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케케묵은 일하기. 촌스러운 놀기. 더럽게 재미없는 쉬기. 상투적인 건수 없음. 인생사라는 건 정말 모를 일이긴 하다만 선홍색 기대와 새콤달콤 예감을 양쪽에 꿰차지 못한 일상, 다름 아니라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두 귀는 백 개의 혀를 마르게 한다."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허둥대느라 칼럼 연재하면서 나름 품위 유지비 넉넉히 벌었는데, 내가 아니 NB가 왜 요새 편집장 마라와 본부장 사라를 피해 다닐까? 왜냐, 오빠 할 말 떨어졌지 라는 말 들을까 봐! 언제는 말이다 귓구멍을 메꿀 수는 없다는 둥 글쟁이는 글을 쓰는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둥 들었다 놨다 쥐락펴락 겁나게 막 난리도 아더니만. 어? 뭐 이제 와서는 딱 잡아떼며 모른 체 시치미 뚝! 의리없는 년들. 더럽게 응큼하기로 어디서 그 짝을 찾을 수 있어야 말이지. 내 그럴 줄 알았어. 걔네들 순 지들 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자. 넌 너 밖에 몰라 라는 말 퍽이나 많이 들었을 꺼야. 틀림없어. 근데 내가 걔네, 아니 필자가 NB와 걔 어장관리 걱정을 왜 해, 내 발등에 불이 떨어졌는데. 아니 말이야 바른 말이지 지들 기 빨릴까 봐 우려되어 일부러 자진해서 슬럼프에 빠진 건데. 뭐가 어쩌고 어째? 나도 바빠. 할 일 많음. 내가 왜 한가해? 하여 통상 스스로 바쁘단 걸 모르진 않는데. 근데 그게 말이다 지역 연고지 축구팀 서포터즈에 놀러나가면 들을 말 뻔하니 거기 나갈 수도 없고. 너 뭐 할줄 아는 거나 있냐? 축구팀에서 구멍은 아닐 테고 달변은 곧잘 하니? (절레절레) 남자 여왕벌들 50%에 친구없는 어리버리 촌닭들 반, 나머지 남자 여왕벌들 수발드는 성격 좋은 양반들 반. 거기 가도 영양가 없음. 재수없기 밖에 더 하나. 그럼 뭘 하지? 확 그냥, 푸른 바다와 빨주노초파남보 비키니와 젊음이 가득찬 해수욕장으로 떠나버릴까? 가 봤자 더워. 겁나 더워. 귀찮음. 어차피 가도 다시 와야 해. 아니면 수치스러운 사랑과 모욕적인 우정 둘 다 선사하는 애인과 데이트를? 추접스러움. 우리는 풋사랑 졸업한지 이미 옛날. 멜로드라마도 재미없고. 최고로 닭살 돋는 영화 장르는 거의 고문에 가까울 뿐. 비전 별볼일 없음. 그래?
그러므로 그는 결단을 내렸다. 냉큼 특단의 대책 건너뛰고 냅다 행동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렇게 NB는 팬 사이트 회장 롭과 축구경기를 보기로 했던 장소에 도착했다.
아직 아무도 없길래 그는 롭한테 전화를 걸었다.
근데 전화를 받지 않네? 느낌 세했다.
뭐지? 곧바로 롭한테 전화가 왔다.
「너 왜 안 나와?」
「왜 안 나오다니? 어딜?」
「우리 같이 축구 보기로 했잖아!」
「우리, 같이? 남자들끼리 축구를 왜 봐? 아는 여동생들 커피 사주기도 바쁜데. 나 따라다니는 숙녀들 번호표 발부하며 만나주기도 벅차. 나 인기 많아 귀찮다는 거 형 모르지 않지? 그 가운데 최고의 숙녀와 더없이 아름다운 여인들을 엄선해서 형한테 소개시켜주려는 내 마음. 형 나 나중 팽당하면 섭하다. 나 걔네 관리하려면 뻗치단 말이야. 근데 내가 언제 형이랑 축구 약속을 했지? 난 그런 적 없는데.」
「그래? 그럼 너가 아니었나? 아닌데...」
「내가 아닌가 봐. 형 요즘 상태가 안 좋은 게 아니라 형 원래 좀 그래. 설마 부정하는 건 아니겠지? 성격 나쁜 나랑 형은 다르니까 뭐 난 형 걱정 안 해. 만약에 나랑 형이랑 축구 같이 보기로 약속을 했더라도 형이 아마 나랑 놀도록 여자들이 가만 놔두질 않았을 걸. 그렇지? 내 모를 줄 알어? 형, 내 레이더 시피보지 마. 응? 형의 일거수일투족 다 내 레이다망에 걸리니까 말이야. 안 그래도 최근 축구 재미없어. 게다가 사람들도 집에서 밖에 잘 안 나가. 심지어 웬만한 남자들도 여자 뒤꽁무늬 쫓아다니기 지쳤대. 시선 분산하는 거조차 싫증나는데 왜 아니겠어. 형이 잘 생각해 봐. 아마 형이 낮잠 자다 개꿈꿨을 테니까. 아무튼 나 아가씨 만나러 가야 해. 이만 전화 끊는다. 나중에 통화해. 내가 곧 있으면 괜찮은 여자 소개시켜줄께. 형 나 믿지? 뻥 아니야. 진짜 아니야. 진짜로 뻥 아니라고.」
뚝.
「늬가 소개시켜준단지가 벌써... 뭐야. 전화 끊겼잖아?」
이제 어떡하지? 어떡하긴 때마침 비가 왔다. 소나기.
그는 우산도 없이 흠뻑 젖어버렸다.
그렇다고 곧장 집으로 돌아가기엔 왠지 허전할 테지.
고로 그는 사무실 소파에 자빠져 TV를 틀었다.
2
멜로드라마에서는 말다툼 중.
「가난하게 자란 게 무슨 자랑이니? 꼭 보면 찌질한 촌닭처럼 못 배운 티를 낸다니까 글쎄. 누가 허접한 가문 출신 아니랄까 봐. 누가 무능력하단 걸 몰라봐줄까 봐 감히... 주제도 모른 체 설치는 저 꼴 좀 보란 말일세. 나대긴 어디다 나대. 너 학교 다닐 때 별명이 '나대지 마' 였지? 안 봐도 비디오다. 여자들이 상대하면 황당해라 하는 못생긴 암컷 싸움닭, 좋게 걔네들이나 찾아 봐라. 너랑 천생연분일 테니까. 어딜 넘 보냔 눈치 모른 체하기 힘들지 않니? 너 집에서 그렇게 배웠니? 부모 망신 웬만치 시켜라, 어? 여자들이 아니 사람들이 어디 너만 욕하겠니. 근데 이상한 게 거 보면 참 나 무슨 지가 뭐, 정말로 챙피한 줄도 몰라요. 기가 막힐 일이지. 넌 돌쇠감도 안돼. 알아? 너랑 사랑하고 결혼하면 여자들 신세 망치기 딱 좋다니까 글쎄. 어? 너처럼 숙녀 알기를 띄엄띄엄 아는 놈은 외로워야 해. 버릇 없어도 유분시지 늬가 무슨 초딩이니? 그 나이 먹도록 뭐 했니. 놀았니 일만 했니. 근데 돈이 없어. (몸짓) 졸라 이기적인 새끼 어떻게 지 밖에 몰라?! 이 험한 세상을 사는데 남 생각 안 해? 바보야? 돈 없이 사랑을 하겠다고? 딴 데 가서 알아 봐라. 무엇보다, 넌 가서 거울이나 보고 와. 꼭 보면 너 같은 애들이 나중 마누라 뚜들어팬다, 너? 내기에 져 게임도 못 해 베팅은 더 못해, 그래서 여편네 엎신여겨. 어? 넌 딱 봐도 마누라 등쳐먹는 관상이야. 알아? 야 뚜벅이! 늬가 무슨 고독한 사냥꾼이니 뭐니. 내 새끼손가락만한 촌놈, 내 새끼발가락만도 못한 그거. 부끄럽지도 않나 몰라. 얼굴 두꺼운 걸 무슨 큰 복이나 받은 줄로 아네 그래. 멍청해도 좀 정도껏 멍청하자, 응?...」
~라는 멜로드라마 대사가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서 NB는 이처럼 공상을 남발했다.
<의심의 여지가 없는 중년 허당. 더불어 그분의 절박한 체통. 허나 이상과 달리 현실은 현실은. 달콤한 사탕을 향한 번득이는 개침? 탐스러운 공상 그만 좀 하자. 그 말 같지도 않은 몽환의 제1인자가 누군고 하니 다름 아니라 누구라더라? 신뢰감 두둑한 소식통에 의하면, 소식통 연락 두절. 그래서 추측컨대 보아하니 NB는 고독한 사냥꾼의 눈길을 내리깔지 않을 수 없었다. 보나마나 뻔해. 어디 사랑만 뻔하겠나. 그럴 리는 없다. 그러므로 귀동냥으로 듣자하니 그는 젊음의 행진을 위해 건수를 찾고자 안간힘을 쓰며 내 사랑 찾기는 이미 포기해버린지 오래. 안 그럴 수가 없거든. 생각하는 거 하고는, 아휴 민망해! 그런데 갑자기 아니 어떻게... 내 새로운 인생이 이리도 흥미진진할 수 있다니! 라는 NB의 생각 물론 뻥이다. 신비스러운 사랑, 다 남 얘기. 진공청소기처럼 여심을 빨아들이는데 인기를 뭐 하러 구걸하나. 이거 봐 이거 봐 또 전화온다, 오빠 제발 한 번만 만나주세요... 오빠 오늘 정말 재밌었어요... 질리지도 않나 몰라. 그래 봤자 형이 여자 꼬셔준다면서요 근데 왜 말도 못 걸어요? 아니면 날라차기를 재현하기를 하던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어? 우리는 오빠라는 말만 들으면 미쳐버린다? 그럼 뭘 해!>
3
당나귀가 너무 편하면 비밀을 폭로한다. 그렇듯 세상사란 은근 기분 좋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비밀을 털어놓는 코끼리가 되도록 부추김당하는 것. 과장광고에 넘어가면 골치아프다. 안 그래도 병풍 배역을 노골적으로 암시하거나, 잔치상 차려지건 말건 일단 숟가락부터 올리기는 흔하디 흔함. 그래서 푼수는 만사를 떠벌리기 좋아하는 것일까? 그러거나 말거나 웬만한 허당들조차 말하기 좋아하고 나서기는 더 좋아함. 어떻게 말려? 나대지 말란다고 말을 들으시겠나. 그러므로 사람은 이타적인 가운데 이기적이지 않으면 안된다. 근데 말이다 쾌활한 자긍심과 때 묻었다가 말끔히 치유된 자존심, 나름 북돋워주며 칭찬한다 치고 녀석들한테 어떤 호의를 베풀지? 내가 내게 선물을? 호사는 됐고 망신이나 당하지 말자. 순수한 자존감 상처입을라. 순진한 촌닭이라고 순정 없을까. 근데 대체 뭔 얘기를 하다 말이 길어졌지? 하여간에 NB는 1부 리그 쉐도우 스트라이커는 커녕 7부 리그 리베로로 쓰기도 아까움. 그래서 그는 역시나 문턱이 닳도록 아지트에 들락날락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거기서 친구들과 나누는 정담들이란 매번 이런 식. 예를 들면,
「친구. 최근 어떻게 지냈어? 내겐 보나마나 재미난 일 없으니까 자네 근황이나 털어놓으시지.」
「나? 뭐 그냥. 난 항상 그날이 그날이지. 늘 그래.」
「뭐 그놈이 그놈이라고?」
「내가 언제 그년이 그년이랬어?」
「그거나 그거나. 근데 너 어째서 발끈해? 무슨 일 있어? 누구야? 어? 남자인 네가 생리할 리도 없고. 왜 그래, 친구?」
「난 미치지 않았어.」
「누가 너 돌았다 그러든? 누가 그래? 걔 오라 그래. 내 이 자식을 그냥...」
「내가 봤을 땐 나보다 늬가 더 걱정이다. 너 상태가 많이 안 좋아 보여. 열 있냐?」
「그럼 넌 몸이 차갑냐? 손이 차가운 숙녀가 생각나는군.」
「너가 그런다고 나까지 홍조가 유독 돋보이는 아가씨가 기억나는 건 아니야. 뻠쁘질은 사양하겠어.」
「그럼 너가 먼저 꽤 괜찮은 껀수를 하나 제의해 보던가.」
「글쎄 내가 선제적으로다 밑장 빼기로 히든카드를 선보인다고 가정한다 치고, 그걸 과연 너 따위가 감당할 수 있을까? 난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보는데, 쟤들은 아니라고 볼걸.」
「그게 뭔지 못 이긴 척 승락하든 단호히 거절하든 벌써 듣고 싶은 마음 싹 가셨어.」
「뭐 또 변심? 너 여자냐?」
「아이쿠 사돈. 자네 허영심이나 관리하시지.」
매를 저녁식사에 초대하는 꿩들은 어리석다.
이거 이거 돌아가는 아지트 분위기를 보아하니 오래 가지 않아... 뭔가가 걱정스럽다.
뭐야? 하다 하다 이젠 대화법 공상? 잘한다 잘해. 잘났어 정말.
그때 갑자기 조지한테 전화가 걸려왔다.
「웬일이야 슈퍼스타께서?」
「나 여자친구랑 헤어졌어. 친구, 나 위로해줘.」
「또?」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중간 건너뛰고.
그렇게 NB와 조지는 만났다.
Mendelssohn / Violin Concerto in e minor op.64 / Gioconda de Vito(violin), London Symphony Orchestra, Malcolm Sargent 1951
「근데 음악이 이게 뭐니? 넌 날 어디로 데려온 거야?」
「여자는 음악으로 잊는다. 안 들어봤냐? 처음이면 지금 시도해 봐. 직방 먹힐 테니까.」
「뭘 먹혀! 내가 뭐 탐스런 과일이냐? 왜 내가 꽃이어야 하는데. 저 군침도는 과일들 너 혼자 다 따먹을려고?」
「진정해 친구.」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
「근데 왜 헤어졌는데?」
「다퉜어.」
「뭘로?」
「여자 문제.」
「늬가 잘못했네.」
「아니야. 걔 어장관리가 더했으니까. 내 아는 여동생들보다 딱 2배 더 많더라고. 끈끈한 남녀의 우정이 말이야.」
「그래?」
「안 그래도 오래된 거 같아.」
「뭐가?」
「난 세컨으로 옛날에 밀려났는데. 근데 나만 몰랐던 거지.」
「정말?」
「넌 내가 거짓말하는 거 봤냐?」
「어. 아니? 어. 아닌가?」
「지금 내가 뻥칠 기분이냐?」
바로 그 순간. 조지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옆에서 대충 들어보니 무척 가까운 사이인 듯 한데... 알만 했다.
「나 갈께. 오빠 제발 한 번만 만나주라고 난리다 글쎄. 너도 갈래? 근데 늬가 왜 가. 따라오지 마. 나대지 말란 말이야. 어? 나 간다 친구. 다음에 보자.」
「저 자식 뭐야!」
4
오락산업에서 병풍으로 쳐주지도 않긴 한다만 나름 NB의 현황 점수판은 이렇다. 허당계에서 1.5군. 허접한 카바레랄지 후미진 바에서 손님으로 2진. 행복업에서 삼류. 플레이보이계에서 퇴출. 그럼 재산은? 말해 뭐 해. 비밀은? 본인 거는 물론 할 말도 떨이지는 걸로도 모자라 타인에 대해 폭로할 잔지식도 깡통. 이걸 어째? 어쩌긴 뭘 어째. 동네 산책이나 해야지. 이게 다 틈틈이 고기를 먹어주지 않았기 때문일까? 그는 내일 당장 날으는 돈까스를 먹겠다고 다짐했다. 허나 팔랑귀는 여인의 마음처럼 변덕이 심한데 이걸 어쩌나. 먹음직스런 피자도 먹고 싶네? 하지만 최근 쇼핑 목록 작성하면서 돈 아끼느라 변심은 금물. 그래서 아예 더 싼 거 먹을 수 밖에. 그게 그러니까 지 주제를 알아야지, 어? Mercadante / 오페라 <비르지니아 (Virginia)> “이칠리오, 당신을 사랑해요!” 그런 고상한 음악도 다 권태로운 부자, 이타적인 지식노동자, 한정판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나 어울리지. 지 입에 풀칠하기 급급한 형편에 그런 오페라가 뭔 내용인 줄이나 알아? 물론 모르면 어때. 하오나 그 인간은 내 생각과 타인이 보는 시선이 다르다는 게 제일 큰 문제. 곧 혼자 봤을 때만 잔근육 빡선 남자, 결국 잔재주 팅팅 녹슨 늑대. 결국 그는 갈 데까지 갔다. 사는 게 더럽게 재미없었던 것이다. 이런 시국이라면 어려운 생활고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살며 밝은 모습 잃지 않는 다큐멘터리를 2~3분 언뜻 보는 게 제격인데. 꼴에 지도 남자라고 최근 패션에 꼿혔네? 심지어 어디서 주서들었는지 몰래 엿들었는지 아지트에서 여자들 드레스코드가 유독 호피 무늬가 많이 보이면, 일부러 촌스러운 부츠와 대략 분위기 뻔하면 바로 그 주 일요일에 남녀 성비가 허당한테 최적화된다는데. 글쎄 물 반 고기 반도 아니고 엄선된 숙녀 9명에 남자 1명? 놀고 있네. 지 맘대로 막 다 그냥 은근한 예감 때문에 어떤 숙녀의 어장관리에 매수당하길 바라다니 꿈도 야무지다. 그러니까 기대는 곧 실망. YB가 진정 한심한 작자인지 아닌지 의중을 떠볼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그는 정녕 더티러브를 생각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썩을놈. 개자식. 호색한. 난봉꾼. 어? 하여튼 여자 겁나게 밝힌다니까 글쎄. 뭔 전생에 사랑을 못해서 원한이 쌓인 귀신이라도 씌었나? (절레절레) 그렇지만 옆에서 알게 모르게 이런 걱정해줘도 걘 신경도 안 쓴다. 주위에서 알 듯 모를 듯 이처럼 지 생각하면서 신경써줘도 통 고마운 줄을 몰라요. 일단 말귀를 잘 못 알아들어. 대놓고 말하면 그때사 직접화법으로 겨우 끄덕끄덕. 아니면 간접화법으로 넌지시 운을 띄우면 빈말을 순진하게 믿기나 하고. 그게 뭐야, 어? 날라차기를 지가 왜 해? 또 어디 가서 총대를 매시게, 약속장소에 나가도 아무도 없어. 바보도 그런 바보가 없단 말이야. 참말로 정녕 바보업계에서 최고. 단연 압권. 미련곰탱이 같은 놈. 물론 친구끼리 분위기 잡고서 터놓고 솔직해지는 자리에서 이 모든 걸 대놓고 말해주면 뭘 해? 한마디로 그런 건 허당이 알 게 아니라면서 상남자 흉내내기 밖에 더 하냐고.
좌우지간 오늘 바로 기다리고 기다리던 기일, 즉 아지트의 성비가 그야말로 기가 막히다는 날. 그는 갔다. 선수 입장이 과연 어떤 흥분과 짜릿한 절정을 불러올지 모르겠으나. 믿을만한 소식통으로부터 주서들은 풍월, 일단 믿고나 본 것이다. 정녕 기대가 크면 상심은 훨씬 클 거라고 사전에 예상치 못했을까? 조잡한 탐욕과 추잡스러운 사랑 생각 뿐인데 당연히 못했겠지. 알만 하다 알만 해. 쯧쯧쯧! 그렇게 NB는 아지트로 갔다.
아지트에 갔다 온 결과는? 넘어가자.
5
타락마는 허당의 포위망을 빠져나갔다. 따라서 이제 허접한 패배주의가 나설 차례다. 잃을 게 없으니까. 그치만 어느 숙녀가 그걸 반긴다고! 내 말이 그렇다니까 글쎄. (절레절레) 그렇다면 지금이 곧 희대의 야심작을 쓸 절호의 기회일까? 미완의 환상머신 만든단지가 언젠데. 보나마나 개뼉따귀 개나 좋아하지 그걸 누가 눈독들인다고. 근데 왜 갑자기 불똥이 똥개한테 튀어? 새똥 살면서 한 번도 맞아보지 않은 게 어딘데. 바나나 껍질 밟고서 넘어져보지 않은 것만 해도 나름 선방한 인생. 그럼 뭘 해, 그래 봤자 아는 여동생들 은근히 NB를 피하다 급기야 아지트 발길조차 끊었음. 냉정한 년들! 누가 지들 행복한 연애사가 궁금하데? 잘살라 그래 관심 없으니까. 필자가 아니라 NB가 말이다. 하여간에 그 녀석은 제정신이 아니란 말이야. 마침내 미친 건가? 뻔뻔한 녀석 같으니라고. 하긴 불여우들한테 당할 봉변을 면한 게 어딘데. 멜로드라마 주인공 낙점 못 된 거나 막장드라마 주인공으로 낙찰 안 된거나, 그 둘로 퉁치면 되겠네. 그러니까 인생 복잡하게 생각하면 안된다니까 글쎄.
한편, 그러던 어느 날 정말로 NB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아가씨가 그놈을 유혹하게 되었는데... 진짜로? 뻥이다. 그럴 리가 있나. 뿌려지는 떡밥조차 구경한지 오래. 왜 아니겠어. 이제는 하다 하다 진한 사랑을 어떻게 하는지까지 까먹었을 거야. 걔 인생이 그래. 날조된 허세가 먹히겠어 허영심을 쥐락펴락할 줄 알겠어! 뭘 해도 재미없기 일쑤. 어차피 언제나 심심하기 마련. 그럼 이제 어떡한담? 내가 왜 그 녀석 걱정을 해 줘, 뭐 지가 알아서 하겠지. 나이 허트루 먹지 않았다면 말이야. 때문에 녀석의 인생사 좌우명 소상히 알고자시고 할 것도 없이 우리는 줄거리 전개만 전달하면 그만. 딱 그만. 자, 그래서 어떻게 됐냐! 어떻게 되긴 뭘 어떻게 돼. 시작부터 끝까지 발단뿐이지. 누가 아니래? 따라서 자~, 막 그러면서 또 진행병 따라하거나 허언증 도지거나, 수전증과 거북목 증후군 사이에서 헷갈리다 공상 못 끊고 있겠지. 그처럼 환상문학잡지에서는 SF 연재물을, 여성환상 1.5로부터는 칼럼 독축을 받아 쫓기는 입장. 그가 갈 데라고는 사무실 밖에 없었던 것이다.
아니?! NB는 누가 허당 아니랄까 봐 벌써 마음이 바꼈다. 툭하면 변심은 여자의 특권일 테지만 변덕으로 그도 결코 만만치 않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그는 한적한 호텔로 집필 여행을 떠났다. 롭이 어디를 알려주긴 했는데 그건 공개할 수 없고. 안 떠났다간 보나마나 이런 공상인지 환청인지 그 때문에 골머리를 앓을 테니까 말이다. 하긴 줄거리 없는 소설 짜증나니까 그럴 것이다. 뭘 해도 발단 뿐인 연재 마감일, 매번 코너에 몰려서 맷집만 키우니 안 그러게 생겼나. 알 만하다 알만 해.
「이게 까불고 있어, 지가 멍청한 줄도 모르고. 허접한 촌닭이 말이야. 알아들어? 이 바보 같은 놈. 너 아직도 여자라면 껌뻑 죽니? 그저 숙녀라면 사족을 못 써? 누가 사랑에 환장한 놈 아니랄까 봐. 여자를 소개나 시켜주고 생색을 내든 야단치든 하라고? 너 같으면 그러겠냐. 왜 심기가 불편해? 불쾌하겠지 왜 아니겠니. 듣고 있기 썩 거북한 모양이로군. 일하기는 싫고 놀기는 싫증나고. 쾌락은 안 싫증나는데 껀수는 없고. 한심한 허당아 널 보면 생각해주는 내가 답답하다 답답해. 넌 답이 없어. 알아? 알긴 뭘 알아. 어?」
「나도 말 좀 하자! 네 입은 마우스고 내 입은 뭐 새 주둥이냐? 난 뭐 미련곰탱이라도 된단 말이냐? 어? 그러고 보니 말이야, 어? 내 수하에 대기중인 여동생들 그 아찔한 사랑의 차트. 걔네들 늬가 다 빼네갔지? 어떻게 꼬드겼어? 당장 불어. 대체 무슨 헛바람을 주입시킨 거야? 걔네들이 귀신 신나락까먹는 소리에 넘어가든? 아닌데. 그동안 내 환상머신의 신비감에 취해서 딴 건 하나도 안 들릴 텐데. 이상하단 말이야. 하긴 뭐 여기 너랑 나 밖에 더 있냐. 솔직히 말해서 걔네들도 나한테 질리고 나도 걔네 지겨워졌고. 정말로? 뻥이야. 가라 그래. 누가 붙잡는데? 그렇게 갈 사람이면 애초에 사랑학을 가르쳐주지 않은 건데. (절레절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