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 109

from 소설 2017. 11. 30. 17:46

   1

   그는 행복을 탐했다. 하지만 그것은 쉽사리 손에 잡히지 않았다. 형체도 없었다. 아마 그는 행복을 빵과 포도주처럼 실체가 분명한 대상으로 생각했을 수도 있다. 사람은 사랑의 객체요 호사가 사랑의 주체일지도 모르는 것처럼. 허나 몽상에 흠뻑 젖어 있고 탐욕에 듬뿍 빠져있는데, 어쩜 행복의 정체를 모르는 게 당연했다. 아무짝에도 쓰잘 데 없는 공상 가운데 번뜩이는 영감은 찾아볼 수 없었으니까. 그러다 그는 깨달았다. 사랑은 때로 일이고 행복은 삶이란 것을. 꿈을 꾸고 장난치며 농담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곧 불행하지 않다는 것임을. 일상은 항상 따분하고 심심한 게 맞으나, 그래서 더 재미있어지고 언제나 흥미로워질 수 있다는 건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맞긴 맞는 말인데 왠지 좀 말리고 감기는 느낌이 없잖아 있다. 속은 건 아닌데 뒷맛이 개운치 않다. 그래도 일단 듣고 보자. 시원해질지 미적지근해질지 몰라도. 예술혼에 대한 간청은 믿음직스러웠지만 금새 따분해졌고, 번드르르한 핑계는 스스로도 지겨웠다. 행복을 몰랐고, 행운은 다정하지 않았으며, 운명은 얄궂고 우스웠다. 그는 생각했다. 복잡하게 생각하고 복안을 궁리할 거 없다고. 쇼핑은 잔잔한 일상의 지루함에 대한 보상이고, 여행은 운명이라고. 덤으로 사랑이 혹시 찾아온다면 그건 행운? 그게 진짜다. 소 뒷걸음질 치다가 쥐 잡는 듯한 우연이. 고기도 먹어 본 놈이 잘 먹고, 지옥 근처에라도 가 본 사람이 천국의 풍요─사치─안락─기쁨을 절감할 것이다. 솜씨 좋은 하인은 필요하지 않다. 시대의 논리에 따라 명민한 비서의 존재는 일 복 터진다는 말이니까. 그러니 한숨을 줄이고, 향수를 뿌리며, 맞다. 타인의 삶에 참견하여 이래라 저래라 훈수 둘 입장은 못돼는 지미는, 그래서 톰의 애교와 리지의 교태가 늘었나, 늘지 않았나 라는 궁금증에 사로잡혔다. 가만 있는데 하늘에서 기쁨이 뚝 떨어지고, 쉼 없이 쾌락에 신세지며, 열락의 낙원에서 뛰어놀 수는 없다. 그걸 턱없이 바라는 걸 뭐라 하냐, 못된 심보라 한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 헛된 예감이 불러오는 쓴맛은 볼만큼 봤다. 성실함이 먼저고 운은 다음이다. 잔꾀가 필요한 때는 따로 있다. 뭐라도 하긴 해야 하고, 복권을 사고 판돈을 걸며, 무대 위에 팬티든 뭐든 쌓이기를 원한다면 먼저 맹연습이라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단 말이다. 그는 필경 대가 없이 이상을 기원하지는 않았다. 때문에 허당이니 봉이니 호구니, 때가 오지 않았다는 둥 뭐라는 둥 핑계를 접고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돌아보니 공부...는 못했어도 일은 많이 했다. 연애는 잘 몰랐지만 조금이나마 사랑은 받았다. 따지고 보면 여복이 아주 흉년은 아니었고, 황금을 축적하진 못했으나 나름 지성이란 성과는 챙겼다. 증명할 길은 까마득하지만 일단은 그랬다. 개구멍은 노력해야 찾을 수 있고, 호박 나이트클럽은 공짜가 아니며, 뭔가 눈치를 채야 동물들도 좋아한다. 냄새를 맡아야 꼬리를 흔들고, 자기를 귀여워해 주어야만 요염한 고양이는 앙탈을 부리지 않는다. 그런데 갑자기 고양이의 앙탈이 왜 나왔지? 그러니까!
   지미는 동네를 돌아다니며 돌아가는 분위기를 살폈다. 오, 델이 애플 스토어를 차렸구나. 그런데 이 시골에 뭐하러? 아마도, 소원 풀기일 것이다. 녀석, 태연한 척 하지만 이마에 딱 써 있다. 괜한 일 벌였다고. 내가 미쳤지 라고. 고로 델의 전공이 경영학이나 경제학이었을 거라고 예측할 수는 없다. 아마도 보나마나 여자일 테지 뭐. 정열을 취미에 쏟지 이상한 데로 애정이 쏠렸을 수도 있으니 이해는 한다, 라고 지미는 생각했다. 그러면서 그는 흥미로운 놀이를 찬미했고, 지혜로운 기쁨을 칭송했다. 즉 썩 부적절하지 않은 쾌락에 전율할 무언가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맞다. 그는 혼자 있을 때 가끔 능글능글했고, 어쩌다 위선자에 때로는 몽상가였으며, 아마도 주로 한량이었다.
   지미는 차력사로 일하던 때 요정처럼 아름다운 곡예사와 친했다. 물론 지금은 옛날 이야기다. 단지 친하기만 했다. 그리고 그는 차력사를 그만둔 후 천사처럼 예쁜 입장권 판매원과 사겼다. 낭만을 공으로 먹고 불행은 잊어버렸다. 인생은 축제였고 일상도 오페라였다. 꼭 그녀가 입장권 발부하는 일을 하기 때문은 아닐 테지만, 하지만 그들은 함께 꿈꾸기에 조화로운 상대가 아니었다. 곧 만나자마자 헤어진 것이다. 지미는 늘상 이런 식이었다. 번듯한 쾌락도 마땅한 부귀도 없었다. 그러나 고결한 이상을 동경했고, 인생의 무상함과 허당의 비애를 음미했다. 충분히. 초라했고 재미없었고 활기차지 못했다. 그러니 이제는 신비와 환상을 영접할 차례였다. 하다못해 방탕이나 퇴폐...는 사절하고, 환락의 불꽃을 추측하며, 소년의 야심이라도 품어야 마땅했다. 행복하고자 하는 노력은 보답 받을 것이다. 고상한 사색과 세련된 상상에 젖는 습관은 예술을 배신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꿈동산을 기획하고, 막대사탕을 팔 시기가 임박한 것이다. 많이 의아해 했고 오래도 기달렸다. 그는 더 이상 가련한 곡예사도, 가난한 몽상가도, 그렇다고 사랑만 생각하는 순진한 바보도 아니었다. 몽매한 경험과 무수한 시간 낭비와 고된 방황은 단지 천재를 위한 시련의 담금질일 뿐이었다. 그 모두를 공인 받을 수는 없지만 혼자서 샴페인이라도 터트릴 기세였다. 어제까지는 소심했지만 이제는 대범해졌다. 웃고 춤추고 노래했다. 내일의 희망과 현재의 기쁨을. 즉 그는 아직 소년이었다. 그렇게 무난한 즐거움과 막연한 흥미를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지미가 차력사로 일하던 시절의 짝사랑과 풋사랑을 만나게 된 것이다.
   요점만 말하자면 추억 속의 곡예사 홀리는 서점에서 만났다. 예전 그녀 입장권 판매원 바바로사는 술집에서 만났다. 물론 당연히 그녀들은 지미의 동네로 이사왔다. 곧 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전에는 전혀 낯선 타인이 이사를 와서 친해진 것이고, 이번에는 약간의 친분과 사연이 있었던 옛 친구가 제발로 찾아왔다는 것이다. 어쨌든 서로 과거를 조금은 아는 이상 미세한 표정 변화로 보아 하니 서로 조심하는 듯 했다.


   2

   그는 미덥지 못한 갈망을 부정했다. 한편 세속적인 지복에 대한 염원은 끊이질 않았다. 빵을 망각한 대신 꿈의 의기소침을 애석해 했다. 어떻게 해야 하나? 하던 대로! 무엇을 할 것인가? 해 왔듯이! 단, 사는 방법과 목적과 습관이 썩 잘못되지만 않았다면. 그래도 어떻게 뜻밖의 새로움, 신선한 기분 전환, 색다른 선물을 기대할 수는 없을까? OK! 특별한 진진함에 유달리 빠져들 수 있도록 뭔가가 필요했다. 고로 목마른 놈이 우물 판다고 자기가 자기에게 짝사랑을 허하노라? 그게 뭐야, 젠장! 하오나 슬퍼하기엔 일렀다. 왜냐하면 천사의 날개가 보였고, 사랑의 노래가 들렸으며, 새하얀 첫눈이 내렸기 때문이다. 어딘가에 막 자랑하고 싶은 어제를 두고두고 그리워만 할 게 아니라 찬란한 오늘을 탄생시키면 된다. 하면 된다. 그럴 수 있다. 밑져야 본전이다. 오늘 재미없다고 내일도 재미없으란 법은 없다. 일찍이 사과나무를 심고 서둘러 호박마차를 만들면 된다. 그러니까, 어떻게? 지금에 와서 색종이를 접고 크레파스를 사고 동요라도 부르란 말인가? 지미는 참을 수 없었다. 이건 뭔가 잘못됐단 걸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됐을까? 그는 푸른색 짠물 위로 분홍색 노을이 지는 상냥한 해변으로 떠났다. 저번에 냉동 물고기를 잡은 바로 그곳으로. 무엇보다 일단 생각을 해야 했으니까.
   그는 바닷가에 도착했다. 날씨가 추워져서 일광욕을 할 수는 없었다. 또 다시 냉동 물고기를 낚을 수도 없었다. 그러면 남은 일은 이 은빛 모래사장 일대에서 제일 예쁘고 착한 인어공주를 찾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이제 그만 허당을 졸업하고 해변의 왕자로 거듭나야 했으니까. 그는 어차피 스쳐지나가는 인연이라 생각하며 어느 숙녀 2인조의 눈치만 살필려고 했다. 어머나! 그런데 하필 그녀 중 한 명은 리지였다.
   「어! 오빠! 여기는 웬일이야?」
   하마터면 지미는 이렇게 말할 뻔 했다.  「넌 몰라도 돼!」 라고. 하지만 잘 참았다. 그래서 정상적인 대화의 흐름을 이어갈 수 있었고, 리지는 자기 친구 셜리를 지미에게 소개시켜주었다. 리지는 도시로 떠난다고 한다. 그리고 자기의 집으로 친구인 셜리가 입주하기로 했단다. 또 시작했다. 그럴 때도 됐다. 왜 아니겠나. 지미는 들렸다. 무엇이? 알라망드, 꾸랑뜨, 사라방드, 부레가! 어느 멋진 나라로 떠나기는 귀찮고, 스스로 알아서 틈틈히 새로워지는 동네에 살고 있었으니 그는 왠지 모르게 자기가 꼭 그런 남자가 된 것만 같은 기분에 빠져들었다. 그건 곧, 돌아온 싱글 일명 돌싱! 뭔 싱?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몰라도 분위기는 그윽했고 변화는 다정했다. 작별은 곧 새로운 만남이었다. 내 너에게, 라며 딱 뭔가 멋진 말을 할 수도 없었다. 안녕이라고 말하지 마, 라는 말이 들리는 듯 했으니까. 참 이상한 동네다. 거긴 뭐 로맨티스트의 모항이고 신비주의자들의 본거지란 말인가? 그러든가 말든가. 꼭 로맨스가 숙청되고 리지가 사랑의 패자로 밝혀진 건 아니지만 혹자는 이런 말,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회전목마 참 잘도 돌아간다고.
   그는 기쁠 땐 바빴고, 바쁘지 않을 땐 심심했다. 무료함을 숙명으로 받아들였고, 행운은 하늘에 맡겼다. 만약 그러지 않는다면? 그러지 않으면 바쁘고 기쁘지도 않는 거지. 간출이건대, 꽝! 그러므로 언제 변덕을 중용하고, 어떻게 아름다움을 알아보며, 가난을 잘 다스려야 함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할 일이 있다는 건 복됨이고, 부분적인 친구의 교체도 고역이 아니라 시혜를 받음이었다. 하지만 아직 시트콤 멤버가 안정적으로 갖추어진 건 아니었다. 좀 더 기다려야 한다는 신호였다. 그래서 기다렸다. 날씨도 좋고 다 좋은데 왜 아직일까 라며 조급해 하지는 않았다. 다만 이렇게 좋은 날에 찐하게 연애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싶을 정도록 날씨가 정말 너무나도 얄밉도록 좋았다. 그는 기분이 좋아졌다.
   날시가 쾌청한 이유는 따로 없었다. 오늘 맑음-이면 그냥 그뿐. 하지만 기분이 좋은 까닭은 찾아보면 통상 밝혀진다. 가령, 결과야 어찌됐든 계획만으로 기쁜 일 같은 것. 그처럼 기대는 유쾌함을 뜻한다. 몸은 여기 있지만 마음은 벌써 내일에 가 있는 상태. 그만그만하거나 심심하다, 들뜨고 설레고 떨린다, 전자와 후자의 중간을 예감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그에 대해서 기쁘고 좋은 동기를 부여한다? 호걸의 할 일이다. 그것이 항상 수월하면 좋겠지만 세상 일이 모두 제 뜻대로 돌아가기는 힘든 법. 어딘가 모르게 분위기가 우울하면 그분은 어쩔 수 없이 소년이 된다. 따라서 그 남자가 재미있어질 수 있는 영문은 둘 중 한번은 바깥에서 찾아오는 게 타당할 수도 있다는 것. 그 무엇이 꿈꾸는 이상이건, 독창적인 사랑이건, 미완의 환상이든 지미는 지금 어떤 미지의 님프나 요술램프의 요정을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곧 그는 마음을 부드럽고 여유롭게 만들어주는 약속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겸허한 친우 지적인 애인 건전한 유희 고결한 생활만 지속된 결과, 솔직히 말해서, 허영심과 허풍과 설혹 어디서 천대 받을지도 모르는 환락을 애원하게 되었다.  그러던 찰나, 환상 문학 잡지 미스테리아 편집장으로부터 요청이 왔다. 용돈이 궁하던 때 시의적절하게 말이야, 어떻게 알았지? 그는 유년기 같은 성년이라는 제목으로 수필을 뚝딱 작성해서 보냈다. 딱히 재밌거나 감동적이지는 않지만 나름 추리소설 애독자들로부터 질타를 받고 있으니 그가 어떤 글을 썼나 잠시만 확인해 보자.


   3

   호기심은 착하고 감수성은 관대했다. 그러나 이성이 약했고 특히나 쾌락을 만나기라도 하면 직관은 간혹 악해졌다. 허나 치명적 흥미는 길지 않았기 때문에 상심은 숙명이었다. 그래서 나는 병적으로 새로움에 집착했다. 하지만 새로움은 대게 비쌌다. 게다가 취향은 언제나 저 높은 곳을 향했다. 심지어 권태라는 괴물은 새로움이란 애첩을 총애했다. 나는 이렇다저렇다 답변을 미룬 채 끙끙 앓기만 했다. 옹색한 핑계는 필요치 않았고, 준엄한 비판은 겸허히 수용했다. 그러면 뭘 하나. 금방 딴청을 피우는데. 더군다나 목표는 무지개 너머의 이상이었지만 결과는 매번 냉엄한 현실이었다. 따라서 동화풍 감정과 소녀 감성의 틀에 박힌 상궤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대망이 필요했다. 소망으로는 약했다. 그렇지만 어느 세월에 대망이 실현되기를 기다리겠나. 대망도 결국 조연이었다. 쾌락만이 절대 강자였다. 진짜 절대 강호는 바로 그분이었다. 인생의 신비라는 몽환극은 따지고 보면 줄 달린 치즈를 살살 당기는 자와 유혹에 스르륵 넘어가는 자의 줄다리기에 다름 아닐 것이다. 그렇긴 하나 언제나 예상을 뛰어넘고 추측을 불허하는 일은 발생하기 마련이다. 지상에서 천국의 기쁨을 맞이한다거나 신기한 사랑에 빠지는 것이 그것이다. 하지만 보통 사랑은 헛되거나 상심 그 둘 중 하나고, 환희와 경탄과 도취감은 결코 쉽게 찾아오는 손님이 아니다. 고로 세상 일은 쉬운 게 하나 없다? 패배주의는 이겨내야 하고, 쇼펜하우어를 읽는 시절도 잠깐이다. 복권 당첨은 힘들고 번호표 뽑고 대기하는 숙녀의 사랑을 기대하기는 힘들어도 세상사는 원래 극적인 구석이 있다. 특히나 풍운아 유형에게는. 어허, 뜻밖의 행운은 불시에 찾아온다니까 그러네. 아니 이게 대체 웬 떡이야, 같은 일! 도박장엔 발을 끊었고, 마권에는 취미를 잃었으며, 예술은 따분하고, 친구들은 맨날 자기 자랑하기에 바쁜 걸로도 모자라, 우정도 사랑도 나도 뭘 해도 재미가 없다? 이때 떠나자 라고 한다면 그건 여행 광고나 시시콜콜한 잡지 기사가 된다. 그러면 달리자, 치고 차고 뛰고 잡고 넣고? 욕망은 끝이 없고 세상은 아름답지만, 따질 건 따져 보자. 그 정도 충고로 만족하실 유전자를 타고 나시지 않은 것 아니냐고! 그렇다고 직장을 그만두랴. 1명은 무턱대고 그만둘 수도 없고, 1명은 이미 그만둔지 좀 됐고, 다른 1명은 공부에 불안에 취업 걱정에 이러쿵저러쿵일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유행가는 사랑 하나만 물고 늘어지는 것일까? 결국, 사랑? 판돈이 아니라 영혼을 걸 수 있는 것, 바로 인생은 사랑으로 승부하시라? 가난한 사랑은 꽤 난처할 수 있다. 그걸 알면서도 사랑 노래를? 아니다. 현실은 현실이다. 따라서 그 삶은 환상이 아니다. 고로 마법의 섬으로 떠나자? 또 다시 여행 광고로 돌아왔네. 차라리 여행업과 결탁해 정당한 (고가) 광고료를 받을 걸 그랬나, 살짝 후회가 밀려온다. 상업의 말 더하기 학문의 기술, 그 다음에는? 퇴마사의 궤변도 재미없다. 그러니 이 가을의 고독과 쓸쓸한 낭만, 풀리지 않는 인생 문제, 새로운 취미 찾기는 각자 해결하는 걸로!
   여기까지가 환상 문학 잡지에 기고한 여성잡지2에 걸맞는 성격의 수필이었다. 그런데 우리의 주인공은─우리는? '우리는'은 빼 주시라, 환청이 아니라 고함이군─돈을 받고 쓰는 글보다는 오히려 혼자 쓰고 혼자만 읽는 일기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다. 청산할 과거라도 있다는 것 마냥. 어디서 뺨 맞고 어디서 뭐한다고, 친구한테 자랑을 듣고 사랑에게 우정을 선전하는 것만 같은 몹시 괴상한 글이긴 했지만 말이다. 눈에 띄는 확실한 결과는 뚜렷하지 않는데, 그런데 뭔가 바쁘고 별나게 가지가지하는 듯 보이는 그의 생활이었다. 그래도 남의 인생이니 청춘이 앙망해야 할 관여는 참자. 이제 그만 관심은 접고 참견도 어물쩍 넘어가고, 그가 쓴 일기나 과감히 엿보자. 고독한 현대인의 허상에 대해 같이 고민을 하든 험담을 하든 그건 자유일 테니까.


   4

   11월 21일 화요일. 날씨 찌푸둥. 기분 차분함.
   어제까지의 지성은 과히 빠지지는 않았다. 오늘은 흥미로웠고 내일은 기대됐다. 미래의 신붓감은 번호표 받고 대기 중이다. 익살도 늘었고 날마다 영리해졌다. 촐싹마저 고급스러운 농담으로, 깨방정까지 사랑으로 바꿀 수 있었다. 우주의 신비는 간파했고, 인생의 환상을 기다렸다. 유쾌함은 알았고 괴팍함은 몰랐다. 이상을 믿었고 낭만을 동경했다. 행복감은 벌써 엉거주춤 열렬히 구애를 지속하고 있었다. 부끄러워하고 조신하며 다소곳한 신부 후보(들)은 그 수를 차마 헤아릴 수 없었다. 기쁨은 깡총 뛰었고, 환희는 개봉 박두였다. 사과향 청춘을 신뢰했고, 연분홍 장밋빛 스무살의 환생을 확신했다. 기분은 마냥 좋았고, 분위기는 더 좋았다. 숙녀의 귀를 쫑긋, 어린아이의 눈망울을 초롱초롱, 남자의 호쾌함을 띄우고, 노년의 흐뭇한 표정까지 마음만 먹으면 그 모두 가능했다. 손짓만으로 엉뚱한 호감을, 눈빛만으로 심술궃은 고백을 부를 수 있었다. 아, 속옷의 위와 아래가 조화롭지 않구나, 마음의 준비는 아직인가 보다. 그녀의 얼굴이 빨개진다? 이미 내게 넘어왔다! 어머나, 숙녀가 환하게 웃네? 벌써 사랑에 빠진 거다. 뻔할 '뻔'자다. 두세 살 아이가 아가씨의 엉덩이를 만진다. 그녀는 깜짝 놀란다. 그건, 괜찮다. 아이가 아니라면 얘기가 다르겠지만. 건강한 사내의 머머하고 싶다, 라는 마음은 무엇일까? 그것은, 그분들에겐 간혹 흑심이지만 내게는 철학이다. 숙녀가 만약 애인이라면 뒤에서 껴안아도 된다. 백허그는 딴생각이 아니라 사랑이니까. 누군가의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이 상상되는가? 당신은 감수성이 예민하며, 호기심이 풍만하고, 창의력이 뛰어나다는 증거다. 몽상을 필두로 하여 상상은 곧 현실이 될 것이다. 일상은 환상이고, 권태는 꿈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언제나 즐거웠고, 항상 쾌활할 것이다. 심심함은 운명이고 비밀은 숙명이다. 세상은 아름답다. 그런데 지각은 천동설일까? 답이 무엇이건, 그건 그대 찬란한 미래에 대한 예증이다. 행복은 측정하기 까다롭고 쾌락은 아리송해도, 적어도 현찰은 셀 수 있다. 불안은 안중에도 없으니 밝은 내일에 대한 모종의 음모를 꾸미자. 희망 찬 미래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인생은 본시 유치한 것!
   상상은 자유! 그리고
   사랑은 천사의 선물!
   유행가 가사는 곧 신기한 마법의 주문이다. 비록 나중 실망할지언정 지금 예감을 믿고, 간청을 중용하더라도 큰일 나지 않는다. 좀 늦어도 괜찮다. 거사는 잘 치를 수 밖에 없으니까. 아니면 친구끼리 지명-방어전에 대해서 농담이라도 할까? 안될 거 없다. 멋진 말은 바닥나도 시상은 꾸준히 샘솟는다. 할 일을 다 잘할 수는 없어도 눈부신 영감은 마르지도, 멈추지도, 쉬지도 않는다. 내가 속마음을 털어놓으면 아마도 당신께서는 깜짝 놀랄까요? 그건 속단하기 이르니 참는 게 좋겠다. 아직 직감이 영감으로 무르익지 않았으니까. 불행을 묵과했지만 비운을 역이용하기 위해 분주했다. 어떻게라도 성공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에 노력을 거듭하며 희망을 잃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눈 깜짝할 사이에 뭔가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좋은 생각! 힌트가 항상 꼭 귀뜸인 것만은 아니다. 뜬금없이 독자적으로 신선한 아이디어와 조우할 수도 있다. 웬 허풍선이도 쳐다보지 않을 이상주의와 평생 호의적이지 않았던 로망에 지배당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그건 썩 좋은 생각이라고 단정하기 어려웠다. 왜냐하면 지금까지의 설명은 모두 뻥이기 때문이다.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아아 재미없다. 오오 허무하다. 아이 참 심심하다. 그게 다 쓸데없는 공상 때문이다. 숙녀는 거울을 보며 화장을 하고, 소년은 야망을 꿈꾸며, 남자는 입맞춤을 상상한다 상상한다. 동정심도 사랑이고 개꿈도 사랑이다. 그러나 망측한 몽상은 그만 참아야 한다 참아야 한다. 이런,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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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28일 화요일. 날씨 모름. 기분 괴팍함.
   정치! 오늘 일기에는 정치 얘기를 해 볼까? 그러자. 왜 안되겠나. 일기인데 못할 거 없다. 정치. 정치와 브랜드를 비교해 보면 이해가 쉽다. 브랜드는 광고가 없으면 그 가치는 0이 된다. 광고를 해도 사랑 받지 못해 없어진 브랜드는 수두룩하다. 가방, 옷, 자동차 등등 품질은 기본이고, 브랜드는 곧 광고다. 정치도 그와 똑같다. 개인 브랜드라는 정치인의 말과 활동은 곧 광고다. 그게 없으면 정치인의 생명은 끝난다. 그런데 문제는 정치인이라는 개인 브랜드 광고는 모범과 정도로 통용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는 점. 때문에 적지 않은 부분 정치인 브랜드는 튀는 롱테일쪽으로 기운다. 말도 튀고 행동도 튀도록. 때에 따라 튀는 말이 옳은 발언일 수도 있는데, 그게 몇 군데를 거치면 당연스레 왜곡된다. 자연스럽게 경쟁자는 약점을 파고들고 그건 또 다시 왜곡된다. 그 형식은 계속 반복되어 정형화된다. 선순환이 1번 일어나도 2번 3번 이어지기를 바라는 건 순진한 발상일 뿐이다. 그 모두가 왜냐하면 정치라는 덕목의 특수성 때문이다. 정치인이 나(그대)보다 문학을 더 잘 알까? 아마도 쉽진 않겠지요! (근래 특정 자부심 든든). 정치가가 연예계에서 잔뼈가 굵은 백전노장 엑스트라보다 연예계 산업의 생리를 더 잘 알까? 그럴 리는 없다! 그런데 학계와 산업과 상업과 마술과 율법은 물론이요 그 관습과 풍속까지 세상만사 모든 분야를 정치인이 좌지우지한다. 그래서 정치는 태생적으로 시끄러울 수 밖에 없다. 맞다. 어렵다. 나(그대)보고 정치를 하시라고, 어느 위치까지 가뿐하다며 레드카펫이 보장된다 할지라도, 정치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차라리 연예인이라면 모를까. 따라서 정치의 구조적인 모순을 안다면 광고에 집중하는 정치인보다는 개인 브랜드의 품질에 신경 쓰는 정치인에게 표를 행사해야 한다. 정치는 광고고, 정치는 말이다. 그러나 정치는 광고와 말이 전부가 아니다. 하지만 뉴스에서는 따따부따, 시시콜콜 정치인의 튀는 말과 거북한 행동을 쉼 없이 광고한다. 튀면 튈수록 광고는 보장된다. '앞으로 나의 시대가 올 것이다' 라는 말러의 말처럼, 말러의 교향곡 9개와 그 인생이 아닌 저 말만 똑 떼어서 뉴스에 나온다. 게다가 각자 선호하는 색채에 맞는 부분만 가위질되어 알려진다. 편집은 곧 마술사다. 그것만 봐서는, 말러는 정말 허풍꾼에 약장수요 개구쟁이라고 단정지을 수 밖에 없다. 쉽게 말해 상업적 브랜드는 품질과 광고가 반반이라고 한다면, 과연 정치인도 그럴까? 그랬으면 좋겠다. 정치를 무조건 경시하고 정치인을 폄하하자는 말이 아니다. 열심히 꿋꿋하게 제 몫을 하고 맡은 역할에 충실한 정치인도 많다. 단지 정당과 정치인의 관계? 그거 정말 쉽지 않다. 그래서 난 정치 외에 무엇이든지, 까지는 아니지만 어쩌다 무소속의 새로움을 추구한다. 직업이 정치인인데 정치인은 정당 안에서도, 퇴근하여 행복한 우리 집에 와서도 정치를 해야 한다? 지극히 당연한 일이긴 하지만 이걸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때로는 난감할 때가 있다. 그처럼 시민은 언제나 속을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브랜드와 오락산업과 세상의 경제 논리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다. 부동층이 어느 정도 확보되는 곧 포지셔닝이 확실한 극단적인 정치 인사는, 말을 바꾸자면 다수는 물론 소수에게도 커피포트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을 수도 있고. 당대에는 승승장구할 수 있을지 몰라도 세월이 지나면 존경 받기 힘들다. 드물게 두고 두고 험담의 대명사가 될 수도 있다. 차라리 그러면 다행이게? 안 좋은 선례를 남기는 건 드물고 그냥 조용히 잊혀진다. 하지만 그건 자유다. 소수의 의견을 대변하는 것으로 제도화된지 오래다. 게다가 서사와 맥락을 따져보면 그럴 수 밖에 없는 사례도 드물지 않다. 많은 경우 지금 이대로, 일부는 시간을 돌릴려고, 일부는 앞으로 나아갈려고, 세상은 그렇게 굴러가고 돌아간다.
   일반인은 내가 좋아하는 걸 보고, 내가 좋아하는 걸 듣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한다. 하고 싶은 놀이를 하고 삶을 즐기며 살아간다. 그럴 수 있고, 그래야 하고, 하면 된다. 제한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타적이되 이기적인 인생을 살면 그만이다. 그런데 어느 날 아, 나는 정치라는 일을 하고 싶다? 그때부터는 내가 좋아하는 것만 듣고 보고 하고, 그러면 안된다. 딱 그 시점부터 모든 인생사를 정치에 최적화하여 살아야 한다. 만일 그러더라도 정치인에 대한 꿈을 행동에 옮기기 이전의 삶은 어쩔 수 없다. 그래서 정치를 하고 싶어도 못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내 몸은 사자 어금니 아끼듯 끔찍이도 아끼면서 나는 과연 (나로 인해 빚어진) 카페 피카소 사장의 불행과 복권업자의 고난에 따른 인생까지 끔찍이 아끼는가, 라고 자문하지 않았던 사람한테까지 러브콜을 보낼 정도로 정치권은 한가하지 않다. 비교적 정치는 출발점이 이를 때 매우 유리한 분야임에 틀림없다. 이론적으로 보자면 인생 계획을 스무 살에 세운 대로 그 길만 걸었던 정치학과 출신이 유리해야 맞다. 즉 전혀 동떨어진 분야랄지 여러 업계를 두루 경험했다랄지 그 보다는. 정치인이 되는 순간부터 사람은 매우 제한적이 될 수 밖에 없다. 정치에 입문하는 시점부터 특정 포지셔닝을 설정하고, 특정 의사를 대변하고, 특정한 일관성을 추구해야만 한다. 모순은 이때부터 시작된다. 처음부터 미운 오리 새끼로 출발하니까. 소수의 의견을 대변하는 게 왜 잘못이냐? 잘못은 아니다. 특정 계층의 권익을 대변하는 게 뭐가 문제인가? 문제는 아니다. 단지 정치는 소수의 의견을 대변하고 계층의 복리를 대변하기 위해서 노력만 해서는 안된다는 점. 스포츠처럼 승리하지 않으면 주연으로써 주목 받을 수 없다. 결과가 없단 말이다. 물론 그 노력부터 변화는 시작된다! 시작이 반이다. 그 노력이 없으면 아무것도 안된다. 시대에 따라 거기에 목숨을 걸기도 했다. 후세에 그 노력에 따른 혜택만 누리고, 난국의 숨은 위인도 아니고, 문화적으로 융숭한 결과물이 현존하는 로마 제국도 아니고, 예술계에서 앞다투어 찬미했던 보나파르트 나폴레옹도 아닌데, 그런데 안에서만 영원히 권좌에 남을려 했던 난세의 1인자 얘기를 '치우친 관점으로' 아직도? 그 모두를 겪었고 잘 아는 사람들은 그런다. 피가 거꾸로 솟는다고! 대충이나마 서사를 아는 사람은 그런다. 아 시끄러워 제발, 이라고. 오오 뚜껑이 열린다 아아 그분이 오신다, 어쩌다 예술적 영감이 그로부터 탄생할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그런데 정치가 국내 정치만 있냐, 아니다. 국제 정치가 있다. 그 무대로 나오는 순간부터는 두 가지 논리를 따라야 한다. 첫째 친구, 둘째 동물의 세계. 안에서도 조화-화음-정의 그런 게 어려웠는데, 밖에서라고 그 모두가 쉽게 풀릴 리는 없다. 무슨 자리가 만들어져도 그건 거의 마초의 우정과 비슷해진다. 자기 얘기만 하다 끝나니까. 명언을 인용하고, 폼 잡고, 격식을 갖춰서, 눈빛이 빛나고 몸짓과 어법에 신경 써서 말을 해 봐야, 그거 이미 기원전에 다 해 볼만큼 해 본 일들일 뿐이다. 아직도 그때 식으로? 정치인은 정치에 입문할 때부터 특정 영역에 집중할 수 밖에 없었다. 때문에 결과적으로 보자면 그 범위 바깥의 말을 듣지도 말고, 보지도 않고, 안중에도 없다. 좋든 싫든 그럴 수 밖에 없으니까. 내 발언의 기록에 대해서 자성이 어느 만큼의 비율인지 스스로에게 묻자. 그런데 제한적 성향의 관성은 처음만 그럴까? 그러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도박판에서 각자 들고 있는 패가 훤히 들여다보여도, 내 말이 맞다고 아무리 설득해도 시장 규칙은 변하지 않는다. 인도적 규범의 최선마저 다소 형식적이다. 따라서 안에서 미운 오리 새끼가 밖에서는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 말을 들으면 무슨주의에 입각한 매체나 정치인은 어깨 뽕이 볼록 솟아나지 않을 수 없다. 왜인지 알아맞춰 볼까요? 왜냐하면 이때 기분이 좋지 않다는 건 인간의 본성에 극력 반하기 때문이다. 내가 진정한 보수다 뭐다, 좌파가 이 나라를 엉망진창 머머머하는 걸 더 이상 두고 볼 수는 없다, 주변 정세가 어쩌는 걸 경시할 수 없다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겠다, 하루 이틀 듣는 얘기도 아닌 말들. 그런 형식적인 얘기를 듣기 싫어도 들리길래 들어보면 완전 꽉 막힌 동네 아저씨와 아주 살짝은 비슷하다. 진보니 보수니 들어보고 읽어보면 안다. 척 보면 안다. 그런 말 많이 하는 사람일수록 허당이라는 걸. 95퍼센트는 다 똑같다. 모두 거기서 거기다. 그냥 허당이냐 은근 허당이냐, 합리주의냐 고품격이냐, 그 차이를 아는 게 중요할 뿐. 살다 보면 어른은 그럴 수 밖에 없다. 그래도 그 정도라도 하면 겨우 중간이다. 그렇지만 좀 더, 좀 더 라고 기대하는 마음도 따라간다. 정치적으로 진보, 경제적으로 자유와 보수를 표방한다는 국제적인 주간지 정도 상식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제법 뒤따라가지 못할까 봐 걱정이 앞선다. 지금 세상에서 정치인은 편집장의 지성보다 연예인의 쇼맨쉽을 높게 사는 세상이니까. 나는 아니라고 하시겠지만 헐떡헐떡 숨차고, 머리에 생각은 많고, 표정은 아 쫌! 그래도 진부함이 차선임은 결코 부인할 수 없음. 시대적으로 왕권은 옛날 옛날에 정치인에게 완벽하게 넘어갔고, 이익은 너 나 할 것 없이 우선적으로 재계를 비롯한 오락산업한테 돌아가며, 진짜 웃는 사람은 바로 그분이다. 그분은 누구?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본다고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는 유쾌한(또는 냉소적인) 허당!
   첫눈이 내릴 듯 말 듯, 추운 겨울 거리에는 크리스마스 캐롤이 흐른다. 울면 안돼 울면 안돼 / 산타할아버지는 우는 아이에겐 / 선~물을 안주신대요 / 산타할아버지는 알고 계신대 누가 착한 앤지 나쁜 앤지 / 오늘밤에 다녀가신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뉴스는 나온다. 계속 나온다. 시간이 지나면 나중 기억도 못할 테지만.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면서. 이를 테면, 지상의 레이더! 관료도 매체도 일반인도 말은 많다. 아니, 말은 없어도 시끄럽다. 귀에서 피가 난다. 정신이 혼미하다. 마음이 무뎌진다. 다시, 귀에서 피가 난다. 정신이 혼미한다. 마음이 무뎌진다. 계속 그게 반복된다. 오락산업을 뭐라 할 수도 없다. 누군가 팝콘을 튀기는 건 역할일 테니까. 그런데 그건 시끄러운 만큼 아무 내용 없는 날씨 얘기와 비슷하다. 하도 소란스러워서 간략히 누군가는 말하고 싶어하지 않을까? (많이 참았다. 오래 참았다. 참느라 뚜껑 열렸다) 그건 첫째 넌센스, 둘째 코메디라고! 어렸을 때 그런 생각 다 해 봤을 것이다. 우주 바깥에는 무엇이 있는지를. 동화작가도 때로는 궁금해 한다. 진짜로 하늘나라에서 누군가 우리를 다 내려다 보고 있는(계신) 건 아닐까 라고. 거기까지는 모르겠고, 시대의 소음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고, 내 삶에 집중할려면 하나만 알면 된다. 그건 바로, 실제로 누가 우리를 다 내려다 보고 있긴 있다는 것! 그분이 누구겠나? 누구긴 누구겠어요 위성이지! 위성에 준하는 장비도 많고 다른 방법도 많다. 남자들 세계에서 곧 부담없고 절친한 친교를 자타공인 인정하는 사석에서라면 간혹 군사학을 빼놓을 수는 없다. 아주 가끔은 얘기를 하니까. 적어도 혼자서 얼핏 생각이 쏠린다거나 달력의 어떤 그림에 눈길을 주는 걸 마다하지는 않는다. 왜? 남자니까. 각자 클럽끼리 군사 훈련을 하지만 드물게 모두 함께 하기도 한다. 그러면 묻는다. 핵심 기술을 알려달라 항법과 추진이 어쩌고 등등. 안된다. 그거 아느라 무수한 시행착오라는 대가를 치러서 200년 걸렸다. 태양계내외 무인선이 제공한 정보와 과학 기술등 먼저 체득한 중요 정보는 공개한다. 하지만 공개할 수 있는 게 있고 없는 게 있다 등등. 그쪽 공룡계도 거의 포화 상태다. 그 시장 역시 관용구가 적절히 적용된다. 드라마 대사처럼 들어오는 건 어쩌지만 나가는 건 뭐라더라, 그 말처럼. 그렇지만 모습은 드라마 대사와 같지만 흐름은 드라마 대사와 다르다. 한번 일류에 진입하면 임의 탈퇴하는 일은 거의 없다. 아마도 없을 것이다. 후발 주자로 누가 들어오건 어쩌건 이미 구도도 거의 변화 없고, 색다른 새로움도 기대할 수 없다. 왜냐하면 말 그대로 포화 상태니까. 예전에 벌써 보이지 않는 거미줄은 옛날 옛날에 다 설정되었으니까. 그런데 무엇을 기준으로 공룡이냐, 뭘 근거로 포화 상태냐 라는 의문의 발생은 합당하다. 왜냐하면 지난 전례를 참고하여 현재의 정세를 살피고, 장밋빛 미래에 대한 전망을 더욱 생생히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중 경제와 외교등 몇몇 분야만 공룡계에 몸담게 될 소지도 다분하다. 그러든 어쩌든 그 기준과 근거와 실상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따라서 그것이 포화 상태가 맞다면 시대상의 선험자 집단의 뒤를 이은, 후발주자의 공룡계 클럽 가입 서사에 대한 사실들, 향후 발생할 문제가 중요시된다. 가령 뭘 감축하자, 어떤 협정의 보강이 절실하다, 적어도 평화를 위한 국제사회의 연대책임에 대해서 소홀한 후 나중 일관성을 놓치는 실책, 억지랄까, 관망 다음의 뒷북만은 경계하자 등등. 이런 특별할 것 없는 현황들을 남자 어른이라면 누가 모를까? 빈 수레가 요란할 수는 있어도 벼가 익으면 고개를 숙인다고, 그분들께서 모를 리는 없다. NC가 물 좋다고 소문나면 손님은 몰릴 수 밖에 없다. 저 옛날 소년들 롤스로이스 뜬소문처럼 손님 가려서 받는 경우도 없지 않다. 회원제 고급 사교 클럽의 기준선이 고무줄이면 그게 과연 고급인가, 군번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선착순이나 꼬리 자르기가 거기서도 통하나, 따져보지 않을래야 따져보지 않을 수가 없다. 요즘 세상 정보는 많고 시간의 흐름상 세계는 평평해지기까지 했으니 그리 쉬쉬할 일도 아니다. 좌우지간, 정치라는 간접 민주주의에서 승부는 피할 수 없기 때문에 국내 정치는 주로 국내용으로,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내 한마디는 전세계로 퍼지고 전부 기록으로 남는다는 점을 유념할 것, 그리고 국제 정치는 질서 있기를. 또한 일반인은 이권에 따라 들쑥날쑥한 형식적 뉴스에서 자유롭고 이성적이어야 본인한테 이롭다는 걸 잊지 말자. 지나간 일은 지나간 대로. 게다가 반세기, 1세기 전의 일들에 대한 얘기가 간혹 보고 들리더라도 선거권자와 피선거권자의 정치관은 다를 수 있다는 걸 알면 된다. 그걸 알면 되고 현재를 살며 미래로 나아가면 그뿐. 더구나 진보니 보수니 각종 헤드라인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사람은 몰라도 보통 사람들은 도덕적 우위니, (개인의 의도와는 달리 정치적으로 학습된) 지역 감정이니, 정서적 괴리니, 그런 거 없다. 그에 대해서 대표적으로 국경의 안이 국경의 바깥보다 다소 덜 민감하고, 역사적 사실에 대해 1세기전보다 10세기전이 훨씬 자유롭다. 하지만 단지 그뿐! 역사를 그대로 반영한, 허구가 적절한 정도로만 가미된 사극이랄지 TV를 통해서도 끊임없이 배웠고, 배우고, 배울 일들이다. 반세기 안에 쿠데타에 따른 계엄령이 어느 도시에 선포되어 크고 작은 핍박이 있었더라도 지금은 국경 안에서 지역에 따른 묵은 감정은 거의 없다. 사람들은 자유롭게 왕래하고 교류하며 아무 거리낄 게 없다. 또 국경을 넘어서 여행을 하더라도 뉴스로 보이고 소식으로 읽히듯이, 소문에 들리듯이, 드뷧시와 라벨의 인생 후반기 즈음에 발생했던 일들에 대해서 낯선 여행객과 현지인이 묻고 답하고, 세계관과 인생론에 대해서 논한다? 그러고 싶은 사람은 없다. 외적으로 깍듯이 마음으로 극진히 대접하기는 어렵더라도 최소한 불손함, 무례함, 사소한 실수를 일부러 벌이고 싶어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다만, 만약 있다면 대표적으로 그런 일은 있을 수 있다. A지역에서 챔피언스리그 경기가 있는데, B국적 팬이 살며시 휘두른 몸짓에 C국적 팬의 표정 특히 살짝 움찔한 모습이 어디에 대서특필되었다더라, 그런 일은 있을 수 있다. 언론에 나오듯이 어머 저곳에 가면 우리를 싫어한다더라? 뭔가 어떤 해명을 요구한다더라? 그런 일은 없다. 드물게 내부의 문제가 있을 수도 있지만 사찰에 인사하는 정도의 정보와 지식일 뿐이다. 당장은 모를 수 있어도 엄살에 기우였음은 나중 명쾌히 판명난다. 말러의 우월감에 따른 포부 가운데 오락산업은 딱 어느 부분만 발췌하고, 선량한 일반인의 소심한 귀는 움찔하며, 들리니까 순진하니까 그럴 수 밖에 없으니까, 괜히 멈칫 하는 게 거의 전부다. 내가 굳이 몰라도 당사자들이 합리적으로, 시민의 대변인들이 합당한 관례에 따라, 미래를 위해서 현재의 당면 과제를, 실제로 잘 처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숫자가 많아졌다 적어졌다 그럴 수는 있어도, 약간의 빈부와 문화적 차이는 있을지라도, 서유럽에서 동유럽으로 휴가를 가고 남미에서 북미로 여행가는 시원한 예와 작은 지역적 왕래는 다를 거 하나 없다. 지금은 시대적으로, 세계관-인생론-장르와 더불어 개인의 행복을 우선으로 중시하는 세상이 됐다. 역사의 한계는 문화와 예술로, 10년이 지나면 강산도 변하는 만큼 내 친구와 추억을 회상하거나 교류하고 구경하거나 같이 놀고 싶지 해묵은 사과와 언제적 마권빚의 요구는 누구도 반갑지 않다. 그걸 누가 모르랴. 모를 리는 없다. 그럴 수는 없다. 단지 오락산업의 달갑지 않은 삭풍에, 따사로운 훈풍에 그만 나도 모르게 휘청일 뿐. 더 나아가 국제 뉴스조차 국내에서 먼저 스스로 잘 돌아가는가, 자성을 빠트리진 않았나, 여러 덕목에서 제일 뒤쳐진 항목은 무엇인가, 그처럼 무엇보다 1차적으로 내부의 진단이 먼저다. 하지만 정치의 범위는 넓고 이익은 상호 충돌되는 게 당연하다. 그리고 안정된 삶을 기반으로 경제성을 최대로, 정치를 최고로 앞다투어 보도하고, 사회의 풍요로움을 추구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한다. 그 일을 하는 집단이 최소 수백이고, 오락산업과 소셜 네트워크로 소식은 만방에 퍼진다. 무역은 복잡하고 세계 증시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세계 지도에서 무선과 유선으로 연결된 선이 어느 정도인지 알면 알수록 까무러친다. 이미 우리는 한배를 탄 이웃이다. 때문에 오늘은 뉴스가 없습니다, 지금은 절대 그럴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다. 작은 장난감? 의미 없다. 전혀 없다. 그걸 넌센스와 코메디로 인식하지 못하는 일이 비일비재함으로써 오락산업의 건재함은 항구하다. 단지 의미가 하나 있다면 그거다. 어떤 축약어와 새로운 분야를 창시했으나 후세에 본격적으로 인정 받은 어느 후작 나리의 이름을 부르는 발성이 비슷하다는 점. 소란스러움은 물론 일종의 연극일 수도 있다. 현실과 가상 현실은 점점 더 친밀해질 수 밖에 없으니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말이 되지 않으니까. 그래도 그렇지 어느 지상의 레이더에 대한 뉴스가 그렇게나 많이? 오늘은 뉴스가 없습니다, 그때와 완전 정반대다. 그러면, 그러면 우리 다 같이 레이더를 끕시다? 말이 안된다! 나는 레이더를 켜고 너는 레이더를 꺼야 한다? 말이 안된다! 평시인 지역은 레이더를 켜고, 전시인(휴전도 전시다) 지역은 레이더를 끄시오? 말이 안된다! 게다가 같은 체급인 공룡에게는 말하지 못하니까 장난감 레이더는 꺼야 한다? 말이 안된다! 다 같이 보고 듣는 걸 보지 마시오 찍지 마시오, 그러면 보지 않고 찍지 않나? 말이 안된다! 하늘에서 우리를, 꼭 우리만은 아니겠지만 우연이든 어쩌든 찍지 마시오? 말이 안된다! 종교의 자유는 없다 고로 무엇을 믿지 말라? 그건 타임머신의 문제! (제일 중요한 것) 무엇보다 하늘나라에서 우리를 내려다 보지 마세요? 말이 안된다! 조물주가 있을지 없을지, 내세가 존재할지 존재하지 않을지 그건 모르는 일이다. 딱 하나만 고를 수도 없다. 왜냐하면 1-1, 1-2, 1-3 그렇게 파생된 분파가 부지기수이기 때문이다. 말도 못한다. 그와 관련된 제반사를 지구상에서 제일 많이 겪은 곳이 어디냐? 단연 유럽이다. 한마디로 그것에 관한 선험자는 유럽이다. 당연히도 선험자가 있으면 후발주자도 있다. 신앙의 문제만 그런 게 아니다. 정치는 물론이고 발명, 탐험, 사회 체계, 하물며 공룡간의 관계까지 전부 다 먼저 겪었다. 자, 그런데 규모가 지구 반대로 넘어왔다. 세기가 지나니까, 내부적으로 말이 나온다. 쉽게 말해 아 피곤하네 라고. 울타리 바깥도 좋지만 정작 중요한 건 내부 아니냐고. 거기서 끝이 아니다. 새로운 후발주자가 올라오면 또 누군가는 내려갈 수 밖에 없다. 연합에서 누가 탈퇴하기도 한다. 그 흐름으로 일정 기간 간다. 그럴 것이다. 하지만, 대체로 빅3법칙은 통용되지만 언젠가는 바뀐다. 영원한 건 없다. 큰손이 나타났다? 처음도 아니다. 한 국가가 세계 총생산의 반틈이던 때도 있었고, 처음으로 서구사회에서 조용한 지역의 손님이 물건이 왜 이리 싸냐며 환영 받던 때도 있었다. 무슨 일이 있으면 그건 완전한 새로움보다는 반복과 변형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시시때때로 세계뉴스의 쟁점으로 뭔가가 우뚝 선다. 단독 1등으로. 오락산업은 들끊는다. 세계는 거미줄처럼 얽혀있어서 또 이미 경험으로 알기 때문에 첫째 '외교', 둘째 '다큐멘터리 논리'에서 첫째를 절대적으로 선호한다. 충분히 제값을 치렀으니까. 최소 2000년의 경험으로 말이다. 역사적으로 공룡들이 소란도 많이 일으켰지만 대부분의 인류 발전을 이끌었다. 희생도 많았고 소득도 많았고 변화마저 많았다. 그게 아니면 인류는 발전할 수 없었고, 남자가 늑대가 아니면 인간은 벌써 종말했을지도 모른다. 대표적인 발명과 발견과 창조들만 예를 들어보자. 원소기호, 전기, 전화? 인터넷? 라이트 형제? 병원에 가면 어떤 흉상이 있나? 법원에는? 미술학원에서 아그리빠 그려보지 않은 사람? 그리고 피타고라스, 뉴턴, 찰스 다윈, 아인슈타인, 피가로의 결혼, 모나리자, 동물농장, 산업, 양복, 과학, 스포츠 그리고 인문학 등등 끝도 없다. 누군가 후발주자로 공룡 클럽에 가입한다면 경제와 규모도 좋지만 무엇보다, 존중이 아닌 존경을 받아야 한다. 존경해 주라고 요구를 했네 어쨌네, 그런 뜻으로 하는 말이 아니다. 하늘에 맹세코! 그래도 곡해할 사람은 다 하겠지만. 국제사회만 그런 게 아니다. 동네에서도 그런다. 사는 형편이 풀려서 이사를 간다고 가정하자. 도착했다. 좋은 동네다. 뭐 하나 빠질 게 없다. 서로 약간씩은 빈부의 격차가 있을 수 있다. 그렇더라도 교양과 상식과 인성과 서로 말이 통하고, 그런 재산 외적인 면이 먼저다. 동네의 수준이 풍요롭고 비교적 일정하기를 바라지 동네에서 나 혼자만 잘 살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상인이 큰손을 반기는 건 당연하나 속으로 진짜 반가운 큰손은 따로 있을 수 있다. 차라리 점잖고 불손하지 않은, 몰락까진 아니어도 몇 계단 내려간 귀빈을 좋아할 수도 있다. 상업의 다양성도 유럽이 먼저 겪었다. 빙 둘러서 다 다른 나라 다른 사람들이니까, 상인은 최소 5개국어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어족도 비슷해서 할려고만 하면 10개국어도 문제없었다. 동네의 구성원으로 지성인이 있으면 예술인도, 유니폼을 입는 사람도 있고 적당히 구색이 갖추어지기를 바라는 게 정상이다. 그래서 지금은 세상을 지구촌이라고도 부른다. 아직도 얼마나 더 좋아질지 알 수 없다. 괜히 엄한 옆길로 빠졌다만 뭔가와 그 모두가 한 편의 연극이기를! 다시 돌아가자. 장래, 어차피 예측은 그거다. 스티븐 킹의 언더 더 돔, 어떤 위성, 레이저, 평화 협약, 국제사회의 노력 그리고 스타워즈! 그래, 스타트렉 같은 SF. 최소한 기술은 그쪽으로 갈 수 밖에 없다. 지금은 어느 언어가 세계적으로 유행하거나 냉대 받고, 포르투갈 제국과 스페인 제국이 경쟁하던 그때 시절이 더 이상 아니다. 시대적으로 보자면 실질적인 제국들의 전성기는 끝났다. 역사책에 등장하고 이미 건조해진 사실일 뿐이다. 미래에 새롭게 펼쳐질 토너먼트가 어떤 모습일지는 몰라도 신식이 아닌 고전적 제국 시대는 이미 종료됐다. 존경이란 낱말이 나왔으니까 말인데 앞서 언급된 브랜드는 모두 창조와 선점, 발명에 관한 이름이었다. 그렇게 보자면 그 브랜드는 거의 끝물이다. 아쉽지만 고전음악의 제1전성기가 종료된 것처럼. 성적 조화도는 운명적인 상대를 만날 가능성이 있다. 살면서 상사병을 경험하는 기이한 행운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고, 최고의 사랑마저 그 끝은 모르는 것이다. 사랑은 지금은 모르는 것이니까. 사랑마저 시대의 평가라고? 웬걸! 하지만 인생과 달리 인류 역사를 보자면 세상에 존재하는 제국은 박물관과 사극쪽으로 넘어간지 오래다. 벌써 까마득한 옛날에. 남은 건 전통과 존중과 상식, 문화, 뉴스 같은 것뿐. 세계사에서 이제 사람으로써 유명해질려면 돈이 엄청 많던가 재능이 독보적이던가, 대국으로써 손꼽힌다고 해도 로마 제국보다 번영은 월등할 수 있어도 영광이 월등하기는 어렵다. 미래의 시대적 요구가 그렇다. 그렇다고 제국 전성 시대로 돌아갈 수도 없다. 선발대는 여러 브랜드 가치와 제국의 시대는 물론이요 그에 따른 눈부신 영화를 누렸다. 하지만 근대로 들어오면서 후발주자의 광영을 드물게 누릴 수 있을지언정 선취할 수 있는 영역은 매우 제한된다. 존경에 걸맞는 가치가 발견될 여지도 많지 않다. 공룡들도 포화 상태다. 남은 건 시장 경제와 오락산업과 그에 발을 반쯤 걸친 예술뿐. 나머지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유행 따라 사랑 따라 웃고 우는 희(비)극일 것이다. 그래도 새로운 손님에 대해서라면 새로운 제국의 광휘보다는 아마도 혁명을 반겨할 것이다. 그것만이 어쩌면 최고의 기대주다. 가령 산업 혁명 같은 것. 하지만 그건 자주 오지도 않고, 서서히 동시에 급속도로 현실화될 것이다. 그러므로 시간의 형편에 따르자면 지금 그리고 미래의 형세는 딱 그런 모양에 가깝다. 공룡들이 독서실에 오손도손 모여 앉아 실험, 연구, 공부를 하는 모습. 힘이 남아돈다. 완전 남아돈다. 국대대표 상비군도 세계 챔피언도 의무방어전과 축제 때 으쌰으쌰하는 분위기를 빼놓고는 달리 왕성한 정력을 쓸 곳이 없다. (그러니까 그 독서실이 대체 어디에 있는 거요? 그건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그럼 설마 1층에 아주 미세한 개구멍이? 흐흠, 원 별말씀을!) 따라서 후발주자가 추구해야 할 목표와 모토는 분명해진다. 한편, 공룡들을 친구들로 비유할 수도 있다. 그러면 한결 이해가 쉽다. 내가(그대께서) 만약 후발주자라고 가정해 보자. 나는 늦었다. 하지만 대기만성형이지. 그래서 나도 예전 친구들처럼 폼도 잡고, 멋도 찾고, 사랑도 하며, 존경도 받고 싶다. 소망과 대망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래서 이뤘다. 꿈과 사랑과 야망을. 행복도 풍요도 모두 다 가졌다. 그런데 지금은 더 이상 유년 시절이 아니다. 따라서 각자 사느라 바뻐서 얼굴 보기도 힘들다. 밤이나 낮이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회상만 하며 살 수도 없다. 인생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고, 삶의 즐거움을 위해 취미도 바꾸고, 미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싫어도 선구자와 예언자 그리고 잊었던 꿈을 되찾아야 한다. 시간은 한정되어 있으니까. 가진 건 돈 밖에 없어, 라고 농담할려고 해도 사려 깊게 들어줄 사람은 명-바텐더 밖에 없다. 그래, 단골 술집. 반짝반짝 딸랑딸랑 깜빡깜빡 들어줄 사람은 뭐 셀 수도 없지만. 이제 존경은 상당히 제한된 자원이라서 흔하지가 않은 것이다. 그렇다고 내내 반성만 할 수도 없고, 뒤만 돌아다볼 수도 없다. 제국의 목록에서 1900년 이전에 속하지 못했다는 것은 곧, 공룡계의 후발주자로써 전성기와 명예를 누린다는 말과 같다. 그런데 존경은... 그건 글쎄요, 언급하기 조금 애매한 개념이 아닐까요? 인간에 대한 존엄성과 문화적 존중과 달리, 존경이란 뜻은 글쎄요. 그건 어쩌면 쉽게 흉내내기 어려운 개념일 수도 있다. 제논의 역설! 사물이 움직이고 있다고 우리가 느끼는 것은 모두 환상이라는 파르메니데스의 사상을 지지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는, 제논의 역설처럼. 존경의 문제 또한 제일 먼저 겪은 곳은 어디냐? 단연코, 유럽이다! 세상 소식을 접하다 보면 도의적으로야 좋은 소식이지만 개인적으로 간혹 그런 생각이 든다. 어떻게 저렇게... 뭐 그런 일들은 당사자가 되어 보지 않으면 모를 것이다. 그게 다 존경의 문제마저 많이 겪었기 때문 아닐까? 시장 논리에 근거하여 규모로 압도하고 산업으로 이끈다지만 그게 어떻게 하루 아침에 같아질 수 있을까? 넌센스다! 인류는 순진하게 액면만을 증거로, 재미있게 포커페이스만을 근거로, 아름답게 성선설이라는 신뢰만으로 낙관적인 미래를 기대할 수는 없다. 세상의 어떤 방패도 뚫을 수 있는 창, 그 어떤 강력한 창도 모두 막을 수 있는 방패, 창이 짧든 길든 방패가 여기 있든 저기 있든 세상은, 이 세상은 동화가 아니고 어른은 아동복을 입을 수 없다. 종교를 믿고, 정치를 하고, 환상머신을 발명하는 건 개인의 자유다. 다만 내세의 패자부활전이 어떻게 될지는 누구도 모른다. 따라서 인간은 이기적으로 살되 선의 실천을 염두에 둬야 한다. 적어도 타락한 천사가 되거나 악마의 꾀임에 넘어가는 우를 범하더라도 어두운 시절을 잘 헤쳐나가야만 한다. 특히 정치인. 개인은 대체로 개인 혼자 또는 범위가 좁은 문제일 테지만, 정치는 그것이 만약 잘못됐을 때 전혀 다른 양상을 띄기 때문이다. 옆에서 딸랑딸랑 앞에서 깜찍깜찍 반갑게 굽실굽실 정답게 깜빡깜빡, 어쩜 천재라는 어른들이 철없는 애들보다 더 할 수도 있다. 펄럭펄럭 팔랑귀로 하늘을 나는 만화영화의 푸른 코끼리는 다름 아닌 어른이니까. 그렇게 보자면 차라리 애들이 낫다. 식스 아이? 워워워, 뭔가 있어 뭔가 있어! 제51구역? 혹시 몰라 혹시 몰라! 그러면 옆에서 어른이 거든다. 아 정말, 늬들이 제일 문제야~ 라고! 어른이나 애나. 어머나 그런데, 완전 딱 중요한 순간인데 불쑥 것도 하필 딸이 번개처럼 나타나네, 아빠 뭐해? 그러니까! 아무리 그래도 보통 사람들의 마음에 정치는 반갑고 달갑고 사랑스럽기 어렵다. 행동과 결과와 전력이라는 정치인의 기록이 아닌 현재의 청량음료 같은 말. 곧 정치인의 광고는 잠깐 시원하고, 잠시 피식하든 어이없든 어떻게 저런 헛점을 찾았지 라며 그래서라도 웃고, 몸에도 좋지 않는 데다가 노상 진공청소기에 근접하긴 어렵다는 걸 잘 알지만, 오락산업의 마법 같은 흡입력에 얼마 만큼 내 이성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가! 관건은 거기에 달렸다. 피선거권자는 정치라는 분야에서 할 일을 했고 할 말을 하니까─안 해도 될 말을? 그건 싫지만, 다소 거북하고 불편하지만, 정치공학과 정치론과 정치인 브랜드 관례에 위배된다─거기서부터는 전적으로 선거권자의 몫이자 책임이다. 정치계가 잘못 돌아간다? 그건 결국 시민의 잘못이라는 걸 잊으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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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미는 환상 문학 잡지 미스테리아의 편집장 마라의 초청으로 그곳 사무실로 갔다. 언제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그는 마라와 실비아를 잘 구분하지 못했다. 안면 인식 장애 뭐 그런 수준은 아니지만 그는 그랬다. 마라를 실비아라 부르고, 실비아한테 실비아를 괴롭히지 말라고 부탁했다. 그렇지만 그가 미스테리아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 그곳 감투를 둘 중 누가 쓰고 있는가는 알 수 없었다. 도착해서 보니 아무도 없었다. 와서 놀다 가라는 빈말을 참말로 알아들었던 게 문제였다. 그러니 당연히 이름을 바꿔 부를 일도 없었다. 간곡한 부탁이라면서 말은 본사에 일이 있어서 갔다지만 지미의 역할은 확실했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었다. 바로, 집 지키는 외로운 개! 주인은 보나마나 빨빨거리며 쇼핑에, 파티에, 극장식 카바레는 물론 명사를 초청한 어느 조찬회까지 즐기고 있겠지. 이런 최초의 하늘색과 표정을 바꿔주는 다홍색이 교차하는 듯한 현실을 그는 미리 예감했을까? 못했다. 예지몽엔 소질이 부족하고 항상 생각은 거기에 가 있으니까. 장점 본뜨기. 좋아 보이는 건 다 베끼기. 그래서 내 걸로 만들기. 그건 괜찮다. 지성을 따라하고 예능을 벤치마킹하는 건 괜찮은데 그게 아니라, 예를 들어, 예는 들지 말자. 굳이 그럴 필욘 없으니까. 어쨌든 그는 정말로 일기장에 전날 이렇게 써놨다.
   「나는 무도회에 염증을 느꼈고, 사교계에 종지부를 찍었다. 하지만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밤12시 종이 울리기 전까지 황금의 호박마차를 만들어야만 하니까. 이미 눈치채셨겠지만, 맞다. 앞서 섣불리 거들먹거린 허세는 모두 뻥이었다.」
   사교계에 뭘 찍어? 지가 무슨 안나 카레니나라도 되는 줄 아나! 그야 어쨌든 지금 상황을 보아 하니 지미는 쓸쓸한 시녀임에 틀림없었다. 미스테리아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 딱 정황이 그랬다. 장 마리 르클레어의 5번 소나타가 연주되고 있었고, 조촐한 파티의 흔적이 역력했다. 승리를 누리기 위한 샴페인이라는 돔 페리뇽 몇 년산, 한정판 최상급 발렌타인, 물론 빈병만. 그리고 멋진 카지노칩과 트럼프 카드. 마라가 앉는 의자에는 디올 옴므 블루종이. 그런데 마라가 왜 남자옷을? 연애하나? 하던가 말던가! 또 몽블랑 만년필과 듀퐁 라이터까지. 여기서 뭐 패션 화보라도 찍었나? 뒷정리 깔끔하게 해 놓고 너는 글을 쓰거라 우리는 인생을 즐기시겠다? 사람을 뭘로 보고... 치우나 봐라, 라고 그는 생각했다. 설사 지금 착상이 떠올라서 작품을 쓴다고 해도 그건 보나마나 별 볼 일 없을 것이다. 듣기에 거북한 세평, 읽기에 한심한 투정, 보기만 해도 상상되는 응석, 차라리 그게 나을 것이다. 오히려 무관심보다는. 현실은 그랬다. 미스테리아 팀은 판타지 그는 푸념. 그럼 다음은 험담? 친구는 있는데 우정은 궁색하고, 여심은 내 손바닥 손금 보듯이 훤히 꿰뚫어보는데 정작 인기가 없었다. 추억은 다 써먹었는데 전망은 암담했다. 예나 지금이나 늘 이런 식이다. 주인공은 그런다. 이런 식이라면 곤란하다고. 하지만 그건 영화고, 이건 허황된 대망의 형벌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쉽고 간단히 생각한다? 반평생은 우정만 반평생은 사랑만? 둘 다 신통치 않다. 이 난국을 빠져나올 타개책도 떠오르지 않았다. 의지와 탐욕마저 빈약했다. 머머를 하고 싶어 애가 탄다, 열렬히 애원한다, 간절히 갈구한다? 눈만 껌뻑껌뻑 뜨면서 매정한 영감만 기다릴 뿐 미스테리아나 잘 지키다가 돌아가자, 라고 생각했다. 표현할 길 없는 기적은 커녕 반가운 연락마저 바라지도 않았다. 어차피 전무할 테니까.
   지미는 그러다 미스테리아 사무실 소파에서 TV 채널만 한 골백번 돌리다가 낮잠도 잤다가 재미없다며 사무실을 나갔다. 달리 할 일도 없었고 약속도 없었다. 그래서 그냥 집에 들어가기는 뭐하고 잠시 찻집에서 창밖이나 바라보자 라면서 어느 찾집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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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미는 카페에서 일을 하기는 했는데, 번뜩이는 착상이 잘 떠오르지 않았다. 자꾸 옆에서 이상한 얘기를 하길래 집중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런데 가만히 듣고 보니 나중 미스테리아 연애 컬럼의 다음 주제로 삼아도 될 얘기인 것 같았다. 그래서 그는 서둘러 중요 내용을 메모하면서 안 듣는 척 세심히 엿들었다. 옆 탁자에서 하는 얘기의 화제는 사랑이었다. 그런데 그게 말이야, 육체적 사랑. 들리는 말로 좀 더 심층적으로 파악해 보자면 속궁합.
   옛날 세대랄지 지역에 따라 얼굴을 붉힐 화제일 수도 있으나, 그것은 친한 사람들끼리 하는 얘기라서 대화는 스스럼없었다. 어조는 비교적 조용했고. 그는 일부러 엿듣고자 하는 의도는 없었지만 첫째, 청각이 발달한 점. 둘째, 귀가 쫑긋 하며 움직였다는 것. 잘 하다가는 저 파란 하늘을 날 수도 있을 것만 같았으니까. 셋째, 좌우지간 그냥 들렸다는 점 곧 상대방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고로 생각하기에 따라 심각한 결례가 될 수도 고마운 촌극일 수도 있다는 점, 쉽게 간과할 수 없었다. 내용은 별거 없었다. 허영심이 부풀었다 쪼그라들었다, 인생에 서툴렀다 원숙했다가, 허풍쟁이한테 많이 속았다가 다시 그분을 쥐락펴락했다가, 그처럼 세상을 아는 그녀들로 보였으니까. 반면 내용은 특별할 거 없지만 그녀들과 달리 유난히 들뜨고 소란스러운 걸로도 모자라 발랄한 분위기에 딱 마음을 빼았긴다면 그건 몸에 비해 마음이 미성숙한 숙녀 아닐까? 홍조, 최소 1.5옥타브 올라간 음성, 말의 빠르기가 증가하고 발언권이 부쩍 늘며 표정마저 따사로워지는 몇 가지 변화들. 그런 주제에 대해 시시콜콜 자세히 알려주는 건 잡지의 의무이자 통속소설의 특권이다. 유행에 민감하건 분주한 속세에서 최대 3일을 못 버티고 한적한 장소로 피신하건 어쩌건 이때 진면목은 드러난다. 그녀는 촌년일까 아닐까, 그이는 백조의 품위도 청춘의 패기도 남아의 배짱과 예술적 지성미까지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는 걸 보면 신사같지만 통 그 속을 모르겠다, 그이는 대관절 어떤 조류일까, 펠리컨? 공작새? 넙적부리황새? 타조? 파랑새? 촉새? 앵그리버드? 뱁새? 제비? 잠깐만, 파리는 아닐 테고 뭐야 혹시, 설마 촌닭? 어떤 사람과 어느 대상에 대해서 판단할 근거가 일정 분량 이상 드러난다면 정체는 파악하지 않을래야 파악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그에 관한 대본은 드라마 시청이랄지 오락산업의 풍요로써 충당하고, 여기서는 짧게 요점만 확인하고 넘어가자. 왜냐하면 시시콜콜한 대화도 재밌지만 주제 자체가 수다로 넘기기엔 적잖이 진중한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절대 못해서 그러는 게 아니다. 물론 한때는 대화가 안 써지네 어쩌네 그랬는데, 흐름이 바뀌면 또 대화만 써지고 막 그런 측면이 있긴 하지만. 하여간, 당대 최고의 위대한 수필가랄지 현존 최고의 예술가들께서 이미 말씀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최고라는 수식어는 단지 립서비스일 뿐이지만, 그분들께서 정녕 진짜로 최고라면 이미 언급을 했어야 맞다. 그게 옳다. 아니면, 긴말 생략하는 걸로. 인구 몇 명당 한 명의 천재랄지, 한 달에 한 번 태어날까 말까 하는 불세출의 기인에 의해 탄생한 유행이 아닌 이상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 모두는 100퍼센트 촌스러워진다. 옛것을 지금 보면 웃기긴 웃기지만 동시에 얼굴도 빨개질 수 밖에 없는 것. 그래서 창업에 민감한 업계에서는 알게 모르게 나이를 많이 거론한다. 고품격 관점에서는 고전주의적 생활과 존 업다이크를 광고용으로 쓸것이냐를 구분하듯이. 소년은 무엇을 하며 놀고, 십대는 사진도 잘 찍지 않고, 스무 살 친구들은 생각이 어디 가 있는지 도무지 모르겠다는 어른들. 그분들을 젊은 친구들이 보면 완전 말 그대로 어른일 뿐이다. 어른은 어른인데 또 거기서 구분이 된다. 어른 본인께서 좋든 싫든. 최신 유행가? 몰라도 된다. 알면 아저씨가 아니고 모르면 아저씨고, 그런 거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정작 소중한 알맹이와 포장지를, 내 다리와 남의 다리를 간명하게 구분할 수 있는가, 철들었나 철들지 않았나는 관심도 없지만 내가 지금 친구와 있는지 아니면 전혀 동떨어진 친구들과 있는지, 분간은 해야 한다. 어른은 그 정도는 안다. 해야 한다. 그렇지만 말은 하지 않아도 언제 어디서든 평가는 피할 수 없다. 정육처럼 몇 등급, 장르는 뭐, 성격 판별 기준 몇 가지 항목은 어떻다고 대번에 사람들은 그 모두를 판단한다. 그게 싫어도 비록 범인일지라도 듣자마자 대번에 안다. 어쩔 수 없이 느낀다. 사상이나 이론은 어렵지만 누구나 생각을 하고, 의식이 모인 동질감이 있으며, 개인적으로 말은 안 해도 느낌은 남고, 그 밑에 더 더 밑에 무의식이 있다. 거기에 그 모두가 다 쌓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주제가 잠깐 옆으로 샜는데 다시 돌아와서, 옆 탁자의 화제에 대해서 지미는 그걸 생각했다. 옆 탁자의 화제를 한 단어로 압축하자면 <속궁합>. 그걸 듣고 지미가 연상한 단어는 '길티 플레져'. 왜냐하면 전자와 후자의 주제 역시 언어별로 정확히 1단어냐 2개 단어로 대신하냐, 그 차이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성적 조화랄지 성적 어울림을 뜻하는 전자가 1단어로 존재하는 언어는 후자를 2단어로 표현하고, 그 반대던지 뭐 그런 몇 가지 경우가 있을 것이다. 여기서 대화를 허구의 중심에 놓는 사례는 흔하니까 이번에는 달리 가자. 색다른 허구에서 인문-교양학을 흉내내는 것도 나쁘진 않을 듯 하니까. 이 때 대화 흐름에 대해서 추측하지 못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렇든 아니든 시작은 똑같다. 성적 조화가 중요하냐. 얘기가 길든 짧든 그 주제는 살짝만 다르게 거듭된다. (오직) 성적 조화만 중요하냐로. 또 대게 결론은 똑같다. 사랑의 행위는 육체적 사랑과 플라토닉 러브의 결합이라고. 하지만 남자는 늑대 여자는 여우, 어린이용으로는 동화 어른은 멜로인 것처럼 인생을 살아 보니 플라토닉 러브가 약자인 경우가 적지 않다는 걸 어른들이 모를 리는 없다. 왜냐하면 사실이 그러니까. 그런 얘기를 듣고 싶어하면 약간 모호하게 말끝을 흐리는 어른도 계실 것이다. 누구나 천부적 재능은 평범할지라도 어른이 된다는 것, 그건 곧 세상에 대해 거의 모른 게 없을 정도로 천재가 된다는 것을 뜻한다. 맞다. (하지만 너무 좋아하지는 말자. 왜냐하면 그 말은 곧 어른은 달리 보자면 아주 꽉 막힌 사람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여지가 아예 없는 건 아니기 때문) 그렇다. 어른은 천재다. 그런데 너도 천재 나도 천재인데, 유행가와 연극과 예술계는 물론 모든 대소사의 그 어떤 주제로 영원한 단독 1등은 사랑인데, 사랑만이 독보적인 인기를 구가하는데, 왜 어른들은 웃지 않고는 결코 못 넘어가는 것일까? 사랑은 없어, 라는 말을 듣는다면! 뿐인가, 몇몇은 상상만 해도 웃는다. 몸이 어른이고 돈도 많고 말까지 많은데 그냥 대개 보면 말만 많은 경우가 적지 않다. 참신한 교훈은 찾기 힘들다. 새로운 의의와 색다른 가치도 알고 보면 신선하지 않다. 그건 곧 누구나 다 아는 뻔한 얘기다. 남편이 그런다. 부인이 얘기할 때. 이 사람은 정말, 진짜 말 많다고. 낯선 이방인과 지인들이 모인 자리에서. 그 말을 처음이 아니라 오래도 했을 것이다. 그런 말을 듣는 여인은 진짜 말 많은 거다. 그런데 말만 많은 거다. 옆에 있으면 꽤 피곤해진다. 왜? 에너지가 빨리니까! 성적 어울림, 지인끼리 친구끼리 화기애애한 화제로 삼기에 그것이 가끔일 때 꽤 무난하다. 물론 친할 때만. 그런데 그에 대해서 얘기는 많은데 얘기만 많다. 글도 똑같다. 다 똑같은 얘기다. 정치도 똑같다. 항상 같은 말이다. 안 똑같은 게 뭐가 있을런지. 걱정도 팔자다. 진부함은 그럭저럭 뭔가가 잘 돌아간다는 반증일 수도 있음. 그렇긴 하나 진짜로 요즘은 특수 아닌 게 없고, 한정판도 흔하다. 각설하고 저 주제에 대해서 지식과 경험과 개인적 취향을 모르는 사람은 없으니까 간결하게 결론을 내리자면 이와 같다.
   첫째, 인지심리학 및 행동경제학적으로 보자면 그렇다는 것. 첫 번째 남자(여자), 두 번째 남자(여자), 세 번째 남자(여자)... 그렇게 최소 1명에서 남녀 공히 100명을 만나서 최고의 성적 결합도를 보인 사람과 결혼하는 게 좋을까? 절대, 아니다! 왜냐하면 그럴 수는 없기 때문이다. 가령 편의상 스친 인연을 다 숫자로 봤을 때 5번이 제일 나았어, 그런데 현재의 이성 순번은 50번이야, 게다가 50번은 다른 건 몰라도 성적 조화로써 예상 수치가 최저다 또는 경험적으로 최하다, 그러니까 5번에게 돌아가겠다? 다시 그때로 돌아가서 5번을 만나고 싶다? 지금...와서? 그러면 5번께서 퍽이나 좋아하시겠다. 오오 내 님이시여 이제 오셨나이까, 하고서. 경우의 수는 많고도 많다. 만약 사랑의 경험이 느는 것과 거의 비례해서 어머나, 성적 조화도의 기록마저 계속 갱신된다? 좋은 사례도 있겠지만 때로는 인생 피곤해질 수도 있다. 그처럼 생애가 꼬일 수 있는 팔자를 타고날 수도 있지만, 후천적으로 판도라의 상자가 열릴 수도 있다. 바로 이 때문에 여자는 여성잡지1에서 2로 넘어갈 수 밖에 없다. 그런데 남자는? 남자는 그런 구분 없다는 걸 잘 아시지 않나요. 기억난다 기억나. 어느 허접한 괴짜가. 젊어서 런닝머신 파는 일을 했고, 친구를 대마왕이라 부르면 다시 단짝으로부터 머신이라는 애칭을 받고, 주거니 받거니 잘들 한다, 지금은 환상머신이라는 소설을 쓰신다는 그 누군가가 기억난다. 이러니까 청초한 숙녀는 그런다. 나는 우리 오빠랑 그냥 포근히 안고 있을 때가 제일 좋아 라고. 남자는 (여전하시겠지만) 사춘기와 몽정기와 스무 살의 왕성한 그 뭔가를 기억한다. 그런데 여자는? 긴긴 고비를 잘 넘든 어쩌든 먼 나중 그런 말만 듣고-하지 않으시기를. 난(넌) 우리(늬) 남편을 잘못 만났지, 난(넌) 남자를 잘못 만났어 라고. 물론 여자가 하고 듣는 말이다. 그럼 남자는? 남자 중의 남자라면 그래야 하지 않을까요? 친한 친구에게...... 쉿! 누가 듣겠다! 무덤까지 가지고 가야만 할 비밀이니까. 달콤한 사랑 노래들이 아니라 일반인들의 수많은 사랑담을 듣게 된다면 나중 알게 된다. 언젠가 깨닫는다. 이때 완벽한 촌년의 말은 완벽한 촌닭의 말과 완전 똑같다. 세상에서 인생을 상대로 갖은 희노애락을 겪어보면 남자와 여자는 많이 비슷해지는 것일까? 아마도! 그러니까, 살다 보면 알게 된다. 사랑은 1인가 1의 초과인가를. 최고의 사랑 그 하나를 빼고 3명을 만났냐 3000명을 만났냐를. 늑대를 딱 10명만 만나고 나면 이제 남자도 알고 사랑도 아니까, 나는 곧 엄선해서 백마 탄 왕자님을 만날 수 있겠네? 잘 아시다시피 인생은 그렇게 녹록치 않다. 모르긴 몰라도 11번부터 늑대만 빼고 별의별 온갖 동물들이 다 등장할 수도 있다. 차마 예는 들지 맙시다그려. 안 그렇수? 더군다나 정작 본인이 불여우는 아닐런지. 당신께 있어 사랑이란, 그렇게 말하면 귀빈 귀에 피가 날지도 모르니까 딱 금은동 메달만 얘기해 주시겠습니까 그런다면, 그럼 나머지는 다 뭔가? 나머지는 뭐 다 신부 들러리인가? 엑스트라인가? 무엇은 사랑이고 무엇은 연습이었다, 심지어 거의 다 그냥 내 팬클럽? 나는 언제나 첫사랑이고 항상 첫키스를 위해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다? 어허, 대체 무얼 근거로 나는 사랑의 화신 당신은 밤의 황제라고 하시는지, 너무 아리송하네요. (딱) 자, 따라해 봅시다! 막간에 세비야의 이발사처럼 긴 거 말고 짤막하게 깜짝쇼의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짝─짝─짝! 거기 새침한 아가씨도 저기 도도한 숙녀분도요. 어서요. 네, 재미난 얘기를 해 드릴께요. 진짜로, 완전 기가 막히게 웃긴 아주 간단한 무언극을 펼쳐보일 테니까요. 네. 어서요. 자, 갑니다! 자, 따라하세요. 어서요. 자, 자, 활짝 핀 맨손을 들어 편편하게 눈썹과 평행하도록 이마에 가져다 대보자. 손은 가만 있는 채 턱을 쭉 빼고 머리를 살짝 뒤로 젖히자. 원래 턱이 나왔으면 감안해서 더 빼자. 자, 뭐가 보이시나요? 네, 저 멀리! 대체 뭐가 보이나요? 뭐겠나요, 바로 끝이 보이지 않는 전적이 아닐런지! 누가? 바로 그대! 남자와 여자의 차이는 이때 얼굴을 붉히느냐, 득의양양하느냐 그 차이일 수도 있음. 미소라는 건 같지만 웃음의 섬세함은 약간 다름. 그러니까 남녀의 사랑은 어떻게 보면 중요한 거 빼고는 성격만 다르다는 것. 여자의, 곧 내 미래가 궁금하신가? 필자는 그대 진정 사랑의 비너스가 될 자격이 충분하다고 장담하겠지만, 세상 경험 많으신 우리 상남자계의 대표 주자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하실 그분들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을런지. 엄마를 보라고! 그게, 바로, 당신의, 미래라고! 아닌 게 아니라, 만약 어떡하다 어느 머신을 일찍 만났다가 풋사랑만 알았는데 그게 적잖은 깨우침이었다, 그런데 금방 작별했다? 그러면 그녀는 살면서, 남자를 만나고 사랑(들)을 하게 되니까, 살면서 내내 무심결에 음... 그렇게 된다. 어쩜 벌써 잔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하, 어디서 그 짝을 찾을 수 없을 만큼 흥분된 얘기들이 들리는구나. 오오! 전후좌우 일부러 비교를 할려는 게 아니라 사람은 한번 알게 된 건 어쩔 수 없다.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 무언가를 알기 전과 후의 차이가 딱 그만큼이다. 이론과 실제가 얼마나, 왜 같지 않은지 참 아득하구먼유. 바로 그래서 점잖은 문사들이 그렇게나 식상한 말씀을 하고 또 하는 것 아닐까요? 선망, 동경심, 소망, 꿈, 성스러운 가슴의 눈물, 운명의 여신이여, 오오 정녕 여기까지란 말인가 나의 여복은(앗 이건 빼고!), 그처럼 말이다. 그런데 만약 모든 것이 최하인데 성적 어울림만 끝내준다? 그 만남은 쥐도 새도 모르게 해야 한다. 될 수 있으면 하늘마저 모르면 좋을 것이다. 지금 세상에 그게 쉽지는 않겠지만. 사극에 나오지 않나. 마님과 돌쇠의 사랑 같은 것. 원래 사랑이 그렇다. 제대로 빠져들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것, 그게 바로 사랑이다. 보통 단도직입적이고 목적이 분명하며 성과를 중요시하는 남성에 비해 여자는 비교적 간접적이고 은근한 걸 선호한다. 완전 그렇지는 않지만 말 그대로 비교적. 따라서 여자는 은근히 고조되는 사랑의 감정을 높이 사고, 은은한 속정을 사모하며, 남몰래 단둘이서 깊어지는 애정에 대해서 남자에 비해 비교적 열광하는 구미랄까 그런 심성이 있다. 일반적으로 짝사랑, 좀 더 승화되어 남몰래 한 사랑. 여자는 좋아한다. 무엇을? 몰래 한 사랑을. 백허그를. 자상함을. 하지만 몰래 한 사랑도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 몰래 하지 않으면 (절대? 될 수 있으면?) 안되는 사랑, 둘째 몰래 시작해서 그 애틋함으로 끝없는 사랑이 되는 것. 그럼 각자 어떤 인연을 만날지는 모르겠지만 논평은 간촐하다. 첫째는 머신의(기계적인? 동물적인? 말초적인?) 사랑, 둘째는 공식적인 사랑이라고. 맞다. 첫째는 별명의 사랑이자 비공식적 사랑이다. 첫째는 단기전이고 둘째는 장기전이다. 남자는 확실한 걸 좋아한다. 양을 쫓던가 핸드폰 가지고 놀던가. SF면 SF, 미스테리면 미스테리 그렇게. 확실한 코메디와 정확한 판타지를 남자는 좋아한다. 그런데 여자는? 여자는 좀 더 까다롭다. 남자가 0이나 1이라면 여자는 완벽한 0이나 1은 없고 1.5를 꿈꾸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마술적 사실주의 같은 거. 여자가 원래 어렵다. 그처럼 까다로우니 마초는 때로는 애달파하고 때로는 놀라워한다. 농담 반 진담 반이고 다시 주제를 육체적 사랑으로 되돌리자. 작품의 소재도 속속 등장한다. 사랑과 가정과 행복을 모두 성취했는데 이제 와서 보니 내 취향은 여자가 아니라 남자였더라? 그럴 수도 있다. 나를 몰랐을 수 있으니까. 성적 호기심이 왕성한 젊은이의 입장에서야 의무 방어전이 어쩜 신비로워 보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어느 삼류 연애 컬럼에 나왔듯이 여자가 누구를 좋아한다? 그렇지, 바람둥이. 바람둥이가 말한다. 사랑은 성적 어울림이 다가 아니라고. 하오나, 육체적 사랑은 오묘하고도 신비롭다고. 이쯤 되면 인간의 사랑과 동물의 사랑이 무슨 차이일까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단순히 의아해서 묻겠지만 성적 어울림만을 위해 남녀가 사랑하는 건 아니지 않나? 그것이 최적이면 계속 만나고, 최고가 아니면 새로운 만남으로 넘어간다? 다큐멘터리를 보면 알 수 있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동물을 금수라고 낮춰부르기도 하지만, 사람의 사랑보다 더 멋진 사랑을 하는 동물들이 적지 않다는 것을. 타인은 모르겠으나 필자의 친척만 따져봐도 자식과 (영원한) 남남이 된 채 떠나간 여인의 사례가 음, 셀 수 있다. 남자와 여자의 차이가 있을 뿐이고, 제우스도 어떠했다고 재담가들은 누누히 고지시킨다. 일상 생활에서 읽어본 적이 있는 사람은 몰라도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다더라, 그 말이 무엇일까? 그거다. 사람은 중간만 가면 된다! 육체적 사랑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인생이 행복하게, 세상이 아름답게, 성적 어울림이 조화롭게 발전할 여지는 있다. 좋게 나아질 가능성은 크다. 그럼 뭐해, 우머나이저는 불티나게 팔리는데? 누가 아니래! 신비 살롱과 호박 나이트클럽은 언제나 불야성을 이루는데? 내 말이! 그래도 좋아진다고 치고, 그런데 점점 나아지다가 슬럼프를 맞이한다? 그건 전문가에게! 빨빨거리며 돌아다니니까 전문가인줄 알았는데 친구는 알고 봤더니 순 허당일 수 있지만. 그땐 진짜 전문가를 섭외하면 그만. 물론 숙녀가 어쩌다 마성에 넘어간다? 그땐 책임질 수 없다. 아니나 다를까 그게 정녕 누구의 마성인지, 그 마성이 좋은지 언짢은지, 대체 마성이 무엇인지, 대관절 그 마수인지 마성을 누가 어디서 공식적으로 인정하는지는 꽤나 불분명하지만 말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연설이 시작된 원인이 성적 어울림이었으니까, 그 조건에 최적화하여 따져 볼 수도 있다. 그렇게 판별하자면 귀부인이랄지 원숙한 숙녀와 젊은 남자가 가장 잘 어울린다. 이론적으로는 최적이다. 남녀의 과학적인 성 그래프가 그렇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제는? 그 반대다. 대게는 알다시피 그렇고, 드물게 팔순 화가와 꽃다운 처녀의 사랑이 화제에 오르기도 한다. 그건 곧 이미 어떤 꿈의 물망에 올라있었단 얘기가 아닐런지, 아무튼, 그건 드문 사례다. 보통은 결혼이라는 제도에 적합한 사랑을 위해서는 적당한 인연을 찾는 만큼 성적 어울림을 전부로 따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다만 뭐랄까, 심심치 않게 중요한 정도? 좀 더? 네? 약간만 더? 좀만 더 베팅하시라구요? 뭐시여? 상당히? 아주? 엄청? 왕창? 뭐, 뭐라고? 그만 그만! 이런... 워─워─워! 물론 짧은 만남이라면 잘 아시다시피 뭘 많이 알 필요가 없다. 멀리 내다보고 애처롭게 배려할 필요도 없다. 내 욕심과 남의 탐욕을 견줄 까닭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묻지 마 라는 술집에서 만날 수도 있고, 대화가 불가능하게 음악 소리가 큰 클럽에서 만날 수도 있다. 그래서, 그래서 이게 다일까? 그러니까 인지심리학 및 행동경제학적으로 봤을 때 한 단어로 속궁합, 두 단어로 성적 어울림, 그 이상향에 대해서 지금까지의 설명이 다냐고. 그럴 리가 있나! 우리 (인생의) 아마추어인 척 하지 맙시다. 자, 속담 먼저 읊자. 남의 떡이 커 보인다고. 그렇지. OK! 비교 대상은 넓고 깊고 많다. 왜 숙녀에게는 결혼한 남자 곧 남의 유부남이 멋져 보일까? 다 그런다는 게 아니라, 그런 분들이 있다는 거다. 왜냐하면 상대적으로 멋진 남성이기 때문에 다른 여자가 선점했을 것이며, 또 탁월한 동업자 아니 세심한 그녀의 손길을 탔을 테고, 교육과 경험이 한껏 늘었으니, 숙녀 입장에서는 멋져 보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럴 수도 있다. 찌질한 그 남자가 숙녀를 만나 왕자님으로 변신했다더라, 그런 일이 심심치 않게 있긴 있다. 그래서 내색은 안 해도 이따금 여자는 유부남이 멋져 보이기도 한다. 그게 다 고결한 손길을 타서 그럴 것이다. 게다가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말이 는다. 더불어 어차피 사랑의 목적이 플라토닉이 아닌 이상 기준선은 절대 양보할 수 없다? 호호호! 모르긴 몰라도 찬 밥 더운 밥 가리지 않는 사람과 그 반대, 전자가 많을까요 후자가 많을까요? 그걸 내 입으로 어떻게! 어머나 그런데 심지어 돈까지 많다? 금상첨화다. 더 나아가 눈빛과 인상과 재주까지 겸비했다? 말 다 한 거다. 뿐만 아니라 기회까지 많다면! 낭만적인 사랑은 몰라도 풋사랑은 사람을 만나는 횟수와 정확히 비례한다. 이를 어쩐다? 반비례, 노노노노노노노! 정비례. (딱) YES! 보험왕, 대배우, 지휘계의 거장 그분들은 일을 사랑하는 거고, 이쪽 분들은 발로 뛰어 성과를 만드는 유형이다. 이쯤 되면 줄 달린 치즈를 슬슬 당기는 역할은 아마도 불(?)여우가 아닐런지. 바보가 아닌 이상 타석에 들어서는 횟수가 늘면 자동적으로 안타를 칠 확률도 높아진다. 안타? 안타가 뭔 말인가, 뻔트면 대만족인데! 삼구삼진마저 희망으로 해석할 여지는 다분하다. 그분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말이 뭔지 설마 모르시지는 않을 테지만 뭔가 한번 들어나 보자. (임자 있는 그분께 푹 빠져서) 오빠, 나랑 같이 살자? (나 열심히 살았어 라는 뜻으로 어떤 뭔가를 제시한다?) 얘 안되겠네! 옛말에,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했다. 사람이 그래 남자가 개가 아닌 이상 특급 코치의 개인 교수를 받았다면 그거도 말 다 한 거나 마찬가지다. 심지어 그분께서 애초에 그쪽으로 천재까진 몰라도 최소 수재는 될런지 그 누가 알겠나. 진흙 속의 진주는 그렇게 태어난다. 똥개인줄 알았는데 알고 봤더니 바람둥이형 늑대? 명찰에 쓰인 이름은 에르메스? 잘 하면, 페라리 최신형 한대 뽑아주실 기세네. 뭐, 장기 투자? 보아 하니, 저절로 알쏭달쏭 하시지 않나요? 사랑은 있을까 사랑은 없을까, 라고! 사랑이 있든 없든 본래 사랑은 쉽지 않다. 진정 사랑한다면 로맨티스트는 뭐라고 하나? 내 모든 걸 다 드릴께요, 저 하늘의 별이라도 따다 드리겠소, 당신만을 영원히 사랑하리다, 라고 하지 않나. 그런 사랑이면 개인 사생활의 먼지까지 애인과 공유한다. 적어도 시작은 좋다. 하지만 사랑은 변한다. 그 속성상 차갑게 식는 걸 변심이라 한다. 또 미온적이면 딴청, 한눈팔면 싫증난 것이고, 외로우면 갱년기요 슬럼프면 권태기다. 쪼금만, 좀 더? OK! '사랑은 없어'는 무정, 무심은 뭘 좀 모르는 것이고, 여복의 부재 그것은 바로 불운이다. 그것이 2개 이상이다, 또는 오래 이어진다? 그건 한마디로 불행! 호박이 제발로 굴러오는 건 행운이요, 이제 굴러올 때가 됐는데랄지 뜻밖의 행운은 바로 우연이다. 허세? 남자는 폼이지! 허영심? 질투는 나의 힘! '우리는' 화법은 그냥 허당, 허세를 쥐었다 폈다 허영을 들었다 놨다 그게 바로 은근 허당! 그만 하자. 이미 누군가는 떨렸고 난 벌써 들었다. 제발 참아주시라 라고. 이랬다간 한도 끝도 없겠다. 어쩜 사랑 그것이 바로 악마가 아닐까? 실체는 없는데 매번 떼쓰고 항상 칭얼거리며 언제나 새로움만 바라니까. 그럼, 이게, 다인가? 뭐 벌써? 급하시긴 허허허 나 원 참, 뭘 고렇게 섭섭헌 말씀을 허신대유! 이를 테면 1번부터 12까지 만나봤다고 가정했을 때 성적표는 남는다. 결산 딱 나온다. 타당한 서류를 보고 합리적인 이성으로 따집시다그려. 성우는 없었지만 성우 단짝의 선배의 친구는 1번, 영화배우도 없는데 자칭(?) 영화배우 지망생 유형은 2번, 3번은 보기 드물게 뭘 좀 아는 남자인데 뭘 좀 알기만 하고, 4번은 나머지는 전부 다 좋은데 유별나게 가난하다는 둥 어쩐다는 둥, 5번은 돈만 많고, 6번부터는 딱 7번만 빼고 다 꽝이었다. 완전 꽝! 그래서 아무리 봐도 7번이 종합적으로 제일 나았는데, 지금은 12번 방금 보냈고 13번 차례이니 다시 돌아갈 수도 없고, 것 참 난처하네 어쩌네... 등등등. 그럼 결론은 뭘까? 뭐긴 뭔가, 새로운 남자지. 악마가 아무리 새로움을 입는다지만, 패션으로 비유해서 뭔가를 신상품이로 말한다면 좀 서운한 감이 있네요. 그래도 어찌됐든 13번에서 7번으로 시간을 돌릴 수는 없으니까 계속 갈 수 밖에 없다. 전진 전진 또 전진 계속 전진 막 전진 딱 전진, 행진곡이여 울려라 허당이 나가신다 길을 비켜라! 하지만 13번일지 100번일지 잭팟이 언제 터져도 터져야 한다, 하하하 그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건 어디까지나 당사자 입장! 긍정이 뭔 죄고 낙천성이 왜 나쁘겠냐마는 동화풍 희망은 아동복에 어울리니까, 우리는 요술 거울을 보며 자평을 하고 자성의 시간을 가지자. 왜냐하면 과학 및 통계적으로 보자면 끝내기 홈런의 확률은 별로 높지 않다는 걸 잘 알기 때문에. 그건, 그다지, 설레설레! 곧 수다의 화제는 성적 어울림이었지만 결론은, 인지심리학 및 행동경제학적 결론은 이렇다. 원론적으로, 사랑도 인생도 아끼고 즐기며 아름답게 만들어가는 것이다. 경험적으로, 결국 사랑은 커피포트를 내내 참고 또 참고 언제나 인내하며 신제품 진공청소기 광고를 바라보는 공허감이라고나 할까, 감미로운 풍문을 듣고서 동경심만 커져가 눈은 한없이 높아지고, 코끼리는 뭐 하늘을 훨훨 나는 거지 뭐. 그리고 시작의 관점에 국한해서 보자면, 그러니까 적당히 중간에 괜찮은 상대를 만나야 한다는 운명론이 바로 인지심리학 및 행동경제학적 결론이다. 어떻게 끝낼 수나 있겠어? 수근수근, 언제 끝나나 했더니만 결국 어떻게 겨우겨우 결은 봤네.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서 현생 인류로 넘어왔으니 자, 굽은 허리를 펴고 반응을 한번 살펴볼까나? 이쪽을 보니 완전 꽃밭에다 와 표정이 표정이... 허허허 네네 이따 우리 조용히... 허허허, 그리고 저긴 어디서 자꾸 코 고는 소리가... 어머 어머 그런데 여긴 분위기가 영... 인지 뭐 행동심인지 초심인지, (......) 뭐가 어쩌고 어째? 많은 연인들이 그런다. 우리는 운명적으로 만났다고. 그러니까 지금 말 다 했어 이 양반아, 어? 아 글쎄 그러니까, 운명론! 그래요 운명론이요. 아리따운 여인에게 그대의 마음을 빼았겨서 새콤달콤한 사랑에 빠지셨을 때, 바로 그때 선생님 말마따나!
   둘째, 경제학 학문보다 브랜드 포지셔닝이라는 실전 이론에 따른 권고. 그쪽에서는 그런다. 무조건 처음에 잘 해야 한다고. 그쪽에서는 결혼이란 가장 좋은 사람과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상대적으로 좋은 맨 처음의 사람과 하는 것이라고 봐야 옳다고. 그와 일치하는 사례도 있겠지만 많은 경우 그런다. 꼭 너무 일찍 조숙할 필요까지는 없다고. 천천히 세상을 즐기라고. 뭐랄까 인생 경험과 약간 대칭되는 식자의 권고인 것만 같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세요. 식사를 규칙적으로 해야 합니다. 다른 게 아니라 운동이 신앙이죠. 햇볕을 적당히 쬐면 좋답니다 등등등. 요컨대 이건 혹시 사랑법? 각자 생각하는 걸로!
   셋째. 학문-이론-기술-술법-관습까지 들춰볼 필요 없이 순전히 어른들의 경험담으로만 볼 때, 서로 사랑을 하면 바로 그 사랑도 좋아진다고. 즉 플라토닉 러브가 전제된다면 육체적 사랑은 발전할 수 밖에 없다고. 의무 방어전을 모르는 친구들이야 사랑 하면 아마도 사랑의 행위가 떠오르지만 일단 어른들의 말씀은 그렇다. 물론 이론으로만. 타인에게는 이론으로써 상담하고, 본인이 실전에 임하면 전혀 딴사람이 된다고나 할까? 아,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다. 왜, 그러니까 어째서? 사랑은 없으니까! 사랑의 완성과 행복한 사랑이 아닌 원초적 본능으로 설명할 수 있는 풋사랑의 관점에서 보자면 많은 걸 따질 필요 없다. 1등급 우유, 그거면 충분하니까. 네? 3등급만 넘으면 만사 OK? 물론 그러다 탈날 수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
   첫째 둘째 셋째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얘기다. 다른 사람들이 다 연구했고 다 아는 상식으로써, 다 차려진 밥상에 은근슬쩍 슥 숟가락만 얻은 기분을 외면할 수는 없다. 그걸로도 모자라 왠지 큰소리치고 어딘가 모르게 생색낸 느낌이 없잖아 있다. 옛말에 그런 게 있다. 남의 떡으로 선심 쓴다고. 딱 지금 어쩌다가 뭐 그렇게 됐다. 동심과 초심과 순수한 사랑, 고결한 연정을 위해서 뭔가 뜻 깊은 말을 한다는 게 그만 딱 그 모냥이 되어버렸다. 죽 쑤어 개 준다? 죽 쑤어 개 좋은 일 한다? 그렇다고 남자는 늑대, 여자는 (불)여우, 나는 개 당신은 난봉꾼이란 말이 아니다. 그러나저러나 사랑의 어울림이 어떻든 그마저도 언어별로 1개 단어냐 2개 단어냐 그 차이 밖에 없다는 것. 시대적으로 보자면 옛날에는 선생님 첫사랑 얘기해 주세요, 라며 간접적인 애원을 선호했을 것이다. 그럴 수 밖에 없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비교적 직접적으로 용건만 간단히, 값싼 웃음과 고급 농담을 냉큼 구분하고, 서로 시간 낭비를 최소화하자는 데 대해서 거의 동의하는 눈치다. 세월은 가고 세상은 변하니까. 그나저나 고전에서는 어느 긴 단락을 읽어도 행위1에서 행위2로 넘어갔다는 말이 전혀 없어서 다시 읽어보기도 하는데, 두꺼운 책1권 전체가 노래요 시였는데, 지금은 모두 바쁜 세상인 건 틀림없다. 어쩌면 쉽게 넘어가버리기엔 좀 짠한 구석이 있긴 있다. 사랑의 종류는 많고 방법도 다양하다. 미숙함에서 시작해 완숙한 사랑으로 끝날 수도 있고, 사랑은 조숙함으로 다가왔다가 성숙하게 멀어질 수도 있다. 과거에 겪었던 사랑이 그저 불장난의 추억으로 회상되기도 하고, 현재의 애모가 나중 보면 진정한 사랑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사랑은 아직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더 의미 있지 않을런지. 중독성 취미의 영원한 1-2-3위 역시 마찬가지다.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점. 언제 어복이 만개하며 어느 때 하트 에이스 포카가 뜰지 모른다는 것. 어떡하다, 고고함과 동떨어진 표현으로, 미쳐버리는 의미는 바로 그 지점에 있다. 위선과 가식과 희망과 미지의 꿈마저 어쩌면 종이 한장 차이일 수 있다는 것. 그걸 인생의 천재라는 어른들이 왜 모르랴. 단지 내 마음이 내 마음대로 안되는 게 어쩜 당연한 이치임을 인정하기가 쉽지 않을 뿐. 인간은 원래 적지 않은 부분 비이성적이니까. 풋풋한 사랑이 있으면 짝사랑도 있고, 첫사랑과 첫사랑이 만나는 건 그 만남이 아름다운 만큼 이루어지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리고 단순히 전적으로 따져서 그 어떤 사랑의 화신이 될지라도 상사병은 끝끝내 체험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인간의 본성상 남의 떡이 커보이고, 뜨거운 사랑은 식기 마련이다. 그래서 숙녀는 울긋불긋 단풍 같고 알록달록 카멜레온 같은 사랑을 꿈꿀 것이다. 그러니 짧은 만남이건 미완의 사랑이건 기묘한 인연이건, 사랑은 뒷모습이 아름다워야 하지 않을까? 왜냐하면 요람에서 무덤까지 딱 1번만 사랑한다는 것은 그건 너무 초현실적 발상에 가까울 것이기 때문이다. 육체적 사랑은 아름답고 속궁합도 좋다. 앞으로의 내 인생에 유리하도록, 누군가의 삶에 도움 되도록 그것에 대한 선험자의 조언을 공유하는 게 왜 나쁘겠나. 최소한 웃기라도 하지 않나. 다만 그 하나만 핀셋으로 똑 떼서 현미경으로 들여다 보기만 하는 표본실식 사랑보다는, 마법 수정구를 통해서 책임과 피임과 인성을 필요에 따라 버리기도 깨닫기도 하는 세상사를 바로 알고, 이기적으로 호혜성을 요구할 수도 있다는 우정과 사랑과 인생을 슬기롭게 탐구하는 것이 먼저일 것이다.
   아아, 바람이 분다. 그것은 봄바람인가 헛바람인가, 그것도 아니면 행복의 바람인가. 설마 혹시... 간주곡치고는 보잘 것 없지만,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건 아니냐는 비아냥을 도의적으로 외면할 수 없다. 물타기를 위한 잔꾀도 진작 바닥났다. 그래서도 안된다. 그러니 픽션이 품은 논픽션은 여기까지만.


   8

   지미는 집으로 돌아왔다. 변한 건 없었다. 아, 있었다. 친구들이 교체됐다. 셜리와 홀리, 바바로사는 알았는데 새로운 얼굴이 있었다. 클락과 그레고리와 험프리. 혹시 얘네들도 자기와 비슷한 취미를 가진 것일까? 일부러 정체를 드러내지 않으려 하는 것일까? 더군다나 시트콤 일원끼리 모여서 매일 놀지도 않았다. 모두 극단적인 개인주의 성향이 뚜렷했다. 그는 혼자 놀 수 밖에 없었다. 모험은 불친절했고 사랑 받을 기회는 가련했다. 그는 원래 지적 허영심은 높은 반면 낭비벽은 없었고, 그래서 호기심은 자제했으며 감수성은 유보했다. 내일을 생각하자면 그럴 수 밖에 없었다. 그 뿐만이 아니다. 감미로운 연애와도 같은 즐거움은 아니지만 집에서 혼자 영화를 보며 술 마시기. 소소한 재미라곤 그 하나뿐인데, 그는 어딘가 모르게 그런 몰취미한 습관이 싫지는 않았지만, 그마저도 재미없어져 가는 듯한 기분이 느껴졌다. 그래서 그는 잡지를 읽었다. 그런데 남성잡지의 글자들이 춤을 추었다. 그는 느꼈다. 세상에서 제일 힘든 일 가운데 하나는 그것이라고. 잡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몇 페이지짜리 인터뷰 읽기. 꾹 참고 읽기 시작하면 시작하자마자 뱅뱅 돌았다. 왠진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청춘의 욕망을 배반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대채로운 기쁨, 다정한 사랑, 행복할 권리, 여행에의 충동을 시도할 수는 있는데 호화로운 잔치가 없다는 점. 가택 감금은 자유의 술잔을 불렀다. 따라서 그는 인생의 성과와 꿈의 방향을 살펴보고 자기 자신을 돌아보기로 했다.
   누구나 그렇듯이 그도 오뚜기였다. 탐욕을 이겨내고 소망에 환호했다. 무언가에 실패할지라도 운 없다면 내세는 패자부활전, 현세에는 천사와 사랑을 하리라, 라고 다짐했다. 하지만 천사의 입맞춤은 순탄하게 보장 받지 못했다. 선망이 벌레 먹어 황홀한 꽃은 못 다 핀 것이다. 자유를 호소하고, 열정에게 변덕을 허용하지 않으며, 방황을 무서워하지 않았건만. 보다시피, 타성은 친구였고 고난은 운명이었다. 사랑도 시련이나 마찬가지였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 그런데 습관적으로 어디서나 미끄러지는 게 특기인 허당 원숭이도 존재한다는 것. 그 자연과 섭리의 법칙은 드물지 않게 그에게도 적용됐다. 원컨대, 다음 번엔 달랐으면! 그런데 내내 절망하지 말라는 하늘의 주문이었을까? 지미는 잊었던 소망이 하나 기억났다. 바로, 스케이드보드 타기! 딱히 꼭 하고 싶었던 취미는 아니지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걸 타 보던 때, 하필 타자마자 뒤로 꽈당 넘어져서 중학교 때 반 친구들의 웃음을 한 몸에 떠안아야 했기 때문에, 그는 한번 도전해 보고 싶었다. 영화 백 투 더 퓨쳐에 나오는 것처럼 초보 딱지만 뗀 다음에 기록만 남겨서 소셜 네트워크에 올릴 생각이었다. 그런 다음 머머접습니다 라며 장비 팔기! 간단하네. 그러므로 그는 뜬금없는, 신선한 상쾌함에 전율했다. 몇 일 매달리다 포기할지도 모르지만 회사 1년 열심히 다니다가 사표를 쓰는 것보다는 이게 훨씬 건전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결과만 얘기하자면 그는 스케이드보드를 샀고, 연습했고, 금새 질렸고, 장비를 내다팔았다. 그 모두가 단 3일만에 이뤄졌다. 지미의 기분이 어땠을까? 새삼스럽게 그걸 우리가 왜 알아야 하는데! 그래서 지미는 마지막 날 일기를 썼다. 다음과 같이.
   세상은 바보들의 무대요 인생은 허풍꾼의 허상이라네. 사랑이란 허영심과 허세의 만남. 야망에 한 발짝 다가가 기쁨으로 몸을 떨다가 한숨에 체념하는 것, 곧 익살꾼의 기쁨이라네. 숙녀여 로맨스를 동경하라? 네! 가까운 선망을 꿈꾸자? 그럼요! 아쉬운 이별 공허한 절망은 짧게? 당연하죠, 여부가 있겠사옵니까! 그럼 뭘해, 잡은 물고기한테는 밥을 주지 않는다던만? 변명은 해도 해도 끝이 없구먼유. 사랑과 행복을 그대에게, 그게 진정한 남아의 진심인 걸 왜 알아주지 않냔 말이오!


   9

   그는 사무실에서 눈부신 문학의 금자탑을 완성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목표는 분명했다. 환상머신! 누군가는 그럴지도 모른다. 뭔 머신? 머신 좋아하시네! 라고. 허나 성과가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천리준마도 쥐를 잡는 데는 고양이만 못하다고 저 하늘에 떠 있는 오로라빛 혜성과도 같은 신기한 이야기를 깜짝 놀라게도 바로, 쥐로 변신시켰기 때문이다. 곧 그는 다른 건 못해도 쥐는 잡을 수 있었다. 그래야만 했다. 그래서 잡았다. 처음에는 그랬다. 나는 할 수 있다고. 머머를 하고 싶다고. 의욕도 좋고 열까지 달아올랐다. 이처럼. 음악성은 모차르트를 능가하고, 미술적 재능도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쌍벽을 이뤘다 라고. 그런데, 뻥이었다. 그는 이렇다 할 피상적 열정마저 변변치 못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결과가 있었다, 결과가. 바로, 지금 쓰고 있는 소설의 정체를 발견한 것이다. 이름 하여, 다큐멘터리 소설. 곧 그것은 모든 악평을 흡수하는 절묘한 효과를 가져왔다. 어떻게 보면 그건 그의 새로운 취미에 불과했을 것이다. 절묘한지 답답한지 모를 새로운 일은 바로 소셜 네트워크에서 사람들의 즉흥적인 평가의 글을 읽는 것이었다. 좋아요, 환상적이다, 놀랍다, 기발하다, 격렬하게 재밌다, 요절복통 흥미롭다, 무자비한 유머, 미친 플롯이다, 말이 필요없다... 등등등. 그런데, 바로 그와 같은 식상한 호평의 정반대 의견에 빠진 것이다. 그는 어쩔 수 없이 뻔한 서평과 똑같은 상업적 추천사와 좋은 평점 일색의 칭찬에 질렸던 것이다. 사랑에 실패하면 누구나 그런다. 사랑이라면 이제 신물이 난다고. 꼭 그와 같은 일은 아니지만 약간 이상한 재미에 빠져버렸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롱테일에 해당하는 솔직한 시청자, 당당한 애독자, 늠름한 애호가의 주장에 그는 꺼뻑 넘어가고 말았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지미는 혼자서 일만 하기는 외롭고 심심했으니까, 휴식을 취하고 한눈 팔고 놀기도 하며 분위기도 전환할 겸 친구들을 만나서 물어봤다. 내가 이번에 쓴 이야기 어떠냐고. 그랬더니 뭐라 그런지 아시나요? 아 글쎄, 그건 정확히 상남자들의 비관적 냉소와 놀랍도록 일치했다. 어머 잠깐, 뭐 상남자?
   그러니까, 마초? 마초론 한번 가자. 마초는 둘로 나뉨. 자발과냐 아니냐로. 뭘 좀 안다랄지 언제나 그녀 입장을 생각하는 세심함, 숙녀가 좋아하는 부류가 아니면 그건 전형적인 자발임. 내가 최고. 뭐, 내가 최고가 아니라고? 어? 뭐라고? 어라, 뎀비네! 많이 지루했고 충분히 심심했는데 이제야 슬슬 재밌어지는군. 듣기 끄고 마이크만 켠다. 내 귀는 막혔으니 남의 귀 피나거나 말거나. 친하면 친할수록. 그건 좋다. 그런데 그냥 허당의 심각한 문제는 우정처럼 사랑을 한다는 것. 우정과 사랑의 종이 한장 차이를 모른다는 점. 답답한 일이로다. 여자에게 꽉 막힌 남자인데 다음 세대에게는? 먼 하늘이나 보자. 아테네 정신을 존경하고, 앞선 세대에 적당히 굽힐 줄 알고, 친구와 으쌰으쌰까지 아무 문제 없음. 그런데 숙녀는? 소녀여 기도 드리자. 또 내가 리더일 때는? 풍문으로 듣자. 조류 인간에 대해서. 있잖아요, 인생은 만년 유치원 재롱 잔치다. 갈 데는 많은데 오라는 데가 없다. 추풍낙엽처럼 머리카락은 송송 빠지는데 영원한 발..아니 몽정기 소년이다. 하지만 오빠라는 말만 들으면 미쳐버리는데, 속고 속이고 세상만사 통달했는데, 그러니 술수는 출중하고 관록미도 넘친다. 분발하고 발동만 걸리면 폭소로 뻥뻥 터지는 건 일도 아니다. 빵빵 터지는 건 좋은데, 그런데 여간 해서는 발동이 안걸린다. 언제가 마지막이더라...! 게다가 내가 뿌린 악담은 부메랑이 되어 언젠가 앙증맞은 불운으로 돌아온다. 옆에서 띄워주는 역할도 피곤해라 한다. 내 꿈을 쫓고 나 행복해지기도 바쁜데, 코흘리개 푼수와 그 언제라도 골목대장 놀이를? 거울을 봐야 한다. 옛날처럼 보기 좋고 먹기도 좋고 맛까지 훌륭한 잔치상은 흔치 않다. 아니 숟가락을 누구나 다 가지고 다니는 세상 아니더냐. 심지어 시작부터 강서브다. 리시브 받고 토스 올리면 잘 때릴 수 있다. 강력하게! 항상 의욕은 충만하고 열은 좋다. 그럼 뭘 하나! 전원 스트라이커에 전원 공격수인데! 운을 타도 금새 지치고, 열도 시작만 좋다. 알랑가 몰라, 바텐더님께 공들여야 할지 액면으로 먹힐지를. 그러던 어느 날부터 친구가 알아서 접고 꺾어주질 않네? 울기 직전이다. 울상이 반복되면 늙는다. 머머증도 아직 극복하지 못했는데 걱정은 태산이다. 그런데 그게 먼 얘기가 아니라 한 업계에서 그분을 모른 체 하기 어렵다? 야 떴어 떴어 피해 피해! 그분께서 직장 상사일 때는, 오늘 그 인간 기분 어때? 딸랑딸랑일지 맹렬한 업무 정진일지, 눈치 없고 분위기 파악 못하면 사회생활 힘들어지는 지름길이다. 여기 저기 거기, 웃자고 한 얘기에 흥분하시는 그분께서는 표정 관리합시다. 옆에서 눈치채니까요. 네? 이미 다 안다구요? 하긴 한두 번 듣는 얘기도 아니고 그다지 새삼스럽지 않음. 별로 재밌지도 않고 시큰둥하기만 함. 주제를 전환하든 과목을 바꾸든 넘어가라는 신호다. 뭐, 마누라를 바꿔? 쉿! 누가 듣겠다. 마초론은 별다른 특별함은 없으니 다음 이 시간을 기대합시다. 다시 돌아가서,
   그는 먼저 클락을 만났다. 1 대 1로 만났다. 우정은 두 가지로 나뉜다. 1 대 1로 만나서 격의없이 유쾌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절친한 사이와 단둘이 만나기엔 뭔가 부담스럽고 겸연쩍은 우정으로. 지미는 클락을 보고 놀랐다. 왜냐하면 그동안 바텐더한테 돈 꽤나 썼고 성심성의껏 공들였던 노력이 얘 때문에 한순간에 물거품이 될 거라고 직감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는 우정의 후자에서 전자로 전환하기 위해, 또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가 내가 쓴 새로운 이야기는 어떤가, 넌 대체 뭐하는 인간이냐를 겸사겸사 묻고 답하며 친분을 두텁게 하기 위해 그를 독대하러 나갔다.
   「클락. 이거 한번 읽어볼래? 내 친구 중에 영화평론가 지망생이 있는데 말이야, 녀석은 욕심이 좀 과해. 언제적부터 소설을 쓴다더니만 어느 날 서점에 가 보니 깜짝 놀란 거 있지. 거기서 녀석이 쓴 인문교양서를 발견하게 될 줄이야. 떡 하니 좋은 위치에 자리잡고 있더라고. 그리고 이건 말이야, 그 친구가 탄력을 받아서 새롭게 쓴 이야기래. 대충 보고 느낌을 얘기해 주지 않으렴?」
   잠시 후,
   「그 친구... 친하게 지내면 안될 거 같은데. 느낌이 안 좋아. 많이 안 좋아. 영 아니다 영 아니야. 중간에 나오네. 주인공이, 나는 대작을 쓰고 있다고. 물론 어디까지나 작중 인물의 고백일 뿐이지만, 그게 좀 걸려. 네 친구라는 그 소설가의 속마음을 들킨 거 밖에 더 되냔 말이야. 이 소설이 뭐 대작? 실컷 비웃어주고 싶구먼. 구성이 순 허술해. 이게 뭔 소설이야. 이런 소설은 나라도 쓰겄다. 소설 1주일만 공부하면 출판계를 주름잡지는 못하더라도 대충 10위권에 턱걸이는 할 수 있다, 그 말과 뭐가 틀리냐고. 어? 얘가 소설가면 난 대사상가라고. 안 그래? 이거 뭔 개연성은 1도 모르고, 자연스러운 기승전결은 0도 없고, 거부할 수 없는 흡입력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어. 완전 시간 낭비야. 완전 별로야. 참으로 황당하구만. 할 일이 그렇게 없나. 참 한심한 친구 같으니라고. 일단, 너무 지루해. 게다가 내용도 없어. 이거 대체 내용이 뭐야? 없어, 아무것도 없어! 독백이 다야. 심지어 주인공은 멋진 인물도 아니고, 무엇보다 이건 과학적으로 말이 안돼. 현실과 완전 동떨어졌어. 억지스런 할리우드B급식 졸작이야. 차라리 집에서 따분하게 TV 채널이나 돌리는 게 낫겠다. 얘 대체 뭐하는 인간이야? 교훈이 없잖아. 뭐 대충 살아도 성공한다, 그걸 말하고 싶은 거냐고. 그렇다고 반전도 없어. 그게 꼭 있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내내 어린애 생떼를 부렸으면 막판에 뭔가 있어야 하는데, 그냥 허무하게 끝나잖아. 그게 뭐야? 이걸 어딜 봐서 별 다섯 개를 주니? 별 빵 개라고 평가할 시간도 아깝다. 자꾸 말끝마다, 아니 글 중간에 환상 환상하는데, 환상이 대체 어디 있어? 환상이라는 단어의 말꼬리 잡고 늘어지기야 뭐야? 어? 아무리 찾아봐도 없구만. 환상도 내용도 참신한 격조도 뭣도 없어. 자네 있잖아, 성격 좋다고 이런 친구들 부탁 막 들어주고 그러지 마시게. 얘는, 친해봐야 인생에 아무런 도움이 안된다고. 심지어 재미도 없어. 자발 스타일은 아닐런지 꽤 걱정 되는데 그래. 관심은 애인한테 받고, 질투는 여자에게, 응석은 아이한테 양보하라고 전해주게. 응? 그게 뭐야 유치하게 말이야. 처음부터 끝까지 억지라고. 전 세계가 인정한 백조의 노래를 바라는 건 아니야. 최소한 언제 어디서나 부담없이 활짝 웃을 수 있는 촌닭의 군무는 되야 할 거 아니냐고. 안 그래? 이도 저도 아니면 독수리부터 박쥐까지 총출동하는 현대판 동물농장을 쓰던가 말이야. 내 살다 살다 이렇게 재미없는 소설은 처음 본다. 얘 누구야? 어딨어?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건가? 얘 혹시 운동 뭐 했는지 아니? 싸움은 잘 하고? 아 정말 괜히 읽어서 나까지 기분이 이상해지는구먼. 이래 봬도 나 있잖아 품위를 아는 사람이야. 전엔 정말 비꼬는 걸로 어디서 안 빠졌는데, 성질 많이 누그러졌어. 이제 꺾고 접을 때도 됐으니까. 아 그래도 이건 정말 아니다. 차분히 믿고 시간을 들였더니 그 시간 만큼이 아니라 훨씬 더 커다란 정도로 내가 멍청해진 거 같다고. 이걸 도대체 무슨 재미로 읽으라는 말인지 도저히 이해를 할 수 없구만 그래.」
   지미는 클락과 헤어진 후 일찍 퇴근했다. 집에 가서 그는 생각했다. 직업을 바꿀까 라고. 그리고 일기를 썼다. 차라리 일기체로 쓸 걸 그랬나 라면서. 아, 일기를 쓰기 전에 소설 쓰기를 시도했다. 첫 문장은 금방 나왔다.   「최근 발견된 중력파 때문에 새로운 시공간을 알아냈다는데, 난 그것도 몰랐지 뭡니까!」  라고. 그런데 첫 문장이 마지막 문장이었다. 그래서 그는 다시 일기를 쓸 수 밖에 없었다.
   대망을 성취하지 못하는 건 꿈이 너무 부정확하거나 높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목표를 낮췄고 바람과 원함을 구체화했다. 물론 그것이 평생 놀고 먹는 거다 라는 품위 없는 단꿈은 아니길 바랬으나, 실상은 딱 그랬다. 따라서 소원은 원래 성취될 수 없는 이상에 지나지 않았다는 생각은 차마 지울 수 없다. 그리하여 나는 하는 수 없이 소망을 작게 품었다. 오늘 뭐 하기처럼. 그랬더니 그 염원은 손쉽게 달성했다. 하지만 애초에 즐거움은 어쩌면 실패에 있거나, 아마도 기쁨은 계획과 기다림에 존재하고 있었다. 때문에 작은 목표 설정은 금새 재미없어져버렸다. 위대한 목적에 부짖혀 좌절하기, 한심하지만 바로 거기서 흥미를 느낀다고 인정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러든 어쩌든 인생은 인생이고, 나는 멜로 드라마의 우스꽝스런 주인공이라고 생각하면 그만이었다. 살면서 그동안 요령도 몰랐고 꾀는 서툴렀으나, 뭐랄까, 이제는 가난해도 여유를 찾았다고나 할까? 과거에는 욕망을 억눌렀고 공상엔 관대했다면 이제는 달라져야 했다. 방만한 탐욕을 다듬어 멋진 선망으로 키우고, 허접한 몽상은 인상적인 상상력과 고급스런 농담으로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따라서 계획표는 작성하지 않아도 괜찮지만 성과를 얻기 위한 행동 방안은 다듬을 필요가 있다. 바로 이렇게. 나는 무엇을 좋아하다, 뭐뭐 하고 싶다, 무엇을 해야 한다, 머머할 수 있다, 머머일 것이다, 그 가운데 할 일과 쓸 글을 잘 선별할 것.


   10

   지미는 침울한 일상에 굴복한 채 재미없는 삶만 지속할 수는 없었다. 싫증 난 몽상 변덕스러운 욕망은 갖다버려야 했다. 그런데 그는 홀연 궁금해졌다. 바로 그런 질문이 떠올랐다. 모딜리아니는 말상이었을까, 아닐까? 뭐라고, 그게 왜 궁금한데? 밑도 끝도 없이 그게 뭔 말이냐고. 그건 곧 습관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는 걸 뜻했다. 수긍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비록 지루하고 항상 심심하더라도 분기별로든 주일별로든 해피엔딩만 보장되면 되기 때문이다. 열망에 못 이겨 멸시 받은 신비를 캐내면 그만이니까. 반드시 찾아야만 했다. 잃어버린 환상을. 묻어버린 황금을. 고개 숙인 낭만까지. 지미는 허구헌 날 타락을 애정했고, 주색을 만끽할 궁리만 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기다려지는 미지의 내일이냐, 궁금하지도 않은 뻔한 미래냐. 그 가운데 전자를 말이다. 오늘의 만족이냐 내일의 행복이냐, 눈앞의 쾌락이냐 안 보이는 희망의 나라에 사는 축복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그렇지만 그는 누가 뭐래도, 미래의 환희를 실현시키는 장본인이자 우연의 마법을 소생시키는 쾌남아였다.
   그는 일시적으로 주종목을 소설에서 시로 바꾼 것이다. 체급을 바꾼 것쯤으로 해 두자. 지미는 그래도 누구도 알고 싶어하지 않을 변신으로 인해 눈에 뜨이는 성과를 금새 발생시켰다. 언젠가 말했지 않나. 큰 재주는 몰라도 잔재주는 있다고. 많다고 했나? 그래도 확인은 불가! 곧 그는 지역 신문사에서 주최하는 무슨 문예상에 당첨된 것이다. 달콤한 영감과 고단한 짜증은 어쩜 애증의 관계인 걸까? 그건 모르겠고, 지미가 쓴 시나 읽어보자. 그러면 그도 이제 어엿한 시인이자, 뭐 떳떳한 문사라는 말인가? 만일 그렇다면 동네 체육관이나 헬스클럽에 회원등록만 하면 누구나 무사겠네!
   그야 어쨌든 쓸데없이 탐구욕을 축낼 필요는 없고, 그의 문학적 미래도 관심 없고, 그가 발판 삼아 등단했다는 시가 뭔지나 살펴볼 필요는 있다. 혹시 모르니까. 별로 기대는 하지 않으니까 칸을 2칸 띄지는 맙시다. 그냥 줄만 바꾸자는 뜻이다. 서둘러 읽고 치워버리게.
   제목: 아빠 뭐해?
   내용: 아빠는 시인이란다. 오늘 아빠는 이런 시를 썼지. 아 아빠는 말이야, 원래는 소설을 쓰는 작가였단다. 보통 이런 제목에 해당하는 글을 주로 썼지. '빈말의 황제, 아부의 화신을 만나다.' 그런데 있잖아. 아빠는 깨달았어. 이런 글만 쓰다가는 우리 가족이 가난에서 결코 탈출하지 못할 것 같다고 말야. 빈곤과 행복은 동행할 수 있지만, 뭐랄까, 아빠는 소년 시절 야망을 품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소망이 대망으로 커져버렸다고나 할까. 그래서 욕심이 생긴 거야. 곧바로 단조로운 탐욕은 스스로 새로워지기를 원했지. 아직은 네가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는데, 세상은 원래 유행 따라 나부끼는 처녀의 꽃무늬 치마를 닮았단다. 왜냐고? 왜 그런지는 나중 커서 네가 직접 깨닫는 게 좋을 듯 하니까 답변은 생략하자꾸나. 뭐, 그래도 꼭 듣고 싶다고? 음 그럼 그건 내일까지만 유보하자. (아니다. 버거운 짐을 덜고 가자) 앗! 그럴 게 아니라, 그건 엄마한테 물어보렴. 알았지? 음 그건 그렇고, 아빠의 인생을 요약한 시를 읊어줄께. 그건 이렇단다. 참고로 여기서 그는 아빠를 말하겠지?
   그는 기쁨을 미워하고 행복을 싫어했다. 진짜로? 물론 그럴 리는 없다. 때에 따라 믿음의 문제를 경우의 수로 나누더라도 엄한 빈말에 순진하게 속지는 말자. 그는 유희를 좋아했고 쾌락에 열광했다. 인생의 많은 즐거움을 사랑했으나 하는 수 없이 가난했다. 그래서 때로는 욕망에 침묵했고 숙녀의 흠모를 외면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차라리 사랑의 행위에 대한 첫 번째라는 사랑의 대화라도 실컷 나눌 걸 그랬나, 싶은 마음은 일절 없었다. 그러다 새로운 취미에 열중했으나 행운은 허락되지 않았다. 경제학보다 요술에 몰두했고, 예술론보다는 연예관에 집착했다. 그 결과 뚜껑 열리는 차는 저 멀리 보이지도 않게 멀어졌고, 이따금 다른 뚜껑만 열렸다. 친구들 사이에서 진공청소기로 유명하지 못했고, 가련한 예술가 부류라며 동정심을 샀다. 연민이라고나 할까, 당연히 일부러 곰살궂은 유대감을 유발하고 싶지는 않았겠지. 곧 안타까운 청춘이었다. 그러다 창작에 대한 열의라는 태양이 다시 떠올랐다. 그러나 권태와 타성의 방해를 받았고, 주색의 방해로 말미암아 찬란한 영감의 절정은, 매번 올 듯 올 듯 하다 말았다. 변죽만 울리기 일쑤였다. 무엇보다 인생을 즐길 것, 그걸 알긴 알았으나 환희의 영광은, 올 뻔 올 뻔 하다 약만 실컷 올리고서 멀어져 갔다. 그러기를 몇 번? 거의, 언제나! 하지만 싱거운 천성 때문일까? 성난 동경은 타일렀고 장미의 가시에 찔리는 희망을 매번 달랬다. 낙원의 그늘도 낙원의 변방이라면서. 그래서 사랑에 부끄러워할진정 웃음을 잃지 않았다. 자신에겐 판도라의 상자가 있다면서 사이렌 버튼 누르기는 어떻게든 미루고, 미루고, 또 미뤘다. 좋게 말해서 말이다. 그렇게 에메랄드빛 천국 이야기와 인생의 비밀스런 신비론을 만들기 위해 분주히 정주하는 나날은 계속 됐다. 권태를 비웃었고 인생의 새로움을 발견하고 싶어했다. 할 말을 잃게 만드는 예선 탈락을 반복할 필요는 없었다. 아름다움을 찬미했고 기쁨을 기다렸다. 그러나 달콤한 행운과 사랑의 주인공으로 낙점되는 일은 감감무소식이었다. 염문이 바람을 타고 억측을 불러일으키면 순식간에 소문이 퍼져서 머지않아 탕자의 여성편력은 공식화되는 것일까? 믿거나 말거나! 비공식화 되더라도 그래 봐야 남의 일. 하여 나는 요술 지팡이에 순종했다. 그런데 마법의 현현은 취소됐다. 한두 번도 아니었다. 하여 요망을 낮췄다. 그래서 호박이 제발로 굴러들어 왔을까? 환상은 현실에서 허락되지 않았다. 그러나 포기할 수는 없었다. 갈채는 저기 멀리 있고 환희는 영 불친절했지만 꿈을 향해 전진했다. 그런다고 허약한 열망이 유복함을 탄생시킬지는 미지수지만. 그러니까, 결과는? 성과 없음. 차라리 세상과 화해하고 심심함을 환영하기로 했다.
   그래서, 그 다음에 어떻게 됐을까? 뜸 들이지 말고 말하자면 고행은 계속 됐음.
   사랑의 별을 따서 청춘의 꿈을 이뤘다? 이루지 못했다. 연예계에, 아니 예술계에 기쁨의 신성으로 등장하여 환희의 연작을 쉼없이, 끝없이 발표했다? 통장 잔고만 바닥났다. 젊은이에게 미네르바의 지혜를, 그대에게 사랑과 행복을? 날이면 날마다 권태와 씨름했다. 새로움은 잡힐 듯 잡힐 듯 도저히 잡히지 않는 파랑새였다. 환청도 들렸다. 어딜 넘봐? 라고. 쾌락만이 한없이 다정했고 언제나 한눈파는 데 여념이 없었다. 상남자들로부터 덕망을 한몸에 받고, 숙녀들의 아우성을 열망하는 건 말도 안되는 바램이었다. 주제도 모르고 말이야. 게다가 성스러운 허영심과 마력의 허세는 물론 인간적인 허풍마저 점점 멀어져 갔다. 꺼이꺼이. 사랑은 없고, 천국은 멀고, 지킬&하이드처럼 나의 돈키호테가 쥔 새 희망이라는 창은 완전 짜리몽땅했다. 비교는 곧 참담함을 뜻했다. 다채로운 꽃은 언제나 어디서나 만개하고, 꿀벌은 시시때때로 바쁘게 모여들며, 농부가 씨를 뿌리고 코메디언이 찬양하며 시인이 칭송하는 탐스럽고 새빨간 사과는 항상 열려있는데, 그걸 따기엔 그렇다. 내 팔이 짧았다. 많이 짧았다. 의욕도 저조했다. 그러나 최후의 이상향은 꼭꼭 숨겨두었다. 그것은 바로, 우주 멀리 유행할 듯한 선홍빛 환상머신! 그것은 찬란한 미지의 세계로 당신을 데려다 줄 것이기에. 그걸 뭐라 하냐. 바로, 시간 문제라고 한다. (고질적인 문제는 환상 문제, 머신은 곧 타임머신을 뜻하는 공상이 아닐런지...!)
   그래서 그 다음에 어떻게 됐을까? 어떻게 되긴 왜 어떻게 돼! 어떻게 되긴 뭘 어떻게 돼! 빠져든다 빠져든다 빠져든다, 빠져들긴 뭘 빠져들어! 그러니까, 그래서 그 다음에 어떻게 됐냐? 바로, 사랑을 만났지!
   어쩐지 좋고 어딘가 마음에 드는데 왠지 모르게 끌린다? 왜 그런지 알 수 없었지만 기분이 이상해졌다. 그녀만 생각하면. 이미 사랑에 빠졌고 마음을 빼았겨버렸다. 처음 보는 천상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숙녀는 영글은 이 내 애정을 훔쳤다. 감쪽같이 그리고 송두리채. 다른 생각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 한 가지 생각은 무엇? 그녀의 이름과 그녀의 얼굴과 그녀의 표정과 그녀의 눈빛! 천사처럼 수줍어하던 당신. 나는 당신이 너무 좋아요 라는 듯한 태도는 간곡했다. 또 교태와 예뻐짐은 비례했다. 철들지 않은 열정은 철없던 시절의 추억을 회상케 만들었다. 하지만 차이점이라면 그때는 사랑을 몰랐고 지금은 사랑의 감정과 함께 라는 것. 무언지 모를 어떤 감흥. 설명할 수 없는 고조감. 속셈만 토끼처럼 혼자 앞서가는 이상야릇한 느낌. 이루 말할 수 없는 마음의 불안정함. 그런데 누구나 그런 상태를 동경한다는 것. 그리고 주인공은 바로 나라는 것. 나야 나, 나야 나!
   그래서 그 다음에 어떻게 됐을까? 소녀의 순정을 꼼짝 못하게 포섭하고, 숙녀의 허영심을 몽땅 일망타진했을까? 아니다. 그건 단지 희망사항에 지나지 않았다.
   좀 더 설을 풀자면 이렇다. 시작은 좋았다, 시작은. 터무니없는 아첨, 온정 어린 앙탈, 더없이 무르익은 애교는 내게 딱 걸려들었다. 원래 그건 정규 과정에 지나지 않는 법칙일 뿐이다. 누가 됐든 내게 한번 빠지면 헤어나올 수 없으니까. 그래서 나는 곧 황홀함에 설렜고 환희에 들떴다. 천국의 향기를 맡았고 천상의 아름다움을 알게 됐다. 그녀의 파르르 떨리는 볼살. 속눈섭도 흔들렸다. 귀는 뭐 빨개지지 않고 베기나. 아마도 흑심 어쩌면 성스러운 예감을 표현하는 듯한 그 깊은 눈동자는 사뭇 흔들렸다. 뭐니 뭐니 해도 유혹자인 처녀는 바보의 사랑에 약한 법. 그녀는 다른 무엇도 아닌 바로, 데우스엑스마키나였다. 라틴말로 '기계를 타고 내려온 신'. 이건 뭐 거의 숙명이나 다름없었다. 손뼉을 치며 반갑게 환호하고 환호하고. 다정하게 눈빛을 맞추고 맞추고. 다정하다 다정하다. 포옹한다 포옹한다. 따스하다 따스하다. 키스한다 키스한다. 찐하게 찐하게. 아 달콤하다 달콤하다. 계속한다 계속한다. 오오 상큼하다 상큼하다. 아이 좋아라 아이 좋아라. 점점 기뻐진다 기뻐진다. 멈출 수 없다 멈출 수 없다. 그런데, (......) 그건 꿈이었다. 이런, 젠장! 하지만 다시 생각하니 그건 꿈이 아니었다. 엄정한 그리고 냉정한 현실이었을 뿐. 내가 정말 좋아서 어쩔 줄 모를 것만 같아하던 그녀가 날 떠난 것이다. 그러나 언젠가 우리는 만나야 한다. 그래야 한다. 이런 말을 하면 약간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딸아! 아니 아들일까? 아니면 쌍둥이? 또는 한 열두 명? 그러든어쩌든 지금 상황에서는 왠지 모르게 딸아, 라고 불러야 멋질 것만 같으니까, 그래서 그렇게 불렀다. 혹시 미래에 아들이라면 미안하다. 그리고 실제 딸은 아직 없다. 미래의 아동에게, 내일의 문학계에 기쁨의 팡파레를 울리고자 이 아빠가 되지도 않은 광시곡을 끄적거린 게 전부일 뿐이다.
   좌우지간, 그녀는 돌아올 것이다. 우리는 재회할 수 밖에 없다. 듣고 있니, (미래의) 주니어? 보고 있니, 내 사랑? 이 연가는 피앙세를 위한 사랑 노래. 때문에 나는 좌절하지 않았다. 수줍은 신부를 상상하며 행복한 예감으로 충만하여 달콤한 콧노래를 연신 흥얼댔다. 나는 언제나 환희를 꿈꿨고, 계절을 사랑했으며, 새침한 처녀의 홍조를 그리워했다. 행복하자. 기쁨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사랑하라. 아름다운 인생 축복할 운명 속에서. 원 없이 좋아하고, 사랑 받고, 소망을 얘기하고 동경함을 노래합시다. 그러다 허풍은 오랜 잠을 깨며(동화 같이? 곰처럼?) 소생했고, 허세는 공상을 물리치며 꿋꿋이 부활하는 데 성공했다. 나는 환상문학상에 당첨된 것이다. 잠깐, 목적어와 동사가 어울리지 않는다. 동사를 뽑히다로, 또는 목적어를 복권이라고 하면 모를까, 그게 뭔가. 나 원 참, 맙소사! 왜 이럴까 왜 이럴까? 뻔한 일 아닌가! 3분일지 5분일지 웬 뚱딴지 같은 마법이 끝날 시간이 됐다는 거지. 오늘의 동시는 여기서 그만 마치자. 제발!


   11

   지미는 조촐하게 상금을 받았고 보람도 느꼈다. 시상식도 다녀왔다. 하지만 실망했다. 옛날 스무 살 때 고전음악 잡지에 애독자 엽서를 보내서 그거 몇 줄이 잡지 일면에 실린 게 글에 대한 당첨의 전부였는데, 이건 그에 비하면 성대한 행사였다. 그러나 그 다음이 없었다. 시상식도 순 형식적이었고, 분발하라는 축하 인사도 성의없었다. 트로피? 금 도금이 아니라 금색 페인트가 오래 가지 않아 곧 벗겨질 듯한, 완전 싸구려 트로피였다. 값이 싸도 기분 좋은 트로피가 있을 텐데, 왜 하필... 일부러 촌스럽기 그지 없는 걸로 골랐나? 모인 사람들도 일 때문에 참석했거나 시간 때우고 인원 메꿀려고 참가한 사람들이 전부였다. 부페도 완전 맛없었다. 상금은 또 얼마나 작은데. 옛날 회사 다닐 때 받았던 허접한 박봉에 비해도 완전 쥐꼬리만 했다. 이게 뭐야? 뭐 그는 기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왜 그렇게 크게 절망해? 그가 사전에 혼자 흥분했다는 전모는 만천하에 드러난 거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지미는 하는 수 없이 다시 단조로운 일상으로 복귀했다. 그거 말고는 방법이 없었으니까.
   초현실주의 신봉자인 그는 신비론의 창시자이자 환상머신의 발명인이었다. 물론 신비론은 발간되지 않았고, 환상머신을 실제로 본 사람은 아직까지 한명도 없었다.
   지미는 최근 수필을 미스테리아에 기고했다. 또 일기도 썼다. 이어서 수필까지 썼다. 그리고 소설을 써서 클락한테 보여준 후 꾸중을 들었다. 물론 친구가 썼다고 거짓말로 시작했고, 클락의 웅변이 끝난 다음엔 식 웃었다. 일명 썩은 미소, 썩소! 그런 다음 시를 썼다. 그러면 다음은 이제야 본격적으로 인문교양서를? 그러면 얼마나 좋겠나! 그는 이제 반성문을 썼다. 뭐가 잘못됐는지 문제가 무엇인지를 알고 싶었으니까. 그런데 쓰다 보니 그건 거의 낙서에 가까웠다. 그래도 뭔 내용인지 살펴보자면 이와 같다.
   내 블로그는, 내 소설은 처음부터 호기심을 자극했나? 아니다. 자극하지 못했다. 호기심은 발 달린 호박인데 그분들의 탐욕일지 동경심일지 모를 감수성을 슥 유인하지 못했던 것이다. 물론 그녀들은 다 속물일지도 모른다. 원래 이 세상이 통속적이다. 왜냐하면 잘생기고, 돈 많고, 목소리가 기가 막히고, 말 잘하며, 말끔한 옷을 빼 입었거나, 동글동글 통통한 남자의 귀여움에 빠지고, 몸은 깍두기 체형인데 왠지 호감 가는 남아에게 어쩐지 끌리며, 그도 저도 아니면 뭔가 있는 듯한 카리스마에 숙녀들은 곧잘 넘어가기 때문이다. 무섭게 생긴 남자한테 넘어간 여자들? 적지 않다. 그럴 것이다. 하지만 항상 그런 건 아니다. 지적인 남자를 좋아하는 여자도 있으니까. 문학에 대해 반성의 글을 쓸려다가 왜 또 여자 얘기야? 여자의 '여'자도 꺼내지 말자. 다시. 내 소설에는 비밀이 담겨 있었나? 비밀이 숨어들 뻔 하다 말았다. 항상 이런 식이다. 긴장은 유지되었나? 긴장감에 막 몰입될려던 찰나 통상 이야기는 거기서 딱 끝나버린다. 사람이 언제부터 그렇게 매정했다고 말이야. 그러면, 복권이 당첨될 기회는 남겨두었나? 남겨두었지, 다만 너무 남겨두어서 탈이지만. 그러면 추적? 모험? 할만큼 했다. 찾고 떠나고 모험하고? 많이 했다. 더 하면 뭔 소리 들을지 안 들어도 훤하다. 상투적인 작가가 될 수는 없다. 흥미로운 게임 논리도 비록 엉성하긴 해도 이미 많이 써먹어서 단물 다 빠졌다. 주인공이 탈출하고 두 번 실패한 다음 성공하게 하는 이야기? 고급 독자는 더 이상 그런 뻔한 패턴에 속지 않는다. 바깥에 나가 사랑을 하고 낭만을 찾고 추억을 만드는 젊은이가 아니라, 집에서 TV 채널만 돌리는 배 나오고 수염 안 깎고 츄리닝 속으로 한 손을 절반쯤 걸치고 다니는 아저씨를 주요 독자로 포섭한다면 모를까, 식상한 공식은 사양한다. 그러니까 츄리닝에 어중간하게 왜 손을 걸치고 있냐고. 숙녀들이 그걸 보면 뭐라 하겠나, 한심한 작자라고 고개를 돌릴 게 뻔하다. 물론 안다. 잘 안다. 투정도 병이라는 걸. 그래도 연구는 멈출 수 없다. 범죄물은 사양하고 추리쪽은 전공이 아니다. 그렇다고 다이아몬드를 평범한 돌 밑에 숨기겠나 어쩌겠나. 플롯 개론에서는 주인공의 정서적 수준을 낮춰라 라고 하는데, 그랬다가 주인공한테 뭔 원성을 들으라고. 이 삶은 미친듯이 글을 쓰는 작가, 곧 걸어다니는 소설이라고 할 수 없다. 전혀 없다. 이 생활을 기록으로 옮긴다면 그건 죽도 밥도 아닐 것이다. 하나도 재미없을 것이다. 뻔할 뻔자로도 모자른다. 그런데 꼬리에 꼬리를 무는, 말꼬리 잡고 늘어지는 식일지라도 잘만 하면 뭔가 이야기가 떠오를 것도 같다. 그 새로운 착상 신기한 영감이 떠오르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했는데, 그 얼마나 멋질까 부러웠는데, 그러다 그냥 공상으로 끝나버렸다. 기다렸고 생각했고 느꼈고 깨달았으며, 마침내 외쳤다. 안 되겠다. 안 되겠어. 이건, 정말, 아니다. 기승전결이든 뭐든 다 필요 없고, 지금 당장 떠나자. 그거 밖에 방법은 없다. 지금은 상식 밖의 시도를 선보일 차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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