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무실에서 혼자 일하기에 적적하여 나는 근처 카페에 찾아갔다.
그곳에 도착했다. 카페의 이름쯤은 보자마자 잊어먹었다. 분위기도 중요치 않았다.
머리가 띵하고. 코끝은 찡하지 않고. 하트 역시 벌렁벌렁하지 않은 채 약간의 숙취가 남아있었을 뿐.
곧 분위기 전환이면 적당히 만족할 뿐이지 팬클럽 회원들의 열렬한 갈채를 바란 건 아니었다. 정말 아니었다.
그런데 이 음악이 뭐였지? 설마 무난한 오페라의 대명사인, 지오코모 푸치니의 라 보엠! 그 가운데 음 그게 말이지, 대충 때려 맞추자면 그렇다는 거고. 아니 마농 레스콘가? 리골레토? 아님 투란도트? 에잇 그냥 푸치니. 그래 그냥 푸치니. 끝.
그런데 그게 아니라 캐스팅의 제약부터 심한 '토스카'는 어떻고, 자극적인 소제라서 '카르멘'은 뭔가 할 얘기가 발생하며, 라트라비아타를 베르디가 작곡만 했지 원작으로 들어가면 얘기가 길어지고 길어지고? 바로 이래서, 그녀는 졸린다 졸린다. 싫증난다 싫증난다. 그녀의 뚜껑은 열린다 열린다. 참다 참다, 그녀의 화염방사기는 열불을 뿜을 일만 남은 것이다. 순서가 그렇다. 원리는 속일 수 없다. 애정이 은근히 느껴지는 사랑의 대화를 바라는 그녀들에게, 논리적으로 툭툭거리고, 심층적으로 파고들어 찬물을 끼얹는 일. 수다를 바랬지 누가 논쟁하고 싶어했냐고. 웃자고 말했더니 글쎄, 얼굴 빨개져가지고 좋은 말 할 때 이러쿵저러쿵? 아아 (뒷목) (뒷목)! 싫증나고 꼴배기 싫고 기분 나빠지는 지름길. 곧, 뭘 좀 모르는 남자들의 전형적인 특징. 요즘 말로 인사이더와 아웃사이더의 차이. 웃자 = 싸우자, 등호 성립부터 말이 안되니까. 간접화법으로 마음을 녹이며 달콤한 상상을 하쟀더니 무슨 지적질에, 아는 척에, 자기 주장만 빡빡 우기고, 급기야 잔소리로 남자가 여잘 이겨버리네? 그녀의 뚜껑은 열린다 열린다. 보아하니 '같이 죽자'식 유머코드도 시큰둥. 농담 반 진담 반도 심각하고 진지하게 받고. 당연히 의역해서 받아들일 말을 곧이곧대로 직역하는 일. 진짜로? 한두 명도 아니고 한두 번도 아니라니까 그러시네. 그렇다고 논리적으로 너 좋고 나도 좋자 라는 남잔 또 뭔 죈가. 전화로 2~3시간 통화한 다음 끊을 때 인사말이 글쎄, 자세한 얘기는 우리 만나서 하자? 이번에는 남자의 커피포트가 바빠질 일만 남은 것이다.
그런데 이 얘기가 대체 왜 나왔어? 푸치니에서 뭘 거쳐서 뭐한다고 '뭘 해도 재미없어'로 넘어왔냐고. (절레절레). 아무튼 친근한 수다라는 생리가 어떠하므로, 따라서 다정한 그녀의 표정만 보고서 '척하면 척'이 최고. 뭐니 뭐니 해도 한발 앞서서 여자의 마음을 간파하는 게 최선. 대번에 뭔가 약간 조금만 더? 라고 했을 때. 숙녀가 살짝 더 알고 싶어한다 했을 때 제목까지만. 아니면 푸치니까지만. 강아지한테 앉어 일어서 손 손 먹지 마 기다려 먹어. 그렇듯 하나 하나 다시 하나. 멈춤. 전진. 후진. 뻔할 뻔자 리모콘만 누르면 될 걸 가지고 원맨쇼 씩이나. (절레절레) (절레절레). 패 돌리고 뻠쁘질하고 드리블에 저글링에 어차피 다 그게 그거임. 그놈이 그놈까지는 가지 말고. 제발 그만 좀 삼천포로 빠지고. 딱 푸치니까지만. 아아 하다 하다 '푸치니'에 발동이 걸릴 줄이야! (몸짓) (몸짓).
그러다 나는 급기야 낯선 전화를 받고야 말았다.
「안녕하세요. 저는 플랩잭 경찰서의 필 로버츠 경사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입건자께서 거액을 상속받을 후견인으로 귀하를 지목하셨습니다. 네? 예? 아니 그게 아니라. 그건 제가 봤던 드라마 내용이고. 그게 아니라. 피고인이 변호사를 지정할 사안까지는 아니고. 다름 아니라 세바스찬씨 아니죠? 아실 거예요. 알다 마다요. 세반스찬씨가 글쎄 요 인근 토마스 나인 브릿지 골프장 A4 코스 13번 홀에서 홀컵을 삽으로 무지하게 파헤쳐서, 그래서 신고가 들어왔고, 우린 출동했고, 이렇게 경찰서에서 조서를 작성중입니다. 세바스찬씨와 두터운 친분으로 말미암아 조촐한 보석금과 함께 간단한 사인이면 세바스찬씨는 다시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네? 여자 좋아하신다고요?」
뭐, 골프장 홀컵을 삽으로 팠다고? 거길 삽으로 왜 파! 뭐 삽질해? 아님 미친 거야! 뭐냐고.
듣고 보니. 나중 알고 나니 세바스찬은 곤드레만드레 취하지도 않았고, 마약 검사도 정상이었고, 뭘로 봐도 제정신이었다.
무슨 비밀 조직에 등용된 것도 아니고. 삶이 재미없어서 발버둥치며 일부러 미친 척한 것도 아니고. 꾀병도 아니고 강신술도 아니고.
얼렁뚱땅 난, 내가 영매라도 된 것 마냥 기분이 이상해졌다. 난 도사님도 아니고 바보 멍청이 얼간이도 아닌데. 거 어째 이런 느낌은 뭐지?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나는 경찰서에 출두해서 어쩌고저쩌고 세바스찬을 데리고 바깥으로 나왔다.
아 세바스찬은 요가 학원에서 알게 된 친구다. 남자 이성애자.
우리는 일단 조용한 노천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2
카페 이름은 관심없고. 흐르는 음악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오페라 <티토 왕의 자비>(La clemenza di Tito) K.621 중에서. 비운의 여인 비텔리아(Vitellia)가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부르는 론도 ‘결혼의 신은 이제 더 이상 나를 위한 결혼의 화환을 만들지 않으리’
「세바스찬. 너 왜 그랬니? 또 어디서 엄한 낭설을 엿들었던 거야? 어떻게 된 거냐고. 말 좀 해 보지 않으렴?」
「내가? 아니야 아니야. 이번이 처음도 아니고. 난 어디서 요상한 추문을 듣고 소문을 퍼트리는 슈퍼 연결자가 된 적이 없어. 너 나 알지? 나 입 무거운 거.」
「너가 입이 무겁다고? 금시초문인데. 대체 무슨 일이 있었니, 라는 완곡어법을 곧이곧대로 직접화법으로 알아들으면 어떡하니? 근데 그건 완곡어법도 아니고 지금 어법 따질 때도 아니고. 어? 아 말 좀 해 봐 이 친구야. 내가 더 민망하잖아.」
「아, 그래? 난 아마 순 엉터리 환상론자인가 봐. 그래, 게으름뱅이 사랑학자. 청춘의 사랑과 인생의 꿈을 몽상하는 사색가 말이야. 그런데 가난해. 너도 알잖아. 그래도 행복하다면야 뭐 할 말은 없지만.」
「그건 또 뭔 뚱딴지 같은 소리야? 지금 일기 써? 늬가 말괄량이 사춘기 소녀니? 아니잖아. 늬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자세에 환장하는지 빠삭하게 다 아는데. 날 속일 생각일랑은 거두고. 간명하게 말해 봐. 대체 어떻게 된 일이니?」
「그게 말이야. 집에만 꿈쩍 않고 은거하다가, 사무실에서 꼼짝 않은 채 일만 하다가. 그렇다고 질펀하게 놀기를 바라지는 않지만. 딱히 쾌락의 전령이 무엇인가는 관심 없고. 하지만 따분한 일상, 뭔가 변화는 필요하고. 뭐가 좋을까. ~라고 뚱한 표정만 짓다가. 그러다 기발한 생각이 났던 거야. 그게 뭐냐, 난 요즘 왠지 모르겠지만 어딘가 모르게 막 그냥 딱 그 뭐야 그래. 막 구멍만 보였다 하면 뭘 넣고 싶어지는 이상한, 그걸 뭐라 불러야 하지? 아무튼 그런 게 생겼어. 그렇게 1차 2차 3차 점점 진행하다가, 평범한 데 적당한 걸 넣으면 재미가 없더라고. 그렇다고 한 구멍에 한 개를 넣어야지 두 개를 넣을 순 없잖냐. 그래서 불가능에 도전한 거지. 거기 골프장 사장이랑 나랑 잘 아는 사이야. 걔 나한테 빚진 거도 있어. 뿐이니? 걔 옛날에 내가 업어 키웠어. 왕년에 말이야, 걘 나한테 눈도 못 마주쳤다고. 알어? 그렇게 어느 날 TV를 보며 채널 돌리다가 그 뭐니, 삽질 세러모니를 본 거지. 은퇴 선수 두 명이 맞붙는 이벤트 경기 그런 거. 거기서 한 명이 복수전으로 경기를 승리로 장식하고 나니까 막 삽질 세러모니를 하더라고. 그래? 큰 이득을 놓칠세라 나도 그걸 따라한 거지. 4살 5살 꼬마들만 우릴 따라하란 법 있니? 나 골프 좋아하는 거 알지? 그래서 골프공만 맨날 컵에 넣으니까 식상하더라고. 그런 사연으로 그냥 나도 모르게 컵에 내가 들어가서, 그냥 달랑 기념 사진이나 하나 찍을려고 했어. 내 욕심은 그 사진 1장 건질려는 거 뿐이 없었어. 그런 다음 다시 원상복귀까지가 내 계획이었는데 일이 중간에 틀어진 거지. 사연은 그렇게 된 셈이라네.」
「늬가 무슨 투우사의 빨간 보자기만 보면 흥분하는 투우 소니?」
「내가 잠깐 정신을 놓았나 봐. 뭐 이제 제정신 차렸으면 된 거지. 안 그래?」
말 타면 경마장 가고 싶다는 격언이 있다. 곧 페라리 운전석에 앉으면 달리고 싶어지기 마련. 화장발은 사내의 눈길을 사로잡고 옷이 날개인 것. 사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일단 구경만 하세요 부담없이 편하게요, 처럼. 경계심을 무마시키는 여자의 얼쩡얼쩡은 남자의 뻔뻔 전략. 전술은 디저트 뻔트는 뽀너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고 조금씩 조금씩 야금야금 성큼성큼. 향긋한 프리지아는 사랑하고 싶은 마음을 유혹. 탐스런 열매를 보면 딱 냉큼 따먹고 싶어지기 마련. 그래서 장미는 가시가 있어야 하는 것. 그런데 호박이 제 발로 굴러오신다? 그것도 황금호박이? 그러므로 나는 불굴의 신념으로 편집광의 완벽주의를 어떤 대상에 집중했다, 라는 말은 아니고. 그저 뜻밖에 찾아온 색다른 관심사가 무엇인고 하니. 그 새로운 변화는 다름 아니라 뭐였지? 뭐였드라?
「바보처럼 굴지 마.」
「구미가 당기지 않니?」
그건 곧 세바스찬이 한적한 시골길에서 웬 그 뭐야 비싼 브랜드 베르사체의 문양. 그게 담벼락 구석지 잘 보이지 않는 곳에 붙여져 있길래 그걸 우산 꼭지로 찔러봤고 그 다음에. 그런데 어머나 글쎄 열리네? 담벼락 자체가 문이었고, 그 문은 스르륵 열렸고, 거길 따라서 들어가니, 그 안에는 뭔 부조화스런 물건들만 가득이더랬다. 탱크, 포크레인, 몽키스패너, 대형 마차, 장갑차, 초대형 후라이팬. 그건 그냥 장식품이고 한마디로 거긴 비밀 별장이라고 했다. 당연히 나는 웃기지 말라고 했고, 세바스찬은 계속 우겼고. 그래서 우리는 다음 날 만나서 그게 사실인가 아닌가를 알아보기로 했다.
3
전날 우리는 비밀 별장 입구인 담벼락에서 만나기로 했고, 나는 들뜬 마음과 함께 그곳으로 갔다.
도착했다.
아직 세바스찬은 오지 않았다.
그럼 이제 극비리에 환상적인 '소년 모험기'의 주인공이 될 일만 남은 걸까?
그곳의 온갖 금은보화를 착복하려다, 마음을 바꿔서 고이 놔두고 돌아갔더니. 나중 수소문해서 어느 날 큰손이 내게 선물을? 그런데 그 선물이 뭔고 하니,
윌렘 데 쿠닝, 1949년 작 여인.
물론 가짜. 그래도 초정밀 완성도만 괜찮다면 나는 OK. 왜냐하면 사무실 그림을 바꿔 줄 때가 되었거든.
그러든 어쩌든 데 쿠닝 작품 정도면 나쁘지 않은 거 아닌가. 달리 차선책으로 점찍어 둔 거도 없고.
공상이란 고약한 습관일까 아닐까. 아님 의사 결정 회피 때문에 발생한, 단순한 핑계일까. 그야 모르겠고.
나는 세바스찬에게 전화를 했다.
「어디야?」
「어디긴 어디야, 집이지.」
「집...이라고?」
「그래 집. 오늘 쉬는 날이라서 케익 먹으면서 발바닥 만지고, 다시 그 손으로 과자 집어먹고, 다시 그 손으로 고추도 만질까 말까 고민하고 있지. 왜 너도 따라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니? 아니지? 아니지? 설마... 아닌 거지?」
「아니긴 뭐가 아니야.」
「왜 그래 갑자기? 너 혹시, 어제 내가 말한 거기 간 거 아니지? 그렇지?」
「내가 바보니? 내가 거길 왜 가!」
「허허허. 하긴 우리가 그럴 나이는 아니잖니. 그러지 말고. 너 캔디스한테 연락해 봐. 거 좀 아는 동생들 좀 챙기고 그래.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매정할 수 있니. 너 원래 그처럼 무정한 애였어? 난 또 캔디스가 날 좋아한다는 고백이라도 할 줄 알았지 뭐니. 뭐 아무튼 그러든가 말든가 늬가 알아서 하고. 늬 인생 내가 뭐한다고 참견하겠니. 아 됐고. 끊어.」
그렇게 세바스찬은 전화를 뚝 끊었다.
뭐야 이거!
첫째, 비밀 별장에 출입할 수 있는 베르사체 마크 어쩌고저쩌고는 뻥. 헛걸음. 헤어드라이어기.
둘째, 캔디스가 날 좋아한다? 아니겠지만 그래도 모르는 거니까. 그래도 달래는 줘야 하고 다독거리지 않으면 안되니까.
고로 첫째 + 둘째 = 0.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 0.5?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캔디스를 떠올리고서 나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허허허허허. 히히히히히. 허허허허허.
나는 소문의 힘을 믿어보기로 했고, 세바스찬의 악동 본능보다 고귀한 마음씨가 우위를 점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야 어떻든 인생과 애정은 불가분 관계. 이상한 건 사랑과 우정 사이.
나중 캔디스한테 잽싸게 뒤통수 맞던가, 신경 꺼도 좋을 만한 멋진 남자친구를 내가 캔디스한테 소개시켜주던가. 두고 보면 알겠지 뭐.
그래서 나는 다음 날 캔디스를 만나기로 했다.
4
날짜가 바꼈고, 나는 오늘 하루를 루이지 보케리니의 현악 오중주 Op. 13 no. 5 중에서 미뉴엣으로 시작했다.
그럭저럭 오전을 지나 정오로 향해가는 시간. 나는 캔디스한테 전화했다. 그렇게 나는 캔디스한테 만나자고 했다. 그랬더니,
「오빠가 뭔데 이래라저래라-야?」
「나? 네 친구. 아니 오빠. 아니면 아는 남자? 세바스찬이 그러던데. 너가 나 만나고 싶다고.」
「믿을 사람 말을 믿어라. 아무튼 이래라저래라 훈수두지 말고. 나 기분 안 좋아. 저기압이라고. 남자친구랑 헤어졌어. 그러니까 당분간 귀찮게 하지 마. 알겠어?」
캔디스는 그렇게 자기 할 말만 하고 전화를 뚝 끊었다.
뭐야! 세바스찬 이 자식을 그냥... 워──워──워!
그래서 나는 동네 카페에 들려 혼자서 노트북을 펴놓고서 낙서를 했다. 내용은 칼럼으로 정리해서 여성환상 1.5에 이메일로 보냈다. 물론 칼럼을 완성한 다음에 다시 잃어보니 이건 영 아닌 것 같아서 파일을 깨끗이 지워버릴려다가, 품위 유지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두 눈 딱 감고서 보냈던 것이다.
5
사교계로 행차하시면 시시한 삼류이자, 친구를 사겨볼려고 하면 성가신 사람으로 비춰질지 몰라 멈칫하고. 두렵진 않지만 뭔가 위축된 심정. 아마도 하찮은 인생? 재미없고 심심할지라도 몸만 성하면 아니 마음만 싱그러우면 행복인 것. 젊음의 열정과 흥분과 꿈 없음에 대한 불안감이 가물가물하다 뿐이지, 다른 사람들도 알고 보면 다 비슷비슷 거기서 거기. 행복한 척 재밌는 척 즐거운 척 메소드 연기. 그렇고 그런 일상. 이래도 흥 저래도 흥. 쓰면 뱉고 달면 삶키고. 그럼 혹시 내 삶이 뭔가 크게 잘못된 것은 아닐까? 아니다. 그만 하면 그럭저럭. 그럼 설마 내 할 일과 내 할 말이 이렇게 된 건 누구의 잘못일까?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세상이 끝난 것도 아니고. 지금 이렇다 할 비정상도 아니고. 그렇다면 이제야말로 슬럼프를 탈출하자마자 진정한 권태기? 변화는 삶의 활력소인 것. 마지막 짚 한 오라기가 낙타의 등을 부러트리는 법. 아직은 미술관에서 르누아르를 감상할 때도, <끝내줘. 끝이라고. 끝장. 끝이지 끝> 라면서 유유자적 놀기엔 아직 더 달려야 한다는 것. 그렇다고 지레 겁먹지도 말고. 장비에 대한 투정도 얼마든지 괜찮고.
그래서 나는 새 노트북을 사러 매장으로 달려갔다.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에 아무런 일 없이 나는 무사히 새 노트북을 사서 집으로 갔다.
6
다음 날. 사무실.
「속이 타들어가니?」
「타들어가기는 뭘 타들어가. 이미 탔어. 어디 귀만 탔겠니. 더 탈 뭐가 없다고. 됐냐?」
「시치미떼긴. 오바하지 마.」
「시치미떼긴 누가 시치미뗐다고 그래?」
「시치미떼긴 누가 시치미뗐다고 그래?」
「따라하지 마라~!」
「따라하지 마라~!」
「」
「워──워──워. 성깔 있네.」
「됐고.」
~라는 식의 농담 따먹기. 인공지능 지니와 함께 하는 대화도 더 이상 재미없었다.
그래서 나는 역시나 공상을 시도했다.
<미남을 낚고, 성우를 꼬드겨 덥썩 물어오고, 자상한 달변가와 웃긴 매력남을 눈빛 만으로 유혹하는 데 성공하기. 그 일이 늘상 식은 죽 먹기처럼 쉽다는 건 그녀들만의 공상. 그럼 그런 미지의 이상이 구현되는 기적은 어딜 보면 흔할까? 그렇지, 드라마와 할리퀸 문고. 그러나 꿈과 달리 현실은 내게 쌀쌀맞음. 냉혹함. 얌체. 그래서 수다 3시간의 성과는 결론없음. 때문에 사랑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찾아나서는 여자가 있는 반면, 최고가 나타날 때까지 끝까지 묵묵히 기다리는 숙녀도 있다. 운명이란 바로 그런 거니까. 쩝쩝쩝과 냄새와 세뇌와 비교 등등에 데어 봐야 정신을 차리지. 곧 어설픈 뻔트와 셀 수 없는 쨉 말고. 기 막힌 한 방. 회심의 어퍼컷. 그러나 사랑은 야속하고 미래는 모르는 것. 고로 남자보다 여자들 생각만 자꾸자꾸 복잡해지는 것! 따라서. 따라서? 따라서긴 뭐가 따라서야.>
~라고 나는 연애칼럼을 쓸려다 포기했다. 오늘은 왠지 일이 손에 잡히질 않네. 그럼 어떡하나. 어떡하긴 뭘 어떡하나, 놀아야지. 그런데 뭘 하고 논담? 그러게 말이야 내 말이.
7
그러다 나는 노트북을 사온 걸 기억해냈다. 깜빡하고 있었네. 그렇게 박스에서 꺼내고 대충 세팅하고. 그러다 노트북 안에서 웬 파일을 발견했다.
거기 들어있는 파일은 BLOG란 이름의 엑셀파일. 주식 정보가 들어있는 엑셀파일. 북마크 파일과 메모장 한두 개. 기타 등등.
뭐야? 내가 기존에 애용하던 파일들이랑 비슷하잖아? 그럼 이건 중고품이란 거야, 아님 인공지능 지니가 장난친 거야? 아마도 후자. 그럼 그렇지.
「눈치 챘어?」
「너지? 새롭지도 않다.」
내가 지니를 오냐오냐해 주었는지, 아님 반대로 지니가 날 너무 오냐오냐해 주었는지. 이제 헷갈리지도 않고 이래도 흥 저래도 흥.
「새롭지 않다고? 그럼 이건 어때.」
「이거 뭐?」
「게임 체인저를 한번 해 보는 건 어떠냐고.」
「또 뭔 꿍꿍이인데 그래?」
「너 지금껏 네 생일잔치 한 번도 안 해 봤지? 그치? 가족끼리 조촐하게 그냥 케익 먹는 거 그런 거 말고. 너가 스스로 친구를 부르거나, 여자친구랑 기념하거나. 그치? 한 번도? 하긴 남자는 친하면 친구를 자기 집에 데려가고 싶어하는데, 것도 적극적이었던 적 거의 없겠네. 그치?」
「늬가 그걸 어떻게 알아? 딱 맞췄긴 한데. 얻어걸린 거니 아님 치밀하게 분석한 거니?」
「뭐가 됐든, 안하느니 보다는 늦게라도 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뭐 결혼? 아 생일 파티. 아니 재혼?」
「뭔 생각을 하니? 인생은 두 번 다시 되풀이 되지 않아, 이 친구야.」
하긴 난 최근 인터넷으로 아기 태어나는 동영상을 찾아봤는데, 생전 처음 그런 장면을 구경했는데 별거 없었다. 도착증 막 그런 게 아니라, 생애 최초로 왠지 모르게 그게 그냥 막연히 보고 싶어졌다고나 할까? 그저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그런데 그 섭리와 신비가 집약된 숭고한 장면이 별로라는 말이 아니라, 그걸 보는 당사자가 감흥이 무덤덤했단 뜻. 감정이 매마른 걸까? 아님 수컷의 본심 애정의 본성 때문일까. 뭐가 됐든, 유튜브에서 말이 망아지를 낳는 장면을 보면, 신기하기는 하다. 단순히 말만 태어나는 게 아니라 자궁의 그 막 그런 것과 함께 항문에서도 막 그 딱 그 막 그러고. 다큐멘터리로 새와 맹수와 초식동물과 돌고래를 보는 느낌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생소하고 순수해서 보면 좋은데, 막 30분 1시간 내내 감상하긴 뭐 하다 그거다. 역시나 정답은 구간 당기기! 그걸로 보자면 뭐랄까 영악해진 건가. 무슨 컨텐츠든 뭐든지 요점과 제일 재밌는 구간만 떼어서 보는 식으로 줄거리 짤이랄지 GIF 파일만 대충 보는 습관. 익숙해져서 그런가 보다. 실제 산부인과에서 애 낳는 장면을 남편이 직접 봐도 경우의 수가 몇으로 나뉜다 하는데, 보길 권하지 않는 쪽도 있고. 그야 어떻든 인터넷에서 사람들이 툭 툭 던지는 말처럼 그게 맞는 거 같다. 곧,
나이든 남자는 해 볼 거 다 해 보고 알 거 다 알기 때문에, 안 해 볼 거든 뭐든 살다 보면 못 볼 거도 보고, 안 들을 거도 듣고, 따라서 한마디로 나이든 남자가 진짜 여우다.
논리적으로 틀린 말도 아니고. 아줌마 허세처럼 좋게 말해 환상머신도 어차피 중고 되는 것. 뭐야, 난 아직 늙지 않았어! 이제 그만 인정하라고? 인정하긴 뭘 인정해. 너나 인정해. ~라는 말이 아니라. 그게 아니라. 그런데 뭐야 이거. 그럼 그래서 어떤 남자들이 바람피어도 들키지 않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죄책감이란 어차피 다 연기고 뻥이다, 뭐 그런 뜻이냐고. ~라는 생각 바로 그런 생각을 어떻게 어찌 좀, 상상력의 수량화와 꿈의 정량화. 그런 고리타분한 주제로 연결시켜서 씨름할까 말까를 고민하던 찰나. 사무실에 친구들이 느닷없이 들이닥쳤다. 연락도 없이.
「너네들 여기 웬일이야?」
「웬일은. 너가 불렀잖아. 늬 생일이라고.」
「생일이면 생일이라고 말을 하지 그랬어. 어?」
「알아둬. 선물은 없어. 우리끼리 그거 좀 그렇지 않니. 드라마에 나오는 거, 우리도 그러라고? 허허. 왜 이러실까.」
옛날 옛날에는 낮 12시가 되면 마을에 사이렌이 울렸는데. 그 12시 사이렌이 시작됨과 동시에 엄마의 자궁에서 빠져나와, 나는 이 세상에 머리를 들이밀었다. 물론 그걸 어찌 기억할 수 있겠나. 그냥 엄마한테 들어서 알 뿐. 그 날이 오늘이라고 얘네들한테 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다. 그냥 넘어가도 되긴 하겠지만, 왠지 그래서는 안될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는 고백했다.
「사실은 뻥이야. 미안. 나 오늘 생일 아니야. 정말 미안. 그게 말이지...」
「뭐?」
「와우~! 얘 웃겼어. 얘 우릴 간만에 웃겼어.」
「와. 영화에서 본 거 따라하면 어딘가 모르게 실망해야 할 거 같은데. 대체 왜 내 기분이 좋지? 너 제대로 한 건 했어.」
「와 대박~! 오 소름~! 와 장난 아니야. 이거 뭐니? 어? 이거 뭐야!」
「OK~! 그러거나 말거나. 생일이든 아니든 그게 뭔 대수니. 생일 축하하네 어쩌네 그거 다 뻥이야. 그냥 빈말이잖아. 웃겼으면 됐어. 그럼 된 거라고.」
「고생했다. 수고했어. 어떻게 그런 식으로 웃길 생각을 다 했니? 거 참 기특하다 기특해. 황당한 게 아니라 아주 그냥 (몸짓) 치즈 냄새 끝장이네 그려.」
8
나는 최근 부쩍 가까워진 세바스찬한테 전화를 했다.
「뭐해?」
「넌 뭐해?」
「나? 난 너한테 전화했지.」
「잘했어. 난 할 일 없었던 참이야.」
「그래? 어디야?」
「넌 어딘데?」
「넌 어째 애가 꼭 질문을 질문으로 받길 좋아하더라. 너 일부러 그러는 거 아니지?」
「아니. 일부러 그래. 농담이야. 나 집이야. 오늘 쉬어. 너는?」
「나도 집, 아니 사무실. 그런데 있잖아. 나 심심해.」
「너가 심심하다구? 난 더 심심해. 알어?」
「아이 참. 나 재미없단 말이야. 어?」
「난 더 재미없어. 이거 왜 이래? 이거 하나만 알아 둬. 나 많이 참고 있어.」
「난 더 많이 참고 있어. 알긴 아니?」
「그런데 뭘 참고 있는데?」
「뭘?」
「왜, 허를 찔렸니? 말 돌리지 말고. 논점의 핵심이 뭐야. 아니 우리가 무슨 토의를 한 거도 아니고. 전화한 용건이 뭐니?」
「글쎄. 내가 왜 전화 했을까?」
「그걸 나한테 물어보면 어떡해?」
한발 양보하여 나는 세바스찬의 아지트에 놀러가기로 했다.
녀석은 시트콤에 나오는 회원제 카페 겸 놀이터를 운영하고 있었다.
거기가 거의 녀석 집이나 마찬가지였다.
행운의 마스코트니 뭐니 선물은 필요없었다.
가택감금 수감자의 생활이 어떤지 대충 구경이나 하고 오자는 심정이었다.
혼자 노는 데 이력이 붙었으니 대화나 나누자는 의도였던 것이다.
나는 차에서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플룻 소나타를 들으면서 녀석 집까지 갔다.
도착.
도착.
도착.
딩동~!
「어. 왔어?」
그런데 세바스찬의 뒤로 난 결국 보고야 말았다. 캔디스의 얼굴을.
전전긍긍 눈치 없이 분위기 깰 일 있나. 아니 혹시 세바스찬이 일부러 불렀나? 뭐하러? 자기가 이겼다고?
「바쁜 거 같은데 나 갈께.」
「왜 바쁜 일 있니? 그럼 다음에 놀자.」
뭐? 이 자식이...! 안 잡네? 진짜 안 잡네? 됐다 됐어. 됐다 그래. 나도 됐어. 누군 뭐 좋은 줄 알어?
볼썽사납게 내 초라한 기분 쳐짐과 추레한 몰골과 괴상한 표정은 말이 아니었다. 괜히 서글퍼지네. 분명 아까까진 오늘 행복 그래프가 널널했는데. 우쨌든 그건 그거고.
녀석이 바쁜 거야 어쩔 수 없는 노릇. 색다르고 혁혁한 승전보 감이나 찾아보는 수 밖에.
발을 동동 구르며 조바심 품지 않아도 되고. 딱히 병적인 애착감도 없고. 이상한 집착은 아직이고.
그러든 어쩌든 고리타분한 일상은 더, 더더욱 고리타분해졌다. 동물적인 감각은 어데 쓸 데가 없고 말이지.
하여, 구두가 없으면 맨발로 가라지 않나. 어차피 맨발의 청춘. 반올림 하든 안 하든 청년 또는 중년이자, 벌써 노익장을 과시할 준비를 해야 할지도 모르지만. 누가 나이 얘길 꺼낸 건 아니지만 지레 겁먹었나? 그럼 선수 쳐야지. 반내림해서 젊음에 묻어가는 거지 뭐. 그처럼 나는 혹 떼러 갔다가 혹 붙여 온 듯한 꿀꿀한 기분을 회복하고자, 혼자서 동물원 구경이나 하고 오기로 했다.
9
새것이 들어오면 옛것은 밀려난다.
동물원으로 가다가 나는 영화 광고를 잠시 스쳐지나가듯 보았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이라나 뭐라나.
난 방향을 틀었다.
그렇게 극장에 도착했다.
극장은 지옥같이 시끄럽진 않았으나 북새통. 화기애애한 분위기. 도대체 얼마나 재밌길래.
표를 사고 난 상영관으로 들어갔다.
영화 시작.
내용을... 난 잘 이해할 수 없었다.
솔직하고자시고 할 것 없이, 재미가 없었다.
뭔 내용인지도 몰랐다. 심지어 계속 졸다 깨다 졸다 깨다.
혹시 내 커피에 수면제 성분이 들어간 거 아닌가 궁금한 정도였다.
지금은 흥행이 괜찮을려나 몰라도. 아마도 10년 20년 후 다른 영화에서 이 영화 제목을 썩 거론하진 않을 듯 싶었다. 사실만 따져서. 좋게 말하든 아니든.
그렇게 계속 멍청하게 뭔 내용인 줄도 모르고, 주인공들 심리를 쫓아가지도 못하고, 주제를 유추하긴 커녕 계속 졸기나 하고. 줄거리조차 이해하지도 못하고.
눈에 보이는 것 외에 뭔가가 있는 건가? 다른 사람들은 다 재밌다고 들썩들썩 난리인데, 도대체 왜 나만 재미가 없냐고! 때문에 괜히 내가 이상한 건가 막 그래서 느낌이 부쩍 의뭉스러워졌다.
아무튼, 어차피 비상한 관심을 부쩍 부채질하는 건 남의 일이고. 난 미안한 말이지만 더럽게 재미없고. 어디까지나 혼자 생각이고. 이대로 멍하니 졸다 깨다 자다 멀뚱멀뚱 멍청히 앞만 쳐다보느니. 차라리 카페에 들어가서 <애처가라는 시시한 별명을 획득하는 게 유일한 꿈>에 대해서 낙서나 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웬만하면 끝까지 보겠지만 이건 아니다 싶어서 중간에 나왔다.
그렇게 영화 중간에 혼자 바깥으로 나오다가 나랑 비슷하게 바깥으로 나오는 사람과 살짝 부딪혔다.
의례상 어쩌고저쩌고.
환한 공간에 나오고 보니 글쎄, 나오는 길에 살짝 스친 분은 글쎄 친구 스티븐이었다.
「아이쿠. 이게 누구야.」
「어? 너... 너...」
「내 이름 생각 안 나지? 그럴 수 있어. 그럴 수도 있지 뭘 그래. 실은 나도 늬 이름 생각 안 나. 농담이고. 설마 너도 재미없었니? 어떻게 이렇게 다 만나네.」
「너도?」
「속이 뻥 뚫린다. 속 시원하다. 난 나만 이상한 줄 알았지 뭐니. 어때, 바쁘지 않음 차 한 잔 어때?」
「좋지.」
그렇게 스티븐과 나는 극장 앞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너도 노잼?」
「응. 너도?」
「그럼」
「만든 공력이야 박수를 쳐야 마땅하지만. 억지로 물개박수에 가담할 수야 없지. 난 이 영화 대체 왜 보는지를 모르겠어. 물론 매니아들은 좋겠지만, 적어도 말이야. 드라마와 시네마는 달라야 하는 거 아니니?」
「그래 그래. 그건 그래. 늬 말이 맞어. 흥분하지 마 얘. 왜? 상업영화니까. 우리가 가족영화를 볼 수는 없는 거 아니니? 아님 애들 보는 판타지 영화, 그걸 애들 때문에 같이 가서 보는 거지 좋아서 보는 건 아니잖아. 안 그래?」
「그건 그렇고. 넌 어떻게 살어? 뭐 재밌는 일은 없고? 왜, 내가 선물 하나 줄까?」
「선물? 뭔 선물?」
「콘돔.」
「뭐? 쓸 일이 없다. 생각도 없다. 재미도 없다고. 어?」
「너 너 그러다 득도한다. 어? 그러다 나중 사리 나온다고. 응? 아님 혹시 오늘 몽정이라도 한 거니? 아니지? 아니지? 그런 거지? 그나저나 독수공방이면 뭐 근섬유는 싱싱하겄네. 너가 의무방어전을 걱정하는 우리들 맘을 어찌 알겠니. 허허.」
「나도 다 알아. 이거 왜 이래? 너, 너, 가만 보니, 잔근육 괜찮네. 왜? 지명 방어전 생각나니? 본전 생각하는 걸 엄한 데다 갖다 붙이진 말자. 그러자고. 응?」
그렇게 우연히 만난 기쁨을 아쉬워하며 우리는 헤어졌다.
10
시각 장애인도 사람이다, 삶은 계속되야 한다, 인종차별 반대, 여성혐오 금지, 수컷 일반화 뻔한 얘기들, 으쌰으쌰 착한 척, 또 또 뭘 얘기할지 뻔한 말, 식상한 표현, 일단 말을 시작했다 하면 말이 엄청~ 완전~ 길어서 듣다 듣다 지쳐버리는 화법 등등.
싫고 짜증나고 지긋지긋한 주제에 대해서 누군가 말하거나. 내 공상으로 자리잡던가. 가장 손쉬운 대처법은 화제 전환.
예를 들면 무인도에 제일로 데려 갚고 싶은 3인방. 재산 목록 순위 1-2-3. 첫사랑 첫키스 첫경험. 사고 싶은 물건 1-2-3. 그런데 고지서를 보니 내야 할 체납금이 뭐야 이거 0이 대체 몇 개야?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이런 젠장! 심지어. 뭐, 사랑하는 사람과는 손도 못 잡아 봤고, 데이트 0에, 키스도 0에, 사랑 고백은 물론이거니와 단둘이 커피도 식사도 못했봤다고? ~라는 헛길로 빠지면 안되고. 당 떨어졌네. 기분이 상했거나. 분위기가 쳐졌든가. 아님 느낌이 세한 건가? 그러든가 말든가. 그래도 알록달록 부케와 연분홍색 튤립과 달콤한 케익을 생각하기. 아니 큰 돈 드는 거도 아닌데, 꽃도 사고 먹고 싶은 거 사 먹기. 생일 선물과 다가올 크리스마스 이브 파티를 기대하기. 굶을대로 굶은 늑대에게도 호시절은 돌아올 테고. 기쁨은 곧 열망인 것. 쥐구멍에도 볕들 날은 있는 것. 인생은 개구멍 사랑은 뻔트. 뭐? 다시, 긍정적인 심상과 낙관적인 선망을 떠올리기. 됐고.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냐고? 딱히 할 말은 없었고, 할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는 것. 그래? 그럼 답은 하나네 답은 하나. 쉬면 그만. 놀면 해결. Y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