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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소설 2017. 12. 15.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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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을 쓰자 라고 다짐하지만 자꾸 나가서 놀고 싶어진다. 하지만 약속은 없고 괜히 슬쩍 끼어들 축제도 없다. 소풍은 당분간 혼자 가고 싶지 않다. 최근 나는 고전적인 오페라를 보기 위해 도시에 갔다가 극장에서 현대적인 뮤지컬 영화를 보다가 내내 졸다 나왔다. 애초에 나는 예술가라는 직책과 어울리지 않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차라리 애인을 만들까? 그러니까 풋사랑 아니면 찐한 사랑. 책임질 일은 아예 시작을 말자. 그래서 그렇게 나이트클럽의 열광은 도저히 식을 줄 모르는 것일까? 그러든가 말든가. 그리고 나는 오랫만에 셰익스피어를 읽었다. 짧은 감상평은 생략한다. 다만 하나 첨언하자면 왜 그 옛날 톨스토이가 셰익스피어의 인기에 대해서 갸우뚱하며 의아해했는지 공감은 간다 정도. 왜냐하면 그땐 전쟁과 평화가 아니면 대체로 심심한 세상이었을 테니까. 장르가 다르니까.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술집 마담 보봐리에나 들려볼까? 아니다. 저번에 바텐더랑 한판 했으니까 당분간 자중해야 한다. 왜 내가 꼴등이냐며 난 당시 바텐더의 고귀한 직관을 충분히 존중하지 못했으니까. 그럼 딱히 바쁘지 않으니 괜찮은 물품이 시장에 나왔다면 미술관에 들러 드 쿠닝 작품 한 점을 사 볼까? 돈이 없는 것 보다도 선물할 사람이 없다. 부동산처럼 나중 되팔기 위해 작품을 사고 싶지... 그래서 사고 싶지 않다. 절대 돈이 없어서 그러는 게 아니다. 그런데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 걸까? 그러니까 뭘! 자존심 쎈 예술적 영감 그분은 기다린다고 순순히 곱게 오실 분이 아니다. 그분은 언제 어디로 튈 줄 모르는 개구리로 변신한 왕자님일 테니까. 아니다. 그분은 거북이와 경주하는 토끼일 수도 있고, 개미의 부러움도 숙녀의 애원도 황금 왕관까지 거부하며 속박을 싫어하는 베짱이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다짜고짜 말도 안되는 공상만 할 게 아니라 한 겨울에 뚜껑 열리는 차나 타 볼까? 돈이 어딨어!    
   그러나 내게는 호탕한 친구가 있었다. 시작은 농담이었다. 나는 클락한테 야 심심한데 차나 바꿔타지 않을래, 라고 물어봤다. 당연히 상대의 낯빛을 살피면서 말꼬리를 흐렸다. 그런데 클락은 그걸 진담으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나는 이때가 아니면 뚜껑 없는 차에 거만하게 앉아 이 세상 그 어떤 여자라도 꼬실 수 있을 듯한 자신감은, 평생 느껴 보지 못할 것만 같아서 이렇게 말했다.    
    「진짜지? 장난하는 거 아니지? 이거 농담 아니다?」 라고 말했다. 
   알고 보니 클락은 있는 집 자식이었다. 그걸 모르는 게 편한데 알고 나니 왠지 녀석이 부담스러워졌다. 그래도 약속을 무를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차 이름도 생소한 컨버터블을 탔다. 마음이 흔들렸다. 와, 너무 좋다. 끝내준다. 너무도 황홀했다. 하지만 내 주제엔 과분하다는 생각이 날 지배했다. 솔직히 부담스러웠다. 내게 어울리지도 않는 듯 했다. 아동복과 유흥가처럼. 하지만 자동차와 나는 실은 너무 잘 어울렸고 서로를 너무 좋아하는 것 같았다. 난 역시 호사와 풍요와 사치보다는 쾌락과 합리적 행복에 어울리는 남자인가 보다. 아니 그 둘 다다. 아니다. 그 둘이 대관절 뭔 차이란 말인가. 그러므로 나는 클락과 차를 바꿔 탄지 얼마 되지도 않아 다시 기승전결 없는 내 삶으로 돌아왔다. 다시 자동차는 원래대로 복귀했다. 멋쩍게 차 좋더라, 그런 말을 할 수도 없었다. 보통 그런 말은, 전재산을 털어 고급차를 산 다음 바닥난 통장 잔고 때문에 궁핍하게 사는 허당 친구한테나 말해야 하는 거니까. 
   재미없는 일상으로 돌아오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만일 여자라면 딱 둘 중 하나일 텐데 라고. 첫째 완전 멋진 남자와 최고의 사랑을 한다, 둘째 '인생은 짧다 고로 남편을 바꿔라' 라는 제목의 책을 써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다. 하지만 그게 말이 쉽지 어디 가당키나 한 일인가. 타고난 재능도 변변치 않고, 외모도 그만그만하며, 친구의 결혼 피로연에 가서 처음 만난 남자에게 분명 그럴 것이다. 내가 만일 여자라면. 말끔한 차림새의 남자가 예의상 건네는 말에 이래야지.  「어디서 미남을 물어올 수는 없고, 날 누가 데려가지도 않고, 약속도 없으니, 집구석에 가서 TV나 봐야죠」 라고. 그리고 또 뭐가 있지? 백만장자가 되는 법, 같은 책을 읽은 후 진짜로 백만장자가 됐다더라? 그런 기대는 버린지 오래 됐다. 맞다. 나도 어른이다. 더 이상 소년이 아니다. 
   뭔가 석연치 않은 비밀, 그게 만약 내게 있다면 내가 먼저 놀라워 할 것이다. 환상이니 마법이니 신나는 모험은 없다는 걸 모두 알아버린 어른이니까. 속으로는 뭘 해도 재미없지만 겉으론 태연한 사람, 그게 바로 어른의 본모습이다. 여자는 몰라도 남자들은 센 척 강한 척 재밌는 척, 하다가 언젠가 꺾인다. 다른 즐거움을 찾는 삶으로. 의무감은 죄수 번호고 책임감은 쇳덩어리와 쇠줄로 연결된 발목 그런 머시기다. 동화 나라가 어딨어? 태반은 동시를 한번도 읽어보지 않고서 어른이 된다. 어제는 터키 행진곡, 오늘은 사랑의 나이트클럽. 전자마저 거의 대체된다. 엄마한테 말하지 마, 로! 능청에 있어선 어른조차 꼬마 꾸러기와 투덜이에게 그 어느 별명과 대명사를 양보하기 싫어하는 습성은 여간해선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실수 투성이 철부지가 어느 날 우연히 요술봉을 주워서 주인공이 되다? 현실에서 그런 일은 없다. 어른들이 좋아하는 건 그런 거다. 골프채, 경마장, 술집, 웃긴 이름의 업소, 간혹 외계인 나오는 영화, 짧은 행복을 동경하는 사랑, 게임, 낯선 이성에 대한 긴장감, 낯선 만남, 파스텔빛 연한 사랑, 그냥 소소한 즐거움 등등. 봉인된 초능력과 판도라의 마력까지 모르는 게 없는데 이 세상이 신기할 리가 없다. 독특한 감수성보다는 차를 바꿔야 하고, 참신한 판타지에 대한 꿈과 희망을 포기하지 않기 보다는 가방의 용량이 커질 뿐이다. 진짜 그런다. 상큼한 스무 살에는 요만한 가방을 들고 다닌다. 고상한 숙녀가 돼서는 좀 더 큰 가방을 드는 게 보통이다. 그러다 지성과 재산과 품위까지 겸비한 마님께서는, 그만 하자. 엄마도 숙녀란 사실만 알자. 그런데 남자들은 궁금해 한다. 멋진 자동차는 가격의 차별화가 확실한데 대체 왜 여자 가방은 요만~하나 큼직하나 가격 차이가 별로 없는지를. 클락과 자동차를 바꿔 탔더니 글쎄 사람의 생각부터가 바뀌더라? 내일은 모른다 그래서 오늘부터 모험? 그런 건 없었다. 하나도. 이런 게 바로 노스트라다무스의 비애라고나 할까? 어디서 예언가라고 해도 이젠 누구도 믿지 않는다. 화가도 작곡가도 작가도 실력도 좋지만 외모, 무시할 수 없다. 세상이 그렇다. 그러든 어쩌든 그러니까 언제 전개로, 어떻게 절정으로 치달을 꺼냐고? 누군 뭐 그러기 싫겠나. 괜히 삼류가 아니다. 
   어쨌든 은근 허당이 돌아왔다 라는 착상도 안 먹히고, 허세와도 결별했으니 찬찬히 작품 구상에 대해 돌입하기로 작정했다. 


   2

   나는 무작정 새로운 취미를 애정했다. 그래서 참신한 종목을 정했다. 그것은 서핑! 서핑은 한번 빠지면 평생 그것을 사랑하게 된다고 한다. 물론 들은 말도 읽은 글도 아니다. 어디까지나 추측이다. 사람들 말꼬리만 잡고 추적해봐도 안 그런 분야는 많지 않다. 전문점이 있으면 부패도 있고, 스치듯 만났다 헤어지는 인연이 있으면 치를 떠는 전남편(부인)에 대한 기억도 있을 수 있다. 그건 치통을 앓을 만큼 사랑했다는 건가? 재미없다. 사람들은 함께 사는 강아지를 보면서 그런다. 누구야 넌 왜 그렇게 이쁜 거니? 사귀는 고양이를 보며 사진 찍는 게 물리지도 않는지 나비넥타이를 달아주며 그런다. 아, 보고 있어도 보고 싶다 그립다 라는 심정을 알겠다고. 그럼 뭐해. 정작 남녀의 사랑은 뜨거웠다 식었다가 변심하면서. 실제 사랑을 해 봤다면, 소년 소녀가 아닌 어른들은 솔직히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아마도 그 뭔가를 부담스러워 한다. 끝없는 흠모 영원한 연정, 그런 사랑스러움에 대해서. 그이가 고양이 만큼만 날 사랑해 주었으면? 난 우리집에서 개한테도 서열이 밀려요! 그게 다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거다. 그건, 왜냐하면 잡은 물고기한테는 밥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서핑에서 수다로 빠졌다만 정신 차리고, 서핑도 역시 장비가 중요하다. 서프보드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긴 거와 짧은 거. 나는 짧은 걸 샀다. 왜냐하면 어느 수의사와 단편 작가에 대한 생각 때문에. 두 분 다 여자였고, 둘 다 글이었다. 내용은 이럴 줄 알았다면 수의학과가 아니라 의과로 갈걸, 이럴 줄 알았다면 단편이 아니라 장편을 쓸걸. 꼭 평판과 존경, 대우, 벌이등이 열악하다 그런 뜻은 아니겠지만 어느 직업이든 크고 작은 특징이나 단점은 존재하듯이 그냥 사소한 어른들의 생각일 것이다. 하지만 그건 곧 수의사라는 직업에 정말 만족한다면, 단편만 쓰는 일을 더없이 좋아하고 사랑한다면, 역으로 그건 최고의 행복감을 경험하는 인생을 살 수 있다는 말도 된다. 나는 바로 그런 기억이 떠올라서 짧은 서프보드를 샀다. 
   그렇게 준비를 마친 다음 바다로 갔다. 동호인들과 함께 탔냐고? 아니다. 고독한 남자는 오직 독학이다. 더구나 쓸쓸함은 운명이다. 하지만 열정은 좋은데 반해 겨울 바람은 차디 찼고, 겨울 바다는 내게 너무나도 냉혹했다. 열은 좋았지만 기후는 좋지 않았던 것이다. 심지어 실력도 잘 늘지 않았다. 연습 자체를 안 하는데 어떻게. 하늘을 봐야 별을 따지! 그래서 나는 서프보드를 하는 수 없이 팔았다. 머머 접습니다 라면서. 새로운 별명은 내 업보였다. 작심삼일! 어쩌면 머머 접습니다 라면서 장비를 파는 해방감이랄까 시원섭섭한 후련함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기분을 느껴보고 싶은 것 아니었냐고 해도 완전 부인할 수는 없을 듯 했다. 나는 아직도 짜증을 부르는 바보들의 행진 그 단계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목표는 환상론 다시 태어나다, 의도는 신비머신 희망을 엿보다 인데 말이다. 뭘 해도 시작 언제나 발단뿐이니 이거 원! 
   그래서 나는 친구를 만났다. 고상함만 추종하고 우아함만 동경하다가는 나는 박제된 좀비가 되어버릴지도 모르니까. 내가 먼저 연락했다. 여러 명을 같이 만나지는 않았다. 뭐랄까 왠지 어수선하고 유쾌하게 속도감 느껴지는 분위기는 뭔가 좀 쨍한 느낌이 들어서였다. 하여 난 1 대 1로 친구를 만났다. 여럿이 만나서 분위기에 휩쓸려도 그렇고, 모이면 듣고 말하는 비율과 태도는 모두 나무랄 데 없을지라도 다 속으로 딴생각을 하는 것도 그러니까. 난 그래서 그레고리를 만났다. 그레고리는 아마 꿈을 찾는 방랑자 기질이 다분한 듯 보였다. 나도 벌써 아르바이트생의 속셈을 간파하는 사장님처럼 뭐든 보면 아는 어른이 되버린 건가? 거기까지 생각하면 머리 아프고, 내가 그레고리를 만나서 나눈 대화를 옮기자면 이와 같다. 
   「더 이상 SF를 읽어도 신기하지 않고, 판타지를 봐도 황홀하지 않으며, 미스테리를 들어도 놀랍지 않아. 나도 신비의 법칙을 모르는 건 아니야. 사랑이란 문을 열었더니 환상이 있고, 다시 환상으로 들어갔더니 멜로 드라마가, 또 다시 그 다음에 열연을 펼쳤더니 피라미드와 미로와 큐브의 정원에서 헤어나올 수 없다더라, 뭐 그런 형식말이야.」  
    「그래? 괜찮아. 그게 정상이야. 원래 그런 법이야. 걱정했구나. 나 혹시 늙었나, 막 그러면서. 괜찮아.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요즘엔, 아니 벌써 오래 전부터 기준선이 많이 내려가서 어렸을 때부터 그러니까. 그건 오히려 아직 동심을 잃지 않았다는 징후가 아닐까? 흑심의 반증이 아니겠냐, 이 말이야.」 
   「그럼 어떻게, 짤랑짤랑 으쓱으쓱 랄라랄라랄라 깡충깡충깡총 하늘 보고 뚝딱딱 땅을 보고 통통통, 이렇게 동요라도 부를까?」 
   「부르란다고 진짜 부르냐? 아, 난 암말도 안했는데 늬가 먼저 시작했지. 늬 같으면 다 큰 어른이 깜찍하고 귀엽게 동요 부르는 걸 보면 기분 좋겠니? 너가 읽고 보고 듣는 허구가 SF인지 판타지인지 미스테리인지 보면 아냐? 라~고 상남자는 말하겠지만 이젠 것도 재미없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상남자라는 걸 까맣게 잊고 있었지 뭐니.」 
    「그러니까.」 
   「그럼 어떻게 알라딘 클럽에 춤추러 가고, 알리바바에서 댓글을 달고, 아마존에서 새로운 어떤 머신이라도 살까?」 
   「그리 썩 달갑지 않은 제안인데.」 
   「그럼 어쩌지?」 
   「어쩌긴 뭘 어째? 초조하게 그분을 찾아갈 필요없어. 일단 기다려.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파게 돼 있으니까 말이야. 그런데 있잖아. 마음을 먼저 터논 건 난데, 왜 내가 말린 느낌이지? 안 그러니?」 
   「뭐 그럴 수도 있어. 그리 드문 일은 아니니까 그냥 넘어가자고. OK? 그러니까, 파도 파도 계속 나오는 비밀? 까도 까도 끝없이 드러나는 정체? 글쎄 그게 과연 자주 등장하는 신제품일지... 하긴 그래도 문제고 그러지 않아도 투덜거리긴 마찬가지네. 부디 우리 친구께서는 꾀병이 아닐기를 바랄 뿐이네.」 
   난 느꼈다. 그레고리도 발단 뿐인 남자라고. 그래서 난 다시 한가해졌다. 그래서 생각했다. 
   한편으론 아쉽고 조금은 섭섭한 인생이 오히려 더 재미있지 않을까? 라고. 그러니까 한번이라도 지독한 사랑을, 우연이라도 행복에 겨운 투정의 윤무를 추어봤으면! 하지만 권태는 잡초의 생명력을 지녔다는 걸 잊으면 안된다. 절대 강자는 쾌락이란 걸 간과할 수는 없음. 절망이 가르쳐주고 체념으로 제값을 치른 교훈을 상기해야만 한다. 그렇더라도 도피, 일탈, 무모한 도전에 대한 젊음의 방황을 포기하기엔 왠지 아까운 느낌이 든다. 난 아직 늙지 않았으니까. 내가 만약 언젠가 뜨면 그건 재기가 아니다. 환생도 아니다. 제7의 전성기도 아니다. 왜냐하면 처음 뜨는 거니까. 그래서 이젠 그런 데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그 모두를 다 아는 지금이지만, 누군 안 그렇겠냐마는, 난 슬슬 조바심의 추격을 받기 시작했다. 지루함의 고삐를 쥐어잡은 채 권태는 날 맹추격하고 있었다. 따분함으로 채찍질하며 심심함에 박차를 가했다. 꾸물거릴 시간 없다. 시시콜콜 수다 떨고, 미남 앞에서 수줍어 하고, 어색한 상상력에 부끄러워하는 동안 적들은 시시때때로 예뻐진다. 여자의 마음으로 비유하자면 그렇다는 말이다. 그러나 감식안이 한심하고, 추리력이 형편없더라도 지성마저 포기할 수는 없다. TV와 만화도 좋지만 TV 속 유치한 프로그램에 열광하기만 하다가는 어쩌면 멍청해질지도 모른다. 이미 그처럼 패배의 쓴 잔을 의도와는 달리 떠받든 전례는 허다할 테니까. 따라서 난 어떻게 해야 하지? 사과? 나무? 사과나무? 아님 씨앗? 
   사과나무 밑에서 입을 벌리고 기다려도 사과는 떨어지지 않는다. 어느 세월에. 괜찮은 신상품은 통상 초장에 동난다. 만약 사과나무 밑에서 동화 속 양치기 소년이 되어 마냥 뭔가를 기다린다면 결과는 뻔하다. 사과는 소년을 희롱할 것이다. 친구는 소년에게 농담하겠지. 뭐라고? 늬가 뉴턴이냐! 하지만 불행 중 다행도 있다. 이러다간 벌레님께서 먼저 저 탐스런 열매를 죄다 갉아먹겠구나 라는 자각. 그분의 식욕은 끝없이 왕성하니까. 그래서 소년은 꿈에 대한 변심을 도모한다. 그러다 뜻밖의 행운을 만난다. 절반의 실패는 성과를 불러올 것이다. 그건 곧 어리광에 어울리지 않는 깨달음이다. 사과나무의 농락은 모두 이를 위해 정해진 순서였구나 라고. 거기서 멈출 수 없다. 깨달음 2.0이 있으니까. 그 새로운 깨우침이란 이렇다. 내가 봤던 사과나무의 열매는 어쩌면 달콤한 열매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 왜냐하면 열매란 어느 예술애호가에게는 빨간 사과가 아니라 나와 푸른 초원과 사과나무까지 그려진 어느 유화일 수 있기 때문이다. 맞다. 처음부터 목표 설정의 틀을 잘못 설정한 것일 수도 있다. 고로 꿈을 수정한다면, 그래서 또 다시 행운이 따라준다면 걸리버의 열렬한 구애도, 지니의 은근한 편애도, 내 사랑 베아트리체의 지속적인 사랑마저 한 번에 송두리채 포획할 수 있다는 점. 그래서 세상은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라고 했을까? 그러나 누구나 멋진 명언의 주인공이 되고 싶어하지 남이 쓴 명작의 애청자가 되어 그 감동이 길이길이 지속되기를 간구하기를 원치는 않는다. 그래도 딱히 속은 것 같지는 않다. 그게 다 스스로 깨달은 까닭에. 그러므로 예술의 정진을 향한 삼류의 끊임없는 독학은 아르키메데스의 놀라운 발상을 불러올 수 있다. 비록 확률은 희박하지만. 그래도 어차피 어려운 인생이라면 불가능을 꿈꾸자. 오오, 이제야 드디여 큰 그림을 그릴 때란 말인가? 그런데 비전은 있고 배짱도 두둑하며 지성까지 겸비했는데, 밑천은? 또 판돈은? 더군다나 차마 포기할 수 없는 쾌락은? 뿐인가! 마법의 허영심과 언제까지나 함께 할 수 있는 행복은 대체 어떡하라고! 그러게 말이다. 아무래도 넉살과 미소는 늘어도 실행력은 잘 늘기 어려운 덕목인가 보다. 
   누가 몽상가 아니랄까 봐. 이런저런 생각 끝에 결론이 나왔다. 다음 타자를 만나야 한다고. 그레고리는 뭐랄까 호인이지만 좀 시시하다. 녀석은 새로운 낙원을 향하는 준마보다는 선량한 농부 유형이니까. 만약 그레고리가 남자고 내가 그 준마에 올라탄다면 그건 한마디로 발목잡히는 거다. 그러므로 나는 다음 타자인 험프리를 만나기로 했다. 


   3

   험프리를 만나기 전에 나는 도시에 갔다 왔다. 특별히 일이 있었던 건 아니다. 단지 나는 아무 이름만 들어도 웃고, 무인도에 데려가고 싶은 이상형을 손꼽다가 금방 지겨워하는 청소년이 아니니까 그냥 혼자 놀러갔다 온 것이다. 곧 내 삶이 한 편의 영화라면 비록 재미는 없을지언정 혼자 나름대로 활약은 했다는 거다. 다만 성과가 빈약한 게 문제지만. 어차피 시골에 있어 봐야 도와주는 헤라클레스도 없었고, 찾아오는 헤르메스도 없었다. 
    도시에 있는 콘래드 호텔에서 달리 사건이랄 것까진 없지만 뭔가 일이 있긴 있었다. 나는 연애론을 읽고 있는 여자와 싸웠던 것이다. 시시하게 말싸움을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여자한테 힘자랑을 할 수도 없어서, 난 하는 수 없이 당하는 역할을 자처했다. 그러니까 뭣 때문에 싸웠는가, 그건 말할 수 없다. 듣고 나면 차마 유치해서 실소도 아까울 테니까 말이다. 잠깐 기억나는 건 그거다. 난 어디까지나 그냥 혼잣말이었다. 책과 독자가 어울리지 않는다면서 꽤 심각한 투정이 들렸다고 한다. 마이 매드 팻 다이어리, 그런 책이나 읽지 괜히 폼 잡고 왜 그런지 모르겠다면서 찬바람을 쌩 하니 일으켰다고 한다. 물론 그녀와 나는 인연이 아니었다. 꼭 그녀가 선녀라서가 아니라 나는 아무래도 그녀의 허영심을 거룩하게 충족시켜 줄 수 없는 남자라는 까닭이 그런 진단의 주요한 원인일 것이다. 그렇다고 시트콤 유형 소설이 너무 가볍다, 뭐 그런 의도로 꺼낸 말은 아니었다. 난 그녀를 생각해서 만일 그녀가 내 여동생이라면 어쩌면 좋겠네 라며 살짝 생각한다는 게 그만 발성을 거쳐서 그 불협화음은 낯선 여인의 귓전까지 당도했나 보다. 내가 원래 의도한 주제는 그런 거다. 예정된 불행을 걷어차고, 불가능할 것만 같던 행복을 부르다 같은 거. 그런데 막상 현실에서는 그게 정반대로 발생한다. 그날도 그랬다. 보통 드라마에서 사랑은 그렇게 시작되지만 내 인생은 멜로드라마가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내 결례에 대해서 극히 전형적인 해명을 하고 싶었는데, 딱 뭐라 할려던 찰나 그녀는 쌩 하니 가버렸다. 재수 없다나 뭐라나! 여자도 아니고 남자가 유난 떤 형세로 결말은 일단락됐다. 상대할 가치조차 없는 남자라고 여겼기 때문일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녀도 기분 별로였을 테고, 나도 돌아가는 분위기가 영 아니라고 느꼈다. 그래서 난 생각했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한다고. 난 아무래도 살면서 내 허세가 평균에 모자른다는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허영심에 과하게 관대했던 것 같다. 그래서 당장 그 자리를 떠서 집에 돌아왔느냐 하면 것도 아니었다. 왜냐하면 빈손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안 그런가?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찔러야 한다.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치랴, 고양이가 생선을 마다하랴, 난봉꾼이 사교계를 떠날 리는 없고, 춤꾼에게 춤추는 계절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즉 나는 호텔 수영장의 전망을 살핀 다음 하산해도 하산할려고 마음먹었다. 한겨울에 외적으론 춥지만 내적으로 시원한 바닷가에 가 봐야 여러모로 완벽한, 라파엘로의 그림에서 막 튀어나온 듯한 숙녀를 만난다는 건 헛된 기대에 불과하니까 말이다. 만나 보니 아, 그녀는 천상 여자였더다? 허당의 기도는 운명론자의 불안일 뿐이다. 원래 사랑이란 둘 중 하나다. 첫째 사랑은 없다, 둘째 사랑은 어려워. 
   그건 그렇고 호텔 수영장은 한가했다. 하지만 나는 아무런 관심 없는 척 할 일은 다 했고, 볼 것도 다 봤다. 드디여 갈 데까지 간 건가? 의도한 목적은 이뤘으나 썩 만족스런 결과는 아니었다. 그래서 혼자 상상했다. 이곳이 달력이나 인터넷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푸르른 해변과 연분홍색 비키니와 함께 모든 조건이 충족된 그런 공간이라면서. 아아 천국의 바람이 부는 황금빛 해변에서 나는 오직 욕망에 충실했다. 다채로운 색상의 수영복 디자인에 눈독들일 수 밖에 없었다. 자의적으로 거부할 수 없었으니까. 청춘과 불화할 수는 없는 일이다. 때문에 타는 듯한 갈증, 사랑스러운 격정을 불쌍하게 모른 체 할 수는 없었다. 해맑은 그녀와 다정한 분위기에서 기쁜 대화를 시도하고 싶었다. 그래서 성공했을까? 그건 단지 희망 사항에 지나지 않았다. 공상도 모두 틀려먹었다. 이제 집에 돌아갈 시간이다. 그래서 나는 도시를 벗어났다. 


   4

   홈그라운드에 도착했다. 원정 경기가 재미없는 걸로 봤을 때 전성기는 아닌 듯 하다. 슬럼프를 어서 탈출하기를 바랄 수 밖에. 그렇게 동네에 오자마자 나는 험프리를 만났다. 험프리는 과묵하다. 카페에서도 뭐 마실래, 그러면 괜히 목소리를 깐다. 같은 거 그러면서. 내가 뭘 먹을 줄 알고? 그러니까! 그래서 얘는 따르는 팬클럽이 없다. 누군 있나? 
   속설에 그런 말이 있다. 옷이 날개라고. 하지만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다. 그러나 뭘 모르면 곤란하다. 많이 곤란하다. 처음부터 어떤 장단점을 감안하고 연애를 시작하더라도 애초에 감수할 수 없는 숙명을 떠안는 결과는 적지 않다. 한계 총량의 법칙에 따라 초반의 진공청소기 이미지는 금새 바닥나고─어차피 시간 문제?─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점점 커피포트는 쉼없이 바쁘게 돌아갈 수도 있다. 한쪽이 기쁘면 한쪽은 뚜껑이 열린다. 둘 다 즐거운 시기가 점점 늘기가 어렵다는 건 기정 사실이다. 물론 사랑의 콩깍지가 쓰였이면 여자들이 뽑은, 남자들이 엄선한 최악의 남녀 습관까지 멋져 보이게 마련이겠지만. 그 단점을 오래도록 끌어안을 수 있는가, 여러 단점을 내 사랑이 모두 극복할 수 있는 것 같지만 경험자의 말은 통상 그와 정반대다. 게다가 살아 봐야 알게 되는 습관도 있고, 오래 지켜봐야만 파악할 수 있는 천성도 있다. 남자들이 여자들에 대해서 꼽은 몇 가지, 여자들이 뽑은 남자의 악습 무엇들. 그렇다고 심각할 정도로 논쟁이나 역설이 분주히 요구될 사안은 아니다. 왜냐하면 개인적이냐 상대성이냐 그 하나만 알면 모든 것은 자명해지기 때문이다. 연애 그거 머리 아픈 취미다. 취미? 여기서 까딱 잘못 말했다가는 본전도 못 건질 수 있으니까 넘어가자. 
   그래도 험프리도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내게 여자를 소개시켜주란 말은 하지 않는 친구다. 그거면 된다. 어른이 되어서야 거짓말이었음을 깨달을 소싯적 숙녀의 마음은 통상 운명적으로 그분을 만나게 되는 일이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그녀와 이를 테면, 노느라 정신 없는 야생마 말이다. 사랑이 그런 거다. 모를 때는 악마의 행복감에 필적하는 감정, 그것은 바로 사랑이다. 조신한 숙녀 얌전한 사랑만 하다? 두고 보면 안다.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그이는 알고 봤더니 순 바람둥이일지도 모르고, 이 연애는 지나고 보니 풋사랑이래요 그럴 수도 있다. 아직은 모른다. 그래도 모를 때가 호시절. 어쨌든 험프리는 허당이다. 언뜻 보면 영화배우감인 것 같은데 사랑 받지 못한 그냥 허당. 말을 아주 잘할 필요까진 없다. 달변에서 살짝 엇나가면 사기꾼이니까. 중간만 가면 되고 뭘 좀 알면 최상이다. 대답만 잘해도 된다. 눈치만 빨라도 된다. 하다 못해 앵무새 따라하기도 있다. 그런데 험프리는 타율이 저조하다. 게다가 타석마저 바닥이다. 심지어 현상 유지도 어려워서 주로 올라가기 보다는 2군, 3군 그렇게 스스로 내려간다. 그러니까 우리들은 자신감을 가져도 된다. 외모도 좋지만 외양, 품위, 안목, 발빠른 배려 그런 게 먼저니까. 맞어. 비굴하지 않되 거만함이 느껴지지 않는 풍모 말이다.안 그렇소? 간만에 그분들께 점수 좀 얻었다. 으하하하하하하! 아무리 그래도 험프리는 아깝다. 여성의 선망을 만족시킬 수 있는 유망한 비장의 조커인데 일단 말수가 없다. 완전 과묵하다. 억지로 말을 해도 아아, 재미가 없다. 통 재미가 없다. 뚜껑이나 안 열리면 다행이고. 험프리를 여자들이 만나도 처음에는 혹하는데 그건 거의 단 세 번의 만남으로 끝난다. 뭐 그 세 번의 만남을 삼십 년 만에 옛사랑과 재회하는 듯이 짧고, 보람차고, 알차며, 행복하게? 어떤 돌싱이 좋아할지도 모를 그런 연애라면 숫자를 더하고 곱하고 암산을? 사랑을 도둑맞고 우정에 미치다냐 또는 그 반대냐, 아마 사랑은 아름답기 어려운 종목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 이야기를 하지도 듣지도, 어쩌면 읽지도 보지도 않는다. 방탕은 무엇일까, 쾌락의 효험은 그것을 단지 연상하고 부풀려서 상상함만으로 발생할 수도 있으니까. 
   험프리와 나는 가볍게 식사를 했고 차를 마시고 술을 마셨다. 나이트클럽은 멀어서 가지 않기로 했다. 대화도 별로 없었다. 험프리는 평소처럼 조용했다. 그래서 나도 혼자 떠들 수는 없었다. 차라리 다행이었다. 누군가의 입에서 화염방사기의 마그마가 분출하면 누군가의 귀에서는 피가 날 테니까. 단, 쓸데없는 말만 엄청-완전-아주 많은 수다쟁이도 수다쟁이지만, 눌변으로 작게 작게 듬성 듬성 던지는 말만 오래오래 들어도 뚜껑이 열리기는 마찬가지다. 매에는 장사 없다. 간사한 쨉이 나중 알고 보면 큰일 벌이는 거다. 어쨌든 험프리와 나. 우리는 기분파와 낭만파의 우정이라고나 할까? 누가 기분파고 누가 낭만파지? 누구 맘대로! 그리고 컵 받침대에 누가 이런 말을 써놨다. 세상 물정 모르는 자의 이름은 청춘, 왜냐하면 젊음의 의미는 거기에 있고, 어른들이 아니 그보다 세상이 사람들을 어린이로 보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얘기야? 별 얘기 아니다. 이상하면 무시하면 된다. 마음에 안 들어도 지나치면 그만이다. 마침 험프리가 이렇게 말했다. 자기는 피곤하다고. 누가 봤다면 우릴 전혀 분망하지 않은 한량으로 여겼을 것이다. 나는 험프리한테 집에 가서 뭐할 거냐고 묻지 않았다. 사생활에 대해서 너무 깊이 캐묻는다거나 과거를 너무 많이 알려고 하지 않기. 그건 우리의 불문율이었다. 그러고 보니 얘랑 나는 동네 친구가 아니라 직장에서 상급자와 하급자로 만났으면 더 좋았을 텐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얘를 보내고 난 집에서 뭘 하지? 보나마나 일기를 쓰겠지. 아마 이렇게 쓸 게 뻔하다. 슬픔을 이겨내고 행복을 예언하다? 슬픔도 없었고 행복도 몰랐다 라고. 그러나저러나 내가 어쩌다 이렇게 돼버렸지? 그러게! 게으른 상상력 순진한 영감 그리고 방탕의 유혹은 멋진 인생이라고 할 수 없는데 말이다. 
   카페에서 나는 험프리를 먼저 보내고 혼자 이런 생각을 했다. 뭔가 멋진 듯 해서 급히 메모로 남겼다. 
   사람들의 생각은 절반쯤은 그럴 수 밖에 없다. 사고 체계가 그렇게 작동하니까. 좋아요가 있으면 싫어요가 있듯이. <새로운 애인>이란 말을 읽거나 들으면 누군가는 그럴 것이다. 자동적으로 '아아 외로운 남자에게 새롭게 애인이 생겼구나'보다는, 저절로, '오오 싫증난 연정의 다음 타자로 즉각 새로운 애인이 마침내 등장했구나' 라고. 전자와 후자의 차이는 좀 멀찍하다. 또 뭐가 있을까? 재미없다란 평을 읽었을 때 뭐랄까, 안심? 재미없어란 말을 들었을 때, 이제야 늬가 허세를 포기했구나, 드디여 너가 허영심을 내려놨구나 라는 느낌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런 공상과 별개로 난 험프리는 그만 귀찮게 하고 다른 친구와 놀기로 했다. 다음 번엔 누굴 불러내지 라고 생각했다. 


   5

   나는 언제 미스테리아 편집장으로부터 기고문 요청이 들어올지 모르니까. 연습장을 펴서 낙서를 기록했다. 그럴싸한 수입원이 없는 판국에 그건 근래 꽤 짭잘한 벌이라는 걸 부인할 수는 없으니까. 그걸 옮기자면 이와 같다. 
   내게 떨리는 가슴 기도하는 마음의 시기는 지나가 버렸을까? 몰래한 사랑 말없는 행복은 어디로 가야 만날 수 있을까? 펑펑 눈이 내리는 겨울, 크리스마스 캐롤마저 슬프게 들리는 게 아닐까 의아해 하는 청춘을 위하여 사랑에 대해 생각해 본다. 물론 처음부터 사랑 이야기를 들려주는 어설픈 상담자 역할을 맡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그 계기에 대해서는 누구도 알고 싶어하지 않겠지만 대개 칼럼은 투정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이를 테면 이런 상황. 설계-제작-생산해서 시판되는 빛나는 환상머신을 구입하여 진열장에 짜잔? 상상을 실행에 옮겨서 누군가, 특히 내가 그걸 사서 집으로 간다. 집에서 포장을 풀고 몇 번 가지고 놀다가 그런다. 아, 괜히 샀다! 이때 비로소 나는 이런 글을 쓰게 되는 것이다. 당연히 나도 사랑에 대해 바람만 잔뜩 들었다가 나중 사랑이라면 고개를 돌리게 됐다. 사파이어의 투명함. 루비의 오묘함. 꽃 피는 봄날 같은 미소와 다정다감한 성격까지. 샹젤리제의 반짝임, 갈채의 융단이 연상되는 분위기, 멋진 대리석처럼 고전미를 계승하는 듯한 사랑을 하고 싶다? 허황된 꿈은 (일찍 깨면) 일찍 깰수록 좋다. 그런 장밋빛 환상에서 꽤나 늦게 깨어난 어른이 생각하는 사랑은 이와 같다. 사랑은 자기도 모르게 찾아오는 것이라고. 그래서 더욱 알 수 없는 것이라고. 천사들의 축제보다 황홀하고, 천상의 기쁨이 감미로운 예감에게 손짓하는 것만 같은 감정. 그것은 사랑이라고. 하지만 첫눈은 녹고, 연필은 닳아지며, 어린애의 천진한 미소는 언젠가 능숙한 가짜 웃음으로 변할지도 모른다는 점은 살면서 어른의 마음에 깊게 각인된다. 그래서 나는 그대에게 사랑의 시작에 대해서 묻고 싶다. 
   사랑이 시작됐는데 스포츠로 비유하자면 그 사랑은 무엇일까? 야구? 배구? 테니스? 카드 게임? 그걸 알아야 뻔트를 댈지, 속공을 펼칠지, 랠리에 들어가 상대방을 강아지(어머머 똥개?) 훈련시킬지, 단순히 판돈으로 압박할지, 그걸 알아야 유익할 것이다. 그래야 때로는 관망하다 때로는 열망하며 승부를 이끌 수 있지 않을까? 요컨대 주도권 쟁탈전, 또는 뜬소문도 뭣도 아닌 표어 초장에 잡아라. 전자는 연애론이고 후자는 사랑학인가? 그건 요술도 신비론도 뭣도 아니고 그냥 말장난임. 깍쟁이의 마음을 녹여준다면 음 연애시와 종이 한장 차이라고나 할까? 좌우지간 그 사랑이 어떤 스포츠의 속성과 닮았나, 그걸 아는 게 유리하다. 일부러 불이익의 고지를 선점할 필욘 없으니까. 맞어. 사랑과 행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니까. 왜냐하면 그래야 가슴이 찡하고 눈물이 핑 돌듯 상대를 사랑의 포로로 만들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건 어쩌면 피상적인 사랑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가장 합리적인 방책은 아마도 상대가 원하는 사랑이 아닐런지. 가령 장기전 같은! 그러면 오늘부터 사랑은 뻔트 인생은 개구멍? 경마지를 읽고 행복의 복권을 사는 게 차라리 낫겠다. 그렇더라도 속단하진 말자. 그 사랑이 사행성일 수도 아마추어일 수도 있으니까. 농담이고 다시 소설로 돌아가자. 
   여기까지가 그냥 대충 기록해 놓은 컬럼 초안이었다. 이제부터 나는 소설을 써야 한다. 아니 그게 아니라, 내가 겪은 진짜 믿지 못할 일들을 구술함과 동시에 글로 적으면 그만이다. 어려울 거 하나 없다. 그런데 나는 컬럼을 작성하다가 깨달았다. 내가 그동안 내게 전달된 사랑의 신호를 너무 모른 체하진 않았나 라고. 이제야 그 모든 일들이 선명해졌다. 아니, 이럴 수가! 이제야 뒤늦게 뭔가가 느껴졌다. 난 완전 뒷북 중의 뒷북이었다. 허풍꾼의 후예에게 풀리지 않는 불편한 비밀은 도저히 도도한 숙녀의 마음을 훔칠 수 없다는 것, 그건 일종의 슬픔일 것이다. 허나 난 허풍꾼도 그 후예도 아니고, 5분 10분 안에 그 어떤 여심도 꼬실 수 있는 재주도 없다. 단지 가끔 어떤 뭇여성들이 스스로 내게 그 애틋한 마음을 의탁한다는 정도. 아,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나니 진짜 이런 말까진 안 할려고 했는데, 더럽게 재수없다. 그래도 사실인데 뭘. 
   맞다. 이제야 알겠다. 난 반 발짝도 한 발짝도 아니라 완전 늦게 깨달았다. 이제라도 뒷북을? 그러니까 자초지종을 설명하자면 이렇다. 동네에서 친구들은 시트콤처럼 아지트에 모여서 함께 놀지는 않았다. 하지만 여자친구들은 나름 바뻤던 것이다. 각자 다 다른 사랑의 신호를 내게 보내고 있었으니까. 먼저 셜리는 말로써. 이를 테면 대사에 '우리'라는 낱말을 살짝 포함시켜서 날 포근히 떠보는 방법을 애용했다. 사랑을 간청하는 그녀만의 방법일지도. 또 홀리는 좀 더 세게 나왔다. 동네에서 오다가다 마주치거나 카페에서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꼭 내 옆자리에 앉았다. 또 그녀는 나한테 보란듯이 반드시 옷을 야하게 입었다. 원래 소탈하고 애교도 별로 없는 친군데 뭐랄까 뭔가 분발하는 기분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그리고 바바로사는 같이 대화할 기회가 생기면 유난히 사랑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어했다. 당연히 내 앞에서 뒤로 돌아서서 앉았고, 허리와 골반의 빛나는 살결을 내게 일부러 노출시키는 노력을 마다하지 않았다. 뭘 그리 자주 떨어트리는지 참, 고마워해야 하는 일인가 판단이 잘 서지 않았다. 속으론 퍽 당돌한 그녀 앞에서 내가 어떻게! 내가 이런 그녀들은 다 놔두고 대체 뭔 생각에 열중하고 있었는지 아아 아찔하구나. 그런다고 이렇다 할 걸작은 커녕 핀잔이라도 받고 싶은 졸작을 완성하지도 못했으니까, 음 난 바보였다. 바보 중의 바보. 허당 중의 상허당. 
   그래서 나는 노트북을 들고 멀더의 카페로 뛰어갔다. 왜냐하면 컬럼을 완성해서 사랑의 자금을 마련해야 했기 때문이다. 대충 생각나는 단상을 이어 나가면 여성잡지1도 아니고 여성잡지2도 아닌, 여성잡지1.5 정도에 해당하는 할리퀸 로맨스풍 컬럼을 완성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왔다. 오늘도 누군가는 더글라스 케네디를 읽으면서 그럴 것이다. 철없는 말괄량이는 집중해서 페이지를 넘기고 또 넘길 테고, 사랑을 더 이상 연습이나 간접 경험으로 만족할 수 없는 숙녀는 왜 그럴까 의아해 할 것이다. 옛날엔 괜찮았는데 지금 이 기분은 뭐지? 전에는 어딘가에 밑줄도 곧잘 긋고 그랬는데, 혹시 나 늙었나? 라면서. 어쨌든 나는 카페에 도착해서 작업을 시작했다. 컬럼의 나머지 부분은 다음과 같다. 


   6

   사석에서 사람들은 그렇게 말한다. 들이댄다고. 표현이 격조 높음과는 다소 거리가 있지만 사랑에 있어서 꼭 알아둘 필요가 있는 표현임에 틀림없다. 진짜 사랑이면 들이댈 땐 들이대야 하니까. 물론 상황 봐서. 넌 내 꺼다 정말 정말 그랬으면 좋겠어, 라고 말하는 듯이 진짜 말로써 남이 다 듣도록 공표하는 애원. 그런 들이댐에 따른 무안을 무릎쓰고서라도 여자가 먼저 들이댈 수도 있다. 보통 어리면 진심으로 들이대고, 그래프가 꺾이면 또는 일찍부터라도 그런다면 그건 장난이고 사교이자 기술로 들이대는 거다. 말을 바꾸면 전자는 다가선다 후자는 들이댄다! 그 둘은 성격이 판이하게 다르다. 여자가, 어릴 때 나도 모르게 그런다? 그녀는 떨리고 설레고 흔들린다는 증거다. 이보다 더한 근거는 필요치 않다. 이미 사랑에 빠졌고 마음을 빼았겼으니까. 이미 사랑의 왕국에 살림 차린 거나 마찬가지니까. 그건 드물게, 몸과 마음이 드물게 분리되는 경험이다. 일명 유체이탈! 그런 일은 쉽지 않다. 흔치 않다. 절대 쉽지도 흔치도 않은 일이다. 사랑의 아픔도 지나고 보면 추억이지만 사랑은 원래 미숙하고, 유치하며, 불완전한 것일 뿐. 사랑은 될 수 있으면 아름다우면 좋겠지만 반드시 플라토닉이 전제되야 하는 건 아니다. 왜냐하면 사랑과 연정을 냉혹하게 구분한 채로 삶을 산다는 건 그러기도 어렵고 그건 왠지 좀 성스럽기 때문이다. 그러고 싶든 아니든 현실은 연애고, 사랑은 그냥 노래 가사 같은 개념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지금은 뭐가 뭔지 모르니까 그래야 사랑이니까. 쉬운 말로 사랑과 우정 사이, 편한 말로 현재주의, 웃긴 말로 사랑은 없어 까지. 그러니까 사랑이 그렇다고? 그런데 말이야 요즘 왠지 부쩍 관심 가는 숙녀가 있다, 그리고 그녀는 카페 '건전한 술집'의 여자다? 다 방법이 있다. 어렵지도 않다. 우선 바쁠 때 가면 안된다. 한가한 그녀를 놀래켜주고 외로운 여심에 노크하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니까. 먼저 인사를 텄으면, 최소한의 친밀감은 확보되었다 싶으면 질문을 한다. 어떻게? 다시 사랑한다면, 이라고! 그리고 노래를 불러준다. 그니까 어떤 노래를? 곡명은, 다음 사람에게는! 아니면 기분 살피고 분위기를 읽고 눈치 봐서 그녀가 완전 딱 좋아할 거 같은 3분의 마법, 약간 철지난 유행가를 신청한다. 이때 표정 보면 절반은 넘어온 거나 마찬가지다. 이때 그 음악은 제발 틀지 마세요 라며 소란을 피우면 그건 속된 말로 찍히는 거다. 통속적인 표현 딱 한 번만 더 애용하자. 살짝 눈감아 주시라. 이때 당신의 행동은 깽판으로, 그대는 진상으로 찍히는 거다. 그러든어쩌든, 그것도 다 그처럼 시도하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 소지가 작지 않다는 것. 언제나 누군가에겐 섭섭할 뿐인 숙녀와 사랑의 진실이다, 라고 내 입으로 말할 수는 없다. 어쩜 뺨 맞는 일만은 사전에 피했으면, 라고 바랄 수 밖에. 
   여자는 둘로 나뉜다. 내 친구에게 사랑받았던 여자와 내 친구가 눈독들였던 여자로. 롱테일은 노코멘트. 참고로 나에 대해서는 해당 사항 없지만 내 친구들에 대해서는 자랑할 수 있다. 그래도 된다. 하지만 친구 자랑도 내 자랑 같으니 참는 게 좋겠다. 고대 그리스식 웅변가부터 밤의 제왕까지? 재미없다. 딱히 대접할 건 없고 멋진 말도 바닥났으니 그러니까 겸손하게, 자랑? 여우와 두루미도 아니고, 허 그것 참 웃기지도 않다. 심지어 언젠가 그 무엇은 친구들 자랑보다 험담 아니었나? 스스로 묻지 않았으면 유치원부터 다시 다녀야 하리라. 너 그럴려고 작가 됐니? 라고. 그러니까, 어머나 험담이 혹시 특기랄지 자랑 아니냐구요? 아닙니다. 전혀요. 이거 왜 이래! 내 전공은 여자다. 다른 말로 사랑. 또 비판할 땐 비판 해야 한다. 좋게 좋게 주변만 빙빙 돌거나 남의 다리만 긁는 건 50점만 추구하는 거다. 그건 내 길이 아니다. 이래도 한세상 저래도 한세상이라지만 그럴 수는 없다. 짧은 인생 그래서는 안된다. 확실한 진선미와 동떨어진 개념과 현상에 대해서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않고 무조건 외면하기만 하는 건 능사도 어른의 책무도 아니고, 현대인의 상규와 지성인의 도리에도 어긋난다. 그러니까, 험담도? 친구에 대한 손가락질은 곧 친함의 척도. 더 나아가 작가와 독자의 우정이 커지다 보면 점쟁이의 식상한 예언을 넘어 좀처럼 익숙하지 않은 어떤 사랑론을 원하게 된다는 것. 말이나 못하면! 
   그나저나, 도시의 무수한 바를 전전하며 그 어떤 환희를 쫓아 킬리만자로를 올라야 하는, 목마른 하이에나 같은 아저씨의 흑심보다 우리는, 너와 나는 소녀의 사랑을 기억하고 소년의 꿈을 간직하자. 왜냐하면 우리는 세상의 방랑자요, 인생의 주인공이며, 사랑의 관찰자고, 운명의 순응자이자 희망의 개척자이기 때문이다. 뭐라고? 하여간 말은! 아무튼, 최근 겪은 어떤 일들은 꼭 내가 옛날 어느 회사에 다니던 시절 있었던 일과 판에 박은듯이 똑같았다. 기록도 있다. 무슨 행사차 회사 직원들끼리 놀러갔던 날 찍은 사진으로. 양쪽에 미녀1과 미녀2를 든든히 끼고서 즐거운 한때를 사진으로 남겼다. 뭐 처음도 아니었다. 사진이 아닌 기억도 있다. 다 사실이다. 절대 믿거나 말거나가 아니다. 당사자는 모를 수가 없으니까. 그런데 우리 팀이 아니라 당시 자판기 앞에서 가끔 함께 모여 차를 마시던 참한 그녀가 있었는데, 그녀를 어떻게 한번... 쉿! 그만. 여기서 그만. 나는 바람둥이가 아니다. 나는 절대 난봉꾼도 아니다. 어디까지나 자상하고 상냥하며, 숙녀의 기분을 한발 앞서 헤아렸을 뿐. 나름 세심하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무 일도 없었다. 난 진짜 숙녀의 손 한번 제대로 잡아본 적이 없다. 그런데 첫키스를 어떻게! 자세한 얘기는 이따 우리끼리.... 큭큭큭! 농담이고 항상 여자가 먼저 웃었고 언제나 여자가 먼저 꼬리를 흔들었던 게 다다. 안 그랬던 적은 한번도 없었는데 운 좋게도 그런 일이 적지 않았다면 아아, 내가 들어도 재수없다. 완전 왕재수다. 이번 칼럼은 이래서 망한 거나 똑같다. 금주의 칼럼은 여기서 이만 줄임. 끝. 


   7

   나는 컬럼도 뚝딱 작성해서 꽤 여유로워졌다. 자유를 찾은 것이다. 시간 여유도 많았다. 하지만 필멸의 탐구 생활로 불멸의 환상적 신비를 알아내고자 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여자친구, 아니 여자친구들과 놀아야 했으니까. 나는 여심일까 여체일까 것도 아니면 여복일까? 여자에 대해서 피곤한 괴물의 나른한 마성이 꿈틀거리는 걸 느꼈다. 바로 그녀들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발칙한 궁금증이 도진 것이다. 세상에 다시 없는 한때였다. 회상을 참고하자면 사심 많은 애정을 솜사탕 같은 사랑으로 착각하는 일은 대체로 그 끝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은 성격이 전혀 달랐다. 상황이 그러지 않고 배기겠나. 게다가 그녀들은 모두 미녀임과 동시에 선녀였다. 그녀들은 이성에 대한 호감을 예외 없이 사랑으로 발전시키는 아가씨였다. 어김없이 로맨스를 연출해야 했는데 문제는 난 몸이 하나라는 사실. 하지만 이건 보통 기회가 아니었다. 한두 명이 아니었고 또 모두 준-비너스급이었기 때문에 개중에 유부녀가 있는지, 이혼녀라면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줘야 하는지, 미혼녀와 처녀 등등 누가 누구인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즉 나는 정신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내가 바이런식 풍운아로 재탄생했냐고? 나는 카사노바가 아니다. 하지만 나는 남자였다. 것도 그냥 남자가 아니라 상남자. 마음이 약간 흔들리긴 했으나 나는 마음이 많이 흔들렸다. 어쩜 생각은 이미 어딘가로 떠나버렸다. 그래서, 어떻게, 계획을 짜서, 뭔가 진행해서, 그렇게... 음! 생각이 많아졌다. 행동에 옮기는 일만 남았다. 단계도 보였고 진도도 훤했다. 식은 죽 먹기를 실행에 옮기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밀었다 당겼다, 들었다 놨다, 쥐었다 폈다! 그저 먼산만 쳐다봤을 뿐. 그런데 아마 내 방심 때문이었을까? 어느 날 그녀들이 내게 진짜 운동을 가르쳐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혹시, 사랑이 시작됐는데 스포츠로 비유하자면 그 사랑은 무엇일까 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내 컬럼을 읽었을까? 그럴 리는 없는데. 그건 아직 미스테리아에 보내기 전인데. 그야 어쨌든 나는 마다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사랑이 아니라 운동을? 뭐 몸풀기로 시작한다고 생각하며 된다. 그것도 각자 종목이 달랐고, 게다가 모두 일대일로 운동하길 원했으며, 심지어 어떻게 우연의 일치인지 시간이 하나도 겹치지 않았다. 따라서 난 복잡하게 짱구를 굴리고 잔꾀에 골머리를 앓지 않아도 괜찮았던 것이다. 하! 이를 어쩐다? 그렇더라도, 그 서사와 시시콜콜한 수다를 모두 옮길 수는 없고, 긴밀한 감정의 교감과 달콤한 앞날에 대한 전조는 생략하는 바이다. 
   이때부터 분주한 나날이 시작됐다. 눈코뜰새없이 코치 겸 선수 생활에 돌입했으니까. 하늘이 지켜보건 어쩌건 난 내 마음 속 영원한 사랑한테 떳떳했다. 왜냐하면 이건 모두 심오한 문학을 위한 밑그림에 해당하는 학술적 가설에 따른 범례적 드라마일 뿐이었기 때문이다. 난 정말 현실을 가상 현실로 착각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나는 넘어야 할 선을 하나도 넘지 않았다. 하지만 단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는 단둘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그녀들이 비록 수다쟁이 소질이 다분할지라도 어디에 광고하고 친구한테 발설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 세상에 비밀이 어딨어? 인정한다. 대체로 세상에는 비밀이 없다는 걸. 그래도 난 다소곳이 원했다. 불안불안하지만 지금 난 몹시 떨고 있으며, 그녀들의 입이 무겁기를 바랬다. 지난 사랑이 흠잡힐 과거인지 추억일지 분간이 어렵다는 걸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말이다. 
   여기서 잠깐 필름을 빨리 돌려서 요점만 말하자면 그와 같은 달콤한 호시절은 그리 길지 않았던 것이다. 오히려 그녀들이 내게 사랑을 가르쳤고 난 개인교수를 받아 사랑을 학습하는 그래, 뒤늦게 모범생 흉내나 내고 있었던 것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어느 때 느닷없이 한날한시에 그녀들이 더 이상 운동을 같이 하자고 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올 것이 왔다. 왜 안 오나 했다. 그래도 찡했고 그래도 짠했다. 내가 먼저 연락하고 기다리며 재촉도 해 봤다. 심하게 하지는 않았다. 다 허사였다. 난 허당이었다. 허세가 들통났을까? 그건 아니다. 나는 허세보다 허영심을 두둔하는 보기 드문 남자니까. 난 그 즉시 들려졌다 놔졌다, 밀렸다 당겨졌다, 쥐어졌다 펴지고 있었다. 정신이 없었다. 어지러웠다. 아찔했다. 쥐락펴락? 당해보니 알겠다. 그녀들은 고수였고 난 하수였다. 난 고단수에 걸려든 것이다. 것도 완전 딱 걸려들었다. 난 느꼈다. 분명 뭔가가 있었다. 그런데 그 어떤 무엇을 도저히 짐작할 수 없었다. 가늠이 안됐다. 분석도 불가했다. 난 내팽겨치고 말았던 것이다. 느낌이 왔다. 개밥에 도토리? 하지만 매달릴 수는 없었다. 이건 숙명이니까. 대결은 시작됐다. 명승부이길 바랬다. 비록 내가 낚였지만 난 월척으로 성장해서 역풍을 날릴 것이다. 무당만 살을 날릴 수 있는 건 아니고, 무당도 무당 나름이다. 그 어떤 점성술사라도 지금 기분이면 난 얼마든지 맞장 뜰 수 있을 듯 했다. 내가 좀 흥분했나? 어떻게 내 입에서 그런 저속한 표현이? 흥분한 게 맞다. 그럴만 했으니까. 어쨌든 나는 고비를 넘길 것이다. 그래야만 한다. 그렇다고 중간에 일이 마음대로 풀리지 않는다고 저주를 퍼붓거나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아무리 봐도 일이 점점 재밌어지고 있었으니까. 혼잣말은 생략하자. 그렇게, 경기 중간에 댄스 타임이라고 생각하며 나는 작전을 짜기 위해 두문불출에 들어갔다. 


   8

   나는 최근 서핑을 하러 겨울 바다에 갔다 왔다. 남자친구들을 만났고 가벼운 담소를 나눈 후 헤어졌다. 도시에도 갔다 왔고 험프리의 뚜껑 없는 차도 타 봤다. 그리고 컬럼을 작성했고, 여자친구들과 운동을 하며 밝고 건강한 한때를 보냈다. 왜 갑자기 그녀들이 연락을 뚝 끊어버렸는지 조금은 궁금했으나 나도 마냥 한가한 아저씨일 수는 없으니 다시 일에 정진하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근래 들어 왜 작품이 잘 써지지 않는가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다시 블로그에 소설을 연재할 수 있을까? 소설이 잘 써지지 않는 이유가 혹시 그녀들 때문일까? 답은 알 수 없었다. 뭐 이젠 권태가 반가웠다. 하지만, 타성에 굴복하고 쾌락에 의지하여 난 다시 에로비디오의 수하에 자발적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원래대로라면 나는 그래야 했다. 뭐의 수하? 그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들리지 않는 것을 추측하며, 알 수 없는 것을 꿈꾸는 열망에 가슴이 부풀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런데 나는 허락되지 않은 걸 탐하고, 보지 않아도 될 걸 기웃거렸으며, 또 다시 청각이 제멋대로 예민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알고 있었다.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이 바로 그거라고. 그건 무엇? 바로, 천혜의 행운이라 포장해도 속아 넘어갈 비장의 화술과 펄럭귀의 조합! 지금은 침체기였다. 여간 해서 탈출하기 힘들 것만 같은 슬럼프였다. 오래 갈 조짐이 가물거리는 걸로 봐선 영 심상치 않았다. 그렇다고 구체적인 불길한 전조이자 비탄의 징후는 없었다. 그러나 불안했다. 이대로 영감이 사라져버린 건 아닐까 라면서. 
   내 문학은 응당 그래야 했다. 아담의 인문학과 이브의 일기가 만나서 애절한 사랑 이야기가 탄생해야만 했다. 허나 그건 희망 사항에 불과했다. 그러니까 이게 다 뭔가? 혹시 이게 다 내가 미스테리아에 연재한 수필 때문 아닐까? 아닌가? 아닌 게 아니다. 맞다. 그렇다. 확실하다. 분명했다. 난 옛날 내가 건넨 한마디에 단짝이 움찔하며 반문하던 기억이 났다. 우린 당시 제일 친한 친구였고, 사업1을 같이 하다 독립해서 각자 삶을 살다가 다시 만나 사업2를 같이 하던 때였다. 친구1은 내 단짝, 난 친구2, 그리고 친구3 이렇게 삼인조 동업이었다. 그 동업은 친구3의 이끔으로 시작됐다. 화술이 좋고, 일에 대한 재능도 뛰어나며, 사랑에 대한 열정은 물론 아버지 세대식 영화배우 스타일인 친구3의 주도로 의기투합해서 시작된 결과였다. 물론 끝은 좋지 않았다. 난 그때 단짝에게 그랬다. 사업1부터 사업2까지 잘 풀리지 않는 기구한 운명이 어쩌다가 이렇게 됐는지 쩜쩜쩜. 한데 녀석은 뜬금없이 그랬다. (사업1부터 중간의 방황과 사업2까지 잘 풀리지 않는 고난) 그게 다 나 때문이란 말이냐? 라고. 난 그런 의도로 꺼낸 말이 아니었는데, 녀석은 왜 그렇게 들었는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사업1을 같이 할 때 실장으로 불리던 분의 대사가 기억났다. 누구가 욕심이 많지, 라고. 난 우리를 말하고 싶었는데 청자는 왜 그렇게 내 말을 곡해했는지 아직도 의문이다. 그야 뭐 화자 잘못일 테지. 그건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아니겠다. 단지 청자가 고깝게 들었을 뿐. 시작부터 당시까지 같이 어려웠으니까. 아니다. 그게 아니다. 사업1의 동업에 대한 어떤 특정 불행에 대해서 내가 혼자 독박 쓴 일에 대해서 내심 생각은 있었던 것이다. 뭐한 놈이 뭐한다고, 그런 일을 왜 하필 유독 내가 많이 당해야 했나, 어쩌면 우연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다 지난 일이다. 아니다. 대부분 궁짝이 맞았고 재밌고 좋았지만 다툼의 소지는 잠재되어 있었다. 특히 친구1의 장기는 허세, 나는 허당의 약점을 놀리는 데서 짜릿한 즐거움을 느꼈는데, 잘 참다가 어쩌다 한번 녀석은 뚜껑이 열렸다. 이제 보니 그 뚜껑은 내가 열었다. 잘 열리지 않길래 계속 내가 두드렸던 거네. 참 내! 무슨 마법의 참깨도 아닌데 말이다. 소원을 들어주는 정령을 부르도록 알라딘의 요술램프의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 열었다 닫았다, 그래서 친구의 뚜껑도 열렸다 닫혔다 그랬었구나. 이제 와서 생각하니 말이다. 마법사에게 빌린 반지는 나의 말이었고, 정작 나타난 마법의 정령은 뚜껑 열려 흥분한 허세남이었네 그려. 하지만 자주는 아니었다. 거의... 딱 한 번이었다. 다 농담으로 넘어가고 완전 뚜껑 열려 흥분한 건 그게 다였다. 아니다. 대충 두 개 정도 됐다. (격분해서 잠깐 울컥하며) 늬는 왜 사람 단점을 갖고 뭐라뭐라 그러냐, 그걸 포함해서. 그러다가 수도 없이 당하니까 방법을 터득했겠지 뭐. 난 그때 허영심이 내 기반이었고, 당시 절찬리 방영된 인기 절정의 TV드라마를 감명 깊게 봤었고, 친구들과 방황했던 시절이었다. 인기? 인기라는 이름의 초등학교 친구도 생각난다. 아무튼, 녀석은 다 좋은데 질투심, 경쟁심, 허세 이런 부분에서 아쉬웠다. 많이. 그게 다 그냥 허당이라서 그런 거였다.
   여기서 살짝만 부언하고 넘어가자. 도대체 왜 친구의 뚜껑은 열릴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해서. 한번 열고 두번 열고 계속 열었다. 그건 곧 내 삶이었다. 숙녀의 마음에는 노크를? 그건 옳다. 그럼 마초의 마음에도 노크를? 그런 게 어딨어! 그러니까 난 이중 인격이었나? 여자에겐 진공청소기를 남자에겐 커피포트를? 저런 저런! 그러나 내 인생, 우정에 대하여 어디서 꿇리지는 않았다. 단짝의 총량과 밀도는 적어도 상중하에서 상이었으니까. 중간만 가는 친구는 내 상대도 안된다. 게임 자체가 성립될 수 없다. 그 때문에 우정이든 사랑이든 서로 좋다가 서로 열 받는 일이 많았을지도 모르겠군. 하지만 그게 다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던 거다. 친교 참 어렵게도 해 왔구먼. 그 까다로운 취향 때문에 허세와 허영이 충돌했나 보다. 그냥 허당과 은근 허당은 이래서 조마조마다. 안 그런가? 아 조마조마! 그래도 으쌰으쌰 열이 통했으니까 우정과 사랑을 양쪽에 꿰차고 인기를 추종했음. 우정에 열광하고 사랑에 몰입했나 아니면 그 반대였나. 과장은 이쯤에서. 그러니까 배운 건 허풍 밖에 없다? 아 나 이런 머저리 같으니라고! 우정이든 사랑이든 진득하지 못했고, 뭐든 종결이 안됐으며, 슬렁슬렁 건너뛰기만 했구먼. 취미는 속성 인생은 독학이었으니까. 사과나무를 심고, 바나나도 따고, 딸기잼에 빠져 허우적대다 타인의 아이스크림을 부러워하더니만, 결국 벌인 일은 많았지만 성과가 빈약했다. 어쩌면 못 먹는 감 찔러나 보는 패기가 부족하고, 낭만과 이상을 추구하는 배짱에는 소심했던 게 아마 다 그 때문 아니었을까? 제발로 굴러다니는 호박이 듬성듬성 끊이질 않았다는 점. 간간이 4번 타자 다음에 드문드문 보너스가 이어지니 최고의 보물을 기다릴 수 밖에 없었음. 뭐, 뭐라고? 그 의구심도 친구한테 배웠구만. 그게 나 때문이란 거냐!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잔기술만 곁눈질로 익히고 뭐든지 따라하고 흉내내고 베꼈구만. TV 보며 전문가들이 닥치는 데로 지식을 습득하는 것도, 영화 보며 주인공들의 멋져보이는 열연도 다 본뜨느라 바뻤음. 누가 시킨 일도 아닌데 말이다. 하지만 내 마음은 순수했다. 또 솔직했다. 물론 속으로만. 그건 정직한 심성이 아니라 음흉한 심보인가? 아니다. 왜냐하면 친구들은 흑심 일색이 분명했지만 나는 그런 게 대세였으니까. 호감과 사랑과 낭만 그리고 탐미주의, 선망, 허영심, 팔랑귀 기타 등등. 그러므로 나는 마담에게 신청하고 싶었다. 3박자 춤은 곤란하더라도 3분의 마법인 유행가를. 제목은, 다음 사람에게는! 그러나 마담은 바뻐. 너무 바뻐. 그분 인기 좋은데 한가할 리가 있나. 하여 나 같은 허접한 손님은 통 만나주지를 않음. 클럽 입구에서 이미 입장 금지 당함. 언제까지 나비넥타이를 맨 웨이터 에르메스씨한테 짱돈을 찔러줘야 하는지, 참말로 신세 한심하다. 처량한 내 인생, 누군 뭐 좋은 줄 알어? 다 거짓말이었음. 그러니까 뭐가? 찬사가! 뭐 어쨌든 그래서 어쩌다 만난 귀여운 (여)바텐더는 신청도 안했는데 그러더군. 오빠를 보면 딱 그 노래가 생각나. 막 그러면서 웬 노래를 트네? 곡명은 트러블 메이커! 뭔 메이커? 아, 아아, 아아아 제발! 그 음악은 제발 틀지 마세요 DJ! 하여간 말은, 당시 하이파이브했던 게 누군데! 하다 하다 이제는 청승까지, 관 두자. 때려쳐. 그만두면 될 꺼 아냐, 뭐가 어쩌고 어째?... 드라마도 너무 많이 봤다. 차라리 회사를 다닐까? 그냥 말이 그렇단 얘기. 아무튼, 난 탐스런 열매와 고귀한 결실, 사랑과 우정의 끊임없는 친밀감을 원했는데 왜 매번 결과는 분란이냐고. 인생 참 미치겠구만 그래. 아니 왜? 그러니까 너무 각별한 기억 때문에? 우리 반 더블에스의 눈부신 엉덩이와 우리 동네 삼총사 친구의 후라이팬에 덴 엉덩이 때문에? 그래서 앞에서 고백을 해야 하는데 뒤에서 뭘 자꾸 훔쳐보느라 다 날 떠나간 건가? 작별 인사도 없이? 설마 바로 그래서 지금 롱패딩 점퍼가 유행을? 망상도 정도껏 하자. 무슨 그런 개 풀 뜯어먹는 세계3대 후라이팬 같은 소리를! 말 같지도 않은 말은 이제 부디 자중할 때도 됐다. 오 제발!
   사람의 생활이 그렇다. 세상사는 그럴 수 밖에 없다. 만개한 데이지꽃의 화사함과 나팔꽃 연보라색, 제비꽃 보라색의 선명함과 정반대의 어려운 시절을 겪고 있다면 윤리적이랄지 일관성이랄지 그 어떤 기준선은 내려갈 수 밖에 없다는 것. 괜히 유유상종하는 게 아니다. 어떤 과함이나 예외가 아니라면 선입견은 지혜고 색안경은 슬기다. 하지만, 일상에서 그걸 감안해야 한다는 걸 우리는 잘 알지만 곧잘 잊어먹는다. 낯선 타인이 갑자기 과민 반응을? 아 저분이 대체 왜 이러실까, 혹시 저분께 최근 비운이 스쳐간 건 아닐까, 그 보다는 먼저 옮고 그름의 타당한 이치 먼저 따져서 감정이 움직이기 쉽다. 이해력은 탄력을 잃어버리고 포용력 역시 움츠려들기 쉽다는 걸 잊지 않기. 적어도 나이에 비례해서 내 이성과 감성을 원활히 제어하는 게 이롭다는 건 대체로 옳다. 좀 더 심화하자면 때와 상황에 따라 단순히 행복한 환경 뿐만 아니라 생활 습관, 기후, 기록의 유무, 인습, 형편등 그 기준선의 목록은 줄어듬보다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는 걸 될 수 있으면 선험적으로 아는 게 좋다. 그 쉬운 예는 잘 아시다시피 많고도 많다. 내 여자친구는 진짜 천사가 아닌지 의심스러워요, 우리 남편은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그 말도 맞지만 원래 인간의 사고 체계는 상당 부분 불합리함을 전제로 작동한다는 걸 감안하면 된다. 말은 쉽고 행동은 덜 쉽지만 말이다. 져주는 경륜이 다른 게 아니고, 접고 꺾는 관록미가 특별한 게 아니다. 친구-지인 사이에서도 미안하다, 잘못했다, 존경합니다, 부럽다, 솔직히 질투심이 샘솟는다, 라고 먼서 숙이고 들어가서 꼭 비싼 술값은 어떡하다 친구-지인이 내게 되는 우정과 사교도 드물지 않듯이. 맙소사, 혹시 습관적으로? 대체 누구야 그 인간! 친구는 그런다. 내가 지면 내가 져준 거 알지? 내가 이기면 늬가 져준 거 누가 모를 줄 아냐! 수평이 아닌 수직적 권력 관계가 없잖아 있다 그러면, 진짜 져 줘야 할 땐 극적으로 절묘하게! 더구나 현실은 언젠가 사극도 되고 코메디도 된다. 여러분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자 나를 따르라 돌격 앞으로, 그러고선 선봉을 맡았던 그분은 저 멀리─더 멀리─아주 멀리 아예 안 보이는 곳으로. 젊음의 행진을 했던 사람들은 뚤레뚤레 서로 쳐다본다. 그분 대체 어디로 갔냐면서! 어디서 많이 보고 듣고 읽은 듯한 익살이군. 여러분 이게 말이나 됩니까,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자 우리 모두 들고 일어섭니다? 워─워─워! 저 우리가 누구인가 시시때때로 바뀐다는 게 어떤 값싼 풍자의 핵심일지도. 그런데, 누굴 만나든 진짜 져주지만 시샘 받는 역할을 꼭 한번 맡아 보고 싶다? 타락한 천사처럼 파란만장함을 숨기는 악역을 나도 한번 어떻게 맡아 보고 싶다? 그건 종목을 바꾸면 된다. 운칠기삼으로! 그러면 은근 허당 근처에라도 갈 수 있으니까. 한턱에 대해서 송사리는 내가, 대물은 친구가! 허나 실제 놀이에서는 그 반대로 대물은 나의 천명, 송사리는 너의 운명! 좋든 싫든 고수와 하수의 차이는 더 나중 드러나는 법이다. 마치 연애도 멀리 보고 집단지성으로 작전을 짜는 세력이 유리하듯이. 뭐 단타 매매와 장기 투자는 물론 현물 매매와 부동산과 더불어 선물 옵션으로도 모자라 애첩까지 모두? 이 양반 이거 이거 안되겠구만! 명분, 실리, 위상, 기분등 애마를 뭘로 볼 것이냐에 따라 개인적으로 미묘한 차이는 있겠지만 공통적으로 핸디캡은 누구나 모를 리 없다. 공석에서는 더 순화하겠지만, 그러나 사석에서는 이렇게 행복한 비명이 들릴 수 있는 일도 개운하진 않지만 가능하다. 그랑프리는 매번 양보하고 싶고, 이젠 정말 지겹고 짜증나고 지긋지긋한데 뭐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어쩔 수 없이 받았다, 나도 싫지만 이젠 정말 귀찮지만 진짜 신물이 나지만 그래도 형식이니까 뭐라뭐라? 재수 없다! 완전 매를 버네. 어쨌든 그 우정은 길었고 친숙했지만 어쩔 수 없이 삐걱거렸다. 녀석은 계속 다큐멘터리 동물의 세계에 남아있기를 고집했으니까. 나는 어린이의 능청과 아저씨의 능글능글함에서 중간이고 싶었으니까. 우린 가는 길이 달랐고 지향점도 달랐다. 아 잠깐 잠깐 여기서 잠깐...... 
   설마 그럼, 지금 나도? 가서 따질까 말까? 그러지는 말자. 왜냐하면 첫째와 둘째에 대한 가설을 이론으로 발전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가설은 이렇다. 
   첫째, A)미스테리아에 연재하는 수필.  B)소설.  A와 B의 밀접한 연관성. 정확한 확증은 없고 입증은 어렵지만 분명 뭔가 있었다. 그리고 
   둘째, 여자친구들과의 감미로운 우정과 은은한 애정이 갑자기 식어버려서 내 소설 집필이 일시적 휴지기에 접어든 점. 
   첫째는 A 때문에 B가 발생한다는 상관관계를 내가 명확히 증명할 수 없었다. 둘째는 애교 만점이던 내 양떼들 아니 여자친구들이 느닷없이 연락을 뚝 끊어버렸다는 게 단지 서운할 뿐이지 문학 집필이 그것과 큰 관계가 있다? 것도 불분명했다. 단지 불쾌할지도 모를 정찰은 얼마 만큼 불가피하고, 내내 근본 원인에 대한 추측은 멈출 수 없으며, 슬럼프를 탈출할 때까지 미스테리아를 내내 탐닉해야 한다는 점은 인정됐다. 지금은 밀착 마크의 시기가 분명했다. 일명 정찰의 시기. 잘하면 첩보를 입수하는 거고, 못되도 추종 세력을 다시 결집해서 전성기를 위해 전진. 돈만 있으면, 여건만 되면 경쟁사 하나 차려버릴 텐데, 그런 생각 해 보지 않았다? 부정하진 않겠다. 그러나 좀 더 차분히 생각했을 때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잘 모른다는 점, 아마도 거기서부터 착실히 원인을 따질 필요가 있다. 따라서 나는 미스테리아에 보낼 수필을 폐기했다. 기다리는 사람도 없는데다 어디까지나 그건 부업일 뿐이었다. 어딘가 모르게 그 정기적이고 꽤 짭잘한 고료가 내 발목을 끈질기게 부여잡고 있는 듯한 느낌은 차마 지워버릴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다 보니 배보다 배꼽이 더 커졌고, 일이 심하게 꼬여버린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 다음에 보낼 단문의 제목이 뭐, 악마는 양철북을 읽는다? 삭제. 이 파일을 휴지통에 버리시겠습니까? 예스! 휴지통 비우기, 예스! 하드 디스크 포맷? 그건 귀찮았다. 하드 디스크 폐기? 누가 알면 결벽증이라고 오해할 수도 있는 일이니까, 통과. 어쨌든 나는 컬럼 파일을 깔끔하게 노트북에서 지워버렸다. 후련하다. 속 시원하다. 이제야 숙면을 취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돼지꿈이라도 꾸면 복권을 사야 한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없는데, 이런 이런! 
   그런데 괜히 지웠나 라는 생각이 자꾸 날 귀찮게 했다. 소액이지만 그건 거의 모종의 생활비에 해당하는데, 그게 바로 내 품위 유지비인데, 내가 왜 그런 무모한 짓을? 이건 좌절에 해당했고 나는 자책에 도달했다. 컬럼 삭제에 대한 회한은 거의 사랑의 미련과 닮은 것만 같았다. 그러나 나는 내게 엄해야 한다. 약해지면 안된다. 사춘기 때 문구점에서 어느 중년 여인에게 싱겁게 생겼네 라는 얘길 들은 걸로 족하다. 나는 어른이다. 일할 땐 일하고 놀 땐 놀아야 한다. 말로는 일할 때도 놀고 놀 때도 논다고 했지만, 통장 잔고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찌 됐든 결론은 나는 더 이상 아마추어가 아니라는 점. 요점은 나왔으니 뭔가 찜찜하긴 해도 모양새는 고민 해결. 하지만 이제부터가 진짜 승부다. 전설의 도시, 신비한 마법, 놀라운 모험, 미지의 힘 그리고 천재성의 비밀까지. 그건 모두 미스테리아 사무실에 있다. 멀리 갈 필요 없다. 


   9

   수필이 저급하고 순수문학이 한수 위라는 게 아니라 전제는 그것이다. 나는 처음부터 소설을 지망했다는 것. 그런데 왜 글이 써지지 않는가 라는 물음에 대해서 최근 답을 얻었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그건 모두 미스테리아 때문일 것이다. 결과적으로 나는 삼류 칼럼니스트로 전락했으니까 말이다. 투정에 관대하게 불만을 뽑아보자면 불만족스런 점은 하나 더 있었다. 바로 친구들끼리 모여서 놀지 않고 개인 플레이 위주로 논다는 점. 더 이상 우린 시트콤의 주인공일 수 없다고? 그건 오락산업으로부터 구애를 받지 못했으니까 나이랄지 재능이랄지 꿈의 실현과 썩 무관한 일이다. 그러므로 오히려 시트콤 주인공처럼 놀아도 된다. 그럴 수 있고, 그래야 한다. 애들도 모두 어디서 썩 빠지는 인물들은 아니었고 잘 하면 조명을 받을 테고, 따라서 전망은 괜찮았다. 그런데 어쩌다가 이렇게? 정리하자면 문제는 이렇다. 
   첫째, 친구들끼리 모여서 놀고 아지트에서 함께 무엇을 하며 놀 것인가를 논의하지 못한 채 모두 개인주의자로 신비주의를 혼자서 탐색한다는 점. 둘째, 미스테리아에 연재하는 우스꽝스런 칼럼 때문에 나는 소설이 잘 써지지 않는다는 점. 첫째는 현황을 받아들이기엔 영 석연치 않고, 둘째도 그 과정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모두가 종점은 미스테리아였다. 나는 이 받아들이기 곤란한 예술의 장벽과 오락의 불운을 주관하는 섭정을 깨트릴 것이다. 편집장한테 따질 것이다. 기존의 생활 리듬과 유쾌한 삶의 질서가 변질된 원인을 찾아낼 것이다. 나는 할 수 있다. 시대를 앞서가고 1년 후를 내다보지 않아도 된다. 그녀들한테 진을 치고 달라붙으면 그만이다. 이 일만 해결하면 새로운 인생은 따논 당상이다. 따라서 이제부터는 어리숙하게 굴면 안된다. 성숙해져야 한다. 다시 원고 청탁이 들어오면 단호하게 거절할 것이다. 늬가 뭔데 나보고 글을 써라 마라야? 라고. 마라? 마라는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마라...가 워낙 수수해서 그렇지 좀 꾸미면 괜찮긴 꽤 괜찮은데 말이야. 에고머니나, 나 좀 봐 봐! 마라가 현-편집장이지. 아 그동안 만났던 친구들과 친했던 숙녀들과 좀 더 교분이 두터웠던 누군가가 그렇게나 많았단 말인가? 아니다. 단지 착각일 뿐이니까. 앗 그만. 옆길로 빠지면 안된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나와 미스테리아, 둘 중에 하나는 쓴맛을 봐야할지도 모른다. 어쨌든 나는 그곳으로 찾아가야만 한다. 난 미치지 않았고 편집장도 바보가 아니다. 그래서 맨손으로 들이닥치면 안된다. 그러기엔 뭐하니까 연분홍색 카네이션과 1800년대 초반 오페라 원작의 원본, 아 그건 원본이 없을 테니 복고판이라도 어떻게 구해서 들고 가야겠다. 그런데 지역에 따라 카네이션을 긍정하지 않는 곳이 있다고 어디서 읽은 기억이 나는데, 설마 그걸로 트집잡진 않겠지? 편집장의 지성과 미스테리아의 교양을 믿어야지 별수 있나. 예전의 친밀감에 타격을 입었지만, 혼자 생각인가 그래도 더 친해지진 않았으니까, 침체기를 극복할 수만 있다면 다 괜찮다. 무슨 일이든 감수할 수 있다. 혹시 수틀리면 추리소설 문단의 악동 누구누구의 비밀, 악성 저질 잡지 머머머의 뜬소문을 어딘가에 제공하는 수 밖에. 근데 걔들에게 뭔 비밀이 있다고? 아아 아직 갈길이 멀구나. 좀 더 치밀하게 작전을 수립해야만 한다. 이쯤 되면 나는 미스테리아란 제목으로 추리소설 하나를 미친듯이 써야 하는데, 그걸 들고 떡하니 나타나서 큰소리라도 치던가 아담하게 (자청하고 부탁해서) 기자 회견이라도 열어야 하는데, 그분은 영 소식이 없다. 추리소설은 커녕 실험작 추측소설도 어려운 형편이니 이거 원! 나는 허언증에서 옛날에 졸업했지만 다시 거기에 복귀하고 싶어하는 것만 같았다. 그게 정 어렵다면 어떻게 허언의증이라도. 머머증에 이어 머머의증? 완전 허당 증후군이 따로 없구만. 가지가지 한다. 어디서 뭔 말 같지도 않은 이름 만들기야? 누가 아니래! 저번에는 다큐멘터리 소설 이번에는 교양 소설? 소설 쓰고 있네. 소설을 써라 소설을 써! 이래서는 안된다. 공부한다고 폼만 잡고 정작 공부를 하지 않으면, 그러면 죽도 밥도 안된다. 삼천포로 그만 빠지자. 결판을 짓고 매듭을 풀어야 한다. 
   간결하게 추론해 보자. 첫째, 왜 우리들이 따로 놀았나. 둘째, 뭣 때문에 여자친구들이 날 조롱이라도 하는 듯이 내 마음을 가지고 장난치는 것도 아닌데, 운동을 같이 하다가 연락을 갑자기 뚝 끊어버렸나. 알아내야 한다. 알아낼 수 있다. 하면 된다. 할 수 있다. 형편을 따져 보자. 이름 하면 연상되는 동사랄지, 인물과 연결되는 심상, 개인과 평판에 걸맞는 브랜드를 발성해 보자. 나는 가난하고, 실비아는 유쾌하며, 마라는 친절하고, 바바로사는 다정하고, 홀리는 돈까지 많으며, 셜리는 끝내주게 재미있고, 남자친구들은 한마디로 믿는 구석이 있다. 아니 많다. 그럼 난 뭔가. 오오 저런! 저런 저런 저런! 객관적으로 따져 봐도, 계량적으로 측정해 봐도 나만 밀려날 수 밖에 없었구나. 난 그것도 모르고, 집에서 공책에 뭐? 요즘 잘 모이지 않고 따로 논다고? 참 내 그런 엉성한 추리력으로 뭘 하겠다고! 거리에서 마주친 어느 숙녀를 덱스터의 여동생과 닮았다고 느꼈던 것도 다 내 환영에, 허상에, 착시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제 그만 상상의 세계에서 빠져나와야만 한다. 전모는 드러났다. 정체는 밝혀졌다. 하지만 확실히 마침표는 찍어야 하니까 나는 미스테리아 사무실로 출발했다. 
   가는 동안 아무런 생각도 없었다. 그리고 도착했다. 
   전후 사정을 불문하고 나는 불시에 미스테리아 사무실에 들이닥칠...려다가 심호흡을 하기로 했다. 극적인 순간 아닌가. 내가 불청객이든 이방인이든 이건 한번은 거쳐 가야 할 운명이었다. 난 그것을 받아들이기로 했고 편집장이든 조수든, 정담이든 하소연이든 기필코 한 가지 성과를 얻고서 물러날 테다, 라고 다짐했다. 지금 미스테리아 사무실 문 앞이다. 떨린다. 손에 땀 난다. 발가락 사이에서도 땀 난다. 뒤에서 누가 날 부르나? 다음에 다시 올까? 산책하는 소일을 빠트린 건 아닌까? 지금 혹시 누군가 날 찾아오진 않았을까? 마감일에 쫓겨 바쁘게 일하는데 괜히 방해되는 건 아닐까? 아니다 아니다. 그럴 리 없다 그럴 리 없다. 그럴 것이다 그럴 것이다. 물러설 수는 없다 없다. 간다 간다. 들어간다 들어간다. 진짜다 진짜다. 장난 아니다 장난 아니다. 그런데 혹시 문을 열었는데 소파 위에서 막... 그런... 그... 못볼 걸 보게 된다면? 또 또 또! 자, 진짜, 들어간다. 
   나는 한치의 멈칫거림없이 문을 열었다. 벌컥! 
   그랬더니, 그래서 어떻게 됐을까? 오오 이럴 수가! 아니 어떻게 나한테 일언반구도 없이 자기들끼리... 얘네 정말 너무하네. 아아 무안하도다. 얼굴이 빨개졌다.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바로 미스테리아 사무실에는 남자친구들과 여자친구들이 모두 모여서 파티를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모두 너무 즐겁게 파티에 열중하고 있어서 문을 확 열었던 날 알아보지 못했다. 다만 흥겨운 분위기에 덜 몰입했기 때문인지 어쩐지 마라와 실비아는 나와 눈이 마주쳤다. 완전 재밌게 놀다가 나 때문에 흥이 깨진 듯 시간이 정지되어버리거나 막 그러지는 않았다. 이곳이 새로운 아지트였어? 이미 시트콤을 찍고 있었네? 나만 빼고? 오오 맙소사! 
   좌중을 휘어잡고 실비아가 무슨 재미난 얘기를 속삭이고 있었고, 녀석들은 폭소를 음악은 2박자부터 3박자 장조까지, 복장도 산타부터 할로윈 괴물까지 참 다양했다. 마라만 뭔가 이상한 내 표정을 읽었던 것일까? 잠시 분위기를 깨지 않고 조용히 그곳에서 빠져나와 날 따라왔다. 난 당연히 거기서 도망쳐 나왔다. 집으로 뛰어 갔다. 마라가 쫓아올 리는 만무했고, 잠깐 멀뚱히 쳐자보다 들어갔을 것이다. 저 인간 왜 저래, 쟤 뭐야, 아마 그러면서. 
   여기까지가 내가 미스테리아에 방문했고, 그곳이 아지트란 걸 알게 됐으며, 다시 오랫만에 가택감금을 시작하게 된 이야기다. 경위는 그랬다. 나는 저절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속마음을 정직하게 털어놓을 곳은 백지 밖에 없었다. 내가 지칠 줄 모르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감언이설을 늘어놓으면 듣는 사람은 오직 불확실한 독자 밖에 없었던 것이다. 부질없는 회상은 시들기 마련이고, 새로운 예감을 맞이하는 게 백번 낫다고 생각했다. 이제야 드디여 창작의 계절이 돌아온 것이다. 교향악단은 오라토리오를 연주하고, 청춘 남녀들은 NC로, 동네 친구들은 미스테리아에서, 거리의 사람들은 화기애애하고 발랄하게 때로는 남녀의 사랑으로써 선정적으로, 지나가는 한 해를 아쉬워하며 다가오는 한 해를 반갑게 고대하고 있었다. 내게 남은 건 이제 블로그 밖에 없었다. 아무리 호박이 제발로 굴러다닌다고 나까지? 그건 허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처럼 나는, 귀여운 여인의 선망과 숙녀의 질투심은 물론 고상한 여인의 동경심까지 그 모두를 약점으로 사로잡기 위해 작품 구상에 돌입했다.  


   10

   나는 가택감금을 시작했고, 언제 집으로 소포도 왔고, 편의점에 들리니 누가 뭘 전해달라네 하면서 물건을 건넸으며, 아침에 집에서 문을 열고 나가 기지개를 켤려는데 발 앞에 웬 봉투가 있었다. 그건 모두 발송인이 누군가를 밝히지 않은 꾸러미였다. 안에는 새 책도 있었고 중고책도 있었다. 제목은 이랬다. 대화체 쓰는 법, 플롯 작법을 정복하는 법, 기승전결 완성하는 법, 발단을 탈출하는 법 등등등. 제목이 다 머머하는 법이었다. 누가 보냈는지 대충 느낌이 왔다. 서먹서먹함은 시간 가면 풀릴 테고 아직은 때가 아니니까 좀 더 칩거 생활을 즐기기로 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실비아가 날 찾아왔다. 나는 사무실에서 딱히 대접할 건 없고 오렌지 쥬스를 사와서 탁자에 놓았다. 
   「오빠. 나 좋아해? 응? 솔직하게 말해 봐.」 
   「낸들 알아? 그걸 누가 알겠수? 내가? 아니면 (눈썹을 치뜨면서 무언의 반문으로)?」 
   「그거 알아요? 당신은 보면 볼수록 매력적이에요. 오빠. 이렇게 말해 줄 순 없는 거야? 응? 정말? 아닌데! 아닌 거 같은데. 아마도 참는 거 같은데? 그치? 맞지? 오빠 어떡하냐, 들켰네! 호호호.」 
   「어떻게 알았니? 나도 그럴려고 했는데, 하지만 생각이 바꼈어.」 
   「아니 왜? 오빠 저번에 미스테리아 사무실에서 파티하는 줄 알고서 그냥 돌아간 일 때문에 그러는 거야? 아니지? 에이, 설마!」 
   「아니야. 아니라고. 내가 그렇게 속좁은 남자로 보이니? 딱, 아니야. 알겠어?」 
   「지금 '아니야'가 몇 번 나왔나. 수상한데?」 
   「그래. 나 삐졌다. 완전 삐쳤어. 됐니?」 
   「되긴 뭐가 돼? 아직 시작도 안했는데. 왜 그렇게 부정하는지 좀 더 심층적으로 따져봐야 할 거 아니냐, 이 말이야. 방금 오빠가 말한 몇마디를 분석해 보자면 핵심은 두 가지야. 첫째, 날 좋아한다 그런데 좋아하면 안된다 고로 사랑이 야속하다? 둘째, 나는 미스테리아 사무실에서 내 친구들이 모두 모여서 놀고 있는 모습을 보고 삐졌다. 많이 삐졌다. 내가 못살아 정말, 이런 심정이다. 어때, 내 추론이?」 
   「그래. 둘 다인 걸로 합시다. 됐니? 아 진짜 됐냐고?」 
   「오빠 왜 화를 내고 그래? 오빠 짜증내니까 은근 남자다운 거 있지? 오 멋진데. 의외의 당당한 모습. 꽤 매력적이야. 기억해둘께. 근데 왜 이런 남자를 여자들이 지금까지 가만 놔뒀을까? 채 가도 진작 채 갔을 텐데 말이야. 왜, 닥칠까? 아님, 꺼질까?」 
   「넌 왜 아까부터 내가 할 말을 늬가 하고 있니? 대체 나한테 왜 그래? 얘가 가만 보니 은근 말발이 좋네. 어디서 배웠을까? 뭐 속성 과정 그런 거라도 숙달한 게 아닌가 꽤나 의심스럽군 그래. 혹시 너도 동기부여 동영상 찍어서 어디에서 막 나름 유명하고 그런 거 아니니? 혹시 모르니까 하는 말이야. 담아두진 마셔.」 
   「오빠. 어쨌든 이 하나만 알아주십시요. 우리가 오빠 많이 좋아한단 거 말이야. 말하지 않아도, 알지? 잊지 마. 꼭 기억하라구. 알았지? 설마 모른 체 하는 거야, 아님 정말 모른 거야? 표정을 보아 하니 모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정말... 몰랐어?」 
   「모르긴 뭘 몰라? 내가 바보니? 얘 은근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하네. 판타지는 꿈도 꾸지 마! 이제 칼럼 안 쓰기로 했으니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순전 미스테리아 좋은 일만 해준 거였어. 난, 이제, 칼럼, 안 써. 알았어? 나도 TV 연속극에 나오는 자존심 덩어리 흉내나 좀 내 보자. 응?」 
   「섣부른 호기심은 금지된 탐구욕을, 다시 그것은 경솔한 염탐을, 마지막엔 편안한 체념에 이어 고고한 달관까지 이어질 수 밖에 없다네 친구. 내 그럴 줄 알았다, 라는 정해진 여정을 설마 애초에 모른 채 출발한 건 아니겠지? 뭐가 문제일까? 이유가 뭐지? 정말 궁금하네. 오빠. 원고료 올려 줄까? 그건 전혀 문제될 거 없어. 왜? 값이 뛰었거든. 찾는 사람이 좀 되는데 이걸 어쩌지? 요컨대 고료는 무제한이이야! 너무 가파르면 재미없으니까 차츰차츰 올릴까? 2배? 3배? 아님 0을 하나 아니 두 개 더 붙일까? 말만 해! 아 진짜로!」 
   「미스테리아 시사 평론. 밝은 미래에 대한 다망한 전망은 사양하는 바일세. 흐흠.」 
   「천사의 유혹을 거절할 수는 없을 걸. 인형의 리본을 푸르든 행운을 만들든, 뭔가는 해야 할 거 아니야, 이 양반아. 오빠, 우리 좀 도와줘. 그 칼럼 때문에 미스테리아 본다는 사람이 적지 않다구. 알긴 아시나?」 
   「아 몰라. 이제 컬럼계를 은퇴했으니까 그렇게 알라구.」
   「오빠. 나 집에 안 들어갈래.」 
   「집에 안들어가기는 뭘 안들어가? 지금 대낮이야.」 
   「오빠 나한테 왜 이래? 오빠 그런 사람 아니잖아. 다정하잖아. 재밌잖아. 웃기잖아.」 
   「아니야. 나 원래 무뚝뚝해. 그리고 넌 왜 그래? 일과 친교를 한 바구니에 담지 마. 너, 편집장이 보내서 왔잖아?」 
   「오빠. 그러지 말고 우리 사무실에 놀러 가자.」
   「왜? 마라가 나 데리고 오라던? 아니면 오늘 애들 모이는 날이니?」 
   「이따금 난 눈치 없는 남자가 좋던데. 여자도 때론 은근함보다 확실함이 좋을 때가 있거든.」 
   「나도, 어떻게 알았어 오빠?, 그런 답은 바라지도 않았어. 가자. 가자고. 못 갈 꺼 뭐 있어. 남의 사무실이지만 내 집 드나들듯 드나들던 우정이 어디로 도망가진 않았을 테니까.」 
   그렇게 실비아와 나는 미스테리아 사무실로 함께 갔다. 


   11

   우리는 미스테리아 사무실에 도착했다. 그런데 편집장 마라를 만나자마자 실비아는 쥐도 새도 모르게 어딘가로 사라졌다. 마라와 실비아의 뭔가 설명하기 곤란한 전후 사정을 잘 아는 나는 굳이 마라에게 묻지 않았다. 실비아 어디 갔냐고. 그렇지만 지금 사교보다는 업무가 먼저였다. 그래서 나는 빙빙 돌리지 않고서 즉각 물었다. 왜 불렀냐고. 그랬더니 글쎄, 
   「불러? 누가? 오빠를? 아니 왜? 에이 재미없어 그런 농담. 할아버지 세대식 문학적인 농담도, 요즘 십대들이 좋아하는 재치도 아니고 그게 뭐니? 보고 싶었으면 그냥 솔직하게 말해. 보고 싶었다고. 그게 무슨 죄라도 되니?」 
   난 느꼈다. 실비아한테 속았다고. 일단 처음부터 내 기대가 문제였다. 나는 저번처럼 화기애애한 파티 분위기와 시트콤의 흥겨움이 공존할 거라는 예감 때문에 솔직히 은근 들떴다. 그런데 이게 뭐야, 남들 다 일하는데 나 혼자 놀겠다고 어리광을 부릴 수도 없고 말이야.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아마도 제일 중요한 건 품위 유지비니까, 나는 물어봤다. 
   「저기 혹시 말이야. 칼럼...보다는 요즘 허구가 대세인지도 몰라. 세 배까지는 무리고, 두 배는 바라지도 않아. 그렇지만 적어도 쩜오는, 그건 곧 최소한 신뢰에 해당하는 문제가 아닐까 라고 생각하는데. 하오나 사무실 운영에 특별히 누를 끼치고 싶은 마음은 없어.」  나는 협상에 큰 재주는 커녕 작은 소질도 없었다. 
   「그게 뭔 얘기야? 설마 클락이 자기 차를 헐값에 내게 넘겼다고, 그게 불만인 거니? 다시 되팔라고? 것도 50% 할인해서? 난 클락이 아니야. 나 봐. 검소하잖아. 사치가 나쁘다는 게 아니야. 내 입장을 생각해주라는 게 그게 썩 무리한 요구는 아닌 것 같은데. 솔직히 그 때문에 실비아랑 다퉜어. 그년이 아마 먼저 화해하자고 손내밀기는 싫고, 중재자로 널 부른 거 같은데 괘씸한 년. 어딜 넘봐? 실비아보다 내가 널 먼저 알았다. 알지? 너 아니 오빠랑 실비아가 사랑의 관계가 아닌 이상, 우리 우정이 먼저야. 알겠어? 도망갈 생각 말어. 이상한 궁리했다가는...! 넌 의리도 없니? 아, 오빠란 극존칭을 내가 참 많이도 생략했구나. 아 진짜 아무리 노력해도 애교가 통 늘지 않으니 이거 정말 미치겠구만. 미안 미안. 정말 미안. 오빠~! 너가 아니 오빠가 오빠란 말만 들으면 미쳐버린다는 예술적 기질을 내 깜빡했구먼 그래. 명심할께. 
   그건 그렇고 요즘 일은 잘 돼? 글은 잘 써져? 혹시 딴길로 샌 건 아니겠지? 새로운 개구멍을 발견했다거나 색다른 취미, 몰래한 사랑, 참신한 중독, 신선한 밤의 세계, 제2의 인생, 제3의 환희, 그런 거 있음 털어 놔. 어서. 당장! 냉큼 털어 놓으라고. 오빠~ 나야! 우리 사이가 그거 밖에 안되니? 그런 거였어? 어? 얘 안되겠네~! (안되긴 뭘 안돼!) 내게 좋은 정보가 하나 있는데, 아무나 가르쳐 줄 순 없고, 너니까 살짝 귀뜸해 줄려고 했는데 말야. 그런데 있잖아. 우리 회사 팔렸어. 그런다고 달리 바뀌는 건 없지만 위에서 압박이 들어온단 말이야. 그래서 말인데, 우리 있잖아, 고료를 조금만 깎는 건 어떨까? 그리고 주제도 좀 바꾸고. 사랑이 뭐니? 시시하게 말이야. 컬럼 하나에 사랑이란 단어가 뭐 200개? 그게 칼럼이니 낙서니? 아님 성의없는 연애편지라도 되는 거니? 참 내 요즘 애들 어떻게 사귀는지 모르니? 거꾸로 진도 빼. 얘가 얘가 완전 은둔형 몽상가로 살며 고전적 신비주의를 탐닉하더니 완전 구닥다리가 됐구만. 늬가 그래서 안되는 거야. 어? 알아? 늬 문제가 뭔 줄 아니? 어? 늬 문제는 그거야. 노르웨이풍 자연주의를 동경하고, 파푸아뉴기니의 온정과 바로크풍 낭만과 로코코식 절도를 고집하란 말이 아니라구. 늬 문제는 그거야. 말은 좋아. 시작은 괜찮아. 글은 화려해. 도입부는 뭔가 있어. 허나 그게 다야. 막 말을 듣고 글을 읽으면, 딱 그래. 이 작가는 혹시 신비론의 창시자인가? 설마 새로운 환상머신의 발명가일까? 이 양반이 바로 그 유머 감각, 센스, 문학성, 고급스런 농담, 열정, 통찰등 그 뭘로도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사랑론의 저자인가? 이분이? 그런데 그 불가사의함과 쾌활함, 아름다움, 놀라움은 모두 3초, 3분, 3시간, 길어야 삼일이 전부야. 하긴 오빠만 그러겠어? 왜냐하면 허당이란 진실은 탄로나게 마련이니까. 오빠 시카고 가 봤니? 안 가봤지? 그러면서 시카고바에 무슨 판도라의 상자라도 숨겨뒀니? 아주 거기 문턱이 닳겠다. 잘 한다 아주! 거기 바텐한테 흑심이라도 품었냐? 그런 거냐고. 그리고. 너 뭰헨 가 봤어? 뭰헨은 무슨! 뭰헨 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그러고서 함부르크 호프집으로 출근하냐? 그러고서 문학 한다고? 얘가 얘가 안되겠네. 거기 사장이 뭐라는지 아니? 아 저 인간 또 왔네 또 왔어, 내 저 인간 비싼 술 시키는 거 한번 보는 게 소원이다, 라고 한다더라. 진짜라니까. 물론 추측이고. 아무튼 오라버니 문제가 그거예요. 말만 앞서지 않나 라는 거. 몸은 여기 있고 마음은 어디로 간지도 몰라요. 저도 알죠. 허풍술은 자유란 걸. 저도 초반에는 그랬어요. 애독자 엽서에 칼럼 얘기가 보이길래, 자꾸 눈에 띄길래, 지역 라디오에 애청자 사연으로 모잡지의 칼럼 소식이 기다려진다길래, 저도 솔직히 처음엔 그런 생각했었죠. 어떤 생각요? 늬 마음대로 해 봐라! 라고. 게다가 고료도 쌌어. 심지어 미스테리아는 판매 부수도 공개하기 난감한 정도였지. 그런데 이제 상황이 바꼈지 뭐니? 새로운 사주가 그러데. 격월간이 아니라 이참에 우리 월간으로 승격하는 게 어떻겠냐고. 뭐 승격? 야, 미쳤냐?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 인간 뒤통수 한대 시원하게 살짝만 스칠려다가 가까스로 참았다구. 아 내 인내력 알아줘야 한다니까. 나도 성질 많이 누그러졌다. 나나 되니깐 참았지 실비아 같았어 봐. 뭐라도 엎었을지도 몰라. 하다 못해 온더락스 그 얼음통이라도 엎었을 꺼야. 걔가 그런 거 잘하거든. 실수하는 척 하면서 은근 열 받게 하는 거. 어째 됐든 나나 실비아, 직업적 사명감 투철해. 인성 바르고 대인관계 좋고, 사교계의 꽃이야. 어디 가 봐. 웨이터님께 인기 끝장이니까. 좌우지간 우리가 미스테리아를 사랑하는 이유가 뭔지 아세요? 네? 왜? 대체 왜? 왜 우리가 박봉을 감수하고 여기 남아있는 줄 아시냐구요! 왜냐하면, 우리는 그 쥐꼬리만한 임금 가지고도 인생의 멋과 문학인의 풍류와 젊은이의 낭만, 청춘의 꿍꿍이, 탐미적 뒷일은 물론 가냘프게라도 밤의 환락까지 모두 보장되기 때문이야. 알어? 뿐인가! 우리의 평범한 동경심은 이상의 선망을 정숙하게 키워나갈 수 있었다구. 우리는 미스테리아인이지만 각자 생활이 있었어. 인문서적을 쓰고, 밤에 재즈바에서 드럼을 치고, 권태에 대한 가설을 세우고, 타성에 대해서 실험 다음에 취미에 빠지고, 미지의 요리 명인들을 찾아 세계를 탐방하며 자유롭게 삶을 즐겼다고. 한마디로 일할 때 놀고, 놀 때도 놀기. 
   그런데 하루 아침에 바꼈네? 일복이 터진 거라구! 아니 왜? 미스테리아의 인기가 쭉쭉 올라가며, 명성을 뻥뻥 터트리고, 사람들의 추리욕을 솔솔 자극했으니까. 좋은 시절 다 갔어. 그게 다 누구 때문이라고? 늬 잘못이란 말이 아니야. 게다가 난 오빠 비밀도 몰라. 너 혹시 에로 비디오 좋아하니? 에잇 그럴 리가. 농담이야. 점잖은 분께서 무슨 그런! 그런데 실비아가 네 노트북에서 이상한 제목의 파일들을 봤다던데!」 
   「아 그거 친구가 부탁해서... 아니 그거 가짜야. 아니 실비아가 거짓말한 거야. 아니 난 그런 거 안 봐. 내가 그걸 왜 봐? 그런데 왜 몇몇 개구쟁이들이 그런 걸 보나 궁금해서 알고 싶기는 했어. 그게 다야. 그럼.」 
   「그러니까 사랑에 한껏 자극받아 고조된 기쁨과 느낌과 기분은 도저히 숨길래야 숨길 수가 없었다? 이해해. 괜찮아. 그럴 수 있어. 나쁜 일도 아니야. 그게 왜? 오빠를 추궁하는 게 아니야. 우리가 일이 많아졌다고 해서 널 나무라는 게 아니라고. 듣기 읽기 연상하기, 말하기 쓰기 생각하기, 곱씹혀 반복되니 지식과 생각의 총량이 아직인 귀인이라면 삼라만상을 알고 싶은 욕구와 호기심은 많고도 많다는 점. 그 가운데 궁금하기 짝이 없는 하나는 단연 사랑 아닐까? 라고 생각했나 봐. 누가? 미스테리아 독자님들께서. 왜냐하면 그 우스꽝스럽고 괴상하며 뚱딴지 같은 칼럼이 꼬박꼬박 미스테리아의 뒷편에 실렸으니까. 도대체 사람들 마음을 어떻게 뺐은 거지? 알 수가 없단 말야. 귀신에 홀린 건가? 요즘 세상에 귀신이 어딨다고. 아니면 사주 말이 뻥인가? 또 몰라 사재기 뭐 그런 비정상적인 술수인지도. 하지만 부담갖진 마. 제2의 미스테리아? 그건 판타지에나 나오는 일이니까.」 
   난 느꼈다. 와, 얘, 진짜, 말 많네! 라고. 작동이 시작했다. 커피포트는 가동됐고 귀에서는 피가 났다. 어쩜 화염방사기의 화마가 이런 것이란 말인가? 영화에 보면 공룡이 불을 뿜고 용이 하늘을 나르며 화염을 발산하는 모습이 나오는데, 그걸 현실로 옮기자면 이와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게 만약 이해하기 쉽고, 설득력 있고, 매력적이었다면 진공청소기처럼 내 마음을 빨아들였을 것이다. 하지마 마라의 말은 납득하기 어렵고, 들쑥날쑥 했으며, 그러나 솔깃하고 혹하며 단지 쌈박할 뿐이었다. 말을 올렸다가 내렸다가, 올렸다가 내렸다가, 다시! 내렸다가 올렸다가 내렸다가 올렸다가, 정신이 혼미해졌다. 마라의 입을 꼬매던지 내 귀를 막던지 해야지 이거 원! 즉 고품격 강연보다는 추억 속 약장수의 특징인 어수선한 달변이랄지, 천상 험구가가 난공불락의 숙녀를 꼬실려고 매우 드물게 열변을 토하여 그녀를 거의 탄복시키기 직전까지 도달했지만, 딱 속셈이 들통나서 차가운 바닥으로 스르륵 미끄러지는 웅변술, 그것과 꼭 닮았다. 따라서 내 귀는 펄럭펄럭 날개가 되어 저 푸른 창공을 날아다니는 만화영화 속 코끼리가 아니라, 여자친구한테 호되게 당하여 내내 침묵하는 남자친구처럼 듣기의 고초를 감내해야만 했다. 내 머리 위에 주전자를 올리면 금새라도 물이 부글부글 끓을 것만 같았다. 스머프를 몽땅 잡아서 부글부글, 뽀글뽀글 맛나게 향긋이 들끓는 수프를 요리한다, 그런 행복한 상상은 바랄 수도 꿈꿀 수도 없게 되어버렸다. 원고료 1.5배 인상?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뭐 깎는 게 어떻겠냐고? 아휴 이걸 그냥! 어찌 됐든 나는 편집장 마라한테 된통 당한 것이다. 결과가 그랬다. 그러나 반대로, 마라는 나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쥐락펴락할 수 있는 능력자였다. 그러므로 지금까지는 병을 줬으니 이제는 약을 줄 차례였다. 북 치고 장구 치고, 병 주고 약 주고, 뻔트 대고 개구멍 찾고, 호박 나이트클럽에 놀러갔다가 임도 보고 뽕도 따고 연예기획사에 스카웃됐다더라? 나는 마라의 장단에 놀아나는 장난감 병정이었다. 아니면 척키 인형? 어찌 됐든 이건 원맨쇼였고 나는 순 허당도 아까웠다. 그러든어쩌든 마라는 쉴 수 없었다. 독한 년! 또 수다를 시작한 것이다. 그녀는 완전 수다머신이었으니까. 
   「오빠 있잖아. 나도 입 아프네. (너도 알긴 아는구나) 아직 할 얘기가 많은데 말이야. 아, 힘들지도 돈 들지도 않는 일인데 내가 깜빡했다. (계속 깜빡하질 그랬니) 오빠란 말 실컷 듣도록 내가 오빠라고 많이많이 오빠라고 불러줬어야 하는데. 뭐 오늘만 날인가? 아니면 우리 찐하게 포옹이나 할까? 또는 어디식 인사라도? 그건 다음에 하자. 우선은 일이 먼저니까. 우리 프로잖아? 안 그래? 어쨌든 원고료는 차차 올리기로 하고, 얼굴 좀 펴라 오빠야, 표정이 그게 뭐니? 고료 깎는다는 말 농담이었어. 사람이 이렇게 순진하고 선량해서 어떡하니? 포커페이스 몰라, 포커페이스? 속이 다 보이네 아주? 비즈니스가 아니라 연애라도 했다면 큰일나겠네. 속좁은 남자의 쪼잔한 속셈이 훤히 다 보이는데 어느 여자가 도망가지 않고 베기겠어? 안 그래? (아아 또 시작했다!) 
   다 됐고. 내가 오빠한테 좋은 정보를 줄께. 오빠도 알잖아. 나도 한때 전설적인 두더쥐였다는 거. 뭐 짧긴 짧았지만 나름 현장 경험이 있다 그거지. 그렇게 알게 된 인연으로부터 내가 뭘 좀 들었어. 발은 실비아가 넓고, 난 최고의 커넥터와 중요한 길목과 접근이 어려운 제한된 지성머신만 취급한다네. 허허허. 아 이건 남자 웃음이지? 호호호! 
   그러니까 뭔 얘길하려고 그리 뜸들이냐고? 긴말 필요없고 요점만 말할께. 오빠가 픽션이 안써진다며 고심하는데 우리라고 좋겠니? 광시곡이든 환상극이든 오빠는 픽션도 쓰고, 우리는 오빠의 칼럼을 계속 싣고. 일거양득. 꿩 먹고 알 먹고. 양을 만나고 여우도 키우고.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일이야 이건. 어때? 느낌 오지 않아?」 
   마라는 내게 명함을 한 장 주었다. 거기에는 웹사이트 주소가 적혀 있었다. 회사 이름과 하는 일이 뭐라뭐라 적혀 있는데 뭔 말인지 잘 알아먹기 힘들었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거기 씌여진 내용은 이랬으니까. 
   브랜드: 아빠 뭐해? 
   내용: 마치 요정들이 귀찮게 하고 천사들과 친밀한 우정을, 사랑의 비너스와 춤이라도 추는 듯한 기분을 원하시나요? 마치, 이러다 악마와 사귈 수 밖에 없는 운명이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닐까, 살짝 걱정되며 불안해지는 심정. 그걸 알아달라고 이해해 주라며 친구에게 부탁하며 생떼를 쓰고 싶다구요? 방법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답니다. 하늘은 노력하는 자를 돕는 법. 그동안 당신께서 현혹하는 미모를 바라보는 성스러운 고뇌로 많이도 괴로우셨다면 이제는 한발 더 나아가 젊음과 환희와 밤의 쾌락은 물론 열정과 사랑과 황금부터 천상의 비밀까지 그 모두를 성취할 수 있도록 저희가 도와드립니다. 길게도 걸리지 않습니다. 비싸지도 않습니다. 어렵지도 않구요. 불가능할 리가 있겠습니까? 밑져야 본전입니다. 자, 기다리겠습니다. 
   라~고 적혀 있었다. 보통 명함 크기는 조그맣다. 그건 보통 명함이었다. 그럼 저 글씨가 다 들어갈려면? 겨우 읽었다. 읽느라 혼났다. 혹시 뭐가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면서 현미경으로 읽어야 하는 건 아니냐면 마라한테 깐족거렸다. 그걸 보고 나서 기분이 이상했다. 하는 일이 무엇인가, 그게 없었다. 뭔 남의 다리만 엄청 긁는데 혹시 그 다리가 내 다리냐 남의 다리냐, 그게 문제가 아니라 미지의 신세계에 존재하는 다이아몬드로 이루어진 꿈의 신전의 기둥일지도 모른다는 묘한 기분이 느껴졌다. 그런 내 분위기를 재빨리 감지했을까? 마라는 덧붙여 이렇게 말했다. 
   「오빠. 집에 가서 거기 웹사이트 들어가봐. 거기에 모든 해답이 있으니까. 오빠는 픽션을 쓰고, 미스테리아는 오빠의 칼럼을 싣고, 우리는 다시 시트콤 멤버를 결성하는 일. 그게 모두 가능하니까 말이야. 참고로 귀뜸하자면 그건 겉으로 드러난 게 없는 특수한 업무에 관한 것이고, 허락되는 사람한테만 접근 가능하며, 일종의 공장처럼 그것만 맡는 전담 특별팀이 따로 있다는 거야. 물론 그 배후에는 거물도 아니고 무엇이 있을지는 아마 상상을 초월하겠지? 제안일과 마감일 그리고 결과가 똑떨어지게 맞아떨어지는 오묘한 과정. 모두 알고 나면 까무러칠지도 모른다구. 오빠. 어쨌든 이번에 기대해도 좋아. 내가 혹시 오빠를 크게 실망시켰던 적이 있나? 내 기억엔 없는 거 같은데? 안 그래? (얘는 진짜 끝까지 말이 많다, 진짜 많다, 매우 많다) 다시 말해 오빠가 상대하는 대상은 칼럼을 소설로 변환해주는 모종의 번역기라고 생각하면 돼. 나도 아직까지는 거기까지 밖에 몰라. 시시한 칼럼과 따분한 단편을 신기한 장편으로 늘려주는 작업이다, 그 정도 밖에는.」 


   12

   내가 집에 가서 그 이상한 웹사이트에 접속하기 전에 나는 중간에 클락을 찾아갔다. 왜냐하면 그 고급 최신형 뚜껑 없는 차를 대체 왜 마라한테 헐값에 넘겼는지 따지고 싶었으니까. 그 값이면 나한테 넘기지 그랬냐고. 물론 일시불로...는 어렵지만 그래도 좀 기다리면 어떻게 융통해볼 여지가 있는데, 꼭 필요한 사람한테 애마를 넘기는 건 상도덕 중의 상도덕 아니냐고 험하게 따지고 싶었으니까. 
   나는 클락의 개인 사무실에 도착했다. 클락은 별다른 집무를 보고 있지 않았다. 간단한 인사말과 날씨 얘기와 근황 얘기는 마쳤다. 따라서 나는 밑도 끝도 없이 왜 그랬냐고 따지기로 했다. 
   「클락. 솔직히 말해줬으면 좋겠어. 긴말 하지 않을께. 너, 너의 그 뚜껑 없는 애마를, 도대체 왜 마라한테 헐값에 넘겼니? 그러니까 왜? 마라 걔 완전 허영심 덩어리야. 상상 안돼? 어?」 
   「그게 무슨 얘기지? 알아듣기 쉽게 얘기해주지 않으렴? 좀 더 풀어서, 이해하기 간편하게 말이야. 그 정도 친절은 우리끼리 요구하고 응해도 괜찮은 거니까.」 
   「아 됐고. 늬차를 왜 마라한테 팔았냐고. 것도 (똥)값에.」 
   「내... 차를? 무슨 얘기지? 내가 차를 왜 팔아? 아직 새 찬데. 난 마누라 1명 차 100대 막 그런 성격의 상남자가 아니야. 내가 만약 돈이 아무리 많을지라도 난 그런 귀찮은 일, 하라 그래도 못해. 왜? 난 차에 미친 놈이 아니니까. 좋아하기는 하지만 그 정도는 아니라고. 무엇보다 귀찮으니까. 나 봐 봐. 내가 옷을 몇 벌 입는지 네가 몰라서 그러니? 그래 나 부자야. 일단 졸부라고 합시다. 그렇지만 그에 비해서 내가 입는 옷이 왜 이럴까? 또 차는? 왜냐하면 귀찮으니까! 차를 바꾸면 기분도 좋고 재밌기도 하고 놀러가고 싶겠지. 하지만 새로운 장난감에 익숙해질려면, 그러면 귀찮아. 응? 귀찮다고. 그래서 나는 차를 마라한테 팔지 않았답니다. OK?」 
   나는 생각했다. 아 당했다. 마라한테 제대로 당했구나. 내(네) 이년을 가만두나 봐라 라고 생각했다. 무슨 이상한 웹사이트인지 뭔지 그게 보석같은 찬란함이 없기만 해 봐라. 내 당장 그것을 그냥 ... 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우리 사이에 갑자기 말이 끊기면 뭔가 분위기가 너무 어색하게 급랭하기 때문에 난 뭔가 물고 늘어져야만 했다. 그래서 나는 탁자 위에 있는 책에 대해서 물어봤다. 
   「클락. 혹시 요즘 저 책 읽고 있니?」 
   「무슨 책? 아 저거? 응. <웅크린 호랑이, 피터 나바로> 부제, 중국은 어떻게 세계를 지배하려 하는가. 읽어 보니 괜찮던데? 반대 급부랄지 상대측 입장에서 발표된 저서가 있다면 소개해 줄 수 있겠니?」 뭘 소개해 주라고? 얘가 나를 너무 띄우는 거 아닌가? 클락은 내 지성을 너무 과대 평가하고 있었다. 차라리 날 그냥 띄엄띄엄 보는 게 오히려 난 더 편했을 텐데. 
   「그런데 저 책을 왜 읽는데?」 
   「왜냐고? 왜냐하면 책에 대한 추천사와 찬사들에 완벽하게 공감하기 때문이야. 그래서 읽기 시작했어.」 
   「지성의 초일류, 신분에서 최상류층, 유행의 선봉자께서 읽기엔 분야가 좀... 뭐랄까... (나는 클락의 표정을 읽었다) 너무 좋아. 완전 좋아. 딱 좋아. 그게 바로 내가 읽고 싶은 책이라구. 세상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책이 바로 그런 거야. 얘가 얘가 그걸 어떻게 알았지?」  
   「허허허. 새 책을 선물하는 건 우리끼리는 하지 말자. 내가 먼저 읽고 넘길께. 나는 그 분야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해. 약육강식만 존재하는 동물의 세계와 마초성이 극렬한 정치, 경제, 군사등의 분야에 대해서 일반인들도 알아야 할 건 알아야 한다고. 맹수 세계의 잔혹한 운명에 대해서 무조건 터부시하기만 하는 건 작은 그림 밖엔 그릴 수 없어. 응애응애 에게에게 삐악삐악, 우리가 그렇게 옹졸한 남자는 아니잖니? 안 그래? 그렇다고 겉으로는 대범하다고 하면서 속으로 소심할 수도 없잖아? 한번 생각해 봐. 사랑이 있을까 없을까? 어른들은 사랑이 있든 없든, 사랑을 알아. 그래서 웃어. 사랑이 없다고 하면 웃어. 똑같애! 완전 똑같아. 대인배에 대해서도. 대인배는 있을까 없을까? 한번 웃자. 지금 한바탕 웃잔 말이야. 대인배는, 없어! 군사도 그래. 무엇보다 군사학, 전쟁론에 대해서 자세한 얘기를 일상 대화에서 소재로 삼지 않는 건 일종의 예절이랄지 카르텔에 해당할지도 몰라. 왜? 왜냐하면 수치상 여자가 반틈이고, 각자 좋아하는 분야가 다 다르며, 번영의 미래를 내다보며 희망찬 미래를 꿈꾸기에는 너무 둔탁하고 처절한 분과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지. 하지만 세상은 변하고 세월도 흐르며 발상의 전환도 필요한 법. 그걸 알아야 평화는 존속될 수 있으니까. 사랑을 말로 하니? 아니야! 그럼 평화를 믿어야 할까? 아니야! 거래는 뭘로 하지? 돈이랄지 서류와 신용으로? 반틈은 맞는 말이지. 반틈만.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작은 그림. 돈이랄지 서류와 신용이라는 틀을 넓게 그려 본다고 가정해보세. 그럼 달라. 완전 다르다구. 따라서 시장규칙과 사회규범은 내가 만들고, 내가 이끌고, 내가 새롭게 다시 쓸 수도 있는 것이라네. (딱)! 이론이 그래. 이론과 실제, 가상과 현실만 있는 게 아니라 이 세상은 초현실도 환상도 비현실은 물론 동화와 기적과 야만과 잔혹과 함께 드물게는 신화까지 모두 함께 공존하는 세상이란 말일세. 좋게 좋게 지금처럼 언제까지라도 행복하고 재미있게만? 그런 건 없어. 순진한 어른들이 너무 너무 많아서, 때문에 난 약간 생각이 다르단 말일세. 친구들끼리도 그냥 뉴스를 보고 그래. 어디가 어디를 공격할 거 같냐 아니냐, 그냥 농담처럼 쉽게 말하고 쉽게 지나가. 우리는 현재를 살면서 말은 우주를 생각한다면서 놀이터에 안주하지는 마세나. 하냐 안 하냐, 0퍼센트냐 1퍼센트냐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왜냐하면 그건 사랑처럼 믿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지. 전쟁과 평화는 절대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는 개념이니까. 그 둘은 동전의 양면과 같고, 그건 절대 신용이나 믿음이나 도덕과 윤리는 물론 정의도 종교도 인성과 교양도 아니라네. 
   좀 전에 내가 물어봤지. 뭐라고? 반대 급부랄지 상대측 입장에서 발표된 저서가 있으면 소개해 줄 수 있냐고. 내가 묻는 질문에 내가 답하자면, 답변은 없어야. 없다구. 있긴 있겠지. 문화와 철학과 세월과 지역성에 따른 입장은 물론 그 모두가 다 있어. 하지만 구체화된 단행본은 없을 거라는 게 내 견해야. 만약 있다면 알려주면 고맙겠네! 하지만 내가 봤을 땐 없어. 왜? 왜냐하면 있어도 저만큼 논리적이고, 이성적이며, 타당한 근거에 입각해서 평화라는 지향점을 논하기엔 입장과 언어와 환경에 따른 한계점이 적지 않기 때문이지. 대중매체를 보면 국제정세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끊이질 않아. 문명이 발달하고 세계가 이처럼 풍요로워진 만큼 군사학 역시 어마어마하게 성장했으니까. 그런데 거기서 멈출까? 아마 초딩도 그런 생각은 하지 않을 걸! 그럼 이젠 뭐다? 그렇지 (딱) 멀리보면 스타워즈! 괜히 영화에서 불행한 지구상을 그리는 게 아니야. 괜히 1세기 안짝의 일에 대해서 뉴스에서 다루는 게 아니라고. 왜냐하면 나폴레옹 때까지는 쉽게 말해서 아장아장 걸음마 수준이었다면, 히틀러가 승승장구하던 시기에는 한마디로 비극이었어. 그러면 앞으로는? 답은 넌센스지. 나도 읽었어. 네가 환상문학 격월간 잡지 미스테리아에 기고했던 컬럼. 난 처음에 그랬어. 이런 뭔 이상한 글이 대체 왜 이런 잡지에 실렸나 하고서. 그런데 차츰 지나니까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더구먼. 아무튼 거기에 네가 비유해서 설명을 아주 잘 해놨더군. 짧고 극명하게! 그냥 웃음으로 넘겨버릴 수도 있지만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을 놀랍도록 간명히 풍자했다는 점. 난 썩 마음에 들었어. 독서실에서 공룡들이 앉어서 공부를 한다라... 공룡들이 모범생인가? 아니야. 누구나 학교 다닐 때 생각 다 날꺼야. 학교에서 공부와 운동을 다 잘하던 친구들도 있지만 이 세상은, 최고는 하나만 원한다네. 운동신경이 좋으면 대게 아무 운동이나 다 잘해. 하지만 그 가운데 더 잘하는 분야로 들어가면 거기서 또 1등과 꼴등은 차이가 날 수 밖에 없지. 학교 다닐 때 쉽게 말해서 모범생에 집안 좋고 최소한 집에서 교육열이 있고 그런 친구들은 대개 보면 나중 자기 분야를 찾아서 가. 한마디로 운동선수가 되지는 않는다고. 학교 다닐 때 운동을 했더라도 그 가운데 1퍼센트만 그 길로 가고, 다시 그 1퍼센트의 1퍼센트만 이름값을 하지. 우스개 소리로 운동선수를 무식하다고 하지 말자 라고 하는 소리가 괜히 나온 게 아니야. 왜냐하면 운동에 모든 것을 걸어야 겨우겨우 그 명맥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그 세계가 치열하기 때문이지. 어차피 균등하며 넓고 깊고 원대한 지성인에 근접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아는 상식과 지식과 교양과 심미안은 다 거기서 거기야. 친구들을 봐봐. 내 친구들은 평균을 내 보자면 책을 1달에 1권 읽는 친구? 없어! 있어도 무엇을 읽을까? 답답하지. 운동선수보다 오히려 못해. 왜냐하면 운동선수는 한분야의 최고이자 끈기와 성실함으로 인생을 사니까. 그만그만한 일반인과는 달라. 얘기가 좀 빗나갔는데 다시 돌아와서, 
   독서실에 앉아서 공부하는 공룡들! 공룡이 열심히 공부만 하기 위해서 글을 쓰고 노래를 부르고 그림을 그리는 삶, 그런 아름다운 인생을 위해서 공룡이 됐을까? 당장은 독서실에서 공부하니까, 1층의 여자목욕탕을 엿볼 수 있는 개구멍 쪼그~만 구멍으로 신비한 여체 그 뒷모습을 어떻게 볼 수 있었다는 추억이 아름다우니까(?), 당장은 독서실의 공룡들에게 펼쳐질 미래를 쉽게 예측하겠지. 장래 수트 입고 넥타이 매고 일하는 그런 일을 할 것이라고. 모니터 10여개 정도를 보며 일하는 증권맨, 제자들을 가르치고 책을 쓰며 논문을 국제적으로 발표하는 교수, 정치인, 관료, 의사, 법관, 기업가, 사업자 기타 등등. 합리적인 추정은 그렇지. 허나 그건 완벽한 오산이라네. 공룡들이 왜 지금 독서실에서 바보처럼 조용조용히 공부를 하냐면, 중생대 쥐라기와 백악기에 걸쳐 번성하였던 거대한 파충류였던 공룡들은 나중 있을지 모를, 공룡의 혹시 모를 돌아온 전성기를 위해서 지금 공부를 하는 거라구. 
   그 전문용어를 뭐라 그러지? 아무튼 그래프의 선이 요렇게 진행되다가 팍! 바로 그래서 영화에서 그렇게나 많이 다루는 거야. 과학이 발전했기 때문에 이제는 또 몰라. 지구축이 흔들리고 자전 속력이 영향을 받고 막 그렇게 될지 말야. 그 힘을 어디다 쓰겠나? 힘은 계속 쉬지 않고 세져서 공룡의 공룡의 공룡의 할아버지가 되는데. 안 그런가? (딱) 지성인도 두 부류야. 
   첫째, 이런 얘기를 될 수 있으면 말하지 않고, 듣지도 않고, 다루는 그 자체를 하지 말자는 부류. 왜냐고? 왜냐하면 얘기가 많으면 분위기가 그쪽으로 향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걱정 때문이지. 그리고 
   둘째, 아니다 그렇지 않다 라는 학파. 첫째가 물론 맞아. 아니 맞았어. 맞았으면 좋겠다고. 그러기를 바래. 하지만 그럴 계제를 이미 넘어도 훨씬 넘어버렸어. 따라서 입이 떡 벌어지는 최대한 많은 정보를 최대한 많은 사람이 아는 것이 오히려 전쟁의 가능성을 낮추고 평화의 가망을 실현시킨다고 보는 유형이 이 둘째야. 
   물론 나는 둘째지. 어떻게 보자면 나도 첫째였고 첫째가 맞는 세상이기를 바랬어. 게다가 지성인도 아니고 지금도 창피하지만 세상을 조금은 아는 이상 둘째가 완벽하고, 완벽하고, 완벽하게 맞다고 생각한다네. 물론 반론은 수용함이 좋고, 그 둘의 장점을 융합하는 게 옳고, 그건 절대적으로 뭐가 맞냐는 논제가 될 수도 없어. 하지만 이런 논의 자체를 꺼낼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판 자체가 광활해졌다, 바로 그게 중요한 일이라구. 왜냐하면 우리가 세금을 공평하게 내듯이 지구에 대한 의무 역시 공평해야 하는데 그게 아니거든. 쉬운 예로 군사비와 환경문제. 시골 오지에 산다고 난 예외다? 이제는 무책임하든 어쩌든 무임승차 문제는 부각되었다네. 왜냐하면 죄는 내가 짓고 벌은 타인이 받는 사례가 과거보다 비교적 광대해졌기 때문! 국제 관례상 A와 B의 해상에 존재하는 국경을 양측 주장의 중간으로 한다는 관례가 있어. 그런데 아니다 난 싫다 그거 내 마음에 안든다, 우리는 부담도 많고 땅도 크고 인구도 많다, 따라서 우리가 더 크게 더 많이 차지해야 한다? 그럼 지구 환경에 따르는 부담은? 내게 유리한 부분은 내가 맞고, 내게 불리한 부분은 남이 틀리고? 원자폭탄이 실제 사례로 사용된 예에 대해서 전범의 시작부터 끝까지에 대한 죄는 차치하고 전쟁범죄의 종료에 대한 죄(?)를 묻겠다, 전쟁을 멈추게 만들었으니 그건 죄다? 사과를 요구한다? 왜 보나파르트를 막았냐? 그게 아름다운가? 그게 말이 되나? 당연히 아니지. 심지어 그건 전쟁이 종료된 결정적 원인도 아니었어. 전혀! 리더는 그런 일로 눈 하나 꿈쩍하지 않는다네. 리더가 되는 순간, 이미 되기 전부터 내 피는 초록색 피라고 상정해야 하기 때문이지. 그렇지 않으면 시작한 의미가 없어. 그렇지 않으면 성과는 없다고. 꽝!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텐데, 겨우? 그 서사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하는 말들인가? 당시 리더의 의도와 목적이 뭐였을까? 인류애였을까 세계 제패였을까? 그리고 결과는! 말은 그래, 후자가 전자라고. 더구나 시작한 리더에 대해서는 문화에 해당한다지만 국제적으로 보란듯이 국민의 대표들이 신주 모시듯 하는 진짜 신주 앞에서 참배를 하지. 숫자가 많냐 적냐 그 차이 밖에 없어. 그런데 울타리 바깥에서 무슨 행사니 기념비니 문화재니 뭐니 일들이 있으면 오락산업은 바뻐져. 그럼 사람들이 보고 듣고 읽어. 극히 유감. 심히 우려. 심각한 무례니 뭐니. 정치인도 연예인이야? 뭐가 반대로 된 거 아니니? 그에 대해서 제일 피해를 보는 사람이 누굴까? 적어도 감정적으로 고스란히 손해를 보는 사람은 바로 일반인이지. 행복하고 풍요롭고 재미있거나 심심하고, 다 좋은데 피라미드의 최고층에서 뒤돌아서서 팔짱 끼고서 전망을 살피며 정국을 구상하시는 리더 때문에 괜히 순진한 일반인들은 또 흉흉해. 공간의 이동과 마음의 여유와 생각의 젊음이 방해받는다고. 저 동네 사람들이 우리를 싫어하는 건 아닐까? 그게 다 리더 때문이야. 인류 역사가 그랬어. 리더가 시키면 시킨대로, 일어서라 하면 일어서고 앉어라 하면 앉고. 공룡계의 후발주자들─선험자도 또 나름 문제는 있겠지만 고민조차도 어떻게 타임머신인지 것 참─다시 그분들의 리더들, 그 입장에서는 절대 굽힐 수 없고,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자존심이랄지 그 어떤 뭐라고 부르기 애매한 감정이 있을 꺼야. 당사자가 아니면 절대 모르는. 그 아집 때문에 일반인들만 그 언제라도 어수선하다고. 물론 순진하고 소심하고 선량한 일반인 위주로 말이야. 보이저 1호는 태양계를 이미 탈출했는데 리더의 친절함과 낙천성과 품위와 드넓은 아량 때문에 일반인은 너무나 기쁘고 좋아서 거리에 나가 발가벗고 춤이라도 추고 싶구만! 하늘나라에서 누군가 이런 세상사를 본다면 뭐라고 생각할까? 제발 뭘 모르면, 아 그래서 한때 그렇게 비트겐슈타인의 그 말이 유행했었는지도 모르겠군. 대체 지성인들은 왜 그렇게 침묵하는가? 이제야 알겠네! 왜냐하면 이제 보니 우리가 아는 지성인과 유명인들은 적지 않은 경우 그냥 광대에 해당했기 때문이야. 누가 남의 다리를 피나게 긁나를 가리는 초딩1 학예회였군. 아니 유치원의 무슨 발표회였나? 그것보단 노인당 경로잔치일지도 모르겠군. 그런데 그건 맞는데 그런 예가 99 대비 1의 예가 많은데 내게 유리한 부분만 국제 관례를 피하고 싶다? 그건 말이 안되지. 그런 분란이 적은 곳과 많은 곳은 대표적으로 명료한 차이가 있어. 그건 뭐냐? 바로 국경이 맞닫는 수치가 적냐 많냐지. 생각해 봐. 국경이 5개 미만으로 인접한 나라에 대해서 예를 들어보자구. 어디 어디 어디가 있어. 그리고 국경이 10개 이상 인접한 나라를 예로 들어보자구. 어디 어디 어디가 있겠지. 문제가 많고 클 수 밖에 없는 데가 어디냐, 당연히 후자지. 그리고 또 하나. 국제적으로 우려의 소지가 큰 곳을 추려보자면 그건 어디고 왜 그럴까? 그건 현대적 체계가 늦게 적용됐거나, 아직 적용되기 전인 지역이 대부분이야. 아마도 100%? 선발대들 가운데 그런 곳 있나? 없어. 물론 선발대 중에서도 후발주자는 부분적으로 아쉬운 부분이 발생할 소지가 있지. 그 모두가 학교에서 배우는 과목이 사회에 잘 적용되어 있나, 그게 균등하지 못하기 때문에 분란의 소지가 발생하는 것 아닐까? 아하, 그러니까 학교 과목으로 잘못된 정보를 가르치는 방법도 있겠지만 건 방법이 좀 그렇네. 
   내가 특정 음식을 좋아하지 않고, 여러 문화를 존중하지 않으며, 특별히 표준과 기준과 선점의 질서를 옹호하기 때문에 하는 말이 아니야. 목적이 밝은 미래를 지향하기 때문에 할 말은 해야 하는 거라구. 지금 읽고 있는 책에도 나와.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서 근거와 입장과 가설, 지도, 해법, 경우의 수를 들어서 논리적으로 설명을 하고 있어. 구체적으로 살펴 보면 이래. 요즘 뉴스에 나오지? 중동에서 어디가 어떻다에 대해서 왜 그렇게 시끄러운가. 전에는 전쟁도 있고 시끄러웠어. 하지만 지금은 덜해. 그게 왜 그러냐, 세계적으로 보면 자기들만 손해거든. 그래서 중동 지역에서 협상을 한 거지. 이러다간 우리만 처진다, 일반인은 뭔 죄냐, 시간과 지역을 골라서 태어날 수 없는 이상 더 이상 이러면 곤란하다, 그래서 중동 연맹에서 어떻게 어떻게 해서 분쟁은 줄어들었어. 그처럼 아직 미묘한 문제는 많아. 대표적으로 대만! 대만이라는 국명을 말하면 안되나? 쉬쉬할 거 없어. 뉴질랜드 사람 보고 호주랑 합쳐라, 아니 흡수되어라, 그러면 좋아하겠냐고. 정체성이고 뭐고 하루 아침에 소속을 빼았긴다? 경험한 사람들은 알아. 언어를 빼았긴다는 게 얼마나 크나큰 설움인지를. 그럼 일각에선 안 그럴 수 없지. 그거 원래 우리 꺼였다 라고. 우리 꺼? 국명이 무슨 동네 구멍 가게일까, 브랜드의 신상품일까? 아일랜드는 존엄한 독립국이지만 언어가 같은 북아일랜드, 웨일즈, 스코트랜드, 잉글랜드는 왜 그렇게나 사연이 많겠나? 그래도 거긴 양반이야. 지금도 냉전 시대의 동베를린, 서베를린처럼 베를린 장벽 체제로 사는 곳도 있으니까. 세상사가 말처럼 그렇게 쉽지가 않다고. 민감한 사안은 그렇게 접근하는 게 아니겠지. 현재주의를 무시하고서 과연 앞으로 나아가기가 쉬울까? 공룡계에 후발주자가 발생하면 아마도 의식보다는 규모가 앞설 공산이 클 꺼야. 왜냐하면 현대적 표준과 세계적인 기준들에 따른 발견, 창조, 발명, 창안, 발굴, 창시등에 따른 브랜드 창출에 대해서 선점보다는 후발대로써 수혜를 입어 응용하는 역할이 크기 때문일 테지. 책에도 나와. 과거 200년 동안 중국을 침략한 적이 있는 나라는? 이라고. 정답은 그래. 프랑스-독일-영국-일본-러시아-미국 이 가운데 어디? 전부 다! 그럼 중국은 천사였을까, 천사일까, 대천사가 될까? 과연? 명백히 아니지. 그럴 리가 있나. 순진하게 이거 왜 이러시나! 그러면 그곳은 천국이게? 그럴 리는 없어. 인접한 주변국이 몇인데 그럴 수는 없다고. 선험자로부터 받은 일을 시간이 지나서 작은 범위에서 똑같이? 작게? 반복된 건 뭔데! 자, 주변국들의 말을 들어 볼까, 들어보지 말까? 정의로운 자의 말을 들어볼까, 들어보지 말까? 여기까지만! 왜? 기록으로 충분하거든. 사실, 사실 말이야. 단지 하늘나라의 얘기에 대해서는 조심하세나 그래. 나는, 우리는, 내가 이 세상으로부터 아픔을 당하기만 했을까, 나는 이 세상에 분풀이를 한 일은 없을까? 이런 상황에 팔이 안으로 굽으면 안되는 법. 계산은 정확하게. 내가 받은 고통은 명확하게? 옳지. 그러나 내가 준 슬픔은 희미하게? 그건 오히려 희미하게라도 기억한다면 다행 아닐까? 그거, 절대, 쉬운 일 아니야. 약소국이랄지 공룡 같은 단위가 아니라 개인의 인생만 돌아봐도 자명해지는 일이니까. 수다에 있어서 그런 일은 흔해. 재산이 천 개, 만 개, 십만 개의 공룡알을 가지고 있으면서 가문의 행사에 공룡알 하나를 희사하면 모르는 사람은 그런다고. 에게~ 그게 뭐냐고. 하지만 세상을 알고 인생의 희노애락을 많이 겪은 분이라면 이렇게 말한다네. 그 공룡알 하나 그거 절대 쉬운 일 아니라고. 결코 그거 쉬운 일이 아니라고. 막상 앞서 작은 선행을 비꼬았던 험구가가 만약 큰손이 된다면 보통은 졸부, 잘하면 공룡알 반틈? 하나?, 어렵게는 명망을 떨치는 인사가 될 것이네. 내 일과 남의 일의 차이가 그렇다네. 국가 역시 마찬가지. 아니다. 국가는 오히려 더 하면 더 했지 절대 덜하지는 않아. 왜냐하면 일단 덩치가 크면 윤리보다는 덩치에 걸맞는 풍요와 단위 안의 이익을 먼저 추구할 수 밖에 없기 때문. 작은 체격에 비해 비교적 방향전환과 관성에서 재빠를 수는 없겠지. 이론적으로라면 땅에 있는 동전도 아담한 친구가 주워도 더 빨리 줍는다구. 밖으로 누비지 못했으면 안에서 누군가는 핍박 받는 역할이 있을 수 밖에 없는 게 이치에 맞지. 그 어떤 힘들이 어떻게든 밖이든 안이든 풀 데가 없었으니까. 안에서 다퉜으니까. 지금처럼 스포츠니 오락산업이니 우주과학이니 다양한 예술이니 그리고 개인의 행복 추구니 그런 게 부족했으니까 말이야.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면 또 약자에게는 비굴한 역사가 있었어. 한쪽에서는 대륙을 향한 꾸준한 노력이 있었다면 한쪽에서 저 하급의 소국은 그런 차이를 인정하고 걸맞는 성의 표시가 있었을 뿐. 역사를 거슬러 올라갈 필요도 없지. 지금은 모두 대등한 세상이니까. 적어도 겉으로는 말이야. 자, 국사와 세계사를 검토할까, 검토하지 말까? 넘어가세나. 주변국들의 말을 들어 볼까, 들어보지 말까? 허허허, 들은 걸로 치자구. 소속 선수의 견해가 아니라 스포츠인, 애호가, 연맹의 관점이라는 기준으로 봤을 때 분명 미심쩍인 일이지. 1)먼 과거  2)중간 과거  3)가까운 과거, 에서 밖에서 안으로 향한 1은 중요하게, 안에서 밖을 향한 3은 조용조용? 모순이야. 오히려 그 반대가 맞는 거 아닐까? 그게 다 타임머신 때문. 국가주의 때문. 이기적으로 살돼 이타적일 것, 개인보다 큰 단위는 비교적 그게 힘들기 때문. 똑같은 일을 먼저 겪냐 나중 겪냐, 그 차이가 굉장히 큰 듯해. 이럴 때 그 이름 한번 불러야 하지 않을까? 엄마, 왜 우린 이런 세상에 살면서 자꾸 시각을 좁혀야 하나요? 라고. 세계의 사학자들에게 묻자구. 국사는 정당하고 세계사는 부당해야만 하는지를. 허나 진짜로 책상 앞의 학자들을 거리로 부르지는 마세나. 왜냐하면 국가는 국제구호단체가 아니니까. 따라서 중요한 건 미래라는 결론이 도출되겠지. 지금까지 이런 흐름일 때 과연 내일은 세계지도의 정세가 어떻게 변할지, 낙관도 비관도 쉽지 않아. 다만 불확실성을 줄인다거나 예측 가능한 범주를 키운다거나, 그런 할 수 있는 일들이 선행되어야 함은 절대 온당하다는 점. 조금만 더, 응? 금방 끝나네. 진득하게 기다려주게나. 안과 밖이 동시에 오랫 동안 가장 시끄러웠던 대표적인 예는 영국. 하, 건 말도 못해. 과거라는 게 그렇다네. 딱 끊을 수가 없고 수학처럼 말끔하지가 않아. 그러나 그 모두가 인류의 조상님들이 만들어낸 과업과 성과와 희노애락을 포함한 문물들이지. 미래를 말하는 현대인인 우리가 조상일 가지고 대체 얼마나 언제까지 다퉈야 할까? 방어는 옳지. 정당해. 그런데 문제는 공격이 최선의 방어일 수도, 싸우지 않고 이득을 취하는 게 최적에 해당할지도 모른다는 점. 모순이야. 때문에 방어조차 순수하기 어렵지 않을까? 그렇다고 방어가 불순하다는 건 아니야. 그리고 새로운 전쟁광의 출현을 막기 위해 전쟁을 말할 수 밖에 없다는 점. 모순이야. 액션 영화를 보면, 미래 세계에서 악당을 물리친 다음 비둘기가 돌아오고 제비도 놀러와서 행복을 되찾아야 하는데, 악역 자체가 없다는 점. 모순이야. 아름답게 사랑을 말하고 노래하며 전쟁을 비유한다? 전쟁 같은 사랑, 좀 그렇지. 하지만 익숙해.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아 해. 왜냐하면 직접 경험이 없기 때문에. 법전과 유니폼과 쫄랑쫄랑인지 '잔말 말고 따라와'인지 사랑에 의전이 왜 필요하나, 그것처럼 군사학과 전쟁론도 불가피하다네. 평화의 시기조차도 그 물밑에서는 장난이 아니라고. 그 알력 다툼만으로 분쟁의 소지는 다분해. 그렇다고 알력은 정보전에만 있냐? 아니지. 과거와 현재, 보수와 개혁, 현재와 미래도 있지. 또 현상 유지가 왜 어렵냐, 진보 아니면 퇴보만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야. 직선을 미세 현미경으로 보면 직선이 아니듯이 말이야. 나는 심리학자도 정신과 전문의도 아니라서 잘은 몰라. 인간의 감정 가운데 무엇이 공격 기제이고 무엇이 방어 기제인지를. 하지만 살면서 한두 번 듣게 되는 말들 가운데서도 교훈을 찾을 수 있어. 남자는 돈과 여자와 술만 조심하면 된다는 둥 허세로 흥한자 허세로 망한다는 둥 그런 말들. 그걸 참고해서, 인간이 단 하나를 참 오래도록 집중하는 일에 대해서 실화에서 픽션까지 이어진 줄타기를 살펴보면 강자가 눈에 띄여. 그 가운데 세월 동안 인생을 사로잡고서 도무지 놔주질 않는 인간의 감정으로는 무엇이 있을까? 판타지는 꿈 모험은 재미, SF는 초현실 스릴러는 공포를 추구하겠지. 공통적으로 사랑이 있고. 그 가운데 서사가 유독 긴 감정 가운데 하나는 복수심이 있고, 또 하나는 질투심이 있어. 비교적 전자보다 후자가 비극일 확률이 낮다는 점, 그렇지만 그만큼 더 우릴 귀찮게 한다는 점, 사실이야. 또 전자의 대상이 나의 과거일 때는 몰라도 방향이 바깥으로 향한다면 그것도 아름다움과는 멀어지고. 그런데 만약 그것이 대를 넘어서서 이어진다? 그런 작품들로 뭐가 있더라, 작품이 아니라 사실이 있지. 세계사. 아무튼 그래. 희망찬 미래를 바라보고 꿈을 키우며 밝은 내일로 나아가자, 라고 하면서 언제까지 조상님들 업적 때문에 내 하루 일과와 기분과 분위기와 생활이, 드물게 생존까지 침해받아야 할까? 첫째 인류의 선조들이 벌인 일이고, 둘째 시간과 지역과 신분을 선택해서 태어나지 못하는데, 그런데 왜 우리는 지금도 반성과 사과와 논쟁과 기념과 연구를 해야만 할까? 어째서? 미래를 위해서지. 기준은 애매해도 대충 반 세기와 1세기를 넘어선 일에 대해서는 사과는 그만하고─그렇다고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는 건 품위를 생각하고─자성과 반성으로 대체하다가, 박물관과 인문학으로 넘어가야지. 미래의 주역은 미래 세대니까 말이야. 우리가 아니라고! 안 그런가? 우리가 아니야. 상대적으로 매끄럽지 않거나 부분적으로 불미스럽더라도 그 흐름을 알면 돼. 그게 바로 교양과 상식이란 말일세. 여기서 잠깐, 공룡계에 대해서 궁금증이 하나 나와. 왜 후발주자 공룡은 제국 전성시대에 당당히 클럽에 들지를 못했나 라고. 답은 하나야. 안이냐 밖이냐! 그리고 모르긴 몰라도 안이냐 밖이냐, 후자는 전자에 비해서 무사를 더 쳐주지 않았을까? 옛날 어디서 군인은 대표적인 신사 계급 넷 중에 하나였는데, 전자는 그게 아마 다소 약했을 꺼야. 과거엔 그랬고 현재에는 어떨까? 공룡1을 보면 전세계 100에서 150개 나라에 군기지가 있어. 그 중에 상위 금은동은 제2차 세계대전 패전국에 위치하고, 바로 그 뒤를 잇는 곳은 또 어떤 지정학적 의미가 애매한 곳이야. 몰랐던 사람은 깜짝 놀랄 수도 있는데, 전문가의 관점을 지나칠 수는 없어. 그게 만약 없다고 가정해 본다면! 북극 얼음이 녹는 걸 걱정하지만 반대로 바닷물이 급속도로 줄어들다가 거의 희박해졌다는 드라마 본 적 있나? 모르긴 몰라도 만약 그럼 돌아가는 게 심상치 않을 꺼야. 현시점에서 격변은 없겠지만 향후 어떻게 될지는 또 모른다구. 뿐만 아니라 공룡2를 보면 어렸을 때 드라마에서 봤을 꺼야. 베트남전 관련 드라마. 거기에 나오는 것처럼 군시설이 많은 경우 지하로 가 있어. 단순 군비도 세계 1~2위지만 적용 범위를 기준으로 단위 지역 대비 군비는 지금 또는 미래 아마도 단독 1위일 걸. 그렇다고 장비 생산 단가는 대동소이할까? 호호호! 그처럼 세계 1퍼센트인데 국제질서에 대한 참여도는 또 그에 훨씬 못 미쳐. 다 이유가 있을 꺼야. 첫째, 공룡업의 후발주자가 된 경위. 그걸 또 다시 따라하는 사례에 대해서 미온적일 뿐, 한 발은 담그고 한 발은 떼고, 방관자도 아니고 주도자도 아니야. 둘째, 군사와 경제가 브레이크어웨이와 펠로톤이라서 뒤따라오는 분과와 조화스럽지가 않다는 점. 첫째도 껄끄럽고 둘째도 부자연스럽긴 마찬가지네. 딱 그 부분에만 집중해서 본다면 그건 완벽하게 제국 전성시대의 관점이야. 그야말로 완벽한 타임머신! 아무리 감출지라도 노출된 정보의 총량으로 판단했을 때 최적은 몰라도 최소 1세기 전에 해당되는 본뜻이야. 10년도 아니고 자그마치 1세기라고! 이런 의견이 밖으로 드러나면 울타리 밖은 몰라도 안에서는, 음 그건 넘어갑시다 그려. 실제로 지금으로부터 1세기 전에 전쟁 범죄를 범했던 리더의 국적에서는 지금 현재 엄격히 법으로 제한해. 첫째, 인간의 어두운 본성, 다른 말로 '샤든프로이드', 종교적 용어로 원죄에 대해서 법으로 금한다고. 가령 고속도로에서 차가 막혀, 왜? 사람들이 교통사고 현장을 멈칫멈칫 구경하다가 지나가니까. 그걸 헌법상 죄로 규정한 나라는 거의 없지. 허나 드물게 있어. 그리고 둘째. 헌법에 똑똑히 명시되어 있어. 침략 받지 않는 이상 먼저 타국을 침략하지 않는다고. 일명 평화 헌법. 나중은 몰라도 현재진행형 법이고, 해석이랄지 적용이랄지 내외부 정치적 소음은 줄어들기 어렵지. (민감한 뉴스요? 하나만 알아도 우리 여성분들 덜 언짢으실 걸요? 내부용이냐 정치적이냐를!) 첫째와 둘째 모두 희박한 사례. 첫째와 둘째 모두 근대사에서 걸맞는 값을 치른 결과. 경험이 아니라 선험적으로 그럴 수 있냐, 그건 우리 시대에는 아직이다. 어쨌든 전쟁, 국지전, 분쟁, 불행, 싸움, 분란, 심심함에겐 불친절하지만 평화에는 알맞는 일. 그처럼 시대의 흐름은 서둘러 미래의 관행을 데려올려고 한다네. 실제 성과가 분명하지. 그러니까 구체적으로 무엇? 앞서 첫째와 둘째도 있고, 우선 투명한 정치 체제, 또 주권이 시민에게 있는 만큼 알 권리를 위한 정보 공개, 공룡끼리 민간&군사 위성을 방해나 파괴하지 않는다는 묵계, 평화를 위한 국제적인 협약, 군사적인 감축 조약, 국제적 기구의 활동등. 꼭 저 1, 2가 아닐지라도 국제 질서는 그 때문에 낙관할 수 있어. 그런데 이 모두에 대해서 한발을 넣고 한발을 빼고가 아니라 아예 뒷짐 진 사례가 있어. 정치 체제? 현대적이지 않음. 사회 체제? 물론. 주권? 수렴되고 간접적인 게 아니라 집중돼 있어. 바뀌지도 않아. 동네에 있는 은행 지점도 그러지는 않아. 정보 공개? 적어도 선도적이지 않음. 많이. 실질적인 감축과 반대로 늘리고, 숨기고, 감추는 것도 모자라 군사적으로 지향하는 의지와 정보는 무엇을 가리킨다? 최적은 몰라도 최소 1세기 전을! 아무리 감춰도 입이 떡 벌어지도록 어마어마하게 많은 액면이 노출될 수 밖에 없는데, 들고 있는 패가 포커인지 뻥카인지 어떻게 모를 수 있겠나! 이 모두가 한 바보의 우둔한 기우이기를 바라 마지않네. 하지만, 평화라는 명사와 믿는다는 동사와 신뢰라는 감정은 결코 어울리지 않는 법. 따라서 현대인이 알아야 할 최소한의 상식과 교양에 내가 말한 지식과 의도와 역사적 사실과 정보가 사뿐히 포함되기를 바라네. 내가 원하는 건 그거야. 난 사람이 딱히 반골 성향이라거나 그런 건 전혀 아니야. 오히려 나보다 더 굽실굽실, 장단 맞추고 비위 맞추고, 딸랑딸랑 반짝반짝, 달콤한 립서비스에 관대한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큰소리칠 수 있네. 그러고 싶네. 그럴 수 있어. 딱 그걸로만 맞짱 뜨면 난 이길 자신 있으니까. 그러나 결코 양보할 수 없는 하나는 그거야. 피라미드의 꼭지점에 감언이설을 속삭일 수는 없다는 점. 피라미드를 엎었으면 엎었지 그렇게는 못해. 암! 그렇고 말고. 내 뜻이 이럴진대 어딘가 피라미드의 중위와 저변에서 불편하고 기분 나쁘시다면 난 그 뜻을 받들어 겸허히 존중할 수 밖에. 사람들 생각이 모두 같을 수는 없으니까. 다른 건 틀린 건 아니니까. 아니 그렇소? 리더의 그 어떤 오산이 크게 잘못됐다면 장래 존경보다는 악명에 가까와질 수 밖에 없어. 적어도 우리는 황금을 무덤으로 가지고 갈 수는 없다고. 먼지로 돌아가던 자연으로 환생하건, 그도 아니면 우리는 만날 수 밖에 없을 테야. 그러니까 어디서? 천국 아니면 지옥에서! 하오나 이와 같은 수평적인 방대한 정보와 첨예하게 대립된 입장과 일반인은 귀찮아서 찾아보지 않는 첩보를 근거로 판단한 결론으로부터, 일반인은 감정의 동요를 자제하며 침착해야 겠지. 리더 때문에 누가 누구를 미워하고, 겁먹고, 쫄고, 웅크러들고 그러지 않아야 한다고. 하지만 그럴려면 알 건 알아야 해. 왜냐하면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왜냐하면 (쉽게 말해서 또 심적 물적으로 공평한 배상은 불가능하다는 걸 전제로 한 채) 구시대적인 기술에 따른 전쟁 후 복구와 재건과 인정의 안정이 쉽게 말해 1세기가 걸려도 완전치 않다면, 앞으로는 그에 0이 몇 개가 붙을지 도저히 예상할 수 없기 때문이야. 이미 당해도 무수히 당했으니까. 그러니까 누가? 일반인들이! 일어서! 일어섰어. 앉어! 앉었어. 닥치고 써! 닥치고 썼어. 여러분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이게 뭡니까 이게 말이나 됩니까, 도저히 이대로 참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 모두 들고 일어섭니다, 옳소? 자, 돌격 앞으로! 그런데, 앞으로 갔는데 주위를 둘러봐도 아무리 둘러봐도 선동했던 그분은 없어 아무 데도 없어. 온데간데없어. 이게 바로 시대상 악역이 나타났다 사라졌을 때 우리에게 찾아오는 불안이지. 일어서! 일어섰어. 앉어! 앉었어. 어, 갑자기 열정으로 우릴 감화시키던 그분의 위치는 공석이네? 어쩌지 어쩌지, 어떡하지 어떡하지, 이젠 정말 어떻게 해야 할까! 이거라고. 세뇌와 최면과 사기와 오락은 물론 예술과 요술구두와 상업도 절반은 비슷한 측면이 없잖아 있어. 곳곳에 따라, 1949년에 발표된 1984는 현재 엄정한 현실. 당시 예상했던 가상은 계속 기록을 갱신중이야. 하물며 전망조차 꽤 불투명해. 내 말이 거짓말이 아닌 걸 자네도 잘 알지 않나. 부조리의 성격이 비교적 더 나은 환경에서조차 네트워크 마케팅과 악성 다단계의 구분이 착하도록 선명한지 의문이네. 그게 다 인간의 정신이 원래 불합리함을 전제로 작동하기 때문이지. 로보트처럼 움직이다가 딱 어느 때 제정신으로 돌아온다고. 리더는 다스베이더일 수도 예술혼일 수도 있고, 일반인은 로보트에 내 안의 그분을 위한 숙주, 그거라고. 사랑은 변할 수 있고, 내 인생은 내가 책임지는 거야. 누가 대신 복권도 시키고, 대변하고, 행복에 최적화되도록 도와주며, 시간을 거꾸로 되돌려 주지는 않아. 지금까지 표면적으로는 리더가 세상을 움직였고 실질적으로는 천재와 괴짜와 농부가 지구를 돌렸다면, 이제는 리더가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왜냐하면 발명, 선점, 창시, 개발, 부흥, 혁명과 혁신이 많이도 실현됐으니 이제는 뭘 해도 구식과 함께 아름다운 새로움을 찾고 알아야 하니까. 지휘자는 떠나도 교향악단은 남는다네. 음악애호가는 천재 지휘자를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구. 심지어 여러 브랜드의 창출은 끝물일 뿐더러 고전음악의 제1전성기는 이미 폐막된지 오래다네. 구스타프 말러의 말은 흉내내고 드물게 시대를 풍미할 수는 있을지라도 말러는 살아돌아오지 않는다고. 허나 아직 마무리짓기엔 이르니까 조금만 더 얘기를 이어가자고. 괜찮아. 금방 끝나. 응? 경제, 문화, 사회, 복지, 인프라스트럭처등의 제반 여건 대비 군사비와 군사력에 있어서 이처럼 특출한 비율을 보였던 예가 인류 역사상 있었을까? 있다면 한번 말해 보시게. 이런 예는 처음이야. 인류 역사상 최초라고. 그렇다고 그에 비례해서 국제기구 지원금은... 그건 모르니까 넘어가고, 최소한 환경에 대해서는 다소 더딘 감이 없잖아... 있지. 선험자 공룡들? 각 덕목들의 발전은 큰 차이가 없었어. 세계 최초라는 개념들과 산업의 안정기와 혁명, 미술, 음악, 문학, 과학, 문화의 전성기와 해상군사력은 모두 함께 전진했다고. 정치 체계와 사회적인 분위기와 개개인의 의식은 물론 교양과 문화와 제도등이 함께 움직였지. 다소 앞서거니 뒤서거니는 있었겠지만 그 모두는 여행에 동행했고, 소풍을 같이 간 같은 반이었다고. 그렇게 째깍째깍 시간은 갔어. 그러다 세상이 변했어. 또 시대가 바꼈고. 변화는 멈추지 않아. 이어서 세계공장이 가동되면서 선두로 새로운 전학생이 우뚝 치고 올라선 거지. 기존 모범생도 운동부도 복학생까지 긴장 해. 사랑에 있어서는 최고의 사랑 하나면 만족할 수도 있어. 또 학습에 대한 탐구욕은 충족되는 게 좋겠지. 디지털카메라를 살 때 누가 그래, 화소가 깡패라고. 허세는 대망이 먼저고 허영심은 고품격을 추앙하지. 형편에 맞게 꿩 대신 닭? 그건 합리주의! 하지만 종목에 따라 양이 질인 경우도 있다구. 우는 애한테 젓준다 라는 말도 있지. 오리가 꽥꽥 울면 먹이를 줘라 라는 경구도 빼놓을 수 없고. 그런데 하필 새로운 공룡계에서 유독 얘기가 끊이질 않는 이유가 뭐냐? 왜냐하면 꽥꽥 우는 오리가 바로 그분이라는 점! 안데르센, 칸타타, 모차르트, 리골레토 중 여자의 마음, 라트라비아타 중 축배의 노래, 레미제라블, 보들레르, 테슬라, 피카소, 아인슈타인, 세계3대 성당과 함께 어린이가 초등학교에서 소년과 청소년이 중고등학교에서 배우는 과목들을 다 놔두고, 그 중에 단독 1등이 뭐다? 바로 그분! 그 분야라고. 친구야 같이 가자 언니 같이 가, 라고 불러도 도무지 들리지가 않아. 이게 보통 일인가? 적어도 쉬쉬할 일은 아닌 듯 하네. 갈릴레이, 데카르트, DNA, GPS, 프로그래밍 언어, 국제적 패션쇼, 미술품 경매의 양대산맥 소더비와 크리스티, 보이저2호, 물리학, 화학, 생리학, 의학, 라디오, TV, 인터넷 등등 셀 수도 없네. 세계 최초로 시작해서 정부간 국제 기구와 비정부 국제 기구, 국제적인 비영리 단체등 공익에 많은 기여를 하지 않은 채 공룡이 된 예가 있나? 있으면 가르쳐 주세요. 오농 뒤 씨엘르! 없어! 내가 알기로는 없다구. 앗, 아니다. 아니네~! 후발주자가 있으니까. 크면서 그런 드라마 보지 않았나? 딸을 사랑하는 아빠가 있고, 그런데 딸은 아빠가 탐탁치 않아, 아빠는 머머해 아빠 미워 막 그러면서 가족으로는 아빠지만 밖에서의 아빠 모습은 싫어 싫어 막 그래, 그러면서 딸이 아빠와 멀어져. 그러니까 아빠가 그러지. 얼빠진 표정으로. 김비서 어디 얼마, 어디 얼마, 무슨 단체와 미팅잡고, 어디 얼마, 어디 얼마! 흐흠. 공룡의 기준이 뭔가는 얘기하지 마세나. 아니 얘기 하세나. 왜, 하면 안되나? 그게, 그렇게, 큰 잘못일까? 힘만 세면 공룡일까? 그런가? 아니면, 덩치만 크면 공룡으로 쳐줘? 그래? 시대 흐름에 역행하여 군사력에 대해 비축하고 감추는 게 많으면 많을수록 공룡일까? 진짜 공룡이라면 공룡다워야 하지 않냐, 이 말일세. 아동의 꿈과 골목대장 놀이와 사춘기적 취미가 대관절 뭔 잘못이겠나, 잘못 아니야. 그러나! 롱테일의 비율이란 게 있는데, 고양이의 발톰과 강아지의 치아 그 드러내지 않는 야심과 본능이 없진 않을 텐데, 우려가 힐난으로 왜곡될 소지가 전무한 건 아니라고. 나 같아도 듣기 싫겠다. 쓴소리 듣고 기분이 아무렇지 않다? 그런 사람은 없어. 허나, 딱 하나! 내가 만약 어디에서 태어났다면 이 정도 비판은 그야말로 약과에 불과했다는 점을 내 친구님께서 알아주셨으면 고맙겠네. 만약 그랬다면... 이 정도는 애교에 불과했을 수도 있다는 걸 말이야. 뭐, 망명까지 가지도 못한다고? 입만 살았다고? 새가슴이라고? 그걸... 어떻게 알았지! 그야 어떻든, 세계 정세는 다른 게 아니라 세계지도가 거의 전부야. 두고, 보면, 알게 될, 것이네. 판돈을 걸어야 한다면 굳이 손을 뺄 필욘 없겠지? 그 어느 세계에서는 종교고 조물주고 주사위니 예술이니 문명이니 게다가 도덕이니 윤리니 그런 거 없다네. 아무 소용도 필요도 없다네. 어느 때가 되면 길바닥에 버려진 헌신짝만도 못한 게 바로 그런 준칙과 덕목이니까. 공룡계에서 현황에 만족하지 않은 공룡이 있나? 거의, 없지. 공룡계에서 노출되는 정보와 예측되는 정권의 변화에 대해서 투명하지 않은 공룡이 있나? 거의, 없지. 얘기가 길어진 문제는 그 때문이야. 어쨌든 진행되는 현실뿐만 아니라 이상적인 이론으로 봐도 그 재정의 일부를 체계와 환경과 복지등으로 돌리기를 바랄 수는 없어. 왜냐하면 현대정치적 의미에 해당하는 정당의 설립 자체가 불가능하니까. 체제가 그러니까. 왜냐하면 그건 리더의 몫이니까. 그 다음 다른 공룡들이 소장한 레이저검들은 이 지구 같은 행성을 도대체 몇 개나 없앨 수 있을까? 가지고 있는 대로 또 만드는 대로! 그럼 현재는 그렇고 미래에는 어떨까? 미래의 새로운 후발주자는 현재의 후발주자를 벤치마킹해서 과거-후발주자 모방 전략을 구사할까? 현재도 어려운데 미래를 어떻게! 물론 쩜오에서 1세기 안짝은 자성과 반성이 앞서야 한다는 점과 전쟁 억지력은 맞물려서 돌아갈 수 밖에 없어. 1세기 너머에 대해서 뭐라 하는 일? 나는 보도 듣도 못했네. 당연하게도 인접 지역에 대한 비관과 비하하는 용어는 만국공통이야. 그 말은 국경이 맞닺거나 바로 인접한 나라가 제일 친하게 지내야 하는 나라임과 동시에 제일 질시하는 나라이기도 하다는 점, 만국공통이야. 친구도 똑같애. 우정과 외교는 참 많이 비슷하다고. 그 파란만장한 일을, 복잡한 국사와 정신 없는 세계사를 다 누가 만들었냐? 리더지! 일반인은 보고 듣고 살고, 서라면 서고 앉으라면 앉았을 뿐! 문명의 발전이라는 달콤한 열매만 따먹고 거센 역사는 없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그건 불가능한 일. 그 모두가 함께 있었거나 인간이라는 종이 멸종했던가, 둘 중 하나만 가능했을 테니까. 당연히 우주를 관찰하는 기술은 물론 인류의 행복도 없었을 테고 말이야. 
   쓸데 없이 말만 길어졌는데 현재 인문서적에서 많이 다룰 수 밖에 없는 우려의 성토가 모아지는 지점은 쉽게 말해서 그거야. 정치, 언론, 인권, 일정한 분권등이 현대적이지 못하면 감추는 게 많고 예측이 어렵다는 점. 정권의 교체가 빈번하든 잠잠하든 정치 체계가 현대적이라면 공개되는 정보가 많아. 그런데 그게 아니다? 구시대적이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할 여지는 다분할 수 밖에. 하지만 굳이 애써 장점을 찾을 수도 있겠지. 첫째, 급변을 알고 격변을 겪었으면 대충대충이 아닌 차근차근과 꼼꼼함의 가치를 새롭게 깨달을 수 있고, 둘째 선험자 집단의 시행착오를 교훈 삼아 발전의 기간을 단축하고 장점을 추려서 번영을 이룩할 수 있다는 점이 있겠지.」  
   나는 거의 자기 직전까지 갔다. 클락 이 친구 이거 이거, 얘도 무척이나 말이 많은 친구였다. 원래 얘가 이렇게나 말이 많았나? 아닌데. 완전 과묵한 친구였는데 왜 그러지? 내가 뭐 잘못한 거 있나? 와 연설이 연설이, 장난 아니었다. 난 암말도 못하고 꾹 참고 경청해야만 했다. 뭔 얘기를 들었는지 기억이 하나도 안난다. 단지 앞으로 클락한테 신경 쓰고 우리의 우정을 돈독하게 키워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안 그랬다가는! 그리고 다음에는 주제를 봐 가면서 말을 끌어내든가 해야지 이거 원, 괜히 녀석 관심 있는 분야 한번 잘못 건드렸다가 난 완전 허수아비가 되어버렸네. 진짜 다음 번엔 조심할 것이다. 이처럼 클락한테 일장 훈시를 듣게 될 줄이야 난 정말 꿈에도 몰랐다. 오늘 왜 이렇게 클락이 다르게 보이는지,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난 앞으로 녀석을 조심할 것이다. 그래야 한다. 그럴 수 밖에 없다. 이번에 제대로 벌섰으니까 말이다. 


   13

   나는 실비아한테 1차로 당했고, 클락한테 2차로 당했다. 그럼 혹시 마라한테 3차로 당하게 될까? 그건 알 수 없었다. 의심도 귀찮았다. 차라리 당하고 싶었다. 그야 어쩌든 확인해 볼 필요는 있다. 아무튼 밑져야 본전이다. 더구나 마라는 내가 잘 아는데 나랑 꽤 잘 통하는 구석이 있다. 그러므로 마라의 제의는 아마도 아예 허식이거나 어쩌면 대박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래서 나는 집에서 즉시 마라가 알려준 웹사이트에 들어갔다. 웹사이트 주소창에 입력했다. 아빠 뭐해? 라고. 
   그런데 웹페이지에는 달랑 문자나 숫자를 입력할 수 있는 칸만 나왔다. 안내하는 글도 없었다. 나는 마라한테 전화해서 물어봤다. 
   「마라. 거기 들어가 봤는데 이거 이상한 사이트 아니니? 잘못 들어간 건가? 이거 뭐야? 뭘, 글짜를 입력하라는 말인 것 같은데, 아무런 설명이 없어.」 
   「비밀번호.」 
   「어? 비밀번호?」 
   「그래. 비밀번호.」 
   「비밀번호가 뭔데?」 
   「몰라.」 
   「늬가 모르면 어떡해? 늬가 모르면 누가 아냐고! 장난치지 말고 어서 말해.」 
   「진짜 몰라.」 
   「진짜 모르면 어떡해? 그리고 입장하는 주소도 그래. 아빠 뭐해? 그게 뭐야? 뭘하긴 뭘해 아빠가? 아빠가 뭘 하든! 이상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네 진짜.」 
   「아, 오빠. 마우스 포인트를 살살 움직여 봐. 그러면 링크 위에 커서가 위치하면 커서가 손가락으로 바뀐다던가, 말풍선이 나타나거나 그럴 꺼야. 왜 그런 거 해보지 않았어? 블로그에 막 그런 거 올리잖아. 바탕색과 같은 글씨로 포스트를 작성해서 나만 볼 수 있도록 남기는 거 말야. 그래서 드래그&드롭하면 딱 글씨가 나타나는 거 그런 거.」 
   「얘네들 혹시 아마추어... 아니니? 아 나왔다. 링크는 안 나왔고. 드래그 머시기 하니까 나왔어. 숫자를 넣으라는데. 미스테리아 전신에 해당하는 문학잡지가 몇 권까지 발간됐는지, 그 숫자를 입력하시오. 라고 나와 있어.」 
   「777.」 
   「777? 777호? 뭔 팔리지도 않는 잡지를 참 오래도 발간했네.」  나는 숫자를 입력했다. 그랬더니,  「나왔어. 웬 지도가 나오는데.」 
   「지도?」 
   「응 지도.」 
   「찾아오라는 지령이야.」 
   「찾아오라구?」 
   「그럼 지도대로 도시를 만들래? 오빠 돈 많아? 응?」 
   「아 맞다. 뭔가 표시가 있어. 약도에 나오는 것처럼 화살표로 표시되어 있어. 이 동네.... 잘 몰라. 하지만 그리 멀지는 않아. 그런데 혼자 가도 될까?」 
   「그럼 내가 따라갈까? 아님 지원 요청이라도 해 줘? 그냥 혼자 가. 오빠 혼자. 멋있잖아. 뭔가 있어 보인다구. 응?」 
그래서 나는 혼자서 그곳까지 갔다. 집에서 차로 약 30분에서 1시간 정도 거리에 위치한 곳이었다. 한적한 동네였다. 그곳을 찾았다. 간판도 없고 분위기가 막 이상하지도 않았다. 어제의 미련한 사랑과 부끄러운 방황은 오늘의 달콤한 회상일까? 아니다. 그런 재미없는 시상이 떠오른 게 아니라 어떤 느낌 오는 제목 같은 게 떠올랐다. 못말리는 모험가 최후의 열정을 발휘하다. 최후? 안돼! 뽐내면 샘내고 유혹하면 유혹에 응하고, 숨바꼭질은 계속 될 테니까. 그러니까, 얼마나? 무지하게! 아마도 왠지 초조하고 긴장되니까 막 밑도 끝도 없이 공상이 이어지고 있었다. 길 잃은 열정은 청춘의 방황을 허락하는 법. 
   나는 주저하지 않고 이름 없는 그곳에 들어갔다. 거긴 빈 사무실처럼 휑했고, 전혀 특별하지 않았다. 그런데 웬 자판기가 하나 있었다. 자판기에서는 돈을 요구했다. 작동도 간단했다. 왼쪽 상자와 오른쪽 상자에서 선택할 수 있는 목록 박스가 있었다. 그래서 그걸 고르고 입력. 금액 결제. 결과물은 3일 후 집으로 배달. 간단했다. 예를 들어 시 (화살표) 산문, 블로그 (화살표) 논문, 칼럼 (화살표) 일기등이 있었다. 나는 거기서 '칼럼 → 소설'을 선택했다. 다음에 USB로 워드 파일 업로드. 그리고 결제. 결제? 헉. 지금 돈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마라에게 연락해서 가불해주라고 했다. 결제 수단에 다행히 계좌이체가 있었고, 나는 원고료를 선불로 당겼고 마라는 계좌이체를 완료했다. 금액은 미스테리아 칼럼 고료의 2배였다. 좀 비싼 거 아니냐고 투덜거렸더니 마라는 부족하지 않은 수완을 발휘해서 나를 잘 다독거렸다. 그렇게 일을 마쳤고, 나는 내 비상금을 털어서 그곳에 한번 더 갔다왔다. 곧 이제 내가 받아야 할 결과물은 2개였다. 
   여기서부터 요약해서 말하자면 첫 번째 결과물을 받았다. 읽어봤다. 뭔가 허술하지만 아주 이상하지는 않았다. 물론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확실히 인공지능 느낌은 신선했다. 그래서 난 그걸로 신춘문예에 도전했다. 또 두 번째 결과물을 받았다. 그건 잘 아는 출판사에 보냈다. 그곳에서 승인하면 출판하고 아니다 싶으면 거절하고. 비용은 전액 그쪽에서 부담하기로 했다. 당연히 계약 조건에서 나중 내가 덜 받는 그런 약관이 있었다. 이거 혹시 모르니까 나는 급전을 정말 어떻게 어떻게 마련했다. 그래서 그 777인지 뭔지로 찾아가서 세 번째로 작품을 의뢰했다. 날짜가 됐고 요청한 소설이 도착했다. 이건 어떡한다? 이건 마라와 실비아한테 보여주기로 했다. 
   결과적으로 꽤 거금이 나갔다. 돈은 그랬고, 그 문학 변환기인지 자판기인지 그걸 통해서 얻은 소설은 내게 아무런 소득을 안겨주지 못했다. 다시 보니 영 아니었다. 내가 봐도 실망이었다. 마라가 읽어봐도 절망, 실비아가 봐도 체념. 난 상심했다. 품위 유지비는 바닥났고, 생활비도 빠듯했으며, 어쩔 수 없이 나는 다시 미스테리아의 전속 칼럼니스트로 활동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을 감수하기로 했다. 나는 뛰어 봐야 벼룩이었던 것이다. 나는 새로워지고 싶었다. 하지만 그 옛날 부족했던 허세 때문인지 지금은 허례와 허영만 남았다. 내게는 허당이 딱 적격이었다. 극구 부인해 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런데 어슴푸레 느낌 세한 발상이 찾아오는 것만 같았다. 나는 일기장을 펼치자마자 미친듯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랑 결혼해 줄래?>라는 말을 0번에서 여러 번까지 말하는 사람이 좋을까, 듣는 사람이 기쁠까? 정답은 아마도 그런 질문을 상상한 사람이 아닐런지. 
   그러나 여기까지가 다였다. 그분은 올 듯 말 듯, 뭔가 좋은 생각이 날 듯 날 듯 하다가 말았다. 이런, 젠장! 불우를 거부하고 사랑을 숨기고 행복에 웃다 라고 쓰면서 막 천재성을 뽐내고 싶었는데, 다 틀렸다. 그래서 나는 좋게 혼자서 놀라운 착상을 기다리던, 신기한 영감을 찾아나서건, 예전의 문사로 돌아가기로 결심했을까? 아니다. 나는 좋게 미스테리아에 칼럼이나 꼬박꼬박 기고해서 생활비나 벌고 품위 유지비나 챙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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