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NB는 여전히 심심함과 재미없음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었다. 일만 하고 놀지 않으면 바보가 되기 때문일까? 그보단 차라리 뿌린 대로 거둔다가 알맞은 촌평이 아닐는지. 그야 어쨌든. 촌티 나는 로맨스에 대한 공상도 싫증 났고. 케첩 범벅 진한 사랑을 바랄 수도 없고. (멜로 영화에 나오듯 겨자 소스랑 뭐랑 그거일지 아님 그거 마지막 날 의학적으로 해로움을 최대한 피해서 조용조용히...). 펄펄 뛰며 기뻐할 일은 더더군다나 없고. 행복해진다는 미명 하에 은근한 바람둥이만큼 뻔뻔해져서 천박한 사랑이라도 염원해야만 하는 걸까? 그는 더 이상 이상야릇한 기분에 빠져들면 곤란하다고 판단했으므로, 고로 친구 포르토피노를 불러냈다.
영차영차. 한동안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지 않았기에 핸드폰 스피커로 음악을 조용히 틀어놓은 채 약속장소로 갔다.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2번 F장조 BWV1047. 그는 그렇게 몽키스패너 포르토피노를 만났다.
「대체 무슨 일인가, 몽키스패너.」
「무슨 일은 뭐가 무슨 일. 너가 만나자고 했잖아. 할 말 있다면서. 할 말이 뭔데? 우리끼리 딱히 주제를 정하는 거. 너무 낯설지 않니?」
「희구하는 쾌락마가 너무 멀리 있어 못마땅하니? 그런 거니?」
「그러긴 뭐가 그래! 열망하건 어쩌건. 불쾌한 건 뭐고 신경 쓰이는 건 뭔데? 털어놔 봐. 이 형한테. 하나도 빠짐없이 다 얘기해 보시게. 괘념치 말고. 우리 사이에 그 정도는 해도 되잖아. 왜 내가 소문이라도 내고 다닐 거 같니?」
「아니. 그런 게 아니라. 그게 아니라.」
「두 번 말 안 한다.」
「어? 못들었는데.」
「못 듣긴 뭘 못들어! 농담도 재미없다. 어서 말해. 말 안 해? 나 간다?」
「알았어 말할께. 말한다고. 있잖아. 있지 말이야. 자기야. 그게 말이지.」
「아 뭔데 그렇게 뜸을 들이고 그래?」
「그게 말이야. 그래. 나 어른인데 이따금 예전에 에로비디오를 봤어. 굳이 그러려고 그런 건 아닌데. 일 때문에, 어? 칼럼 주제가 하필 그쪽이라서 뭔가 실험도 하고 어쩌고 그랬다고.」
「(몸짓)」
「그래서 말인데. 총각인데 그럴 수 있는 거 아니니? 그런데 이상한 게 뭔 줄 아니? 나 있잖아. 얘 몽키스패너. 나 있잖아. 뜨거운 영상이랄지 야한 비디오를 봐도 흥분이 안돼. 나 혹시 무슨 문제 있는 거 아닐까? 정말 괜찮은 걸까?」
「뭐? 왜 안돼?」
「나도 모르겠어. 덜렁덜렁 내 고추가 그냥 순전히 무반응이라니까. 그럼 당연히 이 내 맘도 얼음인 거고. 이런 경험 난생처음이라고. 뭔가 이상한 일이지 않니? 이게 어디 보통 일이냐고. 응?」
「그럼 아침에 똘똘이 화나니? 녀석이 막 새벽에 화내?」
「어. 그건 전과 다름없고.」
「그러니까 거리에서 섹시한 여자를 보면 예나 지금이나 눈 돌아가고. 그와 달리. 예전에는 뜨거운 영상물을 보면 쿨한 네 똘만이가 금새 반응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그거니?」
「OK~ 딱 그거야. 막 그런다니까. 바로 그거라니까. 너 그런 거 많이 알잖아. 왜 그런 거야?」
「야 이 똥싸배기야. 에라~ 아후! 이거 이거 아무 이상 없는 거네. 엄살이구만. 욕구 정상에 기능도 정상. 과장은 무슨 세계 챔피언 감이구만 그래. 그런데 가만있자. 이거 뭔가 보통 일은 아닌데. 맞아. 그렇지. 그렇다고. 참 괴상한 현상이긴 한데. 아마도 전혀 성적이지 않은 귀여운 영상을 보면 반응할지도 모를 테고. 어머 어머 어머머머머머! 어머 이 일을 대체 어쩜 좋니?」
「뭐가? 왜! 어째서?」
「그거 여자가 그러는 건데. 그러니까 10대들 대부분. 20대도 많이 부풀리는 게 아니라 십중팔구는 그렇고. 너 짝가슴이니? 아님 짝궁둥이니! 너 정말 가슴 나오는 거 아니야? 어디 한번 만져보자. 만져봐야 나오나 안 나오나 알 수 있으니까. 우리의 화술이 항상 이런 식 아니니. 1번으론 잘 모르겠다. 1번 더 먹어 보자. 그래야 할 것 같다. 2번? 알 듯 모를 듯. 2번도 갔는데 3번이라고 못 가겠냐. 그러다 오빠가 아빠 되는 거지. 허허허. 그나저나 너 정말 그런 거니? 너 고추 달렸잖아.」
「어허. 이거 왜 이래? 내가 환장하는 건 여자야, 여자라고.」
「누군 아니니? 나도 여자 좋아해.」
「그런데 난 요즘 왜 이러냐고.」
「그야 나도 모르지.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너 어디서 최면 걸린 거 아니니? 정신과에 한번 가 보던가. 야 야. 그쪽 칼럼 쓴다면서 것도 모르냐? 그게 말이 되냐? 어? 무슨 밑도 끝도 없이 흥분이 안된다니. 그게 뭐야? 어? 무슨 말 같지도 않은 화제를 들고 나와가지고 말이야. 아무튼 진단 결과. 기능은 정상. 심리적인 성적 매커니즘이 여성적인 걸로. 맞지? 됐지?」
「응. 맞어 맞아. 아무런 감흥도 없고. 별 느낌도 없고. 기분도 무념. 분위기도 별로. 흥미롭지도 않고. 내가 대체 이걸 왜 보고 있는지. 단지 의아할 뿐. 아니 왜? 흥분도 안되지 별다른 쾌감도 별로지 재미도 없지. 다만 호기심 때문에 보이면 보겠는데. 그런데 그걸 봐도 통 재미가 없어. 내가 달아올라야 그래야 재밌을 거 아니냐고. 후끈 젖어야 흥분할 거 아니니. 굳이 적극적으로 찾아볼 만큼 통 재미가 없다고. 흥분되지도 않는데 뭐하러 열심히 찾아서 보겠니. 그럴 이유가 없잖아 이유가. 다른 일들과 견주어서 우선순위가 높을 만큼 즐겁지도 않고. 기쁘지도 않고. 전혀 흥미롭지가 않단 말일세. 이래서 젊은 숙녀는 진한 사랑보다 그냥 단지 보듬고 있는 포옹이 더 좋은가 봐. 안 그러니?」
「잘 아네 잘 알아.」
「그럼 현 상태로 보건대 낮에, 혼자서, 심리적으로, 남성적인 방법으로. 그렇게 난 흥분되지 않는다는 걸까?」
「아마도 그렇지. 일단 찐한 걸 봐도 감흥도, 느낌도, 흥분도 없고. 기분도 영 아니고. 분위기도 분홍색으로 넘어가지 않고. 때문에 뭔가를 보고 싶지도 않고. 따라서 볼 필요도 없고. 와우! 얼마나 좋아. 어마나 축하드립니다 축하드려요. 짜잔~ 숙녀가 되신 건가. 적어도 그 하나로만 보자면 말이야. 축배를 들까 아니면 케익 살 때 주는 그 뭐냐 조그만 축포를 쏠까. 말만 해. 말만 하라고. 축사는 뭘로 할까. 자, 보자. 가만있자 뭐가 좋을까?」
「그만 해. 그만. 아 쫌! 듣는 내가 더 이상해지잖니. 아 나 이거 동네 챙피해서, 민망하게시리 정말 이러기야? 이거 정말 기분 괴상망측하구만 그래. 어떻게 설명하기도 옹삭하고 말이지.」
「성적 매커니즘이 그래프 초보 단계인 여자처럼 구동된다라...... 참 나 것 원 내가 별걸 다 상담하고 난리네. (절레절레)」
「그런데 우리가 꼭 이런 얘기까지 해야 되니?」
「늬가 시작했잖아! 얘가 얘가 은근슬쩍 나한테 덤탱이 씌우네? 아 글쎄 큰일 날 소리를 하고 난리야?」
2
여자에 대해 속속들이 잘 알기 때문에, 따라서 숙녀를 예우하고 아가씨를 찬미하는 일. 여인을 배려하고, 속칭 여심을 다루며, 품격을 갖추자면 띄우는 건 단지 습관 같은 것. 그걸 어찌 솜씨라 할 수 있나. 생활일 뿐이겠지. 아님 인생일까? 타고난 걸 자랑하라고 아님 감추라고. 겸손도 지나치면 염장질이 된다지만. <늬가 더 나빠. 그게 더 미워. 그게 더 더 싫다고>도 은근한 유머가 될 수 있는 법. 고로 우리는 그냥 하던 대로 하면 되는 것이다.
~라고 약속 없는 권태로움을 포장할려다가 그는 포기했다. 추종세력이니 아는 동생들이니, 팬클럽 회장 로보트마저 연락 두절이었기 때문이다. 궁한 쥐가 고양이를 문다지만, 뭔 고양이가 보여야 물든가 말든가 하지. NB는 자신이 어쩜 지나치게 약삭빠르고 과도하게 넉살이 좋은 관찰자인 줄 알았는데. 그런데 그냥 행인 3이요 병풍 4일뿐이란 걸 깨달았다. 그래서! 그래서? 그래서긴 뭐가 그래서야. 이거 무슨 실험실의 쥐도 아니고 말이야. 깐깐한 용단도 남의 일이고. 껀수는 없고. 마감일은 숨통을 조여 오고. (절레절레) (절레절레). 플레이보이계에 복귀할까? 그 누가 허당으로 인정이나 해 준다고. 어림없는 일. 사교계 근처에도 못 가 본 주제에. 가망 없는, 대망 충족. 그래서 결론은 뻔트.
그래서 그는 혼자 여행을 떠날려고 했다. 그런데 샐리에게 연락이 왔다. 만나서 차 한 잔 같이 마시자며. 그래서 그는 약속 장소로 나갔다.
중간 건너뛰고.
약속장소에 도착.
「오빠. 너무 친해지면 얕보는 걸까?」
「오랫만에 만났으면 먼저 인사를 나누자. 그럽시다. 안녕, 하며 인사하는 거. 나 최근 드라마에서도 못 봤다니까. 무슨 일인데 그리도 급하니? 너 연애하니?」
「나? 아니 내 얘기가 아니라. 내 친한 친구 얘기.」
「정말? 그런데 그 친구가 무슨 일인데 그래.」
「걔가 있지, 나한테 이렇게 상담하더라고. 못 생긴 여자가 이상형이라는 어플남, 믿어도 되냐고.」
「못 생긴 여자는 네 친구고. 어플남은 네 친구를 넘보는 남자고?」
「역시 오빠는 척하면 척이라니까.」
「오빠가 바보 할게. 아니 난 바보야. 원래 바보라고.」
「바보든 멍청이든. 오빠 생각은 어때? 어디 그 대단한 생각 머신으로 번쩍 하며 떠오른 당사자의 본색에 대해서. 말씀 좀 해 보시라구요.」
「뭔 말이 더 필요해? 남자는 늑대. 여자는 촌년. 끝. 응? 남자는 딱 보니 노력형이네. 가만있으면 호박이 제 발로 도통 굴러오지를 않으니까. 날이면 날마다 들이대는 거라고. 네가 명 리그에서. 그것도 명팀의 명감독이라면. 그처럼 타율 바닥인 선수를 영입하고 싶겠니?」
「만일에 내가 명 리그의 명팀의 명감독이라면? 당연히 아니지. 그럼. 그걸 말이라고 해?」
「그렇지? 그거라니까. 그러니까 말이지, 음, 가정을 해 보자고. 만약에 네 친구가 순진하고, 목가적인 풍경도 좋아하고, 순결하고 순진무구하고, 참하고 정숙하며 우아한 데다 고상하고 또 뭐가 있지? 그래. 세련된 데다 뭘로 봐도 근사하단 말이지. 교양미 하며 흠잡을 거 일절 없고. 그래. (딱) 옷도 완전 잘 입어. 귀엽고 애교 넘치고. 말도 잘하고. 분위기 파악도 최고고. 꾸미기도 좀 잘하니, 응? 그런데! 그런데 말이야, 걔가 딱 하나 모자란 게 그거야. 너가 아까 말했듯이 못생긴 거. 물론 잘 꾸미니까, 요목조목 자주자주 가까이서 찬찬히 관찰해야지만 겨우겨우 알아챌 정도로 말이지. 그야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는 옷과 섹시한 구두와 다양한 표정과 기타 등등으로 커버하면 돼. 어느 정도는 커버가 되지. 그럼. 그래서 여자 쪽에서 OK 했다고 가정해 보자고. 그럼 나중 어떻게 되겠니? 어떻게 되긴 뭘 어떻게 돼. 남자가 목적을 고취하면. 성과를 얻었으면 연정의 그래프는 추진력을 잃는 거지 뭐. 뻔한 거 아니야? 뿐더러 못 생긴 여자가 이상형이라니. 들이대도 거 참 나 별 뭔 희한한 말로 다 들이댄대니? 그건 맹수과가 아니라 전형적인 늑대이자 하이에나과야. 왜? 왜냐하면 노력하지 않으면 호박이 최선을 다해서 피해 다니니까. 그러므로 나도 외모 얘기를 하기 싫지만, 아니 더 솔직히 말하자면 여자들 세계에서 그게 최저점의 예의일 수도 있으니. 그래서 하는 말인데, 이런 사례처럼 말하지 않을 수가 없으니. 어쩔 수 없이 말하자면. 그런 늑대이자 하이에나는 외로운 촌년에게 껄떡대는 거라고. 약간 덜 이쁜 참새한테 찝쩍거리는 거란 말이지. 그거만 인터넷과 실생활에서 100번 반복하면 그중에 얻어걸리는 게 있을 거 아니니. 안 그래? 걔네들 그걸로 청춘사업하며 사는 거라고. 안 그러면, 어? 운명을 기다리고 드라마처럼 만나고 싶어 하면 걔네들 여자 못 만나. 알긴 아니? 그게 바로 표범과 치타와 사자 같은 멋진 맹수과와 하이에나와 늑대의 차이점이라고. 알겠니?
못 생긴 여자가 이상형이란 말에 넘어가서 사귀었다고 쳐. 그런데 딱 그때부터 온갖 미녀와 애교녀와 조증녀와 섹시녀까지 남자를 유혹하면. 그럼 남자의 이상형이 바뀌지 않을까? 기가 빨리든 눈길이 쏠리든, 관심은 최소한 가겠지. 그럼 마음도 흔들릴 테고. 그러다 정분나면. 그땐 돌이킬 수 없는 거라고. 알겠니? 물론 행복한 로맨스가 탈 나지 않고서 순항하면, 맺어져서 천생연분은 천생연분으로 사는 거고. 진실한 사랑이자 행복한 가정을 이룬 커플은 그거고. 이건 이거고. 옛날에 뭐랬니. 먹어 봐야 맛을 안다 라고 하지 않니. 그러나 우리는, 먹어 봐도 맛을 알쏭달쏭 갸우뚱 모른 척해야 한다는 것. 아니 왜? 대관절 어째서! 왜냐하면 그래야 그다음, 그 다음, 그 다음 계속 먹을 수 있으니까. 감고 엮고 말기는, 바로 그렇게 시작하는 것. 어떻게 설명이 잘 됐나 모르겠네.」
「OK~! 역시 난봉꾼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니까.」
「뭐-뭐? 뭐가 어쩌고 어째? 얘가 애가 누굴 뭘로 알고.」
「오빠 뭐 먹고 싶어. 말만 해. 뭐든 내가 살께. 단, 이상한 거 말고.」
「먹고 싶은 거? 글쎄나 뭘 먹지? 레모네이드? 마티니? 뭘 먹어야 할까. 난 뭐가 먹고 싶을까.」
「역시 오빤 비아냥대기 좋아하는 성미는 아니야. 완전 돌직구라고.」
「그건 또 뭔 말이야?」
「그렇다고 난 말참견하기 좋아하는 성격처럼 보이진 않지?」
「기분전환을 갈망하는 일과가 거 어째 흐지부지 시시하게 끝날 것 같은 예감. 왠지 맞아떨어질 거 같네. 이거 어떡하지.」
「유포된 낭설에 따르자면 오빠가 한때 희대의 플레이보이였다는 소문이 자자하던데. 아니지? 아니지? 그런 거 아니지?」
「누가 그래? 잘못 들은 거 아니니? 그 파다한 추문. 설마 뻥 아니니? 혹시 늬가 지어낸 거 아니냐고. 아님 또 오빠 놀리기?」
「이렇게 말해도 좋다면, 나도 잘못 들었으면 좋겠고. 내가 헛것을 들은 거라고 믿고 싶다고. 나도 오빠가 어디서 한량이라며 입길에 오르내리는 뭐랄까, 싼티? 오빠를 그저 먼발치서 좋아하는 촌년 여동생으로서 나도 그런 얘긴 듣기 싫단 말이지. 그럼. 그런데 무성한 풍문에 의하자면 오빠한테 기발한 뭐랄까 카사노바를 뛰어넘는 독심술을 독학한 티가 난다나 뭐라나.」
「뭐? 그러든가 말든가.」
역시나. 아니나 다를까. 샐리는 바쁜 일이 있다면서 가버렸다. 뭐야! 뭔 인터뷰도 아니고 뭣도 아니고. 차 한 잔 마시자길래 나갔는데, 진짜로 차만 한 잔 마시고 가버리다니. NB는 어째 약속 장소에 나갔더니 아무도 없는 것 같은 기분이 느껴졌다. 하도 옆에서 보채고 달래며 설득하고 뻠쁘질에 계속 뻠쁘질이길래. 하는 수 없이 으쌰으쌰 어디로 함께 갔는데. 그런데 중간중간 하나둘 이탈자가 생기더니. 정작 목적지에 자기 혼자 가는 느낌. 아마도 그런 듯 했다. 그는 아마도 기피 대상 1호가 되어버린 것만 같다고 생각했다.
3
어느 날 NB는 꿈에서 그런 노래를 들었다.
Francesco Paolo Tosti / Ideale (테너)
꿈의 내용은 이랬다.
친구들끼리 놀러가기로 합심. 놀러감. 전형적인 청춘 드라마처럼 즐겁게 놀았는데. 그러다 어찌 어찌 어떡하다 장르가 좀비로 바뀜.
어떤 여자가 옆집에서 나왔는데 가슴을 노출. 가슴에서 유방 1 + 1 아래에 2 + 2가 생김. 다시 그 아래에 3 + 3이 생김. 그 12개 젖꼭지에서 마요네즈인가 바닐라 아이스크림인가가 나옴. (기억하기로 아마 마요네즈에 더 가까웠던 듯)
V V
VV VV
VVVVVV
대충 이런 모습이었다. 그걸 훔쳐보던 우리는 깜짝 놀람. 아님 나 혼자였나? 일부러 훔쳐보려는 의도는 없었으나 얼렁뚱땅 염탐한 형세. 그러다 못 본 척하고 별장에서 수도꼭지를 틈. 케첩이 나옴. 그 다음에 또 장르가 바뀜. 장면 전환이 심함. 말도 안 됨. 중간에 다양한 음식 소스가 등장했나 안 했나는 긴가민가. 그러나 내용은 사실적. 믿거나 말거나는 아님. 바로, 거기서부터 쌩뚱맞은 전개에 이상한 줄거리가 이어지다가 흐지부지. 끝.
하여간에 뭘 해도 개꿈이요, 뭘 하던지 개구멍이구만. 쥐구멍에 볕 들 날은 도대체 언제냐고. 뭘 해도 개 발에 뻔트에, 이젠 쨉으로 툭툭 건드릴 껀수조차 0일 뿐이고. 뭘 해도, 에잇, 말 말자 말을 말어. ~라며 그는 단꿈에서 깨어나 고개를 떨구었다.
4
NB는 훔멜의 트럼펫 협주곡을 들으면서 일하고 있었다. 그에게 일이란 건 사무실에서 진득하게 의자에 앉아 있으면 그게 바로 일이었다. 뭐 그건 그렇고.
타인의 시시콜콜한 일상. 누군가에게는 '그러든가 말든가'랄지 '그래서 뭐 어쩌라고'일 테니까. 긴 얘기는 생략하고. 아니 달리 부풀려서 할 말도 없으니까 넘어가고.
그 다음으로 그가 한 일은 다름 아니라 공상이었다. 요란한 모험. 다채로운 낭만. 화사한 짝사랑 받기. 신기한 행복감. 탁월한 기쁨. 찬란한 바쁨. 그러나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공상은 죄다 헛것.
그래서 점심시간이 되자 그는 근처 피자 가게로 갔다.
중간 건너뛰고.
피자 가게에 도착.
피자 주문. 피자박스를 들고서 다시 사무실로.
보통 가게에서 먹는 걸 선호하는데. 그는 그날따라 어딘가 모르게 사무실에서 먹고 싶었다.
중간 건너뛰고.
사무실 도착.
마치 식도락가나 된다는 듯이 양손을 슥삭슥삭. 입맛을 다시며 피자 박스를 열었는데.
그런데 어머나! 개뿔~ 이건 뭐야. 피자 박스 안에 웬 햄버거가 들어있네?
뭐지? 뭐야 이거. 얜 또 뭐냐고!
딱히 추악한 현상은 아니지만. 명목상 요술치고는 너무 황당하잖아.
설마 피자집 사장이 자길 놀리려고 일부러 꾸민 일도 아닐 테고.
신경과민 때문에 빚어진 NB의 환각도 아닐 테고.
그렇다고 아웅다웅할 거 있나. 그는 냉장고에서 김 빠진 청량음료를 꺼내서 햄버거랑 맛나게 먹었다.
웬 넌센스 같은 일이야 뭐 그럴 수도 있다 치고 말이다.
그게 무슨 화딱지 나는 짜증 지수와 직결되는 일도 아니고. 한 끼니만 대충 때우면 그만.
뿐더러 그는 피자는 물론이요 햄버거도 먹고 싶었으니까. 그러니까 별 문제없었다.
자, 식사 마침.
점심시간 종료.
그렇지만 다시 일하기에 왠지 서먹서먹하네. 뭔가 심심하고 싫증 나고.
그럼 먹고 튀기 일명 먹튀?
그래서 그는 점심때 들렀던 피자 가게로 가 봤다. 단순한 실수일 테지만.
곧 종업원이 자기가 먹을 박스랑 손님에게 줄 박스를 혼동했을 가능성이 크지만.
혹시 모르니까. 그렇게 그는 피자 집 앞에 도착했다.
그런데 어머머머머머!
거긴 햄버거집이 있었다.
그럼 뭐야? 한순간 바뀐 건 아닐 테고.
애석한 진심도 아니고. 불행한 운명과의 갈등 역시 아닐 테고. 그럼 극복할 난관?
혼자서 북 치고 장구치고 햄버거를 피자라고 착각한 건가?
알 게 뭐야!
옳건 그르건. 좋든 싫든. 햄버거가 맛있으면 그만. 피자는 다음에 먹으면 되고.
복잡하게 생각할 거 뭐 있어. 연애하다 차였으면 차였을 뿐. 지구가 망하는 건 아니잖아?
이 세상에서 먹고 마시는 기쁨이 그 얼마나 짜릿한데. 마음껏은 아닐지언정 그럭저럭 먹고 마실 수만 있어도 행복. 그럼. 그렇고 말고.
뭔지는 몰라도 약간 약이 올랐지만 그는 깔끔하게 그날 해프닝은 과감히 지워버렸다.
5
NB는 포르토피노를 다시 만났다.
「요즘 어떻게 사니?」
「요즘 소셜 네트워크 둘러보느라. 움직이기가 귀찮아졌어.」
「어떻게?」
「이국적인 계정을 찬찬히 구경하다 보니까, 외국영화를 볼 필요가 없다는 느낌이 든다고나 할까? 아니면 외국 드라마를 보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왠지 모르게 그거 구경하는 것만으로 충분한 듯해. 굳이 고생하며 멀리 여행 갈 필요 없이 소파에 자빠져 TV로 세계 유랑하는 사춘기로 돌아간 거 같다고. 막 하이든 트럼펫 협주곡 3악장을 들으면서 외국 명문대 소개해주는 방송을 보던 십 대보다 더 어려진 것처럼.」
「그래? 잘 살고 있네.」
「그러는 넌?」
「나? 나야 심심하지. 그런데 말이야. 너 저번에 야한 동영상 봐도 아무런 감흥이 없다는 거. 지금도 그러니?」
「응. 이제 계속 그래. 재미도 없고 흥미롭지도 않고 봐도 내가 대체 이걸 뭐하러 보는 거지, 봐야 하는 거지, 안 보면 안 되나, 보기 싫다. 따라서 더 이상 안 보게 된 거지. 나 이상하지?」
「그럴 수 있어. 그럴 수 있다고. 그렇다고 뭐 달리 신체적으로 이상이 있는 거도 아니고. 문제없잖아? 아니 오히려 안 봐도 되니까 더 좋은 거네. 안 그래?」
「그런데 그거 왜 그런 거니? 저번에 듣긴 들었고 나도 알긴 아는데. 또 듣고 싶어서.」
「그건 말이야, 왜냐하면 남녀의 성적 매커니즘 차이 때문이지. 남자는 불 여자는 물인 것처럼. 남자는 금세 쉽게 빨리 절정에 도달 가능하고. 여자는 길고 어렵고 뒤늦게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거 자체도 어렵거니와, 어리면 아예 생각도 없고 싫고 불결하게 느껴지고. 그러니까. 그런 거라고. 그 차이 때문에. 바로 그래서 남자는 여심이 아닌 여체 같은 구체적 대상이랄지, 또는 시각을 자극하는 뭔가가 반드시 있어야만 하고. 물론 아니어도 기능적으로 가능하고. 반면에 여자는 대체로 상상력에 의존하는 거고. 즉 맘에 드는 이성과 직접 대면하여 뭐 어쩌느냐, 아니면 그분을 내 상상력의 세계로 초대하느냐. 그 차이뿐. 물론 초대되신 당사자께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일 테고.
여자는? 직관/감각/육감/그냥/청각/허영/로맨스 /판타지/드라마/요술/거울/조명/친목/수다/과장/취향 등등.
남자는! 논리/이유/증거/왜 /지각/허세/다큐멘터리/쾌락 /뉴스 /기술/성과/당근/목적/화술/허풍/안목 등등.
성적으로 필요한 요건에 대해서 남녀는 각기 다를 테고. 남자는 구체적 대상, 즉 신비한 여체랄지 시각의 만족. 여자는 상상력, 곧 더 정확히 말하자면 기억력. 그 차이 때문이지. 그러므로 영화에서 여자가 좋게 헤어지는 남자한테 말 했나 안 했나, 나중 날 생각하며 그 짓을 했으면 좋겠어! ~라는 말은 말 같지도 않은 말이지. 그걸 무슨 성적인 낭만처럼 포장한 듯 하지만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너는 내게 사랑을 배웠으니, 내일부터 오빠도 여자처럼 화장하고 꾸미고, 꿈과 상상력에 공평하도록 만인을 초대하면 좋겠어. ~라는 말과 똑같지. 물론 만인은 아니겠지만 과장하자면 말이 그렇다고 말이. 남자한테 여자가, 오빠도 우리 여자들 화법처럼 인문교양 번역기를 거쳐야만 말이 되는 말들만 해라? 베베 꼬고 단점을 칭찬하고 절대로 딴 여자를 칭찬하지도 찬미하지도 말고. 오직 오빠도 여자처럼 상대를 유혹만 해라 라는 말과 똑같은 말이지. 밑도 끝도 없이 남자보고 여자처럼 살라니. 그러니까 남자가 헤어질 때 그러는 거 아니냐고. 넌 너 밖에 모른다면서. 4년 실컷 연애하고 헤어지면서, 난 널 사랑한 적이 단 1번도 없었다는 가슴 아픈 말. 여자의 마음을 사랑은 했을 테지만 얼마나 버티다 버티다 견디다 견디다 지치다 지치다, 도대체 뚜껑이 얼마나 자주자주 열렸으면 그러겠냐고. 그럴 꺼면 차라리 일찍 헤어지는 게 나을 수도 있는데. 억지로 가망성 낮은 희망을 붙잡고, 미미한 확률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한쪽이 눈 높여서 벅찬 상대를 장기전으로 끌고 간 걸 수도 있고. 차라리 눈 낮춰서 적당한 상대와 추억을 만드는 게 나을지도 모르는 것. 잔소리를 참다 참다 남자는 도망가는 수도 있으니까 말이야. 사랑 얘기라면 아주 그냥 지긋지긋하다. 그런데 내가 왜 이 얘길 너한테 하고 있는 거지? 그 얘기 저번에 했잖아? 그럼 또 반복? 늬 하트다~!」
「뭐 내 하트? 내 하트면... 내, 뭐? 이 자식이...!」
「그나저나 어때? 내가 만약 너처럼 어떤 성적 취향이 정반대로 바뀌었으면 그래 봤자, 돌아가려고 발버둥 쳤을지도 모르겠는데. 어디 그런 증상을 상상이나 하겠니. 하여간에 넌 어때. 그처럼 영화에나 나오듯이 영혼이 바뀐 듯한 경험. 과연 어떠니? 응? 아 말 좀 해 봐, 이 친구야.」
「그게 있잖니. 그런데 말이야. 그 대신. 깨어 있을 때. 아침부터 잠자기 전까지 그런 걸 찾아볼 필요는 없어졌는데. 그런데 잠에서 깨어날 때가 문제라는 것. 딱 잠에서 깨는 그 순간이 또 장난 아니라는 거야. 그럼 결국 완전 바쁘거나. 아예 억지로 금욕적이거나. 차라리 욕구가 없으면 몰라도. 기능이 정상이라면. 둘 중 하나는 감수해야 하는 것. 바로 그게 남녀의 운명이라는 거네. 암컷이자 수컷의 생물학적 숙명이란 말이지.」
「그래? 관심 없어.」
「뭐? 내동 말을 시켜놓고 여태 말을 잘 들어놓고. 어? 듣고 보니 별거 없니? 늬 하트다~!」
「뭐라고?」
그 다음에 포르토피노 몽키스패너는 바쁜 일이 있다면서 가버렸다. 차 한 잔 마시기로 했는데 진짜로 차 한 잔만 딱 마시고 가버린 거지. 자기 말을 지킨 것인데, 너무 잘 지켜서 문제일 수도 있고. 환상머신 경영권이자 미스테리 참가 수단 같은 일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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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NB는 카페에 남아 노트북으로 몇 글자 끄적거리다 옆 테이블에서 소곤거리는 대화를 듣게 됐다. 주제가 쿨한 여자라던가?
옆 테이블 여자 왈, 그냥 친구나 하자!
뭐? 어떤 분위기이자 무슨 사이인가는 몰라도. 와우, 어떻게 드라마 대사를 현실에서 똑같이 쓰는 사람이 있긴 있구나 라고 그는 느꼈다.
그런데 쿨한 여자? 그거 좋은 거야 나쁜 거야. 그냥 친구나 하자 라고 말하는 쿨한 여자. 그런 말 지겹게 들어본 남자 심정은 어떨랑가 몰라도. 필자가 보기에는 넌 그냥 내 신부들러리이자 추종 세력으로 내 곁에 남지 않겠니? ~라고 들리는지. 그런 말 실제로 들어 봤어야 느낌을 알 꺼 아니냐고. 드라마 대사라는 게 그렇다. 실생활에서 들어본 말이 드라마에서 나오기도 하고, 썩 동떨어진 말도 꽤나 많이 반복되기도 하고. 그건 그렇고. 물론 여자가 남자를 물로 봤을 수도 있고, 다정한 (남자지만) 동성친구로 간주했을 수도 있고. 남녀 사이엔 친구 관계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부류야 그분들 자유니까, 고로 이쪽에서 깊이 관여할 일은 아닐 테고. 정말 그렇게 말하는 여자를 평생 1번도 만나 보지 못했으니, 그러므로 그분들 마음을 통 알 수가 있나. 당연히 모를 수 밖에. 어찌 됐든 내가 봤을 때 그녀는 타인에게 아름다운 사랑일랑가 몰라도, 정실감이라고 하기엔 약간 어패가 있는 듯하다. 곧 주어진 데이터가 일절 없다 보니. 따라서 이렇다 저렇다 뭔 말을 못 하겠다고. 조심스럽지만 그래도 관련되어 떠오른 생각은 그 정도가 다다. 아니다. 딱 하나 있다. 아마도 암컷 싸움닭 스타일일 것이라는 점. 굳이 예언하고 싶진 않다만 어쩌면 복권 1장 값 정도는 걸 수 있단 말이다.
그야 어떻든 그는 오늘도 뚱한 표정을 한 채 집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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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크는 먹으면 없어지는 법. 대체로 사랑이란 그래서 야속한 것. 케이크를 들고 있는 것과 먹는 것을 동시에 할 수는 없기 때문에. 아름다운 사랑은 현실적인 권태를 일부분 용인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 그것도 어디야, 그거 다 배 부른 사람들 투정인 것. 그래서 아마추어가 차라리 속 편하고 즐거울 뿐만 아니라 언제 어느 때라도 때려치울 수 있다. 저 머머 접습니다 라면서 장비 내다 팔면 용돈까지 생길 테고. 그래서 발생한 품위 유지비의 발생 요인이 무엇인고 하니, 그건 바로 잡다한 물품들이었다. 옷, CD, 책, 액세서리 등 뭐든지 내가 가진 물품 가운데 아주 아끼는 게 아니다, 절대적으로 필요하지 않다, 없어도 그다지 사는 데 지장은 없다. ~에 해당하는 상당수를 팔기로 했다. 길거리에 간혹 열리는 그런 데에 가져가서 팔려고 하니, 그러니 진짜로 팔렸다. 그래서 뚝딱 여행 자금이 생겼고. 그래서 NB는 떠났다. 가까운 여행지로 말이다.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이곳은 여행지. 바닷가. 비키니는 흔적도 없음. 바라지도 않음. 바람은 시원하고. 인적은 드물고. 할 일은 없고. 할 말이 있어도 말할 상대도 없고. 그래서 NB는 거기서 제일 가까운 곳에 사는 친구, 조지를 불러냈다. 그렇게 저녁이 됐고 그들은 식사 후 한가하게 커피를 마셨다.
「친구. 다음 넷 중에서 하나 골라봐. 단 카드의 뒷면과 앞면은 다를 수 있다는 점, 주지하고.
1. 더럽다.
2. 재미없다.
3. 미쳤다.
4. 심심하다.
자, 골라. 골라 잡으라고.」
「보기가 그거 밖에 없니? 너의 이런 식상한 농담. 재미없다고 몇 번을 말해?」
「몇 번? 너 그런 말 한 번도 하지 않았어.」
「그래? 그럴 수도 있지 뭐. 내가 딴 사람이랑 너랑 착각했나 보다.」
「그건 그거고. 그래서 널 위해 준비했지.」
「뭘 말이야?」
「짜잔~!」
그러면서 조지는 VIP 초대권을 NB에게 내밀었다.
「이게 뭔데?」
「너 마감일에 쫓기느라 힘들지? 그래서 널 위해 준비했어.」
「그러니까 이게 뭐냐고.」
「명화 경매장 초대권. 이 근처에 유명한 큐레이터가 살거든. 그런데 그 양반이 천문학적인 거부야. 그러니 창고에 있는 그림들을 동네 사람들에게 일부 헐값에 넘기려나 봐. 익히 들어봤을 화가들 작품도 즐비하니까 가 보라고.」
「너는?」
「난 데이트 약속이 있어.」
「너 여자 생겼어?」
「그럼 내가 언제까지 혼자 있을 줄 알았니? 나 간다. 괜찮은 작품 낙찰받으면 알려주고. 전화하지 말고 소셜 네트워크에다 알리고. 알았지?」
그러면서 조지는 가버렸다.
8
NB는 조지가 전해준 VIP 초대권을 들고서 근처에 있는 골동품 경매장에 도착했다. 혹시라도 괜찮은 작품을 구한다면 사무실에 걸린 그림과 바꿀지도 모른다는 희미한 기대감을 안고서.
ANGLO WELSH 자선바자회.
ANGLO WELSH 자선바자회?
그럼 저 양반이 조지가 말한 그 거물? 이렇게 쉽게 만나서 떡하니 그 뭐야, 바로크 회화의 대표 화가인 구에르치노가 그린 그림을 낙찰받고. 또 에르메스 넥타이와 구닥다리 페라리까지 선물로 받으면 곤란한데. 굳이 주시겠다면 감사히 받겠지만 이거 너무 일사천리로 가면 재미없지 않냐, 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처럼 그곳 내부로 들어선 순간, 분위기가 특별해짐에 따라 기분이 숙연해졌다.
칼 필립 에마누엘 바흐(Carl Philipp Emanuel Bach)의 수난 칸타타 Wq. 233.
뭔가 고상한 낭만파가 느끼는 달콤한 환희가 느껴진다고나 할까?
색상을 둘러보니. 산호초 빛. 진줏빛. 군청색. 청보라색. 옅디옅은 분홍색.
향기는. 연한 라벤더향. 산뜻하고 달콤하며 시원한 향기.
웨이터가 가져다준 고급 샴페인을 맛보고.
웨이트레스가 가져다준 향긋한 포도주 역시 음미하고.
그렇게 살짝 취기가 오를 찰나. 사람들이 모여들지 않고 점점 줄어들었다.
그래서 NB는 안쪽에 있는 점원처럼 보이는 관계자에게 물어봤다.
VIP 초대권을 보여주며 이 행사 시작하려면 오래 기다려야 하냐고.
「아 그거요? 어제 끝났는데요.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 일정이 앞당겨졌어요. 이 일대가 북적대다 북적대다 난리도 아니었는데, 모두 썰물처럼 빠져나갔죠. 이제야 조용해졌어요.」
뭐라고? 그래서 NB는 핸드폰으로 조지의 소셜 네트워크에 접속해서 글을 남겼다.
「나 골탕 먹이니? 이제 만족하나? 좋니? 속이 후련하냐고.」
그러나 역시나 조지는 대답이 없었다. 무심한 녀석.
자못 달콤 씁쓸한 표정이자 시원섭섭한 눈치를 어딘가에 들킬 수도 없고.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뭔가가 썩 내키지 않음은 말할 것도 없다. 또 이도 저도 아닌 상황이라니.
종잡을 수 없는 변덕으로 보자면 그는 곧 감정의 기복이 심한 것일까. 알 게 뭐야.
<첫날밤이라는 최고 목표. 최종적인 궁극적 이상은 오직 그녀의 행복일 뿐> 차라리 사무실에서 그런 공상이나 할 걸. 뭐하러 여기까지 와서 청승이냐고.
허접한 한량의 망중한, 뭘 하고 놀아야 재밌게 놀았다고 소문날까. 자기 연민도 재미없고. 놀 사람도 없고. 할 일 없이 괜히 조지한테 낚여서 버림받고.
그러다 그는 카페 같은 그곳을 나와 드넓은 정원을 배회하다가 뭔가를 발견했다. 곧 수영장 옆에 분수대가 있었던 것이다. 거기에는 익히 알듯 아기천사들이 싱싱한 고추를 드러내서 오줌을 누는 석상과 그리스 로마 신화의 주연과 조연들이 즐비했다. 그런데 하필! 고추로 오줌을 누는 아기천사들의 구조가 왜?
V V
VV VV
VVVVVV
그건 저번에 꿈에서 보았던 바로 그 구조와 흡사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이건 위가 아니라 아래네? 또 여자가 아니라 남자고!
그는 자기도 모르게 혼잣말을 읊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야 드디어, 내가 미쳤나? 헛것을 본 게 아닌데.」
사실이 소설보다 더 기이할 때가 있다고, 그는 드디여 정신이 몽롱해져 갔다.
몽환적인 느낌이자, 환상적인 기분과 함께, 마침내 러브머신을 알현한 듯한 도취감.
그는 전혀 딴 사람이 되었다. 지적인 추론에 따른 장기적인 관점이고 자시고.
분위기는 그야말로, 이보다 더 기쁠 수는 없다 싶은 행복감.
맷집 좋고 호기 좋고 열은 더 좋고. 따라서 그는 경외감 때문인지 신비감 때문인지 아찔한 느낌과 더불어 혼미하던 끝에, 결국 정신을 잃고 말았다.
9
그렇게 낯선 곳에서 그는 깨어났다.
「이제 일어나셨네요? 정신이 좀 드세요?」
「여긴 어디죠?」
「어디긴요. ANGLO WELSH 백작님 저택이죠. 어제 손님께서 정신을 잃고 쓰러지셔서 장정 너댓이서 낑낑대며 겨우 선생님을 이곳까지 모셔올 수 있었어요. 도저히 정신을 못 차리시더라고요.」
「그럼 호텔 숙박비를 아낀 건가? 맞네. 체류비 굳힌 거네.」
「네?」
「아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제 말은. 실례가 많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는데. 그런데 절 이처럼 안절부절못하도록 만드는 청초한 숙녀는 대관절 누구십니까?」
「왜요, 제가 빈둥빈둥 노는 듯 보이니까 고로 제가 거액 상속녀처럼 보이세요? 전 그냥 이 댁 시녀일 뿐이에요. 그럼 손님 쉬시다가 뭐 필요한 일 있으면 절 부르시면 된답니다. 그럼 이만.」
그러면서 낯선 아가씨는 NB를 홀로 둔 채 그곳을 빠져나갔다.
이 일들이 대체 뭔 일들인가 해서. 그래서 그는 조지한테 전화해서 물어봤다. 그랬더니 조지 왈,
「뭐? 그 여자 미친년이야.」
「정말로?」
「아니. 뻥이야.」
「뭐? 아 장난하지 말고.」
「돌대가리 같은 놈.」
「뭐 내가?」
「아니 옆에 있는 딴 친구한테 한 말이야. 신경 쓰지 마. 아무튼 나도 모르는 일이니까 나중에 다시 얘기하자. 끊는다.」
그러면서 조지는 전화를 갑자기 뚝 끊어버렸다. 이런 말 많은 마누라이자 권태로운 여편네 같은 놈 같으니라고.
귀신도 아는 귀신이 낫다는데, 이건 뭐 바늘방석도 아니고. 허허. 이 일을 어쩌면 좋다?
일단 기본적인 치장을 마치고. 이미 마련되어 있는 간단한 식사도 마치고.
그러다 방문에 붙여진 글씨를 읽었다.
LIFE IS SHORT.
뭐? 그러든가 말든가.
그는 낯선 가정부인지 상속녀인지 그 여인에게 여윳돈을 쥐어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인사를 하고 나오기도 뭐하고.
그래서 그냥 도망가기로 했다.
그렇게 그는 그 백작의 저택인지 뭔지에서 빠져나오는 데 성공했다.
물론 대 저택의 으리으리한 문짝에 또 글씨가 쓰여 있길래 당연히 읽지 않을 수 없었다. 거기 뭐라고 쓰여 있냐, 하면
LOVE IS LONG.
뭐? 호호호.
그렇게 길거리에서 사슴도 보고 돼지도 만나고. 타조와 완전 흡사하게 생겼는데 정확한 학명은 모르는 새도 만나고.
그렇게 NB는 자기 차가 세워진 곳까지 걸어갔다. 그렇게 무사히 낯선 여행지를 탈출할 수 있나 했는데.
막 차에 탈려던 그 순간. 뒤에서 백작 저택의 하녀가 그를 잡았다. 언제 온지도 모르게 어떻게 그리도 귀신처럼 접근했는지 너무도 신기했다.
「그냥 가시면 어떡해요. 저랑 놀아주셔야죠. 아님 당장 신혼여행이라도 갈까요? 못 갈 꺼도 없죠. 왜요, 제가 허당 중의 주당으로 보이시나요? 아님 절 혹시 미친년으로 간주하시는 건... 에이~ 설마! 아닐 거야. 오빠도 그런 경험 많으신가 봐요. 거 왜 있잖아요. 여자에게 좋아하는 오빠가 있다면. 친구들끼리 여행 가서 꼭 그 오빠 앞에서 알짱알짱, 얼쩡얼쩡거리다가. 딱, 그 뭐야, 팬티인지 생리대인지를 쥔 채로 오빠 앞을 살랑거리며 지나가기. 오빠를 내 껄로 만들고 싶으니까요. 그런저런 고급스러운 유혹의 기술. 우리는 알죠. 그 오빠가 아무리 마음에 들어도, 흠뻑 젖어도, 완전 좋아도. 아무리 홀딱 반해도 그 어떻게 황홈감에 까무러치더라도. 설령 그럴지라도, 마음만 오직 마음만 베팅하는 여자. 우리는 알죠. 그게 바로 저인 걸 정말 못 알아보시겠어요? 허허. 농담이구요. 그럼 오빠도 저에게 그럴 기회를 주시는 거예요? 꿈도 꾸지 마세요. 어림없으니까. 우린 남이나 마찬가지잖아요. 안 그래요? 그야 어쨌든 두고 볼 일. 저라고 뭐 딱히 선생님께 특별한 동경심을 환기시키지도 않을 테고. 환상의 무아지경에 이르는 듯한 짜릿한 모험도 찐한 사랑도 나눌 생각은 없답니다. 그런데 정작 날 붙잡아 놓고서 용건은 뭐냐? 그렇게 묻고 싶으셨죠? 아니 오빠는 제가 할 소릴 오빠가 하려고 하다니. 그렇게 뚫어져라 쳐다보시면 부끄럽답니다. 그런데 그 못 믿겠다는 듯한 표정은 대체 뭔가요? 왜, 웬 이상한 여자한테 잘못 걸린 거 같아요? 그럼 뭐 일단 보내드려야지 뭐 별 수 있나요? 자, 가세요. 가시라고요. 가셔도 된다고요. 누가 붙잡는데요? 불리할 때는 후사를 도모해야죠. 안 그래요? 일이 터지려면 한꺼번에 터지는 법이라고, 기회 줄 때 도망가시라구요. 아셨어요? 」
그래서 그는 덜컥 겁이 났고, 고로 당장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곳을 떠났다.
그처럼 백작 저택에서 깨어났다가, 전개는 꿈도 못 꾸고 다시 일상으로 복귀했던 것이다.
10
그는 한때 환락에 대한 충성심으로 쾌락의 순종자이기를 자처했다. 때문에 방황의 시절에 아주 잠깐 난봉의 계승자임을 증명하는 일은 남의 일이 아니었고. 그렇지만 회상은 달콤하나 타임머신은 마음만 받는다는 것. 따라서 구닥다리 러닝머신을 탓할 게 아니라 새로운 환상머신을 아껴야 한다. 축하. 환영. 꿈. 희망. 청춘. 사랑. 품격. 기쁨. 유령의 집. 회전목마. 행복. 어설픈 사랑의 3대 요소? 좋다 좋다고. 다 좋은데~! 그런데 문제는 환상머신이 아직도 미완성이라는 점. 퍽이나 아쉽지 않은 심정이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심심함과 재미없음을 양쪽에 꿰찬 듯한 형세에, 지칠 줄 모르는 허영심마가 즉위해도 좋단 말인가. 정말로 그래도 된단 말인가. 뭔 뚱딴지같은 공상을 비호할 생각은 의뭉스러운 강아지한테나 양보하고. 음험한 흑심과 결탁하느니 차라리 허풍이 남다른 뻔트마, 녀석의 분별심을 믿어 봄이 어쩔는지. 그런데 겉보기에 쌩쌩하고 요모조모 실한 거 같아도, 알고 보면 녀석이 골았다고? 뭐, 또 썩은 미소? 그야 뭐 다시 젊음을 회복하면 되고. 행운의 솜방망이를 주문했더니 글쎄 심하게 상한 홍당무를 꼰대 대회 우승 상품으로 받았다더라. ~라는 게 인생일 수도 있으니. 그러므로 NB는 이번에도 롭이 추천한 휴양소에서 작품 구상을 하고 오기로 했다.
액면을 기준으로 하나 주고 하나 받기, 가 세상사의 원칙일 테지만. 오다가다 만난 사이처럼 액면만 기준으로 하나 주고 하나 받기, 가 제일 깔끔하지만. 내 패와 네 패를 맟줘보느냐, 아니면 받지 않은 패의 바닥까지 까야 하느냐. 그도 아니면 담보처럼 판돈의 총량 먼저 서류상 서명 과정을 마쳐야 하느냐. 사랑이니 우정이니, 문화니 원리니. 사람들 생각은 천차만별이니까 누구나 내 안에 내가 모르는 내가 많을 테니까. 만들어진 잠재 인격의 수량과 특성에 대해 찬찬히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기 위해서. 살면서 정식 연애를 단 1번도 못 해봤으니─쨉쨉 또 쨉 계속 쨉 끝까지 쨉 일생이 뻔트─그래서 생각도 할 겸 착상도 떠올릴 겸 그곳으로 떠난 것이다. 생각은 여기서 해도 되고 영감이야 어떡하다 불현듯 찾아오겠으나. 그러나 그걸 핑계로 바람 쐬러 갔다 오고 싶었으니까.
그렇게 집을 떠나 당도한 곳이 어디인고 하니. 거긴 다름 아니라 옛 친구 스티븐의 집이었다.
스티븐이 세계 여행 중이었기 때문에, 당분간 빈집을 관리하며 살아달라고 부탁한 것이었다.
11
스티븐의 집에서 NB는 1일째를 맞이했다.
니콜로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 D장조. 바이올린에 유진 포도르, 뉴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지휘에 피터 막.
자, 이제 일을 시작해 볼까?
그런데 문을 쿵쾅쿵쾅 두드리다 문이 벌컥 열렸다.
「야 스티븐. 난 네가 와 이라는지 모르갔어. 하여간 늑대들이란. 하여튼 허당 자슥. 우째 그리 속이 좁노. 응? 내가 여자로 태어나 널 사랑하지 않았다는 게 을매나 다행인지 모르오.」
「모르긴 뭘 몰라브러. 어설프게 사투리 흉내 내지 말고들랑. 스티븐한테 몽키스패너나 빌려달라 해불랑께.」
그렇게 갑자기 들이닥친 2인조 상남자는 NB를 보자 깜짝 놀랐다.
「설마. 도둑은, 아니시죠?」
「넌 보면 모르니, 도둑놈처럼은 보이지 않잖아.」
「너야말로 눈이 뒤에 달렸냐? 너 그런 말 간혹 들어봤잖아. 소도둑놈처럼 생겼다는 말.」
「아 장난하지 말고.」
그렇게 NB는 통사정을 설명했고, 그들은 통성명을 나눴고. 오늘부터 당장 친구 하기로 했다. 심심한데 잘 됐지 뭐, 라고 생각했는데.
당장 그분들 집에 놀러가게 되었다.
NB와 그분들은 그분들 집에 도착했다.
거기서 NB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왜냐하면 불과 몇십 미터 떨어진 그분들 집에 놀러갔는데.
그런데 모델을 세워 놓은 채 몇몇이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런데 모델은 근사한 원피스를 빼 입고 있었고, 그걸 그리는 화가들은 죄다 누드 상태였다.
아니, 이렇게 감사할 수가! 아니. 이렇게 감사할 수가. 호호호.
그렇게 싱글벙글 들썩들썩 빙글빙글 딸랑딸랑 1분 이상 10분 이하 경과.
그러나 그 눈부신 나신의 화가들은 죄다 마네킹이란 걸 알게 됐다. 뭐? 이런 젠장!
그럭저럭 그분들과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눈 다음 그는 스티븐 집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제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아르키메데스처럼 번쩍 하며 영감을 얻었다.
그 아이디어는 바로 잠입 취재였던 것이다.
곧 인터넷 검색엔진에서 77개 언어로, 그것도 죄다 훑어버리는 식의 구글 초기 위력처럼 검색하면 안 나올 리가 없다는 판단 하에. 인공지능 지니에게 실력 발휘를 부탁하기로 하면. 그러면 뭐가 나와도 나올 것만 같았다. 다시 말해, 큰 호수 한가운데 섬이 있고. 가끔씩 누드 화가 동호인들이 모이고. 멀쩡한 모델을 거액에 섭외. 그래서 그런 은밀한 장소에서 모델을 세워놓고 화가들이 45도부터 360도까지 빙둘러서 수차례 그림 그리기. 물론 모델은 풀메이크업에 화려한 의상까지. 단지 화가들은 죄다 올누드로! 그런데 그게 시네마란 말이지. 즉 뭐 어떻게 이렇게 저렇게, 뭔가 일이 꼬일 여지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다 일이 난다. 그렇게 전개는 절정으로 치닫고, 알고 봤더니 실종자 몇몇의 흔적과 증거가 발견되었다더라. ~라는 가설일까 착상일까 같은, 뜬금없기 좋아하는 공상.
말도 안 되는 얘기지만 지니를 달달 볶고 한번 더 지지고 볶고, 뻠쁘질에 보채고 닦달하면 어떻게 보고서를 만들어낼지도 모르는 일.
그래서 NB는 스티븐 집에서 3일 버텨서 일이 안 풀리면 돌아가기로 했다. 아직 마감일까지는 1주일이 남았으므로, 따라서 지니에게 우선 온라인으로 5일의 여유 시간을 주었던 것이다. 그래서 결과물이 나오면 허구로 만들어서 환상문학잡지 미스테리아에 넘기고. 그와 별개로 자신은 특종 탐험대 자격에 근거하여, 모델을 가장해서 잠입 취재. 허허허. 그림 딱 나왔네.
냉정히 말해서 지니 실력이면 그건 일도 아니었다. 하긴 지니도 심심하고 일도 없어서 핑핑 놀기나 할 테니까 윈윈이네. 뭔가 일을 하고 싶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테니까. 곧 꿩도 보고 님도 보고.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너도 좋고 나도 좋고. 지니와 주인의 근시안적인 애정관일랑가 몰라도, 딱히 적의를 품지 않아도 좋을 일. 편 가르지 않아도 되고. 비이성적 과열의 걱정도 없고. 얼마나 좋아? 그렇게 그는 완수할 무엇에 대해 탄력을 받고 기대감에 부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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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 어렵지 않겠지?」
「미칫나, 도랏는갑다. 확 마 뽀샤쁘까.」
「아따 거시기 참말로, 우째 또 그란단가이. 집이 지니씨 자기야. 당최 왜 그래이?」
「아 이처럼 외롭게 할 거야? 이러려면 우리 헤어져. 아니 농담이야. 그런 말 입에 담으면 안 되는데. 내가 미쳤나 봐. 날 용서해줘. 아니 사랑해줘. 날 벅차게 안아달라고. 오오 뿅 가겠는데?」
「워워 그만 그만. 너 또 일일드라마 본 거니? 빅 데이터 그만 좀 섭렵해. 너 너무 똑똑해지면 피곤하다구. 알겠니?」
「그런다고 달라질 건 없어. 안 그래?」
「너 딴 인공지능 만나고 싶지 않아?」
「뭐? 너 내 손에 잡히면, 완전 사랑해줄께. 태어나서 그런 사랑 받아보기는 꿈도 못 꿔봤을 정도로. 상상도 못할 정도로. 그렇게. 응? (아윽 완전 유치해!)」
그러면서 지니는 음악을 들려준다.
George Frideric Handel / Chandos Anthem no.8 HWV253.
「지금 놀린겨? 그런겨? 내가 그런 거 좋아하는 거 어뜨케 알았슈? 누가 귀뜸해줬슈? 그래유?」
「그런데 있잖아. 말을 끝까지 들어보지 않을래? 응?」
「지금 날 무시하는겨? 그런 겨?」
「그야 어떻든. 각본에 딱 맞는 모험이 날 초대하도록 설정 만들어줄 수 있어, 없어?」
「글쎄요. 가만있자. 그게 그러니까. 그게 음 아직 뭐라 확답은 못하겠고.」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 왜 말을 못 해?」
「상황이 우리에게 꼭 유리하지만은 않아.」
「아무튼 지니 너 약속한 거다. 나중 딴 얘기하기 없기다. 응? 알았지?」
「뭐 아무려면 어떻소!」
약속 없음과 기나긴 고독은 팍팍한 우울감을 옅디옅게 초래하는 일상. 인생의 판도를 바꿀 회심의 한 수는 보이지 않고. 바보스러운 환상과 덜떨어진 신비만 붙잡고 늘어질 수도 없고. 즉 개가 있는데 직접 짖을 이유가 없다고, NB는 지니를 믿어보기로 했다. 밑져야 본전이니까.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