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뉴스와 다큐멘터리와 소셜 네트워크에서 좀 더 비중을 늘려서 다루어 주었으면 하는 심정이 J에게는, 청소년과 보통 사람들에게는 없잖아 있다. 실은 비중이 문제가 아니라 잘 찾아보기 귀찮고 힘들고 지나쳐 가는 경우가 맞겠지만 말이다. 영화감독, 방송국 프로듀서, 패션 디자이너, 프로그래머 등은 비교적 많이 알려져 있다. 하지만 위조 여권, 이중 스파이, 정보단체 남미 지국장 같은 경우는 아니다. 그래서 영화가 있는 것일까. 항상 그 실존 인물을 직접 만나보라, 까레라와 레인지로버 롱휠베이스와 마칸을 모두 굴리며 사는 사람의 얘기에 귀 기울여 보고 싶지만, 책에서 "너무 일찍 자신의 인생을 결정하지 마라. 스무 살에 평생 너를 묶어 둘 어떤 일을 시작하지 마라." 이런 문장을 읽지만 많은 사람들은 청소년들도 어른들도 좀 덜 신중하게 삶을 살아간다. 그러니까 언제 어느 때나 행복이 어쩌네, 무엇이든 미쳐야 하네, 인생을 뭐해라...라는 책들이 서점가 베스트셀러 단골 메뉴로 등장하고 사람들이 돈, 돈, 돈 하는 이유가 그것이며,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말빨에 민감하고 절대 주의해야 하는 게 다름아닌 이 세상의 여러 속도들이다. 결혼을 이혼을 또는 연애를 한 번, 두 번, 세 번...하는 것은 조금 다른 문제다. 아무튼 소설 쓰느라 책을 읽지 않으니까 글의 수준이 이 모냥이다.
소설 쓰기. 어떻게, 왜, 무엇을? 그냥 막 쓰는 게 정답이다. 보통은 그래야 하지만 때로는 (가끔만) 부모 말은 듣지 않아야 인생이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푸는 열쇠가 되기도 한다. 대략 소설가들은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치밀한 구상과 방대한 자료 조사 후 정교하고 섬세한 집필 과정에 어마어마한 시간을 들인 후 다시 뒤돌아 보고 퇴고에 퇴고에 퇴고의 과정을 거치는 타입. 둘째, 영감이 떠올랐을 때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일사천리) 쭉 써가는 부류. 나중에야 그것이 영감이라고는 하겠지만 그건 단지 실마리 라거나 사소한 궁금함, 초딩 같은 호기심, 보잘 것 없는 몽상인 경우도 많을 테지만 그 영감은 어쨌든 두번째 가지에 속한다. 어찌됐든 바흐의 초기 작품을 듣는 사람, 거의 없다.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1번 교향곡? 안 들어봤지만 형편없을 게 뻔하다. 아니 예상한다. 실은 그랬으면 좋겠다.
그 전망 좋은 어느 날 S는 어느 전기차를 타고 호텔 건너편 이름 모를 파라다이스로 드라이브를 갔다 와서는 잠시 어렸을 적 옛 생각에 빠져보았다. 그 때는 TV 단막극을 보고 혼자 단꿈에 빠져 제빵 학원에 다니면서 프랑스나 이탈리아 같은데서 쉐프를 하고 있을 먼 미래를 그려보기도 했고(실은 동네에서 빵집 사장을 하고 살면 흥미로울 듯 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 나이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는 대개 이런 공상에 대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던 게 기억났다. 많이들 서로 딴 얘기하는 듯이, 각자 모두 한꺼번에 말하고 듣는 사람은 결국 하나도 없이, 우선 술집 사장을 할꺼야, 그래서 돈을 좀 벌면 건물을 하나 사는거지. 그 후 1층엔 서점을 내고 2층엔 뭐, 3층엔 뭐... 제일 꼭대기 층엔 당연히 자신의 집무실이 위치 하고. 실제로 이 꿈을 적당한 스케일로 실현한 사람들이 드문드문 존재한다. 남자들에게는 이런 게 로망일까. 그 가운데 상위 몇 퍼센트 남자들도 보통 사람들과 하나도 안 다르다. 예쁜 부인과 사랑스러운 아이들 하며 모든 것을 다 갖추었어도 끊임없이 외로움을 타고, 2세의 덜 명민한 IQ의 원인에 대해 분석하기도 한다. 마초성 또한 당연히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완벽히 간직한 채로. 사람 사는데도 거의 많이들 비슷하지만 사람도 그렇다.
소설가들이 왜 옛날 이야기를 하는지 알 것 같다. 왜 소설가들이 첫 작품에 자신의 경험을 쓰는지, 거장들이 직접 경험한 것을 그렇게들 쓰라고 하는지 알듯 모를 듯 하였다. 이건 더 쓰지 않아야겠다. 재미없다. 여기서 잠깐, 읽는 중간 S와 J를 잘 구별하시기 바란다. 언젠가 그 둘이 합체 할지도 모를 일이니 말이다.
뭔 얘기하다 여기에 이르렀지. 아 그렇게 S는 J가 뭔가 좀 더 새로운 일을 체험하게 만들고 싶은 데로 집필 의욕에 대한 촛점이 옮겨감을 느꼈다. 이 글의 화자는 꼭 지팡이를 짚으신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한 노신사를 닮았다. 평생 남장을 하고 다녔던 어느 여류 소설가처럼. 왜 그녀가 평생 남장을 하고 살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녀는 실존 인물이었다. 이거 이거 소설의 수준이 별 1개나 가능할런지 의문이다. 아무래도 어떤 독자께서는 1인칭 소설의 어떤 단어처럼 여기에서는 유독 그 단어가 많구나 하시면서 눈을 게슴츠레 뜨며 변죽을 올릴 것이 뻔하니 이마에 땀을 쭉나고 호흡이 가빠진다.
J는 이렇게 생각했다. 해외에는 안 먹히지만 국내용으로 출판사와 독자들 모두 함께 흐뭇하게 만족할 만한 베스트셀러는 남들이 모두 쓰고 있다. 문학적으로 널리 공인 받고 알려져서 만인의 존경까지 받는 문학 작품 또한 전업 작가들이 독점한다. 그렇다면 색다르게 영혼 체이지를 주제로 이 소설을 풀어 가볼까? 사람은 그냥 타고난 데로, 생긴 데로 사는 게 낫다. 그래서 일단 닥치는 데로 써서 분량만 채우리라고 다짐했다. 그러기 위해서 고품격 소설에서 삘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통속 소설도 B급 소설도 참고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가장 훌륭한 인문 교양서의 고도로 순수하고 극도로 집약된 밑줄 긋기를 모아, 모아, 모아서 소설체로 승화시키는 방법도 있겠지만 일단 모토는 정해졌다. 닥치고 쓰기, 일명 닥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J는 일단 소셜 네트워크 업계에서 조금 일해 보았던 경험을 살려 본인이 부러워하고 멋져 보이고 공인으로 인정받으면서도 뭔가 도전적인 인생 행보를 보여 주고 있는 인물을 설정해서 그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 이야기는 이렇다. 여기 주인공이 있다. 실제 이름도 교우 관계도 출신에 대한 기본 정보도 세간에 알려진 것이 없다. 다만 미디어와 소셜 네트워크의 고급 리크루터들 사이에서는 이미 불세출의 기인으로 알려져 있으며 간단히 P라고만 불리며 그의 최근 경력에 대해서만 노출되어 있다. 아니야, 아니야. J는 이거도 별로 재미있지도 않고 몰입하게 만드는 그 어떤 요인도 갖추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그가 잠자코 곰곰히 의자에 앉아서 TV에서 봤던 사색하는 듯한 꽤 괜찮은 포즈를 취하고서 드립 커피를 커피 광고에 나오는 배우처럼 자세를 잡고 한 잔 하면서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생각해봤다. 계속 생각만 해. 꼭 그 실마리가 약속된 것처럼 풀릴 것이란 듯이. 그럼 어떡하지, 어떡하지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