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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 - 9

from 소설 2014. 7. 19. 12:05

   지극히 교양스럽고 단정하며 꼬셔주기를 바라는 표정의 처자들과 최고급 음식과 실크 팬티에 벤틀리든 잡지에서만 볼 수 있는 클래식카든 요트든 초호화 문명의 이기들도 많았지만, 시원한 바닷 바람이 살결을 간지럽히는 것만으로도 S는 그냥 이대로 J를 1인칭 서술이라는 안타까운 그 길로는 마지못해 보내버릴 수는 없다고 결심했다. "감독님도 여배우들과 막 자고 그러세요?" 같은 말장난을 듣는 에로 영화의 거장과도 같은, 전성기의 알파치노의 카리스마와도 같은, 초대형 로또에 담첨되어 비밀 로또 패밀리에 처녀 참석한 것과도 같은 더없이 격앙되면서도 고조된 기분을 만끽하고 있으니 J가 다시 3인칭 소설을 어떻게든 쓰도록, 어떻게든 발로 쓰든 손으로 쓰든 말빨로 구술하여 속기사가 초딩처럼 기술하도록 만들든, 3인칭으로 소설을 완성하게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
   J는 마티니를 한잔 하면서 슈베르트의 실내악을 들으면서 가만히 생각하다 보니 그게 또 그렇게만 어려운 일도, 절대 불가능한 난공불락의 철옹성도 아닐 것으로 보였다. 엇그제 초안을 작성할 때 잡았던 '뒷사람 음료값 지불하기'를 잡고 끝까지 늘어지는 방법도 있었다. 어차피 구성과 플롯, 대화 그런거는 초짜 삥바리에게는 어려운 것이니까 주제 사라마구처럼 그 도시 시리즈를 만들어 보기로 하는 게 좋을 듯 했다. 주제 사라마구도 정통적인 보통의 소설 방식이 아닌 스타일로 연작을 발표해서 노벨상을 철커덕 덥썩 거머 쥐었다. 거의 절대 아닌 것 같아도 소설가들 다수는 노벨상에 대한 욕심이 있다. 그 말을 기억하자. "나 차 욕심 없어." 유사한 대사도 일상 생활에서 흔히 쓰인다. "...안 부러워.", "난 행복해.", "못 생겼네.", "죽어야겄다."... 왜 그게 나쁜가? 아니다. 적당하면 당연히 좋은 것이고 자연스러운 드라마 대사와도 비슷하다. "좀 더 솔직해지자꾸나... 너도 그렇게 야망이 있는 애다. 야망이 뭐가 나쁘니. 늬가 그걸 인정해야 편할꺼다..." 그게 동기부여고 뻠프질이 되어 점점 좋은 작품들이 꾸준히 나오는 법이다. 세상은 그렇게 돌아간다. 눈먼 자들의 도시, 눈뜬 자들의 도시, 이름없는 자들의 도시... 모두 발단은 if 코딩문으로 시작한거다.
   그렇게 뒷사람 음료값 지불하기로 바톤을 넘기는 이어달리기 옴니버스로 이야기를 만들면 뭔가 작품이 나올 것도 같았다. S는 마음을 가다듬고 조급해 하지 않고 J에게 마법의 공기를 불어 넣고 어떤 풍경, 연상되는 대상들, 의미 있는 지옥의 묵시록 같은 심연을 마주칠 기회를 끊임없이 제공해서 뻗어버리게끔 아니면 지구 바깥으로 튕겨져 나가게끔 만들기로 결정했다. 또한 예전 기록했던 Friendfeed, Facebook page, Blog와 다른 소셜 네트워크 포스트들도 참고해 보기로 했다.

   의욕을 고취시키다 절망하고 다시 시도했다 절망하고 오뚜기처럼 일어났다 좌절하고 그러다가 새벽과 아침에 신체적으로 일어서기를 반복했지만 J는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반 고흐 같은 예술혼은 없지만 베토벤 같은 불굴의 의지는 부족하지만 뉴 키즈 온 더 블럭의 노래 제목처럼 한걸음 한걸음 내딛기로 했다. 그러면서도 고품격 소설 읽기, 찾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글이 써진다는 촉은 어떻게 보면 성기를 맞으면 발끈하는 울버린처럼 욕이 가미된 비꼬고 떠보는 식의 탄을 날리는 화법의 빌미 어린 말이 기폭제가 되는 것도 같지만 항상 그런거 같지는 않고 아무래도 다른 예술 분야보다는 주로 책이 가장 형태가 비슷하니까 촉매제가 되는 느낌이다.

   책. 그래 책. 그 가운데 괜찮은 녀석을 만나게 되면 그는 마치 관록미를 숨길 수 없는 원숙한 기량의 생활 노름꾼과도 같은 몸짓을 보인다. 달걀이 아닌 메추리 알을 쥐는 듯 손을 오므려 쥐고서 가운데 손가락만 손바닥 안쪽으로 약간 덜 당긴 채 책 표지에 대고 노크를 한다. '괜찮은데..'라면서 취한 그 포즈가 꼭 자신에게 패를 주라는 신호처럼 보인다. 똑똑 그리고 똑똑. 첫번째 똑똑 뒤에 두번째 똑똑. 왜 두 번 일까? 세 번도 아니고. 사이클 대회에서 1등의 모든 스포츠 선수들의 세러모니도, 샤워실에서 거울을 보고 자신의 몸매와 얼굴을 감상하는 미남도, 술을 마시기 전에 술이 차 있는 술잔을 테이블에 두드리는 마초도 모두 2번 두드린다. 그렇다고 굳이 오랑우탄인가 고릴라인가가 가슴을 몇 번 두드리는가를 구글이나 야후에서 검색해 보고 싶은 열성까지는 없다. 그런데 수컷만 그러나. 그 궁금함은, 호기심은 고이 모셔 놓고 나중에 천천히 알아가는 게 좋겠다. 남자는 3가지 부류가 있다. 첫째, 세상 모든 여자를 단 10분 안에 꼬실 수 있는 남자. 둘째, 말빨로 꼬시기는 하는데 10분이 아니라 10일, 1달, 1년이 걸리거나 돈을 그냥 일확천금을 들여야 꼬시는 타입. 셋째, 나머지 남자.
   책. 그래 책. 뭐랄까 여러 책 가운데서 품위 있는 소설을 읽으면 자기도 모르게 자극 받는다고나 할까, 괜히 잘 살고 있는 일반인의 마음을 마구 뒤흔들어 놓는다고 해야 할까, 그것도 아니면 괜히 생트집을 잡도록 사람을 광인으로 몰아가는 것일까. 바로 이렇게 말이다. 아니 이 인간은 생긴거는 전혀 딴 판인데 어떻게, 어떻게... 이거봐 이거봐. 부모가 뭐 있네, 성장 환경이 기가 막히군, 작가라는 사람이 소설가라는 작자가 변호사 자격증을 그냥 운전면허증 획득 하듯이 따고, 원래 허벌라게 겁나게 징그럽게 똑똑한 인간이구먼, 이 인간이 소설가가 되어서 다행이지 만약 그 업계로 나갔으면... 어휴 생각만해도 끔찍하다-까마득하다-아주 아득하다, 저 양반은 원래 돈이 많아서 취미가 책 내기야, 얘는 인생 자체가 파란만장하니까 개인적 체험 만으로 쓸거리가 넘쳤네, 오 이런... 이러다가 욕만 하다가, 험담만 하다가 소설 끝나겠다. 그만 자중하고 우아하게 기품 있는 작품을 정말 쓰기 시작하겠다고 J는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범죄자는 범죄 현장에 다시 출몰한다는 정설처럼 결심했다.
   안 중요할 수도 있지만 일단 혹시 모르니 하나를 던져본다. J는 방금 최고를 질투해서 상위 클래스만 헐뜯었다. 하지만 S가 경험한 세상에서는 최고 뿐만 아니라 위 아래, 앞 뒤, 이쪽 저쪽 그 모두를 가리지 않고 물어 뜯는, 오빠라는 단어를 어떤 목소리에 뭐한 어조로 듣게 된다면 미쳐버리는 위인들은 상위 클래스만 헐뜯지 않았다. 그래서 가끔은 현실의 공간에서 그들끼리 진짜 물어뜯기도, 뜯기기도 한다. 세상 참 웃기다. 험담에 대한 얘기가 나왔으니 잠시 쉬어간다. 엉덩이가 완전 납짝한 어떤 젊은 가수는 이 세상에 비밀이란 없으니까 남의 험담을 할 때는 자기 집에서 혼자 이불을 뒤집어 쓰고 정말 시원스레, 시원스레 막 소리 지르면서 해소한다고 한다. 이거도 일종의 퍼포먼스인가. 그러고서 나중 그 험담의 대상을 만나면 괜히 미안해진다나. 그런데 약간 다르긴 하지만 이런 험담을 대놓고 공개적으로 퍼트린다면 그건 또 유머가 된다. 귀가 막힌 채로 웅변만 하는 남성의 얘기도 텔레비전 코메디 방송에서 편집되면 유머다. 완전 재미있다. 정말 미세한 차이다. 극도로 유명하고 불세출의 개그감으로 코메디의 화신 급인 1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어떤 개그맨은 다른 동료 개그맨에게 방송 중에 이런다, 대놓고. "나는 늬가 못 우끼면 기분이 좋아."
   J가 나중 미안하고도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애틋한 감정을 점잖게 유감스러운 표정으로 드러내야 할 사람이 소설가만 있을려나. 그러나 그런 걱정은 아무 쓸모가 없는 사서 걱정하는 오지랖일 뿐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만날 일도 없을 것이고, 아예 없는 얘기는 하지도 않은 데다가, 그 험담은 반어법이었으며, 또한 이건 S가 쓰는 소설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그 분들을 존경하고 좋아하기 때문이다. 무슨 일인지 잘 예측은 안되지만 그런 일은 명백히 인간 세상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불가능의 영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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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 - 8

from 소설 2014. 7. 19. 11:43

   그녀는 보통 말을 하는 기회가 거의 없다. 디자이너 캘빈 클라인과 배우 케빈 클라인이 먼 친척뻘일까, 소설가 더글라스 케네디가 그 케네디 가문과 동일한 성씨인가. 이런 아무렇지 않은 스몰톡을 나눌 수 있는 기회 말이다. 혼자 살고 있고 혼자 일하고 또 혼자 거의 대부분의 여가를 즐기기 때문에, 그런 생활이 오래 되었기 때문에 무척 자연스러운 일이 되어버렸다. 현대인으로써 느낄 수 있는 그 어떤 쓸쓸함을 의심할 단계는 이미 옛날에 지나가 버렸다. 가끔 살고 있는 도시 인근의 대학교에 출강할 때 학생들과 몇 마디 말을 섞을 때를 제외하고는 TV나 극장에서 그리고 카페에서 말소리를 드는 것으로도 크게 생활 소음의 부족함을 별로 탓할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보통은 친구처럼 언니처럼 스스럼없이 편하게 지내는 어느 사설 미술관장의 외부 손님 접견실을 틈틈히 작업 공간으로 사용하곤 하였지만 그날은 강변에 위치한 카페의 창가에서 일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카페에 들렸다. 지금 번역하는 책은 줄리언 반스의 Arthur & George다. (섬이름을 무명 표기하기로 한 원칙에 따르자면 한쪽에서는 미국식 영어로 번역한다고 해도 될려나) 그런데 그 카페에서 말로만 듣던, 읽기만 했던 뒷사람 음료값 지불하기라는 황당무계한 사건의 주인공으로 본인이 당첨되고 말았다. 뭐랄까 좀 더 선진화된 창업에 최적인 도시라면 그다지 어색하지 않을 테지만 이런 회색도시에서 그것도 여자 로빈슨 크루소 같은 일이 자신에게 닥치고 나니 드라마에서만 보았던 일순간 외부 소음이 차단되고 지난 기억이 소중한 추억이 거리의 드라이브 중인 차안의 사람이 바라보는 가로수처럼 스르륵 스르륵 스쳐 지나갔다. 이건 겸연쩍다고 해야 하나 기쁘면서도 슬픈 낭만이라고 해야 하나, 부끄러움이나 창피한 그런 단순한 감정이 아닌 중학생이 버스나 지하철에서 선뜻 나서서 자리 양보를 할까 말까 망설이는 그 안절부절한 떨림의 기분에 그나마 가깝다고도 짐작할 수 있는 감정을 느꼈다.
   그렇지만 이럴 때도 뾰로통하면서도 세련되게, 절제된 미니멀한 그리고 의연한 태도로 최대한 자연스럽게 '뭐에 뭐를 타서 어떻게 꼭 머그 컵으로 주세요.' 라며 평소와 다름없이 주문했다. 그날 따라 카페 창 밖의 풍경은 왠지 더더욱 다정해 보였고 모든 사람들은 무척 행복해 하는 모습이었으며 어떤 알 수 없는 활력과 자신감마저 파릇파릇 돋아 올라 나비가 나풀거리며 주위에서 춤을 추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녀의 성생활은 울트라마린 빛깔의 베일에 감싸여 있다.
   삶은 어떤 우연의 연속인가 보다. 그 뒷사람 음료값 지불하기의 의뢰인은 다름 아닌 A가 대학생 때 단 4명이 전부였던 독서 클럽에 속해 있던 한 남자였다. 그의 이름은 토머스. 그는 스위스 취리히에서 태어났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수학했으며,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에 능통하다. 런던, 파리, 베를린, 뉴욕, 몰타 섬을 오가며 살고 있다. 그는 한때 극단을 운영하며 직접 희곡을 쓰기도 했고, 이야기체의 여행 책자를 쓰다가 소설 집필을 시작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오지부터 시작해 파타고니아, 서사모아, 베트남, 이집트, 인도네시아 등 세계 30여 개 나라를 여행했다. 별명은 페이지 터너다.
   다음은 J의 고백. 이런 그러고 보니 개연성도 없고 재미도 없고 말도 안되는 데다가 아무래도 참고했던 실존 인물들로부터 거액의 소송을 당하는 일은 절대 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의 생각에는 팔자 한 번 고쳐 볼려고, 짭잘한 여비 한 번 마련해 보려고, 나름 Gap Year라고 폼 한 번 제대로 잡아볼려다가 쫄딱 망하는 수도 있을 것만 같은 불안에 휩싸였다. 토마스의 약력은 알랭 드 보통과 더글라스 케네디의 약력을 혼합해서 요약한 것이다. 원래는 A와 토마스를 재회시켜서 공동 작곡, 공동 작사처럼 공동으로 소설을 집필하게 할려는 의도였다. 남자 또한 저명한 문학 및 철학 교수인데 유독 소설을 못쓰는 인물로 설정하고.
   J는 하다 하다 여기까지 왔다. 그는 왜 사람들이 1인칭으로 소설을 쓰는지 이제는 아주 조금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았다. 어차피 초반의 분량은 조금 뽑았으니 1인칭으로 이어서 쓰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해 보고 우선 조금 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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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 - 7

from 소설 2014. 7. 19. 11:29

   S는 J가 비록 가상 인물이긴 하지만 어느새 정도 들고 배우들 메쏘드 연기처럼 감정이입도 어느 정도 되고 게다가 뭔가 설명하기 어려운 아스라이 어떡하다가 얼렁뚱땅 그가 본인의 분신이 되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일단은 J에게 비공개 자유시간을 주고, 그동안 운동도 하고, 영화도 보고, 서점과 도서관, 동물원에도 들릴 수 있는 아주 바람직한 여가 생활을 내어주었다. 그 즉시 S는 자신이 좀 그럴싸 하고 썩 나쁘지 않은 어떻게 아주 잠깐 0.5초만 (절대 1초를 넘기지 않게) 흘낏 보면 자상하게도 (안 좋게 말하면 호구?) 생긴 것 같은 안도감과 약간의 흥분감 그리고 무엇보다 가끔씩 찾아오는 알 수 없는 부담감을 떨쳐 버린 내면의 안정감을 맞이한 것 같았다. 뿐만 아니라 예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하드-보일드 문체에 대한 존경심이 부쩍부쩍, 새록새록―스멀스멀은 적절한 표현이 아닌 듯 하다―샘솟아 오르는 마음을 짐짓 모른 채 할 수 만은 없었다. 그러고 보니 예전 직장 동료가 해준 얘기가 생각난다. '이쪽 친구들은 꽈배기 문양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배배 꼬는 화법, 원래 남자들은 싫어한다. 원래 그런지 어울려 살아야 해서 그런지 여자들은 보통 나이가 들면서 드세지고 다혈질이 된다. 좀 더 계몽적으로 쓸 껄 그랬나 하는 허황된 생각도 들지만 계몽... 위험한 단어란 것을 잘 알고 있다.
   설마 그럴리는 없겠지만 전설에나 살고 있는 신들을 제외한 누군가가 지금 이 모든 상황을 엿보는 게 아닌가, 아니 그냥 대놓고 전지적 시점으로 내려보고 감상하고 재미있어 하면서 때로는 감탄하고 때로는 비웃기도 하는 건 아닌가 하는 데로 생각이 옮겨졌다. 그 생각이란 녀석은 가만히 있는 적이 없다. 이게 영화야? 왠 뚱딴지 같이 막 어딘가에서 불규칙적으로 미세한 소음도 들려오는 것 같다. 이젠 정말 미친걸까? 그건 아니다.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일단 J를 잠시 풀어줬드니 S도 한동안 여행자도 꼬시고 호텔 여직원들의 눈총을 더 애달프게 만들어서 뭐라도 이끌어내 보고 낚시와 그리고 인근 무인도 기행, 미술관 유람등을 하면서 창작의 부담감을 조금씩 덜고 있는 듯이 보였다.
   실 생활에서는 방학 기간이 한두달이고 취업 준비 기간이 어느 정도 되며 큼직큼직한 특종이 유명 웹사이트들에 공개되는 대충의 기간이 짧으면 얼마, 길면 어느 정도 된다고 알려져 있다. 정작 요점은 무엇이냐면 그곳에선 그렇지만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에서는 단 몇 초면 충분하다. 너무 빠르니까 스토리를 요약하고 넘어가야겠다. 벌써 하품하고 나가 떨어진 독자가 보인다. 머리털이 빠싹 선다. 우선 S라는 인간이 있는데 S가 시간과 자본의 여유가 생겨 어느 섬으로 소설을 쓰러 갔다. 초특급 호텔에서 팔자 좋은 생활을 하면서 J라는 인물을 소설로 만들어낸다. 그 J라는 인물이 글이 안 써진다고 또 이빨만 엄청 까드니만 이제는 진중하게 뭔가 무서운 표정으로 혼자 나름 구상이란 것을 하기 시작했다. 짧으니까 굳이 요약하지 않아도 되는데 괜히 썼다.
   참고로 글의 수준이 왜 이렇게 낮아졌냐 하면 가벼운 소설을 좋아하는 중고딩과 젊은 친구들을 위해서다. 어 그런데 이 말은 어패가 있다. 나이 어리면 모두 높은 수준의 글을 안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이 글은 이미 애초부터 (수준 자체를 거론할 깜은 안되지만) 고품격을 지향했으니까. 아무튼 J가 하고 싶어하는 얘기가 구상 단계를 지났다.

   J는 주인공을 하나 만들었다. 이니셜 A로. A의 성별은 여자다. A는 여대생이나 중년의 나이가 아닌 그 중간에 위치한 매우 지성적인 삶을 살아왔을 것 같은 외모의 소유자로 일단 겉모습부터 눈물 겨운 사랑을 한두 번 해본 듯한 막연한 호기심을 품게 만드는 여인이다. 어렸을 때는 다소 아니 매우 머슴아이처럼 생겨서 곧잘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이 곁눈질과 함께 5m 가다가 한 번, 10m에 또 한번 뒤돌아 보았고 어쩌다 집에 들린 여자 외판원이 남자로 오해 하는 경우도 있었으며 3:3 미팅에서 남자들이 갸우뚱 하면서 여자가 맞나 오해하는 일까지 있었다. 젋었을 때는 일순간 또는 길지 않았겠지만 상류층 젊은이들이 그 눈을 마주보면 사랑의 열병이 계절 동안은 간다고 해서 그녀는 선글라스 매니아가 되었다. 즉, 상류층 여사님들이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는, 나름 그녀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그쪽에서는 어떻게 유명인사가 되어 있었다.
   그런 그녀의 핸드폰은 2대다. 첫째, 갤럭시 라운드. 최근 아마존 폰으로 바꿀까 생각 중이다. 갤럭시는 공적으로만 사용하고 오픈된 소셜 네트워크와 사진, 메모등 몇가지 기능만 이용한다. 둘째, 아이폰. 사적으로 사용하는데 전화번호부에 등록된 사람의 숫자가 적을 때는 24 많을 때는 30 초반까지만 등록된다. 아, 첫째-둘째... 그거 자제하겠다. 만일 A가 남자라면 정말 까탈스러운 재수 없는 까고 싶은 도시의 남자일지도 모르지만 다행히 그녀는 지갑 속에 들어있는 지폐를 항상 앞뒤, 얼굴 모양, 구겨진 정도를 정렬하기 좋아하는 여자다. 다행이다. 그녀는 거의 모든 것을 기억하는, 피곤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 운명을 타고났다. 한 번 읽은 글, 전부 다 기억하는 포토그래픽 메모리. 한 번 엿들은 말, 모조리 완벽하게 재생할 수 있다. 엿들을 의도는 없을 테지만. 전생에 공주였을지도 모른다.
   세상에 알려진 그녀의 직업은 좀 재수 없는 번역가다. 그것도 초일류로 알려져 있어서 모국어를 제외한 5개국어에 능통하다. 보통 정상급 번역가가, 최정상급 동시통역자가 다루는 수준으로 그 5개국어를 떡 주무르듯이 능수능란하게 구사한다. 번역량도 어마어마해서 제 몇 회 (당신이 살고 있는 국가명) 번역대상도 받았다. 글재주도 상당해서 시대와 대륙을 넘나드는 정도인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목표했던 첫 소설의 완성이 계속 늘어지고 연기되어서 업계 차원에서까지 상당히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는 점이다. 그녀의 단문 만을 꼬박꼬박 챙겨 읽고 기다리는 팬들이 있는 반면에 너무 고품격 수준, 소설의 층위를 따지다 보니까, 자꾸 소설 '여자를 안다는 것'에서 존 르 카레의 신작을 정보 요원들이 돌려가며 즐겨 읽던 장면이 떠올라 쉽게 작업에 착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번역한 책이 몇 권이고 읽은 소설은 얼마이며 쓴 글은 물론 삶의 경력으로 따져도 책 몇 권이 필요할 텐데 말이다. 유령작가라는 영화도 감명 깊게 봤다. 그러면서도 에세이 책만 내고 소설은 발표하지 모한 채로 시간이 너무너무 흘러가 버렸다. 설사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겠지만 어떤 독자들은 이렇게도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건 아마도 어감의 격을 너무 못 견디게 사무치도록 민감하게 느끼는 것 때문은 아닐까 하고. 커트라인에 관한 좋은 인용문이 있다. 

안나 카레니나/톨스토이
p.1-265 얘기는 품위 있게 시작되었으나 너무 지나치게 품위 있었기 때문에 이내 또 막히고 말았다. 그래서 결국 결코 바뀔 일이 없는 확실한 방법인 험담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p.1-368 그는 언제나처럼 프랑스어로 말을 이었다. 그들 사이에는 못 견디게 냉정한 느낌이 드는 러시아어의 당신(브이)이라는 말과 너무 친밀해서 위험한 너(트이)라는 말을 피하기 위해서. 

   참고로 이 글은 완전 허구다. 만일 사실과 우연히 일치하는 부분이 있을 경우 그것은 완벽한 우연이며 작가의 책임은 없다는 것을 밝힌다. 어 느낌이 신종 파파라치 소설인가. 이 책이 안 팔려도 기분이 그렇겠지만 잘 팔려도 것 참 썩 좋은 일은 아닐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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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 - 6

from 소설 2014. 7. 19. 11:04

   보통 뉴스와 다큐멘터리와 소셜 네트워크에서 좀 더 비중을 늘려서 다루어 주었으면 하는 심정이 J에게는, 청소년과 보통 사람들에게는 없잖아 있다. 실은 비중이 문제가 아니라 잘 찾아보기 귀찮고 힘들고 지나쳐 가는 경우가 맞겠지만 말이다. 영화감독, 방송국 프로듀서, 패션 디자이너, 프로그래머 등은 비교적 많이 알려져 있다. 하지만 위조 여권, 이중 스파이, 정보단체 남미 지국장 같은 경우는 아니다. 그래서 영화가 있는 것일까. 항상 그 실존 인물을 직접 만나보라, 까레라와 레인지로버 롱휠베이스와 마칸을 모두 굴리며 사는 사람의 얘기에 귀 기울여 보고 싶지만, 책에서 "너무 일찍 자신의 인생을 결정하지 마라. 스무 살에 평생 너를 묶어 둘 어떤 일을 시작하지 마라." 이런 문장을 읽지만 많은 사람들은 청소년들도 어른들도 좀 덜 신중하게 삶을 살아간다. 그러니까 언제 어느 때나 행복이 어쩌네, 무엇이든 미쳐야 하네, 인생을 뭐해라...라는 책들이 서점가 베스트셀러 단골 메뉴로 등장하고 사람들이 돈, 돈, 돈 하는 이유가 그것이며,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말빨에 민감하고 절대 주의해야 하는 게 다름아닌 이 세상의 여러 속도들이다. 결혼을 이혼을 또는 연애를 한 번, 두 번, 세 번...하는 것은 조금 다른 문제다. 아무튼 소설 쓰느라 책을 읽지 않으니까 글의 수준이 이 모냥이다.
   소설 쓰기. 어떻게, 왜, 무엇을? 그냥 막 쓰는 게 정답이다. 보통은 그래야 하지만 때로는 (가끔만) 부모 말은 듣지 않아야 인생이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푸는 열쇠가 되기도 한다. 대략 소설가들은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치밀한 구상과 방대한 자료 조사 후 정교하고 섬세한 집필 과정에 어마어마한 시간을 들인 후 다시 뒤돌아 보고 퇴고에 퇴고에 퇴고의 과정을 거치는 타입. 둘째, 영감이 떠올랐을 때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일사천리) 쭉 써가는 부류. 나중에야 그것이 영감이라고는 하겠지만 그건 단지 실마리 라거나 사소한 궁금함, 초딩 같은 호기심, 보잘 것 없는 몽상인 경우도 많을 테지만 그 영감은 어쨌든 두번째 가지에 속한다. 어찌됐든 바흐의 초기 작품을 듣는 사람, 거의 없다.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1번 교향곡? 안 들어봤지만 형편없을 게 뻔하다. 아니 예상한다. 실은 그랬으면 좋겠다.
   그 전망 좋은 어느 날 S는 어느 전기차를 타고 호텔 건너편 이름 모를 파라다이스로 드라이브를 갔다 와서는 잠시 어렸을 적 옛 생각에 빠져보았다. 그 때는 TV 단막극을 보고 혼자 단꿈에 빠져 제빵 학원에 다니면서 프랑스나 이탈리아 같은데서 쉐프를 하고 있을 먼 미래를 그려보기도 했고(실은 동네에서 빵집 사장을 하고 살면 흥미로울 듯 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 나이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는 대개 이런 공상에 대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던 게 기억났다. 많이들 서로 딴 얘기하는 듯이, 각자 모두 한꺼번에 말하고 듣는 사람은 결국 하나도 없이, 우선 술집 사장을 할꺼야, 그래서 돈을 좀 벌면 건물을 하나 사는거지. 그 후 1층엔 서점을 내고 2층엔 뭐, 3층엔 뭐... 제일 꼭대기 층엔 당연히 자신의 집무실이 위치 하고. 실제로 이 꿈을 적당한 스케일로 실현한 사람들이 드문드문 존재한다. 남자들에게는 이런 게 로망일까. 그 가운데 상위 몇 퍼센트 남자들도 보통 사람들과 하나도 안 다르다. 예쁜 부인과 사랑스러운 아이들 하며 모든 것을 다 갖추었어도 끊임없이 외로움을 타고, 2세의 덜 명민한 IQ의 원인에 대해 분석하기도 한다. 마초성 또한 당연히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완벽히 간직한 채로. 사람 사는데도 거의 많이들 비슷하지만 사람도 그렇다. 
   소설가들이 왜 옛날 이야기를 하는지 알 것 같다. 왜 소설가들이 첫 작품에 자신의 경험을 쓰는지, 거장들이 직접 경험한 것을 그렇게들 쓰라고 하는지 알듯 모를 듯 하였다. 이건 더 쓰지 않아야겠다. 재미없다. 여기서 잠깐, 읽는 중간 S와 J를 잘 구별하시기 바란다. 언젠가 그 둘이 합체 할지도 모를 일이니 말이다.
   뭔 얘기하다 여기에 이르렀지. 아 그렇게 S는 J가 뭔가 좀 더 새로운 일을 체험하게 만들고 싶은 데로 집필 의욕에 대한 촛점이 옮겨감을 느꼈다. 이 글의 화자는 꼭 지팡이를 짚으신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한 노신사를 닮았다. 평생 남장을 하고 다녔던 어느 여류 소설가처럼. 왜 그녀가 평생 남장을 하고 살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녀는 실존 인물이었다. 이거 이거 소설의 수준이 별 1개나 가능할런지 의문이다. 아무래도 어떤 독자께서는 1인칭 소설의 어떤 단어처럼 여기에서는 유독 그 단어가 많구나 하시면서 눈을 게슴츠레 뜨며 변죽을 올릴 것이 뻔하니 이마에 땀을 쭉나고 호흡이 가빠진다.
   J는 이렇게 생각했다. 해외에는 안 먹히지만 국내용으로 출판사와 독자들 모두 함께 흐뭇하게 만족할 만한 베스트셀러는 남들이 모두 쓰고 있다. 문학적으로 널리 공인 받고 알려져서 만인의 존경까지 받는 문학 작품 또한 전업 작가들이 독점한다. 그렇다면 색다르게 영혼 체이지를 주제로 이 소설을 풀어 가볼까? 사람은 그냥 타고난 데로, 생긴 데로 사는 게 낫다. 그래서 일단 닥치는 데로 써서 분량만 채우리라고 다짐했다. 그러기 위해서 고품격 소설에서 삘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통속 소설도 B급 소설도 참고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가장 훌륭한 인문 교양서의 고도로 순수하고 극도로 집약된 밑줄 긋기를 모아, 모아, 모아서 소설체로 승화시키는 방법도 있겠지만 일단 모토는 정해졌다. 닥치고 쓰기, 일명 닥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J는 일단 소셜 네트워크 업계에서 조금 일해 보았던 경험을 살려 본인이 부러워하고 멋져 보이고 공인으로 인정받으면서도 뭔가 도전적인 인생 행보를 보여 주고 있는 인물을 설정해서 그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 이야기는 이렇다. 여기 주인공이 있다. 실제 이름도 교우 관계도 출신에 대한 기본 정보도 세간에 알려진 것이 없다. 다만 미디어와 소셜 네트워크의 고급 리크루터들 사이에서는 이미 불세출의 기인으로 알려져 있으며 간단히 P라고만 불리며 그의 최근 경력에 대해서만 노출되어 있다. 아니야, 아니야. J는 이거도 별로 재미있지도 않고 몰입하게 만드는 그 어떤 요인도 갖추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그가 잠자코 곰곰히 의자에 앉아서 TV에서 봤던 사색하는 듯한 꽤 괜찮은 포즈를 취하고서 드립 커피를 커피 광고에 나오는 배우처럼 자세를 잡고 한 잔 하면서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생각해봤다. 계속 생각만 해. 꼭 그 실마리가 약속된 것처럼 풀릴 것이란 듯이. 그럼 어떡하지, 어떡하지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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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 - 5

from 소설 2014. 7. 17. 16:36

   갑자기 어느 영화의 주인공이나 꿈에서나 일어날 법한 놀라운, 정말 까무러칠 만한 일이 벌어졌다. 그 믿기지 않는 영감이 떠오른 찰나 J는 자기 볼을 오른손으로 아니 왼손으로 꼬집어 보았다. '뭐야 이거, 어떻게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이와 같은 나레이션과 함께 J는 자연스럽게 대중의 열광을 팬들의 반김을 아는 체 하는, 화답하는 연예인처럼 스스럼없이 그냥 아무 이유도, 과정도 없이 한 편의 시가 머리 속에 블라블라 떠오르기 시작했다. 평범한 본인의 선홍색 입꼬리가 쪼커처럼 변하고 마술처럼 한 편의 시를 소리내어 낭독하는 데에도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다.

흔히 뱃사람들은 장난삼아
거대한 알바트로스를 붙잡는다.
바다 위를 미끄러져 가는 배를
항해의 동행자인 양 뒤쫓는 한가한 바다새를.

갑판 위에 내려놓으면, 이 창공의 왕자도
어색하고 창피스런 몸짓으로
커다란 흰 날개를 끄는구나.

이 날개 달린 항해자는 그 얼마나 어색하고 나약한가!
한때 그토록 멋지던 그가 얼마나 가소롭고 추악한가!
어떤 이는 담뱃대로 부리를 지지고,
어떤 이는 절뚝 절뚝, 하늘을 날던 불구자 흉내를 낸다!

시인도 폭풍 속을 드나들고 사수(射手)를 비웃는
이 구름 위의 왕자 같아라.
야유의 소용돌이 속 지상에 유배되니
그 거인의 날개가 걸음조차 방해하네.

   이제 J는 도파민이 솟구치는 황홀경에 이르러 이루 말할 수 없는 신비스러운 도취경에 휩싸이고 말았다. 어이없게도 단 한 번도 원하지 않고, 그 언제라도 트위터로 읽는 것 만으로 만족했는데 도저히 수십 년 간 수련한 중견 시인의 능력을 무협기인의 무공처럼 단번에 쪽, 쏙 빨아들인 것처럼 갑자기 그냥 그렇게 시경의 능력이 당혹스럽게 생겨버린 것이다. 그럼 이제 베스트셀러 시집을 내고 또 내고, 돈도 많이많이 벌고, 유명해지고 팬클럽은 물론 페이스북 페이지도 만들어야 하고 묻혀 있던 트위터에도 유명인 계정 인증 마크가 붙을 앞날이 가슴 속 시원히 훤하게 상상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시를 모두 읆고 나자마자 J는 사자후를 내뱉었다. 그럼 그렇지...  그 시는 그가 십대 시절 외우고 있던 단 한 편의 시였던 것이다. 상황이 불안정하니 뭔 개 풀 뜯어먹는 일이 다 생기는구나 하고서 피식 웃고 말았다. 그저 단순히 나이와 체념은 비례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 어떤 사건과 사기와 뉴스에도 그저 의연히 침착하게 이성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것을 시느브로 깨우치는 것일까. 어쨌든 J의 의식은 또 차츰차츰 다른 위치와 특이한 공간으로 옮겨가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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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 - 4

from 소설 2014. 7. 17. 16:26

   J는 마치 자신이 가택 감금된 상태로 영화 혹성탈출(Rise of the Planet of the Apes , 2011)처럼 원래의 상태보다 약간은 불안하고 조금은 이상하면서 뭔가 알 수 없는 고양된 기분의 상태에 이르러 있다고 느꼈다. 지금은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읽고 있는데 그나마 자신의 귀 모양이 멀쩡한 것에 대해서 스스럼없이 인정하기에는 간지러운 미세한 안도감을 품으면서 갑자기 모차르트의 40번 교향곡과 K.423번을 듣고 싶어졌다. 그는 3.5류 소설처럼 지휘자가 뭐하고 쾨헬 넘버가 어떻다는 얘기는 절대 일부러 하고 싶지 않았으나 잠재의식의 한 공간에서는 알 수 없는 어떤 예감이 꿈틀하는 것을 마냥 모른 체 할 수 만은 없었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 같은 본인의 복사판이 이렇게 소리치는 것 같았다. 너가 아무리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억지로 쓴다 할지라도 그것은 어쩔 수 없이 절대 고품격의 반대편에 위치할꺼야. 3인칭이라고? 모양만 3인칭이지. 너도 완전 초심플한 깍뚜기 떡대야. 이 소설이 나는, 나는, 나는...과 뭐가 달라? 설정, 줄거리, 문체, 반전, 머머주의... 아무 것도 없잖아. 이 멍청한 놈!
   그렇게 음악을 듣다 보니 안 그래도 불안정한 기분이 더 이상해졌다. 그러다가 막 혼잣말을 지껄이기 시작했다. 아니 도대체가 말이야, 어디 문예창작과 학생도 아니고, 문학 동아리 고딩도 아니고, 이거 뭐하는 짓이냔 말인가. 맨날 책 읽고 블로그 쓰고, 고품격 소설을 찾는다고 돈벼락을 맞는 것도 으리으리한 자동차를 골라타는 것도 아닌데 이거 정말 뭔 한심한 수작이냔 말이다. 그래서 그는 결국 생각이 그쪽으로 옮겨갔다. 책만 읽지 말고 책을 써서 미스테리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여행 경비를 마련해 보자고,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 사는 동안 때로는 무모한 도전을 하는 날이 오게도 마련이라고 일반인 특유의 합리화 공상을 하기 시작했다. 그럼 그렇지.
   물론 어찌어찌하여 책이 오프라인으로 발표된다고 치자. 그럼 그걸 누가 사겠나. 설마 뭔가 영화에 나오는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사람들이 이상해져서 이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른다고 치자. 그럼 당연히 교묘하고도 완벽하면서 약간은 일부러 빈틈을 보인체로 변장하고서 서점으로 달려가 베스트셀러 코너에 놓여진 자신의 책을 곁눈질하는 코메디 퍼포먼스는 하지 않을 것이다. 개봉관이 아닌 온라인 발표되는 영화의 주인공도 같은 생각을 할 것만 같다.
   막상 J가 여러 편도 아닌 한 편의 소설을 쓸려고 생각하니 도무지 뭘 써야 할지, 어떻게 써야 할지, 왜 쓰는지...라고 생각했다. 여행 경비를 마련한다는 '어째서'에 대한 이유는 확실하지만 바로 방법이 문제였다. 언제 소설 쓰는 법 같은 책을 보거나 문화 강좌를 들어본 적도 없고, 드라마 작가, 순수문학 소설가, 3류 소설가, 에로영화 시나리오 작가, 무협소설가는 커녕 그럴싸한 직업이나 특별한 재주를 가진 친구조차 단 한 명도 없었다. 핸드폰 연락처들도 비리비리하다. 굉장히 막막했다. 완전 막연해서 허무했다. 다른 일반인 또한 옛날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많이 그랬을, 그럴 것이라 짐작했다. 그렇다고 그가 그런 골 때리는 본인 능력치를 초월하는 시도를 해볼려고 생각하지 않았던 건 아니었다. 다만 어차피 시도할 만한 수준이 안된다고, 해봐야 뻔히 실패한다고 머리 속에서 모두 셈을 마무리했던 것이다. 하지만 댄 에리얼리의 어느 책에 나온 '어차피 그렇게 된 거 효과'를 건전하고 밝고 자신있게 긍정적으로 시도해 보고 싶은 마음이 아예 없었다고 무작정 부정할 수 만은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20년 전에 읽었던 소설들도 왠지 도움이 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헛생각은 그만하고 이제 진짜 써야겠다고 자세를 고져 잡았다.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J는 정신병원에 갇혀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왜, 누구에 의해서, 무엇 때문에, 그곳에 언제부터 있었던 것인지도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또한 일단 정신병원으로 알았으나 꼭 그곳을 정신병원이라고 부를 수 만도 없었다. 그곳은 영화 큐브 (1997) 같은 공간일 수도 있고, 비밀 지하 기지, 지구 내부의 미지의 공간일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J는 이렇게 생각했다. '나는 미치지 않았어', '이건 현실이 아니야', 우리는 당연히 S가 이 상황을 연출했을 것으로 능히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그대 독자여, 주의력을 떨어트리지 마시고 애완견을 어여삐 안아 들듯이 이 소설을 집어던지시는 마시라. 카프카, 까뮈의 작품을 읽드래도 세간의 평은 다를지라도 사람들 혼잣말은 거의 다 똑같으니까! 그 순간 갑자기 문안개가, 푸르스름한 정체불명의 연기가 사방에 피어 올랐다. 그리고 저 멀리 문이 하나 나타났다. J는 다른 도리가 없이 그 문으로 다가갈 수 밖에 없었다. 결국 그는 그 문을 열고 그 안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개꿈이었다. 어떤가? 포스트모던 소설의 분위기와 흡사하지 않은가? 누보 로망, 그냥 누보 로망일 뿐이다.
   J는 어느 날 요상한 꿈을 꿨다. 흑백이 아닌 완전 번쩍번쩍 컬러풀한. 꿈의 내용은 이렇다. 


   Friendfeed를 보다가 Veronica Belmont 피드를 보고 괜찮은 게 있길래 Twitter에서 찾아 Retweet을 했다. "할머니가 이런 얘기를 해주셨다. 남자를 알아볼려면 그 사람의 글을 보라... 이러쿵저러쿵" 그러고 나서 집에서 소파에 거만한 자세로 앉아서 영화를 보기 시작한다. 영화를 보기 시작한 순간 갑자기 친구에게서 등산가자고 전화가 온다. 친구 만나러 걸어 가고 있는데 공원에서 Veronica Belmon이 야구 캐치볼을 하고 있다. 또 다른 인터넷 피플 유명인은 베드민턴을 치고 있다. 계속 이동한 후 친구를 만났는데 계획을 급변경해서 정신병원 병동에 가기로 한다.
   정신병원 병실에 들어가니 어떤 은퇴한 정보요원 수장과 그 따까리들이 있다. FBI, CIA, NCIS, MI6...이런 비밀단체에서 활동했다는데 외모는 이상하게 깍뚜기 스타일이다. 가볍게 인사 나눈 후 자리에 앉는다. 환자 시트에 드러누운 후 곧 공연이 시작된다. 완전 이쁜 소녀가 와서 바이올린을 연주한다. 소녀는 자신의 엄마가 이 병원에 환자로 입원해 있다고 한다. 완전 이쁘지만 좀 노는 타입으로 보이는데 파가니니를 연주할 때 활에 불이 붙는줄 알았다. 줄리어드 천재 1%가 20년 연주해야 이 수준이 되는데 꿈이니까 가능했나 보다. 
   공연이 끝나고 친구와 헤어진 후 어떤 할아버지의 초대로 마천루 스카이라운지에 올라갔다. 분위기 있는 백발의 노인이 혼자 등을 보이고 서있다. 현실이라면 연극일 테지만 이땐 완전 분위기 있었다. 진짜같았어! 사방이 유리로 되어 있는데 바깥 풍경이 스펙타클하였다. 업계 1위 항공사가 비싸게 구입한 최신기종 여객기와 업계 2위 항공사 마크를 붙인 콩코드등 여러 비행기들이 Air Show를 하고 있었다. Air Show가 끝난 후 불사조 스케일의 큰 학들이 불타고 있는 날개를 휘저으며(불로 이뤄진 날개라 타지 않는다) 글라이더처럼 날고 있었다. 백발의 할아버지가 영화에서처럼 명대사를 읊는다. (뒤돌아 안 돌아섰나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아마 뒷모습만 보인 상태에서 고개만 쓰윽 돌렸는데 살며시 보이는 얼굴이 투명이든가 연한색 마네킹 같은 원목이었던 것 같다. 영화 The Signal 2014 마지막 장면 비슷하게)
"신기하게 까마귀나 까치도 기류를 타고 가끔 올라오지만 머무르지 못하고 바로 내려가버리네."

   그 다음에 바로 J는 꿈에서 깨고 말았다. 그냥 개꿈이었던 것이다. 깨어나는 순간 그 전날 동네 초등학교 운동회에 무작정 놀러 갔다가 무심코 예뻐 보여서 주워왔던 만국기를 입에 물고 있었다. 왜 그런고 하니 아이폰 수면-꿈 어플리케이션을 이용하다가 재미난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어린이처럼 밤에 잠을 잘 때 온 방을 헤집고 뒹굴면서 잠꼬대를 헤댓나 보다. 그런데 왜 이 소설에서는 등장인물 설정이 수많은 평론가와 학자들이 떠들썩하리 빠삭하게 사시콜콜한
것까지 모두 연구 조사하여 낫낫이 비밀 한 점 없이 밝혀내버린 1900년 전후의 예술가의 사생활처럼 가난하냐 하면, 그것은 아마도 S가 인생을 통채로 너무 많은 속임수의 구렁텅이에 빠져버린 채로 살아왔기 때문에, 또한 너무 많은 영화와 드라마의 Don't Trust Anyone 같은 명대사 때문에, 복잡한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그리고 서두에 나왔듯이 독자의 감정이입을 극대화하기 위한 고도로 치밀한 전략 때문인 것이다. 그의 과거는 아마도 마음에 들지 않고 음침한 분위기와 축축한 제반 여건에 쌓여 있었을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현존하지 않는 유명 작가와 예술가들은 거의 엉덩이 반점과 발바닥 흉터까지 죄다 까발려졌다. 앞으로도 학계에서 영원히 연구될 게 뻔하다. 세계 곳곳에서 학사, 석사, 박사 논문과 학계, 연구서, 인문교양서 등등등... 심지어 과거와 현재는 데이터 양의 차이가 적지 않다. 미래는? 그러니 데이브 브룩스나 폴 크루트먼 같은 학자가 예술가가 되지 않고 지금의 분야에 집중하는 것 같다. 남자는, 남자는 사생활을 존중받고 싶어 한다. 감추는 게 많아서일지 모르지만 여자도 조금 그런다. 사람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그렇게 하루가 시작되고 또 하루가 가고 유구한 세월의 흐름 속에 J는 뭔가 삶의 변화가 아주 절실하게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소설은 가방이다. 과하게 여성스런 아가씨는 앙증맞게 작은 가방을 들고 다니지만 심하게 엘레강스한 아주머니는 큰 용량의 에르메스인지 아닌지 잘 알 수 없는 가방을 들고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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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 - 3

from 소설 2014. 7. 17. 15:21

   시원한 바람이 나부끼는 나뭇잎과 모래알을 바라보며 한적한 해변에서 S의 사적 공간에는 생각해보니 딱히 부족한 게 없었다. 청아한 여인네들과 천진난만한 어린이들, 베이지색의 더없이 귀여운 강아지들이 가끔씩 마치 그들끼리 정해진 시간 동안 지나다니기로 짠 것처럼 오가는 가운데 지금 자신 앞에는 최신형 노트북도, 값비싼 오디오도 칵테일도 선그래스도, 리스로 마련한 포르쉐 타르가와 굉장히 맛난 최상류층이 인정할 만한 빵과 커피도 모두 다 준비되어 있다. 단어만 들어도 기분이 좋은 휴양지인데 요트가 빠질 수 없다. 저 앞에 대기시켜 놓았다. 또한 지금 묵고 있는 초신성 호텔의 귀빈용 별관에서 일하는 상냥하고 아름다우며 알 듯 모를 듯 우수에 가득찬 눈빛을 지닌 컨시어지도 꼬셔 놓았다. 참고로 컨시어지는 미모의 지성파 여성이다. 그러고 보니 거의 모든 현대인은 사실 부러운 게 별로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왜 그들은 툴툴 거리냐면 너무 풍족해서는 아닐까란 생각을 해봤다. 그건 아마도 자신의 처지가 너무나도 여유작작해서 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얘기는 한마디로 지겨운 얘기다. 그냥 주기적으로 뉴스와 책과 방송에 쉬지 않고 등장하는 식상한 얘기들이다. 하지만 한 때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유행이었던 적이 있었다. 

4 Hour Week/팀 페리스, p.324 요약.

   한 미국인 사업가가 멕시코의 해안 마을로 휴가 떠남. 부두에서 그곳에 사는 어부를 만나 대화를 나눔.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기 시작함. 미국인이 멕시코인에게 고기를 잡는 데 얼마나 걸렸냐, 더 많이 잡지 그랬냐 그리고 남는 시간에는 뭘 하시느냐 물었다.
멕시코인: "늦잠 자고, 물고기 좀 잡고, 아이들과 놀아 주고, 아내 줄리아와 낮잠을 잔다우. 그러고는 저녁마다 마을을 어슬렁거리다 포도주도 마시고 친구들과 기타를 치면서 놀지. 살고 싶은 대로 살면서 내 딴에는 바쁜 몸이라우."
미국인: "저는 하버드 MBA 출신으로 아저씨를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시간 투자..수익금으로 더 큰 배를... 어획량이 늘어나 배를 몇 척 더...통조림 공장... 제품과 가공, 유통까지... 멕시코시티로 옮겨야 할 거고, 그 후에는 로스앤젤레스 그리고 뉴욕까지 진출하는 겁니다. 뉴욕에서는 유능한 경영진과..."
멕시코인: "그 모든 일을 이루는 데 얼마나 걸리겠수?"
미국인: "15년에서 20년 정도요. 길어야 25년이죠."
멕시코인: "그 다음엔 어떻게 되우?"
미국인: "...때가 되면 주식을 상장한 후 회사 주식을 팔아서..."
멕시코인: "수백만 달러? 그러고 나서는?"
미국인: "그 다음엔 은퇴한 후 작은 어촌 마을로 가서 늦잠 자고, 물고기 좀 잡고, 아이들과 놀아 주고, 아내와 낮잠 자고, 저녁에는 어슬렁어슬렁 마을이나 돌아다니며 포도주도 마시고 친구들하고 기타 치며 노는 거죠···."

   S는 이 이야기를 4 Hour Week라는 책에서 봤고 그 기원과 원형은 또 더 오래되었을 수도 있지만 달라스든 뉴욕이든 어디에서나 한동안 이런 이야기를 남자들은 모두 다 그 출처를 얘기하지 않고, 자기가 멋지게 읊기에만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화자가 말하고 청자가 들을 때 서로 딴 생각한다. 한동안 그 이야기 엄~청 유행했었다. 남자들은 어디서 주워 듣든지, 공부했던 것을 기억하든지, 서점에서 잠시 읽었던지 뭐든지 최대한 많이 알고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고 자신이 그걸 어떻게든 써먹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기가 아는 것만 무한반복 재생한다. 그래서 옆사람보다 많이 아는 것 같다고 얘기하면 완전 엄청 좋아한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고 그냥 그렇게 타고났나 보다. 불협화음과 소음에 둔감하고 청각이 예민하지 않고 남의 말을 잘 듣지를 않는다. 그러고 보면 노화에 따라 청각 능력이 후퇴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짠하고 슬프기까지 하다. 그리고 남자는 거짓말의, 뻥의 진정한 전문가다. 남자는 거기가 뿔룩 튀어나오고 여자는 움푹 깊숙해서 그럴까. 이게 남자다. 바나나는 휘었다. 펜티에 디자인된 문양들은 재미있다. 설마 그대는 그런 타입은 아니라고 믿는다.
   아무튼 S는 가상 인물 J를 마음대로 들었다 놨다, 울렸다가 웃겼다가, 왔다리 갔다리, 빨가벗겼다가 잠꼬대를 시켰다가 술도 가끔 먹였다. 그렇게 S가 J를 모두 다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데서 오묘하고 황당한 그리고 허망하지만 그래도 말은 되는 창조성의 쾌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 맛에 사람들이 소설을 쓰는 것일지도 모른다. 자신은 원래 그렇게 창의적인 천재도, 읽는 것은 모두 외울 수 있는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도 아닌데 참 이상한 일도 다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다가 S는 다시 J를 쥐어짜서 특이한 분위기의 서사를 펼쳐보이는 창작물을 만들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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