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교양스럽고 단정하며 꼬셔주기를 바라는 표정의 처자들과 최고급 음식과 실크 팬티에 벤틀리든 잡지에서만 볼 수 있는 클래식카든 요트든 초호화 문명의 이기들도 많았지만, 시원한 바닷 바람이 살결을 간지럽히는 것만으로도 S는 그냥 이대로 J를 1인칭 서술이라는 안타까운 그 길로는 마지못해 보내버릴 수는 없다고 결심했다. "감독님도 여배우들과 막 자고 그러세요?" 같은 말장난을 듣는 에로 영화의 거장과도 같은, 전성기의 알파치노의 카리스마와도 같은, 초대형 로또에 담첨되어 비밀 로또 패밀리에 처녀 참석한 것과도 같은 더없이 격앙되면서도 고조된 기분을 만끽하고 있으니 J가 다시 3인칭 소설을 어떻게든 쓰도록, 어떻게든 발로 쓰든 손으로 쓰든 말빨로 구술하여 속기사가 초딩처럼 기술하도록 만들든, 3인칭으로 소설을 완성하게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
J는 마티니를 한잔 하면서 슈베르트의 실내악을 들으면서 가만히 생각하다 보니 그게 또 그렇게만 어려운 일도, 절대 불가능한 난공불락의 철옹성도 아닐 것으로 보였다. 엇그제 초안을 작성할 때 잡았던 '뒷사람 음료값 지불하기'를 잡고 끝까지 늘어지는 방법도 있었다. 어차피 구성과 플롯, 대화 그런거는 초짜 삥바리에게는 어려운 것이니까 주제 사라마구처럼 그 도시 시리즈를 만들어 보기로 하는 게 좋을 듯 했다. 주제 사라마구도 정통적인 보통의 소설 방식이 아닌 스타일로 연작을 발표해서 노벨상을 철커덕 덥썩 거머 쥐었다. 거의 절대 아닌 것 같아도 소설가들 다수는 노벨상에 대한 욕심이 있다. 그 말을 기억하자. "나 차 욕심 없어." 유사한 대사도 일상 생활에서 흔히 쓰인다. "...안 부러워.", "난 행복해.", "못 생겼네.", "죽어야겄다."... 왜 그게 나쁜가? 아니다. 적당하면 당연히 좋은 것이고 자연스러운 드라마 대사와도 비슷하다. "좀 더 솔직해지자꾸나... 너도 그렇게 야망이 있는 애다. 야망이 뭐가 나쁘니. 늬가 그걸 인정해야 편할꺼다..." 그게 동기부여고 뻠프질이 되어 점점 좋은 작품들이 꾸준히 나오는 법이다. 세상은 그렇게 돌아간다. 눈먼 자들의 도시, 눈뜬 자들의 도시, 이름없는 자들의 도시... 모두 발단은 if 코딩문으로 시작한거다.
그렇게 뒷사람 음료값 지불하기로 바톤을 넘기는 이어달리기 옴니버스로 이야기를 만들면 뭔가 작품이 나올 것도 같았다. S는 마음을 가다듬고 조급해 하지 않고 J에게 마법의 공기를 불어 넣고 어떤 풍경, 연상되는 대상들, 의미 있는 지옥의 묵시록 같은 심연을 마주칠 기회를 끊임없이 제공해서 뻗어버리게끔 아니면 지구 바깥으로 튕겨져 나가게끔 만들기로 결정했다. 또한 예전 기록했던 Friendfeed, Facebook page, Blog와 다른 소셜 네트워크 포스트들도 참고해 보기로 했다.
의욕을 고취시키다 절망하고 다시 시도했다 절망하고 오뚜기처럼 일어났다 좌절하고 그러다가 새벽과 아침에 신체적으로 일어서기를 반복했지만 J는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반 고흐 같은 예술혼은 없지만 베토벤 같은 불굴의 의지는 부족하지만 뉴 키즈 온 더 블럭의 노래 제목처럼 한걸음 한걸음 내딛기로 했다. 그러면서도 고품격 소설 읽기, 찾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글이 써진다는 촉은 어떻게 보면 성기를 맞으면 발끈하는 울버린처럼 욕이 가미된 비꼬고 떠보는 식의 탄을 날리는 화법의 빌미 어린 말이 기폭제가 되는 것도 같지만 항상 그런거 같지는 않고 아무래도 다른 예술 분야보다는 주로 책이 가장 형태가 비슷하니까 촉매제가 되는 느낌이다.
책. 그래 책. 그 가운데 괜찮은 녀석을 만나게 되면 그는 마치 관록미를 숨길 수 없는 원숙한 기량의 생활 노름꾼과도 같은 몸짓을 보인다. 달걀이 아닌 메추리 알을 쥐는 듯 손을 오므려 쥐고서 가운데 손가락만 손바닥 안쪽으로 약간 덜 당긴 채 책 표지에 대고 노크를 한다. '괜찮은데..'라면서 취한 그 포즈가 꼭 자신에게 패를 주라는 신호처럼 보인다. 똑똑 그리고 똑똑. 첫번째 똑똑 뒤에 두번째 똑똑. 왜 두 번 일까? 세 번도 아니고. 사이클 대회에서 1등의 모든 스포츠 선수들의 세러모니도, 샤워실에서 거울을 보고 자신의 몸매와 얼굴을 감상하는 미남도, 술을 마시기 전에 술이 차 있는 술잔을 테이블에 두드리는 마초도 모두 2번 두드린다. 그렇다고 굳이 오랑우탄인가 고릴라인가가 가슴을 몇 번 두드리는가를 구글이나 야후에서 검색해 보고 싶은 열성까지는 없다. 그런데 수컷만 그러나. 그 궁금함은, 호기심은 고이 모셔 놓고 나중에 천천히 알아가는 게 좋겠다. 남자는 3가지 부류가 있다. 첫째, 세상 모든 여자를 단 10분 안에 꼬실 수 있는 남자. 둘째, 말빨로 꼬시기는 하는데 10분이 아니라 10일, 1달, 1년이 걸리거나 돈을 그냥 일확천금을 들여야 꼬시는 타입. 셋째, 나머지 남자.
책. 그래 책. 뭐랄까 여러 책 가운데서 품위 있는 소설을 읽으면 자기도 모르게 자극 받는다고나 할까, 괜히 잘 살고 있는 일반인의 마음을 마구 뒤흔들어 놓는다고 해야 할까, 그것도 아니면 괜히 생트집을 잡도록 사람을 광인으로 몰아가는 것일까. 바로 이렇게 말이다. 아니 이 인간은 생긴거는 전혀 딴 판인데 어떻게, 어떻게... 이거봐 이거봐. 부모가 뭐 있네, 성장 환경이 기가 막히군, 작가라는 사람이 소설가라는 작자가 변호사 자격증을 그냥 운전면허증 획득 하듯이 따고, 원래 허벌라게 겁나게 징그럽게 똑똑한 인간이구먼, 이 인간이 소설가가 되어서 다행이지 만약 그 업계로 나갔으면... 어휴 생각만해도 끔찍하다-까마득하다-아주 아득하다, 저 양반은 원래 돈이 많아서 취미가 책 내기야, 얘는 인생 자체가 파란만장하니까 개인적 체험 만으로 쓸거리가 넘쳤네, 오 이런... 이러다가 욕만 하다가, 험담만 하다가 소설 끝나겠다. 그만 자중하고 우아하게 기품 있는 작품을 정말 쓰기 시작하겠다고 J는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범죄자는 범죄 현장에 다시 출몰한다는 정설처럼 결심했다.
안 중요할 수도 있지만 일단 혹시 모르니 하나를 던져본다. J는 방금 최고를 질투해서 상위 클래스만 헐뜯었다. 하지만 S가 경험한 세상에서는 최고 뿐만 아니라 위 아래, 앞 뒤, 이쪽 저쪽 그 모두를 가리지 않고 물어 뜯는, 오빠라는 단어를 어떤 목소리에 뭐한 어조로 듣게 된다면 미쳐버리는 위인들은 상위 클래스만 헐뜯지 않았다. 그래서 가끔은 현실의 공간에서 그들끼리 진짜 물어뜯기도, 뜯기기도 한다. 세상 참 웃기다. 험담에 대한 얘기가 나왔으니 잠시 쉬어간다. 엉덩이가 완전 납짝한 어떤 젊은 가수는 이 세상에 비밀이란 없으니까 남의 험담을 할 때는 자기 집에서 혼자 이불을 뒤집어 쓰고 정말 시원스레, 시원스레 막 소리 지르면서 해소한다고 한다. 이거도 일종의 퍼포먼스인가. 그러고서 나중 그 험담의 대상을 만나면 괜히 미안해진다나. 그런데 약간 다르긴 하지만 이런 험담을 대놓고 공개적으로 퍼트린다면 그건 또 유머가 된다. 귀가 막힌 채로 웅변만 하는 남성의 얘기도 텔레비전 코메디 방송에서 편집되면 유머다. 완전 재미있다. 정말 미세한 차이다. 극도로 유명하고 불세출의 개그감으로 코메디의 화신 급인 1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어떤 개그맨은 다른 동료 개그맨에게 방송 중에 이런다, 대놓고. "나는 늬가 못 우끼면 기분이 좋아."
J가 나중 미안하고도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애틋한 감정을 점잖게 유감스러운 표정으로 드러내야 할 사람이 소설가만 있을려나. 그러나 그런 걱정은 아무 쓸모가 없는 사서 걱정하는 오지랖일 뿐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만날 일도 없을 것이고, 아예 없는 얘기는 하지도 않은 데다가, 그 험담은 반어법이었으며, 또한 이건 S가 쓰는 소설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그 분들을 존경하고 좋아하기 때문이다. 무슨 일인지 잘 예측은 안되지만 그런 일은 명백히 인간 세상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불가능의 영역이다.