다. 쉬운 예로 역발상처럼. 만일 나라면, 지금이라면, 이라는 상상처럼. 왜 그녀가 그렇게 느꼈는지를 남자의 마음으로 역추적을 해 보면 아마도 이렇지 않을까. 간략히 말해서, 한 여자가 남자를 100명 만나 봤는데 도무지 말이 통하는 남자가 한 명도 없더라, 그래서 그녀는 남자와 진지한 연애 찐한 사랑을 단 한 번도 해 보지 못했다더라, 말이 통하는 남자와 태어나서 단 1번도 고혹적인 마음의 대화를 나눠 보지 못했다더라? 정말 그렇다더라? 진짜? 참으로? 만약 그렇다면 그 원인을 안에서 찾아야 할까, 밖에서 구하는 게 현명한 걸까? 그분의 입장은 그렇고, 옳고, 타당하며, 정당하고, 아름답지만, 그런데, 상대방 말도 들어 봐야 하는 것 아닐까? 그래야 객관적인 거 아닐까? 뭔 남자가 바본가, 그런가? 그럴 리는 없다. 절대 그럴 수는 없다. 만약 남자가 바보라면 그럼 여자는, 쉿! 이런 문제는 뭐니 뭐니 해도 객관적으로 사실에 접근하여 생각해 봐야 옳다. 그렇게 따지는 게 온당하다. 아니 그렇소? 당연히 그래야 공정하며 매우 적확하다. 그래야 듬직하고 믿음직스럽다. 아니면 가짜다. 아니면 립서비스다. 아니면 허세와 허영과 허당이다. 우리는 알아야 한다. 왜 말이 안 통했는지를! 왜 화려함을 자랑하는 청초한 들장미에게 벌꿀도 나비도 나방마저 기웃거리지 않았는지를! 그분들이 몰라서? 꽃이 유명하지 않아서? 아니면 꽃밭이 인기가 없이 그만그만해서? 결국 땅 기운이 좋지 않다? 행운의 바람이 불지 않았다? 그니까 노력이 부족했거나 운명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쯤에서 멈추자. 글은 몰라도 말은 그래서는 안된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척 하는 건 재수없다. 생애 단 한 번일지도 모를 숙녀의 로망을 깨트리는 게 과연 좋은 일이겠나. 여자의 마음을 뭘로 보고 말이야. 그건 결코 멋지지도 자연스럽지도 합당하지도 않은 일이다. 그럼. 그렇지. 왜 안 그렇겠나! (이미 말 다 해 놓고 뭐-라-고? 닭 잡아 먹고 오리발 내밀기야 뭐야? 벌~써 쥐락펴락 다 해 놓고 이제 와서, 뭐가 어쩌고 어째? 쉿!) 그런데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됐지. 직관적으로 남자 유형을 판단할 수 있는가 라는 주제가 대체 왜 갑자기 여자의 마음으로 바꼈지? 또 동물농장, 조류대백과? 허허 나 원 참! 그러니까 허접한 촌닭인가 도저히 싫어할 수 없는 촌닭인가, 그냥 허당인가 은근 허당인가,를 본인에게 물어볼 수는 없으니까 본론부터는 글도 아니고 남자도 아니고, 여자들끼리 얘기합시다. 내 마음에 쏘옥 드는 완전 홀딱 반할 만한 남자를 만나기 전에, 하도 귀찮게 학교 다닐 때 직장에 집에 내내 꽃 들고 기다리며 참으로 집요하게 쫓아다녀서 야수파와 딱 한 번 사겨서 1년을 만났다 헤어졌는데, 지갑 속에 사진을 고이 간직하며 바보처럼 1년을 사겼는데, 언제 내 생애 최초로 내 마음에 쏘옥 드는 완전 홀딱 반할 만한 남자를 만날 것인가? 그건 숙녀 인생에 오직 1번일 수도 있고 결과적으로 따져야 좋을 수도 있다. 30년을 기다려야 할지도 모르고 40년 아니 반 세기라도 그럴 수만 있다면 너끈히 기다리겠다는 여심도 있을 것이다. 없지는 않다. 모르긴 몰라도, 오히려, 아마 많을 걸! 보장이 확실하다면, 설혹 불확실할지라도 말이다. 미래를 미리 알면 재미가 없거든. 남자들이 괜히 트럼프 놀이를 하면서 판돈을 걸고, 경마의 배당률이 과학적이며, 대물을 잡으러 바다로 떠나 귀여운 어복에 윙크를 하고 시샘하며, 치고 달리고 때리고 넣고 조종하며 몰두하는 게 아니다. 그분들이 괜히 그러는 게 아님. 그리고 이 세상에는 많은 여자들이 있다. 하인, 돌쇠, 재간둥이, 난봉꾼, 무서운 카리스마, 말상, 쥐상, 개상, 늑대등 가리지 않고 자기는 무조건 꽃 들고 기다리고 따라다니는 남자라면 전부 다 OK라는 여자. 생애 단 한 번도 남자로부터 고백과 구애와 배짱과 친절을 받아보지 못했을지라도 어떤 바람둥이의 서슴없는 대쉬는 단칼에 거절했던 여자. 30살까지 연애를 딱 3번 해 봤는데 참으로 묘한 우연인지 뭔지 알고 봤더니 글쎄 그 셋이 모두 직업 뭐 그런 어떤 그렇고 그런 남자였다더라 라는 사연을 간직하고서 서른을 맞이한 여자. 쉽게 말해 언제 어디서든 손꼽히는 빼어난 미모 때문에 적잖이 고생하며 인생 내내 부러움을 받고 누구에게나 찬탄을 자아내게 했던 그녀일지라도, 그에 걸맞는 애정과 사랑과 배필이라는 운명은 너무도 멀리 있었기에, 직장에 집에 꽃 들고 끈질기게 쫓아다니는 야수 같은 남자의 구애에 딱 넘어가 고시 공부하는 그분과 일주일에 딱 한번 백화점 구경하고 영화 몇 편 본 게 전부였던 연애 밖에 해 보지 못했던 여자. 그런 그녀가 영원한 내 사랑 낭군님을 기다리면서 친구들이랑 이따금 점을 보러 다녔는데, 점쟁이들이 뭔 바보도 아니고 그분들이 하나 같이 일관 되게 눈치 없고 꽉 막힌 분들이 절대 아닌데, 웬만하면 싫은 얘기도 좋은 얘기를 위해서 하시는데, 그런데 본인 직업 사상 최악의 사주를 최초로 대면했기 때문인지 어쩐지 만나는 점쟁이들마다 업을 걸고 말씀하시는 악담의 저주, 저주의 해몽만 수없이 들어야만 했던 여자. (생년월일시를 바탕으로 길흉화복을 점치는 점술은 방대한 과학적 통계일 텐데 도대체 어떤 사주이길래 그런 결과가 나왔는지, 전문가도 알고 나면 깜짝 놀랄 수도 있음. 대관절 어떤 운명을 타고났길래... 알고 나면 경악을 금치 못할지도!) 바로 그런 여자는 유부남을 비롯해서 오직 짝사랑만 도가 튼 여자. 심지어 하도 귀찮게 학교 다닐 때 직장에 집에 내내 꽃 들고 기다리며 쫓아다녀서 야수파와 딱 한 번 사겨서 지금은 세 아이의 엄마가 된 여인. 심지어 그 엄마는 아가씨 때 너무 일찍 험상궂은 하이에나한테 발목잡힌 게 억울하기도 하고, 우정과 사랑 사이에서 방황하기도 하여, 젊어서 애교는 성숙한 교태로 바꼈기에, 바깥에서 외간 남자를 만날 때 딸이나 아들의 손을 꼬옥 잡고 나간 여인까지. 남자는 차라리 쉽고 간단하다. 0이냐 1이냐 1.5냐 1이후에 소수점이 놀랍도록 섬세하게 나누어지는 우정이 존재할지라도 내가 0과 1이란 진실은 변함없다. 그러나 여자는 그렇지 않다. 절대 그렇지 않다. 시시각각 변한다. 어렵다. 복잡하다. 까다롭다. 변덕도 심하다. 심지어 변심은 다 오빠 탓이다. 그게 뭐야! 여자의 마음이란! 여자의 <싫다>는 남자가 이해를 잘해야 한다. 해석만 잘해서는 곤란하다. 그래서 책임과 불이익은 여자에게도 주어질 수 있다. 여자가 싫다 하면 보기가 많다. 보기가 많다고! 1번 영원히─한없이─끝없이 싫다. 2번 완전 짜증난다 치가 떨린다. 3번 진짜 싫다 피하고 싶다. 4번 정중히 거절한다 우리는 문명인이니까. 5번 아직 애매한데 좋지 않다 그런데 지금은 (또는) 최소한 당신은 아니다 그러니 싫다. 6번 좋은데 싫다 그러나 과정은 생략하지 말자. 7번 일단 싫다 뭔가가 부족하니까 조금만 보완하면 괜찮을 수도 있다, 하지만 좋은지 싫은지 아직 잘 모르겠다, 따라서 대답은 노 속마음은 유보. 8번 캬~ 8번! 으아 워워워 와우! 8번이 가관이다 뭘 모르는 남자 입장에서 가관이다. 여자는 그런다. 다 그런 게 아니라 몇몇 중 하나는 그런다. 뺐을 생각 아니면 내 몸과 마음을 온전히 오래 대외적으로 가질 생각 아니면, 이 세상에서 나 하나만 언제까지라도 영원히 사랑하지 않겠다면, 공식적으로 책임질 각오 그런 거 없으면 멈추라고! 하인, 조수, 머슴, 보디가드, 낭군님등 꼬부랑 할아버지 아니 다음 세상에서까지 내 전속 1인 다역 노예가 되지 않겠다면 포기하라, 깨끗이 포기하라 그 말이다. 만일 나의 사랑이자 나의 노예가 되겠다면 우리 함께 축배를 들고 팡파레를 울리자 그것이다. 여자가 원래 어렵다. 답이 없다. 질문조차 문제시된다. 때문에 남자도 알아야 한다. 고로 여자끼리 더, 더 어렵다는 것을! 바로 그래서 그녀들은 만나면 할 얘기가 많은 것이다. 뭐, 자세한 얘기는 다음에 다시 만나서 하자? 다시 만나서 하기는 뭘 다시 만나서 해! 5시간 6시간 얘기해 놓고 뭔 진짜 얘기는 나중에 다시 하자야? 뭐야 그게! 그게 대체 뭐냐고! 이런, 젠장! 그렇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할지라도, 여자가 아무리 1.5를 좋아한다고 할지라도 남자의 0과 1 그 이진법에는 못 당한다. 여간 해서는 어렵다. 어째서? 왜냐하면, 잡은 물고기에게는 밥을 주지 않는 법이거든. 하늘을 봐야 별을 보지, 라고 한탄할지라도 맞바람이 불면 애절했던 애수와 사연 깊은 사랑과 한결 같은 흠모는 더 이상 문학적일 수도, 낭만적일 수도, 극적일 수도 없게 되버리거든. 그래서 여성잡지2를 들여다보는 수 밖에. 그 옛날 그 수많은 배려들 그건 혹시 <잔말 말고 따라와>였나 아니면 몸에 익은 의전이었나. 설마 <잔말 말고 따라와>를 위한 의전이었나, 아님 그 반대였나. 초장에 잡지 않은 게 알고 보니, 이제 보니 결국 초장에 잡은 건가? 초장에 잡아라 라는 경구는 비공인 속담이니까, 하수는 초장에 잡고 고수는 초장에 잡히나? 아아 머리 아퍼. 헷갈리고 또 헷갈린다. 참고로 꽃을 든 남자에 대해서 한 말씀. 꽃 들고 쫓아다니는 부류는 대개 보면 야수파임. 그게 아니면 가능성이 치사하니까. (완곡어법이 두드러지지 못함은 다 결론을 위해서. 특히 거친 형님들께 양해를 구함. 꾸뻑! 왜냐면 친동생도 있고, 토끼 같은 딸도 있으며, 제자도 동료도 선배도 국민-여동생도 있을 테니까요. 내 욕심을 채웠든 채우지 못했든 나는 늑대고 남은 늑대이면 안됨? 반대로 나는 백조 타인은 하이에나? 어패가 있죠 네 그렇죠) 어디까지나 촌닭 본인 입장에서 보자면 어차피 예절 차리면 촌년 만날 거 뻔한데 밑져야 본전이거든. 잃을 게 없는데 얼마나 좋아. 져도 돼 지는 게 당연해. 부담이 없음. 허나 시작은 어려움. 그럼 그 다음은? 시작만 어려웠음. 뭐든 처음이, 처음만 힘들다는 건 어른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 다시 그 다음은? 천성도 있겠다 흥미도 있고 소폭 이득도 돌아온다면 이제 남은 일은 그거 밖에 없다. 못 먹는 감 찔러나 본다고, 보이는 감이란 감은 다 찔러보기! 타석주의가 그렇다. 토너먼트도 그렇다. 1부리그 A팀 대 3부리그 b팀의 대결. A팀은 지면 (대)망신 이기면 뉴스에 나오기도 민망. 그러나 b는? 지면 당연, 게다가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강팀 없네? 어머나! 더군다나 이기면 특종, 심지어 1부리그 A팀과 3부리그 b팀의 합병? 대~박! 이거다. 이거라고. 1년을 실컷 즐길 수 있고 10년 동안 잡은 물고기한테 밥을 주지 않아도 된다. 시작 단계에서 3부리그 b팀은 미래의 운명을 아마도 예감했을 것이다. 제발로 굴러다니는 호박은 언제 어디서나 다 날 피해갈 것이라는 사실을. 따라서 3부리그 b팀의 난동은 어쩜 정말 숙명에 불과했을지도 모름. 그런데 만약 3부리그 b팀이 야수가 아니라 허당이라면, 멋지다면? 여기까지! 멀리 볼 필요없이 그런 습관을 타고났다거나 여자에 따라 정신 못차리는 친구들이 꼭 있거든요. 지금 당장 내 주위만 둘러봐도 누구, 누구, 누구 헤헤헤! 환경에 따라, 연애나 남녀간 우정 경험 제로 같은 개인 사정에 따라, 입장과 시점에 따라 기준선은 왔다 갔다 애매한 면이 있다. ......─(범죄에 해당하는)스토킹─혐오─무례─배짱─어딜 넘봐─결례─실례─군침─상식─예의까지. 남자가 호박이 제발로 굴러오는 남자와 그렇지 않은 남자로 나뉘듯이, 여자는 둘로 나뉜다. 완벽하게, 여자는 둘로 나뉜다. 일단 1과 2 모두 꽃 들고 쫓아다니는 야수파에게 넘어갔다고 가정한 채로 설명하겠음.
- 적극적인 구애 즉 꽃 들고 쫓아다님을 태생적으로 좋아하며 원하는 여자 (의전이 먼저)
- 그렇지 않은 여자 (사람이 먼저)
여기서 1과 2의 차이를 잘 알아야 함. 2번도 꽃 들고 기다리면 좋지 왜 안좋겠나요, 자고로 여자 치고 꽃 들고 기다리며 쫓아다니는 반짝반짝─굽실굽실─딸랑딸랑을 싫어하는 사람 없다. 그건 유명인도 마찬가지. 그러다 넘어가면 야수나 오락산업의 승리! 1번은 1번 방식이 아니면 절대 안됨. 그 허영심을 누가 누가 채워줄까? 꽃은 시들 수 밖에 없고, 더 예쁘고 더 어리고 더 귀엽고 더 웃기며 더 착하며, 더 다른 면모가 좋은 꽃은 많고도 많은 걸로도 모자라 꽃은 시들 테지만 황금은 증식될 텐데. 남은 왕자님은 야수 밖에 없음. (큐피트 황태자를 만나기를 기원하나 일단은). 허나 2번은 쉽게 말해서 순진하고 착함. 1번이 노련하고 순수하지 않고 못됐다는 뜻이 아님. 대체로 1번은 야수를 만나도 나중 큰 후회는 하지 않음. 왜냐하면 1번은 대상이 아닌 방법을 더 선호하기 때문. 왜냐하면 그렇게 해서 꿈은 실현됐고 욕망은 충족됐으며 허영심은 채워졌으니까. 1번은 남자가 아무리 최고라 할지라도 방법이 틀리면 절대 노! 물론 방법도 남자도 틀리면 싫음, 둘 다 좋으면 금상첨화. <1번은 나중 크게 후회하지 않음. 단, 작게 후회함> 왜냐하면 진행은 피동적이지만 방식은 간접적으로 보면 능동적이니까. 따라서 1번은 문제 없음. 설령 나중 후회해도 본인 책임이지만 그래도 후회가 작음! 그러나 문제는 2번. 즉 꽃 들고 쫓아다니면 아무나 OK라는 구미가 아닌 유형. 이건 로맨스와 멜로드라마를 좋아하고 선망과 동경심이 풍부한 80퍼센트로써 어디까지나 방법이랄지 과정이 아닌 대상 즉 남자를 먼저 따짐. 여자가 아무리 하늘이 정해 주신 사랑이라는 천생연분 같은 1.5를 좋아한다고 할지라도 남자의 0과 1 그 이진법에는 못 당한다. 여간 해서는 어렵다. 저 실례와 결례의 왼편에 위치한 배짱과 '어딜 넘봐' 그 너머엔 또 다른 몇몇이 있거든요. 흐흐흐흐흐! 영리한 고양이가 밤눈 어둡다고 뛰는 놈 위에는 나는 놈이 있는 법. 2번은 열렬히 따라다니는 남자가 싫어도 끈질기고, 집요하고, 지치고, 세뇌 당하며, 마음 약해지고, 소문 나서 마지못해 넘어간 경우. 극과 극도 드물지 않음. 2번은 그런 구애의 상대가 싫으면 넘어간 적이 한번도 없고 앞으로도 일절 없을 0, 딱 한번 넘어갔다가 헤어져서 예방 접종이 된 1-1, 그 딱 한번이 세 자녀로 이어진 1-2, 그 이상으로 나뉨. 아무튼, 그러므로 2번 스타일의 여자가 나중 사랑과 행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면 좋은 거고, 그게 아니라 만약 사랑에 실망한다면 대개 체념, 달관, 어떤 바람, 또는 이별. 다시 말해 <2번은 후회가 큼!> 1번과 2번의 후회 차이는 많이 비교됨. 그러니까 운명을 묵묵히 받아들이든가, 싫어도 넘어간 책임은 본인에게도 있고, 아니 본인 책임이 더 크며, '용기 있는 자가 미인을 얻는다'라는 경구는 꽤 애매한 법이고, 오뚜기처럼 일어나고, 사랑은 또 온다는 것을 믿기. 집신도 짝이 있다 하지 않나요. 그러나, 심지어 꽃 들고 기다리며 쫓아다니는 것 말고도 방법은 많고도 많음. 단순 무식하게 기다리고 쫓아다니는 것 말고도 무지 많음. 으하하하하 음하하하하 푸하하하하하하! 게다가 여자도 비슷하신 분은 많고도 많음. 그녀에게 꽃 한송이를... 어쩌다 부정적인 꽃 선물이 주제가 되어버렸지만 사랑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사람이 아니라면 반듯이 알아야만 하는 내용이니까 일단 듣고나 보자. 어떤 남자가 한 여자를 위해 꽃 들고 기다리며 쫓아다니는 가상한 모습이 멋지고 아름다울 수도 있다. 그러나 그에 따른 긍정적인 사연이 부정적인 사연을 여간해서는 상회하지 않는다. 한 여자가 그런 남자를 만나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내가 꽃이란 진실이 확연히, 극적으로 증명됐기 때문에 처음에는 우쭐한다. 원래 싫었던 내 이상의 기준과 나중의 무언가는 모른 체 당장 우쭐한 기분 딱 하나만 남게 된다. 그 어떤 야수라도 (일부) 여자는 정신 못차린다. 비로소 나는 여자가 됐기 때문에! 주변에서도 웃고 얘기하고 그렇게 소문난다. 그래서 챙피하고 싫었던 남자였는데 또 몇은 넘어간다. 여자는 그 순간 연예인이 되어 구름 위를 걷는다. 구름 위를 걸어보지 못한 사람은 클라우드 나인의 기분을 이해할 수도, 알 수도 없다. 절대로 모른다. 죽었다 깨어나도 모른다. 때문에 그에 대한 훈수는 추정하는 입장보다는 어떤 최고를 찍었던 사람이, 남자들 전부 시시해 보여서 찐한 연애 멋진 사랑 못해 본 채 중년 이후에 접어든 우아한 여자가 하는 게 더 실질적이다. 모르는 사람 입장에서는 오직 헤아림과 추측과 상상만, 또는 감탄사를 자아내는 비유가 가능할 뿐. 그런데 그렇게 결혼해서 애 낳고 단란한 가정을 일궈 행복하게 잘 살면 괜찮은데, 그게 아니라 중간에 끝내야 할 때! 남자가 매달리고─매달리고─매달려서 시작한 연애를 여자가 그만 하자 하면 남자의 뒷모습이 아름다울까? 그럴 수도 있다. 그러든 어쩌든 그런 남자는 시작이 그러했듯이 끝에 가서도 똑같다. 또 기다리고 또 따라다니며 또 매달린다. 헤어지지 말자고! 나는 싫다고! 사랑이 어떻게 변할 수 있냐고! 널 어떻게 보내냐고! 비뚤어진 사랑은 애인의 몸과 마음을 고이 보내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 누구나 모를 수 없는 본심일 뿐. 어쩔 수 없다면 모를까 굳이 당사자가 되어야 할 필욘 없다. 이때 경우의 수가 몇 가지 있다. 물론 객관식 보기에는 드물게 비극도 있다. 사랑은 시작보다 끝이 더 중요하다. 사랑은 준비없이 가능할지 몰라도 이별은 또 다른 문제다. 오늘의 운수는 재미를, 잘못된 우정은 변심을, 과도한 허세는 믿거나 말거나, 그건 괜찮다. 충분히 괜찮다. 하지만 비뚤어진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내(그대) 주위만 둘러봐도 그런 사람 꼭 있다. 왜냐하면 그분들은 그런 성정을 타고났으며 제멋대로 행동하는 내 습성을 후천적으로 제어하지 못하기 때문. 강제로 시작하고 억지로 지속되며 사랑의 뒷모습마저 한숨을 부르는 애정,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악연이자 불행이고 죄악이다. 범죄도 있다. 취미일 여지도 없지 않다. 몇몇 행복한 예시마저 불한당 같은 야수의 저돌성 때문에 쉬쉬하게 만든다. 남자들은 친구끼리 사랑에 대해서 말하지 않기 때문에 별 관심이 없겠지만 여자는 다르다. 얼핏 듣고 풍문으로 아는 실제 사례가 가까이, 또 멀리 있다는 점. 가령 1달 쫓아다니고, 그래서 1년 사귀고, 한쪽에서 이별하자 하니까 또 매달리며 또 따라다니고 또 기다리는 남자. 롱테일은 반듯이 있다. 주위에서는 꽃과 꽃병의 어색한 만남을 보며 대체 뭐라 생각했을까? 어떻게 바라봤을까! 미래는 내다봤을까? 어쩌면! 그녀는 창피하고 부끄럽고 수치스럽지 않았을까? 처음에만! 이건 아닌데 싫다고 했는데 이건 아니야, 그렇지만 결과는 마수에 넘어감. 시작과 과정이 어쨌든 결과적으로 꽃은 꺾이고 과실은 마수의 손아귀에. 여자에게만 남자가 1인 다역이 되어야만 하는 건 아니다. 남자도 마찬가지다. 남자는 비로소 화가가 되고, 친구들 사이에선 최고가 되며, 그녀는 정물화에 등장하는 과일도 누드모델도 나의 천사도 되는 것이다. 잡힐 때는 인어, 잡혀서는 물고기, 전적으로 보아서는 어복. 새하얀 도화지에는 숙녀가 바라지 않았던 조악한 모험과 삼류 멜로와 저급한 남성성이 그려질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녀는 여전히 순결할 수도 불순한 사랑을 체험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주위의 걱정과 아직도 남자친구 없냐는 핀잔과 집안의 우려에도 끝까지 낭군님을 기다려왔거늘, 천하의 절세미녀일지라도 꽃으로 존중 받고 사랑 받아야 할 여자임이 증명되지 않았기 때문에, 숙녀는 야수에게 넘어간다. 오랜 외로움을 잘 견디던 내 마음은 약해졌고, 꽃 피는 봄날 봄바람이 불어 뭔가에 홀린 듯 기분도 이상해졌으며, 지나고 나면 도저히 이해를 못할 일이겠지만 그래, 그녀는 아직 순진하지 않은가 말이다. 여자는 수학처럼 완벽하게 둘로 나뉜다. 완벽하게! 야수라면 죽어도 싫은 여자와 아닌 여자로. 야수라면 이 세상 이 우주를 다 줘도 싫다는 여자와 아닌 여자로. 물론 아직 꿈에서 깨어나지 아니한, 몰래한 사랑에서 공식적이지 않은 비공개 몰래한 사랑의 어떤 교감을 잠깐 궁금해 하는, 수학적이지 않은 잠자는 숲 속의 미녀는 우리에게 넘어올 수 밖에 없다. 으흐흐흐흐! 그런데 당연하게도 여자의 이분법은 또 하나 있다. 없을 수가 없겠지. 바로 야수처럼! 그것은, 젊음에 기인하는 꽃다움과 어디 가나 누구에게나 손꼽히는 인상으로. 아시다시피 전자의 미래는 후자도 그렇겠지만 엄마다. 어려울 것 하나 없다. 뭐 부티 나는 엄마 친구? 그러니까 늬가 안되는 거야~ 그러니까 안되는 거라고! (특정인만, 우리끼리 얘기였음). 그렇다면 야수의 미래는? 상상이 뭐 어렵겠나 그 흔한 동네 아저씨지! 누구도 늙었어, 도 누구나 되니까 들을 수 있는 소리다. 내일에 대한 수읽기에서부터 벌써 여자는 남자에게 한 수 지고 출발하는 지점이 여기다. 거울아 거울아, 그처럼 나르키소스는 남자와 여자의 모습을 동시에 띄고 있다. 왜냐하면 허세와 허영심을 양쪽에 꿰찼으니까 말이다. 오락산업이 자본의 회전을 일구듯 경제는 지구를 돌리듯, 마술을 부추기는 건 바로 거울과 화장술과 조명 그리고 성미와 기호, 청각, 시각, 공감각, 지각인 것이다. 더군다나 우리가 정작 사랑하는 것은 순수한 여심과 남아의 푸른 기상이 아니라 늠름한 말 여섯 필이 이끄는 황금빛 호박마차가 아니겠는가. 무턱대고 부일할 수만도 없는 일이다. 단, 어른이라면! 무난한 신붓감, 천상의 배필, 새하얀 면사포, 사랑의 맹세와 더불어 야수와는, 애교만으로 승부하는 아가씨와는 도저히 한 침대에서 희망을 함께 한다는, 만인에게 떳떳히 알릴 수 있는 내일의 사랑이라는 자유로운 공상이 결코 허락되지 않는 분들은 어쩜 적지 않다. 때문에 바로 그래서 사랑은 재밌을 수도, 행복은 난해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일평생 단 한 번만 사랑하면 그만이지 남녀 공히 평균(적어도?) 100명을 사랑할 이유가 뭐 있겠는가. 다시 이어가자면, 너무 아니었지만 주변의 눈총은 무시한 채 일단 만나 본다 만나 봐야지 괜찮은 남잔지 아닌지 알 수 있다면서 천연기념물은 스스로 다독이며 합리화 한다. 다시 2차로 친구들에게 소개하는 의례가 남았다. 기다리며 쫓아다니기만 1등이었지 다른 면모도 그렇지는 않기 때문에 그녀는 걱정이 앞선다. 함께 만날 수도 없다. 친구들에게 우리 오빠라며 지갑 속의 내 남자친구 사진을 보여준다. 친구들은 겉으로 그런다. 와 믿음직스럽다 괜찮네 멋지다 어쩐다. 친구들은 속으로 그런다. 어떻게... 만나도 만나도... 어떻게... 붙어도 붙어도... 그녀들은 드라마 속 유부녀처럼 말한다. 왜냐하면 꼬리가 아홉 개 달렸으니까. 물론 속으로만. 그때 똑부러진 친구가 나선다. 와, 나 이 오빠 알아. 우리, 채팅해서 만났어. 여자친구 없다던데? 효과음...! 숙녀는 뚜껑이 열린다. 수증기가 귀에서 머리에서 분출한다. 막 분출한다. 레이저가 나가고 화염방사기는 참담한 심정으로 대신한다. 그러니까 애초에 싫었는데 아니었는데 정말 아니었는데. 우리 오빠는 다 잡은 초특급 대어를 놓치게 된다. 완전 꽝된 거지! 어떤 파국에 따른 남녀의 이별 특히 미녀와 야수의 이별 다음에도 나뉠 수 밖에 없다. 누가 먼저 차든 어쩌든 그래도 우리 오빠인 여자(다른 여자 품에 안겨도 함께 살아도), 뒤도 돌아보지 않는 여자, 결국 속 시원한 결과에 묵묵히 체념하기로. 다른 사랑을 기다리기로. 그렇지만 아니 어떻게...! 사랑은 어쩌다 어두운 장르일 수도 있음을, 내가 그 주인공일 될 수도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만 한다. 시작이 아름답지 못한 사랑은 끝이 단정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는 법. 심지어 뒷모습의 나쁜 사례들 가운데는 심심치 않게 들리는 소송전도 있다. 내가 이별을 선언한다면 몰라도 너는 이별을 선언해서는 안된다, 따라서 받은 거 다 내 놔라, 아니면 계속 사랑하자! 솔직한 속마음을 꼭 말로 듣고 눈으로 보아야 하는 건 아니다. 물론 꽃 들고 기다리고 따라다니며 매달리는 의전식 사랑의 정점을 남자가 먼저 불현듯 찍는 경우도 있다. 따라다녀서 의전식 기대감을 충족시켜줘서 시작한 연애, 그런데 사겨 보니 완전 허영심 덩어리네 아 얘는 도저히 안되겠구나, 라면서 그녀를 내 걸로 만들어 놓고 복수를 준비하여 완비되면 남자가 여자를 차고, 곧바로 다른 여자와 결혼, 그러면 우리의 영심이는 완전 충격 먹고 괜찮은 남자 골라서 소개팅에 나가, 딱 나가서 그런다. "들었어요?" 뭐, 들었어요? 듣긴 뭘 들어! 일생이 연예인병이군. 무조건 꽃 들고 기다리고 따라다니며 매달리는 의전식 사랑. 그 가운데는 사랑이라 부르기 힘든 사례가, 도저히 축복할 수 없는 슬픈 사랑이 당연히 있다. 어쩌면 많다! 그보다는 차라리 흑심이 오히려 풋사랑이 훨씬 낫다. 월등히 낫다. 그래서 나이트클럽은 오늘도 문전성시를 이룬다. 유흥가는 그래서 언제나 분주한 것이다. 그러니까 사랑은 어렵고, 끝이 아름다울 수 있는 사랑인가 애초에 따져야 하며, 그 남자의 숨겨진 본성과 구미와 뒷모습까지 아는 게 좋다. 모르는 것보다는 말이다. 나중에 가서 그럴 줄 몰랐다? 그걸 누가 책임지랴. 타인의 삶이 아니라 내 인생에 무책임한 방임을! 세상도 똑같다. 잘되면 내 역량 못되면 세상 탓 보통은 운수 대통. 내가 사귀는 사람에 대해서 나는 과연 얼마만큼 알고 있을까? 정말 얼마만큼? 연애는 쇼핑이 아니다. 사랑이 뽑기였으면 노력이 무슨 필요가 있으랴. 사랑했으면 사랑을 하면 사랑할 거라면, 사랑은 즐거운 연애와 기쁜 추억이 다가 아니다. (속닥속닥 그러니까 마담에겐 그 곡을, 다음 사람에게는, 크크크큭) 최선을 다하는 사랑도 뒷모습은 다를 수 있고 미래는 모르는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사랑하기에 떠난다는 그 말이 대체 뭔 말인가 난 아직도 이해할 수 없다, 내가 진정 사랑하는 사람과는 절대로 결혼을 해서는 아니된다 등등 사랑의 불가해함은 끝이 없다. 아무튼 뭐 그렇고 그래서, 나 꽃이야 타입은 그게 문제다. 홀딱 반할 수 밖에 없는 화사한 꽃일지라도 그 꽃에 걸맞는 화병을 만나야 하는데 와, 어떻게 골라도 골라도 저런......! 미술계에서 세월을 들여 부단히 공들였지 않나요? 꽃과 꽃병! 와 저 정도 꽃은 내가 태어나서 처음 보는데... 사람은 내가 그 아름다운 꽃에 어울리는 꽃병인가 아닌가 대략 모를 수가 없기 때문에 대부분 선을 넘지 않음. (바보가 아닌 이상 누가 봐도 남자가 아까운데 여자가 아닌 척? 그런 척 하는 양상, 다른 여자가 모른다면 모를까 옆에 있다면 여자는 그냥 넘어가지 못하고 앞에서 말한다. 그 꼴 보고 그냥 넘어갈 수 없다. 못 봐주겠으니까. 뭐에 진주 목걸이? 절대로 그냥 넘어갈 수 없다. 그럴만 하지 않은데 만약 그런다, 잘난 체 아는 체 이쁜 척 그 꼴 못 본다. 그럼 또 다시 어떤 척 했던 숙녀는 모른 체. 난 몰라! 난 몰라? 모르긴 뭘 몰라! 추가로 설명하자면 허풍 80점이 꿈으로 가는 초석이 될 수 있듯이 허세 90이면 남자가 뚜껑 열리고, 허영심 70이면 여자는 핑 돈다) 아무튼 꽃과 꽃병의 조화는 사람이라면 대략 모를 수가 없기 때문에 대부분 선을 넘지 않음. 그래서는 안됨. 더군다나 여자들이 좋아하는 남성상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음. 허나 롱테일은 30년 같은 시간이랄지 지역과 문화와 사람에 따라 없을 수가 없음. 어느 거리를 걸어보거나 어디에 살아 보면 알게 됨. 게다가 피자 배달원의 경험도 있음. 나 꽃이야 타입은 그게 문제다. 남자라면 누구나 홀딱 반할 수 밖에 없는 화사한 꽃일지라도 그 꽃에 걸맞는 화병을 만나야 하는데 와, 어떻게 골라도 골라도 그런...! 어설픈 하이에나도 그저 그런 늑대도 아니고, 어떻게 골라도 골라도...! 그와 막 절묘하게 똑같은 사례는 드라마에 보면 나옴. 유부남이 뻔트 대는데 뭘 까다롭게 고르겠나 뭘 많이 따지겠나. 부인에게 딱 걸려서 혼날 때 부인이 하는 말, 아니 어떻게... 골라도... 붙어도 저... 어떻게 어떻게...... 기가 막혀! (딱) 남자나 여자나! 그게 왜 그러냐 하면 여자는 천동설 남자는 지동설이니까. 여자는 거울 보며 화장하고 거울아 거울아, 라며 거울과 묻고 답하는 <나 꽃이야!>. 애인이 야수든 맹수든 상관 없고 난 모르겠고, 1차적으로는 나만 이쁘면 그만! 꽃처럼 예뻐 보이고 비누처럼 향기로우며 광고처럼 꾸미기만 하면 그만이거든. 딱 거기까지. 무엇이, 누가? 나만! 내면의 아름다움? 그건 글쎄요... 지적인 남자? 지적이냐 아니냐 보다 내게 잘하냐 내게 다정하며 내게 자상하고 내게 극진하냐, 바깥을 향한 진면목도 중요하겠지만 나를 향한 연기와 남자의 본모습-사고 체계를 구분하기가 어디 쉽겠습니까. 내면의 아름다움은 숙녀든 숙녀의 이상형이든 뭐라 말하기 퍽 애매하단 말이오. 그 옛날 모델을 구할 돈이 없어서 자화상을 주로 그렸던 화가처럼 내 자화상을 그려야 할 의무도, 재주도 없고 고생할 필요도 없이 오직 사진만 찍으면 그만. 언제나 거울아 거울아! (무슨 주의 그 얘기가 아니라, 그게 나쁘다는 게 아니라 사실만 봐도 응당 진실. 지금 원리 얘기!) 그런데 남자는 내가 나서야 함, 탐구하고 탐색하며 탐험하고, 추측하고 추리만으로 만족할 수는 없고, 싱그런 꽃을 찾아서 떠나고, 탐스런 과일을 따먹고 또 따먹고 쉬지 않고 계속 따먹고 아예 과수원을 차리고(구시대 연예계와 방송계가 딱 그랬음. 뭔상납 기타 등등. 지금 생각하면 난리도 아니었음. 그리 먼 옛날도 아님), 나중을 위해 과일나무의 씨앗을 뿌리면서 만방에 설을 풀다가, 노래도 부르고 시도 짓고 마시고 놀고 춤추며, 던지고 치고 달리고 잡고 넣고, 남자는 그래야 하니까! 여자는 나만 꽃이면 되니까 야수의 보호를 받으며 종족 번식에 성공하여 2세를 잘 키우면 그만. 딱 그만! 하오나 남자는 내가 꽃이든 꽃이 아니든 타고난 건 어쩔 수 없고, 내가 최고의─최상의─최선의 꽃을 얻고 갖고 사고 꿈꾸며 황금의 사과를 따먹고 나서, 그외 나머지 뭐 어떤 그런 뭐 그 거기시 어? 머시기는 가리지 않음. 여자가 처음과 끝이 거울인 것처럼 남자도 그럴 수는 없음. 남자는 텐미닛이란 화술이든 세이렌 같은 리본-포장-멋-외면-재능과 능력-글발이든 아니면 내 성실함을 내세우던가, (무례니 뭐니 그런 거 모르겠고) 한 달이든 일 년이든 무조건 쫓아다니든가, 2세를 잘 키울 수 있는 재력이랄지 나머지 여자가 좋아할 만한 미끼를 제시하면 그만. 남자는 꽃처럼 예뻐보이고 비누처럼 향기로우며 광고처럼 꾸밀 필요가 전혀 없음. 여자는 머리 감고 말리고 어쩌고저쩌고, 남자는 수건으로 쓱쓱 닦으면 끝! 아름다운 꽃을 꺾어서 화병에 꽃아 내 옆에 탁~! 탐스런 사과를 따서 내 앞에 딱~! 그걸 사진 찍든 먹든 정물화를 그리든, 행복하건 불행하건 그건 그 다음 문제. 바로 그래서 야수와 미녀라는 짝이 존재하고, 바로 그래서 드라마에서 숙녀는 어떤 상황에 직면하여 너무 황담함에 차마 뭐라 말할 수 없는 장면이 존재하게 됨. 사랑은 아름다운 사랑만 있는 게 아니라 비뚤어진 사랑도 있다. 아무리 해도 해도 내 사랑을 받아주지 않는다고 남자를 영원히 잠들게 하는 여자, 그러고서도 0.5세기 1세기 내내 보란듯이 잘 먹고 잘 사는 여자. 너 나랑 만나자 사귀자 너 내꺼-하자, 뭐 싫어? 싫다고? 그녀를 휠체어에 앉혀서 인형으로 변신시켜 내 것으로 만드는 남자. 연애 칼럼을 이왕 쓸 거면 뭘 좀 알고 써야 하지 않을런지.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고 했나요! 여저분, 사랑을 바로 압시다. 유행가는 거의 100퍼센트 사랑을 노래하지만 다 같은 사랑이 아니니까요. 그런데 결론은 그게 아니라 이것임. 결론은, <사랑은 대체로 여자가 남자를 처음부터 마음에 들어하는 게 더 좋더라> 라는 말씀. 세상은 말한다. 또 가수는 노래한다. 남자가 여자를 좀 더 좋아하는 게 좋다고. 하지만 실속을 따지자면 전혀 그렇지 않음. 겉으로야 그럴란가 몰라도 여자가 남자를 더 좋아하는 게 훨씬 좋음. 훨씬~! 하지만 어느 정도 비율은 근접해야 하겠죠? 그런데,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어설픈 연애 칼럼니스트는 95퍼센트 여자가 먼저 사랑의 신호를 보내네 어쩌네? 신호 좋아하시네! 어중간하게 유명하다고 사랑을 띄엄띄엄 아시나? 그런 분이 여자라면 꽃은 꽃인데 음 꽃은 꽃이네. 95퍼센트? 꽃도 꽃 나름이지 않겠어요! 그게... 무슨... 어떻게 분야에 따라 허당들이, 허허, 대단하십니다 그려. 허당이 전문가와 비전문가를 양쪽에 꿰찬 세상이구먼 그래. 난세다 난세! 인문교양서에 나오는 그래프만 떠올려 봐도 답은 즉각 나옴. 남자 A와 B, 여자 A와 B. 경우의 수는 딱 4가지. 이때 사랑의 화살표가 어떻겠습니까? 뭐 여자가 먼저 신호를? 아아 사람 건방지게 만드시는 주장임. 남녀 공히 평균 100명을 사랑하는데 그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말씀을! 그 무슨 허접한 이론도 재밌는 수다도 아니고 허허 웃기지도 않음. 응애응애 삐악삐악 참새 짹짹 에게에게, 놀고 있네! 감히 사랑의 신들이 현존하는데 약을 팔어? 누구 코 묻은 돈은 내 품위 유지비라고? 재수없지만 어쩔 수 없으니까 거만하게 말하자면 이렇다. 여자의 신호를 많이 받아본 입장으로써 보자면 그 말은 맞다. 그러면 여자의 신호를 많이 못 받아 본 남자도 그럴까? 아니다! 천만의 말씀! 절대 아니다! 그럼 미녀는? 아니다! 절대 아니다. 무조건 남자가 사랑의 신호를 먼저 보낸다. 절대적으로! 아조 환장한다! 정신 못차린다! 돌아버린다! 심지어 우리는 오빠라는 말만 들으면 미쳐버린다. 답 나왔네 답 나왔어. 삼류 칼럼니스트는 선녀라고! <여자가 남자를 마음에 들어해서 시작한 연애가 아무래도 훨씬 멋지더라> 라는 교훈과 여자가 (1의 자리) 반올림 100퍼센트 사랑의 신호를 먼저 보낸다는 미신인지 과학인지는 구분하시기 바랍니다. 그 정도 분간은 해야 어른이겠죠. 암요. 절시구, 적어도 전문가라면요! 안 그렇습니까 여러분? 추가로 한 말씀 드리자면, 꽃 들고 쫓아다니기의 하수는 노력과 체력과 돈과 무안함과 소문냄과 노이즈 마케팅 전법을 일관되게 밀어 붙인다. 그러나 꽃 들고 기다리기의 고수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음. 그렇게 무식하지 않음. 그분들은 리듬을 타고, 칸타빌레와 크레센도를 구분하며, 호르몬 변화 그래프에 따라 밀었다 당기고 들어다 놓음. 남자도 여자처럼 유혹할 수 있음. 그게 고수임. 바로 그게 고수라고. 여자들은 마음이 여리고 감정이 흔들리는 기간이 따로 있거든요. 숙녀가 정말 좋아하는 그 무언가가 따로 있거든요. 으흐흐흐흐 음하하하하 으하하하하하하! 아무튼 앞서 말한 결론은 명목상 결론이고 진짜 결론은 이렇다. 서술자 본인만 빼놓고 모든 남자는 다 늑대라는 것!
표정이 찡찡한 누군가는 없을 수가 없으니 기왕 논한 거 간략히 부언 설명을 하고 넘어감. 그러니까, 긴 얘기와 상대적으로 야수에게 달갑지 않은 내용은 왜 그럴 수 밖에 없었을까? 왜냐하면 첫째, 그 어떤 원리(!) 원리를 설명하기 위해서. 둘째, 야수란 무엇인가 그 기준은 각자 다를 수도 있음을 알자 라는 의도. 우리 오빠 우리 아빠,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는 거 모르는 바 아니거든요. 외모가 전부가 아니거든요. 셋째, 지금까지 이런 얘기를 아무도 말로도 글로도 하지 않아서, 듣도 보도 못했기 때문. 못 찾았거나 흩어져 있을 수도 있지만. 넷째, 애절한 사연이 어떻고 남녀의 사랑 이야기가 어떻건 지금 함께 행복하고 잘 살면 그만이지 않을까 라는 점. 다섯 째,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아니죠! 옛날 얘기죠. 구식이니까요. 순진한 발상은 연인끼리 나 잡아 봐라 놀이를 할 때나. 예술마저 거의 완벽하게 재화 가치로 측정하고 거래되며 이용한다는 점. 더없이 막중한 인생과 예술을 기초적으로 그냥 달랑 동사 하나로만 표현하면 몹시 섭하죠. 그럼 인생과 예술을 동격인 명사로 묘사하는 건 어떨까? 하지 말란 법은 없으니 시도하자면 이와 같음. 인생은 묘비명이고, 예술은 황금이며, 세상은 놀이터다! 그럼 사랑은 다이아몬든가? 어쨌든 황금과 놀이터야 정말 그런가 안 그런가는 각자 생각하고, 인생만 놓고 보자면 또 유명한 묘비명을 인용하면 얘기가 길어질 테니 딱 두 가지만. 그의 인생은 행복했다, 그의 인생은 불행했다 그렇게. 예술은 그냥 예술이고, 세상은 넓고 인생은 길다는 것. 그대의 행복이 짧지 않기를! 가령 환경운동을 한다고 할지라도 단순히 옳다고 생각하며 정의감 때문에만 한다면 피곤하고, 지치고, 힘들며, 오래 가기 힘들 것이다. 멀리 보고, 전수조사와 표본조사를 구분할 줄 알고, 무엇보다 즐겨야 좋다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다. 괜히 타임머신이라는 둥 선험자요 선구자를 들먹이는 게 아니다. 물은 왜 위에서 아래로 흐를까 생각하고, 트로이의 목마라는 다큐멘터리와 회전목마라는 소녀의 낭만을 동시에 떠올리며, 무턱대고 사랑을 강요하지 않기! 무엇이 예술이건 무엇이 드라마틱하건 내 인생 외에는 그건 다 남의 인생, 타인의 여자, 멋진 세상일 뿐. 따라서 살다 보면 이런 일 저런 일 많은 일들이 있을 테니까 회의적인 관점에도 문을 열어놓은 체 긍정적일 것. 이타적인 이기주의가 기본일 것. 상남자도 그냥 상남자는 재미도 없고 인기도 없다. 어떤 상남자가 호감인가 그걸 누가 모르랴. 아름다운 사랑마저 너도 알고 나도 아는 일. 그 모두를 무시하고 너와 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적어도 천당을 바라기는 스스로 미안하겠죠. 이승에서의 행복을 기도하며 속세의 성공을 기원하기야 개인의 자유일 테지만요. 때와 상황과 여건에 따라 세상도 그렇고 사람도 변한다는 것. 무엇보다 한마디로 원리가 이렇다 라는 말씀. <일단 여기서 심화 과정은 소설 '신비한 추측'을 적극 권합니다. 강력하게! 부드러움과 섬세함과 격조와 재미와 감동의 극치를 그대에게 선물할 테니까요. 어설픈 광고계의 립서비스 그런 건 비교도 안될 테니까요. 한마디로 격이 다를 테니까요. 사랑과 야망, 행복과 운명, 허세와 허영, 허당의 전기, 환상과 신비, 늑대론과 오락업과 요술학등 그 모든 게 다 들어있을 테니까요! 딸은 사달라고 난리다. 아들은 이렇게 말한다. 달콤한 사랑은 결실을 맺고, 나중 단란한 가정과 별개로 아빠는 할 일 없는 심심함을 종식시킨 채 유년기의 꿈을 되찾았다. 바로 그 책을 들고서!> 분명 미래에 사람들은 이처럼 말할 것이다. 그분들이 본 광고는 이렇다. 엉뚱한 광고 문구는 이와 같았다. "놀라운 상상과 신비한 추측은 따라쟁이의 습관. 신기한 성과는 창조자의 책동" 그런데 과장 광고가 아니라 발 없는 말이 천리를 달리는 입소문이었던 것이다. 동기부여도 아닌 거리의 마술사와 약장수로 빠지지 말고 다시 와서, 그처럼 주변에 누구 누구 누구 장본인이 있을 테니 그렇다는 말이다. 지금 웃고 계신 그분들께 여쭤보시라. 사랑에 대해서! 그러니까 제발 여기서부터는, 꼭, 여자들끼리 얘기합니다. 네? 부디, 그럽시다! 단, 적어도 뭘 좀 아는 촌년이라면 말이죠. 아, 힘들어. 아아, 피곤해. 갑자기 말을 너무 많이 했더니 급격하게 체력이 떨어짐. 우리끼리 정말 이러기예요? 네. 저도 몹시 유감스럽지만 여기까집니다. 우리 사이에 정말 이러깁니까? 네, 한번만 봐주세요! 아, 힘들어. 아아, 피곤해. 갑자기 말을 너무 많이 했더니 정신이 혼미하군 그래. 이런 강의 어디서 절대로 쉽게 듣지 못하는데 말이야. 이거 이거 공짜로 하면 안되는데, 상도덕에 심각하게 어긋나는데, 업계 불문율에 딱 위배되는데, 아무튼 무지하게 피곤하구먼 그래. 아, 잠깐. 잠깐. 귀 귀울여 보시오 낭자. 들리쇼? 아 이 웃음 소리가 정녕 들리지 않는단 말이오? 으하하하하 푸하하하하하하 음하하하하하하! 우리 오빠 우리 아빠 우리 그이, 게다가 다 잡은 대어를 참으로 안타깝게 놓쳤다거나 아예 인어를 오래 붙잡아뒀는데 한눈 파느라 어이없이 놓친 야수까지, 꽃 들고 쫓아다녀서 사랑을 쟁취한 그분들의 폭소가 정말 들리지 않는단 말이오? 난 벌써 그쪽 대표 주자에 해당하는 내 친구 누구와 다가오는 어느 만남 그때 우리가 어디를 가야할지 고민이라오. 옛날처럼 바에 가서 바텐더 등에 땀 쭉 나게 만드는 것도 이젠 더 이상 재미없고, 어디 가서 1번부터 7번까지... 쉿! 백넘버는 지극히 사적으로만 얘기합시다 그려. 끝.
11 믿는 건 너의 마음, 변심은 나의 자유. 적지 않은 생각과 행동에 대해서 나의 YES와 NO는 알고 보면 수없이 오락가락하다는 것을 미래에는 알게 된다. 믿음이란 그런 게 믿음이다. 사슴 루돌프의 코는 빨갛고 산타 할아버지께서 내 소망을 모른 체 하시지 않을 것이라는 점. 바로 이런 게 믿음이다. 그래서 달콤한 복수라는 이름의 의류 브랜드는 무의식적으로 동심을 자극하는 것이다. SWEET REVENGE? 산타 루돌프의 이니셜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라~는 낙서를 문학수첩에 끄적거리는 데 연락이 왔다. 여성잡지1에 기고했던 연애론에 관해 인터뷰가 필요하다고. 나는 싫다며 거절했다. 계약서의 몇 조 몇 항을 인용하면서 나는 인터뷰를 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그런데 무슨 민사상 고소가 접수됐다, 내용 증명서가 도착했다, 어디 무슨 머머의 법무팀이 바빠졌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라며 날 압박했다. 그래서 나는 하는 수 없이 여성잡지1의 담당자를 만나기로 했다. 만나 본 다음 진짜로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면 그때, 출판사에 연락하건 변호사를 고용하건 어떻게 조치를 취할 생각이었다. 안토니오 비발디의 리코더 협주곡 RV 443을 들으면서 한 잔의 커피와 함께, 직접적인 탐구욕 이타적인 질투심에 근거하여 떠올렸던 작품 구상은 산산이 부서져버렸다. 깡그리 깨져버렸다. 카페라떼 커피색 서론과 어린이가 좋아하는 파란색 전개, 망사 스타킹을 떠오르게 만드는 선홍색 절정까지 모두 다 어떻게 응? 어떻게 잘만 하면 잡을 듯 말 듯, 다시 잡을 듯 한손에 그 달콤함을 모두 거머쥘 수 있을 것만 같았는데, 토실토실한 영감은 훵하니 도망가버렸다. 허당의 자발과 백조의 침묵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공상으로 재탄생할 수 있을 것만 같았는데, 뜻밖의 위기에 봉착한 것이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 만나 보면 알겠지 라며 일단 마음을 가라앉혔다. 나는 약속 장소로 나갔다. 건축 잡지나 디자인 잡지에 나올 만한 멋진 카페에서 담당자를 기다렸다. 기자가 나타났다. 두 명이었다. 한 명은 취재기자 한 명은 사진기자. 뭐시여? 나 사진 안 찍는데! 게다가 왠지 모르게 낯이 익었다. 어디서 봤지? 어디더라? 아, 맞다! 그녀들은 내가 도시에 와서 들렸던 나이트클럽에서 만난 아가씨들이었다. 뭐야,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다더니! 그 상황이 이 상황 아닌가?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녀들은 아마 그 일을 모르는 것 같았다. 설마 모르는 척? 혹시 모르니까 나는 먼저 아는 체 하지 않기로 했다. 우리는 인사를 나눴고, 서로 하고 싶은 말을 했다. 나는 인터뷰에 응할 수 없다, 그런데 내가 무슨 법적 소송에 휘말렸냐고 물어봤다. 그런데 그녀들은 너무 쉬웠고 너무 편했다. 「뻥이었어요. 작가님이 만나주시지 않을 듯 하여 거짓말 좀 했죠!」 「뭐라구요? 그럼 우리가 만나서 할 일이 없는데, 왜...?」 「왜긴요? 이렇게 한가하게 차를 마시고 그윽한 시선으로 도시를 바라보며 다정한 대화를 나눌 수 있잖아요. 시간 나면 드라이브도 하구요. 어? 차 좋네! (난 하필 거기까지 그리핀이 타라고 선뜻 내 준 뚜껑 없는 차를 타고간 것이다) 그런데, 왜 모른 체 해요? 네? 응, 오빠! 우리 봤자나. 만났잖아. 며칠 전에. 말 텄잖아. 혹시 무슨 일 없었나? 말만 놓았나? 마음만 줬나? 아님 전화번호도 줬나? 모르겠네. 그런데 만났네? 어쩜 이런 우연이! 와, 생전 처음 만난 사람처럼 완전 모른 체, 연기력 대박! 이거 정말 이러기야? 이 오빠 안되겠네. 아 진짜 삐─! 우리가 무슨 어? (뭔가 말할려다 조심하는 듯) 철부지 말괄량이인 줄 알아? (혹시 할려던 말은...) 어떻게 그처럼 알면서 모른 체 하기야? 완전 딱 잡아떼네. 배꼽이 웃겠군. 오빠, 너무 맹랑한 거 아니야? 너무 심한 거 아니냐구! 사람 너무 하네 진짜!」 「아이참. 인사할려고 했는데 혹시 싫어할까 봐, 나름 망설였다구. 기억 못하는 건 아닐까? 긴가민가 하나? 만약 내가 먼저 아는 체 하면, 나 보고 설친다고 하면 어떡하지? 사람 뭘로 보고... 그러면 어떡하냐고! 이랬다니까. 정말이야. 거짓말이 아니야. 믿어 줘...요.」 「OK! 그건 그렇고. 음. 오빠. 우리 몇 가지만 간단히 묻고 답하고, 일 그런 건 잊어버린 다음 놀자. 응? 반갑잖아. 놀자구. 오빠는 반갑지 않아? 조금 그런 눈친데. 아니...지? 에이 설마! 어쨌든 딱 몇 가지만 얼른 묻고 답하고 응? 묻고 답하고 그리고 놀자. 좋아. 그래야지. 즐거워질 생각 하니까 기쁘네. 그치? 묻고 묻고 답하고 답하고. 자, 가 봅시다. 오빠. 첫째, 그동안 썼던 작품 가운데 특히 기억나는 작품은 뭐야? 특별히 좋아하는 작품 말이야. 둘째, 그동안 썼던 작품에서 유독 애착을 느끼는 사건, 주인공, 우정, 사랑은? 셋째, 오빠가 글을 쓰는 방법은? 어떻게 언제 어디서 무엇으로 쓴다 같은 거. 모래시계형 구조와 어떤 문체를 선호하고 무슨 전개 방식을 추구한다, 그런 것들 말이야. 응?」 「음... 먼저 첫째. 어쩌다 생각나고, 불현듯 기억나며, 종종 떠오르는 작품도 있긴 해. 유난스레 연상되는 일도 있고. 하지만 난 앞만 보고 달려. 지난 작품에 대해서 말을 많이 할 수 있다는 건 새로운 작품을 쓰는 데 대한 최적화된 태도가 못된다고 생각해. 옆에서 귀찮게 하고 조명 비추고 유명세를 치르면 그만큼 다음 작품에 대한 에너지를 뺐기는 건 아닐까? 뭐 그 생활에 익숙해지면 괜찮긴 하겠지만 말이야. 난 아직 순진한 신인이다 뭐 그 말씀이지. 그런데 있잖아. 나 인터뷰 안한다고 했는데. 뭐야, 어느새 말렸네? 내가 두루마리 화장진가? 아 나 이런 정말 이게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참 나 완전 말린 거네 말렸어. 제대로 엮여버렸어. 완전 넘어갔다고. 꼼작없이 낚였잖아? 맙소사! 인터뷰 취소야 취소. 내 그럴 줄 알고 법적 대리인이자 전속 변호사한테 실시간 검토해서 상대방 법무 담당자와 직접 얘기하라고 말해 놨으니까 유도 심문 그만 포기하시지. 이따 편집장 그 양반한테 전화 오면 얘기 잘 하시고. 그럼 이제 자, 우리 한번 놀아볼까? 근데 뭘 하고 놀지? 그런데 우리가 그처럼 스스럼없이 함께 놀 사이...라고 하기엔 더없이 딱 맞는 인연이지. 암. 안 그러니?」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나는 하마터면 말려들 뻔 했다. 까딱 잘못했다간 술술 다 말할 뻔 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거짓말을 했다. 법적 대리인은 무슨! 설마 그리핀의 작전은 아닐 테고. 오늘은 장난치기 좋은 날이었을까?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허나 내가 굳이 그녀들과 담을 쌓아야 할 이유는 없었다. 도도한 흰색 실크 팬츠에 부시시한 은회색 블라우스. 헤어드라이기의 바람 좀 맞이한 듯한 우아하게 굴곡이 들어간 긴 머리카락. 사랑에 빠진 듯한 진분홍색 가방. 그리고 '맥주 100명 + 최고급 위스키'를 살 수 있는 가격의 요만~한 크기의 향수 내음은 또 어떻고! 그리고 더없이 진한 검정색 세무 구두에 자수가 특이한 온통 흰색 원피스까지. 나는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몽상가들의 천국 몰디브도 막상 살아 보면 아마 비슷하지 않을까 라고. NC에서 스친 인연이었던 우리는 알고 보니 업계 동료였던 것이다. 따지고 보면 우린 외로운 사람들이다. 그런데 문제는 마리와 영은 단짝 나는 남자. 뭔가 이상한 전율감이 흐르고 있었다. 이러다 설마 삼각관계로 무르익는 것은 아닌가 감수성은 부끄러워했고, 그녀들을 알고 싶다는 곧 그녀들을 내 작품에 담고 싶다는 호기심까지 몽실몽실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 흑심은 발동되지 않았다. 말을 나눠 보니 마음이 따뜻한 친구들 같았다. 뭘 좀 아는 친구들이었고 됨됨이도 괜찮았다. 마리는 꽁꽁 언 내 마음을 샤르륵 녹여 주었고, 영은 옴짝달싹 못하도록 날 웃겨 주었다. 난 막 고민에 빠졌다. 무인도에 가게 되면 둘 중 누구를 데려가야 하는지. 그러다 딱 결정했다. 둘 다 데려가겠다고! 이미 미묘한 신경전은 시작된 것이다. 나는 사랑의 삼각관계이자 우정의 삼각관계를 동시에 체험하는 진귀한 체험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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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사랑은 뭘까? 응? 오빠는 사랑이 뭐라고 생각해?」 으잉? 사랑? 사...랑? 우리가? 웬 사랑? 그... 사랑? 바로 그때 저쪽에서 이쪽으로 누군가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었다. 그녀는 영이었다. 나는 말했다. 「사랑은... 영이야!」 뭐라고? 아니 이렇게 크나큰 실수를 하다니! 그게 뭐야, 저런! 그런데 영은 어떻게 알았을까? 나와 마리가 오붓하게 데이트를 즐기고 있었다는 것을. 그치만 내가 영과 단둘이 데이트를 한다 할지라도 마리도 똑같을 거 같았다. 화들짝 놀라지 않고 별수 없었을 것이다. 아아 지금이 그 언제까지라도 이어질까? 이 꿈만 같은 시간은 우리를 어디로 데려다 줄까? 우리는 비몽사몽 사랑의 발라드에 빠지고 말았다. 아니, 우리가 아니라 나만...일까? 그건 누구도 모를 일이었다. 우리는 틈만 나면 공원을 유람했고 틈틈이 해변가를 배회했다. 시간이 많이 남지도 썩 심심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기분은 내내 좋을 수 밖에 없었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나는 그 언젠가 기적을 부르는 표어로 그걸 떠올려 봤다. 바로, 여자 말을 잘 듣자! 왜냐하면 그녀들은 기분 나빴다 했을 때 당장 그러니까. '늬 애기 못생겼어~ 아니 이년아? 완전 못생겼어!' 라며 친근한 우정과 감미로운 호의는 한순간에 비난으로 바뀌니까. 한편 나는 스콧도 만나야 했고 그리핀의 마음도 헤아려야 했다. 마리와 영의 우정도 이해해야 했으며 사랑의 시도 써야 했다. 그래서 나는 당분간 그분들과 거리 두기에 들어갔다. 밀었다 당겼다 에서 썰물의 시기가 찾아온 것이다. 때문에 나는 혼자 막 좋아하면서 평일에는 동화를 썼고, 주말에는 해변에 누워 연가를 불렀다. 지금은 추운 계절 나는 겨울 남자였기 때문에 입는 침낭을 애용한 것이다. 그러나 글은 잘 써지지 않았고, 겨울에 일광욕을 하다 감기에 걸렸다. 그래서 남풍은 언제나 사람들에게 여행 오라며 정답게 손짓하는 걸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좌우지간 문제는 인기가 한순간에 집중되도 탈이었다. 우정이 하등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교제에 지나지 않는다면 곤란하듯이 사랑도 정히 행복한 교감과 다정한 대화, 풍부한 감정의 교류를 나눌 수 없다면 너무도 부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그런 드문 경우, 대개 남는 건 하나다. 몸의 대화. 때문에 애초에 풋사랑으로 시작했는데 깊은 사랑이 되어버리면 나중 머리 아플 수 밖에 없다. 운명적이든 정식 만남이든 자연스러운 주위 소개로 만날지라도 나중 어떤 과정들은 다 겪을 텐데, 아무튼 그건 남의 일이고, 난 지금 시간과 몸을 어떻게 쪼갤 수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양다리, 그거 아무나 하는 건 아니란 걸 알게 됐다. 그러므로 나는 소망은 양떼구름에게 드리고, 부케는 남쪽 하늘 별님에게, 열정은 앵무새한테 내맡겼다. 딱 하나 남은 상상은 그럼 어디에? 그건 이제부터 고민해 볼 일이다. 어떻게? 자못 심각하게. 남자는 폼이다, 처럼 삼류는 자세가 전부다. 하여간 말만 말만 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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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리와 영 그리고 스콧과 그리핀도 만나야 했기 때문에 빠듯한 품위 유지비에 민감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여성잡지2에 인생론을 기고했다. 돈 필요하면 통장에서 빼 쓰듯이 기고할 칼럼 제목들은 상시 대기중이었다. 상상병. 환상통. 신비증. 품격론. 연애술. 사랑학. 허언증. 긴장감. 증후군. 우정관. 꿈을 이루는 주문. 그리고, 평생 놀고 먹는 법까지. 풋사랑 10번이냐 참사랑 1번이냐. 사람에 따라 우정과 사랑에 대한 선호도는 약간씩 다를 수 있음. 뭐 양다리? 못 들은 걸로 하겠음. 애초에 사랑은 시작부터 애모와 뻔트로 구분된다. 적어도 남자에게는. 나중 그것이 드문 상사병이나 최고의 사랑으로 변하게 되는 고귀한 연정을 드라마는 좋아할 테고. 태어나서 한번도 눈을 보지 못했던 사람이 처음으로 뽀송뽀송한 눈을 보게 된다면 그것을 눈으로 인식할 수 있을까? 가능성은 반반. 그럼 가만 있는 호박한테 직접 가서 뻔트를 대느냐, 아니면 호박이 제발로 굴러오니까 사랑을 하느냐, 과연 무엇이 좋고 무엇이 옳고 무엇을 선호해야 하며 또 진정한 아름다움은 무엇일까? 그건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겨 보면 알게 된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그거니까. 그래서 아마도 성공은 쉽지 않다. 사랑이 쉬우면 성공도 쉽다. 그러나 사랑이 어려우면 성공도 어렵다. 우정도 마찬가지다. 인기라고 다를 건 없다. 고품격은 제일 늦게 움직이고.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성공의 정의가 무엇인가, 평범한 삶에서 행복할 수 있는가는 차치하고라도 타고난 재능, 후천적인 노력과 기회와 그리고 행운을 부르는 실행력과 더불어 중요한 게 또 하나 있다. 그건 바로 어떤 말을 탈 것인가 라는 점. 10개 100개의 말이 있다. 적토마, 천리마, 허세마, 한방마, 다크호스, 아내는 어쩜 천사인지 모른다, 아내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인기마, 튀어야 산다마, 그외 기타 등등. 그렇지만 그 말을 타고 싶다고 타지는 것도 아니고, 나만 타는 것도 아니며, 유행도 수시로 바뀐다. 때문에 제일 미운, 제일 꼴보기 싫은 놈은 바로 그거다. 일명, 개구멍으로 들어간 뻔트마! 말과 기수가 합체된 경우 말이다. 완전 재수없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니 어쩌니 그것도 아니고 뭐, 개구멍으로, 뭐가 어쩌고 어째? 끝으로, '튀어야 산다'마에 대해서 부언 설명. 돋보이고 튀는 재주는 사람들이 안하기 때문인지 못하기 때문인지, 뉴튼형인지 허당형인지 보면 안다. 유별난데 저급하다? 물 건너가면 안 먹힌다. 여기서 전문가는 저기 가면 아마추어라네. 환경에 따라 못 봐줄 정도로 튀는 양식은 물 건너가면 기본 중의 기본일 뿐. 그 역시 타임머신의 문제다. 옛날 옛날에 다 있었고, 판이 최신이냐 구식이냐, 규모가 크면 비슷한 유형도 널렸다. 아주 즐비함. 없는 놈이 있는 체 못난 놈이 잘난 체, 꼭 그렇지는 않겠지만 우물 안 개구리는 그냥 우물 안 개구리다. 내가 최고다? 그래 허세 최고 허영심 최상! 바로 그래서 시장에 따라 '튀어야 산다'마는 오락산업의 제물로 딱 좋음. 연예계 문화계 예술계 출판계에도 최적. 학계는 글쎄. 순진한 사람들만 과장 광고에 넘어가서 그분들 품위 유지비만 두둑히 챙겨주게 됨. 나중 보면 남는 건 그거 밖에 없음. 유행과 유명, 촌스러움 또 촌스러움, 퇴락한 명망, 복고풍 패션, 추억의 디스코 등등. 튀는 말은 대체로 다른 튀는 말에 밀릴 수 밖에 없다. 튀는 말은 대체 불가능한 게 아니라 대체 가능하다. 복사가 가능하고 모방으로 시작하여 원본보다 더 뛰어나게 각색도 문제 없다면 굳이 원본을 고집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밀려나고 잊혀지는 건 시간 문제일 뿐. 그래서 시작은 튀는 말일지라도, 그건 다른 말들도 마찬가지고, 경마장에서 살아남을려면 그거 밖에 없다. 변신! 다시 말해 새로움! 원론적으로 신부들러리는 신부들러리고, 백댄서는 백댄서다. 그건 옳고 맞고 예의다. 거의 대부분 그래야 한다. 그런데 거기서 멈추지 말고 역발상으로 삼각형을 뒤집어 보자. 그렇다면, 백설공주 동화에 나오는 마법 거울처럼 역피라미드에서 그대에게 선물하는 표어는 이렇지 않을까? 신부들러리는 신부들러리가 아니고, 백댄서는 백댄서가 아니다. 제 역할에 충실해야겠지만 드물게 그럴 수도 있을 테니까. 일은 우연히 내 운명이 될 수도 있고, 취미는 어쩌다 내 행복이, 그녀는 내 끝없는 사랑이 될 수도 있다는 것. '튀어야 산다'마는 '튀어야 산다'마로 끝나지 않을려면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거의 전적으로 상업용이라는 어떤 사실들이 어린 친구들 눈에 잘 보일까? 어른들 꿈은 부자라는 걸 어린이님도 다 아실 텐데, 하지만 그분들은 순수하기에 그럴 리는 없다. 괜히 촌닭 촌닭 그러는 게 아님. 여기서도 모순은 존재함.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니까. 조명이 비추면 자세를 취해야 하니까. 운 좋게 일찍 성공하든 대기만성형이든, 경쟁은 원리고 전진은 일리일 테니까. 나는 당나귀 너는 코끼리, 아빠는 늑대 엄마는 양, 오빠는 개상 그녀는 말상 애완동물은 고양이, 각자 좋아하는 게 다 다르거든. 뿅 가는 지점도 다 다르거든. 사회적 출세가 아닌 개인적 사랑도 역시 젊음의 행진일 뿐. 그런데 속세에서 하는 말로 누구 코 묻은 돈, 겉은 예술 속은 상업이면 차라리 낫다. 그게 아니라 증권가, 부동산, 정치, 경제, 사회가 그렇다? 대출해주고, 모래성이 만들어지고, 투자하고, 모래성은 또 담보로 잡히고, 주식을 담보로 다시 대출해주고, 그걸 다시 투자하고, 거품은 빠지고, 돈은 돌고 돌고 돌고, 그런데 어머나! 배당금이 짭잘하다고 좋아했는데, 뭔 가상화폐? 그건 또 뭐야! 그러다 은행이 팔리기 전에 누군가 슥 발을 빼. 그런데 웜~마 잔머리 굴리다 너무 빨리 뺐어. 주가 폭등!... 인생론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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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영과 데이트하는 날이다. 나는 이미 결론을 내린 상태니까 버겁지도 부담스럽지도, 좋으면서 이상하지도 않았다. 기분이 복잡하지도 않았고, 홀가분했다. 분위기도 훈훈했다. 꼭 관계의 정의를 분명히 하지 않아도 괜찮았던 것이다. 도시에서 연애하는 남녀는 간혹 이런 말을 한다. 갈 데가 없다고. (같이) 할 일이 없다고. (더 이상) 할 얘기가 없다고. (서로) 모르는 게 없다고. (어쩌면) 기대할 새로움이 없다고. 그래서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제일 웃기고 가장 흥미진진하며 최고로 인기 있는 곳이 어디냐? 그곳이다. 바로 내가 현재 머물며 일도 하고 휴식도 취하며 명상하는 곳. 잠깐만 여기 이름이 뭐더라? 그러고 보면 정말 무난한 모텔, 호텔 이름은 아마도 이름일 것이다. 사람 이름! 단지 가게 이름만 봤는데, 생각했는데, 들었는데 웃지 않을 수 없다는 것. 그건 분명코 행복감이다. 아, 왜 사귀는 사람들이 데이트할 데가 없는가, 왜 신혼 부부들이 결혼의 좋은 점으로 꼽는 '데이트하러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의미가 있는가, 그건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다. 왜냐하면 익숙해지니까 그런 거다. 도시도 익숙해지고, 사람도 익숙해지며, 인생도 결국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꼭 3년을 채워서 연애하며 갈 데까지 가지 않더라도 어차피 갔던 데 또 갈 수 밖에 없다. 새로움은 곧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 동물원에 가서 원숭이를 구경하고, 놀이공원에 가서 스무 살은 바이킹을 낭만주의자는 대관람차를 소녀는 회전목마를 탄다. 극장에도 한 1000번쯤 갔을까? 거리를 걷고 드라이브를 하며 공원을 구경하다가, 하다 하다 어정쩡한 우정은 그런다. 뻣뻣한 남자끼리 썩은 미소를 지으며 다정하게 호수에서 오리배를 탄다. (만약 남자와 남자가 사랑이라면 다른 얘기지만, 수많은 경우의 수를 모두 나열하기는 힘에 벅차니까 대표적으로 하나만 얘기했음. 롱테일이 얼마나 다양한지 잘 아시지 않습니까요!) 그 가운데 의외로 드물고 놓치며 건너뛰는 일이 있다. 애인이 일하는 곳에, 사귀는 사람이 공부하는 학교에 찾아가기. 어떤 날 공장에 직원 가족들을 초대하고, 어떤 날 골프장은 1일 매출을 포기한 채 주민들을 초청하여 소풍 장소가 되기. 이를 테면 그런 일들은 어려운 일이 아닌데 왜 쉽지 않을까? 왜냐하면 일이 즐겁고, 공부를 좋아서 하며, 업무가 시간 가는 줄 모르도록 재밌기는 좀처럼 어렵기 때문이다. 생계 같은 단어. 여기서, 생각하기 마음먹기에 따라 동전처럼 둘로 나뉜다. 첫째, 한 달을 일하든 일 년을 일하든 어차피 돈 때문에 하는 일 대충대충, 일은 완수하지만 뒷처리는 흐지부지, 이래도 흥 저래도 흥 어차피 시계는 째깍째깍 지구는 돈다, 그러니 시간이나 떼우자. 둘째, 한 달을 일하든 일 년을 일하든 이왕 하는 거 깔끔하게, 일할 때 일하고 놀 때 놀고! 나는 옛날에 단기 일자리를 구하는 동안 꽃집 구인 광고가 보이길래 그랬다. 뭐 꽃집? 어딘가 모르게 부케가 생각나고, 그윽한 꽃 향기에 웃음 짓는 숙녀가 떠오르며, 프리지아 장미 백합 국화 달리아 목련 벚꽃 수선화 튤립, 코스모스... 왠지 멋져 보여서 찾아갔고, 채용 됐고, 그래서 일을 시작했다. 일을 했는데, 그런데, 그게 음... 처음 막연히 느꼈던 그런 상상과는 거리가 멀더라. 많이 멀더라. 내딴에는 재밌기도 했고 힘들기도 했다. 일하다가 나는 꽃배달을 하면서 생일 기념 꽃도 배달했고, 결혼식장과 장례식장에도 화환과 근조를 배달했다. 그러던 중 시장을 지나다 생선 파는 가게의 채양을 차로 치면서 지나갔는데, 그곳 주인 양반이 오토바이를 타고서 쫓아오고 난 잠깐 모른 채 도망가고, 그런 추적의 모험도 있었다. 그 결과는 최소한 세계적인 단편영화제에서 신인상이랄지 인기상을 너끈히 받을 정도는 족히 되지만, 결과는 비밀에 붙이겠다. 문어 발을 그쪽까지 뻗칠 수는 없는 일. 그러다 그만둔 다음 같이 일했던 형과 술 한잔 할 때였나 그 형이 그랬다. 사장 사모님이 그랬다고. 누구 삼촌은 그래도 일 잘했다고. (일 잘하는데 일 했던 기간이 짧아서 아쉽다는 뜻) 그래. 자랑이다. 내 자랑이다. 나는 자랑할려고 작가가 됐다. 그랬나? 이제는 대놓고 자랑이네. 자랑이 뭔 죄는 아닌데 그런데 대체 왜 죄스럽지? 이런, 젠장! 어쨌든 영은 나를 데리고서 자기의 직장인 여성잡지1에 갔다. 남자친구 데려와서 구경시켜 주라던 편집장 말은 빈말일 수도 있지만 영은 행동했고, 과감히 실천했으며, 나의 소극적 만족이라는 성과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어차피 우리가 결혼은 어려울 듯 하고, 삼각관계를 보아 하니 3년 동안 행복한 연애는 힘들 것 같고, 솔직하게 터놓고 말하며 손 잡고 당장 어디로 가자, 그것도 힘들 테니 기억에 남을 특별한 데이트는 바로 '출근'이었던 것이다. 「영! 그런데 있잖아. 마리가 혹시 위치 추적기 그런 거 같고 있니?」 「응? 뭔 추적기? 마리는 그런 데 취미 없는데. 그런데 그건 왜?」 「아니 그냥.」 마리 얘기는 왜 물어보는데, 라~는 듯한 영의 기분을 나는 충분히 헤아렸다. 마리 얘기를 더 꺼내지 않는 게 신의이자 예의였고 지혜였다. 그러나 마리 입장에서는 내가 마리 얘기를 하는 게 희망일 것이다. 심지어 영은 내 마누라가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청개구리처럼 마리의 안부를 묻고 싶어졌다. 「영, 있잖아. 마리는 어디다 떼어놓고 왔니?」 영은 날 째려봤다. 그러다 눈을 흘겼다. 지금은 키스 타임일까, 키스 타임이 아닐까? 긴가 아닌가는 몰라도 나는 난봉꾼이 아니었고, 괴씸한 스쿠르지요 탐욕스런 돌씽 스타일은 아닌 듯 했다. 더군다나 나는 지금까지 지갑에 여자 사진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다닌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물론 지금은 지갑이 없고, 마음속에는 누군가 있다. 무엇보다 영과 나의 사이는 풀래야 풀 수 없는 수수께끼였다. 어쩜 사랑과 우정 사이? 청순한 영, 정숙한 여자, 꽃보다 아름다운 숙녀여!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여기서 멈추면 실망이고, 저 멀리 갔다가 변심하면 절망일 텐데. 다 됐고, 그냥 이기적으로 밀애를? 뭐랄까 이별의 슬픔을 편애할 수는 없다고나 할까, 친애하는 영에게 속임수로 거짓 연기를 펼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영을 알게 되어 기뻤다. 나는 영과 마리 사이에, 여자의 우정에 1.5인자로 어정쩡하게 끼여들어 행복했다. 우리는 자애로웠고 우리는 다정했다. 아름다운 인연은 젊은 날의 추억이었다. 복권 당첨은 다름 아니라 사랑의 싹틈이다. 정절도 질투도 사랑의 비애도 모두 우리와 함께 했다. 내일의 싫증난 애인을 점치는 것보다는 수줍게 여기서 멈추는 것일 좋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나는 마리를 감시할 수도, 영에게 에로비디오 출연을 제의할 수도 없었다. 물론 내가 에로영화 감독으로 제2의 인생을? 그건 계획에도 마음에도 없는 일이다. 오빠 믿지? 복숭아빛 연분홍색 마리의 염탐이 걱정됐다. 나는 생각했다. 상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멈출 수 없었다. 나와 영의 결혼생활, 상상할 수 있는가 상상할 수 없는가? 그 순간 시상이 마구 떠오르기 시작했다. 쇼팽과 풍선껌. 고전주의와 쇼핑. 홈런과 뻔트. 놀자족과 단테 동호회까지. 나는 지금까지는 그랬다. 신비에 대한 공학론을 완성해 볼까, 최초로 환상학을 창시할까, 하다가 애초에 포기했다. 그러나 생활비가 빠듯했다. 그래서 일기와 이별했는데 일기를 썼고, 칼럼을 외면한 척 했으며, 환상문학 구상에 매달렸다. 그러니까 얼굴 없는 작가로 먹고 살만해지니까 방탕한 생활에 영과의 염문으로도 모자라 마리와는 운명을 바꿀 새 경험을? 그런 인간이 허구로써 사랑을 얘기한다? 수다스럽고 불결하지만 그게 어른들의 진면목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생각만 많아지고 너무 복잡했다. 그래도 경쾌하면 그뿐 행복을 초래하면 그만. 난 그냥 그게 좋았다. 처녀의 부끄러움과 숙녀의 변치 않는 귀여움을 어떻게 작품으로 포장하며 고급스럽게 승화시킬 것인가가. 그런데 그걸 알려면 내가 어쩔 수 없이, 하는 수 없이 주인공으로 나서서 산 경험을 쌓아야만 했다. 욕심을 채운 다음의 냉정함과 거만함과 무정이 아니라. 그녀들의 애교를 테스트함은 곧 내 일이자 본분이었다. 가련한 짝사랑과 다정한 살색 질투심을 파헤쳐야만 했던 것이다. 「오빠. 무슨 생각해?」 「응? 첫날밤! (......) 어? 아니, 그, 너의 마음을 훔치다. 아니? 백허그? 아니 그게 아니라 우리가 나중 회상할 일들에 대해서 생각했어. 우리는, 이름을 묻고 답했고, 꿈도 묻고 답했다. 그런데 이름은 기억나고, 그녀의 꿈은 생각나지 않았다. 나중 그런 글을 쓰게 될까 봐서.」 「오빠는 미래를 즐기시는군!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난 자꾸 오빠를 아빠라고 불러보고 싶은 그런 괴상한, 변태스런, 이상 욕구를 느끼네. 응? 형! 아 형~! 왜 그러지? 대략 절충해서 그냥 그렇게 불러 볼까? 선생님!」 「뭐? 아니야. 아니라고. 나 오빠야. 오빠라구.」 이건 마치 총각의 쾌락과 신부의 기쁨, 그 피할 수 없는 운명적 대립인 것만 같았다. 그건 뭐 거의 내 고상한 취미였다. 내가 생각하는 사랑, 내가 동경하는 순애보, 내가 꿈꾸는 아름다움, 내가 흠모하는 연정의 섬세함, 내가 좋아하는 그녀의 부드러움, 내가 애타게 바라는 그녀와 나 우리들 마음의 대화 꿈의 속삭임, 내가 꿈에라도 만나고 싶은 고귀한 천사가 결국 뭐 첫날밤이라고? 이런, 젠장! 혈기 왕성한 탐욕을 합법적인 새로움으로 탄생시키기, 는 벌써 글러먹은 것이다. 그럼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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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독학, 포기, 질투, 따라하기, 공상, 실망, 동경심, 허영 가운데 지금껏 무엇을 가장 즐겨 했나를 생각했다. 우정의 삼각관계와 사랑의 삼각관계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나는 꿈속에서 목격한 낙원의 정체를 규명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그런다고 잘 될 리는 없겠지만. 기쁨은 수용하고 불쾌감은 거부했다. 하지만 문제는 의도와 달리 효과가 역으로 나타나는 빈도가 많다는 점. 일단 하나를 취하고 하나를 포기할까? 아니면 둘 다? 그러니까 어떻게? 나는 생각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무엇이 최선일까, 최선은 객관적으로 봤을 때 '나는 어떻게 행동하는 게 좋은가'를 따지는 건가를. 난 네 단짝을 뺐고 싶었던 게 아니었어! 난 그럴 마음이 전혀 없었다구! 나 때문에 조마조마 우정에 마음 조리며, 가슴 뭉클한 사랑까지 미완으로 끝나버릴지 모른다며 걱정했다면 내 이렇게 빌며 사과할께. 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단적으로 난 가만 있어도 펌프질에 준하는 존재였다. 어쩜 당사자 입장에서는 더 했으면 더 했지 절대 덜 하지는 않을 것이다. 뭔가 기발한 생각이 필요했다. 그러나 나는 기똥찬 착안을 생각해 낼 수가 없었다. 색다른 묘안 역시 내게 친절함을 베풀어 줄 리가 있나. 하지만 내게는 언제나 내 편이자 나의 수호신인 공상이 있었다. 그건 어떨까? 내가 2 대 2 소개팅을 주선하는 일. 어차피 스콧과 그리핀의 우정을 회복시켜 주는 건 내 임무일 테고, 더군다나 마리와 영마저 언제까지 내 팬클럽으로 나이 들고 다 늙어서 꼬부랑 할머니가 되도록 붙잡아 둘 수는 없는 일일 테니까.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그다지 썩 잘 어울릴 듯 하진 않아 보였다. 중매를 잘하면 술이 석 잔이요 못하면 뺨이 세 대라 했거늘, 없던 일로 하는 게 좋겠다. 혹시 모르니까 애초에 싹싹 빌 일은 만들지 말자. 그리핀의 질투심이 평범한 수준은 아니지 않나. 충분히 보았지 않나. 빌미 잡힐 일은 아예 만들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큐피트가 되기를 꿈꾼지 얼마나 됐다고 다시 바카스로 돌변할 명분만 마련한 셈이네. 어쨌든 잘 생각했다. 기특하기도 하여라. 그렇긴 하나 설마 그리핀이 마리나 영의 친오빠는 아니겠지? 아닐 꺼야. 그건 장르가 다르니까. 그건 또 전문가는 물론 애호가가 따로 있으니까 말이야. 그래서 나는 나중 모르니까 지금 이 상황을 소설이라고 가정하며 극적 전개에 대해서 문학수첩에 기록을 남겼다. 마리가 갑자기 찾아온다. 내가 문을 열자마자 그녀는 다짜고짜 날 데리고 호텔 내 미술관으로 간다. 가면서 듣고 보니 그녀는 그리핀의 여동생이었다. 뭐라고? 그리핀이 만약, 여동생이 누굴 만나는지 뭘 하는지 알게 된다면...? 안돼 안돼 그건 정말 안돼! 그런데 그리핀이 내게 빌려준 슈퍼카부터 시작해서 특급 호텔이 보유한 미술품만 해도 그게 얼마야? 그럼 그리핀의 여동생인 마리는? 이 사랑은 처음부터 순수했냐 아니면 사랑이라 부르기엔 원래 뭔가 부족한 설정일까? 생각이 점점 많아질 때 우리는 미술관에 도착한다. 마리는 나 보고 여우 석상의 꼬리를 만지고 있으라고 한다. 여우 꼬리에 인체 혈류 인식 뭐 그런 장치라도 되어 있는 건가? 내가 여우 꼬리를 붙잡고 있는 동안 그녀는 어느 액자 측면에 있는 단추를 누른다. 그랬더니 커다란 그림 전체가 문처럼 작동해서 밀실이 드러난다. 밀실은 진짜 특급 손님에게만 제공되는 뭐 그런 휴식 공간인 듯 하다. 우리는 그곳에 들어간다. 난 직감했다. 혹시, 첫날밤! 여기서? 천상의 음률이 들린다 들린다. 그녀의 시선은 뜨겁다 뜨겁다. 우리는 이 시간이 지나가면 그 소중한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안다 잘 안다. 눈빛으로 얘기한다 얘기한다. 손을 잡는다 잡는다. 힘차게 껴안는다 껴안는다. 격정적으로 키스한다 키스한다. 어디식 무슨식 어디식 무슨식. 흥분한다 흥분한다. 커진다 커진다, 커진다 커진다. 나는 피노키오가 됐다 피노키오가 됐다. 여기서 멈출 순 없다 없다. 옷을 벗는다 벗는다. 거의 다 벗었다 벗었다. 마지막 남은 속옷...... 그런데 갑자기 그리핀이 난입한다. 쨍그랑! 문학수첩편은 여기까지. 농담을 학문의 경지로, 허풍은 생활로, 그리고 나는 아무튼 우정과 사랑의 삼각관계에서 스스로 낙오자가 되자는 아름다운 뒷모습을 남기기로 결심했다. 어쩌면 난 처음부터 짧은 만남 긴 추억을 미리 예감했을 수도 있다. 물론 '어쩌면 좋아하시네!' 그럴 수도 있고. 하지만 스콧과 그리핀과 함께 탐나는 추억을 아직 만들지 못했는데 어쩌지? 마리와 영에게 사랑에 대해서 가르쳐 준다랄지 진짜로 괜찮은 남자를 소개시켜 준다랄지, 그녀들의 탄복을 자아내게 만드는 그 뭔가도 없었다. 즐거운 변화가 절실히 필요했다. 우정을 어떻게 원위치시키고, 어떻게 해야 숙녀의 환심을 사며, 참신한 주황색 사랑 엇비슷한 감정을 아름답게 정리할 수 있을까?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우정을 회복하는 것도 당치 않았고, 숙녀의 환심도 살 수 없으며, 참신하니 뭐니 사랑 엇비슷한 이상한 감정도 이미 물 건너간지 오래였다. 그런데 바로 이때, 전개는 발정 아니 절정으로 급격히 달아올랐다. 발단은 내내 침묵하더니만 모범적인 기승전결로 치달았다. 내 숙소로 그리핀이 어떤 여인들을 하루에 1명씩 투입시킨 것이다. 몇몇 미인계 작전은 내게 먹힐 리가 없었으니까 또 별다른 사연이 없었으니까 그 가운데 특별한 걸 하나만 추리자면 이렇다. 그 사건의 전말은 이랬던 것이다. 어느 날 호텔 초인종이 울렸다. 문을 열자마자 내 머리채가 잡혔다. 오른쪽으로 세 번 왼쪽으로 세 번. 밀었다 당겼다 당겼다 밀었다. 나는 내 머리카락을 어느 아줌마께 휘어잡힌 채 밀렸다 당겨졌다 밀렸다 당겨졌다, 하면서 지금 이 장면이 혹시 슬로우모션은 아닐까 라고 착각했다. 생각도 많이 했다. 이게 만약 단짝의 의리를 방해했고 사랑을 놓고서 숙녀의 우정에 금이 가도록 만든 대가라면 저는 달게 받겠습니다, 아멘! 라~고 나는 머리채를 휘어잡힌 채 생각했다. 그런데 그 아줌마는 알고 보니 일행이 있었다. 혼자 무턱대고 쳐들어왔을 리는 없겠지. 날 아마도 바람핀 남편쯤으로 여겼을 테니까. 아니 남편의 내연녀의 배후? 몰라. 어렵다. 넘어가고. 아무튼 작전을 철저히 세우고 왔을 거라고. 그 순간 소란스런 여자들의 신음과 수다와 고함이 불현듯 감탄사와 조용조용한 속삭임으로 뒤바뀌더니, 그녀들은 내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그랬다. 「어머 어머 얘 얘 아니야 아니야. 어머 어머 어떻게 어떻게,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야 야 얘들아 얘들아 가자 가자. 이 방 아닌가 봐 이 방 아닌가 봐!」 그러면서 세 명 쯤 됐나, 네 명이었나. 그녀들은 서둘러 떠나버렸다. 뭐야 이거! 난 느꼈다. 문제아로써 더 이상 설치고 다녀서는 안되겠다고. 지금이 바로 시골로 내려갈 적기라고. 물론 전날 꿈은 악몽이었다. 나만 쏙 빼고 스콧과 그리핀과 마리와 영이 즐거운 2 대 2 데이트를 하던 장면을 목격해버린 꿈. 나는 '맷돼지 드디여 하산하다'가 아니라 작품을 어서 쓰고 싶어서 하향하기로 했다. 칩거에 들어가 작품을 쓰고 싶었다. 결국 패배주의는 날 실망시키지 않았다. 그분은 결코 언제라도 날 체념하도록 가만 놔두는 법이 없었다. 그처럼 나는 쓸쓸히 낙향하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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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1년쯤 지났나? 반 년? 모르겠다. 너무 열심히 그래, 미친듯이 글을 쓰느라 시간이 어떻게 어찌나 빨리 지나가버렸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집에서 작품 구상을 다 마쳤다. 내가 도시에서 겪은 실화에 살만 붙이면 그만이었다. 무엇을 추가하고 어떤 걸 과장해야 할지도 뻔했다. 기쁨조, 분위기 메이커, 약방의 감초 같은 조연, 기존 추종 세력과 신흥 세력, 유망한 허풍 대회까지. 거기서 난 사랑이 뭔지 모르는 희대의 허풍꾼? 바람둥이? 아니면 바람잡이? 마술사의 조수를 내가 짝사랑할까, 아니면 내가 짝사랑을 받을까? 여자라면 사족을 못 쓰는 내 친구1을 허당으로 출연시킬까, 출연시키지 말까? 뻔트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친구2를, 게임이라면 그냥 환장하는 친구3도 출연시킬까 말까? 작품 돌아가는 거 봐서! 허허허 허허허허허! 잔치상은 다 차려진 거나 마찬가지였다. 이제 남은 일은 숟가락만 올리고 번호표만 발부하면 그만이었다. 으하하하하하하 음하하하하하하하! 이제는 본격적으로 쓰는 일만 남은 것이다. 그런데 작품의 첫 페이지를 쓰다가 왠지 모르게 나는 인스타그램이 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봤다. 그런데 이게 뭐지? 스콧과 마리의 결혼식 사진을 보게 됐다. 이럴 수가! 맙소사! 세상에나! 내게 말도 없이? 언제는 우정이 어쩌니 사랑이 무엇이니 말만 말만 장황하더니만, 결국 난 행인1이었어? 이런 개뿔! 기념 사진을 보니 참 다정하게도 찍었다. 신랑과 신부의 옆에는 어김없이 세상 그 누구도 그들이 단짝이 아니라고 부인할 수 없는 그리핀과 영이 활짝 웃고 있었다. 그럼 난 뭐야? 내 이것들을 그냥 가서 확... 보나마나 조촐하게 치르고 싶었네 정신이 없었네 뭐라 뭐라 핑계는 많겠지. 다 알아 다 안다구. 그래도 그렇지. 가서 따질까? 아니다 아니야. 귀찮았다. 다 귀찮았다. 내가 열 받았을까? 아니다. 난 괜찮았다. 아무렇지 않았다. 한두 번 겪는 일도 아니었다. 그러니 지금 내가 다음 순서로 무엇을 해야 할까? 유난 떨까, 내숭 떨까, 호들갑스럽게 감정을 과장하여 글로 쓸까? 다 아니다. 다 아니야. 내가 무슨 우정을 연구하는 만학도인가 아니면 사랑을 애타게 기다리는 문학소녀인가. 다 아니다. 다 아니야. 강한 부정은 강한 부정일 뿐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때부터 글이 안 써졌다. 따라서 나는 작품을 때려치게 되었다. 나는 기분이 이상했다. 아마 나는 패자인 듯 했다. 모두가 부질없는 허상이었다. 그래서 내 허영심은 발동이 걸렸다. 나는 쇼핑에 빠진 것이다. 뭔가 돌파구가 필요했으니까. 그러나 멈출 수가 없었다. 나는 우정을 상징한다는 어려운 이름의 꽃을 매일 샀다. 하루에 한송이씩 꼬박꼬박. 그런데 이름을 외우지 못한 그 꽃이 정말 우정을 상징한다고? 금시초문인데. 꽃집 사장님의 허튼 소리일까? 그 양반이 날 속였어? 속아 줄께. 속아 준다구. 나는 속아도 싼 존재에 불과하니까. 난 단짝도 떠났고, 아니 못 뺐었다고 하는 게 옳은 표현일까 아닐까, 어디 가나 무얼로나 넘버 쓰리니까. 그 다음으로 나는 고갱이 남긴 우정의 상징 '해바라기를 바라보는 반 고흐'를 사기 위해 돈을 모았다. 그렇다고 잘 모일 리가 있나. 잠깐의 열정으로 모은 돼지저금통을 탈탈 털어서 난 술집으로 달려갔고 그 신성한 모금액을 고스란히 탕진했다. 그러면 이제 남은 할 일은 새로운 친목을 결성? 재미없는 거 다 안다. 그리하여 나는 어쩌다 1번 증후군에 걸려버렸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는 1번만. 육식은 1주일에 한 번만. 여행도 한 달에 1번. 옷은 절대 이틀 연속 입지 않았다. 하루에 하나씩 새롭게 입었다. 뭐 팬티를 딱 삼 일씩이나 막 일주일 연속으로 입는다? 그런 순수한 남자가 남잔가? 어? 나를 1범주 친교로 대접하지 않는 지인은 만나지 않았다. 만날 필요가 없었다. 극장에 가서도 제1열에만 앉았다. 목이 뻐근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어쩔 수 없는 게 아니었다. 목에 파스를 붙였다. 그래서 1번 증후군은 포기했다. 진작 포기할 걸 그랬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됐어 어떻게 됐어? 내가 아쉬울 때 하는 일이 두 가지 있지. 첫째 칼럼을 쓰는 일, 둘째 에로비디오를 보는 일. 둘째는 벌써 옛날에 끊었고 내게 남은 건 첫째 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마저 쓸 말이 바닥나버렸다. 할 말이 떨어졌고 할 일이 없었다. 이 허덕거리는 슬럼프를 난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보고만 있지 않으면 뭐 어쩔 껀데?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날 마음대로 요리하든 어쩌든 내가 먼저 수그리고 굽실거리며 넘버 쓰리로써 어느 우정의 수하로 들어갈까? 그러니까 좋게 환상문학 잡지 미스테리아 전속 삼류 칼럼니스트로 만족해야 하나? 아니다. 만족하면 끝이다. 내 주제를 아는 건 좋다만 그럴 수는 없었다. 그런데 방법이 없었다. 그러면 광고를 믿을까 다큐멘터리를 만들까 신세계를 탐험할까? 이참에 새로운 친구를 사귈까? 우정 아니면 사랑? 만남은 익숙한 만남과 새로운 만남이 있다. 지금 필요한 건 후자인 듯 했다. 새로운 만남은 세 가지가 있다. 첫째 내가 먼저 말을 건다, 둘째 첫째처럼 상대방이 다가오도록 유혹한다, 셋째 우연이랄지 어떤 특별한 계기를 마련한다. 나는 그 가운데서 눈 딱 감고 3번을 선택했다. 일명, 고품격 사교계 진출! 자, 이제 슬슬 시작해 볼까? 나는 이제 그 말도 듣게 되겠군. 호호호! 도대체 뭐에 홀려서? 누가 아니래! 나는 편집장이랄지 몇몇 친구들한테 주워들은 얘기가 있었으니까. 일일드라마가 보통 그러니까. 뭔가 궁금하고 보통 일이 아닐 듯한 전개, 애달파하며 지켜보지 않고서는 도저히 배기지 못할 것만 같은 절정이 다음편에 곧 이어질 것처럼 기대감에 부풀게 만드는데, 막상 나중 보면 그냥 뭐 시큰둥! 그러나 내가 다음을 기약하는 방법은 그처럼 판에 박은 양식이 아니었다. 아니었다? 과거형이군. 잘못 썼다. 아닐 것이다, 가 맞겠네. 그건 다음이자 새로움이며 환희일 테니까. 무엇보다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니까 말이다.
from 소설
2018. 1. 3. 16:53
일기. 1월 3일. 친함을 전제로, 나는 부러우면 부럽다고 한다. 좋으면 좋다고 한다. 하긴 안 친해도 딸랑딸랑 굽실굽실 가능함. 남자 대 남자 뿐만 아니라 언제 어디서든 신부들러리는 일도 아님. 신부들러리는 신부들러리고 백댄서는 백댄서니까. 하긴 안 친해도 딸랑딸랑 굽실굽실 가능함. 뭔가를 하고 싶으면 적어도 하기 싫다고는 하지 않는다. 최소한 묻어 가거나 적어도 나중 가망성을 타진한다. 어떤 승부에서 졌으면 져서 기분 나쁘다 어쩐다 재수 없다, 라고 말한다. 즉 말로 푼다. 또 핑계를 댄다. 그외 뭘로 그 꿀꿀한 심정을 달래는가는 남과 크게 다르지 않음. 스스로 많은 단점을 밝힐 용의가 얼마든지 있는 걸로 따지자면 친구 중에서, 난 단연 최상급. 날 따라올자 누구인가! 듣고 보니 재수 없네. 어쨌든 그 말은 곧 허영심 지수는 높을지 몰라도 허세는 그다지...! 물론 거짓말도 포함됐을 수도 있으나 몇몇 구체적 상황을 제외하면 많지 않을 듯함. 이제부터 이 글의 목적인 <직간접 승부에서 졌을 때 유독 표정이 심하게 망가지는 경우는 대체 왜 그런가?> 그 이유를 추론해 보겠음. 승부랄 것도 없는데 왜 스스로 승부 구도로 이끄는지 차근차근 알아 보겠음. 굳이 대결 구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인상적인 표정, 차마 해석이 불가했던 심한 무례함은 포함함. 내가 진 경우는 앞서 말했듯이 싫어도 진 건 진 거니까 나는 푼다. 한마디로, 싫지만 인정! 최소 표정 관리를 하거나 립서비스에 인색하지 않을려고 노력함. 때문에 내가 진 경우는 목적에 부합되지 않으니까 통계에서 제외. 따라서 다음 도표는 순수하게 내가 이긴 승부임과 동시에 상대가 승복을 극렬히 거부하는 경우에 해당함.
날짜 주제 관계 승부 구도 판정 결과 심판 판정 승복 부러움 태도 허세 간접/직접 공인/비공인 누나들(동네형) 누나들(친구) 바텐더 바텐더 친구3의 여자친구 친구3 패자 본인 패자 본인 여자친구
주제만 밝히자면 이와 같음:
- 여자 (내 여자. 여자 가슴. 여자 얼굴)
- 여자 (제2 제3의 여자. 여자들 공인. 여자들 평판. 여자의 선택)
- 여자 (여자 경험)
- 운동 종목
- 우정
비율: 친했을 때 영 반갑지 않은 바로 그 표정을 저절로 반복하여 선보여주신 남자는 대충 20%쯤? 다만 기준선을 낮추면 비율은 폭등. 그건 곧 시골 출신에 빈곤하거나 그게 어떤 결격 사유가 절대 아니란 말씀. 미운 오리 새끼, 검은 백조, 황금알을 낱는 거위, 지붕 위로 올라간 촌닭,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가 실제로 있을 테니까. 원인:
- (승부욕─>강박 관념) 나는 지면 안된다.
- (승부욕─>열등감) 나는 친구보다 뛰어나거나 최소한 한끗발 앞선다. 그런데 진다? 대전제의 반박은 모순이 아니라 유린임.
- (선망─>억압) 나는 부러워해서는 안된다.
- (선망─>질투) 나는 뭔가가 절대 부럽지 않다? 뭔가가 밉다?
- (선망─>허세) 나는 부러워하는 감정 자체가 없다. 나는 부러워한 적 없다. 나는 부러워하지 않는다.
- (선망─>굴욕) 부러운 건 지는 거다. 이미 졌는데 또 져? 아 나 저런 세상에나, 맙소사!
- (경쟁심─>울분) 나는 다른 누구는 몰라도 쟤한테 지는 것 만큼은 완전 싫어. 또는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쟤보다는 무조건 위다.
- (애정─>체념) 내가 다른 사람은 다 몰라도 오빠랑 연인 사이로 오해 받는 건 싫어. (스스로 옆자리 착석했음) 말할 듯 말 듯 올 뻔 말 뻔, 등급을 올렸다 내렸다 내렸다 올렸다 단념도 오래 걸렸는데, 뭐?
- (정직─>회피) 그 게임은 말로 풀기 싫다. 졌는데 뭔 말이 필요하나. 진 건 진 거다. 난 변명 같은 거 싫다. 도박사는 승부로 말한다. 난 한다면 한다. 다 그런 건 아닌데 단, 내게 유리할 때만! 아무리 그래도 나는 졌다는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이기 싫다. 그래서 자릴 뜨든가 아님 딴청.
요점: 1~9번에 해당하는 빈도는 표정 및 태도와 정비례. 가령, 한두 개만 해당하면 애교. 1~9번 가운데 몇 개 이상 또는
거의 모두에 해당하는 경우, 아 정말 그건 부탁입니다! 너무너무 미안하니까요. 오오 제발! 상감마마, 통촉하여주시옵소서! 그 뜻이 아닌가... 황송하옵나이다? 그냥 그걸로 하자. 전하, 성은이 만극하옵나이다! 분석: 원시적 감정! 비교 당하는 건 싫지만 비교 우위는 점하고 싶기 때문. 비교의 문을 열어놓든가 과도한(비정상적?) 호승심을 내려놓든가, 둘 중 하나는 해야 하는데 둘 다 싫다임. 명백한 모순! 비교. 정확히 말하자면 비교가 싫은 게 아니다. 남자친구는 비교하면 - 남편들은 비교 당하면 싫어하더라, 그래서 단순히 남자는 비교를 싫어한다? 아니다. 절대로 그렇지 않다. 비교는 본능과 똑같다. 먹고 입고 잠자고 놀고 쉬고 사랑하고. 때문에 비교가 싫다는 말은 그 모두가 다 싫다는 말이다. 그럴 리가 있나! 내게는 슈퍼카와 장밋빛 인생이 어울리는데 지금 내게 주어진 무엇은 보아 하니 어떻다, 일단 먼저 스스로 비교한다. 본능이니까. 비교가 싫다는 말은 장밋빛 인생이고 싶다 그런데 여의치 않다 라는 뜻이다. 불편한 빈정거림과 비꼼이 과도하면 퍽이나 좋아하지 않으면서 어른들은 참 이상하게도 스스로 간접화법의 달인이다. 자기 편할 때는 빈정거린다. 내가 유리할 때는 상황을 비꼰다. 말을 돌린다. 남의 마음을 떠본다. 툭툭 건든다. 눈치 살피고 뻔트를 댄다. 빈말이 생활화 됐다. 비교가 싫다, 그 역시 정확히 의역해서 들어야 한다. 직역해서는 절대 안된단 말이다. 곧 비교해서 내가 위면 좋고, 비교해서 내가 밑이면 <비교가 싫다>라고 한다. 완벽한 이분법이다. 완벽한 네안데르탈인이다. 고로 내가 위인 비교만 하라는 거다. 친한 친구 사이에서도 내가 밑인 비교의 비율이 55, 60, 65, 70 뭐 괜찮다. 그럴 수 있다. 그러나 펌프는 쉬지 않는다. 75, 80, 85, 90... 허세를 이끌어내도록 점점 조장하면 그 남자는 뚜껑 열린다. 제대로 열린다. 폭발한다. 광분한다. 미친다. 챙피한 줄도 모른다. 보이는 게 없다.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다. 바로 그래서 비교가 싫은 거지, 그냥 단순히 하는 말로 남자는 비교를 싫어한다? 노노노! 완전 좋아한다. 단, 내가 위일 때만! 습관적으로 지는 비교를 주로 하고서는 남자는 비교를 싫어한다? 누구는 어쩌네 저쩌네 지는 비교만 하니까 남자들이 싫어하지 이기는 비교와 비율을 맞춰보자. 이기는 비교만 해 보시라, 남자가 어떻게 되는지 좀 보게. 남자는 바보가 아니다. 쥐락펴락하는 융통성 없이 낭군님께 지는 비교만 계속 한다면 어떻게 될까? 남편 뚜껑 열리는 건 시간 문제다! 그래프 딱 나온다. 인지 체계의 기본은 이렇다. 남자는 허세 여자는 허영심이 대표적 감성이듯이 남녀의 구분은 선명하게 나뉜다. 남자는 <자랑─비교─왼쪽에 꽃 오른쪽에 과일> 여자는 <선망─질투─거울>.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드물게 미녀와 야수(그녀는 무언의 호평을 일평생 듣게 될 수 밖에 없다. 자세한 뚜껑론은 다음 칼럼에서!). 바에서 명-바텐더와 독대하는 일은 남자만의 취미가 아니다. 여자 손님도 있다. 바텐더는 친구끼리 들른 남자들의 자랑과 비교와 업적에 대해서 조율하는 역할을 맞는 진행자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드물게 몰표를 받는 손님도 있다. 지목을 자주 받는 손님도 있다. 으하하하하하하! 푸하하하하하하! 그런데 손님이 여자다? 여자 손님은 명-바텐더에게 내가 최고라고 하지 않는다. 친구들 중에 날 1등으로 손꼽아주지 않았다고 해서 서운해 하지도 않는다. 충분히 위로 받지 못했다고 해서, 면담이 술값과 비례하지 않는다고 해서 슬퍼하지 않는단 말이다. 명-바텐더는 안다. 그분은 잘 아신다. 똑같이 띄워주더라도 남자 손님은 약력과 성적과 영웅담이 다 떨어지면 그때 솔직하고 속 깊은 얘기를 시작한다는 것을. 곧 남자는 몸 푸느라 힘을 다 써버려서 정작 본 게임에 들어가면 시들시들 맥을 못 출 수도 있다. 이 시대 최고였다가 한물간 코메디언이 괜히 집에 들어오면 병 걸린 닭 마냥 시들시들 비리비리 집 안 어딘가 구석에 쬐그맣게 마련된 나만의 공간으로 피신하는 게 아님. 뒤늦게 애매한 풍년을 맞이한 개그맨처럼 때로는 다크서클이 트레이드마크인 경우도 있음. 어쨌든 그런데 여자 손님은 그 반대다. 먼저 자기가 망가진 얘기와 슬픈 사연들을 길다랗게 꺼내 놓은 다음에, 바로 그때부터 사랑의 대화든 꿈의 이야기든 뭘 하든 하는 것이다. 강한 척 센 척 잘난 척 허세-지수 50점 미만도 다 방법이 있는데, 그런데 여자는 그렇게 시작하지 않고 먼저 나를 낮춰서 말을 섞는-식이다. 이처럼 바텐더와 손님이 친해지는 방식에서부터 남녀가 다르다. 그처럼 남자와 여자는 정반대다. 그렇듯 질투가 허영심의 근간을 이루듯 남자에게 허세의 배후는 단연 비교다. 심리학을 거론할 필요도 없이 비교는 원래 남자의 것이다. 비교 = 남자, 남자 = 비교! 남자는 비교를 싫어한다는 그녀들의 이상한 수다 때문에 오도된 진실이지만 이제는 알 건 알아야 한다. 남자가 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것은 바로 비교라는 것! 우리는 반드시 알아야 한다. 그럴 때도 됐다. 도대체 얼마나 숙녀들이 남자들한테 지는 비교를 일삼았으면 표어처럼 세상 모든 사람들의 뇌에 각인이 되어버렸을까.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남자친구는 들들 볶이고, 남편은 달달 털리며, 더이상 털릴 찬미와 들썩거릴 선물 공세와 팔랑팔랑 아부도 이제는 한계에 이르렀고, 커피포트는 날이면 날마다 부글부글 쉬는 날이 없었던 것이다. 연애할 때만 해도 언제는 멋지다느니 오빠가 최고라는 둥 진공청소기 대우 일색이던만, 어느 때부턴가 시나브로 커피포트 취급을 받게 된 것이다. 눈길 받기도 힘든 짐짝과 도저히 구분이 안될 지경이다. 심지어 옆집의 엇비슷한 커피포트도 아니고, 누구의 누구의 누가 입수한 신제품 커피포트한테도 밀리고 밀려서 구박 받는다. 완전 구제 불능인 거지. 정말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세뇌시켰으면 어설픈 표어는 공식적인 법칙이 되어버렸다. 남자는 비교를 싫어한다 남자는 비교를 싫어한다! 뭐, 남자는 비교를 싫어한다고? 그 얼마나 지는 비교, 오직 지는 비교만 반복했으면 그러할까? 대체 얼마나! (설레설레) 아 말도 말어 말도 마. 그분들의 푸념이 진짜로 들리는 것만 같다. 환청이 아니라 진짜로 들린다. 아조 귀가 따갑다 못해 귀에서 피가 난다 피가 나. 그 설움 그 울분 그 시련... (설레설레)! 안 그렇소? 내 말이 틀렸소? 이 시대의 남성들이여! 안되겠소. 우리 모두 들고 일어섭시다 이게 뭡니까,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언제까지 우리가 그분들 뒤에서 딸랑딸랑 앞에서 반짝반짝 옆에서 새콤달콤 아침-점심-저녁 뿌잉뿌잉, 대체 언제까지 우리가 여자의 마음에만 맞춰서 이 세상을 살아야 합니까? 정말 언제까지 그녀들의 장단에 놀아나야 하느냐구요. 소년이여 야망을 가지라더니 숙녀에게 평생 봉사하기 위해 야망을 가지란 말 아니냔 말이오. 아니 그렇소? 아 이 양반아 대답 좀 해 보소, 틀립니까 맞습니까? 네? 얌전한 고양이처럼 침묵하지 말고, 주인 어른한테 혼쭐나는 강아지마냥 끔뻑끔벅 말똥말똥 눈만 깜박거리지도 말며, 머저리처럼 눈치없이 딴청 피우지 마쇼! 댁이 무슨 바보유? 댁이 대체 뭘 잘못했다고 그러슈! 안 그렇소? 거 마 아따 선상님 공이 시방 우리헌티 넘어왔단 말이오 공이~, 아 글쎄 물 들어왔으니 노를 저어야 할 꺼 아닙니까! 떽! 정신 차려 이 친구야, 어? 아 참말로 대답 좀 해 보소, 틀립니까 맞습니까? 네? 옳소? 여자들은 반성하라 반성하라 숙녀는 반성하라 반성하라! 자, 우리 모두 행진합시다 우리 모두 들고 일어섭니다~? 워 ─ 워 ─ 워! 옆길로 빠지지 말고 철든 우리가 그녀들을 이해합시다. 그럼요. 대인배처럼 마음이 넓은 우리가 아니면 대관절 어느 누가 그녀들을 이해하겠습니까. 하오나 옷을 입다 말면, 밥을 먹다 말면, 사랑을 하다 말면 매우 난처한 법이니까 다시 주제로 돌아와서, <승부욕─선망─경쟁심─애정─솔직>이냐, <강박 관념─열등감─억압─질투─허세─굴욕─울분─체념─회피>냐! 전자와 후자의 차이는 결코 소홀하지 않음. 사람은 누구나 사색가 취향과 모험가 구미를 겸비한다. 은근함을 좋아하는 숙녀일지라도 직설법을 좋아할 때가 있고, 상남자가 섬세함과 부드러움이란 무엇인가을 터득하면서 여자를 알아 가게 된다고 할지라도 그분은 돈독한 관계보다는 뚜렷한 목적이 먼저다. 성과가 보장되지 않는 할 일은 하지 않아도 되는, 어쩜 해서는 안되는 일이다. 곧 저 전자와 후자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공통된 감정일 뿐이다. 다만 기울기는 다를 뿐. 전자는 선 후자는 악, 꼭 그렇지도 않다. 둘 다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일 따름. 당신이 비교적 전자형 인간일 때 심한 정도의 후자형 인간을 이해하는 아주 드문 방법 가운데 하나는 그것이다. 가면을 쓰는 것! 쉬운 일은 아니다. 비정상적이랄지 영화에 나오는 신기술이랄지 어떻게 그게 가능하다고 가정하고, 체험했다고 치자. 그럼 알게 된다. 그러면 이해하게 된다. 아아 후자의 삶은 바로 이런 기분이라는 걸. 물론 타고나는 것도 있지만 후천적으로 인생은 찬밥이라는 걸. 어디를 가나, 무엇을 하나, 누구를 만나나, 제발로 굴러 들어오는 호박은 매번 날 비켜가고 항상 날 피해가네? 선천적인 성정이 음울하고, 잔지식파에 비사교적이며, 호사는 멀리 있고, 지성은 싫고, 기호로는 완벽하게 BWV가 아닌 BMW이며, 쾨헬번호는 짜증나고, 빈수레가 요란하다 또는 과묵한 어떤 댓글식 말주변이 특징이다, 그리고 아마도 후자쪽에 약간은 가깝다? 어떻게 보면 슬프고 어떻게 보면 아무렇지 않다. 그래 대변인이 되어 말하자면 그것이다. 나는 부럽지 않다(태도), 나는 부러워한 적 없다(과거 시제), 나는 부러워하지 않는다(일반론), 그리고 나는 어떻게 됐든 무엇이든 누구든 부러워하지 않을 것이다(미래 시제), 또 나는 왠지 몰라도 쟤라는 존재가 꼴사납다─좋게 볼래야 도저히 좋게 볼 수가 없다─아주 싫다─극혐이다─완전 밉다─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얄밉다─무조건 꼴보기 싫다(감사합니다!), 그것이다. 오, 땡큐! 트러블 메이커 배부르겠네. 혹시 부러움이 죄일까? 죄는 아닐 것이다. 아닐 것이다가 아니라 딱 아니다. 부러움은 죄가 아니다. 그런데 왜? 나도 모르겠다. 천부적인 성격과 후천적인 환경등 몇몇 요소가 결합했을 때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구나 라고 단지 추측만 할 뿐. 그처럼 향긋한 들장미도 은은한 안개꽃도 새빨간 상업용 장미조차 모두 내 것이 아니다. 다 남의 것이다. 부럽지만 부럽지 않다. 제 표정 보이시죠? 그거다. 너무 미안하다. 사람 죄송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으셨군요-다. 아아 그래서 그 눈빛은 그 눈빛이었고, 오오 그래서 말이 잘 섞이지 않는 것이로군 라고 깨닫게 된다. 아주 드물고 어려운 계기로 인해 행운처럼 몸소 체험할 수 있게 된다면 그 뭔가를 느끼게 된다. 예술가에게는 좋은 경험이다. 보통 사람에겐 꺼림칙하고 나쁜 체험이다. 사람은 누구나 완전한 전자와 완전한 후자는 없다. 그래서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람과 어울려야 하는 일도 감수해야 하는 게 인간의 삶이다. 그러므로 유행가의 영원한 최고 주제는 단연코 사랑이고, 호의는 고맙지만 어려운 우정도 있는 법이다. 심지어 집요한 우정에 냉정히 선을 긋지 못하면 누군가는 마이크 타이슨이 될 수도 있고, 짧게나마 현실에서 느와르 영화도 찍어야 한다. 마음 약해서 이상향과 전혀 판이한 형색의 끈질진 구애에 넘어가면 나중 그 회한의 대가는 적지 않을 수도 있다. 돌아온 싱글은 몰라도 돌아온 숙녀를 유독 술집에서 많이 봤기 때문에 하는 얘기다. 언제나 대기중이다. 어디든 달려온다. 대학생부터 마담까지, 완전 많다. 그분들 얘기를 들으면 아아, 여자가 달리 보인다. 오오 여자는─여자도?─이런 생각을 하는 구나, 라고 알게 된다. 깨닫게 된다. 옮길 수도 없다. 한두 명이 아니네 라고 말할 수도 없다. 다정하든 차갑든 귀엽든 냉정하든 다 똑같네, 라고 말해서도 안된다. 지가 뭘 알겠시유? 속으로만 알아야 한다. 남자나 여자나 똑같은 사람일 뿐. 그분들도 전에는 멜로드라마의 주인공이었을 텐데, 꿈도 있고 동경심을 키우고 낭만적 선망을 상상하다 숨겼을 텐데. 어느새 운명은 친절보다는 냉혹함으로 다가왔다니! 갈 데가 없는지 자본 논리 때문인지 나이트클럽과 공생 관계인지 몰라도 그 어떤 뭔가를 많이 봤으니까 하는 얘기다. 어른들만 아는 얘기. 품위 유지비를 위해서 품위를 버려야 한다니, 어머나! 그러든 어쩌든 트러블 메이커는 존재함. (특정 주제, 특정 상황, 특정 상대에 따라서) 자존감 미숙 자존심 미성숙. 몸은 어른 마음은 어린애. 내 표정이 험하게 망가지는 게 지금 중요해? 라고 생각하고자시고 그럴 겨를 없음. 지성, 환경, 인생, 취향, 습관, 매력, 풍모, 재능, 인성, 형편, 신분등이 멋진 남자보다는 그렇지 않은 남자가 해당 사항이... 많고 잦음! 오오 그 놀라운 상관관계라니.
결론: 답은 져주는 것 밖에 없음. 또는 거리 유지. 즉 떴으면 못 본 척 고개를 돌리고 피하는 게 상책. 뭐 진짜 그렇다고? 아아 결과 참 시시하다! 그러나 처음 추측했던 묵시적 가설에 대한 명확한 결과는 대만족. 궁금증 말끔히 해소. 결국 피자배달원 경험론과 대동소이함! 가난이 죄도 아니고 빈곤이 불행과 직결되는 것도 아니다. 송사리 때 어둡다면 부자 개구리가 되어 봐야 똑같음.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따라서 평범할 때 밝고 즐겁고 행복할 수 있는가, 나만의 어두운 습성과 약점에 대한 제어 그 신뢰도를 향상시킬 수 있는가, 관건은 그것이다. 냉소, 잔지식, 자발, 가벼운 입에 대해 누가 명함도 내밀지 못하냐, 그런 고슴도치나 촉새나 하이에나가 아니라. 차라리 예술가라면 얇은 귀가 나을 수도 있고. 그래서 무슨 몇 번째 손님, 어디의 얼굴, 머머하기 대사는 대개 준엄한 사전 조율이 선행되고, 어떤 경우 여행가이드도 99퍼센트 여자가 선호되기도 함. 그런데 여자의 경우도 아무 남자한테나 그런 경우 있음. 그건 단순히 몸일 수도, 마음일 수도, 애교일 수도 있음. 관습적으로 1.5범위까지만 살갑고 귀엽게 굴어야 불문율에 합당한 건데, 남자라면, 남자만 있다 하면 3범위 4범위까지 공평하게 나대는 여자는 누구일까, 주변에서 알아맞춰 봅시다. 혹시 있을려나!
참고:
그럼 난 그런 적이 없는가? 졌기 때문에 포커페이스를 실패한 적. 아니다. 있다. 일단 기억나는 건 초등학교4학년 때(이때부터 우리 집 전화번호가 8264였다. 도시로 이사 와서 그때 쯤부터. 그 번호에 해당하는 사람이 몇 명일 텐데 이왕이면 9909나 7777등도 있을 텐데, 뭐 아무튼 난 무소속이니까). 그게 다일까? 아니다. 중3. 무의식이 기억을 봉인하는 일은 좀처럼 쉬운 일은 아닐 테니까. 잘 생각해 보면 아주 많을 듯. 결제 취소한 다음 환불금을 더 받았거나, 식료품점에서 잔돈을 과하게 받았을 때, 잘 찾아보면 아마도 있다. 그럴 것이다. 게다가 저 원인을 따져보면 꽤 나오겠군. 그것 말고도 그럼 여러 사례가 정말 수두룩... 쉿! 이어서 타인의 경우를 추가하자면 서열, 나는 취미 장비를 처분하는데 친구는 그걸 왜 파냐(팔고 싶으니까 파는 거지, 영원히 팔아서는 안되는 건가?), 나는 어떤 사은품을 받자마자 버릴려는데 친구는 그걸 왜 버리냐 이상한 놈이네 어쩌네, 나이트클럽에서 계산 후 나올려는데 계산하셨냐는 사소한 오해로 빚어진 소극등 많긴 많겠다. 사소한 오해에 대해서 발끈하는 사례가. 이성으로 원활히 제어할 수 있는 감정1범주를 넘어서는 2, 3, 4...가 있을 테고. 우정과 관련된 또 다른 예로는 이런 게 있음.
- 누구와는 내가 너보다 더 친해.
- 넌 나의 제일 친한 친구는 아니야. 넌 넘버2. 넘버1은 누구.
- 넌 내 왼팔 누구는 내 오른팔
- 우정을 받아주지 않았을 때
- 단짝을 뺐겼을 때
E.단짝을 뺐겼을 때에 대한 부언 설명:
이게 알고 보면 가관임. <3인칭 전지적 시점이 아니라 양쪽 말을 다 들어 봐야 함. 단짝을 뺐긴 사람 관점에서 설명이 필요함> 자, 혹시 모르니까 만약 궁금하시다면 쌀짝 귀 기울여 주시겠습니까? 원래는 짝수였음. 단짝과 나. 그렇게 둘. 그러다 새 친구 등장. 두둥~! 얘가 그런대로 괜찮음. 어라, 쓸만한데? 약간만 재밌네? 1.5! 그래서 이제부터 내게 친한 친구는 두 명. B급은 다다익선이니까 내가 원래 한 인기 하니까 놔두고, A급에서는 그렇게 둘. 그래서 의미 부여. 그 다음 서열 정리. 빽넘버1은 내 단짝, 빽넘버2는 새 친구, 나는 무순위. 총 3인방. 그렇게 나는 우정1과 우정2를 여자를 양쪽에 꿰차듯이 양쪽에 꿰참. 비유는 좀 그렇지만 예비 타이어는 나쁜 게 아니니까. 우린 진짜 로망은 바로 국가대표 상비군이란 진실을 잘 아니까 말이다. 내 진짜 꿈은 그것임. 본첩은 마누라요 애첩과 궁녀를 공평하게 두루두루 총애한다? 흐흐흐흐흐흐흐! 으잉 뭐시여? 노노노노노노노! 농담. 어쨌든 등번호 1은 단짝, 등번호 2는 허접한 대타. 그런데 어느 날 알고 봤더니 아 글쎄, 그 둘이 새로운 단짝 관계? 난 낙동강 오리알 신세로 전락함! 홀수는 왠지 불안불안하다 했는데, 그래도 설마 설마...했는데 진짜로? 세상에 이런 일이! 닭 쫓던 개 지붕 쳐다 봄. 난 개, 찌질이는 닭, 내 원래 단짝은... 도대체 얘는 뭐야 정체가? 닭이야 개야? 하나만 해 하나만! 닭개 개양 양말 말곰 곰새 개새 용말 이런 거 말고. 그러니까, 결국 내가 1과 2를 양쪽에 꿰찬 게 아니라 그 머저리 등신이 내 단짝과 날 꿰찼다? 심지어 난 넘버2? 이왕 쥐었다 펴지고, 들려졌다 놔지며, 밀려졌다 당겨질 거면 당연히 내가 1번이어야 옳은 건데! 종국엔 나는 셋 중에 세 번째, 넘버 쓰리, 뭐 삼류? 이런 개 풀 뜯어 먹는 일 같으니라고!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구만. 말 다한 거네. 갈 데까지 갔어. 더군다나 따지고 보면 난 꿇리는 게 한두 개가 아니다. 지는 건 수두룩하다. 완전 많다. 우리들 청춘 시트콤에서 숙녀들도 다 그쪽으로 쏠렸다. 일방적으로 넘어갔다. 더 나아가 내가 찝쩍거렸던 미모의 숙녀도 그 얼간이 같은 놈이 좋단다. 뭐 지적이라나 뭐라나? 허접한 그놈이나 나나 다 거기서 거기지 무슨. 나도 나다. 입버릇처럼 그랬다. 그럼 부러워하지 말든가, 난 부럽지 않아, 난 부러워한 적 없어, 막 그러면서. 나도 깐족에는 일가견이 있으니까. 의욕에 비해 실력은 형편없지만 말이다. 인터넷에서 연예인 누구 봤는데 별로더라 어쩌더라 댓글 다는 사람? 나다! 동네 조기축구회에서 한때 반짝했던 잊혀진 골잡이와 실제로 게임을 뛰면서 막 부딪혀보면서, 에이 별거 아니네 야 야 제껴 제껴, 라고 말하는 사람? 나다! 알고 보면 제일 못나고, 제일 재수없고, 제일 재미없고, 제일 꼴불견인 사람은 바로 나다. 나도 안다. 맞다. 나는 평판도 별로다. 인기도 없다. 친구의 여자친구가 나를 아끼고 좋아하냐? 아니다. 녀석이다. 뭘 좀 아는 남자라나 뭐라나. 그럼 난 뭘 모르는 남자인가? 하여튼 뭐든 마음에 안들어. 바텐더는 또 뭐고. 계산 뻔히 누가 하는지 보이지도 않나? 나는 성격이 좋지 않다. 하지만 녀석은 성격 좋단 소리를 곧잘 듣는다. 난 여간해선 부럽단 말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녀석은 툭하면 부럽다고 한다. 그래서 나도 따라해 봤다. 녀석 집과 회사에 쫓아가서 난 너의 어떤 점이 부럽다 라고 까지 해 봤다. 결과는? 우정을 받아주지 않더라. 그러다 빼았긴 단짝은 다시 내게 돌아왔다. 그렇게 될 때까지 나는 슬리퍼 찍찍 끌고 어디든 갔다. 일명 추적. 울적해서 놓친 적도 많고 귀찮아서 불러도 안 간 적도 많다. 짜증나는 문자메시지는 보내줬다. 둘이서 어쩌고저쩌고 잘 해 보라고. 또 둘이서 무슨 동호회던가 활동할 때 거긴 차마 못 따라갔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서 내 원래 단짝은 다시 내게 돌아왔다. 뭣땜시, 단물이 빠졌을까? 몰라 모른다구 관심 없어. 내가 그냥 점퍼라면 녀석은 양면 점퍼다. 거꾸로 입든 그냥 입든 다 된다. 그게 대체 뭐냐고! 이런 젠장. 나는 또 작전을 바꿔서 수시로 그랬다. 내가 너보다 더 어쩐다 라고. 내가 너보다 노래를 더 잘 부른다, 내가 너보다 더 춤을 잘춘다 라고 했다. 그래서 결과는? 나만 속좁은 놈이 됐다. 참고로 나는 가슴 큰 여자에 대해서 컴플렉스가 있다. 심하다. 그런데 녀석은 친구3과 풍만한 여자와 만났고, 나중 친구3과 그 여자 얘기를 했다. 왕가슴이라나 뭐라나. 역대 최고니 뭐니. 재밌고 즐겁고 부럽고 웃기고 막 분위기 좋네 글쎄? 그런데 난 뭐야, 녀석과 잠깐 알던 여자와 같이 만났는데, 난 완전 내 표정 관리에 실패했다. 확실하게 참패했다. 왜냐, 그 여자가 가슴이 컸거든! 나 혼자 승부 구도를 만든 거였다. 살면서 그런 표정을 보여주는 기회, 볼 수 있는 기회, 거의 없다! 그건 당사자든 관찰자든 굉장히 드문 기회다. 녀석과 나의 차이에 대해서 최대한 쉽고, 최고로 짧고, 최적의 상황으로 설명하자면 바로 이 상황이다. 녀석에게는 우정이 사랑과 또 다른 멋진 무엇일지 몰라도, 나에게 우정은 곧 승부이자 서열이라는 것! 나 : 단짝 : 녀석의 순위는 1 대 1.2 대 1.5라는 점은 부동하고 불변한 진실이거든. 물론 내 기준이지만, 주장이 아니라 엄숙한 사실. 그냥, 섭리! 때문에 난 그 상황에서 눈이 뒤집히는 거라고. 반대로 녀석은 완전 똑같은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웃고, 떠들고, 신나고, 재밌고, 좋아하며, 막 즐겁고 그게 뭐야? 왜 반응이 정반대인지 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가. 뭐 지는 아마데우스 나는 살리에리? 지는 은근 허당, 나는 뭐 깨방정에 응큼한 이기주의자? 이런 젠장! 완전 똑같은 장면인데 어떻게 그럴 수가! 하긴 난 그동안 정말 이상하고 최고로 황당한 여자들만 골라서 녀석한테 보여줬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녀석은...! 사람이 인생을 사는 동안 그런 표정과 그런 반응을 몇 번이나 볼 수 있을까? 모르긴 몰라도, 나도 세상을 알고 내가 내 단짝한테 스스로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다고 뻐길 정도의 경험은 해 봤으니, 무엇보다 내가 저 상황의 주인공이었으니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어디를 가든 누구를 만나든, 미쳤어 미쳤어 어머머 미쳤나 봐 어떡해 어떡해, 주제가 무엇이든, 장르는 애매해도 흥행작은 아닐지언정 나는 주인공감이었으니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따라서 내 장담하건대 그건 다섯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는 정도다. 딱 그렇다. 아니 아니. 것도 많겠네, 암! 정말 그렇지. 그치만 나처럼 단짝한테, 해 볼 거 못 해 볼 거─할 거 안 할 거 다 해 봤다, 라고 말하지 않는 즉 허세 점수가 50점 미만인 말수 없는 친구일지라도 아마 크게 다르지는 않을 꺼야. 왜? 아무 이유없이 무조건 녀석이 싫거든. 완전 얄밉거든. 엄청 꼴보기 싫어 못살겠으니까. 바로 내가 그렇거든. 단, 1과 1.2의 룰이 무너지지 않았을 때는 최고의 단짝이 될 수 있다는 건 인정해. 우리는 실제 그랬으니까. 그럼. 우리가 단짝일 때 나는 녀석한테 내 모든 것을 보여줬고, 내 모든 생각을 공유했으며,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을 전부 소개시켜줬어. 그거야. 그거라구. 난 여자한테도 걸지 않은 내 모든 걸 다 걸었다. 녀석이 내게 1번 전화할 때 난 10번을 했다고. 참으로 오랫동안. 시간 대비 할 수 있는 건 가능한 한 모두 했다고. 언제 어디든 같이 가고 같이 움직이는 것. 타인에게 말을 듣는 것. 뭐라고? 누구 어디다 떼놓고 혼자 오슈? 라는 말을 듣기. 주위 사람은 모르는 사람이 없기. 후배들도 지인들도 누구는 누구랑 친하고 누구는 누구랑 단짝이고, 다 알기. 옛날 어떤 친구처럼, 난 뭐 어쩌니까 단짝을 만들지 않아 이러쿵저러쿵? 안 만드는 게 아니라 못 만드는 거다.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거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고, 해서는 안돼 위에는 하는 놈이 있다. 물론 정식 속담은 아님. 그건 곧 적극적으로 우정을 고민할 상대가 없고, 인지도는 높은데 인기는 없으며, 더없이 죽이 잘 맞는 친구가 없어서 그런 것일 뿐. 난 뭐 어쩌니까 단짝을 만들지 않아 이러쿵저러쿵? 그 말과 똑같다. 난 유명해지고 싶은 마음 없어! 결국 그 친구도 내가 몸이 멀리 떠나간 틈을 타서 내 원래 단짝한테 새로운 단짝이 되어 주라는 소청을 들이댔다가 거절당했음. 사랑만 차이는 거 아님. 우정에게 버림 받는 기분이 어쩌면 더 비참할 것이란 건 어른들뿐만 아니라 자라나는 새싹들께도 공공연한 사실. 그래서 그 친구3은 동창회 어느 날 돈 떼먹고 화냈음. 뭐한 놈이 뭐한다, 그 말마따나. 허세는 부러움으로, 부러움은 갈망으로, 갈망은 좌절로, 좌절은 반(反)패배주의자를 삐툴어지게 만듬. 게다가 중간의 그 부러움이 그냥 부러움인가? 아니다. 절대 아니다. 인정할 수 없다. 부러움은 강박관념이고, 부러움은 열등감, 부러움은 억압, 부러움은 질투, 부러움은 허세, 부러움은 굴욕과 직결된다. 어쨌든, 만약 내 모든 것을 함께 할 수 있어야 진정한 단짝이라고 할 수 있다면 그런 단짝을 살면서 몇 명 사겨 봤냐, 에 대해서 상중하로 나뉠 꺼야. 내 인생을 통틀어서 그처럼 관심과 교감과 연락과 사귐을 집중하고 지속하며 내 생각에서 떠나지 않은 사람, 여자가 아니라 남자가 내 인생에서 과연 몇 명이 있었나, 지금 와서 따져 보니 그 공정한 성적표를 보기 싫어도 들여다 보니 글쎄, 이런 젠장! 녀석이 단독 1등이군. 통계가 그래. 것도 기록적으로. 청춘을 반복할 수 있다면 몰라도 기록은 깨질 수가 없겠네. 아흐! 뭘 하든 어딜 가든 사람들은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새로운 우정과 새로운 사랑은 사는 동안 끊임없는 건 맞지만, 그 정도의 만남이라... 싫어도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면, 녀석 딱 1명이군. 부끄럽고 챙피하고 싫어도 하나 고백하자면 그 말도 당시 그래서 했어. 늬는 (내 다른 친구 누구) 만큼은 뭘 못했다 라고. 언젠가 내가 집에서 멀리 떠나 있을 때 누구는 우리 집에 꼬박꼬박 찾아와서 가족한테 인사를 했다, 까지는 말했는데 '그런데 넌 뭐니?'까지는 말하지 않았다. 하긴 난 그때 어떤 섭섭함을 표현했을 수도 있지만 녀석은 자길 넘버2로 아나 그랬을 수도 있겠네. 그래도 내가 자필 생일 카드까지 전해줬는데, 남자들끼리 그런 걸 선물해서는 안된다는 건 불문율인데, 에잇 젠장 내가 졌네 졌어. 또 졌어. 막 져. 계속 져. 언제나 진다니까. 그게 다 녀석 때문이야. 저런! 이런 쫌팽이 같은 놈 같으니라고. 유치하게 자필 엽서나 자필 크리스마스 카드를 선물하기, 아마도 녀석은 이미 중학생 때 뗐을 꺼야. 꺼벙한 놈 같으니라고. 찌질하고 허접하고, 응? 그러니까 늬가 안되는 거야. 맨날 어디서나 누구한테나 미움이나 받고 질투심만 유발하는 트러블 메이커! 아니 잠깐만. 그럼 뭐야 난 걔 하나였는데, 녀석은 나 말고도 단짝이 수두룩했다고? 이런 젠장! 난 지금까지 세상에게 속았던 거야. 사랑이 일부일처제에 우정이 일부다처제인 줄 알았는데, 그 반대더라 그 말씀이야. 어허, 나 원 참, 그런 말 같지도 않은 깨달음이라니! 아무튼 그렇다면 그렇게 싫고 밉고 짜증나며 스스로 망가지는 비율은 어떻게 되나? 녀석이 어떤 인생을 살았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가 봤을 때는 그렇다. 녀석은 커넥터 스타일은 아니다. 새로운 친구를 알게 되면 그 친구를 자기의 기존 친구들 범위로 끌어들이지 않아. 좋게 말해서 신중하지. 곧 그 말은 정확히 파도타기 유형이란 말. 새로운 친구가 녀석을 보고 속으로는 물론 면전에서 그래. 어 사람 괜찮네 얘 말이 통하네 좋은 친구로군, 하여 자기 친구들을 소개시켜주고 으쌰으쌰 어울리는 유형. 그게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어. 방향이 좋으면 출세의 지름길일 수도 있지만, 그게 아니다 싶으면 살면서 온갖 장르를 다 체험할 수도 있음. 판타지, 미스테리, SF, 스릴러, 호러, 느와르, 액션, 모험, 코메디, 멜로, 에로, 기타등등. 그건 그렇고, 간명히 속이 뒤집어지는 친구의 비율만 말하자면 어딜 가나 속좁은 친구는, 심하든 심하지 않든 혈액형처럼 몇 명 가운데 한 명은 된다고 봐도 썩 그른 얘기는 아님. 고로 녀석은 경마장에서 볼 수 있는 무슨무슨마, 아내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아내는 아무것도 모른다, 그런 경주마와 기수가 합체된 경우라고 봐. 믿거나 말거나 웃기든 안 웃기든, 경주마 이름은 뭐냐고? 당연히, 뻔트마지! 안 그렇소? 허허허! 또 운동이든 뭐든 내가 이기고 1등이면 당연히 기분이 좋다. 그런데 차이가 뭐냐, 차이는 그거다. 난 녀석의 투정과 핑계를 묵살하고 깔아뭉개고 비꼰다. 그러면 상황이 반대로 되서 내가 꼴등 녀석이 일등하면? 녀석은 그냥 아이처럼 좋아라 한다. 못 봐주겠다. 똑같이 날 깔아뭉개고 비난하고 무시해야지 그게 뭔가. 지는 백조요 난 촌닭이라고? 하긴 내가 욕심이 많다. 성격도 못났다. 잘난 것도 별로 없다. 아르바이트만 하다 청춘 다 가버렸다. 집안도 그만그만하다. 친구3이 툭하면 돈 얘기를 하는데 난 질려버렸다. 난 좋게 말해 검소한데 난 검소하기 싫으니까. 부럽지만 부럽지 않다고 한다. 명사들 강연에 그런 내용이 있다. 억만장자 노신사가 그런다. 난 내 전재산과 젊음을 바꿀 수 있다면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바꾸겠다고. 내 전재산 줄께 당신의 젊음을 다오, 그래서 젊어질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다는 거다. 그 말은 곧 젊음이 부럽다는 거다. 그런데 문제는 부러운 것에 대해서 부럽다 라고 스스럼없이 말할 수 있는 때가 도대체 언제인가 그거다. 정말 언제가 되어야 그럴 수 있을까? 난 멀었다. 아직 멀었다. 녀석과 속 깊은 얘기도 해 봤다. 난 현재만 얘기하는데 녀석은 미래를 얘기한다. 재수없다. 짜증난다. 더구나 녀석은 친구도 많다. 난 없다. 몇몇 있긴 해도 경조사 때 보거나 자주 보는 애는 거의 없다. 그래서 내게는 단짝이 다다. 그런 내가 단짝을 뺐겼다고 상상해 보시라. 어쨌겠는가? 그건 미쳐버리는 거다! 단짝도 단짝이다. 그 인간이 뉴페이스 나타났다고 쫄랑쫄랑 녀석한테 우정을 받쳐? 녀석이 무슨 여자인가? 간사한 놈 같으니라고. 그처럼 의리 없는 인간을 내가 단짝이라고 오래도 챙겨줬다니, 오우 저런! 울화통이 터진다. 게다가 난 녀석한테 말로도 안된다. 난 술로도 1등이 아니다. 할 말도 없다. 말하기도 싫고 누구 비위 맞추기도 싫다. 하지만 녀석은 아부도 잘하고 적어도 나보다는 말을 잘한다. 글도 잘 쓰나는 모르겠다. 지가 그래 봐야 별거 없다. 그런데 남자들 우정에서 제일 중요한 문제인 여자, 나는 여자 경험도 별로다. 내세울 게 없단 말이다. 그런데 저절로 말이 나온다. 내 입에서. 부럽지, 않다고!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다, 라고 누가 꼬집을 것 같아서 솔직히 겁난다. 또 난 정말 뭘 해도 재미없다. 그러나 녀석은 계속 재미난 뭔가를 찾을려고 노력한다. 호기심이 왕성하고 탐구욕이 풍성하며 감수성이 예민하다. 우린 뭐 안그러겠냐마는. 그처럼 차이가 있다. 아직 녀석의 마음이 젊어서 그럴까? 그럼 난 늙었나? 이런 젠장! 또 제3의 친구가 그랬다. 녀석을 보면서. 넌 볼 때마다 웃으니까 (내) 기분이 좋다고. 또 내가 질 수야 있나~! 나도 웃었다. 활짝 웃었다. 그랬더니 뭐라 한 줄 아시나요? 제7의 친구가 그랬다. 지금 비웃냐고! 한마디 할려다 말았다. 지금 시비냐고! 썩 친하지는 않아서, 무엇보다 견적이 딸려서 피했다. 운동도 그렇다. 친구들끼리 스키 타러 갔다. 둘 다 초보였다. 왕초보. 그런데 녀석은 운동신경이 좋아서 금방 이거 저거 다 따라했다. 갈 때는 초보였는데 올 때는 선수였다. 그런데 나는? 팔이 부러졌다! 뚝 소리 나면서. 그 뒤로 사이가 멀어지기 전에는 또 다리가 부러졌다. 뚝 소리 나면서. 정말 가지가지 한다. 블로그나 소셜 네트워크를 보면 어떤 차이는 아주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래서 난 소셜 네트워크 그런 거 않한다. 나만 바보된다. 나만! 녀석의 소셜 네트워크에는 사진도 종종 올라왔다. 어떤 사진? 양쪽으로 미녀를 끼고 찍은 사진. 야유회에서 야구장에서 또 어딘가에서. 이런 젠장! 내 홈페이지는 썰렁한데 녀석 홈페이지는 댓글이 달린다. 막 많이 달리지는 않지만 뭔가 추종세력이 있는 것처럼 엄선된 멤버들로 구축된 소수정예 숙녀들 위주로. 못 봐주겠다. 짜증난다. 불만은 끝이 없다. 허세를 대하는 태도도 마음에 안든다. 우리 세계에서 불문율은 그거다. 허세엔 허세로! 그런데 내가 허세를 부리면 녀석은 그냥 믿는다. 꼭 믿지는 않더라도 믿는 척 한다. 그래서 더 열 받는다. 고로 난 어떻게든지 녀석을 헐뜯을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꼬투리 요만~한 것도 주위에 막 퍼트린다. 그러나 녀석은 나한테 관심이 없다. 날 싫어하는 걸 나도 다 알지만 또 썩 싫어하는 내색은 절대 하지 않는다. 지가 무슨 부처야 뭐야! 완전 재수없다. 사람 무시하는 것도 아니고 아니, 친구를 완전 무시하구만. 한 계단도 아니고 저 밑이라고 날 깔보는 거다. 지가 뭐 그렇게 잘났다고 말이다. 나도 나다. 이처럼 마음이 완전 대인배니까. 최고는 누가 뭐래도 나니까. 운전만 해도 그런다. 시트콤 멤버 여자애들이 녀석한테 몰표를 했다. 난 완전 스타일 구긴 거다. 내가 그동안 들인 돈이 얼만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내 여자친구가 자기 친구라면서 어느 날 어떤 숙녀를 소개시켜줬다. 내 여자친구의 여자친구를 보는 순간, 난 기분이 안좋았다. 완전 망한 거다. 왜냐하면 내 여자친구의 여자친구가 완전 이뻤거든. 그래서 난 내 단짝한테 쪼르르 달려갔다. 누구 완전 이쁘더라고 고해바쳐야 하니까. 내 단짝도 눈이 똥그래졌다. 그래서 그때부터 내 단짝은 완전 껄떡거렸다. 원래 그런 쪽으로 심한 놈인데 눈이 돌아간 거다. 내 다른 친구들도 완전 난리였다. 내 친구들 아주 환장하더라. 막 미쳐블더라. 하이에나 같은 놈들. 그러나 결국 그녀는 녀석이 좋단다. 많이 좋단다. 언제까지라도 좋단다. 이런 젠장! 죽 쑤어 개준 꼴이라니. 못살겠다. 그렇기는 하나 반면에, 내 여자친구의 친구라면 미쳐버리는 애들이 많았으니까 난 기분이 아주 좋았다. 왜? 난 마에스트로였고, 오락기의 조이스틱을 잡고 있었으며, 내 말은 곧 요정의 요술봉이었으니까. 그 기분은 대체 어느 만큼인가는 알려고 하지 말자. 내 말은 법이고 진리였다. 나는 애들한테 호령했다. 내가 왕이었다. 친구들을 부르면 어디든 다 오고, 언제든 대기중이었고, 하라면 다 했다. 하다 하다 술집에서 지갑을 땅바닥에 내팽개쳐버리는 녀석도 있었다. 그러나 좋은 점이 하나 있으면 나쁜 점도 하나 있었다. 나는 내 여자친구의 여자친구가 특별하다는 사실 때문에 미쳐버렸다. 남자는 이럴 때 괜찮은 남자와 괜찮지 않은 남자로 나뉘겠지만, 나는 엄연히 후자였다. 여자친구를 바꿀 수는 없고, 그래서는 안되고,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없고, 내 여자친구는 날 많이 좋아하고, 내 친구들은 완전 미쳐블고, 그래서 난 그랬다. 첫째 원래 내 여친한테 못되게 굴었지만 더 못되게 굴었고, 둘째 친구들한테 내 권력을 과시했다. 지금 술 한잔 한다 그런데 누가 있네? 쪼르륵 다 왔다. 알라스카에서도 밥 먹듯이 왔다. (나는 알라스카에서 살아 보고 싶다) 하와이에 사는 놈은 날마다 전화해서 소개팅 시켜주라고 난리였다. (하와이에도 가 보고 싶다) 하도 난리길래 그래서 그렇게 해 줬다. 그렇게 3번 만나게 해 줬다. 그녀가 좋아하는 꼴 보기 싫은 그놈한테 거짓말도 했다. 누가 누구랑 잤다고! 소리도 질렀다. 막 깔봤다. 내가 최고라고. 내 차 봤지 라고도 했는데, 그 정도 사회성 없는 놈이 아닌데 빈말도 안 하네? 사람들 많은 술집에서 고함 지르고 호통치며 만인의 주목을 받았다. 난 그런 놈이다. 한마디로 진상이다. 넌 왜 굽히지 않냐, 내 권력을 무시하냐, 넌 뭐가 그렇게 잘났냐, 내가 만약 내 여자친구랑 헤어지면 넌 내 여자친구와 연락해라, 라고 명령했는데 대답은 노! 뭐, 노? 좋은 말로 할 때 연락하고 지내라, 내가 만약 헤어져도. 싫다. 내가 왜? 그래서 가게가 떠나가라고 소리 지름. 완전 민폐. 바로 이런 게 나 같은 사람의 전형적인 문제다. 100번 200번 잘해주면 뭐 하나, 비슷한 사람만 봐도 고개를 돌리도록 만드는데. 이름만 들어도 눈을 감는데. 축구 리그처럼 승수만 많이 쌓으면 우승 아닌가? 살아 보니 대인관계는 축구 리그가 아니었다. (여기서 잠깐. 친구들한테 보여 주기식으로 애인과 헤어지는 친구들 유형이 있는데 그건 절대 개입하면 안됨. 듣기는 하되 말은 쉬쉬. 귀가 두 개고 입이 하나인 이유가 다 있는 것이다. 안 그럼 나중 바보 된다) 그렇다고 나만 꼴불견이냐, 혼자 망가질 수는 없다. 물귀신 작전은 원래 내 스타일 아니다만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같이 가자! 그 중에 한 명. 그놈으로 빙의하자! 자, 됐다. 나. 나나나나나나나! 나는 친구들한테 보여 주기식으로 애인과 헤어진 어느 친구를 그냥 보고 넘어가지 못한 적이 있다. 그녀의 홈페이지에 찾아가서 시원스레 글을 남겼다. 아주 거칠게. 말도 했나? 잘 기억도 안난다. 나중 그 둘이 결혼하길래 얼굴 보기 민망하더라. 나는 지금은 일반인이지만 마피아 출신이다. 술집 친구들이 아니라 조직원들이 말하는 무슨 인테리어 공사도 했다. 여자들이 얼굴을 성형수술 하듯이 말이다. 그런데 정식 의사가 아닌 뭐 어떻게라는 게 문제였음. 어디도 갔다 왔다. 나도 경험은 많다. 내가 좀 집요하거든! 으흐흐흐흐 으흐흐흐흐! 내 인생 단순하다. 친구의 여자친구한테도 인사말이 그거다. 여자 소개시켜주라고. 몇몇 예외는 있어도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여자 없다. 심지어 요즘 남자들의 문제는 열 번 찍는 남자가 없다는 게 문제다 라고 말하는 연애 칼럼니스트의 인기, 꽤 좋다. 오, 땡큐! 허허허허허 으하하하하하하! 첫인상 별로에 직감적으로 싫었을지라도 한번 인연을 맺고 나면 으흐흐, 뒤에 밑에 으흐흐, 그렇고 그런 술집 여자도 웬만하면 울고 간다. 나와 만났던 여자들은 나와의 기억을 평생 잊을 수 없다. 그게 무엇인가는 몰라도 죽을 때까지 그 기억은 내내 안고 살아야 한다. 어쩔 수 없다. 알기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독서를 싫어한다. 혀를 내두르는 학식이나 탁월한 지성이 아니면 어차피 전부 잔지식으로 대처되니까. 오히려 훨씬 나으니까. 효과도 효력도 효율마저 모두 만점이다. 비슷하게 말하는 법? 교수, 과학자, 고위 관료, 의사까지 다 가능하다. 얼마든지. 뉴스에도 나온다. 나중 사기로 밝혀짐 이라고. 세상 사람들은 알고 보면 너무 착하다. 말하면 다 믿는다. 내가 최고라고 하면 진짜 최고인 줄 안다. 재밌다. 난 정말 어설픈 독서는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TV에 나오는 지식으로 이미 충분하다. 나머지는 알면 피곤하고, 게다가 이미 다 아는 거다. 심지어 검색하면 당장 다 나온다. 눈치로 다 된다. 억양, 어휘, 습관, 말버릇, 몸짓, 어조만 가지고도 뭘 좋아하는지 어떻게 살았는지 꿈은 무엇인지까지 다 맞출 수 있다. 강연도 가능하다. 주례사? 지금 당장 따라할 수 있다. 한데 어떤 여자는 지적인 남자가 좋다나 뭐라나. 내가 지적으로 생기지 않았던 게 문제였나?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남자는 셋 중 하나다. 나중 보면 아빠를 닮거나, 정반대로 크거나, 그외 나머지. 대체로 보면 아빠를 닮는다. 아빠의 유전자를 물려받았던 데다 아빠를 보고 자랐으니까. 그녀의 미래를 보고 싶으면 그녀의 엄마를 보라는 어른들 말씀처럼. 그런데, 아빠가 모범적이지 않다? 난 커서 절대로 아빠처럼은 살지 않겠다고 다짐할 수도 있다. 기필코. 허허허허허, 소년이여 살아 보시라. 웬걸~ 라고 말하게 될 테니까! 가족 얘기는 식상하다. 분야를 넓히자. 뭔가 있어 보여야 하니까. 그렇다고 너무 구체적이면 또 재미없다. 뭔 얘기를 할 줄 뻔히 알거든. 그냥 현시대를 통틀어서 이 세상이 아름다운가 아름답지 않은가, 그걸 알아 보자. 현대 사회의 문제가 무엇인지 아시나요? 너무 풍요롭다는 거다. 또 현대인의 문제는 무엇일까? 여기서는, 똑똑함이다. 사람들은 너무 영리하다. 동시에 너무 멍청하다. 모르는 게 없고 또한 뭐가 아름답고 뭐가 뛰어난지를 잘 모른다. 내가 생각할 때 지금은 글의 시대가 아니다. 내가 봤을 때 현대는 말의 시대다. 따라서 중요한 건 기억력이자 말발이다. 그걸로 다 된다. 내가 그렇다. 그 예는 한도 끝도 없다. 서점에 가 보시라. 베스트셀러? 전부 아는 내용이다. 한마디로 읽어도 그만 안 읽어도 그만. 단, 나 같은 척척박사한테는 시간낭비. 합리주의가 전부라고 봐도 무방하다. 왜냐하면 현대는 감상의 시대가 아니라 소비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미안하지만, 글의 시대는 지났다. 옛날에 지나갔다. 고전음악을 50년 들어보시라. 낭만주의, 발레음악, 인상주의 음악이 좋기는 좋다만 그건 비교적 순수한 음악보다는 예술적 음악일 뿐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베토벤 이전만 듣는다. 낭만주의 이후로는 익히 아는 멜로디만. 베토벤도 그분들은 고개를 약간 갸웃 하신다. 곧 책을 읽을 때 모차르트 이전만 듣는 학자들이 아마 적지 않을 것이다. 미술도 그렇다. 비싸고 멋지고 아름다운 그림은? 전부 1950년 1900년 이전 작품이다. 전성기가 그랬다. 미술은, 과거에는 예술이었고 현대로 넘어와서는 기예다. 자, 문학으로 가 볼까? 문학은 딱 19세기와 20세기 초반만 읽으면 된다. 나머지는 관심 갖거나 볼 필요가 없다. 순 연예인처럼 주목 받고 싶은 허당들 글이 태반이다. 읽을 필요가 없다. 글의 전성기는 대충 약 100여년이 제1 전성기였고, 때문에 당시는 글의 시대 지금은 말의 시대다. 그러므로 지금 중요한 게 뭐냐? 첫째 잔지식, 둘째 말발, 셋째 글발이다. 그 셋 중에 하나만 뛰어나면 유명해지고 돈도 번다. 진짜 그렇다. 과도한 지성은 필요도 없고 구분도 안된다. 그외 다른 재능을 타고 났다? 때때로 직업과 연결되기도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목적은 딱 하나다. 그건 뭐냐? 여자를 꼬시기 위한 방법일 뿐이다. 남자들 세계에서 말 좀 한다, 존재감 있다, 재밌다 하신 분들 말씀을 들어 보면 책을 1000권 10,000권 읽으신 분과 다를 거 하나 없다. 아니지. 차라리 잔지식파가 훨씬 낫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나는 학교 다닐 때 방학이면 집에서 신문을 읽었다. 놀거리가 많지 않아서 새해 신문을 받아 보면 사촌형과 내기라도 하는 듯 신춘 문예를 서로 읽을려고 했다. 그런데 지금 신춘 문예를 언뜻 보니, 그분들께는 죄송한 얘기지만, 그걸 읽을 필요가 전혀 없었던 거다. 커서도 서점에서 책을 뒤적거리다 뭔가 애매하기 때문에, 나중 도서관에서 그 책을 빌려보면 거의 다 그런다. 2페이지를 채 넘기지 못하고 그런다. 고개를 살짝 틀고 들어서 눈을 지긋이 감는다. 그렇게 머리 위로 수증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그 말은 기교 곧 글발만 좋다는 뜻이다. 내용이 차례 이상을 넘어서지 못한다는 거다. 알맹이 그 영롱한 진실이 없다. 껍데기가 다다. 현대가 무엇이라고? 그렇다, 말발의 시대다. 어설픈 글발로 어떻게 한번 뭔가를 해 볼려고 하면 상은 받고, 유명해지고, 돈도 벌지만 딱 거기까지다. 그게 전부다. 완벽한 합리주의는 그런 거다. 어떻게 어떻게 등단한 작가 A와 B는 친구다. A와 B는 친구인데 한 가지 차이가 있다. A는 B의 신작이 나오면 무조건 읽는데, B는 A의 신작이 나와도 친구 작품을 거의 읽지 않는다. A는 기분이 어떠할까? 좋을 리가 있나. 삐진다. 토라진다. 속으로, 짜증난다. 내가 최고인데 왜 B는, 그러고서도 지가 내 친구인가? 까지는 아니겠지만 적잖이 속상한다. 실상 A와 B는 별다른 차이는 없는데 말이다. 그래도 굳이 미세한 차이점을 하나 꼽자면 그거다. A는 정말 다양하며 방대한 독서력을 자랑한다. 일부러 지식 자랑을 한다는 말이 아니라 그만큼 열심히 읽고 관심의 폭이 넓다는 말이다. 그럼 B는 어떠할까? B는 흔히 하는 말로 주류는 아니다. 인기 없다. 그런데 뭘 좀 아는 사람들은 조용조용히 B를 최고로 손꼽는다. 전문가들의 전문가 말이다. 분야에 따라 일반인들의 유명인이 일반인과 별 차이가 없듯이. 그럼 B는 무엇을 읽을까? 앞서 말했듯이 1800년대 작품과 1900년대 초반의 작품을 읽는다. 우선순위가 그렇기 때문에 친구의 작품을 읽지 못하는 것이다. 이점이다. 이 지점이다. 뭘로 보나 A가 잘나간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내일도 보나마나 확실하다. 예상하며 추측하고 예언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A처럼 사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다. 더군다나 누구든지 A처럼 사는 걸 좋아한다. 또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차라리 다방면으로 동시에 맹활약하는 게 낫지, 어설프게 A처럼? 뭐 그것도 능력이라면 얼마든지! 내게 촌닭과 백조의 유전자가 얼마나 섞였는지 모른 체 연예인을 추종하며 인기와 황금만 추종하다가는 그렇게 된다. 뭘 모르는 일반인들께만 추앙 받게 되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현대는 글의 전성 시대가 아니라 말의 전성 시대다. 물론 문학과 몇몇 분야만 그렇다. 인문교양쪽은 전혀 그렇지 않다. 스포츠와 똑같다. 현대인이 인류 역사상 가장 똑똑하듯이 인문학도, 과학도, 상업도, 스포츠도 거의 대부분은 그래프 오른쪽의 실력이 월등하다. 그러나 꼭 그렇지 않은 예외에 해당하는 분야는 무엇인가, 또 설령 현대적인 게 최상일지라도 최고 이름 브랜드는 몇 개 안되며, 그것 역시 옛 사람들임을 잊으면 안된다. 나는 그래서 책을 읽지 않는다. 게다가 분야가 다 비슷해졌다. 굳이 특정 매체나 글만을 고집할 필요가 없게 됐으니 나는 감사하다. 그렇게나 고마울 리가! 또 나는 어디 가서 절대 말로는 지지 않거든. 잔시식이든 논리든 설득력이든 난 뭐든지 자신 있다. MBA? 내 밥이다. 얼굴을 울기 직전으로 만들어버린다. 그거 따느라 쏟은 노력과 시간과 돈이 아깝도록 후회하게 만들 자신 있다. 난 그렇다. 그분들을 누가 됐든 고개 푹 숙이게 만들 자신 있다. 내가 그 정도인데, 그런데 나는 책을 읽지 않는다. 읽기는 읽지만 읽는 그 즉시 외워지고, 가설이 파생되며, 이론으로 발전해 가니까 아무거나 읽으면 안된다. 재수없어도 골라서 봐야 한다. 어쩔 수 없다. 물론 그 인간이 그렇게나 말을 잘해? 하면서 누가 인터뷰라도 요청한다면 그땐 거짓으로 저는 어쩌고저쩌고 해야지 뭐 별수 있나. 허허허허허 으하하하하하하! 정말로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어설픈 지성보다는 차라리 잔지식파가 훨씬 낫다. 혹시 그거 반어법이냐? 모르겠다. 묻지 마라. 아직 뭔가를 기대하시구만. 입만 열면 뭐든지 튀어나오니까 뭐 가 보자. 그래 나도 궁금하니까 말이다. 내가 교회 다닌 여자를 지금까지 5명을 사랑해 봤는데 말이야, 쩜쩜쩜! 얘기는 끝이 없다. 언제 어디라도 잔치상을 꾸밀 필요가 없다니까 그러네. 입만 열면 축제요 소풍이자 잔치가 따로 없다. 나는 이 세상의 모든 여자를 꼬실 수는 없다. 허나, 대번에 알아 볼 수는 있다. 저분? 딱 하루. 이분께서는 시간과 노력이 아니라 돈이네, 허영심 지수가 월등하시군. 그처럼 말이다. 말은 그런다. 문화와 예술이 인생을 멋지게 만들지 않냐고. 과연 그럴까? 아니다. 상업과 합리주의가 전부다. 문화와 예술을 찾을려면 옛날로 돌아가면 된다. 자, 이제 몸 풀렸으니 잡담은 그만하고 본론으로 넘어가자. 나는 어느 날 단짝을 뺐겼다. 나도 모르게 뺐겼다. 어떡하다 그렇게 된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어느 날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만났다. 자기 여자친구의 친구가 완전 이쁘다며 놀란 표정을 짓더라. 다독거려줬다. 곧 이어 나는 흑심이 발동했다. 빼았긴 내 단짝은 봄바람이 불면 어차피 돌아올 테고, 이참에 미녀에게 전념해야겠다고. 그래서 나는 최선을 다 했다. 어디든 갔고 선을 넘지 않는 선에서 내내 연락하며 구애도 했다. 그런데 전화도 받지 않더라. 일하는 직장에도 찾아갔다. 마음을 받아주지 않더라. 들이대고 찝쩍에 껄떡에 내내 눈독 들여도 그녀는 날 쳐다보지도 않았다. 나 혼자 광분했던 것이었다. 그래. 그녀마저. 그녀까지 말이다. 그걸로도 모자라 그녀도 녀석을 좋아한다? 단짝을 뺐겼기 때문에 지금 난 넘버3인데 여자를 그것도 미녀를 걔한테 또 뺐겨? 졌는데 또 지고, 미쳤는데 또 미치고, 사람 환장하는데 끝까지 환장하는 거다. 그래서 혹시 해서 난 녀석한테 물어봤다. 너 여자친구 생겼냐고. 또 한번 실수했다. 예전에 친구들끼리 놀러가서 인스턴트 음식을 발로 지근지근 밟았는데, 또 못 봐 줄 표정을 보여줬다. 한두 번도 아니고 이제 일상일 뿐이다. 모르긴 몰라도 녀석은 나 같은 친구들 종종 만나 봤을 테니까 난 신경도 안 썼다. 그런 거 감안하고자시고 그럴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그 미녀를 두고 내 친구는 친구들끼리 무슨 경쟁 게임을 시키듯이 애들한테 헛바람 잔뜩 주입시키고 다녔다. 삶의 재미는 그게 유일한 것처럼 보였다. 못된 놈! 아주 신나서 난리도 아니었다. 꼴불견도 그런 꼴불견이 없었다. 당연히 알라스카에 사는 친구도 자주 내려왔다. 얘도 마피아 출신이다. 그런데 내 급이 아니다. 그 미녀는 나한테 무반응이었는데 얘는 아닌가 보다. 난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나중 들은 말로는 그녀는 맹해서, 완전 맹했기 때문에 자기가 좋아하는 오빠와 사랑의 다리를 놓아 주는 무슨 큐피트쯤으로 잠시 착각했었나 보더라. 전화를 착착 받아준 걸 보면 말이다. 큐피트는 무슨, 늑대에 하이에나인지 뻔한 거 아닌가? 당시 자주 또 많이 싸운 친구와 친구의 여자친구 사이가 삐걱거려서 그녀가 많이 도와줬고, 알라스카에서 내려온 친구도 그렇게 자주 만나고 어쩌고 얽힌 사연이 많다. 그게 다 친구 녀석이 못 먹는 감 굿이나 보고, 생색이나 내며, 뻠프질은 재밌고, 공치사나 듣자 해서 생긴 일이다. 뽐내기 좋아하는 허세 지수 100짜리 인간 같으니라고. 그렇게 각자 생각하는 속셈이 전부 다 다르던 우리들이 어느 날 정신을 차렸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 모두를 알게 됐으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같은 마피아 출신인데 한 명은 깔끔하게 패배에 승복, 나머지 한 명은... 이런 젠장! 범죄 영화로만 봐도 난 중간 보스도 못되는 하수였다. 그 친구는 영화 대부. 어쨌든 우리는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 모두를 알게 됐다. 때문에 각자 생각하는 속셈이 전부 다 다르던 우리들이 어느 날 정신을 차렸다. 알고 봤더니 요술램프는 진공청소기가 아니라 커피포트였던 것이다. 우리는 각자 다 다르게 생각하는 서열을 내려놨고, 신기하게도 한마음이 됐다. 동병상련이었으니까. 우리는 많이도 투덜거렸다. 우리는 오래도 투덜거렸다. 우리는 새롭게도 투덜거렸다. 투정은 끝이 없었고 어리광은 계속 늘어만 갔다. 남자들 우정의 절반은 이렇다. 모두 자기는 1번이고 친구는 1.1 - 1.2 - 1.3......이다. 그래서 각자 자기가 맞춰주고 져 주어 동등한 우정이 성립한다고 생각한다. 나나 되니까 허접한 저 인간을 챙기지 내가 아니면 도대체 누가 하겠냐, 바로 그것이다. 똑같이 상태가 안 좋아도 나는 특이한 거고, 친구는 꺼벙한 거다. 때문에 허세와 비난과 짜증과 으쌰으쌰가 심하면 심할수록 친한 거다. 왜냐하면 내가 최고니까. 남자들의 불문율은 그것이다. 친하지 않으면 예절과 품위를 지킨다. 심한 말이나 욕도 친해야 한다. 다 그렇지는 않은데 몇몇 형식으로 나뉘는데 아무튼 참 이상한 우정이다. 그 어려운 우정의 법칙이 바로 공공의 적 트러블 메이커 때문에 함십할 기회를 맞이한 것이다. 고마운 것인지 다행스럽다고 해야 할지 참 난감하게도 말이다. 우리는, 우리 모두 각자 결론 내렸던 속생각을 털어놨을 때 우리는 또 한번 깜짝 놀라고 말았다. 왜냐면 우리 모두 생각이 똑같았으니까. 바로 새똥 맞은 셈 치자, 그것이었으니까. 따라서 오히려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고 우리의 우정 그 덕망과 로망은 더더욱 멋지게 발전해갔다. 그 때문에 좋은 델 갔는가 가지 않았는가는 비밀이다. 그러니까 어떻게 우정이 고상해졌냐고? 나는 영점대 방어율에 진입한 거지. 난 컴퓨터니까. 난 0에서 1을 왔다 갔다 하는 이진법. 친구는 알다시피! 으하하하하 으하하하하하하!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친구들이 모인 자리에서 내 마수에 걸려들었던 초등학교 동창을 홍일점으로 불러냈다. 친구들은 그녀가 헤프네 안 헤프네 그러면서 으흐흐흐흐 막 날 부러워했고, 난 결정적으로 선수를 쳤다. 뭔 말 한마디 안하고 가만 있는 녀석한테! 예의를 지키라고. 예의? 뭔 예의? 암말도 안 하고 가만 있는 녀석이 뭔 예의를? 그게 도대체 뭔 말이지? 내가 생각해도 웃긴 말이었다. 말도 안되는 말이었다. 나는 단짝을 뺐겼는데, 좋아하는 그녀도 뺐겼는데, 보험쪽 일을 하는 내게 잠깐이라도 딱 한번이라도 넘어왔던 초등학교 동창이 에고머니나! 친구들 사이에 녀석이 끼어 있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무슨 말도 안되는 트집을 잡은 셈이다. 넌 여자한테 예의 좀 지켜라 라고. 혹시라도 또 지고 또 뺐길지도 모른다며 덜컥 겁이 났으니까. 나도 모르게, 그럴 수 밖에 없었나 보다. 그러다 단짝이 내게 다시 돌아왔을 때가 아마 연말이던가, 그땐 여유롭게 녀석을 불러냈다. 내가 호인이자 대인배라도 된다는 듯이. 지금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고,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났으며, 그대가 사는 곳이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지역이다. 뭐, 뭐라고? 왠지 아쉽다. 그게 뭐야? 꽤 섭하니까 보너스 하나만 추가하자. 참고로 얘기하자면 우리 아버지께서는 목사님이시다! 냉정한 사실이 그럴 뿐. 한때 아빠는 목사님 아들은 마피아였다니, 헛 참 나! 그런데 말이야, 아빠랑 난 하나부터 열까지 하나도 안 닮았는데... 설마 그... 그 신부님이 내 숨겨진 아빠 아닐까? 아님 랍비? 스님? 주다스 프리스트를 즐겨 듣던 그 아줌마는 또 뭐고? 에잇 몰라 난 몰라! 아무튼 사실만 따져 봐도 내가 녀석을 이길 수 있는 건 정말 몇 개 안된다. 완전 무시 받는 것 같다. 녀석은 그냥 가만 있는 존재 자체가 밉상이다. 나는 대놓고 말한다. 늬랑 말하기 싫다고. 적어도 늬가 밉다 완전 꼴보기 싫다 라는 태도는 변함없다. 그럼 녀석도 맞불 작전을? 아니다. 녀석은 그냥 고고한 척 내 의견을 존중한다는 자세로 일관한다. 조용히 무대응이다. 완전 재수없다. 특히 바에서 그런다. 우리는 무조건 잘난 척, 강한 척, 센 척 하는 게 우리의 묵계다. 그것만이 살길이다. 그러면 바에서 어떻게 될까? 그런 손님 한두 명 받아보겠나. 장사 하루 이틀 하나 말이다. 반응이 별로다. 그런데 녀석은 바에서 그런다. 자기의 망가진 얘기를 한다. 사연이 있어 보인다. 소설을 써도 되겠더라. 또 바로 옆에 있는 친구를 대놓고 흉보지는 않더라도 바텐이 한 마디 하면 더없이 동의한다는 듯이 완전 웃는다. 바텐더를 쥐락펴락한다. 그러면 바텐은 또 웃는다. 죽이 완전 잘 맞는다. 술값만 날리는 거다. 나의 또 다른 나로 바꾸어 볼까? 그럴까? 노래를 부르는 자리에 가면 난 노래를 절대 못한다. 안한다. 춤도 못 춘다. 나는 바에서 가운데 자리에 앉히면 화를 낸다. 하지만 녀석은 한다.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다. 막 잘 추고 그러는 게 아니라 열심히 즐긴다. 재수 없다. 또 우리들 술값만 깨진다. 그렇게 나와 우리는 노래를 못하고 춤을 못추지만 열은 좋다. 자꾸 가자고 우긴다. 으쌰으쌰! 가면 상황은 똑같다. 악순환이다. 그렇다고 무슨 물주도 아니고. 그래서 분할해서 돈을 내는 그런 곳에 간다. 좋은 집으로 골라서 간다. 그럼 또 어떡하다 자연스럽게 그곳 인기는 녀석이 독차지한다. 완전 짜증난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다른 건 다 놔두고, 내 원래 단짝 그놈은 뭐야? 얘가 진짜 나쁜 놈이네. 간사하고 비열하고 속없고 줏대없고 교활하며 멍청한 놈. 대관절 어쩌다 넘어갔지? 뭐에 홀렸냐고! 뭐 그놈한테 마성이라도 있는 건가? 마성 좋아하시네. 순 머저리 쪼다 등신에 바보 같은 놈이 무슨. 그치만 사실이 그렇다. 난 이기는 건 드물다. 그렇다고 져주면 더 짜증난다. 심지어 단짝도 뺐겼다? 오, 저런! 그 뿐만이 아니라 나의 사랑은 선녀인데 녀석은 뭐 미녀? 참다 참다 참말로 못 봐 줄 표정 한 번 보여줬다. 나도 싫었지만 정말 어쩔 수가 없었다. 연륜 있는 아저씨들처럼 멋모르고 일찍 결혼했다, 그것도 아니고 나는 결혼 하자마자 눈이 삐었는갑다고 했다. 왜? 첫째 결혼한지 얼마나 됐다고 데이트할 때 피앙세와 친구들한테 했던 말은 거짓말이었으니까(과거형), 둘째 거짓말은 아닌데 다시 생각해 보니 그때 잠깐 착각했으니까(핑계), 셋째 또 졌으니까 완전 참패니까 하얀 거짓말이니까 비굴하니까 그래서 완전 기분 꽝이니까(임시방편). 한두 번도 아니고 절교를 하던가 해야지 이거 원, 아무래도 내 원래 단짝 그놈이 탈이구만. 괜히 이상한 돌아이를 우리 사이에 끼게 만들어가지고 말이야. 내 장담하건대, 녀석은 이 일이 절대로 처음은 아닐 것이다. 처음일 리가 없다. 상습범이다. 언뜻 돌려서 들은 풍문으로만 따져 봐도 하나, 둘, 셋, 넷, 다섯... 맞네 맞어, 트러블 메이커! 정리하면 원래는 나와 단짝만─나는 독보적 1 내 원래 단짝은 대충 1.2─그러다 새로운 물건 등장 그래서 나는 삼각형의 꼭지점이고 단짝과 허접한 밥통은 나머지 꼭지점, 그런데 한순간 구도가 역삼각형으로 바뀜? 이런, 젠장! 따라서 난 허접한 찌질이는 무조건 싫음. 혐오함! 밉고 화나고 짜증남. 그래서 교훈 하나 깨달음. 삼각관계의 시초는 사랑이 아니라 우정임! 알건 똑바로 압시다, 제발요! 이거 정말 이거깁니까? 우리 사이에 정녕 이러기예요? 우리, 정말, 이러지, 맙시다. 그게 얼마나 크나큰 진리인데 대체 드라마에서는 뭘 보여줬고 어른들이, 가짜 전문가들이, 말만 많은 아마추어 명사들이 젊은이들한테 뭘 가르쳐 준 것이란 말입니까! 우리는 대체 무엇을 이 세상에 되돌려 준 것인지요. 판에 박은 듯이 똑같은 훈계, 진부한 공산품, 엄숙한 응애응애 훌륭한 삐악삐악, 식상한 오락, 저렴한 교양, 남의 다리를 열심히 긁고서 예술, 재미도 없는데 장난, 지나고 보면 언제나 왕좌에는 쾌락! 여러분,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야 한판 붙자? 붙긴 뭘 붙어요, 사랑을 원하는데 우정과 왜 붙냐구요. 그래서,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삼각관계는 그저 사랑 또 사랑 계속 사랑 마구 사랑, 그래요 안 그래요? 네? 그러냐구요, 안 그러냐구요? 네? 그게 말이나 됩니까? 그게... 그게 뭡니까?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우리 모두... 워─워─워! 막판에 기력이 딸려서 구호를 끝까지 외치지 못했습니다. 송구스럽습니다.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겄습니다. 어디 달리 힘 쓸 데도 없구만 자꾸 때 이르게 찾아온 춘곤증이 탈이구먼유. 아조 날마다 크리스마스 이브야 그냥! 그러니까 정작 어떤 당일 되면 비실비실 맥을 못 춰. 개구쟁이 유부남들도 그래, 밖에서 힘을 쓰니까 집에 오면 비실비실하다구. 바람둥이는 늙고 돈 떨어지고 힘 빠지면 둥지로 돌아오는 법이죠. 안 그렇습니까? 형씨들, 소 잃고 외양간 고치지 말고 미리미리 내 사람들과 사랑과 행복과 온정을 챙기시유. 알겠소? 소 잃고 나서도 정신 못 차리지 마시고. 입만 살아서 저게 뭐냐 그건 뭐냐 이건 뭐냐 이러쿵저러쿵 하시지 마시고. 의욕이야 좋습니다만, 난 정작 기본도 지키지 않고 제멋대로에 1.5를 어떻게 하면 허접하게 깔아뭉갤 궁리나 하고 2군을 천시하면서, 그럼 못 쓰죠. 그럼요. 우리가 원시적으로 끝끝내 관철해야 할 것은 저 후자의 본성, 곧 세련된 야만성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최악의 상황에 본능적으로 대비하는 동물성이라오! 만에 하나 머머하면 어떡하지, 기본 또 기본 다시 기본, 우선순위와 메트로놈 같은 것 말이오. 학교에서 배우는 과목을 어릴 때 괜히 배우는 게 아니란 말이외다.
와우~! 천상 내가 최고란 말이군! 오오 지존이시여, 놀랍다 놀라워. 이제부터 친구도 어느 누구도 모두 황태자로 떠받들겠음. 모진 풍파를 겪고 험난한 고난을 이겨내서 신세계에 도달하지 못했을지라도 저런 경험을 정말 많이 한 트러블 메이커, 질투를 아주 많이 받아 본 여자, 세상을 알고 인생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은 이와 같은 서사를 절절히 공감할 수 있다. 때문에 바로 그 농담에 더없이 쾌활함을 금치 못한 채 왕왕 떠올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연예인 싸움 순위 10걸에서 뜻밖의 1등이 나일 줄이야, 세상에나! 어제도 2위 그 인간이 내 꿈에 나타나서 우리 집 문을 두드렸어요. 뭐 한 판 뜨자? 뜨긴 뭘 떠! 나 안 떠. 기권! 어떤 작자...아니 어느 분께서 순위표를 작성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패를 주라는 듯이 탁자를 똑똑) 존말 할 때 제 이름을 1위에서 내리라고, 10위권 저 밑으로 내려달라고, 아예 후보에서 깨끗이 지워달라고 호소하는 농담에 대해서 그분들은 도저히 만점을 부여하지 않고서는 못 배길 것이다. 그런데 말이야, 다시 생각해 보니 그건 어쩜 농담이 아니라 혹시... 설마 진담 아니었나? 그러지 않았을까? 그럴 수도 있겠다. 이제 보니 바로 그래서 그렇게 웃겼던 것이로군. '머머한 척'이 아니라 진짜 머머한 거였으니까. 아직도 거듭 헷갈리게 됨.
진짜로 딱 하나만 더. 진짜 마지막. 무릇 남자가 이와 같은데, 그럼 여자는? 독자 양반, 긴말 필요하겠습니까! (다 그렇진 않겠지만) 어느 여인은 이렇게 말한다. 다음 생에 만약 인간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나는 꼭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고!
from 소설
2017. 12. 31. 23:51
1 일상에서 익숙함이 좋고 만사가 귀찮다면 현실 안주다. 그 방향에 따라 도피와 회피도 있고, 머머증과 만족과 권태도 있다. 또 동네에서 일하고 놀다 지치면 여행을 간다. 시간과 경비가 부족하면 못 가고. 하지만 평범함에 물리고 지루하고 심심하면 스스로 새로움을 찾아 발 벗고 나서야 한다. 그 새로움에는 후보군이 많다. 모험, 이사, 이직, 도전, 변심, 변덕, 만남과 이별, 취미, NC, 직업을 바꾼다 등등. 그러나 환상은 노상 뜬구름 잡는 얘기고, 신비는 몽상가들의 단꿈에 불과하며, 사랑을 돈으로 사는 건 쉽지도 않고 도덕-소문 같은 허들의 문제도 있고 재미도 없다. 일단 판돈이 넉넉치 않은 것이다. 그래서 최근 왠지 호감 가는 새내기 유명인 1명에, 그다지 유망 없고 흥미도 떨어진 취미 2가지, 한때 촉망 받았지만 여심을 빨아들이는 기운이(약발이?) 떨어진 수트 3벌을 교체할 것인가? 이때 귀찮으면 처음으로 돌아가는 거니까 뫼비우스 기하학이고, 망설이면 햄릿이요, '뭐가 뭔지 왜 그런지 나는 모르겠다' 그건 늙은 거다. 따라서 젊음의 여신 헤베는 아마도 이렇게 처방하시지 않을까? 고민과 성과는 동의어가 아니고, 아무리 귀가 얇은 사람일지라도 첫눈에 반하는 최고의 사랑은 알아보는 법이니, 고로 에라 모르겠다 라면서 과감히 결정하여라 씩씩하게 실행하거라 라고! 그런데 문제는 그것이, 가슴이 두근거리고 마음이 떨리며 영혼이 설레어서 코끝이 찡하며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시원해지는 사랑이라면 차라리 낫다. 왜냐하면 언제, 어떻게, 왜인지도 모르게 발목 잡혀 끝끝내 포기할 수 없는 열정이랄지 어떤 괴로움의 실체를 본인도 모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럴 땐 쉽게 생각하는 게 상책이다. 잠, 휴식, 꿈, 게임, 오락, 여행, 술, 만남, 산책, 운동, 일광욕 등등. 그렇게 시간을 번 결과 조지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는 행복한 일하기 대신에 바로 판타지 머신을 구입한 것이다. 아직은 알 수 없었다. 그게 다행일지 화근을 불러올지를. 마음의 문을 열지도 못했고 닫지도 못했다. 젊음의 행진을 나 혼자 할 수도 없으니까 사긴 샀는데, 잘 산 건지 확신할 수 없었다. 무슨 머신? 속은 건 아닌가 걱정됐다. 괜히 혹해서 말이야, 그 돈이면... 그래도 아직은 몰랐다. 비밀의 리본을 풀었더니 내용은 미지. 미지를 애써 파헤친 결과 마주한 건 기막힌 사연. 그 사연이라는 것은 두 가지. 첫째 환상적인 사랑, 둘째 신기한 인생 이야기. 그 첫째와 둘째 사이에서 오도 가도 못할 때 조지는 환상머신을 운명처럼 만난 것이다. 조지가 그것을 구입하게 된 경위는 이랬다. 정결한 미술관에 갈까 한적한 강변도로를 신나게 달려 볼까, 라면서 드라이브를 하던 중 별다른 결실 없이 마음이 바껴서 집에 돌아갈려고 했다. 집에 거의 왔다. 외곽도로에서 빠져나왔다. 그런데 갑자기 웬 늘씬한 아가씨들이 일렬로 여러 명이서 동시에 손짓을 했다. 달콤한 미소, 오빠 멋져, 아빠 뭐해? 쉿! 친근감이 활짝 샘솟게 만드는 숙녀들의 안내로 그는 갓길에 차를 세웠다. 그곳에는 무슨 연예기획사 차량과 영화에나 나오는 뭘 탐지하는 특수 설비가 갖춰진 벤차량. 그리고 방송사 장비처럼 보이는 기구를 실은 트럭까지 주차되어 있었다. 굉장히 멋져 보였다. 뭔가 있는 듯 했다. 일단 분위기로 압도했다. 거기서 누가 봐도 눈이 호강하고, 귀가 호사를 누리며, 감성이 촉촉해지고, 감수성을 자극하여 호기심에 한껏 (헛)바람을 주입하는 듯한 감탄스러운 웅변술이 장기인 대장으로 보이는 듯한 상인이 나타났다. 대꾸할 틈을 주지 않았다. 무슨 인간이 만든 최고의 인공지능이라는 둥, 정신 수양에 도움이 된다는 둥, 아마도 불가능하고 초현실에 기적적인 일만 아니라면 그 무엇이든 새로움을 경험할 것이라고 했다. 무엇을 상상하든 상상 이상일 것이라고. 어쩌면 환생을 경험할지도 모른다며 썩 기품이 떨어지지도 않은 펌핑? 동기 부여는 계속됐다. 게다가 상품 설명은 설득력이 있었고, 심지어 아가씨들과 장비와 한껏 고조된 조지의 기분이 그 모두를 엄정한 사실일 것이라고 증명하고 있었다. 어떻게? 밑져야 본전이라고! 그는 그렇게 약간 찜찜한 심정을 숨긴 채 판타지 머신을 구입했고, 그 소프트웨어를 들고 집으로 갔다. 컴퓨터에 잘 설치되면 다행이고, 순 엉터리로 밝혀지면 내 이것들을 당장 달려가서... 그냥 사교계에서 작은 내기에 진 셈 치기로 했다. 그처럼 별 기대는 없었다. 처음에는 그랬다. 뭐 특별할 게 있겠어 라면서. 그렇게 시작은 미약했다. 그러나 시작도 미약했다 라는 예감을 잠재우기 위해 그는 그날 일찍 꿈나라로 떠났다.
2
조지는 다음 날 컴퓨터에 환상머신 소프트웨어를 설치했다. 그건 포토샵이나 구글어스를 설치하는 것과 똑같았다. 하나도 어렵지 않았다. 다 설치한 후 하라는 대로 했다. 최대한 많은 정보가 필요하다고 하니까, 최대한 많은 정보를 입력했다. 운영하는 소셜 네트워크 계정도 알려줬고, 블로그 주소도 입력했고, 인터넷에 올리지 않은 사진들도 넘겨줬다. 바지만 벗지 않고 다 내줬다. 그런데 그 수많은 정보를 받은 채 환상머신은 아무런 대꾸가 없었다. 주인님, 나체의 숙녀를 원하십니까? 라는 농담조차 건네질 못했다. 그래. 녀석은 좀 멍청했다. 조지는 멍청한 건 나 하나로 족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TV를 봤다. 그래도 뭔지 모르게 미심쩍은 기묘한 느낌은 쉽사리 가시질 않았다. 환상머신은 새로운 행복과 문학적 열정을 이간했다. 아, 그건 아직이고 희망 사항이다. 그는 궁금했다. 환상머신은 누가 만들었을까? 창립멤버는 누구일까? 사용자는 나뿐일까? 설마 아직 상용화 이전 단계는 아닐까? 이건 혹시 너무 과분한 행운일까? 그렇다고 헛된 성적 공상마저 창조적 상상력으로 바꾸어 줄 수 있는 건 아닐까? 과신하든 무시하든 시험은 해 보면 된다. 녀석이 3일 기다리라고 했으니까 기다리기로 했다. 그건 그렇고, 조지로 말할 것 같으면, 특별할 건 없다. 그는 놀이를 사랑하고 무질서를 싫어한다. 이따금 으쌰으쌰는 즐겼다. 풋사랑은 후회스럽고 인기는 자랑스러워 한다. (그런 분께서 왜 그리 주말이 한가하실까) 비둘기에겐 친숙함을 올빼미에겐 경이감을 느낀다. 방탕했던 친구가 앞으로 건전한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소식을 전해 주자 그는 피식 웃어 주었다. 행복을 기원해 주었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슬퍼 보이더라. 오오 가여운 것! 결혼은 신나는 모험과 놀라운 새로움의 종말이란 말인가. 하루는 벌꿀 때로는 나비 대체로 베짱이. 자못 엄숙한 마법사들을 바라보는 부러운 눈길을 마누라한테 들키면 안된다. 절대 안된다. 그러면 혼나니까. 왕년에... 뭔가가 울컥하겠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어쩌다 꼴깍 마른 침이 넘어간다. 그러니까 어째서! 그는 지금까지 첫키스를 한번도 해 보지 않았고, 난생 처음 한두 번 거짓말한 게 전부였으며, 그의 추리는 지금까지 빗나간 일이 한번도 없었다. 그런데 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것일까? 노스트라다무스를 훨씬 능가하는 예언가라고! 왜냐하면 너무 유명해지면 은근 피곤해진다는 걸 잘 알기 때문에 그는 여태까지 꿋꿋이 허당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라고 스스로 해명하고 다녔다. 그러니까 그 쓰잘 데 없는 심정을 누가 알고 싶어 한다고! 조지는 기다리기 지루해서 지난 날을 회상했다. 한때 조지는 단짝이 그럴 줄만 알았다. 바람의 변화를 예언하며 지성을 버겹게 가득 안고 고뇌하는 지략가 정도 되는 줄로. 하지만 말만 그랬다. 그러다 외로운 시기가 돌아왔다. 길지는 않았다. 방황도 했고 다시 봄이 찾아왔다. 또 다시 단짝이 생겼다. 사랑은 아직일 테니까. 녀석은 '나폴리를 보고 나서 죽어라!'라는 말에 동감하는 평범한 여행가가 되는 건 무엇보다 내키지 않기 때문에, 그래서 여행을 사랑에 비유하는 달변가였다. 멋진 여행지를 다 직접 가 봐야 하는 건 아니듯이 모든 여자와 포옹을 해야 하는 건 아니라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역시나 걔도 허당이었다. 그래서 단짝은 또 바꼈다. 새로운 친구는 그랬다. 광고를 믿고, 외모에 매료되며, 목소리에 끌리고, 지성과 애모로 가득찬 웅변술에 감탄하는 소문의 여신 클리오. 그런데 그건 단짝이 아니라 본인이었다. 조지가 친구들한테 대체 뭘 배웠겠나, 이번엔 허세 따라하기 차례였다. 자평하자면 불세출의 카사노바가 확실하나, 전설적인 팔랑귀를 타고났기 때문에 고개 숙인 난봉꾼 그분은 혹시 내가 아닐까 라면서 걱정됐다. 그래서 자화자찬만 할 게 아니라 사태를 객관화 해 봤다. 그랬더니 아 글쎄, 여기서 중간은 건너 뛰자. 그런데, 그분의 바람기는 어떻게 잡혔을까, 현대판 파마 때문에? 아니다 아니다! 간당간당 언제나 부족한 품위 유지비, 넘쳐나는 오락과 유희는 물론 바카스와 큐피트를 비롯하여 맡아야 할 역할은 너무나 많고, 그래서 현실적인 제약 때문에 마음을 고쳐 먹었기 때문이다. 굳이 모든 여심을 하필 바쁜 내가 친절하고 사려 깊게 어떻게 한번? 다큐멘터리를 보면 되지 구태여 나까지 주인공이 될 필욘 없다. 자동차 1대, 가방 2개, 양복 3벌, 속옷 5개 양말 7켤레면 충분하다. 그거면 된다. 구두 100개 선그라스 200개? 귀찮다. 정신 사납다. 비오는 날이면 나는 RV차를 타 라는 친구의 말도 이젠 시큰둥하고, 내가 중세의 왕일지라도 애첩을 총애하는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넌 아직도 그렇게 한심한 상상이나 하냐? 소신 있네. 지극정성이다. 열 좋아. 그러나 소셜 네트워크의 소란스러움을 다 따라하지 않아도 괜찮다. 핸드폰 연락처 3000명과 다 친하지 않아도 된다. 모든 여자를 다 사랑해야 하는 건 아니다. 그럴려면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할 것이다. 어차피 못하니까 합리화하는 게 아니다. 꿈의 포기도 아니다. 기본은 철들면 안돼, 그것이지만 시간과 장소에 따라 사랑과 흑심과 소망을 구분하겠다는 거다. 바로 그래서 어느 돈 주앙은 학자랄지 예술가가 되어 블로그를 운영한다더라? 아니다. 다 아니다. 조지는 피앙세에 대한 사랑 때문에 생애 처음으로 구름 위를 걷는 듯 했으며 꿈과 현실을, 환상과 통장 잔고를, 미지의 신비와 한심한 술버릇을 잘 분간하지 못했던 것이다. 참말인지 뻥인지는 지켜봐야겠지만! 헛생각 충분히 했고, 기다렸던 3일 후가 되었다.
3
조지는 카페에서 혼자 차를 마셨다. 짝 1, 2, 3이 보인다. 관찰했다. 왜 짝1은 여자가 전망 좋은 자리에 앉았을까! 혹시 남자가 그녀한테 첫눈에 반해서? 그는 예측했다. 왜 짝2는 하필 여자가 벽을 보고 앉았을까! 시작부터 그이한테 홀딱 빠져 좋아하지도 않았고, 가능하다면 이 연애는 비공식이고 싶어서? 억측이기를. 곧바로 이어서 그는 추리했다. 짝3은 보아 하니 할 말이 별로 없어 보이네. 사랑이 식었구만. 어설픈 가정일 수도 있지만, 왠지 저 남자는 의리 있고, 여자는 신망이 두터워 보인다. 그리고 짝4의 경우는 부러웠다. 눈을 뗄 수 없는 연정. 좋을 때다. 그치만 조금만 지나 봐라! 쓸데없는 추론은 그만하자 라고 생각했다. 환상머신 때문에 조지는 카페에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카페에 앉아 내부의 분위기도 살피다가 창 밖의 풍경을 구경하다가, 무엇보다 여자 보기를 돌맹이 보듯 하다가 노트북에 글을 쓰는 게 무슨 어려운 일은 아닐 테지만, 그는 그 일이 그렇게나 어려웠다. 왜냐하면 언제 글이 써 질지 그걸 몰랐기 때문이다. 그게 무슨 혼자만의 특별한 재주는 아니지만, 그는 이상하게 느낌이 와야지만 글이 써졌기 때문에 직업에 걸맞지 않게 필력은 초라하고 행색마저 궁색했던 것이다. 그런데 마침 우연히 만난 환상머신 때문에 그는 마침내 카페에서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녀석이 하라는 대로 하기만 하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실전엔 돌입하기 전이었다. 그때 환상머신이 말했다. 소리는 크지 않았다. 주인님이라며 존칭을 쓰지도 않았다. 친한 친구처럼 막 불렀다. 야 조지, 그렇게. 그래서 조지는 일단 녀석한테 이름을 붙여주기로 했다. 뭐라고 부르지? 아프로디테? 너무 길다. 비너스? 식상하다. 아도니스? 남자다. 아르테미스? 그 보다는 신식이 좋겠다. 에잇 모르겠다. 그냥 애인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애인은 그랬다. 품위 유지비가 필요하냐고. 때가 되지 않았냐는 거다. 듣고 보니 때가 됐다. 환상문학 잡지 미스테리아에 또 칼럼을 기고할 때가 된 것이다. 하지만 그쪽에서 요청이 없었다. 조지가 먼저 연락하기에는 뭔지 모를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어떡하나 고민하고 있었냐며 애인이 말했다. 그런 조지의 마음을 투명하게 엿보았을까? 애인은 편집장 마라의 친구 중에 여성잡지1과 2에서 활약하는 친구라며 연락처를 알려줬다. 당연히 그 친구들도 편집장이었다. 애인은 조지가 그다지 썩 말을 잘하지 못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소셜 네트워크로 간략히 어떻게 어떻게 물어보라고 알려줬다. 그랬더니 금새 원고료가 선입금되었다. 게다가 그건 미스테리아 원고료의 2배였다. 완전 짭잘했다. 아 그런데 글을 어떻게 쓰지? 조지의 고민은 한방에 해결됐다. 왜냐하면 애인이 도표로 작성해서 상을 차려줬기 때문이다. 단어 목록, 2개 단어 즉 숙어들, 관용어, 속담, 비유, 문장등 자료를 쭉 나열해줬다. 조지는 그걸 숨은그림찾기나 그림 맞추기처럼 잇기만 하면 됐다. 다 차려진 잔치상에 숫가락만 올리면 되는 일이었다. 도대체 이 일을 어떻게 해낸 건지 꽤나 신기했다. 그는 일단 정신없이 글을 써서 잡지사에 보냈다. 길지도 않았다. 오히려 짧고 발랄하며 산뜻하다고 그쪽에서는 좋아했다. 아무튼 조지가 새로 쓴 칼럼은 무엇인가 읽어보자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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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허당 인생론 유난히 기억력이 뛰어나고 남달리 거짓말을 잘한다? 허언증1기! 거기서 멈추지 않고 이상할 정도로 농담에 일가견이 있다? 허풍꾼! 주위에서 말한다. 재주가 아깝다야 작가 한번 해 봐라. (나도 친구 중에 시인 한명 있으면 좋겠다, 코메디언에 도전하는 건 어떠니?) 그래서 노력과 끈기와 열정은 부족하나 그냥 한번 해 봤어, 그랬더니? 삼류도 아니고 유명해져서 돈도 벌고 막 광고도 찍고 드라마에도 곧잘 나오네, 와 대~박! 그렇게 시간이 지나서 전성기는 지나고 시대에 갇혀서 박제된 천재는 글이 안 써지네? 후유증! 왜냐하면 한때 신세계를 봤고 이제는 누가 찾지도 반기지도 않는 허세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 되어 링에서 끌려내려왔기 때문에. 따라서 이제부터 측정할 수 없는 허영심이 측량할 수 있는 허당기를 본격적으로 먹여살려야 하는 시국. 내 이럴 줄 알았으면 제발로 내려갈 걸? 우리는 철들면 안됨! 그래서 분야를 바꿔, 화가나 작곡가로. 허나, 첫술에 배부를 수 있나. 잘 안돼. 반응 별로. 종목을 다시 바꿔. 사업가로. 그래서 번 돈 절반을 까먹어. 그 돈 버느라 지금까지 어떤 역경을 감내했는데! 허나 인생의 풍파를 이겨냄. 다시 일어서. 그래서 영화감독이 되어서 영화판에 뛰어들지. 어? 뭐야? 이거 뭐냐고! 일도 재밌고 돈과 인기는 덤으로 따라오네? 이때 적절한 속담은, 배 들어올 때 노 저어라! 그런데 노 저은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물이 빠지네. 그러나 때 이른 실망은 금물. 왜냐하면 물이 다시 들어왔으니까. 전문가들이 찾고 투자자는 줄을 서고 팬들도 막 기다려. 아아, 내가 정말 인생을 헛살지는 않았구나! 라고 깨닫지. 그렇게 새로운 시네마 탄생 짜잔~! 결과는 썩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뭐 그런대로 선방했다고 자평. 그래서 다시 허세는 꿈틀꿈틀 꼼지락꼼지락. 따라서 애초의 연애시, 처음의 꿈이었던 코메디언이랄지 작가로 재기하기를 결심. 은퇴 선언을 한 적이 없었는데 자연스럽게 은퇴 번복. 오락산업의 헤드라인은? 누구 뭐를 들고 돌아오다! 그런데 결과는, 누구도 갔네 갔어! 뒷모습이 글쎄 애매해짐. 모양새마저 어중간함. 심지어 이혼까지 당하면, 그건 개인사니까 쉬쉬! 오오 세상이 원래 이런 건가? 시장에서 이용당한 다음 버려진 건 아닐까? 토사구팽 뭐 그런 말처럼. 결론은 이렇다. (딱) 승자는 산업, 낙천가는 관객, 패자는 단물 빠진 복고풍 유행 선도자. 너무 식상한 패턴인가? 어쩐지, '뭔가 있어 뭔가 있어'로 시작했지만 결국 재미없음으로 종결. 그러니까 뭐가? 허당의 인생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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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또 일기를 썼다. 아동기, 유년기, 소년기, 몽정기, 사춘기 때 거의 쓰지 않던 일기를 왜 이제야 즐겨 쓰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조금은 재미있기 때문에 또 참을 수 없어서 일기를 썼다. 일기. 12월 26일. 친구를 만났다. 만날 때마다 느낀다. 꺼림직하고 싫지만 사랑도 남남도 아닌 하필 우정이니까 또 넘어간다. 그러니까 뭘 느꼈냐? 마초에 대한 연민이라고나 할까, 그분들께 그동안 참으로 어렵게 벌었던 깨알 같은 친밀감 점수, 속된 말로 개고생해서 얻은 사연 깊은 점수 다 까먹게 생겼네. 어쩌면 이건 그것의 정반대 되는 경우에 해당할지도 모르겠군.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쓴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이미 아는 지식일 테지만 뭘 다시 각성했는지 자, 지금부터 그걸 알아보자. 성격을 보아 하니 아아, 도시에서 자란 숙녀들의 사랑을 받지 못했던 사내로구나. 더구나 시골에서 자랐으면 친구들끼리 비교적 허세와 과시욕에 유독 민감했을 텐데, 하고 싶은 일이 많았던 젊은이의 열망은 잊혀지고, 직업이랄지 어른의 임무에 이르르기까지 순수했던 동심이 대망이나 행복감으로 충분히 연결되지 못했다고 느끼는군. 그건 둘 중 하나. <자발형 허당이던가, 재미없는 조롱꾼이던가> 바에 가면, 한 명은 말을 많이 하는데 반응이 안 좋고, 한 명은 오직 침묵으로 일관한다. 마담 입장에서 별로 반갑지도 달갑지도 않은 손님이다. 그분께서 비싼 술 한번 시키는 걸 보는 게 소원일 지경이니까. 3병맨이라고 소문나서 옛날에 바도 끊었다. (똑같이 3명 마시고 가는데 왜 얘만? 제게는 묻지 마세요! 혹은 바텐더 맘대로) 개가 뭘 끊겠나, 고양이가 생선을 마다하겠나, 내 집이 술집이고 인생은 술이다. 고품격-고전주의-상류층 기질은 1퍼센트도 섞이지 않은 완전무결한 촌닭. 그걸로는 순수하군. 만약 시트콤처럼 남자들과 여자들과 어울려서 적당히 친하고 모두 아는 사이다, 그랬을 때 내가 불균형적으로 심각하게 인기가 높다? 질투한다. 싫어한다. 경계한다. 짜증난다. 겉으로 표시내진 않는다. 다만 때를 엿볼 뿐. 친하기는 하지만 언제 뒤집을지 모르는 카드다. 가만 있는 존재 자체가 마음에 안든다. 밝은 말을 하면 그런다. 누구야 (손짓 몸짓) 어떤 도덕군자를 어쩌고저쩌고! 건실한 얘기가 아니라 으쌰으쌰 어울린다. 그럼 또 꼬투리 잡고서 여자들한테 그런다. 이러쿵저러쿵 쟤도 뭐 어쨌다고 쏙닥쏙닥! 그렇지만 다행스럽게 시트콤 멤버가 아니다 라고 할지라도 심기가 불편할 때가 언제냐, 하면 당연히 바텐더한테 평가 받을 때! 남자끼리 어울릴 때가 아니라 언제 표정이 가관일 것인가 예상하는 건 식은 죽 먹기다. 서로 적당히 거리를 두는 게 속편하다. 얼렁뚱땅 건들건들 듬성듬성 만나는 것, 그게 피차 상책이다. 편한 대신 격이 떨어진다. 맞춰줄 수 밖에 없으니까. 둘 다 경미한 사이코머시기 기질 있음. 전문가와 내기 하면 내가 이김. 자신 있음.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지는 건 지는 거다. 우리 아들은 본성이 낙천적이죠? 완전한 호사가에 완벽한 비관주의다. 인생 표어는 그거다.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면 된다! 우리 오빠는 결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에이, 알면서! 촌닭에게 최고의 배필은, 그렇다. 촌년이다. 여자들에게, 그분은 전형적으로 인기 없는 남자. 도도한 숙녀가 좋아할 리가 있나. 그건 뭘 아는 남자들에게도 마찬가지. 어쨌든 촌닭도 다 같은 촌닭이 아니다. 절대 아니다. 설혹 고상한 여인과 사랑에 빠졌어도 나중 이혼하거나, 또는 뜨뜻미지근하게 결혼의 감옥에서 좌절할 수 밖에. 허풍도 기준 미달. 동조성도 심각한 결여. 농담도 깐족도 아부도 싹 다 그만그만하니, 아 바로 그래서 숙녀들의, 특히 도시에서 자란 숙녀들의 사랑을 받지 못했었구나. 시골에서 자랐을지라도 성미 마르지 않고 여심을 배려하며 꽃 들고 쫓아다니기를 안다면, 무엇보다 성정이 밝다면 도시에서 자란 숙녀들의 한결 같은 사랑도, 뭘 아는 남자로부터 다정한 우정도 얻던데. 내 다른 친구도 이제 보니 바로 그래서 미녀를 얻을 뻔 잘될 뻔 하다 말았다. 당사자에겐 아픈 기억이지만 단짝이라면 말할 수 있다. 함께 했던 추억에 대해서. 말해도 된다. 우정에 있어서 단짝으로 상중하에서 상중, 적어도 상하는 되니까 하는 말이다. 그게 다 타고난 천성 때문. 혹시 운명의 굴레 때문일지도. 살아온 여정과 현실 사정 알고 나면 끄덕끄덕 수긍하게 된다. 만인에게 웃음을 선사해야 한다는 코메디계에서도 어느 개그맨이라는 작자는 연애로 대화 주제가 바뀌면 인상 험악해진다. 기분 꽝이다. 표정 망가진다. 울기 직전이다. 차마 못 봐주겠다. 평소에는 고급이든 저급이든 타인의 사생활이든 가리지 않고 촉새처럼 인정사정없이 마구 말하다가도, 듣거나 말거나 막 떠들다가도, 입에 침이 마르지 않을 정도로, 물에 빠지면 입만 둥둥 뜰 것처럼 타석에 들어서기만을 좋아하면서도, 유난히 연애와 사랑이라면 유체이탈의 경지에 이르른다. 그 주제 자체가 싫으니까. 내가 좋아하는 구미 위주로 도시에서 자란 숙녀들에게 충분히 사랑 받지 못했으니까. 진짜 그러냐구요? 그렇죠. 왜냐하면 좋은 말로 지고지순한 사랑만 한두 번 한 게 다고, 신중하기 퍽 애매한 말로는 연애 경험이 영 변변치 않으니까. 보면 천상 허풍꾼이지만 난봉꾼엔 소질도 취미도 취향마저 없는 걸로도 모자라 전적까지 비천하니까. 입만 열면 뻥이니까. 그 주제는 너무나 싫어하기 때문에 내가 나설 수 없으니까. 실제 주위에 보면 무성애자 같은 심각한 사례도 매우 드물게 있다. 어느 선을 넘지도 않고 에로비디오 정도만 어떻게? 한마디로 건강한 거다. 숙녀와는 라이트모티브를, 무대에서는 조명을, 그런데 언제 어디서나 내가 최고에 나만 주목 받아야 한다? 빅토르 위고의 웃는 남자를 비롯한 몇몇 정치색 짙은 소설을 읽지 않은 정치인과 별반 다름없다. 그래도 그분들 모두 중간은 간다. 그러나 중간만 간다. 지금까지 평생, 앞으로도 내내, 오직 잔지식만이 살길이다. 잔지식이 아니라 심도 깊게 얘기한다? 뚜껑 열린다. 잔지식이 아니라 서론-본론-결론을 따진다? 화제를 재빨리 넘긴다. 잔지식이 아니라 전문 지식을 늘어놓는다? 당장 화낸다. 늬나 나나 아는 것 똑같지 뭐 그러냐고. 내가 좋아하는 것과 내가 하고 싶은 일이 공통적이면 친구고 아니면 남이다. 그래서 친구는 많은데 그냥 그런 친구만 많다. 선천적으로 완벽한 촌닭이다. 고로, 답이, 없다!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1번 2악장? 짜증낸다. 내 지식보다 친구 지식이 높다? 화낸다. 내가 새롭게 좋아하는 분야를 걘 이미 옛날에 뗐다? 뚜껑 열린다. 말을 바꾼다. 자기 얘기가 아니라 먼 친구 얘기라고. 얘기 길어질려고 하면 우긴다. 어렸을 때 봤던 안데르센의 동화 빨간구두를 온화하게 각색한 만화영화 얘기가 나온다? 지금 당장 몇몇 분께서는 내가 꺼낼 애드립이 생각날 것이다. 누군가 하면 안델센과 발음이 얼추 비슷한 앤더슨을! 귀는 막히지 않았는데 듣고 싶은 대로 듣고, 보고 싶은 대로 본다. 앤더슨은 머머스키처럼, 머머스탄으로 끝나는 지역명처럼 꽤 흔한 이름이다. 축구하는 앤더슨, 격투기쪽에서 떠오르는 앤더슨도 있고, 야구하는 앤더슨과 아이스하키의 전설도 있을란가 모르겄다. 맞다. 진짜 그런다.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아는 유명한 단편소설들 있지 않나, 그쪽으로 주제를 꺼낸다면 표정으로 말할 것이다. 지금 그 얘기를 대체 왜 하는데, 대관절 왜 그 얘기를 나한테 하나 이 친구야! 라고. 그 모두를 친하면 알게 된다. 때문에 친해서 좋은 게 있고, 동시에 거리가 있어서 좋은 거도 있다. 마음 맞고 말이 통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 좀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이게 다 투정과 불만에 따른 글이라기보다는 웃자고 하는 말이긴 하나, 그래도 좀 심한 구석이 크다는 거다. 안 그렇소 여성 여러분? 체면 내려놓고 말해서─까놓고 말해서(?)─내 말이 틀렸소? 이거 진짜 한번 속고 두번 속고 셀 수 없이 속고 또 속기만 하면서 살아야 합니까? 대체 이게 뭡니까, 네?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우리 모두, 들고 일어섭시다? 워─워─워! 그렇지만 아직 안 끝났다. 더욱이, 뭐가 그렇게 바쁠까? 그렇다고 리드하면 잘 따라오지도 못하고 길을 잃다가 결국 일행과 멀어져서 찾기를 포기하고 아니 아예 찾을려고 생각도 않고 혼자 집에 들어가서 잔다. 여자한테도 그런다. 그렇게 말한 것처럼 행동한다. 잔말 말고 따라오라고! 아 답답~허다! 답이 없다. 그렇다고 요리에 취미가 있나, 돈이라도 많나, 싸이 톰블리를 이해하나, 동물의 마음을 공감할까 프시케의 사랑 이야기를 알기를 하나. 머릿속에는 오직 무슨 생각뿐이다? 그렇다. 두말하면 잔소리다. 그래서 혹시 형편이 풀려 좋은 동네로 이사를 가더라도 말을 많이 하면 안된다. 근사한 사교계로 진출한다 할지라도 말을 많이 하면 안된다. 말을 많이 하면 정체가 탈로난다. 홍학과 백조와 기러기들 잔치에 촌닭이나 오리 몇 마리가 합류하는 상상을 해 보자. 멋지겠군. 재밌겠다. 아름답겠지 아마? 하여 중요한 자리다 싶으면 절대로 말을 많이 하면 안된다. 동네 챙피하게... 그렇게 될지도 모르니까. 어설프게라도 어떻게 뻔트 한번 칠려다가 2부리그 3부리그까지 밀려날 수 있으니까. 이러쿵저러쿵 구설수에 오르는 일은 특히나 조심해야 하니까 말이다. 펠리컨도 갈매기도, 대중이 이뻐서 봐 주는 게 아니구나 라며 일찍이 깨닫는 게 아니라 애초에 포지셔닝을 그처럼 잡았던 것이다. 원래 성격도 본성도 그렇다. 그래도 살면서 왕왕 느낀다. 말 한번 잘못하면 큰일나니까 묵비권을 조랑말처럼 꼭 대동해야 한다고. 그렇더라도 무뎌진다. 남이 뭐라던가 말던가 인생 직진이니까. 그럼 입이 근질근질해서 어떻게 살까, 다시 낙향할지도 모르겠군 그래. 그거야 당사자 알아서 하실 일이고 아무튼, 만약 이런 남자가 드물게 천문학적인 부를 성취하게 될지라도 그분은 첫째, 인기 없다. 앞에서야 굽실굽실 딸랑딸랑일 테지만. 야 야 떴어 떴어 또 왔어 또 왔어 피해 피해. 고개를 돌릴 수 있는 사람이 부러움을 받을 수도 있음. 둘재, 재미없다. 어쩌다 재미가 있어도 금새 허당임이 들통난다. 떡 줄 사람 생각도 않는데, 난 유명해지고 싶은 마음이 없다고 한다. 셋째, 썩 행복해 하지 않음. 비운의 뉴스는 즐겨 봄. 그건 그분께 변치 않을, 영원한, 최고의 취미다. 이에 대해 사람은 크고 작냐의 차이만 존재하긴 하지만 아아, 심하다. 넷째, 사랑에 불만족. 뭘 좀 아는 남자나 여자가 좋아하는 제반 여건이 되는 남자도 그런다. 으쌰으쌰 자리에서, 멋 모를 때 결혼했다고 쩜쩜쩜! 그게 아니라 자발이나 조롱 유형의 친구는 그런다. 자긴 사랑에 만족하는 듯 하지만 속마음은 다르다. 나보다 친구가, 돈이 많네? 잘나가네? 인기는 불변하네? 여긴 내 홈그라운드인데 남의 동네에 와서 대물을 잡네? 친구 여자친구가 어쩌네? 천성이 밝던가 인정할 건 인정하던가 그렇지도 않고, 그저 꿍하니 자기는 비교는 싫다면서 자기는 허세와 과시욕이 싫다면서 자기도 그러고 싶어한다. 잠재적으로 좋아하지 않았던 부류처럼 되고 싶어하고, 살면서 운이 따라주면 실상 그렇게 된다. 만약 그렇게 되면 싫어했던 타인의 행동을 정확히 답습함. 싫었다면서 왜 모방을 하냐고! 더 심하지나 않을런지 걱정이군. 평범한 택시 운전수가 왜 악덕 사장이 된 사례가 드물지 않았는지 약간 알 듯 모를 듯 하다. 즐겁고 신나고 재미있을 때도 있는데, 그런데 그런 순간은 짧다. 많이 짧다. 금방 있는지도 모르게 쓰윽 지나가버린다. 어쩌면 사고 체계와 행동방식이 그에 최적화되어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일할 땐 놀 생각, 놀 때는 으쌰으쌰니까. 만일 부러움을 비난으로, 선망을 비관으로, 내 호박과 친구 호박을 견주는 게 보이는데 아는데, 그런데 속마음이 비춰지는데도 짝을 동반해서 만난다? 미안해서라도 그러면 안될 것 같다. 실제 그래 봤더니 진짜로 미안하더라! 아주 많이. 아아 제발 오오 이런 젠장, 그걸 바란 게 아니었는데! 그래서 일부러 남의 여자는 쳐다보지 않는다고 말하는 남자도 있다. 하지만 TV에 나오는 여자들 태반이 남의 여자인데? 아예 그냥 고개를 들지 마시지, 아예 그냥 산으로 수도원으로 들어가시지 그래. 뭐야 잠깐. 자기는 남의 여자는 쳐다보지 않는다? 그러니까, 어째서? 왜 안 쳐다보는데? 사심없이 그냥 언뜻 볼 수도 있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살짝 쳐다볼 수도 있고 주문을 하면서 쳐다볼 수도 있잖아. 그냥 보는 게 뭐 어때서? 이미 스무 살부터 돌씽이란 말이네. 왜, 부러워서?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아야 하니까? 것도 아니면 남의 떡이 커 보여서? 그럼 그건... 본다는 것과 이상한 생각을 한다는 것 사이에는 크다도, 적다도, 같지 않다도, 모두 아닌 등호가 성립한다는 뜻이네? 이런 개뿔! 동심이 무슨 보너스 포인트야, 소멸하게? 소망은 안 키우고 동화를 떼자마자 흑심으로 건너뛰었다는 말이군. 뭐든지 보기만 하면 눈독이란 말이야. 나 원 참! 허허허! 웃기지도 않다. 누군지 몰라도 그 양반 안되겠네. 남자는 둘로 나뉜다. 경쟁 심리가 뼛속 깊이 전제된 남자와 아닌 남자로. 거기서 전자이면서 촌닭에다 잔지식파에다 허무에다 과묵과 비꼼 둘 중 하나에다, 인기 없고, 젊은 시절 청춘 시트콤을 남녀동반 두루두루 함께 찍었던 것도 아니고, 성격이 좋은 것도 아니며, 짠돌이에 애연가에(절반은 입담배. 연기 얼마 빨지도 못함. 폼도 별로) 질투심 많고, 뭘 좋아하고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다 아는데, 형편 풀리면 좋은 차 타고 뽐내고 싶어 하는지 밤의 황제로 살고 싶어 하는지 어쩐지를 다 아는데, 효과음 동반해서 견적 다 나오는데, 그런데 어떤 동반 만남? 혹 제의 받아도 빼는 게 예의다. 그게 인정이다. 극구 사양해야 할 일이 있다면 바로 그런 일일 테니까. 끼리끼리의 법칙과 예외에도 심각하게 위배되니까. 친한 친구가 몇이었고 단짝이 몇 명이었으며, 주류는 안 되도 영화배우에 성우에 야수파에 마피아 출신에 재담가에 예술가에 사기꾼에 팔방미인까지 쑤두룩했는데, 노 포커페이스? 노노노노노노노! 솔직한 거랑 음흉한 거는 다르다. 정직과 시기가 다르듯이. 완벽한 목적-지향형 부류. 만약 다정하다면 목적이 확실하기 때문. 어머머, 완전 우리 아빠다? 아빠 사랑해 한번 하자. 아니면 용돈 두둑히! 맙소사 우리 오빠? 이미 달관하셨구만. 축하해야 할지 어째야 할지 퍽 난감하구먼유. 하지만 저 조건이 거의 충족되더라도 예외는 있다. 꽃다운 스무 살 청춘 시트콤을 남녀동반 두루두루 찍었거나 기타 등등, 다시 처음의 이유 나열로 돌아가는 거지. 어차피 각자 인생 사느라 볼 일도 많지 않을 테고. 이런 유형은, 내 방과 더불어 무의식과 본심이 가장 잘 드러난다는 소셜 네트워크나 블로그도 잘 하지 않는다. 첫째 하기 싫고, 둘째 재미없고, 셋째 감추는 게 많으니까 드러내기를 좋아하지 않으니까 보여줄 것도 별로 없으니까. 해도 즐겁지 않고 인기도 없다. 진득하니 관계를 발전시키고, 관심을 갖고 애정을 기울이며 노력을 할애하고 싶어하지 않음. 댓글을 내가 가서 쓰고 남이 답글을 쓰고, 친구와 지인이 와서 내가 올린 내용에 댓글로 대화를 할 때, 내 컨텐츠에 댓글이 달리는 것과 내가 밖에서 댓글을 다는 비율, 팔로우와 팔로워의 균형을 도무지 마음에 들어하지 않으니까. 인생을 오래 살아 봤으면 모를 수 없다. 사둔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라는 속담을 꺼내 놓으면 바로 그때 명백히 갈린다는 것을. 그땐 진공청소기도 있고 커피포트도 있고 울그락불그락도 있다. 여자들 말처럼 화사한 꽃다발을 받는 모습을 거리에서 보며 아가씨들 말마따나, 유난 떠네─좋겠다─부럽다─부러우면 지는 거다─그냥 지고 꽃 받고 싶다도 있다. 단지 부럽다, 그게 뭐 어때서? 진공청소기는 웃는다. 그럼 머머하면 당연히 배가 아프지 하면서. (촌년은 혹 그럴 수 있겠다. 적당히 좀 하지 너무 심하네 하면서. 그녀들 사이에선 그게 얄미운 롱테일일 테니까) 그와 정반대로 또 다른 촌닭은 완전 울기 직전이다. 못 봐 준다. 정말 이런 상황만은 피하고 싶어진다. 정말 아아 그건 오 제발, 오오 제발, 오오오 제발! 그런데 이런 분께서 어디에 가든 누구를 만나든 나를 제일 친한 친구로는 부족하더라, 두 번째로 친한 친구다 어쩐다, 친하니까 싸움 순위 10등에 턱걸이 시켜준다? 아 창피하다. 괜히 부끄러워진다. 각자 6하원칙에 입각해서 생각해 보자. 언제, 누가, 어떻게, 어디서, 무슨 일 때문에, 도대체 왜 그런 표정을 지었는지를! 뭐야 내가 그랬다고? 난 뜨끔하지 않아 왜냐하면 난 타고난 포커페이스거든. 야, 나 같은 천하의 승부가가 이 세상에 어딨다고 그래? 만약 이런 분께서 도박사에 도전한다, 그러면 인생 불행해지기 딱 좋다. 극구 말려도 꼭 해야겠다? 못 말린다! 어떻게 해서라도 기어코 해야겠다? 고개를 돌린다. 야 떴어 떴어 피해 피해 딴 데 봐 딴 데 봐, 라고. 하지만 이건 어쩔 수 없다. 제어가 어렵다. 여간해서는 힘들다. 왜냐구요? 왜냐하면 타고나니까요. 그렇다고 여기서 끝이냐, 하면 솔직히 섭섭허구먼유! 이거 정말 이러기예요? 우리 사이가 그거 밖에 안되냐구요. 내가 이럴려고 글을 쓰나, 내가 오빠 이럴려고 만나! 선생님, 여기서 끝일 리가 있겠습니까요. 그 피함과 고개 돌림을 즐길 가능성이 있을까 없을까, 그처럼 정신분석은 2.0으로 넘어가야 하니까 말이다.
다섯 째, 사랑과 행복과 귀찮은 호사와 지겨운 풍요도 모두 함께 하지만, 입버릇처럼 외롭다 라고 한다. 이런 남자인가 아닌가를 여자가 과연 처음에 판단할 수 있을까? 거의 어려울까? 여간해선 어렵다? 아니다. 둘 중 하나다. 직감으로 느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왜냐하면 남자처럼 여자도 뭘 좀 모르는 여자와 뭘 좀 아는 여자로 나뉘니까! 여기서 주부10단의 말씀을 들어보자. 평생 우정과 사랑만, 밀도와 횟수까지 더할 수 없을 만큼 경험하신 여인의 철학을 들어보자. 앗, 들었다고 칩시다. 여성잡지2에서 간혹 화류계랄지 뭐 어떤 얘기를 괜히 다루는 게 아니다. 뭘 좀 아는 여자는 직관적으로 느낀다. 그런 남자는 싫다고! 미녀도 아니고 인기도 없고 착하기만 한 여자. 평생 남자로부터 단 한 번도 구애를 받지 못했고, 평범하거나 멋진 연애를 한번도 못해 봤고, 당연히 남자가 꽃 들고 따라다니고 기다렸던 적이 한번도 없었던 여자. 단짝 중엔 형도 있었는데 그 형 말마따나, 여동생 결혼식 날 난 쟤가 결혼도 못할 줄 알았다나 뭐라나. (단짝은 아니어도 동생뻘한테 러브콜도 받았던 적이 있다. 호프집에서 아르바이트할 때 나보고 웃기다면서, 저는 형이 좋은데 형은 저 안 좋아하요? 라고. 아 그만 그만. 이거 완전 순 '자랑 일기'구만 그래) 어느 여자분께 그런대로 준수한 남자가 정식으로 사랑을 고백하고 집요하게 애원해도, 일평생 남자의 대쉬를 단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그녀일지라도 단호히 딱 거절한다. 이런 얘기들은 모두 수많은 사실에 엄정히 근거해서 정리하는 말이다. 때문에 그 가치는 적을까, 적지 않을까? 부끄럽다. 재수 없다. 그래도 거의 끝나간다. 평생 그처럼 황홀한 고백을 단 한 번도 받아 보지 못했는데, 남자가 꽃 들고 쫓아다니고 집 앞에서 기다리는 건 다 친구 얘기에 불과했는데, 그녀 입장에서 그렇게 결연히 거절하기가 쉬웠을까, 어려웠을까? 살짝 가녀린 망설임이 있을지는 몰라도 아마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보통 이런 여자의 손을 잡고 아이는(동생은) 엄마와(누나와) 함께 바깥에서 잠시 그녀의 친구나 지인을 만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빈틈을 보이고 그런 거 없이 자기는 싫다고 딱 거절한다. 바람둥이인지 아닌지, 이 사랑을 승락했을 때 그 행복함이 짧을지 길지를 대번에 눈치챈다. 아무리 촌년&선녀일지라도 말이다. 7번 이혼하고 8번 결혼할 운명일지라도 사랑한다면 차라리 그게 나을 수도 있다. 말이 그렇다는 거다. 사람 일은 모르는 거지만 말이다. 지적이냐 잔지식이냐, 폼이냐 차분하냐, 비관인지 낙관인지, 표정 관리가 되냐 안되냐, 판돈은 많냐 적냐, 객관적으로 남자쪽이 훨씬 나아 보이든 어떻더라도 딱 아니까 그럴 수 있는 거다. 그게 바로 직관이다. 아 됐고, 그러니까, 그놈이 그놈이다? 호호호! 풍파를 겪고 파란만장함을 알며 명망의 정점을 한동안을 넘어서서 꽤 오랫동안 찍었던 스타일지라도 인생을 살짝 덜 이해했을 수도 있다. 아직 세상에 대한 원도 있고 일단 착하니까. 그래서 적어도 나보다는 모른다. 다른 건 몰라도 그걸로 치면 나한테 안된다. 그분은 내게, 상대도, 안된다. 그 남자가 다 그 남자다? (웃자고 하는 말이고, 말이 그렇단 얘기지만 일단은 달리자!) 그럼, 그 여자가 다 그 여자던가? 그런가? 아니다. 결코 그렇지 않다. 절대로 아니다. 그 종이 한장 두께 차이를 아느냐, 모르느냐! 그건 우리 인생을 충분히 좌지우지할 수 있는 권한이 능히 있다. 그렇더라도 어차피 피장파장이다. 왜냐하면 우선 그분들은 눈부신 미녀한테 열렬한 구애를 하지 않고, 아마도 할 수 없고─어딜 넘봐?─미녀는 특히나 고귀한 백조는 뭘 모르는 야수를 절대 반겨하지 않기 때문. 자신감과 배짱과 열만 혼자 저만치 앞서가는 남자인가 주인공으로 주목 받지 못하면 허술한 포커페이스는 금새 탄로나고 마는가, 눈빛과 몸짓과 발언이 왠지 부자연스럽고 어딘가 모르게 달갑지 않으며 말을 섞기가 꽤 불편한가 시간만 나면 핸드폰으로 남의 불행만 읽고 보는가, 전자와 후자의 중간에 해당하는 뭘 아는 남자가 정말 그렇게나 드물단 말인가? 글쎄요! 때문에 그분들께서 미모와 지성을 겸비한 숙녀의 사랑을 얻는 방법은 대체로 정확히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만 가능함. 단, 그분들께서 외모나 말이나 목소리나 능력등이 중간은 가야 한다는 가정 하에. 적어도 우연찮은 행운은 따라줘야 함. 두 가지 조건은 무엇이냐면 이렇다. 첫째, 그녀가 어릴 때 구애해야 함. (일명 세뇌, 최면 요법으로 일찍 발목 잡기. 말꼬리 잡고 늘어질 필요도 없이, 생각할 여유를 주지 않기) 둘째, 꽃 들고 쫓아다니지 않으면 가망성 전무. (텐미닛? 노노노! 오직 노력과 돈으로 승부. 왜냐하면 하이에나니까. 아니면 카리스마형 무서운 남자) 그래서 내 친구 중 저 앞선 두 유형은 시골에서 선녀와 살면서 도시 진출을 꿈꾸거나, 도시에 살면서 여심을 찾아 시골로 내려가야 하나를 고민한다. 따라서 나는 그런 친구와 대화해 보고 싶은 소망의 발생을 깨닫는다. 첫째, 스무 살 이전을 시골에 살다가 어른이 되어 이름이 브랜드가 된 친구. 둘째, 스무 살 이전을 도시에 살다가 예술적 영감이랄지 그 어떤 평온함 때문에 어른이 되어 시골로 내려간, 또는 내려가고 싶어하는 친구.
6
다음 날 환상머신은 고장났다. 어머머, 그 놀라운 솜씨를 발휘한지 얼마나 됐다고. 고장난 뭔가를 툭툭 건드릴 수도 없었다. 조지는 그렇다고 모니터 속으로 들어갈 수도 없었다. 동전만 먹은 자판기라면 푼돈 포기하고 음료수가 나올 때까지 동전을 넣을 텐데, 이건 무슨 맛보기도 아니고, 줬다 뺐는 로망도 아니고, 뭐지? 뭐야 이거? 도대체 이건 뭐냐고! 시작부터 실망, 어제까지 체념, 오늘부터 절망? 이 무슨 메두사의 저주도 아니고 말이야. 아예 처음부터 작동을 말던가. 괜히 기대하게 만들어놓고, 느낌 왔고 기분 좋았는데, 이게 뭐냐고. 영웅주의는 식상하고 부담스럽더라도, 천사의 전령사를 맞이할 분위기였는데. 어쩐지 뭔가 잘 풀린다 했더니만 아 글쎄 딱, 고장! 이제 한숨도 안 나온다, 라고 조지는 한마디 했다. 환상머신 구입비와 원고료를 맞춰 보니 대강 비슷했다. 본전은 했네. 수지 맞는 장사. 더 이상 뭘 바래. 바랠 걸 바래야지. 그치만 그는 서운했다. 몹시 서운했다. 올챙이 개구리 된지 얼마나 됐다고. 순전 엉터리 가짜 기계 같으니라고. 일이 잘 풀린다 싶어서 감정을 묵살하고 이성을 등용시킬려고 했는데, 반대로 됐다. 그는 천상 커피포트와 진공청소기 사이에서 오락가락할 팔자였다. 졸지에 망한 거지. 신바람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이보게나 젊은이, 그만 슬퍼하고 이제 일을 하시게나, 라는 말이 진짜 들리는 것만 같았다. 기절초풍할 노릇이구만 그래. 하지만 이런 일이 어디 한두 번 있었나. 그는 면역이 됐어도 옛날에 됐다. 그는 안절부절했던 흥분을 가라앉혔고, 펄쩍펄쩍 요동치는 철딱서니 마음을 다독거렸다. 얼토당토않은 환상머신은 그만 잊고, 소셜 네트워크나 하기로 했다. 유행에 편승하고 시류에 휩쓸리지 말고, 시대를 뛰어넘고 상상을 초월하라는 둥 뭐라는 둥, 그거 다 헛소리였다. 밖에서는 사교에 대한 투명성을 강조하고 희구의 좌절에 대한 논설을 늘어놓지만, 그는 어쩔 수 없는, 남자였던 것이다. 겉으로는 고고한 척 하더니만 변심한 약혼자 환생한 마돈나를 흉보는, 꿈의 궁전에 사는 우울한 마왕이었다. 그런데 인스타그램에 뭘 올리지? 뜬금없이 인스타그램이 하고 싶은 건 좋은데, 그런데 뭘 올리냐고! 그러니까. 조지가 왜 소셜 네트워크의 새 글 올림에 주저하고, 조지가 왜 무언가를 고를지 망설이며, 조지가 왜 말을 하다가 습관적으로 말꼬리를 흐리는지 그 이유를 알 듯 모를 듯 했다. 뭐든지 엄선하여 최고만 등록하고 싶어서 등용문을 좁혀야 하니까, 마누라 100명 보다는 일편단심이기를 원해서 그런 거였다. 진짜 그랬다. 거짓이 아니었다. 지금 이 순간도 어떤 여성들은 뭐 남편 100명? 그러면서 흐뭇해 하시거나 응큼한 상상을 할 수도 있다. 물론 아닐 수도 있고. 그 마음 속으로 들어가 보지를 못했는데 어떻게 알겠나. 하지만 그 정신을 읽을 수는 있다. 내 손바닥의 손금을 보듯이! 푸하하하하하하. 넘어가고. 남자의 환상과 여자의 로망은 다를 뿐, 현실에서도 남자의 실행과 여자의 성과는 꽤 다를 뿐이다. 그런데 갑자기 마누라 100명이 왜 나왔지? 털 깎은 양에게 말동무가 되어 주는 척 하더니만 결국 늑대? 하이에나? 이제 그만 허둥대고 인스타그램에 무엇을 올릴지나 고민하자. 조지의 인스타그램을 보니 그동안 올렸던 몇 안되는 사진들이 보였다. 어느 술집 간판. 르 카레의 스파이 소설 1페이지. 발바닥 드리블의 명인. 알라딘의 요술램프에서 지니가 튀어나온 모습을 구현한 설치미술. (지가 무슨 루드비히나 된다고) 문학수첩. 또 뭐가 있지? 사고 싶은 악세사리. 만화영화와 시네마의 한 장면. 그래프. 가고 싶은 곳. 직접 만든 아트박스. 밑줄 긋기. 초딩 옆에서 미니오락기에 열중하는 모습등. 그게 다였다. 별거 없었다. 그 별거 없는 목록에 새롭게 하나를 추가하기로 했다. 바로 문에 붙은 구겨진 화장지 사진이었다. 눈치는 두 가지가 있다. 뭘 좀 아는 눈치와 뭘 좀 모르는 눈치. 꼬마들도 속은 다 있다. 다만 직관, 멋, 낭만, 전망, 여자, 숙녀, 여성, 마담, 바텐더, 웨이트레스, 보봐리 부인을 아주 잘 아는가, 꼬마도 속이 다 있고 어른도 눈치가 다 있는 것처럼, 그걸 아주 섬세히 아냐 하면 꼭 그렇지는 않다. 왜냐하면 그건 타고나야 하기 때문이다. 후천적으로 취득하고 숙달할 수도 있겠지만 천부적인 재능과는 또 다른 것이다. 다변, 다작, 다정, 다망, 다신, 다처? 다한증? 야망, 왕성한 활동, 과찬, 립서비스, 엄살, 몰인정, 칭찬에 인색함, 무례함에 비견될 만한 극도의 예절에 따른 부담감등이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사람마다 취향이 다양하고, 서비스가 추구하는 목표점은 애초의 의도와 다를 수도 있는 것이다. 참견하기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방관자도 있고 어떤 떨림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태어날 때 그렇게 태어나니까. 내가 원하지 않았는데 사는 동안 묵묵히 다스려야할 특성이 있다면 그건 감수해야 하는 운명이고, 원치 않았지만 그 때문에 사랑과 호감과 애정이 언제 어디서나 내내 따라다니게 된다면 그건 한마디로 행운이다. 사람들도 안다. 너무 유명해도 피곤하다는 것을. 나는 말이 많다, 내가 욕심이 많다, 나는 참을성이 부족하다, 어쩐다 등등. 그러면 그 에너지를 어떻게 돌리든 쓰든 나중을 위해 아끼든, 그것은 어떻게든 구체화-가시화될 수 밖에 없다는 뜻이다. 또한 뭘 좀 아는 것의 기준 역시 불분명하고 애매한 면이 없잖아 있다. 추억의 영화배우를 만나서 지인이 하는 말도, 아 다르고 어 다르다. (격조 있는 표현으로는) 「세월은 당신을 비켜가나 보구료. 그대의 여전한 아름다움을 보아 하니 말이오. 아마도 그댄 사랑받았던 게 분명한 듯 하오. 그분이 누구신지는 모르겠지만 혹시 가능하다면 대신 안부를 전해주지 않겠소? 어느 노인이 꽤나 부러워하더라고 말이오.」 (드라마풍으로는) 「시간이 무색하군 그래. 녀석은 사람 봐 가면서 편애하나? 헛, 참 나! 아 그거 차별 대우 아니냐고! 당신은 아직도 방부제 미모니까 말이야. 내가 널 아는데, 넌 분명 파스텔톤 노란색 영양크림을 듬뿍 공유하지 않았는데, 참 이상하단 말이야. 안 그러니?」 그처럼 말이다. 좋아하는 일과 잘 하는 일 가운데 뭘 해야 하느냐, 까지는 얘기하지 말자. 뻔대기 앞에서 주름 잡는 일 만큼은 꾹 참아야 하니까. 아무튼 조지는 인스타그램에 사진 하나를 올렸다. 그게 대체 무슨 사진인가는 차차 알아가면 좋겠다. 그랬으면. 어머머 말해놓고 너무 멋져, 완전 시적이야. 호들갑도 재미없다. 혼자서는 말이다. 역시나 조지의 인스타그램에 댓글은 달리지 않았다. 차라리 직접 나서서 반짝반짝 크리스마스 츄리 장식을 하고 말지, 엎드려 절 받기의 시절도 지나가버린 것이다. 그는 어차피 원하지 않았는데 잘됐다고 생각했다.
7
조지는 이대로 단념할 수 없었다. 이처럼 희망을 버리기는 싫었던 것이다. 그래서 노래를 부르며 춤이라도 췄냐? 만약 그래서 고장난 환상머신이 소생할 수 있다면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따라한 일이 몇 개고, 흉내낸 기술이 얼마며, 본뜬 방법들의 수준과 안목이 어떠한데! 맞다. 남자가 폼이라면 조지는 독학이었다. 일단 부딪혀보기. 그래야 감을 느끼니까. 아 열로 밀어붙히자, 아 이건 어렵겠다 하지만 하지 않으면 나중 후회하겠다, 그러니 정중하게 문구 날리고 뺨을 맞던가 어쩌던가 용감한 자가 미인을 어쩐다더라 등등 이상한 말들이 많은 것이다. 역사는 밤에 이루어지네 뭐네 등등. 입만 열면, 볼펜만 들면, 껌뻑하면 수시로, 그만 그만. 오, 제발! 누가 자꾸 날 삼천포로 이끄시는지 참으로 신념 있다. 뚝심 좋네. 일관성 있어. 어쨌든, 그래서 조지는 프로그래밍 언어 독학에 들어갔다. 물론 그는 스무 살인가 스물 한 살 때 한번 도전한 전력이 있었다. 당시도 그랬다. 시작하자마자 초급부터 중급까지 책을 10권 샀고, 시작하자마자 포기했다. 그러나 내내 미련도 함께 했다. 때문에 제빵 학원으로 시작해서 프로그래밍 언어 독학, 나중 학원도 띄엄띄엄 한달씩인가 다녔다. 피아노 학원 2곳을 동시에 다니고, 동양화 화실에다 필기체 학원에다 계속 포기, 포기 또 포기하다 나중 컴퓨터 그래픽 학원도 다녔다. 패션을 배울까? 헤어 디자이너가 될까? 꿈도 많았고 생각도 많았다. 할 말은 별로 없었지만, 펜팔도 했고 미래가 궁금했으며 소기의 성과는 얻었다. 시시한 청춘 맨발의 젊음 얘기는 그만 하고, 조지 얘기로 돌아와서, 그는 환상머신을 고칠려고 프로그래밍 언어 독학을 시작했으나 시작한지 얼마나 됐다고 그만뒀다. 칼을 뺐으면 무라도 찔러라? 바로 그래서 그는 환상머신 제작사를 찾아갔다. 방법은 그것 밖에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목적지가 분명했고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도착했다. 무슨무슨 주식회사. 겸사겸사 도시도 구경하고 환상머신도 수리하기 위해서. 그런데 사무실은 허름하고 느낌이 세했다. 내일 모레 문 닫을 것만 같았다. 별다른 성과가 없을 것 같다는 예감이 얼핏 들었다.
8
조지는 똑똑똑 노크도 했고, 담당자와 인사를 나눴고, 용건도 밝혔다. 사무실에는 아가씨 혼자뿐이 없었다. 어쩌면 1인 기업, 아닐 수도 있고, 그녀는 아마도 경리일 듯 했다. 그런데 조지는 그녀를 보는 순간 자기가 왜 이곳에 왔는가 라는 목적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왜냐하면 그녀는 웃었기 때문이다. 여자가 웃으면 다 OK인가? 그건 아닐 것이다. X축 무엇도 있고 Y축 무엇도 있다.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 그녀는 꽃보다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사랑 사랑 사랑노래가 기억났고, 사랑의 시상이 떠올랐다. 동경하는 사랑. 순수한 사랑. 육체적 사랑. 절제를 모르는 사랑. 참을 수 없는 사랑. 가슴 뭉클한 사랑. 세상과 인생에 둘도 없는 사랑. 그는 덜컥 겁이 났다. 이러다간 아침에 눈을 떠서 꿈나라로 떠나기 직전까지 그녀 생각만 나는 거 아닌가 하고서는. 조지는 천성은 심리학자 직업은 작가 포기한 꿈은 마술사였지만, 그 대칭선이 복권 당첨 기계 안의 번호처럼 수시로 바꼈지만, 지금은 단지 사랑의 포로일 뿐이었다. 헤드라인은 말괄량이 여자와 말썽쟁이 남자가 만났다? 아니다. 그녀는 바쁜 듯 했으니까. 그녀는, 정말이지 자극적인 매력은 물론 은근한 관능미까지 철철 넘치는 숙녀였다. 그렇지만 조지는 직감적으로 느꼈다. 내가 그 어떤 노력을 쏟고 공을 들이더라도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따라서 조지는 생각이 바꼈다. 어떻게? 환상머신 그거 고쳐서 뭐해? 라고. 그는 분명 저 문을 열기 직전까지는 소년이었다. 그런데 저 문을 열고 나서는 순식간에 겉늙지는 않았지만 저절로 속이 응큼해져버렸다. 하지만 사랑이 죄는 아니었다. 그는 곧 돌씽 같은 아저씨가 됐다. 일에서는 제몫을 톡톡히 하며 오라는 곳도 아주 없진 않고, 장미도 튤립도 데이지까지 손짓하며 반기지만, 집에만 오면 병든 닭 마냥 비실비실 기운도 의욕마저 풀이 죽는 아저씨. 누구나, 수다쟁이의 본능과 허풍꾼의 감각, 로맨티스트의 직관력과 풍운아의 직감까지 총동원해서 사랑에 빠지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사랑은 자기도 모르게 찾아오니까. 그래서 조지는 일단 후퇴하기로 했다. 작전상 철수 말이다. 자기는 환상머신의 구입자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고로 임상실험 대상자에 대한 정보를 이미 보고 있을 테니 그는 마음 편히 돌아가기로 했다. 작전명은 아무렇지 않은 척. 부제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시침 떼기. 그는 고장 신고를 마쳤으니 집으로 돌아갔다. 그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알게 됐다. 환상머신은 진짜 막 환상으로 날 데려다 주는 신기한 요정이 아니라 단순히 프로그램에 따라 행동하는 인공지능 기계일 뿐이라는 것을. 게다가 경쟁이 붙어서 제품은 끊이지 않고 출시되고 있었다. 그는 집으로 오면서 거리의 대형 광고를 보게 됐다. 그 광고는 TV에도 나올 테고, 공공장소에도 인터넷에도 어디에도 나올 것이다. 이름도 다양하다. 신비머신. 무슨머신. 머머머. 등등. 그렇게 그는 집에 도착했다. 그는 TV를 봤다. 재미없었다. 일을 했다. 일이 도무지 손에 잡히지 않았다. 잡지를 읽었다. 재미없었다. 잠을 잘려고 했다. 잠이 오지 않았다. 왜 그런지 알 수 없었다. 맛난 음식을 먹어도 도통 맛이 없었다. 왜 그런지 나는 몰라-였다. 극장에 갔다. 볼 만한 영화가 없었다. 심심치 않게 그렇긴 하지만. 나이트클럽에 갔다. 물이 좋지 않았다. 참 나 이거 원, (눈을 꾹 감고서 고개 각도를 이렇게 살짝 틀기!) 소셜 네트워크를 봤다. 모두 시시콜콜한 얘기들 뿐. 고전음악을 들었다. 졸렸다. 그래서 잘까 했다. 그러나 잠은 다시 도망갔다. 요리? 귀찮았다. 여행? 가택감금중이다. 약속 없는 주말이 탐탁치 않냐고? 언젠 안 그랬나. 익숙한지 오래다. 신나게 춤을 추고 즐겁게 노래하며 정신없이 놀고 또 놀기, 의 시절은 다음 전성기를 기다리는 중. 모험에 착수해야 하는데 맞이할 모험이 없었다. 가면무도회가 웬말이고 귀족들의 승마대회는 남의 일에 불과했다. 그러면 오락산업계의 동정을 살펴볼까? 대타는 남겨두자. 개구멍은 미루고 또 미뤄야 하니까. 그는 기분이 이상했다. 왜 그런지 정말 알 수가 없었다. 조지는 한때 여자들이 많이 따랐다. 확인할 길 없는 과장이냐, 과장이다. 하지마 심한 과장은 아니니까 넘어가자. 그렇게 여자들이 좀 따랐다. 그런데 사랑의 문제는 발단이 졸고 전개는 게으르다는 점. A의 입술은 키스를 부른다. 하오나 B는 C에게 끌린다. 그러나 C는 D에게 반한다. 완전 반했다. 꺼뻑 넘어갔다. 그렇다고 D가 C의 마음을 받아주랴. D는 E의 마음을 빼았기 위해 작전을 짠다. 하지만 E는 밤이나 낮이나 F 생각뿐이다. E가 고백할까 말까 고백할까 말까 망설일 때 F에겐 애인이 생겨버렸다. 사랑은 늘 이런 식이다. 그런데 내가 왜 사랑을 생각하지? 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러니까 친구들과 단 한번도 대화를 나눠보지 않은 그 주제를 왜 지금, 왜 하필 내가! 그걸 그가 어떻게 알겠나. 일단은 일을 할 수도 차분히 책을 읽을 수도, 다른 소일거리도 적당치 못해 그는 소셜 네트워크를 들여다 봤다. 사람들이 왜 TV를 끄지 못하고 소셜 네트워크에 발목잡히는가, 왜냐하면 매사 의식주에 만족하고─이조차 쉽지는 않겠죠─심심함에는 불만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심심함이 충족된다면 TV를 끊고 소셜 네트워크에서 해방되어 오락산업의 전성기에 버금가는 환상머신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적어도 아주 엉뚱한 가설은 아닌 듯 하다. 아 저런 저런! 또 환상머신이다. 고장나서 잊었는데 녀석은 왜 자꾸 내 바지끄댕이를 잡고서 놓아주지 않는 걸까? 라고 조지는 생각했다. 내가 혹시 그녀를 기다리나? 라고 그는 생각했다. 아 나는 그녀의 이름도 모르지. 그렇다고 다시 그곳으로 찾아갈 수도 없었다. 조지는 기록할 걸 기록하고, 볼 걸 보고, 생각할 걸 생각하고 연상하며 상상도 하다가 다시 몽상가가 됐다. 그러나 아무리 해도 기분이 이상했다. 집에 있으면 내내 처질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는 좋게 사무실에 가서 일이나 하자 라며 집을 나섰다.
9
조지는 자기의 개인 사무실 앞에 도착했다. 그런데 깜짝 놀랐다. 왜냐하면 사무실 앞에는 다름 아닌 환상머신 기획사의─제작사? 모르겠다. 아 됐고!─경리가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화사한 꽃을 들고서. 얘 뭐지? 그는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실제로 못 믿는 척 혼잣말을 내뱉지 않을 수 없었다. 「뭐야? 뭐...지?」 「뭐긴요! 꽃 들고 쫓아다니라면서요? 봤어요. 아저씨, 아니 오빠가 쓴 글과 비망록과 시와 동화와 노래와 칼럼과 소설을요. 고객의 비밀을 엄수한다는 그런 선서, 저도 했으니까 너무 뭐라 하진 마세요. 최고의 인공지능 때문에 스스로 발전하는 우리의 환상머신이 왜 고장났나, 그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거든요.」 「그래...요? 일단 들어가실...래요?」 그들은 마치 연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또 정답게 모텔 캘리포니아로 들어갔다. 앗, 아니 조지의 집필실로 들어갔다. 들어가서 대체 뭘 했냐, 차차 알아보자. 평범한 대화는 다 마쳤다. 예의상 묻고 답하고 날씨가 어떻고 그외 어쩌고저쩌고 이러쿵저러쿵 다 말했다. 더 할 말이 없었다. 환상머신은 고칠 수 없다고 했다. 그건 스스로 깨우쳐야 하기 때문이란다. 조지도 뭘 특별히 바란 건 아니었다. 수긍했고 알았다고 했다. 따라서 경리는 그만 돌아가도 된다. 하지만 그녀는 돌아가지 않았다. 더 머물고 싶어하는 듯 했다. 그래서 조지는 환상머신에게 붙여준 애칭을 혹시 경리가 이어받아야 하는 건 아닌가 라는 행복한 착각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그들은 편하게 말을 놓는 사이가 되었다. 우리는 누구든 금방 친해진다, 우리는 보면 알아, 우리는 원래 그래, 조지는 뭐 그런-주의 같았다. 지가 언제부터 '우리는' 화법을 구사할 줄 알았다고 말이다. 참고로 한 말씀 드리자면, 재혼과 사회적 성공을 비롯한 평탄한 삶, 행복한 인생, 만족스런 일상, 채워지지 않는 탐욕등은 모르겠고 일반적인 개인 기억의 총계에 대해서만 간략히 따져 보자면 <우리는>화법의 능숙한 구사자 그분들의 중간 성적표는 다음과 같다. 이혼 > 만혼 > 불행 > 평탄. 그분들 현황과 여자관계는 자세히 모름. 무엇보다 남의 인생. 하오나 일단 결론은, '우리는' 화법을 간헐적-상대적이 아니라 일생 동안 일방적으로 구사하는 남자의 경우, 그 생애에 우여곡절이 좀 있다─꽤 된다─적어도 짜릿하다가 불유쾌하다가 놀랬다가 그렇게 롤러코스터를 탄다 라는 것. 그 화술에 그 기질에... 그건 곧 '성격 어디 가겠나' 라는 의미일 수도 있음. 살면서 보고 듣고 읽는 기본과 숙달하게 되는 모범 사례가 얼만데! 사용 가능한 화법이 몇 개고 최면요법에 고급스런 설복술 외에도 교묘한 유인책에, 우기고, 닦달하며, 걸핏하면 말을 돌리거나, 변죽만 울리기, 슥 지나가며 떠보는 등 수법은 많고도 많은데 오직 그 하나만? 모르긴 몰라도 어느 초년생께 권유는 고사하고 일단 주로 만류해야 마땅하겠으나, 정 원한다면 각자 인생이며, 이미 그걸로 최고봉에 오르신 분에 대해서 최소한 한결같은 심지 그 일관성 하나는 높이 사야 함. 그러므로 이때 주의할 점은 이와 같다. 표준편차에 미치지 못할 정도로 통계의 정량이 부족하다거나 특수하다랄지 추정량의 오류, 표본추출은 균일한가, 오차의 여지는 어떻고 등등. 따라서 당장 비과학적인 총합이기 때문에 특별한 의미 부여보다는 사석에서 조용조용히 다룰 화제 정도로만 여길 것. 「유망하기 이를 데 없는 부러움을 한몸에 받았던 적이 있었니?」 「저요? 아, 나 말이야 오빠?」 「그럼 여기 너랑 나 말고 누가 있니?」 이 말을 조지는 속으로만 했다. 대신 다정한 눈빛으로 너의 마음을 다 안다는 듯이 기다려주었다. 내숭은 대환영이라는 듯이. 나는 뻔트 전문, 넌 탐스런, 쉿! 아 맞다 그녀가 대답할 차례지 라면서 조지는 그녀의 대답을 대신 생각했다. 「그야 뭐 꿀벌과 나비가 전부였을 걸. 아마도 곤충쯤? 요정은 아직 날 찾아오지 않았으니까 말이야. 오빠는?」 「나? 없었어. 그래서 오히려 다행이지 않을까? 이처럼 어여쁜 숙녀와 함께 할 수 있는 감지덕지... 아니 아니 우린 뭔가 말이 통하는 것 같다 뭐 그런 얘기야. 그러니까 이제 그만 옷을 벗고 음 일단 좀 씻고, 편안히...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긴 뭐가 아무것도 아니야? 얘가 은근 말로써 날 들었다 놨다 하네? 라며 조지는 내심 반가웠다. 조지는 이어서 고삐를 당겼다. 「우리 경리는, 아 그게 아니라, 오스틴은 기쁘기 짝이 없을 정도로 즐거워했던 적이 언제였을까? 기억나지도 않았다. 오빠 혹시 허당 아니야? 허당이라니 당치않소 낭자. 당치않긴 뭐가 당치않아? 아 그러니까 털어 놔. 털... 뭐? 털-어-놔? 털어놓긴 뭘 털어 놔! ... 아니 이게 왜 이러지? 이거 정말 환상머신이 내 머리속에도 깔린 건 아닌가 모르겠네?」 「괜찮아 오빠. 그런 반응이 몇몇 보고된 적이 있어. 시간이 다 해결해 줄 꺼야. 걱정 마. 그런데 있잖아. 오빠가 쓰는 소설에는 왜 주인공들이 외로워 보이지? 현대인의 고독, 뭐 그런 건가? 아니던데. 등장인물 많은 작품도 꽤 되던데. 많이 재밌었다구. 그런데 왜 오빤 내내 삼류에다 영영 가난하지? 의문이네. 미스테리라고. 하긴 내가 작가라도 헷갈리겠네. 주인공들이 활약을 많이 했으면, 글 많이 쓰고 말 많이 했으면, 그땐 진짜 하고 싶은 걸 해야지. 이렇게 마주 보며 다정히 대화를 나누는 걸로 수많은 모험 이야기를 모두 포함시킬 수도 있고 말이야. 사랑도 시작할 때나 설레고 들뜨며 뜨겁지, 좀 지나 봐. 그게 얼마를 가나 해 보면 알지. 안 그래 오빠? 괜히 잡은 물고기한테는 밥을 주는 게 아니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닌 게 아니지 않나. 어때? 나도 좀 비슷했어? 그런데 왜 오빤 말이 없어? (늬 같으면 말 잘하는 언니 말을 끊고서 말을 가로채고 대화를 주도하고 싶겠니? 게다가 방금 전에 말했잖아?) 이 오빠 정말 말 없네. 왜 그러지? 실연당했나? (얘 혹시 낮술했나?) 아무튼, 하긴 내가 드라마를 좀 봤나? 어떤 드라마든 조연 빼면 주연 몇 명이서 다 해 먹는 얘기지. 그 얘기가 그 얘기야. 다 거시서 거기라구. 그렇고 그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들 말이야. 시대가 그래. 옛날에는 예술 지금은 분류는 예술인데 오락이 태반이야. 때문에 감상이 아니라 거의 소비야. 안 그래요 아저씨?」 「내가 왜 아저씨야? 아깐 오빠라며! 사람 헷갈리게 하지 말고 호칭을 하나로 통일해 줄래? 아니면 뽀뽀를,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 음, 아니면 백허그를, 아니 아니 그것도 아니지. 아 정말 내가 왜 이러지? 아 갑자기 덥네. 날씨가 왜 이래? 왜 이렇게 더운 거야? 어?」 「오빠. 밖에 지금 눈 내려. 많이. 엄청, 춥다고!」 「아, 그래? 그럼 다행이고.」 「......(눈만 깜빡깜빡 전 아무것도 몰라요 끔뻑끔뻑)......」 「세월은 당신을 비켜가나 보구료. 그대의 여전한 아름다움을 보아 하니 말이오. 아마도 그댄 사랑받았던 게 분명한 듯 하오. 그분이 누구신지는 모르겠지만 혹시 가능하다면 대신 안부를 전해주지 않겠소? 어떤 남자가 꽤나 부러워하더라고 말이오.」 「응? 아니 오빠 그게 무슨 말이야? 우리 만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뭐지? 뭘까? 모르겠네. 난 하나도 모르겠어.」 혹시 이분 뭘 모르는 여자 아닐까? 여자들끼리 묻고 답하자. 이때 말을 많이 해야 하나, 모른 척 넘어가야 하나를. 당장 친구에게 묻고 싶어서 입이 근질근질 참지를 못하시는 분 여기, 저기, 거기 계속 보이네. 막 보인다. 줄 섰다. 「시간이 무색하군 그래. 녀석은 사람 봐 가면서 편애하나? 헛, 참 나! 아 그거 차별 대우 아니냐고! 당신은 아직도 방부제 미모니까 말이야. 내가 널 아는데, 넌 분명 파스텔톤 노란색 영양크림을 듬뿍 공유하지 않았는데, 참 이상하단 말이야. 안 그러니?」 「......(눈만 깜빡깜빡)......」 이 인간 대체 왜 이래? 오스틴은 그런 표정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조지와 오스틴은 사귀게 됐다. 그런데 그 사귐은 공개도 아니고 비공개도 아니었다. 심지어 우린 연인이다는 믿음을 넘어 오늘부터 사귄다 라는 확실한 정의가 없었다. 도시에 가면 그들은 언제라도 남남이 될 여지가 없지 않았다. 그래도 너무 많은 걸 생각하면 사귀지 못할 수도 있다. 일단 지금의 감정에만 충실했던 것이다. 그럼 이건 사랑보다는 우정에 가깝고, 연인보다는 친구가 맞는 표현일 것이다. 바로 그래서 그들은 사귀긴 사겼는데 재미가 없었다. 잘 어울리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고, 육체적 사랑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둘의 목적이 일치하지 않았을 수도 있고. 어쩌면 추억을 만들려는 노력도 부족했고 응원할 관객을 필요로 하지도 않은, 밀애보다도 아동들의 사귐과 비슷했을 것이다. 맞다. 정말 그렇다. 유치원에서 사겼다, 초딩 때 좋아했다 그와 크게 다르다고 할 수 없었다. 연애도 지지부진했다. 할 말도 떨어졌다. 노력도 부족했다. 처음엔 호기심과 궁금증이 전면에 나섰는데 점점 매력도 떨어졌다. 결국 처음에만 혹했던 것이다. 따지고 보면 조지 입장에서는 찐한 연애 곧 본격적인 애정을 원했던 것일 수도 있고, 오스틴은 아마도 사랑이 아니라 일 때문에 접근했을 수도 있다. 순전히 인공지능이 오류를 일으킨 원인이 대체 뭔가, 그걸 알아내기 위해서. 만나고 보니까 금새 결론 나왔을 것이다. 이 인간이 이러니까 환상머신이 고장났던 것이로군! 하면서. 하고 싶은 말은, 그러니까 늬가 안되는 거야, 어? 알아? 바로 그래서 늬가 안되는 거라고! 어? 1주일에 한번 태어날까 말까 하는 천재가 한달, 아니 일년을 기다린들 다시 오지 않을 뭐랄까, 비공식적인 외도의 기회를 만났다. 그런데 결과는 꽝이었다. 불륜 그거 아무나 하는 거 아니다. 말이 쉽지 총각들은 유부남의 연륜을 따라가려면 한참 멀었다. 그래서 일찍 홀로 된 돌씽들을 보면 뭐라고나 할까, 그래 활력이 눈에 보인다. 에너지가 오르락내리락하는 막대 그래프가 진짜로 보인단 말이다. 아프리카에서 뛰어 노는 맹수들이 왜 맨날 느그적 느그적 게으름 피우다 먹이감을 발견하면 눈빛이 빛나는지 알 것도 같았다. 아가씨들 여보세요 숙녀들이여, 늑대를 경계하는 건 숙명이고, 정말 조심해야 할 대상은 하이에나와 임자 있는-있었던 분이다! 뭐 살면서 뺐고 싶은 감정을 한 번쯤 느낄 수 있는 것 아니냐구요? 입장 바꿔 생각해 보면 된다. 심지어 본 임자께서는 그러신다. 뭐 어떤 년들은 허리를 그냥 확 접어브러야 한다고. 그렇지만 어제도 오늘도 난 왜 임자 있는 남자가 멋져 보일까? 바로 그래서 칼럼니스트가 웨이터님께 상납할 짱돈을 챙기고, 오락산업 종사자의 품위 유지비도 해결되는 것이다. 어쨌든 조지와 오스틴은 연락을 안 하니까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깔끔한 뒷모습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처럼 미적지근한 뒷모습이 불미스러운 헤어짐보다는 차라리 낫다. 뿐만 아니라 그렇게 헤어지는 것에 대해 많이들 싫은 이별 유형에서 만년 상위를 차지 하지만 알고 보면 그렇게 헤어지는 게 태반이다. 제일 부담이 없으니까 말이다. 어촌에만 어장관리선이 있는 게 아니다. 사람들도 범위 1, 2, 3 그런 게 다 있으니까. 조지는 그녀와 멀어지고 나니까 뭔가가 보였다. 그녀를 울렸다가 웃겼다가, 마음을 빼았다가 녹였다가, 밀려졌다 당겨졌다, 그처럼 연애에 애절하게 호응하고 구애에 즐겁게 화답할 숙녀는 아닐성 싶었는데 그땐 몰랐던 거다. 왠지 끌리는 그녀였지만 뭐랄까, 그녀는 당차고 도도하고 팔짜가 드셀 것만 같았다. 그런데 말을 나눠 보니 글쎄 정반대로 다소곳하고 여성스러운 그녀였드라? 아니다. 한마디로 대가 세더라-였다. 오, 카리스마! 자세한 얘기는 옮기지 않았다만 공개 못할 뭔가가 있으니 그쯤에서! 많은 말은 필요 없고, 오스틴은 한마디로 괜찮은 숙녀였다. 단지 그 둘이 어울리지 않았다 뿐 변명은 사절함이 좋을 듯 하다. 이상형까지는 아닐지라도 아 이 남자 한번 만나보고 싶다 점점 그이에 대해 알아갔으면 좋겠다, 라면서 시작된 만남이 점차 실망의 확신을 키웠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조지가 오스틴이 아닌 이상 더 자세한 사정은 몰라도 얼추 그렇지 않을까 라는 의심은 들었으니까. 조지 스스로 생각해 봐도 그녀의 이상을 만족시켜 줄 만큼 자기가 여유롭거나 뭔가가 출중하진 않았으니까 말이다. 조지는 옛날 채팅으로 그날 하루 딱 한번 만났다 헤어진 여자가 생각났다. 등치가 좀 되어보였는데, 당시 처음 만난 그녀와 자동차 극장에서 영화를 봤다. 영화가 뭐였나는 생각도 안나지만, 기억나는 건 그거였다. 그녀는 코뼈가 부러졌는지 그 보호대를 하고 나왔다. 아마도 밤에 일하는 그녀인 듯 했고, 남자한테 뭐 어떡하다 그렇게 된 듯한 눈치였다. 그건 그렇고, 이제야 느껴진다. 지금도 아직 관성에 따라 에너지가 막 빨리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조지는 오스틴을 아직 모를 것이다. 한 남자를 알고 연애를 하며 사랑을 키우다가 변심하지 않은 결과 오래 만났다면 연인에 관해서 희망부터 흑심까지 모르는 것이 없게 될 것이다. 그래서 조지는 오스틴을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았다. 그게 뭐야? 알면 알고 모르면 모른 거지. 그러니까! 그래도 만약 만남이 오래 지속됐다면 아마 조지는 내심 괴로웠을 것이다. 애인의 투정에 애써서 귀를 기울였고, 그런 결과 귀에서 피가 났으며, 때문에 저 그렇게 꽉 막힌 사람 아니예요 라며 도둑이 제발저리듯 말하는 남자가 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잘된 일이다. 오스틴의 처지도 그렇다.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남자와 바짝바짝 타들어가는 사랑을? 그건 아니다. 아니고말고. 그래서 미녀는 가죽 점퍼를 입은 무서운 인상의 남자를 이따금, 아니 대체로 일찍 만나는 건 아닐까? 농담이다. 아무튼 환상머신은 고장났고, 웬 카리스카 아가씨가 마음만 흔들어놓은 채 무책임하게 떠나갔으며, 조지는 다시 고독과 마주하게 되었다. 이제 어떡하지? 진짜 어쩌지? 바로 그때 환청이 들렸다. 여보슈! 프로그래밍 독학에 재도전하는 건 어떻소? 라고. 그래서 조지는 환상머신을 스스로 고치기 위해 프로그래밍 독학을 다시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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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는 환상머신을 잊고 여자도 멀리하며 뭐 재미난 일 없을까 하면서 주변을 둘러봤다. 없었다. 색다른 애착은 자기에게 제발로 찾아오지 않았고 친구들은 바빴다. 새로운 열정은 귀찮았고 사랑도 지겨웠다. 그렇지만 이대로 우물쭈물하다가는 마음이 늙어버릴 것만 같아서 심심함, 권태, 타성, 게으름끼리 서로 길항하게 만들어 쾌락의 향응에 빠지지 않기를 요망했다. 그런데 그럴려면 환상머신에 대한 미련을 버려야 했다. 뼈 아픈 패배는 잊고 다음 경기에 집중하라는 미명이 말처럼 쉬우면 얼마나 좋으랴. 이별 때문에 헤어진 그녀의 집 앞을 서성거리는 청년처럼 조지는 이해타산을 따졌다. 들인 돈이 얼마고 사준 선물이 몇 개인데, 사랑이 식어? 그럼 못 쓰지만 그는 환상머신을 독자적으로 고치기 위해 프로그래밍 언어 독학에 재도전했다. 주워 들은 지식은 전문가였으니까. 기계어가 중요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C, C++, 모던C++, 피톤, 자바 등등. 심기일전을 결심했다. 그런데, 그런데 힘이 들었다. 많이 어려웠다. 이건 도저히 나랑 맞지 않는 분야인 것만 같았다. 눈 딱 감고 독기와 오기로 1년을 투자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1년이 지나도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을 거라는 예상은 어렵지 않았다. 하여 그는 겉주변만 돌았다. 알랑말랑도 아니고 아예 감이 오지 않았으니까. 그렇다고 시작은 했는데 또 패배주의? 솔직히 괜히 시작한 듯 했으나 영 모양새가 좋지 않았던 것이다. 살짝 보이지 않게 뚜껑이 열렸던 것이다. 그래서 프로그래밍 공부는 뒷전인 체 학교 다닐 때처럼 공부하기가 아닌 프로그래밍에 대한 칼럼 같은 책을 읽었다. 폴 그레이엄의 해커와 화가 같은 책들을 말이다. 하지만 그게 얼마나 오래 갈 수 있으랴. 이미 잘못 들어선 길. 그는 또 다시 깔끔하게 포기했다. 내가 웬만하면 독학인데, 무조건 독학인데, 이건 어렵다 싶었다. 이건 아니다 싶었다. 그래도 고장난 환상머신이 아까웠다. 그래서 학원에 다니기로 했다. 학원으로 찾아갔다. 속성 과정에 등록했다. 준비는 마쳤다. 그러나 조지가 누군가! 3일 배우다 관뒀다. 하여 그는 하는 수 없이 지금까지 한번도 손내밀지 않았던 업계를 찾게 됐다. 바로 탐정을. 상담 후 결제까지 마쳤다. 그는 주책바가지일까? 뭐 그런 일을 순식간에! 그리고 대체 무엇을 의뢰한 건가? 언제나 심심한 일화에서는 단독 주연이고, 달콤한 희극에서는 만년 조연이던 조지, 그가 뭐가 아쉬워서? 그는 정말 궁금했던 것이다. 환상머신의 정체가 말이다. 아마도 자신이 단단히 세뇌됐다가 겨우 제정신을 차린 것 같은데, 아직 미약한 최면 효과는 남아있는 듯 해서 왜 그런가 알고 싶었던 것이다. 기발한 착안도 떠오르지 않고 사랑의 변심은 뗄래야 뗄 수 없는 우정이었으니, 따라서 그는 음흉한 미소를 머금고 환상머신 제작사인지 기획사인지 그것의 정체를 밝혀달라고 하다 하다 탐정께 의뢰한 것이다. 그는 창백한 처녀의 가슴에 불을 지폈기 때문에 진득하니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런데 이게 뭐야 가당치도 않은 일이라니. 탐정 업체에서 결과가 나왔다고 3일 후 연락이 왔다. 원래는 거기서 쩔쩔매며 이건 도저히 우리가 감당할 일이 아니라며 정중히 거절하는 흐름이어야 했는데, 벌써? 그래서 그는 냉큼 그곳으로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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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그럴 리가...」 「설마가 사람 잡는다죠? 그 기획사는 물론 제조사와 직원들, 지분 분포도, 업체의 전력, 땅 지번의 기록, 대표의 출신과 무엇을 키우는가, 과거 교활했던 적이 있었나, 거리낌없이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건 무엇인가? 황금인가 가전제품인가 아니면 대뜸 여자? 그분의 연애사도 알아 봤고, 사랑의 보금자리가 은행에 저당잡혔는지까지 모두 알아봤답니다. 알아본 결과, 불운의 비명이나 음탕한 엘프는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배후 세력? 당연히 없었죠. 출처를 알 수 없는 이상한 소문이 도는 것도 아니었고, 스캔들이 끊이지 않는 그런 인기와도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것도, 아주 한참요. 그런데 딱 하나! 이 일을 대체 어떡하면 좋죠? 딱히 특별한 일은 아닌데 그래도 꼬투리 하나까지 원하시는 듯 하셔서, 그래서 말씀드리자면 그건 이렇습니다. 그 환상머신 제품 기획사는 문어발식으로 사업체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개발사, 기획사, 시행사, 제작사, 광고사 등등 모두 제품 출시 및 판매와 관련된 법인이 전부였습니다. 하오나, 딱 하나 전혀 의외의 업체가 있었는데 그건 바로 에로비디오 제작사였죠. 에로비디오를 제작하고, 희곡을 수집하고, 신인을 발굴하며, 감독을 키우기도 하고 후원하기도 하며, 에로배우를 양성하기까지 하는 그런 에로 전문 연예기획사가 있습디다 그려. 어떻게 그게 떡 하니 최후에 버티고 있었는지 저희도 무척 놀랐습니다. 고객님께 부디 좋은 정보가 되기를 바랍니다만, 불필요한 정보라도 나중 혹시 모르니까 일단 모아놓고, 어떻게 특수 영상... 그런 건 취급하지 말기로 합시다. 사장님. 저기, 사장님! 듣고 계세요? 선금 외에 아직 완료 수당과 보너스, 아 맞다. 착수금도 조금 덜 내신 게 있군요. 네. 그게 그러니까......」 점점 여리게에 해당하는 셈여림 음악용어에 이어 다음으로 묵음이 찾아왔다. 비밀은 풀렸다. 모두 알고 나니 아찔했다. 차라리 모를 걸 그랬다고 생각했다. 설마 녀석들이 날 다큐멘터리 주인공으로 만들기 위해서, 일부러 환상머신을 내게 넘겼을까? 라는 의구심은 그를 괴롭혔다. 허무하긴 했으나 그래도 속은 시원했다. 궁금증 해소. 그래도 허탈했다. 알면 다쳐, 가 아니라 알면 실망해-였으니까. 뭐야 이거, 돈만 날린 거 아니야! 그는 생각했다. 내가 어쩌다 이런 쓸데없는 일에 시간과 돈과 정력을 낭비했나 라면서. 나? 나! 여심에 대한 탐욕이라면 사족을 못쓰고 여복의 환상과 신비한 인생이라면 꼼작 못하는 그런 한정판에 대한 소비욕을 감수성으로 착각하는 장본인...은 바로 내가 아닐까? 내가? 아니야. 아니라고. 난 그런 사람이 절대 아니라고 라고 생각했다. 지금껏 속을만큼 속았기 때문에 팔랑귀를 다스리고 농담-농간-농락을 적절히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게 됐는데, 그게 뭔 소리야? 그러나 탐정 사무소를 나오는 순간 그는 절감했다. 자긴 어쩌면 그런 남자가 아닐 거라고. 어떤 남자? 있는 애교, 없는 애교는 물론 배운 허영심, 못배운 허영심을 총동원해서라도 사로잡고 싶은 남자. 환상머신이니 뭐니 괜히 이상한 음모에 휘말려서 시간 쓰고 돈 쓰고 기분 이상해지고 완전 꽝이었다. 결과도 대실망. 그는 추억을 좋아했고 현재를 사랑했으며 미래와 결혼해야 했는데, 다시, 누가 자기 얘기를 하는 건 아닌가 하며 귀가 쫑긋 하며 수시로 예민해졌다. 누가 뒤에서 날 부르는 건 아닌가 하면서 자꾸 뒤를 쳐다보고 있었다. 새로운 기분을 바랬는데 뭐 에로비디오! 기분 좋은 일이 자꾸자꾸 이어지지 않을까 은근히 기대했는데 뭐 에로비디오 제작사! 나 원 참, 저런 저런, 이런 젠장! 그러므로 그는 다음 작품 구상에 대한 착상이 떠올랐다. 다음 주인공은 멋진 남자가 아니라 여자라고. 반드시 그래야 한다고. 어떤 여자라면 그런 숙녀. 아닌 척 해 봐야 속으론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는 태도를 간직한 그녀. 보기 드문 바보의 절박한 사랑은 정직하기 때문에 받아줘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는 그녀. 그러나 뭘 모르는 남자는 단호히 딱 거절하는 그녀. 하지만 순진한 숙녀가 마음이 저절로 끌리는데 왜 싫겠나. 가련한 숙명과 속아 넘어간 약한 마음이 원망스러울 뿐. 그는 친구의 부인이 했던 말이 기억났다. 내 친구 누구는 그렇고 그런 음 그렇고 그런 어떤 남자만 연속으로 딱 3번 연애했다네. 그런 여주인공을 한번 내세워 볼까 라고 생각했다. 허나, 단조로운 동선, 왕자님을 사랑처럼 우연인 듯 우정처럼 필연인 듯 만날 수 없는 이 내 조촐한 생활 반경이 비통할 뿐. 바로 그런 여자를 주인공으로 삼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쓸쓸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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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가 탐정 사무소를 떠나 집에 왔을 때 집 앞에서 누군가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낯선 사람이었다. 누구지? 날 기다릴 사람이 없는데. 심지어 여자가 아니네. 뭐가, 아니네? 아닐 수도 있다. 아닐 수도 있지. 그럼. 그건 그렇고. 그러니까 무슨 이유로...? 「저기 오스틴의 현-남자친구 되시나요? 저는 오스틴의 전-남편, 아니 전-남자친구입니다. 이름은 매트라고 합니다.」 매트? 뭔 매트? 오스틴? 아아 오스틴! 아닌데. 난 그녀의 남자친구라고 하기엔 썩 부적절한데, 라고 그는 생각했다. 어쨌든 인사는 해야 하니까... 「안녕하세요. 전 조지입니다.」 「하늘색 수트를 입으셨군요. 특이한 스타일이시네! 전 보시다시피 가죽점퍼를 입었습니다. 이 가죽이 진짜인가 가짜인가는 밝힐 수 없습니다. 하필 오늘 일부러 이걸 입고 왔냐구요? 뭐, 의도적으로? 아니죠. 전 원래 이런 스타일 옷을 좋아한답니다. 음 그건 그렇고, 어디서부터 말씀드려야 할까요. 아, 방금 그 말씀 하실려고 하셨죠?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우리 자리를 옮겨서 차분하게 차를 마시면서 얘기를 나누시는 게 어떨까요, 라구요. 전 그 사람의 눈동자를 보면 그분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답니다. 제 취미가 야구인데 제가 다른 건 몰라도 선구안 만큼은 캬, 기가 막혀! 아 아직 우리 사이가 어색한데 말이 짧았군요. 전 원래 그리 험악한 사람 아니니까 오해하지는 마세요. 아무튼 제가 미래를 예언하고 그런 건 몰라도 하루 일정 같은 거랄지 어떤 미세한 자료가 주어졌을 때 그것을 근거로 최대로 정확한 예측을 하기로 어딘가에서 꽤나 유명하답니다. 에헤, 그럼요. 다른 건 몰라도 그 재주로는 제가 아주 기가 막히거든요. 당시 야구부 코치한테 속아서, 제가 좀 인생이 엎치락뒤치락했긴 하지만요. 그런데 저 차 타고 오셨군요. 음 몇 년식 웨건이군요. 저도 한때 저 차를 탔죠. 아니 안 탔나? 다른 건가? 비슷하긴 하네요. (그러니까 하고 싶은 말씀이 뭐요?)」 그렇게 그들은 멀리 가지도 않고 공원으로 자리를 옮겨 대화를 나눴다. 할 말은 많지 않았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매트는 속을 드러내지 않았고, 조지는 뜬구름 잡는 얘기만 하게 됐다. 용건만 말하겠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라고 말하지 않은 체 그분이 자꾸 빙빙 돌려서 말하는 바람에 조지가 먼저 물어봤다. 혹시 오스틴 때문에 오셨냐고. 「네. 그럼요. 그런데 그건 어떻게 아셨어요?」 어떻게 알기는 뭘 어떻게 알아. 당신 같으면 모르겠소? 「허허허. 선생 인상이 좋아서 말이요, 오스틴이 전에 꽤나 형씨 속을 썩였을 거 같아서 하는 말이오. 모르긴 몰라도 내 예상이 크게 빗나가진 않았을 것 같소. (시간 낭비 하지 말고 바로 사실을 알려줄까 말까) 음... 세상에는 드물게 한 여자를 두고서 남자끼리 질투를 하기도 하고, 그녀를 계기로 그녀가 떠나간 후 지난 사랑 때문에 연적끼리 새로운 우정을 맺어 인생을 사는 매우 드문 일이 존재한다오. 물론 제 주위엔 그런 남자는 없소. 어디서 들었냐구요? 못 들었소. 추측이오. 아니, 왜 없겠소? 없을 리가 없으니까 하는 말이외다. 원래대로라면, 내 발음은 뉴스 진행자를 꼭 빼닮고, 목소리는 성우를, 언변은 빠져들 수 밖에 없도록 말을 잘하는 대학교수를, 학식마저 소포클레스와 아리스토텔레스를 전문으로 연구하는 은둔형 학자 뺨을 칠 정도라야 말이 되는데 이게 또 상황이 썩 여의치 않소. 난 보시다시피 행색도 초라하고, 말도 어눌하기 그지 없소. 초면에 실례를 무릅쓰고 내 하나 묻겠소. 웬만하면 하나 주고 하나 받는 게 좋겠소만, 정 어렵다면 묵비권을 행사하셔도 좋소이다. 자, 내 질문은 그것이오. 선생께서는 혹시 에로비디오를 최근 언제 보셨소? 꼭 최근이 아니더라도 그 뭔가를 봤던 어쨌던 가장 가까운 시일 말이오. 나는 평생 술을 마시고 취해 본 적인 한 번도 없다, 나는 싸워서 져본 적이 한 번도 없다, 나는 거짓말을 쩜쩜쩜, 나는 아직까지 첫키스를 못해봤다, 그런 풍은 우리 사이에 생략합시다 그려. 아시겠소? 아 그러니까, 글쎄 뜬금없이 왜 갑자기 에로비디오? 그렇게 생각하시는 듯한 표정이구료. 안 봐도 알겠소. 왜냐하면 그게 다 오스틴 때문이라오. 오스틴과 내가 무슨 특별한 사이였냐, 각별한 인연이라도 됐나, 아니냐! 그걸 선생께 가르쳐드릴까요, 말까요? 그걸 진정 이 못난 당숙이 형씨한테 실토해야 하는 게 맞소, 그러지 않아도 괜찮은 거요? 눈빛을 보아 하니 이 양반이 꽤나 청각이 예민하구만 그래. 형씨! 형씨 싸움은 잘 하요? 그렇소? 다른 것도 좋소. 종목은 그대가 정하시오. 뭐든지! 아무튼, 난 그대가 마음에 드오. 당신은 말이야, 아직 동심이 남아있어. 흑심한테 완전 점령당한 건 아니라고. 예술가 기질도 충분하고, 서정적인 행운에 매혹되기를 좋아하며, 주위에 나서기 좋아하는 친구도 여럿 되구만 그래. 음. 어째 자리를 펼까요 아니면 뭐 다른 걸로 시작할까요? 관상? 사주? 아니면 점성술? 말만 하시오. 내가 뭐 하나 빠지나 봅시다. 내뺄 생각도 없고 거짓말은 이젠 끊었소. 허언증도 재미없고 내 철학이라면 그것이오. 뻥은, 숙녀에게만! 하긴 나도 어떻게 해야 좋을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소이다. 내 공연히 이러는 게 아니라오. 대체 그동안 뭔 일이 있었느냐, 괜시리 아무것도 아닌 사연 때문에 서로 궁금해 하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에 하는 말이라오. 안 그렇소? 한번 생각해 보오. 내가 얼마나 당황했을지를 말이오. 이거 정말, 살면서 매우 드문 상황에 맞닥드리게 되었단 말이오. 허허허! 제가 제 마음을 모르듯이 매트씨도 매트씨 마음을 잘 모르는 듯 하오. 알 리가 없죠. 없다마다요! 아 나 정말 이런 일은 꿈에도 상상해 보지 못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내게...! 불행한 사랑이 일찍 파국을 맞이하면 행복한 미련에 당도하게 될까요? 그걸 왜 나한테 물어보냐? 물어본 거 아니오. 그렇다고, 아 물어보면 안되오? 지금 여기 당신과 나 둘 밖에 없는데, 그럼 그걸 그대에게 물어보지 누구한테 물어본단 말이오? 내 말이 틀렸소? 흐흠! 기쁨의 축일 시적인 행복을 느꼈을 뿐 다른 뜻은 없다오. 이거 기왕지사 이렇게 된 거, 새로운 사랑에 대한 희망과 전도유망한 내일에 대한 예감과 기대에 따른 기쁨을 맞바꾸는 건 어떻소? 아마도 선생께 그다지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닌 듯 한데, 어떻소? 그래도, 적어도 형씨 안색을 보아 하니 기뻐서 참을 수 없는 것 같진 않소. 아니 그렇소? 일단 내 인생을 돌아보자면 나는 불행을 연구했고 나쁜 운명을 청산했소. 아 그런데, 이거 이거 오래간만에 말을 너무 많이 했더니만 힘이 들구료. 무척 피곤하오. 상대의 마음은 물론 과거가 보여서 무척 고단하단 말이오. 아시겠소? 나만 이럴 게 아니라, 선생도 선생 얘기를 좀 풀어놓아보소. 형씨 이거 보니 둘 중 하나야. 속이 응큼하니 아주 능글능글 쑹악하던가, 아니면 몇 세기 전에 바쁘게 살았던 그분 누구지? 누구드라? 무질서를 죽기보다 더 싫어한다고 어딘가에 쓰셨던 그분처럼 굉장히 정확한 양반같단 말이오. 뭐 아닐 수도 있지만, 딱 보니 여자 마음을 몰라도 어지간히 모르는 양반이구만! 여자친구는 여행을 가고 싶은데, 그것도 (최소?) 1박 2일로, 괜히 딴청만 피워대며 핑계를 궁리하는 스타일이야. 복권 당첨 한방이면 당장 인생 역전의 명수니 뭐니, 허나 확률은 희박하다는 둥 뭐라는 둥, 스트레이트플러시는 무모하고, 차라리 복권업을? 그런 구닥다리 시상을 이 세상 어느 여자가 좋아하겠소? 안 그렇소? 내가 여자라도 뚜껑 열리겠단 말이오! 원래 사랑은 그런 거라오. 사랑이 내게 찾아오면, 내가 사랑의 주인공이 되고 나면, 그 뭔가를 한번 알게 되면 깡그리 잊어버릴 수는 없는 일. 어느 때 직관이 꼭 한번 개입한다오. 너무 많이 알면 좋을까요, 좋지 않을까요? ......(더 들어 봐야 할까, 들어 보지 않는 것이 좋을까? 어쨌든 일장 연설)......」 매트는 뭔가 중요한 핵심을 조지가 말해 줄 줄 알고, 기대를 놓치도 예감을 무시할 수도 없어서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었다. 번번히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자꾸자꾸 뭔가를 말할 듯 말 듯, 뭔가 있어 뭔가 있어 이제 거의 다 거의 다, 계속 내내 뒤로 미루고 연기하고 이리 갔다 저리 갔다,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이때 사람은 둘로 나뉜다. 쓰고 있던 모자를 땅바닥에 짚어 던지면서, 아 나 이런 젠장 증말 못해먹겠네, 라고 말하는 남자. 그리고 바람이 불면 부는대로 비가 오면 맞고 날 찾으면 가고 사랑이 떠나가면 이별노래를 작곡하는 유형으로. 그외 몇 가지가 더 있겠지만 일단 매트는 용건을 꺼내지도 못한 채 한껏 혼나고 있었다. 속으로 느꼈을 것이다. 아, 괜히 왔다! 아아, 사람 잘못 만났다! 아아아, 이건 정말 아니다! 라고. 어쩌면 오스틴과의 만남을 악연으로 치부했을 수도 있고. 어쨌든 결과만 얘기하자면 큰 무리없이 사태는 진정됐고 매트는 돌아갔다. 냉가슴만 않다 속만 태우다 눈치만 보다 돌아갔다. 조지도 매트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었나는 끝끝내 듣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조지는 주로 화자였고 매트는 내내 청자였기 때문이다. 원래 잘 어울리지 않는 한쌍이었을 수도 있고, 그 둘이 친구였다면 꽤나 불가사의한 우정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동상이몽은 오늘로 잊고 내일부터는 아마도 밝고 희망찬 하루를 시작하기를 빈다. 내내 남의 다리만 긁다 이제사 뭘 빌어? (뭐가 어쩌고 어째?)
13 조지는 독학도 재미없고, 환상머신은 남의 얘기가 됐고, 인스타그램도 했으니까 다시 일기를 썼다.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마무리해야 하는데, 성스럽게, 에로비디오를 볼 수는 없었으니까. 일기. 12월 30일. 날씨: 관심없음. 내가 왜 일정 수준의 부를 취득해야 하냐? 왜냐하면 개인의 탐욕도 있지만 우리 동네 수준 때문이기도 하다. 나를 기준으로, 내 옆집과 앞집, 뒷집, 몇몇 집들 안부를 묻고 사는 형편을 다 관심 갖기 힘들다. 작품 구상이 먼저니까. 하지만, 내가 쪼들리면 내 옆집 입장에서는 최소한 그에 대해 쾌활할 리는 없다. 구시대적 관점으로는 다르지만. 내가 튀든 내가 퇴색하든 적어도 보호색은 뭐랄까, 최소한 이타적이든 타의적으로 보든 조금은 예의에 해당한다. 내가 좋아하는 무엇을 보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어디든 갈 수 있고, 왜 하늘은 파랄까를 생각하며, 점심 때 무엇을 먹을지 저녁에 누굴 만날까, 라는 자유와 권리 외에 내게는 의무도 있다. 됨됨이 같은 것. 공중도덕은 사적으로 빵점만 겨우 면하고 인품은 들쑥날쑥하는데 사회 정의에 대해서는 눈을 부릅뜨고 얼굴 붉히는 일, 나는 아닌가 한 번쯤 자문자답하자. 그리고 나비넥타이를 매고 나이트클럽에 가서 남몰래 오가는 뭔가도 없이 웨이터님과 괜히 기싸움을 할 것인가, 2박자 음악이 멈추지 않는 - 파죽의 인기를 구가하는 클럽 입구에서 건장한 어느 담당자에게 입장을 제지 당해도 낙담하지 않을 자신 있는가, 골똘히 고민해 보기. 그외 여러 상식과 교양과 품위 유지에 관한 일들. 올 한 해 내가 이룬 일은 무엇일까, 무엇을 알고 무엇을 포기했나. 그런데 말이다. 내일 일은 셋으로 나뉜다. 걱정과 준비와 예감으로. 걱정도 준비도 모르겠고 사랑의 기대로 왠지 들뜬 하루, 애련을 회상하며 축배를 들자. 더불어 동네 수준과 밀접히 관계되는 보호색은 무엇인가를 생각하기. 이 기계적인 논리가, 이 인간적인 감정이 크게 잘못됐을 리는 없다고 본다. 안 그럴까? 그리고 해가 바뀌기 때문에 해야 할 일에 대해서 생각해 봄. 절망을 받아들이기. 불행을 인정하기. 실패를 이겨내기. 넘어져도 일어나기. 재미없음은 고사하고 슬픔을 감내하기. 심심함은 운명 사랑은 행운. 상냥한 웃음을 잃지 않기. 끝까지 행복을 포기하지 않기. 애인의 선망을 만족시켜 주기. 부러움과 부끄러운 감정에 솔직하기. 지루함과 친하고 새로움을 좋아하기. 그러니까 흠칫, 비밀 같지 않은 비밀을 만들어볼까? 일단은 연기하기. 디오니소스가 되어 좋은 기분을 느끼고, 큐피트가 되어 황홀한 분위기를 선물하기. 상사병을 탈출할 것인가, 청순한 궁녀를 상상할 것인가, 헛된 몽상에서 그만 졸업하기. 변덕을 흠모하고 허영심을 이해하기. 허나 변심에게 뒤통수 맞지 않도록 조심하기. 사는 동안 언제나, 사랑은 숙명 인생은 미완성! 더 이상 줄 달린 치즈에게 속지 않기. 이왕 낚였으면 월척이 되기. 우스꽝스런 허풍에 동요되지 않기. 항상 연애를 꿈꾸기. 언제 어떻게 원페어로 트리플을 이길 줄 모르니 판돈은 넉넉히. 경마장의 열광을 기억하기. 당신은 생각보다 멋진 사람이란 사실을 잊지 않기. 무언가에 감사하고 누군가의 안부를 궁금해 하기. 선물은 시시하지 않게. 세상의 신비스러움을 바로 알기. 이 세상을 다 준다고 해도 절대로 바꿀 수 없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에 대해서 생각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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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어쩔 수 없이 용돈 벌이를 위해서 다시 미스테리아에 컬럼을 기고했다. 장편소설을 위해서 이제 다시는 칼럼을 쓰지 않을려고 했는데 그건 어느새 생계 벌이가 되어버렸으니까. 이번엔 사설도 투자전략도 새 게임 추천도 아니었다. 그건 바로 내일의 운세였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목: 신년 전망. 내용: 신년에 떼돈을 벌 것인가, 놀라운 여복에 눈물겨워할 것인가, 남풍이 부는 곳으로 여행을 갈려다가 아예 남극을 넘어 지구를 한 바퀴 돌 것인가. 카페에서 내년 전망에 대해서 글을 쓰는데 옆 자리에서 친구들끼리 내일을 내다보며 정답게 수다를 나누고 있다. 그 중에 우스개 소리도 있었다. 「너 왜 저출산 문제가 내내 미해결되는 줄 아냐?」 「왜인데?」 「왜냐하면 사람들이 해야 할 뭔가를 하지 않기 때문이야.」 「해야 할 뭔가? 뭘 해? 무엇을 해야 하는데? 아 그러니까 그게 대체 뭐냐고!」 시장 경기가 더없는 호황을 맞이할지 한동안 고배를 마실지 궁금하다면 친절하게 예측을 도와주는 선행 지표들이 몇몇 있다. 아니다 경제는 모르겠고 우선 내 형편이 풀릴지 어쩔지, 뻔트라도 댈지 솜방망이 맞고 저만치 끌려내려갈지 알고 싶다면 또 몇몇 방법이 있다. 첫째, 꼼꼼한 준비─치밀한 계획─각고의 노력을 다 한 다음 다가올 하늘의 운을 스스로 점쳐볼 수 있다. 둘째, 아니다 기다리기 힘들다 당장 용한 점쟁이를 알현하기 위하여 복돈 들고 쫄랑쫄랑 달려가는 방법도 있다. 그건 그렇고 조지의 최근 고행으로 판단하건대 즐거운 삶에 대한 내년 판도는 날씨가 어째 도저히 추정하기 어렵고, 새로운 변화는 일단 먹구름이 잔뜩 끼었으며, 황홀한 사랑마저 에로비디오로 대체되는 건 아닐까 우려스러움을 피할지 어쩔지 심히 걱정부터 앞선다. (참고로, 조지가 누구신지 궁금하시나요? 화제의 단행본 및 중편 연작으로 전격 출시됨. 아마 그 신나는 모험을 알고 나면 깜짝 놀라실지도 모름. 약은 약사에게 책은 서점에서. 뭐야 이제는 마케팅까지? 가지가지 한다!) 아낌없는 행운과 고마운 행복과 함께 고혹적인 쾌락, 아름다운 추억을 많이 많이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자신있게 관측한다? 아마추어 시인도 그런 예언은 하지 않는다. 자고로 노장은 입이 무겁고, 삼류도 객관적인 자료와 유용한 정보 먼저 따진다. 내 장담하는대, 무턱대고 낙관하고 다짜고짜 승승장구를 기원한다? 내 코가 석잔데 빈말인 거 다 안다. 개구멍 어디 없나 기웃거리고, 제발로 굴러다니는 호박에 대한 찬미사는 언제라도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으며, 오늘은 삼진이지만 내일은 울지 않겠다 라며 어떻게 뻔트라도 한번 대볼까 갖은 모략을 짜고 또 짜실 텐데 누가 모를 줄 아쇼? 아무리 그래도 이 허접함 암만 생각해도 답이 없다? 괜찮다 괜찮아. 배당률 만큼은 전설적으로 최고니까. 하여간 말은 말은! 흐음, 결론 나왔다. 격려도 좋고 조언도 좋지만 남 걱정 말고 쩜쩜쩜! 행운의 동반자로는 '최선'이 천생연분이고, 싱글벙글 오늘을 살면 된다는 것! 루마니아 속담도 있다. 예외는 규칙을 강화시킨다는 점. 꽃 하나로 봄이 오지 않는다는 점. 차근차근 내 인생을 가꾸는 것부터 희망의 범위를 넓혀가면 된다, 라고 환상머신 제작사의 실패한 음모는 우리에게 교훈을 남기고 있다. (환상머신 제작사의 실패한 음모? 내가 모르는 또 다른 비밀이 있단 말이야? 조지 이야기는 화제의 단행본 및 중편 연작으로 전격 출시됨. 아마 그 신나는 모험을 알고 나시면 깜짝 놀라실지도 모름) 아닌가? 아니다. 아닌 게 아니지. 그럼. 심술꾸러기, 욕심꾸러기, 걱정꾸러기 등등 내 안에 사시는 그분들과 먼저 화목하기. 첫눈에 홀딱 반할 수 밖에 없는 기승전결은 잠잠한 발단과 소심한 심심함으로 시작되는 법이니까. 두 마리 토끼를 잡을려다가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친다는 말도 있고 사례도 있다. 그러니까 두 마리 토끼가 혹시 야망과 소망 아니야구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한편 선각자는 말한다. 내게는 열정 하나면 충분하다고. 인생 별거 있나 오늘은 샛노란 바나나 껍질 내일은 새빨간 립스틱이지 라는 배짱도, 시작이 반이라는 포부도, 밝고 건강하고 자신있게 뿌잉뿌잉 새콤달콤 반짝반짝 애교도 좋다. 다 좋다. 메피스토펠레스일지 괴도 루팡일지 천당과 지옥이 또는 그 어딘가에 패자부활전이 존재할란가 몰라도, 육신은 이 세상에서 빌린 몸이니만큼 의미 있는 인생을 살다 가면 된다. 또 하나의 새해는 시작된 것이다. 그대의 건투를 빌면서. (엄지손가락 척!)
from 소설
2017. 12. 22. 0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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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는 칼럼을 또 썼다. 크리스마스 파티를 위해서 나름 뽐내고 멋을 부리고 싶었으니까. 아직 약속도 축제도 정해진 건 하나도 없었지만. 용돈도 비상금도 생활비도 필요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약간 다른 글을 썼다. 기존 글과 뭐 얼마나 다르겠냐마는. 그것은 일기도, 수필도, 컬럼도, 여행기도, 신제품 사용기도 아닌 바로 사설이었다. 전문을 옮기자면 이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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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랑의 시대 어떻게 놀고 싶다, 판돈은 얼마다, 내가 좋아하는 건 무엇이다. 나는 어떻게 살았고, 인생은 뭐라고 생각하며 앞으로 어떤 삶을 살고 싶다. 그런데 궁금하다. 장미꽃과 사랑 노래에 대한 기억이 미래의 감수성과 내일의 행복감과 어색하게나마 조화를 이룰지 자못 궁금하다. 라~고 말하지 않는 손님. 한마디로 멋지지 않으면 재미없다. 정탐만 하면 의뭉스럽다. 또 주머니, 마스크, 지식, 어조, 품격이 각각 따로 노는데 유달리 까탈스럽고 과묵하다거나 깔끔하다면 대게 보면 그런 유형이 많다. 비관, 독선, 괴팍! 그렇지 않다면 롱테일이거나 또는 안 친한 거다. 친해지면 알게 된다. 말이 안 통한다, 믿을 수 없다, 허세 대 허영심의 비율이 50 대 50이라는 불문율은 심각하게 경시된다, 야망에 최적화되어 사랑에 대한 선망과 행복의 소망도 주늑들긴 마찬가지다, 게다가 연애 감정에 극히 보수적임을 넘어서 심하게 구식이다, 심지어 기억을 통틀어 손꼽힐 정도로 독단적이다, 라~면 그녀는 생각한다. 다른 건 몰라도 사랑으로 함께 살 남자는 아닌 것 같다고! 그래서 헤어진 유명인들 꽤 된다. 기 센 남자와 대 센 여자, 속궁합은 궁금해 하지 말자. 남녀의 연애가 아니라 함께 사는 삶에서 적지 않은 이들이 공감하는 실례를 하나 들자면 그거다. 연애는 좋았다. 추억도 만들었다. 과정도 착실히 거쳤다. 잡은 물고기한테 밥을 주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함께 오래 살면서 아마 누구나...는 몰라도 꽤 많은 이들이 경험하는 일이 있다. 남녀가 평생 따로 살다가 두 정체성이 한 집에서 같이 사는데 사소한 다툼은 없을 수 없다. 그런데 남자가 아주 잠깐 진짜로 화를 내는 순간, 여자는 잠시 움츠러들거나 많이 겁 먹거나 드물게 미약한 트라우마로 이어질 수도 있다. 첫경험을 넘어서면 자꾸자꾸 뚜껑이 수시로 열렸던 언젠가의 내 단짝처럼 무덤덤해질 테고. 그걸 일찍 겪는 짝도 있고, 보통은 중간 언제쯤 겪을 것이며, 헤어질 때 비로소 알게 되는 사례도 있을 것이다. 우정과 사랑은 정말 많이 비슷한데 약간 다르다. 그렇다고 우정이 일부다처제에 사랑은 일부일처제냐 하면 꼭 그렇지도 않다. 혹시라도, 우정과 사랑으로 시작하니 감미로운 로맨스가 이어지겠구나 라고 기대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미리 꿈은 깨야 한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환상은 일찍 깰수록 좋다 뭐 그런 얘긴 아니지만. 왜냐하면 어쩜 그건 참을 수 없는 미끼이자 유혹적인 화장술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대체 뭔 얘기를 하려고 그러느냐, 조금만 진득허니 참고 기다려 주시지 않겠소?
영화에서는 관리자가 게임판을 화면으로 주시하고, 중간 보스가 지령을 전달한다. 그리고 현실에서 바텐더는 될 수 있으면 호감, 돈, 인기, 예의, 애정, 선물등 적어도 하나는 보장된 신사를 선호하며 기다린다. 웨이트레스 같은 경험 누구나 있으니까 잘 아실 것이다. 그래서 드물게 어느 바 앞에 가면 이런 안내문이 대문짝만하게 눈에 띈다. <여-바텐더 없음. 바텐더 남자임!> 그분들께서 얼마나 실망했으면! 그건 주객이 같은 마음이겠구나. 그리고 중견 기업인은 국제적인 주간지를 읽고, 다정한 대학생은 친구들과 NC에서 신나게 놀기 위해 옛날에는 오로지 TV를 보며 춤 연습을 했다. 나는 꽃을 사고, 너는 고상한 아리아를 듣고, 누군가는 '나 꽃이야' 하면서 구애를 시도한다. 친밀감은 우정으로 발전할 수도 있고, 단순한 사교는 사랑으로 꽃필 수도 있다. 그런데 유독 친해지기 어려운 신비주의자도 있을 수 있다. 그건 아마 사람의 일이라면 내 인생 이야기를 친교로 연결하거나, 문학으로 승화시키길 원치 않는 내면 때문이고, 그건 어쩌면 외교의 경우라면 교섭-공개-질서-기준-틀-시대적 흐름 같은 개념에서 자유롭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예술론에 입각해서 봤을 때 그분은 첩보 영화에서 착한 편일 수 없다. 적어도 관객이 원하는 멋진 주인공은 아닌 것이다. 도대체 어떤 인생 사연이 있길래, 사랑의 일관성에서 얼마나 떳떳하길래, 그 마음의 주인이 누구시길래 그렇지 하며 살짝 의아해진다. 복고품 감성으로 판단하건대 그 흑백 영화의 장르가 무엇인지 알 듯 모를 듯 할 수도 있다. 그러고 보면 보나파르트는 참으로 시대를 잘 타고나서 모든 파란만장함을 풍미하고 갔다. 심지어 아트락 노래 가사에서도 거론된다. 역사적으로 손꼽히는 야망가로써 절묘하게 예술의 전성기와 딱 겹쳤다. 인생도 극적이었다. 지금 세상에 그게 가능할까? 불가능하다! 아마도 전무후무하지 않을까? 오오 아마도! 네, 어디요? 개인 브랜드가 없다. 무엇? 예술계의 지원이 전무함. 무엇? 너무 옛날이다. 무엇? 오명이다. 무엇? 규모가 작다. 무엇? 논란이 많다. 무엇? 넓었지만 '늦고 작고 약한' 단위 위주였다. 단연, 보나파르트가 최고였다. 그래서 내가 이 시대의 나폴레옹이 되겠다? 그건 누가 귀 기울이지도, 알아주지도, 바라지도 않는 농담에 불과할 뿐이다. 하지만 최소한 훨씬 적은 규모로 단위를 달리 해서 재현될 여지는 없지 않다. 왜냐하면 바로 그 낱말이 있기 때문이다. 야금야금! 그러면 소년은 나중 이 세상을 알게 되면 궁금해 한다. 소녀도 무턱대고 기도부터 하지는 않으니까. 대망을 꿈꿨는데 은글슬쩍이라니 그러면서. 그처럼 성장기 아동과 유년기 청소년님은 실망할 것 아닌가. '꿈과 희망을 찾아 파랑새를 따라가자'라면서 동화책을 읽기보다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라는 위인전 위주로 읽었던 친구들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을 다시 생각할 수 있는 행운의 기회에 감사해야 할 것이다. 아닐지도 모르고. 친구도 낭만가도 연적도, 행인과 용한 점쟁이까지 조류 대백과는 정답이 아니었던 거다. 왜냐하면 일단은 하이에나가 절대 강자고, 하늘에는 독수리가, 1차적으로는 쾌락이, 음지에는 염탐꾼이, 숙녀에겐 허풍꾼이, 예술과 일상이든 그 어디든 개구쟁이와 허당과 한량등 역할은 각각 다양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늘부터 내 꿈은 그것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델이 되는 것. 반 세기의 지식과 인생이라는 지성, 더불어 2000년 역사를 근거로 거의 유일하게, 언제까지라고 예측하기 힘들 정도로, 인기상을 독식할 표어는 그것이다. 단연코, 야금야금! 시대가 그렇게 됐다. 독서실에 앉아서 비축되는 그 힘을 대체 어디다 쓰겠나. 쓸 데가 없다. 따라서 선택지가 극히 제한된 이상 어떤 대망은 야금야금에 대해서 절대 신사적일 리는 없을 것이다. 국가 체제를 개인으로 비유하자면 모든 정체성을 비정상적으로 공격성에 집중하는 것이고, 바둑으로 치면 대세력 확장형이요, 투자의 측면으로 보자면 정확히 기업사냥꾼의 관점이다. 단,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체제가 민주적이며, 여러 과목 가운데 특정 분야만 독주하지 않는다면 그 호전적 성향은 훨씬 낮을 것이다. 우리는 1세기 전의 양차 대전에서 뭘 배웠을까? 전조는 똑같이 반복되며 방법은 종종 교묘해지는 것으로도 모자라 차츰 고급스러워진다. 고급? 그것이 기품일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음을 뜻하는지는 판단하기가 어렵지 않다.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다? 두고, 보면, 안다. 두고 보면! 이 세상을 이기주의로 살아야 하는 건 맞다. 약간 이타적이면 되니까. 대인 관계에서 지나치게 욕심 많은 사람이 있다면 적당히 알고, 접고, 져주고 지내면 된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그러나 단위가 국가로 커지고 역사라는 과거가 아닌 현재라는 실정이 되면 얘기는 판이하게 달리진다. 세상은 아이에게 그런다.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라고. 그러므로 국가도 야심은 기본이다. 탐욕의 대립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문제는 과욕과 지나친 이기주의와 현재주의의 수정 욕구다. 과한 욕심을 너머서는 야욕은 숨길 수도, 감출 수도 없다. 포기 역시 용납 불가다. 공공연히도 옛말일 뿐이다. 내 껀 내꺼고 네 것도 내 꺼다 라는 입장이 적지 않다. 이때 국제 분쟁은 둘로 나뉜다. 첫째, 의견 주장. 다시 거기서 일시적이냐 지속적이냐, 잠재적이냐로 노골적이냐로. 둘째, 물리력 행사. 국제법조차 내게 유리하면 국제법을 근거로, 내게 불리하면 현재성은 무시된다. 일관성조차 상실된다. 세계 해양법 조약조차 오늘은 자유해론 내일은 폐쇄해론, 날씨가 바뀌면 기준도 바뀜. 육지와 바다가 그런데 상공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바닷물이 사라지는 드라마처럼 이제는 깊은(!) 지하도 방공해야 하고, 포세이돈께 안부도 전해야 한다. 아직도 매장된 석유와 가스등 천연자원이 천문학적인데, 바닷물이 사라지는 드라마? 다른 건 몰라도 흥행성은 절반 갖고(먹고?) 들어가는 거다. 지하 깊숙이 잠자던 석유와 천연가스를 추출하면, 너무 많이 알면 좋지 않을 수도 있다. 백성의 원성을 사고 황제의 명성에 대한 평판이 흉흉할지라도 그게 사극이면 괜찮다. 그러나 현실이라면? 거의 모든 주변국과 다 마찰이 심한 경우를 사람으로 비유하면 그분 하면 고개를 돌린다는 뜻이다. 그러나 척질 수는 없다. 결코 그럴 수 없기 때문에 더 그럴 수 있나, 분석과 연구는 옛날에 끝났다. 그러니까 고개를 돌릴지라도 왜 앞에서는 웃을 수 밖에 없나? 왜냐하면 첫째 친구니까, 둘째 일이니까, 셋째 원래 심성이 곱고 인성이 바를지라도 현재 나를 이끄는 원동력은 아마도 그분이 아닐 테니까. 그렇다. 같은 사람이다. 동문이다. 이웃이다. 친구다. 대체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이해하려는 노력은 최소한 해야 한다. 방대한 지식과 역사적 사실과 여러 학파의 견해에 이르는 정보, 그리고 예술과 오락산업에 따른 간접경험과 군인의 직접경험까지, 그 모두를 통틀어 아픔을 겪은 예가 어디 한둘일까?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딨고, 줄거리 없는 사랑 핑계없는 무덤이 어디 있을까? 지금 현재 앵글로색슨의 후예끼리 서로 복수를 꿈꾸나? 그런데 왜 특정 후발주자의 예는 그렇게 특이해야만 할까? 공룡계 후발주자가 이걸로 끝일까? 절대 그럴 리는 없다. 곧 따라온다. 멀리 있는 것도 아니다. 나중 다 따라할 수도 있다. 더 심하지 말란 법도 없다. 그렇다고 기존 공룡들은 학예회처럼 박수만 치고 있을까?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다양한 서사와 여러 입장, 시대적 흐름에 어울리지 않는 일방적 군사력? 외교력? 영화에서처럼 십자가 차량을 공격하거나 실제처럼 민간 어선이 군사활동을 하는 예가 걱정되지 않나요? 뉴스에 나온다. 배수량 몇 톤짜리 항공모함이. 남자들끼리 얘기한다. 해군 출신 친구가 말한다. 너 이지스함이 뜨면 얼마나 많은 배들이 따라가는 줄 아냐, 라면서. 하지만 남자들은 안다. 그건 사실 신뢰의 목적과 거대한 운반선이자 정치적 목적에 적합한 함선이라는 것을. 그 영웅은 얼굴마담일 수도 있고, 숨은 실력자는 바로 두더쥐라는 것을. SF영화란 것을 말이다. 학자나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군복을 입어봤으면 각자 할 얘기들이 많다는 것이다. 단지 침묵할 뿐. 공교롭게도 군인 신분을 경험했고, 민간인이 되어 교도소에 갔던 게 자랑이랄 수는 없지만 말이다. 군사학과 전쟁론은 영화가 아니란 걸 아니까 우려스럽지 않을 수 없다. 가상으로 특이한 행보를 보이는 공룡에게 묻고 답하는 상상을 할 수도 있다. 이처럼. 사회 규범에 위배되는 일 아닙니까? 몰라요! 예의상 그러면 안되는 것 아닙니까, 그럼 서로 곤란하지 않습니까? 품위 싫어요. 공식 발언은 그것과 거리가 있지만 결과는 매번 달랐다. 사실이다. 주변국의 국사 교과서를 보지 않아도 된다. 사교계에서 1급인데 국제법보다 그 위에 있는지 의심스럽다. 자유인이니까. 물론 1세기 전에는 국제적으로 알력 다툼이 심했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같이 그러는 분위기였으며 누가 먼저 봉기를 들었고, 그래서 제1차-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그건 1800년대의 그림자였다. 그런데 배보다 배꼽이 더 커졌다. 그리고 올림픽도 약 1세기 전에 부활했다. 그러나 지난 일은 어쩔 수 없다. 그래서 지금 시대에 과거와 똑같은 정책은 지탄을, 적어도 걱정을 끼칠 수 밖에 없다. 지금은 당시와 달리 그런 세상이 아니니까. 심각한 뒷북이니까! 예술은 시대를 뛰어넘고, 장르도 초현실이 있으며, 과목도 산업도 미래지향적이지 않을 수 없다. 유로처럼 성공이라 호평하기에 퍽 애매한 전위적 시행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학생이 지역이 아니라 과거로부터 이사 오면 이건 상황이 꽤 난처해진다. 남은 몰라도 복학생 본인은 괜찮다. 교칙도 없고 선생님도 없으니까. 본인이야 좋고 편하고 정당하다. 딴 건 몰라도 힘 세고 돈 많으니까. 꿈도 롤모델도 부모도 없다. 학교에서도 따분한 과목은 뒷전이고 나중 돈 되는 과목만 인기다. 과장하자면 복학생은 심심하면 경제 보복이다. 학생회는 큰 힘이 없다. 기록적으로 지금만큼 학생회의 역할과 위상이 큰 적이 없었지만 학생회의 꾸지람은 거의 솜방망이가 전부다. 학교 폭력은 옛날 얘기니까 툭하면 야금야금이다. 오직 독서실 드라마인데 대회가 웬말이냐, 쨉이 전부다. 학생회의 '바른 말 고운 말' 운동 협약도, 학생 단체의 강압에 의한 갈취 금지 서약도, 답은 NO! 싫다다. 사인하지 않았으니 첫째 내 맘대로 하겠다, 둘째 언젠가 언어 폭력과 용돈을 상납받겠다 라는 분명한 의지의 표명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다. 그게 아니면 사인하지 않을 이유도 명분도 뭣도 없다. 학교는 발전하고 학생회는 현대식인데 전학생은 과거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왔다. 그래서 장르는 사극이고, 신분은 아마도 황제가 아닐까? 그런다고 사인을 하면 명쾌한 법치주의와 평화가 보장되냐, 그것도 아니다. 조약해도 조약을 어기고, 협약해도 그때뿐이다. 그건 학생이 아니다. 업자고 폭력배고 액션 영화에나 등장하는 치한이다. 지금이 어느 시댄데! 에르메스인데 가짜 에르메스고, 명찰은 신사인데 절대 믿을 수 없는 남자다. 의무는 없고 권리만 내세우는 입장이다. 따라서 결국 전학생은 그걸 원하고 있구나 라는 결론이 도출된다. 불투명한 의도와 패권의 목적은 완전한 동물의 세계를 지향한다는 것. 하지만 순진하게 믿을 수도, 고고하게 거리를 둘 수도 없다. 친구고 이웃이며 동급생이자 짝궁이니까. 괴로워도 골치 아파도 구식이어도 상대하지 않을 수 없다. 심지어 바로 옆자리까지 1984다. 더구나 학교를 장악하는 규율이 없다. 학생회는 약하다. 윤리는 멀리 있다. 전학생은 꾸준히 구식을 고집할 것이다. 그러므로 모범생도 운동부도 독서부도 복학생과 문제아까지 합심하는 게 좋고, 학교 이전에 이곳은 맹수의 고장인 정글이라는 것을 잊으면 안된다. 원래 복학생의 본성은 다른 학생들과 똑같은가 하면 그건 확신할 수 없다. 왜냐하면 국제사회에 증명해야 할, 지금이 아닌 미래의 몫일 테니까. 어쨌든 적어도 오늘은 내일이 아니다. 오늘과 내일은 다르다. 고로 전학생의 영혼은 1퍼센트의 1퍼센트의 1퍼센트의... 라는 어떤 무언가가 지배하고 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 사실을 누가 모르랴. 나는 군인이었던 시절 한 군인의 눈빛을 기억한다. 내가 입었던 군복과 소속을 두고 상중하에 대해서 중하에 해당하는 부분도 많겠지만 나름 상이라고 내세울 수 있는 건 그거다. 많이 돌아다녔고, 많은 사람을 만났고, 또래에 비해서 다양한 경험을 했다는 것. 그 셋은 괜찮았다. 당시 우리 부대에 어느 날 한 작전장교가 전출왔다. 계급은 대위였다. 그는 거의 특수부대 경력이 전부였고, 훈련과 작전과 실전이 전부지 쉬고 놀고 그런 건 모르는 군인이었다. 아예 싫어했다. 그래서 그는 온지 얼마 안되서 크게 실망했다. 완전 낙심했다. 심한 표현을 다듬자면 이게 뭐냐 이런 뭐라뭐라, 그런 얘기였다. 인상 팍! 그는 천상 군인이었다. 눈빛이 살아있었다. 난 느꼈다. 빛나는 그 눈빛을! 실제 말로도 그랬다. 엉덩이가 근질근질하다고. 내 추측인가 들었는가 가물가물하다. 스타가 그 어떤 비보에도 눈 하나 꿈쩍 않는 이성주의자여야 한다면 현장을 누벼야 할 훌륭한 군인은 바로 그런 사람이라고 직감했다. 하지만 당시 난 나중 제대해서 존 파울즈의 '프랑스 중위의 여자'에 비견되는 뛰어난 소설을 써야겠다 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여러 기억과 많은 체험과 그분의 눈빛이 인상적이었을 뿐. 그와 같은 군인 정신이 원소기호로 모여 첨단 장비로 똘똘 뭉친 공룡. 그런 공룡이 독서실에서 고시 공부를 하는 모습이 참 다행스럽게도 현재의 실정이다. 하이틴 독서실 드라마인데 보이스카웃이 웬말이냐, 심심함은 운명이고 준비 대기는 끝없는 숙명이다. 그런데 과거가 의심스러운 군인 스타일 전학생이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났다? 설마 타임머신을 타고 왔을까? 이게 보통 일일까? 그럴 수는 없다. 그럴 리는 없단 말이다. 친구들끼리 다 아는 얘기다. 소문 옛날에 퍼졌다. 껄끄러운 전학생과 제1범주로 친할 수 밖에, 적어도 옆자리 단짝은 피할 수도 마다할 수도 없다. 조숙한 친구들이 내 무관심, 내 방관, 내 편협한 시작, 내 불공정한 견해, 내 옹졸한 세계관을 전에 어떻게 봤을까? 아 창피하다. 오오 부끄럽다. 적잖이 수치스럽다. 그리고 지금 어떻게 생각할까? 또 내일의 평가는? 나도 방관자였고 순응자였으며 불의의 동조자였다. 미필적 고의라는 죄목으로 나는 죄인이었다. 나는 결백하지 않다. 내 흑심만 봐도 뻔하다. 그러면서, 꿈에서 순결한 피앙세를 만날까 고대한다. 아무튼, 그래도 명목상은 우정이고 내일은 사랑이다. 너도 무엇이든 어디든지 한발 걸치고 있는 건 아니니, 라고 물어본다면 극구 부인하지는 못하겠다. 판돈도 떨.. 아니 처음부터 없었다. 가슴에 손을 얹고서 말이다. 열만 좋았던 것이다. 그러니까 이 사설에 무엇을 걸래? 걸 수 있는 건 진심 밖에 없다. 감수성이 예민하고 연습벌레에 인성이 바른 사람은 연예계의 별일 수 있다. 호기심이 대단할수록 특정 직업군에 유리하고, 될 수 있으면 낙천적일수록 유쾌한 인생을 살 가능성이 크다. 허나 그 어떤 상황에서라도 침착하지 못한 사람은 별이 달린 군모를 쓸 자격이 없다. 저 별과 이 별은 다른 것이다. 완전 딴판이다. 그 세계는 달콤한 연가도 재밌는 드라마도 아니다. 그건 영화와 다르다. 전혀. 별들의 회의를 들어 본 사람은 안다. 군복을 입었더라도 아무나 그 자리에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다리 건너 듣더라도 아서왕의 참석 유무는 몰라도 별들의 원탁에서는 사람 목숨은 파리 목숨과 하나도 다를 게 없다. 내 친구가 어렸을 때 깡섬에서 놀이터도 장난감도 없으니까 했던 놀이, 혼자 연습볼 대신에 살아있는 개구리를 코앞에 던져서 방망이를 휘두르며 놀기, 어른이 되어서도 공원에서 개미에게 신이 되어 막 어떤 행동을 아무렇지 않게 하며 놀기. 개미와 개구리는 그 녀석이라면 치를 떨었을 것이다. 그들이 신과 같은 존재를 어떻게 알겠냐마는. 사이코머시기는 아니지만 사람마다 다른 정체성을 타고 나기 때문이다. 전문용어도 어려운 그 무엇이 사람마다 약간씩 다른 특징을 보이듯이 군인에게 요구되는 특성은 엄격성이고, 별들은 어떤 숫자에 대해서 침착할 수 밖에 없다. 군복을 입어 봤던 사람들도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다. 이 세상이 상쾌한 트럼펫 협주곡을 듣고, 향긋한 커피를 마시며, 연인과 다정한 사랑을 속삭이는 로맨스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 위해서, 우리는 트럼펫 협주곡을 들어야만 하는 것이다. 최소한 알아야 하는 것이다. 나는 학교 다닐 때 누굴 괴롭혔던 일이 단 한번도 없었다. 다툼은 있었고 싸우기도 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내가 크게 나쁜 역할을 맡아야 하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아, 그 일은 상대방에서 어떻게 받아들일 수도 있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반에서 제일 뒷자리에 앉았고, 그런대로 큰 편이었고, 짝궁은 레슬링부 출신 복학생이었다. 우린 친했다. 점심식사는 급식이 아니고 도시락이었다. 난 당시 농구를 좀 했고, 인기도 괜찮았으며, 까칠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점심시간에 애들 반찬을 맛보기 위해 교실을 한 바퀴 돌았었다. 드라마식으로 그렇게 아무나 돌 수 없었냐, 것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이제 와서 보니 그것도 어떻게 보면 작은 폭거에 해당할 수도 있겠구나 그런 생각이 든다. 우리는 이 이상한 학교에서 영원히 졸업할 수는 없단 말인가? 아니면 전학생 따라하기, 즉 모범생도 날라리도 미술부도 복학생까지 다 옛날로 돌아갈까? 그러니까, 옛날이 아름답던가? 이따금 그때가 좋았다 라는 말도 맞지만 그건 주로 당시 잘나가던 몇몇만 좋았던 경우가 많다. 이 변화의 바람이 학교에 이로울까? 학교의 디자인도, 질서도, 문화는 물론 전통마저 바뀔지 모르는데? 만약 그렇게 되면 외계에서 아니, 스스로 따져도 지구는 더 이상 훌륭한 명문 학교가 아닐 것이다. 나는 반대다. 그런 퇴보는 싫다. 친구들이 그런다. 대하드라마에서 조공을 상납했듯이 지금도 땅이든 뭐든 자진납세하라는 것과 뭐가 다르냐고. 그런 액션 영화는 참 재미없다고 한다. 흥미도 교훈도 특색마저 없다고 한다. 덩치에도 걸맞지 않다는 걸 누가 모르랴. 무엇보다 미래 세대가 무척이나 흐뭇해 하시겠네. 이 일을 대체 어쩌면 좋니! 내일 일을 오늘 생각할 필요도 없고, 현재도 험담가는 웃고 냉소주의자는 세상의 불행을 즐긴다. 호사가? 두말하면 잔소리다. 핸드폰을 집어던지면 잠깐은 시원하다. 처음 바람을 필 때 기분이 어떻다고 하더라. 소파에 쥬스를 엎지르고, 화분을 깨고, 웬 바람이 불어 직접 만든 빵을 먹고 싶네 그래서 어떡하다가 하필 침대 위에 밀가루를 엎지르다? 소셜 네트워크 컨텐츠가 아니라면 줄거리는 후세 길이길이 전해진다. 세월의 불행을 차용해서 잠시 행복할 수는 있다. 남자의 우정은 그럴 수 있지만 외교의 세계에서도? 하긴 원래 세상이 그랬다. 인류가 존속하는 동안 내내. 그러나 시대가 변했다. 그러면 앞으로는 좀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언제까지 과거 기준과 어릴 적 생각으로 인생을 살아야 한단 말인가. 물론 다소 부적절한 비유에 부풀린 추정일 수도 있다. 하지만 대략은 맞는 얘기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이 왜 있는가, 에 대해서는 차치하고 사실만 따져보자면 그렇다. 그 부조리는, 실제로 학업과 상업과 마술과 율법 및 인생처럼 먼저 겪냐 나중 겪냐, 그 차이 밖에 없기 때문이다. 거의 다 선험 집단에서 먼저 겪은 일들이 후발주자의 현재에 엄연히 실존한다. 언제식, 언제식, 어디의 언제식, 그렇게. 그것의 문제가 뭐냐 하면 선험자가 겪었던 모든 굴곡을 답습한다는 것이다. 구강기, 소년기, 유년기, 사춘기, 몽정기는 물론 권태기까지 더없이 꼼꼼하게 재현된다. 장점만 본뜨면 될 텐데 굳이 안 가도 될 후미진 나이트클럽에 가고, 굳이 사귀지 않아도 될 텐데 그냥 허당과 친하고, 굳이 조숙하지 않아도 괜찮은데 의무방어전도 토너먼트도 연습경기도 다 경험하고 따라할 수도 있다. 실패한 정책과 타당하지 못한 법안과 아름답지 못한 관습까지 차곡차곡 재현된다. 꼭 선구자이지 않아도 되고, 철저한 사명감으로 미래지향적인 인생을 살지 않아도 된다. 경험자들이 있고, 친절한 자료가 있으며, 놀라운 장비와 다양한 장르가 있기 때문이다. 브랜드 A부터 Z까지 최고급 차를 내 집에 들이는 게 꿈이다? 그런 촌스런 꿈을 이미 실현시켰다가 다시 꿈2.0 저 너머로 가버린 사람의 인터뷰는 TV만 틀어도 잡지만 뒤적거려도 나온다. 날이면 날마다. 소년이 어느 날 장비병에 걸린다. 검색을 한다. 샀다 팔고 샀다 팔고, 를 반복한다. 그러다 어느 날 변심한다. 머머 접습니다 라고. 단순히 그 과정에서 기쁨을 느낀다면 모를까, 취미가 아닌 직업이라면 현명한 방법은 아니다. 그걸 뭐라하냐, 아마추어라고 한다. 아마추어 정신이 좋으면 취미를 바꾸면 그만이다. 하지만 까탈스럽기만 하고 실력은 변변치 않은 지휘자 때문에 교향악단, 시향 직원과 교향악단 연회원, 도시 평판과 관객들은 골머리를 앓는 수가 있다. 그게 만약 정치라면 저 멀리까지 가서 언제 세대가 뒷수습까지 하는 일,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더 좋은 길, 더 옳은 길, 더 아름다운 길, 더 나은 길, 더 즐거운 길, 더 합당한 길, 더 이상적인 길, 더 빠른 길, 더 안전한 길들을 놔두고 대체 왜 굳이 모든 길흉화복과 여러 산전수전을 참으로 친절하게도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답습해야 한단 말인가. 대체 왜? 그래도 체제가 현대적이면 그나마 낫다. 그렇지 않다면 <내가 만약 누구라면!> 라고 상상이라도 했다간 큰일날 수 있으니까. 서라면 서고 앉으라면 앉어야 하니까. 좋은 집안, 아니 중간만 가는 환경이라면 천재가 될지도 모를 텐데 귀머거리 삼 년, 장님 삼 년, 벙어리 삼 년이라고 그처럼 선장과 선주와 주주와 경영진을 위한 생애를 살아야 하는 운명은 지구인 가운데 일부 현재의 다수와 미래의 세대일지도 모를 일이다. 공기업은 매각되는 게 좋을까, 좋지 않을까? 의료민영화의 장단점은 무엇일까? 어디에 가봤더니 인공수로가 멋지던데, 협소한 자연강을 인공수로처럼 다듬자, 옳을까 옳지 않을까? 파나마 운하의 공인된 성과는 익히 자자하다, 따라서 제2 제3의 파나마 운하를 계속 만드는 건 좋은 일일까, 좋지 않은 일일까? 공동 통화와 중앙은행을 공유하는 건 좋을까 아닐까? 불평등의 대가는 무엇일까? GDP는 믿을 수 있을까 없을까? 적지 않은 정책과 시도와 계획은 어지간하면 가설부터 시험과 적용과 성공과 실패의 사례가 존재한다. 그걸 가장 쉽게 찾는 방법은 인터넷 검색이고, 좀처럼 어려운 방법은 지성인과 한잔의 차를 마시며 듣는 것이며, 아마도 따분한 방법으로는 강의실에서 교수님의 잘생긴 얼굴에 현혹되어 강의 내용을 놓치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또 과학적으로 치밀하게 검토하는 것은 데이터베이스 데이터마이닝등 무슨 전문용어에 따른 방법이 있을 것이다. 화술이 좋고 추진력이 있으며 외모와 경력과 성실함등 뭐 하나 빠짐없는 조건의 리더가 도입하고자 하는 방법. 이미 다 누군가 해 보지 않았을까? 나중 포르쉐를 살까 페라리를 살까, 포르쉐와 페라리를 둘 다 몰아봤던 사람의 얘기를 직접 듣고 아마추어 정신의 장점과 전문가의 고견을 오랜 세월 동안 모두 꿰찬 다음,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게 정답이다. 기계식 키보드를 처음으로 사 볼까 해서 검색해 보면 딱 눈에 띄는 댓글이 보인다, 결국 다 머머로 넘어옵니다 라고. 느낌 오면 한방에 가는 거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에르메스와 머머머는 어려워도 그건 가능하니까. 헤픈 일도 처지에 걸맞지 않게 사치스런 과소비도 방탕한 불건점함도 아니니까 말이다. 나는 커서 럭셔리 잡지에 나오는 거라면 전부 살 거야, 나는 커서 1층 뭐 2층 뭐 3층 뭐를 운영하는 소심한 사장이 될 거야, 나는 나중 패션산업계의 큰손이 될 꺼야 등등 다 좋다. 개인의 꿈이니까. 문제는 개인의 꿈이 정치였을 때, 개인의 야망이 시대를 이끌 때, 개인의 대망이 이론이랄지 환상머신 또는 학파로 견고해질 때, 바로 그건 전혀 다른 게임이 되는 것이다. 그 가운데 정규 과정이랄지 시절에 알맞는 모험과 청춘의 경험이 친구들과 동떨어진 경우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마르크스호다. 이론은 좋다. 말로는 정치도 백점이다. 단기 성과를 챙기고 장기적 관점도 배제하지 않는다. 하지만 실제는 이론과 다르다. 게다가 완전 옛날 얘기다. 심지어 이론과 실제 모두 완전한 실패임이 옛날에 증명됐다. 뿐만 아니라 책은 찾기도 힘들고 지식도 구식이 됐다. 그래서 결론은, 그런 이론이 있었다 옛날에 유행했던 적이 있었다, 그게 다다. 그 이념 때문에 금세기는 아시다시피 일부 진행중이고, 전세기에 얼마나 크나큰 시련이 있었던가! 그 전으로 더 거슬러 올라가면 왕조시대. 사극에서 보던 그대로. 곧 드물게 현존하는 마르크스호의 특징을 알 필요가 있다. 주권이 만약 국민에게 있다면 선장은 물론이요 지휘부와 정치계와 환경까지 모두 바꿀 수 있다. 누가? 국민이! 선출, 행정, 평가, 개선, 보완, 변화가 다 가능하다. 그런데 주권이 만약 국민에게 없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오직 시키는 대로만 해야 하고, 제한된 자유가 주어질 뿐이다. 대다수, 절대다수는 배가 산으로 가든, 배가 바다로 가든, 배가 꿈나라로 가든,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앉어! 앉어야 한다. 서! 서야 한다. 닥치고 써! 침묵한 채 써야 한다. 선주는 유일당이고, 리더는 선장이며, 체제는 불변하며 영원을 지향한다. 따라서 제1인자와 유일당 입장에서 그 무엇보다 제일 중요한 것은 첫째가 체제 유지고, 둘째가 번영을 위한 항행이다. 첫째가 아니면 둘째도 없다. 둘째를 위해 첫째가 존재한다고 주장하지만 행복한 둘째를 위해서 독재적인 첫째를 희생할 수는 없는 일이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만약 첫째가 침해 받는 움직임이 감지된다, 그것이 무엇이든 망설임없이 깨끗이 묵살시킬 수 밖에 없다. 사극에서 보듯이 쉽든 어렵든 모두 가능하며 실제 사례가 존재한다. 만약 둘째에 대해서 불만이 커진다, 행복하지 않다, 딜레마가 많다, 불합리하다, 불평등하다, 자유롭지 못하다 등등? 그래도 다 방법이 있다. 많다. 목표는 모비딕에 목적이 행복의 완성일지도 모르지만 그다지 공감하기 어려운 이론 같이 느껴진다. 완곡하게 말해서 그렇고 직접 경험한 사람들 말은 또 다르다. 단언컨대 연식의 중요성은 결코 간과할 수 없다. 아무리 해도 지나치지 않다. 연식이 왜 중요하냐면 통계와 학설과 사실등을 통합하면 거의 과학에 근접하기 때문이다. 왕조시대즈음까지는 90퍼센트가 인접국간 전쟁이었다. 거의 다였다. 옛날부터 현재까지 경우의 수가 딱 나온다. 민주주의 대 민주주의, 어떤 가능성은 현저히 낮다. 하지만 체제가 현대적이지 않다? 주변국과의 분쟁, 마찰이 심하다. 스위스, 오스트리아, 벨기에, 룩셈부르크가 주변국과 심하게 다투나? 아니다. 영국과 프랑스의 무슨 전조와 징후가 심심치 않게 드러날까? 아니다. 역사적 통계로 봤을 때 최대 위협국이어야 할 인접국인 캐나다와 미국의 다툼은? 외교 문제라고 볼 수 없는 미미한 수준이 거의 전부다. 과거는 인접국간이었으면 지금은 문명이 발달했으니까 멀리 떨어진 호주가 아이슬란드를 어떻게 한번 해 보겠다는 본심을 감춘다? 남자가 어느 여자를 눈독들이다가 어떻게 한번 해보지도 못하고 사랑은 끝났더라, 뭐 그런 얘기를 하자는 건가! 그런 일은 없다. 서기 올해라는 시간과 정치-경제-사회-환경-체제의 연식이 같으면 학생회의 간섭하에 분쟁은 존재할지라도 상황이 심각하게 악화될 소지는 없다. 혹시 있을지라도 요술봉을 휘두르듯 갑자기 뚝딱이 아니라 긴 서사와 많은 정보와 주인공-조연들의 활약이 없을 수가 없다. 그러나 무언가가 현대식이 아니라면 분쟁이 다양하고 많으며 끊이질 않고, 국제기구의 권고도 반겨하지 않는다. 아니 솜방망이인데 뭘, 그거니까. 그러므로 결과적으로 신식과 구식의 대치가 문제될 뿐이다. 어떤 연식이 구식임과 동시에 주변국 숫자가 10에서 20이다? 그 숫자가 2든 20이든 모두 잠재적, 실질적 적국이다. 스포츠에서 숙적과 군사적 주적은 많이 다르다. (하지만 뭔 사연이 깊다면 군사적으로는 어떻게 보더라도 다른 분야는 달리 봐야 하는 게 타당하다) 더군다나 과학의 발달 때문에 그 숫자는 늘 수도, 집중할 수도 있다. 그래서 현대식 주택이면 동네 수준이 있으니까 옆집이 몰락하거나 소란스러운 일은 반갑지 않은 반면, 주택이나 적어도 의식이 현대적이지 않다면 최소한 옆집의 전반적인 형편이 좋아지기를 바랄 수는 없는 거다. 왜냐하면 구식 기준으로 근접 국가는 적인데 적의 힘이 세지면 우리는 식민지가 될 가능성이 그만큼 커지기 때문이다. 옛날에 전쟁은 그래서 늘상 끊이질 않았다. 초식동물이 치타를 먼저 건든다, 치타는 하이에나를, 하이에나는 사자를, 사자는 보이는 대로! 간혹 어설프게 초식동물 잘못 건드렸다가 큰코다치는 일도 심심치 않게 발생함. (아프리카에서만? 그건 직접 공부합시다) 그랬다. 항상 그랬다. 아직도 그와 같은 구시대 전략은 일부 실존한다.
핵보유국을 살펴보자. 선발주자라는 기존 공룡외에 후발주자를 봐 보자. 너는 되고 나는 안되냐 불합리하다, 라는 주장에 의거하여 왜 후발주자를 논하는가 라는 이유를 밝힌다. 왜냐하면 구시대에 인접국은 제일 많이 싸운 나라인데 반해, 현재 민주주의 체제는 불확실성 발발의 가능성이 가장 낮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제는 후발주자를 들여다보자. 구식과 신식이라는 연식에 근거하여 설명하자면 이와 같다. 먼저 구분은 약 5가지로 나눌 수 있다. 스타워즈 광선검의 실존, 과거형, 의심, 시도한 전력, 그리고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든지까지. 그에 따라 5가지 구분을 통합하고, 이제는 우리의 중요 관점인 구식과 신식의 공존이라는 <지역>을 기준으로 나열하면 이렇다. 시리아─이라크─이란─파키스탄─인도─중국─과거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뉴스에 오르내리는 그분까지. 이 모두가 전쟁이 발생할 확률이 가장 높다는 인접국 즉 구시대 기준이다. 정확히 맞닿아 있다. 기차처럼 나란히 연결되어 있다. 놀랍게도! 그게 우연인지 어쩐지 그건 모르겠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또 위로는 러시아가 있다.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든지' 가능한 국가가 또 그 옆에 몇 개 있다. 그곳은 기존 공룡과 동맹이다. 그 불가사의한 선분만 해도 대충 세계 인구의 50퍼센트다. 칙칙폭폭 그 다큐멘터리호가 사랑의 나라로, 행복한 낙원으로, 기쁨의 내일로 가기를 염월할 뿐. 누군가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이처럼 의견을 피력하는 것일 수도 있다. 지금까지 '모른 체'라는 자세로 인류가 진보했을까? 에이 알면서! 사랑의 태도와 세계관은 전혀 생소한 무언가가 아니다. 당신의 최선은 사설 읽기일 수도 있고─이왕 읽을 거면 무지개를 다. 하나만 1년 10년 읽어도 나도 모르게 물드니까. 세뇌와 통제와 1984는 인간 세상에서 얼마든지 가능한 기술임을 알아야 한다─특파원으로 살기, 북극곰의 현실을 알리기, 시대적으로 어떤 치열한 역할일 수도 있을 테고, 그린피스를 후원하기, 타락한 천사에 대해 알아보기, 세계사를 공부하기..는 어려워도 최소한의 상식과 교양은 갖추기, 어디가든 무엇을 하든 어떻게 살든 최악의 사태에 대비하기, 대체 왜 어른들이 정치-경제-사회를 논하는지 이해하기, 차악에서 탈출하고 차선에서 미끄러져도 중간은 가기, 그것이 곧 꿈이고 정치 철학이자 인생관이다. 이젠 유럽으로 넘어가자. 스페인, 포르투칼, 이탈리아, 스위스, 오스트리아, 네델란드, 덴마크, 핀란드, 헝가리, 벨기에, 룩셈부르크, 노르웨이, 스웨덴, 크로아티아, 독일, 체코, 루마니아, 그리스 등등 이런 나라들은 그것이 있을까 없을까? 없다. 필요없다. 필요하지 않다. 왜? 인접국이지만 민주주의 체제이기 때문에 전쟁 가능성이 현저히 낮기 때문이다. 영국과 프랑스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이 차이가 뭘까? 적이냐 이웃이냐다. 잠재적인 곧 최소한 군사적으로 앙숙이냐 아니면 친구냐다. 같은 시대를 살지만 한쪽은 완벽히 구시대적이고, 한쪽은 완벽히 현대적이다. 완전하게 나뉜다. 딱 봐도 뭐가 좋고 뭐가 나쁜지 구분이 어려울까? 과연 그럴까? 리더가 무서우니까 공적으로는 몰라도 사적으로는 말할 수 있다. 태생을 골라서 태어날 수 있다면 저 둘 중에 정말 어디에서 태어나고 싶을까? 하지만 일반인은 움츠러들지 말자. 우수한 문화를 천시하고 정체성을 존중하지 않으며 시대적 성격을 깔보자는 의도로 꺼낸 논의가 절대 아니기 때문에. 어차피 리더의 문제이기에!
현대적이라함은 곧 자유와 다양성을 뜻한다. 그런데 반대의 목소리가 놀랍게도 없다? 너무 조용하다? 어떤 리더를 진짜로 좋아하는 건가, 어떤 행동까지 속으로도 진짜 반기는 건가? 보수쪽에서 쓴소리를 하지도, 진보에서 시위를 하지도, 각계각층에서 별로 불만도 없고 심심하다? 그러면서 이방인을 반긴다? 그건 곧 완벽한 통제 때문에 반대 급부가 없다는 거다. 고로 내가 지원하는 정당과 응원하는 정치인이 고전을 면치 못함으로도 모자라 지지율이 바닥을 긴다면, 내 기분은 꽝이지만 그건 한편으로 그 사회가 매우 건강하다는 것을 뜻한다. 잘 돌아가고 있단 증거다. 언짢은 뉴스가 번갈아 가며 등장하거나 잊혀질만 하면 대두된다? 그건 한편으로 그 사회가 매우 건강하다는 것을 뜻한다. 잘 돌아가고 있단 증거다. 국제로 시작해서 정치부터 문화까지, 아 경제가 빠졌구나! 급진이니 강경파니 극보수라는 둥 온건이라는 둥, 일관성이 부족한 건 아닌가, 객관적이지 못한 거 아니냐, 저 친구들처럼 똥개 몇 마리 구하기 위해 참 멀리까지 가서 고생을 하는 모습은 왜 여기선 보이지 않나, 남자는 여자처럼 잡지1과 2의 구분이 대체로 없지만 드물게 어르신께서 보시는 월간지라는 게 있다 그런데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에서 한두 가지 색깔은 나와 맞는데 다른 건 도무지 영 그게... 연예인과 예술가와 유명인과 정치인의 구분이 모호해져버린 이 현실이, 세상 돌아가는 게 도저히 마음에 들지 않고 이해할 수 없다? 그건 한편으로 그 사회가 매우 건강하다는 것을 뜻한다. 잘 돌아가고 있단 증거다. 바로, 그래서, 연식이 중요하다는 거다. 고전주의와 촌스러움도 어차피 현대적이지 않다는 건 똑같다. 하지만 생물학적 구분은 몰라도 백조는 하늘을 날 수 있지만 촌닭은 촌년과 친하기 마련이다. 어떻게 지붕에라도 올라가면 대성공이고.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볼 테니까. 굳이 고고한 백조처럼 하늘을 날 필요 있나! 지붕만 올라가면 이 세상을 다 가진 기분 아닐까? 그래도 알고 보면 촌닭이 인기가 좋긴 좋다. 그러나 촌닭은 하수고 촌닭왕은 허당이다. 동물농장론으로 빠지지 말고, 촌닭이 이사를 갈때 유의할 점이 그거다. 동네 분위기를 살펴야 한다는 점. 어느 동네에 가서 어울리지 않게 나 혼자 중세 왕처럼 으리으리한 궁전에 사는 게 마음 편할까, 동네 수준에 걸맞게 인품과 학식과 지성은 물론 농담마저 고급스런 동네로 이주하고 싶으신가? 그거다. 그게 현대식이다. 하지만 현대식이지 않은 것, 곧 그 반대는 드라마의 장르가 현대가 아니라 아직 대하드라마다. 그러면 아무래도 전망은 결코 쉽지 않아 보일 것이다.
그러나 세월은 가고 세상은 변한다. 반 세기 지나면 보수 정치인이 그런다. 그때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저는 누구를 이 세상에서 제일 존경합니다, 라고. (보수도 진보다 다 좋다만 어감이 좀 그렇다, 보수 하면 인생의 풍부한 연륜 때문에 마음이 더 넓어야 하는데 왠지 갸우뚱한다는 거. 단지 예시는 그 때문임) 그때는? 그때라는 반 세기 전이 다른 데선 지금이다. 멀리 갈 필요가 있나, 지구가 타임머신인데. 반 세기전에 대해서 내가 보고 싶은 부분만 볼 필요없이, 지금 재현되는 지구촌 다른 현장에서 내가 보고 싶은 부분만 추려서 정치인생을 걸고 칼럼을 쓰거나 발표를 하면 된다. 깔끔하다. 상대의 단점만 파고들고 비겁하게 내게 유리한 틀만 고집할 필요없다. 당당히 철학을 밝히고 생각을 알리면 된다. 듣는 사람 중 우물 안 개구리가 다수일지도 모르지만. 안 그렇수? 그때가 언젠데. 생각을 뒤쪽으로 유도하고, 관점을 극히 보수적인 틀로 좁히며, 심정을 언제식으로, 향수마저 자극하여 현 시대에 구식으로 정치를 한다라... 듣기 싫어도 들리는 걸 보면 노이즈마케팅의 성공일까? 어느 범주의 민심은 표로 연결되는 걸 보면 게릴라마케팅의 선전(善戰)일까. 냉철한 이성으로 건조한 사실만 추려서 도표로 작성해서 따지자면 절대 딱 끊어서 수학적으로 결론낼 수 없다. 생각 때문에 구시대적인 발언과 행동을 서슴치 않는 것은 좀 더 전으로 자꾸자꾸 왕조시대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론상 그 다양성과 자유가 존재하기 때문에 그 사회가 매우 건강하다는 것을 뜻하며, 그 단위가 잘 돌아가고 있다는 일리는 맞지만, 하지만 뭔가가 자꾸 나를 뒤쪽으로 끄는 점은 쉽게 등한시할 수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얼마나 뒤로 시점을 되돌리느냐, 그러면 더 더 계속 뒤로만 거슬러 올라가야 하느냐, 노인을 위한 정책은 존중하지만 노인이 한창이었던 아니 그 이전의 왕조시대의 추억을 위해 살아야 하느냐, 뭘 봐라 누구 때문 아니냐 어디가 안 보이냐 예시가 있고 근거가 있다 라는 말솜씨에 따라 50년-1세기-박물관에 사로잡혀 끙끙 않는 삶을 살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이고 현대의 시대고 미래 세대의 세상일 테니까 말이다. 이건 아니다 라고 행동하셨던 그분들이 아니었으면 아직도 민주화 운동을 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 한번 생각해 보자. 만일 그랬다면 외국의 멋진 모습, 좋은 환경, 재미난 오락, 즐거운 유희, 신나는 모험, 아름다운 자유, 행복한 인생 그 모두를 여과없이 들일 수는 없는 법. 통제하지 않으면 리더는 스스로 내려와야 하니까. 제발로 내려오기가 어디 쉬운 일이더냐. 정해진 범주 내에서만 자유가 가능했던 그처럼 심하게 수직적인 세상을 경험해 보지 않은 젊음은 오직 책과 영화, 인터넷, 교육, 예술, 다큐멘터리, 구전, TV등을 통해서 알 수 밖에 없다. 그것마저 세뇌와 최면과 규제의 틀이 존재한다면 다음 기회일 수 밖에. 실제로 신문, TV, 라디오등 대중매체는 그늘져 있기 때문에 당시 일반인은 관리되었고, 길들여졌으며, 속게 됐다. 바뀌지 않는 한 언제까지고. 뭐 하지 마! 하면 안된다. 어디 가지 마! 가면 안된다. 뭐에 대해 알려고 하지 마! 알면 곤란하다. 좋게 말해서, 곤란하다. 그외 예시는 너무 많다. 어디 끌려가고, 누가 사라지고, 어떻게 위장되고, 뭔가가 날조되며, 어떤주의가 조종하고, 출신이란 낙인은 언제 어디든 따라다니며, 친구와 동기와 지인과 스승도 제자도 누가 두더쥐인지 두더쥐가 아닌지 알 수도 믿을 수도 없는 시대. 당장 세계뉴스를 보면 된다. 아차 했으면 남의 일은 내 일이 될 수도 있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 세상을 살아보지 않고서 함부로 말하는 것조차 자유와 방종의 구분이 애매하다는 것, 법에 앞서 관습과 의식과 문화가 뒤쳐지면 안되는 이유다. 그 시절의 무언가가 좋은 점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좋았던 것이지 과정이 옳았던 게 아니라는 점, 지구와 인간이라는 타임머신이 증명한다. 그러므로 결과적으로 좋은 점은 결과적으로 좋은 점이고, 옳지 못한 과정은 천부당만부당으로 인식하면 된다. 전자가 후자를 뒤덮어서도 안되고, 후자 때문에 더더욱 전자는 물론 내 정치관의 의미와 가치와 균형마저 슬기롭게 다듬어야 한다. 그건 지극히 타당한 결론이고 명쾌하게 합당한 지각이다. 때문에 살아왔던 인생을 근거로 현재를 판단하는 것도 좋지만, 세기의 전환과 격동의 변화를 겪은 지혜로운 노년이 아니라면 살아갈 나와 후세의 인생이 더 길다는 사실을 전제로 정치를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박물관 직원은 박물관으로 가야 하고, 학생은 교복을 입고, 작가는 글을 써야 한다. 하물며 연예계도 질서가 있고 유행이 있다. 정치! 그게 아니라 친구라면 쳐줄 수 있다. 예술가가 연예인처럼 브랜드 광고를 찍는다? 그러든가 말든가! 과학자가 사업가로 변신한다? 무관심! 축산업 지겹다 나도 오락산업에 뒤늦게라도 뛰어들겠다? 남의 일이다! 냉소적인 유명인이 빨빨거리며 돌아다니고 쉬지 않고 떽떽거린다? 고개를 돌리면 그만이다. 그런데, 그런데 중차대한 권력을 행사할 리더가 그런다? 고개를 돌려서는 안된다. 싫어도 심판해야 한다. 정치인이 (극심한) 보수성을 핑계로─때와 지역에 따라 보수성이 좀 더 필요한 곳도 분명 있다, 왜 그런지는 살아보면 알고 이해할려고 생각, 생각을 해 보면 알 수 있다, 보수도 다 똑같은 보수가 아니다, 백 가지 천 가지 보수에서 나는 무엇 무엇이 보수구나 그걸 알아야 한다─자꾸 만인의 생각을 뒤로 이끈다? 져줄 수는, 져줘서는 안되는 일이다. 그분께 현재를 양도하고 미래를 양보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절대로!
남자의 환상과 여자의 로망은 다르다. 우정은 마음 맞는 친구끼리 으쌰으쌰하며 상대가 접고 꺾지 못한 채 꽉 막혔다면 각자 마이크 들고 따로 방송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사랑은 그렇지 않다. 잡은 물고기한테 밥을 주지 않는 이유는 남녀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서로 보완하고 챙겨주고 져 주어야 사랑은 유지된다. 사교도 절반은 그렇다. 외교라고 뭐가 다르겠나. 언어, 문화, 관례, 인습, 인종, 환경, 경제등이 다 다른데 외교를 마초의 우정처럼? 그건 아니다. 외교는 차라리 남녀의 애정과 닮았다. 우정과 사랑 사이 어디엔가 있는. 어디에나 내 입장만 고수하는 건 그런 모습과도 같다. 외상값도 안 갚으면서 매번 퉁명스런 손님, 아 저 인간 또 왔네 또 왔어, 옆에서는 고개를 돌려도 그래도 앞에서는 웃는다. 연예계에 유명한 선배가 보인다, 야 야 떴어 떴어, 피해 피해, 딴 데 봐 딴 데 봐! 현재 어떤 발전의 역동적인 부조화스런 상황 역시 1세기전과 거의 똑같다. 따라서 그 모두를 보자면 이건 명백히 지금 생애에만 집중하겠다는 빼도 박도 못하는 논거임에 틀림없다. 사람의 일은 어디까지나 사람의 일이고, 개인의 인생이야 온전히 개인의 것이라지만, 이거 이거 이래가지고는 자칫 잘못하다 패자부활전 어려울 수도 있겠는데? 하직하기 직전에 신에게 귀의 한다 그러므로 천국행 땅-땅-땅? 아무래도 쉽지 않아 보인다구요. 어려운 게임이 예상된다구요. 이 사안에 대해서 선생께선 과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그대의 고견을 듣고 싶단 말이오!
뭐 그렇긴 하나 현대식이 인간 세상의 이상향일 수는 없다. 그리고 천국이 지상에 실존할 수 없는 이상, 내일을 상상하는 건 우리에게 주어진 행운이자 특권이라 해도 무방하다. 과거의 합법이 현재의 불법이고, 현재의 합법이 미래의 불법이 되는 흐름은 일견 타당할 것이다. 때문에 먼 미래에는 우리가 현재까지 알았던 악역은 인공지능도 사회도 만족하지 못할 테니까 이런 모습일지도 모른다. 최소한 권태는 기본이고, 아마도 오락산업의 놀라운 변신과 성장과 번영, 어쩌면 SF 작품에 나오는 여러 일들이 실현될 수도 있을 것이다.
세상은 천재의 탄생을 환영하지만 시대는 악당의 출연을 방임한다. 그러나 우린 모두 지구에 놀러온 여행객일 뿐. 좋아하는 것을 사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된다. 보고 듣고 읽고 먹고 마시며 노래하며 춤추고 놀고, 그 가운데 주위를 둘러보면 누군가는 허풍꾼이고 누군가는 난봉꾼에 누군가는 술꾼이다. 허세냐 허영심이냐, 허당이냐 시인이냐, 애정이냐 사랑이냐, 지금은 모를 수 있다. 어쩌면 그게 당연하다. 아마도 어린이가 낭만주의자고 어른은 개구쟁이 아닐까? 보수라는 말이 애매해져버린 시대지만 보수는 괜찮다. 하지만 생각은 후진하지 말자. 앞장설 필요도 없다. 중간만 가면 된다. 적어도 회상과 구분은 하고, 차이는 이해하며, 다양성은 존중하거나 받아들이자. 아닌 건 아닌 거니까. 그래야 사랑과 허구와 행복까지 모두 우리와 함께 할 테니까.
3
제임스는 사설 마지막에 다음 문장을 넣었다가 지웠다. 끝으로 첨언하자면 이 세대의 명사가 얼마인데 이미 거론된 내용이라면 미리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 당돌한 치기였고 유감스러운 기분이 앞섰다. 자성이 선행됨은 어려워도 내부 비판이 없었을 리가 없을 테니까 아마 거론됐어도 많이 거론됐어야 맞다. 그게 옳고 합당한 예측이다. 아무래도 뒷북일 듯 하니까 말이다. 야 야, 비켜 비켜! 나와 나와. 넌 말이야... (효과음). 그건 그렇고 그는 원고료를 못받았다. 하다 하다 이젠 원고료를 떼임. 미스테리아에서 당분간 정통성을 추구한다길래 칼럼을 받지 않는다고 해서 시작한 일이었다. 때문에 마라는 일간지의 어느 편집장을 소개시켜줬다. 그분은 성격이 급했다. 다혈질인 것 같았다. 그래서 전화로 통화할 때 그는 한마디도 못하고 일장 연설을 묵묵히 들어야만 했다. 그 가운데 몇몇 얘기는 저 위에 포함된 내용이었다. 제임스는 그 일간지 편집장과 만나지 못하고 어서 사설을 완성해서 이메일로 보내라고 했다. 시작부터 독촉이었다. 하지만 제임스는 목구멍이 포도청이었다. 사야 할 책이 있었고, 사고 싶은 향수와 비누, 먹고 싶은 음식, 갚아야 할 술값이 있었으며, 그리고 혼자서라도 파티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사설을 뚝딱 완성해서 보냈다. 그런데 그 뒤로 그분과 통 연락이 되지 않았다. 그는 예전에 당숙이라 부르는 그냥 허당 친구의 일화가 기억났다. 어느 날 전당포로 물건을 찾으러 갔는데 전당포가 없어졌다는. 그는 자세히 알아봤다. 그 일간지는 내 사설을 주간지에 넘겼고, 다시 주간지는 월간지로 헐값에 매도한 듯 했다. 그 다음에 어디까지 연결되는지는 알아보다 포기했다. 살다 보니 점점 포기하는 게 많아진다. 다행일 수도 있고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도 있다. 심지어 그 일간지는 유명세도 그만그만하며 경영난을 겪고 있어서 브랜드마저 간당간당했다. 그래서 그는 그냥 고료 역시 포기했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언제까지 받고 싶어 하기만 해야 하나? 의도치 않게 선심 쓴 걸로 치부하기로 했다. 마음은 씁쓸했지만 말이다. 때문에 그는 마라에게 꼬치꼬치 그 사건을 고자질하지는 않았다. 마라 인품이면 그 돈 자기가 주는 걸로도 모자라, 최소 2배로 줄 테니까. 왠지 그는 마라가 혹시 자기를 좋아하는 건 아닐까 불현듯 의뭉스런 의심이 몽글몽글 솟구치는 걸 느꼈다. 뭐 그래서 그는 이번 기회에 이름을 바꿀까 심각하게 고려했다. 이번에는 무엇으로 바꾸지? 저 앞에 술병이 보였다. 발렌타인. 발렌타인? 아 저양반 이름이 조지였구나. 후보 1번. 그런데 후보 2번부터는 자료 조사가 귀찮았다. 그래서 그냥 조지를 필명으로 정했고, 작품 구상에 돌입했다. 하지만 글이 잘 써지지 않았다. 그럴 리가 있겠나. 따라서 그는 어쩔 수 없이 일기를 썼다.
4
12월 19일 꿈. 축제일이었음. 거리에서 혼자 축제를 즐겼다. 갑자기 선거일로 바꼈다. 시대는 사극. 혁명을 함께한 여자 동지가 갇혀있는 감옥에 찾아갔다. 쇠밧줄이 발목에 매여있는 그녀와 손잡고 거리로 나왔다. 나는 여자 동지를 후보로 입후보시켰다. 홀로 입후보해서 당선이 유력시되던 기존 후보와 여자 동지가 재투표에 들어갔다. 그런데 왠지 속은 느낌. 무엇에 또 누구에게, 그건 알 수 없었다. 다시 분위기는 축제로 바꼈다. 어느 학교 안의 계단에서 여자 동지를 마주쳤다. 난 그녀를 알아봤지만 그녀는 날 몰라봤다. 그녀는 바쁘게 뛰어갔다. 나는 그녀를 뒤쫓았다. 내 귀는 천리 밖의 소리를 들을 수는 없었지만 그녀의 혼잣말은 듣게 됐다. 강력한 상대와 패자부활전을 치러야 한다는. 나는 그녀를 계속 쫓아갔다. 강변을 달리고 다리를 건너고 바람을 맞았다. 그러다 경기장에 도착했다. 경기장 내부는 콜로세움 같은 미로였다. 설마 여긴 교도소? 그러다 경기장에서 친구 1, 2를 만났다. 그런데 갑자기 뜬금없이 피앙세가 나타났다. 그녀는 내게 말했다. 「오빠 뭐해?」 그녀의 말을 친구들과 함께 들었고, 난 으쓱했으며, 친구들 앞에서 체면이 섰다. 흐흐흐흐흐! 우린 함께 놀기로 했다. 그러다 잠깐 나는 일행을 놔두고 혼자 잠깐 경기장으로 가서 여자 동지의 경기를 구경하다 다시 돌아왔다. 연장전이었고 난타전이었지만 경기는 이제 관심 밖으로 멀어졌다. 우리는 시합을 뒤로 하고 먼저 경기장을 나가기로 했다. 어느 노천 카페에 들어갔다. 나는 차를 마시며 피앙세를 훔쳐 봤다. 그녀는 넥타이를 맺다. 여성스런 취향으로 멋지게. 여전히 예뻤다. 그녀는 날 빤히 쳐다봤다. 언제까지 오빠를 기다려야 하느냐는 표정으로. 하지만 난 딴청을 피웠고 눈길을 피했다. 나는 그녀가 어떤 코치를 받고 왔는지 생각했다. 난 아무 말도 할지 못했다. 그때 카리스마 친구3이 등장해서 합류했다. 친구3이 말했다. 「넥타이라도 좀 매고 오지 그랬냐?」 꿈인지 생시인지 잘 분간이 되지 않았다. 더군다나 나는 내 피앙세를 본지가 거의 10년 가까이 되었기 때문에 그녀를 바로 코앞에서 보고 있지만 그녀의 얼굴 모습이 선명하지 않았다. 흐릿했다. 아니 자세히 보질 못했다. 하지만 그녀를 보고 싶었기 때문에 내가 만들어낸 환영은 아닐까 라는 생각도 해 봤다. 예전 기억과 교차되어 헷갈렸다. 그때 친구3이 내 지갑을 봤다. 「어, 너 지갑 샀냐?」 「싼 거야. 아니 아빠 건가?」 난 고개를 숙였다. 내 초라한 모습을 그녀에게 들킬 것만 같아서. 별안간 그녀는 오늘의 운세를 뽑는 소형 자판기 앞으로 갔다. 자판기를 그녀가 만지가 그것은 시장에서 볼 수 있는 상인들의 의류 악세서리 같은 걸로 변했다. 그녀는 그걸 착용했고 이렇게 저렇게 모양새를 바꿔 봤다. 그녀는 그걸 엉덩이쪽에 대고 뽑기 버튼을 눌렀다. 이때 친구3이 그녀쪽으로 다가가며 도와줄려고 했다. 피앙세는 오늘의 운세를 뽑아서 잠시 자리를 뜬 것 같았다. 여기까지가 어제 꾼 꿈의 내용이다. 꿈에서 처음으로 피앙세를 만났다. 희미하게나마. 너무 아련해서 혹시 그녀가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사실 너무 희미했고, 간절한 내 마음이 만들어낸 꿈 속의 허상이 아닌지 의구심이 가득했다. 너무 기이한 꿈이라서 긴가민가했고 기억도 가물가물한, 그처럼 그저 그렇게 끝나버린 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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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0일 꿈. 젊어서 날 찾으면 주로 어디든 갔다. 하지만 노회한 어른이 되면 안가도 될 자리는 안가도 된다는 걸 알게 된다. 그렇더라도 꿈에서는 아직도 철없는 젊음이라서 또 어느 남의 잔칫집 앞까지 갔다가 그 앞에서 고민한다. 어제 꿈에 그랬다. 내가 여길 왜 왔지? 그러면서. 오면 좋고 아니면 말고─이걸 예쁘게 표현할 수 없는 순간이니까─3번째 범주에 속해서 불렀을 텐데 꿈에서는 또 속는다. 꿈이니까 괜찮긴 하다마는. 거짓말과 여러 삶의 수완이 더디게 느는 데 비해서 빈말과 참말을 구분하는 능력은 아직도 청춘이다. 청춘? 이걸 좋아해야 돼 말아야 돼! 그러면서 깨는 순간 너무 일찍 깼다 싶으면 또 후회한다. 왜 벌써 깼지? 난 아직 늙지 않았다고! 그러면서.
from 소설
2017. 12. 15.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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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쓰자 라고 다짐하지만 자꾸 나가서 놀고 싶어진다. 하지만 약속은 없고 괜히 슬쩍 끼어들 축제도 없다. 소풍은 당분간 혼자 가고 싶지 않다. 최근 나는 고전적인 오페라를 보기 위해 도시에 갔다가 극장에서 현대적인 뮤지컬 영화를 보다가 내내 졸다 나왔다. 애초에 나는 예술가라는 직책과 어울리지 않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차라리 애인을 만들까? 그러니까 풋사랑 아니면 찐한 사랑. 책임질 일은 아예 시작을 말자. 그래서 그렇게 나이트클럽의 열광은 도저히 식을 줄 모르는 것일까? 그러든가 말든가. 그리고 나는 오랫만에 셰익스피어를 읽었다. 짧은 감상평은 생략한다. 다만 하나 첨언하자면 왜 그 옛날 톨스토이가 셰익스피어의 인기에 대해서 갸우뚱하며 의아해했는지 공감은 간다 정도. 왜냐하면 그땐 전쟁과 평화가 아니면 대체로 심심한 세상이었을 테니까. 장르가 다르니까.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술집 마담 보봐리에나 들려볼까? 아니다. 저번에 바텐더랑 한판 했으니까 당분간 자중해야 한다. 왜 내가 꼴등이냐며 난 당시 바텐더의 고귀한 직관을 충분히 존중하지 못했으니까. 그럼 딱히 바쁘지 않으니 괜찮은 물품이 시장에 나왔다면 미술관에 들러 드 쿠닝 작품 한 점을 사 볼까? 돈이 없는 것 보다도 선물할 사람이 없다. 부동산처럼 나중 되팔기 위해 작품을 사고 싶지... 그래서 사고 싶지 않다. 절대 돈이 없어서 그러는 게 아니다. 그런데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 걸까? 그러니까 뭘! 자존심 쎈 예술적 영감 그분은 기다린다고 순순히 곱게 오실 분이 아니다. 그분은 언제 어디로 튈 줄 모르는 개구리로 변신한 왕자님일 테니까. 아니다. 그분은 거북이와 경주하는 토끼일 수도 있고, 개미의 부러움도 숙녀의 애원도 황금 왕관까지 거부하며 속박을 싫어하는 베짱이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다짜고짜 말도 안되는 공상만 할 게 아니라 한 겨울에 뚜껑 열리는 차나 타 볼까? 돈이 어딨어!
그러나 내게는 호탕한 친구가 있었다. 시작은 농담이었다. 나는 클락한테 야 심심한데 차나 바꿔타지 않을래, 라고 물어봤다. 당연히 상대의 낯빛을 살피면서 말꼬리를 흐렸다. 그런데 클락은 그걸 진담으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나는 이때가 아니면 뚜껑 없는 차에 거만하게 앉아 이 세상 그 어떤 여자라도 꼬실 수 있을 듯한 자신감은, 평생 느껴 보지 못할 것만 같아서 이렇게 말했다.
「진짜지? 장난하는 거 아니지? 이거 농담 아니다?」 라고 말했다.
알고 보니 클락은 있는 집 자식이었다. 그걸 모르는 게 편한데 알고 나니 왠지 녀석이 부담스러워졌다. 그래도 약속을 무를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차 이름도 생소한 컨버터블을 탔다. 마음이 흔들렸다. 와, 너무 좋다. 끝내준다. 너무도 황홀했다. 하지만 내 주제엔 과분하다는 생각이 날 지배했다. 솔직히 부담스러웠다. 내게 어울리지도 않는 듯 했다. 아동복과 유흥가처럼. 하지만 자동차와 나는 실은 너무 잘 어울렸고 서로를 너무 좋아하는 것 같았다. 난 역시 호사와 풍요와 사치보다는 쾌락과 합리적 행복에 어울리는 남자인가 보다. 아니 그 둘 다다. 아니다. 그 둘이 대관절 뭔 차이란 말인가. 그러므로 나는 클락과 차를 바꿔 탄지 얼마 되지도 않아 다시 기승전결 없는 내 삶으로 돌아왔다. 다시 자동차는 원래대로 복귀했다. 멋쩍게 차 좋더라, 그런 말을 할 수도 없었다. 보통 그런 말은, 전재산을 털어 고급차를 산 다음 바닥난 통장 잔고 때문에 궁핍하게 사는 허당 친구한테나 말해야 하는 거니까.
재미없는 일상으로 돌아오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만일 여자라면 딱 둘 중 하나일 텐데 라고. 첫째 완전 멋진 남자와 최고의 사랑을 한다, 둘째 '인생은 짧다 고로 남편을 바꿔라' 라는 제목의 책을 써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다. 하지만 그게 말이 쉽지 어디 가당키나 한 일인가. 타고난 재능도 변변치 않고, 외모도 그만그만하며, 친구의 결혼 피로연에 가서 처음 만난 남자에게 분명 그럴 것이다. 내가 만일 여자라면. 말끔한 차림새의 남자가 예의상 건네는 말에 이래야지. 「어디서 미남을 물어올 수는 없고, 날 누가 데려가지도 않고, 약속도 없으니, 집구석에 가서 TV나 봐야죠」 라고. 그리고 또 뭐가 있지? 백만장자가 되는 법, 같은 책을 읽은 후 진짜로 백만장자가 됐다더라? 그런 기대는 버린지 오래 됐다. 맞다. 나도 어른이다. 더 이상 소년이 아니다.
뭔가 석연치 않은 비밀, 그게 만약 내게 있다면 내가 먼저 놀라워 할 것이다. 환상이니 마법이니 신나는 모험은 없다는 걸 모두 알아버린 어른이니까. 속으로는 뭘 해도 재미없지만 겉으론 태연한 사람, 그게 바로 어른의 본모습이다. 여자는 몰라도 남자들은 센 척 강한 척 재밌는 척, 하다가 언젠가 꺾인다. 다른 즐거움을 찾는 삶으로. 의무감은 죄수 번호고 책임감은 쇳덩어리와 쇠줄로 연결된 발목 그런 머시기다. 동화 나라가 어딨어? 태반은 동시를 한번도 읽어보지 않고서 어른이 된다. 어제는 터키 행진곡, 오늘은 사랑의 나이트클럽. 전자마저 거의 대체된다. 엄마한테 말하지 마, 로! 능청에 있어선 어른조차 꼬마 꾸러기와 투덜이에게 그 어느 별명과 대명사를 양보하기 싫어하는 습성은 여간해선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실수 투성이 철부지가 어느 날 우연히 요술봉을 주워서 주인공이 되다? 현실에서 그런 일은 없다. 어른들이 좋아하는 건 그런 거다. 골프채, 경마장, 술집, 웃긴 이름의 업소, 간혹 외계인 나오는 영화, 짧은 행복을 동경하는 사랑, 게임, 낯선 이성에 대한 긴장감, 낯선 만남, 파스텔빛 연한 사랑, 그냥 소소한 즐거움 등등. 봉인된 초능력과 판도라의 마력까지 모르는 게 없는데 이 세상이 신기할 리가 없다. 독특한 감수성보다는 차를 바꿔야 하고, 참신한 판타지에 대한 꿈과 희망을 포기하지 않기 보다는 가방의 용량이 커질 뿐이다. 진짜 그런다. 상큼한 스무 살에는 요만한 가방을 들고 다닌다. 고상한 숙녀가 돼서는 좀 더 큰 가방을 드는 게 보통이다. 그러다 지성과 재산과 품위까지 겸비한 마님께서는, 그만 하자. 엄마도 숙녀란 사실만 알자. 그런데 남자들은 궁금해 한다. 멋진 자동차는 가격의 차별화가 확실한데 대체 왜 여자 가방은 요만~하나 큼직하나 가격 차이가 별로 없는지를. 클락과 자동차를 바꿔 탔더니 글쎄 사람의 생각부터가 바뀌더라? 내일은 모른다 그래서 오늘부터 모험? 그런 건 없었다. 하나도. 이런 게 바로 노스트라다무스의 비애라고나 할까? 어디서 예언가라고 해도 이젠 누구도 믿지 않는다. 화가도 작곡가도 작가도 실력도 좋지만 외모, 무시할 수 없다. 세상이 그렇다. 그러든 어쩌든 그러니까 언제 전개로, 어떻게 절정으로 치달을 꺼냐고? 누군 뭐 그러기 싫겠나. 괜히 삼류가 아니다.
어쨌든 은근 허당이 돌아왔다 라는 착상도 안 먹히고, 허세와도 결별했으니 찬찬히 작품 구상에 대해 돌입하기로 작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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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작정 새로운 취미를 애정했다. 그래서 참신한 종목을 정했다. 그것은 서핑! 서핑은 한번 빠지면 평생 그것을 사랑하게 된다고 한다. 물론 들은 말도 읽은 글도 아니다. 어디까지나 추측이다. 사람들 말꼬리만 잡고 추적해봐도 안 그런 분야는 많지 않다. 전문점이 있으면 부패도 있고, 스치듯 만났다 헤어지는 인연이 있으면 치를 떠는 전남편(부인)에 대한 기억도 있을 수 있다. 그건 치통을 앓을 만큼 사랑했다는 건가? 재미없다. 사람들은 함께 사는 강아지를 보면서 그런다. 누구야 넌 왜 그렇게 이쁜 거니? 사귀는 고양이를 보며 사진 찍는 게 물리지도 않는지 나비넥타이를 달아주며 그런다. 아, 보고 있어도 보고 싶다 그립다 라는 심정을 알겠다고. 그럼 뭐해. 정작 남녀의 사랑은 뜨거웠다 식었다가 변심하면서. 실제 사랑을 해 봤다면, 소년 소녀가 아닌 어른들은 솔직히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아마도 그 뭔가를 부담스러워 한다. 끝없는 흠모 영원한 연정, 그런 사랑스러움에 대해서. 그이가 고양이 만큼만 날 사랑해 주었으면? 난 우리집에서 개한테도 서열이 밀려요! 그게 다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거다. 그건, 왜냐하면 잡은 물고기한테는 밥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서핑에서 수다로 빠졌다만 정신 차리고, 서핑도 역시 장비가 중요하다. 서프보드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긴 거와 짧은 거. 나는 짧은 걸 샀다. 왜냐하면 어느 수의사와 단편 작가에 대한 생각 때문에. 두 분 다 여자였고, 둘 다 글이었다. 내용은 이럴 줄 알았다면 수의학과가 아니라 의과로 갈걸, 이럴 줄 알았다면 단편이 아니라 장편을 쓸걸. 꼭 평판과 존경, 대우, 벌이등이 열악하다 그런 뜻은 아니겠지만 어느 직업이든 크고 작은 특징이나 단점은 존재하듯이 그냥 사소한 어른들의 생각일 것이다. 하지만 그건 곧 수의사라는 직업에 정말 만족한다면, 단편만 쓰는 일을 더없이 좋아하고 사랑한다면, 역으로 그건 최고의 행복감을 경험하는 인생을 살 수 있다는 말도 된다. 나는 바로 그런 기억이 떠올라서 짧은 서프보드를 샀다.
그렇게 준비를 마친 다음 바다로 갔다. 동호인들과 함께 탔냐고? 아니다. 고독한 남자는 오직 독학이다. 더구나 쓸쓸함은 운명이다. 하지만 열정은 좋은데 반해 겨울 바람은 차디 찼고, 겨울 바다는 내게 너무나도 냉혹했다. 열은 좋았지만 기후는 좋지 않았던 것이다. 심지어 실력도 잘 늘지 않았다. 연습 자체를 안 하는데 어떻게. 하늘을 봐야 별을 따지! 그래서 나는 서프보드를 하는 수 없이 팔았다. 머머 접습니다 라면서. 새로운 별명은 내 업보였다. 작심삼일! 어쩌면 머머 접습니다 라면서 장비를 파는 해방감이랄까 시원섭섭한 후련함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기분을 느껴보고 싶은 것 아니었냐고 해도 완전 부인할 수는 없을 듯 했다. 나는 아직도 짜증을 부르는 바보들의 행진 그 단계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목표는 환상론 다시 태어나다, 의도는 신비머신 희망을 엿보다 인데 말이다. 뭘 해도 시작 언제나 발단뿐이니 이거 원!
그래서 나는 친구를 만났다. 고상함만 추종하고 우아함만 동경하다가는 나는 박제된 좀비가 되어버릴지도 모르니까. 내가 먼저 연락했다. 여러 명을 같이 만나지는 않았다. 뭐랄까 왠지 어수선하고 유쾌하게 속도감 느껴지는 분위기는 뭔가 좀 쨍한 느낌이 들어서였다. 하여 난 1 대 1로 친구를 만났다. 여럿이 만나서 분위기에 휩쓸려도 그렇고, 모이면 듣고 말하는 비율과 태도는 모두 나무랄 데 없을지라도 다 속으로 딴생각을 하는 것도 그러니까. 난 그래서 그레고리를 만났다. 그레고리는 아마 꿈을 찾는 방랑자 기질이 다분한 듯 보였다. 나도 벌써 아르바이트생의 속셈을 간파하는 사장님처럼 뭐든 보면 아는 어른이 되버린 건가? 거기까지 생각하면 머리 아프고, 내가 그레고리를 만나서 나눈 대화를 옮기자면 이와 같다.
「더 이상 SF를 읽어도 신기하지 않고, 판타지를 봐도 황홀하지 않으며, 미스테리를 들어도 놀랍지 않아. 나도 신비의 법칙을 모르는 건 아니야. 사랑이란 문을 열었더니 환상이 있고, 다시 환상으로 들어갔더니 멜로 드라마가, 또 다시 그 다음에 열연을 펼쳤더니 피라미드와 미로와 큐브의 정원에서 헤어나올 수 없다더라, 뭐 그런 형식말이야.」
「그래? 괜찮아. 그게 정상이야. 원래 그런 법이야. 걱정했구나. 나 혹시 늙었나, 막 그러면서. 괜찮아.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요즘엔, 아니 벌써 오래 전부터 기준선이 많이 내려가서 어렸을 때부터 그러니까. 그건 오히려 아직 동심을 잃지 않았다는 징후가 아닐까? 흑심의 반증이 아니겠냐, 이 말이야.」 「그럼 어떻게, 짤랑짤랑 으쓱으쓱 랄라랄라랄라 깡충깡충깡총 하늘 보고 뚝딱딱 땅을 보고 통통통, 이렇게 동요라도 부를까?」 「부르란다고 진짜 부르냐? 아, 난 암말도 안했는데 늬가 먼저 시작했지. 늬 같으면 다 큰 어른이 깜찍하고 귀엽게 동요 부르는 걸 보면 기분 좋겠니? 너가 읽고 보고 듣는 허구가 SF인지 판타지인지 미스테리인지 보면 아냐? 라~고 상남자는 말하겠지만 이젠 것도 재미없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상남자라는 걸 까맣게 잊고 있었지 뭐니.」
「그러니까.」 「그럼 어떻게 알라딘 클럽에 춤추러 가고, 알리바바에서 댓글을 달고, 아마존에서 새로운 어떤 머신이라도 살까?」 「그리 썩 달갑지 않은 제안인데.」 「그럼 어쩌지?」 「어쩌긴 뭘 어째? 초조하게 그분을 찾아갈 필요없어. 일단 기다려.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파게 돼 있으니까 말이야. 그런데 있잖아. 마음을 먼저 터논 건 난데, 왜 내가 말린 느낌이지? 안 그러니?」 「뭐 그럴 수도 있어. 그리 드문 일은 아니니까 그냥 넘어가자고. OK? 그러니까, 파도 파도 계속 나오는 비밀? 까도 까도 끝없이 드러나는 정체? 글쎄 그게 과연 자주 등장하는 신제품일지... 하긴 그래도 문제고 그러지 않아도 투덜거리긴 마찬가지네. 부디 우리 친구께서는 꾀병이 아닐기를 바랄 뿐이네.」
난 느꼈다. 그레고리도 발단 뿐인 남자라고. 그래서 난 다시 한가해졌다. 그래서 생각했다.
한편으론 아쉽고 조금은 섭섭한 인생이 오히려 더 재미있지 않을까? 라고. 그러니까 한번이라도 지독한 사랑을, 우연이라도 행복에 겨운 투정의 윤무를 추어봤으면! 하지만 권태는 잡초의 생명력을 지녔다는 걸 잊으면 안된다. 절대 강자는 쾌락이란 걸 간과할 수는 없음. 절망이 가르쳐주고 체념으로 제값을 치른 교훈을 상기해야만 한다. 그렇더라도 도피, 일탈, 무모한 도전에 대한 젊음의 방황을 포기하기엔 왠지 아까운 느낌이 든다. 난 아직 늙지 않았으니까. 내가 만약 언젠가 뜨면 그건 재기가 아니다. 환생도 아니다. 제7의 전성기도 아니다. 왜냐하면 처음 뜨는 거니까. 그래서 이젠 그런 데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그 모두를 다 아는 지금이지만, 누군 안 그렇겠냐마는, 난 슬슬 조바심의 추격을 받기 시작했다. 지루함의 고삐를 쥐어잡은 채 권태는 날 맹추격하고 있었다. 따분함으로 채찍질하며 심심함에 박차를 가했다. 꾸물거릴 시간 없다. 시시콜콜 수다 떨고, 미남 앞에서 수줍어 하고, 어색한 상상력에 부끄러워하는 동안 적들은 시시때때로 예뻐진다. 여자의 마음으로 비유하자면 그렇다는 말이다. 그러나 감식안이 한심하고, 추리력이 형편없더라도 지성마저 포기할 수는 없다. TV와 만화도 좋지만 TV 속 유치한 프로그램에 열광하기만 하다가는 어쩌면 멍청해질지도 모른다. 이미 그처럼 패배의 쓴 잔을 의도와는 달리 떠받든 전례는 허다할 테니까. 따라서 난 어떻게 해야 하지? 사과? 나무? 사과나무? 아님 씨앗?
사과나무 밑에서 입을 벌리고 기다려도 사과는 떨어지지 않는다. 어느 세월에. 괜찮은 신상품은 통상 초장에 동난다. 만약 사과나무 밑에서 동화 속 양치기 소년이 되어 마냥 뭔가를 기다린다면 결과는 뻔하다. 사과는 소년을 희롱할 것이다. 친구는 소년에게 농담하겠지. 뭐라고? 늬가 뉴턴이냐! 하지만 불행 중 다행도 있다. 이러다간 벌레님께서 먼저 저 탐스런 열매를 죄다 갉아먹겠구나 라는 자각. 그분의 식욕은 끝없이 왕성하니까. 그래서 소년은 꿈에 대한 변심을 도모한다. 그러다 뜻밖의 행운을 만난다. 절반의 실패는 성과를 불러올 것이다. 그건 곧 어리광에 어울리지 않는 깨달음이다. 사과나무의 농락은 모두 이를 위해 정해진 순서였구나 라고. 거기서 멈출 수 없다. 깨달음 2.0이 있으니까. 그 새로운 깨우침이란 이렇다. 내가 봤던 사과나무의 열매는 어쩌면 달콤한 열매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 왜냐하면 열매란 어느 예술애호가에게는 빨간 사과가 아니라 나와 푸른 초원과 사과나무까지 그려진 어느 유화일 수 있기 때문이다. 맞다. 처음부터 목표 설정의 틀을 잘못 설정한 것일 수도 있다. 고로 꿈을 수정한다면, 그래서 또 다시 행운이 따라준다면 걸리버의 열렬한 구애도, 지니의 은근한 편애도, 내 사랑 베아트리체의 지속적인 사랑마저 한 번에 송두리채 포획할 수 있다는 점. 그래서 세상은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라고 했을까? 그러나 누구나 멋진 명언의 주인공이 되고 싶어하지 남이 쓴 명작의 애청자가 되어 그 감동이 길이길이 지속되기를 간구하기를 원치는 않는다. 그래도 딱히 속은 것 같지는 않다. 그게 다 스스로 깨달은 까닭에. 그러므로 예술의 정진을 향한 삼류의 끊임없는 독학은 아르키메데스의 놀라운 발상을 불러올 수 있다. 비록 확률은 희박하지만. 그래도 어차피 어려운 인생이라면 불가능을 꿈꾸자. 오오, 이제야 드디여 큰 그림을 그릴 때란 말인가? 그런데 비전은 있고 배짱도 두둑하며 지성까지 겸비했는데, 밑천은? 또 판돈은? 더군다나 차마 포기할 수 없는 쾌락은? 뿐인가! 마법의 허영심과 언제까지나 함께 할 수 있는 행복은 대체 어떡하라고! 그러게 말이다. 아무래도 넉살과 미소는 늘어도 실행력은 잘 늘기 어려운 덕목인가 보다.
누가 몽상가 아니랄까 봐. 이런저런 생각 끝에 결론이 나왔다. 다음 타자를 만나야 한다고. 그레고리는 뭐랄까 호인이지만 좀 시시하다. 녀석은 새로운 낙원을 향하는 준마보다는 선량한 농부 유형이니까. 만약 그레고리가 남자고 내가 그 준마에 올라탄다면 그건 한마디로 발목잡히는 거다. 그러므로 나는 다음 타자인 험프리를 만나기로 했다.
3
험프리를 만나기 전에 나는 도시에 갔다 왔다. 특별히 일이 있었던 건 아니다. 단지 나는 아무 이름만 들어도 웃고, 무인도에 데려가고 싶은 이상형을 손꼽다가 금방 지겨워하는 청소년이 아니니까 그냥 혼자 놀러갔다 온 것이다. 곧 내 삶이 한 편의 영화라면 비록 재미는 없을지언정 혼자 나름대로 활약은 했다는 거다. 다만 성과가 빈약한 게 문제지만. 어차피 시골에 있어 봐야 도와주는 헤라클레스도 없었고, 찾아오는 헤르메스도 없었다.
도시에 있는 콘래드 호텔에서 달리 사건이랄 것까진 없지만 뭔가 일이 있긴 있었다. 나는 연애론을 읽고 있는 여자와 싸웠던 것이다. 시시하게 말싸움을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여자한테 힘자랑을 할 수도 없어서, 난 하는 수 없이 당하는 역할을 자처했다. 그러니까 뭣 때문에 싸웠는가, 그건 말할 수 없다. 듣고 나면 차마 유치해서 실소도 아까울 테니까 말이다. 잠깐 기억나는 건 그거다. 난 어디까지나 그냥 혼잣말이었다. 책과 독자가 어울리지 않는다면서 꽤 심각한 투정이 들렸다고 한다. 마이 매드 팻 다이어리, 그런 책이나 읽지 괜히 폼 잡고 왜 그런지 모르겠다면서 찬바람을 쌩 하니 일으켰다고 한다. 물론 그녀와 나는 인연이 아니었다. 꼭 그녀가 선녀라서가 아니라 나는 아무래도 그녀의 허영심을 거룩하게 충족시켜 줄 수 없는 남자라는 까닭이 그런 진단의 주요한 원인일 것이다. 그렇다고 시트콤 유형 소설이 너무 가볍다, 뭐 그런 의도로 꺼낸 말은 아니었다. 난 그녀를 생각해서 만일 그녀가 내 여동생이라면 어쩌면 좋겠네 라며 살짝 생각한다는 게 그만 발성을 거쳐서 그 불협화음은 낯선 여인의 귓전까지 당도했나 보다. 내가 원래 의도한 주제는 그런 거다. 예정된 불행을 걷어차고, 불가능할 것만 같던 행복을 부르다 같은 거. 그런데 막상 현실에서는 그게 정반대로 발생한다. 그날도 그랬다. 보통 드라마에서 사랑은 그렇게 시작되지만 내 인생은 멜로드라마가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내 결례에 대해서 극히 전형적인 해명을 하고 싶었는데, 딱 뭐라 할려던 찰나 그녀는 쌩 하니 가버렸다. 재수 없다나 뭐라나! 여자도 아니고 남자가 유난 떤 형세로 결말은 일단락됐다. 상대할 가치조차 없는 남자라고 여겼기 때문일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녀도 기분 별로였을 테고, 나도 돌아가는 분위기가 영 아니라고 느꼈다. 그래서 난 생각했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한다고. 난 아무래도 살면서 내 허세가 평균에 모자른다는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허영심에 과하게 관대했던 것 같다. 그래서 당장 그 자리를 떠서 집에 돌아왔느냐 하면 것도 아니었다. 왜냐하면 빈손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안 그런가?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찔러야 한다.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치랴, 고양이가 생선을 마다하랴, 난봉꾼이 사교계를 떠날 리는 없고, 춤꾼에게 춤추는 계절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즉 나는 호텔 수영장의 전망을 살핀 다음 하산해도 하산할려고 마음먹었다. 한겨울에 외적으론 춥지만 내적으로 시원한 바닷가에 가 봐야 여러모로 완벽한, 라파엘로의 그림에서 막 튀어나온 듯한 숙녀를 만난다는 건 헛된 기대에 불과하니까 말이다. 만나 보니 아, 그녀는 천상 여자였더다? 허당의 기도는 운명론자의 불안일 뿐이다. 원래 사랑이란 둘 중 하나다. 첫째 사랑은 없다, 둘째 사랑은 어려워. 그건 그렇고 호텔 수영장은 한가했다. 하지만 나는 아무런 관심 없는 척 할 일은 다 했고, 볼 것도 다 봤다. 드디여 갈 데까지 간 건가? 의도한 목적은 이뤘으나 썩 만족스런 결과는 아니었다. 그래서 혼자 상상했다. 이곳이 달력이나 인터넷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푸르른 해변과 연분홍색 비키니와 함께 모든 조건이 충족된 그런 공간이라면서. 아아 천국의 바람이 부는 황금빛 해변에서 나는 오직 욕망에 충실했다. 다채로운 색상의 수영복 디자인에 눈독들일 수 밖에 없었다. 자의적으로 거부할 수 없었으니까. 청춘과 불화할 수는 없는 일이다. 때문에 타는 듯한 갈증, 사랑스러운 격정을 불쌍하게 모른 체 할 수는 없었다. 해맑은 그녀와 다정한 분위기에서 기쁜 대화를 시도하고 싶었다. 그래서 성공했을까? 그건 단지 희망 사항에 지나지 않았다. 공상도 모두 틀려먹었다. 이제 집에 돌아갈 시간이다. 그래서 나는 도시를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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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그라운드에 도착했다. 원정 경기가 재미없는 걸로 봤을 때 전성기는 아닌 듯 하다. 슬럼프를 어서 탈출하기를 바랄 수 밖에. 그렇게 동네에 오자마자 나는 험프리를 만났다. 험프리는 과묵하다. 카페에서도 뭐 마실래, 그러면 괜히 목소리를 깐다. 같은 거 그러면서. 내가 뭘 먹을 줄 알고? 그러니까! 그래서 얘는 따르는 팬클럽이 없다. 누군 있나? 속설에 그런 말이 있다. 옷이 날개라고. 하지만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다. 그러나 뭘 모르면 곤란하다. 많이 곤란하다. 처음부터 어떤 장단점을 감안하고 연애를 시작하더라도 애초에 감수할 수 없는 숙명을 떠안는 결과는 적지 않다. 한계 총량의 법칙에 따라 초반의 진공청소기 이미지는 금새 바닥나고─어차피 시간 문제?─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점점 커피포트는 쉼없이 바쁘게 돌아갈 수도 있다. 한쪽이 기쁘면 한쪽은 뚜껑이 열린다. 둘 다 즐거운 시기가 점점 늘기가 어렵다는 건 기정 사실이다. 물론 사랑의 콩깍지가 쓰였이면 여자들이 뽑은, 남자들이 엄선한 최악의 남녀 습관까지 멋져 보이게 마련이겠지만. 그 단점을 오래도록 끌어안을 수 있는가, 여러 단점을 내 사랑이 모두 극복할 수 있는 것 같지만 경험자의 말은 통상 그와 정반대다. 게다가 살아 봐야 알게 되는 습관도 있고, 오래 지켜봐야만 파악할 수 있는 천성도 있다. 남자들이 여자들에 대해서 꼽은 몇 가지, 여자들이 뽑은 남자의 악습 무엇들. 그렇다고 심각할 정도로 논쟁이나 역설이 분주히 요구될 사안은 아니다. 왜냐하면 개인적이냐 상대성이냐 그 하나만 알면 모든 것은 자명해지기 때문이다. 연애 그거 머리 아픈 취미다. 취미? 여기서 까딱 잘못 말했다가는 본전도 못 건질 수 있으니까 넘어가자. 그래도 험프리도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내게 여자를 소개시켜주란 말은 하지 않는 친구다. 그거면 된다. 어른이 되어서야 거짓말이었음을 깨달을 소싯적 숙녀의 마음은 통상 운명적으로 그분을 만나게 되는 일이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그녀와 이를 테면, 노느라 정신 없는 야생마 말이다. 사랑이 그런 거다. 모를 때는 악마의 행복감에 필적하는 감정, 그것은 바로 사랑이다. 조신한 숙녀 얌전한 사랑만 하다? 두고 보면 안다.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그이는 알고 봤더니 순 바람둥이일지도 모르고, 이 연애는 지나고 보니 풋사랑이래요 그럴 수도 있다. 아직은 모른다. 그래도 모를 때가 호시절. 어쨌든 험프리는 허당이다. 언뜻 보면 영화배우감인 것 같은데 사랑 받지 못한 그냥 허당. 말을 아주 잘할 필요까진 없다. 달변에서 살짝 엇나가면 사기꾼이니까. 중간만 가면 되고 뭘 좀 알면 최상이다. 대답만 잘해도 된다. 눈치만 빨라도 된다. 하다 못해 앵무새 따라하기도 있다. 그런데 험프리는 타율이 저조하다. 게다가 타석마저 바닥이다. 심지어 현상 유지도 어려워서 주로 올라가기 보다는 2군, 3군 그렇게 스스로 내려간다. 그러니까 우리들은 자신감을 가져도 된다. 외모도 좋지만 외양, 품위, 안목, 발빠른 배려 그런 게 먼저니까. 맞어. 비굴하지 않되 거만함이 느껴지지 않는 풍모 말이다.안 그렇소? 간만에 그분들께 점수 좀 얻었다. 으하하하하하하! 아무리 그래도 험프리는 아깝다. 여성의 선망을 만족시킬 수 있는 유망한 비장의 조커인데 일단 말수가 없다. 완전 과묵하다. 억지로 말을 해도 아아, 재미가 없다. 통 재미가 없다. 뚜껑이나 안 열리면 다행이고. 험프리를 여자들이 만나도 처음에는 혹하는데 그건 거의 단 세 번의 만남으로 끝난다. 뭐 그 세 번의 만남을 삼십 년 만에 옛사랑과 재회하는 듯이 짧고, 보람차고, 알차며, 행복하게? 어떤 돌싱이 좋아할지도 모를 그런 연애라면 숫자를 더하고 곱하고 암산을? 사랑을 도둑맞고 우정에 미치다냐 또는 그 반대냐, 아마 사랑은 아름답기 어려운 종목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 이야기를 하지도 듣지도, 어쩌면 읽지도 보지도 않는다. 방탕은 무엇일까, 쾌락의 효험은 그것을 단지 연상하고 부풀려서 상상함만으로 발생할 수도 있으니까.
험프리와 나는 가볍게 식사를 했고 차를 마시고 술을 마셨다. 나이트클럽은 멀어서 가지 않기로 했다. 대화도 별로 없었다. 험프리는 평소처럼 조용했다. 그래서 나도 혼자 떠들 수는 없었다. 차라리 다행이었다. 누군가의 입에서 화염방사기의 마그마가 분출하면 누군가의 귀에서는 피가 날 테니까. 단, 쓸데없는 말만 엄청-완전-아주 많은 수다쟁이도 수다쟁이지만, 눌변으로 작게 작게 듬성 듬성 던지는 말만 오래오래 들어도 뚜껑이 열리기는 마찬가지다. 매에는 장사 없다. 간사한 쨉이 나중 알고 보면 큰일 벌이는 거다. 어쨌든 험프리와 나. 우리는 기분파와 낭만파의 우정이라고나 할까? 누가 기분파고 누가 낭만파지? 누구 맘대로! 그리고 컵 받침대에 누가 이런 말을 써놨다. 세상 물정 모르는 자의 이름은 청춘, 왜냐하면 젊음의 의미는 거기에 있고, 어른들이 아니 그보다 세상이 사람들을 어린이로 보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얘기야? 별 얘기 아니다. 이상하면 무시하면 된다. 마음에 안 들어도 지나치면 그만이다. 마침 험프리가 이렇게 말했다. 자기는 피곤하다고. 누가 봤다면 우릴 전혀 분망하지 않은 한량으로 여겼을 것이다. 나는 험프리한테 집에 가서 뭐할 거냐고 묻지 않았다. 사생활에 대해서 너무 깊이 캐묻는다거나 과거를 너무 많이 알려고 하지 않기. 그건 우리의 불문율이었다. 그러고 보니 얘랑 나는 동네 친구가 아니라 직장에서 상급자와 하급자로 만났으면 더 좋았을 텐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얘를 보내고 난 집에서 뭘 하지? 보나마나 일기를 쓰겠지. 아마 이렇게 쓸 게 뻔하다. 슬픔을 이겨내고 행복을 예언하다? 슬픔도 없었고 행복도 몰랐다 라고. 그러나저러나 내가 어쩌다 이렇게 돼버렸지? 그러게! 게으른 상상력 순진한 영감 그리고 방탕의 유혹은 멋진 인생이라고 할 수 없는데 말이다. 카페에서 나는 험프리를 먼저 보내고 혼자 이런 생각을 했다. 뭔가 멋진 듯 해서 급히 메모로 남겼다. 사람들의 생각은 절반쯤은 그럴 수 밖에 없다. 사고 체계가 그렇게 작동하니까. 좋아요가 있으면 싫어요가 있듯이. <새로운 애인>이란 말을 읽거나 들으면 누군가는 그럴 것이다. 자동적으로 '아아 외로운 남자에게 새롭게 애인이 생겼구나'보다는, 저절로, '오오 싫증난 연정의 다음 타자로 즉각 새로운 애인이 마침내 등장했구나' 라고. 전자와 후자의 차이는 좀 멀찍하다. 또 뭐가 있을까? 재미없다란 평을 읽었을 때 뭐랄까, 안심? 재미없어란 말을 들었을 때, 이제야 늬가 허세를 포기했구나, 드디여 너가 허영심을 내려놨구나 라는 느낌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런 공상과 별개로 난 험프리는 그만 귀찮게 하고 다른 친구와 놀기로 했다. 다음 번엔 누굴 불러내지 라고 생각했다.
5
나는 언제 미스테리아 편집장으로부터 기고문 요청이 들어올지 모르니까. 연습장을 펴서 낙서를 기록했다. 그럴싸한 수입원이 없는 판국에 그건 근래 꽤 짭잘한 벌이라는 걸 부인할 수는 없으니까. 그걸 옮기자면 이와 같다. 내게 떨리는 가슴 기도하는 마음의 시기는 지나가 버렸을까? 몰래한 사랑 말없는 행복은 어디로 가야 만날 수 있을까? 펑펑 눈이 내리는 겨울, 크리스마스 캐롤마저 슬프게 들리는 게 아닐까 의아해 하는 청춘을 위하여 사랑에 대해 생각해 본다. 물론 처음부터 사랑 이야기를 들려주는 어설픈 상담자 역할을 맡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그 계기에 대해서는 누구도 알고 싶어하지 않겠지만 대개 칼럼은 투정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이를 테면 이런 상황. 설계-제작-생산해서 시판되는 빛나는 환상머신을 구입하여 진열장에 짜잔? 상상을 실행에 옮겨서 누군가, 특히 내가 그걸 사서 집으로 간다. 집에서 포장을 풀고 몇 번 가지고 놀다가 그런다. 아, 괜히 샀다! 이때 비로소 나는 이런 글을 쓰게 되는 것이다. 당연히 나도 사랑에 대해 바람만 잔뜩 들었다가 나중 사랑이라면 고개를 돌리게 됐다. 사파이어의 투명함. 루비의 오묘함. 꽃 피는 봄날 같은 미소와 다정다감한 성격까지. 샹젤리제의 반짝임, 갈채의 융단이 연상되는 분위기, 멋진 대리석처럼 고전미를 계승하는 듯한 사랑을 하고 싶다? 허황된 꿈은 (일찍 깨면) 일찍 깰수록 좋다. 그런 장밋빛 환상에서 꽤나 늦게 깨어난 어른이 생각하는 사랑은 이와 같다. 사랑은 자기도 모르게 찾아오는 것이라고. 그래서 더욱 알 수 없는 것이라고. 천사들의 축제보다 황홀하고, 천상의 기쁨이 감미로운 예감에게 손짓하는 것만 같은 감정. 그것은 사랑이라고. 하지만 첫눈은 녹고, 연필은 닳아지며, 어린애의 천진한 미소는 언젠가 능숙한 가짜 웃음으로 변할지도 모른다는 점은 살면서 어른의 마음에 깊게 각인된다. 그래서 나는 그대에게 사랑의 시작에 대해서 묻고 싶다. 사랑이 시작됐는데 스포츠로 비유하자면 그 사랑은 무엇일까? 야구? 배구? 테니스? 카드 게임? 그걸 알아야 뻔트를 댈지, 속공을 펼칠지, 랠리에 들어가 상대방을 강아지(어머머 똥개?) 훈련시킬지, 단순히 판돈으로 압박할지, 그걸 알아야 유익할 것이다. 그래야 때로는 관망하다 때로는 열망하며 승부를 이끌 수 있지 않을까? 요컨대 주도권 쟁탈전, 또는 뜬소문도 뭣도 아닌 표어 초장에 잡아라. 전자는 연애론이고 후자는 사랑학인가? 그건 요술도 신비론도 뭣도 아니고 그냥 말장난임. 깍쟁이의 마음을 녹여준다면 음 연애시와 종이 한장 차이라고나 할까? 좌우지간 그 사랑이 어떤 스포츠의 속성과 닮았나, 그걸 아는 게 유리하다. 일부러 불이익의 고지를 선점할 필욘 없으니까. 맞어. 사랑과 행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니까. 왜냐하면 그래야 가슴이 찡하고 눈물이 핑 돌듯 상대를 사랑의 포로로 만들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건 어쩌면 피상적인 사랑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가장 합리적인 방책은 아마도 상대가 원하는 사랑이 아닐런지. 가령 장기전 같은! 그러면 오늘부터 사랑은 뻔트 인생은 개구멍? 경마지를 읽고 행복의 복권을 사는 게 차라리 낫겠다. 그렇더라도 속단하진 말자. 그 사랑이 사행성일 수도 아마추어일 수도 있으니까. 농담이고 다시 소설로 돌아가자. 여기까지가 그냥 대충 기록해 놓은 컬럼 초안이었다. 이제부터 나는 소설을 써야 한다. 아니 그게 아니라, 내가 겪은 진짜 믿지 못할 일들을 구술함과 동시에 글로 적으면 그만이다. 어려울 거 하나 없다. 그런데 나는 컬럼을 작성하다가 깨달았다. 내가 그동안 내게 전달된 사랑의 신호를 너무 모른 체하진 않았나 라고. 이제야 그 모든 일들이 선명해졌다. 아니, 이럴 수가! 이제야 뒤늦게 뭔가가 느껴졌다. 난 완전 뒷북 중의 뒷북이었다. 허풍꾼의 후예에게 풀리지 않는 불편한 비밀은 도저히 도도한 숙녀의 마음을 훔칠 수 없다는 것, 그건 일종의 슬픔일 것이다. 허나 난 허풍꾼도 그 후예도 아니고, 5분 10분 안에 그 어떤 여심도 꼬실 수 있는 재주도 없다. 단지 가끔 어떤 뭇여성들이 스스로 내게 그 애틋한 마음을 의탁한다는 정도. 아,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나니 진짜 이런 말까진 안 할려고 했는데, 더럽게 재수없다. 그래도 사실인데 뭘. 맞다. 이제야 알겠다. 난 반 발짝도 한 발짝도 아니라 완전 늦게 깨달았다. 이제라도 뒷북을? 그러니까 자초지종을 설명하자면 이렇다. 동네에서 친구들은 시트콤처럼 아지트에 모여서 함께 놀지는 않았다. 하지만 여자친구들은 나름 바뻤던 것이다. 각자 다 다른 사랑의 신호를 내게 보내고 있었으니까. 먼저 셜리는 말로써. 이를 테면 대사에 '우리'라는 낱말을 살짝 포함시켜서 날 포근히 떠보는 방법을 애용했다. 사랑을 간청하는 그녀만의 방법일지도. 또 홀리는 좀 더 세게 나왔다. 동네에서 오다가다 마주치거나 카페에서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꼭 내 옆자리에 앉았다. 또 그녀는 나한테 보란듯이 반드시 옷을 야하게 입었다. 원래 소탈하고 애교도 별로 없는 친군데 뭐랄까 뭔가 분발하는 기분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그리고 바바로사는 같이 대화할 기회가 생기면 유난히 사랑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어했다. 당연히 내 앞에서 뒤로 돌아서서 앉았고, 허리와 골반의 빛나는 살결을 내게 일부러 노출시키는 노력을 마다하지 않았다. 뭘 그리 자주 떨어트리는지 참, 고마워해야 하는 일인가 판단이 잘 서지 않았다. 속으론 퍽 당돌한 그녀 앞에서 내가 어떻게! 내가 이런 그녀들은 다 놔두고 대체 뭔 생각에 열중하고 있었는지 아아 아찔하구나. 그런다고 이렇다 할 걸작은 커녕 핀잔이라도 받고 싶은 졸작을 완성하지도 못했으니까, 음 난 바보였다. 바보 중의 바보. 허당 중의 상허당. 그래서 나는 노트북을 들고 멀더의 카페로 뛰어갔다. 왜냐하면 컬럼을 완성해서 사랑의 자금을 마련해야 했기 때문이다. 대충 생각나는 단상을 이어 나가면 여성잡지1도 아니고 여성잡지2도 아닌, 여성잡지1.5 정도에 해당하는 할리퀸 로맨스풍 컬럼을 완성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왔다. 오늘도 누군가는 더글라스 케네디를 읽으면서 그럴 것이다. 철없는 말괄량이는 집중해서 페이지를 넘기고 또 넘길 테고, 사랑을 더 이상 연습이나 간접 경험으로 만족할 수 없는 숙녀는 왜 그럴까 의아해 할 것이다. 옛날엔 괜찮았는데 지금 이 기분은 뭐지? 전에는 어딘가에 밑줄도 곧잘 긋고 그랬는데, 혹시 나 늙었나? 라면서. 어쨌든 나는 카페에 도착해서 작업을 시작했다. 컬럼의 나머지 부분은 다음과 같다.
6
사석에서 사람들은 그렇게 말한다. 들이댄다고. 표현이 격조 높음과는 다소 거리가 있지만 사랑에 있어서 꼭 알아둘 필요가 있는 표현임에 틀림없다. 진짜 사랑이면 들이댈 땐 들이대야 하니까. 물론 상황 봐서. 넌 내 꺼다 정말 정말 그랬으면 좋겠어, 라고 말하는 듯이 진짜 말로써 남이 다 듣도록 공표하는 애원. 그런 들이댐에 따른 무안을 무릎쓰고서라도 여자가 먼저 들이댈 수도 있다. 보통 어리면 진심으로 들이대고, 그래프가 꺾이면 또는 일찍부터라도 그런다면 그건 장난이고 사교이자 기술로 들이대는 거다. 말을 바꾸면 전자는 다가선다 후자는 들이댄다! 그 둘은 성격이 판이하게 다르다. 여자가, 어릴 때 나도 모르게 그런다? 그녀는 떨리고 설레고 흔들린다는 증거다. 이보다 더한 근거는 필요치 않다. 이미 사랑에 빠졌고 마음을 빼았겼으니까. 이미 사랑의 왕국에 살림 차린 거나 마찬가지니까. 그건 드물게, 몸과 마음이 드물게 분리되는 경험이다. 일명 유체이탈! 그런 일은 쉽지 않다. 흔치 않다. 절대 쉽지도 흔치도 않은 일이다. 사랑의 아픔도 지나고 보면 추억이지만 사랑은 원래 미숙하고, 유치하며, 불완전한 것일 뿐. 사랑은 될 수 있으면 아름다우면 좋겠지만 반드시 플라토닉이 전제되야 하는 건 아니다. 왜냐하면 사랑과 연정을 냉혹하게 구분한 채로 삶을 산다는 건 그러기도 어렵고 그건 왠지 좀 성스럽기 때문이다. 그러고 싶든 아니든 현실은 연애고, 사랑은 그냥 노래 가사 같은 개념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지금은 뭐가 뭔지 모르니까 그래야 사랑이니까. 쉬운 말로 사랑과 우정 사이, 편한 말로 현재주의, 웃긴 말로 사랑은 없어 까지. 그러니까 사랑이 그렇다고? 그런데 말이야 요즘 왠지 부쩍 관심 가는 숙녀가 있다, 그리고 그녀는 카페 '건전한 술집'의 여자다? 다 방법이 있다. 어렵지도 않다. 우선 바쁠 때 가면 안된다. 한가한 그녀를 놀래켜주고 외로운 여심에 노크하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니까. 먼저 인사를 텄으면, 최소한의 친밀감은 확보되었다 싶으면 질문을 한다. 어떻게? 다시 사랑한다면, 이라고! 그리고 노래를 불러준다. 그니까 어떤 노래를? 곡명은, 다음 사람에게는! 아니면 기분 살피고 분위기를 읽고 눈치 봐서 그녀가 완전 딱 좋아할 거 같은 3분의 마법, 약간 철지난 유행가를 신청한다. 이때 표정 보면 절반은 넘어온 거나 마찬가지다. 이때 그 음악은 제발 틀지 마세요 라며 소란을 피우면 그건 속된 말로 찍히는 거다. 통속적인 표현 딱 한 번만 더 애용하자. 살짝 눈감아 주시라. 이때 당신의 행동은 깽판으로, 그대는 진상으로 찍히는 거다. 그러든어쩌든, 그것도 다 그처럼 시도하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 소지가 작지 않다는 것. 언제나 누군가에겐 섭섭할 뿐인 숙녀와 사랑의 진실이다, 라고 내 입으로 말할 수는 없다. 어쩜 뺨 맞는 일만은 사전에 피했으면, 라고 바랄 수 밖에. 여자는 둘로 나뉜다. 내 친구에게 사랑받았던 여자와 내 친구가 눈독들였던 여자로. 롱테일은 노코멘트. 참고로 나에 대해서는 해당 사항 없지만 내 친구들에 대해서는 자랑할 수 있다. 그래도 된다. 하지만 친구 자랑도 내 자랑 같으니 참는 게 좋겠다. 고대 그리스식 웅변가부터 밤의 제왕까지? 재미없다. 딱히 대접할 건 없고 멋진 말도 바닥났으니 그러니까 겸손하게, 자랑? 여우와 두루미도 아니고, 허 그것 참 웃기지도 않다. 심지어 언젠가 그 무엇은 친구들 자랑보다 험담 아니었나? 스스로 묻지 않았으면 유치원부터 다시 다녀야 하리라. 너 그럴려고 작가 됐니? 라고. 그러니까, 어머나 험담이 혹시 특기랄지 자랑 아니냐구요? 아닙니다. 전혀요. 이거 왜 이래! 내 전공은 여자다. 다른 말로 사랑. 또 비판할 땐 비판 해야 한다. 좋게 좋게 주변만 빙빙 돌거나 남의 다리만 긁는 건 50점만 추구하는 거다. 그건 내 길이 아니다. 이래도 한세상 저래도 한세상이라지만 그럴 수는 없다. 짧은 인생 그래서는 안된다. 확실한 진선미와 동떨어진 개념과 현상에 대해서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않고 무조건 외면하기만 하는 건 능사도 어른의 책무도 아니고, 현대인의 상규와 지성인의 도리에도 어긋난다. 그러니까, 험담도? 친구에 대한 손가락질은 곧 친함의 척도. 더 나아가 작가와 독자의 우정이 커지다 보면 점쟁이의 식상한 예언을 넘어 좀처럼 익숙하지 않은 어떤 사랑론을 원하게 된다는 것. 말이나 못하면! 그나저나, 도시의 무수한 바를 전전하며 그 어떤 환희를 쫓아 킬리만자로를 올라야 하는, 목마른 하이에나 같은 아저씨의 흑심보다 우리는, 너와 나는 소녀의 사랑을 기억하고 소년의 꿈을 간직하자. 왜냐하면 우리는 세상의 방랑자요, 인생의 주인공이며, 사랑의 관찰자고, 운명의 순응자이자 희망의 개척자이기 때문이다. 뭐라고? 하여간 말은! 아무튼, 최근 겪은 어떤 일들은 꼭 내가 옛날 어느 회사에 다니던 시절 있었던 일과 판에 박은듯이 똑같았다. 기록도 있다. 무슨 행사차 회사 직원들끼리 놀러갔던 날 찍은 사진으로. 양쪽에 미녀1과 미녀2를 든든히 끼고서 즐거운 한때를 사진으로 남겼다. 뭐 처음도 아니었다. 사진이 아닌 기억도 있다. 다 사실이다. 절대 믿거나 말거나가 아니다. 당사자는 모를 수가 없으니까. 그런데 우리 팀이 아니라 당시 자판기 앞에서 가끔 함께 모여 차를 마시던 참한 그녀가 있었는데, 그녀를 어떻게 한번... 쉿! 그만. 여기서 그만. 나는 바람둥이가 아니다. 나는 절대 난봉꾼도 아니다. 어디까지나 자상하고 상냥하며, 숙녀의 기분을 한발 앞서 헤아렸을 뿐. 나름 세심하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무 일도 없었다. 난 진짜 숙녀의 손 한번 제대로 잡아본 적이 없다. 그런데 첫키스를 어떻게! 자세한 얘기는 이따 우리끼리.... 큭큭큭! 농담이고 항상 여자가 먼저 웃었고 언제나 여자가 먼저 꼬리를 흔들었던 게 다다. 안 그랬던 적은 한번도 없었는데 운 좋게도 그런 일이 적지 않았다면 아아, 내가 들어도 재수없다. 완전 왕재수다. 이번 칼럼은 이래서 망한 거나 똑같다. 금주의 칼럼은 여기서 이만 줄임. 끝.
7
나는 컬럼도 뚝딱 작성해서 꽤 여유로워졌다. 자유를 찾은 것이다. 시간 여유도 많았다. 하지만 필멸의 탐구 생활로 불멸의 환상적 신비를 알아내고자 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여자친구, 아니 여자친구들과 놀아야 했으니까. 나는 여심일까 여체일까 것도 아니면 여복일까? 여자에 대해서 피곤한 괴물의 나른한 마성이 꿈틀거리는 걸 느꼈다. 바로 그녀들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발칙한 궁금증이 도진 것이다. 세상에 다시 없는 한때였다. 회상을 참고하자면 사심 많은 애정을 솜사탕 같은 사랑으로 착각하는 일은 대체로 그 끝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은 성격이 전혀 달랐다. 상황이 그러지 않고 배기겠나. 게다가 그녀들은 모두 미녀임과 동시에 선녀였다. 그녀들은 이성에 대한 호감을 예외 없이 사랑으로 발전시키는 아가씨였다. 어김없이 로맨스를 연출해야 했는데 문제는 난 몸이 하나라는 사실. 하지만 이건 보통 기회가 아니었다. 한두 명이 아니었고 또 모두 준-비너스급이었기 때문에 개중에 유부녀가 있는지, 이혼녀라면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줘야 하는지, 미혼녀와 처녀 등등 누가 누구인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즉 나는 정신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내가 바이런식 풍운아로 재탄생했냐고? 나는 카사노바가 아니다. 하지만 나는 남자였다. 것도 그냥 남자가 아니라 상남자. 마음이 약간 흔들리긴 했으나 나는 마음이 많이 흔들렸다. 어쩜 생각은 이미 어딘가로 떠나버렸다. 그래서, 어떻게, 계획을 짜서, 뭔가 진행해서, 그렇게... 음! 생각이 많아졌다. 행동에 옮기는 일만 남았다. 단계도 보였고 진도도 훤했다. 식은 죽 먹기를 실행에 옮기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밀었다 당겼다, 들었다 놨다, 쥐었다 폈다! 그저 먼산만 쳐다봤을 뿐. 그런데 아마 내 방심 때문이었을까? 어느 날 그녀들이 내게 진짜 운동을 가르쳐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혹시, 사랑이 시작됐는데 스포츠로 비유하자면 그 사랑은 무엇일까 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내 컬럼을 읽었을까? 그럴 리는 없는데. 그건 아직 미스테리아에 보내기 전인데. 그야 어쨌든 나는 마다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사랑이 아니라 운동을? 뭐 몸풀기로 시작한다고 생각하며 된다. 그것도 각자 종목이 달랐고, 게다가 모두 일대일로 운동하길 원했으며, 심지어 어떻게 우연의 일치인지 시간이 하나도 겹치지 않았다. 따라서 난 복잡하게 짱구를 굴리고 잔꾀에 골머리를 앓지 않아도 괜찮았던 것이다. 하! 이를 어쩐다? 그렇더라도, 그 서사와 시시콜콜한 수다를 모두 옮길 수는 없고, 긴밀한 감정의 교감과 달콤한 앞날에 대한 전조는 생략하는 바이다. 이때부터 분주한 나날이 시작됐다. 눈코뜰새없이 코치 겸 선수 생활에 돌입했으니까. 하늘이 지켜보건 어쩌건 난 내 마음 속 영원한 사랑한테 떳떳했다. 왜냐하면 이건 모두 심오한 문학을 위한 밑그림에 해당하는 학술적 가설에 따른 범례적 드라마일 뿐이었기 때문이다. 난 정말 현실을 가상 현실로 착각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나는 넘어야 할 선을 하나도 넘지 않았다. 하지만 단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는 단둘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그녀들이 비록 수다쟁이 소질이 다분할지라도 어디에 광고하고 친구한테 발설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 세상에 비밀이 어딨어? 인정한다. 대체로 세상에는 비밀이 없다는 걸. 그래도 난 다소곳이 원했다. 불안불안하지만 지금 난 몹시 떨고 있으며, 그녀들의 입이 무겁기를 바랬다. 지난 사랑이 흠잡힐 과거인지 추억일지 분간이 어렵다는 걸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말이다. 여기서 잠깐 필름을 빨리 돌려서 요점만 말하자면 그와 같은 달콤한 호시절은 그리 길지 않았던 것이다. 오히려 그녀들이 내게 사랑을 가르쳤고 난 개인교수를 받아 사랑을 학습하는 그래, 뒤늦게 모범생 흉내나 내고 있었던 것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어느 때 느닷없이 한날한시에 그녀들이 더 이상 운동을 같이 하자고 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올 것이 왔다. 왜 안 오나 했다. 그래도 찡했고 그래도 짠했다. 내가 먼저 연락하고 기다리며 재촉도 해 봤다. 심하게 하지는 않았다. 다 허사였다. 난 허당이었다. 허세가 들통났을까? 그건 아니다. 나는 허세보다 허영심을 두둔하는 보기 드문 남자니까. 난 그 즉시 들려졌다 놔졌다, 밀렸다 당겨졌다, 쥐어졌다 펴지고 있었다. 정신이 없었다. 어지러웠다. 아찔했다. 쥐락펴락? 당해보니 알겠다. 그녀들은 고수였고 난 하수였다. 난 고단수에 걸려든 것이다. 것도 완전 딱 걸려들었다. 난 느꼈다. 분명 뭔가가 있었다. 그런데 그 어떤 무엇을 도저히 짐작할 수 없었다. 가늠이 안됐다. 분석도 불가했다. 난 내팽겨치고 말았던 것이다. 느낌이 왔다. 개밥에 도토리? 하지만 매달릴 수는 없었다. 이건 숙명이니까. 대결은 시작됐다. 명승부이길 바랬다. 비록 내가 낚였지만 난 월척으로 성장해서 역풍을 날릴 것이다. 무당만 살을 날릴 수 있는 건 아니고, 무당도 무당 나름이다. 그 어떤 점성술사라도 지금 기분이면 난 얼마든지 맞장 뜰 수 있을 듯 했다. 내가 좀 흥분했나? 어떻게 내 입에서 그런 저속한 표현이? 흥분한 게 맞다. 그럴만 했으니까. 어쨌든 나는 고비를 넘길 것이다. 그래야만 한다. 그렇다고 중간에 일이 마음대로 풀리지 않는다고 저주를 퍼붓거나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아무리 봐도 일이 점점 재밌어지고 있었으니까. 혼잣말은 생략하자. 그렇게, 경기 중간에 댄스 타임이라고 생각하며 나는 작전을 짜기 위해 두문불출에 들어갔다.
8
나는 최근 서핑을 하러 겨울 바다에 갔다 왔다. 남자친구들을 만났고 가벼운 담소를 나눈 후 헤어졌다. 도시에도 갔다 왔고 험프리의 뚜껑 없는 차도 타 봤다. 그리고 컬럼을 작성했고, 여자친구들과 운동을 하며 밝고 건강한 한때를 보냈다. 왜 갑자기 그녀들이 연락을 뚝 끊어버렸는지 조금은 궁금했으나 나도 마냥 한가한 아저씨일 수는 없으니 다시 일에 정진하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근래 들어 왜 작품이 잘 써지지 않는가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다시 블로그에 소설을 연재할 수 있을까? 소설이 잘 써지지 않는 이유가 혹시 그녀들 때문일까? 답은 알 수 없었다. 뭐 이젠 권태가 반가웠다. 하지만, 타성에 굴복하고 쾌락에 의지하여 난 다시 에로비디오의 수하에 자발적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원래대로라면 나는 그래야 했다. 뭐의 수하? 그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들리지 않는 것을 추측하며, 알 수 없는 것을 꿈꾸는 열망에 가슴이 부풀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런데 나는 허락되지 않은 걸 탐하고, 보지 않아도 될 걸 기웃거렸으며, 또 다시 청각이 제멋대로 예민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알고 있었다.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이 바로 그거라고. 그건 무엇? 바로, 천혜의 행운이라 포장해도 속아 넘어갈 비장의 화술과 펄럭귀의 조합! 지금은 침체기였다. 여간 해서 탈출하기 힘들 것만 같은 슬럼프였다. 오래 갈 조짐이 가물거리는 걸로 봐선 영 심상치 않았다. 그렇다고 구체적인 불길한 전조이자 비탄의 징후는 없었다. 그러나 불안했다. 이대로 영감이 사라져버린 건 아닐까 라면서. 내 문학은 응당 그래야 했다. 아담의 인문학과 이브의 일기가 만나서 애절한 사랑 이야기가 탄생해야만 했다. 허나 그건 희망 사항에 불과했다. 그러니까 이게 다 뭔가? 혹시 이게 다 내가 미스테리아에 연재한 수필 때문 아닐까? 아닌가? 아닌 게 아니다. 맞다. 그렇다. 확실하다. 분명했다. 난 옛날 내가 건넨 한마디에 단짝이 움찔하며 반문하던 기억이 났다. 우린 당시 제일 친한 친구였고, 사업1을 같이 하다 독립해서 각자 삶을 살다가 다시 만나 사업2를 같이 하던 때였다. 친구1은 내 단짝, 난 친구2, 그리고 친구3 이렇게 삼인조 동업이었다. 그 동업은 친구3의 이끔으로 시작됐다. 화술이 좋고, 일에 대한 재능도 뛰어나며, 사랑에 대한 열정은 물론 아버지 세대식 영화배우 스타일인 친구3의 주도로 의기투합해서 시작된 결과였다. 물론 끝은 좋지 않았다. 난 그때 단짝에게 그랬다. 사업1부터 사업2까지 잘 풀리지 않는 기구한 운명이 어쩌다가 이렇게 됐는지 쩜쩜쩜. 한데 녀석은 뜬금없이 그랬다. (사업1부터 중간의 방황과 사업2까지 잘 풀리지 않는 고난) 그게 다 나 때문이란 말이냐? 라고. 난 그런 의도로 꺼낸 말이 아니었는데, 녀석은 왜 그렇게 들었는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사업1을 같이 할 때 실장으로 불리던 분의 대사가 기억났다. 누구가 욕심이 많지, 라고. 난 우리를 말하고 싶었는데 청자는 왜 그렇게 내 말을 곡해했는지 아직도 의문이다. 그야 뭐 화자 잘못일 테지. 그건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아니겠다. 단지 청자가 고깝게 들었을 뿐. 시작부터 당시까지 같이 어려웠으니까. 아니다. 그게 아니다. 사업1의 동업에 대한 어떤 특정 불행에 대해서 내가 혼자 독박 쓴 일에 대해서 내심 생각은 있었던 것이다. 뭐한 놈이 뭐한다고, 그런 일을 왜 하필 유독 내가 많이 당해야 했나, 어쩌면 우연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다 지난 일이다. 아니다. 대부분 궁짝이 맞았고 재밌고 좋았지만 다툼의 소지는 잠재되어 있었다. 특히 친구1의 장기는 허세, 나는 허당의 약점을 놀리는 데서 짜릿한 즐거움을 느꼈는데, 잘 참다가 어쩌다 한번 녀석은 뚜껑이 열렸다. 이제 보니 그 뚜껑은 내가 열었다. 잘 열리지 않길래 계속 내가 두드렸던 거네. 참 내! 무슨 마법의 참깨도 아닌데 말이다. 소원을 들어주는 정령을 부르도록 알라딘의 요술램프의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 열었다 닫았다, 그래서 친구의 뚜껑도 열렸다 닫혔다 그랬었구나. 이제 와서 생각하니 말이다. 마법사에게 빌린 반지는 나의 말이었고, 정작 나타난 마법의 정령은 뚜껑 열려 흥분한 허세남이었네 그려. 하지만 자주는 아니었다. 거의... 딱 한 번이었다. 다 농담으로 넘어가고 완전 뚜껑 열려 흥분한 건 그게 다였다. 아니다. 대충 두 개 정도 됐다. (격분해서 잠깐 울컥하며) 늬는 왜 사람 단점을 갖고 뭐라뭐라 그러냐, 그걸 포함해서. 그러다가 수도 없이 당하니까 방법을 터득했겠지 뭐. 난 그때 허영심이 내 기반이었고, 당시 절찬리 방영된 인기 절정의 TV드라마를 감명 깊게 봤었고, 친구들과 방황했던 시절이었다. 인기? 인기라는 이름의 초등학교 친구도 생각난다. 아무튼, 녀석은 다 좋은데 질투심, 경쟁심, 허세 이런 부분에서 아쉬웠다. 많이. 그게 다 그냥 허당이라서 그런 거였다.
여기서 살짝만 부언하고 넘어가자. 도대체 왜 친구의 뚜껑은 열릴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해서. 한번 열고 두번 열고 계속 열었다. 그건 곧 내 삶이었다. 숙녀의 마음에는 노크를? 그건 옳다. 그럼 마초의 마음에도 노크를? 그런 게 어딨어! 그러니까 난 이중 인격이었나? 여자에겐 진공청소기를 남자에겐 커피포트를? 저런 저런! 그러나 내 인생, 우정에 대하여 어디서 꿇리지는 않았다. 단짝의 총량과 밀도는 적어도 상중하에서 상이었으니까. 중간만 가는 친구는 내 상대도 안된다. 게임 자체가 성립될 수 없다. 그 때문에 우정이든 사랑이든 서로 좋다가 서로 열 받는 일이 많았을지도 모르겠군. 하지만 그게 다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던 거다. 친교 참 어렵게도 해 왔구먼. 그 까다로운 취향 때문에 허세와 허영이 충돌했나 보다. 그냥 허당과 은근 허당은 이래서 조마조마다. 안 그런가? 아 조마조마! 그래도 으쌰으쌰 열이 통했으니까 우정과 사랑을 양쪽에 꿰차고 인기를 추종했음. 우정에 열광하고 사랑에 몰입했나 아니면 그 반대였나. 과장은 이쯤에서. 그러니까 배운 건 허풍 밖에 없다? 아 나 이런 머저리 같으니라고! 우정이든 사랑이든 진득하지 못했고, 뭐든 종결이 안됐으며, 슬렁슬렁 건너뛰기만 했구먼. 취미는 속성 인생은 독학이었으니까. 사과나무를 심고, 바나나도 따고, 딸기잼에 빠져 허우적대다 타인의 아이스크림을 부러워하더니만, 결국 벌인 일은 많았지만 성과가 빈약했다. 어쩌면 못 먹는 감 찔러나 보는 패기가 부족하고, 낭만과 이상을 추구하는 배짱에는 소심했던 게 아마 다 그 때문 아니었을까? 제발로 굴러다니는 호박이 듬성듬성 끊이질 않았다는 점. 간간이 4번 타자 다음에 드문드문 보너스가 이어지니 최고의 보물을 기다릴 수 밖에 없었음. 뭐, 뭐라고? 그 의구심도 친구한테 배웠구만. 그게 나 때문이란 거냐!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잔기술만 곁눈질로 익히고 뭐든지 따라하고 흉내내고 베꼈구만. TV 보며 전문가들이 닥치는 데로 지식을 습득하는 것도, 영화 보며 주인공들의 멋져보이는 열연도 다 본뜨느라 바뻤음. 누가 시킨 일도 아닌데 말이다. 하지만 내 마음은 순수했다. 또 솔직했다. 물론 속으로만. 그건 정직한 심성이 아니라 음흉한 심보인가? 아니다. 왜냐하면 친구들은 흑심 일색이 분명했지만 나는 그런 게 대세였으니까. 호감과 사랑과 낭만 그리고 탐미주의, 선망, 허영심, 팔랑귀 기타 등등. 그러므로 나는 마담에게 신청하고 싶었다. 3박자 춤은 곤란하더라도 3분의 마법인 유행가를. 제목은, 다음 사람에게는! 그러나 마담은 바뻐. 너무 바뻐. 그분 인기 좋은데 한가할 리가 있나. 하여 나 같은 허접한 손님은 통 만나주지를 않음. 클럽 입구에서 이미 입장 금지 당함. 언제까지 나비넥타이를 맨 웨이터 에르메스씨한테 짱돈을 찔러줘야 하는지, 참말로 신세 한심하다. 처량한 내 인생, 누군 뭐 좋은 줄 알어? 다 거짓말이었음. 그러니까 뭐가? 찬사가! 뭐 어쨌든 그래서 어쩌다 만난 귀여운 (여)바텐더는 신청도 안했는데 그러더군. 오빠를 보면 딱 그 노래가 생각나. 막 그러면서 웬 노래를 트네? 곡명은 트러블 메이커! 뭔 메이커? 아, 아아, 아아아 제발! 그 음악은 제발 틀지 마세요 DJ! 하여간 말은, 당시 하이파이브했던 게 누군데! 하다 하다 이제는 청승까지, 관 두자. 때려쳐. 그만두면 될 꺼 아냐, 뭐가 어쩌고 어째?... 드라마도 너무 많이 봤다. 차라리 회사를 다닐까? 그냥 말이 그렇단 얘기. 아무튼, 난 탐스런 열매와 고귀한 결실, 사랑과 우정의 끊임없는 친밀감을 원했는데 왜 매번 결과는 분란이냐고. 인생 참 미치겠구만 그래. 아니 왜? 그러니까 너무 각별한 기억 때문에? 우리 반 더블에스의 눈부신 엉덩이와 우리 동네 삼총사 친구의 후라이팬에 덴 엉덩이 때문에? 그래서 앞에서 고백을 해야 하는데 뒤에서 뭘 자꾸 훔쳐보느라 다 날 떠나간 건가? 작별 인사도 없이? 설마 바로 그래서 지금 롱패딩 점퍼가 유행을? 망상도 정도껏 하자. 무슨 그런 개 풀 뜯어먹는 세계3대 후라이팬 같은 소리를! 말 같지도 않은 말은 이제 부디 자중할 때도 됐다. 오 제발!
사람의 생활이 그렇다. 세상사는 그럴 수 밖에 없다. 만개한 데이지꽃의 화사함과 나팔꽃 연보라색, 제비꽃 보라색의 선명함과 정반대의 어려운 시절을 겪고 있다면 윤리적이랄지 일관성이랄지 그 어떤 기준선은 내려갈 수 밖에 없다는 것. 괜히 유유상종하는 게 아니다. 어떤 과함이나 예외가 아니라면 선입견은 지혜고 색안경은 슬기다. 하지만, 일상에서 그걸 감안해야 한다는 걸 우리는 잘 알지만 곧잘 잊어먹는다. 낯선 타인이 갑자기 과민 반응을? 아 저분이 대체 왜 이러실까, 혹시 저분께 최근 비운이 스쳐간 건 아닐까, 그 보다는 먼저 옮고 그름의 타당한 이치 먼저 따져서 감정이 움직이기 쉽다. 이해력은 탄력을 잃어버리고 포용력 역시 움츠려들기 쉽다는 걸 잊지 않기. 적어도 나이에 비례해서 내 이성과 감성을 원활히 제어하는 게 이롭다는 건 대체로 옳다. 좀 더 심화하자면 때와 상황에 따라 단순히 행복한 환경 뿐만 아니라 생활 습관, 기후, 기록의 유무, 인습, 형편등 그 기준선의 목록은 줄어듬보다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는 걸 될 수 있으면 선험적으로 아는 게 좋다. 그 쉬운 예는 잘 아시다시피 많고도 많다. 내 여자친구는 진짜 천사가 아닌지 의심스러워요, 우리 남편은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그 말도 맞지만 원래 인간의 사고 체계는 상당 부분 불합리함을 전제로 작동한다는 걸 감안하면 된다. 말은 쉽고 행동은 덜 쉽지만 말이다. 져주는 경륜이 다른 게 아니고, 접고 꺾는 관록미가 특별한 게 아니다. 친구-지인 사이에서도 미안하다, 잘못했다, 존경합니다, 부럽다, 솔직히 질투심이 샘솟는다, 라고 먼서 숙이고 들어가서 꼭 비싼 술값은 어떡하다 친구-지인이 내게 되는 우정과 사교도 드물지 않듯이. 맙소사, 혹시 습관적으로? 대체 누구야 그 인간! 친구는 그런다. 내가 지면 내가 져준 거 알지? 내가 이기면 늬가 져준 거 누가 모를 줄 아냐! 수평이 아닌 수직적 권력 관계가 없잖아 있다 그러면, 진짜 져 줘야 할 땐 극적으로 절묘하게! 더구나 현실은 언젠가 사극도 되고 코메디도 된다. 여러분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자 나를 따르라 돌격 앞으로, 그러고선 선봉을 맡았던 그분은 저 멀리─더 멀리─아주 멀리 아예 안 보이는 곳으로. 젊음의 행진을 했던 사람들은 뚤레뚤레 서로 쳐다본다. 그분 대체 어디로 갔냐면서! 어디서 많이 보고 듣고 읽은 듯한 익살이군. 여러분 이게 말이나 됩니까,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자 우리 모두 들고 일어섭니다? 워─워─워! 저 우리가 누구인가 시시때때로 바뀐다는 게 어떤 값싼 풍자의 핵심일지도. 그런데, 누굴 만나든 진짜 져주지만 시샘 받는 역할을 꼭 한번 맡아 보고 싶다? 타락한 천사처럼 파란만장함을 숨기는 악역을 나도 한번 어떻게 맡아 보고 싶다? 그건 종목을 바꾸면 된다. 운칠기삼으로! 그러면 은근 허당 근처에라도 갈 수 있으니까. 한턱에 대해서 송사리는 내가, 대물은 친구가! 허나 실제 놀이에서는 그 반대로 대물은 나의 천명, 송사리는 너의 운명! 좋든 싫든 고수와 하수의 차이는 더 나중 드러나는 법이다. 마치 연애도 멀리 보고 집단지성으로 작전을 짜는 세력이 유리하듯이. 뭐 단타 매매와 장기 투자는 물론 현물 매매와 부동산과 더불어 선물 옵션으로도 모자라 애첩까지 모두? 이 양반 이거 이거 안되겠구만! 명분, 실리, 위상, 기분등 애마를 뭘로 볼 것이냐에 따라 개인적으로 미묘한 차이는 있겠지만 공통적으로 핸디캡은 누구나 모를 리 없다. 공석에서는 더 순화하겠지만, 그러나 사석에서는 이렇게 행복한 비명이 들릴 수 있는 일도 개운하진 않지만 가능하다. 그랑프리는 매번 양보하고 싶고, 이젠 정말 지겹고 짜증나고 지긋지긋한데 뭐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어쩔 수 없이 받았다, 나도 싫지만 이젠 정말 귀찮지만 진짜 신물이 나지만 그래도 형식이니까 뭐라뭐라? 재수 없다! 완전 매를 버네. 어쨌든 그 우정은 길었고 친숙했지만 어쩔 수 없이 삐걱거렸다. 녀석은 계속 다큐멘터리 동물의 세계에 남아있기를 고집했으니까. 나는 어린이의 능청과 아저씨의 능글능글함에서 중간이고 싶었으니까. 우린 가는 길이 달랐고 지향점도 달랐다. 아 잠깐 잠깐 여기서 잠깐......
설마 그럼, 지금 나도? 가서 따질까 말까? 그러지는 말자. 왜냐하면 첫째와 둘째에 대한 가설을 이론으로 발전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가설은 이렇다. 첫째, A)미스테리아에 연재하는 수필. B)소설. A와 B의 밀접한 연관성. 정확한 확증은 없고 입증은 어렵지만 분명 뭔가 있었다. 그리고 둘째, 여자친구들과의 감미로운 우정과 은은한 애정이 갑자기 식어버려서 내 소설 집필이 일시적 휴지기에 접어든 점. 첫째는 A 때문에 B가 발생한다는 상관관계를 내가 명확히 증명할 수 없었다. 둘째는 애교 만점이던 내 양떼들 아니 여자친구들이 느닷없이 연락을 뚝 끊어버렸다는 게 단지 서운할 뿐이지 문학 집필이 그것과 큰 관계가 있다? 것도 불분명했다. 단지 불쾌할지도 모를 정찰은 얼마 만큼 불가피하고, 내내 근본 원인에 대한 추측은 멈출 수 없으며, 슬럼프를 탈출할 때까지 미스테리아를 내내 탐닉해야 한다는 점은 인정됐다. 지금은 밀착 마크의 시기가 분명했다. 일명 정찰의 시기. 잘하면 첩보를 입수하는 거고, 못되도 추종 세력을 다시 결집해서 전성기를 위해 전진. 돈만 있으면, 여건만 되면 경쟁사 하나 차려버릴 텐데, 그런 생각 해 보지 않았다? 부정하진 않겠다. 그러나 좀 더 차분히 생각했을 때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잘 모른다는 점, 아마도 거기서부터 착실히 원인을 따질 필요가 있다. 따라서 나는 미스테리아에 보낼 수필을 폐기했다. 기다리는 사람도 없는데다 어디까지나 그건 부업일 뿐이었다. 어딘가 모르게 그 정기적이고 꽤 짭잘한 고료가 내 발목을 끈질기게 부여잡고 있는 듯한 느낌은 차마 지워버릴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다 보니 배보다 배꼽이 더 커졌고, 일이 심하게 꼬여버린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 다음에 보낼 단문의 제목이 뭐, 악마는 양철북을 읽는다? 삭제. 이 파일을 휴지통에 버리시겠습니까? 예스! 휴지통 비우기, 예스! 하드 디스크 포맷? 그건 귀찮았다. 하드 디스크 폐기? 누가 알면 결벽증이라고 오해할 수도 있는 일이니까, 통과. 어쨌든 나는 컬럼 파일을 깔끔하게 노트북에서 지워버렸다. 후련하다. 속 시원하다. 이제야 숙면을 취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돼지꿈이라도 꾸면 복권을 사야 한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없는데, 이런 이런! 그런데 괜히 지웠나 라는 생각이 자꾸 날 귀찮게 했다. 소액이지만 그건 거의 모종의 생활비에 해당하는데, 그게 바로 내 품위 유지비인데, 내가 왜 그런 무모한 짓을? 이건 좌절에 해당했고 나는 자책에 도달했다. 컬럼 삭제에 대한 회한은 거의 사랑의 미련과 닮은 것만 같았다. 그러나 나는 내게 엄해야 한다. 약해지면 안된다. 사춘기 때 문구점에서 어느 중년 여인에게 싱겁게 생겼네 라는 얘길 들은 걸로 족하다. 나는 어른이다. 일할 땐 일하고 놀 땐 놀아야 한다. 말로는 일할 때도 놀고 놀 때도 논다고 했지만, 통장 잔고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찌 됐든 결론은 나는 더 이상 아마추어가 아니라는 점. 요점은 나왔으니 뭔가 찜찜하긴 해도 모양새는 고민 해결. 하지만 이제부터가 진짜 승부다. 전설의 도시, 신비한 마법, 놀라운 모험, 미지의 힘 그리고 천재성의 비밀까지. 그건 모두 미스테리아 사무실에 있다. 멀리 갈 필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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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이 저급하고 순수문학이 한수 위라는 게 아니라 전제는 그것이다. 나는 처음부터 소설을 지망했다는 것. 그런데 왜 글이 써지지 않는가 라는 물음에 대해서 최근 답을 얻었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그건 모두 미스테리아 때문일 것이다. 결과적으로 나는 삼류 칼럼니스트로 전락했으니까 말이다. 투정에 관대하게 불만을 뽑아보자면 불만족스런 점은 하나 더 있었다. 바로 친구들끼리 모여서 놀지 않고 개인 플레이 위주로 논다는 점. 더 이상 우린 시트콤의 주인공일 수 없다고? 그건 오락산업으로부터 구애를 받지 못했으니까 나이랄지 재능이랄지 꿈의 실현과 썩 무관한 일이다. 그러므로 오히려 시트콤 주인공처럼 놀아도 된다. 그럴 수 있고, 그래야 한다. 애들도 모두 어디서 썩 빠지는 인물들은 아니었고 잘 하면 조명을 받을 테고, 따라서 전망은 괜찮았다. 그런데 어쩌다가 이렇게? 정리하자면 문제는 이렇다. 첫째, 친구들끼리 모여서 놀고 아지트에서 함께 무엇을 하며 놀 것인가를 논의하지 못한 채 모두 개인주의자로 신비주의를 혼자서 탐색한다는 점. 둘째, 미스테리아에 연재하는 우스꽝스런 칼럼 때문에 나는 소설이 잘 써지지 않는다는 점. 첫째는 현황을 받아들이기엔 영 석연치 않고, 둘째도 그 과정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모두가 종점은 미스테리아였다. 나는 이 받아들이기 곤란한 예술의 장벽과 오락의 불운을 주관하는 섭정을 깨트릴 것이다. 편집장한테 따질 것이다. 기존의 생활 리듬과 유쾌한 삶의 질서가 변질된 원인을 찾아낼 것이다. 나는 할 수 있다. 시대를 앞서가고 1년 후를 내다보지 않아도 된다. 그녀들한테 진을 치고 달라붙으면 그만이다. 이 일만 해결하면 새로운 인생은 따논 당상이다. 따라서 이제부터는 어리숙하게 굴면 안된다. 성숙해져야 한다. 다시 원고 청탁이 들어오면 단호하게 거절할 것이다. 늬가 뭔데 나보고 글을 써라 마라야? 라고. 마라? 마라는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마라...가 워낙 수수해서 그렇지 좀 꾸미면 괜찮긴 꽤 괜찮은데 말이야. 에고머니나, 나 좀 봐 봐! 마라가 현-편집장이지. 아 그동안 만났던 친구들과 친했던 숙녀들과 좀 더 교분이 두터웠던 누군가가 그렇게나 많았단 말인가? 아니다. 단지 착각일 뿐이니까. 앗 그만. 옆길로 빠지면 안된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나와 미스테리아, 둘 중에 하나는 쓴맛을 봐야할지도 모른다. 어쨌든 나는 그곳으로 찾아가야만 한다. 난 미치지 않았고 편집장도 바보가 아니다. 그래서 맨손으로 들이닥치면 안된다. 그러기엔 뭐하니까 연분홍색 카네이션과 1800년대 초반 오페라 원작의 원본, 아 그건 원본이 없을 테니 복고판이라도 어떻게 구해서 들고 가야겠다. 그런데 지역에 따라 카네이션을 긍정하지 않는 곳이 있다고 어디서 읽은 기억이 나는데, 설마 그걸로 트집잡진 않겠지? 편집장의 지성과 미스테리아의 교양을 믿어야지 별수 있나. 예전의 친밀감에 타격을 입었지만, 혼자 생각인가 그래도 더 친해지진 않았으니까, 침체기를 극복할 수만 있다면 다 괜찮다. 무슨 일이든 감수할 수 있다. 혹시 수틀리면 추리소설 문단의 악동 누구누구의 비밀, 악성 저질 잡지 머머머의 뜬소문을 어딘가에 제공하는 수 밖에. 근데 걔들에게 뭔 비밀이 있다고? 아아 아직 갈길이 멀구나. 좀 더 치밀하게 작전을 수립해야만 한다. 이쯤 되면 나는 미스테리아란 제목으로 추리소설 하나를 미친듯이 써야 하는데, 그걸 들고 떡하니 나타나서 큰소리라도 치던가 아담하게 (자청하고 부탁해서) 기자 회견이라도 열어야 하는데, 그분은 영 소식이 없다. 추리소설은 커녕 실험작 추측소설도 어려운 형편이니 이거 원! 나는 허언증에서 옛날에 졸업했지만 다시 거기에 복귀하고 싶어하는 것만 같았다. 그게 정 어렵다면 어떻게 허언의증이라도. 머머증에 이어 머머의증? 완전 허당 증후군이 따로 없구만. 가지가지 한다. 어디서 뭔 말 같지도 않은 이름 만들기야? 누가 아니래! 저번에는 다큐멘터리 소설 이번에는 교양 소설? 소설 쓰고 있네. 소설을 써라 소설을 써! 이래서는 안된다. 공부한다고 폼만 잡고 정작 공부를 하지 않으면, 그러면 죽도 밥도 안된다. 삼천포로 그만 빠지자. 결판을 짓고 매듭을 풀어야 한다. 간결하게 추론해 보자. 첫째, 왜 우리들이 따로 놀았나. 둘째, 뭣 때문에 여자친구들이 날 조롱이라도 하는 듯이 내 마음을 가지고 장난치는 것도 아닌데, 운동을 같이 하다가 연락을 갑자기 뚝 끊어버렸나. 알아내야 한다. 알아낼 수 있다. 하면 된다. 할 수 있다. 형편을 따져 보자. 이름 하면 연상되는 동사랄지, 인물과 연결되는 심상, 개인과 평판에 걸맞는 브랜드를 발성해 보자. 나는 가난하고, 실비아는 유쾌하며, 마라는 친절하고, 바바로사는 다정하고, 홀리는 돈까지 많으며, 셜리는 끝내주게 재미있고, 남자친구들은 한마디로 믿는 구석이 있다. 아니 많다. 그럼 난 뭔가. 오오 저런! 저런 저런 저런! 객관적으로 따져 봐도, 계량적으로 측정해 봐도 나만 밀려날 수 밖에 없었구나. 난 그것도 모르고, 집에서 공책에 뭐? 요즘 잘 모이지 않고 따로 논다고? 참 내 그런 엉성한 추리력으로 뭘 하겠다고! 거리에서 마주친 어느 숙녀를 덱스터의 여동생과 닮았다고 느꼈던 것도 다 내 환영에, 허상에, 착시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제 그만 상상의 세계에서 빠져나와야만 한다. 전모는 드러났다. 정체는 밝혀졌다. 하지만 확실히 마침표는 찍어야 하니까 나는 미스테리아 사무실로 출발했다. 가는 동안 아무런 생각도 없었다. 그리고 도착했다. 전후 사정을 불문하고 나는 불시에 미스테리아 사무실에 들이닥칠...려다가 심호흡을 하기로 했다. 극적인 순간 아닌가. 내가 불청객이든 이방인이든 이건 한번은 거쳐 가야 할 운명이었다. 난 그것을 받아들이기로 했고 편집장이든 조수든, 정담이든 하소연이든 기필코 한 가지 성과를 얻고서 물러날 테다, 라고 다짐했다. 지금 미스테리아 사무실 문 앞이다. 떨린다. 손에 땀 난다. 발가락 사이에서도 땀 난다. 뒤에서 누가 날 부르나? 다음에 다시 올까? 산책하는 소일을 빠트린 건 아닌까? 지금 혹시 누군가 날 찾아오진 않았을까? 마감일에 쫓겨 바쁘게 일하는데 괜히 방해되는 건 아닐까? 아니다 아니다. 그럴 리 없다 그럴 리 없다. 그럴 것이다 그럴 것이다. 물러설 수는 없다 없다. 간다 간다. 들어간다 들어간다. 진짜다 진짜다. 장난 아니다 장난 아니다. 그런데 혹시 문을 열었는데 소파 위에서 막... 그런... 그... 못볼 걸 보게 된다면? 또 또 또! 자, 진짜, 들어간다. 나는 한치의 멈칫거림없이 문을 열었다. 벌컥! 그랬더니, 그래서 어떻게 됐을까? 오오 이럴 수가! 아니 어떻게 나한테 일언반구도 없이 자기들끼리... 얘네 정말 너무하네. 아아 무안하도다. 얼굴이 빨개졌다.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바로 미스테리아 사무실에는 남자친구들과 여자친구들이 모두 모여서 파티를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모두 너무 즐겁게 파티에 열중하고 있어서 문을 확 열었던 날 알아보지 못했다. 다만 흥겨운 분위기에 덜 몰입했기 때문인지 어쩐지 마라와 실비아는 나와 눈이 마주쳤다. 완전 재밌게 놀다가 나 때문에 흥이 깨진 듯 시간이 정지되어버리거나 막 그러지는 않았다. 이곳이 새로운 아지트였어? 이미 시트콤을 찍고 있었네? 나만 빼고? 오오 맙소사! 좌중을 휘어잡고 실비아가 무슨 재미난 얘기를 속삭이고 있었고, 녀석들은 폭소를 음악은 2박자부터 3박자 장조까지, 복장도 산타부터 할로윈 괴물까지 참 다양했다. 마라만 뭔가 이상한 내 표정을 읽었던 것일까? 잠시 분위기를 깨지 않고 조용히 그곳에서 빠져나와 날 따라왔다. 난 당연히 거기서 도망쳐 나왔다. 집으로 뛰어 갔다. 마라가 쫓아올 리는 만무했고, 잠깐 멀뚱히 쳐자보다 들어갔을 것이다. 저 인간 왜 저래, 쟤 뭐야, 아마 그러면서.
여기까지가 내가 미스테리아에 방문했고, 그곳이 아지트란 걸 알게 됐으며, 다시 오랫만에 가택감금을 시작하게 된 이야기다. 경위는 그랬다. 나는 저절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속마음을 정직하게 털어놓을 곳은 백지 밖에 없었다. 내가 지칠 줄 모르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감언이설을 늘어놓으면 듣는 사람은 오직 불확실한 독자 밖에 없었던 것이다. 부질없는 회상은 시들기 마련이고, 새로운 예감을 맞이하는 게 백번 낫다고 생각했다. 이제야 드디여 창작의 계절이 돌아온 것이다. 교향악단은 오라토리오를 연주하고, 청춘 남녀들은 NC로, 동네 친구들은 미스테리아에서, 거리의 사람들은 화기애애하고 발랄하게 때로는 남녀의 사랑으로써 선정적으로, 지나가는 한 해를 아쉬워하며 다가오는 한 해를 반갑게 고대하고 있었다. 내게 남은 건 이제 블로그 밖에 없었다. 아무리 호박이 제발로 굴러다닌다고 나까지? 그건 허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처럼 나는, 귀여운 여인의 선망과 숙녀의 질투심은 물론 고상한 여인의 동경심까지 그 모두를 약점으로 사로잡기 위해 작품 구상에 돌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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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택감금을 시작했고, 언제 집으로 소포도 왔고, 편의점에 들리니 누가 뭘 전해달라네 하면서 물건을 건넸으며, 아침에 집에서 문을 열고 나가 기지개를 켤려는데 발 앞에 웬 봉투가 있었다. 그건 모두 발송인이 누군가를 밝히지 않은 꾸러미였다. 안에는 새 책도 있었고 중고책도 있었다. 제목은 이랬다. 대화체 쓰는 법, 플롯 작법을 정복하는 법, 기승전결 완성하는 법, 발단을 탈출하는 법 등등등. 제목이 다 머머하는 법이었다. 누가 보냈는지 대충 느낌이 왔다. 서먹서먹함은 시간 가면 풀릴 테고 아직은 때가 아니니까 좀 더 칩거 생활을 즐기기로 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실비아가 날 찾아왔다. 나는 사무실에서 딱히 대접할 건 없고 오렌지 쥬스를 사와서 탁자에 놓았다. 「오빠. 나 좋아해? 응? 솔직하게 말해 봐.」 「낸들 알아? 그걸 누가 알겠수? 내가? 아니면 (눈썹을 치뜨면서 무언의 반문으로)?」 「그거 알아요? 당신은 보면 볼수록 매력적이에요. 오빠. 이렇게 말해 줄 순 없는 거야? 응? 정말? 아닌데! 아닌 거 같은데. 아마도 참는 거 같은데? 그치? 맞지? 오빠 어떡하냐, 들켰네! 호호호.」 「어떻게 알았니? 나도 그럴려고 했는데, 하지만 생각이 바꼈어.」 「아니 왜? 오빠 저번에 미스테리아 사무실에서 파티하는 줄 알고서 그냥 돌아간 일 때문에 그러는 거야? 아니지? 에이, 설마!」 「아니야. 아니라고. 내가 그렇게 속좁은 남자로 보이니? 딱, 아니야. 알겠어?」 「지금 '아니야'가 몇 번 나왔나. 수상한데?」 「그래. 나 삐졌다. 완전 삐쳤어. 됐니?」 「되긴 뭐가 돼? 아직 시작도 안했는데. 왜 그렇게 부정하는지 좀 더 심층적으로 따져봐야 할 거 아니냐, 이 말이야. 방금 오빠가 말한 몇마디를 분석해 보자면 핵심은 두 가지야. 첫째, 날 좋아한다 그런데 좋아하면 안된다 고로 사랑이 야속하다? 둘째, 나는 미스테리아 사무실에서 내 친구들이 모두 모여서 놀고 있는 모습을 보고 삐졌다. 많이 삐졌다. 내가 못살아 정말, 이런 심정이다. 어때, 내 추론이?」 「그래. 둘 다인 걸로 합시다. 됐니? 아 진짜 됐냐고?」 「오빠 왜 화를 내고 그래? 오빠 짜증내니까 은근 남자다운 거 있지? 오 멋진데. 의외의 당당한 모습. 꽤 매력적이야. 기억해둘께. 근데 왜 이런 남자를 여자들이 지금까지 가만 놔뒀을까? 채 가도 진작 채 갔을 텐데 말이야. 왜, 닥칠까? 아님, 꺼질까?」 「넌 왜 아까부터 내가 할 말을 늬가 하고 있니? 대체 나한테 왜 그래? 얘가 가만 보니 은근 말발이 좋네. 어디서 배웠을까? 뭐 속성 과정 그런 거라도 숙달한 게 아닌가 꽤나 의심스럽군 그래. 혹시 너도 동기부여 동영상 찍어서 어디에서 막 나름 유명하고 그런 거 아니니? 혹시 모르니까 하는 말이야. 담아두진 마셔.」 「오빠. 어쨌든 이 하나만 알아주십시요. 우리가 오빠 많이 좋아한단 거 말이야. 말하지 않아도, 알지? 잊지 마. 꼭 기억하라구. 알았지? 설마 모른 체 하는 거야, 아님 정말 모른 거야? 표정을 보아 하니 모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정말... 몰랐어?」 「모르긴 뭘 몰라? 내가 바보니? 얘 은근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하네. 판타지는 꿈도 꾸지 마! 이제 칼럼 안 쓰기로 했으니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순전 미스테리아 좋은 일만 해준 거였어. 난, 이제, 칼럼, 안 써. 알았어? 나도 TV 연속극에 나오는 자존심 덩어리 흉내나 좀 내 보자. 응?」 「섣부른 호기심은 금지된 탐구욕을, 다시 그것은 경솔한 염탐을, 마지막엔 편안한 체념에 이어 고고한 달관까지 이어질 수 밖에 없다네 친구. 내 그럴 줄 알았다, 라는 정해진 여정을 설마 애초에 모른 채 출발한 건 아니겠지? 뭐가 문제일까? 이유가 뭐지? 정말 궁금하네. 오빠. 원고료 올려 줄까? 그건 전혀 문제될 거 없어. 왜? 값이 뛰었거든. 찾는 사람이 좀 되는데 이걸 어쩌지? 요컨대 고료는 무제한이이야! 너무 가파르면 재미없으니까 차츰차츰 올릴까? 2배? 3배? 아님 0을 하나 아니 두 개 더 붙일까? 말만 해! 아 진짜로!」 「미스테리아 시사 평론. 밝은 미래에 대한 다망한 전망은 사양하는 바일세. 흐흠.」 「천사의 유혹을 거절할 수는 없을 걸. 인형의 리본을 푸르든 행운을 만들든, 뭔가는 해야 할 거 아니야, 이 양반아. 오빠, 우리 좀 도와줘. 그 칼럼 때문에 미스테리아 본다는 사람이 적지 않다구. 알긴 아시나?」 「아 몰라. 이제 컬럼계를 은퇴했으니까 그렇게 알라구.」 「오빠. 나 집에 안 들어갈래.」 「집에 안들어가기는 뭘 안들어가? 지금 대낮이야.」 「오빠 나한테 왜 이래? 오빠 그런 사람 아니잖아. 다정하잖아. 재밌잖아. 웃기잖아.」 「아니야. 나 원래 무뚝뚝해. 그리고 넌 왜 그래? 일과 친교를 한 바구니에 담지 마. 너, 편집장이 보내서 왔잖아?」 「오빠. 그러지 말고 우리 사무실에 놀러 가자.」 「왜? 마라가 나 데리고 오라던? 아니면 오늘 애들 모이는 날이니?」 「이따금 난 눈치 없는 남자가 좋던데. 여자도 때론 은근함보다 확실함이 좋을 때가 있거든.」 「나도, 어떻게 알았어 오빠?, 그런 답은 바라지도 않았어. 가자. 가자고. 못 갈 꺼 뭐 있어. 남의 사무실이지만 내 집 드나들듯 드나들던 우정이 어디로 도망가진 않았을 테니까.」 그렇게 실비아와 나는 미스테리아 사무실로 함께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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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미스테리아 사무실에 도착했다. 그런데 편집장 마라를 만나자마자 실비아는 쥐도 새도 모르게 어딘가로 사라졌다. 마라와 실비아의 뭔가 설명하기 곤란한 전후 사정을 잘 아는 나는 굳이 마라에게 묻지 않았다. 실비아 어디 갔냐고. 그렇지만 지금 사교보다는 업무가 먼저였다. 그래서 나는 빙빙 돌리지 않고서 즉각 물었다. 왜 불렀냐고. 그랬더니 글쎄, 「불러? 누가? 오빠를? 아니 왜? 에이 재미없어 그런 농담. 할아버지 세대식 문학적인 농담도, 요즘 십대들이 좋아하는 재치도 아니고 그게 뭐니? 보고 싶었으면 그냥 솔직하게 말해. 보고 싶었다고. 그게 무슨 죄라도 되니?」 난 느꼈다. 실비아한테 속았다고. 일단 처음부터 내 기대가 문제였다. 나는 저번처럼 화기애애한 파티 분위기와 시트콤의 흥겨움이 공존할 거라는 예감 때문에 솔직히 은근 들떴다. 그런데 이게 뭐야, 남들 다 일하는데 나 혼자 놀겠다고 어리광을 부릴 수도 없고 말이야.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아마도 제일 중요한 건 품위 유지비니까, 나는 물어봤다. 「저기 혹시 말이야. 칼럼...보다는 요즘 허구가 대세인지도 몰라. 세 배까지는 무리고, 두 배는 바라지도 않아. 그렇지만 적어도 쩜오는, 그건 곧 최소한 신뢰에 해당하는 문제가 아닐까 라고 생각하는데. 하오나 사무실 운영에 특별히 누를 끼치고 싶은 마음은 없어.」 나는 협상에 큰 재주는 커녕 작은 소질도 없었다. 「그게 뭔 얘기야? 설마 클락이 자기 차를 헐값에 내게 넘겼다고, 그게 불만인 거니? 다시 되팔라고? 것도 50% 할인해서? 난 클락이 아니야. 나 봐. 검소하잖아. 사치가 나쁘다는 게 아니야. 내 입장을 생각해주라는 게 그게 썩 무리한 요구는 아닌 것 같은데. 솔직히 그 때문에 실비아랑 다퉜어. 그년이 아마 먼저 화해하자고 손내밀기는 싫고, 중재자로 널 부른 거 같은데 괘씸한 년. 어딜 넘봐? 실비아보다 내가 널 먼저 알았다. 알지? 너 아니 오빠랑 실비아가 사랑의 관계가 아닌 이상, 우리 우정이 먼저야. 알겠어? 도망갈 생각 말어. 이상한 궁리했다가는...! 넌 의리도 없니? 아, 오빠란 극존칭을 내가 참 많이도 생략했구나. 아 진짜 아무리 노력해도 애교가 통 늘지 않으니 이거 정말 미치겠구만. 미안 미안. 정말 미안. 오빠~! 너가 아니 오빠가 오빠란 말만 들으면 미쳐버린다는 예술적 기질을 내 깜빡했구먼 그래. 명심할께. 그건 그렇고 요즘 일은 잘 돼? 글은 잘 써져? 혹시 딴길로 샌 건 아니겠지? 새로운 개구멍을 발견했다거나 색다른 취미, 몰래한 사랑, 참신한 중독, 신선한 밤의 세계, 제2의 인생, 제3의 환희, 그런 거 있음 털어 놔. 어서. 당장! 냉큼 털어 놓으라고. 오빠~ 나야! 우리 사이가 그거 밖에 안되니? 그런 거였어? 어? 얘 안되겠네~! (안되긴 뭘 안돼!) 내게 좋은 정보가 하나 있는데, 아무나 가르쳐 줄 순 없고, 너니까 살짝 귀뜸해 줄려고 했는데 말야. 그런데 있잖아. 우리 회사 팔렸어. 그런다고 달리 바뀌는 건 없지만 위에서 압박이 들어온단 말이야. 그래서 말인데, 우리 있잖아, 고료를 조금만 깎는 건 어떨까? 그리고 주제도 좀 바꾸고. 사랑이 뭐니? 시시하게 말이야. 컬럼 하나에 사랑이란 단어가 뭐 200개? 그게 칼럼이니 낙서니? 아님 성의없는 연애편지라도 되는 거니? 참 내 요즘 애들 어떻게 사귀는지 모르니? 거꾸로 진도 빼. 얘가 얘가 완전 은둔형 몽상가로 살며 고전적 신비주의를 탐닉하더니 완전 구닥다리가 됐구만. 늬가 그래서 안되는 거야. 어? 알아? 늬 문제가 뭔 줄 아니? 어? 늬 문제는 그거야. 노르웨이풍 자연주의를 동경하고, 파푸아뉴기니의 온정과 바로크풍 낭만과 로코코식 절도를 고집하란 말이 아니라구. 늬 문제는 그거야. 말은 좋아. 시작은 괜찮아. 글은 화려해. 도입부는 뭔가 있어. 허나 그게 다야. 막 말을 듣고 글을 읽으면, 딱 그래. 이 작가는 혹시 신비론의 창시자인가? 설마 새로운 환상머신의 발명가일까? 이 양반이 바로 그 유머 감각, 센스, 문학성, 고급스런 농담, 열정, 통찰등 그 뭘로도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사랑론의 저자인가? 이분이? 그런데 그 불가사의함과 쾌활함, 아름다움, 놀라움은 모두 3초, 3분, 3시간, 길어야 삼일이 전부야. 하긴 오빠만 그러겠어? 왜냐하면 허당이란 진실은 탄로나게 마련이니까. 오빠 시카고 가 봤니? 안 가봤지? 그러면서 시카고바에 무슨 판도라의 상자라도 숨겨뒀니? 아주 거기 문턱이 닳겠다. 잘 한다 아주! 거기 바텐한테 흑심이라도 품었냐? 그런 거냐고. 그리고. 너 뭰헨 가 봤어? 뭰헨은 무슨! 뭰헨 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그러고서 함부르크 호프집으로 출근하냐? 그러고서 문학 한다고? 얘가 얘가 안되겠네. 거기 사장이 뭐라는지 아니? 아 저 인간 또 왔네 또 왔어, 내 저 인간 비싼 술 시키는 거 한번 보는 게 소원이다, 라고 한다더라. 진짜라니까. 물론 추측이고. 아무튼 오라버니 문제가 그거예요. 말만 앞서지 않나 라는 거. 몸은 여기 있고 마음은 어디로 간지도 몰라요. 저도 알죠. 허풍술은 자유란 걸. 저도 초반에는 그랬어요. 애독자 엽서에 칼럼 얘기가 보이길래, 자꾸 눈에 띄길래, 지역 라디오에 애청자 사연으로 모잡지의 칼럼 소식이 기다려진다길래, 저도 솔직히 처음엔 그런 생각했었죠. 어떤 생각요? 늬 마음대로 해 봐라! 라고. 게다가 고료도 쌌어. 심지어 미스테리아는 판매 부수도 공개하기 난감한 정도였지. 그런데 이제 상황이 바꼈지 뭐니? 새로운 사주가 그러데. 격월간이 아니라 이참에 우리 월간으로 승격하는 게 어떻겠냐고. 뭐 승격? 야, 미쳤냐?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 인간 뒤통수 한대 시원하게 살짝만 스칠려다가 가까스로 참았다구. 아 내 인내력 알아줘야 한다니까. 나도 성질 많이 누그러졌다. 나나 되니깐 참았지 실비아 같았어 봐. 뭐라도 엎었을지도 몰라. 하다 못해 온더락스 그 얼음통이라도 엎었을 꺼야. 걔가 그런 거 잘하거든. 실수하는 척 하면서 은근 열 받게 하는 거. 어째 됐든 나나 실비아, 직업적 사명감 투철해. 인성 바르고 대인관계 좋고, 사교계의 꽃이야. 어디 가 봐. 웨이터님께 인기 끝장이니까. 좌우지간 우리가 미스테리아를 사랑하는 이유가 뭔지 아세요? 네? 왜? 대체 왜? 왜 우리가 박봉을 감수하고 여기 남아있는 줄 아시냐구요! 왜냐하면, 우리는 그 쥐꼬리만한 임금 가지고도 인생의 멋과 문학인의 풍류와 젊은이의 낭만, 청춘의 꿍꿍이, 탐미적 뒷일은 물론 가냘프게라도 밤의 환락까지 모두 보장되기 때문이야. 알어? 뿐인가! 우리의 평범한 동경심은 이상의 선망을 정숙하게 키워나갈 수 있었다구. 우리는 미스테리아인이지만 각자 생활이 있었어. 인문서적을 쓰고, 밤에 재즈바에서 드럼을 치고, 권태에 대한 가설을 세우고, 타성에 대해서 실험 다음에 취미에 빠지고, 미지의 요리 명인들을 찾아 세계를 탐방하며 자유롭게 삶을 즐겼다고. 한마디로 일할 때 놀고, 놀 때도 놀기.
그런데 하루 아침에 바꼈네? 일복이 터진 거라구! 아니 왜? 미스테리아의 인기가 쭉쭉 올라가며, 명성을 뻥뻥 터트리고, 사람들의 추리욕을 솔솔 자극했으니까. 좋은 시절 다 갔어. 그게 다 누구 때문이라고? 늬 잘못이란 말이 아니야. 게다가 난 오빠 비밀도 몰라. 너 혹시 에로 비디오 좋아하니? 에잇 그럴 리가. 농담이야. 점잖은 분께서 무슨 그런! 그런데 실비아가 네 노트북에서 이상한 제목의 파일들을 봤다던데!」 「아 그거 친구가 부탁해서... 아니 그거 가짜야. 아니 실비아가 거짓말한 거야. 아니 난 그런 거 안 봐. 내가 그걸 왜 봐? 그런데 왜 몇몇 개구쟁이들이 그런 걸 보나 궁금해서 알고 싶기는 했어. 그게 다야. 그럼.」 「그러니까 사랑에 한껏 자극받아 고조된 기쁨과 느낌과 기분은 도저히 숨길래야 숨길 수가 없었다? 이해해. 괜찮아. 그럴 수 있어. 나쁜 일도 아니야. 그게 왜? 오빠를 추궁하는 게 아니야. 우리가 일이 많아졌다고 해서 널 나무라는 게 아니라고. 듣기 읽기 연상하기, 말하기 쓰기 생각하기, 곱씹혀 반복되니 지식과 생각의 총량이 아직인 귀인이라면 삼라만상을 알고 싶은 욕구와 호기심은 많고도 많다는 점. 그 가운데 궁금하기 짝이 없는 하나는 단연 사랑 아닐까? 라고 생각했나 봐. 누가? 미스테리아 독자님들께서. 왜냐하면 그 우스꽝스럽고 괴상하며 뚱딴지 같은 칼럼이 꼬박꼬박 미스테리아의 뒷편에 실렸으니까. 도대체 사람들 마음을 어떻게 뺐은 거지? 알 수가 없단 말야. 귀신에 홀린 건가? 요즘 세상에 귀신이 어딨다고. 아니면 사주 말이 뻥인가? 또 몰라 사재기 뭐 그런 비정상적인 술수인지도. 하지만 부담갖진 마. 제2의 미스테리아? 그건 판타지에나 나오는 일이니까.」 난 느꼈다. 와, 얘, 진짜, 말 많네! 라고. 작동이 시작했다. 커피포트는 가동됐고 귀에서는 피가 났다. 어쩜 화염방사기의 화마가 이런 것이란 말인가? 영화에 보면 공룡이 불을 뿜고 용이 하늘을 나르며 화염을 발산하는 모습이 나오는데, 그걸 현실로 옮기자면 이와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게 만약 이해하기 쉽고, 설득력 있고, 매력적이었다면 진공청소기처럼 내 마음을 빨아들였을 것이다. 하지마 마라의 말은 납득하기 어렵고, 들쑥날쑥 했으며, 그러나 솔깃하고 혹하며 단지 쌈박할 뿐이었다. 말을 올렸다가 내렸다가, 올렸다가 내렸다가, 다시! 내렸다가 올렸다가 내렸다가 올렸다가, 정신이 혼미해졌다. 마라의 입을 꼬매던지 내 귀를 막던지 해야지 이거 원! 즉 고품격 강연보다는 추억 속 약장수의 특징인 어수선한 달변이랄지, 천상 험구가가 난공불락의 숙녀를 꼬실려고 매우 드물게 열변을 토하여 그녀를 거의 탄복시키기 직전까지 도달했지만, 딱 속셈이 들통나서 차가운 바닥으로 스르륵 미끄러지는 웅변술, 그것과 꼭 닮았다. 따라서 내 귀는 펄럭펄럭 날개가 되어 저 푸른 창공을 날아다니는 만화영화 속 코끼리가 아니라, 여자친구한테 호되게 당하여 내내 침묵하는 남자친구처럼 듣기의 고초를 감내해야만 했다. 내 머리 위에 주전자를 올리면 금새라도 물이 부글부글 끓을 것만 같았다. 스머프를 몽땅 잡아서 부글부글, 뽀글뽀글 맛나게 향긋이 들끓는 수프를 요리한다, 그런 행복한 상상은 바랄 수도 꿈꿀 수도 없게 되어버렸다. 원고료 1.5배 인상?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뭐 깎는 게 어떻겠냐고? 아휴 이걸 그냥! 어찌 됐든 나는 편집장 마라한테 된통 당한 것이다. 결과가 그랬다. 그러나 반대로, 마라는 나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쥐락펴락할 수 있는 능력자였다. 그러므로 지금까지는 병을 줬으니 이제는 약을 줄 차례였다. 북 치고 장구 치고, 병 주고 약 주고, 뻔트 대고 개구멍 찾고, 호박 나이트클럽에 놀러갔다가 임도 보고 뽕도 따고 연예기획사에 스카웃됐다더라? 나는 마라의 장단에 놀아나는 장난감 병정이었다. 아니면 척키 인형? 어찌 됐든 이건 원맨쇼였고 나는 순 허당도 아까웠다. 그러든어쩌든 마라는 쉴 수 없었다. 독한 년! 또 수다를 시작한 것이다. 그녀는 완전 수다머신이었으니까. 「오빠 있잖아. 나도 입 아프네. (너도 알긴 아는구나) 아직 할 얘기가 많은데 말이야. 아, 힘들지도 돈 들지도 않는 일인데 내가 깜빡했다. (계속 깜빡하질 그랬니) 오빠란 말 실컷 듣도록 내가 오빠라고 많이많이 오빠라고 불러줬어야 하는데. 뭐 오늘만 날인가? 아니면 우리 찐하게 포옹이나 할까? 또는 어디식 인사라도? 그건 다음에 하자. 우선은 일이 먼저니까. 우리 프로잖아? 안 그래? 어쨌든 원고료는 차차 올리기로 하고, 얼굴 좀 펴라 오빠야, 표정이 그게 뭐니? 고료 깎는다는 말 농담이었어. 사람이 이렇게 순진하고 선량해서 어떡하니? 포커페이스 몰라, 포커페이스? 속이 다 보이네 아주? 비즈니스가 아니라 연애라도 했다면 큰일나겠네. 속좁은 남자의 쪼잔한 속셈이 훤히 다 보이는데 어느 여자가 도망가지 않고 베기겠어? 안 그래? (아아 또 시작했다!)
다 됐고. 내가 오빠한테 좋은 정보를 줄께. 오빠도 알잖아. 나도 한때 전설적인 두더쥐였다는 거. 뭐 짧긴 짧았지만 나름 현장 경험이 있다 그거지. 그렇게 알게 된 인연으로부터 내가 뭘 좀 들었어. 발은 실비아가 넓고, 난 최고의 커넥터와 중요한 길목과 접근이 어려운 제한된 지성머신만 취급한다네. 허허허. 아 이건 남자 웃음이지? 호호호!
그러니까 뭔 얘길하려고 그리 뜸들이냐고? 긴말 필요없고 요점만 말할께. 오빠가 픽션이 안써진다며 고심하는데 우리라고 좋겠니? 광시곡이든 환상극이든 오빠는 픽션도 쓰고, 우리는 오빠의 칼럼을 계속 싣고. 일거양득. 꿩 먹고 알 먹고. 양을 만나고 여우도 키우고.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일이야 이건. 어때? 느낌 오지 않아?」 마라는 내게 명함을 한 장 주었다. 거기에는 웹사이트 주소가 적혀 있었다. 회사 이름과 하는 일이 뭐라뭐라 적혀 있는데 뭔 말인지 잘 알아먹기 힘들었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거기 씌여진 내용은 이랬으니까.
브랜드: 아빠 뭐해?
내용: 마치 요정들이 귀찮게 하고 천사들과 친밀한 우정을, 사랑의 비너스와 춤이라도 추는 듯한 기분을 원하시나요? 마치, 이러다 악마와 사귈 수 밖에 없는 운명이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닐까, 살짝 걱정되며 불안해지는 심정. 그걸 알아달라고 이해해 주라며 친구에게 부탁하며 생떼를 쓰고 싶다구요? 방법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답니다. 하늘은 노력하는 자를 돕는 법. 그동안 당신께서 현혹하는 미모를 바라보는 성스러운 고뇌로 많이도 괴로우셨다면 이제는 한발 더 나아가 젊음과 환희와 밤의 쾌락은 물론 열정과 사랑과 황금부터 천상의 비밀까지 그 모두를 성취할 수 있도록 저희가 도와드립니다. 길게도 걸리지 않습니다. 비싸지도 않습니다. 어렵지도 않구요. 불가능할 리가 있겠습니까? 밑져야 본전입니다. 자, 기다리겠습니다. 라~고 적혀 있었다. 보통 명함 크기는 조그맣다. 그건 보통 명함이었다. 그럼 저 글씨가 다 들어갈려면? 겨우 읽었다. 읽느라 혼났다. 혹시 뭐가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면서 현미경으로 읽어야 하는 건 아니냐면 마라한테 깐족거렸다. 그걸 보고 나서 기분이 이상했다. 하는 일이 무엇인가, 그게 없었다. 뭔 남의 다리만 엄청 긁는데 혹시 그 다리가 내 다리냐 남의 다리냐, 그게 문제가 아니라 미지의 신세계에 존재하는 다이아몬드로 이루어진 꿈의 신전의 기둥일지도 모른다는 묘한 기분이 느껴졌다. 그런 내 분위기를 재빨리 감지했을까? 마라는 덧붙여 이렇게 말했다. 「오빠. 집에 가서 거기 웹사이트 들어가봐. 거기에 모든 해답이 있으니까. 오빠는 픽션을 쓰고, 미스테리아는 오빠의 칼럼을 싣고, 우리는 다시 시트콤 멤버를 결성하는 일. 그게 모두 가능하니까 말이야. 참고로 귀뜸하자면 그건 겉으로 드러난 게 없는 특수한 업무에 관한 것이고, 허락되는 사람한테만 접근 가능하며, 일종의 공장처럼 그것만 맡는 전담 특별팀이 따로 있다는 거야. 물론 그 배후에는 거물도 아니고 무엇이 있을지는 아마 상상을 초월하겠지? 제안일과 마감일 그리고 결과가 똑떨어지게 맞아떨어지는 오묘한 과정. 모두 알고 나면 까무러칠지도 모른다구. 오빠. 어쨌든 이번에 기대해도 좋아. 내가 혹시 오빠를 크게 실망시켰던 적이 있나? 내 기억엔 없는 거 같은데? 안 그래? (얘는 진짜 끝까지 말이 많다, 진짜 많다, 매우 많다) 다시 말해 오빠가 상대하는 대상은 칼럼을 소설로 변환해주는 모종의 번역기라고 생각하면 돼. 나도 아직까지는 거기까지 밖에 몰라. 시시한 칼럼과 따분한 단편을 신기한 장편으로 늘려주는 작업이다, 그 정도 밖에는.」
12
내가 집에 가서 그 이상한 웹사이트에 접속하기 전에 나는 중간에 클락을 찾아갔다. 왜냐하면 그 고급 최신형 뚜껑 없는 차를 대체 왜 마라한테 헐값에 넘겼는지 따지고 싶었으니까. 그 값이면 나한테 넘기지 그랬냐고. 물론 일시불로...는 어렵지만 그래도 좀 기다리면 어떻게 융통해볼 여지가 있는데, 꼭 필요한 사람한테 애마를 넘기는 건 상도덕 중의 상도덕 아니냐고 험하게 따지고 싶었으니까.
나는 클락의 개인 사무실에 도착했다. 클락은 별다른 집무를 보고 있지 않았다. 간단한 인사말과 날씨 얘기와 근황 얘기는 마쳤다. 따라서 나는 밑도 끝도 없이 왜 그랬냐고 따지기로 했다. 「클락. 솔직히 말해줬으면 좋겠어. 긴말 하지 않을께. 너, 너의 그 뚜껑 없는 애마를, 도대체 왜 마라한테 헐값에 넘겼니? 그러니까 왜? 마라 걔 완전 허영심 덩어리야. 상상 안돼? 어?」 「그게 무슨 얘기지? 알아듣기 쉽게 얘기해주지 않으렴? 좀 더 풀어서, 이해하기 간편하게 말이야. 그 정도 친절은 우리끼리 요구하고 응해도 괜찮은 거니까.」 「아 됐고. 늬차를 왜 마라한테 팔았냐고. 것도 (똥)값에.」 「내... 차를? 무슨 얘기지? 내가 차를 왜 팔아? 아직 새 찬데. 난 마누라 1명 차 100대 막 그런 성격의 상남자가 아니야. 내가 만약 돈이 아무리 많을지라도 난 그런 귀찮은 일, 하라 그래도 못해. 왜? 난 차에 미친 놈이 아니니까. 좋아하기는 하지만 그 정도는 아니라고. 무엇보다 귀찮으니까. 나 봐 봐. 내가 옷을 몇 벌 입는지 네가 몰라서 그러니? 그래 나 부자야. 일단 졸부라고 합시다. 그렇지만 그에 비해서 내가 입는 옷이 왜 이럴까? 또 차는? 왜냐하면 귀찮으니까! 차를 바꾸면 기분도 좋고 재밌기도 하고 놀러가고 싶겠지. 하지만 새로운 장난감에 익숙해질려면, 그러면 귀찮아. 응? 귀찮다고. 그래서 나는 차를 마라한테 팔지 않았답니다. OK?」 나는 생각했다. 아 당했다. 마라한테 제대로 당했구나. 내(네) 이년을 가만두나 봐라 라고 생각했다. 무슨 이상한 웹사이트인지 뭔지 그게 보석같은 찬란함이 없기만 해 봐라. 내 당장 그것을 그냥 ... 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우리 사이에 갑자기 말이 끊기면 뭔가 분위기가 너무 어색하게 급랭하기 때문에 난 뭔가 물고 늘어져야만 했다. 그래서 나는 탁자 위에 있는 책에 대해서 물어봤다. 「클락. 혹시 요즘 저 책 읽고 있니?」 「무슨 책? 아 저거? 응. <웅크린 호랑이, 피터 나바로> 부제, 중국은 어떻게 세계를 지배하려 하는가. 읽어 보니 괜찮던데? 반대 급부랄지 상대측 입장에서 발표된 저서가 있다면 소개해 줄 수 있겠니?」 뭘 소개해 주라고? 얘가 나를 너무 띄우는 거 아닌가? 클락은 내 지성을 너무 과대 평가하고 있었다. 차라리 날 그냥 띄엄띄엄 보는 게 오히려 난 더 편했을 텐데. 「그런데 저 책을 왜 읽는데?」 「왜냐고? 왜냐하면 책에 대한 추천사와 찬사들에 완벽하게 공감하기 때문이야. 그래서 읽기 시작했어.」 「지성의 초일류, 신분에서 최상류층, 유행의 선봉자께서 읽기엔 분야가 좀... 뭐랄까... (나는 클락의 표정을 읽었다) 너무 좋아. 완전 좋아. 딱 좋아. 그게 바로 내가 읽고 싶은 책이라구. 세상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책이 바로 그런 거야. 얘가 얘가 그걸 어떻게 알았지?」 「허허허. 새 책을 선물하는 건 우리끼리는 하지 말자. 내가 먼저 읽고 넘길께. 나는 그 분야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해. 약육강식만 존재하는 동물의 세계와 마초성이 극렬한 정치, 경제, 군사등의 분야에 대해서 일반인들도 알아야 할 건 알아야 한다고. 맹수 세계의 잔혹한 운명에 대해서 무조건 터부시하기만 하는 건 작은 그림 밖엔 그릴 수 없어. 응애응애 에게에게 삐악삐악, 우리가 그렇게 옹졸한 남자는 아니잖니? 안 그래? 그렇다고 겉으로는 대범하다고 하면서 속으로 소심할 수도 없잖아? 한번 생각해 봐. 사랑이 있을까 없을까? 어른들은 사랑이 있든 없든, 사랑을 알아. 그래서 웃어. 사랑이 없다고 하면 웃어. 똑같애! 완전 똑같아. 대인배에 대해서도. 대인배는 있을까 없을까? 한번 웃자. 지금 한바탕 웃잔 말이야. 대인배는, 없어! 군사도 그래. 무엇보다 군사학, 전쟁론에 대해서 자세한 얘기를 일상 대화에서 소재로 삼지 않는 건 일종의 예절이랄지 카르텔에 해당할지도 몰라. 왜? 왜냐하면 수치상 여자가 반틈이고, 각자 좋아하는 분야가 다 다르며, 번영의 미래를 내다보며 희망찬 미래를 꿈꾸기에는 너무 둔탁하고 처절한 분과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지. 하지만 세상은 변하고 세월도 흐르며 발상의 전환도 필요한 법. 그걸 알아야 평화는 존속될 수 있으니까. 사랑을 말로 하니? 아니야! 그럼 평화를 믿어야 할까? 아니야! 거래는 뭘로 하지? 돈이랄지 서류와 신용으로? 반틈은 맞는 말이지. 반틈만.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작은 그림. 돈이랄지 서류와 신용이라는 틀을 넓게 그려 본다고 가정해보세. 그럼 달라. 완전 다르다구. 따라서 시장규칙과 사회규범은 내가 만들고, 내가 이끌고, 내가 새롭게 다시 쓸 수도 있는 것이라네. (딱)! 이론이 그래. 이론과 실제, 가상과 현실만 있는 게 아니라 이 세상은 초현실도 환상도 비현실은 물론 동화와 기적과 야만과 잔혹과 함께 드물게는 신화까지 모두 함께 공존하는 세상이란 말일세. 좋게 좋게 지금처럼 언제까지라도 행복하고 재미있게만? 그런 건 없어. 순진한 어른들이 너무 너무 많아서, 때문에 난 약간 생각이 다르단 말일세. 친구들끼리도 그냥 뉴스를 보고 그래. 어디가 어디를 공격할 거 같냐 아니냐, 그냥 농담처럼 쉽게 말하고 쉽게 지나가. 우리는 현재를 살면서 말은 우주를 생각한다면서 놀이터에 안주하지는 마세나. 하냐 안 하냐, 0퍼센트냐 1퍼센트냐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왜냐하면 그건 사랑처럼 믿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지. 전쟁과 평화는 절대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는 개념이니까. 그 둘은 동전의 양면과 같고, 그건 절대 신용이나 믿음이나 도덕과 윤리는 물론 정의도 종교도 인성과 교양도 아니라네. 좀 전에 내가 물어봤지. 뭐라고? 반대 급부랄지 상대측 입장에서 발표된 저서가 있으면 소개해 줄 수 있냐고. 내가 묻는 질문에 내가 답하자면, 답변은 없어야. 없다구. 있긴 있겠지. 문화와 철학과 세월과 지역성에 따른 입장은 물론 그 모두가 다 있어. 하지만 구체화된 단행본은 없을 거라는 게 내 견해야. 만약 있다면 알려주면 고맙겠네! 하지만 내가 봤을 땐 없어. 왜? 왜냐하면 있어도 저만큼 논리적이고, 이성적이며, 타당한 근거에 입각해서 평화라는 지향점을 논하기엔 입장과 언어와 환경에 따른 한계점이 적지 않기 때문이지. 대중매체를 보면 국제정세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끊이질 않아. 문명이 발달하고 세계가 이처럼 풍요로워진 만큼 군사학 역시 어마어마하게 성장했으니까. 그런데 거기서 멈출까? 아마 초딩도 그런 생각은 하지 않을 걸! 그럼 이젠 뭐다? 그렇지 (딱) 멀리보면 스타워즈! 괜히 영화에서 불행한 지구상을 그리는 게 아니야. 괜히 1세기 안짝의 일에 대해서 뉴스에서 다루는 게 아니라고. 왜냐하면 나폴레옹 때까지는 쉽게 말해서 아장아장 걸음마 수준이었다면, 히틀러가 승승장구하던 시기에는 한마디로 비극이었어. 그러면 앞으로는? 답은 넌센스지. 나도 읽었어. 네가 환상문학 격월간 잡지 미스테리아에 기고했던 컬럼. 난 처음에 그랬어. 이런 뭔 이상한 글이 대체 왜 이런 잡지에 실렸나 하고서. 그런데 차츰 지나니까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더구먼. 아무튼 거기에 네가 비유해서 설명을 아주 잘 해놨더군. 짧고 극명하게! 그냥 웃음으로 넘겨버릴 수도 있지만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을 놀랍도록 간명히 풍자했다는 점. 난 썩 마음에 들었어. 독서실에서 공룡들이 앉어서 공부를 한다라... 공룡들이 모범생인가? 아니야. 누구나 학교 다닐 때 생각 다 날꺼야. 학교에서 공부와 운동을 다 잘하던 친구들도 있지만 이 세상은, 최고는 하나만 원한다네. 운동신경이 좋으면 대게 아무 운동이나 다 잘해. 하지만 그 가운데 더 잘하는 분야로 들어가면 거기서 또 1등과 꼴등은 차이가 날 수 밖에 없지. 학교 다닐 때 쉽게 말해서 모범생에 집안 좋고 최소한 집에서 교육열이 있고 그런 친구들은 대개 보면 나중 자기 분야를 찾아서 가. 한마디로 운동선수가 되지는 않는다고. 학교 다닐 때 운동을 했더라도 그 가운데 1퍼센트만 그 길로 가고, 다시 그 1퍼센트의 1퍼센트만 이름값을 하지. 우스개 소리로 운동선수를 무식하다고 하지 말자 라고 하는 소리가 괜히 나온 게 아니야. 왜냐하면 운동에 모든 것을 걸어야 겨우겨우 그 명맥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그 세계가 치열하기 때문이지. 어차피 균등하며 넓고 깊고 원대한 지성인에 근접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아는 상식과 지식과 교양과 심미안은 다 거기서 거기야. 친구들을 봐봐. 내 친구들은 평균을 내 보자면 책을 1달에 1권 읽는 친구? 없어! 있어도 무엇을 읽을까? 답답하지. 운동선수보다 오히려 못해. 왜냐하면 운동선수는 한분야의 최고이자 끈기와 성실함으로 인생을 사니까. 그만그만한 일반인과는 달라. 얘기가 좀 빗나갔는데 다시 돌아와서, 독서실에 앉아서 공부하는 공룡들! 공룡이 열심히 공부만 하기 위해서 글을 쓰고 노래를 부르고 그림을 그리는 삶, 그런 아름다운 인생을 위해서 공룡이 됐을까? 당장은 독서실에서 공부하니까, 1층의 여자목욕탕을 엿볼 수 있는 개구멍 쪼그~만 구멍으로 신비한 여체 그 뒷모습을 어떻게 볼 수 있었다는 추억이 아름다우니까(?), 당장은 독서실의 공룡들에게 펼쳐질 미래를 쉽게 예측하겠지. 장래 수트 입고 넥타이 매고 일하는 그런 일을 할 것이라고. 모니터 10여개 정도를 보며 일하는 증권맨, 제자들을 가르치고 책을 쓰며 논문을 국제적으로 발표하는 교수, 정치인, 관료, 의사, 법관, 기업가, 사업자 기타 등등. 합리적인 추정은 그렇지. 허나 그건 완벽한 오산이라네. 공룡들이 왜 지금 독서실에서 바보처럼 조용조용히 공부를 하냐면, 중생대 쥐라기와 백악기에 걸쳐 번성하였던 거대한 파충류였던 공룡들은 나중 있을지 모를, 공룡의 혹시 모를 돌아온 전성기를 위해서 지금 공부를 하는 거라구. 그 전문용어를 뭐라 그러지? 아무튼 그래프의 선이 요렇게 진행되다가 팍! 바로 그래서 영화에서 그렇게나 많이 다루는 거야. 과학이 발전했기 때문에 이제는 또 몰라. 지구축이 흔들리고 자전 속력이 영향을 받고 막 그렇게 될지 말야. 그 힘을 어디다 쓰겠나? 힘은 계속 쉬지 않고 세져서 공룡의 공룡의 공룡의 할아버지가 되는데. 안 그런가? (딱) 지성인도 두 부류야. 첫째, 이런 얘기를 될 수 있으면 말하지 않고, 듣지도 않고, 다루는 그 자체를 하지 말자는 부류. 왜냐고? 왜냐하면 얘기가 많으면 분위기가 그쪽으로 향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걱정 때문이지. 그리고 둘째, 아니다 그렇지 않다 라는 학파. 첫째가 물론 맞아. 아니 맞았어. 맞았으면 좋겠다고. 그러기를 바래. 하지만 그럴 계제를 이미 넘어도 훨씬 넘어버렸어. 따라서 입이 떡 벌어지는 최대한 많은 정보를 최대한 많은 사람이 아는 것이 오히려 전쟁의 가능성을 낮추고 평화의 가망을 실현시킨다고 보는 유형이 이 둘째야. 물론 나는 둘째지. 어떻게 보자면 나도 첫째였고 첫째가 맞는 세상이기를 바랬어. 게다가 지성인도 아니고 지금도 창피하지만 세상을 조금은 아는 이상 둘째가 완벽하고, 완벽하고, 완벽하게 맞다고 생각한다네. 물론 반론은 수용함이 좋고, 그 둘의 장점을 융합하는 게 옳고, 그건 절대적으로 뭐가 맞냐는 논제가 될 수도 없어. 하지만 이런 논의 자체를 꺼낼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판 자체가 광활해졌다, 바로 그게 중요한 일이라구. 왜냐하면 우리가 세금을 공평하게 내듯이 지구에 대한 의무 역시 공평해야 하는데 그게 아니거든. 쉬운 예로 군사비와 환경문제. 시골 오지에 산다고 난 예외다? 이제는 무책임하든 어쩌든 무임승차 문제는 부각되었다네. 왜냐하면 죄는 내가 짓고 벌은 타인이 받는 사례가 과거보다 비교적 광대해졌기 때문! 국제 관례상 A와 B의 해상에 존재하는 국경을 양측 주장의 중간으로 한다는 관례가 있어. 그런데 아니다 난 싫다 그거 내 마음에 안든다, 우리는 부담도 많고 땅도 크고 인구도 많다, 따라서 우리가 더 크게 더 많이 차지해야 한다? 그럼 지구 환경에 따르는 부담은? 내게 유리한 부분은 내가 맞고, 내게 불리한 부분은 남이 틀리고? 원자폭탄이 실제 사례로 사용된 예에 대해서 전범의 시작부터 끝까지에 대한 죄는 차치하고 전쟁범죄의 종료에 대한 죄(?)를 묻겠다, 전쟁을 멈추게 만들었으니 그건 죄다? 사과를 요구한다? 왜 보나파르트를 막았냐? 그게 아름다운가? 그게 말이 되나? 당연히 아니지. 심지어 그건 전쟁이 종료된 결정적 원인도 아니었어. 전혀! 리더는 그런 일로 눈 하나 꿈쩍하지 않는다네. 리더가 되는 순간, 이미 되기 전부터 내 피는 초록색 피라고 상정해야 하기 때문이지. 그렇지 않으면 시작한 의미가 없어. 그렇지 않으면 성과는 없다고. 꽝!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텐데, 겨우? 그 서사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하는 말들인가? 당시 리더의 의도와 목적이 뭐였을까? 인류애였을까 세계 제패였을까? 그리고 결과는! 말은 그래, 후자가 전자라고. 더구나 시작한 리더에 대해서는 문화에 해당한다지만 국제적으로 보란듯이 국민의 대표들이 신주 모시듯 하는 진짜 신주 앞에서 참배를 하지. 숫자가 많냐 적냐 그 차이 밖에 없어. 그런데 울타리 바깥에서 무슨 행사니 기념비니 문화재니 뭐니 일들이 있으면 오락산업은 바뻐져. 그럼 사람들이 보고 듣고 읽어. 극히 유감. 심히 우려. 심각한 무례니 뭐니. 정치인도 연예인이야? 뭐가 반대로 된 거 아니니? 그에 대해서 제일 피해를 보는 사람이 누굴까? 적어도 감정적으로 고스란히 손해를 보는 사람은 바로 일반인이지. 행복하고 풍요롭고 재미있거나 심심하고, 다 좋은데 피라미드의 최고층에서 뒤돌아서서 팔짱 끼고서 전망을 살피며 정국을 구상하시는 리더 때문에 괜히 순진한 일반인들은 또 흉흉해. 공간의 이동과 마음의 여유와 생각의 젊음이 방해받는다고. 저 동네 사람들이 우리를 싫어하는 건 아닐까? 그게 다 리더 때문이야. 인류 역사가 그랬어. 리더가 시키면 시킨대로, 일어서라 하면 일어서고 앉어라 하면 앉고. 공룡계의 후발주자들─선험자도 또 나름 문제는 있겠지만 고민조차도 어떻게 타임머신인지 것 참─다시 그분들의 리더들, 그 입장에서는 절대 굽힐 수 없고,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자존심이랄지 그 어떤 뭐라고 부르기 애매한 감정이 있을 꺼야. 당사자가 아니면 절대 모르는. 그 아집 때문에 일반인들만 그 언제라도 어수선하다고. 물론 순진하고 소심하고 선량한 일반인 위주로 말이야. 보이저 1호는 태양계를 이미 탈출했는데 리더의 친절함과 낙천성과 품위와 드넓은 아량 때문에 일반인은 너무나 기쁘고 좋아서 거리에 나가 발가벗고 춤이라도 추고 싶구만! 하늘나라에서 누군가 이런 세상사를 본다면 뭐라고 생각할까? 제발 뭘 모르면, 아 그래서 한때 그렇게 비트겐슈타인의 그 말이 유행했었는지도 모르겠군. 대체 지성인들은 왜 그렇게 침묵하는가? 이제야 알겠네! 왜냐하면 이제 보니 우리가 아는 지성인과 유명인들은 적지 않은 경우 그냥 광대에 해당했기 때문이야. 누가 남의 다리를 피나게 긁나를 가리는 초딩1 학예회였군. 아니 유치원의 무슨 발표회였나? 그것보단 노인당 경로잔치일지도 모르겠군. 그런데 그건 맞는데 그런 예가 99 대비 1의 예가 많은데 내게 유리한 부분만 국제 관례를 피하고 싶다? 그건 말이 안되지. 그런 분란이 적은 곳과 많은 곳은 대표적으로 명료한 차이가 있어. 그건 뭐냐? 바로 국경이 맞닫는 수치가 적냐 많냐지. 생각해 봐. 국경이 5개 미만으로 인접한 나라에 대해서 예를 들어보자구. 어디 어디 어디가 있어. 그리고 국경이 10개 이상 인접한 나라를 예로 들어보자구. 어디 어디 어디가 있겠지. 문제가 많고 클 수 밖에 없는 데가 어디냐, 당연히 후자지. 그리고 또 하나. 국제적으로 우려의 소지가 큰 곳을 추려보자면 그건 어디고 왜 그럴까? 그건 현대적 체계가 늦게 적용됐거나, 아직 적용되기 전인 지역이 대부분이야. 아마도 100%? 선발대들 가운데 그런 곳 있나? 없어. 물론 선발대 중에서도 후발주자는 부분적으로 아쉬운 부분이 발생할 소지가 있지. 그 모두가 학교에서 배우는 과목이 사회에 잘 적용되어 있나, 그게 균등하지 못하기 때문에 분란의 소지가 발생하는 것 아닐까? 아하, 그러니까 학교 과목으로 잘못된 정보를 가르치는 방법도 있겠지만 건 방법이 좀 그렇네. 내가 특정 음식을 좋아하지 않고, 여러 문화를 존중하지 않으며, 특별히 표준과 기준과 선점의 질서를 옹호하기 때문에 하는 말이 아니야. 목적이 밝은 미래를 지향하기 때문에 할 말은 해야 하는 거라구. 지금 읽고 있는 책에도 나와.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서 근거와 입장과 가설, 지도, 해법, 경우의 수를 들어서 논리적으로 설명을 하고 있어. 구체적으로 살펴 보면 이래. 요즘 뉴스에 나오지? 중동에서 어디가 어떻다에 대해서 왜 그렇게 시끄러운가. 전에는 전쟁도 있고 시끄러웠어. 하지만 지금은 덜해. 그게 왜 그러냐, 세계적으로 보면 자기들만 손해거든. 그래서 중동 지역에서 협상을 한 거지. 이러다간 우리만 처진다, 일반인은 뭔 죄냐, 시간과 지역을 골라서 태어날 수 없는 이상 더 이상 이러면 곤란하다, 그래서 중동 연맹에서 어떻게 어떻게 해서 분쟁은 줄어들었어. 그처럼 아직 미묘한 문제는 많아. 대표적으로 대만! 대만이라는 국명을 말하면 안되나? 쉬쉬할 거 없어. 뉴질랜드 사람 보고 호주랑 합쳐라, 아니 흡수되어라, 그러면 좋아하겠냐고. 정체성이고 뭐고 하루 아침에 소속을 빼았긴다? 경험한 사람들은 알아. 언어를 빼았긴다는 게 얼마나 크나큰 설움인지를. 그럼 일각에선 안 그럴 수 없지. 그거 원래 우리 꺼였다 라고. 우리 꺼? 국명이 무슨 동네 구멍 가게일까, 브랜드의 신상품일까? 아일랜드는 존엄한 독립국이지만 언어가 같은 북아일랜드, 웨일즈, 스코트랜드, 잉글랜드는 왜 그렇게나 사연이 많겠나? 그래도 거긴 양반이야. 지금도 냉전 시대의 동베를린, 서베를린처럼 베를린 장벽 체제로 사는 곳도 있으니까. 세상사가 말처럼 그렇게 쉽지가 않다고. 민감한 사안은 그렇게 접근하는 게 아니겠지. 현재주의를 무시하고서 과연 앞으로 나아가기가 쉬울까? 공룡계에 후발주자가 발생하면 아마도 의식보다는 규모가 앞설 공산이 클 꺼야. 왜냐하면 현대적 표준과 세계적인 기준들에 따른 발견, 창조, 발명, 창안, 발굴, 창시등에 따른 브랜드 창출에 대해서 선점보다는 후발대로써 수혜를 입어 응용하는 역할이 크기 때문일 테지. 책에도 나와. 과거 200년 동안 중국을 침략한 적이 있는 나라는? 이라고. 정답은 그래. 프랑스-독일-영국-일본-러시아-미국 이 가운데 어디? 전부 다! 그럼 중국은 천사였을까, 천사일까, 대천사가 될까? 과연? 명백히 아니지. 그럴 리가 있나. 순진하게 이거 왜 이러시나! 그러면 그곳은 천국이게? 그럴 리는 없어. 인접한 주변국이 몇인데 그럴 수는 없다고. 선험자로부터 받은 일을 시간이 지나서 작은 범위에서 똑같이? 작게? 반복된 건 뭔데! 자, 주변국들의 말을 들어 볼까, 들어보지 말까? 정의로운 자의 말을 들어볼까, 들어보지 말까? 여기까지만! 왜? 기록으로 충분하거든. 사실, 사실 말이야. 단지 하늘나라의 얘기에 대해서는 조심하세나 그래. 나는, 우리는, 내가 이 세상으로부터 아픔을 당하기만 했을까, 나는 이 세상에 분풀이를 한 일은 없을까? 이런 상황에 팔이 안으로 굽으면 안되는 법. 계산은 정확하게. 내가 받은 고통은 명확하게? 옳지. 그러나 내가 준 슬픔은 희미하게? 그건 오히려 희미하게라도 기억한다면 다행 아닐까? 그거, 절대, 쉬운 일 아니야. 약소국이랄지 공룡 같은 단위가 아니라 개인의 인생만 돌아봐도 자명해지는 일이니까. 수다에 있어서 그런 일은 흔해. 재산이 천 개, 만 개, 십만 개의 공룡알을 가지고 있으면서 가문의 행사에 공룡알 하나를 희사하면 모르는 사람은 그런다고. 에게~ 그게 뭐냐고. 하지만 세상을 알고 인생의 희노애락을 많이 겪은 분이라면 이렇게 말한다네. 그 공룡알 하나 그거 절대 쉬운 일 아니라고. 결코 그거 쉬운 일이 아니라고. 막상 앞서 작은 선행을 비꼬았던 험구가가 만약 큰손이 된다면 보통은 졸부, 잘하면 공룡알 반틈? 하나?, 어렵게는 명망을 떨치는 인사가 될 것이네. 내 일과 남의 일의 차이가 그렇다네. 국가 역시 마찬가지. 아니다. 국가는 오히려 더 하면 더 했지 절대 덜하지는 않아. 왜냐하면 일단 덩치가 크면 윤리보다는 덩치에 걸맞는 풍요와 단위 안의 이익을 먼저 추구할 수 밖에 없기 때문. 작은 체격에 비해 비교적 방향전환과 관성에서 재빠를 수는 없겠지. 이론적으로라면 땅에 있는 동전도 아담한 친구가 주워도 더 빨리 줍는다구. 밖으로 누비지 못했으면 안에서 누군가는 핍박 받는 역할이 있을 수 밖에 없는 게 이치에 맞지. 그 어떤 힘들이 어떻게든 밖이든 안이든 풀 데가 없었으니까. 안에서 다퉜으니까. 지금처럼 스포츠니 오락산업이니 우주과학이니 다양한 예술이니 그리고 개인의 행복 추구니 그런 게 부족했으니까 말이야.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면 또 약자에게는 비굴한 역사가 있었어. 한쪽에서는 대륙을 향한 꾸준한 노력이 있었다면 한쪽에서 저 하급의 소국은 그런 차이를 인정하고 걸맞는 성의 표시가 있었을 뿐. 역사를 거슬러 올라갈 필요도 없지. 지금은 모두 대등한 세상이니까. 적어도 겉으로는 말이야. 자, 국사와 세계사를 검토할까, 검토하지 말까? 넘어가세나. 주변국들의 말을 들어 볼까, 들어보지 말까? 허허허, 들은 걸로 치자구. 소속 선수의 견해가 아니라 스포츠인, 애호가, 연맹의 관점이라는 기준으로 봤을 때 분명 미심쩍인 일이지. 1)먼 과거 2)중간 과거 3)가까운 과거, 에서 밖에서 안으로 향한 1은 중요하게, 안에서 밖을 향한 3은 조용조용? 모순이야. 오히려 그 반대가 맞는 거 아닐까? 그게 다 타임머신 때문. 국가주의 때문. 이기적으로 살돼 이타적일 것, 개인보다 큰 단위는 비교적 그게 힘들기 때문. 똑같은 일을 먼저 겪냐 나중 겪냐, 그 차이가 굉장히 큰 듯해. 이럴 때 그 이름 한번 불러야 하지 않을까? 엄마, 왜 우린 이런 세상에 살면서 자꾸 시각을 좁혀야 하나요? 라고. 세계의 사학자들에게 묻자구. 국사는 정당하고 세계사는 부당해야만 하는지를. 허나 진짜로 책상 앞의 학자들을 거리로 부르지는 마세나. 왜냐하면 국가는 국제구호단체가 아니니까. 따라서 중요한 건 미래라는 결론이 도출되겠지. 지금까지 이런 흐름일 때 과연 내일은 세계지도의 정세가 어떻게 변할지, 낙관도 비관도 쉽지 않아. 다만 불확실성을 줄인다거나 예측 가능한 범주를 키운다거나, 그런 할 수 있는 일들이 선행되어야 함은 절대 온당하다는 점. 조금만 더, 응? 금방 끝나네. 진득하게 기다려주게나. 안과 밖이 동시에 오랫 동안 가장 시끄러웠던 대표적인 예는 영국. 하, 건 말도 못해. 과거라는 게 그렇다네. 딱 끊을 수가 없고 수학처럼 말끔하지가 않아. 그러나 그 모두가 인류의 조상님들이 만들어낸 과업과 성과와 희노애락을 포함한 문물들이지. 미래를 말하는 현대인인 우리가 조상일 가지고 대체 얼마나 언제까지 다퉈야 할까? 방어는 옳지. 정당해. 그런데 문제는 공격이 최선의 방어일 수도, 싸우지 않고 이득을 취하는 게 최적에 해당할지도 모른다는 점. 모순이야. 때문에 방어조차 순수하기 어렵지 않을까? 그렇다고 방어가 불순하다는 건 아니야. 그리고 새로운 전쟁광의 출현을 막기 위해 전쟁을 말할 수 밖에 없다는 점. 모순이야. 액션 영화를 보면, 미래 세계에서 악당을 물리친 다음 비둘기가 돌아오고 제비도 놀러와서 행복을 되찾아야 하는데, 악역 자체가 없다는 점. 모순이야. 아름답게 사랑을 말하고 노래하며 전쟁을 비유한다? 전쟁 같은 사랑, 좀 그렇지. 하지만 익숙해.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아 해. 왜냐하면 직접 경험이 없기 때문에. 법전과 유니폼과 쫄랑쫄랑인지 '잔말 말고 따라와'인지 사랑에 의전이 왜 필요하나, 그것처럼 군사학과 전쟁론도 불가피하다네. 평화의 시기조차도 그 물밑에서는 장난이 아니라고. 그 알력 다툼만으로 분쟁의 소지는 다분해. 그렇다고 알력은 정보전에만 있냐? 아니지. 과거와 현재, 보수와 개혁, 현재와 미래도 있지. 또 현상 유지가 왜 어렵냐, 진보 아니면 퇴보만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야. 직선을 미세 현미경으로 보면 직선이 아니듯이 말이야. 나는 심리학자도 정신과 전문의도 아니라서 잘은 몰라. 인간의 감정 가운데 무엇이 공격 기제이고 무엇이 방어 기제인지를. 하지만 살면서 한두 번 듣게 되는 말들 가운데서도 교훈을 찾을 수 있어. 남자는 돈과 여자와 술만 조심하면 된다는 둥 허세로 흥한자 허세로 망한다는 둥 그런 말들. 그걸 참고해서, 인간이 단 하나를 참 오래도록 집중하는 일에 대해서 실화에서 픽션까지 이어진 줄타기를 살펴보면 강자가 눈에 띄여. 그 가운데 세월 동안 인생을 사로잡고서 도무지 놔주질 않는 인간의 감정으로는 무엇이 있을까? 판타지는 꿈 모험은 재미, SF는 초현실 스릴러는 공포를 추구하겠지. 공통적으로 사랑이 있고. 그 가운데 서사가 유독 긴 감정 가운데 하나는 복수심이 있고, 또 하나는 질투심이 있어. 비교적 전자보다 후자가 비극일 확률이 낮다는 점, 그렇지만 그만큼 더 우릴 귀찮게 한다는 점, 사실이야. 또 전자의 대상이 나의 과거일 때는 몰라도 방향이 바깥으로 향한다면 그것도 아름다움과는 멀어지고. 그런데 만약 그것이 대를 넘어서서 이어진다? 그런 작품들로 뭐가 있더라, 작품이 아니라 사실이 있지. 세계사. 아무튼 그래. 희망찬 미래를 바라보고 꿈을 키우며 밝은 내일로 나아가자, 라고 하면서 언제까지 조상님들 업적 때문에 내 하루 일과와 기분과 분위기와 생활이, 드물게 생존까지 침해받아야 할까? 첫째 인류의 선조들이 벌인 일이고, 둘째 시간과 지역과 신분을 선택해서 태어나지 못하는데, 그런데 왜 우리는 지금도 반성과 사과와 논쟁과 기념과 연구를 해야만 할까? 어째서? 미래를 위해서지. 기준은 애매해도 대충 반 세기와 1세기를 넘어선 일에 대해서는 사과는 그만하고─그렇다고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는 건 품위를 생각하고─자성과 반성으로 대체하다가, 박물관과 인문학으로 넘어가야지. 미래의 주역은 미래 세대니까 말이야. 우리가 아니라고! 안 그런가? 우리가 아니야. 상대적으로 매끄럽지 않거나 부분적으로 불미스럽더라도 그 흐름을 알면 돼. 그게 바로 교양과 상식이란 말일세. 여기서 잠깐, 공룡계에 대해서 궁금증이 하나 나와. 왜 후발주자 공룡은 제국 전성시대에 당당히 클럽에 들지를 못했나 라고. 답은 하나야. 안이냐 밖이냐! 그리고 모르긴 몰라도 안이냐 밖이냐, 후자는 전자에 비해서 무사를 더 쳐주지 않았을까? 옛날 어디서 군인은 대표적인 신사 계급 넷 중에 하나였는데, 전자는 그게 아마 다소 약했을 꺼야. 과거엔 그랬고 현재에는 어떨까? 공룡1을 보면 전세계 100에서 150개 나라에 군기지가 있어. 그 중에 상위 금은동은 제2차 세계대전 패전국에 위치하고, 바로 그 뒤를 잇는 곳은 또 어떤 지정학적 의미가 애매한 곳이야. 몰랐던 사람은 깜짝 놀랄 수도 있는데, 전문가의 관점을 지나칠 수는 없어. 그게 만약 없다고 가정해 본다면! 북극 얼음이 녹는 걸 걱정하지만 반대로 바닷물이 급속도로 줄어들다가 거의 희박해졌다는 드라마 본 적 있나? 모르긴 몰라도 만약 그럼 돌아가는 게 심상치 않을 꺼야. 현시점에서 격변은 없겠지만 향후 어떻게 될지는 또 모른다구. 뿐만 아니라 공룡2를 보면 어렸을 때 드라마에서 봤을 꺼야. 베트남전 관련 드라마. 거기에 나오는 것처럼 군시설이 많은 경우 지하로 가 있어. 단순 군비도 세계 1~2위지만 적용 범위를 기준으로 단위 지역 대비 군비는 지금 또는 미래 아마도 단독 1위일 걸. 그렇다고 장비 생산 단가는 대동소이할까? 호호호! 그처럼 세계 1퍼센트인데 국제질서에 대한 참여도는 또 그에 훨씬 못 미쳐. 다 이유가 있을 꺼야. 첫째, 공룡업의 후발주자가 된 경위. 그걸 또 다시 따라하는 사례에 대해서 미온적일 뿐, 한 발은 담그고 한 발은 떼고, 방관자도 아니고 주도자도 아니야. 둘째, 군사와 경제가 브레이크어웨이와 펠로톤이라서 뒤따라오는 분과와 조화스럽지가 않다는 점. 첫째도 껄끄럽고 둘째도 부자연스럽긴 마찬가지네. 딱 그 부분에만 집중해서 본다면 그건 완벽하게 제국 전성시대의 관점이야. 그야말로 완벽한 타임머신! 아무리 감출지라도 노출된 정보의 총량으로 판단했을 때 최적은 몰라도 최소 1세기 전에 해당되는 본뜻이야. 10년도 아니고 자그마치 1세기라고! 이런 의견이 밖으로 드러나면 울타리 밖은 몰라도 안에서는, 음 그건 넘어갑시다 그려. 실제로 지금으로부터 1세기 전에 전쟁 범죄를 범했던 리더의 국적에서는 지금 현재 엄격히 법으로 제한해. 첫째, 인간의 어두운 본성, 다른 말로 '샤든프로이드', 종교적 용어로 원죄에 대해서 법으로 금한다고. 가령 고속도로에서 차가 막혀, 왜? 사람들이 교통사고 현장을 멈칫멈칫 구경하다가 지나가니까. 그걸 헌법상 죄로 규정한 나라는 거의 없지. 허나 드물게 있어. 그리고 둘째. 헌법에 똑똑히 명시되어 있어. 침략 받지 않는 이상 먼저 타국을 침략하지 않는다고. 일명 평화 헌법. 나중은 몰라도 현재진행형 법이고, 해석이랄지 적용이랄지 내외부 정치적 소음은 줄어들기 어렵지. (민감한 뉴스요? 하나만 알아도 우리 여성분들 덜 언짢으실 걸요? 내부용이냐 정치적이냐를!) 첫째와 둘째 모두 희박한 사례. 첫째와 둘째 모두 근대사에서 걸맞는 값을 치른 결과. 경험이 아니라 선험적으로 그럴 수 있냐, 그건 우리 시대에는 아직이다. 어쨌든 전쟁, 국지전, 분쟁, 불행, 싸움, 분란, 심심함에겐 불친절하지만 평화에는 알맞는 일. 그처럼 시대의 흐름은 서둘러 미래의 관행을 데려올려고 한다네. 실제 성과가 분명하지. 그러니까 구체적으로 무엇? 앞서 첫째와 둘째도 있고, 우선 투명한 정치 체제, 또 주권이 시민에게 있는 만큼 알 권리를 위한 정보 공개, 공룡끼리 민간&군사 위성을 방해나 파괴하지 않는다는 묵계, 평화를 위한 국제적인 협약, 군사적인 감축 조약, 국제적 기구의 활동등. 꼭 저 1, 2가 아닐지라도 국제 질서는 그 때문에 낙관할 수 있어. 그런데 이 모두에 대해서 한발을 넣고 한발을 빼고가 아니라 아예 뒷짐 진 사례가 있어. 정치 체제? 현대적이지 않음. 사회 체제? 물론. 주권? 수렴되고 간접적인 게 아니라 집중돼 있어. 바뀌지도 않아. 동네에 있는 은행 지점도 그러지는 않아. 정보 공개? 적어도 선도적이지 않음. 많이. 실질적인 감축과 반대로 늘리고, 숨기고, 감추는 것도 모자라 군사적으로 지향하는 의지와 정보는 무엇을 가리킨다? 최적은 몰라도 최소 1세기 전을! 아무리 감춰도 입이 떡 벌어지도록 어마어마하게 많은 액면이 노출될 수 밖에 없는데, 들고 있는 패가 포커인지 뻥카인지 어떻게 모를 수 있겠나! 이 모두가 한 바보의 우둔한 기우이기를 바라 마지않네. 하지만, 평화라는 명사와 믿는다는 동사와 신뢰라는 감정은 결코 어울리지 않는 법. 따라서 현대인이 알아야 할 최소한의 상식과 교양에 내가 말한 지식과 의도와 역사적 사실과 정보가 사뿐히 포함되기를 바라네. 내가 원하는 건 그거야. 난 사람이 딱히 반골 성향이라거나 그런 건 전혀 아니야. 오히려 나보다 더 굽실굽실, 장단 맞추고 비위 맞추고, 딸랑딸랑 반짝반짝, 달콤한 립서비스에 관대한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큰소리칠 수 있네. 그러고 싶네. 그럴 수 있어. 딱 그걸로만 맞짱 뜨면 난 이길 자신 있으니까. 그러나 결코 양보할 수 없는 하나는 그거야. 피라미드의 꼭지점에 감언이설을 속삭일 수는 없다는 점. 피라미드를 엎었으면 엎었지 그렇게는 못해. 암! 그렇고 말고. 내 뜻이 이럴진대 어딘가 피라미드의 중위와 저변에서 불편하고 기분 나쁘시다면 난 그 뜻을 받들어 겸허히 존중할 수 밖에. 사람들 생각이 모두 같을 수는 없으니까. 다른 건 틀린 건 아니니까. 아니 그렇소? 리더의 그 어떤 오산이 크게 잘못됐다면 장래 존경보다는 악명에 가까와질 수 밖에 없어. 적어도 우리는 황금을 무덤으로 가지고 갈 수는 없다고. 먼지로 돌아가던 자연으로 환생하건, 그도 아니면 우리는 만날 수 밖에 없을 테야. 그러니까 어디서? 천국 아니면 지옥에서! 하오나 이와 같은 수평적인 방대한 정보와 첨예하게 대립된 입장과 일반인은 귀찮아서 찾아보지 않는 첩보를 근거로 판단한 결론으로부터, 일반인은 감정의 동요를 자제하며 침착해야 겠지. 리더 때문에 누가 누구를 미워하고, 겁먹고, 쫄고, 웅크러들고 그러지 않아야 한다고. 하지만 그럴려면 알 건 알아야 해. 왜냐하면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왜냐하면 (쉽게 말해서 또 심적 물적으로 공평한 배상은 불가능하다는 걸 전제로 한 채) 구시대적인 기술에 따른 전쟁 후 복구와 재건과 인정의 안정이 쉽게 말해 1세기가 걸려도 완전치 않다면, 앞으로는 그에 0이 몇 개가 붙을지 도저히 예상할 수 없기 때문이야. 이미 당해도 무수히 당했으니까. 그러니까 누가? 일반인들이! 일어서! 일어섰어. 앉어! 앉었어. 닥치고 써! 닥치고 썼어. 여러분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이게 뭡니까 이게 말이나 됩니까, 도저히 이대로 참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 모두 들고 일어섭니다, 옳소? 자, 돌격 앞으로! 그런데, 앞으로 갔는데 주위를 둘러봐도 아무리 둘러봐도 선동했던 그분은 없어 아무 데도 없어. 온데간데없어. 이게 바로 시대상 악역이 나타났다 사라졌을 때 우리에게 찾아오는 불안이지. 일어서! 일어섰어. 앉어! 앉었어. 어, 갑자기 열정으로 우릴 감화시키던 그분의 위치는 공석이네? 어쩌지 어쩌지, 어떡하지 어떡하지, 이젠 정말 어떻게 해야 할까! 이거라고. 세뇌와 최면과 사기와 오락은 물론 예술과 요술구두와 상업도 절반은 비슷한 측면이 없잖아 있어. 곳곳에 따라, 1949년에 발표된 1984는 현재 엄정한 현실. 당시 예상했던 가상은 계속 기록을 갱신중이야. 하물며 전망조차 꽤 불투명해. 내 말이 거짓말이 아닌 걸 자네도 잘 알지 않나. 부조리의 성격이 비교적 더 나은 환경에서조차 네트워크 마케팅과 악성 다단계의 구분이 착하도록 선명한지 의문이네. 그게 다 인간의 정신이 원래 불합리함을 전제로 작동하기 때문이지. 로보트처럼 움직이다가 딱 어느 때 제정신으로 돌아온다고. 리더는 다스베이더일 수도 예술혼일 수도 있고, 일반인은 로보트에 내 안의 그분을 위한 숙주, 그거라고. 사랑은 변할 수 있고, 내 인생은 내가 책임지는 거야. 누가 대신 복권도 시키고, 대변하고, 행복에 최적화되도록 도와주며, 시간을 거꾸로 되돌려 주지는 않아. 지금까지 표면적으로는 리더가 세상을 움직였고 실질적으로는 천재와 괴짜와 농부가 지구를 돌렸다면, 이제는 리더가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왜냐하면 발명, 선점, 창시, 개발, 부흥, 혁명과 혁신이 많이도 실현됐으니 이제는 뭘 해도 구식과 함께 아름다운 새로움을 찾고 알아야 하니까. 지휘자는 떠나도 교향악단은 남는다네. 음악애호가는 천재 지휘자를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구. 심지어 여러 브랜드의 창출은 끝물일 뿐더러 고전음악의 제1전성기는 이미 폐막된지 오래다네. 구스타프 말러의 말은 흉내내고 드물게 시대를 풍미할 수는 있을지라도 말러는 살아돌아오지 않는다고. 허나 아직 마무리짓기엔 이르니까 조금만 더 얘기를 이어가자고. 괜찮아. 금방 끝나. 응? 경제, 문화, 사회, 복지, 인프라스트럭처등의 제반 여건 대비 군사비와 군사력에 있어서 이처럼 특출한 비율을 보였던 예가 인류 역사상 있었을까? 있다면 한번 말해 보시게. 이런 예는 처음이야. 인류 역사상 최초라고. 그렇다고 그에 비례해서 국제기구 지원금은... 그건 모르니까 넘어가고, 최소한 환경에 대해서는 다소 더딘 감이 없잖아... 있지. 선험자 공룡들? 각 덕목들의 발전은 큰 차이가 없었어. 세계 최초라는 개념들과 산업의 안정기와 혁명, 미술, 음악, 문학, 과학, 문화의 전성기와 해상군사력은 모두 함께 전진했다고. 정치 체계와 사회적인 분위기와 개개인의 의식은 물론 교양과 문화와 제도등이 함께 움직였지. 다소 앞서거니 뒤서거니는 있었겠지만 그 모두는 여행에 동행했고, 소풍을 같이 간 같은 반이었다고. 그렇게 째깍째깍 시간은 갔어. 그러다 세상이 변했어. 또 시대가 바꼈고. 변화는 멈추지 않아. 이어서 세계공장이 가동되면서 선두로 새로운 전학생이 우뚝 치고 올라선 거지. 기존 모범생도 운동부도 복학생까지 긴장 해. 사랑에 있어서는 최고의 사랑 하나면 만족할 수도 있어. 또 학습에 대한 탐구욕은 충족되는 게 좋겠지. 디지털카메라를 살 때 누가 그래, 화소가 깡패라고. 허세는 대망이 먼저고 허영심은 고품격을 추앙하지. 형편에 맞게 꿩 대신 닭? 그건 합리주의! 하지만 종목에 따라 양이 질인 경우도 있다구. 우는 애한테 젓준다 라는 말도 있지. 오리가 꽥꽥 울면 먹이를 줘라 라는 경구도 빼놓을 수 없고. 그런데 하필 새로운 공룡계에서 유독 얘기가 끊이질 않는 이유가 뭐냐? 왜냐하면 꽥꽥 우는 오리가 바로 그분이라는 점! 안데르센, 칸타타, 모차르트, 리골레토 중 여자의 마음, 라트라비아타 중 축배의 노래, 레미제라블, 보들레르, 테슬라, 피카소, 아인슈타인, 세계3대 성당과 함께 어린이가 초등학교에서 소년과 청소년이 중고등학교에서 배우는 과목들을 다 놔두고, 그 중에 단독 1등이 뭐다? 바로 그분! 그 분야라고. 친구야 같이 가자 언니 같이 가, 라고 불러도 도무지 들리지가 않아. 이게 보통 일인가? 적어도 쉬쉬할 일은 아닌 듯 하네. 갈릴레이, 데카르트, DNA, GPS, 프로그래밍 언어, 국제적 패션쇼, 미술품 경매의 양대산맥 소더비와 크리스티, 보이저2호, 물리학, 화학, 생리학, 의학, 라디오, TV, 인터넷 등등 셀 수도 없네. 세계 최초로 시작해서 정부간 국제 기구와 비정부 국제 기구, 국제적인 비영리 단체등 공익에 많은 기여를 하지 않은 채 공룡이 된 예가 있나? 있으면 가르쳐 주세요. 오농 뒤 씨엘르! 없어! 내가 알기로는 없다구. 앗, 아니다. 아니네~! 후발주자가 있으니까. 크면서 그런 드라마 보지 않았나? 딸을 사랑하는 아빠가 있고, 그런데 딸은 아빠가 탐탁치 않아, 아빠는 머머해 아빠 미워 막 그러면서 가족으로는 아빠지만 밖에서의 아빠 모습은 싫어 싫어 막 그래, 그러면서 딸이 아빠와 멀어져. 그러니까 아빠가 그러지. 얼빠진 표정으로. 김비서 어디 얼마, 어디 얼마, 무슨 단체와 미팅잡고, 어디 얼마, 어디 얼마! 흐흠. 공룡의 기준이 뭔가는 얘기하지 마세나. 아니 얘기 하세나. 왜, 하면 안되나? 그게, 그렇게, 큰 잘못일까? 힘만 세면 공룡일까? 그런가? 아니면, 덩치만 크면 공룡으로 쳐줘? 그래? 시대 흐름에 역행하여 군사력에 대해 비축하고 감추는 게 많으면 많을수록 공룡일까? 진짜 공룡이라면 공룡다워야 하지 않냐, 이 말일세. 아동의 꿈과 골목대장 놀이와 사춘기적 취미가 대관절 뭔 잘못이겠나, 잘못 아니야. 그러나! 롱테일의 비율이란 게 있는데, 고양이의 발톰과 강아지의 치아 그 드러내지 않는 야심과 본능이 없진 않을 텐데, 우려가 힐난으로 왜곡될 소지가 전무한 건 아니라고. 나 같아도 듣기 싫겠다. 쓴소리 듣고 기분이 아무렇지 않다? 그런 사람은 없어. 허나, 딱 하나! 내가 만약 어디에서 태어났다면 이 정도 비판은 그야말로 약과에 불과했다는 점을 내 친구님께서 알아주셨으면 고맙겠네. 만약 그랬다면... 이 정도는 애교에 불과했을 수도 있다는 걸 말이야. 뭐, 망명까지 가지도 못한다고? 입만 살았다고? 새가슴이라고? 그걸... 어떻게 알았지! 그야 어떻든, 세계 정세는 다른 게 아니라 세계지도가 거의 전부야. 두고, 보면, 알게 될, 것이네. 판돈을 걸어야 한다면 굳이 손을 뺄 필욘 없겠지? 그 어느 세계에서는 종교고 조물주고 주사위니 예술이니 문명이니 게다가 도덕이니 윤리니 그런 거 없다네. 아무 소용도 필요도 없다네. 어느 때가 되면 길바닥에 버려진 헌신짝만도 못한 게 바로 그런 준칙과 덕목이니까. 공룡계에서 현황에 만족하지 않은 공룡이 있나? 거의, 없지. 공룡계에서 노출되는 정보와 예측되는 정권의 변화에 대해서 투명하지 않은 공룡이 있나? 거의, 없지. 얘기가 길어진 문제는 그 때문이야. 어쨌든 진행되는 현실뿐만 아니라 이상적인 이론으로 봐도 그 재정의 일부를 체계와 환경과 복지등으로 돌리기를 바랄 수는 없어. 왜냐하면 현대정치적 의미에 해당하는 정당의 설립 자체가 불가능하니까. 체제가 그러니까. 왜냐하면 그건 리더의 몫이니까. 그 다음 다른 공룡들이 소장한 레이저검들은 이 지구 같은 행성을 도대체 몇 개나 없앨 수 있을까? 가지고 있는 대로 또 만드는 대로! 그럼 현재는 그렇고 미래에는 어떨까? 미래의 새로운 후발주자는 현재의 후발주자를 벤치마킹해서 과거-후발주자 모방 전략을 구사할까? 현재도 어려운데 미래를 어떻게! 물론 쩜오에서 1세기 안짝은 자성과 반성이 앞서야 한다는 점과 전쟁 억지력은 맞물려서 돌아갈 수 밖에 없어. 1세기 너머에 대해서 뭐라 하는 일? 나는 보도 듣도 못했네. 당연하게도 인접 지역에 대한 비관과 비하하는 용어는 만국공통이야. 그 말은 국경이 맞닺거나 바로 인접한 나라가 제일 친하게 지내야 하는 나라임과 동시에 제일 질시하는 나라이기도 하다는 점, 만국공통이야. 친구도 똑같애. 우정과 외교는 참 많이 비슷하다고. 그 파란만장한 일을, 복잡한 국사와 정신 없는 세계사를 다 누가 만들었냐? 리더지! 일반인은 보고 듣고 살고, 서라면 서고 앉으라면 앉았을 뿐! 문명의 발전이라는 달콤한 열매만 따먹고 거센 역사는 없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그건 불가능한 일. 그 모두가 함께 있었거나 인간이라는 종이 멸종했던가, 둘 중 하나만 가능했을 테니까. 당연히 우주를 관찰하는 기술은 물론 인류의 행복도 없었을 테고 말이야. 쓸데 없이 말만 길어졌는데 현재 인문서적에서 많이 다룰 수 밖에 없는 우려의 성토가 모아지는 지점은 쉽게 말해서 그거야. 정치, 언론, 인권, 일정한 분권등이 현대적이지 못하면 감추는 게 많고 예측이 어렵다는 점. 정권의 교체가 빈번하든 잠잠하든 정치 체계가 현대적이라면 공개되는 정보가 많아. 그런데 그게 아니다? 구시대적이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할 여지는 다분할 수 밖에. 하지만 굳이 애써 장점을 찾을 수도 있겠지. 첫째, 급변을 알고 격변을 겪었으면 대충대충이 아닌 차근차근과 꼼꼼함의 가치를 새롭게 깨달을 수 있고, 둘째 선험자 집단의 시행착오를 교훈 삼아 발전의 기간을 단축하고 장점을 추려서 번영을 이룩할 수 있다는 점이 있겠지.」 나는 거의 자기 직전까지 갔다. 클락 이 친구 이거 이거, 얘도 무척이나 말이 많은 친구였다. 원래 얘가 이렇게나 말이 많았나? 아닌데. 완전 과묵한 친구였는데 왜 그러지? 내가 뭐 잘못한 거 있나? 와 연설이 연설이, 장난 아니었다. 난 암말도 못하고 꾹 참고 경청해야만 했다. 뭔 얘기를 들었는지 기억이 하나도 안난다. 단지 앞으로 클락한테 신경 쓰고 우리의 우정을 돈독하게 키워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안 그랬다가는! 그리고 다음에는 주제를 봐 가면서 말을 끌어내든가 해야지 이거 원, 괜히 녀석 관심 있는 분야 한번 잘못 건드렸다가 난 완전 허수아비가 되어버렸네. 진짜 다음 번엔 조심할 것이다. 이처럼 클락한테 일장 훈시를 듣게 될 줄이야 난 정말 꿈에도 몰랐다. 오늘 왜 이렇게 클락이 다르게 보이는지,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난 앞으로 녀석을 조심할 것이다. 그래야 한다. 그럴 수 밖에 없다. 이번에 제대로 벌섰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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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실비아한테 1차로 당했고, 클락한테 2차로 당했다. 그럼 혹시 마라한테 3차로 당하게 될까? 그건 알 수 없었다. 의심도 귀찮았다. 차라리 당하고 싶었다. 그야 어쩌든 확인해 볼 필요는 있다. 아무튼 밑져야 본전이다. 더구나 마라는 내가 잘 아는데 나랑 꽤 잘 통하는 구석이 있다. 그러므로 마라의 제의는 아마도 아예 허식이거나 어쩌면 대박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래서 나는 집에서 즉시 마라가 알려준 웹사이트에 들어갔다. 웹사이트 주소창에 입력했다. 아빠 뭐해? 라고. 그런데 웹페이지에는 달랑 문자나 숫자를 입력할 수 있는 칸만 나왔다. 안내하는 글도 없었다. 나는 마라한테 전화해서 물어봤다. 「마라. 거기 들어가 봤는데 이거 이상한 사이트 아니니? 잘못 들어간 건가? 이거 뭐야? 뭘, 글짜를 입력하라는 말인 것 같은데, 아무런 설명이 없어.」 「비밀번호.」 「어? 비밀번호?」 「그래. 비밀번호.」 「비밀번호가 뭔데?」 「몰라.」 「늬가 모르면 어떡해? 늬가 모르면 누가 아냐고! 장난치지 말고 어서 말해.」 「진짜 몰라.」 「진짜 모르면 어떡해? 그리고 입장하는 주소도 그래. 아빠 뭐해? 그게 뭐야? 뭘하긴 뭘해 아빠가? 아빠가 뭘 하든! 이상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네 진짜.」 「아, 오빠. 마우스 포인트를 살살 움직여 봐. 그러면 링크 위에 커서가 위치하면 커서가 손가락으로 바뀐다던가, 말풍선이 나타나거나 그럴 꺼야. 왜 그런 거 해보지 않았어? 블로그에 막 그런 거 올리잖아. 바탕색과 같은 글씨로 포스트를 작성해서 나만 볼 수 있도록 남기는 거 말야. 그래서 드래그&드롭하면 딱 글씨가 나타나는 거 그런 거.」 「얘네들 혹시 아마추어... 아니니? 아 나왔다. 링크는 안 나왔고. 드래그 머시기 하니까 나왔어. 숫자를 넣으라는데. 미스테리아 전신에 해당하는 문학잡지가 몇 권까지 발간됐는지, 그 숫자를 입력하시오. 라고 나와 있어.」 「777.」 「777? 777호? 뭔 팔리지도 않는 잡지를 참 오래도 발간했네.」 나는 숫자를 입력했다. 그랬더니, 「나왔어. 웬 지도가 나오는데.」 「지도?」 「응 지도.」 「찾아오라는 지령이야.」 「찾아오라구?」 「그럼 지도대로 도시를 만들래? 오빠 돈 많아? 응?」 「아 맞다. 뭔가 표시가 있어. 약도에 나오는 것처럼 화살표로 표시되어 있어. 이 동네.... 잘 몰라. 하지만 그리 멀지는 않아. 그런데 혼자 가도 될까?」 「그럼 내가 따라갈까? 아님 지원 요청이라도 해 줘? 그냥 혼자 가. 오빠 혼자. 멋있잖아. 뭔가 있어 보인다구. 응?」
그래서 나는 혼자서 그곳까지 갔다. 집에서 차로 약 30분에서 1시간 정도 거리에 위치한 곳이었다. 한적한 동네였다. 그곳을 찾았다. 간판도 없고 분위기가 막 이상하지도 않았다. 어제의 미련한 사랑과 부끄러운 방황은 오늘의 달콤한 회상일까? 아니다. 그런 재미없는 시상이 떠오른 게 아니라 어떤 느낌 오는 제목 같은 게 떠올랐다. 못말리는 모험가 최후의 열정을 발휘하다. 최후? 안돼! 뽐내면 샘내고 유혹하면 유혹에 응하고, 숨바꼭질은 계속 될 테니까. 그러니까, 얼마나? 무지하게! 아마도 왠지 초조하고 긴장되니까 막 밑도 끝도 없이 공상이 이어지고 있었다. 길 잃은 열정은 청춘의 방황을 허락하는 법. 나는 주저하지 않고 이름 없는 그곳에 들어갔다. 거긴 빈 사무실처럼 휑했고, 전혀 특별하지 않았다. 그런데 웬 자판기가 하나 있었다. 자판기에서는 돈을 요구했다. 작동도 간단했다. 왼쪽 상자와 오른쪽 상자에서 선택할 수 있는 목록 박스가 있었다. 그래서 그걸 고르고 입력. 금액 결제. 결과물은 3일 후 집으로 배달. 간단했다. 예를 들어 시 (화살표) 산문, 블로그 (화살표) 논문, 칼럼 (화살표) 일기등이 있었다. 나는 거기서 '칼럼 → 소설'을 선택했다. 다음에 USB로 워드 파일 업로드. 그리고 결제. 결제? 헉. 지금 돈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마라에게 연락해서 가불해주라고 했다. 결제 수단에 다행히 계좌이체가 있었고, 나는 원고료를 선불로 당겼고 마라는 계좌이체를 완료했다. 금액은 미스테리아 칼럼 고료의 2배였다. 좀 비싼 거 아니냐고 투덜거렸더니 마라는 부족하지 않은 수완을 발휘해서 나를 잘 다독거렸다. 그렇게 일을 마쳤고, 나는 내 비상금을 털어서 그곳에 한번 더 갔다왔다. 곧 이제 내가 받아야 할 결과물은 2개였다.
여기서부터 요약해서 말하자면 첫 번째 결과물을 받았다. 읽어봤다. 뭔가 허술하지만 아주 이상하지는 않았다. 물론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확실히 인공지능 느낌은 신선했다. 그래서 난 그걸로 신춘문예에 도전했다. 또 두 번째 결과물을 받았다. 그건 잘 아는 출판사에 보냈다. 그곳에서 승인하면 출판하고 아니다 싶으면 거절하고. 비용은 전액 그쪽에서 부담하기로 했다. 당연히 계약 조건에서 나중 내가 덜 받는 그런 약관이 있었다. 이거 혹시 모르니까 나는 급전을 정말 어떻게 어떻게 마련했다. 그래서 그 777인지 뭔지로 찾아가서 세 번째로 작품을 의뢰했다. 날짜가 됐고 요청한 소설이 도착했다. 이건 어떡한다? 이건 마라와 실비아한테 보여주기로 했다. 결과적으로 꽤 거금이 나갔다. 돈은 그랬고, 그 문학 변환기인지 자판기인지 그걸 통해서 얻은 소설은 내게 아무런 소득을 안겨주지 못했다. 다시 보니 영 아니었다. 내가 봐도 실망이었다. 마라가 읽어봐도 절망, 실비아가 봐도 체념. 난 상심했다. 품위 유지비는 바닥났고, 생활비도 빠듯했으며, 어쩔 수 없이 나는 다시 미스테리아의 전속 칼럼니스트로 활동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을 감수하기로 했다. 나는 뛰어 봐야 벼룩이었던 것이다. 나는 새로워지고 싶었다. 하지만 그 옛날 부족했던 허세 때문인지 지금은 허례와 허영만 남았다. 내게는 허당이 딱 적격이었다. 극구 부인해 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런데 어슴푸레 느낌 세한 발상이 찾아오는 것만 같았다. 나는 일기장을 펼치자마자 미친듯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랑 결혼해 줄래?>라는 말을 0번에서 여러 번까지 말하는 사람이 좋을까, 듣는 사람이 기쁠까? 정답은 아마도 그런 질문을 상상한 사람이 아닐런지. 그러나 여기까지가 다였다. 그분은 올 듯 말 듯, 뭔가 좋은 생각이 날 듯 날 듯 하다가 말았다. 이런, 젠장! 불우를 거부하고 사랑을 숨기고 행복에 웃다 라고 쓰면서 막 천재성을 뽐내고 싶었는데, 다 틀렸다. 그래서 나는 좋게 혼자서 놀라운 착상을 기다리던, 신기한 영감을 찾아나서건, 예전의 문사로 돌아가기로 결심했을까? 아니다. 나는 좋게 미스테리아에 칼럼이나 꼬박꼬박 기고해서 생활비나 벌고 품위 유지비나 챙기기로 했다.
from 소설
2017. 11. 30.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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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행복을 탐했다. 하지만 그것은 쉽사리 손에 잡히지 않았다. 형체도 없었다. 아마 그는 행복을 빵과 포도주처럼 실체가 분명한 대상으로 생각했을 수도 있다. 사람은 사랑의 객체요 호사가 사랑의 주체일지도 모르는 것처럼. 허나 몽상에 흠뻑 젖어 있고 탐욕에 듬뿍 빠져있는데, 어쩜 행복의 정체를 모르는 게 당연했다. 아무짝에도 쓰잘 데 없는 공상 가운데 번뜩이는 영감은 찾아볼 수 없었으니까. 그러다 그는 깨달았다. 사랑은 때로 일이고 행복은 삶이란 것을. 꿈을 꾸고 장난치며 농담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곧 불행하지 않다는 것임을. 일상은 항상 따분하고 심심한 게 맞으나, 그래서 더 재미있어지고 언제나 흥미로워질 수 있다는 건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맞긴 맞는 말인데 왠지 좀 말리고 감기는 느낌이 없잖아 있다. 속은 건 아닌데 뒷맛이 개운치 않다. 그래도 일단 듣고 보자. 시원해질지 미적지근해질지 몰라도. 예술혼에 대한 간청은 믿음직스러웠지만 금새 따분해졌고, 번드르르한 핑계는 스스로도 지겨웠다. 행복을 몰랐고, 행운은 다정하지 않았으며, 운명은 얄궂고 우스웠다. 그는 생각했다. 복잡하게 생각하고 복안을 궁리할 거 없다고. 쇼핑은 잔잔한 일상의 지루함에 대한 보상이고, 여행은 운명이라고. 덤으로 사랑이 혹시 찾아온다면 그건 행운? 그게 진짜다. 소 뒷걸음질 치다가 쥐 잡는 듯한 우연이. 고기도 먹어 본 놈이 잘 먹고, 지옥 근처에라도 가 본 사람이 천국의 풍요─사치─안락─기쁨을 절감할 것이다. 솜씨 좋은 하인은 필요하지 않다. 시대의 논리에 따라 명민한 비서의 존재는 일 복 터진다는 말이니까. 그러니 한숨을 줄이고, 향수를 뿌리며, 맞다. 타인의 삶에 참견하여 이래라 저래라 훈수 둘 입장은 못돼는 지미는, 그래서 톰의 애교와 리지의 교태가 늘었나, 늘지 않았나 라는 궁금증에 사로잡혔다. 가만 있는데 하늘에서 기쁨이 뚝 떨어지고, 쉼 없이 쾌락에 신세지며, 열락의 낙원에서 뛰어놀 수는 없다. 그걸 턱없이 바라는 걸 뭐라 하냐, 못된 심보라 한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 헛된 예감이 불러오는 쓴맛은 볼만큼 봤다. 성실함이 먼저고 운은 다음이다. 잔꾀가 필요한 때는 따로 있다. 뭐라도 하긴 해야 하고, 복권을 사고 판돈을 걸며, 무대 위에 팬티든 뭐든 쌓이기를 원한다면 먼저 맹연습이라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단 말이다. 그는 필경 대가 없이 이상을 기원하지는 않았다. 때문에 허당이니 봉이니 호구니, 때가 오지 않았다는 둥 뭐라는 둥 핑계를 접고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돌아보니 공부...는 못했어도 일은 많이 했다. 연애는 잘 몰랐지만 조금이나마 사랑은 받았다. 따지고 보면 여복이 아주 흉년은 아니었고, 황금을 축적하진 못했으나 나름 지성이란 성과는 챙겼다. 증명할 길은 까마득하지만 일단은 그랬다. 개구멍은 노력해야 찾을 수 있고, 호박 나이트클럽은 공짜가 아니며, 뭔가 눈치를 채야 동물들도 좋아한다. 냄새를 맡아야 꼬리를 흔들고, 자기를 귀여워해 주어야만 요염한 고양이는 앙탈을 부리지 않는다. 그런데 갑자기 고양이의 앙탈이 왜 나왔지? 그러니까! 지미는 동네를 돌아다니며 돌아가는 분위기를 살폈다. 오, 델이 애플 스토어를 차렸구나. 그런데 이 시골에 뭐하러? 아마도, 소원 풀기일 것이다. 녀석, 태연한 척 하지만 이마에 딱 써 있다. 괜한 일 벌였다고. 내가 미쳤지 라고. 고로 델의 전공이 경영학이나 경제학이었을 거라고 예측할 수는 없다. 아마도 보나마나 여자일 테지 뭐. 정열을 취미에 쏟지 이상한 데로 애정이 쏠렸을 수도 있으니 이해는 한다, 라고 지미는 생각했다. 그러면서 그는 흥미로운 놀이를 찬미했고, 지혜로운 기쁨을 칭송했다. 즉 썩 부적절하지 않은 쾌락에 전율할 무언가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맞다. 그는 혼자 있을 때 가끔 능글능글했고, 어쩌다 위선자에 때로는 몽상가였으며, 아마도 주로 한량이었다. 지미는 차력사로 일하던 때 요정처럼 아름다운 곡예사와 친했다. 물론 지금은 옛날 이야기다. 단지 친하기만 했다. 그리고 그는 차력사를 그만둔 후 천사처럼 예쁜 입장권 판매원과 사겼다. 낭만을 공으로 먹고 불행은 잊어버렸다. 인생은 축제였고 일상도 오페라였다. 꼭 그녀가 입장권 발부하는 일을 하기 때문은 아닐 테지만, 하지만 그들은 함께 꿈꾸기에 조화로운 상대가 아니었다. 곧 만나자마자 헤어진 것이다. 지미는 늘상 이런 식이었다. 번듯한 쾌락도 마땅한 부귀도 없었다. 그러나 고결한 이상을 동경했고, 인생의 무상함과 허당의 비애를 음미했다. 충분히. 초라했고 재미없었고 활기차지 못했다. 그러니 이제는 신비와 환상을 영접할 차례였다. 하다못해 방탕이나 퇴폐...는 사절하고, 환락의 불꽃을 추측하며, 소년의 야심이라도 품어야 마땅했다. 행복하고자 하는 노력은 보답 받을 것이다. 고상한 사색과 세련된 상상에 젖는 습관은 예술을 배신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꿈동산을 기획하고, 막대사탕을 팔 시기가 임박한 것이다. 많이 의아해 했고 오래도 기달렸다. 그는 더 이상 가련한 곡예사도, 가난한 몽상가도, 그렇다고 사랑만 생각하는 순진한 바보도 아니었다. 몽매한 경험과 무수한 시간 낭비와 고된 방황은 단지 천재를 위한 시련의 담금질일 뿐이었다. 그 모두를 공인 받을 수는 없지만 혼자서 샴페인이라도 터트릴 기세였다. 어제까지는 소심했지만 이제는 대범해졌다. 웃고 춤추고 노래했다. 내일의 희망과 현재의 기쁨을. 즉 그는 아직 소년이었다. 그렇게 무난한 즐거움과 막연한 흥미를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지미가 차력사로 일하던 시절의 짝사랑과 풋사랑을 만나게 된 것이다. 요점만 말하자면 추억 속의 곡예사 홀리는 서점에서 만났다. 예전 그녀 입장권 판매원 바바로사는 술집에서 만났다. 물론 당연히 그녀들은 지미의 동네로 이사왔다. 곧 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전에는 전혀 낯선 타인이 이사를 와서 친해진 것이고, 이번에는 약간의 친분과 사연이 있었던 옛 친구가 제발로 찾아왔다는 것이다. 어쨌든 서로 과거를 조금은 아는 이상 미세한 표정 변화로 보아 하니 서로 조심하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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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미덥지 못한 갈망을 부정했다. 한편 세속적인 지복에 대한 염원은 끊이질 않았다. 빵을 망각한 대신 꿈의 의기소침을 애석해 했다. 어떻게 해야 하나? 하던 대로! 무엇을 할 것인가? 해 왔듯이! 단, 사는 방법과 목적과 습관이 썩 잘못되지만 않았다면. 그래도 어떻게 뜻밖의 새로움, 신선한 기분 전환, 색다른 선물을 기대할 수는 없을까? OK! 특별한 진진함에 유달리 빠져들 수 있도록 뭔가가 필요했다. 고로 목마른 놈이 우물 판다고 자기가 자기에게 짝사랑을 허하노라? 그게 뭐야, 젠장! 하오나 슬퍼하기엔 일렀다. 왜냐하면 천사의 날개가 보였고, 사랑의 노래가 들렸으며, 새하얀 첫눈이 내렸기 때문이다. 어딘가에 막 자랑하고 싶은 어제를 두고두고 그리워만 할 게 아니라 찬란한 오늘을 탄생시키면 된다. 하면 된다. 그럴 수 있다. 밑져야 본전이다. 오늘 재미없다고 내일도 재미없으란 법은 없다. 일찍이 사과나무를 심고 서둘러 호박마차를 만들면 된다. 그러니까, 어떻게? 지금에 와서 색종이를 접고 크레파스를 사고 동요라도 부르란 말인가? 지미는 참을 수 없었다. 이건 뭔가 잘못됐단 걸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됐을까? 그는 푸른색 짠물 위로 분홍색 노을이 지는 상냥한 해변으로 떠났다. 저번에 냉동 물고기를 잡은 바로 그곳으로. 무엇보다 일단 생각을 해야 했으니까. 그는 바닷가에 도착했다. 날씨가 추워져서 일광욕을 할 수는 없었다. 또 다시 냉동 물고기를 낚을 수도 없었다. 그러면 남은 일은 이 은빛 모래사장 일대에서 제일 예쁘고 착한 인어공주를 찾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이제 그만 허당을 졸업하고 해변의 왕자로 거듭나야 했으니까. 그는 어차피 스쳐지나가는 인연이라 생각하며 어느 숙녀 2인조의 눈치만 살필려고 했다. 어머나! 그런데 하필 그녀 중 한 명은 리지였다. 「어! 오빠! 여기는 웬일이야?」 하마터면 지미는 이렇게 말할 뻔 했다. 「넌 몰라도 돼!」 라고. 하지만 잘 참았다. 그래서 정상적인 대화의 흐름을 이어갈 수 있었고, 리지는 자기 친구 셜리를 지미에게 소개시켜주었다. 리지는 도시로 떠난다고 한다. 그리고 자기의 집으로 친구인 셜리가 입주하기로 했단다. 또 시작했다. 그럴 때도 됐다. 왜 아니겠나. 지미는 들렸다. 무엇이? 알라망드, 꾸랑뜨, 사라방드, 부레가! 어느 멋진 나라로 떠나기는 귀찮고, 스스로 알아서 틈틈히 새로워지는 동네에 살고 있었으니 그는 왠지 모르게 자기가 꼭 그런 남자가 된 것만 같은 기분에 빠져들었다. 그건 곧, 돌아온 싱글 일명 돌싱! 뭔 싱?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몰라도 분위기는 그윽했고 변화는 다정했다. 작별은 곧 새로운 만남이었다. 내 너에게, 라며 딱 뭔가 멋진 말을 할 수도 없었다. 안녕이라고 말하지 마, 라는 말이 들리는 듯 했으니까. 참 이상한 동네다. 거긴 뭐 로맨티스트의 모항이고 신비주의자들의 본거지란 말인가? 그러든가 말든가. 꼭 로맨스가 숙청되고 리지가 사랑의 패자로 밝혀진 건 아니지만 혹자는 이런 말,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회전목마 참 잘도 돌아간다고. 그는 기쁠 땐 바빴고, 바쁘지 않을 땐 심심했다. 무료함을 숙명으로 받아들였고, 행운은 하늘에 맡겼다. 만약 그러지 않는다면? 그러지 않으면 바쁘고 기쁘지도 않는 거지. 간출이건대, 꽝! 그러므로 언제 변덕을 중용하고, 어떻게 아름다움을 알아보며, 가난을 잘 다스려야 함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할 일이 있다는 건 복됨이고, 부분적인 친구의 교체도 고역이 아니라 시혜를 받음이었다. 하지만 아직 시트콤 멤버가 안정적으로 갖추어진 건 아니었다. 좀 더 기다려야 한다는 신호였다. 그래서 기다렸다. 날씨도 좋고 다 좋은데 왜 아직일까 라며 조급해 하지는 않았다. 다만 이렇게 좋은 날에 찐하게 연애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싶을 정도록 날씨가 정말 너무나도 얄밉도록 좋았다. 그는 기분이 좋아졌다. 날시가 쾌청한 이유는 따로 없었다. 오늘 맑음-이면 그냥 그뿐. 하지만 기분이 좋은 까닭은 찾아보면 통상 밝혀진다. 가령, 결과야 어찌됐든 계획만으로 기쁜 일 같은 것. 그처럼 기대는 유쾌함을 뜻한다. 몸은 여기 있지만 마음은 벌써 내일에 가 있는 상태. 그만그만하거나 심심하다, 들뜨고 설레고 떨린다, 전자와 후자의 중간을 예감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그에 대해서 기쁘고 좋은 동기를 부여한다? 호걸의 할 일이다. 그것이 항상 수월하면 좋겠지만 세상 일이 모두 제 뜻대로 돌아가기는 힘든 법. 어딘가 모르게 분위기가 우울하면 그분은 어쩔 수 없이 소년이 된다. 따라서 그 남자가 재미있어질 수 있는 영문은 둘 중 한번은 바깥에서 찾아오는 게 타당할 수도 있다는 것. 그 무엇이 꿈꾸는 이상이건, 독창적인 사랑이건, 미완의 환상이든 지미는 지금 어떤 미지의 님프나 요술램프의 요정을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곧 그는 마음을 부드럽고 여유롭게 만들어주는 약속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겸허한 친우 지적인 애인 건전한 유희 고결한 생활만 지속된 결과, 솔직히 말해서, 허영심과 허풍과 설혹 어디서 천대 받을지도 모르는 환락을 애원하게 되었다. 그러던 찰나, 환상 문학 잡지 미스테리아 편집장으로부터 요청이 왔다. 용돈이 궁하던 때 시의적절하게 말이야, 어떻게 알았지? 그는 유년기 같은 성년이라는 제목으로 수필을 뚝딱 작성해서 보냈다. 딱히 재밌거나 감동적이지는 않지만 나름 추리소설 애독자들로부터 질타를 받고 있으니 그가 어떤 글을 썼나 잠시만 확인해 보자.
3
호기심은 착하고 감수성은 관대했다. 그러나 이성이 약했고 특히나 쾌락을 만나기라도 하면 직관은 간혹 악해졌다. 허나 치명적 흥미는 길지 않았기 때문에 상심은 숙명이었다. 그래서 나는 병적으로 새로움에 집착했다. 하지만 새로움은 대게 비쌌다. 게다가 취향은 언제나 저 높은 곳을 향했다. 심지어 권태라는 괴물은 새로움이란 애첩을 총애했다. 나는 이렇다저렇다 답변을 미룬 채 끙끙 앓기만 했다. 옹색한 핑계는 필요치 않았고, 준엄한 비판은 겸허히 수용했다. 그러면 뭘 하나. 금방 딴청을 피우는데. 더군다나 목표는 무지개 너머의 이상이었지만 결과는 매번 냉엄한 현실이었다. 따라서 동화풍 감정과 소녀 감성의 틀에 박힌 상궤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대망이 필요했다. 소망으로는 약했다. 그렇지만 어느 세월에 대망이 실현되기를 기다리겠나. 대망도 결국 조연이었다. 쾌락만이 절대 강자였다. 진짜 절대 강호는 바로 그분이었다. 인생의 신비라는 몽환극은 따지고 보면 줄 달린 치즈를 살살 당기는 자와 유혹에 스르륵 넘어가는 자의 줄다리기에 다름 아닐 것이다. 그렇긴 하나 언제나 예상을 뛰어넘고 추측을 불허하는 일은 발생하기 마련이다. 지상에서 천국의 기쁨을 맞이한다거나 신기한 사랑에 빠지는 것이 그것이다. 하지만 보통 사랑은 헛되거나 상심 그 둘 중 하나고, 환희와 경탄과 도취감은 결코 쉽게 찾아오는 손님이 아니다. 고로 세상 일은 쉬운 게 하나 없다? 패배주의는 이겨내야 하고, 쇼펜하우어를 읽는 시절도 잠깐이다. 복권 당첨은 힘들고 번호표 뽑고 대기하는 숙녀의 사랑을 기대하기는 힘들어도 세상사는 원래 극적인 구석이 있다. 특히나 풍운아 유형에게는. 어허, 뜻밖의 행운은 불시에 찾아온다니까 그러네. 아니 이게 대체 웬 떡이야, 같은 일! 도박장엔 발을 끊었고, 마권에는 취미를 잃었으며, 예술은 따분하고, 친구들은 맨날 자기 자랑하기에 바쁜 걸로도 모자라, 우정도 사랑도 나도 뭘 해도 재미가 없다? 이때 떠나자 라고 한다면 그건 여행 광고나 시시콜콜한 잡지 기사가 된다. 그러면 달리자, 치고 차고 뛰고 잡고 넣고? 욕망은 끝이 없고 세상은 아름답지만, 따질 건 따져 보자. 그 정도 충고로 만족하실 유전자를 타고 나시지 않은 것 아니냐고! 그렇다고 직장을 그만두랴. 1명은 무턱대고 그만둘 수도 없고, 1명은 이미 그만둔지 좀 됐고, 다른 1명은 공부에 불안에 취업 걱정에 이러쿵저러쿵일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유행가는 사랑 하나만 물고 늘어지는 것일까? 결국, 사랑? 판돈이 아니라 영혼을 걸 수 있는 것, 바로 인생은 사랑으로 승부하시라? 가난한 사랑은 꽤 난처할 수 있다. 그걸 알면서도 사랑 노래를? 아니다. 현실은 현실이다. 따라서 그 삶은 환상이 아니다. 고로 마법의 섬으로 떠나자? 또 다시 여행 광고로 돌아왔네. 차라리 여행업과 결탁해 정당한 (고가) 광고료를 받을 걸 그랬나, 살짝 후회가 밀려온다. 상업의 말 더하기 학문의 기술, 그 다음에는? 퇴마사의 궤변도 재미없다. 그러니 이 가을의 고독과 쓸쓸한 낭만, 풀리지 않는 인생 문제, 새로운 취미 찾기는 각자 해결하는 걸로! 여기까지가 환상 문학 잡지에 기고한 여성잡지2에 걸맞는 성격의 수필이었다. 그런데 우리의 주인공은─우리는? '우리는'은 빼 주시라, 환청이 아니라 고함이군─돈을 받고 쓰는 글보다는 오히려 혼자 쓰고 혼자만 읽는 일기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다. 청산할 과거라도 있다는 것 마냥. 어디서 뺨 맞고 어디서 뭐한다고, 친구한테 자랑을 듣고 사랑에게 우정을 선전하는 것만 같은 몹시 괴상한 글이긴 했지만 말이다. 눈에 띄는 확실한 결과는 뚜렷하지 않는데, 그런데 뭔가 바쁘고 별나게 가지가지하는 듯 보이는 그의 생활이었다. 그래도 남의 인생이니 청춘이 앙망해야 할 관여는 참자. 이제 그만 관심은 접고 참견도 어물쩍 넘어가고, 그가 쓴 일기나 과감히 엿보자. 고독한 현대인의 허상에 대해 같이 고민을 하든 험담을 하든 그건 자유일 테니까.
4
11월 21일 화요일. 날씨 찌푸둥. 기분 차분함. 어제까지의 지성은 과히 빠지지는 않았다. 오늘은 흥미로웠고 내일은 기대됐다. 미래의 신붓감은 번호표 받고 대기 중이다. 익살도 늘었고 날마다 영리해졌다. 촐싹마저 고급스러운 농담으로, 깨방정까지 사랑으로 바꿀 수 있었다. 우주의 신비는 간파했고, 인생의 환상을 기다렸다. 유쾌함은 알았고 괴팍함은 몰랐다. 이상을 믿었고 낭만을 동경했다. 행복감은 벌써 엉거주춤 열렬히 구애를 지속하고 있었다. 부끄러워하고 조신하며 다소곳한 신부 후보(들)은 그 수를 차마 헤아릴 수 없었다. 기쁨은 깡총 뛰었고, 환희는 개봉 박두였다. 사과향 청춘을 신뢰했고, 연분홍 장밋빛 스무살의 환생을 확신했다. 기분은 마냥 좋았고, 분위기는 더 좋았다. 숙녀의 귀를 쫑긋, 어린아이의 눈망울을 초롱초롱, 남자의 호쾌함을 띄우고, 노년의 흐뭇한 표정까지 마음만 먹으면 그 모두 가능했다. 손짓만으로 엉뚱한 호감을, 눈빛만으로 심술궃은 고백을 부를 수 있었다. 아, 속옷의 위와 아래가 조화롭지 않구나, 마음의 준비는 아직인가 보다. 그녀의 얼굴이 빨개진다? 이미 내게 넘어왔다! 어머나, 숙녀가 환하게 웃네? 벌써 사랑에 빠진 거다. 뻔할 '뻔'자다. 두세 살 아이가 아가씨의 엉덩이를 만진다. 그녀는 깜짝 놀란다. 그건, 괜찮다. 아이가 아니라면 얘기가 다르겠지만. 건강한 사내의 머머하고 싶다, 라는 마음은 무엇일까? 그것은, 그분들에겐 간혹 흑심이지만 내게는 철학이다. 숙녀가 만약 애인이라면 뒤에서 껴안아도 된다. 백허그는 딴생각이 아니라 사랑이니까. 누군가의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이 상상되는가? 당신은 감수성이 예민하며, 호기심이 풍만하고, 창의력이 뛰어나다는 증거다. 몽상을 필두로 하여 상상은 곧 현실이 될 것이다. 일상은 환상이고, 권태는 꿈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언제나 즐거웠고, 항상 쾌활할 것이다. 심심함은 운명이고 비밀은 숙명이다. 세상은 아름답다. 그런데 지각은 천동설일까? 답이 무엇이건, 그건 그대 찬란한 미래에 대한 예증이다. 행복은 측정하기 까다롭고 쾌락은 아리송해도, 적어도 현찰은 셀 수 있다. 불안은 안중에도 없으니 밝은 내일에 대한 모종의 음모를 꾸미자. 희망 찬 미래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인생은 본시 유치한 것! 상상은 자유! 그리고 사랑은 천사의 선물! 유행가 가사는 곧 신기한 마법의 주문이다. 비록 나중 실망할지언정 지금 예감을 믿고, 간청을 중용하더라도 큰일 나지 않는다. 좀 늦어도 괜찮다. 거사는 잘 치를 수 밖에 없으니까. 아니면 친구끼리 지명-방어전에 대해서 농담이라도 할까? 안될 거 없다. 멋진 말은 바닥나도 시상은 꾸준히 샘솟는다. 할 일을 다 잘할 수는 없어도 눈부신 영감은 마르지도, 멈추지도, 쉬지도 않는다. 내가 속마음을 털어놓으면 아마도 당신께서는 깜짝 놀랄까요? 그건 속단하기 이르니 참는 게 좋겠다. 아직 직감이 영감으로 무르익지 않았으니까. 불행을 묵과했지만 비운을 역이용하기 위해 분주했다. 어떻게라도 성공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에 노력을 거듭하며 희망을 잃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눈 깜짝할 사이에 뭔가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좋은 생각! 힌트가 항상 꼭 귀뜸인 것만은 아니다. 뜬금없이 독자적으로 신선한 아이디어와 조우할 수도 있다. 웬 허풍선이도 쳐다보지 않을 이상주의와 평생 호의적이지 않았던 로망에 지배당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그건 썩 좋은 생각이라고 단정하기 어려웠다. 왜냐하면 지금까지의 설명은 모두 뻥이기 때문이다.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아아 재미없다. 오오 허무하다. 아이 참 심심하다. 그게 다 쓸데없는 공상 때문이다. 숙녀는 거울을 보며 화장을 하고, 소년은 야망을 꿈꾸며, 남자는 입맞춤을 상상한다 상상한다. 동정심도 사랑이고 개꿈도 사랑이다. 그러나 망측한 몽상은 그만 참아야 한다 참아야 한다. 이런,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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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8일 화요일. 날씨 모름. 기분 괴팍함. 정치! 오늘 일기에는 정치 얘기를 해 볼까? 그러자. 왜 안되겠나. 일기인데 못할 거 없다. 정치. 정치와 브랜드를 비교해 보면 이해가 쉽다. 브랜드는 광고가 없으면 그 가치는 0이 된다. 광고를 해도 사랑 받지 못해 없어진 브랜드는 수두룩하다. 가방, 옷, 자동차 등등 품질은 기본이고, 브랜드는 곧 광고다. 정치도 그와 똑같다. 개인 브랜드라는 정치인의 말과 활동은 곧 광고다. 그게 없으면 정치인의 생명은 끝난다. 그런데 문제는 정치인이라는 개인 브랜드 광고는 모범과 정도로 통용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는 점. 때문에 적지 않은 부분 정치인 브랜드는 튀는 롱테일쪽으로 기운다. 말도 튀고 행동도 튀도록. 때에 따라 튀는 말이 옳은 발언일 수도 있는데, 그게 몇 군데를 거치면 당연스레 왜곡된다. 자연스럽게 경쟁자는 약점을 파고들고 그건 또 다시 왜곡된다. 그 형식은 계속 반복되어 정형화된다. 선순환이 1번 일어나도 2번 3번 이어지기를 바라는 건 순진한 발상일 뿐이다. 그 모두가 왜냐하면 정치라는 덕목의 특수성 때문이다. 정치인이 나(그대)보다 문학을 더 잘 알까? 아마도 쉽진 않겠지요! (근래 특정 자부심 든든). 정치가가 연예계에서 잔뼈가 굵은 백전노장 엑스트라보다 연예계 산업의 생리를 더 잘 알까? 그럴 리는 없다! 그런데 학계와 산업과 상업과 마술과 율법은 물론이요 그 관습과 풍속까지 세상만사 모든 분야를 정치인이 좌지우지한다. 그래서 정치는 태생적으로 시끄러울 수 밖에 없다. 맞다. 어렵다. 나(그대)보고 정치를 하시라고, 어느 위치까지 가뿐하다며 레드카펫이 보장된다 할지라도, 정치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차라리 연예인이라면 모를까. 따라서 정치의 구조적인 모순을 안다면 광고에 집중하는 정치인보다는 개인 브랜드의 품질에 신경 쓰는 정치인에게 표를 행사해야 한다. 정치는 광고고, 정치는 말이다. 그러나 정치는 광고와 말이 전부가 아니다. 하지만 뉴스에서는 따따부따, 시시콜콜 정치인의 튀는 말과 거북한 행동을 쉼 없이 광고한다. 튀면 튈수록 광고는 보장된다. '앞으로 나의 시대가 올 것이다' 라는 말러의 말처럼, 말러의 교향곡 9개와 그 인생이 아닌 저 말만 똑 떼어서 뉴스에 나온다. 게다가 각자 선호하는 색채에 맞는 부분만 가위질되어 알려진다. 편집은 곧 마술사다. 그것만 봐서는, 말러는 정말 허풍꾼에 약장수요 개구쟁이라고 단정지을 수 밖에 없다. 쉽게 말해 상업적 브랜드는 품질과 광고가 반반이라고 한다면, 과연 정치인도 그럴까? 그랬으면 좋겠다. 정치를 무조건 경시하고 정치인을 폄하하자는 말이 아니다. 열심히 꿋꿋하게 제 몫을 하고 맡은 역할에 충실한 정치인도 많다. 단지 정당과 정치인의 관계? 그거 정말 쉽지 않다. 그래서 난 정치 외에 무엇이든지, 까지는 아니지만 어쩌다 무소속의 새로움을 추구한다. 직업이 정치인인데 정치인은 정당 안에서도, 퇴근하여 행복한 우리 집에 와서도 정치를 해야 한다? 지극히 당연한 일이긴 하지만 이걸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때로는 난감할 때가 있다. 그처럼 시민은 언제나 속을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브랜드와 오락산업과 세상의 경제 논리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다. 부동층이 어느 정도 확보되는 곧 포지셔닝이 확실한 극단적인 정치 인사는, 말을 바꾸자면 다수는 물론 소수에게도 커피포트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을 수도 있고. 당대에는 승승장구할 수 있을지 몰라도 세월이 지나면 존경 받기 힘들다. 드물게 두고 두고 험담의 대명사가 될 수도 있다. 차라리 그러면 다행이게? 안 좋은 선례를 남기는 건 드물고 그냥 조용히 잊혀진다. 하지만 그건 자유다. 소수의 의견을 대변하는 것으로 제도화된지 오래다. 게다가 서사와 맥락을 따져보면 그럴 수 밖에 없는 사례도 드물지 않다. 많은 경우 지금 이대로, 일부는 시간을 돌릴려고, 일부는 앞으로 나아갈려고, 세상은 그렇게 굴러가고 돌아간다. 일반인은 내가 좋아하는 걸 보고, 내가 좋아하는 걸 듣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한다. 하고 싶은 놀이를 하고 삶을 즐기며 살아간다. 그럴 수 있고, 그래야 하고, 하면 된다. 제한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타적이되 이기적인 인생을 살면 그만이다. 그런데 어느 날 아, 나는 정치라는 일을 하고 싶다? 그때부터는 내가 좋아하는 것만 듣고 보고 하고, 그러면 안된다. 딱 그 시점부터 모든 인생사를 정치에 최적화하여 살아야 한다. 만일 그러더라도 정치인에 대한 꿈을 행동에 옮기기 이전의 삶은 어쩔 수 없다. 그래서 정치를 하고 싶어도 못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내 몸은 사자 어금니 아끼듯 끔찍이도 아끼면서 나는 과연 (나로 인해 빚어진) 카페 피카소 사장의 불행과 복권업자의 고난에 따른 인생까지 끔찍이 아끼는가, 라고 자문하지 않았던 사람한테까지 러브콜을 보낼 정도로 정치권은 한가하지 않다. 비교적 정치는 출발점이 이를 때 매우 유리한 분야임에 틀림없다. 이론적으로 보자면 인생 계획을 스무 살에 세운 대로 그 길만 걸었던 정치학과 출신이 유리해야 맞다. 즉 전혀 동떨어진 분야랄지 여러 업계를 두루 경험했다랄지 그 보다는. 정치인이 되는 순간부터 사람은 매우 제한적이 될 수 밖에 없다. 정치에 입문하는 시점부터 특정 포지셔닝을 설정하고, 특정 의사를 대변하고, 특정한 일관성을 추구해야만 한다. 모순은 이때부터 시작된다. 처음부터 미운 오리 새끼로 출발하니까. 소수의 의견을 대변하는 게 왜 잘못이냐? 잘못은 아니다. 특정 계층의 권익을 대변하는 게 뭐가 문제인가? 문제는 아니다. 단지 정치는 소수의 의견을 대변하고 계층의 복리를 대변하기 위해서 노력만 해서는 안된다는 점. 스포츠처럼 승리하지 않으면 주연으로써 주목 받을 수 없다. 결과가 없단 말이다. 물론 그 노력부터 변화는 시작된다! 시작이 반이다. 그 노력이 없으면 아무것도 안된다. 시대에 따라 거기에 목숨을 걸기도 했다. 후세에 그 노력에 따른 혜택만 누리고, 난국의 숨은 위인도 아니고, 문화적으로 융숭한 결과물이 현존하는 로마 제국도 아니고, 예술계에서 앞다투어 찬미했던 보나파르트 나폴레옹도 아닌데, 그런데 안에서만 영원히 권좌에 남을려 했던 난세의 1인자 얘기를 '치우친 관점으로' 아직도? 그 모두를 겪었고 잘 아는 사람들은 그런다. 피가 거꾸로 솟는다고! 대충이나마 서사를 아는 사람은 그런다. 아 시끄러워 제발, 이라고. 오오 뚜껑이 열린다 아아 그분이 오신다, 어쩌다 예술적 영감이 그로부터 탄생할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그런데 정치가 국내 정치만 있냐, 아니다. 국제 정치가 있다. 그 무대로 나오는 순간부터는 두 가지 논리를 따라야 한다. 첫째 친구, 둘째 동물의 세계. 안에서도 조화-화음-정의 그런 게 어려웠는데, 밖에서라고 그 모두가 쉽게 풀릴 리는 없다. 무슨 자리가 만들어져도 그건 거의 마초의 우정과 비슷해진다. 자기 얘기만 하다 끝나니까. 명언을 인용하고, 폼 잡고, 격식을 갖춰서, 눈빛이 빛나고 몸짓과 어법에 신경 써서 말을 해 봐야, 그거 이미 기원전에 다 해 볼만큼 해 본 일들일 뿐이다. 아직도 그때 식으로? 정치인은 정치에 입문할 때부터 특정 영역에 집중할 수 밖에 없었다. 때문에 결과적으로 보자면 그 범위 바깥의 말을 듣지도 말고, 보지도 않고, 안중에도 없다. 좋든 싫든 그럴 수 밖에 없으니까. 내 발언의 기록에 대해서 자성이 어느 만큼의 비율인지 스스로에게 묻자. 그런데 제한적 성향의 관성은 처음만 그럴까? 그러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도박판에서 각자 들고 있는 패가 훤히 들여다보여도, 내 말이 맞다고 아무리 설득해도 시장 규칙은 변하지 않는다. 인도적 규범의 최선마저 다소 형식적이다. 따라서 안에서 미운 오리 새끼가 밖에서는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 말을 들으면 무슨주의에 입각한 매체나 정치인은 어깨 뽕이 볼록 솟아나지 않을 수 없다. 왜인지 알아맞춰 볼까요? 왜냐하면 이때 기분이 좋지 않다는 건 인간의 본성에 극력 반하기 때문이다. 내가 진정한 보수다 뭐다, 좌파가 이 나라를 엉망진창 머머머하는 걸 더 이상 두고 볼 수는 없다, 주변 정세가 어쩌는 걸 경시할 수 없다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겠다, 하루 이틀 듣는 얘기도 아닌 말들. 그런 형식적인 얘기를 듣기 싫어도 들리길래 들어보면 완전 꽉 막힌 동네 아저씨와 아주 살짝은 비슷하다. 진보니 보수니 들어보고 읽어보면 안다. 척 보면 안다. 그런 말 많이 하는 사람일수록 허당이라는 걸. 95퍼센트는 다 똑같다. 모두 거기서 거기다. 그냥 허당이냐 은근 허당이냐, 합리주의냐 고품격이냐, 그 차이를 아는 게 중요할 뿐. 살다 보면 어른은 그럴 수 밖에 없다. 그래도 그 정도라도 하면 겨우 중간이다. 그렇지만 좀 더, 좀 더 라고 기대하는 마음도 따라간다. 정치적으로 진보, 경제적으로 자유와 보수를 표방한다는 국제적인 주간지 정도 상식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제법 뒤따라가지 못할까 봐 걱정이 앞선다. 지금 세상에서 정치인은 편집장의 지성보다 연예인의 쇼맨쉽을 높게 사는 세상이니까. 나는 아니라고 하시겠지만 헐떡헐떡 숨차고, 머리에 생각은 많고, 표정은 아 쫌! 그래도 진부함이 차선임은 결코 부인할 수 없음. 시대적으로 왕권은 옛날 옛날에 정치인에게 완벽하게 넘어갔고, 이익은 너 나 할 것 없이 우선적으로 재계를 비롯한 오락산업한테 돌아가며, 진짜 웃는 사람은 바로 그분이다. 그분은 누구?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본다고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는 유쾌한(또는 냉소적인) 허당! 첫눈이 내릴 듯 말 듯, 추운 겨울 거리에는 크리스마스 캐롤이 흐른다. 울면 안돼 울면 안돼 / 산타할아버지는 우는 아이에겐 / 선~물을 안주신대요 / 산타할아버지는 알고 계신대 누가 착한 앤지 나쁜 앤지 / 오늘밤에 다녀가신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뉴스는 나온다. 계속 나온다. 시간이 지나면 나중 기억도 못할 테지만.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면서. 이를 테면, 지상의 레이더! 관료도 매체도 일반인도 말은 많다. 아니, 말은 없어도 시끄럽다. 귀에서 피가 난다. 정신이 혼미하다. 마음이 무뎌진다. 다시, 귀에서 피가 난다. 정신이 혼미한다. 마음이 무뎌진다. 계속 그게 반복된다. 오락산업을 뭐라 할 수도 없다. 누군가 팝콘을 튀기는 건 역할일 테니까. 그런데 그건 시끄러운 만큼 아무 내용 없는 날씨 얘기와 비슷하다. 하도 소란스러워서 간략히 누군가는 말하고 싶어하지 않을까? (많이 참았다. 오래 참았다. 참느라 뚜껑 열렸다) 그건 첫째 넌센스, 둘째 코메디라고! 어렸을 때 그런 생각 다 해 봤을 것이다. 우주 바깥에는 무엇이 있는지를. 동화작가도 때로는 궁금해 한다. 진짜로 하늘나라에서 누군가 우리를 다 내려다 보고 있는(계신) 건 아닐까 라고. 거기까지는 모르겠고, 시대의 소음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고, 내 삶에 집중할려면 하나만 알면 된다. 그건 바로, 실제로 누가 우리를 다 내려다 보고 있긴 있다는 것! 그분이 누구겠나? 누구긴 누구겠어요 위성이지! 위성에 준하는 장비도 많고 다른 방법도 많다. 남자들 세계에서 곧 부담없고 절친한 친교를 자타공인 인정하는 사석에서라면 간혹 군사학을 빼놓을 수는 없다. 아주 가끔은 얘기를 하니까. 적어도 혼자서 얼핏 생각이 쏠린다거나 달력의 어떤 그림에 눈길을 주는 걸 마다하지는 않는다. 왜? 남자니까. 각자 클럽끼리 군사 훈련을 하지만 드물게 모두 함께 하기도 한다. 그러면 묻는다. 핵심 기술을 알려달라 항법과 추진이 어쩌고 등등. 안된다. 그거 아느라 무수한 시행착오라는 대가를 치러서 200년 걸렸다. 태양계내외 무인선이 제공한 정보와 과학 기술등 먼저 체득한 중요 정보는 공개한다. 하지만 공개할 수 있는 게 있고 없는 게 있다 등등. 그쪽 공룡계도 거의 포화 상태다. 그 시장 역시 관용구가 적절히 적용된다. 드라마 대사처럼 들어오는 건 어쩌지만 나가는 건 뭐라더라, 그 말처럼. 그렇지만 모습은 드라마 대사와 같지만 흐름은 드라마 대사와 다르다. 한번 일류에 진입하면 임의 탈퇴하는 일은 거의 없다. 아마도 없을 것이다. 후발 주자로 누가 들어오건 어쩌건 이미 구도도 거의 변화 없고, 색다른 새로움도 기대할 수 없다. 왜냐하면 말 그대로 포화 상태니까. 예전에 벌써 보이지 않는 거미줄은 옛날 옛날에 다 설정되었으니까. 그런데 무엇을 기준으로 공룡이냐, 뭘 근거로 포화 상태냐 라는 의문의 발생은 합당하다. 왜냐하면 지난 전례를 참고하여 현재의 정세를 살피고, 장밋빛 미래에 대한 전망을 더욱 생생히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중 경제와 외교등 몇몇 분야만 공룡계에 몸담게 될 소지도 다분하다. 그러든 어쩌든 그 기준과 근거와 실상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따라서 그것이 포화 상태가 맞다면 시대상의 선험자 집단의 뒤를 이은, 후발주자의 공룡계 클럽 가입 서사에 대한 사실들, 향후 발생할 문제가 중요시된다. 가령 뭘 감축하자, 어떤 협정의 보강이 절실하다, 적어도 평화를 위한 국제사회의 연대책임에 대해서 소홀한 후 나중 일관성을 놓치는 실책, 억지랄까, 관망 다음의 뒷북만은 경계하자 등등. 이런 특별할 것 없는 현황들을 남자 어른이라면 누가 모를까? 빈 수레가 요란할 수는 있어도 벼가 익으면 고개를 숙인다고, 그분들께서 모를 리는 없다. NC가 물 좋다고 소문나면 손님은 몰릴 수 밖에 없다. 저 옛날 소년들 롤스로이스 뜬소문처럼 손님 가려서 받는 경우도 없지 않다. 회원제 고급 사교 클럽의 기준선이 고무줄이면 그게 과연 고급인가, 군번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선착순이나 꼬리 자르기가 거기서도 통하나, 따져보지 않을래야 따져보지 않을 수가 없다. 요즘 세상 정보는 많고 시간의 흐름상 세계는 평평해지기까지 했으니 그리 쉬쉬할 일도 아니다. 좌우지간, 정치라는 간접 민주주의에서 승부는 피할 수 없기 때문에 국내 정치는 주로 국내용으로,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내 한마디는 전세계로 퍼지고 전부 기록으로 남는다는 점을 유념할 것, 그리고 국제 정치는 질서 있기를. 또한 일반인은 이권에 따라 들쑥날쑥한 형식적 뉴스에서 자유롭고 이성적이어야 본인한테 이롭다는 걸 잊지 말자. 지나간 일은 지나간 대로. 게다가 반세기, 1세기 전의 일들에 대한 얘기가 간혹 보고 들리더라도 선거권자와 피선거권자의 정치관은 다를 수 있다는 걸 알면 된다. 그걸 알면 되고 현재를 살며 미래로 나아가면 그뿐. 더구나 진보니 보수니 각종 헤드라인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사람은 몰라도 보통 사람들은 도덕적 우위니, (개인의 의도와는 달리 정치적으로 학습된) 지역 감정이니, 정서적 괴리니, 그런 거 없다. 그에 대해서 대표적으로 국경의 안이 국경의 바깥보다 다소 덜 민감하고, 역사적 사실에 대해 1세기전보다 10세기전이 훨씬 자유롭다. 하지만 단지 그뿐! 역사를 그대로 반영한, 허구가 적절한 정도로만 가미된 사극이랄지 TV를 통해서도 끊임없이 배웠고, 배우고, 배울 일들이다. 반세기 안에 쿠데타에 따른 계엄령이 어느 도시에 선포되어 크고 작은 핍박이 있었더라도 지금은 국경 안에서 지역에 따른 묵은 감정은 거의 없다. 사람들은 자유롭게 왕래하고 교류하며 아무 거리낄 게 없다. 또 국경을 넘어서 여행을 하더라도 뉴스로 보이고 소식으로 읽히듯이, 소문에 들리듯이, 드뷧시와 라벨의 인생 후반기 즈음에 발생했던 일들에 대해서 낯선 여행객과 현지인이 묻고 답하고, 세계관과 인생론에 대해서 논한다? 그러고 싶은 사람은 없다. 외적으로 깍듯이 마음으로 극진히 대접하기는 어렵더라도 최소한 불손함, 무례함, 사소한 실수를 일부러 벌이고 싶어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다만, 만약 있다면 대표적으로 그런 일은 있을 수 있다. A지역에서 챔피언스리그 경기가 있는데, B국적 팬이 살며시 휘두른 몸짓에 C국적 팬의 표정 특히 살짝 움찔한 모습이 어디에 대서특필되었다더라, 그런 일은 있을 수 있다. 언론에 나오듯이 어머 저곳에 가면 우리를 싫어한다더라? 뭔가 어떤 해명을 요구한다더라? 그런 일은 없다. 드물게 내부의 문제가 있을 수도 있지만 사찰에 인사하는 정도의 정보와 지식일 뿐이다. 당장은 모를 수 있어도 엄살에 기우였음은 나중 명쾌히 판명난다. 말러의 우월감에 따른 포부 가운데 오락산업은 딱 어느 부분만 발췌하고, 선량한 일반인의 소심한 귀는 움찔하며, 들리니까 순진하니까 그럴 수 밖에 없으니까, 괜히 멈칫 하는 게 거의 전부다. 내가 굳이 몰라도 당사자들이 합리적으로, 시민의 대변인들이 합당한 관례에 따라, 미래를 위해서 현재의 당면 과제를, 실제로 잘 처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숫자가 많아졌다 적어졌다 그럴 수는 있어도, 약간의 빈부와 문화적 차이는 있을지라도, 서유럽에서 동유럽으로 휴가를 가고 남미에서 북미로 여행가는 시원한 예와 작은 지역적 왕래는 다를 거 하나 없다. 지금은 시대적으로, 세계관-인생론-장르와 더불어 개인의 행복을 우선으로 중시하는 세상이 됐다. 역사의 한계는 문화와 예술로, 10년이 지나면 강산도 변하는 만큼 내 친구와 추억을 회상하거나 교류하고 구경하거나 같이 놀고 싶지 해묵은 사과와 언제적 마권빚의 요구는 누구도 반갑지 않다. 그걸 누가 모르랴. 모를 리는 없다. 그럴 수는 없다. 단지 오락산업의 달갑지 않은 삭풍에, 따사로운 훈풍에 그만 나도 모르게 휘청일 뿐. 더 나아가 국제 뉴스조차 국내에서 먼저 스스로 잘 돌아가는가, 자성을 빠트리진 않았나, 여러 덕목에서 제일 뒤쳐진 항목은 무엇인가, 그처럼 무엇보다 1차적으로 내부의 진단이 먼저다. 하지만 정치의 범위는 넓고 이익은 상호 충돌되는 게 당연하다. 그리고 안정된 삶을 기반으로 경제성을 최대로, 정치를 최고로 앞다투어 보도하고, 사회의 풍요로움을 추구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한다. 그 일을 하는 집단이 최소 수백이고, 오락산업과 소셜 네트워크로 소식은 만방에 퍼진다. 무역은 복잡하고 세계 증시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세계 지도에서 무선과 유선으로 연결된 선이 어느 정도인지 알면 알수록 까무러친다. 이미 우리는 한배를 탄 이웃이다. 때문에 오늘은 뉴스가 없습니다, 지금은 절대 그럴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다. 작은 장난감? 의미 없다. 전혀 없다. 그걸 넌센스와 코메디로 인식하지 못하는 일이 비일비재함으로써 오락산업의 건재함은 항구하다. 단지 의미가 하나 있다면 그거다. 어떤 축약어와 새로운 분야를 창시했으나 후세에 본격적으로 인정 받은 어느 후작 나리의 이름을 부르는 발성이 비슷하다는 점. 소란스러움은 물론 일종의 연극일 수도 있다. 현실과 가상 현실은 점점 더 친밀해질 수 밖에 없으니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말이 되지 않으니까. 그래도 그렇지 어느 지상의 레이더에 대한 뉴스가 그렇게나 많이? 오늘은 뉴스가 없습니다, 그때와 완전 정반대다. 그러면, 그러면 우리 다 같이 레이더를 끕시다? 말이 안된다! 나는 레이더를 켜고 너는 레이더를 꺼야 한다? 말이 안된다! 평시인 지역은 레이더를 켜고, 전시인(휴전도 전시다) 지역은 레이더를 끄시오? 말이 안된다! 게다가 같은 체급인 공룡에게는 말하지 못하니까 장난감 레이더는 꺼야 한다? 말이 안된다! 다 같이 보고 듣는 걸 보지 마시오 찍지 마시오, 그러면 보지 않고 찍지 않나? 말이 안된다! 하늘에서 우리를, 꼭 우리만은 아니겠지만 우연이든 어쩌든 찍지 마시오? 말이 안된다! 종교의 자유는 없다 고로 무엇을 믿지 말라? 그건 타임머신의 문제! (제일 중요한 것) 무엇보다 하늘나라에서 우리를 내려다 보지 마세요? 말이 안된다! 조물주가 있을지 없을지, 내세가 존재할지 존재하지 않을지 그건 모르는 일이다. 딱 하나만 고를 수도 없다. 왜냐하면 1-1, 1-2, 1-3 그렇게 파생된 분파가 부지기수이기 때문이다. 말도 못한다. 그와 관련된 제반사를 지구상에서 제일 많이 겪은 곳이 어디냐? 단연 유럽이다. 한마디로 그것에 관한 선험자는 유럽이다. 당연히도 선험자가 있으면 후발주자도 있다. 신앙의 문제만 그런 게 아니다. 정치는 물론이고 발명, 탐험, 사회 체계, 하물며 공룡간의 관계까지 전부 다 먼저 겪었다. 자, 그런데 규모가 지구 반대로 넘어왔다. 세기가 지나니까, 내부적으로 말이 나온다. 쉽게 말해 아 피곤하네 라고. 울타리 바깥도 좋지만 정작 중요한 건 내부 아니냐고. 거기서 끝이 아니다. 새로운 후발주자가 올라오면 또 누군가는 내려갈 수 밖에 없다. 연합에서 누가 탈퇴하기도 한다. 그 흐름으로 일정 기간 간다. 그럴 것이다. 하지만, 대체로 빅3법칙은 통용되지만 언젠가는 바뀐다. 영원한 건 없다. 큰손이 나타났다? 처음도 아니다. 한 국가가 세계 총생산의 반틈이던 때도 있었고, 처음으로 서구사회에서 조용한 지역의 손님이 물건이 왜 이리 싸냐며 환영 받던 때도 있었다. 무슨 일이 있으면 그건 완전한 새로움보다는 반복과 변형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시시때때로 세계뉴스의 쟁점으로 뭔가가 우뚝 선다. 단독 1등으로. 오락산업은 들끊는다. 세계는 거미줄처럼 얽혀있어서 또 이미 경험으로 알기 때문에 첫째 '외교', 둘째 '다큐멘터리 논리'에서 첫째를 절대적으로 선호한다. 충분히 제값을 치렀으니까. 최소 2000년의 경험으로 말이다. 역사적으로 공룡들이 소란도 많이 일으켰지만 대부분의 인류 발전을 이끌었다. 희생도 많았고 소득도 많았고 변화마저 많았다. 그게 아니면 인류는 발전할 수 없었고, 남자가 늑대가 아니면 인간은 벌써 종말했을지도 모른다. 대표적인 발명과 발견과 창조들만 예를 들어보자. 원소기호, 전기, 전화? 인터넷? 라이트 형제? 병원에 가면 어떤 흉상이 있나? 법원에는? 미술학원에서 아그리빠 그려보지 않은 사람? 그리고 피타고라스, 뉴턴, 찰스 다윈, 아인슈타인, 피가로의 결혼, 모나리자, 동물농장, 산업, 양복, 과학, 스포츠 그리고 인문학 등등 끝도 없다. 누군가 후발주자로 공룡 클럽에 가입한다면 경제와 규모도 좋지만 무엇보다, 존중이 아닌 존경을 받아야 한다. 존경해 주라고 요구를 했네 어쨌네, 그런 뜻으로 하는 말이 아니다. 하늘에 맹세코! 그래도 곡해할 사람은 다 하겠지만. 국제사회만 그런 게 아니다. 동네에서도 그런다. 사는 형편이 풀려서 이사를 간다고 가정하자. 도착했다. 좋은 동네다. 뭐 하나 빠질 게 없다. 서로 약간씩은 빈부의 격차가 있을 수 있다. 그렇더라도 교양과 상식과 인성과 서로 말이 통하고, 그런 재산 외적인 면이 먼저다. 동네의 수준이 풍요롭고 비교적 일정하기를 바라지 동네에서 나 혼자만 잘 살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상인이 큰손을 반기는 건 당연하나 속으로 진짜 반가운 큰손은 따로 있을 수 있다. 차라리 점잖고 불손하지 않은, 몰락까진 아니어도 몇 계단 내려간 귀빈을 좋아할 수도 있다. 상업의 다양성도 유럽이 먼저 겪었다. 빙 둘러서 다 다른 나라 다른 사람들이니까, 상인은 최소 5개국어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어족도 비슷해서 할려고만 하면 10개국어도 문제없었다. 동네의 구성원으로 지성인이 있으면 예술인도, 유니폼을 입는 사람도 있고 적당히 구색이 갖추어지기를 바라는 게 정상이다. 그래서 지금은 세상을 지구촌이라고도 부른다. 아직도 얼마나 더 좋아질지 알 수 없다. 괜히 엄한 옆길로 빠졌다만 뭔가와 그 모두가 한 편의 연극이기를! 다시 돌아가자. 장래, 어차피 예측은 그거다. 스티븐 킹의 언더 더 돔, 어떤 위성, 레이저, 평화 협약, 국제사회의 노력 그리고 스타워즈! 그래, 스타트렉 같은 SF. 최소한 기술은 그쪽으로 갈 수 밖에 없다. 지금은 어느 언어가 세계적으로 유행하거나 냉대 받고, 포르투갈 제국과 스페인 제국이 경쟁하던 그때 시절이 더 이상 아니다. 시대적으로 보자면 실질적인 제국들의 전성기는 끝났다. 역사책에 등장하고 이미 건조해진 사실일 뿐이다. 미래에 새롭게 펼쳐질 토너먼트가 어떤 모습일지는 몰라도 신식이 아닌 고전적 제국 시대는 이미 종료됐다. 존경이란 낱말이 나왔으니까 말인데 앞서 언급된 브랜드는 모두 창조와 선점, 발명에 관한 이름이었다. 그렇게 보자면 그 브랜드는 거의 끝물이다. 아쉽지만 고전음악의 제1전성기가 종료된 것처럼. 성적 조화도는 운명적인 상대를 만날 가능성이 있다. 살면서 상사병을 경험하는 기이한 행운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고, 최고의 사랑마저 그 끝은 모르는 것이다. 사랑은 지금은 모르는 것이니까. 사랑마저 시대의 평가라고? 웬걸! 하지만 인생과 달리 인류 역사를 보자면 세상에 존재하는 제국은 박물관과 사극쪽으로 넘어간지 오래다. 벌써 까마득한 옛날에. 남은 건 전통과 존중과 상식, 문화, 뉴스 같은 것뿐. 세계사에서 이제 사람으로써 유명해질려면 돈이 엄청 많던가 재능이 독보적이던가, 대국으로써 손꼽힌다고 해도 로마 제국보다 번영은 월등할 수 있어도 영광이 월등하기는 어렵다. 미래의 시대적 요구가 그렇다. 그렇다고 제국 전성 시대로 돌아갈 수도 없다. 선발대는 여러 브랜드 가치와 제국의 시대는 물론이요 그에 따른 눈부신 영화를 누렸다. 하지만 근대로 들어오면서 후발주자의 광영을 드물게 누릴 수 있을지언정 선취할 수 있는 영역은 매우 제한된다. 존경에 걸맞는 가치가 발견될 여지도 많지 않다. 공룡들도 포화 상태다. 남은 건 시장 경제와 오락산업과 그에 발을 반쯤 걸친 예술뿐. 나머지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유행 따라 사랑 따라 웃고 우는 희(비)극일 것이다. 그래도 새로운 손님에 대해서라면 새로운 제국의 광휘보다는 아마도 혁명을 반겨할 것이다. 그것만이 어쩌면 최고의 기대주다. 가령 산업 혁명 같은 것. 하지만 그건 자주 오지도 않고, 서서히 동시에 급속도로 현실화될 것이다. 그러므로 시간의 형편에 따르자면 지금 그리고 미래의 형세는 딱 그런 모양에 가깝다. 공룡들이 독서실에 오손도손 모여 앉아 실험, 연구, 공부를 하는 모습. 힘이 남아돈다. 완전 남아돈다. 국대대표 상비군도 세계 챔피언도 의무방어전과 축제 때 으쌰으쌰하는 분위기를 빼놓고는 달리 왕성한 정력을 쓸 곳이 없다. (그러니까 그 독서실이 대체 어디에 있는 거요? 그건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그럼 설마 1층에 아주 미세한 개구멍이? 흐흠, 원 별말씀을!) 따라서 후발주자가 추구해야 할 목표와 모토는 분명해진다. 한편, 공룡들을 친구들로 비유할 수도 있다. 그러면 한결 이해가 쉽다. 내가(그대께서) 만약 후발주자라고 가정해 보자. 나는 늦었다. 하지만 대기만성형이지. 그래서 나도 예전 친구들처럼 폼도 잡고, 멋도 찾고, 사랑도 하며, 존경도 받고 싶다. 소망과 대망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래서 이뤘다. 꿈과 사랑과 야망을. 행복도 풍요도 모두 다 가졌다. 그런데 지금은 더 이상 유년 시절이 아니다. 따라서 각자 사느라 바뻐서 얼굴 보기도 힘들다. 밤이나 낮이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회상만 하며 살 수도 없다. 인생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고, 삶의 즐거움을 위해 취미도 바꾸고, 미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싫어도 선구자와 예언자 그리고 잊었던 꿈을 되찾아야 한다. 시간은 한정되어 있으니까. 가진 건 돈 밖에 없어, 라고 농담할려고 해도 사려 깊게 들어줄 사람은 명-바텐더 밖에 없다. 그래, 단골 술집. 반짝반짝 딸랑딸랑 깜빡깜빡 들어줄 사람은 뭐 셀 수도 없지만. 이제 존경은 상당히 제한된 자원이라서 흔하지가 않은 것이다. 그렇다고 내내 반성만 할 수도 없고, 뒤만 돌아다볼 수도 없다. 제국의 목록에서 1900년 이전에 속하지 못했다는 것은 곧, 공룡계의 후발주자로써 전성기와 명예를 누린다는 말과 같다. 그런데 존경은... 그건 글쎄요, 언급하기 조금 애매한 개념이 아닐까요? 인간에 대한 존엄성과 문화적 존중과 달리, 존경이란 뜻은 글쎄요. 그건 어쩌면 쉽게 흉내내기 어려운 개념일 수도 있다. 제논의 역설! 사물이 움직이고 있다고 우리가 느끼는 것은 모두 환상이라는 파르메니데스의 사상을 지지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는, 제논의 역설처럼. 존경의 문제 또한 제일 먼저 겪은 곳은 어디냐? 단연코, 유럽이다! 세상 소식을 접하다 보면 도의적으로야 좋은 소식이지만 개인적으로 간혹 그런 생각이 든다. 어떻게 저렇게... 뭐 그런 일들은 당사자가 되어 보지 않으면 모를 것이다. 그게 다 존경의 문제마저 많이 겪었기 때문 아닐까? 시장 논리에 근거하여 규모로 압도하고 산업으로 이끈다지만 그게 어떻게 하루 아침에 같아질 수 있을까? 넌센스다! 인류는 순진하게 액면만을 증거로, 재미있게 포커페이스만을 근거로, 아름답게 성선설이라는 신뢰만으로 낙관적인 미래를 기대할 수는 없다. 세상의 어떤 방패도 뚫을 수 있는 창, 그 어떤 강력한 창도 모두 막을 수 있는 방패, 창이 짧든 길든 방패가 여기 있든 저기 있든 세상은, 이 세상은 동화가 아니고 어른은 아동복을 입을 수 없다. 종교를 믿고, 정치를 하고, 환상머신을 발명하는 건 개인의 자유다. 다만 내세의 패자부활전이 어떻게 될지는 누구도 모른다. 따라서 인간은 이기적으로 살되 선의 실천을 염두에 둬야 한다. 적어도 타락한 천사가 되거나 악마의 꾀임에 넘어가는 우를 범하더라도 어두운 시절을 잘 헤쳐나가야만 한다. 특히 정치인. 개인은 대체로 개인 혼자 또는 범위가 좁은 문제일 테지만, 정치는 그것이 만약 잘못됐을 때 전혀 다른 양상을 띄기 때문이다. 옆에서 딸랑딸랑 앞에서 깜찍깜찍 반갑게 굽실굽실 정답게 깜빡깜빡, 어쩜 천재라는 어른들이 철없는 애들보다 더 할 수도 있다. 펄럭펄럭 팔랑귀로 하늘을 나는 만화영화의 푸른 코끼리는 다름 아닌 어른이니까. 그렇게 보자면 차라리 애들이 낫다. 식스 아이? 워워워, 뭔가 있어 뭔가 있어! 제51구역? 혹시 몰라 혹시 몰라! 그러면 옆에서 어른이 거든다. 아 정말, 늬들이 제일 문제야~ 라고! 어른이나 애나. 어머나 그런데, 완전 딱 중요한 순간인데 불쑥 것도 하필 딸이 번개처럼 나타나네, 아빠 뭐해? 그러니까! 아무리 그래도 보통 사람들의 마음에 정치는 반갑고 달갑고 사랑스럽기 어렵다. 행동과 결과와 전력이라는 정치인의 기록이 아닌 현재의 청량음료 같은 말. 곧 정치인의 광고는 잠깐 시원하고, 잠시 피식하든 어이없든 어떻게 저런 헛점을 찾았지 라며 그래서라도 웃고, 몸에도 좋지 않는 데다가 노상 진공청소기에 근접하긴 어렵다는 걸 잘 알지만, 오락산업의 마법 같은 흡입력에 얼마 만큼 내 이성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가! 관건은 거기에 달렸다. 피선거권자는 정치라는 분야에서 할 일을 했고 할 말을 하니까─안 해도 될 말을? 그건 싫지만, 다소 거북하고 불편하지만, 정치공학과 정치론과 정치인 브랜드 관례에 위배된다─거기서부터는 전적으로 선거권자의 몫이자 책임이다. 정치계가 잘못 돌아간다? 그건 결국 시민의 잘못이라는 걸 잊으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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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미는 환상 문학 잡지 미스테리아의 편집장 마라의 초청으로 그곳 사무실로 갔다. 언제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그는 마라와 실비아를 잘 구분하지 못했다. 안면 인식 장애 뭐 그런 수준은 아니지만 그는 그랬다. 마라를 실비아라 부르고, 실비아한테 실비아를 괴롭히지 말라고 부탁했다. 그렇지만 그가 미스테리아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 그곳 감투를 둘 중 누가 쓰고 있는가는 알 수 없었다. 도착해서 보니 아무도 없었다. 와서 놀다 가라는 빈말을 참말로 알아들었던 게 문제였다. 그러니 당연히 이름을 바꿔 부를 일도 없었다. 간곡한 부탁이라면서 말은 본사에 일이 있어서 갔다지만 지미의 역할은 확실했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었다. 바로, 집 지키는 외로운 개! 주인은 보나마나 빨빨거리며 쇼핑에, 파티에, 극장식 카바레는 물론 명사를 초청한 어느 조찬회까지 즐기고 있겠지. 이런 최초의 하늘색과 표정을 바꿔주는 다홍색이 교차하는 듯한 현실을 그는 미리 예감했을까? 못했다. 예지몽엔 소질이 부족하고 항상 생각은 거기에 가 있으니까. 장점 본뜨기. 좋아 보이는 건 다 베끼기. 그래서 내 걸로 만들기. 그건 괜찮다. 지성을 따라하고 예능을 벤치마킹하는 건 괜찮은데 그게 아니라, 예를 들어, 예는 들지 말자. 굳이 그럴 필욘 없으니까. 어쨌든 그는 정말로 일기장에 전날 이렇게 써놨다. 「나는 무도회에 염증을 느꼈고, 사교계에 종지부를 찍었다. 하지만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밤12시 종이 울리기 전까지 황금의 호박마차를 만들어야만 하니까. 이미 눈치채셨겠지만, 맞다. 앞서 섣불리 거들먹거린 허세는 모두 뻥이었다.」 사교계에 뭘 찍어? 지가 무슨 안나 카레니나라도 되는 줄 아나! 그야 어쨌든 지금 상황을 보아 하니 지미는 쓸쓸한 시녀임에 틀림없었다. 미스테리아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 딱 정황이 그랬다. 장 마리 르클레어의 5번 소나타가 연주되고 있었고, 조촐한 파티의 흔적이 역력했다. 승리를 누리기 위한 샴페인이라는 돔 페리뇽 몇 년산, 한정판 최상급 발렌타인, 물론 빈병만. 그리고 멋진 카지노칩과 트럼프 카드. 마라가 앉는 의자에는 디올 옴므 블루종이. 그런데 마라가 왜 남자옷을? 연애하나? 하던가 말던가! 또 몽블랑 만년필과 듀퐁 라이터까지. 여기서 뭐 패션 화보라도 찍었나? 뒷정리 깔끔하게 해 놓고 너는 글을 쓰거라 우리는 인생을 즐기시겠다? 사람을 뭘로 보고... 치우나 봐라, 라고 그는 생각했다. 설사 지금 착상이 떠올라서 작품을 쓴다고 해도 그건 보나마나 별 볼 일 없을 것이다. 듣기에 거북한 세평, 읽기에 한심한 투정, 보기만 해도 상상되는 응석, 차라리 그게 나을 것이다. 오히려 무관심보다는. 현실은 그랬다. 미스테리아 팀은 판타지 그는 푸념. 그럼 다음은 험담? 친구는 있는데 우정은 궁색하고, 여심은 내 손바닥 손금 보듯이 훤히 꿰뚫어보는데 정작 인기가 없었다. 추억은 다 써먹었는데 전망은 암담했다. 예나 지금이나 늘 이런 식이다. 주인공은 그런다. 이런 식이라면 곤란하다고. 하지만 그건 영화고, 이건 허황된 대망의 형벌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쉽고 간단히 생각한다? 반평생은 우정만 반평생은 사랑만? 둘 다 신통치 않다. 이 난국을 빠져나올 타개책도 떠오르지 않았다. 의지와 탐욕마저 빈약했다. 머머를 하고 싶어 애가 탄다, 열렬히 애원한다, 간절히 갈구한다? 눈만 껌뻑껌뻑 뜨면서 매정한 영감만 기다릴 뿐 미스테리아나 잘 지키다가 돌아가자, 라고 생각했다. 표현할 길 없는 기적은 커녕 반가운 연락마저 바라지도 않았다. 어차피 전무할 테니까. 지미는 그러다 미스테리아 사무실 소파에서 TV 채널만 한 골백번 돌리다가 낮잠도 잤다가 재미없다며 사무실을 나갔다. 달리 할 일도 없었고 약속도 없었다. 그래서 그냥 집에 들어가기는 뭐하고 잠시 찻집에서 창밖이나 바라보자 라면서 어느 찾집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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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미는 카페에서 일을 하기는 했는데, 번뜩이는 착상이 잘 떠오르지 않았다. 자꾸 옆에서 이상한 얘기를 하길래 집중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런데 가만히 듣고 보니 나중 미스테리아 연애 컬럼의 다음 주제로 삼아도 될 얘기인 것 같았다. 그래서 그는 서둘러 중요 내용을 메모하면서 안 듣는 척 세심히 엿들었다. 옆 탁자에서 하는 얘기의 화제는 사랑이었다. 그런데 그게 말이야, 육체적 사랑. 들리는 말로 좀 더 심층적으로 파악해 보자면 속궁합. 옛날 세대랄지 지역에 따라 얼굴을 붉힐 화제일 수도 있으나, 그것은 친한 사람들끼리 하는 얘기라서 대화는 스스럼없었다. 어조는 비교적 조용했고. 그는 일부러 엿듣고자 하는 의도는 없었지만 첫째, 청각이 발달한 점. 둘째, 귀가 쫑긋 하며 움직였다는 것. 잘 하다가는 저 파란 하늘을 날 수도 있을 것만 같았으니까. 셋째, 좌우지간 그냥 들렸다는 점 곧 상대방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고로 생각하기에 따라 심각한 결례가 될 수도 고마운 촌극일 수도 있다는 점, 쉽게 간과할 수 없었다. 내용은 별거 없었다. 허영심이 부풀었다 쪼그라들었다, 인생에 서툴렀다 원숙했다가, 허풍쟁이한테 많이 속았다가 다시 그분을 쥐락펴락했다가, 그처럼 세상을 아는 그녀들로 보였으니까. 반면 내용은 특별할 거 없지만 그녀들과 달리 유난히 들뜨고 소란스러운 걸로도 모자라 발랄한 분위기에 딱 마음을 빼았긴다면 그건 몸에 비해 마음이 미성숙한 숙녀 아닐까? 홍조, 최소 1.5옥타브 올라간 음성, 말의 빠르기가 증가하고 발언권이 부쩍 늘며 표정마저 따사로워지는 몇 가지 변화들. 그런 주제에 대해 시시콜콜 자세히 알려주는 건 잡지의 의무이자 통속소설의 특권이다. 유행에 민감하건 분주한 속세에서 최대 3일을 못 버티고 한적한 장소로 피신하건 어쩌건 이때 진면목은 드러난다. 그녀는 촌년일까 아닐까, 그이는 백조의 품위도 청춘의 패기도 남아의 배짱과 예술적 지성미까지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는 걸 보면 신사같지만 통 그 속을 모르겠다, 그이는 대관절 어떤 조류일까, 펠리컨? 공작새? 넙적부리황새? 타조? 파랑새? 촉새? 앵그리버드? 뱁새? 제비? 잠깐만, 파리는 아닐 테고 뭐야 혹시, 설마 촌닭? 어떤 사람과 어느 대상에 대해서 판단할 근거가 일정 분량 이상 드러난다면 정체는 파악하지 않을래야 파악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그에 관한 대본은 드라마 시청이랄지 오락산업의 풍요로써 충당하고, 여기서는 짧게 요점만 확인하고 넘어가자. 왜냐하면 시시콜콜한 대화도 재밌지만 주제 자체가 수다로 넘기기엔 적잖이 진중한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절대 못해서 그러는 게 아니다. 물론 한때는 대화가 안 써지네 어쩌네 그랬는데, 흐름이 바뀌면 또 대화만 써지고 막 그런 측면이 있긴 하지만. 하여간, 당대 최고의 위대한 수필가랄지 현존 최고의 예술가들께서 이미 말씀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최고라는 수식어는 단지 립서비스일 뿐이지만, 그분들께서 정녕 진짜로 최고라면 이미 언급을 했어야 맞다. 그게 옳다. 아니면, 긴말 생략하는 걸로. 인구 몇 명당 한 명의 천재랄지, 한 달에 한 번 태어날까 말까 하는 불세출의 기인에 의해 탄생한 유행이 아닌 이상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 모두는 100퍼센트 촌스러워진다. 옛것을 지금 보면 웃기긴 웃기지만 동시에 얼굴도 빨개질 수 밖에 없는 것. 그래서 창업에 민감한 업계에서는 알게 모르게 나이를 많이 거론한다. 고품격 관점에서는 고전주의적 생활과 존 업다이크를 광고용으로 쓸것이냐를 구분하듯이. 소년은 무엇을 하며 놀고, 십대는 사진도 잘 찍지 않고, 스무 살 친구들은 생각이 어디 가 있는지 도무지 모르겠다는 어른들. 그분들을 젊은 친구들이 보면 완전 말 그대로 어른일 뿐이다. 어른은 어른인데 또 거기서 구분이 된다. 어른 본인께서 좋든 싫든. 최신 유행가? 몰라도 된다. 알면 아저씨가 아니고 모르면 아저씨고, 그런 거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정작 소중한 알맹이와 포장지를, 내 다리와 남의 다리를 간명하게 구분할 수 있는가, 철들었나 철들지 않았나는 관심도 없지만 내가 지금 친구와 있는지 아니면 전혀 동떨어진 친구들과 있는지, 분간은 해야 한다. 어른은 그 정도는 안다. 해야 한다. 그렇지만 말은 하지 않아도 언제 어디서든 평가는 피할 수 없다. 정육처럼 몇 등급, 장르는 뭐, 성격 판별 기준 몇 가지 항목은 어떻다고 대번에 사람들은 그 모두를 판단한다. 그게 싫어도 비록 범인일지라도 듣자마자 대번에 안다. 어쩔 수 없이 느낀다. 사상이나 이론은 어렵지만 누구나 생각을 하고, 의식이 모인 동질감이 있으며, 개인적으로 말은 안 해도 느낌은 남고, 그 밑에 더 더 밑에 무의식이 있다. 거기에 그 모두가 다 쌓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주제가 잠깐 옆으로 샜는데 다시 돌아와서, 옆 탁자의 화제에 대해서 지미는 그걸 생각했다. 옆 탁자의 화제를 한 단어로 압축하자면 <속궁합>. 그걸 듣고 지미가 연상한 단어는 '길티 플레져'. 왜냐하면 전자와 후자의 주제 역시 언어별로 정확히 1단어냐 2개 단어로 대신하냐, 그 차이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성적 조화랄지 성적 어울림을 뜻하는 전자가 1단어로 존재하는 언어는 후자를 2단어로 표현하고, 그 반대던지 뭐 그런 몇 가지 경우가 있을 것이다. 여기서 대화를 허구의 중심에 놓는 사례는 흔하니까 이번에는 달리 가자. 색다른 허구에서 인문-교양학을 흉내내는 것도 나쁘진 않을 듯 하니까. 이 때 대화 흐름에 대해서 추측하지 못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렇든 아니든 시작은 똑같다. 성적 조화가 중요하냐. 얘기가 길든 짧든 그 주제는 살짝만 다르게 거듭된다. (오직) 성적 조화만 중요하냐로. 또 대게 결론은 똑같다. 사랑의 행위는 육체적 사랑과 플라토닉 러브의 결합이라고. 하지만 남자는 늑대 여자는 여우, 어린이용으로는 동화 어른은 멜로인 것처럼 인생을 살아 보니 플라토닉 러브가 약자인 경우가 적지 않다는 걸 어른들이 모를 리는 없다. 왜냐하면 사실이 그러니까. 그런 얘기를 듣고 싶어하면 약간 모호하게 말끝을 흐리는 어른도 계실 것이다. 누구나 천부적 재능은 평범할지라도 어른이 된다는 것, 그건 곧 세상에 대해 거의 모른 게 없을 정도로 천재가 된다는 것을 뜻한다. 맞다. (하지만 너무 좋아하지는 말자. 왜냐하면 그 말은 곧 어른은 달리 보자면 아주 꽉 막힌 사람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여지가 아예 없는 건 아니기 때문) 그렇다. 어른은 천재다. 그런데 너도 천재 나도 천재인데, 유행가와 연극과 예술계는 물론 모든 대소사의 그 어떤 주제로 영원한 단독 1등은 사랑인데, 사랑만이 독보적인 인기를 구가하는데, 왜 어른들은 웃지 않고는 결코 못 넘어가는 것일까? 사랑은 없어, 라는 말을 듣는다면! 뿐인가, 몇몇은 상상만 해도 웃는다. 몸이 어른이고 돈도 많고 말까지 많은데 그냥 대개 보면 말만 많은 경우가 적지 않다. 참신한 교훈은 찾기 힘들다. 새로운 의의와 색다른 가치도 알고 보면 신선하지 않다. 그건 곧 누구나 다 아는 뻔한 얘기다. 남편이 그런다. 부인이 얘기할 때. 이 사람은 정말, 진짜 말 많다고. 낯선 이방인과 지인들이 모인 자리에서. 그 말을 처음이 아니라 오래도 했을 것이다. 그런 말을 듣는 여인은 진짜 말 많은 거다. 그런데 말만 많은 거다. 옆에 있으면 꽤 피곤해진다. 왜? 에너지가 빨리니까! 성적 어울림, 지인끼리 친구끼리 화기애애한 화제로 삼기에 그것이 가끔일 때 꽤 무난하다. 물론 친할 때만. 그런데 그에 대해서 얘기는 많은데 얘기만 많다. 글도 똑같다. 다 똑같은 얘기다. 정치도 똑같다. 항상 같은 말이다. 안 똑같은 게 뭐가 있을런지. 걱정도 팔자다. 진부함은 그럭저럭 뭔가가 잘 돌아간다는 반증일 수도 있음. 그렇긴 하나 진짜로 요즘은 특수 아닌 게 없고, 한정판도 흔하다. 각설하고 저 주제에 대해서 지식과 경험과 개인적 취향을 모르는 사람은 없으니까 간결하게 결론을 내리자면 이와 같다. 첫째, 인지심리학 및 행동경제학적으로 보자면 그렇다는 것. 첫 번째 남자(여자), 두 번째 남자(여자), 세 번째 남자(여자)... 그렇게 최소 1명에서 남녀 공히 100명을 만나서 최고의 성적 결합도를 보인 사람과 결혼하는 게 좋을까? 절대, 아니다! 왜냐하면 그럴 수는 없기 때문이다. 가령 편의상 스친 인연을 다 숫자로 봤을 때 5번이 제일 나았어, 그런데 현재의 이성 순번은 50번이야, 게다가 50번은 다른 건 몰라도 성적 조화로써 예상 수치가 최저다 또는 경험적으로 최하다, 그러니까 5번에게 돌아가겠다? 다시 그때로 돌아가서 5번을 만나고 싶다? 지금...와서? 그러면 5번께서 퍽이나 좋아하시겠다. 오오 내 님이시여 이제 오셨나이까, 하고서. 경우의 수는 많고도 많다. 만약 사랑의 경험이 느는 것과 거의 비례해서 어머나, 성적 조화도의 기록마저 계속 갱신된다? 좋은 사례도 있겠지만 때로는 인생 피곤해질 수도 있다. 그처럼 생애가 꼬일 수 있는 팔자를 타고날 수도 있지만, 후천적으로 판도라의 상자가 열릴 수도 있다. 바로 이 때문에 여자는 여성잡지1에서 2로 넘어갈 수 밖에 없다. 그런데 남자는? 남자는 그런 구분 없다는 걸 잘 아시지 않나요. 기억난다 기억나. 어느 허접한 괴짜가. 젊어서 런닝머신 파는 일을 했고, 친구를 대마왕이라 부르면 다시 단짝으로부터 머신이라는 애칭을 받고, 주거니 받거니 잘들 한다, 지금은 환상머신이라는 소설을 쓰신다는 그 누군가가 기억난다. 이러니까 청초한 숙녀는 그런다. 나는 우리 오빠랑 그냥 포근히 안고 있을 때가 제일 좋아 라고. 남자는 (여전하시겠지만) 사춘기와 몽정기와 스무 살의 왕성한 그 뭔가를 기억한다. 그런데 여자는? 긴긴 고비를 잘 넘든 어쩌든 먼 나중 그런 말만 듣고-하지 않으시기를. 난(넌) 우리(늬) 남편을 잘못 만났지, 난(넌) 남자를 잘못 만났어 라고. 물론 여자가 하고 듣는 말이다. 그럼 남자는? 남자 중의 남자라면 그래야 하지 않을까요? 친한 친구에게...... 쉿! 누가 듣겠다! 무덤까지 가지고 가야만 할 비밀이니까. 달콤한 사랑 노래들이 아니라 일반인들의 수많은 사랑담을 듣게 된다면 나중 알게 된다. 언젠가 깨닫는다. 이때 완벽한 촌년의 말은 완벽한 촌닭의 말과 완전 똑같다. 세상에서 인생을 상대로 갖은 희노애락을 겪어보면 남자와 여자는 많이 비슷해지는 것일까? 아마도! 그러니까, 살다 보면 알게 된다. 사랑은 1인가 1의 초과인가를. 최고의 사랑 그 하나를 빼고 3명을 만났냐 3000명을 만났냐를. 늑대를 딱 10명만 만나고 나면 이제 남자도 알고 사랑도 아니까, 나는 곧 엄선해서 백마 탄 왕자님을 만날 수 있겠네? 잘 아시다시피 인생은 그렇게 녹록치 않다. 모르긴 몰라도 11번부터 늑대만 빼고 별의별 온갖 동물들이 다 등장할 수도 있다. 차마 예는 들지 맙시다그려. 안 그렇수? 더군다나 정작 본인이 불여우는 아닐런지. 당신께 있어 사랑이란, 그렇게 말하면 귀빈 귀에 피가 날지도 모르니까 딱 금은동 메달만 얘기해 주시겠습니까 그런다면, 그럼 나머지는 다 뭔가? 나머지는 뭐 다 신부 들러리인가? 엑스트라인가? 무엇은 사랑이고 무엇은 연습이었다, 심지어 거의 다 그냥 내 팬클럽? 나는 언제나 첫사랑이고 항상 첫키스를 위해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다? 어허, 대체 무얼 근거로 나는 사랑의 화신 당신은 밤의 황제라고 하시는지, 너무 아리송하네요. (딱) 자, 따라해 봅시다! 막간에 세비야의 이발사처럼 긴 거 말고 짤막하게 깜짝쇼의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짝─짝─짝! 거기 새침한 아가씨도 저기 도도한 숙녀분도요. 어서요. 네, 재미난 얘기를 해 드릴께요. 진짜로, 완전 기가 막히게 웃긴 아주 간단한 무언극을 펼쳐보일 테니까요. 네. 어서요. 자, 갑니다! 자, 따라하세요. 어서요. 자, 자, 활짝 핀 맨손을 들어 편편하게 눈썹과 평행하도록 이마에 가져다 대보자. 손은 가만 있는 채 턱을 쭉 빼고 머리를 살짝 뒤로 젖히자. 원래 턱이 나왔으면 감안해서 더 빼자. 자, 뭐가 보이시나요? 네, 저 멀리! 대체 뭐가 보이나요? 뭐겠나요, 바로 끝이 보이지 않는 전적이 아닐런지! 누가? 바로 그대! 남자와 여자의 차이는 이때 얼굴을 붉히느냐, 득의양양하느냐 그 차이일 수도 있음. 미소라는 건 같지만 웃음의 섬세함은 약간 다름. 그러니까 남녀의 사랑은 어떻게 보면 중요한 거 빼고는 성격만 다르다는 것. 여자의, 곧 내 미래가 궁금하신가? 필자는 그대 진정 사랑의 비너스가 될 자격이 충분하다고 장담하겠지만, 세상 경험 많으신 우리 상남자계의 대표 주자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하실 그분들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을런지. 엄마를 보라고! 그게, 바로, 당신의, 미래라고! 아닌 게 아니라, 만약 어떡하다 어느 머신을 일찍 만났다가 풋사랑만 알았는데 그게 적잖은 깨우침이었다, 그런데 금방 작별했다? 그러면 그녀는 살면서, 남자를 만나고 사랑(들)을 하게 되니까, 살면서 내내 무심결에 음... 그렇게 된다. 어쩜 벌써 잔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하, 어디서 그 짝을 찾을 수 없을 만큼 흥분된 얘기들이 들리는구나. 오오! 전후좌우 일부러 비교를 할려는 게 아니라 사람은 한번 알게 된 건 어쩔 수 없다.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 무언가를 알기 전과 후의 차이가 딱 그만큼이다. 이론과 실제가 얼마나, 왜 같지 않은지 참 아득하구먼유. 바로 그래서 점잖은 문사들이 그렇게나 식상한 말씀을 하고 또 하는 것 아닐까요? 선망, 동경심, 소망, 꿈, 성스러운 가슴의 눈물, 운명의 여신이여, 오오 정녕 여기까지란 말인가 나의 여복은(앗 이건 빼고!), 그처럼 말이다. 그런데 만약 모든 것이 최하인데 성적 어울림만 끝내준다? 그 만남은 쥐도 새도 모르게 해야 한다. 될 수 있으면 하늘마저 모르면 좋을 것이다. 지금 세상에 그게 쉽지는 않겠지만. 사극에 나오지 않나. 마님과 돌쇠의 사랑 같은 것. 원래 사랑이 그렇다. 제대로 빠져들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것, 그게 바로 사랑이다. 보통 단도직입적이고 목적이 분명하며 성과를 중요시하는 남성에 비해 여자는 비교적 간접적이고 은근한 걸 선호한다. 완전 그렇지는 않지만 말 그대로 비교적. 따라서 여자는 은근히 고조되는 사랑의 감정을 높이 사고, 은은한 속정을 사모하며, 남몰래 단둘이서 깊어지는 애정에 대해서 남자에 비해 비교적 열광하는 구미랄까 그런 심성이 있다. 일반적으로 짝사랑, 좀 더 승화되어 남몰래 한 사랑. 여자는 좋아한다. 무엇을? 몰래 한 사랑을. 백허그를. 자상함을. 하지만 몰래 한 사랑도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 몰래 하지 않으면 (절대? 될 수 있으면?) 안되는 사랑, 둘째 몰래 시작해서 그 애틋함으로 끝없는 사랑이 되는 것. 그럼 각자 어떤 인연을 만날지는 모르겠지만 논평은 간촐하다. 첫째는 머신의(기계적인? 동물적인? 말초적인?) 사랑, 둘째는 공식적인 사랑이라고. 맞다. 첫째는 별명의 사랑이자 비공식적 사랑이다. 첫째는 단기전이고 둘째는 장기전이다. 남자는 확실한 걸 좋아한다. 양을 쫓던가 핸드폰 가지고 놀던가. SF면 SF, 미스테리면 미스테리 그렇게. 확실한 코메디와 정확한 판타지를 남자는 좋아한다. 그런데 여자는? 여자는 좀 더 까다롭다. 남자가 0이나 1이라면 여자는 완벽한 0이나 1은 없고 1.5를 꿈꾸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마술적 사실주의 같은 거. 여자가 원래 어렵다. 그처럼 까다로우니 마초는 때로는 애달파하고 때로는 놀라워한다. 농담 반 진담 반이고 다시 주제를 육체적 사랑으로 되돌리자. 작품의 소재도 속속 등장한다. 사랑과 가정과 행복을 모두 성취했는데 이제 와서 보니 내 취향은 여자가 아니라 남자였더라? 그럴 수도 있다. 나를 몰랐을 수 있으니까. 성적 호기심이 왕성한 젊은이의 입장에서야 의무 방어전이 어쩜 신비로워 보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어느 삼류 연애 컬럼에 나왔듯이 여자가 누구를 좋아한다? 그렇지, 바람둥이. 바람둥이가 말한다. 사랑은 성적 어울림이 다가 아니라고. 하오나, 육체적 사랑은 오묘하고도 신비롭다고. 이쯤 되면 인간의 사랑과 동물의 사랑이 무슨 차이일까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단순히 의아해서 묻겠지만 성적 어울림만을 위해 남녀가 사랑하는 건 아니지 않나? 그것이 최적이면 계속 만나고, 최고가 아니면 새로운 만남으로 넘어간다? 다큐멘터리를 보면 알 수 있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동물을 금수라고 낮춰부르기도 하지만, 사람의 사랑보다 더 멋진 사랑을 하는 동물들이 적지 않다는 것을. 타인은 모르겠으나 필자의 친척만 따져봐도 자식과 (영원한) 남남이 된 채 떠나간 여인의 사례가 음, 셀 수 있다. 남자와 여자의 차이가 있을 뿐이고, 제우스도 어떠했다고 재담가들은 누누히 고지시킨다. 일상 생활에서 읽어본 적이 있는 사람은 몰라도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다더라, 그 말이 무엇일까? 그거다. 사람은 중간만 가면 된다! 육체적 사랑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인생이 행복하게, 세상이 아름답게, 성적 어울림이 조화롭게 발전할 여지는 있다. 좋게 나아질 가능성은 크다. 그럼 뭐해, 우머나이저는 불티나게 팔리는데? 누가 아니래! 신비 살롱과 호박 나이트클럽은 언제나 불야성을 이루는데? 내 말이! 그래도 좋아진다고 치고, 그런데 점점 나아지다가 슬럼프를 맞이한다? 그건 전문가에게! 빨빨거리며 돌아다니니까 전문가인줄 알았는데 친구는 알고 봤더니 순 허당일 수 있지만. 그땐 진짜 전문가를 섭외하면 그만. 물론 숙녀가 어쩌다 마성에 넘어간다? 그땐 책임질 수 없다. 아니나 다를까 그게 정녕 누구의 마성인지, 그 마성이 좋은지 언짢은지, 대체 마성이 무엇인지, 대관절 그 마수인지 마성을 누가 어디서 공식적으로 인정하는지는 꽤나 불분명하지만 말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연설이 시작된 원인이 성적 어울림이었으니까, 그 조건에 최적화하여 따져 볼 수도 있다. 그렇게 판별하자면 귀부인이랄지 원숙한 숙녀와 젊은 남자가 가장 잘 어울린다. 이론적으로는 최적이다. 남녀의 과학적인 성 그래프가 그렇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제는? 그 반대다. 대게는 알다시피 그렇고, 드물게 팔순 화가와 꽃다운 처녀의 사랑이 화제에 오르기도 한다. 그건 곧 이미 어떤 꿈의 물망에 올라있었단 얘기가 아닐런지, 아무튼, 그건 드문 사례다. 보통은 결혼이라는 제도에 적합한 사랑을 위해서는 적당한 인연을 찾는 만큼 성적 어울림을 전부로 따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다만 뭐랄까, 심심치 않게 중요한 정도? 좀 더? 네? 약간만 더? 좀만 더 베팅하시라구요? 뭐시여? 상당히? 아주? 엄청? 왕창? 뭐, 뭐라고? 그만 그만! 이런... 워─워─워! 물론 짧은 만남이라면 잘 아시다시피 뭘 많이 알 필요가 없다. 멀리 내다보고 애처롭게 배려할 필요도 없다. 내 욕심과 남의 탐욕을 견줄 까닭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묻지 마 라는 술집에서 만날 수도 있고, 대화가 불가능하게 음악 소리가 큰 클럽에서 만날 수도 있다. 그래서, 그래서 이게 다일까? 그러니까 인지심리학 및 행동경제학적으로 봤을 때 한 단어로 속궁합, 두 단어로 성적 어울림, 그 이상향에 대해서 지금까지의 설명이 다냐고. 그럴 리가 있나! 우리 (인생의) 아마추어인 척 하지 맙시다. 자, 속담 먼저 읊자. 남의 떡이 커 보인다고. 그렇지. OK! 비교 대상은 넓고 깊고 많다. 왜 숙녀에게는 결혼한 남자 곧 남의 유부남이 멋져 보일까? 다 그런다는 게 아니라, 그런 분들이 있다는 거다. 왜냐하면 상대적으로 멋진 남성이기 때문에 다른 여자가 선점했을 것이며, 또 탁월한 동업자 아니 세심한 그녀의 손길을 탔을 테고, 교육과 경험이 한껏 늘었으니, 숙녀 입장에서는 멋져 보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럴 수도 있다. 찌질한 그 남자가 숙녀를 만나 왕자님으로 변신했다더라, 그런 일이 심심치 않게 있긴 있다. 그래서 내색은 안 해도 이따금 여자는 유부남이 멋져 보이기도 한다. 그게 다 고결한 손길을 타서 그럴 것이다. 게다가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말이 는다. 더불어 어차피 사랑의 목적이 플라토닉이 아닌 이상 기준선은 절대 양보할 수 없다? 호호호! 모르긴 몰라도 찬 밥 더운 밥 가리지 않는 사람과 그 반대, 전자가 많을까요 후자가 많을까요? 그걸 내 입으로 어떻게! 어머나 그런데 심지어 돈까지 많다? 금상첨화다. 더 나아가 눈빛과 인상과 재주까지 겸비했다? 말 다 한 거다. 뿐만 아니라 기회까지 많다면! 낭만적인 사랑은 몰라도 풋사랑은 사람을 만나는 횟수와 정확히 비례한다. 이를 어쩐다? 반비례, 노노노노노노노! 정비례. (딱) YES! 보험왕, 대배우, 지휘계의 거장 그분들은 일을 사랑하는 거고, 이쪽 분들은 발로 뛰어 성과를 만드는 유형이다. 이쯤 되면 줄 달린 치즈를 슬슬 당기는 역할은 아마도 불(?)여우가 아닐런지. 바보가 아닌 이상 타석에 들어서는 횟수가 늘면 자동적으로 안타를 칠 확률도 높아진다. 안타? 안타가 뭔 말인가, 뻔트면 대만족인데! 삼구삼진마저 희망으로 해석할 여지는 다분하다. 그분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말이 뭔지 설마 모르시지는 않을 테지만 뭔가 한번 들어나 보자. (임자 있는 그분께 푹 빠져서) 오빠, 나랑 같이 살자? (나 열심히 살았어 라는 뜻으로 어떤 뭔가를 제시한다?) 얘 안되겠네! 옛말에,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했다. 사람이 그래 남자가 개가 아닌 이상 특급 코치의 개인 교수를 받았다면 그거도 말 다 한 거나 마찬가지다. 심지어 그분께서 애초에 그쪽으로 천재까진 몰라도 최소 수재는 될런지 그 누가 알겠나. 진흙 속의 진주는 그렇게 태어난다. 똥개인줄 알았는데 알고 봤더니 바람둥이형 늑대? 명찰에 쓰인 이름은 에르메스? 잘 하면, 페라리 최신형 한대 뽑아주실 기세네. 뭐, 장기 투자? 보아 하니, 저절로 알쏭달쏭 하시지 않나요? 사랑은 있을까 사랑은 없을까, 라고! 사랑이 있든 없든 본래 사랑은 쉽지 않다. 진정 사랑한다면 로맨티스트는 뭐라고 하나? 내 모든 걸 다 드릴께요, 저 하늘의 별이라도 따다 드리겠소, 당신만을 영원히 사랑하리다, 라고 하지 않나. 그런 사랑이면 개인 사생활의 먼지까지 애인과 공유한다. 적어도 시작은 좋다. 하지만 사랑은 변한다. 그 속성상 차갑게 식는 걸 변심이라 한다. 또 미온적이면 딴청, 한눈팔면 싫증난 것이고, 외로우면 갱년기요 슬럼프면 권태기다. 쪼금만, 좀 더? OK! '사랑은 없어'는 무정, 무심은 뭘 좀 모르는 것이고, 여복의 부재 그것은 바로 불운이다. 그것이 2개 이상이다, 또는 오래 이어진다? 그건 한마디로 불행! 호박이 제발로 굴러오는 건 행운이요, 이제 굴러올 때가 됐는데랄지 뜻밖의 행운은 바로 우연이다. 허세? 남자는 폼이지! 허영심? 질투는 나의 힘! '우리는' 화법은 그냥 허당, 허세를 쥐었다 폈다 허영을 들었다 놨다 그게 바로 은근 허당! 그만 하자. 이미 누군가는 떨렸고 난 벌써 들었다. 제발 참아주시라 라고. 이랬다간 한도 끝도 없겠다. 어쩜 사랑 그것이 바로 악마가 아닐까? 실체는 없는데 매번 떼쓰고 항상 칭얼거리며 언제나 새로움만 바라니까. 그럼, 이게, 다인가? 뭐 벌써? 급하시긴 허허허 나 원 참, 뭘 고렇게 섭섭헌 말씀을 허신대유! 이를 테면 1번부터 12까지 만나봤다고 가정했을 때 성적표는 남는다. 결산 딱 나온다. 타당한 서류를 보고 합리적인 이성으로 따집시다그려. 성우는 없었지만 성우 단짝의 선배의 친구는 1번, 영화배우도 없는데 자칭(?) 영화배우 지망생 유형은 2번, 3번은 보기 드물게 뭘 좀 아는 남자인데 뭘 좀 알기만 하고, 4번은 나머지는 전부 다 좋은데 유별나게 가난하다는 둥 어쩐다는 둥, 5번은 돈만 많고, 6번부터는 딱 7번만 빼고 다 꽝이었다. 완전 꽝! 그래서 아무리 봐도 7번이 종합적으로 제일 나았는데, 지금은 12번 방금 보냈고 13번 차례이니 다시 돌아갈 수도 없고, 것 참 난처하네 어쩌네... 등등등. 그럼 결론은 뭘까? 뭐긴 뭔가, 새로운 남자지. 악마가 아무리 새로움을 입는다지만, 패션으로 비유해서 뭔가를 신상품이로 말한다면 좀 서운한 감이 있네요. 그래도 어찌됐든 13번에서 7번으로 시간을 돌릴 수는 없으니까 계속 갈 수 밖에 없다. 전진 전진 또 전진 계속 전진 막 전진 딱 전진, 행진곡이여 울려라 허당이 나가신다 길을 비켜라! 하지만 13번일지 100번일지 잭팟이 언제 터져도 터져야 한다, 하하하 그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건 어디까지나 당사자 입장! 긍정이 뭔 죄고 낙천성이 왜 나쁘겠냐마는 동화풍 희망은 아동복에 어울리니까, 우리는 요술 거울을 보며 자평을 하고 자성의 시간을 가지자. 왜냐하면 과학 및 통계적으로 보자면 끝내기 홈런의 확률은 별로 높지 않다는 걸 잘 알기 때문에. 그건, 그다지, 설레설레! 곧 수다의 화제는 성적 어울림이었지만 결론은, 인지심리학 및 행동경제학적 결론은 이렇다. 원론적으로, 사랑도 인생도 아끼고 즐기며 아름답게 만들어가는 것이다. 경험적으로, 결국 사랑은 커피포트를 내내 참고 또 참고 언제나 인내하며 신제품 진공청소기 광고를 바라보는 공허감이라고나 할까, 감미로운 풍문을 듣고서 동경심만 커져가 눈은 한없이 높아지고, 코끼리는 뭐 하늘을 훨훨 나는 거지 뭐. 그리고 시작의 관점에 국한해서 보자면, 그러니까 적당히 중간에 괜찮은 상대를 만나야 한다는 운명론이 바로 인지심리학 및 행동경제학적 결론이다. 어떻게 끝낼 수나 있겠어? 수근수근, 언제 끝나나 했더니만 결국 어떻게 겨우겨우 결은 봤네.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서 현생 인류로 넘어왔으니 자, 굽은 허리를 펴고 반응을 한번 살펴볼까나? 이쪽을 보니 완전 꽃밭에다 와 표정이 표정이... 허허허 네네 이따 우리 조용히... 허허허, 그리고 저긴 어디서 자꾸 코 고는 소리가... 어머 어머 그런데 여긴 분위기가 영... 인지 뭐 행동심인지 초심인지, (......) 뭐가 어쩌고 어째? 많은 연인들이 그런다. 우리는 운명적으로 만났다고. 그러니까 지금 말 다 했어 이 양반아, 어? 아 글쎄 그러니까, 운명론! 그래요 운명론이요. 아리따운 여인에게 그대의 마음을 빼았겨서 새콤달콤한 사랑에 빠지셨을 때, 바로 그때 선생님 말마따나! 둘째, 경제학 학문보다 브랜드 포지셔닝이라는 실전 이론에 따른 권고. 그쪽에서는 그런다. 무조건 처음에 잘 해야 한다고. 그쪽에서는 결혼이란 가장 좋은 사람과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상대적으로 좋은 맨 처음의 사람과 하는 것이라고 봐야 옳다고. 그와 일치하는 사례도 있겠지만 많은 경우 그런다. 꼭 너무 일찍 조숙할 필요까지는 없다고. 천천히 세상을 즐기라고. 뭐랄까 인생 경험과 약간 대칭되는 식자의 권고인 것만 같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세요. 식사를 규칙적으로 해야 합니다. 다른 게 아니라 운동이 신앙이죠. 햇볕을 적당히 쬐면 좋답니다 등등등. 요컨대 이건 혹시 사랑법? 각자 생각하는 걸로! 셋째. 학문-이론-기술-술법-관습까지 들춰볼 필요 없이 순전히 어른들의 경험담으로만 볼 때, 서로 사랑을 하면 바로 그 사랑도 좋아진다고. 즉 플라토닉 러브가 전제된다면 육체적 사랑은 발전할 수 밖에 없다고. 의무 방어전을 모르는 친구들이야 사랑 하면 아마도 사랑의 행위가 떠오르지만 일단 어른들의 말씀은 그렇다. 물론 이론으로만. 타인에게는 이론으로써 상담하고, 본인이 실전에 임하면 전혀 딴사람이 된다고나 할까? 아,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다. 왜, 그러니까 어째서? 사랑은 없으니까! 사랑의 완성과 행복한 사랑이 아닌 원초적 본능으로 설명할 수 있는 풋사랑의 관점에서 보자면 많은 걸 따질 필요 없다. 1등급 우유, 그거면 충분하니까. 네? 3등급만 넘으면 만사 OK? 물론 그러다 탈날 수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 첫째 둘째 셋째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얘기다. 다른 사람들이 다 연구했고 다 아는 상식으로써, 다 차려진 밥상에 은근슬쩍 슥 숟가락만 얻은 기분을 외면할 수는 없다. 그걸로도 모자라 왠지 큰소리치고 어딘가 모르게 생색낸 느낌이 없잖아 있다. 옛말에 그런 게 있다. 남의 떡으로 선심 쓴다고. 딱 지금 어쩌다가 뭐 그렇게 됐다. 동심과 초심과 순수한 사랑, 고결한 연정을 위해서 뭔가 뜻 깊은 말을 한다는 게 그만 딱 그 모냥이 되어버렸다. 죽 쑤어 개 준다? 죽 쑤어 개 좋은 일 한다? 그렇다고 남자는 늑대, 여자는 (불)여우, 나는 개 당신은 난봉꾼이란 말이 아니다. 그러나저러나 사랑의 어울림이 어떻든 그마저도 언어별로 1개 단어냐 2개 단어냐 그 차이 밖에 없다는 것. 시대적으로 보자면 옛날에는 선생님 첫사랑 얘기해 주세요, 라며 간접적인 애원을 선호했을 것이다. 그럴 수 밖에 없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비교적 직접적으로 용건만 간단히, 값싼 웃음과 고급 농담을 냉큼 구분하고, 서로 시간 낭비를 최소화하자는 데 대해서 거의 동의하는 눈치다. 세월은 가고 세상은 변하니까. 그나저나 고전에서는 어느 긴 단락을 읽어도 행위1에서 행위2로 넘어갔다는 말이 전혀 없어서 다시 읽어보기도 하는데, 두꺼운 책1권 전체가 노래요 시였는데, 지금은 모두 바쁜 세상인 건 틀림없다. 어쩌면 쉽게 넘어가버리기엔 좀 짠한 구석이 있긴 있다. 사랑의 종류는 많고 방법도 다양하다. 미숙함에서 시작해 완숙한 사랑으로 끝날 수도 있고, 사랑은 조숙함으로 다가왔다가 성숙하게 멀어질 수도 있다. 과거에 겪었던 사랑이 그저 불장난의 추억으로 회상되기도 하고, 현재의 애모가 나중 보면 진정한 사랑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사랑은 아직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더 의미 있지 않을런지. 중독성 취미의 영원한 1-2-3위 역시 마찬가지다.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점. 언제 어복이 만개하며 어느 때 하트 에이스 포카가 뜰지 모른다는 것. 어떡하다, 고고함과 동떨어진 표현으로, 미쳐버리는 의미는 바로 그 지점에 있다. 위선과 가식과 희망과 미지의 꿈마저 어쩌면 종이 한장 차이일 수 있다는 것. 그걸 인생의 천재라는 어른들이 왜 모르랴. 단지 내 마음이 내 마음대로 안되는 게 어쩜 당연한 이치임을 인정하기가 쉽지 않을 뿐. 인간은 원래 적지 않은 부분 비이성적이니까. 풋풋한 사랑이 있으면 짝사랑도 있고, 첫사랑과 첫사랑이 만나는 건 그 만남이 아름다운 만큼 이루어지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리고 단순히 전적으로 따져서 그 어떤 사랑의 화신이 될지라도 상사병은 끝끝내 체험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인간의 본성상 남의 떡이 커보이고, 뜨거운 사랑은 식기 마련이다. 그래서 숙녀는 울긋불긋 단풍 같고 알록달록 카멜레온 같은 사랑을 꿈꿀 것이다. 그러니 짧은 만남이건 미완의 사랑이건 기묘한 인연이건, 사랑은 뒷모습이 아름다워야 하지 않을까? 왜냐하면 요람에서 무덤까지 딱 1번만 사랑한다는 것은 그건 너무 초현실적 발상에 가까울 것이기 때문이다. 육체적 사랑은 아름답고 속궁합도 좋다. 앞으로의 내 인생에 유리하도록, 누군가의 삶에 도움 되도록 그것에 대한 선험자의 조언을 공유하는 게 왜 나쁘겠나. 최소한 웃기라도 하지 않나. 다만 그 하나만 핀셋으로 똑 떼서 현미경으로 들여다 보기만 하는 표본실식 사랑보다는, 마법 수정구를 통해서 책임과 피임과 인성을 필요에 따라 버리기도 깨닫기도 하는 세상사를 바로 알고, 이기적으로 호혜성을 요구할 수도 있다는 우정과 사랑과 인생을 슬기롭게 탐구하는 것이 먼저일 것이다. 아아, 바람이 분다. 그것은 봄바람인가 헛바람인가, 그것도 아니면 행복의 바람인가. 설마 혹시... 간주곡치고는 보잘 것 없지만,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건 아니냐는 비아냥을 도의적으로 외면할 수 없다. 물타기를 위한 잔꾀도 진작 바닥났다. 그래서도 안된다. 그러니 픽션이 품은 논픽션은 여기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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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미는 집으로 돌아왔다. 변한 건 없었다. 아, 있었다. 친구들이 교체됐다. 셜리와 홀리, 바바로사는 알았는데 새로운 얼굴이 있었다. 클락과 그레고리와 험프리. 혹시 얘네들도 자기와 비슷한 취미를 가진 것일까? 일부러 정체를 드러내지 않으려 하는 것일까? 더군다나 시트콤 일원끼리 모여서 매일 놀지도 않았다. 모두 극단적인 개인주의 성향이 뚜렷했다. 그는 혼자 놀 수 밖에 없었다. 모험은 불친절했고 사랑 받을 기회는 가련했다. 그는 원래 지적 허영심은 높은 반면 낭비벽은 없었고, 그래서 호기심은 자제했으며 감수성은 유보했다. 내일을 생각하자면 그럴 수 밖에 없었다. 그 뿐만이 아니다. 감미로운 연애와도 같은 즐거움은 아니지만 집에서 혼자 영화를 보며 술 마시기. 소소한 재미라곤 그 하나뿐인데, 그는 어딘가 모르게 그런 몰취미한 습관이 싫지는 않았지만, 그마저도 재미없어져 가는 듯한 기분이 느껴졌다. 그래서 그는 잡지를 읽었다. 그런데 남성잡지의 글자들이 춤을 추었다. 그는 느꼈다. 세상에서 제일 힘든 일 가운데 하나는 그것이라고. 잡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몇 페이지짜리 인터뷰 읽기. 꾹 참고 읽기 시작하면 시작하자마자 뱅뱅 돌았다. 왠진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청춘의 욕망을 배반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대채로운 기쁨, 다정한 사랑, 행복할 권리, 여행에의 충동을 시도할 수는 있는데 호화로운 잔치가 없다는 점. 가택 감금은 자유의 술잔을 불렀다. 따라서 그는 인생의 성과와 꿈의 방향을 살펴보고 자기 자신을 돌아보기로 했다. 누구나 그렇듯이 그도 오뚜기였다. 탐욕을 이겨내고 소망에 환호했다. 무언가에 실패할지라도 운 없다면 내세는 패자부활전, 현세에는 천사와 사랑을 하리라, 라고 다짐했다. 하지만 천사의 입맞춤은 순탄하게 보장 받지 못했다. 선망이 벌레 먹어 황홀한 꽃은 못 다 핀 것이다. 자유를 호소하고, 열정에게 변덕을 허용하지 않으며, 방황을 무서워하지 않았건만. 보다시피, 타성은 친구였고 고난은 운명이었다. 사랑도 시련이나 마찬가지였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 그런데 습관적으로 어디서나 미끄러지는 게 특기인 허당 원숭이도 존재한다는 것. 그 자연과 섭리의 법칙은 드물지 않게 그에게도 적용됐다. 원컨대, 다음 번엔 달랐으면! 그런데 내내 절망하지 말라는 하늘의 주문이었을까? 지미는 잊었던 소망이 하나 기억났다. 바로, 스케이드보드 타기! 딱히 꼭 하고 싶었던 취미는 아니지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걸 타 보던 때, 하필 타자마자 뒤로 꽈당 넘어져서 중학교 때 반 친구들의 웃음을 한 몸에 떠안아야 했기 때문에, 그는 한번 도전해 보고 싶었다. 영화 백 투 더 퓨쳐에 나오는 것처럼 초보 딱지만 뗀 다음에 기록만 남겨서 소셜 네트워크에 올릴 생각이었다. 그런 다음 머머접습니다 라며 장비 팔기! 간단하네. 그러므로 그는 뜬금없는, 신선한 상쾌함에 전율했다. 몇 일 매달리다 포기할지도 모르지만 회사 1년 열심히 다니다가 사표를 쓰는 것보다는 이게 훨씬 건전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결과만 얘기하자면 그는 스케이드보드를 샀고, 연습했고, 금새 질렸고, 장비를 내다팔았다. 그 모두가 단 3일만에 이뤄졌다. 지미의 기분이 어땠을까? 새삼스럽게 그걸 우리가 왜 알아야 하는데! 그래서 지미는 마지막 날 일기를 썼다. 다음과 같이. 세상은 바보들의 무대요 인생은 허풍꾼의 허상이라네. 사랑이란 허영심과 허세의 만남. 야망에 한 발짝 다가가 기쁨으로 몸을 떨다가 한숨에 체념하는 것, 곧 익살꾼의 기쁨이라네. 숙녀여 로맨스를 동경하라? 네! 가까운 선망을 꿈꾸자? 그럼요! 아쉬운 이별 공허한 절망은 짧게? 당연하죠, 여부가 있겠사옵니까! 그럼 뭘해, 잡은 물고기한테는 밥을 주지 않는다던만? 변명은 해도 해도 끝이 없구먼유. 사랑과 행복을 그대에게, 그게 진정한 남아의 진심인 걸 왜 알아주지 않냔 말이오!
9
그는 사무실에서 눈부신 문학의 금자탑을 완성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목표는 분명했다. 환상머신! 누군가는 그럴지도 모른다. 뭔 머신? 머신 좋아하시네! 라고. 허나 성과가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천리준마도 쥐를 잡는 데는 고양이만 못하다고 저 하늘에 떠 있는 오로라빛 혜성과도 같은 신기한 이야기를 깜짝 놀라게도 바로, 쥐로 변신시켰기 때문이다. 곧 그는 다른 건 못해도 쥐는 잡을 수 있었다. 그래야만 했다. 그래서 잡았다. 처음에는 그랬다. 나는 할 수 있다고. 머머를 하고 싶다고. 의욕도 좋고 열까지 달아올랐다. 이처럼. 음악성은 모차르트를 능가하고, 미술적 재능도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쌍벽을 이뤘다 라고. 그런데, 뻥이었다. 그는 이렇다 할 피상적 열정마저 변변치 못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결과가 있었다, 결과가. 바로, 지금 쓰고 있는 소설의 정체를 발견한 것이다. 이름 하여, 다큐멘터리 소설. 곧 그것은 모든 악평을 흡수하는 절묘한 효과를 가져왔다. 어떻게 보면 그건 그의 새로운 취미에 불과했을 것이다. 절묘한지 답답한지 모를 새로운 일은 바로 소셜 네트워크에서 사람들의 즉흥적인 평가의 글을 읽는 것이었다. 좋아요, 환상적이다, 놀랍다, 기발하다, 격렬하게 재밌다, 요절복통 흥미롭다, 무자비한 유머, 미친 플롯이다, 말이 필요없다... 등등등. 그런데, 바로 그와 같은 식상한 호평의 정반대 의견에 빠진 것이다. 그는 어쩔 수 없이 뻔한 서평과 똑같은 상업적 추천사와 좋은 평점 일색의 칭찬에 질렸던 것이다. 사랑에 실패하면 누구나 그런다. 사랑이라면 이제 신물이 난다고. 꼭 그와 같은 일은 아니지만 약간 이상한 재미에 빠져버렸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롱테일에 해당하는 솔직한 시청자, 당당한 애독자, 늠름한 애호가의 주장에 그는 꺼뻑 넘어가고 말았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지미는 혼자서 일만 하기는 외롭고 심심했으니까, 휴식을 취하고 한눈 팔고 놀기도 하며 분위기도 전환할 겸 친구들을 만나서 물어봤다. 내가 이번에 쓴 이야기 어떠냐고. 그랬더니 뭐라 그런지 아시나요? 아 글쎄, 그건 정확히 상남자들의 비관적 냉소와 놀랍도록 일치했다. 어머 잠깐, 뭐 상남자? 그러니까, 마초? 마초론 한번 가자. 마초는 둘로 나뉨. 자발과냐 아니냐로. 뭘 좀 안다랄지 언제나 그녀 입장을 생각하는 세심함, 숙녀가 좋아하는 부류가 아니면 그건 전형적인 자발임. 내가 최고. 뭐, 내가 최고가 아니라고? 어? 뭐라고? 어라, 뎀비네! 많이 지루했고 충분히 심심했는데 이제야 슬슬 재밌어지는군. 듣기 끄고 마이크만 켠다. 내 귀는 막혔으니 남의 귀 피나거나 말거나. 친하면 친할수록. 그건 좋다. 그런데 그냥 허당의 심각한 문제는 우정처럼 사랑을 한다는 것. 우정과 사랑의 종이 한장 차이를 모른다는 점. 답답한 일이로다. 여자에게 꽉 막힌 남자인데 다음 세대에게는? 먼 하늘이나 보자. 아테네 정신을 존경하고, 앞선 세대에 적당히 굽힐 줄 알고, 친구와 으쌰으쌰까지 아무 문제 없음. 그런데 숙녀는? 소녀여 기도 드리자. 또 내가 리더일 때는? 풍문으로 듣자. 조류 인간에 대해서. 있잖아요, 인생은 만년 유치원 재롱 잔치다. 갈 데는 많은데 오라는 데가 없다. 추풍낙엽처럼 머리카락은 송송 빠지는데 영원한 발..아니 몽정기 소년이다. 하지만 오빠라는 말만 들으면 미쳐버리는데, 속고 속이고 세상만사 통달했는데, 그러니 술수는 출중하고 관록미도 넘친다. 분발하고 발동만 걸리면 폭소로 뻥뻥 터지는 건 일도 아니다. 빵빵 터지는 건 좋은데, 그런데 여간 해서는 발동이 안걸린다. 언제가 마지막이더라...! 게다가 내가 뿌린 악담은 부메랑이 되어 언젠가 앙증맞은 불운으로 돌아온다. 옆에서 띄워주는 역할도 피곤해라 한다. 내 꿈을 쫓고 나 행복해지기도 바쁜데, 코흘리개 푼수와 그 언제라도 골목대장 놀이를? 거울을 봐야 한다. 옛날처럼 보기 좋고 먹기도 좋고 맛까지 훌륭한 잔치상은 흔치 않다. 아니 숟가락을 누구나 다 가지고 다니는 세상 아니더냐. 심지어 시작부터 강서브다. 리시브 받고 토스 올리면 잘 때릴 수 있다. 강력하게! 항상 의욕은 충만하고 열은 좋다. 그럼 뭘 하나! 전원 스트라이커에 전원 공격수인데! 운을 타도 금새 지치고, 열도 시작만 좋다. 알랑가 몰라, 바텐더님께 공들여야 할지 액면으로 먹힐지를. 그러던 어느 날부터 친구가 알아서 접고 꺾어주질 않네? 울기 직전이다. 울상이 반복되면 늙는다. 머머증도 아직 극복하지 못했는데 걱정은 태산이다. 그런데 그게 먼 얘기가 아니라 한 업계에서 그분을 모른 체 하기 어렵다? 야 떴어 떴어 피해 피해! 그분께서 직장 상사일 때는, 오늘 그 인간 기분 어때? 딸랑딸랑일지 맹렬한 업무 정진일지, 눈치 없고 분위기 파악 못하면 사회생활 힘들어지는 지름길이다. 여기 저기 거기, 웃자고 한 얘기에 흥분하시는 그분께서는 표정 관리합시다. 옆에서 눈치채니까요. 네? 이미 다 안다구요? 하긴 한두 번 듣는 얘기도 아니고 그다지 새삼스럽지 않음. 별로 재밌지도 않고 시큰둥하기만 함. 주제를 전환하든 과목을 바꾸든 넘어가라는 신호다. 뭐, 마누라를 바꿔? 쉿! 누가 듣겠다. 마초론은 별다른 특별함은 없으니 다음 이 시간을 기대합시다. 다시 돌아가서,
그는 먼저 클락을 만났다. 1 대 1로 만났다. 우정은 두 가지로 나뉜다. 1 대 1로 만나서 격의없이 유쾌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절친한 사이와 단둘이 만나기엔 뭔가 부담스럽고 겸연쩍은 우정으로. 지미는 클락을 보고 놀랐다. 왜냐하면 그동안 바텐더한테 돈 꽤나 썼고 성심성의껏 공들였던 노력이 얘 때문에 한순간에 물거품이 될 거라고 직감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는 우정의 후자에서 전자로 전환하기 위해, 또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가 내가 쓴 새로운 이야기는 어떤가, 넌 대체 뭐하는 인간이냐를 겸사겸사 묻고 답하며 친분을 두텁게 하기 위해 그를 독대하러 나갔다. 「클락. 이거 한번 읽어볼래? 내 친구 중에 영화평론가 지망생이 있는데 말이야, 녀석은 욕심이 좀 과해. 언제적부터 소설을 쓴다더니만 어느 날 서점에 가 보니 깜짝 놀란 거 있지. 거기서 녀석이 쓴 인문교양서를 발견하게 될 줄이야. 떡 하니 좋은 위치에 자리잡고 있더라고. 그리고 이건 말이야, 그 친구가 탄력을 받아서 새롭게 쓴 이야기래. 대충 보고 느낌을 얘기해 주지 않으렴?」 잠시 후, 「그 친구... 친하게 지내면 안될 거 같은데. 느낌이 안 좋아. 많이 안 좋아. 영 아니다 영 아니야. 중간에 나오네. 주인공이, 나는 대작을 쓰고 있다고. 물론 어디까지나 작중 인물의 고백일 뿐이지만, 그게 좀 걸려. 네 친구라는 그 소설가의 속마음을 들킨 거 밖에 더 되냔 말이야. 이 소설이 뭐 대작? 실컷 비웃어주고 싶구먼. 구성이 순 허술해. 이게 뭔 소설이야. 이런 소설은 나라도 쓰겄다. 소설 1주일만 공부하면 출판계를 주름잡지는 못하더라도 대충 10위권에 턱걸이는 할 수 있다, 그 말과 뭐가 틀리냐고. 어? 얘가 소설가면 난 대사상가라고. 안 그래? 이거 뭔 개연성은 1도 모르고, 자연스러운 기승전결은 0도 없고, 거부할 수 없는 흡입력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어. 완전 시간 낭비야. 완전 별로야. 참으로 황당하구만. 할 일이 그렇게 없나. 참 한심한 친구 같으니라고. 일단, 너무 지루해. 게다가 내용도 없어. 이거 대체 내용이 뭐야? 없어, 아무것도 없어! 독백이 다야. 심지어 주인공은 멋진 인물도 아니고, 무엇보다 이건 과학적으로 말이 안돼. 현실과 완전 동떨어졌어. 억지스런 할리우드B급식 졸작이야. 차라리 집에서 따분하게 TV 채널이나 돌리는 게 낫겠다. 얘 대체 뭐하는 인간이야? 교훈이 없잖아. 뭐 대충 살아도 성공한다, 그걸 말하고 싶은 거냐고. 그렇다고 반전도 없어. 그게 꼭 있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내내 어린애 생떼를 부렸으면 막판에 뭔가 있어야 하는데, 그냥 허무하게 끝나잖아. 그게 뭐야? 이걸 어딜 봐서 별 다섯 개를 주니? 별 빵 개라고 평가할 시간도 아깝다. 자꾸 말끝마다, 아니 글 중간에 환상 환상하는데, 환상이 대체 어디 있어? 환상이라는 단어의 말꼬리 잡고 늘어지기야 뭐야? 어? 아무리 찾아봐도 없구만. 환상도 내용도 참신한 격조도 뭣도 없어. 자네 있잖아, 성격 좋다고 이런 친구들 부탁 막 들어주고 그러지 마시게. 얘는, 친해봐야 인생에 아무런 도움이 안된다고. 심지어 재미도 없어. 자발 스타일은 아닐런지 꽤 걱정 되는데 그래. 관심은 애인한테 받고, 질투는 여자에게, 응석은 아이한테 양보하라고 전해주게. 응? 그게 뭐야 유치하게 말이야. 처음부터 끝까지 억지라고. 전 세계가 인정한 백조의 노래를 바라는 건 아니야. 최소한 언제 어디서나 부담없이 활짝 웃을 수 있는 촌닭의 군무는 되야 할 거 아니냐고. 안 그래? 이도 저도 아니면 독수리부터 박쥐까지 총출동하는 현대판 동물농장을 쓰던가 말이야. 내 살다 살다 이렇게 재미없는 소설은 처음 본다. 얘 누구야? 어딨어?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건가? 얘 혹시 운동 뭐 했는지 아니? 싸움은 잘 하고? 아 정말 괜히 읽어서 나까지 기분이 이상해지는구먼. 이래 봬도 나 있잖아 품위를 아는 사람이야. 전엔 정말 비꼬는 걸로 어디서 안 빠졌는데, 성질 많이 누그러졌어. 이제 꺾고 접을 때도 됐으니까. 아 그래도 이건 정말 아니다. 차분히 믿고 시간을 들였더니 그 시간 만큼이 아니라 훨씬 더 커다란 정도로 내가 멍청해진 거 같다고. 이걸 도대체 무슨 재미로 읽으라는 말인지 도저히 이해를 할 수 없구만 그래.」 지미는 클락과 헤어진 후 일찍 퇴근했다. 집에 가서 그는 생각했다. 직업을 바꿀까 라고. 그리고 일기를 썼다. 차라리 일기체로 쓸 걸 그랬나 라면서. 아, 일기를 쓰기 전에 소설 쓰기를 시도했다. 첫 문장은 금방 나왔다. 「최근 발견된 중력파 때문에 새로운 시공간을 알아냈다는데, 난 그것도 몰랐지 뭡니까!」 라고. 그런데 첫 문장이 마지막 문장이었다. 그래서 그는 다시 일기를 쓸 수 밖에 없었다. 대망을 성취하지 못하는 건 꿈이 너무 부정확하거나 높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목표를 낮췄고 바람과 원함을 구체화했다. 물론 그것이 평생 놀고 먹는 거다 라는 품위 없는 단꿈은 아니길 바랬으나, 실상은 딱 그랬다. 따라서 소원은 원래 성취될 수 없는 이상에 지나지 않았다는 생각은 차마 지울 수 없다. 그리하여 나는 하는 수 없이 소망을 작게 품었다. 오늘 뭐 하기처럼. 그랬더니 그 염원은 손쉽게 달성했다. 하지만 애초에 즐거움은 어쩌면 실패에 있거나, 아마도 기쁨은 계획과 기다림에 존재하고 있었다. 때문에 작은 목표 설정은 금새 재미없어져버렸다. 위대한 목적에 부짖혀 좌절하기, 한심하지만 바로 거기서 흥미를 느낀다고 인정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러든 어쩌든 인생은 인생이고, 나는 멜로 드라마의 우스꽝스런 주인공이라고 생각하면 그만이었다. 살면서 그동안 요령도 몰랐고 꾀는 서툴렀으나, 뭐랄까, 이제는 가난해도 여유를 찾았다고나 할까? 과거에는 욕망을 억눌렀고 공상엔 관대했다면 이제는 달라져야 했다. 방만한 탐욕을 다듬어 멋진 선망으로 키우고, 허접한 몽상은 인상적인 상상력과 고급스런 농담으로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따라서 계획표는 작성하지 않아도 괜찮지만 성과를 얻기 위한 행동 방안은 다듬을 필요가 있다. 바로 이렇게. 나는 무엇을 좋아하다, 뭐뭐 하고 싶다, 무엇을 해야 한다, 머머할 수 있다, 머머일 것이다, 그 가운데 할 일과 쓸 글을 잘 선별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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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미는 침울한 일상에 굴복한 채 재미없는 삶만 지속할 수는 없었다. 싫증 난 몽상 변덕스러운 욕망은 갖다버려야 했다. 그런데 그는 홀연 궁금해졌다. 바로 그런 질문이 떠올랐다. 모딜리아니는 말상이었을까, 아닐까? 뭐라고, 그게 왜 궁금한데? 밑도 끝도 없이 그게 뭔 말이냐고. 그건 곧 습관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는 걸 뜻했다. 수긍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비록 지루하고 항상 심심하더라도 분기별로든 주일별로든 해피엔딩만 보장되면 되기 때문이다. 열망에 못 이겨 멸시 받은 신비를 캐내면 그만이니까. 반드시 찾아야만 했다. 잃어버린 환상을. 묻어버린 황금을. 고개 숙인 낭만까지. 지미는 허구헌 날 타락을 애정했고, 주색을 만끽할 궁리만 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기다려지는 미지의 내일이냐, 궁금하지도 않은 뻔한 미래냐. 그 가운데 전자를 말이다. 오늘의 만족이냐 내일의 행복이냐, 눈앞의 쾌락이냐 안 보이는 희망의 나라에 사는 축복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그렇지만 그는 누가 뭐래도, 미래의 환희를 실현시키는 장본인이자 우연의 마법을 소생시키는 쾌남아였다. 그는 일시적으로 주종목을 소설에서 시로 바꾼 것이다. 체급을 바꾼 것쯤으로 해 두자. 지미는 그래도 누구도 알고 싶어하지 않을 변신으로 인해 눈에 뜨이는 성과를 금새 발생시켰다. 언젠가 말했지 않나. 큰 재주는 몰라도 잔재주는 있다고. 많다고 했나? 그래도 확인은 불가! 곧 그는 지역 신문사에서 주최하는 무슨 문예상에 당첨된 것이다. 달콤한 영감과 고단한 짜증은 어쩜 애증의 관계인 걸까? 그건 모르겠고, 지미가 쓴 시나 읽어보자. 그러면 그도 이제 어엿한 시인이자, 뭐 떳떳한 문사라는 말인가? 만일 그렇다면 동네 체육관이나 헬스클럽에 회원등록만 하면 누구나 무사겠네! 그야 어쨌든 쓸데없이 탐구욕을 축낼 필요는 없고, 그의 문학적 미래도 관심 없고, 그가 발판 삼아 등단했다는 시가 뭔지나 살펴볼 필요는 있다. 혹시 모르니까. 별로 기대는 하지 않으니까 칸을 2칸 띄지는 맙시다. 그냥 줄만 바꾸자는 뜻이다. 서둘러 읽고 치워버리게. 제목: 아빠 뭐해? 내용: 아빠는 시인이란다. 오늘 아빠는 이런 시를 썼지. 아 아빠는 말이야, 원래는 소설을 쓰는 작가였단다. 보통 이런 제목에 해당하는 글을 주로 썼지. '빈말의 황제, 아부의 화신을 만나다.' 그런데 있잖아. 아빠는 깨달았어. 이런 글만 쓰다가는 우리 가족이 가난에서 결코 탈출하지 못할 것 같다고 말야. 빈곤과 행복은 동행할 수 있지만, 뭐랄까, 아빠는 소년 시절 야망을 품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소망이 대망으로 커져버렸다고나 할까. 그래서 욕심이 생긴 거야. 곧바로 단조로운 탐욕은 스스로 새로워지기를 원했지. 아직은 네가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는데, 세상은 원래 유행 따라 나부끼는 처녀의 꽃무늬 치마를 닮았단다. 왜냐고? 왜 그런지는 나중 커서 네가 직접 깨닫는 게 좋을 듯 하니까 답변은 생략하자꾸나. 뭐, 그래도 꼭 듣고 싶다고? 음 그럼 그건 내일까지만 유보하자. (아니다. 버거운 짐을 덜고 가자) 앗! 그럴 게 아니라, 그건 엄마한테 물어보렴. 알았지? 음 그건 그렇고, 아빠의 인생을 요약한 시를 읊어줄께. 그건 이렇단다. 참고로 여기서 그는 아빠를 말하겠지? 그는 기쁨을 미워하고 행복을 싫어했다. 진짜로? 물론 그럴 리는 없다. 때에 따라 믿음의 문제를 경우의 수로 나누더라도 엄한 빈말에 순진하게 속지는 말자. 그는 유희를 좋아했고 쾌락에 열광했다. 인생의 많은 즐거움을 사랑했으나 하는 수 없이 가난했다. 그래서 때로는 욕망에 침묵했고 숙녀의 흠모를 외면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차라리 사랑의 행위에 대한 첫 번째라는 사랑의 대화라도 실컷 나눌 걸 그랬나, 싶은 마음은 일절 없었다. 그러다 새로운 취미에 열중했으나 행운은 허락되지 않았다. 경제학보다 요술에 몰두했고, 예술론보다는 연예관에 집착했다. 그 결과 뚜껑 열리는 차는 저 멀리 보이지도 않게 멀어졌고, 이따금 다른 뚜껑만 열렸다. 친구들 사이에서 진공청소기로 유명하지 못했고, 가련한 예술가 부류라며 동정심을 샀다. 연민이라고나 할까, 당연히 일부러 곰살궂은 유대감을 유발하고 싶지는 않았겠지. 곧 안타까운 청춘이었다. 그러다 창작에 대한 열의라는 태양이 다시 떠올랐다. 그러나 권태와 타성의 방해를 받았고, 주색의 방해로 말미암아 찬란한 영감의 절정은, 매번 올 듯 올 듯 하다 말았다. 변죽만 울리기 일쑤였다. 무엇보다 인생을 즐길 것, 그걸 알긴 알았으나 환희의 영광은, 올 뻔 올 뻔 하다 약만 실컷 올리고서 멀어져 갔다. 그러기를 몇 번? 거의, 언제나! 하지만 싱거운 천성 때문일까? 성난 동경은 타일렀고 장미의 가시에 찔리는 희망을 매번 달랬다. 낙원의 그늘도 낙원의 변방이라면서. 그래서 사랑에 부끄러워할진정 웃음을 잃지 않았다. 자신에겐 판도라의 상자가 있다면서 사이렌 버튼 누르기는 어떻게든 미루고, 미루고, 또 미뤘다. 좋게 말해서 말이다. 그렇게 에메랄드빛 천국 이야기와 인생의 비밀스런 신비론을 만들기 위해 분주히 정주하는 나날은 계속 됐다. 권태를 비웃었고 인생의 새로움을 발견하고 싶어했다. 할 말을 잃게 만드는 예선 탈락을 반복할 필요는 없었다. 아름다움을 찬미했고 기쁨을 기다렸다. 그러나 달콤한 행운과 사랑의 주인공으로 낙점되는 일은 감감무소식이었다. 염문이 바람을 타고 억측을 불러일으키면 순식간에 소문이 퍼져서 머지않아 탕자의 여성편력은 공식화되는 것일까? 믿거나 말거나! 비공식화 되더라도 그래 봐야 남의 일. 하여 나는 요술 지팡이에 순종했다. 그런데 마법의 현현은 취소됐다. 한두 번도 아니었다. 하여 요망을 낮췄다. 그래서 호박이 제발로 굴러들어 왔을까? 환상은 현실에서 허락되지 않았다. 그러나 포기할 수는 없었다. 갈채는 저기 멀리 있고 환희는 영 불친절했지만 꿈을 향해 전진했다. 그런다고 허약한 열망이 유복함을 탄생시킬지는 미지수지만. 그러니까, 결과는? 성과 없음. 차라리 세상과 화해하고 심심함을 환영하기로 했다. 그래서, 그 다음에 어떻게 됐을까? 뜸 들이지 말고 말하자면 고행은 계속 됐음. 사랑의 별을 따서 청춘의 꿈을 이뤘다? 이루지 못했다. 연예계에, 아니 예술계에 기쁨의 신성으로 등장하여 환희의 연작을 쉼없이, 끝없이 발표했다? 통장 잔고만 바닥났다. 젊은이에게 미네르바의 지혜를, 그대에게 사랑과 행복을? 날이면 날마다 권태와 씨름했다. 새로움은 잡힐 듯 잡힐 듯 도저히 잡히지 않는 파랑새였다. 환청도 들렸다. 어딜 넘봐? 라고. 쾌락만이 한없이 다정했고 언제나 한눈파는 데 여념이 없었다. 상남자들로부터 덕망을 한몸에 받고, 숙녀들의 아우성을 열망하는 건 말도 안되는 바램이었다. 주제도 모르고 말이야. 게다가 성스러운 허영심과 마력의 허세는 물론 인간적인 허풍마저 점점 멀어져 갔다. 꺼이꺼이. 사랑은 없고, 천국은 멀고, 지킬&하이드처럼 나의 돈키호테가 쥔 새 희망이라는 창은 완전 짜리몽땅했다. 비교는 곧 참담함을 뜻했다. 다채로운 꽃은 언제나 어디서나 만개하고, 꿀벌은 시시때때로 바쁘게 모여들며, 농부가 씨를 뿌리고 코메디언이 찬양하며 시인이 칭송하는 탐스럽고 새빨간 사과는 항상 열려있는데, 그걸 따기엔 그렇다. 내 팔이 짧았다. 많이 짧았다. 의욕도 저조했다. 그러나 최후의 이상향은 꼭꼭 숨겨두었다. 그것은 바로, 우주 멀리 유행할 듯한 선홍빛 환상머신! 그것은 찬란한 미지의 세계로 당신을 데려다 줄 것이기에. 그걸 뭐라 하냐. 바로, 시간 문제라고 한다. (고질적인 문제는 환상 문제, 머신은 곧 타임머신을 뜻하는 공상이 아닐런지...!) 그래서 그 다음에 어떻게 됐을까? 어떻게 되긴 왜 어떻게 돼! 어떻게 되긴 뭘 어떻게 돼! 빠져든다 빠져든다 빠져든다, 빠져들긴 뭘 빠져들어! 그러니까, 그래서 그 다음에 어떻게 됐냐? 바로, 사랑을 만났지! 어쩐지 좋고 어딘가 마음에 드는데 왠지 모르게 끌린다? 왜 그런지 알 수 없었지만 기분이 이상해졌다. 그녀만 생각하면. 이미 사랑에 빠졌고 마음을 빼았겨버렸다. 처음 보는 천상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숙녀는 영글은 이 내 애정을 훔쳤다. 감쪽같이 그리고 송두리채. 다른 생각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 한 가지 생각은 무엇? 그녀의 이름과 그녀의 얼굴과 그녀의 표정과 그녀의 눈빛! 천사처럼 수줍어하던 당신. 나는 당신이 너무 좋아요 라는 듯한 태도는 간곡했다. 또 교태와 예뻐짐은 비례했다. 철들지 않은 열정은 철없던 시절의 추억을 회상케 만들었다. 하지만 차이점이라면 그때는 사랑을 몰랐고 지금은 사랑의 감정과 함께 라는 것. 무언지 모를 어떤 감흥. 설명할 수 없는 고조감. 속셈만 토끼처럼 혼자 앞서가는 이상야릇한 느낌. 이루 말할 수 없는 마음의 불안정함. 그런데 누구나 그런 상태를 동경한다는 것. 그리고 주인공은 바로 나라는 것. 나야 나, 나야 나! 그래서 그 다음에 어떻게 됐을까? 소녀의 순정을 꼼짝 못하게 포섭하고, 숙녀의 허영심을 몽땅 일망타진했을까? 아니다. 그건 단지 희망사항에 지나지 않았다. 좀 더 설을 풀자면 이렇다. 시작은 좋았다, 시작은. 터무니없는 아첨, 온정 어린 앙탈, 더없이 무르익은 애교는 내게 딱 걸려들었다. 원래 그건 정규 과정에 지나지 않는 법칙일 뿐이다. 누가 됐든 내게 한번 빠지면 헤어나올 수 없으니까. 그래서 나는 곧 황홀함에 설렜고 환희에 들떴다. 천국의 향기를 맡았고 천상의 아름다움을 알게 됐다. 그녀의 파르르 떨리는 볼살. 속눈섭도 흔들렸다. 귀는 뭐 빨개지지 않고 베기나. 아마도 흑심 어쩌면 성스러운 예감을 표현하는 듯한 그 깊은 눈동자는 사뭇 흔들렸다. 뭐니 뭐니 해도 유혹자인 처녀는 바보의 사랑에 약한 법. 그녀는 다른 무엇도 아닌 바로, 데우스엑스마키나였다. 라틴말로 '기계를 타고 내려온 신'. 이건 뭐 거의 숙명이나 다름없었다. 손뼉을 치며 반갑게 환호하고 환호하고. 다정하게 눈빛을 맞추고 맞추고. 다정하다 다정하다. 포옹한다 포옹한다. 따스하다 따스하다. 키스한다 키스한다. 찐하게 찐하게. 아 달콤하다 달콤하다. 계속한다 계속한다. 오오 상큼하다 상큼하다. 아이 좋아라 아이 좋아라. 점점 기뻐진다 기뻐진다. 멈출 수 없다 멈출 수 없다. 그런데, (......) 그건 꿈이었다. 이런, 젠장! 하지만 다시 생각하니 그건 꿈이 아니었다. 엄정한 그리고 냉정한 현실이었을 뿐. 내가 정말 좋아서 어쩔 줄 모를 것만 같아하던 그녀가 날 떠난 것이다. 그러나 언젠가 우리는 만나야 한다. 그래야 한다. 이런 말을 하면 약간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딸아! 아니 아들일까? 아니면 쌍둥이? 또는 한 열두 명? 그러든어쩌든 지금 상황에서는 왠지 모르게 딸아, 라고 불러야 멋질 것만 같으니까, 그래서 그렇게 불렀다. 혹시 미래에 아들이라면 미안하다. 그리고 실제 딸은 아직 없다. 미래의 아동에게, 내일의 문학계에 기쁨의 팡파레를 울리고자 이 아빠가 되지도 않은 광시곡을 끄적거린 게 전부일 뿐이다. 좌우지간, 그녀는 돌아올 것이다. 우리는 재회할 수 밖에 없다. 듣고 있니, (미래의) 주니어? 보고 있니, 내 사랑? 이 연가는 피앙세를 위한 사랑 노래. 때문에 나는 좌절하지 않았다. 수줍은 신부를 상상하며 행복한 예감으로 충만하여 달콤한 콧노래를 연신 흥얼댔다. 나는 언제나 환희를 꿈꿨고, 계절을 사랑했으며, 새침한 처녀의 홍조를 그리워했다. 행복하자. 기쁨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사랑하라. 아름다운 인생 축복할 운명 속에서. 원 없이 좋아하고, 사랑 받고, 소망을 얘기하고 동경함을 노래합시다. 그러다 허풍은 오랜 잠을 깨며(동화 같이? 곰처럼?) 소생했고, 허세는 공상을 물리치며 꿋꿋이 부활하는 데 성공했다. 나는 환상문학상에 당첨된 것이다. 잠깐, 목적어와 동사가 어울리지 않는다. 동사를 뽑히다로, 또는 목적어를 복권이라고 하면 모를까, 그게 뭔가. 나 원 참, 맙소사! 왜 이럴까 왜 이럴까? 뻔한 일 아닌가! 3분일지 5분일지 웬 뚱딴지 같은 마법이 끝날 시간이 됐다는 거지. 오늘의 동시는 여기서 그만 마치자.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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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미는 조촐하게 상금을 받았고 보람도 느꼈다. 시상식도 다녀왔다. 하지만 실망했다. 옛날 스무 살 때 고전음악 잡지에 애독자 엽서를 보내서 그거 몇 줄이 잡지 일면에 실린 게 글에 대한 당첨의 전부였는데, 이건 그에 비하면 성대한 행사였다. 그러나 그 다음이 없었다. 시상식도 순 형식적이었고, 분발하라는 축하 인사도 성의없었다. 트로피? 금 도금이 아니라 금색 페인트가 오래 가지 않아 곧 벗겨질 듯한, 완전 싸구려 트로피였다. 값이 싸도 기분 좋은 트로피가 있을 텐데, 왜 하필... 일부러 촌스럽기 그지 없는 걸로 골랐나? 모인 사람들도 일 때문에 참석했거나 시간 때우고 인원 메꿀려고 참가한 사람들이 전부였다. 부페도 완전 맛없었다. 상금은 또 얼마나 작은데. 옛날 회사 다닐 때 받았던 허접한 박봉에 비해도 완전 쥐꼬리만 했다. 이게 뭐야? 뭐 그는 기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왜 그렇게 크게 절망해? 그가 사전에 혼자 흥분했다는 전모는 만천하에 드러난 거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지미는 하는 수 없이 다시 단조로운 일상으로 복귀했다. 그거 말고는 방법이 없었으니까. 초현실주의 신봉자인 그는 신비론의 창시자이자 환상머신의 발명인이었다. 물론 신비론은 발간되지 않았고, 환상머신을 실제로 본 사람은 아직까지 한명도 없었다. 지미는 최근 수필을 미스테리아에 기고했다. 또 일기도 썼다. 이어서 수필까지 썼다. 그리고 소설을 써서 클락한테 보여준 후 꾸중을 들었다. 물론 친구가 썼다고 거짓말로 시작했고, 클락의 웅변이 끝난 다음엔 식 웃었다. 일명 썩은 미소, 썩소! 그런 다음 시를 썼다. 그러면 다음은 이제야 본격적으로 인문교양서를? 그러면 얼마나 좋겠나! 그는 이제 반성문을 썼다. 뭐가 잘못됐는지 문제가 무엇인지를 알고 싶었으니까. 그런데 쓰다 보니 그건 거의 낙서에 가까웠다. 그래도 뭔 내용인지 살펴보자면 이와 같다. 내 블로그는, 내 소설은 처음부터 호기심을 자극했나? 아니다. 자극하지 못했다. 호기심은 발 달린 호박인데 그분들의 탐욕일지 동경심일지 모를 감수성을 슥 유인하지 못했던 것이다. 물론 그녀들은 다 속물일지도 모른다. 원래 이 세상이 통속적이다. 왜냐하면 잘생기고, 돈 많고, 목소리가 기가 막히고, 말 잘하며, 말끔한 옷을 빼 입었거나, 동글동글 통통한 남자의 귀여움에 빠지고, 몸은 깍두기 체형인데 왠지 호감 가는 남아에게 어쩐지 끌리며, 그도 저도 아니면 뭔가 있는 듯한 카리스마에 숙녀들은 곧잘 넘어가기 때문이다. 무섭게 생긴 남자한테 넘어간 여자들? 적지 않다. 그럴 것이다. 하지만 항상 그런 건 아니다. 지적인 남자를 좋아하는 여자도 있으니까. 문학에 대해 반성의 글을 쓸려다가 왜 또 여자 얘기야? 여자의 '여'자도 꺼내지 말자. 다시. 내 소설에는 비밀이 담겨 있었나? 비밀이 숨어들 뻔 하다 말았다. 항상 이런 식이다. 긴장은 유지되었나? 긴장감에 막 몰입될려던 찰나 통상 이야기는 거기서 딱 끝나버린다. 사람이 언제부터 그렇게 매정했다고 말이야. 그러면, 복권이 당첨될 기회는 남겨두었나? 남겨두었지, 다만 너무 남겨두어서 탈이지만. 그러면 추적? 모험? 할만큼 했다. 찾고 떠나고 모험하고? 많이 했다. 더 하면 뭔 소리 들을지 안 들어도 훤하다. 상투적인 작가가 될 수는 없다. 흥미로운 게임 논리도 비록 엉성하긴 해도 이미 많이 써먹어서 단물 다 빠졌다. 주인공이 탈출하고 두 번 실패한 다음 성공하게 하는 이야기? 고급 독자는 더 이상 그런 뻔한 패턴에 속지 않는다. 바깥에 나가 사랑을 하고 낭만을 찾고 추억을 만드는 젊은이가 아니라, 집에서 TV 채널만 돌리는 배 나오고 수염 안 깎고 츄리닝 속으로 한 손을 절반쯤 걸치고 다니는 아저씨를 주요 독자로 포섭한다면 모를까, 식상한 공식은 사양한다. 그러니까 츄리닝에 어중간하게 왜 손을 걸치고 있냐고. 숙녀들이 그걸 보면 뭐라 하겠나, 한심한 작자라고 고개를 돌릴 게 뻔하다. 물론 안다. 잘 안다. 투정도 병이라는 걸. 그래도 연구는 멈출 수 없다. 범죄물은 사양하고 추리쪽은 전공이 아니다. 그렇다고 다이아몬드를 평범한 돌 밑에 숨기겠나 어쩌겠나. 플롯 개론에서는 주인공의 정서적 수준을 낮춰라 라고 하는데, 그랬다가 주인공한테 뭔 원성을 들으라고. 이 삶은 미친듯이 글을 쓰는 작가, 곧 걸어다니는 소설이라고 할 수 없다. 전혀 없다. 이 생활을 기록으로 옮긴다면 그건 죽도 밥도 아닐 것이다. 하나도 재미없을 것이다. 뻔할 뻔자로도 모자른다. 그런데 꼬리에 꼬리를 무는, 말꼬리 잡고 늘어지는 식일지라도 잘만 하면 뭔가 이야기가 떠오를 것도 같다. 그 새로운 착상 신기한 영감이 떠오르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했는데, 그 얼마나 멋질까 부러웠는데, 그러다 그냥 공상으로 끝나버렸다. 기다렸고 생각했고 느꼈고 깨달았으며, 마침내 외쳤다. 안 되겠다. 안 되겠어. 이건, 정말, 아니다. 기승전결이든 뭐든 다 필요 없고, 지금 당장 떠나자. 그거 밖에 방법은 없다. 지금은 상식 밖의 시도를 선보일 차례니까.
from 소설
2017. 11. 15.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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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대로 순순히 늙지 않겠다는 일종의 결의 때문에 입으면 늙지 않는다는 점퍼를 샀다. 내가 품은 의지는 혹시 모종의 예민한 감성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갖은 미사여구로, 젊은이가 열광하며 미의 여신마저 광분하게 만든다는 둥 처음에는 시큰둥했다. 그런데 멋진 모델이 그 옷을 입고 방대한 추종자를 거느린 듯한, 뭐라고나 할까, 약간 건방진 표정을 짓는 순간 나도 모르게 덜컥 뻔한 상술에 그만 맥없이 넘어가버린 것이다. 그래서 그 옷을 입었더니 글쎄 나는 젊어졌을까? 잘도 그러겠다. 광고를 신뢰하고 사랑을 맹신한다면 영원한 장난꾸러기요 순진한 개구쟁이일 뿐이다. 거울이 잘못된 걸까 뭐가 문제인 걸까. 잘 가라 내 청춘 이라며 쿨하게 노래하지도, 어느 멋진 명언을 듣고 그런 말이라면 나라도 하겠다며 큰소리치지도, 나이 먹고 새로운 취미에 도전한답시고 피카소풍 셔츠를 입고서 누드화를 그릴 수 있는 진취적인 배짱이 없기 때문일까? 그럴지도! 무모한 청춘의 방황을 모방하고, 유명한 예술을 베끼며, 끊임없이 사모하도록 뭇남성들을 유혹하는 여심을 훔쳐야만 할까? 할 수만 있다면! 아니지, 못할 거 없지. 내가 못할 꺼 같나 라고 지킬을 제치고 하이드가 나서면 되니까. 최소한 시도는 할 수 있다. 열은 좋으니까. 하나 난 주의가 산만해서 금새 딴청 피우기 일쑤다. 의욕을 상실했고 자주 무기력했으며 세상을 너무 많이 알아버렸다. 아마도 시간이라는 요술에 걸려서 한심한 허풍꾼이 되어버렸나 보다. 즐겁고 기쁘고 재미있는 삶! 바로 그 행복의 신기루에 거의, 정말 거의 깃발을 꼿을 뻔 그럴 뻔 하다가 미끄러지는 게 다, 결정적으로, 내가 가난하기 때문일까? 아니다. 그건 핑계다. 게다가 이 세상에 1주일에 1번 운명적으로 태어날까 말까 라며 칭송 받는 신동처럼 매우 드물게 그래, 꾀죄죄한 내 행색에 걸맞지 않도록 아주 드물게 예술적 착상이 떠오르기도 한다. 때문에 피장파장이다. 따라서 마음의 여유를 찾았기 때문일까? 나는 숨은그림찾기처럼 획기적인 묘안을 찾아냈다. 그렇다. 언제까지 바카스로 살아야만 한단 말인가. 이제는 큐피트가 될 차례다. 그럴 때도 됐다. 사랑도 했고 여자도 안다. 예술과 다큐멘터리 동물의 세계만으로 삶을 영위할 수는 없다. 인터넷에서 장비 검색하는 거도 재미없고, 젊음의 거리를 나 혼자 나돌아다니는 거도 피곤하다. 골프장도 자주 가면 재미없다. 쇼핑은 귀찮고 어린애처럼 장난감을 가지고 놀 수도 없다. 드라마도 많이 봤고, 책도 너무 많이 읽으면 안된다. 이유는 불문에 부치자. 게임도 싫증났고 운동에도 흥미를 잃어버렸다. 마초들과 어울리기? 허당 중의 상허당들? 재밌기는 하지만 주색이라면 이제 신물이 난다. 심지어 거짓말조차 재미없다. 누누히 말했듯이 이젠 바카스가 아니라 큐피트가 되어야 한다. 외계인이 활약하는 꽤 괜찮은 영화는 가뭄에 콩 나듯이 발표된다. 그렇다고 내가 좀비가 될 수는 없으니까, 어떻게 보자면 그러니까 착한 일이 하고 싶어진 것일 수도 있다. 참고로 동네 소식을 말하자면 크게 변한 건 없다. 다만 친한 친구들만 매번 바뀐다. 술과 친구는 오래될수록 좋다고 하지만 예술가의 생애와 특별한 관계없이 돌아가는 처지가 그렇게 됐다. 곧 친한 친구들이 자주 바꼈다. 왜냐하면 동네에서 말이 통하고 마음이 맞는 친구들이 자주 떠나고, 또 새롭게 이사를 오기 때문이다. 내 의도와는 별개로 순환률이 좋았던 거다. 마을이 무슨 카페도 아닌데 말이다. 그래도 녀석들은 도시로 떠나서 출세하면 되고, 나는 새로운 친구들과 우애를 쌓고 예술적 영감의 소재를 벌꿀처럼 단물 빨아먹듯이 쪽쪽 빨아먹는, 거 어째 표현이 좀 그렇다만 사실은 사실이니까, 그처럼 어쩌다 돌아가는 실정이 그렇게 되어버린 것이다. 시간 여행, 즉 상대성 이론의 극적 전개에 관한 영화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첫째, 우주로 먼 여행을 떠났다가 지구에 돌아왔더니 난 그대로인데 (존재하지도 않았던) 내 손주가 꼬부랑 할머니가 된 이야기. 둘째는 말 그대로 자유로운 시간 여행이고, 셋째는 시간이 정지되어 세상 모든 만물이 정지됐지만 나만 예외니까 나는 시간에 따라서 훌쩍 커서 어른이 되고, 어떤 이유 때문인지 다시 시간이 정상적으로 흘러서, 머머 2세 머머 주니어가 그 머머와 같아지거나 어린시절 풋사랑과 재회해도 옛날처럼 절친하게 지내기 어렵다는 소재. 여기서 나는 이상하게 첫 번째 은하계 여행자가 된 듯한 착각에 빠져드는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지금 내가 친하게 어울리는 친구들은 남자로는 델과 존과 톰, 여자로는 리지와 엘리자베스와 크리스틴이다. 여기서 애인이나 친애하는 이성친구가 따로 모두 있었는데 톰과 리지만 아직이었다. 그걸 모른 체 하고서 나만 잘 먹고 잘 살 수는 없었다. 누가 사랑의 다리를 놓아야 할까? 누가 해도 해야 했다. 그 어려운 역할을 내가 맡기로 결심했다. 누가 시킨 일은 아니다. 다만 새로운 일을 바랬을 뿐. 바쿠스에서 큐피트로 변신을 시도하고 싶었으니까. 획기적인 묘안은 다름 아니라 바로 그걸 말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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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남자가 안다, 남자는 남자가 봐야 한다 라는 격언이 있다. 그건 사랑의 철학도 아니고 모범적 교훈도 못된다. 그건 진리도 뭣도 아니고, 그냥 웃자고 말하며 전해지는 경구일 뿐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 누구나 아는 얘기다. 만약 그 말이 맞다면 그럼 여자는 남자를 모를까? 알긴 아는데 알아도 잘 믿고, 흔히 속는 듯한 측면이 없잖아 있다고도 한다. 왜냐하면 낭만은 원래 가짜 이상(理想)은 아닌가 그렇듯 실천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적어도 남자에게는. 그래서 저런 말이 생겼을 수도 있다. 인생도 그렇다. 피노키오가 사자로, 백설공주가 호랑이로 변하는 게 인생 아닐까? 안델센 동화책과 최신 볼보 자동차가 어디 공짜냔 말이다. 하지만 인생이 언제나 섭섭한 건 결코 아니다. 장엄한 자연과 신비로운 세상사는 소망에 실패하고 대망에 절망하더라도 소소한 즐거움과 가슴 찡한 행복을 그대에게 선사하니까. 따라서 엄마라는 낱말과 '아빠 사랑해' 라는 동심 외에 웃기는 일설은 풀어도 풀어도 끝이 없다. 푸는 사람 입장에서는 등에 식은땀 쭉 나고 거리의 마법사야 체념도, 가난도, 무반응마저 모두 감수한다지만.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삼류의 초라함과 절대 놓칠 수 없는 그 뒷이야기의 기쁨에 대해서는 논하지 말자. 왜냐하면 유감스럽고 거북하며 뜨뜻미지근할 수도 있지만 하나의 물밑 속담을 확인하고, 기쁜 우리 젊음의 이야기를 이어나가야 하니까. 그건 이거다. 딸아, 아빠 빼고 모든 남자는 늑대이니라! 흐흠. 아빠만 빼고! 뭐 어쨌든 나는 톰과 리지가 꽤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톰과 더욱 더 친하게 지내면서 리지를 한껏 띄우는 작전에 들어갔다. 내가 리지에게 접근할 수도 있지만 만에 하나, 리지가 만약 날 좋아하게 되면 그땐 정말 어떡하냐 라는 부작용이 문득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톰과의 친교를 더더욱 신경썼던 것이다. 그런데 영화는 이미 시작됐고 한참을 기다렸는데 아직도 1인칭 해설? 뭐 일단 지켜보자. 발단은 그렇다쳐도 전개는 다큐멘터리에, 그 다음에 대체 절정이 올지 안 올지, 장르가 뭘로 바뀔지를. 좌우지간, 인물 관계도가 어정쩡해졌다. 우정의 변색은 아니나 친구들과 사이가 서먹서먹해졌다. 아닌 척 모른 척 관심없는 척, 큐피트네 뭐네 그러더니 글쎄, 사랑을 가로채다? 나는 확실치도 않은 추정과 오해 살지도 모르는 비판을 감수하고서 톰과 친하게 지내는 생활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왜냐하면 나는 왠지 톰이 내 새로운 단짝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톰. 어떻게 그럴 수 있니? 왜 말 안 했어, 나 여자라고!」 「오빠들이 안 물어봤잖아. 아무도 궁금해 하지 않던데? 그리고 우리가 무슨 시트콤에 나오는 주인공들처럼 재밌고 웃기고, 막 많이 친한 건 아니지 않나? 난 처음부터 여자였고, 우리는 파티도 하고 겉으로 꽤 튼튼한 우정으로 똘똘 뭉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알고 보면 모두 각자 개인전을 펼치고 있는 것일 뿐이라구. 서로 자세히는 상대를 잘 모르잖아. 아마 깊이 알고 싶어하지 않을 걸. 옛날에 이런 일이 있었다, 어떤 사연이 있었다, 그런 말을 간혹 하더라도 들을 때마다 처음 듣는다고 해. 그게 뭐야? 뭐긴 뭐야, 우정도 사랑도 아니지. 안 그래?」 「톰. 넌 정말 못 말리는 톰보이구나. 네 말에 나도 전적으로 동의해. 그렇지만 어쨌든 난 네게 리지를, 리지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어. 걔 꽤 괜찮은 여자거든. 나도 물론 여자를 좋아하지만, 어느 정도인가는 밝힐 수 없고, 음 그래. 나도 리지가 솔직히 욕심나. 리지를 보고 있으면 막 이상한 상상이 돼. 하지만 그러면 안된다고 최면을 걸고 꿈을 깨지. 무엇보다 리지는, 너한테 무척 잘 어울릴 것 같았거든. 오, 들린다. 글쎄, 누가 아니래? 라고.」 「그거 환청이야? 곧 있으면 UFO도 보이겠네? 오빠 외계인이구나. 아니면 흡혈귄가?」 「아무튼 천국을 뒤흔드는 사랑을 해 보라고 그럴싸한 찬미가를 불러줄려고 했더니만 공치사는 벌써 초장에 꽝으로 결론났군. 항상 그렇긴 하지만 이번엔 뭔가 특별했는데. 하긴 언제는 안 특별했나. 나 혼자 뭣도 모르고 소설 쓰면서 내가 큐피트라도 된 것 마냥 좋아했는데. 하지만 과감히 고백해줘서 고마워, 톰.」 「오빠. 그러지 말고 우리 놀이동산에나 갔다 오자. 원래 드라마에 보면 전학생은 한 명이잖아. 그런데 현실을 봐 봐. 다 신흥 세력이고 오빠 혼자만 시골 촌뜨기라고. 오빠를 꼭 놀릴려고 하는 말이 아니라, 실정이 그렇지 않냐는 말이야. 안 그래? 그런다고 우거지상 쓰지 말고. 내가 보니 오빠는 내내 혼자 놀았던 거 같은데. 동물로 비유하자면 오빠는 카멜레온 같은 사람인데 자유분방함을 즐기는 취향을 숨겨야만 하는 삶을 살고 있는 거야. 애타는 애정 초조한 사랑, 우리 그런 거 잊자. 지금은 말끔히 잊어버리자. 사랑 노래 지겹지도 않니?」 우린 그렇게 놀이동산으로 떠났다. 하지만 연인처럼 카메라 각도 나오게 운전석과 조수석에 다정히 자리잡지 않고, 각자 차를 몰고 갔다. 톰의 차는 뚜껑을 뗀 포르쉐 914-6 GT였다. 그래서 나는 그에 대응해서 흰 셔츠에 연분홍색 바탕에 토끼와 돌고래 문양이 멋진 넥타이를, 그리고 베이지색 투버튼 수트를 차려입었다. 바이킹아 기다려라 우리가 간다, 우리는 진짜로 그렇게 외치면서 도시 근교의 놀이공원으로 떠났다. 그런데 문제는 리지였다. 뜬금없는 리지의 출연! 발랄한 에로 로드 무비가 될 뻔 했는데, 훼방꾼이 나타나서 분위기는 찬물을 끼얹은 듯 장르는 어정쩡한 청춘 로맨스로 돌변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꽁한 남자가 아니다. 맹꽁이보다는 차라리 킬리만자로의 하이에나가 낫다. 따라서 모질게 하고 싶은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왜 따라와? 라고! 그건 그렇고 리지의 차도 뚜껑이 없었다. 나는 커피포트가 되어 차분했던 평상심은 뚜껑이 열렸고 삑삑! 영화에 나오는 폭주기관차인지 뭔지 막 뱃고동 소리처럼 코에서 귀에서 수증기가 분출됐다. 하긴 리지의 마음도 이해는 된다. 저 인간이 톰을 내게 소개시켜 주는 척 하다가 딴 맘 먹는 거 같으니까 직접 나섰다는 거.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말은 일반적으로 맞는 말이지만, 리지는 어쩔 수 없이 나선 것이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기는 싫었으니까.
3
나와 톰의 여행에 리지가 동참했다. 하지만 불청객치고는 나쁘지 않았다. 리지는 그리 흠 잡을 데가 없었으니까. 사랑은 일기예보 같은 것일까? 원래는 톰과 리지를 사랑하게 만들 생각이었는데 어쩌다 나는 의도치 않게 두 여자를 양쪽에 포진시키고 말았다. 사랑은 따로 있고 두 여인의 미래를 예언하는 기행을 여보란 듯 이어갈까? 그건 그냥 궁금해 하는 이도 없고, 풍설 축에도 못 드는 날개 달린 탐욕일 뿐, 꾀보의 의타심도 괴물의 파릇파릇한 선망도 아닐 것이다. 시작은 그랬다. 새로운 여자와 청순한 사랑을, 이라고! 아니, 그게 아니라, 우리 다 함께 하이틴 드라마를 즐겨보던 시절로 돌아간 것이다. 아무튼 놀이공원은 그저 그랬다. 썩 화려하지도, 꽤 황홀하지도, 자못 신비롭지도, 군말 필요없이 막 내내 재밌지도 않았다. 늙었기 때문일까? 응석은! 헛기침 소리가 들릴 것만 같다. 것도 아주 크게. 왜 재미없었냐면 늙었기 때문이 아니라 꼬마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어른이냐 아니냐, 아무래도 전자에 가깝기 때문일까 아직 철들지 않았기 때문일까. 나는 너무 일찍 조숙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소신 뿐만이 아니다. 의무 방어전을 일찍 경험하신 분들의 인생 철학 역시 매사에 신중할 것을 당부한다. 하지만 젊다는 게 뭔가. 좌충우돌이고 우왕좌왕이며, 열 남자 마다하는 여자는 없다더라-다. 아. 농담이다. 그건 그렇고 우리는 놀만큼 놀고 거닐만큼 거닐었기 때문에 놀이공원 나무 그늘 의자에 앉아 차를 마셨다. 거기서 우리가 나눈 대화는 이랬다. 「오빠. 여자의 마음을 알아? 내가 듣기론 오빠가 사람의 마음을 무척 잘 읽는다던데. 혹시 내가 잘못 들었을까? 아닐까? 시시각각 다른가, 사람에 따라서? 어디 한번 여자의 마음에 대해서 말씀 좀 해주시지 않을라요? 오 - 빠?」 「갈대와 같은 여자의 마음을 말해달라고? 여자는 이런 대사를 좋아하지. 진중한 얘기를 글로 읽으라고 하면 그림이 있나 없나, 곧 만화냐 아니냐, 드라마나 영화로 나와 있냐 없냐를 따지겠지만. 젊은 그대니까, 응? 엉덩이가 근질근질하니까 바쁘게 세상을 돌아다녀야 하고, 고운 입술이 간질간질하니까 친구와 시시콜콜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수다를 나눠야 하겠지. 응, 여자니까. 여자는 그래. 그는, 아아 그녀는 알고 보니 보티첼리의 그림 속에서 방금 뛰쳐나온 듯 신기한 매력이 넘쳤는데, 그런데, 자세히 보니 그는 아 그녀는 단테의 순정보다 백 배는 더 아름다운 것만 같았다. 보티첼린지 뭔지와 단테의 순정이 대체 뭔 차이냐고! 그래서 나는 어쩔 수 없이 행복한 사랑의 요술에 덥썩 빠져버렸다. 여기서 그는 리지가 합류하기 전의 톰이었고, 여기서 그녀는 리지가 합류할 찰나의 톰이었겠지, 아마? 아닐 수도 있고. 과장된 호들갑, 유치한 허풍, 성급한 허영심, 모방 기질, 흉내내고 싶은 본능, 뭐든지 일단 따라하고 보는 습관, 그걸 혹시 숙녀는 모두 다 가지신 건 아니겠지요? 만일 그렇다면 그건 어쩜 너무 무분별한 게 아닐까? (딱) 여자란 자고로 맹목적으로 사랑에 빠져드는 데 있어선 타고난 달인인 법. 다정해야 할 때 무심하고 조신해야 할 때 유쾌하다, 난 괜찮지만 남자는 그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게 혹시 여자의 마음이지 않을까? 자, 그러니 이제 그만 후할지 박할지 점수를 알아맞춰볼까?」 「리지. 넌 어떻게 생각하니? 난 좀 더 들어봐야 할 것 같은데?」 「어머, 너도? 어쩜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오빠. 우린 여자지만 여자를 잘 몰라. 남자는 그러잖아. 여자의 적은 여자라고. 왜일까? 오빠가 친절하게 여자에 대해서 가르쳐주지 않을래? 일단 나를 알아야 내가 어떤 남자를 좋아하는가를 알게 될 거 아냐. 남자를 알려면 먼저 여자를 알아야 한다, 그게 우리 지론이니까. 우린, 오빠, 믿어. 그치?」 「여자? 여자와 연애? 단 몇 가지면 첫눈에 홀딱 반하는 그녀는, 뭐랄까, 금새 큰 사랑에 빠져들 수 밖에 없어. 그게 뭐냐고? 적으셔. 못 외우겠으면. 첫째, 아니 셀 필요도 없겠다. 너무 기니까. 자, 그녀가 좋아하는 풍요로움을 손꼽아볼까요? 낭만의 대명사인 회전목마, 빠질 수 없는 TV 연속극, 시선 집중 그래 뚜껑 없는 차, 연정의 상징인 선물, 모든 시선을 독차지하는 화사한 드레스는 어떠니? 소재는 참 좋은 면100이 최고니까 실크는 호불호가 있겠네. 그리고 어렵지 않은 소풍처럼 감미로운 추억 만들기는 불가능한 꿈이 아니겠지. 여자가 웃긴 남자, 말 잘하고 잘생긴 남자를 싫어할까? 그윽한 음성은? 어머나, 웃고 춤추고 노래하고, 예능에 잔재주에 못하는 게 그이는 정말 없네 그래? 적빈만 아니라면, 일부러 빈곤할려고만 하지 않는다면 말 다 한 거겠지. 그러니까 여자는 고양이냐고? 때로는 그렇고 때로는 아니지. 뭐니 뭐니 해도, 여자는 객관식으로 시작해서 인공지능으로 발전해야 해. 미술관과 오페라글라스! 일단 선택권을 주고서 치즈에 연결된 줄을 살살 응? 이렇게 살살 끌어당겨야만 해. 연애는 카우보이처럼 줄을 던지고 사랑은 치즈에 연결된 줄을 살살 끌어당겨야 하는 거라고. 그 둘의 차이가 대체 뭐냐고? 여보세요, 다 알면 재미없다네. 알면서! 그렇게 술술 당기면 저절로 오게 되어 있어. 왜? 아니, 어째서? 왜냐하면 남자는 톰 여자는 제리니까. 제일 중요한 게 그거야. 그녀의 허영심을 만족시키고, 고상한 취향을 칭찬하며, 기대에 대한 긴장감을 유지시키고, 발 빠른 예감을 실망시키지만 않으면 돼. 여자는 무엇보다 마음이 쉽게 동요되거든. 마음이 가만 있질 못한다고. 뒤쳐졌다 앞서갔다, 그 남자의 블로그 비밀번호는 몰라도 속마음은 알아낼려고 그이를 따라서 동기부여 강연회에 갔다가, 거기서 새로운 이상형을 보게 되면 마음은 벌써 꿈동산을 거닐며 신세계로 건너가지. 딱 눈치 봐서, 호박 나이트클럽이냐 우아한 신비 살롱이냐, 단기전이냐 장기전이냐, 답은 이미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 거라고. 단, 주의할 점은 그것. 둘 중 한 명일까, 험담하는 걸 자긴 좋아하지 않는다고 솔직히 고백하는 여자일까. 누군가는 3년 동안 사랑을 하고 여러 새로움의 끝을 봤더라도 남자의 전망이 그만그만하면 주저하지 않고 한치의 미련없이 뒤돌아서는 사람, 그분은 바로 여자라네. 왜? 여자가 원래 그러니까. 사랑은 정녕 그런 거니까. 이때 여자는 무조건 떠나고 남자는 벙 찐다네. 이때 여자는 영원히 남남이 되고 남자는 슬픔으로 붕 뜬다고. 이때 남자는 마음 아파하며 찡그리고서 멋진 뒷모습을 남기지 못한 채 그녀를 보내겠지. 하지만 여자의 마음은 이미 미래로 떠난지 오래니까 남자와는 다르겠지. 하나의 사랑은 이미 끝났고, 지난 사랑의 미래는 더 이상 장밋빛이 아니며, 다른 새로운 사랑을 기대할 수 있는데, 새처럼 자유로운 여자의 마음뿐만 아니라 남자든 여자든 하나의 인생에 하나의 사랑은 아마도 불가능하지 않을까? 그게 너무 가혹한 걸 잘 알기 때문에 성장기 또는 전성기에 남달리 조숙했던 유부남들이 하나 같이 하는 말이 뻔한 거라구. 안 그래? 그분들 참 이상한 생활 대사를 능청스럽게 잘도 만드시지. 사과나무에서 사과를 따먹어도 사과는 계속 열린다느니, 하늘을 봐야 별을 따긴 하지만 별은 하나가 아니라는 둥, 그처럼 말이야. 지고지순한 사랑이 있으면 속된 사랑이라고 왜 없겠나. 속되다 해서 나쁘다는 것도 아니고, 일편단심 사랑이 지독하기만 하며 아름답지 않다는 말도 아니라네. 어떤 여자는 사랑이 정말로 그렇게 끝나는구나? 그러면 남자는! 쳇! 진지한 얘기 말고 쉬운 걸 말해달라고? 언제는! 뭔 생각하시는지 이미 다 알겠네 글쎄. 나 원 참, 숙녀여! 성큼 말을 하시지 그랬나. 내가 그리 꽉 막힌 사람은 아닌데, 그런데 오빠가 또 발동이 걸리면 눈치가 좀 없어지나봐. 달릴 땐 달려야 하니까 말이야. 열심히 몰두하면 한 번에 하나 밖에 못하니까 말이야. 너구리든 노루든 하나만 노려야지 둘 다 좇아 봐. 끝에 가서는 밀림의 치타와 표범과 사자 모두 손가락만 빨게 된다구. 너그러운 자네들이 이해하시게. 응? 쉽게 말해서 사랑 그리고 여자, 여자의 사랑이라... 한 단어로 말해 볼까? 케익. 쳄발로. 영화. 나비넥타이. 에르메스. 호텔. 말. 강아지. 인형... 많고도 많다네. 그걸 모두 논하다간 날 새겠네 그려.」 그런데, 소풍 그리고 수다, 소풍 와서 수다가 다였을까? 그럴 리가 있나. 그 다음에 뭔가가 있었다. 톰이 그랬다. 비밀 하나 가르쳐 줄까 라면서. 그녀는 못 말리는 궁금증과 노골적인 의구심을 부채질 할 줄 아는 여자였다. 그녀의 날 따라오라는 부름에 이어 우리는 놀이공원에서 제일 인기없는 축에 드는 귀신의 집에 들어갔다. 그런데 그 안에서 톰은 우릴 비밀 통로로 끌고 들어갔다. 비밀 통로가 어찌 그리 허술하게도 노출돼 있을 수 있냐, 라는 타당한 물음에 대한 해설은 풀어놓고 가자. 별 거 없다. 유령의 집 안에 있는 삐에로의 코를 비틀었고, 그렇게 버튼은 누른 셈이니 전면 거울은 비로소 특수한 문으로 작동한 것이다.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를 것이다. 영화를 너무 많이 봤든 그러지 않았든. 고대와 중세에 그처럼 지어진 건축물이 실제로 얼마나 많았는지를. 우리는 그 통로를 쭉 따라가서 한적한 교외에 위치한, 지금은 폐업한 어느 작은 결혼식장에 도착했다. 「와, 톰! 이런 길이 있다는 건 어떻게 알아냈어?」 「오빠는 여기 오래 살았으니까 모든 게 새롭지 않잖아! 하지만 난? 난 모든 게 새롭다구. 그래서 발견했지. 내가 누구야? 스타는 아니지만 왕년에 꽤 바빴을지 또 모른다구. 저 놀이공원에 대한 토지대장을 굳이 확인해 보지 않아도 능히 짐작할 수 있어. 대충 지은지 족히 반 세기는 됐을 거라고. 오늘 우리가 걸었던 길에 대해서 처음부터 설계했고 당시 시공도 마쳤어. 그런데 인기가 없네? 있어도 그 다음이 없네? 그럼 잊혀지는 수 밖에. 그걸 만들었던 참여자들을 입단속 시킬 필요도 없이 반세기 지나면 어떻게 되겠어? 세상에 그런 일이, 로 되는 거야.」 「톰과 나랑만 알고 있을려고 했는데, 오빠가 이제 비밀을 알았으니, 앞으로가 궁금해지는데. 호호호!」 「헤헤. 오빠는 그랬어. 우리가 어리니까 귀엽다, 젊으니까 예쁘다, 청춘이기 때문에 아름답다, 라고 하지 않았어. 그 말은 뭐야? 젊음이 퇴색하면 보통의 엄마처럼, 그래, 흔히 볼 수 있는 동네 아줌마처럼 변할 거라고 예언하지 않았다는 말이지. 엄마 보고 싶다 아빠 사랑해, 그건 좋은데, 여성잡지1을 구독하는 우리가 여성잡지2에 대해서 친구끼리 맹렬하게 논쟁하시는 우리 엄마들처럼 될 것이다? 먼 미래에? 누구라고 말은 안하겠는데, 가만 보면, 꼭 그런 남자들이 있으니까 하는 말이야. 안 그러니, 리지?」 「응 그럼. 오빠, 그럼 이제 2탄을 기대해. 알았지?」 나는 얘네들이 이때부터 어딘가 모르게 엄청 부담스러워졌다. 이 험난한 고비를 어떻게 타개한다? 그 생각 밖엔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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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일은 요리왕을 꿈꾸는 즉 지금은 약간 성의 없는 요리사 델과 식사를 했다. (델이 요리를 못한다 너 그럴려고 요리 배웠냐 라는 말을 얻어들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친한 누군가가 가게에 놀러오면 요리를 해 주지 않고 배달음식을 주문할 정도로 뭐 어떻다는 걸 말함) 그런 다음 속 좁은 술집에서 바텐더로 일하는 현자 존과 함께 칵테일을 마셨다. 그리고 엘리자베스가 운영하는 음악당에서 호프마이스터의 더블베이스 협주곡을 감상했다. 그 후 멀더의 카페에 들렸고, 노트북을 펼쳐서 글을 쓸까 했는데, 멀더가 쪽지를 전해주었다. 쪽지를 보니 리지의 글씨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오빠 지금 톰에게 연락해 봐, 라고. 나는 톰에게 연락했다. 톰은 우리 동네 공터에 있는 테트라포트로 즉시 가 보라고 했다. 그 테트라포트도 뭐랄까, 초딩식으로 말하자면 우리 동네의 3대 명물이었다. 불가사의까지는 아닐 테지만 그렇게 우겨도 반론하기도 애매했다. 어떻게 그것이 그곳에 있게 되었는지를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으니까. 또 그게 꼭 거기 있어야 하는 납득할 만한 영문을 추론할 수도 없으니까. 그러므로 그건 유치하긴 해도 불가사의인 게 맞다. 보통 해안가에 있는 테트라포트는 그 무게가 최소 수십 톤이고, 최대는 (대략) 최소의 수십 배에서 수백 배에 이르는 것까지 있다고 한다. 따라서 테트라포트는 그 엄청난 무게 때문에 그것을 설치할 지역과 제일 가까운 곳에서 만드는 게 정석이다. 그럼 우리 동네가 옛날에 바다였다고? 빙하기 때 그걸 제조할 문명이 존재했다면 몰라도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예측이다. 하긴 우리 동네의 2번째 명물인 나무 위에 걸쳐져 있는 소형 보트도 따지고 보면 이상하긴 마찬가지다. 아무튼 나는 톰이 말한 이유가 아마도 합리적일 것이라 예상했고, 하지만 별 일은 없을 거라 추측했으며, 실망하면 가만 두나 봐라 라면서 톰과 리지의 밀고를 과소평가했다. 설마 테트라포트가 공중에 붕 떠 있기라도 하겠어 라면서 나는 그곳으로 갔다. 그런데! 테트라포트는 진짜로 공중에 떠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이것이 그것이다. 나는 느꼈다. 2탄치고는 너무 엉뚱하다고. 하지만 갑작스러운 선물인 건 분명하다고. 그리고 나는 들었다. 요한 밥티스트 반할의 바순 협주곡 F장조를. 뻔한 기대, 실망스런 예감을 뛰어넘어 신기한 환영, 놀라운 환청, 황홀한 환각, 그처럼 잠깐이나마 환상은 완성되었다. 보기 좋게 나는 대충 최소 10~20초에서 최대 1~2분 가량 그걸 믿었고, 놀랐고, 동시에 믿을 수 없어서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저 물건이 어떻게 자력으로 공중에 뜰 수 있지, 라면서 의심은 명백한 증거를 보고 있는데도 그걸 가짜로 만들고 싶어졌다. 하지만 불과 3분이 채 지나지 않아 나는 그게 실물 크기의 초정밀 풍선이란 걸 알게 됐다. 당연히 테트라포트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고, 원본은 위장 그림이 그려진 천막으로 가리고, 거기서 투명한 줄로 복사본이 매달려 있었던 것이다. 오, 저런 저런! 나는 추억의 노래와 최신 유행가만 3분의 마법이 아니란 걸 알게 됐다. 그래서 나는 이것 봐라, 그러면서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 이게 2탄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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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탄은 어려운 추리력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몇 탄까지 이어질지는 몰라도 일단은 톰과 리지가 우리의 리더였고, 분위기 메이커였으며, 동네에 활력과 생기와 즐거움까지 제공하는 인기 스타였다. 때문에 그녀들은 바빴다. 어쩌면 나 같은 물러터진 바보와 놀아주니까 나는 그걸 영광으로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턱없이 모자란 자존심 때문인지 욕구 불만에 기인한 질투심 때문인지 나 혼자서, 그래, 난 무의식적으로 그녀들 리지와 톰을 묘령의 후궁들로 여기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지금 생각해 보니 당시 그녀들에게 애첩의 계급을 올려줄까 말까, 막 그러면서 영락없이 사춘기의 부활을 꿈꾸고 있었던 것 같다고 고백하는 바이다. 그러면서 천재적인 악상이네 환상머신의 탄생은 무슨! 그러다 나는 내 사무실로 돌아와 생각했다. 혹시 아직 시작도 안한 건 아닐까 라고. 덜컥 겁이 났고, 흠칫 놀랐고, 벌벌 떨었다. 뻥이다. 아니 진짜다. 나는 허랑방탕하게 살아온 지난 인생을 후회하는 마음까지 느꼈으니까. 어쩌다 일이 이렇게 커져버렸는지 잘 모르겠다. 어쨌든 혹시 톰과 리지에게 내가 놀아나고 있는 건 아닐까, 착각인지 추정인지 의문에 휩싸였다. 형편없는 정보력을 긁어모을 수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차분한 분위기에서 잠시 마음을 진정시켜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여 나는 크리스틴이 운영하는 미술관 귀빈실로 갔다. 그곳에 도착해서 별다른 일은 없었다. 거긴 거의 내 제2의 사무실이었다. 크리스틴은 거의 도시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보기 힘들었다. 비서도 있었다. 나는 그녀를 귀찮게 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쉬면서 나는 2~3분 분량의 동영상과 10초 20초 길이의 소셜 네트워크 게시물을 보았다. 첫째는 거의 1미터에 준하는 대어를 낚아올리면서, 친구들끼리 흥분에 설레발에 들뜬 대화들 끝에, 물고기를 끌어올려서 마구 기뻐하는 영상이었다. 둘째는 쥬스를 업지르고, 화분이 깨지고, 침이 꼴깍 넘어갈 듯한 요리에 바람기가 가득한 해변의 분홍색 모래를 끼얹고, 백설탕 황설탕 흑설탕과 코코아 분말을 부엌과 거실과 푹신한 소파에 한가득 뿌리는 등의 기행을 짧게 편집한 영상이었다. 그걸 보고 아 나도 따라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만약 할 수 있다면, 행운이 따라주고 갖은 노력과 모든 귀찮음을 충분히 감수할 수만 있다면! 다만 나는 말미에 보너스를 추가하고 싶었다. 1과 2 모두 끝에 10~20초면 충분하니까. 즉 추가하고 싶은 장면은 이랬다. 첫째는 잡은 대물을 다시 방생하는 장면까지 포함하면서 막 끄지 마 끄지 마 기다려 기다려 그러면서 거들먹거리는 모습이고, 둘째는 그 모두를 다 치우고 뒷처리하느라 억수로 고생하는 모습을 편집해서 추가하는 것! 하지만 어느 세월에? 성가셨다! 이래서 남모를 욕망의 몽상은 해도 해도 끝이 없고, 논리적 상상력의 기쁨 역시 그 재미가 제법 쏠쏠한 거다. 내 딴에는 톰과 리지의 깜짝-쇼에 예의껏 흥분을 가라앉히고, 하다 못해 박수 치고 기념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라는 마음에 나는 결국 그날 하루를 곱게 마무리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나 혼자 괜히 2탄의 즐거움과 3탄에 대한 은근한 기대감 때문에 즉석 복권을 몇 장 사 들고, 동네에 새로 생긴 바에 들렸기 때문이다. 나는 거기서 예상치 못한 뜻밖의 즉석 복권 당첨 때문에 바쿠스의 천명을 받들어 골든벨을 울렸다. 물론 다짜고짜 아무 생각없이 덥썩 골든벨을 울린 건 아니었다. 그 전에 제법 웃긴 아주 작은 소란이 있었다. 그건 무엇이냐면 바로 누군가가 카페에 있는 피아노를 연주했기 때문이다. 곡명은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땡벌의 비행. 어디서 본 건 있어가지고. 또는 옆에서 부추겼을 수도 있다. 배우면 뭐하냐 써먹지를 못하는데 라면서 깐족깐족 건들었을 수도 있다. 통상 이런 장면은 거의 영화에서나 볼 수 있지 실제로는 정말 보기 힘들다. 왜냐하면 전문연주자는 무대가 아닌 일상적인 공간에서 아무렇지 않게 실력을 뽐내는 데 대해서 아마도 무척 신중하기 때문에 그 빈도가 드물 테고, 아마추어는 하고자 하는 열의는 가득하고 분위기를 띄우고 싶은 갈망의 주인공이 되고 싶지만 실수할까 봐 두려워서 선뜻 나서지 않기 때문이다. 전문가라면 소품 하나쯤은 일도 아니다. 그러나 전문가는 직업 의식과 예술에 대한 소명에 대한 팽팽한 긴장감을 내내 유지시켜야 함을 잘 알기에 그런 자리에 선뜻 즉흥적으로 나서지 않는다. 나중 혹 정체를 알게 되면 대중도 실망할 수도 있고. 그래서 카페의 무대는 대개 아마추어의 독무대다. 놀 때는 상관없다. 그런데 뭔가 놀랍게 시작했다가 실망으로 끝나는 게 문제다. 그곳의 누군가도 그랬다. 딱 그랬다. 출발은 좋았다. 당연히 누가 그랬겠지. 음악 꺼 음악 꺼, 라고. 그래서 독주곡이 탄주된지 1분이 되니까 완전히 개미의 발걸음 소리도 들을 수 있는 침묵의 순간이 찾아왔는데, 분위기 다 갖추어졌는데, 어머나 이게 뭐래니! 딱 이때부터 버벅버벅 연주자는 헤매고, 좌중은 속닥속닥, 작은 웃음 소리는 잔잔한 미소 가운데 간혹 폭소도 발생했다. 이때 웃지 않으면 그건 유머 감각이 없는 작자고, 호인도 이상형도 허당도 뭣도 아니며, 인성도 사회성도 다 포기한다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러니 내가 나서지 않을 수가 있겠나. 평생 골들벨을 들어보지도, 일평생 골든벨을 울려보지도 못했겠다, 상위권은 아니지만 복권도 당첨됐겠다, 곤경에 빠진 꿈 많은 아마추어 연주자를 독려해야겠다, 까닭은 많고도 많았다. 블로그 신드롬과 허언증이 치료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내 열정은 앞뒤 보지 않고 내 몸을 움직였기 때문에, 에라 모르겠다, 그러면서 정신없이 골든벨을 어린애 장난처럼 울렸던 것이다. 누가? 그래, 바로 내가! 난 정말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신있게 골든벨을 부서져라 울려본 것이다. 그런데 아뿔사! 알고 보니, 복권의 위 숫자와 아래 숫자가 일치했나는 미처 확인하지 못했다. 어머나, 세상에 이런 일이! 망연자실. 하나 패를 무를 수는 없는 법. 비굴한 불운을 사랑의 기회로 삼아 나는 어느 아프로디테에게 접근했다. 그래서 결과는? 시작은 좋았으나 보기 좋게 퇴자를 맞았다. 따라서 결론은, 2탄은 공짜가 아니라는 결과를 불러오고야 말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톰과 리지와 계속 절친한 친분을 앞으로 계속 유지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라고.
6
나는 세 번째 퍼포먼스 같은 건 궁금하지 않다면서, 연이어 발생하는 요란한 오락적 사건에 섣불리 개입하지 않기 위해서, 일부러 그 모두를 관심 없는 척 외면했다. 가련한 모험심에 순박한 애욕, 그리고 참을 수 없는 호기심과 지칠 줄 모르는 감수성 때문에 괴로워하던 시절은 지난지 오래되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톰과 리지를 보고 싶은 마음을 꾹 참았다. 아직 생활 예술 3탄은 기척도 없는데 내가 설마 기대를? 그렇다. 점잔 빼지 말고 솔직히 말하자면 본의 아니게 기다려지기는 했다. 요만~큼! 그런 내 마음을 알았기 때문일까? 나의 허영심은 다치고 허풍은 쏙 들어가서 허당은 마침내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글도 안 써졌다. 그러나 먼저 연락할 수는 없었다. 내가 먼저 연락을 받는다고 이긴다, 뭐 그런 호승심 같은 건 없었지만 살면서 난 패배주의에 꽤나 민감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먼저 꼬리 친 개 나중 먹는다는 속담도 있지 않나. 심지어 속을 봐야 알고 사람은 지내 봐야 안다고 하니까, 뭐랄가, 제3탄이라는 놀라우리만치 기발한 발상이 현실화되기 전에는, 뭐랄까, 악마의 궤변은 믿을 수 없었다. 속마음은 은근 한번 더 감쪽같이 속고 싶었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믿을 수 없다는 듯이 필설로 다할 수 없는 제3의 도취감은 별안간 내게 다가와서 내 여린 마음을 술렁이게 만들었다. 먼저 리지로부터 문자를 받았고, 나는 리지가 알려준다는 동네 호수 중간에 있는 섬까지 가 봤다. 그 광경을 보자마자 나는 또 다시 선뜻 결코 치유될 수 없는 공상에 빠져버렸다. 일이 그럴 만 했다. 넉넉히 그럴 만 했다. 우리 동네에 있는 또 하나의 명물인 나무에 걸쳐진 배에 대해서 나의 설명이 충분치 않았기 때문일까? 그 호수의 섬, 곧 나무 위의 배가 있는 곳으로, 그걸 뭐라하더라, 열기구 비슷한 물건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건 곧 풍선이 수십 개 달린 배였다. 안에는 톰과 리지가 타고 있었다. 말도 못하게 뜬금없었다. 한동안 물끄러미 응시할 수 밖에 없었다. 그 친구들은 그 하늘을 나는 배를 역시 근처 나무 위에 안착시킨 후 어떻게 어떻게 내려왔다. 뭐야, 날이면 날마다 퍼포먼스? 얘네들 미친 거 아니야? 늬네가 누구냐, 라고 말할려고 했는데 막상 적당한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어버버버 어버버버 감탄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완전히는 아니지만 제정신으로 돌아와서 감탄사와 혼잣말을 내뱉을 차례가 됐다. 될 수 있으면 나는 품위 있는 화술을 구사하고 싶었지만 돌아가는 상황 때문일까? 내 말을 내가 듣고 보니 딱 그랬다. 바로, 호색가의 현란한 언변! 난 도저히 걔네들 속마음을 알 수 없었다. 무슨 특별한 계획이라도? 난 가난한 작가일 뿐인데! 그런데, 왜? 내 말이! 이건 혹시 왜곡된 사랑일까? 또는 사랑 게임? 아니면 만화영화 같은 사랑? 녀석들은 지치지도 않나, 그녀들은 내게 웃음기가 싹 가시게 만드는 징크스 같은 일들을 가지고 매번 나를 깜짝 놀라게 만들고 있었다. 설마, 혹시 이거 자랑일까? 어리석은 젊음 무모한 청춘, 정결한 소망과 단순한 야망, 없는 꿈이 자연스러운 철부지 스무 살의 놀이일 뿐이라면서? 심지어 보트도 멋졌다. 오묘한 오렌지색 더하기 딸기잼 색깔. 풍선들은 더더욱 화사했다. 나른한 살색, 촉촉한 주황색, 애교 가득한 선홍빛, 세상에서 가장 신비스러운 파란색과 달콤한 행복을 암시하는 연노란색까지. 아 나 정말 이거 진짜, 허허! 가지 가지 한다. 누가 마성의 질투심 유발자들 아니라고 할까 봐. 사실 난 많이 떨렸다. 내심 겁이 났고 무서웠다. 걔네는 딴 세상에 사는 돌아이, 나는 정상인인 것만 같았다. 내 마음이 이러하니, 그래서 하는 말인데, 우리 이제 만나지 말자! 그럴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내친김에 제4, 제5, 제6... 막 계속 기다리고 확인하고 기대하고 감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톰과 리지를 만나서 담판을 짓기로 했다. 어여쁜 숙녀의 환생한 듯 기쁨에 벅찬 사랑의 환희와 바로크 음률이 나부끼는 찬란한 인생, 모두 안다 아름답다 부럽다, 하지만 이건 짚고 넘어가자 라고 말을 해야만 했다. 너네가 사람을 잘못 찍었을수도 있고, 지금 잠시 생각이 딴 데 가 있을 수도 있다. 그래 맞어, 사랑처럼 콩깍지가 씌었을 수도 있단 말이다. 그러니 오해가 있으면 풀고, 우리 이렇게 하자. 우리 아니 숙녀여 그걸 꿈꿉시다. 다음의 이상을. 네? 허영은 충족됐고 허풍은 감상됐으니 비로소 사랑에 눈을 뜨다. 바로 그 포지셔닝을 추구하는 게 어떠냐고. 나는 그렇게 절규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정말 그렇게 이 친구들을 설득하고 타이르기로 마음먹었다.
7 「너네들 왜 이러니? 아니, 허허! 나한테 왜 그래? 음 그게 그러니까 말이야. 어... 뭔지는 몰라도 내가 뭔가 잘못한 것 같구나. 오빠가 인정할께. 어떻게 소원이라도 들어줄까? 신발끈 매줄까? 아니면 뭐? 말만 해. 뭐든지. 응? 오빠가 분명 뭔가 착오가 있었는데, 확실히 그랬을 텐데, 음 그게 정확히 뭔지 잘 모르겠으니까 그대들께서 오빠한테 친절함을 베풀지 않겠소? 네 이년! 뭐가 어쩌고 어째? 냉큼, 하나도 빠트리지 말고 소상히 아뢰옵거라! 어서 이실직고하세요, 네? 아 정말 알려주시오, 낭자! 응? 도대체, 왜, 하필, 나니? 응? 너네 대체 나한테 왜 그러는데? 응? 고백해주시오 그대여. 실토해 이 아가씨들아. 숙녀여, 궁금해서 간밤에 잠을 설치는 이 오빠한테 조그만 힌트를 알려주지 않겠수? 응? 뭐라고 말 좀 해 보셔. 정말, 너네들 누가 보낸 거니? 누구의 지령이야? 아이디어는 누가 냈고? 아 왜 말이 없니, 답답하게. 얘네들 정말 과묵하네. 진짜 심하네. 너무나도 의뭉스럽다고. 어?」 「오빠. 우리 이거 그냥 불문에 부치는 게 어떨까? 내 불찰일 수도, 운명의 장난일 수도, 번뜩이는 타인의 행복일지도 모르지만 일단은 그게 좋을 것 같은데. 리지, 넌 어떻게 생각하니?」 「솔직해 말하자, 톰. 우리야 그냥 중간 역할자일 뿐이자나? 우리가 특별히 조율하고 계획을 변경하고 작전을 설계하고? 우린, 그런 거, 몰라. 그걸 우리가 어떻게 알아? 아가씨, 어이, 톰! 자세히 보면 보이는 엷게 화장한 아가씨의 보드라운 그 콧수염, 남자처럼 막 만지작거리지 말고 뭐라고 말 좀 해보셔. 응? 가만 놔두면 얘 혼자 있을 때처럼 막 코 후비고 그러는 거 아니야? 너 혼자 있을 때 진짜 막 그러는 거 아니니? 아무래도 걱정되는데.」 「하긴. 네 말이 맞다. 동의해. 인정한다구.」 그니까 뭘, 뭘 동의해? 「얘네들 뭐래니? 그게 대체 뭔 말이야? 가능한 한 쉽게 설명해 줄래? 오빠 말은 무슨 사랑의 세레나데를 불러달라는 말이 아니잖니? 재산 목록 1호 최선의 희망 최고의 사랑을 실토하라고 윽박지르는 것도 아니야. 그냥, 지금 일이 어떻게 된 건지 돌아가는 형세 그거만 알고 싶다는 게 다야. 안 그러니?」 「그런데 있잖아 오빠, 문제는 우리도 아는 게 없다는 거야. 위도 아니고 아래도 아닌데 우리가 뭘 알겠어? 오빠는 장래 커서 예술가가 될 거라곤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지? 우리도 그래. 우리가 고액 현찰이 가득 찬 007가방을 받게되리라곤... 아니 영화처럼 그런 거 한번 구경이라도 해봤으면 소원이 없겠다는 말이고. 음, 돌이켜보면 우리도 아는 거 하나도 없어. 우리가 뭘 아니. 안 그래?」 톰과 리지는, 리지와 톰은 인상주의의 직계 후계자라도 된다는 듯 그럴듯한 핑계를 잘도 꾸며냈다. 일단 이대로 가자고? 정...말? 가뿐히 환심 살 말만을 떠벌리고 다니지도 못하고, 주체하지 못할 정도의 열정을 리지와 톰과 함께 나누어 가질 수도 없으니까, 그냥 이대로 가? 그래? 나는 고민에 빠졌다. 그래서 우선 후퇴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고, 뜬구름잡는 화제에서 스윽 일상 얘기로 전환했으며, 여자들이 좋아하는 얘기를 나눴다. 왜냐하면 뭔가 느낌이 내가 계속 더 속고 있다는 깊은 인상을 남겨야 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지금 톰과 리지와 내가 하는 말들을 누군가 실시간으로 듣고서 문서화해서 상급자에게 보고하지 말란 법도 없으니까 말이다. 만족할 만한 우연의 은총에 힘입어 영화 속 주인공처럼 내 말이 뭐라고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니, 혹시 모르니까, 나는 톰과 리지를 안심시키고 다독거리고 아첨 일색으로 분위기를 몰아갔다. 얘들아 최근에 오빠가 어떤 일기를 쓴 줄 아니? 막 그러면서. 오빠가 말이야, '불유쾌함, 무환상에 몰상식과 역교양에서 탈권태와 초현실로.' 그런 말 같지도 않은 글을 썼다가 볼펜으로 끄적끄적 적었다가 종이를 찢어서 구기고 입으로 물어뜯어서 던져버렸어. 왜냐하면 난 지금 바보가 되어야만 했으니까! 녀석들과 헤어져서 집에 돌아온 후 침대에 누워 가만히 생각해봤다. 별 소득이 없었다. 그런데 딱 하나, 리지가 그랬다. 무슨 지령 제목이 1.5라나! 쩜오? 그게 뭐지? 나는 내 주특기인 공상의 나래를 펼쳤다. 1탄 비밀통로, 2탄 테트라포트, 3탄 하늘을 나는 배. 제1번 객관적 시간이 정지된 채 개인적 시간은 정상, 제2번 시간의 정지, 제3번 객관적 시간은 정상인데 반해 개인적 시간은 정지. 이 경우의 수에서 정답을 맞춰보라는 수수께끼일까? 1에 갔더니 A현상, 2는 B현상, 3은 C현상, 그래서 주인공이 그 규칙적인 정형을 파악하기 위해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뛰어다니는 미스테리 영화? 제작비만 날리는 거다. 것도 왕창. 그건 불가사의도 아니고 뭣도 아니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그럼 혹시 1.5는 미래 언제쯤 내가 쓴 소설 제목이고, 리지와 톰에게 지령을 내린 베일에 감춰진 인물은 바로 미래의 나? 우리가 영화에서 보면 시간이 정지되면 모든 게 정지되서 우스꽝스런 일들이 자연스러워지는데, 실제로는 그러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곧 만약 시간이 정지되면, 그 상태로 주관적 시간이 흐르는 당사자는 시간이 정지된 모든 생명체를 볼 수 없지 않을까? 과학적으로 어떻다고 하겠지만 그 모두에 대해서 실증된 예가 많지 않으니까 또 모른다. 그야 어쨌든 리지와 톰 때문에, 아 나 정말 이거 어떡한담, 생각이 쉬지 않고 생각이 멈추지도 않고 계속 많아졌다. 숙녀는 예감하고 신사는 예언하다, 그게 원래 내 임무인데 시간의 허구를 다룬 이야기? 그게 정말 웬말이냐고! 뭐 방법이 없으니 일단 기다려보는 수 밖에.
8
비밀이란 속임수다. 환상이란 없다. 신비를 탐구할 시간 없다. 오늘은 심심하고 마침내 내일 재미있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1.5가 무엇인가를 알아내야 한다. 그러나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무턱대고 이름 하나 가지고 어떻게 사연을 추적하고, 어디 가서 판타지를 탐애한단 말인가. 그래서 나는 유난 떨지 않고서 가만히 기다렸다. 제4탄의 무언가를 영접한다면 얼마나 황홀하고 얼마나 기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으로서는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미스테리 그거 말이 쉽지 어디 가능하기나 하냔 말이다. 오락산업 종사자가 특정 단어만 남발해도 그런다. '반전' 그거 아무 데나 갖다 붙이지 마세요 라고. 그렇게 발단을 1 전개를 2 라고 했을 때, 1.5라는 소강 상태는 우리를 찾아왔다. 톰과 리지도 바쁜지 통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어차피 서로 자주 연락하는 사이도 아니었다. 나도 형식적으로 예의상 친한 척 했을 수도 있다. 내가 이래뵈도 가식으로 따지자면 아마 어디서 쉽게 빠지지는 않을 테니까. 우린 모두 자기 인생이 제일 중요한 개인이니까. 그렇게 무료한 일상이 이어지던 나날은 계속됐다. 한편 크리스틴이 유명해졌다. 관광객들은 크리스틴이 사는 집을 구경하기 위해 막 찾아오기 시작했다. 특별히 볼 건 아무것도 없는데 크리스틴이 거기에 살기 때문에 사람들은 찾아오고 또, 또, 끊임없이 찾아왔다. 예전엔 미처 몰랐다. 크리스틴이 옛날에 그렇게나 유명했는지를. 알고 보니 크리스틴은 왕년에 꽤 잘나갔다고 한다. 가수로 활동하며 앨범을 발표하기만 하면 무조건 1등이었고, 열광하는 팬들 앞에서 춤추고 노래하며, 책도 쓰고, 영화에도 나오고 광고에 모델에 사업가에, 그땐 뭘 해도 됐다고 한다. 아니 그런데 난 왜 몰랐지? 난 대체 뭘 한 거야? 하긴 나도 과장하자면 만화영화에나 나오는 지옥 훈련 기간이 있긴 있었다. TV도 보지 않고 사람들을 거의 만나지 않고 혼자서 작품에만 정진하던 시절. 내게도 있었다. 나도 그때 꽤 오랫동안 뭔가를 하긴 했는데 지금 와서 둘러보니 특별한 성과는 없다. 아마도 그래서 내가 몰랐을 수도 있다. 모르면 어떤가. 나는 친구 중에 예술가가 한명도 없었지만 전직 종합 예술인이 생겼으니 기뻐할 일 아니겠나. 그동안 뭘 모르는, 태반에 해당할지도 몰라 걱정되는 꽥꽥-짹짹-떽떽형 유명 작가와 연예인병을 앓아본 적 있는 예술가, 특히나 얼굴이 두꺼운 삼류들의 촌스럽고 남부끄러운 안목을 괜스레 나 혼자서 대신 챙피하게 여겼는데, 내게도 유명인 친구가 생겼으니 나까지 덩달아서 딸랑딸랑 방울소리가 들리고 반짝반짝 조명이 바춰지는 것만 같아서 괜히 기분이 잠시나마 우쭐했다. 뭐, 꽥꽥-짹짹-떽떽형 작가? 뭐, 최소 절반이나 될지도 몰라 걱정된다고? 걱정된다. 왜냐하면 고전주의가 있으니까. (나도 안다. 너나 잘해 라는 충고를. 사둔 놈 말 하시네 라는 비아냥을!) 권위와 인기와 오락과 유행이 좋긴 좋다만 시간 앞에 장사 없다. 쟁쟁한 예술은 대개 허상이고, 예술이란 분야는 이미 산업과 오락에 잠식당한지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예술만 그런 게 아니다. 신앙도 그렇지 않나 라고 종교인이 자성을 담아 말한다. 옛날 옛날에 교회는 그리스─로마─유럽으로 이동하면서 철학─제도─문화로 침윤됐지만 지구 반대편으로 넘어오니까 기업이 되더라 라고. 다시 누리꾼은 덧붙인다. 어디에 오면 대기업이 됩니다 라고. 어쩔 수 없다. 다 그런 것도 아니다. 양지도 있고 그늘도 있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구관이 명관이다랄지 그 반대랄지 나와 남을 대하는 기준 자체가 유동적이지 않기를 바랄 수 밖에. 그건 어쩔 수 없다. 왜냐하면 현대의 신은 누가 뭐래도 그분이 아니라고 쉽게 반론을 제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대의 체계가 탄탄하고 문명이 발달한 만큼 예술, 농담, 놀이, 장난, 자유, 오락, 연예, 학문, 산업, 경제등 분야도 드넓고 사람의 생각도 원대하게 다양해졌다. 행복과 보람과 가치와 즐거움등 추구할 제재도 줄 길게 서 있는 걸 무시할 수 없다. 입법과 사법과 행정의 삼권 분립을 교복 입는 시절에 정치 과목으로 배우지만, 사회에 나와 보면 그 3이란 숫자는 다시 경제─정치─사회로 바뀐다는 걸 알게 된다. 현대는 그렇고 중세는 또 달랐다. 국왕과 교왕과 통치권자가 1이나 2로 압축됐다. 다시 현대로 와서 통치권자는 만국 공통이고, 국왕과 교왕과 교황은 만국 공통이 아니다. 그래서 뉴스에 어떤 악수하는 모습이 나오면 또 말들이 많다. 그건 한마디로 넌센스다. 그게 다 오락산업이 대중을 위한 삐에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무언가가 때로는 하트 퀸일 때도 있고, 때로는 다이아몬드 1일 때도 있다. 똑같은 카드를 놓고 누구는 스페이드 킹으로 보겠지만, 누군가는 크로바 A로 볼 수도 있는 게 이 세상이다. 그러니까 고수는 다음 장을 읽어야 한다. 카드 하니까 또 삼천포로 빠질 뻔, 돌아가자. 그건 곧 이 세상이 잘 돌아간다는 반증일 수도 있다. 각자 할 일을 하고 할 말을 하며 인생을 즐기는 것, 그게 곧 세상사니까. 오늘 어떤 일이 있었습니다 라고 뉴스에 나온다. A의 1인자와 B의 국왕이 만나서 악수를 나눈다. 애초부터 어색한 만남이다. A에는 1인자만 있고, B에는 1인자와 국왕까지 있으니까. 조건 자체가 동등하지 않다. 그렇다고 B의 국왕은 옛날식으로만 인사를 받기만 해야 하느냐, 오히려 B의 국왕이 현대식으로 웃어야 하지 않냐, 아니다 전통이기 때문에 굽히는 게 옳다, 만인에게 인사만 받겠다고?(현시대 왕이 구시대적으로 그렇게 원한다는 게 아니라, 사람들 소수 의견이.), 아닌 게 아니지 만약 어디에 1인자만 있다면 그 1인자는 대외적으로 통치권자와 국왕의 역할을 겸해야 하니까 따라서 굽히는 건 옳지 않다, 그 논리가 싫다면 어디라도 국가 수장이 세상 모든 각 나라의 왕들한테 굽실거리는 건 뭐 괜찮다 좋다는 말 아닌가 아니 그렇소?, 어른들 잘 아시다시피 정치만 해도 그렇지 않나 꽤 적지 않은 경우 국내용을 위해 불필요한 말과 허식이 있을 수도 있다는 걸! 찬성과 반대라며 말들이 좀 많지가 않다. 대중매체도 거든다. 그 언제라도 국왕의 소박함과 품위를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또 말은 안 해도 각자 생각은 따로따로 다 한다. 그게 왜 그러냐면, 일단 한 국가의 1인자는 세계를 돌아다니지만, 국왕은 말 그대로 세계가 아닌 국내의 국왕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실질적인 역할이 대하드라마와 똑같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다름은 분명해진다. 왕은 존중 받아야 할 특수한 신분, 통치권자는 존경을 받도록 노력해야 할 정치가라고. 그렇다. 땜장이는 절반쯤 자기의 일을 좋아하고, 재단사는 꼼꼼하게 마름질하는 일을 천직으로 삶고, 군인은 명예를 중요시한다. 선원의 직업은 선원이고, 부자든 가난뱅이든 누구에게나 천운이 내리는 기회가 사는 동안 세 번은 있다고 한다. 진짜 세 번인가는 중요치 않다. 그건 살기 나름이니까. 추리소설에서 어떤 역할은 두더쥐의 숙명이었다. 그러든 어쩌든 왕이라고 하면 왕의 일은 대하드라마에 나오는 것, 그게 진짜다. 그 진짜로 인해 무수한 기쁨과 슬픔이 태동되었고, 그 진짜는 역사를 만들어낸 주역이었다. 그런데 지금 시대는? 단지 상징적인 전통일 뿐. 이런 주제를 논하는 것이 누군가의 역할이듯이. 핑계 대며 딴 데 쳐다보고 쉬쉬할 필요 없다. 따질 건 따지고 정면돌파해야 할 때는 정면돌파를 해야 한다. 추억의 영화배우 율 브리너는 연기자였고, 학자가 가설을 이론으로 발전시킬 동안, 현대에 존재하는 왕에 대해서는 왕은 무슨 일을 하는가 라며 주업이 무엇인가 궁금해 하지 않아도 된다. 모르는 사람도 없다. 단지 그건 운명이라고 알면 된다. 그게 다다. 반면 1번 정치인이 일을 어떻게 하는가는 관심을 가지는 게 좋다. 다수의 무관심이 치러야 할 대가가 적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왕이 어떻게 사는가는? 몰라도 된다. 직간접적으로 관계된 분이라면 몰라도, 아니라면 알아야 할 필요도 의무도 없다. 처음도 끝도 일반인과 왕은 평등하지 않다. 하지만 인간인 건 똑같다. 왕은 신이 아니고, 일반인도 존엄한 인간이다. 게다가 중요한 일은 정작 일반인이 다 한다. 정치, 경제, 사회, 그외 모든 것을. 그러면 왕은? 그냥 왕이다. 대하드라마에서야 역할이 분명했다. 하지만 지금은? 존중하면 그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현 시대에 오락산업으로 만들어지는 영화와 드라마에서 현대의 왕을 소재로 삼을까? 부적절한 주제다. 왜냐하면 재미없고 의미도 적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알아야 하고 알고자 했고 듣기 싫어도 들렸고 때로는 거짓으로 숭앙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다큐멘터리로 나와도 재미없다. 자존심 센 남자들에게 들었던 말이 기억나지 않나요? 혹 대사랄지. 내가 그걸 왜 알아야 하는데? 라구요. (이 모토가 1번인 외적 인격만 유지하면 나중 큰손이 될지는 몰라도 덕망과 인기를 잃을 가망성, 무시할 수 없음. 다 성취해도 외롭다는 말이 입버릇이 됨) 그치만 그런 말도 다 쓸 데가 있다. 공교롭게도 지금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왕가에서 태어난 사람이 뭔 잘못이겠냐마는, 작가는 글로써 왕도 그 무엇도 들었다 놨다 할 수 있어야, 그래야 진짜 작가다. 아니면 가짜다. 다른 가치 추구와 다른 장르에 대해 뭐라는 게 아니라 99의 내 분야와는 별개로 1의 도덕적 사회적 책임감은 언제 어디라도 따라간다는 거다. 젊어서는 돈이 없고 황금성에 입성한 다음에는 청춘이 아니다, 난세에는 권력에 약했고 풍요로운 세상에서는 돈과 인기만 추구한다, 나중 깨닫게 되는 게 어쩌면 당연하다. 왜냐하면 남의 다리를 많이 긁어 봐야 그게 내 다리인지 남의 다리인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딸랑딸랑 반짝반짝, 기분 좋게 팡파레가 울려퍼지면 기교는 기교를 숨기는 데 있다 라는 라틴어 경구는 뒷전으로 밀려날 가능성이 크다. 물론 자칫 잘못하면 도처에서 꾸중을 듣고 원성을 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글 수는 없다. 할 때는 하고, 지저를 땐 저질러야 한다. 단, 서로 원하는 사랑처럼 될 수 있으면 긍정적인 의도와 좋은 의미로다. 하여간 예술가는 예상의 의표를 찌르고, 유행을 선도하며, 초심을 잊지 않고 이상향에 대한 유망함을 간직해야 하며, 시대를 뛰어넘을 수 있어야 한다. 마치 숙녀의 공상이 상상을 초월하듯이. 실행은 어려워도 맑은 자신감이 밑바탕 되어야 한다는 거다. 소꿉장난 하듯이 간질간질 에게~ 삐악삐악 에게~, 현대가 뭐 사극의 시대인가? 무예 그리고 판타지? 예술가의 명분과 직업인의 사명과 사람으로서의 양심과 장인으로 책임감을 느껴야 할 신념이 부족한 채로 전문가가 (어쩌면 얄팍한?) 기술만 가지고 득세한다면 그건 그냥 그때뿐이다. 그건 다만 껍떼기에 지나지 않는 거다. 포장이 아무리 예뻐도 어차피 버려지고 소모될 명운일 뿐. 첨예한 주제와 민감한 단어와 궁금한 원리에 대해서 말할 수 있어야 진짜다. 맨날 똑같은 말만 하는 것, 그 역시 결코 쉬운 일은 아니란 걸 알게 되는 게 인생이지만, 그것만 해도 꽤 괜찮은 어른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미래까지 예견하기는 어렵지만, 이 시대의 사람들은 널리 알려진 문화와 교양과 예술의 소양을 얘기하고 향유한다. 일요일에 각자 신앙생활도 한다. 그러다 전시가 되면 종교는 헌신짝 버려지듯 슥 조용해진다. 나서도 분위기상 천시받을 수 밖에 없다. 그러면 평시에 왕은? 대하드라마에서는 존경받았다. 그리고 현대는 과거에 비해 비교적 수평적인 세상이 됐다. 따라서 누구나 그 어떤 불분명한 애정과 열정과 소망과 관심을 각자 좋아하는 데 부여한다. 무엇보다 현대인은 자유를 누린다. 각자 무엇을 즐기는가 그건 다 다르겠지만 공통적으로 일치하는 것도 있다. 왕에 대한 존중이 있으면 직업인에 대한 존경도 있다. 쉬운 예로 유니폼을 입는 사람들 말이다. 옛날에는 1인자가 독식했다. 고을의 원님이 구법과 행정-군율-생활-교육등 모든 질서와 문화등 그 모두를 관장하고 군림했던 지역의 1인자였다. 지금이야 지방의 법원-행정기관-경찰서-교육청-우체국등 책임자가 따로 있지만 옛날에는 원님이 장땡이었다. 당연히 전화와 라디오와 인터넷이 없었으니 폐해에 대한 처방도 필요했다. 또 예술가는 광대였고 노비가 존재했으며 신분제가 확고했다. 지금에 비해서 완벽한 피라미드 사회. 하지만 시대가 바꼈다. 또 세상은 변한다. 좋은 변화를 도모함은 인류의 의무다. 발명과 창조와 탐구 외에 종교적 선과 대치되는, 철학자가 말하는 파괴적 본능과 제국주의적 의미의 실현과 그 어떤 맹위와 쟁취와 전진은 세계에서 엄정히 현실이었다. 지금이라고 없어질 수는 없고 성격만 변한다. 교양인의 상식이자 미래를 위한 교훈인 역사가 그랬고 그러하다. 옛날에는 그랬지만 이제는 비교적 구도가 안정됐고, 경험적으로 어떤 낙관을 희망할 수 있다. 앞으로도 방법은 다를지언정 성취욕과 존경심과 꿈과 사랑을 향한 동경심마저 경쟁은 기본이지 않을 수 없다. 그 첫째는 어제와 나와 오늘의 나라는 것. 그 안에서 발전하면 그뿐. 과거엔 사극이 기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장르가 다양하다. 공동의 이익을 긴밀히 조율하고 공공의 선을 추구하는 세상이다. 인간의 음성적 측면을 만족시킬 오락산업도 발달됐다. 난국이던 시절 인터넷은 없었고, 대하드라마에 핸드폰은 등장하지 않는다. 인간은 달까지, 무인선은 태양계 바깥까지 진출했으나 미래에는 그 이상일 것이다. 줄면 줄지 늘지 않는 것이 있고, 늘면 늘지 줄 수는 없는 것이 있다. 그걸 알면 된다. 알아야만 한다. 어떤 때가 있었다는 것을 왜 모를까? 미래 지향적인 생각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말의 의도를 알아야만 한다. 바나나로 시작해서 인간은 온갖 과일에 비길 수 있었고, 피어의 권한과 배경은 거의 신성했으니까. 인류 역사상 왕권이 약화된지가 불과 얼마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지금처럼 (비교적) 세상이 살기 좋고 아름답게 정착된 지가 불과 얼마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승이 천국일 수는 없는 법. 그리고 품위를 취하면 새로움이 아쉽고, 새로움만 뒤쫓으면 품위는 서운해지기 쉽다.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건 어렵지만, 그래도, 목표는 일단 크게 잡자. 청춘을 그리워하고 스무 살을 부러워하면서 인생 장르는 사극만 고집한다? 아아, 생각만 해도 피곤한 일이다. 어쩌면 몹시. 아집을 버리지 못하면 타자들은 그 누군가를 피할 수 밖에 없다. 야 떴어 떴어, 피해 피해, 딴 데 봐 딴 데 봐! 그런데 젊은이들에게는 진보적으로 말하고, 친구들끼리 있을 땐 시간을 돌려 추억을 얘기하는 건 이중적 성격인가? 맞다. 이중 인격이다. 그러나 내 생각을 때로는 타인에게 맞추고, 의견을 공유하고 유대감을 공감하며, 우수한 양식에 동화될 수 있음은 이중 인격을 필요로 한다. 그래야 발전할 수 있다. 그래서 하루 종일 노는 게 일인 어린이와 비록 철들지 않았을지언정 상상력을 반납한 어른, 그 둘의 장점만 취한다는 건 모순이다. 날이면 날마다 맨날 똑같은 말만 하는 어른도 존중하고 존경 받으면 좋겠지만 천편일률적인 그 말은 대체로 발언이 길고, 많고, 비슷한 친구로 비유하자면 대체로 자발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귀는 막고 말만 하니까. 세상은 주로 괴짜에 의해 발전했다. 진부한 어른스러움은 역사적으로 그 발전을 가로막기 위해 노력하는 역할을 도맡았다. 왜? 이상하니까! 익숙함이 편하지만, 불편과 노력과 어려움을 감수해야 더 나은 새로움을 만날 수 있다. 머무르면 도퇴될 가능성이 크고 시간의 방향처럼 올라가든가 내려가든가, 거의 둘 중 하나가 전부다. 수평선이란 건 오름과 내림의 무수한 반복일 뿐이다. 10년이 지나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사람의 생각은 왜 그대로 멈추어 있어야만 할까? 속담에서 일컬어 고인 물은 썩는다고 한다. 은행권도 순환 근무는 옛날부터 질서였다. 대체로 보수적이되 차츰차츰 진보적일 것. 생각만이라도 뒤가 아닌 앞을 향할 것. 미래엔 또 현재를 달리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짐의 말이 곧 법이다, 대하드라마에서는 그랬다. 그러나 현시대의 왕은 그럴 수 없고 누구도 원치 않는다. 왕이 무슨 일을 하는지는 몰라도 되고, 운명으로써 존중할 뿐 각자 자기 삶을 살면 된다. 세상 모든 일은 왕을 제외한 직업인과 아마추어가 다 한다. 전부! 100%! 현대의 역사까지 그렇게 만들어지고, 세상은 그렇게 돌아간다. 장래 타임머신이 만들어지면 그땐 그럴 수도 있다. 사견으로서, 지구가 곧 사람이 타임머신이던 그때가 좋긴 좋았다고. 지금이라고 다를 건 없다. 그런 말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 많지 않을 테니까. 벌거벗은 임금님은 왕이었지만 아르키메데스는 왕이 아니었다. 인성과 함께 장비발은 물론이요 학벌, 행복도, 증시, 인권, 언론의 자유도, 교양, 상식 그 모두는 일반인에 의해서, 위해서, 음 뭐 그런 거다. 무엇보다 생각은 현대적이어야 한다. 골동품의 가치도 높지만 생활용품은 대체로 신식이 월등히 좋다. 그러든 어쩌든, 첫째로, 생각은 오롯이 현대적이기를! 보통 박물관과 대하드라마를 모르는 것보다는 아는 게 좋다. 훨씬 좋다. 그걸 모르고서는 거 웨 사람이 웃기고 반갑고 다정하고 다 좋은데, 간혹 말이 잘 통하지 않을 수도 있다. 뭘 좀 모르는 남자는 바로 그분일 것이다. 어느 정도는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왕이란 개념 역시 그렇다. 전공과 직업 이전에 학교에서 배우는 공통 과목은 다 그 목적이 뚜렷하고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대표적으로 모자를 쓰는 게 예의였지만 지금은 멋을 위해서 쓴다. 헤어스타일이 자유를 만났으니까. 하지만 모자를 써야만 하는 일도 있다. 가령 야구선수, 요리사, 경비원, 또 있다 땀방울 송글송글 산업 현장의 일꾼! 모자처럼 유니폼을 빼고서 이 세상이 잘 굴러가기를 바랄 수는 없다. 불 끄고 신고 받으면 달려가고 어쩌고. 서열이 저 뒤인 법관은 날이면 날마다 하는 일이 그거다. 도둑놈과 하위 범법자와 (날)강도와 걸인들 재판만 하고 또 한다. (악성 채무자로써 현장에서 노곤한 법관의 표정을 읽고 선서해 봤음) 예 아니로로 대답하세요? 영화와 현실은 다르다. 드라마 같은 중대 재판은 남의 떡일 뿐. 그래서 1번 방송매체에서는 왕의 공공근로에 대해서 방송하기도 한다. 사람은 중간만 가면 된다. 대부분 그분들께 고마워하지만 드물게 내가 낸 세금이다 뭐다 라며 소란피우는 일도 있긴 하다. 어려운 시절이 지나면 반성하게 된다. 내가 그때 대체 왜 그랬지 라며. 시간이 해결해 준다. 사람이 미워도 어쩌고, 그런 말도 있다. 옛날 세상에는 삼권이 불균형을 이뤘고, 많은 예술가들이 신을 경배했다. 이제는 과학과 문명이 발달했다. 현대인은 왕을 존경하기보다는 존중하고, 솔직히 관심도 없고, 신을 위해 살지도 않는다. 현대인은 자기 자신을 위해 살면 된다. 이기적이되 적당히 이타적인 삶을 실천하면 그만이다. 인기로 따지면 연예인, 삶의 제약이 많기로 최고는 왕족이다. 그럼 자유라는 명목으로 최고는? 단연 일반인! 가능성의 최고봉이니까. 그대는 왕 빼고 거의 모든 걸 다 할 수 있다. 정치라는 말처럼 왕이라는 단어도 너무도 너그러운 낱말이다. 어떤 말에나 붙일 수 있으니까. 그리고 동사와 명사는 대게 어울림에 따라 짝지어진다. 바흐를 듣고, 위고를 읽으며, 웨이터 에르메스씨와 친한 현대인은 왕을 존경하고 예술가를 존중할까? 아니다. 그 반대에 가깝다. 왕을 하고 싶어서 왕이 되든 예술가의 삶을 그저 동경하든 왕은 왕이다. 어쩔 수 없다. 어떻게 달리 유감이 있다는 뜻이 아니라, 누구나 큰 관심은 없다는 말이다. 그냥 간혹 접하는 형식적인 뉴스가 전부일 뿐. 그거 말고는 아무런 생각도 없다. 그건 곧 누구나 내 삶이 제일 중요하다는 거고, 특정 신분으로 태어나면 매우 피곤할 수 있다는 거다. 또한 촌닭의 행복 만큼 과소 평가되는 것도 많지 않다는 말이다. 무엇보다 유명인에 대한 무관심의 권리는 철저히 보장되고, 인생을 즐기라는 교훈이 진짜 의무다. 그래도 가십은 잊을만 하면 나온다. 그럴 수 밖에 없다. 그 가운데는 사전 조율이 민감한 악수에 대한 소식만 들리는 건 아니다. 교황은 세계를 돌아다니며 거지를 만나고 빈자의 맨발을 씻겨주는데, 어디의 국왕은 웃으며 현대식으로 악수하는데, 또 다른 의견 제시는 물론 너무 불합리하지 않냐 라고 많은 의견은 거론된다. 그렇게 따지면 나중 널리 찬양됐지만 옛날 교주는 살아서 통치권자와 국왕과 고위 원로에 대한 존중과 의전의 발 끝의 먼지 근처에도 못갔다. 두말할 것 없이, 돌아가는 형편을 봤을 때 현대의 신으로 황금을 첫손 꼽지 않나, 라는 점! (지역별로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지금은 국왕과 교왕과 통치권자까지 1인 3역을 하던 시대가 아니라는 점! 만약 신이 하늘나라가 아니라 지상에서 만들어진 신으로써 존재할 수 있다면 날 위해 살지 말고, 인간 곧 그대 자신을 위해 사시길 바랍니다, 라고 인공지능처럼 말하고 싶어할 것이라는 점까지.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말라, 날 밟고 올라서라, 과연 어느 말을 직역하고 무엇을 의역해야 할까? 이 세상에는 모순과 부조리가 너무도 많다. 많은 부분, 기능적으로야 피라미드는 아마 언제까지라도 유지될 것이다. 하지만 개념적으로는 옛날과 지금의 피라미드는 미래에는 부분적으로 역삼각형으로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유명인의 친구 입장으로 시작해서 꽥꽥-짹짹-떽떽형 논설가, 다음에 결국 얘기의 쟁점은 그걸로 귀결됐다. 내가 최고! 그게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자연스럽고 당연할 뿐. 좋고, 괜찮고, 많이 좋아하는데, 하지만 동물농장의 분포도 때문일까? 어떤 유형의 농담 형식은 너무 롱테일 저 끝에서 천대받는 면이 없잖아 있다는 것이다. 그대는 최고? 그럼 난 존 말할 때 순위권에서 저 멀리 보내주세요! 인생을 살아 보니, 세상을 둘러 보니, 내가 최고가 아닌 경우가 많지 않으니까 아마도 논점은 항상 그렇게 골인되는지도 모르겠다. 옛날이든 지금이든 미래든, 어디서 어떻게 우연히 인간으로 태어나는 건 모두 똑같은데 말이다. 우리는 나중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까, 까지는 생각하기 어려운 세상이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고 시를 읽고 영화를 보는 것 같다. 여행과 사랑, 똑같은 얘기다. 그렇긴 하다만 이왕 예술과 유명세 즉 생각의 차이라는 주제가 나왔으니 조금만 더 논해 보자.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라고 옛날에는 그랬다. 그러나 새로움과 변화에 응용까지 필요한 세상이다. 이렇게 바꾸는 건 어떨까? 인생은 한바탕 놀이고 예술은 인생(놀이)를 위한 도구다 라고. 맞다. 예술은 이제 인간이 세상을 즐기기 위한 한 방편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대중매체에 나오는 유명한 예술가 말고, 어쩜 천국에 계실 예술가 가운데 아는 이름을 대보라고 스무 살에게 물어보자. 그 답은 보나마나 많지 않다. 어쩌면 누군가에겐 기분 나쁜 촌평일 수도 있지만 지금 맹활약하는 예술가 가운데 향후 기억될 이름은 별로 많지 않을 것이다. 세상을 쥐락펴락 시대를 들었다 놨다, 그랬을지라도. 그래서 시작은 일기를 나만 읽기 위해서 쓴다 할지라도, 나중은 달라야 한다. 허당을 위해서, 인기를 얻고자, 허상과 허풍을 도구 삼아 예술이랄지 모래성만 만들 것이 아니라 예술가는 예술로써 놀고 즐겨야 한다는 것이다. 돈과 인기와 칠전팔기라는 말처럼 진짜로 7번 이혼하고 8번 결혼까지 해서 행복과 환희의 궁전을 지었는데, 아직도 뭔가 허전하다? 그건 아마 그래서 아닐까? 첫째, 내가 진짜 만들고 싶었던 영화는 바로 어떤 뭔가 완벽한 신비감으로 채색된 바로 그런 영화였는데... 왜 아직까지 나는 그걸 못만들었지? 난 왜 그걸 잊고 산 거야? 대체 왜 이제 와서... 그런 느낌! 둘째, 사랑을 예로 들자면 아름다운 사랑을 하고 있지만 그래도 나는 사랑이 그립다, 가 아니라 사랑과 야망을 모두 성취했는데 언제나 외롭다 라는 것! 셋째, 제발로 내려오지는 못하니까 그럴 수는 없는 거니까. 예술에 대해서 말할려면 예술가 즉 인간의 삶을 알아야 한다. 인간의 삶은 광활한 우주와 시간 가운데 깨알 같은 지구에서, 콩알 같은 삶을 살다가, 해변의 금빛 은빛 모래알처럼 반짝 하다 가는 거다. 그렇다면 그냥 생각없이 사는 것보다는 꿈을 쫓고, 사랑을 하고, 환상머신을 탐닉하며, 행복하든 재밌든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면 잔잔하게 때를 기다리든, 삶의 의미를 찾는 인생이 더 좋지 않을까? 아니다. 꼭 그렇지는 않다. 왜냐하면 심심함과 무료함에서 몰입과 열정까지 우리는 언제, 어떻게, 무엇이든지 갈팡질팡하기 때문이다. 그냥 단순히 하고 싶은 일만 하는 게 왕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주로 어른들이 하는 얘기는 딱 거기까지다.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하라고. 너도 알고 나도 아는, 아무도 모르는 사람이 없는 말만 언제까지 반복해야 하는지. 그러나 그 이상을 바랄 수는 없다. 계속 주저리주저리 설변을 읊으실 수는 있는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듣는 사람 표정은 점점 어두워질 수 밖에 없다. 당신은 최고 진공청소기라고 하시길래 진득하니 들어봤더니, 아 글쎄 최신형 커피포트였더라? 그런 일이 틈틈히 있을 것이다. 응애응애 엉금엉금 아장아장, 천재가 되어 버린 어른, 그 둘의 중간에 머무를 수는 없을까? 어렵다. 많이 어렵다. 다만 이왕 허당인 거 상허당이 되어 보자, 은근이란 수식어는 꼭 한번 들어보기를 원하고 과찬이시라며 나도 사양 한번 해 보고 싶다, 그래서 두말하면 잔소리라는 둥 두런두런 어쩌고저쩌고? 그런 심오함은 모르겠고, 인생은 그게 인생이다. 저번 포커판에서 미스터 아인슈타인에게 꾼 급전의 이자만이라도 건네는 성의를 보이는 것! 뭔가가 꼬였으면 자초지종을 간명히 정리하는 게 좋고, 말다툼과 소란과 장난을 즐기는 것도 좋지만 그건 주로 친구들끼리. 자, 그럼 이제 음... 하고자 하는 일, 좋아하는 무엇, 어떻게 살고 싶다는 인생, 내가 잊고 살았던 내 꿈은 무엇이었을까 이제 그걸 논해야 하는데, 그런데, 뭔 놈의 주제 넘게 예술가로 시작해서 인생론까지? 그러게! 크리스틴 때문에 내 기분이 좋다를 말하고자 했는데 난 어쩜 크리스틴을 질투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오나, 질투가 뭐 어때서! 다시 크리스틴으로 돌아가자. 더군다나 크리스틴은 외국어 욕구 브랜드 투정 취향을 빼면 별로 남는 게 없는 다변과 수다로 어디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 할 아가씨는 아니다. 그러니 내 친구로써 그다지 손색은 없었다. 고상한 대화냐, 평범한 수다냐, 전자냐 후자냐 그런 고민 필요없이 그녀는 허영심 적당하고 내 재미없는 허풍에도 가짜 웃음이 아니라 꽤 환하게 웃어주니 더 바랄 게 없었다. 그보다도 난 유쾌한 친구들이 적게 잡아도 최소 반틈은 되니 그나마 다행 아닌가. 다만 고독한 일하기, 작품 구상의 괴로움에 끝없이 쫓겨서 딴생각할 겨를이 없을 뿐, 궁금증은 풀렸다. 난 정말 옛날에는 알고 싶었다. 자주는 아니고 간혹 의아해 했다. 꽤 저명한 유명인을 친한 친구로 둔 일반인은 과연 어떤 기분일까 라고. 그런데 어머머! 크리스틴이 사는 집이 관광 명소가 될 줄이야, 당장 어디다 크리스틴과의 친교를 자랑할 처지는 아니지만 그 입장 되고 보니 별거 없다는 걸 알게 됐다. 안 그래도 돌아보니 그랬다. 친구 중에 누가 영화배우감이고, 연설가는 누구, 하필 제일 검소한 친구가 유독 바텐더에게 인기가 많을 땐 내가 나서서 해야 할 말도 정해져 있었다. 야 누구(풀 네임), 영화 찍지 마 라고! 그런데 크리스틴이? 퍽 쉽사리 믿기지는 않지만, 근래 보기 드문 흥미로운 소식이었다. 신문배달, 주유소 점원,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못해봤네 응애응애 어쨌네, 인생을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할 수 없는 반증은 아니겠지만 그건 그냥 우연일 뿐이라네, 난 그렇게 헛된 회한에 빠져 있었는데, 그런데 크리스틴이? 으잉, 크리스틴이? 톰과 리지가 조용하니까 어쩌면 꽤나 좋은 소식이 분명했다. 그러므로 난 아마 톰과 리지가 더 기쁜 소식을 물어올, 아 전해올 것으로 굳게 믿고 있지 않았을까? 나는 나도 모르게 나를 타자화해서 생각하는 그런 공상을 습관처럼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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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잠깐! 떠들썩한 유명인을, 꾀죄죄하진 않지만 한때 잘나갔고 지금은 잊혀진 유명인을 친구로 둔 느낌? 말했듯이 별거 없다. 별거 아닐 수도 있고. 내가 유명해지지 못했을지라도, 앞으로 전망이 꽤 불투명할지언정, 내 친구가 유명인이 아닐지라도, 그래도 괜찮다. 내가 다정하다면, 누군가를 닮은 걸로 충분하다. 괴팍해도 중간만 가면 된다. 인성이 잠깐 길을 잃더라도 슬럼프는 대게 극복되기 마련이다. 사춘기는 지나간다. 염세주의도 한때고 메뚜기도 한철이다. 할 일이 많을 때가 오히려 호시절이다. 게다가 머머 접습니다도 있다. 쾌락은 또 어떻고.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고 행복할 기회는 언제나 존재한다. 인생 성적은 상대적일 수 있고, 예술은 적잖이 개인적이며, 오락산업은 항상 건재하다. 이 세상에 미남이 좀 많냔 말이다. 사서 낙담할 필요 없다. 순위권에 들지 못했다 할지라도. 다 방법이 있으니까. 어디에 가면 또는 그저 장소만 이동해도 자발 말고 일단 전망을, 사람을 만나도 진단을, 뭔가에 관심이 생기면 관찰로 끝낼지 호감을 발전시킬지 감별하고, 무슨 일이든 먼저 생각을 생각을 먼저, 바로 그렇듯이. 사랑이 뭐 별건가? 너가 웃으면 나도 웃고 너가 좋으면 나도 좋다, 그게 사랑 아닌가? 하여간 말은! 오늘은 안개꽃 한다발을 사서 그녀에게 선물할까? 오늘 이별한 누군가를 약 올리는 거 아니다. 과부 마음은 홀아비가 안다지 않나. 그러니까, 엇그제 바람맞았으면 뭐다? NC가 있다! (딱. 쉭─쉭─쉭) 친구들이 뭐라 하나. 여자는(남자는) 여자로(남자로) 잊는다고 하지 않나. 단, 상황과 사람과 미래의 사랑과 식어가는 연정에 대한 예의? 의리? 그런 거 봐 가면서 그런 말 하기로. 당연하다. 왜 아니겠나. 클라우드 나인에 올라가면야 좋겠지만 클라우드 나인에 올라가지 않고서도 행복할 수 있는가, 바로 그게 먼저다. 주입식 교육이든 뭐든 현재 내게 주어진 형편에서 그것의 고유한 장점을 살리거나 오뚜기처럼 꿋꿋이, 강아지처럼 꼬리 살랑살랑, 고양이처럼 요염한 동시에 이기적으로 합리적이든 그 반대든 어쩌든 친구와, 그리고 지인과 웃으면서 대화할 수 없다면 어디를 가든 큰 차이는 기대할 수 없지 않을까? 낙천적인 사람들이 사는 더운 나라든 무지개 너머의 낙원이든 추운 극지방이든, 알려진 게 하나 없는 미지의 그 어딘가든. 물론 "난 나중 기필코 유명해질 꺼야", "머머해서 분하다 다음번엔 반드시 기필코 머머할 테다", 필자가 그런 유형은 아니라서 그분들 속마음까지 엿볼 수는 없다. 하지만 작게나마 투정이 줄고, 작게나마 부드러워지고, 작게나마 너그로움을 알게 되며, 작게나마 접고 꺾고 져주고 웃길 줄, 적어도 웃을 줄 알게 된다면 전망도 괜찮고 희망도 밝다. 언제까지 강한 척 센 척, 그녀는 말끔한 수트를 바라는데 난 아직도 여전히 헤비메탈에 가죽펌퍼만? (아 가죽점퍼 입고 싶어라. 블랙진과 딱 맞춰 입고 조니워커들고서 사진이라도!) 그래프가 꺾이면 알게 된다. 똑같은 얼굴을 보고도 사람들 생각은 각자 다 다르다. 저 사람이 날 때리면 어떡하지? 형이 늬한테 싸움 진다 알았냐 어? (우리) 친해질 수 있을까? 와 반했다! 아아 멋지다, 오오 예쁘다, 힝힝 부럽다! 우리는, 사랑일까? 알고 보면 저런 부류가 은근 허당임! 무뚝뚝하고 불독 악세사리를 즐겨차는 저런 친구가 의외로 순진하지, 말 몇마디 섞어보면 견적 바로 나와! 쟤 무섭게 생겼다고? 저 양반 겁 많아, 쟤 말싸움도 못해! 뭐 저 친구가 술고래처럼 보인다고? 순 날탕이야, 쪼그만 잔으로 위스키 두세 잔 마시면 바로 혀 꼬여! 그런데 있잖아 너 그거 아니, 저분이 글쎄 열 하나는 좋다는 걸! 바로 그처럼. 물론 어려울 수도 있다. 동심으로 종이학을 접는 것과 어른이 커피포트를 식혀서 진공청소기로 만들 정도로 마음을 접는다는 것은 말처럼 그리 쉽지 않다. 듣고 보니 정말 말이 쉽지만 역으로 요술처럼 또 그만큼 웃길 수도 있을 것 같다. 정말로, 꺾을 줄 안다는 것과 여자를 안다는 것, 그게 말이 쉽지 어디... 안 그런가요! 물론 어려울 수도 있다. 말은 이미 다, 모든 걸 내려놨다고 하는데 나중 보면 꼭 그렇지도 않을 수 있으니까. 그래도 다시 시작하면 된다. 모든 남자가 잡은 물고기에게는 밥을 주지 않더라도 난 아니다, 만날 때마다 첫사랑이고 누구에게나 첫키스며(혹시 그래서 여자들이? 어머나 어머나!), 아빠 빼고 모든 남자는 다 늑대다, 에서 (미래의─사랑의─새로운) 나와 아빠는 바로 그대이듯이. 단, 엄한 풍문은 사절한다. 설령 그럴 리도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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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여 톰과 리지로부터 연락이 왔다. 혼자 있을 때 나는 그녀들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톰, 넌 왜 이름이 남자 이름이니, 그러면 안된다는 게 아니라, 너도 그런 말 무수히 들었겠지만, 그래도 이쁘니까 용서된다. 그리고 리지. 리지 너 혹시 톰 좋아하니? 너 남자 좋아하는 거 아니었어, 너가 잠시 착각에 빠진 것일지도 모르니까 나와 응? 어떻게 어디식 인사를 찐하게 하고 나면 혹시 제정신으로 돌아오지 않을까? 그러나 나는 그 친구들을 만났을 때 나의 그 뜬금없고 달콤했던 몽상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실천할 수는 없었으니까. 그도 그럴 것이─아 정말 왠지는 모르겠지만 이 표현은 진짜 진짜 사용하지 않을려고 무진장 노력했는데, 참고 또 참았는데, 진정 구사하기 싫었는데, 어쩌다 하고 말았네─그 친구들이 웬 이상한 제안을 내게 해 왔기 때문이다. 저번 퍼포먼스 3탄은 풍선 수십 개가 달린 배의 출현이었다. 그래서 호수 중앙에 있는 섬, 곧 거기 나무 숲 위에는 총 2척의 배가 존재하게 되었다. 그야 많든 적든 나와 밀접한 관계는 없지만 문제는 본부가 궁금하지 않냐는 것이었다. 꽤 솔깃하고 영향력 있는 물음이었다. 1, 2, 3 바로 그 지령을 누가 내렸는지 알고 싶지 않냐는 것이었다.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당연히 알고 싶지! 그런데 오늘이 그날이란다. 나무 위의 배가 있는 그곳에서 비밀에 감춰진 무언의 신비주의자를 만나기로 했다나 뭐라나. 자기들도 실제로 만나는 건 이번에 처음이라고 했다. 나는 이미 지금 이 얘기를 누군가 도청할 가능성도 아예 없지는 않다고 내다봤지만, 헛점을 내가 귀찮게 준비할 필요없이 그냥 어설픈 분위기에 묻어가기로 했다. 정보학과 탐정업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눈부신 탐지력, 풍부한 현장 경험, 그런 거 하나 없이 나는 날탕에 허당에 허접한 바보로 보이는 게 어쩌면 오히려 훨씬 유리할 테니까. 그렇게 나는 서둘러 접선 장소로 떠났다. 달리 말하자면, 나는 뿌리칠 수 없는 유혹에 굴복한 것이다. 아무래도 톰과 리지는 띄엄띄엄 보면 안될 것만 같았다. 합리적인 동기를 신기하게 부여할 줄 아는 친구들이니까. 아, 성능좋은 쌍안경을 챙겨가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나는 호수의 선착장에 도착했다. 일단 쌍안경으로 조망을 살폈다. 아직 나무 위의 배는 그대로 있었다. 그때 전화가 왔다. 「응. 오빠야. 블랙 달리아는 왔어?」 「뭔 달리아? 차라리 백작을 찾으시지. 우리도 긴장된단 말이야. 그리고 오빠야 있잖아. 우리가 말하지 않았는데, 사실 이거 우리 아르바이트였어. 그런데 건전한 일거리가 아니라 좀 규모가 있는 거야. 거 웨 있잖아. 피라미드 마케팅! 우리도 물린 돈이, 아 투자한 소액이 조금 있거든. 하지만 극미한 가능성이 아주 없다고는 할 수 없어. 그냥 한번 스파이 흉내낸다는 게 어떡하다 여기까지 왔어. 설마 일이 크게 될지도 모른다고 걱정하고 있던 찰나, 검은 그림자로 불리는 그 인간이 먼저 만나자고 연락해 왔어. 그래서 우리가 먼저 여기에 거의 다 왔거든. 뭐? 뭐라고? 아, 오빠! 난 오빠랑 통화 중인데 리지는 그 인간이랑 통화하고 있거든. 잠깐만! (그때 작게나마 그런 얘기가 오간 듯 했다. 이런 개뼉따귀 같으니라고. 사람 똥개 훈련시키나, 라고) 오빠, 보여? 배 뜬 거 보이냐고. 아, 풍선 달린 배가 하늘로 뜬 거 보이냐고? 오빠 지금 어디야? 저 인간이 풍선 달린 배를 타고, 자기처럼 하늘을 날아서, 자길 쫓아오라는데! 뭐 높이 뜨냐고? 당연하지. 두둥실 두둥실 훨훨 훨훨 사뿐사뿐. 시원한 창공으로 올라가고말고.」 그 다음 나는 겁난다 어쩐다 변명을 계속 만들어냈고, 그래서 같이 움직이지 않겠다고 했다. 오빠가 후발대로 맹추격할 테니 먼저 검정 머시기를 따라가면서 저의를 파악하라고 말한 다음, 내가 먼저 전화를 뚝 끊었다. 그래서 어떻게 됐냐고? 촌스러운 별명인 검은 그림자씨는 풍선 달린 배를 타고 먼저 떠났고, 톰과 리지도 풍선 달린 배를 타고 그분을 뒤쫓았으며, 나는 내 차를 몰고 그 뒤를 쪼르륵 따라갔다. 빨리 갈 필요는 없었다. 그런데 톰과 리지가 탄 하늘을 나는 배는 저 높이 떠서 가는 게 아니라 지면에서 불과 1~2 미터 정도만 떠서 이동했다. 뭐야 이거!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타고 간다 그럴 걸! 어쨌든 그렇게 우리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곳은 의외로 가까웠다. 우리 동네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뒷산 중턱에 위치한 고급 저택이었다. 아, 거기까지 따라가는 동안 나는 하도 느리게 가니까 그 풍선의 숫자를 세어 봤다. 총 23개였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고. 그렇게 나는 게 가능하냐, 가능하지 않냐? 현재 과학기술이 어느 단계에 도달했는데, 설명하자면 입만 아프다. 우선 경과를 설명하자면 시작은 좋았다. 경이로운 새로움과 영화스런 신선함은 그칠 새가 없었다. 중간 과정도 그런대로 화려했다. 와, TV로만 본 걸 이렇게 직접 보게 되다니, 저게 모두 가능하구나 라면서 누가 촌놈 아니랄까 봐 막 신기하게 계속 탄복했고, 감탄은 그칠 줄을 몰랐다. 그런데 문제는, 결론이 꽝이었다. 환히 미소 짓는 행운의 여신을 상상해 봐, 막 그러면서 궁금증과 신비감을 밑도 끝도 없이 증폭시켜놓고, 뭐야 판돈이 딸리자나~ 그러면서 나 몰라라 도망간 악당이 알고 봤더니 내 사랑이었더라? 마치 그런 결과를 맞닥드리고 말았던 것이다. 마지막 작전까지는 진짜,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환상과 한번도 상상해 보지 못한 낭만이었는데...! 그런데, 꽝! 완전, 꽝! 한번 더, 꽝! 행복은 다음 기회에, 행운은 은회색 생쥐에게? 이런, 젠장! 그러니까 일이 어떻게 된 거냐구요? 액션 영화의 절정에 걸맞는 분위기의 저택에 도착한 것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톰과 리지 그리고 나는 악당인지 재력가 영화제작자인지 그 검은 그림자를 놓치고 말았던 것이다. 그것도 간발의 차이로, 정말 아슬아슬하게. 대체 어떤 용안의 위인이신지 보고 싶었는데, 밝혀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지만 톰과 리지에게 남겨놓은 보수는 확실했다. 일명 007 가방! 그런데 째째하게 그 안에 든게 지폐긴 지폐인데 최하권 지폐였고, 그것도 제일 앞장과 그 밑에 몇장까지만, 나머지는 어떻게 어떻게 무슨 교환권과 상품권등으로 약속한 금액에 겨우 턱걸이한 듯 했다. 그래도 결과는 꽝인데도 불구하고 모험에다 추격까지 포함되었으니 이건 주목할 만한 성과인지, 아니면 톰과 리지조차 예상하지 못한 제4탄 퍼포먼스인지, 그 판별이 너무 아리송했다. 그래도 나는 절망적인 결과에 따라 펑펑 울 수는 없기 때문에, 또 나는 쾌남아니까 그래 오빠니까, 호쾌한 척 톰과 리지를 다독거리면서 슬그머니 포몽해주고 가벼운 스킨쉽을 유도했다. 꼭 의도적으로 그랬다는 게 아니라 어쩔 수 없었으니까. 녀석들도 영화를 너무 많이 봤던 걸까? 2탄이 기대되는 그만그만한 제작비의 1편 영화의 마지막 장면처럼 분위기를 몰아갈 줄 알고 있었다. 검은 그림자가 대체 누구인지, 그 너머의 세력까지는 정말 가늠하기 어렵지만 일단 이것만 해도 뭐 그런대로 큰 실망까지는 아닌 듯 했다. 원래 비싼 장비가 제값을 하긴 하지만 공짜가 전율감이 크게 느껴지고 대탈주보다 소탈주가 멋진 법 아닌가. 톰과 리지와 나는 연속극은 원래 미완성이 제맛이라는 둥, 벌레 먹은 사과가 그래도 맛은 있네, 라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날의 활약을 마무리했다. 만약 근처에 들꽃이라도 피어있었다면 그 꿋꿋한 들국화를 꺾어서 톰과 리지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에 꼿아주었을 텐데. 아무튼 우리는 마저 그 저택을 구경했다. 거기는 원래 고급 저택인데 아마 거기를 소규모 연예기획사인지 뭔지 그런 사무실로 사용했던 것 같았다. 고급 대리석이 즐비한 저택이 괜찮긴 했는데 뭐 거기 계속 머무를 수는 없으니까 우리는 일단 돌아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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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분간 4탄 퍼포먼스의 절정을 이뤘던 그 빈집으로 출퇴근했다. 왜냐하면 그곳에 있다 보면 왠지 좋은 착상이 떠오를 것만 같은 예감 때문이었다. 물론 진득하니 반나절씩 머물러야 했으니 꼬박꼬박 도시락을 챙겨 갔다. 그곳이라면 작품 구상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어쩐지 흐뭇했다. 마냥 발랄하고 행복한 톰도, 언제나 즐겁고 기쁜 리지와 놀다 보면 좋긴 좋지만 은근 피곤했다. 세월이 불행했고 행복은 짧았기 때문인지 아니면 체력이 문제인지, 어딘가 모르게 그 친구들한테 내 에너지를 막 빨린다는 기분은 결코 모른 체 할 수 없었다. 그곳 주인이 있을 테지만 아마 헐값에 내놓지는 않았을 테고, 어쩌면 피지섬 같은 외국에 나가 있을 것이다. 모르긴 해도 별장을 떠돌고 있겠지. 곧 집주인은 노년 휴양 생활, 나는 정열, 그렇다면 내일은 기쁨과 쾌락과 환희가 찾아와야 하는데... 무작정 기다릴 게 아니라 뭔가를 해야 했다. 그래서 일단 대저택의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집기는 거의 없었고 가구도 매우 조촐했다. 마치 이방인이 들릴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는 듯이. 그러다 웬 낙서장을 발견했다. 거기에는 명상의 글이랄지 신인 배우 면접 일정등 연예기획 관련 메모로 가득했다. 그래서 그냥 책을 덮을려고 했는데,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이름들이 적혀 있는 걸 보게 됐다. 윌, 핍, 쿠퍼, 바비, 아론, 오스카, 앵거스, 폴, 마라, 실비아, 스컬리, 멀더등 모두 내가 소설 속에 등장시켰던 이름이었다. 나도 평소에 말이 없는 만큼 글은 유달리 쉬지 않고 썼던 것일까. 필자는 원래 내성적인데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내 소설 속에는 유난히 등장인물이 많았다. 뭐 물량으로 승부한다 그런 주의인가? 주의는 무슨! 나도 알고 있다. 잘 알고 있다. 다변이랄지 다작은 꽤 조심스러워야 하거늘 나도 오리 꽥꽥 참새 짹짹-이었다. 그건 그렇고 그 낙서장에서 발견한 연락처의 이름들과 내가 쓴 소설 속의 이름이 일치하는 건 아마 우연일 거라고 일축했다. 왜냐하면 만약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랄지 작전, 추리의 왕이 꾸민 미끼 같은 기록이라면, 정말 그렇다면 그때부터 상황 이상하게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톰과 리지로도 모자라 나까지 그림자인지 뭔지 그 덜떨어진 신비주의자의 수하에 들어가라고? 제발로? 것도, 피라미드 최말단? 그건, 절대, 안된다. 말려들면 안된다. 가짜다. 영양가 없는 허당의 장난일 것이다. 괜히 쓸데없는 데 신경 쓰지 말고 나는 일이나 하자 라면서 노트북을 켜고, 발단 전개 장르 주제등에 관한 생각을 끄적거렸다. 바로 그때, 거기까지 어떻게 알았는지 친구들이 찾아왔다. 보나마나 톰과 리지가 알려 줬겠지. 누가 입이 무거운 심복 아니랄까 봐. 실상은 내가 그녀들을 보필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에곤 쉴레를 닮은 델, 백수가 됐다는 존, 휴가중이라는 엘리자베스, 그리고 자기 집을 구경하는 관광객들을 피해서 놀러왔다는 크리스틴까지. 델과 톰과 리지만 빼고 다 왔다. 고생했네. 애쓴다. 즐거운 청춘 신나는 인생이 틀림없구만. 참으로 반갑게도 말이다. 심지어 영광스럽게도 모두들 빈손으로 왔다. 그건 아니다.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가는 인생이지만. 그건 아니야. 마치 자랑스럽다는 듯이 어? 그게 뭐냐고. 염치없는 놈들 같으니라고. 그렇다고 면박을 줄 수도 없고, 나중 술자리에서 술 취한 척 새하얀 블라우스에다 적포도주를 실수로 쏟는 척 할까? 나중 하는 거 봐서! 때문에 순결했던 작품 구상의 분위기는 여지없이 불결해지고야 말았다. 정말 시끄럽고 난장판이란 말이 아니라 나만 아는 비밀스런 아지트를 들켜버려서 기분 상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내색할 수는 없었다. 안 그래도 보고 싶어서 연락할까 말까 망설였다면서, 한술 더 떠 왜 날 피하는 것 같다며, 은근 우정을 시험하냐는 농담을 건넸다. 따라서 결국에는 내 예술적 창작 본능은 개꿈처럼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의욕만 놓고 봤을 때 뭔가 하나 만들어낼 것 같았는데 말이다. 이런 마음가짐처럼. 놀라운 환상머신을 발명해야 한다. 새로운 신비주의를 창조해야 한다. 꿈동산을 탐사하지 않으면 안된다. 숙녀의 치명적인 매력을 찬미해야 하는 임무를 게을리할 수도 없다. 막 그러면서. 더 말해 무엇하겠소! 하지만 친구들이 특별히 심술궂거나 유별날 정도로 의뭉스러운 건 아니기 때문에, 잠깐 구경하고 모두 자기 삶으로 돌아갔다. 내 이럴 줄 알았다면 한발 먼저 내가 후한 대접이라도 할 걸 그랬나. 대뜸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열로 지칭하든, 정열의 열 열애의 열이든, 작품 또는 사건이라 부르건, 어찌되었든 그 제5열이 무엇인가, 제5열이 언제 나타날 것인가, 좀 더 욕심을 부리자면 제5열의 배후에는 과연 누가 있는가를 알아내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 그 심오한 과제는 쩌렁쩌렁 내 심금을 백 번 천 번 울렸고, 나 역시 그것에 대한 고민을 결코 서투르게 치부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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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이 되었다. 색다른 유혹의 속삭임은 없었다. 글을 쓰는 게 아니라 연기를 하고, 색정적 사랑만을 탐닉하며, 제5열을 궁금해 하는 일에 넌덜머리가 나지도 않았다. 사는 게 사는 건가 라며 무턱대고 자유를 찾아서 여행을 떠나지도 않았다. 잠이 오지 않을 때는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양 세 마리를 셌고, 어제까지는 첫 번째 사랑 두 번째 애정 세 번째 몽상이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희망을 꿈꾸는 건 잊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무조건 제5열이 모든 것에 앞서 최우선이었다. 한번 터지면 멈추기 힘든 웃음을 그리워할 수도, 시간 여행을 믿을 수도, 사랑의 찬가 달콤한 오락 행운의 예감을 마냥 기다릴 수도 없었다. 지금은 오직 제5열 하나만 생각해야 했으니까. 그렇게 나는 그날도 도시락을 싸서 언덕 위의 푸른 집으로 출근했다. 도착해서 평소처럼 일을 하던 중 나는 어쩐지 이 고급 저택의 주인이 누군지 궁금했다. 쓸데없는 호기심일 수도 있지만 심심함이 위대한 창작으로, 허영기가 뜻밖의 미남의 발견으로(발견만?), 허당 중의 허당이 매우 드문 확률로 언젠가 일을 내도 크게 낸다는 걸 잘 아는 나였기에 나는 그 엉뚱한 의구심을 물고 늘어졌다. 마치 컹컹 킁킁 헉헉 냄새를 맡고 맨땅을 마구 신나게, 미친듯이, 열심히 파는 강아지처럼. 결과는 별거 없었다. 앙드레 카잘렛! 여기 주인은 그분이었다. 내가 모르는 인물이다. 딱히 연상되는 브랜드도 저절로 떠오르는 힌트도 없었다. 바깥에 붙여진 팻말, 집을 판다는 부동산 주인장의 이름은 알랭 모글리아. 모르겠다. 아는 건 직관적으로 거기에 더 이상 시간 쓰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현주인은 알았으니까, 혹시 이분께서 정식 용어로는 법정 대리인, 속칭으로 바지일지도 모르니까 전주인까지만 알아보자 라고 개구쟁이 같은 내 탐구욕을 다독거렸다. 바지? 바지까지 벋어주다, 사랑 주고 마음 주고 행복을 만족시키고 황금까지 다 주는데 그댄 왜 날 떠나려 하시나요, 의 그런 바지인가? 아무튼 나는 합법과 불법의 경계선을 타며 녹슬지 않은 정보력을 발휘한 끝에 뭇여성들이 사랑의 보금자리로 욕심낼 만한 이곳 저택의 전주인 이름을 알아냈다. 그런데 그 이름은 아 글쎄, 마를린 쿠퍼! 뭐 - 라 - 고? 나는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놀라기엔 아직 이르니까. 그래서 웨스 앤더슨 영화류 포스터에 나오는 색상을 그대로 간직한 실제 장소가 어디 어디라더라, 그곳으로 떠나고 싶은 소녀 감성 충만한 갈대 같은 내 마음을 잘 붙잡아서 불허했던 추측의 봉쇄를 풀고 말았다. 뭔가 느낌이 왔다. 살짝 냄새를 맡았다. 그 향기는 특이했다. 아마도 저번에 거리에서 만났던 마술사의 전부인, 즉 한때 잘나갔던 소설가 마를린 쿠퍼와 동일 인물은 아닐 꺼라는 감이 왔다. 나는 곧바로 사진까지 알아봤다. 내 예상이 적중했다. 하지만 이건 무용한 자료는 아닐 거라는 직감 역시 무시할 수 없었다. 마를린 쿠퍼? 그 이름이 제5열과 무슨 상관이 있지? 아마도 특별한 관계는 없을 수도 있지만, 어쩌면 놀라운 우연을 선물해 줄지도 모른다는 애잔한 추리력, 난 그것을 더더욱 물고 늘어졌다. 마를린 쿠퍼, MC! M은 13번째 알파벳, C는 3번째 알파벳. 13 + 3 = 16. 그리고 오늘은 16일. 심지어 금요일. 그렇다. 맞다. (딱)! 오늘은 16일의 금요일이다. 제5열의 숨은 세력은 몰라도 다섯 번째 작품의 날은 바로 오늘이라고 그것은 말하고 있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개구쟁이들이 합심해서 이런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낸다. 하지만 나는 그 모든 비밀을 혼자서 캐냈다? 그래서 난 천재다? 천재는 그냥 과자 이름에다, 시시한 립서비스요, 하찮은 노랫말로도 인기 없다. 하지만 내가 비록 둔재에 한없이 범속한 아저씨일지라도, 단지 나는 어리버리한 가난뱅이 한심한 삼류에 불과할 뿐(일시적이기를 바람), 지금은 한 껀 한 거다. 제대로 건졌다. 확실히 물었다. 진짜 그랬다. 처음으로 무슨 그림자인지 뭔지 그 제5열을 뒤에서 설계하고 조작하는 흑표범보다 앞서서 전개와 조망과 감독까지 위에서 밑으로 내려다 보는 것만 같은 환각에 빠져들었다. 그런 의기양양한 기분 때문에 나는 큰 웃음은 자제했고, 팔짱을 낀 채 고개의 각도를 달리하며, 표정의 변화에 속도감을 부여했다. 하지만 말만 그랬지 별것도 아닌데 너무 들뜨면 안된다며 다시 침착하게 제5열과 나의 예술열을 어떻게 하면 연결시킬 수 있을까, 로 돌아왔다. 그렇지만 주위에 아무도 없는데, 막 그러면서 딱, 난 한껏 설레고 흥분된 분위기를 감출 수 없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내가, 신비한 제5열의 새로운 다음을 예견해? 믿을 수 없었지만, 신뢰감은 듬직했다. 오오, 어떻게 이런 일이? 그러나, 이성을 되찾아야 한다. 감정에 휘둘리고 감성에 넘어가서는 아니 된다. 왜냐하면 나는 지금까지 실망을 할 만큼 했고, 체념도 원없이 맛보았고, 절망은 그냥 내 생활일 뿐이었기 때문이다. 나도 하수일 때는 그랬다. 조증이 도진 건 아닌가 의심스럽다는 건 사랑이 시작됐다는 명백한 증거라고. 그렇다고 지금 내가 고수라는 말이 아니라 난 지금 1.5, 재야의 고수, 도박계의 미네르바, 나만의 비너스, 전문가가 추종하는 은둔형 권위자를 지향하며, 그래 쩜오를 추구하기 때문에 언제 어떤 상황에서라도 신중함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단 말이다. 따라서 나는 오늘 일은 이만 접고, 드디여 그 제5열을 확인하기 위해서 마을로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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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제5열을 확인했다. 냇물은 보이지도 않는데 신발부터 벗는다고 물론 나는 이미 기쁨의 찬가를 불렀고 희망의 단꿈을 꿨다. 사랑스러운 당신 오오, 날개 달린 천사 같은 그대여, 당신은 누구십니까 어디 계십니까 라며. 그런데, 그래서 어떻게 됐을까? 나의 말도 안되는 추리는 정확히 적중했다. 우연일 수도 있을 테지만, 어쩜 반가운 불청객이라 할 수 있는 그 극적인 때가 임박하는 동안 특별한 징후는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니? 그게 다 번뜩이는 내 직감과 천재적인 추리력 때문. 농담이고, 생각해보니 제5열이 나타날 만한 시기가 된 거다.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따라서 나는 마침내 재치, 배장, 풍모, 익살에 격정과 품위까지 뭐 하나 결여된 게 없을 것만 같은 풍운아가 됐다. 숙녀 입장에서, 사랑의 큐피트 처지로 입각해서 봤을 때 너무 길한 행운 때문일까 불길한 악몽의 조짐을 반대로 해석한 결과, 미지의 신세계에서 날아온 듯한 귀공자를 만나게 됐다? 아니다. 난 바로 그 귀공자가 됐다. 결전의 날이 임박해서 엄청 호의호식한다랄지, 그날이 되기 전에 풍족한 호사를 대접한다랄지 그런 거룩한 섭리까지 생각할 수는 없었고, 나는 당장 순진한 육식주의자가 됐다. 아 그러니까, 다 됐고, 도대체 그 제5열이 어? 대관절 뭐냐구요? 그건 이랬다. 단추 많은 양복이 공중에 떠 있었다. 영락없이 언뜻 보면 투명 풍선에 매달리지 않은 투명 인간처럼 보였다. 그 뿐인가? 포도주병도 눈 높이에 떠있었고, 농구공 운동화 책 향수병 치킨 인형 빵... 다 떠나녔다. 뻥도 아니고 거짓말도 아니라 진짜로 떠다녔다. 어린애 눈높이와 손을 뻗으면 만질 수 있는 높이에서 말이다. 만질 수도 있었다. 몇몇은 만졌다. 하지만 문득 그러다 시간이 정지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귓가와 이마와 등에 식은땀이 쭉 날 뻔 하다가 말았다. 그러므로 난 내 마음을 속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기뻐도 기쁜 게 아니고, 알고 믿고 봤지만 그 모두를 모른 체 했다. 무시했다. 걸려들면 안된다고 생각했으니까. 앞으로 펼쳐질 제6 제7의 무언가를 생각하면 도저히 그럴 수는 없었으니까. 따라서 나는 곧바로 가택 감금에 들어갔다. 왜냐하면 이때 만약 꽃밭에서 살랑살랑 이 꽃 저 꽃 옮겨다니며 노는 나비와 꿀벌들을 보게 된다면 주체할 수 없는 어떤 환각 상태에 빠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라고나 할까, 그런 쎄한 느낌 때문이었다. 하지만 집에 도착해서도 나는 그 형언할 수 없는, 어디서 그 짝을 찾을 수 없을 만큼 신기하고 아름다운 그 특출난 제5열에 대한 흥분감은 도저히 가실 줄을 모른 채 한동안 계속 이어졌다. 이 몽환, 이 느낌, 이 기분, 이 흥분, 이 행복, 이 환상, 이 신비, 이 저항할 수 없는 몰입감. 이 홀림, 이 꾀임, 이 반함, 이 꺼뻑 빠져들 수 밖에 없는 사랑! 아 사랑이 아니라 지금은, 제 5 열! 나는 마구 되지도 않는 노래 가사가 떠올랐다. 상상해보오, 터질 듯한 가슴 참을 수 없는 욕망 부끄러워하는 숙녀, 하트 뿅뿅 반짝반짝 사과향 딸기맞 새콤달콤 키스 키스, 쾌락의 침대 신기한 환희 천상의 기쁨,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행복을 듣고 보고 꿈꾸며, 우리의 끝없는 사랑을 노래하는 인생을! 뿐인가? 곧 이어서 말도 안되는 시까지 썼다. 탐스런 금단의 열매에 첫눈에 반하다. 건강한 남아라면 눈독들이지 않고는 못배기는 저 매혹적인 자태 수줍은 애교, 모차르트를 애정하는 유쾌함, 외국영화를 동경하는 낭만적 허영심까지. 허허허, 발동 걸렸고 탄력 받았는데 딱 흐름을 탔는데 일기가 빠지면 섭하다. 몹시 서운하다. 많이 섭섭하다. 나는 일기장을 펼쳐놓고 또박또박 기쁨의 일기를 썼다. 열락과 열망을 그대로 글로 옮겨적었다. 오래오래 기다린 끝에 떨리는 가슴 안고 코끝이 찡한 사랑의 첫날 밤을 맞이하는 상상, 오오, 흐흐, 키키, 큭큭! 그 뿐만이 아니다. 말 같지도 않은 공상은 끊이질 않았다. 사랑의 기쁨을 애걸하고 사랑의 쾌락을 복걸하여, 그래서 사랑의 완성을 애걸복걸하다? 대놓고? 아니 남몰래! 혹시라도 누가 그러지 않겠나, 그게 무슨 (개)수작이냐고! 그런데, 그런데 그런 개 풀 뜯어 먹는 흥미진진함은 도저히 멈출 줄을 몰랐던 것이다. 혹시 나는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아니었다. 명백히 진짜였다. 의심할 수 없이 그 모두가 진짜였다. 볼을 꼬집어도 눈을 깜빡거려봐도 모두 현실이었다. 창문으로 훔쳐봐도, 쌍안경보다 뭔가 분위기 돋보이는 단안경으로 살펴봐도, 장비 없이 그냥 맨손을 웅크려서 눈에 갖다 대고 그게 장비인 것처럼 봐도 모두, 다, 완전, 진짜였다. 이런 기이한 전율감은 어디서 보도 듣도, 어느 귀인으로부터 듣도 보도 못했다. 읽어본 역사가 없었다. 오오 세상에 이럴 수가! 맙-소-사! 나는 나이키를 처음 사고 아마존에 대해 처음 알게 된 스무 살로 돌아갔다. 진짜로 느껴졌다. 우리반 그림 잘 그리던 친구한테 잡지에서 찍 찢은 헤비메탈 아 하드락 그룹 사진을 주면서 그림을 그려달라했고, 그 친구는 성적이 좀 뭐랄까 그만그만했기 때문이 아니라 나와의 우정 때문에 수업 시간에 열심히 연필화를 그려서 내게 선물했으며, 나는 리치 블랙모어의 장비만이라도 흉내낸다고 또 스트라토캐스터를 목수랄지 조각가처럼 막 심혈을 기울여서 깎고 또 깎던 데 열중하던 땀방울이, 진짜로 느껴졌다. 그 처절한 각고의 노력을 만약 당시 공부에 쏟았다면 난 지금쯤...! 그리고 또 나는 테슬라의 러브송을 듣기 위해 록카페 안에서 음악실로 들어가다가 투명한 유리창에 꽝 부딪혔던 당시로 돌아갔다. 처음 샀던 CD를 들고와 집에서 TESLA를 처음 듣던 사춘기로, 음악당에서 작곡자 베를리오즈 곡명 환상교향곡 지휘자 오토 클렘퍼러 관현악단 어디, 바로 그 CD를 훔칠려다가 주인장 양반한테 딱 걸려서 혼쭐이 난 후 제값을 지불하고서 기분이 완전 꽝됐던 몽정기로 돌아갔다. (바로 그런 때, 이론 따로 실천 따로일 수도 있지만 사업 철학상 어떻게 해면 좋다는 걸 어른들은 아신다) 난 정말 어른들의 세상을 알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단지 의무 방어전이 궁금했던 것일까. 눈 꼭 감고서 양심을 모험심으로 덧칠하여 거짓말로 용돈을 타냈던 시절로 돌아간 것이다. 가짜가 아니라 눈에 아른아른하는 정도가 아니라, 정말로 가슴이 찡할 정도로 눈에 선선히 보였다. 1층 여자 목욕실 2층 남탕 3층 독서실, 바로 3층을 올라가기 위해 거쳤던 입구에서 개구멍으로 훔쳐봤던 신비한 여체의 찬란한 뒷태가 보여서 가슴이 마구마구 쿵쾅쿵쾅거렸고, 아찔했고, 눈물이 핑 돌았다. 여기서 멈출 수는 없었다. 난 더, 더, 더더, 더더더 계속 어려졌다. 동화책에서 알리바바를 처음 읽고 만화영화로 꿈나라에서 신밧드를 만나던 어린시절로, 추억의 디즈니 TV 만화영화에서 해설자의 달변에 깜빡 빠지고─꺼뻑 넘어가며─덥썩 신비감을 꽉 부여잡고─홀딱 반해서─덜컥 환상머신에 탑승하여─훌쩍 최면에 걸려버렸던 바로 그 꿈결 같던 땅꼬마 시절로 공손히 돌아가고야 말았다. 물론 우리반 여자애 더블 에스의 정말로 보드라울 것 같던 눈부신 뽀얀 엉덩이를, 후라이팬에 덴 처절한 아픔을 이겨낸 우리 동네 삼총사였던 불굴의 천진난만 아동 JH의 엉덩이를 처음 봤던 당시로, 신묘하게도, 나는 몸도 마음도 돌아가고야 말았던 것이다. 난 그렇게 곧바로 돼지꿈보다 복되고, 솜사탕처럼 포근하고, 흡사 사랑의 대화처럼 달콤하며, 고전음악의 여러 익숙한 멜로디를 듣는 듯한 보기도 좋고, 듣기도 좋고, 상상하기까지 좋은 환상에 주체하지 못하던 결과 내내 그 행복감의 손바닥 안에서 허우적거린 끝에 단잠에 빠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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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이던가 다다음 날이던가, 나는 모처럼 멀더가 운영하는 카페에서 친구들이 모두 한꺼번에 모였을 때 제5열과 제5열의 배후와, 그래, 앞으로 펼쳐질 제6 제7의 미스테리에 대해서 논의해야 한다면서 그 얘기를 친구들에게 꺼냈다. 심심풀이의 목적이 아니라 진지한 어조로 약간의 과장을 첨가하여 기승전결을 살려서. 그래서 어떻게 됐을까? 내 얘기는 말짱 도루묵이 되었고, 난 딱 묵사발이 됐다. 존도 엘리자베스도 크리스틴도 모두 간접화법을 구사했다. 하지만 델은 남자였다. 남자 중의 남자, 독설의 총아. 그러므로 녀석은 날 생각해서 내가 좀 정신차렸으면 하는 마음에서 따끔하게 다음과 같이 날 한심한 듯 여기면 빈정거림 가득한 설을 풀었다. 물론 믿지 못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당연한 말이긴 하겠지만 말이다. 「그걸 나보고 믿으라고? 야, 인마! 너 같으면 그 말을 믿겠냐? 한번 생각을 해 봐라, 어? 아 나 정말 얘 어디서 헛바람 잔뜩 들어가지고 이상한 얘기 또 하고 있어? (난 이때 도와주라는 듯한 눈빛으로 나의 귀염둥이인 톰과 리지를 애처롭게 쳐다봤다. 그래서? 냉정한 년! 톰과 리지는 꼭 둘이서 짠 것처럼 눈길을 돌리더라, 심지어 남자처럼 헛기침까지 하더라, 것도 아주 능숙하게, 난 진짜 걔들이 남자가 아닌가 멈칫 그렇게 생각함) 난 있잖아, 글을 읽으면 남자가 썼는지 여자가 썼는지 딱 알 수 있어. 한 85퍼센트쯤? 좀 비싼 그림을 내게 보여줘바라. 다 맞춰. 남자가 그렸는지 여자가 그렸는지를. 그건 한 90퍼센트 정도. 단, 반드시 작품이 비싸야 할 것! 응? 얼마 이상! 그리고 나는 유행가의 작곡자를 알아맞추는 건 아무리 해도 해도 안되지만 작사는 또 내가 기가 막히게 맞히잖니. 어? 남자가 가사를 썼는지 여자가 썼는지를. 너의 그 황당한 얘기들이 만약 추리소설이라면 내가 봤을 때 그건 남자가 쓴 것도 여자가 쓴 것도 아니야. 절대, 절대 아니야! 결코! 어? 완전, 엄청, 꼭 아니라고!」 「그럼 뭔데?」 「뭐긴 뭐야! 뭐겠냐? 너도 생각을 하는 이성주의자라면 한번 어? 생각을 해 보란 말이야. 응? 뭘 물으면 대충 찍지는 못할망정 대답이라고 하는 말이 애처롭게 알고 싶다는 듯이 뭐냐고 그게. 응? 항상 뭐냐고 반문하는 게 뭐 늬 특기냐? 어?」 「아 그니깐 시끄럽고. 그게 대체 뭐냐고? 그게 뭐야?」 「그건, 바로, 허당이 쓴 졸작! 됐냐?」 「돼기는 뭘 돼? 늬 같으면 됐겠냐?」 「그럼 그렇지. 내가 너를 알잖냐. 응? 늬 마음이 훤히 보인다. 어디 나만 그러겠니? 저기 보이는 저 초상화 보이지? 렘브란트 반 레인의 자화상! 저 양반이 뭐라고 하는지 들리니?」 「아, 됐어. 뭐라고 하든가 말든가.」 「안 들려? 하긴 나도 안들린다. 언제적 활동하시던 분인데 말씀을 하시겠니. 그런데 오늘따라 부쩍 자화상이 나한테 말을 거네? 응? 저기 술병들 사이에 자화상 보이지? 저게 바로 그 유명한 스탠리 스펜서의 자화상이야. 1936년작. 패트리샤 프리샤와 함께 있는 자화상. 저 그림 꽤 사연이 있지. 더블 에스가 더블 피에게 반해서 사랑과 예술혼과 집 문서까지 내주고, 결국, 집 날리고 아내와 이혼하고 더블 피까지 떠나서 하룻밤 풋사랑에 대한 기억만 남았다더라, 라는 바로 그 그림.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고 할까? 했을까? 여자일까 남자일까! 유행가 가사 같은 우리네 인생 그런 건 모르겠고, 인생은 어쩌면 그런 표어 같은 게 아닐까? 그건 바로, 밀림의 중간 보스인 사자도 생쥐를 잡을 때는 최선을 다 한다. 아니 왜? 잡은 물고기한테는 밥을 주지 않는 법이니까.」 「아 그러니까, 됐고,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어?」 「난 다만 더블 에스의 나직한 음성이 들릴 뿐이라고.」 「들어도 들어도 끝이 없고 지겨워도 지겨워도 정말 너무하지만, 한번 들어나 보자. 내가 접어야지 늬가 꺾길 바라겠니. 그래. 더블 에스가 뭐라는데? 젠장, 대체 그 양반이 뭐라 하시냐고?」 「미스터 스펜서는 내게 이렇게 정중히 말하시네? (딱) 정신차려 이 친구야! 라고.」 나도 알고 있었다. 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다. 다만 묵묵히 글쓰기에 정진하고 싶었으니까 씁쓸한 충고를 연료 삼아 경이로운 주문으로 삼고자 했던 것일 뿐 다른 의도는 없었다. 습관이 일상이 되니까 속절없이 당하는 게 자연스럽고 또 나도 그게 좋았다. 오락 같은 세상이자 허풍꾼의 시대요 허당의 전성기가 아니던가.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말귀와 글귀를 모으면 뭐라도 된다는 걸 옛날에─정말?─깨달았으니까. 기억력의 극치라는 왕좌 자리는 내 차지가 아니기 때문일까, 큰 재주 없이 잔재주만 그만그만하게, 딱 사극에서 양반이 애첩 거느리듯 수하에 거두었기 때문일까. 귀동냥과 잔지식을 총동원하여 작품으로 승화시키는 건 가능하지만 그 반대는 불가능했다. 타고난 말주변이 어디 가겠나. 알고 보니 난 지극히 정상이었다. 왜 그런지는 모른 체 하자면 그래야 귀가 즐거웠고, 뭐랄까, 외람되오나 그래야 마음도 안심이 됐다. 바로 그래야 여기서 들은 말로 딴 데서 아양을 떨고 아부도 할 수 있었다. 지금껏 나한테 술 산 친구들 그 돈 모두 모았으면...! (이 말이 왜 갑자기 튀어나왔지? 내가 글로 썼던 말이 아닌데, 어떻게 기록으로 남았을까? 아하, 백퍼센트 그거다. 내 안의 그분께서 잠깐 얼굴만 비추신 거구나. 한 문단에서 저 문장이 대체 왜 들어가 있나 했더니만 글세...!) 나는 보고 들은 말과 읽고 연구하고 알아낸 글을 써먹을 데가 없으면 (좋게 말해) 무의식의 창고에 차곡차곡 챙겨놨다. 정확히 말하자면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래도 난중 장미다발도 사랑도 대망도 사이렌과 판도라의 상자까지 모두 나의 사랑에게 바쳐야 하니까, 그런 희망은 변치 않았다. 처음에 잘 길들이느냐 초장에 잡느냐, 그건 뭐 그때 가 봐야 알겠지만 말이다. 원래 우리는 이러면서 놀았다. 그게 재밌었다. 당당한 압운과 낭랑한 운율이 어색한지 고결한지는 모르겠고, 우리식 대화의 즐거움은 말장난이 전부였으니까. 일단은 그렇게 제5열은 거기서 마무리됐다. 그 다음 새로운 6번 타자가 나타날지 색다른 연작2탄이 시작될지는 두고 봐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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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식스맨의 출연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뭔가가 까꿍 하며 나타나면 그때 가서 시치미를 떼든 놀라 자빠져 엉덩방아를 찧든, 그건 그때 가서 감탄하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환상 문학 잡지 미스테리아 편집장의 요청으로 환상 문학과는 꽤 거리가 먼 연애에 관한 수필을 작성했다. 내가 완성해서 보낸 글이 미스테리아 제일 뒤에 실릴지 말지는 모르겠지만, 원고료는 두둑하게 받았겠다 나중 편집장이 선물도 주고 술도 사겠다는데, 내가 쓴 일기를 누가 몰래 봐주지 않을까 그런 애원 어린 걱정일랑 허공 속으로 날려보냈다. 그 글이 대체 얼마나 짜잔한 사랑론이길래 잠시 확인이나 해 보자. (형편없기만 해 봐라?) 읽어 봐서 썩 가치가 아예 없지 않다면 슥 넘어가고, 퍽이나 훌륭하다면 곤장을 그냥...! 각설하고 자, 연애담인지 환상론인지 뚱딴지인지 그 뭔가를 즉각 읽어보자. 기본적으로, 여자는 착하고 숙녀는 순진하다. 대체 여자와 숙녀가 뭔 차이가 있냐고 물어보는 남자, 속으로만 뭐지 뭐지 라며 생각하는 여자, 둘 다 똑같다. 그건 그렇고 여자는 뭘 말하면 그냥 자연스럽게 믿는다. 여자는 저절로 믿는다. 우리는 보면 안다. 여자는 속는 걸로 도가 튼 다음에도 또 속는다. 그런데 남자는? 남자는, 남자는 무조건 안 믿고 무조건 허세와 딴지와 허풍으로 일관한다. 친하다면 그게 기본이다. 만일 정중하고 예스럽다면 친하지 않거나 백조랄지 딱따구리과다. 또는 뭘 좀 아는 거고. 남자 얘기는 재미없으니까 넘어가고 예를 하나 들어보자. 여자가 꽃이고 남자가 꿀벌이라고 가정했을 때 재미난 예가 있다. 상남자로써 모든 게 완벽한데, 그런데 유독 여자 앞에만 서면 작아진다? 그런 남자가 있다. 왜 그럴까? 그분은 왜 그러냐면, 왜냐하면 그런 남자는 여자보다 더 착하고 더 순진하기 때문이다. 허당은 허당인데 은근이란 딱지는 부여할 수 없음. 절대로. 그래 봐야 허세는 피할 수 없는 운명. 허영심이란 나비를 쫓지 않을 수도 없고, 그러나 잘 잡히지는 않고. 마음만 심란할 뿐. 이러니까 사랑은 양분됨. 나비와 나방으로. 타고난 성정 때문일까, 정작 필요할 땐 허풍은 구사조차 할 수 없음. 그래서 촌닭도 둘로 나뉨. 모두 함께 편하게 말을 놓는 친한 사이라면 모를까 바깥에서 내 짝에게 경어를 쓰냐 아니냐로. 그렇다고 어디서 얘기를 듣게 되면 내가 그런 상식도 없는 인간인 줄 알아, 하면서 곧이곧대로 경어만 계속 써 보시라. 나중 어떻게 될까? 드디여 여자의 이상형으로 변모하여 신비주의자, 낭만주의자, 고전주의자, 신사등 뭔가 하나 감미로운 애칭을 얻지 않을까? 과연, 퍽이나 그러겠다. 듣기 불편한 감투나 얻지 않으면 다행이겠지. 아마도 이렇지 않을런지. 응당 그럴 것이다. 응용하면 왠지 지는 것 같으니까 하나를 하면 내내 그것만 계속함. 그렇구나 라는 완곡어법은 허용할 수 없는 인생. 그런데 신기한 점은 여자도 그렇다는 점. 영화배우 뺨 칠만큼 잘생긴 사람과 성우는 저리 가라 해도 될 정도에 해당하는 고혹적인 목소리의 소유자를 만난다면 딱 한번 말하고 넘어갈 그녀가 아니다. 딱 한번? 아님 딱 두 번, 끝? 어디 그게 여... 연예인병은 몰라도 공주병이 걱정되고 일중독이 의심된다. 진심이기를 바래야겠지만, 불만의 원인을 파악하는 게 좋지 않을까 라는 처방은, 일단 하고 보자. 아무튼, 참을성이 없다랄지 감탄하지 않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숙녀는 예찬을 반복할 수 밖에 없다. 그게 여자니까. 그럼 남자는 어떻게 되겠나. 뚜껑이 열리고 그분이 오셔야지 별 수 있나. 물론 다 그런 건 아니다. 허영심과 질투심은 여자로써 일평생 귀여워하며 아름답고 친하게 지내야만 하는 양대산맥이다. 따라서 합리주의, 싸구려, 격조, 취향, 교양미, 구미와 안목에 대한 분별력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동물 유형에 대한 변별력과 숙녀를 아껴줄 수 있는가, 라는 남자의 어떤 천재성에 대한 감식력까지 훌륭한 숙녀는 하고 싶은 말을 잘 참는다. 애써서 꾹. 하지만 섬세한 남자는 그런 여자의 인내심까지 귀신처럼 감지한다. 여자와 남자, 커피포트와 진공청소기, 그건 매번 교차할 수 밖에 없다는 것 그게 바로 세상사고 인생이다. 다시 어쩜 그렇게 고지식할 수 있는지 신기한 그이에 대해서 얘기해 볼까? 그렇긴 해도 그분도 나름 호인에 대인배이기 때문에 그런 풍문을 혹시라도 우연히 전해듣고서 기분 나빠할 그런 꽉 막힌 위인은 결코 아닐 것이다. 만약 그런다면 그건 진짜 쪼다, 뭐, 뭐, 말 다 한 거니까. 그러니 기왕지사 시작한 험담인지 성격 분석인지 뭔지, 까짓껏 계속 가자. 영화에 나올 거다. 그런 남자한테는 작전을 짜서 낚시할 때 고기를 잡게 만들어준다. 그래서 그분이 고기를 잡는다. 낚아 올린다. 그런데 그 물고기는 냉동 상태다. 시간이 정지되거나 특수 현상이냐고? 작전이 어설펐거나 실행 착오랄지 귀찮아서 그랬겠지. 따라서 이건 뭐지 뭐지, 라면서 그는 기뻐함과 더불어 황당해 한다. 바로 그때 옆에서 분위기 쓰윽 잡고 상황 몰아가서 넘어가면 된다. 그런데 그 남자가 만약 낚시를 잘한다? 그 작전은 사전에 취소된다. 그러므로 단순히 여자는 그 어떤 남자와 내가 어울릴까, 또는 내가 그분과 사랑을 꿈꾸어도 될까, 아니면 혼잣말로 어딜 넘봐 라며 따끔한 일침을 놓는다 라고 가정했을 때 여자의 마음은 낱낱히 드러나고야 만다. 그 황홀함으로 어디서 짝을 찾을 수 없는 나신, 그 속마음은 숨기지 못하고 정체를 드러내고야 만다. (딱)! 우리는 보면 알고 안 봐도 안다. 우리는! 따라서 한 남자와 여자와 애정과 사랑은 단 한 문장으로 명쾌히 결론난다. 숨기지도 감추지도 피하지도 못하고 딱 결론난다. 그건 뭘까? 뭐겠나. 여자는, 바람둥이를, 좋아한다. (보너스) 여자는 '그냥' 허당을 좋아하고 천재를 흠모하는데, 하지만 숙녀는 '은근' 허당을 편애하며 바람둥이를 사랑한다. 이 명제에 반대하는 사람? 조용조용히, 솔직히 동의하는 사람이라고 소곤거릴 걸 그랬나. 내가 원래 천리안에다 수퍼맨의 청력에 버금가는 초능력을 지녔는데 대체 지금 왜 이러지? 왜 이럴까? 왜 이러긴 뭐가 왜 이래! 게다가 내가 그걸 알 리가 있나. 행색이 이렇고 생활 습관이 이 모냥인데. 안 그런가요? 안 그렇단다. 시간 끌며 애태우지 말고 어서 결론 내라는 무언의 압박이다. 제발! 하오나 결론에 앞서 1과 2의 잘잘못과 불합리를 지적하고, 미완성에 반대하며, 불만족을 슬퍼하자. 그건 곧 철지난, 지나도 한참 지난 카피라이트 같은 말에 대한 해석의 여지가 충분하다는 뜻이다. 각자 명사와 동사를 마음에 드는 위치로 이합집산해도 괜찮다는 말이다. 그러니 이제 그만 뜸 그만 들이고 결론을 간출이자면 이렇다. 여자가 어떤 남자를 좋아하는가 좋아하지 않는가, 바로 그것! 여기서부터는 정확함보다는 문제 제기를 선호하는 게 낫지 않을까? 왜냐하면 그래야 여자에게 칭찬받고 숙녀한테 사랑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뭘 좀 아는 남자라면 이때 자연스럽게, 술술, 능숙하게 객관식 보기를 제시할 것이다. 아마도! 왜냐하면 그래야 하니까. 하지만 어쩌면 어느 멋진 남자한테(어머머 남자들?) 호되게 당한 어느 아가씨께 서늘한 험담을 얻어들을 수도 있을 테고. 어쨌거나 저쨌거나 어서 보기를 들어보자. 첫째 지적이냐, 남자가 지적이냐 지적이지 않냐. 둘째, 바람둥이 스타일인가. 셋째, 그이는 여성스럽냐. 넷째, 오오 넷째부터는 아아, 그만 그만! 아 참고로 첨언하자면 웃기고 밝고 어쩌고 이러쿵저러쿵, 그건 다 저 2번에 포함되는 걸로. 원래 여기서부터는 유료로 전환되거나 개인교습이 적절한 상도덕에 해당하지 않을 런지. 분위기 잡고 폴 모리아 악단의 명곡을 잔잔히 틀어놓고서 속닥속닥, 바로 그렇게. 어떤 남자가, 누군가가 바람둥이인지 아닌지 그건 잘 모르겠으나 하나는 확실하다. 한 남자가 한 여자를 만난다면 그는 자발 말고 그녀의 마음을 뺐고자 한다는 것! 귀신도 모를 만큼 감쪽같이. 으잉, 자발? 만일 자발에서 파생된 변종이더라도 그녀가 눈치채지 못하게! 그런데 간혹 드물게(?) 초장에 하산하거라 하면서 맷돼지를 내려보내는 경우도 있다. 아하 그녀는 바로 이런 남자를 좋아하는구나, 라면서 얜 아니다 싶으면 안녕하며 일찍 떠나보내야지 뭐 별수 있나. 냉정하게, 털어낼 건 털어내는 게 좋다. 그래야 소중한 인연에 집중할 수 있으니까. 맺고 끊는 거를 잘 못하면 살면서 얘깃거리가 많아진다. 직업적으로 그게 유리할 수도 불리할 수도 있다. 그러든 어쩌든 행복과 성공의 문은 항상 열려있다. 따지고 보면, 지나고 보니까 때로는 햄릿형이 때로는 돈키호테형이 낫더라. 그러다 어느 날 사랑이라는 행운이 당신께 찾아올 것이다. 곧 조숙하든 순진하든 돌아이든 일장일단이 있다는 뜻이다. 어떻게 이런 신기한 행운이 내게 찾아오지, 바로 그처럼 놀랍도록 아름답고 새로운 숙녀는 어머머, 웃네 완전 방긋 웃네? 만일 그렇다면 그건 이미 게임 끝난 거다! 우리는 원래 금방 친해진다. 그런데 문제는 해도 해도 여자를 모르는 남자가 있다는 것. 그런 친구를 보고 있으면 참 답답허다, 답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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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쇼핑을 했다. 요즘 출간된 인문교양서 가운데 눈에 띄는 책이 있길래 슥 살펴봤고, 덥썩 구입했다. 댄 라이언스의 천재들의 대참사. 그렇지만 쇼핑은 그게 다였다. 이젠 뭘 사는 것도 귀찮아진 건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아마도 환절기라서 기분탓일지도 모르겠다. 저속한 사치가 제발로 내게 찾아오고 하찮은 호사를 거부하지 않아도 괜찮은 삶이 아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냥 말 그대로 만사가 귀찮았던 것이다. 좌우간 나는 아침이면 음악을 듣고 책을 읽고 소셜 네트워크를 구경했다. 점심이 가까와 오면 언제나 점심은 뭘 먹을까를 고민했고. 그러다 이대로 제6열을 기다리기만 하는 건, 이건 뭔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내가 먼저 7번 작품을 치밀하게 준비해서 탄생시키든 어쩌든 선수칠 궁리에 대한 방안 역시 간과할 수는 없었다. 허둥지둥 야단법석을 부리며 바쁘게 날뛰지는 않더라도, 우왕좌왕 어느 (화가명)풍 모험가의 탐험심을 본뜬다면서 안절부절 초조해하지 않더라도, 가서 확인은 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거긴 어디? 바로, 전망 좋은 저택! 아직 검은 그림자의 정체는 아무것도 밝혀진 게 없으니까 긴장의 끈을 놓지 않기로 한 것이다. 물론 나는 내 주변을 둘러보면서 혹시 누구? 그러면서 이 가운데 검은 그림자가 있는 것은 아닐까? 차라리 내가 새로운 검은 그림자가 될까? 그런 공상도 마다하지는 않았다. 지금 형편에 사랑에 흠뻑 취해 다른 인연은 생각할 수 없는 지경을 꿈꿀 수는 없으니까, 잡념을 모두 접고서 나는 당장 그곳으로 떠났다. 가는 길에 특별한 일은 없었다. 언제나 매번 이상한 일을 기대할 수는 없으니까 당연한 결과였다. 그리고 길가에 핀 들꽃을 봤는데 나는 그 꽃이 혹시 제비꽃은 아닐까 궁금했다. 제비꽃은 글로 아마도 최소 100번 이상 읽었을 텐데 난 아직도 그 이름에 대해 어디서 아는 체 할 수 없었기 때문에 궁금했을 것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거짓말 할 기회가 생긴다면 몰라도 난 그런 느끼한 허풍쟁이나 유들유들한 거짓말쟁이가 아니니까. 종이 한 장 차이가 대체 뭘 뜻하는지는 아마 내 영원한 숙제인가 보다. 그리고 가는 길에 대낮인데 하늘에는 달이 떠 있었다. 해는 매번 날이면 날마다 어김없이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진다. 그러나 달님은 해님처럼 단조롭지 않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뜨는지 알아도 쉽게 잊어먹을 만큼 떴다 지는 게 변화무쌍하다. 참 기특하게도 말이다. 문득 달을 보니까 생각했다. 과학적으로 밝혀진 우주의 기원에 대해서 별로 몰랐던 옛날에는 별이라고 하면 적어도 지금보다는 훨씬 낭만적이었을 것이라고. 하긴 현대인들조차 태양이 공전한다는 사실을 잘 모르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일단 관심이 없으니까. 그건 그렇고, 나는 언덕 위에 위치한 전망 좋은 저택에 도착했다. 분위기를 살펴보니 달리 변화는 없었다. 그래서 별일없이 한동안 노트북을 켜서 일을 했고, 쉬는 시간을 맞이해서 휴식을 취할려고 바깥으로 나갈려고 했다. 그런데 이게 대체 뭔 일이지? 문이 잠겨버렸다. 할 수 없이 나는 톰과 리지에게 연락했고, 톰과 리지는 열 일 제쳐 놓고 서둘러 날 구하러 달려왔다. 당연히 그녀들은 자기들만 오지 않았다. 이미 다른 친구들도 구경했기 때문에 같이 바람쐬러 가자면서 친구들을 대동해온 것이다. 그런데 재주 좋은 녀석들도 문을 열 수는 없었다. 그러니 방법은 없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유리창을 깼고 상황은 종료됐다. 그런데 이걸 수리를 해놓자니 뭔가 찜찜하고, 안 하자니 도리에 어긋나고, 그러나 분명한 건 다시 여기에 들리면 안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뒷처리는 어떻게 간신히 해결했고, 우린 특별히 놀 구실이 없었기 때문에 흩어졌으며, 난 달리 유난떨 만한 숙원이 있는지 찾아봤다. 없었다. 흥미로운 일도 혹하는 사건도, 성미를 현혹하는 관심도. 뿐만 아니라 면박당할 나의 잘못도 장비 때문에 뭔가 꿀린 것 아닌가 라는 그런 대결 구도도 없었다. 그러니 나는 진가를 발휘할 기회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딱히 어디 갈 데가 없었으니까, 정처없이 떠돌 수는 없어서 내 사무실로 갔다. 사무실에 도착하니 웬 요정이 날 반겼을까? 어인 일로 행차시요 라고? 그런 일은 없었다. 다만 딱 하나의 변화가 있었다. 바로 내 사무실 소파 위에 있는 그림이 갸우뚱해진 거. 앗, 혹시...? 나는 황급히 액자의 뒤를 살펴봤다. 그런데 뒤를 봤더니 아니나 글쎄, 비밀 금고가 설치되어 있었다. 와우! 앗싸! 야호! 이거야~ 이거라니까! 나는 먼저 아니 이게 웬 떡이야 하면서 놀랐다. 그 즉시 나는 환호성으로 비밀스런 축복에 대한 갈채를 실현한 다음, 흐뭇한 표정과 함께 두손을 슥삭슥삭 비비면서 어떻게 요리할까 고심했다. 그러고 나서 저 안에 든 황금과 무슨 증서와 유가증권과 상금은 물론 복권과 초대권까지 정말 내가 다 가져도 될까, 막 그러면서 초조함을 가라앉히기 위해 입을 부르르 떨면서 보글보글 물 끓는 소리를 냈다. 행복한 고민은 나중 하자면서 나는 서둘러 금고를 열려고 딱 자세히 살펴봤다. 그런데 그건 금고긴 금곤데, 그림만 금고였다. 아니 뭐야 이거? 누가 이런 장난을! 이건 친구한테도 바텐더한테도 이실직고하면 안된다. 절대 안된다. 장난친 사람 허를 찔러야 하니까. 왜냐하면 너 나 할 것 없이 날 바보라고 할 테니까. 누가 알아요? 검은 그림자가 찍은 천재가 바로 당신일지? 그런 품위 있는 깐족에 당할 내가 아니다. 이젠 속임수든 허탕이든 뻥이든 뭐든, 당할 만큼 당했고, 마침내 내가 허당 중의 상허당이 됐으니까. 세상 모든 재주를 내가 다 흡수할 수는 없었지만 이제는 어느 별명이든 무난히 내 차지가 되었다. 그게 바로 허당의 특징이니까. 지금에 와서는 뭐랄까 재능보다는 운수를 부를 줄 알았고, 불행 속에서 행운이란 치즈에 무슨 빨판처럼 딱 달라붙어서 줄을 살살 당기는 각종 업계 관계자들의 흑심을 파악할 줄 알게 됐다. 따라서 나는 여자들의 허영심을 역이용하고, 남자들의 허세에 관하여 역발상으로 접근했으며, 그러므로 허풍의 신세계를 창안하는 새로운 견자로 거듭나게 됐다. 일단 말로는. 그걸 작품으로 옮길 수 있는가 없는가는 차차 확인하기로 하고, 어쨌든 그렇게 그날 하루는 특별한 일 없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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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클래식 기타를 하나 샀다. 최고급에서 약간 아래 품목으로. 왜냐하면 그걸로 고전음악을 연주하고, 최신곡을 노래부르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3분의 마법도 모두 클래식 기타로 연주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일거양득! 그렇게 연습하던 끝에 초보 딱지는 겨우 뗐다. 그런데 권태라는 악마는 벌써 날 찾아왔다. 고급 장비를 산지 얼마나 됐다고. 매정한 녀석 같으니라고. 그 친구는 사이렌처럼 막 내 귓가에 사랑 고백이 아니라 장난기 가득한 권유랄지 다정한 정담을 속삭이기 시작했다. 들어본 결과 요점은 그거였다. 클래식 기타 연습하는 거 지겹지 않냐고. 넌 원래 뭘 해도 재미없어 하는 인간 아니냐고. 다 커서 그거 연습해서 어디 대회를 나갈 테냐, 아니면 공연이라도 할려고 그러냐면서 나의 타성을 막 간지럽히기 시작했다. 딴 거 해보는 게 어떠냐면서 타락을 부추겼고, 호색한의 명예를 되찾고 싶지 않냐고 날 괴롭히는 부단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당장 결정할 게 아니라 당분간 기분 전환을 하고 나서 연습을 계속할지, 아니면 머머접습니다 라면서 악기와 이별할지, 또는 그냥 진열품으로 방치할지 어쩔지를 결정하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한적한 해변으로 떠났다. 한가하고 평화로운 해변가에서 내가 했던 일은 이랬다. 일광욕을 즐겼고, 일순간 경미한 관음증의 유혹을 이겨냈고, 노을을 바라보며 시상에 젖었다. 실제 시도 썼다. 특별할 건 없었다. 시를 쓰면 시인이고, 노래하면 가수, 풍경을 스케치만 하면 화가니까. 내가 쓴 시는 이랬다. 발랄한 몽상은 언제나 기쁜 젊음을 유혹한다. 바다 역시나. 오 그대에게, 마술 같은 우리 미래의 행복을 축원하자꾸나. 아아 바다여 약속해 다오, 예언이 적중할 것이라고. 내 사랑이여 맹세해 주오, 허풍은 더 이상 거짓이 아니라고. 희망의 여신이여, 눈물을 기억하고 사랑을 노래하며 달콤한 예감을 이야기하자. (끝) 그건 그냥 밑도 끝도 없이 아무렇게나 끄적거린 낙서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약간 쌀쌀한 날씨에 계속 일광욕만 할 수도 없었고, 책 읽는 것도 따분했고, 해변의 미녀를 찾을래야 찾아볼 수도 없었기 때문에 나는 다른 할일을 찾게 됐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그것이었다. 즉 나는 낚시를 빠트릴 순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 나는 도전 끝에 결국 대물을 낚고야 말았다.
푸하하하하하하! 으하하하하하하! 크하하하하하하! 요술 주문을 외워볼까요, 아직 좀 더 기다릴까요? 한눈팔 때 별안간, 얍~!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정말 좋겠네! 춤추고 노래하는 예쁜 내 얼굴,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정말 좋겠네! 엄마 앞에서 짝짜꿍 아빠 앞에서 짝짜꿍, 엄마 한숨은 잠자고 아빠 주름살 펴져라! 룰루랄라 랄라라 룰루랄라 랄라라, 날 따라 해 봐요 이렇게! 신비한 요정들의 마법 세계 이야기는 바로 나의 이야기라네! 쿵짝쿵짝, 즐겁게 춤을 추다가 그대로 멈춰라! 반짝반짝, 즐겁게 춤을 추다가 그대로 멈춰라! 이렇게 멋진 날, 랄라랄라 당신은 누구십니까 나는 대물입니다! 아이참 재미있다! 돼지는 꿀꿀꿀 개구리는 개굴개굴 강아지는 멍멍멍 병아리는 삐약삐약, 그런데 나는야 대물이라네~! 파란 나라를 보았니 꿈과 사랑이 가득한 파란 나라를 보았니 천사들이 사는 나라 난 찌르찌르의 파랑새를 알아요 난 안데르센도 알고요 저 무지개를 넘어 파란 나라 있나요? 저 파란 하늘 끝엔 거기 있나요? 동화책 속에 있고 텔레비전에 있고 아빠의 꿈에 엄마의 눈 속에 언제나 있는 나라 누구나 한번 가보고 싶어서 생각만 하는 나라
아빠가 출근할 때 뽀뽀뽀 엄마가 안아줘도 뽀뽀뽀 만나면 반갑다고 뽀뽀뽀 헤어질 때 또 만나요 뽀뽀뽀 우리는 귀염둥이 뽀뽀뽀 친구 뽀뽀뽀 뽀뽀뽀 뽀뽀뽀 친구 나는 도레미송이 절로 나왔다. 내 사랑아 내 사랑아 나의 사랑 클레멘타인, 콧노래는 멈출 줄을 몰랐다. 물론 난관은 많았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비일비재했다. 그러나 모두 이겨냈다. 힘든 노력은 알찬 결실을 맺고야 말았다. 탐스런 과일을 따서 상큼한 과즙을 맞보는 일은 결코 상상으로 끝나지 않았다. 언제까지 내가 실망과 체념과 절망의 뒤치닥거리만 할 수는 없었으니까. 이제는 나도 어엿하게 대망과 열망과 선망, 적어도 양쪽에 긍정적인 지성과 아름다운 미녀를 꿰찰 때도 됐단 말이다. 그래서 나는 짧은 시간 느꼈던 긴 행복감을 잠시 접고 묵직한, 아니 대체 얼마나 큰 대물이길래, 꿈을 낚는 철학자와 조우하기를 한사코 거부하시는 바로 그 물고기님을 잘 달래서 녀석을 겨우겨우 물 바깥으로 들어올렸다. 나 원 참, 이거 뭐야? 대체 왜 이렇게 안 올라오지? 고래야 뭐야 왜 이렇게 무거운 거야, 라면서 영차영차 열심히 끌어올렸다. 내가 어떤 대물을 잡았는지 듣고나면 아마 깜작 놀랄 것이다. 어쩌면 너무 떨려서 살짝 혼미해질지도 모른다. 그런데 아뿔사! 그건, 내가 잡은 그건, 큼직한 물고기는 글쎄 대물은 대물인데, 이걸 뭐라 해야 하지? 뭐랄까, 그건 냉동된, 냉장고 냉동실에서 꺼낸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듯한 냉동된 대물이었다. 맙소사! 어떻게 이런 일이 내게 있을 수 있지, 라면서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서 주저앉아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팔딱팔딱 생동감 넘치는 진짜 물고기가 아니라 냉동 물고기? 오오, 저런! 그나마 생선 스테이크가 아니니까 다행인 건가? 다행은 무슨! 동태, 명태, 생태에서 왜 하필 내게만 동태가? 나는 매료되지 않고서는 배길 수 없는, 만화영화 명해설자가 말하는 몸서리치게 아찔한 환청을 마침내 듣고야 말았다. 그건 무엇일까? 내가 들은 자상한 어조의 간곡한 진술은 바로 이와 같았다. 「어차피 진짜 미스테리라면 이왕 실감날 거 마른 것보단 언 게 더 낫지 않겠어요?」 뭐라고? 마른 것보단... 마르... 뭐가, 어쩌고, 어째? 제1탄이니 제5열이니 증거도 모조리 사라졌는데 무슨 근거로 뭐, 언 게 더 낫지 않겠어요? 그럼 그렇지! ......(심호흡)...... 뭐야 정말 아후!
......(휴)......
어판장에서 파는 생선은 크게 나누어 두 가지가 있다. 생물과 생물이 아닌 것. 비록 후자에 속할지라도 해동이 됐고 적당히 신선했다면 그럼 과연 내가 속았을까? 절묘하게까지는 어려워도 약간 긴가민가? 속기는! 하지만 또 모른다. 한번 가정을 해 보자. 심지어 노인과 바다라는 작품에 나왔듯이 실제 사례도 존재하지 않는가. 처음부터 엄연히 내가 원하는 목표가 분명했고, 중간 과정에서 잡히냐 놓치냐 물고기님과 꽤 애타는 흥정이 있었으며, 약간의 고생 후 다행스럽게 우리는 만났다. 적어도 밀고 당기기가 있었고, 최소한 교감이 스치기는 했다. 그리고 마침내 눈빛을 봤다. 엄정히 결과만 놓고 보자면 물고기님의 눈빛은 뭐라 말하기가 썩 곤란했지만. 하지만 말이다, 일방적이기 때문에 애절한 사랑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는 외나무 다리에서 만나야 할 인연도 아니었다. 그러므로 바로 그때 절묘하게 녀석을 올리자마자 팔딱팔딱하는 전자에서 팔딱팔딱하지 않는 후자로 넘어갈 가능성도 완전 없는 건 아니다. 낚시 많이 해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뭍으로 나오면 일단 물고기는 더 이상 홈그라운드가 아니기 때문에 뭐 어쩐다는 걸 우리는 잘 안다. 따라서 해동이 좀 더 잘됐다면 내 실망감은 훨씬 덜했을 테고, 내 절망감 역시 잠깐 스쳐지나가는 풋사랑과의 이별 정도로 그쳤을 것이다. 심지어 확인 후 체념했지만 확인 전에는, 뭐랄까, 물고기님과 그 짧은 시간에 약간의 정이 들었다고나 할까? 그런 측면이 정말 없잖아 있었다. 그야 어찌 됐든 이건 나와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그러니 난 갑자기 뜬금없이 사랑의 정의에 대한 궁금증을 참을 수 없었다. 절정의 순간에는 항상 뭐뭐증이 나섰다. 조증은 탄력 받기 힘들고, 허언증은 지쳤고, 조급증은 2군에서 1군으로 올라올려다 3군으로 미끄러졌으니 지금은 단연 궁금증이었다. 그래서 나는 사랑을 생각했다. 뜸 들일 필요도 없었다. 사랑! 사랑이 찐해야 하냐, 동심을 움직이는 동화처럼 순수해야 하나! 사랑은 전자가 옳을까 후자가 괜찮을까? 사랑은 연필로 써야 하나, 뭘로 쓰든 일단 쓰고 나서 보자! 정말로 사랑이 전자에서 후자로 바뀌는 것, 어쩌면 그게 진짜 인생 아닐까? 사랑이 뭐 길거리 마술쇼도, 소풍의 풍선놀이도, 강아지가 애정하는 테니스공도 아니지만 하나는 분명하다. 사랑은 바로 솜사탕 같다는 것. 사랑이 솜사탕이든 아이스크림이든 사랑의 정의가 그렇다면 로맨시티스가 할 일도 정해진다. 단, 사랑을 받는 숙녀여! 그대의 할 말도 범위는 좁혀졌다. 그걸 설명하는 게 곧 작가의 사명이다. 로맨티스트의 할 일과 숙녀의 할 말과 작가가 써야 할 글은 알고 보면 어쩜 비슷비슷할 수도 있다. 작가가 딴 게 작가가 아니라 숙녀의 비서요, 일반인의 대변인에, 환상적인 해설자 그의 이름은 바로 작가인 것이다. 아니 그런가요? 아닐 수도 있다. 다시 돌아와서 우리는, 자상함을 하나 받고 너그로움을 하나 화답하자. 왜냐하면 예찬과 칭송과 선물도 그럼 그럼 사랑까지 그녀는 받고자 한다는 것, 그게 바로 사랑이기 때문이다. 사람들 말은 다 다르다. 사랑은 뭐다, 사랑은 어...(사석이 아니니까 쉿!) 호탕하게 싸워야 진짜 사랑이다 어쩐다, 다 맞다. 그렇지만 지금 여기서 사랑은 하나다. 여자에게 사랑은 바로 이기적이라는 것. 맞다. 여자는 원래 천동설이다. 그렇다. (그러니 여자끼리 모여 있으면 오오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눈치 백 단이면 스쳐지나가도 눈빛 한번이면 충분하다, 아빠만 빼고 모든 남자가 늑대다 라는 말이 맞다면 여자 역시 내 사랑만 빼고 모든 여자는 불?여우다 라는 말은 진리다) 진짜(?) 솜사탕과 순수라는 이름의 우유와 모파상의 명언이 쓰인 엽서나 오 헨리의 단편집을 선물하는 남자의 세심함을 칭찬합시다. 짠-하며 화사한 꽃다발을 안겨줬드니 아 글쎄 이 돈이면 어쩌고저쩌고, 라는 야박한 꾸짖음만이라도 꾹 참자. 일반적으로 의전과 의무는 비례한다. 그런데 거기에 덥썩 얹어보자. 배팅을 멈추지 말자. 추억을, 사랑을, 배려를! 의전과 쫄망쫄망을 반대로만 하지 않기를! 그것으로 그녀를 만족시키고 진정시키고 아주 간혹 감동시킨다면 그녀는 당신을 떠날래야 떠날 수가 없다. 여자는 그 무엇을 안겨준 남자를 절대 떠날 수 없다. 결코 못 떠난다. 그럴 수는 절대로 없는 일이니까. 왜 여자에게 사랑이 인생의 전부인가, 그런가 아닌가를 얘기하는 남자는 뭘 모르는 남자고, 이럴 때는 가만히 말없이 왜 그럴까를 추론해야 한다. 그걸 아는 남자는 마음이 편하다. 단, 꼭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다는 게 문제이긴 하지만. 여자를 알았고, 사랑엔 조숙했고, 인기와 호박과 신비는 모두 영원한 우정이었으며, 인생을 새롭게 정의했고, 세상을 두루 내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쥐락펴락하셨던 바로 그분들께서 괜히 그러시는 게 아니니까. 사랑은 없어, 라고! 물론 농담일 것이다. 그러기를 바란다. 진짜로 어렵고, 드물고, 힘들 테지만 그 반대이기를! 안 그렇소, 이 세상의 숙녀들이여? 그냥 저냥 조용조용히, 좋게 좋게, 쉬엄쉬엄 넘어갔더니 그이는 글쎄 정말 해도 해도...... 안되겠소, 우리 모두, 들고 일어섭시다? 워─워─워! 하지만 일단은 사랑은 없다인 걸로. 당분간만요! 그렇게, 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사랑은 주관식인 것 같다. 그리고 사랑은 사랑이고, 우리가 살면서 앞서 나온 그 무엇을 내 인생의 모토로 삼느냐, 또는 잠깐 쓰다가 헌 양말 버리듯이 포기하느냐, 그 모두가 개인의 마음이지만 딱 하나는 확실하다는 것! 제5열처럼, 이건, 뭔가, 나와,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다! 이게 정말 말이나 되냔 말이다. 이런 말 같지도 않은 일이 어떻게 내게 있을 수 있냐고. 하지만 현실로 맞이했다. 그럼. 참으로, 기뻐서 덩실덩실 거리에서 발가벗고 춤이라고 추고 싶구나 글쎄. 그렇다고 다른 일은 또 뭐 얼마나 나와 어울렸나! 그러면서 감히 제6탄이 괜찮냐 괜찮지 않냐, 제6열이 맞냐 아니냐를 따질 계제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그러고 보니, 언뜻, 들었다. 그러든 어쩌든 결과는 물릴 수 없었다. 내가 쥔 패는 그게 최선이었고, 새로운 다음을 기약할 힘도 다 빠져버렸다. 그게 중요했다. 하지만 받아들여야지 어쩔 수 있나. 그럴 수 밖에 없었다. 하는 수 없지 뭐.
그래... 음... 흐흠... 언 게 낫다라... 언 게 차라리 나을 수도 있겠다. 천국의 계단까지 갔다가 되돌아와서 그렇지. 나는 가까스로 환영에 이은 환청을 뿌리치고 이성을 되찾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야 어쨌든 내가 겪은 환상은 진짜였으니까. 믿지 않을 수 없었으니까 말이다. 이젠 숫자를 세는 것도 잊어먹었다. 숫자? 숫자를 세는 낭만이라면 이젠 귀찮고, 싫고, 진작 지쳐버렸다. 언제는 몇 차 작품이네, 몇 탄이네, 제 몇 열이네, 뭐네 뭐네 바쁘게 설레고 들떠서 좋아하더니만, 결국 난 검은 그림자한테 당하고야 말았다. 꼼짝없이 당해버렸다. 난 정말 내가 어린 동심과 모든 여심을, 게다가 날 만나고 싶어서 애달파하는 대물은 물론, 심지어 많은 여복을 요리할 궁리로 흥미진진하게 촐싹거리며 보글보글, 뽀글뽀글 너무나도 맛날 것 같은 스프를 젓는 가가멜인줄 알았는데...! 언젠가 반드시 머머하고 말 테야 라며 당돌하고, 당차고, 의뭉스러우며, 불독의 트레이크 마크인 바로 그 삥 둘러 뿔 달린 목걸이를 찬 검은 고양이를 꾸중하는 그 만화영화에 나오는 악당이 바로 나라는 걸 알게 됐다. 하물며 그날 내가 입은 옷은 웬 유니폼이었고, 등번호는 하필 바로 7번이었다. 엎친 데 덥친 격이었다. 이런, 젠장! 내가 환상 문학 잡지 미스테리아에 기고했던 수필에 나오는, 바로 그 은근이란 고품격 마크가 요원한 허당, 뼛속까지 허당이 바로 나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나는 인정하고야 말았다. 나는, 허당 중의 상허당이라고? 노노노노노노노! 허당 중의 하허당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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