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 174

from 소설 2020. 9. 15. 16:01

    1

    어디까지나 취미생활 잔재주에 따른 어복, 라는 미명 하에 여복도 마찬가지로? 유난히 저조한 전적 다 이유가 있다. 전략적 고의 패배 (전문용어) '탱킹'에 대한 유별난 집착? 그건 강등이 없으니 반칙왕 기살려주는 거고. 나 난봉꾼 자격 없다, 넌 우리 허당계에서 빠져라, 아니다 쟤 아직 쩜오로 꽤 쓸 만한 쩜팔이다...? 우리는 져주는 거 싫어한다. 메소드 연기로 아슬아슬하게 져주는 거 누가 모를 줄 아나. 핸디캡 감안해서 비례대표로 부유층 묻어가기? 잘 안 섞인다고 싫어할 거 뻔한데 뭐 하러 꿇리고 들어가나. 하위팀일수록 높은 순위 유망주 지명권 남용되니까, 경기 수준 떨어지고 관중 하락. 그거 단계별 리그 운영이 아니라 경마-경륜-경정 마권 베팅이랑 똑같은 방식인데...! 그러니까 언제까지 그 더럽게 재미없는 옥타곤에서 빌빌거릴 건데? 나와 냉큼, 자기 잘난 지를 아직 잘 모르시구만 이 양반이... 우리한테 오라고 내가 잘해드릴께! 원맨쇼 독무대 만들어드리는 거 일도 아니란 말이오. 허허허. 그래서 나는 신나는 새 판을 짰을까?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 현란한 혀놀림인지 허접한 궤변인지 그걸 누가 값나가도록 산다고. 나는 사교계에서 은퇴했기 때문은 아니겠으니, 결국 현실적으로 비사교적인 허당이 되었다. 게다가 플레이보이계에서 퇴출당해 여자말 번역기는 영영 고장나버렸던 것이다. 심지어... 됐다. 정력감퇴? 다 필요없다. 애초에 타석에 등장 자체를 못한다. 그러게~ 그만. 그럼 정말 애원하듯 애처린 눈빛으로 바라볼 건 정녕 환상머신 뿐이란 말인가? 넌 터미네이터 난 우머나이저 말장난 재미 하나도 없고. 그러므로 난 뭔가 결단 내리고 행동에 나서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근데 그게 뭐냔 말이지. 어? 개구리 주저앉은 뜻은 멀리 뛰자는 뜻. 그건 내 모르는 바는 아니다만, 뭔 쉐도우복싱만 뭐 십년하게? 뻔트만 대다 영화 끝나게? 대체 언제까지 쥐구멍에 볕들 날만 기다려야 하느냔 말이다. 그래? 같은 값이면 처녀 장가다. 새것이 좋긴 좋거든. 믿을 건 쇼핑 밖에 없다. 뭘 사면 일단 기분 좋거든. 속된 말로 돈 쓰는 재미. 그래서 뭔가를 사긴 샀는데... 뭐야 이거. 벌써 잔고장? 옛말에 같은 값이면 과부 집 돼지를 사랬다. 싼 게 비지떡. 통장 잔고 간당간당이니까 어설픈 타협. 이러니 마침내 난 또 칼럼을 쓰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인데. 
    그래서 나는 드디어 완성했다. 환상머신의 마침표를 마침내 찍었단 말이다. 어떻게 그 믿기지 않는 걸작을 만들었냐? 하면 그건 비밀. 그거 다 공개하면 난 뭐 먹고살라고. 안 그래도 품위 유지비 간당간당인데? 어쨌든 그 환상머신은 정말 기가 막힌다. 완전 끝장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내가 생각해도 말도 안된다. 아주 그냥 오금이 다 저려. 대박, 완전 소름! 밑도 끝도 없이 인간복제? 유전자 조작이 아니라 상자1에 들어갔더니, 뚝딱 상자2에서 원본이 나오고 상자1에서는 그 껍데기가 나오고. 말이 껍데기지 그 역시 원본과 똑같다. 레이저 스캔해서 복사하는 방식이 아니라 상자 안에서만 시간을 정지시키는 원리. 그럼 신체는 그런 경험이 없는데 가만히 정지된 체 바보처럼 시키는 대로 멈춰있으라고? 그럴 리가 있나. 꼭 나서기 좋아하는 말괄량이가 아닐지라도 멈출 수 없는 바로 그 관성을 이용. (더군다나 자발도 대기중이지 기타 등등 끝이 없음) 때문에 원본을 뚝딱 상자2로 옮기고, 복사본은 상자1에 남는 이치. 말이 복사본이지 그걸 뭘로 불러도 마찬가지다. 껍데기? 내 과거. 단순히 3초 전의 모습일지라도 걘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대신 그 장난스러운 약발은 약 7분 정도 유지되다가 서서히 반투명해지다 거의 투명해던 끝에 연기처럼&안개처럼 사라짐. 그래서 환상머신은 달리 불러도 된다. 그럴 수 있으니까. 인간 복사기. 심신분리기. 유체이탈기? 시간조작기. 분신마술기계. 그야 어쨌든 이 신기한 물건을 나만 알고 있으면 뭔 재민가. 하여 난 환상문학잡지 경리인 에밀리를 불렀다. 알고 보면 걔가 거기 실세니까. 





    2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그녀를 정식으로 초대했다치고. 자상한 응대로 그녀의 마음을 빼앗은 다음. 사무실에서 난 에밀리에게 설명을 마친 상태. R. Broschi / Arias for Farinelli 음악으로 그녀를 뿅가게 할 수야 있나. 내가 먼저 아찔한 감상에 흠뻑 젖어드는 것처럼 꾸미면? 진공청소기 같은 남자를 동경하는 그녀 심리상, 집단최면엔 강하나 숙녀 마음 유도술엔 약할 수 밖에 없는 그녀. 내가 떨리는데 그녀도 따라서 설레게 되어 있음. 따라서 곧장 그녀는 환상머신에 끌리지 않고 베길 수가 없었던 것이다. 
   「대체 이게 뭔데 그래?」
   「말은 필요없어.」
    난 세세한 과정에 그녀가 따라오도록 촘촘히 준비했고 그녀는 잘 따라왔다. 가령 그녀는 사무실로 들어올 때 마리아 칼라스의 음조를 듣는다. TV화면으로 UFC 선수의 삽질 세러모니를 잠깐 언뜻 스치듯 봤다. 펼쳐진 잡지에서 살바도르 달리의 후손이 그의 관짝을 열어달라는 소송 어쩌고저쩌고도 보였다. 저기 보이는 저 상자가 설마 환상머신일까? 어떤 사연을 좋아할 테니까 애증이 뭔지 아는 그녀는 마침내 발동된다. 딴 게 아니라 하필 자발이 탄력받은 것이다. 허나 숙녀가 먼저? 애가 탄다 애가 타. 당연히 모델과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영화배우와 기타 등등. 내 아는 남동생들이라면서 아무나 골라라, 이 오빠가 전부 소개시켜주겠다, 걔네들이 너 좋다고 쫓아다니게 만드는 거 일도 아니다. 그녀 기분 띄우는 건 식은 죽 먹기. 마침내 그녀의 표정을 보아하니 프랑켄슈타인을 대면하진 못했으나 유령도 아니고 (바닥에 눕혀진) 아이언메이든이 기립한 상태. 아하! 바로 그게 저 상자구나 라고 느낄 테지. 안 그럴 수 없거든. 그렇다고 고매한 허영심 바람이 빠지면 쓰나. 내가 입은 트레이닝복 세트가 하필 바람에 나부끼면 적당히 안에 바람이 들어가는 게 기가 막힘. 미쉐린 타이어 로고랑 완전 똑같음. 난 그녀의 교양미를 충족시키기 위해 다윗과 '그의 새끼 암양' 한마리 얘길 슬쩍 흘렸다. 내가 어디서 주서들은 얘기, 그녀가 큰 관심 없어도 괜찮다. 세침한 에밀리는 나의 어설픈 잔지식보다 훨씬 뛰어난 잔재주에 익숙하니까. 고로 그녀는 자동적으로 아하스에로스와 에스더 같은 얘길 딱 꺼내려던 도입부. 난 서둘러 검지를 그녀 입술에 갖다댔다. 너처럼 아름다운 숙녀가 날 꼬시려 들면 쓰나, 그래서는 안된다. 아무나 골라라. 단지 한 명도 아니다. 남자 후배들한테 지키지도 못할 호언 남용하다면 저년들 다 꼬셔줄께? 이미 내가 시키는 대로 널 만족시킬 남자들, 1번부터 너가 그만 하랄 데까지 준비 완료. 고혹적긴 숙녀여 그러니까 날 유혹하지 마시라. ~라면서 난 멋진 몸짓으로 가르켰다. 어서 환상머신에 탑승하지 않고 뭐 하냐는 거지. 못 알아듣는 그녀가 아니니까 다변가 출신 그녀는 시험자로 변신했다. 자, 그녀는 들어갔다.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결과는? 그녀가 나왔다. 세워진 상자 2에서 에밀리가 먼저 나왔다. 곧바로 상자1에서 에밀리가 또 나왔다. 
   「꺄악~!」
   「놀라는 척 어쩜 제법인데? 많이 놀라봤던...건 아니지?」
   「쟤가 나야?」
   「보시는 바와 같이.」
   「쟤 우리 얘기 듣는 거야?」
   「그럼 그건 만화영화겠지. 우리는 현실에서 살고 있는데 이걸 어쩐다니? 쟨 아마 7분 정도 후에 증발해.」
   「증발한다고?」
   「너가 여기 있으니까.」
   「그럼 쟤랑 나랑 어떻게 분간하는데?」
   「가서 봐 봐. 쟤 목 뒤에 표식이 있어. △□○」
   「△□○? 그게 뭔데?」
   「△는 반자동. □는 멈춤. ○는 자동.」
   「(유령 에밀리의 목 뒤 표시를 보면서) ○에 불이 켜있는데?」
   「그러겠지.」
   「근데 □는 왜 있는 거야?」
   「□이 뭐랬니 아까? 멈춤이랬지. 그건 왜 있을까? 늬 친구 로즈마리. 걔 자발이 좀 대단해야지. 우리가 말린다고 듣니?」
   「그럼 나대든 자소곳하든 7분은 왜 그러는데? 그 이상은 안돼?」
   「그 이상이면 그건 뻥이지 진짜겠니. 오빠가 은근히 사기꾼이니? 대놓고 허당이잖니. 유령 에밀리가 부드러운 거동과 거친 처신에 대해 자유를 얻게 되면. 그게 만화영화지 진짜겠냐고. 최근 나온 영화 테넷 (2020)? 그거 다 뻥이야. 그 영화가 관객을 설득하는 수법은 간단해. 베베꼬지 않고 차근차근 설명하면 이해는 되겠지. 대신에 재미를 잃고. 그러니 영화기법상 꽈배기는 기본. 많이 꼬면 많이 꼴수록 영화 분량 늘이기 딱 좋음. 따라서 드라마 연작 분량에 어울릴 각본과 구조. 속도감으로 압축하고 자, 영화와 닮은 게 뭐겠니. 종합예술이라는 오페라일 때도 있으나 아마도 뮤지컬. 때로는 현대미술. 때문에 현대미술의 제1철칙은 뭐다? 일단 이해 못하게 하라. 절대로 뭐가 뭔지 못 알아보도록. 그래서 옷발 구경하고 풍광에 뻑가며 뭔가 있는 듯한 낌새로 궁금증 자극. 아직 진짜는 나오지 않았을 거라는 호기심 부풀리기. 영화음악은 쾌감을 자극하고. 그러다 훌쩍 2,3시간 가는 거지. 끝나고 나면 뭐야 이거, 별거 없거든. 허나 누가 그거 소비할 뿐이지 달달 외울 일 있니? 달지 않은 도넛 집에서 만들어 먹으면 그만. 달달한 꽈배기 먹고 각자 인생 사는 것. 줄거리? 별거 없어. 시간여행? 다 뻥. 그래도 친구랑 최근 볼 영화 없냐, 엇그제 여자친구랑 봤는데 뭐 그럭저럭 괜찮았다. 싶으면 다행이지. 그 정도면 되는 거 아니겠어? 오락성, 흥행률, 줄거리, 대중예술론, 몰입감, 긴장감, 호기심 충족, 기대는 역시 실망, 영상미. 그거 다 따져도 대충 여자친구랑 즐겁게 보면 그만 아니겠냐고. 무슨 큰 감동 바랄 일 있니. 수익분기점 근처에만 가면 됐지 뭘. 값비싼 루벤스 명화처럼 두고 두고 분석할 일 있냐고.」
   「영화는 영화다?」
   「제법이네.」
   「오빠도 법사 다 됐다.」
   「법사?」
   「마법사.」
   「비꼬는 거 아니지?」
   「그러니까... 됐다. 와, 정말 쟤 점점 희미해지는데? 나처럼 불투명했는데 점점 증발해 지금.」
   「내 뭐랬니 아까. 오빠 이런 사람이야, 어? 내가 여자가 없긴 왜 없어. 응? 오빠라니까 글쎄.」





    3

    다음 날이 됐다. 오늘 에밀리는 로즈마리를 데려왔다.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앞서 과정 어제의 에밀리와 다 똑같았는데 로즈마리 도플갱어는 생명력이 대단했다. 7분을 훌쩍 건너뛰고 15분이 다 됐다. 
   「오빠. 쟨 왜 아직 살아있는 거지?」
   「왜겠니.」
   「그러게. 야 로즈마리. 너 왜 그랬어? 어? 너 그렇게 살지 말라고 내가 몇 번을 말했니.」
   「내가 뭘? 말 해? 정말 말 해? 나 말 한다? 내가 말 못해서 안 하니? 나 할 말 많아? 알아?」
   「진정해. 이년이 오빠 옆에서... 아 미안. 나 에밀리야.」
   「오빠. 그니까 나 아니 쟨 왜 아직 그대로인데? 7분까지라며!」
   「알고 싶어? 말해줘?」
   「당연하지. 알려주지 않고 뭐 해?」
   「그렇다면 대답해야지. 어쩔 수 있나. 아니, 말하지 말까? 아마도 그러는 게 좋을 거 같긴 한데.」
   「오빠. 1절만 하자. 좋은 말로 할 때. 왜야, 왜냐고. 어?」
   「왜냐하면 왜겠니. (몸짓) 쟤가 독하니까 그렇지.」
   「뭐 내가 독한 년이라고?」
   「내가 언제 너보고 독사랬어?」
   「뭐야 이거. 무슨 생선같이 생긴 놈 나와서 여자랑 연애하는 영화야 뭐야? 어? 오빤 그 관상부터 문제야. 뭔 허접한 똥개처럼 생겨가지고 뭐가 어쩌고 어째? 듣자 듣자 하니까 말이야.」
   「로즈마리. 진정해. 응?」
   「내가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
   「넌 그래서 문제야. 평소엔 간접화법 애용하다 왜 갑자기 발끈? 어째서 갑자기! 독하단 뜻이 뭐겠니. 사랑이 인생의 전부라는 마음. 이론에 지나지 않는다가 아니라는 의미 아닐까? 뭐야, 너 그러고 보니 수절녀? 정절을 지킨다는 뜻이네. 좋은 말이구만 그래. 지조 있는 숙녀. 얼마나 좋아? 뭐야! 근데 넌 왜 15분 넘어도 되고 난 고작 7분이야? 뭐 난 헤프단 얘기야 지금? 이 사람이 지금 보자 보자 하니까.」
   「진정해 에밀리. 너 갑자기 왜 그래? 너 그런 애 아니잖아. 흥분하면 쓰니, 응? 7분이면 그나마 나은 거야. 사랑의 단계에 충실하고 남자가 찬찬히 악기를 연주하기 위해 제비복 갖춰입고. 그렇게 쳄발로 연주하다가 중간에 심하도록 흥분해서 연주가 멈추면 안되니까, 어? 딱 버튼을 누르는 거지. 자동! 쟤 로즈마리2 목 뒤에 뭐라 써 있니. △는 반자동. □는 멈춤. ○는 자동. 연주자가 형편없으니까 스프린터일 수도 있는데 널 사랑하지 않으니까 그럴지도 몰라 얘. 널 정말 사랑한다? 약은 왜 없겠니. 최고로 비싼 플룻인데 겉만 애무하다 정작 연주하자마자 끝낼 일 있니. 자동, 반자동, 기타 등등 방법은 많아~! 사랑은 없어? 그러게 내가 뭐랬니.」
   「지금 그 얘기가 아니잖아? 오빠가 다 듣고 있어. 너 원래 이런 애였니? 난 아니다. 난 아니라고.」
   「늬가 그럼 난 뭐가 되니? 어? 망해도 같이 망하자. 너만 살겠다고? 와, 대박! 널 믿었던 내가 미친년이지. 어쩜 좋니 어쩜 좋아. 나 완전 망한 거 같아.」
   「오빠가 이해해. 기적을 보는데, 아니 우리가 주인공인데 우리가 지금 흥분하지 않게 생겼어?」
   「흐흐흐. 허허허. 흐흐흐흐흐흐.」
   「오빠는 아직도 가짜웃음이 안되니? 그게 그렇게 어려워? 내가 정말 가르쳐줘?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오빠. 궁금한 게 있는데. 왜 우리야? 이거... 그냥 우리만 알고 묻힐 물건이 아닌데. 오빠 이거면 요트 살 수 있지 않을까?」
   「요트? 사서 뭐 하게. 장만해 봐야 일만 커져. 얼굴 팔리면 사람 얼마나 피곤해지는지 알긴 아니? 꼭 마누라 등쌀에 못 이겨서는 아니겠으나 자동차 100대를 소유한 코메디언? 우리는 매사 부정적인 남자가 아닌 대신에, 뭘 귀찮해 하는 남자. 정력 좋은 척 허세부리진 않는데 피로감이 얼굴에 곧잘 드러남. 더불어 트레이닝복 가을용 2개로 돌려. 겨울용 2개는 구입 예정. 양복 3개로 돌리는 게 최고라니까. 물론 많으면 좋겠지. 근데 인생이 그리 한가하나. 내가 왜 너네들한테 이걸 알렸겠니. 나 좀 살려주라 그러라고, 응? 마감일에 쫓겨 나 빼빼 마른 거 안 보이니? 일단 마술계 판권만 팔아도 억만장자 따논 당상. 근데 왜 너네들 먼저 불렀겠냐고.」
   「소멸장치 제어기판에 있는 그 뭐야. 노란색, 하늘색, 선홍색... 뭔가 단절해서 걔한테 자유를 주고 오빤 놀러다니시겠다? 그러니까 바라는 게 휴가? 자유? 아니면 마라랑 사라 그년들 잔소리 듣는 역할만 오빠 2한테 대신 뒤집어씌우계? 이 오빠 선수네. 허당이 알고봤더니 극심하도록 간사하다? 보아하니 허접하다.」
   「넌 그 말이 여기서 왜 나와? 오빠 계속해.」
    계속해? 뭘 계속해. 어? 계속하긴 뭘 계속하냐고. 하여간에......!
   「일단... 우리 생각 좀 하자. 난 뭐 환상머신이 이처럼 끝장일 줄 알았니? 이만큼 기똥찰 줄 미처 상상도 못했어.」
   「그래. 일단 시간 좀 벌고 보자.」





    4

    나는 뭇여성들과 아는 여동생들한테 고운 정 미운 정 다 들어 차마 싫어할 수 없는 오빠다. 필경 거짓이 아니기를. 허나 뻥이다. 난 그분들 심복이고 싶으나 어디 나만 좋으면 그만인가! 이놈의 저질 허세라는 고질병. 세계 상남자협회에서 거들떠도 안 보는 엑스트라병. 지역 허풍토너먼트 예선탈락감. 허접한 넉살 정말 지겹다만 만성인데 어떻게 멈추나. 정녕 이 허접한 허언증 어떻게 치유한단 말인가. 그나 저나 기준을 대망으로 잡든 재산으로 설정하든 내 인생 현-성적표? 이 나이에 장난감 사달라며 떼쓰겠나 숙녀들아 나랑 놀자며 땡깡부리겠나. 설마 하니 난 정말 때로는 그런 사람인 것만 같다. 공것 바라기는 무당 서방 같다! 뭐라고? 타인 뜨끔하란 말이 아니라 공짜가 제일 비싼 미끼니까 하는 말. 어쨌든. 도축된 돼지가 벌떡 일어날 만한 신비, 아프리카 동물들 송장도 꿈틀거릴 만한 환상머신 완성에 대한 미련은 버리는 게 좋겠다. 차라리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이나 듣는 게 낫겠지. 뭐 이처럼 재미없는 인생이 더 심심해질지 예상 못했던 바는 아니기 때문에, 고로 욕망 숨길 거 뭐 있나. 그러니까 이참에 두눈 딱 감고 휴양지에 즐비한 멋진 별장이나 하나 살까? 살 때만 기분 좋으니까 그러지 말자. 그러면 도심지 고급 빌딩에나 눈독들일까? 사는 건 쉬운데 귀찮아지니까 것도 별로. 참 나, 빌딩이 뭐 동네 똥개 이름인가. 그러니 일이나 하는 수 밖에. 쇼핑도 질리고, TV보기는 지겹고, 연애도 별로. 날마다 놀아도 금새 싫증나기 마련. 결국 남는 건 일 밖에 없다. 게으른 촌닭 뒤늦게 부지런 떤다 라는 핀잔 들을까 봐. 난 서둘러 마감일보다 훨신 앞서 부산을 떨었다. 근데 성과가 없네? 어쩌라고. 아니 뭐 어쩌란 말이 아니라 말이 그렇단 건데. 이런 말 같지도 않은 너스레가 통 멈추지 않는 건 대체 왜일까, 아니 정말 왜! 어째서? 인생의 기쁨을 만끽하려다 절망에 흠뻑 젖어버렸기 때문일까? 뭐 고추가 커야만 맵다더냐? 탐스런 과일 더럽게 떫을 수도 있다. 뭐 아름다운 사과보다 벌레 먹은 사과? 아니 지금 인생을 논하는데 그 얘기가 왜 나와. 참 내 (절레절레)! 다시 한번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게 그게 그러니까 뭐였더라? 어디까지 했지? 그러니까 뭔 얘기 중이었냐고. 좌우지간 다름다운 사랑과 새로운 인생에 대한 열망이고 뭐고 간에. 에 아 나 이거 증말 그게 참 나. 잔말 말고 지금은 낮은 포복으로 때를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나는 특단의 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하는데. 그게 어디 쉽나? 대체 이 환상머신으로 뭘 할 수 있을까? 1주일 내내 고민 중인데 뚜렷한 아이디어, 뾰족한 묘수, 기발한 안건은 도통 떠오르지 않았다. 하여 좀 더 골똘히 생각해볼 수 밖에 없었다. 





    5

    요점부터 말하자면 NB2가 말썽을 일으켰다. 입이 무겁기로 소문난 에밀리와 비밀유지로 어디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로즈마리. 누구한테 쓱 힌트를 흘리지 않았겠으나. 지금 생각해보니 내가 괜한 짓을 한 걸까? 그녀들 입이 근질근질 난리도 아닐 텐데... 하지만. 내가 그동안 지들 커피 사준 것만 해도 얼만데. 어디 커피만? 그래 봐야 내가 뭐 아쉽나? 난 차 욕심 없다. 그렇지만 아예 없진 않다. 난 돈 싫어하진 않거든. 우리한테 내숭이 뭔 말인가. 품위유지비 끝없으란 말이 아니라 적어도 간당간당한 통장 잔고 그거 어떻게 안되나 그 말이다. 그래서 난 얼굴 팔리고 부자 아닐 바에야, 얼굴 안 팔리고 좀 가난한 게 마음에 들었다. 그에 대해서 썩 불만족은 아니다는 거다. 따라서 난 재산은 아는 여동생들한테 탈탈 털렸지 잔재주야 마라&사라 일당한테 기 쪽쪽 빨렸지. 정력 재충전이 몹시 시급한 형편이었다. 그래서 나는 하는 수 없이 환상머신에 스스로 들어갔다.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를 집어넣었다. 물건. 잡것? 들어가보니 뭐 들어갈 만 했다. 나쁘지 않네. 괜찮아. 아늑하다고. 생각보다 꽤 포근하데? 쿠션은... 푹신푹신 슬리퍼 1 쫀득쫀득 슬리퍼 2만 사면 딱. 그렇지만 다시 말하지만 NB2가 말썽을 일으켰다.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사라한테 전화가 걸려왔다.
   「야, 너 뭐 하는 놈이야? 어서 와서 데려가.」
   「데려가?」
   「아 NB2인가 뭔가 얼른 데려가라고. 지금 우리 직원들한테 껄떡거리고 난리났어. 너 때문에 정말 미치겠다. 응?」
    난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제발 그 찝쩍만은 녀석이 참았어야 하는데....!
    마라는 아예 한술 더 떠서 소셜 네트워크에 도배를 했다. 지가 직접 또 아는 애들 다 시켜서. NB2를 누가 보냈는지 모르겠는데 걔 군침으로 온 동네방네가 샤워중이라고. 개침 난리도 아니라고. 그 눈독 마치 눈에서 레이저가 나오는 것 같다나 뭐래나. 아니 여자에 환장해도 분수가 있지 어쩌고저쩌고. 그럼 설마 NB2가 진짜로 흑심을? 아마 그건 NB2의 큰 그림이기를 바랄 수 밖에. 뭔가 배후가 있던가, 아 그 배후는 나지. 어쨌든 뭔가 오류가 발생한 거네. (절레절레) 좌우지간 걔는 걔고 나는 나고. 걘 NB2 난 NB. 아, NB1! NB2를 밖으로 막 굴린다고 어찌 저렴히 말하나. 그 속된 말 어떻게 내 입으로 실토하냐고. 근데 사실만 놓고보자면 일단 NB2가 걸어다니는 터미네이터나 된다는 둥 자랑스럽게 활약중이니까 NB는 우선 뒤에 1을 붙일 수 밖에 없는 실정. 뭐 그건 그거고. 너는 너 나는 나. 지금 남 걱정할 때야? 너나 잘해~ 라는 환청 모른 척할 수야 있나. 좋게 내 살 궁리나 하자. 허허허. 흐흠. 
    사교계에 출마할까 플레이보이계에 입당할까, 구구절절 말 같지도 않은 허풍. 그걸 알면 숙녀들께서 퍽이나 반가워하시겠네. 그럼 미친 척 나 혼자 OB의 허당계 복귀를 자축할까? 놀고 있네. 웃겨야 말이지, 말도 안된다고. 웃기고 자빠졌는데 하나도 안 웃겨, 어? 거 참 더럽게 재미없단 말이야. 완숙한 노련미 덕 톡톡히 보긴 뭘 톡톡히 봐. 또 아무 여자한테나 첫눈에 반하고 숙녀들의 교양미를 열렬히 찬양하시게? 미친년처럼? 남달리 뛰어난 허영심 우린 취미 없다. 하늘을 우러러 꺼리낄 게 뭐 그렇게나 많나, 그래서 공상을 끊어야 하는데. 그게 쉬우면 말이나 안 하지. 그러던 어느 날 척하면 척, 낌새도 없이 그 어떤 부추김도 없이 새로운 껀수가 나타났다? 바로, 내게? 그럴 리가 있나. 있어도 뻥. 다 뻥. 몽땅 뻥. 개 뻥. 따라서 이건 특훈이 아니라 특명을 시행할 히든카드를 꺼내야 할 적기인 셈인데. 있어야 말이지! 누가 아니래. 내 말이 그거라니까. (절레절레) 권태라는 악재 정말 질기네. 심심함 그 녀석은 증말 끈질기게 달라붙어서 도통 떨어지지를 않는단 말야. 그렇다고 끈덕지게 구애하는 아는 여동생과 사겨 말어? 일단 그녀들에 대해 말하자면 말이다, 그녀로 말할 것 같으면... 불여우의 불여우일 텐데? 말 많고 나서기 좋아하고, 호기심 1등에 궁금하면 절대 못 참는 성격. 오지랖 대마녀? (절레절레) 근데 만약에 그녀가 돈이 돈이 어마어마하게 많으면 어떡하지! 팔자 고치지 못할 이유가 뭐가 있어? 운이 좋은 자에게는 수탉이 알을 낳아준다. 농담이고. 좋게 냉수 마시고 속이나 차리자. 뭐하시오 일하시지 않고, 칼럼이든 연재장편이든 끝났단 말이오. 뻥이란 말 꼭 덧붙이기도 힘빠진다 (절레절레). 뒷수습하는 사람 따로 있고 뻥치는 위인 따로 있고. (절레절레)





    6

    어느 날 전화가 걸려왔다. 모스맨 주식회사였다. 용건은 뭐라더라? nb2를 데려가라! 무슨 사정인지 물어볼려고 했는데 지 할 말만 하고 전화는 뚝 끊겼다. 날 뭐 지 영감탱이로 아는 건가? 난 그런 여편네 둔 적 없는데. 뭐 그런 할망구가 다 있어? 이놈의 마누라... 흥분을 가라앉히자. 대체 왜 nb2는 거기까지 갔지? 혹시 내가 보냈을까? 그건 중요하지 않다. 그럼 뭣이 중헌디? 일단 사태를 수습하는 거. 그래서 난 당장 모스맨 주식회사로 갔다. 
    장면 전환.
    장면 전환.
    장면 전환.
    모스맨 주식회사는 레너드와 제라드 2인 체제로 운영되는 벤처기업이다. 마치 테슬라의 초기 모습처럼. 근데 녀석들은 친구를 오랫만에 만났으면 반가운 척이라도 해야 할 거 아닌가. 그게 아니라 최근 일을 너무 열심히 해서 상태가 안 좋아진 건가? 뭐 그렇다고 해두지. 그럴 수 있으니까. 그렇다고 내가 뭐 성격 더러운 마초로 변신할 수 있는 거도 아니고. 그럴 마음도 없고. 그래서도 안될 테고 말이다. 그렇게 난 걔네 팀장실에서 레너드와 제라드 그 둘과 소파에 앉았다. Handel / IL Delirio Amoroso 말없는 녀석들 분위기 겁나 무겁게 잡네. 뭐 지들만 폼잡을 줄 안다 그 얘기야? 난 뭐 고급수트 입을 줄 모르냔 말이다. 좌우지간 내게 긴히 할 얘기가 있는 거 같은데. 그게 꽤나 심각한 사안으로 짐작되는데... 뭐지? 뭘까? 대체 뭐냐고. 일부러 불길한 예감을 조장하는 건가? 아님 엇그제 뭐 뜸들이기 대회라도 나갔다 온 거 자랑하려고 그러나? 뭐냐고 대체 뭐냔 말이다. 이 자식들이 언제부터 이리 진지했다고, 내가 아는 녀석들 비밀만 해도 대체 몇 갠데. 
   「일은 잘 되니? 잘나간다면서. 비상장 주식거래 웹사이트에서 너네 회사 구경할 수 없지? 나도 알아. 왜 내게 말 안 했냐. 초기에 말했으면 내가 투자 안 했을 거 같아? 날 뭘로 보고!」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야.」
    그러면서 제라드는 리모콘 버튼을 눌렀다. 그 때문에 팀장실 커튼이 열렸다. 그래서 전면 유리창은 저쪽 큼직한 나머지 전체 사무실을 훤히 볼 수 있었다. 거기까진 괜찮았다. 낯뜨거운 장면은 그때부터였으니까. 가만 보니 바깥에서는 내가 있었다. 아, nb2가! 근데 그게 nb2는 웬 마네킹을 사정없이 핥고 물고 빨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에 많이 말려도 봤고 설득도 했을 테고 뭐든 하긴 했다 그랬다. 근데 말릴 수 없었다네? 
   「너 쟤 어떻게 만들었니?」
   「그러니까. 우린 처음에 넌 줄 알고 깜빡 속았잖아. 근데 말이 안 통하대. 느낌 세해서 뒤통수쪽을 봤지. 아니나 다를까 △□○ 표식이 있더라고. 어차피 우리 회사 개발하는 주종목이 그와 관련된 거 아니겠냐. 너도 알다시피 우리는 식겁했어. 설마 너가 먼저 뭔가를 완성했는가 하고 말이야. 근데 저 녀석 상태가 몹시 안 좋더라고. 보시다시피 말이야. 설마... 저게 원래 너니? 너 평소에 저러고 다니냐? 진짜?」
   「뭔 소리야?」
   「뭔 소리야? 저거 보고도? 쟤 좀 말려라. 우린 못 말리니까. 저 봐 봐. 어? 저 보라고. 또 부위가 바꼈어. 이젠 하다 하다... 말 말자.」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내 이럴 줄 알았다니까 글쎄. 내가 그래서 옛날에 내 여동생 얘한테 소개 안 시켜줬잖아. 어디 내 친-여동생 뿐이겠어? 너네도 알다시피 내가 한때 잘나갔잖니. 나 아는 여동생들이 좀 많았니? 지금이라고 그 인기 어디 가겠냐마는. 내가 왜 핸드폰 자주 바꾸는 줄 아니? 에잇. 설명하기 귀찮다.」
   「이것 봐라. 이젠 하체다. 어? 이젠 빨다 빨다 하체로 내려갔어. 살다 살다 이처럼 민망한 장면을 마주할 줄이야. 예전엔 미처 몰랐다. 응?」
   「나 쟤 모르는 사람이야. 나 쟤 몰라.」
   「야 한번 생각을 해봐. 쟤가 만약에 어디 딴 데 가서 사고를 쳤어 봐. 그럼 넌 어디 가서 얼굴 들고 못 다녀. 알아?」
   「그건 그런데. 아니 대체 얘 저걸 대체 어떻게 만든 거지?」
   「그러게. 신기한데... 얘가 우리한테 그 비법을 알려줄까?」
   「쟤 봐 봐. 귀 만진다. 귓볼이 부드럽나 봐. 완전 개 같다.」
   「너 지금 나 보고 개 같다 그랬냐?」
   「너 말고 쟤. 어? 늬 말고 늬 언니. 아니. 그게 아니라.」
   「너 아직도 삼류 에로영화 제목 기억하고 다니냐?」
   「너도?」
   「뭐가 너도야? 난 아니다. 내가 너네랑 말하다 보니 기분이 이상하다만. 자꾸 말리는 거 보니 너네 아직도 이러고 노냐? 어?」
   「귀 풍년에 입 가난이다. 특급 정보 위주로 수집한 황금귀, 어설픈 가짜만 주서들은 팔랑귀. 전자와 후자는 다른단 말인데. 최근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내가 이런 말까진 안 하려고 했는데. 허지만 말이야 우리 사이가 어디 보통 사이니? 그래서 기왕 말 나온 김에 특급 정보 하나 슬쩍 흘릴까 말까. 에잇. 됐다. 아무튼 너 조심해. 어? 그러는 게 좋을 거야. 최근 애들 사이에 늬 얘기 심심치 않게 나와. 왜일까? 그건 별들한테 물어보고. 그리고. 우리 직원이 어디서 개뼉따귀 하나 구해서 쟤한테 넘겨주기 전에. 어서 쟤 데리고 가라. 우리 일해야 하니까. 그리고 너 모임에도 좀 나오고 그래. 애들이 최고의 병풍 왜 요즘 잠잠하냐고 난리도 아니야. 신부들러리가 없으니 서운한 거겠지. 너 같으면 안 섭섭하겠냐? 쩜팔이가 자유를 만났는데?!」
    무슨 대화 같지도 않은 대화는 뭐 그렇다 치고. 
    난 그렇게 nb2를 데리고 서둘러 그곳을 빠져나왔다. 
    내 집으로 돌아갔다. 다시 nb를 데리고 내 사무실로 갔다.
    그런 다음 곧장 녀석 뒤통수쪽 조작부를 열어 하늘색-연분홍색-연노랑색-선홍색...딱 딱 작업을 마쳤다. 그렇게 nb2는 얼마 후 증발했다. 





    7

    △□○ 문양 패션이 유행
    ↓
    △□○ 문양 스티커도 대유행
    ↓
    난 왠지 환상머신이 보잘 것 없이 느껴짐. 고로 롭에게 의뢰해서 괜찮은 별장을 소개받고 떠남. 
    ↓
    휴양지 도착. 1일, 2일, 3일... 난 이런 아름다운 환경이라면 글이 저절로 써질 줄 알았다. 아름다운? 공기 좋고. 물 맑고. 귀찮은 일 없고. 소란스러운 잔치 구경하고자 하면 찾아보니 있고. 떠들썩한 시내? 멀지 않은 근처. 풍광을 봐 봐 도시생활과 뭐가 달라도 다름. 근데 어딘가 모르게 나 행복해 라는 말이 자동적으로 나오지는 않고. 꼴에 수캐라고  다리 들고 오줌 눈다, 라는 말 듣든 말든 늑대는 굶주리든가 배부르든가 둘 중 하나. 그렇다고 나 아는 사람들 아예 없다고 추접스럽게 놀 수도 없고. 방탕은 내 갈길 아니며. 뭐 하나 불만 없는 쾌적한 분위기인데 어째서 아찔한 착상은 떠오르지 않는 거지? 그러게 말이야. 유쾌한 건수 굳이 없어도 싱글벙글. 일단 기분부터 상쾌한데 뭔지 모를 이 허전한 느낌. 그게 대체 뭐냐고. 그렇다고 팔자 좋게 넉살 띄우고 응석부리면 사람들이 뭐라겠나. 쟤 뭐래?! 그러니까 이거 시방 무슨 상황이여! 허나 내가 누군가, 허당 인생이 뭐 괜한 통밥인가. 따라서 이렇게 생각하면 된다. 아니면 말고? ~가 아니라. 일하기? 일도 아님. 숙녀 꼬시기?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지. 놀기? 문제없음. 일하기? 마른오징어도 탈수기로 짜면 짤수록 나온다. 근데 뭐가? 아 지금 그 얘기가 아니지. 설마 완전히 미친 건 아니겠지? 그치? 그러든 아니든 지금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나 하고 있어 짜증나게. 너 이러는 거 재밌냐? 뭐야, 또 환청! 이제 정말 도시로 돌아갈 때가 된 건가, 온지 얼마나 됐다고. 
    잔머리 굴려봐야 고양이 손바닥. 살쾡이 손바닥 들여다보듯 늑대 심정 훤히 보일까? 그러든가 말든가. 꽃도 시들면 오던 나비도 아니 온다. 자, 일단 꽃이 많은 곳으로 가자. 그래서 난 결국 낌새 들통났기 때문에 도시로 돌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 





    8

    내 사무실에 갔더니 NB2가 날 반김. 썩소는 잠깐이고 정색. 자기가 대타역할 할 테니 넌 놀러나 다녀라 라면서 날 타이름. 이게, 대체, 뭐지? 정말 뭐야 이거! 기러기가 가면 제비가 온다는데. 그럼 난 이제 유령인간인가?
    (유령인간으로 살면 어떤 좋은 점이 있을까, 과연 어떻게 될까...라는 생각 때문에 심신분리. 곧장 유체이탈. 때문에 나는 환상머신이 혼자 저절로 작동해서 또 NB2를 하나 더 만들어냈는지~까지는 따져볼 겨를이 없었다. 내가 nb2를 어떻게 처리했는지도 가물가물. 유령작가면 자유를 얻을 테고, 자유를 얻으면 놀러다닐 수 있고, 놀러다니다 보면...... 흐흐흐...)
    아무튼 쟨 진짜 새로운 놈이기 때문에 저번처럼 △□○ 대충 눌러서 말릴 수도 없고. 쟤 잠잘 때 어떻게 어떻게 해서 증발시키는 건 더더욱 어려울 테고. 어쩌지? 어떡하지? 이걸 정말 어쩌면 좋나. 허나 이렇게 생각해볼 여지도 있다. 이제 저 고비를 넘으면 진짜로 신나는 인생을 살 수 있는 걸까? (딱) 길한 일에는 훼방이 따르기 마련. 그럼 난 그냥 계속 놀면 된다. 돈은 쟤가 다 버는데 내가 뭔 걱정. 난 한량이고 쟨 나의 ATM! 이보단 더 기똥찬 일이 어디 있단 말인가. 허나 그건 멀리 보지 못한 거고. 장거리로 길어졌을 때. 말하자면 이렇다. 꼬리가 너무 크면 흔들지를 못한다. 보아하니 쟤가 내 모든 걸 꿰차버리면, 난 낙동갈 오리알 신세가 될 게 뻔한데. 그땐 어떡하지? 그럼 쟤가 날 가만 놔둘까? 영화처럼 누군갈 보내면 어떡하지? 이미 그전에 현란한 혀놀림으로 날 세뇌시켜버리면. 나 같은 팔랑귀가 안 넘어가고 버티겠나. 설득 되고도 남겠지. 그럼 내 입장에서는? 꼬리표를 붙여라. 떠나보내 마음을 접든 아님 일단 후퇴. 멀리 볼 거 없다. 꽃은 반만 핀 것이 좋고 복은 반복이 좋다. 청춘은 지금! 
    Vivaldi / L'Olimpiade, RV 725, Act II: Siam navi all'onde algenti 
    그래서 난 자동차 음악 소리를 높이며 멋지게 엇그제 묵었던 휴양지로 되돌아갔다. 





    9

    쉬어가는 문단.
    그런 의미에서 녀석 의상을 잠깐만 설명하지 않고 넘어가기 섭하다. 일단 그가 입은 티셔츠에 씌여진 글귀, 뭐래더라? 허나, 그건 디자인 컨셉일 뿐이고. 상상은 읽는 사람 마음 아니겠나. 자, 보자. 뭐? The Intelligent Choice? 그럼 디자인 원문 이녀셜을 거꾸로 하면... (조용조용히) "그만 하자"라는 말 나오기도 전에. 시작도 말자. 그게 좋겠다. 괜히 했단 생각 드는 거 금방이다. 후회 막심할 게 뻔하니까. (절레절레) 아니 그러니까 말이야 그러게 넌 내가, 쉿! 
    아니 잠깐만. 뭐, 뭣이 어째? 망했다. 미소 짓기도 전부터 썩어버렸다. 누가 시켰나? 그랬네. 휘둘렸음. 감기고 말았다. 난 돌돌 말린 거라고. 쥐락펴락 하필 그 주인공이 다름 아닌 나. 들려졌다 펴졌다 쥐락펴락. 밀고 당기기 지친다 지쳐. 그래. 난 조종당한 거다. 애초에 그처럼 프로그래밍되었을 것이다. 작업당한 거라고. 고급스러운 해킹이라고 해둘까? 재미없다. 누가 해킹 못해서 안 하나. 딱 봐도 마리오네트구만. 이를 테면 허수아비랄지 속어로 바지. 대역. 대타. 부려먹고 또 부려먹고. 스턴트맨으로 힘든 일만 시키고 쇼맨쉽은 안 맡겨. 뭐? 현란한 립서비스 귀동냥으로 그간 수집한 노고가 어딘데. 채록한 명대사는? 발굴한 사연은 또 어떻고. 그동안 빼앗아버린 여심이 과연 얼만데, 어? 캬~ 어? 왜 더 여자의 마음을 훔치지 않느냐는 애원, 지겹다. 짜증난다. 질린단 말이다. 빅데이터 그 공든 탑을 도대체 누가 쌓았냐고. 말길 못 알아먹는 푼수역마저 떠넘겨. 쾌조의 타율 딱 보장될 때만 잔말 말고 따라와. 영악한 것. 타석에 들여보내주지도 않으면서 할 말 떨어졌녜. 말할 기회조차 일절 허락치 않으면서 뭐 저분은 왜 말이 없냐고? 웃기다 증말. 잘났어 정말. 아이고야 재밌네. 심심할 수가 없어 그냥. 허허. 진짜로? 뻥이다. 개 뻥. 심장이 콩닥콩닥? 영혼이 벌렁벌렁하구만 그래. 우리가 뭐 개침 질질 흘리는 똥개도 아니고 말이야. 대낮에 개꿈을 왜 꿔? 그런 개 풀 뜯어먹는 소리 지겹지도 않아. 징글징글 질릴 대로 질렸으니까. 밑도 끝도 없이 뭐 개만 잡고 늘어지는 거야 뭐야. 무슨 대주자가 개뼉따귀도 아니고 말이지. 어? 하트 뿅뿅 다 뻥. 사랑은 없어. 농담이고. 끝으로 그럼 나도 한마디 해보자. 어? 나도 거 말 좀 합시다. 
   「낭자 아름답소. 그 고운 얼굴 고개를 드시오. 마스카라 거 비싼 거 쓰셨구만. 일단 터놓고 얘기 좀 합시다 그려. 뭐든지 기똥찬 상담 해드릴께. 그대의 봉이 되어드린단 말이오. 난 봉이야. 아마도 왜 이제야 왰냐고 나중 애달파 하실 게 뻔한단 말이오. 네? 그러니까 어떻소, 나와 아름다운 사랑. 하면 좋을 것 같소만.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시오, 그대와 내가 과연 어울리는 천하의 한쌍인지 아닌지를. 그렇다고 시킨다고 정말로 물어보면 곤란하오. 왜냐, 남들은 타인의 삶에 그다지 큰 관심 없으니까 말이오. 이 거친 세상 산전수전 다 겪은 어른들. 괜히 능글능글 능구렁이가 다 됐겠소. 남 안 되는 것을 저 잘 되는 것보다 좋아하는 허당, 심심치 않게 만나봤지 않겠소. 내 친구 가운데도 남 잘되는 꼴 못 보는 허당 몇몇 있소. 허허. 그대와 스쳐지나간 인연, 상심이 태반이었을 텐데. 난 다르오. 전 달라요? 우리는 진짜로 다른단 말이오. 입만 산 그런 허풍이 아니니 허트루 듣지 마시길 바라오. 네? 어떻소 이 오빠 꽤 끌리는데? 방금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죠? 마음 다 읽힌다니까 그러시네. 나 이 오빠 사귈래 만약 나중 딴년한테 뺐기면 억울해서 그걸 어째, 다 들린다오 낭자. 허허허허허허. 그렇다고 난 반칙 싫어하오. 내가 왜 백댄서들 데리고 다니지 않는데. 내가 뭐 은근 허당 못되서, 그런 병풍들 딱 옆에다 붙여놓고 일부러 대비효과를 노릴 줄 아오? 사람 잘못 봤소. 우린 정면돌파 좋아하는 기분파란 말이오. 뭐 항상 그런 건 아니오만 말이오. 달리 말하자면 팔색조로 볼 수도 있소. 정말로 그런지 아니지 궁금하지 않소 낭자? 구경은 하셨나 몰라 놀라운 파랑새를 말이오. 허허허허허허허. 근데 내가 어디까지 얘기했지? 거 옆에서 누군가 딱 딱 거들으면 좋긴 좋을 텐데. 뭐 없으면 없는 대로. 우리가 뭐 언제부터 비서진 거느렸다고. 아무튼 내 아까 뭐랬소. 자, 그러지 말고 고개를 드시오 낭자. 그렇다고 진짜로 들란 말일까요? 늬 말고 늬 언니? 농담이오. 기분 나빴으면 사과드리오. 어떻게 무릎이라도 꿇을 까요? 뭐 다짜고짜 우선 키스부터 하자고요? 거 못 할 거도 없소만 너무 진도가 빠른 것 같지 않소? 전성기 때야 뭐 초면에 만나자마자 신혼여행 가는 거 일도 아니었소만. 닥치고 손잡기 건너뛰는 거 흔하디흔하다 내 입으로 차마 말 못하지만. 이제 나이도 먹고, 어? 우리 나이쯤 되면, 아니 그게 아니라. 다 체면 차리고 남 생각 해야 하지 않겠소. 아니 그렇소? 근데 대체 아까부터 몇 번을 말하오, 네? 자, 그러지 말고 어서 죄인은 고개를 들라. 아니, 아름다운 그대 고개를 들지 않고 뭐 하시오 대체. 뭔 죄졌소? 예? 아니 숙이시오. 아직 때가 아니니까. 내 급한 약속이 있단 걸 깜빡했단 말이오. 아무튼 나중 꼭 다시 들리리다. 난 한다면 한다오. 우리는 한 입으로 두말 하지 않는단 말이오. 아닌 것 같소? 좋은 날 있으니 기다려보오. 오빠 오빠 보채지 않아도 우리가 다 사랑해드린 다니까 그러시네. 좌우지간 밀고 당기기는 그때 가서 합시다. 그때까지 이 촌닭 얼굴 까먹으면 안된다오. 절대 안됨. 아시겠소? 잊을 게 따로 있지. 허험. 흐흠. 허허허. 그러니까 말이오, 어디 오늘만 날이오? 희망찬 미래가 다가오면 인공태양마저 뜰 거 아니겠소. 그러니까 길고 짧은 건 대 봐야 알지 않겠소. 이 양반이 시방 여자 마음 들었다 놨다 지금 장난하냐구요? 그게 아니오. 그게 아니란 말이오. 왜 이 내 마음 몰라주오 낭자. 우리는 순수가 아니면 상대를 하질 않소. 우리가 이 세상에서 최고로 좋아하는 건 다름 아니라 순박한 그대 마음. 애틋한 사랑이면 사랑, 다정한 낭만이면 낭만, 부드러운 멜로드라마면 멜로드라마. 뭐 격정적인 에로? 뭐가 문제요. 아무것도 문제될 건 없소. 아주 그냥 정력, 말도 마시라니까요 글쎄. 천국에 보내드리리다, 물론 보냈다 데려왔다 보냈다 데려왔다. 들었다 놨다 그게 우리 특기이지 않소. 우리는, 어? 취미가 쥐락펴락이오. 내 정말 최고급 브레지어이자 신기한 맞춤복 같은 남자라는 걸 정녕 못 알아보시겠소? 그러지 말고 일단 이리로 와보시오, 낭자. 시간이 없소. 아 글쎄 여심을 측정해야 그대를 만족시켜 드릴 것 아니겠소. 그럼 오빠가 다 호사에 대한 탐구심도 충족시켜드려, 소망과 희망이야 말할 것도 없고. 말만 하시오 말만. 뭐든지. 허허허. 오늘처럼 좋은 날 우리 사랑합시다. 네? 청춘은 한번 가면 돌아오지 않는 것. 이미 당신께서도 잘 아시겠지만 내 별명이 뭐요, 타임머신! 왜? 여자 나이 절만 줄여드릴 수 있거든. 누가? 내가 이 오빠가 말이오. 허허허. 장안에 소문 자자하다니까 글쎄. 벌써 추문의 주인공 되고 싶어하는 사람들 줄 쫙 섰어 이 양반아. 허허허. 희대의 풍운아 그놈이 대체 누구냐고 지금 난리란 말이오. 허허허. 그걸 꼭 굳이 내 입으로 말해야 하나? 못하지. 아니 어떻게? 안 해. 왜 해? 뭐 하러. 좋으면서 내숭? 싫어. 생각 없소. 허허허. 어쨌든 말도 마 이 양반아. 어? 우리는 걸어다니는 우머나이저. 이런 터미네이터 아무나 만나는 거 아니라오. 조상 대대로 7대의 공덕을 쌓아야만 겨우겨우 될 동 말 동. 네? 내 그대를 알현하기 위해 전생에 그 얼마나 모진 운명을 감수했는데. 난 7대는 뭐야 8대의 할아버지 시절까지 다 기억나는데?! 그럼, 우리 나중 행운의 2세는 대체 불세출의 점쟁이가 몇 명을 점지해 줄 것 같소? 지 점도 못 치는 점쟁이가 뭘 알겠소. 지가 뭘 안다고. 돌팔이 같으니라고. 순 사기꾼들. 걔네들 믿지 마오. 이 오빠가 있지 않소. 허허허. 이게 다 사람 인연이라는 게 이처럼 신기하단 말이오. 흐흠. 이래도 내 순애보가 못 미더우오? 다른 사람한테 다 물어보시오. 이 내 순정에 대해서. 어쩌면 우리 사랑은 지금으로부터 5000년 전에 이미 예언되었을지 모르는 것 아니겠소. 뭐 까짓 껏 좀 더 써서 5만년 합시다. 아니면 다른 별에서 온 사랑도 나쁘진 않겠죠. 아 나 이거 원 참 나 거 증말 또 까먹네. 계속 잊어먹네. 그게 다 당신 물오른 미모 때문 아닐까요? 난 어쩜 그대를 보자마자 홀딱 반한 것 같소. 그러니까 어서 냉큼 고개를 드시오 낭자...... 아니오 다시 숙이시오. 올렸다 내렸다 들었다 숙였다, 내가 뭐 조명기구냐고요? 그럼 난 뭐 선풍기요? 내 말은 그게 그러니까 당신께서 가전제품은 아니나, 내가 과연 진공청소기처럼 여자 마음 홀려버릴지 아닐지 궁금하지 않단 말이오 정녕? 여심 녹여는 드릴께, 네? 돌아버린다니까 글쎄. 끝내준다고요. 허나 바겐세일은 없소. 허허허. 그러니까 말하자면 숙녀 감성부터 인간적으로 여인의 황홀감까지 뭐든지 주문만 하시오. 손만 까딱 하기도 전에 우리는 여자의 마음보다 한 30수 앞서갈 수 있으니 말이오. 허허허허허허허. 보아하니 아직도 고개를 들까 말까 망설이시는 거 같은데. 그러지 말고 자, 고개를 듭시다. 아니, 다시 숙이시는 게 좋겠소. 네. 그게 낫겠소. 컨셉 갑자기 바꾸면 무척 당황스럽단 말이오. 안 그래도 어째 서둘러 신비주의 포기하기엔 그동안 수절한 게 얼만데. 뭐 아니라구요? 또 또 또 이미지 트레이닝. 그야 어쨌든 그처럼 고혹적인 얼굴 왜 감추냔 말이오. 고개를 드시오. 아니, 다시 숙이는 게 좋겠소. 내 깜빡 했소. 미안하오. 나 원래 그런 사람 아니오. 저 그런 여자 아니에요? 어디 여자들만 그런 쌍팔년도 대사 읊으란 법 있소? 없소. 있을 턱이 없단 말이오. 아무튼 어설픈 쥐락펴락 궤변 그거 괘념치 마시오. 우린 아직 분위기를 띄워야 한단 말이오. 때가 아닐 수도 있소. 잠깐만. 어허 이거 이거 또 전화온다. 아는 여동생들이 오빠 제발 꼭 한번만 만나달라고 난리도 아니어서 전화번호 바꾼지가 얼만데. 그새를 못 참고 또 또 또. 일단 나 먼저 자리를 뜨오. 나중 우리 못 다한 얘긴 그때 다시 합시다. 아, 까먹을 뻔 했는데 이거 하나만 더. 앞서 누누이 강조했든 우리 인연 지고지순하듯. 그런 의미에서 내 그대에게 일단 등번호 7번을 부여하오. 부디 기억하시오. 꼭 잊지 마시오. 물론 절대 비밀로 해야 하오. 나중 날 만나면 내게 긴히 귀뜸해주길 바라오. 오빠 전 빽넘버 7번이에요. 라고 말이오.」
   「저 인간이...」





    10

    휴양지 생활 1주일. 일 할 만큼 했다. 산책 지겹도록 반복했음. 여자? 꼬셨지 왜 못 꼬셨겠나. 농담이고. Beethoven / 58분에 끊는 9번 교향곡, 괜찮은 음악도 꽤나 들었다. 게다가 바텐더와 우정을 나눴다. 정말인지 모르겠다만 자기 여동생을 나중 소개시켜준다고 했다. 난 마다하지 않았고. 또 레스토랑 사장은 오디오광이었다. 그분 초대로 집에 방문해서 진공관&트랜지스터 쌍립 오디오도 구경했다. 더 할 게 많지 않았다. 그래도 귀신이 씌였던 것일까? 마른오징어를 쥐어짜기도 전에 지 혼자 알아서 일은 저절로 됐다. 물론 도입부와 중간 휴지기, 막간극, 간주곡, 폐막무대 등 같은 단문만 써졌고 줄거리랄지 꽤 괜찮은 소제는 떠오르지 않았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었다. 
   <식탐을 만족시킬까 모험심의 고삐를 잡아당길까. 아무래도 왕성한 정력을 달래는 게 낫지 않을까? 웃기고 있네. 하긴 숙녀의 낭만을 추측하기 잘하면 통장잔고가 늘어나나? 여심을 쥐락펴락 숙녀 마음 들었다 놨다, 그래서 좋을 때도 있다만 그래 봤자 주전 아니면 희망 없다. 상남자들 질투심 부채질해서 좋을 일 없단 말이다. 하여간에 난 최근 뒷담화하기에 재주 없고 험담 듣기에 기 빨리다 못해 퍼졌는데. 벌써 그러기 전에 아는 동생들 촉 좋으니까 진즉 떠나버렸는데. 이제 남자들이랑 놀려니 또 걔네들 전화를 안 받음. 눈치 챘나? 너 혼자 놀라 그 말이군 그래. 누가 혼자 못 놀 줄 알아? 그래 봐야, 뻔하디 뻔한 공포영화 예고편 같은 남자로 전락한 기분. 언제나 분위기 꽝. 뭘 해도 재미없음. 일단 난 알고 보든 모르고 보든 노잼. 딱 노잼! 한다면 한다? 뭘 해, 하긴 뭘 하냐고 내 참.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걸어다니는 우머나이저 일도 아니다. 미지의 신비감을 선사하는 환상머신 이미 완성된 것이나 마찬가지. 근데 또 속나? 당연히 뻥이지. 허나 이번엔 진짜다. 언젠가 그랬다. 허당이 일낼 거라고. 일내도 크게 낼 거라고. 우리는 간지럽게 뻔트 선호하지 않는다. 그럼 떡밥뿌리기는 뭐냐고? 지금 그 얘기가 아니자나. 진짜라니까 이번엔. 정말로. 그니까 그게 뭐냐, 그건 일단 더 뜸을 들여야 한다. 긴장감을 잔뜩, 빠짝 고조시켜야 하니까. 좌우지간 이 뭔지 모를 이상한 심리의 정체는 아마도 그거 아닐까? 비속어 옐로카드 딱 한번 눈감아준 셈치고. 뭐랄까 난 정말 뻥카를 남발해서 미칠듯이 행복하다. 근데 왜 뭘 해도 재미없어 하냐고. 그러게 말이야. 누가 아니래? 그러니까 이게 다 어쩌면 사랑의 부재 때문 아닐까 싶은데. 대체 어째서 여자들은 다정한 허당을 몰라주냐 그 말이다. 말이 그렇단 거고. 그나저나 기분도 꿀꿀한데 과자나 원없이 퍼먹어버릴까. 그래 봤자 입천장 다 까진다. 그럼 최고급 만찬을 조져? 조, 뭐? 과소비 즐길 수는 있는데 어차피 기쁨은 잠깐. 지나고 나면 또 다시 심심해지기 마련. 개는 개뼉따구 핥아먹을 때나 즐겁지 단물 빠지면 금새 따분해하시는 인격. 우리가 사치 못 누리는 게 아니란 말이다. 근데 어쩌다 난 또 이처럼 다변을 자랑하고 있지? 왜 따분한 공상 통 멈추질 못 하냐고. 하긴 그게 뭐 내 맘대로 되나.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모험에 나서볼까? 맞다. 껀수가 없다. 그럼 햄버거로 식사 대충 때우고 잡지사에나 놀러가야겠다. 근데 어차피 가 봐야 환영받지 못할 텐데. 그럼 이제 뭘 하지? 그러게 말이다. 차라리.. 아니다. 됐다. 시끄럽다. 조용히 해, 라고 닦달할 상대도 없다. 떽떽거릴 마누라가 있나 내숭떠는 애인이 있나. 시간낭비 말고 말을 아끼자. 그게 좋겠다. 정력 과소비할 필요 없이 쓸 일도 뭣도 없다는 게 뭐가 나쁘나. 안 그런가? 안 그렇...다? 그나저나 누군 뭐 이와 같은 공상병 때문에 골머리를 앓을 줄 알았나. 예전엔 미처 몰랐다. 사랑이 아름다운지를. 아니 사랑은 없다는 걸. 아니 그게 아니라 인생이 개떡같다는 걸? 어쨌거나 저쨌거나 난 정말 마감일에 쫓겨 똥줄타는 인생. 허당 인생 원래 그렇지 뭘. 화려한 골세러모니 다 끝냈는데 업사이드. 홈런은 홈런인데 파울홈런! 경기가 뭐 이래? 이번엔 진짜다 싶어서 올인 했는데 그쪽 아니래. 드디어 보물을 덥썩 쥐었는데 개꿈. 그러든 아니든 개 풀 뜯어먹는 잡담 웬만치 좀 하자. 이거 어디 정신사나워서 살 수가 있나. 귀동냥으로 주서 들은 배경지식이 얼만데 아직도 더 습득한 잔지식이 남았나? "말해줘. 어서 떠들지 않고 뭐 해?" 라는 인공지능 지니의 외침. 못 들은 척 생까지 않을 수 없다. 사람 피곤하단 말이다. 오빠 달려? 걷자. 쉰 다음에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드릴 테니. 정말로? 뻥이다. 아무튼 거 참 말 많네. 이처럼 허영심 들쑤시고 감수성 예민하도록 부추기는 헛소리만 나불댈 순 없으니, 
    따라서 나는 일단 밖으로 나갔다. 남자는 집에 있으면 안된다. 꼭 그렇단 말이 아니라. 그 말을 거꾸로 하면 뭐, 여자는 밖에 나오면 안된다? 됐고>
    그처럼 휴양지 생활 1주일. 점점 무료해지던 찰나 크리스한테 전화옴. 
   「친구. 휴가는 재미있어?」
    전화통화 내용은 생략.
    전화통화 내용은 생략.
    전화통화 내용은 생략.
    물론 덥썩 응했을까? 꼭 내숭이란 말이 아니라 혹시 미끼일지 모르는 법. 빈말에 또 속으라고? 민첩한 행동 전에 조심성은 필수. 누군 뭐 립서비스 털 줄 몰라서 안 터나. 우리가 한번 작정하면, 됐다. 어쨌든 알고 보니 호텔 사장은 크리스랑 예전에 절친한 선배였다. 설마 뻥은 아니겠지? 왜 녀석의 진짜 같은 거짓말에 신뢰감이 얻어졌냐 하면... 그건 말하기 곤란한 부분이니 넘어가기로 하고. 아무튼 난 녀석 집으로 놀러갔다. 





    11

    나는 크리스 집에 도착했다. 근데 크리스는 집에 없었다. 마침 전화가 걸려왔다. 
   「친구, 왔어? 5분 전까지 난 거기 있었는데 이걸 어쩌지? 급한 용무가 생겼어. 너 테슬라 대항마 알지?」
   「테슬라 대항마?」
   「어.」
   「에디슨?」
   「아이 참. 루시드 모터스에서 루시드 드림이라는 신차를 발표했거든. 한데 내가 거기랑 굉장히 밀접한 관계거든. 내가 많이 도와준 게 있어. 그래서 이번에 시판 하기도 전에 그걸 나보고 시운전하라래? 난 거절했지. 허나 듣고 보니 말이야, 어? 한번 충전으로 최대 800킬로미터 이상 주행할 수 있고, 제로백은 단 2.5초, 최고 속도는 무려 시속 320킬로미터에 달한다고 하더라고. 제법이더라고. 아무튼 자네 온다고 해서 내 준비한 건 많고도 많은데. 설마 사랑의 마법이 빠질 리 있나. 아마 자네 알고 나면 오금이 저릴 걸? 그래도 먼저 자네 혼자 놀라고 할 수야 있나. 준비 운동만 하고 있어. 내 금방 갈께. 근데 재밌다 못해 일정이 조금 길어지더라도 이해하고 말이야. 알겠지? 이만 끊네.」
    뚝. 어쩐지 말린 거 같은데...! 그러든 아니든 녀석과 난 아주 막역한 사이. 난 녀석 집에서 냉장고를 거덜내고 집안을 어지럽히고 난동을 피웠다. 
    그렇게 3일이 경과했다. 내가 더 기다려야 할까? 아니면 뭔지 몰라도 때려쳐야 할까. 아니나 다를까 사무엘한테 전화가 걸려왔다. 
   「어디야?」
   「어디냐니?」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해. 다짜고짜 내 목소리 크면 다 이유가 있다는 거 몰라서 그래?」
   「크리스 집이야.」
   「거기서 뭐 하는데?」
   「크리스 기다려.」
   「늬가 크리스네 집 개니? 늬가 뭔데 걔네 집을 지켜? 네 실추된 자존심 내가 회복시켜 줄께. 너의 그 낙심한 탐미주의 바로 이 형이 부풀려준다고. 나 한다면 한다. 어? 안 그래도 늬 신비감 나랑 똑같다는 거 너도 잘 알잖아. 또 그 뭐야. 크리스? 소문 쫙 퍼졌어. 삼류 난봉꾼인 거 탈로나서 아는 여동생들 싹 다 떨어져나갔다고. 너 한번 생각을 해봐, 어? 그럼 그 인맥이 다 어디로 갔겠니. 그래~ 그거야~ 그거라고. 원래 안 그래도 난 내 팬클럽 관리하기에도 벅찼는데. 그럼 이제 난 어떡하니? 조력자가 필요하겠지. 어때, 구미가 땡기지 않아? 언제 내가 허튼 소리한 적 봤니? 많이 봤다고? 뭘 많이 봐. 그래도 내 타율이면 꽤 쓸 만하지 않니? 나 사무엘이야, 어? 이거 왜 이래? 너 지금 듣는 음악 내가 맞춰볼까? Mozart / 돈 지오반니 中 그대 손을 나에게 & 그대 창가로 와주오. 그래 핸드폰 어플 이용했다. 장비발 뒀다 뭐하게. 이 방법으로 내가 꼬신 여자만 해도, 됐다. 누가 그처럼 어리숙하니까 여자들이 불을 뻔 말 뻔 장기전을 가늠하다가 다 떠나는 거라고. 아직도 모르겠니? 사랑이라는 게 원래 그렇지 뭐. 꿀 항아리에 개미 덤비듯 한다는 거 너도 잘 알잖니. 허나 꽃을 탐내는 나비가 거미줄에 꼴까닥하는 수도 있음. 꿩 잡는 게 매라지만 꿩이 뭐 바본가? 촌닭은 말하자면 통상 꿩 놓친 매 신세.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지 않나.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근데 어디까지 얘기했지? 넌 딱 딱 옆에서 추임새를 넣든가 옆길로 빠지는 시간이 길어지면 옆에서 말을 해줘야 할 거 아니야. 어? 늬가 그러니까 여자들한테 인기가 없는 거야. 늬가 그래서 안되는 거라고. 날 봐, 어? 날 보라고.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근데 내 얘기를 왜 허접한 늑대한테 해야 하지? 늘씬한 아가씨와 섹시한 육덕은 물론 내 추종세력들 다 놔둔 채 말이야. 어때! 내 핸드폰 연락처가 어떻게 업그레이드됐을지 궁금하지 않니? 좋게 오랄 때 와. 크리스 그런 쩜팔이랑 붙어있어 봐야 백날 해도 여자 못 꼬셔. 늬 인생만 더 허접해져. 내가 그걸 가만 보고 있겠냐? 어? 걘 딱 2퍼센트 부족한 애니까 너 생각 잘해라. 좋은 말로 할 때 나한테 와. 응? 그리고 막말로 내가 걔보다 싸움도 잘해. 어? 돈? 누가 많은지 너도 잘 알잖아. 안 그래? 그리고 걔 잔재주 요즘 누가 반기니. 물론 우리들 우정 모르지 않은데 크리스 그 녀석도 호인은 맞다만. 걔도 최근 아마 꽤나 허덕인다지? 고양이가 쥐 걱정을 왜 해주나. 걔 이미 삼류야. 그러니까 좋게 넘어와. 알았어? 뭐해 안 넘어오고.」
    나는 그렇게 크리스를 버리고 사무엘이 차린 연예기획사에 놀러갔다. 





    12

    나는 사무엘네 연예기획사로 놀러가고 있었다. 근데 이거 뭔가 수상하네? 이 의뭉스러운 느낌. 기분 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착착 말려들어가는 몰입감. 하필 주인공이 나네? 아마도... 설마! 아니다. 설마, 가 사람 잡는다. 어쩌면 난 이미 엄청나게 늦도록 깨달은 것만 같다. 틀림없다. 이게 다 모두 nb2의 치밀한 뺑뺑이 작전이었게 뻔하다. 돌리기 수법에 왜 내가 주인공이냐. nb2는 달리 점찍을 사람이 없었겠지. 그 이상한 상자. 이름도 다양하지. 인간 복사기. 심신분리기. 유체이탈기. 시간조작기. 분신마술기계. ATM 복제기. 아, 맞다! 난 이제 기억해냈다. 떠올랐다. 왜 그걸 여태 몰랐지? 누가 최면을 내게 걸었을까. 그 환상머신을 만들던 당시 설계도에 내가 기록해놓지 않았나. 일반적으로 7시간, 한정판으로 7일. 조작부 리모콘은 목 뒤에 고정시키고 버튼은 딱 3개로 한정. 물론 컴퓨터에서 소프트웨어 키면 조종할 수도 있긴 한데. 하늘색, 연분홍색, 다홍색...구리선을 강제로 끊었을 땐 녀석 생명력은 무한 확장. 허나 그럼 일 커지게? 난 다 대책을 마련해놨던 것이다. 신발, 운동화, 옷, 자동차, 사무기기, 생활용품...들 수명이 무한대는 아니지 않나. 다 일부러 1년만 쓰도록, 최대 10년 넘지 않도록 정해두는 것. 왜? 또 사도록, 재구매자 스스로 일찍 질릴 테니까 대비책으로, 싫증나기도 전에 신상품 사기 위해 길들이는 식. 충성도 어쩌고저쩌고 마케팅팀 애용하는 용어들이 그거다. 그럼 그분들만 그러겠나, 나도 다 복사판 만들어질 때 70일 되면 자동적으로 증발시키게끔 다 손을 써놨다. 근데 NB2가 놀랍도록 똑똑하다 했을 때 외부에서 다른 방법을 찾고자 노력할 텐데. 아무리 멍청해도 방법을 결국 날 녀석의 안으로, 내 두뇌와 걔 두뇌를 동기화시키려고 하다가 그건 도저히 안되니까 실패할 테고. 따라서 방법은 내 두뇌를 걔 두뇌로 이식시키고자 할 텐데. 날 이렇게 멀쩡히 나돌아다니도록 풀어두는 건 다 녀석이 인자하기 때문은 아닐 거란 말이야. 그럼 내가 먼저 녀석을? 
    이처럼 나는 사무엘네 연예기획사로 가다가 깨우쳤다. 그래서 행선지를 바꿈.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장면 전환.
    장면 전환.
    장면 전환.
    새벽 3시에 우리집 급습. 녀석 뒤통수의 버튼을 눌러서 증발시킴. 
    (행별로 세 단추를 한꺼번에, 열별로 위에서 아래대로 눌러야 함)
    △□○
    ○△□
    □○△
    ○△○
    □○○
    ○○△
    □□○
    △□
    △○
    □○
    △□○
    이로써 난 재차 생각했다. 꾀가 힘보다 낫다는 걸. 멍청하면 발품 팔아야 한다. 몸이 고생하면 그나마 다행. 산전수전 다 겪을 수도 있단 말이다. NB2가 보통 놈이게? 하마터면 녀석한테 골로 갈 뻔했다. 이제야 마음이 놓인다. 뭐라는 거야. 그러지 말고 우리 잽싸개 뭘 할까? 근데 너 그거 뻥이지? 뻥이지? 그렇지? 내가 널 모르니....... NB2는 어떻게 처리했다만 내 안에 심어진 인공지능 지니. 녀석이 대체 어떻게 내 안으로 들어와버렸는지. 그건 차마 어떻게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열락감은 그리 길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13

    듣기 좋은 아부, 반갑기 다정한 요설로 남발하는 뻥이 아니라. 오빠 제발 한번만 딱 한번만 만나달라며 아는 여동생들이 개미떼처럼 몰려들어서, 캬~ 어? 난 버티다 버티다 하는 수 없이 번호표 발부기를 구입했다. 정말이다. 내가 이래서 연애를 안 한다. 물론 난 태어나서 거짓말을 해본 적이 한 번도 없다. 근데 오늘 알았다. 내가 뭔가 큰 착각을, 아니 그게 어느새 취미라는 걸. 알고 봤더니 난 허언증 없지 않았던 것이다. 제발 딱 한번만 만나달라는 애원? 뻥이다. 다 뻥이다. 개 뻥! 난 최근이 아니라 멜로드라마처럼 연애하는 거 한 번도 못해봤다. 전문용어로 모태솔로. 개들한테 단물 다 빨려서 똥개들이 쳐다보지도 않는 마른 뼈 같은 남자? 그게 나다. 원래 개뼉따귀 던져주면 개들 미쳐버리는데. 개들 환장하는데. 얼마나 단물 빠지고 기 빨렸으며 웬만한 개들마저 쳐다보지도 않을까? 가련한 늑대 불쌍한 척 그만 좀 하자. 젠장. 물론 징징거리는 거 나도 질색이다. 그치만 이거 다 여성잡지에서 나한테 시킨 일이다. 아는 여자애가 사정 사정해서 오빠 제발 너스레 떨어달래서 어린양 받아준 셈치고 하는 말장난이다. 그렇구나? 당연히 뻥이다. 좌우지간 소파에 자빠져 멜로드라마를 보면 뭘 하나. 낌새 의뭉스러운 연애? 장거리를 왜 가나 시승만으로 끝. 광고야 승차감을 예술적으로 표현하더라도 허영심은 당연히 하차감. 허나 사교계의 관심을 끌 주인공이 바로 나일 리가 있나. 들리는 바에 의하면 숙녀들은 허당 아주 그냥 질색이라더구만. 그러니 몰래한 사랑이라는 호박이 제 발로 굴러올 턱이 있냐고. 호시절 역시나 있을 뻔 말 뻔하다 말았지. 그럼 제7의 전성기는 과연 언제 오는 것일까? 온다고? 꿈도 야무져. 사랑이 인생의 전부인 것마냥, 오빠 나 왜 사랑해?, 당신만을 영원히 사랑하겠소 라는 보장처럼 자신 있는 전제랑 똑같군. 뭐 근거 있거나 말거나 자신감? 그렇지만 전혀 흥미롭지 않은 침체기, 한방에... 꿈 깨자. 그게 좋겠다. 은밀한 전개가 어딨나 은근 허당도 못되는 주제인데. 노잼이면 딴 거라도 되야지, 잔재주 녹슨지가 언젠데. 요즘도 허접한 허풍 좋아하는 여자도 있나? 안 그래도 해묵은 대망 원래 있지도 않았고. 헛바람들어서 상상한 개꿈 바라지도 않음. 그러나 그 말 있지 않나, 가득 차면 넘친다. 군침은 마를 날이 없단 뜻이군. (절레절레)! 그래도~ 우리는 여자 관심 없음. 고니의 날개는 물에 젖지 않는다. 심지가 궂냐 팔랑귀냐 선량하냐, 허나 운명은 야멸찬 것. 숙명까진 넘어가진 말고. 그럼 정말로 개 눈에는 똥만 보이는 걸까? 뭐? 뭐가 어쩌고 어째? 근데 이러다간 진짜로 공상대회에 단골 출전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환상머신에 들어갔다. 
    허황된 복제기계. 세상에 내놔도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하고 조용히 묻힐 게 뻔할 텐데. 그래도 환상머신 아닌가. 인간 복사기. 심신분리기. 유체이탈기? 시간조작기. 분신마술기계. 준치는 썩어도 준치! 뭐야? 그럼 환상머신이지만 썩었다? 썩은 미소 그만 좀 짓자. 이상한 기분 지겨울 때도 됐다. 쟤 표정이 대체 왜 저러냐? 허당들한테 들을 말 당연하지 않나. 아빠 나 저 아저씨 웃는 거 한번도 못 봤어. 꼬맹이님께서야 그렇게 논평하실 테고. 숙녀는? 너 왜 눈을 그렇게 떠! 좌우지간 환상머신은 환상머신인데 돈과 직결되지 않음. 물론 물리학과 학계 수장들과 여러 산업군 권위자들과 줄다리기를 안 한 건 아니다. 근데 하나같이 쓸모가 없다네? 내가 봐도 그렇다. 이걸 누가 믿냐고. 나도 당최 믿기지 않는데. 근데 또 그게 이상한 게 뭐냐면 진짜로 판박이처럼 날 만들어준단 말이지. 그러니까 도대체 왜 나랑 지인들 있으면 멀쩡한데, 투자자 앞에서만 서면 오작동이냔 말이다. 그걸 쫌만 보완하면... 그게 그러니까... 잘만 하면 (돈 세는 시늉) 실현시켜주긴 할 수도 있는데. 그럼 그 파장은? 복제양과 더불어 동물들은 이미 성공 사례가 많음과 동시에 불미스러운 폐해도 만만치 않고. 사람은 윤리적으로 걸리니까... 지금 어디까지 와 있나 모르겠다. 그래서 우리가 이걸 숨기는 거다. 그러니까 우리가 일부러 여자를 멀리하는 거라고. 농담이고. 말 같지도 않은 핑계 그만 좀 대고. 곧장 줄거리 이어가자. 
    난 환상머신에 들어갔다. 딱 들어가서 버튼을 눌렀다. 평소대로라면 난 상자 1에서 2로 옮겨가서 나와야 한다. 그렇게 내가 상자 2에서 나와서 슥 옆을 쳐다보면 간발의 차이로 막 (상자 1에서 나온) nb2가 날 따라하는 거지. 쓱 쳐다보는 게 왠지 기분 나쁜데? 너 나 험담했지? 그건 아니다만. 어쨌든 그래야 했다. 근데 이게 뭐야? 난 상자 1에 그래로 있었다. 그게 다가 아니었다. 일단 버튼을 눌르자마자 어떻게 됐는지 그 눈 깜짝할 순간을 좀 더 극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드라마처럼 상상해보는 게 좋겠다. 물론 난 사실 독자는 간접경험. 난 직접화법 현실 애청자는 몰임감 팽배. 
    장면 전환.
    장면 전환.
    장면 전환.
   「앗, 깜짝이야. 뭐야 너넨?」
    내 앞에 스티븐과 세바스찬이 나타났다. 눈 깜짝할 새에 말이다. 
   「넌 뭔데?」
   「내가 먼저 물었잖아? 설마...」
   「오해하지 마.」
   「왜 오해를 하게 만드냐고 내 말은.」
   「누가 뭐 이렇게 될 줄 알았나?」
   「그러니까 설명을 해 봐. 어떻게 변명할 건데?」
   「뭔 생각하는 거냐? 그런 거 아니야.」
   「그럼 뭔데?」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스티븐과 세바스찬 설명을 듣고 보니 사연은 이랬다. 녀석들은 각자 인생을 살고 있었는데 최근 모스맨 연구소로부터 스카웃 제의를 받았단다. 솔깃한 러브콜 도저히 거부할 수 없을 정도로. 그래서 걔네들은 합류했고. 요점만 말하자면, nb2가 그냥 조용히 무대로 내려갔겠니? 라고 내게 묻길래 난 살발한 기분에 느낌 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상황은 그랬다. nb2가 내 환상머신을 통채로 복사하여 모스맨 연구소에 기증했다는 거다. 원래 내 환상머신은 내용물을 심신분리이자 2탄을 만들어주는 건데. 어떻게 그 원리를 역이용해서 환상머신 자체를 복제해버린 것이다. 그래서 내가 놀던 과정 거쳤고, 아는 여동생들 데려다 시연시켜준 줄거리 다 거쳤는데. 결국 거기서 멈출 모스맨 연구소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다가 거의 뭔지 모를 혁신적 업그레이드를 눈앞에 두고 있었는데.
   「그래서! 그래서 끝끝내 기존 환상머신을 개조하는데 성공했어?」
   「못했어.」
   「못했다고.」
   「불과 얼마 전까지는.」
   「그럼 실마리가 풀리자마자 너네들과 내가 만난 거라 그 말이니?」
   「빙고~!」
   「그럼 뭐 너네 연구소에서 상자 1에 들어갔는데 내 사무실 환상머신 상자 1로 왔다고?」
   「그거지. 그거라고. 바로 그러라니까. 응? 그러야. 허허허.」
   「그게 말이냐 솜사탕이냐. 그게 말이 되냐? 어?」
   「말이 안되지? 근데 이걸 어쩌나. 말 같지도 않은 일이 벌어지고 말았는데.」
   「재현은 되고? 증명은. 근거는 논리식으로 풀 수 있고? 공식 만드는 거 내 도움 필요한 거 아냐?」
   「넌 빠져. 라는 말 할 필요도 없지. 너가 일단 환상머신 1탄을 만들어만 준 거도 어딘데.」
   「아 글쎄 그러니까 너넨 시험운행에 성공했으니 기쁘겠지만 난 뭐 아는 게 아무것도 없잖아.」
   「보여줄께.」
    그러면서 스티븐과 세바스찬은 내게 주문했다. 내 발바닥 옆 바닥에 손바닥을 붙이라고 했고. 난 바닥에 손바닥을 붙였다. 스티븐은 옆면에 손바닥을 붙였고, 세바스찬은 천장에 손바닥을 붙였다. 그런 다음 상자 1 천장 구석지에 있는 버튼 △□○. 그 3개를 동시에 눌렀다. 그러자 어떻게 됐을까? 중력이 뒤틀렸다. 시간이 구부러졌다. 정말로 쿵 소리가 났다. 마치 상자가 90도 회전하는 것만 같았다. 진짜로 상자가 눞혀졌든가, 아니면 일자 모양 상자가, 상단부를 축으로, 위로 들어올려졌다. 





    14

   「자, 나가자고 친구.」
   「나와보면 알아.」
   「뭔 수작이야? 야 개수작은 나한테 배워도 다 못배운다니까 그러네. 그동안 내가 키운 마술사들이 얼만데. 오락산업에 내가 꼿아준 애들 쑤두룩해. 내가 아는 속임수만 익혀도...」
    그렇게 우리 셋은 상자 1에서 나왔다. 
    원래대로라면 여긴... 내... 사무실이어야 하는데...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지?
    그렇다고 바지에 오줌을 쌀 수도 없고. 갑자기 화장실이 가고 싶어진 거도 아니고. 이건 너무 멀쩡하잖아? 현실은 UFO 영환데 난 뭐 이게 당연하다는 듯? 다시 한번 말해 두지만, 여긴 내 사무실이어야 하는데... 이런 젠장. 뭐야 이거?!
    그곳은 모스맨 연구소였다.
   「너네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보다시피.」
   「이게 다 자네 덕이네, 친구.」
   「공간이동한 거 축하받기엔 아직 이를까? 허허허. 우리도 그랬어. 허허허.」
   「시간압축이라고 할 수도 있어.」
   「영화에 나오는 타임머신 그거 다 뻥이라는 거 알지? 또는 타인의 시간만 정지시켜놓고 난 시간에 속하는 일. 남은 망부석 만들어놓고 난 투명인간처럼 난동피우겠다? 그거 다 뻥. 허나 우리는 완성했어.」
    하이파이브~! 골 세러모니~! 환호성~! 변해라~ 얍! 진짜 변했어. 
    대체 뭔 일이 있었던 거지?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녀석들은 모스맨 연구소에서 칠판에 웜홀기계의 원리에 대해 설명했다.
    난 이해하는 둥 마는 둥 어리둥절할 수밖에.
   「어떻게 좀, 돌아가는 견적 보여? 그러셔?」
   「뭐 사고 싶은데?」
   「아니, 어디로 떠나고 싶어?」
   「귀찮음 다 (웜홀기계를 다독이며) 얘한테 맡겨.」
   「이거 정말이니?」
   「그럼 이게 꿈이니?」
   「아니... 아무리 그래도... 뭐지?」
   「너 너네 사무실 상자 1에 있었잖아.」
   「그렇지.」
   「근데 단지 문만 열었는데 모스맨 연구소에 있을 수 있어? 그게 말이 돼?」
   「그 뭘로도 설명이 안되지.」
   「허나, 우리, 웜홀머신이라면 말이 되지.」
   「」
   「밑도 끝도 없이 공간이동. 그래 처음에는 안 믿겨. 황당하지. 당연할 수밖에. 왜 안 그렇겠어. 영화에서나 보던 건데?」
   「우리가 늬 생각 안 한 줄 아니? 왜 널 모스맨 연구소로 영입하지 않았겠니. 언제나 늬 자리는 공석이었어. 너 혼자 끙끙대느라 힘겨워하는 거 다 알고 있었다고. 어쨌든 누가 해도 완성됐잖아. 환상머신을 개조해서 짜잔~ 웜홀기계.」
   「그래, 어? 너 백날 집에서 하는 일이 뭐지. 인터넷에서 이거 저거 구경하고. TV 채널 돌리느라 지겹고. 핸드폰으로 유튜브 보다가 개새끼 나오면 혼잣말 하잖아. 저런~ 개뼉따구 같은 놈 어쩌고저쩌고. 응? 다 알아. 왜 몰라? 중견 가수랄지 실력파들 백전노장들 가왕들. 응? 메들리 부르듯이 10명 100명 똑같이 따라하잖니. 개그맨들도 동료들 한 7명 똑같이 흉내내. 영화배우라고 뭐 달라. 환상머신을 어떻게 하면 업그레이드 할 수 있을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난 결국 인문학 배경지식과 고상한 감성, 탁월한 안목, 근사한 취향, 고결한 정감, 우아한 허영심. 또 뭐 있지? 기똥찬 허풍. 재미난 허세. 과감한 베팅감. 뭐 아무튼 그처럼 너의 식견을 이해해야만 뭔가 실마리가 풀릴 거 같았거든. 일단 환상머신 창시자가 너거든. 발명가 마음을 들여다보는 재미가 꽤 쏠쏠하더라고. 아주 후끈했어. 비속어로 깔쌈? 우리는 그처럼 선구자 정신분석을 기본으로 깔고 시작했다고 볼 수 있어. 그래서 우리가 너 뒷조사는 물론 너한테 사람을 붙였어. 1급으로. 전직도 아니야. 군기술만 이용된 줄 아니? 우주과학 죄다 붙였어. 왜? 그래야 환상머신 개조가 가능할 테니까. 결과는? 이렇듯 웜홀머신! 물론 앞뒤가 바꼈고 뭔가, 그래. 나 내 모든 걸 자네한테 보여줄께. 그렇다고 나만? 웃겨 드릴께. 다 드린다고. 일단 나도 널 따라해볼까. 내가 뭐 너 흉내 못 낼 줄 아니? 자, 보자. 
    A급 사교계의 동태를 살피고 자시고 할 필요도 없는 게 뭐냐. 그걸 말해서 뭐 하나. 더불어 제법 신나는 게임을 암시하도록 누군가 내게 넌지시 게임을 신청해올 리도 없다. 허나 막돼먹은 허당이 아니면 된 건데. 세상을 살아보니 그게 말이야. 꼴깍, 탐스러운 먹잇감을 보며 침 안 삼키는 늑대 없다지만. 우리는 여자 관심 없다. 그렇다고 내가 여자란 말이 아니라. 난 남자거든. 사랑의 열망? 키우지 않음. 뭐 하러? 허나 잔뻔치도 많이 맞으면 아프다. 잔불이 큰불 되는 법. 그래서 하는 말인데 친구들과 동생들이 하도 소개팅 나가라고 부추기는데 못 이긴 척 한번 들어줘? 뻥이다. 다 뻥이다. 싹 다 뻥이다. 그래서 TV를 틀었더니 '사라진 바닷물' 그 드라마 끝나니까 재미없는 프로그램들 일색. 제목이 뭐 따봉마 뚜겅을 열어라? 놀고 있네. 따봉마 같은 소리나 하고들 있어. 하여, 채널을 돌리니. 저년 저거 어디서 굴러먹다 하필 여기까지 굴러온 거야, 지가 호박이야 뭐야. 상스러운 대사 자동적으로 외워질까 봐 겁난다. 그냥 TV를 끄자. 내가 언제부터 TV를 좋아했다고. 좌우지간 남자는 폼! 굶어도 허당 멋에 산다. 근데 최근 분위기가 영 심상치 않단 말이야. 이걸 어째? 어쩌긴 뭘 어째. 잠자코 때를 기다리는 거지. 별수 있어? 
    어때, 좀 비슷해?」
   「근데 너 참 말 많다. 너 원래 이런 애였니? 내가 언제 돈방석에 앉고 싶댔냐?」
   「기왕 이렇게 된 거. 따져봐야 할 계산이 꽤나 규모가 큰 거 같지 않냐?」
   「그러게. 그랑프리는 따논 당상인데. 본게임 끝난 거나 마찬가지인데. 전망 좋은 어딘가에서 노트북에 엑셀 파일 띄워 뭔가를 가정하면서 즐겁게 얘기하는 게 좋지 않을까?」
    그렇게 우리는 웜홀머신을 대체 어떻게 할 것인지를 따져보기 위해 휴가를 떠났다. 





    15

    휴가에 대한 요약, 뮤직비디오처럼 간추렸다치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장면 전환.
    장면 전환.
    우리는 휴가를 마치고 모스맨 연구소로 복귀했다. 
    환상머신 아니 웜홀머신이 설치된 사무실로 들어갔다. 
    나와 스티븐과 세바스찬. 모두 할 말을 잃었다. 왜냐하면 웜홀머신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어쩐지 캥기더라.」
   「뭔데?」
   「야, 따라와.」
    장면 전환.
    장면 전환.
    장면 전환.
    모스맨 연구소 주차장. 
    3급 기밀 허가증만 소유한 어떤 말단이 뭔가를 차에 싫고 튀는 모습. 우리는 곧장 쫓아갔다. 
    장면 전환.
    장면 전환.
    장면 전환.
    영화에 나오듯 숨막히는 추격이 아니었다. 쫓고 쫓기는 긴장감 하나도 없었다. 
   「쟤 우리가 쫓는 거 알고 있는 거 맞니?」
   「아니면 우리가 잘못 쫓는 건 아닐까?」
   「틀리지 않았어. 맞긴 맞는데. 그게 그러니까...」
   「뭔데?」
   「뭔데 그래? 어?」
   「쟤한테 우리가 안 보이나 봐. 쟤 두뇌로는 우릴 인지할 수 없는 거지. 우리가 안 보여.」
   「우리가 안 보여?」
   「어. 그러니 모를 수 밖에.」
   「그게, 뭔 소리야?」
   「그야 뭐 따라가 보면 알겠지.」
    장면 전환.
    장면 전환.
    장면 전환.
   「목적지에 거의 다다른 거 같은데.」
   「그래. 도착 직전이네.」
   「낯서니 여기?」
   「낯이 익어.」
   「빨리도 말한다.」
   「야, 뭐야. 우리가 쟤넬 따라붙은 시발점이 우리 연구소였는데. 결국 원점으로 돌아온 거야?」
   「게다가 우리가 아는 길 빼고 참 많이도 돌았다.」
   「근데 쟤가 우릴 못 본다고?」
   「우리도 여기로 되돌아올 줄 몰랐잖아.」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그럼 뭣이 중헌디?」
   「뭐긴 뭐야. 아 뭐해, 쟤 안 따라가고.」
    장면 전환.
    장면 전환.
    장면 전환.
    우리는 녀석을 따라붙었다. 
    녀석은 웜홀머신을 모스맨 연구소 어느 사무실로 옮겼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정말 녀석들은 우리들을 하나도 못 알아봤다. 그러니 숨을 이유도 없었다. 옷이라도 벗을까?
    알고 보니 사무실 안에는 우리가 있었다. 나와 스티븐과 세바스찬이. 쫄따구는 임무를 마치고 퇴근하는 거 같았다. 
    그럼 우리가 미래야 쟤네가 과거야? 





    16

    스티브와 세바스찬 그리고 나. 우리는 사안의 경중을 따지고 자시고 할 거도 없었다. 추리고 뭐고 이건 장난이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우리는 각자 분담해서 비밀리에 관찰에 집중하기로 했다. 모험심 충족, 기대 충만, 예감 들뜸. 그 뿐만이 아니라 이건 결코 '아니면 말고'처럼 그저 그런 사건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긴말 필요없이 예삿일이 아니거든. 따라서 일단 먼저 핸드폰을 끄고 동화던가 단편이던가 '왕과 거지'처럼 위장이 기본이었다. 신분 세탁까지 갈 수도 있는데 아직 2단계는 더 두고 보는 거고. 그래서 구KGB와 모사드, CIA, MI6 관련 특수장비를 어떻게 입수했고. 첩보원 생활을 하기 전에 일단 뺑뺑이를 돌았다. 상대가 누구든 우린 손바닥 위에서 노는 쥐새끼처럼 감시받을 게 뻔하니까 말이다. 그래서 일단 종횡무진 돌아다녔다. 그처럼 짧은 기간에 위치추적 잘 되도록 핸드폰을 키고 어딘가에 멈추어 신호 끄고. 변장을 넘어 변신 완료 후 영화주인공으로 둔갑 완료. 그렇게 당분간 캠핑 생활을 이어갈 주둔지 마련도 마침. 아무도 모를 곳에 말이다. 그만큼 기가 막힐 외계인의 음모가 대기중일 테니까 안 그럴 수가 없었다. 
    일단 스티브는 인터넷 조사. 최근 잘나가는 해커들 뺨치고, 한때 해커&크래커계를 뒤흔들었던 실력은 못 될지언정. 나름 스티브 그 방면에 일가견이 있었다. 때문에 모스맨 연구소 그 배후가 누구인지, 무엇과 관련되었는지, 어떻게 시간을 과거-현재-미래로 나누었는지 파악하려면 인터넷 조사가 필수였다. 대체 어떤 원리로 단 7일 내에 증발하지 않고 우리들을 한공간에서 따로따라 자유도를 무한대로 설정할 수 있는지. 단지 거기까지라면 몰라도 환상머신을 어떻게 해서 웜홀기계로 개조시켰는지. 깨알 같은 조사는 무조건 필수였다. 통신 감청은 추리소설에나 나오는 거니까 우린 증거 수집보다 한발 앞서가면 그만. 고로 인터넷에 모든 증거가 남지 않을 수 없으므로 스티브는 인터넷 전담. 캐면 캐는대로 먼지 한톨만 걸려도 걸리면 어떻게 되나, 말꼬리 잡고 늘어지듯 걔넨 우리한테 바지끄댕이 잡힌 거나 마찬가지. 그건 그렇고. 
    다음으로 세바스찬. 모스맨 연구소는 하필 전형적인 요새이기 때문에 적당한 대공 초소 지점을 물색 완료. 비밀기지로써 천혜의 명당이니만큼 매우 꼼꼼하게 자리를 알아본 끝에 출입자 명단을 파악할 최적의 장소에 우리도 기지를 설치 완료. 그리고 녀석은 기타 잡무 담당.
    그럼 난 뭐 하지? 다름 아니라 현장요원. 뭐니 뭐니 해도 내게 주어진 주임무는 그랬다. 환상머신 → 웜홀기계! 도대체 어떻게 그걸 개조했는지. 조사하면 나온다. 물론 드라마 주인공 따라하려면 당연히 일단 쇼핑부터 필수. 궁색하게 대충 따라했다간 기분 잡침. 분위기 살지 않음. 따라서 우선 겉멋부터 쫙 갖춘 다음에 시작했단 말이다. 어쨌든 곧 있으면 전말은 밝혀지게 되어 있다. 숙녀들이 우리한테 넘어올 수밖에 없듯이. 걔네가 누군지 정체를 드러내는 건 시간문제인데? 이러니까 여자들이 뻑이 가지. 존나~ 카리스마 있어! 끝장. (절레절레)





    17

    그렇게 해서 과연 모스맨 연구소의 복면을 벗길 수 있었을까? 너무 많은 걸 알려줄 수는 없다. 난 몰라도 스티브와 세바스찬도 먹고 살아야 하거든. 어쨌든 우리가 어릴 때 촌에서 뛰어놀던 것처럼 웜홀머신 배후를 염탐하는 일. 설마 별 소득 없을 것 같나? 첫째날 으쌰으쌰. 둘째날 그럭저럭. 셋째날 슬슬 바람이 빠지기 시작. 결국 꿀 단지 겉핥기. 근데 참 재미난 얘기를 들려드릴까 말까. 꽃 피자 임 오신다고 로즈마리, 에밀리, 마라, 사라 그녀들이 영상통화를 걸어왔다. 어떻게 비발매 특수 핸드폰에 통화를... 하긴 걔네들 마음 먹으면 암호문이 적혀진 쪽지를 묶어서 비둘기라도 띄울 숙녀들이지. 그렇게 날짜 가는 줄도 모르며 언젠가 걸출한 성과를 확보하기도 전에 우리는 설득됐다. 요컨대 거기가 아니랜다. 자기들이 모스맨 연구소는 꽉 잡고 있다나 뭐래나. 웜홀머신 그거 별거 아니라는데, 우리는 또 솔낏솔낏 귀가 팔랑팔랑 혹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아무튼 이와 같은 줄거리 그 다음 이야기는 열린 결말로 남겨놓기로 한다. 물론 모스맨 연구소에서 마라 일당에게 우릴 말리라고 시켰을 수도 있고, 그처럼 대행자 개입시킬 필요도 없이 가짜로 우리를 자기네한테로 유인할지도 모른다는 점. 일단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 쏠쏠은 무슨. 





    18

    (옛말처럼) 과부집 수캐마냥 난 일만 저지르는 것일까? 뭘 해도 심심한데 일을 저르르긴 어떤 일을 저질러. 껀수가 있어야 뭘 해도 허지. 우리가 무슨 과부집 수코양이도 아니고 말이지. 뭐 그렇긴 하나 허당이 성격 좋으면 봉 되기 십상. 과부가 마음이 넓으면 동네... 쉿. 헤프든 정절녀이든 우리는 여자 관심 없다. 어찌 됐든 인생살이 쉽지 않다. 그게 그러니까 현 시점으로 말할 것 같으면, 작전이니 수작이니 무슨 대회를 나가든가 상대가 있어야 뭘 해도 할 거 아닌가. 과부 사정은 과부가 안다. 근데 굶주린 늑대가 하이에나 심정 몰라서야 쓰나. 아는 여동생들 흉 웬만히 트집잡고 이제 그만 남자들이랑 놀까? 그게 그러니까,  과부살이 아니 혀 메시 생활 십 년에 독사 안되는 년 없다? 거 어째 말이 심하긴 하다만, 년이 아니라 놈? 아무튼 '그년이 그년이다'라고 어떻게 우리 입으로 말하나. 단지 '그놈이 그놈이다'라는 말 듣고 살짝 웃을 뻔 하다 말든가. 그야 어쨌든 살살 부추기고 슬슬 발동걸며 슬며시 헛바람 주입시키는 게 우리 전공. 타고난 재능이 어디 가간디? 뽐뿌질 시작만 했다 하면 선풍 미풍 그러다 느닷없이 강풍. 진짜인지 가짜인지 근데 것도 다 상대가 있어야 하는데...! 보아하니 인생이 재미없으니까 예술을 빙자하고 사욕만 채우는 거구만 그래. 캬~ 어? 칼럼에 어쩌고저쩌고 연재소설에 이러쿵저러쿵. 안 그래? 안 그러긴 뭘 안 그래. 고니를 조각하다가 안되면 그와 비슷한 따오기라도 된다. 하는 데까지 하자. 뭐 그러다 어떻게 하나 얻어걸리겠지. 살면서 잔뻔치 좀 많이 맞아봤나. 딴 건 몰라도 우리가 얻어터지는 건 일가견이 있다. 어설픈 쉐도우복싱마저 그 앞에서 할리우드 연기 왜 못해. 큰 재주 없는데다 잔재주마저 후달리면 맷집이라도 좋아야 하지 않겠나. 그러다 어퍼컷 한방! 인생 한방이다. 아 글쎄 상대가 없다고 상대가. 회심의 역습? 갈 곳은 많아도 오라는 데가 없다. 소 뒷걸음질치자 쥐 잡으면 기분 좋은 거 누가 모르냔 말이다. 이건 아니다. 이건 정말 아니다. 그래서 나는 하는 수 없이 새로운 인생 계획을 비밀리에 재정비하기 위해 사무실로 갈 수 밖에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