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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풀에 지치지 않는 허당인 줄 알았는데 난 결국 지쳤다. 물론 뻥이다. 제풀에 지칠 만큼 열정가이자 정력가라고 자부하기도 뭣하고. 무명 보고 누가 무관의 제왕이라며 갈채하겠나. 미완의 환상머신도 이젠 무심코 잊은 듯한데 말이다.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어쩌면 그랬다. 어떡하면 좋을지 모르겠어! 뭐? 모르긴 뭘 몰라. 그렇다고 분에 넘치는 행복감 때문에 뭔가가 꼬인 건 아니고. 아닌 게 아닌가? 아니 그러니까 어째서? 그걸 알면 오죽 좋겠나. 사랑의 새출발이 싱글벙글 미소를 불러올지 히죽히죽 쓴웃음을 동반할지 모르지만, 또다시 사랑을 생각하기도 싫고. 알 듯 모를 듯 미지의 여심을 우리 보고 대체 어쩌란 말이오. 아니 그렇소? 어떻게 장단을 맞출 수가 있어야 말이지. 여자의 마음은 그런 것. 전 달라요, 그런데 가만 보면 여자는 다 그래. 하나도 다르지 않음. 그래서 남자에게 하는 말은 뭐다? 오빠도 똑같아! 말은 저 그런 여자 아니에요, 그러나 행동은 이따금 심신분리. 친오빠가 동생한테 하는 말. 손 씻었니? 또, 바쁘니? 바빠? 왜? 도대체 왜? 뭘 들켰길래? 대체 뭔 장면을? 밤엔 쉐도우 복싱 새벽엔 이미지 트레이닝? 혹시... 에잇~ 설마! 아닌가? 넘어가고. 남자를 보고서, 그놈이 그놈이다 라니. 뭐 여잔 안 그런가? 여자는 천생 여자! 그 정원에 그 정원사인 법. 그런데 여자 얘기가 지금 왜 나와? 내 말이! 하여튼 쯧쯧쯧, 누가 남자 아니랄까 봐. 됐고.
그래서 나는 뭔가를 하긴 했는데 그건 다름 아니라 일이었다. 공부, 싫어도 해야 한다. 노는 건 오직 애들의 직분. 그럼 아저씨들은? 살살 꼬드기고 간지럽히고 이름을 불러주면서, (그대 이름)가 뭐 돈 버는 기계냐! ~라고 딸랑거리면 아저씨는 흐뭇해하신다. 뭐 그건 그거고. 여하튼 나는 일하기에 대한 성과가 있었을까? 있었다. 오페라 로델린다 2막 용서받지 못할 자들이여, 나는 맹세했노라. 조지 프레드릭 헨델의 음악이 아찔한 착상을 자극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뭔가 있긴 있었다. 즉 독수리 흉내내는 땡벌 소리 같은 효과음이 들려서 서둘러 기록한 발상은 이랬다.
A. 자기 남편과 절친이 당신이라며 어느 여인이 날 찾아옴. 남편이 종적을 감췄다면서. (하객알바 때 신랑 옆에서 찍은 사진을 보여줌)
B. 나는 사기 당함. 친구들은 푼돈인 반면 나만 고액. 이런 젠장!
누구 얼마 누구 얼마, 쟤는 페라리가 전 재산이 아니라 새발의 피... 그런데 나만. 하긴 알고 보면 사기도 아님. 펀딩 사이트에 올려진 딱 3개 아이디어에 혹한 것일 뿐.
첫째, 플랑크톤을 최고급 천연화장품 재료로 추출하는 기술.
둘째, 무중력 상태 즉 우주에서 우주 에너지 입자를 빨아들여 헬맷만 착용하면 호흡 가능.
셋째, 수중에서 물속에 녹아있는 산소 및 이산화탄소를 적정 공기로 변환하는 호흡기.
C. 풍문으로 알게 됨. 걔와 걔가...! A와 B가 좋아하는 사이. 그래서 몰래 떠남.
뭐 A B C?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아름다운 두 여인을 사랑하게 된 아저씨 이야기가 낫겠네. 정말로 귀여운 천사와 다정한 요정을 친애하는... 됐다. 재미없다. 사랑은, 없다. 농담이고.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라. 마차 바퀴는 기름을 쳐야 한다는데 노상 엉덩이만 근질거리고. 어? 성자 집 하녀 라틴어를 인용한다지만 일하기 싫어서 늘상 인터넷에 올려진 시덥잖은 이야기들만 기웃거리고. 그게 뭐냔 말이지. 그래도 우리는 아직 쾌락마를 탈 적기가 아니란 걸 안다. 참기와 풀기. 뭐? 하긴 틀린 말도 아니지. 멀리 여행하기를 희망하는 자는 그의 말을 아낀다지 않나. 곶감론마든 샘물론마든 그런데 그 얘기가 지금 왜 나와? 내 말이. 더럽게 재미없고 심심함이 절망의 징조일지, 아니면 행복의 암시일지 모르겠으나. 이건 아니다. 이건 아니라고. 그렇다고 재미없다며 글을 쓰느니, 인공지능 지니에게 따분하다며 말하기도 모양새가 좀 그렇고. 그러면 멀쩡히 혼자 노는 친구를 불러내서 난 불행하다는 실토를 기어코 받아낼 수도 없고. 그래서 험담가들의 뒷담화가? (절레절레)! 털어놓기는 뭘 털어놔. 됐고.
그래서 나는 친구들을 만났다. 것도 남자만 골라서. 왜? 왜냐, 왜냐하면 바로 그 때문. 뭐랄까, 응? 뭐라고나 할까 최근 여자 조심증이라고나 할까? 숙녀론? 약간 뭔가 어떤 결벽증의 성격을 일부분 닮은 듯한 여자 신드롬? 딱히 자세히 털어놓고 싶지 않은 신경질증이자 강박증 때문에 난 아는 동생들을 피해다녔다. 그런데 남자들만 만나니 통 재미가 없네. 예를 들면,
톰, 말수가 없다. 토마스? 돈이 없다. 도날드? 바빠서 중간에 꼭 먼저 튄다. 닐, 왜 녀석이 여자가 없는지 알 거 같고. 그렇다고 윌? 말만 말만 웨렌 버핏이요 빌 게이츠다. 말만 스티브 잡스고 폼만 스티브 발머다. 자기가 '마리떼 프랑소와 저버'라는 상표 청바지를 입었던 여자를 만났는데. 그 얘기하다 뭔 얘기를 했는지 까먹는다. 존티도 똑같다. 전전 직장에 다닐 때, 직장 동료녀가 자기한테 청바지 사주라는 여자가 있었는데. 그런데 듣고 보면 별 얘기도 아니다. 멍키스패너 포르토피노라고 다를까? 지 여자친구가 랭글러라는 청바지를 입었는데 결론은 '결국 차였다'가 다다. 그리고 제라드? 지가 무슨 서지오 발렌테라는 모자를 쓰고 다니면서 왕년에 지 발에 채이는 게 여자였다는 얘기만 하고 또 한다. 사무엘이라고 뭐가 다르겠나. 친구들 7명끼리 바에 갔다가 멀끔하게 정장 차려입은 여 바텐더에게, 돈이 최고로 많을 것 같은 1인자로 손꼽혔다는 얘기. 그 얘기만 하고 또 한다. 증말 더럽게 했던 얘기만 하고 또 하고. 내 참 더러워서 바텐더한테 봉투 찔러주고서 미리 짠 다음 친구들 불러서 돈이든 뭐든 그 뭘로도 첫손 꼽히든가 해야지 이거 참 허허. 재미 하나도 없고. 뭘 해도 재미없고. 따라서 나는 다시 아는 동생들한테 돌아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2
나는 한동안 여성환상 1.5 편집장 사라를 피해 다녔다.
아는 동생들에 둘러쌓여 정신 못 차리다 보니, 응? 일도 못하고. 지갑만 털리고. 그렇다고 1 대 1로 만날 기회는 기대할 수 없고. 기 빨리는 거야 그렇다 쳐도, 품위 유지비까지 바닥날 것 같은 예감. 아는 동생들은 여지없이 그 단조 기대감을 충족시켜주었다. 크리스티, 엘리자베스, 로즈마리, 에밀리... 여자? (절레절레). 만나면 재밌고 웃기고 좋고 즐겁기는 한데. 단지 기쁜 게 다가 아니었다. 시간 후딱 지나갔다. 흥미진진한 분위기 가운데 걔네들은 갑자기 훅 들어와서, 내 정신을 쏙 빼가는 식이 태반. 정신만 빼가는 게 아니라, 난 마음까지 빼앗겨 버린 것일까? 그러니까 사랑의 포로는 아니고. 만만한 오빠? 그러든가 말든가. 걔네들한테 홀려서 난 정말 제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녀들이 하는 얘기? 이를 테면 이런 얘기들이 전부.
<연애. 사랑. 남자. 주제는 뻔함. 뻔할 '뻔'자. 어? 솔직히 말해서 남자의 노력 반 나도 심심함 반, 해서 사귐. 애쓴다 애써 만나준다 사겨준다 그런데 창피하다, 그래서 어디 가서 내 남자친구라고 자랑스럽게 자랑할 수 없다. 만약 오래 사겼다면, 애인의 남자친구 듣는 데서 그런다. 어디 가서 내 남자친구라고 하지 말라고. 곧 해피엔딩이 아닐 경우에 대해서. 실컷 가지고 놀다가 질리고, 지겹고, 싫증나고. 뭘 모르고 멍청하고 짜증나고. 단물 빠졌겠다 비전 없겠다 재미도 바닥났겠다. 동격 연인 아니라고 그렇게 눈치 줘도 모르고. 양다리 어장관리 환승, 모두 불가능하지 않다고 힌트 줘도 더 멍청하고. 시작부터 아름다운 사랑이 아니었기 때문에, 고로 이미 중간부터 연애 끝물. 헤어지는 방법이야 무궁무진. 남자가 여자한테 질려서 나가떨어지도록 만드는 일, 환승이별녀 거울녀 머머녀들에게는 일도 아님. 자긴 어떻게 차였다느니 누가 누굴 만났다느니. 다변을 견디다 견디다 나가떨어지느냐. 아님 넌 너 밖에 몰라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오다 올라오다 참다 참다 못 참고 나가떨어지느냐. 상대방 기분 긁고 긁고 계속 긁는 방법이야 얼마든지. 말 끝마다, 필요 없어. 필요 없어 필요 없어. 그녀의 일기장을 보아하니 산만하기 그지없음. 흡사 사춘기 몽정기 소년 일기장을 나중 읽어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90퍼센트가 투정이요 울분이자 상욕인 것처럼. 소녀감성들이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나 가만 들어보면, 문구점 사장님 분식집 이모 말씀하시기로, 어? 처음부터 끝까지 남 얘기, 시작부터 끝까지 남자 얘기인 것처럼. 그녀의 친구를 만나봐도 그녀의 말 많음은 끝이 없음. 그녀는 남 말을 통 듣지 않는 친구로 유명함. 넌 너 밖에 몰라? 난 나 밖에 몰라. 그런 사람 있다. 말 많기로 어디서나 1등인데 친구 얘기 단 1도 들어주지 않는 수다쟁이. 진짜로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 오늘도 소셜 네트워크에 올려진 그녀의 얘기는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바로 "남들도 다 그렇지 않나?". 유리하고 나 기분 좋으면 자기 합리화, 나 짜증나고 불리하면 너 같으면 기분 좋겠냐. 듣다 듣다 나가떨어짐. 했던 말 계속~ 또 하고 또 하고 또 하고! 술 취한 것도 아닌데, 말 반복이 주사. 남들도 다 그래? 남들도 다 그렇진 않음. 절대 아님. 자의식 과잉에 듣다 보면 기 빨림. 한마디로 피곤한 스타일. 툭하면 남들도 다 그렇지 않나? 쓰잘데기 없는 얘기만 딱 골라서>.
그렇게 난 최근 여자만 보면 겁이 났다. 공포심이 따로 없었다. 그래서 그녀들을 잘 피해다녔는데.
그런데 어쩔 수 없이 일 때문에 오늘 환상문학잡지 미스테리아 편집장실에 온 것이다.
여기는 마라의 사무실. 난 그녀와 독대하는 중. 일 얘기는 다 마치고. 나머지 담소 중.
「마라. 너 여자잖아?」
「그럼 내가 여자지, 남자니? 왜, 보여줘?」
「보여주긴 뭘 보여줘. 누가 보고 싶데?」
「그런데 무엇을?」
「뭐긴 뭐야. 늬가 그러니까 남자가 없는 거야. 알아?」
「그럼 넌 뭐 여자 있냐? 늬가 더 문제야. 어? 늬가 더 상태가 안 좋다고. 이런 덜떨어진 꺼벙이 주제에 말이야, 어? 이상한 칼럼이나 쓰고. 동네 아줌마들이 뭐라 그러는지 알기는 아니? 그런 칼럼 읽으면 멍청해진다고 못 보게 한단 말이야. 알아?」
「알긴 누가 알아. 알고 싶지도 않아. 관심 없어.」
「관심이 없으니까 늬가 그 모양 그 꼴이지. 어?」
「너 편집장 자리 내가 꽂아줬어. 잊지 마.」
「안 웃겨. 지겹다 그 농담.」
「너 말단 사원으로 콱 그냥 강등시켜버린다.」
「할 수 있으면 해 보시든가.」
「늬가 더 재미없어.」
그런데 뭔 소설이 내용이 없냐? 뭔 진행이 없다고. 발단만 발단만 한도 끝도 없고. 하다 하다 여자들이랑 말다툼이나 하고. 밑도 끝도 없이 보여주긴 뭘 보여줘? 누가 보고 싶데? 그러니까 뭘? 어? 이거 왜 이래? 장난해? 아, 장난이 아니라 이건 소설이다. 그런데 말이 나와서 망정이지 이게 말이지 이게 말이야, 이런 문학은 보도 듣도 못했다고. 어? 밑도 끝도 없이 뭔 드라마가 잘 진행되다가 시간이 정지된 체 해설만 화염방사기를 뿜는 식. 안 그런가? 그게 뭐야. 뭔 개 풀 뜯어먹는 이야기냐고. 무슨 그런 개뼉따귀 같은 책을 누가 사서 읽겠냔 말이지. 그러니까 난 가난할 수밖에. 뭘 사무실에서 발단 구상만 내내. 친구들 만난 근황 토크도 듣고 보면 아무것도 없어. 그렇다고 뭐, 여자들을 피해 다닌 근황 토크? 재미 더럽게 없단 말이지. 마라를 만나면 뭘 하냐고. 어? 따로 밖에서 1 대 1로 만날 수가 없는데. 아는 동생들 많아봐야 다 영양가 없잖아? 누가 아니래. 어? 내 말이! 이런 젠장. 왜 옛날 단짝처럼 친했던 1살 위 형이 어린이부터 소년기까지 일기를 썼는데, 시작부터 끝까지 전부 다 욕이었는지. 죄다 짜증에 투덜거림이 전부였는지. 알 듯 말 듯. 아아 재미없다 재미없어. 거 참 더럽게 재미없다고.
3
툭하면 질펀하게 놀기 좋아하는 흥청망청 방탕아가, 거기서 더 타락하는 인생. 그건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 전혀. 아닌가? 그러든 말든 아마도 난 과묵하고 재미없고 더럽게 능력 없는 허당임이 분명한 것만 같다. 아닌 게 아니지. 신나는 사교계로부터 러브콜을 받길 꿈꾸겠나, 아니면 철판 깔고 평균 연령 깎아먹기에 매료되어 특급 꼰대로 유명해지기를 바라겠나. 속된 말로 깽판이니 개판이니 친한 친구끼리 그런 농담한지도 까마득. 걸핏하면 눈부신 여체에 황홀해하며 넋을 잃기나 하고 말이지. 남자들이란. 뭐 남자가 다 그렇지? 여자도 똑같다. 여자가 더 무섭다. 숙녀가 더 엉큼하다. 여우는 잠을 자면서도 닭의 숫자를 헤아린단 말이다. 여자는 역시 여자. 숙녀는 천생 숙녀. 옛말에 고양이는 물고기를 먹고 싶어도, 발을 물에 적실 생각은 없다 그랬다. 그래? 말 한번 잘했다. 무임승차는 재미없는 법. 훈수냐 야유냐, 아니다. 내일은 없다? 사랑은 있다. 그런데 갑자기 여자 얘기가 왜 나와! 아무래도 그분께서 일하기 싫나 보다. 하긴 누가 공부가 재밌어서 하나. 있긴 있는데 많진 않지. 월요병 때문에 아침에 사람들 얼굴을 보라고. 어? 그럼 지금 적절한 중간 평가는 어쩜 그거 아닐는지. 자는 사자보다 짖는 개가 더 낫다더란 말. 입증되냐 마냐 결국 생각이 많아지는데. 나가, 말어? 남자는 집에 있으면 안 된다, 우리는 세상 밖으로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아, 여기 사무실이지. 아무튼. 그런데 이런 식으로 투덜거리자면 한도 끝도 없겠네. 몇 날 며칠이라도 밤새워 마술사 입에서 실타래를 아무리 빼도 끝이 없겠다고. 어? (절레절레)!
따라서 나는 부득이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안될 만큼 코너에 몰리고 말았다. 꼬장꼬장 형세 따지고, 꼼꼼히 이득을 더 따지더니. 마침내 꺼낸 히든카드라고는 뭐다? 그걸 내가 알겠나 인공지능이 알겠나. 참 나 거 증말 가지가지 한다. 그래도 말이야 하긴 뭐 내가 걸어 다니는 소설도 아니고. 언제부터 문학을 챙겼다고. 그렇지만 아차 싶은 게 그거다. 생활연애 생활 도박처럼. 운명적으로 만나고 아름다운 사랑을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아무나 붙잡고 연애질 하는 생활 연애? (절레절레)! 줄 거 주고 받을 거 받다가 질리고 싫증나면 안녕. 차라리 휴가 떠나 여행지에 도착해 푸른 해변가에서 그녀들을 꼬시는 게 백 번 낫지.
「낭자 아름답소 나의 헌팅을 받아주오.」
뭐? 우웩~! 정말로 그러란 말이 아니라. '사람 아무나 만나는 거 아니다'라는 논조의 칼럼을 미친 듯이 써갈겼는데. 그와 딱 상반되는 불건전을 조장하는 게 아니라. 말하자면 생활 연애, 오다가다 만난 사이, 그리고 생활 도박. 난 노름꾼이 아니라 승부사를 더더욱 선호한다고나 할까? 해결사이고 싶다는 걸 어찌 숨기나. 난봉꾼보다야 사색가를 훨씬 편애하는데, 어? 생활 소설이 웬 말이냐 그 말이란 말이다. 그러므로 나는 부득불 부득이하게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안 될 만큼 코너에 몰렸다고 할 수 있다. 그럼 그 난국을 타개할 해결책은? 없다. 없어. 있을 리가 있나. (절레절레). 1 문단 2 문단 읽어봐도 근황 토크로 시작해서 근황 토크로 끝나는데? 시작부터 끝까지 남자 얘기인 것처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뒷담화인 거랑 똑같이. 발단이 삶의 전부고 발단만이 인생의 모든 것인 식이네. (절레절레). 아마도 그게 다 뭔가 반 박자가 늦기 때문인 것만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처럼 허구가 잘 써지는 건 말이지, 응? (피동적으로) 발동 걸리면 술술~! 그런데 (능동적으로) 시동은 못 걸어. 그러나 뭐 어쩌다 탄력 받으면 잘해. 그야 당연하지. 전반적으로 다 잘했으면 유명세 때문에 행복한 비명이나 질렀겠지. 보아하니 주도적인 얼굴 마담도 아니고. 화려한 간판타자일 리도 없고. 쓸 거포도 심심한 장타자도 연락이 안 되니까, 기대감 없이 그냥 한 번 장난처럼 써 보는 깜짝 출연 카드 같은 인생이란 말인가? 그래서 칼럼은 진행하는데, 픽션은 아찔한 착상이 떠오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건가. 그러거나 말거나.
하긴 장미도 때가 와야 피지. 그렇지만 말이야 도대체가 말이야. 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지는 거 아는데. 오라는 데 없고 갈 데만 많은 거도 다 아는데. 언제까지 체크, 체크, 체크... 기가 막힌 뒷패는 언제 들어오냐는 거지. 훈수는 결과까지 책임지지는 않는다지만. 핑~ 하면서 퐁~ 하는 그 효과음. 도대체 언제 들릴까? 바삐 돌아다니는 개가 뼈다귀를 발견한다고, 어? 우리는 집에 있으면 안 된다. 남자는 무조건 밖으로 나가야 한다. 우리가 늑대란 걸 왜 모른단 말인가. 늑대가 양을 탐하지 않으면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한단 말이냐고. 그런데 누굴 만나고 어디로 가지? 내 말이! 누가 아니래?
하여튼 거 참 소설 더럽게 재미없네. 내가 다시 환상소설을 쓰나 봐라. 내가 다시 생활소설을 쓰면 그땐 사람이 아니다. 그땐 개다 개. 어? 누군가의 질녀든 대모든 그 어떤 벌칙이라도 감수하고서 큰소리 뻥뻥 치며 떵떵거릴 수 있다. 빵빵 터질 만큼 재밌지 못할 바에야, 어? 더럽게 재미없는 몇 글자 가지고 타인의 귀중한 시간을 빼앗는 일. 우리는 관심 없다. 뻥치고 허풍 떠는 작자 본인 역시나 시간낭비. 또다시 허풍을 공상하고 뻥을 과장해서 허구를 짓는다면, 비록 내가 덜렁덜렁 뭔가가 달리긴 달렸다만, 그땐 정말 아는 언니 일면식도 없는 여동생들과 호형호제로 트고 지낼 자신 있다. 왕게임에 졌다 치고 그분들 마음 다 맞춰줄 수 있단 말이다. 물론 첫째 그분들이 누군지도 모르고, 둘째 그분들께서 정작 바랄지도 모르는데 나만 그냥 김칫국 원 없이 마시고 있는 셈이지. 왜 아니겠어. 잔칫상 차려지든 말든 숟가락부터 올릴 심보가 바로 이런 것이로군, 칫! 아무튼 내가 다시 소설을 쓰나 봐라. 내가 다시 말도 안 되는 글을 쓸 바에야, 차라리 개처럼 풀을 뜯어먹겠다. 무슨 개뼉다귀 같은 이야기도 이야기라고. 하나도 안 웃기고. 무슨 교훈도 없고. 기승전결은 더 없어. 밑도 끝도 없이 우연만 계속되고. 그게 뭐야? 어? 두 번 다시 허구를 짓나 봐라. 만약 다시 허황된 상상력을 아찔한 착상이나 된다는 듯이 나불거린다면. 그땐 개라니까 개. 그럼 정말 피노키오이자 돼지요 말이다. 어? 거 마 아따 진짜로 '막살자'란 애칭이 각별한 웨이터 되는 거지 뭐. (절레절레)! 아 나 이거 증말 재미 더럽게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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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말이지 요약해보자면 이렇다.
문단 1. 사무실에서 발단 구상. 친구들 만난 근황 토크.
문단 2. 여자들을 피해다닌 근황 토크. 마라 만남.
문단 3. 푸념.
뭐? 이런 젠장, 뭐야 그게! 그럼 그다음은 푸념의 할아버지 격인 대푸념? 대푸념은 개뿔. 그런 픽션이라면 누가 못 쓰겠나. 차리리 초딩들 일기가 훨씬 재밌겠네. 그런 거 누가 못해. 왜 아니겠어? 그러니 나는 조급해지지 않을 수 있나. 고전 만화영화 톰과 제리처럼 궁지에 몰린 식이었다. 그래서 나는 일단 동네 식료품점에서 음료수를 샀다. 왜? 음료수 이름에 혹했으니까. 보아하니 음료수 이름은 바로, 괴물. 괴물? 그 무슨 에너지 음료 있지 않나. 그런데 먹고 났더니 심장이 벌렁벌렁 으쌰으쌰 뭔가 대단한 일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의욕은 다 광고 얘기고. 정작 내가 바라는 벌렁벌렁은 그 벌렁벌렁이 아니고. 정말로 내가 원하는 하트 뿅뿅 윙크 반짝반짝은 그게 아니라 낭만주의이자 기분파였을 텐데. 여기서 포기하면 안 된다. 툭하면 싫증 걸핏하면 변심 때문에 삶이 이렇게 재미없어진 거 아니겠나. 하여 난 다시 재도전했다. 딴 음료수를 또 산 거지. 이번에는 이름이 넥타르였다. 그 왜 있지 않나. 그리스 신화에서, 신들이 마신다는 신비로운 술. 이 술을 마신 사람은 죽지 않는다고 했는데. 정작 마시고 보니 이거 그냥 싸구려 음료수였다. 이런 설탕물은 꿀벌도 마다할 것만 같았다. 그러나 불굴의 의지로 난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게 2번 고배를 마셨으니 3번째 도전. 이번에는 무엇을 마셔볼까나...... OK~! 압생트가 낙찰됐다. 고흐가 좋아했다지 않나. 그래서 샀고 마셨다. 그런데 결과는? 단언컨대 괜히 마셨다. 별거 없었다. 전적으로 당연히 실망. (절레절레)!
단언컨대 이건 아니다. 그렇다고 여자의 직감을 믿어볼까? 믿긴 뭘 믿나 난 남자인데. 어? 상남자! 캬~ 어? 그럼 뭘해 여자가 없는데. (절레절레). 이러니까 내게 여자가 없지. 어느 숙녀가 좋아하겠어. 있을 뻔 말 뻔한 전성기 있지도 않았고. 있을 둥 말 뚱 간지럽히든 근처에서 얼쩡대며 짝사랑해주던 여인들, 다 떠나갔다. 아는 동생들? 다 자기 살길 찾아갔다. 뭐랄까 날 좋아했던 여자들은 이를 테면 두 가지였다.
첫째, 오래 기다린 여자.
둘째, 일찍 베팅하는 여자.
첫째는 말 그대로 옆에서 알짱알짱, 근처에서 묵묵히, 알고보면 은밀히, 보아하니 은근히. 그처럼 눈망울이 하트 뿅뿅으로 오래도록 기다린 여자. 어? 나도 나다. 그 마음 못 받아준다면서 보내야 하는데. 미친년의 여우짓처럼 얼렁뚱땅 붙여놓은 여지를 주긴 줬네. 아무튼 둘째는 화끈한 여심. 집에서 자긴 2000만 원 해 줄 수 있다. 스타일만 달랐지 왈가닥 스타일은 시원시원하다. 자긴 5000만 원 해준다고 했는데, 남자 직업에 따라 풀베팅하면 2억까지 아빠가 가능하댔다. 그와 달리 자기 만나면 돈 별로 없어도 된다는 둥 자긴 가난한 남자를 좋아한다는 둥. 또 딴 애는 오빠 머리카락 짧게 자르면 멋지겠다 잘라라 잘라라~ 그래서 쉬는 날인데 카페에서 아는 오빠를 만나고. 질투 작전이었나? 아닌가? 몰라. 됐고. 그런데 왜 또 여자 얘기? 플레이보이의 육감도 다 썩었네 썩었어. 그놈의 썩은 미소. 뿐만 아니라 자칭 플레이보이면 뭘 해. 그 허접한 넉살 어디 가서 먹힌다고. 어? 그렇다고 속임수를 받아줄 시트콤 멤버들도 해체됐지, 립서비스 터는 거도 다 까먹었어. 남는 건 엄살만 늘고. 어리광은 더 늘고. 그녀들은 시간만 나면 이뻐지고. 우리는 기 빨리고. 무명일지라도 나뭇잎이 바람에 굴러가는 것만 봐도 꺄르르~ 웃는 소녀들이야 다 말하기 좋아하고 나서기는 더 좋아하고. 우리는 심심하면 시간 낭비요 소파에 자빠져 TV만 봐도 스트레스 해소보다 툭하면 기 빨려. 어? 이게 뭐야! 평균 연령 깎아먹더라도 대차게 젊음의 거리에 가면 뭘 하냐고. 다 닭 소 보듯 소 닭 보듯 남남일 뿐. 안 그런가? 이건 아니다. 값싸고 저렴하게 말해서, 조질 게 없단 말이야. 이건 아니란 말이지. 그렇다고 뭐 특단의 대책이라도 있나? 없어. 없다고. 어? 읎어! 있을 리가 없지. 허허. 사랑에 대한 희망은 이 남자 갖고 싶다일 텐데. 사랑의 환상 <내 꺼 하자>가 아직인 게 문제가 아니라, 어? 감정이 메마른 정도가 아니라 사랑 그게 뭔지 다 까먹었어. 추억은 원래 찐한 사랑이 각별한 법인데. 키스 어떻게 하는지도 다 잊어먹었단 말이다.
그리하여 나는 분위기 전환을 시도했다. 기분전환에 음악만한 게 있나.
요한 쉬트라우스 2세 / 사랑의 노래 왈츠 op.114
그러나 분위기는 전환되지 않았다. 환청으로 무슨 까마귀 울음소리만 들렸다.
따라서 나는 환상적인 막판 반전 같은 전개는 포기했다. 기대하지도 않는다. 예감마저 먹구름이 잔뜩 낀 셈이지.
요놈 봐라? 같은 은근 설레는 발단이 어딨어. 없어. 그런 거 없어. 있으면 다 뻥. 아니면 시시콜콜한 드라마. 다 남 얘기.
바로, 그러니까 그분들께서 툭하면 남 얘기. 시작부터 뒷담화 중간도 뒷담화 끝까지 뒷담화. 험담가 대회 그랑프리감으로 딱인 거지.
그런데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 거지? 내가 이러려고 작가가 됐나! 아니면? 어느새 나까지 그녀들 말을 따라 하고 있다. 그 (생활)명대사는 뭐다?
「다같이, 내가 오빠 이럴려고 만나?!」
그처럼, 내가 이럴려고 소설 쓰나?!
하다 하다 이제는 록가수 흉내내고 있네. 지가 가사 까먹으니까 마이크를 관중석으로 향하는 거 말이야. 하여간에... (절레절레)
참다 참다 생활 연애도, 생활 도박도, 생활 내기도 아니고. 생활 문학에 생활 명대사? 잘한다 잘해. 1 2 3 문단 다 0점인데 4 문단마저 푸념 중의 푸념왕.
안 되겠다. 결국 개는 고양이와 타협한다고, 응? 난 아지트로 향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혼자서는 뭔가 신나는 일을 벌인다거나, 기발한 착상이고 자시고 일하기 싫단 거지. 뭐든 싫증 작심삼일이라고.
5
나는 어젯밤에 이상한 꿈을 꾸었다. 내용은 이랬다.
<어디만 가면 어떤 이상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여인이 날 항상 따라다니는 기분. 그러다 개꿈이 항상 그렇듯 줄거리는 흐리멍텅 불분명 몽롱했는데. 그렇게 바깥 활동을 마친 후 내용 전개가 꿈이니까 어떻게 얼렁뚱땅 장면은 뚝딱 바꼍다. 그래서 2층 집에 있는데 무슨 순간이동도 아니고. 거실에 나 혼자 있는데 웬 멧돼지의 머리가 소파 앞 탁자에 올려져 있었다. TV에서 최근 멧돼지 멧돼지 그러니까 바로 그래서 꿈에 나타난 듯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그건 꿈이기 때문에 그 멧돼지 머리 옆에 웬 총이 있네? 난 현실에서는 BB탄 장난감총과 물총을 가지고 논 기억이 전부다. 꿈에서는 그마저도 더 드물었고. 그런데 뭐랄까 꽤나 현실적으로 생생한 꿈 내용이 느껴졌다. 난 아마 호기심 때문이 아니라 마치 뭐랄까 그냥 조건반사, 반사신경처럼 그냥 그 총을 잡았다. 어쩌면 애들 가지고 노는 장난감, 입으로 불거나 단추를 누르며 삐~ 하면서 기다랗게 서커스에서 보듯 말려있던 뭐가 앞으로 쭉~ 돌출하는 그런 거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 그렇게 어쩌다 나는 총을 쌌다. 그랬는데 정말로 불꽃을 튀기면 발사되네? 나는 소설 이방인의 주인공이 된 듯한 착각에 빠졌다. 당연히 꿈 안에서! 물론 식료품점에서 사 온 대형 생선 머리, 박제된 불곰 일부분에 집에서 나 혼자 해를 입힌 것과 크게 다를 바 없겠지만. 그래도 왠지 찝찝했다. 그러다 2층 벽이 낮아지고 나는 발로 밀어서 멧돼지 머리를 바깥으로 떨어트렸다. 다음은 얼렁뚱땅 점심을 어떻게 때울까 고민하다 이리 갔다 저리 갔다 그러면서 꿈은 끝났다>
뭐야 이거? 그냥 개꿈이잖아? 복권 살 깜도 안 되고. 기분만 살짝 불쾌해지고. 에잇.
그렇게 일과를 시작했다.
씻고 먹고 어쩌고. 사무실로 이동해서 음악을 듣고.
도메니코 치마로사 / 피아노 협주곡 B-flat major
옷은 검정 잉크색.
심심해서 컴퓨터 바탕화면을 여우에 놀란 마멋으로 바꿨다가 싫증나서 다시 원위치하고.
환청인지는 모르겠지만 웬 개에게 쫓기는 토끼 소리를 들은 것도 같고. 변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내가 뭐 제비도 아니고 여자 생각을 왜 해? 내가 무슨 잉꼬부부도 아닌데 새처럼 고갯짓을 뭐하러 하냐고.
그렇게 성과는 지지부진했다. 재미도 없었다. 일하기 싫었던 거지. 그래서 나는 일찍 퇴근하기로 했다.
동영상 구간 댕기기.
동영상 구간 댕기기.
동영상 구간 댕기기.
그래서 나는 아지트로 갔다. 도착했다.
나는 일단 허기져서 스파게티랑 빵을 시켜서 우걱우걱 먹었다.
한참 먹다 거의 다 먹어가는데 샬럿이 내게 인사했다.
「오빠. 고백해.」
「무슨 고백?」
「날 사랑한다고.」
「너 미쳤어?」
「그래. 나 미쳤어. 그러니 해도 돼.」
「뭘?」
「고백.」
「살럿. 잘 들어. 고백이란 말이야 무슨 애들 장난처럼 하는 게 아니야. 고백이란 크게 3가지가 있어.」
「그게 뭔데?」
대사가 길기 때문에 한 호흡 떼서 가는 걸로.
6
「첫째 진짜 고백, 둘째 장난 고백, 셋째 생활 고백. 그런데 웃긴 게 뭐냐면 대부분의 고백은 둘째나 셋째라는 거. 고백 그거 다 그냥 탐욕이야. 내 생각이 앞선 대부분의 뻥. 개 뻥. 상대방 입장에서 보자면 뚜껑 열림. 대체로 고백이란 그저 다 헌팅일 뿐이야. 남자에겐 그렇고 여자는 다르고. 어떻게? 내가 정말 고백받고 싶은 남자는 멋진 영화배우감인데, 그건 가짜고. 진짜는 웬만큼 잘생긴 남자한테 심심하면 고백받고 싶은 거고. 여자들의 불문율이 왜 있겠니. 그런데 그 불문율이 잘 지켜질까? 그럴 리가 있니. 야구경기에서 쓰리 아웃 돼서 수비수들이 대기석으로 이동하면서 투수 그라운드를 지근지근 밟고 흩트려 놓고 퇴장하면 그게 보기 좋니? 축구하면서 축구를 하지 않고 정말 하지 않아야 할 반칙을 일삼으면 그건 어떻고. 골프 선수가 정교한 티샷을 날리려는데, 뒤에서 정말 정말 듣기 싫은 말만 골라서 하는 건 매너니? 그런데 여자들의 불문율을 어기는 거. 그거 여자들이 더 잘 알잖아. 그런데 왜 어겨? 미친년이니까 그렇지.
가령. 여자가 대부분인 중견 회사. 사무실에 남자가 있어 봐야 성실한 유부남, 여자들이 선호하지 않을 외모남, 동성애자인 남자. 회사는 건실하고 어쩌고. 그래서 신입을 뽑지 않고 어쩌다 경력직만 뽑고. 그래서 대충 1년에 3번쯤 사무실에 경력직 사원이 새로 들어오고. 그런데 그 중고 신인들은 하나같이 빼어난 옷발에, 경력도 쟁쟁하고, 총각에다 여자들이 웬만하면 도저히 싫어할 수 없는 얼굴. 성격. 행동거지. 능력... 기타 등등. 그런데 매번 몰래몰래 그 신입을 누군가 채가. 채가도 항상 똑같은 여자가 채가. 쉬쉬하면서 사내 연애 소문내지 않으면서 몰래몰래 밖에서 단둘이 만나지. 누구와? 그 사무실에서 단 1명의 숙녀와. 여자 3명 단짝인 대학생에서 매번 남자들 인기를 독차지해도 웬만하면 다 철벽치고 거절해서 그녀들 우정이 유지되는 이치, 모르지 않지? 그런데 사무실에서 뭔가 소문이 나돌면 매번 신입을 딱 1명의 불여우가 독차지. 남자들이 그녀에게만 상향 지원한다면야 철벽치고, 선별하고, 여자들 우정과 여자 세계 불문율을 모른 체 하지 않으면 되는데. 여자 9명 생각을 하면 되는데. 그게 아니라. 자기밖에 모르는 여자. 그런데 매번 남자들한테 꼬리쳐서 내 맘에 쫌만 들면 따먹으려는 헤픈 년. 그게 바로 그 사무실의 불여우. 때문에 그 사무실 여직원들 사이에서 추문은 파다하지. 어쩌고저쩌고. 그래서 집단 따돌림받아도 싸디싼 여자.
그런데 왜? 뭣 때문에! 어째서?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왜냐, 왜냐하면 같은 여자들이지만 이기심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 평범한 여자들 같으면 동조해주고, 정담 들어주고, 맞장구쳐주고, 이해하며, 편들어주는 한편 이기주의라는 기제가 적절히 작동하는데. 저런 여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기주의자. 나는 언제나 신부, 나 빼고 나머지는 항상 전원 신부들러리. 너넨 전부 백댄서라는 주의. 때문에 그녀 입장에서는 저런 행동이 전혀 나쁜 게 아님. 그녀 생각으로는 지극히 당연한 현실일 뿐. 그러면 왜 안되냐는 듯 옆에서 알려줘도 도무지 이해를 못 함. 웬만한 여자들은 사리판단 분명하고 세상물정 아는 가운데 이기심이 사안을 판별한다면, 그녀는 한마디로 <넌 너 밖에 몰라> 부류. 완벽하도록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암컷 하이에나이자 불여우요 표범과. 평범한 여자들이 제일로 싫어하는 유형. 욕심내지 않아야 할 대상이고 자시고가 없음. 토너먼트 준비, 연습, 복기, 이미지트레이닝, 쉐도우복싱, 뻔트, 스카우트... 없이 모든 게 펜타곤 실전. 여자 세계 불문율을 철저히 따르고 지키는 여자들이 경주마라면, 그녀는 야생마. 반대로 생각할 수도 있고. 아무튼 180도 다르다고만 보면 돼. 야성을 어찌 숨기나. 순진한 여자들은 그녀의 밥이고. 굶주린 늑대 역시나 그녀에게 마찬가지고. 같은 여자들일지라도 완벽한 물과 기름. 결코 섞일 수 없음. 문화도 똑같아. 다를 거 없지. 밖에서 보면 고개를 갸우뚱할 수 있지만, 내부에서는 해가 동쪽에서 뜨는 것처럼 지극히 당연. 절대로 나쁜 게 아님. 오히려 예의 윤리 도덕. 저런 여자들끼리만 모인 아마존? 선 넘으면 고양이 발톱 콱~! 모든 걸 고양이에게 최적화되도록 동조하지 않으면 안됨. 선 넘으면 안된단 말이지. 너나 잘하지 뭔 참견? 너네 못생긴 여자들 오합지졸이랑 농담 따먹기 시시덕거리며 시간낭비하기 싫다, 화자는 아니지만 듣는 청자 기분 나쁘니까 비꼬던가. 좋게 말해줘도 결코 좋게 들리지 않으니까. 곧 철저히 신부들러리로 물개박수 치던가, 백댄서 거느리던가. 남자가 나 좋다는데, 참견 받기 싫다니까 그러시네. 수평은 없고 수직만! 어중간한 건 싫다 정신. 정반대 여자들끼리 어떻게 친해지나. 친하면 거짓말. 가짜 친분. 완전한 물과 기름. 웬만한 여자들에게나 불문율이 있는 거지, 골 넣으면 상대편 감독 놀리고 관중에게 엉덩이 까서 보여주는 게 기본인 여자인데? 말 다 한 거지. 말 다 한 거라고. 그녀 입장에서는 지극히 정상적인 행동이자, 중간은 가는 논리요, 최선을 다한 예의일 뿐. 괜히 순진한 숙녀들만 벙 찔 뿐. 응?
"너 그럴 줄 알았다~ 내가 뭐랬니~ 내가 널 모르니~ 그러게 왜 고집부려가지고 말이야~!"
남녀도 똑같아. 하나도 다를 거 없다고. 그녀 기분 저기압일 때? 뭔 말을 해도 웬만하면 좋게 들릴 리 없음. 아무 생각없이 한마디 툭 던졌는데, 그녀 심기를 건드리면? 말을 섞지 않는 게 최선. 어? 신경 끄는 건 차선. 여성스러운 멘트가 으뜸. (그걸 남자가 어떻게?). 피하면 더 좋고. 그게 진짜 (엄지 척)! 남자가 간접화법으로 뭘 가져다 주면 좋겠다는 듯 빙빙~ 돌려서 말할 때. 여자는 커피포트 부글부글. 남자가 직접화법으로 명령조로 얘기해도? 여자는 뒷목 잡고 뚜껑 열리고. 또는 '진짜진짜 미안한데'로 시작하는 1.5 화법. 여자를 하녀로 하는 거지. 옛말에 모자는 빨리 벗고 지갑은 천천히 열라는 말, 꼭 그래야 한단 말이 아닌데. 마법 주문을 걸면 뭘해, 통 마술이 걸리지를 않는데. 촌년&촌닭 커플 위주로 시트콤 찍을 때. 4 대 4 멤버 말고 신규 멤버가 촌년 보고서 점백이 점백이 놀려도, 시트콤이니까 친하니까 촌년은 뭐 그러려니. 그런데 웬 제비가 그거 듣자마자 옆에서 폭소를 터트리면? 촌년 뚜껑 제대로~ 열리는 거지. 푸하하하하하하~ 푸하하하하하하~ 웃음이 멈추질 않는 걸 나보고 어쩌라고! 촌년 정말 제대로 빡치는 거지요. 호호호. 여자는 웬만하면 앞에서 웃으면 안됨. 안 좋은 건 어지간하면 전부 뒷담화로! 오히려 그게 예의. 그래서 흉 보는 정도를 보면 얼마나 친한지를 알 수 있음. 진짜 진짜 친하면 면상에 대고 손가락질 하면서 놀리는 게 우정. 그녀들은 (나쁜 의미가 아니라) 어디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험담가니까. 남자가 얄미운 시누이식 화법을 구사하면 여자는 그냥 열불나는 거지. 축척되면 홧병 생긴다고. 어? 안 그래도 친구들 남친 남편은 잘생겼고, 목소리 좋고, 돈도 잘 버는데. 그런데 이 인간은 뭐가 이렇게 뻔뻔해? 속 뒤집어진단 말씀! 그럼 또 지는 비교 지는 비교 내가 어디서 들었는데. 그럼 남자가 뚜껑 열릴 차례. 남녀는 일단 말을 섞으면 안됨! 어? 주기적으로 간헐적으로 콱 한 대 쥐어막고 싶어야 정상이니까. 그래서 순진했던 그녀 성질 더러워지고. 순결한 숙녀는 어느새 동네 아줌마 되는 거지. 50 넘은 여자 누가 쳐다본대요? 우아한 미녀 50살이라면 몰라도... (절레절레)! 좌우지간 남녀는, 대화가 없으면 남녀가 싸울 일이 없다니까요. 연애 초반에나 다 성과를 위해서 뻥치고 연기하는 것일 뿐. 시간 지나봐. 음. 지금은 좋지. 허허허. 하여튼 남녀는 말을 섞으면 섞을수록...... 워──워──워! 다시 주제로 돌아가서.
좀비 영화에 보면 멀쩡한 사람이 좀비한테 물리거나 어째서 좀비로 변하면. 눈동자가 변하잖아? 어떻게 변하냐. 첫째 각막 전체가 하얗게, 둘째 각막 전체가 까맣게, 셋째 동공 깜빡거림이 사람처럼이 아니라 생선이나 새처럼. 넷째, 파충류 눈동자처럼 동공이 거의 1자에 가깝도록 변화. 다섯째 기타 등등. 그 가운데 그녀는 동공이 무섭게 생긴 길고양이와 완전 판박이인 습성 즉 야성을 띈다는 거지. 사회성 만점으로 길들여져 봐야, 예의 익히고 세상 물정 알아봐야 여자 세계 불문율 그거 짜증나는 거라고. 어? 자유인! 애마부인. 표범이 어찌 개와 팔짱을 끼겠나. 살쾡이는 늑대에게 윙크는 할지언정, 양치기견 머리 꼭대기에 올라가야 직성이 풀리는 법. 웬만한 여자를 양떼에 비유해도 된다면 그런 여자는 양떼와 DNA부터 전혀 다르도록 태어났으니까 다 가능한 것. 그게 다른 말로 뭐다? 천성! 죽을 때까지 바꿀 수 없는 것. 내가 가진 성격에서 제일 부드러운 걸 표출해서, 아쉬울 때 여자들 만족시킬 수야 있지만. 천성은 남자를 사냥하는 아마조네스 습성. 그 부류 족속을 여자들이 모를까? 모를 리가 있나. 늑대는 늑대를 알아보는 법.
결론! 그런 몰상식한 반칙왕 반칙킹 반칙녀. 요점은 이래. 막 요래. 평범한 여자들이 보기엔 꼴불견. 괘씸한 정도가 아니라 한마디로 남자에 환장한 년. 남자라면 그저 정신을 못 차리는 벌렁벌렁녀. 그런데 중요한 건 그건 순진한 숙녀들 기준일 뿐이라는 거. 그건 늬 생각이고! ~라는 게 그 반칙퀸의 입장. 그녀의 속마음? 살쾡이 중의 살쾡이! 그런데 웃긴 게 뭐냐면 그마저도 다 유동적인 거라는 점. 혈연 지연 학연, 밀어주고 끌어주고 띄워주며 환심사기. 선녀들 80퍼센트인 공동체에서 저러면 여자이기를 포기하는 거나 마찬가지인데. 저런 반칙녀가 대부분인 공동체라면! 그럼 먼저 채간 놈이 임자 아니겠나. 오다가다 만난 사이에서라면 두 말하면 잔소리고. 그래서 촌년은 운명적인 만남을 애호하고, 촌닭은 타격이요, 팔색조 파랑새는 타율이다 그거지. 실한 놈 물어오면 물어온 년이 용한 것. 다름 아니라 그게 미덕. 그러니까 다 사람들 모인 범위의 기저에 흐르는 문화가 무엇인가를 알고, 파악하며, 익숙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흠뻑 젖지 않으면 안 되는 것. 예를 들어 군대에서 별들이 마음에 드는 나중 대승할 장성감을 좋게 보며 개, 고양이, 소, 말, 돼지보다 늑대새끼만 편애하는 것. 일단 친분 쌓고 어쩌고 나중 거리 유지하고. 그게 나쁜 게 아니듯. 전체적인 분위기에 따라, 저 '남자에 환장한 년'을 손가락질 할 것인가 말 것인가가 정해지는 것. 다 그래서 잘나가는 클럽에서 물 관리에 총력을 기울이는 것. 돈 있다고 아무나 받아주나? 아니야~! 줄 서서 기다렸고 먼길 와줘서 애 썼으니 누구나 들어갈 수 있나? 아니야. 절대로 아니지. 멀끔히 차려입은 10명 청춘남녀. 8명은 퇴짜논다니까? 꽃단장하고 오면 뭘 해. 받아주지를 않는데. 딱 2명만 입장 가능. 나머지 8명은 짐 싸서 집에 가야지 뭐 별 수 있나. 그냥 가긴 서운하니까 그들만의 리그 2부 3부 찾아서 가야지 어쩌겠나. 그게 오라는 덴 없는데 갈 데는 많은 허당 입장. 반대로 러브콜 폭주하고 주가 높은 은근 허당이야, 다 가만 있어도 호박이 제 발로 굴러오는 식이고. 응? 플레이보이든 그냥 매력녀든. 걔네들 봐 보라고. 그분들이 환승이별 당한 적 있나? 단 1번도 없어. 왜? 말 한마디, 표정, 몸짓 하나 하나를 보면 10을 알 수 있으니까. 그게 어찌 가능하냐고. 그렇든 은근 허당이 저런 벌렁벌렁녀를 만나는 거, 언제 본 적 있니? 보고 싶어서 애타게 찾아헤맸다 볼 수도 있는데. 그래 봤자 다 짧은 연애, 몰래몰래 숨어서 만나는 거. 아니면 어떻게 붙어도 붙어도...!
약간 딴 얘기긴 한데 그래도 살짝 걸쳐 관련되니까 하는 말인데. 굳이 이런 얘기까진 하지 않으려 했으나 다 알아두면 나쁜 거 아니까 하는 말인데. 그 뭐야 분수녀 떨림녀가 아니라 교성녀 있지? 장남 차남 막내, 장녀 차녀 막내. 그처럼 절대적으로 100퍼센트 옳다가 아니라. 6 대 4랄지 판사 70퍼센트는 장남이고 육상 단거리 주자 가운데 70퍼센트는 막내고. 다 그런 특징이 뚜렷하듯 경향을 말하는 거니까 일반화하지도 말고. 오해도 금물. 그냥 참고만. 응? 그 교성녀라는 게 의학적으로든 인체공학적으로든 원리 따지면 말이 안 되는 거거든. 즉 몇 데시벨까지는 말이 되고. 살면서 직접경험해 본 사람이 많지 않은 정도의, 몇 데시벨 이상은 실상 말이 안 되는 거고. 그 말도 안 되는 교성녀를 말하는 건데. 분명 몇 데시벨 이상을 말하는 거고, 일반화하지 말고. 그 정도 교성녀는 내가 봤을 땐 성 그래프가 비정상적으로 일찍 정점을 찍은 경우가 대부분. 남자와 여자는 성 그래프가 판이하게 다른 게 정상인데. 남자랑 거의 똑같은 성 그래프 곡선인 여자, 드물게 있는데. 바로 그녀들이 고성을 지르는 교성녀란 말씀. 모텔 아르바이트 경험치 얼마인데, 카운터에서 그 소리가 다 들리도록 건물이 흔들릴 정도? 쩌렁쩌렁? 왕년에 친한 친구랑 아는 동생들을 새벽에 만났는데. 그렇게 알고 지냈고 새벽에 친구 혼자 사는 집에서 술을 한잔 같이 했는데. 적당히 자리 만들어주고, 자리를 피했는데. 나중 듣고 보니 오늘이 그날이라서 (자세) 이처럼 어정쩡하게 애무가 다였는데. 바깥 어디까지 소리가 쩌렁쩌렁. 나머지 사람들 얘기 집단지성 이거 저거 다 합쳐보면. 비정상적인 그래프 때문이 많음. 교감신경 부교감신경 조건반사 인체공학 의학 다 따지면. 몇 데시벨 이상도 말이 안 되고. 분수도 말이 안 되고. 그렇지만 경험자는 뭐냐고. 당사자는 뭐냔 말이지. 안 들어본 사람만 못 믿는다 그거지. 중간에 내 손으로, 상대방 입을, 틀어막아본 사람은 여지없이 아는 거고. 그게 그러니까 사랑을 만나서 애 낳고 살면서 행복한 인생을 살면 좋은데. 쉽게 쉽게 만나고, 쉽게 쉽게 헤어지고, 쉽게 쉽게 잘 주는 그녀들. 인생 꼬이기 십상. 다 그 때문에 하는 말. 자기만 불행해지면 다행이게?
그런데 내가 이 얘길 너한테 왜 했지?」
「그건 오빠가 나한테 장난치듯 고백하지 말라, 고백 받지 말라는 의미로 한 거 아니오? 장난처럼 고백을 받아내고자 하지 말라면서, 어? 너 혼 좀 나 봐라 라면서 입에 모터를 단 거 아니냔 말이오. 사람 아무나 만나는 거 아니다, 타석주의보다 타율이 사랑이다 라는 오빠 말. 다 안다고. 모르지 않지. 오빠가 전에 뭐랬지? 오빠의 말과 글 때문에 내 귀만 피났나 뭐! 짧게 말해 등급이자 끼리끼리요, 간촐하게 뻔트와 장타를 구분하자는 거잖아. 뉴욕 파리 로마 바르셀로나 런던 베를린. 웬만큼 잘나가는 클럽 치고, 굳이 전문가들 고견 참고하지 않더라도 말이야. 입장 금지율 70, 입장 거부율 80% 아닌 클럽 있나? 후줄근한 츄리닝 입고 슬리퍼 찍찍 끌고서 누가 클럽 가나. 동네 아줌마 아저씨는, 다 음악이 중간에 살짝 끊기는, 삼류 나이트클럽으로 몰리고. 멋쟁이들이 주로 몰리는 데도 불구하고 잘나가는 나이트클럽의 입장 거절 비율이 80퍼센트. 응? 그렇지 않은 명클럽? 있긴 있지. 다만 물이 안 좋을 뿐. 연애사 전적이나 그거나. 거기서 더 가면? 어디 대회 입상 경력 이상만 출전 가능한 대회처럼 출전 자격이 까다로운 경기. 허당 중의 허당. 영심이 중의 상영심이. 다 타율 아니겠어? 거기서 더 가면 사설 아지트고. 역사적으로 아마데우스가 이름을 올렸던 비밀 클럽 프리메이슨이고. 왜 몰라? 아 글쎄 오빠가 말 많으니까 나까지 많아지잖아!
(딱) 옳커니~ 아아! 바로 이래서 애들이 오빠한테 말을 걸지 않는구나. 요즘 유명해. 오빠한테 말 걸기만 하면 주례사 들을 각오 단단히 해야 한다고. 뭔 빈말 하나라도 물어보기만 해도, 졸업식 축사 가운데서 제일로 긴 거. 주저리주저리. 오빠. 내가 졌어. 그러니까 고백하지 마. 가서 생활 당구나 쳐. 이런 젠장.」
뭐야 저거. 괜히 자기가 무슨 밑도 끝도 없이 고백하라고 먼저 요구했으면서. 승질머리하고는!
그런데 좀 전에 가만 듣고 보니 샬럿 말마따나 난 정말 그랬다.
왜인지는 몰라도 난 최근 기억력이 비상해졌고, 그걸 부풀리고자 하는 사색가의 장난기라고나 할까? 때문에 난 사람들과 말할 때 요즘 잘 듣지 않고 어제 읽은 책이랄지, 뭐 하나 꼬투리 잡아서 그거 관련된 잔지식만 왕창 나불거렸다. 아아 바로 그래서 애들이 날 조심조심 피해 다닌 거로구나. 이제 알았다. 안 그래도 뭘 해도 재미없는데 더 재미없어진 거지. 왜 아니겠어.
바로 그때 엘리자베스가 지나갔다.
「안녕 아가씨.」
「오빠 다음에. 나 지금 중요한 얘기 중이거든. 다음에.」
또 켄트가 바에 혼자 있네.
「이게 누구야. 고양이는 발톱을 감춘다더니 오늘은 웬일로 폼을 다 잡네?」
「아니야 아무 일도. 그런데 내 정신 좀 봐. 회사에 중요한 서류를 놓고 왔네. 너도 알지, 내 007 가방 특별하단 거. 그거 선물받은 거잖아. 잃어버리면 안 된다고. 아무튼 다음에 얘기하자. 나 갈게」
「이 자식이...!」
그때 내 레이더에 스티븐이 포착됐다.
「야 스티븐. 너 혼자 포켓볼 칠 거면 형한테 말했어야지. 응? 당구란 말이야, 어?」
「시끄러. 3시 방향.」
「3시 방향? (두리번두리번) 아무도 없는데. 뭘 말하는 거지...?」
돌아보니 스티븐은 이미 가고 없었다. 젠장.
이렇게 문단 6이 끝나는 걸까? 그럴 리가 있나. 제5의 원소기호가 뭔지는 몰라도. 제5열인가 뭔가 영화 내용은 기억도 안 나지만. 문단 5-6은 흡사 한때 유행했던 샤넬 넘버 5처럼 뭔가 색다른 여운이 있었다. 그건 무엇이냐. 바로, 웬 수상쩍은 여자가 날 따라다닌다는 거. 자, 일단 문단을 넘기자.
7
(내 손으로 내게 손가락질. 아님 귀 옆에 대고 빙빙 빙빙빙)! 물론 마음으로만. 저런 의뭉스러운 분위기는 난생처음이다. 우연치 않게 어딜 가나 마주치는 거야, 통성명 나누지 않았다 뿐이지. 대충 모른 체하거나 눈인사나 나누면 그만이지. 바쁜 세상 기 빨리지 않아야 다 저녁에 또 그다음을 기대할 수 있지 않나. 그런데 그 정도가 아니라 뭐랄까 이건 정말 뭐라고나 할까. OK~! (딱) (몸짓) 낯가리는 강아지? 그녀는 결코 고양이 관상이 아니었다. 완전 낯가리는 강아지과였다. 어제 서점에서. 3일 전 볼링장에서. 4일 전 빵집에서. 5일 전 식료품점에서. 6일 전 소셜 네트워크에서. 7일 전 산책하다 우연히. 8일 전 영화관에서. 9일 전 백화점에서. 10일 전 시장에서. 이건 진짜,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난 그녀에게 다가갔다. 낯가리는 강아지 같은 그녀에게.
「혹시... 절 아세요?」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난 당신을 꼬시려는 게 아니오.」
또 끄덕끄덕. 뭐야 이거?
「난 당신께 찝쩍거리는 게 아니란 말이오. 혹시 그냥 흔한 껄떡남 정도로 날 여기지나 않을까, 난 많이 조심스러웠소.」
또다시 끄덕끄덕.
「난 미치지 않았단 말이오.」
끄덕끄덕. 정말 뭐야!
「설마 실언증 뭐 그런 거요? 아니면 뭔가 어떤 상심 때문에 일시적으로? 그도 아니면 수전증 허언증 거북목 증후군 환상 신드롬. 그런 거 때문에 묵언수행이라도?」
「저 말할 줄 알아요.」
「지금 말할 줄 안다고 자랑하는 거요?」
「(표정) (몸짓)」
「허허허. 농담이오. 바로 이래서 애들이 날 피하는 건가?」
「네?」
「아니오. 신경쓰지 마세요. 혼잣말이랍니다. 혹시 제가 신경쓰이시다면 음 그럼 이만...」
난 그렇게 그녀가 별로 대화할 의사가 없다고 간주한 채 자리를 뜰려고 했다.
「가지 마세요.」
「네?」
「가지 마 이 자식아. 아 농담이에요. 저는 배우는 게 빠르거든요. 뭐든 귀신같이 익혀요.」
「아니. 그게 나 때문... 그럴 수도 있죠.」
「」
「내 정신 좀 봐. 우리 어디서 꽤 자주 마주치지 않았소?」
「그래요. 맞아요. 부정하지 않겠어요. 사실은 사실이니까요. 필연일지도 모를 테구요.」
「왜죠? 혹시 그 이유를 아시오? 몰라도 괜찮소만. 이왕이면... 혹시 아신다면 내게 가르쳐주는 친절을 베푸시지 않겠소? 알려만 주신다면야 내 그대를 실망시켜드리진 않으리오.」
「맘 같아선 확! 그러니까 여자가 없지.」
「네?」
「앗 딴생각을 좀 했어요. 당신께 하는 얘기가 아니니 신경쓰지 말아주셨으면 고맙겠소.」
「지금 나 따라하는 거요?」
「따라하긴 누가 따라했다는 거예요? 기껏 한다는 게 뭐 말장난이에요 뭐예요. 이거 왜 이래? 그럴 시간 있으면 집에 가서 발 닦고 잠이나 자요. ~라고 농담해서 미안해요. 괘념치 마세요. 저 미치지 않았으니까.」
「그럼 난 뭐 미친놈이란 말이요 뭐요?」
「거 참 말을 재밌게 하는 양반일쎄 그려.」
정말 웃기는 일 아닌가. 얜 대체 뭐지? 늙은 개가 아프게 문다는데 이 여인이 늙은 개? 아닌데. 얜 어린데. 그럼 뭐야?
「단도직입적으로 용건만 간단히 말하죠. 간접화법으로 남의 다리 긁기는 좀 더 친해지면 하는 걸로 하고.」
「저도 좋아요.」
「좋아요? 뭐가 좋아요? 내가? 아니면 요점만 간단히, 그것 말이오? 하긴 내가 좋을 리 있나. 허지만서두 거 선생께서 오해하는 게 있단 말이오. 이래 봬도 내 왕년에 여자들이 좀 많았단 말이오. 허허허. 그런데 내가 지금 여자 얘길 왜 하지?」
「하지 않으면 되죠. 여자 얘기.」
「아무튼 내 충고 하나만 하리다. 서로 바쁘니까 할 말만 하고 헤어지는 걸로 합시다.」
「」
「내 할 말은? 모자가 날아갈 정도의 바람은 따라가지 마시오. 아시겠소? 그럼 이만.」
「선생. 가지 마세요. 왜 선생이라고 부르니까, 별로 좋아하지 않으시구만. 오빠라고 불러달라 말 못 하시구먼 그래. 어? 그럼 그렇다고 말을 하던가. 어?」
「네? 우린 아직 그렇게 다정히 말을 놓을 사이까지는 아닌 거 같소만. 아니 그렇소?」
「아니긴 뭐가 아니야. 당신 나 아시오?」
「네? 제가 그대를 어찌 알겠소.」
「당신이 나를 모르는데 내가 당신을 어찌 알겠소.」
「그 말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인데. 그런데 왜 당신께서...」
「오빠가 할 말을 내가 대신하면 안 돼... 오?」
「아니~ 안 될 거 까진 없지만. 자꾸 자꾸 자꾸 자꾸 자꾸 자꾸 자~꾸, 어?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시니까 그렇지. 말이 끝나지를 않잖아요. 네? 이거 무슨 안 듣기 화법도 아니고. 살다 살다 이런 양반 처음 보네 그려. 안 그래유?」
「안 그러긴 누가 안 그래유?」
「아 말 따라하지 말고 용건을 말해 이 양반아. 어?」
「오빠. 용건~?」
「오빠? 네. 용건이요. 요점이 뭐요?」
「요점이요? 오빠가 내게 다가왔지 않소.」
「내가? 아... 그건 그렇죠. 그렇지만 그러지 않으면 안 되도록, 아가씨께서 제 주변에서 계속 알짱알짱 계속 근처를 맴도시니까. 이렇듯 내내 얼쩡얼쩡 고생하시느니. 즉문즉답하자는 거죠.」
「그래요. 반대하지 않아요.」
얘 도대체 뭐야?
「당신 누구요?」
「당신은 누구요?」
또 말꼬리 잡고 늘어지자고? 장난해? 어? 지금 장난하냐고!
「아 나는~ 당신의 오빠고. 그대는 공주 나는 거지. 됐소? 그러니까 왜! (고함) 아~ 쫌!」
「호호호. 화내니까 귀여우시네. 지금 그러니까. 이상한 환상과 특수한 신비에게 꼼짝없이 붙잡힌 신세다 그거요?」
「빙빙 돌리지 말고 제발 할 말만, 네? 아 나 이거 정말 거 참 나 하다 하다 거 무슨 진짜 나 미쳐버리겠네. 아아아악~!」
「오빠 아직 안 미쳤어? 호호. 농담이에요. 아무튼 저도 다 알아요. 오빠는 마누라 등쳐먹을 남자가 아니란 걸 말이에요. 등쳐먹을 마누라가 어딨어. 설사 있다 해도 그럴 위인이 못되지. 호호호.」
「밀었다 당겼다 장난 아니구만. 어? 들었다 놨다 말도 아니라고. 쥐락펴락 난리 블루스도 아니야. 아 정말 말해주오. 낭자, 하라는 대로 할 테니까. 정답을 말씀해주시면 고맙겠소. 자, 말하는 거요~ 나랑 약속했소! 그러요? OK~! 도대체 왜 날 유인한 거요? 속 시원하게 말하면 되지 않소. 용건은 뭐다, 그러니 내게 첫눈에 반했다고 이실직고해라. ~라고 말이오.」
「왜냐하면.」
「왜냐하면?」
「왜냐하면, 전, 여자니까요.」
「뭐가 어쩌고 어째?」
이렇게 그녀와 나눈 대화를 옮기다간 끝이 없을 것만 같아서 여기서 멈춘다. 아아 (절레절레)!
아무튼 그녀의 말은 그랬다. 자기 언니를 찾아주라고!
언니를 찾아주라고? 내가 왜? 언니를 찾는다 언니를 찾는다...
자기 언니를 찾아주라나 뭐래나. 단지 그게 다라고?
걘 대체 뭐한다고 날 딱 찍어서 지명했지? 지명 방어전? 흐흐흐. 흐흐흐흐흐.
아니면 의무 방어전? 흐흐흐. 흐흐흐흐흐. 설마 챔피언 결정전? 크크크크크.
좌우지간, 언니? 그녀 언니가 누구인지 내가 어떻게 아냐고. 어?
그렇게 돌아서며 그녀가 하는 말은 이랬다.
「오빠. 다시 볼 때까지 안녕. 우린 또 보게 될 테니까.」
8
그녀의 이름은 소피. 갑자기 등장. 뜬금없이 친해짐. 그런데 연락처는 모름.
낯가리는 강아지 같은 여자. 졸라~ 귀여운 거야 낯가리는 강아지에나 해당하고.
그녀는 그런 강아지랑 낯가리는 거만 비슷하고. 수줍은 듯 애교와 앙탈은 알고 봤더니 내숭이 장난 아님.
그러다 홀연히 사라짐. 그래?
나는 집으로 돌아갔고 다음 날 사무실에서 인공지능 지니를 소환했다.
「지니 나와라 오바.」
삐리리리~ 삐리리리~ 3D 4D 5D 6D 7D.. 그녀는 나타났다.
「오랜만이야 친구.」
「오빠도. 딱 보니 더 멍청해졌네.」
「넌 그걸 지금 인사라고 하니?」
「얼굴을 찡그리니까 더 못생겨 보이네.」
「뭐가 어쩌고 어째?」
「그래도 장난기 섞인 폭소는 참을게. 우리가 나눈 통정이 얼만데. 아니. 그건 아니지만. 말이 그렇다는 거지.」
「너도 이제 그 뭐야, 탄복할 수밖에 없는 신비감. 그런 거 다 바닥난 거니? 정체 탄로 난 거야? 그래?」
「이 오빠가 또 슬슬 긁네 긁어. 어? 이번엔 또 무슨 고민인데 그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사소한 습관에서 중대한 절정감까지.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낱낱이 알려줘.」
「뭘?」
「소피에 대해서.」
「소피가 누군데?」
「있어. 그런 애가 있어. 말꼬리 잡고 늘어지기 좋아하는 애. 말 더럽게 많은 애. 삽질 세러모니를 연상케 하는 계집애. 엉큼한 년. 관상부터가 더럽게 밝히게 생겼어. 개년.」
「흥분하지 말고. 걔 뭐하는 애야?」
「그거 늬 할 일이잖아.」
「아 뭔가 힌트를 줘야 다 조사하고 데이트베이스 수집하고 어쩌고 할 거 아니야.」
「아는 건 이름밖에 없어.」
「그거 가지고 나보고 어쩌라고.」
「아 우리 아지트 실시간 영상부터 얼굴 파악하고 어쩌고. 찾아보면 다 나오잖아. 왜 그래 초짜같이.」
잠시 후.
「나왔어.」
「나왔어?」
「어.」
「뭐하는 년인데?」
「그런데 정체가 없어.」
「정체가 없다고?」
「어. 걔 사람 아니네.」
「사람이 아니면. 뭐 새야? 개야? 아님 생선? 뭔데?」
「우리 과 같은데.」
「우리 과? 뭐 캠퍼스의 낭만?」
「낭만이고 자시고. 별자리가 나랑 맞지 않아. 관심 없어. 나 그만 갈게.」
뚝!
「뭐야 이거.」
이 혼탁한 상황은 대체 뭐지? 웬 소피라는 숙녀가 나타나 내 근처에서 알짱거리며 날 조종한다? 내 아는 동생들이 가득한 어장을 지가 다 관리한다? 그래서 정리된다? 이 년이 지금...! 후궁 3000명이 책봉돼도 모자를 판에 말이야. 어? 부랴부랴 어떻게 어떻게 달랑 아는 동생들 몇 명 있는 거 가지고 말이야. 지가 뭔데? 자못 낯선 위기감? 실마리를 어디서부터 풀어나간담? 쉽지가 않네. 그래? 그럼 신경 끄면 되지 뭐. 알게 뭐야? 뭐 소피의 사랑? 다 소용없어. 사랑은 무슨. 사랑은~ 없어!
9
최근 나는 소피를 다시 만났다. 우리는 친해졌다. 많이 친해졌다. 그렇게 나는 소피와 데이트를 즐겼다.
시내 여기저기를 쏘다니고. 영화도 같이 보고. 밥도 같이 먹고. 밥만 계속 먹을 수는 없으니. 커피도. 술도. 노래도 부르고. 너무 자세한 얘기를 다 할 수는 없고.
때문에 나는 자랑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나는 환상문학 격월간 고품격 잡지 미스테리아 사무실에 놀러 갔다.
편집장실에 들어갔다.
마침 마라는 나와 독대하길 고대하고 있었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더럽게 못 맞추는 돌팔이 점쟁이 같은 년.
「마라. 날 왜 불렀어?」
「왜 불러? 내가 언제 널 불렀다고 그래?」
「안 불렀어? 아님 말고. 아니 그럴 게 아니라. 지금 불러. 나 바깥에 나가 있을까?」
「넌 꽁트가 지겹지도 않냐? (절레절레)」
「그건 그렇고. 시간 끌지 마.」
「뭔 시간을 끌지 마. 누가? 내가? 내가 뭘?」
「너 좋아하는 사람 있데.」
「정말?」
「아니. 뻥이야!」
「(인상 팍)」
「허허허. 허허허허허.」
「그나저나. 너 요즘 연애한다며?」
「그게 뭔 소리야? 에잇 숨기지 말자. 그런데. 아니 너가 어떻게!」
「레이더에 다 걸렸어. 털어놔. 누구야? 뭐하는 년인데 그래?」
「시녀 주제에 어디서 감히. 걔 공주님이야. 왜, 첩이라도 어떻게 안 되겠냐고?」
「첩 같은 소리나 하고 자빠졌네. 그건 그렇고. 저번에 말한 칼럼은 다 썼어?」
「아직. 환상머신 얘기는 꺼내지도 말게, 알겠나? 순 엉터리 골칫덩어리 때문에 내 속이 썩고 상하고 말도 못 하니까.」
「환상머신이고 나발이고. 그거 말고. 칼럼 말이야 칼럼.」
「환상머신이 먼저야.」
「차라리 우머나이저를 주문해라. 아, 맞다. 남성용 나왔데.」
「뭐, 진짜?」
「뻥이야.」
「너 정말! (몸짓) (표정) (손짓) (고갯짓). 엉큼한 년. 내 이년!」
「왜, 뒤통수 한 대 때려주고 싶니? 오빠. 나 너무 꼴 보기 싫어하지 마라. 어? 나 마라야. 나 마라라고.」
「왜 갑자기 존대를? 그냥 막말해. 너 그렇게 나오면 나 겁나. 어? 무섭단 말이야. 뭘 원하는데?」
「날 얼마나 사랑하는지 솔직히 말해줬으면 좋겠어.」
「뭐 사랑? 사랑은 없어.」
「없긴 뭐가 없어. 솔직히 말해. 먹고 버리다 즉 먹버, 아님 먹고 튀다 즉 먹튀. 둘 중 뭐야?」
「뭔 소리야? 나 그런 남자 아니야. 나 철들었어. 우리 이제 나이 먹을 만큼 먹었네 이 양반아. 어? 그리고 먹고 튀긴 뭘 먹고 튀어? 이런 도둑년 같으니라고.」
「내가 왜 도둑년이야. 내가 너한테 이런 소리까지 들어야 하니? 그러지 말고. 몸 좀 풀자. 야. 나이트 어때? 물 좋은 데 알아놨어.」
「NC?」
「안 놀면 뭐하니. 놀자. 지금 아니면 언제 놀게? 꽃다운 청춘은 다시 없어.」
그때 마라한테 전화가 걸려왔다.
웬일인지 그녀는 소곤거리다 잠깐 바깥에 나가서 전화를 받았다.
잠시 후
「나 급한 일이 있어서 먼저 갈게. 놀다가.」
「너 나 따돌리는 거니? 도대체 뭔 소문이 돈 거야? 보여줘? 어? 정말? 원해.」
나는 단번에 소파에서 일어나 탁자 위로 올라갔다.
그러고서 왼손으로 바지 허리띠를 잡고 오른손은 바지 자크에 갖다 댔다.
그런데 마라는 이미 떠난 뒤였다.
소피가 나타나서 좋긴 한데.
난 소피가 사라지면 그땐...
낙동강 오리알 되는 거 시간문제일 것만 같았다.
10
나는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었다.
음악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 구도자의 저녁기도 K.339
쉬는 시간이니까 나는 인터넷에서 짝퉁 라울 뒤피 그림을 알아보고 있었다.
도둑놈님들께 명성이 자자한 특 A급 위작 말고. 전문용어로 저질 중의 저질 짭으로.
어쩌다 괜찮은 물품을 보긴 했다. 그러다 가격을 보는 순간 톡 쏘는 까마귀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러다 누가 사무실에 찾아왔다.
방문자의 얼굴을 보는 순간 샴페인 마개 따는 소리 들리는 거 있지? (고갯짓) (표정) (몸짓)
이거야~ 이거라고~ 이거라니까 바로 이거라고~!
그녀는 다름 아니라 소피였다.
아니면 최근 따로 올 사람이 없었다.
난 빼도 박도 못하고 사랑의 포로가 되어버린 거지. 허허허. 그렇지만 진도는 아직. 이게 좋은 거야 나쁜 거야?
그녀는 말했다.
「오빠. 내가 전에 말했지? 라울 뒤피 명화를 선물하겠다는 거.」
「내가 너의 재력을 평가 절하하는 건 아닌데. 그렇지만 선물은 오빠가 너한테 하는 걸로 하자. 우리, 그러면, 안 되겠니?」
「아니 내 오빠한테 내가 선물하겠다는데 누가 뭐래?」
그러면서 그녀는 도화지 같은 크기의 포장된 선물을 내게 건네줬다.
나는 마치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여인의 겉옷을 재빨리 풀어 제치는 것처럼 포장지를 뜯고.
거칠게 가터벨트를 푸는 것처럼 리본을 풀었다.
그래서 짜잔~ 하고 등장한 내용물은 내용물은.
다른 아니라 라울 뒤피 작품은 작품인데.
전문용어로 짭, 짝퉁도 아니고 질 나쁜 가짜였다.
이건 뭐 그냥 엽서였다 엽서.
언젠 뭐 명화 진품을 선물하겠다면 떵떵거리더니 결국 나보고 엿 먹으라는 거야 뭐야?
그런데 이상한 게 뭐냐면, 액자는 딱 봐도 상당히 비쌀 거 같았다.
곧 액자만 명품. 그런데 그림은 그냥 엽서.
뭐야 그거? 남들 볼까 무서워 몰래몰래 숨어서 만나는 풋사랑이잖아?
아니면 뭐, 익기 전에 떫지 않은 과일은 없다는데. 보기에는 좋은데 맛은 더럽게 없는 과일?
아아 뒷목 뒷목... 커피포트 부글부글 부글부글.
뭐 그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고.
그러고서 우리는 데이트하러 나갔다.
11
나는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었다.
주세페 베르디 /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 이중창 "빛나고 행복했던 어느 날
쉬는 시간이니까 나는 인터넷에서 새빨간 립스틱을 바른 도발적인 자세를 감상하고 있었다.
가슴 졸이며 걸그룹 멤버끼리 순결한 뽀뽀를 장난스레 하고 피하는 장면을 원치 않지만 보고 말았다.
악마와 계약을 한 그림작가가 어쩌고저쩌고, 다 재미없는 이야기들. 어쩌다 봤다.
비키니 사진을 일부러 찾아본 게 아니라 어떡하다 딴 걸 보려다가 못 볼 걸 봐버렸다.
어? 내가 다비드상의 페니스가 작은 이유를 도대체 왜 알아야 하냐고.
내가 뭐한다고 속옷 구매 후기를 읽어?
그런 고민 같지 않은 고민을 하던 찰나.
바로~ 소피가 오늘도 아니나 다를까 내 사무실에 방문했다.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걔 말로는 오늘의 하이라이트는 마술이라고 했다. 마술? 웬 마술?
대화 했다 치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소피는 왼손을 내 배꼽 속으로 집어넣었다. 나는 기분이 이상했다.
들어간 손은 멈추지 않았다. 마치 무엇이 어디에 들어가면 가만있을 수 없듯이.
너무 야한가? 아닐 수도 있다. 어쨌든 그게 다가 아니었다.
바로, 초록색 액체가 나왔다. 내 배꼽에서 점성을 약간 띄었는데 케첩보다는 덜 끈적거리고.
색깔은 초록색인 액체. 이게 뭐지? 청록빛을 띄는 초록색. 신비스러운 채도 명도.
소피가 내 배꼽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서 날 관통한 거까진 마술인데.
초록색 액체가 흘러내린 건 마술이 아닐 것이다. 그래야 한다든 뭐든 모르겠고.
훌륭한 기수는 단숨에 말을 탄다더니, 그럼 소피는 마술사?
「소피. 신기한데?」
「오빠. 말하지 마. 이거 할 때 말하는 거 아니야. 알지?」
「이게 뭔데?」
「말하지 말라니까.」
「오빠 돌아봐.」
돌아? 어딜 돌아. 누가? 내가? 아니 왜?
아아 나는 소피의 말을 알 듯 모를 듯했다. 바로,
사냥 중인 사자는 포효하지 않는다는 것.
그렇게 한참 시간이 흐른 후.
마술은 끝났다. 환상적 마술. 사실적 마술. 신비한 마술.
놀라운데 진짜. 가짜인 듯 믿을 수 없지만 사실.
그런데 더 신기한 거. 더더욱 믿을 수 없는 거.
내 배꼽은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
귀를 뚫었다고 다 금귀걸이를 다는 것은 아닌데.
하긴 자랑 아닌 자랑 좀 하자면 이렇다.
옛날에 왼쪽 귀만 뚫어서 귀걸이를 하고 다닌 적이 있었는데.
귀걸이를 안 하고 다니니까 나중 다시 귀가 막혔다. (그게 뭐가 자랑이야? 귀 뚫었다 막힌 게 자랑이야? 지금 장난해?)
그 기간이 짧은 듯한 예시가 바로 지금이었다.
소피는, 대체, 뭐하는 사람일까?
난 정말 궁금해서 미칠 것만 같았다.
그래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소피. 너 누구니?」
그녀는 조용히 검지를 내 입에 가져다 댔다.
묻지 말라는 거지. 묻지 마? 그 옛날 사거리에 있던, 어쩌다 단골이 되어버린 술집 이름인데.
묻지 마! 그런데 뭘 묻지 말라는 거야?
12
나는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었다.
프란츠 리스트의 초절기교 연습곡. 라자르 베르만 1963년 연주.
쉬는 시간이니까 나는 무얼 하며 기분전환 하면 좋을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마침 소피가 찾아왔다. 이젠 뭐 날마다 오는 거지. 허허허. 호호호.
「오빠 그 말 알아?」
「무슨 말?」
「너무 길들여진 암양은 너무도 많은 어린 양들에게 젖을 물린다.」
「조신하란 말이지. 그런데 그 말이 왜?」
「저번에 내가 말했잖아. 우리 언니 찾아주란 말.」
「어. 기억나.」
「그런데 있잖아. 나 언니 찾은 거 같아.」
「그래? 어딨는데?」
「내 앞에.」
「뭐? 농담하지 마. 난 오빠라는 말만 들어도 미쳐버리는 상남자니까.」
「그럼 오빤 양이자 꽃사슴이 아니라고?」
「그럼. 개. 토끼. 닭. 사자? 하이에나? 늑대. 개구리? 두더쥐. 너구리. 제비.」
「고양이가 양을 지키면 쥐는 누가 잡는단 말인가? 각자에게 알맞은 일이 있다고, 어? 오빠는 오늘 있잖아. 오늘만큼은. 어머. 그런데 이 음악. 어디서 많이 들어본 거 같은데. 설마, 라자르 베르만 연주 버전?」
「네가 그걸 어떻게...」
「어떻게긴. 오빠 컴퓨터 메모장 미리미리 봐 뒀지. 그런데 오빠, 베르만이랑 치프라랑 누가 더 피아노 잘쳐?」
「그건 말이야, 우리 아빠랑 저 아저씨랑 누가 회사에서 더 높은가랑 비슷한 말로 알아들을게. 됐지?」
「그런데 방금 전에 했던 말 그거 뭐니? 오늘 내가 무슨 맡아야 할 역할이라도 있니?」
「그럼 있지. 없을 리가 있겠어?」
잠시 후.
소피는 본격적으로 마술 3탄을 선보였다. 그건 무엇이냐! 바로,
오른손으로 포크를 집더니 내 허벅지를 찔렀다.
푹~ 하고 삼지창은 꽂혔다.
지가 무슨 포세이돈이야 뭐야?
무의식의 절대강자는 뭐니 뭐니 해도 '꿀벅지'같은 비속어가 아니라고 강력히 부정하기도 뭣한데.
내 허벅지가 말벅지가 아닌 건 세상 사람 다 아는 게 아니라, 그 누구도 알고 싶어 하지 않는데. 왜 하필 내 허벅지를.
그런데 신기한 게 뭐냐면 포크가 푹 꽂힌 내 허벅지에서 파란색 액체가 흘러내리고 있었다는 것.
그건 울트라마린 색상도 아니고 살짝 빛깔이 변화하는 듯했다. 신기했다. 아름다웠다. 놀라웠다.
「오빠. 듣고 있어?」
「어. 들리긴 들려. 그런데 말이 느려지네. 꿈인가?」
「오빠 그거 꿈 아니야. 내가 곧 반대 방향으로 손을 집어넣을게. 그래서 안에서 내 손과 포크가 만나는 거지. 그렇게 만나면 들리는 효과음은 뭐다?」
「뭔데?」
「핑~! 살짝 다를 수도 있어. 퐁~! 더 달콤할지도 모른다구. 퐝~!」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나는 꿈에서 그런 말들만 골라서 듣고 말았다.
오빠~!
하고 싶어. 그런데 대화를!
오늘 나 집에 들어가지 말까?
오빤 뱀파이어야? 그래?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깨어나 보니 거긴 개집이었다.
물론 꿈도 꾸었다. 내용은 내가 소피의 포동포동 뽀얀 엉덩이 포크로 푹 찔렀다. 푸딩 같은 눈부신 엉덩이 맨살을, 마치 수제 소시지를 푹 포크로 꼽아 찌르는 것처럼. 그러다 연분홍빛 대리석 같은 엉덩이가 정말로 대리석으로 굳어져갔다. 그래서 난 다급히 요술램프를 문지르듯이 문질렀다. 그렇게 다시 엉덩이는 대리석에서 다시 사람의 엉덩이로 돌아왔다. 그다음.. 그다음은 가물가물.
아무튼 우리 동네 인적이 드문 공터. 나대지. 빈 개집. 간혹 들개만 왔다 갔다 하는 곳.
도대체 소피는 내게 무슨 짓을 한 거야? (이거 이거 어디서 많이 들어..보진 못했어도. 왠지 익숙한 대사인데!)
13
오늘 나는 아지트 들렸다. 세바스찬이 소셜 네트워크 게시물을 보여줬다.
요약하자면 이런 내용이었다.
A. 너 말 많아서 애들이 죄다 피해 다닌다. 알고 있지?
B. 그런데 소문이 돌더라. 웬 숙녀와 단둘이, 부쩍 나다니고 즐겁고 행복하니까. 아는 동생들이... 좀 그랬다.
C. 그 가운데 대표로 로즈마리가 동영상을 공개. 너랑 그 소피라는 숙녀와 대화하는 영상. 그런데 몇몇 영상에서는 소피 없이 나 혼자 대화...! 가상의 그녀가 앞에 있다는 듯이.
D. 그런 자료가 하나, 둘, 셋, 넷......!
난 대체 그것도 모르고 뭘 하고 있었지?
「뭐야? 그럼 내가 미친 거라고?」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면. 소피가 뭐 귀신이라도 된단 말이야?」
「흥분하지 말고.」
「그거도 아니면. 뭐 조작된 영상이란 말이야 뭐야?」
「빙고~! 그거야. 그거라고.」
「진짜? 아니 왜?」
「왜긴 왜겠어. 그걸 남자가 하겠니? 그 가짜를 만든 걸 남자가 뭐하러? 물론 난 동성애 존중. 난 여자를 좋아하고.」
「그러니까 그걸 누가?」
「누구긴 누구겠니 여자지.」
「아 글쎄 아는 동생 누구?」
「내가 그거까지 다 일러바쳐야겠니? 나 고자질쟁이라고 소문나게? 그럼 늬가 나 책임질래? 내가 왜 너한테 짐짝처럼 안겨야 하는데. 매끈한 그녀가 내게 포근히 안겨도 모자를 판에, 어? 뭐가 어쩌고 어째?」
「어허 침착해. 침착하라고.」
그런데 참 이상한 게 뭐냐면, 그 시점부터 소피와 연락이 닫질 않는다는 거였다.
어떻게 된 거지?
14
포만 상태로 단식에 대해 설교하기는 쉽다. 배부른 늑대가 굶주린 하이에나 적 생각, 하긴 하는데 내 일이 아니라 남 일일 뿐. 그래서 포식자 챔피언의 식탐은 지명 방어전을 꿈꾸는 것일까? 꿈은 무슨. 그럼 굶주릴 대로 굶주린 하이에나일 것이냐, 아니면 배부른 늑대이자 새침한 돼지일 것이냐. 그것이 문제일까? 문제는 무슨 개뼉다귀 같은 문제. 재미 하나도 없는 공상. 왜 하필 아침부터 공상? (절레절레). 언제까지 저리 비켜, 가, 꺼져, 닥쳐, 조용히 해, 조용히 해, 시끄러워, 꼴배기 싫어, 싫증나, 지겨워, 짜증나, (저속한 표현으로) 아 뚜껑 열려 아아 열나 빡쳐... 같은 투정만 일삼나. 어리광 지겹지도 않나. 우물쭈물하지 말고 행동. 우리는, 어? 행동. 그래서 성과. 응? 남자는 집에 있으면 안 된다. 우리는 밖으로 나가야 한다. 그런데 오라는 데가 있나? 없으면 어떤가. 세상일이란 게 그렇다. 상인도 손해 볼 때가 있단 말이다. 이런 날도 있고 저런 때도 있고. 일 년에 한 번은 미친 짓을 해도 괜찮다. 그럼 그날이 오늘? 아니다. 액면은 비리비리 배짱은 조마조마 지갑도 간당간당. 일하기에 대한 심지도 빼빼 말랐고. 놀기에 대한 의욕도 흐지부지. 그렇다고 말하기 좋아하는 성미도 아니고. 남 생각 안 하고 막 나댈 수도 없고. 나대기도 싫고. 나서기 좋아하는 거 특히 인상 쓰시는 분들 적지 않으니까. 어쨌든 할 말도 떨어졌고. 그 대신 탐욕만 탐욕만 왕창? (몸짓) (손짓) (표정)! 세상에 공짜는 없다. 썩 괜찮은 방도가 없다면 일단 관망. 인생이 뻔트였는데 섣불리 또 뻔트를 댈 수는 없는 것. 광고에서 사랑해요, 인공지능은 놀아줘요, 브랜드 슬로건으로 행복하자, 노래에서 내 꺼-하자? 다 뻥. 개 뻥. 대체로 뻥. 사랑은 없어. 화면 중간에 꼬마가 제자리걸음하면 세상만사가 거기에 최적화되어 움직이는 3인칭 같은 1인칭 게임. 또 신부들러리 언제나 병풍? 다 물건 팔아먹으려고 수작 부리는 일. 다 꼬셔서 병풍 만드는 일. 나중 대체로 후회. 꽤 많이 실망. 죄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 안 그런가?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자인데 뭔 고양이, 쥐 생각? 그러니까 왜 갑자기 남 입장을 챙기냐 그거지. 그게 다 꿍꿍이가 있다는 뜻.
그래서 나는 색다른 취미생활이고 자시고. 조지 프레드릭 헨델의 소나타 거 뭐야. HWV379를 들으면서 일이나 하기로 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으니까. 막살자라는 별명의 웨이터를 만나면 부담스러우니까. 그럼 난 최선을 다해 살란 말 아니냐고. 오빠 달려? 그만 좀 달리고 쉬자. 놀자. 뭐 술집 이름이 건전한 술집? 그럼 딴 술집은 죄다 불건전한 술집이란 말이야 뭐야. 투덜거려봐야 입만 아프고. 시끄러운 시내에 가 봐야 재미도 없으니 일이나 하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