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 168

from 소설 2020. 4. 30. 20:02

    1

    사랑이란! 여자의 마음을 사뿐사뿐 띄워주기도, 빙글빙글 돌아버리게도, 포근히 녹여버리기까지 모두 문제 없는 신비한 환상머신. 그건 다름 아니라 바로 너? 사랑이고 자시고 그게 지금 나랑 뭔 상관이 있는데. 냉수 마시고 속 차리자. 꿈 깨야지. 그렇긴 하다만 말이야, 응? 애타게 꿈꾸어오던 욕정, 꿂주릴 대로 꿂주린 늑대의 심정. 앗, 내가 그렇단 말이 아니라 내가 아는 어떤 친구 얘기임. 정말임. 진짜임. 그게 만약 거짓말이면 난 사람도 아님. 만일에 그게 뻥이면 난 개다 개. 어? 뭐 그건 그거고. 아무튼. 내면의 열망을 마냥 모른 체할 수도 없는 것 아니겠어? 아니긴 뭐가 아니야! 뭣이 어째? 꿈 깨란 말이야. 케케묵은 신비 구식탱탱묵은 환상. 다 부질없어. 몽땅 재미없다고. 알아? 지금도 생각나지만... 됐어. 그만 했으면 됐다고. 아 쫌! 
    아니 내가 어쩌다가? 사무실에서 두뇌 잔근육 키울 생각은 않코, 한사코 혼자 잔소리 꽥꽥 지르며 놀 궁리만 엿보는 인생. 누가 아니래. 말하자면 어쩌다 자발적 가택감금이 상책이긴 한데. 하오나 헤라클라스가 허당들 아지트에 갇힌 듯 하니 뭐 때를 기다릴 수밖에. 우리는 그렇다. 우리야 마누라 등쌀에 못 이기고, 잔소리 참기에 득도하며, 여편네 엉덩이에 깔려 사는 신세는 아님. 따라서 할 말 하고 뻥치지 않음. 그럼 뭘 해 인기 바닥인데. 그럼 뭘 하냐고 그래 봤자 일기장에 그냥 험담만 험담만 꽉 차기 밖에 더 하냐고. 그러니까 말이지, 여자가 왜 뒷담화를 좋아하고, 남자는 그런 여자들을 왜 더 좋아하는지 통 알 수가 있어야지. 우리는 여자 하나도 관심 없음. 여자 뒤꽁무늬 쳐다보는 허당의 허접한 심정, 다른 사람들 얘기일뿐. 하지만! 그저 개침이나 흘리면서 놀고먹는 칼럼니스트라 핀잔 받으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 때문에 나는 곧잘 땀을 뻘뻘 흘렸다. 이건 아니다. 이건 정말 아니라고. 
    그래서 나는 사무엘을 만났다.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의 정답은 그랬다. 녀석을 만나면 즐겁다. 아마도 녀석은 숙녀들에게 무인도에 데려가고 싶은 남자로 손꼽히기, 에서 너무 많이 거론되어 짜증날 것이다. 믿든가 말든가가 아니라 진짜다. 내 자랑이 아니지 않나. 단지 사실일 뿐. 아무튼 심심할 땐 친구를 만나야 한다. 그렇다고 한참 재밌는 건수가 생기고 찬란한 쾌감마를 타면 우정을 버리란 말은 아니다. 사랑과 인생과 정열의 비밀이란 꼭 뭐는 뭐다가 아니니까. 그때 그때 맞춤복 재단사로, 때로는 마법사이자 요정으로 우리는 변신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말은 그럴싸 한데 다 시덥잖은 농담도 뭣도 아니다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사무엘을 만났다는 게 중요한 거다. 그게 발단이니까 말이다. 





    2

    자, 그렇다고 전개가 용암이 흘러가는 속도로 막 순식간에 이어지지는 않았다. 일단 사무엘과 나는 카페에서 만나 대화를 나눴다. 
    Domenico Scarlatti / Stabat Mater
   「너 이 음악 아니?」
   「왜 마음에 안 들어?」
   「아니~ 그게 아니라~」
   「너 아직도 입버릇처럼 말 시작할 때 아니~ 아니~ 그러니?」
   「넌 역시나 남 말꼬리잡고 늘어지기 여전하구나.」
   「내가 혹시 변했으면 너가 실망할까 봐. 허허허. 근데 아까 뭐 물어봤지? 아! 이 음악 내가 신청하지 않았어.」
   「뭐 이딴 카페가 다 있어! ~라는 말은 아니고. 뭐 나름 생소하다고나 할까?」
   「너도 여전하네 말 비꼬는 거. 넉살. 교태. 뭐 교태? 그건 아니고. 능청꾸러기 사무엘. 허허허. 그건 그렇고. 왜 만나자고 했냐?」
   「왜 만나자고 하기는 누가 왜 만나자고 해?! 늬가 나 귀찮게 해서 내가 여기에 나온 거 아냐. 생각 안 나? 그리고. 너 옛날에 '왜 전화했냐 왜 만나자고 했냐' 그렇게 따지던 친구가 아니었는데. 너 뭔 충격먹은 일 있니? 그게 엽기토끼 때문이야 아니면 말 안듣는 당나귀 때문이니? 그도 아니면 못 말리는 코끼리?」
   「코끼리 같은 소리나 하고 있네. 집어치워. 비키란 말이야. 못 들었어?」
   「너 그러고 보니 상태가 좀 안 좋구나.」
   「나도 알아.」
   「안되겠다. 아무래도 이 형이 너한테 특단의 대책을 제시하는 수밖에. 그거 말고는 방법이 없다. 캬~ 이거 이거 내가 생각해도 기가 막히단 말씀. 대단해. 내 입으로 이런 말하기 쑥스럽긴 하다만 그렇다고 뭐 틀린 말도 아닌데 뭘. 고양이가 배고프면 빵 껍질에도 만족한다? 우리는 아무리 배가 고파도 버터 빵에 바르고, 굽고, 요리하고, 정갈한 접시에, 그윽한 향기와, 고상한 음악, 또 청초한 숙녀? 그런데 내가 왜 그걸 너한테 설명해야 하지? 뭔 얘기를 하다 만 거야 글쎄. 아무튼 호랑이가 배 고프다고 풀 뜯어먹는 거 봤냐?」
   「어제 요 앞에서 고양이가 진짜로 풀 뜯어먹던데?」
   「늬가 그래서 안되는 거야. 알아? 늬가 그러니까 여자가 없는 거라고.」
   「너 또,」
    사무엘은 재빨리 검지로 내 입을 막았다. 그러면서 노트북을 펴서 어떤 웹페이지를 내게 보여주었다. 내용은 그랬다. 
    뉴발란스 챌린지 대회!
    언제    : 내일
    어디서 : 버뮤다 섬
    무엇을 : 깜짝 대회
    상금   : 아차상부터 인기상까지 상금은 상금대로 물 반 고기 반
    어떻게... 누가...
   「너 안 바쁘지? 내가 너 그럴 줄 알고 다 준비했어. 넌 인마 형만 믿으면 돼. 넌 그냥 내 옆에 붙어만 있으면 저절로 재미난 일이 생긴단 말이야. 어? 버뮤다 섬 알지? 여기서... 얼마 안돼. 가까워. 게다가 거기 참가하는 성비? 말도 마. 내가 괜히 레이더를 가동시켰겠냐. 허허. 심지어 다리도 놔졌대. 너 거기 안 가봤지?」
   「전에 가봤어. 딴 친구랑. 거기에 미니산이라고 있는데 그 토속전통 때문에 연초에던가 거기 산꼭대기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거든? 근데 당시 친구랑 둘이 거기 올라가서 빨가벗고 오줌쌌어.」
   「그게 다야?」
   「딴 데 가서 빨가벗고 수영도 했어. 여자랑 연애를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더라고. 그럼 어쩔 수 있나? 친구 밖에 더 있어!」
   「그러니까 네 말은 너 거기 가봤다는 거네?」
   「어. 그때도 다리는 놔졌는데. 한 20년 됐을 걸? 다리 놓여진 지가.」
   「난 왜 몰랐지? 난 그거 방금 생긴 줄 알았는데.」
   「널 보면 내가 아주 답답하다~ 답답해. 응?」
   「난 뭐 너보면 안 그런 줄 아니? 내가 널 보면 아주 그냥 징글징글하다, 어?」
   「나보다 늬가 더 허접해. 넌 옷 입는 게 그게 뭐니? 누가 조잡하다고 지적질 안해? 내가 해줘? 어? 해 말어? 어?」
   「워 워 워. 워 워 워. 지금 이럴 때가 아니지 않나 친구. 어? 그러니까 갈 꺼야 말 꺼야?」
   「넌 거기 나 안 데려갈려고 했니? 이 자식이 언제 이렇게 비겁해졌지? 내가 너 그렇게 가르쳤어? 내가 너 엎어키웠어 임마! 어?」
    다음 날 나와 사무엘은 만나 버뮤다 섬으로 떠났다. 
    과연 그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상상도 못한 채 말이다. 





    3

    우리는 버뮤다 섬에 도착했다. 
    앞뒤 시간 순서가 뒤죽박죽되는 영화처럼 복잡하면 읽다 퍼지기 십상이니 미리 결과를 밝히자면 이렇다. 
    버뮤다 섬에 도착 → 대회장은 한산 → 경기 시작 → 이상한 걸 막 시킴 → 도망감. 난 도망가고 사무엘은 남음.
    결과가 이랬는데.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팀을 짜서 경기를 진행하던 중. 우리팀 팀장이 자꾸 이상한 걸 시켰다. 
   [임무 1]
   "너는 얀센, 존슨앤존슨, 머크, GSK 같은 거대 제약사 영업사원이다. 그래서 저기 보이는 약국에 들어가 영업을 해라. 당신이 이미 보험왕 자동차판매왕 등 영업의 화신임을 증명하기만 하면 된다. 그렇다고 아직 뽐뿌질이 좀 덜 됐나? 좋다. 자, 이걸 받아라. 명함이 있다. 즉 살짝 뻥을 치는 거다. 당신은 바로 저기 보이는 저 버뮤다 의과대학원 교수이자 병원 인턴인 것처럼 쓱 다가가서 몇 가지만 물어보면 되는 거다. 그게 우리팀의 첫번째 임무다."
    그래? 처음부터 끝까지 멍청하게 뛰기만 하는 마라톤 대회. 재미없는 거 다 안다. 그래도 하면 보람 있고 좋긴 하다만. 우리는 그런 거 다 해 봐서 안다. 그런데 이번엔 색다른 거. 그러니까 이상하지만 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했다. 

   [임무 2]
   "가서 저 숙녀를 꼬셔라."
    뭐라고? 밑도 끝도 없이 첨 보는 아가씨를 꼬시라고? 누가 못할 줄 아시나. 
    그런데 중요한 점. 바로, 사람이 없었다. 아니 누가 있어야지 꼬시든 말든 할 거 아니냐고. 사무엘도 맞장구를 쳤다. 내 말이~ 라고 말이다. 

   [임무 3]
    깃발을 주면서
   "저기 보이는 저 앞산에 올라가, 정상에 파란 깃발을 꼿아라.
    저기 보이는 저 뒷산에 올라가, 정상에 빨간 하트를 묻어라.
    저기 보이는 저 언덕에 올라가, 치마 입은 허수아비가 들고 있는 가방 → 거기에 보면 리모콘이 있다 버튼이 많을 텐데 하늘색 버튼을 눌러라 → 그러면 곰인형이 춤을 출 것이다 → 그 때문에 개인형은 물거품을 발생시키고 → 그렇게 분홍색 풍선... 실은 그거 콘돔이다 대회를 위해 제작된 한정판 특수 콘돔, 그걸 터트려라 → 단, 그냥 막 터트리면 안되고 바로 이 노란색 뿅망치로 말이다.

   [임무 4]
    ......
    난 사무엘에게 말했다. 
   「사무엘. 그런데 우리가 이걸 왜 해야 하지?」
   「그러는 넌 그걸 왜 하고 있는데?」
   「아니 그냥 뭐 일단 시작했고. 또 하다 보니 하긴 하는데. 처음부터 뭔가 이상했어. 이상해. 안 이상할 수가 없잖아. 그래도 일단 기다려본 거지. 최근 내 삶이 무료했으니까 기다려본 거라고. 미완의 환상머신 대신 행운의 여신이 물어다준 건수 그 신비감에 흥분할 것만 같은 예감, 없음. 은밀한 암시, 꽝. 기대 안 함. 그래서 너한테 의뢰가 온 거고. 여기까지 와서 대회 참가. 딱 참가했어 했다고. 어? 그래서 흥미진진한 예감대로라면 말이지 짜릿한 손맛 기발한 흥분. 놀라운 행복감. 절묘한 환희. 점점 재미있어지는 전개. 대실망시키지 않는 뭐 나름 괜찮은 절정. 그걸 기다리는 내가 바보니? 어? 정말 꾹 참고 기다려도 기다려도, 이 냥반들이 누굴 바보로 아나? 어? 하긴 지금 와서 말이지만 냉정히 판단해보면, 아니 그래도 그렇지 말이야. 어? 나만 이래? 넌 안 그래? 너도 그럴 거 아니야?」
   「난 기다려볼 꺼야. 좋은 날 오겠지. 쥐구멍에도 언젠가 볕 들지 않겠어?」
   「늬가 쥐냐? 내가 좋은 개구멍을 알고 있는데~」
   「그건 일단 나중에. 지금은 치즈에 줄이 달렸건 떡밥에 낚싯바늘이 스쳐지나갔건. 결을 봐야 할 것만 같아. 왠지 모르지만 난 지금 그렇게 생각해. 어딘가 모르게 그래야만 할 거 같거든.」
   「너 원래 그런 애 아닌데. 너 좀 이상해.」
   「나도 알아. 나 이상한 거. 넌 뭐 정상인 줄 아니?」
   「무슨 소리야? 내가 왜 정상이 아닌데. 나 정상이야. 나 정상이라고. 나 멀쩡해. 나 미치지 않았어. 내가 뭐하러 미쳐? 나 안 미쳤어. 이거 왜 이래?」
   「미치지 마. 그럼 됐지?」
   「어? 어.」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이건 뭔가 이상했다. 도저히 끝까지 기다리기엔 이상해도 이상해도 끝까지 이상했다. 몰래 먹는 떡이 맛있긴 한데 모른 척 기다려도 이건 아닌 것만 같았다. 구두가 맞으면 신어라, 우리가 어찌 모르랴. 하지만 유리구두는 내게 맞지 않았고, 난 달릴 거 달렸고. 그게 남의 것도 아니고 내 거고. 이건 아니었지. 그럼. 아니다마다. 4월의 비가 5월의 꽃을 가져온다지만 올 듯 말 듯 올 뻔 말 뻔, 줄 듯 말 듯하다가 거의 탐스런 열매를 따먹을 뻔 하다가~ 결국 꽝! 뭐? 이런 젠장. '주겠다' 2번보다 '가져라' 1번이 낫다는데 또 뜸들이기? 이건 뜸들이기도 뭣도 아님. 대충 감 왔다. 느낌 오지 왜 안와. 예측 가능했다. 추리 못할 수가 없었다. 소망 품을 상황이 아닌 것이다. 희망을 탐구하기엔 일기예보가 썩 미덥지 않았다. 집에 가서 고급 망원경이나 싸구려 단안경으로 어디 막 여기저기 보다가 바람결에 뭇처녀의 치마가 나부끼는 것을 관측하는 게 차라리 나을 것만 같았다. (물론 말이 그렇단 거고).
    그래서 나는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어머머머머, 그런데 사무엘은 안 가겠다네? 끝까지 기다려보겠다니! 답 뻔한데? 아니 왜? 번잡한 속세보다 조용한 자연이 좋다는 건가? 뭐지? 뭐지? 혹시... 에잇 아닐 거야. 그럴 리가 없어. 아니지. 또 몰라. 설마... 버뮤다의 정력가로써 신기록 수립을 위해서? 사무엘이 무슨 코흘리개 꼬마도 아니고. 그럼 대체 왜지? 알 수가 있나. 이 고집불통 사무엘. 하긴 녀석과 내가 2 대 2로 소개팅하면 내가 불리하다. 내가 마음에 들어하는 아리따운 숙녀는 꼭 사무엘한테 보자마자 홀딱 반하기 마련. 닭 쫓던 개 지붕쳐다보는 심정을 아슈? 한두 번도 아니고? 그래서 난 녀석을 내버려둔 채 혼자 집으로 돌아갔다.





    4

    일주일이 지났다. 버뮤다 섬에서 돌아온 지가. 
    여기서부터는 필름을 빨리 돌리겠음. 
    여기서부터는 필름을 빨리 돌리겠음. 
    왜냐, 왜냐하면 그러다 약간 재밌는 부분에서 정상 속도로 보려면 시간이 부족하니까.
    그렇게 일주일 경과.
    그 일주일 후 스티브가 꼬심. 
    제라드가 버뮤다 섬에 모스맨 대학교를 지었다는 말로. 
    Ⅰ) 해커: 켄트 
    Ⅱ) 건물비밀통로&기술 담당: 로버트
    Ⅲ) 친화력 담당: 로즈마리 
    Ⅳ) 어중이떠중인: 나
    인원을 더 모집했으나 씨알도 안 먹힘.
    녀석의 비자금으 털로 가자는 말에 홀딱 넘어감. 
    그렇게 우리는 버뮤다 섬으로 출발했음. 





    5

    우리는 버뮤다 섬 도착했다. 
    장면은 그곳 전망 좋은 곳에 웬 모스맨 대학교.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비자금 창고 같은 건 없었음. 그래도 계속 덤빔. 계속 뎀빔. 도전 실패 도전 실패 그래도 계속 도전. 그래서 결국 성공! 
    하지만 하필 턴다는 게 비서실 창고를 털다가 걸려서 혼쭐이남. 
    나머지 애들은 사설 경비업체에 끌려감. 
    나만 사무엘을 만나 비서실로 빠짐. 
    지금이니까 하는 말이지만 나중 애들은 도시로 강제 전출되었다고 들음. 
   「야 사무엘. 늬가 거기서 왜 나와? 늬가 여기 총장이냐?」
   「어.」
   「뭐?」
   「내가 이곳 버뮤다 대학교 총장이야. 제2대.」
   「그럼 1대 총장은 누군데?」
   「너도 아는 사람.」
   「제라드?」
   「잘 아네.」
   「이 자식들이... 너네 장난해?」
   「넌 이게 장난처럼 보이니? 이 비서실. 저 소파. 저 전경. 탁자 위에 책 보이지? 전망 좋은 방. 지금 네 옆에 앉아 있는 늘씬한 비서 1과 육덕 미녀 2. 너가 지금 양쪽에 꿰차고 있는 건 뭔데? 다 진짜야. 가짜 아니라고. 인정, 불인정?」
   「아니~ 그러니까 내 말은~ 맞다. 그럼 제라드는 어디 갔는데?」
   「그 친구야 바쁘니까 여기 자리를 나한테 넘겼겠지. 지금 아마 모스맨 잡으러 갔을 걸!」
   「뭐, 뭐?」
   「뭐긴 뭐가 뭐? 누가? 내가? 아님 너가?」
   「거 어째 너랑 말이 잘 안 섞이는데.」
   「난 뭐 너랑 말이 잘 통하는 줄 아니? 천만의 말씀.」
   「야.」
   「어.」
   「너 저번에 그거... 뭐더라?」
   「뉴발란스 챌린지 대회?」
   「그래. 그거. 그거 어떻게 됐어?」
   「너 간 다음에 내가 우승.」
   「진짜?」
   「그럼 뻥이겠냐?」
   「상금은?」
   「보시다시피.」
   「」
   「저기 보이지? 저 호텔 내 거야. 여기 오다가 골프장도 봤지? 거기도 내 꺼. 극장이든 쇼핑몰이든 없는 거 없어.」
   「너 뭐하는 놈이야?」
   「버뮤다 대학교 총장. 버뮤다 다국적 기업 회장. 희대의 조세회피처 관련 큰손.」
   「너가 벌써 거물 됐다고?」
   「내가 아무리 기다려도, 어? 나보다 늬가 먼저 크진 않을 거 같아 내가 너보다 먼저 이렇게 됐다. 거 쪼금 미안하게 됐네 친구. 그렇지만 넌 언제든지 여기 와서 놀다가든 쉬다가든 뭐든지 공짜. 올 때도 마음대로 갈 때도 마음대로. 뭐든 공짜. 왜 직장 출근하기 싫어? 월요병 때문에 도시의 아침이 아름답게 보이지 않아? 여기 야경 괜찮아. 여기 와서 내 비서실장해. 물론 진짜 비서실장은 따로 있고, 넌 책장 먼지만 털면 돼. 끝. 어때? 당장 오란 말이 아니야. 너 나 알지? 내가 언제 거짓말한 거 봤니?」
   「아마 볼 기회 자체가 없었던 걸로 아는데.」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 그럼 이제부터 차차 알아가면 되겠네. 뒷패도 남았는데 숨겨둔 판돈 미리 알아도 김새잖나 친구.」
   「너 못보던 새에 포커페이스 많이 늘었다? 말발도 아주 그냥 사기꾼 뺨 치겠는데?」
   「그럼 뭐 넌 못보던 새에 액면이 많이 썩었냐? 자네도 잘생겨졌어. 전보다 많이 세련되게 바꼈다고. 그렇다고 예전에 흉했다는 뜻이 아니고. 왜 내 입담이 많이 허접한가? 하지만 우리 우정이 뭐 그다지 퍽 추접스러운 건 아니지 않나.」
   「그런데 있잖아 내가 알기로는 넌 옛날에 그렇게 말 많은 친구가 아니었거든.」
   「사람은 변해. 자, 사랑과 우정. 넌 뭘 고를래? 우리가 무슨 소녀감성이니.」
   「가만 있어 봐, 나도 말 좀 하자.」
   「내가 언제 너 말 못하도록 말렸니? 말린다고 늬가 내 말 들어? 안 듣잖아. 그런데 말 좀 하긴 뭔 말 좀 해. 어? 안 그래?」
   「이 자식이 가만 보니 날 들었다 놨다 쥐락펴락 장난 아니네.」
   「야 너.」
   「왜?」
   「그 손...」
   「어?」
   「그래도 내가 없을 때라면 몰라도 벌써부터... 너가 옛날 세이렌 증후군에 걸렸든 허언증 완치 판정을 받았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말이야. 내가 늬 양쪽에 비서 두 명 앉혀놨다해서, 어? 손이 벌써...」
   「내가 그런 거 아니야. 이거 왜 이래? 얘가 누굴 바보로 아나?」
   「어떻게 알았어?」
   「뭐?」
   「그 손 늬 손이지?」
   「그럼 이 손이 내 손이지 누구 손인데.」
   「추접스럽게 그게 뭐니?」
   「사랑은 추잡한 게 아니야.」
   「그럼 뭔데?」
   「나도 몰라.」
   「말장난 길어져봐야 재미없고. 난 바쁘니까 너 혼자 놀다 가. 아니 가지 마. 게다가 여기 비수기야. 허나 회사 현금보유량 끝장. 너 하고 싶은 거 다 해. 나 갈께. 비서 1 비서 2. 쟨 크리스티 쟨 비비안. 나 간다.」
   「야, 진짜 가? 늬가 그러니까 여자가 없는 거야. 눈치 봐서 좀 더 일찍 빠져줬으면 좀 좋아! 뭐야 벌써 갔어? 설마...」
    도시에서 난 정말 고독한 사냥꾼이었다. 공상이야 늘상 그랬고. 어떻게? 
    <친구들과 떠들며 놀 듯이 파티하는 기분 나게, TV 라디오 고전음악 댄스 다 틀어놓고 놀아볼까? 그거 좋아하던 녀석들과 놀던 시절도 옛날 얘기고. 3분짜리 유행가 1곡만 3일 내내 듣는 여동생들도 다 떨어져나가고. 이게 뭐냔 말이지.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됐어, 아 글쎄 진짜 어떻게 됐냐고! 만지작 만지작 정도가 아니라 시원스레 꺼내들 다음 카드는? 허당미. 퇴폐미. 방탕아 본색. 악동 기질. 낭만파의 감수성. 모험심. 호기심. 발정기의 어떤 갈망. 풍운아의 열망. 회심의 쾌락마? 남부럽잖은 일하기와 남몰래 좋아 미치는 놀기. 그 신기한 균형감에 따른 막연한 불안감까지. 역시나 사랑은 없을까? 후즐근한 차림새. 허접한 인상. 우스꽝스러운 관상. 앙 다문 지갑을 벌여볼 필요도 없이 명품 지갑도 없음. 고로 품위유지비 바닥. 이런, 젠장~! 의무방어전에 지친 당신, 당장 떠나라? 선전 그거 다 속임수. 커피가 발달한 이유중 하나가 아니라, 유력한 원인은 바로, 남편들을 일찍 못자게 하기 위해서? 무슨 그런 개뼉따구 같은 소리. 다 뻥 개 뻥. 이런 젠장!> 
    그런데 그와 달리 난 여기가 너무 좋았다. 더 좋을 수가 없었으니까.





    6

    버뮤다 섬 모스맨 대학교 놈팽이로 전락. 나름 싫진 않음.
    그렇게 유유자적 농땡이나 피우며 한량으로 지내는 꿀 같은 삶. 꿀 떨어지는 연애만 더해지면 딱인데. 뭐 그건 나중으로 미루고. 
    그러던 어느 날 버뮤다 섬 청년회 회장인 피츠제랄드가 날 찾아왔다. 
    모스맨 대학교가 생긴 이후부터 지금까지 속에 쌓인 게 많긴 많았나 보다. 
    비서실. 소파. 피츠제랄드와 나.
   「당신이오?」
   「」
   「버뮤다 섬 처자들을 다 따먹고 다닌다는 사람이?」
   「뭐요?」
   「못 들었소? 그럴 수도 있으니 다시 말하겠소. 당신이 바로 그 뭐야, 뭐지? 뭐더라? 내가 뭔 말을 하려던 참이었지? 아, 맞다. 당신이 바로 버뮤다 섬 숙녀들을 다 따먹고 다닌다는 난봉꾼이오?」
   「무슨 소리요? 난 꿀벌이 아니라 파랑새과란 말이오. 그러는 당신이 더 수상한데? 그 음흉한 속내 내 한번 맞춰볼까요?」
    녀석은 흠칫 놀라는 눈치다. 그럭저럭 10분 동안에 걸쳐 우리는 통성명을 나눴다. 
    그렇게 피츠제랄드가 내게 준 명함을 보니 녀석은 원맨쇼도 아니고 맡은 직함이 무려 50개였다. 
    명함 가득 빼곡히~ 명함이 무슨 깜지도 아니고. 어? 녀석이 딱히 좀비라는 증거는 없지만서두 난 일단 녀석을 좀비로 상정한 채 세게 나가기로 했다. 
    그래서 내가 뭐하러 버뮤다 섬 처자들을 농락하고 다니겠냐, 난 그럴 의사가 없다. 내가 왜 버뮤다 섬 여인들에게 봉사해야 하냐, 난 그럴 마음도 시간도 없다. ~라면서 한참을 따지다가. (딱)~ 거짓으로 전화를 받는 척했다. 녀석이 리듬을 당김음으로 리드하니까 난 무시하는 전략을 썼던 것이다. 그래서 난 내 상대를 바꿔버렸다. 막 그렇게 전화를 받았다. 
   「어, 스티페 미오치치. 웬일이야? 너 형한테 인사가 좀 뜸하다? 형 기분 나빠지려 하는데? 야, 너 잠깐만 기다려.」
    그와 동시에 난 재빨리 개폼 똥폼 오만폼 다 잡으면서 피츠제랄드에게 말했다.
   「스티페 미오치치가 누군지 아쇼?」
   「예. UFC 현 헤비금 챔피언이죠. 저도 그 정도는 알아요.」
   「거 잘됐구만. 걔랑 통화해보시겠수? 내가 얘 엎어서 키웠소. 얘가 한때 버릇 나빠질려고 하면 내가 자세 잡아주고, 어깨뽕 연예인병 걸릴려고 해도 내가 혼구녕을 내주고. 거의 뭐 내가 얘 사람 만들었다고 봐도 무방하요. 아시겠소?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오. 어이, 형씨. 왜 당신께 형씨라고 불러서 기분 나쁘오? 얘네 뿐만이 아니오. 내가 오락산업 거물들 부르면 싹 다 내일 당장 달려올 거요. 그리고 최근 잘나가는 영화배우들? 지금 당장 내가 콜만 하면 튀어올 숙녀들 저기 보이는 운동장에 줄 세워도 세바퀴 반도 모자르오. 아시겠소? 그런데 내가 뭐하러 버뮤다 섬 처자들을... 어... 우롱하고 다니겠소. 거 기왕 말 나온 김에, 말이야 바른 말이지 형씨가 먼저 상스런 표현을 입에 담았지 그거 어디 내가 먼저 시작했소? 맞소 들리오? 그러니까 말이지, 뭐 내가 버뮤다 섬 숙녀들을 다 따먹고 다녔다고요? 내가 그렇게 한가한 사람으로 보이오? 정말 그러오? 이 사람이...! 당신 말 다했어? 어? 이름만 대시오. 누구 생각나는 사람 없소? 가수? 아니면 뭐 여자 배구선수? 패션계 스타? 이 전화에 담긴 숙녀들이면 이 고장에서 1년 내내 군민축제를 열어도 모자를 판이오. 아시겠소? 네? 그런데 내가 왜 뭐 거 뭐냐, 뭐 따먹고 다녔냐고요? 이 사람이...! 야, 너! 그래 너 임마. 너 내 동생해. 나 이제부터 네 형할께. 형이 너 커버해준다. 너 이 형이 보호해준다. 아까처럼 소문 이상하다 싶은 일 있으면 이 형한테 말해. 형이 다 처리해줄께. 그리고 마음에 드는 영화배우 있으면 이름만 말해. 알았어? 알았어 몰랐어? 아 스티페 미오치치 기다리는 중이지. 너 조금 기다리고 있어.」
   「어 스티페.」
   「네 형님. 말씀하십시요.」
   「말하라고? 형한테 나불거리라고? 야 인마 전화는 늬가 걸었잖아. 너 형한테 맞고 싶어? 그러고 보니 너 형한테 맞은지 좀 됐지? 글지? 어쩐지 너가 너가 아까부터 깐족거리더라 했다. 그새 말이야, 어? 못 보던 새에 깐죽이 많이 늘었네? 형이 더 이상 허세대회에 출전하지 않는다고 비리비리 아마추어들끼리 대회 수준 떨어트렸다며? 그러니까 용건이 뭐야? 형한테 하고 싶은 말이 뭐냐고? 뭐? UFC 여자 선수와 따른 리그 남자선수끼리 이벤트전 열면 어쩌겠냐고? 너 알아서 해. 형 비서실장한테 물어보면 돼. 넌 임마 그게 문제야, 알아? 늬가 뭐 5살 먹은 꼬마냐? 형이 하나부터 열까지 다 꼬치꼬치 알려줘야 해? 어? 늬가 임마 그래서 안되는 거야, 알아? 어? 늬가 그러니까 여자가 없는 거라고. 이 자식이...! 야, 형 기분 나빠졌어. 뭐? 형 화났냐고? 미쳤냐 형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단 1번도 화내본 적이 없어. 형은 그런 역사가 일절 없다고. 어? 누굴 뭘로 보고...! 아무튼 형 짜증나도록 돋구지 말고, 귀찮게 뻠쁘질 하지 말란 말이야. 어? 아 쫌! 야 다음에 통화해. 지금 분위기 영 아니니까. 들어가.」
    눈치를 보아하니 피츠제랄드는 상당히 쫀 상태였다. 혹시 바지에 오줌을 살짝 지렸는지도 모르겠다. 
   「피츠제랄드.」
   「」
   「대답 안 해?」
   「네 형님.」
   「너 여기 모스맨 대학교 학장 누군지 알지?」
   「네. 형님. 낙향해서 좋은 일 많이 하시는 분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알기만 하면 뭘 해 임마. 안 그래? 너 앞으로 그분 많이 도와. 걔 형이랑 많이 친하니까. 뭐 부족한 거 있으면 말하고. 어려운 일도 있으면 있는 족족 말해. 형이 다 꼬셔줄께. 아니. 아니 아니. 형이 다 처리해줄께. 일단 오늘은 형이 말을 좀 많이 해서 피곤하니까, 회포푸는 건 나중으로 미루자. 뭐 이렇게 된 거도 인연이자 행운이데, 축배는 미루어 기쁨이 커질 테니 말이야. 알겠어? 넌 임마 왜 대답이 반 박자도 아니고 1.5박자가 느려? 어?」
   「네, 알겠습니다. 가보겠습니다. 그럼 나중에 인사드리겠습니다.」
   「그래, 가 봐.」
   「」
   「야. 형 말 안 끝났어.」
   「네, 형님.」
   「너가 아까 오해한 거, 형이 오해를 사게 만든 뭔가 그 의뭉스러운 지점이 있을 테니까. 따라서 형은 그 의심의 실마리를 말끔히 해소했으면 해. 왜냐면 피차 깔끔한 게 좋잖아. 너도 보니까 사람 좋고 의리 어디서 안 빠지고, 옷도 촌놈치고는 고상허니 세련됐고. 어? 너 평판 괜찮은 거 형이 다 알아. 형 레이더 가동시켜서 이미 너네들 족보 싹 꿰찼어 임마. 형이 아까 뭐랬지? 그래. 혹시라도 모를 어설픈 오해, 그러니까 그게 어떻게 발생했느냐. 하면~ 뭔가 숙녀들이 있겠지. 여기도 다 시내가 있고 너네들 자주 다니는 동선이 있을 거 아니야. 안 그래? 다 알고 있어. 아니 뭘? 뭐긴 뭐겠어 임마. 그 처자들 형이랑 만나서 오빠 동생 하고 다 뭐 터놓고 농담도 하고 그러는 거지. 걱정마 임마 늬 짝은 형이 다 꼬셔줄께. 알았어? 넌 임마 형이 시키는 대로만 해. 그럼 넌 장차 버뮤다에서 기록적인 플레이보이로 거듭날 수 있을 테니까. 넌 형이 딱 몇 가지만 다듬어주면 대번에 장성감이야. 원래 너처럼 시원시원한 호상이 보면 나중 대성하더라니까. 뿐만 아니라 나 같은 스승만 딱 만나서 운 트이면 그때부터는 그냥 (몸짓)! 그 애들이 지금 오락산업 전영역을 주름잡고 있잖니. 그나저나 말 많이 해서 너무 피곤한데. 급체력저하 때문에 오늘은 형 일단 쉬는 게 좋겠다. 그러니까 너도 철수하고. 그렇다고 너무 멀리 가지는 말고. 너네들끼리 놀 땐 놀더라도 근처에다 몇 명 대기시켜놓고. 뭐 누구? 누구긴 누구야 덩치들 몇 명 포진시켜놔야지. 형 전화 때리면 즉각 달려올 애들이 몇 명인데, 당장 뭐 버뮤다 군민축제 열어줘? 어? 열어줘 말어? 너 여려운 거 도와주고, 너네 미심쩍은 난제 처리해주고. 물심양면으로 형이 골드바든 007 가방이든 무제한으로 제공해주고. 어? 미제사건 전부 가져와, 형이 싹 다 처리해줄께.
    그러면~, 어? 그러면~ 그럼 임마 너도 성의를 보여야 할 거 아냐. 안 그래? 어? 이 자식이 어디 형 재능을 날로먹을려고! 너 형한테 찍히면 어떻게 되는 줄 알아? 이 자식이... 너 때문에 형 자꾸 말 많아지잖아? 그게 다 너 때문이야 임마. 어? 야, 가. 당장 꺼져. 썩 꺼져버려 임마. 그렇다고 고깝게 듣지 말고, 형이 최근 보는 대하드라마가 있어서 명대사 몇 개 따라해본 거니까. 속에 담아두지 말고. 야 임마, 너도 빈말과 참말 구분 못하냐? 그러면 나중 피곤하다 너~! 일단 나중 한번 뭉치자. 그때까지 섭섭하고 서운하며 좀 그리워도 세계마초협회 지원을 듬뿍받는, 의리맨들 사이에서 덕망 두터운 우리가 참자. 알았어? 알았어 몰랐어? 넌 임마... 야 나갈 때 문 닫고 나가고. 형 먼저 쉰다. 돌아가서 기대나 잔뜩 할 준비나 하셔. 앞으로 네 청춘사업은 꿈에도 몰랐던 클라이막스를 누리게 될 테니까. 허허. 형이 좀 못 웃겼으면 아량 넓은 네가 이해하길 바란다. 형이 임마 다 웃길 수는 없잖아. 안 그래?」
    그러면서 녀석의 신비감이 김빠지기 전에 난 서둘러 음악을 틀었다. 물론 서두르지 않은 척 자연스럽게 말이다. 
    Handel / 메시아 HMV 56에서 아리아 "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하라"
    그렇게 버뮤다 시골청년 피츠제랄드와 나의 첫만남은 마무리됐다. 
    다음으로 피츠제랄드의 첫사랑을 만나서 내가 또 썰을 잔뜩 푼 다음 2 대 2로... 그런 공상 집어치우고. 





    7

    나는 평소처럼 비서실 안쪽 나만의 비밀공간에서 일하고 있었다. 
    Chopin / Andante Spianato e Grande Polonaise Op.22 (연주: Josef Hofmann)
    음악도 듣고 칼럼 자료도 찾고 문학 발상에 대해서도 끄적거리고. 일하다 쉬는 시간에 축구 웹사이트 잡담 게시판에서 야한 사진...이 아니라 건전한 세상사 이야기도 읽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비서 빽넘버 5번 크리스탈이 내게로 다가왔다. 
    뭐야 낮부터? 
    낮부터? 뭘 낮부터! 
   「오빠. 저랑 갈 데가 있어요.」
   「갈 데?」
   「따라와 보면 알아요.」
   「」
   「어서요. 오빠. 어서요.」
    그래서 나는 엉거주춤 일어섰고, 비서 등번호 5번 크리스탈은 내 손을 덥썩 잡더니 날 끌고서 빠른 걸음으로 어딘가로 향했다. 
    그녀가 날 데려간 곳은 버뮤다 대학교 미술품 보관소였다. 나름 모스맨 연구소와 뭉크 재단, 양대 경매장으로부터 후원도 받고 교류도 든든하다보니 시설은 생각보다 훌륭했다. 
    즉 보안 절차가 상당히 까다로웠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영화에서나 봤던 그 뭐야 선그라스를 쓰면 막 레이져가 이렇게, 저렇게, 막 이리저리 불규칙적인 모습을 볼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크리스탈은 내 예상을 여지없이 깨트려주었다. 
    그건 바로 A → B → C
                            ↓
                            D
    어느 정도 규모 이상의 미술관에 들려본 사람들은 아실 텐데 보통 보관소 A부터 이미 일반인 출입 금지구역이다. 
    나도 당연히 그런 데 들어가보지 않았으니 A에 들어가면 곧바로 명화들을 구경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렇지만 A는 보안과정을 꼼꼼히 거치는 통로였다. 그래서 그걸 거친 다음 문 B를 열고 또 C를 열면 그때 진짜 보관소가 나오는데. 
    저 B와 C 사이에 생각지도 못하게 D라는 비밀 통로가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들어갔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러더니 그녀가 무선 이어폰을 엘리베이터 조정부에 꼽더니 핸드폰으로 막 조작을 했다. 
    그 다음 핸드폰으로 뭐야, 마이너스 150층? 그때부터 엘리베이터는 쑥 내려갔다. 
    지하 150층 도착. 우리는 내렸다. 
   「오빠. 여긴 저만의 비밀 공간이에요. 어때요? 멋지죠?」
   「뭐야? 너 저... 저...」
    여기 있는 자료들은 바닷물이 사라지는 드라마에 관한 초정밀 자료들이었다. 
   「너 그 드라마 매니아야?」
   「그럼요. 이거 전부 구경하려면 얼마나 걸리는 줄 알아요?」
   「몰라. 모르지. 내가 어떻게 알겠니. 한번도 구경해보지 않았는데. 그렇다고 과일을 꼭 먹어봐야 그 달콤한 맛을 알 수 있나?」
   「우리, 다 구경하기 전까지 여길 떠나지 말까요?」
   「단지 구경만 해야 하는 거니?」
   「오빤 즉흥적인 상상력이 너무 재밌어요.」
   「자, 그럼 한번 시작해볼까?」
    바로 그 절대절명의 순간 크리스탈은 날 깨웠다. 
    비서 빽넘버 5번 크리스탈은 비서실 구석 소파에서 침흘리며 낮잠자고 있는 날 깨웠던 것이다. 
    뭐야 개꿈이었잖아? 이런~ 젠장!





    8

    오늘도 나는 비서실 구석지에 쭈그러져 일하고 있었다. 
    Donizetti / 오페라 <사랑의 묘약>- “산들바람에게 물어보세요“
    조용한 분위기 가운데 비서 등번호 6번 캐서린이 다가와서 말했다. 
   「오빠. 크리스탈이 오늘 출근하지 않았어요.」
   「어제 난 크리스탈과 밤늦도록 함께 놀지 않았어.」
   「왜 도둑이 제 발 저리는 거죠?」
   「나 도둑 아니야. 누가 도둑이래? 뭐 내가 크리스탈의 마음을 들었다 놓기라도 했다는 거니?」
   「긴말 필요없이. 오빠가 가 봐요. 걔 기분 제가 느낄 수 있거든요.」
   「내가? 왜 나야!」
   「싫어요?」
   「아니~ 그게 아니라~ 누가 싫다는 게 아니라~」
   「잔말 말고, 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나는 크리스탈의 집에 도착했다. 초인종을 눌렀지만 대답이 없었다. 크리스탈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비서실로 전화해서 캐서린한테 물어봐도 딱히 별다른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 그러니 나는 버뮤다 섬의 마당발 피츠제랄드에게 물어보는 방법밖엔 없었다. 웬만하면 바로 감 잡았을 텐데. 내 촉이 많이 둔해졌나? 버뮤다 원뻔치 버뮤다 투터치 버뮤다 몽키스패너 버뮤다 가위손 너 혼자 다 해 먹어라, 라는 값싼 농담을 남발하던 호시절이 지나가버렸기 때문일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가능성도 없지 않고. 그러든 어쩌든 그러든가 말든가. 그래서 나는 동생 피츠제랄드한테 전화해서 알게 됐다. 그러니까 나는 무엇을 알게 됐을까? 
    바로 비서 빽넘버 5번 크리스탈이 인터넷 이력서에서 뭔가를 바꿨다는 것을 말이다. 
    직장란에 버뮤다 대학교 비서실 → 버나드 대학교 비서실.
    뭐? 이년 봐라...! 아니 그게 아니라.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우여곡절 끝에 나는 크리스탈을 잘 설득해서 버뮤다 대학교 비서실로 데려오는 데 성공했다. 버나드 대학교로 딱 첫 출근인지 제3차 최종면접인지 뭔지 몰라도 아무튼 난 그녀의 마음을 돌렸다. 그녀를 달래주느라 난 정말 혼신의 힘을 다했다. 난 진짜 뼛속까지 범죄심리학자이자 전문협상가요 유도심문의 대가였던 것이다. 그래서 결국 정력이 바닥날 지경이었다.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는 줄 알았다. 아니 진짜 크리스탈의 여심을 쥐락펴락하는 게 내겐 원래 일도 아닌데, 왜 이렇게 힘들어진 거지? 아마도 현역에서 은퇴했기 때문으로 추측할 수밖에. 
    결국 그건 그렇게 일단락된 걸로.





    9

    문단 줄거리를 먼저 요약함. 
    피츠제랄드 상담. 자기가 좋아하는 숙녀가 있다고함. 난 이미 크리스탈과 친해졌는데 하필 걔가 걔.
    뭐야? 심상치 않은 전개인데.... 이걸 어쩌나! 
    뭐 그건 그렇다 치고. 중간 과정 생략하고 퇴근 후 나는 시내에서 피츠제랄드를 만났다. 물론 크리스탈과 함께 삼자대면으로 말이다. 
    피츠제랄드, 크리스탈, 그리고 나. 뭔가 부자연스럽긴 하지만 곧 자연스럽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실제 보통 여자들은 우릴 보면 보자마자 웃는다. 문제는 남자.
   「형. 무식하다고 동네방네 다 소문내고 다녀?」
    뭐 이 자식이...! 물론 피츠제랄드는 내게 즉시 윙크했다. 숙녀 앞에서 자기 면 좀 세워주라 그거구만 그래. 
   「넌 임마 형의 큰 그림을 아직도 모르겠어? 내가 과녁이 되면 그만큼 스포트라이트는 네게 집중될 수밖에 없어. 알아? 그러니까... 크리스탈. 너 잠시 밖에 나가있어. 아니다. 그냥 있어.」
   「형. 사랑이 애들 장난이야? 형 크리스탈 좋아해?」
   「너 임마 부끄럽게 왜 그래? 우리 시트콤 찍는 거 아니었어? 왜 갑자기 멜로?!」
   「멜로드라마가 뭐 어때서. 원래 인생은 멜로야.」
   「너... 얘가 멋진 말은 다 먼저 해버리네. 얘 원래 안 이랬는데.」
   「왜, 크리스탈 있으니까 쫄려?」
   「쫄리긴 누가 쫄려?」
   「형. 화났어? 화났지? 꿍한 거 보니 화났네. 아니면 아직 예열 안 끝난 건가? 예열? 형이 무슨 뚝배기야 냄비야? 어? 형 원래 그렇게 쪼잔한 남자였어? 특히, 여자 앞에서? 어? 그래?」
   「너...」
   「형. 화났지? 그치? 아니야? 아닌 게 아닐 텐데. 화났으면 화내. 오늘 형 화내라고 마련한 자리야.」
   「너...」
   「어서. 어? 들어와. 컴옹 베이비.」
   「아 나 이거 증말, 아니 그게 그러니까 말이지. 형이, 헛! 화를 어떻게 내는지 알아야 화를 내든 말든 할 거 아니니. 어? 아니, 어? 아니~」
   「그게 화내는 거야. 잘 하시네. 너무 잘하시는데? 지금 짜증지수 푸쉭푸쉭 올라가는 거 보여. 형 이마에 쓰여있어. 나 화났어 라고. 그래서 지금 계속 우리가 뽐뿌질 하는 거고.」
    우리가? 우리가는 뭐가 우리가야!
   「뭔 소리야? 형은 태어나서 화내본 적인 단 한 번도 없어. 이거 왜 이래? 뭣이 어째?」
    바로 크리스탈이 중재하기 시작했다.
   「오빠들. 애들처럼 왜 그래?」
   「크리스탈. 넌 좀 빠져. 아무것도 모르면서 뭘 안다고 설치긴 설쳐. 넌 모르면 가만히 듣고만 있어.」  드디어, 캬! 마침내 피츠제랄드는 상남자 마성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형. 크리스탈은 원래 날 좋아했어. 알아? 그런데 언젠가 들리는 소식에 의하면 버뮤다 대학교에 웬 난봉꾼이 출연했다더니 그게 알고 봤더니 형이네? 추문이 심심치, 아니 심상치 않더라고. 내가 저번에 괜히 형 찾아갔게? 크리스탈도 원래 날 좋아했다니까 글쎄. 그런데 갑자기 뭔 밑도 끝도 없이 웬 꺼벙한 허당이 나타나더니 지가 무슨 허접한 행운아도 뭣도 아니면서 말이야, 어? 지가 뭔 해결사야 헤라클라스야? 어? 걔 그 인간이 알고 보면, 어? 걔가 이 바닥에 나타날 때부터 우리가 알아봤어. 걔가 누구라고 말은 안 하겠는데, 어? 걔가 버뮤다 숙녀들 다 따먹고 다닌다,」
    난 재발리 피츠제랄드의 입을 손가락을 막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좀 급했기 때문일까? 내 손가락이 피츠제랄드 입술 안쪽으로 말려들어가버린 것이다. 
    내 손가락이 무슨 공갈 젖꼬지도 아니고. 이거 이거 크리스탈 앞에서 모양 이상해져버린 거지. 
    그런데 카페 주인이 우리 분위기를 공감해서였을까 낌새가 꽤나 우려스러웠다고 판단해서였을까? 음악은 이렇게 바꼈다.
    Handel / 오페라 <알레산드로> - “부질없는 사랑이여, 유혹, 기쁨이여”
   「뭐야? 음악이 왜 이래?」
    그러자 피츠제랄드까 (딱)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또 이렇게 곧장 바꼈다.
    Bach / 모테트 BWV225
   「형 이런 노래 좋아하잖아.」
   「형은 쿵쿵쿵쿵 클럽 음악 들을 줄 알았는데. 바깥에 나왔으니 새콤달콤 유행가 듣을 걸로 예상했는데. 아니네?」
   「기대대로 가면 재미없어. 왜 그래 아마추어같이? 형답지 않아.」
   「그런데 끼어들어서 미안한데 오빠들 이렇게 말 많은 남자였어?」
   「너 말 많은 남자 안 좋아하니?」   역시나 피츠제랄드는 여자를 몰랐다. 그럼 그렇지. 곧바로 녀석은 우리에게 말할 기회를 주지 않고서 잡은 마이크를 놓지 않았다. 
   「크리스탈. 내 하나 물어보자. 어차피 이렇게 삼자대면 한 거. 속시원하게 한번 물어나 보자꾸나. 응? 괜찮지? 그래. 말할께. 너. 너 말이야 너. 그래 너. 여기 여자가 너 말고 누가 있는데?」
   「야 피츠제랄드. 너 커피에 취했니 아니면 봄바람에 싱숭생숭한 거니. 너 설마 상사병 걸리진 않았지? 그치? 혹시...」
   「혹시 뭐? 형 듣고만 있어. 내 말 끊지마. 야 크리스탈. 너. 너. 너 말이야 너. 너 왜 나한테는 말 올리고, 형한테는 말 놓는데. 알아도 내가 널 훨씬 먼저 알았어. 어? 그런데 왜 저 형한테는 보자마자 오빠야. 어? 너 저 형한테 꼬리치니? 왜 나한테만 내숭인데? 너 혹시 저 형 좋아하니? 그러니?」
   「왜, 난 (고갯짓) 좋아하면 안돼?」
   「」
   「」
   「나 하나 고백할께. 난 버뮤다 대학교 비서실 싫지 않아. 오히려 좋아. 지금이 괜찮다고. 그런데 피츠제랄드가 하도 꼬시고 꼬시고 부추기고 부추기고. 정말 더럽게 귀찮게 하길래 에라 모르겠다 라는 심정으로 그냥 버나드 대학교에 딱 1번 구경만 갔다 오려고 했어. 그래. 할리웃 액션 나도 할 줄 안다 그거지. 그거 다 피츠 얘가 시킨 거야.」
   「너.. 넌 그 말을 형 앞에서 하면 내가 뭐가 되니? 너도 너지, 넌 그걸 정말로 말하니? 너 진짜 이러기야? 어?」
   「이래서 내가 오빠한텐 극존칭하는 거야. 쳇!」
   「그러니까 뭐 내가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고? 그거 순수해서 그래. 저 형 봐 봐. 불순의 상징. 나 봐 봐. 초딩. 어? 아직도 모르겠니? 왜 이 마초의 순진한 애정, 고결한 순애보를 너만 몰라보니 정말 애석하다 애석해.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나 같은 순정파 만나는 게 어디 쉬운 일인 줄 아니? 천말의 말씀. 그런 행운 아무한테나 찾아오는 것도 아님. 흥! 그런데 내가 대체 뭔 말을 한 거지? 생색? 거 어째 너무 빠른데. 여자들 생색내는 거 싫어하는데. 많이 안 좋아하는데. 생색내는 데도, 허세대회 역대급에다, 허풍 대장감인데도 불구하고. 그래도 생색 생색 또 생색내는 남자가 만약 인기 만점 남자였을 때. 그건 그야말로 생색에도 불구하고 나머지 오디오 이퀄라이저로 다 커버한다는 건데. 그게 어디 쉽나? 하늘의 별 따기지. 그 별 내가 따 줄께. 어? 난 누구처럼 별 땄는데 뭐하러 또 따, 그런 말 안해. 날마다 따 드린다고. 어? 그럼 될 거 아니야. 하늘을 봐야 별을 따지, 그런 말 일체 입에 담을 기회 자체를 주지 않는다니까 글쎄. 근데 생색이 여성 명사니 중성 품사니? 그걸 지금 말할 때냐고? 왠지 모르게 느낌 세한데. 어딘가 모르게 오늘 분위기 많이 이상하단 말이야.」
   「오빠가 더 이상해요. 듣기 힘드네. 오빠 말 참 거슬린다. 아무튼 내가 피츠제랄드 마누라도 아니고. 누구 여편네 될 생각 아직 없고. 그러니 난 이만 먼저 갈께. 불만 없지? 나 간다.」
    그렇게 결말 짓는 거 보기 힘들어서 크리스탈은 먼저 떠났다. 
    그렇다고 나랑 피츠제랄드랑 뻣벗한 남자들끼리 말 길어져봐야 귀만 아플 뿐. 할 수는 있는데 하기 싫음. 딴 남자들도 거의 다 그래, 우리만 그런 거 아님. 





    10

    피츠제랄드가 똘만이 몇을 거느린 채 찾아옴. 물론 약 3주 정도 우리들 친분은 쌓일 대로 쌓인 상태. 
    용건은 2가지. 
    첫째, 예전 두목 즉 버뮤다 청년회 1인자가 돌아왔다는 것
    둘째, 그가 나를 만나고 싶다는 것.
    따라감. 모스맨 대학교 교정에서 보이는 앞 바다 도착. 
    모스맨 대학교 학장 사무엘, 놀러온 제라드, 페츠제랄드 똘만이들은 바닷가에서 대기. 
    피츠제랄드가 운전하는 요트에는 나랑 녀석 단둘. 그렇게 해변에서 약 50미터 떨어진 지점에서 우린 멈춤. 
    잠수함 나타남. 거기서 예전 1인자 미셸이 나타난다는 것임. 
    잠수함은 진짜, 심지어 초대형급. 
    그런데 알고 봤더니 
    도표 ⅰ)
    ────────────────────────────────────────────────────────────────────
           방수 골판지
           싸구려 플라스틱
           물 표면은 초대형 서핑 보드
           물 위로 뜨는 부분만 잠수함 모양
    +     물 위로 뜨는 부분만 잠수함 모양은 수면 밑으로 약간만 잠수 가능 (즉 대충 흉내는 냄)
    ────────────────────────────────────────────────────────────────────
    =     초대형 모형 잠수함
────────────────────────────────────────────────────────────────────

    나는 깜빡 속아넘어감.
    잠수함 뾰족 튀어나온 부분에서 버뮤다 청년회 예전 1인자랑 접선한다는 건 맞음. 거기서 스킨 스쿠버 복장으로 미셸이 나타남. 
    그 날은 그랬고. 또 다른 날들도 우리는 내내 즐겁게 지냈다. 모처럼 내가 시내에서 놀고 싶다고 하니까, 피츠제랄드는 또 어디서 구형이긴 하지만 고급 리무진을 빌려왔다. 그걸 타고 우리는 시내로 갔다.
   「형님 형님. 여기가 버뮤다 시내에요. 멋지죠?」
   「어디? 어디? 아 대체 어딘데 그래? 어디야?」
   「지나갔어요. 그러니까 빨리 보셔야죠.」
   「뭐 임마? 그럼 늬가 좀 천천히 가든가 해야지.」





    11

    어느 날 나는 비서실 구석지에 찌그러져 공상이나 하다 낮잠자다 갑자기 심심해졌다. 
    그래서 며칠 전 꿈에 봤던 비밀통로에 가보기로 했다. 비서 빽넘버 5번 크리스탈이 아마도 나와 새콤달콤 진한 사랑을 나눌 의도로 데려간 곳. 
    어쩌면 그 신비로운 밀애는 단타가 아니라 꽤나 기 빨릴 장기전을 넌지시 암시했을 수도 있는데. 따라서 내가 현실에서 크리스탈한테 막 들이댔냐? 
    그럴 수야 있나. 뿐만 아니라 최근 크리스탈은 출장 다니고 왔다 갔다 이리 갔다 저리 갔다 바빴기 때문에 자주 볼 수 없었다. 
    그렇지만 뭐 비서실에 비서가 어디 크리스탈 달랑 1명 뿐인가? 뭐 말이 그렇단 거고. 그렇게 나는 꿈에 봤던 그 비밀 공간으로 찾아갔다. 
    A → B → C
             ↓
             D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장면 전환.
    혹시나 해서 가봤는데 아니 이럴 수가...! 정말 있었다. 문도 잠겨있지 않았다. 그렇게 딱 비밀문을 열고 드러갈려던 순간. 
   「뭡니까? 체포해!」
   「네?」
   「뭣들해 당장 체포하지 않고.」
   「왜 그래요? 전 아무짓도 하지 않았어요. 난 그냥 벽이 가려워하는 것 같아 단지 살며시 긁어주려했던 게 전부라구요. 제 공상에 따르자면 그건 아마 상상력이 시킨 환희의 애무라고나 할까요?」
   「애, 뭐? 공상 좋아하시네. 말 같은 소리를 해도 모자를 판에, 뭐? 뭣이 어째? 다시 한번 말해 보시오. 뭐가 어쩌고 어째? 개 풀뜯어먹는 변명 그쯤하면 됐고. 밑도 끝도 없이 애무는 무슨. 어디서 발뺌이야 발뺌은! 아 뭐해? 썩 끌고가.」
    그렇게 나는 버뮤다 섬을 통합 관리하는 군&경 특수 수사대 철창에 갇히게 되었다. 
    1시간 경과 후.
    장면 전환.
    피츠제랄드가 찾아왔다. 물론 똘만이들을 몽땅 끌고서 말이다.
   「형님. 왜 그러셨어요?」
   「내가 뭘?」
   「맙소사. 아직 눈치채지 못하셨어요? 버뮤다대 총장 사무엘한테 형 은근 찍혔다는 거 몰라요?」
   「내가? 내가 왜? 아니 내가 뭘 잘못했다고. 그 녀석 옛날에 내 똘만이에 불과했는데. 지가 아무리 커도 그렇지, 날 비호하지 않겠다고?」
   「맙소사. 형 잊었어요?」
   「잊긴 뭘? 내가 다 기억해.」
   「보나마나 공상이나 좋아하시겠지. 있잖아요, 저번에 비서실 창고를 털다가 걸려서 혼쭐난 거 기억 안 나요? 형님 친구들 추방당하고 그때부터 형만 비서실장으로 눌러앉은 거 아녜요. 그렇죠? 사실은 사실이니까요.」
   「아......!」
    기억났다.
    Ⅰ) 해커: 켄트 
    Ⅱ) 건물비밀통로&기술 담당: 로버트
    Ⅲ) 친화력 담당: 로즈마리 
    Ⅳ) 어중이떠중인: 나
    녀석들은 지금 어떻게 됐을까? 하여 급히 피츠제랄드한테 핸드폰을 빌려 전화해보려고 했는데, 녀석들의 전화번호는 내가 아니라 핸드폰만 알고 있었다. 
    또렷이 기억하는 전화번호가 많을 수 없다는 거 누구나 그렇듯이 나도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형님. 어떻게 할까요? 제가 한가지 힌트를 드리자면 이렇답니다. 알고 보면 비서실 빽넘버 5번 크리스탈, 바로 그 크리스탈 아빠가 이 버뮤다를 쥐락펴락하는 실세거든요. 나머지는 다 서로 지네들이 2인자라는 식인 거죠. 인물관계도랄지 세력 구조가 그래요. 그래서 말인데, 형님께서 저와 크리스탈의 연애사업을 밀어주시면 좋겠어요. 저 정말 그녀에게 순정 바치고 싶거든요. 허지만~ 크리스탈 마음을 통 모르겠다니까요.」
   「넌 형의 큰 그림을 아직도 모르겠냐?」
   「」
   「형이 다 2주 속성 코스로 크리스탈 최면 작전에 들어간 거. 그 지령 주입 좌우명은 뭐다? 뭐긴 뭐겠냐 너와의 사랑이지.」
   「형. 역시 난 형 밖에 없어.」
   「그걸 말이라고 하냐. 어서 여기서 날 빼주기나 해. 당장!」





    12

    소풍가자고 제의했는데 녀석이 싫다고 했다. 아니 왜? 왜냐! 왜냐하면 아마 이렇게 추정해도 퍽 빗나간 관측은 아닐 테니까. 
    새로 들어온 비서 빽넘버 8번 9번이 내 편이 된 것이다. 그렇다고 빽넘버 5번 크리스탈이 아예 피츠제랄드와 사랑의 맹세를 한 것도 아니고. 
    곧 구도를 보아하니 이랬다. 
    등번호: 
    5번 크리스탈 
    8번 까리타스
    9번 스테파노
    도표 ⅱ)
    ────────────────────────────────────────────────────────────────────
    여자             남자               여자
    ────────────────────────────────────────────────────────────────────
                      피츠제랄드        크리스탈 
    까리타스      나나나나나        스테파노
    ────────────────────────────────────────────────────────────────────

    물론 시트콤 세력 관계도가 단지 그렇다는 거 뿐. 
    그런데 시트콤이 재미없기 때문이었을까? 빽넘버니 뭐니 비서들도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날 슬슬 피하기 시작했다. 은근히~! 은밀한 눈빛들. 피츠제랄드도 내동 바쁘다는 핑계로 일관. 버뮤대 대학교 총장을 웬 새파란 후배한테 물려주더니 이젠 사무엘은 사회지도층들을 만나느라 바뻤다. 이젠 놀아주지도 않고 얼굴 보기조차 힘들고. 그래도 아직 떠날 수는 없다. 딱히 슬럼프라 부르기도 뭣허고. 그래서 나는 오랫만에 환상문학잡지에 보낼 문학론은 제쳐두고, 월간지 여성환상 1.5에 보낼 칼럼 초고를 작성했다. 내용은 다음 문단과 같다. 물론 아찔한 발상 기발한 착상 놀라운 영감이 쉽게 떠오를 리는 없다. 따라서 다음 문단과 같은 밑그림이 등장하도록 난 먼저 일단 열심히 낙서를 해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난 연습장이 이런 허접한 그림들을 끄적거리기 시작했다. 
    ●▅▇█▇ค็็็็็็็็็็็็็็็็็็็็็็็็็็็็็็็็็็็็็็็▆▅▄▇ 텐트침!
    ●▅▇█▇▇▇▇▇
    ●▅▇█▇▆▅▄▇
    ●▅▇█▇▆▅▄▇
    ●▅▇█▇ค็็็็็็็็็็็็็็็็็็็็็็็็็็็็็็็็็็็็็็็▆▅▄▇ 또 텐트침!
        ●▅▇█▇▆▅ค็็็็็็็็็็็็็็็็็็็็็็็็็็็็็็็็็็็็็็ 
    ●▅▇█▇▆▅▄▇ 난 지금 뭘 하는 거지?? ▇▄▅▇█▇▆▅●
    또?
    뭘 쳐? 또?
    아니 왜? 어?
    나를 따르라
    에라이 모르겠다
    일단 신나게 낙서나 하고 보자
    버뮤다 대학교 비서실? 여기 비서실장 누구야! 
    그러니까 인생이란 코끼리 팬티냐 피노키오 팬티냐인가...
    아니면 뭐 인생이란, 아빠 안잔다 VS 오빠 자?
    자냐고? 자긴 누가 자, 왜 자. 텐트쳤는데 뭐하러 자, 안자! 
    텐트쳐라 텐트쳐라. 하늘을 봐야 별을 따지? 그 말 취소해라 취소해라!
    별 땄는데 왜 또 따냐, 흑심은 각성해라 각성해라! 가족끼리 그러는 거 아니다, 각성하라 각성하라! 
    샤워소리만 들으면 식은땀난다 식은땀난다~! 일단 지르긴 질렀는데, 설레네? 나 지금 떨고 있니? 아깐 많았는데 왜 지금 아무도 없어?





    13

    * 자동차 구동 방식
                    조향    구동                    장단점     가격     주무대     주고객층
    전륜구동   전륜    전륜 
    후륜구동   전륜    후륜
    사륜구동   전륜    앞만/앞뒤 (선택)

    * 사랑 방식

  • 전륜구동: 여자가 앞장서며 뒤따라오는 남자한테, 잔말말고 따라와! 통상 결혼 00년차. 여자가 위일 때. 남자가 져줄 때
  • 후륜구동: 조향은 아부하며 비위맞추는 딸랑이&쌥쌥이&재롱꾼&애교쟁이 + 구동은 물주 = 으샤으샤! 연애 초반 평균. 또는 상향지원 여자. 결혼 후는 부부 금슬 좋은 경우
  • 운전자 시점 1: (운전자가 여자니까) 남자가 앞장서며 의전 및 보디가드, 여자는 수색대와 사냥견 먼저 보내는 식. 권력 리모콘도 여자가 쥠. (여자 입장에서) 만년 공주 대접받는... 개꿈?
  • 운전자 시점 2: (운전자가 남자니까) 남편 흉보기보다 이 세상에 더 재밌는 건 그리 많지 않음. 말을 안해서 그렇지 속에 쌓인 건 말도 못함. (여자 입장에서) 하녀 인생
  • 애마 시점      : (애마가 남자든 여자든) 안장 싫어하는 당나귀는 면박당함. 주인 천성에 따라 '당근과 채찍 작전' 가능성 상주. 경주마 운명이 그렇듯 스포트라이트는 좋은데, 난봉꾼이 부러운 유부남...은 아니겠으나. 당연히 야생마가 부러울 수밖에. 고로 그런 입장에 처한 애마는 자유 자유 하는 것임. (물론 어디까지나 농담임. 뭐, 농담이... 이 사람이!) 예를 들어 1번 2번 갔다 온 남자들이 전문가 중의 전문가. 게다가 수평 무게 중심이이 4:6에 전륜구동이면 끄는 사람 죽을 맛임. 또는 페라리 458 (앞:뒤=42:58) 미드쉽 후륜구동? 슈퍼카면 얼마든지 애마&주인 둘 다 윈윈. 그러나 슈퍼맨 아닌 이상 애마만 퍼지기 일쑤. 쌍코피 터짐. 맥을 못씀. 매가리 없음. 기 쫙 빨림. 쌍코피 또 터짐. 쉬지 않고 커피포트 부글부글 미쳐버림. 심지어 상하 무게 중심이 지면에서 높을 때 탑승자가 승차감 걸고 넘어지면 애마는 달리느라 힘든 걸로도 모자라 잔소리까지 얻어들어야함. 수시로 떽떽거리고 닭 잡듯이 닦달당하는 기분. (절레절레) 더더군다나 틈만 나면 지는 비교? 그래서 그 애마 심정은 뚜껑 열리다 못해 득도할 수밖에 없음. 남자도 전륜이든 후륜이든 성능 받춰주든 아니든 여자 잘 만나야 함. 여자도 마찬가지. 남자가 만나면 한마디로 피보는 여자? 쉿!
  • 굶주린 하이에나
  • 더 굶주린 늑대
  • 개침 질질 목양견
  • 벌... 발... 동네 똥개
  • 최고로 굶주린 촌닭? 역대급 응큼한 촌년?

    이렇듯 칼럼 초안을 작성하고 보니 별볼일 없었다. 무슨 칼럼이 이 모양이야? 어? 내가 일전에 완성한 칼럼들은 그래도 나름 자평하고 검토했을 때 음 괜찮네 나쁘지 않네 까지는 아니어도, 그나마 먹고는 살아야 했으니 마라랑 사라한테 보냈었다. 그런데 이건 뭐 자기 평가 기준선에 한참 모자르네? 정신 승리네 허세네 합리화네. 하트가 벌렁벌렁 하요 어쩌요? 네? 라는 턱걸이조차 힘겨운 수준이라니. 그게 그러니까 안 통하는 꾀병 안 먹히는 심술의 결과일까? 말도 안돼. 웃기지도 않으니까. 그래서 뭐? 어쩌자는 거야? 어쩌긴 뭘 어째. 차분히 마음을 진정시켜야지. 난 화나지 않았으니까. 난 화낼 줄 몰라. 평생 짜증이란 걸 내본 인생사가 없거든. 사랑의 묘약에 취해본 적이 없는데 우리가 만취한 기분을 어떻게 알아? 몰라. 난 몰라. 어? 딱 몰라. 우리는 짜증지수 그거 그 언제라도 미동조차 안거든. 거 뭣이냐 근데 내가 왜 갑자기 허세? 어울리지도 않게 웬 허풍? 그럼 그 다음은! 그래서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됐어? 보나마나 지지리 궁상맞을 중년운을 구해줄 최상의 첨병은 무엇인지 고심할 수밖에. 그건 곧 허영심 공백 상태? 쇠가 뜨거울 때 쳐라를 우리가 왜 모르겠나. 도대체 얼마나, 어? 배 들어올 때 노 저어라를 어길 정도로, 어? 하도 여복 어복 인기복 껀수복 만년 범타요 뻔트조차 이젠 리그 퇴출감이니, 어? 배 들어오든 말든 잔칫상 펴지든 말듯 숟가락부터 서로 올리기 바쁜 세상이지 않냔 말이다. 소 뒷걸음질치다가 쥐 잡는다고, 누구는 노력파 기분파 낭만파들 다 제끼고서 행운발로 재물복을 꿰차질 않나, 누구는 애마 자랑에 시간 가는 줄 모르지 않나.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되어버렸을까. 요컨대 정신산만! 혹시 정신병? 난 미치지 않았어. 내가 왜 미쳐야 하는데. 아님. 절대 아님. 난 사이코패스 아님. 소시오패스도 아님. 그러든가 말든가 에잇 재미없다. 거 참 더럽게 재미없네. 먹는 개 짓지 않는다고 맛난 거나 먹으러 가야겠다. 가자, 돼지고기 조지러! (점잖으신 분께서는 걸러들으시기 바람. 필자 원래 그렇게 센 표현 남발하지 않음. 다만 안 팔리는 얼굴 어쩌고저쩌고는 뻥 아닌데, 그와 달리 연재소설이나 명칼럼은 하도 안 팔려서 편집장한테 하도 구박받은 결과임. 진짜 진짜 극소수 오빠 열혈팬들과 엄청 사석에서 친하다는 가정하에 글을 쓰라면서 마라한테 얻어터지기 직전까지 간 게 벌써 몇 번인데. 일단 걔한테 다 뒤집어씌우기로 했음. 아니 사실은 걔가 다 시켰음. 지가 다 책임진다며 큰소리 떵떵쳤음)





    14

    내 사무실이라면 세헤라자드 같은 인공지능 지니와 놀 텐데. 그렇다고 아직 돌아가긴 좀 뭐 하고. 
    오디세우스 서사시를 읽기는 따분하고. 그렇다고 인터넷으로 다이아몬드를 구입하겠나 아니면 막 비서들 일 못하도록 찝쩍거리기를 하겠나. 
    그래서 나는 기회를 엿보았다. 1시간 2시간 3시간. 1일 2일 3일. 1주일 2주일 3주일. 1달 2달 3달. 
    OK~! 마침내 절호의 짬이 찾아왔다. 최고의 호기. 1년에 딱 1번 있을까 말까 한 그런 최적의 시간. 
    바로 버뮤다 축제의 날이었다. 해외토픽 뉴스에 보던 것처럼 토마토 축제, 황소축제... 막 그런 장면들 다 볼 수 있는 날.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냐구요? 당연히 저번에 실패한 일. 
    꿈에 비서 빽넘버 5번 크리스탈이 날 데려간 비밀공간 ──> 으슥한 미술품 보관실 근처로 갔는데 진짜 있었기 때문에 은근슬쩍 침입을 시도하다가 체포! 
    버뮤대 대학교든 어디든 모든 인원이 축제에 정신이 쏠려있을 때, 난 다시 그 비밀공간 침입에 재도전하기로 한 것이다. 
    해킹부터 잠긴 문 열기 등 잔기술을 숙달할 기간을 충분했으니, 따라서 나는 곧장 실행에 옮겼다. 
    그 간략한 설계도를, 상상만 수도 없이 하던 그 구조를 재차 반복하기로 하면 이렇다. 

    도표 ⅲ)
    A → B → C
             ↓
             D

    자, 다른 각도에서 보자면 또 이렇게 볼 수도 있다. 
    * 미술품 보관실 문은 스위스 비밀은행보다 더더욱 초정밀 막강.

    도표 ⅳ)
                                           뭐 5차 6차 7차 끝판왕까지?
                                           [어쩌면 4차      ]
                                           [아마도 3차      ] 
                                           [2차 보안단계 문]
                                                   ↑
                                                   ↑→ D (바로 여기) (이거 열면 계속 1,2,3,4,5,6,7...은 모르겠음)
                                                   ↑
                                           (따고 들어가면)
        ───────────────[미술품 보관실 문]───────────────

              복도                                                                             복도

        ──────────────────────────────────────





    15

    딱~ 그렇게 미술품 보관실 1차 문을 따서 들어간 다음, D를 열려던 순간 딱 열렸다. 
    캬~ 뭐야? 그런데 그건 가짜 문이었다. 아 가짜가 아니라 속임수! 즉 문을 열도록 모든 건 다 진짜인데, 열고 봤더니 콘크리트로 싹 다 발려짐.
    이야 이런 속임수를... 그럼 시간벌기 위해서인가? 머리 썼는데? 누구 작품이야? 
    그러다 갑자기 왠지 모르게 난 뒤통수가 세~했다. 이건 또 뭐야? 대체 뭣 때문에...!
    뭐지? 뭐지? 이건 대체 뭐지? 왜 갑자기 소름이 돋지...? 난 곧바로 뒤를 돌아봤다. 
    그랬더니 글쎄 내 뒤쪽에 벽면을 찢고서 녀석들이 나타났다. 빽허그! 
    거의 6개월 전에 나랑 함께 비서실 비밀창고를 열려다 체포되었던 친구들. 
    Ⅰ) 해커: 켄트 
    Ⅱ) 건물비밀통로&기술 담당: 로버트
    Ⅲ) 친화력 담당: 로즈마리 
    Ⅳ) 어중이떠중인: 나
    당시 체포되어서 나만 남고, 녀석들은 다 도시로 강제 이송되었는데. 
    뭐야? 그럼 지금까지 여기 갇혀있었던 거야? 
    눈치를 보아하니 저 벽 안쪽에 안에서만 열 수 있는 스위스 비밀은행 무시무시한 문짝이 있고. 
    그걸 열면 이처럼 쉽게 벽을 찢으면서 나올 수 있는 구도. 뭔지 알 만했다. 
    그런데 녀석들 면상을 보아하니... 정말로 갇혀있었단 말야? 
   「가자. 친구.」
   「그래. 당장 가자.」
   「나중에 다 설명해줄께. 시간이 없어.」
   「」
    난 녀석들의 카리스마가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내 짐이라고 해 봐야 특별히 챙겨야 할 만한...건 없었다. 
    그렇게 내 웨건에 녀석들을 태우고 난 도시로 당장 출발했다. 
    가면서 어떻게 된 영문이냐고 내가 먼저 물어볼 수는 없었다. 
    실어증은 아니겠으나 뭔가 사연이 호락호락하지 않을 테니 시간 여유를 충분히 줘야 하니까. 
    그렇다고 설마 피츠제랄드나 사무엘이 날 내칠려고, 얘네들을 007가방으로 포섭해서, 이런 가짜 작전을 꾸미진 않았겠지? 
    그야 차차 알아보기로 하고, 우리는 그렇게 버뮤다 섬을 떠나게 되었던 것이다. 





    16

    그렇게 난 녀석들을 데리고 무사히 버뮤다 섬을 빠져나가나 했다. 
    그런데 뭐야 이거! 섬과 육지간 다리 너머로 차량 비상등으로만 저녁인데도 대낮처럼 밝네? 
    막 사이렌 울리고 난리난 것이다. 도로 통제에 특수경비대 차량들 하며 막 별 희안한 특수차량들도 즐비했다. 
    그래서 난 일단 다리를 건너가지 않고서 일단 멈추었다.
   「쟤들 뭐야?」
   「것봐 내가 말했지?」
   「난 못 들었는데.」
   「넌 우리랑 같이 안 있었으니까 당연히 못 들었지.」
   「근데 너네 말 잘하네? 아니 진짜 내 하나 묻자. 너네 증말 피츠제랄드나 사무엘 세력한테 매수당한 거냐? 그래서 지금 연기하는 거냐고. 나 속아줄 용의 있어서 그래. 이제 그만 돌아가고 싶어졌거든.」
   「매수같은 소리나 하고 자빠졌다.」
   「뭐 임마? 그러면 진짜로 그때 이후로 지금까지 갇혀지낸 거야? 그 안에 없는 거 없이 다 있든?」
   「너무 많은 걸 알려고 하지 마.」
   「이 자식이 영화 찍고 있어! 내가 임마 너네들 생각해서 일부러 묻지도 않고 데려가는 중인데, 뭐가 어쩌고 어째? 어? 난 너네 실어증 걸렸을까 봐 일부러 조심하는데, 너넨 나한테 뭐 숨기는 거 있냐? 그래? 있으면 말해 봐. 못할 거 없잖아.」
   「못해. 하면 안되니까.」
   「그럼. 사연이 길다. 비밀도 많아.」
   「아니 그러니까, 아 맞다. 저기 다리 건너편에 쟤네들은 또 뭐니?」
    그때 천재 해커 켄트가 냅다 대화에 끼어들었다. 
   「야, 튀어.」
   「뭐?」
   「튀라고. 튀란 말 못 들었어?」
   「튀긴 뭘 튀어?」
   「수배령 떨어졌어.」
   「수배령? 무슨 수배령? 누구? 우리? 난 아니야. 난 빼줘. 우리가 뭘 잘못했는데.」
   「튀라면 좀 튀어. 긴급수배령 떨어졌으니까. 우리가 버뮤다 대학교에서 비밀 서류를 빼내온 게 있거든. 도난 미술품들 창고 내역과 조세회피 및 비자금 거래내역 등 웬만한 건 다 있어. 너 그 사이트 알지, 재벌닷컴! 거기 우리가 들었다 놀 수 있어.」
   「그래서 쟤네들이 우릴 잡기 위해 대기중이라고?」
   「응.」
   「쟤네들이 바보냐? 쟤네들이 우리한테 오면 되지 왜 보고만 있는데? 우리가 무슨 동네 똥개들이냐?」
   「왜냐면 주지사랑 특별시까지만 버뮤다 세력들이 힘이 닫거든. 그게 다 우리가 미리 다리 안쪽편 공권력은 접수했기 때문이야.」
   「정말이야?」
   「그럼 뻥인 줄 아냐? 우리 셋은 차 몰고 돌아갈 테니까 그럼 너 혼자 걸어서 다리 건너 가든가.」
   「야 임마 이거 내 차야.」
   「늬 거 내 거가 어딨어, 지금 이 상황에! 너 자꾸 그렇게 쪼잔하게 굴래? 어? 그럼 확 너만 보내버리는 수가 있어. 어?」
   「그럼 이제 어떡할 건데?」
   「어떡하긴 뭘 어떡해! 버뮤다 호텔로 가야지. 거기서 잠잠해질 때까지 관망할 수밖에. 제라드가 비둘기 띄울 때 되면 띄울 테고.」
   「버뮤다 호텔?」
   「응.」
   「내가 너네들보다 훨씬 오래 있었는데 난 왜 몰랐지?」
   「허당이니까.」
   「」
   「출입금지구역 최정상에 비밀 리에 짓고 있었어. 그래서 너가 몰랐던 거야.」
   「거기 별 몇 갠데?」
   「특급호텔이니까 최소 5개? 7개? 그냥 70개 할까?」
   「진짜 특급이야?」
   「넌 내 말이 뻥인 줄 아니?」
   「뻥 아니지?」
   「얘들아, 얘 빼고 우리들끼리만 가자.」
   「알았어. 대충 뭔 얘긴지 알겠다.」
   「안다고? 늬가 뭘 아는데? 우리가 그동안 거기서 얼마나... 됐다. 늬가 뭘 알겠니?」
   「왜 속 시원히 말 못해? 정말... 설마... 혹시...」
   「아직은 아니란 것만 알아둬.」
   「그래~ 특수든 특급이든 너네 다 해먹어라.」
   「진짜야 특급호텔. 우리 사전에 일반은 없다. 우리는 특수라는 둥 한정판이라는 둥 아니면 상대 안해.」
   「그래. 그런다 그래. 일단 거기 가서 뭐 좀 먹자. 배고프다.」
    그렇게 우리는 버뮤다 호텔로 발길을 돌렸고, 난 당시 그 피신 생활이 퍽 길어질지는 꿈에도 몰랐다. 





    17

    그때 버뮤다 호텔로 들어선 다음 3개월 후, 나는 지금 사무실에서 글을 쓰고 있다. 
    내 사무실에서도 일했다가, 심심해지면 환상문학잡지사 구석지에서 또 여성환상 1.5에도 다 내 책상은 있고. 
    어쨌든지 버뮤다 대학교 비서실에서 그녀들과 함께 하던 시간들이 너무 즐거워서 그랬을까 아니면 내가 원래 허당이니까? 난 버뮤다 호텔에서 숨어지내면서 상태가 많이 안 좋아졌으므로, 따라서 난 지금도 당시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서 백방으로 노력중인 것이다. 
    이 세상의 수많은 즐거움 가운데 돈 쓰는 재미만한 덕목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일까? OB는 아지트에서 시트콤 친구들과 통속적으로 농담 따먹기 대화하는 놀이마저 싫증나버렸다. 몸으로 때운다는 둥 맥주나 조진다는 둥. 그렇다고 이미 영화를 너무 많이 봐버렸으므로 소파에 자빠져 리모콘 쥐고서 TV 채널돌리기에 불만족스럽기 일쑤. 어제는 내게 무슨 짓을 한 거야, 오늘은 이런 느낌 처음이야, 쾌활한 기분 유쾌한 분위기의 연속. NB는 그런 행복감이 뭔지 다 까먹었다. 그렇다면 말이다 올드보이라며 놀림받건 어쩌건 '막살자' 웨이터처럼 YB라는 명찰을 아예 파서 가슴에 떡하니 붙이고 다닐까? 라는 멍청한 공상, 품위 유지비 벌기와 직결되지 않았다. 따라서 이제 정말 무한한 정력 끝없는 쾌락을 선물해주는 새로운 인생을 고민해보지 않으면 안될 시점이란 말인데. 정말 그래야만 하는데. 이건 뭐 에스프레소를 마셔도 시큰둥하고. 변신기계라는 환상의 요술상자를 팔아버린 허탈감뿐. 그럼 결국 놀기 아니면 일하기라는 히든카드 달랑 2개뿐이란 말이잖아? 누가 아니래. 고로 마침내 배부르든 굶었든, 개는 개뼈다귀를 절대 마다하지 않는다고 그는 오늘도 일이 더더욱 재미있어졌다. 진짜로? 뻥이다. 그러나 어쩔 수 있나. 하는 수 없지. 고양이가 생선을 마다하겠나 아이가 사탕을 싫어하겠나. 개가 땅파기를 어찌 끊나. 그래서 환상문학잡지와 여성환상에 전화해서 새 책 몇 권 보내주라는 소식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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